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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상.장례(喪.葬禮) 절차/ 2016-03-31
기독교 상.장례(喪.葬禮) 절차 † 기독교 상.장례(喪.葬禮) 절차 기독교식 상례에서는 운명하기 전 임종에서부터 하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가 목사의 집례(執禮) 아래 이루어집니다. 임종과 더불어 찬송과 기도로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뜻의 예배를 봅니다. 초종 중에는 매일 목사의 집례 아래 기도회를 갖고,유가족은 아침저녁으로 빈소에서 기도회를 가지며 찬송이 끊이지 않게 하며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일반 상례와 틀린 점은 곡을 하지 않으며, 음식을 차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조석으로 전을 올리거나 상식을 올리지 않으며, 염습시에 매장포로 묶지도 않습니다. 성도가 임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셨다는 뜻으로 소천이라 합니다. 기독교 장례는 성도가 소천하시면 그 영혼은 이미 하나님 품으로 가셨으므로 남은 육신을 처리하는 일인데 미신적인 행위와 미신적은 일을 일체 삼가하고 모든 예식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며 드리는 이 예배는 이미 천국가신 고인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사와 절차를 말합니다. 특히 기독교 장례예식시 근조화에 쓰는 글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반드시 소천이라고 써야 합니다.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 하고 일가 친척이 운명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신학적 이론으로 개인적 종말론에 해당됩니다. 개인적 종말론은 인간 개인의 육체적 사망과 사후의 상태를 논하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이 죄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지만, 신자에게 죽음은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되고 또 괴로운 세상을 떠나 다시 죽음도 없고 저주도 없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영생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캘빈은 만약 하늘나라가 우리의 조국이라고 한다면 이 땅이야말로 망명(亡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요, 최고의 기쁨이요 복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잘 알아듣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죄의 고백,그리고 예수그리수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음을 확신하게 하며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분명히 보여주어 죽음을 두려움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죽음에 임박한 교우를 돌보려 한다면 의식이 분명할 때 심방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게 하고, 혹 기력이 쇠하여 언어구사가 곤란할지라도 그 순간은 많은 말이 필요없고 한마디의 상징적인 언어나 몸동작으로라도 신앙의 확신을 그의 의식 속에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소망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 들려주고, 조용하고 은혜로운 찬송,특히 본인이 즐겨 불렀던 찬송으로 마음의 평안과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또 임종 직후에는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유족들과 친척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과 찬송으로 슬픔을 소망으로 이길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 목회자는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 고통 중에서도 약해지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돕는 것을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한 생명의 마지막을 돌보는 것은 한 생명의 영원한 승리로 인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순간입니다. 돌봄의 실수로 본인과 가족에게 슬픔을 주지 않도록 어떤 일보다 먼저 시행해야 합니다. 환자가 숨을 거두어 운명하게 되면 시신을 정성껏 처리하고,시상 위에 안치하여 흰 천으로 덮어서 서늘한 곳에 모신 후 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깨끗한 탁자를 놓고 위에 고인의 영정과 유품 등을 놓습니다. ◐ 임종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우리는 지금 주께서 이 땅 위에 보내셨다가 때가 되어서 불러가신 (직분 이름)의 임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 =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41장> 다같이 ♠ 기도 - 생략할 수 있음 - 맡은이 ♠ 성경봉독 -눅 16:19-31, 약 4:13-17 - 주례자 ♠ 위로의 말씀 -아브라함의 품-주례자 ♠ 찬송 <532장 539장> 다같이 ♠ 축도 -주기도- 목 사 2)입관식(入棺式)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여 한몸이 된 유지체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자기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도와주며 고통을 받는 형제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영광과 기쁨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죽음도 충격적이지만 그 모습(흔적)을 다시는 볼 수 없게 입관하는 일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이와 같이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운 일들을 당했을 때에 교회와 목회자는 모든정성과 수고를 다해서 상가의 분위기와 신앙의 상태가 달라지도록 최선을 다해 상가를 보살펴 주며, 슬픈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입관 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의와 관이다. 이는 교회의 경조부(상례) 내 간사(염사)가 처리해 줍니다. 교회가 적어서 상례부가 없다면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장의사에 부탁하면 입관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해 줍니다.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보통 운명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관식을 올릴 때는 다음 세가지와 같은 입관 상태에서 해야 합니다. ①시신에 수의를 입혀 입관한 다음 관 뚜껑을 덮어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우고 합니다. ②관 뚜껑은 덮으나 나무 못은 박지 않고 결관하지 않습니다.(부활을 위하여) ③관 뚜껑을 덮지 않고 열어놓고 예배를 드린 후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웁니다. 위의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가장 좋으리라 생각되지만 상주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합니다. ★ 입관식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입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조문객 여러분의 조의와 위문에 감사하면서 엄숙한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식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①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290장> - 다같이 ♠ 기도 - 맡은이 ♠ 성경봉독-베드로전서 2:11 ∼ 12- 주례자 ♠ 고인의 약력 맡은이 고인의 약력을 알고 예식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게 되면 도움이 될 줄로 믿기 때문에 위로의 말씀 전에 할 것입니다. ♠ 조가(弔歌) - 맡은이 ♠ 위로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조사 맡은이 ♠ 찬송 <291장> 다같이 ♣ 축도 - 목 사 입관식이 끝나면 병풍을 세우고 관을 놓고 관 앞에 작은 상을 놓아 사진과 유품을 올려놓거나, 관이 보이지 않게 병풍 뒤에 둘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분향은 하지 않고 헌화(獻花)를 합니다. 그러므로 일반 조문객들을 위해 헌화할 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기독교 집안에서도 일반 조문객을 위해 분향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서로 협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출관식(出棺式) 출관식은 조문온 조문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인정하게 하고, 인간의 무능함과 유한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모든 예식이 그러하겠지만 출관식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고인의 모든 흔적(모습)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예식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모든 순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유족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어야 하며, 셋째는 이 의식에 참석하신 분들게 신앙의 확신과 선교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예식이 진행되어져야 합니다. 출관식 식순 ♣ 개식사 - 주례자 고 000씨를 안장하기 위하여 수의를 입혀 입관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으면서 출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34장> - 다같이 ♠ 기도 -생략할수 있음-맡은이 ♠ 성경봉독 -고후 5:1-9-맡은이 ♠ 위로의 말씀 -영원한 집- 맡은이 ♣ 기도 - 설교자 ♠ 찬송 <539장> - 다같이 ♣ 축도 - 주기도-목 사 ① 장례일 : 재래의 전통상례에 있어서 장례일은 짝수 일을 피하고, 홀수 일은 3, 5, 7 일로 정했으나,근래에는 대개 3일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수에는 얽메일 필요가 없으며 주일이 겹칠 때에는 2일 혹은 4일장으로 해도 무방합니다. ② 장지 : 교회 묘지, 공원 묘지, 선산을 이용해도 무방하며, 화장을 해서 성서에 위배되는 일은 아닙니다. 합장할 경우에는 앞에서 보아 좌측에 남자, 우측에 여자로 합니다. 토질은 물이 나지 않고 방향은 어느 곳이나 상관 없으나 남쪽을 향한 곳이면 더 좋고,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은 북쪽을 향하여 바라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방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합니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지의 위치를 높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나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낮은 곳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뒷배경이 든든하니까 아래 낮은 곳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③ 약력 소개, 조사, 조가 : 고인의 선행이 조객들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나, 고인이 즐겨불렀던 찬송을 다시 부름으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순서를 가진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전도와 신앙적 결단의 기회가 되도록 집례자가 유도해 의식을 진행시킨다. ④ 순서 ; 운명하는 장소는 사고로 인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가 집이나 병원이지만,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자택이나 예배당, 병원, 구민회관,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앞 또는 좌우로 앉거나 서게 하고 집례자는 관 앞 적당한 장소를 선택하는데 모인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예식을 집행해야 합니다. 고인의 호칭은 고 000직분명(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을 부르고 직분이 없는 자에게는 고 000성도 로 통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믿지 않고 돌아간 후 가족이 원할 때에는 연령에 따라 선생님, 어른,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 등 고인에 따라서 적절한 호칭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 의식 순서는 집례자 또는 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대개는 개식사, 기원(신앙고백, 예배), 찬송, 말씀, 축도 후 장지와 그 외의 모든 것을 알리는 광고를 한 후 장지로 떠납니다. 조가나 조사가 있을 때에는 조가는 말씀 전에, 조사는 말씀 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식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할 수 있으며, 조사 전에 약력을 소개하면 조사를 듣는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는 데 좋을 것입니다. <기도문> ♥ 예1)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사셨던 우리 믿음의 형제였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소망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2)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이 엄청난 사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내세에 대한 확실한 신앙으로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예3) 고인은 믿으나 믿지 않는 유족을 위하여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 하기 위하여 출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고인이 사랑했던 자녀들(유족들)에게 아버지(어머니)의 신앙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선친의 교훈을 따라 살면서 실천하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⑤운구 행렬 : 출관식이 끝나면 장지에 가지 못하는 조객들은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운구가 떠날 때까지 이를 지켜봅니다. 운구 행렬의 순서는 고인의 영정, 집례자, 영구, 이어서 상제들과 조객들이 뒤따르게 된다. 영구는 머리에서부터 나오도록 모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대문 밖에서 찬송을 계속 부르며 뒤에 따르도록 한다. 골목이 좁을 때는 영구차가 있는 곳에서 차가 떠날 때까지 부릅니다. 영구차가 있는 곳에 영구가 도착하면 고인의 사진을 든 사람을 관이 들어갈 바로 앞에 서게 하고 관을 영구차에 실으면 사진은 영구차 맨 앞 좌석에 앉게 하며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앉아서 떠납니다. 이때 집례자도 함께 타야 합니다. ⑥선두차 : 고급 승용차에 검은 띠를 두르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영구차 앞에 간다. 이것을 선두차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선두차를 부나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영구차는 누구나 다 알라볼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거리를 지나도 영구차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면 편리하게 빨리 장지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굳이 선두차를 두지 않아도 됩니다. 4) 하관식(下棺式) 하관식은 죽은 사람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기 때문에 격려와 용기를 주어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내려오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 믿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종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제림과 세상의 종말과 심판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무덤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주의 재림 때 성도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과 고인의 영광과 평안의 세계로 옮겨갔다는 말씀을 통해 확신하게 하고 위로 받게 하며 안정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세상 종말이 이루어질 최후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먼저간 사람을 만날 기대 속에 신앙 생활에 힘쓰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믿지 않고 돌아간 경우라면 우리의 가는 길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내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며, 고인의 영혼이나 구원을 위한 기도나 말씀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생사는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구원의 역사도 우리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 취토 하관식이 끝나면 취토(取土)를 하게 되는데, 취토는 열어놓았던 횡대를 다시 덮고 관 위에 흙을 덮는 것을 말합니다. 흙이 관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가장 슬프기 때문에 식순에 넣으면 취토를 할 때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식을 마치고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취토 전에 꽃이 있으면 먼저 헌화한 후 할 수도 있으며, 그 순서는 주례자가 먼저한 후에 유족, 친척, 친지, 조문객순으로 합니다. 취토할 때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나다. 이제 우리는 고 000씨의 육신을 땅에 안장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에 속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으면서 소망 가운데 살기로 다짐하겠습니다. ♣ 하관식 식순 개식사 - 주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하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시며 육신은 ?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려 보내는 순간으로 이제 그의 육신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신앙으로 위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①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188장>- 다같이 ♠ 성경봉독 -고전 15:35-49-주례자 ♠ 위로의 말씀-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찬송 <293장> 다같이 ♠ 축도 목 사 (나) 성분 하관식이 끝나면 일하는 분들이 작업을 시작할 때 계속 찬송을 부르며 그들을 격려한다. 전통 장례식에서는 봉분이 완성되면 성분제를 지내게 됩니다. 이때 종교가 같지 않은 사람은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관 후 바로 떠나지 말고 흙이 어느 정도 채워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예의입니다. (다) 묘비 묘비는 묘 앞에 세워 누구의 묘인지를 나타내는 표시이므로 아담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표시 방법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앞에서 돌아가신 분의 직분과 이름, 그리고 부활에 관한 성구나 평소 고인이 은혜받은 성구를 기록하고, 뒤에 자손의 이름, 옆에는 생년월일과 죽은 연월일을 기록하게 됩니다. 부부 합장일 경우 묘의 전면에서 보아 왼쪽이 남편 오른쪽이 아내 의 생년월일과 돌아가신 연월일을 기록합니다. (라) 마무리 한 사람의 장례(매장) 절차는 임종에서부터 하관까지로 마치게 됩니다. 유가족 대표나 집례자가 모든 순서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 가운데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리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협력해 주신 조문객들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기도해 주시라 는 부탁의 말로 모든 의식을 마칩니다. 장지에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면 식사를 하면서 위로를 하기도 하며, 상주들은 조문객들을 찾아다니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 의식은 마쳤지만 유족들은 묘비, 묘테, 잔디, 그 외의 일이 남아 있지만, 첫 성묘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당일에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하산합니다. ★ 구약성서와 장례 구약성경에서는 장례식에 대해 의외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초상이 나면 애곡으로써 장례는 시작된다. 애곡은 슬픔의 표현으로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애곡은 친족의 의무이며 문상객들도 애곡한다. 애곡은 초상 때부터 시작해서 묘지에서 그리고 매장이 끝난 뒤에도 보통 7일간계속한다(창 50:10 이하, 삼상 31:31) 예외로 모세와 아론을 위해서는 30일간(민 20:29, 신 34:8) 야곱을 위해서는 70일 간(창 50:3) 애곡했다. 애가를 지어 부르기도 한다(삼하 1:19-27, 3:33-34, 겔 19:1-4) 이것은 오늘날 조사와 같다. 이는 주로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고인의 선행과 용감성 등 여러 가지 업적 등을 이야기한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이 슬피 부른 노래가 있다(삼하 1:19-27)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관(棺)을 사용하지 않는다. 관에 관한 유일한 언급은 애굽에서의 요셉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창 50:6) 시체는 상(床)에 눕히고 천으로 싼다. 야곱과 요셉, 아사왕의 시체에 향(香)을 넣었지만(창 50:2, 26, 대하 16:14)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행하지 않았다. 장례 행진을 위해 시체는 상여로 운반했다(삼하 3:31 이하, 대하 16:14) 여러 사람이 메고 다녔는데 우리나라의 옛날 상여와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장례는 보통 1일장으로 지냈다. 하루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 이유는 위생 상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하려고 했고, 또 다른 이유는 부정(不淨)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무덤은 대개 언덕에 구멍을 파서 만들었거나 땅을 파서 매장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장례하기 위해 헷 족족 에브론에게 은 4백 세겔을 주고 밭과 막벨라 굴을 사서 가족 묘지를 삼았다(창 23:16-17) 묘지는 고인이 생전 거주하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나 연고지에 만들었다. 막벨라 굴에는 사라를 위시하여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야곱 등 가족들을 매장하였다. 다윗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왕상 2:10) 그곳이 다윗의 묘지가 되어 역대 왕들이 묻혔다. 그러나 므낫세 왕과 여호람 왕 같이 인기가 없고 불경건한 왕들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지 않았다(왕하 21:18, 대하 21:20) 구약시대 장례를 중요시한 것을 전도서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식을 백 명이나 두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할지라도 인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죽어서도 평안히 묻히지 못할 신세라면 이것은 아예 낙태된 아이보다 못하지 않겠는가(전 6:3) 라고 했다. 구약성경은 생(生)과 사(死) 그리고 장례를 똑같이 하나의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러므로 독부 이세벨의 시체를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 먹을 것이라고 저주하였고(왕하 9:10)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예언자들의 시체는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리라(왕상 13:20-22) 하였고 불경건한 여로보암 왕(왕상 14:11)과그의 뒤를 계승한 바아사 왕(왕상 16:4)도 같은 선고를 받았다. 구약에서는 해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고향을 방문했고(삼상 1:21, 9:12-13, 20:6, 28-30) 이 때 주로 높은 곳 (왕상 3:4, 11:7, 호 4:13, 10:8, 암 7:9)에서 제사를 드렸으며(창 35:20, 삼상 9:12-13, 욥 27:15, 사 53:9) 이곳에서 추도예식이 있었다고 드 보(De Vaux)는 주장한다. 특히 족장들이나 위대한 조상들의 무덤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일찍부터 일종의 성역화(聖域化)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중세교회 중세 교회의 장례 양식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으나 내용적으로는 연옥설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묘지에서만 아니라 제단에서 행하는 의식을 차차 존중히 여기면서 죽은자를 위한 진혼 미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의 평화와 승리에 근거한 장례의식이 차차 행해지지 않고 슬픔이 가득한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실감하는 형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유족과 지도자들도 죽은 자가 직면한 연옥에서의 고통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검은 상복을 입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연옥 사상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590-604)에 이르러 본질적인 교리가 되었다. ★ 신약성서 신약성서의 몇가지 장례기사를 통해 신약시대의 장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 행렬 기사에서 어느 정도 그 시대 장례를 짐작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큰 때를 지어 상여를 따라 온 것은 이웃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기는 공동체 의식이었고, 장례 행렬이 있는 것은 매장하기 위한 행렬이다(눅 7:11-17) 야이로의 딸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피리를 불며 곡하며 떠드는 무리가 있었다(막 6:37-39)는 것은 초상이 나면 애곡하는 것은 슬픔의 표현이며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물론 문상객들도 애곡하였다. 애곡은 흔히 직업적인 곡꾼들을 고용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반드시 애곡하는 여인과 둘 이상의 악사가 주로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흔히 악기가 동원되기도 했는데 특히 피리를 사용했다고 한다(대하 35:25, 렘 48:36, 마 9:23) 나사로의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요 11:38) 나사로의 시체의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요 11:44)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수의를 입힌 것과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체를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소렴(小斂)이라 하고, 소렴을 치른 다음 날에 다시 시체를 옷을 거듭하고 이불로싸서 베로 묶는 것을 대렴(大斂)이라고 한다(큰 사전에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시체를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그리고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모시고 큰 돌로 무덤 입구를 막았다(마 27:60, 요 19:38-42)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엄벌을 받아 그 자리에 고꾸라져 숨지니 젊은이들이 들어다 그 시체를 싸가지고 내어다 묻었다. 그 후 삽비라도 죽었으므로 떠메고 나가 그 남편 곁에 묻었으니(행 5:5-6, 10) 부부를 합장한 것이다. 욥바의 여제가 다비다가 죽은 사람들이 그 시체를 깨끗이 씻어서 이층 방에 눕혀 놓았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그녀가 살았을 때에 만들어 두었던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면서 애도했다(행 9:37-39) 신약성경에서 장례 기사를 보면 독특한 매장 형식이나 장례 의식을 엿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어떤 의식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신약성경은 복음과 그 전파 상황은 열심히 강조하면서도 그 주변의 사건들은 거의 생략하였다고 보여진다. 여기에 아무엇도 기록되지 않았다고 의식도 없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교회로서의 독특한 의식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장례 기사를 종합해 보면 사람이 죽으면 가족과 친족들이 애곡했고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도 울었다(요 11:35) 시체는 깨끗이 씻기고 방에 안치한 후 장례를 준비했다. 시체에 향료를 바르고 손발을 묶고 고운 베로 감았다. 가족과 주의의 인사들에 의해 장례가 진행되었고 시체는 상여로 운반되었으며 장례방법은 거의 매장이었고 부부는 곁에 묻었으며 장례는 보통 1일장이었다. ★ 초대 교회 장례는 원래 가족의 책임으로 진행되었으나 이웃 사람들이 무관심할 수 없는 일이므로 자신의 일과 같이 슬퍼하면서 적극적으로 장례일에 협력하였다. 장례는 그 가족만의 개인적인 아니라 공동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하는 일로 여겨 실질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가가 있으면 장례가 끝날 때까지 온 마을이 협력하였다. 욥바의 다비다가 죽었을 때 친구들이 모두 울었고,시체를 씻어 다락방에 눕히고, 다비다가 생전에 만들었던 옷들을 내어 보이면서 고인을 추모한 것은 이웃들의 협력이 얼마나 열심이었던가를 엿볼 수 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며 생활 공동체이므로 장례는 공동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온 교회가 협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초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장례를 맡아 집행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장례식을 거행하지 않는다고 사후의 운명이 슬프게 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유족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 같이 죽음을 경험할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엄숙한 마음을 자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초대 교회는 장례 의식과 매장에 기독교 신앙이 용납할 수 없는 죽은 자를 위한 제사와 미신적 습관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적합하게 지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에 적합한 장례를 위해서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훈련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러한 지도 과정을 지나는 동안 교회의 장례 의식도 확립하게 되었다. 고대의 장례 의식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이교적인 것을 배제하면서 어떤 것은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부여하여 교회가 흡수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예배는 장례 의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자의 신앙의 구체적 표현으로 장례도 신앙을 기본으로 한 행위이므로 교회는 초기부터 장례 때 시편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 고대 교회의 장례는 준비와 장례 행렬과 매장 등 세 부분으로 진행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즉시 죽은 자의 눈을 쓸어내려 감기고 그 후에 시체를 깨끗이 씻고 기름을 바르고 흰 베로 시체를 싸고 관에 넣었다. 왕이나 감독이나 사제같은 이는 공식적인 복장을 입히기도 하였다. 죽은 자의 유해를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 음식물을 드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초기에는 금지하다가 차차 일반화되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하나님 앞으로 가는 개선으로 믿고 생화로 장식하는 것을 면류관으로 여겼다. 세례를 받을 때 죄의 몸은 이미 죽고 예수의 신부로서 약속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죽음은 그것을 위한 한 과정으로 알았다. 장례 준비 과정에서 애곡할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으로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고 시편을 노래하였다. 초기에는 자택에서 장례를 치르다가 후기에는 유해를 회당으로 옮겨 하루 밤을 보내면서 시편을 조용히 노래하였다.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하면서 유족을 위시하여 살아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함이었다. 장례 행렬은 유해가 있던 장소에서 묘지까지 박해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낮에 행하였다. 밤에 장례 행렬이 진행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교도와 사람의 눈을 피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범죄자의 장례 등이다. 장례 때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낮에도 등불을 밝히고 촛대를 들었다. 이것은 부활의 희망을 상징한 것이다. 영구를 상여 위에 놓고 친척이나 친구들이 어깨에 메고 시편과 할렐루야를 노래하면서 행진했다. 장례 행렬의 행진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그 때는 곡하는 여자들이 앞장서서 큰 소리로 곡하고 다음에 상여가 따르고 그 뒤에 사람들이 자기 몸을 두드리며 곡하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행위를 금하고 부활 신앙에 적합한 행위를 하도록 가르쳤다. 그 결과 절망적으로 슬퍼하는 행진에서 장엄한 희망이 가득한 행진으로 변하게 되었다. 검은 상복을 입게 된 것은 대략 8세기 경부터라도 생각된다. 매장은 유해와의 고별로부터 시작된다. 교인들이 유해 주위에 둘러서서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도 거행했다. 성찬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의 기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 죽은 자에게도 떡과 포도주를 주는 일이 있었으나 곧 금지되었다. 이미 준비된 무덤에 천으로 싼 유해가 옮겨지고 기도와 찬미를 부르면서 흙을 덮었다. 매장할 때 고인을 추도하는 말을 한 것이 교부 시대의 문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매장 후 회식도 있었고, 3일째, 9일째 혹은 40일째, 친척과 친구들이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죽음이 결코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격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에서 때때로 모여 고인을 추모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 종교개혁 종교개혁 시대의 장례의식은 세가지 면에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죽은 자에 대한 교회의 보살핌이요, 둘째는 부활 신앙의 고백이요, 셋째는 구원에 참여할 육체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종교개혁자 중에도 칼빈(Calvin John 1509-1564)은 1561년의 제네바 교회 규정에 매장에 관해 기술하였다. 거기에는 죽은 자는 일정한 질서 밑에서 소정의 장소에 장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매장의 방법은 개인 자유에 맡기고 묘지까지 유해를 옮기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미신적 행위를 일체 금했다. 여기에는 신앙상의 규정보다는 시 당국의 정한 장례에 관한 규칙을 잘 지키도록 언급하고 있다. 장례가 교회의 일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개혁교화가 장례를 교회의 일로 정한 것은 그 후 시대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죽은 자를 매장하는 풍습을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보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도 이런 풍습이 오류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앙의 조상들은 매장의식을 엄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같은 풍습이 이방인들 사이에도 존속되어 그들 앞에 놓인 부활의 형상으로 그들이 깨우쳐지기를 원하셨다. 매장의식은 유익하지 못했지만 만일 우리가 그 목적은 현명하게 통찰한다면 우리에게는 유익한 것이 된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모든 사람이 함께 고백한다는 것은 그 불신앙에 대한 중대한 반박이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계속해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매장 풍습은 미신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함이라(마 26:12-13)고하신 것은 장례는 모든 것을 썩히고 말살하는 무덤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들어 갱신의 광경을 그려보게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례를 엄숙하게 지키는 것은 족장들도 시인하였거니와 그런 엄수는 그들이 장례를 믿음에 대한 가치있는 도움으로 생각했다는 증거가 된다. 만일 아브라함의 눈 앞에 이 세상보다 더 높은 가치와 종교가 보이지 않았다면 그는 그 아내의 무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세밀한 주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창 23:4, 19 기독교강요 3편 25장 루터(Luther Martin)는 장례를 교회의 일로 행하였으나 연옥 사상은 교황이 저지를 잘못이라고 배격하면서 부활 신앙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묘지에서 행하는 장례의식을 존중히 여겨 매장 전후에 예배는 드리면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금했다. 개혁 시대의 장례 예식은 성례적인 의식보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예배였다. 교회의 역사적 발전과 그 교화가 처한 문화적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요소가 강조되거나 어떤 요소가 보태지기도 했다. 칼빈은 묘지에서 적절한 장례 설교를 인정했으나 장례의식보다는 신앙의 신비를 강조하였다.
