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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2012-07-18
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간증/ 배우 김태희 1.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국민 여배우 김태희의 신앙고백이 화제다.(63호 6면 참조) 가톨릭 신자 김태희 세례명은 베르다이다. 그녀의 겸허한 신앙고백이 지난 5월 6, 13, 21, 27일 4회에 걸쳐 천주교 소식지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란에 실렸다. 본지는 자료를 입수, 입력․정리하여 게재한다.(편집자 주) 2.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다 성당에 다니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여름방학에 남동생과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첫영성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더 어릴 때에는 조부모님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가끔 절에 따라다니기도 했는데, 어린 내 눈에는 왠지 모르게 성당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예쁜 미사보를 쓰고 기도하는 모습이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중학교 몇 학년 때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아침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땅을 보고 하늘도 보며 걷다 불현 듯 신비스런 기운이 휩싸면서 가슴이 벅차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늘 너와 함께 있다.’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며 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이런 나의 경험이 그 날의 기분 탓에 겪은 단순한 감정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증명해 보여줄 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난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놀라운 체험들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사사롭고 막무가내인 수많은 기도에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응답해 주시며 당신의 존재를 늘 내게 상기시켜 주십니다. 내가 스스로 눈을 감고 귀를 막아 하나님 말씀을 모른 척하며 살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많은 말씀 가운데, 유독 여러 번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난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모자라고 부끄러운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렇게 속삭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날 사랑하실 거야. 영원히….’라고. 3. 하나님의 훈육방법 삶 속에서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절실히 찾게 될 때가 있습니다. 기쁜 일이 생겨 한없이 감사를 드릴 때, 그리고 힘든 일이 생겨 마음이 너무나 괴로울 때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게 될 때는, 역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뭔가 큰일이 생겼을 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과연 아무 이유 없이 오로지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이신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고, 마냥 피하고만 싶은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그로 인해 내가 좀 더 성숙해질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훈육방법이었음을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예상치 못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누구도 원망이나 불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 그 분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건, 우리가 늘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것 하나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연기’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이 주관하시지 않았으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연기자로 이끄신 것은 아마도 그것을 통해 사람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4.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는 성경을 처음부터 제대로 읽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일주일 단 한 번, 고작 한 시간일 뿐인 미사 시간에 딴 생각을 하고, 자기 전에 달랑 한두 구절의 말씀을 묵상하며, 내가 바라는 것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물론 말로는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그 말이 얼마만큼 내 진심과 맞닿아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두 달 전부터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본당의 한 신자로서 청년활동에 권유를 많이 받아왔지만 내가 다른 청년들과 어울리며 신앙생활을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기적으로 신부님과 내 또래 자매들과 너무나 즐거운 성서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하나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하나님이란 과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면서 성서모임은 점점 더 신이 나고 흥미로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까지 나의 신앙생활은,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내가 그린 상대방의 이미지만을 보며 그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가짜 연애처럼 해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끊임없이 영적으로 새롭게 내어나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고, 특히 나는 지난 일을 너무나 쉽게 잘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놀라운 체험으로 나를 깨닫게 해주셔도 또 금세 잊어버리고 제자리걸음만을 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3:8)는 말씀이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바람과 같이 자유롭다는 의미로 느껴졌습니다. 