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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Romans)
로마서(Romans) 제1장 서론 1-1 문제 제기 현대 사회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최첨단의 문명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명은 모든 인류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는 가장 뛰어난 이지적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들의 관심도 최상의 지적 성찰을 하는데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동체를 중심으로 그 무엇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개인의 독특한 사고방식에 더욱 집착되어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이기적인 가치관에 따라 자유로이 행동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최첨단 문명은 또 다른 면에서 인류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특히 기독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것은 대중 매체를 통해서 산간 벽지 뿐만 아니라 타문화권에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다원주의적 다변화 사회이다. 또한 종교에 있어서도 다원주의 경향이 팽배하고 있으며,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신사조가 기독교에 도전을 하고 있다. 즉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신학을 추구하는 신학자들이 기독교 전통인 구원의 유일성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수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신앙인에게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된 것은 이미 신앙의 선진들이 살아왔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것은 땅끝까지 복음을 선전하여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도록 구속사적인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 문명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종교적인 심성을 파괴하고 있으며, 극도의 이기주의, 개인주의를 창출해 냄으로써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적지 않은 위기감을 고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의 종교적 가치관마져 전자 문명에 의해서 위기를 맞고 있음을 보게 된다. 따라서 첫째로, 중요한 문제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를 중심으로 구속을 성취해야 할 인류가 현대 문명에 의해 심각한 위기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즉 미래보다는 현실에 집착되어 종교적 사색과 사고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로,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현대인들에게 기독교 신앙 공동체의 핵심인 구속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가 없다는 것이다. 즉 성경을 현대인들은 하나의 좋은 양서 정도로 이해하고, 그 속에 담겨진 깊은 의미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경험하기에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 안에 내재되어 있다. 즉 신앙 생활을 통하여 구속을 성취해야 할 신도들이 구속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의례히 신앙 생활을 하면 복을 받거나, 병을 고치거나, 사업에 성공한다는 식의 계산적인 안목을 가지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구속사적 구원의 복음이 잘못 전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점이다. 넷째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신학 풍조에 의해서 기독교 전통이 파괴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 이제는 모든 종교 안에도 그 나름대로 그들의 신앙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신학 풍조는 예수의 동정성, 빈 무덤, 부활 등을 부정하기에 이르렀으며, 기독교의 정통성을 송두리체 부정하는 모순을 가져왔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성서가 말하는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구속사적인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논자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성서로 돌아가 성서가 말하는 구속사의 의미를 파악하고 기독교 복음의 우월성을 피력함으로써 금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올바른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고자 한다. 1-2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금세기의 최첨단 문명 사회를 살고 있는 인류에게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구속에 관한 이해를 바울의 로마서를 통해서 폭넓고 깊이 있게 연구함으로써,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적용되었던 복음의 보편성, 즉 구속에 관한 개념과 구속사를 오늘의 문명 사회를 살고 있는 인류와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게 어떻게 적용하고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그 목적이 있다. 1-3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연구의 방법은 현재적 종말을 살고 있는 인류와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구속에 관한 이해, 삶에 적용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는 성서를 기본 택스트로 하고, 구속에 관련된 문헌들을 통해서 다양한 신학자들의 의견을 듣고, 복음주의 입장에서 그리고 자유로운 견지에서 비교, 분석, 정리하고, 논자의 견해를 구속의 현재성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연구 범위는 제1장에서는 서론으로 현대 사회와 기독교 신앙 공동체가 앉고 있는 당면 문제를 제시하고, 연구 목적, 방법, 범위를 다룬다. 제2장에서는 구 속의 개념과 구속사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먼저 어원적 고찰을 통해 명확한 의미를, 그리고 성서를 통해서 예수 이전의 구약; 언약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적 개념을, 그리고 신약; 언약의 성취를 중심으로 초기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선포된 구속의 개념을, 그리고 신학자들의 구속(구원)에 대한 이해를, 그리고 구속사란 무엇인지를 역사와 구속사 사이의 관계에서, 그리고 구속사 이해에대해서 다룬다. 제3장에서는 로마서를 중심으로 본 바울의 구속사를 죄의 선언, 칭의, 성화, 정죄 없음, 영광의 교리 순으로 깊이 있게 다룬다. 제4장에서는 실천적 측면에서 구속받은 성숙한 신앙의 삶에 대하여 먼저 세상에 속한 백성으로서 세상 권세에 대한 의무와 책임, 개인의 삶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루고, 다음으로 천국 시민으로서 교회 중심의 의무와 책임을 예배, 봉사, 교육, 연보 등을 다루며, 끝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와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다룬다. 제5장에서는 결론으로 이제까지 내용을 간략하게 먼저 요약, 비판, 그리고 제언을 함으로써 본 논고를 맺고자 한다. 제2장 구속의 개념과 구속사란? 2-1 구속의 개념 구속이란 무엇인가? 구속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구속의 개념부터 고찰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속은 \"성경의 주제이다. 그래서 성경을 구속의 책 이라 할 수 있다. 구속에 대한 설명은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구속이란 단어는 그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못하는 말이다. 그리고 기독교 밖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설령 사용한다 해도 기독교가 말하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구속이란 말은 필요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개념이 달라지는데 특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과 종교적으로 사용되는 말, 그리고 성경에서 사용하는 말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개념적인 차이가 있다. 따라서 어원적으로 말하는 구속의 개념을 이해하고 그리고 성경적 구속의 개념과 교회사적인 교부 및 신학자들의 구속의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2.1.1 어원 구속의 일반 통념상 개념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비에서 도와주고 건져주는 것\", 혹은 \"위험에 빠져있는 사람을 구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여러 종류의 어려움과 문제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정신적이고 각종의 사고,질병,재앙,절망에서 생명을 보호하고 구출해 주는 것 등을 의미한다. 구속의 종교적인 개념은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구속은 여러 종교에 따라서 각기 다른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기는 하나, 모든 종교는 어느 의미에서 일종의 \"구원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구속은 영어로 Redemption이다. Redemption은 N.I.V Holy Bible 신.구약 전체에 15회(민3:49,시49:8,111:9,렘32:7,8,눅2:38,롬3:24,8:23,고전1:30,엡1:7,14,4:30,골1:14,히9:12,15) 사용되었는 데, 특히 바울 서신에서 주로 구속이란 용어가 앞도적으로 쓰여졌다. Redemption의 뜻은 \"다시 사들이기, 되찾기, 약속의 이행, 구조, 구출, 몸값을 주고 빼내기, 범죄에 대한 대가, 예수의 희생에 따른 죄의 갚음, 속죄, 구원, 변제, 상환\"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한 구속(救贖), 구원(Salvation)의 뜻으 로 사용되고 있다. 구속은 히브리어로 여러 가지 단어가 있다. 즉 (名) 사63:4절에 사용되 었는 데, 그 의미는 \"되찾음, 저당물찾기, 상환, 회수, 보상, 이행, 면제,구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動) 구약에 21회 사용되었는 데, 그 의미 는 \"더럽히다, 상징적으로 신성을 더럽히다, 모독하다\" 등의 뜻으로 쓰여졌 다. 또한 (名) 시111:9,130:7,사50:2절에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를 살펴 보면 \"구별, 구원, 분리, 시간의; 간격, 장소의; 간격, 거리 분할, 구출, 구속\"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시49:9절에 (名)는 동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속전, 속량된 것, 속량, 구속\"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구약 성경에서 이 구속의 개념은 이스라엘 백성의 애굽의 압박으로부터의 해방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으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애굽의 노예 생활로부터의 해방은 그들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대의 개입이었다. \"내가 편 팔로 너를 구속하리라\"\"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셨다.\" \"여호와께서 너를 그 종되었던 집에서 속량 하셨다.\" 거듭 거듭 이러한 본문은 똑같은 형태로나 또는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Salvation 으로 신.구약 성경에 545회가 사용되었는 데, 그 중에서 신약에 쓰인 것은 163회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N.I.V Holy Bible에는 구원 (Salvation)이 390회 쓰였는데, 그 중에 신약에는 40회나 사용되었다. 또한 구 약 성경에서 히브리어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를 어근으로 하는 것인데, 이 것은 그 파생어와 함께 353회나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지니고 있는 뜻은 \"자유, 해방, 번영, 구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한 희랍어로 구속은 (名) 로 롬3:24,8:23절에 쓰였는데, 이는 \"구속 행위, 벗어남, 속전의 지불에 의해 해방을 가지게 되다, 또 기독교에서 구원, 해방, 구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피로 십자가에서 우 리 대신 죽으심으로 불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풀어 놓아 주신 것을 의미한다. 이제까지 어원적인 고찰을 통하여 구속의 개념을 살펴보면서 구속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구속은 우리를 대신하여 속량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어원적 개념을 넘어 언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구약의 구속 개념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2.1.2 구약; 언약을 중심으로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림자와 같은 역할을 해 왔다. 다시 말해서 구속의 완성인 메시야에게 초점이 마추어져 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연결되고 있다. 논자는 바로 이런점에서 구약 성경을 이스라엘의 선택된 백성의 역사에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 역사에 초점을 두고 구속사적인 견지에서 구약 성경에 약속된 언약을 중심으로 구약에 흐르고 있는 구속의 개념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언약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언약의 중요성을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들과 언약 관계를 자주 맺으셨는데, 그 예로는 노아(창6:18), 아브라함(창15:18), 이스라엘(출24:8), 다윗(시89:3)과의 언약 수립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새로운\" 언약(렘31:31)이 성취될 날을 예언했으며,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최후의 만찬을 언약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눅22:20). 그리고 O.Palmer Robertson은 언약이란 \" 주권적으로 사역되는 피로 맺은 약정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 관계를 수립할 때 주권적으로 삶과 죽음의 약정을 세운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은 피로 맺은 약정, 또는 주권적으로 이루어지는 삶과 죽음의 약정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약에서의 구속의 개념은 주로 물질적인 구출 또는 구체적인 구출을 말한다. 즉 구속은 개인이나 백성이 처해 있는 환경속에서 영위하는 생활과 관계가 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재난이나 곤긍이나 환난이나 대적이나 질병이나 사망의 위험이 있는 형편 가운데서 벗어나 안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약에서의 구속은 신약과 달리 죄로부터 구원이라는 의미가 매우 약하다. 그러나 죄로부터 구속을 받는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속의 본질적 차원은 근본적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인류는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의 결과로 죽음을 선사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첫 인류에게 인애를 베풀어 주셨다. 죄의 결과로 부끄러워 수치를 가리기 위해 나뭇잎을 사용한 인류에게 언약의 상징인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시고, 타락한 인류와 첫 번째 언약을 맺으신다. 인류의 가장 비극적인 상태가 창3장 1절로 24절까지에 잘 묘사되어 있다. 창3장15절은 인류에게 소망을 주고 그리고 구약에 전반적인 메시야적 약속에 근거를 제공한다. 그리고 두 번째 언약은 인류가 온갖 죄악으로 가득차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신다. 노아는 순종의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를 건조하였고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에 약 일년 동안 임하였으며 노아는 방주에 갇혀 있었다. 죄로 가득찬 인류를 멸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었다. 당시 심판의 척도는 국지적인지, 세계적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주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인간은 새로워진 세상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노아와의 언약은 모든 혈육 있는 자와의 언약으로 매우 일반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단지 자연적인 축복이므로 흔히 자연의 언약 또는 일반 은총의 언약이라고 불리운다. 그리고 홍수 이후의 인류의 문명은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하나의 단일체였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없는 어느 기간 동안 한 지역에 머물러 있었으며(창11:1-9), 이 문명은 희생 제물로부터 시작된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은 노아와 그 후손에게 항구적인 무지게 언약을 맺으신다. 그리고 인류에게 온 땅에 편만할 것을 축복한다. 그러므로 노아 와의 언약은 창조 언약과 구속 언약의 면밀한 상호관계 즉 창조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구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연합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속의 특이성과 언약 관계에서 가족을 말하고, 보편적인 면과 언약의 은혜로운 특징을 강조하면서 보존하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제 세 번째 언약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상대는 먼저 이스라엘 민족이다. 하나님은 족장들을 불러 그와 언약 맺음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호와 자신이 족장들 곁에 나타나셨다는 것인데, 후에 신의 현현(顯現)으로 칭하였다(창18:1).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존의 실재는 그의 언약의 말씀과 위로와 지시의 중요성과 신빙성을 뒷받침하였다. 그리고 세 사람의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가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였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언약의 형식적인 확립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언약은 구약의 특수한 통치의 시작인데 이것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만 국한한다. 그리고 신앙은 뚜렷하게 언약의 필연적인 요구로 나타나며, 할례는 언약의 백성이 되는 증표로 행하여진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번성하며, 애굽의 종이 되어 430년 동안 종살이 한다. 하나님은 그의 언약의 백성들이 부르짓는 고통을 들으시고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애굽으로부터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장자의 재앙으로부터 구속하여 출애굽 하게 한다. 그리고 40년 광야 길에서 네 번째 언약을 하나님은 모세와 시내산에서 맺으신다. 이 언약은 여호와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로 시작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신4:37, 7:7-9, 10:15절외 여러 곳). 시내산 언약은 출애굽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 순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다(출34:6)\"는 진리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국가적으로 형성시킨 후로,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돌보고 도우시며 인도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구원의 하나님이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구원에 이르는 자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성막 또는 성소를 중심으로 생활하였으며, 시내산에서 받은 제사법을 따라 제물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속량받는 의식을 행하였다. 제사법에는 크게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소제가 있으며, 안식일을 거룩히 구별하였고, 삼대 절기로 칠칠절, 초막절, 속죄일을 지켰으며, 율법은 이스라엘을 하나의 행동 방식으로 이끌어 주었는데, 이러한 방식은 이스라엘이 주변의 이방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국가라는 구별을 짓게 했다. 이처럼 모세 언약을 신학적 배경에서 보면 세 가지 면을 강조할 수 있다. 먼저 율법 언약은 하나님의 구속 목적의 전체와 유기적 기능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즉 구속역사 전체에 걸쳐 율법이 존재했음을 인식해야 한다. 법은 모세 이전에도, 이후에도 중요했던 것이다. 다음으로 모세 언약은 하나님의 구속 목적에 있어서 전체와 점진적으로 관련된다. 즉 하나님의 뜻이 점진적으로 전개된 하나님의 율법 계시의 특징은 각 시대에 하나님의 진리가 점점 더 명백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새 언약의 법의 특징은 내부적 성격에 있다. 인류를 구속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구약에서는 다섯 번째 언약으로 하나님과 다윗과 맺은 왕국의 언약이다. 언약의 관점에서 다윗 언약의 수립은 그리스도 자신이 실제로 나타나기 이전의 구속 역사에서 최고의 완성적인 면을 나타낸다. 