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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지이스라엘
3. 성지이스라엘 1. 예루살렘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 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수 6:20)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 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시편 132:13) 다윗왕이 원주민 여부스족을 물리치고 처음 예루살렘을 점령 한 이후 시온 산성(Zion), 또는 다윗성(Cityof David) 이라고도 불리던 예루살렘성,(삼하5:7-9) 그 성(The City), 하나님의 성 (God\'s City),거룩한 성(HolyCity),정의의 성(City of Justice), 믿음의 성(Faithful City), 평화의 성(City of Peace), 아름다운 성(BeautifulCity)등의 모든 이름들은 여러 예언자들이 서로 달리 예루살렘을 부르던 말 들이다. 2. 감람산 (Mt. Olive)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눅 21:37) 해발 약 800 m의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계곡 건너편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는 감람나무(OliveTree)가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예루살렘 보다 약 90 m 가 높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예루살렘전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예수님은 이 산을 자주 찾아와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기도문을 가르치기도 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하였으며 부활 후 마침내 이곳에서 하늘로 승천하시었다. 예수님이 배신 당하고 체포당한 겟세마네 동산을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는 이곳 감람산의 서쪽 기슭이다. 3.겟세마네 동산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막 14:32) 겟세마네 동산을 감람산 서편 기슭으로 바로 아래에는 기드론 계곡이 있고 기드론 계곡을 건너면 예루살렘성의 동편 성벽과 이어진다. 이곳에는 몇 개의 기념 교회들이 세워져 있다. 예수께서 땀흘려 기도하시던 장소의 바위를 둘러싸고 지어진 \'겟세마네 교회\', 러시아 황제가 자기 어머니를 위한 기념으로 세워 놓은 \'막달라 마리아 교회\', 예수께서 붙잡히실 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자른 장소에 세워진 \'겟세마네 동굴 교회\', 예수님이 우셨다는 곳에 세워진 \'눈물 교회\' 등이다. 4. 베데스다 못 (Pool of Bethesda) ▲top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다섯 행각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던지 낫게 됨이러라.\" (요 5:2-4) 성 안나 교회 구내에 있는 베데스다 못의 지역은 1871 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오늘날은 원래의 그 모습을 잘 볼 수가 있다. 5. 비아돌로로사 (Via Dolorosa) 제1지점 : 빌라도법정 제2지점 : 가시관,홍보를 씌우신 곳 제3지점 : 십자가를 지시다 처음 쓰러지신 곳 제4지점 :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나신 곳 제5지점 : 구레내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진 곳 제6지점 : 베로니카여인이 예수님 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7지점 :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지신 곳 제8지점 : 예수님이 마리아를 위로한 곳 제9지점 :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지신 곳 제10지점 :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 제11지점 :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 제12지점 : 예수님이 운명하신 곳 비아돌로로사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 빌라도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비아돌로로사는 옛 길을 따라 14개의 지점에 그림 또는 조각으로 표시를 해놓고 그날의 슬픈 현장을 생생하게 회상케 해 준다. 제13지점 : 예수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14지점 : 예수님이 묻히신 곳 (요셉의 무덤) 제1지점은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시던 빌라도 법정이며 제2지점은 가시관을 씌우고,홍포를 입히고 희롱한 곳이며, 제3지점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이며 제4지점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이며 제5지점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이며, 제6지점은 성베로니카 여인이 물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는 곳이며, 제7지점은 예수님이 두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8지점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 라고 말씀하신 곳이며, 제9지점은 예수님이 세 번째로 쓰러진 곳이며 제10지점은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며, 제11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곳이며 제12지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곳이며 제13지점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놓았던 곳이며 제14지점은 예수님이 묻히신 곳 즉,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 이다. ※ 제10지점 에서 제14지점까지는 처형의 목적지인 골고다 언덕 위로써 지금의 성묘 교회 (Church of the HolySepulchre)안에 있다. 6, 성전산 (Temple Mount) <대하3:1-5, 눅19:45-46, 마4:5> ▲top 아브라함이 이삭을 희생 제사로 드리려 했던 모리아 산을 서기 전 1000년경 다윗왕은 그 땅의 주인 아라우나로 부터 은 50 세겔을 주고 구입하였고(삼하 24:18-25), 그의 아들 솔로몬은 페니키아인들의 도움으로 화려한 궁전과 여호와의 성전을 건설 하였다. 서기 전 586년 이곳을 침략한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은 성전을 불태웠으며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들을 바벨론으로 유배 시켰다. 바빌로니아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태인들은 주전 515년에 소규모로 성전을 재건하였고, 이것을 제2성전(2nd Temple) 이라고 부른다. 서기 전 37년에 로마제국의 후광하에 왕위에 오른 헤롯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당시에 현존하던 성전을 헐어 버리고 대규모의 성전과 부속 건물, 주변의 요새 등을 원래의 크기와 위용대로 재건 하였고, 서기 30년경 나사렛 출신의 예수는 부패한 성전의 지도자들에 대항하여 성전을 정화시키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성전 모독 죄 및 반란죄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서기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이 성전은 다시 완전히 파괴되고, 성전 터엔 서기 135년경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이교도의 아도니스(Adonis) 신전이 건설 되었고, 비잔틴 시대(서기 330∼ 640) 에는 이곳을 통치했던 기독교인들이 바신들이 비난시 했던 유대인 성전의 파괴를 후세에 보여주기 위하여 가꾸지 않은 황폐한 모습으로 성전산을 방치하였다. 서기 638년 이후 이곳을 통치했던 모슬렘들은 성전 산의 큰 바위 위에서 자신들의 최고의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바위를 종교적으로 기념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서기 692년 당시 예루살렘의 통치자 (Caliph) 압둘 말리크는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팔각형의 기단과 돔으로 이루어진 일명 \"황금의 사원\"이라고도 불리우는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을 건설하여 오늘날 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7. 모리아산의 바위 (Rock OF Mt.Moriah) 바위 사원 실내에는 폭 12야드 길이 15야드 높이 2야드의 넓직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던 제단이라고 전해진다. 표면에는 골이 패어 있어서 제물의 피가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슬람들은 이 바위를 딛고 마호메트가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 세계의 3대 성도가 되는 것이다. 8. 통곡의 벽 (Western Wall ) (사진1) 유월절의 통곡의 벽 전경 (사진2) 욤키풀의 통곡의 벽 전경 (사진3) 통곡의 벽 야경1 (사진4) 통곡의 벽 야경2 (사진5) 통곡의 벽 겨울 전경 이곳은 유태 교도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을 하는 곳이다. 이 벽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제2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주후 70년 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유독 이 벽만을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 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 되었다.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수세기에 걸쳐서 계속 되었는데, 1948년부터 1967년 까지 이 지역이 요르단 령에 속하게 됨으로써 유태인들은 다시 방문이 금지 되기도 했다. 유태인들은 6일전쟁시 이 지역을 탈환하므로 서 이곳은 범국가적인 즐거움과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 앞의 넓은 공터를 수 천명이 기도할 수 있도록 다듬어 놓았으며, 또한 이곳은 유태 교도들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으로서 옛 성전의 마지막 유물로 추앙을 하는 곳이다. 이 벽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제2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주후 70년 경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은 모두 파괴하고 유독 이 벽만을 남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 군인들의 위대한 힘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었으나 비잔틴 시대에는 일년에 단 한번 성전 파괴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 되었다.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9. 여리고 (Jerico) ▲top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수 6:2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눅 19:1-4) 여리고는 물이 풍부하고 토질이 좋아서 오렌지, 바나나,대추야자 등 온갖 작물이 풍성한 곳이다.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반면에 겨울과 봄에는 기후가 좋아서 온통 꽃 향기가 진동한다. 부근 일대에는 종려나무가 흔하기 때문에 종려나무의 도시 (TheCity of Palms)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해면보다 250m 낮은지역으로서 예루살렘 동편 약35Km 떨어진 요르단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10. 여리고의 옛 도시 (The Jerico Excavations) 고고학적으로 여리고는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곽도시(Walled City)이다. 이곳은 1930-1936년에 영국의 고고학자 죤 카스팅(John Garstang)이 발굴했고, 1952-1958년에는 영국의 여류 고고학자 캐더린 캐년(Kathleen kenyon)이 정밀 발굴 하였다. 발굴 결과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 성을 발굴하고 성벽과 둥근망 대(Round Tower)를 발굴 하였다. 즉 주전 7000년경에 이미 성울 쌓고 도시 생활을 시작한 유물인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집안 벽을 그림으로 장식하였고 죽은 사람의 두개골은 방바닥에 매장 하였다. 또한 진흙으로 만든 여자의 형상, 동물 형상도 발굴 되었다. 이 시대에 속하는 주거 층에서 터어키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오석(Turqu-oise)으로 만든 장신구가 발견 되었다. 이것은 이미 이 시대에 여리고는 여러 먼 곳의 지역과 왕래와 교류 관계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 11. 요단강 (River Jordan)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마 3:5) 요단강은 사철 눈이 녹지 않는 헬몬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호수를 거쳐서 사해까지 이른다. 갈릴리 호수에서 사해 까지 직선거리 104Km를 구불구불 굽이쳐 흐르기 때문에 그 총 길이는 256Km가 되며, 평균 폭은 약 30m이다. 갈릴리 지방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엄숙한 표정에 약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메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사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침례)를 받으신다. 12. 사해 (The Dead Sea) 길이 77Km 폭 16Km 표면적 약 950 평방 Km 인 사해는 그 수면이 지중해보다 398m나 더 낮다. 즉 지구 표면 중에서 가장 움푹 들어간 곳 이다. 구약에는 염해(Yam Hamelach = Salt Sea)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생물이 전혀 살지 않기 때문에 사해라고 불리며 염도가 약25%로서 세계적으로염분이 가장 많은 물이다. 따라서 사람이 사해에 들어가면 손발을 휘젖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둥둥 떠 있게 된다. 혹시 손발을 휘젖다가 물방울이라도 튀어 눈에 들어간다면 눈이 쓰라려서 그 고통을 견디기가 힘들 정도이다. 보통 바닷물이 4-6 퍼센트의 염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해물은 그 5배나 되는 것이다. 사해가 그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는 그 물이 흘러 나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요단강 등 주변에서 유황과 질산 성분의 물질들이 함유된 약 7백만 톤의 물이 매일 쏟아져 들어 오는데, 빠져 나갈 구멍은 없고 요르단 계 곡의 뜨거운 열기는 수분을 증발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화학물질 등 고 체 성분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특히 사해의 포타슘 매장량은 전세계가 이곳에서 나는 것만 쓰더라도 100년을 쓸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포타슘은 비누, 비료들을 만드는데 쓰인다.사해 주변에는 사해 물을 분석해서 광물질을 추출해 내는 공장 들이 있다. 사해의 물은 피부병에 특수한 치료 효과가 있다고도 한다. 또한 이곳의 검은 흙은 신경통 등에 특효라고 전해진다. 세계 각국에서 치료차 사해에 오는 사람들이 있고, 이 근처에는 이들을 위한 특수 병원도 있다. 13. 맛사다 (Mesada) ▲top 마사다는 히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이며, 사해의 서쪽 해변에 위 치하고 있다. 주위의 유대 광야의 산들과는 고립된 높이 400여m의 이 천혜의 절벽 요새는 정상이 길이 600M, 가장 넓은 곳이 폭이 250 m인 평지를 이루고 있다. 서기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Josephus)가 기록한 \"유대 전쟁사\"를 통하여 마사다가 헤롯왕의 요새인 동시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했던 \"유대 전쟁(Jewish War)\" 최후의 비극의 격전지 였음을 알게 해준다. 서기 66년부터 시작된 이 반란이 로마의 월등한 군사력으로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함락과 더불어 성전의 파괴로 끝을 맺게 되자 이에 굴복하지 않은 960명의 \"열심당원\" 이라 불리는 극우파 민족주의자들은 이미 66년에 당시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마사다를 점령하며 저장된 물과 식량, 무기를 이용하여 로마에 대항하였다. 예루살렘을 이미 점령하여 유대인 반란의 진압을 이미 달성한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Titus)는 장차 아라비아 광야 지역으로의 진출을 예상한 광야 전투의 훈련을 목적으로 실바(Silva) 장군으로 하여금 10군단을 이끌고 이곳에 대한 대규모의 포위 작전을 실시하게 하였다. 로마군은 2년에 걸친 무수한 정상 공격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요새 꼭대기의 견고한 성벽을 파괴시키기 위한 공성퇴(Battening Ram)를 끌고 올라 갈 수 있는 거대한 경사로를 6개월에 걸쳐서 축조하였다. 유대인들의 격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성퇴가 성벽을 무너뜨리게 되었고 다음날 아침이면 로마군이 성벽이 파괴된 곳으로 진격해 올 바로 그 전날밤에 유대인들의 지도자 엘리에제르 벤 야이르(Eliezer ben Yair)는 모두를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요지의 연설을 하였다. \"내일 아침 로마군에 잡혀서 온갖 수모를 겪느니 차라리 오늘 밤에 우리가 스스로 자유스럽게 영광의 죽음을 선택 합시다.\"이 말에 감동한 각 가족의 가장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칼로 찔러죽인 다음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명을 추첨하여 그 열명이 나머지 남자들을 죽였고 남은 열명이 한명을 추첨하여 아홉 명을 죽인 후 그도 최후로 자결 하였다. 3년 동안의 한 맺힌 포위 작전에 대한 영광의 대가를 바랬던 로마군들은 960구의 시체 앞에 망연자실 했으며, 이 비극의 전설은 오늘날까지 승화되어 마사다는 현재 이스라엘 군 장병들이 선서 식장으로 활용되고, 이곳에서 그들은 \"Never Again!\"을 외치면서 1948년에 독립한 이스라엘이 다시는 외적에 의해 정복당할 수 없다는 비장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14. 쿰 란 (Qumran) 1947년 봄 한 베드윈(Bedouin) 소년은 잃어버린 염소를 찾아 나섰다가 사해의 서쪽 해안의 절벽 지대의 한 동굴 속의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던 양피지에 기록된 구약성서의 두루마리(Scroll) 사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서기 1008년에 기록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Codex)이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의 사본이었는데 이 사해 사본은 그보다 무려 1100여년이나 앞선 서기 전 100년을 전후하여 기록된 것이어서 성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다. 1951∼6년에 걸쳐 프랑스의 성서 고고학자 드보(R. De Vaux)는 쿰란언덕에 위치한 유적지를 발굴하여 이곳이 요세프스를 비롯한 고대의 역사가들이 언급하고 있는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엣세네(Essene) 집단의수도원임을 밝히게 되었다. 수도원은 원래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었으며, 이 보다 높은 지점의 계곡에 댐을 건설하여 겨울철의 우기에 흘러내려오는 빗물이 수로를 따라 수도원의 물 탱크에 자동적으로 저장되었다. 한 주간 중 평일에는 근처의 수많은 동굴 속에서 기거하던 엣세네 수도자들이 안식일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물로 씻는 정결 예식과 성서연구를 하였고 공동의 식사를 위한 대형 식당과 주방, 성서를 베끼는 필사실 등이 이곳에 갖추어져 있었다. 유대 광야에서 선교하던 세례요한이나 근처의 요단 강에서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했던 예수도 이 공동체에 깊은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쿰란 주변 11개의 동굴에서는 발견된 사해 사본들 가운데 두루마리(scroll)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은 불과 10개 뿐이며 나머지는 수천 개의 조각들로 발굴되었다. 이들 중 약 1/4은 구약사본이며 나머지는 구약 주석, 신학,쿰란 공동체의 규율집 등으로써, 대부분 양피 가죽이나 파피루스위에 고대 히브리어로 적어 놓은 것들이다. 15. 므깃도 (Megiddo) 이스르엘 평야 중에서도 므깃도는 동서남북을 서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으므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제국들의 군대는 이곳을 통과하여 지나갔고, 가나안 땅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전투가 가장 많이 벌어졌던 곳이다. 솔로몬 왕은 므깃도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이곳을 강화시켰고, 이 지역의 행정적 중심지로 만들었다.(왕상 9:15) 그러나 923년경 애굽의 시삭(Sisak)은 므깃도를 파괴하였고 그 후 아합왕때 이곳은 다시 재건되었다. 요시아왕은 북진하는 애굽 군대를 이곳에서 맞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BC 609) 1917년 영국의 알렌비(Allenby)장군이 터어키군을 패배 시켜 승리로 이끈 곳도 므깃도였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아마겟돈(Amageddon)\'은 므깃도 산(Har megiddo)이라는 히브리 말을 희랍어로 옮긴 말이다. 므깃도는 1925-39년에 시카고 대학의 동양 연구소(Oriental Institute)에 의해 발굴되었다. 또한 1960년 이갈 야딘(Yigael Yadin)도 발굴하였다. 이곳은 주전 3000년 부터 큰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가나안 원주민들이 만들었던 산당(High Place)식 신전을 발굴하였고, 또한 솔로몬 때 건설한 성벽, 성문, 관저들도 발굴 되었다. 므깃도에서중요한 것은 \'솔로몬의 마병장(Solomon\'s Stables)이다. 솔로몬은 그 당시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를 육성하여 \'병거성(City of Chariosts)\'과 \'마병의 성(City of Horsemen)\'들을 건설하였다. 므깃도는 이러한 병거, 마병성의 하나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므깃도 발굴에서 말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들이 늘어서 있는 큰 장소를 발굴 하였다. 약 450마리 정도의 말과 150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며,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큰 물통도 있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것을 \'솔로몬의 마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발굴된 지층은 솔로몬왕 때의 주거 층이 아니라, 이보다 약 100년 후 아합왕 때의 것이다.(BC 869-850) 므깃도는 시삭에게 파괴되었다가 아합때 복구 되었었다. 그러나 아합왕 때의 마병장은 그 이전 솔로몬때의 것 위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 할 수 있으며, 규모도 비슷한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므깃도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것은 당시의 발전된 공업 기술을 볼 수 있는 우수한 수로 장치의 발견이다. 큰 통로가 바닥까지 내려 있고 그 통로의 끝에서 바위 구멍을 뚫고 도시 밖의 샘으로 부터 도시 내부로 끌어 들이도록 되어 있다. 밖의 샘 입구는 포위하고 있는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흙으로 덮여 있다. 이것은 3,000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잘 보관되어 있다. 16. 나사렛 (Nazareth) ▲top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나사렛은 예수께서 출생 후 잠시 애굽으로 피난 했던 때를 제외하고는 태아에서 부터 유년기를 거쳐 성년이 되기까지 일생을 보낸 고향이다. 베들레헴 말 구유간에서 태어난 예수 님은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가, 주의 사자가 이르는대로 이스라엘 땅에 되돌아와서 정착한 곳이 그 부모의 고향이기도 한 나사렛이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는 나사렛 을 떠나지만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항상 나사렛이라는 말이 붙어 다닌다. 크리스챤 이라는 말도 히브리어로는 \'노쯔리\', 아랍어로는\'낫스라이\'라고 불리웠는데, 이는 \'나사렛사림들\'이라는 뜻이다. 17. 티베리아 (Tiberiah) 티베리아는 갈릴리 호수 서안에 위치하는 온천 휴양지이다. 티베리아는 주후 17년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티바스(Herod Antip as)가 건설한 도시로서, 로마 황제 티베리아스(Tiberias)의 이름 을 따서 도시 이름을지었다. 이 도시가 세워진 후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이곳에 살기를 거부 하였으나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차츰 유대인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유태 지식인들이 이곳에 모였고 미슈나(Mishnah)와 팔레스틴 탈무드(Palestinian Talmud)가 이곳에서 완성 되었다. 또한 히브리어에 모음과 구두법에 문법을 도입한 것도 이곳에서 였다고 한다. 따라서 유태인들도 티베리아를 그들의 4대 성도 중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 미슈나(Mishnah) : 구약 율법(Written Law)에 대한 구전법(Oral Law)을 집대성한 것 으로서 주후 200년 경 완성 ※ 탈무드(Talmud) : 미슈나에 대한 논의, 해석, 주석, 설명을 총 집대성한 것으로 주후 5세기 경에 완성 18. 갈릴리 호수 (Sea of Galilee) ▲top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마 4:18) 갈릴리는 예수님의 복음 선교 활동의 중심지 였다. 제자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베드로가 살던 집도 이곳 갈릴리 해변의 가버나움 마을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던 들판도 바로 갈릴리 호수의 북쪽 연안이었으며 유명한 산상보훈의 설교도 이곳 언덕 위에서였다.믿음이 부족했던 베드로가 풍랑 속에 빠진 것도 이 갈릴리 호수에서였다. 해면보다 그 수면이 200m 나 낮은 갈릴리 호수. 평상시에는 잔잔하고 맑으나 때때로 큰 폭풍으로 성난 파도를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예수님 당시의 갈릴리 호수 연안은 중요한 교통의 요지 이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기름진 옥토를 갖고 있어서 주변 인구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은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 갖가지 농산물이 풍부하게 재배되고 있으며 갈릴리 호수의 물은 전 이스라엘 땅의 음료수는 물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까지 대부분 충당하는 생명선이 되고 있다. 심지어 남쪽으로 360Km나 떨어져 있는 네게브 사막의 세데보케(Ssede Boque)까지 물을 공급해 준다. 호수에서 처음 시작되는 송수관은 큰 자동차가 드나들 정도로 크지만 점차 가늘어 지면서 흡사 사람 몸의 혈관처럼 이리 저리 연결되어 전 국토를 적셔 주는 것이다. 19. 가버나움 (Gapernaum)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마 4:12-13) 고대 가버나움은 갈릴리 북쪽 해안에 있었으며 당시에는 매우 번화해서 세관도 있었고 큰 회당도있었으며 주민들이 많았던 마을 이었다. 예수님은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에서 주로 활동하셨다. 이곳에서 그는 많은 이적을 행함으로써 그의 신성과 전지전능함을 나타 내신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설교하셨고 문둥병자를 고치셨으며 중풍병으로 누운 종을 낳게 하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셨으며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셨으며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낫 게 하셨으며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셨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손을 펴게 하셨다. 배은망덕한 도시 가버나움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은 적중하여서 이미 그 도시는 파괴되고 잊혀진지 오래이다. 지금의 가버나움은 호숫가 종려나무들 속에 폐허 더미로 남아 있을 뿐이다. 가버나움 터는 1905년에 발굴 되어서 가버나움 옛 회당을 발견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베드로의 집 터 위에 5세기 경에 세워졌던 유적들을 발굴하였다. 20. 가이사랴 (Caesarea)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를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사 8:40) 가이샤라는 텔아비브와 하이파 중간쯤 되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베니게 사람(Phoenicaian)들에 의하여 세워졌던 이 도시는 헤롯 왕에 의하여 주전 20년에 크게 중건되어 훌륭한 항구도시로 만들어 진다. 헤롯은 로마 황제 가이샤(Augustus Ceasar)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도시를 가이샤라 라고 이름 붙인다. 로마 시대에 가이샤라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 가이샤라는 신약에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가이샤라는 사도바울과 베드로가 방문한 최초의 이방 도시 였으며 (행 10:1-24), 사도바울 이 로마로 보내지기 전에 이곳에 투옥되어 있었다.(행 23장 이하) 현재 가이샤라에는 로마시대의 야외극장과 수로(Roman Aqueduct), 십자군 시대의 성채 등이 발굴되고 있다 21. 욥바, 텔아비브 (Jaffa, Tel-Aviv) ▲top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요나 1:3) 욥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65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구약시대에는 솔로몬 왕이 욥바 항구를 통하여 레바논으로부터 백향목을 수입하였으며,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하기 위하여 욥바에서 배를 탄다. 신약시대에는 베드로가 욥바에서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죽은 것을 다시 살렸으며 피장이 시몬 (Simon the Tanner)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구약 시내로부터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던 욥바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롭게 하이파 항구가 발전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잃는다. 주민들도 비좁은 욥바 시내에서 벗어나서 그 북쪽으로 신시가지를 이루며 옮겨 간다. 신시가지는 \'봄의 언덕\' 이라는 뜻을 가진 텔아비브라고 새로이 이름지어진다. 텔아비브는 순수한 유태인들의 도시로써 이스라엘 건국 후 급속히 인구가 증가한 도시이다.
