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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2012-07-18
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간증/ 배우 김태희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국민 여배우 김태희의 신앙고백이 화제다.(63호 6면 참조) 가톨릭 신자 김태희 세례명은 베르다이다. 그녀의 겸허한 신앙고백이 지난 5월 6, 13, 21, 27일 4회에 걸쳐 천주교 소식지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란에 실렸다. 본지는 자료를 입수, 입력․정리하여 게재한다.(편집자 주) 2.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다 성당에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여름방학에 남동생과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첫영성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더 어릴 때에는 조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가끔 절에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어린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성당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예쁜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중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땅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다 불현 듯 신비스런 기운이 휩싸면서 가슴이 벅차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늘 너와 함께 있다.’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며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나의 경험이 그 날의 기분 탓에 겪은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증명해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난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놀라운 체험들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사롭고 막무가내인 수많은 기도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응답해 주시며 당신의 존재를 늘 내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하나님 말씀을 모른 척하며 살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많은 말씀 가운데, 유독 여러 번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난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모자라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실 거야. 영원히….’라고. 3. 하나님의 훈육방법 삶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절실히 찾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쁜 일이 생겨 한없이 감사를 드릴 때, 그리고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너무나 괴로울 때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게 될 때는, 역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뭔가 큰일이 생겼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과연 아무 이유 없이 오로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이신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고, 마냥 피하고만 싶은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로 인해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훈육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예상치 못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누구도 원망이나 불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 그 분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우리가 늘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것 하나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연기’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이 주관하시지 않았으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연기자로 이끄신 것은 아마도 그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4.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는 성경을 처음부터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일주일 단 한 번, 고작 한 시간일 뿐인 미사 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자기 전에 달랑 한두 구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바라는 것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말이 얼마만큼 내 진심과 맞닿아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두 달 전부터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본당의 한 신자로서 청년활동에 권유를 많이 받아왔지만 내가 다른 청년들과 어울리며 신앙생활을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기적으로 신부님과 내 또래 자매들과 너무나 즐거운 성서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하나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나님이란 과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면서 성서모임은 점점 더 신이 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내가 그린 상대방의 이미지만을 보며 그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가짜 연애처럼 해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내어나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고, 특히 나는 지난 일을 너무나 쉽게 잘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놀라운 체험으로 나를 깨닫게 해주셔도 또 금세 잊어버리고 제자리걸음만을 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3:8)는 말씀이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바람과 같이 자유롭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떠한 제약 없이 눈앞의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살고 싶습니다. 