기독교 상.장례(喪.葬禮) 절차/ 2016-03-31
기독교 상.장례(喪.葬禮) 절차 기독교식 상례에서는 운명하기 전 임종에서부터 하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가 목사의 집례(執禮) 아래 이루어집니다. 임종과 더불어 찬송과 기도로 고인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는 뜻의 예배를 봅니다. 초종 중에는 매일 목사의 집례 아래 기도회를 갖고,유가족은 아침저녁으로 빈소에서 기도회를 가지며 찬송이 끊이지 않게 하며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게 합니다. 일반 상례와 틀린 점은 곡을 하지 않으며, 음식을 차리지 않고, 절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조석으로 전을 올리거나 상식을 올리지 않으며, 염습시에 매장포로 묶지도 않습니다. 성도가 임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셨다는 뜻으로 소천이라 합니다. 기독교 장례는 성도가 소천하시면 그 영혼은 이미 하나님 품으로 가셨으므로 남은 육신을 처리하는 일인데 미신적인 행위와 미신적은 일을 일체 삼가하고 모든 예식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며 드리는 이 예배는 이미 천국가신 고인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사와 절차를 말합니다. 특히 기독교 장례예식시 근조화에 쓰는 글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반드시 소천이라고 써야 합니다.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 하고 일가 친척이 운명할 때까지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합니다. 인간의 죽음은 신학적 이론으로 개인적 종말론에 해당됩니다. 개인적 종말론은 인간 개인의 육체적 사망과 사후의 상태를 논하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이 죄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지만, 신자에게 죽음은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되고 또 괴로운 세상을 떠나 다시 죽음도 없고 저주도 없는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영생을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캘빈은 만약 하늘나라가 우리의 조국이라고 한다면 이 땅이야말로 망명(亡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요, 최고의 기쁨이요 복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잘 알아듣게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직면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죄의 고백,그리고 예수그리수도를 믿음으로 용서받음을 확신하게 하며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분명히 보여주어 죽음을 두려움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죽음에 임박한 교우를 돌보려 한다면 의식이 분명할 때 심방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게 하고, 혹 기력이 쇠하여 언어구사가 곤란할지라도 그 순간은 많은 말이 필요없고 한마디의 상징적인 언어나 몸동작으로라도 신앙의 확신을 그의 의식 속에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소망에 관한 성경 말씀을 찾아 들려주고, 조용하고 은혜로운 찬송,특히 본인이 즐겨 불렀던 찬송으로 마음의 평안과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또 임종 직후에는 죽은 사람보다는 살아 있는 유족들과 친척들을 위해 위로의 말씀과 찬송으로 슬픔을 소망으로 이길 수 있도록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 목회자는 죽음의 공포와 육체적 고통 중에서도 약해지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돕는 것을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한 생명의 마지막을 돌보는 것은 한 생명의 영원한 승리로 인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순간입니다. 돌봄의 실수로 본인과 가족에게 슬픔을 주지 않도록 어떤 일보다 먼저 시행해야 합니다. 환자가 숨을 거두어 운명하게 되면 시신을 정성껏 처리하고,시상 위에 안치하여 흰 천으로 덮어서 서늘한 곳에 모신 후 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깨끗한 탁자를 놓고 위에 고인의 영정과 유품 등을 놓습니다. 1) 임종 식순 ★ 개식사 ♣ 집례자 우리는 지금 주께서 이 땅 위에 보내셨다가 때가 되어서 불러가신 (직분 이름)의 임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 =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41장> 다같이 ♠ 기도 - 생략할 수 있음 - 맡은이 ♠ 성경봉독 -눅 16:19-31, 약 4:13-17 - 주례자 ♠ 위로의 말씀 -아브라함의 품-주례자 ♠ 찬송 <532장 539장> 다같이 ♠ 축도 -주기도- 목 사 2)입관식(入棺式)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여 한몸이 된 유지체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자기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도와주며 고통을 받는 형제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영광과 기쁨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죽음도 충격적이지만 그 모습(흔적)을 다시는 볼 수 없게 입관하는 일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이와 같이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운 일들을 당했을 때에 교회와 목회자는 모든정성과 수고를 다해서 상가의 분위기와 신앙의 상태가 달라지도록 최선을 다해 상가를 보살펴 주며, 슬픈 마음을 안정시켜 줍니다. 입관 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의와 관이다. 이는 교회의 경조부(상례) 내 간사(염사)가 처리해 줍니다. 교회가 적어서 상례부가 없다면 기독교인이 경영하는 장의사에 부탁하면 입관에 관한 모든 일을 처리해 줍니다.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 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보통 운명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관식을 올릴 때는 다음 세가지와 같은 입관 상태에서 해야 합니다. ①시신에 수의를 입혀 입관한 다음 관 뚜껑을 덮어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우고 합니다. ②관 뚜껑은 덮으나 나무 못은 박지 않고 결관하지 않습니다.(부활을 위하여) ③관 뚜껑을 덮지 않고 열어놓고 예배를 드린 후 나무 못을 박고 결관하여 십자가 있는 관보를 씌웁니다. 위의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가 가장 좋으리라 생각되지만 상주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도록 합니다. ★ 입관식 식순 ♠ 개식사 - 집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입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조문객 여러분의 조의와 위문에 감사하면서 엄숙한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식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①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290장> - 다같이 ♠ 기도 - 맡은이 ♠ 성경봉독-베드로전서 2:11 ∼ 12- 주례자 ♠ 고인의 약력 맡은이 고인의 약력을 알고 예식에 참여하여 말씀을 듣게 되면 도움이 될 줄로 믿기 때문에 위로의 말씀 전에 할 것입니다. ♠ 조가(弔歌) - 맡은이 ♠ 위로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조사 맡은이 ♠ 찬송 <291장> 다같이 ♣ 축도 - 목 사 입관식이 끝나면 병풍을 세우고 관을 놓고 관 앞에 작은 상을 놓아 사진과 유품을 올려놓거나, 관이 보이지 않게 병풍 뒤에 둘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분향은 하지 않고 헌화(獻花)를 합니다. 그러므로 일반 조문객들을 위해 헌화할 꽃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기독교 집안에서도 일반 조문객을 위해 분향 준비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며, 서로 협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3) 출관식(出棺式) 출관식은 조문온 조문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인정하게 하고, 인간의 무능함과 유한성을 깨닫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모든 예식이 그러하겠지만 출관식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고인의 모든 흔적(모습)이 집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기 때문에 예식에 있어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로는 모든 순서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회가 되어야 하고, 둘째로는 유족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어야 하며, 셋째는 이 의식에 참석하신 분들게 신앙의 확신과 선교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예식이 진행되어져야 합니다. 출관식 식순 ♣ 개식사 - 집례자 고 000씨를 안장하기 위하여 수의를 입혀 입관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달으면서 출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 신앙고백-사도신경-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534장> - 다같이 ♠ 기도 -생략할수 있음-맡은이 ♠ 성경봉독 -고후 5:1-9-맡은이 ♠ 위로의 말씀 -영원한 집- 맡은이 ♣ 기도 - 설교자 ♠ 찬송 <539장> - 다같이 ♣ 축도 - 주기도-목 사 ① 장례일 : 재래의 전통상례에 있어서 장례일은 짝수 일을 피하고, 홀수 일은 3, 5, 7 일로 정했으나,근래에는 대개 3일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이러한 일수에는 얽메일 필요가 없으며 주일이 겹칠 때에는 2일 혹은 4일장으로 해도 무방합니다. ② 장지 : 교회 묘지, 공원 묘지, 선산을 이용해도 무방하며, 화장을 해서 성서에 위배되는 일은 아닙니다. 합장할 경우에는 앞에서 보아 좌측에 남자, 우측에 여자로 합니다. 토질은 물이 나지 않고 방향은 어느 곳이나 상관 없으나 남쪽을 향한 곳이면 더 좋고, 이북에 고향을 둔 사람은 북쪽을 향하여 바라보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방향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합니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장지의 위치를 높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나 중국 사람들은 오히려 낮은 곳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뒷배경이 든든하니까 아래 낮은 곳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③ 약력 소개, 조사, 조가 : 고인의 선행이 조객들에게 교훈이 되는 것이나, 고인이 즐겨불렀던 찬송을 다시 부름으로 고인을 생각할 수 있다. 이 모든 순서를 가진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유족들에게는 위로가 되며, 주위 사람들에게는 전도와 신앙적 결단의 기회가 되도록 집례자가 유도해 의식을 진행시킨다. ④ 순서 ; 운명하는 장소는 사고로 인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가 집이나 병원이지만,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자택이나 예배당, 병원, 구민회관, 출관하는 장소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앞 또는 좌우로 앉거나 서게 하고 집례자는 관 앞 적당한 장소를 선택하는데 모인 사람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예식을 집행해야 합니다. 고인의 호칭은 고 000직분명(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을 부르고 직분이 없는 자에게는 고 000성도 로 통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믿지 않고 돌아간 후 가족이 원할 때에는 연령에 따라 선생님, 어른,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 등 고인에 따라서 적절한 호칭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 의식 순서는 집례자 또는 때에 따라 다를 수가 있지만 대개는 개식사, 기원(신앙고백, 예배), 찬송, 말씀, 축도 후 장지와 그 외의 모든 것을 알리는 광고를 한 후 장지로 떠납니다. 조가나 조사가 있을 때에는 조가는 말씀 전에, 조사는 말씀 후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의식의 분위기를 엄숙하게 할 수 있으며, 조사 전에 약력을 소개하면 조사를 듣는 사람들이 고인을 기리는 데 좋을 것입니다. <기도문> ♥ 예1)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사셨던 우리 믿음의 형제였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소망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2)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고 000씨를 000에 안장하기 위하여 출관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하시며 이 엄청난 사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내세에 대한 확실한 신앙으로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예3) 고인은 믿으나 믿지 않는 유족을 위하여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과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던 고 000씨를 000에 안장 하기 위하여 출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고인이 사랑했던 자녀들(유족들)에게 아버지(어머니)의 신앙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며 선친의 교훈을 따라 살면서 실천하도록 다짐하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⑤운구 행렬 : 출관식이 끝나면 장지에 가지 못하는 조객들은 상주와 인사를 나누고 운구가 떠날 때까지 이를 지켜봅니다. 운구 행렬의 순서는 고인의 영정, 집례자, 영구, 이어서 상제들과 조객들이 뒤따르게 된다. 영구는 머리에서부터 나오도록 모십니다. 이때 성도들은 대문 밖에서 찬송을 계속 부르며 뒤에 따르도록 한다. 골목이 좁을 때는 영구차가 있는 곳에서 차가 떠날 때까지 부릅니다. 영구차가 있는 곳에 영구가 도착하면 고인의 사진을 든 사람을 관이 들어갈 바로 앞에 서게 하고 관을 영구차에 실으면 사진은 영구차 맨 앞 좌석에 앉게 하며 유족들은 관을 중심으로 앉아서 떠납니다. 이때 집례자도 함께 타야 합니다. ⑥선두차 : 고급 승용차에 검은 띠를 두르고 헤드라이트를 켜고 영구차 앞에 간다. 이것을 선두차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선두차를 부나 권위의 상징으로 사용했으나 오늘날에는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영구차는 누구나 다 알라볼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거리를 지나도 영구차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면 편리하게 빨리 장지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굳이 선두차를 두지 않아도 됩니다. 4) 하관식(下棺式) 하관식은 죽은 사람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 돌아와야 하는 슬픔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기 때문에 격려와 용기를 주어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 내려오도록 해야 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영혼의 불멸을 믿고 있었으나 육신의 부활에 대하여 믿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종말이 있듯이, 그리스도의 제림과 세상의 종말과 심판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무덤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주의 재림 때 성도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는 사실과 고인의 영광과 평안의 세계로 옮겨갔다는 말씀을 통해 확신하게 하고 위로 받게 하며 안정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세상 종말이 이루어질 최후의 영광이 있음을 바라보면서 먼저간 사람을 만날 기대 속에 신앙 생활에 힘쓰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믿지 않고 돌아간 경우라면 우리의 가는 길은 그 누구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내일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야 하며, 고인의 영혼이나 구원을 위한 기도나 말씀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된다. 왜냐하면 생사는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며, 구원의 역사도 우리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 취토 하관식이 끝나면 취토(取土)를 하게 되는데, 취토는 열어놓았던 횡대를 다시 덮고 관 위에 흙을 덮는 것을 말합니다. 흙이 관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순간이 가장 슬프기 때문에 식순에 넣으면 취토를 할 때 유족들이 울음을 터뜨리기 때문에 식을 마치고 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취토 전에 꽃이 있으면 먼저 헌화한 후 할 수도 있으며, 그 순서는 주례자가 먼저한 후에 유족, 친척, 친지, 조문객순으로 합니다. 취토할 때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나다. 이제 우리는 고 000씨의 육신을 땅에 안장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늘에 속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으면서 소망 가운데 살기로 다짐하겠습니다. ♣ 하관식 식순 개식사 - 집례자 지금부터 고 000씨의 하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시며 육신은 훍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려 보내는 순간으로 이제 그의 육신의 모습을 다시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신앙으로 위로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신앙고백 -사도신경-다같이 ①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② 다같이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하겠습니다. ♠ 찬송 <188장>- 다같이 ♠ 성경봉독 -고전 15:35-49-주례자 ♠ 위로의 말씀-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주례자 ♠ 기도 주례자 ♠ 찬송 <293장> 다같이 ♠ 축도 목 사 (나) 성분 하관식이 끝나면 일하는 분들이 작업을 시작할 때 계속 찬송을 부르며 그들을 격려한다. 전통 장례식에서는 봉분이 완성되면 성분제를 지내게 됩니다. 이때 종교가 같지 않은 사람은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관 후 바로 떠나지 말고 흙이 어느 정도 채워질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예의입니다. (다) 묘비 묘비는 묘 앞에 세워 누구의 묘인지를 나타내는 표시이므로 아담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표시 방법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앞에서 돌아가신 분의 직분과 이름, 그리고 부활에 관한 성구나 평소 고인이 은혜받은 성구를 기록하고, 뒤에 자손의 이름, 옆에는 생년월일과 죽은 연월일을 기록하게 됩니다. 부부 합장일 경우 묘의 전면에서 보아 왼쪽이 남편 오른쪽이 아내 의 생년월일과 돌아가신 연월일을 기록합니다. (라) 마무리 한 사람의 장례(매장) 절차는 임종에서부터 하관까지로 마치게 됩니다. 유가족 대표나 집례자가 모든 순서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위로 가운데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드리며,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협력해 주신 조문객들께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기도해 주시라 는 부탁의 말로 모든 의식을 마칩니다. 장지에 점심 식사가 준비되어 있으면 식사를 하면서 위로를 하기도 하며, 상주들은 조문객들을 찾아다니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합니다. 의식은 마쳤지만 유족들은 묘비, 묘테, 잔디, 그 외의 일이 남아 있지만, 첫 성묘 때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며 당일에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하산합니다. ★ 구약성서와 장례 구약성경에서는 장례식에 대해 의외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초상이 나면 애곡으로써 장례는 시작된다. 애곡은 슬픔의 표현으로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애곡은 친족의 의무이며 문상객들도 애곡한다. 애곡은 초상 때부터 시작해서 묘지에서 그리고 매장이 끝난 뒤에도 보통 7일간계속한다(창 50:10 이하, 삼상 31:31) 예외로 모세와 아론을 위해서는 30일간(민 20:29, 신 34:8) 야곱을 위해서는 70일 간(창 50:3) 애곡했다. 애가를 지어 부르기도 한다(삼하 1:19-27, 3:33-34, 겔 19:1-4) 이것은 오늘날 조사와 같다. 이는 주로 고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고인의 선행과 용감성 등 여러 가지 업적 등을 이야기한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다윗이 슬피 부른 노래가 있다(삼하 1:19-27)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관(棺)을 사용하지 않는다. 관에 관한 유일한 언급은 애굽에서의 요셉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창 50:6) 시체는 상(床)에 눕히고 천으로 싼다. 야곱과 요셉, 아사왕의 시체에 향(香)을 넣었지만(창 50:2, 26, 대하 16:14)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행하지 않았다. 장례 행진을 위해 시체는 상여로 운반했다(삼하 3:31 이하, 대하 16:14) 여러 사람이 메고 다녔는데 우리나라의 옛날 상여와 흡사하다고 생각된다. 장례는 보통 1일장으로 지냈다. 하루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 이유는 위생 상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하려고 했고, 또 다른 이유는 부정(不淨)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무덤은 대개 언덕에 구멍을 파서 만들었거나 땅을 파서 매장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장례하기 위해 헷 족족 에브론에게 은 4백 세겔을 주고 밭과 막벨라 굴을 사서 가족 묘지를 삼았다(창 23:16-17) 묘지는 고인이 생전 거주하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나 연고지에 만들었다. 막벨라 굴에는 사라를 위시하여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 야곱 등 가족들을 매장하였다. 다윗은 죽어 다윗성에 장사되었다(왕상 2:10) 그곳이 다윗의 묘지가 되어 역대 왕들이 묻혔다. 그러나 므낫세 왕과 여호람 왕 같이 인기가 없고 불경건한 왕들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지 않았다(왕하 21:18, 대하 21:20) 구약시대 장례를 중요시한 것을 전도서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식을 백 명이나 두고 아무리 오래 산다 할지라도 인생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죽어서도 평안히 묻히지 못할 신세라면 이것은 아예 낙태된 아이보다 못하지 않겠는가(전 6:3) 라고 했다. 구약성경은 생(生)과 사(死) 그리고 장례를 똑같이 하나의 중요한 일로 여겼다. 