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예화
  • 자료
  • 성경
Who’s Messing With Your Mind(당신의 마음을 누가 망쳐 놓는가?)/ Facing Recurring Heresies Which Trouble the Church(교회를 괴롭히는 이단의 발흥에 직면하기)/ 2 Peter 3:3-4(벧후3:3-4)/ Gerry E. Breshears
Who’s Messing With Your Mind/ Facing Recurring Heresies Which Trouble the Church 2 Peter 3:3-4 Consensus Statements from Pentecostal, Charismatic and Historic Evangelicals These are days of moral decay, deception, and blatant displays of evil. All around us we see the very manifestations of evil that Scripture warns against. Society denies any absolute standard of morality in favor of toleration and open-minded relativism, despising a separated and holy life. Such attitudes creep into churches, leaving Christians uncertain concerning moral and spiritual commands of Scripture. Some deny the truth of Christ’s return (2 Peter 3:3,4) and the role of divinely ordained authority (2 Timothy 3:4). Yet the Holy Spirit is at work in unprecedented ways. We desire to move in step with God’s plan for these days. Of even greater concern than the overt evil of our day is the subtle inroad of false teaching in the name of ”newly discovered truth.” This constitutes a turning from sound doctrine and a following after false teaching (2 Timothy 4:3,4). Some of the extra-biblical teachings are a return to false teachings from the past, undiscerned by believers not properly grounded in Scripture or familiar with the history of the church. We evangelicals, with various identifying labels but a common commitment to biblical truth and its application, reaffirm the bedrock truths of salvation by grace through faith in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At the same time, we seek to identify aberrations and non-biblical teaching and practice that threaten the spiritual health of the body of Christ. Our concern for scriptural integrity is addressed as follows: A small working group representing Pentecostal, charismatic, and historic evangelicals is producing brief statements reflecting common agreement both on what is true and godly as well as what is unscriptural beliefs and practices. Distinctives of differing theological perspectives are honored, with areas of orthodox agreement emphasized. We desire to present a united front against heretical and bizarre beliefs and practices which discredit the Christian experience and cast shame on the Church. Booklets addressing specific issues bear the endorsement of spiritual leaders of the larger evangelical community. Their endorsement will be individual rather than organizational; signers are not official spokespersons for the churches or organizations with which they may be identified. As an on-going effort to declare and maintain scriptural integrity in evangelical circles, additional topics will be addressed in this series. The following exemplify areas currently under study. The Supernatural and the Demonic Recurring Heresies about the Church The Prosperity Gospel Short-cuts to Sanctification When is Worship Truly Worship? New Age Influence in the Church Modern Day Prophets? Dominionism and Kingdom Theology Israel and the Church False Prophets and False Voices Christ’s Ministry Gifts to the Church Authority in the Body of Christ Suffering and Persecution Are There Many Ways to God? Biblical knowledge can never substitute for knowing Jesus Christ personally. Some of the heresies and aberrant teachings rampant today hinder knowing and may subvert the church’s mission. We decry these abuses and seek responsibly to fulfill the Great Commission Christ gave His church; to go into all the world, preaching the gospel and teaching all who will hear, ”to observe all the things” Christ has commanded (Matthew 28:20). Evangelicals Committed to Scriptural Integrity October, 1991
경계해야 할 이단/ 롬16:17-20/ 2003-04-14
경계해야 할 이단 롬16:17-20 2년 전으로 기억되는데, 우리 교회의 청년 중에 한 형제가 이곳으로 유학을 와서 집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몇몇 정보를 가지고 이 집 저 집 알아보다가 게어리 근처의 집을 구해서 살게 되었어요. 이 형제가 몇 일을 지내면서 보니까 그 집이 이상하더랍니다. 가만히 살펴보니까 아침마다 큰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래요. 처음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인가보다. 교회는 멀고 하니까 집에서 새벽기도를 하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잘 들어보니까 기도소리치고는 요란하더랍니다. 그래 이상하다 싶어 몇 일을 주의 깊게 보다가 어느 날인가 방문이 열린 거예요. 지나가다가 슬쩍 보니까 부처상과 같은 큰 것이 방에 있고, 그 앞에서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더래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남묘호랑겡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종교는 일본에서 생긴 건데 이 주인 집 내외가 아침마다 그 동상 앞에서 ‘남묘호랑갱교, 남묘호랑갱교’하면서 기도를 하더라는 겁니다. 그 이후에 그 형제는 몇 달 살다가 영적으로 복잡해서 결국은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증거하면서 열매가 맺어지게 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아마도 오늘 우리들처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잘 성장하면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안에 이단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교인들이 믿음으로 성장하는데 이단들이 침투해서 교회를 어지럽혀 분열시키고 교인들이 이단에 현혹되어 넘어가게 되었던 거예요. 이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바울이 몇 년 동안 믿음과 눈물로 선교사역에 헌신해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단들로 인하여 교회가 쑥대밭이 된 곳이 있으니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래서 바울이 어떻게 해서라도 이단을 막아서 한 생명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 본문에 이단에 대해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깨어서 경계해야 할 것이 이단이에요. 이단은 초대교회뿐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이단 중에는 그 동안 여러 가지로 검증되어서 그 정체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언뜻 보기에 이단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없이 헛갈리는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단은 교회 안에 침투해 들어와서 교회를 송두리째 망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종교문제연구소에 의하면 한국에 383개의 이상의 신흥종파가 있답니다. 이게 10년 전이니까 지금은 4-500개 되지 않겠어요. 이 중에 자칭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자가 7명 있대요. 우리 나라에는 하나님이 8분이에요. 자칭 자기가 재림 예수라는 자가 29명 있다고 해요. 사이비 종교도 참 많아요. 전도관, 새일교단, 동방교, 장막성전, 참예수교, 새마을전도단, 시온산제국, 영생천국본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안식교, 몰몬교, 여호와증인, 처음에 말씀드렸던 남묘호랑갱교 등등 참 많아요. 이단의 일반적인 뜻은 ‘자기가 따르는 이외의 도’ 또는 ‘전통이나 권위나 일반적인 상식에 대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을 말하지만,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정통에서 벗어나 이의를 내세우는 교”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회는 역사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떠나서 어떠한 이론과 주장을 내세우면 그것은 이단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이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단이 어떠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배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보면서 이단에 대하여 경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이단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이단은 분쟁을 일으킵니다. 17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의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말이 많은 곳이 어디인지 아세요? 교회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이 오늘 교회에 오실 때에 일정한 자격이 있어서 오신 분이 있으세요? 물론 자격이라고 하면 있긴 있지요. 교회에 오는 사람은 반드시 죄인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의인은 올 필요가 없어요. 저나 여러분이나 죄인이기 때문에 여기에 왔어요.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 아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으니까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야 해요. 그러니까 말이 많은 겁니다. 세상의 모임은 어느 동창회에만 가도 자격이 있어요. 하다 못해 운동 클럽에 들어가도 자격이 있구요, 계모임을 하는 사람들도 일정한 자격이 있어요. 그런데 교회는 그런 자격이 없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하고 하셨으니까, 그들이 어린이이든 어른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모두 오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말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교회에 오기만 하면 말이 없어요. 예수 중심으로 모이니까 말이 없는 거예요. 내 뜻이 이렇고 저 사람 뜻이 저렇고 해도 주님 뜻에 맞추니까 말이 필요 없지요.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하나가 돼요. 그런데요 교회 안에서 절대로 하나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교리 싸움이에요. 자기가 믿는 신앙에 대한 논쟁이에요. 이건 말이 많아요. 언제든지 자기가 믿는 것이 옳다는 거예요. 그래서 논쟁은 한도 끝도 없고 때로는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결국은 분쟁을 일으켜 혼란하게 됩니다. 대체적으로 이단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고백해 왔던 것을 부정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전통적인 고백은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2천여 년 동안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어려운 말로 예수님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지녔다고 합니다. 쉽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훈이잖아요.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고백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단은 이것을 모두 믿지 않고 어느 하나를 부인합니다. 성경대로 믿지 않고 자기 주장대로 반쪽만 믿어요. 어떤 이단은 예수님을 신으로만 인정하고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부인해요. 어떤 이단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하나님인 것은 부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단은 하나님은 인정하고 예수님은 믿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논쟁이 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분쟁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단은 자기 배만 섬깁니다. 18절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종종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이단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사회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단의 배후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돈이고 다른 하나는 성(性)의 문제입니다. 그들에게는 종교적인 윤리나 사회적인 도덕이 없어요. 그들은 순진한 사람들을 꼬여서 돈을 모으고, 많은 여자들을 유인해서 성적인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단의 교주를 보세요. 그들의 공통점이 있지요. 돈이 많아요. 교주 치고 가난한 교주 보셨어요? 다들 부자예요. 집도 으리으리하고요 기업체도 많아요. 1990년대 중반이라고 기억하는데, 10월 28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한 교주가 있었어요. 이장림이라는 사람이에요. 이름이 장림인데 장림이 어떻게 깨어서 잘 아는지 몰라요. 여기에 속아서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고 땅을 팔아서 교회에다가 바쳤어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데 집이 무슨 소용있고 땅이 무슨 소용있냐는 식이었어요. 예수님께 칭찬 들으려면 헌금 많이 해야한다는 논리이지요. 그래서 교인들이 다 팔아서 바치고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매일 밤 12시에 모여서 기도회를 하고 야단이었어요. 나중에 예수님 재림한다는 10월 28일이 왔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안 오셨어요. 아직까지 안 오셨잖아요. 그들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하나님이 재림을 연기했다는 거예요. 말이 됩니까?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속았다 싶어서 경찰에 신고했어요.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해서 집도 바치고 땅도 바쳤는데, 예수님이 재림하지 않으셨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요.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것인데 이장림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는지 몰라요. 떼 부자가 되었어요. 텔레비젼에 보니까 얼마나 좋은 집에서 사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요. 왼만한 기업체 사장 집 같은 데서 살아요.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하고선 책도 쓰고 교인들이 바친 헌금을 가지고 자기 배만 섬기고 채운 거예요. 예수 팔아서 장사한 거예요. 어떤 이단들은 기업체를 가지고 있어요. 통일교가 그렇잖아요. 한국에도 많지만 미국에는 더 많아요. 언론사를 비롯해서 막대한 재정능력을 과시합니다. 통일교에서 국제결혼이 있어요. 한번에 십만 쌍, 오십만 쌍씩 하잖아요. 그냥 공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몇천 불을 내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 몰라요. 이단들이 이렇게 자기 배만 채웁니다. 셋째로, 이단은 미혹하게 합니다. 18절 중간 이후에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했는데,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어요. “그럴듯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종종 보실 거예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데, 이 사람들은 말을 참 잘합니다. 성경을 가지고서는 ‘여기는 이렇게 말씀하셨고 저기는 저렇게 말씀 하셨잖아요.’하면서 말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넘어가요. 그럴 듯 하거든요. 우리는 그러한 훈련을 받지 않아서 성경을 그렇게 조직적으로 외우지도 않았어요. 성경을 외울 정도라고 하면 내가 은혜 받은 말씀이나 잊지 못하는 말씀만을 외우는데, 그 사람들은 죄인인 경우에는 어디, 방황하는 사람에게는 어디, 구원에 대해서는 어디, 이런 것을 어찌나 잘 아는지 몰라요. 이단들은 처음에는 성경을 가지고 미혹합니다. 처음부터 성경이 아니면 이단이네 하고선 돌아서는데 똑같은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하니까 여기에 넘어간다는 말입니다. 이단(異端)이라는 한자를 보면 다를 이(異)자에 끝단(端)자를 씁니다. 이게 뭡니까? 끝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한다고 다 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한번 넘어가면 그 다음에는 헤어나질 못합니다. 그들에게 한번 걸렸다 하면 낚시바늘에 걸린 고기처럼 꼼짝 못해요. 이단의 이러한 미혹에 빠지는 사람들은 기존 교회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든지, 기존 교회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이단의 공통점은 새신자가 적어요. 많은 사람들이 기존 교회의 신자들이었어요. 이단은 기존 신자들을 타겟으로 삼거든요. 교회마다 맹목적으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 있지요. 극성맞은 교인이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이단의 꼬임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맨날 새것을 찾아다니는 사람, 새로운 성경공부가 나왔는데, 아주 은혜롭고 좋은데 누구 누구 집에서 모이는데 한번 가보자고 하는 사람, 교회가 그러면 안 되는데 거기는 안 그렇다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이단들이 미혹하게 하는 1순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단에 대하여 바른 시각을 가지고 대처해야 합니다. 이단을 만날 때에 어떻게 해 보려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보다 철저하게 말씀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서 우리가 보통 실력 가지고는 당할 재간이 없어요. 그들은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성경 구절을 암송해서 조직적으로도 다닙니다. 사람을 바꾸어가면서 다닙니다. 우리가 그들의 꼬임에 빠져서 말을 주고 받다가 그들의 속임수에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절 말씀처럼 “이단이 있나 없나 살피고 떠나”야 합니다. 디도서 3장 10절에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고 했는데,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주위에 있나 없나 살피고 아예 떠라나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단들이 여러분에게 접근해 오면 그래도 내가 제자훈련을 받았는데 당신들 쯤이야 뭐, 붙어보지 이렇게 생각하여 섯불리 생각하시면 큰일납니다. 그들은 예수 믿는다고 하면 직분을 가리지 않습니다. 목사 장로를 가리지 않아요. 제가 목삽니다. 그러면 다음에 목사 전도할 사람이 옵니다. 오히려 목사 장로에게는 더 덤벼듭니다. 언젠가 말이죠, 제가 주택에서 있는데 거기는 교회와 주택이 붙어 있거든요. 그들이 왔어요. 제가 보니까 영락없는 이단들이에요. 그래 싸우기 싫어서 여기는 목사 사택이에요. 그랬더니 코방귀도 안 꿔요. 들어가도 되나요? 들어오면 안 된다고 했지요. 여기는 목사가 사는 곳이라고, 그랬더니 여기 서서 이야기하지요. 그러면서 “목사님, 성경 공부 하실래요?” 목사 앞에게 성경을 보긴 뭘 봐요. 누구 앞에서 문자쓰려고 해요. 막무간이에요. 그래서 제가 찬찬하게 설명을 했어요. 여기 시골은 선교 지역이 정해져 있어서 이 교회가 이곳 사람들을 전도할 거니까 나한테 맡기고 다른 곳에 가서 하시라고, 그랬더니 말이에요. 말을 안 들어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제가 가만히 있겠어요? 막 열을 내서 이야기했더니 그 사람들은 차분해요. 한 사람이 열 받을 만한 하면 옆에 있는 사람이 이야기하고 그렇게 둘이 번갈아 가면서 저하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다 결국은 다른 집으로 갔어요. 생각해 보니까 약 오르잖아요. 내가 선교하는 지역이라고 해도 말도 듣지 않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일일이 쫓아다닐 수도 없고, 이 사람들이 둘만 온 것이 아니거든요. 한 차에 싣고 와서 동네에 다 퍼져놓았거든요. 안 되겠다 싶어서 교회 안으로 들어갔어요. 시골교회에 보면 교회마다 종치는 앰프가 있습니다. 음악종을 치거든요. 그걸 크게 틀어 놨어요. 동네 사람들에게 다 들리라고 말이에요. 그리고는 “교회에서 말씀드립니다. 지금 동네에 수상한 사람들이 2인 1조가 되어서 돌아다니는데, 절대로 문도 열어주지 마시고 문전박대 하시기 바랍니다.”하고 떠들어댔지요. 그리고는 또 다시 음악을 최대한 크게 틀어 놓고, 광고하고 그렇게 30분을 한 거 같아요. 그들이 배겨납니까? 결국은 쫓아냈다는 거 아닙니까? 다 갔어요. 몇 달 전에 저희 집에 어떤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밀브레이에요. 토요일이라서 한참 말씀을 준비하고 있는데 딩동 해요. 보니깐 한국 사람들이에요. 얼마나 반가워요. 이단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지요. 문을 열고 어떻게 오셨느냐고 했더니, 본색이 드러내는 거예요. 성경공부를 하자는 거예요. 그래 나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나도 하나님 믿으니까 다른데 가서 하시라고, 백인들도 예수 안 믿는 사람 많으니까 거기 가서 하시라고 했더니 아니래요. 자기가 기도해 봤는데 하나님이 여기에 가서 전도하라고 했다는 거예요. 그래 어떻게 해요. 나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그랬지요. 그런데요 다음에 또 온 거예요. 이번에는 처음 번과는 다른 사람이 둘이 왔어요. 그때는 제가 눈치를 챘지요. 보니까 영락없는 그들이에요. 제가 밖에 나가는데 문 앞에서 만났어요. 저를 보고선 ‘한국분 이시지요. 안녕하세요.’ 그러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못 들은 척 했지요. 제가 가만히 있으면 일본 사람인가 중국 사람인가 할거 아니겠어요. 대답을 안 했으니까 한국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하잖아요. 한국분이시지요? 그럴 때에 ‘한국 사람 아닌데요.’ 그럴 수는 없잖아요.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다른 데로 가더라구요. 여러분, 이단하고 말해봐야 본전 찾기 힘들어요. 그들 전도하려고 있는 힘을 다하려고 하지 말고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아요. 그 열정 가지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것이 더 나아요. 이단이다 싶으면 쫓아내시던가 피하시던가 하세요. 괜히 어정쩡하게 덤벼들었다가 낭패 당하면 큰일입니다. 이단들은 예수 믿는 신앙이 잘 자라갈 때에 자꾸 침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단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난 이단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람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인지, 성령을 성령으로 인정하는 사람인지, 삼위일체를 삼위일체로 인정하는 사람인지가 분명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유혹할 때에 대화도 하지 마시고 그들에게서 떠나서 스스로의 믿음을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믿음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이단들의 유혹에 경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시고,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하나님만 온전히 섬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이비 인생 목적/ 마11:7-9
