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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요1:40-42/ 문기태목사 2019-03-01
가능성 /요1:40-42/ 문기태목사 2019-03-01 01:19:55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요 1: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요 1: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를 겪는 어린 소녀 헬렌 켈러를 만난 설리반 선생은 헬렌에게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가엾은 소녀 속에 감추인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 소녀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위대한 인물로 변화시켰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가꾸고, 보호하게 됩니다. 소중한 것을 투자하게 됩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현재 모습 그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모습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면서 이미 그렇게 변한 듯이 대하는 능력입니다. 괴테는 "한 개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는 사람 대하듯이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새롭게 보고 다르게 보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평범속에서 비범을 보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연약함 속에서 강함을 보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작은 만남속에서 영원한 미래를 보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남이 알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속에 감추인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는 능력입니다. 조각가 미켈란 젤로가 어느날 돌을 하나 발견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 다윗이 걸어나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현재의 모습 그대로 보며 평범하고 흔한 돌로 보았지만 유명한 조각가는 돌을 보면서 장차 조각하여 만들어질 작품을 미리 내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흥분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처럼 지금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을 보시며 미래의 가능성을 보십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듬고 성숙케 하였을 때 변화되어 헌신할 모습을 미리 보시고 감격하십니다. 예수님의 눈은 사랑이 가득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비전을 보셨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그들이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작은 사람이 천을 이루는 것을 보셨습니다. 무명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유명인사가 되는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지역적인 인물이 세계적인 인물이 되며, 비천한 사람이 존귀하게 쓰임받을 것을 내다 보셨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이 위대하게 되는 비전을 보셨습니다. 비전이란 하나님의 안목으로 사람을 보는 능력입니다. 사람은 인정해 주는 대로 변하고 믿어주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윌리암 제임스는 "인정받으려고 하는 갈망은 인간의 뿌리 깊은 갈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를 바라보며 비전을 품고 인정해주고 믿어주면, 그 사람은 놀랍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렇게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 제자들의 모습은 참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서 비전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유능하고 큰 인물인 것처럼 대하셨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은 하나같이 유능하고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시몬을 처음 만나셨을 때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흔들리는 갈대' 라는 뜻의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뜻인 게바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게바는 아람어로, 베드로라는 이름과 같은 뜻인 반석이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시몬이 장차 초대교회에서 반석같은 존재가 될 것을 내다 보셨습니다. 지금은 시시하고 허물 투성이이며,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기를 잘하는 연약한 사람이나 장차 큰 반석과 같이 요동하지 않고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가 될 재목으로 보셨습니다. 시몬에게서 비전을 보신 예수님이 시몬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 믿음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름을 바꾸어 부르신 것은 예수님께서 비전을 보셨을뿐만 아니라 시몬 스스로도 예수님처럼 비전을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흔든릴 때마다 '내 이름은 반석이야! 예수님이 나를 반석처럼 성장시켜 주실거야. 나는 반석처럼 생각하고 반석처럼 행동해야 해.'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승리하는 삶에 반드시 잇어야 하는 것은 긍정적인 자아상입니다. 긍정적인 자아상은 자신을 가치있게 여기는 자부심입니다. 자부심이 잇으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자심감이 있으면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생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행동이 다릅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매력적으로 변해갑니다. 사람을 끄는 힘이 있습니다. 자신감이 잇는 사람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등감에 시달립니다. 자기 비하에 사로잡히고 자기 멸시와 자기 학대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도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판과 상광없이 여전히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모습 때문에 오랫동안 괴로와했습니다. 열등의식은 평생 집요하게 우리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괴물입니다. 지나치게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교만함이 사로잡히는 것도 나쁘지만 지나치게 자기를 비하하고 학대하는 것은 더 나쁩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레미야는 "나는 어린아이라 말할 줄을 모릅니다."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열방의 선지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면서 하나님을 뵈었도다." 라고 말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위대한 선지자로 삼으셨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엎드린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은 탁월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위기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불행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기드온이라는 젊은이를 만나 " 큰 용사여!" 하고 부르십니다. 기드온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를 향해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 하시는 말씀을 들었으나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미약한 군대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구할만한 용맹스런 장수도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 몰래 숨어서 포도주틀에서 밀이삭을 조금씩 타작하는 겁장이 소년이었습니다. '나같은 겁많고 평범한 사람을 설마 하나님이 보내셔서 그런 큰 일을 이루실까?' 하며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범한 기드온에게서 가능성을 보시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에게서 탁월한 지도력을 끌어내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축복된 길로 이끌고 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본래부터 비범한 사람을 찾아 다니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속에서 가능성을 보시고 먼저 그 생각을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많은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는 거인이 잠자고 있습니다. 천재성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오묘하신 손길로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지헤와 능력이 함께 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늘 자신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려면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배와 그물을 포기한 것처럼 지금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눈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습에 집착하면 새로운 미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과거 생각의 결과입니다. 오늘 새로운 생각을 선책하면 미래가 새롭게 열립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능력있고 더 위대하고, 더 가능성이 충만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바라보던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세요. 열등감에 사로잡혀 부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습관을 내려 놓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세요. 그리하여 자신감을 가지세요. 여러분도 깜짝 놀랄 미래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이름만 바꾸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로 부르시고 양육하고 훈련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마음껏 성장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바다위를 걷는 모헙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한 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가치를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면 그를 보호하고 소중한 것을 투자하여 가꾸어 줍니다. 생명을 쏟아부어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비전과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윌리엄 워즈워드는 "사랑은 최선인 것을 더욱 좋은 것으로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기에 그들안에 있는 최선의 것을 최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의 비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마크 트웨인은 "당신의 꿈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비전을 소중히 여기시고 여러분안에 잠재된 가능성을 보시고 개발시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변하기 잘하고 겁많은 베드로 속에서도 교회의 반석을 발견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뢰의 아들 이란 별명까지 붙은 거칠고 급한 성격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 속에서 교회의 기둥을 발견하셨습니다. 주님은 무엇이나 의심부터 하는 졸장부 도마 속에 역사의 빛 을 발견하셨습니다. 주님은 착취와 배신을 일삼던 삭개오 속에 재생의 희망을 발견하셨습니다. 주님은 병약한 바울 속에서 교회의 터전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나 같은 인간 속에서도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고 초청하십니다. 그 분을 신뢰할 때 그 분을 신실하게 따라갈 때 비로소 우리의 가능성이 실현되는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 삶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 가능성을 펼쳐가는 것, 내가 성공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양육받아 변화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랑과 끈기로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 내기까지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으로 끝나고 말 인생을 베드로가 되어 위대하게 쓰임받도록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을 성공시키는 자가 되십시요. 그리고 자신도 성공하는 자가 되십시요.
가슴에 불꽃이 타오르게 하십시오 /롬12:9-11/ 문기태목사 2019-03-10
가슴에 불꽃이 타오르게 하십시오 /롬12:9-11/ 문기태목사 2019-03-10 07:19:33 read : 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롬 12:9)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한 것은 미워하고, 선한 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롬 12:10) 육친의 사랑으로 서로 다정하게 대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십시오. (롬 12:11) 열심을 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어떻게 하면 슈퍼스타를 키울 수 있나"를 알아보기 위해 스포츠, 과학, 예술 부문에서 뛰어나게 이름을 떨친 사람들 120명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답니다. 결과는 그들을 키운 대부분의 부모는 열성파였다고 합니다. 그들의 부모는 보통 부모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과 정성을 아이에게 쏟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전문가는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열정은 힘이 있습니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열정을 '불타는 열의 또는 관심'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템플턴은 "우리가 좋아하고 간절히 바라는 어떤 목표를 추진하도록 고무하는 활동적인 에너지"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열정은 전등을 밝히는 발전기와 같은 것으로 인간을 빛나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 에너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험한 산도 비포장 도로도 넉넉히 넘어갈 수 있습니다. 헬라어로 열정은 'entheos'인데, 'en'은 '함께'라는 의미이며, 'theos'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열정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에게 나타나는 삶의 에너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열정을 닮아갑니다. 하나님도 열정이 가득하신 분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9:7)" 하나님은 시대마다 열정의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을 품은 열정의 사람을 통해 홍해를 가르기도 하고, 요단강을 건너게도 하며,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열정의 사람에게는 장애물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바울은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권면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여러분, 바울의 열정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람과 복음에 열정을 쏟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열을 다해 생을 불태웠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맡겨준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부를 하는데도, 직장에서 일을 하는데도, 가정 생활을 하는데도, 사업을 하는데도, 신앙 생활을 하는데도 열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열정을 가집시다. 삶에 대한 열정, 사명에 대한 열정, 비전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집시다. 열정의 불을 우리 안에 지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마음에 사랑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9-10) 누군가를 사랑을 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무엇인가를 사랑해도 굉장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열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렇지만 사랑이 식으면 에너지도 사라집니다. 하나님도 열정적인 사랑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을 구원하시려는 열정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죄를 담당하시려는 열정으로 표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라고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랑하면서 살면 행복하지만 사랑이 없는 차가운 마음을 안고 살면 불행합니다. 사랑하며 살면 인생이 아름답지만 사랑이 식어버리면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왜 책망하셨습니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인간의 사랑은 변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첫 사랑도 식을수 있는 것입니다. 오죽 사랑이 잘 변하면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요? 에베소 교인들의 주님 사랑, 성도 사랑도 그렇게 변질되어간 것입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유지했던 그 따끈했던 사랑도 언제부터인가 식어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사단의 계략으로 이단이 많이 발생하여 성도들을 현혹하자 서로가 의심의 눈으로,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경계하다가 보니 사랑이 식어지고 그러면서 열정도 사그러들었습니다. 사랑과 열정을 잃어버린채 교회가 가진 생명력도 사라졌습니다. 그럼 어떻게 열정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첫 사랑의 감정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첫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은 기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첫 사랑을 잃어가는 부부들에게 상담자들은 종종 추억 여행을 권합니다. 두사람이 처음 만났던 곳, 첫 키스를 나누었던 곳, 프로포즈를 했던 곳을 찾아가라고 합니다. 이런 여행을 통해서 그 첫 사랑의 감회를 되찾을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주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난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의 감격을 맛보며 사랑을 표현했던 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언제부터 내가 그 사랑에서 멀어져 갔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회개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듯 내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감사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뜨겁게 교통하던 그 경건의 자리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주님의 사랑스런 몸인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교회의 지체인 교인들을 사랑합니다. 몸은 힘들어도 교인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기쁨입니다. 누가 시키지않아도 자원하여 더 많이 섬기고 싶어집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개의치 않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사랑하여 하루종일 업어주어도 즐겁습니다. 냄새나는 기저귀를 갈아주며 행복해합니다. 심지어 보채고 우는 아기를 달래주면서도 지겹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사랑이 그 마음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첫 사랑의 감격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사랑으로 가슴이 뛰는 성도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으며 행복하고 감격으로 벅찬 가슴을 가진 성도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 열심히 섬기는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배시간마다 주님께 사랑을 표현하며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 심령을 성령의 불을 붙여야 합니다.(11) 뉴욕 거리에 풍선장수가 있었습니다. 수소가스를 넣은 노란색, 파란색, 빨강색, 초록색풍선이 둥둥 떠 있었습니다. 흑인 소년이 와서 풍선장수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까만 풍선도 다른 것들 처럼 저렇게 뜰 수 있을까요?" 풍선장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 꼬마야! 풍선이 뜨는 것은 풍선의 색깔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풍선안에 들어 있는 것 때문이란다" 신앙도 외형보다 중요한 것이 내용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우리 안이 성령님으로 충만해 있어야 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11절을 '열심을 내서 부지런히 일하며,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지금 뜨겁습니까? 성령으로 뜨거워진 마음을 안고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열정적으로 살아가도록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공급해주십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기도합니다. 열정적으로 전도합니다. 열정적으로 봉사합니다. 열정적으로 사랑합니다. 열정적으로 찬양합니다. 반대로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열정적인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습니다. 누가 기도하는 것, 전도하는 것, 봉사하는 것, 찬양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불평합니다. 방해합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불타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사람, 이 세상의 병든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찾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을 위한 열심으로 가득 찬 사람을 찾습니다. 무관심, 물질주의, 냉혹함, 그리고 이기주의가 편만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은 그리스도인의 불타는 마음입니다. 불타는 마음의 전도자 요한 웨슬리에게 동료 사역자가 어떻게 청중을 모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전도자가 불탄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불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웨슬리의 제자 아담 클라크의 묘비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다가 나는 타서 없어졌노라"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교회에 한 병든 소녀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너무 좁아 소녀가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교사가 소녀에게 말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렴. 지금은 너를 받아줄 수가 없구나" 소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이 소녀는 교회에 가지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소녀의 베개 밑에서 목사에게 보내는 짧은유서와 동전 57센트가 나왔습니다. 그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도 교회에 가고 싶었어요. 제가 모은 이 돈으로 교회를 좀 넓게 지어주세요" 목사는 소녀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유서를 읽어주었습니다. 소녀의 유언에 사람들의 마음이 불 붙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금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 템플교회는 크게 증축되었고 남은 돈으로 `선한 사마리아병원'과 미국의 명문인 템플대학이 설립됐습니다. 작은 불꽃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작은 불꽃 하나가 무서운 불길을 만든 것입니다. 아주 어리고 가난하며 병든 소녀의 가슴에 타오르던 작은 불씨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옮겨갔고 그 결과 상상할 수 없을만큼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여러분도 열정의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어떤 큰 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작은 불씨만 남아있다면 강력한 능력이 됩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품은 작은 불씨가 됩시다. 여러분, 우리 모두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화됩시다. 마음에 사랑의 불을 지피고 서로 섬기는 일에 열심을 품읍시다. 심령에 성령의 불을 지피고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깁시다. 특히 생명을 구원하는 복음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나아갑시다. 여러분 모두 마음에 사랑의 불, 성령의 불이 붙어 세상을 거룩한 에너지로 충만하게 만드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강력한 무기 /골2:13-15/ 문기태목사 2019-03-14
가장 강력한 무기 /골2:13-15/ 문기태목사 2019-03-14 00:48:06 read : 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골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여러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현대전은 무기의 대결입니다. 숫자가 많아도 강력한 무기앞에서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패배하지 않습니까? 정신적으로 무장을 하고 자살특공대를 조직해도 소용없습니다. 지하동굴을 깊이 파고 인간방패를 앞세워도 안됩니다. 강력한 파괴력을 갖춘 무기를 최신 전자장비를 통해 정밀하게 목표지점을 조종하여 공격하니 후세인도 당해내기가 어렵습니다. 김정일도 간담이 서늘할 것입니다. '가장 강한 것은?'하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가장 강한 것은 돌이다. 그러나 돌을 깨뜨리는 것은 쇠다. 쇠를 녹이는 것은 불이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다. 물은 구름에 흡수되어 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날려간다. 바람은 사람을 어찌하지 못한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런고로 죽음이 가장 강하다. 죽음보다 강한 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십자가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아십니까? 십자가는 제아무리 강한 대적으로부터도 승리를 가져오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우시는 무기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싸워 마귀 사단으로부터 승리하셨습니다. 15절 말슴에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표준 새번역 성경은 '그리고 모든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의 무장을 해제시키셔서 그들을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포로로 내세우심으로써,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골 2:15)' 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 것은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십자가는 아주 처참한 죄인에 대한 처형법입니다. 아주 부끄러운 죽음입니다. 저주스러운 죽음입니다. 인류역사상의 가장 비참한, 가장 부끄럽고, 가장 저주스러운 죽음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자가가 승리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십자가일 수 있습니까? 십자가 안에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겨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생명력이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곧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삶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도 승리하려면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면 안됩니다. 십자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에 바로 몇 시간 후에 십자가를 지실 것인데 제자들 앞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집니다.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신 게 아니라 승리하시고 십자가를 졌습니다. 승리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안에 나타난 신비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어 가는 시간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선언이요 여유요 엄청난 위세입니다. 비록 죽으면서도 그렇게 죽이는 자들을 여유 있게 용서하고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는 절대로 어쩔 수 없어서 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승리입니다. 억지로 도망가다가 능력도 없고 지혜도 없고 일이 꼬여들어서 할 수 없이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절대로 실패가 아닙니다. 성경이, 계속 증거하는 그 주제의 초점이 어디 있느냐 하면 십자가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정된 것이요 십자가는 계획된 것이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 미리 약속된 것이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 거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 가서 "나사로야 나와라"고 말씀하시자 죽은 사람이 걸어 나옵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 십자가에 죽었다 이 말이에요. 그 능력을 가지신 분이 말없이 십자가를 집니다. 그렇게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 왜 말없이 죽어갔는지 여러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거기에 십자가의 비밀이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진정한 승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완성이요 이것은 예언의 성취요 이것은 본래부터 계획되었던 것이요 그것이 때가 되자 결정적인 시간에 예수님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어떤 비밀이 숨겨있기에 강력한 무기입니까? 1. 희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왜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희생하고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십자가를 거부하고 무죄를 주장하고 천사들을 동원하여 싸워서 군인들을 물리쳤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여전히 율법아래 놓여 있고 여전히 죄에 눌려 살다가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기꺼이 감수하시고 고통중에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의 죄가 다 옮겨졌고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우리를 살리셨고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게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희생이 담긴 예수님의 사랑의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2차대전 때 일본군은 태국 콰이강에 다리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이는 동남아를 모두 점령하려는 전략 가운데 가장 큰 계획으로 군사와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일본군은 영국군 포로를 이용,콰이강의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은 중요한 장비를 잃어버렸습니다. 일본군은 영국 포로들이 조직적으로 작업을 방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로들을 연병장에 집합시켜 놓고 총부리를 들이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장비를 숨긴 자는 자수하라.만일 셋을 셀 때까지 자수하지 않으면 모두가 총살이다. 하나,둘… 셋을 외치려는 순간 한 병사가 앞으로 나서며 “내가 숨겼습니다. 강물에 던져버렸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즉석에서 총성이 울리고 그 포로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일본군 창고에서 그 장비가 발견되었습니다. 일본군이 그곳에 잘 간수해놓고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군인은 다른 이들을 살리려고 스스로 자원해서 희생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생명을 얻은 이치가 이와 비슷합니다. 그 영국 군인은 자기도 죽을 운명에서 값있게 죽으려고 용기를 나타냈지만 예수님은 죽음과 상관없는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십자가를 자원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희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오늘 믿는 사람은 많은데 점차 사랑과 희생이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교회안에서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희생적인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희생적인 사랑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뭐니뭐니 해도 사랑의 계시요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의 승리입니다 여러분, 사랑의 뜨거운 마음을 전달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의 진실한 언어는 희생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요즘 부모들이 아들 딸들에게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다 해주는 것이 문제라고요. 부모님이 아무리 사랑한다, 사랑한다 해도 그리고 뭐, 이거 해주고 저거 해주고. 자녀들 장가가고 시집가는 데다가 뭐 큰집을 사주고……차사주고 모든 것 다 해주지 않습니까? 저들도 저들대로 고생을 하며 살아가면서 사는 맛이 있어야지. 모든 것을 원하는대로 다 해주니까 쉽게 살아갑니다. 다 좋을 것 같지요? 부모가 옛날에 고생했다고 해서 "너는 고생하지 마라"해서 집 사주고 차 사주고 다 사주는데, 좋을 것 같지만 틀림없는 것은 이렇게 사랑 받은 자녀는 행복지수가 낮습니다. 그리고 불효자가 됩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어려워서 밥 한끼를 제대로 못 주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면서 키운 그 자녀는 커서 철저하게 효자가 됩니다. 그리고 행복지수가 더 높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희생하며 사랑하는 것을 보고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희생만이 사랑의 효과적 언어입니다. 많은 고난 속에 희생하는 사랑은 진실합니다. 저 분이 얼마나 희생하나? 나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하나? 