다윗 왕권은 새 기원을 끌어들였으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왕권을 전형적으로 예언한다. 그리고 다윗 언약의 수립에서 \"다윗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 사이에 세워진 관계는 메시야가 올 때 완성된다. 그리고 다윗 언약들의 규정들은 두 가지 약속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한 가지는 다윗의 계열에 관한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예루살렘 땅에 관한 것이다. 백성을 구원하는 데에서 하나님의 목적은 다윗의 계열과 예루살렘의 왕권, 이 두 가지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다윗의 나라는 영원하리라는 선포가 여섯 차례에 걸쳐 사무엘하7:13,16,24,25,26,29절에 나타난다. 다윗은 이와 동일한 언약을 삼하23:5절에서 회고하여 그것을 \"영원한 언약\" 이라 하였다. 그리고 시89:28-37절에서 또한 이 영원한 언약의 불변성에 대하여 말한다. 그것은 영원하며, 하늘의 날과 같으며, 해와 같고, 궁창의 확실한 증인 달 같이 아니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조건성에 대한 문제는 남아 있다. 여기서는 무조건적이니 조건적이니 하는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충분한 통찰은 구약 성경 자체에 나타난 다윗과 그 후손의 왕권을 검토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의 진정한 성경적 통찰이 이루어지려면 이스라엘 왕권과 하나님 왕권의 실제적인 통일성을 인식해야 한다. 앞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다윗 계약의 중심이 되는 두 가지 양상은 이스라엘 왕권과 하나님 왕권을 곧바로 연결한다. 다윗 혈통과 예루살렘 지역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과 상호 관계한다. 이제 우리는 이상의 다섯 개의 언약 뭉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개념들을 살펴보았다. 구속이란 말은 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구원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었고, 구원이란 모든 종류의 \"악한 운명과 국가적인 불운\"\"역병, 사망과 공포, 사자의 입\"또는 전쟁과 악한자 환란 죄 그리고 모든 종류의 재난으로부터 놓임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구속이란 말은 가족법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써 환란에 빠진 친척을 구원하는 책임있는 말로써 하나님께 적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속해 낸 분 이라는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시며, 온 인류의 구속자가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의 구조적인 통일성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언약에서 잘 나타난다. 먼저는 역사 경험에서 언약 수립의 내용이 통일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언약 아래서의 백성들의 삶의 역사에 통일성이 있다. 그리고 혈통적인 민족적 사역에서 통일성을 찾아 볼 수 있으며, 새 언약을 연합시키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에 의해 약속된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앞선 사역과 무관한, 구별된 언약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새 언약은 먼저 수립된 언약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이다. 창조 당시 세워진 언약과 하나님의 구속 언약과의 관계가 문제시 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로써 창조주에 대한 의무를 가지는 것으로 존재해 왔다. 이처럼 창조자에 대한 피조물의 계속적인 관계를 볼 때 인간에 대한 최초의 하나님의 약속은 계속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언약적인 구성은 놀라운 통일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아담부터 그리스도까지 언약적 구속 사역의 통일성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구속사를 나타내 준다. 2.1.3 신약;언약의 성취를 중심으로 이제 예언자들이 예언한 새 언약 즉 완성된 언약을 신약 성경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계시는 근본적으로 일치되며 서로 구속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진리를 수납하시고 이것을 모든 교훈의 전제로 삼으셨다. 구약의 어떤 진리는 신약에서 성취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며 신약의 어떤 진리는 구약의 어떤 진리를 더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신약의 진리는 구약에 예언된 진리를 선행적(先行的)인 진리에 비하여 생각할 때에 신약에서 성취되거나 혹은 더 풍부하게 하는 관계를 가짐이 분명하다. 구약의 교리적 진리가 신약에 성취된 것은 구속의 대진리를 생각할 때에 더욱 명백하다. 구약의 구속 경험은 언약 관계를 중심으로 하였으며 율법을 순종하는 것도 언약의 관계와 분리할 수 없다. 이 언약의 관계는 사람의 죄와 허물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의 신자들은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마음의 평화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구약의 구속의 경험은 성질상 선행적이며 예상적인 것이다. 장래의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성령으로 인하여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구주를 바라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속은 신약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된다.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은 그의 인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으심에 더욱 관계된다. 신약 성경에서 구원을 나타내는 단어는 주로 헬라어 동사(구원하다)와 명사 (구원)인데 약150회 이상(동사가 106회, 명사가 45회)쓰였다. 는 육체적인 의미에서의 구원뿐만 아니라 영원한 의미에서의 구원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는 육체의 질병(마9:27,눅8:36)과 위험(마8:25,14:30), 미혹(눅19:10), 죄와 분노(롬5:9)로부터의 구원을 뜻한다. 특히 이 말은 종말론적 의미를 함의하는데, 그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에 비로서 실현될 것이다(롬13:11,고전5:5,히9:28). 이상에서 본 것처럼 신약에서 구원 용어는 매우 다의적으로 사용되었다. 곧 병, 자연의 위험, 귀신의 압박, 죽음 등에서의 해방, 치유, 구조, 구출, 해방을 의미하며 또한 죄와 멸망으로부터 영적 구원을 뜻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제시하는 구원은 주로 죄로부터, 그리고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징벌로부터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었다.그리고 구약에서의 구속의 경험은 민족이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약의 구원은 개개인이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에서의 복음의 선포는 개인의 영혼을 대상으로 하며, 복음을 받아 들이면 사회적 민족적 상황과 관계 없이 개인적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역시 역사적이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은 종말적인 구원을 지향하고 대망한다. 그리고 이 구원의 역사는 구약에서, 신약에서 모두 하나님의 구속적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시대에 구원은 오직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게 된다. 즉 구약의 백성들이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희미한 구원을 받았다면, 오늘날의 성도들은 계시의 빛 아래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신약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신 업적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예수께서 강조한 것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이다. 산상수훈 역시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훈은 하나님 중심의 생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랑으로 충만한 생활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의 구속을 바탕으로하여 전개된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하여 예언의 말씀의 성취로 이 땅에 오셨고 죄인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늘나라의 축복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교훈을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민족이나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중심으로 한 구속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중심 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으로 특별한 의미를 강조한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구속 사회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영역이다. 구속 사회란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그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를 말한다. 구원 사건 안에 도래하는 통치자는 사랑하는 아버지로써 현재속으로 들어온다. 예수에게는 모든 윤리적 요청 안에 언제나 하나님 중심이 된다. 예수의 윤리는 구원 시대의 윤리적 혹은 새로운 언약의 윤리로 적절하게 표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구속사적인 힘은 예수의 인격 안에 시작되고 그의 완성을 기대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신앙적인 승인에 달려 있다. 새 언약의 수립은 그리스도께서 저주의 희생 제물로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쪼개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복음서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 수립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검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잔을 주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한다. 바로 예수께서 피를 흘리는 것은 구약에서의 희생 제물의 언어를 반영하여 언약의 저주가 대속물 위에 얹져지는 과정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그의 죽음을 죄사함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리스도는 언약의 저주로부터 구원을 마련하기 위해 그의 피를 흘리셨다. 그리고 누가복음서는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지는 언약을 \"새\" 언약이라고 언급 함으로써 더 깊은 차원을 나타낸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피의 이런 이중적 의미는 구원의 언약이 처음 세워질 때 아담에게 하신 하나님 말씀의 이중적인 역할을 반영한다. 그리고 구약 성경의 상징이 신약 성경에서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과 맺은 상징적 표징이 신약 성경에서 성취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할례의식이다. 영광스러운 새 언약이 시작되면서 옛 언약들이 쓸모 없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율법 아래 동정녀 탄생을 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를 몰랐다. 그러나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그는 정결하게 하는 규정된 예식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는 할례를 받고 후에는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그리고 그는 천국 복음을 선포했으며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선험적으로 사시며 증언하였다. 그리고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약속된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을 주었다. 바로 새 언약은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시작된 것이며, 그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가져왔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인류에게 언약의 성취자로써 선물로 주신 것이다. 보른캄은 \" 예수가 그의 말과 행동에서 이미 일어난 신의 나라의 시작을 선포하는 반면 부활절 이후의 소식에서는 그의 죽음과 부활, 승천에서 세대의 전환과 구원의 개시, 신의 도래와 지배가 이미 사건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신자의 경험은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개념과 연결되며, 신자가 죽어서 다시 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이제까지의 내용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개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결국 신.구약성경의 구속의 교리는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언약적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으며, 완성된 것이다. 성경에서 구원은 육체, 정신, 생활, 사회, 그리고 영혼 등 인생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특히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 영역의 구원은 구체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 형벌적 사망으로부터의 구원, 영혼의 구원, 장차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서의 구원 등이다. 따라서 성경적 의미의 구원 곧 기독교적 구원이란 죄로 인하여 멸망할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통하여 죄의 사함을 받고, 죽은 영혼이 살림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우고, 심판과 형벌에서 모면되고, 영생을 얻고, 장차 천국의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본질적인 의미에서 구속이며 참 구원이라 할 것이다. 2.1.4 신학자들의 구속(구원) 이해 앞에서 논자는 구속의 개념에 대하여 어원적인 접근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적인 접근을 통해서,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구속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기에는 충분할 만큼 구속에 대한 내용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면 신학자들은 구속에 대하여 어떻게 그 개념을 파악하고 이해하며 주장하는지에 대하여 고찰함으로써 구속에 대한 개념을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한다. Pelagius는 하나님의 창조 정신을 강조하고 인간의 타락 및 죄를 가볍게 본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했으며, 인간은 이 자유를 통해서 선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펠라기우스는 타락한 후에도 원죄는 문제되지 않으며 자범죄도 인간에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으며, 아담의 범죄나 마귀까지도 이 능력을 파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전 인류가 정죄되었다는 것은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기 때문에 아담의 죄는 결코 인류의 죄악이 될 수 없고 또한 아담의 죄로 인해서 그 후손들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의지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그리고 아담의 타락은 그의 후손의 영혼과 몸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것은 타락 후에도 인간의 본성과 능력이 계속되어지는 한 태초의 아담과 같이 자유로이 善惡을 택할 수 있다.펠라기우스는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도 죽음이 죄의 형벌이 아니라 아담이 죽을 운명으로 창조되었고,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당연한 귀결이라고 한다.따라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축소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 의해 인간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구원은 율법과 복음이 없이 얻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것들은 구원을 얻는데 크게 도움이 되며 그리스도는 구원을 얻은 좋은 모범을 인간에게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한다. Augustinus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아담이 타락한 후에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악에 대해서만 자유롭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아담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이 후손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아담의 타락으로 그의 후손들이 전체적으로 침해를 보았으므로 인간에게 완전한 의지의 자유란 더 이상 지닐 수 없게 된 것이다.이와 같이 어거스틴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원죄를 주장한다. 그래서 원죄의 결과로 인간은 저주의 덩어리로 전락했으며, 사망과 무지와 현세욕에 얽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이 유실되어 자신에게 열려 있는 모든 선택도 결국 죄가 된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은 불가항력적인 은총을 베푸셨다.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으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선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총이 일단 인간에게 주어지면 은총이 의지 안에서 활동하여 의지가 선을 이루도록 움직인다. 또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인간이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과 더불어 구원한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은총이 인간의 의지와 일치하게 응답하여 행동하도록 만들어 준다.그리고 어거스틴은 이런 은총은 세례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하였으며, 유아도 세례를 통해 죄책이 제거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은혜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죽는 날까지 신앙을 신실하게 지켜 나갈 때 최후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고하였다. 그것은 은총으로 주어진 견인의 선물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은총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선택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하였다.즉 선택된 사람은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따라서 저주받는 무리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어거스틴은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한다. Vitalis는 펠라기우스의 이론을 배격하고 어거스틴의 이론을 옹호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이론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그는 어거스틴에게 인간이 행하는 모든 선행은 하나님의 은총이지만, 구원을 받는 첫 걸음 즉 은총을 받아들이는 행위-신앙의 시작-은 순전히 인간의 것으로 하나님도 이것을 간섭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하여 은총이 인간의 공로와 관계없이 주어진다고 하는 어거스틴의 이론과 의견을 달리한다.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후대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Thomas Aquinas는 아담의 범죄로 인간이 부패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원의를 잃어버렸으며, 인간의 자체 힘만으로는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타락한 인간성의 희복은 하나님의 거져주시고 공로 없이 베푸시는 은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한 점은 어거스틴과 같다. 이 은혜로 인하여 인간의 본성은 최초의 은사를 희복하고 죄사함을 받고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토마스에 의하면 이 은혜는 교회의 성례전을 통해 인간의 영혼속에 창조된 사랑이며 참으로 인간적인 자비의 기질 혹은 습성이다. 그리고 토마스는 구원의 출발점으로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들고 있으나 이는 보편적인 것이고 성례전을 통해 얻는 사랑의 습성을 시행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은 사랑의 활동에 의하여 형성된 믿음이고, 이 믿음이 없으면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는 세례 이후에 지은 죄에 대해서 고해성사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제의 사죄를 통해 고백하는 자에게 죄에 마땅한 죄과와 영원한 형벌을 사하지만 어떤 잠정적인 형별이나 보속은 죄의 결과로 고백자에게 계속 남는다. 