사이비 인생 목적 마11:7-9 지난 주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로 지어졌는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지구에 던져진 외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적과 설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오장육부와 마음과 생각까지 옷감을 짜듯 만드셨습니다. 사랑의 기술로 날실과 씨실을 재료로 하여 짜셨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만든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듭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창조 목적과 존재 목적은 같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 목적을 잘못 설정하도록 만드는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럴듯한데 아닌 목적이 많습니다. 저는 그런 잘못된 인생의 목적을 사이비 목적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사이비(似而非)’란 아주 다른 게 아니고 겉으로는 그럴싸한데 아닌 것을 말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광야에 갔던 이들이 왜 갔느냐는 질문을 통하여 목적을 밝혀주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이 광야에 간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러 간 것도,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간 것도 아닌 선지자 요한을 보러 간 것이라는 말씀을 하면서 요한은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평가하십니다. 이 말씀과 똑 같은 상황이 우리 인생에서 오늘날 벌어집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냐? 선한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냐? 그럼, 물질을 남기기 위해서냐? 아니라 영생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니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교묘히 속이는 사이비 인생목적에서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름 남기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참으로 멋있 속담입니다. 그러나 이 속담이 무수한 호랑이들의 가죽을 벗겼습니다. 우수개 소리이지만 그래서 지금은 한국의 호랑이를 볼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의 껍데기를 벗기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름을 남기면 된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주객이 전도될 수 있는 위험한 속담입니다. 참되게 살다보니 이름이 남는 것이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사는 게 아닙니다.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명예를 위해, 권력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잠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여기서 ‘명예’는 히브리어 ‘쉠’으로 ‘지위, 명예, 명성, 평판’ 등으로 번역됩니다. 쉽게 말해 타인에게 인정받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얼마나 굴욕적인 말인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마든지 거짓을 행할 수 있습니다. 비굴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속이고 이름을 남기는 것은 옳은 삶의 방법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항상 염려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해 가지고 계시는 목적이 중요하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평가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잠언의 말씀은 재물보다는 명예를, 은금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라는 말로,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이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름 남기는 것 너무 좋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기 이름 남기려다 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에서 사울 왕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갈멜에 자기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좋은 전리품과 살진 가축들을 진멸하지 않고 자기 소유를 삼으려다 자기가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삼상15:23). 그가 세운 전쟁 기념비, 그의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여러분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선행 쌓기 개나 돼지처럼 자기를 위하여만 살지 않고 남을 생각해 주고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선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숭고한 정신이요 앞으로 후손에게 남겨줄 위대한 유산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고등종교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런 삶을 가치 있는 삶으로 말씀하십니다.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도 그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게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작은 목표이지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무엇을 바라고 하는 덕목이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과거의 업보를 선행과 자비를 통하여 상쇄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그 의미가 다릅니다. 이미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랑이 고마워 이웃을 사랑하는 차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고아나 과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도 애굽의 종살이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니 과거를 생각하며 선대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선행은 이 세상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삶의 목적은 이 세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만 국한된 존재라면 선행이 가장 귀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저나 여러분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세상만의 존재가 아닙니다. [요일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의 목적으로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선행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해도 안 됩니다.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히 해야 합니다. [마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구제도 선행도 모두 하나님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물질 모으기 한국인의 의식구조 속에 건강과 재물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불길한 징조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쓰다가 놓고 가는 것들입니다. 영원을 선물로 받은 인간이 한시적인 것만 누리려고 아등바등한다면 만드신 하나님 기분 나쁘실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기 위해 사는 것보다 피곤한 일은 없습니다. 소유의 속성상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노력하며 그 결과가 올 때 잠시 만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은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의 삶을 구속합니다. 삶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존재 가치와 소유 가치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만약 같다면 부자는 행복하고 돈이 조금 없는 사람은 불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혼율, 자살률은 잘 사는 나라일수록 더 많습니다. 많이 가질수록 현실에 불만을 더 많이 가진다는 증거입니다. 영원을 위해 창조된 성도가 세상이 다 그런다고 재물 모으기로 인생을 탕진하면 안 됩니다. [잠27:24] “대저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영원한 것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교훈은 대부분의 성도들이 많이 들은 말씀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올해는 이 물질에 관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 청년의 쓸쓸한 뒷모습이 여러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럴 듯하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지만, 삶의 목적이 아닌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을 남기며 명예를 얻는다는 것이 그것이고, 선행을 베풀며 물질을 모으는 것이 그것입니다. 땅에 소망을 두는 이와 같은 목표가 아니라 영원을 위해 창조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성경적인 이단 분별/ 요일4:1
성경적인 이단 분별 요일4:1 이 글은 이단에 대한 연구보다는 이단에 대해 올바른 성경적인 관점에서 분별하도록 기록되었습니다. 어떤 특정 교단 중심적으로 작성된 글이 아니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관점으로 기술한 것으로 생각되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 4:1)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의 하나가 바로 \\\\\\\'이단\\\\\\\'이다. 얼마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10월 28일로 못박아 놓은 잘못된 광신자들이 신앙적,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킨바 있다. 이같은 일련의 시한부 종말론 사건 등을 계기로 \\\\\\\'이단\\\\\\\'이란 낱말은 신앙인들뿐만 아니라. 세인(世人)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 용어의 사용 빈도수와는 반비례로 그 의미는 갈수록 왜곡, 혼미해지는 실정이다.  이렇게 된 주 요인중의 하나가 기존 기독교계에 난무하는 이단에 대한 그릇된 분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고로 저울의 눈금이 잘못되면 올바른 판단과 거래의 공정성 또한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현 기독교계는 어떤 특별한 종파적 배경을 초월해서 순수하게 성경적 관점에서 본 이단의 정체를 밝힘과 아울러, 올바른 신앙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는 일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이에 여기서는 이단의 정의, 신약에 나타난 이단들을 다룸과 동시에 이단에 대한 오해들을 상고함으로써 이같은 시대적 요청에 한몫을 담당하고자한다. 1. 정의 - 이단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현대 종교 연구 시리즈\\\\\\\'를 펴냄으로써 일약 이단 문제의 권위자로 부곽된 죠쉬 멕도웰, 돈 스튜어트 두 교수는 \\\\\\\'이단 종파\\\\\\\'(Cults)에서 이단종파와 유사 종교들을 이같이 구분했다. 즉, \\\\\\\"이방종교는 비 기독교 문화권에서 자생되어온 불교, 유교등을 가리키고, 세속종교는 마르크스 주의 또는 세속적 인본주의 등을 일컫는다. 반면 이단 종파란 성경에 입각한 기독교 신앙을 임의로 변형 왜곡시키고 역사적 근거를 가진 교회의 교훈을 배척하는 집단을 지칭한다.\\\\\\\" 기독교 이단과 더불어 타종교와의 차이점을 지적한 적절한 분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원적인 관점에서 보면, 본래 \\\\\\\'이단\\\\\\\'을 뜻하는 헬라어 \\\\\\\'하이레시스\\\\\\\'는 \\\\\\\'선택\\\\\\\'을 뜻하는 어휘로서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선택을 좇는 당파나 학파를 의미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신약에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을 지칭하고, 또한 나사렛 당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다.(행 5:17,15:5, 26:5 등) 그러나 신약 시대가 끝나기 이전에는 \\\\\\\'이단\\\\\\\'이란 용어가 더욱 구체화되어 특별히 \\\\\\\"성경에 계시된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벗어난 이론과 그것을 추종하는 자들을 가리키게 되었음\\\\\\\"을 우리는 기독교 교회사를 통해 정의내릴 수 있다. 2. 신약에 나타난 이단들  여기서 우리가 제 1세기 당시 초대교회를 위협했던 주요 이단들을 살펴보는 이유는, 곧 기독교 이단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주장하는 바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단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 변질된 신관을 주장한다. 그리고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 공격하는데, 예를 들면 인성과 신성을 공유하신 그분의 본성을 부정하고 중보자로서 그분의 대속적 죽음을 부정하며, 더 나아가 그분의 부활과 재림등을 불신한다. 그리고 이단들은 구원관에 있어서 비성경적인 신비적 체험을 주장하고, 특히 행위를 통한 구원등을 강조한다. 덧붙여서 그들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고, 인간 교주를 부곽시켜 도덕적 타락을 야기시킨다. [1] 골로새서에 나타난 이단 (1) 영지주의 - 한마디로 \\\\\\\"이원론, 즉 물질은 악하고 영혼만 선하다는 논리에 입각한 신비주의적 구원관을 소유한 이단\\\\\\\"이다. 이들은 일종의 혼합주의 철학 사상으로서 모든 인류는 영적 계급, 정신적 계급, 물질적 계급 세가지로 나뉘며, 특별한 지식을 소유한 영적 계급만이 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적 세계는 30등급의아이온(aeons)으로 구성되며, 온 우주를 포괄하는 최고의 절대자는 설명될 수 없는 분으로 \\\\\\\'신적 충만\\\\\\\'(헬, 플레로마), 즉 신령한 빛 가운데 거한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에 불과하며, 그리스도는 결코 성육신 하신 것이 아니라, 천상의 가장 밝은 아이온으로서 잠시 인간 예수의 몸을 빌어 활동하다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천상 세계로 복귀했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는 신성은 육체와 같은 물질과 결코 연합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결국 부활도 없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같은 거짓된 사상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해 일부 성도들을 미혹시키려들자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이를 공박하였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2:8)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자로서 \\\\\\\'신적 충만\\\\\\\'이 완전히 그분 안에서 실체화되었으며(1:16-18,2:9-10), 십자가에서 육체의 죽으심을 통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음을 역설하였다(1:20-22) 그는 또한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성도들도 주님의 재림 때 부활하게 될 것임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재확인시켜 주었다. (3:1-4) (2) 천사숭배 - 영지주의와 연계해서 골로새 교회를 위협했던 이단 사상 중의 다른 하나는 천사 숭배였다. 이들은 사람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하는 것은 교만하므로 그분보다 열등한 존재인 천사를 경배해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의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상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중심의 신앙이 아닌, 인간의 이성에서 출발한 사상으로서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복음과 그의미를 완전히 왜곡시켰다. 이에 사도 바울은 그같은 사상이 헛된 과장이요, 하늘의 상급을 상실케 하는 거짓 교리임을 단호하게 지적하였다(2:18-19). (3) 금욕주의 - 당시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초등학문 중의 하나로 단죄했던 바, 금욕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2:20-23) 이 사상의 특징은 1:21에 나타나 있듯이 하나님께 근접, 인정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서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제반 규율을 강조했다. 물론 경건한 삶을 위한 적절한 금욕과 절제는 미덕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금욕적인 제반 규율 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지지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사상은 곧 이방 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욕 및 고행주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2]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이단적 교훈  한 마디로 행위를 강조한 율법주의를 가리킨다. 즉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으로 율법을 준수해야만 한다는 사상이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 유대 종교에 익숙해 있는 종교인들에게 매력적인 이론으로서 A.D.56년 경에 씌여진 갈라디아 서신을 살펴보면, 이미 그 교회 안에 침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상 이같은 행위 강조의 율법주의는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행위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범죄한 후에 취한 최초의 행위는 자신들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무화과 나무 잎새를 치장한 것이었다.(창 3:7)  양심의 고소,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은폐하려는 이 같은 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온 인류가 답습한 행위 종교의 효시이다. 그리하여 이 행위 종교는 땅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가인의 제사로 계승되었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범죄한 결과로서 이미 저주 받은 땅의 열매로 제사를 드렸다.(창3:17) 그런데 주목해 보라. 창세기에서 \\\\\\\'땅이 저주받았다.\\\\\\\'는 표현이 갈라디아에서 율법 행위 아래있는 자들이 \\\\\\\'저주아래 있다.\\\\\\\'는 표현과 일맥 상통한다는 점을!  요건대,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표한 양과 기름으로 제물을 드린 아벨의 믿음의 제사는 받으셨으나, 땅의 소산, 즉 범죄한 인간의 행위 종교와 노력의 산물을 바친 가인의 인간 공로 제사는 열납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창4:1-5) 더 나아가 이 율법주의는, 율법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으로 발전되었는 바 율법주의 자들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를 오해한 소치였다. 율법의 주된 의의는 인간에게 죄를 깨닫게 하므로서 구속자를 갈망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리하여 그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헬라의 부유층 자제를 훈육하는 가정교사로서 자제들을 학교에 까지 인도해 주는 역할을 담당함)이 되어, 모든 죄인들의 구주되시는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게 한다.(갈3:19,24, 롬3:20,7:7이하)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율법에는 도덕법과 의식법이 있어 의식법은 폐해졌으나 도덕법은 그 효력을 계속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탁월한 성경 교사로 기독교계에 알려진 독일의 에릭 사우어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율법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불가분의 단일체이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법법한 자가 되나니(혹은 율법 전부를 지킬 책임이 있으니)(약 2:10, 갈 3:10). 그러므로 도덕적인 율법과 의식적인 율법을 구별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는 의식적인 법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성취되었으며, 도덕적 율법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도 성취되지 아니해서 지금도 꼭 준수해야 할 것으로 남아있는 등 마치 두개의 율법처럼 만들기 때문이다\\\\\\\"(세계 구속의 여명, 에릭 사우어 저, 권혁봉 역, 생명의 말씀사 P.243)  실로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완전성을 보여주는 거대한 하나의 유기체로서 약속하신 자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만\\\\\\\' 존재할 것이다.