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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 한인 청년들 뜨겁게 기도한 할렐루야전도대회/ 2009-07-27
1,500여 한인 청년들 뜨겁게 기도한 할렐루야전도대회 컴패션에 전달할 기금 713.75불 모금 ▲대회 마지막날, 청년들이 헌신을 결단하며 기도하고 있다. ‘2009 청소년할렐루야전도대회(EM)’가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순복음교회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헌신을 결단했다. 이번 대회 기간에는 컴패션에 전달할 기금 713.75불이 모금됐다. 주최측은 대회 기간동안 모금함에 지원금을 모금하는 한편 ‘Open Mic Fundraiser’를 마련했다. ‘Open Mic Fundraiser’는 한 청소년들에게 1불씩 나눠주고 그것에 청소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얼마를 더해 모금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청소년들에게 나눠진 금액은 총 200불이었으나 546불 20센트가 추가 모금됐다. 2006년부터 청소년할렐루야대회를 준비해온 청소년사역네트웍 공동 디렉터 스티브 황 목사는 “끝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내년을 기대한다”며 “주님께 헌신을 결단한 청소년들이 우리의 소망인데, 그들이 2020년에 할렐루야청소년대회를 선도해나갈 리더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전했다. 청소년사역네트워크 공동 디렉터 이재홍 목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를 드린다. 청소년들에게 이번 대회가 제가 어렸을 적 주님께 헌신을 결단했던 시간과 같은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할렐루야청소년전도대회 디렉터를 맡은 폴 김 목사는 “할렐루야대회가 30주년을 맞는 해 청소년대회도 열매를 보아 좋았다”며 “자마대회에 갈 수 없고 작은교회의 여건상 수련회를 갈 수 없는 작은교회 아이들에게 자마대회 같고 수련회 같은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 강사 제이 박 목사는 “젊은이가 많은 뉴욕이기에 그만큼 탈선하는 학생도 많다. 그러나 광야에서 모세가 났듯이 이런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제이 박 목사는 이번 대회 기간 “청년, 청소년들이 두려움이 많고 도전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고 제게 가장 도전을 줬던 말씀을 나눴다”고 했다.
10가지 계시의 통로 2004-02-07 10:08:56 read : 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대상 28:19)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불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오시는 종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나서 숨었습니다. 이때 사람은 도망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 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찾으셨습니다. 어디에 있는 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시
10가지 계시의 통로 2004-02-07 10:08:56 read : 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대상 28:19)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불교는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오시는 종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나서 숨었습니다. 이때 사람은 도망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 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찾으셨습니다. 어디에 있는 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니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개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1-3) 하나님께서 찾아 오심으로 시작된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 마지막날에 찾아 오심으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을 우리는 계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계시하여 주셨습니다. 1. 환상을 통한 계시 하나님께서는 환상을 통하여 계시를 주시는 적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세 가지 경우를 보려고 합니다. (1)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은 전적으로 환상을 통한 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만나라는 계시를 환상으로 주셨습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대(隊)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내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上達)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내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들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행10:1-8) 또 하나님은 베드로에게도 고넬료를 만나라는 계시를 환상으로 주었습니다.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행10:9-16) (2) 미가야에게 하나님은 하늘에서 천사들과 회의하는 장면을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을 꾀어서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선지자들로 하여금 거짓말하게하여 전쟁에 나가 죽게 하시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로 하여금 거짓말하는 영이 붙게하여 거짓말로 이길 수 있다고 말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선지자들은 다 이길 수 있다고 말하는데 미가야 선지자만은 환상으로 이 모습을 보고는 전쟁에 나가면 죽을 것이라고 바른 예언을 하는 장면입니다. "미가야가 가로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 좌우편을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고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였은즉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왕상22:19-23) (3) 하나님은 사도바울도 환상으로 통하여 선교자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어느 곳에 가서 선교할가를 기도하고 있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루니이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부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6-10) 이같이 하나님은 환상을 통하여 계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2. 초자연적 현상을 통한 계시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하여 계시할 뿐만 아니라 자연 현상을 통하여 계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 모세에게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아께서 그를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본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나의 선 곳은 거룩 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3-5) (2) 구름기둥, 불기둥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을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40:34-38) (3) 불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성막의 시작은 불의 계시로 나타났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 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레9:23-24) 성전의 시작도 불의 계시로 나타났습니다. "솔로문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대하7:1) 교회의 시작도 불의 계시로 나타났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에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아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불로 계시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경에는 긍정적인 불이 9번 내려오고 부정적인 불이 3번 내려왔습니다. 3. 천사를 통한 계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계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1) 요셉을 인도하는 천사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地境)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2:13-16) (2) 죽은 영을 인도하는 천사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16:22) (3) 롯을 인도하는 천사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니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그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19:15-17) 4. 음성을 통한 계시 하나님께서는 생생한 음성을 통하여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육신의 고막을 울리는 경우입니다. (1) 사무엘에게 임한 음성 "이미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異像)이 혼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 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 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이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시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삼상3:1-12) (2) 아담에게 임한 음성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어디 있느냐"(창3:8-9) 이같이 하나님은 생생한 음성을 통하여 계시하십니다. 5. 생각을 통한 계시 하나님은 생각을 통하여서도 계시하십니다. 기도할 때 나는 생각 기도할 때 떠오르는 생각, 묵상 중에 주시는 생각등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도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6. 기적을 통한 계시 하나님은 기적을 통하여서도 계시하십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러한 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이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눅5:5-7) 이는 베드로로 하여금 앞으로 많은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시는 계시였습니다. 7. 꿈을 통한 계시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 하였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 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내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내게 전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창37:5-11)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꿈을 통하여 계시하셨습니다. 8. 믿음을 통한 계시 하나님은 믿음을 통하여 계시하였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5) 9. 역사적 사건을 통한 계시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서도 계시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로 빼어 내며 그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너희를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줄 너희가 알지라"(출6:6-7)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신3:24) 10. 손을 통한 계시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짓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하나님의 집이라 하나님께서 직접 설계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손을 하나님의 손이 내려와 붙드시고 직접 그려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령을 통하여 음성을 들려 주시면서 그려주셨습니다. 나도 내가 특별하게 쓸집은 내 마음과 용도에 맞게 설계할 것입니다. 사용할 사람만 용도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손으로 그려 주시는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 곧 여호와의 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식양을 주고"(대상28:12)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대상28:19) 성경에 나타난 계시 가운데 가장 정확하고 가장 놀라운 계시는 다윗에게 주신 성전 계시입니다. 천국에는 스트레스가 없다 (계 21:1-9)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말할것도 없이 '스트레스'라는 말입니다. 가장 많이 사용된다는 말은 가장 많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영국 산업 연맹에서 조사하였습니다. 1950년대보다 1990년에 스트레스로 인한 결근이 6배로 늘었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입는 기업의 손해는 노사분규로 인하여 일하지 못하여 입는 손해에 30배가 넘었다는 보고입니다. 심리학자 홀메스(Holmes)와 라헤(Rahe)는 스트레스 연구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후 그들은 스트레스를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스트레스란 삶의 변화로 흔들린 정신 상태를 불안상태에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다" 그러면서 막연한 스트레스라고 말하지 않고 스트레스 수치를 계산하였습니다. 배우자가 죽었을 때 100, 이혼 73, 교도소행 63, 성탄절 12, 법적으로 작은 피해를 당하였을 때 11, 질병과 부상 53, 은퇴 43, 임신 40, 성문제 39, 직업 전환, 36, 상사와의 알력 23, 이사 30, 성탄절 30등으로 모두 계산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를들어 성탄절인데 이사를 가야 할 임신한 여자가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30, 30, 40, 100 모두 합하면 200입니다. 병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여자에게 병이 들고 상사와 알력관계가 생기면 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에는 두가지 별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언의 살인자'라는 별명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슬비인 데 한참을 맞다보면 속옷까지 적셔집니다. 스트레스가 조금 쌓이다 보면 병이 깊어 어느 듯 돌이킬 수 없는 병문턱까지 와 있게 됩니다. '앗차!'하는 순간은 이미 늦었습니다. 스트레스의 징조가 있습니다. 불안, 초조, 불면, 위장장애, 두통등의 신체 장애가 스트레스의 시작입니다. 설사를 자주 한다, 위가 아프다, 배가 더부룩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골이 빈 것 같다, 죽을 것만 같다, 암처럼 느껴진다… 병원에 가도 아무 병도 없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스트레스로 인한 것들입니다. 스트레스는 무언의 살인자입니다. 암에 걸린 사람을 조사하니 암에 걸리기 전에 무엇엔가에 깊이 신경을 썼었던 사람들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스트레스는 무언의 살인자입니다. 그런데 스트레스의 다른 별명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입니다. 반찬에 양념이 없으면 맛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스트레스는 양념이어서 스트레스가 없으면 인생이 맛이 없습니다. 어떤 학생은 시험에 쫓기는 스트레스가 있을 때가 공부가 제일 잘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업가는 남의 사업이 잘 되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가장 사업을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목사님 중에 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어느 날 유명한 부흥강사에게 부흥회를하여 달라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분이 당신 교회는 너무 적으니 1,000명 이상되면 연락하라고 하면서 뒷말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쇼크를 받았습니다. "좋다! 내가 교회를 크게 키우리라, 이것이 주님의 뜻이기도 하고 당신께 복수하는 유일한 길이다. 언젠가 당신은 늙고 나는 피어나겠지! 그때 당신이 나에게 부흥회를 요청하면 나도 보기좋게 거절하여 보리라" 그리고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동기는 순수하지 못 하였어도 열심히 목회하시는 목사님에게 보상을 주셨습니다. 스트레스는 인생의 양념입니다. 스트레스가 있어야 합니다. 이같이 스트레스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이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스트레스를 이기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1) 어떤 사실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사모의 고백입니다. 성격이 쾌활하여 꽤 멋도 부릴 줄 아는 사모였습니다. 말도 참 잘하고 명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이 조용히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여보! 교인들이 그러는데 사택에 쌍나팔이 있어서 덕스럽지 못하다고 하니 목소리 좀 낮추고 조용히 살아요" 그말을 들은 사모는 애써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줄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얼마 후 남편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요즈음 교인들이 그러는데 사모가 너무 촌스럽고 거만하여져서 말도 안 하고 옆에 가려면 시베리아 바람처럼 쌩쌩 찬 바람이 나는 것 같다니 먼저 말도 좀 걸고 좀더 상냥해져요" 이 말을 들은 사모는 고의적으로 먼저 말을 걸고 일부러 옷도 좀 야하게 입고 나타났습니다. 얼마 후 또 남편 목사가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은 교인들이 그러는데 목걸이 귀걸이 안했으면 좋겠대요. 그런 것은 정 하고 싶으면 집해서 하래요. 너무 사치 스럽대요." 이 말을 들은 사모는 수수하게 입고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후 목사님이 또 말했습니다. "여보! 교인들이 요즈음 그러는데 목사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사모가 촌스러워서 도로 간데. 좀 꾸미고 다녀 보지" 이러다가 목사님이 갑자기 말했습니다. "여보! 이러다가 당신과 나는 바보가 되겠다. 이제부터는 무슨 말을 들어도 아무 말 하지 않을 테니까 당신 마음대로 개성있게 살아요" 사실 심각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스트레스가 됩니다. (2) 목표도 때로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1,000미터를 달리다가 도저히 체력이 약하여 뛸 수가 없거든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무리함을 알고도 계속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다가는 쓰러지거나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죽는 것보다 목표 달성을 못하는 편이 낫습니다. 승진하지 못하는 것을 승진하려고 발버둥치다 죽는 것 보다 낫습니다. 좀 낙천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소나 돼지나 짐승들은 위궤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모든 것들을 그대로 받아 드리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장수 마을을 취재하고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조사하였습니다. 다음과 같은 것이 달랐습니다. 1. 식수가 오염되지 않고 좋았습니다. 2. 유기질이 많은 토양으로 자란 식물성 음식을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3. 밥보다 잡곡을 많이 먹고 있었습니다. 4. 부지런히 일하면서 적당한 휴식을 취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5. 낙천적으로 살면서 웬만한 일은 '그까짓 것'라고 넘길 줄 아는 이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화이틀 락 목사가 스웨덴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영국이 너무 어려운 상황이어서 도움을 요청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나라일을 걱정하면서 불면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를 억누르는 스트레스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같이 가던 이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영국에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영국을 다스리고 계셨지요?" "그럼은요", "당신이 영국 땅에서 사라져 죽은 후에도 하나님은 영국을 다스리시겠지요?", "그럼은요", "지금도 하나님은 영국을 다스리고 계시겠지요?" 이 말을 들은 화이트 락 목사가 걱정하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너무 목표에 매달리지 말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낙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3)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늘 같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에게 구하기만 하시면 주시는 분임도 믿어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를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안 되는 것같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지난 주간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튼 연합 감리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돌아 왔습니다. 의사만 30가정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한 외과 의사가 말했습니다. 자기는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수술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어느 사람은 암덩어리가 너무 작아 간단한데도 죽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온 몸에 암세포가 다 퍼져서 곧 세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인데 25년을 그 암덩어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답을 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아 신비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모두 믿음의 영역입니다. 어떤 여인에게 대학 시절 아주 친하였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하다가 20년만에 만났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된 후였습니다.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니?" "나를 따라와 보면 그 동안 못 만난 이유를 알거야" 둘이 집으로 갔습니다. 정신 바약아가 아들이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정신박약아였습니다. 17세였습니다. "나는 저 아들을 돌보느라고 너를 만나지 못하였다. 내 모든 시간을 저 아들에게 바쳤다" "힘들지 않아?" "내 아들인데… 뭘… 조금도 힘들지 않아. 다만 저 아이가 내가 제 어미라는 사실 그 하나만이라도 알고 있다면 내 마음이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 텐데…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겠지…."라고 말하며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며 살다보니 정신박약아 아들을 기르는 것도 그녀에게는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것만 조심하면 사람은 100살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정식(正食)- 신선한 음식을 먹습니다. 2. 정심(正心)-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정면(正眠)- 잠을 바로 자야 합니다. 4. 정동(正動)- 운동을 적당히 하여야 합니다. 5. 정신(正信)-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부로프 박사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매나 독수리가 하늘을 날고 있을 때는 때때로 까마귀나 딱새의 공격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독수리나 매는 이런 새들에게 공격할 힘이 있지만 같이 대항하지 않고 하늘 높이 솟아 오릅니다. 그러면 더 이상 괴롭히지 못하고 제 풀에 꺽여서 물러 갑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 생활입니다. 한 차원 높은 기적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문제가 생기고 아픔이 일어나도 스트레스가 쌓여도 믿음을 가지고 한 차원 높이 올라갈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천국에 돌아가면 우리가 놀라는 것은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놀라게 된다고 합니다. 무엇이 없습니까? 본문은 천국에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1)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2) 다시 사망이 없고 (3)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4)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새롭게 하노라 한마디로 말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여 작은 천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주어도 받지 않는 곳, 작은 천국을 이땅에서 건설합시다. 나는 우리 교회가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작은 천국이 되기를 원합니다. 배부르다고 이러기냐? (신 8:11-20)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어릴 때 목동이었던 아이가 자라서 나중에 나라일을 크게 하는 후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늘 자기가 어릴 때 양을 치던 곳을 자주 찾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에 '목동의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양을 치던 곳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양을 치면서 입었던 옷과 지팡이나 옛날 물건들을 진열하여 놓았습니다. 어느날 이 귀족집을 방문하였던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고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까? 불우하였던 과거는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이 말을 듣고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후작이네. 내가 이런것들을 자주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교만하여 진다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가 어떻게 후작이 될 수가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리고 싶어서 늘 이런 것들을 보고 있다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런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와 양이 번성하여 질 것이다. 은과 금도 많아지고 소유도 풍부하여 질 것이다. 그런 배부름속에서 너희들을 세 가지 죄를 짓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서 배부를 때에 세 가지 죄를 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죄의 결과는 멸망임을 경고하여 주고 있습니다. 1. 망각의 죄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12-16). 지금은 진수성찬을 먹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었습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있지만 그때는 텐트속에서 살았습니다. 낮이면 더웠고 밤이면 추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시원하게하여 주셨고 밤이면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양도 많아졌지만 그때에는 재산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는 불뱀들과 전갈들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늘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죄를 범하게 될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당이 개발되면서 가장 보상을 많이 받은 이는 300억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상때부터 농사짓던 이가 땅값으로 받은 보상이었습니다. 내가 분당 모 교회에 부흥회를 갔더니 마당 주차장에 경운기가 놓여 있습니다. 담임 목사님이 "그 분은 농사지을 때를 그리며 경운기를 타고 다닙니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는 망각은 죄입니다. 2. 교만의 죄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하노라"(17). 배부르면 교만하여질 것이라고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죄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같아 지려는 교만죄였습니다. 만일 소경이 인도자를 따라 큰 산을 넘고 나서 "내가 이 산을 넘었다"고 말한다면 얼마나 큰 교만일까요?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3. 우상의 죄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19). 배부르고 나면 광야에서 그렇게 사랑하였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교만하여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결과는 멸망이라고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 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20). 우리 민족은 가난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배가 좀 부르게 되었다고 이렇게 한눈 팔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민족에게 이런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1. 미소운동 동물들은 먹을 입은 있어도 웃을 입은 없습니다. 개가 웃는 것을 보았습니까? 소가 미소짓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만일 미소짓는 소가 있다면 차마 죽이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 어린 시절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 교장 선생님은 개구쟁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교문에 서서 공손히 인사를 하면서 미소를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교사들이 이 모습을 보고 말했습니다. "아이구! 교장 선생님! 민망하여 볼 수가 없습니다. 개구장이 어린 아이들에게 그러면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이럴 때마다 교장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나는 도리어 이런 어린 아이들에게 황송합니다. 앞으로 장차 이 아이들이 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그밑에서 마틴 루터가 나왔습니다. 미소운동이 벌어져야 합니다. 미소가 없으면 동물적 삶입니다. 나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일으켰던 미소운동이 다시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1900년 초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동포끼리는 무저항주의를 쓰자. 동포끼리는 욕하면 먹고, 동포끼리는 때리면 맞자! 어른도 사랑을 공부하고 나도 사랑을 공부하자. 남자도 사랑을 공부하고 여자도 사랑을 공부하자 3천만 한 민족이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되자. 그래서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자. 모두가 미소운동을 벌리자. 갓난 아이는 빙그레 미소짓고, 젊은이는 빙그레 미소짓고, 늙은이는 빙그레 미소짓자" 그래서 그는 집 대문에 '빙그레'라고 써서 붙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새 나라, 새 백성, 새 얼굴'이라고 적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선진국이 되기 위하여는 GNP 2만불이 되고 공업이 발달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에 미소가 있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미국에 가면 미국인들은 누구와도 미소로 인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하면 미친사람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브라질에서는 비가 오는 날 차에서 창문을 열고 길을 물어보면 자기는 비를 쪼르륵 맞으면서도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런 곳에서 살고 있는 상 파울로의 목사님이 귀국하여 영등포 버스 정류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눈깔이 없어!"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다음부터 한국에 오기가 끔찍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미소운동이 우리 민족에게서 일어나야 합니다. 미국에 갓 이민간 이가 슈퍼마ㅋ을 시작하였습니다. 영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손님이 무엇을 물으면 미안하여 웃기만 하였습니다. 그 슈퍼는 친절하다고 소문이 나서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입니다. 미소운동이 우리교회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2. 절약 운동 나는 5월 초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녘에서 5병2어로 5천명을 먹였다는 기사를 접하였습니다. 5천명이 배가 부르도록 먹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도록 하였습니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마14:20). 12광주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에서 말씀하실 때 한 여인이 와서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15:27)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부스러기를 주었습니다. 고침받았습니다. 조각은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스러기를 먹어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3. 정직 운동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간이 없습니다. 남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손해 보더라도 정직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 민족은 너무나 정직하지 못합니다. 연구 결과 사람들은 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하고 산답니다. 하루에 한사람당 평균 180번의 거짓말을 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거짓말을 시작하는 나이가 8살이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있습니다. 한 시골 사람이 서울 역에 처음 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을 무엇을하여 먹고 사나요?" 이말을 들은 사람이 대답하였습니다. "속여 먹고 살지요" 정말로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까만 까마귀가 흰 비둘기가 되고 싶어서 온 몸에 흰 칠을 하고 비둘기들과 같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울음 소리가 달라서 쫓겨 나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까마귀에게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까마귀들은 색깔이 다르다고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톨이로 외롭게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불신을 외친 30대가 5월27일 중구 한 호텔에서 370만원을 시청광장쪽으로 뿌렸습니다. 사람들이 그 돈을 줍기 위하여 몰려서 그 주변 교통이 한 시간 가량 마비되었습니다. 경찰이 수거한 돈은 8만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행인들이 다 주워갔습니다. 1977년 7월 미국 필라델피아 한 은행의 현찰 수송 차량의 뒷문이 고장으로 열리면서 지폐를 담은 부대가 터져서 25만달러가 길거리로 쏟아졌습니다. 회수율을 97%였습니다. 손해 보더라도 정직하였으면 좋겠습니다. 4. 사랑운동 우리 민족에게서 사랑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식물도 사랑을 주면서 길러야 잘 자랍니다. 돼지도 기도하며 쓰다듬어 주면서 기르면 잘 자란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은 더더욱 사랑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최대의 명령은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서로 사랑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너무나 사회가 험악합니다. 민족적으로, 교회적으로 사랑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5. 복음운동 우리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셨기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예수님의 방법으로, 성령님의 능력과 함께 일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천국확장입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가장 큰 계명은 사랑입니다. 가장 큰 명령은 전도입니다. 민족복음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일어나야 할 운동이 있습니다. 1. 미소운동 2. 절약운동 3. 정직운동 4. 사랑운동 5. 복음운동 의인 10명만 있으면 (창 18:22-23) 울릉도에 가보면 어디를 보아도 오징어 투성입니다. 해변에도 오징어, 산기슭에도 오징어, 옥상에도 오징어입니다. 밥을 먹으려고 상에 앉으면 오징어 찌개, 오징어 포, 오징어 국, 오징어 무침 등 모두 오징어 음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지금 곳곳을 보면 온통 회개하여야 할 것들 뿐입니다. 동을 보아도 회개할 것, 서를 보아도 참회하여야 할 것, 속을 보아도 밖을 보아도 회개할 것뿐입니다. 경제계를 보아도 정치계를 보아도 종교계조차도 온통 회개할 것들만 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습니다. 온통 죄악투성이었습니다. 