그걸 보고야 사랑을 느낍니다. 사랑을 수용합니다. 사랑을 믿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살리기 위하여 그는 죽으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 안에 엄청난 사랑이 계시되어있고 그 사랑 안에 나의 삶의 의미가 계시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여러분, 이것은 의의 표식입니다. 불의에 대한 의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에요. 죄란 그저 흐지부지 용서할 수가 없는 거예요. 죄 값은 사망입니다. 누가 당하든지 당해야 되는 것이에요. 우리나라 정치처럼 흐지부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분명하게 밝혀서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으로 벌을 받아야지요. 누가 당하든지 당해야지요. 그냥 슬쩍슬쩍 넘어가는 게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심판은 엄연합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그런고로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것이에요. 죽지 않고는 절대로 살리지 못하니까요. 그걸 아셔야 됩니다. 어느 마을이 아주 청교도적인 정신을 지켜 온 마을인데, 깨끗하게 정결하게 술집도 창녀도 없는 것을 자랑삼고 사는 좀 엄격한 마을이 있는데, 어느 처녀가 어쩌자고 결혼하기 전에 임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요 또 그런가 하면 마을 사람들의 궂은 일은 온 마을의 궂은 일은 그 수도사가 하는 거예요. 이런 수도사 한사람이 그 마을에 있었는데 이 처녀가 임신을 했는데 그 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대지 못하면 이것은 간음죄로 추방을 당하게 되고 잘못하면 맞아죽게 됩니다. 그런데 얘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을 말을 안해요. 그래서 지금 추방당하게 되었는데 직전에 하는 말이 "저 수도사"라고 했어요. 수도사는 그대로 끌려가서 많은 몰매를 맞고 고역을 당하고 감옥에 처넣어졌어요. 시름시름 앓다가 감옥에서 죽었어요. 죽은 다음에 시신을 염하면서 보니까 이게 남자가 아니고 여자예요. 남장 여인이었다고요. 모든 사람은 숙연해졌습니다. 이 여자는, 이 수도사는 왜 '그것이 내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왜 안했을까? 저 처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했어요. 내가 죽어야만 그 누군가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십자가는 의의 승리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해서 먼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거기서 완전히 충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충족원리라고 합니다. 충족돼요. 그리고 죄인이 의인처럼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고 희생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죄를 담당하시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죄인들이 모른다면 너무 쉽게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어도 또 다시 자신을 죄로 더럽히고 부끄러운 삶으로 돌아갈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이 사망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시고 책임을 지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를 위해 희생하신 의로우신 예수님을 닮아가며 거룩한 삶을 살며 의롭게 변화되도록 의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의의 승리가 십자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며 무엇을 보십니까? 희생적인 사랑과 더불어 의를 실천하신 예수님의 승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 은혜의 승리가 담겨 있습니다.(14) 또한 이것은 긍휼의 승리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거예요. 율법과 은혜? 은혜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에요. 율법에 대한 은혜의 승리가 십자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소서"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만이 이 십자가만이 이 긍휼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음을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집요하게 우리의 죄를 추적합니다. 우리의 양심을 샅샅이 조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뿐 아니라 생각까지 따집니다. 우리가 범한 단 하나의 실수까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철저하게 파멸로 몰고갑니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쫓아다니며 추궁합니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이야긴즉슨 어떤 여자를 만나 결혼할 욕심으로 따라다녔는데 여자가 결혼을 조건으로 처리할 일이 있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여 가진 것이 부족해서 부득이하여 사채를 조금 빌려 주었답니다. 그런데 아주 악랄한 조폭한테 걸린것입니다. 비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눈덩이처럼 원금이 불어나고 월급이 송두리채 차압당하고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집안의 돈을 끌어 갚으라고 협박을 당해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이 그와 비슷합니다. 잠간의 실수도 눈감아주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추궁하며 죄책감과 죄의 댓가를 요구합니다. 너는 이제 소망이 없다고 하며 죄의 권세아래 팔아버립니다. 절망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듭니다. 지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율법에 대한 승리입니다. 14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는 죽음의 승리입니다. 죽음을 넘어섭니다. 죽음을 초월합니다. 십자가는 생의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의 시작입니다. 그것을 믿고 죽음의 세계를 훌쩍 넘어서는 것이 십자가의 말씀이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생명의 길입니다.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있는 것 같으나 가장 중요한 기회는 딱 하나 있어요. 단 한번의 기회. 그것은 바로 곧, 죽음이다. 그 기회를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향하는 길로 맞이하느냐? 아니면 영원한 저주로 끝내는 시간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삽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그 한순간을 작품처럼, 클라이막스로 그렇게 맞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두가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당신은 곧 죽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십시오. 두 번째는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주님을 생각하라.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라. 바로 이것이 나의 일생에 딱 한 번 있는 기회를 가장 귀한 기회로 의미를 바꾸어 놓을 수 있고 방향을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어떤 목사님 북한에 초청을 받아 가서 큰 행사를 치루고 저녁에 파티를 하는데, "목사님, 목사님은 왜 우리를 돕는 겁니까? 무엇 때문에 도우려고 하는 겁니까? 목사님의 아버지가 우리 공산당원에 의해 총살당한 것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북한을 10여년 동안 돕는데, 그 돕는 이유가 뭡니까? 무슨 대가를 요구하는 겁니까?" "대가 없습니다. 내가 평양시내에다가 굉장한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그런 얘기는 안하겠습니다. 내가 목사니까, 뭘 요구한다는 걸 다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보느냐?" 그러니까 "그래도 한 말씀 해주세요." "딱 한마디만 할께요. 예수믿는 사람들 죽이지 마세요. 이것만 약속해주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작년에도 400명 죽였다며. 인정을 하더라고요. 그런고로 기독교인들 죽이지 말아달라고. 그는 말합니다. "안 죽일 수가 없어요." "왜요?" "반동이거든요." "어째서?" "공산당보다 기독교인은 훨씬 셉니다." 왜 세냐고 물었더니 "공산당원들은 죽음을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전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찌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죽는 겁니다. 어쩌면 그렇게 죽기를 기독교인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예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다면 그건 지상의 영광입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기회입니다. 그러니 사양할 리가 없죠. 두려워할 리도 없죠. 승리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승리를 위하여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보장받고 사는 것입니다. 승리를 믿고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승리의 계시가 바로 십자가에 확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이 길을 통하여 승리하시겠다는 것이 아니고 승리의 호산나를 먼저 부르고 당당하게 갈보리 언덕으로 가신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십자가를 사랑하며 살면서 날마다 승리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귀한 만남 /눅5:1-11/ 문기태목사 2019-03-139
가장 귀한 만남 /눅5:1-11/ 문기태목사 2019-03-13 07:42:51 read : 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어떤 사람이 탈무드 신학교 입학을 위해 면접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왜 당신은 이 학교에 들어오려고 합니까?" 탈무드 신학교에 합격한 사람들의 정답은 "좋은 랍비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친근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오십니까? 설교를 통해 위로 받기 위해 나오십니까? 마음을 평안하게 가라앉히려고 나오십니까? 기도하면 일도 잘 풀릴 것 같고 복을 많이 받을 것 같아 나오십니까? 물론 그것이 잘못 되었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며 그의 영이신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예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 헛됩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예수님과의 참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회를 헛 다닌 것이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인생을 헛 살은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이 행복하게 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새로워졌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하루하루 편안하게 먹기 위해서 사는 무의미한 인생이었으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도망자로서 처갓집에 얹혀서 무기력하게 살던 촌부에 불과했지만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수백 만 명의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감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서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삭개오도 돈만 아는 세리 장으로 욕을 많이 얻어먹으며 부끄러운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는 은혜를 베푸는 사람, 인정받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쾌락을 쫓아 살며 손가락질을 받던 부끄러운 여인이었으나 예수님을 만나고는 상처받은 심령이 치유 받고 건강해져 행복하게 변화되어 참 행복을 주시는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도 본래 고기나 잡으며 살던 평범한 어부였으나 예수님 만나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도 멸망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 가운데 멸망해가는 인생을 구하러 하늘 왕좌를 포기하고 오셨건만 그분을 만나서 말씀도 직접 귀로 듣고 큰 능력을 행하는 것도 직접 눈으로 보고 사랑을 온 몸으로 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건만 깨닫지 못하고 사단에게 속아 멸망의 길로 계속 나아간 사람도 많습니다. 부자 청년은 직접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여 진리의 대답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기회가 주어졌으나 재물에 대한 탐욕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가롯 유다는 열 두 제자에 포함되는 특권, 돈 궤를 맡아 관리하는 신임이 주어졌으나 역시 탐욕에 눈이 어두워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고 망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의심하며 따르지 아니하여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실력이 늘고 공부가 즐겁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야 나쁜 길로 빠져들 유혹을 이기고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좋은 목회자와 좋은 성도가 만나야 은혜로운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1.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3) 오늘 본문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번째 만남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시몬은 밤새도록 그물질하였으나 허탕이었습니다. 동이 훤하게 터오는 아침 무렵에 그물을 씻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의 배에 오르십니다. 배를 조금만 띄우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뱃머리에 앉아서 나아온 수 많은 군중에게 진리를 가르치십니다. '참 저 분은 시원시원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구나! 감동을 주고 힘이 솟아나는 교훈을 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만남은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많은 배가 있었지만 예수님이 특별히 그의 배를 선택하여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오늘도 아주 평범하게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만나 주십니다. 처음 시몬의 눈에 예수님은 흔한 랍비 중에 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개인적인 말씀을 하였을 때도 시몬은 "선생이여.."하고 대답합니다. 선생이란 말은 랍비라는 말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잘 아는 것 같소. 그러나 물고기를 잡는 그물질은 내가 더 도사요.'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던가요? 여러분은 예수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여러분 앞에 나타날 것을 기대하십니까? '그래도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적어도 얼굴에 휘황찬란한 광채가 빛나겠지. 그분은 수많은 천사들에 둘러 쌓여 있을 거야.' 여러분이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런 환상을 버리셔야 합니다. 시몬을 찾아 가신 예수님은 적어도 대단히 평범한 옷차림, 평범한 말투, 평범한 인상을 하고 아무 수행원도 없이 단신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매 주일마다 여러분을 찾아 가셨습니다. 어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분은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너의 배를 또는 너의 차를, 너의 집을, 너의 재능을 내가 좀 사용할 수 있겠느냐?"하는 감동을 주시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셨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상처받은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무언가를 지시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몬 처럼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모르고 지나치고 있습니다. '누가 목사님께 내 문제를 일러바쳐서 나 들으라고 저런 말을 하나?' 혹은 '오늘은 설교가 조금 감동적이기는 하구먼' 하면서 마음에 깊이 담아 두려 하지도 않습니다. '설마 그것이 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일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참된 만남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어떤 자매님이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서울의 큰 교회에 가서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많은 교인들 속에 파묻혀 함께 기도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교회가 생각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였구나! 우리 목사님이 정말 좋은 분이었구나!' 하고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왜 전에는 말씀에 은혜도 못 받고 교회에 대한 불평이 많았었지? 진실하지 못한 말에 속아 오해하고 무조건 마음을 닫고 설교도 들으려 하지 않고 교회를 외면하고 있었구나!'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로 그분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정말 잘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매 주일마다 말씀을 통해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말씀을 통해서 절대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2. 개인적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4) 예수님을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선생이여 하고 부르는 시몬에게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지시합니다. 그의 인생에 간섭하십니다. 그가 하는 일에 관여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 시몬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지시를 받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단순한 랍비로 보일 때는 말이 많습니다. 자기가 다 해보았다느니, 밤새도록 수고했는데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식으로 잘난척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랑, 자기 생각, 자기 경험, 자기 의를 내세우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의 큰 특징입니다. 따라서 말씀에 기쁘게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말만 요란하지, 정작 순종할 순간에는 이리저리 빠져나갑니다. 자기만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자기도 다 해보았는데 다 소용없다는 식입니다. 그럼에도 다행스럽게 시몬은 끝에 가서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순종했더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깊은 데에 던져 보았는데 고기가 엄청나게 많이 잡힌 것입니다. 두 배에 고기를 쌓아 놓았는데 배가 잠길 지경입니다. 수 십년 동안 한 번도 단번에 그렇게 잡아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잡은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분이 누구일까? 단순히 랍비라면 이렇게 바닷속을 꿰뚫어볼 수는 없다. 배 잠깐 빌려 주었다고 이렇게 많은 고기를 단번에 잡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저 분은.... 그렇구나 메시야구나!' 비로서 시몬은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빌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선생님 나와 동업합시다. 선생님은 지시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이 굵은 팔뚝으로 다 잡아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돈 좀 많이 벌어봅시다. 원하는 조건을 말씀만 하세요." 이럴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시몬은 자기에게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 준 예수님께 자기를 떠나 달라고 간청하는 것입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좀 더 같이 있으면 고기도 더 많이 잡을 수 있고 좋을 텐데, 왜 떠나기를 간청했을까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배에 가득한 고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 갖다가 팔면 얼마를 벌겠는데..' 그런 생각도 다 사라졌습니다. '저분이 하나님이라면 나를 훤히 들여다 보겠구나 나의 지나온 삶을.. 내가 품고 있는 죄를 다 꿰뚫어 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참 하나님과의 만남은 두려움을 수반합니다. 도무지 함께 있기가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시몬에게 넘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비로소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제까지는 자기가 가장 의로운 줄 알고 다른 사람의 허물이 크게 보여 비난하고 판단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고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고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허물이 많은지를 깨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눈에 자신은 완전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형편없이 보인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 그리고 고칠 점들이 많이 보인다면 그것은 그들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형편없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눈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참 하나님을 통해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참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여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정말 죄인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히 그분 앞에서 합리화하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은혜와 자비를 구하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인 일상의 사건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사명을 주심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런 시몬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일일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열거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지도 손가락질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를 용서할 뿐 아니라 위로하고 사명을 주십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그 심판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시몬에게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고 말씀합니다. 용서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의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십니다. 자비를 입혀주시고 정결함을 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 존귀한 일에 그를 귀히 쓰실 것이라는 굉장한 약속을 주십니다. "너는 물고기만 잡다가 끝날 시시한 인생이 아니다. 사람을 취하는 인생, 수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며 아주 귀하게 사용될 것이다. 꿈과 용기를 가져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시몬 베드로는 그 말씀에 즉각 반응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 말씀을 배우고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고 예수님의 능력을 배우고 예수님의 사역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던 영혼구원의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평생토록 부지런히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교회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만약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그는 아주 시시한 인생을 살다가 이름도 없이 갈릴리 마을 구석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특권을 붙잡았기에 시몬 베드로는 아주 존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엄청난 일을 우리의 생애를 통해 우리와 이루려고 찾아 오십니다.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죄의 용서를 받은 것만 해도 엄청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상속받게 된 것도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향한 큰 계획이 있다. 내가 영원한 상급이 있는 귀한 일에 너를 크게 사용하겠다."라고 하시며 행복한 꿈을 주십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가슴 설레는 약속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귀히 쓰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도록 여러분을 그분께 드렸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아직 그런 꿈과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도 시몬처럼 오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을 취하는 인생이 되어 쓰임 받는 벅찬 감격을 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작은 욕심을 쫓아 시시한 삶을 살다가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으로 머물지 말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주 중요한 일에 귀하게 쓰임 받고 하나님께 칭찬 듣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 가운데 역사 속에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고 백낙준 박사님은 그의 선친은 머슴이었고, 아무 소망도 없었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교회에 충성을 할 때 선교사의 눈에 그의 아들 이 띄었고, 공부를 시켰고, 돌보고, 키웠습니다. 그 후 한국의 거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을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또한 그분은 일상 속에 다가오셔서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시고 거룩한 부담을 주심으로 예수님은 여러분을 만나십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만나시고 예수님과 동행하여 큰 변화를 맛보며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무서운 취소/ 마18:21-35/ 문기태 목사/ 2019-03-09
가장 무서운 취소 마18:21-35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죄를 짓거나 잘못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람들의 그런 허물이나 잘못은 우리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입혀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또한 \'내가 아픈만큼 너도 아파보아라\' 하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우리안에 있는 상처를 아물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고 우리를 철저하게 파괴하고야 맙니다. 우리들에게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지혜로우신 주님께 물어봅시다. 1. 주님은 불쌍히 여기고 탕감해주라고 하십니다.(27,33) 주님은 용서를 묻는 제자에게 빚진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빚을 진 종이 있었습니다. 1만 달란트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1 달란트는 어른 한 사람이 15년동안 일한 품삯입니다. 1만 달란트는 15만년동안 일한 품삯입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돈입니다. 그런데 임금이 종의 빚을 탕감해 준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종에게는 그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의 멱살을 잡고 감옥에 집어 넣었습니다. 그는 자기 입장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지 돈을 받아내려고 했습니다. 가장 쉬운 수단이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가족들이 돈을 빌려서라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조금만 빚진 동료의 입장에서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했더라면 그렇게 야박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에서만 다른 사람을 보려고 합니다. 그의 입장이 되어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 이해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섭섭해합니다. 그래서 밉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야 곤란하게 되든지 말든지 상관할 바 아니고 나만 손해 보지 않을 방법을 찾습니다. 직장동료들과의 관계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교회안에서 지체들과의 관계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잇습니다. 심지어 가정안에서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특히 부부간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이해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참아 줄 수 있습니다. 내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십시오. 내가 받은 상처만 보지 말고 상처준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를 한 번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용서의 정신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내가 더 불쌍한데 어떻게 남을 불쌍히 여길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억지로라도 불쌍히 여기십시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예)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회사공금을 잘못 관리해서 1억이 넘는 돈이 착오가 생겼습니다. 공금횡령 혐의를 쓰고 구속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겨우 살고 있는 집을 팔아 변상조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낙향하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남편과 7년동안 살아오면서 한번도 사랑을 느낀 일 없었습니다. 완벽주의자요 , 빈틈없고 자존심강한 남편을 위해 아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아내를 몰아세우던 그 남편의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비로소 나온 것입니다. 그때 아내는 한 없이 울었습니다. 더 이상 남편이 밉지 않고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1억6천만원을 잃고 남편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만약 실수하고 집까지 날린 남편에게 아내가 핀잔하고 원망하며 그동안 당한것 복수할 기회라고 생각했으면 그런 축복을 맛볼 수 있었겠습니까? 2. 겉으로만 용서하지 말고 중심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35) 우리는 싸우다가 주변 사람의 강권에 못이겨 억지로 화해하는 수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악수하지만 속으로만 \'너 두고보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건 절대 화해가 아닙니다. 진심으로 상대를 용서해야 진짜 용서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먼저 찾아와서 용서를 구하면 마지못해 용서를 합니다. 그러나 속으로 맺힌 것을 그대로 간직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것은 진짜 용서가 아닙니다. 진정한 용서는 그의 잘못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의 죄악을 기억하지도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 놈은 과거에 도둑질 한 놈, 저 놈은 과거에 간음한 놈, 거 놈은 과거에 배신한 놈,\'하고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으시고 과거가 어떻든 지금 거룩해지려고 몸부림치고 성장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기거이 받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처럼 우리도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용서하고 과거의 잘못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빌레몬서에 보면 바울은 오네시모를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옥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바라보는 바울의 안목이 무척 흥미를 끕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몬 1:11)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 살던 노예였는데 집안의 재물을 훔쳐 먼 도시로 도망가 살다가 또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바울 만나 거듭났습니다. 빌레몬서는 그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교회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에베소교회의 감독중에 오네시모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둑질해서 도망다니던 노예가 교회의 중요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진정한 용서가 교회의 유익한 주춧돌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재산에 손해를 입혔을때 빌레몬은 화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고 진심으로 용서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 자신과 여러 사람에게 큰 유익을 가져왓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아주 감동적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은20냥에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합니다.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짐심으로 용서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얼마나 존귀하게 사용하십니까? 만약 그가 형들에게 대한 분노를 평생 품고 살았다면 애굽의 총리가 되기는 커녕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는 지혜자가 되기는 커녕 자신을 해치는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형식적으로가 아닌 진정으로 용서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3. 한 두번 용서하고 더는 못 참겠다고 하지 말고 계속 용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큰 맘 먹고 \"일곱번까지 하오리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체가 잘못할 때 몇 번이나 용서하셨습니까? 여러분은 가족이 잘못할 때 몇 번이나 용서하십니까? 여러분은 직장 동료, 또는 부하직원이 잘 못할 때 몇 번정도 용서하십니까? 두 세번 용서하고 \'참을만큼 참았다!\' 하시지 않습니까?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왕참은 것 몇 번만이라도 더 참아주면 주님께 칭찬받습니다. 