(갈 3:19) 예수께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사 친히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14).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율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그렇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되었를 뿐 아니라, 율법에 대해 죽은 자이다.(롬7:4) 결국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소욕을 부정하고 성령의 인도함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권고받고 있다.(롬 8:4-6, 갈 5:16-26) 그러나 사실상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법 아래 삶으로서 율법 아래 살 때보다 더 거룩하고 수준 높은 경건의 삶이 되기를 원하신다 [3] 요한 서신에 나타난 이단  제 1세기 말엽에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예수님의 성육신(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의미)은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지 외형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같은 이단 사상을 일컬어 가현설(Docetism)이라고 부른다. 이 가현설 추종자들은 여러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약간의 강조점을 달리한다. 그 중 사도 요한과 동시대에 살았던 세린투스(Cerinthus)가 주도했던 학파는 \\\\\\\"그리스도의 영이, 예수라는 인간이 세례를 받을 때 그 위헤 임하였다가 그가 십자가 상에서 죽을 때 그에게서 떠났다.\\\\\\\"고 까지 주장했다. 또 다른 학파는 \\\\\\\"예수님의 인성은 완전히 허상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자들은 허상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어떤 이들은 \\\\\\\"실제로 못박혔던 인물은 구레네 시몬이었으며, 당시 예수님은 안전한 장소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보셨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서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라고 강조 용법을 사용하여 말씀이신 그리스도게서 실제 인간이 되셨음을 역설하였다. 또한 그는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요일 5:6)라고 강조하였다. 이는 곧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 뿐 아니라, 십자가 상에서 죽으실 때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신 그분은 세례받으신 그분과 동일하게 진실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미이다(초대교회 역사, F.F 부르스저, 서영일 역,기독교 문서 선교회, P.313). 이제 다시금 노 사도 요한의 예언적 말씀에 귀를 기울려 보자.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일2:22-23) [4] 베드로 서신에 나타난 이단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주님의 재림이 곧 바로 실현되지 않게 되자 즉시 재림의 약속은 사람들이 고의로 만들어 낸 거짓말이라고 주장하였다. 게다가 거짓 선지자들이 이들과 합세하여 하나님을 오해케 하고 십자가 상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주님을 대항하였다. 그 결과 부도덕한 성 범죄를 합리화 시키는 등 성도들의 양심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간교한 말로서 재물을 탈취하였다. 이에 사도 베드로는 재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을 통해 직접 들은 하나님의 약속임을 강조하였다.(벧후 1:16) 또한 거짓 선지자들을 실랄하게 비난하면서 그들에게 장차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내려질 것임을 선고하고, 한편으론 성도들이 이들에게 미혹당하지 말 것을 권고하였다(벧후 2:1-20).  실상 예나 지금이나 재림시기에 대한 오해 로 숱한 이단들이 출현, 무지한 사람들을 미혹하여 파멸로 끌고 갔다. 그런데 여기서 재림과 관련해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실상 재림의 시기를 오해하므로 생기게 된 이단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사단의 간교한 궤계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즉 번번히 빗나간 시한부 종말론 등으로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휴거\\\\\\\'를 완전히 부인하도록 획책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소망 중의 하나인 휴거 일시(日時)는 정확히 우리가 모르나 그분의 재림은 분명히 있을 것이며(살전4:13-18), 그것도 잠시 잠깐 후면 오실 것이다.(히10:37)고로 그분의 강림 때 \\\\\\\"주 앞에 흠도 없고 점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위해 그분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삶이 절실이 요청됨을 기억하자. 3. 이단에 대한 오해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약 이천년 정도를 지나오면서 순례하는 교회로서 모진 형극의 길을 걸어왔다. 때로 참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 이단으로 정죄되어 박해를 받아 왔는가 하면, 역으로 거짓된 신앙을 소유한 자들이 정통 신앙의 고수자로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에 여기서는 이단에 대한 오해 및 잘못된 판단들과 그 문제점 등을 다루고자 한다. 먼저 이단에 대한 그릇된 판단 기준을 살펴보자. [1] 기존 교단에 속해 있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는 견해  \\\\\\\'교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도는 한국 기독교계를 제외하면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경우 교인기리 만나면 최초로 던지는 질문이 \\\\\\\'무슨 교파에 속한 교회에 출석하느냐\\\\\\\'이다. 이는 물론 쉽게 이단 집단에 속해 있는지를 구별하는 손쉬운 방법 중의 하나라고 긍정적으로 보아줄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중생한 그리스도인인가에 대한 교제가 어느 교파 소속 교인인가 보다 훨신 중차대한 문제이다. 교파 소속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끗느 교파에 소속되었으며, 그가 오늘날 이곳에 있다면 무슨 교파를 지지했을 것 같냐?\\\\\\\' 반문하고 싶다. 일찌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분파주의로 전락할 위험성을 감지 통탄한 바 있다.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한 자라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고전 1:12-13)  요컨대, 기존 교단에 소속된 교회가 아니면 무조건 잘못된 교회로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기실 미국 기독교계의 경우 기존 교단에 속하지 않아도 정통 신앙을 고수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들이 많다. 이같은 교회를 일컬어 \\\\\\\'독립 교회\\\\\\\'(Independent Church)라 부른다. 요즘 미국의 유명한 방송 설교자, 강해 설교자 중의 한 분으로서 <두란노 서원>과 <생명의 말씀사>의 번역서를 통해 한국 교회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존 맥아더(John Macarthur)가 목회하는 \\\\\\\'은혜 공동체 교회\\\\\\\'(Grace Community Church)의 경우를 보자. 그 교회는 어떤 특정 교파에 소속 되지 않으나 2만 가량의 교인을 둔 교회로 미국에서 여타 교회의 귀감을 손꼽히는 교회 중의 대표적인 경우이다.  또한 이와 비슷하게 독립 교회를 하면서 미국 기독교게, 그리고 한국에도 \\\\\\\'영적싸움\\\\\\\', \\\\\\\'그리스도의 지체\\\\\\\'등의 역서로 잘 알려진 레이 스테더만(Ray Stedman)이 목회하는 \\\\\\\'반도 성서 교회\\\\\\\'(Peninsula Bible Church)를 보자. 이 교회 역시 기존 교파와 무관하게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교파를 초월해서 모이고 있는 수 많은 독립교회가 결코 이단의 시비를 받아본 적이 없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여기서 한국 교계에 잘 알려진 전도자요 선교 학자로서, 교인 한 가정에 한 사람 꼴로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바 있는 캐나다의 \\\\\\\'민중 교회\\\\\\\'(Peaple\\\\\\\'s Church)의 목회자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의 글을 되새겨 보자.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면 거기서는 장로교인, 감리교인, 침례교인, 오순절교인, 플리머스 형제단, 성결교인 등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만 상봉 하게 될 것이다.\\\\\\\" (그의 저서\\\\\\\'나의 가장 사랑하는 나라\\\\\\\'중에서) [2] 집회 시간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는 견해 물론 과거 사도들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의 내용을 믿지 않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사도 신경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 에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및 대속적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 또한 성령의 역사와 교회 성도 간의 친교, 사죄와 성도의 몸의 부활, 영생 등, 이 모든 주제들은 신구약 전반에 걸친 기독교 핵심 교리이다.  게다가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요청에 따라서 제시한 바,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 동안 간구해야할 기도의 요약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정규 집회시에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으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하는 그릇된 판단 기준이 문제인 것이다. 유치한 이야기이지만 수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그릇된 잣대로 사람들을 심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도 신경은 단순한 암송의 단계를 넘어서 성도 전 생애를 통한 일관된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기도문은 단지 자기 중심적인 기도만 일삼는 무리에게 기도의 내용과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되어야 할지를 제시해 주는 바, 성도 전 생애를 통해 실현되어야 할 기도 제목이자 약속이다. 사실상 집회 시간마다 이를 기계적으로 암송하는 것과 그것을 삶 속에서 믿고 실천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요컨대, 마음으로 깊게 동의 하거나 신뢰하지 않고서도 일사천리로 줄줄이 그것을 암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 상담 경험을 통해서 하는 말이다. 물론 암송할 뿐더러 암송한대로 믿고 실천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러나 그같이 외모만 보고 사람들과 모임을 판단하는 일은 진정 무지의 소치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 강단 휘장에 십자가 상징물이 없으면 잘못되었다는 견해  차제에 또 한번 유치한 내용 같지만, 다루어 보자. 사실 \\\\\\\'십자가 상징물이 없으면 이단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더러 만나 보았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상징하는 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십자가 없는 교리와 교훈은 곧 전통 기독교 신앙을 떠난 자유주의 사상으로 전락했음을 뜻한다.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실현되었다.  고로 십자가는 구약의 온전한 성취인 신약 전반에 깊게 깔려 있는 바, 전통 신앙의 토대이자 주춧돌이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당시 로마 법으로 어떤 죄인을 극형에 처할 때 쓰는 처형틀로서 저주받은 것을 상징했다(신 21:23, 갈 3:13). 실로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서 친히 저주를 받으사 우리를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케 해주셨다(고후 5:18-21).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결코 몸에 걸치고 다니는 악세사리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입은 성도가 전 생애를 통해서 증거해야 할 전도의 중심 내용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고전 1:22-23).  더 나아가 십자가는 우상으로 전락해서도 안된다. 아니, 십자가가 우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불행스럽게도 그럴 수 있다. 구약의 유다 왕 히스기야는 왕으로 등극한 후 곧 바로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 그때 그는 거의 만든지 800여년 간이나 된 모세가 만든 놋벰을 향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분향하고 우상숭배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부수고 단지 \\\\\\\'놋 조각\\\\\\\'이라 칭하였다.(왕하18:4) 놋뱀이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진대 십자가 또한 그렇게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로마 카톨릭은 그같은 죄악을 십 수세기 동안 자행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심령에 십자가가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그가 다니는 예배당 건물에 십자가 상징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확인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차대한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멋진 십자가 상징물을 세운 예배당에 출석하면서도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피뿌림이 없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적한 자들이 받을 형벌을 함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를 강조하되,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에 십자가를 강조하고 전파하라. [4] 영원한 속죄(구속)를 통한 구원을 부정하는 견해  사단이 극히 간교하게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하게 만드는 기독교 진리 중의 하나가 바로 \\\\\\\'구원\\\\\\\'에 관한 것이다. 현대 기독교계를 향한 사단의 이같은 전술전략은 가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대다수의 교인들이 자신의 구원에 관한 올바른 확신도 없이 교회에서의 여러 봉사에 온 정성을 쏟고 있으니 말이다.  사단은, 소위 은사 체험, 즉 방언, 예언, 환상 등에 몰두하고, 병을 치유하는 등 신유집회에 관심을 쏟거나 귀신을 쫏아내는 귀신론 교리에 집중하는 자들을 결코 경계하지 않는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서도 그같은 신비적 체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방 종교인 이슬람교도나 기독교 이단 중 하나인 몰몬교(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들도 방언 등 신비적인 체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중병을 치료받은 기적은 자랑하지만 막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진리는 모르거나 거절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단은 인류 구원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평가절하시키려고 획책한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죽음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극소화 시키려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가 우리 지난 날의 죄는 완전히 처리했으나 현재 범하는 죄는 자신의 회개를 통하여 해결, 구원 받는다는 식의 변질된 복음을 사람들이 믿게 하고 있다. 이 같은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얼마나 수많은 영혼들이 죄책감에 괴로워 하고 탄식하고 있는지! 그러나 그같은 가르침은 완전히 비성경적이며 가히 이단적인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원이 은혜가 아니라 행위로 주어진 노력의 댓가라고 본문의 내용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결국 사도 바울의 구원관을 반박하는 행위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실상 그리스도의 공로가 지난 날의 죄는 해결해 주었지만, 현재 살면서 짓는 죄는 그때마다 회개하므로써 용서를 받아 천국에 간다고 한다면, 만일 회개하지 못한 죄가 티끌만큼이라도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반감시키는 행위이다.  그러나 성경은 밝히 말하기를, 구원은 우리 행위(회개하는 행위 조차라도)가 아니라 그분의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선물임을 명백하게 선포한다.(요 5:24, 롬 3:23, 24, 28, 4:5, 딛 3:5, 유 1:3)  주님은 온 인류의 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모든 죄를 이미 십자가에서 약 이천년전에 해결해 주셨다. 우리의 죄값을 다 갚아 주신 것이다(요 19:30). \\\\\\\'다 이루었다\\\\\\\'의 원어적 의미는 \\\\\\\'다 갚았다\\\\\\\'이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의 선포에 귀를 기울이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구속)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여기 히브리서 9:12의 영원한 \\\\\\\'속죄\\\\\\\'는 구속(Redemption)이란 뜻인데, 이에 대해 금세기의 탁월한 강해 선교자로 알려진 바 있는 마틴 로이드 죤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구속이란 용어는 바울의 서신에서 7회, 히브리서 2회, 누가복음에서 1회, 이렇게 해서 신약 전체에 10회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구속\\\\\\\'이란 값을 지불한 결과로서 해방을 의미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마귀의 노예인 우리를 속(贖)하여 인도하여 내기 위해 오셨고 또한 그는 값을 지불하셨다. 고로 우리가 마귀로 인하여 포로로 갇혀 있던 감옥은 열리고, 노예였던 우리는 자유롭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한다. 자기의 공로로 우리를 사시고 자유롭게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단번에 용서함 받았고 오직 그분에 의해 사단의 능력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다.\\\\\\\" (로마서 강해 1, 로이드 죤스 저, 서문강 역, CLC, P85,87)  따라서 구원받은 것(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근거로 믿음을 통해 단번에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회개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새삼 강조하는 바이다. 이에 대해 확실히 해 두고자 다른 분의 견해를 살펴보자.  성경 교사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윌리암 맥도날드는 신약 주석에서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주석했다. \\\\\\\"주님께서는 갈보리에서 구속 사역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단번에(once for all)란 용어를 보면서 도저히 기쁨을 멈출 수 없다. 주님은 죄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동물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영원히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제 주님의 피는 그 효력이 무궁무진 하다. 따라서 이전에 죽었던 사람들의 죄,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죄,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게 될 사람들의 죄를 깨끗케 하기에 충분하다\\\\\\\"(Believer\\\\\\\'s Bible Commentary, Nelson, P.1001)  물론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현재 살면서 범하는 죄에 대해 자백과 아울러 회개하는(죄에서 돌아서는 행위) 삶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은, 회개라는 반복적인 행위가 구원의 조건인 양 가르치는 교훈이 비성서적이라는 뜻이다. 반복하건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가 과거에만 적용되고, 현재의 범죄는 자신의 회개라는 수단과 행위를 통해서 결국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그릇된 가르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면서 자백(혹은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빛 가운데 계신 주님과 동행하려면 이같은 삶이 없으면 안된다. 그러나 한 번 구원받은 자녀의 신분은 만에 하나 그가 범죄했더라도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할 때 곧바로 주님과의 교제가 깨져 영적 상태가 악화 될 수는 있다. 따라서 속히 죄악을 토설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투명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오 형제들이여!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음으로 단번에 얻는 이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결코 멈춰서는 안된다. 4. 결론  위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초대교회를 위협했던 이단들 가운데 중요한 교리들을 더듬어 보았고, 또한 현대 한국 기독교계가 이단에 대해 잘못이해하고 있는 점들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미 성서적인 정통 신앙을 떠난 이단들, 예컨대 컨주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 통일교 등등과, 교주들을 중심으로 새로 생긴 신흥종교나 재림의 날자를 지적하는 그릇된 종말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재론할 가치도 없다고 여겨 이곳에는 다루지 않았다.  사실상 여기서는 한국 기독교계 중, 기존 교단에 속해 있지 않으나 성경적인 정통신앙을 소유한 자들에 대해 기존 교파에 소속한 사람들의 섣부른 정죄와 그 기준들의 허구성을 지적하므로써 올바른 분별력을 갖도록 시도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어느 특정 교파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나 묵묵히 주님을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수하게 믿고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변호하고 격려하려 하였다.