미드라쉬를 보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누워서는 음탕하고 앉아서는 술을 퍼마시며 서서는 춤만 추는 온갖 범죄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죄악이 난무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거만하였습니다. 교만하였습니다. 악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잔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의인 10명이 없어서 유황불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속에서 구원받은 이는 롯의 가정 3식구뿐이었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사는 사람 10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으시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족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는 기도하면서 우리 민족이 일으켜야 할 회개운동이 무엇인지 성령님께서 주시는데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음란 회개운동 소돔과 고모라가 음란하여 이미 말씀드린 대로 누워서도, 앉아서도, 서서도 온갖 음란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동성연애자, 근친상간자들이 그렇게 많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아들이, 며느리와 시아버지가, 사위와 장모가 근친상간을 하였습니다. 동성연애와 근친상간은 음풍의 극치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만 아니라 온 세계가 그렇습니다. 에이즈는 이런 음란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국민학교 6학년 아이들이 임신하는 예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에이즈 때문에 남자들이 성숙한 여자를 건드리지 않고 에이즈가 없는 깨끗한 여자를 건드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국민학교 6학년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음풍이 불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서 음란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잡지, 신문, 영화, 연극, 소설, 여관, 호텔 모두가 음란으로 물들여져 있습니다. 미국의 어떤 이가 한국에 와보고 한국을 비웃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고층아파트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세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반항하니까 아버지가 야단을 쳤습니다. 아들은 죽어버리겠다고 창문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어머니가 놀라며 아들 없는 세상 살아서 무엇 하느냐면서 나도 죽겠다면서 창문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아버지도 다 죽은 세상 나 혼자 살아서 무엇하느냐면서 그 창문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3명이 모두가 살았습니다. 아들은 비행청소년이라 비행하였고, 어머니는 날라리라 날랐으며, 아버지는 제비족이었기에 날랐습니다. 남편은 아내 몰래, 아내는 남편 몰래, 아들은 부모 몰래, 부모는 아들 몰래 모두가 음란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음란의 바람이 소멸되도록 교회부터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2. 욕심 회개운동 소돔과 고모라는 물질적 욕심으로 인한 범죄가 많았다고 미드라쉬 1권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아예 잔인한 법을 가지고 있었음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동네에 거지가 와서 동냥을 하면 동전 한 개를 줍니다. 그리고 절대로 먹을 것을 팔지 않습니다. 굶어 죽으면 그돈을 도로 빼앗게 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동전 한 개를 주는 것이 최대의 자비였습니다. 2. 손님을 결코 대접하여서는 안됩니다. 3. 소돔을 지나가는 나그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야합니다. 소돔 사람들은 늘 말했습니다. "우리는 재산을 지켜야 합니다. 만일 나그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돈을 잃는 것입니다." 한 번은 두 소녀가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와서 마주쳤습니다. 한 소녀가 물었습니다. "너는 왜 얼굴이 그렇게 창백하냐?" 그는 죽어가는 힘없는 소리로 "우리 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모두가 죽어가고 있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자 한 소녀가 집으로 달려가서 물항아리에 밀가루를 가득 채워 가지고 와서 물항아리와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항아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소돔의 재판장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소돔 사람들은 이 친절한 행동을 한 소녀를 데려다가 죽이고 말았습니다. 소돔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4. 소돔 사람들은 부요한 사람들이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방법은 정말 잔인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짜고 한 사람은 부자를 흔들리는 담밑으로 유인합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사람이 담을 밀어 깔려 죽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반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노태우씨는 "비자금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오랜 관행이었다"고 실토하였습니다. 오래된 관행이라는 말에 우리는 그러려니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라를 위한다는 그들이 어디를 보아도 나라를 사랑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재산 늘리는 데만 5년의 임기를 다 썼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5년간 매일같이 3억원씩 부정 축재한 것입니다. 일생을 모아도 3억원을 못모으는데 하루에 3억원씩을 부정으로 모는 자리가 대통령 자리였음을 스스로 고백하였습니다. 정말 나라를 사랑하는 정치가들이 과거에는 있었습니다. 1946년 해방정국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험악한 시대였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탈장증으로 용산 성모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당시 상공회의소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 강익하가 문병을 왔습니다. 그는 전국의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300만원을 거두워 왔습니다. 당시 서울의 최고 비싼 땅값이 평당 7백60원이었습니다. 오늘날은 15만배가 되었으므로 300만원의 15만배면 4,500억원이었습니다. 이때 김구 선생님의 말은 이랬습니다. "아니 이봐! 국사를 위하여 쓰일 돈이라면 이승만에게 주어야지 왜 내게 가지고 왔는가?" 그는 따로 이승만에게는 500만원을 거두어 드릴 예정이라며 이 돈은 말이 정치자금이지 개인적으로 쓰는 돈이라며 받으라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정적인 이승만에게 주어졌습니다. 백범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는 임시정부 청사에서 자고 밥은 돈벌이 직업을 가진 동포의 이 집 저집을 떠돌아 다니며 먹었다" 그런 중에도 70노인이 돈을 거절하고 청렴결백하게 살았습니다. 오직 나라만 사랑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정치가들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늘날에는 정치가는 없고 정치꾼만 있다는 소리가 그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승만도 반일 투쟁을 하고 나서 해방울 친일투쟁을 한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 쓰다가 나중에 말로가 비참하여진 것입니다. 노태우씨는 정치자금은 판행이었고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구 선생님은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물질 욕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나도 그런 상황이라면 안그랬을까 생각해보면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3. 명예 회개운동 하나님앞에 가서는 엿도 못바꾸어 먹을 명예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총칼로 대통령 자리를 빼앗고, 돈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차지하려는 명예 지상 최대주의가 온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도대체 노태우씨가 그렇게 많은 돈을 왜 비축하여 놓았을까에 대하여 몹시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기독교 방송국에서는 두가지로 분석하였습니다. 한가지는 총칼로 대통령을 차지하여 언제 어떻게 될지 불안하니까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하였다. 그날을 대비한 불안의 보상이었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총선에 자기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많이 당선시킨후 자기 아들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정치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종교계에서도 이런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위기를 깨고 있습니다. 국회위원 선거 자금이 10억원이 충분하다고 할 때 교계에서는 총회장 되려고 10억원을 썼다는 등, 30억원을 썼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돌고 있습니다. 이번에 총회에서 한 목사님은 마이크를 붙들고 나도 감독감인데 난 돈이 없어서 감독이 못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도 문제이고 그런 말을 하는 분위기도 문제입니다. 명예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경대로 제비뽑기하는 날이 오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뽑는 지도자는 제비뽑기였습니다. 사울왕도 제비로 뽑았습니다. 다윗왕도 우림과 둠밈으로 뽑았습니다. 성막과 성전에서 모든 일군선택은 제비뽑기였습니다. 웨슬레도 제비로 일군을 선택하였다고 그의 일기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어야 높아지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는 자는 낮아집니다. 스스로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제발 교회만은 이런 명예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생기지 말아야 합니다. 4. 편의주의 회개운동 성령님은 우리 민족이 회개하여야 할 것을 또 하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소위 편의주의라는 것입니다. 3D를 꺼리는 것입니다. 위험한 일, 더러운 일, 힘든 일을 싫어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웃사 이야기는 이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법궤는 어깨에 메고 가야 하는 성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웃사와 아효는 법궤를 수레에 실고 소로 편하게 끌고 가다가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힘들어도 전도하여야 합니다. 고단하여도 새벽기도 하여야 합니다. 고생스러워도 전도해야 합니다 핍박을 받아도 선교하여야 합니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 없습니다(No Cross, No Crown). 땀없이 달콤함이 없습니다(No Sweat, No Sweet). 5. 거짓말 회개운동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또 하나 가르쳐 주신 것은 거짓말 하는 입술입니다. 거짓말은 입술이 미혹의 영이 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도 거짓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3명의 학생이 길을 가다가 10,000원짜리 돈을 주었습니다. 똑같이 나누어 가지려고 하다가 보니 정확하게 3등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거짓말 잘하는 아이가 갖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한 아이는 자기는 공부하면 어머니가 돈을 안주고 공부를 안하면 돈을 많이 준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아이는 자기 어머니는 청소를 하다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아이는 자기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거짓말을 잘 하였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교장선생님에게로 가서 묻기로 하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은 3명의 학생을 야단치면서 돈을 길거리에서 주웠으면 파출소에 갖다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고 덧붙여 타일렀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한 번도 거짓말을하여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교장선생님이 가장 거짓말을 잘했다면서 돈을 교장 선생님에게 드렸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거짓말로 삽니다. 오늘 참 말을 하고 내일 손해를 본다고 하여도 거짓말하지 않는 민족이 되게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이야기는 유명하니까 그만 두고라도 그의 아버지 패트리커스 이야기도 놀랍습니다. 도적과 산적이 곳곳에 많을 때였습니다.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비상시에 쓰라고 소매속에서 금 몇 돈을 넣어 주었습니다. 가다가 산적을 만났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내놓으라는 요구에 모두 주고 말았습니다. 산적 두목은 "이것이 가진 것의 모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모두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 주고야 풀려나서 돌아오고 있는데 옷깃섬속에 있는 금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도적에게라도 거짓말한 것이 부끄러워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금을 꺼내 주면서 말했습니다. "아까 거짓말시켜서 죄송합니다. 모두라고 하였는데 가다가 보니 아내가 비상에 쓰라고 옷깃에 금을 몇 돈 넣어준 것이 생각나서 도로 가지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도적 두목은 말했습니다. "내 산적 생활 수 십년에 저런 놈은 처음 보았다. 아까 빼앗은 것 도로 주어라" 그래서 모두 받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기도 많이 하는 어머니와 정직한 아버지 사이에서 훌륭한 성자가 태어났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상인 줄을 믿습니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민족이 되게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선진국이 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이같이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1. 음란 회개운동 2. 욕심 회개운동 3. 명예 회개운동 4. 편의주의 회개운동 5. 거짓말 회개운동 미스바의 회개운동, 니느웨의 회개운동, 오순절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난 민족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셨고 회개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민족은 유황불로 멸망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부터 하나님앞에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돌로 치려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너희중에 죄가 없는 사람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한명도 남지 않고 다 도망하였습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모두가 회개하여야 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요엘 선지자의 외침을 전하려고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2:12-14). 인본주의를 배격하라 (레 10:1-15)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가 계시를 받은 지 8개월만에 성막이 완성되었습니다. 봉헌식이 8일간 성대하게 계속되었습니다. 아론이 제1대 대제사장이 되어 번제단위에 제물을 올려 놓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 주시는 것을 보며 좋아서 이렇게 말했다고 미드라쉬 3권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약혼한 날이고 불을 주신 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결혼한 날이다." 모두가 좋아할 때 비극적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아론의 네 아들중 큰 아들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죽는 사건이었습니다. 흥분과 감격 그리고 기쁨과 기대가 충만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답과 아비후는 4가지 인본주의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4가지 값진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인본주의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인본주의를 배격하여야 합니다. 1.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을 주시면서 두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는 꺼뜨리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레6:8-13).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불을 1,000년간 간직하였습니다. 안식일에는 제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꺼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등대나 분향단이나 번제단에 불을 다른 불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항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는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앞에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앞에서 죽은지라"(1-2) 미드라쉬는 나답과 아비후의 죽는 모습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가지고 들어 갔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네 줄기의 불이 내려왔습니다. 두 줄기의 불이 나답의 콧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줄기는 아비후의 두 콧구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불은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속을 완전히 태워버렸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들의 옷이나 겉몸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슬퍼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하필이면 왜 불로 태워 죽이시나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불로 범죄하였으니 불로 죽였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은 인본주의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미국에 유명한 죠나단 목사님의 "일생 결심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170가지를 결심하였습니다. 그것을 조목조목 적어놓고 늘 읽으면서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150주년 日 개신교 “선교 사명 다하자”/2009-07-10
150주년 日 개신교 “선교 사명 다하자” 기념대회 둘째날 기념식전 ‘감사와 기쁨의 축제’ 150주년기념오케스트라,동경스콜라칸토름 합창단, 150주년기념합동성가대가 ‘할렐루야’를 찬양 ‘일본 개신교선교 150주년 기념대회’ 둘째날 일정이 지난 2009년 7월 9일(목) 오전 10시부터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 홀에서 진행됐다. 첫째날의 페스티벌과 개회예배가 선교 15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부흥을 기대하는 자리였다면, 둘째날은 기쁨과 감사와 축제의 자리였다. 기념식전은 일본복음동맹(JEA)이사장 나카지마 슈이치 목사(오기쿠보영광교회)의 초대인사로 시작되었다. 아침을 깨우며 모인 회중들은 150주년기념 오케스트라와 동경스콜라칸토름 합창단의 은혜로운 찬양으로 마음 문을 열었다. “전통과 다양성은 살리고 전도 위해 일치 협력” 이어 일본 개신교 선교 150년의 역사를 담은 영상을 통해, 생명을 건 선교사들과 믿음의 선배들의 터 위에 지금의 일본 교회가 서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야마키타 노부히사 목사(일본기독교단 히지리가오카교회)가 기념 식사(式辭)를 전했다. 야마키타 목사는 1960년대에 경험했던 큰 부흥의 은혜와 현재 일본 교계 안에 불고 있는 일치 협력의 바람에 대해서 증거하며 “각 교단과 교파가 지닌 고유의 전통과 다양성은 살리되 복음 전도라는 공통된 사명을 위해 십자가 아래서 일치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 명의 실행위원장인 미네노 타츠히로 목사(웨슬레앙홀리네스교단 요도바시교회), 야마키타 목사, 오오카와 츠구미치 목사(야마토갈보리채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주 예수의 증인되어-’라는 주제 아래 각 교단 교파가 전도 협력을 이루어 나갈 것을 다짐하는 내용의 ‘대회선언’을 교대로 낭독했다. 선언문은 “150주년의 은혜를 기억하며 복음 선교에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나아가고자 한다. 또한 ‘일치’라는 슬로건 아래 준비기간 동안 각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힘을 합쳤던 것처럼 앞으로도 각 교회의 특징을 살리고 함께 동일한 복음을 전하는 파트너로서 하나가 되어 선교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회중들도 기립하여 마지막 구절을 함께 읽으며 연합과 일치에 대한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졌다. “150년 전 희생과 지금도 이어지는 사랑 감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목사가 해외에서 방문한 내빈으로서 소개받고 있는 모습. ⓒ 강성현 기자 일본교회는 기념식전의 자리를 빌어 150년 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본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자 생명을 걸고 건너온 미국 선교사들과, 지금도 일본에서 묵묵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재일한인선교사들의 희생에 감사를 전했다. 미국성공회 대표 크리스토퍼·L·링월트 박사, 미국장로교회 라드너·C·모어 선교사, 미국개혁파장로교회 총회의장 제임스·L·시우드 박사, 일본복음선교사단(JEMA) 대표 데일 리틀 목사가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이어 감사패를 받은 각 대표와 해외에서 방일한 세계 각국의 내빈들이 축사를 전하기도 했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 회장 김상복 목사는 “일본이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 세계의 존경을 받는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한 것을 보니 기쁘다”며 “올해 일본이 새로운 부흥을 맞이하기 위해 성령의 힘으로 혁신되길 기도한다”고 축복했다. 라드너 선교사는 “조부 안에 있었던 일본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도 이어져 있다”며 “일본 교회의 역사 안에 많은 고생과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믿음과 기쁨으로 참된 위로를 얻고 전력을 다해 이 신앙의 길을 함께 달리자”고 일본어로 준비한 축사를 전해 회중들에게 은혜를 더했다. 기념식전을 마치고 난 후에는 각 발제 주제에 따라 강연 및 패널토론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에는 150년의 역사를 계승하고 앞으로의 50년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 가야 하는 현 일본 교회의 사명을 조명하고, 차세대 크리스천에게 바른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 해야 할 과제들을 확인했다.
15불 쥐고 “유학길”/ 가족들엔 쌀 1가마와 돈 2천원 남긴 채/ 정진경 목사
15불 쥐고 “유학길”/ 가족들엔 쌀 1가마와 돈 2천원 남 긴 채/ 정진경 목사 오랫동안 기도하고 준비한 보람이 있어선지 미국 LA아주사대학에서 입학을 허가한다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즉시 유학준비에 착수했다. 여권을 만들고 미국 비자를 신청했는데 여러 가지 보증을 서라는 주문이 까다로웠다. 주위에서는 나의 이런 행동을 어처구니없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3남매를 둔 가장이 더구나 35세나 된 나이에 미국유학을 가겠다고 들떠 있으니 말이다. 수속이 끝났으나 이제는 비행기 표를 마련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 사실을 안 주위에서 돈을 모아 비행기 표까지 사주었다. 한 친구는 내게“자네가 미국으로 유학하는 것은 모험이 아니라 미련한 행동일세. 연고도 없이 가서 얼마나 고생하려고 그러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남대문시장에서 클랙션을 울릴 때 순식간에 흩어지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나는 분명히 미국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것이다.” 혜화동교회 종각 밑 단칸방에 머무는 가족들에게 쌀 한 가마와 돈 2천원을 남기고 떠나는 내 마음도 아팠다. 1956년 3월, 드디어 여의도비행장에서 노스웨스트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는 내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간단한 옷가지 몇 개와 성경 찬송가, 영어콘사이스 그리고 현금 15달러가 나의 전 재산이었다. 이 비행기는 토쿄에서 이틀을 머물렀는데 토쿄역 앞 여관에서 이틀을 기다리며 경비를 쓰다 보니 11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금방 나는 스탠바이라며 계속 실랑이를 했고 결국 비행기에 입석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다. LA에 도착했으나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원스런 도로하며 건물 거리 풍경 등에 미국은 과연 축복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박비가 싸다는 YMCA호텔까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들어간 나는 호텔에 도착, 즉시 침대 위에서 하나님께 감사함과 앞으로의 생활을 부탁하는 기도를 드렸다. 9월부터 시작되는 학교지만 3월에 온 것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고 언어를 익히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나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막막하기만 했다. 기도를 마친 후 갑자기 2년 전 한국에서 만났던 장 목사님이란 분이 생각났다. 한 모임에서 우연히 뵈었는데 내가 미국에 유학 갈 의사가 있음을 밝히자 자신이 LA에 있으니 유학 오게 되면 연락하라고 했던 것이다.
16호 장기려 박사 신앙간증-사랑은 기적을 이룬다 간증/ 지상강좌
16호 장기려 박사 신앙간증-사랑은 기적을 이룬다 간증/ 지상강좌 2010/04/12 16:56 http://wrn2991.blog.me/50086422192 전용뷰어 보기 사랑은 기적을 이룬다 1971년 8월(대전 한국기독학생선교회의 여름모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는 자신의 서원대로 평생 가난한 자들에게 인술을 베풀었고,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기리며 홀로 살다 1995년 12월 25일 서울 백병원에서 86세의 일기로 별세하였다. 1979년 8월 31일 라몬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을, 1996년 1월 30일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1976년 4월 부산복음병원 원장을 은퇴(67세)한 후 병원의 옥탑방에서 별세하기 전까지 침대 머리맡에 30대 아내와 80세 아내의 사진을 보며 지냈다. <편집자주> 나는 1911년 음력 8월14일에 평북 용천 입암에서 출생한 것을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한학자시고 어머님은 재취이어서 10년이나 젊었었다. 나는 2살까지 젖을 먹으면서 자랐는데 3살 곧 젖이 떨어진 후부터는 할머니 품에서 자라며 할머니에게 업히어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내 이름이 (장)기려로 된 것은 처음에 부친께서 기창으로 신고했었는데 후에 우리 친족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있는 것이 알려져서 기려(起呂)로 했다고 들었다. 의사 되면 빈자 위해 살 것을 서원 나의 믿음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다. 어려서부터 할머님에게 업히어 예배당에 다녔고 가정예배에 첨석했는데 성경말씀을 이해한 것은 퍽 뒤의 일이라 생각된다. 7살 때 한문 천자를 뜻도 모르고 단숨에 외어서 어른들에게 칭찬을 들은 것이 기억난다. 7살부터 12살까지 고향에 있는 의성(義聖)학교에 다녔다(그 학교는 장로교에서 경영, 숙부가 교장이었다). 학교에서 성경을 배웠다. 그래서 장차 요셉과 같이 되겠다, 다윗을 배울 때는 다윗과 같이 되겠다고 맘에 새겼다. 부흥회 때에는 죄가 생각나서 울어 회개했고, 지금도 몇 가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하나는 다른 아이와의 팽이싸움에서 계속 져서 어떤 아이의 크고 무거운 팽이가 신발장에 떨어져 있는 것을 훔쳐 가지고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내 것이라 우겨댔다. 그 후에 부흥회 때 도적질한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아이에게 돈을 1전인지 2전을 갚아준 기억이 난다. 또 하나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계명을 이행할 수가 없어서 나는 죄인인 것을 느끼고 울면서 회개한 기도를 드린 것이다. 중․고등학교는 개성 송도고등 보통학교를 다녔다. 송도고보 제 3학년 때에 세례를 받았다. 3학년 때에는 선생이 되겠다고 생각해 보기도 했고, 4학년 때에는 공학을 해서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생각해서 여순공과대학에 입학시험을 쳐 보았으나 낙방하고 말았다. 5학년 졸업할 때에는 학비가 큰 문제가 되어 경성의전(학비가 가장 적게 들었다)을 택했고, 만일 입학하게 되어 의사가 된다면 의사를 보지 못하고 죽는 가련한 그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서원하고 기도했다. 의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내 뜻이라기보다는 환경에 연유된 점이 많다. 요새 말로 타의반 자의반으로 된 셈이며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외과를 전공하게 된 것도 처음에는 내과를 하려고 했던 것이 사정이 있어 외과로 전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나의 마음은 약하고 피동적이어서 비겁자의 특징을 여실히 나타냈다. 의학전문학교 때의 공부는 대학생답게 여러 참고서를 참고하면서 확실한 지식을 얻지 못했고, 겨우 강의 때 필기한 것을 암기해서 학교성적을 얻으려고 힘쓴데 지나지 않았다. 경의전을 졸업할 때 학교성적은 좋은 편이었으나 실력은 가련한 상태였다. 그리고 가세는 몰락해서 모교병원에 남아 전공하고 싶은 맘이 나서 결혼하여 생활하면서 공부를 계속하려고 생각했다. 아내와의 영원한 사랑을 다짐 동기동창 백형에게 졸업 후 전공과 연구를 위하여 의논을 했다. 가세가 빈곤하므로 결혼 후도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고 하니 동의하면서 우리의 대선배 딸이 평양 서문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사 일을 돌보고 있는데 한번 만나보면 어떻겠는가고 권했다. 특별히 못생긴 데가 없건 만은 마음에 들지 않아 보통이라고 대답했다. 그 친구는 마음에 들었다고 이해했고, 신부 측에서는 혼인할 뜻이 있으니 태도를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신랑다운 조건이 미약했다. 인물도 왜소하고, 비겁하고, 불의에 대하여 싸울 줄도 모르고, 더구나 생활비를 벌어들일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신부 측에서는 자꾸 뜻을 말해 달라고 독촉했다. 그래서 결혼조건으로 첫째, 예수를 믿는 사람 둘째, 나의 부모를 섬길 수 있는 사람. 셋째, 당분간 생활비를 해결을 제시했더니 신부(장봉숙)가 순종하겠다고 하여 약혼 후 1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가정예배에 충실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그림, 음악 등 취미생활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공부하고 늦게 집에 들어갈 때도 자지 않고 나를 기다려 주었고, 내가 부탁하는 것은 하나도 거절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 눈동자요 내손과 발이었다. 하루는 아내의 사랑이 느껴졌다. 만일 우리 둘 중에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이 사랑이 없어진다면 이 사랑도 거짓이란 말인가? 아니다. 육으로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영원한 사랑이다고 느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이루게 하심은 하나님의 이 생명의 사랑을 체험하라고 하신 것임을 확인하고 그 후 내가 혼인을 주례할 때에는 이 말로서 주례사를 하게 되었다. 내 아내가 절대의 사랑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나도 아내에게 죽도록 충성하는 사랑을 주려고 결심했다. 경성의전 부속병원 외과에서 8년간 외과훈련을 마치고 1940년 평양연합기독병원 외과과장으로 취임했다. 1940년 9월에는 일본 명고옥제대(名古屋帝大) 의학부 교수회에서 나의 학위논문이 통과되어 그해 11월 의학박사 학위기가 나왔고, 평양 연합기독병원 원장이 되었다. 3개월 후 원장 재선에 떨어졌지만 묵묵히 책임을 수행하였다. 10개월 후 김명선 원장은 상여금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줬고, 8.15해방 후 평안남도 인민위원회 위생과장으로 추대되자 그 자리를 나에게 물러주었다. 나는 1945년 5월 황달(간염)에 걸려 3개월간 누워 지냈다. 간염에 걸리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신경이 극도로 쇠약하여 전화벨이 울려도 몸서리가 났다. 8.15해방이 되자 건국하다가 죽겠다는 생각으로 일어났으나 15분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그래도 평안남도 임시 인민위원회의 위생과장으로 보건을 담당한다고 하루 20-30분을 걸으며 의자에 6시간 앉아 있는 것이 (보수 없이) 건국하는 마음이었다. 평양도립병원(제1인민병원) 원장이 되고, 평양의과대학 외과교수가 되었다. 1946년 봄 김일성대학이 서면서 평양의과대학은 그 대학의 의학부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교수진을 다시 심사하여 결정하였다. 나는 심사 없이 교수로 임명되었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 대학 부총장이던 박일이라는 사람이 외과 강좌장이 되어달라고 간청했으나 나는 교수의 자격이 없다고 거절하였다. 1948년 9월에는 내가 청구하지도 않는 의학박사 학위를 주고 월급을 몇 배 더 주는 것이었으나 한편으로 불안하였다. 빈자에게 인술 펴고 아내 기리며 살아 평양에서 국군이 후퇴하던 1950년 12월 3일이었다. 평양에서 선교리로 건너오는 다리는 폭격으로 끊어지고 가설로 물위에 띄어 놓은 다리는 군대의 수송으로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그 다리를 건너고자 피난민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12월 3일 가족과 같이 그 다리 부근에 나와 기다렸다가 국군의 수송대에 관계되는 이에게 말하여 허락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으로 믿고 건너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던 관계로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고 국군 의무대의 호의를 받아들여 버스를 타고 둘째 아들과 친척과 친구 몇 사람(7명)이 물이 얕게 흐르는 여울을 건너 선교리로 왔다. 부모님과 아내와 자녀 넷은 같이 오지 못했다. 후에 들은즉 12월 3일 저녁 5시부터 7시까지 일반인의 통행을 허락해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다 무사히 건너왔다고 한다. 만일 내가 그날 아침에 기도하고 결심하여 단행했더라면 그 대동강을 육지와 같이 건넜었을 것이다. 1950년 이남으로 내려와 제3육군병원에서 6개월간 징용되어 일하다가 1951년 7월 1일 영도에서 텐트 셋을 치고 부산 복음의원을 개설하여 무료진료를 실시했다. 3년간은 순전히 무료로 하고, 3년간은 1인당 백환을 받고 매일 외래환자 100명, 입원환자 10명 가량을 진료했다. 그런데 뜻밖에 송도에 현대식 2층 건물(250평)을 허락받아 그곳에서 10여년간 진료하게 되었다. 20년간에 수술이 1만여명에 달한 것도 감사할 일이다. 1968년부터 간호학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청십자의료협동조합을 조직하여 가련한 환자를 돕게 된 일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정리: 박병선 기자> [출처] 16호 장기려 박사 신앙간증-사랑은 기적을 이룬다 |작성자 화평
1996년도 교회력에 따른 설교 계획