나를 이끄시는 대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나는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때로는 남들보다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는 우월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과시하고 자랑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봐 혼자서만 조용히 하나님 사랑을 맛보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잊고 살았다는 것과 내가 그동안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죄책감입니다. 내 성격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남에게도 쉽사리 무엇인가를 권유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종교나 믿음 같은 문제는 누가 말로써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님이 쓰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읽으면서 선교 활동에 대해 가졌던 회의적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선교 활동을 할 때, ‘구원’이라는 단어를 꼭 씁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답변을 알아봅니다. 1) 누가 구원되는가?/ 인간이 2) 누가 구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3) 무엇으로부터 구원되는가?/ 죄에 의해 배가(倍加)된 인간의 유한함으로부터 4)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 구원되는가?/ 더욱 정의롭고 보다 형제애적이며 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와 교회에 매주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일까요? 솔직히 나는 그리스도교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수없이 많은데, 그건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회에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교회에 속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목소리인 ‘양심’에 따라 도덕적, 인격적으로 사는 그들의 행위 안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신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모른 사람에게 그분을 알게 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마치, 정말 사랑한다면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 하시며, 그때 취하시는 길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자!”라고 답해왔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여, 감히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되는, 나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천주교 소식지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2012-07-18
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간증/ 배우 김태희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국민 여배우 김태희의 신앙고백이 화제다.(63호 6면 참조) 가톨릭 신자 김태희 세례명은 베르다이다. 그녀의 겸허한 신앙고백이 지난 5월 6, 13, 21, 27일 4회에 걸쳐 천주교 소식지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란에 실렸다. 본지는 자료를 입수, 입력․정리하여 게재한다.(편집자 주) 2.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다 성당에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여름방학에 남동생과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첫영성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더 어릴 때에는 조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가끔 절에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어린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성당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예쁜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중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땅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다 불현 듯 신비스런 기운이 휩싸면서 가슴이 벅차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늘 너와 함께 있다.’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며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나의 경험이 그 날의 기분 탓에 겪은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증명해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난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놀라운 체험들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사롭고 막무가내인 수많은 기도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응답해 주시며 당신의 존재를 늘 내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하나님 말씀을 모른 척하며 살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많은 말씀 가운데, 유독 여러 번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난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모자라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실 거야. 영원히….’라고. 3. 