그리스도의 대표자인 사제가 고백자의 통회, 고백, 보속을 기꺼이 치르려는 마음을 증거로하여 사죄를 선언해야 죄사함을 받고 사죄의 용서가 없이는 세례후 치명적인 죄를 지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중세의 면죄부는 이 잠정적 형벌의 일부 혹은 전부를 없애 주는 보속행위로 성행했던 것이다. John Duns Scotus는 구원이 오직 개인들과 그들의 공로에 대한 자유로우신 용납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들의 영혼에 어떤 자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하여 토마스의 교리를 반대한다. 스코투스는 계시를 통하여 알려진 하나님의 작정하신 의지에 따라 교회의 성례 활동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그들 자신의 구원에 충분히 협력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스코투스에 따르면 영원전부터 선택된 자들은 한 번 거룩하게 하는 은혜를 입으면 계속하여 참되고 가치있는 선행을 수행하고 따라서 영원한 구원을 보상 받게 된다. William Ockam은 인간은 그 자신의 자연적인 능력이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하여 도덕적으로 선행을 할 수 있는데, 이 선행은 적합한 공로로서 하나님의 은총의 주입을 일으키고 하나님은 다시 이 공로를 거룩하게 하는 은총으로 보상해 주셔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공로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로 선택이 조건지워졌다고 하였다. 즉 예정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John Calvin은 스콜라 철학자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은 회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회개를 마음의 통회와 입술의 고백과 행위의 보속으로 나누어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가르쳤다고 하였다. 그리고 칼빈은 죄사함의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므로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칼빈은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죄에 대한 진정한 보속을 제공하며 양심에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한다. 그리스도 이 외에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 만한 다른 보속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중재에 의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시켜 주시는 영원한 대언자이시며,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는 영원한 화목 제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칼빈은 인간의 공로나 보속에 의한 구원을 부인했고, 중세 캐돌릭교회의 면죄부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면죄부가 그리스도의 피를 더럽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분리시켜 구원의 진정한 길을 벗어나게 하려는 악마적 간계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연옥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들며, 하나님의 자비에 참을 수 없는 경멸을 가하며, 우리의 신앙을 뒤집으며 파괴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지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칼빈의 이 칭의 교리는 매우 중요하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의인으로 받아 주시는 것이며, 우리의 행위의 어떤 공로도 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하여 공로에 의해 인간이 의롭게 된다는 이전의 모든 학설을 부인한다. 인간의 마음은 불결하기 때문에 인가의 선한 행위는 하나님이 볼 때 근원부터 부패된 것이다. 인간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을 수 있으며, 그 의를 덧입고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서 나타날 때에 구원이 가능하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여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영원한 선택 교리를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선택에 의해 어떤 사람은 생명의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사망을 예정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이 예정을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은총은 선택된 제한된 소수만이 받게 되는 것이다. 칼빈은 선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고 오캄의 주장과는 달리 선택이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공로를 미리 아시고 그것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칼빈은 세례를 우리가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축복에 참여하는 표징이지, 은혜의 수단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세례는 우리의 모든 죄가 도말되고 용서되고 소멸되어 하나님 앞에 나타나거나 기억되거나 그 때문에 우리가 고발되는 일이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인하는 인을 친 문서와 같다. Jacobus Arminius는 예정 교리를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는 타락전 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었다고 비난하고, 하나님은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부터의 구속주와 구원자로 임명하시고 신자들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으로 예정되게 하셨다고 가르쳤다. 개개인의 예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 안에서 견인 할 것을 미리 아신자들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지를 예정의 기초로 본 것이다. 알미니우스는 인간의 선택에 예지를 두었다. 그러나 믿는 행위는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지 공로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은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도덕적 에너지라고 하였고, 수동적인 사람에게 부과되는 하나님의 의지적 독단적인 강요가 아니라고 하였다. John Wesley는 인간의 완전 타락을 주장하는 점에서 어거스틴이나 칼빈과 같다. 그러나 웨슬레는 타락한 인간이 어느 시점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부분적으로 회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는가? 타락한 인가는 아담 이후로 전혀 선행을 할 수 없었는가? 인간의 양심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알미니우스의 선재 은총 개념을 발전시켜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분적으로 회복시켜 주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완전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선을 행할 수도 없으나, 아담에게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을 통해 구원의 은총을 약속하셨고, 그 은총으로 인하여 인간이 광명의 세계를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웨슬레는 선재 은총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이 응답하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영원한 죽음으로 갈라지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응답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것이라 했다. 따라서 인간은 선재 은총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점에서 칼빈과 같다. 그러나 칼빈이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에 의한 믿음에 반해, 웨슬레는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해 인간이 응답함으로써 믿음을 가지게 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은총이 주어지는 방법에 대해서 웨슬레는 선재적 은총의 경우 타락 직후에 주어졌고, 구속의 은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에 주어진다. 유아의 경우는 선재 은총으로 태어날 때 원죄가 사해지며, 세례로 의롭게 된다. 그러나 자의지로 죄를 지은 사람은 회개를 통해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 즉 칭의와 동시에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세례를 받았다고 모두가 거듭난 것은 아니라고하여 실제적인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강조한다. 그리고 세례 후에 자범죄에 대해서 웨슬레는 성결 교리를 주장한다. 웨슬레는 거듭남에 의해 성화가 시작되고 점진적인 성결 과정을 통하여 영화로 성화가 완성된다고 한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도 죄성이 남아 있으므로 거듭 죄를 짓게 되나 회개와 내적인 체험을 통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죄성을 깨끗이 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성화의 결과는 사랑과 봉사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웨슬레는 하나님의 선행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 해도 만일 계속해서 성화의 삶을 살지 못하면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함으로써 성결의 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였다. Karl Barth는 기독론 전개에 있어서 \"만인구원론\"적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 신학에 만인구원론적 경향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르트 자신은 어느 곳에서도 보편적 구원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구원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로 구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모든 사람들은 버림받고 동시에 구원받은 자로 간주한다. 모든 사람은 유일한 선택자인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선택되었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바르트의 견해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결론을 피하지 못한다. Rudolf Bultmann은 비신화화의 신학으로 유명하다. 그는 실존주의적 구원 해석을 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있는 영원한 긴장속에 존재하며, 항상 구체적 자연 세계에 사로잡혀 그 자신의 개성을 상실하여 버리든지 아니면 모든 외적인 안전을 포기하고 미래를 향하여 용감히 투신함으로 참사람다운 존재가 되든지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죄의 본질이며, 육신에 속한 삶의 결과는 불안뿐이다. 고로 인간은 이런 불안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인간 스스로는 여기서 해방될 수 없다. 다만 인간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육신에 매여 사는 불안의 삶이 변하여 자유로운 삶, 곧 참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곧 구원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에서만 얻어지는데, 이 구원의 은혜는 구원의 메시지, 즉 케리그마가 전파되고 믿어질 때에만 얻어질 수 있다. Jurgen Moltmann은 과거와 현재보다 미래에 관심을 둔다. 그 미래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종말 및 천국이 아니라 변혁과 혁명으로 이루어지는 종말이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천국이다. 그는 특히 구속론에 있어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일어나는 수직적인 측면에서 화해가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면적이고 역사적인 화해를 강조한다. 화해는 오직 역사적 평면 위에서 계급간의 투쟁이 끝나고 눌린자가 해방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지상에 실현되는 날 이루어지며, 이런 사회적 구원이 곧 오늘의 구원이며 이 구원이 성취될 때 만인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몰트만에게 있어서의 구원은 미래가 아닌 오늘에, 천국이 아닌 이땅에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이루는,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이요 만인의 구원이다. Paul Tillich는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그리스도와 결부한다. 곧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새로운 실재인데, 불완전하고 허무한 존재인 인간은 실재인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짐으로써 새로운 실재에 참여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만인에게 구원을 가져왔는데, 그 구원은 새로운 존재 속의 참여로서의 구원-중생, 새로운 존재를 수용하는 구원-칭의, 새로운 존재에 의한 변화로서의 구원- 성화 등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방 신학과 민중 신학 및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관은 여기서는 간과 하도록 한다. 이상에서 신학자들의 구원에 관하여 여러 가지 주장들을 살펴보았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며, 인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속죄주 즉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행위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임을 볼 수 있다. 결국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직 메시야 한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의 구원관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통 신학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며, 성경적인 구원의 진리를 간과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제까지 구속의 개념에 대해서 이해를 촉진했다. 이제 구속사란? 무엇인가를 고찰함으로서 바울의 구속사를 준비하고자 한다. 2-2 구속사란? 구속사는 모든 사람이 성경이 말하는 위대한 사건들과 직접 결부되어 있다는 신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그리스도 안에 집약되어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속에서 전개 되고 있다. 따라서 역사와 구속사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구속사 이해를 통해서 본 논고의 주제에 자연스런 접근을 하고자 한다. 2.2.1 역사와 구속사 사이의 관계 역사란 우리의 언어로 구별이 분명하지 않으나 독일어에 있어서는 역사란 말이 두 가지 낱말이 있다. Historie와 Gechichte이다. 여기서 Historie는 세계사나 민족사, 정치사나 경제사와 같은 사람이 관찰하여 헤아릴 수 있는 \"사학적 역사\"요, Gechichte는 사람이 관찰하거나 헤아릴 수 없으되 실제에 있어서는 깊은 데에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사건\"으로서의 역사이다. 인류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원년으로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역사를 구분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18세기 이후, 우리 나라도 단군을 기원으로 하지 않고 서기를 쓰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에서 역사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된 결과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신자에게도 역사의 의미가 주어졌다\"고 한 브룬너의 말이 적용된 셈이다. 기독교적 역사관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시대는 준비의 시대요,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시대는 역사의 의미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실현할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속사는 현대 신학의 논쟁에 있어서 중요한 신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여러 가지 \"역사들 속에\" 속해 있다. 즉 가문의 역사, 민족의 역사 등에 속해 있다. 우리는 신앙의 결단으로 이 특별한 역사인 구속사와 관련되어 있다. 즉 일련의 신적 사건을 우리는 더 좋은 표현이 없어서 구속사라고 부른다 . 그것은 또한 죄와 심판 때문에 멸망사(Unheilsgeschichte)일 수도 있다. 불트만 학파는 신약의 실존적인 문제를 구속사 문제와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관과 객관의 분열을 미숙하게 폐기시킨 이 학파는 이렇게 해서 잘못 오도되어, 신약의 사실상의 본질을 인격이 자기의 실존 이해에 있어서 오늘날 자기가 말씀을 듣는다고 여기는 점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성서적 사신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가장 최근에 반대한 사람 중의 하나였던 Fichte는 자기의 저서를 이렇게 끝맺었다. \"형이상학적인 것만이 축복하는 것이지, 결코 역사적인 것은 축복하지 못한다. 후자는 이해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형이상학이란 말 대신에 실존적이라는 말이 현대적 사고에 적합할 것이다. 우리는 2세기에 있었던 영지주의와의 싸움의 의미를 바로 이해해야 한다. 즉 기독교의 계속성의 문제이다. Marcion과 영지주의는 상호종속적이다. 공통된 점은 구약에 대한 공격이다. 마르키온은 계시와 구원을 점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복음도 하나의 점적이고 속박되지 않는 사건이며, 수직적이기는 해도 수평적이 아니다. 그리고 영지주의는 구약을 부인하고 기독교의 영역 안에서 신약을 해석하여 구속사를 제거한다. 즉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가현설의 희생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는 계시와 구원의 사건을 일관성 있는 구원의 발생사에서 찾아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모두 구약을 인계 받았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신앙이 구속사를 믿는, 즉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믿는 신앙이지. 점적인 구원의 사건을 믿는 신앙만이 아니라는 것을 지시한다. 구속사는 시종일관 발생사로서 가장 내적인 본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것은 역사학적으로 추적이 가능한 가장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며, 예수의 탄생과 그의 복음의 선포가 그 당대의 역사적 인물들, 가령 헤롯대왕, 아우구스트황제, 로마 총독 등과 관련된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구속의 행동은 역사적 컨텍스트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역사학적 예수와 케르그마적 그리스도 사이에 연속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삶과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사건이 역사적 Context에서 말해질 수 있다고 본다. 즉 구속사가 역사에 속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불트만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 즉 그리스도만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적인 예수는 신앙의 근거가 될 수 없고 예수의 Kerygma만이 신앙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전인 예수의 처녀 탄생기사나 부활, 승천같은 기사는 예수를 숭배하는 초기 신앙 공동체가 만든 신화적 이야기며 이같은 신화는 비신화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바르트학파의 계시 중심 주의는 역사비판 논구의 홍수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원역사(原歷史)의 영역으로 도피한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을 원역사의 범주로 해석, 본래의 역사가 초기의 사역 내지 원역사의 반영으로만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Pannenberg의 역사 신학과 라이너학파의 보편구속사 신학은 신의 계시와 동시에 객관적 역사 과정을 진지하게 다루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파넨베르크는 구원을 계시의 종속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파넨베르크 자신이 지나치면서 계시와 구속사와 관계를 인정했듯이 두 개념은 거의 구별할 수 없다. 논자가 보기에는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주요 개념은 구원의 개념인 듯하다. 따라서 구속사는 신앙적으로 구원의 사건으로 인정된 사건들을 단순하게 첨가함으로써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에 그 때마다 과거의 구원의 사건에 대한 해석을 새로운 사건에 조명하여 수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언자들이 계시에다 귀속시킨 해석의 행위는 구속사 자체에 속한 것으로 여겨진다. 계시의 중개자는 구약에서는 예언자이고 신약에서는 사도가 된다. 계시의 중개자는 그가 맡은 계시를 새롭게 해석하고 구속사와 결부시킨다. 우리는 이처럼 구원의 사신을 구원 사건에다 포함시키는 것이 신약을 위해 본질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구약에도 현재적이다. 계시의 역사와 해석의 역사는 구속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구속사는 여전히 양쪽을 건너짚는 개념이다. 그리고 사실상 성서의 역사 전개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간격이 있고, 비합리적인 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창조, 선민의 선택, 남은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으로 좁아진 구속사의 선은 다시 제자들, 신앙 공동체, 세상으로 확대된다. 그러므로 성서적 구속사는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구원 섭리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구속사에 접근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2.2.2 구속사(Heilsgeschichite)의 이해 많은 신학자들은 구속사\"라는 표현에 대해 비동정적이다. Heilsgeschichite란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할 수 없고 그리 좋은 표현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신약 어디서도 \"구속사\"라는 표현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신약에 나오는 희랍어 는 세속적인 용법에서 계획, 관리, 가사(家事)라는 사상을 포함하고 있다. 능동적인 뜻으로 \"집안 일을 돌봄\"이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말은 더 좋은 표현이 없어서 \"구속사\"라고 부르는 것에 가깝다.그리고 영어로 번역 하면 management of a household; task, work, responsibility; (divine) plan의 의미이다. 그리고 이 말은 바울이 로마서와 고린도서에서 구원의 신적인 계획에 대하여 그가 받은 초자연적 계시에 대해서 말할 때 사용한 신적인 신비의 개념과 관련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바울 사도 자신과 그의 직분이 이에 속한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9장 17절에 \"나는 를 위임받았다\"는 구절 및 골1:25절과 엡3:2절 등에 지적되어 있다. 사도에게 나타난 신적 계획의 계시 및 그에게 맡겨진 위임은 그 계획에 속하고 따라서 구속사 자체 안에 속한다. 사도는 하나님의 신비의 청지기이다(
