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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교회 개척 9개 문닫아/ 2003-05-13
10교회 개척 9개 문닫아 한국교계에서 인기강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김동호 목사(높은뜻 숭의교회)가 지난해 12월 워싱턴을 찾았다. 김 목사는 근래 \\\'담임목사직 세습반대, 교회재정 투명화, 성도들을 교회안에 가둬두지 말라\\\'는 등의 소신발언으로 한국교계와 미주한인교회에서 주목을 받고있는 목회자다. 그는 한인교회의 개혁을 외치는 개혁파이자 입으로만, 교회안에서만 믿음을 주장하기 보다는 일터에서,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믿음을 이루어내자는 실천형 목회자라고 부를수 있겠다. \\\'세상을 고치는 교회\\\'는 김 목사 부흥회설교 중 한 제목이다. 여기에 김 목사의 설교를 지상중계해 본다. 먼저 김목사는 \\\'한인교회는 너무 교회적이다\\\'라고 말문을 열어 교인들을 놀라게 했다. 많은 교회는 일요일 대예배를 빼고도 일요일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가 있고 또 매일 새벽 예배까지 열어 참석을 독려하고 있다며 이런 예배에 다 참석하다간 직장일과 장사를 어떻게 잘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김 목사의 논리다. 그는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일요일 하루는 교회에 나와 충실히 예배를 보고 봉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일요일만 출석하는 성도를 참성도로 볼 수 있느냐, 믿음의 신실도는 온전한 십일조의 이행여부를 보면 안다\\\'는 등의 한인교회의 관행에 주눅이 들어온 평신도들에겐 김 목사의 이 발언은 퍽 충격적이었다. 이민생활에 찌든 성도들에겐 위로와 해방감과 평안을 주었다. 그는 이어 교회안에서 믿는 사람들끼리 간증하고 눈물 흘리는 것 보다는 일터에서 성공하는 것이 최고의 선교이며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에 있지 교회에 있지않다고도 했다. 즉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을 고치고 세상을 축복하며 세상을 치유하는 것이지 개교회의 부흥에 있지않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최근 한국교회의 증가세가 멈췄다고 전해 왔다. 새로 안수받은 목사가 10개의 교회를 개척한다면 그 중 9개는 곧 문을 닫고 1개만이 버텨나가는데 이 1개의 교회는 세상을 향한 목회를 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한국교계도 이처럼 급변하고 있는데 미주한인교회는 여전히 교회 크게짓고 예산늘리기에 열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 김 목사의 지적이다. 그는 한인교회를 향해 \\\'더이상 한국을 바라보지말라. 한국은 이제 한국의 힘으로, 한국교회의 힘으로 해나갈 수 있다. 미주한인교회는 이제 미국을 섬기고 미국에 감사하고 여러분들이 미국에 진 빚을 갚을 때가 됐다\\\'고 충고했다. 현재의 미주한인교회는 20-30년 전의 한국교회 복사판이며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가르친 시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세상이 교회를 가르치는 시대로 바뀌었다고 개탄했다. 교회를 찾는 성도들은 늘고있으나 \\\'변화되는 성도\\\'는 많지않다는 얘기다. 이웃을 사랑하며 세상에 나가 \\\'빛과소금\\\'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데 세상에 나가는 것을 꺼리고 교회안에만 모여있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아주 단순한 물음이다. 그는 또 한인교회의 구두선인 세계선교전략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선교도 전문성이 필요한데 한 교회가 역사와 문화배경이 각각 다른 북방선교 아프리카선교 중남미선교 등 온통 지구촌을 감쌀 수 있는 선교를 어떻게 감당할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수년전 한국의 외환위기 이전의 재벌들의 문어발식 확장과 뭐가 다르랴. 선교도 구제도 지역별로 문화별로 나누어 특정선교전문, 특정구제전문의 교회로 탈바꿈을 해야만 하나님으로부터 권능을 부여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시대를 축복하고 민족을 축복해야할 한인교회가 20-30년 전 한국교회의 구태적 사고틀 속에 갇혀있다는 것은 한인교회의 퇴행이자 한인사회의 큰 손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교회의 문을 열어라. 소속된 사회와 절연된 교회,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교회는 이미 그 존재의의를 상실한 교회다. 그리고 성도들이여, 목회자들이여 고개를 돌려 세상을 바라보라. 채영창 기자
11시 예배에 대하여../ 2003-08-11
11시 예배에 대하여.. "세계 어디를 보아도 한국 교회의 성도들처럼 모이기를 힘쓰며 예배드리기에 열심인 경우는 없다. 한국 성도들은 한 주간에도 주일 낮 예배, 주일 저녁(또는 오후) 찬양 예배, 수요일 저녁 예배(또는 기도회), 구역 예배, 매일 새벽 기도회 그리고 가정 예배 등 수많은 예배를 드린다. 이런 모습은 진실로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그것은 한국 교회의 장점이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요즘 이런 열심과 열정이 점점 식어 가고 있다. 너무 많은 예배를 드리다 보니, 성도들이 예배에 식상해 하는 모습도 보인다. 나아가 성도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아무런 감격과 감사도 없이 그저 의무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들 중에 주일 오전 11시에 드리는 낮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성도의 책임을 다했다는 생각을 갖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더 이상 헌신, 봉사, 섬김도 없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되어 이후 시간은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안들이 있다. 대표성이 없는 주일 오전 11시 예배 무엇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는 많은 성도들이 주일 오전 11시에 드리는 예배를 이른바 대예배로 부르면서 주일 예배의 대표 예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 예배 시간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참석하고, 많은 성도들이 주일 오전 11시 예배를 대예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먼저 이 예배를 ‘대예배’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푸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데에 큰 예배와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worship)가 예배인데, 거기에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주일 오전 11시에 드리는 예배를 대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대예배라는 말에는 문제가 있다. 대예배가 있다면 소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한 어떤 예배도 소예배일 수 없다. 다만 예배일 뿐이다. 그러므로 주일 오전 11시에 드리는 예배를 대예배로 부르는 것은 잘못이고 주일 예배로 불러야 한다. 다음은 주일 오전 11시 예배가 주일 예배의 대표성에 관한 문제다. 물론 이 시간에 가장 많은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주일 오전 11시 예배만이 주일 예배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주일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역사적으로 주일 오전 11시 예배의 출처는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초대 교회에서 성도들은 오히려 주일 새벽 동틀 무렵에 예배했다. 비두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Pliny)가 로마의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주후 109년)에 따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아침 일찍 모여 예배하고 성찬을 가졌으며 다시 저녁에 모여 애찬식을 나누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초대 교회는 주일 새벽에 모여 예배했다. 초대 교회 교부 터툴리안도 주일 예배가 동트기 전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순교자 저스틴도 그의 변증문(주후 150년)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주일 아침 해뜰 무렵 한 장소에 모여 시간이 허락하는 한 사도들의 언행록과 선지자들의 글을 읽고 떡을 떼며 예배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주일 이른 새벽에 예배를 드린 것은 지금과 같이 쉬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주일은 한 주간의 첫날로 일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주일이 오늘날과 같이 쉬게 된 것은 주후 321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칙령에 의해서다. 그러므로 이전에 성도들은 주일 새벽 동틀 무렵, 즉 일하러 나가기 전에 아침 일찍 모여 예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로마 황제의 칙령에 의해 주일이 쉬는 날이 되었고, 그 후로 주일 예배가 아침 시간대에서 서서히 옮겨갔을 것이다. 문제는 역사적으로 주일 예배가 아침 몇 시, 혹 오전 몇 시에 드려야 한다는 기록이 없다는 사실이다. 단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주일이 쉬는 날이므로 성도들은 여유를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지적하려는 것은 이제 주일 예배는 언제라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오전 11시뿐 아니라 7, 9, 10시나 10시 30분에도 가능하고 나아가 오후에도 드릴 수 있다. 한국 교회의 모교회라 할 수 있는 서울 새문안교회는 처음 오전 10시 30분에 주일 예배를 드렸다. 선교사들이 오전 9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성경 공부를 한 후 곧바로 주일 예배를 가졌다. 이 전통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의 역사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주일 예배는 반드시 오전 11시에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주일 오전 11시 예배만이 주일을 대표하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어떤 역사적 근거나 당위성을 갖는 것은 아니며, 다만 편의적으로 오전 11시에 가장 많이 모이다 보니 그렇게 인식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일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까? 예배는 시간이 아니라 자세가 문제 주일 예배는 어느 시간대에 드리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주일 오전 11시 예배에 참석했으므로 나의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의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문제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주일 성수 문제로 이어진다. 신학적으로 주일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돼 있다. 주일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와 구속 사역(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신앙 고백으로 ‘예배하는 날’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쁨으로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교제하는 날’이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날’이요, 우리의 이웃을 내 몸처럼 돌아보는 ‘구제와 봉사의 날’이고 미래에 이뤄질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진정한 쉼을 이루는 ‘안식의 날’이다. 모든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구속 사역에 감사하고 감격하며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의 날이며, 그런 중에 진정한 쉼을 누리는 안식의 날이다. 여기서 안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말한다. 따라서 주일은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면서 세상의 일을 멈추고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중에 하나님과 더불어 성도들과 교제하고 봉사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구제하는 날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주일은 자신을 위한 일을 멈추고 주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는 날이다.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았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발견할 때까지 우리의 마음은 안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세상에서 미리 경험하는 때가 바로 주일이다. 주일은 나를 위한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림으로 이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경험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일 아침 일찍 예배를 드리거나 혹 오전 11시 예배를 드렸다고 자신의 책임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면 진정한 주일 정신에 어긋난다. 주일 저녁 예배에 대한 재고 또한 주일 오후에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산이나 들로 나간다든지, 사업이나 장사하는 것도 주일을 잘못 보내는 경우다. 주일은 자신을 위한 모든 일을 그치고, 주님의 일을 하는 가운데 진정한 안식을 얻는 날이다. 다시 말해 주일의 핵심은 하나님께 예배함과 세상이나 자신의 일을 그치고 안식함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 가지 더 지적하려는 것은, 오늘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주일 저녁 예배를 오후 시간으로 앞당겨서 드리고 있다. 그 이유는 좋게 표현해 성도들이 주일 저녁이라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물론 성도들이 주일 저녁 시간에 가족과 가정 예배를 드리며 찬송하고 기도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아주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주일 저녁을 그렇게 지내는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주일 오후나 저녁에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영화관, 사업장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보내고 있지 않은가? 한국 교회가 주일 저녁 예배를 오후 예배로 당겨서 하고 있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결국 세상과 타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성도들로 하여금 주일을 범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바뀔 수 없는 ‘주님의 날’을 기념하는 바른 모습을 소개한다. “주님의 날은 세상의 사업이나 계획이 있기 전에 언제나 기독교인의 안식일로서 거룩하게 지켜지고 편히 쉬는 날이 되도록 준비돼야 한다. … 그리고 은혜로운 주일 예배를 위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기도하되, 특별히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례할 목사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예배 시간 전에 예배당에 모이고 예배가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나지 말아야 한다. 예배를 마치고 남은 시간에 독서와 명상과 설교를 통해 말씀의 복습과 찬송과 병자 심방과 자선의 손길을 펼치는 데 함께 해야 한다”(‘신성한 주님의 날에 관하여’「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빛과 소금/글·주승중 장신대에서 예배와 설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새천년의 성경적 설교」, 「2003 예배와 설교 핸드북」 등 공저가 있다. 일러스트·강창욱
14층 아파트에서 엄마 함께 죽은 / 2003-08-09
14층 아파트에서 엄마 함께 죽은 인천 어린이 삼남매를 생각하며 오동춘 장로 / 화성교회 14층 아파트에서 엄마 함께 죽은제55회 제헌절날 오후 6시 10분경 인천 부평 구 청천동 ㅅ아파트 14층에서 떨어진 엄마와 삼남매가 동반자살을 한 비극이 일어났다. 인천 가정동에서 카드빚 3천만원 돈에 시달리며 실직하고 집 나간 남편마저 없는 집에서 자식 셋 데리고 근근히 살던 손 아무개 여인은 자식을 자기 소유 물로 알고 자기 죽은 뒤의 고통을 염려한 나머지 “엄마 죽기 싫어, 살려 줘” 울부짖는 일곱살 딸부터 잔인하게 14층 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내던졌 다. 그 다음에 다섯살 아들을 내던지고 세살난 딸은 자기가 안고 뛰어 내렸 다. 일가족 네 명의 목숨이 삽시간에 다 꺾인 것이다. 이 얼마나 애통한 비극 인가? 무엇보다도 비통한 일은 한참 밝고 곱게 자랄 세 어린이가 부모 잘못 만난 죄 로 인생의 꽃으로 한번 피워보지도 못한 채 엄마 손이 악마의 손으로 변하여 시커먼 죽음의 강에 던짐을 당한 일이다. 천사같은 어린 세 자식이 무슨 죄 가 있다고 엄마하고 동반자살을 해야만 하는가? 엄마는 살고 싶지 않다. 죽 고 싶다고 해도 “엄마 죽기 싫어, 살려 줘” 하며 애원하는 일곱살 먹은 딸 을 왜 고층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내던졌는가 말이다. 주일날 오랜 만에 찾아온 여제자가 다섯살 아들과 세살 딸 남매를 데리고 나 를 만나러 왔다. 제자의 딸을 안아주며 이런 예쁘고 귀한 어린 자식들을 인 천 어느 엄마가 고층 창밖으로 내던졌구나? 하는 생각에 전신이 오싹해지며 그 죽은 어린이 셋이 너무 불쌍하여 심장을 송곳으로 찌르는 고통을 느꼈다. 성경은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이 사람의 생명이라 하는데 새파 랗게 자라는 어린 세 자식의 목숨이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그 엄마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니 참으로 원통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서는 억대의 돈을 먹고 오리발을 내미는 판에 돈 3천만원의 카드빚 때문에 네 사람의 목숨을 헌신짝같이 내버린 엄마의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 는 끔찍한 일이다. 34세의 손 아무개 여인이 자식도 한 인격체인데 자기의 소 유물로 생각하고 물건 내던지듯 자식 셋을 창밖에 던진 그 무지는 참으로 개 탄해 마지 않을 일이다. 어린 자식들을 무참히 죽인 살인행위가 아닌가? 성경은 “자식은 여호와의 주 신 기업으로 오직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누 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라”고 일깨 워 주시면서 극진히 어린이를 사랑하신 것이다.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오직 어린이 사랑으로 일생을 마쳤다. 모든 어른들이 방정환 선생처럼 어린이를 사랑해야 한다. 1957년 5월 5일에 발표된 어린이헌장대로 어린이들은 어들들의 사랑을 받으며 어린이로서의 당 당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어린이를 돈의 대상으로 유괴하여 학대하며 부 모에게 거액의 돈을 효구하는 유괴범죄도 철저히 막아야 한다. 낳은 자식을 팽개치며 이혼하는 부부도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제 자식을 소유 물로 착각하고 동반자살하는 어리석은 부모가 다시는 없게 사회계몽과 돕는 사회복지 시설이 강화되어야 한다. 도대체 우리 어린이들이 누굴 믿고 안심하 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 어른들의 깊은 반성이 절실히 필요하며 인천 세 어린이의 비참한 죽음은 바로 우리 모든 부모의 책임임을 절감해야 할 것 이다. 나라에서도 어린이 보호대책을 더욱 철저히 세워 어린이가 비극을 겪는 일이 다시는 없게 해야 한다. 국민들도 서로서로 사랑하며 이웃 사랑의 희생 봉사 정신이 투철해야 하겠다. 학교에서 밝게 공부하며 생활한 일곱살 큰딸은 제헌절날 현장학습을 가야 했 으나 돈 3,800원이 없어 못가고 엄마한테 끌려가 그만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검은 돈이 판치는 나라에 부모의 빚돈 때문에 슬피 죽은 어린이 셋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금할 수 없다. 우리 믿는자들은 더욱 앞 서 기도하며 어린이 사랑에 온 정성을 다 쏟아야 할 것이다. 착하고 예쁜 세 어린이는 하나님 사랑 속에서 하늘나라에서 밝고 기쁘게 뛰놀며 살아가길 빈 다.