구약, 성막 서론 & 성막모형/ 2015-06-29
구약, 성막 서론 & 성막모형 "성막" 동영상 ▒ 성막(3D영상) ▒ 출처 :인터넷로고스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 David ★ 모 형 ★ 성 막 은 지금부터 약 3,500 년전 하나님이 시내산 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계시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적 복음이며 에덴 동산의 양의 가죽옷 다음으로 이 땅의 눈에 보이는 복음의 뿌리 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이 되었고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이 거하셨던 처소 였으며 죄인 들의 제사를 받으시고 용서해 주시고 만나 주셨던 은총 의 장소 였습니다. 성막은 구약의 예수이시며 신약의 성막은 예수그리스도 이시며 지금은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눈에보이는 성막 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막 공부는 인류의 구원자 이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공부인 것을 알아야 하며 복음의 주체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만나서, 찬양 하고 땅끝까지 증언자가 되기위 하여 꼭 듣고 공부 해야 합니다 울 타 리 성막의 총 평수는 378 평이다. (*1규빗=50 cm ) 장=100규빗 (50m), 광=50규빗 (25m) 고=5규빗 (2.5m) 울타리 놋기둥은 총 60개이다(동과 서에 각각 10 개씩 남과 북에 각각 20개씩 )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었다. 울타리는 세마포로 쳤다. (동쪽 문 10m 제외 ) 성 경 : 출 27 : 9-19 울타리는? * 예수그리스도를 의미 합니다.(놋기둥) * 구별 됨을 의미 합니다. *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유) * 보호받는 곳 입니다. (바람막이) * 안전한 곳 입니다. * 울타리 안은 모든것을 공급받는 곳 입니다. * 사랑의 공동체의 삶을 의미 합니다. * 세마포는 예수님의 피 묻은 옷 입니다.(예복) * 밖에서 안을, 안에서 밖을 볼 수 없습니다. (높은 울타리) * 예수 사랑의 줄로 묶여야 합니다.(연결) * 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 교회와 성도는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막 황금의집 [스크랩] 성막 모형 (敎材) 성막 서론 (출 40:1-9) 성막에 대해서 언젠가 말씀한 적이 있지만 다시 몇 차례에 걸쳐서 복습해 보고자 합니다. 성막이란 무엇일까요?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앞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나 그림은 성막 전체적인 모습을 상상해서 만들었거나 그려놓은 것입니다. 이 성막은 우리나라 곤지암 갈보리교회 성막 축소형입니다. 1/5 축소했는데 물개의 가죽 등 많은 비용이 들어간 성막모형입니다. 이 성막은 두레마을의 성막입니다. 저도 가본 적이 있는데 재료는 다르지만 성막원형 크기로 지은 것입니다. 바닥은 광야처럼 모래이고 박물관을 만들어 성경의 풍습이나 물품들을 전시해 놓은 것도 있습니다. 광야의 성막 상당도입니다. 가운데 성막이 있고 레위지파가 성막을 둘러서 진쳤고 12지파가 그 둘레를 진친 모습이 되겠습니다. 이 그림도 광야의 성막의 상상도입니다. 불기둥이 성막 위로 치솟아 있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습니다. 이 그림은 성막모형인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모형입니다. 이 모형 그림을 잠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성막은 멀리서 보면 천으로 된 울타리 같습니다. 흰 세마포 울타리가 약 50×25m 크기로 성막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흰 세마포 울타리에 문이 하나 있고 그 문을 들어서면 성막 뜰이 있다.성막 뜰 안에는 조각목과 놋으로 된 번제단이 있고, 조금 더 안쪽에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물두멍을 조금 지나면 안쪽에 있는 막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을 성소라고 하며 성소는 두 부분, 휘장을 사이에 두고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집니다. 성막에 관한 명칭들 성막은 여러 명칭으로 불리지고 있습니다. 1. 성소 2. 회막 3. 증거막 4. 증거의 장막 5. 여호와의 집 6. 여호와의 성막 7. 여호와의 전 8. 여호와의 장막 9. 법막 10. 실로의 성막 11. 요셉의 장막 성막의 평면도는 어떻게 생겼을까? 방향은 동서남북 표시대로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대략의 구조는 여기 동편에 문, 성막뜰, 성소, 지성소, 울타리 밖은 이방인의 뜰입니다. 성막에는 여러 기구들이 놓여져 있는데 놓여진 위치를 말씀드리면,, (넘버 표시대로 위치를 설명한다) (시청각은 끝 ) =================== 이 기구들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고 이 시간에는 성막의 의미에 대해서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막의 의미는 한 마디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막을 알아야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로 나가는 길을 알게 됩니다. 1. 성막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보여줍니다. 출25:22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그랬습니다. 성막이란 본래의 단어는 ‘미쉬칸’으로 거처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성막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을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만나려고 하면 만나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구조를 자세히 알고 복음에 선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성막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계시해 줍니다. 히10:20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성막이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휘장만 예수가 아니라 휘장도 예수님, 제사장도 예수님, 제물도 예수님, 제단도 예수님, 구약의 모든 것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도 예수님입니다. 한 곳의 문은 바로 예수님만이 인생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보여줍니다. 3. 성막은 성령의 인도 받음을 보여줍니다. 구름기둥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은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머물렀습니다. 그러니까 성막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 성령이 충만하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오면 성령 충만이 있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요1:16-17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성막 중심으로 살았든 우리들도 예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4. 성막은 예수님을 중심한 신앙생활 전체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성막문에서 구원론을 봅니다. 예수밖에는 구원이없다는 것이지요. 번제단에서 죄론과 보혈론을 배웁니다. 내 죄 때문에 주님이 희생하셨다는 것이고 그랬기에 그 공로로 사함받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등대에서 사명론을 배우고, 떡상에서 말씀과 축복론을 배우고, 분향단에서 기도론을 배우고, 법궤에서 부활론 천국론 계시론 삼위일체론을, 각종 기구에서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기타 다 열거할 수 없는 여러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 전체요, 성경 전체입니다. 그래서 성막 공부는 우리를 균형 잡힌 신앙생활로 인도해 줍니다. 5. 성막은 예수 복음에 대한 가장 좋은 모형입니다. 성경에 모형이 많지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예수님 모형이라 했습니다. 또 홍해의 사건은 고전10장에서 세례와 중생의 모형이라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놋뱀을 만들어 달았는데 이 역시 십자가에 달리실 예수님에 대한 모형이었습니다. 라합의 붉은 줄도 예수님의 구원의 모형입니다. 혹은 도피성도 죄인의 도피처가 되시는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이처럼 성막은 그 구체적인 것 하나 하나가 예수님에 대한 모형입니다. 성막의 양도 어린양 예수님을보여주는 모형입니다. 성막 안에서 제사도 예수, 제물도 예수님이요, 성막 자체도 예수님에 대한 모형입니다. 그래서 성막을 보이는 복음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에서 떡과 잔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보이는 복음임과도 같이 성막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6. 성막은 예수님 앞에서 우리 신앙을 다시 점검하게 합니다. 고후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막 문에서 나는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유일한 구주로 믿고 있는가를 점검합니다. 또 번제단에서 나의 죄가 얼마나 큰가? 또 나의 죄를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 받은 것을 확실히 믿는가? 또 용서 받은 의인이라는 확신이 있는가를 점검받게 됩니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얼마나 주의 말씀과 피로 씻어 성결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또 촛대 앞에서 나는 얼마나 빛된 생활과 사명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가? 또 떡상 앞에서 말씀 양식을 얼마나 먹고 있으며 헌신하고 있는가? 또 분향단 앞에서 기도 생활을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 등등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고 사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막에서 예수님을 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예수님이 누군지 가르쳐 주며,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는 진리를 알게 하며, 성령의 인도 받는 삶과 신앙생활 전체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모두 성막을 통해서 주님을 더 알고 잘 믿을 수 있도록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금촛대/ 성막/ 2015-03-26
금촛대/ 성막/ 2015-03-26 금촛대 | 성막 금촛대 금촛대 디도서 궁형촛대 디도서 궁형촛대 촛대 (출 25: 31-40) 이것은 순금으로 만들었고 일곱가지가 있다. 이 촛대는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업이다. 기름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주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함과 같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의 빛을 죄악 세상과 인간의 영혼에 비취일 뿐 아니라 진리와 천국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시여 빛을 빛임과 같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멸망의 자리로 향하는 인간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취일 뿐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축복받는 길을 비취이는 안내자이다. 스가랴서 4장 2절에 의하면 순금 등대 좌우에 두 감람나무가 서서 그 등대에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 불이 힘있게 타게 했다 이것은 곧 주의 몸된 교회가 성도들에게 은혜의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서 성도로 하여금 세상에서 빛이 되게 하심이다.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등잔대 모형(출 37:17-24) 31 순금을 두들겨서 등잔대를 만들어라. 등잔대의 밑받침과 줄기와 등잔과 꽃받침과 꽃을 하나로 이어놓아라. 32 등잔대의 줄기 양쪽에서 곁가지 여섯 개가 나오게 하였는데, 등잔대 한쪽에서 곁가지 세 개, 또 다른 한쪽에서도 곁가지 세 개를 나오게 하여라. 33 등잔대의 각 곁가지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고, 그 맞은쪽 곁가지도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어라. 등잔대의 줄기에서 나온 곁가지 여섯 개를 모두 이와 같이 만들어라. 34 등잔대 줄기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네 개를 쌓아 놓은 모양으로 만들어라. 35 그리고 등잔대의 맨 위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세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두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맨 아래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여, 여섯 곁가지를 줄기와 연결시켜서 한 덩이를 만들어라. 이렇게 등잔대의 줄기에서 좌우로 곁가지가 나오게 하여라. 36 등잔대 줄기의 꽃받침에 연결된 곁가지들은 모두 순금을 두들겨 만들되, 전체를 하나로 이어놓아라. 37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서, 그것을 등잔대 위에 올려 놓아, 앞을 밝게 비추도록 하여라. 38 등잔불 집게와 불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어라.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어라. 40 이 모든 것을,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양 그대로 만들도록 하여라. (표준새번역 출 25장) 등불 관리(레 24:1-4) 20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올리브를 찧어서 짜낸 깨끗한 기름을 가져다가 등불을 켜게 하되, 그 등불은 늘 켜 두어라. 21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것을 회막 안의 1)증거궤 앞에 쳐놓은 휘장 밖에 켜 두어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서 꺼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길이 지켜야 할 규례이다. (표준새번역 출 27장)
도피성이 있었던 곳/ 2015-03-24
도피성이 있었던 곳/ 2015-03-24 도피성 존재의 이유 이스라엘의 요단강을 기점으로 하여 48개의 성읍 중 6곳을 택하였습니다. 요단강 동편에 3곳(베셀, 길르앗라못, 골란) 요단강 서편에 3곳(게데스, 세겜, 헤브론)이었습니다(수20:7-8).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지명의 뜻까지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쪽의 도피성은 골란과 길르앗 라못, 그리고 베셀에 두었고 서쪽에는 게데스와 세겜, 그리고 헤브론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 지도를 참조하여 보면 이스라엘 전역 어디에서든지 32km 이내에 위치하여 있어서 부득이 도피성으로 피해 가야할 경우 하룻길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성을 향한 도로는 폭을 14m 이상이 되도록 넓게 잘 닦아 놓았으며 또 길을 잃지 않도록 미클라트(도피성)라는 안내판도 곳곳에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이 도피성은 무슨 이유로 세워놓은 것일까요?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살인죄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 죄에 대한 형벌은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이에 대한 형벌이 없다면 사회 정의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거기에다 연속적으로 살인에 대한 끝없는 복수가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죄가 중할수록 그리고 그 형벌이 엄할수록 의도적인 살인과 과실로 발생하는 사고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은 누명을 쓴 사람이 피살자의 가족들로부터 즉각적인 보복을 당하기 전 까지 자기 결백을 증명할 수 있도록 안전하게 피신할 장소도 필요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다 그 도피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고의로 이웃을 모살하였으면 살인자가 거룩한 단에 있을지라도 끌어내어 죽이라고 명령하신 바 있습니다.(출21:12-14) 따라서 이 도피성은 중한 과실죄를 지었으나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의 피난처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도피성에도 운영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로 살인자가 과실로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도피성에 들어가 숨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의도적으로 살인하지 않았음에 대한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살인에 대한 도구가 있거나 계획적인 살인을 하였다면 구제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과실로 살인한 자는 도피성에서 얼마든지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받게 됩니다. 둘째, 반드시 도피성으로 스스로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인자는 도피성 안에 있을 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피하는 도중에 보복을 당하거나 도피성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지루하다 하여 밖으로 나와 있다가 죽음을 당하는 일은 도피성에 대한 규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이 스스로 무죄하고 또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생각할지라도 도피성으로 피하지 않으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도록 하는 보수(報酬)의 원칙에 따라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내어준바 되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죄 값을 치루게 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 피해 있던 자들에게 사면이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어 사면령이 내려지면 보수자가 살인자를 만나도 보수의 원칙에 따라 피를 흘리게 할 수 없습니다.(민35:27,28)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신 은총이 내려집니다. 왜냐하면 이 도피성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의 과실에 대한 보수를 사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에게 오기만 하면 대제사장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과 도피성의 의미 ① 게데스 - 구별하다 (납달리 산지) 서쪽 경계지의 산들 가운데 있고 갈릴리 바다 북쪽 약 80km 지점에 있다 예수님은 그 누구와도 구별된 그리스도요 구원자이심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서 그를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하여 주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세상의 죄에서 구별되어 거룩한 성도로 사는 은혜를 받게됩니다. ② 세겜 - 어깨 짐 (에브라임 산지)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의 동서 경계선상에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가볍고 쉬움이라(마11:28)고 하셨습니다. ③ 헤브론 - 연합, 동맹, 교제 기럇 아르바로 알려진 곳으로 유다의 예루살렘 남쪽 약 3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람을 연합하게 하시는 자요 또한 우리와 연합하여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웃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저 안에 저가 내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으리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④ 베셀 - 요새 (르우벤 지파) 사해바다로 흘러가는 요단강 입구 동쪽 산지에 위치하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요새가 되십니다. 특히 환난을 당한 자에게 요새가 되십시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주신 자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와 돌에 맞아 죽을 여인에게도 요새가 되어 주셨습니다. (시91:2) ⑤ 길르앗 라못 - 언덕, 고지 (갓 지파) 길르앗 라못 산지의 약 80km이상 북쪽에 위치했다. 예수님은 언덕이요 고지가 되심으로 어떤 경우에 가까이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예수 믿으려하니 끊을 것도 많고 버릴 것도 많고 그대로 살려고 하니 힘든 것도 많습니다. 예배 시간, 기도 시간, 봉사 시간에 참여하려하니 얼마나 힘듭니까? 때로 비난과 표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곳이 곧 쉼의 언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를 높이 세우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암사슴 발을 높은 곳에 세워주심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나, 롯, 에스더를 높이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⑥ 골란 - 기쁨 (므낫세 지파) 갈릴리바다 동쪽산지 어딘가에 있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예수님은 최후 승리자요 기쁨이십니다. 그에게 나아가는 자에게도 승리와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심으로 모든 성도에게 큰 기쁨이요 승리요 영광이 될 줄 믿습니다.
떡상(진설병 상)/ 성막/ 2015-03-26
떡상(진설병 상)/ 성막/ 2015-03-26 떡상(진설병 상) | 성막 떡상 두레마을 솔로몬성전 성소의 떡상 (강문호 목사저서 성전) 진설병 상(떡상) 진설병 상은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떡을 진열해 놓는 곳으로, 가로90㎝, 세로 45㎝, 높이 67.5㎝인데 성소 북쪽 편에 위치했다. 제사장은 매 안식일마다 12개의 새로운 떡을 6개씩 두 줄로 이 상 위에 늘어놓아야만 했다. 이 12개의 떡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은 곧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는 뜻을 나타낸 것이었다. 신약적 의미에서 이 떡은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에게 항상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하늘 양식이다. 하나님께 차리는 상(출 37:10-16) 23 아카시아 나무로 길이가 두 자이고, 너비가 한 자이고, 높이가 한 자 반인 상을 만들어서, 24 순금으로 입히고, 둘레에는 금테를 둘러라. 25 그리고 손바닥 너비만한 턱을 만들어 상 둘레에 붙이고, 그 턱의 둘레에도 금테를 둘러라. 26 금고리 넷을 만들어서, 이 고리를 상다리가 붙어 있는 네 모퉁이에 각각 하나씩 붙여라. 27 그 고리들을 턱 곁에 달아서, 상을 운반하는 데 쓰는 채를 끼워 넣을 수 있게 하여라. 28 그 채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거기에 금을 입혀서, 그것으로 상을 운반하게 하여라. 29 상에 올려 놓을 대접과 종지와 부어 드리는 제물을 담을 병과 잔을 만들어라. 이것들은 순금으로 만들어야 한다. 30 그 상은 언약궤 앞에 놓고, 상 위에는 나에게 바치는 거룩한 빵을 항상 놓아 두도록 하여라. (표준새번역 출 25장)
물두멍/ 성막/ 2015-03-26
물두멍/ 성막/ 2015-03-26 물두멍 | 성막 물두멍 (출30:17-21, 40:30-32) 물두명은 놋단과 성소 사이에 놓여 있었다. 역시 놋으로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담아 두었다. 38:8절을 참고하면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단과 성막 출입시에 반드시 손과 발을 씻고 출입하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뿐만 아니라 성도가 자신의 하물과 죄를 살피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놋 물두멍 17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8 "너는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쇠로 만들어서, 씻는 데 쓰게 하여라. 너는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거기에 물을 담아라. 19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물로 그들의 손과 발을 씻을 것이다. 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물로 씻어야 죽지 않는다. 그들이 나 주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려고 제단으로 가까이 갈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21 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손과 발을 씻어야 죽지 않는다. 이것은,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이다." (표준새번역 출 30장)
번제단/ 성막/ 2015-03-26
번제단/ 성막/ 2015-03-26 번제단 | 성막 놋 번제단 분리된 모습 번제단 번제단 번제단, 놋단 (출 38: 1-9, 27:1-8) 번제단은 하나님께 제물을 태워드리는 단이었다. 놋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놋단으로 불려지기도 한 이 단은 가로 2.25m, 세로 2.25m, 높이 1.35m로서 성막 안 성물 중 제일 큰 기구였다. 놋단은 조각목에 놋을 씌웠다. 놋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미할 때가 있다. 계시록 1장에 주님은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것"이였다. 이것은 주님의 공의의 심판이 행차를 의미한다. 또 그 놋단이 성소와 지성소 밖에 있었고,짐승을 희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골고다 형장에서 회생될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 그 단은 네 뿔이 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희생하신 대속을 의미한다. 성소나 지성소에는 놋단에서 희생된 제물이나 그 피를 가지지 않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즉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 이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위지사경에서 장대 끝의 구리뱀을 바라본 것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히9;12).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귀중하고 우리의 자랑거리이다 제단(출 38:1-7) 1 아카시아 나무로 제단을 만들어라. 그 제단은 길이가 다섯 자요, 너비가 다섯 자인,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고, 그 높이는 석 자로 하여라. 2 제단의 네 모퉁이에 뿔을 하나씩 만들어 붙이되, 그 뿔과 제단을 하나로 이어놓고, 거기에 놋쇠를 입혀야 한다. 3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어라. 이 모든 기구는 놋쇠로 만들어야 한다. 4 제단에 쓸 그물 모양의 석쇠는 놋쇠로 만들고, 그 놋 석쇠의 네 모퉁이에 놋쇠 고리 넷을 만들어 붙여라. 5 그리고 그 놋 석쇠를 제단 가장자리 밑에 달아서, 제단의 중간에까지 이르게 하여라. 6 제단을 옮기는 데 쓸 채를 만들되, 이것을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고 거기에 놋쇠를 입혀라. 7 이 채들을 제단 양 옆의 고리에 끼워서, 그것을 운반할 수 있게 하여라. 8 제단은 널빤지로 속이 비게 만들되,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표준새번역 출 27장)
번제물/ 성막/ 2015-03-26
번제물/ 성막/ 2015-03-26 번제물 | 성막 희생제물에 안수함 제물을 잡는 제사장 희생 제사를 드림 번제를 드림 레위기 제 17 장 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그리고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이것은 주께서 명하신 것이다. 3 이스라엘 집안에 속한 사람은, 누구든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을 때에는, 진 안에서 잡든지 진 바깥에서 잡든지, 4 그것을 회막 어귀로 가져 와서, 주의 성막 앞에서 주께 제물로 드려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 짐승을 잡은 사람은 실제로 피를 흘린 것이므로 죄를 면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백성 가운데서 끊어져야 한다. 5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은 들판에서 죽이려고 한 짐승을 주께 가져 와야만 한다. 그들은 그 짐승을 회막 어귀의 제사장에게로 끌고 가서, 주께 드리는 화목제물로 그 짐승을 죽여야 한다. 6 그러면 제사장은 그 피를 회막 어귀에서 주의 제단쪽으로 뿌린다. 기름기는 불살라서, 그 향기로 주님을 기쁘게 하여 드려야 한다. 7 백성은 더 이상, 그들이 잡은 짐승을 숫염소 1)귀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음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들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이다. (표준새번역 레 17장) 번제 1 주께서 모세를 1)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너희 가운데서 짐승을 잡아서 주께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누구든지 소나 양을 제물로 바쳐라. 3 ○드리는 제물이 소를 2)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서, 회막 어귀에서 드리되, 주께서 그것을 기꺼이 받으시게 하여라. 4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번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의 손을 얹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속죄하는 제물로 받으실 것이다. 5 그런 다음에,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거기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아야 하고,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은 그 피를 받아다가, 회막 어귀에 있는 제단 둘레에 그 피를 뿌려야 한다. 6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며 놓으면, 7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 위에 장작을 지피고, 8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고기 저민 것과 그 머리와 기름기를 제단에서 불타 는 장작 위에 벌여 놓아야 한다. 9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모두 제단 위에다 놓고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10 ○드리는 제물이 가축 떼, 곧 양이나 염소 가운데서 골라서 번제로 드리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 제물로 드려야 한다. 11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그 제물을 주 앞, 곧 제단 북쪽에서 잡아야 하고,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은 제단 둘레에 그 피를 뿌려야 한다. 12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고기를 저미고 그 머리와 기름기를 베어 놓으면, 제사장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그것들을 제단에서 불타는 장작 위에 벌여 놓아야 한다. 13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다가 모두 제단 위에서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14 ○주께 드리려는 제물이 3)날짐승을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면, 그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 가운데서 골라 제물로 드려야 한다. 15 제사장은 그 날짐승을 받아서 제단으로 가져 가고, 그 목을 비틀어서 머리를 자르고, 그 머리는 제단에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으로 흘려야 한다. 16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제물의 멱통과 그 안에 있는 오물을 떼어 내서, 제단 동쪽에 있는 잿더미에 버려야 한다. 17 그가 두 날개를 잡고, 그 새의 몸을 찢어서, 두 동강이 나지 않을 정도로 벌려 놓으면, 제사장은 그것을 가져다가, 제단에서 불타는 장작 위에 얹어서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주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표준새번역 레 1장)
법궤(증거궤)/ 성막/ 2015-03-26
법궤(증거궤)/ 성막/ 2015-03-26 법궤(증거궤) | 성막 두레마을 이동시 덮개로 덮은 모양 법궤 그룹천사 다곤상앞의 법궤 법궤안의 만나항아리, 십계명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이스라엘 성전연구소의 법궤 모형 언약궤 언약궤는 가로 112.5cm, 세로 67.5cm, 높이 67.5cm의 직육면체 상자로서 성막 제일 깊숙한 곳 지성소에 위치하고 있었다. 특히 언약궤 위에 연결된 마주보는 두 그룹과 궤 뚜껑이 만드는 속죄소(사은좌)는 종종 하나님의 강림의 장소로 언급되었다. 일명 법궤. 증거궤 등으로 불리우는 이 언약궤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을 나타내는 십계명 두 돌판과 하늘 양식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만나 및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있다. 속죄소 (법궤를 덮은 뚜껑) 여기는 하나님의 보좌(그래서 시은좌라고 합니다)이다. 이사야 6:3절에 보면 거룩하고 거룩하고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속죄소 밑에 율법이 있는 것으로 보면 이 보좌는 심판의 보좌이다. 하나님은 죄인 가운데 거하셨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보자면 죄인들을 모두 멸하여 던져버려야 한다. 하지만 1년에 한번씩 대제사장에 의해 이곳에 피가 뿌려지는 것으로 그 죄를 유예하게 되었다. 이 피는 완전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바뀌어진다. 이 피를 인하여 심판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로 바뀌게 되었다. 언약궤 모형(출 37:1-9) 10 아카시아 나무로, 길이가 두 자 반, 너비가 한 자 반, 높이가 한 자 반 나가는 궤를 만들어라. 11 순금으로 그 안팎을 입히고, 그 둘레에는 금테를 둘러라. 12 금고리 네 개를 만들어서, 그 밑의 네 모퉁이에 달되, 한쪽에 고리 두 개, 다른 한쪽에 고리 두 개를 달아라. 13 그리고 아카시아 나무로 채를 만들어서 금을 입혀라. 14 그 채를 궤의 양쪽 고리에 끼워서 궤를 멜 수 있게 하고, 15 그 채들을 궤의 고리에 그대로 두고, 거기에서 빼내지 말아라. 16 내가 너에게 줄 증거판을 그 궤 속에 넣어 두어라. 17 순금으로, 길이가 두 자 반, 너비가 한 자 반인 속죄판을 만들어라. 18 금을 두들겨서 그룹 두 개를 만들고, 그것들을 속죄판의 양쪽 끝에 각각 자리잡게 하여라. 19 그룹 하나는 이쪽 끝에, 또 다른 하나는 그 맞은쪽 끝에 자리잡게 하되, 속죄판과 그 양끝에 있는 그룹이 한 덩이가 되도록 하여라. 20 그룹들은 날개를 위로 펴서 그 날개로 속죄판을 덮게 하고, 그룹의 얼굴들은 속죄판 쪽으로 서로 마주보게 하여라. 21 너는 그 속죄판을 궤 위에 얹고, 궤 안에는 내가 너에게 줄 증거판을 넣어 두어라. 22 내가 거기에서 너를 만나겠다. 내가 속죄판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할 모든 말을 너에게 일러주겠다. (표준새번역 출 25장)