역시 골치 아픈 이단/ 딤전6:3-5/ 2003-10-29
역시 골치 아픈 이단 딤전6:3-5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의 처음 부분에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이유가 에베소에 창궐하고 있는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의 첫 번째 교훈은 이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다시 교훈하는 것이 이단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젊은 목사 디모데가 목회를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교훈과 조언을 했는데, 왜 유독 이단에 관한 이야기는 재차 강조를 하고 있을까요? 목회하는 데 필요한 것이 이단에 대처하는 것뿐입니까?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지침, 교인들 사이의 인간관계, 또 대외적인 활동 등, 목사가 신경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바울이 편지의 서두에서 언급한 내용을 편지 말미에 다시 들고 나온 것을 보면 바울의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다스리고 목회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단에 대처하는 것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왜 이단에 대처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까?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것, 목사가 교인들을 대하는 태도, 교인들 사이의 관계, 이런 내용은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들이지요. 우리가 교회를 섬기면서 마땅히 애써야 할 것은 좋은 교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 주사랑교회는 좋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형편없는 교회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하는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는 사이인지에 따라서 좋은 교회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어서 세습한다는 비난을 받는 교회도 있고, 교인수를 계산해서 교회를 사고 파는 경우도 있고, 서로 싸우고 깨지는 교회, 목사를 쫓아내는 교회 등등 아주 좋지 않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좋은 교회가 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충고하는 내용들, 그 교훈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결과지요. 그러나 이단에 대한 바울의 교훈은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가 되느냐 교회가 안되느냐, 즉 진짜 교회냐 가짜 교회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비록 욕을 얻어먹는 교회라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가 깨지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을지언정, 그들 역시 동일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니게 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것이지요. 교회에게 있어서 이만큼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겠어요? 다른 교훈들을 잘 지켜서 좋은 교회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목사의 능력도 뛰어나고, 교인들의 사랑과 믿음이 탁월해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었다고 합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이 믿는 내용에 있어서 오류가 있고 잘못된 것을 믿게 된다면, 그 아름다운 교회가 무슨 소용입니까? 어제 밤에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광주의 어느 곳에 침례교의 간판을 내건 한 교회가 있는데, 대학생만 2,3백명이 모이고, 그래서 살아있고 생동감 넘치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는데, 사실은 요즘 대학가에서 골치 아픈 JMS 이단교회이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겉모습만 본다면 얼마나 대단한가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세속의 악한 성격을 띤 문화들이 젊은이들의 영혼을 잠식해 가는 세상에, 그 젊은이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교회, 또 그 젊은이들에게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진 힘있는 교회, 그래서 미래가 밝은 교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 자랑스러운 모습을 가진 교회인데, 알고 보니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된 이단이라면, 그들의 아름다움과 그들이 이룬 성과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이 다른 운동이라면, 가령 민주화 운동이라거나 사회개혁을 위한 운동이라거나 또는 통일을 준비하는 운동이라면, 그들의 조직과 힘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교회인 한,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해악이 될 뿐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디모데가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힘써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기 위해 신경써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었습니까? 감독을 세우고 집사를 선임하는 문제,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과부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훈들을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디모데가 아주 튼튼한 교회, 모범적인 지도자들을 가진 교회, 교인들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 어디에 내놓아도 모범적인 그런 교회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잘못된 내용을 믿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디모데의 사명은 에베소 시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이익단체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모범적인 공동체를 조직해서 사회에 선을 보이려는 것도 아닙니다. 디모데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에 장로를 세우고 집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알고 믿을 수 있도록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사도 많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그 중심에 서 있지 않다면 다른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쨌거나 우리교회가 확실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선 교회, 진리 편에 선 교회가 되도록 애쓸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스운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을 교회가 어디 있겠어요?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다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해밀턴에 많은 이단의 활동이 왕성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지켜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양보를 한다거나 자칫 실수해서 곁길로 가고 오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인생에, 우리 영혼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건전한 교회가 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단이나 거짓된 가르침에 현혹되고 싶어할 교회가 어디 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넘어갑니다. 또 많은 교회 안에 거짓 가르침이 침투해 들어옵니다. 이러한 일들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그런 거짓 가르침과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의 정체와 속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이단의 표식이 있습니다. 이마에다가 \'나는 이단\'이라고 써 붙여가지고 다니는 표식은 아니지만, 바울은 여기서 이단의 표식을 몇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다른 교훈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질랜드에 여행하고 돌아가서 뉴질랜드의 수도는 오클랜드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도 진짜로 오클랜드가 뉴질랜드의 수도인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제일 큰 도시이고 비행기도 오클랜드에 내렸으니까요. 모든 이단은 그리스도와 그에 관련된 진리에 대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교훈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따질 수 있겠지요? 남대문 문턱이 박달나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남대문에는 문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거짓 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요? 이단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가 틀렸다는 것이냐? 너희가 틀린 것이다. 너희가 수가 많다고 정통이냐? 아니면 역사가 오래 됐다고 정통이냐? 물론 정통과 이단은 숫자나 역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이 객관적 판단의 근거들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이단이 아니라 진리와 다르면 이단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진리인가 하는 것은 다행히 기록된 말씀으로 주어진 성경이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쳤던 것과 다른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다른 교훈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다르면 이단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진리를 계시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기준이 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 1:8)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새로 생겨나는 이단의 특징은 뭔가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새로운 계시를 받은 것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가지요. 여러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말씀이라고 혹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런 것은 바른 말, 건전한 교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경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건전한 교리, 즉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성육신 등을 전혀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단의 표식이지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믿으니 얼마나 교만하겠어요? 자기와 다르게 믿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실상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지요.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과 무지는 늘 동행합니다. 정말 무지한 사람은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상태, 이것이 바로 이단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어서 이단의 특징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그래서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을 유발시킵니다. 정말 골치 아픈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단에 대항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리고 그 노력을 복음 전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이익이 되겠습니까? 물론 이단에 대처하면서 교리가 확정되고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단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고 많은 영혼들이 거짓에 속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또 이들은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린 결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 사람들의 관심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미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경건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종과 같이 거룩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은 대부분 신도들로부터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중을 받습니다. 실상은 진리를 깨닫지도 못했고 진리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경건의 모양을 위해 애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종교는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천주교의 여러 수도회 가운데 큰 것 중 하나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입니다. 이 수도회에 내분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돈에 관련된 것이지요. 설립자인 프란체스코는 청빈을 이념으로 수도회를 세웠는데, 수도회가 커지고 많은 지지자들이 생기다 보니까 거대한 재산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의 설립정신을 따르는 엄격파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다시 청빈과 금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온건파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억지주장이냐고 싸웠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의 뒷이야기는 돈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교회마저도 돈에 관한 한 비리와 의혹으로부터 멀지 않습니다. 교회가 돈을 모으기 위한 집단이 아니지만, 신앙과 종교활동에는 헌금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돈이 모이게 되고, 거기에 순수하지 못한 욕심이 개입되어 문제가 생겨납니다. 종교적인 열정과 모이는 돈의 액수가 비례한다는 사실이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악하게 이용되는 수도 많습니다. 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은으로 신상을 만들어 파는데, 그것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열성이었겠지만 파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좋은 돈벌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져온 새로운 종교에 의해 그의 돈벌이가 위협을 당하자 큰 시위를 벌였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도 그런 사람입니다. 마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해서 괜찮은 돈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사도들의 기세 앞에서 그만 주눅이 들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 하늘에서 성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술과는 게임이 안되는 것입니다. 시몬은 이제 옛날의 좋은 돈벌이였던 마술을 버리고 새로운 돈벌이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내고서라도 그 능력을 사겠다고 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경건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거짓된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모습이지요.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기어이 경건을 가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괜찮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한 것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꼭 이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말 없어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돈을 받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나 천국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천국에 관해 설교하는 목사들이 그렇지요. 미국의 목사들 가운데 10%는 천국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통계조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눈에도 악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이는데,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악한 욕심 채우는 일에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정말 혼탁한 세대입니다. 이 악하고 혼탁한 세대에서 우리 교회가 순결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진리 위에 선 교회, 진리만 선포되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가 모두 함께 힘을 모으도록 하십시다.
역시 골치 아픈 이단/ 딤전6:3-5/ 2005-03-23
역시 골치 아픈 이단 딤전6:3-5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의 처음 부분에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이유가 에베소에 창궐하고 있는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의 첫 번째 교훈은 이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다시 교훈하는 것이 이단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젊은 목사 디모데가 목회를 잘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교훈과 조언을 했는데, 왜 유독 이단에 관한 이야기는 재차 강조를 하고 있을까요? 목회하는 데 필요한 것이 이단에 대처하는 것뿐입니까?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지침, 교인들 사이의 인간관계, 또 대외적인 활동 등, 목사가 신경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바울이 편지의 서두에서 언급한 내용을 편지 말미에 다시 들고 나온 것을 보면 바울의 강조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다스리고 목회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이단에 대처하는 것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왜 이단에 대처하는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까? 교회의 일꾼을 세우는 것, 목사가 교인들을 대하는 태도, 교인들 사이의 관계, 이런 내용은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들이지요. 우리가 교회를 섬기면서 마땅히 애써야 할 것은 좋은 교회를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 주사랑교회는 좋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형편없는 교회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하는지,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는 사이인지에 따라서 좋은 교회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어서 세습한다는 비난을 받는 교회도 있고, 교인수를 계산해서 교회를 사고 파는 경우도 있고, 서로 싸우고 깨지는 교회, 목사를 쫓아내는 교회 등등 아주 좋지 않은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좋은 교회가 되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충고하는 내용들, 그 교훈들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결과지요. 그러나 이단에 대한 바울의 교훈은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가 되느냐 교회가 안되느냐, 즉 진짜 교회냐 가짜 교회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비록 욕을 얻어먹는 교회라 할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록 교회가 깨지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을지언정, 그들 역시 동일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아니게 되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 것이지요. 교회에게 있어서 이만큼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겠어요? 다른 교훈들을 잘 지켜서 좋은 교회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목사의 능력도 뛰어나고, 교인들의 사랑과 믿음이 탁월해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었다고 합시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들이 믿는 내용에 있어서 오류가 있고 잘못된 것을 믿게 된다면, 그 아름다운 교회가 무슨 소용입니까? 어제 밤에 인터넷 어느 게시판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광주의 어느 곳에 침례교의 간판을 내건 한 교회가 있는데, 대학생만 2,3백명이 모이고, 그래서 살아있고 생동감 넘치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는데, 사실은 요즘 대학가에서 골치 아픈 JMS 이단교회이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겉모습만 본다면 얼마나 대단한가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세속의 악한 성격을 띤 문화들이 젊은이들의 영혼을 잠식해 가는 세상에, 그 젊은이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교회, 또 그 젊은이들에게 호소력과 설득력을 가진 힘있는 교회, 그래서 미래가 밝은 교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 자랑스러운 모습을 가진 교회인데, 알고 보니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된 이단이라면, 그들의 아름다움과 그들이 이룬 성과가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이 다른 운동이라면, 가령 민주화 운동이라거나 사회개혁을 위한 운동이라거나 또는 통일을 준비하는 운동이라면, 그들의 조직과 힘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교회인 한,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는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해악이 될 뿐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디모데가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힘써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기 위해 신경써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었습니까? 감독을 세우고 집사를 선임하는 문제,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 과부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훈들을 디모데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디모데가 아주 튼튼한 교회, 모범적인 지도자들을 가진 교회, 교인들 사이에 신뢰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 어디에 내놓아도 모범적인 그런 교회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잘못된 내용을 믿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디모데의 사명은 에베소 시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이익단체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모범적인 공동체를 조직해서 사회에 선을 보이려는 것도 아닙니다. 디모데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교회에 장로를 세우고 집사를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알고 믿을 수 있도록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행사도 많이 있고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진리가 선포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그 중심에 서 있지 않다면 다른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쨌거나 우리교회가 확실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선 교회, 진리 편에 선 교회가 되도록 애쓸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스운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을 교회가 어디 있겠어요? 교회라면,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다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해밀턴에 많은 이단의 활동이 왕성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지켜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양보를 한다거나 자칫 실수해서 곁길로 가고 오류에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 인생에, 우리 영혼에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가 건전한 교회가 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단이나 거짓된 가르침에 현혹되고 싶어할 교회가 어디 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넘어갑니다. 또 많은 교회 안에 거짓 가르침이 침투해 들어옵니다. 이러한 일들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탄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그런 거짓 가르침과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의 정체와 속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선 이단의 표식이 있습니다. 이마에다가 \\\'나는 이단\\\'이라고 써 붙여가지고 다니는 표식은 아니지만, 바울은 여기서 이단의 표식을 몇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첫째는 다른 교훈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질랜드에 여행하고 돌아가서 뉴질랜드의 수도는 오클랜드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이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자신도 진짜로 오클랜드가 뉴질랜드의 수도인줄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제일 큰 도시이고 비행기도 오클랜드에 내렸으니까요. 모든 이단은 그리스도와 그에 관련된 진리에 대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교훈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따질 수 있겠지요? 남대문 문턱이 박달나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남대문에는 문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거짓 사실을 유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요? 이단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가 틀렸다는 것이냐? 너희가 틀린 것이다. 너희가 수가 많다고 정통이냐? 아니면 역사가 오래 됐다고 정통이냐? 물론 정통과 이단은 숫자나 역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이 객관적 판단의 근거들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이단이 아니라 진리와 다르면 이단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진리인가 하는 것은 다행히 기록된 말씀으로 주어진 성경이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쳤던 것과 다른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다른 교훈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과 다르면 이단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진리를 계시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성경의 많은 부분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기준이 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 1:8)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새로 생겨나는 이단의 특징은 뭔가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새로운 계시를 받은 것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가지요. 여러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말씀이라고 혹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런 것은 바른 말, 건전한 교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경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인 것입니다. 누군가가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건전한 교리, 즉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성육신 등을 전혀 다르게 이야기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단의 표식이지요.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믿으니 얼마나 교만하겠어요? 자기와 다르게 믿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실상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지요.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과 무지는 늘 동행합니다. 정말 무지한 사람은 자기가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상태, 이것이 바로 이단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어서 이단의 특징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고 그래서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을 유발시킵니다. 정말 골치 아픈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단에 대항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리고 그 노력을 복음 전하는 일에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이익이 되겠습니까? 물론 이단에 대처하면서 교리가 확정되고 진리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단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고 많은 영혼들이 거짓에 속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또 이들은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린 결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 사람들의 관심은 진리가 아닙니다. 이미 진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경건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종과 같이 거룩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사이비 종파의 교주들은 대부분 신도들로부터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중을 받습니다. 실상은 진리를 깨닫지도 못했고 진리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경건의 모양을 위해 애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종교는 돈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천주교의 여러 수도회 가운데 큰 것 중 하나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입니다. 이 수도회에 내분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돈에 관련된 것이지요. 설립자인 프란체스코는 청빈을 이념으로 수도회를 세웠는데, 수도회가 커지고 많은 지지자들이 생기다 보니까 거대한 재산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의 설립정신을 따르는 엄격파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다시 청빈과 금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현실을 인정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온건파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억지주장이냐고 싸웠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형교회들의 뒷이야기는 돈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교회마저도 돈에 관한 한 비리와 의혹으로부터 멀지 않습니다. 교회가 돈을 모으기 위한 집단이 아니지만, 신앙과 종교활동에는 헌금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돈이 모이게 되고, 거기에 순수하지 못한 욕심이 개입되어 문제가 생겨납니다. 종교적인 열정과 모이는 돈의 액수가 비례한다는 사실이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악하게 이용되는 수도 많습니다. 에베소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은으로 신상을 만들어 파는데, 그것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열성이었겠지만 파는 사람에게는 그보다 좋은 돈벌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져온 새로운 종교에 의해 그의 돈벌이가 위협을 당하자 큰 시위를 벌였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도 그런 사람입니다. 마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해서 괜찮은 돈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사도들의 기세 앞에서 그만 주눅이 들었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 하늘에서 성령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술과는 게임이 안되는 것입니다. 시몬은 이제 옛날의 좋은 돈벌이였던 마술을 버리고 새로운 돈벌이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내고서라도 그 능력을 사겠다고 했던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경건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거짓된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모습이지요.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기어이 경건을 가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괜찮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가증한 것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꼭 이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말 없어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돈을 받고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나 천국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천국에 관해 설교하는 목사들이 그렇지요. 미국의 목사들 가운데 10%는 천국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통계조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눈에도 악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이는데,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하나님의 진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악한 욕심 채우는 일에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악한 일입니까? 정말 혼탁한 세대입니다. 이 악하고 혼탁한 세대에서 우리 교회가 순결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진리 위에 선 교회, 진리만 선포되는 교회가 되도록 우리가 모두 함께 힘을 모으도록 하십시다.