하나님의 훈육방법 삶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절실히 찾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쁜 일이 생겨 한없이 감사를 드릴 때, 그리고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너무나 괴로울 때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게 될 때는, 역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뭔가 큰일이 생겼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과연 아무 이유 없이 오로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이신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고, 마냥 피하고만 싶은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로 인해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훈육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예상치 못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누구도 원망이나 불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 그 분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우리가 늘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것 하나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연기’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이 주관하시지 않았으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연기자로 이끄신 것은 아마도 그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4.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는 성경을 처음부터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일주일 단 한 번, 고작 한 시간일 뿐인 미사 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자기 전에 달랑 한두 구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바라는 것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말이 얼마만큼 내 진심과 맞닿아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두 달 전부터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본당의 한 신자로서 청년활동에 권유를 많이 받아왔지만 내가 다른 청년들과 어울리며 신앙생활을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기적으로 신부님과 내 또래 자매들과 너무나 즐거운 성서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하나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나님이란 과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면서 성서모임은 점점 더 신이 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내가 그린 상대방의 이미지만을 보며 그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가짜 연애처럼 해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내어나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고, 특히 나는 지난 일을 너무나 쉽게 잘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놀라운 체험으로 나를 깨닫게 해주셔도 또 금세 잊어버리고 제자리걸음만을 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3:8)는 말씀이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바람과 같이 자유롭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떠한 제약 없이 눈앞의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살고 싶습니다. 나를 이끄시는 대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나는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때로는 남들보다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는 우월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과시하고 자랑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봐 혼자서만 조용히 하나님 사랑을 맛보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잊고 살았다는 것과 내가 그동안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죄책감입니다. 내 성격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남에게도 쉽사리 무엇인가를 권유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종교나 믿음 같은 문제는 누가 말로써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님이 쓰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읽으면서 선교 활동에 대해 가졌던 회의적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선교 활동을 할 때, ‘구원’이라는 단어를 꼭 씁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답변을 알아봅니다. 1) 누가 구원되는가?/ 인간이 2) 누가 구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3) 무엇으로부터 구원되는가?/ 죄에 의해 배가(倍加)된 인간의 유한함으로부터 4)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 구원되는가?/ 더욱 정의롭고 보다 형제애적이며 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와 교회에 매주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일까요? 솔직히 나는 그리스도교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수없이 많은데, 그건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회에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교회에 속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목소리인 ‘양심’에 따라 도덕적, 인격적으로 사는 그들의 행위 안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신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모른 사람에게 그분을 알게 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마치, 정말 사랑한다면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 하시며, 그때 취하시는 길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자!”라고 답해왔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여, 감히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되는, 나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천주교 소식지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일본 오까야마 노플랜 여행기/ 2017-07-17
