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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心이 天心?
民心이 天心? 조관호 목사 입력 2014-06-28 02:46 ‘민심(民心)이 천심(天心)’, 즉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民心)이 곧 하나님의 마음(天心)이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사람, 이기적인 것이 마음 깊은 곳에 뿌리하고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공감하는 것이 천심, 선한 것일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일 뿐입니다. 만물 중에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렘 17:9)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천심은 사람들의 여론(民心)이 아닙니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 내지는 군중의 힘을 등에 업기 위해 자기 합리화를 위한 포장일 뿐입니다. 예수를 죽이는 것이 천심이라고 하기 위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힘없고 무지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선동해서 민심을 만들었습니다. 역사 가운데 사람들을 선동하고, 돈으로 매수하고, 혹은 폭력과 강압으로 사람들의 여론을 만들어 놓고 민심이라고 떠들면서 자기 뜻을 이룬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부패한 마음의 인간들입니다. 그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여론을 천심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합니다. 천심은 성경에 있습니다. 천심이 성경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천심인 성경이 인간들의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에 슬그머니 동조하면서 ‘민심이 천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민심은 천심이 아닙니다. 조관호 목사(부산 수정동교회)
가까이 있지만 너무 먼 당신
가까이 있지만 너무 먼 당신 입력 2013-12-12 01:45 얼마 전에 조금 황당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느 강의를 마치고 강의를 들은 분들과 후속모임을 하면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열어 보니 “목사님! 오늘 강의, 정말 제게 유익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지를 보낸 사람을 확인해 보니 같은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장난스럽게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문자 보내지 말고 말로 해!” 통계를 보니 지금 대한민국은 SNS 사용률이 세계 최상위입니다. 페이스북은 국민의 20%가 넘는 1100만명 정도가 사용하고 있고, 전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모바일 기기로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SNS 프로그램 이용이 증가하면서 관계 연결은 쉬워졌는지 모르지만 그 관계가 대부분 피상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고,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깊이 있는 속내를 나누지 못해 가슴앓이하는 사람을 자주 만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도 바울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9)는 말씀은 감동 그 자체로 다가옵니다. 십자가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서로의 눈을 보고, 따뜻하게 손을 잡으며 측량할 수 없는 깊이의 친밀함을 누릴 수 있는 교회는 감동 공동체입니다. 이상화 목사(드림의교회)
가난한 자를 택하사
가난한 자를 택하사 입력 2014-02-11 01:34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라는 야고보서 2장 5절의 말씀은 ‘가난한 자는 자동적으로 믿음이 커지고, 부자는 자동적으로 믿음이 작아진다’는 일률적인 단순 비교가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약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만큼 더 찾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아 만나게 되면, 그보다 더한 부요함이 어디 있겠으며,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별세의 신학’을 주창한 고(故) 이중표 목사가 쓴 ‘죽어도 행복합니다’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죽음을 앞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고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다.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의 글이 있다. “병 고치고 예수님을 떠나는 것보다 차라리 예수님 안에서 죽는 것이 낫다. 병으로 인해 예수님을 닮아갔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상관없이 오래만 살았다면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오, 주여. 병을 통해 당신을 배우게 하소서. 내 몸에서 당신만이 존귀히여김 받기를 원하나이다.” 가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약함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간다면 그보다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김진홍 목사(우이감리교회)
가두리 기법과 열리고 기법