1940년대까지 인천에 장로교회가 없었던 이유
1940년대까지 인천에 장로교회가 없었던 이유 북한교회 세우기 프로젝트(2) - ‘네비우스 정책’에서 배운다 ▲장로교 선교사들이 회의를 위해 모인 모습. 이들의 철저한 소명의식으로 한국교회는 초창기 전국에 골고루 복음이 전파됐다. 통일 이후 북한에도 평양 중심의 교회 개척이 되지 않으려면 단일창구를 통한 지역분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제공 북한교회세우기연합(이하 북세연, 대표회장 장차남 목사)은 다양한 교단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통일 이후 북한에 교회를 세울 때는 반드시 ‘단일창구’를 통해야 하며, 이것이 힘들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각 시군구에 있는 지역별 기독교연합회를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내세웠다. 이미 구성돼 있는 시군구 지역별 기독교연합회가 북한 지역을 한 곳씩 맡아서, 교회를 세우는 일 뿐만 아니라 복지와 선교 등 모든 제반 업무들을 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북세연의 최종 목표는 북한 주민들의 ‘복음화’와 ‘복지화’를 이들을 통해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통일 운동을 하고 있는 교계 인사들조차 통일 이후 공교회를 세우는 일에 대해서는 사실상 ‘해답이 없는’ 상태다. 이는 주요 교단이나 연합단체, 선교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동안 북한교회를 연구해 왔던 유관지 목사(감리교북한교회연구원)는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 통일이 이뤄지느냐가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이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네비우스 선교정책’과 비슷한 지역별 배분방식 북세연이 주창하는 ‘지역별 방식’은 한국교회 초기 대표적인 선교정책 중 하나였던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자급·자전·자치’로 대표되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과 발전에 한 역할을 담당했다. “자립을 지나치게 강조해 돈을 교회 성숙의 유일한 특징으로 삼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지만, 백낙준 박사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대해 “무엇보다도 자립정신과 실천을 통해 기독교의 신속한 한국화를 이끌고 교회 자치를 촉진시켜 당시 인도와 중국 선교에서 문제시됐던 ‘종교 제국주의’와 ‘선교단체의 세력화 문제’가 한국에서는 심각하지 않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 중 하나가 ‘지역분할 선교정책’이었다. 신수철 박사(고신대)가 지난 1998년 쓴 학위논문에 의하면 한국선교 초기 지역분할 협정은 1892년 6월 서울에서 미감리회와 북장로회 사이 ‘장로회 정책을 쓰는 미션 공의회(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에서 이뤄졌다. 이 연합기관에 의해 남장로교는 전라도와 충청도, 호주 장로교는 경상남도, 캐나다 선교회는 함경도, 북장로교는 평안도, 황해도 및 경상북도를 분할해 맡게 된다. 이 공의회는 발족될 당시 남감리회, 성공회, 침례회 등이 연합사업에 소극적이어서 불참하기도 했으나, 이후 장로교와 감리교는 계속 분할협정을 체결했고, 1909년 미감리회와 북장로회 사이의 협정으로 한반도에 대한 선교구역이 일정 거점도시가 아닌 전국으로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관지 목사는 이에 대해 “선교사들은 이 정책을 철저히 지켰다”며 “장로교회의 경우 광복 후인 1945년 이후가 돼서야 인천에 첫 교회를 세웠을 정도”라고 밝혔다. 지역분할 정책은 한국교회 교단분열 조장의 한 원인이 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만열 교수는 한국기독교사특강에서 이에 대해 “북장로교 계통이 주로 통합측, 남장로교 계통 일부가 황해도 계통의 북장로교와 합해 합동측을 형성했다”며 “또 이 정책으로 한국 장로교단이 지연을 중심으로 나눠지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국에 고루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데 크게 기여했고, 노력 중복이나 필요없는 경쟁을 막은 것도 사실이다. 불필요한 경쟁 막고 모든 지역에 복음 전파 가능 ▲한국의 모교회 중 하나로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사진 오른쪽 위)가 인천에 세운 내리교회의 초창기 모습. 한국선교 초기 지역분할 정책의 영향으로 인천에는 지금도 감리교회의 세가 강하다. ⓒ인천내리교회 박영환 북한선교연구소장(서울신대)은 신앙형태와 신학 방법이 각자 달랐던 이들이 지역분할 정책을 철저하게 준수한 것에 대해 “당시 선교사들에게는 복음에 대한 열정 말고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교회가 세워져 있지도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유리한 땅’일 수 있는 곳이 있지도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말도 된다. 한국교회는 현재 개교회주의 등으로 인해 중복투자와 수평이동, 필요없는 경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지원단체들의 경우 북한 정권차원에서 막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단체들끼리의 불필요한 경쟁으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 대부분 평양이나 근교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 소장은 이에 대해 “예수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박 교수는 단일창구 또는 협의를 통한 지역분할이 필요한 또다른 이유로 ‘중앙집권적 선교형태의 우수성’을 꼽았다. 그는 “선교는 결국 중앙집권적 조직이 강력하게 리드해줘야 한다”며 그 근거로 민족적·국가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는 이슬람과 카톨릭을 들었다. 큰 일을 하지 못하고, 각개전투를 벌이다 결국 큰 조직에 먹히고 만다는 논리다. 그는 “개교회주의가 계속된다면 북한선교 뿐만 아니라 선교 자체가 절망적일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기도결연운동 통한 지역기독교연합회 활성화 북세연은 지역별 기독교연합회를 통한 교회 세우기가 가능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바로 ‘명분’과 ‘직접 참여’다. 김중석 목사(북세연 사무총장)은 통일 이후 교단별 ‘단독드리블’ 가능성에 대해 “단일창구를 만들어 놓았는데 여기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면 분열주의를 획책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명분이 서지 않고, 각 지역별 기독교연합회에서 자기 교단 주요 인사들이 이미 이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건드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독교연합회 활동이 미약한 지역들의 경우는 해당 지역연합회가 활동할 수 있도록 간접 지원하고, 북한선교사를 양성해 해당 지역에 파송, 활동하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시작한 것이 ‘북한기도결연운동’으로, 북한의 시군구별 지역들과 한국 지역별연합회를 각각 일대일 결연으로 맺어주는 운동이다. 서울 각 구의 경우 평양과 남포 등, 부산은 함경북도 남부, 경기 북부는 평안북도 등으로 맺어주는 것이다. 북세연은 인구 수와 도시·농촌 등을 꼼꼼히 따져 해당 지역을 배정했다. 북세연은 이 운동을 통해 지금부터 해당 지역의 특성과 해방 전 있었던 교회 등을 알려주며 기도와 관심을 쏟게 하고 있다. 김 목사는 “통일이 되기만 기다리고 있지 않을 것”이라며 “해당 지역 지하교회와의 연계방안, 해당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 가능한 지역의 경우 방문과 접촉시도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북세연은 해외 한인교회 등에도 협력과 참여를 요청할 계획이다. 북세연은 이를 위해 오는 2월부터 북한선교사 양성과정을 본격 시작한다. 각계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사진에게 2년간 교육받은 이들은 ‘북한선교사’라는 공식 직함으로 활동하며 각 지역 기독교연합회로 파송돼 북한선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여러 실무를 담당하게 된다. 김 목사는 “단순히 복음 전파가 목적이 아닌, 북한 주민들의 복음화와 복지화, 신앙화와 정착화를 최종 목표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대웅 기자
1주일 평균 10시간22분 설교준비-개척 교회 목회자 설교준비 부담 커/ 2003-06-16
1주일 평균 10시간22분 설교준비-개척 교회 목회자 설교준비 부담 커 개척 교회 목회자들은 설교를 위해 1주일 평균 10시간 22분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응답한 목회자들은 ‘3시간 이하’ 23%, ‘4~6시간’ 21%, ‘7~10시간’ 26%, ‘11시간 이상’ 30%로 나타나, 50% 이상의 목회자들이 설교를 위해 4시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3시간 이하로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은 개척 사역의 분주함이 주된 이유였는데 ‘20시간 이상을 설교준비에 투자한다’고 응답한 부류가 16%임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설문결과 50% 이상의 개척 교회 목회자들이 설교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으며, 목회 사역 중에서 설교에 가장 큰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설교가 교회 성장에 가장 우선 될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반영하는데, 이에 대한 정보와 지식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개척 교회 목회자들의 독서량은 한달 평균 3.6권이었으며, 1권의 책도 읽지 못하는 목회자도 4%나 됐다. ‘1~2권’은 40%, ‘3~5권’은 41%, ‘6권 이상’은 15%였다. 개척 교회 목회자들의 독서량이 떨어지는 것은 기존 교회 목회자들과의 경쟁력에서 뒤쳐지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되며, 다양한 지식과 정보 습득을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미나 참석 빈도는 1년 평균 1~2회. ‘한번도 참석하지 않는다’는 목회자가 12%, ‘3~5회’가 23%, ‘6회 이상’이 7%여서 1년에 2회 미만으로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가 70%를 육박했다. 이같은 현실은 재정적인 어려움, 세미나의 지역 편중성, 정보의 열악함, 내용의 빈약함 등이 그 주된 이유였다.
2002년과 한국 신학 전망
2002년과 한국 신학 전망 2002-01-14 00:00:56 read : 308 ◆‘성경전통·현실’ 충실한 복음주의 신학 제시해야 김영한 목사<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숭실대학교 교수> 세계를 향한 복음주의 신학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2001년 봄 학회의 주제를 ‘서양신학을 향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제언’으로 정해 각 분야별로 발표하고 한글판과 아울러 영어판을 발행, 외국 학자들에게 보냈다. 2001년은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 아돌프 하르낙이 1901년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강의를 출판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하르낙의 기독교 해석은 사도적 기독교를 문화 기독교로 변질한 것이다. 한국복음주의신학회는 이러한 중대한 신학적 오류에 대하여 교정하고 신학적 새로운 전환을 위하여 이 책을 발간하고 2001년 10월 25-27일에는 세계 복음주의 신학자 대회를 개최했다. 2002년에도 한국 복음주의 신학회는 ‘21세기를 향한 복음주의 신학의 방향’이라는 주제를 4월에 있을 봄 학회에서 다룰 계획이며 이에 대한 한국 복음주의 신학의 구체적인 신학적 대안을 제시할 작정이다. 작년 10월의 대회는 외국 학자들의 글에 대하여 한국 학자들이 논평만을 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한국 학자들의 논문을 적극적으로 발표하여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한국개혁신학회에서는 새해 봄 학술 주제를 ‘이슬람과 기독교’로 정하여 이슬람의 교리와 정체성에 관하여 비교종교학적으로 선교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재래의 복음주의 전통을 받아들이면서도 복음이해를 단지 개인의 구원확신에서 이것을 전인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오늘날 대중문화를 타고 들어오는 각종 세속주의와 뉴에이지 운동, 신비주의운동에 대하여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이것들에 대한 복음주의 신학의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 복음주의 안에서도 다양한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회장 에릭슨(Millard J. Erickson)은 최근 저서 <복음주의 좌파>(The Evangelical Left: Encountering Postconservative Evangelical Theology)에서 좌익 복음주의에 대한 경고와 경계설정을 하면서 복음주의는 우익으로는 근본주의를 경계하면서 성경적 전통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995년에 새로운 저서 <하늘로부터 오는 불>(Fire from Heaven)에서 하비 콕스는 30년 전의 종교소멸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오늘날 사라지고 있는 것이 종교성이 아니라 세속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콕스는 성령운동을 원초적 영성의 회복으로 해석하면서 기독교적 성령운동을 하나의 범신론적 혼합주의적 영성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는 세계교회협의회 캔버라 총회에서 한국 여성신학자 정현경이 행한 영과 불, 종교적 정화 의례, 신령을 부르는 무속주문, 토속적 축복기원 등을 신 죽음 이후시대의 종교운동의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와 토속종교를 혼융시키는 종교혼합주의다. 이러한 혼합주의 영성이 다가오는 21세기에는 기독교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신학은 올바른 성경적 영성신학을 정립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바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적 진리나 가치의 객관성이나 보편성을 부인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 흐름, 해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적 진리로 새롭게 발견해야 하며, 세계사를 역사를 펼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장으로 재발견해야 한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복음주의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현실에 대한 적용과 책임감 없이 복음의 근본적인 것을 강조하고 부정적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근본주의 성향의 복음주의, 현실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모더니티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신복음주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포스트복음주의 그리고 종교개혁의 전통을 강조하는 개혁신학적 복음주의 등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이를 위하여 한국 복음주의 신학은 복음주의의 유산을 개혁신학적으로 해명하면서 성경을 영감되고 무오하며 신앙과 사상과 삶에 대해 절대적으로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것이 요청된다. ◆‘교회를 섬기는 신학’정체성 재확립 필요 박준서 목사<한국기독교학회 회장·연세대학교 교수> 서구 학문의 세계에서 신학은 ‘학문의 여왕’으로 불려져왔다. 13세기부터 시작된 유럽 대학의 역사를 보더라도 신학은 의학과 법학과 함께 학문의 중심위치를 차지해왔다. 이러한 학문 전통의 배경에서 미국의 경우 신학, 의학, 법학은 일찍부터 대학의 학부 수준의 교육이 아니라, 한 단계 높은 대학원 과정에서 교육하는 것으로 되어왔다. 따라서 신학은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후, 신학교에 입학해서 3년에 걸친 신학교육을 받고 신학학사(B.D., Bachelor of Divinity) 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학위명의 격상 추세에 따라 신학석사 (M.Div., Master of Divinity) 학위를 수여한다. 우리 나라도 이제 목사 안수의 요건으로 대학원 수준의 신학교육을 이수한 신학석사(M.Div.) 학위를 요구하는 추세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수준 상향화 측면에서 볼 때 불가피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목회자들의 신학교육 수준의 향상과 함께 한국의 신학계도 최근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국내에는 신학의 세부 분야에 따라 여러 신학 관련 학회들이 설립되어 있고, 각 분야별로 수준 높은 학술지를 출간하고, 정기적 학술 발표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학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신학의 세부분야를 대표하는 학회들을 열거하면, 한국구약학회, 신약학회, 교회사학회, 조직신학회, 기독교윤리학회, 기독교교육학회, 실천신학회, 여성신학회, 선교신학회, 교회음악회, 목회상당학회, 문화신학회 등 모두 12개 학회이다. 이들 12개 학회가 모두 모여 결성된 것이 한국기독교학회이다. 한국기독교학회의 구성은, 교단적으로는 국내 모든 교단을 망라하고 있고, 신학적으로는 보수, 진보, 복음주의 등 다양한 신학을 다 포함하고 있다. 기독교학회는 1년에 3회 ‘한국 기독교 신학 논총’ 학술지를 발간하여 한국 신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 ‘신학논총’은 전국 규모의 학술지로서 신학분야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학술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2년도부터는 1년에 4회 출간하는 계간지로 발전할 계획이며, 영문판 논문집도 발간하여 한국 신학을 세계 학계에 알림은 물론이요, 세계화 시대에 국제적 학문교류 활성화에 역할을 감당하려고 한다. 오늘날 한국의 신학계뿐만 아니라, 세계 신학계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는 신학의 학문적 정체성의 확립이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학의 학문적 발달과 그 영역의 확장으로, 신학은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으며, 신학과 종교학의 혼동에서 많은 신학적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종교학(Religious Studies)은 신학(Theology)에 비해 학문적 역사가 극히 일천하다. 종교학은 17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계몽주의, 이성주의의 산물이다. 종교학은 그 출발은 늦었지만 서서히 신학의 영역에 침투해 들어왔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서구대학의 연구실과 강의실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반대학에 속한 ‘종교학과’의 수가 ‘신학교’의 수를 몇 갑절 능가하고 있으며 따라서 신학은 종교학에 비해 크게 열세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신학의 학문적 정체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미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학술단체의 이름이 ‘미국 종교 학술원’(American Academy of Religion, AAR)이라는 것은 신학의 정체성의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종교학과 신학은 학문적 성격이나, 학문적 방법 등에 있어서 서로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종교학은 종교현상을 비규범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종교학은 초자연적인 계시의 차원을 거부하고, 종교를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적 산물이라는 전제에서 종교의 기원과 그 기능을 탐구한다. 이에 대비해서 신학은 신앙공동체의 학문이다.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신앙공동체 곧 ‘교회의 학문’이다. 신앙공동체를 떠난 신학은 이미 신학이 아니라 종교학의 영역에 속한다. 아브라함 링컨의 말을 빌려 표현한다면, 기독교 신학은 ‘교회를 위한, 교회에 의한, 교회의 학문’이다. 따라서 신학은 학문의 성격에 있어서 규범적이고, 신앙고백적인 학문이다. 신학의 학문적 성격과 목적과 정체성을 잊어버릴 때, 신학의 존재의미는 상실된다. 교회의 학문으로서, 교회에 봉사하는 학문으로서 신학의 정체성 재확립이 시급한 과제이다.