일본 오까야마 노플랜 여행기 오까야마에 도착하여 고라꾸엔과 오까야마성을 가기 위해 자전거를 빌렸다. JR 칸사이 와이드패스로 공짜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다. 고라꾸엔 가는 길. 옆으로 강이 보인다. 철교를 지나서 고라꾸엔에 도착하였다. 도착해보니 자원봉사 가이드 분들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데 듣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가이드 분에게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하니 자기가 얼마 전까지 한국에 있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한국어로 설명하시는데 한국어가 서투셔서 일본어로 하셔도 된다고 해도 계속 한국어로 하셔서 포기하고 듣고 있었는데 한자를 계속 일본어로 이야기 하셔서 한국어 교실이 시작되었다. ㅠ 돌다보니 두루미가 있었는데 여기에 있는 두루미는 방사를 해도 다시 부메랑처럼 여기로 돌아온다고 한다. 계속 되는 한국어 교실. 계속 틀리는 한국어 발음 고쳐 드린다고 가이드 설명을 들을 수가 없었다. 카나자와의 게로꾸엔, 미또의 가이라꾸엔과 함께 3대 정원이라고 하는 고라꾸엔. 일본 정원에서 자주 보이는 수로. 대나무 숲도 보인다. 약간 높은 곳에서 보이는 경치. 가이드 투어가 아닌 한국어 교실을 하는 바람에 예정 시간보다 늦어졌다. 가이드 분은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고마워 했지만 고라꾸엔에 대해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여 나에게는 너무 아쉬운 시간이었다. 고라꾸엔을 보고 옆에 있는 오까야마성으로 이동하였다. 여기에도 가이드가 있었지만 고라꾸엔에서 고생하여 패스하였다. 일본의 다른 성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많이 드는 오까야마성.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다른 일본 성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고 내용도 비슷했다. 오까야마성 꼭대기에서 보이는 오까야마시. 오까야마성을 다 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데미그라스 돈까스가 유명한 노무라로 이동하였다. 맛은 데미소스가 너무 진하여 돈까스 맛을 제대로 못 느꼈다. 안 먹어 봤다면 한 번쯤 먹어도 될 것 같다. 다 먹고 오오사까를 가기 위해 오까야마역으로 이동. 오까야마역 앞에 있는 모모따로오 동상, 모모따로오 이야기는 오까야마가 배경이라고 한다. 오오사까에 도착 후 숙소에 짐을 풀고 오오사까에 오면 항상 가는 곳인 하루꼬마 스시로 이동하였다. 들어오자 마자 생맥주 한 잔. 하루꼬마에 오면서 처음으로 줄 안 서고 들어갔다. 하루꼬마에 오면 항상 먹는 칸파치, 연어, 계란, 마구로 오오토로는 역시 최고다. 오오토로, 새우, 도미 장어, 성게알 하루꼬마는 가격에 비해서 스시가 크고 질이 좋아서 항상 가는 곳이다. 오오사까에서 다른 곳도 가 봤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다. 스시를 다 먹고 도오똠보리로 이동하였다. 등이 달려 있어서 다른 날과 색다른 모습의 도오똠보리였다. 도오똠보리 한 바퀴 돌고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다음 포스팅으로~~
일본 와까야마 노플랜 여행기(1)/ 2017-07-15
일본 와까야마 노플랜 여행기(1) 6개월 전쯤에 끊어두었던 오오사까행 티켓에 날짜가 다가 왔지만, 여행 당일까지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노플랜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노플랜이지만, 5일 안에 오까야먀에 있는 오오하라미술관과 히메지에 있는 히메지성을 보고 남미여행 중 만났던 일본 친구 마꼬또를 만나기 위해 쿄오또로 가는 것을 큰 틀로 생각하고 칸사이국제공항에 9시 30분경 도착하였다. 일단 JR 패스 파는 창구로 가서 패스를 살펴보니, 5일 일정에 오까야마에서 쿄오또까지 커버 될 수 있는 JR-WEST RAIL PASS를 구입하였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사면 8500엔이었지만, 현지에서 사면 9500엔이었다. 어쩔 수 없지. 준비를 못했으니까. 티켓을 구입하고 히메지성이 있는 와까야마(?)로 출발하였다. 와카야마로 출발하는 전차를 타고 호텔을 찾아보니 3000엔 대에 있는 호텔이 두 곳 있었지만, 둘 다 역에서 10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어서 더 싼 곳을 예약하고 와까야마에 뭐가 유명한지 트립어드바이저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와까야마 인기 관광지에 히메지성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히메지성은 코오베 쪽에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ㅠㅠ 호텔도 예약했으니 어쩔 수 없이 와까야마 여행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와까야마는 아직 안 가 본 곳이어서 금방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와까야마를 검색해 보니 유명 관광지로 와까야마성, 시라하마에 있는 산단베키(三段壁), 센죠오지끼(千畳敷), 엔게쯔도(円月島)가 유명하여 오늘은 와까야마성과 시라하마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조용한 와까야마 시내 와까야마역에 도착하여 호텔에 짐을 맡기고 와까야마성으로 출발하였다. 와까야마성 가는 길에 코오또에서 만날 마꼬또에게 연락해 보니 와까야마 출신이라고 하여 내가 오늘 갈 곳의 검증과 맛집을 물어 보았다. 관광지는 가 보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확정하고, 맛집은 두 곳을 추천받았는데 두 곳 모두 중화소바(라멘)집이었다. 평범한 모습의 와까야마 성 사진 후딱 찍고 내려왔다. 덥기도 덥고, 배도 고프고(일본에 도착 후 한 끼도 못 먹음). 와까야마 성을 내려와보니 와까야마현립미술관이 있어서 궁금하여(미술관 구경을 아주 좋아함),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 보았다. 안에 들어와 보니 딱 여기까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면, 사진촬영 금지. 배가 고프기 때문에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다 보고 나왔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꽤 이름 있는 외국 화가들의 작품들도 몇개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서 점심을 먹기 위해 아까 친구에게 물어봤던 중화소바집을 구글로 검색하였는데 걸어서 30분이었다. 이 정도 거리면 버스를 이용해야 하지만, 와까야마 시내는 교통이 좋지 않았다. 버스가 있었지만 시간대가 좋지 않았다. 30분을 걸어서 도착한 중화소바 맛집 이데쇼오뗀(井出商店). 친구는 무조건 줄이 많을 것이라고 했지만, 내 앞에는 6명이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에 점원이 주문을 받는다. 가장 비싼 특제오오모리중화소바를 주문하였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되어 착석. 맛집답게 많은 연예인 사인 정감가는 메뉴판 내가 먹은 특제오오모리(곱배기)중화소바 중화소바를 먹어보니 10년 전 토오꾜오 살 때 츠끼지시장에서 먹었던 중화소바 맛과 비슷한 맛이라고 느꼈다. 옛날 추억을 되살리며 폭풍 흡입. 최고의 맛이었다. 배고프니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맛은 진한 간장 베이스에, 이게 일본 라면이지 하면서 먹게 된다. 다 먹고 나와 보니 줄이 많이 늘어 있었다. 늘어난 줄을 보며 흐믓한 표정으로 시라하마로 가기 위해 와까야마역으로 출발하였다. 다음으로~