그러므로 독부 이세벨의 시체를 묻어주는 사람이 없어 땅에 버려져 개들이 뜯어 먹을 것이라고 저주하였고(왕하 9:10)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예언자들의 시체는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하리라(왕상 13:20-22) 하였고 불경건한 여로보암 왕(왕상 14:11)과그의 뒤를 계승한 바아사 왕(왕상 16:4)도 같은 선고를 받았다. 구약에서는 해마다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고향을 방문했고(삼상 1:21, 9:12-13, 20:6, 28-30) 이 때 주로 높은 곳 (왕상 3:4, 11:7, 호 4:13, 10:8, 암 7:9)에서 제사를 드렸으며(창 35:20, 삼상 9:12-13, 욥 27:15, 사 53:9) 이곳에서 추도예식이 있었다고 드 보(De Vaux)는 주장한다. 특히 족장들이나 위대한 조상들의 무덤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일찍부터 일종의 성역화(聖域化)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중세교회 중세 교회의 장례 양식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으나 내용적으로는 연옥설의 영향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묘지에서만 아니라 제단에서 행하는 의식을 차차 존중히 여기면서 죽은자를 위한 진혼 미사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초기의 평화와 승리에 근거한 장례의식이 차차 행해지지 않고 슬픔이 가득한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실감하는 형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유족과 지도자들도 죽은 자가 직면한 연옥에서의 고통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검은 상복을 입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연옥 사상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590-604)에 이르러 본질적인 교리가 되었다. ★ 신약성서 신약성서의 몇가지 장례기사를 통해 신약시대의 장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인 성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 행렬 기사에서 어느 정도 그 시대 장례를 짐작할 수 있다. 동네 사람들이 큰 때를 지어 상여를 따라 온 것은 이웃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여기는 공동체 의식이었고, 장례 행렬이 있는 것은 매장하기 위한 행렬이다(눅 7:11-17) 야이로의 딸이 죽은 후에 사람들이 피리를 불며 곡하며 떠드는 무리가 있었다(막 6:37-39)는 것은 초상이 나면 애곡하는 것은 슬픔의 표현이며 죽은 자에 대한 예의이다. 그러므로 가족은 물론 문상객들도 애곡하였다. 애곡은 흔히 직업적인 곡꾼들을 고용하기도 했는데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반드시 애곡하는 여인과 둘 이상의 악사가 주로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흔히 악기가 동원되기도 했는데 특히 피리를 사용했다고 한다(대하 35:25, 렘 48:36, 마 9:23) 나사로의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었고 입구는 돌로 막혀 있었다(요 11:38) 나사로의 시체의 손발은 베로 묶여 있었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겨 있었다(요 11:44)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수의를 입힌 것과 같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체를 옷과 이불로 싸는 것을 소렴(小斂)이라 하고, 소렴을 치른 다음 날에 다시 시체를 옷을 거듭하고 이불로싸서 베로 묶는 것을 대렴(大斂)이라고 한다(큰 사전에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시체를 유대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그리고 아직 장사지낸 일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의 시체를 모시고 큰 돌로 무덤 입구를 막았다(마 27:60, 요 19:38-42)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엄벌을 받아 그 자리에 고꾸라져 숨지니 젊은이들이 들어다 그 시체를 싸가지고 내어다 묻었다. 그 후 삽비라도 죽었으므로 떠메고 나가 그 남편 곁에 묻었으니(행 5:5-6, 10) 부부를 합장한 것이다. 욥바의 여제가 다비다가 죽은 사람들이 그 시체를 깨끗이 씻어서 이층 방에 눕혀 놓았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그녀가 살았을 때에 만들어 두었던 속옷과 겉옷을 보여 주면서 애도했다(행 9:37-39) 신약성경에서 장례 기사를 보면 독특한 매장 형식이나 장례 의식을 엿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어떤 의식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신약성경은 복음과 그 전파 상황은 열심히 강조하면서도 그 주변의 사건들은 거의 생략하였다고 보여진다. 여기에 아무엇도 기록되지 않았다고 의식도 없었다고 주장할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교회로서의 독특한 의식이 확립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신약성경의 장례 기사를 종합해 보면 사람이 죽으면 가족과 친족들이 애곡했고 나사로가 죽은 후에 예수도 울었다(요 11:35) 시체는 깨끗이 씻기고 방에 안치한 후 장례를 준비했다. 시체에 향료를 바르고 손발을 묶고 고운 베로 감았다. 가족과 주의의 인사들에 의해 장례가 진행되었고 시체는 상여로 운반되었으며 장례방법은 거의 매장이었고 부부는 곁에 묻었으며 장례는 보통 1일장이었다. ★ 초대 교회 장례는 원래 가족의 책임으로 진행되었으나 이웃 사람들이 무관심할 수 없는 일이므로 자신의 일과 같이 슬퍼하면서 적극적으로 장례일에 협력하였다. 장례는 그 가족만의 개인적인 아니라 공동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하는 일로 여겨 실질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가가 있으면 장례가 끝날 때까지 온 마을이 협력하였다. 욥바의 다비다가 죽었을 때 친구들이 모두 울었고,시체를 씻어 다락방에 눕히고, 다비다가 생전에 만들었던 옷들을 내어 보이면서 고인을 추모한 것은 이웃들의 협력이 얼마나 열심이었던가를 엿볼 수 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며 생활 공동체이므로 장례는 공동 생활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온 교회가 협력한 것을 볼 수 있다. 초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장례를 맡아 집행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장례식을 거행하지 않는다고 사후의 운명이 슬프게 되기 때문이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유족에 대한 위로와 앞으로 같이 죽음을 경험할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엄숙한 마음을 자각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초대 교회는 장례 의식과 매장에 기독교 신앙이 용납할 수 없는 죽은 자를 위한 제사와 미신적 습관이 뿌리 깊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적합하게 지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기독교에 적합한 장례를 위해서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훈련을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러한 지도 과정을 지나는 동안 교회의 장례 의식도 확립하게 되었다. 고대의 장례 의식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이교적인 것을 배제하면서 어떤 것은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부여하여 교회가 흡수하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예배는 장례 의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예배는 예배드리는 자의 신앙의 구체적 표현으로 장례도 신앙을 기본으로 한 행위이므로 교회는 초기부터 장례 때 시편을 부르고 기도를 했다. 고대 교회의 장례는 준비와 장례 행렬과 매장 등 세 부분으로 진행하였다.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즉시 죽은 자의 눈을 쓸어내려 감기고 그 후에 시체를 깨끗이 씻고 기름을 바르고 흰 베로 시체를 싸고 관에 넣었다. 왕이나 감독이나 사제같은 이는 공식적인 복장을 입히기도 하였다. 죽은 자의 유해를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 음식물을 드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초기에는 금지하다가 차차 일반화되었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이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하나님 앞으로 가는 개선으로 믿고 생화로 장식하는 것을 면류관으로 여겼다. 세례를 받을 때 죄의 몸은 이미 죽고 예수의 신부로서 약속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죽음은 그것을 위한 한 과정으로 알았다. 장례 준비 과정에서 애곡할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으로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고 시편을 노래하였다. 초기에는 자택에서 장례를 치르다가 후기에는 유해를 회당으로 옮겨 하루 밤을 보내면서 시편을 조용히 노래하였다. 이것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하면서 유족을 위시하여 살아 남은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기 위함이었다. 장례 행렬은 유해가 있던 장소에서 묘지까지 박해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낮에 행하였다. 밤에 장례 행렬이 진행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교도와 사람의 눈을 피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범죄자의 장례 등이다. 장례 때 사람들은 흰 옷을 입고 낮에도 등불을 밝히고 촛대를 들었다. 이것은 부활의 희망을 상징한 것이다. 영구를 상여 위에 놓고 친척이나 친구들이 어깨에 메고 시편과 할렐루야를 노래하면서 행진했다. 장례 행렬의 행진은 옛날부터 있었으나 그 때는 곡하는 여자들이 앞장서서 큰 소리로 곡하고 다음에 상여가 따르고 그 뒤에 사람들이 자기 몸을 두드리며 곡하면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행위를 금하고 부활 신앙에 적합한 행위를 하도록 가르쳤다. 그 결과 절망적으로 슬퍼하는 행진에서 장엄한 희망이 가득한 행진으로 변하게 되었다. 검은 상복을 입게 된 것은 대략 8세기 경부터라도 생각된다. 매장은 유해와의 고별로부터 시작된다. 교인들이 유해 주위에 둘러서서 찬송과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도 거행했다. 성찬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의 기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 죽은 자에게도 떡과 포도주를 주는 일이 있었으나 곧 금지되었다. 이미 준비된 무덤에 천으로 싼 유해가 옮겨지고 기도와 찬미를 부르면서 흙을 덮었다. 매장할 때 고인을 추도하는 말을 한 것이 교부 시대의 문헌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매장 후 회식도 있었고, 3일째, 9일째 혹은 40일째, 친척과 친구들이 가정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죽음이 결코 산 자와 죽은 자의 간격을 막을 수 없다는 확신에서 때때로 모여 고인을 추모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 종교개혁 종교개혁 시대의 장례의식은 세가지 면에서 진행되었다. 첫째는 죽은 자에 대한 교회의 보살핌이요, 둘째는 부활 신앙의 고백이요, 셋째는 구원에 참여할 육체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종교개혁자 중에도 칼빈(Calvin John 1509-1564)은 1561년의 제네바 교회 규정에 매장에 관해 기술하였다. 거기에는 죽은 자는 일정한 질서 밑에서 소정의 장소에 장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매장의 방법은 개인 자유에 맡기고 묘지까지 유해를 옮기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미신적 행위를 일체 금했다. 여기에는 신앙상의 규정보다는 시 당국의 정한 장례에 관한 규칙을 잘 지키도록 언급하고 있다. 장례가 교회의 일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개혁교화가 장례를 교회의 일로 정한 것은 그 후 시대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죽은 자를 매장하는 풍습을 신성 불가침한 것으로 인정한 것은 그것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보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도 이런 풍습이 오류에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신앙의 조상들은 매장의식을 엄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같은 풍습이 이방인들 사이에도 존속되어 그들 앞에 놓인 부활의 형상으로 그들이 깨우쳐지기를 원하셨다. 매장의식은 유익하지 못했지만 만일 우리가 그 목적은 현명하게 통찰한다면 우리에게는 유익한 것이 된다.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을 모든 사람이 함께 고백한다는 것은 그 불신앙에 대한 중대한 반박이 되기 때문이다. 칼빈은 계속해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매장 풍습은 미신에서 생긴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함이라(마 26:12-13)고하신 것은 장례는 모든 것을 썩히고 말살하는 무덤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들어 갱신의 광경을 그려보게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례를 엄숙하게 지키는 것은 족장들도 시인하였거니와 그런 엄수는 그들이 장례를 믿음에 대한 가치있는 도움으로 생각했다는 증거가 된다. 만일 아브라함의 눈 앞에 이 세상보다 더 높은 가치와 종교가 보이지 않았다면 그는 그 아내의 무덤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세밀한 주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창 23:4, 19 기독교강요 3편 25장 루터(Luther Martin)는 장례를 교회의 일로 행하였으나 연옥 사상은 교황이 저지를 잘못이라고 배격하면서 부활 신앙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묘지에서 행하는 장례의식을 존중히 여겨 매장 전후에 예배는 드리면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금했다. 개혁 시대의 장례 예식은 성례적인 의식보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예배였다. 교회의 역사적 발전과 그 교화가 처한 문화적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요소가 강조되거나 어떤 요소가 보태지기도 했다. 칼빈은 묘지에서 적절한 장례 설교를 인정했으나 장례의식보다는 신앙의 신비를 강조하였다.
기독교 장례예식에 예배절차/ 2012-02-12
기독교 장례예식에 예배절차 1. 임종예배 수세를 거둔 다음 고인의 시신을 흰 홑이불(기독교십자위생보)로 덮고 목사님 집례하에 임종예배를 드리며, 이때 유가족들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위로의 설교를 필요로 한다. ① 예식사 ……………………………………………………………………………………….................................(집례자) 지금부터 ○○○형제(자매)의 임종예배를 거행하겠습니다. ② 묵 도(시편 23편을 낭독) …………………………………………………………………...............................(집례자)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 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 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③ 찬 송 …………………………………………………………………………………………................................(다함께) (329장 형제여 지체말라, 43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④ 기 도 …………………………………………………………………………………………................................(집례자) 영원하신 하나님, 인생이 세상에 오는 것도 세상을 떠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속에 되어짐을 믿고 기도를 드립 니다. 우리의 고○○○ 형제(자매)의 임종의 슬픔을 갖는 이 자리에서 참빛이신 하나님 아버지만 믿고 의지하옵 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가신 우리 ○○○형제(자매)의 모든 것을 아버지의 품안에 품어 주시옵소서. 슬픔에 싸인 유가족들과 고인과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내려 주옵소서.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⑤ 성경봉독(다음 성경말씀의 봉독) ………………………………………………………….............................(집례자) (약 4:9~10)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 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으시리라.” (참조: 요 14:1~6?27~28, 살전 4:13~18, 계 7:9~10:22) ⑥ 설 교 ……………………………………………………………………………………................................……(집례자) 슬픔의 극복(야고보서 4:9) 인생 생활에는 눈물 없는 날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시편 기자는 자기는 “주야에 눈물로써 음식을 삼았다”고(시 42:3) 하였으며, “자기가 먹는 식물과 마시는 것에 눈물이 섞였다(시 102:9)”고 고백한 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보내게 된 슬픔은 크리라고 봅니다. 신앙인들은 믿음 안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의 슬픔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한 슬픔 속에서 우리를 교훈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살펴야 합니다. 야고보서 중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앞에 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9)”는 말씀은 슬픔에 대한 적극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교훈 입니다. 첫째, 자기 반성의 기회를 삼자. 야고보가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 심으로 바꾸라는 것은 진실한 회개와 반성을 촉구하는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은 견딜 수 없는 슬픔입니다. 불교에서 인생의 팔고(八苦)를 말할 때 애별이고(愛別離苦)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슬픔입니다. 세상을 떠나신 이의 뜻을 어겼던 점과 거스렸던 일들을 부끄러워 하고 근심해야 합니다. 이 렇게 함으로써 떠나신 이와 더 가까이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위로와 평안을 소 유하게 됩니다. 오늘의 우리 잘못된 생활을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는 복을 받지만 오히려 그것을 웃고 즐기는 자는 그 날에 영원 히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미래의 소망을 갖자. 어떤 사람은 심각한 슬픔이 그의 살을 에이고 뼈를 갉으며 이로인해 그의 영혼이 쇠하다 못해 녹아 내리는 듯한 경험을 가지기도 합니다. 슬픔이 극도로 달한 자는 원래 말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 탈무드 법전에 슬픔이 깊을수록 혀끝을 덜 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지나치게 과장된 슬픔도 있어서, 소리 높여 허곡을 하는 호상꾼의 눈에 반드 시 눈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이 우리 앞을 가릴 때는 우리는 근시안이 되어 아무것도 안보이는 때도 있습 니다. 그러나 슬픔이 우리 앞을 가리워서 인생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슬픔의 공통점은 슬픔을 무서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대하면 그 슬픔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비교적 견딜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나 처자를 잃은 이들이 처음에는 못살 것 같이 생각되지만 세월이 흐름 을 따라 그 아픈 상처가 나아져가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슬픔을 통해 미래의 소망 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의 슬픔 때문에 앞날의 소망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주 앞에서 자기를 낮추라. 자기를 낮추라는 것은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의 임재를 기억한 다면 늘겸손할 수 있습니다. 고통이나 환난을 당할 때 인간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슬픔을 당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예레미아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자기 나름대로 애꿇는 애국심으로 동족에게 호소한 것이 도리어 민족을 파는 매국노, 반역자라는 낙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고독과 사회적인 추 방에서 슬프게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치내 자기 자신과 싸워 하나님의 능력의 굳센 것 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밤낮 울기만 하는 선지자가 아니라 동족의 잘못을 자기 잘못으로 느끼고, 동족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슬픔을 견디므로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밤 동안에는 비록 울음이 있으나 아침에는 즐거움이 오리로다. (시 30:5) ⑦ 기 도 ……………………………………………………………………………………… …(집례자) 온 인류의 생사화복을 임의로 주장하시며 섭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 오묘하신 뜻과 거룩한 경륜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사오리이까! 가정을 보시던지 교회의 형편을 보시던지 더 오래 오래 사시어서 하셔야만 할 일이 아직 태산같은 데 이처럼 졸지에 그 영혼을 부르시오니 하늘이 무너진 듯 구슬퍼함이 어찌 호곡되는 유족뿐이오리이까? 하나님이시여! 긍휼히 여기시고 또 긍휼히 여기사 신실한 안위와 소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묘하신 섭리와 그 거룩하신 뜻을 깨달아 아멘으로 응종하게 하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날 수 있다는 확실한 신념이 저희 믿음을 새롭게 하는 거룩한 활력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슬픔 가운데에서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귀한 소망을 주시옵고, 뛰어난 효성심을 가지고서 고인의 뜻을 이어 받아 귀한 가문을 더욱 빛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⑧ 찬 송(290장 괴로운 인생길 가는몸이)…………………………………………………..................... (다함께) ⑨ 축 도(혹은 주기도)………………………………………………………………………..................................(집례자) ※ 불신자 가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설교를 통하여 전도의 효과를 가질수 있다. 예수를 믿으라(요한복음 3:16)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종말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육신의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음 후에 반드시 내세가 있다. 그 내세에서 복을 누리느냐, 화를 받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있다. 말씀을 통하여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1)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 (행 4:12) (3) 믿는 자는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된다. (4)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게 된다.