로마서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연구
로마서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연구 조병수 교수 로마서에는 성령에 관하여 대략 29번 정도 언급된다. 그런데 로마서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령의 세례라든가 성령의 충만같은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도 로마서는 은사에 대하여 말하고는 있지만 (롬 12:6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따라 상이한 은사들을 가지고 있는데\\\"), 고린도전서와는 달리 성령과 관련하여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서로부터 성령에 관하여 색다른 이해를 얻을 수가 있다. 1. 기본적인 이해 로마서에 나오는 성령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고찰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성령에 수식어가 붙는 경우에 대한 고찰이다. 형용사적인 수식어로는 주로 \\\"거룩한\\\"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롬 5:5; 9:1; 14:17; 15:13,16,19). 성령은 명사적인 수식어와 함께 성결의 영 (롬 1:4), 생명의 성령 (롬 8:2), 하나님의 영 (롬 8:9,14; 15:19), 그리스도의 영 (롬 8:9), 양자의 성령 (롬 8:15)이라고 불린다. 둘째로 성령이 수식어로 사용되는 경우에 대한 고찰이다. 예를 들면 성령의 새로움 (롬 7:6), 성령의 생각 (롬 8:6,27), 성령의 능력 (롬 15:13,19), 성령의 사랑 (롬 15:30) 등이다. 셋째로 성령과 함께 사용된 전치사에 대한 고찰이다. 성령과 함께 주로 사용되는 전치사는 세 가지이다: \\\"안에\\\" (롬 2:29; 7:6; 8:9; 9:1; 14:17; 15:13,16,19), \\\"말미암아\\\" (롬 5:5; 15:30), \\\"따라\\\" (롬 1:4; 8:4,5). 2. 신적 인격으로서의 성령 1)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성령이 성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부르는데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롬 8:9,14). 성령은 하나님과 무관하게 존재하시거나, 하나님없이 활동하시지 않는다. 성령의 존재는 하나님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해되며, 성령의 활동은 하나님과의 연계성 속에서 이해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더 나아가서 성령과 하나님의 밀접한 관계는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깊은 교통으로부터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며\\\", 성령은 \\\"하나님을 따라\\\" 행동하신다 (롬 8:27). 하나님은 성령의 사고를 인지하며, 성령은 하나님의 의지를 표준한다. 사도 바울은 고전 2:10에서 이러한 사상을 역으로 진술한다: \\\"성령은 모든것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한다\\\". 성령께서는 일반적인 일들을 인식하실 뿐 만 아니라, 구속과 관련된 특별한 일까지도 인식한다. 성령의 인식은 일반적인 것과 특수한 것에 미친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인식하시기에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과 성령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상호간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실현해나간다. 사도 바울은 특히 성령께서 하나님 나라의 문제에 깊이 개입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도 바울은 롬 14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음식윤리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롬 14:3)에 관하여 말하면서 경구적인 표현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 (롬 14:17)고 진술한다. 사도는 여기에서 무조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낳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비판하는 먹고 마시는 일이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의롭게 만들어주신 \\\"형제를 업신여겨\\\" 의를 깨뜨리는 것이며 (롬 14:9-10; 참조. 롬 4:25), \\\"형제를 근심하게\\\" 만들어 기쁨을 망가뜨리는 것이며 (롬 14:15), \\\"화평의 일\\\"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롬 14:19-20). 이러한 먹고 마심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지 못한다. 의와 평강과 기쁨을 이루지 못하는 먹고 마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망친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그것은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화평과 희락이다\\\". 사실상 의와 화평과 희락은 모두 하나님의 인격을 나타낸다 (롬 3:26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가 의롭다는 것을 보이신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충만하게 하신다\\\"). 절대적인 의, 절대적인 화평, 절대적인 희락은 오직 하나님의 인격에서만 나타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인격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으로 표현되며,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으로 실현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인격의 실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인격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식물로 망케\\\" (롬 14:15) 하는 인간적인 인격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화평과 희락같은 하나님의 인격으로 형제들을 \\\"세우는 일\\\" (롬 14:19)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이같은 하나님의 인격이 \\\"성령 안에서\\\" (롬 14:17) 실현된다고 말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인격을 표출시키시며, 성령께서 표출시킨 하나님의 인격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성립된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인격이다 (갈 5:22-23). 하나님의 인격의 삯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문제에 깊이 개입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실현해 나간다. 하나님과 성령 사이에는 이처럼 긴밀한 상호관계가 있다. 2)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그런데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을 정의할 때 예수의 부활과 관련하여 정의한다.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다 (롬 4:24). 칭의는 바로 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허락된다 (롬 4:24). 그래서 성령은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이의 영\\\" (롬 8:11)이라고 불린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신데, 특히 예수를 부활시키는 일에 관여한다.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주관자이시고, 성령은 동역자이시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에 관하여 말하면서 롬 1:3-4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분명하게 언급한다: \\\"(그의 아들은) 육체를 따라 다윗의 씨로부터 나셨고 (3), 성결의 성령을 따라 죽은자들의 부활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4)\\\"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정의함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이 두 문장을 비교할 때 잘 알 수 있다. 3절과 4절은 정확하게 대칭된다. \\\"성결의 성령을 따라\\\"는 \\\"육체를 따라\\\"에 대칭되며, \\\"다윗의 씨로부터\\\"는 \\\"죽은 자들의 부활로부터\\\"에 대칭된다. 사도 바울은 우선 예수께서 어떻게 육체적으로 출생하셨는지를 설명한다. 예수는 \\\"육체를 따라 다윗의 씨로부터 나셨다\\\" (3). 여기에서 \\\"육체\\\"는 악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후론 참조), 출생을 나타내는 자연적이며 물질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육체를 따라\\\"라는 말은 다시 \\\"다윗의 씨로부터\\\"라는 말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계보적인 설명이다. 예수의 육체적인 출생이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어떻게 예수께서 \\\"능력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는지를 설명한다. 예수께서는 \\\"성결의 성령을 따라 죽은 자들의 부활로부터 능력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4). 여기에서도 윗 문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따라\\\"라는 말은 다시 \\\"죽은 자들의 부활로부터\\\"라는 말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새로운 계보적인 설명이다. 예수의 영적인 출생이다. 성령의 활동과 부활의 성취는 예수께서 능력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일에 필요한 상이한 두 가지 조건사항이 아니라, 통일된 한가지 조건사항이다. 윗 문장에서 \\\"육체를 따라\\\"와 \\\"다윗의 씨로부터\\\"가 결속된 개념이듯이, 아래 문장에서 \\\"성령을 따라\\\"와 \\\"죽은 자들의 부활로부터\\\"도 결속된 개념이다. 다윗의 혈통으로부터 태어나신 것이 육체의 문제라면, 부활하심으로써 능력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것은 성령의 문제이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능력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일에 있어서 성령의 활동은 부활의 성취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능력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심에 있어서 성령께서 부활로 관련하신다고 밝힌다. 성령은 예수를 부활시키는 일에 관여한다. 그리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적인 아들로 인정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를 연결하는 끈 (vinculum)이다 (Augustinus)! 이러한 의미에서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롬 8:2) 영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 (롬 8:9)이라고 불린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령을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 선상에 놓듯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인격 선상에 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 대한 권면의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나란히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한다\\\" (롬 15:30). 3. 성도들을 위한 성령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은 성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신다. 특히 이것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로마서 전체에 나오는 성령에 관한 구절 중에 로마서 8장에만 삼분의 이 정도 (19번)가 들어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두 가지 일을 하시는 것으로 진술한다. 첫째로 성령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게 하며, 둘째로 성령은 성도들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한다. 이 사실은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성령에 대한 두 가지 수식어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로마서 8장을 두 부분으로 분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성령은 \\\"생명의 성령\\\" (롬 8:2) 이며, \\\"양자의 성령\\\" (롬 8:15)이다. 생명의 성령은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관계하게 하며, 양자의 성령은 성도들을 하나님과 관계하게 한다. 1) 생명의 성령 (롬 8:1-11) 우선 성령은 생명의 성령으로서 사람을 그리스도와 관계시킨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첫째로 성령은 사람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해방시키신다\\\" (롬 8:2). 죄와 사망의 법은 달리 말하면 육신이다 (롬 8:3). 왜냐하면 육신은 \\\"죄의 육신\\\"이기 때문이다 (롬 8:3 - 개역성경에는 \\\"죄있는 육신\\\", 표준 새번역 성경에는 \\\"죄된 육신\\\"이라고 되어 있음). 말하자면 육신이란 것은 죄를 짓는 인간의 연약한 본성을 가리킨다 (롬 7:14,25). 죄와 사망의 법이 다스리는 육신에 있을 때 인간은 그 정체가 \\\"하나님과 원수\\\"이며 (롬 8:7), 그 사업이 \\\"육신의 일\\\"이며 (롬 8:5; 참조. 롬 7:25), 그 결국이 \\\"사망\\\"이다 (롬 8:6; 참조. 롬 6:23). 그런데 생명의 성령께서 바로 이 죄와 사망의 법 아래 있는 육신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신다. 둘째로 성령은 생명의 성령이시기 때문에 사람을 자유롭게 한 후에 무질서에 빠져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게 한다. 생명의 성령이 임하시면 변화가 일어난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사람은 그 사업이 \\\"성령의 일\\\"이 되며 (롬 8:5), 그 결국이 \\\"부활\\\"이 된다 (롬 8:11). 왜냐하면 그 정체가 \\\"그리스도의 것\\\"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롬 8:9). 생명의 성령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롬 8:2) 성령이며, \\\"그리스도 영\\\" (롬 8:9)이시기에 사람을 그리스도의 것으로 만든다.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끈이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효과있게 자신과 결합시키는 끈이시다 (Calvin, Inst. III,1,1)! 2) 양자의 성령 (롬 8:12-30) 이어서 성령은 양자의 성령으로서 사람을 하나님과 관계시킨다. 이제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사람은 본래 죄의 종으로서 (롬 6:17), 자신을 불법과 부정에 드리고 (롬 6:19), 부끄러운 열매를 맺으며 (롬 6:21), 결국은 사망에 이를 존재이다 (롬 6:23). 그런데 양자의 성령은 바로 이같은 종의 신분으로부터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롬 8:14),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 (롬 8:15).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일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들에 부어졌다\\\"고 표현한다 (롬 5:5).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써 이루시는 구속적인 사랑이다 (롬 5:8). 우리는 연약하고 죄인된 상태에 있었다 (롬 5:8).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과 인간의 범죄한 상태는 단절적이다. 바로 이같은 간격을 성령께서 연결시키신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의 마음이 이어진다 (참조. 고전 2:10).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사랑을 표현하신 하나님과 연약하고 범죄한 인간을 연결시키시는 것은 오직 성령이시다!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양자의 성령은 이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신다. 한편으로는 성령께서 우리 곁에서 증거하신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함께 증거하신다\\\" (롬 8:16).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 (롬 8:15),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임을 확인시키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며 함께 고난을 받고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거하신다 (롬 8:17). 다른 한편으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 곁에서 간구하시는데, \\\"성령이 우리 연약함과 더불어 함께 계시기 위함\\\"이다 (롬 8:26).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이 탄식하신다. 우리가 탄식하면 성령께서도 탄식하신다. 우리가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성령께서 한편으로는 우리 곁에서 증거하시고, 한편으로는 하나님 곁에서 간구하신다. 성령은 우리 곁에 계시며 동시에 하나님 곁에 계신다!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분주하시다! 우리는 성령의 지대한 관심사이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는가\\\" (롬 8:35).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기에 환난 중에도 소망이 부끄럽지 않다 (롬 5:3-5)!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축복하고 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신약학/ 서신서 (21)/ 갈라디아서
