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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여 한인 청년들 뜨겁게 기도한 할렐루야전도대회/2009-07-27
1,500여 한인 청년들 뜨겁게 기도한 할렐루야전도대회 컴패션에 전달할 기금 713.75불 모금 ▲대회 마지막날, 청년들이 헌신을 결단하며 기도하고 있다. ‘2009 청소년할렐루야전도대회(EM)’가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뉴욕순복음교회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헌신을 결단했다. 이번 대회 기간에는 컴패션에 전달할 기금 713.75불이 모금됐다. 주최측은 대회 기간동안 모금함에 지원금을 모금하는 한편 ‘Open Mic Fundraiser’를 마련했다. ‘Open Mic Fundraiser’는 한 청소년들에게 1불씩 나눠주고 그것에 청소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얼마를 더해 모금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청소년들에게 나눠진 금액은 총 200불이었으나 546불 20센트가 추가 모금됐다. 2006년부터 청소년할렐루야대회를 준비해온 청소년사역네트웍 공동 디렉터 스티브 황 목사는 “끝나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내년을 기대한다”며 “주님께 헌신을 결단한 청소년들이 우리의 소망인데, 그들이 2020년에 할렐루야청소년대회를 선도해나갈 리더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를 전했다. 청소년사역네트워크 공동 디렉터 이재홍 목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를 드린다. 청소년들에게 이번 대회가 제가 어렸을 적 주님께 헌신을 결단했던 시간과 같은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번 할렐루야청소년전도대회 디렉터를 맡은 폴 김 목사는 “할렐루야대회가 30주년을 맞는 해 청소년대회도 열매를 보아 좋았다”며 “자마대회에 갈 수 없고 작은교회의 여건상 수련회를 갈 수 없는 작은교회 아이들에게 자마대회 같고 수련회 같은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대회 강사 제이 박 목사는 “젊은이가 많은 뉴욕이기에 그만큼 탈선하는 학생도 많다. 그러나 광야에서 모세가 났듯이 이런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제이 박 목사는 이번 대회 기간 “청년, 청소년들이 두려움이 많고 도전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고 제게 가장 도전을 줬던 말씀을 나눴다”고 했다.
150주년 日 개신교 “선교 사명 다하자”/2009-07-10
150주년 日 개신교 “선교 사명 다하자” 기념대회 둘째날 기념식전 ‘감사와 기쁨의 축제’ 150주년기념오케스트라,동경스콜라칸토름 합창단, 150주년기념합동성가대가 ‘할렐루야’를 찬양 ‘일본 개신교선교 150주년 기념대회’ 둘째날 일정이 지난 2009년 7월 9일(목) 오전 10시부터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 홀에서 진행됐다. 첫째날의 페스티벌과 개회예배가 선교 150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부흥을 기대하는 자리였다면, 둘째날은 기쁨과 감사와 축제의 자리였다. 기념식전은 일본복음동맹(JEA)이사장 나카지마 슈이치 목사(오기쿠보영광교회)의 초대인사로 시작되었다. 아침을 깨우며 모인 회중들은 150주년기념 오케스트라와 동경스콜라칸토름 합창단의 은혜로운 찬양으로 마음 문을 열었다. “전통과 다양성은 살리고 전도 위해 일치 협력” 이어 일본 개신교 선교 150년의 역사를 담은 영상을 통해, 생명을 건 선교사들과 믿음의 선배들의 터 위에 지금의 일본 교회가 서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야마키타 노부히사 목사(일본기독교단 히지리가오카교회)가 기념 식사(式辭)를 전했다. 야마키타 목사는 1960년대에 경험했던 큰 부흥의 은혜와 현재 일본 교계 안에 불고 있는 일치 협력의 바람에 대해서 증거하며 “각 교단과 교파가 지닌 고유의 전통과 다양성은 살리되 복음 전도라는 공통된 사명을 위해 십자가 아래서 일치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 명의 실행위원장인 미네노 타츠히로 목사(웨슬레앙홀리네스교단 요도바시교회), 야마키타 목사, 오오카와 츠구미치 목사(야마토갈보리채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주 예수의 증인되어-’라는 주제 아래 각 교단 교파가 전도 협력을 이루어 나갈 것을 다짐하는 내용의 ‘대회선언’을 교대로 낭독했다. 선언문은 “150주년의 은혜를 기억하며 복음 선교에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나아가고자 한다. 또한 ‘일치’라는 슬로건 아래 준비기간 동안 각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힘을 합쳤던 것처럼 앞으로도 각 교회의 특징을 살리고 함께 동일한 복음을 전하는 파트너로서 하나가 되어 선교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회중들도 기립하여 마지막 구절을 함께 읽으며 연합과 일치에 대한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졌다. “150년 전 희생과 지금도 이어지는 사랑 감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김명혁 목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목사가 해외에서 방문한 내빈으로서 소개받고 있는 모습. ⓒ 강성현 기자 일본교회는 기념식전의 자리를 빌어 150년 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본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자 생명을 걸고 건너온 미국 선교사들과, 지금도 일본에서 묵묵히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재일한인선교사들의 희생에 감사를 전했다. 미국성공회 대표 크리스토퍼·L·링월트 박사, 미국장로교회 라드너·C·모어 선교사, 미국개혁파장로교회 총회의장 제임스·L·시우드 박사, 일본복음선교사단(JEMA) 대표 데일 리틀 목사가 감사패를 수여 받았다. 이어 감사패를 받은 각 대표와 해외에서 방일한 세계 각국의 내빈들이 축사를 전하기도 했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 회장 김상복 목사는 “일본이 영적으로 성숙한 교회 세계의 존경을 받는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한 것을 보니 기쁘다”며 “올해 일본이 새로운 부흥을 맞이하기 위해 성령의 힘으로 혁신되길 기도한다”고 축복했다. 라드너 선교사는 “조부 안에 있었던 일본을 향한 사랑이 나에게도 이어져 있다”며 “일본 교회의 역사 안에 많은 고생과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믿음과 기쁨으로 참된 위로를 얻고 전력을 다해 이 신앙의 길을 함께 달리자”고 일본어로 준비한 축사를 전해 회중들에게 은혜를 더했다. 기념식전을 마치고 난 후에는 각 발제 주제에 따라 강연 및 패널토론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에는 150년의 역사를 계승하고 앞으로의 50년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 가야 하는 현 일본 교회의 사명을 조명하고, 차세대 크리스천에게 바른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 해야 할 과제들을 확인했다.
2009학년도 2학기 고웅한국학교 신입생 모집
2009학년도 2학기 고웅한국학교 신입생 모집 (2009學年度 2學期 高雄韓國學校 新入生 募集) 1. 모집대상(募集對象) ◉ 유치부(幼稚部) : 2005. 1월(月)∼2005.12월(月) 출생(出生)자 ◉ 초등부(初等部) : 1학년∼6학년 ※ 2006년(年) 출생자(出生者)는 정원(定員)이 미달(未達)할 경우(境遇) 대기자순(待機者順)과 생년월일순(生年月日順)으로 입학(入學) 가능(可能) 2. 교육과정 운영 ◉ 수업시간(授業時間) - 평일학교(平日學校) : 13:20∼16:50(월∼금 星期一~星期五) - 토요학교(週末學校) : 09:10∼12:10(토요일 星期六) ◉ 주요 교육과정(主要敎育課程) - 국내 교육과정(韓國敎育課程) 및 한글기초교육(韓文基礎敎育) , 영어교육(英語敎育), 한국 전통문화 교육(韓國傳統文化敎育) 등 3. 수업료(學費) 1학기(1學期)당 9,000元(NTS) ※ 추후(追後) 학교운영위원회(學校運營委員會) 심의(審議)를 거쳐 조정(調整) 가능(可能) 4. 기타 자세한 사항은 학교홈페이지 및 학교전화로 문의바랍니다. ※ 학교홈페이지 : www.khks.kr 문 의 전 화 : 075513918(휴대폰 0980890733 박영순 교무부장 선생님) 2009. 5. 14 고웅한국학교장 高雄韓國學校長
21세기 목회와 선교전망/ 2001-09-15
21세기 목회와 선교전망 21세기가 마치 먼 산이 비 개인 후 갑자기 가까워보이듯이 눈앞에 성큼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21세기에 예상되는 충격이 너무 큰 것들이어서 각계에서는 이에 대비하여 준비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미래의 충격>이나 <제3의 물결>과 같은 저술들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있으며 기독교계에서는 한 때 종말론 문제가 크게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미래와 인류 종말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그 어떤 테마보다도 우선순위를 가진다. 1992년 10월 28일 0시에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종말론주의자 이모 목사가 세상 법에 의해서 구속이 되었지만, 그가 뿌려놓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저서는 한때 시중이 종이 값에 영향을 미칠 만큼 팔려나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에는 1995년 4월 16일 부활절에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허황한 주장을 하여 물의를 일으켰던 교회와 목사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앨빈 토플러의 주장에서 21세기의 엄청난 도전적 도래를 볼 수 있다. 그의 주장에서 보면 농업단계인 “제1의 물결”, 산업단계인 “제2의 물결”에 이어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엄청난 충격적인 역사 흐름의 대변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제1의 농업혁명은 구석기, 신석기시대를 거치면서 문예부흥, 산업혁명 때까지 수천 년에 걸쳐서 서서히 전개되어 왔지만 산업혁명은 문예부흥 이후 약 3백년에 걸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고도의 정보사회에서 기술의 혁명과 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는 격류로 몰아치면서, 가족관계를 붕괴시키고 경제 질서를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으며, 정치의 철학과 이념을 마비시켜서 가치의 체계와 내용을 분쇄내지 파괴시켜 버리는 “제3의 물결”은 불과 10~20년 만에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제2의 물결의 특징이었던 규격화, 동시화, 중앙집권화의 가치체계는 완전히 무너지고 다양화, 개별화, 지방화, 분권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인바, 미래의 선교와 목회도 이 흐름을 외면하고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21세기 목회와 선교성장연구원’에서는 이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많은 투자를 하면서 이 분야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 21세기의 목회는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한마디로 답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원칙적인 방향만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회에 있어서만은 교파, 교단의 장벽이 낮아지거나 무너지게 될 것이고 교단내지는 교파의 연합활동이 왕성해질 것이다. 제2의 물결을 타고 떠내려 온 기독교회는 그동안 너무 교리 치중적이고 교단 내지는 교파 치중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앙집권적, 교권중심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내려왔으나 21세기교회는 보다 성경중심적이고 보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초교파적 기독교의 성격이 강화될 것이다. 교회 내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과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화될 것이며 평신도의 능동적이고도 자발적인 사명각성에 의해서 세계선교는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될 것이다. 평신도들을 잘 훈련시키고 양육시키는 교회는 크게 성장할 것이다. 교회의 예배 프로그램도 엄청나게 변천할 것이다. 과거에는 강단 위에서만 이루어지던 인상을 주던 예배행위는 평신도와 성직자 및 장로단의 이원 구분으로 평신도들은 예배시간에 완전히 극장의 관객과 같이 예배를 관조하는 인상을 주어 왔으나 21세기의 예배는 우선 예배석의 구조부터 강단 위와 관중석의 구분을 과감히 뜯어고쳐서 평신도들, 회중 전체가 예배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예배당 내부구조로 바꾸고, 예배의 프로그램에도 회중 개개인 전원이 다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예배는 보다 다양하게 바꾸면서도 그 가운데 질서와 엄숙미를 유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교적 측면에서는 중국내륙의 기독교화 복음화라는 큰 면혁의 물결이 한국교회에 대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중국 대륙에 이루어지는 복음화 및 기독교의 성격은 초교파적 그리스도 중심의 복음일 것이다. 이에 대비해서 한국교회는 해외선교 활동영역부터 교파초월적인 선교활동전개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후원은 교회가 맡아야 하지만 훈련과 관리는 전문성을 띤 초교파 선교기관에서 맡도록 하는 것이 미래 21세기 한국교회 선교에 가장 필요한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21세기 선교전략 인터넷 방송국/ 2002-09-09
21세기 선교전략 인터넷 방송국 \'저희는 인터넷 방송을 21세기에 아주 중요한 선교 전략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 땅에 전파하라는 목적 있는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경향교회 인터넷 방송국 경향교회 홈페이지(http://www.ghpc.or.kr)는 2001년 6월에 본격적인 서비스를 하였습니다. 저희 인터넷 방송국은 현재 상주근무 팀장 외 정회원10명이 주일에 사역 및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주일과 수요일마다 생방송을 하고 있으며 각각 200k와 56k로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인터넷 방송을 21세기에 아주 중요한 선교전략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 땅에 전파하라는 목적 있는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2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5~6명이 모여 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였습니다. 인터넷 교육도 하면서 대학부, 미혼 청년들과 기혼 청년들까지 참여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당회장 목사님(석원태 목사)이 인터넷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서버룸과 컴퓨터실이 각각 배정되어 인터넷 방송을 하는데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로 3개월간의 준비과정과 인터넷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지금의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등부까지 참여하여 또 다른 변화와 개혁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 홈페이지에서는 석원태 목사님의 설교뿐 아니라 부목사님과 강도사님 그리고 외부 강사들의 모든 설교자료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저녁에 참여할 수 없는 성도들을 위해 구역공과 성경공부도 인터넷 방송으로 매 주일 올리고 있어서 다음날에는 확인하고 공부를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각각의 사역과 기관에서의 간증내용과 강의 및 수련회 내용 등도 항상 볼 수 있도록 내용들을 편집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 뿐 아니라 경향교회는 늘 선교에 대한 관심과 중요도가 높은 만큼 선교정보와 칼럼이 매주 올라오고 있습니다. 특히 나눔터에서는 목사님이 신앙상담을 하는데 매일 체크하고 답변을 하기 때문에 많은 성도와 네티즌들이 자신의 고민과 문제들을 성경말씀을 가지고 도움 받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 주보가 PDF 서비스로 매주 올라가기 때문에 다른 타 지역이나 선교지역에서도 주보를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점차 이용자와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는 경향교회는 앞으로 메일 전도 카드서비스와 더 다양한 컨텐츠를 올리기 위해 새로운 홈페이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인터넷 방송국의 의의는 1).정보와 통신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에 우리 교회가 이 모든 문화매체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선진하고 2).앞으로 진리가 배척을 당하고 참 진리의 종들이 일반적인 매스컴으로부터 배척을 당할 때를 위하여 독자적 선교를 하기 위한 방송이나 여러 문화매체가 필요한데, 이런 의미에서 경향인터넷 방송국이 개혁주의 복음 전선의 전초기지 역할을 감당할 것 3).이러한 문화매체의 여러 부문에 경향화된 독자적 전문가를 기르는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1세기 중요한 선교의 역할을 감당할 경향 인터넷 방송국이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1세기 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
21세기 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 최창웅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 대덕 한빛 교회 시무 장로 GPTI 대전지원 협동원장 ------ 내 용 목 차 ------ 1. 21세기 선교 상황 -------------------------------- 2 2. 선교사의 소명 ----------------------------------- 3 2.1 선교사 2.2 선교의 소명 3. 근대 선교의 발전단계 ------------------------------ 7 4.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 9 4.1 평신도 전문인 선교의 성경적 근거 4.2 전문인 선교사역이 사도 바울에게 필요했던 이유 4.3 사도 바울의 전문인 선교가 주는 교훈 5. 21세기의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 ----------------------- 19 5.1 전문인 선교의 유형 5.2 선교지 현장의 문제점 6. 한국 교회와 선교사 훈련 ---------------------------- 29 6.1 한국의 선교훈련 역사 6.2 한국교회와 선교 훈련 7. 전문인 선교 훈련의 특성 ---------------------------- 35 7.1 Thomas Hale의 전문인 선교훈련 7.2 Tetsunao Yamamori의 주장 7.3 선교훈련에 영향을 끼치는 한국적 요소 참고 문헌 목록 -------------------------------------- 39 1. 21세기 선교 상황 복음이 한국 땅에 전래된 이래 비교적 짧은 기간의 복음화를 통해, 1909년에는 평양신학교 1기 졸업생들이 주축이 되어 선교사로 파송 되는 일을 하게 된다 1907년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을 다녀간 세계 학생 운동의 지도자요 에큐메니칼 운동의 지도자인 존 모트(John R. Mott)는 귀국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민경배 1983,267~68): 한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나라에서는 지금 전국적으로 영적인 부흥운동의 불길이 휩쓸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만일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가 이 만큼의 속도로 계속 성장하게 된다면, 한국은 근대 선교 역사상에서는 완전히 복음화 된 유일한 비기독교국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 대 각성과 부흥운동으로 교회가 일치 단결하고, 선교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착수하게 되지만, 그러나 교회의 계속적인 성장과 비례해서 선교가 같은 수준으로 증가하지는 못했음을 교회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보게 된다. 이러한 양적 증가 일변도의 현상을 한국 교회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기도 하였으나(옥한흠 1998, 22~33)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는 1990년대부터 해외 선교사가 급속도로 증가함으로써 이제 2000년대를 들어서면서 한국의 해외 선교사는 9500여명에 달하고 있다(김성욱 2001,107). 따라서 한국은 선교 대국으로 인정 받게 되었고, 선교 대상 지역의 상황 변화에 따라 이제는 전문성을 지닌 직업적 선교가 선교를 주도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00년 8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 선교대회의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에 파송 된 한국인 선교사 가운데 25%이상이 평신도 선교사로 보고 되었다(그러나 한국 전문인 선교협의회가 1999년 5월에 국내의 78개 파송 선교단체와 9개의 교단 선교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된 선교사 5,398명 가운데 평신도 선교사가 3,083명으로서 평신도 선교사가 57%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됨. 한국전문인선교협의회 편집 2000, 220~24). 이처럼 평신도 전문인 선교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특히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 현지의 상황이 전문인 선교사만의 입국이 가능토록 변화 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선교사보다는 전문인 선교사가 계속적으로 증대 되어질 전망이다. 따라서 이 같은 실제적인 선교사 수요와 선교 대상지역의 복잡한 상황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준비되고 훈련된 전문인 선교사로 구비 되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2. 선교사의 소명 2.1 선교사 선교사라는 단어는 ‘보내다’(라틴어 mitto, 헬라어 apostello)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의 12제자를 사도(apostle)라고 불렀고, 이 말이 80회 이상 사용되고 있는데, 단 한번 예수님께 대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히3: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최초의 사도이셨고 12사도의 머리이셨다. 12사도는 주님께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았고 사도적 권위를 부여 받았으며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도록 보냄을 받았다(마 28:18~20). 그렇다면 오늘날의 선교사는 12사도와 동일한 계층에 속하는 것일까? 허버트 케인은 기독교 선교이해(Understanding Christian Missions)에서 오늘의 선교사는 ‘이류급의 사도(바나바, 디모데, 실라 등)’에 가깝다고 하였다. 이들 이류급의 선교사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으며 성령이 그들에게 지시하는 데로 옮겨 다녔다(행 8:26,29,39; 16:6~7).(허버트 케인 1997, 29~30) 그는 선교사란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전통적 의미에서 선교사란 말씀과 기도 사역을 전임하도록(행 6:4) 하나님에 의해 부름 받은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롬15:20) 지리적 혹은 문화적 경계를 건넌(행22:21)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성경적인 것이라는 장점을 갖는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의미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과 판단의 기준이 되는 틀 안에서 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전임 사역의 개념을 목회자와 복음 전도자 그리고 선교사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정의에 의하면 헌신적인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그 들의 직업에 상관 없이 기독교 전임 사역자라는 것이다. 허버트 케인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전임 사역자라면 이제 말할 것은 이것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선교사이다. 그러나 스티븐 닐(Stephen Neill)은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면 아무도 선교사가 아니다 라고 경고 하였다”(1997, 30). 모든 그리스도인은 증인이라거나 증인이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라는 말은 옳지 않다(1997, 31~32). 우리는 선교사가 독특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때 그가 다른 신앙인들보다 낫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단순히 그가 색다르다는 것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 선교사가 고향에 머물고 있는 목사나, 심지어 평신도보다 영적으로 반드시 뛰어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문화적(Cross-cultural)상황에서 선교사는 자기가 다음과 같은 몇몇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였다: 1) 그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이다; 2) 그는 진리의 사자이다; 3) 그는 사랑의 사도이다; 4) 그는 평화의 사절이다; 5) 그는 문화의 운반자이다(1997, 33~43). 2.2 선교의 소명 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제1차적으로 점검 대상이 되는 것은 과연 소명을 받았느냐-하는 사실이다. 소명은 받지 못했을지라도 선교에 대한 간절한 열정으로 선교 현지에 나가게 되면 사역하는 기간 중에라도 소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 훈련 현장에서 이해되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 허버트 케인의 설명을 정리하였다(1997, 44~ 53). 1)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 선교의 소명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내가 소명을 받은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소명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선교사가 될 수 없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이 진지하고도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를 바라는 헌신 된 그리스도인 들에게서 자주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극단적인 태도가 있는데, 한편의 극단에서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대개 이 것은 목소리나 환상이나 꿈이나 다른 신비적인 사건들과 관계 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신비적 경험이 없다면 선교 사명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모든 사람은 그러한 경험을 열심히 구하고 그 것을 경험할 때 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 편의 극단은 모든 그리스도인 들은 선교사이기 때문에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요청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말하길, “만일 당신이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비행기에 올라타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당신의 일을 행하시오. 시간, 장소, 소명, 성직 등과 같은 사소한 문제에 초조하지 마시오. 다만 차분히 마음을 가라 앉히고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라 믿으시오.” 이 두 가지의 극단적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첫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자는 집에서 편안히 앉아서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두 번째 주장을 옹호하는 사람은 선교 사역지에서 종종 유익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치게 된다는 사실이다. 소명(부르심)이란 신약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기독교적 봉사가 아닌 기독교적 삶을 언급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일반적 소명이 있는데(롬9:24~26),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명확하게 되었다(눅 5:32).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롬1:7). 그리고 그러한 소명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이다(롬 8:30). 그 외에 2차적 소명(기독교 사역에 대한 소명)이 있음을 케인은 말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고, 일상 직업을 버리고 베드로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오직 헌신했던 것처럼 모든 시간을 헌신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에게만 부여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롬 1:7), 모든 사람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다(고전 12:29).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그가 진정한 사도였다고 주의 깊게 지적한다(고전 9장). 그는 하나님의 뜻(고전 1;1)과 부르심(롬 1:1)에 따라 사도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소명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며(고전 9:16~18),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에게 부여된 것도 아니었다(갈 1:1). 그러므로 소위 마케도니아 소명(행 16:9~10)은 선교 소명이 전혀 아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일이 있기 수년 전에 이미 선교사였다. 그렇다면 마케도니아 소명은 과연 어떠한 성질의 것일까? 그것은 전혀 신적인 소명이 아니었고, 단지 도움을 요청하는 인간적 부름이었다. 그 부름은 하나님이 아닌 마케도니아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간청이었다. 이 사건은 선교 소명과 전혀 상관이 없다. 단지 그 것은 이미 전임의 기독교 사역에 들어선 사람에 대한 인도 하심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마케도니아 소명과 선교 소명이 동일시 되어왔다는 것은 참으로 큰 오해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2) 선교의 소명 사실상 ‘선교의 소명’이라는 용어는 잘못 만들어진 용어로서 성경적이지 못한 것으로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고자 소망하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일종의 신비로운 ‘선교 소명’을 기다렸지만, 하지만 그러한 소명은 결코 생기지 않았고 결국 얼마 후에는 기다림에 지쳐 버리고 선교지로 가려는 생각을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종류의 소명도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가? 전임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사역에 대한 소명은 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라고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저희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좇으니라”(마 4:22)고 성경에 기록되었다. 누가는 동일한 사건을 이렇게 묘사했다: “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눅 5:11). 이 ‘소명’은 그들의 이전 직업을 확실하게 중단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직업,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직업으로 그들을 나서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들이 동시에 사람을 낚는 어부와 고기를 낚는 어부가 될 수 는 없었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직업이 ‘더욱 고귀하고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전적으로 다른 직업이었다. 현대적 용어로 이것은 ‘전임 기독교 사역’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전임적 개념의 소명은 주님에 의해 보다 강화 됨을 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 주여, 내가 주를 좆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하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1~62). 3) 인도 하심과 소명의 비교 전임 사역에 대한 소명과 인도 하심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사도행전 16장에서 본 ‘마케도니아 소명’이 소명이 아니라 단지 인도 하심 인 것을 살펴 보았다. 소명은 일생에서 한 번 온다. 그리고 일단 소명이 이해되고 순종 되면 번복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인도 하심은 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이방인에게, 베드로를 유대인에게 보내셨다(갈 2:7~8). 또한 윌리암 케리를 인도로, 데이비드 리빙스턴을 아프리카로, 허드슨 태일러를 중국으로 향하게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에 따라 그의 종들을 배치하시는 것이다. 3. 근대 선교의 발전단계 랄프 윈터(Ralph D. Winter)박사는 개신교의 선교 활동 역사에서 나타난 커다란 변화를 3가지로 분류하여 “폭발적인 선교의 진보”라고 명명하였고 그 특성에 따라 분류하였다. 이들 각각의 진보는 세계의 특정한 지역 혹은 미전도 지역을 관찰해 봄으로써 세계 복음화라는 전체 과업을 완수하는 일에 선교적 진보가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발전 단계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랄프 윈터 2001, 220~226) : 첫번째 시대: 연안지역으로 이 시대는 윌리암 케리가 개척한 시대로, 케리가 지은 작은 책은 복음주의의 대 각성과 함께 미 대륙과 유롭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고 삶을 변화시켰다. 모든 사람들은 선교 활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교회 형태의 조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케리의 주장이 옳다고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5명의 대학생들이 케리의 책에 도전을 받아 그들의 삶을 향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위해 함께 기도하였다. 이들이 후에는 건초더미 기도회(Haystack Prayer Meeting)로 알려 졌는데 이들이 시작한 학생 선교운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다른 학생 선교 운동의 모델이자 선구자가 되었다. 선교 구조는 전형적인 비교단적 초 교파적인 선교회였다. 이 시대의 두 가지 특징은 놀라운 희생 정신과 뛰어난 선교 전략에 대한 훌륭한 통찰력이다. 두 번째 시대: 내륙지방으로 이 시대는 허드슨 태일러(Hudson Taylor)가 주도한 시대이며, 후에 주로 학생 자원 운동(The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라는 학생 운동이 중심을 이루었다. 어떤 교단에도 속하지 않고 독립해 있는 선교 조직들을 ‘믿음 선교회(Faith Missions)’라고 불리었는데 40개 이상이 설립하게 되었다.. 이들 선교회는 첫번째 시대의 해안 선교와는 달리 대륙의 내지선교를 목표로 하였다. 또한 학생 자원 운동은 10만 명의 선교 헌신자를 배출 하였고, 그 가운데 2만 명이 실재로 선교사로 헌신 하였으며 나머지 8만 명은 고국에 남아서 선교 활동의 토대를 재건하는 일에 헌신하였는데, 그들은 평신도 선교 운동(Laymen’s Missionary Movement)을 시작 하였고, 기존의 여자 선교회를 강화 하였다. 신참 선교사들은 이전 시대에 개발된 선교학적 지혜를 대부분 무시했지만, 선교 전략 면에서 큰 과오를 범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첫번째 선교시대에서 개발된 방법들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놀라운 선교 결실을 맺게 된다. 거의 모든 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많은 사람들은 세계 복음화가 사실상 완수 되었다고 생각 했다. 일부 선교사들은 선교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여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1865년과 1910년 사이의 45년간은 첫번째 시대인 연안 지역시대에 성숙한 단계의 적당한 선교 전략과 두 번째 시대인 내지 선교 시대에 개척 단계인 선교 전략간의 전환기 였다. 1967년 경에는 북미 출신의 모든 선교사 중 90% 이상이 이미 상당 기간 속해온 강건한 현지인교회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중에 선교의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세 번째 시대: 미전도 종족들에게 이 시대는 학생 자원 운동 출신의 두 젊은이, 카메론 타운젠트(Cameron Townsend)와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에 의해 시작 되었다. 맥가브란은 현 시대가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지는해’가 아니라 ‘뜨는해’라고 주장하였다. 분명 현 시대에 윌리엄 케리 나 허드슨 태일러에 비 할 수 있는 사람은 카메론 타운젠트이다. 타운젠트는 분명히 미 전도된 선교지가 있음을 보았으며, 반 세기 가깝게 세계의 소외된 부족민들에게 주의를 환기 시켰다. 처음에는 이전부터 존재하는 위원회들이 부족민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도우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케리 나 태일러처럼, 타운센트도 결국에는 스스로 ‘위클리프 성경번역 선교회(Wycliffe Bible Translators)’를 만들었다 처음에 타운젠트는 세계에 약 500개의 미 전도 부족집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 후에는 그 추정치를 1000으로 고쳤고, 그 다음에는 다시 2000으로 , 그러나 오늘날 그 숫자는 .약 5000(현재로 파악된 숫자는 12,000수준)에 달하고 있다. 위클리프 성경 번역회에는 현재 4000여 명의 선교의 일꾼들이 일하고 있다. 맥가브란은 언어의 장벽이 아니라 사회적 장벽의 심각성을 인도에서 보게 되었다. 