가두리 기법과 열리고 기법 권순웅 목사 입력 2014-06-30 02:34 트위터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인쇄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겨자씨] 가두리 기법과 열리고 기법 기사의 사진 ‘가두리 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상황을 이용해 어쩔 수 없도록 자신을 속박하는 방법이다. 빅토르 위고는 유희에 빠져 글을 쓸 수 없었다. 하인에게 자신의 옷을 맡기고 스스로를 가두어 버렸다. 가두리 기법은 인간의 죄성과 욕망이 육체의 소욕으로 나타날 때 그것을 막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때로는 불굴의 의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가두리 기법이 효과를 발휘하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노름꾼이 노름을 끊기 위해 작두로 자기 손가락을 자른다. 하지만 붕대 감은 손으로 또 화투장을 잡는 게 인간이다. 성도는 이런 방법보다 ‘열리고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성을 만났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한 번씩 돌라고 하셨다.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은 양각 나팔을 길게 불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두가 큰소리로 외쳐 부르라고 하셨다. 그때 성이 무너져 내린다고 알려 주셨다. 즉 여리고가 ‘열리고’가 되는 것이다. 순종은 바로 ‘열리고 기법’의 노하우다. 기도는 ‘열리고 기법’의 방편이다. 믿음은 ‘열리고 기법’의 기초다. ‘가두리 기법’은 사람의 방법이다. ‘열리고 기법’은 성경적 방법이다. 권순웅 목사(화성 주다산교회)
가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 입력 2013-09-05 17:22 트위터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인쇄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겨자씨] 가을에 피는 꽃 기사의 사진 1986년 열린 뉴욕 마라톤 대회 때 이야기다. 행사 당일 저녁, 대회조직위원회는 대회 종료를 선언했다. 4일 후, 조직위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도 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직위가 확인해 보니 월남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보브 윌랜드라는 사람이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두 팔꿈치에 가죽 보호대를 하고 두 팔로 힘들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록은 108시간17분18초였다. 4일하고도 반나절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말했다. “인생은 어디서 출발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어느 곳에서 끝마쳤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는데 점차 성인이 되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늘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고개 숙인 채 탄식을 했다. 누군가가 그에게 말했다. “꽃은 봄에 피는 것도 있고 가을에 피는 것도 있지요. 모든 꽃이 봄에만 핀다면 가을 풍경은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아마, 당신은 가을꽃이 될 사람입니다. 먼저 피는 꽃에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를 때에도 조바심 내지 않고 봄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 더 깊은 향기를 품고 피어나는 코스모스나 들국화는 봄꽃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있지요.” “첫째가 된 사람들이 꼴찌가 되고, 꼴찌가 된 사람들이 첫째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마 19:30 새번역) 김철규 목사(서귀포성결교회)
가정의 삶
가정의 삶 입력 2014-01-06 01:35 사람들은 살다가 힘이 들면 ‘만약에’ 라는 가정을 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또는 ‘만약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안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하며 현재의 상황을 도피하려 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목사님은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고 묻길래 저는 과거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도 지금같이 살아오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데 또 다시 돌아가 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인생은 돌아가고 싶지 않게 후회 없는 보람과 긍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다시 과거로 돌아가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왜 조금이라도 없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불가능한 가정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렇게 해보겠다’는 식의 가정은 가능하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면’의 가정은 불가능합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제대한지 30년이 지났는데도 모이기만하면 군대 이야기를 합니까? 이미 결혼해서 자녀들이 다 장성했는데 현재의 남편, 부인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가정이 가능합니까? 새해가 밝았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삶은 살지 마십시오. 불가능한 가정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신 앞으로의 삶을 얼마나 희망차게 살아갈지를 계획 하십시오. 장경동 목사(대전중문교회)
감동을 주는 말
