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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여행 이야기(3)/ 모순과 진리의 교차점 - 베데스다(Bethesda)/ 2015-12-25
이스라엘 여행 이야기(3)/ 모순과 진리의 교차점 - 베데스다(Bethesda) ※(사진 참고: 위의 "처음으로"를 누르고 "설교동영상보기" 중 "성서지도 고고학 자료" 1430번(2015.12.25.)을 누르면 볼 수 있습니다.) (찾아 가기) 요한복음 5장에는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온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의 말 한 마디에 병이 나은 베데스다(Bethesda) 라는 곳이 나온다. 그런데 예루살렘 구시가지에는 이곳을 안내하는 도로 표지판은 없다. 그래서 무심결에 갔다가는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 베데스다 못은 구시가지에서 스테판 문(사자 문)을 향하여 가다보면 성 문 바로 근처 좌측에 성 안나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다(베데스다 못은 성 안나교회(St. Anne\\\'s Church) 출입구를 들어가면 좌측에 입장권 파는 곳이 있고, 약간 왼쪽으로 가면 나온다. 출입구 오른쪽에는 성 안나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베데스다 가는 길 : 앞에 보이는 문이 스테판 문(사자 문)이고 왼쪽 둥근 아치형의 출입구가 베데스다 못으로 가는 입구이다. 구글사진> <스테판 문> <헤롯 문에서 성 안나교회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구글지도로 찾아가면 도보로 약 8분 정도 걸린다> 안나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어머니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마리아가 태어났다고 해서 성 안나교회(St. Anne\\\'s Church)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베데스다 못을 찾아보고 싶다면 헤롯 문에서 가는 것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장 가깝고, 다마스쿠스 문에서도 얼마 멀지 않다. 다만 바로 그 옆이 스테판 문(사자 문)이 있기는 한데 스테판 문을 나서면 맞은편의 올리브 산(감람 산)으로 오르기 위한 내리막길이 전개되고 있어서 스테판 문 쪽에서 들어오려면 오르막길 오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베데스다 못의 위치> (Amazing ...) 베데스다 못을 처음 보는 순간,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놀란다. 첫 째는 크기 보고 놀라고 그 연못위에서 전개된 전쟁의 역사와 성 안나 교회의 단순하면서도 균형미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에 놀란다. 필자도 평면적이고 둥근 우리나라 연못만 보아 오다가, 빗물을 받아두기 위해 깊은 시설을 한, 상상을 벗어난 베데스다 못의 모습에 놀랐다. <베데스다 못의 깊이 : 20m는 넘어 보인다> 베데스다 못은 샘물이 솟는 그런 못이 아니라, 물이 귀한 예루살렘에서 기드론 계곡으로 흘러가는 빗물을 저장하려고 만든 가로세로 40m × 50m, 깊이 6m에 달하는 커다란 못이었다. <남아 있는 기둥과 동굴이 보인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준 일이 있기 오래 전부터 못이었음을 성경이나 기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앗수르 왕이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히스기야 왕을 치게 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니라 그들이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열왕기하 18:17) “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이사야 7:3) “오니아의 아들 시몬은 대제사로서 그의 일생 동안 성전을 보수하여 자기 생애에 성소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에 의해서 성 안뜰의(둘레에) 높은 성벽과 성전 경내에 높은 이중벽의 기초가 쌓아졌다. 또 그는 생전에 호수처럼 큰 저수지를 팠다” (외경, 벤.시라의 지혜 50:1-3) 여기 나오는 「윗못」과 대제사장 시몬이 팠다고 하는 저수지가 바로 베데스다 못이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예루살렘 사람들은 여기서 빗물을 받아 성전으로 수로를 내고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등 생활의 중요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매표소에서 나눠준 리플렛에 의하면 기원전 150년과 기원후 70년 사이에 이미 치료와 종교적인 목적으로 물탱크(Cistern), 욕탕(Bath), 동굴(Grotto) 들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매표소에서 나눠주는 리플릿> 사진에서 보는 1번 물탱크와 2번의 작은 수로를 통해서 3번의 욕탕에 물이 공급되었는데 못 주변에는 성전에서 외면 시 된 많은 병자들이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고, 38년 동안 앓은 병자가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나음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요한복음 5:1-9). 그 후, A. D 200 - A. D 400 년경에는 5번의 자리에 그리스 로마 치료의 신인 에스클라피오(ASCLEPIUS, 아폴로의 아들) 와 세라피스(SERAPIS, 고대 이집트의 Osiris와 Apis를 합한 신, 그리스·로마에서도 널리 믿어졌다) 신전이 세워졌다. 그러다가 A. D 422-458 기간 예루살렘의 대주교 였던 유베날(Juvenal)이 로마 이교 신전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45m×18m) 비잔틴 성당을 세웠다. <베데스다 못의 구조, 변천사>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치료의 장소로 알려진 두 개의 우물 근처에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자리에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는 대성당을 지었다고 한다. 베데스다 못 발굴 작업에서 바닥에 화려하게 장식한 십자가 모자이크가 발견 되었는데 학자들은 이 비잔틴 대성당이 427년 이전에 지어졌다고 확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거룩한 십자가가 사람들에게 밟혀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바닥 장식을 십자가로 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이다. 