일본 와까야마 노플랜 여행기(2)/ 2017-07-15
일본 와까야마 노플랜 여행기(2) 와까야마역에 도착하여 시라하마행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아서 토토로 커피점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토토로커피는 가격이 싸서 일본에서 여행 중 쉴 때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시라하마행 쿠로시오호를 타고 시라하마로 향했다. 와까야마에서 시라하마까지는 특급열차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시라하마역에 도착하여 인터넷 대중교통 검색을 해 보니 시라하마 토쿠토쿠 프리 승차권을 사면 좋다고 하여 구입하였다. 시라하마에는 팬더를 볼 수 있는 어드벤쳐월드가 유명하다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 가기로 정한 산단베끼와 산죠오지끼, 엔게쯔도를 보기 위하여 버스를 타고 산단베끼로 이동하였다. 산단베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시라하마 해수욕장. 산단베끼에 도착하였다. 요시노 쿠마노 국립공원이라고 적혀 있다. 산단베끼 동굴 탐험을 할 수 있다고 하여 동굴로 출발. 저 집으로 들어가면 입장권 파는 곳과 동굴 입구가 있다. 하지만 입장권이 무려 1,200엔이어서 5분 정도 고민하다가 그냥 들어가 봤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에 한국말로 설명해 준다. 내려가면 사진 찍는 곳이 있지만 허접해 보인다. 동굴 안에 있는 신사. 여기로 파도가 쳐서 물이 들어온다. 동굴은 가격 대비 최악이었다. 300엔이면 딱 적당할 정도의 내용이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동굴 탐험을 마치고 다시 지상으로 이동하였다. 밖으로 나오면 볼 수 있는 태종대와 비슷한 경치. 동굴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경치도 안 좋게 보였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센죠오지끼로 이동하였다. 센죠오지끼의 파노라마 뷰. 이런 지형도 어디서 많이 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 역시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장소인 엔게쯔도로 이동하였다. 가까이에서 본 엔게쯔도. 석양이 지는 엔게쯔도. 석양이 지는 곳에는 연인들이 많이 오는데 이곳에도 거의 다 연인들이 오는 것 같다.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ㅠ 위 사진보다 해가 더 떨어지면 더 아름답다고 하지만, 버스 시간이 다 되어 이동 할 수밖에 없었다. 산단베끼와 센죠오지끼는 별로였지만, 석양이 지는 엔게쯔도는 볼 만 하였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엔게쯔도. 그리고 시라하마에는 저녁에 식당이 문이 닫힌 곳이 많기 때문에 식사할 곳이 별로 없습니다. 역 쪽에는 전멸이었기 때문에 식사를 미리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음 포스팅은 쿄오또입니다.
일본 코지마 노플랜 여행기/ 2017-07-17
일본 코지마 노플랜 여행기 쿄오또 여행을 마치고 오까야마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넘었다. 오까야마역 앞에 있는 특이한 분수 저녁을 먹지 못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 맛집을 찾아보니 히시오라는 라면집이 검색되었다. 2015년 오까야마 라면 박람회 현내 1위를 한 라면집. 가게 이름이 붙은 히시오 라멘에 시마메시를 추가로 시켰다. 맛은 배고파서 그런지 너무 맛있었다. 배고픈 게 큰 거 같다. 무료로 면 추가가 가능한데 밤이 늦어서 추가하지 않았다. 시마메시는 특유의 향이 조금 거슬렸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라면을 흡입하고 내일 쿠라시끼에 가기 위하여 숙소로 돌아갔다. 아침 일찍 쿠라시끼로 이동하였다. 쿠라시끼를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오오하라 미술관에 가는 것이었는데 월요일이 휴관일이었다. 또 다시 실수를 ㅠㅠ 노플랜으로 오다 보니 실수가 많다. 하지만 이런 게 여행이려니 생각하고 아침 먹을 곳을 검색해 본다. 검색해 보니 후루이치라는 우동집이 땡겨서 아침은 우동으로 결정. 조식이 따로 있었지만 텐북까께우동이 맛있어 보여서 오오모리(곱배기)로 시켜서 먹었다. 맛은 다른 곳의 북까께우동과 비슷했지만 면발이 예술이었다. 역시 우동은 면발이지. 새우튀김도 예술. 우동을 다 먹고 이제 쿠라시끼에서 할 일은 없기 때문에 다른 날에 오기로 하고 주변 지역 중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해 보았는데 코지마라는 청바지가 유명한 곳으로 가기로 결정. 청바지가 유명한 곳답게 역 간판에 Jeans Station(청바지역)이라고 적혀 있다. 역 밖에도 청바지들이 널려 있다. 택시도 청바지 무늬. 코지마에 온 이유는 청바지에 관심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세또오오하시(세또대교)를 보기 위해서 왔다. 역 앞의 4번 정류소에서 시모덴이라는 회사의 버스를 타고 세또대교를 볼 수 있는 와슈잔 전망대로 이동하였다. 한적한 도로와 유원지를 지나 와슈잔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와슈잔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보이는 세또대교.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세또대교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의 자매교 기념비. 세또대교는 철도, 도로 병용교로서는 세계 최장이라고 한다. 다리의 끝은 시꼬꾸 섬이다. '시마 히또쯔 미야게니 호시이 와슈잔(섬 하나 선물로 줄까? 와슈산아?)'이라는 단가가 돌에 새겨져 있다. 정상에 올라가서 10분 정도 앉아서 탁 트인 경치를 구경하고 오까야마로 가기 위하여 다시 올 때 타고 온 시모덴 버스를 타고 코지마역으로 갔다. 다음 포스팅으로 ~
일본 쿄오또 국립근대미술관 노플랜 여행기/ 2017-07-19