신약학/ 서신서 (21)/ 갈라디아서 1.기본적인 배경 1) 서론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가장 위대하고,중요한 서신들 가운데 하나이다.그것은 사도가 실제로 가르친 것과 하나님의 계시로 받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갈1:12) 많은 사람들은 이 서신을 \\\"짧은 로마서\\\"로 서술했다.실로 로마서는 갈라디아서를 확대한 것이라 말할수 있다. 교회지도자들은 갈라디아서를 높이 평가했다.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고,신앙지도의 원천이 되었다. 종교개혁시대의 개혁자들에게 갈라디아서는 다른 어느책보다도 성경적 진리의 자유와 부흥을 위한 더 위대한 선언서가 되었다.이 서신은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서신이었다.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생활을 위한 힘과 자기의 개혁사업을 위한 무기고를 발견했다. 갈라디아서는 자체속에 지니고 있는 지극히 고차원적인 교리적 내용과 변증적 상격과 또한 시적 아름다움의 결여 때문에 항상 교회사의 몇몇 시대에 잘 알려지거나 열렬하게 총애를 받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의 그 본래의 기능을 발휘하게 되었고 초대교회가 그 속에 나타난 특수성을 알게 되었다. 개혁교회는 갈라디아서의 교리적 내용과 특히 믿음으로서만이 의롭다함을 입는다는 강력한 기술과 변증,그리고 율법주의의 어떤 형식에도 반대하는 영적 자유의 영광스런 변호를 항상 존중해 왔다. 교회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의 핵심에 대한 어떠한 공격에도 방어할수 있는 항상 견고한 성채가 되어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갈라디아서에서 처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이해하도록 도와준 바울의 위대한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가르침을 접하게 된다. 2) 저자 교회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음을 항상 믿어왔다.한두 사람의 극단적인 급진주의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갈라디아서의 순수성,즉 이 서신이 사도바울에게서 생긴 사실을 공격한 일이 없다. 고대나 현대의 성경학자들은 다같이 바울이 저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급진적인 비평가들은 바울의 특징뿐만 아니라 바울의 저작성까지도 동의했다.오늘날 저명한 학자들은 갈라디아서에 대한 저들의 저서에서 이 문제를 더이상 논의하지 않는다.이러한 입장에 대한 명백한 이유는 고대의 증명과 문어체와 교리적인 내용과 역사적인 배경과 문학적인 분석등 모든 가능한 고찰을 통하여 이 서신은 의심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대하는 자들도 있다. 브루노 바우어와 루돌프 슈텍을 위시하여 로만, 피어슨,나버,반마넨 등으로 구성된 급진적 화란 학파는 본 서신이 바울의 서신이 아니라,초대교회 안에서의 유대주의자들과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 사이에 일어난 2세기의 분쟁 결과 만들어진 것으로 바울 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기독교로 개종한 바울주의자들이 바울의 이름과 권위를 빌어 쓴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극단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바울이 저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수 있는데 그것은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를 통해서 살펴볼수 있다. 내적 증거로는 본서의 1:1-3과 5:2절에서본서의 저자가 사도바울임을 밝히고 있다. 그외에도 본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성격과 사상이 바울의 저작임에 틀림없는 로마서와 고린도전서등의 서신에 나타난 것과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본 서신이 완벽한 바울의 저작임을 증명하고 있다. 본 서신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에 걸쳐서 개인적이고 무의식적인 자서전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이방선교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는 사실과 같은 실재적인 역사적 상황으로서만 설명이 가능할 뿐이다. 외적 증거로서 1940년 무라토리에 의해 발견된 무라토리 단편과 A.D 4세기 초엽에 가이샤라의 주교로 있었던 신학자 유세비우스 및 심지어A.D 1세기 경의 영지주의자인 마르시온뿐만 아니라 그이후 19세기에일어난 튜빙겐 학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서신이 바울의 저작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본 서신이 누구의 저작인가를 판명하는 문제가 나올때 마다 언제나 바울의 저작이라고 판명되었다는 점이다.그것은 모든 시대를 일관하는 교회의 소신이며, 또한 오늘날에도 교회가 확신하는 바이다.이제까지 이 견해가 오류에 속한다고 입증할만한 뚜렸한 시비논증이 한번도 제기된적이 없었다. 갈라디아 서신이 바울적인 핵심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 표면에는 속사도 시대의 사이비 바울적인 껍질이 단단히 덮어 씌워져 있다는 타협적 제설들은 자체 모순의 부단때문에 무너지고 말았다. 저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름이 바울이라고 말한다(1:1,5:2) 본 서신은 분명히 하나의 단원으로 역어져 있다. 그것은 또한 바울이 생활하던 시대와 부합되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행15:1,고전7:19) 뿐만 아니라 이 편지는 매우 인간적이며,전체 내용이 그리스도안의 한사람을 조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동시에 감당할수 있을만큼 넓은 한 마음이 있으며,너무나 깊이 사랑하기에 책망하지 않을수 없는 자애로운 한 심정이 담겨있다. 그래서 갈1:15,16, 2:20, 3:1, 4:19-20등에 나타난 바울은 명백하게 롬9:2, 고전9:22, 10:33, 고후11:28, 12:15, 엡4:1, 및 빌3:18,19등에 나오는 그 사람, 바로 다소의 바울이다. 3) 수신자 본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사도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갈1:1-2). 옥중 서신인 에베소서를 제외하고는 본서가 특별히 교회의 한 집단을 대상으로한 유일한 바울 서신이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들의 교회는 어느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가? 과거 반세기 동안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 수 많은 논의가 있었고,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본서의 연대와 독자를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먼저 갈라디아서가 어디로 보내졌느냐? 이른바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중에 세운 로마의 행정지역으로서의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낸 것이냐? 아니면 갈라디아 인종의 영토에 있는 교회에 보내어 진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의 행정지역으로 있는 갈라디아 교회에 보냈다는 것은 남부 갈라디아설이라고 하고,바울이 갈라디아 종족들의 영토에 있는 갈라디아 종족들에게 보냈다는 것은 북부 갈라디아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갈라디아인이라는 소리가, 로마의 행정적 지칭이냐 아니면,종족적 지칭이냐 하는 문제가 대립된다. 그래서 이 두견해의 주장을 말하고 어느것이 유력하겠는가 보도록 하겠다. (1) 북부 갈라디아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의 견해를 근거로 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① 갈라다아 사람들 이란 용어의 통속적 사용 북 갈라다아 지역에는 본래 부루기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고올족이 이들을 정복하고,B.C3세기 말엽에 중앙 산악지역에 앙카라,페시누스,타바움, 등 세도시를 건립했다. 고올족은 자신들의 호칭을 자기들의 거주하는 지역의 명칭으로 삼기를 좋아했는데 여기에서 갈라디아 사람들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② 누가의 일반적 용법 누가는 밤빌리아,비시디아, 그리고 루가오니아 등의 지명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모든 지명들은 지리적인 위치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행16:6절에서 바울과 그 일행이 부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통과 하였다는 설명, 역시 누가가 그 지명들 역시 지리적 의미로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럴경우 갈라디아는 북부 갈라디아를 지칭한다고 할수 있다. ③ 남부 갈라디아의 여러 도읍들에 관한 누가의 설명 누가는 안디옥을 언급하면서 비시디아라는 단어를 덧붙였으며(행13:14) 루스드라와 더배는 루가오니아의 도시들로 묘사하였다(행14:6) 이같은 사실들은 갈라디아라는 지명 또한 로마의 행정구역의 명칭을 나타내려는 의도보다는 오히려,그 지역이 어디인가를 밝혀주기 위해 사용된것임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명칭을 가진 행정구역은 실제로 지리적 구역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 지역까지 확장되어 루가오니아,비시디아,그리고,브루기아의 일부까지를 포함한다. 그러나 누가가 모든 지역에 대해 행정구역 명칭을 사용한것 같지는 않다. ④ 사도행전 16:6절의 의미 북부 갈라디아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은 바울과 그의 일행이 브루기와와 갈라디아 지역을 통과 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지역이 아니고 두 지역이 언급된것을 볼때 갈라디아는 브루기아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가랄디아란 명칭은 행정구역상의 명칭이라고 볼수 없다고 주장되어 어 왔다. ⑤ 사도행전 18:23의 의미 이 구절은 바울이 제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기전,안디옥에서 얼마동안 머문뒤에 행한 선교활동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라이트푸트는 이 구절 역시 내용이 비슷한 행16:6절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경우 바울은 이 여행 초기에 북쪽 지역을 방문했을 것이다. 만일 이 두 구절에 대한 이같은 설명이 모두 옳다면,사도행전은 북쪽 지역에 여러 교회들을 세웠을 것이라는 강한 추측과 함께 바울 사도가 그 지역을 두차례 방문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⑥ 주민들의 특성 라이트 푸트는 갈라디아서의 나타난 독자들의 특성이 고올족의 특성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갈라디아인들은 술취함,인색함,분쟁, 자만심,분냄,방탕함,변덕 스러운 성향을 가진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다. 라이트추트에 따르면,고올족은 변덕 스러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는 갈라디아인들은 북부 갈라디아에 정착했던 고올족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지었다. ⑦ 이고니온을 떠난 뒤의 바울의 여정(행16:6절이하) 모패트는 누가가 사용한 통과했다는 말을 행18:23에 사용된 같은 단어와 꽌련지어 볼때 이 말은 복음을 전하며, 통과했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어를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바울이 북쪽지역에 몇개의 교회를 세웠다는 견해를 지지해 준다. 그리고 또 \\\"금지된\\\"의 의미를 살펴보면,바울이 이미 루가오니아에 있었을때,아시아에서 활동을 성령께서 금지 하심으로 어쩔수 없이 그는 북쪽 지역으로 밖에 갈수 없었다. ⑧ 이 견해는 초대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지지되어 왔다. ⑨ 본 서신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율법, 특히 할례문제는 남갈라디아에서 보다 이방인들이 대다수인 북부갈라다아 지역에 해당된다. 할례문제는 유대인들이 많은 남갈라디아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될수 없었다. (2) 남부 갈라디아설 19세기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고 내세운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사도행전16:6절과 18:23절의 색다른 해석 램지에 의하면,행16:6절에 브루기아-갈라디아 라는 지명이 나오는데 그것은 갈라디아의 로마 행정구역의 일부지역에 브루기아인들이 살았으며,지리적으로는 브루기아로 알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같은 내용인 18:23절은 갈라디아의 행정구역안에 있는 여러지역과 아시아의 행정구역에 인접해있는 브루기아란 지역의 일부를 나타낸다. 이 두 구절을 이같이 이해함으로서 램지는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북부 갈라디아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② 사도행전에 북부갈라디아 교회들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점. 사도행전은 갈라디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바울에 관해 아주 간력하게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에 기록되어 있는 그처럼 중요한 논쟁이 있었던 교회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는점은 참으로 이상하다. 더구나 이 교회들은 누가가 바울의 전도활동, 초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던 교회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모패트는 여기에 대해 반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누가가 특히 남쪽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고 있으나,북쪽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사실때문에 남부 갈라디아설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③ 북부 갈라디아 지역의 고립 갈라디아서에는 바울이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에 갈라디아 교회들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갈4:13) 그러나 이러한 방문이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믿기 어렵다. 왜냐하면, 북쪽 지역을 여행하는 일은 매우 험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회복기의 환자로서 북쪽지역보다는 남쪽지역으로 여행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램지의 견해가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④ 바울이 사용한 행정구역의 명칭 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들을 언급할때 교회가 위치해 있는 행정구역의 명칭들 곧 아가야, 아시아,마케도냐 등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이라고 한것도 그와 같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누가는 지리적인 위치의 명칭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바울역시 그와 같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바울은 여정을 기록할때 누가와 비슷하게 기술했지만 그가 세운 여러 교회들은 제각기 그 교회가 속해있는 행정구역별로 분류하였는데 이것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⑤ 남부 지역에 어울리는 갈라디아의 명칭 램지는 이 명칭 이외에 남쪽지역에 사는 여러 사람들에게 포괄적으로 적용될수 있는 다른 이른을 생각하기는 힘들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이 명칭은 조금도 인종적인 의미는 갖지 않으면서 그 행정구역내에 살고 있는 모든 주민들을 잘 묘사해 주는 명칭이라고 했다 더욱이 남부인들은 로마 시민권과 관련시켜 그 명칭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 했었다. ⑥ 사도행전16:6절의 분사에 대한 다른 해석 에스위드는 이 구절의 분사는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를 통과한 직후의 금지사항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다른 사례들을 인용하여 적절히 입증해 주었다. ⑦ 바나바에 대한 언급 갈2장에 세번이나 바나바의 이름이 언급되었다.(1,9,13절) 이것은 바나바가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인 경우 그 교회들이 남쪽에 있는 교회 일때 더욱 자연스럽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바나바가 바울과 동행한 것은 다만 제1차 전도여행 때였다. ⑧ 북부 갈라디아에서 온 구제 헌금의 모금 대표자가 없었다는 점 행20:4이하에서 바울 일행에 대한 언급은 둘다 남갈라디아에서 온 더배 사람 가이오와 루스드라에서 온 디모데였다. 그러나 북갈라디아지역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가 이 구제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고전16:1에 바추어 볼때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가이오가 갈라디아의 여러교회들의 대표자가 아니라면,적어도 디모데가 이 교회를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 매우 적절할 것이다. 분명히 고린도나 빌립보에서 온 대표에 관한 언급은 없다. ⑨ 갈라디아에 기록되어 있는 부수적인 내용들 갈4:14절의 하나님의 천사는 아마 행14:12의 간접적인 암시일 것이다. 또 주 에수의 흔적이란 표현은 돌로 맞는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남부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이 서신의 수신자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갈2:5절은 예루살렘에서 할례문제로 바울이 고전 분투한 것이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을 설립한 이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왜냐하며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고\\\"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복음이 이미 그들에게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암시해준다. ⑩ 유대 기독교인들의 활동 갈라디아서는 교회를 교란시키는 자들이 이방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의 관습과 규례들을 지킬것을 강요했던 유대 그리스도인들 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활동이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보여주는 가설이 더욱 호평을 받았고 또 그같은 가설은 남부갈라디아설을 뒷바침해 주었다. 그 이유는 유대주의자들은 북부와 같은 외진 지역보다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같은 여러 지역으로 바울을 미행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도행전은 그러한 유대주의자들이 남쪽지역에서 활동했으며, 또 그들의 활동이 예루살렘공회가 열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북부갈라디아설과 남부 갈라디아설을 소개 하였다. 그러면 어느쪽이 더 신빙성이 있으며, 정확한 걸일까? 이 두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인 배경과 연대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때 그래도 부루스가 강력히 주장한데로 남부 갈라디아설이 저울추가 조금 기울지 않겠는가? 생각된다. 더구나 사도행전에 보면,남부 갈라디아 교회들에 대한 언급은 많으나,이른비 북부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바울시대를 두고 말한다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바울이 여행한 것도 알지 못하고, 그러므로 거기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더더구나 알지 못하고,이런 이유들로 잠정적으로 남부 갈라디아설을 받아 들일수 밖에 없다. 4) 기록된 시기와 장소 이 문제는 그렇게 쉽게 간단히 처리할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매우 복잡하다. 아울러 갈라디아서의 저작시기는 수신지에 의해서 결정될수 있다. 그러면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북부 갈라디아설에 따른 저작연대 북부 갈라디아설의 입장에서는 이 서신이 매우 늦은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 맨 먼저 제안된 저작 연대는 에베소 전도 사역 초기이다. 주로 갈1:6의 타게오스라는 단어에 의해 갈라디아서가 바울이 방문한 직후에 신속하게 씌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저작 연대는 바울이 에베소를 떠난 직후에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라이트푸트는 갈라디아서가 로마서보다 먼저 씌어졌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이유는 같은 문제에 대해 로마서가 원숙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갈라디아서는 고린도 전후서가 기록된후에 씌여졌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고린도서에는 유대인과의 논쟁에 관한 암시가 전혀 없기 때눔이다. 따라서 라이트푸트는 이 서신을 제3차 전도여행 말기에 고린도에 보낸 서신으로 보았다. (2) 남부 갈라디아설에 따른 저작연대 남부 갈라디아설은 이 서신이 일찍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본다. 남부 갈라디아설은 갈4:13에 나오는 두차례의 갈라디아 빙문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두가지의 저작설이 생긴다. 먼저 두번째의 방문이 행16:6절에 언급된 것과 일치 한다면,갈라디아서는 예루살렘 공회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두번째 방문이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가는 길에 남쪽의 여러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를 방문했던 때인 행14:21절에 언급된 사실과 일치한다면 저작 연대는 예루살렘 공회 이전으로 결국 AD 49년경이 될 것이다. 또한 갈라디아서4:13절이 단지 한번만의 방문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바른 저작연대가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게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을 주의깊게 고찰해 봄으로서 결정할수 있다. (3) 예루살렘 방문 여기에는 두가지의 견해가 있는데 먼저 견해는 갈라디아서의 2:1-10이 사도행전15장의 예루살렘 공회방문이었다는 견해이다. 이는 전통적인 견해로서 두 방문간에 유사한 점들이 있다는 주장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다. 사도행전이나 갈라디아서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교회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또 두 경우 모두 그들은 강한 저항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들은 남부 갈라디아서를 지지하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도전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들의 항의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북부 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행15장과 갈2장의 내용을 같은 내용으로 볼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대해 분명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갈2:1절의 \\\"다시\\\"라는 말에 몇가지 의문점이 있고,더구나 갈2장과 행15장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층 더 난점은 베드로와 바울간의 논쟁이다. 그래서 결국 선택할수 있는 대안은 갈2장과 행15장은 동일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또하나의 견해가 있는데 그것은 갈2:1-10이 사도행전11:30절에 나오는 방문과 같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최근에 광범한 지지를 받는다. 갈2:1절은 문자적으로 바울의 두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 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견해는 갈라디아서에 예루살렘 공회의 법령들이 생략되어 있는 점에서 생기는 문제도 얼마든지 해결해 준다. 더욱이 안디옥 사건이 예루살렘공회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면, 베드로의 외식행위의 책임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은 가설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다. 