1996년도 교회력에 따른 설교 계획 감리교 목회자 협의회 목회개발 위원회 달 력 교 회 력 성 구 및 설 교 자 료 월 일 교 회 력 강 단 색 본문 및 제목 소 제목 및 관 련 성구 1 7 주현절후 1주 신년주일 백색 행 10:34-43 화평의 복음 예수는 평화를 위해 오셨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자녀 자기 희생의 십자가를 통한 참 평화 14 2주 신학대학주일 녹색 요 1:29-34 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 먼저 계신 분(우월성)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의 아들 21 3주 녹색 고전 1:10-17 온전히 합하라 분쟁의 원인은 교만과 자기자랑에서 예수는 나누이지 않았다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을 품자 28 4주 녹색 미가 6:1-8 더 원하시는 것 공의를 실천하기를 원하신다 사랑을 즐겨 행하기를 원하신다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기를원하신다 2 4 주현절후 5주 은급주일 녹색 빌 4:10-13 승리의 생활 자족하는 삶 적응하는 삶 능력주시는 분에 대한 믿음 11 6주 녹색 신 30:15-20 생명의 길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하나님을 가깝게 따르라 18 주현절후 7주 백색 고전 3:10-15 지혜로운 건축자 신앙생활이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든든한 기초(J.X) 위에 터를 닦아야 불타지 않는 반석(말씀) 사용 25 사순절 1주 3·1절기념주일 자색 갈 5:13-15 그리스도인의 자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자유를 육체적 욕망을 위해 남용말라 참 자유는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것 3 3 2주 자색 요 3:1-8 하늘을 보는 사람 거듭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요3:3) 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마6:33) 보물을 하늘에 쌓는 사람(마6:20) 10 3주 자색 시 33:18-22 여호와를 기뻐하라 인간의 계획과 생각을 살피시는 θ 여호와를 바라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17 4주 자색 삼상 16:1-13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은 성실한 자를 택하신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택하신다 24 5주 자색 겔 37:1-14 마른 뼈 속에 생명이 θ을 버림으로 마른뼈가 된 이스라엘 θ의 말씀으로 절망은 소망으로 바뀜 생기(J.X)로 온전한 생명으로 부활 31 종려주일 자색 사 50:4-9 주의 종은? θ의 메시지를 들을 귀를 가져야 θ 말씀을 만방에 전할 사명을 가짐 시대 사람들의 비난과 미움 각오해야 1996년도 교회력에 따른 설교 계획 감리교 목회자 협의회 목회개발 위원회 달 력 교 회 력 성 구 및 설 교 자 료 월 일 교 회 력 강 단 색 본문 및 제목 소 제목 및 관 련 성구 4 7 부활절 백색 요20:1-18 누구를 찾느냐 부활은 절망을 극복한다. 부활은 목격을 극복한다. 부활은 침묵을 극복한다. 14 부활절후 1주 백색 벧전 1:3-9 부활의 신앙 부활신앙은 산소망의 근거이다. 부활신앙은 고난을 전제하는 것이다. 부활신앙은 구원의 열매로 이어진다. 21 2주 장애인선교 주일 백색 시편133:1-3 함께하는 삶 형제의 연합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 그 연합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형제의 연합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28 3주 백색 행 2:41-47 사도의 가름침을 받아 부활신앙은 나를 극복하는 삶이다. 나를 극복하는 삶은 영적세계를 확장 한다. 확장된 삶은 공동체를 변화시킨다. 5 5 4주 어린이 주일 백색 막10:13-16 어린아이들을 안고 아이들을 주님께 데려와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부속불이 아니다. 아이들은 축복속에서 자라나야 한다. 12 5주 어버이 주일 백색 엡6:1-4 축복된 가정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복된 가정은 질서가 있다. 복된 가정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 19 6주 웨슬리회심 기념주일 백색 시1:1-6 복있는 삶 분명한 삶의 선이 있어야 한다. 반드시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종말적 심판에 준비된 것이어야 한다. 26 성령강림절 아시아주일 적색 행2:1-13 새롭게 하는 성령 성령은 생명을 일으키는 강한 바람. 성령은 탐욕을 불사르는 불꽃. 성령은 마땅히 말해야 할 바를 말하게 하는 힘. 6 2 성령강림후 1주 평신도주일 백색 막4:26-34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은밀한 가운데 이룸 하나님 나라는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 하나님 나라는 안식을 제공하는 곳 9 2주 환경선교주일 적색 창1:26-31 하나님의 세계 자연은 모두 하나님의 것. 자연은 모두 아름답게 만들어짐. 자연은 인간의 책임하에 관리될 것. 16 3주 적색 롬5:6-11 사랑의 계시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에 근거한다. 십자가의 사랑은 화목에 이르는 것. 하나님과의 화목은 기쁨의 원천이다. 23 4주 적색 시편48:1-14 거룩한 성(교회) 시온성은 예배(찬양)이 있는 곳. 시온성은 삶의 피난처가 되는 곳. 시온성은 하나님의 정의가 충만한 곳. 30 5주 적색 롬6:3-11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 연합은 자기를 죽이는 길이다. 이 연합은 생명 가운데 걷는 길이다. 이 연합은 자기를 살리는 길이다. 1996년도 교회력에 따른 설교 계획 감리교 목회자 협의회 목회개발 위원회 달 력 교 회 력 성 구 및 설 교 자 료 월 일 교 회 력 강 단 색 본문 및 제목 소 제목 및 관 련 성구 7 7 성령강림후 6주 맥추감사주일 적색 살전5:16-18 신앙인의 도리 기쁨은 신자에게 생명력을 준다. 기도는 신자의 영적 양식이다. 감사는 신장의 삶을 풍성케 한다. 14 7주 교역자보건 주일 적색 시132:11-18 주님의 터전 언약과 법도를 지키는 자의 터전 가득함과 넉넉함을 부여하시는 터전 의와 기쁨의 함성이 넘치는 터전 21 8주 적색 롬8:18-25 피조물의 해방 모든 피조물은 구원을 갈망한다. 모든 피조물은 영광된 자유를 희망한다. 참된 해방은 나눔밖에 없다. 28 9주 적색 출3:13-20 영원한 이름 믿음의 조상의 하나님 민중의 처지를 돌아보시는 하나님 민중의 해방자이신 하나님 8 4 10주 적색 롬8:31-39 사랑의 능력 사랑은 요구없이 내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응답함으로 완성된다. 사랑은 확신에 찬 능력이다. 11 11주 남북평화공동 기도주일 적색 사9:1-7 공평과 정의의 나라 지역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 희망중에 광명과 기쁨이 있는 나라 평화의 왕이신 주님의 나라 18 12주 적색 마15:21-28 자존심을 넘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뜨거운 사랑이다. 사랑은 믿음의 가정에 우선한다. 믿음안에 자존심이 존재할 수 없다. 25 13주 적색 출17:1-7 내인생의 므리바 한계상황에도 믿음은 존재한다. 육체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믿음. 극복의 길은 오직 말씀에 순종함이다. 9 1 14주 녹색 마16:21-28 무엇을 생각하랴! 희생없이 생명없다. 아까운 마음속에 믿음도 없다. 실천없이 결과도 없다. 8 15주 교회연합주일 녹색 요15:1-8 열매맺는 신앙 주님의 편에 서는 신앙 주님의 길을 걷는 신앙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 15 16주 기독교교육 진흥주일 녹색 약3:13-18 하늘의 지혜 선한 삶과 온유함으로 드러내자. 순결함과 자비로 드러내자. 진리와 평화의 열매로 드러내자 22 17주 녹색 출32:1-14 하나님의 모습 보여지는 신은 이미 우상이다. 고집과 성급함 속에는 하나님이 없다. 간절한 기도와 확신속에서 발견된다. 29 18주 녹색 빌2:1-13 기독교인의 태도 사랑과 겸손은 믿음의 기초이다. 순종과 희생은 믿음의 가치이다. 영광과 권능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1996년도 교회력에 따른 설교 계획 감리교 목회자 협의회 목회개발 위원회 달 력 교 회 력 성 구 및 설 교 자 료 월 일 교 회 력 강 단 색 본문 및 제목 소 제목 및 관 련 성구 10 6 성령강림후 19주 세계성찬주일 백색 출 24:4-11 그리스도의 피 언약의 피(히10:29,마26:28) 구속의 피(요일1:7,계1:5) 성화의 피(히13:12) 13 20주 녹색 눅 14:7-24 그리스도의 잔치 겸손이 있다(7-11) 구제가 있다(12-14) 열정이 있다(15-24) 20 21주 녹색 살전 1:2-10 바울의 삼위일체신앙 성령 하나님 예수 27 22주 종교개혁주일 녹색 렘 31:31-34 21세기와 개혁 다가오는 영적 도전들 개혁의 참된 방향(33,34,35) 새 시대를 개혁하는 신앙인 11 3 23주 녹색 시 127편 소망을 키우자 하나님이 주신 기업 청소년 하나님이 세우시는 집 영적 부모들이 되자(살전 2:11) 10 24주 녹색 암 5:16-24 하나님의 심판의 색체 밝음인가 어두움인가? 예배보다 중한 공법과 의 찬란한 색체를 칠하자 17 25주 추수감사주일 녹색 신 8:11-18 감사하는 삶 역사속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을 감사 역사를 이긴 신앙인에 감사 우리의 삶의 모든 내용을 감사 24 26주 백색 살전 3:7-13 바울의 사도적 특징 겸손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권위 그리스도사신에 대한 책임과 열정 조화를 이루는 신앙인이 되자 12 1 대강절 1주 군선교주일 자색 시 122편 성전에 오늘때에 교회와 민족을 위해 평안을 구하라 붕우(朋友)의 평강을 구하라. 복은 나누는 자가 받는다. 8 2주 성서주일 자색 사 11:1-10 만민의 기호 그리스도와 인권 그리스도와 신지식 신앙의 표준,그리스도 15 3주 자색 약 5:7-11 무게있는 신앙 가볍게하는 세상, 무겁게하는 신앙 인내하는 자가 늦은 비를 보았다. 변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약속 22 4주 자색 마 1:18-25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 무로부터 탄생(요 3:8) 어두움속에서 탄생(고후 4:6,요 1:5) 가장 낮은 곳으로 탄생 29 성탄절후 1주 송년주일 백색 엡 1:3-6,15-18 그리스도인의 지표 택함받은 백성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과 이웃사랑 지식과 은혜안에서의 성장
1급 시각장애 서울대 법대 합격 최민석 씨의 꿈과 신앙/행2:26
1급 시각장애 서울대 법대 합격 최민석 씨의 꿈과 신앙 행2:26 앞을 전혀 볼수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1급 시각장애인 최민석(22·서울맹학교 고교부3)씨에 대한 본보 보도(2월4일자 7면)가 나간 이후 각계 각층에서 최씨에 대한 축하와 격려 메시지가 쇄도했다. 서울충신교회 박종순 목사는 “최씨의 합격은 어려운 역경속에서도 꿈을 잃지않는 자의 값진 승리이자 모든 이들의 귀감”이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간구로 일궈낸 참 신앙인의 간증”이라고 격려했다. 뇌성마비 3급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두고 있는 국민일보의 한 독자는 “최씨의 합격소식을 듣고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며 “학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장애인들을 위해 최씨의 합격수기를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4일 오전,어머니 박동희(54·여의도순복음교회 집사)씨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 수요예배에 참석한 최씨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은 채 기쁜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서울대 합격 소식이 알려진 후 최씨의 집은 방송과 신문사 취재진에 의해 집근처 도로가 막힐 정도. 최씨의 서울대 합격은 가족과 신앙,최씨의 끈질긴 노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어머니 박씨는 그 중에서도 기도를 통한 신앙생활이 가장 큰 힘이 됐다고 당당하게 고백했다. “수능시험일이 다가올수록 가족 모두가 심적 부담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기도를 통해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떨쳐냈습니다.기도 없인 합격도 없었을 겁니다” 박씨의 일상생활은 아들의 학업보조와 교회봉사가 전부일 정도로 신앙 생활에 적극적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구로교구 지역장이기도 한 박씨는 새벽기도와 철야기도 외에도 구역식구들에게 일일이 아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고 모일 때마다 함께 기도했다. 아울러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임인 여의도순복음교회 시각교구 회원 50여명도 최씨를 위해 열렬히 중보기도를 아끼지 않았다.특히 수능시험일을 앞둔 지난해 11월 초 시각교구 회원들은 최씨가 최대한 실력을 발휘해 시험을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방희철 시각교구 담당 목사는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본 민석이는 누구보다 의지가 강한 아이였다”며 “이번 합격은 민석이의 노력과 교구 식구들의 뜨거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말했다. 새내기 대학생활을 코앞에 둔 최씨는 사실 부푼 기대만큼 고민도 적지 않다.본격적인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위한 점자 단말기와 녹음장비 등 스스로 준비해야 할 장비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또 서울대학교에는 현재 자신처럼 중증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업지원시설이 미흡한 부분이 많은 상태지만 이를 가능한 수용해 줄 움직임이다. 하지만 어머니 박씨는 아들의 걱정에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다. “민석이는 고3때 이미 맹인견을 반납하고 흰지팡이로 혼자 다녔습니다.처음에는 불안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시고 보호하신다고 믿은 뒤부터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대학 생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꿋꿋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장애인 전문변호사를 꿈꾸는 최씨는 앞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전에 미국유학 등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희망하고 있다. 최씨의 장래희망은 중학교 때 처음 만났던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 박사인 강영우박사(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의 영향이 크다. 한편 강영우 박사는 본보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미국은 시각장애인이 거의 모든 분야에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판검사,변호사가 많다”며 “민석군이 5년전 나를 찾아와 진로를 상담한 기억이 나며 앞으로 큰 비전과 꿈을 갖고 귀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또 “민석군이 장애인 전문변호사로 활동할 때 한국의 장애인 인권 및 복지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며 “최 군의 합격은 모든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심어주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 합격이라는 목표달성은 최씨의 인생에 있어서 시작에 불과하다. 차별과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장애인들의 대변자로서 해야 할 일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 박씨도 간절한 소망 한가지가 갖고 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민석이가 얼마나 많은 어려운 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앙을 통해 꿋꿋하게 이겨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2009학년도 2학기 까오슝(고웅)한국학교 신입생 모집
2009학년도 2학기 고웅한국학교 신입생 모집 (2009學年度 2學期 高雄韓國學校 新入生 募集) 1. 모집대상(募集對象) ◉ 유치부(幼稚部) : 2005. 1월(月)∼2005.12월(月) 출생(出生)자 ◉ 초등부(初等部) : 1학년∼6학년 ※ 2006년(年) 출생자(出生者)는 정원(定員)이 미달(未達)할 경우(境遇) 대기자순(待機者順)과 생년월일순(生年月日順)으로 입학(入學) 가능(可能) 2. 교육과정 운영 ◉ 수업시간(授業時間) - 평일학교(平日學校) : 13:20∼16:50(월∼금 星期一~星期五) - 토요학교(週末學校) : 09:10∼12:10(토요일 星期六) ◉ 주요 교육과정(主要敎育課程) - 국내 교육과정(韓國敎育課程) 및 한글기초교육(韓文基礎敎育) , 영어교육(英語敎育), 한국 전통문화 교육(韓國傳統文化敎育) 등 3. 수업료(學費) 1학기(1學期)당 9,000元(NTS) ※ 추후(追後) 학교운영위원회(學校運營委員會) 심의(審議)를 거쳐 조정(調整) 가능(可能) 4. 기타 자세한 사항은 학교홈페이지 및 학교전화로 문의바랍니다. ※ 학교홈페이지 : www.khks.kr 문 의 전 화 : 075513918(휴대폰 0980890733 박영순 교무부장 선생님) 2009. 5. 14 고웅한국학교장 高雄韓國學校長
21세기 목회와 선교전망/ 2001-09-15
21세기 목회와 선교전망 21세기가 마치 먼 산이 비 개인 후 갑자기 가까워보이듯이 눈앞에 성큼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21세기에 예상되는 충격이 너무 큰 것들이어서 각계에서는 이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미래의 충격>이나 <제3의 물결>과 같은 저술들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있으며 기독교계에서는 한 때 종말론 문제가 크게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미래와 인류 종말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그 어떤 테마보다도 우선순위를 가진다. 1992년 10월 28일 0시에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종말론주의자 이모 목사가 세상 법에 의해서 구속이 되었지만, 그가 뿌려놓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저서는 한때 시중이 종이 값에 영향을 미칠 만큼 팔려나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1995년 4월 16일 부활절에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허황한 주장을 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교회와 목사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앨빈 토플러의 주장에서 21세기의 엄청난 도전적 도래를 볼 수 있다. 그의 주장에서 보면 농업단계인 “제1의 물결”, 산업단계인 “제2의 물결”에 이어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엄청난 충격적인 역사 흐름의 대변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제1의 농업혁명은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 문예부흥, 산업혁명 때까지 수천 년에 걸쳐서 서서히 전개되어 왔지만 산업혁명은 문예부흥 이후 약 3백년에 걸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고도의 정보사회에서 기술의 혁명과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는 격류로 몰아치면서, 가족관계를 붕괴시키고 경제 질서를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으며, 정치의 철학과 이념을 마비시켜서 가치의 체계와 내용을 분쇄내지 파괴시켜 버리는 “제3의 물결”은 불과 10~20년 만에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제2의 물결의 특징이었던 규격화, 동시화, 중앙집권화의 가치체계는 완전히 무너지고 다양화, 개별화, 지방화, 분권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인바, 미래의 선교와 목회도 이 흐름을 외면하고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21세기 목회와 선교성장연구원’에서는 이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많은 투자를 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 21세기의 목회는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한마디로 답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원칙적인 방향만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회에 있어서만은 교파, 교단의 장벽이 낮아지거나 무너지게 될 것이고 교단내지는 교파의 연합활동이 왕성해질 것이다. 제2의 물결을 타고 떠내려 온 기독교회는 그동안 너무 교리 치중적이고 교단 내지는 교파 치중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앙집권적, 교권중심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내려왔으나 21세기교회는 보다 성경중심적이고 보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초교파적 기독교의 성격이 강화될 것이다. 교회 내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화될 것이며 평신도의 능동적이고도 자발적인 사명각성에 의해서 세계선교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될 것이다. 평신도들을 잘 훈련시키고 양육시키는 교회는 크게 성장할 것이다. 교회의 예배 프로그램도 엄청나게 변천할 것이다. 과거에는 강단 위에서만 이루어지던 인상을 주던 예배행위는 평신도와 성직자 및 장로단의 이원 구분으로 평신도들은 예배시간에 완전히 극장의 관객과 같이 예배를 관조하는 인상을 주어 왔으나 21세기의 예배는 우선 예배석의 구조부터 강단 위와 관중석의 구분을 과감히 뜯어고쳐서 평신도들, 회중 전체가 예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예배당 내부구조로 바꾸고, 예배의 프로그램에도 회중 개개인 전원이 다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예배는 보다 다양하게 바꾸면서도 그 가운데 질서와 엄숙미를 유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교적 측면에서는 중국내륙의 기독교화 복음화라는 큰 면혁의 물결이 한국교회에 대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중국 대륙에 이루어지는 복음화 및 기독교의 성격은 초교파적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일 것이다. 이에 대비해서 한국교회는 해외선교 활동영역부터 교파초월적인 선교활동전개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후원은 교회가 맡아야 하지만 훈련과 관리는 전문성을 띤 초교파 선교기관에서 맡도록 하는 것이 미래 21세기 한국교회 선교에 가장 필요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21세기 새찬송가 교독문
21세기 새찬송가 교독문 1. 시편 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다같이)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1-6) 2. 시편 2편 3. 시편 4편 4. 시편 5편 5. 시편 8편 6. 시편 10편 7. 시편 13편 8. 시편 14편 9. 시편 15편 10. 시편 16편 11. 시편 17편 12. 시편 19편 13. 시편 23편 14. 시편 24편 15. 시편 27편 16. 시편 28편 17. 시편 29편 18. 시편 31편 19. 시편 32편 20. 시편 33편 21. 시편 34편 22. 시편 37편 23. 시편 43편 24. 시편 46편 25. 시편 47편 26. 시편 50편 27. 시편 51편 28. 시편 63편 29. 시편 65편 30. 시편 67편 31. 시편 68편 32. 시편 71편 33. 시편 72편 34. 시편 81편 35. 시편 84편 36. 시편 90편 37. 시편 91편 38. 시편 92편 39. 시편 95편 40. 시편 96편 41. 시편 97편 42. 시편 98편 43. 시편 99편 44. 시편 100편 45. 시편 103편 46. 시편 104편 47. 시편 105편 48. 시편 106편 49. 시편 108편 50. 시편 116편 51. 시편 118편 52. 시편 119편 53. 시편 121편 54. 시편 126편 55. 시편 127편 56. 시편 128편 57. 시편 130편 58. 시편 133편 59. 시편 136편 60. 시편 139편 61. 시편 142편 62. 시편 143편 63. 시편 145편 64. 시편 148편 65. 시편 149편 66. 시편 150편 67. 잠언 3장 68. 이사야 40장(1) 69. 이사야 40장(2) 70. 이사야 42장 71. 이사야 55장 72. 이사야 58장 73. 이사야 65장 74. 마태복음 5장 75. 마태복음 6장 76. 요한복음 1장 77. 요한복음 3장 78. 요한복음 14 장 79. 요한복음 15장 80. 고린도후서 4장 81. 에베소서 4장 82. 빌립보서 2장 83. 빌립보서 4장 84. 히브리서 11장 85. 요한1서 4장 86. 요한계시록 14장 87. 요한계시록 21장 88. 세례(침례)(1) 89. 세례(침례)(2) 90. 세례(침례)(3) 91. 성찬(1) 92. 성찬(2) 93. 새해(1) 94. 새해(2) 95. 가정주일 96. 어린이주일 97. 청년주일 98. 어버이주일 99. 나라사랑(1) 100. 나라사랑(2) 101. 나라사랑(3) 102. 나라사랑(4) 103. 나라사랑(5) 104. 종교개혁주일 105. 감사절(1) 106. 감사절(2) 107. 임직식(1) 108. 임직식(2) 109. 헌당예배 110. 선교주일 111. 성서주일 112. 교회교육주일 113. 자연과 환경 114. 이웃 사랑 115. 구주 강림(1) 116. 구주 강림(2) 117. 구주 강림(3) 118. 구주 강림(4) 119. 성탄절(1) 120. 성탄절(2) 121. 주현절(1) 122. 주현절(2) 123. 주현절(3) 124. 사순절(1) 125. 사순절(2) 126. 사순절(3) 127. 사순절(4) 128. 사순절(5) 129. 종려주일 130. 고난주간(1) 131. 고난주간(2) 132. 고난주간(3) 133. 부활절(1) 134. 부활절(2) 135. 성령 강림(1) 136. 성령 강림(2) 137. 삼위일체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 아멘 -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 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21세기 선교전략 인터넷 방송국/ 2002-09-09
21세기 선교전략 인터넷 방송국 \'저희는 인터넷 방송을 21세기에 아주 중요한 선교 전략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 땅에 전파하라는 목적 있는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경향교회 인터넷 방송국 경향교회 홈페이지(http://www.ghpc.or.kr)는 2001년 6월에 본격적인 서비스를 하였습니다. 저희 인터넷 방송국은 현재 상주근무 팀장 외 정회원10명이 주일에 사역 및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과 수요일마다 생방송을 하고 있으며 각각 200k와 56k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인터넷 방송을 21세기에 아주 중요한 선교전략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 땅에 전파하라는 목적 있는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5~6명이 모여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였습니다. 인터넷 교육도 하면서 대학부, 미혼 청년들과 기혼 청년들까지 참여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당회장 목사님(석원태 목사)이 인터넷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서버룸과 컴퓨터실이 각각 배정되어 인터넷 방송을 하는데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3개월간의 준비과정과 인터넷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지금의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등부까지 참여하여 또 다른 변화와 개혁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홈페이지에서는 석원태 목사님의 설교뿐 아니라 부목사님과 강도사님 그리고 외부 강사들의 모든 설교자료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 참여할 수 없는 성도들을 위해 구역공과 성경공부도 인터넷 방송으로 매 주일 올리고 있어서 다음날에는 확인하고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각각의 사역과 기관에서의 간증내용과 강의 및 수련회 내용 등도 항상 볼 수 있도록 내용들을 편집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 뿐 아니라 경향교회는 늘 선교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높은 만큼 선교정보와 칼럼이 매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특히 나눔터에서는 목사님이 신앙상담을 하는데 매일 체크하고 답변을 하기 때문에 많은 성도와 네티즌들이 자신의 고민과 문제들을 성경말씀을 가지고 도움 받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 주보가 PDF 서비스로 매주 올라가기 때문에 다른 타 지역이나 선교지역에서도 주보를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점차 이용자와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경향교회는 앞으로 메일 전도 카드서비스와 더 다양한 컨텐츠를 올리기 위해 새로운 홈페이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인터넷 방송국의 의의는 1).정보와 통신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에 우리 교회가 이 모든 문화매체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선진하고 2).앞으로 진리가 배척을 당하고 참 진리의 종들이 일반적인 매스컴으로부터 배척을 당할 때를 위하여 독자적 선교를 하기 위한 방송이나 여러 문화매체가 필요한데, 이런 의미에서 경향인터넷 방송국이 개혁주의 복음 전선의 전초기지 역할을 감당할 것 3).이러한 문화매체의 여러 부문에 경향화된 독자적 전문가를 기르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1세기 중요한 선교의 역할을 감당할 경향 인터넷 방송국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1세기 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
21세기 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 최창웅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대덕 한빛 교회 시무 장로 GPTI 대전지원 협동원장 ------ 내 용 목 차 ------ 1. 21세기 선교 상황 -------------------------------- 2 2. 선교사의 소명 ----------------------------------- 3 2.1 선교사 2.2 선교의 소명 3. 근대 선교의 발전단계 ------------------------------ 7 4.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 9 4.1 평신도 전문인 선교의 성경적 근거 4.2 전문인 선교사역이 사도 바울에게 필요했던 이유 4.3 사도 바울의 전문인 선교가 주는 교훈 5. 21세기의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 ----------------------- 19 5.1 전문인 선교의 유형 5.2 선교지 현장의 문제점 6. 한국 교회와 선교사 훈련 ---------------------------- 29 6.1 한국의 선교훈련 역사 6.2 한국교회와 선교 훈련 7. 전문인 선교 훈련의 특성 ---------------------------- 35 7.1 Thomas Hale의 전문인 선교훈련 7.2 Tetsunao Yamamori의 주장 7.3 선교훈련에 영향을 끼치는 한국적 요소 참고 문헌 목록 -------------------------------------- 39 1. 21세기 선교 상황 복음이 한국 땅에 전래된 이래 비교적 짧은 기간의 복음화를 통해, 1909년에는 평양신학교 1기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선교사로 파송 되는 일을 하게 된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을 다녀간 세계 학생 운동의 지도자요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인 존 모트(John R. Mott)는 귀국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민경배 1983,267~68): 한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는 지금 전국적으로 영적인 부흥운동의 불길이 휩쓸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만일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이 만큼의 속도로 계속 성장하게 된다면, 한국은 근대 선교 역사상에서는 완전히 복음화 된 유일한 비기독교국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대 각성과 부흥운동으로 교회가 일치 단결하고, 선교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착수하게 되지만, 그러나 교회의 계속적인 성장과 비례해서 선교가 같은 수준으로 증가하지는 못했음을 교회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러한 양적 증가 일변도의 현상을 한국 교회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하였으나(옥한흠 1998, 22~33)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는 1990년대부터 해외 선교사가 급속도로 증가함으로써 이제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한국의 해외 선교사는 9500여명에 달하고 있다(김성욱 2001,107). 따라서 한국은 선교 대국으로 인정 받게 되었고, 선교 대상 지역의 상황 변화에 따라 이제는 전문성을 지닌 직업적 선교가 선교를 주도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00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선교대회의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에 파송 된 한국인 선교사 가운데 25%이상이 평신도 선교사로 보고 되었다(그러나 한국 전문인 선교협의회가 1999년 5월에 국내의 78개 파송 선교단체와 9개의 교단 선교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된 선교사 5,398명 가운데 평신도 선교사가 3,083명으로서 평신도 선교사가 57%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됨.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 편집 2000, 220~24). 이처럼 평신도 전문인 선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특히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 현지의 상황이 전문인 선교사만의 입국이 가능토록 변화 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선교사보다는 전문인 선교사가 계속적으로 증대 되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 같은 실제적인 선교사 수요와 선교 대상지역의 복잡한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준비되고 훈련된 전문인 선교사로 구비 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2. 선교사의 소명 2.1 선교사 선교사라는 단어는 ‘보내다’(라틴어 mitto, 헬라어 apostello)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12제자를 사도(apostle)라고 불렀고, 이 말이 80회 이상 사용되고 있는데, 단 한번 예수님께 대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히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최초의 사도이셨고 12사도의 머리이셨다. 12사도는 주님께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았고 사도적 권위를 부여 받았으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보냄을 받았다(마 28:18~20). 그렇다면 오늘날의 선교사는 12사도와 동일한 계층에 속하는 것일까? 허버트 케인은 기독교 선교이해(Understanding Christian Missions)에서 오늘의 선교사는 ‘이류급의 사도(바나바, 디모데, 실라 등)’에 가깝다고 하였다. 이들 이류급의 선교사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으며 성령이 그들에게 지시하는 데로 옮겨 다녔다(행 8:26,29,39; 16:6~7).(허버트 케인 1997, 29~30) 그는 선교사란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전통적 의미에서 선교사란 말씀과 기도 사역을 전임하도록(행 6:4) 하나님에 의해 부름 받은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롬15:20) 지리적 혹은 문화적 경계를 건넌(행22:21)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성경적인 것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의미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틀 안에서 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임 사역의 개념을 목회자와 복음 전도자 그리고 선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정의에 의하면 헌신적인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그 들의 직업에 상관 없이 기독교 전임 사역자라는 것이다. 허버트 케인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전임 사역자라면 이제 말할 것은 이것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선교사이다. 그러나 스티븐 닐(Stephen Neill)은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면 아무도 선교사가 아니다 라고 경고 하였다”(1997, 30).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이라거나 증인이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는 말은 옳지 않다(1997, 31~32). 우리는 선교사가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때 그가 다른 신앙인들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그가 색다르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선교사가 고향에 머물고 있는 목사나, 심지어 평신도보다 영적으로 반드시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문화적(Cross-cultural)상황에서 선교사는 자기가 다음과 같은 몇몇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였다: 1)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이다; 2) 그는 진리의 사자이다; 3) 그는 사랑의 사도이다; 4) 그는 평화의 사절이다; 5) 그는 문화의 운반자이다(1997, 33~43). 2.2 선교의 소명 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1차적으로 점검 대상이 되는 것은 과연 소명을 받았느냐-하는 사실이다. 소명은 받지 못했을지라도 선교에 대한 간절한 열정으로 선교 현지에 나가게 되면 사역하는 기간 중에라도 소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 훈련 현장에서 이해되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허버트 케인의 설명을 정리하였다(1997, 44~ 53). 1)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 선교의 소명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내가 소명을 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소명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진지하고도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바라는 헌신 된 그리스도인 들에게서 자주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는데, 한편의 극단에서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대개 이 것은 목소리나 환상이나 꿈이나 다른 신비적인 사건들과 관계 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신비적 경험이 없다면 선교 사명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모든 사람은 그러한 경험을 열심히 구하고 그 것을 경험할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편의 극단은 모든 그리스도인 들은 선교사이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요청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말하길, “만일 당신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비행기에 올라타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당신의 일을 행하시오. 시간, 장소, 소명, 성직 등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 초조하지 마시오. 다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 믿으시오.” 이 두 가지의 극단적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첫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자는 집에서 편안히 앉아서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두 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은 선교 사역지에서 종종 유익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소명(부르심)이란 신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기독교적 봉사가 아닌 기독교적 삶을 언급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반적 소명이 있는데(롬9:24~26),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명확하게 되었다(눅 5:32).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롬1:7). 그리고 그러한 소명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롬 8:30). 그 외에 2차적 소명(기독교 사역에 대한 소명)이 있음을 케인은 말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 직업을 버리고 베드로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오직 헌신했던 것처럼 모든 시간을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만 부여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롬 1:7), 모든 사람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다(고전 12:29).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가 진정한 사도였다고 주의 깊게 지적한다(고전 9장). 그는 하나님의 뜻(고전 1;1)과 부르심(롬 1:1)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명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며(고전 9:16~18),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에게 부여된 것도 아니었다(갈 1:1). 그러므로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은 선교 소명이 전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이 있기 수년 전에 이미 선교사였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 소명은 과연 어떠한 성질의 것일까? 그것은 전혀 신적인 소명이 아니었고, 단지 도움을 요청하는 인간적 부름이었다. 그 부름은 하나님이 아닌 마케도니아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간청이었다. 이 사건은 선교 소명과 전혀 상관이 없다. 단지 그 것은 이미 전임의 기독교 사역에 들어선 사람에 대한 인도 하심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마케도니아 소명과 선교 소명이 동일시 되어왔다는 것은 참으로 큰 오해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2) 선교의 소명 사실상 ‘선교의 소명’이라는 용어는 잘못 만들어진 용어로서 성경적이지 못한 것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고자 소망하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일종의 신비로운 ‘선교 소명’을 기다렸지만, 하지만 그러한 소명은 결코 생기지 않았고 결국 얼마 후에는 기다림에 지쳐 버리고 선교지로 가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가? 