일본 쿄오또 국립근대미술관 노플랜 여행기 다시 쿄오또로 왔다. 쿄오또근대미술관과 쿄오또시립미술관을 가기 위해서. 우선 아침 겸 점심을 먹기 위하여 쿄오또에 오면 항상 가는 곳인 혼께 다이이찌 아사히에 왔다. 평일 오전 시간인데도 열 명 정도 기다리고 있었다. 간판이 원래 노란색이었는데 바뀌었다. 여기도 줄 서 있는 동안 주문 받는다. 차례가 되어 착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주문한 특제 라면과 교자가 나왔다. 이 곳에 오면 항상 시키는 메뉴이다. 한국 사람들이 먹으면 짜다고 할 맛이지만 (친구 데리고 왔을 때 소태라고 함.) 나에게는 자다가도 생각나는 맛이다. 같이 시킨 교자도 너무 잘 어울린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라면집 중 하나. 식사를 마치고 쿄오또 국립 근대미술관으로 이동하였다. 특집 전시로 프랑스 근대미술의 정수 인상파에서 에콜 드 파리를 하고 있었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 인상파 화가부터 모딜리아니, 키슬링, 후지따 츠구하루 등 에콜 드 파리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에콜 드 파리란,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파리의 몽파르나스를 중심으로 모였던 화가들을 가리킨다. 주요 화가로 이탈리아의 모딜리아니, 리투아니아의 수틴, 폴란드의 키슬링, 네덜란드의 반 동겐, 일본의 후지따 츠구하루 등이 있다. 기탁 작품 외에는 사진촬영이 가능하여 쿄오또 국립 근대미술관 소장 작품인 후지따 츠구하루의 작품 두 점은 사진촬영이 가능했다. 나는 에콜 드 파리 화가 중에서 후지따 츠구하루의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 후지따 츠구하루의 누워 있는 나부, 1937 후지따 츠구하루의 태피스트리의 나부, 1923 후지따는 위 그림들과 같이 유백색의 피부 묘사로 유명한 화가이다. 근대 미술관을 다 돌아보고 건너편에 있는 쿄오또시립미술관으로 가보니 리뉴얼 중이어서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위쪽에 있는 헤이안 진구우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볼 만한 것이 없는 헤이안 진구우였다. 그래서 관광객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헤이안 진구우를 다 보고 히메지성을 갈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서 중간에 어딜 갈지 생각하다가 효오고현에 있는 효오고 현립 미술관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쿄오또를 나왔다. 다음 포스팅으로~~
일본 쿄오또 기온 마쯔리 노플랜 여행기/ 2017-07-16
일본 쿄오또 기온 마쯔리 노플랜 여행기 와까야마 여행을 마치고 쿄오또로 가는 날이다. 남미 여행 중 같이 볼리비아를 동행했던 마꼬또와 연락하여 만나기로 한 날이다. 와까야마역에서 와까야마 특산물인 메바리 스시를 기차 안에서 먹기 위해서 구입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토 일 월 연휴여서 기차 안은 입석까지 꽉 찬 상태여서 오사카역까지 입석인 상태로 가게 되었다. 겨우 앉아서 먹은 메바리 스시의 맛은 그냥 풀맛이었다. 같이 들어 있는 생강이 없었으면 다 못 먹었을 듯. ㅠ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서 쿄오또에 도착하였다. 쿄오또역에 도착하니 인산인해였는데 알고 보니 오늘이 쿄오또 3대 마쯔리(축제)인 기온 마쯔리 날이었다. 개찰구 앞에서 마꼬또와 만나서 인사하고 바로 점심을 먹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기온 쪽으로 이동하였다. 가라스마역에 도착하여 밖에 나오니 마쯔리 분위기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오미코시(가마)도 보인다. 쿄오또 카모가와(강)를 지나 기온에 도착하였다. 기온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풍경이다. 옛 사진을 꺼내서 봐도 같은 거 같다. 아마도 10년 후 20년 후도 같겠지. 마꼬또가 점심을 먹기 위해서 안내한 곳은 츠지리라는 곳이었다. 쿄오또나 오오사까 쪽은 맛집들은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 엄청 많은데 이곳에는 한 명도 없었다. 인기 맛집인지 줄이 길었다. 계단 오르는 길에 있는 꽃꽂이 장식 앞에 서 있으면 점원들이 보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달라고 주의를 준다.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가게에 들어와 보니 남여, 여여 커플만 있고 남남은 우리뿐이었다. 메뉴판을 보니 거의 다 디저트류이고 식사가 될 만한 것은 녹차 소바와 우동뿐이었다. 소바를 시켜 먹었지만 특별히 맛있는 것은 아니었고 깔끔한 맛에 소바의 식감이 좋았다. 디저트로 시킨 특선이 들어가는 이름의 디저트. 나는 일본 음식점에 가서 애매할 경우에 특선이나 특제가 있는 것을 시킨다. 점원이 이거 가지고 올 때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 아이스크림 세 개 올라가져 있는 빙수를 먹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ㅎㅎ 빙수도 깔끔한 맛은 있었지만 특별히 와~~ 맛있다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거 다 먹고 나니 오한이 돌았다. ㅎㅎ 츠지리를 나와서 야사까 신사로 향하였다. 야사까 신사는 기온 마쯔리 행렬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즉, 기온 마쯔리는 야사까 신사의 마쯔리이다. 일본인 친구 가이드가 있으니 이런 것도 알게 되었다. ㅎ 신사에 들어와 보니 이곳도 인산인해다. 일본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야키소바와 금붕어 잡기 야사까 신사에서 밤에 가장 인기 있는 포인트라고 한다. 밤에 등이 켜지면 이쁘다고 하니 가 보시길 바랍니다. 쿄오또에 밤까지 있을 예정이 아니어서 보는 것은 포기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꼬또도 저녁에 약속이 있다 하여 나는 다음 행선지인 오까야마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쿄오또역에 도착하여 JR 칸사이 와이드패스를 이용하여 특급열차를 타고 신오오사까에 가서 신깐센으로 갈아 타고 오까야마로 향하였다. (JR칸사이 와이드패스는 쿄오또에서 바로 오까야마까지는 신깐센을 탈 수 없고 특급열차나 보통열차를 타고 신오오사까에서 신깐센으로 갈아 타야 합니다.) 마쯔리를 볼 수 있었지만 많은 인파에 치어서 지친 하루였다. 다음에는 축제 기간에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다음 포스팅으로~
일본 쿠라시끼 노플랜 여행기/ 2017-07-18
일본 쿠라시끼 노플랜 여행기 아침 일찍 오오사까에서 쿠라시끼로 출발 하였다. 쿠라시끼의 아침 풍경. 평일이라서 조용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쿠라시끼에서 유명하다는 미따께 상점으로 갔다. 미따께 상점의 인기메뉴인 미따께 카레. 야채카레인데 약간 심심한 맛이지만 아침에 먹기에는 괜찮았다. 식사 뒤에 디저트로 먹은 복숭아 프로우즌 파르페. 이것도 임팩트 있는 맛은 없었다. 그냥 깔끔한 맛. 아침을 먹고 쿠라시끼 미관 지구를 돌아 보았다. 일본 거리를 많이 돌아봤지만 쿠라시끼가 가장 이쁜 거리였다. 이름대로 미관 지구답다. 거리를 조금 구경한 후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오오하라 미술관을 갔다. 오오하라 미술관은 쿠라시끼를 기반으로 한 사업가인 오오하라 마고사부로오가 전년에 서거한 화가인 코지마 토라지로오를 기념하여 1930년에 설립한 일본 최초의 서양미술 중심의 사립 미술관이라고 한다. 입구에는 로댕의 작품들이 있다. 오오하라 미술관에는 르누아르, 모네, 세잔느 등 인상파 화가부터 엘그레코의 수태고지 등 수준 높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면 꼭 가야 하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정원들도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휴식을 위해 근처에 있는 카페인 엘그레코로 가 보았다. 가격은 조금 비싼 느낌이 있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주문. 오래된 느낌의 엘그레코 실내 모습.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거리를 더 돌아보았다. 수로에는 백조가 있다. 