기독교 장례예식의 세부사항/ 2016-03-31
기독교 장례예식의 세부사항 장례예식은 인생대사인 것이다. 믿음 안에서 침착하고 규모있게 준비하고, 엄숙하게 진행 해야 한다. 장례예식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은 실로 큰 것이며, 그리고 전도의 효과 임종에서 하관예식에 이르기까지 장례기간 중에 알아두어야할 사항이나 준비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임 종 임종은 일생중 가장 심각한 시간이며, 영혼과 육체가 분리하는 시간이요, 낙원과 음부가 결정되는 시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임종시에 예수를 영접하고 낙원을 약속 받았었다. 임종시에는 흩어져 있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둘러앉게 하고 유언을 들으며 구원을 확신시켜 드리고 (특히 불신자 가정에서는 전도의 사역에도 힘쓰며) 계속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소망중에 운명하시도록 해야 한다. (1) 임종을 알 수 있는 방법 ① 가래가 끓는다. ② 호흡을 몰아쉰다. ③ 말문이 막힌다. ④ 혈압이 내려간다. ⑤ 눈동자 초점이 흐려진다. ⑥ 탈지면을 코에 대면 호흡이 있나 없나를 알 수 있다. ⑦ 가슴(심장)부위에서 먼곳으로 부터 점차 손?발이 차가워 지며 굳어진다. (2) 임종시 가족이 하여야 할 일 ① 방이 비좁을 경우 세간을 밖으로 치운다. ② 시신을 방 한쪽으로 모신다. ③ 깨끗이 세탁된 옷으로 갈아 입히고 기저귀를 채운다. ④ 눈, 코, 입, 귀 등을 탈지면으로 막고, 턱을 받치고 고정시킨다. ⑤ 흰 홑이불 내지 기독교 십자위생보로 시신을 덮는다. ⑥ 방의 온기를 없앤다. (3) 유언(遺言) 고령으로 임종을 예기하였을 때 또는 병세가 위독한 중 조금 의식이 있을 때 자손들에게 재산관계, 기타 훈계를 남기는 것을 유언이라 하는데, 이를 잘 기록하여 두었다가 그대로 잘 지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이는 나중에 법적근거 가 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니 잘 보관하여야 한다. ① 유언의 방식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口授)증서의 5종류만이 법적으로 인정되어있다. ② 유언의 효력 재산 및 상속관계에만 법적효력이 있을 뿐이며 윤리적 사항에는 구속력이 없다. ③ 기타 유언에 관련된 사항은 민법 1060조~1111조를 참조할 것. 실의에 빠졌을 때 목사에 의해 받는 위로와 도움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교회와 교회내의 각 단체에서는 유가족들을 위한 기도와 봉사로써 그들을 격려해야 하며, 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뜻깊은 유대를 맺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기독교식 장례/ 2016-03-31
기독교식 장례 소 천 성도가 임종하면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셨다는 뜻으로 소천이라 한다. 기독교 장례는 성도가 소천하시면 그 영혼은 이미 하나님 품으로 가셨으므로 남은 육신을 처리하는 일인데 미신적인 행위와 미신적인 일을 일체 삼가하고 모든 예식은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심이 되며 시간, 시간 드리는 이 예배는 이미 천국가신 고인을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사와 절차를 말한다. 특히 기독교 장례 예식 시 근조화에 쓰는 글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쓰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반드시 \"소천\"이라고 써야 한다. 장례와 장례일 유사 이래로 사람이 죽으면 장의를 거행한다. 이 장의를 진행하는 방법을 \'장례\'라 한다. 장례는 지역?민족?종교 등에 따라 여러 가지 문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장례를 진행함에 고인을 모시는 방법으로 옛부터 토장(매장), 화장, 수장, 풍장 등으로 행하여져 왔고, 현대에는 매장, 화장이 주류를 이루며, 장례의 기간은 7일장, 5일장, 3일장으로 진행되어 오다 3일장으로 치루는 일이 현대사의 상?장례일로 보편화되었다. 기독교 장례는 장례 기간 중 주일이 겹치면 상가 형편에 따라 주일은 피하고 2일장 또는 4일장으로 장례를 진행한다. 또한 미신적으로 장례일을 택할 필요가 없고 반드시 임종 후 24시간이 지난 후 매?화장의 장례를 할 수 있다. 장례절차 1. 임종 준비 임종이 임박하면 평소 거처하시던 방이 환자에게 편안한 안식감을 주기 때문에 사용하던 방으로 모심이 좋다. 임종전 담임 목사님을 모셔 예배드림이 좋다.(목사님 부재 시 부교역자도 무방함.) 환자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과 환자를 보아야 할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환자를 혼자 두지 않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조용히 임종을 지켜본다. 환자가 있는 방에서 절대로 장례에 관한 일을 의논하여 환자가 듣게 해서는 안된다. 찬송과 기도, 말씀으로 천국의 소망과 확신을 일깨워준다. 유언/유서 기록준비.(녹음기도 있으면 더욱 좋다.) 가족들이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일을 진행함에는 미리 기독교 전문 장의사를 불러 의논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 적합한 찬송 : 545장, 544장, 228장, 226장, 222장과 적합한 말씀 : 요11장 17~27, 요14장 1~6, 고전15장 12~33, 계2장 1~4, 살전4:16~18. 2. 임 종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임종을 지켜보던 자녀손들은 숨진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기 위해 솜이나 얇은 화장지 같은 것으로 코 앞에 놓고 숨이 그쳤는지 확인한다. 임종전 교회에 미리 연락을 못했을 경우 먼저 교회 교역자 또는 구역장, 권찰, 장로님, 장의사에게 알린다. 수시를 한다 수시란 시신을 반듯하게 갈무리하는 절차로 다음과 같다. 1) 솜으로 입, 귀, 코 등을 막고 머리를 약간 눕히고 턱을 수건으로 바치고 눈을 쓸어 감긴다. 2) 시신이 경직되기 전 손과 발을 주물러 반듯하게 편다. 3) 방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화장대와 TV, 서랍장 등은 치우고 시신을 한쪽으로 옮긴다. 4) 얇은 천이나 홑이불로 얼굴과 몸을 덮는다. 보일러를 잠그고 창문을 약간 열어 환기시킨다. 장의사가 도착하지 않았으면 올 때까지 녹음기로 찬송을 틀어 놓는다. 고인의 사진을 찾아 놓는다.(없으면 증명사진을 찾아서 장의사의 도움을 받는다.) 친척, 친지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유족들은 울긋불긋하고 화려한 복장과 반바지와 짧은 치마는 피하고 희고 검은 검소한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3. 빈소(영좌) 설치 빈소에는 반드시 기독교 병풍을 세우고 음식물은 일체 차리지 아니하고 향은 피우지 않는다. (냄새가 많이 날 경우 창문을 열고 촛불은 켤 수 있다.) 고인의 사진을 상위에 세우고 평소 쓰시던 성경책을 앞에 펴놓는다. 상위에 생화 꽃꽂이를 놓는 것도 좋으며 헌화용 국화 (40~50송이)를 반드시 준비한다. 대문밖에 상가를 알리는 조등을 걸고 상가 입구 표시로 손님들이 쉽게 찾아 올 수 있도록 한다 4. 제반준비 장례일 확정(입관예배시간, 발인예배시간, 하관예배시간 등) 장지 확정(매장, 화장여부, 선산 또는 공원묘지 선택) 위 두 가지는 반드시 목사님, 기독교 전문장의사와 함께 상의한다. 진단서 발급처 확인 1) 지병이나 노환으로 돌아 가셨을 때는 파출소 또는 경찰서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사고사, 타살, 자살 일 경우 반드시 관할 파출소로 신고하여 검사 지휘를 받아야만 장례를 치룰 수 있다. 2) 천막, 꽃관, 장의차(리무진, 버스, 사체 운구차), 식사(도시락), 조객차량 필요의 유무를 확인하고 기타 필요한 장제품, 상복형태나 숫자를 파악한다. 3) 손님 접대용 음식물, 기타 그릇등 필요한 것을 확인하고 구입토록 지시한다. ※ 위 세 가지는 기독교 전문장의사와 함께 상의한다. 5. 협 조 슬픔에 있는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교역자와 성도들이 협력하여 자주 예배를 드림이 좋다. 경조부 또는 구역장, 권찰은 예배 시간마다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한다. 상가에서 밤을 지새울 때는 조용히 찬송을 부르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부덕한 오락은 피한다.) 여전도회에서 시장을 보고 손님을 접대하며 상가를 도운다면 교회 성도들간 화합에 매우 좋을 것이다. 믿지 않는 형제나 친지들에게 기독교 예식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협조를 구하는 것이 가족간의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교회에 형편이 된다면 발인 시 운구 위원을 미리 짜놓는 것도 좋다. 6. 입관 및 입관예배 입관예배 한 두시간전 가족들이 다 참여한 가운데 전문 자격증 소지자의 염사가 고인을 정성스럽게 목욕을 시키며 위생처리하여 수의로 갈아 입히고 입관한다. 염을 할 때 너무 슬퍼하여 큰 소리로 울거나 몸부림을 치는 일은 절제하고 조용히 참관하는 것이 좋다. (일꾼들이 차분히 일을 할 수가 있고, 본인의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관안에는 화학제품의 옷이나, 성경, 찬송을 넣지 않는다. 미신적인 일은 반드시 삼가야 한다.(품안이나, 관 안에 절대 돈을 넣지 않는다.) 입관이 끝나면 상복으로 갈아입고 빈소는 이전 상태로 하고 청결하게 하여 자리를 정돈하여 앉는다. 전문장의사는 목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함에 불편함이 없도록 앰프, 마이크, 보면대를 설치한다. 입관예식이나 모든 예식에 모든 친지들은 신앙이 없다 할 지라도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참여함이 마땅하다. 예배가 끝나면 작은 정성이라도 접대의 손길을 잊지 말도록 한다. 장지에 사용할 서류를 점검한다.(진단서, 등본, 필요 시 검사지휘서) 7. 조 문 빈소는 가능한 밝고 청결하게 하여 조문객을 맞이한다. 분향대신 생화를 헌화한다. 성도가 아닌 조객의 방문 시 헌화꽃을 한 송이드리며 묵념으로 해 주실 것을 부탁한다. 상주는 조문객의 기도가 끝나는 즉시 조문객과 맞절 또는 악수로 답례한다. 맏상주는 대표로 간단히 인사한다. (예로 바쁘신 가운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주는 조문객 배웅시 빈소 안에서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상주가 식사 또는 화장실에 갈 때와 부득불 빈소를 떠나야 할 때는 반드시 형제분과 교대하고 빈소를 비우지 않는다. 8. 발인예배 (출관예배, 환송예배) 시신이 장지로 떠나기 전에 유족과 친척, 친지, 온 성도가 함께 드리는 예배로 관을 내어놓고 예배를 드림이 좋다. 예배순서지, 고인의 약력, 상가대표 인사말씀을 미리 준비함이 좋다. 교회장일 때 현수막, 고인의 육성, 카메라 등을 준비한다. 운구위원 6명, 영정을 들고 갈 사람을 미리 준비하여 대기한다.(손자, 사위, 조카 등..) 목사님의 축도로 예배가 끝나면 목사님으로부터 영정사진, 관, 상주와 유족들의 순서대로 뒤를 따르고 성도들은 찬송을 부르며 뒤따른다. 관을 장의차로 옮겨 싣고 영정은 선도차에, 유족들은 장의차나 조객차에 탑승이 완료되었는지 확인 후 출발한다. 발인 시 준비사항 비석, 비문 작성점검, 선도차 등은 발인 시간 전에 대기하고, 묘소에 갈 차량 점검 및 도로비, 장거리 일 경우 운송도중의 간식, 도시락 및 장지 음식, 묘지 및 장의사 경비를 준비하여야 한다. 9. 하관예배 장지에 도착하면 운구하여 하관후 명정을 덮고 상주는 설교자 오른쪽에, 성도들은 왼쪽에 위치하여 관주위로 둘러서서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끝나면 취토 또는 헌화한다. (상주부터) 장지는 풍수지리, 지관에 관계된 사람을 부르지 말고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지는 곳, 양지바른 곳을 선택하면 좋다. 예배가 끝나며 조객들을 접대(점심)하고 먼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형편에 따라 답례품을 준비하는 집도 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탑승 후 귀가한다. 10. 삼우예배 우리 성도는 삼우가 큰 의미는 없지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를 한 후 묘지를 둘러보고 작업은 잘 되었는지 비문은 바르게 쓰였는지 확인한다. 예배가 끝나면 준비해간 음식을 나누며 형제간 화합하고, 위로하며, 격려하는 자리가 되면 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11. 추도예배(추모예배) 추도예배는 이미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며 그 날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주의할 점은 추도예배가 돌아가신 분을 위해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고인이 살아 생전에 사시는 동안 좋은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를 느끼며 그분이 어떻게 사셨는가를 생각하고 부모님으로부터 입은 사랑과 은덕을 기억하면서 고인의 아름다운 신앙의 덕을 후손들에게 길이 전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한 추도예배는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하는 시간이 되어 온 가족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가는 시간이 되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성도는 살아 생전 부모님께 효도해 드리고 꼭 예수님 믿고 천국 가시도록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장례절차/ 2016-03-31
기독교장례절차 기독교 장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로서 슬픔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고, 고인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예식입니다. 성도의 임종이 임박하면 교역자를 청하여 임종예배를 드리고 장례일정 및 제반 사항을 의논합니다.지나치게 슬픔을 표현하여 통곡하거나 큰소리로 기도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낳게 하시고 거두시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면 정숙한 주위환경을 조성하여 운명하는 이가 편안한 맘으로 가실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인의 생시에 육신의 몸은 성령이 거주하시던 전이며 생명의 장막이었으므로 가장 정중하게 시신을 염습(殮襲)하고 입관을 마친후 입관예배를 드립니다. \\\"죽은 사람의 입속에 구슬과 쌀을 물리는일\\\" 즉 반함(飯含)등을 해서는 안됩니다. 발인일자는 교역자와 의논하여 정합니다.근래에는 대개 삼일장으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일수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으며 주일은 피하고 그전 또는 후일로 합니다. 조객문이 분향할 수 있는 향, 또는 현화할 수 있는 꽃을 준비하되 지나치게 낭비적인 고가의 화환이 장례식장을 어지럽혀 도리어 경건하고 엄숙한 의식이 손상되지 않도록 합니다.운구가 장지로 떠나기 전에 엄숙하고 정중하게 발인 예배를 드립니다. 운상시 집을 떠날 때 세 번 절하는일, 요령(종)을 흔드는일,소리를 지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관을 지실 (地室)에 안치하고 횡대(橫帶) 를 덮되, 세번째 횡대를 열어놓고 하관 예배를 거행합니다.지실에 관을 모신 후 일반 풍속에서 행하는 일체의 미신적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정부에서는 국토를 잠식하는 심각한 묘지 난을 해소하기 위하여\\\"시한부 매장제\\\" 로 법을 개정하여 15년 (최장60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화장 또는 납골하도록 함으로써 이제 더이상 매장이 영원히 존석치 못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계에서도 화장이 부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발표를 하고 기독교인의 화장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목회적 돌봄에 있어서의 장례 의식/ 눅23:4622/ 2016-03-31
목회적 돌봄에 있어서의 장례 의식 눅23:46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며 생각하기조차 꺼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때에 죽음의 문제를 대화속에 화제로 올리는 것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비기독자라도 엄숙한 장례식중에 전파되는 메시지를 잘 경청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장례식에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영혼의 불멸과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구속적 사랑과 장차 있을 상벌의 확실성에 관한 기독교 교리들이 효과적으로 증거될 수 있다.<로뢰인 뵈트너, 불멸의 생명 김선운 역(부산, 한국 개혁주의 신행협회, 1963), p.51-52> 그러므로 장례식을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죽음에 관계된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비강제적으로 참예하는 사람들이고 대부분 마음을 가다듬고 참예하게 마련이다. 즉 이 순간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예식과 접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죽음과 관련한 말씀을 통하여 가다듬어진 마음 속에 부활과 내세에 대한 소망을 소개하는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선교기회로 삼을 수 있다. 임종에서 장사를 다 마칠 때까지는 평소에 자주 접촉하지 못하고 서먹하던 상가의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만나서 죽음이라는 사건을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 전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기독교 장례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봉사 정신, 그리고, 어려운 때 협력하는 모습을 믿지 않은 이웃에게 보여 줌으로써 교회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다. 1차적으로 지역사회가 교회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한다는 것은 전도전략상 아주 중요하다. 장례식의 여러 가지 의식 등 애도의 제도화는 회복하는 과정을 시작하는 데 도움을 준다. 먼저 장례식은 여러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정도는 다르더라도 그들의 슬픔을 서로 나눈다. 동시에 좀 더 슬퍼하는 사람을 지지해 주어야 할 필요성과 그들의 퇴행(regress)을 받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때에는 공격적인 표현이 최초로 감소된다. 그러면서도 부활 신앙이 강조되어야 한다. 대부분 장례 의식에 행해지는 설교는 가족에 대한 위로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여기에 부활신앙과 확고한 죽음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엄숙한 순간 열려진 마음들 속에 기독교의 중심 복음인 부활 신앙으로 위로와 소망의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장례식의 여러 의식 절차는 죽음의 현실을 명확히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부정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체를 보는 것, 관에 흙을 덮는 것, 여러 가지 종교 의식 등은 더 이상 모호한 상태에 있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 또한 장례식은 슬퍼하는 자와 죽은 자 사이의 명확한 차이점을 말해 주는 상징이 된다.< Thomas C. Oden, 목회 신학 오성춘역 (서울 : 예장출판국,1987), p. 548.> 장례식이 끝난 후 서서히 슬픔은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며 죽음의 현실이 받아들여진다. 이때에는 처음으로 슬픔으로 인해 몸에 일시적 마비 증상이 일어난 것과 대조적으로 몸에 여러 가지 통증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때때로 이러한 통증은 죽은 사람이 임종 때 경험했던 것과 똑 같은 증세를 보인다.( Ibid., p.549.) 이것은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행동 유형이다. 이러한 증상은 이상화(idealization)등을 통하여 실제 사별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사별을 당한 사람이 천천히 자기의 내적 세계를 구축함으로 말미암아 줄어들게 된다. 다음 몇 가지 장례 의식의 절차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있어서 죽음 그 자체는 구속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장례 의식에서의 기도이다. 기도는 생명의 근원이자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며 만물이 그로부터 나왔다가 그에게 다시 돌아갈 하나님께 우리가 그를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하시고 언제나 그의 은총을 힘입어 우리의 시선이 사망의 세계를 넘어서서 영원한 빛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T.C. 오덴, 목회신학 , p.548.) 둘째,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신다(시 23편)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입관예배이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집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Ibid., p.44.) 집은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다. (고후5:1). 입관 예배에 해당되는 주요한 성서구절은 위로의 말씀이 담겨 있는 시편 23편, 27편, 39편, 90편, 96편, 121편, 130편과 롬6장, 고전15장, 요14장과 같은 성서의 구절들을 알맞게 풀어 해석해 위로해 주는 일은 목회자의 의무라고 본다. 셋째,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하관 예배이다.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 위탁하는 기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계신 임재가 회상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말씀하신 것을 회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허락 (요 14:1-3)으로 용기를 주어야 할 것이다. 넷째로, 죽은 자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그 공로를 기리는 송덕문 낭독이다. 장례식에 있어서 당사자에 대한 사적 언급은 간결하고 신중하게 취사선택해서 상황에 맞게 해야 할 것이다. 장례식은 아첨하거나 감상주의에 빠지는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인간의 공로를 자랑해 주기 위해서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무시하게 되는 시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기리는 송덕문은 겸허하며 영적인 것이어야 하며, 모든 인간의 죽음을 초월한 부활의 소망과 함께 죽은 자를 잃은 슬픔이 잘 조화되도록 해야 한다. ( Ibid., 442. ) 이러한 모든 절차를 통하여 죽음이나 헤어짐 같이 연약한 인간적인 동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하나님과의 동반 관계에 장례 의식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장례 의식의 순서대로 좀 더 구체적으로 목회적 돌봄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1) 임 종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고 하고, 그 운명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한다. ) 임택진, 기독교 가정의례지침 (서울: 한국문서선교회, 1985), p. 109. 그러므로 임종은 일생 중 가장 심각한 시간이며 영혼과 육체가 분리하는 시간이요, 낙원과 음부가 결정되는 시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임종 시에 예수를 영접하고 낙원을 약속받았다. 임종 시에는 흩어져 있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둘러앉게 하고 유언을 들으며 구원을 확신시켜 드리고 (특히 불신자 가정에서는 전도의 사역에도 힘쓰며) 계속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소망 중에 운명하시도록 해야 한다. 이 순간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고 한 마디의 상징적인 말이나 몸의 언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수 있다. 이 때는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통하여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Ibid. p. 109.) (2) 유 언 고령으로 임종이 예기될때 병세중 의식이 있을 때 자손들에게 재산관계, 가훈,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장례에 대하여 훈계를 말로 또는 글로 남기는 것을 유언이라고 하는데 이를 잘 녹음을 해 두거나, 기록해 두었다가 지켜야 한다. ) Ibid. 1. 유언의 방식 : 자필 증서, 녹음, 공정증서(公正證書), 비밀증서, 구수증서(口授證書)등의 5종류만 법적으로 인정된다. 2. 유언의 효력 : 재산이나 상속관계에만 법적효력이 있지 윤리적 구속력은 없다. 3. 기타 유언에 관한 사항은 민법 1060조 -1111조 참조 목회자는 좋은 유언을 하도록 환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건전한 유언이 아닌 것을 부모의 유언이기 때문에 평생을 고심하는 경우도 있다.<백성룡, 임종과 장례식의 절차. 목회실무 핸드북(서울: 크리스챤비젼하우스, 1982), p. 250.> (3) 입 관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 전염병이 아닌 경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후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상례이다. ) 홍광수 편 가정의례지침 (서울: 충신교회, 1988), p. 24. 입관의 절차에는 씻김과 수의 입히기 그리고 입관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이 순서를 목회자가 직접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정성스러운 집례를 통하여 유족들은 위안을 얻게 되고 목회자를 신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입관 전에 목회자가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상주와 장례 일정을 의논하는 일과 기독교 신앙에 합당하지 않은 일체를 미리 부탁하여 금하게 하는 일이다. (4) 장 례 장례식을 발인식(發靷式)이라고도 한다. 인생의 마지막 엄숙한 예식은 장례식이다. 그러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또한 지루하지 않고 간결하게 해야 하며,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이다. 장례식에서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다. 둘째는 유가족과 그외 애도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장례식은 하나님과 인간이 가까와지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므로 장례식은 고인을 위한 예식이기보다 유가족과 조객을 위한 예식이다. 기독교 장례의 초점은 죽은 사람의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부활을 믿는 신앙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과 기도와 설교, 그리고 용어에 있어서도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 임택진, Op. cit., p. 147. 죽음이라는 것을 평소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의 의미와 사후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반성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 기회는 인생의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장례이다. 따라서 이 장례식은 개인의 죽음을 넘어서서 전 교회의 종말론적인 의식인 것이다. <기독교대백과 사전 편찬위원회 (편) 제 13권 p. 529. > (5) 하 관 하관식은 흙으로 된 몸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들끼리만 돌아가는 예식이기에 슬픔은 더 한층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하관식은 엄숙하면서도 새로운 용기와 결심과 격려를 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슬픔을 한 몫 묻어 버리고 새로운 신앙으로 산을 내려가도록 강조되어야 한다. (Ibid. p. 183.) (6) 장 례 뒤 장례가 끝난 뒤에도 상을 당한 가정은 계속해서 돌보아 주어야 할 일 등이 있다. 죽은 자를 안장하고 돌아온 그 날 밤은 가장 슬픈 밤이다. 장례식은 모두 끝나고 조객들은 다 가 버리고 텅 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 때 목회자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때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당일에 못가면 수일 내에 방문하여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꼭 필요한 성경 말씀으로 힘을 얻게 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위안을 충분히 경험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목회적 돌봄에 있어서의 장례의식/ 2016-03-31