전임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역에 대한 소명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라고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저희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마 4:22)고 성경에 기록되었다. 누가는 동일한 사건을 이렇게 묘사했다: “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눅 5:11). 이 ‘소명’은 그들의 이전 직업을 확실하게 중단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직업,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직업으로 그들을 나서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들이 동시에 사람을 낚는 어부와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될 수 는 없었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직업이 ‘더욱 고귀하고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전적으로 다른 직업이었다. 현대적 용어로 이것은 ‘전임 기독교 사역’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임적 개념의 소명은 주님에 의해 보다 강화 됨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 주여, 내가 주를 좆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하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1~62). 3) 인도 하심과 소명의 비교 전임 사역에 대한 소명과 인도 하심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사도행전 16장에서 본 ‘마케도니아 소명’이 소명이 아니라 단지 인도 하심 인 것을 살펴 보았다. 소명은 일생에서 한 번 온다. 그리고 일단 소명이 이해되고 순종 되면 번복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도 하심은 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인에게, 베드로를 유대인에게 보내셨다(갈 2:7~8). 또한 윌리암 케리를 인도로,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아프리카로, 허드슨 태일러를 중국으로 향하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에 따라 그의 종들을 배치하시는 것이다. 3. 근대 선교의 발전단계 랄프 윈터(Ralph D. Winter)박사는 개신교의 선교 활동 역사에서 나타난 커다란 변화를 3가지로 분류하여 “폭발적인 선교의 진보”라고 명명하였고 그 특성에 따라 분류하였다. 이들 각각의 진보는 세계의 특정한 지역 혹은 미전도 지역을 관찰해 봄으로써 세계 복음화라는 전체 과업을 완수하는 일에 선교적 진보가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발전 단계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랄프 윈터 2001, 220~226) : 첫번째 시대: 연안지역으로 이 시대는 윌리암 케리가 개척한 시대로, 케리가 지은 작은 책은 복음주의의 대 각성과 함께 미 대륙과 유롭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고 삶을 변화시켰다. 모든 사람들은 선교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교회 형태의 조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케리의 주장이 옳다고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5명의 대학생들이 케리의 책에 도전을 받아 그들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위해 함께 기도하였다. 이들이 후에는 건초더미 기도회(Haystack Prayer Meeting)로 알려 졌는데 이들이 시작한 학생 선교운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른 학생 선교 운동의 모델이자 선구자가 되었다. 선교 구조는 전형적인 비교단적 초 교파적인 선교회였다. 이 시대의 두 가지 특징은 놀라운 희생 정신과 뛰어난 선교 전략에 대한 훌륭한 통찰력이다. 두 번째 시대: 내륙지방으로 이 시대는 허드슨 태일러(Hudson Taylor)가 주도한 시대이며, 후에 주로 학생 자원 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라는 학생 운동이 중심을 이루었다.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해 있는 선교 조직들을 ‘믿음 선교회(Faith Missions)’라고 불리었는데 40개 이상이 설립하게 되었다.. 이들 선교회는 첫번째 시대의 해안 선교와는 달리 대륙의 내지선교를 목표로 하였다. 또한 학생 자원 운동은 10만 명의 선교 헌신자를 배출 하였고, 그 가운데 2만 명이 실재로 선교사로 헌신 하였으며 나머지 8만 명은 고국에 남아서 선교 활동의 토대를 재건하는 일에 헌신하였는데, 그들은 평신도 선교 운동(Laymen’s Missionary Movement)을 시작 하였고, 기존의 여자 선교회를 강화 하였다. 신참 선교사들은 이전 시대에 개발된 선교학적 지혜를 대부분 무시했지만, 선교 전략 면에서 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첫번째 선교시대에서 개발된 방법들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놀라운 선교 결실을 맺게 된다. 거의 모든 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많은 사람들은 세계 복음화가 사실상 완수 되었다고 생각 했다. 일부 선교사들은 선교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여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1865년과 1910년 사이의 45년간은 첫번째 시대인 연안 지역시대에 성숙한 단계의 적당한 선교 전략과 두 번째 시대인 내지 선교 시대에 개척 단계인 선교 전략간의 전환기 였다. 1967년 경에는 북미 출신의 모든 선교사 중 90% 이상이 이미 상당 기간 속해온 강건한 현지인교회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중에 선교의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대: 미전도 종족들에게 이 시대는 학생 자원 운동 출신의 두 젊은이, 카메론 타운젠트(Cameron Townsend)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에 의해 시작 되었다. 맥가브란은 현 시대가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지는해’가 아니라 ‘뜨는해’라고 주장하였다. 분명 현 시대에 윌리엄 케리 나 허드슨 태일러에 비 할 수 있는 사람은 카메론 타운젠트이다. 타운젠트는 분명히 미 전도된 선교지가 있음을 보았으며, 반 세기 가깝게 세계의 소외된 부족민들에게 주의를 환기 시켰다. 처음에는 이전부터 존재하는 위원회들이 부족민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도우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케리 나 태일러처럼, 타운센트도 결국에는 스스로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만들었다 처음에 타운젠트는 세계에 약 500개의 미 전도 부족집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 후에는 그 추정치를 1000으로 고쳤고, 그 다음에는 다시 2000으로 , 그러나 오늘날 그 숫자는 .약 5000(현재로 파악된 숫자는 12,000수준)에 달하고 있다.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에는 현재 4000여 명의 선교의 일꾼들이 일하고 있다. 맥가브란은 언어의 장벽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의 심각성을 인도에서 보게 되었다. 타운젠트가 부족 집단을 발견했다면, 맥가브란은 보다 보편적 범주를 발견하였는데, 그는 이 것을 ‘동질 집단(Homogeneous Units)’이라고 불렀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이 것을 세분화하여 각 독자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들에게는 ‘수평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그리고 지리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에 의해서 구분되는 집단을 ‘수직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집단들에 침투해서 집단의 경향을 따라 선교학적 돌파구를 부지런히 이용한다면, 그 종족 집단에 대한 전략적인 ‘하나님의 다리(Bridges of God)’가 확립 된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그러한 돌파구가 마련 될 때까지는 일반적인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활발한 노력과 저술을 통해 교회 성장운동과 미 개척지 선교운동을 수 없이 일으켰다. 교회 성장운동은 이미 복음이 침투한 집단들 안에서 교회를 확장 시키는 일에 힘 썼던 반면, 미 개척지 선교 운동은 아직 복음이 침투하지 않은 남은 집단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힘썼다. 이 두 접근법은 민족 언어학적 접근과 사회 문화적 접근인 것이다. 랄프 윈터와 다른 선교학자들은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세 번째 시대의 특징은 ‘미전도 종족’이라는 보다 규정하기 어려운 비지리적 범주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미전도 종족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종족 집단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은 너무나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 번째 시대는 두 번째 시대보다 훨씬 더 서서히 시작 되었다. 타운젠트와 맥가브란은 40년 전부터 잊혀진 종족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일반 대중들은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비서구 선교 기관들이 수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나 이 전의 선교회들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4.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전문인 선교가 선교 현지의 상황 변화에 의해서 그 수요가 계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할지라도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반드시 검토해야만 한다. 더욱이 21세기에는 닫혀져 가는 선교지에 대한 복음화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의 몫으로 많은 선교 전문가들이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한 인간적 사고의 전략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될 것이다. 4.1 전문인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평신도선교의 구약성경적 근거 구약성경에서의 평신도의 개념과 선교적 역할은 창12:1~3; 출19:5~6; 사43:20~2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 구약에 나타난 평신도 선교의 의미 구약성경에서 평신도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 것은 평신도 개념의 기초가 된 용어로서 평신도 신학의 발전에 주요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개념과 이 용어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찾아 주경학적으로 평신도의 의미와 역할을 찾고자 한다(김성욱 교수) 나. 하나님의 백성 1).두 가지 단어( Goi, Aam)가 사용됨. (1). Goi 이방인, 이교도, 국가, 백성(창10:5; 12:2; 사11:10; 42:6; 슥12:3) 정치적, 종족적,또는 지역적 그룹의 백성 개념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고이)을 이루고”. (2). Aam 계약적 백성(출3:10; 시78:52~66; 95:7; 사43:21; 51:16; 호1:9~10; 슥8:6) (출3:10) “내 백성(아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2).두 용어가 대조적인 개념으로 사용됨: (출33:13) “---이 족속(고이)을 주의 백성(아암)으로 여기소서” (1). 구약에서 점차로 “고이”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주변 국가들을 지칭하게 됨. (2). 70인역에서 이 표현은 가시화됨(Aam- Laos, Goi-Ethnos). (3) 하나님의 백성은 계약백성으로서 주변의 많은 국가들 속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소유”로 나타남. 다. 아브라함언약과 선교(창12:1~3) 1). 주경적 이해 (1).아브라함 계약 - 계약적 신앙의 중요성(롬10:17) -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상대로 나타남. - 하나님의 자기백성에 대한 은혜와 약속의 주권적 통치 - 약속의 계약 (2). 4가지 약속들 - 새 땅 - 수 많은 후손들 - 신적 보호 - 만민에게 복의 근원-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됨 (3). 구원의 언약 – 칼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언약이다” 2). 선교적 이해 (1). 온 세계에 퍼져 있는 타 문화권 선교를 위한 평신도 선교의 근거 (2). 하나님의 이방 민족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하심. (창12:3):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3).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잃어버렸던 족속에 대한 회복이 함께 나타남. (4). 이스라엘의 선택은 곧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함임. 라. 모세언약과 선교(출 19:5~6) 1). 모세언약: 시내산 계약 또는 율법 계약 (1). 구속사에서 모세계약의 위치 (2). 율법의 의미 (3). 십계명(도덕법) 2).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3가지 이름 (1). 열국중에 내 소유 (2). 제사장의 나라 (3). 거룩한 백성 3). “ 내 소유”의 의미 (1). 출19:5 “—너희는 열국 중에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 백성이 가지는 특권을 의미함. (2). Segulla(소유)의 의미 - 개인의 사적 소유물 - 움직일 수 있는 재산 - 값비싼 보물 - 왕의 귀중한 보물을 담는 보배 합. 4). “제사장 나라”의 의미 (1).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제사장적 역할 (2). 제사장의 역할: - 제단에 봉사 - 백성을 위해 축복 -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침 (3). 이스라엘의 우주적 제사장 역할: 하나님과 만민들 사이에서 5). “거룩한 백성”의 의미 (1). 하나님 백성의 지위와 책임 (2). “거룩한”의 의미: - 평범하거나 부패한 것에서 구별된 것 - 하나님의 쓰심을 위해서 특별히 분류된 것. -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결성”보다는 하나님의 “특별목적”을 위한 사역의미 (3).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 십계명의 서문과 십계명 (4). 이스라엘의 특별 목적을 표현함: - 예배와 봉사 - 구속사 속에 있는 선교적 소명 마. 이사야 43: 20~21 1). “내 백성 나의 택한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1). 평신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 (2). 암흑과 혼돈의 시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2).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내 백성, 나의 택한 자”(20) – 하나님의 선택과 장래 구원 3).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 (1). 하나님 백성에 대한 주재 권 (2). 앞서 가시며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 4). 하나님의 불변하신 약속: 버리지 아니하시며 계약관계는 변함 없음을 증거. 5). 하나님의 선택된 목적: “—지었나니”(21)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표명. 6). 이스라엘의 특권과 책임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의 전능 하심과 구원의 활동을 선포하게 하심 평신도 선교의 신약 성경적 근거 가. 신약 성경은 전문인 선교의 개념을 보다 분명하게 나타냄 1). 대표적인 성경구절: 엡4:11~12, 벧전 2: 9~10 2). 어원적 의미 (1). 신약성경의 “백성”에 대한 두 용어 - Ethnos: 국가들, 나라들 - Laos : 하나님의 백성들 (2). 하나님의 백성 - 전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계약적 성격을 강조한 말-Conn. - 특별한 신분의 백성에 대한 계약적 성격을 강조하는 말-Strathman -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지칭 하는말: 행15:14; 18:10; 롬9:25; 고후6:16; 딛2:14; 벧전2:9; 히4:9; 8:10; 10:31; 13:12; 계18:4; 21:3 (3). Laos는 교회의 직분이나 역할들에 관계없이 구원 받은 모든 남녀 성도를 포함하는 말이다. 나. 모든 성도의 사역(엡4:11~12) 1). 서론 (1). 사도 바울의 “모든 성도의 사역론(Every-member ministry)”을 말하는 내용이다(Hendrickson, Stott, Stevens, Packer). (2). 본문의 핵심 내용: - 영적 은사들의 분배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며,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로 준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3). “은사들”과 “사역”이란 용어가 주는 의도는 바로 교회의 “봉사”에 부르심으로 나타난다. (4). 이 본문은 평신도 사역에 대한 성경적 태도를 확고하게 한다. 2). 영적인 은사들 (1). 본문의 내용들 - “사도들, 선지자들, 전도자들, 목사와 교사들”(11절) - 모든 은사들은 교회의 평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역을 수행케 하는데 이바지 한다 – 칼빈 - 여기 본문에 나타난 은사들은 교직제도(Church – Officers)를 확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돕기 위한 은사이다 - 교직주의의 권위를 나타내지 않고 영적 은사들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F.F. Bruce) - 개인적 은사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하나됨에 많은 장애가 된다(Van Engen) (2). 은사들의 특징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양 은사를 나눠주심을 강조하는데, 만일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나누어 주시지 않았다면 교회사역은 없었을 것이다(칼빈) - 교회에서 은사들의 사용은 인간들의 고안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여된 신적 부과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은사를 받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사역자가 될 수 없다(Ridderbos). - 은사의 다양성(고전12:12; 롬12:4):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니다. - 은사의 두 가지 목적: 첫째는 사역을 위해 성도를 준비시키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3). “성도를 온전케 함”의 의미 (1). 어원적 의미 - equipping(RSV, NASB), perfecting(AV), preparing(NIV) - 고대 헬라어 의학 용법상, “ 몸의 부분들의 조화를 위하여 인간의 뼈나 다른 부분들을 조정하는 뜻으로 사용됨”(P. Stevens). (2). 실제적 의미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계획으로서, 성도들 모두가 각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심.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성숙케 함. -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의미는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사역이 있음을 말한다.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의 선교(벧전 2:9~10) 1).본문의 중요성: (1). 평신도 선교를 위한 핵심적 성경구절 (2). 하나님백성의 개념 (3). 구약적 배경을 신약과 연결시킴. (4).하나님백성에 대한 계속적인 부르심과 그들의 역할을 강조 2). 본문의 구성: (1). 그리스도인의 위치 (2). 그리스도인의 사역과 역할 3). 4가지 이름: (1). 택한 족속, (2).왕 같은 제사장, (3).거룩한 나라, (4).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4). 택한 족속의 고찰: (1). 사43:20~21; 41:8~9; 신4:37; 7:6; 14:2; 시105:6, 43 (2). 구약적 개념을 인용 (3). 베드로 서신에 나타난 “택한” 의미: 1:2; 2:4,6,9; 5:13 (4). 택한 족속의 의미는 특권만이 아니라 봉사와 섬김의 소환령을 뜻함. 5). 왕 같은 제사장들 (1). 서론: - 평신도가 가지는 영광스러운 사역의 부요함을 나타내는 말 - 출19:6 “제사장 나라”와 연관: 모든 왕적, 제사장적 위치와 의무, 그리고 특권을 나타냄. (2). 왕 같은 제사장들과 평신도 선교 -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제사장적 사역과 유익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평신도의 특권 -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간에 그 누구의 중재 없이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축복. - 하나님과 성도사이에 어떤 특별한 종교 계급적인 위계질서가 있을 수 없다. -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존재 자체로서 가지는 의미 – 모든 성도들의 선교적 역할. 6). 선교적 사역: (9절 하반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성도의 특권과 위치, 그리고 부름 받은 목적이 나타남. (2). “아름다운 덕을 선전케 하려 하심”- 사43:21 (3). 시96:3: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 지어다” (4).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을 나타냄.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나타난 전문인 사역 제1차 선교여행 시에 바울과 바나바 사도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갈라디아 지역의 도시에서 전문인 사역을 했음을 볼 수 있는데(행13:1~14), 바울 사도는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 9:6)고 말하였다. 제2차 선교여행 기간동안에도(행 15:40~18:22) 바울 사도는 노동했음을 사도행전 18:3의 천막 만드는 일(Tentmaking)에서 볼 수 있고 또 그가 보낸 서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데살로니가 전서 2: 9~10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음을 보게 된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그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일깨우려 했던 것은 복음 전하는 바울 자신이 현지인들과 똑 같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노동하였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사도 바울은 수고하고 애씀으로써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그는 복음을 전했단 말인가? 안식일에 그는 회당에서 가르쳤고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정오의 긴 휴식시간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상적 생활을 통해서 본을 보임으로써 복음을 증거 했음을 또한 보게 된다,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살후 3:7~8). 그는 가르침의 진실성과 개종자들에게 상전에 대한 종의 태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동현장에서 의도적으로 일하였다고 한다(엡 6: 5~9, 골 3:22~23). (룻 시멘스 1999, 31) 제3차 선교 여행기간(행 18:23~21:14)에도 사도 바울은 노동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3년 동안 에배소에 머물면서 날마다 쉬지 않고 성경을 강론하였고(행 20:31), 성도들간에 논쟁이 일어나 어지러운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한 내용에서 그가 에배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고전 4:11`12). 이 같은 어려움과 고난 중에도 친히 손으로 노동하며 생계를 유지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3차 선교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그는 밀레도 항구에서 에배소 장로들을 청하여 불러 모은 뒤, 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 속에서도 먼저 바른 신앙생활 가운데 자신의 노동으로 재정을 확보하여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복음을 전하는 전문인의 선교적 삶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2~35). 바을의 3차에 걸친 선교여행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그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전문인 선교 사역의 본을 보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4.2 전문인 선교 사역이 사도 바울에게 필요했던 이유 전문인 선교 사역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 본 만큼, 선교의 백전 노장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전문인 선교 사역이 왜 필요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에 더욱 깊은 확신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의 실효성에 대한 성경적 확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룻 시멘스의 글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 하였다(1999, 39~43): 첫째, 사도 바울은 복음의 신뢰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순회 설교자들이 있어 철학을 강의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순회 설교자들이 돈을 요구하는 풍습과는 달리 청중으로부터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와 그 동기에 대해서 의심 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든 것이다. 그 자신의 생활비를 위해서 오히려 열심히 일했으며 복음 설교에 대해서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둘째, 사도 바울은 동질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행하면서 복음 대상자의 문화를 수용하도록 하였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동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학식과 경륜이 매우 높은 학자였으나 상아탑적으로 복음을 외치지 않았고,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하게 노예들과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셋째, 사도 바울은 모범을 보여주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가 직업을 통해 노동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를 따르는 자들과 새로이 개종하는 자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일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하였고 새롭게 변화된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쳤다(고전 6:9~11) 넷째, 사도 바울은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단지 교회 개척에만 목적하지 않았고 개척된 교회들이 건전한 공동체적 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자립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사도 바울에 의해서 개척되어진 교회들은 모두가 재 생산적이어서 교회의 성도들이 다 같이 전도사역에 힘썼다. 그리고 그 같은 전도 사역에 대가를 요구한 일이 없었다. 4.3 사도 바울의 전문인 선교가 주는 교훈 지금은 전문인 선교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실천한 전문인 선교가 어떠한 성경적 기준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서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에서도 바르게 적용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 룻 시멘스는 5가지로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999, 44~54): 첫째, 성경적 정의: 전문인 선교의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직업과 복음전도의 양자중의 선택적 택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인 선교는 단지 평신도 선교일 수만도 없으며 모든 성도는 전도와 노동을 병행시켜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명령과 전도 명령을 종합시키는 길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 들어가서 제자를 삼기도하고,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기도 하고, 가정교회를 시직하기도 하고, 성경번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전문인 선교사는 교회에 가능한 한 비용부담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현지에서 급료를 받으면서 별도로 교회의 후원을 받게되면 현지인 동료들과 우정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적 원리가 아닌 것이다. 둘째, 성경적 기초: 교회는 사도 바울이 그 삶을 통해서 제시한 성경적 근거를 갖추어야한다. 전문인 선교에 대한 토론적 ‘단점’이나 편견적 문제점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선교 사역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사실에 눈을 돌려 성경적 기초위에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한다. 셋째, 성경적 인도: 바울 사도의 선교 원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떤 사역 형태를 따라가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직업을 사용해서 복음전도 사역을 하도록 하셨고, 베드로 사도에게 있어서는 복음전도 사역을 위해 그의 직업을 떠나라고 하셨다. 두 사도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자질, 경력, 선교 대상민족, 목표, 은사, 사역 내용 등이 완전히 다르다. 성경적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사역 형태를 취할 때, 혹은 두 가지의 사역 형태를 혼합시켰을 때 각각에서 얻게 되는 장점은 무엇이며 감수해야할 단점은 무엇인지를 측정할 수 있게 하였다. 급격한 오늘의 사회 변동 속에서 그 시기와 사역 현장에 따라 베드로와 바울 사도 중 어느 사역의 형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는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 하실 것이다. 넷째, 성경적 훈련: 훈련에 있어서는 일반 선교사의 훈련 내용을 전문인 선교사 훈련에도 그대로 반영시켜야 하며, 여기에 첨부해서 사도 바울이 행한 전문인 사역의 선교원리와 전략, 세속사회 속에서의 삶과 노동의 관계, 직업인의 윤리의식을 깊이 있게 다루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성경적 전략: 세계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바울 사도의 선교전략을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그는 교회를 개척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개척된 교회가 자립기반을 구축하여 선교에 동참하도록 하였다.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문화권에서는 가정교회를 통한 민첩한 교회 개척으로 긴장감을 팽배시키는 분위기를 피해 나갔다. 또한 평신도의 사역을 통해 복음 전파가 어려운 지역에도 교회가 개척되어 지도록 하였다. 재정후원이 필요한 선교 사역지에는 필요한 재정지원을 하도록 하였고, 자비량으로 사역이 가능한 곳에서는 전문인 사역으로 교회를 개척토록 하는 조화있는 선교 사역을 수행했음을 보게된다. 5. 21세기의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을 크게 5가지로 나누어서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의 선교 상황이 전문인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1) 폭발적인 비그리스도인의 인구 증가; 2)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나머지 종족집단의 지속적인 폐쇄성; 3)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 가고, 알려지고, 신뢰받고, 그리고 이해되는 문제; 4) 어떤 외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국가에 알맞은 교회 개척 전략의 필요성; 5) 미전도 종족내에서의 빈번한 물질적 궁핍; 6) 선진국의 물질적 번영과 힘을 따라 잡고자 하는 많은 미전도종족 지도자들의 야심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선교전략이 전문인 선교를 필요로 한다: 1) 잘못된 표적으로서, 이미 기독교화한 지역에 99.9%의 선교 자원을 사용하고 미전도 종족에게는 0.1%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2) 미전도 종족을 위한 핵심적인 전문인 사역자의 부족; 3) 새로운 전략적 전환의 필요성 – 6000여개의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한 전략의 시급성 셋째, 미전도종족의 선교적 접근으로서, 전통적인 선교사 신분으로서는 사역할 수 없는 지역의 선교전략으로 전문인 선교사가 필요하다. 넷째, 10/40창의 미전도국가에 대한 선교 – 서아프리키로부터 중동을 지나 아시아까지 뻗쳐있는 북위 10도에서 40도 사이에 있는 띠 모양 지역의 국가들로서 여기에는 회교권, 힌두교권, 불교권이 포함되어 있으며, 새로운 선교의 표적국가들이 위치하고 있고, 전 세계 빈민의 82%와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선교사의 접근을 제한하는 지역이다. 다섯째, 만약 그리스도인 5억이 전문인 사역자로서 10명씩만 선교한다면 세계 복음화의 성취가 가능하다 – “만약 우리가 사랑의 복음을 가지고 회교도들에게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으로서 그들이 우리를 대적하도록 하실 것이다. 회교의 종말론은 그들이 온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성전(지하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크리스티 윌슨 – 전문인 선교사). 5.1 전문인 선교의 유형 전통적인 선교사의 입국이 제한 되어 있는 창의적 접근지역의 복음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선교 전략적 측면에서 패트릭 라이(Patrick Lai)는 전문인 선교사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T-1: 직업적인 동기로 해외에 근무하게 된 사람으로서 선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자, T-2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선교의 목적으로 입국하여 세속적인 직업으로 자비량하고 있으나, 시간적인 면에서 선교 사역보다는 직장 일에 더 비중을 두고 일하는 자, T-3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서 사업을 통해 자비량하면서 선교 사역에 최우선을 두는 자, T-4 :전통적인 선교사의 입국이 불가능한 지역에 학생 등의 신분으로 들어가 사역하는 선교사, 이러한 선교사는 자비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T-1의 타입은 전문인 선교사로 볼 수 없겠으나 T-2, T-3, T-4는 선교 단체와 연관하여 전문인 선교사로서 사역할 수 있다. 크리스티 윌슨은 모든 그리스도 인들의 선교적 동원이라는 차원에서 타 문화권에 거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문인 선교사로 보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최바울은 비판하고 있다. 즉 선교와 전도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사역적 차원에서 개념적 분리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전도는 그리스도 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반적 대중적인 성격이 있는데 반하여 선교는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기위해 분야별 혹은 영역별로 추진하는 전도 행위로서 전문성과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에는 이러한 임무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고 이러한 사명을 효과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사역적 전문성이 요구된다. 타 문화권에 거주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선교사로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서 현지인 교회를 구축할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선교 현지에서 복음 사역을 하는 본 교회의 파송이나 후원을 받는 자이다. 이렇기 때문에 사역적 전문성을 보유하기 위하여 훈련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선교는 따라서 교회적 사역이 되어야 하며 결코 개인적 사역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이상의 내용은 최바울의 ‘탠트메이커 선교사의 선교 사역적 의미’와 조한상의 ‘전문인 선교에 관한 연구’ – 장로회 신학대학의 석사 학위 논문(M. Div)에서 부분적으로 발췌 한 것이다(최바울 1999, 10~12, 조한상 1996, 30~32). 5.2 선교지 현장의 문제점 선교 현지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에는 선교사로서 현지에 나가기 전의 문제점들과 사역 현지에서의 문제점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한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로 파송 하기에 앞서서 선교 자체에 대한 많은 장벽들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장벽들이 선교를 시작부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선교 현지에서 까지도 많은 어려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선교 현지에서의 문제점들을 알아 보기에 앞서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선교의 장벽들을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먼저 알아 보는 것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면에서 더욱 중요한 조치라고 생각 된다. 1) 선교의 장벽들 선교의 장벽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지난 200여년의 선교 역사 속에서 노출 되었던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장벽들이고, 둘째는 오늘의 급변하는 선교 현지의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교회의 인식 부재 속에서 예측되는 장벽들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벽들에 대해서 이태웅은 ‘한국 선교의 이론과 실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이태웅 1994, 65~67). 여기서 선교의 장벽을 역사적인 것과 오늘의 상황적인 것과 한국적 상황으로 분류한 것은 본 연구자가 편의상 정리한 것이다. (1) 역사적 장벽들 현대 선교 운동이 시작될 때에 나름대로 극복해야 할 여러 가지 장벽이 있었다. 첫째, 지상 명령에 대한 오해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지상 명령은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그 후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류가 있었다. 