타운젠트가 부족 집단을 발견했다면, 맥가브란은 보다 보편적 범주를 발견하였는데, 그는 이 것을 ‘동질 집단(Homogeneous Units)’이라고 불렀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이 것을 세분화하여 각 독자적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부족들에게는 ‘수평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그리고 지리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계층에 의해서 구분되는 집단을 ‘수직적 분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집단들에 침투해서 집단의 경향을 따라 선교학적 돌파구를 부지런히 이용한다면, 그 종족 집단에 대한 전략적인 ‘하나님의 다리(Bridges of God)’가 확립 된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그러한 돌파구가 마련 될 때까지는 일반적인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맥가브란은 활발한 노력과 저술을 통해 교회 성장운동과 미 개척지 선교운동을 수 없이 일으켰다. 교회 성장운동은 이미 복음이 침투한 집단들 안에서 교회를 확장 시키는 일에 힘 썼던 반면, 미 개척지 선교 운동은 아직 복음이 침투하지 않은 남은 집단들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일에 힘썼다. 이 두 접근법은 민족 언어학적 접근과 사회 문화적 접근인 것이다. 랄프 윈터와 다른 선교학자들은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 세 번째 시대의 특징은 ‘미전도 종족’이라는 보다 규정하기 어려운 비지리적 범주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미전도 종족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종족 집단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은 너무나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세 번째 시대는 두 번째 시대보다 훨씬 더 서서히 시작 되었다. 타운젠트와 맥가브란은 40년 전부터 잊혀진 종족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나, 일반 대중들은 최근에 와서야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비서구 선교 기관들이 수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나 이 전의 선교회들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4.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전문인 선교가 선교 현지의 상황 변화에 의해서 그 수요가 계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할지라도 성경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반드시 검토해야만 한다. 더욱이 21세기에는 닫혀져 가는 선교지에 대한 복음화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의 몫으로 많은 선교 전문가들이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적 근거를 갖지 못한 인간적 사고의 전략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될 것이다. 4.1 전문인 평신도 선교의 성경적 근거 평신도선교의 구약성경적 근거 구약성경에서의 평신도의 개념과 선교적 역할은 창12:1~3; 출19:5~6; 사43:20~21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 구약에 나타난 평신도 선교의 의미 구약성경에서 평신도의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 것은 평신도 개념의 기초가 된 용어로서 평신도 신학의 발전에 주요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개념과 이 용어에 관련된 성경구절을 찾아 주경학적으로 평신도의 의미와 역할을 찾고자 한다(김성욱 교수) 나. 하나님의 백성 1).두 가지 단어( Goi, Aam)가 사용됨. (1). Goi 이방인, 이교도, 국가, 백성(창10:5; 12:2; 사11:10; 42:6; 슥12:3) 정치적, 종족적,또는 지역적 그룹의 백성 개념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고이)을 이루고”. (2). Aam 계약적 백성(출3:10; 시78:52~66; 95:7; 사43:21; 51:16; 호1:9~10; 슥8:6) (출3:10) “내 백성(아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2).두 용어가 대조적인 개념으로 사용됨: (출33:13) “---이 족속(고이)을 주의 백성(아암)으로 여기소서” (1). 구약에서 점차로 “고이”는 이스라엘을 제외한 주변 국가들을 지칭하게 됨. (2). 70인역에서 이 표현은 가시화됨(Aam- Laos, Goi-Ethnos). (3) 하나님의 백성은 계약백성으로서 주변의 많은 국가들 속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소유”로 나타남. 다. 아브라함언약과 선교(창12:1~3) 1). 주경적 이해 (1).아브라함 계약 - 계약적 신앙의 중요성(롬10:17) -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상대로 나타남. - 하나님의 자기백성에 대한 은혜와 약속의 주권적 통치 - 약속의 계약 (2). 4가지 약속들 - 새 땅 - 수 많은 후손들 - 신적 보호 - 만민에게 복의 근원-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 됨 (3). 구원의 언약 – 칼빈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구원의 언약이다” 2). 선교적 이해 (1). 온 세계에 퍼져 있는 타 문화권 선교를 위한 평신도 선교의 근거 (2). 하나님의 이방 민족들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하심. (창12:3):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3).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잃어버렸던 족속에 대한 회복이 함께 나타남. (4). 이스라엘의 선택은 곧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함임. 라. 모세언약과 선교(출 19:5~6) 1). 모세언약: 시내산 계약 또는 율법 계약 (1). 구속사에서 모세계약의 위치 (2). 율법의 의미 (3). 십계명(도덕법) 2).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3가지 이름 (1). 열국중에 내 소유 (2). 제사장의 나라 (3). 거룩한 백성 3). “ 내 소유”의 의미 (1). 출19:5 “—너희는 열국 중에 내 소유가 되겠고” 하나님 백성이 가지는 특권을 의미함. (2). Segulla(소유)의 의미 - 개인의 사적 소유물 - 움직일 수 있는 재산 - 값비싼 보물 - 왕의 귀중한 보물을 담는 보배 합. 4). “제사장 나라”의 의미 (1).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는 제사장적 역할 (2). 제사장의 역할: - 제단에 봉사 - 백성을 위해 축복 -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침 (3). 이스라엘의 우주적 제사장 역할: 하나님과 만민들 사이에서 5). “거룩한 백성”의 의미 (1). 하나님 백성의 지위와 책임 (2). “거룩한”의 의미: - 평범하거나 부패한 것에서 구별된 것 - 하나님의 쓰심을 위해서 특별히 분류된 것. - “이스라엘의 종교적 정결성”보다는 하나님의 “특별목적”을 위한 사역의미 (3).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 십계명의 서문과 십계명 (4). 이스라엘의 특별 목적을 표현함: - 예배와 봉사 - 구속사 속에 있는 선교적 소명 마. 이사야 43: 20~21 1). “내 백성 나의 택한자”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1). 평신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 (2). 암흑과 혼돈의 시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2).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내 백성, 나의 택한 자”(20) – 하나님의 선택과 장래 구원 3).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 (1). 하나님 백성에 대한 주재 권 (2). 앞서 가시며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 4). 하나님의 불변하신 약속: 버리지 아니하시며 계약관계는 변함 없음을 증거. 5). 하나님의 선택된 목적: “—지었나니”(21)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표명. 6). 이스라엘의 특권과 책임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의 전능 하심과 구원의 활동을 선포하게 하심 평신도 선교의 신약 성경적 근거 가. 신약 성경은 전문인 선교의 개념을 보다 분명하게 나타냄 1). 대표적인 성경구절: 엡4:11~12, 벧전 2: 9~10 2). 어원적 의미 (1). 신약성경의 “백성”에 대한 두 용어 - Ethnos: 국가들, 나라들 - Laos : 하나님의 백성들 (2). 하나님의 백성 - 전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계약적 성격을 강조한 말-Conn. - 특별한 신분의 백성에 대한 계약적 성격을 강조하는 말-Strathman -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지칭 하는말: 행15:14; 18:10; 롬9:25; 고후6:16; 딛2:14; 벧전2:9; 히4:9; 8:10; 10:31; 13:12; 계18:4; 21:3 (3). Laos는 교회의 직분이나 역할들에 관계없이 구원 받은 모든 남녀 성도를 포함하는 말이다. 나. 모든 성도의 사역(엡4:11~12) 1). 서론 (1). 사도 바울의 “모든 성도의 사역론(Every-member ministry)”을 말하는 내용이다(Hendrickson, Stott, Stevens, Packer). (2). 본문의 핵심 내용: - 영적 은사들의 분배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며,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로 준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3). “은사들”과 “사역”이란 용어가 주는 의도는 바로 교회의 “봉사”에 부르심으로 나타난다. (4). 이 본문은 평신도 사역에 대한 성경적 태도를 확고하게 한다. 2). 영적인 은사들 (1). 본문의 내용들 - “사도들, 선지자들, 전도자들, 목사와 교사들”(11절) - 모든 은사들은 교회의 평신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역을 수행케 하는데 이바지 한다 – 칼빈 - 여기 본문에 나타난 은사들은 교직제도(Church – Officers)를 확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돕기 위한 은사이다 - 교직주의의 권위를 나타내지 않고 영적 은사들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F.F. Bruce) - 개인적 은사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교회의 하나됨에 많은 장애가 된다(Van Engen) (2). 은사들의 특징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각양 은사를 나눠주심을 강조하는데, 만일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나누어 주시지 않았다면 교회사역은 없었을 것이다(칼빈) - 교회에서 은사들의 사용은 인간들의 고안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여된 신적 부과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은사를 받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사역자가 될 수 없다(Ridderbos). - 은사의 다양성(고전12:12; 롬12:4):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니다. - 은사의 두 가지 목적: 첫째는 사역을 위해 성도를 준비시키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3). “성도를 온전케 함”의 의미 (1). 어원적 의미 - equipping(RSV, NASB), perfecting(AV), preparing(NIV) - 고대 헬라어 의학 용법상, “ 몸의 부분들의 조화를 위하여 인간의 뼈나 다른 부분들을 조정하는 뜻으로 사용됨”(P. Stevens). (2). 실제적 의미 -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계획으로서, 성도들 모두가 각자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심. -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성숙케 함. - 성도를 온전케 한다는 의미는 모든 성도들이 해야 할 사역이 있음을 말한다. 다. 왕 같은 제사장들의 선교(벧전 2:9~10) 1).본문의 중요성: (1). 평신도 선교를 위한 핵심적 성경구절 (2). 하나님백성의 개념 (3). 구약적 배경을 신약과 연결시킴. (4).하나님백성에 대한 계속적인 부르심과 그들의 역할을 강조 2). 본문의 구성: (1). 그리스도인의 위치 (2). 그리스도인의 사역과 역할 3). 4가지 이름: (1). 택한 족속, (2).왕 같은 제사장, (3).거룩한 나라, (4).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4). 택한 족속의 고찰: (1). 사43:20~21; 41:8~9; 신4:37; 7:6; 14:2; 시105:6, 43 (2). 구약적 개념을 인용 (3). 베드로 서신에 나타난 “택한” 의미: 1:2; 2:4,6,9; 5:13 (4). 택한 족속의 의미는 특권만이 아니라 봉사와 섬김의 소환령을 뜻함. 5). 왕 같은 제사장들 (1). 서론: - 평신도가 가지는 영광스러운 사역의 부요함을 나타내는 말 - 출19:6 “제사장 나라”와 연관: 모든 왕적, 제사장적 위치와 의무, 그리고 특권을 나타냄. (2). 왕 같은 제사장들과 평신도 선교 -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제사장적 사역과 유익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평신도의 특권 -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중간에 그 누구의 중재 없이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축복. - 하나님과 성도사이에 어떤 특별한 종교 계급적인 위계질서가 있을 수 없다. -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제사장 나라의 존재 자체로서 가지는 의미 – 모든 성도들의 선교적 역할. 6). 선교적 사역: (9절 하반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 성도의 특권과 위치, 그리고 부름 받은 목적이 나타남. (2). “아름다운 덕을 선전케 하려 하심”- 사43:21 (3). 시96:3: “그 영광을 열방 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 지어다” (4).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을 나타냄.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에서 나타난 전문인 사역 제1차 선교여행 시에 바울과 바나바 사도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갈라디아 지역의 도시에서 전문인 사역을 했음을 볼 수 있는데(행13:1~14), 바울 사도는 “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 9:6)고 말하였다. 제2차 선교여행 기간동안에도(행 15:40~18:22) 바울 사도는 노동했음을 사도행전 18:3의 천막 만드는 일(Tentmaking)에서 볼 수 있고 또 그가 보낸 서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게 된다. 데살로니가 전서 2: 9~10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음을 보게 된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그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일깨우려 했던 것은 복음 전하는 바울 자신이 현지인들과 똑 같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노동하였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사도 바울은 수고하고 애씀으로써 성도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그는 복음을 전했단 말인가? 안식일에 그는 회당에서 가르쳤고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정오의 긴 휴식시간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일상적 생활을 통해서 본을 보임으로써 복음을 증거 했음을 또한 보게 된다, “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살후 3:7~8). 그는 가르침의 진실성과 개종자들에게 상전에 대한 종의 태도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동현장에서 의도적으로 일하였다고 한다(엡 6: 5~9, 골 3:22~23). (룻 시멘스 1999, 31) 제3차 선교 여행기간(행 18:23~21:14)에도 사도 바울은 노동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가 3년 동안 에배소에 머물면서 날마다 쉬지 않고 성경을 강론하였고(행 20:31), 성도들간에 논쟁이 일어나 어지러운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한 내용에서 그가 에배소에서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고전 4:11`12). 이 같은 어려움과 고난 중에도 친히 손으로 노동하며 생계를 유지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3차 선교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그는 밀레도 항구에서 에배소 장로들을 청하여 불러 모은 뒤, 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인사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 속에서도 먼저 바른 신앙생활 가운데 자신의 노동으로 재정을 확보하여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복음을 전하는 전문인의 선교적 삶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2~35). 바을의 3차에 걸친 선교여행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그는 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는 전문인 선교 사역의 본을 보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4.2 전문인 선교 사역이 사도 바울에게 필요했던 이유 전문인 선교 사역의 성경적 근거를 살펴 본 만큼, 선교의 백전 노장이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전문인 선교 사역이 왜 필요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에 더욱 깊은 확신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의 실효성에 대한 성경적 확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룻 시멘스의 글을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 하였다(1999, 39~43): 첫째, 사도 바울은 복음의 신뢰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순회 설교자들이 있어 철학을 강의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순회 설교자들이 돈을 요구하는 풍습과는 달리 청중으로부터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와 그 동기에 대해서 의심 받는 것을 바라지 않았든 것이다. 그 자신의 생활비를 위해서 오히려 열심히 일했으며 복음 설교에 대해서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둘째, 사도 바울은 동질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행하면서 복음 대상자의 문화를 수용하도록 하였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스스로 노동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학식과 경륜이 매우 높은 학자였으나 상아탑적으로 복음을 외치지 않았고, 오히려 단순하고 명료하게 노예들과 노동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셋째, 사도 바울은 모범을 보여주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 그가 직업을 통해 노동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를 따르는 자들과 새로이 개종하는 자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일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하였고 새롭게 변화된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쳤다(고전 6:9~11) 넷째, 사도 바울은 교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는 단지 교회 개척에만 목적하지 않았고 개척된 교회들이 건전한 공동체적 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자립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사도 바울에 의해서 개척되어진 교회들은 모두가 재 생산적이어서 교회의 성도들이 다 같이 전도사역에 힘썼다. 그리고 그 같은 전도 사역에 대가를 요구한 일이 없었다. 4.3 사도 바울의 전문인 선교가 주는 교훈 지금은 전문인 선교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실천한 전문인 선교가 어떠한 성경적 기준들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서 오늘의 전문인 선교 사역에서도 바르게 적용하도록 최선을 다 해야만 한다. 룻 시멘스는 5가지로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999, 44~54): 첫째, 성경적 정의: 전문인 선교의 성경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직업과 복음전도의 양자중의 선택적 택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인 선교는 단지 평신도 선교일 수만도 없으며 모든 성도는 전도와 노동을 병행시켜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명령과 전도 명령을 종합시키는 길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 들어가서 제자를 삼기도하고,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기도 하고, 가정교회를 시직하기도 하고, 성경번역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전문인 선교사는 교회에 가능한 한 비용부담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현지에서 급료를 받으면서 별도로 교회의 후원을 받게되면 현지인 동료들과 우정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적 원리가 아닌 것이다. 둘째, 성경적 기초: 교회는 사도 바울이 그 삶을 통해서 제시한 성경적 근거를 갖추어야한다. 전문인 선교에 대한 토론적 ‘단점’이나 편견적 문제점만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선교 사역에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사실에 눈을 돌려 성경적 기초위에서 발전시켜 나가도록 해야한다. 셋째, 성경적 인도: 바울 사도의 선교 원리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어떤 사역 형태를 따라가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 사도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직업을 사용해서 복음전도 사역을 하도록 하셨고, 베드로 사도에게 있어서는 복음전도 사역을 위해 그의 직업을 떠나라고 하셨다. 두 사도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자질, 경력, 선교 대상민족, 목표, 은사, 사역 내용 등이 완전히 다르다. 성경적 기준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사역 형태를 취할 때, 혹은 두 가지의 사역 형태를 혼합시켰을 때 각각에서 얻게 되는 장점은 무엇이며 감수해야할 단점은 무엇인지를 측정할 수 있게 하였다. 급격한 오늘의 사회 변동 속에서 그 시기와 사역 현장에 따라 베드로와 바울 사도 중 어느 사역의 형태를 선택해야 할 것인가는 성령 하나님께서 인도 하실 것이다. 넷째, 성경적 훈련: 훈련에 있어서는 일반 선교사의 훈련 내용을 전문인 선교사 훈련에도 그대로 반영시켜야 하며, 여기에 첨부해서 사도 바울이 행한 전문인 사역의 선교원리와 전략, 세속사회 속에서의 삶과 노동의 관계, 직업인의 윤리의식을 깊이 있게 다루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성경적 전략: 세계복음화를 효과적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바울 사도의 선교전략을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그는 교회를 개척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개척된 교회가 자립기반을 구축하여 선교에 동참하도록 하였다. 복음에 대해 적대적인 문화권에서는 가정교회를 통한 민첩한 교회 개척으로 긴장감을 팽배시키는 분위기를 피해 나갔다. 또한 평신도의 사역을 통해 복음 전파가 어려운 지역에도 교회가 개척되어 지도록 하였다. 재정후원이 필요한 선교 사역지에는 필요한 재정지원을 하도록 하였고, 자비량으로 사역이 가능한 곳에서는 전문인 사역으로 교회를 개척토록 하는 조화있는 선교 사역을 수행했음을 보게된다. 5. 21세기의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 전문인 선교의 필요성을 크게 5가지로 나누어서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의 선교 상황이 전문인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1) 폭발적인 비그리스도인의 인구 증가; 2)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나머지 종족집단의 지속적인 폐쇄성; 3)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 가고, 알려지고, 신뢰받고, 그리고 이해되는 문제; 4) 어떤 외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국가에 알맞은 교회 개척 전략의 필요성; 5) 미전도 종족내에서의 빈번한 물질적 궁핍; 6) 선진국의 물질적 번영과 힘을 따라 잡고자 하는 많은 미전도종족 지도자들의 야심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새로운 선교전략이 전문인 선교를 필요로 한다: 1) 잘못된 표적으로서, 이미 기독교화한 지역에 99.9%의 선교 자원을 사용하고 미전도 종족에게는 0.1%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2) 미전도 종족을 위한 핵심적인 전문인 사역자의 부족; 3) 새로운 전략적 전환의 필요성 – 6000여개의 미전도종족 선교를 위한 전략의 시급성 셋째, 미전도종족의 선교적 접근으로서, 전통적인 선교사 신분으로서는 사역할 수 없는 지역의 선교전략으로 전문인 선교사가 필요하다. 넷째, 10/40창의 미전도국가에 대한 선교 – 서아프리키로부터 중동을 지나 아시아까지 뻗쳐있는 북위 10도에서 40도 사이에 있는 띠 모양 지역의 국가들로서 여기에는 회교권, 힌두교권, 불교권이 포함되어 있으며, 새로운 선교의 표적국가들이 위치하고 있고, 전 세계 빈민의 82%와 대부분의 저개발국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통적인 선교사의 접근을 제한하는 지역이다. 다섯째, 만약 그리스도인 5억이 전문인 사역자로서 10명씩만 선교한다면 세계 복음화의 성취가 가능하다 – “만약 우리가 사랑의 복음을 가지고 회교도들에게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에 대한 심판으로서 그들이 우리를 대적하도록 하실 것이다. 회교의 종말론은 그들이 온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세계를 정복하는 성전(지하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한다”(크리스티 윌슨 – 전문인 선교사). 5.1 전문인 선교의 유형 전통적인 선교사의 입국이 제한 되어 있는 창의적 접근지역의 복음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선교 전략적 측면에서 패트릭 라이(Patrick Lai)는 전문인 선교사를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T-1: 직업적인 동기로 해외에 근무하게 된 사람으로서 선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자, T-2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선교의 목적으로 입국하여 세속적인 직업으로 자비량하고 있으나, 시간적인 면에서 선교 사역보다는 직장 일에 더 비중을 두고 일하는 자, T-3 :전통적인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서 사업을 통해 자비량하면서 선교 사역에 최우선을 두는 자, T-4 :전통적인 선교사의 입국이 불가능한 지역에 학생 등의 신분으로 들어가 사역하는 선교사, 이러한 선교사는 자비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의 도움을 받는다. 여기서 T-1의 타입은 전문인 선교사로 볼 수 없겠으나 T-2, T-3, T-4는 선교 단체와 연관하여 전문인 선교사로서 사역할 수 있다. 크리스티 윌슨은 모든 그리스도 인들의 선교적 동원이라는 차원에서 타 문화권에 거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전문인 선교사로 보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최바울은 비판하고 있다. 즉 선교와 전도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사역적 차원에서 개념적 분리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전도는 그리스도 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일반적 대중적인 성격이 있는데 반하여 선교는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기위해 분야별 혹은 영역별로 추진하는 전도 행위로서 전문성과 특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에는 이러한 임무에 대한 특별한 사명이 있고 이러한 사명을 효과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사역적 전문성이 요구된다. 타 문화권에 거주하면서 주변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선교사로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선교사는 타 문화권에서 현지인 교회를 구축할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선교 현지에서 복음 사역을 하는 본 교회의 파송이나 후원을 받는 자이다. 이렇기 때문에 사역적 전문성을 보유하기 위하여 훈련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선교는 따라서 교회적 사역이 되어야 하며 결코 개인적 사역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이상의 내용은 최바울의 ‘탠트메이커 선교사의 선교 사역적 의미’와 조한상의 ‘전문인 선교에 관한 연구’ – 장로회 신학대학의 석사 학위 논문(M. Div)에서 부분적으로 발췌 한 것이다(최바울 1999, 10~12, 조한상 1996, 30~32). 5.2 선교지 현장의 문제점 선교 현지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에는 선교사로서 현지에 나가기 전의 문제점들과 사역 현지에서의 문제점을 포함하여 검토하였다. 한 선교사로서 선교 현지로 파송 하기에 앞서서 선교 자체에 대한 많은 장벽들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장벽들이 선교를 시작부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선교 현지에서 까지도 많은 어려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선교 현지에서의 문제점들을 알아 보기에 앞서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선교의 장벽들을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 먼저 알아 보는 것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면에서 더욱 중요한 조치라고 생각 된다. 1) 선교의 장벽들 선교의 장벽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지난 200여년의 선교 역사 속에서 노출 되었던 역사적이고 경험적인 장벽들이고, 둘째는 오늘의 급변하는 선교 현지의 상황과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교회의 인식 부재 속에서 예측되는 장벽들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벽들에 대해서 이태웅은 ‘한국 선교의 이론과 실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이태웅 1994, 65~67). 여기서 선교의 장벽을 역사적인 것과 오늘의 상황적인 것과 한국적 상황으로 분류한 것은 본 연구자가 편의상 정리한 것이다. (1) 역사적 장벽들 현대 선교 운동이 시작될 때에 나름대로 극복해야 할 여러 가지 장벽이 있었다. 첫째, 지상 명령에 대한 오해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지상 명령은 사도들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그 후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부류가 있었다. 둘째, 신학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18세기말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알려진 윌리암 케리가 선교를 호소했을 때 다음과 같은 선의의 응소를 받았다. “자네가 없이도 하나님은 선교하실 수 있네.” 하나님의 통치와 인간의 책임 한계 사이의 불분명한 선이 선교의 벽이 되었던 것이다. 셋째, 무지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선교 정책과 선교 대상지, 선교 여행장비 및 운송 수단에 대한 미비점들 외에도 선교사가 현지 생활 중 방역 부족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넷째, 불충분한 선교사 준비의 장벽을 넘어야 했다. 선교에 대하여 잠자던 교회의 일각에서 선교를 시작하고자 했을 때 경험부족과 선교학적 공백 상태에 있던 교회는 커다란 장벽을 넘지 않으면 안되었다. (2) 오늘의 장벽들 첫째, 지나친 경비부담이 뒤따른다. 현재 한국 선교사 한 가정을 파송하기 위하여 소요되는 1년간의 경비는 선교지 왕복 여비를 제외하고도 대략 15,000불 내지 25,000불이 되고 있다. 이 것은 선교사가 파송 되기 전 1~2년 동안에 진행되는 선발 및 오리엔태이션 등에 드는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둘째,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적 장벽이 있다. 19세기 및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많은 선교 대상국들이 서방 식민지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종주국 여권을 가진 선교사들은 그 나름대로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선교 대상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고, 그 나라의 국익을 위하여 이데올로기를 채택하던가 또는 고유의 종교를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모슬렘 권과 힌두교 권은 대표적인 예이다. 크리스티 윌슨은 세계 인구의 약 50%는 정규적인 선교사의 신분으로서는 접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하였다. ---창의적 접근 지역의 나라 수는 무려 145개국이며 전 세계 불신자의 96%에 해당한다. 셋째, 타 종교의 장벽이 있다. 가장 현저한 장벽은 이슬람, 불교, 및 힌두교이다. 이 중에서 인구 10억을 웃도는 이슬람교도는 단순히 수동적인 자세만 취하지 않고 공격적이고 선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넷째, 세속화의 장벽이 있다.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폴 등 산업 사회를 이룬 나라들은 일단 선교사가 입국한다 할지라도 또 하나의 큰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고유의 종교 및 문화로 말미암은 저항감 이외에도 세속화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음으로 복음을 들고 침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섯째, 인도, 필리핀 등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가 주는 제한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인도와 필리핀의 경우 외화를 자유롭게 선교사에게 보낼 수 없으며 대부분 해외 선교는 그 자금을 타국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3) 한국적 상황의 장벽들 첫째, 목사나 정규선교사만을 선교사로 인정하는 인식적 장벽이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지역 교회는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를 선교사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신학을 공부한 목사나 전임 선교사만을 선교사로 인정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이 것은 세계 선교적 조류에 역행하는 처사이다. 둘째, 선교 정책이 교단마다 그리고 선교회마다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구체화되어 있지 못하다. 셋째, 지역 교회가 선교에 대한 인식이 깊지 못하다 넷째, 선교사의 현지 관리체제가 부족하다. 2) 선교 현장에서 말하는 문제점들 돈 해밀톤은 800명 이상의 전문인 선교사들(저자는 자비량 선교사라고 명하고 있음)에게 설문지를 보냈고 그 가운데 406명이 응답하였는데 응답자 가운데 98%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고백의 4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돈 해밀톤 1992, 14~15): 첫째 내용: 나는 선교지로 가기 전에 6년간 대학생 선교를 했으므로 잘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나는 선교 현지에서 효율적인 사역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준비도 기도후원도 부족했고 꼭 보고해야 할 책임도 없었기 때문이다 - 중국의 전문인 선교사. 둘째 내용: 너무나 갑작스레 기회가 와서 나는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못하고 떠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미리 준비를 했어야 했다. – 중동의 전문인 선교사. 셋째 내용: 나는 더 준비할 수 있었는데, 후회스럽다– 일본의 전문인 선교사. 넷째 내용: 전문인 선교사로 해외에 가는 사람은 부족한 부분을 선교지에 가서 시간을 내어 보충 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조국을 떠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 북아프리카의 전문인 선교사. 이상의 보고에서 들어나는 사실은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준비, 훈련, 교회와의 연계성, 팀 사역, 그리고 선교 단체의 관리 등 의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선교 단체들이 전문인 선교사의 허입을 놓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전에 본인들이 벌써 해외로 떠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응답자 406명 가운데 선교 단체와 연결되어 파송 된 선교사는 30%에 불과 하였다( 1992, 15). 전문인 선교사들과 전임 사역의 선교사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전문인 선교의 선교 현장에서의 문제점(취약점이라고 본문에는 기술됨)은 다음과 같다( 1992, 28): 첫째,전문인 선교사들은 광야를 휘젓고 다니는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이 되기 쉽다. 그들은 선교지에 나가 이미 그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역에 합세할 생각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일’을 한다. 팀 사역도 아니고 보고 체계도 없고 책임한계도 없고 스스로 외에는 자문기관도 권위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장기적인 계획이나 식견이 없다. 그러므로 잘 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잘못하면 자신은 물론 주위의 그리스도 인들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둘째,전문인 선교사들은 영적으로 성경적으로 준비가 미숙한 가운데 선교지로 나간다. 그들은 현지에서 부딪히게 될 영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훈련도 지식도 자원도 결여된 상태이다. 셋째,전문인 선교사들은 현지의 언어를 배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지 않는다. 넷째,전문인 선교사들은 많은 시간과 정력을 일에 쏟아야 하므로 그들의 선교 사역은 유야 무야가 된다. 