목회적 돌봄에 있어서의 장례의식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며 생각하기조차 꺼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때에 죽음의 문제를 대화속에 화제로 올리는 것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비기독자라도 엄숙한 장례식중에 전파되는 메시지를 잘 경청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장례식에서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영혼의 불멸과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구속적 사랑과 장차 있을 상벌의 확실성에 관한 기독교 교리들이 효과적으로 증거될 수 있다. ▿교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죽음에 관계된 예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비강제적으로 참예하는 사람들이고 대부분 마음을 가다듬고 참예하게 마련이다. 즉 이 순간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예식과 접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은 죽음과 관련한 말씀을 통하여 가다듬어진 마음 속에 부활과 내세에 대한 소망을 소개하는 전도를 위한 효과적인 선교기회로 삼을 수 있다. 임종에서 장사를 다 마칠때까지는 평소에 자주 접촉하지 못하고 서먹하던 상가의 가족들과 자연스럽게 만나서 죽음이라는 사건을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전도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된다. 기독교 장례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봉사정신, 그리고 어려운 때 협력하는 모습을 믿지 않은 이웃에게 보여줌으로써 교회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할 수 있다. 1차적으로 지역사회가 교회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한다는 것은 전도전략상 아주 중요하다. 장례식의 여러가지 의식등 애도의 제도화는 회복하는 과정을 시작하는데 도움을 준다. 먼저 장례식은 여러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정도는 다르더라도 그들의 슬픔을 서로 나눈다. 동시에 좀더 슬퍼하는 사람을 지지해 주어야 할 필요성과 그들의 퇴행(regress)을 받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때에는 공격적인 표현이 최초로 감소된다. 그러면서도 부활신앙이 강조되어야 한다. 대부분 장례의식에 행해지는 설교는 가족에 대한 위로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여기에 부활신앙과 확고한 죽음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써 엄숙한 순간 열려진 마음들 속에 기독교의 중심 복음인 부활 신앙으로 위로와 소망의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장례식의 여러 의식 절차는 죽음의 현실을 명확히 받아들이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며 부정이 계속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체를 보는 것, 관에 흙을 덮는 것, 여러가지 종교의식 등은 더이상 모호한 상태에 있는 것을 용납치 않는다. 또한 장례식은 슬퍼하는 자와 죽은자 사이의 명확한 차이점을 말해주는 상징이 된다. 장례식이 끝난후 서서히 슬픔은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며 죽음의 현실이 받아들여진다. 이때에는 처음으로 슬픔으로 인해 몸에 일시적 마비증상이 일어난 것과 대조적으로 몸에 여러가지 통증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때때로 이러한 통증은 죽은 사람이 임종때 경험했던 똑같은 증세를 보인다. 이것은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행동 유형이다. 이러한 증상은 이상화(idealization)등을 통하여 실제 사별의 사건으로 받아 들이고 사별을 당한 사람이 천천히 자기의 내적 세계를 구축함으로 말미암아 줄어들게 된다. 다음 몇가지 장례의식의 절차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에게 있어서 죽음 그자체는 구속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장례의식에서의 기도이다. 기도는 생명의 근원이자 우리의 피난처요 힘이시며 만물이 그로부터 나왔다가 그에게 다시 돌아갈 하나님께 우리가 그를 믿을 수 있는 힘을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하시고 언제나 그의 은총을 힘입어 우리의 시선이 사망의 세계를 넘어서서 영원한 빛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신다.”(시 23편)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입관예배이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집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 집은 우리의 손으로 지은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다. (고후 5:1) 입관예배에 해당되는 주요한 성서구절은 위로의 말씀이 담겨 있는 시편 23편, 27편, 39편, 90편, 96편, 121편, 130편과 롬 6장, 고전15장, 요14장과 같은 성서의 구절들을 알맞게 풀어 해석해 위로해 주는 일은 목회자의 의무라고 본다. 세째,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하관 예배이다.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 위탁하는 기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신 임재가 회상되어야 하는데 실제로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둘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눅 23:46)라고 말씀하신 것을 회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허락 (요 14:1-3)으로 용기를 주어야 할 것이다. 네째로, 죽은자의 일생을 되돌아 보고 그 공로를 기리는 송덕문 낭독이다. 장례식에 있어서 당사자에 대한 사적 언급은 간결하고 신중하게 취사 선택해서 상황에 맞게해야 할 것이다. 장례식은 아첨하거나 감상주의에 빠지는 말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인간의 공로를 자랑해 주기 위해서 공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무시하게 되는 시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죽은자를 기리는 송덕문은 겸허하며 영적인 것이어야 하며, 모든 인간의 죽음을 초월한 부활의 소망과 함께 죽은자를 잃은 슬픔이 잘 조화되도록 해야한다. ▿러한 모든 절차를 통하여 죽음이나 헤어짐 같이 연약한 인간적인 동반 관계에 촛점이 맞추어질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 하나님과의 동반 관계에 장례 의식의 촛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장례의식의 순서대로 좀더 구체적으로 목회적 돌봄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1) 임 종 사람의 호흡이 정지되는 것을 운명(殞命)이라고 하고, 그 운명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을 임종(臨終)이라 한다. ▿러므로 임종은 일생 중 가장 심각한 시간이며 영혼과 육체가 분리하는 시간이요, 낙원과 음부가 결정되는 시간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의 강도는 임종시에 예수를 영접하고 낙원을 약속받았다. 임종시에는 흩어져 있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둘러앉게 하고 유언을 들으며 구원을 확신시켜 드리고 (특히 불신자 가정에서는 전도의 사역에도 힘쓰며) 계속 찬송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소망중에 운명하시도록 해야한다. 이 순간에는 많은 말이 필요없고 한마디의 상징적인 말이나 몸의 언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수 있다. 이 때는 부활 신앙과 내세관을 통하여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도와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유 언 고령으로 임종이 예기될때 병세중 의식이 있을 때 자손들에게 재산관계, 가훈, 신앙에 대하여 그리고 장례에 대하여 훈계를 말로 또는 글로 남기는 것을 유언이라고 하는데 이를 잘 녹음을 해 두거나, 기록해 두었다가 지켜야 한다. 1 유언의 방식 : 자필 증서, 녹음, 공정증서(公正證書), 비밀증서, 구수증서(口授證書)등의 5종류만 법적으로 인정된다. 2 유언의 효력 : 재산이나 상속관계에만 법적효력이 있지 윤리적 구속력은 없다. 3 기타 유언에 관한 사항은 민법 1060조 -1111조 참조 목회자는 좋은 유언을 하도록 환자를 도와 주어야 한다. 건전한 유언이 아닌 것을 부모의 유언이기 때문에 평생을 고심하는 경우도 있다. (3) 입 관 입관이란 염습한 시신을 관속에 넣고 뚜껑을 덮어 함봉하는 것을 말한다. 법적 전염병이 아닌 경우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후 24시간이 경과한 후에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상례이다. ▿입관의 절차에는 씻김과 수의입히기 그리고 입관이 있는데 가능하다면 이 순서를 목회자가 직접 감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정성스러운 집례를 통하여 유족들은 위안을 얻게되고 목회자를 신뢰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입관 전에 목회자가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상주와 장례일정을 의논하는 일과 기독교 신앙에 합당하지 않은 일체를 미리 부탁하여 금하게 하는 일이다. (4) 장 례 장례식을 발인식(發靷式)이라고도 한다. 인생의 마지막 엄숙한 예식은 장례식이다. 그러므로 품위가 있어야 하고 또한 지루하지 않고 간결하게 해야 하며, 몇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하나님 예배이다. 장례식에서처럼 하나님의 존재를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다. 둘째는 유가족과 그외 애도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장례식은 하나님과 인간이 가까와지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므로 장례식은 고인을 위한 예식이기 보다 유가족과 조객을 위한 예식이다. 기독교 장례의 초점은 죽은 사람의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부활을 믿는 신앙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과 기도와 설교, 그리고 용어에 있어서도 이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죽음’이라는 것을 평소 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의 의미와 사후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반성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이 기회는 인생의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선교적인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장례이다. 따라서 이 장례식은 개인의 죽음을 넘어서서 전 교회의 종말론적인 의식인 것이다. (5) 하 관 하관식은 흙으로 된 몸을 흙으로 돌려 보내고 산 사람들끼리만 돌아가는 예식이기에 슬픔은 더 한층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하관식은 엄숙하면서도 새로운 용기와 결심과 격려를 주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슬픔을 한 몫 묻어 버리고 새로운 신앙으로 산을 내려 가도록 강조되어야 한다. (6) 장 례 뒤 장례가 끝난 뒤에도 상을 당한 가정은 계속해서 돌보아 주어야 할 일등이 있다. 죽은 자를 안장하고 돌아온 그날 밤은 가장 슬픈 밤이다. 장례식은 모두 끝나고 조객들은 다 가버리고 텅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유가족들의 슬픔은 더욱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그런 때 목회자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때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당일에 못가면 수일 내에 방문하여 유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꼭 필요한 성경 말씀으로 힘을 얻게하고 기도로 하나님의 위안을 충분히 경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발인예배순서/ 2016-03-031
발인예배순서 1. 예식사 - 지금 우리는 이00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예식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엄숙하게 예식이 진행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묵도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생명의 주인이시고 죽음의 정복자이시며 어려울 때에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죽음의 현실 앞에서 슬퍼하고, 우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슬픔을 딛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맡기면서 영원한 희망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찬송 - 291장 날 빛보다 더 밝은 천국 4. 교독 - 교독문 46번, 요14장중에서 교독 5. 송영 - 찬송가 1장 또는 3장 6. 기도 -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한없이 연약한 인생을 긍휼이 여기시옵소서. 지금 저희들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가신 고 000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사오니 슬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인 이 무리에게 위로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 000님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택하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간구하옵기는 이 장례를 주께서 은혜로 주관 하사 슬픔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며 이곳에 모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엄숙한 교훈을 깨달아 죄를 뉘우치고 굳센 믿음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 성경 - 시25:8- 8. 조가 - 성가대 9. 약력 - 미리 준비하여 읽게 한다. 10. 말씀 승리의 면류관 시25:8- 하나님은 본성에 있어서 끝임 없이 사망을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봄이면 그는 일백만 개의 무덤을 허시고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진실로 그는 모든 곳에서 사망으로 생명에게 시중들게 합니다. 사망은 생명을 발생케 하고 고양시키며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죽음 위에 승리를 쟁취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하며 영광스런 승리의 행진을 하는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최초의 승리를 주시해야 합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이제껏 가장 쓰라림을 맛본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망은 그를 죽음으로 세상을 죽이고 인간도 죽였던 것입니다. 유대 산헤드린 공의회는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그 희생자를 무덤에 넣고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정복자는 일어났으며 사망의 영역에 침투하셨으며 그 감옥의 철장을 부수어 열어 놓았으며 차꼬를 낚아 채웠으며 죄인들로 새롭고 영광된 승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서 사망의 공포를 몰아내신 그분의 승리를 주시해야 하겠습니다. 사망의 본질, 찌르는 것, 독, 그리고 능력은 단순히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관계된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에서 죽음에 관계된 모든 무서운 생각과 염려를 정복하는 것은 죽음을 정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위대하신 정복자 예수님은 지금도 이일들을 계속해서 행하시며 앞으로도 세상 종말 때까지 계속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재료가 분리되는 순간에도 승리를 그러므로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보편적인 부활 때 승리의 면류관을 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보편적인 부활이 일어날 때 불신의 소지는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엄청난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포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한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홀연히 변화되리니. 라는 믿음의 선언을 여러분 모두 확신하셔서 이 고인의 믿음의 고백이 마지막에 있던 것을 헛되지 않게 우리들도 평생 주님을 모시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장례를 위해 오늘 수고하실 장안 지역의 여러분들과 또한 이 가정에 놀라우신 주님의 위로하심과 돌보심이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시며 성도들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을 끝내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높고 크신 경륜을 다 깨닫지 못하오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과 영생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땅에서 환난과 역경을 이기며 하늘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주의 종이 이 세상에 살 때 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 믿음으로도 주님 앞에 순복하여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여 주옵시고 이 장례 절차를 모두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이 가정을 위로하시며 또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 인사 및 광고 - 호상 또는 장례 위원장 13. 찬송 - 545장 14. 축도 - 이제는 살아 계셔서 우리의 구속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 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의 역사가 오늘 상을 당하여 슬픈 중에 계신 고인의 가족들 위에와 이 장례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평강, 생명을 주시옵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발인예배순서/ 2016-03-31
발인 예배순서 시25:8 1. 예식사 - 지금 우리는 ( )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예식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엄숙하게 예식이 진행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2. 묵도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생명의 주인이시고 죽음의 정복자이시며 어려울 때에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죽음의 현실 앞에서 슬퍼하고, 우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슬픔을 딛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맡기면서 영원한 희망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찬송 - 291장 날 빛보다 더 밝은 천국 4. 교독 - 교독문 46번, 요14장중에서 교독 5. 송영 - 찬송가 1장 또는 3장 6. 기도 -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한없이 연약한 인생을 긍휼이 여기 시옵소서. 지금 저희들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가신 고 이송학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사오니 슬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인 이 무리에게 위로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 이송학님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택하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간구하옵기는 이 장례를 주께서 은혜로 주관 하사 슬픔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며 이곳에 모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엄숙한 교훈을 깨달아 죄를 뉘우치고 굳센 믿음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 성경 - 시25:8- 8. 조가 - 성가대 9. 약력 - 미리 준비하여 읽게 한다. 10. 말씀 승리의 면류관 시25:8- 하나님은 본성에 있어서 끝임 없이 사망을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봄이면 그는 일백만 개의 무덤을 허시고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진실로 그는 모든 곳에서 사망으로 생명에게 시중들게 합니다. 사망은 생명을 발생케 하고 고양시키며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죽음 위에 승리를 쟁취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하며 영광스런 승리의 행진을 하는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최초의 승리를 주시해야 합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이제껏 가장 쓰라림을 맛본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망은 그를 죽음으로 세상을 죽이고 인간도 죽였던 것입니다. 유대 산헤드린 공의회는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그 희생자를 무덤에 넣고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정복자는 일어났으며 사망의 영역에 침투하셨으며 그 감옥의 철장을 부수어 열어 놓았으며 차꼬를 낚아 채웠으며 죄인들로 새롭고 영광된 승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서 사망의 공포를 몰아내신 그분의 승리를 주시해야 하겠습니다. 사망의 본질, 찌르는 것, 독, 그리고 능력은 단순히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관계된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에서 죽음에 관계된 모든 무서운 생각과 염려를 정복하는 것은 죽음을 정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위대하신 정복자 예수님은 지금도 이일들을 계속해서 행하시며 앞으로도 세상 종말 때까지 계속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재료가 분리되는 순간에도 승리를 그러므로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보편적인 부활 때 승리의 면류관을 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보편적인 부활이 일어날 때 불신의 소지는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엄청난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포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한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홀연히 변화되리니. 라는 믿음의 선언을 여러분 모두 확신하셔서 이 고인의 믿음의 고백이 마지막에 있던 것을 헛되지 않게 우리들도 평생 주님을 모시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장례를 위해 오늘 수고하실 장안 지역의 여러분들과 또한 이 가정에 놀라우신 주님의 위로하심과 돌보심이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시며 성도들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을 끝내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높고 크신 경륜을 다 깨닫지 못하오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과 영생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땅에서 환난과 역경을 이기며 하늘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주의 종이 이 세상에 살 때 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 믿음으로도 주님 앞에 순복하여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여 주옵시고 이 장례 절차를 모두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이 가정을 위로하시며 또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1. 기도 -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시며 성도들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을 끝내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높고 크신 경륜을 다 깨닫지 못하오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과 영생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땅에서 환난과 역경을 이기며 하늘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주의 종이 이 세상에 살 때 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 믿음으로도 주님 앞에 순복하여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여 주옵시고 이 장례 절차를 모두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이 가정을 위로하시며 또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 인사 및 광고 - 호상 또는 장례 위원장 13. 찬송 - 545장 14. 축도(혹은 주기도) - 이제는 살아 계셔서 우리의 구속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 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의 역사가 오늘 상을 당하여 슬픈 중에 계신 고인의 가족들 위에와 이 장례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평강, 생명을 주시옵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15. 출관
성도의 죽음에 대한 성경 구절 자료/ 욥3:21-22/ 2015-02-12
성도의 죽음에 대한 성경 구절 자료 욥3:21-22 성도의 죽음에 대한 묘사 * 수고와 염려로부터 놓임(욥 3:21,22) * 평안히 쉬게 됨(사 57:1,2) *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심(시 116:15) * 떳떳한 죽음(민 23:10) * 그리스도 안에서 잠듦(살전 4:14) * 확신 가운데 죽음을 기다림(잠 14:32) * 부활의 소망이 있음(단 12:13) * 주를 위해 죽을 수도 있음(롬 14:7,8) * 두려울 것이 없음(마 10:28) * 주의 영광의 영접을 받음(시 73:24-26) * 의의 면류관이 예비됨(딤후 4:8) * 믿음을 따라 죽음(히 11:13) * 새로운 몸을 입음(고후 5:1,2) * 유익한 죽음(빌 1:21) 1.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성도 죽음의 때 * 생명의 연수가 다하였을 때(욥 30:23) * 이 땅에서의 삶보다 죽음이 유익할 때(눅 16:22) *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실 때(요 11:4-15) *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실 때(빌 1:21) * 안식을 주시기 위한 때(계 14:13) 2.성도가 죽음을 슬퍼 말아야 할 이유 *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신 32:30) * 영원한 안식으로 옮겨지기 때문(욥 3:17) * 기쁨이 넘치는 부활이 있기 때문(사 26:19) *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기 때문(요 14:28) * 모든 것이 주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롬 8:28) *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것이기 때문(고전 15:18) * 사는 날 동안 받은 주의 은혜가 족하기 때문(고후 12:9) * 의와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딤후 4:8) *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기 때문(계 14:13) 3.죽음을 각오한 자의 주요 실례 * 블레셋인과 함께 죽을 것을 각오한 삼손(삿 16:28-30) * 베들레헴 우물 물을 길어온 다윗의 세 용사(삼하 23:17) * 민족 구원을 위해 결단한 에스더(에 4:1-17) * 금신상 숭배를 거절한 다니엘의 세 친구(단 3:13-18) *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기도 생활을 계속한 다니엘(단 6:10) * 인류를 위해 십자가 대속을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마 26:47-56) * 전도하다가 순교당한 스데반(행 6:8-7:60) *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행 21:13) 4.악인의 죽음에 대한 묘사 * 자기의 죄로 인해 죽음(요 8:21) * 소망이 없음(잠 11:7) * 두려움 가운데 죽음(욥 18:11-14) * 갑작스럽게 죽음(욥 21:13,23) * 무의미하게 죽음(욥 24:20,24) * 심판의 결과임(민 16:29,30) * 자취를 남기지도 못하고 죽음(시 34:16) *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만 않으심(겔 18:23) * 짐승의 죽음과 같이 묘사됨(시 49:14) * 음부로 떨어짐(사 14:11,15) 5.죽음에 대한 악인의 태도 * 자신의 멸망과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함(창 19:14,15) * 자신이 남겨두고 가는 이 세상의 것에 집착함(출 16:2,3) * 자신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지연시키려 애씀(에 7:5-8) * 두려워하고 슬퍼함(욥 18:11-14;27:19-22) *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음(사 22:13,14) * 살아있는 동안 즐기자 함(사 22:13,14) * 끝까지 하나님을 모욕함(마 27:44) 영적 죽음 1. 영적 죽음에 대한 묘사 *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사 59:2) *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상태(요일 5:12) *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난 상태(엡 4:18) * 육신의 욕구만을 좇아 정죄받는 자의 상태(롬 8:6) * 세상의 일락만을 추구하는 자의 상태(딤전 5:6) *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갖지 못한 상태(잠 10:21) * 형제와 사랑의 교류가 없는 상태(요일 3:14) 2.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의 특징 * 구원얻고자 하는 갈망이 없음(행 17:32) *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음(롬 1:18-20) * 선보다 악을 더 사랑함(요 3:19) * 진리의 빛에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음(요 3:20,21) * 말씀을 배척함(잠 18:1) * 악을 행함(잠 21:10) * 가증한 것을 좋아함(사 66:3) *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함(행 28:27) * 죄의 종이 됨(롬 6:21) * 구원을 받지 못함(약 2:14) * 영원한 멸망에 이름(요 3:18) 3.영적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 * 주의 말씀을 지킴(요 8:51) * 하늘 양식을 먹음(요 6:49,50) * 예수를 믿음(롬 1:17;갈 3:11) * 하나님이 살리셔야 함(롬 4:17) * 자기 안에 예수를 거하시게 함(롬 8:10) * 예수와 함께 죽음(롬 6:8;딤후 2:11) *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받아들임(고후 1:10) *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의지함(골 2:13) * 사단이 미혹하는 길에서 돌아섬(약 5:20) 4. 죽은 것으로 비유된 것들 * 하나님에게서 떠난 자(눅 15:24,32) * 율법 안에서의 행실(히 9:14) * 행함이 없는 믿음(약 2:17,26) * 열매가 없는 교회(계 3:1) 영원한 죽음 1.영원한 죽음에 대한 묘사 * 영원한 형벌(살후 1:9) * 심판의 부활(요 5:29) * 하나님의 진노하심(살전 1:10) * 영원한 멸망(벧후 2:12) * 둘째 사망(계 20:14) * 지옥의 판결(마 23:33) * 캄캄한 흑암(벧후 2:17) *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짐(계 20:10,15) * 하나님의 저주(갈 3:13) 2.영원한 죽음과 관련된 사실 *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비롯됨(창 3:17-19) * 구체적 범죄의 결과로 얻음(마 25:46) *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원히 단절됨(마 25:41) * 그리스도만이 구원해 줄 수 있음(요 3:16) * 성도와는 무관한 것임(계 2:11) 3.영원한 죽음의 대상 *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 * 하나님을 모르는 자(살후 1:8) * 배교자(벧후 2:17) * 거짓 선지자(계 19:20) *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계 14:11) *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계 20:15)1. * 악인들(계 22:5) - 크리스찬 문장보감에서 - 1.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성도 죽음의 때와 4. 악인의 죽음에 대한 묘사 이 두 단락을 자세히 읽어보세요. 우리는 너무 쉽게 죽음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만 보면 자살은 구원과 관계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성경은 영육의 구원을 말합니다. 살전 5:23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성경은 악인의 죽음을 소망이 없는것을 말하고 무의미 하게 죽는것도 악인의 죽음으로 표현하고 있음. 하나님을 온전히 만난자가 어찌 소망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천히여겨 자살을 하리요\" 어찌 썩어질 세상 고통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작게 여길수가 있으리요- 꼭 결과만 놓고 따지면 실수하겠지만 근원을 찾아보면 결과는 근원의 열매일뿐입니다. 성령의 열매중에 인내와 신앙의 과정에 인내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의 귀한 덕목입니다.