예수님은 정말 구름 타고 오시는가?/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36)/ 행1:9/ 장운철 목사/ 2012-03-23
예수님은 정말 구름 타고 오시는가?/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36) 행1:9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림, 즉 다시 오실 줄로 믿는다. 그럼 예수님의 재림 방식은 어떤 것일까? 초림 때처럼 다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실까? 아니면 어느 특정인에게 소위 ‘영’으로 임하실까? 또는 UFO를 타고 우주 어느 한 곳에서부터 날아오실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대표적인 구절이 사도행전 1:9-11절이다. 살펴보자.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9-11, 개역성경) 이 성경 구절의 본 의미를 이단자들은 곡해를 하고 있다. 위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의 방식이 승천하실 때의 모습 ‘본 그대로’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단자들은 자신들 교주의 신격화를 위해 성경을 오용하고 있다. 한 이단자의 주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행 1:9절에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고 했는데 그때 ‘구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2. 모든 성경은 ‘짝’이 있다면 짝 찾기를 통해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 이사야 34:16절을 언급한다. 3. 짝에 해당되는 성경구절로 히브리서 12:1절은 제시한다. 이를 통해 ‘구름=많은 증인들’, ‘구름=사람들’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4. ‘구름=사람들’을 다시 행 1:9절에 대입시킨다. 5. 행 1:9절은 다시 해석한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승천하신 것처럼, 재림 때도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타나신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신다. 그 분이 000이시다” 그럴 듯해 보이는가? 나의 이해와 상관없이 성경은 그런 의미로 말하고 있는가? 성경 구절들을 이용해 소위 ‘풀었기’때문에 마치 성경적, 옳은 해석 방식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실제로 이단자들은 당연히 위와 같은 자신들의 성경 이해 방식이 성경적이라고 강짜를 부린다. 우리네 성도들도 적지 않게 유혹 당한다. 엄청나게 큰 오류다. 먼저 ‘성경에 짝이 있다’며 제시한 이사야 34:16절의 ‘짝’이라는 용어는 그런 뜻이 전혀 아니다. 그럼 무슨 뜻일까? 이는 이사야 34장 1절부터 잘 읽기만 해도 어렵지 않게 잘 알 수 있다(장운철, “ ‘성경에 짝이 있다’고 오용된 성구”,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 참조). 어려운 주석서들을 동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필요하다면 ‘쉬운 성경’ 등 현대어로 표현된 성경을 읽어도 좋다. 이사야 34장 1절부터 읽어보자. 하나님의 진노가 에돔에 임하게 된다. 에돔은 멸망당하는 나라의 대표로 표현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갈 때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민 20:14-21). 그래서 에돔은 황무하게 된다. 그 황무함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사람은 살 수 없고, 동물들이 짝을 이루며 살게 된다’고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사람들은 코웃음을 친다. 이에 하나님은 ‘동물들이 짝을 이루며 산다’는 말로 에돔의 멸망을 강하게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사야 34:16절의 ‘짝’은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해 주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 성경 해석을 위해 주어진 용어가 아니다. 더욱이 ‘짝 맞추기’식 퀴즈 풀이를 위한 공식은 더욱 더 아니다. 위 이단자의 해석처럼 ‘구름=사람들’이라고 일률적으로 적용을 한다면 다음 구절들의 해석은 우스꽝스러워진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출 13:21)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두신 곳이 사람들 사이인가? 또한 광야생활 중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구름 기둥’이 본질은 ‘사람 기둥’이란 말인가? 어떤 현상을 상상해야 하는가? 또한 성경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말씀이 여러 번 등장한다(계 1:7, 마 24:30, 마 26:64 등). 그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사람을 말처럼 타고 온다는 의미인가? 해괴망측하다. ‘구름’에 관한 이만희 씨(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신천지측)의 해설도 살펴보자. 계 1:7절에 대한 이만희 씨의 해설이다. 이 씨는 예장통합 등 이미 한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공식 규정받은 이다. “베드로전서 3장 18-19절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살리심을 받고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전도하신다고 한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은 영이시다. 사실 재림 예수님의 모습은 초림 때 이미 제자들에게 공개된 적이 있다(마 17장). 구름 속에서 변형된 예수님의 모습은 성령체였으며 육체가 아니었다. ... 한편 구름이 가린 채 하늘로 올라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행 1:9). 이로 보건대 주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영으로 오신다는 뜻이다.”(이만희, <천국비밀 요한계시록의 실상>, 도서출판 신천지, 2005, p.55) 이만희 씨는 ‘구름 타고 오신다’는 뜻을 ‘영으로 오신다’는 것으로 설명했다. ‘구름=영’이라는 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성경 역대하 5:13-14절과 짝 맞추기 방식으로 곡해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영’으로 누군가 특별한 존재에게 임하게 된다는 논리가 나온다. 이단자들이 흔히 즐겨 사용하는 공식이다.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김덕연 목사/ 청주상담소장/ 이단경계 주일 설교/ 2009-08-28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모든 질병은 몸이 연약할 때 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단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교회의 연약함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에 이단의 정체를 바로알고 거기에 합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1.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28절)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메시지로 주신 말씀입니다. 즉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 자기를 위하여 삼가라: 악한 사단의 일차 공격 목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목회자의 실수나 단점 등을 꼬투리로 잡고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2)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양떼는 항상 목자를 바라보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목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목회자의 말 한 마디가 양떼의 영혼을 세울 수도 있고 넘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삼가야 합니다. 2. 흉악한 이리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라(29~30절) 이리는 양떼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양떼를 노리고 공격하는지 잘 연구하여서 미리 양떼들로 하여금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 이리는 양떼의 영혼을 죽이는 자들입니다: 이리가 양떼에게 다가오는 목적은 오직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입니다(요 10:10). 혹 ‘나를 위하여’, ‘나를 살리려고’ 다가오는 것처럼 말할지라도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나를 살리고, 나를 위하실 분은 결코 없습니다(요 14:6). 2) 이리는 자기를 좇게 하려고 몰래 미혹합니다(30절): 이리의 특징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달콤한 말로 미혹할지라도 그들 속에는 오직 거짓과 궤계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의 아비는 마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요 8:44). 3) 이리는 어그러진 말을 합니다(30절): 비유풀이가 바로 어그러진 말입니다. 이성적, 과학적, 합리적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비유로 풀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히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초이성적이며, 초과학적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자기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하여 비유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요, 불신한 자요, 사악한 자입니다. 또 비유의 본래 목적이 어떤 사실을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보충 설명하는 문학 기법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말을 바꾸어서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유를 암호풀이 하듯이 하는 자들의 어그러진 말을 잘 분별해야 이리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3. 눈물로 훈계하고 밤낮으로 기도하라 1) 사도 바울은 삼년이나 밤낮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31절)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말씀으로 각 성도들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말씀의 갈급함을 본 교회에서 해소 받지 못하면 결국 다른 곳에서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이단의 미혹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적어도 각 사람이 3년 이상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성경을 직접적으로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수적인 교육 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성경 말씀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2)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게 해야합니다(32절) 성도를 든든히 세우는 말씀은 결국 구원의 은혜 곧 구속의 복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의도를 충분히 파악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분명히 깨닫는 자녀들은 절대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는 성도는 절대 쉽게 이리의 미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강단에서 구속의 복음이 반복적으로, 그러나 풍성하게 선포되어 교회와 성도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이단경계주일 설교(1)/ 김덕연 목사/ 청주 새중앙교회/ 청주이단상담소장/ 2009-09-03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모든 질병은 몸이 연약할 때 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단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교회의 연약함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에 이단의 정체를 바로알고 거기에 합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1.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28절)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메시지로 주신 말씀입니다. 즉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 자기를 위하여 삼가라: 악한 사단의 일차 공격 목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목회자의 실수나 단점 등을 꼬투리로 잡고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2)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양떼는 항상 목자를 바라보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목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목회자의 말 한 마디가 양떼의 영혼을 세울 수도 있고 넘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삼가야 합니다. 2. 흉악한 이리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라(29~30절) 이리는 양떼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양떼를 노리고 공격하는지 잘 연구하여서 미리 양떼들로 하여금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 이리는 양떼의 영혼을 죽이는 자들입니다: 이리가 양떼에게 다가오는 목적은 오직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입니다(요 10:10). 혹 ‘나를 위하여’, ‘나를 살리려고’ 다가오는 것처럼 말할지라도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나를 살리고, 나를 위하실 분은 결코 없습니다(요 14:6). 2) 이리는 자기를 좇게 하려고 몰래 미혹합니다(30절): 이리의 특징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달콤한 말로 미혹할지라도 그들 속에는 오직 거짓과 궤계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의 아비는 마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요 8:44). 3) 이리는 어그러진 말을 합니다(30절): 비유풀이가 바로 어그러진 말입니다. 이성적, 과학적, 합리적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비유로 풀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히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초이성적이며, 초과학적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자기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하여 비유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요, 불신한 자요, 사악한 자입니다. 또 비유의 본래 목적이 어떤 사실을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보충 설명하는 문학 기법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말을 바꾸어서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유를 암호풀이 하듯이 하는 자들의 어그러진 말을 잘 분별해야 이리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3. 눈물로 훈계하고 밤낮으로 기도하라 1) 사도 바울은 삼년이나 밤낮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31절)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말씀으로 각 성도들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말씀의 갈급함을 본 교회에서 해소 받지 못하면 결국 다른 곳에서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이단의 미혹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적어도 각 사람이 3년 이상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성경을 직접적으로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수적인 교육 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성경 말씀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2)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게 해야합니다(32절) 성도를 든든히 세우는 말씀은 결국 구원의 은혜 곧 구속의 복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의도를 충분히 파악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분명히 깨닫는 자녀들은 절대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는 성도는 절대 쉽게 이리의 미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강단에서 구속의 복음이 반복적으로, 그러나 풍성하게 선포되어 교회와 성도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율법의 효과와 이단자/ 딤전1:6-11/ 2003-10-29
율법의 효과와 이단자 딤전1:6-11 율법사(律法師)와 율법의 효과에 대한 교훈이다. 율법의 대지(大旨)는 사랑인데(마22:37) 사랑을 버리고 공문(空文)의 율법에만 치중하여 율법의 선생으로 가장(假裝)하는 거짓 교사들의 소행(素行)은 변론을 일삼을 뿐이요, 율법의, 진의(眞意)를 이해치 못하는 자들이다. 바울은 율법을 전연 무시하고 반대만 한 것이 아니라 율법은 효과있게 사용하면 유용(有用)한 것으로 해명하였다. 이것이 다른 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율법에 대한 태도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법은 의인을 위하여 있지 않고 범법자(犯法者), 곧 각종 죄인을 위하여 존재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율법은 사람이 죄를 깨닫고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안내역(案內役)이라 할 수 있다. 1. 이단자의 본성 1) 진리에서 벗어난 자(6) ― 딤전 6:21, 딤후2:18이. \\\"사람들\\\"은 어떤 자들을 의미한다. 이것은 바울 당시의 이단자들을 아직 지명하지 않고 회개케 하려고 간접적으로 그들의 오류만을 지적함이다. \\\"벗어나\\\"란, 표적에서 빗나가다. 잘못을 저지르다. 빗나가다의 뜻이며, 5절에서 지적한 말씀에서 즉 표적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바른 길에서 탈선되면 결국 허무하게 전락할 수 밖에 없다. 2) 헛된 말에 빠진 자(6) ― \\\"헛된 말\\\"이란, 닥치는 대로 이야기하다. 헛되니 말타툼하다. 재잘거리다의 뜻이며, \\\"빠져\\\"는 5:15, 6:20, 딤후4:4, 히12:13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거짓 교사들은 5절과 같은 중요한 여러 점에서 벗어나 정신이 엇갈려 무익하고 아무 쓸데 없는 의론과 공론에 빠져 있었다(딛1:10). 3)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느 자(7) ― \\\"율법 선생\\\"이란, 랍비, 호법사, 율법의 해석가의 뜻이다. 이상과 같은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율법의 교사가 되려 욕망을 가졌으나 그들의 자신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하들의 확증(確證)도 줄 수 없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 것 뿐이다. 그리고 무용의 언사로 우롱하므로 자신을 옹호하려고 노력한다. 신앙이 때로는 이같은 사람들에게 무익한 연구의 재료와 유해의 변론으로 변하기 쉽다. 4)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도 때닫지 못하는 자(7) ― \\\"확증하는\\\"이란, 철저하게 확인하다, 맹세코 단언하다, 끊임없이 주장하다의 뜻이고, \\\"깨닫지\\\"란, 모으다, (정신적으로)이해하다, 깨닫다의 뜻이다. 거짓교사들은 함부로 율법 교사는 되고 싶어하면서 그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그 말하는 바를 모르며 또는 무슨 일에 대해 확증하고 단언을 내리지도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다(마22:29, 막12:27, 마12:7, 롬2:17-24). 쓸데없는 말재주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믿음의 일이 한가한 사람들의 한화문제(閑話問題)로 될 때, 때때로 무익한 연구나 해로운 논쟁에 떨어지는 수가 있다(딤전6:4, 골2:18). 2. 율법의 성격 1) 법 있게 쓰면 선한 것(8) ― \\\"선한(kalos)\\\"이란 아름다운, 선한, 기름진, 유용한의 뜻으로, 선한 것의 외부적 표현이요. \\\"선한(agado)\\\"는 선의 내부적인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즉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높이는 듯이 역설하면서 그것을 오용한다(롬10:4, 갈3:24, 4:4-5). 따라서 그들의 교훈은 좋은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율법을 바로 사용해야 할 필요를 말한다. 2) 옳은 자 위해 세운 것이 아님(9) ― \\\"옳은\\\"이란 지당한, 정당한, 공정한 의로운의 뜻이며, \\\"옳은 사람\\\"은 의인을 말한다. 자력으로 의로워 졌다는 의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칭의된 의인을 가리킨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력으로는 율법에서 해방되리 만큼 완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운 것\\\"이란, 눕다, 지명되다, 저장되다, 만들어지다의 뜻이다. 본 절은 율법의 목적을 명시하였으니 율법은 정의의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불법자 곧 죄인을 위하여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유효하게 사용하면 유익하다는 뜻이다. 율법이 의인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은 의인은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롬6:14, 8:2, 갈2:19, 3:25, 5:18). 율법의 목적이 불법한 자들을 위하여 세운 까닭이다. 3. 율법을 주신 목적 1) 불법자 위해(9) ― \\\"불법\\\"이란, 이해가 부족한, 불법의, 사악한의 뜻이며, \\\"불법한 자\\\"는 \\\'율법이 없는 자\\\' 즉 무법자, 율법을 무시하고 질서를 혼란하게 하는 자이다(고전9:21, 살전5:14). 2) 불종자 위해(9) ― \\\"복종치 아니하는 자\\\"는 규모 없는 자, 즉 질서, 규율, 상전에 반항적인 자를 가리킨다(살전5:14, 살후3:6, 11, 벧전4:17, 히2:8). 3) 불경건한 자 위해(9) ― \\\"경건치 아니한 자\\\"란 경외하지 않는, 신앙심이 없는의 뜻이며, 하나님에 대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나 존경하는 마음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을 의미한다(벧후2:6). 4) 죄인 위해(9) ― \\\"죄인\\\"이란 죄있는, 죄를 범한, 범죄자의 뜻이다. 하나님을 거역하여 범죄한 자를 가리킨다(고전6:9-10, 10:18-22). 5) 거룩지 아니한 자 위해(9) ― \\\"거룩하지 아니한\\\"이란, 악한, 신앙심이 없는의 뜻이며, \\\"하나님의 신성을 지키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벧전1:5). 6) 망련된 자 위해(9) ― \\\"망령된 자\\\"란, 이방의, 사악한, 경건치 않은(자)의 뜻이다. \\\'대문간\\\'에서 온 말이며 거기서 \\\'짓밟히는 것\\\'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의 신성을 짓밟는 자이다(4:7, 6:20, 딤후2:16). 7) 부모를 치는 자 위해(9) ― \\\"아비를 치는 자, 어미를 치는 자\\\"는 신약에서 이 곳에만 보이는 낱말들로 \\\'아비를 죽이는 자\\\', \\\'어미를 죽이는 자\\\'로 번역된 말이다. 8) 살인하는 자 위해(9) ― \\\"살인하는 자\\\"는 신약에서 이 곳에만 나타나는 낱말이다 제6계명을 범하는 자이다. 9) 음행하는 자 위해(10) ― \\\"음행\\\"이란 남창, 난봉군, 매춘부의 뜻이다. 이성간의 성적 문란함을 의미한다. 10) 남색하는 자 위해(10) ― \\\"남색\\\"이란, 남색하는 자, 사람끼리 자신을 더럽히는 일에 대한 남용자의 뜻으로 남성간의 성적 범죄행위를 의미한다(롬1:26-27, 고전6:9, 유7). 11) 사람을 탈취하는 자 위해(10) ― \\\"탈취\\\"란 유괴자, 납치자, 노예로 만드는 사람의 뜻이며, 이것은 폭력배니 강력, 사기, 유괴 등의 수단으로 남녀를 노예로 삼는 일에서 파생된 말들이다. 제8계명에 해당한 도이죄이다. 12) 거짓말하는 자 위해(10) ― \\\"거짓말\\\"이란, 거짓말쟁이의 뜻으로, 이는 계시록에서 지옥으로 갈 죄로 규정되었다(계21:8, 22:15). 13) 거짓 맹세하는 자 위해(10) ― \\\"거짓 맹세\\\"란 (거짓으로) 위증자, 맹세를 파기한 자의 뜻으로 예수께서 산상 보훈에서 특히 경계되었다(마5:33, 23:16, 약5:12). 14)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 위해(10) ― \\\"바른\\\"은 건전한 교훈(딤후4:3), 건전한 언사(딤후1:13), 건전한 신앙과 사랑(딤후1:13)이며, \\\"교훈\\\"이란 가르침, 지각, 주장, 교리의 뜻이고, \\\"거스리다\\\"는 대항하다, 대적하다, 저항해 버리다의 뜻이다. 4. 율법과 바울 1) 맡김(11) ― \\\"맡기신 바\\\"란 믿음을 갖다, 신용하다, 믿다, 맡기다, 신뢰하다의 뜻으로서, \\\"내게 맡기신 바\\\"는 \\\'내가 맡게된 바\\\'이며 주격인 \\\'내가\\\'가 강조적이다. \\\'너의 아비인 나\\\' \\\'너는 나의 대표이다\\\' 교회의 창설자인 나, 나는 거짓 교사에 대해 경계할 권세를 가진다(딛1:3, 롬3:2, 고전9:17, 갈2:7). 2)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11) ― \\\"복되신\\\"이란, 행운의 복된, 축복된의 뜻이며, \\\"영광\\\"이란 명성, 신용, 찬양, 영광, 근엄, 장성의 뜻이다. \\\"복음\\\"이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의 뜻이다. \\\"좇음\\\"이란 ∼아래에, ∼에 따라, ∼에 비례하여의 뜻이다. 복되신 하나님은 천국 축복의 근원이요, 축복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시다. 그 영광 곧 그 은혜와 정의로서 구원 받게 되는 것을 가르치는 복음이 바울에게 맡겨진 복음이다(딤전6:15).