전문인 선교사로서 사역에 성공하려면 선교 현지로 나가기 전에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에 힘써야 하고, 현지에 도착한 후에도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기도해야 하며, 장기간 기다리며 영적으로 늘 깨어 살피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속성으로 무엇을 이루어 보려는 사람에게는 전문인 선교 사역은 적합하지 않다. 전문인 선교로 성공하는 것은 일반 선교사로 성공하는 것보다도 훨씬 힘들다. 회교 선교 단체인 프론티어스를 창설한 그레그 리빙스턴(Greg Livingstone)은 “ 전문인 선교사로 성공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끝내 해내고야 마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1992, 35). 성공적인 전문인 선교사는 모교회와 견고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교회와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이 16개가 있었는데 우수한 전문인 선교사는 보통 이하의 전문인 선교사들보다 16개항의 질문 하나 하나에 높은 점수를 보였다고 한다. 결국 효과적으로 현지 사역을 잘 수행하는 전문인 선교사는 지역 교회의 중요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에 잘 참석했었고,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훈련 등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사역의 경험을 교회를 통해서 쌓았고, 장기적인 교제와 지원을 교회에 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모교회에 보고할 책임을 느끼고 있었고 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원하는 면에 있어서 교회를 먼저 꼽았다(1992, 57). 대부분의 전문인 선교사들은 일터 근처에 ‘현지 지원팀’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옆에서 격려해 주는 목소리가 꼭 필요할 때가 있다. 옆에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배경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너무 좋고 또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하였다. 같은 목표와 비전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팀 사역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그런 교제와 지원이 없었다면 실패하고 사역을 그만 두었을 것이라고 어느 전문인 선교사는 말하기도 하였다. 충분한 기도와 교제의 지원이 없었던 어느 선교사는 “환경적으로 너무 낙심 되고 긴장 되어 처음으로 나는 믿음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또 다른 전문인 선교사는 말하길 “믿음을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팀이나 교제 가운데서 힘을 얻었더라면 그렇게 낙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1992, 58~59). 전문인 선교사는 그 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살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나라에는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문을 열고 전문인 선교사를 맞이하는 것이다. 기회의 세계(Global Opportunities)의 루스 시멘스(Ruth Siemens)는 “ 당신에게 꼭 맞는 직업은 하나다, 그 것을 찾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전문인 선교사가 되려면 자신에게 적당한 직업의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성공한 전문인 선교사들에게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즉, 그 분야에 실력자라는 것이 효과적인 사역에 필수 요건이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실력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존경 받기 위해서는 우선 맡은 일을 잘 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실력을 인정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실력에 따라 당신의 증거는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이다. 영적인 사역은 훌륭하고 전문 분야의 일은 엉망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 분야에 부적합하고 실력이 없어 그들의 복음 증거는 무력했음을 보았다고 한다. 일을 잘 못하면서 강력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는 참으로 힘들다(1992, 76). (1) 선교사 중도탈락의 문제 선교사 중도탈락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그 수치를 파악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고 힘든 데 선교를 담당하는 일선의 기관들이 선뜻 내놓을 수 있는 자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윌리암 태일러는 세속 세계의 중도탈락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 심각성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중도탈락은 해외 주둔 군인을 비롯해서 외교관, 사업가들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도 많은 비용이 드는 문제이다. 미국에서 해외로 파견된 경영관리자 중에 30%정도가 해외 근무 도중에 돌아온다. 이처럼 해외 근무 도중에 중도에서 탈락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개인과 가족의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 같은 중도 탈락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독신 중간 관리자의 경우에는 약 15만 불이 되지만 가정을 가진 고위 관리자의 경우에는 35만불 이상이 된다고 한다(윌리암 태일러 1998, 22) 그렇다면 선교사의 중도탈락은 얼마나 될 것인가? 통계라는 것은 엉터리일 수 있고 또 자신들의 경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숫자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는데, 지금까지 조사 한 바에 의하면 전 세계 선교 사역자들 20명 중 약1명(5.1%)이 매년 선교지를 떠나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들 중 70%는 방지 가능한 이유로 인해 돌아간다고 한다. 타 문화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전 세계의 선교사를 15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그렇다면 이들 중 7,650명이 매년 선교 현지를 떠난다는 사실이다..(1998, 29) 한국 선교사의 중도탈락은 어떠한가? 1992년에는 파송 선교사 중에 23.4%가 임기 이전에 귀국하였고, 1993년에는 42.9%로, 그리고 1994년에는43.7%로 중도 탈락 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한국 선교의 어두운 면을 보이고 있다(문상철 1998, 137~38). 선교사 중도탈락과 관련해서 가장 심각하게 자기 반성과 고통을 겪게 되는 곳은 첫째는 파송 교회요, 둘째는 훈련 기관이요, 셋째는 파송 단체가 되고 있다. 세계 선교 협의회의 선교위원
21세기의 사회변동과 디아코니아 선교
21세기의 사회변동과 디아코니아 선교 김용복(한일신학대학교 총장) <머릿말> 한국교회는 "민족을 섬기는 교회"(민족디아코니아의 교회)였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구원을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여 왔으며 민족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수립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여왔다. 현재 21세기에도 한국교회의 이러한 선교적 사역을 지속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100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통하여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하여 선교적 사역을 이루시려는 그의 뜻을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 교단이 이번에 개최하는 봉사대회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통하여 새시대에 새로운 지구적 지평에서 새로운 사역을 행하려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감지하게 된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역사적 전통과 그 사역의 업적이 출중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한국민족과 아시아의 민족들 그리고 세께의 민족들이 이를 희구하며 갈망하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이 세기적 선교사역에 부르시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처하여 있는 이 시대는 한국과 세계에 커다란 세기적 전환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때이다. 한국교회는 이 격변하는 시대가 새로운 선교의 시대(카이로스)임을 자각하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면서 선교적 사역에 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격변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새시대의 맥락 속에서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민족사 속에서 사역하시고 섭리하시던 하나님의 역사적 발자취를 새롭게 감지하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는 선교사역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선교적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적 격변과 한국민족사회의 변화를 깊고 투명하게 이해하고 이 변화를 통하여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형체를 감지하는 것이 우리교회의 시대적 역할을 규명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1.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자. 작금 세계와 인류는 하나로 통합되어 가는 거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간다. 이념적 군사적 정치적 양극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되고 시장경제화 되었으며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들도 세계시장에 개방되어 가고 우르과이라운드 국제협약체결이후 모든 국가들은 세계시장에 개방되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사회도 커다란 19세기말이래 새롭게 경험하던 지정학적인 격동을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 남한정부도 세계화와 개방화정책을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세기적 문명사적 격변은 <地球市場>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세력간의 역학관계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세계적 정치경제의 역학관계는 <지구라는 시장>에 사는 모든 인류와 자연의 생명체의 살림살이를 결정하여 주리라는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던 당시 로마제국이 천하를 군사, 정치, 경제적 통합을 통하여 Pax Romana의 제국질서를 형성하였던 것과 흡사하다. 이 다차원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를 주도하여가고 있는 세력은 20세기 후반부터 부각되기 시작하여 이제 세계를 장악하여가는 경제세력으로서 초국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초국적 거대기업들이라고 한다. 물론 국가권력들이 현금의 지정학적인 질서와 새로 부각되는 세계시장의 질서에서 아직도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구적 시장에 새로운 지구적 역할을 자임하는 역사적 주체로서 초국적 거대기업들은 세계시장속에서 거의 절대적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이 초국적 거대기업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독일등 선진산업국가들의 정치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의 신흥산업국가들안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소위 아시아의 용들을 움직이고 있는 대기업들과 깊은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이 새시대의 시점에서 국내외에 군림하면서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이 거대경제세력의 실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의 인류와 생명은 이 초국적 거대기업망의 행보에 의하여 결정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 경제적 실체들이 세계시장의 치열한 논리에 의하여 치열한 경쟁에 임하게 될 것이며 이 초국적 기업들은 국가의 권력으로도 통제하며 길들이기 어렵게 되어간다는 데에 있다. 우리의 관심은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가정, 지역공동체, 민족공동체)와 지구의 생명체가 이러한 세계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시대의 징조를 읽어 내야하는데 문제는 지구적 상황은 급하고 격하게 변화되어 가고 있어서 명확하게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신앙적 눈과 지혜로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고 우주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의 역사를 분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시대의 징조> 우리 민족공동체와 한국사회는 세계시장에 개방되고 우리민족의 공동체는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여지없이 노출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지구시장에 개방되고 있으며 과학과 기술의 가속적이 발전에 힘입어 형성된 교통통신상으로도 개방되고 있으며 지구시장의 압력에 의하여 국가의 경계선도 점진적으로 열려지고 있다. 지정학적인 축소통합과 정치 경제적인 개방 그리고 문화적인 개방은 한국사회를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한국사회와 한국민족의 삶을 지극히 유동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집어넣고 있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개방을 정책적으로는 세계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한국사회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 편입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을 한국사회에 국한하여 조명하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적 문명적 격변을 분별하면서도 동아시아외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구 소련, 중국, 일본, 미국등 세계에 흩어져있는 동족들을 포함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고 있는 민족공동체-를 초점으로 하여 시대적 격변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새로운 21세기적 선교적 지평은 여기서부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의 유대를 기반으로 하여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선교적 사역을 감당하였던 것과 흡사하다. 1.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변화 지난 5,6년동안 동북아는 커다란 지정학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우선 교통수단의 발달과 냉전체제의 해체로 말미암아 민족들간의 지리적 거리가 대폭 축소되었고 교류가 빈번하여 졌으며 경제적 유통의 증가를 비롯하여 통신도 엄청나게 증가되고 질적인 혁명을 전개시키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개방되어 가고 있다. 아직 한반도 내부의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는 듯이 보이나 이제는 직간접적으로 긴밀히 접촉하고 교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가고 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인 변화란 이제 모든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가 열리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지정학적인 변화는 민족의 안보와 평화라는 차원에서 냉전체제에 있어서의 그것과는 근원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지정학적인 변동속에서 민족의 안보와 한반도의 평화는 그 의미와 성격과 전력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한국교회에게 변화된 선교적 환경을 가져다주고 있다. 우리는 민족의 지정학적인 분단을 극복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동북아 민족들간에 넘나들면서 아직은 미흡하지만 거시적인 선교의 비젼을 조성하여 가고 있는 셈이다. 2. 민족의 경제적 생활의 변동 : 경제적 희생의 매카니즘의 지배 우리 민족공동체가 지구시장의 소용돌이에 노출되고 한국경제가 세계시장에 편입되면서 민족의 경제적인 살림살이가 근원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우선 지난 30년동안 개발독재정권아래서에 지극히 인위적인 정책과 기층민중의 희생을 토대로하여 성장하여온 한국경제는 세계시장에 편입되는 진통을 경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재정권의 과잉보호와 특혜를 누리어 오던 경제세력과 경제구조는 소위<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자체 체질개선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런 정책적 과정이 대기업과 같은 국제경쟁력을 가진 실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은 모든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중산층소비자와 중소기업들을 포함한 경제적 약자들을 소홀히 하는 정책적 결과를 우려하게 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민족경제의 일부인 북한의 사회경제는 그 자체가 극심한 위기에 처하여 있을 뿐 아니라 지구적 시장에 노출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북한경제의 <붕괴위기>까지 논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어려워지고 있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북한경제의 파탄은 민족경제적 차원뿐 아니라 남한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여하간에 북한경제의세계시장에의 노출은 그 파탄여부를 막론하고 경제적 약자들의 엄청난 희생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 상황에 대한 한국교회의 적극적 선교적 대응이 요청된다. 3.민족의 정치적 삶의 변화 : 정치적 주체의 상실 남북한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민족공동체와 민족의 성원들이 그 경제적 삶이 지구시장의 논리와 역학관계에 의하여 규명되는 것처럼 민족의 정치적인 살림살이도 지구시장에 의하여 결정될 전망이다. 우리민족은 지금까지 조선조의 전제적 정치유산과 일제의 식민지배 그리고 냉전분단상황에 있어서의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군사개발독제체제을 경험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지난 100년의 정치사속에서 민주주의를 희구하여 왔다. 이제 지구가 하나의 거대시장으로 압도하여 오고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세계의 열강들이 한반도상황에 치열하게 경쟁개입하는 상황에서 우리민족의 정치적인 통합은 남북간에, 지역간에 그리고 민족사회의 상하계층간에 모든 분단과 분열을 극복하고 온전한 통일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된다. 한반도 주변의 정치역학적 변화는 우리민족의 국제적 위치를 정하여 민족의 독립과 자결과 주체를 수립하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4대강국의 틈바귀에서 민족자존의 정권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러한 입지를 수립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민족이 민주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사회졍제적으로 상하계층간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한걸음 나아가서 민족국가의 틀이 개방되고 지역사회가 국제시장의 소용돌이에 노출됨에 따라 지역민주주의 또는 향토민주주의를 간간으로하여야 민족 통합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의 민주적 주체들이 국내적으로 연대하여 민족사회를 통합할 뿐 아니라 국제적 연대를 형성하여 민주주의의 국제적 유대를 강화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참여요, 직접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시장의 지구화는 우리민족의 정치적 독립성에 도전할 것이며, 국내적으로는 분열과 민주적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세계경제세력들이 국경과 사회적 안보의 망과 문화적 정체성의 경계를 넘어서서 우리민족공동체에 진입하여 우리민족의 성원들이 직접적으로 노출되고 이 과정에서 세계적 차원의 세력들에게 압도되어 정치적 좌절과 무기력의늪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4. 모든 사회적 관계의 갈등화와 폭력화 시장의 지구화는 경쟁이라는 논리를 절대화하고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를 실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경쟁을 주도하는 주체는 대기업이며 이 경쟁은 초국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이에 따라 모든 인간관계, 집단간의 관계는 치열한 경쟁관계, 고위 무한경쟁의 관계로 진입할 것이며, 이런 경쟁의 소용돌이는 전통적인 계층간의 갈등, 성과 성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민족간의 갈등을 고조할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관계를 모순과 갈등 그리고 대립관계로 진전시킬 전망이다. 더구나 이러한 경쟁의 강도가 높아지고 따라서 대립, 갈등 모순관계는 무법화 폭력화할 가능성을 증진시킬 것으로 보인다. 사회관계의 폭력화도 심리적인 차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물리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심화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경제적 정치적 약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인 약자들의 소외와 희생은 헤아릴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기존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약화되어가고 있으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사회보장체제도 약화 내지는 붕괴되어 가고 있으며, 사회주의국가들의 사회보장체제를 이루어야 할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도 말은 많으나 실천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며 가난한 나라에서 약자의 사회적 안전보장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정부는 사회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조정하는 정책을 지향하는 듯이 보이나 재정과 하부구조의 부족으로 적극성을 띄기 어려울 것이며 일부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 듯하고 이 경우 가난한 사회적 약자는 사회적 안전보장의 체제에서 소외될 뿐일 것이다. 지구적 차원의 소용돌이 속에서 약자들의 사회적 안전보장은 극심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5. 문화적 상황의 격변 : 문화 전쟁 지구적 시장은 우리 민족사회를 세계 시장에 통합하여 감으로서 민족의 문화생활에 지대한 변화와 충격을 주고 있다. 우선 지구시장의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이 지구시장의 문화는 고도기술을 배경으로 하는 다중매체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지구 문화는 지극히 상업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소비주의적이다. 이런 지구문화는 쾌락주의적이며 때로는 선정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하다. 새롭게 형성되는 지구문화는 민족문화적 정체성을 흔들어 놓고 민족문화전통을 와해한다. 민족이 오랫동안 지탱하여 오던 민족적 삶의 양식이나 가치관 등 고귀한 민족문화의 유산을 훼손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통음악이나 미술 심지어는 전통적인 미풍양속이 새로운 시장문화에 의하여 대치되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장의 논리에 깊이 뿌리박는 문화산업과 광고는 건강한 문화적 삶을 증진시키지 못 할 것이다. 사실 시장의 소비주의 문화 경쟁 문화는 우리의 의식의 장 특히 어린이들의 의식의 세계를 완전히 점령하고 건강하고 건전한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가치관 그리고 심미적 감각을 오염시키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전쟁이다. 최근 헌팅튼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지구시장의 논리에 역행하는 문화 특히 비서구문화는 공격과 침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민족문화의 발전과 창조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문명의 대결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 사회가 지구시장에 편입되어 가는 과정에서 민족의 문화적 삶에 대하여 일정한 봉사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무비판적으로 서양문화에 융합된 상황을 지양하여야 할 것이다. 6. 종교적 차원의 변화 : 정신적 공백과 혼란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세계시장은 충격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기독교를 포함한 기존의 종교들과 민중민족종교들에게도 충격적일 것이다. 사회적 아노미 현상은 인간의 정신과 신앙생활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신흥종교의 현상이나 종교의 근본주의적 회귀 그리고 갖가지 종말론적인 종교현상들도 한국사회가 지구시장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변화에 따른 현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독교나 불교같은 기성종교사 자기개혁을 통하여 지구시장에서의 창조적인 역할을 회복하지 못하고 반동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경직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면 종교들이 지구시장의 상업주의 물질주의에 편승되어 무기력한 종교들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종교가 시장에 편입되어 "종교적 상업거래"라는 타락상을 자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회가 지구적 시장에 개편되면서 민족공동체나 민족성원이 그 정신적 지주를 상실하는 결과를 경험할 수도 있울 것이다. 이처럼 민족공동체가 정신적 기반을 상실할 경우 그 상황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7. 총체적 생명계의 위기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한반도가 이에 편입되면서 삼천리금수강산 생명의 동산이 "죽음과 죽임의 소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지구적 시장경제는 무한성장과 자본축적을 지속할 것임으로 지속적으로 자원의 자원을 송급받아야 하고 이런 산업조직은 불가피하게 자연과의 대립 또는 착취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도 예외없이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심각한 부담을 가져다 주었으며 때로는 "생명의 동산" 한반도에 위협을 가져다 줄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자연환경의 문제는 자연을 그대로 두면 자연적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고 생명의 정원으로 가꾸어야 될 것이며, 자연과의 갈등관계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경제의 근본적 변혁과 자연환경을 "생명의 정원"으로 확고하게 수립하는 사회의 구성없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에서 민족의 생명을 지키고 가꾸고 꽃피고 열매맺게 하는 일은 경제생활의 균형, 정치적 폭력(전쟁)을 제어하고 평화를 수립하는 일, 사회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화해의 사역, 풍성한 생명문화의 창출, 생명의 정시적 기반형성 그리고 한반도를 생명의 정원으로 가꾸는 일 등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한반도의 생태계 문제는 남북이 공동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며 이웃의 나라들과도 공동보조를 취하여 해결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디아코니아》 1. 우리는 우리민족사회가 자본의 축적을 무한히 극대화하고 경쟁을 치열하게 가속화하는 세계시장에 편입됨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들을 열거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디아코니아(DIAKONIA)의 의미를 규명하고 한국교회의 역할을 논하려고 한다. 디아코니아는 초대교회의 핵심적인 삶과 선교의 부분이었다. 본래 이 말은 使役 즉 종이 주인을 섬기는 일을 뜻한다. 노예의 기능을 디아코니아라고 칭하였다. 모세나 다윗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나임의 종으로 일컬어졌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主로 섬길 뿐 아니라 하나임의 백성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使役을 하였기에 종으로 칭함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하여 왔다고 천명하였고 그렇게 살았다. 이러한 마가복음의 기독론은 구약 이사야서 "고난의 종"의 사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빌립보서 2장에 나타난 초대교회의 기독론도 예수는 원래 하나님의 본체와 동등하였으나 인간, 나아가서는 "종의 형체"를 입고 구원과 해방의 사역을 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종으로서의 예수의 사역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 나라의 주역, 즉 하나임의 정의의 주역, 하나님과 계약관계에 들어가는 동반자로서의 주역, 화해의 평화를 일구는 주역, 문화를 꽃피우는 창조적 주역, 생명을 가꾸는 주역으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초대교회의 디아코니아의 사역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이 사역을 우리 한국교회는21세기를 직면하면서 민족사회와 지구사회에서 성실히 수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재화와 생산활동 분배활동 즉 경영활동을 통하여 즉 하나임의 청지기의 역할을 통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십일조와 같은 신앙적 경제행위를 통하여 이미 모든 재화는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그의 청지기(경영자)이며 이 경영의 목적은 하나임의 백성과 그 피조물의 사회경제적 생태적 안전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21세기에 전개되는 경제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경제정의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살림살이와 생명을 파괴하는 경제질서를 바로잡고 경제적 약자들을 자기살림살이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일으켜 세우며 무수한 경제적 희생자들을 보살피는 사역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교회는 남한사회의 물질적인 풍요를 하나님의 물질적인 축복으로 간주하는 너무나 안이한 신앙적 태도를 가져왔으며 경쟁성장의 과정에서 경제적 약자와 희생자들을 소홀히 여겨왔음을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누리는 상대적인 물질적 풍요도 철저한 디아코니아(경제)신학을 바탕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며 민족의 살림살이를 바로 잡는 선교적 사역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은 한국민족사회의 살림살이를 바로잡고 그 희생자를 일으켜 세우는 디아코니아의 선교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2. 지구적 시장의 전개는 모든 국가의 경계선을 개방하고 국가의 기능을 약화내지는 변화를 시킬 전망이 있어서 민족의 정치적 살림살이에 커다란 충격을 주리라는 사실은 이미 지적하였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민족사회에 수립하면서 동시에 민족공동체와 지역사회에 있어서 참여와 연대를 위한 민주적 주권, 시민적 생활주권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봉사를 감당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민족화해에 있어서 민족독립, 민주화, 인권을 위하여 봉사하여왔고 이제는 21세기에 대응할 수 있는 민족적 정치생활을 위하여 직접참여와 연대를 위한 봉사를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참여적 봉사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3. 한국교회는 민족공동체의 통합을 위하여 남북간의 민족통일을 비롯하여 모든 계층간의 정의로운 화평, 지역간의 균형, 모든 집단간의 알륵과 대립의 평화로운 조정,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샬롬의 사역(정의, 평화, 치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사회복지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고 있으나 이제 그 시작단계에 있으며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볼 때 국가가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며 기업들이 사회복지에 참여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인간단체들은 한국사회복지를 위하여 커다란 몫을 감당하여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우리동포들을 위한 복지는 한국교회의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한사회가 개방되거나 변혁되거나 남북통일이 될 경우 북한사회의 사회보장문제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대비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4.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창달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여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최근 민족문화의 시련과 발전과정에서 소외내지는 "지체현상(eultural lag)"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역r할이 축소되어 왔다. 이제는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건하고 창조적 문화창달을 위한 봉사와 사역을 감당할 역사적 시기에 달하였다. 우선적으로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재활하기 위하여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에 대한 신학적 태도를 개방적으로 재정비하여야 한다. 한국기독교가 그 초기에 서양문물을 수용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으나 이것은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한국기독교를 "서양종교"로 치부해버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기독교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개방적이고 포괄적으로 형성하도록 한국문화와의 일체성을 수립하여야 한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민족에게 문화적 축복을 내려주셨다. 그리하여 반만년의 장구한 역사를 창출하게 하셨다고 믿는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한국민족문화를 전면적으로 긍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문화는 여러 가지 시련을 겪어왔다. 조선조의 문화를 예로들어 설명한다면 조선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공헌에도 불구하고 조선조내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석루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으며, 마침내에는 일제의 침략과 남북의 분단으로 인하여 민족문화의 계승발전과 창달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왔다. 더구나 지구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되면서 세계시장의 문화적 잠식과 충격으로 말미암아 민족문화의 정체성은 물론 민족적 가치관, 삶의 양식 심지어는 민족문화적 감각까지도 침공당하고 와해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의 세계는 지구시장의 논리에 의하여 점력당하여였고 이에대한 저항은 "문화전쟁"을 흡사하게 한다. 이것이 사무엘 헌팅턴이 말하는 소위 "문명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문화적 변동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신앙詷동체를 종교문화공동체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문화선교의 사역"이다. 한국교회는 먼저 예배가 기독교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활성화 시키며 교회의 신앙적 문화생활을 창조적으로 활성화 시켜야 할 것이며 모든 평신도문화인들의 선교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국문화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독교문화인, 연예인, 언론인등 문화선교의 역군들에게 적극적으로 선교적 사명을 부여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21세기의 이디아세계 정보사회에 대응하기위한 비판적 창조적 선교전략을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고도기술을 기반으로한 다중매체의 홍수에 대응하기위한 전교회의 매체교육(Media education)이나 전자통신활동훈련(Electranic Communication Actiaist Training)같은 문화선교를 위하여 필수적인 요건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민족문화의 장을 창조적이고 생명력있는 축제의 마당으로 발전시켜 문화적 혼란속에서 문화적 희생되는 민족의 성원을 지키고 하나남께 영광돌리는 "민족예술의 창조"에 적극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5. 