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예화
  • 자료
  • 성경
고구려왕 약력 약사/ 2009-04-03
고구려왕 약력 약사 제 1대..동명왕(東明王/BC 58~BC 19) 고구려의 시조(재위 BC 37∼BC 19). 이름 주몽(朱蒙)·추모(鄒牟)·상해(象解)·도모(都慕).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부여왕(東扶餘王) 해부루(解夫婁)가 죽고 금와(金蛙)가 즉위하였는데, 이때 금와왕은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다. 유화는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가 자기를 유인하여 사통(私通)하고는 돌아오지 않아 부모에게 쫓겨나 우발수에 살고 있다 하므로, 금와왕은 유화를 데려다 궁중에 유폐시켰다. 어느날 유화는 햇빛을 받고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그 알에서 남아(男兒)가 나와 성장하니 이가 곧 주몽 이다. 주몽이 7세 때 이미 활을 잘 쏘는 등 영특하고 총명하자 금와왕의 장자 대소(帶素) 등 일곱 왕자 및 여러 신하들이 시기하여 죽이려 하였다. 이에 유화부인의 뜻을 따라 화를 피하여 졸본부여(卒本扶餘)로 남하, BC 37년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라 칭하고, 성(姓)을 고(高)라 하였다. BC 36년 비류국(沸流國) 송양왕(松讓王)의 항복을 받았고,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건립하였으며, BC 33년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BC 28년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다. 제 2대..유리왕(琉璃王/?~18) 고구려 제2대 왕(재위 BC 19∼AD 18). 휘(諱) 유리(類利)·유류(儒留)·주류(朱留). 유리명왕(瑠璃明王)이라고도 한다. 동명왕의 맏아들. 어머니 예씨(禮氏). 비(妃) 다물후(多勿侯) 송양(松讓)의 딸. BC 19년(동명왕 19) 부여로부터 아버지 동명왕을 찾아 고구려에 입국, 태자로 책립되고 동명왕에 이어 즉위하였다. BC 17년 계비인 치희(雉姬)를 그리는 《황조가(黃鳥歌)》를 지었으며, BC 9년 선비(鮮卑)를 공략하여 항복 받았다. 3년 도읍을 홀본(忽本)에서 국내성(國內城)으로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13년 부여(扶餘)가 침공해 오자 이를 격퇴하였다. 14년 군사 2만으로 양맥(梁貊:小水貊)을 쳤으며, 한나라 고구려현(高句麗縣:玄郡의 屬縣)을 빼앗았다. 두곡동원(豆谷東原)에 묻혔다. 제 3대..대무신왕(大武神王/4~44) 고구려 제3대왕(재위 18∼44). 휘(諱)는 무휼(無恤). 대무신왕(大武神王) 유리왕(琉璃王)의 셋째 아들. 어머니는 송양(松讓)의 딸. 14년(유리왕 33) 태자(太子)로 책봉되어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아보다가 유리왕이 죽은 뒤 즉위하였다. 22년(대무신왕 5) 동부여를 공격하여 대소왕(帶素王)을 죽이고, 고구려에 병합(倂合)하였다. 또 26년(대무신왕 9) 개마국(蓋馬國)을 쳐서 이를 병합하여 국토를 살수(薩水) 이북까지 확대하였다. 한편 을두지(乙豆智) 같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사(國事)를 맡겼는데, 28년 한(漢)나라의 요동 태수(遼東太守)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그의 지략(智略)으로 이를 물리쳤다. 32년 왕자(王子) 호동(好童)을 시켜 한사군(漢四郡) 중에서 아직 남아 있는 낙랑군(樂浪郡)을 정벌하게 하였으며, 37년 재차 공략(攻略)하였다. 시호(諡號)가 대무신왕(大武神王)인 것은 재위 중에 주위의 많은 나라를 공략하여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왕의 능(陵)은 대수촌원(大獸村原)에 있다. 제 4대..민중왕(閔中王/?~48) 고구려 제4대 왕(재위 44∼48). 이름 해색주(解色朱). 대무신왕(大武神王)의 아우. 대무신왕이 죽자 태자 해우(解優:모본왕)가 어리므로, 대신 즉위하였다. 유언에 따라 민중원(閔中原) 석굴에 장사지냈다. 제 5대..모본왕(慕本王/?~53) 고구려의 제5대 왕(재위 48∼53). 이름 해우(解憂)·해애루(解愛婁). 대무신왕(大武神王)의 아들. 민중왕(閔中王)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49년(모본왕 2) 한(漢)나라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 등을 공격하였으나, 요동태수(遼東太守) 채동(蔡)의 제의로 화친을 맺었다. 원래 성품이 포악하고 정사를 돌보지 않아, 백성들의 원성을 들었다. 결국 신하 두로(杜魯)에게 피살되었다. 장지(葬地)는 모본원(慕本原)에 있다. 제 6대..태조왕(太祖王/47~165) 고구려 제6대 왕(재위 53∼146). 휘궁(宮). 아명 어수(於漱). 유리왕의 손자이며,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의 아들.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한다. 모본왕(慕本王)이 죽은 후, 태자가 영특하지 못하여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7세에 왕이 되었으나, 태후(太后)가 섭정 하였다. 56년(태조왕 4) 동옥저(東沃沮)를 정벌, 영토를 동으로는 창해(滄海), 남으로는 살수(薩水:淸川江)에 이르게 하였으며, 72년 부족장인 달고(達賈)를 파견하여 조나(藻那)를 정벌하고, 121년 한(漢)나라의 요수현(遼燧縣)을 공격하여 요동태수(遼東太守) 채풍(蔡諷)을 죽이는 등, 서북면의 영토를 넓혔다. 또한 정치체제 확립에 힘써 종래의 부족국가적 형태에서 중앙집권적 형태로 체제를 정비하였다. 165년(신대왕 1) 119세로 죽어 우리 역사상 가장 장수한 왕이 되었다. 태조왕 때부터 중국의 사료에도 명확한 것이 많고, 이후 고구려 왕 세차(世次)의 확실한 연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가 실질적인 국가로서의 면모를을 갖춘 것은 이 때 부터라고 할 수 있다. 제 7대..차대왕(次大王/71~165) 고구려 제7대 왕(재위 146∼165). 휘(諱) 수성(遂成). 태조왕의 동생. 121년(태조왕 69) 유주자사(幽州刺史) 풍환(馮煥), 현도태수(玄太守) 요광(姚光), 요동태수(遼東太守) 채풍(蔡諷) 등이 고구려를 침범하자 군사를 이끌고 나가 이를 대파한 뒤, 군국정사(軍國政事)를 맡았다. 태조왕의 연로함을 기화로 정권을 노리다가 태조왕의 양위를 받아 왕의 자리에 올랐다. 차대왕은 사람됨이 용장(勇壯)하여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하지 못하였다. 147년(차대왕 2) 왕위 계승을 반대하던 우보(右輔) 고복장(高福章)을 죽이고, 148년 태조왕의 태자 막근(莫勤)마저 죽인 후 왕권을 확립하였으나, 횡포와 학정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성을 듣다가, 결국 명림답부(明臨答夫)에게 시해 당하였다. 제 8대..신대왕(新大王/89~179) 고구려 제8대 왕(재위 165∼179). 휘(諱) 백고(伯固)·백구(伯句). 태조왕의 계제(季弟), 재사(再思)의 아들. 어머니는 부여 사람. 둘째 형인 차대왕(次大王)이 포악무도하여 숨어 살던 중 차대왕이 명림답부(明臨答夫)에게 살해되자 좌보(左輔) 어지류(支留) 등의 추대로 77세에 즉위하였다. 166년(신대왕 2) 좌·우보(左右輔)의 직제를 국상(國相)으로 고치고 명림답부를 이에 임명, 패자(沛者)의 벼슬을 더하여 내외병마를 맡기고 나라를 다스렸으며, 차대왕의 태자 추안(鄒安)을 양국군(讓國君)에 봉하였다. 169년 한(漢)나라의 현도군태수(玄郡太守) 경림(耿臨)이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오자 스스로 항복하였으며, 이듬해 경림의 후임인 공손 탁(公孫度)을 도와 부산(富山)의 도적을 토벌하였다. 능묘는 고국원(故國原)에 있다. 제 9대..고국천왕(故國川王/?~197) 고구려 제9대 왕(재위 179∼197). 이름 남무(男武)·이이모(伊夷謨). 신대왕(新大王)의 둘째 아들. 국양왕(國襄王)이라고도 한다. 비(妃)는 제나부(提那部) 우소(于素)의 딸이다. 신대왕이 죽은 뒤,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184년 한나라 요동태수(遼東太守)의 침입을 좌원(坐原)에서 막아 싸워서 대승하였다. 191년 을파소(乙巴素)를 국상(國相)으로 등용하여 현정(賢政)을 베풀고, 을파소를 천거한 안류(晏留)를 대사자(大使者)로 삼았다. 194년 진대법(賑貸法)을 실시하여 백성들의 빈곤을 덜어주었다. 고국천왕 때를 계기로 왕위계승방법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뀌었다. 제 10대..산상왕(山上王/?~227) 고구려 제10대 왕(재위 197∼227). 이름 연우(延優)·이이모(伊夷模). 제8대 신대왕(新大王)의 아들이며, 제9대 고국천왕(故國川王)의 동생이다. 고국천왕이 아들 없이 죽자 왕후 우씨(于氏)에 의해 연우가 왕위에 올랐다. 연우 위에는 발기(發岐)라는 형이 있었다. 발기는 이를 분하게 여겨 고구려를 떠나 요동태수(遙東太守) 공손 탁(公孫度)에게 가서 그의 군사 3만 명을 얻어 고구려에 쳐들어왔다. 산상왕은 동생 계수(須)로 하여금 이를 막게 했는데 이 싸움에서 발기가 패하여 자살하였다. 207년(산상왕 11) 왕이 주통촌(酒桶村)에 미행(微行)하였는데 208년에 그곳의 한 처녀가 산상왕의 아들을 낳았다. 처녀는 소후(小后)에 봉해졌고 그 아들은 후에 제11대 동천왕(東川王)이 되었다. 같은 해 10월에 왕은 서울을 환도(丸都)로 옮겼는데, 환도는 지금의 중국 퉁거우[通溝] 지방의 지안현[輯安縣]이다. 217년(산상왕 21) 8월에 한(漢)나라 평주(平川)의 하요(夏瑤)가 백성 1,000여 호(戶)를 거느리고 와서 항복했으므로 왕은 그들을 받아들여 지금의 중국 훈춘[琿春] 지방인 책성(柵城)에서 살도록 하였다. 능(陵)은 산상릉(山上陵)이다. 제 11대..동천왕(東川王/?~248) 고구려 제11대 왕(재위 227∼248). 이름은 우위거(憂位居), 초명은 교체(郊). 산상왕(山上王)의 아들. 동양왕(東襄王)이라고도 하며, 213년 태자로 책봉되었다. 그의 치세는 중국이 위(魏)·오(吳)·촉(蜀)으로 대립하고 있던 삼국시대로서, 236년(동천왕 10) 오나라 손권(孫權)이 사신 호위(胡衛)를 파견하여 화친을 청해 왔으나 사신을 죽여 위나라에 보냈고, 238년에는 위나라가 오나라 공손 연(公孫淵)을 토벌할 때 군사 1,000여 명을 보내어 위를 도왔다. 242년에 중국과 낙랑군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인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다가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丘儉)의 반격을 받아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되고, 장군 왕기(王)의 추격으로 남옥저(南沃沮)로 피란하였다. 이때 용장(勇將) 밀우(密友)와 유유(紐由)의 계책으로 적을 격퇴시켰으나, 환도성이 복구할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 247년에 수도를 동황성(東黃城)으로 옮겼다. 248년에는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맺었다. 제 12대..중천왕(中川王/224~270) 고구려 제12대 왕(재위 248∼270). 일명 중양왕(中壤王). 휘(諱) 연불(然弗:延弗), 동천왕(東川王)의 맏아들. 비(妃)는 연씨(椽氏). 동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뒤 동생 예물(預物)과 사구(奢句)가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259년(중천왕 12) 위(魏)나라의 장수 위지계(尉遲階)의 침입군을 양맥곡(梁貊谷)에서 격퇴하였다. 죽은 후 중천원(中川原)에 장사지냈다. 제 13대..서천왕(西川王/?~292) 고구려 제13대 왕(재위 270∼292). 일명 서양왕(西壤王). 이름은 약로(藥盧)·약우(若友). 중천왕(中川王)의 둘째 아들이다. 255년(중천왕 8) 태자로 책봉되고, 271년 서부대사자(西部大使者) 우수(于漱)의 딸을 왕후로 삼았다. 280년 숙신(肅愼)이 내침하자 동생 달고(達賈)를 보내어 이를 격퇴하고, 단로성(檀盧城) 등 여러 성을 빼앗았다. 286년 반란을 도모한 동생 일우(逸友)·소발(素勃) 등을 주살하였다. 왕의 장지(葬地)는 서천원(西川原)이다. 제 14대..봉상왕(烽上王/?~300) 고구려 제14대 왕(재위 292∼300). 이름 상부(相夫)·삽시루(矢婁). 서천왕의 태자. 치갈왕(雉葛王)이라고도 한다. 자랄 때부터 교만하고 시기심이 많았다. 왕위에 오르자 숙부인 안국군(安國君) 달고(達賈)가 백성들의 추앙을 받음을 미워하여 살해하고, 이듬해 동생 돌고(固)마저 사사(賜死)하였다. 명신(名臣) 창조리(倉助利)를 국상(國相)에 등용하여 연(燕)나라 모용 외(慕容)의 침입을 격퇴하기도 하였으나, 차츰 사치와 방탕을 일삼게 되었다. 298년 대기근으로 백성들이 굶주릴 때, 화려한 궁궐을 지으려 하여 창조리가 이를 말렸으나 끝까지 그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300년 폐위되고, 후환이 두려워서 자결하였다. 무덤은 봉산원(烽山原)에 있다. 제 15대..미천왕(美川王/?~331) 고구려의 제15대 왕(재위 300∼331). 성 고씨(高氏). 이름 을불(乙弗)·우불(憂弗). 서천왕의 손자, 고추가(古鄒加) 돌고(固)의 아들. 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한다. 큰아버지 봉상왕이 아버지를 죽일 때 민가(民家)에 숨어 화를 면하였으며, 뒤에 국상(國相) 창조리(倉助利) 등이 봉상왕을 폐하자 왕위에 올랐다. 국토 확장에 진력하여, 302년 군사 3만으로 현도군(玄郡)을 공격, 적군 8,000명을 사로잡았다. 311년 요동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하였으며, 313년 낙랑군(樂浪郡)을 공략하여 적군 1,000명을 사로잡았다. 이로써 낙랑군은 멸망하였다. 314년 대방군(帶方郡)을 정벌하여 영토로 삼았다. 미천지원(美川之原)에 장사지냈다. 제 16대..고국원왕(故國原王/?~371) 고구려 제16대 왕(재위 331∼371). 이름 사유(斯由)·쇠(釗). 미천왕의 아들. 국강상왕(國岡上王)이라고도 한다. 314년(미천왕 l5) 태자로 책봉되고, 즉위하자 평양성(平壤城)을 증축하였으며 국내성(國內城)을 쌓았다. 342년 환도성(丸都城)으로 천도한 뒤 수차례 연(燕)나라의 침입을 받다가, 4만 군사를 거느린 모용 황(慕容?에게 미천왕의 시체를 빼앗기고, 왕모(王母) 주씨와 왕비(王妃)가 납치되었다. 343년 동생을 연나라에 파견, 조공(朝貢)을 바쳐 미천왕의 시체와 왕비를 찾아왔고, 355년 다시 조공하여 왕모를 찾아왔다. 369년 2만 군대로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패하고, 371년 침입한 백제 근초고왕과 평양성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제 17대..소수림왕(小獸林王/?~384) 고구려 제17대 왕(재위 371∼384). 소해주류왕(小解朱留王)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구부(丘夫), 고국원왕(故國原王)의 아들. 355년(고국원왕 25)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371년 고국원왕이 백제의 근초고왕(近肖古王)과 평양에서 싸우다가 유시(流矢)에 맞아 전사하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전진(前秦)과 평화적 관계를 수립하여 전진의 제도와 문화의 수입에 노력하여, 372년 전진 왕 부견(符堅)이 보낸 승려 순도(順道)가 가져온 불상과 경문을 받아들여 최초로 불교를 수입하였으며 같은 해 태학(太學)을 설립하였고, 373년 처음으로 율령(律令)을 반포하고, 375년 초문사(肖門寺)를 창건하여 순도를 머물게 하였다. 그 해에 고대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또 전년에 고구려에 온 중 아도(阿道)를 위하여 이불란사(伊佛蘭寺)를 지어 주지(住持)로 삼았으며, 같은 해에 백제의 수곡성(水谷城)을 빼앗았다. 377년 3만 대군의 백제군 침공을 물리치고 백제의 북변(北邊)을 역습하였으나 이듬해 거란(契丹)에게 북변을 빼앗겼다. 제 18대..고국양왕(故國壤王/?~391) 고구려 제18대 왕(재위 384~391). 이름 이련(伊連)·어지지(於只支). 소수림왕의 아우. 광개토왕의 아버지. 385년 군사 4만으로 요동(遼東)을 공격하였고, 이듬해 백제를 정벌하여 국토를 넓히는 등 외치(外治)에 힘썼다. 불교를 널리 펴서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국사(國社)를 세우고 종묘(宗廟)를 수리하는 등 국가체제 확립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제 19대..광개토왕(廣開土大王/375~413) 고구려 19대 왕(재위 391∼413). 고국양왕(故國壤王)의 태자. 이름은 담덕(談德)이며 소수림왕의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이다. 그의 완전한 묘호는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며, 생존시의 칭호는 영락대왕(永樂大王)이었다. 광개토대왕은 약칭이고, 그가 쓴 영락(永樂)이란 연호는 한국에 알려진 최초의 연호이다. 