법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법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대로 두고 빼어내지 말찌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찌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찌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10-22) [계시의 말씀에 따른 법궤의 제작]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며 정금으로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만들었으며,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며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편에 쳐서 만들었으되, 한 그룹은 이편 끝에, 한 그룹은 저편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편에 만들었으니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출37:1-9) [용어풀이] 법궤(法櫃):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을 담은 상자 (명칭 : 법궤라는 호칭대신 언약궤, 증거궤, 하나님의 궤라고도 한다) 조각목: 주로 중동지방에 있는 사막이나 광야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으로서 가볍고 견고하며 내구성이 강하다.히브리어로는 싯딤나무라고 한다. [조각목(*角木)의 \'조\'라는 글자는 흰백(白)자 밑에 일곱칠(七)를 사용하나 컴퓨터에서 지원되지 않는 글자이다] 규빗(Cubit):옛적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던 길이의 단위로서 성인 남자의 팔꿈치에서 펼친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대략 45.6Cm에 해당함. (사람마다 팔의 길이가 다를 수 있으므로 1규빗을 약 45Cm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음) 증거판(證據板):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시고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 속죄소(贖罪所):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죄를 贖(속:빚 갚기 위해 바치는 재물이나 노동/대가를 지불하고 빚을 갚는 것)하는 장소라는 뜻. 정금으로 장이 2.5규빗(114Cm), 광이 1.5규빗(68.4Cm) 되게 만들고, 금으로 그룹 둘을 쳐서 만들어 속죄소 양 끝에 세워 날개로 속죄소를 덮게 한다. 속죄소는 언약궤의 뚜껑의 두 그룹 천사 사이 부분을 말하며 이 곳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시는 장소로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속죄소는 어원적 의미로 보아 뚜겅 밑에 있는 상자안에 하나님의 공의의 상징인 십계명의 두 돌판이 들어 있어 마땅히 저주와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의 죄악를 덮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예표라고 할 수 있다. 속죄소의 다른 이름이 시은좌(施恩座 : 은혜를 베푸는 자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속죄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을 뿐만아니라 대속죄일에 속죄를 상징하는 피를 뿌리는 장소이기도 했다(레16:14-17) 이러한 의미에서 속죄소는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십자가를 상징한다(골1:20) 그런데 성막에 사용되는 주요 기구들은 조각목으로 만들어 그 위에 정금을 입혔으나 법궤에 덮히는 속죄소(뚜껑과 두 그룹천사)는 조각목을 사용하여 만들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따로 따로 제작하여 서로 붙인 것이 아니고 금 한덩어리를 쳐서 일체(一體)로 만들었다(출37:8) 그룹(Cherubim):천사의 한 계급. 에덴 동산의 수호자로도 언급되어 있으며 사자,황소,사람과 천사의 얼굴등을 하고 있다. 언약궤의 속죄소 양쪽 끝에 금으로 만든 두 그룹이 날개로 속죄소를 덮고 얼굴은 마주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고 있다. ◈ 법궤모형 사진 [사진1][사진2] [사진설명] 사진1,2가 모두 법궤의 모형 사진이다. [사진2]는 인터넷상에서 가장 많이 볼수 있는 것이기는 하나 천사의 날개부분 처리가 좀 어색한 것이 흠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1]이 한결 더 이해하기 쉽다. 두 천사가 날개를 펴서 법궤 뚜껑부분을 덮으며 두손을 모은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두 천사 사이의 공간(뚜껑표면 포함)을 속죄소(시은좌)라고 말한다. 두개의 채(손잡이)는 법궤를 운반할 때 어깨에 매는 운반용 손잡이다(수레에 실으면 안되고 사람이 반드시 어깨에 매고 운반해야 함). [사진3] [사진4] [사진설명] [사진3] 법궤가 안치된 지성소(至聖所:지극히 거룩한 곳)에 대제사장이 1년에 1회차 들어가 제사를 집례하는 광경(지성소 안쪽에서 성소쪽을 향하여 본 그림) [사진4] 법궤를 해체한 모습 (법궤 상자 안에는 하나님께서 친수로 쓰신 십계명의 두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데, 십계명 두 돌판은 성부 하나님을, 만나는 생명의 떡이신 성자 예수님을,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권능으로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사진5] 법궤의 뚜껑을 눕혀 놓은 모습 ☜ [사진5] [참고] 한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성막에 관한 내용중 일부가 오류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이 지적중 법궤와 법궤가 안치된 지성소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성막을 오래 동안 연구한 강문호목사의 지적임) 1. 히브리서 9장 7절을 근거로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 번, 7월10일 대속죄일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1차는 한 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의(1회차) 특정절기에 한하여 여러차례 들어 갔다는 뜻이라고 함 [① 향을 뿌리러 들어감, ②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송아지 피를 가지고 들어감, ③ 대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위하여 염소피를 가지고 들어감, ④ 청소를 하고 향로를 가지고 나오기 위해 들어감]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년 일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 (히9:6-7) 2. 이것도 대제사장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특별대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는 7월 10일을 제외한 일년 364일 동안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들어 갈 수 있었음. 따라서 모세5경중 성막이 건축된 이후에 나타나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이라는 말씀은 지성소안에서 계시되었으므로 그때마다 모세는 지성소에 들어 갔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애굽기 25:22) 3. 또한 법궤 안에는 십계명 두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 이 세 가지를 넣은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며 오직 십계명 두 돌판만 넣게 되어 있으나 고핫자손들이 일시적으로 이 세가지를 넣었다는 견해임. 즉, 지금은 그 행방이 묘연한 상태인 법궤는 BC1445년에 제작되어 AD70년 예루살렘성전 소실과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데 이 기간은 약 1515년간에 이르며 이 기간중 대략 30-40년 간만 세가지를 모두 넣었고, 그 나머지 기간동안 법궤에는 오직 십계명 두 돌판만 들어가 있었다는 견해.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내전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그룹들이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채가 긴고로 채 끝이 내전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곳에 있으며,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왕상8:6-9) ◈ 법궤의 영적 의미 : 성도들의 믿음을 상징 [보기] 구분법 궤영 적 의 미 재료조각목그리스도의 인성(人性)상징(요1:14,4:6-7) 정금(正金)그리스도의 신성(神性)상징(요10:30,골2:9) 부분금테그리스도의 아름다우심을 상징(눅2:52) 채그리스도의 동행을 상징하는듯함(마28:20) 십계명돌비하나님의 속성인 공의와 사랑을 증거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요1:14,14:9-11) 만나생명의 양식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요6:33-58) 아론의싹난지팡이부활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요11:25) 속죄소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하시는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상징(롬3:25,골1:20-21) 그룹하나님을 보좌하며 그분의 영광을 지키는 영적존재(겔9:3,10:1-4) 언약궤,법궤,증거궤,하나님의 궤라고도 한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는 십계명 두돌판과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만나와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성막이나 성전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궤를 이동할 때는 반드시 제사장이나 레위지파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이동해야 하며 수레에 싣지 못하였고, 일반인들이 궤에 손을 데거나(삼하6:7) 구경하려고 드려다보면(삼상6:19) 즉사하였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간 이 궤를 중심으로 생활하였으며 행진할 때도 이 궤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 지파가 배치되어 행진하였다. 또한 이것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의 인도로 요단강을 마른 땅 처럼 건널때와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에도 참여 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패배후에 이 언약궤 앞에서 인도했으며, 그 결과 승리했다. 엘리사 시대에는 법궤가 실로에 있는 성막에 있었다(삼상3:3) 블렛셋사람들은 그 법궤를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보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하여 재앙이 있게되자 예의를 갖추어 돌려보냈다(삼상5:1-6:15). 다윗은 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갔다(삼하6:1,대상13:13). 첫번째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그 법궤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으며, 지금까지 그 행방이 묘연하다. [성막 영상] [출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영어 성경에 법궤를 \'Ark\'라고 했다. \'Ark\'라는 말은 구약 성경에 세 번 나오는데,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도 \'Ark\'라고 되어 있고, 출애굽기 2장에 나오는 모세를 담은 갈 상자도 \'Ark\'라고 되어 있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시려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장소는 안팎으로 역청이 칠해진 방주였다. 그리고 바로가 모든 히브리 사내아이들을 죽이려고 했을 때,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나일 강에 버려야 했는데, 아이를 담은 상자는 역청을 칠한 갈상자였다. (\'모세\'라는 이름의 뜻은 \'건져냄\', 곧 \'구원\'이라는 의미이다). 왜 법궤를 \'Ark\'라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Ark\'들의 공통점은 구원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궤는 볼품없는 조각목으로 만든 상자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거하실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외형적으로 볼 때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만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는 중보자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로 나아가서 승리하였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사단과의 어떠한 싸움에서도 이긴다. 다시 말하지만, 노아의 방주나 모세의 갈 상자와 같이 법궤는 아름다은 모양이 없는 나무 상자에 불과하지만, 구원의 주님,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시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법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을 이루실 때 속죄소에서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을 때마다 성소 뜰에 있는 제단에 나아가서 양을 잡아 피를 제단뿔에 바라서 그들의 죄를 속하였다. 7월 10일 대속죄일에는 성소 바깥뜰에 있는 제단이 아닌 지성소에 대제사장 아론이 들어가 온 백성들의 죄를 사했다. 대제사장 아론은 1년에 한 차례씩 먼저 자기 죄를 속하고 난 뒤에, 이스라엘 모든 회중의 죄를 위하여 그 제물의 피를 가지고 속죄소까지 들어가서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의 사함을 받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
분향단/ 성막/ 2015-03-26
분향단/ 성막/ 2015-03-26 분향단 | 성막 두레마을 향단 향단 혹은 금단으로도 지칭된 분향단은 가로 45㎝, 세로 45㎝, 높이90㎝의 크기로서 지성소 휘장 바로 밖 곧 성소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분향단은 하나님께 거룩한 향을 피워 올리는 곳인데 이 때 피워 올려지는 향의 연기는 성도의 기도를 상징했다. 분향단(출 37:25-28) 1 너는 분향단을 만들되,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라. 2 길이가 한 자요, 너비가 한 자인 네모난 모양으로 만들고, 높이는 두 자로 하고, 그 뿔과 단은 하나로 이어놓아라. 3 그리고 너는, 그 단의 윗면과 네 옆면과 뿔을 순금으로 입히고, 그 가장자리에 금테를 둘러라. 4 또 금고리 두 개를 만들어 그 금테 아래 양쪽 옆에 붙여서, 그것을 들고 다닐 채를 끼울 수 있게 하여라. 5 너는 아카시아 나무로 채를 만들고, 거기에 금을 입혀라. 6 너는 분향단을 증거궤 앞, 곧 증거판을 덮고 있는 속죄판 앞, 휘장 정면에 놓아 두어라. 거기 그 속죄판에서 내가 너를 만날 것이다. 7 아론은 그 분향단 위에다가 향기로운 향을 피워야 하는데, 매일 아침 그가 등을 손질할 때마다 향을 피워야 하고, 8 저녁때에 등불을 켤 때에도 향을 피워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대대로 계속하여 주 앞에서 피워야 하는 향이다. 9 그 위에다가 다른 이상한 향을 피워서도 안 되고,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올려서도 안 되고, 그 위에다가 부어 드리는 제물을 부어서도 안 된다. 10 아론은 분향단 뿔에 한 해에 한 번씩 속죄예식을 하여야 하고, 한 해에 한 번씩 속죄의 피를 발라서 분향단을 속죄하여야 한다. 너희는 대대로 이와 같이 하여라. 이것은 주님께 가장 거룩한 것이다." (표준새번역 출 30장)
성막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영교하기 위하여 허락하신 특별한 최대의 선물이요, 은혜의 성물이다. 그래서 성막을 향하여 나아가 엎드리는 것을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간다고 했다. 죄인이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영교하는 유일한 길이요,중매적 사명자이다. 출애굽기 33장 7-11절에 성막의 고귀한 임무가 나타나 있다. 또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증표였다. 실지로 하나님께서 성막을 매개로 하여 이스라엘과 같이 계셨다. 이와같이 중임을 가진 성막은 한 장소나 구조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물질적이고, 인위적이고 그리고 세상적인 것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영적인 뜻과 영교의 오묘한 진리가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래를 위한 것이니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영교하시고,또 그의 백성을 멸망의 자리에서 구속하시는 구속의 예표로 예언적이고 계시적인 상징이다. 메시아의 간접적 예언임에 틀림이 없다.32) 제1절 성막의 기구들 I. 성막의 재료(출25:1-935:) 성막의 재료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성막을 짓기 위하여 드려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 된 것이다"33)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과 역사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적인 순종과 헌신에 의하여 드린 것이다. 즉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아들의 도성인신으로 참 이스라엘로써 신앙적인 순종과 헌신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됨을 말해준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과 참 이스라엘의 결연자에게 말씀하심과 같이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자들을 찾으시느니라.하나님은 영이시니,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했다. 그 여자가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 4:25-26)고 했다. 그러므로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막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느니 상징이었다(출 25:8,왕상 8:27참조) ...말씀의 도성인신,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매"이다. 헬라어의 성막은 육신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요1:14,고후5:1) 그러므로 성막은 도성인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게 되고 영적으로 교제하게 되며 그 안에서, 즉 그를 중계로하여 하나님께 그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만나거나, 참 예배가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참 성막이다. 우리는 이하에서 성막의 기구들을 생각하기 전에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에 법궤로부터 시작하여 속죄소, 그룹, 떡상, 향단, 촛대,놋단, 세수대야와 안마당, 바깥마당의 순으로 논한 것이다. 위의 순서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을 의미하며, 죄인을 위한 희생을 나타낸다. 그 희생은 십자가의 희생이다. 죄인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요, 그 역사이다. 또 성막에 들어가는 과정을 생각하여 보면 깊은 진리가 있다. 이방인의 죄인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의 문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여 잡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생명과 거룩함과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다. 즉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하향적 사랑과 인간의 상향적 신앙을 보여 준다. 2.법궤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으로 법궤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다(출25:10). 그 조각목은 광야에서 자라는 무척 굳은 나무이다. 그 궤는 조각목,즉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다. 그 아카시아 나무는 선택되었다. 그 나무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성장하는 나무이다. 그 나무를 선택하여 재료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설명하여 준다. 우리는 각각 성품이 다르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대하여 그 개성도 완고하면서도 마귀에게는 유순하여 패하는 자가 많다. 즉 보잘것 없는 고난, 시험과 시련 속에서 그 성품이 움직여 신앙을 잃어 버리는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품은 외유내강 하셨다. 예수님은 세번이나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뿐 아니라 공생애에 수없는 고난과 위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육신을 쓰신 인간이었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셨다. ..... 조각목이 견고하여 벌레가 먹을 수 없을 같이 주님의 의지는 움직여지지 않으셨다. 그 나무는 결이 아름답고 귀한 나무이다. 그와 같이 우리 주님의 성품은 아름답고 고귀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조각목은 순금으로 입혔다. 이에 대하여 엉거(Unger)박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나타낸 것이라] 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 순금은 순수한 참 신앙을 의미하는 때가 많다.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또 신성이 신앙의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카일(keil)씨도 "내외에 금으로 포장한 것은 그의 백성 가운데 있는 여호와의 성성(聖性)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조각목은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며 정금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한다. 주님은 신성을 가지셨을 뿐 아니라 인성도 가지고 계신다(사7:14). 고로 조각목을 정금으로 싼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神人양성의 소유를 나타낸다). 그 안에는 만나 항아리와 십계명 두 돌비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넣어 두었다(히9:4).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심판과 의에 근거한 은헤의 왕국, 하나님 자신의 증거로써 언약 돌비들이 있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와 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입에서는 그것이 늘 차고 넘쳐 흘렀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놀랄 뿐 아니라 충만함을 받았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을 하신 생명의 주님을(민17:10) 의미하는데 그가 죄인들을 원수에게서 구원하고, 천국길로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만나 항아리는 생명의 소유자로써(요6:) 택한 양들에게 영생의 양식과 생명을 주심을 의미한다. 이상으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세가지의 유대를 가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요14:6). 여기에 대해 차남진 박사는 "십계명은 성부의 대표요, 만나는 희생 제물된 성자의 대표요, 아론의 싹난지팡이는 성신의 대표라"했다. 또 그리스도의 삼중직도 의미한다고 했다(기독신보,1966년 8월호). 3. 속죄소 (시은소) 출애굽기 25장 17절에 정금으로 속죄소로 만들라고 하였다. 또 히브리 4장 16절의 [은혜의 보좌 앞에]라고 말씀이 있다. 이것은 신약과 구약의 외면적인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속죄소, 즉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 앞에는 누구나 마음대로 들어 갈수가 없었다. 즉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백성에게 율법과 계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는 것만 아니라 또 죄를 볼 때에 진노도 하시고, 자비도 베푸시는 하나님을 계시한다(출 20:5634:6-7). 또 후에 큰 속죄의 날에 피를 흘려 속죄하여 그들의 모든 죄에서 속죄하고 그의 백성과 화목하기를 원하심을(레16:14) 보여 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발등상인 은혜의 보좌(히4:169:5)앞에 자유로이 나아갈 뿐만 아니라 긍휼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려서 속죄함으로 심판의 보좌에서 은혜의 보좌로 옮겨 주시기 때문이다(히9:11-157:2710;10,.9:24). 두 그룹을 만들어 속죄소 위에 두었다. 그 그룹들은 각각 두 날개를 가졌다.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형상을 가졌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준 그룹의 형상은 사람, 사자,송아지 그리고 독수리의 형상들이었다(겔1:10).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권의 증거와 구원의 영광과 하나님의 왕되심으로 왕으로 모심이다. 욥기 1장 6절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들이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보좌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직분을 감당키 위함이다. 이러한 그룹들이 속죄소 위에 계신 것은 죄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속죄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세우시고 원하시는 대제사장,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속죄할 수 있으며, 그의 피가 속죄 제물이요, 또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으로 되어 짐을 보여 준다. (히9:11-15,행4:11-12). 또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같이 계심을 뜻한다. 즉 정한 장소에서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고,그들과 같이 만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약속을 성취하심을 의미한다.(출29:4240:35,레1:1,민1:117:19).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백성 중에 계신다(대상 28:2,애2:1)48). 끝으로 천사들은 하나님이 부리는 사자들이다. 그들이 속죄소 위에 있음은 속죄사역을 하나님이 행하심과 속죄함을 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고 보호함을 의미하고 세계를 순행함을 의미한다(히1:14). 4. 진설병 상(출25:23-30) 진설병(떡을 차려 놓는)상은 법궤와 같은 재료로 신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상 위에 놓는 떡은 좋은 밀가루로 만들었고,전혀 누룩을 쓰지 않는다. 반면 기름과 소금을 넣고 향도 넣었는데 그 떡은 불에 굽든지 삶게 되어 있다(렘24:7,민7:14). 이스라엘의 지파를 따라서 12개의 떡을 그 상 위에 놓되 매 안식일에 새 것으로 놓았고, 제사장 만이 먹을 수 있었다. 이 떡은 예수 그리스도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택한 양들에게 주어지는 새롭고 신령한 생명의 떡이다. 제사장된 성도들의 영혼의 양육자로서 매 성한 생명의 떡이다. 제사장된 성도들의 영혼의 양육자로서 매 성일마다 새 영의 양식으로 공급하여 주신다(벧전 2:9,계1:6,요6:33-58 / 49).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른 이들이 다 물러가고 자기만 남았을 때 예수님께서 "너도 가려느냐?" 할 때 "영생의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영생의 말씀의 떡이 있다. 그 떡은 독소가 없는 신령하고, 순수한 생명의 참 떡이요,기름은 성령의 충만이다(슥 4:3). 꿀같이 꿀송이 보다 더 맛있는 신령한 말씀의 떡이다. 소금은 맛을 내고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치 않는 진리요 영의 만나이다. 5. 촛대 (출25:31-40) 이것은 순금으로 만들었고 일곱가지가 있다. 이 촛대는 빛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업이다(요1:4-593:19-21,12:35-36,엡5:814). 기름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주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함과 같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의 빛을 죄악 세상과 인간의 영혼에 비취일 뿐 아니라 진리와 천국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시여 빛을 비추임과 같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멸망의 자리로 향하는 인간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취일 뿐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축복받는 길을 비취이는 안내자이다(마5:14,요8:129:55:16). 스가랴서 4장 2절에 의하면 순금 등대 좌우에 두 감람나무가 서서 그 등대에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 불이 힘있게 타게 했다 이것은 곧 주의 몸된 교회가 성도들에게 은혜의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서 성도로 하여금 세상에서 빛이 되게 하심이다(계1:11-20).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6. 향단 향단에는 아침 저녁으로 불을 정리하고 켤 때에 향을 사르게 되어 있다. 그런고로 이 향단은 등대(촛대)의 관계가 있다. 그 향단에 사르는 향의 재료는 고귀하고 순수하였다(출30:22-25).관유도 바치게 되어 있다. 향단은 기도와 제단이다. 기도와 제단은 두가지 면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여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와 제사이다. 로마서 8장 34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히7:25,요1서 2:1). 둘째는 성도들이 지상에 있는 성전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기도이다. 계시록 8장 3-5절에 "또 다른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료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 들고 보좌 앞 금단에 드려진다"고 했고 5장 8절에도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대접을 가졌으니,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다. 시편 141편 2절에 '나의 기도가 주안에 분향함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제사가 된다." 고 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진실과 성심으로 제단에서 드리는 기도는 향단에서 분향함과 같다. 그 향단은 채로 꿰여 메는 것은 귀중하게 여기고 또 언제나 향단과 행동하는 것인데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삼상 12:23). 7. 놋단 (출38:1-927:1-8) 놋단은 조각목에 놋을 씌웠다. 놋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미할 때가 있다(민21:9,요3:14). 계시록 1장에 주님은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의 공의의 심판이 행차를 의미한다. 또 그 놋단이 성소와 지성소 밖에 있었고,짐승을 희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골고다 형장에서 회생될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 그 단은 네 뿔이 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희생하신 대속을 의미한다(히9:11-14). 성소나 지성소에는 놋단에서 희생된 제물이나 그 피를 가지지 않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즉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레17:11,히9:22). 이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히9:14).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위지사경에서 장대 끝의 구리뱀을 바라본 것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히9;12).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귀중하고 우리의 자랑거리이다(갈9:14). 8. 세수대야 (출30:17-2140:30-32) 세수대야는 놋단과 성소 사이에 놓여 있었다. 대야는 역시 놋으로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담아 두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단과 성막 출입시에 반드시 손과 발을 씻고 출입하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뿐만 아니라 성도가 자신의 하물과 죄를 살피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의 성민도 거룩하여야 한다."부정에서 떠나 정결하게 되어야"(사52:11)하고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또한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야 한다"(행22:16). 9. 거울(출38:831:9). 이 거울은 물두멍이라고도 했다.그것은 (1)양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것이다(고전13:12). (2)진리의 말씀 거울에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약1:23). (3)성령의 감화와 그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다.(요16:7-11) 제 2절 기독론적 입장에서의 본 성막 1. 휘장 (출26:1-6) 이 휘장은 전체 10폭으로 만들었다. 그 10폭을 각각 5폭으로 연하여 한 막이 되게 했고 그 막은 길이가 28규빗(42휘트),넓이가 4규빗(6휘트)였다. 각 막에 고리 50을 만들어 꿰게 되었다. 이 막의 재료는 "가늘게 꼰 베실, 청색,자색,홍색실로...만들지니"라고 했다. 여기에 기록된 여러가지 색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가늘게 꼰 베실"은 주님의 성결을 의미하는데 그의 거룩함과 의로움 뿐 아니라 영광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예수님의 변화산의 영광과 의를 보라! 청색은 하늘 색으로 그리스도의 하늘 나라에 속함, 즉 신성으리 의미하며, '자주색' 은 주님의 위엄과 존귀의 상징이고, "홍색"은 피의 색채로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의미한다. 즉 왕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적 사역의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히11:2010:19)50). 2. 덮는 막 덮는 막은 삼중으로 베실로 짠 덮는 막과 양의 털로 만든 중간 막과 해달의 가죽의 외부 덮는 막이다. "이것은 내부는 화려하고,포근하되 외부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과 같다. 그의 내, 외의 생활을 비교하여 보면 내적으로는 평화의 생애였다. 즉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차고 넘쳤으나, 외적으로는 원수들과 죄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모진 고난과 역경의 생애였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영교하므로 환희의 생활이었으나,육신적으로는 사탄과 대적들을 대하는 영전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했다. 이것이 세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였다(사53:61:1-) 52). 3. 안 휘장 (출26:31-37) 이것은 청색,자색,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고, 그 위에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다.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사역의 여러가지 모습이다. 즉 여러가지 인격을 드려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속사업을 의미한다(마27:5,막15:38,눅23:45).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 안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었다. 그것은 막힌 담이 제거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의하여 죄인이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면전에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려 하나님과의 죄인된 인간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헐으시고,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 하심인 것이다 (히10:20).