2003년 목회자료집 '어떤 걸 고를까?'
2003년 목회자료집 '어떤 걸 고를까?' 2002-12-02 23:40:45 read : 1382 예배와 설교핸드북  '삶의 가치 기준이 흔들리는 현대사회'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과거와 다른 가치 기준이 자리잡아 가고 있는 사회가 바로 우리들이 뛰어야 하는 목회의 장이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대상"이라며, "육적인 세계만을 추구하는 사회와 민족 속에서 하나님의 고결한 진리를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겸험하게 된다"며 2003년 목회의 지향점을 암시했다.  이 책은 2003년이 교회의 양적인 성장이 눈에 띄게 둔화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여건들이 전개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환경일수록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의 본래의 모습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갖추고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최선의 길을 걸어야 한다"며, 방향을 제시했다.  5부로 나누어진 '핸드북'은 편집 1부에서 '한국교회는 예배와 집회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제로, 2부에서는 '한국 설교자들이 안고 있는 언어의 병폐', '건전한 설교 비평을 위한 몇가지 제언'을 수록했다. 최근 4년간의 내용을 한 장의 '씨디'로 제공한다. 예배와 설교자료  3년을 한 주기로 구성되어 있는 성서일과 두 번째 해 성서일과에 따라 발행된 예배와 설교자료는 '온 땅의 새바람으로'를 주제로 정했다. 필자는 "하늘의 바람을 머금을 때 이 땅에서는 생명들이 생기를 얻어 살아나는 동시에 스스로 바람이 바람이 되어 생명의 일들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며 "지난 월드컵대회에서 신바람이 일었는데, 그 바람을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다시 살려내 교회와 이 민족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체적인 설교 주제의 흐름은 하나님의 바람이 원하시는 삶(대림절), 그 바람을 머금는 땅(성탄절과 주현절), 새로운 생명 바람을 일으키는 삶(사순절), 새 바람으로 오신 주님(부활절), 교회에서 이는 새 바람(성령강림절), 창조세계의 새 바람(창조절)으로 정했다. 특히 필자는 이같은 흐름에 따라 1년간 설교해 가면 2003년 대림절에는 희망의 바람이 이 땅위에 힘차게 불어서 새 역사의 불길이 거세게 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배와 강단  독일교회력에 따라 지난해까지 발행된 '예배와 강단'은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올해부터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서일과 '개정공동성구집'에 따라 발행됐다. 개정공동성구집은 영어권의 개신교회와 로마 가톨릭까지 참여한 '공동본문협의회'에 의해 1983년에 만든어 92년에 개정한 바 있다.  대강절 첫째주일(2002년 12월 1일)부터 시작되는 본문은 기다리는 계절대립절(2002년 12월 1일~12월 22일),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탄절(12월 24일~12월 31일), 새해와 빛의 계절 주현절(2003년 1월1일~3월 2일), 경건과 제자훈련의 계절 사순절(3월 1일~4월 13일), 감격과 희망의 계절 부활절(4월 20일~6월 1일), 성령강림절 삼위일체주일 그 이후(6월 8일~9월 28일), 감사의 계절(10월 5일~11월 23일) 등으로 나눴다. 2001년부터 3년간의 예배와 강단 전문을 PDF로 제작 씨디 한 장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목회와 설교자료  '교회와 문화'를 주제로 어떻게 예배에 미디어를 활용할 것인가를 비롯해 교회음악은 어디까지 인가, 문화공간으로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질문을 하고 '특별기획 자료'를 통해 해답을 제시했다.  교회력을 위한 일반 자료로써 2003, 2004년 교회력과 성경일과, 2003년도 설교계획, 교회력 찾기, 부활절 찾기, 교회절기별 꽃사용, 절기에 맞는 색깔, 본교단이 지키는 주일들 등을 자료로 제공했다.  2003년 1월부터 12월까지 주일 낮, 주일 밤 예배, 수요기도회로 나누어 설교자료를 수록했다. 박만서 mspark@kidokongbo.com -------------------------- 2003년 '생명牧會'를 생각한다  감격과 기대 속에 시작되었던 21세기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국제 정세와 사회의 변화 그리고 경제 상황 등을 돌이켜 볼 때에 희망의 조짐보다는 전쟁과 테러의 위협, 도를 넘어선 경쟁과 타락, 환경과 생태계 파괴 등으로 가득찬 양상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 한 가운데에서 구원의 방주로 부름받은 교회는 과연 어떤 희망을 이 사회와 그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해 주어야 할까. 신년도에는 각 지교회들이 목회적 지평을 더욱 넓혀 교회 안의 목표와 과제들 뿐 아니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와 지구촌의 과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03년은 본 교단 총회가 '생명살리기운동 10년'을 선포한 뒤 맞게 되는 첫 해. '생명의 성령이여 삶의 주인이 되소서'를 총회 주제로 하여 전국교회들의 실천적 의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전망이다. 성경은 기독교를 '생명의 종교'라 해도 좋을 만큼 깊고 넓게 다루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보다 구체적으로 '생명'의 문제를 목회 현장에 적용시켜 나갈 수 있을까.  그 동안 목회 현장에 필요로 인해 도입되었던 많은 프로그램들과 정책의 경우를 생각하면 우선 그 취지가 교회의 성장이나 신자들의 신앙적 성숙 등에 초점을 두어졌던 경우를 볼 수 있다. 이 때 다른 교회의 목회 임상을 통해 검증된 프로그램들일 경우에는 보다 선택이 손 쉬울 수 있을 것이다.  '생명 목회'로 전환을 이루기 위한 목회자들의 우선적 과제는 목회자로 부름받는 과정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목회 현장에 생명 목회가 적용되고 실천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처한 시대적 지역적 상황 속에서 '생명' 문제와 관련하여 보다 깊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일들은 성경의 본문을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읽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신학적 주제들을 다시금 살펴보는 일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 연구에 있어서는 생명과 주제를 다룬 본문이나 직접적으로 '생명'을 언급하고 있는 본문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이러한 주제를 다루었던 설교들을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는데 기독교사상에서는 지난해 이를 주제로 한 연속설교를 10회에 걸쳐 수록해 새로운 성경적 이해를 돕고 있다.  신학적으로는 생명의 문제는 특별히 조직신학 분야를 통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는데 죽음, 부활, 심판, 구원 등과 관련된 최근의 연구 결과들 뿐만 아니라 생명의 문제는 먹거리와 환경 건강 경제 그리고 영성 등 다양한 부분들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새로운 시각에서 이를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을 기초로 구체적으로 목회 현장에 '생명'의 주제가 적용되기 위하여서 기존의 교회 기관들이나 단체들과의 연대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굨 전문성을 갖고 구체적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기관들에 대한 후원뿐 아니라 교회에 적합하게 개발된 프로그램들을 도입하는 것 또한 목회뿐 아니라 교회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길이 될 것이다굨  이러한 모든 방안들은 사실상 총회의 정책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새롭게 바뀐 총회 홈페이지(www.pck.or.kr)나 생명살리기 10년 시행핸드북과 CD 자료등에 담긴 내용들만이라도 우선 꼼꼼히 살펴보는 것으로 작은 변화의 출발점을 맞게 될 것이다. 김보현 bhkim@kidokongbo.com
2010년도 청소년부 학교심방
2010년도 청소년부 학교심방 1. 목 적 1) 청소년의 영적 성장을 위한 관계의 장 마련(영적 돌봄) 2) 교역자 및 교사와 청소년 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 3) 결석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사정 파악 및 신앙생활 독려 2. 기 간 : 2010년 9월 17일(금) ~ 12월 16일(목), 3개월 간 3. 일 정 9/17(금) 9/30(목) 10/7(목) 10/11(월) 10/14(목) 10/21(목) 원주고 원주여고 대성고 북원여고 삼육고 상지여고 10/25(월) 10/28(목) 11/4(목) 11/8(월) 11/11(목) 11/16(화) 육민관고 진광고 치악고 횡성고 원주공고 문막 마이스터고 11/22(월) 11/25(목) 12/2(목) 12/6(월) 12/9(목) 12/16(목) 영서고 원주고 원주여고 대성고 상지여고 치악고 * 청소년부예배 출석인원이 많은 학교 순으로 시작한다. - 상황에 따라 조정 가능 * 전도사와 교사와 함께 학교를 방문, 말씀과 기도 후에 간식을 나눈다. - 점심/저녁시간대 이용 * 심방대상 학교를 전주에 주보 소식면을 이용하여 광고한다. * 심방후 심방일지를 작성한다.
2011년 교회력 및 각종 주일
2011년 교회력 및 각종 주일 [2776호] 2010년 11월 03일 (수) 14:31:32 [조회수 : 1196] 김성진 기자 ksj@pckworld.com * 교회력 주현절 1월6일 주님수세주일 1월9일 산상변모주일 3월6일 재의 수요일 3월9일 종려주일/수난주일 4월17일 고난주간 4월18일 ~ 23일 성금요일 4월22일 부활절 4월24일 성령강림주일 6월12일 삼위일체주일 6월19일 대림절첫주일 11월27일 성탄절 12월25일 * 총회제정주일 여전도회주일 1월16일(여전도회전국연합회) 세계선교주일 2월20일(세계선교부) 사회봉사주일 3월 6일(사회봉사부) 노동주일 3월13일(국내선교부) 남선교회주일 3월13일(남선교회전국연합회) 기독공보주일 4월10일(한국기독공보) 장애인주일 4월17일(사회봉사부) 총동원전도주일 4월24일(국내선교부) 군선교주일 4월24일(군농선교부) 신학교주일 5월 1일(신학교육부) 가정주간 5월 2일 ~ 7일(교육자원부) 청년주일 5월15일(청년회전국연합회) 청소년주일 5월22일(교육자원부) 농어촌주일 5월22일(국내선교부) 나라를위한기도주일 5월29일(행정지원본부) 환경주일 6월 5일(사회봉사부) 순교자기념주일 6월12일(순교자기념선교회) 북한선교주일 6월26일(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 교회학교교사주일 7월10일(교육자원부) 이단경계주일 8월 7일(행정지원본부) 총회주일 9월 4일(총회주일 헌금 실시) 외국인근로자선교주일 9월 18일(국내선교부) 단군상문제대책기도주일 10월 3일(행정지원본부) 직장선교주일 10월16일(국내선교부) 기독교교육주간 10월17일 ~ 22일(교육자원부) 세계교회일치와연대주일 10월 30일(행정지원본부) 학원선교주일 11월 6일(국내선교부) 교단연합기독교교육주일 11월 6일(교육자원부) 인권주일 12월 4일(사회봉사부) 성서주일 12월11일(성서공회) *기타주일 신년주일 1월 2일 어린이주일 5월 1일 어버이주일 5월 8일 맥추감사주일 7월 3일 종교개혁주일 10월30일 추수감사주일 11월20일
2011년 교회력 및 각종 주일
2011년 교회력 및 각종 주일 관리자 2010-11-02 16:56:45 867 총회주제 : "다음세대와 함께 가는 교회 - 한국교회의 미래, 자녀들의 신앙교육으로!" (신 6:4-9, 마28:18-20, 행 2:17) * 교회력 주현절 1월6일 주님수세주일 1월9일 산상변모주일 3월6일 재의 수요일 3월9일 종려주일/수난주일 4월17일 고난주간 4월18일-23일 성금요일 4월22일 부활절 4월24일 성령강림주일 6월12일 삼위일체주일 6월19일 대림절첫주일 11월27일 성탄절 12월25일 * 총회제정주일 여전도회주일 1월16일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세계선교주일 2월20일 (세계선교부) 사회봉사주일 3월 6일 (사회봉사부) 노동주일 3월13일 (국내선교부) 남선교회주일 3월13일 (남선교회전국연합회) 기독공보주일 4월10일 (한국기독공보) 장애인주일 4월17일 (사회봉사부) 총동원전도주일 4월24일 (국내선교부) 군선교주일 4월24일 (군농선교부) 신학교주일 5월 1일 (신학교육부) 가정주간 5월 2일-7일 (교육자원부) 청년주일 5월15일 (청년회전국연합회) 청소년주일 5월22일 (교육자원부) 농어촌주일 5월22일 (국내선교부) 나라를위한기도주일 5월29일 (행정지원본부) 환경주일 6월 5일 (사회봉사부) 순교자기념주일 6월12일 (순교자기념선교회) 북한선교주일 6월26일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 교회학교교사주일 7월10일 (교육자원부) 이단경계주일 8월 7일 (행정지원본부) 총회주일 9월 4일 (총회주일 헌금 실시) 외국인근로자선교주일 9월 18일 (국내선교부) 단군상문제대책기도주일 10월 3일 (행정지원본부) 직장선교주일 10월16일 (국내선교부) 기독교교육주간 10월17일-22일 (교육자원부) 세계교회일치와연대주일 10월 30일 (행정지원본부) 학원선교주일 11월 6일 (국내선교부) 교단연합기독교교육주일 11월 6일 (교육자원부) 인권주일 12월 4일 (사회봉사부) 성서주일 12월11일 (성서공회) *기타주일 신년주일 1월 2일 어린이주일 5월 1일 어버이주일 5월 8일 맥추감사주일 7월 3일 종교개혁주일 10월30일 추수감사주일 11월20일
2011년 교회력, 절기와 색상
2011년 교회력, 절기와 색상| ‥‥‥‥ 회원행사홍보 감사 조회 95 |추천 0 | 2010.12.26. 16:17 2011년 교회력, 절기와 색상 월 주일 교회력 참고 10년 11월 28 대림절 첫째주일 12 5 둘째주일 12 셋째주일 성서주일 19 넷째주일 24 성탄전야 25 성탄일 26 성탄절 첫째주일 송년주일 1 1 섣달 그믐날 저녁 / 새해첫날 2 성탄절 둘째주일 신년주일 6일: 주현일 / 새해주일 9 주현절 첫째주일 16 둘째주일 23 셋째주일 30 넷째주일 2 6 다섯째주일 구정(2월3일) 13 여섯째주일 20 일곱째주일 27 여덟째주일 3 6 아홉째주일 9 성회수요일 13 사순절 첫째주일 20 둘째주일 27 셋째주일 4 3 넷째주일 10 다섯째주일 17 종려주일 18 고난주간 월요일 19 화요일 20 수요일 21 세족목요일 22 성금요일 23 부활전야 24 부활주일 5 1 부활절 둘째주일 어린이주일 8 셋째주일 어버이주일 15 넷째주일 22 다섯째주일 29 여섯째주일 6월 2일: 승천일 6 5 일곱째주일 12 성령강림주일 19 성령강림후 첫째주일 26 둘째주일 7 3 셋째주일 맥추감사주일 10 넷째주일 17 다섯째주일 24 여섯째주일 31 일곱째주일 8 7 여덟째주일 14 아홉째주일 21 열째주일 28 열한째주일 9 4 창조절 첫째주일 11 둘째주일 한가위(12일) 18 셋째주일 25 넷째주일 10 2 다섯째주일 9 여섯째주일 16 일곱째주일 23 여덟째주일 30 아홉째주일 종교개혁주일 11 6 열째주일 13 열한째주일 20 열둘째주일 추수감사주일 27 대림절 첫째주일 12 4 둘째주일 11 셋째주일 성서주일 18 넷째주일 24 성탄전야
21세기 노인복지의 전망과 과제/ 2002-08-06
21세기 노인복지의 전망과 과제 I. 인구의 노령화와 노인생활 실태 1. 노인인구 증가 추이 가. 노인인구 증가 우리 나라는 그 동안 지속적인 생활수준 향상과 보건·의료기술의 발달로 국민들의 평균수명의 연장과 함께 노인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 결과 1960년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2.9%에 불과했으나 \'99년 현재 6.8%로 증가했으며, 2000년에 7.1%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2022년에는 14%를 넘어서 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나. 노인인구 증가속도 우리 나라는 노인인구의 증가 속도가 특히 빠르다. 이를 선진 외국과 비교해 보면 노인인구의 비율이 7%에서 14%로 되는 기간이 프랑스는 115년, 미국은 75년, 서독·영국이 45년인데 비해 우리 나라는 22년밖에 걸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인구고령화에 대처해 온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 나라의 경우 고령화사회에 대한 준비가 그만큼 시급함을 의미한다. 다. 노년부양비 노인인구의 빠른 증가와 함께 노년부양비도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15-64세) 대비 노인인구 비율인 노년부양비는 1998년 기준 9.2%이나 2030년에는 이 비율이 29.8%로 늘어나 생산연령인구 3.4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 노인의 생활실태 가. 소득 우리 나라는 그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에 헌신적인 기여를 해온 65세 이상 노인이 수입원의 대부분을 자녀에 의존하는 등 대다수 노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1999년 현재 전체국민의 2.51%가 생활보호대상인 반면 노인 인구의 경우는 이의 3배에 달하는 7.89%로 노인의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건강 65세이상 노인의 대다수(약 86.7%)가 장기간 치료·요양을 요하는 당뇨, 관절염, 고혈압 등 만성퇴행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전체노인의 약3.5%가 일상생활을 위한 동작수행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의 노인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인구고령화 추이에 따라 치매·중풍(뇌졸중)노인이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을 효율적으로 치료·요양할 시설과 프로그램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 며 이로 인해 노인부양가정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또한 1985년 이후 1998년까지 전체 진료비가 16.6배 증가한 것에 반해 노인인구의 진료비는 54.2배로 증가하여 노인인구의 진료비는 전체인구의 진료비 증가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해 왔다. 다. 역할상실 및 사회·심리적 고립과 소외 과거 전통사회에서 노인은 가정에서 전통적 규범과 생활양식의 전수, 개인상담, 손자교육,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서 주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핵가족제도로 바뀌면서 가정생활도 부부, 아동 중심으로 되어감으로써 노인은 가정내에서도 보조적, 주변적 역할만 담당하게 되어 점차 소외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라. 부양 및 보호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인이 자녀들에 의해 봉양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대부분의 노인들이 자녀·손자와 함께 노후를 보내왔으나 도시화·산업화 함께 직장의 이동, 핵가족화와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 등으로 부모를 모실 수 있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변화하고 또한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전통적인 부모봉양의식이 약화되고 있으며 노인들 자신도 점차 자녀와 별도로 생활하기를 바라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의 연대감이 약화되고 노인부부 또는 혼자 사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Ⅱ. 노인복지정책 현황 1. 생활안정기반 조성 가. 소득지원 특별대책 강구- 경로연금제도 도입 전국민 연금제도가 실시되더라도 국민연금 가입에서 배제된 65세 이상 노인들은 연금수급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대부분 노인들은 자녀들에게 생활을 의존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되어, \'98. 7. 1일부터 경로연금제도를 도입하여 65세 이상 저소득 노인들에게 일 정액의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65∼79세인 생활보호대상 노인에게 월 4만원씩, 80세이상 생활보호노인에게는 월 5만원씩 을 지급하고 있고, 일반 저소득 노인에 대하여는 월 3만원씩을 지급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노인이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급대상을 확대하고 지급액도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나. 노인의 취업기회 확충 \'97년까지 40종으로 되어 있던 고령자 적합직종을 \'98년부터는 60종으로 확대하였으며 1999 년에는 관련부처와 협의하여 강사, 번역사, 창업지원컨설턴트 등 17종을 추가하여 2000년 2 월 현재 77종으로 확대하였다. 