인생의 종말은?/ 2016-02-28
인생의 종말은? 인생이란 무시무종(無始無終) 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시유종(有始有終) 한 한정적 존재이다. 태어났다가 때가 이르면 죽고 마는 존재가 곧 인생이다. 영원 지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 그리고 만물을 주심으로써 살아가는 존재가 곧 인생이다. 이러한 인생에게 생 아니 死가 다가오므로 말미암아 인생의 생애는 종지부를 찍는 것이 사실이다. 1. 죽음의 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도 존재의 사라져 버림이 아니라 분리가 곧 죽음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눈다. (1) 영혼의 죽음 겔18:4은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다. 영혼의 죽음이란 생명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영혼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것이 곧 영혼의 죽음이다. 꽃가지가 나무에서 꺾어도 당분간은 잎이나 꽃이 그대로 있다. 그러나 생명본체에서 단절되었으니 죽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분리 단절된 영혼 역시 살아 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죽은 것이다. (2) 육체의 죽음 육체의 죽음이란 영과 육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킨다. 육체가 영혼과 분리될 때 육체만 남게 된다. 영혼 떠난 몸은 부패되고 썩어 버리고 만다. 약2:26 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육체의 죽음을 흙으로 돌아감이라고 창3:19 은 말씀하고 있다. 육체의 죽음은 육안에 보이는 고로 인생은 이것을 죽음으로 알고 무서워한다. (3) 영원한 죽음 마지막 대심판대 앞에서 주를 믿지 않던 불신자들이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어 고통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끝도 없는 세월동안 단절된 상태와 분리된 상태 속에서 영육이 다 같이 괴로움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죽음은 존재하면서 받는 괴로움의 연속을 가리킨다. 2. 사후상태 죽고 난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세 가지로 그 상태를 성경은 보여준다. (1) 일반적인 상태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의 육체는 신 불신을 무론하고 죽은 후엔 티끌로 돌아가서 썩어 버린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라 멸하지 않는 생을 가지며 죽은 후에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신앙고백32장1). 전3:20 은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곧 땅으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랴고 했다. (2) 신자의 상태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올라가서 거기서 그들은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린다(신앙고백32장1) 히12:23,고후5:1,6,8 빌1:23 요3:2 참조). 그리고 의로운 자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기 위해 부활해서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된다.(신앙고백 32장 3항). (3) 불신자의 상태 그러나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짐을 받아서 거기서 그들은 고통과 어두운 가운데서 대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불의한자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서 능욕을 당하기 위해 부활한다. 3. 사후상태에 관한 오설(誤說) 성경은 위와 같이 사후상태를 가리킨다. 성경은 육신이 죽은 후에 영혼이 갈 장소로서 이 두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신앙고백32장 1항 하). 그러나 잘못된 주장이 있다. (1) 로마교의 연옥설 천주교는 천당과 지옥 중간 또는 이 세상과 영원한 내세 사이에 중간상태가 있다고 한다. 그 장소가 곧 연옥이라고 하는 것이다. 연옥이란 Latin 어로 Purgare 인데 청결케 한다를 가리킨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이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하여 세상에서 그 형벌을 다 받지 아니하고 죽은 사자가 연옥에 가게 되고 거기서 그의 남은 죄를 다 씻기 위해 형벌을 받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연옥고난의 기간 단축은 로마교회가 한다고 한다. 로마교회가 연옥고난을 해제시킨다고 한다. 연옥에 간 이를 위해 미사를 드린다든지 돈을 내면 기간이 단축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 교리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연옥교리를 뒷받침해 줄만한 근거가 없다. 연옥설은 어디까지나 로마교회의 조작이다. 때문에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뿐이다(히9:27). 부자와 나사로의 내세가 이를 증거 해 주고 있다(눅16:19-31). (3) 안식교의 영혼수면설 안식교는 영혼자체를 부인한다. 사람의 구성요소는 영과 육, 이 부분이 아니라 물질인 몸으로만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런고로 죽음이란 잠이라는 것이다. 물론 주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표현하신 사실이 있다. 그러나 영혼을 부인해서 잠이라고 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주님은 한편강도에게 친히 오늘 죽으면 곧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심으로써 그의 뜻을 더욱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 멸절설 인간의 사후에는 영혼이 살아 있지 않고 멸절한다고 한다. 인간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 존재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것이다. 즉 죽은 후 인간은 의식적인 존재로 존재를 계속하지를 않고 죽음과 함께 그 존재가 완전히 중단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안식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주장 역시 비성경적이다. 성경은 사후 생을 강력히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구약의 족장들은 사후 생을 믿고 살았다. 죽음을 가리켜 조상에게로 돌아간다고 한 사실이 그것이다 (창25:8,35:29,49:33) 야곱은 죽는 지금 애굽에 있고 그 조상들은 가나안땅에 묻혔는데 조상에게로 돌아간다고 한 것은 그 영혼이 조상들이 있는 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후 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바울 또한 사후 생을 빌1:23에서 밝혔다. 몸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말한 것이 곧 그것이다. 4.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가? (1) 스스로 자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혼자 왔다가 혼자가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을 대행할 수 있고 또 대행을 하나 생과사만은 남이 대신대 줄 수 없다. 어디까지나 자기가 해야 한다. 혼자 태어났다가 혼자 죽어야 하는 까닭에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2) 스스로 죽음의 차례를 준비해야 한다. 죽음에도 차례는 있다. 그 차례는 삶의 차례와는 다르다. 천주교 성직자 묘소 정문에는 라틴어로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란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한다. 나의 차례는 언제일지 모른다. 까닭에 준비에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3) 갈 곳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이다. 좋은 세계로 갈수도 있고 나쁜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것은 평소에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한 친구의 죽음 앞에 시를 남겼다.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대는 밝은 달 따라서 갔네 오고가는 한 주인은 마침내 어느 곳에 있는고"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최후를 장식할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최종의 문제이다.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최후를 맞는다. (1) 십자가 한편의 강도처럼 평생 동안 범행한 악행을 추호의 뉘우침 없이 마지막 순간에서도 계속하다가 운명하는 유형. (2) 십자가 다른 편의 강도처럼 평생 저질은 죄악을 죽음 직전에 뉘우치고 통회함으로써 최후를 장식하는 유형. (3) 가룟 유다처럼 다년간 주를 따르고 섬기다가 마지막 시점에 믿음을 배반하고 주 없이 죽는 유형. 자네트 힝클리 폴란트(일이노이즈)의 간증 최고의 의료진과 최고의 장비, 그리고 온 정성을 쏟은 17일간의 소아과에서의 고단위 치료도 소용이 되지 못했습니다. 열세 살 난 나의 딸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픔과 고통과 절망에서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나는 내 딸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화와 힘을 가지고, 자기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의사에게 자기가 죽을 것이냐고 묻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괜찮을까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 애의 두려움을 없이하시고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뛰어 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그 애가 죽고 몇 달이 지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견뎌내지 못할 슬픔과 공허함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와 함께 하셨고 크신 사랑과 은총으로 나를 돌보셨으며,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그리스도 안 에서는 견뎌내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제럴드 A 캐러트(테네시)의 간증 나의 아버지께서는 심각한 뇌일혈로 고통을 받고 계셨습니다. 의사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아마 몇 시간, 혹은 기껏해야 이틀밖에 살지 못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사시더라도 소위 "식물인가"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죽음이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 딸이 그 슬픈 소식을 듣게 되자 그 애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애를 위로하느라 우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모습으로 살기를 원치 않으셨고, 죽는 다는 것도 궁극적으로 치유를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란다." 그 애가 대답했습니다. "네 알아요. 나는 지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때문에 우는 게 아녜요.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있을 때 내가 할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우는 거예요." 그 순간 나도 사랑한단 말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경험을 통하여 우리가 매일 만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에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본을 따른다면, 사랑의 행동과 사랑의 말이 날마다 내 생활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임종 전부터 장례까지/ 2016-03-31
임종 전부터 장례까지 1. 죽음이 임박한(임종을 앞둔) 분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임종이 가까워오면 임종자와 가족 모두 불안과 충격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임종자의 평안한 마음과 가족들의 안정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일이다. 목회자는 죽음을 맞이하는 자의 의식이 분명할 때 심방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이 좋으며, 혹 의식이 없더라도 임종자가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그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한다. 불신자의 경우라도 임종 전에는 지푸라기라도 붙들려는 애타는 마음이 있으므로 십자가의 한 강도를 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좋다.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므로 모든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 감정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보다는 온 가족의 참된 평안을 위하여 복음을 감추지 말고, 미루지 말고, 실제적으로 선포하여야 한다. 한편 그의 가족들에게는 삶과 죽음에 대면하여 건너뛰지 말고 신앙으로 헤치고 나가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이 좋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심방자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팔이다. 예배 후에 운명을 지켜볼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사후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언이나 임종자가 살았을 때 처리해야 할 법적인 문제들을 의논하여 미리 처리해 주는 것이 좋다. 2. 상을 당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상을 당한 후 당황하지 않기 위하여 임종 때부터 장례를 마칠 때까지의 모든 순서 내용을 노트에 작성해 두는 것이 좋다. 임종하면 가족은 손으로 가만히 고인의 눈을 감기고 사지를 바르게 잡아서 똑바로 눕힌다. 우선 의사의 사망확인 진단을 받도록 하고, 사망신고 24시간 이후에야 매장(화장)할 수 있으므로 곧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그 다음 시신 안치는 위생적으로 하기 위하여 전문적인 기독교 상조회에 맡기고 장례절차는 신앙 안에서 질서있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 전적으로 맡기도록 한다. 장의사가 해야 할 일과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처음부터 구분하는 것이 좋다. 부득이하게 가족이 시신을 안치할 경우 분비물이 나오지 않도록 입, 코, 귀, 항문을 탈지면으로 잘 막고 양말을 신겨준다. 그 다음 흰 보자기를 덮고 성화 병풍을 친 후 앞에 작은 상을 놓고 그 위에 고인의 사진을 세우고 그 옆에는 성경책을 펴두고, 헌화를 위한 꽃을 둔다. 시신을 안치한 다음 임종예배를 드리도록 하고 가족들과 목회자와 장의사와 의논하여 장례일과 장례 순서를 신앙 안에서 결정한다. 그 다음 멀리 흩어져 있는 친척, 친구, 친지들에게 전화, 전보(국번없이 115), 신문광고 등을 통하여 돌아가신 것을 알린다.(부고:訃告) 그 후에 문상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우선 상가 입구에 ‘기중(忌中)’ 또는 ‘○씨 상가’라고 써서 붙인다. 모든 절차는 검소하고 깨끗하게 하되 믿는 가정으로서 기독교 예식을 따르도록 하고 문상객들에게도 절을 하지 않도록 상주가 알려주든지 보이도록 표시판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3. 운명 소식을 받은 후 교역자가 할 일은 무엇인가? 대체로 가족이 죽으면 유족들은 목회자에게 알린다. 운명소식을 들으면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심방을 가야 한다. 첫 번째 심방은 죽음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지 말고 목양자로서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심방 중에 장례식을 위한 정보를 얻도록 지혜롭게 해야 한다. 첫 심방은 길지 않게 하며 유족과 장례 일정과 계획을 상의하여 결정하고 고인의 유족들과 친지들이 오면 자리를 뜨는 것이 좋다. 심방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교회에 이 소식을 전한다. 교인들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입관, 발인예배의 시간과 장소, 전화번호, 매장지를 게시하는 것이 좋으며,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알리는 것도 좋다. 목회자에게 최고의 자원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장례식에 적절한 말씀을 잘 준비해야 한다. 구절이 짧더라도 유족들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구절을 치료약으로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찾고 기도해야 한다. 4. 임종에서 매장까지 어떤 예배나 과정들이 있는가? 초상이 나면 시간에 따라서 임종 직후의 임종예배, 임종 24시간 경과 후 입관예배, 임종 48시간 경과 후 장례예배(발인예배), 매장지에서 하관예배, 매장 후 돌아와서 드리는 위로예배의 순서가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연장하거나 앞당길 수 있다. 장례예배의 목적은 죽은 시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영화롭게 부활된 몸을 가진 인간의 존엄성과 우는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성도의 교제를 표현함으로써 힘과 위로를 주는데 있다. 또한 믿음을 증거하는 기회도 있어야 한다. 유족과 조문객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를 제시하되 특히 복된 소망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며 기독교 예식의 간결성과 합리성, 그러나 그 속에서 넘치는 성도의 가식없는 사랑이 나타나야 한다. 5. 입관식과 예배는 어떻게 진행하는가? 입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임종 후 24시간 이후에 하는 것이 상례인데, 입관 후에는 고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으므로 모든 유족들이 빠짐없이 다 모이는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 입관 작업은 교회 자체에서 할 수 있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이웃이나 장의사에게 맡길 수도 있다. 입관 작업은 입관예배 1시간 전에 시작하는 것이 적당하다. 먼저 시신에게 수의를 입혀 관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고 나무못을 치되, 상주가 원하면 예배를 미치고 못을 쳐도 좋으나 못을 박는 순간 슬픔이 밀려오기 때문에 슬픔의 시간을 가진 후에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 것이 좋다. 입관이 끝나면 십자가가 새겨진 관보를 씌우고 병풍 앞에 안치하고, 관 앞에 상주와 가졷들과 교인들이 관을 향하여 앉고 주례자는 관 옆에 서서 다음과 같은 순서로 예배를 드린다. 개식사-묵상기도-찬송-대표기도-말씀선포-찬송-축도 입관예배가 끝나면 관을 병풍 뒤에 옮겨놓고 병풍 앞에는 작은 상을 놓고, 고인의 사진과 그 분이 사용하던 성경, 찬송과 꽃을 놓는다. 예배 후(또는 전) 남자는 검정계통의 양복, 여자는 흰색이나 검정색 치마로 복장을 통일하여 상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좋다. 평상복으로 할 경우에는 조상(弔喪)의 뜻을 표하는 상표를 왼쪽 가슴이나 머리에 사용한다. 미리 매장허가서(고인의 도장과 주민등록증 포함)와 영구차 예약을 확인한다. 6. 장례식(발인)과 예배는 어떻게 진행하는가? 