종교적 정신적 디아코니아 인간은 정신적 영적인 존재이다. 한국의 종교들은 그 나름대로 민족역사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면서 민족의 정신적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를 깊이 믿으면 믿을수록 한국종교의 실체를 더욱 깊이 터득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국기독교의 거의 독선적인 태도는 기독교를 위해서도 한국종교를 위해서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독교가 그 자체의 진리만이 참진리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있고 중요하지만 이것이 곧 한국기성종교를 무조건 배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종파간의 연합운동에 참여하여 왔다. 그 전형적인 예가 기미 3·1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과정에서 기독교, 천도교, 그리고 불교는 연합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21세기의 지구화는 민족사회의 기존 정신적 기초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을 전망이다. 그것은 한국종교들에게 획기적인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한국종교들은 반동적으로 또는 자기개혁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직된 사고를 가지 종교들은 어려움을 격게 될것이며 한국사회가 극심한 사회적 아노미(무규범현상)을 겪으면서 신흥봉교가 극성을 부릴 전망이다. 구사회주의 국가나 현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여 생각한다면 북한사회도 세계시장에 개방되면서 극심한 정신적 공백과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세계시장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정신적 혼란과 공백이라는 심각한 상황을 대응하면서 민족에게 확고한 정신적 기반과 정신적 의미를 부여하는 정신적 봉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종파간의 대립과 갈 등을 지양하고 종파간의 에큐메니즘적 협력을 위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6. 생명의 정원을 보전하고 가꾸는 봉사 세계시장의 지속적 팽창과 성장은 생태계을 더욱 심각하게 위협할 전망이며 한반도에서의 산업시설과 산업경제의 팽창은 삼천리금수강산 하나님께서 민족의 생명을 위한 정원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생태환경적 위기를 가져올 전망이다. 민족을 살리고 민족이 살아나가는 민족의 살림살이는 한반도에 "생명과 삶의 정원"을 가꾸어 가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의 동산으로서의 한반도를 지키고 가구는 청직이 또는 경영자로서의 봉사적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는 창조신학에 있어서 현대과학적 "자연정복"이라는 주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현대과학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독신학은 자연철학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생명의 정직이 또는 생명의 정원직의"로서 재정비를 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적 자연철학은 중요한 사상적 전기를 제공하여 주리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창조신학은 이러한 동양자연철학을 기독교신학의 근간에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왔다는 성경적 창조론은 일반 자연철학의 낭만주의적 경향과 "자연은 스스로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방임적 태도를 지양하고 자연을 생명의 정원으로 이루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가꿀 수 있는 이론적 윤리적 기반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는 "생명디아코니아"의 사역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결 론 : <한국교회의 사회정책의 방향> 우리는 21세기에 있으리라는 사회변동을 예상하면서 현그므이 시장지구화를 분석하면서 한국교회 "민족디아코니아"의 과제들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이 과제 수행에 있어서 다음 방향을 재확인 하려고 한다. 한국교회의 총체적 디아코니아의 과제의 방향은 1. 최우선적으로 "희생자들과 약자들"을 돕고 보살피는 일이다. 2. 인간과 공동체와 생명을 주체로 세워 일으키는 일이다. 3. 구조적 개혁을 통하여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4. 인간의 문화적 정체성과 창조적인 정신을 함양하는 것이다. 5. 인류공동체의 유대를 지역에서 민족사회에서 세계사회에서 엮어 가 는 것이다. 이러한 디아코니아의 선교정책을 입안하고 정책적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며 필요한 선교요원을 확보하기 위하여서는 신학적 기반구축, 각 분야에 대한 심층적 연구, 각 분야별 전문인력훈련, 그리고 전교인의 사회봉사훈련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국교회의 교회교육, 교회를 기반으로한 사회교육, 각신학대학에 있어서의 신학교육의 재정비와 전문화에 필요한 교과과정의 개편과 각종연구소의 설치가 필요하며 특히 계속교육체제는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특수대학원 체제를 가추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와 민족복지> 민족복지는 민족통일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민족복지의 주체는 우리민족공동체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근대 국가적 통념은 민족복지는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나 자유주의국가체제에서 국민이나 인민을 대표하는 국가기관인 정부가 민의 복지를 담당하고 책임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복지를 소위시장의 틀 안에서 기업에게 민의 복지의 일부를 맡기는 경향이 있었고 지금 지구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면서 이러한 경향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 같다. 민간기업이 시장의 거래를 통하여 민의 복지를 담당하게 되어 주체 또는 동반주체가 되는 격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최근에 와서는 시민단체들이나 종교단체들 즉 비정부 비기업단체들이 국가 주도적, 기업주도적 복지정책에 대하여 민의 참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민이 스스로 민족복지의 주역이 되려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정부 주도적 복지나 기업위주의 복지는 당사자들인 민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간파하고 정부나 기업이 주도하는 복지정책이나 사업을 민의 참여를 통하여 민주화해야한다는 주장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민족복지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민족복지를 통일된 민족공동체에서 실현하려고 한다면 새로운 차원의 정치적 살림살이를 꾸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을 생활민주주의 또는 복지민주주의라고 이름 주고 싶다. 우선 민이 자기의 삶과 생활에 관한 모든 일에 직접적으로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직접적인 필요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해당 개인이나 가족이 직접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참여정치는 일차적으로는 마을 내지는 지역공동체에서 이루어 자는 민주주의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행정적 민주주의가 아니고 민의 직접적 참여를 통하여 지역공동체의 모든 일이 결정되고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앙정치는 이것의 연장선에서 이루어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치는 위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일 것이다. 민주적 지역공동체들의 연대와 결속이 전제체제보다 훨씬 강하고 창조적일 것이다. 우리민족의 복지는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민주주의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역민주주의가 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고 민의 살림살이를 직접 챙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직접민주주의는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아니다. 이것은 오늘 지구적 상황에서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강대국이나 초국적 기업의 횡포를 민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길이며 통일민족국가의 강력한 민주적 기반이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민주적 참여는 민족내부의 갈등을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민족의 화평과 결속을 이룩하는 첩경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지역공동체적 민주주의를 통한 직접참여의 확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위스나 이스라엘에서나 덴마크와 같은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우리고유의 직접참여를 확대해나가는 정치발전의 궤도를 짜고 이에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통일민족의 복지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통일된 민족사회의 복지는 우선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는 민족내부의 갈등과 외세의 침입으로 많은 민족성원이 상처를 받았고 특히 빈자와 약자들이 더욱 커다란 상처를 받게 되었다. 통일된 민족공동체는 이런 민족성원들을 개인과 가족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민족공동체적 차원에서 치유하고 싸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상처받고 희생을 경험한 빈자와 약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야 민족복지가 완전히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현금 우리는 남쪽과 북쪽사회에 있어서 그리고 흩어져 사는 우리동포들 사이에서 이런 빈자와 약자들이 자기 삶의 주역이 되는 사회복지와 사회안전이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지구시장은 남북사회에 강한 개방압력을 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사회는 남이나 북이나 개방을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도록 개방을 강요당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약자들 빈자들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공동체적 복지체제를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발전시켜야 민족복지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종교단체들이나 지역자치단체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민주적 장치를 하여야 할 것이고, 자원도 확보하여야 되겠고 전문인력과 지도력도 육성하여야 되겠으며 경험도 충분히 쌓아 나가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지구시장은 우리사회에 경쟁, 지구적 경쟁과 그 논리를 강요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민족은 이러한 적자생존의 논리, 심지어는 무한경쟁의 논리를 강요당하고 이 치열한 약육강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대립이 복합되며 상호충돌이 심화되어 폭력화될 전망이 눈앞에 보인다. 이렇게 되면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이 모순과 갈등의 악순환으로 치닫아 심각한 지경에 이를 지도 모른다. 여기서 민족적 연대의 결속이라든지, 정의라든지, 협동이라든지 하는 민족복지를 위한 공동체형성의 기반이 무너질 지경이 될 까 염려된다. 우리는 우선 모든 사회관계에서 경쟁을 완화하고 협동을 진작시키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민족공동체내부에 차원 높은 협동정신을 함양하여야 할 것이고, 모든 갈등과 모순, 심지어는 적대관계라고 하더라도 평화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적 평화와 안전, 인간안보를 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민족통일을 평화적으로 이루어 갈 수 만 있다면 이 과제는 상당한 진척을 볼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해묵은 계급적 갈등, 지역적 갈등, 종파적 갈등, 족벌적 갈등을 정의롭게 그러나 평화롭게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민족 화합과 화평의 기반을 민족 사상적 전통을 통하여 종교적 사상의 기반을 통하여 구축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경쟁력이 없는 사람은 부추겨서 스스로 설 수 있게 하고 사회적으로 패자는 일으켜 세워서 주체가 될 수 있게 하고 서로서로 손잡고 함께 일어서는 과업을 이룩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민족통일은 민족복지를 위한 것이며 민족통일은 민족사회의 화해와 화합, 민족공동체 안에 평화와 안전을 이룩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통일을 향한 우리모두의 과제라고 생각되며 또한 이것이 민족통일과 민족복지를 이루는 우리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동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나 한국선명화와 같은 민간단체를 통하여 북한을 위한 구호사업을 진행하여왔다. 특별히 지난 세계개혁교회연맹에서는 "북한교회의 봉사선교"를 세계적으로 돕도록하는 결의를 하였다. 이것은 물론 그동안 한국교회의 민족통일과 한반도통일을 위한 세계계적 협의과정에 힘입어 이루어 진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남북한교회는 사회봉사선교를 선교에 있어서의 우선순위로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교회가 봉사선교를 주요선교정책으로 정한 직접적인 원인은 각기 다를 것이지만 최근 남쪽교회에서는 봉사선교 즉 디아코니아를 교회의 선교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30여년동안 경제발전은 하였어도 경제적으로 가난한자나 사회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자들을 보살피는 일을 상대적으로 게을리 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사회봉사선교의 전통을 실천하려고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우리교회의 봉사선교를 분석하면 미미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잠재력은 상당하다고 판단된다. 북쪽에서 교회가 봉사선교를 논하게 된 것은 교회의 봉사선교를 위한 재정적 인적 역량 때문이 아니고 굶주린 민족의 현실에 도전을 받으면서 복음에 응답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사회주의 국가체제에서는 국가가 사회복지의 문제를 다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극도의 경제난을 경험한 북쪽 사회에서는 지금 어려운 경험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쪽동포들의 굶주림의 소식을 들은 우리한국교회는 북쪽교회의 봉사선교를 지원할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남북교회가 동역 하여 봉사선교를 실천함으로 서로 돕고 민족을 위한 봉사사역을 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이러한 봉사선교는 단순히 현안문제에 대한 대응하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은 다고 생각한다. 현금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으며 이 시장은 이유극대화와 무한경쟁의 논리에 의하여 좌우되고 있으며 이런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경제전체는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특히 북쪽 경제는 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며 남쪽경제도 다른 형태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과 같은 초국적 기업이라든지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업들은 성장하고 확대될 지 모르지만 우리민족성원들 중에서 남에서도 북에서도 상당한 희생을 경험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농민 노동자 그리고 소비자는 물론 대부분의 중소기업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성원의 경제적 희생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자들과 약자들은 물론 소위 선진국에 있는 빈자와 약자들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남북교회의 교회의 선교봉사와 이를 위한 동역과 협력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세계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의 교회가 봉사선교를 위한 동역과 협력을 한다는 것은 남북의 사회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세계적인 차원을 가진다고 하는 것은 우선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해외동포들을 위한 봉사선교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해외동포들은 그들이 살고있는 사회환경 속에서 각양각색의 경제적 희생과 특별한 차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남북의 교회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국이나 구 소련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을 위한 봉사선교를 구상하고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전문인력 그리고 자원을 동원할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남북교회는 우리민족과 동포를 위한 봉사선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공동체들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는 시급하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의 교회는 현금 민족을 위한 봉사선교를 철저히 실천하고 이 실천경험을 토대로 세계적 차원의 봉사선교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남북교회는 우리민족과 동포를 위한 봉사선교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공동체들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봉사선교는 시급하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남북의 교회는 현금 민족을 위한 봉사선교를 철저히 실천하고 이 실천경험을 토대로 세계적 차원의 봉사선교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Hurbert 선교사 ( 나는 이땅에 뭍히고 싶어요 )
Hurbert 선교사 ( 나는 이땅에 뭍히고 싶어요 ) 2006-08-25 13:24:44 read : 21 조선 민족을 참으로 사랑하였던 헐버트 선교사의 조선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884년 고종황제는 일본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던 멕클레이 선교사의 요청을 받아드려 , 의료사역과 교육사역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였습니다. 이 구체화된 조선에 대한 정보가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지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나라를 위한 중보기도와 선교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헤인 1885년부터 수많은 선교사를 조선으로 파송 하였습니다. 고종황제는 열강가운데 살아가야 할 , 조선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영어선생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 그 요청에 따라 3명의 젊은이들이 언어교사로 오게 되는데 , 모두다 신학교를 졸업한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헐버트 선교사입니다. 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886년 7월 4일 육영공원 영어교사로 오게되었습니다. 언어학교에서 5년동안 사역을 하던 헐버트 선교사는 조선 관리들의 부정에 큰 실망을 하여 ,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안수를 받고 , 정식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고 다시 돌아옵니다. 그는 선교사역을 하던 중 , 사랑하는 아들이 병이 들어 죽는 아픔을 격지만 , 결코 조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헐버트는 누구보다도 한국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깊었습니다. 당시는 을사보호조약이 강제 체결될 무렵이었고 , 고종 황제는 조선의 비운과 국권위협의 상황을 , 모든 세계나라에 간곡하게 전달할 사절이 필요하였습니다. 헐버트는 고종황제로부터 밀사의 요청을 받고 즉시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종의 편지를 들고 워싱턴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는 백안관 문에서 거절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국제 상황은 미 , 일간의 카츠라 태프트 밀약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밀약의 내용은 '' 미국이 필리핀을 ,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 '' 하는 것을 용인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또한 영국도 일본과 동맹체결로 한국강세를 용인하고 있었습니다. 헐버트는 개인적으로 한국문화와 역사를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그의 조선에 대한 관심과 행적 때문에 , 일제에 의해서는 친한파 선교사로 주목을 받았고 마침내 일제에 의해 1908 년 추방을 당합니다. 그는 해외에 있으면서도 조선유학생을 도와주며 조선독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던 이승만 전 대통령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 , 헐버트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함께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힘써왔습니다. 해방이 되어 이승만 대통령은 헐버트와의 우정과 그의 조선사랑을 기억하고 한국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는 1949년 8월에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1908년 떠나서 , 40년을 그리워하던 사랑하는 조선 땅을 다시 밟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참으로 조선 땅에 묻히는 것을 소원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가 다시 한국 땅을 밟은 때가, 86세였고 하나님은 그의 방문기간에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조선사랑을 기억하고 국장급에 해당하는 장례식을 치뤄 주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양화진 선교사 묘지까지 따라 왔고 , 양지바른 곳을 택하여 묻어주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의 비석에 친필로 헐버트라는 이름을 써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 묘비에 이름을 써 주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건을 기억하여 , 작년에 김대중 대통령의 친필로, 비어있던 묘비에 그의 이름을 써 주었습니다. 헐버트는 참으로 조선을 사랑하였던 선교사였습니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조선을 한시도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이 묘비명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나는 웨스터 민스터 사원에 묻히기 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
LA 한인교계, 주일성수와 마라톤대회 충돌 해결/2009-07-25
LA 한인교계, 주일성수와 마라톤대회 충돌 해결 개최 요일 주일로 하되 코스와 시간대 변경 미국 한인교계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LA 마라톤 대회 문제가 양측 모두의 양보로 해결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 LA 교계는 주일날 대예배 시간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때문에 교통 문제 등으로 주일 성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1일 LA시의회에서 LA 마라톤 대회 개최 요일을 일요일로 복귀 시키는 안건이 통과됐지만, 마라톤 대회 요일 변경을 위해 힘써온 교계 인사들은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3월 중 일요일에 다시 개최되는 LA 마라톤 대회에 대해 하워드 김 목사는 “비록 일요일로 대회가 변경됐지만 주최측에 요구했던 것 중 80%가 이루어져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며 “대회가 이전처럼 주일에 열려도 예전 처럼 한인타운을 두르는 코스가 아니라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바닷가로 향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주일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는 성도들이 고충이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목사는 또 “대회 개최 시간도 예전 보다 빠른 7시로 정했고 대회 참가자들이 지나가는 길을 바로 열기로 해 이 또한 교회를 찾는 이들의 불편을 벌어줄 것이다”이라며 “양측이 서로 양보했기에 이만큼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앞으로 대회 요일이나 기타 사항에 대해 변경이 필요한 경우 다시 협의키로 했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LA 마라톤 대회 개최일의 변경을 위해 힘써온 원엘에이에서 활동해왔다. 그동안 마라톤 대회는 코스에 따른 교통 통제로 인해 주일예배 성소를 침해한다는 한인타운 내의 교회들과 마찰을 빚어오다 LA 다저스의 프랭크 맥코트 구단주가 마라톤 주최권을 구입하면서 올해부터 메모리얼 데이로 개최일이 변경됐다. LA=이태근 기자 newspaper@chtoday.co.kr
“이슬람 세력확장 무서워… '프랑스 이슬람국가' 머지 않아”
“이슬람 세력확장 무서워… '프랑스 이슬람국가' 머지 않아” 한국만 넘어뜨리면 세계기독교가 사라진다고 보고 있다 불어권 선교사역 하는 이성근 선교사 “프랑스에서 선교사역을 한다고 하면 ‘그곳에도 선교사가 필요하냐?’고 반문합니다. 유럽은 기독교 국가라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기독교 인구가 1%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그 중에서도 25% 정도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이고 나머지는 관념적 신앙인입니다. 반면에 이슬람은 13%나 됩니다. 이들은 매우 열정적입니다. 20%면 이슬람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세력 확장이 무섭습니다.” 낯선 불어권 선교 ▲ 이성근 선교사 이성근 선교사는 프랑스 파리에서 서아프리카와 동유럽권의 선교사들, 그리고 프랑스 유학생들의 영적 재충전을 위한 불어권 선교사역을 하고 있다. 그를 가장 어렵게 하는 것은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불어권 선교에 대한 매우 낮은 인지도다. “불어권에 속한 나라는 51개국입니다. 인구만 5억5천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파송한 2만여 명에 육박하는 선교사 중에 불어권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7~80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우도 콩고, 우간다, 남아공 등 주로 영어권의 동아프리카에 선교사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불어권 선교에 눈을 떠야 합니다.” 불어권은 프랑스의 정치, 사회, 문화의 교육을 그대로 집행하고 있다. 영국이나 다른 나라의 식민지 정책은 자국민 학교를 따로 세웠지만 프랑스의 식민지 정책은 현지인과 프랑스인을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성근 선교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사무총장 경선에서 불어로 연설하여 불어권 국가들로부터 몰표를 받아 당선된 것을 상기시켰다. 이슬람의 세력화 “반기문 총장이 한국 사람을 채용하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불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의 경우 한국 사람보다는 중국 사람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불어를 사용하는 것이 선교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선교 요충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아프리카 지역의 내전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싸움이라고 규정했다. 반군은 이슬람의 오일달러 지원이 있는 반면 정부는 기독교 세력이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이런 실정을 잘 모르고 있고, 이슬람의 전략이 교묘한 전략도 최근에서야 알려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이슬람을 잘 모릅니다. 이들은 한국만 넘어뜨리면 세계기독교가 사라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동 국가들은 한국 사람을 기독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치밀하게 한국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주로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식으로 접근하고, 오일달러를 통해 각 나라 대학에 연구소와 함께 학교 세우는 일을 먼저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에 대한 공세가 매우 강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부분을 잘 몰라 이슬람을 두둔하기도 해 안타깝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 유럽 국가 중에 프랑스만이 유일하게 참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중동 이슬람 국가들이 유럽에 흩어져 있던 자녀들을 모두 프랑스로 보내 공부하도록 조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중동의 지도자 자녀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유스러움을 맛보고 있는 이들을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문화라고 했다. “프랑스에서는 18세 미만 아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판단력이 없는 아이에게 종교를 강요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 부모가 아이에게 데려와서 교육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공간을 만들어 놓고 이들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좋다고 봅니다.” 새로운 선교 요충지 이성근 선교사는 프랑스 파리에 소극장을 임대하거나 구입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예배도 드리고 각종 문화공연과 선교사들의 영적 충전을 위한 장소로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적 성격상 문화행사는 더할 수 없는 복음의 접촉창구라는 것이다. 한국의 각종 책자들이 여기에서는 요긴하게 쓰인다고 했다. 특히 책자들은 선교사들의 영적 충전에 매우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구라파에서 집시들을 상대로 선교하는 선교사들이나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너무 거리가 멀고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중간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장에 있는 선교사들의 영적 에너지 소진은 심각합니다. 설교를 할 수 있는 자료도 없고 신학적인 책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곳에 와서 그런 자료를 얻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이곳에 아가피아 도서관 같은 것을 만들어 자료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얼마 전 예영출판사의 도움으로 2만권의 도서를 기증받은 일이 있다고 한다. 선교사들에게 제공도 하고 이곳에 쉼을 얻기 위해 온 선교사들에게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받은 책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도 필요하다. 불어는 할 줄 모르고 독일어만 할 줄 알던 이 선교사가 프랑스에 선교사로 나선 것은 52세가 되었던 지난 6년 전의 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르심에 당황했지만, 논현동에 어린이들만을 위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준비해두었던 20억대 넘는 땅도 포기하고 나섰던 불어권 사역은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를 뒤덮고 있는 영적 암흑은 사역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사람들이 관념적, 이성적, 지적인 곳이라 설교 자체가 어려울 만큼 힘든 곳입니다. 또 시급한 것이 유학생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파리의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지방에서 어학연수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을 노리는 이단들입니다. 재정적인 부담은 물론 문화적응의 어려움을 노리고 이들은 접근합니다.” 프랑스에 한국의 이단들 다 있다 이 선교사는 한국에 있는 이단들 거의 모두가 프랑스에 들어 와 있다고 했다. 이들은 지방에 있는 유학생들을 돌봐주면서 성경교리 공부를 통해 자신들의 신자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유학생들이 일 년이 지나 파리에 입성했을 했을 때는 안티 기독교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어 그는 지방에 있는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성경공부와 함께 돌봄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했다. 프랑스의 한인교회 목회자들은 이런 상황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했다. 상황을 알고 있는데도 방치하는 것을 직무유기라는 생각에, 힘든데도 불구하고 유학생 돌봄 사역을 계속한다고 했다. 파리에 있는 교회 사역보다 한인학생들을 돌보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교회의 관심과 기도가 절실하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교회 건축이란 것은 없다. 유일하게 파리침례교회가 예배당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 건물 역시 기존의 교회 건물을 매입해 침례교연맹에 헌납했다. 파리에는 30명의 한인목회자와 12개의 한인목회자가 있다. 하지만 현지인 사역보다는 한인 사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적 암흑의 프랑스 “이들은 자유·평등·박애를 외치지만 하나님이 없는 평등과 박애입니다. 영적으로 어둠이 있는 나라입니다. 칼빈이 개척했던 쁘아떼교회가 있습니다. 교인이 40명인데 프랑스목사가 아닙니다. 흑인 목사를 데려다가 담임목사를 세웠습니다. 거기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인학생들을 지도자 교육시킵니다. 파리는 아프리카와 동구권의 선교사들을 돌보는 일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2~3주 훈련 캠프를 열기도 한다는 이 선교사는 선교사 2세들이 불어권 선교의 핵심동력으로 자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이 없지만, 아프리카나 유럽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에 훈련을 받으면 부모들의 강력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선교사에게 가장 힘든 것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을 선교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바라는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관점에서 유럽의 선교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아프리카나 동구권에 있는 수많은 영혼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은 관심만 가진다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이성근 선교사의 생각이다. “서북아프리카의 상황은 매우 어렵습니다. 내전으로 피폐해져 있는 이들에게 한국 교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이들에게는 한국에서 한물간 비디오나 16미리 영사기 등이 선교교재로 아주 유용합니다. 아직 문화적인 혜택이 적은 이들에게 그림과 원시적인 방법의 선교 접근이 큰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불어를 할 줄 아는 수많은 선교사들이 일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는 젊은이들의 단기선교를 유럽으로 다녀갈 것을 권했다. 이들이 유럽에 오면 선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모슬렘과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의 선교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꿈꾸는 이성근 선교사는 불어권 선교를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하는 일이 앞당겼으면 했다. * 이성근 선교사 연락처 lsk5306@naver.com
가슴 뭉클한 선교 이야기/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은혜/ 2003-05-15