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이요, 중보자이시다. 4. 뜰(안마당 - 출27:9-19). 이 뜰은 휘장(또는 막)에 의하여 제한되어 있다. 이 뜰의 휘장을 좋은 베실로 짜서 조각목 기둥에 걸어서 만든 것은 의를 구함이다. 그 의는 인간 자신의 의가 아니다. 어떤 율법의 의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 안에 계시된 복음의 의이다. 그 복음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러므로 천하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아가게 된다(요14:6,히7:25,행4:12).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고 했으니 기둥은 진리의 기둥이요, 그 기둥은 받침은 진리의 턱 즉 진리의 기반이다. 진리는 말씀이니 교회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야 하고,교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전이다(딤후2:15). 문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법규이다. 즉 진리 안에서 구별하는 척도이다. 그 척도는 하나 밖에 없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라고 했다(요10:9). 그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했다(요10:참조).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사역의 공로에 의하여 택한 백성으로 (히3:1) 사죄의 문, 구원의 문,의와 천국의 문으로 이끄신다. * 휘장의 사명 (1) 구별,선택과 구속. (2) 보호,인도와 간수. (3) 휘장 안, 휘장 안에 있는 자가 하나님과의 교제함. 5.밖 마당 밖 마당은 이방인의 마당이다. 즉 이방인이 지체하는 곳이다. 그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요, 하나님께 버리운 죄인들이다(갈2:15). 이스라엘 밖의 사람은 다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또 죄인들의 죄악의 상태가 로마서 1장 18-32절과 3장 10절에 나타나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범죄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도 다 범죄했다(롬2:17-25). 여기의 이방인은 영적인 이방인을 의미한다. 유대인이나,헬라인이나, 다 영적 이방인, 하나님을 떠나 있는,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밖에 있는 무리들이요(롬2:28-29).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이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는 자들이다(갈3:2). 6. 등을 위한 기름(출27:20-21) 이 기름은 좋은 감람유를 가지고 만든 것으로 성령을 상징한다(슥 4:2-6,요3:34,히1:9). 성령이 주님께 비둘기같이 임하였고, 성령이 그를 도왔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늘 기름이 타는 것과 같이 성령님이 역사하므로 선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빛을 발휘하게 된다. 즉 성령의 인도에 따름으로 예수의 빛을 발하고, 진리와 구원의 빛을 잘 발휘하게 된다(요15:26-27),16:7-11,13). 성령에 의하여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고(요14:16-1725-27),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된다. 제 3절 제사 직분(출28:) 1. 아론과 그의 아들의 제사직 대제사장 아론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히4:14-15,벧전2:9). 아론의 사역은 그리스도에게서 완성 되었다(히9;11-). 그러나 아론은 죽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론과 같이 죽은 자가 아님으로 멜기세덱의 순서를 따른 것이다. 그 이유는 그는 대제시장이나, 그는 영원한 죽음이 없음이다(히7:15-25). "대제사장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위한 거룩한 옷은 우리 대제사장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금실(신성)의 여러가지 색채(5,6,15,33)들, 즉 "푸른색"은 피를, 그리고 "흰색"은 순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나 그의 아들들은 이 세대의 신자들의 예표인 것이다(벧전 2:9,레1:6) 58). 2. 에봇(출28:6-14) 에봇은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겉옷 위에 있는 긴 앞치마와 같이 생긴 것으로 대제사장의 어깨에 걸치게 되었다. 그리고 에봇에는 매는 띠가 있는데 금실,청색,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짠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잇음을 뜻하며 그 교회의 성원인 성도 두 호마노에 12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음이 의미는 12사도들의 신앙과 그들이 전한 복음에 선지자들-인 중생한 사람들이 모이는 성전의 위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메워 그의 앞에 있다. 주님의 어깨는 주님의 능력을 의미, 즉 성도들이 그들의 일생을 주님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감을 의미한다. 또 주님의 감찰과 가호가 떠나지 않고 밤과 낮으로 항상 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을 높이고 영광을 그에게 돌려야 한다. 띠는 진리의 띠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띠이다. 그 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띠를 삼아 힘을 얻고 경성하여 영적 파수군이 되는 것이다. 3. 흉패(출 28:15-29) 흉패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달았고, 대제사장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요, 대제사장이 늘 살피는 것이다. 우리도 대제사장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이다. 그 흉패에는 네 줄의 보석이 있는데 각 줄에 셋씩 12보석이 있다. 12보석은 12지파이다. 이는 선택된 성도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계20:)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구약의 12지파는 신약의 12사도에 해당하고 12지파의 성원은 12사도의 신앙을 계승한 성도에게 해당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가슴, 즉 주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보석이 흉패에서 벗어 나서는 안되는 것과 같이 교회에서 떠나서는 의와 진리안에 안전하게 있을 수 없다. "대제사장인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 하였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 하나님의 존전에 나갈 때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여 그 앞에 간수케 하신다." 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같이 천국에 들어 감도 의미한다. 끝으로 "보석들이 대제사장의 가슴에서 빛남과 같이 우리들을 통하여 주가 영광을 받으시게 함이다. 그 방법은 우리들이 주의 거룩하고 큰 뜻을 깨달아 주의 큰 일을 성취함이다. 4. 우밈과 둠밈(출28:30).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흉패 속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다. 우림은 "빛"이라는 뜻이고, 둠밈은 "완전함"이란 뜻이다. 이것들은 12보석이 있는 흉패 속에 간수되어 있었다. 이는 교회의 성원된 우리 신자들은 주님 안에서 살며,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나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주님께 해결하여 주실 것을 도고하고,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또 주님께서는 그것을 성령님의 인도함을 통하여 신, 구약 성경에서 해결하여 주신다. 성령님의 역사는 완전하시니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통하여 지도하신다(시119:105,잠6:23). 즉 빛되신 주님의 말씀의 빛으로 인도하신다. 5. 에봇 받침(겉옷=출28:31-35). 에봇 받침은 겉옷인데, 그 색은 푸른색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 하늘의 제사직을 표현한다. 그 옷의 끝에 방울과 석류는 그리스도의 중재의 증거의 말씀과 충실을 보여 준다. 주님의 중재의 증거의 말씀은 성경이다. 지금도 그것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석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재 사역의 성취를 말씀하신다. 즉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의 열매를 보여 주는 것이다(행1:1-4). 6. 반포 옷(속옷=출28:439) 이 속옷은 가는 베실로 짜서(레8:7).만든 속옷이다(출28:39). 그 속옷에는 띠가 있어서 띠를 띠라고 했다(출39:27-29). 이 옷의 특징은 통으로 짠 것이며, 반드시 이것을 입고 그 위에 겉옷을 입게 되었다. 또 대제사장만이 아니라 제사장도 입게 되어 있었다(출39:27).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속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다. 허물과 부끄러움을 가리우는 속죄와 칭의의 옷이다. 성경 이사야 53장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심을 말씀하는데, 그대로 요한복음 19장 23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군병들에게 속옷이 벗기우고, 부끄러움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하시고, 그의 의의 속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이다(시22:18). 띠는 진리를 의미하는데, 진리로 무장할 것이다. 7. 금패(출28:36-38). 금패는 대제사장의 성관이 붙이는 패이다. 이 패는 [여호와성결]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청색끈이 매여 성관 앞에 달게 되었다. 이것은 첫째로."모든 일에 조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경고이다. 그리고 둘째는,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성별된 대제사장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와 선지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대상 16:22). 다윗은 신앙과 진리의 사람인데, 그는 기름부음 받은 사울왕에게 손대지 않은 모범된 자이다. 그 이유는 기름부음 받은 자는 (1) 하나님의 대리자 이고, (2) 하나님이 쓰는 자이다. 주 예수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여 성령의 기름을 부어 세운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그는 그의 만사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하신 분이시다. 또 하나님의 뜻과 성업을 완성하고 그 일을 위하여 지사충성한 분이다. 주님 시대 이후에는 그리스도가 세우신 사도들과 교역자들이다(벧전 5;5,히13:17,갈6:6). 8. 성관 출애굽기 28장 40절에 기록된 성관은 영광과 존귀를 나타낸다. 대제사장은 영광의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그 직분이 대단히 영광스러운 것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요 (스가랴 3장)(출39:28,히2:9,계19;12,7:9),"영광과 존귀를 입은 자"라고 말씀했다. 특별히 히브리 2장 9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왕의 영광과 존귀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그는 만왕의 왕이요, 대심판장이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 주관하는 만주의 주이시고, 장차 왕 중의 왕으로 오셔서 모든 것을 다스릴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의 영광과 존귀를 입은 자로써 스스로 낮아지시여 神人 양성을 가지시고,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 지성소에 들어 가시여, 자신의 찢긴 살과 흘린 피와 그 공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속죄 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와 담을 존재하는 하나님의 참 택한 백성을 사랑하고, 지키고,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시고, 또 신령한 생명의 떡과 생수로 먹이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언제나 그의 능력으로 보호사시고, 간수하여 주신다. 또 위에 생각한 성막의 구조만 아니라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 직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즉 기독론적 입장에서 인격과 사역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나타낸다. 구약의 성막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성막의 완성이다. 또 구약의 성막의 구조와 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성품과 성취하신 하나님의 뜻과 구속 역사이다(히3;1-10:25). 제 4절 성막에서 거행된 제사와 영의 성막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했고, 그의 성품과 사역을 예언했던 것과 같이 성막에서 행한 제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본분을 교훈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막에서 행한 제사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 가운데 숨은 진리를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성막에서 행한 제사들에 대하여는 레위기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 제사는 다섯 가지이다. 그러나 학자들에 의하면 여섯가지로 보는 이들이 있다 즉 레위기 7장에 근거하여 한가지를 더 첨가하여 여섯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종류에 대하여 시비를 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다 성경적이고, 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이론 중에 여섯으로 보는 견해는 위임 제사를 첨가하는 것이다. 이 위임 제사는 단회적이기 때문에 다른 제사와 구별이 된다. 그러나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제사이다. 레위기 7장 37절에 의하면 제사들은 여섯가지인데 즉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라"고 했다.
성막
성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영교하기 위하여 허락하신 특별한 최대의 선물이요, 은혜의 성물이다. 그래서 성막을 향하여 나아가 엎드리는 것을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간다고 했다. 죄인이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영교하는 유일한 길이요,중매적 사명자이다. 출애굽기 33장 7-11절에 성막의 고귀한 임무가 나타나 있다. 또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는 증표였다. 실지로 하나님께서 성막을 매개로 하여 이스라엘과 같이 계셨다. 이와같이 중임을 가진 성막은 한 장소나 구조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물질적이고, 인위적이고 그리고 세상적인 것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영적인 뜻과 영교의 오묘한 진리가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래를 위한 것이니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영교하시고,또 그의 백성을 멸망의 자리에서 구속하시는 구속의 예표로 예언적이고 계시적인 상징이다. 메시아의 간접적 예언임에 틀림이 없다.32) 제1절 성막의 기구들 I. 성막의 재료(출25:1-935:) 성막의 재료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성막을 짓기 위하여 드려진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방법으로 된 것이다"33) 하나님의 명령과 능력과 역사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적인 순종과 헌신에 의하여 드린 것이다. 즉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아들의 도성인신으로 참 이스라엘로써 신앙적인 순종과 헌신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됨을 말해준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과 참 이스라엘의 결연자에게 말씀하심과 같이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자들을 찾으시느니라.하나님은 영이시니,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 했다. 그 여자가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라"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 4:25-26)고 했다. 그러므로 [이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막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시느니 상징이었다(출 25:8,왕상 8:27참조) ...말씀의 도성인신,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매"이다. 헬라어의 성막은 육신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요1:14,고후5:1) 그러므로 성막은 도성인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게 되고 영적으로 교제하게 되며 그 안에서, 즉 그를 중계로하여 하나님께 그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만나거나, 참 예배가 있을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참 성막이다. 우리는 이하에서 성막의 기구들을 생각하기 전에 주의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에 법궤로부터 시작하여 속죄소, 그룹, 떡상, 향단, 촛대,놋단, 세수대야와 안마당, 바깥마당의 순으로 논한 것이다. 위의 순서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 것과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을 의미하며, 죄인을 위한 희생을 나타낸다. 그 희생은 십자가의 희생이다. 죄인의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요, 그 역사이다. 또 성막에 들어가는 과정을 생각하여 보면 깊은 진리가 있다. 이방인의 죄인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의 문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여 잡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생명과 거룩함과 영원한 축복을 받게 된다. 즉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하향적 사랑과 인간의 상향적 신앙을 보여 준다. 2.법궤 하나님께서는 조각목으로 법궤를 만들 것을 명령하셨다(출25:10). 그 조각목은 광야에서 자라는 무척 굳은 나무이다. 그 궤는 조각목,즉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었다. 그 아카시아 나무는 선택되었다. 그 나무는 아라비아 사막에서 성장하는 나무이다. 그 나무를 선택하여 재료로 사용하였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설명하여 준다. 우리는 각각 성품이 다르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대하여 그 개성도 완고하면서도 마귀에게는 유순하여 패하는 자가 많다. 즉 보잘것 없는 고난, 시험과 시련 속에서 그 성품이 움직여 신앙을 잃어 버리는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품은 외유내강 하셨다. 예수님은 세번이나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뿐 아니라 공생애에 수없는 고난과 위험을 당하셨다. 그러나 주님은 육신을 쓰신 인간이었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셨다. ..... 조각목이 견고하여 벌레가 먹을 수 없을 같이 주님의 의지는 움직여지지 않으셨다. 그 나무는 결이 아름답고 귀한 나무이다. 그와 같이 우리 주님의 성품은 아름답고 고귀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조각목은 순금으로 입혔다. 이에 대하여 엉거(Unger)박사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나타낸 것이라] 고 했다. 그러나 성경에 순금은 순수한 참 신앙을 의미하는 때가 많다. 신앙의 대상은 하나님이시고, 또 신성이 신앙의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카일(keil)씨도 "내외에 금으로 포장한 것은 그의 백성 가운데 있는 여호와의 성성(聖性)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조각목은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며 정금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한다. 주님은 신성을 가지셨을 뿐 아니라 인성도 가지고 계신다(사7:14). 고로 조각목을 정금으로 싼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神人양성의 소유를 나타낸다). 그 안에는 만나 항아리와 십계명 두 돌비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넣어 두었다(히9:4).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심판과 의에 근거한 은헤의 왕국, 하나님 자신의 증거로써 언약 돌비들이 있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와 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입에서는 그것이 늘 차고 넘쳐 흘렀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놀랄 뿐 아니라 충만함을 받았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을 하신 생명의 주님을(민17:10) 의미하는데 그가 죄인들을 원수에게서 구원하고, 천국길로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만나 항아리는 생명의 소유자로써(요6:) 택한 양들에게 영생의 양식과 생명을 주심을 의미한다. 이상으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세가지의 유대를 가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요14:6). 여기에 대해 차남진 박사는 "십계명은 성부의 대표요, 만나는 희생 제물된 성자의 대표요, 아론의 싹난지팡이는 성신의 대표라"했다. 또 그리스도의 삼중직도 의미한다고 했다(기독신보,1966년 8월호). 3. 속죄소 (시은소) 출애굽기 25장 17절에 정금으로 속죄소로 만들라고 하였다. 또 히브리 4장 16절의 [은혜의 보좌 앞에]라고 말씀이 있다. 이것은 신약과 구약의 외면적인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속죄소, 즉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 앞에는 누구나 마음대로 들어 갈수가 없었다. 즉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 있었다. 그것은 그의 백성에게 율법과 계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는 것만 아니라 또 죄를 볼 때에 진노도 하시고, 자비도 베푸시는 하나님을 계시한다(출 20:5634:6-7). 또 후에 큰 속죄의 날에 피를 흘려 속죄하여 그들의 모든 죄에서 속죄하고 그의 백성과 화목하기를 원하심을(레16:14) 보여 준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발등상인 은혜의 보좌(히4:169:5)앞에 자유로이 나아갈 뿐만 아니라 긍휼을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려서 속죄함으로 심판의 보좌에서 은혜의 보좌로 옮겨 주시기 때문이다(히9:11-157:2710;10,.9:24). 두 그룹을 만들어 속죄소 위에 두었다. 그 그룹들은 각각 두 날개를 가졌다.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형상을 가졌다.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준 그룹의 형상은 사람, 사자,송아지 그리고 독수리의 형상들이었다(겔1:10).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권의 증거와 구원의 영광과 하나님의 왕되심으로 왕으로 모심이다. 욥기 1장 6절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천사들이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보좌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직분을 감당키 위함이다. 이러한 그룹들이 속죄소 위에 계신 것은 죄인 인간들이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속죄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세우시고 원하시는 대제사장,즉 예수 그리스도만이 속죄할 수 있으며, 그의 피가 속죄 제물이요, 또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으로 되어 짐을 보여 준다. (히9:11-15,행4:11-12). 또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같이 계심을 뜻한다. 즉 정한 장소에서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시고,그들과 같이 만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약속을 성취하심을 의미한다.(출29:4240:35,레1:1,민1:117:19).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백성 중에 계신다(대상 28:2,애2:1)48). 끝으로 천사들은 하나님이 부리는 사자들이다. 그들이 속죄소 위에 있음은 속죄사역을 하나님이 행하심과 속죄함을 받은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고 보호함을 의미하고 세계를 순행함을 의미한다(히1:14). 4. 진설병 상(출25:23-30) 진설병(떡을 차려 놓는)상은 법궤와 같은 재료로 신인성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상 위에 놓는 떡은 좋은 밀가루로 만들었고,전혀 누룩을 쓰지 않는다. 반면 기름과 소금을 넣고 향도 넣었는데 그 떡은 불에 굽든지 삶게 되어 있다(렘24:7,민7:14). 이스라엘의 지파를 따라서 12개의 떡을 그 상 위에 놓되 매 안식일에 새 것으로 놓았고, 제사장 만이 먹을 수 있었다. 이 떡은 예수 그리스도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택한 양들에게 주어지는 새롭고 신령한 생명의 떡이다. 제사장된 성도들의 영혼의 양육자로서 매 성한 생명의 떡이다. 제사장된 성도들의 영혼의 양육자로서 매 성일마다 새 영의 양식으로 공급하여 주신다(벧전 2:9,계1:6,요6:33-58 / 49).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다른 이들이 다 물러가고 자기만 남았을 때 예수님께서 "너도 가려느냐?" 할 때 "영생의 말씀이 있으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영생의 말씀의 떡이 있다. 그 떡은 독소가 없는 신령하고, 순수한 생명의 참 떡이요,기름은 성령의 충만이다(슥 4:3). 꿀같이 꿀송이 보다 더 맛있는 신령한 말씀의 떡이다. 소금은 맛을 내고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치 않는 진리요 영의 만나이다. 5. 촛대 (출25:31-40) 이것은 순금으로 만들었고 일곱가지가 있다. 이 촛대는 빛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업이다(요1:4-593:19-21,12:35-36,엡5:814). 기름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주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함과 같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의 빛을 죄악 세상과 인간의 영혼에 비취일 뿐 아니라 진리와 천국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시여 빛을 비추임과 같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어두운 죄악 세상에서 멸망의 자리로 향하는 인간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취일 뿐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성도에게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축복받는 길을 비취이는 안내자이다(마5:14,요8:129:55:16). 스가랴서 4장 2절에 의하면 순금 등대 좌우에 두 감람나무가 서서 그 등대에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 불이 힘있게 타게 했다 이것은 곧 주의 몸된 교회가 성도들에게 은혜의 기름을 공급하여 주어서 성도로 하여금 세상에서 빛이 되게 하심이다(계1:11-20).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6. 향단 향단에는 아침 저녁으로 불을 정리하고 켤 때에 향을 사르게 되어 있다. 그런고로 이 향단은 등대(촛대)의 관계가 있다. 그 향단에 사르는 향의 재료는 고귀하고 순수하였다(출30:22-25).관유도 바치게 되어 있다. 향단은 기도와 제단이다. 기도와 제단은 두가지 면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여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와 제사이다. 로마서 8장 34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히7:25,요1서 2:1). 둘째는 성도들이 지상에 있는 성전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기도이다. 계시록 8장 3-5절에 "또 다른 천사가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료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 들고 보좌 앞 금단에 드려진다"고 했고 5장 8절에도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대접을 가졌으니,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다. 시편 141편 2절에 '나의 기도가 주안에 분향함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제사가 된다." 고 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진실과 성심으로 제단에서 드리는 기도는 향단에서 분향함과 같다. 그 향단은 채로 꿰여 메는 것은 귀중하게 여기고 또 언제나 향단과 행동하는 것인데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삼상 12:23). 7. 놋단 (출38:1-927:1-8) 놋단은 조각목에 놋을 씌웠다. 놋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의미할 때가 있다(민21:9,요3:14). 계시록 1장에 주님은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의 공의의 심판이 행차를 의미한다. 또 그 놋단이 성소와 지성소 밖에 있었고,짐승을 희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골고다 형장에서 회생될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또 그 단은 네 뿔이 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희생하신 대속을 의미한다(히9:11-14). 성소나 지성소에는 놋단에서 희생된 제물이나 그 피를 가지지 않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즉 그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레17:11,히9:22). 이는 예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히9:14).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불뱀에게 물려 위지사경에서 장대 끝의 구리뱀을 바라본 것도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아 십자가에 희생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히9;12).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귀중하고 우리의 자랑거리이다(갈9:14). 8. 세수대야 (출30:17-2140:30-32) 세수대야는 놋단과 성소 사이에 놓여 있었다. 대야는 역시 놋으로 만들고 그 안에 물을 담아 두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단과 성막 출입시에 반드시 손과 발을 씻고 출입하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뿐만 아니라 성도가 자신의 하물과 죄를 살피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은 후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의 성민도 거룩하여야 한다."부정에서 떠나 정결하게 되어야"(사52:11)하고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또한 '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씻어야 한다"(행22:16). 9. 거울(출38:831:9). 이 거울은 물두멍이라고도 했다.그것은 (1)양심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것이다(고전13:12). (2)진리의 말씀 거울에 자신을 살피는 것이다(약1:23). (3)성령의 감화와 그 역사의 거울에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이다.(요16:7-11) 제 2절 기독론적 입장에서의 본 성막 1. 휘장 (출26:1-6) 이 휘장은 전체 10폭으로 만들었다. 그 10폭을 각각 5폭으로 연하여 한 막이 되게 했고 그 막은 길이가 28규빗(42휘트),넓이가 4규빗(6휘트)였다. 각 막에 고리 50을 만들어 꿰게 되었다. 이 막의 재료는 "가늘게 꼰 베실, 청색,자색,홍색실로...만들지니"라고 했다. 여기에 기록된 여러가지 색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가늘게 꼰 베실"은 주님의 성결을 의미하는데 그의 거룩함과 의로움 뿐 아니라 영광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예수님의 변화산의 영광과 의를 보라! 청색은 하늘 색으로 그리스도의 하늘 나라에 속함, 즉 신성으리 의미하며, '자주색' 은 주님의 위엄과 존귀의 상징이고, "홍색"은 피의 색채로 주님의 능력과 권세를 의미한다. 즉 왕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인격적 사역의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 준다(히11:2010:19)50). 2. 덮는 막 덮는 막은 삼중으로 베실로 짠 덮는 막과 양의 털로 만든 중간 막과 해달의 가죽의 외부 덮는 막이다. "이것은 내부는 화려하고,포근하되 외부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과 같다. 그의 내, 외의 생활을 비교하여 보면 내적으로는 평화의 생애였다. 즉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차고 넘쳤으나, 외적으로는 원수들과 죄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모진 고난과 역경의 생애였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영교하므로 환희의 생활이었으나,육신적으로는 사탄과 대적들을 대하는 영전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했다. 이것이 세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였다(사53:61:1-) 52). 3. 안 휘장 (출26:31-37) 이것은 청색,자색,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만들고, 그 위에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다. 이것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이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사역의 여러가지 모습이다. 즉 여러가지 인격을 드려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속사업을 의미한다(마27:5,막15:38,눅23:45).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 안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었다. 그것은 막힌 담이 제거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의하여 죄인이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면전에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드려 하나님과의 죄인된 인간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헐으시고,하나님과 인간을 화목케 하심인 것이다 (히10:20).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이요, 중보자이시다. 4. 뜰(안마당 - 출27:9-19). 이 뜰은 휘장(또는 막)에 의하여 제한되어 있다. 이 뜰의 휘장을 좋은 베실로 짜서 조각목 기둥에 걸어서 만든 것은 의를 구함이다. 그 의는 인간 자신의 의가 아니다. 어떤 율법의 의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 안에 계시된 복음의 의이다. 