즉위 초부터 대방(帶方) 탈환전을 개시하여 백제의 북쪽을 진격하여서 석현(石峴) 등 10성을 함락하였고, 396년(광개토왕 6:백제 아신왕) 친히 수군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차지하였으며, 왕제(王弟)와 대신 10인을 볼모로 삼아 개선하였다. 이리하여 한강 이북과 예성강 이동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의 원군을 보내어 왜구를 격퇴시켰으며, 동예(東濊)를 통합하고(410), 신라와는 하슬라(何瑟羅)를 경계로 삼았다. 또 연(燕)나라의 모용 희(慕容熙)를 반격하여 신성(新城)·남소(南蘇)의 2성 등 700여 리의 땅을 탈취하였고, 405∼406년 후연(後燕)의 모용 희의 침입을 2번 받았으나 요동성(遼東城)과 목저성(木底城)에서 모두 격퇴하였다. 407년 모용 희를 죽이고 자립한 고운(高雲)과는 수교를 맺기도 하였다. 410년에는 동부여(東夫餘)를 정벌하여 64성을 공파함으로써 철령(鐵嶺:安邊) 이북의 동부여가 고구려의 판도 안에 들게 되었다. 또한 남하하여 한강선까지 진출하였으며, 서쪽으로 후연을 격파하고 요동지역을 확보함으로써 만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였다. 그의 능은 소재 미상이나 장수왕이 414년에 세운 광개토대왕비(中國 吉林省集安縣 通溝 소재)에는 왕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제 20대..장수왕(長壽王/394~491) 고구려 제20대 왕(재위 413∼491). 휘 거련(巨連:巨璉).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맏아들. 모습이 괴걸(魁傑)하고 지기(志氣)가 호매(豪邁)한 대장부로, 409년(광개토대왕 19) 태자로 책봉되고, 413년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초기 중국의 진(晉)·송(宋)·위(魏) 나라 등에 사신을 파견하여 국교를 맺고, 427년(장수왕 15) 만주 퉁거우[通溝] 지방의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천도하여 적극적인 남하정책을 추진하였다. 승려 도림(道琳)을 백제에 첩자로 파견하여 백제의 허실을 탐지하는 한편 백제의 국고와 민력을 소모시키고 나서, 475년 친히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여 그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였고 백제의 개로왕(蓋鹵王)을 사로잡아 죽였다. 480년(장수왕 68) 말갈(靺鞨)의 군사와 함께 신라 북부를 공략하여 고명성(孤鳴城) 등 7성을 함락시켜 남으로는 아산만(牙山灣)에서 동쪽의 죽령(竹嶺)에 이르렀고, 북서쪽으로는 랴오허강[遼河] 이동(以東)의 만주지방 대부분을 차지하여, 한국 역사상 최대의 제국(帝國)을 건설하였다. 내정개혁에도 힘을 기울여 부족제도를 지방행정제도로 고쳐 5부를 신설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제 21대..문자왕(文咨王/?~519) 고구려의 제21대 왕(재위 491∼519). 이름 나운(羅雲). 장수왕의 손자이며 고추대가(古鄒大加) 조다(助多)의 아들. 문자명왕(文咨明王)·명치호왕(明治好王)이라고도 한다. 아버지가 일찍 죽었으므로 장수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여러 번 세사(歲使)를 위(魏)나라에 보냈으며, 494년 물길족(勿吉族)에게 멸망한 부여의 왕과 그 일족의 투항을 받아들였다. 497년에 신라 우산성(牛山城), 512년에 백제 가불성(加弗城)·원산성(圓山城)을 점령하였다. 한편, 나제군사동맹을 통한 백제와 신라의 연합작전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광개토왕 이래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하여 장수왕을 거쳐 문자왕에 이르는 동안 판도가 넓어지고, 세력은 더욱 강성해져 대국(大國)으로 발전하였다. 제 22대..안장왕 (?~?) 이름은 흥안. 기해년(519)에 즉의. 치세는 12년간.. 제 23대..안원왕(?~?) 이름은 보영. 신해년(531)에 즉위. 치세는 14년간. 제 24대..양원왕(陽原王/?~559) 고구려의 제24대 왕(재위 545∼559). 휘(諱) 평성(平城). 안원왕의 맏아들. 양강상호왕(陽崗上好王)·양강왕(陽崗王)이라고도 한다. 533년(안원왕 3) 태자로 책봉되고, 안원왕이 죽자 즉위하였다. 동위(東魏)·북제(北齊) 등에 조공하여 친선을 도모하고, 47년 백암성(白巖城)·신성(新城:撫順) 등을 중수하였으며, 50년 북제로부터 고구려 왕에 봉해졌다. 51년 돌궐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나, 신라·백제에게 한강 유역을 잃었다. 제 25대..평원왕(平原王/?~590) 고구려 제25대 왕(재위 559∼590). 휘 양성(陽城). 평강상호왕(平崗上好王)이라고도 한다. 양원왕(陽原王)의 태자로 559년 즉위한 후 중국의 진(陳)·수(隋)·북제(北齊)·후주(後周) 등 여러 나라와 수교하였다. 일찍이 장수왕(長壽王)이 평양의 북동쪽 대성산성(大城山城)으로 국도를 옮긴 뒤 양원왕이 장안성(長安城:평양)에 대규모의 축성 공사를 시작한 것을 586년(평원왕 28) 완성시켜 장안성으로 천도하였다. 제 26대..영양왕(陽王/?~618) 고구려 제26대 왕(재위 590∼618). 이름 원(元)·대원(大元). 평원왕의 태자. 평양왕(平陽王)이라고도 한다. 즉위 후 수(隋)나라와 화친을 꾀하다가 598년 말갈(靺鞨) 군사 1만을 이끌고 요서(遼西)를 선공(先攻), 전략적 요충 확보에 나섰다. 이에 수나라 문제(文帝)가 30만 대군으로 침공하였으나 이를 격퇴시키고, 600년 태학(太學)박사 이문진(李文眞)에게 명하여 《유기(留記)》 100권을 재편수, 《신집(新集)》 5권을 만들게 하였다. 608년 신라의 변경을 습격, 우명산성(牛鳴山城)을 함락하고 군사 8,000을 포로로 잡았다. 612년 수나라 양제(煬帝)가 문제의 패전을 설욕하고자 113만 수륙군(水陸軍)으로 쳐들어오자,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을 시켜 살수(薩水)에서 적을 섬멸하고 그 뒤에도 계속 침공군을 무찔러 수나라 멸망의 요인이 되게 하였다. 제 27대..영류왕(榮留王/?~642) 고구려의 제27대 왕(재위 618∼642). 이름 건무(建武)·건성(建成). 영양왕의 이복동생. 즉위하자 당나라와 화친을 맺고 수나라 양제(煬帝)의 고구려 침공 때 포로가 된 한인(漢人)을 송환하고 고구려의 포로를 찾아왔다. 624년 당에 조공(朝貢)하고 당나라 고조(高祖)로부터 상주국(上柱國) 요동군공(遼東郡公) 고구려왕에 봉해졌다. 631년 동북쪽의 부여성(扶餘城)으로부터 동남쪽 바다에 이르는 천리장성(千里長城)의 축조를 시작, 연개소문(淵蓋蘇文)에게 역사(役事)의 감독을 맡겼으나 그의 반역으로 살해되었다. 제 28대..보장왕(寶藏王/?~682?) 고구려의 마지막 제28대 왕(재위 642∼668). 이름 장(藏). 영류왕의 아우·태양왕의 아들. 영류왕을 시해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643년 연개소문의 주장에 따라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도교(道敎)를 구하여, 숙달(叔達) 등 도사(道士) 8명과 함께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을 받아들였다. 645년 당나라 태종이 침입하였으나 연개소문이 독전, 격퇴하였다. 661년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신라군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공격하였지만, 다음해 연개소문이 다시 격퇴하였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병사한 뒤에 내분으로 국정이 어지럽자, 668년 나·당(羅唐)연합군은 다시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당시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男生)은 고구려를 배반하고 당나라에 협력한 때이므로, 둘째 아들 남건(男建)이 막리지(莫離支)로서 나·당연합군을 맞아 싸웠다. 그러나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고구려는 망하였고, 그는 당나라로 압송되었다. 뒤에 당나라로부터 사평대상백원외동정(司平大常伯員外同正)에 책봉되었으며, 677년(문무왕 17) 요동주도독 조선왕(朝鮮王)에 봉해졌다. 그 지역의 말갈족과 손을 잡고 고구려 부흥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681년(신문왕 1) 공주(州:쓰촨성 峽)에 유배되었다. 뒤에 당나라 고종은 위위경(衛尉卿)으로 추증한다.
고구려왕조 계보/ 2009-02-01
고구려왕조 계보 고구려 왕 계보도 (삼국사기에 의거) 해모수═╤═유화부인(하백의 딸) │ 소서노═╤═ 1.추모(bc37~19)═╤═예씨부인 │ │ ┌┴┐ 2.유리명왕(bc19~ad18)═╤═송양왕의 딸 비류 온조 │ ┌─┬─────┬────┬────┼─────┐ 도절 해명 3.대무신왕(무휼) 여진 4.민중왕(해색주) 재사═╤═부여태후 (ad 19~ 44) (44~48) │ 갈사국왕녀═╣ ╠═ 원비 ┌──────┼─────┐ 호동 5.모본왕(? ? ? ). 6.태조왕(궁) 7.차대왕(수성) 8.신대왕(백고) (49~53) (54~146) (146~165) (165 ~ 179) │ ┌┴┐ │ │ 막덕 막근 추안 ㅣ ┌────────┬───────────┬─────────────┴─┐ 9.고국천왕(이이모) 발기 ╔═10.산상왕(연우)═╤═후녀(주통부인) 계수 (179~197)║ ║ (197~227) │ ╚ 우씨왕후(우소의 딸)═══╝ 11.동천왕(교체)(227~248) ┌────────────────────┼──┐ 관나부인(장발미녀)══12.중천왕(연불)(248~270) ═╤═연씨왕후 예물 사구 │ ┌───────┬──────────────┴───┬──┬──┬─┐ (??) 13.서천왕(약로)(270~292) ═╤═우씨왕후(우수의 딸) 달가 일우 소발 공주(?)══명림홀도 ┌─────────┴──────┐ (부마도위) 14.봉상왕(상부)(292~300) 돌고 ┌┴┐ │ (?) (?) 15.미천왕(을불)(301~331) ├───────────┐ 16.고국원왕(사유)(331~371) 무 ┌────────┴────┐ 7.소수림왕(구부)(371~384) 18.고국양왕(이연)(384~391) │ 19.광개토대왕(담덕)(391~412) │ 20.장수왕(거련)(413~491) ├──────┐ 조다 승천   │ 21. 문자왕(나운)(491~519) ┌──────────────────┴─────┐ 22.안장왕(흥안)(519~531)══한씨미녀 23.안원왕(보연)(531~545) │ 24.양원왕(평성)(545~559) │ 25.평원왕(양성)(559~590) ┌──────────┬────────┬───┐ 26.영양왕(원)(590~618) 27.영류왕(건무)(618~642) 태양 평강공주═온달(부마도위) │ │ 환권 28.보장왕(보장)(642~668) ┌──┬──┼──┬──┐ 복남 임무 덕남 덕무 안승 자살,타살 등 일찍 죽은 왕자 타살된 왕, ══ 부부관계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는 2대 유리왕의 아들이자,6대 태조왕의 생부입니다. .왕족인 고추가(古鄒加) 돌고(固, ?~293)는 13대 서천왕의 차남으로 형인 14대 봉상왕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15대 미천왕의 생부입니다. . 장수왕의 아들인 조다(助多)는 생부인 20대 장수왕이 413~491년 오래 재위하는 바람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먼저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 21대 문자왕(文咨王/?~519)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고구려왕 계보 고구려 : BC 37년 개국~AD 668년 멸망 (28代 725년간) 순번 왕명(이름) 재위 연도 재위 기간 혈통 관계 1 동명성왕(주몽) BC37년~BC19년 18년 해모수와 하백의 딸인 유화부인의 외아들. 부인은 예씨<자-2대 유리>와 연씨<소서노 자-비류, 온조> 고구려 개국시조이며 초대 군주. 2 유리명왕(유리) BC19년~AD18년 37년 주몽과 왕후예씨의 장남. 부인은 송씨<자-도절, 해명, 3대 무휼, 여진, 4대 해색주>와 화희와 치희와 후비 3 대무신왕(무휼) AD 18년~44년 26년 유리와 왕후송씨의 3남. 부인은 원비인 비류국 여인<자-5대 모본왕>과 갈사부여의 갈사왕의 손녀 해씨<자-호동> 4 민중왕(해색주) AD 44년~48년 4년 유리와 첫째 왕후송씨의 5남. 무휼의 동생. 부인은 성씨불명 5 모본왕(해우) AD 48년~53년 5년 무휼과 성씨불명 비류국 여인 사이의 차남(호동의제). 부인은 원비 6 태조왕(궁) AD 53년~146년 93년 유리왕(琉璃王)의 손자이며 고추가(古鄒加) 재사(再思)와 부여태후 금씨 사이의 아들로 모본왕(慕本王)이 죽은 뒤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7세에 즉위함.119살에 서거하여 한국 왕 중 최장수 왕이며 93년간 통치한 최장수 재임군주임. 부인은 성씨불명<자-막근, 막덕> 7 차대왕(수성) AD 146년~165년 19년 고추가 재사와 부여태후 금씨와의 2남으로 태조왕의 동생. 부인은 성씨불명<자-추안> 8 신대왕(백고) AD 165년~179년 14년 고추가 재사와 부여태후 금씨와의 3남으로 차대왕의 동생. 부인은 성씨불명<자-발기(拔奇). 9대 남무, 발기(發岐), 10대 연우, 계수> 9 고국천왕(남무) AD 179년~197년 18년 신대왕의 차남으로 이름은 남무(男武) 혹은 이이모(伊夷謨)라 한다. 부인은 우씨 10 산상왕(연우) AD 197년~227년 30년 신대왕의 아들이자 고국천왕의 동생으로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어 즉위하였다. 부인은 소후후녀<자-교체(동천왕)> 11 동천왕(교체) AD 227년~248년 21년 산상왕과 소후후녀의 아들. 아명은 교체, 휘는 우위거(憂位居) 또는 위궁(位宮)라함 부인 성씨불명<자-12대 연불, 예물, 사구과 후궁 동해녀 12 중천왕(연불) AD 248년~270년 22년 동천왕 아들.243년(동천왕 17) 태자가 되었고, 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부인은 연씨<자-13대 약로, 달가, 일우, 소발>과 관나부인<자-?> 13 서천왕(약로) AD 270년~292년 22년 중천왕과 왕후연씨의 차남. 부인은 우씨<자-14대 상불, 15대 을불> 14 봉상왕(상불) AD 292년~300년 8년 서천왕과 왕후 우씨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자-?> 15 미천왕(을불) AD 300년~331년 31년 서천왕과 왕후 우씨의 차남. 부인은 주씨<자-16대 사유, 무> 16 고국원왕(사유) AD 331년~371년 40년 미천왕과 왕후 주씨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자-17대 구부, 18대 이연> 17 소수림왕(구부) AD371년~384년 13년 고국원왕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 18 고국양왕(이연) AD 384년~391년 7년 고국원왕의 차남. 부인은 성씨불명<자-19대 담덕> 19 광개토대왕(담덕) AD 391년~412년 21년 고국양왕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자-20대 거련, 승평> 20 장수왕(거련) AD 413년~491년 78년 광개토대왕의 장남. 475년 백제 한성(漢城) 함락하고 개로왕 살해. 481년 신라 8성을 점령. 영토가 남은 아산만과 죽령(竹嶺), 서는 요하, 동은 홋카이도 훈춘, 북은 카이위안 개원까지 확장해 고구려 최전성기를 이루었다. 부인은 성씨불명<자-조다, 승천> 21 문자명왕(나운) AD 491년~519년 28년 장수왕의 손자(조다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자-22대 흥안, 23대 보연> 22 안장왕(흥안) AD 519년~531년 12년 문자명왕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 23 안원왕(보연) AD 531년~545년 14년 문자명왕의 차남. 부인은 성씨불명<자-24대 평성, 세군> 24 양원왕(평성) AD 545년~559년 14년 안원왕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자-양성> 25 평원왕(양성) AD 559년~590년 31년 양원왕의 아들. 제일부인 성씨불명<자-26대 원, 평강공주>. 제2부인 성씨불명<자-27대 영류왕, 28대 보장왕> 26 영양왕(원) AD 590년~618년 18년 평원왕의 제일부인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자-환치> 수나라 문제와 양제가 30만과 113만 대군으로 침공해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해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건국됐다. 27 영류왕(건무) AD 618년~642년 24년 평원왕의 제이부인의의 장남. 부인은 성씨불명<자-환권> 28 보장왕(보장) AD 642년~668년 26년 평원왕의 제이부인의의 차남. 제1부인 성씨불명<자-복남, 임무, 덕무> 제2부인 성씨불명<자-안승>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에 의하여 왕위에 올랐으며,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의 파상적인 공격을 받아 고구려가 멸망하자 체포되어 당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복국(復國)을 꾀하였다가 실패한 뒤 사망한 고구려의 마지막 임금.
고려왕조 계보/ 2009-02-01.