장례식(발인)은 영구로 싣고 집을 떠나 장지로 가기 전에 집이나 병원, 교회 또는 영구가 있는 장소에서 할 수 있다. 이 절차 이후에는 시신마저 집과 고향을 떠나 못 보게 되므로 영결식(永訣式)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말은 ‘영원한 이별’이라는 뜻이므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신자는 장례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장례예배 이후에는 장지로 바로 떠나야 하므로 예배 전에 음식, 물품, 일할 사람, 영구차 등 떠날 채비를 모두 완료해야 한다. 가능하면 장례예배와 하관예배는 순서지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발인예배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묵상기도-찬송-대표기도-찬송(또는 특송)-말씀선포-약력보고 또는 조사(弔辭)-광고-찬송-축도 예배를 마치고 나서 관을 머리부터 나가게 하고 운구의 행렬은 집례자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사진을 가진 사람-꽃을 든 사람-운구-상주-유족의 순으로 서며, 조객들은 양편으로 질서정연하게 서서 조의를 표한다. 장지로 이동시에는 희고 검은 띠를 표시한 선두차에 집례자와 사진을 가진 자가 타고 다음에 영구차와 승용차들이 뒤따르게 하며 시내에서는 원활한 교통을 위하여 비상등을 켜고, 차 안에서는 미리 준비한 찬송 테이프를 틀어준다. 영구차가 한대만 갈 때에는 집례자와 장지 안내자와 사진을 가진 자가 맨 앞자리에 앉되 길 안내가 필요없을 경우에는 운전기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조용히 가는 것이 좋다. 7. 하관식과 하관예배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화장의 경우에는 어떤 순서가 있는가? 하관식이 끝나면 흙으로 된 몸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산 사람끼리만 허전하게 돌아와야 하므로 엄숙하면서도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결단이 있도록 해야 한다. 영구가 장지에 도착하면 장지로 출발하던 운구 행렬과 같은 순서대로 운구한다. 성가대가 있을 경우 부활 찬송을 부르며 운구행렬을 따르는 것도 좋다. 운구가 묘역의 평평한 자리에 도착하면 결관을 푼다. 영구 채로 좌향 (坐向:묏자리나 집터가 자리잡은 방위)을 바르게 하여 지실에 안치한 후 관 옆을 회가 섞인 흙으로 덮고 묻은 관 위에는 다시 널조각판(횡대/橫帶)을 덮는다. 다시 세 번째 횡대목을 열어 두 번째 횡대목 위에 얹어 놓고 나서 집례자는 중앙에, 상주는 집례자의 오른편에, 조객들은 왼편에 둘러서서 하관예배를 드린다. 이 때 취토할 흙과 삽을 미리 준비한다. 하관예배는 개식사-찬송-기도-설교-찬송-축토-취토(복토)의 순서로 진행한다. 취토는 집례자가 먼저 “영화로운 몸으로 다시 살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말하고 흙을 한 삽 떠서 머리 부분에 붓고 그 다음에 상주, 유족, 친지, 원하는 사람의 순서로 한다. 취토가 진행될 때에는 유족의 마음이 한층 슬퍼지므로 성가대는 부활 찬송을 계속 부르는 것이 좋으며, 취토가 끝나면 집례자(또는 유족 대표)는 위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장례식 참석자들과 협력하신 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묘비와 봉분 등 뒤처리는 일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장지에 식사가 준비되었으면 상주들과 조문객들은 상식적인 예절을 갖추어 서로 감사와 위로의 교제를 나눈다. 화장의 경우 발인은 매장의 경우와 같으나 하관대신 화장을 하는 것만 다르다. 영구가 화장장에 도착하면 안치실-화장-분골실 순으로 화장이 진행되는데 예배는 안치실에서 하관예배의 순서로 드리되 화장행렬의 순서와 소음 때문에 간결하게 하는 것이 좋다. 화장 후 분골은 가족묘에 묻거나 납골소에 보관하는 것이 좋으며, 산에 뿌리는 것은 환경 위생상 좋지 않고, 강물에 뿌리는 것은 미신적인 행위이므로 좋지 않다. 화장은 부활에 대한 의문과 시신이 재로 변한 허전함 때문에 반드시 위로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다. 8. 장례가 끝난 다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장례가 끝나면 슬픔과 괴로움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마지막 위로예배를 통하여 성령님을 통해 상한 마음이 위로받도록 해야 한다. 유족은 보통 6주 정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으므로 교회는 유족들의 슬픔이 믿음 안에서 잘 아물고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계속 접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족이 교회에 돌아오는 첫 주일에는 회중에게 상(喪)당한 것을 알려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좋다. 때로 유족은 죄책감의 그늘에서 살기도 하고 후회에 짓눌려 영적 침체를 경험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게 하는 것도 좋다. 유족들은 고인의 죽은 날짜를 계산하는 버릇이 있으므로 목회자는 고인의 죽은 날짜, 생일 등을 포함하여 장례식 기록을 남기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 유족들은 장례를 무사히 마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헌금)드리고 장례에 협력한 분들께 인사의 편지를 보내고, 빠른 시일 내에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또한 의료보험공단 민원실에 가서 장례비 일부를 청구하여 지급받도록 한다. 9. 삼우제는 무엇이며, 장례식이 끝난 후 묘지는 언제 찾아가는가? 우제(虞祭)는 유교식 전통 상례용어로 갓 돌아가신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말한다. 이 우제는 장사 당일부터 처음 지내는 우제를 초우제하 하고, 2~3일 만에 지내는 우제를 재우제라 하며, 3~4일 만에 드리는 우제를 삼우제라고 한다. 우리 성도들은 첫 성묘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첫 성묘는 묘역이 깨끗이 정돈되고 묘비가 잘 서있는지 살피는데 의미를 두어야 한다. 또한 묘비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남아있는 믿음의 후배로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신앙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각오를 하는 값진 교훈의 시간을 가지는데 의미를 둔다. 그러므로 첫 성묘는 날짜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통상 일반적인 상관례(喪慣例)대로 3일이 지난 후에 가는 것이 좋다. 현대인들에게 주일 외에는 유족들이 모이기 힘들기 때문에 주일 오후에 가족들과 교인들이 교역자를 모시고 가족예배로 드려도 좋다. 교역자가 가지 못할 경우에는 유족과 친척들이 둘러앉아서 신앙고백-찬송-기도-성경봉독(딤후4:1~8)-찬송-주기도문의 순서로 예배한다. 교인들의 묘에는 제물을 차려놓기 위한 상석이나 제사할 때 향을 피우기 위한 향로석은 필요 없고, 고인의 성명과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행적, 자손들의 이름이 적인 작은 비석을 세우면 된다. 묘비에 새길 글귀는 후배의 몫이 무엇인지 생각나게 하는 성경말씀이 좋다. 10. 추모식은 언제까지 해야 하며, 어떻게 드리는가? 추모식은 고인을 생각하며 친척들 간에 화목과 우의를 깊이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 보통 기일(忌日) 뿐 아니라 명절이나 한식, 생일 때 드리지만 2년 이상은 드리지 않는 것이 신앙적으로 좋다. 부득이한 경우 날짜를 연기하거나 앞당겨 가정이나 묘역에서 한다. 종래의 제사를 기독교적 추모식으로 바꾸어 진행하는 경우가 많으나 모델로 정리되지 못한 채 각양각색의 형태로 진행되어 혼선을 겪으며, 우상 반 신앙 반으로 드리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명절 때에는 교회에서 순서지를 마련해 주는 것이 좋다. 예식을 미리 준비하여 개식사-신앙고백-찬송-기도-성경말씀-추모(고인의 약력소개)-찬송-주기도문(축도)의 순서로 하되 비신앙적 요소를 삼가도록 한다. 예배 후에는 불신자들이 오히려 부러움을 느끼도록 화목하며 비난받지 않도록 모든 것을 지혜롭게 해야 한다. 음식은 가족들의 연대감을 만드는데 중요하므로 비신앙적인 음식, 낭비되거나 여자들만 피곤케 하는 음식을 추방하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메뉴로 바꾸어 차리고, 서로 신앙을 권면토록 한다. 돌아오는 주일에는 꽃꽂이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교인들도 기억하여 유족에 대한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11. 조문 때 언어예절 및 유의사항 슬픔 중에 있는 자들에게 신학적 처방의 말을 삼가고 마음을 위로해 주는 양약과 같은 말을 해야 한다. 가령 고인이 신앙을 고백하지 않았더라도 지옥에 갔다고 정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삶의 마지막 몇 분 동안 그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조객은 먼저 외투를 벗고 빈소(殯所) 앞에 나아가서 절은 절대로 하지 말고 헌화한 후 무릎을 꿇고 잠시 유족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상주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라고 위로하면 상주는 곡(哭)을 금하고 다만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조의금은 흰 봉투에 “부의(賻儀)” “근조(謹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쓰고 드리는 사람의 이름을 그 아래 써서 장례위원에게 전달한다. 조문 때 어린아이는 데려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출입구 가까운 쪽에 앉힌다. 결례가 되지 않도록 화려한 옷차림을 삼가고 언행을 신중히 하며, 웃음이나 농담을 삼간다. 그리고 상주 측에 과중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일없이 오랫동안 머물러있지 않도록 한다. 12. 장례식 때 기도하는 요령 기도하는 자의 마음은 슬픔에 잠긴 유족들의 입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도의 초점을 위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 땅 아애 유족들의 상황과 필요를 위한 간구의 두 가지에만 간단하게 맞춘다. 기도할 때 설교자와 같은 틀에 박힌 어투보다는 성령의 감동을 의지하여 마음이 찢긴 사람들의 슬픈 사랑을 대신하여 아뢰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하는 것이 좋다. 기도의 내용은 차분하고 긍정적이어야 하지만 죽음에 대하여는 빙빙 돌리지 말고 실제적으로 다루는 것이 좋다. 장례식에 참석한 모두가 앞날을 용기있게 살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 등 희망의 말을 사용하도록 한다. 기도를 미리 맡은 경우에는 장례절차와 고인에 관한 정보를 미리 메모해 주는 것이 좋다. 오랫동안 유족을 알고 지냈더라도 혹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의 시간은 길 필요가 없고 짧더라도 온전하도록 미리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한다. 평소에 장례와 관련된 성경본문인 벧전1:3, 요11:25~26, 고전15:14~15, 요14:1~3과 히13:20~21, 롬15:13, 고후13:13, 살후3:16, 벧전5:10, 유2절 등 축도를 많이 외우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고 000성도(직분)의 (하관)예배를 드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 사랑하는 유가족과 모인 자들에게 성령의 위로를 허락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소망을 갖게 하옵소서!” 13. 기독교식으로 예배를 하다가 불신 가족과 마찰이 있을 경우 대처방법 유족 중에서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소수만 믿은 상황에서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를 경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예배를 드리는 도중에 갑자기 제사를 드리자고 요구하는 친척도 있다. 만약 이런 요구를 집안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 경우 나이가 어리거나 믿음이 약한 상주의 경우 처신하기가 어렵다. 교회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믿는 자나 불신자에게 공통된 마음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고인이 세상에 계실 때 잘 해드리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이다. 그래서 기독교 가치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제사, 돈(노자) 등으로 사죄받으려고 한다. 교회는 사전에 장례식을 결정할 때 상주와 유족으로부터 기독교 방식만을 따를 것을 단단히 다짐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우기면 그 일이 단순히 고인을 위한 사랑의 표현인지 아니면 영적 전투인지 분별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상주를 통하여 “고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설득하면 된다. 후자의 경우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여 우상의 허망함을 알려야 한다. 일시적인 영적 승리의 쾌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유익을 위한 사랑으로 행동해야 한다. 14. 묘비에 새길 때 적합한 성경구절 비석의 전면에는 십자가 표지와 고인의 이름을 새기고, 후면 및 좌우 측면에 고인의 생년월일, 소천 연월일, 유자녀의 이름 등을 새긴다. 묘비에 새길 성경구절 (예) 소망 시39:7, 시62:5, 잠14:32, 애3:21~22, 행24:15, 롬8:24, 딤후4:7~8, 딛2:13, 요삼1:14, 계21:1 감사 삼상7:12, 시30:3, 시106:1, 시118:5, 시142:7, 고전15:57, 골1:12, 살전5:18, 계7:12, 계11:17 위로 시23:4, 시23:5, 시23:6, 요10:9, 요10:10, 요14:1, 요14:2, 고전13:12, 고후5:1, 히4:9 찬양 출15:2, 시71:5, 시98:1, 시117:2, 시148:3, 합3:18, 롬8:39, 롬11:36, 빌1:21, 벧전1:3 부활(헌신) 시71:20, 시118:17, 눅20:36, 요5:29, 요6:40, 고전6:14, 고전15:44, 고전15:49, 살전4:14, 살전4:16
임종에서 장례식까지 참고자료/ 2016-03-31
임종에서 장례식까지 참고자료 기독교장례식과 일반장례 구분 임종 가족들은 침착하게 병자에게 꼭 물어 둘 일이 있으면 내용을 간추려 대답하기 쉽게 묻고 대답을 기록하며 가족은 직계 존비속 및 특별한 친지에게 기별하고 병실에 모여 병자의 마지막 운명을 지킨다. 어린이의 병실 출입은 삼가하게 한다. 수시 병자가 운명하면 즉시 약솜으로 코와 귀를 막고 눈과 입을 다물게 한 후 시신 주위에 소독을 한 후 대한장의은행에 요청을 하며 상황에 따라 깨끗한 솜으로 시체를 닦아 낸 다음 수의(삼베, 명주)를 갈아 입히고 소렴 (손, 발)한 후 병풍 및 가리개로 가리고 고인의 사진을 모시고 촛불을 밝히며 향을 피운다. 발상 수시가 끝나면 가족은 검소한 옷으로 갈아입고 근신 애도한다. 상제, 복인 ① 고인의 배우자와 직계 비속은 상제가 된다. ② 주상은 장자가 되고 장자가 없을 경우에는 장손이 승중하여 주상이 된다. 상처한 경우에는 남편이 주상이 된다. 호상 상가에는 호상소를 마련하고 주상은 상례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의뢰하여 부고, 택일, 사망진단서, 장지, 사망신고, 매(화)장 신청을 주관하도록하고 손님받을 장소 및 음식을 준비한다.(천막, 그릇, 상) 부고 장일과 장지가 결정되는 대로 호상은 가까운 친지 및 친족들에게 부고한다.(별지 참조) 입관 운명 후 24시간 지나고 직계가족이 모인 후 대렴을 하고 위생처리를 한 후 시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영좌 ① 입관 후에는 병풍이나 가리개로 가려 놓고 따로 정결한 위치에 영좌를 마련하고 고인의 사진을 모신 다음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운다. ② 영좌의 오른쪽에는 명정을 만들어 세운다. 명정은 홍포(紅佈)에 흰색으로 \"직합니다. ○○, 본관○○, 성명○○의 구\"라 쓰며 그 크기는 온폭에 길이 2미터 정도로 한다. 성복 입관이 끝나면 상제와 복인은 성복하되 표준 가정의례에 따라 성복제는 지내지 아니한다. 상복 일반적으로 한복일 경우 바지, 저고리, 두루마기 혹은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를 하고 가문에 따라 두건, 행전, 지팡이, 짚신을 한다. *상복을 입는 기간은 장일까지 하되 상제의 상장은 탈상까지 한다. 조문 ① 상제는 성복이 끝나면 조문을 받는다. ② 조객에 대한 음식 접대는 하지 아니한다. ③ 조객은 조화를 보내지 아니한다. 천광 ① 천광은 깊이 1.5미터 정도로 한다. ② 합장하는 경우에는 남좌여우(男左女右)로 한다. 영결식 ① 영결식장은 상가 또는 기타 편리한 장소에 마련한다. ② 예정된 시간에 영구를 식장에 옮기고 그 옆에 명정을 세우며 젯상에는 사진을 놓고 촛대, 향로 및 향합을 준비한다. ③ 영결 식순은 다음과 같다. 1. 개식 2. 상제의 본향배례 3. 고인의 약력 보고 4. 조사, 조가 5. 조객분향 6. 호상 인상 7. 폐식 운구 운구는 영구차 또는 영구수레 혹은 상여로 운구한다. 행렬을 지어 운구할때는 사진, 명정, 영구, 상제, 조객의 순으로 한다. 하관/ 성분 ① 영구가 장지에 도착하며 묘역을 다시 살피고 곧 하관한다. ② 하관 후 명정을 영구 뒤에 펴놓고 횡대를 덮은 다음 회격(灰隔)하고 평토(平土)한다. ③ 평토가 끝나면 준비한 지석을 오른편 아래쪽에 묻고 성분(城墳)한다. 위령제 성분이 끝나면 영좌를 분묘 앞에 간소한 제수(祭需)를 진설하고 분향, 헌작(獻爵), 독축(讀祝) 및 배례한다. 탈상 ① 부모?조부모와 배우자의 상기(喪欺)는 운명한 날로부터 100일로 하 되 기타의 경우에는 장일까지로 한다. ② 탈상제는 기제(忌祭)에 준한다. 장례 후의 일 처리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수선해진 집안을 정돈하고 장례 때 사용했던 물품들과 고인의 유품을 정리한다. 고인의 영정은 고이 따로 모셔서 제사 때 쓰도록 하고 호상으로부터 장례 중의 모든 사무를 인계 받아 금전 관리 등의 일을 정리한다. 그리고 장례 때 애써주신 호상, 친지, 이웃들께 인사드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인사말씀 예시> 인사드립니다. 이번 저희 모친 상사 시에 바쁘신 중에도 따뜻한 위로와 조의를 베풀어 주셔서 무사히 상례를 마치게 되었음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이오나 황망 중이옵기 우선 서신으로 인사드리오니 해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00년 00월 00일 拜上 장례 후의 제의 (가) 삼우 장례를 치른 지 3일째 되는 날 제수를 올리고 분향하며 곡을 한다. 그리고 묘소나 납골당에 찾아가 뵙는다. 갈 때는 간단하게 음식을 장만하여 가는 것도 좋다. 묘소를 둘러보아 봉분이나 주변에 일이 남아 있으면 뒷처리를 하고, 떼가 잘 입혀졌는지 살펴본다. (나) 사십구제 장례일로부터 49일째 되는 날 올리는 제사로, 원래 불교 의식이었는데 유교에서도 지낸다. 보통 고인이 생전에 다니던 절에서 거행하며,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뜻에서 사십구일제를 지낸다. 망인이 소원했거나 불교를 신봉했다면 의당 모셔드려야 할 것이고 불교 신도가 아니라도 상제의 마음이 있으면 망인의 명복을 빌어드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 백일제 고례의 졸곡과 겸하여 장례 후 백일째 되는 날에 모시는 것으로 보통 절에서 영혼의 천도를 위하여 올리는 제사다. 보통 집에서도 모시며,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이날 복을 벗는다. 백일에 복을 벗지 않는 사람이라도 절이나 집에서 제수를 올리고 명복을 빌어드리고 성묘를 가서 술과 과일로 간단하게나마 정성껏 올리는 것이 좋겠다. (라) 탈상 고래의 3년 탈상이 지금은 많이 현대화되어 1년 탈상 혹은 100일 탈상 등으로 상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옛날에는 대상을 지낸 뒤 담제를 모시고 복을 벗었으나 요즈음에는 대상때에 복을 벗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며, 백일째 되는 날 복을 벗기도 한다. 돌아가신 지 1년이 되는 첫 기일에 소상을 모시고, 2년째 되는 기일에 가족과 가까운 친척이 모여 대상을 지낸다. 소상이나 대상의 의식은 일반 기제와 다름없이 영정이나 지방을 모시고 제수를 진설한 다음 곡을 하며 재배한다. 축은 옛날 축문 서식에 따라 쓴다. 백일 탈상을 할 때에도 탈상제를 지내는데 그 절차는 기제 때와 같다. 화 장 화장하려면 반드시 사망 진단서를 떼어 관할 읍.면.동 사무소에 가서 사망 신고를 하고 화장 신고증을 교부받아서 가지고 가야한다. 입관할 때 고인의 유품 중 불에 타지 않는 것은 넣지 않는다. 화장터에 도착하면 화장 신고증을 제출하고 화장 순서의 번호를 받는다. 화장 전에 유족은 다시 한번 마지막 분향을 한다. 화장 후의 유골은 납골당이나 절에 안치한다. 화장하여 유골을 매장하는 것은 이중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되므로 그럴 필요는 없다.