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사역을 한지 1년쯤 되었을때 유대에 있는 교회의 상황을 듣고, 교회는 교회를 돕기위해 구제헌금을 가지고,예루살렘으로 가도록 바울과 바나바의 파송문제를 결정했다. ② 디도가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있었을때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에 관한 문제가 아주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다. ③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바울을 무할례자들의 사도로 보았다 그러나 바울에게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임무를 부여해 주었다. ④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함께 교제할 것을 권면하였다. ⑤ 베드로의 외식 사건 직후에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에게 전도사역을 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⑥ 바울과 바나바의 지도를 받는 안디옥 교회는 이와같은 중대한 문제를 논의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익명의 여러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대표자로 보냈다. 그래서 그 결정을 위한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은 주장들을 모두 받아 들인다면, 갈라디아서는 예루살렘 공회가 소집되기 전에 기록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첫번째 전도여행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오기 전에 보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도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음을 볼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볼때 그 시기를 대강 결정할수 밖에 없다. 첫째 이 서신은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공회가 있는 후에 기록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예루살렘 공회는 바울이 회심한지 약 14-17년 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보통 예루살렘 공회 연대는 AD48년이나 49년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한 연대는 아무리 이르게 잡더라도 AD48년 이전이 될수 없다. 둘째로 예루살렘공회가 있는 다음에 베드로는 안디옥을 방문하였고,이 방문 기간중에 베드로는 바울로 부터 면책을 받았다(갈2:11-14)고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본서신의 저작연대는 앞서 말한 것보다 다소 이른 시기가 될수도 있다. 세번째는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섰을 당시 그는 자유의 몸으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한 연대를 아무리 늦게 잡더라도 그가 이 자유를 잃은 이후는 될수 없다. 그런데 사도행전21장을 보면 그는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방문하던 기간중에 체포되었다. 이와 같이 보았을때 최고 추정 연대와 최신 추정 연대 사이에는 8-9년의 기간이 게제된다. 바로 이기간중에 바울은 두번에 걸친 전도여행을 하였고, 이 기간중에 아마도 본서신이 기록 되었을 것이다. 본서가 기록 되었다고 볼수 있는 장소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는데 첫째는 사도행전18:1-7절의 시기 다시 말해서 데살로니가 전서가 기록되기전후에 고린도에서, 둘째는 사도행전18:22절의 시기, 즉안디옥에서, 세째는 행19장의 시기에 에베소에서 혹은 네째로 행20:1-3의 시기에 마게도냐나 아가야에서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바울이 에베소에 오랬동안 머무른 것을 참작해 볼때 본서는 에베서에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5) 주제 및 특징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구원의 방법으로서의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와 은혜에 의한 구원을 뜻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사도의 가장 큰 염려는 갈라디아 사람들이 유일하고 참된 복음을 붙잡히는 일을 경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음을 분명히 알게 한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지 모른다. 그 복음의 진수는 \\\"사람이 의롭게 함을 얻는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요,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맘미암을줄 아노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의 대 주제는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의 복음을 그 훼방자에 대항하여,옹호하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는 로마서의 주제이기도 한다. 그 장편의 서신과 이 단편 서신사이에는 유사점들이 있다. 그런 반면 상이점도 있다. 로마서는 종요하고 장엄하게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모든 죄인을 위해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완전하고 값없는 구원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는 조용하다기 보다는 오히려,때로 맹렬한 어조로 이 영광스러운 복음을 그 훼방자들에 대항하여,옹호하고 있다. 그 훼방자들에 대한 본 서신의 징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 수신자들은 훼방자들에게 귀가 솔깃하여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사도의 질책들은 준열한 것이며, 동시에 대조법을 따른 것인데 이것이 바로 본 서신의 특징이다. 아울러 본 서신은 거짓된 교리를 강하게 논박하는 성격을 띠고 있으며, 바울 서신들중 고린도후서와 더불어 바울의 자서전적 특징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 신앙에 관한 핵심적 내용이 되는 윱법과 복음의 의미와 그 관계를 명쾌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관한 교리와 더불어 신앙의 실천적인 면에 말하고 있는 올바른 기독교 윤리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것들이 본서의 특징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2. 역사적인 배경 A.D 50년을 전후한 약 10여년간의 초기 교회는 가끔 교리적인 큰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복음이 주로 유대인에 의하여 유대인에게 전파되었을때는 교회가 평탄하게 발전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신들이 복음을 전하고,그곳에서 뿌리박기 시작하자 그리스도인과 모세의 율법 및 이미 하나의 제도가 되어 버린 유대교와의 관계에 대해서 적지 않은 문제들이 일어 났던 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문제들과 유대교의 특수한 전통과의 관계를 개의치 않고 교회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그 문을 열어 놓았던가? 교회의 범주를 모든 인류를 포옹할 만큼,넓혔던가? 아니면,교회는 단지 유대교를 이방세계에로 확장시킨것에 불과한 것이었는가? 보다 자세히 말해서 이방인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었는가? 이방인 신자는 할례를 받아야만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방 토양에 정착했던 모든 곳에서 즉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서 이와 같은 문제들이 점차 강력한 힘을 가지고 대두되었다. 갈라디아서는 소 아시아의 한 지역에서 있었던 이러한 형태의 갈등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갈라디아서는 또한 그 문제가 예루살렘교회의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어떻게 토론되어 졌으며,또한 어떻게 다루어 졌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같이 식사하는 것이 옳았는가? 또 음식을 같이 먹을수 있었을까? 유대전통이 선언했듯이 전통 유대인은 이러한 교제로 말미암아 더렵혀 졌는가? 혹은 그렇지 않았는가? 얼마동안 이러한 토론은 기독교의 통일성과 은혜를 전해주는 복음의 존속을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거의 혼자서 이러한 추세를 반대하고,그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예루살렘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공식적으로 거론 되었고 그 해결을 위한 바울의 안건이 지지를 받았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인 바울은 비유대사회에서 복음을 전했을때 유대 율법에 합당한가 하는 문제들을 일부러 제시하지 않았다.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두번에 걸친 설교를 했는데 그때마다 그렇게 했다. 사도바울은 이 지역에서 오직 복음만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들은 복음을 잘 받아드렸다. 그러나 바울은 얼마후에 갈라디아 교인들이 전에 그렇게도 잘 받아드렸던 복음을 이제 막 저버리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율법화 주의자들인 유대교의 교사들이 그곳으로 왔다. 그들은 주의 형제 야고보가 보냈다고 주장하면서 바울의 가르침이 교리상으로 잘못되었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방인들도 모세의 율법아래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 한분만으로는 부족하고,모세도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은총을 받기 위해서는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식을 듣자 바울은 의분할수 밖에 없었다. 그대로 버려 두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의 십자가가 헛것이 되고,기독교의 특성을 상실하게 되고,유대교 가운데 하난의 소종파가 될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화주의를 책망하고,갈라디아교회들을 되찾기 위해 이 서신을 쓴 것이다. 바울은 자기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에게 사도권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답변하기를, 자기의 가르침이 다른 인간적인 권위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자신이 사도임을 분명히 해준다는 점과, 때때로 다른 사도들이 그를 만났을때 마다, 그들은 그의 권위를 인정하였으며, 그는 베드로와 바나바까지도 포함한 다른 사도들이 가기를 주저했던 안디옥에 견고하게 머물러 있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았다. 또 그들은 대적하기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비난에 대하여 바울은 문제는 누가 율법을 지키고, 누가 지키지 않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간주해 주시는 데 기초가 되는 진정한 근거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 근거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다. 끝으로 바울의 대적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방종하는 생활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여기에 대하여 그들의 주장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기독교가 결코 성도들을 율법에서 꾀어 내 무가치한 것으로 인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성도를 예수께로 인도하며,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의 모습으로 그 성도안에 거하시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수 있는 새로운 성품울 그에게 주신다. 이러한 변화는 내적인 것이다. 3. 저술목적 이 부분도 수신자에 따라서 다르게 이야기 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먼저 남부 갈라디아설은 말하기를, 복음의 자유로 부터 재빨리 이탈하는 갈라디아인들의 행위가 바울을 크게 자극했다. 바울은 공식적인 인사말이나,감사를 표하지 않고 갈라디아서를 기록하였다. 또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특수하고 긴박한 상황에 처해있는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바울은 장차 교회사에 그리스도인의 자유헌장이 될 소중한 내용을 제시해 주었다. 북부 갈라디아설은 갈라디아교회의 상황에 대해 약간 다르게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 여러 갈라디아 교회들이 예루살렘공회에서 규례를 받았으나 유대 기독교인들이 그들로부터 은혜를 빼앗아 가는 것을 분명히 허용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서신의 저작 연대가 예루살렘공회 이후일 경우 그와 같은 가설은 남갈라디아설에서 필요하게 된다. 아무튼, 유대주의자들의 술책은 바울 사도를 불신하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주된 내용을 다루기 전에 자기를 넘어뜨리려는 여러 비난들에 대해 길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결론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갈라디아교인들은 세례를 받았고, 성령도 체험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본래 이교도들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그들이 전에 신봉했던 율법적 의식을 결합시킨 형태로 복음을 재구성하기 쉬운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예루살렘으로 부터 온 유대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서 율법주의를 강조하였을때 갈라디아교인들 가운데는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는 대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파급된 유대주의 선동가들의 해독을 제거하고,나아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재강조함으로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순전한 신앙을 되찾기 원하였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 기회에 자신을 비난하며, 대적하는 자들과 맞서서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참된 사도이며,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진정한 복음임을 천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계기와 목적 속에서 본 서신을 저술하게 되었다.
신약학/ 서신서(21)/ 고린도전후서
신약학/ 서신서(21)/ 고린도전후서 Ⅰ. 고린도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고린도전서속에 나타나 있는 자료가 바울에게서 온 자료이건 아니건 간에 바울이 고린도전서의 저자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되어 왔다. 더욱이 본서는 고등비평학자들에게도 가장 논란이 적은 책중의 하나로 인정받을 만큼 확실한 정경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볼때 바울 저작설에 대해서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먼저 내적 증거로는 본서의 내용가운데 바울이 저자라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나타난다(1:1-3,12-17; 3:4,6,22; 16:21) 그리고 본 서신의 문체와 언어,사상등이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 일치한다. 또한 고린도 교회가 본 서신을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여 본존해 온 사실도 바울 저작설에 대한 강한 입증이 된다. 그리고 본서에 언급된 사건들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고린도 전도 여행기가 일치한다. 한편 외적증거로는 로마의 클레멘트는 고린도인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본서를 축복받은 사도바울의 글이라고 칭송하였다. 또한 폴리갑의 빌립보인엑 보내는 서신을 비롯해 이레니우스의 이단 반박론,터툴리안의 이단 반박론,익나티우스의 서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저서등에서도 본서의 저자가 사도바울임을 증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라토리 단편과 마르시온경에서도 본서를 각각 바울 서신의 첫부분과 갈라디아서 뒤에 배치하여 바울이 그 저자임을 밝히고 있다. 2) 수신자 사도바울은 본 서신의 서두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있기를 원하노라\\\"(1:1-3)는 인사말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인사말을 볼때 본서의 수신자는 바울이 손수 개척했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주축으로 하여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받아 들였던 모든 성도들임을 알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본 서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대상으로 그 당시의 성도에게만 한정된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성도들까지 그 수신자로 포함한다. 3) 기록연대 및 장소 우리는 이 서신의 기록연대를 이 서신의 내용과 관련하여 추정할수 있다. 이 서신은 바울이 오랫동안 에베소에 체류하던 마지막 무렵에 에베소에서 기록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마게도냐를 방문할 예정이며,그 후에 고린도에 갈 계획이지만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무를 것이라고 고린도교회에 말하고 있다(16:5-8) 이 점과 관련하여 행19:20; 20:1,2의 언급과 일치하는 16:19절을 보면 이 서신은 A.D56년 곧 바울이 고린도를 처음 방문한지 5년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 증거를 보면,먼저 바울 자신이 이 편지를 에베소에서 썼다고 말하고 있다.(고전16:8,9,19) 둘째로 바울은 A.D51년 가을에 고린도를 처음 떠난후 몇년동안에 걸쳐서 이 편지를 썼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아볼로가 고린도에 체류한후, 그리고 바울이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로 보내고 디모데를 고린도로 보낸후에 씌여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진전되어가고 그들의 소식이 바울에게 전해지기 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걸렸다. 이 편지를 고린도교회로 전한 사람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고린도전서16:17에 의하면, 이 편지의 전달자들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인듯하다. 그들은 고린도에서부터 바울에게로 와서 바울과 함께 지내었다. 고린도전서 16:18절에서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 세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라고 말한점으로 볼때 그들이 고린도로 다시 돌아갔다고 결론짓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이 세사람 편에 고린도전서를 고린도교회로 보냈다고 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4) 신학적의의 및 가치 몇가지 점에 있어서 바울과 고린도교회는 매우 특별한 관계를 띠고 있다.그는 이 교회를 세웠으며,동시에 이 교회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 하였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근심하게 했었다. 바울은 이교회를 매우 지혜롭게 처리해야 했으며, 따라서 바울은 이일을 위하여 오래 참고 견뎌야 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는 때때로 바울에게 깊은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 교회가 날로 확장되며, 주위에 영향력을 미치기를 소망하였다. 따라서 이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은 특별히 강했다. 그래서 이 서신은 그의 개인적인 성품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이 서신의 특별한 관심은 분명하게 이교와 투쟁하는 기독교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방사회속에 설립된 교회의 실천적인 문제들과 기독교 사회속에 세워진 교회의 실천적인 문제들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고린도전후서응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전서에는 몇가지 신학적인 사실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예배드리는 교회의 공통적 신앙규범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상 생활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바울은 15장에서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믿어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제시해주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시키고 있다. 또한 11장에서는 주의 만찬의 교리를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으며,동시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지한 마음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할라고 충고해 주고 있다. 바울은 5장과 6장에서 그 교회내의 근친 상간 행위와 간음 행위를 엄한 말로 비난 하였고,모든 성적인 부도덕한 행위를 나무랐다. 그리스도인이 결혼을 해야 할것인지,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 또한 그리스도인이 결혼한 상태에서나 결혼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실제적인 지침을 말하고 있다. 6장에서는 믿는 성도가 다른 성도를 세상법정에 송사하는 것과 같은 곤란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그리스도인답게 중재할 것을 제안하였다. 8장과10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다른 형제에게 행해야 하는 책임과 대조해가며,성도의 자유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교회론의 분야로서 교회에서의 바른 예배 행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은사와 교회를 위해 그러한 은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12장부터 14장까지 자세하게 상술해 주고 있다. 2. 