고려왕조 계보 고려 : 918년~1392년 (475년간) 순번 왕명과 이름 재위 연도 재위 기간 혈통관계 및 중요사건 1 태조(太祖) 왕건(王建) 918년~943년 25년 송악의 호족 왕륭(王隆)과 부인 한씨(韓氏)의 자. 비는 6명(신혜왕후 유씨, 장희왕후 오씨, 신명순왕후 유씨, 신정왕후 황보씨, 신성왕후 김씨, 정덕왕후 유씨) 2 혜종(惠宗) 왕무(王武) 943년~945년 2년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장남, 비(妃)는대광 임희의 딸인 의화왕후 3 정종(正宗) 왕요(王堯) 945년~949년 4년 왕건과 신명순성황후 유씨(유긍달의 딸)의 장남. 비는 문공왕후 박씨와 문성왕후 박씨 4 광종(光宗) 왕소(王昭) 949년~975년 26년 왕건과 신명순성황후 유씨(유긍달의 딸)의 차남. 대목왕후 황보씨 <자-5대 경종, 효화태자,천추전부인,보화궁부인,문덕왕후(성종 비)>. 과거제도 실시 5 경종(景宗) 왕주(王胄) 975년~981년 6년 광종과 대목왕후 황보씨의 자.셋째부인 헌애왕후 황보씨의 자 왕송이 7대 목종. 6 성종(成宗) 왕치(王治) 981년~997년 16년 대종 욱(태조와 선정왕후 소생)과 선의왕후의 2남. 둘째부인 문화왕후 김씨의 딸이 현조의 원정왕후. 셋째부인 연창궁 최씨의 딸이 헌종 비인 원화왕후임.서희의 거란격퇴 7 목종(穆宗) 왕송(王訟) 997년~1009년 12년 경종과 헌애왕후 황보씨의 소생. 비는 선정왕후 유씨 8 현종(顯宗) 왕순(王詢) 1009년~1031년 22년 안종 욱(태조와 신성왕후 소생)과 헌정왕후 황보씨의 소생. 셋째 비인 원성왕후 김씨의 장남 황흠:9대 덕종, 형:10대 정종, 딸 인평왕후는 문종 비가 됨 넷째 비인 원혜왕후 김씨의 아들 왕휘:11대 문종. 강감찬의 귀주대첩 9 덕종(德宗) 왕흠(王欽) 1031년~1034년 3년 현종과 원성왕후 김씨의 소생. 비는 경성왕후 김씨, 경목헌비 왕씨, 효사왕후 김씨. 10 정종(靖宗) 왕형(王亨) 1034년~1046년 12년 현종과 원성왕후 김씨의 소생. 비는 용신왕후 한씨, 용의왕후 한씨, 용목왕후 이씨 11 문종(文宗) 왕휘(王徽) 1046년~1083년 37년 현종과 원혜왕후 김씨의 소생. 둘째 빈인 인예왕후 이씨 아들 왕훈:12대 순종, 왕운:13대 선종, 왕옹:15대 숙종, 대각국사 의천 등 12 순종(順宗) 왕훈(王勳) 1083년~1083년 1년 문종과 인혜왕후 이씨의 소생. 비는 정의왕후 왕씨, 선희왕후 김씨. 13 선종(宣宗) 왕운(王運) 1083년~1094년 11년 문종과 인혜왕후 이씨의 소생. 둘째 비인 사숙왕후 이씨의 자 왕욱:14대 헌종. 14 헌종(憲宗) 왕욱(王昱) 1094년~1095년 2년 선종과 사숙왕후 이씨의 소생. 신병으로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줌 15 숙종(肅宗) 왕옹(王顒) 1095년~1105년 10년 문종과 인혜왕후 이씨의 소생으로 문종의 3남. 해동통보로 화폐제도시작, 고려의 황금시대 이룸. 16 예종(睿宗) 왕우(王俁) 1105년~1122년 17년 숙종과 명의왕후 유씨의 소생. 둘째 비인 순덕왕후 이씨의 아들이 왕해로 17대 인종. 윤관의 여진 정벌 17 인종(仁宗) 왕구(王構) 1122년~1146년 24년 예종과 순덕왕후 이씨의 소생. 비 공예왕후 임씨로 아들은 왕 현:18대 의종, 대령후 경, 왕호:19대 명종, 원경국사 충희, 왕탁:20대 신종.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 이자겸 난 18 의종(毅宗) 왕현(王晛) 1146년~1170년 24년 인종과 공예왕후 임씨의 소생. 비는 창경왕후 김씨와, 장선왕후 최씨. 19 명종(明宗) 왕호(王晧) 1170년~1197년 17년 인종과 공예왕후 임씨의 소생. 의종의 동생. 의정왕후 김씨로 자 왕오가 22대 강종. 정중부의 추대로 즉위하고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쫒겨남 20 신종(神宗) 왕탁(王晫) 1197년~1204년 7년 인종과 공예왕후 임씨의 다섯째 자. 최충헌이 옹립한 왕임. 비는 선정왕후 김씨로 아들 왕영은 21대 희종. 21 희종(熙宗) 왕영(王韺) 1204년~1211년 7년 신종과 선정왕후 김씨의 소생 비는 성평왕후 임씨 22 강종(康宗) 왕오(王祦) 1211년~1213년 2년 명종과 의정왕후 김씨의 장자. 둘째 비인 원덕왕후 유씨의 장남 왕철이 23대 고종 23 고종(高宗) 왕철(王皞) 1213년~1259년 46년 강종과 원덕왕후 유씨의 소생. 비는 안혜왕후 이씨로 자 왕식이 24대 원종. 몽고 침입으로 강화로 천도하여 28년간 항쟁했으나 굴복함. 팔만대장경을 만듦 24 원종(元宗) 왕전(王倎) 1259년~1274년 15년 고종과 안혜왕후 유씨의 소생. 비인 정순왕후 김씨의 자 왕거가 25대 충렬왕). 문익점이 목화씨 전래 25 충렬왕 왕거(王昛) 1274년~1308년 34년 원종과 정순왕후 김씨의 소생. 비는 원 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 장목왕후로 아들 왕장이 26대 충선왕임 26 충선왕 왕장(王璋) 1308년~1313년 5년 충렬왕과 장목왕후의 소생. 몽고황실의 딸과 결혼하고 1298년 왕위에 올랐다가 7개월만에 충렬왕이 다시 복위. 이후 10년간 원나라에 머물다 다시 즉위하여 원나라에서 국정을 봄. 비는 계국대장공주, 의비의 차남 왕만이 27대 충숙왕 27 충숙왕 왕만(王卍) 1313년~1330년 1332년~1339년 24년 충선왕과 의비의 2남. 정사에 염증을 느껴 아들 충혜왕에게 양위 하였다가 행실이 좋지 않자 2년만에 복위함. 비는 공원왕후 홍씨로 장남 왕정이 28대 충혜왕, 차남 왕전이 31대 공민왕 28 충혜왕 왕정(王禎) 1330년~1332년 1339년~1344년 7년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1남 원비 정순숙의공주의 자 왕흔이 29대 충목왕. 둘째 비 희비 윤씨의 자 왕저가 30대 충정왕 29 충목왕 왕흔(王昕) 1344년~1348년 4년 충혜왕과 정순숙의공주 소생.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8세에 원나라에 의하여 즉위함. 30 충정왕 왕저(王胝) 1348년~1351년 3년 충혜왕과 희비 윤씨 소생.12세에 즉위하여 외가친척인 윤시우와 배전 등으로 인해 정치가 문란해지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 3년만에 폐위됨. 31 공민왕 왕전(王顓) 1351년~1374년 23년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2남.원나라 배척운동을 벌여 친원파인 기(奇)씨 일족을 제거하고, 빼앗긴 영토를 수복하여 국위를 떨침. 말년에 왕비인 노국공주가 죽자 정사를 그르쳐 최만생 (崔萬生)과 홍륜(洪倫)에게 시해 당함 5째 후비 반야의 자 왕우가 32대 우왕 32 우(禑)왕 왕우(王禑) 1374년~1388년 14년 공민왕과 반야의 소생. 10세에 즉위하나 1388년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에게 폐위됨. 비는 근비 이씨로 아들 왕창이 33대 창왕 33 창(昌)왕 왕창(王昌) 1388년~1389년 2년 우왕과 근비 이씨 소생. 이성계 등이 우왕을 내쫏은후, 창왕을 내세웠으나 1년만에 강화도로 쫏겨나 10세 때 시해됨. 34 공양왕 왕요(王瑤) 1389년~1392년 3년 20대 신종의 6대 손 정원부원군 균과 국대비 왕씨 소생.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실권을 빼앗기고, 정몽주가 살해당한 후 폐위 당하고 고려는 멸망함. 숭의전(崇義殿)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옛 마전(麻田) 땅 아미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숭의전은 고려의 16공신을 제사지내는 사당이다. 숭의전은 주변의 풍광도 뛰어나지만 배신청, 이안청, 전사청, 고직사 등 부속건물도 갖추고 있어 그 자체로도 제법 볼 만하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아미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숭의전은 고려조 태조 등 4대 왕과 16명의 공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1397년에 처음 지어졌다가 한국전쟁 때 전소됐다. 이후 1971년 12월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1972∼1973년 현재의 규모로 복원됐다. 고려 태조를 비롯한 3왕조(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고려조 충신 16공신(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을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7년에 고려 태조 왕건의 전각을 세웠고 정종 원년(1399)에는 태조 외에 고려의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의 제사를 지냈다. 그후 세종 5년(1423), 문종 2년(1452)에 고쳐지었다. 조선왕조가 이곳에 고려 태조 왕건의 사당을 처음 세운 것은 태조 6년(1397년)이다. 왕건의 명복을 비는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 자리였다.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창한 지 불과 6년만의 일이다. 정종 원년(1399년)에는 고려 태조 이외에 고려의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의 7왕을 제사 지냈으며, 이후 세종7년(1425년)에 조선의 종묘에는 5실(五室)을 제사하는데 고료조의 사당에 8왕을 제사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하여 태조를 비롯한 4왕만 모시게 되었다. 제5대 문종조 때에는 전조(前朝)를 예우하여 숭의전(崇義殿)이라 이름 지었고 고려조 4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고려 16공신의 제사도 함께 지내도록 하였다. 건물의 관리도 고려왕조의 후손에게 맡겼다. 이곳엔 지금도 개성 왕씨(고려 왕족의 후손) 30-40가구가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왕건에게 지내는 제사로서 ‘숭의전추계대제(崇義殿秋季大祭)’를 9월 30일(음력 9월 3일) 아침 10시에 지낸다.
국사연표/ 2013-07-01
국사연표 국사연표 연대 국 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2500 고조선(단군조선) BC 2333 ~ BC238 2000 청동기 시대 1000 500 철기 시대 400 300 200 100 북부여 BC239-BC58 BC 50 신라 BC 57~935 0 고구려 BC 37~668 백제 BC 18~660 AD 50 가락(가야) 42~532 (신라에 귀순) 100 200 300 400 500 600 650 700 통일신라(~935) (고려에 귀순) 발해 698~926 (거란에 멸망) 800 850 900 태봉(후고구려) 890~918 (고려의전신) 후백제 892~935 950 1000 고려 918~1392 1100 1200 1300 1400 조선 1392 ~ 1910 1500 1600 1700 1800 1900 1910 일제 강점기 1910 ~ 1945 1945 1945 미군 군정 1945 ~ 1948 (북한지역은 소련군정 시기) 1948 대한민국1948 ~ 현재 (북한지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현재 【기원전】 약 70만년 구석기 문화 6000년경 신석기 문화 2333년 단군(檀君), 고조선 건국 1100년경 고조선, 8조금법(八條禁法) 시행 1000년경 고조선의 발전, 청동기시대 450년경 부여 성립 400년경 철기시대 300년경 한(漢)문자 전래 194년 요동의 위만(衛滿) 망명, 고조선의 왕이 됨(위만조선) 108년 고조선 멸망. 한군현 설치 57년 신라 건국(삼국사기) 37년 고구려 건국(삼국사기) 18년 백제 건국(삼국사기) 17년 고구려 유리왕, 《황조가》 【기원후】 3년 고구려, 국내성으로 천도 53년 고구려, 태조왕 즉위(∼146) 194년 고구려, 진대법(賑貸法) 실시 234년 백제, 고이왕 즉위 244년 고구려, 위(魏)의 관구검 침공 260년 백제, 율령 반포, 16관등과 공복 제정 313년 백제·고구려의 협공, 낙랑군 소멸 356년 신라, 내물왕 즉위 372년 고구려, 불교 전래· 태학 설치. 백제, 동진(東晉)에 사절 보냄 384년 백제, 불교 전래 405년 백제, 왜에 한학 전함 414년 고구려, 광개토재왕비 세움. 장군총(將軍塚) 축성 427년 고구려, 평양 천도 433년 나제동맹 성립 458년 신라, 고구려의 묵호자가 불교 전파 475년 백제, 웅진(→공주) 천도 494년 부여, 고구려의 공격으로 멸망 502년 신라, 우경법 실시 503년 신라, 국호·왕호 결정 512년 신라, 우산국(于山國→울릉군) 정벌 520년 신라, 율령 반포, 백관의 공복 제정 527년 신라, 이차돈 순교. 불교 공인 532년 금관가야. 신라에 멸망 538년 백제, 사비성 천도 545년 신라, 《국사》 편찬 552년 백제, 왜에 불교 전함 562년 대가야, 신라에 멸망 598년 수(隨) 문제(文帝), 고구려 침공 602년 백제, 왜에 천문·역사·지리·방술서 등을 전함 612년 고구려, 살수대첩 624년 고구려, 당으로부터 도교 전래 632년 신라, 경주 첨성대 건립 645년 고구려, 안시성 싸움 승리 646년 고구려, 천리장성 완성 660년 백제 멸망 668년 신라, 당군과 합세하여 평양성 포위. 고구려의 보장왕 항복. 고구려 멸망. 669년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 670년 고구려 유민 검모잠(劍茅岑)이 한성에서 안승(安勝)을 추대하고 부흥운동 전개. 672년 신라, 고구려병과 합세하여 백수성(白水城) 근처에서 당군 격파. 673년 신라, 김유신 죽음(575~). 당군이 고구려의 우잠성(牛岑城) 공략. 674년 당나라가 유인궤(劉仁軌)를 계림대총관(鷄林大總管)으로 삼아 신라를 공격. 675년 신라, 옛 고구려 남쪽지역에 주군(州郡) 설치. 설인귀(薛仁貴)의 당군 대파. 676년 의상(義湘)이 부석사(浮石寺) 창건. 682년 신라, 국학(國學)을 개편. 687년 신라, 전국을 9주(州) 5소경(小京)으로 편성. 692년 신라, 신문왕 죽고(?~), 효소왕(孝昭王) 즉위(~702). 설총이 이두(吏讀)를 정리. 696년 발해(渤海), 고구려 유민과 속말말갈을 통합. 698년 발해, 고왕(高王) 대조영(大祚榮)이 진(震)을 건국. 713년 발해, 국호 진(震)을 발해로 고침. 723년 신라, 처음으로 왜국에 사신을 보냄. 혜초가 서역(西域)에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저술. 733년 신라, 당나라의 패강(浿江) 이남 영유를 승인. 751년 신라, 대상(大相) 김대성(金大成)이 불국사(佛國寺) 창건. 756년 발해, 돈화(敦化) 동모산(東牟山)에서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로 천도. 759년 신라 국학을 대학감(大學監)으로 개칭. 768년 신라, 대공(大恭)의 난 발생. 5도(五道) 주군(州郡)의 96각간(角干)이 서로 싸움. 대공 피살. 770년 신라,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주조. 780년 신라, 김지정(金志貞)의 반란. 혜공왕과 왕후 살해됨. 김양상(金襄相)이 김지정을 죽이고 선덕왕(宣德王)으로 즉위(~785) 785년 신라, 9주(州)의 총관(總管)을 도독(都督)으로 고침. 788년 신라, 처음으로 독서출신과(讀書出身科)를 설치. 794년 발해, 국도를 동경(東京)에서 다시 상경용천부로 옮김. 801년 신라, 5묘(五廟)의 제(制)를 개정. 탐라국(耽羅國)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朝貢). 802년 신라,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 창건. 3층석탑 건립. 804년 신라, 왜국의 국사(國使) 와서 황금 3백량을 바침. 805년 신라, ‘공식(公式) 20여조(條)’를 반포. 809년 신라, 김언승이 애장왕을 살해하고(788~), 헌덕왕(憲德王) 즉위(~825). 발해, 강왕 죽고(?~), 정왕(定王) 즉위(~813). 817년 발해, 연호를 태시(太始)로 함. 819년 신라, 사방에서 초적(草賊)이 일어남. 당나라에 군사를 보내어 이사도(李師道)의 난 평정을 지원. 822년 신라, 김헌창(金憲昌)의 난 일어남. 실패하여 김헌창 자살. 826년 신라, 헌덕왕 죽고(?~), 흥덕왕(興德王) 즉위(~836). 828년 신라, 장보고(張保皐)가 완도에 청해진(靑海鎭)을 일으켜 대사(大使)에 임명됨. 838년 희강왕 자살하고 민애왕(閔哀王) 즉위(~839). 김양(金陽)이 청해진에서 반란. 839년 신라,장보고를 청해진장군으로 삼음. 846년 신라의 장보고 반란, 염장(閻長)에게 피살. 877년 고려의 태조 탄생. 889년 신라, 원종(元宗)˙애노(哀奴)의 난 일어남. 892년 견훤, 무진주(武珍州)에서 스스로 왕이 되어 후백제를 건국. 897년 신라, 진성여왕이 효공왕(孝恭王)에게 선위(禪位). 898년 궁예, 송악부(松岳部)로 본거를 옮김. 899년 북원(北原)의 양길이 궁예를 공격하다가 대패. 901년 궁예, 왕을 칭하고, 국호를 고려라 일컬음. 903년 후고구려의 왕건(王建), 금성(錦城) 등 10여 성을 공략함. 904년 궁예, 백관을 설치, 국호를 마진(摩震)이라 칭함. 905년 마진, 국도를 철원(鐵圓)에 옮김. 906년 마진, 왕건을 보내어 사화진(沙火鎭)에서 견훤을 대파. 발해, 대위해 죽고(?~), 대인찬 즉위(~926). 909년 마진, 왕건이 진도(珍島)˙고이도(皐夷島)를 점령, 911년 마진,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고침. 914년 태봉의 왕건, 백선장군(百船將軍)이 되어 나주에 출진(出鎭). 918년 왕건이 고려(高麗)를 건국. 919년 고려, 송악(松岳)으로 천도. 3성(省) 등 관제를 정함. 평양성을 축성. 926년 발해의 103성이 모두 거란에 점령되어 발해 멸망. 927년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의 왕궁에 침입. 경애왕을 자살케 하고 경순왕을 세움. 견훤이 고려에 국서(國書)를 보내어 강화를 청함. 934년 고려, 운주(運州)에서 후백제군을 격파. 웅진(熊津) 이북 30여 성이 항복. 935년 후백제, 신검(神劍)이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하고 왕이 됨. 견훤이 나주(羅州)로 도망하여 고려에 항복. 경순왕(敬順王)이 고려에 투항, 신라 멸망. 936년 고려의 후삼국 통일, 태조가 일이천(一利川)에서 후백제의 신검을 대파, 신검이 항복하여 후백제 멸망. 938년 탐라국이 고려에 조공. 940년 경주(慶州)에 대도독부(大都督府) 설치. 역분전제(役分田制)를 실시. 943년 태조, 대광(大匡) 박술희(朴述熙)에게 ‘훈요십조(訓要十條)’를 친히 전함. 태조 죽고(877~), 혜종(惠宗) 즉위(~946). 945년 왕규(王規)의 난. 947년 광군사(光軍司)를 설치. 949년 정종이 광종(光宗)에게 선위(禪位). 956년 노비안검법(奴婢按檢法) 시행. 관리의 관복을 개정. 958년 처음으로 과거법을 설치. 과거제에 의학부문 포함. 승과제(僧科制) 설치. 960년 백관의 공복(公服)을 제정. 개경을 황도(皇都), 서경을 서도(西都)라 칭함. 961년 과거를 실시. 고시과목은 시(詩)˙부(賦)˙의(醫)˙복(卜) 등. 972년 내의시랑(內議侍郞) 서희(徐熙)가 송나라에 사신으로 감. 975년 경종(景宗)이 전시과(田柴科)를 제정. 983년 전국에 12목(牧)을 설치. 3성(省)˙6조(曹)˙7시(寺)를 정함. 987년 각 촌(村)의 대감(大監)˙제감(弟監)을 촌장(村長)˙촌정(村正)으로 개정. 노비환천법(奴婢還賤法) 제정. 991년 중추원(中樞院)을 설치. 992년 국자감(國子監)을 창립하고 전장(田莊)을 함. 993년 제1차 거란침입. 994년 서희, 여진(女眞)을 물리치고, 장흥진(長興鎭). 귀화진(歸化鎭)˙곽주(郭州)˙구주(龜州)에 축성. 995년 개주(開州)를 개성부(開城府)로 고치고, 전국을 10도(道)˙128주(州)˙449현(縣)˙7진(鎭)으로 나눔. 998년 서경을 호경(鎬京)으로 개칭. 1002년 6위(衛)의 군영(軍營)을 새로 설치. 1004년 과거법(科擧法)을 개정. 1007년 화산분출로 탐라 해중에 산이 생겨남. 1009년 강조(康兆)가 목종을 폐하고(980~) 현종(顯宗)을 즉위시킴(~1031). 