이 비잔틴 대성당은 614년 페르시아 군에 의해 파괴 되었다가 다시 샤를마뉴 대제 때 복원되었다가 1010년 이슬람의 칼리프 알 하킴(Caliph al Hakim)에 의해 또 다시 파괴된다. 그 후 1099년 십자군에 의해 소규모의 수도원이 세워졌다가 1130년 거대한 로마네스크 양식인 지금의 성 안나 교회가 세워져 예수의 어머니 안나에게 봉헌되어 도미니크 수녀원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은 오스만 투르크의 살라딘에게 점령을 당했는데, 오스만 투르크는 당시 십자군이 지은 대부분의 기념 성전들을 파괴 하였지만 성 안나 성당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 때문에 파괴하지 않고 코란을 가르치는 학교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성 안나 대성당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전 건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귀한 건축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교회 출입문 위쪽을 보면 아랍어로 쓰인 현판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교회 건물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기록이기도 하다(이상의 내용은 매표소 입구에서 나눠준 리플릿 자료를 근거로 함). <성 안나교회의 내부> (모순과 진리의 교차점)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에서 예수님에게 고침을 받은 38년 된 병자의 이야기는 모순과 진리의 역설적인 면을 보여 준다. 즉, 당시 베데스다 못 주변에는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이 누워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고 되어 있다. 이들이 이렇게 기다린 이유는 천사들이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을 때, 누구든지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병이 나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설명을 한다(3-4절). 그런데, 이 말은 대단히 역설적이고 모순을 안고 있는 말이다. 즉, 병자들,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은 누군가가 못에 넣어주지 않고는 못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천사가 물을 움직인다고 해서 누가 자기의 병을 고치는 것이 급한데 자기가 안 들어가고 다른 사람을 넣어 주겠는가 말이다. ? 그러므로 성경에서, 여기의 병자들은 병자들의 힘으로는 절대로, 아무도 못에 들어갈 수 없는 현실(모순)에 있는 사람들을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의 구원이 이와 같다. 사람들의 힘과 노력, 열심과 정성으로는 구원이 절대 불가능하다. 그 런데도, 38년 된 병자는 이러한 모순 속에서 38년 동안이나 줄기차게 못가에 앉아서 기다린 사람이다. 그런데 이 연못에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주님이 오셔서 38년 된 병자에게, 그가 무슨 선한 행위를 했거나 기도를 많이 했거나가 아니라 단지 주님께서 선포하신 것에 의해서, 즉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하심으로 인하여 그 38년 된 병자가 깨끗하게 고침을 받고 38년이나 앉아 있었던 자리를 들고 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 구원의 진리가 이처럼 간명하게 설명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무슨 신앙행위나 종교행위, 선행, 공덕을 쌓는 일, 도를 닦는 일, 수행을 하는 일 등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을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 모순된 현실에 진리 되시는 예수님이 오시자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지금도 베데스다 못 가에 앉아 있는 사람들) 지금, 성경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은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고, 예수의 어머니가 탄생했다고 알려진 곳에는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는 교회 건물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러면 베데스다 못가에 앉아서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누군가가 나를 그리로 넣어줄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옛날 그 사람들뿐일까? 어디선가 누군가가 구원의 물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누군가가 나를 구원의 우물로 넣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수도를 하고, 자기 공력을 쌓고, 마니차를 돌리기도 하고, 헝겊을 줄에 달아 놓기도 하는 모습들은 여전히 베데스다에 앉아 있는 또 다른 모습은 아닐까? 세계 곳곳에는 지금도 이러한 베데스다 못가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 세월이 흐른다고 사람의 총명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며,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서 사람의 영성이 발달하는 것도 아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는, 적어도 자기 스스로는 그 못에 내려갈 수 없음을 깨닫고 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깨닫지도 못하고 여전히 베데스다 못가에 앉아 있다. 필자가 베데스다 못에 간 그 순간에도 일단의 무리들이 베데스다 못에 관광을 와서는 가이드로부터 베데스다 못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듣고 간다. 그러나 그가 정말로 들어야 할 소리는 베데스다 못의 역사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베데스다 못가에 앉아 있느냐 아니냐이다. ? 그 자신이 바로 베데스다 못가에 앉아 있는 존재인지는 모르는 채 무너진 돌무더기만을 보고 가는 것은 아닐까?