가슴 뭉클한 선교 이야기/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은혜 사람이 인생을 살아 가면서 때로는 선택했던 것들중에 중요하게 생각 한 어떤것을 포기해야 하는 시점에서 고민 해야될때가 있습니다.그리고 어떤 것이든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무나 하는일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포기하는것이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지나간 일들을 회상 하면서 중요한 고비마다 포기한 것을 헤아려 보면 수없이 많이 있지만 그중 몇가지 만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첫번째의 포기는 그동안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포기하고 고향땅을 떠나올때의 일입니다.시골 울릉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마지막으로 정든 고향과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서 서울에 올라올때가 1979년도(25세)였습니다.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혈혈단신 으로 고향을 떠난것 처럼 부모형제 일가친척을 떠나 서울땅에 발을 딛기 까지는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갈등을 한 이후에 내린 결론 이었습니다. 두번째의 포기는 직장생활의 포기 였습니다.`79년 도부터 시작한 공직생활(서울시 교육 위원회,강남 교육구청)을 아무 미련도 없이 그것도 15년간의 공직 생활(고향 울릉도에서 6년포함)을 포기 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만류를 하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장래의 생활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1987년도에 사표를 내고 목회를 위해 공직생활을 포기 한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고백 합니다.시원 섭섭 했습니다. 세번째의 포기는 2002년 9월에 그동안 15년간이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목회자로서의 길을 포기 해야만 했습니다.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일하다가 제3의 인생인 선교사의 길을 가려고 목회자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많은 기득권을 포기 하고야 말았습니다.솔직히 쉬운일이 아니었음을 고백 합니다.지금도 이일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조용히 받아 드리고 있는 중 입니다. 네번째의 포기는 고국땅을 포기하고 부모님과 일가친척,그리고 형제들을 두고 이방 지역인 중국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작년11월에 저희 가족 모두는 고국의 삶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들어와 이곳의 언어를 익히고 문화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이곳에 정착 하여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벌써 7개월째를 접어들고 있는데 지금 우리 앞길에는 `사스\'라는 복병을 만나 진퇴양난의 고비길에 놓여 있는것 입니다. 다섯번째의 포기는 그동안 가장 아끼며 애장품으로 여기던 나의 재산 1호라고 할 수 있는 소장도서를 이곳의 후학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기로에서 결단을 하고 지금 이전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그것도 소유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 갈림길에서 적잖은 고민이 있었음을 고백 합니다.그러나 중국교회와 지도자들의 영적인 발전을 위한 길이라면 최상의 선택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소유의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한번 들어와서 소유하게 되는것(권력,명예,물질등)은 좀처럼 떠나 보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그런데 지나간 세월을 돌아 보면서 포기할 수 있었던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 여겨 집니다.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있을것 이란 착각 속에서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것들을 포기 해야 될때(양자택일)가 있을때 과감한 결단을 통하여 포기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움켜 잡기만 하는것이 행복이 아니라 포기 할 수 있는것도 은혜임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주어 지기를 기원 합니다. 우리 가족이 중국에서 사는 법 환경과 문화가 다른 그것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삶을 산다는 것은 육신적 으로나 정신적 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여간 아닙니다.고국에 있을 때에는 이곳 저곳에 적당히 하소연도 하면서 살았지만 여기 에서는 단지 우리 가족 들끼리 부딪치며 살아 가야 한다는 사실 입니다. 중국에서 적응하며 산다는 것이 너무나 숨이 막히는것 같아서 나혼자(가족 들에게는 미안 했지만)훌쩍 고국에 다녀 왔지만 그래도 뭔가 답답한 것은 여전 합니다.고국에서 목회하며 바쁘게 살아 갈때는 자리에 눕자말자 코를 골며 잠에 취하곤 했는데 요즈음에 생긴 습관은 자리에 누웠어도 쉽게 잠이 들지 않을 뿐더러 예민 해진것 같습니다. 오늘도 잠을 자다가 일어나 보니 새벽 1시가 넘어 2시(중국시간)가 되어 가는 시간에 가족 모두가 조용히 잠자는 시간에 나혼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키를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 입니다.삶의 패턴이 바뀌어 가는듯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해 나가는 과정으로 생각 됩니다. 이곳에서 살아 가는 우리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 예기 할려고 합니다.목회를 할때는 잘 몰랐는데(가족 보다는 성도님들이 우선 이기에) 사실은 자녀들(지은이,사무엘)이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성장 했다는 것입니다.아빠 된 내가 생각 한 자녀들은 마냥 어린 아이들 이라는 고정 관념에 묶어 두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발견한 것은 신체적 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 하였다 는 사실 입니다. 이곳에서 성장하는 자녀들을 바라 보면서 그래도 희망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것은 새로운 환경(이질적인 문화등)에 잘 적응을 한다는 사실 입니다.아직 지은이와 사무엘은 세상 돌아 가는일에는 별 흥미를 못 느끼고 있는듯한 천진 난만한 삶 그 자체 인듯 합니다.오로지 공부에 열중하면서 자기들의 취미 생활(사무엘은 컴퓨터 게임,지은이는 카페운영등)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됩니다. 지은이는 금년 9월에 이곳 중국 대학에 입학 하기 위해서 극복 해야될 언어 공부를 위해 밤이 늦도록(보통 밤12시) 열심 입니다.이제 겨우 3개월 정도 공부 했지만 벌써 초급2반 에서 공부 합니다.초급2반 에서 공부 하려면 한학기 정도는 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본인 스스 열심을 한 결과 초급2반 에서 공부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이곳 중국에 도착 한 이후 조선족 소학교(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서 방학동안 특별 과외 지도로 언어 공부를 하여 지금은 학교에서 진도에 맞춰서 곧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9월이면 2학년이 되는데 한국에서는 지금 3학년 이기에 더 열심히 하여 9월에 3학년 으로 월반을 하고 중국인 학교에 들어 가려고 열심히 공부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 시간이 보통 오후 4시가 됩니다.8시에 학교에 가서 오후 4시 까지 공부 하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바라 보면 안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독려를 하는것은 이국땅에 살면서 뒤떨어 지지 않도록 열심을 요구 합니다. 때로는 지은이와 사무엘이 중국어로 서로 대화하면서 서로에게 지지 않으려고 경쟁하는 모습이 대견 하기만 합니다.사모는 금년 9월에 중의학원(한의대)에 들어 가기 위해 언어 연수를 시작 했습니다.잘 해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저도 틈틈히 언어를 배우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고국에서 많은 분들이 염려 해 주시고 기도 해 주시며 사랑해 주시는 관계로 저희 가족 모두는 이곳 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감사 합니다. -------------------- 로뎀나무 은총\'의 축복이 가져다 주는 열매 어제부터 우리집에 새로운 식구가 한명 늘어 났습니다.현재 중국교회의 목사님으로 `96년도에 목사안수 를 받고 지금까지 우리나라로 말할것 같으면 강원도에 해당하는 지역(보안상 밝히지 못함을 양해)에서 목회를 하셨던 분이 십니다.올해 38세의 미혼 여성 목사 입니다. 어제 오전 10시에 그곳 지역을 출발하여 제가 있는 이곳 장춘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8시16분 이니까 꼬박 10시간을 기차를 타고 오셨습니다.지은이와 같이 기차역전에 가서 모시고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참으로 감사 한것은 하나님의 귀한 여종을 당분간 우리 집에서 모시게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주의종을 가정에 모실 수 있다는 것이 은혜요 축복인 것은 제가 주의종이 되었다고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성경이 이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주의 종을 잘 섬긴 사람 들에게 우리 주님은 항상 축복을 하신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로 엘리야가 갈멜산상에서 이방신들과 겨루어 승리한 후에(왕상18장)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 에게서 `엘리야를 죽이 겠다\'(왕상19:2)는 협박의 소리를 듣자 곧 바로 낙심이 찾아 왔습니다.그때 엘리야는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광야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서 위로하게 하시고 숯불에 구운떡과 물을 가져다 주었으며 거듭 위로를 받도록 하였습니다.거기서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왕상19:8)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사람이 인생을 살아 가다보면 예기치 못하는 위기를 만나 절망에 처할때가 한두번씩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엘리야에게 역사 하셨던것처럼 오늘도 삶의 환경 속에서 여러모양으로 삶의 위기를 맞이할때 누군가가 나에게 위로해 줄 수 있다면 다시 일어나 사역을 회복하고 삶의 용기를 얻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 지금 우리집에서 함께 생활 하시는 리렌후이(李連慧/이연혜)목사님은 흑룡강성의 어떤 지역에서 제법 규모가 큰 교회의 부목사로 일하셨읍니다.그런데 그교회의 당회장 부부가 모두 목사인데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세를 가지고 이목사님 에게 조금도 쉴 틈도 주지 않을 뿐더러 보이지 않는 억압을 통해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그결과로 이 목사님은 극도의 신경쇠약 증세로 심지어는 `죽고 싶다\'고 고백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듣고 지난번에 제가 왕복 20시간이 넘는 거리 임에도 불구하고 찾아 갔던 것입니다.이목사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중 내가 모시고 와서 섬기게 되면 회복을 하여 중국교회의 지도자 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어 그일을 추진하여 우리집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우리집이 `로뎀나무 은총\'같은 역활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다시 사역을 회복 할때까지 사례비도 드리면서 영적회복을 하도록 도와 드리는 것이 곧 주님을 기뻐 시게 하는일 임을 알았습니다.중국 사람 이기에 아직 우리 가족과는 서투른 중국어로 대화를 하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잘 될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에는 목회를 하다가 여러모양 으로 실의에 빠져 낙담을 하고 곤경에 처한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이럴때 누군가가 조금만 힘이 되어 준다면 영적으로 회복을 하고 육적(떡과물)으로도 힘을 얻어 하나님의 사역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제2,제3의 `로뎀나무\'아래에서 힘을 얻도록 많은 분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 가슴 뭉클한 선교헌금 이야기 우리집에서 온 가족들이 유일하게 고국의 소식을 접하고 이곳의 소식을 보내는 컴퓨터(인터넷)가 지난 주간에 고장을 일으켰습니다.유일하게 고국의 소식이 차단 되어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이곳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한국인들의 가정 에서는 위성 수신 안테나를 설치하여 고국의 소식을 보곤 하지만 우리 가정 에서는 이곳의 언어를 배우는데 고국의 텔레비젼을 보다보면 지장이 되기 때문에 설치를 하지 않앗습니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을 통한 인터넷뱅킹을 이용해서 보내주신 선교비를 찾아서 생활을 하고 사역비로 사용을 합니다.그런데 인터넷 고장으로 인해 열흘이 넘도록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여 부득불 동료 선교사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가서 인터넷을 통해 인터넷뱅킹을 하게 되었습니다.그곳에서 저의 실수로 비밀번호가 세번이나 틀려 사용을 하지 못하다 보니 돈은 떨어지고 그렇다고 한국에서처럼 빌려 쓸때도 없고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막상 그런 핑게를 가지고 고국을 간다고 했지만 내심 고국을 가보고 싶은 마음에 겸사겸에 찾아가서 은행일도 보고 이곳에서 추진하는 사역에 대해 협의도 할겸 가게 되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고 했을텐데 사역현장을 떠나온 선교사가 이곳저곳을 기웃 거린다는 자체가 저로서는 용납이 되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어디를 다녀도 좌불안석 이었습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길림대학교 한국 문화센터 설립 추진 관계로 몇분의 목사님들과 협의를 하던중 평강교회를 섬기시는 박영복 목사님 께서 문화센타 설립을 위해서 400만원을 선뜻 주시면서 이돈은 사모님께서 10년 동안을 틈틈히 통장에 저축을 하셨는데 이번 사역에 요긴할것 같아서 목사님께 주셨답니다. 순간 저의 가슴에 뭉클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코 끝이 순간 찡해 오는것은 비단 나만의 심정 일까요? 교회의 사정과 여건상 저의 사역을 이해하고 돕고 싶지만(현재 매월 50만원의 선교비를 보내주심)한계가 있는지라 개인적으로 선교비를 건네 주시는 박목사님의 애틋한 중국사랑을 다시한번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의 사역을 뒤에서 소리없이 도와 주실려고 하시는 박목사님의 마음중심을 다시한번 알게 되었습니다.저역시 한국에서 목회 하면서 선교사들의 일이라면 상여금 받는것을 15년동안 이나 포기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부채를 안고 선교를 했었지만 10년을 모은돈을 선교비로 내 놓으시는 박목사님 부부의 사랑이 제 마음속에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삶이란 선교지 현장에서 나누어 주고 베풀 수 있어야 사역을 원활하게 힘있게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고국에서 뒷받침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앞에 옥합을 깨뜨려 쏟아부은 마리아의 행위에 대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일도 함께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주는 영적인 의미가 여러가지 있지만 특별히 `물질 있는곳에 마음이 있는것\'처럼 선교사들에게는 물질이 정말 소중 하다는 사실 입니다. 경중모 회원들과 춘천 기도 회원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을 모아서 보내어 주시는 선교비를 받으면서 보내어 주신 뜻을 받들어서 정말 귀하고 아름답게 사용 하려고 합니다.필요로 하는곳은 많아도 선교비가 한정이 되어 있는지라 늘 가슴 아플때도 있답니다.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 밖에 없기에 오늘도 조용히 마음의 무릎을 꿇어 봅니다. -------------------------------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주님 지난 며칠동안 이곳에서 5시간을 기차를 타고 길림성의 끝자락 에 위치한 어떤지역을 다녀 왔습니다.그지역에 있는 중심교회가 하나 있는데 몇년전에 그곳에 가서 집회를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그런데 그교회의 담임목사는 여자 목사로 공산당의 간부 이기도 합니다.그는 진정 목회자로서의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를 하는것이 아니고 공산당 관리로서 권세자로서의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석 한것은 수천명이 모이던 교회의 성도들이 지금은 뿔뿔히 흩어지고 수백명 정도 모이는 그래서 그곳에 남아있는 수백명의 성도들은 복음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교회가 있으니까 출석하는 정도에 불과 합니다. 몇년전에 집회를 갔을때에 알게된 성도로 부터 제발 그 지역에 좀 왔으면 하는 간절한 요청을 거절 할 수 없어서 큰 마음 먹고 기차에 올랐습니다.중국의 기차여행 이란 한국과는 비교하기가 힘이 드는것은 아직도 모든 여건이 열악 하기 때문 이지요.다행히 침대표라도 간신히 사게되면 그나마 그런데로 괞찮겠으나 이번에는 침대표를 구하지 못해 5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좁은 의자에 앉아서 가기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 지역에 가서 지도자 몇사람을 만나서 전해들은 예기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지금 수천명의 성도들이 모두 흩어져서 목자없는 양처럼 유리 방황 한다는 것입니다.`제발이곳에 오셔서 교회를 세워 일꾼들을 양육해 주고 영혼들을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많은 토론을 한후에 그곳 지역에 지도자를 세우고 교회를 세워서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쓰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그곳에서 발생 할 수 있는 제반 모든 문제는 자기들이 모두 책임을 지고 마음껏 복음을 전하고 지도자를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불편함이 없도록 하겟다는 것입니다. 그지역 중심도시의 인구만 하더라도 40여만 되는 도시이고 인근 주변지역 까지 합하게 되면 250만 도시가 된다는 것입니다.순간 사도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할때에 성령의 음성이 들리기를 `마게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음성을 듣고 아시아로 가려던 것을 포기하고 마게도니아로 가서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되어 유럽지역에 처음으로 주의 복음이 증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곳의 환경이나 조건이 열악하여 할수만 있다면 요나처럼 사명을 회피하고 고국으로 돌아 가고픈 마음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의 생각과 내생각이 다르다는것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이번에 찾아간 도시는 이곳 장춘보다 더 환경이 열악한 도시이며 기온차이도 5도이상 추운 지방이라 어제 그곳의 온도가 영하8도의 날씨였습니다.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할 수 없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할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중국에 왔기 때문에 내뜻과 상관없이 일을 진행 시키시는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방법 이라고 생각 합니다. 육신적으로는 고달프고 힘이 들지만 그래도 영혼의 부르짖음을 외면 한다는 것은 주의종 으로서의 자세가 아니기에 가일층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이 사명을 감당 하고자 합니다.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기도와 후원을 부탁 드립니다. ------------------------------------ 가슴뭉클한 중국교회 지도자의 주님사랑 지금 저희 가족이 살고 있는 이곳(장춘)에서 기차로 4시간을 타고 내린 어떤 시 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30분간을 달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착 하였습니다.사도 바울처럼 자기일을 열심히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평신도 목회자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고 싶어서 예고도 없이 가게되어 갑자기 찾아온 저희들을 보는 저들의 놀라는 모습을 실감 하였습니다. 시골 농촌마을 이라 마당 한켠에는 돼지 사육장이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큰돼지 2마리에 새끼돼지가 여덟마리 정도 있었습니다.예기인즉 그마을에 많은 집에서 돼지들이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다 죽었지만 자기들의 집 에서는 돼지 새끼들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 하는 모습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정에 주시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곳에 가서 놀라게 된것은 지도자 부부를 보는 순간에 어느 농촌 부부와 다름이 없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저들이 우리 한국으로 말한다면 목회자 부부 인데 저들이 섬기는 교회에 지금 출석하고 있는 성도수가 150여명 이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거주하고 있는집에서 50여미터 떨어진 거리에 교회가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50여평 정도 되는 교회 건물을 보고 또 한번 놀란것은 3년전에 이교회를 중국돈 1,300위안(한화200,000원)을 가지고 믿음으로 시작 하였는데 완공을 하여 헌당을 하였는데 전체 건축경비가 50,000위안(한화로 8백만원)이 소요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건축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는듯 하였는데 저들의 신앙이 너무나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외모를 보면 한없이 초라한 그렇게 시골 스러울 수 가 없는 그런 저들에게 하나님 께서 은혜를 주셔서 남편은 찬송을 인도하고 부인(황백춘자매,38세)이 설교를 하면서 목회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학교에 가본적도 없고 겨우 중학교만 졸업한 저들이 예수님을 믿기전 까지만 하더라도 우상을 섬기면서 살다가 병마로 인하여 온가족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시어머님이 돌아 가실 때에는 장례를 치를돈이 없어서 돈을 꾸어다가 장례를 치뤘으며 시어머님의 병원비로 지금도 3,000위안(한화480,000원)의 빚을 지고 살아 간다는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150여명이나 되어도 농촌 사람들이라 겨우 자신들의 생활만 하는 정도라 헌금은 얼마 되지 않고 자녀들은 쌍둥이를 낳아서 두명인데 한명은 지금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장차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신학을 보내어서 자신들의 뒤를 이어서 목회자로 키우 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자녀는 등록금(1년에 300,000원)마련이 힘들어 집에서 가사일을 도우고 있는데 농촌가정에서 두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중학교 공부를 시키기가 여간 힘든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저들의 유일한 소망은 현재 섬기는 교회를 잘 돌아 보면서 그 지역에서 어느 가정 보다도 더 잘 살아서 예수믿고 복을 받아 나눠주며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저들과 약속 하기를 돼지새끼 10마리(400,000원)와 6개월 동안의 사료비(500,000원)지원을 해주기로 하였으며 추석이 지나 가축을 시장에서 팔아서 원금은 모두 되돌려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 교회를 떠나 오면서 그렇게 기뻐하는 저들 부부를 바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왕복 10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왔지만 조금도 피로 하지 않은것은 저들을 통해 중국 농촌교회의 현실과 중국을 향하신 하나님의 비젼과 소망을 보았기 때문 입니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책임 지면서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저들이 있는한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땅을 축복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선교 동역자 되시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 복음의 효율성이 가져다 주는 축복 오랜 만에야 집을 떠나 좀 먼길을 다녀 왔습니다.보안상 지역은 밝힐 수 가 없음을 이해 하시기를 바랍니다.하여튼 오후1시에 기차를 타고 집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밤11시가 넘었습니다.꼬박 10시간 이상을 기차에서 보낸 것입니다.점심과 저녁도 기차에서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서로 대화를 하다가 잠자리에 드니 새벽 1시가 넘었읍니다. 어떤지역의 목회자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나보고 난후에 당분간 목회를 쉬면서 새롭게 일할것을 주문하고 오전10시에 또 지친몸을 이끌고 열차에 올랐습니다.10시간을 기차를 타고 가야 하기에 쉬운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감사 함으로 침대칸(일명 닦장 침대 라고 부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함께 동행했던 교회의 지도자와 이런 저런 에기를 나누면서 `어떻게 하면 침체되어 가는 중국교회를 살릴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은 예기를 나누던중 한가지 지혜가 떠 올랐습니다.`가난구제는 나라도 못살린다\'는 말이 있지만 우선적으로 한 지역을 선정해서 한국식 새마을 운동을 소리 없이 접목하면 좋을것 이라는 믿음이 왔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중국교회의 환경은 우리가 생각 하는것 이상으로 열악 하다는 사실 입니다.그렇다고 언제 까지나 선교비를 가져와서 저들에게 줄수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늘 고심 해 오는 문제 입니다.많은 대화를 하던중에 우선 교회를 섬기는 평신도 지도자의 생활환경을 변화 시켜 주는것도 한 방법 인데 자립할 수 있는 여건만 제공 해주면 적어도 6개월 정도부터 효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중국은 아직 까지도 70% 이상이 농민 입니다.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은 목회를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죽도록 힘들게 일하고도 한해 소득이 겨우 3,000위안(한화로500.000원정도)이기에 아이들 학교 공부 시키기에도 힘들다는 사실 입니다.그런데 큰 힘을 안들이면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축산업을 할 수 있는 기본 자본금만 보조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함께 교육하고 관련된 지도자들이 ㅇㅇ지역에 25명정도(한족 지도자)인데 매월 한두 가정씩을 선정해서 축산업의 기본이 될 수있는 소,돼지,그리고 닭과 개를 키우도록 하는일 인데 이곳의 가격 기준으로 볼때 기본적으로 송아지3마리,돼지10마리,개10마리를 마련하는 비용이 5,000위안(한화 약800,000원)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한달에 한두 가정씩을 순차적으로 지원을 하여 시도를 한후 결실을 보아서 6개월~1년 이내에 원금을 상환 하도록 하여 또 다른 가정을 지원 하도록 하면 지원받은 가정 에서는 최소한 한 가정당 기본 농가소득 이외에 축산을 통한 순수익이 최소한 15,000위안~20,000위안(한화2,400,000원~3,200,000원)의 추가 소득이 생긴다는 사실 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도자들도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 할 것임은 물론 소망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본을 끼칠 수 있어 사역적인 면에서도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다는 사실 입니다.이곳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맡고 있는 성도는 적게는 30여명에서 많게는200여명 정도 입니다. 현재 그 지역의 경우 정부에서 인가된 교회수 만도 50여개 교회나 되며 전체 130여 교회가 있습니다.그중에 우선적 으로 25개 교회 정도를 선정 하여 모범적 으로 실시를 하려고 합니다.소요되는 예산이 2,000만원 정도 이기에 우선적 으로 제게 보내 오는 선교비 중에서 한,두교회씩을 선정하여 순차적으로 실시 하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해 줌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사역하는 저들에게 힘과 용기를 가져다 줌으로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저들에게도 축복의 기회가 되어지며 선교하는 저와 후원해 주시는 모든분들 에게도 보람된 일인것 만은 틀림이 없습니다.확신 하는것은 사도 바울도 자기 사역을 열심히 하면서 가는곳 마다 함께 동역자로 일했기에 후일에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었다는 사실 입니다. 복음을 통한 삶의 축복과 보람을 가져다 주는길이 거시적으로 볼때 복음의 효율성을 가져 오는 길임과 동시에 시대적 변화에 대처 할 수 있는 길임을 확신 합니다. ------------------------------ 보편적인 중국문화 이해의 첫 걸음 한국사람들 가운데 누구나 한두번쯤 중국에 來往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중국을 다 아는것 처럼 자칭 중국 專門家가 되어 있다는 사실 앞에 가끔 失召를 하곤 합니다. 저역시 10여년간을 중국에 래왕 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皮想的인 지식만을 가지고 교과서적인 感想法 으로 중국을 판단 하여 왔다는 사실은 자신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막상 중국에 들어와 살면서 體得한 중국에 대한 多量한 지식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새롭게 깨닫고 先入觀으로 알고 있던 지식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이땅에서 몸소 부딪히며 살아 가면서 많은 것을 다시한번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국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중에 세 단어가 함축(含蓄)하고 있는 뜻을 통해서 저들이 살아가는 삶의 方式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먼저 중국인들의 일상 용어 속에서 자유 스럽게 사용하는 단어는 沒事(메이~써얼;괜찮다,일없다,아무렇지 않다:한국식 표기로는 `몰사\'라는 뜻)전혀 우리와는 正反對의 뜻임을 알 수 있는데 저들이 사용하는 이 단어를 통해서 저들의 평소 生活 習貫을 엿 볼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差不多(차부도;별차이가 없다)라는 단어를 통해 평소 물건이나 어떤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서 他人과 비교 할때 주로 사용하는 단어로 우열에 대해 별로 상관하지 않는 平等思想을 엿보게 하고 있습니다.우리나라의 구조는 주로 垂直 구조인 반면에 중국사회의 구조는 垂平구조 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단어 입니다. 또 하나는 隨便(수이비엔;아무렇게나 해도 좋다,좋은데로 해라,편리할데로 해라)이라는 단어는 관용적인(너그러운)면이 내포 되어 있음으로 저들의 여유로운 性品 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반면에 주어진 權限을 최대한 으로 위임해 주는 면이 강하게 내포 됨으로 독자적인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로 인식 되어 집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을 잘못 인식하여 적용함으로 빚어지는 昨今의 현실을 간과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오늘날 중국 사회의 固疾的 病弊라 할 수 있는 腐敗構造가 이를 뒷받침 하고 있어 社會 문제로 대두 되고 있으며 무사 안일 주의적인 사고로 흐르기 쉽다는 사실 입니다. 이제 중국은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새로운 지도자(후진타오)를 받아 들임으로 時代的 變換期에 직면하고 있습니다.사회구조가 서서히 개혁의 물결을 타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도한 모습으로 轉換이 되면서 새로운 세대가 교체되어 가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構造造整이 전국적 으로 진행 되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한중 수교 이후에 많은 한국인들이 中國文化와 언어를 올바로 이해 하지 못함으로 인해 時行錯誤가 너무나 많았다는 사실 입니다.그리고 위의 단어들이 갖는 성격과 저들의 낙천적 성품의 결과로 빚어진 애매모호한 중국인들의 태도로 인해 많은 손해를 가져 왔다는 사실을 간과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중국을 예전에는 慢慢디 사회라고 평가 하고 있지만 근래에 와서는 많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일본의 어떤 企業家가 쓴글 가운데 `不義는 참아도 不利益은 못 참는다\'는 말이 보여주는 오늘의 現代的 중국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이익을 내는 일이라면 저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 한국 사람 보다도 더 조급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잘못 이해 함으로 빚어지는 웃지못할 사태로 인해 精信的 으로 物質的으로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 할 수 없습니다.오늘 우리는 중국을 바로 이해 함으로 低費用 으로 高附價 價値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저들의 문화를 바로 이해 함으로 상호 이해 증진을 도모 해야 할 것입니다. 최요한 기자
가슴 뭉클한 선교 이야기/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은혜/ 2003-07-21
가슴 뭉클한 선교 이야기/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은혜 사람이 인생을 살아 가면서 때로는 선택했던 것들중에 중요하게 생각 한 어떤것을 포기해야 하는 시점에서 고민 해야될때가 있습니다.그리고 어떤 것이든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무나 하는일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포기하는것이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지나간 일들을 회상 하면서 중요한 고비마다 포기한 것을 헤아려 보면 수없이 많이 있지만 그중 몇가지 만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첫번째의 포기는 그동안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포기하고 고향땅을 떠나올때의 일입니다.시골 울릉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마지막으로 정든 고향과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서 서울에 올라올때가 1979년도(25세)였습니다.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혈혈단신 으로 고향을 떠난것 처럼 부모형제 일가친척을 떠나 서울땅에 발을 딛기 까지는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갈등을 한 이후에 내린 결론 이었습니다. 두번째의 포기는 직장생활의 포기 였습니다.`79년 도부터 시작한 공직생활(서울시 교육 위원회,강남 교육구청)을 아무 미련도 없이 그것도 15년간의 공직 생활(고향 울릉도에서 6년포함)을 포기 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만류를 하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장래의 생활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이 1987년도에 사표를 내고 목회를 위해 공직생활을 포기 한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임을 고백 합니다.시원 섭섭 했습니다. 세번째의 포기는 2002년 9월에 그동안 15년간이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목회자로서의 길을 포기 해야만 했습니다.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 일하다가 제3의 인생인 선교사의 길을 가려고 목회자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많은 기득권을 포기 하고야 말았습니다.솔직히 쉬운일이 아니었음을 고백 합니다.지금도 이일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조용히 받아 드리고 있는 중 입니다. 네번째의 포기는 고국땅을 포기하고 부모님과 일가친척,그리고 형제들을 두고 이방 지역인 중국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작년11월에 저희 가족 모두는 고국의 삶을 뒤로하고 중국으로 들어와 이곳의 언어를 익히고 문화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이곳에 정착 하여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벌써 7개월째를 접어들고 있는데 지금 우리 앞길에는 `사스\\\'라는 복병을 만나 진퇴양난의 고비길에 놓여 있는것 입니다. 다섯번째의 포기는 그동안 가장 아끼며 애장품으로 여기던 나의 재산 1호라고 할 수 있는 소장도서를 이곳의 후학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기로에서 결단을 하고 지금 이전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그것도 소유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 갈림길에서 적잖은 고민이 있었음을 고백 합니다.그러나 중국교회와 지도자들의 영적인 발전을 위한 길이라면 최상의 선택임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소유의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한번 들어와서 소유하게 되는것(권력,명예,물질등)은 좀처럼 떠나 보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그런데 지나간 세월을 돌아 보면서 포기할 수 있었던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 여겨 집니다.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영원히 있을것 이란 착각 속에서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한 것이 없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기 때문에 때로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것들을 포기 해야 될때(양자택일)가 있을때 과감한 결단을 통하여 포기 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 합니다.움켜 잡기만 하는것이 행복이 아니라 포기 할 수 있는것도 은혜임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주어지기를 기원 합니다.