1010년 제2차 거란침입. 순무사(巡撫使) 양규(楊規)가 곽주(郭州)에서 거란군을 섬멸. 1011년 거란군에게 개경(開京) 함락, 현종 나주(羅州)로 파천. 양규˙정성(鄭成) 등이 거란군을 파하고 여러 성을 회복. 현종 환도. 1012년 도절도사(道節度使)를 폐지하고, 5도호부(都護府) 75목(牧) 안무사(按撫使)를 둠. 1014년 흥화진(興化鎭)에서 거란군 격퇴. 1015년 거란군이 흥화진˙통주(通州)˙용주(龍州)에 침입. 1016년 곽주에서 거란군 격퇴. 1018년 제3차 거란침입. 강감찬(姜邯贊)이 흥화령(興化嶺)에서 거란군을 대파. 1019년 구주대첩(龜州大捷). 1024년 대식국(大食國:아라비아)의 상인 100여 명이 특산물을 가지고 무역하러 옴. 개경을 확장하여 5부(部) 35방(坊)˙314리(里)로 정함. 1029년 여진 해적선 30여 척의 침범을 격퇴. 1031년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신설. 1033년 북경(北境)에 천리장성 축조를 개시. 1034년 덕종 죽고(1016~), 정종(靖宗) 즉위(~1046). 1037년 거란의 병선이 압록강에 침입. 1044년 장주(長州)˙정주(定州)˙원흥진(元興鎭)에 축성함으로써 천리장성 완성. 1049년 동번(東蕃) 해적이 임도현(臨道縣)에 침입. 1055년 최충(崔沖)이 사학(私學)을 일으킴(12公徒). 1058년 승려 해린(海鱗)을 국사(國師)로, 난원(爛圓)을 왕사(王師)로 함. 1062년 호경(鎬京)을 다시 서경으로 고침. 1063년 국자감의 규율과 직제를 정비 강화. 거란, ‘대장경(大藏經)’을 보내옴. 1066년 거란, 국호를 요(遼)로 고침. 1067년 의천(義天)을 우세승통(祐世僧統)으로 삼음. 흥왕사(興王寺) 준공. 1068년 양주(楊州)를 남경(南京)으로 하고 신궁을 건립. 최충(崔沖)이 구제학당(九齊學堂) 건립. 1071년 김제(金悌)를 송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국교를 회복. 1073년 동여진 15주, 서여진 2진, 여진족 12촌 등을 편입. 1076년 등과자(登科者)의 급전제(給田制)를 정함. 1080년 보병과 기병 3만으로 정주성 외곽의 여진족을 토벌함. 1095년 중추원을 추밀원(樞密院)으로 고침. 헌종이 숙종(肅宗)에게 선위(禪位). 1097년 국청사(國淸寺) 낙성. 천태종(天台宗) 일어남. 1101년 남경개창도감(南京開創都監)을 두고, 남경 신궁(新宮) 조영 착수. 1102년 고주법(鼓鑄法)을 제정, 해동통보 1만 5천 관을 주조하여 문무양반˙군인에게 나누어줌. 1104년 윤관, 서북면행영병마도통(西北面行營兵馬都統)에 임명됨. 윤관 여진과 싸워 결맹(結盟)하고 돌아옴. 1105년 숙종 죽고(1054~), 예종(睿宗) 즉위(~1122). 탐라국을 폐하고 군(郡)으로 함. 1108년 여진토벌군이 포위되자 척준경(拓俊京)이 이를 구함. 1109년 국학(國學)에 7재(齋)를 둠. 1110년 제술(製述)˙명경(明經) 등의 과거과목을 제정. 1112년 혜민국(惠民局) 설치. 1119년 국학(國學)에 처음으로 양현고(養賢庫)를 둠. 1122년 이자겸(李資謙)이 중서령(中書令)이 되어 집권. 1128년 이자겸의 난. 궁궐을 태우고, 인종을 이어(移御)시킴. 혜민국(惠民局) 설치. 1129년 묘청(妙淸)이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주장. 1131년 노장(老莊)의 학문을 금지. 1135년 묘청의 난. 1142년 8도에 어사(御史)를 보내어 주현(州縣)의 관리를 감찰. 1145년 김부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50권을 편찬. 1147년 처음으로 승보시(陞補試) 시행. 1149년 5군(軍)을 3군으로 변경. 1155년 완산(完山)에서 농민 반란. 1162년 이천(伊川) 등지에서 대규모의 민란 발생. 1163년 남도지방에 농민반란 발생. 1169년 별궁 건축을 위해 별공(別貢)을 징수. 1170년 정중부의 난. 의종을 추방하고, 명종(明宗)을 세움. 1171년 궁궐에 불이 나서 전우(殿宇) 모두 불탐. 1172년 정중부,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가 됨. 서북면에서 민란 발생. 1173년 계사(癸巳)의 난. 1174년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의 난. 1175년 관군, 연주(漣州)를 함락, 서경을 포위. 1176년 망이(亡伊)˙망소이(亡所伊)의 난. 남부지방에 민란 성행. 대규모 관군 조직. 1177년 망이˙망소이의 난을 평정. 1179년 경대승(慶大升), 정중부를 죽이고 반대파를 처형. 도방(都房)을 설치. 1180년 무신(武臣)들이 사병(私兵)을 두기 시작. 1184년 이의민(李義旼)이 정권 장악. 1193년 김사미(金沙彌)의 난. 1196년 최씨무신정권(崔氏武臣政權) 성립.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李義旼)을 멸하고 정권을 장악 1197년 최충헌, 명종을 폐하고, 신종(神宗)을 세움(~1204). 1198년 만적(萬積)의 난. 1200년 최충헌, 사저에 도방(都房) 설치. 1206년 최충헌을 진강후(晉康侯)에 봉하고, 부(府)를 흥녕(興寧)이라 함. 1209년 희종(熙宗), 최충헌의 집으로 옮겨갔다가 연경궁(延慶宮)으로 돌아옴. 최충헌, 교정도감(敎定都監) 설치. 1211년 최충헌이 희종을 폐하고 강종(康宗)을 세움(~1213). 1216년 몽골군에 쫓긴 거란유민이 영삭진(寧朔鎭)˙정계진(定戒鎭)에 침입하여 재물을 약탈. 거란병, 황주를 침공. 1218년 거란병 재침. 조충 등이 거란병을 강동성(江東城)으로 패주시킴. 1219년 최충헌 죽고, 아들 최우(崔瑀) 집권. 1223년 처음으로 융기도감(戎器都監)을 둠. 금주에 침입한 왜구(倭寇)를 격퇴. 1225년 최우, 정방정치(政房政治) 시작(~1249). 1228년 동진(東眞), 정주(定州)˙장주(長州)에 침입. 1231년 제1차 몽골군 침입. 살리타[撒禮塔]를 원수로 삼아 평주(平州)를 치고 개경에 육박. 1232년 강화도(江華島) 천도. 다루가치[達魯花赤]를 축출. 김윤후(金允侯)가 지휘하는 부곡민이 처인성(處仁城)에서 항전. 살리타를 사살. 1234년 최윤의(崔允儀)의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50권)을 주자(鑄字)로 인행(印行). 1236년 개천(价川)˙죽주(竹州)에서 몽골군을 크게 격파. 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지음. 이연년(李延年)의 난을, 김경손(金慶孫)이 평정. 강도(江都)에서 대장경의 재조(再雕) 시작. 1239년 몽골군 철수. 몽골 사신이 와서 왕의 친조(親朝)를 조유(詔諭). 1241년 족자(族子) 영녕공(永寧公)을 왕자(王子)라 칭하고 몽골에 보내어 볼모[禿魯花]로 삼음. 1247년 아모간(阿母侃)이 지휘, 제4차 몽골군 침입. 1249년 몽골, 고려왕의 출륙친조(出陸親朝)를 강요. 별초군, 동계(東界)에 침입한 동진군을 격파. 최우 죽고, 최항(崔沆)이 정권 장악. 1253년 야굴(也窟)의 몽골군이 제5차 침입. 1254년 차라대(車羅大) 제6차 몽골군 침입. 1255년 차라대 제7차 몽골군 침입 1257년 최항 죽고, 최의(崔誼) 집권. 차라대의 제8차 몽골군 침입. 1258년 최씨무신정권 붕괴. 충주의 별초군이 박달령서 몽골군 격퇴. 1259년 고종 죽고(1192~), 태자 전 몽골로 감. 1261년 몽골, 요양(遼陽)의 고성(故城) 수리. 1269년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하고, 안경공(安慶公) 창(I)을 세웠으나 반년 만에 원종이 복위. 1270년 강화에서 환도. 삼별초군(三別抄軍)의 항몽전(抗蒙戰). 1271년 삼별초군, 합포(合浦)˙동래(東萊)를 공격, 금주(金州)를 점령. 세자 심(諶)을 몽골에 보냄. 1272년 세자 심이 변발(辨髮)과 호복(胡服)으로 돌아옴. 1274년 제1차 여원연합군(麗元聯合軍) 일본정벌 실패. 1278년 충렬왕, 원의 관리와 원군의 철수 및 고려인 송환을 요구. 1280년 일본 정벌을 위해 정동행성(征東行省)을 둠. 1281년 제2차 여원연합군의 일본정벌 실패. 1285년 일연(一然) 《삼국유사(三國遺事)》 저술. 1287년 이승휴(李丞休) 《제왕운기(帝王韻紀)》 저술. 1290년 충렬왕, 강화로 피란. 국사˙문적(文籍) 강화로 옮김. 1291년 원의 군대와 함께 합단군을 연기(燕岐)에서 격파. 1292년 개경으로 환도. 1294년 원나라 세조(世祖) 죽고, 동방정벌 중지. 탐라에서 원나라 철수. 1295년 탐라를 제주(濟州)로 고침. 1298년 충렬왕 태상왕(太上王)이 되고, 충선왕(忠宣王) 즉위. 1308년 원이 충선왕을 심양왕(瀋陽王)에 봉함. 충렬왕 죽고(1236~), 충선왕 다시 복위. 서운관(書雲觀) 창설. 1309년 각염법 제정. 1310년 원에서 충선왕을 심왕(瀋王)에 봉함. 1313년 충선왕, 충숙왕에게 전위(傳位), 조카 연안군(延安君) 호를 심양왕(충선왕)의 세자로 함. 1316년 상왕(上王), 심왕의 위(位)를 세자 호에게 전하고 태위왕(太尉王)이라 칭함. 1318년 윤번(輪番)으로 근무하던 진변별초제도(鎭邊別抄制度)를 복구. 1320년 원, 상왕 충선왕을 토번(吐蕃)으로 귀양보냄. 1325년 상왕 충선왕 원에서 죽음(1275~).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 1332년 상왕 충숙왕 복위하고, 충혜왕은 원나라로 감. 1340년 충혜왕 복위. 원나라의 문제, 고려인 기씨(奇氏)를 제3황후에 봉함. 1342년 이제현(李齊賢) 《역옹패설》을 지음. 1343년 원, 충혜왕을 게양(揭陽)에 귀양. 1344년 충혜왕 악양(岳陽)에서 죽고(1315~) ,충목왕(忠穆王) 원나라에서 즉위(~1348). 숭문관(崇文館) 설치. 1349년 충정왕(忠定王) 즉위(~1351). 정치도감 폐지. 경순부(慶順府) 설치. 1350년 합포천호(合浦千戶) 최선(崔禪) 등이 고성˙거제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 1352년 충정왕 강화에서 죽음(1337~). 변발(辨髮)을 금지. 안흥˙서산˙강화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 1356년 원나라 연호 사용을 중지. 쌍성총관부 회복. 1358년 최영(崔瑩)이 왜구체복사(倭寇體覆使)가 됨. 1359년 홍건적(紅巾賊)의 제1차 침입. 4만여명이 압록강을 건너, 서경 함락. 1360년 각군 홍건적 무찌르고 서경수복. 강화에 왜구 침입. 1361년 홍건적 10만으로 제2차 침입. 1363년 문익점(文益漸), 원나라에서 목화씨 가지고 옴. 1366년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설치, 신돈(辛旽)을 판사(判事)로 함. 1369년 이성계를 보내 동녕부 공격, 원(元)나라와 절교. 1370년 명나라의 연호 사용. 1374년 공민왕 피살되고(1330~), 우왕(禑王) 즉위(~1389). 1377년 최무선(崔茂宣), 화통도감 설치. 1378년 최영˙이성계, 왜구를 승천부(昇天府)에서 대파. 1387년 왜구를 막기 위해 기선군(騎船軍)을 편성.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 이성계, 우왕을 폐하고 창왕(昌王)을 세움. 1389년 박위, 대마도(對馬島) 정벌. 왜선 300여 척 격파. 창왕 폐위되고 공양왕(恭讓王) 즉위. 1391년 이성계,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가 되어 군사통수권을 장악. 1392년 정몽주 피살(1337). 이성계 즉위(7월17일). 문무백관의 제도 제정. 1393년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결정. 식년문과(式年文科) 실시(33인 급제). 1394년 정도전(鄭道傳),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편찬. 한양(漢陽)으로 천도. 1395년 정도전 등이 《고려사》 37권을 간행. 예문춘추관 설치. 중앙군 10위(衛)를 10사(司)로 고쳐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에 소속.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戊寅靖社). 태조가 왕세자 방과(芳果)에게 선위(禪位), 정종(定宗) 즉위.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芳幹의 난). 방원(芳遠)을 왕세자로 책봉. 정종이 방원에게 선위. 태종(太宗) 즉위. 1401년 증광문과(增廣文科) 실시. 신문고(申聞鼓) 설치. 1402년 무과의 과거 실시. 호패법(號牌法) 실시. 1413년 도(都)˙군(郡)˙현(縣)의 칭호 개정. 1414년 노비소산한품속신법(奴婢所産限品贖身法)을 제정. 무과(武科)에 삼장통고법(三場通考法) 적용. 1415년 시장세와 상인세를 저화(楮貨)로 징수. 장인세(匠人稅)를 신설. 1417년 각 도(道)에 잠소(蠶所) 설치. 의흥현(義興縣)에서 《향약구급방》 중간. 1419년 이종무(李從茂),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 정벌. 제주에 양전(量田) 시행. 1420년 집현전(集賢殿) 설치. 경연청(經筵廳) 설치. 1423년 한성의 남산에 봉수대 축조. 1432년 맹사성(孟思誠) 등이 《신찬팔도지리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편찬. 《세종실록지리지》를 편찬. 설순 등이 여연군(閭延郡)에 침입한 여진기병을 격퇴. 1433년 압록강변의 여진족을 토벌. 화포전(火砲箭)을 발명. 1434년 갑인자(甲寅字) 주조, 갑인자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간행. 북동˙북서에 6진(鎭)을 설치. 장영실 등이 경복궁에 자격루(自擊漏)를 설치. 1435년 화약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발명. 함길도에 목화를 심게 함. 1437년 물시계인 행루(行漏)˙앙부일구 등을 제조, 간의대(簡儀臺)를 설치. 1441년 장영실 등이 세계 최고(最古)의 측우기(測雨器)를 설치.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1444년 양전산계법(量田算計法) 제정. 무과삼관법(武科三官法) 실시. 1446년 수양대군이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편찬. 훈민정음 반포(頒布). 1447년 《용비어천가》의 주해 완성. 1450년 동활자 경자자(庚子字) 주조. 정음청(正音廳)을 설치. 1451년 국방강화를 위해 군사(軍士)를 늘림.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이징옥(李澄玉)의 난. 1456년 사육신(死六臣)사건. 1457년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 영월로 유배. 노산군(단종) 죽음. 1460년 하삼도민(下三道民) 4,500호를 평안˙강원˙황해도에 이주시킴. 1461년 간경도감(刊經都監) 설치. 1463년 홍문관(弘文館) 설치. 1464년 전폐(箭幣)를 주조. 1466년 과전법(科田法)을 폐지하고 직전법(職田法)을 실시.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 1468년 남이(南怡)˙강순(康純) 등이 반역으로 사형됨. 1474년 개찬한 《경국대전》과 《속록》을 반포. 1481년 서거정(徐居正) 등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찬진(撰進). 1484년 성균관에 학전(學田) 400결(結)을 줌. 1489년 유교(儒敎)의 전적(典籍)을 각 향교(鄕校)에 배포. 1490년 울산˙거제˙동래˙남해 등지에 축성. 순천에 전라좌수영을 설치. 1491년 북정(北征)을 결의. 두만강 방면의 여진족 정벌. 1493년 성현(成俔) 등이 《악학궤범(樂學軌範)》 9권을 완성. 1496년 무오사화(戊午史禍). 1498년 상평창(常平倉) 설치. 1502년 하삼도(下三道)의 주민 1,600호를 평안˙함경˙황해도에 이주시킴.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1507년 이과(李顆) 등이 반란을 꾀하다 발각되어 옥사.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 황형(黃衡)˙유담년(柳聃年) 등이 이를 평정. 1512년 일본과 임신조약(壬申條約) 체결. 1515년 을해동활자(乙亥銅活字) 주조. 1517년 김안국(金安國)이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간행하여 반포. 1518년 소격서(昭格署)를 혁파하고, 소장한 그림을 도화서(圖畵署)에 이장(移藏).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1520년 제주의 한지(閑地)에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설치. 1527년 동궁에 작서(灼鼠)의 변이 일어남. 1538년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지 않는 사찰을 폐지함. 1543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건립. 1544년 4월, 사량진왜란(蛇梁鎭倭亂). 1545년 조광조 복관(復官)되고, 현량과 다시 실시. 왕대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가 섭정. 8월, 을사사화(乙巳士禍). 1547년 정미사화(丁未士禍). 1549년 이홍윤(李洪胤)의 옥 일어남. 1551년 양종선과(兩宗禪科)를 설치하고 시경승(試經僧)에게 도첩(度牒)을 발급.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 1559년 황해도에서 임꺽정(林巨正)의 난 일어남(~1562).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사이에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관한 서신왕래 시작(~1566). 1560년 이황, 예안(禮安)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움(75년에 사액). 1561년 설총(薛聰)˙김유신˙최치원을 향사(享社).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음. 1562년 임꺽정의 난을 평정. 1567년 명종 죽고(1534~), 선조(宣祖) 즉위(~1608). 1572년 이이(李珥)와 성혼(成渾) 사이에 사단칠정론에 관하여 서신 왕래 시작(~1578). 1574년 안동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이황을 향사(75년에 사액). 1577년 이이, 《격몽요결(擊蒙要訣)》 간행. 1583년 이이,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건의함.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일어남.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시작. 1593년 왜군이 철수 시작. 선조가 한성으로 귀환.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약 20만의 왜군 상륙. 원균(元均) 휘하의 수군이 칠천(漆川)˙고성(固城)에서 대패. 1598년 이순신(李舜臣)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 왜군 철수. 1601년 한성에 동묘(東廟) 건립. 1603년 이광정(李光庭)과 권희(權憘)가 연경에서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를 가져옴. 1608년 선조 죽고, 왕세자 즉위(광해군). 1610년 허준(許浚)이 《동의보감》 25권 찬진. 1613년 영창대군의 관작을 삭탈하고 서인으로 함. 폐모론 일어남. 1614년 강화부사 정항(鄭沆)이 영창대군을 죽임. 1618년 인목대비의 호를 삭탈하고 서궁(西宮)이라 칭함. 대북파 정권 장악. 1623년 김류 등이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綾陽君) 추대, 정권을 잡음(인조반정).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킴. 1626년 호패법시행. 