그 복음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러므로 천하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아가게 된다(요14:6,히7:25,행4:12).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고 했으니 기둥은 진리의 기둥이요, 그 기둥은 받침은 진리의 턱 즉 진리의 기반이다. 진리는 말씀이니 교회의 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야 하고,교회의 주인은 예수그리스도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전이다(딤후2:15). 문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법규이다. 즉 진리 안에서 구별하는 척도이다. 그 척도는 하나 밖에 없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문이라고 했다(요10:9). 그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했다(요10:참조).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사역의 공로에 의하여 택한 백성으로 (히3:1) 사죄의 문, 구원의 문,의와 천국의 문으로 이끄신다. * 휘장의 사명 (1) 구별,선택과 구속. (2) 보호,인도와 간수. (3) 휘장 안, 휘장 안에 있는 자가 하나님과의 교제함. 5.밖 마당 밖 마당은 이방인의 마당이다. 즉 이방인이 지체하는 곳이다. 그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요, 하나님께 버리운 죄인들이다(갈2:15). 이스라엘 밖의 사람은 다 죄인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또 죄인들의 죄악의 상태가 로마서 1장 18-32절과 3장 10절에 나타나 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범죄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도 다 범죄했다(롬2:17-25). 여기의 이방인은 영적인 이방인을 의미한다. 유대인이나,헬라인이나, 다 영적 이방인, 하나님을 떠나 있는,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밖에 있는 무리들이요(롬2:28-29).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이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는 자들이다(갈3:2). 6. 등을 위한 기름(출27:20-21) 이 기름은 좋은 감람유를 가지고 만든 것으로 성령을 상징한다(슥 4:2-6,요3:34,히1:9). 성령이 주님께 비둘기같이 임하였고, 성령이 그를 도왔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늘 기름이 타는 것과 같이 성령님이 역사하므로 선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빛을 발휘하게 된다. 즉 성령의 인도에 따름으로 예수의 빛을 발하고, 진리와 구원의 빛을 잘 발휘하게 된다(요15:26-27),16:7-11,13). 성령에 의하여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고(요14:16-1725-27),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된다. 제 3절 제사 직분(출28:) 1. 아론과 그의 아들의 제사직 대제사장 아론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히4:14-15,벧전2:9). 아론의 사역은 그리스도에게서 완성 되었다(히9;11-). 그러나 아론은 죽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론과 같이 죽은 자가 아님으로 멜기세덱의 순서를 따른 것이다. 그 이유는 그는 대제시장이나, 그는 영원한 죽음이 없음이다(히7:15-25). "대제사장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위한 거룩한 옷은 우리 대제사장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금실(신성)의 여러가지 색채(5,6,15,33)들, 즉 "푸른색"은 피를, 그리고 "흰색"은 순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나 그의 아들들은 이 세대의 신자들의 예표인 것이다(벧전 2:9,레1:6) 58). 2. 에봇(출28:6-14) 에봇은 앞에 말한 바와 같이 겉옷 위에 있는 긴 앞치마와 같이 생긴 것으로 대제사장의 어깨에 걸치게 되었다. 그리고 에봇에는 매는 띠가 있는데 금실,청색,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로 짠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잇음을 뜻하며 그 교회의 성원인 성도 두 호마노에 12지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음이 의미는 12사도들의 신앙과 그들이 전한 복음에 선지자들-인 중생한 사람들이 모이는 성전의 위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깨에 메워 그의 앞에 있다. 주님의 어깨는 주님의 능력을 의미, 즉 성도들이 그들의 일생을 주님의 능력 가운데서 살아감을 의미한다. 또 주님의 감찰과 가호가 떠나지 않고 밤과 낮으로 항상 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을 높이고 영광을 그에게 돌려야 한다. 띠는 진리의 띠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띠이다. 그 진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띠를 삼아 힘을 얻고 경성하여 영적 파수군이 되는 것이다. 3. 흉패(출 28:15-29) 흉패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달았고, 대제사장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요, 대제사장이 늘 살피는 것이다. 우리도 대제사장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이다. 그 흉패에는 네 줄의 보석이 있는데 각 줄에 셋씩 12보석이 있다. 12보석은 12지파이다. 이는 선택된 성도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계20:)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구약의 12지파는 신약의 12사도에 해당하고 12지파의 성원은 12사도의 신앙을 계승한 성도에게 해당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가슴, 즉 주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보석이 흉패에서 벗어 나서는 안되는 것과 같이 교회에서 떠나서는 의와 진리안에 안전하게 있을 수 없다. "대제사장인 아론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 하였던 것과 같이 주님께서 하나님의 존전에 나갈 때 우리의 이름을 기록하여 그 앞에 간수케 하신다." 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와 같이 천국에 들어 감도 의미한다. 끝으로 "보석들이 대제사장의 가슴에서 빛남과 같이 우리들을 통하여 주가 영광을 받으시게 함이다. 그 방법은 우리들이 주의 거룩하고 큰 뜻을 깨달아 주의 큰 일을 성취함이다. 4. 우밈과 둠밈(출28:30). 대제사장의 가슴에 있는 흉패 속에는 우림과 둠밈이 있다. 우림은 "빛"이라는 뜻이고, 둠밈은 "완전함"이란 뜻이다. 이것들은 12보석이 있는 흉패 속에 간수되어 있었다. 이는 교회의 성원된 우리 신자들은 주님 안에서 살며,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나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주님께 해결하여 주실 것을 도고하고,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또 주님께서는 그것을 성령님의 인도함을 통하여 신, 구약 성경에서 해결하여 주신다. 성령님의 역사는 완전하시니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통하여 지도하신다(시119:105,잠6:23). 즉 빛되신 주님의 말씀의 빛으로 인도하신다. 5. 에봇 받침(겉옷=출28:31-35). 에봇 받침은 겉옷인데, 그 색은 푸른색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 하늘의 제사직을 표현한다. 그 옷의 끝에 방울과 석류는 그리스도의 중재의 증거의 말씀과 충실을 보여 준다. 주님의 중재의 증거의 말씀은 성경이다. 지금도 그것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석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재 사역의 성취를 말씀하신다. 즉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의 열매를 보여 주는 것이다(행1:1-4). 6. 반포 옷(속옷=출28:439) 이 속옷은 가는 베실로 짜서(레8:7).만든 속옷이다(출28:39). 그 속옷에는 띠가 있어서 띠를 띠라고 했다(출39:27-29). 이 옷의 특징은 통으로 짠 것이며, 반드시 이것을 입고 그 위에 겉옷을 입게 되었다. 또 대제사장만이 아니라 제사장도 입게 되어 있었다(출39:27).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속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다. 허물과 부끄러움을 가리우는 속죄와 칭의의 옷이다. 성경 이사야 53장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심을 말씀하는데, 그대로 요한복음 19장 23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군병들에게 속옷이 벗기우고, 부끄러움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하시고, 그의 의의 속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신 것이다(시22:18). 띠는 진리를 의미하는데, 진리로 무장할 것이다. 7. 금패(출28:36-38). 금패는 대제사장의 성관이 붙이는 패이다. 이 패는 [여호와성결]이란 글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청색끈이 매여 성관 앞에 달게 되었다. 이것은 첫째로."모든 일에 조심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경고이다. 그리고 둘째는,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성별된 대제사장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자와 선지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대상 16:22). 다윗은 신앙과 진리의 사람인데, 그는 기름부음 받은 사울왕에게 손대지 않은 모범된 자이다. 그 이유는 기름부음 받은 자는 (1) 하나님의 대리자 이고, (2) 하나님이 쓰는 자이다. 주 예수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여 성령의 기름을 부어 세운 유일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그는 그의 만사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하신 분이시다. 또 하나님의 뜻과 성업을 완성하고 그 일을 위하여 지사충성한 분이다. 주님 시대 이후에는 그리스도가 세우신 사도들과 교역자들이다(벧전 5;5,히13:17,갈6:6). 8. 성관 출애굽기 28장 40절에 기록된 성관은 영광과 존귀를 나타낸다. 대제사장은 영광의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그 직분이 대단히 영광스러운 것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요 (스가랴 3장)(출39:28,히2:9,계19;12,7:9),"영광과 존귀를 입은 자"라고 말씀했다. 특별히 히브리 2장 9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왕의 영광과 존귀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그는 만왕의 왕이요, 대심판장이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 주관하는 만주의 주이시고, 장차 왕 중의 왕으로 오셔서 모든 것을 다스릴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의 영광과 존귀를 입은 자로써 스스로 낮아지시여 神人 양성을 가지시고,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전, 지성소에 들어 가시여, 자신의 찢긴 살과 흘린 피와 그 공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속죄 제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와 담을 존재하는 하나님의 참 택한 백성을 사랑하고, 지키고,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시고, 또 신령한 생명의 떡과 생수로 먹이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을 언제나 그의 능력으로 보호사시고, 간수하여 주신다. 또 위에 생각한 성막의 구조만 아니라 성막의 기구들과 제사 직분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 즉 기독론적 입장에서 인격과 사역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나타낸다. 구약의 성막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성막의 완성이다. 또 구약의 성막의 구조와 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성품과 성취하신 하나님의 뜻과 구속 역사이다(히3;1-10:25). 제 4절 성막에서 거행된 제사와 영의 성막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했고, 그의 성품과 사역을 예언했던 것과 같이 성막에서 행한 제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본분을 교훈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막에서 행한 제사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 가운데 숨은 진리를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성막에서 행한 제사들에 대하여는 레위기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 제사는 다섯 가지이다. 그러나 학자들에 의하면 여섯가지로 보는 이들이 있다 즉 레위기 7장에 근거하여 한가지를 더 첨가하여 여섯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종류에 대하여 시비를 하지 않겠다. 그 이유는 다 성경적이고, 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이론 중에 여섯으로 보는 견해는 위임 제사를 첨가하는 것이다. 이 위임 제사는 단회적이기 때문에 다른 제사와 구별이 된다. 그러나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제사이다. 레위기 7장 37절에 의하면 제사들은 여섯가지인데 즉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제와 화목제의 규례라"고 했다.
성막 덮개/ 2015-03-26
성막 덮개/ 2015-03-26 성막 덮개 | 성막 제1 덮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짠 천 제2 덮개, 염소털 11폭 제3 덮개,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 제4 덮개, 물소 가죽 덮개 덮는 막은 사중으로 베실로 짠 덮개과 염소 털 11폭,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 물개, 해달 의 가죽 외부 덮개이다. "이것은 내부는 화려하고, 포근하되 외부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과 같다. 그의 내, 외의 생활을 비교하여 보면 내적으로는 평화의 생애였다. 즉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차고 넘쳤으나, 외적으로는 원수들과 죄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모진 고난과 역경의 생애였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므로 환희의 생활이었으나, 육신적으로는 사탄과 대적들을 대하는 영적 전쟁으로 인하여 고난을 당했다. 이것이 세상에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였다(사53:61:1-) 52) 7 성막 위에 덮을 천막은, 염소 털로 짠 열한 폭 천으로 만들어야 한다. 8 각 폭의 길이는 서른 자요, 너비는 넉 자로 하는데, 열한 폭의 치수를 모두 같게 하여야 한다. 9 다섯 폭을 따로 잇고, 나머지 여섯 폭도 따로 이어야 한다. 그리고 여섯 번째 폭은 천막 앞쪽으로 반을 접어서 올려야 한다. 10 다섯 폭으로 이은 천의 가장자리에 고 쉰 개를 만들고, 여섯 폭을 이은 천의 가장자리에도 고 쉰 개를 만들어라. 11 또 놋쇠 갈고리 쉰 개를 만들고, 그 갈고리를 양쪽 고에 마주 걸어서, 한 천막을 만들어라. 12 그리고 여분으로 남아 있는 천막 반 폭은 성막 뒤로 늘어뜨려라. 13 천막 폭 너비에서 양쪽으로 한 자씩 남아 있는 것은, 성막 양 옆으로 늘어뜨려서 성막을 덮게 하여라. 14 천막 덮개를 두 개 더 만들어라. 하나는 붉게 물들인 숫양 가죽으로 만들고, 그 위에 덮을 또 다른 덮개는 돌고래 가죽으로 만들어라. (표준새번역 출 26장) 청색 자색 홍색 베실 덮개 흰 염소털 붉은 수양 덮개 해달의 가죽
성막 세부 내용
2. 성막 세부 내용 문, 번제단, 물두멍, 성소, 널판, 떡상, 금촛대, 분향단, 휘장, 언약궤, 만나, 아론의 싹난지팡이, 십계명 돌판, 성막의 운반 출애굽기 25장부터 성막이 나온다. 성경에 있어서 성막 얘기는 그 비중이 상당히 크다. 성막 얘기는 출애굽기에만 13장이 나오고, 레위기에 18장, 민수기에 13장, 신명기에 2장과 히브리서에 4장 모두 50장에 걸쳐서 나온다. 신구약 성경이 모두 1,18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막 얘기가 50장에 걸쳐서 나온다는 얘기는 성경 전체의 무려 1/24이 넘는 곳에서 성막 얘기가 거론된다는 뜻이다. 천지 창조에도 단 6일밖에 소요되지 않았는데, 무려 40일이 할애되어야만 했던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아마도 여기에 대한 대답은 분명히 예수일 것이다. 성막을 조감해 보면 바깥에는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 동편의 출입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번제단이다.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고, 물두멍을 지나면 성소가 있는데 그 안에는 금촛대와 떡상, 그리고 분향단이 있다. 그 뒤에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고 있고, 휘장 너머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언약궤가 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 여정 내지는 신앙 성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단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번제단에서 재물을 드리는 일이다. 자신을 불태우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보여준다. 그 다음에 있는 물두멍은 구원은 얻었지만 그래도 세상을 살다 보면 죄는 범하게 되는데, 한 번 얻은 구원은 취소되지 않지만 구원 얻은 신분에서 범한 죄는 계속 회개하면서 자신을 성결케 하여야 한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물두멍이다. 그 다음에 성소 안에 들어가면 떡상은 영의 양식, 생명의 떡, 예수님을 나타내고, 금촛대는 성령의 조명, 분향단은 우리의 기도,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여기서 잠깐 구약 시대에 제사를 드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제물로 쓸 양 한 마리를 끌고 성막으로 온다. -제사장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으면 -'저는 이러 저런 죄를 범했습니다. 그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려고 합니다' 하고 대답한다. -제사 드릴 죄인이 출입문에서 흠이 없다고 판명된 수양을 -뜰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서 '흠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하고는 -단 앞으로 끌고 온 숫양의 끈을 단의 뿔에 묶고 -자신의 죄가 양에게로 다 옮겨 가도록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안수한다. 양에다 안 수를 함으로써 그 사람의 죄가 양에게로 전가되는 것이다. -그런 후 북쪽으로 약 6미터 옮겨 가서는 숫양을 자기 손으로 잡는다. -처참한 소리와 함께 피가 낭자하게 된다.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죽어가는 숫양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아! 사실은 내가 죽어야 하는데 나 대신 저 양이 죽는구나!…' -여러 명의 제사장들이 피를 받아서 가져다가 단 사면에 뿌린다. -담당자는 피비린내가 나는 가운데 숫양의 가죽을 벗겨 옆으로 치우고 각을 뜬다. -각뜨기가 끝나면 제사장은 단에 피를 뿌린다. -불 위에 나무를 벌여놓은 제사장들은 각 뜬 것과 숫양의 머리와 기름 덩어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불 위의 나무에 벌여놓는다. 그러면 타기 시작한다. 양이 불에 타는 광경을 보면서, '지금 저 자리에서 불에 타야 할 것은 저 양이 아니고 나 자신 이로구나!' 하고 애통해 한다. 불에 타고 있는 제물과 자신을 일체화함으로써 그 사람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불 위에 놓기를 마친 제사장은 계속해서 내장과 정강이를 모아 물로 깨끗하게 씻고 또 씻는다. -그리고 물두멍과 발씻는 철에서 손과 발을 씻는다. 문 출27: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끈 베실로 수놓아 짠 이십 규빗의 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출38:18> 뜰의 문장을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짰으니 장은 이십 규빗이요 광 곧 고는 뜰의 포장과 같이 오 규빗이며...... 문은 예수를 상징한다.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 모두 네 가지 색이 나오고 있다. 가늘게 꼰 베실, 즉 흰색을 바탕으로 해서 청색, 자색, 홍색실을 수놓으라는 얘기이다. 청색은 하늘색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를 상징한다. 자색은 왕으로 오신 예수이다. 옛날 왕복이 자색이었다. 홍색은 피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종으로 오신 예수이다. 그리고 흰색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네 가지 사역을 설명해 주는 것이 바로 성막 문에 나타난 네 가지 색깔이다. 그리고 그 문에 나타난 색깔은 바로 4복음서와 그대로 연결되기도 한다. 마태복음의 주제는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이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이다. 누가복음은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이다. 요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 번제단 출27:1-8>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게 할지며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출38:1-7>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 장이 오 규빗이요 광이 오 규빗이라 네모 반듯하고 고는 삼 규빗이며 그 네 모퉁이 위에 그 뿔을 만들되 그 뿔을 단과 연하게 하고 단을 놋으로 쌌으며 단의 모든 기구 곧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고 단을 위하여 놋그물을 만들어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두되 단 절반에 오르게 하고 그 놋 그물 네 모퉁이에 채를 꿸 고리 넷을 부어 만들었으며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어 놋으로 싸고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메게 하였으며 단은 널판으로 비게 만들었더라 번제단은 신약적인 의미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한다. 일단 번제단을 통과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힘입어야 하는 것이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번제단에 딸려있는 몇 가지 도구가 있다. 재를 담는 통과 부삽, 대야, 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 모두 다섯 가지이다. '재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출 27:3) 대야는 고기를 담는 그릇이다. 결국 대야는 자기 죄를 회개할 사람을 계속 있게 만드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전도이다. 자기 죄를 알게 하는 것이 고기 대야의 역할이다. 고기 갈고리는 고기가 제단에서 불에 타는 동안에 고기를 고정시키는 도구이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새로 왔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다 그 교회에 정착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 온 교인으로 하여금 그 교회에 붙어있게 해야 한다. 부삽은 제단에서 제물을 불태운 뒤에 남은 재를 치우는 것이다. 교회라고 해서 항상 거룩하고 덕스러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성스럽게 예배를 드렸는데 그 예배가 끝나면 더러운 재가 남는다. 이것을 치우는 것이 부삽이다. 재를 담는 통도 그렇다. 재는 아무 데나 버릴 수 없다. 아무 데나 버리면 오히려 더 더러워진다. 이처럼 교회에서 남들이 투덜거리는 소리와 온갖 짜증을 다 받아주면서도 그 말을 다른 데로 옮기지 않고 묵묵히 삭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회에서 불평 불만이 확산되지 않고 가라앉는다. 마치 재를 통에 담아서 뚜껑을 닫듯이 거기에만 들어가면 끝이 나는 것이다. 물두멍 출30:17-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출38:8>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번제단은 우리의 신분에 대한 얘기이다. 죄의 종이냐 하나님의 자녀냐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물두멍은 신분상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실제적인 수준의 문제이다.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 다워지느냐 하는 문제이다. 번제단에서 제물을 드림으로써 죄를 사함을 받은 후에도 정작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반복적으로 거룩하게 씻음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또한 성막의 바닥은 흙이기 때문에 거기에 있다가 보면 발은 더러워진다.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출38:8) 성막에서 제사장들이 물두멍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는 자신의 더러움을 물로 씻어내었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이 과연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적합한 모습인지 항상 확인하여야 하고 자기 자신에게 허락된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옛날 물두멍이 했던 역할을 지금 감당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다. 구원받은 후에도 몇 번이든지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면서 자기 자신을 물로 씻어서 정결하게 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도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를 항상 비춰봐야 한다. 성막에 있던 모든 기구들은 정해진 사이즈가 있었다. 그러나 유독 물두멍에 대해서만은 크기가 나와있지 않다. 물두멍의 크기에 대해서 사전 지시가 없었다는 얘기는 거울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큰 물두멍을 만들게 된다는 뜻이다. 주님을 향한 헌신이 많으면 많을수록 물두멍의 크기도 같이 커지는 것이다. 또 물두멍의 크기에 제한이 없었다는 얘기는 우리를 씻으려는 주님의 은혜에 제한이 없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은혜가 한이 없다는 얘기를 뒤집으면, 주님으로부터 씻음 받아야 하는 우리의 더러움도 한이 없다는 뜻이 된다. 성소 물두멍을 지나면 성소가 나온다. 성소에 들어가면 우측에 떡상이 있고, 좌측에는 금촛대, 정면에 분향단이 있다. 또 사방 벽과 보이는 것이 모든 것 즉 떡상도 금이고, 촛대도 금이고, 분향단도 금이다. 또 천장은 백색 바탕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형형색색 찬란한 무늬가 아로새겨진 앙장이다. 출26:1-14>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매 폭의 장은 이십팔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하고 그 앙장의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앙장 말폭 가에 고 오십을 달며 다른 앙장 말폭 가에도 고 오십을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대하게 하고 금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앙장을 연합하여 한 성막을 이룰지며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열한 폭을 만들지며 각 폭의 장은 삼십 규빗, 광은 사 규빗으로 열한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하고 그 여섯째 폭 절반은 성막 전면에 접어 드리우고 앙장을 연락할 말폭 가에 고 오십을 달며 다른 연락할 말폭 가에도 고 오십을 달고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그 고를 꿰어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그 막 곧 앙장의 나머지 그 반 폭은 성막 뒤에 드리우고 막 곧 앙장의 길이의 남은 것은 이편에 한 규빗, 저편에 한 규빗씩 ? 보?좌우 양편에 덮어 드리우고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지니라 성恬?덮고 있는 덮개를 살펴보면, 제일 처음에는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든 알록달록한 앙장이었고, 그 위에는 염소털로 된 덮개, 그 다음에는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 그리고 그 위에 해달 가죽이 차례로 성소의 지붕이 되는 것이다. 제일 바깥에 있는 것이 해달 가죽이다. 밖에서 보면 비바람에 찌들고 모래 바람에 꼬질꼬질하게 때가 절은 해달 가죽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이것이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를 보는 모습이고 교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모습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보려면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대체 이 해달 가죽은 어디서 났겠는가? 출애굽할 적에 가지고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왜 해달 가죽을 갖고 나왔는고 하면 이것이 바로 신발 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막을 만들기 위해서 그것을 바쳤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4) 하는 말씀이 바로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은 붉은 물들인 숫양 가죽이다. 이것은 주님의 대속사역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숫양 가죽이 바로 예수님의 보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이 염소털이다. 결국 여기서 염소털로 된 성막 덮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가 만나는 장소를 보호하고 있다. 아론은 자기를 위하여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6-10) 염소털 안에 있는 것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흰색)의 네 가지 색깔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든 앙장이다.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색깔은 예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앞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그룹은 천사를 말하는데, 천사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친위대이다. 그러니 그룹이 수놓아져 있다는 얘기는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뜻이다. 결국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네 겹으로 된 성소 덮개는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원이 없던 상태에서 구원을 얻고, 점점 더 죄를 멀리하며 신앙이 깊어져서 결국 하나님을 직접 뵙기까지 하는 것이다. 널판 성소 덮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널판이다. 이 널판의 재료는 조각목인데, 폭 한 규빗 반(대략 70cm), 길이 십 규빗(대략 4.5m)의 널판 48개로 성소의 벽이 이루어져 있다. 성소의 벽을 이루는 널판은 바로 교회를 이루는 성도를 상징하고 있다. 출26:15-30> 너는 조각목으로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어 세우되 각 판의 장은 십 규빗, 광은 일 규빗 반으로 하고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너는 성막 널판을 다 그와 같이 하라 너는 성막을 위하여 널판을 만들되 남편을 위하여 널판 스물을 만들고 스무 널판 아래 은받침 마흔을 만들지니 이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성막 다른 편 곧 그 북편을 위하여도 널판 스물로 하고 은받침 마흔을 이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 저 널판 아래에도 두 받침으로 하며 성막 뒤 곧 그 서편을 위하여는 널판 여섯을 만들고 성막 뒤 두 모퉁이 편을 위하여는 널판 둘을 만들되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각기 두 겹 두께로 하여 윗고리에 이르게 하고 두 모퉁이 편을 다 그리하며 그 여덟 널판에는 은받침이 열여섯이니 이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요 저판 아래에도 두 받침이니라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저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 성막 뒤 곧 서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며 널판 가운데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 그 널판들을 금으로 싸고 그 널판들의 띠를 꿸 금고리를 만들고 그 띠를 금으로 싸라 너는 산에서 보인 식양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17절에, '각 판에 두 촉씩 내어 서로 연하게 하되…' 라고 했다. 널판을 지지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라는 것이다. 다음 19절에, '스무 널판 아래 은받침 마흔을 만들지니 이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고 저 널판 아래에도 그 두 촉을 위하여 두 받침을 만들지며' 라고 했다. 널판 밑에 기차 레일처럼 은받침을 두 줄로 만들어서 그 위에 널판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촉을 만들어서 은받침을 지탱하는 것이다. 26절에, '너는 조각목으로 띠를 만들지니 성막 이편 널판을 위하여 다섯이요.…'라고 되어 있다. 성소의 벽을 만드는데, 단지 널판을 세운 것으로는 지탱이 안된다. 길이가 십 규빗(4.5m)이나 되는 널판을 지탱하기 위해 띠를 만들어서 그것을 연결하는 것이다. 조각목에다 금을 입힌 띠로 널판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연합을 볼 수 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1-22) 바로 이 모습이 성소 널판의 모습이다. 서로 연결되어 함께 완성되는 것이다. 떡상 출25:23-30>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 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고 그것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만들어 그 네 발 위 네 모퉁이를 달되 턱 곁에 달라 이는 상 멜 채를 꿸 곳이며 또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라 상을 이것으로 멜 것이니라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지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출37:10-16> 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며 정금으로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둘렀으며 그 사면에 손바닥 넓이 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었고 상을 위하여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았으니 그 고리가 턱 곁에 있어서 상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상 위의 기구 곧 대접과 숟가락과 잔과 붓는 병을 정금으로 만들었더라 떡상에는 언제나 열두 개의 떡이 놓여져 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이다. 떡상에 놓여 있는 떡은 우리의 참떡 되시는 예수님(요6:32)을 의미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6:51) 또 이 떡은 우리의 영의 양식인 성경을 상징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에 대한 깨우침이 있으면 있을수록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폭이 넓어진다. 떡상의 떡은 매 안식일마다 새 떡으로 바꾸었다. 일단 칠일이 지나면 다른 떡으로 교체하고 거기에 있던 떡은 성소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의 음식이 되었다. 