사람들에게도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습니다. 따라하십시다. \"적어도 베드로만큼 일곱번은 참자!\" 그래서 일곱번 성공하면 일흔번은 참자! 그러다 보면 일흔번 씩 일곱번도 가능해 질 것입니다. 여러분 도저히 용서가 안될 때 주님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은 그보다 더 큰 여러분의 죄도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잘못했지만 용서해주면 또 죄짓고 용서해주면 또 범죄하고 돌아와 \"주여! 사하소서.\"하면 \"왜 또 그랬냐? 다음에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횟 수 세지 않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무게 따지지 않고 용서하셨습니다. 여러분! 용서가 힘들때마다 \'한 번만 더 참아 주자\'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4.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도 취소됨을 알아야 합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신하가 전액탕감의 선언을 듣고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 해방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자유를 느꼈을 것입니다. 억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취소선언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하늘이 노오래졌을 것 같습니다. 주인이 노하여 옥졸에 붙여 감옥에 가두었을 때 그는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이구나!\'하는 생각과 후회와 절망감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다 용서받을 줄 알았는데 \"용서 취소!\"라는 선언이 주어지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은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 18:35)\' 라고 경고하십니다.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한 살인범이 어떤 한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되는 사람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많은 공로를 세워서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 자기 동생을 사면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동생을 위하여 탄원하는 형의 잊혀질 수 없는 공로를 참작하여 그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양복 안주머니에 주지사의 사면장을 받아 넣은 형은 곧바로 감방 안에 갇혀 있는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동생에게 형은 물어보았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살아 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그러자 동생은 안면을 찡그리더니 즉시 대답을 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방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쏘아 죽이는 일이야!\" 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습니다. 그래서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안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용서와 사랑으로 채워져 있지 않으면 천사도 가지고 왔던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전달하고 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속죄라는 말이 나옵니다. 속죄의 원문 뜻을 보면 거기에 \'덮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속죄해 주셨다는 의미는 곧 하나님의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 주셨다는 말 이지요.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우리를 덮으시는 분이시지요. 우리의 추하고 더러운 부분을 덮어 주십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그 모든 허물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덮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지요. 예수 믿는 건 참 신나는 일입니다. 세상에 이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요. 이 하나님의 은혜가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런데요. 마귀는 하나님이 애써 덮어 놓으신 것을 베끼러 다닙니다. 베껴놓고는 젓가락을 가지고 또 휘휘 저어 놓습니다. 사람들을 불러 댑니다. 그리곤 낄낄거립니다. 물론 겉으로야 걱정하는 척하지요. 안스럽다는 듯이 혀도 몇번 차지요. 심통도 참 사납지요. 지금도 이 일에 마귀는 분주합니다. 정신이 없어요. 이렇게 하며 자기 나라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덮으시고 마귀는 베끼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도 편이 둘로 갈라졌어요. 한편은 하나님을 따라 열심히 덮으러 다닙니다. 또 한편은 마귀를 도와 열심히 베끼러 다닙니다. 하나님 편은 지금도 덮으러 다닌다니까요. 남편 허물이 드러나면 그거 덮습니다. 아내 실수 덮습니다. 아들 허물 덮어주고, 친구 허물 덮어주고, 박집사 허물 덮으랴 이집사 허물 덮으랴 바쁩니다. 그저 덮는 일이 그의 일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덮자\'씨라고. 옆사람에게 한번 불러 봅시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덮어 놓으신 것을 뒤집으러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하나님이 앞에서 덮어 놓으면 쫓아가서 그것을 베껴냅니다. 이게 취미인 사람도 있더라구요. 시간만 나면 베끼러 다닙니다. 이거 곤란합니다. 누구편입니까? 굳이 말하진 않겠어요. 그런데 감사한 일이지요. 창원침례교회 성도들은 하나같이 이름이 덮자입니다. 김덮자, 윤덮자, 박덮자, 정덮자, 이덮자, 전덮자, 신덮자...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행복합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습니다. 많은 분들이 주일이 기다려진다고 합니다. 덮자라는 이름을 가진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번 주일에도 덮자집사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가장 복된 만남 /눅5:1-11/ 문기태목사 2019-03-13
가장 복된 만남 /눅5:1-11/ 문기태목사 2019-03-13 07:33:27 read : 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무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께로 밀려왔을 때에 예 수께서는 b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가 보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깊은 데로 나가거라. 너희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기를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대고서, 모든 것을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눅 5:1-11) 이상은 정채봉님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는 시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와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와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니까 여러분의 만남은 어떤 만남입니까? 좋은 부모를 만나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실력이 늘고 공부가 즐겁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야 나쁜 길로 빠져들 유혹을 이기고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좋은 목회자와 좋은 성도가 만나야 은혜스런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귀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여러분은 왜 교회에 나오십니까? 친근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오십니까? 설교를 통해 위로받기 위해 나오십니까? 찬양이 좋아서 또는 마음을 평안하게 가라앉히려고 나오십니까? 기도하면 일도 잘 풀릴 것 같고 복을 많이 받을 것 같아 나오십니까? 물론 교회에 오면 그런 유익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아들 예수님을 만나며 그의 영이신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채 엉뚱한 목적에 열중한다면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예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회를 헛 다닌 것이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인생을 헛 살은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있을 때 인생이 아름답게 변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건이 있을 때 비로소 인생이 행복하게 변합니다. 성령님을 경험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날 때 인생이 풍성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인생이 새로와졌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하루하루 편안하게 먹기 위해서 사는 무의미한 삶을 사는 존재였으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며 그 성취를 맛보며 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전에는 도망자로서 처갓집에 얹혀서 무기력하게 살던 촌부에 불과했지만 떨기나무 불꽃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는 위대한 역사를 감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서 새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삭개오도 돈만 아는 세리장으로 욕을 많이 얻어먹으며 부끄러운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는 은혜를 베푸는 사람, 인정받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고는 상처받은 심령이 치유받고 건강해져 예수님과 그분으로 말미암은 참 행복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본래 일곱귀신에게 시달리던 불쌍한 여인이었으나 예수님 만나고 온전해져서 건강한 삶을 살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도 본래 고기나 잡아 먹고 살던 어부였으나 예수님 만나고 사람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누구든지 예수님만나면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1.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3) 오늘 본문은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이 첫번째 만나는 장면입니다. 시몬은 밤새도록 그물질하였으나 허탕이었습니다. 동이 훤하게 터오는 아침 무렵에 그물을 씻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의 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는 배를 조금만 띄우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뱃머리에 앉아서 나아온 수 많은 군중에서 성경을 가르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오늘도 아주 평범하게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만나 주십니다. 그러나 처음 시몬의 눈에 예수님은 흔한 랍비중에 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시몬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개인적인 말씀을 하였을 때도 시몬은 "선생이여.."하고 대답합니다. 선생이란 말은 랍비란 말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잘 아는 것 같소. 그러나 물고기를 잡는 그물질은 내가 더 도사요.'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모습으로 찾아가던가요? 하나님의 아들인데, 얼굴에 휘황찬란한 광채가 빛나고 수많은 천사들에 둘러 쌓여 나타나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런 환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시몬을 찾아 가신 예수님은 적어도 대단히 평범한 옷차림, 평범한 말투, 평범한 인상을 하고 아무 수행원도 없이 단신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매 주일마다 여러분을 찾아 가셨습니다. 어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분은 강단에서 울려퍼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너의 배를 또는 너의 차를, 너의 집을, 너의 재능을 내가 좀 사용할 수 있겠느냐?"하는 말씀을 통해 다가오시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셨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말슴을 통해 상처받은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또는 가정의 문제에 대해 말씀으로 방향을 지시하시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몬처럼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감동적이기는 하구먼' 하면서 마음에 깊이 담아 두려 하지도 않습니다. '설마 그것이 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일까?'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참된 만남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어떤 자매가 저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일이 있어 서울에 갔습니다. 큰 기대를 하고 서울의 유명한 큰 교회에 나가서 유명한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많은 교인들속에 파묻혀 함께 열심히 기도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였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전에는 말씀에 은혜도 못 받고 교회에 대한 불평이 많았었지? 무조건 마음을 닫고 설교도 들으려 하지 않고 교회를 외면한 것이 잘못이구나! 이제 말씀도 열심히 듣고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야 하겠다.'하고 깨닫게 되었답니다." 여러분 매 주일마다 말씀을 통해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말씀을 통해서 절대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사건을 통해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4) 예수님을 만났으나 알아보지 못하고 선생이여 하고 부르는 시몬에게 예수님은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합니다. 그의 인생에 간섭하십니다. 그가 하는 일에 관여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 시몬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특별한 사건이 잇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단순한 랍비로 보일 때는 말이 많습니다. 자기가 다 해보았다느니 밤새도록 수고했는데 소용이 있겠느냐? 하는 식으로 잘난척하고 인심쓰는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랑, 자기 생각, 자기 경험, 자기 의 등 자기를 내세우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큰 특징입니다. 따라서 말슴에 기쁘게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말만 요란하지 정작 순종할 순간에는 이리저리 빠져 나갑니다. 자기만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자기도 다 해보았는데 다 소용없다는 식입니다. 그럼에도 다행스럽게 시몬은 예수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순종했더니 시몬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슴에 따라 그물을 깊은 데에 던져 보았는데 고기가 엄청나게 많이 잡힌 것입니다. 두 배에 고기를 쌓아 놓았는데 배가 잠길 지경입니다. 수 십년동안 한 번도 단번에 그렇게 잡아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잡은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분이 누구일까? 단순히 랍비라면 이렇게 바닷속을 꿰뚫어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저 분은.... 그렇구나 메시야로구나.' 비로서 시몬은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였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선생님 나와 동업합시다. 선생님은 지시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이 굵은 팔뚝으로 다 잡아 올리겠습니다. 그래서 돈 좀 많이 벌어봅시다." 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시몬은 예수님께 자기를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든 것입니다. 배에 가득한 고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 갖다가 팔면 얼마를 벌겠는데..' 그런 생각도 다 사라졌습니다. '저분이 하나님이라면 나의 속을 훤히 들여다 보겠구나 나의 지나온 삶을.. 내 죄를 다 꿰뚫어 보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참 하나님과의 만남은 두려움을 수반합니다. 그것은 귀신을 만난 두려움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큰 권세를 쥐고 있는 황제앞에선 큰 잘못을 저지르고 끌려온 말단 사병의 두려움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비로소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제까지는 자기가 가장 의로운 줄 알고 다른 사람의 허물이 크게 보여 비난하고 판단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고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나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고 몸둘바를 모를만큼 허물이 많은지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눈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형편없이 보인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야만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 그리고 고칠 점들이 많이 보인다면 그것은 그들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눈이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참 하나님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잇어야 합니다. 참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여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앞에서 내가 정말 죄인임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감히 그분앞에서 합리화하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엎드리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 일본의 어느 여자 신학교 기숙사에 복면 강도가 침입하여 모든 것을 털어가지고 나갈 때였다고 합니다. 그때 믿음이 좋은 여학생 하나가 그 도둑의 가방 속에 얼른 자기가 아끼는 조그마한 성경책 한 권을 넣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훗날 그 강도는 여학생이 넣어 준 성경책을 읽고 회개한 후, 신학을 공부하여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현숙하고 신앙심이 돈독하고 미모가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 후 어느 날 목사님의 아내가 서재를 정리하다가 깜짝 놀았습니다. 오래 전에 강도가 들어왔을 때 자신이 몰래 넣어 준 성경책이 꽂혀 있는 것을 뜻밖에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날 오후에 식사를 하고 난후 남편에게 서재에서 꺼낸 성경책을 보여 주었습니다. "목사님, 이 성경책 어디서 났습니까?" 그때 목사님은 이 성경책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나는 이 성경책 때문에 변화된 삶을 얻어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책 때문이요." 그때 목사님의 아내는 "이 성경책의 원래 주인은 바로 나예요."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 부부는 그후에도 하나님의 일을 멋지게 해내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답니다. 3. 예수님은 비젼을 주심으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시몬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책망하지도 않으십니다. 일일이 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열거하지 않으십니다. 그를 용서할 뿐 아니라 위로하고 비젼을 주십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그 심판을 상상하며 두려워하는 시몬에게 예수님은 무서워 말라고 말슴합니다. 그의 모든 죄가 다 사함받았다는 것입니다. 자비를 입혀주시고 정결함을 주실 뿐아니라 하나님이 존귀한 일에 그를 귀히 쓰실 것이라는 굉장한 약속을 주십니다. 너는 물고기만 잡아 입에 풀칠하며 살다가 끝날 시시한 인생이 아니다. 사람을 취하는 인생, 수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에 아주 귀하게 사용될 것이다. 꿈과 용기를 가져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말 시몬 베드로는 그 말씀에 즉각반응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예수님께 말슴을 배우고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고 예수님의 능력을 배우고 예수님의 사역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시던 영혼구원의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어 예수님을 평생토록 부지런히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교회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만약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그는 아주 시시한 인생을 살다가 이름도 없이 갈릴리 마을 구석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특권을 붙잡았기에 시몬 베드로는 아주 존귀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도 예수님은 엄청난 일을 우리의 생애를 통해 우리와 이루려고 찾아 오십니다.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죄의 용서와 정결함에 대한 약속을 가져다 주는 것만 해도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향한 큰 계획이 있다. 내가 영원한 상급이 있는 귀한 일에 너를 크게 사용하겠다."라고 하시며 행복한 꿈을 주십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가슴 설레는 약속이 있습니까 ? 하나님이 나를 귀히 쓰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도록 여러분을 그분께 드렸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중에 아직 그런 꿈과 확신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도 시몬처럼 오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을 취하는 인생의 꿈을 키워가며 벅찬 가슴을 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작은 욕심을 쫓아 시시한 삶을 살다가 허무하게 끝나는 인생으로 머물지 말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주 중요한 일에 귀하게 쓰임받고 하나님께 칭찬듣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비전의 사람이 되고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고 백낙준 박사님은 그의 선친은 머슴이었고, 아무 소망도 없었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났고 교회에 충성을 할 때 선교사의 눈에 띄었고, 그의 아들을 데려다 공부를 시켰고, 미국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백낙준박사는 한국의 거목이 되었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만나 주십니다. 어떻게 만나 주십니까? 말씀을 통하여 만나주시고 사건을 통해 만나주시며 비전을 주시고 성취하심으로 여러분을 만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계시는 이 교회에서 주일마다 예배시간마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이 행하시는 위대한 일을 보며 비전에 사로잡혀 귀하게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않았다 /약1:12/ 문기태목사 2019-03-05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않았다 /약1:12/ 문기태목사 2019-03-05 01:38:49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시련과 극복>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약 1:12) 한 남자가 비행기 운전교본을 들고 항공기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엔진에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조종간을 앞으로 당기고..." 책에 써 있는 대로 하나하나 과정을 잘 따라해서 드디어 멋지게 이륙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하늘을 나는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아~ 상쾌한 하늘의 공기!" 자~아! 이제는 착륙을 해야 할 순간이었습니다.그런데 아뿔싸! 책에 씌어 있는 글을 보고 사내는 사색이 되고 말았습니다..... [착륙 편은 다음 호에 계속...... ㅠㅠ] 그리스도인 삶에는 종종 난감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와 쉽게 떠나지 않을 때에 당황스럽고 난감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새롭고 행복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죄짐이 벗겨지고 날아갈 것 같은 자유와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어떤 이는 예수믿고나서 오래 고생하던 두통이 치유되고 불면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또 죄로 인하여 개인과 가정안에서 짓누르던 저주가 떠나가고 불행이 사라져 행복하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통과 치유, 기도응답과 기쁨등의 축복을 경험하며 아름다운 새 삶을 누리는 이들의 간증이 우리안에 가득합니다. 그러나 종종 예외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거나 특별한 잘못이 없음에도 때때로 시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전보다 더 친밀해지고 있음에도 현실은 경제적으로 가난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간절히 부르짖고 있음에도 질병이 우리를 위협할 때도 있습니다. 순전한 믿음을 지키려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려는데 가정과 직장을 통해 핍박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기대했던 좋은 것들이 별로 없고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섬기지 않았던 때보다도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외에도 사람들에 의해 오해를 받고 억울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시험 또는 시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시험이나 시련을 만나면 몹시 당황합니다. '아니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을 받고 형통한다고 했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목사가 순 사기친 것 아닐까?' 하며 의심의 눈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시련의 기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흔들립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은 아닐까? 나의 구원은 부도난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에 빠지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내가 다시는 교회 일에 관여하나 봐라' 하고 열정이 식어져 하던 봉사를 중단하기도 합니다. 교회를 박차고 세상으로 다시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교회와 목회자 교인들을 원망하며 섭섭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믿음으로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이토록 고난을 당하고 괴로와하며 부르짖고 잇는데 왜 응답하시지 않고 침묵하시는 것일까요? 약속하신 말씀대로 좋은 것을 상을 주시지 않고 시련속에서 신음하도록 버려두시는 것일까요? 악한 일을 일삼으며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일마다 형통하고 날로 더 부자가 되어가고 있는데..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손대는 것마다 떼돈을 벌고 자식들은 공부도 잘 해서 일류대학에 쏙쏙 들어가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유학의 문이 활짝 열리고, 좋은 것은 혼자 다 챙겨 먹고 생전가도 아프지도 않고 쌩쌩하기만 한데.. 오히려 믿음으로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 나는 왜 이렇게 풀리지 않는 걸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로 실패속에 가난속에 질병속에 버려두어 언제까지 신음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불공평한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도우실 수 없을만큼 무능하신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이런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것에 관심조차 없으신 것일까요? 구약성경에 보면 오늘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믿음의 대 선배의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렘 12:1) <예레미야의 질문> "주님, 내가 주님과 변론할 때마다, 언제나 주님이 옳으셨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이 형통하며, 배신자들이 모두 잘 되기만 합니까?" 시편 73편에 아삽이라는 이의 시에는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 73:2)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시 73: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시 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시 73: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시 73: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 73:7)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시 73:8)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시 73:9)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시 73:10)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시 73: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 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시 73:13)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시 73:14)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과 의롭게 살고자하는 우리의 시련을 보며 미끄러지고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치는 영화로 치면 중반부에 불과합니다. The End 가 나오려면 아직 더 가야합니다. 재미있는 영화는 구성에 있어 사건의 발단, 전개, 갈등, 클라이막스, 해결의 과정을 거칩니다. 반드시 중반에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은 중간에 있는 과정입니다. 그 갈등을 참아내고 통과하여 클라이막스를 거쳐 문제가 다 해결되고나면 말할 수 없이 큰 기쁨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갈등장면에서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면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과정중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보려면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험을 참고 견디어 내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참을성이 없습니다. 시험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참지 못해 뛰쳐나가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나의 머리로 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나의 가슴으로 용납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힘든 순간을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나의 몸으로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더욱 기도하며 참고 버텨야합니다. 시험과 시련의 순간은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지나고나면 이해가 되고 많은 유익이 숨어 잇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0세기 초에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보낸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치료해주며 복음을 전하며 문명과 멀리 떨어져 살았습니다. 선교사부부는 아프리카에서 힘들게 고생을 많이 하며 사역을 하고 마침내 은퇴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사역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휴가를 아프리카에서 보내고 돌아오는 대통령 일행과 뉴욕으로 향하는 한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배가 마침 자유의 여신상을 지나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항구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선교회에서 마중나와 환영해주리라고 기대했으나 항구에는 선교사를 반겨주는 현수막도 없었고 그를 파송한 교회 교인들은 물론 그를 파송한 선교회 직원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선착장에는 요란한 환영 현수막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잇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관악대, 빛나는 제복을 입은 의장대, 주지사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였습니다. 선교사는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흐느끼며 아내에게 울부짖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황금기에 헌신하여 최선을 다해 일함으로 사명을 성공적으로 다 감당했소. 많은 것을 희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충실하게 봉사했는데 고국에 돌아와 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아무것도 없지 않소! 그런데 이 양반은 몇 주 동안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코끼리 두 마리를 사냥하고 돌아온 것 뿐인데 영웅처럼 환대를 받고 있소. 이것은 정말 공평하지 않아!" 선교사는 허름한 호텔에 돌아와 짐을 풀었으나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하나님께 불평을 하면서 기도를 드리는데 하나님께서 마침내 응답을 하셨습니다. "얘야,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라. 너는 아직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잖니? 네가 영원한 집에 돌아오는 날 네가 오늘 보았던 것보다 더 훌륭한 악대를 준비하고 너를 맞아 주마, 오늘 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천사들과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 너를 환영해 주마,"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참고 견디면 우리가 참되다는 것이 입증이 되고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으로 보상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직 고난중에 있습니까? 아직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습니까? 지금껏 애쓴 주님을 향한 모든 수고가 헛수고처럼 느껴집니까?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받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뿐입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며 기다리면 여러분의 믿음이 참되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이 임합니다. 시련이 끝나고 웃을 일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질병이 끝나고 치유가 임합니다. 가난이 떠나가고 부요함이 찾아올 것입니다. 더 이상 실패가 따라다니지 않고 형통과 성공이 여러분의 것이 됩니다. 시련과 고통에는 깊은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를 더 아름답게 성숙시키십니다. 더 큰 은헤와 신령한 선물을 감당할 수 있는 인격과 믿음과 지헤로 빛나도록 만들어 가십니다. 시련을 통하여 준비가 끝나고 감당할 그릇으로 완성되면 아낌없이 부어주십니다.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큰 믿음을 소유하여 여러 시험을 잘 견디어 내는 큰 인물이 되어 크게 복을 받으며 더 존귀하게 쓰임받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구하라 /눅11:10-13/ 문기태목사 2019-03-13