이스라엘 여행 이야기(9)/ 실로암 못(Pool of Siloam)/ 2015-12-25
이스라엘 여행 이야기(9)/ 실로암 못(Pool of Siloam) (찾아가기) 11월 8일(일), 오늘은 기혼 샘과 실로암 못을 살펴보고 야드바샘을 둘러 본 뒤에 나사렛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시차적응이 안된 탓으로 새벽 2시 반에 눈이 떴다. 8시 아침을 끝낸 다음 자동차를 몰고 예루살렘 성 북동쪽 외곽 길을 통하여 기혼 샘을 좌표로 입력하고 출발했다.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 <숙소에서 기혼 샘까지의 거리> 그런데 올리브 산을 오르는 길과 기드론 계곡 사이로 난 길을 달렸는데, 기혼 샘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의 구글지도 내비게이션은 아랍 사람들이 사는 좁은 골목으로만 안내를 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골목을 갔는데 기혼 샘은 나오지 않고 되돌려 나오느라고 무진 고생을 했다. 자동차 겨우 한 대 다닐 수 있는 길이 일방통행도 아니어서 길 양쪽에서 자동차가 마주치니까 대책이 없었다. 거기서 빠져 나오느라 한참을 실랑이해야 했다. 기드론 계곡의 아랍인 거주 지역은 개발하기 전 옛날 봉천동 달동네보다도 더 낙후되어 보였다. 곧 넘어질 것과 같은 건물 축대와 담장, 공터에 지저분하게 쌓인 쓰레기들, 다닥다닥하게 붙어 있는 집들, 과연 여기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방황한 끝에 기혼 샘 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실로암 주변 마을의 낙후된 모습> 다윗이 왕이 된 후 다윗은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그곳에 살고 있던 여부스 족속들이 기혼 샘물을 끌어들여 만들어 놓은 수구(水口)를 통해 침투할 수 있었으며(삼하 5:8), 솔로몬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행해졌으며(왕상 1:33,38), 므낫세 왕은 다윗 성 밖 기혼 서편 골짜기에 외성을 쌓았으며(대하 33:14),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히스기야 터널로 불리는 길이 약 536m 되는 수로를 만들어 기혼 샘물을 끌어들여 성내의 실로암 못으로 끌어들인(왕하 20:20, 대하 32:30)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곳이어서 꼭 가보기로 했는데 의외로 찾기가 힘들었다. 김종철 씨가 쓴 ‘걸어서 이스라엘 책’ 에 이렇게 기록해 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렇듯 역사적인 의미가 깃든 곳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기혼 샘은 너무나도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기혼 샘을 찾아갈 수 있을만한 안내판도 없어 그냥 물어서 가야할 정도이며 막상 그 앞에 가도 과연 이곳에서 솔로몬 왕이 기름 부음 받은 곳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걸어서 이스라엘 p.152> ? <좌표를 새로 입력하고....>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 오르는 길목까지 와서 거기서 새로 실로암 샘물 위치를 입력하고 가야 했다. 분문을 조금 더 올라가서 좌측 일방통행 내리막길로 가더니 좌측으로 꺾어진 부근에 실로암 샘물이 있었다. <실로암을 알리는 허름한 푯말> ? <실로암 샘물로 내려가는 계단. 사진상의 인물은 우리를 안내해준 아랍인> ? 실로암 샘물이라고 해봐야 무슨 거창한 샘은 아니었다. 좁다란 계단을 내려가니 바로 샘물이 나왔다. 그리고 앞쪽으로 기혼 샘으로 연결된 암반의 수로가 있었다. <기혼 샘으로 뚫린 암반 수로> 지금과 같은 측량 기술이 발달하기 전 히스기야 시대에 단단한 암반을 뚫어서 수로 땅굴을 냈다는 사실에 탄복이 나오고, 또 기혼 샘과 실로암 양쪽에서 땅굴 공사를 시작하여 땅속 중간에서 만날 수 있게 했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또 구배계산을 정확히 해서 기혼 샘물이 자연스럽게 실로암 샘물까지 흘러갈 수 있게 했다는 사실에 탄성이 나왔다. 물은 땅속을 흐른 물답게 차가웠고 여전히 마실 만했다. 실로암에서 나오는 길은 내려가는 길이 아닌 다윗 성 쪽이 있는 일방통행 길로 올라 왔다. 