떡상에 항상 새로운 떡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을 항상 새롭게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떡을 먹는 것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떡을 먹음으로 해서 얻어진 힘으로 그 힘으로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떡을 먹고 배부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성경에 있는 내용을 어느 만큼 아느냐가 전부가 아니라 거기에 있는 내용이 어느 만큼 몸에 배어있느냐를 따져야 한다. 금촛대 출25:31-40>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잇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게 하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옆을 비추게 하며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출37:17-24> 그가 또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여섯 가지가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대의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왔고 등대의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왔으며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가 그러하며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였으니 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등잔 일곱과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을 정금으로 만들었으니 등대와 그 모든 기구는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 금촛대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 실은 촛대가 아니고 등대이다. 등대를 만드는 재료는 정금(한 달란트, 34Kg)이다. 성소에는 창문이 없다. 요컨대 성소 안으로는 이 세상 빛이 들어오면 안된다. 성소를 밝히는 것은 오직 금촛대 하나 뿐이어야 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성령의 조명으로 해야 한다. 이 세상의 사고 판단이나 가치 기준이 들어오면 안된다. 자기 생각이나 자기 판단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이 금촛대는 혼자서 빛을 내지 않는다. 금촛대 안에 있는 기름이 타서 빛을 내는 것이다. 성경 여러 곳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출27:20-21) 금촛대는 떡상과 마주 보고 있다. 우리가 말씀을 받을 적에 항상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분향단은 기도를 나타내는 것인데, 결국 기도조차도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못한다. 분향단 출30:1-10> 너는 분향할 단을 만들지니 곧 조각목으로 만들되 장이 일 규빗, 광이 일 규빗으로 네모 반듯하게 하고 고는 이 규빗으로 하며 그 뿔을 그것과 연하게 하고 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뿔을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를지며 금테 아래 양편에 금고리 둘을 만들되 곧 그 양편에 만들지니 이는 단을 메는 채를 꿸 곳이며 그 채를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아론이 아침마다 그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 아론이 일 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 분향단은 기도를 나타낸다. 분향단이 언약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데, 결국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좌우에 떡상과 금촛대가 있는데, 말씀으로 힘을 얻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기도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론이 일 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 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출 30:10) 향단 뿔에 속죄제의 피를 바르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연관되지 않으면 안된다. 성경에서 뿔은 능력을 나타낸다. 번제단에도 뿔이 달려있었고, 분향단에도 뿔이 달려있었는데 둘 다 능력을 상징한다. 번제단의 뿔은 보혈의 능력, 분향단 뿔은 기도의 능력이다. 번제단에서 속죄제물을 드린 다음에 그 피를 분향단의 뿔에 바르라고 했으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단서인 기도도 그리스도의 희생이 근거가 되는 것이다. 분향단 앞에 서기 위해서는 먼저 번제단을 통과해야 했다. 번제단은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의미하는 것이고 분향단은 아직도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성막은 그 자체가 이동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번제단도 그렇고 물두멍도 그렇고 분향단도 그렇다. 분향단이 이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우리의 삶의 어떤 영역이든지 기도가 필요 없는 곳은 없다는 뜻이다. 휘장 출26:31-33> 너는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짜서 장을 만들고 그 위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아서 금 갈고리로 네 기둥 위에 드리우되 그 네 기둥을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서 네 은받침 위에 둘지며 그 장을 갈고리 아래 드리운 후에 증거궤를 그 장 안에 들여놓으라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 출36:35-38> 그가 또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장을 짜고 그 위에 그룹들을 공교히 수놓고 조각목으로 네 기둥을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그 갈고리는 금이며 기둥의 네 받침은 은으로 부어 만들었으며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 장막문을 위하여 장을 만들고 문장의 기둥 다섯과 그 갈고리를 만들고 기둥머리와 그 가름대를 금으로 쌌으며 그 다섯 받침은 놋이었더라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한다. 성막의 출입문이 바로 예수님이듯, 휘장도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휘장은 바로 예수님의 육체이다.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하는 휘장이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언약궤를 가리고 있다. 그 안으로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대제사장만이 대속죄일(7월 10일)에 일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그 장이 너희를 위하여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리라(출26:33)' 휘장을 젖히고 언약궤에 다가가려면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속죄피를 가지고 가야 한다. 속죄피를 가지고 가서 언약궤 위의 시은소에 뿌리는 것이다. 이 내용을 지금 우리에게 옮기면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으로 용서함을 받은 사람만 그리스도의 피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0-51) 전해오는 얘기로 이 휘장의 폭은 약 10cm였다고 한다. 양쪽에서 소가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고 한다. 휘장인 우리 주님의 육체가 찢어졌다. 이 휘장이 찢어진 순간부터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언약궤 출25:10-22>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짓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너는 정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두르고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고 그 네 발에 달되 이편에 두 고리요 저 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고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어 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하게 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37:1-9>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며 정금으로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만들었으며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며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편에 쳐서 만들었으되 한 그룹은 이편 끝에, 한 그룹은 저편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편에 만들었으니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출25:22)' 여기가 속죄소(죄를 씻는 장소)이다. 다른 말로는 시은좌(은혜를 베푸는 자리)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특별히 그 언약궤를 덮는 속죄소에서 만나겠다고 했다. 하나님이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히 나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장소가 바로 시은좌이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통해서 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성막의 존재 이유는 바로 언약궤 때문이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 만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세 가지 물건이 들어있었다. 이 세 가지 물건이 들어가 있고, 그 위를 금으로 된 시은좌(속죄소)로 덮었다. 만나 만나는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행군할 때 양식으로 삼았던 것으로, 아침마다 만나를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들한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목격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만나를 거두면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어야 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16:4) 그날 일용할 양식은 그날 거두어야 했다. 안식일 전날에만 이틀치가 내렸고 다른 날은 필요 이상으로 거두어봐야 전부 다 부패해서 못 먹게되었다. 결국 만나를 통해서 하루 하루의 삶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 중에서 각 종족을 따라 지팡이 하나씩 취하되 곧 그들의 종족대로 그 모든 족장에게서 지팡이 열둘을 취하고 그 사람들의 이름을 각각 그 지팡이에 쓰되 레위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쓰라 이는 그들의 종족의 각 두령이 지팡이 하나씩 있어야 할 것임이니라 그 지팡이를 회막 안에서 내가 너희와 만나는 곳인 증거궤 앞에 두라 내가 택한 자의 지팡이에는 싹이 나리니 이것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너희를 대하여 원망하는 말을 내 앞에서 그치게 하리라(민 17:1-5)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 모세에게 반역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진으로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각 지파마다 지팡이 하나씩 가지고 오게 한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택한 사람의 지팡이에서는 싹이 날 것이라고 했는데,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났다. (민17:10)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지팡이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표적을 삼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대한 원망을 엄하게 경고하셨다. 십계명 돌판 (출31:18)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나쁜 것일 수 없다. 분명히 좋은 것이고 귀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율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율법이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기에 급급했다. 언약궤 안에는 만나와 싹난 지팡이 그리고 십계명 돌판, 우리 인간의 한심한 수준을 고발하는 이 세 가지 물건이 있었다. 그리고 속죄소로 그것을 덮어버렸다. 그러면 밖에서는 인간의 죄는 보이지 않고 금빛으로 빛나는 속죄소만 보인다. 이 속죄소에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제물로 죽은 짐승의 피를 뿌린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의 죄는 보이지 않고 죄 대신 피만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죄가 사해지는 것이다. 언약궤는 열어보면 안된다. 시은좌로 가려진 세 가지 물건은 결국 우리의 죄성을 고발하는 물건들이다. 최대한 감추어야 하고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밀봉시켜야 한다. 밀봉시키는 것으로 모자라서 그 위에 피를 뿌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죄가 나타나지 않고 피가 보여야 한다. 그러면 죄값이 치러진 것이다. 성막의 운반 성막은 운반이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성막도 같이 옮겨다녔다. 이 성막의 사역은 사람의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나 다 해당된다는 얘기이다. 또 성막을 운반하는 사람은 레위인이었다. 성막을 운반하는 레위인들이 광야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성막의 기구들은 그것의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 채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청색 보자기로 싼 다음에 다시 해달 가죽으로 덮어서 운반하였다. 그러니 그런 것을 짊어지고 다니는 레위인을 만난 이방인은 그 레위인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은 단지 꼬질꼬질한 해달 가죽뿐인데, 그것을 마치 소중한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우리 모습이 바로 이렇다. 분명히 뭔가 있기는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른 사람은 모른다. 해달 가죽과 청색 보자기를 풀어젖혀야 금빛 찬란한 성막의 기구들이 나온다. 그러면 성막을 옮긴 다음에 조립할 때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그들은 계속 광야를 행진했는데, 그들이 머무는 곳마다 성막도 세워져 있어야 했다. 그때 성막을 세우던 레위인들의 심정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어야 한다. 성막의 기구를 어루만지는 심정으로 교회생활을 해야 하고, 성막을 조립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성막 외부/ 2015-03-26
성막 외부/ 2015-03-26 성막 외부 곤지암 갈보리 성막, 1/5 축소 두레마을 미국 란카스타 성막 광야의 성막 광야의 성막 성막 성막은 멀리서 보면 천으로 된 울타리 같다. 흰 세마포장이 100×50규빗(1규빗이 0.5m, 50×25m) 크기의 성막을 둘러싸고 있다. 흰 세마포장이 막혀 있진 않고 한쪽으로 문이 있고 문에서 들어서면 성막 뜰이 있다. 성막 뜰 안에는 조각목과 놋으로 된 번제단이 있고 조금 더 안쪽에는 물두멍이 있다. 물두멍을 조금 지나면 안쪽에 있는 막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을 성소라고 하며 성소는 두 부분, 휘장을 사이에 두고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진다. 성막에 관한 명칭들 1. 성소 출25:8,9 2. 회막 1)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출27:21). 2)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출33:7). 3)출 40:22-35. 3. 증거막 1)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의 쓴 재료의 물목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대로 계산하였으며 (출38:21). 2)그들로 증거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장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장막 사면에 진을 칠찌며(민 1:50). 4. 증거의 장막 1)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 (민17:7,8). 2)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실 이가 명하사 저가 본 그 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행 7:44). 5. 여호와의 집 1)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수6:24). 2)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체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 쌔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삼상1:7,24). 6. 여호와의 성막 1)그런데 너희 소유지가 만일 깨끗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를 취할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단 외에 다른 단을 쌓음으로 여호와께 패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패역하지 말라 (수22:19). 2)제사장 사독과 그 형제 제사장들로 기브온 산당에서 여호와의 성막 앞에 모시게 하여 (대상16:39). 7. 여호와의 전 1)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삼상1:9) 2)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삼상3:3). 8. 여호와의 장막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왕상2:28). 9. 법막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을 시켜서 여호와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대하24:6) 10. 실로의 성막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시 78:60) 11. 요셉의 장막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시78:67). 안 마당(뜰) 이것은 성막 안에 있는 마당이다. 성경에 의하면 그 뜰의 남편 길이가 100규빗(45미터)으로 그 길이의 세마포 포장을 치게했다. 그 포장의 기둥이 20이요. 놋 받침이 20이였다.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었다. 북편도 남편과 동일하였다. 서편에는 길이가 50규빗의 포장을 치게 하되 기둥이 10이고, 놋 받침도 10이었으며 동편도 마찬가지로 50규빗의 포장이 기둥 셋과 놋받침에 걸쳐 있었고,뜰 문 이편에 15규빗의 포장이 기둥 셋과 놋받침에 걸쳐 있었고, 뜰 문 저편에도 이편과 같이 되어 있었다. 뜰 문을 위해서 청색,자색,홍색과 가는 베실로 수 놓아 짠 휘장으로 길이가 20규빗이고,기둥이 4,놋받침이 4이었다. 모든 기둥의 가름대와 갈고리는 은으로 만들었다. 세마포 포장의 높이는 5규빗이었다. 그리고 이 안 마당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말뚝과 뜰의 포장 말뚝은 다 놋으로 만들어졌다. 이 안 마당은 이스라엘인의 마당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마당에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외에는 절대로 출입하지 못하였으며, 또 제물을 가지고 들어와 제사드릴 자도 이스라엘 백성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바깥마당 이곳은 소위 이방인의 마당으로 이 마당은 매우 넓다.성막 밖의 전지역이 이방인의 마당이다. 그 이유는 이방인이 이곳까지는 접근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상숭배, 살인, 간음,도둑질,여러가지 불의와 악이 행해지는 죄의 처소이다. 사죄의 은총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버린자의 거처요, 장망성이 이방인의 마당이다. 성막(출 36:8-38) 1 열 폭으로 성막을 만들어라. 그 천은, 가늘게 꼰 모시 실과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아 짠 것이라야 한다. 2 각 폭의 길이는 스물여덟 자요, 너비는 넉 자로 하되, 폭마다 그 치수를 모두 같게 하여야 한다. 3 먼저, 다섯 폭을 옆으로 나란히 이어 한 벌을 만들고, 또 다른 다섯 폭도 옆으로 나란히 이어 한 벌을 만들어야 한다. 4 그리고 나서, 나란히 이은 천의 한쪽 가장자리의 폭에 청색 실로 고를 만들고, 나란히 이은 다른 한쪽 가장자리의 폭에도 이와 같이 하여, 서로 맞물릴 수 있게 하여야 한다. 5 서로 맞물릴 두 벌 끝 폭 가장자리에 만들 고의 수는 각각 쉰 개이다. 그 고들을 서로 마주보게 하여라. 6 그리고 금으로 갈고리 쉰 개를 만들어야 한다. 이 갈고리로 두 벌 천을 서로 이어, 한 성막을 이루게 하여라. (표준새번역 출 26장) 성막 뜰 울타리(출 38:9-20) 9 성막 뜰을 두르는 울타리를 만들어라. 가는 실로 짠 모시 휘장으로 울타리를 두르도록 하여라. 남쪽 휘장은 길이가 백 자가 되게 하여라. 10 휘장을 칠 기둥 스물과 그 밑받침 스물을 놋쇠로 만들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고리를 은으로 만들어라. 11 북쪽에도 마찬가지로, 그 길이가 백 자가 되는 휘장을 치고, 기둥 스물과 밑받침 스물을 놋쇠로 만들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고리를 은으로 만들어라. 12 해 지는 쪽인 서쪽 울타리에 칠 휘장의 길이는 쉰 자로 하고, 기둥 열 개와 밑받침 열 개를 만들어라. 13 해 뜨는 쪽인 동쪽 울타리도 그 길이를 쉰 자로 하여라. 14 동쪽의 정문 한쪽에 밑받침 셋을 놓고서, 그 위에 기둥 셋을 세운 다음에, 열다섯 자 되는 휘장을 쳐라. 15 다른 한쪽에도 밑받침 셋을 놓고서, 그 위에 기둥 셋을 세운 다음에, 열다섯 자 되는 휘장을 쳐라. 16 동쪽 울타리의 정문에 칠 막은,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모시 실로 수를 놓아 짠 것으로, 그 길이가 스무 자가 되는 막을 만들어서 치되, 밑받침 넷을 놓고 그 위에 기둥 넷을 세운 다음, 그것을 쳐라. 17 울타리 사면의 기둥에는 모두 은고리와 은 갈고리를 달고, 그 밑받침은 놋쇠로 하여라. 18 울타리를 두른 뜰의 길이는 백 자, 너비는 쉰 자, 높이는 다섯 자로 하여라. 가는 실로 짠 모시를 둘러 치되, 놋쇠로 된 밑받침을 받쳐야 한다. 19 성막에서 각종 제사에 쓰는 기구와 성막의 말뚝과 울타리의 말뚝은 모두 놋쇠로 만들어야 한다. (표준새번역 출 27장) 15 성막을 세울 널빤지는 아카시아 나무로 만들어라. 16 각 널빤지는, 길이를 열 자, 너비를 한 자 반으로 하고, 17 널빤지마다 거기에 촉꽂이 두 개를 만들어, 서로 잇대어 세워라. 너는 성막의 모든 널빤지를 이와 같이 만들어라. 18 성막의 남쪽 벽면에 세울 널빤지는 스무 개를 만들어라. 19 그 스무 개나 되는 널빤지 밑에 받칠 밑받침은 은으로 마흔 개를 만들어라. 널빤지마다 그 밑에 촉꽂이를 꽂을 밑받침을 두 개씩 만들어라. 20 그리고 그 반대쪽인 성막의 북쪽 벽면에 세울 널빤지는 스무 개를 만들어라. 21 밑받침 마흔 개를 은으로 만들되, 널빤지마다 그 밑에 받칠 밑받침을 두 개씩 만들어라. 22 성막 뒤쪽인 서쪽 벽면에 세울 널빤지는 여섯 개를 만들어라. 23 성막 뒤쪽의 두 모퉁이에 세울 널빤지는 두 개를 만들어라. 24 두 모퉁이에 세울 이 널빤지들은 밑에서부터 꼭대기까지 겹으로 세워서, 완전히 한 고리로 연결하여라. 그 두 모퉁이를 다 이와 같이 하여라. 25 그러면 그것은 여덟 개의 널빤지에, 널빤지마다 그 밑에 밑받침이 두 개씩이니, 은 밑받침은 모두 열여섯 개가 될 것이다. 26 아카시아 나무로 가로다지를 만들어라. 성막 한쪽 옆 벽의 널빤지에 다섯 개, 27 성막의 다른 한쪽 옆 벽의 널빤지에 다섯 개, 서쪽에 해당하는 성막 뒤 벽의 널빤지에 다섯 개를 만들어라. 28 널빤지들의 가운데에 끼울 중간 가로다지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미치게 하여야 한다. 29 널빤지에는 금을 입히고, 가로다지를 꿸 고리를 금으로 만들어라. 또 가로다지에도 금을 입혀라. 30 성막은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규격대로 세워라. (표준새번역 출 26장)
성막(1)/ 2015-07-22
성막(1) 1.그리스도의 놀라운 모형(성막) 주님을 깊이 알게 해 준 성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과 가깝게 사귀면서 주님을 아는데는 성막이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제가 성막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맛보았던 것처럼, 이 자리에 계신 성도님들도 이 글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을 깊이 알고 주님의 은혜를 입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성막은 너무나 깊고 엄청난 그리스도의 모습인데, 그 귀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어떻게 다표현할수 있을까? 내가 성경속에서 성막에 관한 글을 읽고, 깨닫고, 이해하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려고 하는 영역의 만분지 일도 되지 않을 텐데, 내 글이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되는 마음도 있습니다. 구약의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과정을 기록한 글인데, 하나님은 25장부터 40장까지 거의 출애굽기의 반 가까이를 성막에 대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후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의 은혜로 애굽에 이주하여 한동안은 자손이 번창하여 권세를 누리고 살았지만 그 후 요셉을 알지못한 새 왕이 나타나서(출1:8) 애굽 왕 바로의 권세 아래에서 살았던 400여년의 삶은 오직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쌓는 일로, 곤고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세로 말미암아 바로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힘있게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 60여만명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바다를 건너온 그 광경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속사적인 면에서 보면 주님의 택한 백성들 한 심령 한 심령이 바다와 같은 세상죄의 사슬에서 풀려나와 자유를 얻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우리 역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주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기 전까지는, 죄악바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거짓아비인 사단을 위해 하루하루를 죄악된 국고성을 쌓으며 그것이 행복인줄 알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특기와 취미와 적성을 가지고 땀흘려 일하는 가운데 사회에 봉사하며 자신을 만족하게 여기며 산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없는 심령의 마음에는 수고와 고통으로 울부짖는 쉼이 없는 고달픈 세상일입니다. 또한 보이지않지만 불순종하는 가운데 역사하는 악한 영 에게 속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영혼을 파멸로 몰고가는 애굽의 바로왕과도 같이 사단의 계획아래에서 살고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경 출애굽기는 전반부에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애굽에서 나왔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1-19장) 후반부에는 율법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곧바로 여러분이 읽기에 너무나도 힘들고 골치아픈 성막에 대한 이야기가 25장부터 시작되어 마지막장에 완성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5:39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경이란 신약이 아니라 구약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후 40-50년후 제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신약성경이기에 예수님 그 당시는 신약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한 성경은 구약 성경으로서, 이 구약성경이 여러 부분과 여러 내용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창세기대로 출애굽기는 출애굽기대로 레위기는 레위기대로 주님을 보여주시지만.....그런데 그중 성막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가장 명백하고 가장 상세하게 주님을 보여주는 실물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막은 주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비밀들을 구속사적으로나 계시적 차원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성막을 대할 때 장이 몇 규빗, 광이 몇 규빗등의 복잡한 것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채 성경을 덮고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의 육신적인 눈으로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조용히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살펴나갈 때 이 성막안에 감추어진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발견하고 엄청난 은혜와 사랑을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참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2천년전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유대 땅에 오셨을 때, 그 당시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성경을 알고 외우다 시피 하였지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그들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받아들이지를 않았습니다.(요1:9-12) 이처럼 그들은 구약의 모든말씀을 지식적으로 암송하며 달달 외웠을지라도 그들은 성경속에 숨어있는 그 말씀의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참형상과 참모습은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옛날 제가 청년때 우리 목사님을 따라서 교도소 방문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 교도소에는 여러 가지의 사연을 안고 수감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강도짓으로,...좀도둑질로,...싸워서,....사람을 죽여서,....유괴로.....혹은 그리고 전혀 교도소에 올만한 사람이 아닌 착한사람인데도 실수로 오게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먹을것과 성경을 들고 그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 그처럼 착한 심성이 되어 진지하게 말씀도 들으면서 앞으로 형기를 마쳐 사회에 나가면 다시는 나쁜짓을 하지 않겠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게중에 아주 오랫동안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사람들중에 성경을 외우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편전체를 외우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또 어떤사람은 신약전체를 외우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복음서를 외우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것입니다. 초범들이 아니라 5범 6범 무기수등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너무 너무 신기 했습니다. 믿는 자들보다도 더 열심히 성경을 외우고 성경에 대해서 잘아는 자들이라고 까지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만나 당신이 외우고 있는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가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거의 모른다고 합니다. 성경은 글자 토씨하나 안틀리고 잘 외우는데 정작 그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모른다고 하니 민망하였습니다. 물론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찾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보기도 합니다만 누군가가 옆에서 그와같은 내용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한번씩 방문하면 교도소장님의 지시에 따라 모두 모여 오신 목사님들과 한번씩 예배드리는 것이 그들의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물론 어떤이는 진리를 알기위해 성경을 읽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은혜가 되고 자기마음에 좋아서 성경을 읽고 외웁니다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복음의 그 의미를 모르고 외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처럼 성경을 잘아는 그러한 사람들이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없이 지내는경우가 많고 다시 사회에 나갔다가 또다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로 되돌아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성경을 다 외웠지만, 성경속에 숨기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지식적으로는 잘 알아도 그들은 그 마음이 늘 자기의 행위속에 묶여 있어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가운데 고통을 잊기위해 성경이라도 읽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볼수 있는 눈 성경은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일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아무리 오래보아도 그 속에 숨겨진 구세주로 보내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른다면 성경을 껍데기만 아는것이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택함받은 백성으로서 말씀에 순종하고 살았지만 정작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바로 앞에서 보고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을 잘 알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예수님을 발견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대로 열심히 살았고 제사도 드렸지만 겉으로 드러난 율법의 준수에만 신경썼지 그 율법이 요구하는 그리스도는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약 구약 성경 속에 있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이 그들에게 있었다면 바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역사하시고 계신 예수님이 구약 성경에 나타난 메시아와 동일한 분인 줄 알았을 것이며 사마리아 여인이 '이분이 메시아'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고백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2천년전 주님이 오셨을 때 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마음속에 나름대로 거룩하고 인자한 예수그리스도의 상을 그려놓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인들이 그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얼마나 같은가....라는 점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물론 두 번씩이나 육신의 옷을 입고 내려오실 수 는 없지만 만일 오늘날에도 예수님께서 2천년전 같이 우리 대한민국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복음을 외치신다면 대한민국에서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정말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워낙 죄악된 거짓의 세계에서 살다보니 주님이 다시 오셨다는 것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대로 어느 신학을 하였느냐?, 어느교단에 속했느냐, 당신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며 옛적 바리새인들이 그랬던것 처럼 전통과 법에 매여진 질문을 할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어느신학교를 나오고 어느 교단에 속했으며 어떤 봉사단체에서 일을 하느냐 하는 외형적인 것에 보는 눈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어떠한가? 