쿠라시끼 미관 지구의 명소인 아이비 스퀘어 아이비 스퀘어를 구경하고 먹방. 금상 고로케. 전국 고로케 콩쿠르에서 금상 수상을 했다고 한다. 맛은 그냥 맛있는 고로케. ㅎㅎ 감동은 없음. 고로케를 먹고 꼬치구이집인 타까다야로 이동하였다. 5시 오픈이었는데 4시 58분에 들어갔다가 쫓겨났다가 시간 맞춰서 다시 들어갔다. 일본사람들은 시간은 칼같이 지킨다. 타까다야 내부 모습. 2층에 단체 손님용 스페이스가 있는 것 같았다. 먼저 생맥주를 시켜서 꼬치구이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드디어 나온 꼬치구이. 지금까지 먹어본 꼬치구이 중 최고였다. 한국에서 먹는 꼬치구이는 꼬치구이가 아니었다. 너무 맛있어서 술이 술술 들어간다. 추가하여 마신 하이볼과 소주. 쿠라시끼에 간다면 다시 가고 싶은 곳 첫번째인 곳이 되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감동이었다. 꼬치구이 굽는 꼬치구이 장인. 꼬치구이를 다 먹고 입가심을 위해 구라시키에서 유명한 복숭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오늘의 하일라이트는 오오하라 미술관이 아닌 꼬치구이집 타까다야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생 꼬치구이집을 만났다. 쿠라시끼는 마을 경치도 아름답고 훌륭한 미술관에 맛있는 맛집에 여자친구와 같이 데이트하기에 좋은 곳이다. 여자친구 사귀면 다시 오고 싶다. 다음 포스팅으로~~
일본 효오고현립미술관, 히메지성 노플랜 여행기/ 2017-07-19
일본 효오고현립미술관, 히메지성 노플랜 여행기 쿄오또를 나와서 코오베시 나다에 있는 효오고 현립 미술관으로 출발하였다. 효오고 현립 미술관은 일본의 대표적인 건축가 안도오 타다오가 설계한 미술관이다. 안도오 타다오가 한신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코오베시에 지진 재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미술관을 설계하였다고 한다. 1, 2층에 있는 8곳의 상설 전시실에서 약 9,000점의 소장품을 순차적으로 전시를 한다고 한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면 안도오 타다오 건축물의 특징인 자연채광과 노출 콘크리트를 바로 볼 수 있다. 상설 전시실 엘리베이터 홀. 효오고 현립 미술관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휴대폰으로 사진 찍는 것은 제지를 당한다. 카메라가 없어서 찍을 수 없었는데 남대문이라는 작품이 있어서 직원에게 한국에서 왔는데 한국의 옛모습이라서 찍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1917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소달구지가 지나가는 남대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나야마 헤이조오의 남대문, 1917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았다. 건물 밖에 있는 조형물. 원형 테라스. 효오고 현립 미술관은 미술품 외에도 안도오 타다오 코너가 따로 있다. 그의 데뷔작인 스미요시의 나가야와 빛의 교회의 사진패널과 실물을 1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도 전시하고 있어서 건축의 관심있는 분이나 안도오 타다오 팬들은 한 번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효오고 현립 미술관을 다 보고 히메지성이 있는 히메지로 이동하였다. 역에서 도착하여 JR 칸사이 와이드 레일패스로 무료자전거를 빌리고 히메지성으로 향하였다. 멀리서 보이는 히메지성. 히메지성은 성벽이 불에 타지 않도록 백색의 회벽을 발라두어 하쿠로성(백로성)이라고도 불리운다. 성 전체는 세계유산이며 국가 사적이다. 가까이서 본 히메지성. 옆에서 본 히메지성. 히메지성의 성의 축벽은 하시바 히데요시(후에 토요또미 히데요시)의 충신인 쿠로다 칸베에와 관련있는 축벽이라고 한다. 쿠로다 칸베에는 토요또미 히데요시의 군사로 제일의 충신으로 임진왜란 등에도 참가하였다고 한다. 히메지성을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히메지성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역에 돌아와 자전거를 반납하고 오오사까로 이동하였다. 내일 아침 일찍 귀국하기 때문에 조금 비싼 것을 먹자고 생각하여 KYK 돈까스 한큐우 32번가 지점으로 갔다. KYK 돈까스는 오오사까에 여러 지점이 있지만 한큐우 32번가는 28층에 있어서 전망이 좋다. 먼저 시원하게 생맥주로 목을 축이고. 카고시마 흑돼지 로스 돈까스를 시켰다. 타코 와사비를 좋아하는데 특이하게 돈까스와 타코 와사비가 같이 나왔다. 로스 돈까스는 보통 퍽퍽한 경우가 많은데 흑돼지 로스 돈까스는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었다. 로스 돈까스도 입에서 녹는구나. KYK돈까스는 밥, 양배추, 미소국, 카레, 주스 등을 먹을 수 있는 부페 코너가 있다. 양배추와 카레만 조금 추가하여 먹었다. KYK 돈까스를 나와서 돈키호테에 들러서 라면과 먹을 것을 사고 여행을 마무리 하였다. 처음 시작부터 실수로 시작된 노플랜 여행이었지만 실수를 극복해 나가는 것들이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즉흥적으로 가고 싶은 데 찾아서 가는 것도 재미있었고. 그리고 4박 5일간의 여행은 JR 칸사이 와이드 패스로 신깐센을 탈 수 있어서 오까야마에서부터 쿄오또까지 1시간 30분 정도에 도착할 수 있어서 여행이 가능했던 것 같다. 오오사까에 숙소가 있어도 오까야마까지 쉽게 갈 수 있다. 5일 정도 여행에 오오사까에서 오까야마를 간다면 JR 칸사이 와이드 패스를 추천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사면 1,000엔 싸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끝~~~
자기이해와 성격분석(1)/ 2004-02-06
자기이해와 성격분석(1) 1. 나는 누구인가?(Who Am I?) (1) 자아정체감의 정의(ego-identity)/ 에릭슨 자아정체감이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독특한 개인으로 자각하며, 대인관계, 역할, 목표, 가치 및 이념 등에 있어서 자기다움을 견지해 나가려는 의식, 무의식적인 노력’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아정체감이 강한 사람은 비록 다른 사람과 같은 동기, 흥미, 가치 등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자기 자신을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과 분리된 ‘독특한 개인’으로 자각하며, 자기일관성 내지는 정체감을 이룩하고자 노력한다. 에릭슨은 자아 심리학의 열쇠가 되는 저술가이며 자기정체성을 현재의 자기가 어떤 존재라고 느끼는 자기평가와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자기 판단의 양극성으로 이해한다. 자기정체성을 성취한 사람은 소속감을 느끼며 개인의 정체감은 자아개념 및 자아존중감과 서로 관련되어 있다. ◈ 개인의 자아정체감은 네 개의 기본적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인간성 차원: “나는 누구인가?”