아울러 공공기관부터 고령자적합직종에 노인을 우선적으로 고용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여 고령자 고용비율이 \'96년도에 28%이었으나 99년도에는 40.8%로 그 수준을 높아 졌으며(5인 이상 일반사업체의 경우 6.88%), 계속하여 그 고용비율 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노인취업상담 및 알선을 통하여 노인들에게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자 사단법 인 대한노인회를 통하여 \'96년까지 60개소의 노인능력은행을 운영하여 왔다. 그러나 그 동안 소규모로 운영되고 전문성이 부족하여 활성화되지 못했던 점을 감안, 기존 노인능력은행을 \'97년부터 노인취업알선센터로 개편하여 2000년 현재 70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편, 사업내용도 취업상담, 알선, 교육, 사후관리 등의 사업을 담당토록 하여 노인취업알선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또한 노인들의 여가를 선용하고 소득기회를 제공하고자 \'98년 말 현재 경로당, 노인복지회관 등에 약 480개소의 노인공동작업장이 설치 운영되고 있으며, \'99년도에 30개소를 추가로 설 치하여 2000년에는 총 510개소의 공동작업장을 운영할 계획이다. 2. 건강한 노후생활 보장 가. 노인의료서비스 강화 \'83년부터 65세이상 생활보호대상 노인을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실시하여 질병의 사전예방 및 조기치료를 통하여 노인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96년부터 70세이상 노인들이 의원급 의료기관 이용시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을 경감하고 있다. 2000년 7월경에 의료보험법령을 개정하여 감경 대상을 70세 이상노인에서 65세 이상 노인으로 확대하여 약 137만명의 노인이 추가로 진료비 감경 혜택을 받게 할 예정이다. 또한 전국 보건소에 한방진료실, 물리치료실을 설치하여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 으며, \'97년부터는 연차적으로 \"치매상담신고센터\"(\'99년말 기준 216개소: 2000년중 243개소 로 확대)를 설치하여 노인성 치매에 대한 상담 및 안내기능을 수행토록 하고 있다. 앞으로 보건소가 노인성질환 1차 진료기관으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의 치매관리모형의 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나. 노인전문(치매)요양시설 및 노인전문(치매요양)병원 건립 \'98년까지 23개소의 전문(치매)요양시설 건립비를 지원하였으며 \'99년도에는 1개소를 신규 지원하여 가정 또는 일반요양원에서 보호하기 어려운 중증 치매노인을 보호하고 있다. 2000 년에는 전문요양시설을 11개소(26→ 37개소), 요양시설을 7개소(85→92개소)를 신축하여 노 인을 부양하고 있는 가정의 가계부담을 경감하고, 치매노인 가정의 안정을 도모할 예정이다. 동시에 \'99년말 현재 12개소를 설치·지원한 노인전문(치매요양)병원도 2000년에도 3개소(부 산, 대구, 충남)를 추가 지원하여 총 15개소로 확대하는 한편, 2001년까지는 각 시·도별로 1 개소씩 설치할 계획이다. 또한 치매 관련 전문적 연구 및 정보 수집을 위하여 국립보건원 뇌의약학센터 내에 퇴행성질 환 연구팀을 설립하여 치매의 원인, 예방 및 치료, 진단법 등 종합연구체계 구축하고 있다. 3. 복지서비스 제공기반 확충 가. 재가복지서비스 확충 정신적.신체적 이유로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가 곤란한 노인을 돕기 위하여 유급·무급 가정 봉사원들을 파견하여 식사.목욕.병원안내 등 각종 생활편의를 제공하는 가정봉사원 파견센 터가 2000년 2월 현재 78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부득이한 사유(부양가족의 질병, 출장 등)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노인을 낮시간 동안 또는 수일간(최장 45일간)입소시켜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간(晝間) 및 단기 보호시설이 2000년 2월 현재 63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2003년까지는 각각 시.군.구별로 1 개소씩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나. 복지시설의 확충 및 정비 1999년 12월 현재 저소득노인이 입소할 수 있는 무료·실비 노인복지시설은 양로시설 88개소, 요양시설 69개소가 있다. 이중 요양시설을 2003년까지 116개소로 확충하여 만성질환이 많은 노인들의 장기요양보호수요에 대처할 계획이다. 또한, 시설 운영상태 및 입소자의 서비스 만 족도 등을 평가하는 시설 평가제도 도입을 통하여 노인복지시설의 서비스 수준을 제고할 계 획이다. 또한 경제적인 부담 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노인을 위한 유료노인복지시설을 지속적으 로 확충하고 세제 감면 등 시설을 확충할 수 있는 행정·제도적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4. 활기찬 노년문화의 형성 가. 경로효친사상 앙양 정부는 매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인 경로효친사상을 계속 유 지 발전시키기 위하여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웃어른을 공경하여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전국의 효행자를 대대적으로 발굴.포상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월 2일을 『노인의 날』, 10월을 『경로의 달』로 지정하고 이 날을 계기로 경로 포상 및 노인체육대회, 학술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를 전개함으로써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 심의 제고와 경로효친사상을 앙양해 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UN이 정한 \"세계노인의 해\"로써 효박람회, 실버산업 전시회, 노년학 대회 등을 개최하였다. 나. 경로우대 확대추진 경로우대제도는 \'80. 5. 8일 어버이날을 기해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철도, 목욕 등 8개 업종에 처음 우대제도가 실시된 이래, 매월 승차권 12매에 해당하는 현금을 교통수당으로 지 급하고 교통요금 할인제도의 일환으로 현재 철도 일부(통일호 50%, 무궁화호 30%)와, 수도 권 전철(100%), 항공기(국내선 10%), 선박(국내 여객선 20%) 등을 할인 이용할 수 있도록 하 였으며, 앞으로 철도 전 차종과 시외 고속버스 등에까지 확대 추진될 수 있도록 유관부처와 협의해 나갈 것이다. 1999년 8월에는 경로우대 대상시설로서 국·공립박물관은 입장료 100% 감면을, 국·공립 국 악원은 50%이상 입장료를 감면하도록 확대하였다. 다. 경로당 운영 활성화 지역사회 재가노인의 대표적인 여가시설인 경로당은 \'99년말 기준 36,340개소가 운영되고 있는데, 2000년 현재 28,580개소에 대하여 월 4만4천원의 운영비와 연간 25만원의 난방비를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경로당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현행 화투.장기 등 오락위주의 이용행태에서 취업· 건강정보, 취미생활 등 건전하고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는 한편 부녀회, 청년 회 등과 유기적 협조체계를 유지하여 청소·급식 등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 다. 라. 보람있는 노후생활을 위한 자원봉사활동 강화 사회활동을 통해 생산적이고 보람있는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인들이 갖고있는 각종 경험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각종 자원봉사활동에 노인 들이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98년부터 지역봉사지도원제를 도입하여, 사회봉사활동을 원하는 노인을 지역봉사지 도원(253개 시·군·구별로 약 40명, 약 17천여명)으로 위촉,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 였다. 앞으로 이분들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경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이외에도 모범사례발표 회, 지역봉사지도원 대회 등을 통하여 자질을 높이고 긍지와 보람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Ⅲ. 21세기의 노인복지 전망과 과제 21세기 고령화사회에 있어서는 복지정책의 중심이 노인복지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노인복지정책이 가지는 의미는 점차 증대하게 될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사회적 노인부 양 부담의 급속한 증가와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대비하여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국가의 보호 를 내실화하고 능력이 있는 노인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활기차고 보람된 노후생활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인복지정책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노인인구의 증가에 따라 고령자를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결국은 사회적 부담을 경감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으므로 고령자가 다양한 취업형태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의 조성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만성질환이 많은 노인들의 장기요양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하여 유·무료 노인요양 시설의 확충 및 노인성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간호하는 노인전문병원을 확충해나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틀니, 보청기 등 노인용 보장구를 단계적으로 의료보험 급여에 포함시키고, 의료기관 이용시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에 대한 감면 등을 통하여 노인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 하는 것이 필요하다.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노인인구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는 앞으로 부단한 정 책 개발과 함께 이를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예산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노인복지분야에서 정부와 민간부문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나누어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 적극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법적·제도적 지원방안을 확대하여 가정의 기능을 제고하는 동시에 재가노인복지사업의 확충, 노인 간병비 부담 경감방안 등의 대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가정이 부담할 수 없 는 부분을 지역사회 및 국가에서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분야별 향후 과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 대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나라도 2022년에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14%로 머지않아 고령사회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경제발전을 위한 제반 재정.투자사업 과 더불어 노인복지사업에 대한 투자를 동시에 수행하여야 하는 정부로서는 그 재정적 부담 이 급속도로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2. 노인부양여건의 변화에 따른 지역사회·국가의 역할 강화 노인의 문제는 가정과 지역사회 그리고 국가가 일정한 역할을 분담하며 해결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건전가정을 육성하고 가정의 역할을 유지·강화시키기 위한 제반 수단을 강구하지만 가정에서의 노인부양에 대한 여건의 변화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역사 회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보완·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가정과 지역사회의 역할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국가적 역할의 확대도 필수적이다. 3. 노인복지시설의 적정수준 확보 및 다양화 시설에서의 노인 수용은 탈시설화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으나 시설에서의 보호가 필수적인 노인을 위한 적정수준의 노인복지시설이 운영되어야 하고, 또한 노인들이 자신에 알맞은 시설을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화 될 필요가 있다. 노인과 가정의 경제적 능력, 건강의 정도, 기타 노인의 욕구에 따라 다양하게 시설이 운영될 필요가 있으며 수용보호시설과 함께 여유있는 노인들을 위한 이용시설 그리고 실버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중요한 노인복지사업의 하나라 할 수 있다. 4. 재가복지사업 기반 확충 산업화에 따른 취업구조의 변화, 여성의 사회적인 활동 증가 등으로 인하여 가정에서의 노인 보호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가정에 계시는 노인을 주간이나 단기로 보호할 수 있는 재가복지사업기관과 프로그램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으나 아직도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으로 앞으로 이러한 사업의 기반을 확충하여 노인이 계속 생활해오던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보호를 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5. 복지프로그램의 확대 기존 각종 복지시설과 이용시설에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그 동안 하드웨어(Hardware)로서 시설 증설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고 소프트웨어(Software)로서의 운용프로그램의 개발·보급은 그 수준이 미흡한 실정이다. 이준근(보건복지부 노인복지과장) 약력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원 졸업 ·현 보건복지부 노인복지과장
21세기의 목회자 및 영적 지도자의 새로운 모습
21세기의 목회자 및 영적 지도자의 새로운 모습 2002-06-07 15:58:22 read : 1021 나 구 용 목사(뉴저지 연합감리교회 담임) 목회자 즉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부름 받은 자로서 나 자신에게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지도자는 과연 어떤 타입의 사람일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Henri Nouwen의 책 In the Name of Jesus(예수님의 이름으로)를 읽고 너무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기에 동역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는 마태복음 4:1∼11과 요한복음 21:15∼19 말씀에 근거하여 21세기 목회자 및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다음 3가지로 강조하고 있다. 1. 현실지향의 기도로(From Relevance to Prayer) 2. 유명세에서 목회로(From Popularity to Ministry) 3.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 받는 자리로(From Leading to Being Led) 가는 사람이 미래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지도자라고 말한다. 이러한 Nouwen의 글에 기반을 두고 나의 느낀 점을 동역자 여러분들과 나누어 보고자 한다 1. 현실지향의 기도로 (From Relevance to Prayer) 우리는 성공 지향적인 생각으로 교회를 인도해왔다. 교회도 대형교회로, 선교도 크게, 그리고 개인 삶도 잘 되는 것을 지향하며 살다가 "영적인 것"을 잃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이 같은 모습을 초래한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Living for the Lord)보다는 하나님과 함께 살기(Living with the Lord)를 원하신다. 우리는 교회의 일(Business)과 영적인 것(Spirituality)을 같은 것으로 착각해 왔다. 교회의 일을 많이 해야 영적인 교회가 되는 줄로 착각했다. 생명은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에 있지 않고 예수님 안에 있다(행 17:25).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로는 충분치 않으니 더 하고 더 해야지 하며 애쓰다가 목사는 병들고 교인은 피곤해 졌다. 교인들에게 기독교라는 종교를 주었지 예수님의 생명을 주지 못했다. 교회는 예수님을 원하고 있다. "주님을 위한(Living for the Lord)"일 중심의 목회를 하게 될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유혹은 항상 "현실적이 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처음 받으신 시험이 바로 이 시험이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다. 돌을 떡으로 만들어 지극히 현실 지향적인 일을 하므로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라는 시험이었다. 목회를 하면서 경험하는 가장 큰 고통은 나의 영향력이 별로 없다는 권위 상실이다. 그래서 목사는 현실적인 해답을 주는 자가 되려는 유혹을 받는다. 여기서 우리는 이 시험을 물리친 예수님의 해답을 잘 들어야 한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성공 지향적이고 현실적인 빵 문제 뒤에 숨겨져 있는 사람들의 고독감, 소외감, 깨어진 관계, 권태감, 공허감, 우울한 마음 등으로 심각하게 영적으로 고통 당하고 있는 상태를 보아야 한다. 영적인 지도력은 모든 화려한 성공 뒤에 가려진 고통의 깊이를 이해하고, 그곳에 예수의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지도자로 준비시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물으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무조건적인 제1의 사랑을 아느냐고 물으신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 무조건적인 제1의 사랑을 아느냐고 물으신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예수님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 제1의 사랑의 경험 없이 인간들 사이에서만 나누는 제2의 사랑을 하다가 좌절과 원망과 분노를 낳고 만다. 거기에는 포기, 배신, 거절, 단절이 동반하는 숱한 상처들로 골이 진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길은 Nouwen은 "기도"라고 말한다. 기도 안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게 된다. 기도하는 곳에 거하는 자는 이미 거할 곳을 찾았으며 우리는 벌써 하나님께 속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신학(Theology)이라는 용어의 원래 의미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Union with God In Prayer)" 오늘날 신학은 예수님 없는 하나의 학문이 되어 버렸다. 영적 지도자들은 지속적인 묵상기도를 통하여 사랑의 목소리를 거듭거듭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불붙는 Issue들만 다루는 것은 분열만 조장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리를 깨닫기도 전에 두어진 주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생명의 원천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인격적인 친밀감이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유연할 수 있으며, 독단적이 아니면서도 확신에 차 있을 수 있고, 너무 무르지 않으면서도 온화하게 용서할 수 있다. 미래를 인도할 수 있는 영적 지도력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는 도덕으로부터 영적으로 전환하여양 할 것이다. 누구는 옳고, 누구든 그르며,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렸다고 하는 선악을 판가름하며 선악과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고 살던 모습에서 생명 나무이신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열매를 따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2. 