감동을 주는 말 입력 2013-07-15 17:49 수정 2013-07-15 17:54 예수를 믿는다고 금방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의 가장 큰 변화는 언어생활에 있다. 그 사람의 언어가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앤 그루델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있다. 그는 언청이로 태어나 늘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금은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지만 앤이 자랄 때만 해도 언청이 수술은 힘든 일이었다.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늘 부모를 원망했다. 그러다 보니 부모도 앤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친구들도 앤을 피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 사람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느 날 학교에서 청각테스트를 했다. 청각테스트라는 것은 교실 한 가운데 칸막이를 설치하고 저편에서 담임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정확하게 듣고 반복하는 일이었다. 앤의 순서가 되자 선생님은 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앤, 나는 정말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어.” 그 말에 앤은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 반복하는 대신 “정말이세요?”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앤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그럼 그렇고 말고. 나는 정말 네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어.” 이 말은 앤의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감동을 주는 말 한마디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정말 네가 내 자녀였음 좋겠어.” 그 말이 우리 삶에 감동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삶의 다이도르핀(didorphin)이 용솟음치기를 기대해 본다. 설동욱 목사(서울 예정교회)
값싼 은혜
값싼 은혜 입력 2013-12-16 01:46 1945년 4월 8일. 나치에 의해 감옥에 갇힌 독일의 본 회퍼 목사가 아침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본 회퍼가 누구인가. 그는 ‘나를 따르라’는 책에서 순종과 십자가가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값싼 은혜’로 표현한 신학자다. 복음을 싸구려 상품으로 전락시키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경종을 울린 학자다. 감옥 입구에서 험상궂게 생긴 군인 두 사람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죄수 본 회퍼! 나를 따라오라.” 그 말은 곧 사형 집행을 의미했다. 감방에 있던 죄수들이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목사님. 이제 정말 마지막이군요. 안녕히 가세요.” 본 회퍼는 매우 평화스런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얼굴에 미소까지 띤 모습으로 말했다. “마지막이라니요? 나는 군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지금은 시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왕국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권능으로 사망을 이겨낸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천성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마지막이 빛나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극적인 인생 역전승을 거두는 사람이다.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강도 전도하기
강도 전도하기 입력 2013-09-01 17:28 트위터로 퍼가기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인쇄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겨자씨] 강도 전도하기 기사의 사진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가 영국 하운슬로우 히드라는 산악지방을 전도여행할 때였다. 말을 타고 천천히 산을 넘어가고 있는데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꼼짝 마라. 가진 것 모두 꺼내놓아라.” 강도가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런데 웨슬리가 가진 것은 전도용 책자뿐이었다. 강도는 그의 몸을 모두 뒤져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전도용 책자는 강도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늘은 참 재수가 없는 날이로군.” 강도가 투덜거리며 돌아섰다. 그때 웨슬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내 말을 잘 들어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너와 나의 죄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강도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사라졌다. 그 후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웨슬리가 어느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한 신사가 다가와 정중히 인사했다. 그는 10년 전 만났던 바로 그 강도였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저는 10년 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날 당신은 내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했지요. 그 말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가시나무가 영광의 면류관이 된 것이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회심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개울의 자갈
개울의 자갈 입력 2013-11-17 17:50 수정 2013-11-17 19:31 미국 테네시 주 목화밭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가난’과 ‘절망’과 ‘무학’의 늪에서 희망 없는 삶을 살았다. 그가 가진 것은 낡은 기타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뿐이었다. 그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소년은 장성해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고백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노래는 ‘개울 바닥에 자갈이 없으면 시냇물은 결코 노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노래는 당시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는 가수의 최고 영예인 그래미상을 받았다. 