1627년 후금이 조선에 침입(정묘호란). 인조가 강화로 피신. 1628년 2월, 명나라의 숭정연호(崇禎年號)를 사용. 1630년 무감(武監) 설치. 1633년 상평청에서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전. 1636년 청군 침입(병자호란). 1637년 강화도 함락됨. 인조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 인조 환궁. 왕세자 일행 불모가 되어 선양[瀋陽]에 도착. 명나라 연호를 폐지하고 청나라 연호를 씀. 1640년 세자 선양에서 돌아옴. 1645년 소현세자, 독일인 신부 아담 샬(湯苦望)로부터 천문˙산학(算學)˙천주교에 관한 서적 등을 받아 가지고 한성으로 돌아옴. 왕세자(소현세자) 죽음. 봉림대군(鳳林大君) 한성으로 돌아와 세자로 책봉됨. 1649년 인조 죽음. 세자 봉림대군 즉위(효종). 1652년 연경에 천문학관을 보내어 시헌력법(時憲曆法)을 배워오게 함. 1653년 제주목사,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화순포(和順浦) 표착을 보고. 1657년 최유지(崔攸之) 천문관측기구를 제작. 1658년 청나라가 러시아정벌에 원군을 요청해 옴. 1659년 효종 죽음. 왕세자 즉위(현종). 1660년 남인˙서인 간에 예론시비(禮論是非) 시작됨. 1662년 현종 창덕궁으로 옮김. 고려조의 능침(陵寢)을 봉식(封植). 1671년 현종 경덕궁으로 옮김. 전국적으로 대기근. 경기˙충청도에서 민란 일어남. 1674년 현종 죽음. 세자 즉위(숙종). 북한산성을 수축함. 1682년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설치. 1687년 금위영(禁衛營) 폐지. 숙종 탕평책(蕩平策)을 유시함. 1688년 창덕궁 금호문 밖에 관천대(觀天臺) 축조. 1689년 세자책봉문제로 노론(老論)이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기사환국). 왕비 인현왕후 민씨 폐출됨. 1690년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함. 1692년 숙종 창덕궁으로 돌아옴. 북경에서 동을 수입, 화폐 주조. 1694년 노론에 의해 남인 몰락(갑술옥사). 4월, 폐비 민씨를 복위하고 왕후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강등. 1697년 장길산(張吉山)이 이끈 농민군 봉기. 1698년 숙종 탕평책을 지시. 1702년 백두산 화산 폭발. 이준명(李浚明) 울릉도를 답사, 지도 작성. 1711년 평양성과 안주성을 개축케 함. 북한산성 축성 시작. 1712년 청나라 오라총관 목극등(穆克登)이 백두산정계비를 세움. 1713년 중인˙서얼 출신에게 죽은 뒤 벼슬을 주는 규정 제정. 1714년 8도에 지진 발생. 1720년 숙종 죽고, 세자 즉위(경종). 1724년 경종 죽고, 왕세제 연잉군 즉위(영조). 서얼 200여 명이 차별대우 철폐를 요구. 1725년 화폐주조를 중지하고 무기 제작. 1728년 이인좌(李麟佐) 등 밀풍군(密豊君) 추대, 반란을 일으킴. 1729년 사형수에 대하여 삼복(三覆)을 시행함. 1732년 관상감 관원 청나라에서 《만년력(萬年曆)》을 가져옴. 1736년 원자를 세자로 책봉함(사도세자). 1745년 예각(藝閣)에서 《경국대전》 《속대전》을 1책으로 간행. 1746년 《속대전》이 활자본으로 간행됨. 1750년 균역청 설치. 1756년 금주령 선포, 밀주를 엄히 단속함. 1758년 해서˙관동 지방에 천주교가 크게 보급 됨. 1759년 원손을 왕세손으로 책봉함(정조). 1761년 노비에 대한 상전의 사형(私刑) 금지. 1762년 왕세자, 궤 속에 갇혀 굶어 죽음. 금주령을 엄수케 하고 범법자는 사형에 처함. 1763년 김수장(金壽長)이 《해동가요》 편찬. 장안의 승려들을 추방함. 1764년 장례원(掌隷院)을 혁파. 1765년 홍계희(洪啓禧) 등 《해동악장》을 편찬. 1770년 전국의 제언(堤堰)을 수축. 《동국문헌비고》 100권 40책을 완성. 1772년 갑인자(甲寅字)를 개수하여 활자 15만 자를 주조(임진자). 1774년 종1품에서 당상 정3품을 대상으로 등준시(登俊試)를 실시(15인 급제). 1776년 영조 죽고, 왕세손 즉위(정조). 금원 북쪽에 규장각(奎章閣)을 새로 지음. 1779년 처음으로 내각검서관(內閣檢書官)을 설치. 1783년 승려의 장안 입성을 금함. 1785년 한성에 천주교교회가 생김(진고개 김범우의 집). 1786년 연경에서 서양서적의 구입을 금함. 검서시예(檢書試藝)의 규정을 정함. 1788년 서학관계 서적을 대량 불태움. 1791년 박필관(朴弼寬)의 격고(擊鼓) 사건 일어남. 신해교난(辛亥敎難) 일어남. 1794년 수원성[華城]을 쌓기 시작함. 울릉도 지도를 제작케 하고 토산물을 조사함. 12월,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 밀입국 상경. 1795년 천주교도 김시삼(金始三)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밀입국 포교사실을 밀고.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한중록》을 지음 1800년 원자를 세자로 책봉(순조). 정조 죽고, 세자 즉위(순조). 대왕대비(영조계비 정순왕후), 수렴청정을 함. 1801년 정순왕후(貞純王后) 대왕대비 김씨(金氏)의 명에 따라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실시. 1802년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화를 입은 이들에게 증직(贈職). 1804년 순조의 친정시작 1805년 정조실록(正祖實錄) 인간됨.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세도정치 시작.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한중록(恨中錄)》 완간 1808년 북청(北靑)˙단천(端川)에서 민란 발생. 《만기요람(萬機要覽)》 완성. 1811년 곡산 등 민란 일어남. 홍경래(洪景來)의 난(평안도 농민전쟁) 일어남. 역법(曆法)을 개정, 시행. 1812년 4월 19일, 홍경래 전사, 난이 평정됨. 1813년 공충도(公忠道)를 다시 충청도로 개칭. 1815년 을해교난(乙亥敎難).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 남공철(南公轍)의 《금릉집(金陵集)》 24권 121책 완간. 1817년 김정희(金正喜),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순수비 발견 1818년 정약용, 유배지 강진(康津)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 완성. 1819년 전국적 호구˙인구조사 실시. 호수:153만 3515호, 인구:651만 2349명. 1822년 호적법을 강화함. 인삼밀수출 엄금, 위반자 사형에 처함. 1823년 경기˙충청˙황해도 등 5도 유생들이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서얼(庶孼)의 임용을 요청. 1825년 무신의 승교(乘轎)를 금함. 1827년 왕세자(익종) 대리청정. 호적법 정비. 1828년 법사(法司)˙반족(班族)의 백성들에 대한 재산침해를 엄금. 삼남(三南)지방에 병충해 극심. 1829년 영종(英宗)˙진종(眞宗)˙정종(正宗) 3대 왕의 어필집(御筆集) 발간. 남공철, 영의정 사퇴. 경희궁에 대화재 발생, 여러 전각 소실. 작자미상의 《이두편람(吏頭便覽)》 완성. 1830년 선정비(善政碑) 남립(濫立) 금지. 효명세자(孝明世子) 병사, 왕세자 책봉. 1831년 경희궁 중건 완료. 로마 교황청이 천주교 조선교구 창설. 1832년 개성(開城)출신 무과 급제자의 임용 허용. 영국 상선 로도 아마스트호, 몽금포(夢金浦) 앞바다에 나타나 외교사상 처음 통상을 요구. 순조, 경희궁으로 천궁. 1833년 전국 각지의 제방 수축. 북한산성 수축 완료. 황해도 재령(載寧)지방 소작인들, 소작료 납부거부운동. 삼남지방의 목화 흉작으로 대동포(大同布)를 대동미(大同米)로 징수. 1834년 폐습˙사치를 금함. 순조 죽고 왕세손 즉위(현종), 대왕대비(순조의 비, 純元王后金氏)가 수렴청정. 1835년 전국에 전염병(大疫)유행. 《순조실록》 편찬 위해 실록청(實錄廳) 설치. 청주성 화약고에 낙뢰. 세곡방납(稅穀防納)의 폐를 바로잡음. 왕, 창덕궁으로 환어(還御). 1836년 소의 밀도살, 금광(金鑛)의 잠채(潛採)를 금함. 1838년 지진발생. 《순조실록》 34권과 《정조실록》 15권 완성. 《만기요람(萬機要覽)》완성. 1840년 앙반들의 상민(常民)착취 엄금. 헌종의 친정 시작. 풍양 조씨(豊陽趙氏)의 세도정치 시작됨. 1841년 전국에 전염병 유행. 1842년 순천부(順川府) 송광사(松廣寺)에 화재. 《천세력(千歲曆)》 발간. 1846년 프랑스 세실 해군소장, 천주교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 끌고 충청도 외연도(外煙島) 정박, 왕에게 항의 서한 전달. 김대건 신부, 새남터에서 순교. 1848년 정부, 아편흡연을 엄금.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재개. 1850년 개성에서 사적인 인삼재배 성행. 1851년 철종의 친정 시작됨. 1852년 김흥근(金興根), 영의정이 됨. 오위장(五衛將)의 임명을 엄정, 진장(鎭將)도 매관매직 엄금. 1854년 러시아 선박 함경도 덕원(德源)˙영흥(永興)해안에 침입, 어민들을 살상. 1856년 가축의 무단도살 엄금.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중건을 위한 공명첩(空命帖) 300장, 승첩(僧帖:度牒) 100장을 발행. 1857년 최한기(崔漢綺), 세계지리서 《지구전요(地球典要)》 저술 완료. 1859년 《대명률(大明律)》 《대전통편(大典通編)》 등 간행. 원자(元子) 죽음. 서울 근교 사찰들을 훼파. 억불책의 일환. 1860년 경희궁으로 천궁(遷宮). 최제우(崔濟愚), 경주에서 동학(東學)을 창시. 1861년 창덕궁으로 환어.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완성˙간행. 러시아 함대, 함경도 원산항(元山港)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 1862년 임술년에 충청·전라·경상도에서 농민봉기, 민란 발생 1863 고종 즉위, 흥선대원군 집권 1866 병인박해, 제너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1871 신미양요 1875 운요호 사건 1876 강화도조약 체결 1882 임오군란 , 미,영,독등과 통상조약 체결 1883 한성 순보 발간, 완산학사 설립, 태극기 사용 1884 우정국 설치, 갑신정변 1894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1895 을미사변 1896 아관파천, 독립신문 발간, 독립협회 설립 1897 대한제국 성립 1898 만민공동회 개최 1899 경인선 개통 1900 만국 우편연합 가입 1902 서울, 인천간 전화개통 1904 한.일의정서 맺음 1905 경부선 개통, 을사조약, 천도교 성립 1907 국채보상운동, 헤이그 특사 파견, 고종황제 퇴위, 군대해산 , 신민회 설립 1908 의병, 서울진공작전 1909 일본, 청과 간도협약 맺음 , 안중근 이토히로부미 사살, 나철 대종교 창시 1910년 한일합방, 조선(대한제국)패망 1914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 1916 박중빈, 원불교 창시 1919 3.1운동 ,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20 청산리 대첩, 조선,동아일보 창간 1922 어린이날 제정 1926 6.10만세 운동 1929 광주학생 항일운동 1932 이봉창, 윤봉길 의거 1933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1936 손기정, 배를린 올림픽 대회 마라톤 우승 1938 한글 교육 금지 1945 8.15 광복 1946 제 1차 미,소 공동위원회 개최 1947 유엔, 한국위원단 구성 1948년 남한 단독총선거(5월10일) 및 대한민국 정부수립(8월15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8월25일)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9월9일) 1950 6.25 전쟁 1952 평화선 선언 1953 휴전협정 조인, 제 1차 통화개혁 실시 1960 4.19혁명, 장면내각 성립 1961 5.16 군사정변 1962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6) 1963 박정희 정부 성립 1964 미터법 실시 1970 새마을 운동 시작됨 , 경부고속국독 개통 1973 6.23 평화 통일 선언 1979 10.26 사태 ,12.12사태 1980 5.18 민주화 운동 1981 전두환 정부 출범, 수출 200억 달러 달성 1985 남북 고향 방문단 상호교류 1986 서울 아시안게임 개최 1987 6월 민주항쟁, 대통령 임기 5년 골자로 하는 직선제 개헌 1988 노태우정부 출범, 제 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1989 동구권 국가와 수교 1990 소련과 국교수립 1991 남북한 동시 UN가입 1992 중국과 국교수립 1993 김영삼정부 출범 1994 북한, 김일성 사망 1997 IMF 외환위기 1998 김대중 정부 출범 2000 6.15 남북 공동선언, 제 3차 ASEM개최 2002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 2003 노무현정부 출범 2008 이명박정부 출범 2013 박근혜 정부 출범
다치바나 요시오(立花 芳夫)/ 2016-07-27
다치바나 요시오(立花 芳夫) 다치바나 요시오 立花 芳夫 보닌 섬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 다치바나 요시오 생애 1890년 2월 24일 ~ 1947년 9월 24일 출생지 일본 제국 에히메 현 사망지 미국 괌 섬 복무 일본 제국 육군 복무 기간 1903년 ~ 1945년 최종 계급 중장(中将) 지휘 일본군 제1독립혼성여단, 일본군 제109사단 주요 참전 태평양 전쟁 다치바나 요시오(立花 芳夫, 1890년 2월 24일 ~ 1947년 9월 24일)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이다. 최종 계급 중장. 치치지마 섬, 오가사와라 제도에 주둔한 일본군 사령관이었으며, 소위 "치치시마 식인 사건"으로 알려진 연합군 포로에 대한 고문, 즉결처형, 식인의 죄를 물어 괌에서 교수형 당했다. 생애[편집] 에히메 현에서 태어난 다치바나는 1913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소위로 임관하였다. 1924년부터 1925년까지 만주국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1942년에는 히로시마 방어사령관을 지냈고, 1943년 3월에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1944년 5월에 제1독립혼성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1945년 3월에 중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제109사단장으로 부임해 몰락 작전에 대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전쟁범죄[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치치시마 식인 사건입니다. 1945년 중반에 치치시마에 주둔한 병력에 대한 식량이 넉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로잡은 연합군의 포로를 살해해 섭취할 것을 명령하였다. 전후 괌에서 열린 전쟁 범죄에 대한 재판을 통해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수감 중 미군 헌병과 동료 수감자들의 가혹행위를 받다가 1947년에 교수형당했다. 같이보기[편집] 치치시마 식인 사건 무다구치 렌야 이 글은 군인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분류: 일본 육군 중장 1890년 태어남 1947년 죽음 에히메 현 출신 일본의 전쟁 범죄 교수형된 사람 식인 BC급 전범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むたぐち れんや,1888-10-07~1966-08-02)/ 2013-11-01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むたぐち れんや,1888-10-07~1966-08-02) 무타구치 렌야 (일본어: 牟田口 廉也 むたぐち れんや, 1888년 10월 7일 ~ 1966년 8월 2일)은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일본의 육군 군인이다. 그는 1944년 버마 전선에서 무리한 임팔 작전을 강행하여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해 유명해졌다. 사가 현 출신으로, 1910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고급 참모과정인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일본이 러시아 혁명에 간섭한 시베리아 출병에 참전하였고, 이후 프랑스에 주재무관으로 파견되었다. 소좌시절에는 캄차카 반도에 잠입하여 홀로 종단하여 정탐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 일본에 돌아와 참모본부에서 일하다가 1936년 중국에 파견되어 베이징에 주둔중인 제1연대의 연대장을 맡았다. 그가 맡고 있는 연대가 노구교 사건에 말려들어, 결국 이것이 중일 전쟁으로 발전되었다. 이후 소장으로 승진하여 제4군의 참모장을 맡았다가, 일본으로 돌아와 육군유년학교의 교장에 임명되었다. 1940년 중장으로 승진하여, 태평양 전쟁의 발발과 함께, 제18사단의 사단장이 되어 싱가포르 전투에 참전하였다. 무타구치는 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18사단은 싱가폴 함락후 필리핀으로 파견되어 바탄 반도전에 투입되었고, 1942년 4월에는 버마 전선으로 다시 투입되었다. 이때 대본영에서는 인도진공을 계획하였으나, 밀림과 산악지역에서는 작전이 불가능하다는 무타구치의 반대로 작전은 연기되었다. 무타구치는 1943년 3월에는 버마 방위를 담당하는 제15군의 사령관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영국군이 인도로부터 월경하여 버마의 일본군을 공격하자, 무타구치는 생각을 바꿔서 이전에 반대했던 인도진공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보급이나 병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작전을 세워 휘하 부대장들이 모두 작전에 반대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1944년 3월, 그 휘하에 있던 제15군(15, 31, 33사단으로 구성됨)은 빈약한 준비와 병참으로 인도공략을 위해 진격했으나, 6만 5천여 명의 병력중 5만 명이 대부분 질병과 굶주림으로 사망하는 대참패로 끝났다. (임팔 전투) 이후 책임을 지고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왔고, 1944년 12월 예편하였다. 1945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여 육군사관학교 예과의 교장이 되었으나, 일본이 항복하여 단명에 그쳤다. 그는 잔혹행위에 대한 전범용의자로 체포되어 재판을 위해 싱가포르로 압송되었으나, 그의 무능때문에 오히려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힌 점이 감안되어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그는 전후에도 \"부하의 무능때문에 임팔 작전이 실패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일본의 우익 정치가들은 무타구치를 도미나가 교지, 스기야마 하지메와 더불어 \"삼대오물\"(三大汚物)이라고 부르며 비난하였다. 그의 무능력함과 여러 자충수 때문인지,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나 개그 컨셉트의 위키위키에서는 \"사실 그는 독립군의 숨은 장군이었고, 대한민국 독립의 일등공신이다\"라고 희희화하기도 한다. 바깥 고리[편집] 정치담화녹음 헌정 자료실 국립 국회도서관 전 임 (신설) 제1대 지나주둔 보병제1연대장 1936년 5월 30일 - 1939년 3월 1일 후 임 대좌 하세가와 모토쓰구 전 임 (신설) 제1대 제4군 참모장 1938년 7월 15일 - 1939년 12월 1일 후 임 대좌 요시즈미 마사오 전 임 소장 우시지마 미쓰루 제3대 육군여과사관학교장 1939년 12월 1일 - 1941년 4월 10일 후 임 소장 시치다 이치로 전 임 중장 햐쿠타케 하루요시 제4대 제18사단장 1941년 4월 10일 - 1943년 3월 18일 후 임 중장 다나카 신이치 전 임 중장 이이다 쇼지로 제2대 제15군 사령관 1943년 3월 18일 - 1944년 8월 30일 후 임 중장 가타무라 시하치 전거 통제 VIAF: 242355954 분류: 출처가 필요한 글/2013년 11월 일본 육군 중장 1888년 태어남 1966년 죽음 루거우차오 사건 관련자 중일 전쟁 관련자 태평양 전쟁 관련자 사가 현 출신 A급 전범 용의자 무타구치 렌야 牟田口 廉也 생애 1888년 10월 7일 - 1966년 8월 2일 출생지 일본, 사가 현 사망지 일본, 도쿄 복무 일본제국 육군 복무 기간 1910년 ~ 1945년 최종 계급 중장(中将) 지휘 일본제국 육군 제18사단 일본 제국 육군 제15군 주요 참전 시베리아 출병 노구교 사건 제2차 세계대전