그 말씀대로 어떠한 제약 없이 눈앞의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살고 싶습니다. 나를 이끄시는 대로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살면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5.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나는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때로는 남들보다 특별한 혜택을 받았다는 우월감까지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과시하고 자랑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고, 나의 부족한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봐 혼자서만 조용히 하나님 사랑을 맛보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복음을 전해야 하는 당연한 의무를 잊고 살았다는 것과 내가 그동안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죄책감입니다. 내 성격은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마음이 내키는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남에게도 쉽사리 무엇인가를 권유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종교나 믿음 같은 문제는 누가 말로써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님이 쓰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읽으면서 선교 활동에 대해 가졌던 회의적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교회든지 선교 활동을 할 때, ‘구원’이라는 단어를 꼭 씁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간단한 질문 몇 가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답변을 알아봅니다. 1) 누가 구원되는가?/ 인간이 2) 누가 구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3) 무엇으로부터 구원되는가?/ 죄에 의해 배가(倍加)된 인간의 유한함으로부터 4) 무엇에 도달하기 위해 구원되는가?/ 더욱 정의롭고 보다 형제애적이며 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와 교회에 매주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일까요? 솔직히 나는 그리스도교를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하고 죽는 이들도 수없이 많은데, 그건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의하면 교회에 다니면서도 교회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회에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교회에 속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목소리인 ‘양심’에 따라 도덕적, 인격적으로 사는 그들의 행위 안에는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신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모른 사람에게 그분을 알게 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마치, 정말 사랑한다면 좋은 것을 서로 나누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인류 전체를 구원하려 하시며, 그때 취하시는 길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전부터 나는 인생의 좌우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 말자!”라고 답해왔고, 그 궁극적인 목표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여, 감히 나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받은 사랑을 되돌려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 덕분에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되는, 나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처] 배우 김태희 간증: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도구로 쓰이고파 -천주교 소식지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
자기이해와 성격분석(1)/ 2004-02-06
자기이해와 성격분석(1) 1. 나는 누구인가?(Who Am I?) (1) 자아정체감의 정의(ego-identity)/ 에릭슨 자아정체감이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독특한 개인으로 자각하며, 대인관계, 역할, 목표, 가치 및 이념 등에 있어서 자기다움을 견지해 나가려는 의식, 무의식적인 노력’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아정체감이 강한 사람은 비록 다른 사람과 같은 동기, 흥미, 가치 등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자기 자신을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과 분리된 ‘독특한 개인’으로 자각하며, 자기일관성 내지는 정체감을 이룩하고자 노력한다. 에릭슨은 자아 심리학의 열쇠가 되는 저술가이며 자기정체성을 현재의 자기가 어떤 존재라고 느끼는 자기평가와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자기 판단의 양극성으로 이해한다. 자기정체성을 성취한 사람은 소속감을 느끼며 개인의 정체감은 자아개념 및 자아존중감과 서로 관련되어 있다. ◈ 개인의 자아정체감은 네 개의 기본적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인간성 차원: “나는 누구인가?”