가장 좋은 것을 구하라 /눅11:10-13/ 문기태목사 2019-03-13 00:42:41 read : 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눅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눅 11: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눅 11: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솔로몬왕이 일 천 번제를 드리는 중에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구하라."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게 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주께서는 솔로몬이 그렇게 구한 것이 마음에 드셨습니다. "네가 자신을 위하여 오래 사는 것이나 부유한 것이나 원수갚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네 말대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어 너와 같은 왕이 없게 하겠다. 또 부귀와 영화와 오래 살게 해 주겠다." 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고 자신과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것을 구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여러분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한 가지만 구해라." 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 만약 주님이 저에게 구하라고 하시면 저는 성령 충만을 구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은혜가 절로 쏟아지고 기쁨과 감사가 솟아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또 성령충만함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장 주시고 싶어하시는 은혜이기도 합니다. 성령충만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입니다. 성령충만하기만 하면 지혜롭게 되고 문제가 절로 다 해결됩니다. 내가 성령충만하면 점차 성령의 충만함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확산됩니다. 교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가정에도 복된 영향을 끼칩니다. 지난 주간에 모 안수집사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짜증을 좀 내고 교회에 대한 불평을 했습니다. '왜 목회자로 하여금 기쁨으로 사역하도록 교회에서 지원하지 않느냐? 열정을 품고 일하려 하면 번번히 발목을 잡아 주저 않히는것 같다. 교회의 중직들이 목사의 방패막이 되어 주고 목회자와 동역하지 않고 오히려 같이 흔드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떻게 사역다운 사역이 나오겠느냐?' 그런 요지였습니다. 그분이 불쾌한 내색이 없이 조용히 다 잘 들어주었으나 저는 하루 종일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내가 또 절제하지 못하고 실수를 했구나! 불평이나 하는 성숙되지 못한 목사의 모습을 보여서 실망을 안겨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너에게 있다. 네가 성령충만하지 못한 때문이다. 너만 성령충만하면 그런 것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할 때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가 성령충만하지 못할 때는 큰 문제처럼 여겨집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힘들고 짜증으로 이어집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영적인 침체로 이어지고 다른 은혜와 축복이 아무리 많이 부어져도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 여간해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어둡고 답답한 깊은 수렁에서 아무리 자신의 힘으로 헤어나오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충만한가? 늘 점검하고 그렇지못하면 무엇보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수년간 다니고 있지만 교회 안에서는 신자요,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인줄 알면서도 어떤 죄를 계속 범하고 있습니까?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순종이 안되지는 않습니까? 예배가 지겹습니까? 기쁨이 메말랐습니까? 기도가 안됩니까? 전도의 열매가 없습니까? 이 땅에 죽어가는 영혼들 을 향한 안타까운 심정이 없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도 성령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아 새롭고 복된 삶을 살아가도록 본문을 통해 아주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고 잇습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게서 성령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시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무엇보다도 성령을 주고 싶어 합니다.(13)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 가장 유익한 것, 가장 좋은 것만을 물려 주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더욱 그런 소원을 갖고 계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당장에라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읽은 말씀 13절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장 주고 싶어하는 선물이 성령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주기를 원하시는 기도의 응답이 성령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기도는 성령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본문은 얼핏 기도를 강조하는 말씀같지만 사실은 기도보다 성령을 더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다 소용없음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본문에서는 너무나 중요하여 강조하고 싶으니까 의문법을 사용하십니다. 주님이 뭐를 몰라서 질문한것도 아닙니다. 강조하려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도는 몰라도 성령을 주십사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도둑도 제 자식에게는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하고 조폭도 제 자식에게는 필요한 것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성령임을 아시고 성령을 주실 준비를 다 하고 기다리십니다. 성령받으면 크고 작은 문제가 다 해결되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받아 충만하면 은사가 따라오고 성령충만하면 인격이 성숙되어 주님께 귀히 쓰임받을 수 있기에 성령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면서 "주여 옳습니다.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을 다시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응답이라면 주여! 이 시간 성령을 주시옵소서!" 하고 부르짖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냐! 나도 오랫동안 기다렸다. 성령충만을 받고 새롭게 되기를 바란다. 당연하다 성령만큼 좋은 응답이 나에게 없느니라 내가 내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있다면 성령이니라." 우리 하나님께로부터 여러분에게 그런 응답이 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솔로몬왕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정말 기쁘시게 여기시고 주고 싶어 하시는 가장 좋은 선물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답게 복되게 살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령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13)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고 세상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 세상의 좋은 것과 성령을 대비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고 성령 안에 온갖 좋은 것이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하고 이 본문하고 비교해 보면, 이 본문에서는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성령을 가리키는 자리에 좋은 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좋은 것입니다. 성령 안에는 온갖 좋은 것이 다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평소에 달라 달라 하는 것을 그 다음에는 달라고 할 필요가 없어지는 때가 참 많습니다. 여러분 이미 아실 것입니다. 은혜 받아 보신 분들은 '아, 하나님 아버지 마음이 답답해 죽겠습니다. 주여! 내 마음에 기쁨을 주옵소서! 왜 마음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를 평소에 하던 사람이 성령의 은혜만 받으면 그 기도가 없어져 버립니다 성령이 오셔서 그 마음에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막혔던 것을 푹 뚫어 주시니까 그 기도가 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 안에 좋은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 주님! 내 남편이 미워 죽겠습니다.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힙니까? 주여! 내 남편 고쳐 주옵소서!' 하던 여자가 성령 충만 받으면 그 다음에는 남편을 보는 눈이 확 달라져 버립니다. '아, 모든 잘못이 나에게 있었구나? 그래서 성령 충만한 부인으로서 남편을 위하여 참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봉사해 주고, 남편이 약간 기분 나쁘게 해도 오히려 그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지니까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변하니까 남편도 변합니다. 괴롭히던 것이 줄어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부드러워집니다. 그렇게되니 '남편 고쳐 주옵소서!'하는 기도가 사라집니다. 성령 안에 모든 좋은 기도의 응답이 다 들어 있습니다. 성령 안에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모든 좋은 것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기도가 참 단순해집니다. 복잡하던 기도가 단순해집니다. 왜냐하면 내가 복잡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다 해결되 버리니까 그런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주의 은혜가 흘러 넘치면 인간관계가 서로 달라지고 보는 눈이 달라지니까 과거의 문제가 다시는 문제로 남아 있지 않는 것을 우리는 자주 체험을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좋은 성령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구하기만 하면 준다고 했는데 왜 우리에게 안주실리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령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임을 깨닫고 성령안에 우리에게 유익한 온갖 좋은 것이 넘침을 발견하고 무엇보다도 성령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은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고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13)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아무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구하는 이라는 말은 간청한다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간청한다는 의미는 귀찮을 정도로 못살게 군다는 말 아닙니까? 그래서 5절이하에서는 예수님이 비유까지 들어서 우리가 알아 듣도록 설명을 하셨어요. 손님이 늦게 찾아와서 집에 대접할 것이 없어 친구에게 밤늦게 찾아갑니다 . "친구야! 빵 세 개만 꾸어 주라. 귀한 손님이 왔는데 내 놓을 것이 없어 대접을 못한다네." 그러자 친구가 대답하기를 "야 이 사람아, 지금 시간이 몇 시인가? 이미 잠자리에 들어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지금 일어나면 잠 다 달아나서 안 되겠네. 내일 오게." 그래도 찾아온 친구는 안가고 계속 문을 두드리며 조릅니다. 그러니까 결국 의리를 생각해서 주는 것이 아니고 귀찮아서 이러다가는 밤새 한 잠도 못 잘것 같아 할 수 없이 일어나 빵을 내어줍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기도를 하되 이 간청하는 기도를 못해 가지고 많은 손해를 봅니다. 왜 강청하는 기도를 못하는지 아십니까? 체면때문에 못합니다. 눈치보느라고 못합니다. 이것 저것 따지고 상대방이 곤란할까봐 미안할까봐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슨 홀아비 과부 생각해주듯이 하나님 사정 봐주는 것 같은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필요하고 급한 것이라면 매달리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졸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안 주실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시시한 것 가지고 조르는 것이 아니고 성령주십사 강청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무슨 일이 있으면 "목사님 심방 와주세요. 또는 기도 해주세요."하고 요청을 잘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전화도 잘 못합니다. "목사님, 피곤하실텐데 쉬시는것 방해할까봐 망설이다가 겨우 했습니다." 꼭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피곤하면 제가 알아서 다 쉽니다. 제가 혹 바빠서 안 되겠는데요. 하고 거절해도 정말 필요하면 간청하십시오. 제가 혹 잊어버렸다가도 다시 생각나도록 또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절할 수 없습니다. 방송국에서 얼마전에도 상담봉사를 요청해 왔습니다. 처음에는 전파 좀 타면 유명해지고 교회부흥에 큰 도움이 될까해서 얼른 갔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부흥에 별 도움도 안 되고 괜히 시간만 많이 뺏기고 신경만 많이 쓰이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일단 거절부터 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바빠서 곤란합니다.' 그러면 어떤 이는 " 목사님 꼭 좀 도와주세요. 모두 목사님이 적임자라고 합니다." "그럴리가요. 다른 좋은 분들이 많은데 제가 시간이 없으니 다른 분한테 부탁하세요." "아닙니다. 꼭 목사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바쁘시지만 꼭 좀 도와주십시오."하고 계속 사정하면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떤 피디는 "그러세요. 그럼 할 수 없군요. 다음에나 도와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하고 끊습니다. 제 생각에 '내가 하나님 앞에 저 식으로 기도하고 나면 맨날 결과가 똑같겠다. 하나님을 너무 귀찮게 구는 것 하나 님께서도 불편하실 테니까 딱 한번만 주님 앞에 구하고 대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안 주시는 걸로 제가 알겠습니다' 이러고는 응답 없으면, 다시는 그 기도 안하면 하나님께서 '야 너 참 신사적이구나!' 하시며 기특해 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보고 "귀찮도록 달라고 해라. 특별히 성령을 구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게 해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왜 눈치보고 자꾸 얌전을 떱니까? 하나님 귀찮아 하실까봐 얌전을 떠는 겁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봐주는 겁니까? 어느 쪽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가 달라고 하면 주지 않느냐 하물며 내가 안주겠냐 내가 가장 주고 싶어하는 것 왜 안주겠느냐?" 하십니다. 재미난 우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두 마리 개구리가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놓였습니다. 한 마리는 '어떻게 여기 빠져가지고 재수 없게 죽게 되었는고' 하고 절망을 하고는 네다리 확 뻗고 허우적거리다가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개구리 한 마리는 "아니야, 나는 살아야 돼" 하고는 막 헤집고 돌아다닙니다. 성령충만한 개구리입니다. 밤새도록 막 헤집고 다녀요.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런 사람이랍니다. 막 헤집고 다녔 더니 우유가 그만 나중에 자꾸 굳어져 가지고 치즈가 되어서 단단해지고 통 밖으로 펄쩍 뛰어 나왔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체험한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 빠지던지 간에 내 팔자가 왜 이렇나 하고 다리 쭉 뻗고 가만히 있다가 죽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대로 끝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 주세요. 살려 주세요. 은혜를 많이 부어주셔서 더 좋아지게 해주세요. 주님 믿습니다!" 하고 매달리니까 우유가 나중에 치즈로 바뀌는 것 같은 체험을 자주자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영적으로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성령의 감동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과 같은 사건을 직접 맛보게 하십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생각이 달라지고 하나님이 내게도 응답하셨다고 하는 그런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눈빛이 반짝반짝 하고 사람이 달라 집니다. 어떤 시험이 찾아와 위협해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확신에 차있고 기븜과 감격이 넘치는 생활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귀찮아서라도 하나님이 벌떡 일어나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시도록 간절히 매달리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체면 차릴 필요 없습니다.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 성령받아야만 삽니다. 성령충만해져야 능력있게 살 수 있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여러분 모두 성령충만함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예배가 지겹습니까? 기쁨이 메말랐습니까? 기도가 안됩니까? 전도의 열매가 없습니까? 이 땅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안타까운 심정이 없습니까? 죄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미워지고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지 않습니까? 교회생활이, 가정생활이 위태로와지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도 성령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안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해져야 합니다. 오늘 성령충만해져야 합니다. 이시간에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합시다. 구하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오늘 부르짖고 매달려서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자가 되십시오 /행3:1-10/ 문기태목사 2019-02-21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자가 되십시오 /행3:1-10/ 문기태목사 2019-02-21 05:11:24 read : 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세상은 교회를 비난하지만 교회를 향해 큰 기대를 갖고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이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할 때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실망하고 교회에 등을 돌리고 맙니다. 교회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할때 교회는 외면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이 필요로 할 때 충분히 줄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아무리 주어도 바닥이 나지 않을 만큼 풍성하게 가지고 있는 준비된 교인들로 성숙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직후에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앞에서 앉은뱅이 거지가 "한푼 보태줍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무언가 절박하게 간청하는 거지의 모습을 보는순간 성령께서 그냥 지나가지 못하게 감동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가진 재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언가 주기는 해야겠는데 곤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순간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십니다. '네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을 주면 될게 아니냐?' '아! 그렇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거지의 손을 붙잡고 확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랬더니 앉은뱅이 거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걷기도 하고 뛰기까지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좋은 것을 나누어 주시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시고, 병들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시고, 버림받아 외로운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와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짓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용서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뿐만아니라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다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제자된 사람들은 주님처럼 무언가 좋은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사람은, 그리고 아무것도 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예수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온갖 좋은 것은 혼자만 다 누리려고 하는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껏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세상이 요청하는 재물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겼기에 무언가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언가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정말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은이나 금에 비교할 수 없는 예수의 이름이었습니다. 내게 은과 금은 없으나...하던 베드로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는 교황에게 '토마스 아퀴너스'는 "교황 폐하여 옳습니다-그러기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던 시대도 지나가고 말았다"고 하였습니다. 은과 금의 힘에 의지하며 살아가면 그리스도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을 소유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소유한 사람은 굉장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가 비록 동전 한 닢 없는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는 사람들을 부유케하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가 연약한 사람이라도 세상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바울선생님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9,10)' 그리스도의 능력은 사람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을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며 그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근원을 해결해 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의심없이 받아 들이고 체험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나누어 주어 믿게 하여서 저들로 문제의 해결을 받고 새로와지게 도와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까? 어떤 도움을 요청합니까? 먹을 것? 돈? 치료? 위로?... 그러나 저들의 진정한 필요는 여러분안에 있는 예수의 이름을 주어야 해결됩니다. 저들도 진심으로 예수의 이름을 믿을 수 있도록 그 이름으로 말해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야 합니다. 그 이름으로 손을 잡아 주어 그분의 능력이 전해지게 해야 합니다. 때로는 먹을 양식을 보태주고, 때로는 돈을 나누어주고, 입을 옷을 보내주어야겠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없이 그런 것들만 주어서는 궁극적으로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베풀어주는 것이 주저될때나 모두 움켜쥐고 싶은 유혹이 올때 행 20:35 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불쌍한 거지에게 나누어준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줄 수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믿음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16)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걷고 뛰며 춤을 추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 3:12)" 그러면서 16절을 가지고 그 현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 그 이름을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그 이름을 믿어야 치료받습니다. 그 이름을 믿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어야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런데 저절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도와 주어야 합니다. 먼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만이 도와줄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맛본 사람만이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잘 도와줄 수 잇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나타내며 다른 사람들도 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예수의 이름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7) 여러분 거지의 손을 잡아 보셨습니까? 거지의 손은 더럽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병균이 많이 묻어 있을 것같고 더구나 지체가 장애인 거지는 더 께름칙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주저하지 않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으라"하면서 덥석잡아 일으켰습니다. 거지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동전 몇 푼을 던져 준 사람은 있었으나 손을 잡아 준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손을 통하여 따뜻한 체온이 전해지고 주님의 크신 능력이 사도의 사랑과 함께 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애절한 표정으로 "한푼만 적선을 합쇼?"하며 애걸하는 소경거지를 만났습니다. 돈을 주려고 멈추어서서 주머니를 뒤지는데 마침 지갑을 놓고 나왔음을 발견했습니다.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손을 덥석잡고 정중히 말했습니다. "마침 내가 가진 것이 하나도 없군요. 죄송합니다." 그러자 거지는 깜짝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은 제게 가장 큰 것을 주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제 손을 잡고 저를 정중하게 대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며 감격해 하더랍니다. 세상은 사랑의 기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세상에 참된 사랑을 줄 수 잇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밖에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사랑을 줄 수 잇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푹 젖어 행복한 사람만이 외로움에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장 귀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동화를 하나 들려드릴까요? 한꼬마가 있었습니다. 꼬마는 무척 가난했어요. 꼬마는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부자가 되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선생님,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아세요?' "부자가 되고 싶니?" "부자는 좋잖아요,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도 있고 갖고 싶은 건 언제든지 살 수 있잖아요." "그럴까? 부자란 무언가 남에게 줄 줄 아는 사람이란다." 꼬마는 풀이 죽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남에게 줄 것이 어디 있겠어요? 선생님은 꼬마를 안고 긴 팔을 뻗어 길가에 세워진 쓰레기 통을 가리켰어요. '저 쓰레기통은 휴지를 원한단다. 네가 줄 수 있겠니?" 꼬마는 기뻤어요. 휴지는 얼마든지 많았고, 꼬마는 그것을 줄 수 있었으니까. 이후로 꼬마는 쓰레기만 보면 주워서 쓰레기통으로 달려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너에게 주는 거야. 자, 가져." 꼬마는 자기가 부자가 된 것을 알게 됐답니다. 꼬마에게는 울보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툭하면 울어버리는 친구는 어느 날부터 꼬마가 행복해 하는 걸 느꼈습니다. "넌 참 행복해 보여." "응, 난 부자거든." "부자? 나도 부자가 되고 싶어." 꼬마는 자기의 휴지를 나누어 쓰레기통에 버리자고 했지만 울보 친구는 싫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것을 나누고 싶지 않았거든요. 꼬마의 제안으로 둘은 다시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은 온화한 표정으로 울보 친구를 바라보며 물었습니다. "넌 뭐가 많지?" 울보 친구 역시 꼬마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숙이더니 이어서 훌쩍이기 시작했어요.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자 너무 슬퍼 또 울어버린 거예요. "옳아, 넌 눈물이 많구나. 그 눈물을 나누어 주렴." "눈물을 어떻게 나눠주지요? 아무도 이 눈물을 받지 않을거예요." "그동안 너늘 위해 흘린 눈물을 남들을 위해 흘리면 되는 거야. 불쌍한 사람을 보면 울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렴." 울보 친구는 이후부터 눈물을 나누어 주었대요. 그러나 울며 기도만 할 수 가 없게 되었어요. 더러운 사람을 보면 씻겨주고,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겐 길잡이가 되어주고,다리를 저는 사람은 부축해 주어야 했거든요. 울보 친구는 눈물 뿐 아니라 그들에게 손과 눈과 발을 나누어 주었던 거지요. 울보 친구는 그렇게 부자가 되었답니다. 여러분 모두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 나누어 줄 수 잇는 큰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 /엡5:21-33/ 문기태목사 2019-03-01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 /엡5:21-33/ 문기태목사 2019-03-01 03:57:53 read : 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괴테는 "왕이나 백성이나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가정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가정을 대신할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가정이야말로 지상에 있는 유일한 천국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정의 중요성은 알면서도 가정을 천국으로 가꾸기 위하여 별로 노력하지 않습니다. 가정의 행복에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려 하지 않고 가정의 '주인공'이 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세우시고 행복한 낙원을 이루시기 위해 꼭 있어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하나님이 정하신 행복한 가정생활의 기본 요소를 발견하고 갖춤으로 여러분의 가정이 모두 천국과 같이 아름답게 변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가정을 더욱 행복한 가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본 요소들은 무엇일까요? 첫째, 행복한 가정에는 사랑이 있습니다.(25) 사랑은 모든 인간 관계의 시작이요 중심입니다. 사랑이 있는 가정은 성실과 이해와 책임 그리고 헌신이 있으므로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삭막한 개인주의로 바뀐 오늘의 시대는 인간 고립을 맛보게 했고 고립은 무서운 살인자처럼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줄을 끊은 인간은 삭막한 세상을 만들고 만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보루인 가정에서마저도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면 가정에서부터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족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아가페' 사랑의 뜻은 '상대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주고자 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섬기며 희생하고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홀트 아동복지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국전쟁당시 홀트씨가 만난 대다수의 아이들은 병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고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시킨 아이들중 대다수는 사망한 데 반해 홀트씨가 데리고 산 아이들은 오히려 건강해졌습니다. 집에 남은 아이들에게 그가 해 줄 수 있었던 일은 고작 아이들을 껴안아 주는 일뿐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살갗으로 전해진 사랑이 아이들을 살린 것입니다. 반면에 아이들의 죽음의 원인은, 그들에게 비타민이나 영양소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상대방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자기의 만족과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는 다른 가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절대 행복이 찾아 오지 않습니다. 가족간에 아낌없이 사랑으로 자신을 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희생하심같이 가족간에 서로를 위해 주저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며 사랑할 때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사랑이 얼마나 넘칩니까? 둘째, 행복한 가정에는 질서가 있습니다.(22)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창조의 기본 질서로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하여 인간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삶의 지혜가 보존, 전승되는 곳이 되게 하셨습니다. 가족의 행복과 안전은 질서에 달려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 5:22) 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 행복한 가정에는 영적인 권위의 질서가 세워져 있습니다. 