백제왕조 계보/ 2009-02-01
백제왕조 계보 1. 온조왕 BC18~28 고주몽과 소서노의 아들. (일부 기록에선 주몽이 아니라 동부여의 귀족 우태의 아들이라고함.) 2. 다루왕 재위 28~77 온조왕의 장남 3. 기루왕 재위77~128 다루왕의 장남. 4. 개루왕 재위 128~166 기루왕과 후비의 아들. 5, 초고왕 재위 166~214 개루왕의 차남. 6. 구수왕 214~234 초고왕의 장남 7. 사반왕 234~234 구수왕의 장남 8. 고이왕 234~286 4대 개루왕 차남의 후손 9. 책계왕 286~289 고이왕의 아들 10. 분서왕 298~304 책계왕의 장남 11. 비류왕 304~344 6대 구수왕의 차남의 후손 12. 계왕 344~346 10대 분서왕의 아들 13. 근초고왕 346~375 11대 비류왕의 차남 14. 근수구왕 375~384 근초고왕의 아들. 어머니는 왕후 진씨 15. 침류왕 384~385 근수구왕의 장남. 어머니는 왕후 아이부인. 16. 진사왕 385~392 근수구왕의 아들. 어머니는 후비. 17. 아신왕 392~405 침류왕의 장남 18. 전지왕 405~420 아신왕의 장남 19. 구이신왕 420~427 전지왕의 장남. 어머니는 왕후 팔수부인 20 비유왕 427~455 18대 전지왕의 차남. 어머니는 후비 해씨 21. 개로왕 455~475 비유왕의 장남. 22. 문주왕 475~477 20대 비유왕의 차남 23. 삼근왕 477~479 문주왕의 장남 24. 동성왕 479~501 20대 비유왕의 3남 곤지의 차남. 25. 무령왕 501~523 21대 개로왕의 아들. 26. 성왕 523~554 무령왕의 장남. 27. 위덕왕 554~598 성왕의 장남 28. 혜왕 598~599 성왕의 차남 29. 법왕 599~600 혜왕의 장남 30. 무왕 600~641 위덕왕의 아들(삼국사기,삼국유사에는 법왕의 아들이라 기록되어있음.) 31 의자왕 641~660 무왕의 장남. 어머니는 선화공주
세계사 연표(중국사, 국사, 서양사)/ 2009-02-01
세계사 연표(중국사, 국사, 서양사) 연대 2000 1900 1800 1700 1600 1500 1400 1300 1200 1100 1000 900 800 700 600 500 400 300 200 B.C. 100 0 A.D. 100 200 300 400 500 600 700 800 900 1000 1100 1200 1300 1400 1500 1600 1700 1800 1900 2000 중 국 왕 조 夏 (하) 21세기 ~ 6세기 BC 殷 (商) (은 / 상) 1600 ~ 1066 BC 西周 (서주) 1066 ~ 771 BC 東周 (동주) 770 ~ 256 BC 춘추전국시대 秦 (진) 221 ~ 206 BC 西漢 (前漢) (서한 / 전한) 202 BC ~ 8 AD 新 (신) 8 ~ 23 東漢 (後漢) (동한 / 후한) 25 ~ 220 三 國 | 삼 국 魏 蜀 吳 西晋 (서진) 265 ~ 316 東晋 (동진) 317 ~ 420 南 北 朝 | 남 북 조 隋 (수) 581 ~ 618 唐 (당) 618 ~ 907 五 代 十 國 | 오 대 십 국 北宋 (북송) 960 ~ 1127 ================ 遼 (요) 916 ~ 1125 ================ 西遼 (서요) 1124 ~ 1211 南宋 (남송) 1127 ~ 1279 ================ 金 (금) 1115 ~ 1234 元 (원) 1260 ~ 1370 明 (명) 1368 ~ 1644 淸 (청) 1616 ~ 1911 中國 (중국) 한국 / 동양 주요 史實 3000년경 이집트문명 시작 2500년경 인더스문명 시작 2500년경 황하문명 시작 2333년 단군, 고조선 건국 2000년경 아리아인, 인도 이주 1800년경 메소포타미아문명 1700년경 함무라비법전 편찬 1400년경 하타이트 전성 이집트 신왕국 발전 800년경 브라만교 성립 바르나(카스트)제도 성립 701년 아시리아, 오리엔트 통일 525년 페르스아제국 성립 불교 성립 유가사상, 제자백가 477년 불경 결집 (제1차) 377년 불경 결집 (제2차) 330년 페르시아제국 멸망 261년 아쇼카왕, 인도 통일 255년 박트리아왕국 건국 248년 파트티아왕국 건국 194년 위만조선 성립 108년 고조선 멸망, 한군현 설치 57년 신라의 건국 37년 고구려의 건국 18년 백제의 건국 3년 고구려, 국내성 천도 쿠샨왕조 성립 대승불교 성립 194년 고구려, 진대법 실시 간다라미술 번성 209년 고구려, 환도성 천도 226년 사산조페르시아 건국 260년 백제, 율령 반포 320년 굽타왕조 성립 372년 고구려, 불교 전래, 태학 설치 384년 백제, 불교 전래 427년 고구려, 평양 천도 433년 나ㆍ제동맹 475년 백제 웅진 천도 502년 신라, 우경 실시 520년 신라, 율령 반포 520년 굽타왕조 분열 538년 백제, 사비성 천도 622년 헤지라 (이슬람 원년) 660년 백제 멸망 668년 고구려 멸망 676년 신라, 삼국통일 698년 발해 건국 722년 신라, 정전 지급 744년 위구르 건국 751년 불국사 건립 768년 대공의 난 788년 독서삼품과 설치 822년 김헌창의 난 828년 장보고, 청해진 설치 888년 삼대목 편찬 900년 견훤, 후백제 건국 901년 궁예, 후고구려 건국 918년 왕건, 고려 건국 926년 발해 멸망 935년 신라 멸망 936년 고려, 후삼국 통일 1019년 귀주대첩 1033년 천리장성 축조 1037년 셀주크투르크 선국 의천의 속장경 조판 1129년 이자겸의 난 1135년 묘청, 서경천도운동 1145년 삼국사기 편찬 1170년 무신정변 1192년 일본, 가마쿠라막부 성립 1206년 인도, 노예왕조 성립 1231년 몽고의 1차침입 1234년 상정고금예문 간행 1236년 팔만대장경 조판 1299년 오스만제국 성립 1338년 일본, 무로마치막부 성립 1370년 티무르제국 성립 1388년 이성계, 위화도회군 1392년 고려 멸망, 조선 건국 1396년 한양 천도 1404년 티무르의 중국 원정 1441년 측우기 제작 1446년 훈민정음 반포 1467년 일본, 전국시대 전개 1469년 경국대전 완성 1519년 향약 실시 1590년 도요토미 일본통일 1592년 임진왜란, 한산대첩 1593년 행주대첩 1597년 명량해전 1603년 일본, 도쿠가와막부 성립 1608년 대동법 실시 1610년 동의보감 완성 1636년 병자호란 1689년 네르친스크조약 1725년 탕평책 실시 1727년 카흐타조약 1750년 균역법 실시 1760년 영국, 인도지배권 확립 1779년 이란, 카자르왕조 성립 1868년 일본, 메이지유신 1876년 강화도조약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5년 을미사변 1904년 러ㆍ일전쟁 1910년 한일병합 1945년 일본항복, 한국광복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1950년 한국전쟁 서양 주요 史實 3000년경 에게문명 성립 1500년경 크레타문명 성립 1400년경 미케네문명 성립 1000년경 그리스, 폴리스 성립 753년 로마 건국 509년 로마, 공화정 성립 500년 페르시아전쟁 431년 펠로폰네소스전쟁 359년 마케도니아왕국 성립 334년 알렉산더대왕 동방원정 272년 로마, 이탈리아 통일 264년 포에니전쟁 로마 지중해세계 지배 146년 카르타고 멸망 60년 삼두정치 27년 로마, 제정 성립 4년 크리스트 탄생 크리스트교 성립 64년 베드로, 바울 순교 로마문명 전성 192년 군인 황제 시대 249년 로마, 크리스트교 박해 313년 로마, 크리스트교 공인 325년 니케아공의회 330년 로마, 콘스탄티노플 천도 375년 게르만족 이동 시작 395년 로마제국 동서분열 449년 앵글로색슨왕국 건국 476년 서로마제국 멸망 486년 프랑크왕국 건국 529년 로마법대전 편찬 슬라브민족 이동 개시 626년 비잔틴제국, 성상숭배 금지령 발표 726년 크리스트교 분열 시작 829년 잉글랜드왕국 성립 843년 프랑크왕국 분열 (베르됭조약) 870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성립 (메르센조약) 911년 노르망디공국 성립 962년 신성로마제국 성립 987년 프랑스 카페왕조 성립 1054년 그리스정교회 성립 1066년 노르만, 영국 정복 1077년 카노사의 굴욕 1094년 십자군운동 시작 1122년 보름스협약 교황권 쇠퇴 1170년 옥스퍼드대학 창립 1215년 대헌장 제정 1241년 한자동맹 성립 1270년 십자군운동 종결 1971년 마르코폴로 동방여행 1309년 아비뇽 유수 1321년 단테의 신곡 발표 1338년 100년전쟁 시작 1347년 흑사병 유행 1381년 영국 농민반란 1415년 종교개혁가 휘스 처형 1450년 활판인쇄술 발명 1453년 비잔틴제국 멸망 1455년 장미전쟁 시작 1492년 아메리카대륙 발견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1519년 마젤란의 세계일주 1530년 코페루니쿠스 지동설 1536년 칼뱅의 종교개혁 1598년 프랑스, 낭트칙령 발표 1600년 영국, 동인도회사 설립 1618년 30년전쟁 1642년 청교도혁명 1666년 뉴턴, 만유인력의 법칙 1688년 명예혁명 1701년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 1715년 영국, 내각책임제 실시 1744년 영ㆍ프 식민지획득 전쟁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 1789년 프랑스혁명 시작 1804년 나폴레옹 황제즉위 1815년 신성동맹 성립 1823년 미국, 먼로주의 선언 1853년 크림전쟁 1861년 미국의 남북전쟁 1920년 국제연맹 창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1957년 소련, 인공위성 발사성공 1969년 아폴로11호 달착륙
신라왕조 계보/ 2009-02-01
신라왕조 계보 1대 혁거세(赫居世) (B.C.57) : 박, 거서간(居西干 혹은 거세간) 2대 남해(南解, A.D.5) : 박, 차차웅 3대 유리(儒理, A.D.24) : 박, 이사금 4대 탈해(脫解, A.D.57) : 석, 이사금, 토해(吐解). 5대 파사(婆娑, A.D.80) : 박, 이사금, 유리의 둘째 아들. 6대 지마(祇摩, A.D.112) : 박, 이사금, 기미(祇味). 7대 일성(逸聖, A.D.134) : 박, 이사금, 유리의 아들 혹은 일지(日知) 갈문왕의 아들 8대 아달라(阿達羅, A.D.154) : 박, 이사금 9대 벌휴(伐休, A.D.184) : 석, 이사금, 탈해의 2대손으로 아버지는 각간(角干) 구추(仇鄒)이다. 10대 내해(奈解, A.D.196) : 석, 이사금, 벌휴(伐休)의 손자. 11대 조분(助賁, A.D.230) : 석, 이사금, 제귀(諸貴). 벌휴의 2대손으로 아버지는 골정(骨正) 갈문왕이다. 12대 첨해(沾解, A.D.247) : 석, 이사금, 조분의 동생이다. 13대 미추(味鄒, A.D.262) : 김, 이사금, 미조. 김알지(金閼智)의 5대손 구도(仇道)의 아들. 14대 유례(儒禮, A.D.283) : 석, 이사금, 조분의 장자. 15대 기림(基臨, A.D.298) : 석, 이사금, 기립(基立). 조분의 2대손. 父는 이찬 걸숙(乞淑) 16대 흘해(訖解, A.D.310) : 석, 이사금, 내해의 2대손. 父는 각간 우로(于老). 17대 내물(奈勿, A.D.356) : 김, 이사금, 나밀(那密). 구도仇道)의 2대손. 父는 각간 말구(末仇). 18대 실성(實聖, A.D.402) : 김, 이사금, 김알지의 후손. 父는 대서지 이찬. 내물왕의 둘째 아들 복호는 고구려에, 셋째 아들 미사흔은 일본에 볼모로 보낸다. 19대 눌지(訥祗, A.D.417) : 김, 마립간, 내물왕의 장자. 실성왕을 죽이고 왕이 된다. 20대 자비(A.D.458) : 김, 마립간 21대 소지(炤知, A.D.479) : 김, 마립간, 비처(毗處). 22대 지증(智證, A.D.500) : 김, 마립간, 휘(諱)는 지대로(智大路). 내물 3대손 갈문왕 습보(習寶)의 아들. 23대 법흥(法興, A.D.514) : 김, 왕, 휘(諱)는 원종(原宗). 연호는 건원(建元) 24대 진흥(眞興, A.D.540) : 김, 왕, 휘(諱)는 삼맥종(삼麥宗) 혹은 심맥부(深麥夫) 법흥의 왕제 갈문왕 입종(立宗)의 아들. 연호는 개국(開國) 25대 진지(眞智, A.D.576) : 김, 왕, 휘(諱)는 사륜(舍輪). 진흥의 2자. 26대 진평(眞平, A.D.579) : 김, 왕, 휘(諱)는 백정(白淨). 진흥의 태자 동륜의 아들. 연호는 건복(建福) 27대 선덕(善德, A.D.632) : 김, 왕, 휘(諱)는 덕만(德曼). 진평의 장녀. 연호는 인평(仁平) 28대 진덕(眞德, A.D.647) : 김, 왕, 휘(諱)는 승만(勝曼). 진평의 모제 국반(國飯) 갈문왕의 딸. 연호는 태화(太和) 29대 태종무열(武烈, A.D.654) : 김, 왕, 휘(諱)는 춘추(春秋). 진지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의 아들 30대 문무(文武, A.D.661) : 김, 왕, 휘(諱)는 법민(法敏). 무열의 원자. 31대 신문(神文, A.D.681) : 김, 왕, 휘(諱)는 정명(政明) 혹은 명지(明之). 문무의 장자. 32대 효소(孝昭, A.D.692) : 김, 왕, 휘(諱)는 이홍(理洪). 신문의 태자. 33대 성덕(聖德, A.D.702) : 김, 왕, 휘(諱)는 흥광(興光). 신문의 둘째 아들로 효소의 동복 아우. 34대 효성(孝成, A.D.737) : 김, 왕, 휘(諱)는 승경(承慶). 성덕의 둘째 아들. 35대 경덕(景德, A.D.742) : 김, 왕, 휘(諱)는 헌영(憲英). 효성의 이복 동생. 36대 혜공(惠恭, A.D.765) : 김, 왕, 휘(諱)는 건운(乾運). 경덕의 적자 37대 선덕(善德, A.D.780) : 김, 왕, 휘(諱)는 양상(良相). 내물의 10대손으로 아버지는 사찬효방(孝芳). 38대 원성(元聖, A.D.785) : 김, 왕, 휘(諱)는 경신(敬信). 내물의 12대손. 39대 소성(昭聖, A.D.799) : 김, 왕, 휘(諱)는 준옹(俊邕). 원성의 태자 인겸(仁謙)의 아들. 40대 애장(哀莊, A.D.800) : 김, 왕, 휘(諱)는 청명(淸明). 소성의 태자. 41대 헌덕(憲德, A.D.809) : 김, 왕, 휘(諱)는 언승(彦昇). 소성의 동복아우. 42대 흥덕(興德, A.D.826) : 김, 왕, 휘(諱)는 수종(秀宗). 헌덕의 동복 아우. 43대 희강(僖康, A.D.836) : 김, 왕, 휘(諱)는 제륭(悌隆). 원성의 손자이고 이찬 헌정(憲貞)의 아들 44대 민애(閔哀, A.D.838) : 김, 왕, 휘(諱)는 명(明). 원성의 증손이며 대아찬 충공(忠恭)의 아들. 45대 신무(神武, A.D.839) : 김, 왕, 휘(諱)는 우징(祐徵). 원성의 손자이며 상대등 균정(均貞)의아들. 46대 문성(文聖, A.D.839) : 김, 왕, 휘(諱)는 경응(慶膺). 신무의 태자. 47대 헌안(憲安, A.D.857) : 김, 왕, 휘(諱)는 의정(誼靖). 신무의 이복 아우. 48대 경문(景文, A.D.861) : 김, 왕, 휘(諱)는 응렴(膺廉). 희강의 아들 아찬 계명(啓明)의 아들. 49대 헌강(憲康, A.D.875) : 김, 왕, 휘(諱)는 정(晸). 경문의 태자. 50대 정강(定康, A.D.886) : 김, 왕, 휘(諱)는 황(晃) 경문의 둘째 아들. 51대 진성(眞聖, A.D.887) : 김, 왕, 휘(諱)는 만(曼). 헌강의 여동생. 52대 효공(孝恭, A.D.897) : 김, 왕, 휘(諱)는 요(嶢). 헌강의 서자. 53대 신덕(神德, A.D.912) : 박, 왕, 휘(諱)는 경휘(景暉). 아달라왕(阿達羅王)의 후손. 54대 경명(景明, A.D.917) : 박, 왕, 휘(諱)는 승영(昇英). 신덕의 태자. 55대 경애(景哀, A.D.924) : 박, 왕, 휘(諱)는 위응(魏膺). 경명의 동복아우. 56대 경순(敬順, A.D.927) : 김, 왕, 휘(諱)는 부(傅). 문성의 후손으로 이찬 효종(孝宗)의 아들.
오가사와라 사건(지치시마 식인 사건)/ 2016-11-08
오가사와라 사건(지치시마 식인 사건) 오가사와라 사건은 1945년 2월 23일부터 25일 사이에 오가사와라 제도의 지치지마 섬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일본군 장군과 장교 및 병사들이 포로가 된 미군 공군기 비행사들을 구타하여 죽인 다음, 그 시체를 잘게 잘라 인육을 먹은 일이다. 당시 지치지마에는 일본 육·해군 혼성 제1여단이 주둔해 섬의 수비를 맡고 있었다. 육군은 다치바나 요시오(立花芳夫) 소장이 이끄는 5개 보병대대 등 약 9000명의 병력으로 이뤄졌으며, 해군은 모리 구니조(森國造) 소장 휘하에 치치시마 방면 특별근거지대, 통신대 등 약 6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사건은 다치바나 중장과 마토바 소좌 등이 주동이 되어 저질렀다. 마토바 소좌는 1947년 1월 13일 도쿄재판에서 제출한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대대(大隊)는 처형된 미군 조종사의 인육을 먹을 것. 2. 칸무리(冠) 중위는 그 인육의 배급을 담당할 것. 3. 데라키(坂部) 군의관은 처형에 입회하여 장기를 적출할 것. 1945년 3월 9일 오전 9시 대대장 육군 소좌 마토바 스에오 발령 방법: 칸무리 중위와 데라키 군의관을 직접 불러 명령 하달. 다치바나 여단장에게 보고하고 호리에 참모에게도 통고함. 이후 1946년 12월 11일 도쿄재판에서의 기록에 의하면 1944년 12월 뉴기니 전선에서 제18군 사령부가“연합군의 인육을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아군의 인육을 먹으면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지침을 내렸으며, 실제로 명령을 위반한 병사 4명을 처벌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지치지마의 경우는 기아나 식량부족이 원인이 아니었다. 당시 지치지마의 식량상황을 보더라도, 쌀 배급량이 5홉에서 3홉으로 줄었지만 본토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이걸 볼 때 지치지마에서는 기아 때문이 아니라 술안주감으로 포로를 잡아먹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재판 결과 다치바나 중장, 마토바 소좌, 이토 중좌, 요시이 대좌, 나카지마 대위에겐 사형이 선고됐고, 모리 중장과 가토 대좌, 야마시타 대위, 도키 대위, 사토 대위는 종신형에 처해졌다. 해군의 가미우라 소좌는 구류 중 자결했으며, 일본 본토로 귀환한 뒤 도망갔던 고야마 소위는 집 근처 야산에서 역시 자결했다. 마찬가지로 도망갔다가 나중에 재판을 받은 데라키 군의관은 4년형을 선고받았다. 다치바나나 마토바의 경우는 유서나 최후진술이 없어서 그들의 심경을 헤아릴 수는 없다. 다만 두 사람은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약 1년 동안 매일 미군 병사들의 학대로 거의 초주검이 되어 사형대에 올랐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때, 지치지마 폭격에 나섰던 미군 조종사 가운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도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1988년 펴낸 자서전에서 이 시기를 전쟁 중 경험한 최악의 시기였다고 밝혔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1989년 히로히토 천황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이제서야 일본인을 용서할 마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분류: 1945년 일본 일본 제국 육군 일본의 군사 사건 일본의 전쟁 범죄 오가사와라 제도 식인 1944년 일본