이단 많은 에베소에서/ 딤전1:3-11/ 2003-10-29
이단 많은 에베소에서 딤전1:3-11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이래 사탄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교회를 흔들어댔습니다. 스데반을 시작으로 해서 수많은 성도들을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온 삶을 바쳐 복음을 전했던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교회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얼마나 사탄의 공격이 집요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현장입니다. 사도시대 이후, 소위 속사도시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황금기를 일구었던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사탄의 교회 흔들기는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제 거기서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또 감히 그 이름을 전하려고 하지도 못합니다. 사탄이 휘두르는 창과 칼 앞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맥없이 쓰러져 왔을 뿐입니다. 교회에 대한 사탄의 위협은 이처럼 엄청난 파괴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또 다른 전략은 거짓말입니다. 이 방법은 무력을 사용한 핍박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교회에 입혀 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거짓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현혹하고, 또 마치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처럼 위장하고서 성도들을 파멸로 데려가는 일을 사탄은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사탄의 이런 작전을 우리는 이단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지 한두 세대가 지나면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이 문제가 에베소에서 심각했던 것은, 그곳이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헬라종교의 중심지였고 또한 학문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해밀턴이라는 도시에 유난히 이단의 세력이 강한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아직 저는 잘 모르겠지만,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요? 어떤 분은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곳이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또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에 악한 영들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얘기도 하는데,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확실한 것은 이곳에 이단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단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친다면 이단이라고 할 것도 없고 위험하지도 않지만,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처럼, 마치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거기에 현혹되어 넘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에베소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남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는 아마도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단과 맞서 싸우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많지 않습니다. 우선 그들은 비이성적인 집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만의 논리로 철저하게 무장이 되어 있어서 다른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무조건 틀렸고 자신들이 확실히 옳다고 믿기 때문에 얼마나 열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달라붙는지,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요. 이처럼 비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폭력과 테러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일 아닙니까? 평생 이단과의 전쟁을 해 왔던 탁명환 씨가 수십번 테러를 당했고, 결국은 그렇게 목숨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누가 기꺼이 맡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그래서 내켜하지 않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억지로 떠밀다시피 에베소 교회를 맡겼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권한 것은\' 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것은 거기 있는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 안에 이단적인 주장을 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는 것이지요. 온 교회가 이단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이 몇몇 사람의 거짓 선생들의 위험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머지 않아 온 교회를 완전히 잘못된 길로 끌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아주 단호합니다. 그들을 잘 타일러서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잘 가르쳐서 깨닫도록 하는 것도 아닙니다. 명하여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 이단을 단호히 금지시키고 뿌리를 뽑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결단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이 거짓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흔들어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공작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거짓말을 하고 이단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 속성상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린 곳에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린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가 심긴 곳에 와서 거짓 진리를 심고 그 거짓말로 진리를 왜곡해서 하나님의 성도들을 빼앗아가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지요. 그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저주와 형벌이 그대로 오늘날의 이단들에게 해당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고 넘어가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는 교회는 부패하고 교만한데 비해서 이단이라고 정죄를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랑이 넘치고 겸손하며 진실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이단보다 사랑이 넘치고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입이 백 개가 있더라도 할 말이 없고, 우리가 반성해야 될 일이지요. 그렇지만 한편 이단들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은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큰 일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지적했습니다(고후 11:14). 또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라고 하지요? 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근거가 없는 전설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각색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현상은 중세시대에 와서 전성기를 맞게 되었는데, 교회와 신앙의 이름을 빌린 미신과 무속신앙이 창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에베소에서는 고대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기독교나 유대교 사상이 적당히 혼합되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거나, 혹은 그리스 철학과 종교의 방법론으로 기독교 신앙에 접근하여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언뜻 보기에 매우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사상, 남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진리의 발견인 양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길 수가 있는 것이지요. 학문의 발전은 다른 사람들이 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 냄으로써 성취됩니다. 그렇지만 뭔가 새롭고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다 진리가 아니고 진보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구세군 사관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저를 앉혀놓고 성경을 읽은 다음 나름대로 심오한 해석을 하는데, 얼마나 새롭고 신기한지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목사님들에게서 들어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분은 천재 아니면 완전히 엉터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엉터리에 가까운 해석이었어요. 때로는 전혀 엉터리 같은 말에도 우리가 홀릴 수가 있습니다. 이단들의 주장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그런 엉터리도 없는데, 당시에는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고 진리처럼 들렸는지, 그렇게 속아넘어가는 데는 공부 많이 한 박사도 소용없고, 수십 년 쌓아온 믿음의 연륜도 소용없습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가장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교에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이 그렇게 많이 참여했었다는 것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수십 년 복음을 증거하던 목사가 어느 날 갑자기 이단에 넘어가는 것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쨌든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사실 하나님을 알고 구원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는 데 도움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가령 안식일 논쟁도 그렇고, 144,000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사도의 말처럼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말다툼만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일단 할 수만 있으면 상대를 안 하는 것이 편합니다. 물론 그분들을 변화시켜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도 우리의 사명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제대로 반박을 할 수도 없고,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서 섣불리 논쟁을 할 수도 없고, 또 자칫 잘못하면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피하고 안 만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또 그런다고 기독교인들이 사랑이 없다는 둥, 무정하다는 둥, 이런 비난을 받기도 해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네요. 제일 좋은 방법은 이단에 대해 대비를 잘 해 두고, 또 그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으로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겠지요. 너무 어렵습니까? 하지만 이단 많은 해밀턴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는 어떤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일종의 교권 다툼이지요. 그러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서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선생이라고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엉터리 같은 주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이 이단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런 일이 많습니다. 신도들로부터 신처럼 받들어지는 교주의 주변을 보세요. 신도들의 열심이나 순진함과는 대조적으로 얼마나 거짓과 탐욕으로 물들어 있던가요? 이것은 하나님께 반역해서 심판을 당하게 된 사탄이 무지한 사람들을 꾀어서 함께 멸망으로 가려는 것과 똑같은 패턴이지 않습니까? 에베소 교회에서 이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은 교회에 상당한 해를 입히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내용은 율법에 대한 것인데, 율법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바울 아닙니까? 또 그 율법이 복음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히 파악한 사람도 바울입니다. 호랑이 없는 산에 여우가 대장 노릇을 하다가도,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면 여우는 물러가야지요. 참된 진리를 가르치는 참된 선생 바울 앞에서 이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진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리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단 많은 이 해밀턴에서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수호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이단이 발붙일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단에 속아 거짓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필요하겠지요.
이단 많은 에베소에서/ 딤전1:3-11/ 2003-10-29
이단 많은 에베소에서 딤전1:3-11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이래 사탄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서 교회를 흔들어댔습니다. 스데반을 시작으로 해서 수많은 성도들을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온 삶을 바쳐 복음을 전했던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교회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얼마나 사탄의 공격이 집요했었는지를 알 수 있는 현장입니다. 사도시대 이후, 소위 속사도시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황금기를 일구었던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사탄의 교회 흔들기는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제 거기서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또 감히 그 이름을 전하려고 하지도 못합니다. 사탄이 휘두르는 창과 칼 앞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맥없이 쓰러져 왔을 뿐입니다. 교회에 대한 사탄의 위협은 이처럼 엄청난 파괴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또 다른 전략은 거짓말입니다. 이 방법은 무력을 사용한 핍박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교회에 입혀 왔습니다. 교회 안에서 거짓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현혹하고, 또 마치 그리스도의 교회인 것처럼 위장하고서 성도들을 파멸로 데려가는 일을 사탄은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사탄의 이런 작전을 우리는 이단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지 한두 세대가 지나면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한 잘못된 견해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이 문제가 에베소에서 심각했던 것은, 그곳이 소아시아의 수도로서 헬라종교의 중심지였고 또한 학문활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해밀턴이라는 도시에 유난히 이단의 세력이 강한 것은 무슨 까닭인지 아직 저는 잘 모르겠지만,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요? 어떤 분은 해밀턴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곳이 그렇다고 하기도 하고, 또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에 악한 영들의 활동이 왕성하다는 얘기도 하는데, 글쎄 그런 건 잘 모르겠고, 확실한 것은 이곳에 이단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단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것을 가르친다면 이단이라고 할 것도 없고 위험하지도 않지만,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처럼, 마치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거기에 현혹되어 넘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이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에베소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남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는 아마도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단과 맞서 싸우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많지 않습니다. 우선 그들은 비이성적인 집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만의 논리로 철저하게 무장이 되어 있어서 다른 말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무조건 틀렸고 자신들이 확실히 옳다고 믿기 때문에 얼마나 열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달라붙는지, 정말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요. 이처럼 비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서는 폭력과 테러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일 아닙니까? 평생 이단과의 전쟁을 해 왔던 탁명환 씨가 수십번 테러를 당했고, 결국은 그렇게 목숨을 잃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있는 에베소 교회를 누가 기꺼이 맡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그래서 내켜하지 않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억지로 떠밀다시피 에베소 교회를 맡겼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권한 것은\' 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도록 한 것은 거기 있는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 안에 이단적인 주장을 하고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는 것이지요. 온 교회가 이단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이 몇몇 사람의 거짓 선생들의 위험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머지 않아 온 교회를 완전히 잘못된 길로 끌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바울의 입장은 아주 단호합니다. 그들을 잘 타일러서 설득하는 것도 아니고, 다시 잘 가르쳐서 깨닫도록 하는 것도 아닙니다. 명하여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 이단을 단호히 금지시키고 뿌리를 뽑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결단코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이 거짓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흔들어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공작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거짓말을 하고 이단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 속성상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린 곳에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린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가 심긴 곳에 와서 거짓 진리를 심고 그 거짓말로 진리를 왜곡해서 하나님의 성도들을 빼앗아가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지요. 그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저주와 형벌이 그대로 오늘날의 이단들에게 해당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고 넘어가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는 교회는 부패하고 교만한데 비해서 이단이라고 정죄를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랑이 넘치고 겸손하며 진실하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이단보다 사랑이 넘치고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우리에게 입이 백 개가 있더라도 할 말이 없고, 우리가 반성해야 될 일이지요. 그렇지만 한편 이단들이 그렇게 보여지는 것은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일꾼들도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큰 일이 아니라고 사도 바울은 지적했습니다(고후 11:14). 또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라고 하지요? 이 신화와 끝없는 족보가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근거가 없는 전설들,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각색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현상은 중세시대에 와서 전성기를 맞게 되었는데, 교회와 신앙의 이름을 빌린 미신과 무속신앙이 창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에베소에서는 고대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기독교나 유대교 사상이 적당히 혼합되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거나, 혹은 그리스 철학과 종교의 방법론으로 기독교 신앙에 접근하여 전혀 엉뚱한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언뜻 보기에 매우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사상, 남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진리의 발견인 양 사람들이 마음을 빼앗길 수가 있는 것이지요. 학문의 발전은 다른 사람들이 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발견해 냄으로써 성취됩니다. 그렇지만 뭔가 새롭고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다 진리가 아니고 진보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구세군 사관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이 저를 앉혀놓고 성경을 읽은 다음 나름대로 심오한 해석을 하는데, 얼마나 새롭고 신기한지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목사님들에게서 들어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말씀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분은 천재 아니면 완전히 엉터리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엉터리에 가까운 해석이었어요. 때로는 전혀 엉터리 같은 말에도 우리가 홀릴 수가 있습니다. 이단들의 주장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그런 엉터리도 없는데, 당시에는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고 진리처럼 들렸는지, 그렇게 속아넘어가는 데는 공부 많이 한 박사도 소용없고, 수십 년 쌓아온 믿음의 연륜도 소용없습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가장 비이성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교에 가장 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교수들이 그렇게 많이 참여했었다는 것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수십 년 복음을 증거하던 목사가 어느 날 갑자기 이단에 넘어가는 것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쨌든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사실 하나님을 알고 구원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는 데 도움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가령 안식일 논쟁도 그렇고, 144,000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사도의 말처럼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말다툼만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일단 할 수만 있으면 상대를 안 하는 것이 편합니다. 물론 그분들을 변화시켜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도 우리의 사명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제대로 반박을 할 수도 없고, 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서 섣불리 논쟁을 할 수도 없고, 또 자칫 잘못하면 그들의 논리에 말려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피하고 안 만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런데 또 그런다고 기독교인들이 사랑이 없다는 둥, 무정하다는 둥, 이런 비난을 받기도 해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네요. 제일 좋은 방법은 이단에 대해 대비를 잘 해 두고, 또 그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으로 사랑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겠지요. 너무 어렵습니까? 하지만 이단 많은 해밀턴에서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에베소 교회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 율법의 선생이 되려고 하는 어떤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일종의 교권 다툼이지요. 그러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서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선생이라고 사람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엉터리 같은 주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이 이단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런 일이 많습니다. 신도들로부터 신처럼 받들어지는 교주의 주변을 보세요. 신도들의 열심이나 순진함과는 대조적으로 얼마나 거짓과 탐욕으로 물들어 있던가요? 이것은 하나님께 반역해서 심판을 당하게 된 사탄이 무지한 사람들을 꾀어서 함께 멸망으로 가려는 것과 똑같은 패턴이지 않습니까? 에베소 교회에서 이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은 교회에 상당한 해를 입히고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내용은 율법에 대한 것인데, 율법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바울 아닙니까? 또 그 율법이 복음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장 정확히 파악한 사람도 바울입니다. 호랑이 없는 산에 여우가 대장 노릇을 하다가도, 호랑이가 다시 나타나면 여우는 물러가야지요. 참된 진리를 가르치는 참된 선생 바울 앞에서 이 거짓 진리를 가르치는 거짓 선생들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비진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리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단 많은 이 해밀턴에서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수호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이단이 발붙일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단에 속아 거짓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필요하겠지요.