부모의 권위, 가장의 권위가 세워져야 합니다 이 권위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인정을 하신 것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은 그 가정의 머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에는 순종의 질서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10계명이 명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을 하나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는 참된 안전과 자유 그리고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자리입니다. 우주를 영어로 코스모스(cosmos)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우주라는 단어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서나 조화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화장을 영어로는 cosmetics라고 합니다. 역시 cosmos에서 나온 말입니다. 본래 화장이란 하나님이 지어 주신 질서를 따라 얼굴을 잘 정리해 주는 작업이었습니다. 얼굴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make-up은 화장이 아니라 변장입니다. 우주 만물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질서 있게 창조되고 질서 있게 운행되기 때문입니다. 질서가 깨어진다면 우주는 공포의 우주가 될 뿐입니다. 창세기 1장을 잘 읽어 보면 창조주 하나님이 얼마나 질서를 배려하며 우주를 창조하셨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의 특성은 파괴와 해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무질서와 반항에는 사단의 간교한 충동이 있음을 있지 말아야 합니다. 권위주의는 잘못된 것이지만 권위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권위를 조롱하고 저항하는 것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즈음 인터넷 문화가 확산되면서 악플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익명성에 숨어서 권위에 도전하고 조롱하는 것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오늘 우리 사회는 질서가 실종되고 무질서와 그로인한 혼란이 나무하고 있습니다. 모든 권위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스승의 권위, 가장 또는 부모의 권위,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나 법관의 권위, 지도자의 권위가 사라져가고 아무나 권위에 정면 도전을 하려고 합니다. 그때문에 엄청난 혼란이 찾아 오고 결국 그로인해 무질서와 혼란에 우리가 점점 더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부터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 성경의 명령대로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님께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아내들은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사라는 남편을 주라고 부르며 복종했습니다. 남편들을 포함해 모든 가족들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십시오. 진정한 질서의 회복은 피차 존경하며 서로 복종하는 겸손함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셋째, 행복한 가정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습니다.(21) 경외라는 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엄하심에 대한 경건한 두려움이며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표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며 그의 계명에 복종하고 악에서 떠나는 삶의 모습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의 외적인 증거입니다. 시34편에는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 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만드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라 하셨습니다. 옛날에 서대문 영천시장은 콩나물 장수가 많기로 유명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 나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아주머니의 인생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게 살면서 자식들을 믿음으로 성장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아주머니는 아들을 훌륭한 사업가로 키워냈습니다. 아들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의 어머니가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문에 지금의 자기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종소리가 연상되도록 자신의 제약회사 심벌마크를 종으로 정했습니다. 그 회사는 빠르게 급성장하여 이름만대도 누구나 다 알만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종근당제약회사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낸 바 있고 미국 영적 대각성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던 인물입니다. 그의 부인 역시 신앙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후손을 추적하여 그의 가계(家系)를 연구하였습니다. 그의 직계 후손은 현재까지 873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대학 총장을 지낸 사람이 12명, 교수 65명, 의사 60명, 성직자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100명, 판사 30명, 공무원 80명, 하원의원 3명, 상원의원 2명, 미국 부통령 1명, 그리고 260명이 평범한 신앙인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한편 조나단 에드워즈에게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맥스 쥬크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교회 주일학교에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맥스 쥬크는 어느 날부터인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교회를 떠나 방탕한 생활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없는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를 연구했던 사람은 그의 친구인 맥스 쥬크의 후손들도 추적해 보았습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인데 그 가운데 유아사망 309명, 거지 310명, 매춘부 50명, 도둑 60명, 살인자 70명, 별 볼일 없이 산 사람 53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두 가계의 대조는 경건한 가정이 가족들과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실제로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부모가 경건한 삶을 살 때, 자녀들이 올바른 길을 갑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복을 받아 잘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족들과의 사랑의 만남이 이루어 질 뿐 아니라 경건한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만남도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때 참된 행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에는 사랑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는 질서가 있습니까? 남편의 권위, 어버이의 권위가 세워져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대화와 질서가 자리잡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뿌리를 내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이루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가정의 힘 /엡5:31-33/ 문기태목사 2019-03-01
가정의 힘 /엡5:31-33/ 문기태목사 2019-03-01 03:36:33 read : 2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우리나라 40∼50대 부부의 절반 이상(59%)이 제대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행복가정재단이 최근 152명의 기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부부지수' 조사 결과도 100점 만점에 63점으로 낙제점을 겨우 면하였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고 올림픽에서 1위를 한다고 해도 우리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가족들끼리 불화가 심하면 행복하게 되지 못합니다. 가정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입니다. 따라서 가정이 화목해야 국민이 행복하고 우리나라 역시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 땅의 가정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최근엔 결혼율부터 줄어 새로운 가족인 어린 아기의 탄생도 크게 줄었습니다. 언제 이혼할지 모른다며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혼인신고도 미루는 부부들도 있습니다. 어렵게 만들어진 가족 역시 이혼, 별거, 가출 등 각종 이유로 해체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집에 살아도 대화조차 하지 않는 가족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정폭력금지법'이 실행되었어도 여전히 가족에게 매맞아 남보다 못한 가족들이 수두룩합니다. 게다가 어린 자녀들까지 가출, 폭력, 성적 학대 등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가정이 안정되어야 사회생활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자녀들도 안정이 되어 공부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정서적인 지원과 격려의 근원지입니다. 또한 가정은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쉼터의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역경으로부터 보호 장벽이 되어 역경의 심리적인 압박을 덜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가정은 다른 곳에서는 그 기능을 대체할 수 없는 정서적인 지원을 하고 주위를 돌려 머리를 식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정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그처럼 가정의 힘이 크고 중요하기 때문에 사단은 우리의 가정을 공격합니다. 가정에서 가족간의 관계를 이간하여 깨뜨리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부어주신 축복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가정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가정에 소홀히 하도록 다른 일에 분주하도록 미혹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인물로 인류에게 큰 업적을 남긴 사람 중에서 가정 생활은 아주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생애의 비극의 원인은 아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화려함을 원하는데 털스토이는 그것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명성이나 칭찬을 갈망하고 있었으나 그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부를 동경하고 있었으나 그는 부를 죄악시하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저서의 인세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아내는 화를 내고, 울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몇 년 동안 집요하게 그에게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발작을 일으켜서 그를 위협했습니다. 1910년 10월 어느 눈 내리는 밤, 83세의 톨스토이는 가정의 불화를 참고 견딜 수 없는 나머지 정처없이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11일 후 그는 어느 역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에게는 아내를 절대로 곁에 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만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링컨의 생애를 비극적으로 만든 것도 역시 결혼이었습니다. 링컨의 아내는 세상에 보기드문 잔소리 많은 여자로서 20년 이상의 결혼생활 동안 링컨을 곤경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남편에게 불평 불만과 비난을 퍼부어 댔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링컨에게 좋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었습니다. "등도 굽은데다 걸음걸이도 보기 흉하다, 인디언같다. 귀모양과 얼굴모습이 온통 마음이 안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링컨은 가능하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안으려고 변호사 시절 봄 3개월과 가을 3개월을 순회 재판에 나가면 결코 집에 오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링컨이 재빨리 불을 피우지 못하자 매리가 장작개비로 그의 얼굴을 때려 그는 다음날 상처난 코에 반창고를 붙인채 출근한 일도 있으며 매리는 남편의 얼굴에 커피를 뿌리고 빗자루로 때렸는가 하면 그를 집밖으로 내쫓기도 하고 책이나 감자를 집어던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소크라테스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뒤 그래도 성이 안 찼는지 물통에 담긴 물을 머리에 부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빙긋이 웃으며 "천둥이 친 다음에는 소나기가 오게 마련이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떻게 대 철학자가 저런 부인과 사는가?"하고 주위에서 물을 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나운 말을 타고 연습을 하면 어떤 말도 다룰 수 있지. 아내를 다룰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인들 다루지 못하겠나?" 소크라테스는 학식있는 대 철학자였습니다. 링컨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통치한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대통령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준 명작을 남김 대 문호입니다. 그들에게는 권력도, 학식도, 돈도, 명예도, 건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가정 생활은 불행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행복한 부부생활을 누리지 못했을까요? 그 원인은 행복한 가정에 대한 설계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을 짓는데도 설계도 없이 지을 수 있는 것은 판잣집같은 무허가 날림집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건물, 튼튼한 건물, 오래 지나도, 지진이 일어나거나 비바람과 태풍이 불어도 요동이 없는 집은 유능한 설계사에 의해 좋은 설계도를 그리고 설계도대로 철저하게 지은집입니다. 가정도 먼저 좋은 설계도를 그리고 설계도에 따라 차근 차근 잘 지어야 아름답습니다.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온 가족들이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대충 짓는 가정은 아무리 권력이 있고, 물질이 많고 건강하고 잘생긴 용모를 가지고 출세하였다해도 행복한 생활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가정 설계도를 주셨습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성경에서 설게도를 찾아내고 가족간에 관계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성경의 설계도대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성경의 설게도대로 갈등을 해소해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려면 성경의 설게도대로 가족들이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I. 자신의 가치관으로 서로 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대하여야 합니다. 남남인 사람이 20-30년 동안 각각 환경과 가치관이 다른 집에서 살다가 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단숨에 어떻게 서로 조화되며 화합하겠습니까? 끝없이 조화되지 못하고 부디치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때문입니다. 아내는 아내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고 남편은 남편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이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가정을 쉽게 깨어 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이런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가치관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A.먼저 아내에게 말씀합니다. 1.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22-24). 2. 남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엡5:33) 3. 남편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딛2:4-5절) 원수같은 남편, 다시 보기 싫은 남편에게 어떻게 순종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남녀가 평등한데 왜 남편에게 복종하는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 가정을 이루어 아내가 되었으니 가정의 질서를 위하여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잘해주어서도 아닙니다. 부자여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서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불신 남편에게도 마찬 가지입니다. 벧전3: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B. 남편에게 말씀합니다. 1.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33). "자신을 사랑함같이..." 2. 아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합니다. (골 3:19)"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3.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벧전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 아내는 ① 부드러운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②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는 길 원합니다. ③ 신뢰할 수 있는 기둥이 되어 주길 원합니다. ④ 재정적으로 안정감을 주길 원합니다. ⑤ 가장으로서 가정에 헌신하길 원합니다.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귀히여겨야 합니다.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몸 이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교회를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부인에게 강요하고 군림자, 독재자가되어 지배하고 굴복시키고 맹종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인과 자녀들로 하여금 남편의 지도력을 따르게 하는 것은 남편이 또는 아버지가 힘이 세다고 힘으로 강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하여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에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가정을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남편의 지도력은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사랑입니다. Ⅱ. 서로 주님께 하듯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동물에게 대하듯, 물건 대하듯하거나 조금 나아져 사람에게 하듯 하며 살면 행복의 진수를 누릴 수 없습니다. 남편 대하기를, 아내 대하기를 동물 대하듯 하지 마십시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새처럼 일찍 일어나 밥을 짖고, 소처럼 잠자코 부지런하게 일하여 돈 많이 벌어오고, 양처럼 온순하여 말대꾸 하지 않고, 개처럼 충성하며 자신만을 바라보고, 돼지처럼 좋든 나쁘든 가리지 말고 아무것이나 주는대로 받아 먹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남편을 동물 대하듯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글에 아버지가 시집을 가는 딸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렇게하면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왕처럼 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서로 주님 대하듯 해야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복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이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24). 또 남편에게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함같이(25b).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함같이(29) 가족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내와 남편을 볼 때 단순한 인간관계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대하듯 대하여야 합니다. 주님 대하듯 대하는데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화난다고 서로 말하지 않고 일주일 냉전을 하겠습니까?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인정해주고 주님께 대하듯 자신을 대해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 최고의 화가 중의 하나인 폴 세잔느가 있습니다. 그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밤새워 그림을 그리다가 원대로 못그리면 버렸습니다. 당시 그는 무명 화가였습니다. 그러면 그 구겨진 그림을 아내가 다시 잘펴서 화실에 갔다 놓았습니다. 다시 그립니다. 그것들이 유명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어떠한 남성이건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반대하고 비웃을 때라도 자기 편을 들어 주는 여성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모든 일이 뜻대로되지 않을 때, 남의 공격을 받을 때, 사업에 실패했을 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에 대한 저의 믿음에는 변함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남편에게 끈기와 용기와 자신을 북돋아 주는 아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19세기 말엽. 미국의 미시간 주, 데트로이드 시의 전등회사에 포드는 다녔습니다. 그는 날마다 10시간씩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뒷뜰에 있는 낡은 오두막집에 틀어박혔습니다. 새로운 엔진의 제작을 위해 밤이 깊도록 일에 몰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쓸데없는 짓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이 젊은 기사를 놀림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의 아내만은 그를 믿었습니다. 집안 일이 끝나면 반드시 그 오두막집에 나타나 남편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나의 信者'라고 불렀습니다.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로부터 50년 후, 포오드는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고 합니다. "내 아내와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건 전혀 개의치 않겠오." 가정의 힘은 위대합니다. 가족에게 천국을 안겨줄 수도 있고 지옥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힘은 가족의 잠재된 능력을 남김없이 끄집어내어 발휘하게 할수도 있고 유능한 사람도 바보로 만들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이 주신 에너지를 사장시키지 말고 다 생산적으로 발휘하여 기적을 만들어내기를 축원합니다.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빌3:1-3/ 문기태목사 2019-03-07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빌3:1-3/ 문기태목사 2019-03-07 11:49:52 read : 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빌 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빌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소련의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는 혁명 전야에 파란 많은 생애가 펼쳐지는 가운데 지식인들의 굴곡된 일면을 노출시킨 작품으로서 장군과 타냐의 대화는 매우 골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장군이 타냐에게 어떻게 해서 아버지를 잃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타냐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적당히 얼버무렸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다그쳤습니다. 이때 타냐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합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내 손을 놓아 버렸어요." 그러자 장군이 타냐에게 "내가 사실을 가르쳐 주마, 코마로프는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네 친아버지는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혁명의 와중이라 할지라도 네 손을 놓지 않았을 거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사단이 가짜를 많이 만들어 놓고 성도들로 하여금 진짜처럼 속아 넘어가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사단이 만든 가짜와 하나님이 주신 진짜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선생님이 빌립보교회에 편지를 보낸 가장 큰 목적은 성도들로 하여금 기쁨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안에서 살 때 예수님께서 기쁨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안에서 살며 예수님이 선물로 주신 큰 기쁨을 맛보았습니까? 날마다 매 순간마다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는(3:1) 올바른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릇된 것과 올바른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이 있는가 하면 세상으로부터 오는 거짓 기쁨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인가?를 주의 깊게 분별해야 합니다. 1. 예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가짜 기쁨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릇된 것들을 알고 삼가야 합니다(3:2). A.개들을 삼가야 합니다(2a). 1)개는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더러운 찌꺼기나 배설물을 먹으며 지나가는 행인을 공격하는 동물입니다. a.그것은 언제나 좋지 못한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b.불결한 동물의 표본으로 인정되었습니다. 2)우리 주님은 개를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자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3)본문에서도 개가 이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곳곳에서 바울사도를 괴롭혔습니다. 일반화해서 말하면, 개란 성서적 진리를 왜곡하고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4)우리는 항상 이런 무리를 주의하고 삼가해야 합니다. a.성서적 진리를 왜곡하는 무리는 언제나 있습니다. b.자칫 잘못하면 넘어가고 맙니다. c.여러분은 이런 무리에게 미혹받은 적이 없습니까? 진리를 붙잡고 천성을 향해 전진하는 여러분에게 다가와 하나님 말씀을 왜곡해서 해석하고 공격하며 진리를 떠나도록 종용하는 이들은 본문에서 말하는 개들에 속합니다. 이런 이들을 조심하고 피해야 합니다. B.악한 일꾼들을 삼가해야 합니다(2b). 1)"행악하는 자들"은 "악한 일꾼들"을 가리킵니다. a.교회 내에나 교회 밖에는 항상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b.그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c.그들은 모범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그러나 그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a.순수하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심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내는 열심이 아닙니다. b.그들은 가는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결국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합니다. c.오도(誤導)된 열심같이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3)우리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열심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진리에 서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 사귀어야 합니다. C.손할례당을 삼가해야 합니다(3:3c). 1)손할례란 구원받은 자에게 다시 육체의 할례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방인중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할레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온전해진다고 가르치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a.그것은 은혜를 율법과 혼합하는 것입니다. b.그것은 순수한 은혜에 대한 훼손이요, 도전입니다. c.그것은 "피부의 절단"이란 것 외에는 신자에게 전혀 무의미합니다. 2)우리는 항상 이런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a.오늘날 육체의 할례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교회내에서 사실상 없다고 하겠습니다. b.그러나 이와 유사한 일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을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가르치고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키고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있어야 하나님앞에 설 수 있는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c.하나님의 은혜에 다른 것을 더 첨가시키는 것이 모두 "손할례당"입니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켜라. 율법을 지켜라. 할레를 받아라. 그 외 어떤 것을 가지고 와서 겁을 주어도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2.위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기쁨을 누리려면 우리는 진짜를 알아야 합니다(3:3). A.우리는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1)그것은 피부의 절단이 아니라 마음의 죄악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2)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할 때 이루어집니다. 3)그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할례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의 할례를 받았습니까?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B.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합니다(3a). a.신령과 진정의 예배라야 합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 진리를 깨달아가는 감격이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b.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 예배를 구경하고 있지 않습니까? - 우리의 찬송과 기도는 진정이 결여된 무의미한 입놀림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진리에 사로잡힌 감격은 없고 알맹이 없는 의식과 형식의 연속은 아닙니까? c. 성령으로 예배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님께 인도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의지를 내려놓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십시오. 예배를 드리는중에 여러분의 영이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하나님께 온전히 엎드려 순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예배를 성공하며 오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감격을 맛보기를 축원합니다. 2)그는 육신은 신뢰하지 않습니다(3b-c). a.그는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합니다(3b). b.그렇기 때문에 그는 육신에 신뢰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3c). c.우리는 어떻습니까? - 여러분은 육신을 내세우고 자랑하지는 않습니까? - 나의 외모를 자랑하지 않습니까? - 나의 학벌을 내세우지 않습니까? - 나의 신분을 과시하지 않습니까? - 나의 부를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까? - 나의 실력과 능력을 뽐내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이 자기의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하면 예수님과 멀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신 참 기쁨이 사라집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아무리 자랑할만한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더라도 자기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삶을 시작하면 예수님이 더욱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참된 기쁨이 샘솟기 시작합니다. 저는 요즘 우리 성도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또는 성경공부하는 자리에서 대화를 하며 많은 간증을 듣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을 자랑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모릅니다. 같이 듣고 있는 옆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감동을 받아 기쁨이 충만한 얼굴로 변해 있습니다. 예수님을 자랑하는 당사자의 얼굴도 역시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로만 자랑하고 자기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가 이것이로구나!'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 자랑합니다. 자식 자랑, 돈 자랑, 인기 자랑, 실력 자랑, 옷 자랑, 주먹 자랑 등등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가짜 기쁨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자랑하면서도 이건 지나친데, 거짓말이 포함되었는데 들통나지 않을까.. 돌아서면 공허하고 후회가 따라다닙니다. 진짜 기쁨, 위로부터 오는 기쁨을 맛보며 살려면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위기에서 만난 하나님, 실패하여 낙심중에 만난 하나님, 기도하다가 만난 하나님, 예배시간에 찾아 오신 하나님, 최근에 만난 하나님, 예수 믿고 성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며 맛 본 기쁨에 대하여 자랑해 보십시오. 그것이 진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진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가짜를 만들어 우리로 혼란에 빠지게 만듭니다. 겉 모양은 아주 비슷합니다. 그러나 속은 다릅니다. 사단은 우리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그럴싸하게 만들어놓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 여기에 정말 좋은 만족이 있어,' '이것이 정말 너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이 길로 가야 너는 성공하는 인생을 살게 돼.'기쁨을 원해 그렇다면 네 자랑을 실컷 해봐. 그리고 예수 십자가 대신 너의 행위와 공로를 의지해.' 여러분 절대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참 된 기쁨은 사단의 사자들을 조심하고 피하며 자기 육체대신 그리스도 예수를 부지런히 자랑하고 살 때 찾아옵니다. 그리고 참 기쁨은 성령에 붙잡혀 영적인 예배를 드릴 때 충만하게 임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더 기쁨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들리기를 축원합니다.