가슴 뭉클한 선교헌금 이야기
가슴 뭉클한 선교헌금 이야기 우리집에서 온 가족들이 유일하게 고국의 소식을 접하고 이곳의 소식을 보내는 컴퓨터(인터넷)가 지난 주간에 고장을 일으켰습니다.유일하게 고국의 소식이 차단 되어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이곳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많은 한국인들의 가정 에서는 위성 수신 안테나를 설치하여 고국의 소식을 보곤 하지만 우리 가정 에서는 이곳의 언어를 배우는데 고국의 텔레비젼을 보다보면 지장이 되기 때문에 설치를 하지 않앗습니다. 그런 가운데 인터넷을 통한 인터넷뱅킹을 이용해서 보내주신 선교비를 찾아서 생활을 하고 사역비로 사용을 합니다.그런데 인터넷 고장으로 인해 열흘이 넘도록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여 부득불 동료 선교사가 운영하는 사업장에 가서 인터넷을 통해 인터넷뱅킹을 하게 되었습니다.그곳에서 저의 실수로 비밀번호가 세번이나 틀려 사용을 하지 못하다 보니 돈은 떨어지고 그렇다고 한국에서처럼 빌려 쓸때도 없고해서 어쩔 수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막상 그런 핑게를 가지고 고국을 간다고 했지만 내심 고국을 가보고 싶은 마음에 겸사겸에 찾아가서 은행일도 보고 이곳에서 추진하는 사역에 대해 협의도 할겸 가게 되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고 했을텐데 사역현장을 떠나온 선교사가 이곳저곳을 기웃 거린다는 자체가 저로서는 용납이 되지를 못하였기 때문에 어디를 다녀도 좌불안석 이었습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길림대학교 한국 문화센터 설립 추진 관계로 몇분의 목사님들과 협의를 하던중 평강교회를 섬기시는 박영복 목사님 께서 문화센타 설립을 위해서 400만원을 선뜻 주시면서 이돈은 사모님께서 10년 동안을 틈틈히 통장에 저축을 하셨는데 이번 사역에 요긴할것 같아서 목사님께 주셨답니다. 순간 저의 가슴에 뭉클한 감동이 밀려오면서 코 끝이 순간 찡해 오는것은 비단 나만의 심정 일까요? 교회의 사정과 여건상 저의 사역을 이해하고 돕고 싶지만(현재 매월 50만원의 선교비를 보내주심)한계가 있는지라 개인적으로 선교비를 건네 주시는 박목사님의 애틋한 중국사랑을 다시한번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의 사역을 뒤에서 소리없이 도와 주실려고 하시는 박목사님의 마음중심을 다시한번 알게 되었습니다.저역시 한국에서 목회 하면서 선교사들의 일이라면 상여금 받는것을 15년동안 이나 포기 하면서도 개인적으로 부채를 안고 선교를 했었지만 10년을 모은돈을 선교비로 내 놓으시는 박목사님 부부의 사랑이 제 마음속에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삶이란 선교지 현장에서 나누어 주고 베풀 수 있어야 사역을 원활하게 힘있게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고국에서 뒷받침이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앞에 옥합을 깨뜨려 쏟아부은 마리아의 행위에 대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일도 함께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주는 영적인 의미가 여러가지 있지만 특별히 `물질 있는곳에 마음이 있는것'처럼 선교사들에게는 물질이 정말 소중 하다는 사실 입니다. 경중모 회원들과 춘천 기도 회원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을 모아서 보내어 주시는 선교비를 받으면서 보내어 주신 뜻을 받들어서 정말 귀하고 아름답게 사용 하려고 합니다.필요로 하는곳은 많아도 선교비가 한정이 되어 있는지라 늘 가슴 아플때도 있답니다.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 밖에 없기에 오늘도 조용히 마음의 무릎을 꿇어 봅니다.
가슴뭉클한 중국교회 지도자의 주님사랑/중국선교사
가슴뭉클한 중국교회 지도자의 주님사랑 지금 저희 가족이 살고 있는 이곳(장춘)에서 기차로 4시간을 타고 내린 어떤 시 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30분간을 달려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착 하였습니다.사도 바울처럼 자기일을 열심히 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평신도 목회자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고 싶어서 예고도 없이 가게되어 갑자기 찾아온 저희들을 보는 저들의 놀라는 모습을 실감 하였습니다. 시골 농촌마을 이라 마당 한켠에는 돼지 사육장이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큰돼지 2마리에 새끼돼지가 여덟마리 정도 있었습니다.예기인즉 그마을에 많은 집에서 돼지들이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다 죽었지만 자기들의 집 에서는 돼지 새끼들이 살아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 하는 모습 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정에 주시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곳에 가서 놀라게 된것은 지도자 부부를 보는 순간에 어느 농촌 부부와 다름이 없는 순박하기 그지없는 저들이 우리 한국으로 말한다면 목회자 부부 인데 저들이 섬기는 교회에 지금 출석하고 있는 성도수가 150여명 이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거주하고 있는집에서 50여미터 떨어진 거리에 교회가 아담하게 지어져 있었는데 50여평 정도 되는 교회 건물을 보고 또 한번 놀란것은 3년전에 이교회를 중국돈 1,300위안(한화200,000원)을 가지고 믿음으로 시작 하였는데 완공을 하여 헌당을 하였는데 전체 건축경비가 50,000위안(한화로 8백만원)이 소요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건축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는듯 하였는데 저들의 신앙이 너무나 아름답게만 보였습니다.외모를 보면 한없이 초라한 그렇게 시골 스러울 수 가 없는 그런 저들에게 하나님 께서 은혜를 주셔서 남편은 찬송을 인도하고 부인(황백춘자매,38세)이 설교를 하면서 목회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학교에 가본적도 없고 겨우 중학교만 졸업한 저들이 예수님을 믿기전 까지만 하더라도 우상을 섬기면서 살다가 병마로 인하여 온가족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시어머님이 돌아 가실 때에는 장례를 치를돈이 없어서 돈을 꾸어다가 장례를 치뤘으며 시어머님의 병원비로 지금도 3,000위안(한화480,000원)의 빚을 지고 살아 간다는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들이 150여명이나 되어도 농촌 사람들이라 겨우 자신들의 생활만 하는 정도라 헌금은 얼마 되지 않고 자녀들은 쌍둥이를 낳아서 두명인데 한명은 지금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장차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신학을 보내어서 자신들의 뒤를 이어서 목회자로 키우 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자녀는 등록금(1년에 300,000원)마련이 힘들어 집에서 가사일을 도우고 있는데 농촌가정에서 두명의 자녀를 한꺼번에 중학교 공부를 시키기가 여간 힘든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제 저들의 유일한 소망은 현재 섬기는 교회를 잘 돌아 보면서 그 지역에서 어느 가정 보다도 더 잘 살아서 예수믿고 복을 받아 나눠주며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저들과 약속 하기를 돼지새끼 10마리(400,000원)와 6개월 동안의 사료비(500,000원)지원을 해주기로 하였으며 추석이 지나 가축을 시장에서 팔아서 원금은 모두 되돌려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 교회를 떠나 오면서 그렇게 기뻐하는 저들 부부를 바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왕복 10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왔지만 조금도 피로 하지 않은것은 저들을 통해 중국 농촌교회의 현실과 중국을 향하신 하나님의 비젼과 소망을 보았기 때문 입니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책임 지면서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는 저들이 있는한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땅을 축복 하시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선교 동역자 되시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게일 제임스 스카스 ( Gale James Scarth ) 선교사님
게일 제임스 스카스 ( Gale James Scarth ) 선교사님 2006-08-25 13:10:39 read : 6 게일 제임스 스카스 ( Gale James Scarth ) 선교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은 민영익과 6명의 사절단을 미국을 견학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미국 방문단을 견미단이라고 부릅니다. 견미단 일행은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다니면서 , 미국의 아름다움과 근대화된 모습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견미단이 기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닐 때의 일입니다. 마침 그 기차 안에 고우처 목사와 게일이라는 청년이 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쳐다보고 웃고 지나쳤지만,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인, 고우처 목사님과 게일은 남다른 관심으로 우리 민족을 바라보게 됩니다. 고우처 목사님과 게일은 "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된 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 그들에게 다가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 그 나라에 선교사가 들어갔는지를 알아 봤습니다. 그들은 조선에 문은 열렸으나 , 복음은 아직 까지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 고우처 목사님은 즉시 가지고 있던 유산 2000 달라를 선교부에 드리면서 , 조선 복음화를 위해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선교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일본에 계신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편지를 해서 조선에 들어가 조선 선교의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견미단이 타고 있던 그 기차에서 , 게일은 고우처 목사님과 함께 견미단 일행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 조선 선교사로 가기로 작정하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선교사로서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침내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토론토 대학 Y.M.C.A 소속으로 1888년 한국 제물포 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이창직을 만나 3개월간 한국어를 배우고 서울에서 선교사님을 도우며 한국을 배워가다가, 일년 후 경상도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하다가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부산에 머물면서 선교의 여건을 찾는 도중 , 부산을 선교지로 정하고 순회전도를 하며 내려온 데이비스 선교사님의 순교를 지켜보게 됩니다. 또한 서울에 올라와서는 최초로 조선 선교사로 자원했고 , 최초로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오셨던 죤 헤론 선교사의 순교를 지켜보게 됩니다. 죤 헤론의 죽음으로 고종황제는 그를 묻을 수 있는 땅을 주었습니다. 그 땅이 바로 서울 합정역 근처에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지입니다. 죤 헤론이 가장 먼저 그 땅에 묻히고 , 그 뒤를 이어 111 명의 선교사가 그 땅에 묻혀 있습니다. 그는 죤 헤론의 장례식이 열린 , 양화진에서 쓸쓸히 두 딸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 헤티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게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죤 헤론의 미망인 헤티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딸을 키우면서 조선선교의 장을 활짝 열어갔습니다. 그는 문인으로서 수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 중 코리언 스켓치 라는 책은 구 한말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 책에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만 한 가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번은 게일 선교사가 순회 전도를 하는 중 , 어느 집에서 고기를 주었습니다. 너무 배고파 고생하던 게일에게는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고기를 맛있게 먹고 너무 맛있어서 그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물어봤습니다. 그 때 고기를 대접했던 조선인이 그 고기가 " 개 고기 " 라고 하자 그는 너무 놀랬습니다. 서양인들에게 개고기를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책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나는 그 이 후로 노란 개만 보면 군침을 흘렸노라 " 그는 야소교 회보의 주필을 비롯 각 기독교신문에 관여했고, 예수교 서회의 문서활동 을 하면서 한국 문화에 혁혁한 공헌을 남긴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서울 연동교회 목회를 하면서 현 정신여학교와 경신여학교를 설립하였으며, 평양신학교 교수 활동도 하였습니다. 젊었을 때 기차안에서 만난 조선인을 보면서, 조선 선교사의 꿈을 키워오다가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가신 게일 선교사 .... 그는 1937년 별세하였지만 , 그의 이름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미국은 민영익과 6명의 사절단을 미국을 견학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미국 방문단을 견미단이라고 부릅니다. 견미단 일행은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다니면서 , 미국의 아름다움과 근대화된 모습을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견미단이 기차를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닐 때의 일입니다. 마침 그 기차 안에 고우처 목사와 게일이라는 청년이 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쳐다보고 웃고 지나쳤지만,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인, 고우처 목사님과 게일은 남다른 관심으로 우리 민족을 바라보게 됩니다. 고우처 목사님과 게일은 "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된 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 그들에게 다가가 어느 나라에서 왔으며 , 그 나라에 선교사가 들어갔는지를 알아 봤습니다. 그들은 조선에 문은 열렸으나 , 복음은 아직 까지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 고우처 목사님은 즉시 가지고 있던 유산 2000 달라를 선교부에 드리면서 , 조선 복음화를 위해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선교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일본에 계신 맥클레이 선교사에게 편지를 해서 조선에 들어가 조선 선교의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견미단이 타고 있던 그 기차에서 , 게일은 고우처 목사님과 함께 견미단 일행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 조선 선교사로 가기로 작정하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선교사로서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침내 토론토 대학을 졸업하고 토론토 대학 Y.M.C.A 소속으로 1888년 한국 제물포 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이창직을 만나 3개월간 한국어를 배우고 서울에서 선교사님을 도우며 한국을 배워가다가, 일년 후 경상도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하다가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부산에 머물면서 선교의 여건을 찾는 도중 , 부산을 선교지로 정하고 순회전도를 하며 내려온 데이비스 선교사님의 순교를 지켜보게 됩니다. 또한 서울에 올라와서는 최초로 조선 선교사로 자원했고 , 최초로 조선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오셨던 죤 헤론 선교사의 순교를 지켜보게 됩니다. 죤 헤론의 죽음으로 고종황제는 그를 묻을 수 있는 땅을 주었습니다. 그 땅이 바로 서울 합정역 근처에 있는 양화진 선교사 묘지입니다. 죤 헤론이 가장 먼저 그 땅에 묻히고 , 그 뒤를 이어 111 명의 선교사가 그 땅에 묻혀 있습니다. 그는 죤 헤론의 장례식이 열린 , 양화진에서 쓸쓸히 두 딸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 헤티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 그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게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죤 헤론의 미망인 헤티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딸을 키우면서 조선선교의 장을 활짝 열어갔습니다. 그는 문인으로서 수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 중 코리언 스켓치 라는 책은 구 한말의 상황을 아주 자세히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그 책에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지만 한 가지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번은 게일 선교사가 순회 전도를 하는 중 , 어느 집에서 고기를 주었습니다. 너무 배고파 고생하던 게일에게는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 고기를 맛있게 먹고 너무 맛있어서 그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물어봤습니다. 그 때 고기를 대접했던 조선인이 그 고기가 " 개 고기 " 라고 하자 그는 너무 놀랬습니다. 서양인들에게 개고기를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책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나는 그 이 후로 노란 개만 보면 군침을 흘렸노라 " 그는 야소교 회보의 주필을 비롯 각 기독교신문에 관여했고, 예수교 서회의 문서활동 을 하면서 한국 문화에 혁혁한 공헌을 남긴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서울 연동교회 목회를 하면서 현 정신여학교와 경신여학교를 설립하였으며, 평양신학교 교수 활동도 하였습니다. 젊었을 때 기차안에서 만난 조선인을 보면서, 조선 선교사의 꿈을 키워오다가 조선을 사랑하여 조선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가신 게일 선교사 .... 그는 1937년 별세하였지만 , 그의 이름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과테말라 공화국(República de Guatemala)/ 2016-04-26
과테말라 공화국(República de Guatemala) Flag of Guatemala.svg Coat of arms of Guatemala.svg 국기 국장 표어 스페인어: El País de la Eterna Primavera (영원한 봄의 땅) 국가 과테말라 국가 Guatemala on the globe (Americas centered).svg 수도 과테말라 북위 14° 36′ 48″ 서경 90° 32′ 07″ 과테말라는 과테말라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과테말라 정치 공용어 스페인어 정부 형태 단일 국가 대통령제 공화국 대통령 지미 모랄레스 부통령 제프스 카브레라 역사 독립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1821년 8월 21일 지리 면적 108,890km² (103 위) 내수면 비율 0.4% 시간대 UTC-6 (UTC-6) DST 없음 인구 2005년 어림 12,599,000명 (70위) 인구 밀도 134.6명/km² (55위) 경제 GDP(PPP) 2004년 어림값 • 전체 $627.8억 (71위) • 일인당 $4,155 (143위) HDI 0.581 (133위, 2012년 조사) 통화 케찰 (GTQ) 기타 ISO 3166-1 320, GT, GTM 도메인 .gt 국제 전화 +502 과테말라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 Guatemala 레푸블리카 데 과테말라[*], 문화어: 과떼말라)은 중앙아메리카의 나라이다. 북쪽과 서쪽은 멕시코, 동쪽은 벨리즈와 카리브해, 남쪽은 태평양과 접해있다. 목차 [숨기기] 1 역사 2 자연 환경 3 정치 4 스포츠 4.1 행정 4.2 대외 관계 5 경제 6 사회 6.1 주민 6.2 교육 6.3 인물 6.4 언어 7 문화 7.1 종교 7.2 관광 8 각주 9 바깥 고리 역사[편집] \"과테말라\"라는 말의 기원은 원주민에서 나온 것이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혹자는 그 이름이 마야-톨텍(Maya-Toltec)어로 \"나무의 땅\"이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다른 의견으로는 나후아틀어로 \"Quauhtitlan\"인데 이것은 \"나무들 사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스페인의 정복 기간 중에서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를 수행하였던 틀라스칸테칸(Tlaxcaltecan) 군사들이 이 지역에 붙인 이름이었다. 아마도 그들의 말로 \"Quiche\"로 번역되며, 이것은 \"많은 나무\"를 뜻한다. 또 다른 생각은 과테말라라는 이름이 나후아틀어로 \"coactlmoctl-lan\"가 스페인어로 변형된 것인데, 이것은 \"뱀을 먹는 새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과테말라의 독수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테말라에 인간이 정착했던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흔적은 적어도 기원전 1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과테말라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 흑요석 화살촉 등 몇 가지 증거들로 미뤄볼 때 기원전 1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1] 과테말라 선주민이 채집 및 수렵 생활을 하였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그러나, 페텐 분지(Petén Basin)와 태평양 해안에서 나온 꽃가루 샘플은 기원전 3500년경, 옥수수 문명이 발달했었음을 보여준다. 고원지대인 엘 키체(El Quiché)주와 중부의 태평양 해안에 위치한 에스쿠인틀라(Escuintla)주 시파카테에서 고고학적 유물(기원전 6500년)이 발견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1821년 과테말라는 벨리즈와 함께 멕시코에 가입된 상태에서 독립을 이루었고 1839년경에 완전 독립을 이루었다. 자연 환경[편집] 과테말라는 동서가 산맥으로 이루어지면서 국토를 세 개의 지방으로 나눈다. 태평양쪽의 좁은 해안평야와 북부의 넓은 저습지(低濕地)는 덥고 건강상 좋지 않은 지방이다. 이를 빼고서는 산악지대가 많은데, 중앙의 산지(山地)나 고원은 상당히 시원하고 쾌적하다. 건계(乾季)와 우계(雨季) 중에서 특히 건계에는 지내기 좋다. 따라서 인구의 태반이 중앙고지에 집중해 있으며, 수도 과테말라시티도 해발 약 1,500m의 고지에 있다. 중앙산지는 멕시코에서 계속되는 험준한 습곡산맥(褶曲山脈)이며, 태평양 연안을 따라 화산이 즐비하다. 화산성 토양은 비옥하므로 이 지역에는 농업이 발달해 있다. 활화산(活火山)이나 지진의 활동도 격심하다. 약 50년 전의 대지진에서는 수도가 거의 파괴되었다. 모든 주요 도시는 태평양 연안 지역에 있으며 북쪽의 페텐 지역은 산발적으로 인구가 분포하다. 해발고도에 따라 기후가 다양하며 저지대일수록 습하고 열대 기후에 가깝다. 반대로 높은 지역은 상당히 건조하다.[2] 과테말라 내를 흐르는 강은 대개 얕고 짧지만 리오둘세 강의 경우 더 크고 깊으며 주요 강은 이웃 국가인 벨리즈를 거쳐 카리브 해와 멕시코 만으로 흘러들어간다. 과테말라는 오랫동안 벨리즈와 영토 분쟁이 있었다. 이것은 과거 스페인의 식민 역사 때문이기도 한데 현재까지 양국이 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다. 정치[편집] 대통령제 국가이다. 1821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 1823년부터 1839년까지는 중앙아메리카 연방의 일원이었다. 1839년 재독립하였으나, 독재와 쿠데타가 반복되어 오늘날까지 민주주의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2] 스포츠[편집] 과테말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축구와 야구,농구등으로 축구는 골드컵 야구는 팬 아메리칸 게임에 참여한다. 행정[편집] 과테말라의 주 과테말라의 주(departamento)들은 다음과 같다. 1.알타베라파스 주(Alta Verapaz) 2.바하베라파스 주(Baja Verapaz) 3.치말테낭고 주(Chimaltenango) 4.치키물라 주(Chiquimula) 5.페텐 주(Petén) 6.엘프로그레소 주(El Progreso) 7.키체 주(Quiché) 8.에스쿠인틀라 주(Escuintla) 9.과테말라 주(Guatemala) 10.우에우에테낭고 주(Huehuetenango) 11.이사발 주(Izabal) 12.할라파 주(Jalapa) 13.후티아파 주(Jutiapa) 14.케트살테낭고 주(Quetzaltenango) 15.레탈룰레우 주(Retalhuleu) 16.사카테페케스 주(Sacatepéquez) 17.산마르코스 주(San Marcos) 18.산타로사 주(Santa Rosa) 19.솔롤라 주(Sololá) 20.수치테페케스 주(Suchitepéquez) 21.토토니카판 주(Totonicapán) 22.사카파 주(Zacapa) 과테말라 시는 열대 고원에 위치하는 과테말라의 수도이자 중앙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인구는 82만 3,301명(1994년 기준)이다. 기온은 연평균 20°C로 쾌적하나 지진의 피해가 많다. 대외 관계[편집] 과테말라는 대한민국과 1962년 수교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2007년 수교하였다. 주(駐)과테말라 미국 대사관은 과테말라 시티에 있다. 미국 국무성에 따르면, 미국과 과테말라는 전통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인권, 시민 운동, 군사 문제 등에서 때로 갈등을 빚어왔다.[3] 과테말라는 또한 1948년 대한민국을 독립국으로 정식 승인하였다. 대한민국은 1974년 과테말라에 대사관을 설치하였고, 과테말라 측은 1977년 주한국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경제[편집] 전체 인구의 52%[4] 가 농촌에 거주하고 전체 취업 인구의 50%가 농업에 종사하며 대부분이 소작농이다. 1994년 이래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21억 달러의 외채, 인플레이션, 실업 등 경제문제가 산적해 있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면화·바나나·설탕·원유 등이며, 수입품은 소비재 연료·윤활유 등이다.[2] 또한 과테말라는 세계 커피 수출량 8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의 생활 수준은 평균적으로 낮은 평균. 평균 수명은 72세이다.[5] 빈부의 차이는 너무 심하고 인구의 10%가 국민 전체의 소득의 47%를 차지하는 한편, 국민의 51%는 빈곤층에 속해 있다.[6]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마야족 등 선주민은 대체로 영세한 소규모 농업에 종사했고 스페인어를 읽고 쓰는 데에 서툴기 때문에 다른 직업에 종사할 기회도 적다. 한국 봉제기업들의 진출로 과테말라 전체수출의 1/6을 담당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에 대한 납치, 살인이 빈번하다.[출처 필요] 사회[편집] 과테말라는 300∼900년경에 원주민 마야민족이 찬란한 마야문명을 꽃피웠던 곳이나 현재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문맹이며, 의무교육제도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과테말라의 민속악기 마림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곳곳에 마야의 풍속이 짙게 남아 있어, 도시 특권층의 서구 생활양식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과테말라는 마을에 따라 옷색깔이나 머리 장식이 다른데, 하나같이 원색의 기하학적 무늬를 즐겨 사용한다. 그래서 과테말라의 시장은 항상 원색의 물결을 이룬다. 해발 2071m에 자리잡은 치치카스테낭고는 인디오말로 가시가 있는 지치자라는 땅을 뜻하는데 목요일과 일요일에 서는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과테말라의 축제는 그리스도교와 마야 토착종교의 제사가 혼합된 것으로 그 수가 많다. 마을마다 수호 성인의 축제일이 있다. 축제일에는 큰북, 피리 등의 민속악기 연주와 정복자의 춤, 무어인과 그리스도교도의 춤 등 전통무용을 볼 수 있다.[2] 주민[편집] 이 나라는 중남미에서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이다. 중앙아메리카인의 원주민과 라디노(Ladino) 또는 메스티조(아메리카 인디안과 스페인인의 혼혈)과 백인(주로 스페인인. 또한 독일인, 영국인, 이탈리아인, 스칸디나비아인 후손도 있음)이 59.4%를 차지하며, 아메리카 인디안은 키체(K\'iche) 9.1%, 카치켈(Kaqchikel) 8.4%, 맘(Mam)족 7.9%, 케치(Q\'eqchi) 6.3%이다. 기타 8.6%는 다른 마야인이고, 0.2%는 비(非)마야 원주민, 0.1%는 기타이다.[7] 지배계급은 혼혈이다. 교육[편집] 문맹률은 69.1%인데, 중앙아메리카에서 아이티나 니카라과 다음이다. 국민들은 대부분 빈곤하다. 인물[편집] 리고베르타 멘추(1959~ )가 과테말라 토착민들의 인권과 권리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199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언어[편집] 공용어가 에스파냐어로 국민의 60%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의 40%는 각 지역의 방언을 사용한다. 문화[편집] 종교[편집] 대부분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를 이루는 기독교인 사회이다. 관광[편집] 과테말라는 마야문명의 유적이 많은 곳으로써 대성당과 같은 근대적 빌딩과 전통적 건축물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중앙공원(Parque Central)은 시 중심에 위치한 시민의 휴식처로 주위에는 북쪽에 정부청사와 공원서쪽에는 성당 등 주요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정부청사는 1939∼1943년에 걸쳐 세운 조각이 정교한 중요건물이며, 메트로폴리탄 성당은 1809년에 완성된 흰색건물이다. 이 주변은 최대의 번화가로 상점가, 영화관 등이 모여 있다. 아틀란호(Lago Atitlan)는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약 150㎞에 위치, 해발 1,562m에 있는 세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칼데라 호수이다. 호수 주변에는 산페드로 산(Volcan San Pedro, 3,020m), 톨리산(Volcan Toliman, 3,158m), 아티틀란산(Volcan Atitlan, 3,535m)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또 아티틀란 호반에는 인디오 촌락이 있다. 치치카스테낭고(Chichicastenango, 일명 인디오 마을)는 과테말라에서 두 번째로 큰 종족인 마야 키체 족의 마을이다. 해발 16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고, 교통상 오지에 속해 아직도 많은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치치카스테낭고란 \"가시가 있는 치치나무가 자라는 땅\"이란 뜻의 인디오 말로 그냥 \"치치(chichi)\"라고도 한다. 이 작은 마을에 일주일에 두 번 목요일과 일요일, 장이 열리면 인근 인디오들이 모여 일용품에서부터 민예품을 매매하는 장이 열린다. 장이 열리기 하루 전날부터 시골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8] 과테말라다운 생활·문화·전통 등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2] 각주[편집] 1.이동 ↑ Mary Esquivel de Villalobos. “Ancient Guatemala”. Authentic Maya. 2007년 4월 29일에 확인함. 2.↑ 이동: 가 나 다 라 마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과테말라〉 3.이동 ↑ “Background Note: Guatemala”. US State Department. 2009년 7월 6일에 확인함. 4.이동 ↑ 틀:Es[1] Desarrollo rural, urbano o humano 5.이동 ↑ 틀:Es[2] La esperanza de vida en Guatemala sube hasta los 71,99 años 6.이동 ↑ 틀:Es[3] Guatemala Panorama general 7.이동 ↑ “Guatemala”. 《World Factbook》. CIA. 2009년 2월 18일에 확인함. 8.이동 ↑ 채지형 (2007년 12월 6일). “[세계시장산책] 색으로 살아난 마야의 신비”. 중앙일보사. 2009년 6월 18일에 확인함. |제목=에 delete character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바깥 고리[편집] (스페인어) 과테말라 정부 공식 홈페이지 주과테말라 대한민국 대사관 과테말라 한인회 과테말라에 관하여 Arte Guatemalteco Popol Vuh (영어) 과테말라 - DMOZ
국내 첫 파송 ‘농업선교사’ 정호진 목사/ 2002-02-12
국내 첫 파송 ‘농업선교사’ 정호진 목사 가난한 인도농민 부자 만들겠어요” 크리스천이 전체 인구의 2%에 지나지 않는 인도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농업선교사’를 파송한다.오는 3월말 출국을 앞두고 있는 정호진 목사(49)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인도 양대 교단 중 하나인 남인도선교단의 요청으로 파송하는 특수 목적의 첫 목회자이다. “제 목회지는 인도 마드라스와 벵골의 중간 지역인 벨로라는 곳입니다.최하층민인 달릿과 소수부족이 선교 대상이지요.그들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짐승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그들에게 복음을 강화하고 물질의 축복이 이뤄지게 해야지요” 정목사는 지난 10년간 경남 합천 등지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 그대로를 활용한 ‘생명농업’(유기농업)에 힘써왔다.포털사이트 ‘다음’ 등에 우리 농업의 소중함을 연재해 ‘농부목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초청받고 난 후 지난해 두차례 현지에 다녀왔습니다.한마디로 모든 것이 척박하더군요.우리나라가 선교사들로부터 도움받을 때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남인도교단이 25만평의 대지와 농업훈련센터를 맡아 운영할 것을 권했는데 삽하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센터는 1920년대에 미국 선교사가 지은 것인데 그간 방치해 놓아 건물만 덩그라니 있어요” 정목사는 기독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농업교육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오는 9월 첫 입교생을 받아 1주 1개월 3개월 1년 등의 과정으로 다양한 농업교육 프로그램을 실시,생산성을 높여나가겠다는 것.이들이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크리스천 리더로서 인도 복음화의 주역이 되도록 돕는다는 생각이다. 그는 지난 한해 강도 높은 선교사 훈련을 받았다.문화관광부 주관 ‘선교사훈련과정’을 비롯해 ‘아가피아독서학교 지도력훈련과정’‘기아봉사단훈련’‘영성수련공동체 입교’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의 준비에 충실했다. “그곳 농민들과 접촉해본 결과 잡초제거,물의 활용,병충해 퇴치 등에 대해 상식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습니다.저와 같이 농업에 전문성을 가진 목회자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정목사는 인도에선 볼펜 하나,종이 한장이 참으로 귀하다며 성도들의 협조를 요청했다.성경 사무기기 시청각교재 집기 의료기구 컴퓨터기기 자동차 등 모든 물품이 인도사역의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혼자서 계획을 수립·진행하기에는 너무 벅찹니다.1∼2개월 혹은 1년여동안 저를 도울 자원봉사자가 있었으면 합니다.인도선교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십시오” 정목사는 한신대를 졸업하고 연세대대학원 등에서 강의하다 줄곧 생명농업목회를 해왔다(016-281-9336).