역사적 배경 1) 일반 역사적 자료 및 고고학적 자료를 통한 배경 고린도의 역사적 배경을 살피면서 먼저 일반적인 역사적 자료를 통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것 같다. 먼저 고대의 고린도시는 북동쪽의 아티카와 남쪽의 헬라땅 펠로폰네소스 사이에 있는 지협에 위치해 있었다. 고린도시를 두고 동쪽으로 8Km정도 떨러져 에게해가 있으며,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가 있다. 고린도의 동편항구 겐그레아는 살로니카 만에 접해 있었고 서편은 고린도 만에 접한 레게온 항구가 있었다. 고린도는 이처럼 바다가 인접해 있었고, 북동쪽으로 72Km밖에 떨러지지 않는 가까운 지점에 아덴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전략적인 상업중심지와 군사 요충지로서의 역활을 담당했다. 고린도 시는 아프로디테 신전을 모시고 있는 높이 540m나 되는 높은 암석 요새인 아크로 고린도의 북쪽 가파른 경사지 아래 위치해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고린도는 소아시아,수리아 베니게,애굽에서, 온 배들을 비롯하여,이달리야,시실리,그리고 서버나에서 온 배까지도 드나 들었다. 고린도는 \\\"바다의 교량\\\"이라고 불리우기도 했고,또한 \\\"펜로폰네스의 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고린도를 부유하고,모든 것이 풍부한 도시로 생각했었다. B.C 3000년 후반기경 청동기 시대에 고린도를 비롯한 전헬라 지역에 헬라인의 선조로 생각되어지는 이주민들이 칩입해왔다. 그때 부터 고린도에는 새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이후의 모습은 잘 알수 없으나,고린도는 트로이 전쟁시대 호머가 그 도시를 부유한 고린도 라고 묘사할 정도로 대단한 번영을 이루었던것 같다. 철기시대동안 고린도는 영토도 확장되고 부도 증가 되었다.B.C800년경 고린도는 경제적 중심지와 군사적 중심지로서 상당한 지위를 획득 하였다. 헬라도시 국가들 사이의 세력 다툼 속에서도 또한 마게도냐의 필립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더 대왕의 지배하에 전헬라가 종속되는 와중에서도 고린도의 지역적 중요성은 더욱 빛났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후 헬라가 마게도냐의 지배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던 차에 로마가 개입하게 되었고, 고린도는 B.C146년에 루기오 무미오가 이끄는 로마인들에 의해 멸망 되었다. 그후 B.C46년에 쥴리어스 시이져에 의해 재건되어 콜로니아 라우스 줄리아 고린투스 라고 불리우게 되었다.시이져는 고린도에 퇴역한 로마 군인들과 자유민을 이주 시켰다. 아구스도 통치 이후 시대로 고린도는 로마식 건축 양식을 비롯한 로마식의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고린도는 로마가 통치하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다. 로마의 통치를 받고 정치적 중심지로서 역활을 담당하는 동안 고린도는 또다시 번영을 이루었다. 고린도는 해상 무역 및 발달된 예술과 산업을 통해서 거대한 수입을 얻었다. 고린도의 도기와 고린도산 놋쇄는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포세이돈 신전에서 열린 이스드미안 경기의식은 헬라식 생활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바울은 아마도 A.D50 가을 즉 지식이 고도로 발달한 아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직후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도덕적으로 문란한한 이 고린도시를 방문했던것 같다. 사도바울이 A.D 50년에 고린도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로마총독 갈리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사도행전18:12절과 A.D52년 1월과 8월 사이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델피에 있는 글라우디오 황제의 비문에 새겨진 아가야 지방의 총독 갈리오에 대한 기록을 봄으로서 확증할수 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사도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 추측할수 있듯이 고린도 교회내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유하였다. 그런가 하면 상인방 벽돌이 읽을수 있을 정도로 히브리인의 회당이라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는 점은 고린도에 회당이 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시장의 한가운데는 심판대 즉 재판석이 있었다. 아폴로 신전을 포함하여 오늘날에도 그 유적지를 볼수 있는 많은 신전과 사당외에 시의 북쪽과 서쪽에 두개의 극장이 세워져 있었다. A.D10세기 경까지 베마의 페허 위에 한 교회가 존재했었으나,베마의 상부구조에는 그 당시 벌써 무너져 있었다. 그러나 시장 동편에 위치한 쥴리안 바실리카에서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명문에는 성바울의 교회 라는 문자가 새겨져 아마도 베마의 페허위에 세워졌던 교회에서 나온듯 하다. 2) 신약시대의 고린도 신약시대에 고린도는 아가야 라는 로마행정구역의 수도였으며,그 지역 총독의 거주지였다. 사실상 바울 시대에 고린도는 그리이스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 도시는 B.C146년 뭄비우스 집정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소수의 신전들과 기둥들만이 남았다. 그때오 부터 1세기가 지난후에 항구와 군사기지로서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쥴이어스 시이져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이탈리아인들을 거주하게 하였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자유민 이었다. 이 도시는 급속히 성장하였다. 고린도시는 매우 자유 분방하고 복합적이며, 신분이나 형식같은 것을 그다지 중요시 하지 않는 비교적 민주주의적인 사회였을 것이다. 이런것은 본 서신에서도 볼수 있다. 즉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분파 및 분쟁, 부도덕한 범죄 행위,은사의 오용등은 바로 이러한 고린도인들의 성격이나 사회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고린도는 무역항이었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고린도의 또 하나의 고유한 특성은 고린도의 귀족들,지배계급들은,가문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부유한 사람들, 즉 상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옛날의 명예로운 혈통이 가져다주는 권위의식이나 훈련된 지성, 혹은 예술적 재능 같은 것이 없었다. 무역은 아무런 창의력이나 도덕성을 키워주지 못한다.그것은 다만 물건들을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개 사물을 자신의 상업적 사고로 대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 대신에 물질을 숭배하고,명예보다는 이윤을 더 추구하고,저울에 달면 무게가 나가지 않는 정신적 능력이나,도덕적 힘,영적 소망과 같은 것들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 고린도의 상인들중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 이었다. 그런가 하면 퇴폐적인 모습도 나타나고 있었다. 방탕함이 만연했으며, 거리뿐 아니라 신전에도 창녀들로 들끓었으며,그 창녀들의 상당수는 아프로디테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들이었다. 이도시는 자생적인 것이든, 이식된 것이든 간에 온갖 해로운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났고 사치와 방종이 조장되는 악의 온상이 되었으며,결국 타락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3) 고린도교회의 설립경위 및 상황 고린도 교회의 설립겨우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고린도인들이 처음으로 복음을 대하게 된 시기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도중인 A.D50년 경이다. 그 당시 아덴으로 부터 이곳으로 왔던 바울은 처음에는 타락하고,부패한 이 도시의 죄악상을 목격하고,심히 두려워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박히신것을 전파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후에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라는 훌륭한 동역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얼마 안되어 마게도냐로 파견 되었던 디모데와 실라가 돌아옴으로서 본격적으로 고린도의 복음 사역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규례대로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대상으로 성경을 강론 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는데 유대인들로부터 격렬한 반대를 받아 급기야는 이방인에게로 돌아가리라고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바울은 회당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라는 이방인의 집으로 옮겨 회당장 그리스보를 비롯해 많은 고린된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는데 이것이 바로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이러한 경위에 따라 설립된 고린도 교회는 좀차 여러가지 내외적인 문제와 신앙 윤리적인 논쟁으로 인해 일대 혼란을 겪게 되었는데 그 심각성은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까지 이르렀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이 도시의 주민들의 성격이나,환경에서 추측할수도 있지만 우리는 본서와 고린도 후서의 내용을 통하여 그 상황을 보다 확실하게 추측할수 있다. 이 도시의 주민은 어느 도시보다도 다양한 부류로 구성 되었다. 즉 쥴리어스 시이져에 의하여 이주한 식민 이민단들의 후손, 대도시 고린도에 매혹되어 몰려든 헬라인들,유대인들, 그리고 로마 제국의 모든 지역으로 부터 이방인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고린도 주민들이 지닌 특성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단연코 그리이스적인 특성이었다. 그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아마도 유대인이 아닌 그리이스인 이었을 것이다. 오랜세월 동안 그리이스인들은 사색하기를 좋아했으며,상상력이 풍부했고,쾌락을 즐겼으며,파당성을 띠는 드으이 특징을 지녀왔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고린도 교회는 믾은 유대인 개종자들과 더불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세련된 이교적 교육을 받았으며,방탕으로 인도하는 온갖 유혹에 둘러싸여 있었으며,비록 최고선은 아닐지라도 선한 가치를 지닌 쾌락을 추구하도록 배웠으며,많은 철학자들과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 따라서 본서에 묘사된 고린도 교회도 분명히 이러한 특성을 보여 준다. 그들은 바울파 아볼로파,게바파, 그리스파로 파당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고린도 교회의 또 다른 커다란 죄악은 여러가지 형태로 제7계명을 범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철학자들 까지도 이런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종교의식과 축제에는 다양한 음행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종교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고린도교회의 자유로운 경향은 이들이 이교의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과 이교의 종교적인 축제에 참여하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도 거리낌없이 먹고, 신전에서 거행하는 축제에도 참석하는 일에 익숙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공중집회를 하는데 있어서도 각파마다 무질서하게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가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 안에는 많은 순전하고 모범적인 교인들이 있었으며, 이교회를 무질서 하게 하는데 다소 책임이 있던 무리들 가운데도 굳은 믿음을 지니고,경건한 생활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다고 여김을 받는 이들에게 문안하며,이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동시에 하나님이 이들을 주 예수의 날까지 흠이 없이 보전하시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언급하게 있다. 3. 저술 목적 바울이 본 서신을 기록한 목적은 1:11과 16:17절을 통해 나타나는 다음 두가지 사실에 있다. 첫째로,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의 보고를 통해서 제기된 고린도 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주고자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 문제들이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 바울의 사역에 대한 오해(1-4장),근친상간과 간음죄를 비롯해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들(5장),법정에서 다른 성도들을 송사하는 비 그리스도적인 행위(6장)등이다. 둘째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대표자들에게서 온 편지(7:1)를 받고 거기에 제기되어 있는 몇가지 질문에 답변을 주고자 본서를 기록하였다. 그 질문 사항들은 혼인에 관한 문제(7장),우상의 제물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오해함으로서 생기는 방종한 행위에 관한 문제(8-10장),공공 기도시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무질서한 만찬, 성령의 은사의 활용등과 같은 예배에 관련된 여러가지 무질서한 행위들에 관한 문제,(11-14장),그리스도의 부활 및 육체의 부활에 대해 그릇되게 이해하는 문제(15장) 등이다. Ⅱ. 고린도후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및 수신자 본서의 저자는 바울이라는 견해가 정설로 되어 있다.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 학파의 기수로서 13권의 바울서신중 무려 9권을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튀빙겐 학파의 창시자인 바우르 조차도 본서를 고린도전서, 갈라디아서,ㄹㅎ마서와 함께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했다. 본 서신이 바울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알려주는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를 살펴보기로 하자. 내적 증거로는 본서의 내용에도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바울이라고 두번 언급되어 있다(1:1; 10:1) 외적증거를 든다면,폴리갑, 이레니우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그리고 터툴리안과 같은 초대교회 교부들은 본서를 바울의 서신으로 인용했다. 또한 본 서신은 마르시온의 아포스톨리콘과 무라토리 단편에도 바울의 서신으로 수록되어 있다. 본서의 수신자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었다(1:1). 2) 기록연대 및 장소 본 서신의 기록연대는 고린도전서의 기록연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여러가지 자료를 통하여 잠정적으로 결론에 도달할수 밖에 없다. 첫째로,고린도 전서는 봄, 아마도 유월전 직전에 씌어져 고린도 교회로 보내졌을 것이다.(고전5:7-8, 15:20절 참고) 둘째로 고린도후서는 아마 가을에 씌어졌을 것이다.(행20:6, 20:3, 고후12:14, 13:1을 참고하여 보면 암시한다) 세째로 고린도 전서와 후서는 18개월 이상의 시간적인 간격을 사이에 두고 씌어졌을 것이다. 물론 같은 해로 추정할수 있겠지만 고전16:6절에 언급되어 있는 겨울이 행20:3절에 암시되어 있는 겨울로 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후1:15,16절의 기록되어 있는 계획과 사실상 다를바 없는 잠정적인 계획을 말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후8:10; 9:2절의 지난해가 6개월의 시간적인 간격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상의 것들을 종합하여 보면, 고린도 전서는 A.D55년 봄에 보내졌을 것이고,고린도후서는 A.D56년 가을에 보내졌을 것이다. 반면에 고후10-13장이 고린도후서1-9장보다 더 이후에 씌여졌다고 한다면,이 마지막 네장은 A.D56년 가을부터 씌여졌을 것이고, 처음 아홉장은 A.D55년 가을과 A.D56년 초가을 어간에 보내졌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발생한 주요 사건들의 잠정적인 연대를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수 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A.D 55년 봄 가슴아픈 방문 A.D 55년 여름 혹은 가을 준엄한 편지 A.D 56년 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남 A.D 56년 봄 바울이 바게도냐에 도착함 A.D 56년 여름 디도가 마게도냐에 도착함 A.D 56년 여름 고린도후서 A.D 56년 가을 그리고 바울이 이 서신을 쓴 장소를 보면 고린도후서 안에 언급되어 있는 몇 귀절들은 바울이 이 서신을 쓸때 마게도냐 지역에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7:5; 8:1; 9:2-4)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고린도후서가 \\\"빌립보로부터\\\" 씌어졌음을 명기해 놓은 이 서신의 필사본들에 의해 확증되고 있다. 또한 고린도후서의 \\\"마게도냐\\\"는 빌립보를 의미하고 있다(빌4:15절 참고) 3) 통일성 현대의 일부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의 통일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본 서신이 고린도에 보낸 바울의 초기 편지들의 단편을 하나로 묶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그들이 근거로 삼는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고린도후서2:14-7:4절의 말씀이다. 몇몇 학자들은 본서신의 6:14-7:1절을 제외한 2:14-7:4부분을 \\\"준엄한 편지\\\"이전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독립된 편지라고 주장한다. 둘째는 고린도후서6:14-7:1절의 말씀이다. 이들이 문제를 삼는 이유는 이 귀절은 독립적인 단위를 형성하고 있으며,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대해 어떤 특별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귀절은 6:13로부터 7:2절에 이르는 사상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 귀절은 자유의 사도인 바울과는 온당치 않게 바리세파 사람들의 배타주의를 밝혀 놓은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이귀절은 쿰란 종파의 신학과 매우 흡사한 점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바울의 사상 전개 방식이 현대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전혀 문제시 되지 않는다. 세째는 고후 8-9장이다. 어떤 학자들은 9장은 8장의 중복일뿐만 아니라,바울이 고린도가 아닌 아가야의 기독교 공동체들에게 보낸 독립적인 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주장은 증거가 없으며, 그런 선입견을 버리고 8,9장을 대한다면, 단순한 반복이 아님을 알수 있을 것이다. 네째는 고린도후서 10-13장의 말씀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고린도후서 10-13장이 고린도후서 1-9장보다 이전에 씌여졌다는 견해가 있으며, 고린도후서10-13장이 고린도후서 1-9장보다 이후에 씌여졌다는 견해가 있다. 이들의 주장은 공통적으로 본 서신10:1에서 어조가 전환되어 있다고 보고 본 서신이 1-9장과 10-13장의 독립된 부분이 결합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본서의 전후 문맥과 내용을 볼때 이러한 견해들에 대한 뚜렸한 증거를 찾을수 없다. 이상에서 볼때 일부 학자들의 견해는 본 서신이 단일 편지이기 때문에 어떤 불일치의 흔적이나 변동이 있을수 없다고 인정한 초대교부들이나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의 전통적 견해와 배치된다. 뿐만 아니라 본 서신의 일부가 고린도 교회의 실제 상황과 다르거나 모순이 있다는 그들의 견해는 바울 당시의 고린도 교회 상황이나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지극히 단편적이고,적은 일부분의 자료만을 가지는 여건을 고려할때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고린도후서가 통일성을 지닌 한편의 서신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그 논증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고린도후서가 원래 두 서신이었다가 한 서신으로 나중에 합본되었다는 가정을 허용할 만한 사본상의 다양한 증거가 없다는 점, 둘째는 1-9장에 감사에 넘치는 어조가 나오지만 그러나 이 어조만이 이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1:23절참고) 또 10-13장에 과격한 어조가 나오지만 그러나 이 어조만이 이 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은 아니므로(12:20절참고) 이 두 부분이 양립할수 없다는 점을 거의 극소화 시킨다는 점. 세째는 10-13장이 1-9장보다 연대적으로 빠르다고 하며,과격한 편지의 일부가 바로 10-13장 이라고 보려는 시도는 본 서신의 통일성을 지지해 주는 사본의 증거로 미루어 보아 아직 확실한 견해가 되지 못했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과격한 편지의 일부가 현존한다고 시사하는 주장들의 불확실등이다. 4) 특별한 문제들 [1] 가슴아픈(혹은 중간) 방문 ① 사실성 고린도 후서의 몇몇 귀절들은 바울이 이미 고린도를 두번 방문했으며,그 두번째 방문이 가슴아픈 방문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후12:14과 13:1,2절은 이전에 두번 방문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고후2:1과12:21은 이전에 있었던 두번의 방문중 한번은 근심스러웠다고 말한다. ② 방문시기 가슴아픈 방문에 관해 고린도전서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고린도후서에서는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은 똑같은 결론, 즉 가슴아픈 방문이 고린도전서와 후서가 씌여진 어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바울은 디도로부터 준엄한 편지의 결과를 듣고서 고린도후서를 썼기 때문에 가슴아픈 방문은 고린도전서를 보낸후와 준엄한 편지를 보내기 전에 이루어졌다. 