감사가 가져다 준 기적 /행16:25-34/ 문기태목사 2019-02-21
감사가 가져다 준 기적 /행16:25-34/ 문기태목사 2019-02-21 02:28:05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니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행 16:26)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들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행 16:27) 간수가 잠에서 깨어서,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는, 죄수들이 달아난 줄로 알고, 칼을 빼서 자결하려고 하였다. (행 16:28) 그 때에 바울이 큰소리로 "그대는 스스로 몸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모두 그대로 있소"하고 외쳤다. (행 16:29)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행 16:30)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두 분 선생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행 16:31) 그들이 말하였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 (행 16:32)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수와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었다. (행 16: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가 상처를 씻어 주었다.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이 그 자리에서 세례를 받았다. (행 16:34) 간수는 그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음식을 대접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가장 긴 밤' 등을 집필한 작가 코넬리어스 라이언은 5년간 암으로 투병하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투병 중에도 매일 아침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좋은 날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라이언은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한결같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무엇이 그렇게 감사하냐고 물었답니다. 라이언이 대답하기를 "새날을 맞는 다섯 가지 기쁨이 있소. 첫째, 사랑하는 당신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오. 둘째, 가족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고 셋째, 병들어 눕기 전에 작품을 탈고한 것이 감사하지요. 넷째, 병마와 싸울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주님이 지금 나와 가까운 곳에 계신다는 사실이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사람들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고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빌립보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주장사를 하던 여자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는 귀신들린 여자가 있었는데 점을 잘 쳐서 그의 주인에게 큰 돈을 벌어다주는 점쟁이였습니다. 그 여자가 여러날 바울을 쫓아다니며 이 사람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라고 소리쳤습니다. 바울이 그 여자를 보니 너무 불쌍해서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의 종들이 보니 귀신을 쫓겨나는 바람에 더이상 여종이 점을 쳐서 돈을 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화가 몹시 나서 바울을 관리들에게 끌고가서 소란죄로 고소를 하였넣습니다. 관리들은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고문하고 때려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들어갑니다. 감옥에 가니 춥습니다. 배고픕니다. 온 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냄새도 지독합니다. 옛날 감옥이니까 상상할 수 없는 정말 비참한 곳입니다. 이런 곳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돈도 없고 변호해 줄 사람도 없으며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복음을 위해 많은 고생을 자원하여 빌립보까지 왔건만 그리고 아무도 감독하는 이가 없어도 열심히 수고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칭찬이나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큰 고난이었습니다. 위험이었습니다. 외로움과 억울함이었습니다. 지금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불행하고 원망과 불평이 절로 나오는 안타까운 처지엿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이며 초라한 생명이지만 바울과 실라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어려울수록 더욱 기도합니다. 찬송까지 했습니다. 야고보서 5:13에 '너희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고난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을 알았고 고난속에서도 즐거워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그런 고난속에서 즐거워할 수 있었을까요? 감사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본능적으로는 당연히 불평이 나와야합니다. 낙심과 원망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주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기대한 축복은커녕 고난과 위기와 어려운 환경에 처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무조건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우리는 알지못하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숨어있을 것이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찬송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환환 하나님의 빛이 비쳤습니다. 고난속에서 위기속에서 곤경에서 믿음으로 기도하고 은헤를 확신하여 찬양 감사를 드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모든 옥문이 다 열립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사슬이 다 풀립니다. 사단은 어떻게든 하나님의 백성들로 복음을 위해 헌신하지 못하도록 보이지않는 감옥에 가두고 강력한 사슬로 묶습니다. 그런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사단의 감옥을 탈출하는 길은 기도와 찬양감사가 최선입니다. 여러분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꼼짝못하도록 가두고 있는 감옥이 있습니까? 여러분을 불행하게 묶고 있는 사슬이 있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질병입니까? 어두운 환경입니까? 실패입니까? 악화된 관계입니까? 불안한 마음입니까? 가난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만을 바라보지 말고 문제보다 훨씬 크신 살아게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로 여러분의 상황을 아뢰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를 힘껏 찬양하기 바랍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려고 헌금을 하는 중이였습니다. 서양에서는 헌금 접시를 돌릴 때 만약 큰돈을 가졌는데 적게 내고 싶으면 헌금 접시에 큰돈을 놓고 잔돈을 거슬러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또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이 흉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그 헌금 접시가 어느 눈먼 사람 앞에 멈추었습니다. 그 사람은 1프랑도 헌금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7프랑을 접시에 세어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옆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많은 돈을 헌금합니까?" 눈먼 사람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저는 눈이 안 보이지요. 그런데 제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녁 때 불을 켜는 비용이 일 년에 27프랑이 든다고 하더군요. 나는 불을 켤 필요가 없으니 일 년이면 이만큼의 돈을 저축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모은 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몰라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참 빛이 비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세종대왕 때 장영실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우리나라 역사에 가장 훌륭한 발명가입니다. 이 분은 첩의 아들입니다. 아주 노비입니다. 노비! 그래서 고을 원에 원님 밑에서 아주 문안으로도 못 들어오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을 원이 사용하던 장롱이 부서져서 그걸 고치라고 했더니 어떻게 잘 만드는지, 그래서 고을 원이 이 사람을 가까이 일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그 지역에 흉년이 들었는데 강물을 산으로 끌어다가 전부 흉년을 막아내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 어디 있나 그래서 자기 수하에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네 소원이 뭐냐? 그러니까 나는 어머님과 함께 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 어머니는 불행한 사람, 남의 첩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와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이 살게 했습니다. 세종대왕이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렇게 지극한 효성이 있고 머리가 이렇게 영리한 사람인 줄 알고 세종대왕이 데리고 갔습니다. 얼마나 머리가 좋은 지 우리나라 측우기도 이 분이 발명했고, 물시계, 모래시계도 이 분이 발명했습니다. 세종대왕 때 우리나라 발명에 아주 전성기가 왔는데 그 중심에 선 사람이 장영실입니다. 노비도 벗고 벼슬을 얻고 임금님 모시고 잘 살았습니다. 부모님께 원망과 불평을 내려놓고 감사한 마음을 드러내면 천한 노비도 임금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몽땅 닫힌 것 같은 쇠문도 열어주시고 어두운 곳에서 머리를 밝은 곳으로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땅에 낳아주신 부모님 잘 섬기고 질서를 알고 감사하게 살면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기적은 지진이 일어나고 감옥문이 열리며 차꼬가 다 풀린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 감옥을 지키던 간수가 나와보니 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옥문이 활짝 열리고 차꼬가 다 풀려버렸습니다. 칼을 확 빼서 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왜 자살하려고 하겠습니까? 죄수가 모두 다 나가버리면 누구 책임입니까? 자기 책임입니다. 돈 받아먹고 죄수를 풀어주었다고 문초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큰 일 났습니다. 그래서 이 간수는 자살 하려고 합니다. 그때 바울이 말합니다. "자살하지 말라. 죽지마라. 우리가 여기 있다." 옥문이 열렸다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간수는 등불을 들고서 감옥안으로 뛰어 들어와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심이 되기보다는 큰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분들이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이분들을 위해 지진이 일어나고 저절로 감옥문이 다 열리며 차꼬까지 다 풀렸는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굉장한 분들인데 나는 몰라보고 옷을 따 찢어버리고 맨 살을 매로 몹시 쳤는데 이제 큰 화가 미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벌벌 떨며 엎드려 '내가 어떻게해야 용서 받을 수 있습니까? ' 하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유명한 말씀을 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렇게 바울에게 간수와 온 가족이 모여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온 가족이 다 침례까지 받아습니다. 그리고는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모셔가서 매 맞았던 자리를 씻겨줍니다. 음식을 정성껏 차려옵니다. 온 집안이 구원받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기뻐하는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기적중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매를 때리며 고문을 했던 간수가 그 가족과 함께 구원받고 변화되어 새삶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최초의 교회 빌립보교회의 기둥같은 일군이 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고생하며 빌립보에 온 목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이 놀라운 일이 어떻게 이루어 졌습니까? 기도하는데서 이루어 졌습니다. 찬송하는데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환경, 어려움, 고통과 위기속에서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찬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빛도 창조하고 어두움도 창조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캄캄함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빛으로 바뀌어지고, 우리의 절망과 멸망이 찬송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은혜로 바뀌어 집니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일이 늘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적만 좋아하면, 기적이 끝났을 때 감사도 끝이 납니다. 기적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기적은 계속될 것입니다. 문둥병자 열 명 중에 한 명은 기적도 좋았지만,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기적에만 만족했습니다. 기적에 감사하는 사람이 십 분의 구이고, 기적을 베푸시는 분에게 감사하는 사람은 십 분의 일에 불과합니다. 어느 중국 가정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정에 30여명이 모여 숨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가정의 아들과 어머니가 열심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자주 집을 비우자 속이 상한 남편이 "내 며느리는 반드시 믿지 않는 여자로 내가 고를 것이다"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반드시 예수 믿는 여자를 고르셔야 합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속이 더욱 상한 아버지는 그만 가정교회를 경찰에 고발해 버렸습니다. 경찰에 붙잡혀간 30여명의 성도들은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벌금을 낼 돈이 없어 몸으로 때우겠다며 30명이 유치장에 앉아 기도하고 찬송을 불러댔습니다. 그리고 이미 들어와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전도해 버렸습니다. 시끄러운데다 세끼 밥까지 먹여주어야 하니 경찰도 낭패였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불러 그까짓 일로 고발했느냐고 호통을 치고 성도들을 내보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사도행전 시대의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여성을 꼽는다면 크로스비를 꼽을 수 있습니다. 크로스비는 출생한지 6주밖에 안되었을 때에 안질을 앎았는데 의사의 오진으로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불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크로스비는 신앙으로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그의 불행은 변하여 은총이 되었습니다. 여사는 잃어버린 시력대신에 신앙의 영안을 떠서 6000여 작품을 섰습니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이 감사의 시란 점입니다. 예를 들면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같은 정말 아름다운 시입니다. 그녀는 감사로 일생을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기적을 낳습니다. 믿습니까? 감사는 삶의 굴곡과 역경을 역전시키는 영적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말하자면 감사는 삶의 촉진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많은 감사의 조건이 있는데도 이것을 물에 기록하기 때문에 잊고 맙니다. 건망증이 심해서 잊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불평할 일이 생기고 원망할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감사해보세요. 그러면 우리의 삶은 역전이 됩니다. 영적 생기가 생깁니다. 새로운 촉진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밝은 면을 보면서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5:18/ 문기태목사 2019-03-06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5:18/ 문기태목사 2019-03-06 02:00:25 read : 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살전 5:18)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2차대전 중 헤롤드 럿셀이라는 공수부대원이 전투에 나갔다가 포탄에 맞아 두 팔을 잃어 불구자가 됩니다. 그는 참혹한 좌절에 빠집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었구나." 그런 가운데 그에게 차츰 진리의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자각하였습니다. 의사가 그에게 의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글을 쓰고 타이프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화되어 직접 장애인의 모습으로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정성을 다해 연기를 하였습니다. 그 해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탔습니다. 그 상금은 상이용사를 위해 기부하였습니다. 어떤 기자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신체적인 조건이 당신을 절망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결연히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나에게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것을 사용할 때 잃은 것의 열 배를 보상받습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부활절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축제의 절기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마음으로 한 해 동안의 받은 은혜를 돌아보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다른 때보다도 푸짐한 성찬을 준비하여 온 성도들이 함께 나누어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를 마음껏 축복하는 복된 날입니다. 여러분 오늘만큼은 불평의 말, 섭섭한 마음, 원망이나 짜증은 다 날려버리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 감사의 기도, 감사의 찬양을 풍성하게 드러내십시다. 특별히 우리가 감사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유난히 감사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왜 감사해야 하나? -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감사하라. 성경은 "감사하기를 바란다." "감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라고 말슴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라." 고 명확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원하면 감사하라는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어떤 곳에 무엇이든지 희귀한 것만을 갖고 싶어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맛이 기막히게 좋은 요리를 잡수신 후 감탄했습니다. "이제껏 먹어 본 요리 중에서 이것이 제일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요리를 만든 요리사는 세계 제일의 요리사임에 틀림없다. 많은 상을 주어야겠다." 그러면서 요리사를 불러들였습니다. 요리사는 임금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겸손해 했습니다. "임금님, 칭찬해 주시니 대단히 기쁩니다만 이 요리는 제 기술이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만약 좋은 야채를 파는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칭찬해 주시려거든 좋은 야채를 많이 파는 채소 장수를 칭찬해 주십시오." 임금은 그럴듯하다고 생각되어 채소 장수를 불렀습니다. 성으로 불려 간 채소 장수는 칭찬의 마을 듣고 깜짝 놀라며 말하였습니다. "임금님,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야채를 팔았을 뿐이며 칭찬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야채를 키운 농사꾼이겠지요." 이번에는 농사꾼이 불려 갔습니다. 농사꾼은 무엇인가 잘못한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며 임금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농사한 야채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듣자 깜짝 놀랐습니다. "임금님, 그것은 틀립니다. 저는 그저 손질만 했을 뿐입지요. 제가 땅을 갈아 씨를 심어도 때에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는 분이 없으면 저는 잎사귀 하나, 열매 하나 만들지 못하지요. 단지 저는 대대로 농사꾼이었기에 봄에 씨뿌리면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것뿐입지요. 감사의 인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힘입어 살아갑니다. 일일이 셀 수 없이 많은 은혜를 힘입으며 살아갑니다. 때로 그것이 자연을 통해 오거나 사람을 통해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꼭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잘 하든 그렇지 못하든 상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공급하여 우리를 만족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일일이 하나님께 구하지 못하였어도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십니다.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도움을 주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 합당합니다. 물을 연구했던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는 물에도 눈(雪)처럼 결정체가 있다며 물에 베토벤 교향곡 전원을 틀어주었더니 물의 결정이 맑고 아름답게 정돈된 형태를 보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분노와 반항의 언어로 가득 찬 헤비 메탈 곡을 틀어주었더니 제멋대로 깨진 형태를 띠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감사'나 '사랑'같은 말을 들려주면 물의 결정이 아름답지만 '욕설''불평''비난' 등의 언어를 들려주면 결정이 흩어지고 찌그러들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은 어떠할까요? 우리가 감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 때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됩니다. 지그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있는 장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감사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행복의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감사하면 행복에 이르게 됩니다. ①큰 것에 감동하고 놀라기보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발견하십시오. ②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감사를 찾아내십시오. ③기적적인 일에 감사하기보다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④감사를 계속하므로써 불평과 불만이 치료되는 것을 경험하십시오. ⑤감사는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됩니다. ⑥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뀝니다. 모든 관계에 평화가 깃듭니다. ⑦감사하는 순간 축복이 임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만방에 선포하는 감사의 선교사가 됩니다. 17세기 영국의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남겼다. "주님! 주님은 제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제게 한 가지만 더 주시옵소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여러분 감사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감사 명령에 순종하므로써 하나님께 인정받고 백 배나 더 행복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2. 언제 감사해야 하나? 범사에 감사하라. - 누구나 언제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18세기의 가장 유명한 기도의 사람 로는 "만일 어떤 사람이 인생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지 그 사건에 대해서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대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 수많은 명작을 남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가 있습니다. 그가 짧은 한 평생을 살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가 살해당했습니다. 고아로 성장하였습니다. 청년 시절을 만나서는 혁명당에 들어갔다가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아 시베리아로 유형 되어 4년 간 살았으며, 결혼은 하였으나 아내는 질병으로 죽고, 재혼을 하였으나 태어난 아이가 또 죽고 종래에는 자기 자신 마저도 간질병에 걸려 평생 그 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살아야 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그 무서운 질병이 자신의 신앙을 강하게 만들었고, 정신을 무장시켜 주었기에 자신의 병을 '거룩한 병'이라고 부르며 오히려 감사하였다고 합니다. 코넬리우스 라이언은 `세계 2차 대전'이라는 대하소설을 집필한 사람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5년 간 암과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미망인이었던 라이언 여사는 그가 죽은 후 `가장 길었던 날'이라는 회고록을 썼는데 거기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침마다 드린 다섯 가지 감사가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 아이들을 하루 동안 볼 수 있었던 것, 소설을 거의 탈고할 수 있었던 것, 병과 싸울 수 있는 의지가 있었던 것, 예수님께서 오늘도 미소짓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도스토예프스키나 코넬리우스보다 감사의 조건이 부족한 사람입니까? 감사할 것이 별로 없어서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좋아 보이는 일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게 보이는 일을 만났을 때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높아질 때 뿐 아니라 낮아질 때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내 뜻대로 되었을 때 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에도 감사하여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가리켜 감사 불감증과 감사 결핍증에 걸린 시대라고 성경은 진단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2)"라고... 감사할 것이 없어서 감사하지 못합니까? 감사할 것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믿음을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감사할 재료입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큰 복이 장대비처럼 우리 머리위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불신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음이 둔하여져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그릇이며 불평은 불행의 재료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은 행복의 원료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에도 감사할 뿐 아니라 안 좋은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뿐 아니라 큰 일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의 양지에 있을 때도 감사할 뿐 아니라 음지에 있을 때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이 하나도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참뜻입니다. 3. 누가 감사해야 하나? 이는..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가 감사하는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에게 감사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감사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신앙이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때 전사한 한 무명용사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수첩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님! 나는 출세를 위해 당신에게 힘을 구했으나, 당신은 저에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어 건강을 청했으나, 당신은 보다 큰 당신의 선을 이루시려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당신에게 부귀를 원했으나, 당신은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에게 만민이 우러러 존경하는 자가 되고파 명예를 구했으나, 당신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당신만을 필요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나는 홀로 있기가 외로워 당신의 우정을 청했으나, 당신은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주님! 나는 당신에게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원했으나, 당신은 나로 하여금 다른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당신께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으나, 그러나 당신께서는 당신이 내게 주시기를 원하시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다 채워 주셨습 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참으로 그는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아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합니다. 감사지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건강지수와 행복지수가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의 행복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습니다. "그대의 마음 속에 감사하는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이다. 부디 다른 공부보다도 먼저 감사하는 공부를 배우라." 그만큼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인간의 근성은 감사에 인색합니다. 심지어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두발 달린 동물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녀를 키우면서 쉽게 동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풍요로운 사회에서 부모들은 자식이 원하는 것이라면 대부분 거절하지 아니하고 다 들어줍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운 자식일수록 나중에 부모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은 우리를 괴롭힐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불평하면서 살 때 얼마나 불행해질 것을 아시고 자꾸만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하는 모습을 보시고 "성숙했구나!" "네가 나를 믿는구나!" 하시며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감사생활을 요구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해서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수없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별로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계속 불평했습니다.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 과일이 없다. 푸추가 없다. 길이 나쁘다.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등등 불평하는 그들에게서 믿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성숙과 행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진 사건을 인하여 감사하며 행진했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쏟아진 것을 인하여 날마다 감사했으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셨겠습니까? 옷이 떨어지지 않고 신발이 사십년동안 하나도 닳지 않은 것을 보며 감사했으면 얼마나 하나님이 사랑스럽게 여기셨겠습니까?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이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것을 가지고 감사했으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쁘게 더 큰 복으로 부어주셨겠습니까? 그런데 감사하기는 커녕 불평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원하십니까? 가족들을 인하여 더욱 감사하십시오. 행복한 교회생활을 원하십니까?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목회자를 생각하며 힘써 감사하십시오. 행복한 직장생활, 학교생활을 원하십니까? 직장 상사, 동료, 부하 직원 그리고 선생님, 친구들 등을 인하여 억지로라도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4. 어떻게 감사해야 하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감사는 막연히 느끼는 고마운 감정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소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6:2-14)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사에는 적어도 3가지 요소가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감사에는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나님께서는 이런 간절한 마음이 담긴 감사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보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감사 드릴 수 있을까? 이런 간절한 마음을 담는 것이 감사요. 예배입니다. 은혜를 깨닫고 무언가 보답하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방법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할 수 도 있지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을 일컬어서 감사라고 합니다.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제사장을 찾아가는 도중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9명은 "우와! 내 병이 나았네. 아이고, 고마워라." 하며 고맙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그 이상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1명, 바로 사마리아 사람은 병이 낫자,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님에게로 다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 앞에 넙죽 엎드려 주님을 경배하면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셋째로 진정한 감사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예물을 들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소원이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약속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정말 응답해주시면 너무나 감사해서 자기가 서원한 것을 그대로 시행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 정말로 아들을 얻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아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평생 기도한 것을 다 받고 나니 너무나 감사해서 말년에는 자신이 쌓아 놓았던 모든 재산을 성전을 짓는데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서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주저하지 않고 드려보셨습니까? 오늘은 감사절입니다. 감사는 좋은 선물을 많이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부지런히감사하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적극적으로 감사생활을 힘써 더 큰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 /시50:22-23/ 문기태목사 2019-03-05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 /시50:22-23/ 문기태목사 2019-03-05 03:47:58 read : 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시 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인생을 성공하는 비결은 뭐냐? 한 마디로 말하면 감사입니다. 토마스 J. 레프라는 사람이 최고의 경영자들에 관해서 연구한 책에 보면 세계적으로 정상을 차지한 성공한 사람들의 성격을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 특징이 하나 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이 아니라,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 마음 속에 감사로 꽉 찬 사람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꽉 찬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감사하는 사람이 가는 나라이며,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는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감사하는 사람이 가는 나라이고, 마귀의 나라는 감사 없는 사람이 가는 나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인간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은 여러분 곁에 와 있습니다. 그 행복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 감사하면 행복이 내 것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소유가 많고, 가진 것이 많고, 명예가 많다 하더라도 불평하면, 행복은 저 멀리 달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 마음 속에 정말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행복이 손 닿는 곳에 와 있고, 그 행복을 잡을 수 있고, 행복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을 통해서만 들어옵니다. 모든 것이 풍요해도 현대인이 불행한 것은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 수학책을 솥에 넣고 삶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수학익힘책이 된답니다." 저도 수학에 관한 수수께끼를 하나 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학이 무엇인지 아세요?" "가장 어려운 수학은 하나님의 은혜를 세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몇 가지나 됩니까? 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란 것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15절에 보니까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하나님께 할 감사는 너무너무 많아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셀 수가 없어요, 산수로 못 세요, 수학으로 못 세요. 그것이 하나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첫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본문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니"하셧습니다.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으시고 만나면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불평하는 마음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감사절입니다. 더욱 감사한 마음을 품고 풍성한 감사를 표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입술로 감사하고 물질로 감사하고 몸으로 나아와 보이며 예배를 드림으로 감사하고 감사의 감정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최선을 다한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되신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감격스러운 일이 아닙니까?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나같이 미약한 존재가 진실된 감사를 표현함으로 영화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 힘껏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립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감사로 영화롭게 해 드리면 하나님께서 어떤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까요? 1.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행복한 삶을 주십니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가 식어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크고 많은 은혜를 경험했지만 감사에 인색했습니다. 늘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바라보지 않고 없는 것만 찾아내 불평만 일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다못해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감사에 적극적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까? 어떻게하면 은혜를 고마워하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더 잘 표현할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을 잊지 않고 범사에 하나님을 기억하는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배은망덕한 이들을 하나님은 찢으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라를 찢으시면 그 나라와 백성은 불행해집니다. 하나님이 가정을 찢으시면 가족들은 불행해 집니다. 하나님이 사업을 찢으시면 관련된 사람들은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건강을 찢으시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찢으시면 큰 일입니다.