둘째, 신학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18세기말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알려진 윌리암 케리가 선교를 호소했을 때 다음과 같은 선의의 응소를 받았다. “자네가 없이도 하나님은 선교하실 수 있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책임 한계 사이의 불분명한 선이 선교의 벽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무지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선교 정책과 선교 대상지, 선교 여행장비 및 운송 수단에 대한 미비점들 외에도 선교사가 현지 생활 중 방역 부족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넷째, 불충분한 선교사 준비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선교에 대하여 잠자던 교회의 일각에서 선교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 경험부족과 선교학적 공백 상태에 있던 교회는 커다란 장벽을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 (2) 오늘의 장벽들 첫째, 지나친 경비부담이 뒤따른다. 현재 한국 선교사 한 가정을 파송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1년간의 경비는 선교지 왕복 여비를 제외하고도 대략 15,000불 내지 25,000불이 되고 있다. 이 것은 선교사가 파송 되기 전 1~2년 동안에 진행되는 선발 및 오리엔태이션 등에 드는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둘째,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적 장벽이 있다. 19세기 및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많은 선교 대상국들이 서방 식민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주국 여권을 가진 선교사들은 그 나름대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선교 대상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고, 그 나라의 국익을 위하여 이데올로기를 채택하던가 또는 고유의 종교를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모슬렘 권과 힌두교 권은 대표적인 예이다. 크리스티 윌슨은 세계 인구의 약 50%는 정규적인 선교사의 신분으로서는 접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창의적 접근 지역의 나라 수는 무려 145개국이며 전 세계 불신자의 96%에 해당한다. 셋째, 타 종교의 장벽이 있다. 가장 현저한 장벽은 이슬람, 불교, 및 힌두교이다. 이 중에서 인구 10억을 웃도는 이슬람교도는 단순히 수동적인 자세만 취하지 않고 공격적이고 선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넷째, 세속화의 장벽이 있다.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폴 등 산업 사회를 이룬 나라들은 일단 선교사가 입국한다 할지라도 또 하나의 큰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고유의 종교 및 문화로 말미암은 저항감 이외에도 세속화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으로 복음을 들고 침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섯째, 인도, 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주는 제한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인도와 필리핀의 경우 외화를 자유롭게 선교사에게 보낼 수 없으며 대부분 해외 선교는 그 자금을 타국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3) 한국적 상황의 장벽들 첫째, 목사나 정규선교사만을 선교사로 인정하는 인식적 장벽이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지역 교회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를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신학을 공부한 목사나 전임 선교사만을 선교사로 인정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이 것은 세계 선교적 조류에 역행하는 처사이다. 둘째, 선교 정책이 교단마다 그리고 선교회마다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구체화되어 있지 못하다. 셋째, 지역 교회가 선교에 대한 인식이 깊지 못하다 넷째, 선교사의 현지 관리체제가 부족하다. 2) 선교 현장에서 말하는 문제점들 돈 해밀톤은 800명 이상의 전문인 선교사들(저자는 자비량 선교사라고 명하고 있음)에게 설문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406명이 응답하였는데 응답자 가운데 98%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고백의 4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돈 해밀톤 1992, 14~15): 첫째 내용: 나는 선교지로 가기 전에 6년간 대학생 선교를 했으므로 잘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선교 현지에서 효율적인 사역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준비도 기도후원도 부족했고 꼭 보고해야 할 책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 중국의 전문인 선교사. 둘째 내용: 너무나 갑작스레 기회가 와서 나는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못하고 떠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미리 준비를 했어야 했다. – 중동의 전문인 선교사. 셋째 내용: 나는 더 준비할 수 있었는데, 후회스럽다– 일본의 전문인 선교사. 넷째 내용: 전문인 선교사로 해외에 가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선교지에 가서 시간을 내어 보충 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국을 떠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 북아프리카의 전문인 선교사. 이상의 보고에서 들어나는 사실은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준비, 훈련, 교회와의 연계성, 팀 사역, 그리고 선교 단체의 관리 등 의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선교 단체들이 전문인 선교사의 허입을 놓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전에 본인들이 벌써 해외로 떠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응답자 406명 가운데 선교 단체와 연결되어 파송 된 선교사는 30%에 불과 하였다( 1992, 15). 전문인 선교사들과 전임 사역의 선교사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전문인 선교의 선교 현장에서의 문제점(취약점이라고 본문에는 기술됨)은 다음과 같다( 1992, 28): 첫째,전문인 선교사들은 광야를 휘젓고 다니는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이 되기 쉽다. 그들은 선교지에 나가 이미 그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역에 합세할 생각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일’을 한다. 팀 사역도 아니고 보고 체계도 없고 책임한계도 없고 스스로 외에는 자문기관도 권위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장기적인 계획이나 식견이 없다. 그러므로 잘 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잘못하면 자신은 물론 주위의 그리스도 인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둘째,전문인 선교사들은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준비가 미숙한 가운데 선교지로 나간다. 그들은 현지에서 부딪히게 될 영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훈련도 지식도 자원도 결여된 상태이다. 셋째,전문인 선교사들은 현지의 언어를 배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지 않는다. 넷째,전문인 선교사들은 많은 시간과 정력을 일에 쏟아야 하므로 그들의 선교 사역은 유야 무야가 된다. 전문인 선교사로서 사역에 성공하려면 선교 현지로 나가기 전에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에 힘써야 하고,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기도해야 하며, 장기간 기다리며 영적으로 늘 깨어 살피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속성으로 무엇을 이루어 보려는 사람에게는 전문인 선교 사역은 적합하지 않다. 전문인 선교로 성공하는 것은 일반 선교사로 성공하는 것보다도 훨씬 힘들다. 회교 선교 단체인 프론티어스를 창설한 그레그 리빙스턴(Greg Livingstone)은 “ 전문인 선교사로 성공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끝내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1992, 35). 성공적인 전문인 선교사는 모교회와 견고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교회와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이 16개가 있었는데 우수한 전문인 선교사는 보통 이하의 전문인 선교사들보다 16개항의 질문 하나 하나에 높은 점수를 보였다고 한다. 결국 효과적으로 현지 사역을 잘 수행하는 전문인 선교사는 지역 교회의 중요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잘 참석했었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훈련 등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사역의 경험을 교회를 통해서 쌓았고, 장기적인 교제와 지원을 교회에 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모교회에 보고할 책임을 느끼고 있었고 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원하는 면에 있어서 교회를 먼저 꼽았다(1992, 57). 대부분의 전문인 선교사들은 일터 근처에 ‘현지 지원팀’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옆에서 격려해 주는 목소리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옆에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배경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너무 좋고 또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하였다. 같은 목표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팀 사역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그런 교제와 지원이 없었다면 실패하고 사역을 그만 두었을 것이라고 어느 전문인 선교사는 말하기도 하였다. 충분한 기도와 교제의 지원이 없었던 어느 선교사는 “환경적으로 너무 낙심 되고 긴장 되어 처음으로 나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인 선교사는 말하길 “믿음을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팀이나 교제 가운데서 힘을 얻었더라면 그렇게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1992, 58~59). 전문인 선교사는 그 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나라에는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문을 열고 전문인 선교사를 맞이하는 것이다. 기회의 세계(Global Opportunities)의 루스 시멘스(Ruth Siemens)는 “ 당신에게 꼭 맞는 직업은 하나다, 그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전문인 선교사가 되려면 자신에게 적당한 직업의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한 전문인 선교사들에게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즉, 그 분야에 실력자라는 것이 효과적인 사역에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실력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존경 받기 위해서는 우선 맡은 일을 잘 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실력을 인정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실력에 따라 당신의 증거는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이다. 영적인 사역은 훌륭하고 전문 분야의 일은 엉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 분야에 부적합하고 실력이 없어 그들의 복음 증거는 무력했음을 보았다고 한다. 일을 잘 못하면서 강력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는 참으로 힘들다(1992, 76). (1) 선교사 중도탈락의 문제 선교사 중도탈락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그 수치를 파악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데 선교를 담당하는 일선의 기관들이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윌리암 태일러는 세속 세계의 중도탈락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심각성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중도탈락은 해외 주둔 군인을 비롯해서 외교관, 사업가들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도 많은 비용이 드는 문제이다. 미국에서 해외로 파견된 경영관리자 중에 30%정도가 해외 근무 도중에 돌아온다. 이처럼 해외 근무 도중에 중도에서 탈락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인과 가족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 같은 중도 탈락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독신 중간 관리자의 경우에는 약 15만 불이 되지만 가정을 가진 고위 관리자의 경우에는 35만불 이상이 된다고 한다(윌리암 태일러 1998, 22) 그렇다면 선교사의 중도탈락은 얼마나 될 것인가? 통계라는 것은 엉터리일 수 있고 또 자신들의 경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숫자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까지 조사 한 바에 의하면 전 세계 선교 사역자들 20명 중 약1명(5.1%)이 매년 선교지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들 중 70%는 방지 가능한 이유로 인해 돌아간다고 한다. 타 문화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전 세계의 선교사를 15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그렇다면 이들 중 7,650명이 매년 선교 현지를 떠난다는 사실이다..(1998, 29) 한국 선교사의 중도탈락은 어떠한가? 1992년에는 파송 선교사 중에 23.4%가 임기 이전에 귀국하였고, 1993년에는 42.9%로, 그리고 1994년에는43.7%로 중도 탈락 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한국 선교의 어두운 면을 보이고 있다(문상철 1998, 137~38). 선교사 중도탈락과 관련해서 가장 심각하게 자기 반성과 고통을 겪게 되는 곳은 첫째는 파송 교회요, 둘째는 훈련 기관이요, 셋째는 파송 단체가 되고 있다. 세계 선교 협의회의 선교위원
21세기 지구의 상황과 희년의 성취 2002-02-02 18:35:57 read : 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민중신학의 Paradigm Shift를 위하여 - 김 용 복 박사 <머리말> 1.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어 지구적 상황이 지역, 민족사회 그리고 세계사회의 지평이 접속되고 정치계, 경제계, 사회계, 문화계, 종교계, 생명계에서 인간과 생명이
21세기 지구의 상황과 희년의 성취 2002-02-02 18:35:57 read : 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민중신학의 Paradigm Shift를 위하여 - 김 용 복 박사 <머리말> 1.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어 지구적 상황이 지역, 민족사회 그리고 세계사회의 지평이 접속되고 정치계, 경제계, 사회계, 문화계, 종교계, 생명계에서 인간과 생명이 다중 적인 희생의 제물이 되는 현실이 압도하여 오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는 (1) 지정학적인 재구성과 (2) 모든 차원의 상호연관성이다. 지정학적 재구성이란 지역적 지평과 민족 사회적 지평과 지구적지평이 동시적으로 결합 되여 있는 지정학적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또 상호연관성이란 자연,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종교적 차원은 총체적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인간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시장화된 지구적 상황에서 인간의 다중적 희생은 새로운 신학적 과제와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의 한 전략가의 관찰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는 문명의 충돌(Civilizational Clash)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1.1 지구시장은 초국적 기업에 의하여 장악된다. 초국적 기업은 지구적 조직망과 통신망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시장을 장악하여 사회주의권 내지는 구 사회주의권을 비롯하여 소위 제3세게권은 물론 산업선진국과 신흥공업국의 걍제시장도 장악하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세계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지역적 빈부의 격차는 물론 지구전역에 있어서 경제적 약자는 희생을 당하게 된다. 기아, 가난, 실업 등의 경제적 불안은 그 강도에 있어서나 그 범위에 있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될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은 이러한 세계시장경제질서의 개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여기소 소위 국가경제체제라는 근대국가의 고정적 개념은 와해되고 오직 세계시장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경제생활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치열한 경제적 경쟁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1.2.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근대국민국가(Nation State)의 체제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초국적 기업의 세계시장의 장악은 국가권력의 약화를 초래하고 국가사회는 세계경제의 운동방식에 적응하도록 강요되고 국가사회의 개방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주권의 개념은 절대적인 개념으로 될 수 없으며 지구시장적 역학관계에 노출될 것이며 국민의 주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라는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소위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체제는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세계시장에 개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3.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세계적 경제경쟁의 격화는 물론 모든 사회관계의 대립, 갈등, 모순은 심화될 것이며 격화되고 심지어는 폭력화 될 전망이다. 이 경쟁관계를 무한 경쟁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정글의 현상으로도 비유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경험해 왔던 민족간의 갈등, 계급간의 대립은 물론 모든 사회관계가 다차원적으로 대립, 강등, 모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4.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정신생활과 문화생활에 대한 충격은 가장 심각하다. 세계시장은 세계적인 통신망을 구축하고 정부를 유통하며, 세계는 지구적 다중매체에 위하여 지배될 것이며 따라서 모든 민족 또는 공동체 문화의 정체성, 문화적 도덕적 정신적 가치 그리고 삶의 양식은 시장의 소용돌이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지구시장의 경쟁적 논리는 문화적 차원에서는 문화전쟁으로 까지 치닫게 될 것이며 이런 차원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종교와 종교의 관계도 치열한 시장적 경쟁관계에 종속되게 될 것이다. 1.5.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지구의 생명은 더 커다란 회생을 당하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생태계의 위기는 서구형 산업경계체제와 산업발전의 모순 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관계에서 인식되어 왔다. 이제 시장의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시민의 정치적 압력을 초월하여 군림함으로 그 사회 정책적으로나 생명계에 대한 정책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 더욱 커 졌다. 생명의 환경은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의 결집이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어 가고 있다. 2. 민중과 생명은 공히 희생되고 있다. 2.1. 지금까지 전통신학은 물론 민중신학은 민중의 희생은 생명의 파괴와 연대관계 없이 이해되었었다. 민중신학에서 조차 생명의 파괴는 별도의 문제로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민중의 생명은 자연의 생명과 일체적인 것이다. 민중의 생명은 민중의 삶과 구분되지 않으며 민중의 삶은 생명 그 자체와 구별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일반의 파괴를 민중의 생명파괴에서 체험한다. 따라서 일반 생명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모든 생명은 차별없이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신학의 共生的 또는 相生的 생명론(Minjung Ecology)을 말할 수 있다. 2.2. 일반생명과 민중의 생명과 민중의 삶은 일체적인 실체이다. 생명과 삶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다. 민중의 살림살이(삶)가 민중의 생명을 좌우한다. 민중의 생명은 민중의 졍제적 살림살이(Minjung Political Economy)에 의하여 크게 좌우된다. 민중신학은 생태계(Ecology)와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를 유기적으로 이해한다. 로마서 8장 21절(우주의 신음) 2.3. 생명체의 파괴와 민중의 희생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기반에 의한 계급적 모순과 갈등구조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의 파괴는 생명의 자생성의 붕괴이며(토지훼손) 민중의 생산적 주체성(노동과 경영)의 종속이다. 생명체의 파괴는 계급적 모순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산업조직과 거대기업의 현대과학기술(Technocracy)을 기반으로한 총체적인 경쟁적 통제적 경영논리에도 기인한다. 이 과정은 생명의 자생성과 민중의 노동과 생산적 주체성이 부정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경제적 가치(화페등과 같은 금융경제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가치)가 생명이나 공동체의 삶에서 유리된 채 창출되어 경제적 힘이 생명 희생적 주체 억압적 실재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제적 희생은 단순한 재화의 결여나 빈부의 구조적 격차에 의한 에 의한 빈곤이나 기아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2.4. 생명체와 민중은 살림살이를 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성과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억압당하고 있다. 생명체와 민중의 삶은 생명과 삶의 공동체의 민주적 형성이 독재체제(예 개발독재)에서는 물론 자유주의체제 또는 신 자유주의어려워 짐에 따라 그 주체성이 억압된다. 2.5. 민중의 삶과 생명은 정보산업과 문화산업에 의하여 더 희생당할 전망이며 다중매체에 의하여 그들의 생명과 삶이 문화적 폐허와 정신적 억압으로 고난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3.. 민중은 포괄적이고 상호연관성을 가진 모순관계에 의하여 수난을 당하고 있다. 3.1.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정치적 억압 즉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없는 자의 모순과 갈등과 계급적 모순과 갈등을 축으로 하여 민중의 고난을 이해하여 왔다. 민중의 생명과 삶을 파괴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 경제적인 모순과 갈등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산업문명과 생태계의 모순, 문화적 피폐와 억압, 폭력, 생명의 정신적 기반의 붕괴라는 종속적이 아닌 독자적인 요인과 모순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3.2. 그리고 민중의 삶에 있어서 대립과 갈등은 상호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모순관계로 이해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상호연관성을 간과하고 분석적 차원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였다. 따라서 민중의 생명과 삶은 분석적 모순관계로 축소되고 환원되었다. 3.3. 민중신학은 80년대에 들어와서는 또 이 모순의 위계질서를 물질 우선적으로 정하였다. 물질을 기반으로한 계급갈등이나 민족갈등을 우선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다른 차원의 모순과 갈등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또 1980년 이전에는 민중의 고난과 투쟁을 명확한 모순의 분석이전의 상태에서 인식하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중신학이 모순과 갈등과 대립을 다차원적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각차원의 상대적 독자성과 고유성 그리고 각 차원간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와 민중은 다차원적 희생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3.4. 민중의 생명과 삶에 있어서 폭력과 평화의 문제를 정의의 문제보다 우선순위를 낮게 정하였다. 정의는 평화의 기본조건이고 평화는 정의의 충분조건이다. 모든 모순과 갈등과 대립은 폭력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평화적으로 모순과 대립을 극복하는 것도 민중의 생명과 삶을 일으켜 세우는 데 중요한 요건이다. 지금까지 민중신학은 폭력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폭력의 다양한 실체를 소홀히 파악하였으며 폭력극복을 위한 노력을 미온적으로 하여 왔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폭력의 실체를 단순히 수단적인 차원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민중의 희생은 결국 폭력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은 폭력문제를 물리적인 수단의 차원을 넘어서 다차원적인 생명파괴의 실체로 인식하여야 한다. 3.5. 민중의 생명은 자연적 조건, 정치 경제적 조건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다. 민중의 생명과 삶은 문화적, 예술적, 심미적, 정신(영)적 차원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런 조건은 물질이나 자연에 종속된 요건이 아니라 독립되어 물질적 요건과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민중의 생명과 삶에 있어서 감성의 풍성함과 운율의 다채로움도 본질적인 활력의 일부이다. 민중의 생명과 삶은 그 정신과 혼백의 활력을 중심에 지녀야 살아있게 된다. #4. 민중의 주체성의 재구성 4.1. 민중신학은 민중의 역사적 주체성을 정치 경제적 차원을 중심으로 이해하여 왔다. 그리고 민중의 주체성을 정치 경제적인 소유와 권력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민중의 주체성인식에 있어서 정치 경제적 축소주의에 빠져 비 정치 경제적 요소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4.2. 그러나 민중의 주체성은 그 모순관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다차원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민중과 생명체는 생명의 주체이며, 삶전체의 주체이다. 그럼으로 민중의 사회전기는 정치 경제적 차원에 국한될 수 없고 종교적, 정신적, 정신적 차원이 상호연관성안에서 공히 인식되어야 한다. 민중의 주체성은 同活體로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다차원적 주체성간에 공생관계와 협동관계를 내포한다., 이것은 마치 다양한 주체들이 원탁에 공히 지리를 같이하는 조합적 또는 집합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4.3. 민중신학은 권력이나 소유의 문제에 있어서 그 실체를 표면적으로 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민중의 소유, 민중의 권력을 낭만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4.4. 그러나 민중의 생명과 삶은 소유의 문제나 권력을 획득하고 장악하는 데서 해결되지 않고 소유관계나 권력관계를 원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민중이 소유나 권력관계에서 종속되고 억압당하고 있을 지라도 그 생명과 삶은 간헐적으로 소유와 권력관계의 쇠사슬에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체험을 가지게 된다. 민중의 주체는 권력과 소유이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4.5. 민중의 생명과 삶은 소유와 권력을 장악하는 데서 성립되지 않고 소유와 권력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소유와 권력관계자체에서 "초월(Kenosis and Diakonia)"됨으로 이루어 진다. 민중신학은 소유와 권력관계의 악순환을 근원적으로 차단하여야 했다. 5. 민중과 연대관계 5.1. 민중신학은 연대관계를 너무 단순차원에서 인식하였다. 민중의 연대를 정치 경제적 소유나 지배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경향은 민중의 주체의 배타성과 파당성을 강조한 나머지 민중의 고립을 자초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5.2. 민중의 연대관계는 민중주체성의 포괄성을 전제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민중생명과 삶은 소유와 권력관계에서 중요하게 이루어지지만 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독자적이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5.3. 생명체와 민중의 삶의 연대관계는 전통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계급간의 연대(Inter-class Solidarity), 문화적 차별을 넘어서는 연대 (Inter-gender Solidarity), 정치적 지배관계를 넘어서는 연대(Inter-political Solidarity)등 모순과 갈등 등의 대립관계속에서도 연대의 다리를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체과 민중의 삶이 이러한 연대망을 구축하는 것은 모순을 애매하게 인식하거나 억압세력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와 민중의 삶이 포괄적인 주체로 성립하고 포괄적인 연대를 수립하여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5.4. 따라서 민중신학이 주창하여오던 절대적 적대관계란 논리적으는 있을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 5.5. 주체로서의 생명체외 민중은 포괄적인 주체성을 토대로 다양한 연대관계 그리고 모든 적대관계를 뛰어 넘는 연대관계(공생, 협동, 연대)를 형성하여야 할 것이며, 항상 유동적이고 열려있는 연대운동을 벌려가야 할 것이다. 6. 종의 형체와 Diakonia의 살림살이 생명공동체(Oikonomia Tou Theou) 우리는 성경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민중적 사회전기 즉 예수의 형체를 통하여 민중의 주체를 재구성하려한다. 희년은 노예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노예적 생산관계에서 해방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노예가 그 주체성을 항구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빌립보서 2장에 종의 형체를 입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기까지한 하나님을 영광의 주로 고백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자화상 즉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을 받으러 왔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이는 이사야서에 표출된 "고난의 종"즉 메시아라는 신앙적 체험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나아가서 초대교회는 종(Diakonos)을 공동체의 직분으로까지 세웠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이야기되는 종의 형체, 종의 사역, 고난의 종은 민중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 종의 실체 안에 주체적 실체를 역설적으로 함유함을 의미한다. 이 종의 형체를 공동체(교회론)적으로 표현하면 이는 "섬김의 공동체"로 이해된다. 여기서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주체로 일으켜 세운다. 섬김이란 모든 사람은 일으켜 세운다. 실로 DIAKONIA운동은 모든 생명체와 민중을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운동을 의미한다. 예수를 따르는 민중은 이미 종속적 관계에서 종의 "사역"에 강요되었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안에서는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메시아적 DIAKONOS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의 주체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민중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메시아적 종의 형체"를 입게 된다. 이 섬김의 공동체 안에서는 민족적 주체성, 사회경제적 주체성, 문화적 주체성, 정치적 주체성, 종교적 주체성, 생명적 주체성의 기적을 일으키는 섬김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갈라디아서 3장, 예배소서 4장>에서 이 역설적 同活體의 실체가 이야기되고 있다. 7. 희년과 민중신학 7.1 땅은 생명의 그루터기이다. 땅의 회복이란 생명의 회복을 의미한다. 생명과 땅은 공생동활의 연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1995년 민족희년의 선포는 삼천리금수강산을 민족의 생명의 정원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7.2. 희년은 민족의 삶을 보장하고 안전하게 하는 경제적 살림살이를 의미한다. 즉 민중이 경제적 살림살이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금 펼쳐지고 있는 세계시장에서 민중의 살림살이공동체는 지역적 지평과 민족적 지평과 세계적 지평에서 그 주체성을 공히 확보하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관계만을 의미하지 않고 살림살이 전반의 경영(DIAKONIA)적 주체를 의미한다. 이것이 민중신학이 말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우리는 희년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을 근거로 한 경제행위에서 "경제적 주체의 형체"를 발견한다. 레위기 25장과 마태복음 6장에서 이 실체가 들어 나고 있다. 한국민족의 성원들이 복된 살림살이를 꾸미는 일이 민족경제의 과제 일 것이다. 기독인과 민중교회는 경제적 주체로서 민족경제의 요체를 실현하여야 한다. 7.3. 희년에서 선포되는 해방은 노예의 사회경제적인 주체회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민중의 포괄적인 삶의 주체형성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과 삶에 대한 주권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억압체제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억압체제를 변혁하고 새로운 살림살이의 주역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겔서 37장(전반부)은 생명과 삶의 주역을 일으켜 세우는 비전을 그린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희년이 부과하는 정치적 과제를 지역 사회적 차원에서, 민족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 정치적 차원에서 민주시민을 일으켜 세우는 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7.4. 희년의 선포는 샬롬(화평)의 계약을 의미한다. 이는 총괄적인 생명과 인간의 사회안전보장체제를 민중이 주체적으로 이루고 가꾸어 가는 운동을 의미한다. 사회적 DIAKONIA는 사회적 평화의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생명과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사회복지와 안전의 주역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사야 11장이 이런 희년의 표상이다. 그리고 에스겔서 37장 후반부의 "화평의 계약"은 민족DIAKONIA와 민족통일과의 관계를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의 비전은 민족DIAKONIA의 과제로 설정될 수 있다고 본다. 7.5. 희년은 생명과 삶의 축제이다. 축제 없는 곳에 생명도 삶도 있을 수 없고 생명과 삶을 이룰 수도 없다. 시와 노래와 춤이 어울려 생명체와 민중의 문화적 영적 주체가 날개를 펴고 땅과 하늘에 생명과 삶의 향연을 이루는 축제가 희년이다. 요한 계시록 21장 22장이 이런 희년의 표상이다. 우리한국교회는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천시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민중신학은이에 대한 회개운동을 전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제 주신 시와 노래와 춤과 아름다움과 신선도와 같은 그림을 활성화하여 희년의 나팔을 불면서 생명과 삶의 축제마당을 열어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사회변동과 디아코니아 선교