라는 각 개인의 실존적 자아 물음 ② 성별 차원: “나는 여자”, “나는 남자”라는 성의 느낌 ③ 개별성 차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특별하고 독특한 개인의 기능적 자아에 대한 물음 ④ 계속성 차원: “그러한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시간경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사람이라는 인식의 계속성으로 가치관, 인생관에 대한 이상적 자아의 물음 (2) 정체감 상태 ① 정체감 유실(Identity foreclosure) 정체감 유실로 분류한 사람들은 그들의 부모와 대단히 유사한 직업이나 신념을 선택함으로써 위기를 경험하지고 않고 쉽게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 (예; 부모가 민주주의 신봉자이면 자신도 민주주의 신봉자라고 생각한다) ② 정체감 유예(Moratorium) 현재 정체감 위기상태에 처해 있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역할실험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유예로 분류하는데 유예상태에 처해 있는 대부분의 청소년은 동일한 연령의 집단, 동일한 나이의 취업환경에서 자신의 정체감 역할 혼란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환경은 그들에게 보다 나은 동일시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며 유예 상태와 혼란 상태에 계속적으로 남아 있도록 유도하고 수행할 뿐이다. ③ 정체감 혼란(Identity diffusion) 위기를 경험하였거나 하지 않았거나, 확고한 신념체계를 확립하지도 못하였으며 직업역할을 수행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말한다. 그들은 안정되고 통합된 자아개념을 획득하지 못하고 자기의심을 경험하며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시도하지 않는다. ④ 정체감 성취(Identity achievement)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확고한 신념체계를 바탕으로 직업역할을 수행하며 정치적, 개인적 이념체계를 확립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한때 정체감 성취로 분류되었던 사람이 후에 정체감 유실상태로 분류될 수 있다. ⑤ 부정적 정체감(Negative identity) 부정적 정체감은 부모의 가치관이나 사회적 가치관과 정반대가 되는 자아개념을 의미한다. 부정적 정체감은 개인적 성공에 대한 부모나 사회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결과로 형성되며 정체감 유실의 특수한 경우로 분류한다. 부정적 정체감을 획득한 청소년들을 ‘비행 청소년’, ‘문제아’로 표현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정체감 유실상태에 처해 있다. 특히 성 역할에 대한 태도, 종교 그리고 직업선택 영역에서 정체감 유실의 증후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그런 가운데 청년 후기에서 차츰 안정추세를 갖게 된다. 그렇지만 연령증가가 반드시 정체감 성취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년후기에 자아정체의 모든 측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 연령변인의 중요성을 제시하였다. “지금-여기”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자신의 내적 상태를 점검하는 태도는 정말 중요하다. 그로써 자기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는 존재이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명확히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인간의 성격(personality): 인성(human nature) 퍼스낼리티는 보통 ‘성격’으로 새겨지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기질만이 아니라 개인의 인격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특질을 통틀어 말한다. 심리학자 칼 A. 메닝거는 “한 개인 전체로서의 뜻, 즉 그의 키, 체중, 애정, 증오, 혈압, 반응 등은 물론이고 그의 미소도 희망도 흉하게 구부러진 다리도 비대한 편도선도 이 모두를 포함시켜 논하여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 전부를 뜻하며, 또한 그가 장차 되고자 생각하고 있는 것 전부를 뜻한다.”라고 말하였다. (1) 생물학적 요인: 유전적인 성향, 비교적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생리, 내분비 기능을 말한다. ◈ 기질(temperament)-부모로부터 이어받은 한 세포액, 생리적, 심리적인 잠재력으로 육체적 구조의 범위 안에 한정되어 있다. 즉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2) 환경적인 요인: 경험, 습관, 사회적 태도를 말한다. ◈ 인격(character)-훈련, 교육, 기본적 태도, 신앙, 원칙, 동기 등에 의해 기질이 변화된 결과이다. 지, 정, 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그리고 기후와 날씨, 가정의 구조, 음식물, 풍습, 학교, 친구, 경제적인 법칙과 사회적인 법칙, 육체적, 정신적으로 생기는 인생의 이상한 사건, 병, 부상, 슬픔, 실망 등 누구나 언젠가는 당하게 되는 충격들을 내용으로 한다. 성격의 구조는 행동(behavior)이 아니다. 많은 자녀들이 작은 일이건 큰 일이건 그 부모의 흉내를 내거나 그들의 태도나 정서반응의 일반적인 형태에도 자녀들이 부모의 흉내를 내는 것이 유전에 의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상의 여러 가지 작은 점들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같은 경우가 많으며, 또 그것이 유전된다는 것이 알려져 있으므로, 행동의 경향이 부모와 자녀사이에 닮은 점이 있으면 그것도 역시 유전의 경향이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 견해를 반박할 수 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다. 괴물 칼리굴라는 저매니스카의 아들이었는데 저매니스카는 훌륭한 인격자였다. 더구나 저매니스카는 매우 천한 여자 아그리피나의 아버지이기도 했으며 저 유명한 폭군 네로의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잔혹한 도미산은 총명하고 인정 많은 베스페샨의 아들이며, 대 범죄자 코모더스는 훌륭한 마카스 오릴리안스 안토니우스의 아들이었다. 성 어거스틴의 아버지는 악한이었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의 어머니는 미친 사람이었고, 존 케플러의 부모는 성격이 매우 이상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기질의 유전과 환경적인 요소에서 얻어지는 인격은 현저한 구분이 있음을 분명히 하고자 위함이다. 유전적인 성향은 아이의 직접적인 양육을 맡게 되는 어머니나 대리모에 의해, 또한 환경적인 것에서 변인을 갖는다. 그 양육 대상관계가 밝고 진취적인 인성을 갖고 있다면 키워지는 아이는 긍정적인 인성을 갖게 되고 반면에 키우는 양육자가 우울하고 신경질적이며 비관적인 사람이라면 키워지는 아이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부정적인 경향을 갖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각 개인의 퍼스낼리티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금숙(선교회 가정 사역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