즉 바울이 준엄한 편지를 보낸후에 고린도교회를 방문한 것은 아니다. ③ 방문의 동기와 목적 그리고 결과 고린도교회가 고린도전서를 받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때에도 교회안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마도 바울을 추종하는 자들은 바울의 적대자들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로 부터 달갑지 않는 소식을 받고 고린도전서의 효과를 보완하는 편지를 서둘러 보내야 했고 유대주의적인 거짓사도들이 고린도에서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더이상 손상시키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가슴아픈 방문기간에 일어났던 일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바울은 음란한 죄를 지은 사람들을 꾸짖으기는 하였겠지만 징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다시가면 용서치 않으리라(고후13:2)의 경고를 보면서 알수 있다. 그리고 바울은 아마도 외부에서 교회로 들어온 자나,혹은 고린도출신의 교인들에게서 모욕을 당한것 같다. 그래서 그는 가슴아픈 방문이라고 말한것 같다. 아무튼 짧은 방문을 통해서 그는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일로 인하여 금심하였다.(고후2:5-11; 7:12) 그래서 바울은 디도를 상당히 설득한 다음(고후7:14) 자신의 개인적인 사절로서 준엄한 편지를 전달하고 연보를 모금하도록 고린도 교회로 보냈다. [2] 준엄한 편지 \\\"내가 큰 환란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2:4)\\\" 바울은 준엄한 편지 ,근심케 한 편지, 혹은 눈물의 편지로 알려져 왔던 것을 이와같이 묘사했다. ① 목적 준엄한 편지를 쓴 일반적인 목적은 고린도 교회를 깨우쳐 불의를 행한자를 훈계하게 하려는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고린도후서는 이 편지를 쓰는 4가지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로,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다시 가슴아픈 방문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1:2-2:4) 둘째,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알리기 위해서다. 세째로,바울은 그들이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순종하는지 시험하려고 했다. 네째 바울은 영적 아버지인 바울을 위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참된 관심과 사랑이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나타나게 하려고 했다. ② 결과 이 편지의 결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뉘우치고,염려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다시 오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의분케 했던 수치스러운 일을 했던 자들을 처벌하기에 몰두했다. 바울은 불의를 행한 자들을 처벌하는 일을 멈추고 이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의 죄를 뉘우친 불의한 자를 용서해 주기를 원했다(고후2:6-8) ③ 준엄한 편지란 무엇인가? 준엄한 편지란 어떤 편지를 두고 하는 말인가에 대한 3가지 견해가 있다. 먼저 고린도전서라는 견해가 있으며, 또하나는 고린도후서10-13장의 내용을 수록하고 있는 편지라는 견해와 마지막은 분실된 중간편지라는 견해이다. 이상과 같은 3가지의 견해 중에서 3번째 견해가 지배적임을 알수 있다. [3]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 A.D 52년부터 A.D57년까지 예루살렘 성도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자신이 세운 이방교회들에서 연보를 모금하기에 자신의 상당한 시간과 정열을 쏟았다. ① 기부자들 사도행전20:4절이 모금한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 바울과 함께 마지막 방문지인 예루살렘에 동행했던 자들 즉 몇몇 니방교회가 임명한 대표자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② 수혜자들 구제금은 가난한 자들로 지칭해온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었다. ③ 바울에게 있어서 연보모금이 주는 의미 이것은 먼저 형제애를 들수 있겠다. 그리고 연보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임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이방전도를 미심쩍게 여기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던것 같다. 또한 연보를 통해 동지중해 연안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절정을 이루게 해주었으며,바울이 약속했던 것을 이행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④ 연보의 수락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이 구제 연보를 거절하지나 않을까 염려 하였지만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때 예루살렘 성도들은 그 구제 연보를 기쁨으로 받아드렸다. [4] 고린도 교회의 바울 적대자들 ① 적대자들은 누구인가? 몇몇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적대자들과 고린도 전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적대자들이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구별되어야 한다. 바울의 적대자들이 유대인들이었다는 주장은 널리 인정되고 잇다. 그러나 그들이 유대주의자들 이었을까? 하례가 구원의 선행조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유대주의자라고 정의 한다면 바울 적대자들은 유대주의 자들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고린도후서는 할례에 대한 논쟁을 벌인 어떠한 흔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원이나 그리스도안의 한형제됨의 기븜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관습을 강요하려는 사람을 유대인이라고 정의 한다면, 유대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일수 있다. ② 적대자들과 예루살렘과의 관계 고린도 교회의 바울의 대적자들과 예루살렘교회, 특히 세 기둥 사도 혹은 열두 사도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여기에는 세 견해가 있음을 볼수 있다. (1) 예루살렘에서 공식적으로 파송된 자들 (2) 열두사도의 인지와 묵인으로 예루살렘을 떠났지만 열두 사도의 뜻을 잘못 전했던 일부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파송된 자들 (3) 유대주의의 강령을 지키기 위해 유대로 부터 스스로 들어와 열두 사도 특히 베드로의 권위에 호소했던 자들. 학자들은 각각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세번째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본다 그 근거로서 몇가지를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들이 팔레스타인 출신이었다는 것을 추론해 볼수 있다(고후11:22과 빌3:15절을 비교) 둘째는 아마도 우리는 고후11:5과 12:11절의 지극히 큰 사도들과 11:13절의 거짓사도들을 구별할수 있다. 세째로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은 열두 사도의 인증없이 열두 사도들의 권위를 빙자하여 행사하기도 하고,다른 사람들은 특 정한 위임장 없이 예루살렘을 떠났던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고린도 교회의 한 당파는 베드로의 이름을 빌어서 예루살렘에 호소한 선례를 이미 남겨 놓았다. ③ 적대자들의 가르침 바울 적대자들의 첫째 목적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서서히 약화시켜 무너뜨리려는 것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바울의 추방,적어도 고린도교회 안에서 만은 추방시켜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종으로 신임을 얻으려는 의도로 교인들을 가르쳤다. 2. 역사적 배경 이 부분에 대한 것들의 자세한 내용 즉 고린도시와 교회에 대한것들은 고리도 전서의 역사적 배경을 참고 하기 바란다. 여기에서는 다만 바울의 에베소 전도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하기로 하겠다. 바울의 전도여행중에서 에베소와 그 인근지역에서 보냈던 30개월 내외의 기간만큼 정확히 재구성하기 힘든 기간은 없을 것이다. 이 기간은 소란스러웠던 기간이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많이 가졌으며,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베풀고,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 시켰다. 바울은 복음전도에 획기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이에 병행하여 그를 시기하는 적대자들도 많았다. 더메드리오 소동이 실제로 바울로 하여금 에베소를 떠나게 한 원인이 되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던 것은 말할것도 없고 아데미 신전의 신봉자들의 자신에 대한 적대감이 극도에 달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음에 틀림없다. 3. 저술목적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데에는 몇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첫째 바울은 디도에 의해 전달 되었고 보완되었던 자신의 준엄한 편지에 대해 고린도교회 성도드르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 자신에게 대단한 위로와 기쁨이 되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둘째는 자신의 다음 방문전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예루 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그들의 약속된 연보를 완수하도록 권면하고 싶었다. 세째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자신들을 시험해 봄으로서 곧 있을 바울의 방문을 준비하도록 하고 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참사도와 거짓사도들을 구별하는 타당한 기준을 찾을수 있으며,바울도 훈련시켜야 할 수고를 덜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음과 같은 부수적인 목적들도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이 아시아에서 당한 심한 환란을 알려서 앞으로의 전도여행을 위해 그들이 기도해 줄것을 청하고 싶었으며,바울은 그가 여행계획을 변경한 이유를 말하고 싶었고 잘못을 뉘우치는 불릐를 행한 자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다시 사랑하도록 권면하고 싶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우상을 섬기는 어떤 자들과도 교제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싶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참 본질과 고귀한 소명을 기술하고 싶었다. 그런가 하면,자신의 사도직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함과 고린도 교인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에서 본 서신을 쓰게 되었다고 말할수 있겠다.
신약학/ 서신서(21)/ 로마서
신약학/ 서신서(21)/ 로마서 1. 기본적인 배경 1) 저자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썼다는데 대해서는 큰 이론이 없다.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와 함께 바울의 가르침에 중요하고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해주는 네 서신중의 하나이다. 바울과 로마서의 저자 갈라디아서의 저자,고린도전후서의 저자가 동일인물로 명백하게 인정되어 오기 때문에 어떤 신학적 목적을 위해서 이 서신들의 저자를 문제삼는 것은 유익하지 못하다. 2) 기록장소와 연대 바울의 활동과 관련된 연대는 거의 확실치 않다. 그러나 몇몇 확실한 연대들 가운데 하나는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려고 고린도에 온 A.D51년 여름이다. 이 일후에 바울은 고린도에 \\\"여러날\\\" 유하였다.(행18:18) 그는 아마 52년 봄에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에 갔으며, 돌아오는 길에 안디옥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그해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56년 말기에 그는 고린도에서 석달을 보냈으며,57년 몸에 예루 살렘으로 가는 그의 마지막 여정에 올랐다. 그가 로마서를 쓸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은 끝났던것 같다. 이 사실에 비추어 볼때 로마서를 쓴 시기는 56년 말기가 아니라 57년 초기인듯 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가서 고후8-9장을 썼을 당시 그 모금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서를 기록한 장소는 고린도이다.이러한 사실은 바울이 고린도의 동쪽 항구인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 일꾼 뵈뵈에게 본 서신 전달의 책임을 맡겼던 것으로 보아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거주하였던 집주인인 가이오에 대한 언급도 바울이 그 당시 고린도에 거주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가이오가 바울의 고린도전도중에 회심한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고린도시의 재무관이었던 에라스도가 문안하는 내용이 언급된 것도 좋은 증거라 할수 있다. 딤후4:20절에 의하면,그는 고린도에 거주 하였으며,1929년에 발견된 고린도의 비문에도 그가 그 지역 공화당의 관장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3) 수신처 처음에 나오는 인사말에 본 서신의 수신자는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자 라고 \\\"표현 하였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본 서신의 서두에 로마인들에게 라는 간단한 표제어가 붙어 있다.그런데 그러한 표제어를 바울이 직접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표제어는 2세기 중 어느 시기에 교회가 본 서신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견해를 첨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몇몇 사본들에는 이 표제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것을 이유로 혹자는 본 서신을 특정한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회람 서신\\\"으로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견해는 본 서신의 수신자가 로마교회의 성도들이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다. 특히 본 서신의 서두와 결론부분에 있는 내용은 본 서신이 어느 특정한 교회에 보내는 글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데 그 교회가 바로 로마교회라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2. 역사적인 배경 이 시대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하여는 자세히 언급할수 없다 따라서 대강 몇가지를 나누어서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은 로마교회의 상황과 로마교회의 문제 그리고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의 바울의 상황등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로마교회의 상황을 보면, 로마교회의 기원에 대해서는 참으로 모호하다. 자연 발생적인지 아니면 사도에 의해 설립되었는지 확실한 증거가 없이 모호한 상태이다. 그리고 그 교회의 상황에 대해서도 단서가 없다. 만약 로마서 16장이 바울이 쓴 원본의 한 부분이라면, 우리는 로마교회가 어떤 사람들로 구성 되어 있으며,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짐작할수가 있다. 그것은 로마의 기독교 공동체가 아마 서로 다른 인종적,지방적 배경을 가진 매우 다양한 가정 교회들로 구성된 복합적 모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 외에는 로마의 기독교의 공동체의 특성이나 상황에 대하여 알수 없다. 그래서 고고학적 흔적에 의하여 추측을 하고 있는데 로마의 유대인 사회가 아주 복잡한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많은 다양한 회당들이 공존했고, 이런 것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문화적, 사회적,신학적,집단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그리고 로마의 역사가에 의하면,클라우오디오스가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다 추방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원래 로마교회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수 였으나,클라우디오의 칙령에 의하여 유대인들이 로마에서 쫒겨 났다가 7-8년 후에 다시 로마로 돌아와 보니 그곳에 교회에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다수가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로마 사회의 극심한 반 유대주의 감정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로마교회에 대두하게 되었으며, 바울은 이러한 것에 대항하여 싸우며,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과의 연합과 다양한 유대 가정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로마서룰 기록했다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로마서 기록 당시의 바울의 상황을 보면, 바울은 동방에서의 선교사역을 완수한후 그는 이제 막 서방에서의 선교에 착수하려는 때에 당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갈라디아, 고린도,기타 지역에서의 유대파 기독교인들의 훼방과 그의 회심자들,그가 전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는 자들의 오류에 직면하는 매우 어려웠던 8 여년의 세월을 통과하고 평정을 찾을수가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구제 헌금을 위한 모금을 끝내고 구제 연보를 가지고 이제 막 예루살렘으로 향하려는 시점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유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대인들 박해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의한 환영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염려하고 있었다. 3. 저술목적 이 서신의 저술 목적을엄밀하게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다양한 설명이 있다. 1) 논쟁적 목적이다. 바우어와 그의 학파는 바울이 겨냥한 주된 목표는 유대적 기독교 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별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2) 타협적 목적이다. 로마의 교회가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그의 이방인에 대한 위임을 변호하고, 유대적 요소들과 이방적 요소들을조화시키려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의 설명은 분명히 거리가 멀다. 3) 교리적 목적이다. 이는 전통적인 설명으로서 이 서신안에 바울의 교리적 입장이 충분히 진술되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견해도 그리 만족하지 못하다. 그 이유는 사도가 여기에서 상세히 설명하지 않는 우주적 화해나 발전된 종말론과 같은 중요한 진리들도 있다. 그리고9-11장은 역사적 설명이 없이는 적절히 이해될수 없다. 그리고 개인적 언급들과 특히 1:7-15과 같이 이 서신이 특별히 로마의 교회에 보낸 것임을 보여주는 부분들은 이 서신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또 그 목적을 논할때에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4) 바울의 현재 경험을 요약하려는 목적이다. 사도는 그의 선교사역에서 전환점에 도달했다. 그의 관심은 예루살렘과 로마를 향했고, 그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확인할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마음과 과거를 돌려서 회고하여 과거의 중요한 주제들을 교회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5) 독자들의 직접적 필요를 충족시킬 목적이다. 바울은 로마의 교회에 대한 상당한 포괄적인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는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어떤 지적인 문제들을 알고 있는듯 하며,그것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 하였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기본 원리인 \\\"의\\\"의 원리를 다루었으며,그후에 이스라엘의 실패와 이스라엘이 보편적 기도교회와 갖는 관계를 논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살펴보아야 할것이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은 로마교회에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소개해서 오마교회를 자기 서방선교의 후원교회로 얻으려고 하는 직접적인 목적이 있었다. 그런 데 이 한가지 목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수 없다. 그래서 로마교회와 로마교회의 상황과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당시의 상황등을 고려 하여 종합적으로 평가 한다면, 바울은 한편으로는 복음의 진리와 자유,이방 그리스도인들의 합법성,교회의 하나됨등에 대해 예루살렘에서의 다가오는 대결에 의식하여 로마서를 기록하였으며,이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은 이 편지를 다른 사람이 아닌 로마의 그리스도인에게 보냈다는 사실, 이것은 결국 바울이 로마교회에 자신과 자신의 복음을 소개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예루 살렘에서의 대결을 염두해 두고 그의 복음을 요약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의 복음을 변호할 의도와 못지 얺게 로마교회에 자신의 복음을 옳게 소개할 의도가 있었다. 그래서 이 대결에서 로마교회를 자기 편으로 이끌려하고, 또한 자신의 서방 선교를 위해 그들의 지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교적인 목적과 변증적인 목적을 모두가지고 있었다고 말할수 있겠다. 이러한 의도에서 로마서의 저술 목적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