21세기의 사회변동과 디아코니아 선교 김용복(한일신학대학교 총장) <머릿말> 한국교회는 "민족을 섬기는 교회"(민족디아코니아의 교회)였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구원을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여 왔으며 민족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수립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여왔다. 현재 21세기에도 한국교회의 이러한 선교적 사역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1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통하여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하여 선교적 사역을 이루시려는 그의 뜻을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교단이 이번에 개최하는 봉사대회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통하여 새시대에 새로운 지구적 지평에서 새로운 사역을 행하려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감지하게 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역사적 전통과 그 사역의 업적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한국민족과 아시아의 민족들 그리고 세께의 민족들이 이를 희구하며 갈망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이 세기적 선교사역에 부르시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처하여 있는 이 시대는 한국과 세계에 커다란 세기적 전환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때이다. 한국교회는 이 격변하는 시대가 새로운 선교의 시대(카이로스)임을 자각하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면서 선교적 사역에 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격변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새시대의 맥락 속에서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민족사 속에서 사역하시고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역사적 발자취를 새롭게 감지하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선교사역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선교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적 격변과 한국민족사회의 변화를 깊고 투명하게 이해하고 이 변화를 통하여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형체를 감지하는 것이 우리교회의 시대적 역할을 규명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1.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자. 작금 세계와 인류는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거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간다. 이념적 군사적 정치적 양극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고 시장경제화 되었으며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세계시장에 개방되어 가고 우르과이라운드 국제협약체결이후 모든 국가들은 세계시장에 개방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사회도 커다란 19세기말이래 새롭게 경험하던 지정학적인 격동을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 남한정부도 세계화와 개방화정책을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세기적 문명사적 격변은 <地球市場>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세력간의 역학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세계적 정치경제의 역학관계는 <지구라는 시장>에 사는 모든 인류와 자연의 생명체의 살림살이를 결정하여 주리라는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던 당시 로마제국이 천하를 군사, 정치, 경제적 통합을 통하여 Pax Romana의 제국질서를 형성하였던 것과 흡사하다. 이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주도하여가고 있는 세력은 20세기 후반부터 부각되기 시작하여 이제 세계를 장악하여가는 경제세력으로서 초국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초국적 거대기업들이라고 한다. 물론 국가권력들이 현금의 지정학적인 질서와 새로 부각되는 세계시장의 질서에서 아직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적 시장에 새로운 지구적 역할을 자임하는 역사적 주체로서 초국적 거대기업들은 세계시장속에서 거의 절대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이 초국적 거대기업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독일등 선진산업국가들의 정치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의 신흥산업국가들안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소위 아시아의 용들을 움직이고 있는 대기업들과 깊은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이 새시대의 시점에서 국내외에 군림하면서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이 거대경제세력의 실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인류와 생명은 이 초국적 거대기업망의 행보에 의하여 결정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 경제적 실체들이 세계시장의 치열한 논리에 의하여 치열한 경쟁에 임하게 될 것이며 이 초국적 기업들은 국가의 권력으로도 통제하며 길들이기 어렵게 되어간다는 데에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가정, 지역공동체, 민족공동체)와 지구의 생명체가 이러한 세계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시대의 징조를 읽어 내야하는데 문제는 지구적 상황은 급하고 격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어서 명확하게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앙적 눈과 지혜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우주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역사를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시대의 징조> 우리 민족공동체와 한국사회는 세계시장에 개방되고 우리민족의 공동체는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여지없이 노출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지구시장에 개방되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의 가속적이 발전에 힘입어 형성된 교통통신상으로도 개방되고 있으며 지구시장의 압력에 의하여 국가의 경계선도 점진적으로 열려지고 있다. 지정학적인 축소통합과 정치 경제적인 개방 그리고 문화적인 개방은 한국사회를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한국사회와 한국민족의 삶을 지극히 유동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개방을 정책적으로는 세계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사회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편입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국사회에 국한하여 조명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적 문명적 격변을 분별하면서도 동아시아외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구 소련, 중국, 일본, 미국등 세계에 흩어져있는 동족들을 포함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를 초점으로 하여 시대적 격변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새로운 21세기적 선교적 지평은 여기서부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의 유대를 기반으로 하여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선교적 사역을 감당하였던 것과 흡사하다. 1.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변화 지난 5,6년동안 동북아는 커다란 지정학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우선 교통수단의 발달과 냉전체제의 해체로 말미암아 민족들간의 지리적 거리가 대폭 축소되었고 교류가 빈번하여 졌으며 경제적 유통의 증가를 비롯하여 통신도 엄청나게 증가되고 질적인 혁명을 전개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개방되어 가고 있다. 아직 한반도 내부의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이나 이제는 직간접적으로 긴밀히 접촉하고 교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가고 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인 변화란 이제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가 열리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변화는 민족의 안보와 평화라는 차원에서 냉전체제에 있어서의 그것과는 근원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인 변동속에서 민족의 안보와 한반도의 평화는 그 의미와 성격과 전력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한국교회에게 변화된 선교적 환경을 가져다주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 지정학적인 분단을 극복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동북아 민족들간에 넘나들면서 아직은 미흡하지만 거시적인 선교의 비젼을 조성하여 가고 있는 셈이다. 2. 민족의 경제적 생활의 변동 : 경제적 희생의 매카니즘의 지배 우리 민족공동체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에 노출되고 한국경제가 세계시장에 편입되면서 민족의 경제적인 살림살이가 근원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우선 지난 30년동안 개발독재정권아래서에 지극히 인위적인 정책과 기층민중의 희생을 토대로하여 성장하여온 한국경제는 세계시장에 편입되는 진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과잉보호와 특혜를 누리어 오던 경제세력과 경제구조는 소위<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체 체질개선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런 정책적 과정이 대기업과 같은 국제경쟁력을 가진 실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모든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중산층소비자와 중소기업들을 포함한 경제적 약자들을 소홀히 하는 정책적 결과를 우려하게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민족경제의 일부인 북한의 사회경제는 그 자체가 극심한 위기에 처하여 있을 뿐 아니라 지구적 시장에 노출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북한경제의 <붕괴위기>까지 논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북한경제의 파탄은 민족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남한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하간에 북한경제의세계시장에의 노출은 그 파탄여부를 막론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엄청난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 상황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극적 선교적 대응이 요청된다. 3.민족의 정치적 삶의 변화 : 정치적 주체의 상실 남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민족공동체와 민족의 성원들이 그 경제적 삶이 지구시장의 논리와 역학관계에 의하여 규명되는 것처럼 민족의 정치적인 살림살이도 지구시장에 의하여 결정될 전망이다. 우리민족은 지금까지 조선조의 전제적 정치유산과 일제의 식민지배 그리고 냉전분단상황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군사개발독제체제을 경험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지난 100년의 정치사속에서 민주주의를 희구하여 왔다. 이제 지구가 하나의 거대시장으로 압도하여 오고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세계의 열강들이 한반도상황에 치열하게 경쟁개입하는 상황에서 우리민족의 정치적인 통합은 남북간에, 지역간에 그리고 민족사회의 상하계층간에 모든 분단과 분열을 극복하고 온전한 통일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 주변의 정치역학적 변화는 우리민족의 국제적 위치를 정하여 민족의 독립과 자결과 주체를 수립하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4대강국의 틈바귀에서 민족자존의 정권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입지를 수립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민족이 민주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사회졍제적으로 상하계층간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서 민족국가의 틀이 개방되고 지역사회가 국제시장의 소용돌이에 노출됨에 따라 지역민주주의 또는 향토민주주의를 간간으로하여야 민족 통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의 민주적 주체들이 국내적으로 연대하여 민족사회를 통합할 뿐 아니라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여 민주주의의 국제적 유대를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참여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시장의 지구화는 우리민족의 정치적 독립성에 도전할 것이며, 국내적으로는 분열과 민주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세계경제세력들이 국경과 사회적 안보의 망과 문화적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민족공동체에 진입하여 우리민족의 성원들이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이 과정에서 세계적 차원의 세력들에게 압도되어 정치적 좌절과 무기력의늪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4. 모든 사회적 관계의 갈등화와 폭력화 시장의 지구화는 경쟁이라는 논리를 절대화하고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를 실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경쟁을 주도하는 주체는 대기업이며 이 경쟁은 초국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모든 인간관계, 집단간의 관계는 치열한 경쟁관계, 고위 무한경쟁의 관계로 진입할 것이며, 이런 경쟁의 소용돌이는 전통적인 계층간의 갈등, 성과 성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민족간의 갈등을 고조할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관계를 모순과 갈등 그리고 대립관계로 진전시킬 전망이다. 더구나 이러한 경쟁의 강도가 높아지고 따라서 대립, 갈등 모순관계는 무법화 폭력화할 가능성을 증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사회관계의 폭력화도 심리적인 차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물리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심화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정치적 약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인 약자들의 소외와 희생은 헤아릴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기존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약화되어가고 있으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보장체제도 약화 내지는 붕괴되어 가고 있으며, 사회주의국가들의 사회보장체제를 이루어야 할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도 말은 많으나 실천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며 가난한 나라에서 약자의 사회적 안전보장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조정하는 정책을 지향하는 듯이 보이나 재정과 하부구조의 부족으로 적극성을 띄기 어려울 것이며 일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듯하고 이 경우 가난한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 안전보장의 체제에서 소외될 뿐일 것이다. 지구적 차원의 소용돌이 속에서 약자들의 사회적 안전보장은 극심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5. 문화적 상황의 격변 : 문화 전쟁 지구적 시장은 우리 민족사회를 세계 시장에 통합하여 감으로서 민족의 문화생활에 지대한 변화와 충격을 주고 있다. 우선 지구시장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 지구시장의 문화는 고도기술을 배경으로 하는 다중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지구 문화는 지극히 상업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소비주의적이다. 이런 지구문화는 쾌락주의적이며 때로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하다. 새롭게 형성되는 지구문화는 민족문화적 정체성을 흔들어 놓고 민족문화전통을 와해한다. 민족이 오랫동안 지탱하여 오던 민족적 삶의 양식이나 가치관 등 고귀한 민족문화의 유산을 훼손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음악이나 미술 심지어는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새로운 시장문화에 의하여 대치되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장의 논리에 깊이 뿌리박는 문화산업과 광고는 건강한 문화적 삶을 증진시키지 못 할 것이다. 사실 시장의 소비주의 문화 경쟁 문화는 우리의 의식의 장 특히 어린이들의 의식의 세계를 완전히 점령하고 건강하고 건전한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가치관 그리고 심미적 감각을 오염시키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전쟁이다. 최근 헌팅튼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지구시장의 논리에 역행하는 문화 특히 비서구문화는 공격과 침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민족문화의 발전과 창조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대결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 사회가 지구시장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에서 민족의 문화적 삶에 대하여 일정한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무비판적으로 서양문화에 융합된 상황을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6. 종교적 차원의 변화 : 정신적 공백과 혼란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세계시장은 충격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기독교를 포함한 기존의 종교들과 민중민족종교들에게도 충격적일 것이다. 사회적 아노미 현상은 인간의 정신과 신앙생활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신흥종교의 현상이나 종교의 근본주의적 회귀 그리고 갖가지 종말론적인 종교현상들도 한국사회가 지구시장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변화에 따른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나 불교같은 기성종교사 자기개혁을 통하여 지구시장에서의 창조적인 역할을 회복하지 못하고 반동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경직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면 종교들이 지구시장의 상업주의 물질주의에 편승되어 무기력한 종교들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종교가 시장에 편입되어 "종교적 상업거래"라는 타락상을 자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가 지구적 시장에 개편되면서 민족공동체나 민족성원이 그 정신적 지주를 상실하는 결과를 경험할 수도 있울 것이다. 이처럼 민족공동체가 정신적 기반을 상실할 경우 그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 총체적 생명계의 위기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한반도가 이에 편입되면서 삼천리금수강산 생명의 동산이 "죽음과 죽임의 소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지구적 시장경제는 무한성장과 자본축적을 지속할 것임으로 지속적으로 자원의 자원을 송급받아야 하고 이런 산업조직은 불가피하게 자연과의 대립 또는 착취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도 예외없이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심각한 부담을 가져다 주었으며 때로는 "생명의 동산" 한반도에 위협을 가져다 줄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자연환경의 문제는 자연을 그대로 두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생명의 정원으로 가꾸어야 될 것이며, 자연과의 갈등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경제의 근본적 변혁과 자연환경을 "생명의 정원"으로 확고하게 수립하는 사회의 구성없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민족의 생명을 지키고 가꾸고 꽃피고 열매맺게 하는 일은 경제생활의 균형, 정치적 폭력(전쟁)을 제어하고 평화를 수립하는 일, 사회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화해의 사역, 풍성한 생명문화의 창출, 생명의 정시적 기반형성 그리고 한반도를 생명의 정원으로 가꾸는 일 등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한반도의 생태계 문제는 남북이 공동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며 이웃의 나라들과도 공동보조를 취하여 해결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디아코니아》 1. 우리는 우리민족사회가 자본의 축적을 무한히 극대화하고 경쟁을 치열하게 가속화하는 세계시장에 편입됨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들을 열거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아코니아(DIAKONIA)의 의미를 규명하고 한국교회의 역할을 논하려고 한다. 디아코니아는 초대교회의 핵심적인 삶과 선교의 부분이었다. 본래 이 말은 使役 즉 종이 주인을 섬기는 일을 뜻한다. 노예의 기능을 디아코니아라고 칭하였다. 모세나 다윗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나임의 종으로 일컬어졌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主로 섬길 뿐 아니라 하나임의 백성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使役을 하였기에 종으로 칭함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하여 왔다고 천명하였고 그렇게 살았다. 이러한 마가복음의 기독론은 구약 이사야서 "고난의 종"의 사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빌립보서 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기독론도 예수는 원래 하나님의 본체와 동등하였으나 인간, 나아가서는 "종의 형체"를 입고 구원과 해방의 사역을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종으로서의 예수의 사역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주역, 즉 하나임의 정의의 주역, 하나님과 계약관계에 들어가는 동반자로서의 주역, 화해의 평화를 일구는 주역, 문화를 꽃피우는 창조적 주역, 생명을 가꾸는 주역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초대교회의 디아코니아의 사역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이 사역을 우리 한국교회는21세기를 직면하면서 민족사회와 지구사회에서 성실히 수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재화와 생산활동 분배활동 즉 경영활동을 통하여 즉 하나임의 청지기의 역할을 통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십일조와 같은 신앙적 경제행위를 통하여 이미 모든 재화는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의 청지기(경영자)이며 이 경영의 목적은 하나임의 백성과 그 피조물의 사회경제적 생태적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21세기에 전개되는 경제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경제정의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살림살이와 생명을 파괴하는 경제질서를 바로잡고 경제적 약자들을 자기살림살이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며 무수한 경제적 희생자들을 보살피는 사역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남한사회의 물질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물질적인 축복으로 간주하는 너무나 안이한 신앙적 태도를 가져왔으며 경쟁성장의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와 희생자들을 소홀히 여겨왔음을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누리는 상대적인 물질적 풍요도 철저한 디아코니아(경제)신학을 바탕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며 민족의 살림살이를 바로 잡는 선교적 사역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은 한국민족사회의 살림살이를 바로잡고 그 희생자를 일으켜 세우는 디아코니아의 선교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2. 지구적 시장의 전개는 모든 국가의 경계선을 개방하고 국가의 기능을 약화내지는 변화를 시킬 전망이 있어서 민족의 정치적 살림살이에 커다란 충격을 주리라는 사실은 이미 지적하였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민족사회에 수립하면서 동시에 민족공동체와 지역사회에 있어서 참여와 연대를 위한 민주적 주권, 시민적 생활주권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봉사를 감당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민족화해에 있어서 민족독립, 민주화, 인권을 위하여 봉사하여왔고 이제는 21세기에 대응할 수 있는 민족적 정치생활을 위하여 직접참여와 연대를 위한 봉사를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참여적 봉사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3. 한국교회는 민족공동체의 통합을 위하여 남북간의 민족통일을 비롯하여 모든 계층간의 정의로운 화평, 지역간의 균형, 모든 집단간의 알륵과 대립의 평화로운 조정,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샬롬의 사역(정의, 평화, 치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이제 그 시작단계에 있으며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볼 때 국가가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며 기업들이 사회복지에 참여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인간단체들은 한국사회복지를 위하여 커다란 몫을 감당하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우리동포들을 위한 복지는 한국교회의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한사회가 개방되거나 변혁되거나 남북통일이 될 경우 북한사회의 사회보장문제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비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4.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창달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여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최근 민족문화의 시련과 발전과정에서 소외내지는 "지체현상(eultural lag)"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역r할이 축소되어 왔다. 이제는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건하고 창조적 문화창달을 위한 봉사와 사역을 감당할 역사적 시기에 달하였다. 우선적으로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재활하기 위하여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에 대한 신학적 태도를 개방적으로 재정비하여야 한다. 한국기독교가 그 초기에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으나 이것은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한국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치부해버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기독교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형성하도록 한국문화와의 일체성을 수립하여야 한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민족에게 문화적 축복을 내려주셨다. 그리하여 반만년의 장구한 역사를 창출하게 하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한국민족문화를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문화는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왔다. 조선조의 문화를 예로들어 설명한다면 조선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공헌에도 불구하고 조선조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석루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으며, 마침내에는 일제의 침략과 남북의 분단으로 인하여 민족문화의 계승발전과 창달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왔다. 더구나 지구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되면서 세계시장의 문화적 잠식과 충격으로 말미암아 민족문화의 정체성은 물론 민족적 가치관, 삶의 양식 심지어는 민족문화적 감각까지도 침공당하고 와해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의 세계는 지구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점력당하여였고 이에대한 저항은 "문화전쟁"을 흡사하게 한다. 이것이 사무엘 헌팅턴이 말하는 소위 "문명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문화적 변동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신앙詷동체를 종교문화공동체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문화선교의 사역"이다. 한국교회는 먼저 예배가 기독교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활성화 시키며 교회의 신앙적 문화생활을 창조적으로 활성화 시켜야 할 것이며 모든 평신도문화인들의 선교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국문화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독교문화인, 연예인, 언론인등 문화선교의 역군들에게 적극적으로 선교적 사명을 부여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이디아세계 정보사회에 대응하기위한 비판적 창조적 선교전략을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고도기술을 기반으로한 다중매체의 홍수에 대응하기위한 전교회의 매체교육(Media education)이나 전자통신활동훈련(Electranic Communication Actiaist Training)같은 문화선교를 위하여 필수적인 요건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의 장을 창조적이고 생명력있는 축제의 마당으로 발전시켜 문화적 혼란속에서 문화적 희생되는 민족의 성원을 지키고 하나남께 영광돌리는 "민족예술의 창조"에 적극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5. 종교적 정신적 디아코니아 인간은 정신적 영적인 존재이다. 한국의 종교들은 그 나름대로 민족역사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민족의 정신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를 깊이 믿으면 믿을수록 한국종교의 실체를 더욱 깊이 터득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기독교의 거의 독선적인 태도는 기독교를 위해서도 한국종교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독교가 그 자체의 진리만이 참진리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고 중요하지만 이것이 곧 한국기성종교를 무조건 배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종파간의 연합운동에 참여하여 왔다. 그 전형적인 예가 기미 3·1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과정에서 기독교, 천도교, 그리고 불교는 연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21세기의 지구화는 민족사회의 기존 정신적 기초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을 전망이다. 그것은 한국종교들에게 획기적인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한국종교들은 반동적으로 또는 자기개혁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직된 사고를 가지 종교들은 어려움을 격게 될것이며 한국사회가 극심한 사회적 아노미(무규범현상)을 겪으면서 신흥봉교가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구사회주의 국가나 현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여 생각한다면 북한사회도 세계시장에 개방되면서 극심한 정신적 공백과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시장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정신적 혼란과 공백이라는 심각한 상황을 대응하면서 민족에게 확고한 정신적 기반과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정신적 봉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파간의 대립과 갈 등을 지양하고 종파간의 에큐메니즘적 협력을 위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6. 생명의 정원을 보전하고 가꾸는 봉사 세계시장의 지속적 팽창과 성장은 생태계을 더욱 심각하게 위협할 전망이며 한반도에서의 산업시설과 산업경제의 팽창은 삼천리금수강산 하나님께서 민족의 생명을 위한 정원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생태환경적 위기를 가져올 전망이다. 민족을 살리고 민족이 살아나가는 민족의 살림살이는 한반도에 "생명과 삶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동산으로서의 한반도를 지키고 가구는 청직이 또는 경영자로서의 봉사적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신학에 있어서 현대과학적 "자연정복"이라는 주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현대과학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독신학은 자연철학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생명의 정직이 또는 생명의 정원직의"로서 재정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적 자연철학은 중요한 사상적 전기를 제공하여 주리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창조신학은 이러한 동양자연철학을 기독교신학의 근간에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왔다는 성경적 창조론은 일반 자연철학의 낭만주의적 경향과 "자연은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방임적 태도를 지양하고 자연을 생명의 정원으로 이루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가꿀 수 있는 이론적 윤리적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는 "생명디아코니아"의 사역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결 론 : <한국교회의 사회정책의 방향> 우리는 21세기에 있으리라는 사회변동을 예상하면서 현그므이 시장지구화를 분석하면서 한국교회 "민족디아코니아"의 과제들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이 과제 수행에 있어서 다음 방향을 재확인 하려고 한다. 한국교회의 총체적 디아코니아의 과제의 방향은 1. 최우선적으로 "희생자들과 약자들"을 돕고 보살피는 일이다. 2. 인간과 공동체와 생명을 주체로 세워 일으키는 일이다. 3. 구조적 개혁을 통하여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4. 인간의 문화적 정체성과 창조적인 정신을 함양하는 것이다. 5. 인류공동체의 유대를 지역에서 민족사회에서 세계사회에서 엮어 가 는 것이다. 이러한 디아코니아의 선교정책을 입안하고 정책적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며 필요한 선교요원을 확보하기 위하여서는 신학적 기반구축, 각 분야에 대한 심층적 연구, 각 분야별 전문인력훈련, 그리고 전교인의 사회봉사훈련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국교회의 교회교육, 교회를 기반으로한 사회교육, 각신학대학에 있어서의 신학교육의 재정비와 전문화에 필요한 교과과정의 개편과 각종연구소의 설치가 필요하며 특히 계속교육체제는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특수대학원 체제를 가추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민족복지> 민족복지는 민족통일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민족복지의 주체는 우리민족공동체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근대 국가적 통념은 민족복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나 자유주의국가체제에서 국민이나 인민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인 정부가 민의 복지를 담당하고 책임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복지를 소위시장의 틀 안에서 기업에게 민의 복지의 일부를 맡기는 경향이 있었고 지금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민간기업이 시장의 거래를 통하여 민의 복지를 담당하게 되어 주체 또는 동반주체가 되는 격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와서는 시민단체들이나 종교단체들 즉 비정부 비기업단체들이 국가 주도적, 기업주도적 복지정책에 대하여 민의 참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민이 스스로 민족복지의 주역이 되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정부 주도적 복지나 기업위주의 복지는 당사자들인 민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간파하고 정부나 기업이 주도하는 복지정책이나 사업을 민의 참여를 통하여 민주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민족복지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민족복지를 통일된 민족공동체에서 실현하려고 한다면 새로운 차원의 정치적 살림살이를 꾸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생활민주주의 또는 복지민주주의라고 이름 주고 싶다. 우선 민이 자기의 삶과 생활에 관한 모든 일에 직접적으로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직접적인 필요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해당 개인이나 가족이 직접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참여정치는 일차적으로는 마을 내지는 지역공동체에서 이루어 자는 민주주의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행정적 민주주의가 아니고 민의 직접적 참여를 통하여 지역공동체의 모든 일이 결정되고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앙정치는 이것의 연장선에서 이루어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치는 위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일 것이다. 민주적 지역공동체들의 연대와 결속이 전제체제보다 훨씬 강하고 창조적일 것이다. 우리민족의 복지는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민주주의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역민주주의가 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고 민의 살림살이를 직접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직접민주주의는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아니다. 이것은 오늘 지구적 상황에서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강대국이나 초국적 기업의 횡포를 민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이며 통일민족국가의 강력한 민주적 기반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민주적 참여는 민족내부의 갈등을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민족의 화평과 결속을 이룩하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지역공동체적 민주주의를 통한 직접참여의 확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나 이스라엘에서나 덴마크와 같은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우리고유의 직접참여를 확대해나가는 정치발전의 궤도를 짜고 이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통일민족의 복지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통일된 민족사회의 복지는 우선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는 민족내부의 갈등과 외세의 침입으로 많은 민족성원이 상처를 받았고 특히 빈자와 약자들이 더욱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되었다. 