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를 회복하고 예배를 회복하면 하나님은 찢은 것을 다시 싸매어 주십니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하나님께 돌이키고 감사를 회복하면 하나님께서는 도로 낫게하시고 찢으신 것을 싸매어주시며 봉합해 주실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이 그리고 건강과 깨어진 관계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다시 회복되어지고 행복을 되찾게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나라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감사의 운동이 일어나 하나님께서 찢어진 나라를 만지셔서 통일의 날이 속히 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감사가 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요? 하나님이 진정 나의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시50:7). 파스칼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 불행한 사람,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 - 괴로운 사람, 하나님을 만난사람 -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밖에 있는 사람과 구별되는 것은 감사의 표현에서 나타납니다. 여러분 감사에 인색하지 마시고 풍성하게 되어 찢어지고 깨어진 것 다 회복되는 큰 은혜를 받아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2.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습니다.(23상)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그곳에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비취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감사로 드려지는 제사를 기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사라고 다 같은 제사가 아니며 다 같이 모여 드린 예배라고 다 같은 예배가 아닙니다. 어떤 제사를 열납되지 않았으며 어떤 제사는 하나님께 열납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잘 드림으로 하나님께 그 믿음과 사랑이 인정받고 큰 복을 받았으나 어떤 사람은 예배를 경홀히 여기고 합당치 않은 예배를 드림으로 화가 미치기도 하였습니다. 그 마음에 죄의 소원만 강력하게 솟구쳤습니다. 이미 받은 축복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그 축복에 더 큰 축복을 계속하여 받습니다. 감사를 잊는 것은 은혜를 헛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서 열문둥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아홉은 집으로 돌아가고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를 잊지 않은 사마리아 사람에게 영혼구원의 축복까지 안겨주셨습니다. 여러분 나병에서 구원받은 것과 영원한 멸망의 자리인 지옥에 갈 운명에서 구원받은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큰 축복입니까? 그렇습니다. 영혼 구원의 축복입니다. 다른 아홉은 나병에서는 구원받았으나 그 영혼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지옥에서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까요? 축복은 받는 것보다 받은 그 축복을 감사하고 계속 누리는 것이 몇배나 더 어렵고 또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불평하는 자에게는 불평으로 갚아주시고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로 갚아 주십니다. 감사는 행복해지는 연습이고 불평은 불행해지는 연습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잊은 자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육간에 은혜를 받고도 감사를 잊어버림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기회를 놓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작은 것이라도 지나치지 않고 감사를 표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하나님게 그 믿음을 인정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쉬우면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믿음이 잘 성장합니다. 감사에 인색해지면 그때부터 성장은 멈춥니다. 마음도 굳어집니다. 풍성하던 은혜도 중단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앞에 나올 때 다른 것은 놓고 오더라도 감사한 마음은 절대 빼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환란에서 구해줍니다. (23하)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를 가리키는 말슴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인생은 그 행로에 환난을 만나 실패와 절망으로 몸부림칩니다. 이때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전화위복이 되게 하시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크신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는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며 승리의힘을 공급하여 줍니다. 어떤 환난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환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고 한숨이 변하여 찬송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주셨으되 내 것이 아니고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므로 주인되신 그분께 마땅히 감사를 드리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당연하게 여기는 기정 사실인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빌려쓰고 다시 돌려 줄때는 '감사합니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모든 것을 공급받아 쓰면서도 감사하는 생활을 못한다면 얼마나 무례하기 그지 없는 모습일까요. 세상 떠날때 우리의 모든 소유를 두고 면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에 최초의 금메달을 안겨준 후 소위 얼짱 몸짱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유도선수 이원희(23)에게 믿음짱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붙었다고 합니다. 이 선수는 간증을 통하여 순수하고 맑은 신앙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드러냈습니다. 이 선수는 태릉선수촌에서의 힘들었던 훈련과정과 48연승 중단 후 찾아온 슬럼프, 금메달 0순위 후보라는 높은 기대감에 대한 부담 등을 기도가 아니었다면 극복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 불면증으로 숙면도 취하지 못하는 가운데 새벽 5시부터 고된 훈련을 받았지만 기량이 향상되지 않고 힘도 부치자 '차라리 이러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비로소 담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선수가 올림픽 경기에서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는 중상을 극복하고 상대에게 뒤지다가 경기를 뒤집는 등의 놀라운 투혼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의지하니까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경기 중 손가락이 옆으로 쑥넘어갔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진통제도 맞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부상으로 허벅다리걸기에 필요한 잡기기술을 사용할 수 없어 대신 업어치기를 시도했는데 그게 먹혀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생각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죠." 이 선수가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국민들과 특히 기독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 준 멋진 기도 세레모니를 펼친 것은 숱한 난관을 믿음으로 극복한 후 빚어진 신앙의 결정체인 셈입니다. 이처럼 위기와 환란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의지하며 경외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위기와 환란에 구원해주십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험난한 길을 걸어가며 만나는 어려운 상황에서 매번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고 역전드라마를 펼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삶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예배하는 사람을 모든 환란에서 구해주십니다. 감사의 신앙이 열쇠입니다. 감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 천국보물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를 유통하십시오 /빌1:3-5/ 문기태목사 2019-03-16
감사를 유통하십시오 /빌1:3-5/ 문기태목사 2019-03-16 10:29:04 read : 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빌 1: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 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오늘도 제가 설교를 잘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분위기를 덥혀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환한 미소에 좌우 앞 뒤의 사람이 녹아듭니다. 웃으며 인사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 당신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몇 주 째 유통시리즈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거룩한 유통업자가 되어서 유통을 잘 시키고 있습니까? 어떻게 유통시키고 있습니까? 제일 쉬운 방법으로 들은 말씀중에 은혜를 받은 부분을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녀에게 해주어도 좋습니다. 안믿는 가족도 좋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도 상관없습니다. 전도대상자라면 더 좋겠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유통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세상에 점점 넘쳐날 것입니다. 유통업자는 자기가 물건을 만들지 않지만 누군가 좋은 제품을 만들면 보다 많은 사람이 그 물건을 편리하게 활용하도록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말씀을 들으면 나만 혼자 간직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공급해줄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나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오늘도 큰 은혜를 받고 유통시킬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3절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빌립보 성도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바울이 생각할 때마다 감사를 하였을까요? 물론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좋은 사람들이었겠지만 바울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들을 생각하면서 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바울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터져나오고, 기도할 때마다 기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꾸로 생각할 때 마다 억울하고 원통함이 가득해지고 기도할 때마다 불평과 원망이 솟아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기뻐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모습입니까? 여러분도 바울의 신앙스타일을 본받아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솟아나게 되기 바랍니다. 감사가 무엇입니까? 감사는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받은 은혜에 대하여 잊지 않고 감사를 표현하면 기쁩니다. 감사를 받는 쪽도 하는 쪽도 모두 기쁘고 행복해집니다.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으면 은혜를 베푼 쪽도 섭섭하고 받은 편에서도 마음이 황폐해지게 됩니다. 성경에는 감사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가 헤아려보니 366번 기록되었답니다. 하나님은 윤년까지 염두에 두셔서 일년에 하루도 빠짐없이 감사를 하라는 뜻으로 해석을 하였는데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고나면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중의 하나는 감사가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시고 계심을 발견하고 감사가 넘쳐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할수록 나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기 때문에 그분이 다 잘 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시련을 만날 때도 별로 걱정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로 하여금 감사가 넘치게 하시려고 두 가지를 열어주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의 재료를 많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거리를 많이 주십니다. 제 아내가 하루는 고민을 합니다. "오늘은 무얼 먹지?" "그냥 아무거나 간단하게 만들어 먹지, 뭘 그렇게 고민하느냐?"고 했더니 "재료가 많이 있으면 뭐가 어렵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음식을 만들 재료가 많이 있으면 반찬을 만드는 것도 쉽습니다. 감사할 거리가 많으면 감사도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할 거리가 풍성하게 우리에게 복을 많이 부어 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예전에는 그것이 감사한 일인줄 모르고 살았는데 믿음의 삶으로 들어가면 축복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더이상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게 됩니다. 믿음이 성숙해질수록 눈이 활짝 열리게 되어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어떤 분이 식사 대접을 하기에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더니 "제게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맙습니다."라고 감사를 하였습니다. 감사의 눈이 열리면 이처럼 감사할 재료가 우리 주위에 널려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사는 끝이 없습니다. 감사는 단순한 예절이 아닙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수준높은 신앙입니다. 감사는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표현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내가 은혜를 입은 사람인 것을 깨닫기만 하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크게 달리지기 시작합니다. 감사에는 놀라운 능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적극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면 기쁨이 마음속에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인생을 더 사랑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는 사람에게 어떤 복을 부어 주실까요? 하나님께서 감사에 어떤 신비를 담아 주셨을까요? 1. 감사는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행복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감사에 탁월한 분들도 처음부터 감사를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감사를 수준있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평만 하다보니 계속 불평할 일만 생기고 불평이 불행을 불러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를 명하신다고 해서 억지로라도 감사를 표현해 봅니다. 단순하게 감사를 표현해 봅니다. '건강 주심을 감사합니다.' '구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런데 막상 감사를 하다보니 진짜 감사한 것들이 깨달아집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기쁨이 넘치게 되고 행복한 사람으로 바뀌어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더 큰 감사를 드리는 믿음이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넘치면 인생이 행복하게 바뀝니다. 반면에 불평으로 시작하면 더 큰 불평을 낳습니다. 감사로 시작하면 더 큰 감사로 이어집니다.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인생은 아주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슬기로운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것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는데 적게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 억울하고 섭섭하고 원망이 앞섭니다. 내가 노력하여 얻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면 기쁨의 반응대신 무덤덤해집니다. 모두다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감격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분한 선물이라고 여겨지면 기쁨이 밀려옵니다. '수고한 것보다 많이 받았다.'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좋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감격합니다. 기쁨이 솟아납니다. "돈을 내고 해야 되는데 돈을 받고 하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칭찬까지 들으니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것이 은헤로 주어진 것을 깨닫게 될 때 진정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사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행복해집니다. 감사하는 만큼 행복은 커집니다. 우리는 감사를 통해서 은혜감각이 새롭게 됩니다. 은혜감각이 발달되는 곳에 기쁨과 행복이 자리를 잡아갑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다가 기뿐이 나빠졌습니다. 사회가 다 썩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저주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썩어빠진 세상! 그냥 다 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때 누가 대문으로 신문을 던져 넣습니다. '누가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배달하나? 저 사람이 죽으면 내가 신문을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저 신문배달하는 사람은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우유가 배달되었습니다. '우유 넣는 아주머니도 살아야지 내가 우유를 마시겠지?' 그래서 우유 배달부도 살려 주었습니다. 출근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지 않습니다. 버스가 나고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버스 운전 기사도 살려줍니다.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순경을 보았습니다. '저 교통순경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서 생각해보니 살려준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고보니 문득 '이 세상에 죽어야 할 사람은 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주변 사람들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이 되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세상을 밝게 보는 눈이 열리고 서서히 행복감이 밀려들기 시작하더랍니다. 기쁨은 은혜를 인식하는 마음에 싹트고 행복은 내가 받은 모든 것이 내게 과분함을 알 때 찾아옵니다. 과분하게 받았음을 깨닫고 감사를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감사는 우리의 삶을 능력있게 만듭니다. 감사는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받았으며 얼마나 과분한 것임을 고백할 때 진정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종종 교인들의 인사를 받습니다. "목사님 오늘 말씀에 큰 은헤를 받았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예, 격려와 칭찬 고맙습니다. 그러나 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한번씩 되물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말씀, 어떤 내용에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그냥 다 좋았습니다." 하는 분이 있고 "이러이러한 말슴에 이러한 것을 깨달았고 이렇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들은 말씀을 기억하며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후자를 만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릅니다. '내 설교를 정말 잘 들었구나! 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했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나고 얼마나 흥분이 되는지 모릅니다. 추상적인 감사는 무효입니다. 내용없는 감사도 무효입니다. 감사는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괜히 별 내용없이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 사람이 뭘 원하는게 있나? 갑자기 왜 저러지?'하고 오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또렷이 기억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감사하면 기쁨도 배가되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은혜를 아는 사람임을 보시며 크게 기뻐하십니다. 왜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으며 살고 있음에도 감사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은헤와 축복을 헤아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는 별로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사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 축복과 은헤를 헤아리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헤아리는 능력이 없는 사람도 불평을 헤아리는 데는 탁월합니다. 어려서부터 산수를 배워 셈을 잘하는데 나쁜 쪽으로만 활용하는 것입니다. 축복을 헤아리기 보다는 불행을 헤아리고 감사의 요소를 헤아리기 보다는 불평의 요소를 헤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감사는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나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받은 축복을 헤아리는 능력이 있는 사람만 감사합니다. 무능한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크고 많은 은헤를 입고 있는지를 셀 수 있는 사람만이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사는 곧 능력입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감사합니다. 또한 감사하는 만큼 능력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학원에 가는데 어느날부터 선생님의 강의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 오늘 들은 것이 이것이구나'하고 생각을 합니다. 받은 것을 받았다고 느낄 때 실력이 향상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이 정도 생각뿐입니다. '다 좋은 이야기지. 교회에서 어련히 알아서 좋은 말만 하겠지 뭐.' 그런데 어느날부터 말슴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보다. 하나님이 내 사정을 아시고 어쩌면 내게 꼭 맞는 설교 말씀을 주시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이 그 사람안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말씀이 내 마음이 깊이 박혀서 집에 가서도, 직장에 가서도 자꾸만 떠 오르기 시작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여러분은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며 큰 변화를 맛보며 살게 됩니다.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하면 변화가 일어나고 신앙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속에서 큰 일을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받은 은혜를 빠트리지 말고 잘 헤아리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면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노란 나비와 흰 나비가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노란 나비에게는 참 좋은 일만 일어나고 흰 나비에게는 늘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노란 나비는 늘 기뻐했고 흰 나비는 늘 우울했습니다. 하루는 호랑나비가 훌륭한 봉사 정신을 가졌다고 인정받아 나비들을 대표해서 표창장과 상금을 받았습니다. 노란 나비는 그런 훌륭한 나비가 자기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흰 나비는 자기보다 못한 것 같은 호랑나비가 상을 받은 것이 왠지 마땅치 않았습니다. 며칠간 계속 비가 와서 모두 집에만 갇혀 지내던 나비들이 햇빛이 나기 시작하자 밖으로 몰려 나왔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그들은 서로 그간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흰 나비도 말했습니다. "습기가 너무 차서 벽이 다 썩고 퀴퀴해서 못살겠어. 웬 비가 그리 많이도 내린담." 노란 나비의 목소리도 들려왔습니다. "이번 비에 비설거지도 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꽃들 좀 봐, 키가 껑충 날씬하게 커졌잖아." 과연 노란 나비에게는 늘 좋은 일만 생기고 흰 나비에게는 나쁜 일 만 생기는 것일까요.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품성에 따라 늘 기쁠 수도 항상 우울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감사하면 할 수록 우리 인생은 밝아지고 행복해집니다. 또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에 사로잡혀 탁월한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우리만 감사하지 않고 세상에 감사를 유통하면 세상은 더 밝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집니다. 나아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며 불행과 불평을 밀어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감사를 유통시키는 탁월한 유통업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의 열매를 맺는 인생 /사12:1-6/ 문기태목사 2019-03-16
감사의 열매를 맺는 인생 /사12:1-6/ 문기태목사 2019-03-16 22:09:25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불평인생입니다. 불평인생은 늘 불평거리가 눈에 보입니다. 밥상을 쳐다보아도 불평이 보이고, 자녀들을 보아도 못 마땅하고, 학교나 직장에서도 불평거리가 가득합니다. 공무원을 보아도, 정치인을 보아도, 사회 구조를 보아도 불평만 가득 보입니다. 심지어 교회도 못 마땅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불만이 가득합니다. 불평인생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불평거리만 찾아 다니는 사람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만나면 불편하고 불쾌해져서 모두 피합니다. 점점 더 불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인생입니다. 감사인생은 아무도 감사하지 않을 때도 감사거리를 찾아냅니다. 입술에 언제나 감사가 매달려 있습니다. 감사인생의 눈에는 감사할 요소가 너무나 잘 보입니다. 가족을 보면서도 감사하고, 날씨를 보면서도 감사하고, 사회를 보면서도 감사하고, 교회에서도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감사의 내용이 너무 많고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늘 감사하다 보니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얼굴이 항상 밝습니다. 이런 감사인생의 곁에 가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날로 더 행복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감사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감사인생입니까? 불평의 열매를 맺는 불평인생입니까? 오늘부터 모두 다 감사인생으로 바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감사가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지 않았어도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삶의 본질이 달라진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도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삶 속에서 감사의 열매를 많이 맺는 감사인생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어떤 명령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까? 1. 감사인생은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삶에서 시작됩니다.(2,3) 감사는 억지로 결단하고 '오늘부터는 감사만 표현해야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깊이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풍성히 맛보고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은총과 축복을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풍성히 체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강해지면 두려움이 쫓겨가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약해지면 세상의 두려움이 들어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비참한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생활을 시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사단의 무서운 발톱에서 건져주시며 우리가 시달리는 두려움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이사야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드러내고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내 삶을 그분께 의탁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기쁨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구원이 임하는 것이요, 찬송이 솟아나는 기쁜 삶이 시작되며, 이 자리에서 맛보는 강력한 힘이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유보하며 삽니다. 먼 훗날 천국에서 누리게 될 기쁨과 상급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당장 누리며 살 수 있는 축복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몽땅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서 감사가 풍성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3절에서 메마른 광야의 오아시스를 이야기 합니다. 팔레스틴은 물이 귀한 지역입니다. 마치 사막에 오아시스가 전개되는 것처럼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는 회화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물이 부족한 사막과 같이 기쁨이 부족합니다. 평안도 부족하고, 행복도 부족하고, 자원도 부족하고, 사랑도 부족하고 부족한 것 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아시스를 찾습니다. 로또라도 당첨되면 오아시스가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언가 대박이 터져야 모든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오아시스를 찾아 헤멥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오아시스처럼 보이나 달려가 보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더 심한 갈증을 일으키고 목이 터지게 만듭니다. 그러데 진짜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우물들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부족을 느낄 때, 갈증을 느낄 때, 은혜가 필요할 때마다 오아시스와 같은 주님 앞에 달려나가 예배 드리며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면 기쁨의 우물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기쁨이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 부어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부족함이 채워지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메마른 광야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의 구원의 우물로 나아와 물을 공급받기 바랍니다. 구원의 물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풍성한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감사인생은 풍성히 감사 드리며 사는 삶입니다.(1)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더 많은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더 크고 더 많은 은혜를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에 더 풍성히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하지 않으면 은혜는 쉽게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았어도 감사를 표현할 때 비로소 그 은혜가 진짜 내 것이 됩니다. 감사하지 않으면 받은 은혜를 마귀에게 다 빼앗기고 잃어버립니다. 저는 그런 분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족과 궁핍을 느낄 때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열심히 부르짖습니다.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 응답만 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기도응답이 되고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면 달라집니다. 진심으로 감사치도 않습니다. 무서운 질병을 만나 무당, 점쟁이를 찾아 가니까 큰 굿 해야 하니까 '당장 오백 만원 천 만원 가져와라.'해도 당장 죽겠는데 돈이 아깝겠어요? 그래서 빚을 내서 가져다 주었는데도 낫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나왔어요. 성도들과 함께 마음을 합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여 치료되었습니다.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돈을 하나도 바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여 온전해졌어요. 그러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지요. 그것이 도리 아닙니까? 그럼 얼마 헌금하면 좋겠어요? 빚을 내면서 까지는 안 해도 최선을 다하여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도리가 아닙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제는 급하지 않습니다. 다 나았거든요. 그러면 안되지요. 인색한 마음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다시 돌아와 집이 비고 깨끗이 청소된 걸 보고 다른 마귀들을 이끌고 들어와 형편이 더 악화되는 수가 있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 은혜로 살아났어요. 평생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주를 위해서라면 나의 소유, 나의 시간, 나의 수고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감사하고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이 다시는 얼씬도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사야는 감사하며 살기로 결단합니다. 왜 감사를 해야 합니까? 첫째는, "주의 진노가 멈추었기 때문"<1절>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쳤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가 받은 말씀인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셨으나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사랑의 매를 대십니다. 당시에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이방나라를 사용하셔서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올바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 진노의 채찍은 멈춥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채찍은 영원히 계속 되는 게 아닙니다. 잠깐입니다. 시편103:8,9에 하나님은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 1절에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그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지나면 위로해 주십니다. 매를 드시지만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면 눈물을 씻어 주십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게 하시지만 다시 광활한 곳에 서게 하시는 은총을 생각할 때 이사야는 감사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풍성히 감사 드리며 사는 삶을 살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의 모순은 기억해야 할 것은 쉽게 잊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오랫동안 기억하는데 있습니다. 시편103:2에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주님 앞에 감사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감사는 우리 인격을 한 단계 올려줍니다.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감사가 봉사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찬양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물질을 드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물질에 인색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 사랑을 믿을 수 있습니까? 예쁜 처녀가 있습니다. 어떤 돈이 많은 총각이 나타나 사랑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생일이 되어도 장미 꽃 한 송이만 달랑 들고 와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배가 고픈데 포장 마차에 데리고 가 싸구려 라면 한 그릇 사주며 포장마차가 얼마나 무드가 있냐?고 하면서 프로포즈 한다면 감동받겠습니까? 당연히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아까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기쁨을 위하여, 그의 행복을 위하여 내가 가진 것을 줄 수 있음에 행복한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도전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22:37)" 여러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보다 더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도전하겠습니다. 감사헌금을 어느 정도 드리면 적당할까요? 여러분이 사랑스러운 자녀를 위하여 옷이나 선물을 사주며 그들을 위하여 투자 한 금액보다 더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자녀에게 한번에 이 정도 용돈을 주거나 이 정도의 선물을 사주거나 할 때에 전혀 아까운 마음이 들지 않던데 하는 정도를 하나님께 드려 보십시오. 헌금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돈이 부족해서 여러분에게 애걸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때 감동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감사의 계절에 감사를 회복하고 사랑도 회복하여 주께서 원하시는 성숙한 믿음을 드러냅시다.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른 게 있다면 감사에 풍성한 것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이사야의 이 아름다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3. 감사인생은 받은 은혜를 선포하는 삶입니다.(4) 본문 4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 감사하라 하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체험한 복과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는 삶을 살 것을 도전하십니다. 5절에도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8에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복음은 한 곳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복이 다른 사람에게도 계속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온 세계로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말해야 합니다.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 하시기를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을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여러분의 남은 삶이 아직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사랑의 다리로 쓰임을 받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다리가 되어 영원하신 하나님께 우리를 연결한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도 생명의 다리로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풍성한 축복과 은혜를 맛보며 살도록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선포하십시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게 되고 누리게 되도록 돕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감사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한 사람에게라도 여러분이 주님께 받은 은혜를 말해 보십시오. 그리고 도전해 보십시오. "당신도 내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고 나처럼 복과 은혜를 하나님께 풍성히 받아 누리며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시며 여러분을 사용하여 많은 영혼을 추수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좋은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자녀다운 감사를 회복하십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유보하지 말고 오늘 내 삶의 현장에서 풍성하게 누리며 찬송하는 삶을 삽시다. 나아가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을 드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만방에 펼치며 삽시다. 여러분 모두 감사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감사의 힘 /합3:16-19/ 문기태목사 2019-02-21