이단경계 주일설교 4편/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외, 유1:3-4 ,벧후2:1- , 행20:28-32/ 2009-09-06
이단경계 주일설교 4편/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유1:3-4 ,벧후2:1- ,행20:28-32 예장 합동 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연구위원회 매년 9월 첫째 주일은 한국교회가 정한 ‘이단경계주일’이다. 예장 합동(총회장 최병남 목사) 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연구위원회(이대위, 위원장 박호근 목사)가 최근 9월 6일을 ‘이단경계주일’로 지키고, 전국 교회에 이단과 관련된 설교나 세미나를 개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이대위는 총회직속 이단상담소장들의 ‘이단경계주일 설교문’ 6편을 공식사이트(www.2dan.kr)에 게시했다.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이단의 폐해를 알리고 주의를 촉구하는 예방교육을 실시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이에 그 설교문 중 4편을 요약해 독자들에게 제공해 드린다. ------------------------------------------- 이단경계주일 설교문(1) /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청주상담소 김덕연 소장 본문 : 사도행전 20장 28절~32절 모든 질병은 몸이 연약할 때 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단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교회의 연약함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에 이단의 정체를 바로알고 거기에 합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1.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28절)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메시지로 주신 말씀입니다. 즉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 자기를 위하여 삼가라: 악한 사단의 일차 공격 목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목회자의 실수나 단점 등을 꼬투리로 잡고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2)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양떼는 항상 목자를 바라보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목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목회자의 말 한 마디가 양떼의 영혼을 세울 수도 있고 넘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삼가야 합니다. 2. 흉악한 이리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라(29~30절) 이리는 양떼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양떼를 노리고 공격하는지 잘 연구하여서 미리 양떼들로 하여금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 이리는 양떼의 영혼을 죽이는 자들입니다: 이리가 양떼에게 다가오는 목적은 오직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입니다(요 10:10). 혹 ‘나를 위하여’, ‘나를 살리려고’ 다가오는 것처럼 말할지라도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나를 살리고, 나를 위하실 분은 결코 없습니다(요 14:6). 2) 이리는 자기를 좇게 하려고 몰래 미혹합니다(30절): 이리의 특징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달콤한 말로 미혹할지라도 그들 속에는 오직 거짓과 궤계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의 아비는 마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요 8:44). 3) 이리는 어그러진 말을 합니다(30절): 비유풀이가 바로 어그러진 말입니다. 이성적, 과학적, 합리적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비유로 풀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히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초이성적이며, 초과학적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자기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하여 비유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요, 불신한 자요, 사악한 자입니다. 또 비유의 본래 목적이 어떤 사실을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보충 설명하는 문학 기법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말을 바꾸어서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유를 암호풀이 하듯이 하는 자들의 어그러진 말을 잘 분별해야 이리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3. 눈물로 훈계하고 밤낮으로 기도하라 1) 사도 바울은 삼년이나 밤낮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31절)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말씀으로 각 성도들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말씀의 갈급함을 본 교회에서 해소 받지 못하면 결국 다른 곳에서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이단의 미혹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적어도 각 사람이 3년 이상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성경을 직접적으로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수적인 교육 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성경 말씀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2)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게 해야합니다(32절) 성도를 든든히 세우는 말씀은 결국 구원의 은혜 곧 구속의 복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의도를 충분히 파악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분명히 깨닫는 자녀들은 절대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는 성도는 절대 쉽게 이리의 미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강단에서 구속의 복음이 반복적으로, 그러나 풍성하게 선포되어 교회와 성도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이단경계주일 설교문(2) / 이단을 경계해야 할 이유 벌교상담소 김종한 소장 본문 : 유다서 1장 3절~4절 총회에서 이단경계주일로 지키게 한 날입니다. 시대가 악해져가기 때문에 수많은 사이비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전범자나 폭력배보다 더 악한 세력들이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신앙을 지키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선 내부에 사이비 이단들부터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에도 교회 내에 은밀히 침투하여 미혹하는 사건이 있어, 유다는 이 사건에 대하여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신천지에서, 또는 다른 이단들이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파괴하고 목회자들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단의 잔재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단을 경계하고 교회의 거룩성과 진리수호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은총을 힘써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3절) 1)기독교는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종교이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더 나가가 용서를 빌 수조차 없을 정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떤 도덕적 삶이나, 철학적, 종교적 삶을 통하여 타락을 원상회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불행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죄악의 결과는 영벌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행동으로도, 그 어떤 지식으로도, 그 어떤 종교적 삶으로도, 과학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최대의 불행인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을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종교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내에서도 기독교라는 명칭을 가지고 인간의 의지나 노력, 종교심을 통하여 이러한 죄로부터 구원받으려는 시도들이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2) 구약의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된 이유는 은혜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사건은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으로, 능력으로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어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 이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서두에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즉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변질되어 유대교 율법주의, 행위구원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지키지 못하므로 유대교로 변질되는 이단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우리들의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므로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구속을 받은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힘써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으로 사는 것이 경건의 삶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것을 본문 4절에서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속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은혜를 지키는 것이요,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단들이란 이러한 은혜를 변질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일반으로 얻은 구원의 은혜”를 교회가 지켜야 할 것을 본문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죄와 형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해 주신 은혜를 결코 빼앗거나 놓쳐서는 않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말씀에서 “내 말을 지키며”라는 말의 뜻은 영어로 Keep입니다.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테레오’라는 헬라어로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즉 단번에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것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천국문이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은혜의 복음을 지켜야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놓치는 것이 타락한 교회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은혜를 변질 시킨 이러한 타락한 교회들입니다. 2. 하나님의 은총을 변질시키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4절) 1) 초대교회 내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려는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사단의 역사는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성경에서 죄의 문제를 다룰 때, 두 가지를 조심하도록 명합니다. 하나는 유혹이라는 단어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유혹은 양심과 도덕과 법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혹입니다. “미혹을 조심하라” 미혹은 하나님의 은혜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것, 즉 진리를 파괴하는 이론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단들의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유혹도 피해야 하지만 더욱 조심할 것은 미혹을 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혹은 영혼을 망치고, 교회를 파괴하는 무기로 변질되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도 저주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도 거짓선지자,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러한 미혹에 빠지면 영혼이 파괴도고 영벌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단들을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광명한 천사처럼 친절을 과장합니다. 또한 그들의 교리들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처럼 탐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우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자신들의 색욕거리를 채우기 위한 독이 있음을 위장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단의 교리에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봅니다. 첫째는 미혹의 교리로 얼른 듣기에는 정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까지 합니다. 둘째는 완전히 미혹이 되고 나면, 핵심교리가 나옵니다. 자신이 보혜사, 이긴자, 구원자, 이 시대 계시록을 푼 자, 등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일에 철저하게 맹종하게 하여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살후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교리가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자신들의 욕망을(세속적인 욕망과 종교적 욕망을 포함) 채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빠지면 교주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그들도 자신들이 최고의 성경지식을 가진 것처럼 교만과 거만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심리적으로 그들의 열등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며, 이단의 교리를 통하여 자신의 열등의식뿐만 아니라, 자기만족이라는 자신의 종교적욕망을 채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주가 주님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은혜란 거저 주신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벌에 처할 인생들을 사랑하시어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거저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믿음 안에서 이미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를 거절하는 형태가 초대교회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를 대별해 보면 첫째는 율법주의, 즉 행위구원으로 이끌고 갑니다. 모든 이단들이 행위구원으로 갑니다. 유대교, 안식교, 여호와증인, 안증회, 신천지, 큰 믿음교회 변승우목사 등 모든 이단들은 행위구원을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신비주의입니다. 이들은 신비체험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한국에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박태선전도관, 계룡산의 나운몽, 통일교 문선명 등 한국의 최초 거대 이단들의 아류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등입니다. 세 번째는 방종주의입니다. 율법은 폐지되었으므로 지킬 필요도없고 어겨도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세력으로 이미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3:17). 오늘날 구원파와 같은 집단들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성화주의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체의 소욕이 완전히 사라지고 성령의 소욕에 사로잡혀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 “예수 왕권선교회” 라는 명칭으로 성화주의를 주장하는 심재웅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성경은 비유와 비사로 감추어진 비밀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들을 풀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한국에서 자생하는 이단들입니다. 이러한 교리들을 주장하기 위해 오늘날도 교회에 가만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이 영욕과 색욕거리고, 바꾸는 이단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부터 경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4절 하) 1) 이단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이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구원의 자신의 집단에서만 나오는 것처럼 과장하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원의 은혜의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자신들이 가로챈 행위에 불과합니다. 소요리문답 1번에 “인간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 의 질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요, 그 영광이 주님 한분에게만 돌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빼앗기면 우상숭배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주를 재림주, 구원자, 이긴자라고 하는 것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우리가 믿는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만물의 마지막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 중에 누가 이러한 존재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우리주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입니다. 그래서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른 이름의 구원자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이단들의 교리입니다. 신천지 마니교같은 경우 다른 이름으로 오신 보혜사 구원자 이만희를 그들의 교리에서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늙은이가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교리를 만들어 교회를 파괴하고 어지럽히고,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행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방법 과거 우리들의 무속신앙들을 살펴보거나 구약시대 이방인들의 신앙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리조상들은 밭에 큰 돌이 있으면 그 돌을 건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돌에게 재물을 바치고 섬기는 일도 있습니다. 큰 나무 아래서 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 나무나 돌들을 섬기고 절하는가? 물으면, 그들은 나무나 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임한 신들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주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합니다. 신천지마니교 같은 경우 교주 이만희 자신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천지미니교에 빠진 사람들은 이만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분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은 이처럼 이단교주들을 하나님을 만들려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결론: 지금도 본문과 같은 일이 교회 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1:3-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홀로 주재인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 위해 우리들은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고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신천지 마니교의 거짓교사들을 색출하여, 미혹하지 못하도록 할 때,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가 있기 때문에 이단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여 교회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키는 복된 교회가 됩시다. -아멘- --------------------------------------------------- 이단경계주일 설교문(3) / 인간을 구원자로 믿는 이단 부산상담소 황의종 소장 본문 : 베드로후서 2장 1절 한 옹기점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단지를 가리키며 “이 단지는 얼마죠?” “예 4만 원입니다.” “이 옹기는 얼맙니까?” 예 2만 원입니다. 그러면 옹기를 가져가겠습니다. 2만원을 지불하고 옹기를 가져갔다. 그러나 5분쯤 지난 뒤 돌아와 “아까 2만 원을 드렸죠?” “예” “이 옹기가 2만 원짜리죠?” “예” “그러면 합하면 4만 원이죠?” “예? 예…” “그러면 저 단지 가져가면 되죠?” “예” 손님은 단지를 가져갔고 옹기점 주인은 왠지 계산은 맞는 것 같은데 느낌은 손해 본 것 같아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현실이 바로 이렇습니다. 이단들은 전술전략을 개발해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인간을 섬기는 자리로 유도하고 있는데 교회는 당하고만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신천지가 성도들을 미혹해서 인간 이만희를 섬기게 만들고, 산 옮기기 전략으로 교회를 가로채서 인간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고, 위장교회를 세워 단기간의 신학공부로 정통교단에 편입시켜 일반교회 간판 걸고 성도들을 미혹해서 신천지 교리를 교육시켜 인간을 섬기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대책 없이 탄식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은 신천지의 실체가 어떤지 살펴봅시다. 1. 신천지는 인간을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신천지는 교주가 예수님이라고 하며 이만희는 총회장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천지 책자와 교재들을 살펴보면 인간 이만희를 만유의 대주재라고 하며, 영광보좌를 버리고 섬기러 내려오신 존재라고 하며, 보혜사라고 함으로서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긴 자, 백마 탄 자, 인 떼는 자, 두 증인 중의 하나, 생명록·사망록·중단록을 쓰는 자, 주, 그리스도, 구원자, 삼위일체 중의 하나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인간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교주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이만희가 교주인 것이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신천지는 예수님이 없어도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임해서 이만희가 예수님의 새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만희가 없으면 신천지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천지 교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이만희가 되는 것입니다. 2. 신천지는 비윤리적인 집단입니다 신천지는 신천지를 위한 거짓말과 악행을 하나님의 모략이라고 하여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2005년도에는 신천지 청년 6명이 광주 조선대학교 후문에서 임웅기 전도사를 납치해서 차로 끌고 다니며 폭행하다가 체포되어 유죄선고를 받은 일이 있으며, 이단상담소에 와서 시위하면서 거짓된 소문을 지어내어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일들이 잦습니다. 2008년도에는 부산의 정모 목사님을 폭행혐의로 고소하려고 연기(演技)하고 거짓증언을 했다가 무산된 적도 있으며, 황의종 목사를 폭행혐의로 구속시키려고 교회 앞에서 연기하다가 불신자들의 목격으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불의한 짓들을 자행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멸망당할 바벨론이라고 하면서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신실한 목사님들을 삯군들이라고 매도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려고 거짓을 지어내어 목사와 성도사이를 이간시키고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 사이를 이간시켜 담임목사를 고립무원으로 만들고 거짓으로 모함해서 목사를 곤경에 빠트리는 일들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신천지는 이런 행동을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핑계를 대며 거리낌 없이 저질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볼 때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여겨집니다. 3. 신천지는 성경을 왜곡시켜 가르칩니다 신천지는 모든 성경을 비유로 봅니다. 그리고 모든 단어마다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그 방법으로 성경을 풀어나갑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자매 아버님은 혹시 도둑이 아니신가요? 왜냐하면 하늘의 별을 훔쳐다가 그 눈에 넣어 놓으셨으니까요”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그 자매의 눈이 아름답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천지식 비유풀이는 아버지 - 하나님, 하늘 - 영계·지도자, 별 - 성도, 도둑-도둑, 이런 식으로 다른 의미를 대입시켜 풀어나갑니다. 그러므로 신천지식 풀이로 눈이 아름답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가 있을까요? 신천지식 풀이로는 절대로 눈이 아름답다는 결론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잘못은 목적에 따라 성경구절들을 연결시켜 짝을 맞춰나간다는 것입니다. 일명 목적에 따른 성경짜깁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나 조작해 낼 수 있는 만능열쇠입니다. 곧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원하는 대로 성경구절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목매어 죽은지라. 눅 10:37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요 13:27 네 하고자 하는 바를 속히 하라. 왕상 18:23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약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마 26:24 저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위와 같이 6구절을 신천지식으로 줄 세워 놓으면 이렇게 완벽하게 “당신은 이 세상에 살 가치조차 없는 존재이므로 가서 자살하라고 하십니다.”라는 메시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천지 목적에 따른 성경짜깁기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천지의 비유풀이나 짝풀이라는 것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전혀 동떨어져 교주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켜 인간을 우상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 인간의 사상을 전파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4. 