분문 가까이 거의 올라온 시점에 아직도 발굴 중인 다윗 성(다윗 도시)이 있었다. <'다윗의 도시' 입구에 있는 수금 모형> (救贖史의 Irony)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윗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다윗이 양을 치는 목자이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목자장이 되시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었듯이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 되신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시온 산 다윗의 무덤에 있는 수금타는 다윗 동상> 그런데 예루살렘 성을 들러보는 가운데 참으로 묘한 것을 보았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메시아를 몰라보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밖아 당시의 성 밖인 골고다에 버렸는데 지금도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나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을 배척하고 있다. 마치 그러한 역사와 구속사의 흐름의 단면을 보여 주는 듯 다윗의 일부 흔적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었다. 시온 산과 다윗 성이 말이다. ? <시온산과 다윗 성은 모두 성벽 바깥에 위치해 있다> 다윗 성이나 시온 산의 구속사적 가치를 알았더라면 지금의 예루살렘 성벽을 쌓은 오스만 튀르크의 술래이만 1세가 시온 산이나 다윗 성을 예루살렘 성 안으로 안치했을 법한데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전히 다윗의 흔적을 성 밖에 두고 있다. 예루살렘성과 관련하여서는 이러한 전설이 있다. 즉 술래이만 1세 당시 건축기사들이 성벽의 설계를 하면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 모두가 성스럽게 여기는 시온 산을 밖으로 빼놓고 성벽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술래이만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설계자들을 참수형에 처했다고 하는 ..... 어쨌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을 반영하는 듯 시온 산이나 다윗 성은 지금도 예루살렘 성 바깥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고 있는 것처럼. 만약, 술래이만 1세가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실로암 물에 가서 씻고 났더니 눈이 떠졌다고 하는 예수님 당시의 이 일화를 알았더라면, 또 예루살렘 성을 방비하는데 실로암 샘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을 알았더라면 이 실로암 샘물을 성벽 안쪽에 배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눈을 뜨게 했던 실로암 샘물도 이렇듯 성 밖에 있다. (실로암은 지금도 흐른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요 9:7).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나서 살고 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모두 눈이 먼 상태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길이 어디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눈이 먼 것을 누군가가 가르쳐 주어야 하고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눈을 물에 가서 씻을 필요가 있는 존재로 살아간다. 바로 실로암은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예수의 보내심을 받아 실로암에 가서 씻었더니 밝은 눈이 되어 돌아온 곳이다(요 9:1-7). 그런데 이 실로암은 아무도 잘 찾지 않는 예루살렘 성벽 바깥 후미진 곳에 있다. 마치 아무도 잘 안 찾는 구석진 곳에 예수님이 있듯이 말이다. 지금도 이 실로암은 사람들이 와서 눈 씻고 보게 되기를 바라면서 구석진 곳에서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