이 사람이 바로 미국 컨트리 가수 칼 퍼킨스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권위 있는 그래미상은 1957년 미국에서 창설됐다. 그래미란 말은 영어로 ‘축음기’란 뜻이다. 1년 동안 세계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활동을 한 음악인에게 ‘축음기’ 모양의 기념패를 수여한다. 칼 퍼킨스는 역경과 고난의 삶을 재료로 멋진 환희의 노래를 만들었다. 개울에 자갈이 없으면 시냇물은 노래하지 않는다. 이 소년은 고난으로 인해 시냇물의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 진주는 상처 입은 조개가 그 이물질을 감싸며 고통의 세월을 보내다 자라서 영롱한 진주가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가끔 개울의 자갈로 훈련시킨다. 때로는 진주의 이물질로 연단시킨다. 이것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천국의 그래미상’이 주어진다.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개의 충성을 기리는 오수(獒樹)/ 겨자씨/ 2018-02-07
개의 충성을 기리는 오수(獒樹)/ 겨자씨 개의 충성을 기리는 오수(獒樹) 기사의 사진 전북 임실에 오수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어느 날 충성스러운 개 한 마리를 기르던 주인이 술에 취해 풀밭에 누워 잠든 사이 불이 났습니다. 개는 온몸에 물을 적셔 주인을 구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깬 주인이 이를 알고 개를 묻고 지팡이를 꽂아뒀더니 느티나무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 나무 이름을 오수(개 오, 나무 수 獒樹)라고 했고, 마을 이름도 오수리가 됐다고 합니다. 2018년이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정작 정유년에서 무술년으로 바뀌는 것은 2월 4일 입춘부터라고 합니다. 그때부터 태어난 사람이 개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충성스럽기 때문입니다. 개띠인 사람도 충성 인자를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갈렙은 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켈렙’에서 유래됐습니다. 그는 이름처럼 충성됨으로 인해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갔고, 정탐했던 헤브론 땅을 45년이 지난 후에 점령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은 배신이 난무하는 시대지만 하나님께선 충성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세상은 온갖 부귀영화로 유혹하면서 변절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까지 충성되게 믿음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국민일보 겨자씨)
거듭남과 진정한 행복/ 2014-06-14
거듭남과 진정한 행복 애벌레는 나비의 삶을 알지 못합니다. 하늘을 나는 나비를 보면서 신기해할 뿐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애벌레는 분명 나비가 될 수 있는 존재인데 말입니다. 나비는 애벌레를 볼 때마다 큰소리로 외칠 겁니다. “그렇게 땅위를 기어 다니지만 말고 나처럼 나비가 되렴! 나비가 되면 애벌레 시절에 꿈도 꾸지 못했던 놀라운 경험과 엄청난 행복을 맛보게 된단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에 가슴을 칩니다. 애벌레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니지만 말고 나비처럼 거듭나서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처럼요. 영의 세계가 분명 있습니다. 육의 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세계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의 원리를 따라가면 그 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앙공동체는 육의 사람을 영의 사람으로 바꾸는 공동체입니다. 더 착한 사람, 더 품위 있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본질 자체를 바꿔서 땅만을 생각하던 사람을 하늘을 누리는 사람으로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거듭나서 하늘을 나는 영의 사람, 그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나비가 되면 꽃가루와 꿀을 먹기 시작하는 것처럼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거듭나셨습니까? 성경은 당신에게 다른 것을 묻지 않습니다. 당신이 거듭난 생명인지를 묻습니다. 거듭나야만 천국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조관호 목사 (부산 수정동교회)
걸어다니는 성경
걸어다니는 성경 입력 2013-07-18 17:33 최근 예수님을 영접한 분의 경험담입니다. 평생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고 이제 친구들을 전도하고 싶은데, 늘 술집에서 만나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콜라를 마시며 복음 전할 기회를 엿보았지만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술을 권할 때마다 “나는 생각 없어”하고 거절해도 분위기가 고조되면 또다시 술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한번은 모임이 끝날 때가 되어 한 친구가 다가와서 속삭이듯 하는 말이 “친구, 사실은 네가 오늘 술 한잔 마셨으면, 그럼 그렇지 너도 별수 없는 녀석이라고 말하려고 했었거든.” 예수 믿는 수박 장수가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수박이 실린 트럭을 운전하다 그만 경찰차를 만났습니다. 경찰차를 보고 우선 피하자는 생각으로 골목길로 이리저리 도망치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는데 경찰관이 차에서 내려 다가왔습니다. 수박 장수는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구나 생각할 때에 경찰관이 차에서 내려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말했습니다. “나 참, 수박 하나 사먹기가 이렇게 힘든가!” 경찰관은 수박 한 통 사려고 따라온 것인데 그렇게 도망쳤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계기판과 표지판이 성경이라면, 불신자가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바로 우리의 삶은 걸어다니는 성경입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김철규 목사(서귀포성결교회)
겨우 진주알이야?