임종예배 순서 및 설교 자료/ 2016-03-31
임종예배 순서 및 설교 자료 임종예배 식순 (임종직후 유족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다음에 임종예배를 드리되 시신 처리는 임종예배 후로 미루어도 무방합니다.) -식 사 : 우리는 지금 고인이 된 우리의 형제 ㅇㅇㅇ씨의 임종예배를 드립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삶과 죽음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기 도 : 집례자가 간단히 합니다. -찬 송 : 289.290.291장. -성 경 : 눅23:42-43절, 요11:25-26절, 약4:13-17절, -설 교 : 집례자가 간단히 선포합니다. -기 도 : 집례자가 기도 드립니다. -찬 송 : 295장. -축 도 : 집례자 목사님이 합니다. *임종예배 설교 믿음과 천국 눅23:42-43 생명이 끊어지는 임종 때는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분기점에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1) 자기의 노력이나 자기의 공로로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습니다. 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임종 때에 믿어 구원 받은 예수님 우편 강도입니다. 1) 좌편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믿지 않았습니다. 불신자의 대표입니다. 2) 우편 강도는 예수를 믿어 그 즉시 구원을 얻었습니다. 믿음의 위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3. 셋째, 믿음의 결국은 천국입니다. 1) 우리는 약하나 믿으면 예수님의 의를 전가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귀합니다. 2) 우리는 죄인이나 믿으면 예수님의 피공로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결국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됩니다. 유가족 중에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분이 계시면 이 순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순서 및 설교 자료/ 2016-03-31
임종예배 순서 및 설교 자료 임종예배 식순 (임종직후 유족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다음에 임종예배를 드리되 시신 처리는 임종예배 후로 미루어도 무방합니다.) -식 사 : 우리는 지금 고인이 된 우리의 형제 ㅇㅇㅇ씨의 임종예배를 드립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삶과 죽음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기 도 : 집례자가 간단히 합니다. -찬 송 : 289.290.291장. -성 경 : 눅23:42-43절, 요11:25-26절, 약4:13-17절, -설 교 : 집례자가 간단히 선포합니다. -기 도 : 집례자가 기도 드립니다. -찬 송 : 295장. -축 도 : 집례자 목사님이 합니다. *임종예배 설교 설교 1. 믿음과 천국 눅23:42-43 생명이 끊어지는 임종 때는 천국이냐 지옥이냐의 분기점에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1) 자기의 노력이나 자기의 공로로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습니다. 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임종 때에 믿어 구원 받은 예수님 우편 강도입니다. 1) 좌편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믿지 않았습니다. 불신자의 대표입니다. 2) 우편 강도는 예수를 믿어 그 즉시 구원을 얻었습니다. 믿음의 위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3. 셋째, 믿음의 결국은 천국입니다. 1) 우리는 약하나 믿으면 예수님의 의를 전가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귀합니다. 2) 우리는 죄인이나 믿으면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결국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유가족 중에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분이 계시면 이 순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2. 영원히 사는 자 요11:25-26 인간은 누구나 한 번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죽는 다는 것은 곧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삶을 위한 새로운 세계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 1. 첫째,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죽는 자가 아닙니다. 예수 안에 있어 예수의 생명을 받은 자는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2. 둘째, 부활의 소망자는 죽음을 이긴 자입니다. 예수의 생명은 부활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자는 죽음을 이긴 자인 것입니다. 3. 셋째, 주 안에서 죽은 자는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 안에는 죽음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자는 지상에서부터 영생을 받은 자요, 그 영생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죽음 때문에 영생의 줄이 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 속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선물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셜교 3. 마지막 장식 약4:13-17 임종은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 인생은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1. 첫째, 오늘과 내일을 방종하였을지라도 임종 때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장식하셔야 합니다. 2. 둘째, 안개 같은 인생임을 알고 십자가를 붙들고 마지막을 장식하시기 바랍니다. 3. 셋째, 마지막을 잘 장식한 자들은 축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1) 순교로 마지막을 장식한 아벨은 그의 믿음이 지금도 살아 역사합니다. 2)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들 족장들은 신앙을 잘 물려주고 임종을 하더니 그의 자손들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3) 베드로, 야고보, 바울, 이들은 정말로 마지막을 잘 장식하여 별처럼 빛나는 축복의 위인들이 되었습니다. 유가족 여러분들도 성경 속에 인물들처럼 하나님께 합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순서/ 2016-03-31
임종예배순서 주례자는 고인의 머리 쪽이나 발치 쪽 편한 곳에 앉거나 서서 주례. 1. 예식사 - 지금부터 고 ( )님의 임종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2. 묵도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3. 찬송 - 5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4. 기도 - (기도자), 인생의 생명을 주관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 이 시간 저희들은 고 ( )님의 임종 예배로 모였습니다. 인생이 늘 강건하여 천천 수를 누릴 것 같은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며 교회를 핍박했던 많은 날들이 이 고인에게 있었지만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가 누구 시며 또 우리의 영혼이 어디로 갈지 말년에 깨닫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이제 주님의 나라로 가신 이 영혼을 살피소서.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육체가 죽었음을 슬퍼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고 먼저 하늘 나라로 간 영혼을 생각하며 우리들도 열심히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며 다시 하늘 나라 천국에서 이 영혼을 뵈올 때에 부끄럼이 없기 위해 우리가 다시 한번 주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하며 이 영혼이 하나님 통치에 들어갔음을 믿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육신의 남편, 육신의 아버지, 형제가 곁을 떠났기에 슬픔이 있을지라도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더욱 믿음에 확고히 서실 수 있는 담대 함과 믿음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특히 이제 기독교식으로 이 장례를 우리가 준비하고 치를 터인데 오히려 이번 기회로 지역이 변화 받게 하시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모든 장례 절차에 순서 순서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5. 성경 - 삼상20:3 -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 삼상20:3 다윗의 말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나니 이 말은 곧이어 언급될 말에 비상한 강조를 하기 위한 서언 적인 표현입니다. 생과 사에 대한 종래의 많은 말들은 애매모호한 표현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의미심장한 진리인 죽음의 근접은 이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가장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죽음의 경계선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진리를 아름답고 역동적인 상상 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 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나다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연한 풀잎, 새싹, 활짝 핀 꽃 부는 바람 언제나 날아다니는 그림자는 인생이 짧고 불확실하다는 점과 죽음의 확실성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적인 기관들도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말해 줍니다. 심장의 고동도 메시지들이며 혈액의 맥박도 죽음에 대해 알려주며 조용한 숨소리도 생명의 마지막을 예고해 줍니다. 현재 모든 곳에서 작용하고 있는 파괴적인 수단들도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해 줍니다. 우리가 평안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은 너무도 쉽사리 우리를 멸망시키는 도구로 전락됩니다. 향기로운 공기는 파괴적인 태풍으로 돌변합니다. 시원한 빗방울과 은빛 실개천은 무서운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며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는 불은 잔인한 화염으로 일변하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 우리의 육체적인 기관 그리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에게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이다.”라는 말을 결코 잊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러하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직 한번밖에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세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죽음,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즉 영원한 죽음, 구제 불능의 악인의 상태입니다. 본문은 이들 세 가지 중 첫 번째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멸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물질의 없어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형된다는 것은 멸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이성은 영혼의 동질적인 존재로서 영혼과 의식의 불멸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생명이라 불리는 현상의 종식을 불러일으키며 그 결과 일어나는 상태를 죽음이라 부릅니다. 그것은 보다 평이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란 육체가 삶을 종식시킬 때 그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상태입니다. 영혼은 육체를 세내어 잠시 거주합니다. 시체는 빈방을 말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말해 육체적인 감각의 세계와 결별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속한 물질들은 뒤에 남습니다. 이러한 분리로 인해 우리에게 전개될 상태는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았던 생활에 좌우됩니다. 자기도취적이고 관능적인 쾌락을 탐닉하고 죄의 생활은 죽음 이후 즐거움의 근원에서 끊어지게 하고 영혼을 형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덕목에서 모본으로 예시된바 깨끗하고 상냥한 삶,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조명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삶,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삶,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가장자리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삶이며 영광 세계의 밝은 빛 아래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이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날에 이르는 출입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6. 찬송 - 545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 7. 축도 또는 주기도
임종예배순서/ 2016-03-31
임종예배순서 찬송 / 534(세월이 흘러 가는데), 545(하늘가는 밝은 길이), 188(만세 반석 열리니), 460(지금까지 지내온 것) 1.예식사 / 지금부터 ㅇㅇㅇ 집사님의 임종예배를 드리겠습니다. 2.묵도 / 시편 23편 낭송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3.찬송 / 434(나의 갈길 다가도록) 4.기도 / 영생의 하나님, 인생이 되어 세상에 오는 것도,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 가운데 되어짐을 믿고 기도를 드립니다. 지금 이시간 주님의 사랑하는 딸 고 ㅇㅇㅇ 집사님의 임종을 맞이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몇년이라도 더 사셨으면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장 아름답고 선하게 이루시는 하나님, 귀한 딸을 지금 불러 가심이 오히려 ㅇㅇㅇ 집사님에게나 모든 가족에게나 유익이 됨을 믿고 영광을 돌리옵나이다. 하나님께서 먼저 불러 가신 우리 ㅇㅇㅇ 집사님의 영혼을 받으사 아버지의 품안에 품어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통과 슬픔의 얼룩진 것들을 다 씻어주옵시고, 그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제 육신의 이별을 맞이하여 슬픔에 잠긴 유족들과 이웃들에게 하늘의 위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5. 성경 / 시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 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 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6. 설교 / 오늘 사랑하는 ㅇㅇㅇ 집사님께서 하늘의 부름을 받아 세상에서 나그네 인생길을 마치고 영원한 본향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죽음은 슬퍼하고 자신의 죽음은 또한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죽음은 혼자서 맞이하여야 하고 또한 그 이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말씀에 보니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본다고 하셨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결코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나를 영접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관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주님을 믿다가 죽으신 분들은 참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제 모든 수고를 쉬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모든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임을 떠나 보내면서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길 수 밖에 없지만은 그러나 지나치게 슬퍼하여 소망이 끊어진 것처럼 절망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랑하는 ㅇㅇㅇ 집사님은 가장 행복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다시는 슬픔과 고통이 없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눈물과 애통함이 없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님의 뒤를 따라서 더욱 하나님과 함께 살아 다시 만날 소망을 가져야 겠습니다. 아멘! 7. 기도 / 성도의 죽는 것을 귀하게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이제 귀한 ㅇㅇㅇ 집사님의 영혼을 받으심을 믿습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이다.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 귀한 영혼의 죄를 모두 씻어 주심을 믿습니다. 이제 고인 뿐만 아니라 슬퍼에 싸인 유족들에게도 한량 없는 위로와 영원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가정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8. 찬송 / 545(하늘 가는 밝은 길이) 9. 축도 / 손들어 비옵기는 죄를 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이 크신 은혜와 영원한 천국집을 준비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모든 슬픔 중에도 하늘의 위로를 내려주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사랑하는 고 ㅇㅇㅇ 집사님 에게와 귀한 집사님의 가정 위에 이제로 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임종자의 임상적 기본이해/ 2016-03-31
임종자의 임상적 기본이해 1) 임종자의 심리적 5단계 죽어가는 환자는 두 분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어떤 사고나 자살 또는 타살에 의해 갑작스럽게 죽음에 처한 자들과 또 하나는 질병으로 인해 또는 생명의 연수가 다해서 다소 장기적으로 죽어져 가고 있는 이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후자에 관한 환자들의 심리적인 상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평소와는 다른 특수한 심리상태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는 임종자의 심리상태를 잘 파악하여 그에 적절한 목회적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철학, 종교학, 심리학, 간호학등 여러 분야의 문헌들을 종합해 보면 죽음을 맞는 사람의 심리적 반응은 공포반응, 허탈감, 비애감, 저항감(회피감)등으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다. ▿자는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므로 심각한 공포 반응을 나타낸다. 또한 자기의 인생이 물거품 같다는 생각을 갖거나 또는 자신이 이미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함에 따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고립 되었다는 허탈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환자는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게 되어 가능성 속에서 자신만만했던 생활이 막을 내림으로서 점점 비애감 속에 잠겨져 가게 된다. 환자는 죽음에 따르는 이상과 같은 수동적인 감정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원망과 반항감도 동시에 품게 된다. 죽음에 직면한 이들을 돌보고 깊이 연구한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는 그의 저서 “ On Death and Dying \"에서▿임종기의 환자가 거치게 되는 심리적 상태를 다음의 다섯 단계 즉, 부정과 고립,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로 분류하였다. 물론 환자의 심리적인 상태와 그 변화의 단계는 모든 환자가 똑같이 겪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럼 각각의 심리상태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1) 부정과 고립의 단계 환자는 보통 병원 의사나 그의 가족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가 없을 지라도 흔히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게 된다. 스스로의 자각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자신의 건강 상태가 악화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신에 대해 부정하는 반응을 나타낸다. 환자는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상태를 재확인하려는 노력도 보인다. 부정은 흔히 임시적이며 특히 병증이 심해지고 무력감이 계속되는 경우엔 부분적인 수용으로 대체되고 점차 환자는 자신의 악화 상태를 부정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부정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부정은 초기 단계에만 나타나는 반응은 아니고, 특히 환자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한다든가 가족에 대비 시킨다든가 혹은 생존해 있는 동안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든가 또는 환자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 능력이 방해를 받는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환자의 부정 반응은 병원이나 가족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형태로 변형될 수도 있다. 환자에 따라서는 부정의 단계가 죽음의 순간까지 지속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철저하게 부정을 계속하지 않는다. (2) 분노(Anger)의 단계 자신이 고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을때 부정대신 분노심, 사나움 그리고 원망의 감정이 함께 나타난다. 여기에는 자신의 모든 계획이나 희망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에 대한 분노도 포함된다. 이 분노의 단계는 가족과 의료진이 감당하기 대단히 힘들다. 왜냐하면 분노가 수시로 폭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노는 불가피한 죽음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며 환자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환자는 비록 죽어가고 있으나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살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기 원한다. 그리고 특수한 경우인 ‘살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지기 시작한다. (3) 타협(Bargaining)의 단계 부정과 분노의 단계에서 현실을 외면하던 태도의 기간이 경과하면 점차 현실을 바라보고 적응을 하기 시작하면서 타협의 단계로 들어간다. 타협의 단계는 보통 외부로 표현되지 않고 그냥 간과할 수도 있다. 타협의 대상은 대개가 하나님이며 때로는 의사나 주변의 사람들이 되기도 한다. 이 시기의 환자는 죽음이 눈 앞에 다가오는 것을 인정하면서 생명 연장에 대한 소망 또는 임종의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육체적 고통과 온갖 불편함이 없기를 바라며 타협을 시도한다. (4) 우울(Depression)의 단계 환자는 증상이 더 뚜렷해져 가고 몸이 현저하게 쇠약해져 회복의 소망마저 상실했을 때 이제는 점차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결과에 대해서 시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초연했던 자세와 무감동, 분노와 걱정은 극도의 우울감으로 바뀐다. 환자는 깊은 침체에 들어가 말도 안하고 자기 혼자 씨름하면서 과거의 상실, 이루지 못한 일, 그리고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슬퍼한다. (5) 수용(Acceptance)의 단계 환자는 이 단계에 이를 때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나 침울은 사라지고 죽음을 차분히 맞이할 상태가 된다. 또한 관심 범위가 좁아지고 외계 문제로 인하여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혼자있고 싶어하고 때로는 문병객을 달가와 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닐 때가 많아진다. 죽음을 수용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나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모든 것을 다 끝내고 할 말도 다했다. 죽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환자는 감정적으로 공백기에 가깝다. 환자중엔 이 수용의 단계에 도달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불가피한 이 죽음을 피하려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소생의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발버둥 친다. 이러한 환자일수록 평화와 존엄 속에서 최후를 받아들이기가 힘들 것이다. 수용의 단계에 있는 환자들은 매우 뚜렷한 침착함과 평온함을 보인다. 의사소통도 무언의 대화로 바뀐다. 이 수용의 단계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들의 상태이다. 즉 환자는 수용의 단계에 도달하여 평온과 평정을 찾았는데 그의 가족들은 아직도 고통스러워하며 소란스러워한다면 환자는 평화스럽게 죽어가기가 힘들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이 죽음이 일어나기 전에 수용의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며, 특히 가족들이 먼저 수용의 단계에 이르러서 환자의 죽음을 기다린다면 더욱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상태에서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실로 환자가 공포와 절망을 초극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 한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성숙한 면모를 나타내는 것이 될 것이다. 2) 임종자의 기타 심리상태 인간이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에서 저항과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인간이 사후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분명한 지식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 죽어봐야 알 수 있지 어떻게 알수 있나 ?”하고 말한다. 마치 과학자와 같은 이 실증주의적 시각은 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팽배해 있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죽음에 대한 심리적 반응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것이다. 죽음을 맞이 하는 이는 심리적으로 죽음이란 희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죽고난 후에 무엇이 닥칠 것인가’하는 물음에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 물음에 계속 사로잡혀있다. 물론 사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을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가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런 열심적인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심리적으로 더 증가되는 것이다. ▿런데 이처럼 죽음 후의 세계에 대해 공포에 사로 잡힌 자들은 내세에 대한 집착 때문에 화해라든가 이것에 대한 위로 또는 사소한 일상 생활 안에서도 보람을 찾으며 인간답게 사는 일 등 죽음보다 오히려 아주 가까이 있기에 우리가 더욱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절박한 과제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런 죽음에 대한 무희망성(Hoffnungslosigkeit)에 대해서 샤르트르(Sartre)나 시몬느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의 작품속에 나타난다. ▿히 무신론적 철학자인 비테슬라브 가르다브스키(Vitezslav Gardavsky)는 그가 사망하기전 1973년 3월에 쓴 편지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해가 지나감에 따라 서서히 늙는다. 그러면서도 인내로 맞이하는 죽음과 함께 전과 같은 즐거움으로 충만해 있다. 참으로 암담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스스로 의식하는 독창적인 무희망성 안에서 수용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는 바로 그 이웃 때문에 모든 시간은 값진 것이다.” 또한 죽음은 이별이기 때문에 두려워 하는 것이다. 죽음은 모든 관계(부부관계, 부자관계, 친구관계)가 다 끊어지고 헤어져야 하는 아픔이 있다. 물론 죽는 이가 죽음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할 때는 별문제이겠지만 보편적인 반응은 인간의 생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자기가 생전에 가졌던 목적과 소원이 이루워지지 못한데서 오는 어떤 두려움도 있을 수 있고 임종시의 아픔에 대해서도 공포를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은 더한 것이다. 또한 죽은 후에 어떠한 심판이 올 것인가라는 두려움이다. 죽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죽음에서 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더욱 이점을 강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부활하여 심판자로서 우리 죽음의 가시를 뽑아버렸다. 3) 유가족의 심리반응 가족중에 환자가 발생해서 중병으로 진전될 때 그 가족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막대함은 명약관화하다. 먼저는 경제적인 부담감 그리고 가족 구성원들 간에 역할의 변화가 따른다. 그리고 환자의 가족도 죽어가는 환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환자의 태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실체이다. 환자가 회복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여러 심리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됨을 앞에서 기술 하였는데 환자의 가족이 겪어가는 단계도 비슷하다. 즉 가족은 충격과 부정, 분노, 협상 그리고 비탄의 단계를 거쳐 사별을 수용하여 그것에 적응하여 간다. 여기에서 환자가 죽은 후에 유가족들이 겪는 심리상태에 대해서 좀더 기술하고자 한다. 환자가 운명 했을때 이러한 많은 감정들은 절정에 이른다. 더구나 환자 생전에 예비적 슬픔의 과정을 충분히 겪어오지 않아 미쳐 마음의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 했다면 가족들은 환자가 죽은 다음에 여러가지 임종의 단계를 모두 경과하게 된다. 죽음 후에 가장 크게 느끼는 감정은 바로 ‘충격’이다. 이 충격은 특히 예기치 않았던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을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상을 당한 가족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며 부정적인 태도도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각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심각했던 그 충격과 부정적인 심리는 몇일 후면 가라앉는다. 그러나 몇달을 지속하면서 절망과 고뇌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혼란과 충격의 상태가 지나간 후 자신의 비합리적인 행동에 대해서 수치와 불안감을 느끼는 상례자들이 자기들의 태도를 애통과 인간적 상실에 대한 보편적이고도 자연적인 반응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수치심이나 불안감을 제거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이와같은 감정은 마땅히 가져야 하고 표현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비인간적이고 또한 비정상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두번째로 강하게 밀려오는 감정은 ‘애통’이다. 죽움의 현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의미가 고뇌와 고통스러운 가슴의 공허함과 함께 의식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한다.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것이 이 단계의 전형적인 행동이며, 이 눈물 속에는 죄책감의 감정도 포함된다. 또한 슬픔의 감정 속에는 분노의 감정도 내포되어 있다. 이유도 없는 분노와 적대감이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가족들이 발산하는 이러한 감정들을 나쁘다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 감정의 숨은 뜻과 원천이 매우 인간적인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상례의 애통 가운데는 병적인 애도 현상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심한 비탄에 잠겨 그것이 만성화하여 우울증의 증상으로 나타나거나 불안이나 죄의식이 심화되어 망상이나 피해망상증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고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적개심으로 인해 고인의 모습이 오래도록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고뇌속에 빠지거나 또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죽은자와 동일화 시켜 죽은자의 장점이나 기질을 모방하려는 경향이 과장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이 스스로 환경을 재조직하고, 고인에게 기울였던 관심을 새로운 대상으로 전환시키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적응적인 반응이다. ▿러나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이러한 현상들은 차차 사라져 간다. 장례식의 여러 절차와 의식등의 애도의 제도화는 회복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다. ▿복되는 단계가 시작되면 죽은 사람에 대한 외적인 현상도 차차 줄어들고 예전의 추억들을 타인과 함께 나누고 고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등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입관 예배/ 죽음의 확실성/ 히9:27/ 2008-06-19
입관 예배/ 죽음의 확실성 히9:27 고인의 시체를 먼저 관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고 못을 치되 상주가 원하면 예배 후에 못을 친다. 관 앞에 상주와 가족들과 교인들이 관을 향하여 앉고 주례자는 관머리 쪽이나 발치 쪽 편한 곳에 앉거나 서서 입관 식을 주례한다. 교회 직분이 없는 고령자에게는 어른, 선생님,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등 적절한 명칭을 사용한다) 1. 예식사 - 지금부터 고 (000)님의 입관 식을 거행하겠습니다. 2. 묵도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니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나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고후5:1-3 아멘. 3. 찬송 - 541장 혹은 188장 4. 기도 -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생이옵나이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지도 못한 죄인들이옵니다. 고인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도리도 다하지 못하였사옵고 형제로서의 사랑도 그에게 다 베풀지 못하였음을 슬퍼하오며 하나님 앞에 참회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저희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제 고 이송학님의 시신을 입관하여 장례를 준비하고자 하오니 성령께서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모든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믿음과 소망을 더욱 굳세게 하여 주옵소서.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형제가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후사로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귀한 진실된 생활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저희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사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성경 - 히9:27 (죽음의 확실성) 죽음이라는 것은 1.그 사실의 확실성과 보편성 2.그때의 불확실성 3.그 사실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깨닫지 못함.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고 있으나 그것에 유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 이 땅 위에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처럼 생각하고 삽니다. 우리는 이 엄숙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4.상실로서의 죽음. 엄숙하게 작별을 고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상의 모든 부는 그들 스스로 날개를 가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지상의 목적들은 와해되며 지상의 우정들은 단절됩니다. 5.여행으로서의 죽음. 그 때는 엄숙한 기대심을 갖고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장소는 심판대 앞입니다. 그러면 심판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1.누구에게? 빈부 귀천 모든 사람에게 2.무엇으로, 모든 행위 언어, 바라던 것, 동기 3.누구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은 현재 우리에게 구세주로 변호 자로 일하고 계시는 분 4. 어떤 규칙에 의해서 그의 말씀 속에 계시된 율법에 의해 5.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 모든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생병 아니면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 가운데 소망- 1.소망의 근거. 우리 자신의 선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 2.소망의 증거.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뜻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되어진 결과이다. 이것은 때때로 육체적 고통의 종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슬픔을 당한 자에 대한 위로-진정한 위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외에는 없다.1.죽음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로 안내하는 생명의 길잡이.2.슬픔은 우리를 정화시킨다. 6. 찬송 - 293 7. 기도 -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셔서 인간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심령의 눈을 밝히 시사 영원히 슬픔과 고통이 없고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가득한 주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심령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주시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주셔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친히 맡아 인도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8.축도(혹은 주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