귀츨라프 선교사 이야기
귀츨라프 선교사 이야기 2006-08-25 13:16:13 read : 7 우리 민족은 사천년동안 시간은 있었으나 역사는 없었고, 사람은 있었으나 삶이 없었던 민족이었습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 조용한 아침의 나라 ' , 은자의 강산이었던 이 땅에, 하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이 있었기에 이들을 부르시는 , 주님의 음성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 주님의 음성은 ,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들려지게 되었는데 , 오늘은 , 가장 먼저 이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린 귀츨라프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귀츨라프 선교사님은 모리슨의 중국 선교이야기를 듣고 감화를 받아 , 이역 땅 홍콩에서 , 세상을 떠나기까지 한 평생을 오로지 중국선교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입니다. 또한 그는 우리 나라 땅을 처음으로 밟고 복음을 파종한 최초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 1832년 7월 17일 거센 바람은 한국이 보이는 곳까지 우리를 몰고 갔다. ' 그는 중국 연안 도시들을 항해하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 바람에 밀려 우리나라까지 오게 된것입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황해도 장산곶 부근이었습니다. 그는 1개월이 넘도록 한국에 머물면서 ,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그 활동한 상황이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7월 17일 , 고깃배를 타고 있는 남루한 차림의 두 어부를 만났고, 그 중 한 노인에게 성경과 사자표 단추를 주었더니 매우 좋아하였다. 7월 25일 한국 관원의 요청으로 배를 , 고대도 안항으로 옮겨 정박하였으며, 섬 사람들은 신기한 서양배와 서양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는데,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성경과 전도지를 나누어 주었다. ' 그는 섬 주민들이 유행성 감기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 지참한 의약품으로 치료해 주었으며 , 섬 사람들을 설득하여 감자 재배법을 가르쳐 주면서 , 성경을 나누어 주고,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 국왕 순조에게 선물과 함께 통상을 요청하였으나 ,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씁쓸한 심정으로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는 우리 민족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민족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7월 27일자 항해기에서 , 정부의 금령 때문에 복음을 마음것 전할 수 없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 하면서 , 이미 배포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실 것을 믿으면서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 조선에 파종된 하나님의 진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없어질 것인가 ?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주님께서 예정하신 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리라. 그들은 다른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질투하리만치 편협한 것 같지 아니하였다. 이 나라에는 종교가 거의 없는 것이 명백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쇄국정책을 거두어 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 그의 기도는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 그의 방문이후 중국에서는 조선 선교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특별히 중국에서 사역하고 계시던, 윌리엄슨 선교사는 한국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 최초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으로 오게 된것입니다. 윌리암슨 선교사는 중국에 오는 한국 상인들을 전도하였고, 한국에 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였습니다. 그의 만주선교와 만주를 통한 한국선교의 깊은 관심은 로스와 매킨 타이어 같은 신실한 후계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조선의 선교의 문은 이렇게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열려지게 된것입니다.
글로벌 시대 한국 선교의 과제
글로벌 시대 한국 선교의 과제 문상철 한국 선교운동은 이제 넓은 대로를 달리고 있다. 골목길을 지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크게 움직이고 있다. 넓은 대로를 달릴 때 마주치는 상대가 많고,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규칙이 더 복잡하고, 의식해야 할 것들이 많다. 움직임의 규모가 큰 만큼 더 많은 책임이 따르고, 더 크고 복잡한 일들이 일어난다. 골목길을 달릴 때의 의식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과제들이 한국 선교운동에 부딪혀 온다. 한국선교연구원(KRIM)은 1979년 나일선 박사(Dr. Marlin Nelson)가 처음 시작한 한국 선교 현황에 대한 조사를 1990년부터 승계해서 매 2년마다 종합적인 조사를 해왔다. 2000년 말을 기준으로 새롭게 진행한 이번의 조사에서는 선교사들의 숫자와 사역 현황에 대한 일반적인 설문 외에도, 정보기술(IT) 관련 투자, 선교비, 선교사 보호(member care), 타 단체 특히 외국 단체와의 협력 등 글로벌 시대의 중요한 관심 사항에 대해서도 설문 조사를 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선교운동의 일반적인 변화 추이와 함께 글로벌 시대의 선교의 과제에 대해서 분석 정리하려는 시도를 했다. 한국 선교의 계속적인 성장 선교운동의 발전에는 숫자로 평가할 수 없는 질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 이 보고서는 우선적으로 수치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부분들 가운데 중요한 선교사의 숫자, 선교회의 숫자, 선교 대상국의 숫자에 대해 우선적으로 분석하면서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수치적인 변화의 추이에 따른 질적인 과제들도 균형 있게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한국 선교사의 증가 <도표1. 한국 선교사의 증가> 2000년 말 현재 한국 교회는 8,103명의 선교사들을 136개의 선교회들을 통해서 162개국에 보내어 선교 사역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이제 8,103명의 개신교 선교사를 국외에 파송함으로써 해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overseas missionaries)의 개념으로는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 되었다.[i] 한국 선교 현황에 대한 넬슨의 첫 조사는 1979년에 93명의 한국 선교사가 있다고 보고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이 조사를 지휘한 1989년에 그 숫자는 1,178명으로 증가했다. 그가 조사한 십년 동안 한국 선교사의 숫자는 1,266.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1990년 한국선교연구원(KRIM)이 이 연구 프로젝트를 승계한 후 첫 조사를 했을 때 한국 선교사의 숫자는 1,645명이었으며, 2000년 말을 기준으로 한 최신 선교사 숫자는 8,103명으로 파악된다. ‘90년대의 전체적인 성장률은 492.6%여서 전체적으로 ‘80년대의 성장 속도에 훨씬 못 미치지만, 한국 선교는 여전히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8,103명이라는 숫자는 선교회에 소속된 사람들만을 포함하였기 때문에 개교회에 의해 파송된 소위 독립 선교사들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2년 미만의 기간 동안 선교 사역에 헌신한 단기 사역자들과 미국 등에 이민하여 한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들 또한 포함하지 않았다. 따라서 8,103 명이라는 숫자는 보수적인 숫자이다[ii] (도표 1 참조). 1997년 말의 외환 위기와 함께 시작된 국내의 경제적인 역경으로 인해 한국 선교운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한국 선교운동은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1990년부터 2년 단위로 성장률을 추적해보면, 첫 2년은 56.6%(‘90-‘92)의 성장률을 기록해서 이례적이었지만, 그 후의 성장률은 27.0%(‘92-‘94), 34.5%(‘94-‘96), 35.1%(‘96-‘98) 등으로 점점 더 가속화되다가 1998년에서 2000년 사이에는 36.2%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 경제의 불안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교운동의 성장세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외환 위기 전보다도 오히려 높은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iii] 선교사 숫자의 현재 연간 증가률 17.7%는 해마다 한국에서 1,000 명 이상의 새로운 선교사들이 파송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이 사실은 한국이 서구 선교의 약화에 따른 전세계 선교 인력의 공백을 메우는 가장 두드러진 대체 세력임을 말해 준다. <도표2. 선교사들의 결혼 상태> 한국 선교사들 가운데 87.3%인 7,072명은 기혼자이며, 12.7%인 1,031명은 미혼자이다 (도표 2 참조). 미혼 선교사들의 비율은 ‘94년 20.0%, ‘96년 16.0%, ‘98년 15.0% 등이어서 점차적으로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미혼 선교사 비율의 감소와 기혼 선교사 비율의 증가 추이는 일반적으로 신학 공부를 한 선교사들이 대부분인 교단 선교부의 활성화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기혼자들이 다수인 대형 초교파 선교회들의 선호도와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혼 선교사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이 많이 있고, 미혼자들만이 할 수 있는 사역들이 있지만, 중도탈락률의 관점에서 보면 기혼자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다. 선교사 중도탈락률이 미혼 선교사들의 경우에 기혼자들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iv] 가급적 젊은 시절에 타문화와 선교의 경험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미혼 선교사들의 비율이 지나치게 낮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문화적 민감성과 사역적 창의성이 높은 시기를 신학 수업 등 선교를 준비하는 데 보낸 후에 30대 중반에 이르러 선교지에 가는 경향은 젊음의 역동성을 그만큼 놓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선교사들의 숫자는 그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보호 체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10 명의 선교사 당 한 명의 중간 관리자 혹은 팀 리더가 필요하다고 할 경우, 이제 810명의 훈련된 선임 선교사들이 필요하며, 50 명당 한 명의 지역 책임자(국별 혹은 지역별)가 필요하다고 할 경우 160 명의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선교사 보호(missionary care)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선교회별로 선교사들이 밀집되어 있지 않고 분산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위의 숫자보다도 훨씬 더 많은 관리자와 전문가들이 필요할 것이다. 선교사 숫자에서의 급속한 성장은 앞으로 전문가 결핍 현상을 점점 더 실감나게 만들 것이며, 이 점은 한국 교회가 앞으로 힘을 합쳐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한국 선교회의 증가 <도표 3. 한국 선교회의 증가> 선교회의 숫자는 1979년에 21개이던 것이, 1990년에 74개, 1998년에 127개에서, 2000년 말 현재 136개로 늘어났다 (도표 3 참조).[v] 이 중에 파송 단체는 98개이며, 훈련 기관 11개, 연구 기관 4개, 선교회 연합기구 6개, 협력 단체 17개 등이다. 136개 단체 중 22개가 교단 배경을 가진 선교회들이며, 114개는 초교파적인 선교회들이다. 1998년 이후 늘어난 9개 단체 중 7개 단체는 파송 선교회들이다. 선교사의 숫자에 비하여 선교회의 숫자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신규 선교회를 통하기보다 기존의 공신력 있는 선교회에 소속하기를 원하는 경향을 설명하는 것이다[vi]. 선교사 파송 단체들 가운데 가장 많은 선교사를 보낸 선교회는 ‘98년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UBF)에서 2000년에는 예장합동의 총회세계선교회(GMS)로 바뀌었다. GMS는 1,021명의 회원 선교사를 확보하고 있어서 889명의 2위 UBF를 추월하고 있다. 3위 파송 단체는 예장통합 선교부(616명)이며, 4위는 기독교감리회 선교부(592 명)이다. 5위는 (사)한국해외선교회(GMF)로서 모두 310명의 선교사를 보내고 있는데, 장기전임 선교사(long-term career missionaries)의 개념으로는 가장 큰 초교파 선교회이다. 그 밖에 침례교 선교부 (277 명), 하나님의 성회 선교부 (269 명), 예장 개혁(청담) 선교부 (231 명), 예장 고신 선교부 (213 명), 기독교 성결교 선교부 (197 명) 등의 선교회들이 10위권 이내이다 (도표 4 참조). <도표 4. 10 대 파송 선교회들> 10위 권 선교회들의 추이를 볼 때 초교파 단체에서 교파 단체로, 학생 단체에서 전문 파송 단체로 무게 중심이 옮겨간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1위 선교회가 바뀐 것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생선교회(CCC)가 10위 권 밖으로 밀려난 것도 이러한 변화를 실감나게 한다. 교단 배경을 가진 선교회들의 부상은 선교비 모금 등 후원 기반에 있어서 교단적 정체성이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현실적인 인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단 배경을 가진 선교운동은 교단의 정체성이 강화되면서 신학적 원리들에 근거해서 선교 정책을 일관성 있게 전개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선교 현지에 한국의 교파적 특징들을 무리하게 강요하고 이식시키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도표 5. 선교회들의 규모> ‘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선교회들의 대형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어 ‘92년에 300명 이상의 선교회, ‘94년에 400 명 이상, ‘96년에 500 명 이상, ‘98년에 700 명 이상의 대형 단체가 나타난 이후, 2000년에는 1,000 명 이상의 초대형 선교회 한 개가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2000년 말 현재 회원500 명 이상의 단체는 4개, 100 명 이상의 단체는 24개, 50 명 이상의 단체는 33개나 된다. ‘90년에 100명 이상이던 선교회가 네 단체에 불과했으나, 2000년 현재 24 단체로 늘어난 것은 선교회들의 대형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표 5 참조). 이러한 추세는 외환 위기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98년에 500 명 이상이던 선교회들이 2개이던 것이 2000년에는 4개로 늘어났고, 200 명 이상 되는 선교회들은 7개에서 9개로 늘어났다. 대형 선교회들의 출현은 회원 보호(member care)와 위기 대책 등에 있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전문적인 사역을 위한 인프라 구조(infra structure)가 얼마나 잘 구축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이 준비되었는가를 평가해보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양적인 증가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그 사역적인 효과성(effectiveness)을 따지지 않을 때 대형 부실로 이어질 잠재적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대형 선교회들은 알게 모르게 한국 선교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상호 연대와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울러 대형 선교회들은 이미 개별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전문성을 중소규모 단체들과 공유함으로써 작은 단체들을 지원하는 풍토가 조성될 필요가 있다. 선교대상국의 증가 <도표 6.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 대상국의 증가>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 대상국은 1979년의 26개국에서, 1990년 87개국, 1998년 145개국에서 2000년 현재 162개국으로 늘어났다 (도표 6. 참조). 선교 대상국의 숫자에서도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권인 것으로 파악된다.[vii] 단일 민족이라고 하는 한민족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이민 공동체를 형성한 것 자체가 아이러니이지만, 특별히 이민족을 복음으로 구원하기 위해 많은 선교사들이 고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한 민족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빈번히 이웃 나라의 침략을 당하고, 강대국의 도움을 청하기만 하던 우리 민족사를 생각할 때 한국 선교는 약한 자를 쓰시는 하나님의 역설적인 역사라고 밖에 풀이할 길이 없다 (고전 1:27, 28). <도표7. 대륙별 선교사 분포> 한국 선교사들은 아시아에 45.3%, 유라시아 10.3%, 유럽 8.9%, 아프리카 6.9%, 중남미 7.0%, 중동 5.4%, 대양주 3.3%, 북미 2.8%, 기타 9.9%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아시아 대륙은 ‘98년의 41.6%에서 3.7% 증가하여 2000년에45.3%가 되었으며, 중동이 ‘98년 4.5%에서 2000년에5.4%로 증가했다 (도표 7 참조). 반면에 중남미, 유라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전 기간에 비해 지역의 비중이 약간씩 줄어들었다. 한국 선교사들이 인근 아시아 국가들로 진출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은 문화적으로 볼 때 자연스러운 것이며, 중동으로 진출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개척 선교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도표 8. 주요 선교 대상국> 나라별로 살펴 볼 때 한국 선교사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10대 선교 대상국은 순서대로 중국 (781 명), 필리핀 (527 명), 일본 (463 명), 러시아 (359 명), 독일 (288 명), 태국 (233 명), 인도네시아 (216 명), 미국 (183 명), 인도 (160 명), 우즈베키스탄 (138 명) 등이다 (도표 8 참조).[viii] 한국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나라로는 ‘79년의 첫 조사 이후 항상 필리핀이 꼽혔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2위로 밀려나고, 대신 중국이 1위 선교 대상국이 된 것이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는 개척 선교의 강조점과 함께 한국 선교사의 배치가 보다 더 전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도표 9. 한국 선교사의 사역 유형>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 대상국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대두되는 한가지 중요한 과제는 선교지 상황에 대한 연구이다.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역의 전략이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 문화권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신세대 선교사들 가운데서 그 인식이 점차적으로 높아져 온 것이 고무적이지만, 오히려 선임 선교사들 가운데서는 선교를 두고두고 잘하기 위한 장기적인 안목의 연구 노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여진다. 8,103명의 한국 선교사들 가운데 국제적인 수준에서 해당 지역과 문화에 대해 권위 있는 연구를 한 전문가는 과연 몇 명이나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선임 선교사들은 이제 후배들을 위해 전략적인 조언과 함께 사역적인 지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역할을 위한 자질을 연마하는데 더욱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한국 선교사들은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유형의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사역이더라도 그 사역의 접근법은 늘 새롭게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도표 9 참조). 사람이 가 있다고 선교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바르게 접근할 때 그곳이 우리의 선교지가 되기 때문이다. 몸으로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접근할 때 실제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8,103명의 한국 선교사들이 136개의 선교회를 통해 162개국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 선교의 현황은 분명 고무적인 사실이다. 교회 성장이 멈추었다고 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선교의 불길이 약해지지 않는 것은 세계 선교의 흐름으로 보아서는 퍽 다행스러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성장에는 성장통이 따른다. 선교사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교회들과 선교회들로서는 돌보고 지원해야 할 선교사들이 그 만큼 많아졌다. 이런 가운데 다수의 선교사들이 내팽개쳐진 느낌을 받을 것이다. 선교회들이 전문성을 쌓아가고 발전해 가야 하는데 이를 위한 지원은 여의치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 선교사들이 점점 더 많은 나라에 보내 지고 있지만, 그 나라들의 문화적 특징과 사역의 전략에 대한 지식은 아직 일천한 상황이다. 이런 면들을 균형 있게 보면서 우리는 한국 선교의 발전의 과제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 선교를 위한 선교회들의 과제 한국 선교의 발전 초기에는 선교 후발국으로서 누리는 혜택들이 있었다. 다소 부족한 면들이 있어도 아직 어린 선교운동으로서 이해를 구할 수가 있었고, 실수를 해도 시행착오라고 생각할 수가 있었다. 세계 2위의 선교 대국으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는 입장에서 이제는 골목길을 달리던 때와는 다른 기준으로 한국 교회의 선교 사역을 평가해야 한다. 선교운동을 한국적인 관점에서 전개하는 것( localization)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글로벌한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globalization)이 필요한 것은 모든 선교가 지역적이면서도 글로벌하기 때문이다(George 2000, 195).[ix] 따라서 이제는 선교 선진국의 기준을 적용해서 선교회들과 선교사들의 사역적인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한국 선교사, 선교회, 선교지의 증가 추세는 각각 선교사들을 위한 회원 관리, 본국 선교회의 체제, 선교지에서의 사역의 전략적인 면에서 개선해야 할 영역들을 구체적으로 다룰 필요를 제기한다. 회원 관리: 방임에서 보호로 한국 선교회들은 일반적으로 대형화를 추구해왔다. 그래서 선교사들의 숫자를 늘리는데 관심을 가지고 선교사 모집과 동원을 위해 투자해왔지만, 회원 선교사들을 위한 서비스는 대체로 등한시 되어왔다. 현지의 선교사들도 감독과 관리보다는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재량대로 사역할 수 있는 여건을 선호해왔다. 이런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한국 선교사들은 선교회들로부터 보호와 지원을 받기보다는 방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대량 파송과 대비되는 빈약한 회원 관리(member care) 체제는 한국 선교회들이 선진화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통적으로 로마 카톨릭 선교사들보다 조직의 규율과 정책에 의한 관리를 덜 받아왔다. 조직적인 관리보다는 개인적인 자율성을 강조하는 경향은 개신교 선교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특히 ‘2/3세계 선교’(the Two-Thirds World missions)에서 더욱 심해진다. 한국에서의 선교의 발전 과정을 볼 때, 책무 체제(accountability structure)가 약하고 선교 사역의 개인주의 형태가 만연한 데는 문화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선교회들의 회원 관리 수단들이 제대로 마련되기도 전에 선교사들이 대량 배출되어온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더욱 심화된 면이 있다. 선교사 관리에 있어서 방임과 불간섭 정책은 선교사들이 먼저 선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나아가서 후원 교회들 앞에서 책무를 져야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선교사들이 선교회에 소속함으로써 관리와 감독을 받아야 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역을 더 잘 하기 위해서 이다. 다른 어느 나라의 선교사들보다도 개인적인 재량권을 많이 누리는 한국 선교사들로서는 장기적인 선교의 발전은 물론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적절한 체제 속에서 보호 받는 것을 기뻐하고 이에 협조해야 한다.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행정과 관리 업무를 하는 사역자들은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과 보호의 목적에서 선교사 관리를 해야 한다. 선교사 관리에는 조직적인 면 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 은사를 부여하시고 개개인을 고유하게 사용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고려되어야 한다. 통제에 익숙한 집단주의적인 문화적 풍토 속에서는 개인의 은사와 성향이 무시되기 쉬운데, 선교 행정가들은 방임과는 반대의 극단인 과도한 통제로 흐르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균형 가운데서 선교 행정가들과 선교사들 모두가 시간 사용, 재정 사용, 사역 계획 등에 있어서 투명하고 정직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 의식을 가져야 한다. 선교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들이 선교의 원리들을 존중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같은 기관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그 기관의 규정들을 준수하면서 충실한 조직원으로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도표 10. 한국 선교사의 사역 경력 ‘94> 선교사들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체제가 필요하고, 이러한 체제가 구축되고 운영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의료 요원 등 건강 전문가, 상담 전문가, 교육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이런 전문가들이 전임 사역자로 선교에 뛰어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전적으로 선교의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선교의 발전을 위하여 한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전문가들의 네트웍을 통하여 전인적인 선교사 보호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선교 현지와 본부에는 좋은 행정가들이 필요한데, 이들의 경우는 전임 사역을 해야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무 요원들은 많은 것 같지만, 이 가운데 행정을 잘 하는 전문가들은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의 설문을 통해 확인되기로는 12단체에 47명의 선교사 관리 사역자들이 있지만, 이 숫자로는 8,100 명 이상의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문성 면에 있어서도 현재 인력의 지속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정에 은사가 있는 선교사들이 행정직을 맡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하고, 그 후원 교회들이 적극 격려할 때 이 분야에 발전이 있을 것이다. 파송 구조: 모방에서 혁신으로 <도표 11. 한국 선교사의 사역 경력 ‘00> 한국 선교사들의 사역 경험이 점차 늘어나면서 선교 사역의 경험에 따라 이 인력을 조직화하는 것이 점차 중요해진다. 1994년 조사에서 한국 선교사의 68%가4년 미만의 사역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으나, 2000년 조사에서 이 비율은 39%로 줄어들었다. 반면에 12년 이상의 사역 경험을 가진 선교사들의 비율은 ‘94년 3%에서 ‘00년 8%로 늘어난 사실이 이러한 조직화의 필요에 대해 말해 준다 (도표 10과 11 비교). 한국의 선교사 파송 구조(sending structure)는 일반적으로 영국이나 미국에서 비롯된 국제 선교 단체들의 구조들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모델들을 도입하면서 한국의 단체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그 조직의 원리들을 존중하면서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더 면밀한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조직 모델들이 여러 세기를 거쳐서 다듬어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조직은 문화권을 넘고 시대가 변할 때마다 새로운 이슈들과 도전들에 직면한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문화권에서 한 때 좋은 것으로 평가된 체제라도 오늘날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냉정하게 검증해봐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면에서 자생적인 선교회들은 취약할 수가 있다. 대체로 설립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운영되기 쉽고, 조직의 틀 안에서 제도적으로 일하고자 하는 결의가 약하다. 그래서 한 두 사람의 지도자에 의존하는 조직과 사역이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 지가 중요한 물음이 된다. 특별히 지도자들의 세대 교체가 원활히 진행될 것인가 하는 것이 대부분의 한국 선교회들의 장기적인 발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자생 선교회들이 선진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특정인보다는 제도에 의존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x] 신세대 선교사들이 대거 나오면서 보다 수평적인 조직과 체제로 변화하지 않는 선교회들은 점점 더 글로벌 시대의 선교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질 것이다. 국제 선교회들의 한국 지부 형식을 취하고 있는 단체들은 조직적인 면에서 현상 유지보다는 혁신을 지향해야 한다. 일반 조직 이론에서는 국가별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조직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지 오래다. 거대 조직일수록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국제 단체의 지부들은 지부의 성격에서 벗어나 보다 더 자율적으로 사역하고, 다른 파송국의 실체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유연한 파트너쉽을 형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국제 기관에서 사역하는 한국 선교사들이 국제 단체 속에서 소수 민족 대우를 받지 않고, 보다 진취적으로 세계 제 2위의 선교대국의 위상에 걸맞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 단체들은 특별히 인사권 등 문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반영되는 영역에서 나라별로 자치권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생 단체이든 국제 단체이든, 적합한 조직의 모델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과감한 혁신을 꾀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앞서 가는 선교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xi]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파송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저비용 고효율의 구조를 추구해야 한다. 기존의 서구 단체들이 고비용 고효율인데 비해서 기존의 한국 단체들은 대체로 저비용 저효율의 양상을 띠고 있다. 한국의 선교회들이 저비용 고효율의 구조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큰 선교회일수록 작은 단체처럼 유연하고 기능적으로 일하도록 하부 단위에 자율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고[xii], 작은 선교회들은 큰 단체처럼 안정적으로 일할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협력과 제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효율적인 구조를 지향하기 위해 선교회들은 전통적인 체제의 모델에만 머물지 말고 정보기술(IT)의 발전과 함께 제기되는 많은 가능성들을 검토하면서 이에 보조를 맞춘 조직 혁신을 꾀해야 할 것이다. 