겨우 진주알이야? 입력 2013-09-17 14:00 한 나그네가 사막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식량도 떨어지고, 여러 날 동안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우물을 발견했습니다. 물을 길어 허겁지겁 마셨습니다. 한숨을 돌린 뒤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 천막을 쳤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혹시나 하고 음식 부스러기라도 떨어진 게 있나 찾아보니 놀랍게도 돌멩이 틈 속에 주머니 한 개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얼른 주워 열어 보았더니 크고 아름다운 진주 몇 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나그네는 진주알들을 내던지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겨우 진주알이야?” 나그네는 얼마 뒤 사막 한복판에서 굶어죽었습니다. 아랍 사람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굶어 죽어가는 이에게 진주는 빵 한 조각보다 못한 것입니다. 사막 한복판에서 1억원짜리 수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합니까. 그런 인생들을 바라보며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사 55:2) 서정오 목사(동숭교회)
겨자씨에서 숲을 보다
겨자씨에서 숲을 보다 입력 2014-01-25 01:32 겨자씨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다. 이 작은 씨앗이 자라면 최대 4.8미터까지 크고, 모이면 큰 숲을 이룬다. 그 숲에는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운다. 미미한 것이 창대하게 된다. 소박한 데서 대박이 터지고 평범한 것에 비범함이 있다. 작은 것에서 큰 잠재력과 아름다운 미래를 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작은 것에 충성할 때 많은 것을 맡기신다. 콘(Corn) 비전이란 말이 있다. 옥수수는 한 자루에 최대 507개까지 알이 들어 있다. 한 알 한 알을 따서 뿌리면 많은 옥수수를 얻게 된다. 작은 것이지만 옥수수 한 알을 뿌릴 때 엄청난 수확이 이루어진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말고, 기도를 심고 말씀을 심으면 큰 역사를 이룬다. 콘 비전, 겨자씨 비전처럼 작은 것을 품는 운동을 해야 된다. 사도 바울처럼 해산의 수고를 치를 때에 영적인 새 생명이 탄생한다. 인재를 널리 찾아 세우자. 주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사람이 소명자다. 꿈을 품고 비전이 끌고 가는 사람이 사명자다. 사명자가 수명자다. 꿈꾸는 자에게 꿈같은 일이 펼쳐진다. 꿈도 자란다. 꿈 너머 꿈이 있다. 천리 길도 시동부터다. 세상에 잡초는 없다. 이름 없이 피는 꽃도 자기만의 향기가 있다. 잡초도 약초가 된다. 김문훈 목사(부산 포도원교회)
겸손/ 2014-06-06
겸손 중세의 성자 논지우스가 사막의 수도원 원장으로 있을 때다. 이집트 여자가 가슴이 썩어 피고름이 나는 병으로 고칠 길이 없자 논지우스에게 기도를 받으러 왔다. 논지우스에게 “논지우스 원장님 계시냐?”고 물었다. “왜 논지우스를 찾습니까?” “논지우스 원장님께 안수를 받아 병 고치려고 왔습니다.” 논지우스는 깜짝 놀라며 이집트에는 논지우스가 안수하면 병 고친다고 소문이 났는지를 재차 물었다. 여자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논지우스 원장을 찾지 마십시오. 사람이 어찌 안수해 병을 고칩니까? 병은 하나님만이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논지우스가 고쳤다면 그는 사기꾼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러면 나는 이 병든 몸으로 어찌하면 좋습니까?” “내가 주의 이름으로 안수하겠습니다. 나도 이 수도원의 수도종이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도 자매님의 병을 고칠 것입니다.” 논지우스에게 안수 받고 그 여자는 고침 받았다. 이름을 알려달라는 여자에게 논지우스는 “나는 이름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논지우스는 참종으로, 사기꾼 원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논지우스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이것은 논지우스의 겸손이다. 실로 논지우스는 사막의 성자다. 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극한 가난과 무수한 병으로 인한 나약함을 은총으로 받았다. 그것들은 나의 고통이며 아픔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나의 유산이다. 값으로 치면 고난의 유산은 깃털이고, 몸체 유산은 겸손이다.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내게 주시려는 큰 은혜는 겸손이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고훈 목사(안산제일교회)
경험을 넘어서
경험을 넘어서 서정오 목사 입력 2014-06-26 02:14 북한강의 한 지류인 소양강변에서 자란 내게 강물은 언제나 동에서 서로, 또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강이 동쪽으로 흘러갈 수 있지?’ 내게 익숙했던 경험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발견하면서 그동안 믿었던 ‘내 안의’ 세상이 얼마나 작은 곳이었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절대화하는 오류를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경험보다 훨씬 넓고, 인생은 인간의 이성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오직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단 한 분뿐이십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6∼7) 서정오 목사(서울 동숭교회)