하는것은 도외시 해버리고 자신들의 눈에 선하게 비친 것과 자신들의 익숙한 생각에 맞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셨다하더라도 배척해버리고 말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본다면 틀림없이 예수님은 이 시대의 교회들에게 이단이라는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각도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때는 암행어사 제도가 있습니다. 이 암행어사는 비밀리에 일반 사람들의 평범한 복장을 하여 아무도 눈치못채게 나라곳곳을 다닙니다. 그리고는 지방관리들의 부패된 모습과 백성들의 어려운 상황을 비밀리에 알아 나랏님께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는 때가되어 모든 정황이 확실하다면 왕의 사자임을 알리는 마패를 통해 부패된 탐관오리들을 척결하고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수 있도록 좋은 지도자를 내어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는 예수님이 왕으로써 죄악 많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오시는데 죄악이 관영한 깊은밤 도적같이 오시기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자신의 택함받은 참된 종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의 암행어사와도 같은 모습으로 내려 보내셔서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역사하실것이라 봅니다. 이런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교회의 모든 상황을 보시고 주님께 고하기전 타락하고 변질된 세속화된 교회에 주의 말씀으로 경고를 알려주는 그런 사명이 있게 될 때 이 말씀을 들은 오늘날 변질된 교회는 얼마나 이를 마음에 받아들여 회개하며 나아갈수 있을것인가 하는점에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130억원어치의 금 성막에 관한 성경 말씀을 읽어보면,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모습으로는 이 성막은 아무것도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이 없습니다. 성소라고 하는곳에 커다란 담요를 여러겹 둘러엎고 마당에는 짐승을 죽여 불태우는 놋제단과 큰 세수대야같은 물두멍 그리고 성막의 밖과 안을 경계하는 흰색의 세마포장을 세워 기둥과 줄로 경계를 한것이 전부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은 이처럼 아무 매력도 없어 사람들의 주의도 관심도 가질수 없지만 성막안의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면 밖에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온 사방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기 38:24절에 보면 성소 건축 비용에 들어간 금이 29달란트 730세겔인데 이것을 kg단위로 환산해보면 한 달란트가 약34.717kg이므로 1000kg즉 1톤이 되며, 돈으로 환산하면 약 130억원에 해당되는 금이 성막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때는 아무 볼품없는 이 성막이 안으로 들어가보면 130억원에 해당되는 금이 성막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소 안 130억원에 해당되는 엄청나고도 보배로운 금이 외형적으로 볼때에는 아무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 흰 세마포 천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볼품없는 것 과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귀한 것.......오늘날 세상사람들은 속을 살피는 마음의 눈이 없기에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인 것을 갖추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유럽으로 가보면 역사와 전통에 이름에 걸맞도록 수천 수만평의 넓은 땅위에 잔디를 깔고 아름드리 나무를 심고 대리석으로 화려한 교회를 건축하여 마치 하나님이 이곳에 계실것만 같은 위압감과 장엄함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드린다.(베드로 로마교회...) 오늘날 우리들 주위의 교회에는 대형버스와 넓은 주차공간을 마련하여 전국의 사람들이 모일수 있도록 교통편의를 제공할 뿐만아니라 하루종일 예배시간을 두어 자기 시간대에 맞는 예배를 드리게 함으로서 예배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편의를 제공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크기는 목회의 성공과 목회자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기에 어느순간 하루가 다르게 새로짓는 교회마다 교회의 십자가 높이가 점점 올라갑니다. 사람이든 교회건물이든 외형적 화려함과 그 편리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옮겨가는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모인 그 곳이 정작 가장 귀한 십자가의 은혜는 간곳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만이 가득차서 주님앞에 왔으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회개가 없는.... 웃음과 즐거움만이 가득찬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무 십자가...... 이처럼 가장 귀한것은 사람들이 거추장 스럽고 불편하게여겨 은이나 금으로 중앙벽에 찬란하게 빛나는 장식품의 하나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즐겁고 기쁘게 만드는 외형적 요소들이 어느덧 신앙생활의 주요요소로 자리잡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가 아닌 주님께서 주시는 만가지의 은혜를 기쁘게 누리는 모습으로 우아한 찬송소리만이 교회안을 메우고 있습니다. 자신의 더럽고 추한죄는 회개라는 과정을 통해 험한 십자가안에 못박았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남이 알까봐 수치와 자존심이 걸려 겉으로 드러나는 인격과 도덕성으로 잘교육된 자신의 다듬어진 성품으로 자신의 추악한 죄를 가려놓았을 뿐입니다. 이처럼 속은 가려놓은채 자신의 겉모습을 남들보기에 매력적인 모습으로 가꾸며 살아왔던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것입니다.
성막(1)/ 성막의 개요
성막의 개요 ※ 성막의 규모 안 뜰 100×50규빗×5 316평 출입문 20규빗×5 성 막 30×10×10규빗 19평 성 소 20×10×10규빗 12.6평 지성소 10×10×10규빗 6.3평(하나님의 방은 여섯 평) 번제단 5×5×3규빗 물두멍 크기 없음 금등대 크기없음 떡 상 2×1×1.5 분향단 1×1×2 언약궤 2.5×1.5×1.5 성막의 대지 45×22.5미터(약 300평 남짓) 성막 동쪽의 출입문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실(파란색, 자주색, 빨간색, 하얀색) 성막의 출입문과 성소 휘장의 색깔이 같음 번제단 가로 2미터, 세로 2미터, 높이 1.5 미터 번제단에 쓰는 기구들 재 담는 통, 부삽, 대야, 고기 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 등 ▣ 성소 안 ▣ ▷일곱 금등대(메노라) : 한 달란트(약 34Kg)의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 살구꽃 형상의 잔이 모두 22개(줄기, 가지, 잔, 꽃, 꽃받침 모두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음). 기름은 방금 찧어낸 순결한 감람유로 하라/등잔불이 끊이지 않도록 하라/등잔불을 항상 정리하라/등대는 순결하다/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하라. ▷떡상 : 12개의 떡. 각 지파에 하나씩. 제사장을 위한 것임(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라). ▷분향단 : 향나무, 조개껍질, 고무나무를 빻아 유향과 잘 섞는다. 그리고 거룩하게 하기 위해 소금을 뿌린다. 네 개의 뿔이 달린 향단 위에 향불을 피운다. 이렇게 성소 안은 향기롭다. ▷휘장 : 천사들의 모습이 수놓여 있음. 지성소의 휘장은 더욱 정교하게 짜여져 있음 ▷제사장 : 에봇을 입고 들어가야. 에봇←청색옷←속옷. 에봇 안쪽의 파란색깔의 옷자락에 석류 방울 하나, 금방울 하나가 교대로 달려 있다.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놓은 36개의 석류 방울이 금방울 사이에 나열되어 있다. 이마의 금패 \'여호와께 성결\'(코데시 여호와, 코데쉬 라도나이). 양 어깨에는 보석 둘이 달려있고, 그 두 보석에는 야곱의 열두 아들의 이름이 각각 여섯 명씩 쓰여 있음. 제사장의 가슴 앞에는 12개의 보석이 있고, 각 보석마다 한 지파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 지성소 안 ▣ ▷제사장 : 에봇과 방울 달린 파란색의 옷을 벗고 새하얀 세마포 옷에 세마포 두건만 쓰고 있다. 희생제물의 피가 담긴 양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더니 분향단의 뿔에 바른다. 피를 담은 대야를 든 제사장이 지극히 거룩한 방(지성소)으로 발길을 옮긴다. 언약궤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며 손가락에 피를 묻혀 언약궤 뚜껑에 피를 한 방울 뿌린다. \'속죄소에 뿌려진 희생 제물의 피를 보시고 저의 죄와 제사장 직분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간절히 속죄의 기도를 하던 제사장이 이제는 몸을 뒤로 돌려 휘장을 향하여 보면서 피를 부린다. 손가락으로 피를 발라 뿌리면서 \'이 패역하고 목이 곧은 백성의 죄 또한 사하여주시옵소서\'라고 말하고 다시 피를 뿌리면서 백성을 위해 기도한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 번 한다. 뿌려진 피를 보고 있을 때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음성과 함께 지성소 안은 더욱더 밝게 빛나고, 피가 뿌려졌던 속죄소와 휘장 부분도 더욱더 빛난다. 이어 언약궤의 그룹이 날개를 활짝 펴고 \'거룩, 거룩\' 하며 천군 천사들이 화답한다. 제사장의 얼굴빛이 찬연히 빛나고, 황홀함 속에 몰입되는 것을 본다.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우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음을 면할 것이며\'라는 말씀과 같이 제사장이 분향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향을 올려드림과 동시에 제사장 자신을 위하고 그가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언약궤 : 위에는 두 그룹이 각기 두 날개를 활짝 벌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언약궤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만나담은 금항아리, 두 돌판,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언약궤의 양 옆에 나무(조각목)에 금을 입힌 막대기가 있다. 언약궤를 직접 만지지 못하도록 하고 들도록 막대기가 있는 것이다. ▣ 갈보리 성막 제공 자료 ▣ ※ 성막의 명칭 ▷장막(帳幕, \'오텔\'-텐트) : 130회 정도 나옴 ▷성막(聖幕, \'미쉬칸\'-거처) : 100회 정도 나옴 ▷회막(會幕) : 모이는 곳 ▷증거막(證據幕) : 말씀이 선포되는 곳 ▷성소(聖所) :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 ▷법막(法幕) : 율법이 보관되어 있는 곳 ▷하나님(여호와)의 집 : 성막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관계됨 ▷세상 속에 속한 성소 : 성막은 하늘 성소의 모형 ▷하나님의 처소 :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1.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가죽옷 → 돌단 → 성막 → 성전 → 교회 → 세마포) 2.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약도 1) 문에서 예수를 믿고 -오직 하나의 문 -큰 문 (20규빗) -4색(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흰 베실)의 문 -문턱이 없는 문 -개인 구원의 문 -열리고 닫히는 문 2) 번제단에서 죄를 버리고 -단(히, \'미쯔바\'-동물을 죽이고 학살하다.) 번제(히, \'올라\'-올라간다.) -조각목을 놋으로 싸서 만듬 -가로 세로 각각 5규빗, 높이 3규빗 -번제단의 기구 : 재를 담는 통, 부삽, 대야, 갈고리, 화로 등 3) 물두멍에서 성령받고 -\'번제단에서 씻은 마음 물두멍으로 지킨다.\' -물두멍을 통한 축복 4가지 ①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 있음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 ②능력을 얻음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욥 17:9) ③마귀를 이기게 됨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 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3-45) ④하나님의 보상을 받게 됨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상 주시며 내 손의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삼하 22:21) 4) 등대에서 빛된 생활을 하며 -정금 1달란트를 쳐서 만드는 것으로, 가운데 한줄기에서 양편으로 가지가 3개씩 나와 있으며, 새겨진 꽃은 살구꽃 형상이다. -등대의 특징 : 믿음의 법칙, 고난의 법칙, 사명의 법칙, 성령의 법칙, 연결의 법칙, 연속의 법칙, 닮음의 법칙, 완전의 법칙, 간검의 법칙, 연합의 법칙 5) 떡상에서 말씀을 먹으며 -떡은 예수 그리스도 혹은 말씀이다. -떡상의 특징 : 레마의 원칙, 교제의 원칙, 선교의 원칙, 오직의 원칙, 항상의 원칙, 성령의 원칙, 성결의 원칙, 성숙의 원칙, 사명의 원칙, 무교병의 원칙, 안 식일의 원칙 6) 분향단에서 기도하고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만듬 -응답받는 기도의 조건 : 믿음의 기도, 공의의 기도(가로 세로 각각 1규빗), 성 령의 기도, 연속의 기도, 권세의 기도, 향과 함께 하는 기도(소합향, 나감향, 풍 자향, 유향, 소금), 불의 기도, 수정의 기도(출 30:10), 법궤 앞 기도 아론이 일년 일차씩 이 향단 뿔을 위하여 속죄하되 속죄제의 피로 일년 일차씩 대대로 속죄할지니라 이 단은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니라(출 30:10) 7)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하나님)을 만난다. -조각목으로 안팍 모두 정금으로 싸서 만든다. -법궤의 특징 : 귀중성의 법칙, 하나님 임재의 법칙, 하나님 만남의 법칙, 계시의 법칙, 우선의 법칙, 거룩의 법칙, 피의 법칙, 거리의 법칙, 축복의 법칙
성막(2)/ 2015-07-23
성막(2) 2.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목회를 하다보면 얘기치 못한 일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한번은 안면이 있는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아주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하다보니 이야기기가 길어질 것 같아 함께 집으로 와서 교회적인 문제를 상담하게 되었습니다. 충청도 어느 시골에 나이 많은 전임 목사님이 계시지만 어려운 교회재정에 힘도 들고 해서 젊은 목사님을 모시고자해서 그분이 일선에서 물러났었는데.. 자신이 그곳에 추천받아 그 곳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조그만 시골교회인지라 이 분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바치는 마음으로 개척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열심히 전도하여 교인들도 많아지고 그 시골지역 학생을 위한 공부방도 만들어 그런데로 괜찮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그 교회에 있었던 전임 목사님이 새로운 목사님이 와서 다시금 교회가 새로이 활성화 되어져 가는것을 보고는 갑자기 욕심이 생겨 권리금이나 교회세를 거론하면서 많은 금전적 요구를 하면서 그것이 안되면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돈도 없을뿐더러 지금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었던 터라 나가게 되면 금전적 손해도 보고 거기다가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는 이러한 상황에 잠도 잘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이끄심은 늘 우리로 감사로 나아가지만 막상 이런 현실앞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너무 난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다는것은 정말 우리가 좋을때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완전한 절망이 닥쳐왔을때 모든 것을 믿고 맡김으로 응답되어진다는것을 설명하고는 성경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실 그렇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지키시고 건져주시는 일들을 수없이 경험했기 때문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두려움이 되지 않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어린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만나 죽음의 사투를 벌였던 것이며, 그후 사울의 미움을 받아 그앞에서 몇 번이나 죽음의 위험에서 벗어났던 일이나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서 배신을 당하여 예루살렘을 버리고 도망갔던 일이며.....이처럼 우리가 잘아는 다윗도 그 인생의 면면들을 보게되면 항상 어렵고 위험한 순간들로 되어졌다는 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울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않고 겸손과 자비와 인내로 자신을 온전히 드렸기에 우뚝 설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매일 매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을 볼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들이 자주 있었지만 그때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이길수 있었던 사실을 감사하며 간증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고난과 어려움속에서 헤쳐나갈수 있는것은 믿고 구하기만 하면 다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신앙의 응답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문제앞에 대한 우리의 자세입니다. 사59장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다"는 말씀처럼 우리와 하나님사이에 죄가 가로 막혀 있다면 아무리 기도하더라도 죄가 가로막혀 단절된 상태에서는 하나님이 도우실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안에서 산다고 하지만 우리의 자아가 아직도 죽어지지 않은채 자기 열심과 자기노력으로 수고하면서 그 가운데 예수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삶을 살아갈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여 맡겨버리는게 아니라 주님의 일에도 계속적으로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아가 살아있으면 그것은 내맘이지 주님의 마음이 아닌것입니다. 자기뜻이지 주님뜻이 아닌 것입니다. 자기 일이지 주님일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데 거룩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우리들이 내안에 때묻은 마음으로 무엇이든 자기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하게되면 하나님은 그일에 전혀 관여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때는 주님이 처음 제자들을 죄악 가운데서 부르실때는 그 당시 자신의 생업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시고 하나하나 부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모든사람은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며 걸을수도 일할수도 없는 약하고 어려운병자들이 주님에 은혜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은혜의 선물로 내 행위나 내 공로가 아니기에 어느누구라도 받을수 있습니다. 잠을 자는중에 있더라도 밥을 먹는중에 있더라도 놀고있더라도 주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이 은혜의 초청에 부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이후의 하나님의 일은 다른것입니다. 마음이 깨지지 않은채로 어느누구라도 주님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자기 마음이 깨어져 주님을 만을 바라고 의지하는 구원의 선물을 얻는 기회가 누구라도 있지만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때는 이전의 모든 방식을 다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새 방식을 받아야 만이 감당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자기를 비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할수 있도록 성령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내 노력과 내 힘이 아닌 주님이 주신 성령의 힘으로 하게 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역사인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힘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내가 하는것이 아니고 나는 그분의 도구로 하는것이기에 쓰일수 있다는 그 사실이 기쁘고 하나님이 순간 순간 이끌어 주시니 너무너무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닌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도 만족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만이 진정한 행복을 얻을수 있음을 알고 자기 마음을 비울때 비로소 주님은 그 안에서 역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어려운 문제뿐만 아니라 삶의 어떤 쉬운문제도 내가 해결하는게 아니라 주님이 그일을 해결하시도록 맡겨버릴때 비로소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갈지라도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문제가 생겨 어려움을 당할때는 전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한채 혼자 괴로워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어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 마음가운데 거하신다면, 믿는 우리에게 닥치는 문제가 어떤 문제든지 그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위해 살려고 노력하거나 애쓰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제 마음을 일으키셔서 신앙생활을 직접 하시는 것입니다. 출25장에는 성막을 짓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출25:1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예물을 가져오라고 명하셨고, 그 가져온 예물로 출25:8절에는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셨지만,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죄많은 이스라엘 무리속에 거하실수가 없어서 그들 가운데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의 애굽에서 홍해를 거쳐 택한 거룩한 백성으로 삼았기에 그들의 마음이 거룩한 성소의 전이 되어 거하시길 원하셨지만 아직까지 깨지지 못한 원석과도 같은 아담의 유전적 죄로 거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들중에 거할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어느 한 아브라함의 일가족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고 400여년동안 애굽에서 살면서 히브리족속으로 한민족을 이루어 이스라엘 백성으로 살다가 때가되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홍해바다를 건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이 시내산 밑에 이르렀을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 꼭대기로 부르셔서 모세에게 십계명 돌판을 주시고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삼가 내가 산에서 네게 보인 그대로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25:9) 모세는 그때 사십주야를 시내산 꼭대기에 있은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두 개의 돌판을 양손에 쥐고 그의 마음속에 하늘나라에 있는 성막을 간직하고 내려왔습니다. 율법을 범한 죄인들 그런데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산 밑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어디 갔는지 알지 못하니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자' 고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는 그 앞에 제사하고 춤을 추며 기뻐 뛰놀았습니다. 그 때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왔는데 이 모습을 본 모세는 화가 나서 하나님이 친히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 돌판 두 개를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항상 죄악이 존재했습니다. 출18장을 보면 모세는 율법이 내려오기 전에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롬5:13절에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전에도 그들에게 죄는 있었지만 율법을 없었을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다만 양쪽을 중재하는 선에서 인간의 보편적 도덕과 윤리관으로 양심의 판단에 따라 살수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것이 430여년 동안 애굽에서 살아왔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것이 애굽의 문화 애굽의 종교 애굽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혈통과 종족은 달랐어도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 백성은 그당시 세계를 지배한 강대한 애굽의 영향아래 살았기에 모든 것이 애굽화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가운데 내려왔습니다. '내앞에 다른신을 만들지 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등 여러 가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명 즉 율법이 왔기 때문에 그들은 약속에 의해서 그 율법에 비추어 죄인이 되어진 것입니다. 율법이 내려오기전에는 비록 금송아지를 만들고 섬길지라도 자연스러운 애굽생활의 방식이었기에 그것이 죄인줄 몰랐지만 "내앞에 다른신을 두지말라" "너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율법이 그들 마음속에 임할 때 그들이 행한 것은 죄가 되어 버렸습니다. 율법을 가져온 첫날에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죄악이 드러나자 모세는 굉장히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대로 십계명을 주면 그들이 다 지켜 행할줄로 믿었으나 처음부터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더구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인의 회중에 거하실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괴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모세는 어떻게 죄를 씻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범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며, 죄를 씻어 달라고 간청만 할 뿐이었습니다. *출32:32 "그러나 합의 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라는 말까지 하면서 간절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4절에 보면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고 하셨지 용서해주신다는 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 레4장에 오면 죄를 지었을때 어떻게 용서받는지 그 방법을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성막의 제단 앞에 나아가는 길이 있지만 그 전에는 성막이 만들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눈물로 간청만 할 뿐이었습니다. 허물많은 인간들속에 거하실 하나님의 처소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때 죄속함을 받는 방법이 레4장의 구약적 방법으로 해결할수 있는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죄를 지었을때 하나님께 죄를 속함받는 방법을 몰라 자기생각으로 갖가지 방법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떤이는 율법적 방법대로 죄를 처리하는가 하면 어떤이는 자기의 선한행동으로 무마하고자 합니다. 어떤이는 반성과 일기로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것도 자기죄를 대신할만한 가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깊은 죄속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 이상 같이 갈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긴죄는 십계명가운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죄였습니다. 그것을 어긴 죄가 드러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사자를 너희들과 함께 보내겠고 나는 같이 가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33:2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의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도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그래서 그들은 부지런히 성막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죄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실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실 수 있는 모든 조건이 구비된 것이 바로 성막인것입니다. 성막 바깥에는 뜰이 있고, 또 그 뜰 바깥에서는 레위 자손들이 생활하면서 범죄한 자들은 감히 성막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불편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조건이 구비된 장치 - 성막 하나님은 거룩하신분입니다. 그러므로 죄악많은 인간들과 함께 하실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이끄신 하나님은 그들가운데 함께 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성막...... 그곳은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볼품이 없으며 마당에는 짐승을 불태우는 번제단과 손을 씻는물두멍만이 덩그러이 놓였을 뿐입니다. 성소안은 무엇으로 되었는지 알수없도록 4겹으로 덮은 천으로 가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화려하지도 않는 성막의 모습을 통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육신의 옷을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주님도 이땅에 오셨을때 왕으로 오신 분이시고 의의평강을 가져오신분이라 아주 모습이 당당하시면서 인자하시고 품위가 있으신 어진분으로 연상할수 있습니다만 실상 우리 주님의 모습은 전에도 이야기 했다시피 연한순같고 마른 나무에 나온 줄기와같고 고운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것이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오신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53:2) 물론 이 모습은 고난받는 예수의 모습입니다만 그만큼 우리예수님은 남들이 보기에 드러나지 않는 아주 연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잇는것입니다. 여기서의 성막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왜그렇습니까? 오직 성막안에서만이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할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렇듯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수 있는 유일한 길인것입니다. 그 성막마당에서 번제를 통하여 죄를 속함받고 죄에서 벗어난 자유의 기쁨을 맛보듯이 그래서 예수안에서 십자가의 보혈로 죄씻음을 받아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난 자유의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가 이루어지는 그 성소야 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온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에 따라 더럽고 악한죄가 수없이 있었으나, 성막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만을 바라보며 나아갈수 있었고 하나님은 아무런 불편없이 그들을 인도하실수 있었습니다. 우리역시 죄로인해 넘어지고 하지만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죄와 눈물을 십자가의 보혈로서 다 정하게 하셨기에 이후 우리 마음은 항상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여 나가면 하나님이 거하실수 있는 모든 의로운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기에 하나님과 화목할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속에 거하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스스로를 의롭게 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어떠한 노력이나 행위나 공로로는 전부 죄악의 때묻은 더러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될수 있도록 이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수 있도록 온전한 의로운자가 될수 있도록 완벽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날위해 돌아가신 그 속죄의 사랑을 믿는 사람은 또다시 죄를 짓고 연약함이 들어난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한번 십자가의 속죄제사로 영원히 온전케 함으로 거룩하게 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더럽고 추한 모든 죄를 씻어 주셔서 우리를 단번에 거룩하고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죄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사이에 성막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가운데 함께 거하실수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성소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은 예수의 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이 우리마음안에 거하시기에 불편이 없으신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실때에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는 예수님의 보혈의 의로 거룩하고 의로우며 흠없이 완벽한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칭의로 얻어진 의는 어떤 선한 행위나 노력으로 된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다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내가 그를 믿음으로 나를 의롭게 하셨다.', 나를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내 마음안에 거하시기에 불편이 없도록 하셨다' 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그 마음은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에 머물러 있습니다. 참된 믿음은 비록 나는 죄의 바다 한가운데 거한자 일지라도 하나님이 내 마음가운데 거하시기에 불편이 없도록 온 인류의 죄를 속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의롭게 하신 사실을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신것을 믿는 믿음만이 믿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죄값을 청산하는 그 죽음으로 인해서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의롭게 되고 거룩케 되었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일때 비로소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막(3)/ 2015-07-23