유명세에서 목회로 (From Popularity to Ministry) 우리 지도자에게 찾아오는 또 하나의 유혹은 개인주의이다. 이 시험이 바로 예수님에게 온 사탄의 두 번째 유혹이다. "정확하게 무언가 굉장한, 열렬한 박수 갈채를 안겨다 줄 만한 일을 해보라는 것이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라. 그리하면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붙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스턴트맨이 되기를 거부하셨다. 자신이 굉장하다는 것을 보여 주시지 않으셨다. 그 분은 석탄 불 위를 걷지도 않았고, 사자의 입 속에 자신의 머리를 넣지도 않으셨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오늘날 지도자 사이에는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뭔가 별로 보여줄 것도 없으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뭔가 보여줄게 있으면, 혼자서만 해야된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언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질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의 박수만 고대하면서 이 꼭대기에서 저 꼭대기로 연결된 줄타는 곡예사처럼 살아왔다. 경쟁사회의 분명한 한 측면인 스타 의식과 개인주의적 영웅주의는 우리 지도자 속에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에 비로서 "내 양을 먹이라" 하셨다. 목회하라는 사명을 그제서야 주신 것이다. 목회자가 유명해지려고 할 때 그것은 큰 문제이다. 예수님께서는 목회란 공동체적이며 상호 보완적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8:19~20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에서 이루게 하신다"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에도 둘씩 짝지어 내보내셨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예수님께 진심으로 신실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함께 기도하고 당면한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며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늘 순수하도록 도전할 형제 자매가 필요하다. 우리가 함께 사역하면 우리를 보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쉽게 인식시킬 수가 있다. 목회는 공동체에서 경험되어질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친구 관계를 넘어서 공동체로 가야 한다. 독자적(Independence)인 것을 넘어서 상호 의존(Interdependence)으로, 굳은 상태(Invulnerability)를 넘어서 민감한(Vulnerability) 상태로, 닫힌 마음(Non-disclosure)을 넘어서 열린 마음(Self-disclosure)으로 가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이러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만일 우리가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허락해 드리기만 한다면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나는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다. 나는 남을 알고 싶고 알려지고 싶다. 나는 남을 섬기고 싶고 섬김을 받고 싶다." 우리는 공동체로 살아야만 행복할 수 있게 되어져 있다. 이러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길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부족과 연약함을 기꺼이 고백하고 그들이 목회하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될 때 가능해 진다. 고백과 용서는 죄인 된 우리 인간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지인 공동체와 자신을 분리시켜 놓고 살아간다. 자신들이 가진 욕구를 무시해 버리거나, 아니면 채우더라도 멀리서 또는 익명의 장소에서 채우는 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가장 은밀한 내면 세계와 그들이 선포하는 복음의 세계가 점차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목사들이 돈 문제와 여자 문제와 권력 문제에 빠져 버리게 된다. 자신의 영성을 외적으로만 체계화 하려하면 육신의 삶은 정욕적이 되고 만다. 영적인 지도자들은 성육신의 삶을 살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것은 공동체라는 전체의 몸 안에 사는 것이며 그 안에서 성령의 임재를 발견하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죄의 고백과 용서는 형식적인 영성화와 세상 정욕을 배제하고 진정한 성육신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육체와 영혼의 통합이 공동체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말은 목회자들이 반드시 자신의 죄와 과오를 강단에서 털어놓으라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목회자들도 그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공동체의 한 지체로 부름 받았으며, 공동체의 사랑과 지원을 필요로 하고 상처 입은 자아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 전체를 사역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여러분 가운데 고통을 많이 받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이 함께 모여서 자신의 깊은 고통과 투쟁을 함께 나눌 공동체가 필요하다. 더 깊은 하나님과의 신비 속으로 인도해 줄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장소이다. 함께 한 사람들은 나의 숨겨진 고통에 관심을 가져주고 점잖은 충고와 성원으로 나의 소명을 지켜 나가도록 해 줄 것이다. 3.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 받는 자리로 (From Leading to Being Led) 이것은 Servant Leadership(종으로서의 지도력)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오는 유혹은 "힘이 최고다"라는 생각이다. 예수님이 받았던 3번째 시험도 힘에 대한 시험이었다. "내가 이 세상 모든 나라의 영광을 네게 주겠다"하는 마귀의 꼬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바로 이 단어 "힘" 때문이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늘 빠지고 있는 시험 중 하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끊이없이 정치적인 힘, 군사적인 힘, 도덕적인 힘, 영적인 힘 등 바로 이 힘의 시험에 굴복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힘을 갖는 것"이 목회를 하는데 쓰여진다면 좋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들어왔고 말해왔다. 이러한 합리화 때문에 십자군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큰 영향을 미치는 자리들을 바라게 되었고 영혼 구원에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대형 교회를 만들어 힘으로 무엇을 해보려 한다. 21세기의 부패해 가는 교회의 모습을 볼 때 이런 파멸의 주요 원인을 나는 목사들이 행사하는 바로 그 "힘" 때문이라고 본다. 힘에 대한 유혹이 막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사람이 해 낼 수 있는 과제에 대한 손쉬운 대체물을 힘이 제공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사람들을 Control 하기가 더 쉽다. 우리는 사랑을 힘과 바꾸려는 유혹을 받아왔다. 우리는 사랑 대신에 힘을, 십자가 대신에 지배력을, 인도 받기 보다 인도하려는 유혹을 받고 살아왔다. 이런 유혹을 끝까지 이겨내어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사람이야말로 영적 지도자일 것이다. 기독교를 세우려 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줄줄도, 또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영적 지도력의 핵심은 인도하는 자리에서 인도 받는 자리고 옮기는 것이다. 요한복음 21:18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러한 Leadership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숙이란 "자신이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기꺼이 이끌려 갈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목자가 되라는 명령을 주신 후에 섬기는 지도자가 되라고 도전하신다. Servant Leadership이다. 힘과 지배력이 Leadership이 아니라 Powerlessness와 겸손의 Leadership안에서 고통받으시는 하나님의 종(예수 그리스도)이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환경의 수동적인 희생물이 되는 그런 심리적으로 유약한 Leadership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깊이 사랑해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분을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예수님 때문에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도자가 가져야 하는 훈련이 있다. 예수님과 늘 붙어사는 훈련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훈련이다. 이것을 Nouwen은 "신학적 성찰"이라 했다. 기도가 우리로 하여금 제일의 사랑 속에 붙어 있게 했듯이, 죄의 고백과 용서가 우리의 목회를 공동체적이고 상호관계를 유지하게 했듯이, 신학적 조명(예수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일)은 우리가 어디로 인도 받고 있는지 분명하게 해준다. 영적인 지도자들에게는 에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일상의 고통과 기쁨의 현실을 깊이 생각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의식을 하나님의 부드러운 인도하심을 아는데 까지 끌어 올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현실 적용과 유명세의 힘을 효과적인 목회의 요소들이라고 인식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신 후 우리를 목자로 파송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가 살아갈수록 더욱 더 우리 팔을 벌리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이끌려 가야 하는 그런 삶을 명령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현실성에 대한 관심에서 기도하는 삶으로, 유명해지려고 긍긍하는 데서 공동체적이고 상호 관계 적인 사역으로, 힘 위에 세워진 Leadership에서 하나님이 목화자와 교인들을 어디로 인도하시는지를 확실히 분별하는 그런 하나님에게 이끌림을 받는 Leadership으로 옮아 가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 팔을 벌리고 낮은 데로 임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것은 기도하는 지도자,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살 수 있는 신뢰하는 지도자, 종으로 섬기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지도자의 모습이 2000년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가슴을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으로 가득 채우시기를 기원한다.
3200년전 결혼법규를 지키는 이스라엘
3200년전 결혼법규를 지키는 이스라엘 2002-02-17 22:03:03 read : 344 종교 법규에 묶여 결혼도 이혼도 맘대로 못하는 사람들 현대 이스라엘에서는 고대 성경시대 때 지켜졌던 결혼 및 이혼에 관한 법규가 그대로 시행되고 있다. 예를 들면, 코헨·카츠·카플란 등 제사장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이름을 가진 남자는 고대 제사장의 결혼 규율(레 21:7)에 따라 이혼녀나 개종자와 결혼할 수 없다. 형이 결혼했다가 자식 없이 죽었을 경우 형수가 시동생의 동의 없이 재혼할 수 없는 것도 성경의 형사취수제도(신 25:5) 때문이다. 지금은 일부일처 사회라 동생이 형수를 취하지는 않는다. 또 이스라엘의 종교 유대인들은 이방인(비 유대인)과 결혼하지 못한다.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법규다. 사생아 또는 서자로 분류된 사람과도 결혼할 수 없다. 사생아는 그 십대까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법규(신 23:2) 때문이다. 참 흥미로운 내용이다. 3,200여 년 전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셨던 규율의 내용을 현대 사회에서도 똑같이 지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규율을 따를 만큼 전적인 종교생활을 하는 유대인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세속 유대인(비종교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본인들에게만 적용하면 될 종교법을 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의 칼자루를 쥔 정통 랍비들 세속 유대인이 대부분인 이스라엘에서 종교법규가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정당이 있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줄곧 정부 여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해 온 종교정당은 종교 정책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입법화시킨 것이 바로 결혼과 이혼에 관한 종교법규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입법과 동시에 이스라엘 내에서 이루어지는 결혼과 이혼에 관한 모든 법적 권한을 랍비청과 종교법원에 일임했다. 내무부에서는 그 결과만을 받아 행정 처리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내에서 법적인 결혼 및 이혼 절차를 집례할 수 있는 사람은 정통 랍비들뿐이다. 종교 유대인들 가운데도 개혁 유대인(Reformed Jews)·보수 유대인(Conservative Jews)등 다양한 성향의 종교 정파가 있는데, 오직 정통 유대인(Orthodox Jews)에게만 그 권한을 주고 있다. 종교법과 현대 윤리의 충돌 이스라엘 국민의 과반수는 불과 한두 세대 전에 세계 여러 국가로부터 온 이민자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종교적 삶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공동체를 공유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건국 직후인 1953년 종교정당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종교적인 결혼 법규가 입법화되기는 했지만 시행 과정에서 적잖은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보자. 1945년, 엘리에젤 코헨이란 유대인이 한 이혼녀와 결혼했다. 그런데 1959년 코헨은 부인을 버렸고 법원은 그에게 부인한테 위자료를 줄 것을 명령했다. 위자료 지급을 미루어 오던 코헨은 7~8년이 지난 1967년, 돌연 자신이 그녀를 버린 것은‘코헨’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이혼녀와 결혼할 수 없다는 종교법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종교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이혼을 정당화했고, 위자료 지급 의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물론 이 여인은 대법원에 상소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종교법원의 판결을 인정했다. 코헨이란 이름을 가진 그는 종교법을 빌미로 자신의 이혼을 정당화한 셈이다. 또 다른 예는 1967년 아스돗에 살던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인의 경험이다. 이미 결혼한 이 장애인에게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만 그의 형이 결혼해서 아들 없이 죽고 말았다. 고대에는 자식 없이 죽은 형을 대신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살아야 했지만, 현대에는 형수를 취하지 않겠다는 예식(선서)을 하도록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동생이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라 “그녀를 포기합니다”라고 소리내어 선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결혼한 동생이 형수를 취해 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유롭게 보내지도 않으면 동생은 법에 따라 감옥에 가야 한다. 랍비청은 다음과 같이 일을 처리했다. 일단 형수와 시동생의 결혼 예식을 치루었다. 그리고 호텔을 마련해 둘이서 하룻밤을 지내게 한 후 다음날 아침 이혼을 시켰다. 랍비청은 이혼 증서와 함께 부부로 지낸 하루치의 위자료를 주어 보냄으로써 일을 해결했다. 종교법에 따르지 않은 결혼은 이혼도 합법적으로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외국에서 결혼해 들어온 경우를 보자. 70년대 말, 폴란드에서 유대인 남자와 비 유대인 여자가 결혼한 후 이스라엘로 이민을 왔다. 이들은 이스라엘 내에서 합법적인 부부로 얼마간 살다가 서로 합의 하에 이혼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방인과의 결혼이기 때문에 종교법은 이혼을 허락해 줄 수가 없었다. 방법은 이민 오기 전 결혼했던 본국으로 돌아가서 이혼 절차를 밟고 돌아오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는 한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부부로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법적인 이혼, 재혼의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현대 사회의 윤리와 휴머니즘에 배치되는 종교법은 종종 언론을 통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곤 한다. 국적이 이스라엘이어도 준(?)국민 그렇다면 고대의 이러한 종교법규들이 과연 현대 이스라엘인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적용될 수 있을까? 오늘날 이스라엘 국민은 성경에 나오는 종교법규가 적용될 당시의 고대 사람들이 아니다. 이와 같이 종교법에 따른 결혼 및 이혼 문제는,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적으로 그렇게 크게 이슈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80년대 말, 옛 소련의 붕괴로 러시아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이민자가 몰려오면서 기존의 문제와는 다른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유대 종교법은 유대인과 유대인 사이의 합법적인 결혼 관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무조건 사생아 또는 서자로 분류한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경우 비 유대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서류 상으로도 이민자들 중 20~30%가 유대인이 아니었다. 바로 유대인과 결혼한 비 유대인 배우자 또는 그들의 자녀들이다. 신분증에 국적은 이스라엘이지만 종교란이 공란으로 남아 있는 이들은 사생아로 구분되는 것이다. 비 유대인 이민자들은 세금도 내고 국방의 의무도 하는 등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서는 합법적인 결혼 및 이혼을 할 수 없는 준 국민, 즉 이등국민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구제 방안이 있다. 개종이다. 신분증에 종교가 공란으로 남겨진 이들은 유대교 개종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물론, 개종 프로그램 자체가 정통 종교적인 유대인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어 세속 유대인들이 기피하고 있다. 