이번의 설문 조사는 선교회들이IT 부분에 있어서도 소극적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IT 전담 직원을 둔 단체는 20단체에 불과하고, 그 직원들의 숫자를 다 합쳐도 28 명에 불과하다. IT 예산을 별도로 편성한 단체가 11 단체에 불과한 것은 상당수 단체들이 이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창의적인 사역 계획을 마련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나타낸다.[xiii] 선교회들이 필요를 알면서도 신규 투자를 주저하는 것은 2000년 예산을 전년보다 낮게 책정한 단체들이 다수인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재정적인 제약 때문에 장기 발전 계획이 위축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번 조사의 결과로 월 평균 선교비 기준액은 자녀가 둘인 가정의 경우 최고가 US$ 2,340 최저가 US$780 정도이고, 미혼자일 경우 최고가 US$ 1,404 최저가 US$ 390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직접 선교비가 전체 선교회 예산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국내 사역을 위한 예산 가운데서도 인건비와 사무관리비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은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xiv] <도표 12. 한국 선교사의 문화권별 분포> 한국의 선교회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직과 기술적인 혁신을 꾀하는데 보다 진취적일 필요가 있다. 특별히 IT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양성될 때 선교본부의 보다 효율적인 회원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본국 교회와 선교 본부 사이의 보다 긴밀한 지원 체제가 마련되어서 결국은 현장 선교사들과 선교회 본부 사역자들, 그리고 본국 후원 교회들의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이 한층 더 원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물론 지역 교회들의 사려 깊은 후원이 필요할 것이다. 현지 전략: 경쟁에서 협력으로 한국 선교사들이 162개국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교 단체들과 선교사들은 선교지별로 보다 긴밀하게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표 12 참조). 많은 단체들이 특정 국가나 지역보다는 여러 나라에 폭넓게 선교사를 보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협력은 선교회들 사이에서 일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선교회와 현지 교회, 선교회와 본국의 지역 교회 사이에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 한국 선교회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교지에서 경쟁심을 버리고 비전과 목적 의식에 따라 보다 과감하게 연대하면서 시너지를 추구해야 한다. 경쟁심은 농경 사회의 오랜 유물이고 한국 교육 체제가 끊임없이 강화해온 부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경쟁하게 된다.[xv] 선교회들이 단체의 경계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비전 중심으로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협력 방안들이 떠오를 것이다.[xvi] 국내 단체들간의 협력이 국제 단체와 국내 단체 사이의 협력보다도 더 어려울 수 있는데, 그것은 본부의 지도자들이 현지 사역의 비전보다는 그 단체의 발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선교회들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y)보다 개별적 자립성(independency)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경쟁심의 한 결과인 중복 투자는 경쟁심을 더욱 악화시키고 잠재적인 협력자들에게 불신과 방어 심리를 일으키기 때문에 발전적인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선교회들과 선교사들은 새로운 사역을 계획할 때 먼저 그 계획이 중복 투자를 하는 것인지, 다른 단체들과 선교사들에게 위협을 주지는 않는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선교회간의 협력을 일으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기구는 선교 현지의 한인 선교사 협의회와 국내의 선교 협의체들이다. 그러나 이 협의 기구들이 공평하게 운영되지 않고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운영될 때 협력을 조장하기 위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협력이란 근본적으로 신뢰에 바탕을 두어야 되는데, 협의체들이 신뢰를 잃을 때 방대한 조직에도 불구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더러 협의체들이 회원 선교회들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 또 하나의 선교회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그러한 경우 스스로 경쟁적인 구도를 만듦으로써 협의체의 생명인 자발적인 협력이 되지 않고, 그 결과 협의체의 권위와 위상은 유명무실하게 된다. 국내의 대형 교회들이 선교회를 통하지 않고 자체적인 파송 기능으로 선교 현지에서 일을 벌이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선교회와 교회간 협력 구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것을 개교회 중심으로 전개하려는 욕심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개 교회가 해외에서의 선교 사역에 대해 전문적인 채널을 통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감독하려고 할 때 그것은 결국 현지 사역을 상황화 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런 구도 속에서 선교사들은 계속해서 본국 교회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선교에 전문성이 없는 목회자들의 참견에 따라 사역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교회들의 직접 선교는 결국 본의 아니게 본국의 비전문가들이 선교지 교회의 장래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제국주의적 선교 행태로 돌아갈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제 한국 선교회들과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다른 나라의 선교회들 및 선교사들과 협력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글로벌 시대의 선교는 우리끼리 잘 한다고 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선교는 남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면 실수를 거듭하기 쉽다. 그런데 국내 단체들은 대체로 국제 단체들과 대등하게 협력을 하는데 필요한 전문가들과 전문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선교사의 숫자 면에서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 선교가 국제적으로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선교를 위해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입장에 있는 한국 교회로서는 이 부분에 중점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많은 교회들과 사람들이 선교사의 사역을 평가할 때 얼마나 그 선교사가 고생하며 사느냐 하는 기준을 가지고 생각하는데, 앞으로의 시대는 얼마나 그 선교사가 영향력을 미치는 가를 생각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건전한 잣대가 될 것이다. 국제 단체에 소속된 선교사들은 글로벌 시대에 지도자로 자라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럴수록 한국적인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한국교회에 의해 보냄 받은 사람으로서 본국 교회와 선교의 발전에 기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선교지와 본국에서 다양한 차원에서의 협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파트너쉽을 일으키는 전문적인 사역자들과 단체들이 필요하다. 또한 기능적인 파트너쉽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적은 규모의 파트너쉽 프로그램부터 시도해서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실질적인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많은 경우 협력과 파트너쉽을 명분으로만 내세우고 실질적이고 기능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데,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능한 것부터 구체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성공적인 파트너쉽을 위해서는 특정 파송 단체의 사람들이 주도하기보다는 보다 중립적인 비파송 단체의 사람들이 알선, 중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 파트너쉽을 주도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은 편향됨이 없도록 중립적이어야 하고, 철저하게 공통의 비전과 유익을 추구하며 지혜롭게 역할을 해야 한다. ?굇냠링欲?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순수하게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때 한국 선교는 선진화될 것이다. 선교지에서 경쟁심으로 인해 서로간의 관계가 불편한 선교사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순수함을 회복하는 것이 곧 선교의 질을 높이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선교의 비전과 사명감보다는 인간적인 야심이나 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할 때 입으로는 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다르게 표현하는 이율배반성을 나타내게 된다. 한국의 선교회들은 각 단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지상대명령의 성취와 성경적인 선교의 원리에 다시 한번 헌신할 필요가 있다. 국제적인 협력은 글로벌 시대에 선교를 잘 하는데 필요할 뿐만 아니라 목회에도 필요하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들은 국제적인 협력을 남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선교사들 가운데서도 교회 개척 등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선교사들 뿐만 아니라 파트너쉽 사역을 하는 선교사 등 다양한 형태의 선교 사역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가 선교를 하면서 글로벌 협력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할 때 교회 자체가 자연스럽게 글로벌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xvii] 선진 선교를 위한 교회들의 역할 한국 선교가 선진화 하는 데는 교회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선교회들이 선교의 전면에 나서 있지만, 선교의 주역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선교의 주역일 뿐만 아니라 인적 물적 자원을 공급하는 보급 창고이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헌신의 정도가 한국 선교의 수준과 질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선교가 단순히 과업을 성취하는 일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양식에 대한 것이고 교회 공동체의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개교회주의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관점에서 한국 선교운동의 글로벌화(globalization)에 참여해야 한다. [xviii] 선교사 보호를 위한 전문가 양성을 지원해야 한국 선교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를 영적 거인으로 보지 않고 여러 방면에서 돌보고 지원해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탁월한 선교사인 바울도 혼자서 그 모든 사역을 했다고 주장하지 않고, 많은 동역자들이 그와 함께 하였다고 그의 서신의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로마서 16장에 열거된 26개인과 5 가정 앞으로 보내는 안부는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긴 바울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사역의 후반부에 디모데나 디도와 같은 후배 선교사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이 일종의 안식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등 선교사 보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딤후 4:9, 21, 딛 3:12). 이런 관점에서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을 보내놓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교사들이 지속적으로 적절한 보호를 받는 가운데 발전할 수 있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을 보호하는 사역은 선교사 출신들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면들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다양한 분야에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상담가들이나 건강 관리 전문가들의 경우 선교사의 경험이 없더라도 그 전문성을 통해 선교사들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역 교회들은 이런 전문가들이 선교사들을 돌보는 일에 힘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전문가들의 경우 생활비는 별도로 지원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선교사들을 찾아가서 사역할 수 있도록 여행 경비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들 가운데 선교사를 돌보는데 은사를 가지고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이들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훈련비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 교회 입장에서는 당장에 가시적인 열매를 볼 수 있는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만을 지원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선교를 발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을 밟고 있는 선교사들을 이해하고 성심껏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선교회들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들을 지원해야 상당수 교회들이 이미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선교회들을 후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대부분의 선교비가 선교사들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데 쓰이는 반면에 선교회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은 미미한 편이다. 선교회 차원에서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는 그 선교회의 이사이거나,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목회자들과 그 교회들만이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들이 개별적으로 선교 현지에서 직접 대형 프로젝트들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 재정적인 부담은 컸던 반면에 그 전략적 가치와 효과성(effectiveness)은 낮았다. 교회들은 이제 한국 선교의 선진화를 위해서 선교회들의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들을 후원할 필요가 있다. 선교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조건 없이 주는 데 익숙해야 한다. 조건 없는 사랑이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듯, 조건 없이 주는 선교가 능력이 있다. 선교는 본질적으로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들이 순전히 선교회 프로젝트들의 전략적인 가치 때문에 후원할 수 있는 정도가 될 때 한국 선교는 보다 더 성경적인 선교로 성숙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살핀 대로, 한국 선교는 근년의 경제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를 보내는 면에서는 위축되지 않았지만, 선교회들은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가지고 투자할 여력이 없는 형편에 처해 있다. 이 부분의 취약점에 대해서는 특별히 대형 교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해서 한국 선교가 보다 균형 있게 발전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선교지 연구와 국제적인 네트웍 사역을 지원해야 단일 문화권 출신으로 한국 선교사들은 타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가운데 전략적인 연구를 하는 데 약하다. 항상 우리끼리 모이길 좋아하는 한국인들의 성향은 글로벌 시대에 네트워킹을 하는데 있어서도 대단히 소극적이다. 이런 콤플렉스는 한국 선교사들이 글로벌 시대에 국제적인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큰 제약으로 작용하고, 한국 선교가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는데 장애물이 된다. 한국 선교의 발전을 위해서 교회들은 선교사에 대한 기대 수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선교사 연장교육 등을 통해 선교사들이 글로벌한 지도력을 갖추어 가도록 배려해야 한다. 선교사 연장교육 및 지도력개발 프로그램 등에 대한 비용은 선교사들의 고정 선교비에서 부담하는 것이 부담이 되므로 특별히 파송 교회에서 해당 선교사들의 발전을 위해 추가적인 재정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기업체들 간에는 연구 개발이 없이는 장기적인 발전을 하기가 어렵고, 보다 폭넓은 네트웍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발전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다. 교회들이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이런 인식과 자각이 모자라는데, 여건이 어려운 때 일수록 거시적인 안목에서의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 소신 있게 투자를 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 좋은 성과를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선교의 선진화를 추구하는 교회들은 이제 선교사를 얼마나 많이 배출했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글로벌한 영향력을 가진 선교사들을 많이 배출했느냐를 두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선교지에 세운 건물 등 유형의 자산에 자부심을 느끼는 수준에서 나아가 선교에 대한 지식과 네트웍 등 무형의 자산이 얼마나 풍부한가를 따지는 수준으로 선교적인 성숙을 꾀해야 한다 지역 교회들이 선교사 보호를 위한 전문가 양성을 지원하고, 선교회들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선교지 연구와 네트웍 사역을 지원함으로써 선교의 전문화를 꾀할 때 선진 선교는 구호로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결론 한국 선교는 이제 골목길을 달리던 수준이 아니라 대로를 달리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한국 선교는 이제 대로를 달릴 때의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선교의 과제들을 생각하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특별히 지금은 교차로에 다다른 느낌을 줄 만큼 양적인 성장의 긍정적인 면과 질적인 성숙의 시급한 과제가 대비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한국적인 장점을 살리면서 동시에 보다 더 글로벌하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생각하고 앞날을 준비해야 한다. 선교회들은 여러 시급한 일들 가운데서도 회원 관리를 방임에서 보호로 전환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파송 구조에 있어서 모방보다는 혁신을 지향하고, 현지 전략에서 경쟁심을 버리고 보다 협력지향적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교회들은 이런 선교의 발전을 위하여 선교사 보호를 위한 전문가 양성을 지원하고, 선교회들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들을 후원하고, 선교지 연구와 국제적인 네트웍 사역을 격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교회들과 선교회들이 성경적 선교의 이상을 추구하면서 함께 노력할 때 21세기에 선진 선교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선교가 한 때 반짝하던 선교운동으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 선교를 주도하는 탄탄한 선교운동이 될 것인가는 지금 당면한 발전 과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 발전 과제들은 한결같이 순수하게 성경적 선교의 원리에만 충실할 때만 달성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한국 교회가 단일 문화적 한계들, 관계 중심적으로 일하는 약점들, 단기간의 결실에 집착하는 경향들을 극복하고 성경적 교회의 이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은 글로벌 시대에 선교를 바로 하는 것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올바른 선교를 하면서 성경적 교회의 모습을 추구할 때 한국 교회는 범우주적 교회의 실체에 다가가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 문상철. 1996. 한국 선교의 현황과 과제. 한국선교핸드북, 한국선교연구원 편: 21-32. 서울:한국해외선교회 출판부. . 1998[1997]. 한국에서의 선교사 탈락: 선교 행정가들의 견해. 잃어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사람들, 윌리엄 테일러 편집: 133-134. 서울: 죠이선교회 출판부. Drucker, Peter F. 1997. Introduction: Toward the new organization. In The organization of the future, Hesselbein, Frances, Marshall Goldsmith, Richard Beckhard eds. San Francisco: Jossey-Bass Publishers. . 1999.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New York: HarperBusiness. Duques, Ric, Paul Gaske. 1997. The “big” organization of the future. In The organization of the future, Hesselbein, Frances, Marshall Goldsmith, Richard Beckhard eds. San Francisco: Jossey-Bass Publishers. George, Sherron Kay. 2000. Local-global mission: The cutting edge.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28(2): 187-197. Hiebert, Paul G. 1976. Cultural anthropology. Grand Rapids: Baker Book. Johnstone, Patrick. 2001. Manuscripts for Operation world. WEC Publications. Robert, Dana L. 2000. Shifting southward: Global Christianity since 1945.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24(2): 50-58. April 2000. Schreiter, Robert. 1999. The new catholicity: Theology between the global and the local. Maryknoll: Orbis Books. Siewert, John A. Ed. 1997. Mission handbook 1998-2000: U.S. and Canadian Christian ministries overseas (17th edition). Monrovia, CA: MARC. 주해) -------------------------------------------------------------------------------- [i]. 타문화권 선교사(crosscultural missionaries)의 개념으로는 인도가 한국보다 숫자가 많으나, 인도 선교사들은 대부분 자국내의 타문화권에서 사역하기 때문에 해외 선교사(overseas missionaries)의 개념으로는 한국이 인도보다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Patrick Johnstone은 2001년 9월경에 출판 예정인 Operation World의 원고에서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ii]. 독립 선교사 등 선교 사역을 목적으로 하는 사역자들을 다 포함할 경우 이 숫자는 9,000명이 넘을 것이다. 8,103명이라는 숫자는 국제적인 관례에 따라 부부를 2명의 선교사로 계산하였으며, 선교사 자녀들의 경우 성인이더라도 별도로 파송 받기 전에는 계수하지 않았다. 이 숫자에는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한인 목회를 하는 사역자들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고정된 급여가 보장된 선교회 직원들도 포함되지 않았다. 선교회의 정회원으로 장기적으로 선교에 헌신했고 후원금에 의해 생활하는 본부 사역자들은 포함하였다. 선교사들 가운데 두개의 선교회에 이중으로 소속된 선교사들은 410명, 세 개의 선교회에 소속된 선교사는14명이며, 네 군데 단체에 소속된 선교사는 2명인데, 이 보고서의 전체 선교사 숫자는 이러한 중복 숫자들을 제외하였다. [iii]. 이 말은 전반적인 현상에 대한 것이고, 세부적으로는 경제 위축으로 인해 한국 선교운동의 장기적인 성숙을 위한 투자가 되지 않는 등 많은 제약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불구하고 선교사의 숫자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미국 복음주의선교단체협의회(EFMA)의 대표인 Paul McKaughan은 미국 선교 역사에서도 경제적인 사정이 선교 사역을 위축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iv]. 1994년에 시행된 선교사 중도탈락에 대한 조사에서 미혼 선교사들은 전체 선교사들의 20.0%인 반면, 그 탈락률은 전체 탈락자들의 45.9%에 달했다 (문상철 1996, 28; 1998, 138-139). [v]. 선교회의 숫자에 대해서는 넬슨의 원래 조사에서는 1986년 89단체, 1989년 92개로 보고되었으나, KRIM의 연구원들이 해외 선교와 상관없는 일반 기독교 단체들을 제외하였을 때 그 숫자는 각각 65와 66으로 줄어들었다. 위의 도표상의 수치는 1979년의 넬슨 박사의 의도와 1990년 이후 KRIM에서 일관되게 적용해온 기준에 따라 수정한 것이다. [vi].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위 벤쳐 미션(venture mission)의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 비즈니스에서도 성공하는 벤쳐 기업들의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지만, 선교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특별히 신세대 선교 관심자들에게 벤쳐 미션의 가능성과 함께 그 약점을 고르게 제시하는 것이 책임있는 동원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vii]. 미국은 197개국에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고 미국 선교핸드북은 밝히고 있다 (Siewert 1997, 88-93). [viii]. 이러한 국별 선교사 숫자는 실명이 확인된 최소한의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의 보안 유지를 위해 상당수 선교사들과 선교회들이 그 명단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 하는 사정을 고려할 때 중국과 같은 창의적 접근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숫자는 실제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ix]. 교회의 사역에 있어서 지역적인 것(the local)과 글로벌한 것(the global)이 균형을 이루면서 조화되어야 할 필요에 대해 말하면서, Dana Robert는 그러한 면모가 21세기 기독교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2000, 57). Roland Robertson은 지역화(localization)와 글로벌화(globalization)의 조합적인 과정을 “글로컬화(glocalization)” 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Schreiter 1999, 12). [x]. 최근 국제 선교회들 사이에 지도자 교체가 이루어 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시작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지도자 교체 자체라기보다 지도자 교체를 계기로 “조직화된 개선(organized improvement)”을 하는 것이다 (Drucker 1999, 80). [xi]. Peter Drucker는 조직마다 핵심 역량이 다른 가운데서도 모든 조직이 하나의 핵심 역량을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곧 ‘혁신(innovation)’이라고 말한다 (1999, 119). 이것은 선교회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xii]. Ric Duques와 Paul Gaske는 큰 회사들의 경우 계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작은 회사처럼 행동하고”, “혁신의 긴급성을 일으키고”, “얇고 가치가 추가된 집단 기능을 만들고”, “활력을 주는 조직 문화를 만들라”는 조언을 한다 (1997, 33-42). [xiii]. 설문에 응한 선교단체 중 IT 분야에 최고액의 예산을 편성한 단체는 세계로선교회이며, 이 단체의 2000년 IT 예산은 75,800,000원이었다. [xiv]. (사)한국해외선교회 전문인협력기구(HOPE)의 경우, 예산 가운데 선교사들의 직접 선교비는 전체 예산의 87.1%, 국내 사역비는 전체의 12.9%인데, 그나마 국내 사역비 가운데 36.5%는 인건비, 나머지는 관리비 및 홍보비 등으로 지출된다. 이러한 재무 구조는 선교회 차원에서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투자가 어렵도록 하는데, 여타 한국 선교회들에 있어서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판단된다. [xv]. George Foster의 “한정된 재화의 개념(the concept of the limited good)”은 농경 사회에서 땅은 한정되었기 때문에 농경 사회의 구성원들은 서로 경쟁적일 수 밖에 없으며, 특별히 외부인들에 대해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Hiebert 1976, 265; Foster 1965, 296-297). [xvi]. 드러커는 다가오는 시대가 피고용자 사회가 아니라 네트웍 사회(“a network society rather than an employee society”)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기업과 비영리 단체들이 단체의 경계선을 의식하고 자기 사람이라야 안심하고 일을 맡기는 풍토에서 벗어나, 소속보다는 네트웍의 기능적 효과를 추구해야 함을 말해 준다 (Drucker 1997, 2), [xvii]. 일례로, 해외에서의 영어 연수가 시대적인 추세라면 교회가 그 선교적인 경험과 네트웍을 활용할 때 일반 업체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고, 또 전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상업주의가 선교를 악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xviii]. Sherron Kay George는 글로벌 교회(THE GLOBAL CHURCH)가 오늘날 “모든 선교 활동의 한 핵심 역할자(a key player in all mission endeavors)”이며, 모든 지역 회중(LOCAL CONGREGATION)은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서 한 일차적 대리인(a primary agent)” 이라고 하였다 (2000, 190).
김장독 속의 작품
김장독 속의 작품 2009-03-05 16:46:26 read : 5 한국의 선교 초기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한 선교사가 시골 초가집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배가 아파 볼일을 보아야 하겠는데,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밤중이라 주인을 깨울 수도 없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밤, 달빛 아래서 화장실을 찾던 이 선교사는 마당에 있는 여러 개의 항아리 뚜껑을 발견했습니다. '옳거니, 이것이 틀림없는 조선의 화장실이렸다'하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냄새가 코에 확 풍겨 오는 것이 틀림없는 화장실이었습니다. 확신에 찬 선교사는 김장독에다가 실례를 하고 들어와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인 여집사가 선교사님에게 맛있는 김치를 대접하려고 김장독 뚜껑을 열었다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습니다. 누가 김장독에 보기 좋게 작품 하나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