경험을 넘어서/ 2014-06-26
경험을 넘어서 경험을 넘어서 기사의 사진 북한강의 한 지류인 소양강변에서 자란 내게 강물은 언제나 동에서 서로, 또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 대관령을 넘어 강릉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강이 동쪽으로 흘러갈 수 있지?’ 내게 익숙했던 경험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발견하면서 그동안 믿었던 ‘내 안의’ 세상이 얼마나 작은 곳이었는지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말 그대로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절대화하는 오류를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경험보다 훨씬 넓고, 인생은 인간의 이성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오직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단 한 분뿐이십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6∼7) 서정오 목사(서울 동숭교회)
고난과 핍박은 다르다
고난과 핍박은 다르다 입력 2013-12-14 01:33 수정 2013-12-14 10:25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당해도 핍박당하지는 않는다. 고난과 핍박은 다르다. 물론 넓게 보면 고난 속에 핍박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예수 믿는다고 무조건 매 맞아야 하고, 억울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집사님이 상담차 찾아왔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합세해 “예수 믿으려면 이 집을 나가라”며 매일 구박한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집사님께 나는 물었다. “예수 믿은 지가 얼마나 되나요.” “4년이 됐다”고 했다. “그럼 결혼한 지는 얼마 되었나요”하고 물었다. “7년 됐다”고 했다. 나는 이분이 당하는 고난이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님을 알았다. 좀 더 대화를 나눠 보니, 처음 예수 믿을 때는 별로 반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교회 첫발 디딜 때부터 핍박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무사하다가 4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 핍박하는 것은 이유가 다른 데 있었다. 교회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교회 식구들과 정도 들고 그러다 보니 함께 노느라고 집 비우는 횟수가 늘어가고 살림도 엉망이 되어 갔다. 아이들은 씻지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 누가 좋아하겠나.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내가 당하는 핍박이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인지 아니면 내 잘못으로 인한 것인지를 분간해야 한다. 내 잘못을 예수님께 덮어씌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김봉준 목사(구로순복음교회)
고슴도치 딜레마
고슴도치 딜레마 입력 2013-09-26 17:54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달라붙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곧 그들의 가시가 서로 찌르는 것을 느꼈다. 아파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흩어지면 추위에 견딜 수 없어 다시 모였다. 또 가시가 서로를 찔러 그들은 다시 흩어졌다. 그러다 또 모이고 흩어지고… 마침내 그들은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에 나오는 이야기로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 dilemma)라는 심리학 용어가 이 것에서 유래됐다. 고슴도치는 1만6000여 개의 가시가 자신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주위 환경에 무감각한 동물이다. 자신은 몸을 둥글게 말면 가시에 쌓여 상대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지만 그 가시가 주위 동물에게는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인생은 고슴도치와 같습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공동체가 깨어져가는 시대에 명절을 맞아 원근각처에서 보고 싶은 가족들이 몰려왔습니다. 함께 보내는 짧은 시간에 가까이 다가가 의지해 봅니다. 서로 갈등을 겪고 상처를 주고받고 흩어집니다. 다시 외롭고 춥습니다. 공동체가 그리워지고 다시 몰려옵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한다.” “고슴도치도 살 동무가 있다.”는 속담으로 위안삼고 보름달처럼 웃어봅니다.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히 13:1) 김철규 목사(서귀포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