통일된 민족공동체는 이런 민족성원들을 개인과 가족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민족공동체적 차원에서 치유하고 싸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상처받고 희생을 경험한 빈자와 약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민족복지가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현금 우리는 남쪽과 북쪽사회에 있어서 그리고 흩어져 사는 우리동포들 사이에서 이런 빈자와 약자들이 자기 삶의 주역이 되는 사회복지와 사회안전이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지구시장은 남북사회에 강한 개방압력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사회는 남이나 북이나 개방을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개방을 강요당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약자들 빈자들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적 복지체제를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발전시켜야 민족복지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종교단체들이나 지역자치단체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민주적 장치를 하여야 할 것이고, 자원도 확보하여야 되겠고 전문인력과 지도력도 육성하여야 되겠으며 경험도 충분히 쌓아 나가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지구시장은 우리사회에 경쟁, 지구적 경쟁과 그 논리를 강요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민족은 이러한 적자생존의 논리, 심지어는 무한경쟁의 논리를 강요당하고 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대립이 복합되며 상호충돌이 심화되어 폭력화될 전망이 눈앞에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이 모순과 갈등의 악순환으로 치닫아 심각한 지경에 이를 지도 모른다. 여기서 민족적 연대의 결속이라든지, 정의라든지, 협동이라든지 하는 민족복지를 위한 공동체형성의 기반이 무너질 지경이 될 까 염려된다. 우리는 우선 모든 사회관계에서 경쟁을 완화하고 협동을 진작시키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민족공동체내부에 차원 높은 협동정신을 함양하여야 할 것이고, 모든 갈등과 모순, 심지어는 적대관계라고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평화와 안전, 인간안보를 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민족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루어 갈 수 만 있다면 이 과제는 상당한 진척을 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해묵은 계급적 갈등, 지역적 갈등, 종파적 갈등, 족벌적 갈등을 정의롭게 그러나 평화롭게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민족 화합과 화평의 기반을 민족 사상적 전통을 통하여 종교적 사상의 기반을 통하여 구축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사람은 부추겨서 스스로 설 수 있게 하고 사회적으로 패자는 일으켜 세워서 주체가 될 수 있게 하고 서로서로 손잡고 함께 일어서는 과업을 이룩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민족통일은 민족복지를 위한 것이며 민족통일은 민족사회의 화해와 화합, 민족공동체 안에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통일을 향한 우리모두의 과제라고 생각되며 또한 이것이 민족통일과 민족복지를 이루는 우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동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나 한국선명화와 같은 민간단체를 통하여 북한을 위한 구호사업을 진행하여왔다. 특별히 지난 세계개혁교회연맹에서는 "북한교회의 봉사선교"를 세계적으로 돕도록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것은 물론 그동안 한국교회의 민족통일과 한반도통일을 위한 세계계적 협의과정에 힘입어 이루어 진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남북한교회는 사회봉사선교를 선교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로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교회가 봉사선교를 주요선교정책으로 정한 직접적인 원인은 각기 다를 것이지만 최근 남쪽교회에서는 봉사선교 즉 디아코니아를 교회의 선교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30여년동안 경제발전은 하였어도 경제적으로 가난한자나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자들을 보살피는 일을 상대적으로 게을리 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사회봉사선교의 전통을 실천하려고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우리교회의 봉사선교를 분석하면 미미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잠재력은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북쪽에서 교회가 봉사선교를 논하게 된 것은 교회의 봉사선교를 위한 재정적 인적 역량 때문이 아니고 굶주린 민족의 현실에 도전을 받으면서 복음에 응답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는 국가가 사회복지의 문제를 다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극도의 경제난을 경험한 북쪽 사회에서는 지금 어려운 경험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쪽동포들의 굶주림의 소식을 들은 우리한국교회는 북쪽교회의 봉사선교를 지원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남북교회가 동역 하여 봉사선교를 실천함으로 서로 돕고 민족을 위한 봉사사역을 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러한 봉사선교는 단순히 현안문제에 대한 대응하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은 다고 생각한다. 현금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으며 이 시장은 이유극대화와 무한경쟁의 논리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으며 이런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경제전체는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특히 북쪽 경제는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며 남쪽경제도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과 같은 초국적 기업이라든지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은 성장하고 확대될 지 모르지만 우리민족성원들 중에서 남에서도 북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경험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농민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는 물론 대부분의 중소기업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성원의 경제적 희생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자들과 약자들은 물론 소위 선진국에 있는 빈자와 약자들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남북교회의 교회의 선교봉사와 이를 위한 동역과 협력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세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의 교회가 봉사선교를 위한 동역과 협력을 한다는 것은 남북의 사회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차원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우선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해외동포들을 위한 봉사선교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해외동포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사회환경 속에서 각양각색의 경제적 희생과 특별한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남북의 교회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이나 구 소련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을 위한 봉사선교를 구상하고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전문인력 그리고 자원을 동원할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남북교회는 우리민족과 동포를 위한 봉사선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공동체들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는 시급하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의 교회는 현금 민족을 위한 봉사선교를 철저히 실천하고 이 실천경험을 토대로 세계적 차원의 봉사선교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남북교회는 우리민족과 동포를 위한 봉사선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공동체들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는 시급하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의 교회는 현금 민족을 위한 봉사선교를 철저히 실천하고 이 실천경험을 토대로 세계적 차원의 봉사선교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3. 성지이스라엘
3. 성지이스라엘 1. 예루살렘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 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수 6:20)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 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편 132:13) 다윗왕이 원주민 여부스족을 물리치고 처음 예루살렘을 점령 한 이후 시온 산성(Zion), 또는 다윗성(Cityof David) 이라고도 불리던 예루살렘성,(삼하5:7-9) 그 성(The City), 하나님의 성 (God\'s City),거룩한 성(HolyCity),정의의 성(City of Justice), 믿음의 성(Faithful City), 평화의 성(City of Peace), 아름다운 성(BeautifulCity)등의 모든 이름들은 여러 예언자들이 서로 달리 예루살렘을 부르던 말 들이다. 2. 감람산 (Mt. Olive)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해발 약 800 m의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감람나무(OliveTree)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루살렘 보다 약 90 m 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예루살렘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예수님은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기도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하였으며 부활 후 마침내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시었다. 예수님이 배신 당하고 체포당한 겟세마네 동산을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이곳 감람산의 서쪽 기슭이다. 3.겟세마네 동산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막 14:32) 겟세마네 동산을 감람산 서편 기슭으로 바로 아래에는 기드론 계곡이 있고 기드론 계곡을 건너면 예루살렘성의 동편 성벽과 이어진다. 이곳에는 몇 개의 기념 교회들이 세워져 있다. 예수께서 땀흘려 기도하시던 장소의 바위를 둘러싸고 지어진 \'겟세마네 교회\', 러시아 황제가 자기 어머니를 위한 기념으로 세워 놓은 \'막달라 마리아 교회\', 예수께서 붙잡히실 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자른 장소에 세워진 \'겟세마네 동굴 교회\', 예수님이 우셨다는 곳에 세워진 \'눈물 교회\' 등이다. 4. 베데스다 못 (Pool of Bethesda) ▲top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다섯 행각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게 됨이러라.\" (요 5:2-4) 성 안나 교회 구내에 있는 베데스다 못의 지역은 1871 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오늘날은 원래의 그 모습을 잘 볼 수가 있다. 5.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제1지점 : 빌라도법정 제2지점 : 가시관,홍보를 씌우신 곳 제3지점 : 십자가를 지시다 처음 쓰러지신 곳 제4지점 :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나신 곳 제5지점 : 구레내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진 곳 제6지점 : 베로니카여인이 예수님 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지신 곳 제8지점 : 예수님이 마리아를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지신 곳 제10지점 :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 제11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 제12지점 : 예수님이 운명하신 곳 비아돌로로사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 빌라도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비아돌로로사는 옛 길을 따라 14개의 지점에 그림 또는 조각으로 표시를 해놓고 그날의 슬픈 현장을 생생하게 회상케 해 준다. 제13지점 : 예수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님이 묻히신 곳 (요셉의 무덤) 제1지점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이며 제2지점은 가시관을 씌우고,홍포를 입히고 희롱한 곳이며, 제3지점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며 제4지점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이며 제5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며, 제6지점은 성베로니카 여인이 물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며, 제7지점은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8지점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 라고 말씀하신 곳이며, 제9지점은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10지점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며, 제11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며 제12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이며 제13지점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놓았던 곳이며 제14지점은 예수님이 묻히신 곳 즉,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이다. ※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 (Church of the HolySepulchre)안에 있다. 6, 성전산 (Temple Mount) <대하3:1-5, 눅19:45-46, 마4:5> ▲top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사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산을 서기 전 1000년경 다윗왕은 그 땅의 주인 아라우나로 부터 은 50 세겔을 주고 구입하였고(삼하 24:18-25), 그의 아들 솔로몬은 페니키아인들의 도움으로 화려한 궁전과 여호와의 성전을 건설 하였다. 서기 전 586년 이곳을 침략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은 성전을 불태웠으며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을 바벨론으로 유배 시켰다. 바빌로니아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은 주전 515년에 소규모로 성전을 재건하였고, 이것을 제2성전(2nd Temple) 이라고 부른다. 서기 전 37년에 로마제국의 후광하에 왕위에 오른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당시에 현존하던 성전을 헐어 버리고 대규모의 성전과 부속 건물, 주변의 요새 등을 원래의 크기와 위용대로 재건 하였고, 서기 30년경 나사렛 출신의 예수는 부패한 성전의 지도자들에 대항하여 성전을 정화시키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성전 모독 죄 및 반란죄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서기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이 성전은 다시 완전히 파괴되고, 성전 터엔 서기 135년경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이교도의 아도니스(Adonis) 신전이 건설 되었고, 비잔틴 시대(서기 330∼ 640) 에는 이곳을 통치했던 기독교인들이 바신들이 비난시 했던 유대인 성전의 파괴를 후세에 보여주기 위하여 가꾸지 않은 황폐한 모습으로 성전산을 방치하였다. 서기 638년 이후 이곳을 통치했던 모슬렘들은 성전 산의 큰 바위 위에서 자신들의 최고의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바위를 종교적으로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서기 692년 당시 예루살렘의 통치자 (Caliph) 압둘 말리크는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팔각형의 기단과 돔으로 이루어진 일명 \"황금의 사원\"이라고도 불리우는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을 건설하여 오늘날 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7. 모리아산의 바위 (Rock OF Mt.Moriah) 바위 사원 실내에는 폭 12야드 길이 15야드 높이 2야드의 넓직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던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표면에는 골이 패어 있어서 제물의 피가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슬람들은 이 바위를 딛고 마호메트가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세계의 3대 성도가 되는 것이다. 8. 통곡의 벽 (Western Wall ) (사진1) 유월절의 통곡의 벽 전경 (사진2) 욤키풀의 통곡의 벽 전경 (사진3) 통곡의 벽 야경1 (사진4) 통곡의 벽 야경2 (사진5) 통곡의 벽 겨울 전경 이곳은 유태 교도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을 하는 곳이다. 이 벽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제2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주후 70년 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유독 이 벽만을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 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 되었다.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수세기에 걸쳐서 계속 되었는데, 1948년부터 1967년 까지 이 지역이 요르단 령에 속하게 됨으로써 유태인들은 다시 방문이 금지 되기도 했다. 유태인들은 6일전쟁시 이 지역을 탈환하므로 서 이곳은 범국가적인 즐거움과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 앞의 넓은 공터를 수 천명이 기도할 수 있도록 다듬어 놓았으며, 또한 이곳은 유태 교도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을 하는 곳이다. 이 벽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제2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주후 70년 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유독 이 벽만을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 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 되었다.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9. 여리고 (Jerico) ▲top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수 6:2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 19:1-4) 여리고는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서 오렌지, 바나나,대추야자 등 온갖 작물이 풍성한 곳이다.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반면에 겨울과 봄에는 기후가 좋아서 온통 꽃 향기가 진동한다. 부근 일대에는 종려나무가 흔하기 때문에 종려나무의 도시 (TheCity of Palms)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해면보다 250m 낮은지역으로서 예루살렘 동편 약35Km 떨어진 요르단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10. 여리고의 옛 도시 (The Jerico Excavations) 고고학적으로 여리고는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도시(Walled City)이다. 이곳은 1930-1936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죤 카스팅(John Garstang)이 발굴했고, 1952-1958년에는 영국의 여류 고고학자 캐더린 캐년(Kathleen kenyon)이 정밀 발굴 하였다. 발굴 결과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 성을 발굴하고 성벽과 둥근망 대(Round Tower)를 발굴 하였다. 즉 주전 7000년경에 이미 성울 쌓고 도시 생활을 시작한 유물인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집안 벽을 그림으로 장식하였고 죽은 사람의 두개골은 방바닥에 매장 하였다. 또한 진흙으로 만든 여자의 형상, 동물 형상도 발굴 되었다. 이 시대에 속하는 주거 층에서 터어키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오석(Turqu-oise)으로 만든 장신구가 발견 되었다. 이것은 이미 이 시대에 여리고는 여러 먼 곳의 지역과 왕래와 교류 관계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11. 요단강 (River Jordan)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마 3:5) 요단강은 사철 눈이 녹지 않는 헬몬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를 거쳐서 사해까지 이른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 까지 직선거리 104Km를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기 때문에 그 총 길이는 256Km가 되며, 평균 폭은 약 30m이다. 갈릴리 지방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엄숙한 표정에 약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메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사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침례)를 받으신다. 12. 사해 (The Dead Sea) 길이 77Km 폭 16Km 표면적 약 950 평방 Km 인 사해는 그 수면이 지중해보다 398m나 더 낮다. 즉 지구 표면 중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 이다. 구약에는 염해(Yam Hamelach = Salt Sea)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생물이 전혀 살지 않기 때문에 사해라고 불리며 염도가 약25%로서 세계적으로염분이 가장 많은 물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해에 들어가면 손발을 휘젖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둥둥 떠 있게 된다. 혹시 손발을 휘젖다가 물방울이라도 튀어 눈에 들어간다면 눈이 쓰라려서 그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 정도이다. 보통 바닷물이 4-6 퍼센트의 염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해물은 그 5배나 되는 것이다. 사해가 그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 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요단강 등 주변에서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함유된 약 7백만 톤의 물이 매일 쏟아져 들어 오는데, 빠져 나갈 구멍은 없고 요르단 계 곡의 뜨거운 열기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화학물질 등 고 체 성분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특히 사해의 포타슘 매장량은 전세계가 이곳에서 나는 것만 쓰더라도 100년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포타슘은 비누, 비료들을 만드는데 쓰인다.사해 주변에는 사해 물을 분석해서 광물질을 추출해 내는 공장 들이 있다. 사해의 물은 피부병에 특수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또한 이곳의 검은 흙은 신경통 등에 특효라고 전해진다. 세계 각국에서 치료차 사해에 오는 사람들이 있고, 이 근처에는 이들을 위한 특수 병원도 있다. 13. 맛사다 (Mesada) ▲top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며, 사해의 서쪽 해변에 위 치하고 있다. 주위의 유대 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높이 400여m의 이 천혜의 절벽 요새는 정상이 길이 600M, 가장 넓은 곳이 폭이 250 m인 평지를 이루고 있다.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를 통하여 마사다가 헤롯왕의 요새인 동시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유대 전쟁(Jewish War)\" 최후의 비극의 격전지 였음을 알게 해준다. 서기 66년부터 시작된 이 반란이 로마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의 \"열심당원\" 이라 불리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이미 66년에 당시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마사다를 점령하며 저장된 물과 식량, 무기를 이용하여 로마에 대항하였다. 예루살렘을 이미 점령하여 유대인 반란의 진압을 이미 달성한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Titus)는 장차 아라비아 광야 지역으로의 진출을 예상한 광야 전투의 훈련을 목적으로 실바(Silva) 장군으로 하여금 10군단을 이끌고 이곳에 대한 대규모의 포위 작전을 실시하게 하였다. 로마군은 2년에 걸친 무수한 정상 공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한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 갈 수 있는 거대한 경사로를 6개월에 걸쳐서 축조하였다. 유대인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성퇴가 성벽을 무너뜨리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로마군이 성벽이 파괴된 곳으로 진격해 올 바로 그 전날밤에 유대인들의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모두를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내일 아침 로마군에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오늘 밤에 우리가 스스로 자유스럽게 영광의 죽음을 선택 합시다.\"이 말에 감동한 각 가족의 가장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칼로 찔러죽인 다음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명을 추첨하여 그 열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죽였고 남은 열명이 한명을 추첨하여 아홉 명을 죽인 후 그도 최후로 자결 하였다. 3년 동안의 한 맺힌 포위 작전에 대한 영광의 대가를 바랬던 로마군들은 960구의 시체 앞에 망연자실 했으며, 이 비극의 전설은 오늘날까지 승화되어 마사다는 현재 이스라엘 군 장병들이 선서 식장으로 활용되고, 이곳에서 그들은 \"Never Again!\"을 외치면서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이 다시는 외적에 의해 정복당할 수 없다는 비장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14. 쿰 란 (Qumran) 1947년 봄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나섰다가 사해의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의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던 양피지에 기록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Scroll) 사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이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서기 전 10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성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51∼6년에 걸쳐 프랑스의 성서 고고학자 드보(R. De Vaux)는 쿰란언덕에 위치한 유적지를 발굴하여 이곳이 요세프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엣세네(Essene) 집단의수도원임을 밝히게 되었다. 수도원은 원래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이 보다 높은 지점의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겨울철의 우기에 흘러내려오는 빗물이 수로를 따라 수도원의 물 탱크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었다. 한 주간 중 평일에는 근처의 수많은 동굴 속에서 기거하던 엣세네 수도자들이 안식일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물로 씻는 정결 예식과 성서연구를 하였고 공동의 식사를 위한 대형 식당과 주방,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 등이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다.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요한이나 근처의 요단 강에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 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15. 므깃도 (Megiddo) 이스르엘 평야 중에서도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제국들의 군대는 이곳을 통과하여 지나갔고, 가나안 땅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곳이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의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왕상 9:15)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Sisak)은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그 후 아합왕때 이곳은 다시 재건되었다. 요시아왕은 북진하는 애굽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BC 609) 1917년 영국의 알렌비(Allenby)장군이 터어키군을 패배 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 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므깃도는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되었다. 또한 1960년 이갈 야딘(Yigael Yadin)도 발굴하였다. 이곳은 주전 3000년 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식 신전을 발굴하였고, 또한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발굴 되었다. 므깃도에서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들을 건설하였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므깃도 발굴에서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큰 장소를 발굴 하였다.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왕 때의 주거 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 아합왕 때의 것이다.(BC 869-850) 므깃도는 시삭에게 파괴되었다가 아합때 복구 되었었다. 그러나 아합왕 때의 마병장은 그 이전 솔로몬때의 것 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으며, 규모도 비슷한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것은 당시의 발전된 공업 기술을 볼 수 있는 우수한 수로 장치의 발견이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 부터 도시 내부로 끌어 들이도록 되어 있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이것은 3,00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잘 보관되어 있다. 16. 나사렛 (Nazareth) ▲top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나사렛은 예수께서 출생 후 잠시 애굽으로 피난 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태아에서 부터 유년기를 거쳐 성년이 되기까지 일생을 보낸 고향이다. 베들레헴 말 구유간에서 태어난 예수 님은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주의 사자가 이르는대로 이스라엘 땅에 되돌아와서 정착한 곳이 그 부모의 고향이기도 한 나사렛이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는 나사렛 을 떠나지만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항상 나사렛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크리스챤 이라는 말도 히브리어로는 \'노쯔리\', 아랍어로는\'낫스라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는 \'나사렛사림들\'이라는 뜻이다. 17. 티베리아 (Tiberiah) 티베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안에 위치하는 온천 휴양지이다. 티베리아는 주후 17년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티바스(Herod Antip as)가 건설한 도시로서, 로마 황제 티베리아스(Tiberias)의 이름 을 따서 도시 이름을지었다. 이 도시가 세워진 후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이곳에 살기를 거부 하였으나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차츰 유대인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유태 지식인들이 이곳에 모였고 미슈나(Mishnah)와 팔레스틴 탈무드(Palestinian Talmud)가 이곳에서 완성 되었다. 또한 히브리어에 모음과 구두법에 문법을 도입한 것도 이곳에서 였다고 한다. 따라서 유태인들도 티베리아를 그들의 4대 성도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 미슈나(Mishnah) : 구약 율법(Written Law)에 대한 구전법(Oral Law)을 집대성한 것 으로서 주후 200년 경 완성 ※ 탈무드(Talmud) : 미슈나에 대한 논의, 해석, 주석, 설명을 총 집대성한 것으로 주후 5세기 경에 완성 18. 갈릴리 호수 (Sea of Galilee) ▲top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마 4:18)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 였다. 제자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으며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였다.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 속에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였다. 해면보다 그 수면이 200m 나 낮은 갈릴리 호수. 평상시에는 잔잔하고 맑으나 때때로 큰 폭풍으로 성난 파도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호수 연안은 중요한 교통의 요지 이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기름진 옥토를 갖고 있어서 주변 인구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 갖가지 농산물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있으며 갈릴리 호수의 물은 전 이스라엘 땅의 음료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까지 대부분 충당하는 생명선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남쪽으로 360Km나 떨어져 있는 네게브 사막의 세데보케(Ssede Boque)까지 물을 공급해 준다. 호수에서 처음 시작되는 송수관은 큰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크지만 점차 가늘어 지면서 흡사 사람 몸의 혈관처럼 이리 저리 연결되어 전 국토를 적셔 주는 것이다. 19. 가버나움 (Gapernaum)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 4:12-13) 고대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쪽 해안에 있었으며 당시에는 매우 번화해서 세관도 있었고 큰 회당도있었으며 주민들이 많았던 마을 이었다.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하셨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이적을 행함으로써 그의 신성과 전지전능함을 나타 내신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설교하셨고 문둥병자를 고치셨으며 중풍병으로 누운 종을 낳게 하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으며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셨으며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낫 게 하셨으며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펴게 하셨다. 배은망덕한 도시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은 적중하여서 이미 그 도시는 파괴되고 잊혀진지 오래이다. 지금의 가버나움은 호숫가 종려나무들 속에 폐허 더미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가버나움 터는 1905년에 발굴 되어서 가버나움 옛 회당을 발견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베드로의 집 터 위에 5세기 경에 세워졌던 유적들을 발굴하였다. 20. 가이사랴 (Caesarea)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를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사 8:40) 가이샤라는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쯤 되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베니게 사람(Phoenicaian)들에 의하여 세워졌던 이 도시는 헤롯 왕에 의하여 주전 20년에 크게 중건되어 훌륭한 항구도시로 만들어 진다. 헤롯은 로마 황제 가이샤(Augustus Ceasar)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도시를 가이샤라 라고 이름 붙인다. 로마 시대에 가이샤라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 가이샤라는 신약에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가이샤라는 사도바울과 베드로가 방문한 최초의 이방 도시 였으며 (행 10:1-24), 사도바울 이 로마로 보내지기 전에 이곳에 투옥되어 있었다.(행 23장 이하) 현재 가이샤라에는 로마시대의 야외극장과 수로(Roman Aqueduct), 십자군 시대의 성채 등이 발굴되고 있다 21. 욥바, 텔아비브 (Jaffa, Tel-Aviv) ▲top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요나 1:3)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구약시대에는 솔로몬 왕이 욥바 항구를 통하여 레바논으로부터 백향목을 수입하였으며,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하여 욥바에서 배를 탄다. 신약시대에는 베드로가 욥바에서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죽은 것을 다시 살렸으며 피장이 시몬 (Simon the Tanner)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구약 시내로부터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던 욥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하이파 항구가 발전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잃는다. 주민들도 비좁은 욥바 시내에서 벗어나서 그 북쪽으로 신시가지를 이루며 옮겨 간다. 신시가지는 \'봄의 언덕\' 이라는 뜻을 가진 텔아비브라고 새로이 이름지어진다. 텔아비브는 순수한 유태인들의 도시로써 이스라엘 건국 후 급속히 인구가 증가한 도시이다.