개종을 원하는 배우자가 유대인이라 해도, 종교법규를 준수해야 하고 자녀들을 개종시켜야 하며 종교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흘러 이민 1세대의 자녀들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면 법적 불이익을 받는다. 개종을 하지 않거나 유대인임을 의심받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내에서 합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에는‘싸이프러스 결혼’이라는 말이 있다. 종교법에 의해 이스라엘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웃 섬나라 싸이프러스(구브로 섬)로 가서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사생아로 분류된 사람이 유대인과 결혼할 경우,‘코헨’과 같이 제사장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성을 가진 사람이 이혼녀와 결혼할 경우, 종교법에 의한 결혼을 원치 않을 경우 등 다양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결혼하기 위해 싸이프러스로 떠나는 것이다. ‘싸이프러스 결혼 전문 여행사’도 있다. 결혼 커플만을 모아 싸이프러스로 가서 결혼식을 줄줄이 하고 다음날 돌아오는 1박 2일 여행 프로그램이 있는데, 결혼 시즌에는 호황을 누린다. 이러한 여행사가 한두 군데가 아닌 것으로 봐서 종교법규로 인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동안 여론의 공격을 받지 않았을까. 건국 이후 내무부 장관은 항상 종교인이 도맡아 왔기 때문이다. 종교인이 내무부 장관을 하는 한 문제거리는 종교인들의 손에서 무마되었다. 그런데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수상 때 종교당 샤스가 연합정부를 파기하면서 전례 없이 노동당의 비 종교인이 종교부 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종교부 장관 쉬트리트는 좋은 정부를 표방하며 종교법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합리적인 제도 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혼법 개정은 장관 한 사람이 시도한다고 되는 사안이 아니었다. 종교정당은 이스라엘의 기본을 흔드는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강력히 저항하였다. 쉬트리트는 더 이상 진행시키지 못했다. 대신‘싸이프러스 결혼’을 법으로 보호하고 국가에서 싸이프러스 여행 비용을 지불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마저도 여론만 부추겼을 뿐 결국 종교당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종교적 결혼법을 밀어내는 물결 자, 그럼 종교적인 결혼법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세속 유대인들의 저항 속에서도 계속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힘에 의해 폐지될 것인가. 최근 한 대학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이스라엘인들은 종교적인 결혼 제도를 폐지하고 시민 결혼 제도를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민은 그들의 결혼 대상을 정하는 데 있어서 더 이상 종교법규에 그 기준을 두고 있지 않다. 그 종교나 국적과 관계 없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의 결혼을 선호하는 것이다. 사실 1960년 이후 이스라엘의 인구는 늘어났지만, 과거 수십 년 간 종교적인 제도를 통한 결혼은 늘지 않고 있다. 반면 종교적인 결혼 제도 외의 다른 방법으로 결혼한 비율은 11배 가량 된다. 한 가지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종교적인 결혼 및 이혼 법규의 존재 여부는 앞으로의 이스라엘 종교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종교정당의 연합을 필요로 하는 이상 사회 여론이야 어떻든 국회에서의 언급은 금기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언제고 법 개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현재 이스라엘 사회의 여론으로 봐서는 더 이상 개정 없이 존재하기가 힘든 현실이다. < 결혼에 대한 현대 유대인들의 생각 > 종교 공동체보다 민족 공동체를 추구 유대인들에게 자녀의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물은 구트만 보고서(Guttman Report, 1992년 9월 조사)를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인들의 결혼 성향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첫째, 자녀들과 다른 민족 성향 유대인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83%가 ‘괜찮다’라고 응답했고 그 중 46%는 ‘확실히 좋다’라고 응답했다. 둘째, 자녀들이 종교적 성향이 다른 유대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76%가‘괜찮다’, 그 중 16%는 '확실히 좋다'라고 했다. 셋째, 자녀들과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들과의 결혼에 관해서는 74%가 ‘괜찮다’, 그 중 21%가 ‘확실히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넷째, 자녀들과 이디오피아에서 온 이민자들과의 결혼에 대해서는 65%가 ‘좋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비 유대인과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16%만이 ‘좋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같은 유대인일지라도 타민족 성향 유대인과의 결혼을 ‘확실히 찬성’하는 비율(46%)이 종교 성향이 다른 유대인과의 결혼을 ‘확실히 찬성’하는 비율(16%)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같은 유대인이라는 범주 안에서 종교성보다 민족성에 더 개방적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같은 태도를 볼 때, 오늘날 이스라엘 국민들은 종교적인 공동체성보다 민족적인 정체성이 강하며 개방된 세속주의를 지향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세속 유대인과 종교 유대인 간의 틈이 더욱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때문에 현대의 세속 유대인들과 종교 유대인들 간의 분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강근/ 이스라엘 예루살렘 주재 객원기자
3등차비/
3등차비/ 대책없는 교회 늘리기 가난한 목회자 죽이는 일/ 2002-05-13 21:03:43 read : 1434 신세원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문소재文巢齋에서 (10) 1907년 9월 17일 평양 장대재 예배당에서 조직된 대한예수교장로회 대한노회는 총대 여비를 노회에서 지출하였다. 1908년 9월 16일 서울 연동 예배당에서 회집된 예수교장로회 대한노회 제2회에서는 여비에 관한 규정이 결정되었다. “재정위원 한승곤씨가 (1)노회총대의 로슈 쓴거슨 각대리원이 검사하야 재정위원께 보낼 일 (2)각 총대의 로비를 공편하기 위하여 60리 이샹으로 륜거나 륜선이 업난 곳이라도 륜거타난 셰전과 가치 지츌할일. (3)각 총대의 챠비는 삼등비로 지출할 일. 이상과 같이 보고하니 회쟝이 우항 샴도를 일일이 물우시매 회?이 채용하기를 동의하야 가로 결뎡하다(뎨이회 로회록 20-21쪽).” 우리네 선배들은 재정문제에 대하여 정확하였으며 검소하였다. 독일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 철학자, 음악가, 의사인 슈바이처는 프랑스령 가봉의 람바르네에 병원을 세워 평생을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더불어 생활하며 봉사하였다. 1965년 9월 4일 설교 도중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기차의 3등만 탓다. 누가 그 이유를 물으니 나는 기차에 4등이 없기 때문에 3등을 탄다고 하였다. 우리 한번 다 같이 생각해 볼 일이다. 김은홍 기자 등록일 2002-05-02
41% 죽음에 두려움을..
41% 죽음에 두려움을../ 예수모르고 죽은 사람들 지옥가나?/ 2002-04-02 01:55:43 read : 1442 41%는 평소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국민 52% “내 장례 화장으로”…가족납골묘 78% 찬성 우리나라 국민 절반 이상은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토지행정학회(회장 김태복 중부대교수)가 2월20일부터 3월24일까지 전국의 성인남녀 1187명을 대상으로 ‘장묘문화 국민의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신의 장례 방식으로 화장을 원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52.3%(621명)를 기록,매장 선호자(32.9%,391명)보다 훨씬 많았다고 31일 밝혔다.그러나 부모님의 장례방식에 대해서는 화장(29%)보다 매장(57.7%)을 하겠다는 답변이 많았다. 화장 선호자들은 국토면적 협소(43.8%) 묘지확보 어려움(16.2%) 묘지관리 어려움(13.1%) 등을,매장 선호자들은 전통적인 관습(66%) 화장시 두번 죽는 느낌(16.8%) 등을 선택의 이유로 각각 꼽았다.장묘시설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48%가 ‘공공시설’이라고 답한 반면 40.2%는 ‘공공시설이지만 혐오시설로 느껴진다(36.9%)’ 또는 ‘혐오시설로만 인식된다(3.3%)’는 반응을 보였다. 가족납골묘 조성과 관련해서는 78.1%가 찬성(78.1%),9.7%가 반대입장을 표명했으며 ‘조상을 잘 모셔야 자손이 잘 된다’는 풍수지리설에 대해서는 47.7%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반면 41.4%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밖에 죽음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응답자의 57.2%는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41%는 평소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답변했다. 박현동기자 hdpark@kmib.co.kr
4영리에 기초한 성공과 번영 신학의 파산 / 한국교회 설교의 위기
4영리에 기초한 성공과 번영 신학의 파산 / 한국교회 설교의 위기 2009-08-28 12:04:55 read : 5412 월간 프리칭 9월호 원고: 특집 - 한국교회 설교의 위기 I. 생존이 문제되는 시대의 신학은?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점거농성과 대량구속 사태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듯이, 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국가권력이 법치를 명분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에서, 성공과 번영은 소수 권력자들만의 전유물인 반면에, 대다수 민중은 생존 자체를 위해 또 다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치권력과 재벌과 언론권력과 심지어 학자집단까지 혼인관계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세도정치 당시보다 더욱 공고하게 지배체제를 이루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끼리 서로 적(敵)이 되어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이유 역시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해 벼랑끝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전쟁"을 하는 마당에, 한국교회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 이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생존 자체를 위해 자본의 살인적인 착취와 비인간적인 중노동을 견디는 과정에서 심리적인 상처와 사회적인 소외와 영적인 빈곤함 때문에 신음하며, 자유와 해방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등을 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종교권력으로 성장한 대형교회들이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불의한 지배체제에 맞서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하수인이 되어버린 때문이 아닌가? 한국교회가 점차 사회적인 신뢰성마저 잃게 된 이유가 이처럼 교회가 예수 당시 예루살렘 성전처럼,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민중들을 억압하는 지배체제에 의식적으로 편승하거나 아니면 그 체제의 탈정치화(脫政治化) 전략과 행복 이데올로기라는 집단최면에 사로잡혀 그 체제의 시녀 역할에 안주하여, 사회적인 불의와 모순들을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차단막(遮斷幕)이 됨으로써 약자들의 저항의식마저 마비시키는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린 때문이 아닌가?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선출한 이명박 정권이 친재벌 정책과 대북정책을 통해 한국사회의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런 모순들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고 공안체제로 나아가고 있는 마당에, 또한 기상청이 금년 5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1912∼2008년 사이에 한반도 온난화 속도(섭씨 1.7도 상승)가 전 세계 평균(0.74±0.03도 상승)보다 2배 이상 빠른 현실에서, 그리고 소위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인해 환경파괴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판국에, 이처럼 민족 전체가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양자택일해야 하는 갈림길에서, 한국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 "정의와 평화와 피조물의 보전"(JPIC) 운동에 힘을 집결하지는 못할 망정, 전국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해서조차 한국의 49개 교단지도자라는 목사들이 반대 성명서를 낼만큼 역사적인 반동세력으로 기능하는 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벼랑끝으로 밀려난 사람들, 300만 명에 달하는 "백수들"과 600만 명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부에 와 닿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최소한 그들을 심정적으로나마 위로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아니, 평생 동안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던 교인들이 그동안 만났던 목회자들 가운데 진심으로 존경하는 목회자가 매우 드물 만큼 목회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철저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목회자들 가운데는 평생 동안 "십자가의 길"을 "생명의 길"이라고 설교하면서도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인가? 이처럼 많은 목회자들이 평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이라며 선포해왔던 설교 자체를 스스로 배반하고 부인하는 현실은 자신들의 설교가 그들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거짓이었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삶에서 실제로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의식 및 생활방식과 직접 연관된 이런 문제들은 물론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개교회 성장주의 논리와 극심한 빈부격차 구조, 그리고 종교 단체들의 보수적인 풍토와도 연관된 것일 터이지만, 그 근본적인 신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이 글은 한국교회가 교회성장 이후 시대를 맞아 탈기독교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현재의 절박한 시점에서, 설교와 목회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II.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의 교회성장신학과 그 문제점 교파와 신학에 상관없이 한국교회의 가장 일반적인 신학과 목회 형태는 그 기본 구조가 4영리(Four Spiritual Principles)이며 그 실질적인 내용은 성공/번영의 복음(gospel of success and prosperity)일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를 잘 믿으면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될 뿐 아니라 저 세상에 가서도 축복을 받는다"는 메시지이다. 즉 예수는 이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천당에 들어갈 티켓도 주신다는 패러다임이다.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인 번영 자체는 누구나 바라는 것인 동시에, 성서의 하나님도 누구에게나 주시기를 원하는 축복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성공과 번영을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분명한 목표와 사명으로 정하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여 자신의 일에 매진할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높은 생산성을 얻게 되며 또한 경쟁에서 이기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나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이기 때문에, 아직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성공/번영을 향해 경쟁에 더욱 매진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완전히 탈락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를 영적인 축복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의 신학은 이처럼 한편으로는 물질적인 욕망과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의 평화"와 "천당행 티켓"이라는 심리적이며 영적인 욕망 모두를 결합시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 매력적인 신학으로서, 순복음교회를 비롯해서 한국교회 대부분의 설교자들의 신학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교회들, 특히 지난 30년 동안 급성장한 오순절 교회들의 가장 근본적인 신학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이 신학은 산업화-도시화가 시작된 후 거의 50년 동안 한국교회의 성장을 주도한 신학이었으며, 오늘날도 여전히 대형교회들만이 아니라 교회성장을 위해 몸부림치는 대다수 설교자들의 기본 신학인 것으로 생각된다.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의 복음이 과연 "예수의 복음"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의 복음"인가 하는 신학적인 문제, 즉 이 신학이 로마제국의 신학, 곧 "평화와 번영"이라는 미명 아래 극소수 특권층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신학인가 아니면 그 제국의 신학에 맞서서 예수운동이 선포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의 신학인가 하는 문제는 각자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나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겠다. 문제는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복권(Lotto)에 당첨될 수 있기 때문에 자유경쟁체제이며 불평등과 모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성공/번영의 신학이 가르치는 행복 이데올로기는 사회적인 성공과 물질적인 번영이 마치 각자의 "더 높은 사다리 오르기"인 것처럼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비현실적인 환상을 심어주며, 시장자본주의체제의 비인간적인 무한 경쟁에서 "무조건 승리"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의 지름길이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명인 것처럼 가르친다는 점이다. 