성막(3) 3.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 출24:12-18, 요:16:7, 히:9:12,히10:14,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성막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몸을 갖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물질의 세계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창조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흙으로 사람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물질 세계를 말씀으로 만드셨지만, 영이신 하나님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람만은 물질세계의 한부분인 땅의 원료인 흙으로 직접 만드셨습니다. 이 흙으로 빚은 존재를 하나님의 형상인 생기를(영을) 불어넣어 주셔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졌다는 것은 우리 육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육신속에 하나님의 생기(하나님의 영, 또는형상,생명)가 들어옴으로 우리안에 생령이 되어 거하시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형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형상은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육체의 현상이 아니라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첫사람인 아담을 땅에 거하게 함으로 아담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친히 다스려야 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고 누리는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졌기 때문에 세상이 아담에게 다스림을 받는 것은 곧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또 모든 세상만물이 하나님을 보기 원할 때, 아담을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아담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전하기를 원하셨지만, 이후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아담속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은 죄로인해 파괴되고 죽고 말았습니다. 또한 만물의 세상도 누림과 다스림에서 땀흘려 수고 할 때에야 만이 겨우 살 수 있을 정도로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생기를 통해 이루어진 인간의 생령이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알수 없는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비록 하나님과 영적인 단절이 있지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인해 사람은 선,악을 분별할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양심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육신을 통해 본능과 욕구에따라 선과 악을 행할 때 마다 선과악을 기준짓는 양심으로 하여금 흐뭇하게 여기거나 가책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감사하기도 하고 죄책감에 눈물흘리는 영적으로 교통이 끊어져버린 인간의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아담이후 어떤 사람들은(아벨, 셋, 에노스, 게난, 마할랄렐, 야렛, 에녹, 무두셀라, 라멕, 노아, 셈......욥, 엘리후....등등)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까지는 양심의 지시에 따라 선한일과 덕을세우기도 하고 죄를 범할때는 강한 죄책감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삶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육신의 소욕에 따라 양심마저 무디어져 자기중심적 본능대로 살고자 하여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갔고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셈족 계열이었지만 참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아브람을 통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이루고자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는 이전 아담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선악과를 주어 행위로 지켜 행하는 것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게 처한 환경과 행위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들을 약속을 통해 받아드리고 미지의 세계를 말씀으로 이끄심으로 알수 없는 주의 뜻을 믿고 나아감으로 이루게 하셨습니다. 주: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란 그는 처음엔 하나님에 대해서 잘모르는 우상장사꾼의 아들에게 하나님이 오셨다.(무조건적 은혜) 그에게 아내가 있지만 그 아내는 아이를 갖을수 없는 여자였다.(특별은혜) 그 당시 아브라함시대에는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 바로 유명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지켜 행한 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인물만 본다하더라도 욥의 세친구나 엘리후 같은 사람은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 그렇게 경외하며 섬긴 인물들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욥기서는 글이쓰여진 때는 지혜문학이 성행한 솔로몬시대였지만 그 욥의 시대적배경은 족장문화가 있었던 노아와 아브라함 사이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도 인정한 이 욥을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들어쓰시지 아니하시고 데라가문의 우상장사꾼의 아들인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았던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과 같은 그 당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사람들을 제쳐두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믿을수 없고 바랄수 없는 그 절박한 상황에서 말씀에만 믿고 의지하여 나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는 행위로 말미암지않고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예표입니다. 구원받을수 있는 자격을 가진자를 들어쓰는것이 아니라 구원받을수 없는 가장 형편없는자를 들어섬으로 모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 신앙의조상으로 삼아 이스라엘로 이끌어가실수 있었겠지만 믿을수 있는 조건을 가진 자가 아닌 하나님도 제대로 모르는 초라하고 형편없는 아브람을 선택하여 믿을수 없는 가운데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게 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삼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아는 욥이 아닌 하나님을 잘모르는 아브람을 선택하여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시며 그 모든 은혜와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만의 공의 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믿음을 갖게될때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어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나아갈바를 알지못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믿고 의지하고 나아갑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의 모습인것입니다. 구원받을만한 가치는 하나도 없으나 보지도 못하고 믿기도 힘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 그 사실을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이와같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후손으로 살아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장차 우리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좇는자가 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영광의 은혜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사로 예수그리스도만을 바라고 나아가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삭과 야곱과 그들의 후손들이었지만 약속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실수와 실패와 넘어짐의 연속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약속은 장차 내게 되어질것에 대한 말씀이지 바로 되는것은 아닙니다. 바로되는것은 응답이며 훗날에 되어지는것은 약속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통하여 약속을 받았지 응답을 받은것이 아닙니다. 응답은 축복이지만 약속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응답은 바로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번제를 드릴려고 했을때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이제야 나를 사랑하는줄 알았다"고 응답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계획과 자랑과 욕심이 다 무너지고 깨어져야만이 그제서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갖게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을 통해 430여년후 한 나라를 이루어 애굽을 나와 세상과 단절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선민 백성들로서 살아가야 할 율법과 계명을 주셨습니다. 주: 이율법과 계명의 주신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이루는것과 정반대이다. 이 율법과 계명은 다시금 지켜 행하라는 선악과의 명령의 부활인것이다. 그런데 선악과의 명령을 어길때는 영적인 죽음이 찾아왔지만 이 율법과 계명을 어길때는 육적 죽음을 불러 일으켰다. 왜 인간에게 이와같은 법을 만드셨을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땅의 원료인 흙에서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는 물질로 이루어진것이다. 그런데 그안에 하나님이 생기를 받아드림으로서 육과 영이 합쳐졌다. 그리고 생혼이 되어 살아있는존재가 되었다. 땅의 흙으로 지음받은 물질로 이루어진 유한한 우리안에 영원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받아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게 하면서도 물질계에 마음을 둔 상태를 아셨다. 그러므로 어떤 자라도 육의 소욕을 끊지 못할것을 아셨다. 비록 죄가 없는 아담이었을지라도 그는 흙으로 지음받았기에 육신에 넘어갈것을 하나님은 아셨다. 나와 더불어 함께 하기위해서는 이제는 마음으로부터 모든 육신의 정욕을 물리쳐야만 했다. 그래서육신을 통해 불러일으키는 욕구와 유혹을 시험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시험하셨다. 결과적으로 모두 죄를 범했고 죄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깨달았다. 지켜행한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왜냐? 우리는 육신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육신의 옷을 입고 태어나셨기에 할수만 있거든 이잔을 내게서 물리쳐달라고 기도했어야만 햇다. 눈으로 보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것에 있어서의 순종은 너무도 어렵다. 그러나 믿음안에서의 순종은 더어렵다. 왜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죽고 무가치한것을 알아 맡겨버리면 그 믿음안에서의 순종은 너무도 쉽다...... 그렇다. 선악과 법이나 율법등은 육신에 의해서 지켜져야 할 법이기에 육을 가진 인간으로서 그것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지키지도 못할법을 인간에게 내려주어서 지키라고 하는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죄를 깨달으라고.........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그 공허감이 얼마나 두려운지 깨달으라..........고 그래서 내육체의 행위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존재가 아닌 영원히 죽을때까지 이런 나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사모할수있도록 우리를 믿음으로, 은혜로, 마음의 순종으로 이끌어가게 하시는것이다. 죄에 대한 사함과 회복의 방법은 무엇인가? 이 선악과를 어겨 열매를 먹음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영적죽음이 찾아왔을때 하나님께서는 승을 죽여 피를 내게 한 후 짐승의 그 가죽으로 우리의 허물을 덮는 것이었다. 율법과 계명을 어겨 육적죽음이 찾아왔을때는 역시 짐승을 죽여 피를 내어 속죄소에 그피를 뿌리는 것이었다. 그처럼 오늘날 모든 인간들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주와 사망이 앞에 놓여있을때 해결받으려면 죽음이 와야하고 피를 내야하고 가죽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다시 옛날처럼 우리가 짐승을 죽여 바칠수는 없다. 이미 영원한 제사를 드린 새 언약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기에 옛날의 율법시대처럼 짐승을 바쳐 자기죄를 속하고자 한다면 행위로 나아가고자 하는 무속신앙의 몸부림일뿐이다. 그러면 영원한 새언약이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듣게 되었을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그 피가 우리와 우리의 모든 죄를 가려서 사함받아 의롭게 거룩하게 되어진 사실의 약속을 받게 되어지는것이다. 그리고 주의 성령이 예수보혈의 피로 의롭게된 내안에 들어오시게 되는것이다. 이는 마치 인간이 만든 성막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그의 몸이 변화되었듯이 우리역시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인자는 거듭남이 이루어져 주와 함께 변화된 몸으로 부활할것을 약속받게 된다. 그날에 우리는 수치와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흰 세마포옷으로 갈아입은 자가 되어 주와함께 기쁨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사실을 듣고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그는 죄의 저주와 사망이 그대로 남아있는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어 성막안에 거함으로써 성막을 통하여 당신자신을 나타내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 당신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선하신 뜻을 나타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귀한 뜻을 알기 위해서 성막으로 나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통로는 오직 성막안에 있을때입니다. 그안에서 속죄와 평강이 이루어지는것입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안되었으며 만약 자기만의 다른방법으로 하나님을 보게되었을때는 하나님은 바로 그를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죄를 가진 인간이 죄없는 거룩한 하나님을 볼수도 만질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것은 하나님의 대리자격인 천사를 만나는 것 이었습니다. 그것도 인간이 보기를 원해서 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특별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아브라함 말씀으로(창12:1-3,창15장 창17장 창22장) 천사로(창19:1-5)세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옴 야곱 꿈(창28:12-15)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얍복강(창32:22-32) 어떤 사람과 씨름 모세 호렙산 불꽃떨기나무(출3:1-6)여호와의 사자 길의 숙소에서 만남(출3:24)여호와께서... 출19: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신칙하라 백성이 돌파하고 나 여호와께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출19:24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직접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대리자인 사자 즉 천사를 통해 인간을 만나고 계시의 말씀을 주고 떠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 왕의어명을 가지고 온 신하앞에 백성들이 임금님께 하듯 그 어명에 절을 하듯 마찬 가지인것입니다. 이런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직접봤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거짓말 장이입니다. 하나님은 볼수도 없으며 가까이 할수도 없습니다. 그분은 영이시며 빛에 둘러싸여있기에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수 없는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대리자격인 천사를 통해서 우리는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죄사함받아 거듭나게 되었다면 그 사람의 영은 회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죄많은 나의 육신을 보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덮여진 내 몸안에 들어와 좌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을때 성령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우리는 직접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실 때 성령님이 내안에서 내몸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나타낼때는 성령의 감동이나 대리자를 통하여 역사합니다. 성령의 감동이나 천사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것을 우리가 받을때 우리는 하나님을 뵈었다라고 고백하게 되는것입니다. 인간들안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와서 실로에 회막을 세웠는데, 광야에 있었던 법궤나 성막의 기구들을 가져와 하나님이 거하실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실로의 회막에 있던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범죄하고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제사장에게 여러번 경고하셨지만 홉니와 비느하스의 범죄가 그치지 아니하여 결국 하나님은 실로의 회막에서 떠나셨습니다. 시편 78:59-60절에 보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께서 인간들 안에 세우신 장막, 곧 실로 회막을 떠나신것은 이처럼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육신의 소욕을 끊지못하여 계속 죄에 머무를때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만들었으로 통회자복하지 아니하면 성령이 떠나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이지만 우리가 계속 짓는 범죄로 하여금 이런 모든 죄까지도 주님이 다 처리했다는 믿음의 확신이 서지않고 불안해 한다든지 죄를 지어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해결해 주셨다는 것을 이용하여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죄의 더러움과 자기의 어리썩음과 무가치함을 통회자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쌓아두게 될 때 성령님은 근심하시고 떠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무슨물질이나 물질세계속에 거하실필요가 왜 있겠습니까?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질을 바쳐라, 회막을 지으라, 죄를 지으면 짐승을 바치라고 하신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순종을 통해 그들가운데 함께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과 더불어 함께 하시기 위해서 아니 나와 더불어 함께 하시기 위해서 위와같은 모든 명령을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 이 말씀의 부르심에 우리가 해야할것은 믿음의 순종입니다. 하기싫은것을 억지로 행하는것이 아니라 선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참된모습을 깨달아 믿음으로 순종하는 모습인것입니다. 믿음의 순종은 자기 스스로 보기에 좋아서 하는 행위가 아닌 말씀에 이끌려 이루는 행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엘리 아론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은 실로의 회막에서 떠나셨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인간들속에 거하실 처소가 없이 지내시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드어온 이후에 당신이 거하실 만한 처소로 성전 짓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범조하여 혼란한 가운데 있었으므로 오랫동안 성전이 지어지지 못했는데, 다윗 시대에 와서 이스라엘이 통일이 되고, 그 후 솔로몬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참고: 광야생활=성막(장막), 가나안=회막, 왕조시대=성전 으로 변천 발전된것을 볼수있다.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짓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통하여 다시 당신을 나타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나아와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거기서도 떠나셨고, 결국 성전은 이방인들에 의해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인간은 말씀에 늘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은 떠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가차매 하나님께서는 건축물이 아닌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몸을 입게 하시고 이 땅에 보내심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당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고린도 전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로움과 구속함이 완전히 갖추어 지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계시면서 그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대할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맞지 않앗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대적하였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대적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자신의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때 한번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이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 말씀하셨습니 다. 구약의 성전을 통해 나타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심으로 예수님이 바로 성전이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만,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실 예수님자신을 나타낸 것인데 그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46년동안 지은 이 전을 네가 사흘만에 일으키겠느냐?"고 반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 그를 통하여 병자를 고치고, 불쌍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은 자신의 뜻대로 산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때도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33년동안 계시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이후 이제 하나님은 과연 누구를 통하여 당신을 나타내실 것인가? 이땅에 아름다운 산천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이후 만일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지 않는 다면 오늘날 이세상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다 죄악으로 멸망받아 영원한 형벌로 들어갈 뿐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아아 거룩함을 입은 성도들을 통하여 오늘날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떠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안에 계시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동일하게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날 때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어 거룩한 분이지만, 우리는 추하고, 더럽고, 육신적인데 어떻게 우리를 통하여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수 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려면 먼저 하나님의 영이 우리안에 거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만든 이유는, 하나님은 죄가운데는 거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이 지시한데로 사람이 만든 오직 거룩한 성막 안에만 거하셨던 것처럼 우리 안에서 주님이 거하시려면 우리 마음속에 죄가 손톱만큼도 없는 거룩하고 깨끗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야..... 하나님은 인간을 보실 때,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각기 자기 길로 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친히 이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보시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마15: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속은 항상 악하고 더러울뿐 아니라 이로인해 선한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악하고 더러운것을 다 씻고 깨끗해져야만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실수가 있으며, 우리안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광야에서 지었을 때, 광야생활을 하는 백성들에게는 많은 죄악들이 있었지만, 성막안에는 손톱만한 죄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한예로 제사장 아론의 두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늘 하던대로 불을 가지고 성소안에 들어와 불을 붙이자 불이 여호와앞에서 나와 그들 둘을 삼켜 그 자리서 죽고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불을 가지고 불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호와 하나님이 명한 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번제단아래의 불씨를 가지고 불을 붙여야만 하는것입니다. 이 번제단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짐승들을 태우는 곳입니다. 육신의 죄악을 태워진 불이라야 만이 정결하여 하나님 앞에 드릴수가 있는데 그들은 아무생각없이 자기 편리한 대로 가까이 있는 불을 붙여 성소에 들어오다가 그런일이 났습니다. 늘 성소안의 불을 붙이던 그들이었으나 단한번의 잘못된 행동으로 그들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성막안에 조그만 불의가 들어오는 것도 용납하실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불의가 들어오면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실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에게서, 성막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성전에서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였지만 그들의 죄로인해 떠나셔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안에 하나님이 거하실 동안에는 만족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우리의 더러운 죄를 흰눈처럼 깨끗하게 씻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어느 부분의 죄만 사했다면 하나님은 우리속에 거하실수가 없습니다. 만일 과거의 죄만 사하셨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서 너희와 영원히 같이 거하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처럼 주님이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안 에 영원히 거하기 위해서 십자가의 한번 죽으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10:1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히브리서9: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추하고 불의한 죄를 짓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은 어떤죄에 한정된 것이 아닌 세상에 드러난 모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피뿌림을 입은자는 그죄가 무슨죄든 얼마나 큰 죄든 우리속에서 전혀 죄를 발견할 수가 없는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범한 죄인인데 하나님이 양보해서 우리를 의롭게 봐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흰눈처럼 양털처럼 깨끗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보혈안에서만이 있게될때 비록 우리가 한것은 죄짓는 것밖에 없고 내세울것없는 무익한 자이지만 예수보혈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예수님이 못박히신 십자가만을 통해서 이세상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가 십자가를 의지하는 믿음을 갖게 될 때 십자가안에 감추어진 나의 더럽고 추악한 때묻은 죄악된 모습을 하나님은 볼 수가 없는것입니다. 그것은 또 왜그렇습니까? 십자가는 모든 죄가 끝났다는 영수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영원한 속죄제사의 마침표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다니엘서 9장24절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내 백성과 내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여기서 지극히 거룩한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는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물이 마치고, 죄가 끝나고, 죄악이 영원히 속해짐으로 영원한 의로 드러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지 아니하고 자신의 추한 행위를 보고 있다면 마음이 죄에서 눌려 살게 되고 양심이 고통받아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가 없게 됩니다. 성도들의 모형 믿음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 죄가 안개와 같이 십자가안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 거룩하다, 죄가 없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일치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을수가 없어서 항상 육신의 행위로 드러나는 허물과 죄로인해 그 즉시로 통회,자백하지못하고 늘 마음이 무겁고 짓눌려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의지하는 우리는 우리의 행위에서 벗어나 말씀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선언하심을 " 너희죄가 흰눈같이 양털같이 희게되리라" "너희 죄와 불법을 기억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우리는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허물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고서도 그는 자기 목숨이 두려워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는 중에도 자기 혈기로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내리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다윗도 그렇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우리야의 아내를 범하였습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제자였지만 주님면전앞에서 나는 주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자기 마음이 맞지않아 바나바와 다투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속에 거하시기에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그들가운데서도 죄는 살아서 계속 역사햇지만 그들은 주예수의 보혈의 은혜가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주님의 말씀처럼 자기 의가 깨어진 채 자기십자가를 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믿고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고름처럼 흘러나오는 모든 죄를 예수의 이름으로 통회자복하였습니다(요한일서 1:8-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신약의 사도바울이나 베드로등 수많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예수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입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곳에 사람가운데 역사하시고 계속 나타나실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실 때 그들의 더러운 죄악된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만을 보셨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방법은 달라도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 만큼은 분명하게 처리하셨으며, 그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보혈의 은혜를 덧입고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역사하셔서 끊임없이 이끌림을 받아 나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믿는자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제는 영원한 속죄제사를 드린 십자가의 은혜의 법으로 이를 믿는자마다 우리를 온전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은 저 거룩한 성막은 바로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일뿐 아니라 보혈의 은혜를 덧입은 거룩한 성도들의 모형이며 모임속에서 예배로 나아가는 거룩한 교회의 모형이 기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