3실링의 기적/ 간증/ 2012-12-05
3실링의 기적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에 큰 보육원을 짓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때 많은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보육원 건축기금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습니까? ” 테레사 수녀가 대답했습니다. “지금 준비된 기금은 3실링뿐입니다.” 그러면서 테레사 수녀는 책상 위에 실제로 동전 세 닢을 꺼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기자들은 웃었습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표정과 말은 진지했습니다. “이 3실링을 가지고 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3실링이 하나님의 것이 될 때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일이었기에 3실링으로 보육원을 완성시켜 주셨습니다. 3실링의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나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세우고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노력은 분명 이루어집니다.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일을 세우고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힘쓰십시오. 기적의 탄생 지금 이 순간 인식이 깨어 있는 사람은 달리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아름다워지고, 평화와 기쁨 그리고 행복을 자연스럽게 뿜어낸다. 고요하게 살짝 떠올리는 미소와 사랑을 담은 마음은 그 자신을 새롭게 거듭나게 하며, 이들로 인해 기적이 일어난다. - 틱낫한의《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기적》 중에서 - * 기적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모두 기적입니다.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뿜어내는 곳이 기적의 현장입니다. 기적은 나와 동떨어진 남의 일도 아닙니다. 나의 삶, 나의 발걸음, 나의 마음 안에 늘 새롭게 태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52주 청소년 설교 프로그램 작성하기
52주 청소년 설교 프로그램 작성하기 1. 청소년설교 이야기(문제제기) 1) 열정없는 _______ 청소년들은 찬송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찬송가를 가르쳐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잘 모르는 것은 배워 부르려고 하 지 않고 부르지 않으려고 한다. 2) 삶과 관계없는 _______ 설교자는 청소년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성경말씀을 통하여 고민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청소년 예배의 현장에서 선포되는 설교중에 청소년들의 삶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설교는 얼마나 선포되고 있는 것일까? 3) _______의 역사 상실 성령의 역사가 상실된 것은 회개가 없는데 있다. 오늘날 예배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는 예배를 통하여 예배자들이 죄(罪)를 깨닫지 못하는데 있다. 이것은 바로 우 리의 예배가 성령 안에서 드려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청소년 설교 포인트 1) 말씀에 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교과서적인 설교 방식을 청소년들을 피곤하게 한다. 형식보다는 내용, 내용보다는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준비와 기도가 필요하다. 2) ______ 있어야 한다. 청소년 설교에는 유머와 위트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유행어도 쓰고 청소년들의 관심 속의 세계 속에서 주위를 끌 수 있는 변칙적인 설교를 한다. 3) 청소년들의 _____과 연결되도록 한다. 청소년 설교는 그야말로 청소년 설교이다. 어른 설교집을 그대로 설교하면 핀트가 안 맞는다. 청소년들의 삶에 연결되는 설교를 하도록 하자. 4) 비젼을 주고 _____적인 설교를 하자. 청소년 설교의 특징을 미래에 대한 비젼을 주는 일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소년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 주고 용기를 주는 설교가 좋다. 5) _____하게 설교하라. 설교는 칼이다. 심령을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힘이 없이 설교하지 말고 목숨을 걸고 힘있게 설교하라. 3. 청소년 설교 제목 살펴보기 1) A교회 1.하나님께 칭찬듣는 신앙 생활을 합시다(마25:14-30) 2.믿음을 가진 사람이 됩시다(민14:4-12) 3.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마20:1-16) 4.인정 받는 믿음이 됩시다(암5:21-27) 5.성도의 삶의 징계(살후3:13-15) 6.성도의 사회 생활(레19:11-18) 7.주님의 제자가 되려면(눅14:25-35) 8.엘리에셀의 기도를 본 받읍시다(창24:10-14) 9.모세의 신앙을 본 받읍시다(민14:11-19) 10.고난 중의 처세 비결(삼하15:30-37) 11.계명을 지키는 자의 복(레26:3-13) 12.자랑하지 맙시다(렘9:23-26) 13.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마9:35-38) 14.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엡6:18-20) 15.예물을 바치는 바른 자세(출35:20-29) 16.참된 회개란 무엇인가?(신30:1-2) 17.집에서 잃어버린 아들(눅15:25-32) 18.박넝쿨로 깨우친 하나님의 사랑(욘4:1-11) 19.네 부모를 공경하라(엡6:1-3) 20.예수님께서 보이신 사역(막1:35-39) 21.다니엘의 믿음(단2:14-18) 22.도대체 진리가 무엇입니까?(요8:3-11) 23.어리석은 부자(눅12:13-21) 24.주기도문(마6:9-13) 25.빌라도가 실패한 이유(마27:15-26) 26.하나님의 인자하심(시86:1-5) 27.복음 전도자의 수칙(마10:5-10) 28.이상적인 교회의 모습(행2:43-47) 29.아담의 죄(롬5:12-14) 30.죄사함을 받기 위한 성도의 자세(레5:1-6) 31.애굽왕 바로의 행위를 보십시다(출5:1-9) 32.부동산에 대한 성도의 바람직한 자세(레25:23-28) 33.하나님의 목장(시23:1-6) 34.전도자의 올바른 처세 비결(마10:16-20) 35.행동하는 믿음을 가집시다(약2:14-26) 36.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이유(신31:9-13) 37.고난 중의 처세 비결(시73:1-14) 38.사랑의 은사(고전13:1-3) 39.주님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고전12:12-31) 40.절기를 지키는 자들의 태도(신16:1-17) 41.신앙의 사람 느헤미야(느2:1-10) 42.다윗의 인격을 살펴 봅시다(삼하16:5-14) 43.하나님의 말씀의 능력(히4:12-13) 44.광야생활로 얻은 유익(신8:2-4) 45.많은 사람의 생명을 건진 문둥이들(왕하7:3-10) 46.하만을 통해 배우는 교훈(에5:9-14) 47.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자세(신4:1-10) 48.인간의 문제와 해답(왕하5:1-8) 49.경건한 삶을 산 아사 왕(대하15:16-19) <부활절 설교> 50.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고전15:3-19) <추수 감사절 설교> 51.하나님께 감사합시다(시136:23-26) <성탄절 설교> 52.그리스도이신 아기 예수의 탄생(눅2:1-14) 2) B교회 1. 금메달은 아무나 따나 2. 갓 퍼스트 3. 당신의 마지막 선택은? 4. 너의 운명을 바꿔라 5. 기도로 인생을 바꿔라 6.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7. 인생을 다 산 사람처럼 살아라 8. 자랑할 걸 자랑하자 9. 도미노의 법칙 10. 면류관의 주인공 11. 하나님이 쓰시기에 편한 사람 12. 선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 13. 열 명 중의 한 사람 14. 용기를 주는 사람 15. 인생 대역전 16. 감사할 수 없을 때도 감사 17. 카에르피디엠 18. 떠날 때와 돌아올 때 19. 돌아보시고, 생각하시고,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20. 믿으면 장땡이다 21. 살아 있는 믿음 22. 세상을 이기는 믿음 23. 예비자의 사명 24. 용서 25. 은혜가 적용되는 나라 26. 지도자도 지도자 나름이지 27. 작은 자의 법칙 28. 내 마음이 상할 때 29. 내게 주신 자유 30. 하나님의 결단식 31. very good, not good 32. 악조건이 기회다 33. 아브라함 - 이왕 믿을 거면 확실하게 믿어라 34. 이삭 - 기대하고, 기도하고, 기다려라 35. 야곱 - 축복 쟁탈전 36. 요셉 -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37. 흔적 38. 제사 지낼까요? 39. 뼈 있는 잔소리 40. 수능의 벽을 넘어 41. 노블레스 오블리제 3) C교회 1. 특급비상 1 ─── 그리스도를 향하여 2 ─── 우리가 자랑하는 것 3 ─── 예수님의 기도 4 ─── 감추인 보화 5 ─── 하나님과의 만남 6 ─── 특급비상입니다 7 ───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이냐 8 ─── 그리스도의 마음 9 ─── 하나님의 자녀 10 ─── 은혜로 받은 구원 11 ───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2. 성령충만 12 ─── 누구를 위한 기쁨인가 13 ─── 성령충만 14 ─── 기독학생의 증거를 대라 15 ─── 인생의 두 가지 16 ─── 토기장이와 질그릇 17 ─── 예수의증인 18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19 ─── 가장 큰 믿음 20 ─── 배반한 베드로 3. 인생을 검토하라 21 ─── 시험을 이기려면 22 ─── 하나님과 멀어져 간 사람 23 ─── 인생을 검토하라 24 ───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 25 ─── 네 속에 있는 것 26 ─── 주님이 가장 원하는 일 27 ─── 기도할 마음이 생겼어요 28 ─── 미래 일을 염려하지 말라 29 ─── 치료자 30 ─── 누구를 위한 삶인가? 4. 나를 쓰소서(절기와 특별예배) 31 ─── 내가 어떻게 하랴(사순절) 32 ─── 예수님의 죽음(수난주간) 33 ─── 부활절을 향해 뛰어랴(부활절) 34 ─── 성장하는 청소년(청소년주일) 35 ─── 기독교인의 효(어버이주일) 36 ─── 회개의 운동(국가기념주일) 37 ── 너희 자신을 점검하라(수련회를 앞두고) 38 ── 믿음으로 된 의인(종교개혁주일) 39 ─ 아홉은 어디 있느냐?(추수감사주일) 40 ─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라(성가대 헌신예배) 41 ─── 나를 쓰소서(임원선거) 4. 52주 청소년 설교 프로그램 작성하기 예배 설 교 예배 설 교 1 1주 신년 새출발을 잘해야 한다.(고후5:17) 2 1주 최고가 되는 길이 있다. 2주 미래를 바라보고 출발하라(창 12:1-3) 2주 설날 조상의 가르침이 있다. 3주 거부될 준비를 하라. (창세기 26:12-13) 3주 도전이 아름답다. (수 6:3) 4주 기도로 인생을 바꾸라. (창 36: 4주 너의 운명을 바꾸라 (민14:28) 5주 무슨일을 만나든지 잘되어 보라.(창 37:1-9) 예배 설 교 예배 설 교 3 1주 3.1절 오늘 흘린 땀은 내일 흘릴 눈물이다.(시126:5-6) 4 1주 부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다.(고전 15:57-58) 2주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다니엘 1: 8) 2주 꼭 1등을 해야 하나요? 3주 사명이 있으면 꿈이 생긴다. 3주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요? 4주 고난 고난없이 영광없다. (롬 8:18) 4주 외모에 걱정이 있어요. 예배 설 교 예배 설 교 5 1주 어린이 부모님과 말이 안 통해요. 6 1주 술을 먹으면 안돼요. 2주 어버이 부모님과 말 좀 해요. 2주 담배가 무엇이 해로운가요? 3주 성격을 고치고 싶다. 3주 이성교제를 하고 싶어요 4주 웨슬리 성령을 알고 싶다. 4주 성에 대해 알고 싶어요 5주 자원봉사는 어떻게 예배 설 교 예배 설 교 7 1주 맥추 온몸으로 감사하고 싶어요. 8 1주 게임에 중독되었어요. 2주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2주 절대 포기하지 말자. 3주 남모르는 고민이 있어요. 3주 광복 빛이 어두움을 이긴다. 4주 가슴이 답답할때가 있어요. 4주 중간 평가하지말라 5주 난 연애인이 좋아요 5주 예배 설 교 예배 설 교 9 1주 자살이 왜 죄인가요? 10 1주 집나가고 싶다. 2주 학교 폭력 무서워요. 2주 관심을 받고 싶다. 3주 추석 가족이 있어 좋다. 3주 두려움을 이기고 싶다. 4주 왕따 정말 무서워요. 4주 담대함을 갖고 싶다. 5주 공부해서 남주자. 예배 설 교 예배 설 교 11 1주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요? 12 1주 예수가 왜 사람으로 오셨냐 2주 이단이 무엇인가요? 2주 예수가 왜 희망인가? 3주 추수 배나 감사하자. 3주 성탄 예수가 왜 좋은가? 4주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4주 끝이 좋아야 한다. 현재 준비된 설교 1. 꼭 1등을 해야 하나요?(성적) 2. 이성교제를 하고 싶어요.(이성교제) 3. 남모르는 고민이 있어요.(고민) 4. 부모님과 말이 안 통해요.(부모님과 갈등) 5.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요?(친구관계) 6. 공부해서 남주자(공부) 7. 학교 폭력이 무서워요(폭력) 8. 담배가 무엇이 해로운가요?(담배) 9.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장래) 10. 자살이 왜 죄인가요?(자살) 11. 왕따 정말 무서워요(왕따) 12. 5. 청소년 설교의 도전하기 1)___________을 주는 설교하라. 인간의 삶은 절망이다. 잘되는 것을 바라보게 해야 한다. __________적인 사람을 쓰신다. <청소년들이여! ________를 가져라!> 2) ____________에 연구하라. 서론이 중요하다. 감동의 이야기, 유머의 이야기 본론 잘 전개하라. 3) ___________잘 묶어 주어야 한다.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한달 설교를 미리 준비하자. 3-4편 설교 준비, 영감받고 위대한 설교 준비하며 ______먹는 사람이 되자.
5월 15일 스승의 주일과 찬양예배 콘티/ 2011-05-15
5월 15일 스승의 주일 과 찬양예배 콘티 싱어팀 인도자: 김경석t 여길원t (더블인도) 자매싱어: 오은총, 성정선, 황나린, 주귀은 김지연, 김연지, 유희준, 이다울 형제싱어: 이하영, 서태현, 정래성, 박주원 Pleae note as the followings. 1.예배의 부름(성경말씀) 2.엘샤다이 찬양대 첫송 3.사도신경 4.찬양 1. 새노래 G (마커스) - 여길원t - 인도자와 같이 들어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너무 센소리 부르지 마시고 힘있고, 부드럽게 찬양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브릿지 잘 모를 수 있을니 꼭! 들어 보고 오세요!!! 브릿지 끝나고 박수로 후렴 하고 마지막 후렴 때 G->A로 2. 감사함으로 E(마커스) - 김경석t -바로 인트로, 인트로때 인도자 말씀 선포 멘트 있습니다 이곡은 박자감 있게 찬양을 해야 합니다. 잘 모르겠음 역시나 많이 듣는 수 밖에 (노력하지 않고, 커다란 결과를 바라는것은...ㅋ) 3. 주님 계신곳에 나아가리 E - 김경석t - 세컨이 처음에 깔아주면 인도자가 기타를 치고(C#m7) 처음에 치고 나갑니다. 너무 처음에 강하게 들어 가지 않는 주위 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꽤 있을것 같으니 이것도 반드시 들어 보시길~ 4.완전하신 나의주 E 여길원t - 후렴으로 바로 들어 감( 저번주와 비슷) 후렴만 할 생각임 (반복 위주로) 대신 상승과 하강의 조화를 이루어서 중간에 기도 할거고, 기도할때 싱어 같이 기도 해주세요. 5.대표기도(기도시 조용히 자리로 이동) 6.엘샤다이 찬양대 기도송 7.말씀봉독 8.엘샤다이 찬양대의 찬양 9.목사님 설교 10.봉헌 -찬송가 71장 (새 찬송가 50장) 11.봉헌기도 *특별 찬양 - 12. 하늘에 계신 아버지 A 여길원t - 처음 첫 부분은 인도자가 치고 들어 갑니다. 다시 처음 부분 반복할 때 싱어 모두 같이 들어 와주시고, 자매 싱어의 대부분은 엘토 후렴과 브릿지를 해주길 바랍니다. 자신 있음 그냥 멜로디 해도 됩니다. 13. 예수는 내 삶의 모든것 A 여길원t - 12번 끝내면서 마지막에 후렴 어쿠스틱으로만 치겠습니다(저와 경석샘이) 처음에 인도자가 들어 가면 자연 스럽게 같이 들어 와주시면 되고, 밝은 찬양이니 같이 마음을 내려놓고 기쁘게 선포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가사 묵상 필수! 14. 산과 시내와 붉은 노을과 C 김경석t - 어노인팅 앨범에 잘 나와 있습니다. 잘 모르실수 있으니 싱어팀 숙제 해오시고 준비 된 사람은 토요일 연습이 즐겁습니다. ^^ 15. 그대를 만난것 G (학생이 교사를 축복) 김경석t - 스승의 주일을 맞아 학생이 교사를 축복하겠습니다. 16. 주님 말씀 앞에선 G (교사가 학생에게 답) 여길원t - 스승의 주일을 맞아 축복 받은 교사 학생에게 화답함 17. 결단 그리스도의 계절 A - 인도자가 번갈아 가면서 찬양 하겠습니다. 싱어팀은 그래도 그것과 상관이 같이 따라만 오시면 됩니다. 마지막 후렴에 셀라가 있을니 잘들 기억 해주시고 역시나 가사의 묵상이 중요합니다. 18. 목사님 축도 --------------예배 끝-------------
9.11테러 극적생존자 제이콥슨 박사-“살아계신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으라” 간증/ 지상강좌
9.11테러 극적생존자 제이콥슨 박사-“살아계신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으라” 간증/ 지상강좌 2011/02/14 11:26 http://wrn2991.blog.me/50105270508 전용뷰어 보기 “살아계신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으라” 9.11테러로 불타는 세계무역센터건물. 저의 부모님은 헐리웃과 영국의 유명한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영국 여왕의 두 번째 친척이며, 결혼을 통해 케네디 집안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종교는 어머니 쪽은 몰몬교이며, 아버지는 천주교입니다. 나는 여러 종교를 접했습니다. 주일학교는 장로교회로 나갔고, 토요일은 유대 회당에, 주일저녁에는 몰몬교에 다녔습니다. 16세 때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유명한 가수와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8년 동안 많은 고통을 주었습니다. 술과 마약에 취해 살았으며, 나를 폭행하고 많은 여자를 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이 결혼을 지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밤 유모와 세 살 된 아기와 함께 남편의 차를 타고 가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딸과 유모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저도 거의 죽을 번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남편을 떠나 뉴질랜드로 갔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다” 3년 반 후 아주 유명한 경주용차 선수와 결혼했습니다. 7년 동안 2명의 자녀를 낳았고, 4명을 입양하여 길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1989년 모나코에서 그랑프리경주 때 사망했고, 저는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예수님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때 선교사가 되어 유엔을 위해 일했습니다. 평화봉사단으로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호주로 돌아와 영화 제작사를 만들어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청소년을 돕는 재단을 만들어 47개국에 지부를 만들었고, 미국에 430만 명의 멤버십 회원이 있습니다. 내 삶은 매우 바빴습니다. 연예계에서는 성모마리아로 알려졌고,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을 등한히 하여 가족들이 아직까지 저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101층에 있는 식당에서 파트너와 손님, 그리고 스탭진이 모여 미팅을 갖기로 했습니다. 아침 8시 15분쯤 커피를 마시러 했을 때 조수 안나가 9시 30분 또 다른 미팅이 있다고 빨리 가자고 해서 101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도중 96층에서 큰 폭음이 들림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를 포함해 8명이 있었습니다. 버튼을 눌렀지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불이 꺼졌고 타는 냄새가 났고 큰 폭음이 들렸습니다. 젊은 친구 한 명이 엘리베이터 천장에 있는 구멍을 열고 나가자마자, 우리 머리 위에 큰 불이 일어나고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친구는 엘리베이터 위로 기어 올라가서 엘리베이터 옆벽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다섯 명의 남자 여자가 기어 올라갔지만, 나는 기도하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굉장히 두렵습니다. 지금 가야된다면 빨리 가게 해주시고, 아니면 빠져나갈 힘을 주십시오.” 기도가 끝나자마자 큰 폭발과 함께 엘리베이터 위의 왼쪽에 큰 구멍이 났고, 그곳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의 신체가 산산조각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3분 전에 얘기했던 아주머니는 하반신이 없었습니다. 다시 폭발이 일어나더니 엘리베이터 왼쪽 밑 부분에 큰 구멍을 냈습니다. 철판이 종이처럼 찢어지고 파편이 튀어 내 옆에 있던 청년은 팔이 잘렸고, 청년의 손에서 피가 쏟아지자 나는 청년의 넥타이와 허리띠를 풀어 지혈시키고 내 가방의 내용물을 쏟아 청년의 팔을 담았습니다. 안나도 화염과 열기로 인해 옷과 살이 녹아버려 가방에 있던 물을 머리에 부어주었습니다. 4번의 기적, 코마상태에서 천국체험 나는 나의 상태도 모르고 오직 거기서 빠져나갈 궁리만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벽면에 있는 사다리 있는 쪽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둥은 신발이 탈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쓰러진 기둥을 걸어 가까스로 사다리까지 가서 그 밑으로 내려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화염에 녹아서 열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어둠속을 더듬어 94층에 내려가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져 밑으로 떨어졌고, 그 순간 빨려 들어갈 번했습니다. 그 통로를 통해 나가보니 많은 사람이 있었고, 시체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계단으로 몰려 서로 먼저 내려가려고 아우성쳤습니다. 64층에 이르자 두 명의 군인이 모두 팔짱을 끼라고 했고, 온전한 사람은 부상당한 사람을 부축하라고 하여 그렇게 27층까지 내려가자 구조대가 있었습니다. 소방대원은 안나의 화상 부위에 약을 뿌리면서 저에게 붕대로 머릴 감쌀 동안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는 난 괜찮으니 어서 여기를 빨리 빠져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18인치 쇠 조각이 내 목 뒤에 박히면서 왼쪽 뇌를 8분의 5인치가량 관통한 심각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내 목은 이쪽 귀에서 저쪽 귀까지 잘려 목 밑에 있는 살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또한 긴 생머리는 타 없어졌고, 팔과 등과 머리와 다리에 3도 화상을 입었으며, 코가 부서졌고, 입술이 3군데나 찢어져 있었습니다. 눈 위에도 상처가 있었습니다. 소방대원들이 나를 부축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뛰기 시작했고 곧바로 빌딩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4번의 기적을 본 것입니다. 의료진은 머리에 박힌 쇠 조각을 꺼내면 죽을 거라고 했습니다. 뇌가 쏟아져 나올 거라 했습니다. 살아난다고 해도 99.9퍼센트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인간이 될 거라 했습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그 빌딩에서 나를 내보낼 때 분명히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한 순간도 죽지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 머리의 다른 쪽을 잘라 들어가 쇠 조각을 밀어 빼내자, 뇌를 담고 있던 주머니가 쏟아져 나왔지만 쇠 조각이 빠지면서 그 자리에서 상처가 아물었습니다. 한쪽 두개골이 부서져 타이타늄 쇠를 붙였고, 목을 꿰맨 후 화상으로 인해 얼음침대에 안치했습니다. 그리고 백혈병 때문에 3개월 반 동안 코마(Coma)상태에 빠졌습니다. 의료진들은 화상으로 어그러진 피부들이 다 펴지고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번의 전기충격으로 다시 살아났지만, 세 번째는 죽었다고 선언했습니다. 나는 죽은 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내 식구들이 나의 장례를 위해 뉴욕으로 모였습니다. 나는 그때 무엇인가 위에서 내려와 저를 붙들어 세우는 것을 느꼈고, 잠시 무아지경에 들어갔다가 푸른 초장에 서 있는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향기로운 냄새가 났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라-“내 죄를 용서해 주소서” 천국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천국을 통해 일곱 번째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나는 육체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빛이 나는 덩어리 속에서 예수님이 걸어 나오셨습니다. 지성소 같은 곳에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여러 창조 이전과 창조의 사건, 그리고 7년 환난과 그 이후 것도 보여주셨고, 예수님이 쓰셨던 아람어와 천국의 언어를 배워서 천사들과 대화도 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확실한 장소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장악돼 있는 곳입니다. 저는 고대 아랍어와 옛날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고 쓸 수 있기 때문에 유명한 학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과학자들이 제 뇌를 조사하고 연구했습니다. 제가 되돌려 보내진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고, 제가 대표하는 모든 직책을 사임하라고 하셨습니다. 백악관에서 관장하는 세계에서 제일 큰 청소년자문회재단과 유엔 평화대사, 다른 여러 조직을 사임했고, 1억 6천8백만 불의 재산과 여러 나라에 있는 집들을 처분하고 지금은 믿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해 메시지를 주시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다 들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델라, 토니 블레어, 부시 대통령 등 현재까지 468명의 지도자들 앞에서 간증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간증하고 메시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메시지 일부분이 살아계신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틈 탈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오십니다. 이 세상이 악으로 불 탈 때 휴거를 받기 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서서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환란과 휴거 때의 모습을 다 보았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을 다 보았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많은 사람이 거짓선지자의 꼬임에 빠지고, 많은 사람이 교회를 찾고 있지만 형식만 취하며 하나님을 향한 진실 되고 의로운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을 마음 상하게 한 것이 있거든 용서해 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 주옵소서’ <정리: 이중목 기자> [출처] 9.11테러 극적생존자 제이콥슨 박사-“살아계신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맺으라” |작성자 화평
9ㆍ11사태에 일어난 우연 같은 기적/ 이희돈 장로(세계무역센터총재ㆍ워싱턴 성광교회)의 간증/ 2014-09-27
9ㆍ11사태에 일어난 우연 같은 기적/ 이희돈 장로(세계무역센터총재ㆍ워싱턴 성광교회)의 간증 ​ 1년에 한 번 있는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이사회가 9ㆍ11사태가 일어난 날 아침 미국 뉴욕 WTC빌딩 꼭대기 층에서 조찬모임을 시작으로 열릴 예정이었다. 나는 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런데 전날 밤 아내가 자다가 밤새 몸을 파르르 떨면서 불안해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9월 11일 아침은 날씨가 쾌청했다. 나는 공항 로비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려고 했다. 커피숍이 평소보다 무척 붐벼서 수십 분 기다려도 내 차례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인근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재빨리 그 가게로 들어갔다. ​ 커피를 주문했는데 여직원이 주저하였다. 영어도 서툰 멕시칸이었고, 첫 출근이고, 커피도 내릴 줄 모른다고 했다. 뭐라도 팔아주고 싶어서 가능하다는 딸기 주스를 주문하여 몇 모금만 마시고 비행기를 탔다. 얼마 후 비행기 창밖으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평소 습관대로 비행기 창문에 손을 대고 세계무역센터를 위해 안수기도를 했다. 쾌청한 날씨를 보니, 하나님께서 오늘 나를 잘 도와주실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갑작스런 복통 비행기에서 내려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복통이 찾아왔다.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했다. 화장실에 20분여 분 정도 앉아서 내 배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 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 맨해튼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면서 시계를 보니, 105층 꼭대기 층 라운지에서 이사들이 조찬을 들고 있을 시각이었다. 세계무역센터 대표이사들이 다 왔는데, 늦다니…. 진땀이 흘렀다. 내 스텝들은 무역센터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차를 타고 가면서 오늘 모임에 참석 못 하니까 모두 철수하라고 전화했다. 두 명이 먼저 빠져나왔다. 한 명은 전화를 받지 않아 그 아내에게 연락하여 그도 빠져나왔다. ​ 이때는 비행기 한 대가 첫 번 빌딩을 막 치고 들어간 시점이었다. 빌딩은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는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계속 차를 타고 들어갔다. 당시 나는 77층 사무실을 쓰고 있었고, 조찬 후에 가질 이사회 회의장은 84층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시각 첫 번째 비행기가 정확히 84층을 치고 들어갔다. 공항 화장실에 들어가서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시각 그 방에서 죽었을 것이다. ​ 차량 라디오에서도 긴급방송이 없었다. 비행기 테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무역센터 호텔 건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윙” 굉음소리가 났다. 두 번째 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비행기 밑바닥에 쓰인 글씨가 눈에 보일 정도로 낮게 날고 있었다. 그리고 빌딩과 충돌했다. 나는 건물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이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비행기 파편이 부서져서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릴 줄 알았다. 그런데 파편이 튕겨 나오지 않았다. ​ 나는 즉시 뒤로 돌아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를 집어탔다. 운전기사는 벌벌 떨고 있었다. 나는 발길질을 하며 말했다. “밟아요, 밟아!” 차는 곁에 있던 고급차 5대를 치면서 나아갔다. 마침 찻길이 텅 비어있었다. 첫 번째 빌딩이 부딪힌 후 소방차들이 출동해서 길부터 막아놓은 덕분이었다. 천우신조인지, 도로 중앙분리대도 10미터만 열려있었다. 차는 중앙분리대를 통해 반대편 진입차선으로 달려서 강 아래 터널로 들어갔다. 천우신조로 살아나 나는 순간, 반대편에서 마주 오는 차들에게 위험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 창문을 열고 비상사태라고 외쳤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보듯 했다. 터널 바깥 10여 미터 앞에 전쟁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차에 탄 사람들은 단지 자기 눈에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은 평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평안한 뉴욕에서 살아왔다고, 아무 일 없다고 믿고 있었다. ​ 내가 위험하다고 소리치며 차를 뒤로 돌리라고 해도, 아무도 내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경찰이 차로를 막아놓았기 때문에 차는 터널 안으로 길게 밀려 있었다. 결국 우리는 차를 타고 터널 반대쪽으로 빠져나왔다. 바로 그 때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 긴 터널 안에 있던 사람 절반은 죽었을 것이다. 그 때 그 사람들이 내 경고를 듣고 차를 거기 세워두고 뛰어서 반대쪽으로 나갔더라면, 나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내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복음의 소식을 모르고 죽는 사람도 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일 줄 모른다. ​ 그 당시 수석 부총재 허버 위드는 내 전화를 받았는데, 2번 빌딩에 자기 아들이 60몇 층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아들은 2번 빌딩에서 1번 빌딩이 비행기와 충돌한 상황을 창문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었다. 조금 지나 아들이 있는 2번 빌딩도 비행기와 충돌하고 무너져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2번 빌딩에서는 처음에 ‘긴장하지 말고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한다. 아들은 그래도 불안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어떡할까요?’ 아버지도 1번 건물이 쿵 하고 흔들리는 소리는 들었지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려 봐라. 방송에서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했으니….’ 하고 아들을 안심시켰다. 그 때 아들에게 빨리 대피하라고 했다면 아들은 살았을 것이다. ​ 허버 위드 수석 부총재는, 9ㆍ11사태 후 외아들을 잃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결국 사임하고 떠났다. 그리고 아들이 받은 보상금은 아들이 공부한 모교에 몽땅 장학금으로 기증했다. 2번 빌딩에 있던 사람들은 먼저 일어난 1번 빌딩의 사고를 보고 더 많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들은 당시 일어난 일에 대해 민감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2번 빌딩에 충돌이 일어났을 때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제때 했더라면, 많은 사람이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 사람이 이해 못해 그런데 2번 빌딩에 비행기가 충돌한 지점이 공교롭게도 ‘방송실’이었다. 그러니까 안내방송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안심하고 있다가 죽은 것이다. 나는 그때 ‘복음전파’를 생각했다.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복음이 전해져도 사람들은 자기 눈에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믿지 않는 것과 똑 같다. 자기 코앞에 위기가 닥쳐도 망하기 전에는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에 별 일 있겠나!’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 내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가게에 가서 마음에도 없는 주스를 사서 마시고 복통으로 지체하여 조찬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므로 오전 9시에 조찬과 함께 갖기로 했던 ‘세계이사회’ 회동이 점심식사 시간에 갖기로 하고 다들 내려왔다. 그리고 5분 후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15명 이사 전원이 살았다. ​ 나는 하나님은 우리 성도 한 사람만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삼기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만 살았을 뿐만 아니라, 나로 인해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목숨을 건졌다. 요셉도 살아났을 때 자기 혼자만 살아난 것이 아니다. 요셉 주변에 있던 바로와 애굽 백성이 모두 기근으로부터 구원받았다. 얼마 후 이 일로 뉴욕타임즈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기자가 정말 근사한 제목을 뽑았다. ​ “하나님의 섭리의 손은 가끔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함으로 우리에게 기적을 가져다주신다.” 그 날 아침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하나님, 왜 이렇게 중요한 때에 저를 돕지 않으십니까!’ ‘왜 이렇게 중요한 날, 저를 꼬이게 하십니까?’ ‘제가 오늘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도해 온 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불편함을 통해서 천하보다 소중한 내 생명을 건져 주셨고, 나만 아니라 내 동료들도 구해주셨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렇게 간증까지 할 수 있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희생자와 유가족들께는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 어떤 사람은 내 간증을 듣고 그것은 우연이었다고 말한다. ‘공부도 많이 하신 분이 왜 그런 우연히 생길 수 있는 일을 기적이라고 하느냐’며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기적 같은 우연은 기도할 때 수시로 일어난다. 이희돈 장로(세계무역센터총재ㆍ워싱턴 성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