이런 승리주의 신학은 도정일 교수가 {시장 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에서 역설하듯이, 자본주의가 지닌 야만성을 절대적 가치로 선포함으로써 결국에는 하나님 대신 "돈이라는 신"을 섬기도록 조장하여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며 공동체 의식과 규범을 증발시켜버림으로써 사회를 정글처럼 "돈밖에 모르는 사회"로 만들어놓았다는 점에서, 교회가 시장 전체주의의 앞잡이로 동원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둘째로,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 성공/번영 신학은 무한경쟁에 대한 승인만이 아니라 "경쟁에서 낙오하면 죽는다"는 "거세 공포"를 주입시킴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생존에만 몰두하게 만들어, 자신의 내면세계를 아름답게 가꾸고 사회적 불의와 모순들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기보다는 체제에 무조건 순응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특히 예수 당시에도 지방의 제사장들은 굶고 있는데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은 호화로운 저택을 건축하기에 바빠서 결국에는 시카리파 자객들이 대제사장들을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의 상당수 미자립교회 목회자는 생존 자체가 어려운 반면에,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사치를 누리고 있을 만큼 교회도 양극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대형교회들이야 예루살렘 성전체제처럼 항상 권력자들과 부자들을 편드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지만, 상당수의 미자립교회 목회자들까지 교회성장을 위해 성공/번영의 신학을 선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기득권 유지와 직결된 보수적인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복음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적 불의와 구조적 모순들에 대해 침묵함으로써 그런 불의와 모순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려버리거나, 그런 불의와 모순들이 예수의 재림이나 휴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선포함으로써, 이 세상을 좀더 사람다운 세상으로 만들기 위한 저항의식을 마비시킨다는 점이다. 셋째로, 일반적으로 에큐메니칼 신학은 사회정의(이웃 사랑)를 통한 인간화를 강조하는 반면에, 에반젤리칼 신학은 개인적인 경건과 영성(하나님 사랑)을 통한 내세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성공과 번영에 대해서도 에큐메니칼 신학은 공동체 모두를 위한 하나님 나라, 특히 사회적 약자들과 낙오자들이 충분히 인간답게 사는 하나님의 통치를 추구하는 반면에, 에반젤리칼 신학은 개인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예수의 가장 큰 계명(누가 10:25-27)을 나누어 갖고 있는 에큐메니칼 진영과 에반젤리칼 진영이 여전히 서로 반목하는 형편이지만, 교회성장에 성공한 교회들이 대부분 에반젤리칼 진영이기 때문에, 에큐메니칼 신학이 교회 현장에서는 더욱 위축되어버림으로써, 교회성장신학은 결국 한국교회의 보수화와 역사적인 반동세력의 기초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III.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파산한 증거 그러나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은 교회성장신학으로서 이미 파산한 것으로 보인다. 그 분명한 증거는 빠르게 몰락하고 있는 서구 교회를 비롯해서 한국교회도 성장이후 시대를 맞아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성공과 번영을 가장 고르게 누리고 있는 나라들, 예를 들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경우, 기독교인의 비율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성공과 번영을 가장 열심히 추구해왔던 유대교인들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에서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번영이라는 교회성장신학의 목표가 교회성장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자가 되고 풍요를 구가하는 만큼 교회를 떠난다는 말이다. 개신교의 주류 교단들(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등)도 급속하게 몰락하여 유럽과 미국 등에서 이미 "교회의 죽음"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현실이다. 즉 30년마다 교인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유럽의 교단들은 앞으로 30년 이후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할 것으로 예상된다.(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지난 70년 동안 성직자 5만여 명이 처형당했다가, 1990년대 초부터 수백만 명이 세례를 받고 교회수가 현재 13,000개로 급증한 러시아 정교회의 경우는 여러 요인들로 인해서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최근에는 인구의 60%가 정교회 신자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1% 미만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이다). 유럽과는 달리 자유시장 체제 속에서 경쟁하고 있는 미국의 주류 교단들 역시 최근 보도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30년 후에는 교회의 절반 정도가 문을 닫아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이미 교인수가 감소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안티기독교운동을 비롯해서 사회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 역시 이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IV.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파산한 이유들 1)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첫째로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교회성장신학으로서 파산한 현실적인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무한경쟁하는 시장경제구조와 지구적자(Earth Deficit)와 맞물린 경제적 침몰의 소용돌이(downward spiral) 때문에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현재의 멸종 규모와 속도로 볼 때, 지질학적으로 지난 6,500만 년 동안 지속된 신생대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인류문명은 이미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끝나고 생존과 결핍의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즉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은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하여 교인들의 살림살이가 향상되고 해마다 더욱 풍요를 누리게 되던 시절에는 확실히 호소력이 있었으며 그 메시지의 현실성이 분명히 입증되었지만,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무한경쟁과 그 모순들로 인해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성공과 번영이 아니라 생존 자체가 목표가 되었을 만큼, 장기적인 경제불황과 특히 젊은층의 높은 실업률 속에서 현실적인 성공/번영의 환상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경제구조라는 것이 빈부격차가 더욱 악화되는 20대80의 냉혹한 구조일 뿐만 아니라, 인구폭발과 자원고갈,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문제 등 포괄적인 지구적자와 맞물려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경제적 침몰의 증상들, 예컨대 유가상승, 곡물가격 상승(2005년에서 2008년 사이의 3년 동안에만 국제곡물시장에서 옥수수와 밀은 세 배가 뛰었고 쌀 가격은 다섯 배가 뛰었다) 속에서, 경쟁에서 성공하여 물질적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적인 성공/번영의 복음을 믿을 수 없게 되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은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한 오순절교회들의 미래 역시 장담할 수 없게 된 사회경제적 이유를 말해준다. 2) 성공/번영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교회성장신학으로서 이미 파산한 이유는 이 신학이 결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신학이라는 점 때문이다. 행복 = 소비/욕망이라는 일반적인 행복방정식은 소비를 많이 할수록 더 행복해지지만, 욕망은 많을수록 불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공/번영 신학은 인간의 자연적인 욕망, 곧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어하며 출세하고 싶어하는 자연적인 욕망을 억제하고 내면세계의 온전함과 평화를 추구하도록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물질적인 욕망을 노골적으로 자극하여, 인간의 소유욕과 탐욕을 끊임없이 조장하고, 소유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인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상당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기는커녕, 상대적인 박탈감에 시달리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경제적인 성공과 번영은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신학은 내면의 풍요함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만들기보다는 자기의 외부, 곧 새로운 상품들과 이웃들의 소비수준에 관심을 기울이는 레이더(radar) 형 인간을 만들어, 자본이 광고를 통해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무한 욕망 앞에서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불만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은 OECD 10위를 넘나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구조조정이 일상화되고 "고용 없는 성장"이 확대되어, 청년실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심한 불안을 겪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불안, 성과주의, 작업속도 증가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병들어 가고 있으며, OECD 최장 노동시간을 견디며 경제성장을 추구한 결과 한국인의 경제적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39.9점으로 나타났다(한겨레 21, 2008/1/29) . 또한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하는 한국사회(2005년)는 그만큼 절망이 깊은 사회임에 틀림없으며, 한국교회의 성공/번영 신학은 이런 상대적 박탈감과 절망감을 조장하는 데 일조해왔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3) 성공/번영 신학은 이기주의와 비윤리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파산한 이유는 이 신학이 이기주의와 비윤리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이 신학은 기독교를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저 세상에서도 복을 받는 종교"로 만들어, 결과적으로 하나님보다는 돈을 섬기도록 만들며, 보상심리에 기초하여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신학일 뿐 아니라, 4영리로 요약된 기독교 교리를 객관적인 진리로 가르치고 믿음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결국 믿음과 생활을 분리시켜 언행불일치를 초래할 가능성이 많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킴으로써 교회의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신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성공/번영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조장하며, 개인구원의 "은총"만 있을 뿐이지 제자직의 "책임"이 강조되지 않는 신학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믿을 만한 사람 찾기 힘들다"는 말을 흔히 듣게 되는 이유는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신학이 이처럼 믿음과 생활을 분리시키는 틀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신학은 예수의 종교를 본래의 "길의 종교"가 아니라 "믿음의 종교"로 둔갑시키고, 구원의 은총을 "값비싼 은총"이 아니라 "싸구려 은총"으로 둔갑시킨 전형적인 신학이다. 이 신학에 따르면 설교자는 청중들에게 예수의 구원의 은총에 대한 믿음을 요구할 뿐, 설교자 자신이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서 이 세상의 힘과 유혹에 대해서 죽고 자기의 욕심을 비워 아가페적인 삶을 살아내는 본을 보여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즉 이런 신학에 입각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처럼 육신이 건강하고 심령이 평안하며 부자가 되는 일에 몰두하면 될 뿐이지, 예수를 자신의 구체적인 생활의 주님으로서 모시고 따를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종종 감투를 얻기 위한 선거비용으로 엄청난 교회 예산을 임의로 사용하기도 하며 교회를 세습시킬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인 행동들을 한 것 때문에 사회적인 지탄을 받으면서도 정작 본인 자신은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신학이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으로서, 본질적으로 예수는 구원 역사의 무대 위에서 주인공인 반면에 신자들은 무대 아래의 팬(fan)으로 충분할 만큼 특별히 제자직을 요구하지 않는 믿음의 종교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신학에 따르면, 예수는 우리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죄많은 인간들로서 죄없는 예수를 따를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십자가 위에서 이미 감당하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예수를 찬양하고 감사하면 되지 굳이 예수를 따를 필요는 없으며, 또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를 따라서도 아니 된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심 지어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에서, 솔직히 자신은 "예수처럼 살고 싶지 않으며 교인들에게도 예수처럼 살라고 가르칠 마음도 없다"고 실토하는 목회자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 것은 제자직의 "쓰디쓴 그리스도"(bitter Christ)보다는 성공/번영 신학의 "달콤한 그리스도"(sweet Christ)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학의 결과는 설교자와 교인들 모두를 위선자로 만들기 십상이며 생각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등지게 만들고 있음이 분명하다. 4)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라는 반지성주의 때문이다. 넷째로,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교회성장신학으로서 파산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신학이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물음을 던져주어 주체적으로 씨름하는 과정을 거쳐 신앙적인 성숙에 이르도록 격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앙 문제에 대해 명쾌하고 일방적인 정답을 주입시켜 단순히 암기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실존적인 위기를 겪게 될 때 가장 절박하게 신앙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주체적인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주입된 신앙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오늘날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교육을 받는 한국사회에서, 이 신학은 지적인 측면에서 너무나 단순하고, 한국교회의 대다수 목회자들이 그 단순한 신학을 기독교 전통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채울 수 있는 신학적 훈련을 받은 기회가 드물어서, 흔히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라고 윽박지르게 되는 것이 오늘날 고등교육을 받은 대다수 젊은 교인들에게는 지적인 정직성의 측면에서 걸림돌이 되어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두드러진 집단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이 신학은 교회 밖에 있는 비종교인들에게는 더욱 설득력이 부족한 신학이다. 예를 들어, 4영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론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건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면, 예수 처형에 앞장 선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음모, 가롯 유다의 배반과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예수 처형 모두가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뜻이며, 이것은 이 세상의 모든 폭력과 죄악 역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폭력과 죄악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대속론의 핵심인 안셀름의 소위 만족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 자신의 정의와 명예가 훼손되었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보혈로 인해서 하나님 자신의 정의와 명예가 회복될 조건을 만족시킨 것이라면, 결국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의 명예와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킨 엄청난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논리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안셀름의 만족설이 발표된 시점이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준비하던 당시였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정의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무슬림들에게 빼앗겨 기독교 국왕들의 정의와 명예가 실추된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십자군 전쟁에 나아가 기꺼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라는 정치적 선전과 세뇌공작의 일환이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오늘날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신학이라는 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4영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예수의 동정녀 탄생 교리일 것인데, 이 교리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예수에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예수는 Y 염색체가 없는 비정상적인 남자였다는 말이 되며, 예수 이외에도 처녀에게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알렉산더 대왕, 플라톤, 아우구스투스 황제, 네로, 석가모니, 크리슈나 등도 모두 예수처럼 신성을 지닌 존재였다고 주장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은 지나치게 단순하며 오늘날에는 지적인 면에서 설득력이 부족한 신학임이 분명하다. 5) 반생명적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파산한 이유는 오늘날과 같은 기후붕괴 시대에, 다음 세대의 행복만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 자체가 걸린 이 환경위기를 가장 근원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들이 소비의 절대적 수준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신학은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과 소비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조장한다는 점에서 다음 세대의 행복과 인류의 생존 자체를 더욱 위협하는 파괴적인 신학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총에너지 사용량 중에서 화석연료 의존도는 현재 약 83%로서 일본의 73%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현실에서, 경제적 성공과 물질적 번영의 신학은 화석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환경파괴적인 소비와 충동적 구매를 통한 낭비성 소비, 그리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과시적 소비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생명파괴적인 신학이다. 