조선왕조 왕위 계보 및 가계도/ 2009-02-01
조선왕조 왕위 계보 및 가계도 대 왕 즉위년도 재위기간 주요 일지 1 태조(太祖) 1392 6 - 고려말 무신으로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우고,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멸망 - 1392년 조선왕조를 세움. 2 정종(定宗) 1398 2 - 사병을 삼군부에 편입시킴. 3 태종(太宗) 1400 18 - 태조가 조선을 세우는데 공헌 - 여러 가지 정책으로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움 4 세종(世宗) 1418 32 -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장려 - 훈민정음 창제 - 측우기, 해시계 등의 과학기구를 창제 - 북쪽에 사군과 육진, 남쪽에 삼포를 둠 5 문종(文宗) 1450 2 - 유교적 이상 정치 - 문화를 발달시킴 6 단종(端宗) 1452 3 - 12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계유사화로 수양대군에 의해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함 7 세조(世祖) 1455 13 - 단종을 좇아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 국조보감(國朝寶鑑), 경국대전(經國大典) 등 을 편찬 - 관제 개혁 8 예종(睿宗) 1468 1 - 경국대전을 완성 시킴 9 성종(成宗) 1469 25 - 숭유억불, 인재등용 등 조선초기의 문물 제도를 완성 - 경국대전을 편찬함 10 연산군(燕山君) 1494 12 - 폭군으로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임. - 중종반정으로 폐위됨. 11 중종(中宗) 1506 38 - 혁신정치를 기도하였으나 훈구파의 원한으로 실패 - 1519년 기묘사화, 신사사화를 초래함 12 인종(仁宗) 1544 1 - 기묘사화로 없어진 현량과를 부활함. 13 명종(明宗) 1545 22 - 12세에 즉위하여 을사사화, 정미사화, 을유사화, 을묘왜변을 겪음 14 선조(宣祖) 1567 41 - 16세에 즉위 - 이이, 이황 등의 인재를 등용하여 선정에 힘썼으나 당쟁과 임진왜란으로 시련을 겪음 15 광해군(光海君) 1608 15 - 당쟁으로 임해군, 영창대군을 역모로 죽이고 (계축사화),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패륜 저지름 - 서적편찬 - 명나라와 후금에 대한 양면 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함 - 인조반정으로 폐위됨 16 인조(仁祖) 1623 26 - 이괄의 난,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겪음 17 효종(孝宗) 1649 10 - 병자호란으로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 에 볼모로 8년간 잡혀 갔다 돌아와 즉위 후 이를 설욕하고자 국력을 양성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18 현종(顯宗) 1659 15 - 즉위 초부터 남인과 서인의 당쟁에 의해 많은 유신들이 희생됨 - 대동법을 전라도에 실시 - 동철제 활자 10만여 글자를 주조함 19 숙종(肅宗) 1674 46 - 남인, 서인의 당파싸움(기사사화) - 장희빈으로 인한 내환 - 대동법 전국 확대 -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국경을 확정 20 경종(景宗) 1720 4 - 숙종의 아들로 장희빈 소생. - 신임사화 등 당쟁이 절정에 이름. 21 영조(英祖) 1724 52 - 탕평책을 써서 당쟁을 제거에 힘씀 - 균역법 시행, 신무고 부활, 동국문헌비고 발간 등 부흥의 기틀을 만듦 - 사도세자의 비극 겪음 22 정조(正祖) 1776 24 - 탕평책에 의거하여 인재를 등용 - 서적보관 및 간행을 위한 규장각 설치 - 임진자, 정유자 등의 새 활자를 만듦 - 실학을 발전시킴 - 문화적 황금시대 23 순조(純祖) 1800 34 - 김조순(金組淳) 등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시대 - 신유사옥을 비롯한 세 차레의 천주교 대탄압 이 있었음 - 1811년 홍경래의 난 발생 24 헌종(憲宗) 1834 15 - 왕5년에 천주교를 탄압하는 기해사옥 발생 25 철종(哲宗) 1849 14 - 헌종이 후사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황후의 명으로 즉위함 - 왕2년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여 안동 김씨세도정치가 시작됨. - 진주민란 등 민란이 빈번 26 고종(高宗) 1863 44 -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 -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다툼 - 구미열강의 문호개방 압력에 시달림 -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퇴위함 - 임오군란이 일어남 27 순종(純宗) 1907 3 - 고종의 둘째 아들 -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35년간 치욕의 일제시대를 보내게 됨 (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사실록) 제 1 대 : 태 조(太 祖 : -이성계,1335 ~ 1408) 재위 1392 ~ 1398.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 -진안대군(이방우),정종(영안대군,이방과), 익안대군(이방의),회안대군(이방간),태종(정안대군,이방원), 덕안대군(이방연),경신,경선공주.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 -무안대군(이방번),의안대군(이강석),경순공주 ? : -의령,숙신옹주. 제 2 대 : 정 종(定 宗 : -이방과,1357 ~ 1419) 재위 1398 ~ 1400. 정안왕후 김씨(定安王后 金氏). 성빈 지씨(誠嬪 池氏) : -덕천군(후생),도평군(말생). 숙의 지씨(淑儀 池氏) : -의평군(원생),선성군(무생),임성군(호생),함양옹주. 숙의 기씨(淑儀 奇氏) : -순평군(군생),금평군(의생),정석군(융생),무림군(선생), 숙신옹주. 숙의 문씨(淑儀 文氏) : -종의군(귀생). 숙의 윤씨(淑儀 尹氏) : -수도군(덕생),임언군(녹생),석보군(복생),장천군(보생), 인천옹주. 숙의 이씨(淑儀 李氏) : -진남군(종생). ? : -덕천,고성,상원,전산,함안옹주. 제 3 대 : 태 종(太 宗 : 이방원,1367 ~ 1432) 재위 1400 ~ 1418.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 -양녕대군(이제),효령대군(이보), 세종(충녕대군,이도),성녕대군(이종),정순,경정,경안,정선공주. 효빈 김씨(孝嬪 金氏) : -경녕군(이비). 신빈 신씨(信嬪 辛氏) : -성녕군(이인),온녕군(이정),근녕군(이표),숙정,숙녕, 숙경,숙근옹주. 선빈 안씨(善嬪 安氏) : -익녕군(이갱). 의빈 권씨(懿嬪 權氏) : -정혜옹주. 소빈 노씨(昭嬪 盧氏) : -숙혜옹주. 숙의 최씨(淑儀 崔氏) : -희녕군(이타). 안씨(安氏) : -혜녕군(이지),소숙,경신옹주. 최씨(崔氏) : -후령군(이간). 김씨(金氏) : -숙안옹주. 이씨(李氏) : -숙순,소선옹주. 제 4 대 : 세 종(世 宗 : 이 도,1397 ~ 1450) 재위 1418 ~ 1450.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 -문종(이향),세조(수양대군,이유), 안평대군(이용),임영대군(이구),광평대군(이여),금성대군(이유). 평원대군(이임),영응대군(이염),정소,정의공주. 영빈 강씨(令嬪 姜氏) : -화의군(이영). 신빈 김씨(愼嬪 金氏) : -계양군(이증),의창군(이공),밀성군(이침),익현군(이연), 영해군(이당),담양군(이거). 혜빈 양씨(惠嬪 楊氏) : -한남군(이어),수춘군(이현),영풍군(이전). 숙원 이씨(淑媛 李氏) : -정안옹주. 상침 송씨(尙寢 宋氏) : -정현옹주. 제 5 대 : 문 종(文 宗 : 이 향,1414 ~ 1452) 재위 1450 ~ 1452. 현덕왕후 권씨(顯德王后 權氏) : -단종(이홍위).경혜공주. 사칙 양씨(司則 楊氏) : -경숙옹주. 제 6 대 : 단 종(端 宗 : 이홍위,1441 ~ 1457) 재위 1452 ~ 1455.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제 7 대 : 세 조(世 祖 : 이 유,1417 ~ 1468) 재위 1455 ~ 1468.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 : -덕종(의경세자,이숭=성종(자산대군)의 부친), 예종(해양대군,이황).의숙공주. 근빈 박씨(謹嬪 朴氏) : -덕원군(이서),창원군(이성). 제 8 대 : 예 종(睿 宗 : 이 황,1450 ~ 1469) 재위 1468 ~ 1469. 장순왕후 한씨(章順王后 韓氏) : -인성대군(이기). 안순왕후 한씨(安順王后 韓氏) : -제안대군(이현),현숙공주. 제 9 대 : 성 종(成 宗 : 이 혈,1457 ~ 1494) 재위 1469 ~ 1494.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韓氏).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 -중종(진성대군,이역),신숙공주. 폐비 윤씨(廢妃 尹氏) : -연산군(이융). 명빈 김시(明嬪 金氏) : -무산군(이종). 귀인 정씨(貴人 鄭氏) : -안양군(이항),봉안군(이봉),정혜옹주. 귀인 권씨(貴人 權氏) : -전성군(이변). 귀인 엄씨(貴人 嚴氏) : -공신옹주. 숙의 하씨(淑儀 河氏) : -계성군(이순). 숙의 홍씨(淑儀 洪氏) : -완원군(이수),회산군(이염),견성군(이돈),익양군(이회) 경명군(이침),운천군(이인),양원군(이희),혜숙,정순,정숙옹주. 숙의 김씨(淑儀 金氏) : -휘숙,경숙,휘정옹주. 숙용 심씨(淑容 沈氏) : -이성군(이관),영산군(이전),경순,숙혜옹주. 숙용 권씨(淑容 權氏) : -경휘옹주. 제 10 대 : 연산군(燕山君 : 이 융,1476 ~ 1506) 재위 1494 ~ 1506. 폐비 신씨(廢妃 愼氏) : -폐세자(이황),창녕대군(이인),공주. 숙의 윤씨(淑儀 尹氏) : -양평군(이성),이돈수,옹주. 제 11 대 : 중 종(中 宗 : 이 역,1458 ~ 1544) 재위 1506 ~ 1544.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 -인종(이호),효혜공주.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 -명종(경원대군,이환),의혜,효순,경현, 인순공주. 경빈 박씨(敬嬪 朴氏) : -복성군(이미),혜순,혜정옹주. 희빈 홍씨(熙嬪 洪氏) : -금원군(이영),봉성군(이완). 창빈 안씨(昌嬪 安氏) : -영양군(이거),덕흥대원군(이초,선조의 부친),정신옹주. 숙의 홍씨(淑儀 洪氏) : -해안군(이희). 숙의 이씨(淑儀 李氏) : -덕양군(이기). 숙원 이씨(淑媛 李氏) : -정순,효정옹주. 숙원 김씨(淑媛 金氏) : -숙정옹주. 제 12 대 : 인 종(仁 宗 : 이 호,1515 ~ 1545) 재위 1544 ~ 1545. 인성왕후 박씨(仁聖王后 朴氏). 제 13 대 : 명 종(明 宗 : 이 환,1534 ~ 1568) 재위 1545 ~ 1567. 인순왕후 심씨(仁順王后 沈氏) : -순회세자. 제 14 대 : 선 조(宣 祖 : 이 균,1552 ~ 1608) 재위 1567 ~ 1608.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 朴氏).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 -영창대군(이의),정명공주. 공빈 김씨(恭嬪 金氏) : -임해군(이진),광해군(이혼). 인빈 김씨(仁嬪 金氏) : -의안군(이성),신성군(이후),원종(이부,인조의 부친), 의창군(이광),정신,정혜,정숙,정안,정휘옹주. 순빈 김씨(順嬪 金氏) : -순화군(이보). 정빈 김씨(靜嬪 金氏) : -인성군(이공),인흥군(이영),정인,정선,정근옹주. 정빈 홍씨(貞嬪 洪氏) : -경찬군(이주),정정옹주. 온빈 한씨(溫嬪 韓氏) : -흥안군(이제),경평군(이늑),영성군(이계),정화옹주. 제 15 대 : 광해군(光海君 : 이 혼,1575 ~ 1641) 재위 1608 ~ 1623. 문성군 부인 유씨(文城君 夫人 柳氏) : -폐세자(이지), 숙의 윤씨(淑儀 尹氏) : -옹주. 제 16 대 : 인 조(仁 祖 : 이천윤,1595 ~ 1649) 재위 1623 ~ 1649.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 : -소현세자(이왕),효종(이호,봉림대군), 인평대군(이요),용성대군(이곤). 장열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귀인 조씨(貴人 趙氏) : -숭선군(이징),낙선군(이숙),효명옹주. 제 17 대 : 효 종(孝 宗 : 이 호,1595 ~ 1649) 재위 1649 ~ 1659.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 : -현종(이연),숙신,숙안,숙명,숙휘,숙정, 숙경공주. 안빈 이씨(安嬪 李氏) : -숙녕옹주. 제 18 대 : 현 종(顯 宗 : 이 연,1641 ~ 1674) 재위 1659 ~ 1674.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 -숙종(이순),명선,명혜,명안공주. 제 19 대 : 숙 종(肅 宗 : 이 순,1661 ~ 1720) 재위 1674 ~ 1720.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 : -공주 2.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 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金氏). 희빈 장씨(禧嬪 張氏) : -경종(이윤). 숙빈 최씨(淑嬪 崔氏) : -영조(이금,연잉군). 명빈 박씨(瞑嬪 朴氏) : -연령군(이훤). 제 20 대 : 경 종(景 宗 : 이 윤,1688 ~ 1724) 재위 1720 ~ 1724.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沈氏).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 제 21 대 : 영 조(英 祖 : 이 금,1694 ~ 1776) 재위 1724 ~ 1776.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 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 정빈 이씨(靖嬪 李氏) : -진종(이행,효장세자). 영빈 이씨(暎嬪 李氏) : -장조(이선,사도세자,정조의 부친),화평,화협,화완옹주 귀인 조씨(貴人 趙氏) : -화유옹주. 숙의 문씨(淑儀 文氏) : -화령,화길옹주. 제 22 대 : 정 조(正 祖 : 이 산,1752 ~ 1800) 재위 1776 ~ 1800. 효의왕후 김씨(孝懿王后 金氏). 의빈 성씨(宜嬪 成氏) : -문효세자(이돈). 수빈 박씨(綏嬪 朴氏) : -순조(이공),숙선옹주. 제 23 대 : 순 조(純 祖 : 이 공,1790 ~ 1834) 재위 1800 ~ 1834. 순원왕후 김씨(純元王后 金氏) : -익종(이호,효명세자),명온,복온,덕온공주. 숙의 박씨(淑儀 朴氏) : -영온옹주. 제 24 대 : 헌 종(憲 宗 : 이 환,1827 ~ 1849) 1834 ~ 1849. 효현왕후 김씨(孝顯王后 金氏). 명헌왕후 홍씨(明憲王后 洪氏). 궁인 김씨(宮人 金氏). 제 25 대 : 철 종(哲 宗 : 이원범,1831 ~ 1863) 재위 1849 ~ 1863. 철인왕후 김씨(哲仁王后 金氏). 귀인 박씨(貴人 朴氏). 귀인 조씨(貴人 趙氏). 숙의 방씨(淑儀 方氏). 숙의 범씨(淑儀 范氏) : -영혜옹주. 궁인 이씨,궁인 김씨,궁인 박씨. 제 26 대 : 고 종(高 宗 : 이재황,1852 ~ 1919) 재위 1863 ~ 1907.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 : -순종(이척). 귀인 이씨. 귀비 엄씨(貴妃 嚴氏) : -영친왕(이은). 귀인 이씨 : -완왕(이선). 귀인 장씨 : -의왕(이강). 소의 이씨. 귀인 정시.귀인 양씨 : -덕혜옹주. 제 27 대 : 순 종(純 宗 : 이 척,1874 ~ 1926) 재위 1907 ~ 1910.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閔氏).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2015-10-27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2015-10-27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분류에 속하는 문서 ㄱ 갈홍기 강경희 (1858년) 강대련 강동진 (법조인) 강동희 (1886년) 강명옥 강번 (1881년) 강병옥 강병일 강병준 강보형 강성인 강영균 (1867년) 강영석 강영철 (1923년) 강완선 (1886년) 강용옥 (1918년) 강이황 (1897년) 강인수 (경찰) 강인우 강재호 강중인 강창희 (1894년) 강태만 강필선 (1918년) 강필성 강현묵 계광순 계란수 계명수 계응규 계정식 계찬겸 계창업 계철순 고광만 고권삼 고긍명 고승제 고영희 (1849년) 고운하 고원섭 고원식 고원훈 고윤상 (경찰) 고일청 고재필 고재호 (1913년) 고종익 고중덕 고피득 고황경 고흥겸 고희경 (1873년) 고희준 공성학 곽기종 곽법경 곽인호 곽종원 곽진근 구동욱 구본웅 구연수 구연직 구자경 (1888년) 구자관 구자옥 구희서 (1861년) 권봉수 권상로 권승록 권일 (1911년) 권종원 권중식 권중익 권중철 권중현 권중환 (1890년) 권태술 권태전 권태한 (1871년) 권태환 김갑수 (법조인) 김갑순 김건 (극작가) 김건영 (기업인) 김경림 (승려) 김경수 (중추원) 김경승 김경재 (1899년) 김경주 김경진 (1895년) 김경환 (만주보민회) 김관 (1910년) 김관수 (1905년) 김관식 (목회자) 김관현 김교성 (1860년) 김교신 (1871년) 김규년 김규창 김극일 (1890년) 김기수 (1886년) 김기수 (국악인) 김기영 (1873년) 김기옥 (1877년) 김기원 (1878년) 김기진 김기창 (화가) 김기태 (1887년) 김기홍 (1883년) 김길창 김낙헌 김달호 (1912년) 김대우 (1900년) 김덕기 김덕한 김돈희 (1896년) 김동렬 (1912년) 김동만 (1893년) 김동선 (1905년) 김동운 (1892년) 김동원 (1884년) 김동인 김동조 김동준 (1886년) 김동진 (1902년) 김동진 (1913년) 김동하 (군인) 김동한 (1892년) 김동현 (1892년) 김동화 (승려) 김동환 (1901년) 김동훈 (1886년) 김두일 (1898년) 김두정 김두찬 (1887년) 김두하 김두헌 김득황 김만형 김면규 김명규 (1877년) 김명련 김명수 (1875년) 김명여 김명연 (1893년) 김명제 (신부) 김명준 (1870년) 김명학 (1901년) 김문집 김백일 (1917년) 김법룡 김병규 (1874년) 김병련 김병욱 (1895년) 김병원 (1880년) 김병익 (1837년) 김병제 (1894년) 김병태 (1887년) 김복수 김사연 (1896년) 김사영 (소설가) 김사영 (일진회) 김사철 김삼도 김상설 김상섭 (1876년) 김상연 김상용 (시인) 김상윤 (1893년) 김상형 김상홍 (교육인) 김상회 김생려 김서규 김석기 (1874년) 김석범 (군인) 김석원 김석태 김선태 (1911년) 김선흠 김성규 (1891년) 김성규 (중추원) 김성균 (1908년) 김성민 (영화 감독) 김성수 (1891년) 김성용 김성태 (1910년) 김성한 (1887년) 김성호 (기업인) 김성환 (1910년) 김세완 (1894년) 김세현 (1895년) 김소영 (1914년) 김송렬 김순봉 (1888년) 김순흥 김승구 김시권 김시명 김시욱 김시현 (실업인) 김신석 김신재 김억 김여백 김연상 (1878년) 김연수 (1896년) 김영국 (관료) 김영기 (1900년) 김영길 (성악가) 김영무 (1891년) 김영묵 (1892년) 김영배 (1886년) 김영상 (1899년) 김영석 (1887년) 김영선 (1918년) 김영섭 (목회자) 김영수 (1880년) 김영수 (1884년) 김영수 (1888년) 김영수 (1907년 2월) 김영수 (1923년) 김영일 (1914년) 김영준 (1900년) 김영진 (1876년) 김영철 (1841년) 김영택 (실업인) 김영한 (1857년) 김영호 (승려) 김영화 (영화 감독) 김영훈 (1905년) 김오섭 김옥현 (1888년) 김완진 (1877년) 김용곡 김용국 (군인) 김용국 (만주보민회) 김용성 (1888년) 김용식 (1913년) 김용제 (시인) 김용진 (1878년) 김용찬 (1896년) 김우영 (1886년) 김우현 (목회자) 김원근 (1886년) 김원복 (1908년) 김원선 (1890년) 김원태 (정치인) 김유영 (1869년) 김윤근 (법조인) 김윤근 (신부) 김윤복 김윤정 (1869년) 김은성 (만주보민회) 김은호 김응두 김응선 김응순 김응조 (군인) 김응준 (1869년) 김응태 김의용 김익삼 (1883년) 김인승 (화가) 김인엽 김인영 (목회자) 김인오 (1868년) 김인욱 김일해 김일환 (1914년) 김장섭 (정치인) 김장호 (1911년) 김재곤 (일진회) 김재곤 (훈춘정의단) 김재룡 김재순 (대한제국 문신) 김재필 김재홍 (승려) 김재환 (1884년) 김재훈 (음악가) 김정국 (일진회) 김정렬 (1917년) 김정록 (미학자) 김정배 (1902년) 김정석 (1894년) 김정섭 (승려) 김정태 (1869년) 김정해 김정혁 (작가) 김정호 (1885년) 김정호 (1909년) 김정희 (1896년) 김제하 김종구 (1894년) 김종대 (목회자) 김종석 (1918년) 김종순 (1886년) 김종원 (1922년) 김종찬 (화가) 김종한 (1844년) 김종한 (1914년) 김종흡 김주혁 (1893년) 김준모 (군인) 김준보 김준영 (작곡가) 김준용 (1870년) 김준원 (1888년) 김준평 김지순 (승려) 김진국 (1879년) 김진민 (1888년) 김진수 (1872년) 김진수 (목회자) 김진월 김진탁 김진태 (일진회) 김찬욱 김창규 (1920년) 김창두 김창룡 김창수 (1873년) 김창영 (1890년) 김창한 김천애 김철정 김철호 (1899년) 김청암 김춘희 김탄월 김태년 (1893년) 김태동 (1918년) 김태석 (1882년) 김태진 (1905년) 김태집 김태호 (1908년) 김태흡 김택현 (일진회) 김필희 김하섭 (1887년) 김학성 (1894년) 김학성 (1899년) 김학성 (1913년) 김학응 김학진 김한 (1909년) 김한경 (1881년) 김한경 (1902년) 김한규 (1877년) 김한목 김한송 김한승 (1869년) 김해룡 김해송 김현수 (1875년) 김형근 (1915년) 김형섭 (1878년) 김형숙 (목회자) 김형옥 김형운 김형원 (시인) 김호규 김호중 (일진회) 김홍걸 (경찰) 김홍량 김홍식 (1909년) 김홍준 (1915년) 김화랑 김화준 (1890년) 김환 (언론인) 김활란 김흥수 (관리) 김희덕 (1910년) 김희선 (1875년) 김희작 ㄴ 나기정 (1863년) 나수연 나웅 나일봉 나진 (1881년) 나항윤 남계룡 남궁영 (1887년) 남규희 남백우 남상익 (1878년) 남상철 (1891년) 남승민 (1911년) 남인수 남장희 남정철 남천우 남학봉 남흥우 노기남 노기주 노덕술 노봉익 노상구 노성석 노수현 노영빈 노영환 노용호 노익형 노주봉 노준영 (1892년) 노창성 노창안 노천명 노태식 ㄷ 독은기 ㄹ 리승엽 리종만 ㅁ 맹건호 맹영옥 명인화 모윤숙 문동호 (1898년) 문명기 문명호 (1896년) 문무성 (1895년) 문병서 문승모 문예봉 문정창 문종구 문태준 (1895년) 민건식 민규식 민규현 민대식 민병덕 (1894년) 민병삼 민병석 민병성 (1890년) 민복기 민상호 민영규 민영기 (1858년) 민영린 민영소 민영욱 민영은 민영찬 민영휘 민원식 민재기 (1886년) 민종묵 민철훈 민충식 (1881년) 민형식 (1859년) 민형식 (1875년) 민홍기 ㅂ 박경석 (1875년) 박경양 박경원 (1869년) 박경호 (1898년) 박관수 (1897년) 박근수 (1892년) 박기동 (1874년) 박기석 (1869년) 박기순 박기양 박기채 박기환 (1896년) 박기효 박남규 (언론인) 박노태 박대륜 박도수 박도순 (1888년) 박동균 (1919년) 박동익 박동호 (1891년) 박두영 박마리아 박만서 박명석 (1895년) 박문웅 (1890년) 박범집 박병운 박병철 (1874년) 박보양 박봉순 (만주보민회) 박봉주 (1868년) 박봉진 (1884년) 박부양 박상준 (1876년) 박서양 (1875년) 박석윤 박선철 (1884년) 박순천 박승관 (1912년) 박승봉 박승억 박승원 (1895년) 박승준 (1896년) 박승직 박시춘 박암 (1905년) 박연서 박영래 (1851년) 박영빈 (1896년) 박영선 (화가) 박영신 (배우) 박영준 (1890년) 박영철 (1879년) 박영호 (극작가) 박영효 박영희 (1901년) 박영희 (승려) 박완 (1896년) 박요섭 박용구 (1879년) 박용대 박용섭 (1892년) 박용익 박용현 (1892년) 박용환 박원석 (1923년) 박원수 (화가) 박원식 (만주보민회) 박원찬 박윤진 박을수 (1900년) 박의병 박이순 (1891년) 박이순 (1905년) 박이양 박인덕 박일경 박임항 박재수 (1899년) 박재홍 (1892년) 박정서 박정수 (1895년) 박정순 (경찰) 박정욱 (1894년) 박정희 박제균 (1887년) 박제륜 박제빈 박제순 박제승 (1890년) 박제환 (1859년) 박종렬 (1877년) 박준병 (1891년) 박중양 박지근 박지양 (일진회) 박찬범 (승려) 박찬범 (조선귀족) 박철 (1883년) 박철희 (1877년) 박춘금 박춘명 박춘식 (1921년) 박치상 박필병 박해령 (1857년) 박해묵 박해주 박현명 (종교인) 박현모 박형균 (1890년) 박호근 (1898년) 박흥규 (1888년) 박흥식 (1903년) 박희도 (1889년) 박희양 박희옥 반야월 (작사가) 방규환 방순원 방원철 방응모 방의석 방인근 방인혁 방준경 방진태 방태영 방한준 배상명 배상하 (1906년) 배석린 배영춘 배운성 배정자 백낙삼 백낙승 (1886년) 백낙원 백낙준 백남신 백붕제 백선엽 백성수 백영권 백완혁 백윤화 백인기 백중빈 백철 백한성 백형린 백홍석 (1890년) 백흥기 (1885년) 변경삼 변기엽 변설호 변영화 (1886년) 변옥주 변일 변홍규 복혜숙 부완혁 ㅅ 사경욱 사광욱 상호 (1879년) 서광제 서극형 서기순 서기영 (1915년) 서기홍 서범석 서병조 서병주 (1885년) 서병현 서상면 (1867년) 서상훈 (1858년) 서성극 서영덕 (작곡가) 서월영 서은숙 서정국 (1896년) 서정주 서창보 서춘 서항석 서회보 석명선 (1870년) 석주암 석진형 선우갑 선우렴 선우순 선우일 성기운 성낙영 (1860년) 성두식 성원경 성일용 성정수 성주경 성하국 소완규 소진문 소진섭 (1910년) 소진우 소진은 소진하 손계조 손동욱 (법조인) 손목인 손석도 손영기 (관료) 손영목 (1888년) 손응린 손응성 손재하 손정규 손조봉 손종권 (1900년) 손지현 (1867년) 손지환 (언론인) 손창식 손창윤 손치은 손홍원 (1893년) 손홍준 손홍팔 (1899년) 송금선 송문헌 (1892년) 송문화 송병주 (1890년) 송병준 송병헌 송석하 (1915년) 송세태 송순기 (1892년) 송양호 (1887년) 송영 (극작가) 송원홍 송인태 송종헌 송주순 송지헌 (1872년) 송찬도 송창근 송헌빈 송화식 (1898년) 신경균 신고송 신광희 신기석 신봉조 신상묵 신상철 (1924년) 신상호 (경찰) 신석린 신석우 (1869년) 신석정 (1883년) 신석하 (1862년) 신석호 신양재 신용구 (1883년) 신용욱 신우균 (1874년) 신우선 (1873년) 신원배 (관료) 신윤영 신응균 신응희 신익균 (1887년) 신인식 신재영 (1863년) 신정언 신창섭 (1891년) 신창휴 신태건 신태악 신태영 (1891년) 신태유 신태진 (1885년) 신태항 신태호 (승려) 신학진 신현구 (1886년) 신현준 (군인) 신후식 (목회자) 신흥우 신희련 심동구 (1917년) 심명섭 심선택 심영 (배우) 심우섭 (1890년) 심의진 심종석 심종협 심형구 심환진 ㅇ 안광수 (1925년) 안국선 안배항 안병길 (1886년) 안병범 (1890년) 안병춘 (관료) 안석주 안영일 안용대 안용백 안응록 안익조 안익태 안인식 안종철 (1881년) 안종화 안준 (대동민우회) 안창호 (1891년) 안창환 (1887년) 안형식 (1888년) 양국진 (1916년) 양봉화 양성순 양세웅 양원용 양원탁 (1891년) 양익현 양재익 양재창 (1885년) 양재하 (1883년) 양재하 (1906년) 양재홍 (1878년) 양정묵 양정수 (1912년) 양주삼 양홍기 (1894년) 양홍묵 어담 어용선 (1869년) 어윤적 엄민영 엄상섭 엄인섭 엄주명 엄주완 엄주익 (만주보민회) 엄준원 엄창섭 (1890년) 엄태영 (1875년) 엄형섭 여경엽 여구현 여규형 여운홍 염규환 염중모 염창섭 (1890년) 예종석 (1872년) 오건일 (1913년) 오경린 (1846년) 오광은 오국영 오극선 오긍선 오기선 (신부) 오두환 (1883년) 오문강 (1908년) 오문환 오병문 (1899년) 오성덕 오세윤 (1894년) 오세호 (1885년) 오세흥 오숭은 오승근 (1908년) 오영건 오영세 (1889년) 오영전 오완수 (1898년) 오용묵 (1854년) 오용순 오유영 오응선 (천도교) 오재풍 오정민 오제영 오준영 (1889년) 오진영 (1879년) 오치한 오태여 오태영 (1871년) 오태환 (1872년) 오해건 왕유식 왕인식 왕종성 (1878년) 왕희필 우종현 (1882년) 원대규 원덕상 원병희 원세기 원용국 (1891년) 원용덕 원윤수 (1887년) 원은상 원응상 원의상 원정한 원종억 (1902년) 원진희 (1888년) 원훈상 위기철 (1889년) 위정학 위종기 유각경 유갑수 (1879년) 유관희 (1891년) 유광렬 (1880년) 유광렬 (1898년) 유기덕 (1884년) 유기량 유기성 (1881년) 유기호 (1881년) 유동작 유두환 유만겸 유맹 (1853년) 유명한 (기업인) 유병의 유빈겸 유상범 (1868년) 유성렬 (1866년) 유성준 (1860년) 유승렬 (1893년) 유승운 유승해 유승흠 (1876년) 유시태 (1890년) 유시환 유억겸 유영 (1892년) 유영준 (1902년) 유완종 유원식 (군인) 유익렬 유익환 유인수 (1880년) 유일선 유장안 유재기 (목회자) 유재환 (승려) 유재흥 유정수 (1857년) 유중희 (1904년) 유진명 (1880년) 유진세 유진순 (1881년) 유진영 (법조인) 유진오 유진찬 유진창 유진혁 (1882년) 유진호 (1861년) 유진후 유창렬 (1897년) 유치진 유태설 유태영 (1874년) 유태훈 (1908년) 유학주 유헌열 유혁로 유홍순 유홍종 (1885년) 유흥세 윤갑병 윤강로 윤건용 윤관 (1897년) 윤길중 윤남철 (1881년) 윤덕영 윤두헌 윤명선 (1900년) 윤명수 (1876년) 윤범행 (1896년) 윤병희 (1870년) 윤사혁 윤상구 (1904년) 윤상범 윤상익 (1875년) 윤상필 윤상학 (1887년) 윤상희 (1899년) 윤석중 (1893년) 윤석호 (1865년) 윤성보 (1861년) 윤성희 (1877년) 윤승로 (1887년) 윤시병 윤영구 (1868년) 윤웅렬 윤의섭 (조선귀족) 윤익선 (1871년) 윤자록 윤정식 (일진회) 윤정현 (1882년) 윤종화 (1908년) 윤창현 (1859년) 윤철균 윤치소 윤치영 윤치오 윤치호 윤태림 윤태빈 윤태일 (1918년) 윤택영 윤필오 윤하영 (1867년) 윤하영 (목회자) 윤학영 (1863년) 윤해영 (시인) 윤헌구 (1871년) 윤효중 윤희구 윤희재 (1892년) 은성학 은한섭 이각 (1884년) 이각종 이갑용 (관료) 이강식 (조선귀족) 이강원 (1863년) 이강혁 (1884년) 이건영 (화가) 이건춘 (1873년) 이건하 이겸제 이경빈 이경식 (1883년) 이경우 (조선귀족) 이경재 (1880년) 이계록 (1906년) 이계석 (1874년) 이계한 이공후 이광래 (극작가) 이광수 이교승 (1878년) 이교식 이국전 이규남 (가수) 이규완 이규원 (1890년) 이규진 (1890년) 이규한 (1890년) 이규환 (조선귀족) 이근명 (1840년) 이근묵 이근상 (1874년) 이근상 (1916년) 이근수 (1889년) 이근우 (1877년) 이근직 (1903년) 이근창 (1913년) 이근택 이근호 (조선) 이금룡 이긍종 이기 (1855년) 이기건 이기동 (1885년) 이기명 (1896년) 이기방 이기세 (1888년) 이기승 (1872년) 이기용 이기원 (1880년) 이기주 (1883년) 이기찬 (1886년) 이기홍 (관료) 이능섭 (1907년) 이능세 (1883년) 이능화 이단 (1896년) 이달용 이대영 (1874년) 이대영 (1889년) 이덕용 (1923년) 이덕응 (1861년) 이덕진 (승려) 이도익 이돈화 이동성 (1872년) 이동우 (1897년) 이동욱 (목회자) 이동혁 (1875년) 이동화 (1893년) 이동훈 (조선귀족) 이두황 이만규 (1868년) 이만식 (1894년) 이만용 (1886년) 이만준 (1905년) 이면상 이명교 이명구 (1892년) 이명섭 (1886년) 이명세 (1893년) 이명우 (영화 감독) 이명직 (목사) 이명환 (1881년) 이명흠 (1902년) 이묘묵 이무영 (소설가) 이문주 (1884년) 이문하 (1872년) 이민영 (1877년) 이민하 (1891년) 이민호 (1900년) 이범관 (1888년) 이범래 (1868년) 이범승 이범익 (1883년) 이범찬 (관료) 이범철 (일진회) 이범팔 이병건 (1881년) 이병교 (1880년) 이병길 이병도 이병렬 (1870년) 이병립 (1874년) 이병무 이병민 (1857년) 이병식 (1892년) 이병옥 (1913년) 이병용 (1905년) 이병일 이병재 (1903년) 이병주 (군인) 이병천 (1893년) 이병학 (1866년) 이병휘 (1851년) 이보담 이봉로 이봉룡 이봉상 (1916년) 이봉의 이봉종 (1883년) 이사은 이상기 (1898년) 이상범 (1897년) 이상진 (1919년) 이상철 (1859년) 이상협 (1893년) 이서구 (1899년) 이서향 이석구 (1897년) 이석규 (1910년) 이석기 (1908년) 이석두 이석훈 (1908년) 이석희 (1884년) 이선호 (1874년) 이선호 (1881년) 이선홍 (1895년) 이성근 (1887년) 이성재 (언론인) 이성환 (1900년) 이수현 (법조인) 이숙종 이승구 (1885년) 이승녕 (1879년) 이승우 (법조인) 이승정 (1906년) 이승채 (1874년) 이승칠 이심훈 (1901년) 이영개 이영관 (1888년) 이영근 (1910년) 이영식 (1874년) 이영주 (1918년) 이영찬 (1896년) 이영택 (1902년) 이오익 이완구 (만주보민회) 이완용 이완용 (1872년) 이완종 (1884년) 이용구 이용석 (1890년) 이용설 이용수 (1889년) 이용원 (1832년) 이용원 (헌병) 이용의 이용태 (1854년) 이용한 (1875년) 이용휘 (1892년) 이우식 (1901년) 이우영 (1903년) 이운붕 (1894년) 이원국 (1861년) 이원규 (1890년) 이원보 이원수 (작가) 이원영 (1910년) 이원우 (경찰) 이원찬 (1893년) 이원창 (1886년) 이원호 (1884년) 이윤세 (1890년) 이윤영 (1884년) 이윤용 (1854년) 이윤종 이은우 (1881년) 이응준 (군인) 이익상 이익화 이인범 이인섭 (언론인) 이인수 (만주보민회) 이인용 (조선귀족) 이인직 이장우 (1871년) 이장훈 (조선귀족) 이재각 이재곤 (1859년) 이재극 이재명 (영화인) 이재완 이재정 (1846년) 이재학 (1904년) 이정근 (만주보민회) 이정로 이정섭 (언론인) 이제정 이종국 (1875년) 이종덕 이종린 (1883년) 이종섭 이종승 (1923년) 이종욱 (승려) 이종은 이종준 (1907년) 이종찬 (1916년) 이종춘 (관료) 이종태 (작곡가) 이종택 (1894년) 이주영 (1837년) 이주일 (군인) 이준상 (1840년) 이준식 (1894년) 이준용 (1870년) 이중수 이중환 (1895년) 이지용 이진호 (1867년) 이찬 (시인) 이찬용 이창근 (1900년) 이창수 (언론인) 이창수 (조선귀족) 이창용 (영화인) 이창훈 (조선귀족) 이철 (1903년) 이충건 (1872년) 이충세 이충영 이태순 이태용 (정치인) 이태준 (승려) 이태희 (1911년) 이택규 (1875년) 이택주 이택현 이풍한 이필우 (영화 감독) 이하영 이학규 이학재 (실업인) 이한림 이한창 이항구 이항녕 이항발 이항직 이해국 이해수 (만주보민회) 이해승 이해용 이해익 (1905년) 이해창 (1865년) 이헌구 이형근 이혜구 이호 (1914년) 이혼성 이홍묵 이홍재 이회광 이흥재 이희덕 이희두 이희순 이희적 인정식 인창환 인태식 임낙호 임동혁 (작곡가) 임문석 임문호 임문환 임병식 임석진 임선규 임선재 임선준 임숙재 임영찬 임용길 임응구 임종상 (1885년) 임창수 임창하 임학수 (목회자) 임학수 (시인) 임한룡 임헌영 (1888년) 임헌평 임흥순 ㅈ 장경근 장규원 장기창 장대익 (1879년) 장덕수 장덕조 장도환 장동환 장면 장상철 장석원 (1883년) 장석주 (1848년) 장성환 장세정 장수길 (1911년) 장용관 장우성 장우식 (1886년) 장운경 장윤식 장응상 장응진 장인원 장준영 (1906년) 장지량 (만주보민회) 장지연 장직상 장헌근 장헌식 장혁주 장홍범 장홍식 (1882년) 장후영 전기현 (1909년) 전덕룡 전봉덕 전부일 (1899년) 전석영 전성욱 전승수 전예용 전창근 (영화 감독) 전창림 전필순 정건유 정관조 정광조 (1883년) 정교원 정규환 정기창 정낙용 정난교 정대현 (정치인) 정동식 (1868년) 정두화 정만조 정민조 (1903년) 정병조 정병헌 정봉시 정비석 정상인 정석모 (1871년) 정석용 (1878년) 정순현 정연기 (1891년) 정용신 정우택 (1889년) 정운복 정운성 정인과 정인섭 정인익 정인택 (1907년) 정인택 (소설가) 정인하 정인흥 정재봉 정재학 (1856년) 정종여 정주영 (1860년) 정진홍 정찬선 정창윤 정천모 정춘수 정충원 정충의 정태균 (1884년) 정한조 정해붕 정호봉 정훈 (군인) 조경하 조경호 (1887년) 조기간 조기홍 조대호 조덕하 조동민 조동식 조동윤 조동희 (1856년) 조두남 조명암 조민희 (1859년) 조병건 조병교 조병렬 조병상 조병학 조상만 조상옥 조성근 (1876년) 조성엽 조승제 (목회자) 조연현 조영희 조용만 조용순 조용호 (1918년) 조우식 조원성 조원흥 조인성 (일진회) 조일명 조재영 (1875년) 조종춘 조종훈 조중구 조중수 조중응 조중헌 조진만 (1903년) 조진태 조진호 (경찰) 조춘원 조택원 조희갑 조희련 조희문 조희연 (1856년) 조희창 주림 주성근 주시헌 주영섭 주영환 (1882년) 주요한 지성렬 지희열 진양근 진용섭 (경찰) 진의종 진학문 진희규 ㅊ 차남진 차사백 차상명 차재정 차종호 (관료) 차준담 채규항 (1892년) 채만식 채병덕 채필근 천장욱 최경진 최기남 최남선 최동 최두연 최두천 최린 최만달 최명하 최문경 (정치인) 최병주 최병혁 (1878년) 최병협 최상돈 최석민 최석하 최석현 최순흥 최승렬 최승일 (1901년) 최승희 최안국 최양호 최연 (1897년) 최연국 최영년 최영주 (1906년) 최용달 최운봉 최운섭 최운하 최윤 (1886년) 최윤주 최익하 최인규 (영화 감독) 최인범 최인용 최재서 최재엽 최정규 (1881년) 최정덕 최정묵 최정원 (조선귀족) 최정희 최주성 최주종 최준집 최지화 최지환 (1882년) 최진태 최창락 (경찰) 최창조 최창학 (1891년) 최창현 (관료) 최창호 (1891년) 최창홍 최취허 최탁 (1892년) 최태봉 최팔근 최하영 최항묵 최형직 (1892년) 최형직 (1895년) 최희남 ㅌ 탁춘봉 ㅍ 피성호 ㅎ 하준석 하판락 한경원 한교연 (일진회) 한규복 (1875년) 한기방 한남규 한동석 (1909년) 한복 (1914년) 한상기 (작곡가) 한상기 (조선귀족) 한상룡 한상봉 (1876년) 한상억 (1898년) 한석명 한영원 한영휘 한익교 한정석 (1883년) 한종건 한준석 (1877년) 한진창 한창동 한창수 한창회 함대훈 함상훈 함성욱 (법조인) 함세덕 함화진 함희창 허기락 허기열 허명훈 허섭 (1885년) 허영 (영화 감독) 허영호 (정치인) 허진 (1853년) 허진 (법조인) 허진성 허하백 현기봉 현상윤 현석호 현시달 현영섭 현은 현재덕 현제명 현준호 현채 현헌 홍긍섭 홍난파 홍병선 홍사익 홍성연 홍순봉 홍승구 홍승균 홍승근 홍승목 홍승원 홍양명 홍영선 홍우석 홍운표 홍윤조 홍인석 홍재하 홍종국 홍종억 홍종인 홍종철 (1890년) 홍준표 (1873년) 홍진기 홍찬 홍창섭 홍청파 홍충현 홍치업 홍태욱 홍택기 홍헌표 홍희 (1884년) 황덕순 황벽응 황신덕 황의필 황종국 (1891년) 황종률 (구세군) 황종률 (정치인) 황철 흥친왕 분류: 한국의 일제 협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