라는 각 개인의 실존적 자아 물음 ② 성별 차원: “나는 여자”, “나는 남자”라는 성의 느낌 ③ 개별성 차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특별하고 독특한 개인의 기능적 자아에 대한 물음 ④ 계속성 차원: “그러한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시간경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사람이라는 인식의 계속성으로 가치관, 인생관에 대한 이상적 자아의 물음 (2) 정체감 상태 ① 정체감 유실(Identity foreclosure) 정체감 유실로 분류한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와 대단히 유사한 직업이나 신념을 선택함으로써 위기를 경험하지고 않고 쉽게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 (예; 부모가 민주주의 신봉자이면 자신도 민주주의 신봉자라고 생각한다) ② 정체감 유예(Moratorium) 현재 정체감 위기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역할실험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유예로 분류하는데 유예상태에 처해 있는 대부분의 청소년은 동일한 연령의 집단, 동일한 나이의 취업환경에서 자신의 정체감 역할 혼란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환경은 그들에게 보다 나은 동일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며 유예 상태와 혼란 상태에 계속적으로 남아 있도록 유도하고 수행할 뿐이다. ③ 정체감 혼란(Identity diffusion) 위기를 경험하였거나 하지 않았거나, 확고한 신념체계를 확립하지도 못하였으며 직업역할을 수행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말한다. 그들은 안정되고 통합된 자아개념을 획득하지 못하고 자기의심을 경험하며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시도하지 않는다. ④ 정체감 성취(Identity achievement)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확고한 신념체계를 바탕으로 직업역할을 수행하며 정치적, 개인적 이념체계를 확립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한때 정체감 성취로 분류되었던 사람이 후에 정체감 유실상태로 분류될 수 있다. ⑤ 부정적 정체감(Negative identity) 부정적 정체감은 부모의 가치관이나 사회적 가치관과 정반대가 되는 자아개념을 의미한다. 부정적 정체감은 개인적 성공에 대한 부모나 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결과로 형성되며 정체감 유실의 특수한 경우로 분류한다. 부정적 정체감을 획득한 청소년들을 ‘비행 청소년’, ‘문제아’로 표현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정체감 유실상태에 처해 있다. 특히 성 역할에 대한 태도, 종교 그리고 직업선택 영역에서 정체감 유실의 증후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청년 후기에서 차츰 안정추세를 갖게 된다. 그렇지만 연령증가가 반드시 정체감 성취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후기에 자아정체의 모든 측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 연령변인의 중요성을 제시하였다. “지금-여기”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자신의 내적 상태를 점검하는 태도는 정말 중요하다. 그로써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는 존재이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인간의 성격(personality): 인성(human nature) 퍼스낼리티는 보통 ‘성격’으로 새겨지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기질만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특질을 통틀어 말한다. 심리학자 칼 A. 메닝거는 “한 개인 전체로서의 뜻, 즉 그의 키, 체중, 애정, 증오, 혈압, 반응 등은 물론이고 그의 미소도 희망도 흉하게 구부러진 다리도 비대한 편도선도 이 모두를 포함시켜 논하여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전부를 뜻하며, 또한 그가 장차 되고자 생각하고 있는 것 전부를 뜻한다.”라고 말하였다. (1) 생물학적 요인: 유전적인 성향, 비교적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생리, 내분비 기능을 말한다. ◈ 기질(temperament)-부모로부터 이어받은 한 세포액, 생리적, 심리적인 잠재력으로 육체적 구조의 범위 안에 한정되어 있다. 즉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2) 환경적인 요인: 경험, 습관, 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 인격(character)-훈련, 교육, 기본적 태도, 신앙, 원칙, 동기 등에 의해 기질이 변화된 결과이다. 지, 정, 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그리고 기후와 날씨, 가정의 구조, 음식물, 풍습, 학교, 친구, 경제적인 법칙과 사회적인 법칙, 육체적, 정신적으로 생기는 인생의 이상한 사건, 병, 부상, 슬픔, 실망 등 누구나 언젠가는 당하게 되는 충격들을 내용으로 한다. 성격의 구조는 행동(behavior)이 아니다. 많은 자녀들이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그 부모의 흉내를 내거나 그들의 태도나 정서반응의 일반적인 형태에도 자녀들이 부모의 흉내를 내는 것이 유전에 의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상의 여러 가지 작은 점들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같은 경우가 많으며, 또 그것이 유전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으므로, 행동의 경향이 부모와 자녀사이에 닮은 점이 있으면 그것도 역시 유전의 경향이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견해를 반박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괴물 칼리굴라는 저매니스카의 아들이었는데 저매니스카는 훌륭한 인격자였다. 더구나 저매니스카는 매우 천한 여자 아그리피나의 아버지이기도 했으며 저 유명한 폭군 네로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잔혹한 도미산은 총명하고 인정 많은 베스페샨의 아들이며, 대 범죄자 코모더스는 훌륭한 마카스 오릴리안스 안토니우스의 아들이었다. 성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악한이었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의 어머니는 미친 사람이었고, 존 케플러의 부모는 성격이 매우 이상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기질의 유전과 환경적인 요소에서 얻어지는 인격은 현저한 구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위함이다. 유전적인 성향은 아이의 직접적인 양육을 맡게 되는 어머니나 대리모에 의해, 또한 환경적인 것에서 변인을 갖는다. 그 양육 대상관계가 밝고 진취적인 인성을 갖고 있다면 키워지는 아이는 긍정적인 인성을 갖게 되고 반면에 키우는 양육자가 우울하고 신경질적이며 비관적인 사람이라면 키워지는 아이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경향을 갖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각 개인의 퍼스낼리티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금숙(선교회 가정 사역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