비록 경쟁에서 낙오되어 돈이 없으며 생존 자체가 문제된다 하더라도 노동의 신성함과 검소한 생활,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의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끝 모를 우주 안에서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생명체로서의 감격과 타인들을 돌보고 섬기는 활동을 통한 공동체의 아름다움 등에 목말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번영 신학은 더욱 큰 자괴감과 절망감만을 안겨주는 신학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들에게는 오히려 올무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가는 말: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씩 부인했던 이유 이런 이유들 때문에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이 교회성장신학으로서 이미 파산했으며, 그 때문에 한국교회가 양적으로 쇠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뢰성마저 상실하게 된 것이라면, 이 신학과 설교 패러다임을 대체할 다른 대안은 무엇인가? 여기서는 지난 5년 동안 예수 아카데미와 한국기독교연구소가 주최한 "예수목회세미나"는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만 밝히겠다. 예수와 생사를 같이 하겠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막 14:31)가 예수가 체포된 후에 예수를 세 번씩 "모른다"고 부인한 것은(막 14:66 이하 및 병행구절) 무력하게 체포된 예수는 베드로가 기대했던 군사적인 승리자 메시아와 너무나 달랐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알고 있던 예수, 곧 신적인 기적과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하던 예수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회적 성공과 물질적 번영을 도와주며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푸는 신적인 능력의 예수만 믿고 환호했지, 가난하고 병들어서 사람 대접조차 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이 된 예언자 예수, 그들에게 하나님의 무차별적인 사랑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느라 예루살렘 성전의 권력자들을 비판하고 그 체제에 저항하여 미움을 받은 저항자 예수, 체포되면서도 폭력을 거절한 비폭력 평화주의자 예수에 대해서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의 모습이 오늘날 4영리에 기초한 성공/번영 신학을 선포하는 설교자들의 모습은 아닐까? *이번 여름 갈릴리신학대학원 박사과정 집중강의에 참석해서 들은 홍 박사님의 강의를 기초로 해서 서둘러 제 나름대로 살을 붙여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대안으로 제시할 예수목회의 내용과 방법론을 발전시키는 것은 좀 더 고민한 후에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김준우)
51세 목사 ‘아름다운 선택’
51세 목사 ‘아름다운 선택’ 2002-11-26 11:34:24 read : 1436 …고양 한마음교회 박충석 목사 15년간 담임해 온 교회를 젊은 목회자에게 위임한 후 50이 넘은 나이에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나는 목회자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4일,추수가 끝난 벌판을 배경으로 세워진 경기도 고양시 구산동 한마음교회에서는 고별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지난 15년동안 한마음교회를 담임한 박충석 목사(51)가 아프리카 카메룬 선교사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하는 고별설교였다. 성도들의 눈가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이슬이 맺혔지만 ‘파송의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는 우렁찼다.“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있으리라…” 그들이 섬겨왔던 목회자가 선교사로 떠나는 길에 마음껏 축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제2의 성장기를 맞게된 한마음교회를 뒤로한 채 50이 넘은 나이에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ご?박목사는 후임자로 목동 영성교회 부목사인 이민희목사(38)를 청빙,지난 16일 위임예배를 함께 드렸다.위임목사 청빙 사례는 한국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후임 목회자를 위한 박목사의 세심한 배려에 교인들은 박수를 보냈다. 박목사는 지난 10월부터 후임목회자와 함께 ‘부임심방’을 다녔다.후임목회자의 적응기간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배려였다.이민희 목사는 “성도들의 가정환경을 설명해주고 지역주민들과도 얼굴을 익히도록 배려해 성도들과 빨리 정이 들고 적응할 수 있었다”며 “후임목회자의 사역을 위해 배려해 주는 박목사님의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충석 목사가 한마음교회를 개척한 것은 지난 87년 신림동에서였다.이후 신도시 개발붐이 일 당시 교회부흥을 염두에 두고 일산 신도시로 교회를 이전했으나 교회가 밀집해 있는 신도시 보다 교회가 없는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자는 성도들의 하나된 마음으로 6년 전,농촌마을인 구산동으로 이전한 것, 이 교회에 출석하는 50여명의 성도들은 모두 지역복음화를 위해 서울 인천 천안 등 인근 각지에서 온 복음의 추수꾼들이다.이들은 주민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애경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교회가 주민들의 이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또 1년에 한번씩 ‘장월 한마음 축제’을 열어 추수를 끝낸 지역주민들의 노고를 위로했다.바베큐파티,운동회,바자회 등으로 교회가 마을의 일원이라는 유대관계를 맺어 이젠 지역주민들 역시 교회일이라면 적극 나서고 있다. 교회와 지역사회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갈 무렵,박목사는 기도 중에 아프리카 선교의 소명을 받았다.“교회는 네 교회가 아니라 내 교회이다”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후임자를 찾았다. “은발이 성성할 때까지 여생을 선교에 바치겠다”고 말하는 박목사는 앞으로 필리핀에서 원주민 사역을 하고 있는 이태주 선교사,김형 의료선교사와 팀사역을 이뤄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원주민 양육사역을 하게 된다.‘아름다운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만든 박목사는 내년 1월 아프리카 카메룬으로 떠난다. 이지현기자 jeehl@kmib.co.kr
93년도 하반기 총동원 계획 초안/ 1993-10-10
93년도 하반기 총동원 계획 초안 해당일시 : 93년 10월 10일 주 제 : “ 구원열차를 내 친구와 함께! ” 총동원 목표 1. 출석인원 배가 부 서 비 고 유 치 부 어린이 1부 어린이 2부 어린이 3부 상반기 40 / 40 100 / 62 100 / 83 60 / 35 하반기 50 100 100 50 2. 교사의 사명감 고취 1> 기도로써 준비하는 교사 -- 9월부터 금요기도회 참가 2> 서로를 위하는 교사 -- 부서별 친목 도모 3>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는 교사 --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3. 어린이의 영적 성장 1> 전도하는 어린이 -- 이웃과 친구를 사랑하는 어린이 2> 기도하는 어린이 -- 도움을 구할 줄 아는 어린이 3> 성경을 읽는 어린이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어린이 준비작업 일정 월 일 요일 해당일에 할 일 책 임 자 9 10 금 총동원 계획 초안 홍 성 호 11 토 수정 계획안 교육부 회의 12 일 각부 재적 파악 각부 총무 18 토 각부 의견 수렴(부장회의) 19 일 초청장 마련 한 규 정 전도대상자 책갈피 ① 교사  ② 어린이   홍 성 호 25 토 포스터 부착  이 익 상 26 일 초청장 배포 각부 총무 애찬식 교육 홍 성 호 전도대상자 책갈피 각 부 총무 10 2 토 노방전도 ① 어린이 학교 교인대상 홍보 유치, 어3부 3 일 교사모임 -- 1시 30분 유,어린이부 9 토 노방전도 ② 전화연락 각부 교사 10 일 총동원주일 교인대상 홍보 유, 어3부 총동원 행사 운영 위원회 󰠆󰠏󰠏󰠏󰠏󰠏󰠏󰠏󰠏󰠏󰠏󰠏󰠏󰠏󰠏󰠏󰠏󰠏󰠏󰠈 󰠆󰠏󰠏󰠏󰠏󰠋 이정수 1부 부장 󰠐 󰠆󰠏󰠏󰠏󰠏󰠏󰠏󰠏󰠏󰠏󰠏󰠏󰠏󰠏󰠏󰠏󰠏󰠏󰠏󰠏󰠏󰠏󰠏󰠈 󰠐 󰠌󰠏󰠏󰠏󰠏󰠏󰠏󰠏󰠏󰠏󰠏󰠏󰠏󰠏󰠏󰠏󰠏󰠏󰠏󰠎 󰠐 위원장 : 한 규 정 󰠉󰠏󰠏󰠏󰠏󰠏󰠏󰠏󰠏󰠋 󰠆󰠏󰠏󰠏󰠏󰠏󰠏󰠏󰠏󰠏󰠏󰠏󰠏󰠏󰠏󰠏󰠏󰠏󰠏󰠈 󰠌󰠏󰠏󰠏󰠏󰠏󰠏󰠏󰠏󰠏󰠏󰠇󰠏󰠏󰠏󰠏󰠏󰠏󰠏󰠏󰠏󰠏󰠏󰠎 󰠉󰠏󰠏󰠏󰠏󰠋 김순화 2부 부장 󰠐 󰠆󰠏󰠏󰠏󰠏󰠏󰠏󰠏󰠏󰠏󰠏󰠍󰠏󰠏󰠏󰠏󰠏󰠏󰠏󰠏󰠏󰠏󰠏󰠈 󰠐 󰠌󰠏󰠏󰠏󰠏󰠏󰠏󰠏󰠏󰠏󰠏󰠏󰠏󰠏󰠏󰠏󰠏󰠏󰠏󰠎 󰠐 총 무 : 이 익 상 󰠐 󰠐 󰠆󰠏󰠏󰠏󰠏󰠏󰠏󰠏󰠏󰠏󰠏󰠏󰠏󰠏󰠏󰠏󰠏󰠏󰠏󰠈 󰠌󰠏󰠏󰠏󰠏󰠏󰠏󰠏󰠏󰠏󰠏󰠇󰠏󰠏󰠏󰠏󰠏󰠏󰠏󰠏󰠏󰠏󰠏󰠎 󰠌󰠏󰠏󰠏󰠏󰠋 조명강 3부 부장 󰠐 󰠐 󰠌󰠏󰠏󰠏󰠏󰠏󰠏󰠏󰠏󰠏󰠏󰠏󰠏󰠏󰠏󰠏󰠏󰠏󰠏󰠎 󰠆󰠏󰠏󰠏󰠏󰠏󰠏󰠏󰠏󰠏󰠏󰠏󰠏󰠏󰠏󰠏󰠏󰠏󰠏󰠏󰠏󰠏󰠏󰠏󰠊󰠏󰠏󰠏󰠏󰠏󰠏󰠏󰠏󰠏󰠏󰠏󰠏󰠏󰠏󰠏󰠏󰠏󰠏󰠏󰠏󰠏󰠏󰠏󰠏󰠏󰠈 󰠆󰠏󰠏󰠏󰠍󰠏󰠏󰠏󰠈 󰠆󰠏󰠏󰠏󰠍󰠏󰠏󰠏󰠈 󰠆󰠏󰠏󰠏󰠍󰠏󰠏󰠏󰠈 󰠐 홍 󰠐 󰠐 음 󰠐 󰠐 관 󰠐 󰠐 보 󰠐 󰠐 악 󰠐 󰠐 리 󰠐 󰠐 부 󰠐 󰠐 부 󰠐 󰠐 부 󰠐 󰠉󰠇󰠇󰠇󰠇󰠇󰠇󰠇󰠋󰠆󰠏󰠏󰠏󰠏󰠏󰠏󰠏󰠏󰠏󰠏󰠏󰠈 󰠉󰠇󰠇󰠇󰠇󰠇󰠇󰠇󰠋󰠆󰠏󰠏󰠏󰠏󰠏󰠏󰠏󰠏󰠏󰠏󰠏󰠈 󰠉󰠇󰠇󰠇󰠇󰠇󰠇󰠇󰠋󰠆󰠏󰠏󰠏󰠏󰠏󰠏󰠏󰠏󰠏󰠏󰠏󰠏󰠏󰠈 󰠉󰠍󰠍󰠍󰠍󰠍󰠍󰠍󰠋󰠐 한 규 정 󰠐 󰠉󰠍󰠍󰠍󰠍󰠍󰠍󰠍󰠋󰠐 이 익 상 󰠐 󰠉󰠍󰠍󰠍󰠍󰠍󰠍󰠍󰠋󰠐 김 윤 경 󰠐 󰠐 배 󰠐󰠐 강 은 희 󰠐 󰠐 원 󰠐󰠐 채 경 희 󰠐 󰠐 고 󰠐󰠐 최 은 미 󰠐 󰠐 은 󰠉󰠋 황 미 아 󰠐 󰠐 영 󰠉󰠋 이 원 혜 󰠐 󰠐 주 󰠉󰠋 정 미 정 󰠐 󰠐 주 󰠐󰠐 이 정 희 󰠐 󰠐 만 󰠐󰠐 강 유 리 󰠐 󰠐 향 󰠐󰠐 홍 희 경 󰠐 󰠌󰠏󰠏󰠇󰠏󰠏󰠏󰠏󰠎󰠐 유 미 영 󰠐 󰠌󰠏󰠏󰠏󰠇󰠏󰠏󰠏󰠎󰠐 박 수 진 󰠐 󰠌󰠏󰠏󰠏󰠇󰠏󰠏󰠏󰠎󰠐 손 춘 숙 󰠐 󰠐 󰠐 백 경 미 󰠐 󰠐 󰠌󰠏󰠏󰠏󰠏󰠏󰠏󰠏󰠏󰠏󰠏󰠏󰠎 󰠐 󰠌󰠏󰠏󰠏󰠏󰠏󰠏󰠏󰠏󰠏󰠏󰠏󰠏󰠏󰠎 󰠐 󰠌󰠏󰠏󰠏󰠏󰠏󰠏󰠏󰠏󰠏󰠏󰠏󰠎 󰠐 󰠌󰠏󰠏 → 예배위원 󰠐 󰠐 영접위원 󰠐 󰠌󰠏 → 찬양 및 율동 * 새신자 영접 󰠌󰠏 → 각종 유인물 작성 악보 궤도 작성 * 휘장 부착물 교회학교 안내문 율동지도 포스터 부착 주보 작성 예산 관계 근 거 항 목 수 량 및 계 산 대 상 초 청 장 300장 X 50원 X 2회 = 30,000원 어린이가 어린이에게 안 내 지 200장 X 75원 = 15,000원 교인과 교인 자녀 초 청 장 500장 x 75 = 37,000원 교회 나오지 않는 아이 책 갈 피 150개 x 100원 = 15,000원 전도대상자 용 가 방 100개 x 1,500원 = 150,000원 새신자 및 어린이 교사회식 30명 X 3,00O원 = 90,000원 유치부, 어린이부 교사 기타준비 * 50,000원 총 예산 : 378,000원 부서별 일정표 부 서 일 시 홍 보 부 음 악 부 관 리 부 9 / 19 ( 주일) 각 부서별 모임 및 총동원행사 설명 * 초청장, 책갈피 준비 * 교회학교 전단 * 찬송 목록 구분 * 당일 예배 취지 9 / 25 ( 토) * 1차 홍보물 부착 ① 교인대상 ② 어린이 * 전도 결심서 * 교인 홍보물 작성 * 궤도 걸이 확인 * 노방전도 프로그램 검토 * 각 부서별 출석인원 구분 * 영접용지 마련 9 / 26 ( 주일) 전 체 교 사 회 의 * 주일 3, 4부 예배 후 교인 대상 홍보 어린이 1, 2부는 -- 4부 예배 후, 어린이 3부는 - 3부 예배 후 * 초청장, 책갈피 배포 * 전도 결심서 배포 * 스티커 논의 * 교회학교전단검토 * 차후 일정 논의 * 찬양위원, 율동위원 구분 * 어린이 가방 주문 ( 52-0948 ) * 우승반 시상 검토 -- 예> 페넌트, 기 추석 기간 각 부서별 각 반별 기도회 어린이들과 하루를 정해 교실이나 다른 장소에서 기도회를 가짐 목 적 : 1> 전도의 필요성 확인 2> 같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 3> 반별 친목 교인 자녀 중 비출석 어린이 전화연락 ① * 학부모께 편지 * 궤도 내용 작성 * 학교전도 시 찬양도울 일꾼 확보 * 당일 프로그램 점검 10 / 1 금요기도회 참석 10 / 2 ( 토) 학 교 전 도 ① 전도활동의 목적 : 지역 교회로서의 활성화 어린이 1부 -- 교동 국민학교 (교회로부터 10분 거리) 어린이 2부 -- 중앙 국민학교 (교회로부터 15분-20분 거리) 어린이 3부 -- 봉의 국민학교 (교회로부터 30분 거리) * 전도에 각 부 어린이도 참여하도록 배려 10 / 3 ( 주일) * 주일 3, 4부예배 후 교인 대상 홍보 ( 전과 동일) * 2차 홍보물 부착 * 어린이 편지함 설치 및 운영 * 찬양, 율동의 적용 어린이들에게 가르침 * 당일 예배위원 영접위원 편지 전달 및 확인 * 각부 인원 계산 10 / 8 금요기도회 참석 10 / 9 ( 토) 교인자녀 중 비출석 어린이 전화연락 ② 학 교 전 도 ② ( 전과 동일) 10 / 10 ( 주일) 드디어 그날이 오다.! 모두 5시 새벽기도회 참석 * 휘장 로고 부착 * 예배 15분 전 찬양 * 영접위원 자리 마련 다함께 맛난 식사를! (마지막으로 운영위원 회의)
CCM이란?/ 2003-12-08
CCM의 약자는 무엇이고.... 약자는 무엇이며 효시는 무엇인지요? 어떻게 생겨났는지 자세히 말해주세요. CCM은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의 약자로서 동시대적인 기독교 음악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즉 음악적인 형식에 있어서는 Pop, Rock, R&B, Jazz,HipHop, Rap 등을 막론하고 현시대의 음악장르를 모두 수용해서 표현을 함으로써 현대의 대중음악과 완전히 동일한 음악입니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는 특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에 중접을 두어서 기독교 정신을 나타내어 전달하고자 하는 음악을 말합니다. [ccm의 시작] 미국의 60년대는 우리의 칠, 팔십년대와 별반 다를바 없이 여전히 전통적인 음악들과 세상의 한 곁가지로서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던 시기였다. 신앙은 신앙이었고 문화는 문화였다. 하지만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정은 변하기 시작 했다. 70년대말경 C.C.M지가 나오기 시작했고 Artist들의 활동 또한 활발해져갔다. 이제 C.C.M은 문화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가능한 모든 스타일의 음악에 기독교적인 메세지를 담아내는 작업을 해가기에 이르렀다. 스래쉬 메탈에서 찬송가까지의 이 모든영역을 거머쥔 C.C.M은 태동의 초기에서 부터 이를 듣는 많은 이들과 공방전을 벌여왔다. 일반적인 세상의 시장에서의 청중들과 대중가수들과의 영합과는 달리 C.C.M은 그자체가 가진 혁명적인 본질로 인하여 여전히 전통과 관습속에 있던 크리스챤들과의 마찰은 예견된 것이었다. 특히나 가사의 문제에 있어서 복음 그자체의 직접적인 메세지를 넘어서는 표현방법의 실험적인 시도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러했다. 이러한 마찰과 논쟁의 계속적인 물음은“C.C.M의 목적은 무엇인가?′하는 문제였다. 과연 C.C.M의 목적은 무엇인지. 복음의 전달사역인가, 아니면 새로운 교회노래의 출현인가. 어느덧 C.C.M이 태동한지도 30년을 넘어서가는 이때 본질의 확인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CCM의 발전] 초기 C.C.M은 60년대에 미국을 강타했던 예수백성운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육칠십년대의 반전, 반문화운동이었던 히피운동에서 안식과 해답을 발견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이 예수안에서 답을 얻고서 그들의 구원의 기쁨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그들의 표현방법을 가지고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직적인 선교정책의 한 일환이 아니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좋은 것이 표출되어진 결과였다.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과 잡지, 방송, 심지어 TIME지의 표지를 장식하기에 이르른다. Jesus Christ Superstar나 Gospell등의 뮤지컬음악이 Edwin Hawkins의‘O Happy Day'와 같이 일반 팝챠트에 등장했다. Cat stevens는 오래된 영국 찬송가인‘Morning Has Broken'으로, Judy Cdllins는 ‘나같은 죄인 살리신’을 아카펠라로 불러 라디오 히트 챠트 40위안에 오르기도 했었다. 경건한 음악을 만들어내던 레코드 회사들이 (WORD사는 경건 회사라고까지 불렸다) 이러한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초기 예수의 알려진 앨범들의 시도결성되고 C.C.M이 전파에 타게 되는 등 C.C.M이 점차 자리잡아감에 따라 점차 그 애초의 의도에 미묘한 변화가 발생했다. 그것은 70년대의 C.C.M사역에 있어서 그 음악들의 최초 소비자가 크리스챤임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곧 C.C.M은 그 본질적인 사명, 즉 대중문화의 순화와 변혁에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하위문화로서 대항문화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고 교회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Larry Norman, Love Song, 심지어 사도행전 2장 같은 팀들도 원래부터 일반 대중 레코드사소속으로 활동했었다. 그 당시에는 CROSS OVER의 체로 정복될 것 같지 않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사역으로서 시도되고 있었었다. 그러던 것이 칠십년대이후 기독교시장에 너무 큰 비중을 둔 나머지 교회음악의 또 다른 대안으로서만의 위치에 안주해버리게 된 것이었다. [CCM의 성장] 하지만 과거 몇년사이에 C.C.M개척자들의 원래 비전이 Amy Grant, Michael W.Smith, Bebe & Cece Winans등의 잇단 성공에 힘입어 그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별히 주목할만한 것은 이러한 은유적인 메세지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메세지의 영적인 노래들도 일반시장에서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Carman의 Addicted to Jesus앨범이 각각 최고 판매량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있는 사실이 아닐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크리스챤 랩그룹인 D.C TALK의 92년 앨범인 에 실려있는 이란 노래는 그 가사가 너무나도 직접적인 복음적인 메세지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챤 시장을 넘어서서 일반쪽에서도 많은 호응을 얻어 M-TV에서도 그 노래의 비디오를 틀고있는 실정이다. [CCM의 변천] C.C.M은 과거 5년동안 어느때보다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고있다. 5년전 Amy Grant의 Lead Me On앨범이 사전 주문량 36만의 본거지는 애초 C.C.M의 태동지이자 예수백성운동의 태동지였던 캘리포니아 연근에서부터 미국 음악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Nashville로 옮겨가게 된다. 89년부터 시작된 이동은 91년초에는 SPARROW 레코드사를 비롯하여 많은 크리스챤 아티스트들이 Nashville로 대거 이동하기에 이르른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90년대를 연 C.C.M사역은 점차 일반시장에도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그사역을 확대해나기에 이르른다. 2003-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