감사의 힘 /합3:16-19/ 문기태목사 2019-02-21 06:39:19 read : 1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 여인이 켈리포니아 사막 근처에서 훈련하고 있는 남편을 따라가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불평과 한탄을 담은 편지입니다. "지금 남편은 캘리포니아의 모제브 사막 근처의 육군 훈련소에 배속되어 있어요. 저도 여기에 있는데 비참하기 짝이 없어요. 선인장 그늘에서도 화씨 125도의 뜨거운 더위가 몰아닥치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음식물은 물론이고 숨 쉬는 공기도 모래투성이지요. 여기선 도저히 살 수 없어요.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교도소가 나을 것 같아요." 딸에게 답장한 아버지의 편지는 단 두 줄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그 편지를 평생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얘야, 교도소에서 두 사나이가 창밖을 보았단다. 한 사람은 창살을 보고 또 한 사람은 별을 보았지. 너는 지금 뭘 보고 있느냐?" 축복과 감사는 절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오직 내가 축복을 받았음을 깨달았을 때에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받은 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축복인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도 못하는 축복은 사실 아무리 남들 보기에 좋은 것을 받았다 해도 당사자에게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듯 축복과 감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축복 없는 감사도 없고 감사 없는 축복도 없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하박국이라는 선지자의 감사찬양입니다. 하박국은 처음부터 감사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박국의 서두는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 내가 이처럼 부르짖어도 왜 듣지 않으십니까? 왜 나를 강포로부터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왜 악인을 방치하여 정의가 실종되게 하십니까? 이처럼 처음에는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찼던 하박국이 끝부분에서는 찬양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찼던 하박국이 이제는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기는 것같은 부끄러운 모습을 벗어버리고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뛰어다니는 당당함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바로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의 힘은 우리로 아름답게 변화시켜 줍니다. 감사의 힘은 우리로 높은 곳을 뛰어다니게끔 끌어 올려줍니다. 감사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게 만들어줍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박국처럼 감사신앙을 소유함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의 힘은 우리로 환란날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줍니다.(16) 하박국은 전쟁이 엄습할 상활, 그것도 당시 가장 강한 나라 바벨론이 유대 나라를 침력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중에 극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16) 하박국의 마음은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창자가 흔들리고, 뼈가 썩는 것같은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두려움이 목소리와 온몸이 떨렸습니다. 이제 곧 나라는 전쟁에 휘말려 쑥대밭이 되고 성전도 파괴되어 폐허로 변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게 될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주여, 왜 이처럼 엄청난 환란을 당해야 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부르짖어 보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니까 원망과 탄식이 감사기도로 바뀌었습니다. 나무는 가뭄에 뿌리가 깊어지고 겨울의 찬바람에 단단해집니다. 여름의 불볕 더위를 잘 견뎌야만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녀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집니다. 부부는 함께 환난과 시련을 겪어야 더 일체감을 누리게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하박국은 환란을 통하여 감사의 노래를 배우게 되고, 심지가 견고한 감사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고난과 아픔만이 반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 길을 묻고 물어 마침내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가 살고 있다는 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 속 오두막집 앞에서 한 천사가 앉아서 무언가를 산 아래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던지고 있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것 말인가? 이건 행복이라는 것이네." 그 사람은 다가가, 크기가 각기 다른 동그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말과는 달리 그 동그란 것에는 각각 고난, 아픔, 시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 고난, 아픔, 시련이지 않습니까?" 천사는 웃으면서 '고난'이라고 적힌 것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의 껍데기를 벗겨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가? 겉에는 '고난'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이것의 이름은 '행복'이라는 것이네. 행복은 양파 같은 것일세. 우리는 인간에게 그냥 통째로 행복을 주는 경우는 없네. 겉보기에는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혀 있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지." "나는 요즘 심히 걱정되는 일이 있네. 인간들은 내가 던지는 행복을 겉모습만 보고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믿어. 이걸 보지도 않고 그냥 내던져 버린다는 것이네. 신은 왜 내게 행복은 주지 않느냐고, 이런 것만 주냐고 불평만 해대는 것일세. 참 한심한 일 아닌가?" 깨달음을 얻은 그가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천사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한 마디 하였습니다. "잊지 말게. 고난, 아픔, 시련과 행복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행복'의 겉에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어서 주는 이유는 '행복'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임을…." 요즘은 우리는 근래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려움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강팍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자세를 갖게되면 어려운 시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시련도 위기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복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환란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감사의 힘은 우리로 궁핍한 때에도 행복하게 살게 합니다.(17) 17절을 보면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의 반복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도 없는 극한적인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전쟁의 위험, 의식주의 궁핍,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신앙적으로 위기의 연속입니다. 당연히 절망적 분위기속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포도, 무화과, 감람류는 이스라엘의 특산물이고, 우양은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삶의 터전인데, 이런 것들이 흉작일지라도, 빼앗겼을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겠다고 하박국은 외치고 있습니다. 섭섭한 마음과 불평, 원망, 의심을 다 털어버리고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하박국은 궁핍속에서 오히려 크게 성숙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성공만 아니라 실패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풍족할 때만 아니라 부족할 때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할 때만 아니라 패배할때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육신의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생명만 아니라 죽음도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신시내티에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한 할레이 프록터 사장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두려워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직원의 실수로 기계 작동 시간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불량품 비누가 생산되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부서 책임자는 담당 직원을 심하게 질책했고 그 직원은 회사를 곤경으로 몰아간데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프록터 사장은 큰 손실을 입게 된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침착하게 문제를 수습하고자 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불량품 비누가 너무나 가벼워서 물에 뜨는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비누가 물에 뜨면 목욕할 때 더 편리하지 않을까?' 그래서 프록터 사장은 그 불량비누가 만들어진 과정을 연구하여 신상품을 개발 시장에 출시하였습니다. 그 비누가 아이보리 비누입니다. 물론 아이보리 비누는 대히트를 쳤고, 회사는 세계적인 비누회사로 발전했으며 프록터 사장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만약 프록터 사장이 곤경에서 실수한 직원에게 크게 화를 내고 하나님을 원망했더라면 아이보리비누는 만들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문제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무언가를 잃은 것으로 인하여 섭섭하고 마음이 아픕니까? 눈을 들어 조금만 멀리보면 잃은 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덜 좋은 것은 가져가십니다. 그러므로 잃었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주실 최선의 것에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힘은 하나님을 통해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합니다.(18) 뭘 받아야 감사하고 뭘 누려야 하는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고, 얻은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러러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진 것임을 깨닫게 되고 더욱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감사의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즐겁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한없이 기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감사의 제목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모든 사건을 초월하여 감사드릴때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부자가 잭슨이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 문제도 복잡했지만 가정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근심과 걱정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었고, 술을 마셔야 잠시라도 걱정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잭슨 아주머니는 언제나 편안하고 명랑했고,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의 집 일을 하면서 사는데도 늘 기쁘니 그 이유가 뭐요?"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돈이 없으니 잃어버리 염려가 없고, 집이 없으니 불이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명예가 없은 누가 나에게 욕할까 하는 걱정도 없어요. 또 이미 병들어 죽을 뻔한 몸이니 건강 때문에 걱정할 이유도 없고, 이제 다시 아프면 불편한 몸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니 아무 걱정도 없으며 달리 크게 바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벌었다는 것이 근심을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구나.' 불평도 습관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불평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이 인격 그 자체입니다. 불평의 습관에 사로잡히면 본인만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불평인생으로 살게 만들고 불행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감사를 습관화하면 감사가 훌륭한 인격을 만들어주고 행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얼굴빛을 밝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겟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내려다 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하다가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메뚜기처럼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위기마다 함께하시며 건져내 주셨건만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한데 날마다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만나를 받아 먹으면서도 불평했고, 길을 가면서 길이 나쁘다고 원망했고, 고기가 없다고 불평했고, 지도자 모세가 잘못 인도했다고 원망했습니다. 불평과 원망만 일삼다가 인생이 불행하게 끝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늘 읽으며 이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았던 불행한 민족을 보면서도 그대로 따라하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정신차리고 지금 당장 불평을 던져버리고 감사하는 습관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불평제조업자가 되지 말고 감사제조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힘 /합3:16-19/ 문기태목사 2019-03-15
감사의 힘 /합3:16-19/ 문기태목사 2019-03-15 03:03:23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한 여인이 켈리포니아 사막 근처에서 훈련하고 있는 남편을 따라가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불평과 한탄을 담은 편지입니다. "지금 남편은 캘리포니아의 모제브 사막 근처의 육군 훈련소에 배속되어 있어요. 저도 여기에 있는데 비참하기 짝이 없어요. 선인장 그늘에서도 화씨 125도의 뜨거운 더위가 몰아닥치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음식물은 물론이고 숨 쉬는 공기도 모래투성이지요. 여기선 도저히 살 수 없어요. 이런 곳에서 사느니 차라리 교도소가 나을 것 같아요." 딸에게 답장한 아버지의 편지는 단 두 줄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그 편지를 평생 잊을 수 없었습니다. "얘야, 교도소에서 두 사나이가 창밖을 보았단다. 한 사람은 창살을 보고 또 한 사람은 별을 보았지. 너는 지금 뭘 보고 있느냐?" 축복과 감사는 절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오직 내가 축복을 받았음을 깨달았을 때에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복을 받은 줄 알면서도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결국 축복인지 모르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고,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하지도 못하는 축복은 사실 아무리 남들 보기에 좋은 것을 받았다 해도 당사자에게는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듯 축복과 감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축복 없는 감사도 없고 감사 없는 축복도 없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하박국이라는 선지자의 감사찬양입니다. 하박국은 처음부터 감사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박국의 서두는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 내가 이처럼 부르짖어도 왜 듣지 않으십니까? 왜 나를 강포로부터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왜 악인을 방치하여 정의가 실종되게 하십니까? 이처럼 처음에는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찼던 하박국이 끝부분에서는 찬양의 기도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가득찼던 하박국이 이제는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기는 것같은 부끄러운 모습을 벗어버리고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뛰어다니는 당당함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바로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의 힘은 우리로 아름답게 변화시켜 줍니다. 감사의 힘은 우리로 높은 곳을 뛰어다니게끔 끌어 올려줍니다. 감사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게 만들어줍니다. 여러분이 오늘 하박국처럼 감사신앙을 소유함으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1. 감사의 힘은 우리로 환란날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줍니다.(16) 하박국은 전쟁이 엄습할 상활, 그것도 당시 가장 강한 나라 바벨론이 유대 나라를 침력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중에 극한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16) 하박국의 마음은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혀 창자가 흔들리고, 뼈가 썩는 것같은 고통이 엄습했습니다. 두려움이 목소리와 온몸이 떨렸습니다. 이제 곧 나라는 전쟁에 휘말려 쑥대밭이 되고 성전도 파괴되어 폐허로 변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게 될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주여, 왜 이처럼 엄청난 환란을 당해야 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부르짖어 보지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니까 원망과 탄식이 감사기도로 바뀌었습니다. 나무는 가뭄에 뿌리가 깊어지고 겨울의 찬바람에 단단해집니다. 여름의 불볕 더위를 잘 견뎌야만 탐스러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녀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집니다. 부부는 함께 환난과 시련을 겪어야 더 일체감을 누리게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하박국은 환란을 통하여 감사의 노래를 배우게 되고, 심지가 견고한 감사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고난과 아픔만이 반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 길을 묻고 물어 마침내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가 살고 있다는 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 속 오두막집 앞에서 한 천사가 앉아서 무언가를 산 아래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던지고 있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것 말인가? 이건 행복이라는 것이네." 그 사람은 다가가, 크기가 각기 다른 동그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말과는 달리 그 동그란 것에는 각각 고난, 아픔, 시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 고난, 아픔, 시련이지 않습니까?" 천사는 웃으면서 '고난'이라고 적힌 것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의 껍데기를 벗겨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가? 겉에는 '고난'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이것의 이름은 '행복'이라는 것이네. 행복은 양파 같은 것일세. 우리는 인간에게 그냥 통째로 행복을 주는 경우는 없네. 겉보기에는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혀 있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지." "나는 요즘 심히 걱정되는 일이 있네. 인간들은 내가 던지는 행복을 겉모습만 보고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믿어. 이걸 보지도 않고 그냥 내던져 버린다는 것이네. 신은 왜 내게 행복은 주지 않느냐고, 이런 것만 주냐고 불평만 해대는 것일세. 참 한심한 일 아닌가?" 깨달음을 얻은 그가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천사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한 마디 하였습니다. "잊지 말게. 고난, 아픔, 시련과 행복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행복'의 겉에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어서 주는 이유는 '행복'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임을…." 요즘은 우리는 근래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려움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강팍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는 자세를 갖게되면 어려운 시기에 두려워하지 않고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시련도 위기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복을 많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환란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감사의 힘은 우리로 궁핍한 때에도 행복하게 살게 합니다.(17) 17절을 보면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의 반복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도 없는 극한적인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절망적인 상태입니다. 전쟁의 위험, 의식주의 궁핍,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신앙적으로 위기의 연속입니다. 당연히 절망적 분위기속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심정일 것입니다. 포도, 무화과, 감람류는 이스라엘의 특산물이고, 우양은 이스라엘의 절대적인 삶의 터전인데, 이런 것들이 흉작일지라도, 빼앗겼을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겠다고 하박국은 외치고 있습니다. 섭섭한 마음과 불평, 원망, 의심을 다 털어버리고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하박국은 궁핍속에서 오히려 크게 성숙하고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감사하겠습니다. 성공만 아니라 실패도 감사하겠습니다. 희망만 아니라 절망도 감사하겠습니다. 가진 것만 아니라 없는 것도 감사하겠습니다. 풍족할 때만 아니라 부족할 때도 감사하겠습니다. 승리할 때만 아니라 패배할때도 감사하겠습니다. 건강만 아니라 육신의 아픔도 감사하겠습니다. 생명만 아니라 죽음도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신시내티에 '프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한 할레이 프록터 사장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두려워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며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직원의 실수로 기계 작동 시간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불량품 비누가 생산되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부서 책임자는 담당 직원을 심하게 질책했고 그 직원은 회사를 곤경으로 몰아간데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프록터 사장은 큰 손실을 입게 된 상황에서도 흥분하거나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침착하게 문제를 수습하고자 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불량품 비누가 너무나 가벼워서 물에 뜨는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비누가 물에 뜨면 목욕할 때 더 편리하지 않을까?' 그래서 프록터 사장은 그 불량비누가 만들어진 과정을 연구하여 신상품을 개발 시장에 출시하였습니다. 그 비누가 아이보리 비누입니다. 물론 아이보리 비누는 대히트를 쳤고, 회사는 세계적인 비누회사로 발전했으며 프록터 사장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만약 프록터 사장이 곤경에서 실수한 직원에게 크게 화를 내고 하나님을 원망했더라면 아이보리비누는 만들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문제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무언가를 잃은 것으로 인하여 섭섭하고 마음이 아픕니까? 눈을 들어 조금만 멀리보면 잃은 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덜 좋은 것은 가져가십니다. 그러므로 잃었다고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앞으로 주실 최선의 것에 여러분의 시선을 고정하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힘은 하나님을 통해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합니다.(18) 뭘 받아야 감사하고 뭘 누려야 하는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고, 얻은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러러보면 자신이 모든 것을 가진 것임을 깨닫게 되고 더욱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의 감사의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구원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즐겁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한없이 기쁩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감사의 제목은 구원의 하나님입니다.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모든 사건을 초월하여 감사드릴때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돈 많은 부자가 잭슨이라는 흑인 아주머니를 가정부로 두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돈 문제도 복잡했지만 가정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근심과 걱정 때문에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었고, 술을 마셔야 잠시라도 걱정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잭슨 아주머니는 언제나 편안하고 명랑했고,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의 집 일을 하면서 사는데도 늘 기쁘니 그 이유가 뭐요?"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처럼 돈이 없으니 잃어버리 염려가 없고, 집이 없으니 불이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명예가 없은 누가 나에게 욕할까 하는 걱정도 없어요. 또 이미 병들어 죽을 뻔한 몸이니 건강 때문에 걱정할 이유도 없고, 이제 다시 아프면 불편한 몸 벗어버리고 하나님께로 가니 아무 걱정도 없으며 달리 크게 바라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태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벌었다는 것이 근심을 모은 것에 지나지 않았구나.' 불평도 습관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항상 불평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불평이 인격 그 자체입니다. 불평의 습관에 사로잡히면 본인만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불평인생으로 살게 만들고 불행으로 끌고 갑니다. 그러나 감사를 습관화하면 감사가 훌륭한 인격을 만들어주고 행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얼굴빛을 밝게 만들어줍니다. 감사를 결심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좋은 일이 계속 반복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겟다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내려다 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하다가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광야에서 메뚜기처럼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위기마다 함께하시며 건져내 주셨건만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한데 날마다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만나를 받아 먹으면서도 불평했고, 길을 가면서 길이 나쁘다고 원망했고, 고기가 없다고 불평했고, 지도자 모세가 잘못 인도했다고 원망했습니다. 불평과 원망만 일삼다가 인생이 불행하게 끝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늘 읽으며 이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았던 불행한 민족을 보면서도 그대로 따라하는 한국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정신차리고 지금 당장 불평을 던져버리고 감사하는 습관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불평제조업자가 되지 말고 감사제조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습관이 축복을 부릅니다. /마26:26-29/ 문기태목사 2019-03-09 05:45:12 read : 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감사하는 습관이 축복을 부릅니다. /마26:26-29/ 문기태목사 2019-03-09 05:45:12 read : 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 26: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 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하십니까?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스트레쓰를 받지 않고 즐겁게 살고 싶습니까? 그럼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럼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이 잘 성장하여 좋은 열매를 많이 맺고 싶습니까? 그러면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생활 습관이 자신의 삶을 망칩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질병에 노출되어 고생을 많이 합니다. 나쁜 습관을 다스리지 못하면 중독의 올무에 갇히게 됩니다. 중독된 습관은 몸과 마음, 삶을 망치게 합니다. 모든 일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부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떤 사람은 성공하려는 동기를 끝까지 잃지 않고 어떤 사람은 쉽게 포기합니다. 같은 상황인데 어떤 사람은 여유있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마음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축복된 삶을 기대한다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미국 조지아주 중서부에서 대부호로 명성을 떨친 레스터가(家)가 있었습니다. 레스터는 이곳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주변의 농토들을 모두 사들여 담배농사를 지었습니다. 레스터의 땅을 밟지 않고는 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길을 토바코 로드로 불렀습니다. 레스터는 후손들에게 엄청난 땅과 돈을 유산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레스터의 3대 후손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3대손인 지이터가 소작농으로 전락해 유일하게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1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5명은 일찍 사망했고 9명은 가출했습니다. 이 부부는 고향을 지키며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지이터 부부가 잡초더미에 불을 놓았는데 그 불이 집에 옮겨 붙어 타죽고 말았습니다. 땅과 돈만 유산으로 물려주고 좋은 습관을 물려주지 않으므로 저주를 부르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돈 대신 좋은 습관을 유산으로 남겨줍니다. 철학이 없는 많은 유산은 자녀를 불행한 늪으로 몰아 갑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 주고 계십니까? 아니면 자식은 고생해선 안된다고 유산을 물려주시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일에 몰두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떤 크나큰 계기나 사건이 나의 인생을 변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요술처럼 멋지게 만들어 주고 성공시켜 주는 것은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일들입니다. 우리를 참으로 복되게 하는 것은 작지만 좋은 습관들입니다. 습관이란 '무엇이든 여러 번 거듭하는 사이에 몸에 배어 굳어진 성질'을 말합니다.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성패와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어거스틴은 '신앙이란 거룩한 습관을 들여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다름이 아니라, 거룩한 것이 몸에 배어 습관화 되게 하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훈련과정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역시 좋은 습관을 많이 가지고 사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예수님은 습관에 따라서 안식일 날 회당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습관에 따라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읽은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것이 습관화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막 10:1) 여기 '전례대로'라는 말을 표준 새번역에는 '늘 하시던 대로'로 번역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서 가르치셨습니다. 뭘 가르쳤습니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입을 여시면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전도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전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습관화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하나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22:39절) 표준새번역은 이것도 '늘 하시던 대로'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기도생활을 통해 경건이 습관이 되었고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를 통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습관이 많았습니다. 좋은 생활을 반복하여 훈련하며 경건하고 의로운 삶이 몸에 배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또 하나의 중요한 습관을 가지고 생활하셨음을 보여 주십니다. 최후의 만찬자리에서도 떡과 잔을 앞에 놓고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것도 이날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늘 하시던 대로 하신 것입니다. 요6:11에 보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적은 마술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나눠주시니까 계속 바구니에서 떡과 생선이 나온 것입니다. 축사가 무엇입니까? 축복과 감사입니다. 표준새번역은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감사기도가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감사하는 습관이 축복을 부릅니다. 요한복음11장은 나사로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친구가 병을 앓다가 갑자기 죽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구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픈 것이고 아픈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친구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이내 감사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11:41을 읽어 보십시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 죽음의 마당에서도 기도할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도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셨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도 음식을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감사하는 습관을 형성해 갈 수 있습니까? 1.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감사하십시오.(27) 여러분, 식사 전에 반드시 기도하십니까?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식사 기도를 감사의 기도로 드리십시오. 꼭 매끼 먹을 때마다 기도해야 하느냐?고 감사해야 하느냐? 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본문 27절을 보면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만찬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5병2어의 기적에 앞서 그분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했습니다.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면 그 일용할 양식을 받고 공급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주리고 있는데 먹을 수 있는 은혜가 적은 은혜이겠습니까? 유엔 식량 농업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지상에서는 세계 인구 가운데 8억 4천 이백만이 기아인구라고 합니다. 이것은 적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인구 의14%, 그러니까 7-8명중 한 사람은 하루 한끼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매년 약 2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매 끼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습니까? 또한 날마다 식사기도를 드리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축복을 부르는 좋은 습관이 몸에 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축복을 부르는 감사의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좋은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2. 작은 은혜라도 임할때 감사하십시오.(26) 어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식사기도를 하는 기준이 애매하단 말이야. 간식으로 과일 한쪽을 먹을 때에도 매번 기도를 해야 하나?" 어떤 목사님이 조크로 3천원 이상만 감사기도하면 되지! 우리 말 성경번역에서 예수께서 식사 전에 '감사하셨다'를 많은 경우 '축사하시고'라고 번역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거의 신약 성경에서는 '감사'와 '축복'이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작은 식량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지하셨고, 그래서 그분의 식전 '감사의 기도'는 동시에 그 축복이 다시 나누어 지기를 소원하신 '축복의 기도'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사의 기도는 다시 축복을 나누는 기적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광야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주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실제 2만 명 가까운 군중들이 배불리 먹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감사가 축복을 불러온 것입니다. 한 아이가 가져온 점심은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않고 그것이라도 감사하였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유명한 스펄전 목사는 "한 자루의 촛불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축복임을 깨달을 때 예수님처럼 즉각적으로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또 다른 축복과 기적을 가져 올 것입니다. 3. 삶의 위기 앞에서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은 언제 감사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위기 앞에서 감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에는 예수님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만찬이 끝나면 당신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로 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떡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부서져야 할 그의 몸이셨습니다. 그것이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잔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흘리셔야 할 그의 피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마태 26:28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이런 당신 자신의 인생의 최대의 위기인 죽음앞에서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만나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감사를 잘 하는 사람도 감사대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습관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축복을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감사하는 성도들에게는 원수 마귀의 간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위기를 맞게 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다가온 사단의 세력이 당연히 불평하고 원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도하며 감사까지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여러분 감사를 통하여 마귀를 당황시키며 사시기 바랍니다. 놀라서 단숨에 도망가게 만듭시다. 만일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역경의 상황 배후에 존재하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오늘은 보이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되지만 내일에 보여 지고 이루어질 그 선하신 뜻을 믿을 수만 있다면 바울 사도가 가르친 그대로 우리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당신의 집에 대 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 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찬송 음정이 억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