신천지는 다른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죽게 하시고 그 은혜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구원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전혀 다른 구원관을 갖고 있습니다. 신천지는 구원자로 예수님만 오신 것이 아니라 아담, 노아, 아브라함, 예수님, 이만희가 다 구원자로 왔다고 말합니다. 아담도 구원자로 왔으나 실패했고, 노아도 구원자로 왔으나 실패했고, 아브라함도 실패했고, 예수님도 구원에 실패한 것을 이만희가 양과 염소를 나누고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고 구원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관문이 바로 비유를 깨달아야 구원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 비유는 이만희가 완벽하게 풀었기 때문에 신천지 말씀을 알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왜 이만희가 구원을 완성시키느냐 하면 재림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활하셨고 영적으로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신천지 총회장인 이만희에게 임했기 때문에 이만희라는 이름이 재림하신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눅24:39절을 가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영육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셨으므로 절대로 인간 이만희의 몸에 임재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임했다는 것은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신천지의 미혹에 대처해야 할까요? 교회 밖에서 하는 성경공부는 반드시 목사의 허락을 받은 뒤 하시기 바랍니다. 강사는 누구인지? 배우는 내용은 무엇인지? 주관하는 단체는 어디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하고 목사에게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신천지는 자신들이 떳떳지 못하므로 가르치는 강사들의 이름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교재도 제공하지 않고 반드시 노트에 필기하라고 합니다. 이름도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당당하지 못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 꿈 이야기로 접근하는 사람, 환상 속에 여러분의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 전화번호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천지의 추수꾼(영혼 도둑)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유도하는 곳은 성경공부입니다. 성경공부로 세뇌를 시켜서 예수님 대신 이만희를 구원자로 섬기게 만들려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므로 절대로 교회 밖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미혹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천지의 미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단경계주일 설교문(4) / 자기 피로 사신 교회 서울상담소 이덕술 소장 본문 : 사도행전 20장 28절~32절 본문은 교회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그 가치성을 깨닫게 합니다. 교회의 관리자로 세움을 받은 청지기들이 경계해야 할 이단들에 대하여 밝혀 줍니다. 어떻게 이단들에 대하여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1.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28절). 바울이 강조한 것은 교회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교회는 어떤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결코 어떤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목사나 직분자들은 단지 본 절의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라는 표현처럼 하나님이 당신의 소유인 교회를 잘 관리하도록 세우신 관리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들의 직분이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고 또 교회의 소유는 하나님뿐이심을 깨달아 오직 교회를 잘 관리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표현은 교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잘 보여 줍니다. 여기서 ‘자기 피’란 물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의 외아들의 생명을 내어주고 교회를 사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 자식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더욱이 그가 외아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를 내어주고 교회를 사셨으니 교회가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것이겠습니까? 한편 성자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본문의 정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교회를 피로 사신 분은 다름 아닌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이는 여호와증인들이나 신천지와 같이 예수님의 신성 즉 하나님이심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사탄에게 흥정하여 자기의 피 값을 지불하고 교회의 성도들을 산 것처럼 주장하는 다락방(류광수)과 같은 ‘사탄 배상설’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이단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 까요? 2. 교회가 경계해야 할 이단은 무엇입니까? 이단들은 교회 안팎으로 활동하며 때로는 ‘우는 사자’와 같이, 때로는 ‘광의의 천사’와 같이 양면작전을 쓰며 미혹의 손길을 뻗어오고 있습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29절)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 밖에서 들어온 ‘흉악한 이리’란 에베소 교회 밖에서 침투하는 영지주의자나 유대주의자 또는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그리스도교의 하나의 이단설입니다. 기원 1-4세기경, 그리스, 로마, 유대, 소아시아, 애굽 등 근동의 여러 지역에 유행된 혼합 종교로, 신약 및 사도후시대에 교회가 대결한 이단사상이었다. ‘그노시스’란 헬라어로 ‘지식’(gnosis)을 뜻하는 말로서 신약에도 아주 많이 씌어져 있는데, 영적 지각(靈的知覺)을 의도하여 ‘그노시스’라 부른 것이다. 그 내용은, 신의 세계와 물질세계를 말하는 2원론으로서, 그 사이에 영적 존재인 천사, 인간, 마귀(악마)가 있고, 인간은 물질세계의 포로됨을 피하여 신(神)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금욕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 또한 그 물질세계에서의 해방을 방해하는 악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고 완전한 신지(神知, 그노시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영육이원론으로서, 영의 청순성과 신비성을 강조하고, 그 반면 육체적면을 타락으로 이해했다. 그 때문에 영적 그리스도와 육적 그리스도는 이어지지 못하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중심적 결점이었다. 초대교회의 유대주의의 특징은 ‘할례’를 반드시 지켜야하며, ‘주일’이 아닌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여 율법주의 신앙생활과 율법주의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주장한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이단들의 대부분은 율법주의 행위 구원을 주장합니다. ‘주일’이 아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단으로는 안식교와 안상홍증인회(일명; 하나님의 교회) 등이 있습니다. 안식교에서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주장하며, 안식교에서 나온 안상홍증인회(일명; 하나님의 교회) 측에서는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로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인’이란 ‘유월절’이라고 하여 각각 이러한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아니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율법주의 구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해외로부터 국내에 들어온 외국유입 신흥종파들이 있습니다. 안시일교분파로는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교회, 엘리야복음선교원 등이 있습니다. 몰몬교분파로는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복원예수그리스도교회 등이 있습니다. 세칭 구원파로는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 유병언)와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 대한예수교침례회 서울중앙교회(이요한) 등이 있습니다. 2) 내부에서 생겨나는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30절)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 안에서 생겨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이란 에베소 교회의 자생적 이단인 니골라당 같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니골라당(Nicolaitans)은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에 보여진 이단의 일파입니다(계 2:6,15). 그들은 발람의 교훈에 따라,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규정된 우상에게 드린 것과 음행을 피해야 할 명령(행 15:20,29)에 거스리고, 이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결국 이단의 그릇된 길에 빠졌습니다.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한국기독교신비주의의 계열로서 통일교(문선명),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전도관(박태선), 세계연합승리제단(영생교 조희성), 신천지교회(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 실로등대중앙교회(김풍일) 등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이단이든 내부에서 생겨난 이단이든 모두 다 교묘한 거짓 교리로서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킨 유사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초대 교회 당시나 오늘이나 교회는 바로 이렇게 복음을 교묘하게 왜곡시켜 유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특별히 경계하고 그들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들은 교회의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사실 교회에 대한 세상의 물리적 핍박은 고통스럽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세상의 물리적 박해를 받을 때 교회는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사 복음을 다릅니다. 복음과 유사하나 본질적인 면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유사 복음은 교회 전체를 무서운 타락의 길로 들어가게 하여 교회마저 망하게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보면 사단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흉내를 냄으로써 아담과 하와를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의 길로 몰아넣었습니다(창3장). 또한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거짓 평화를 예언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무서운 심판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습니다(렘6:14). 또한 초대 교회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영지주의자들(Gnostic)과 율법과 할례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일어나 수많은 성도들을 망하는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떤 기업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그 기업의 제품을 모방한 유사 상표, 유사 제품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외적으로 다가오는 핍박과 고난 못지않게 변질된 복음, 사이비 복음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인식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위와 같은 이단들을 어떻게 경계할 수 있을까요? 1) 이미 받은 기본진리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31절) 본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영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때문에 평상시에 일반적으로 들어오던 말씀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식상해 하며 특별한 영적체험 및 영적지식을 추구하다가 이단에 미혹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더 열심히 더 특별히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심리를 이단들은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으나 평상시 일반적으로 늘 들어오던 기본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난 내용이 나오면 본 교회 담임목사 및 담당 교역자들과 구체적으로 상담하여 진단을 받아보아야 합니다. 2) 주와 은혜의 말씀에 부탁해야 합니다(32절) 본문은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두드러진 특징은 ‘말씀’의 의인화요 인격화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치 예수님께 에베소 교회와 장로, 성도들을 부탁하듯 하나님의 말씀에 의탁합니다. 말씀이 능히 그들을 든든히 세워 줄 것을 단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증거 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합니다(히4:12) 종교 개혁자 루터(M. Luther)는 말하기를 “성경은 살아 있다(The Bible is alive)”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이기를 “그래서 성경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말씀은 발이 있다. 그래서 나를 따르신다. 말씀은 손이 있다. 그래서 나를 붙드신다.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른 말씀으로 무장하여 전신갑주를 입을 때에만이 이단들을 식별하고 미혹당하지 않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바른 교리와 이단교리의 비교공부를 통하여 이단 식별능력을 증진시키는 예방교육이 중요합니다. 결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존귀한 교회를 교회의 청지기들인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팎으로 도전해오는 이단들을 식별하여 잘 대응함으로 교회가 이단의 거짓 교리에 미혹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새로운 영적 욕구를 채우려는 욕심보다 평상시에 늘 듣고 배운 기본 진리의 말씀을 잘 기억하며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자들과 같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바른 말씀운동을 통해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고 이단교리에 대한 비교공부와 같은 예방교육을 통해 이단 식별 능력과 이단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이단을 대적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단에 잃어버린 주님의 어린양을 되찾아 오는 수준에 이르도록 교회의 질적 성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이단경계주일 설교문(1)/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 청주상담소 소장 김덕연 목사/ 청주 새중앙교회
이단경계주일 설교문(1)/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행20:28-32 모든 질병은 몸이 연약할 때 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단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도 교회의 연약함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에 이단의 정체를 바로알고 거기에 합당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본문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1.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28절) 본문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메시지로 주신 말씀입니다. 즉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1) 자기를 위하여 삼가라: 악한 사단의 일차 공격 목표는 교회의 지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목회자의 실수나 단점 등을 꼬투리로 잡고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2)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양떼는 항상 목자를 바라보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목자가 무슨 말을 하든지 목회자의 말 한 마디가 양떼의 영혼을 세울 수도 있고 넘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삼가야 합니다. 2. 흉악한 이리로부터 성도들을 지켜라(29~30절) 이리는 양떼를 공격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양떼를 노리고 공격하는지 잘 연구하여서 미리 양떼들로 하여금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 이리는 양떼의 영혼을 죽이는 자들입니다: 이리가 양떼에게 다가오는 목적은 오직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입니다(요 10:10). 혹 ‘나를 위하여’, ‘나를 살리려고’ 다가오는 것처럼 말할지라도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나를 살리고, 나를 위하실 분은 결코 없습니다(요 14:6). 2) 이리는 자기를 좇게 하려고 몰래 미혹합니다(30절): 이리의 특징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달콤한 말로 미혹할지라도 그들 속에는 오직 거짓과 궤계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짓의 아비는 마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요 8:44). 3) 이리는 어그러진 말을 합니다(30절): 비유풀이가 바로 어그러진 말입니다. 이성적, 과학적, 합리적 해석이 안 되기 때문에 비유로 풀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분명히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초이성적이며, 초과학적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자기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하여 비유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요, 불신한 자요, 사악한 자입니다. 또 비유의 본래 목적이 어떤 사실을 알기 쉽도록 하기 위해 보충 설명하는 문학 기법이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말을 바꾸어서 어그러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비유를 암호풀이 하듯이 하는 자들의 어그러진 말을 잘 분별해야 이리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3. 눈물로 훈계하고 밤낮으로 기도하라 1) 사도 바울은 삼년이나 밤낮으로 각 사람을 훈계하였습니다(31절)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말씀으로 각 성도들을 철저히 교육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말씀의 갈급함을 본 교회에서 해소 받지 못하면 결국 다른 곳에서 해소하려 하기 때문에 이단의 미혹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체계적으로, 적어도 각 사람이 3년 이상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성경을 직접적으로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수적인 교육 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성경 말씀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 성도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2)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게 해야합니다(32절) 성도를 든든히 세우는 말씀은 결국 구원의 은혜 곧 구속의 복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의도를 충분히 파악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분명히 깨닫는 자녀들은 절대 어그러진 길로 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와 감격이 있는 성도는 절대 쉽게 이리의 미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강단에서 구속의 복음이 반복적으로, 그러나 풍성하게 선포되어 교회와 성도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단경계주일 설교문(2)/ 이단을 경계해야 할 이유/ 유1:3-4/ 김종한 목사/ 벌교상담소 소장/ 벌교대광교회
이단경계주일 설교문(2)/ 이단을 경계해야 할 이유 유1:3-4 총회에서 이단경계주일로 지키게 한 날입니다. 시대가 악해져가기 때문에 수많은 사이비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전범자나 폭력배보다 더 악한 세력들이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신앙을 지키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선 내부에 사이비 이단들부터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에도 교회 내에 은밀히 침투하여 미혹하는 사건이 있어, 유다는 이 사건에 대하여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신천지에서, 또는 다른 이단들이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파괴하고 목회자들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단의 잔재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단을 경계하고 교회의 거룩성과 진리수호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은총을 힘써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3절) 1)기독교는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종교이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더 나가가 용서를 빌 수조차 없을 정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떤 도덕적 삶이나, 철학적, 종교적 삶을 통하여 타락을 원상회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불행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죄악의 결과는 영벌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행동으로도, 그 어떤 지식으로도, 그 어떤 종교적 삶으로도, 과학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최대의 불행인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을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종교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내에서도 기독교라는 명칭을 가지고 인간의 의지나 노력, 종교심을 통하여 이러한 죄로부터 구원받으려는 시도들이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2) 구약의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된 이유는 은혜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사건은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으로, 능력으로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어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 이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서두에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즉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변질되어 유대교 율법주의, 행위구원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지키지 못하므로 유대교로 변질되는 이단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우리들의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므로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구속을 받은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힘써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으로 사는 것이 경건의 삶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것을 본문 4절에서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속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은혜를 지키는 것이요,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단들이란 이러한 은혜를 변질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일반으로 얻은 구원의 은혜”를 교회가 지켜야 할 것을 본문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죄와 형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해 주신 은혜를 결코 빼앗거나 놓쳐서는 않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말씀에서 “내 말을 지키며”라는 말의 뜻은 영어로 Keep입니다.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테레오’라는 헬라어로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즉 단번에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것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천국문이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은혜의 복음을 지켜야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놓치는 것이 타락한 교회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은혜를 변질 시킨 이러한 타락한 교회들입니다. 2. 하나님의 은총을 변질시키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4절) 1) 초대교회 내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려는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사단의 역사는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성경에서 죄의 문제를 다룰 때, 두 가지를 조심하도록 명합니다. 하나는 유혹이라는 단어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유혹은 양심과 도덕과 법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혹입니다. “미혹을 조심하라” 미혹은 하나님의 은혜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것, 즉 진리를 파괴하는 이론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단들의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유혹도 피해야 하지만 더욱 조심할 것은 미혹을 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혹은 영혼을 망치고, 교회를 파괴하는 무기로 변질되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도 저주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도 거짓선지자,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러한 미혹에 빠지면 영혼이 파괴도고 영벌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단들을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광명한 천사처럼 친절을 과장합니다. 또한 그들의 교리들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처럼 탐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우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자신들의 색욕거리를 채우기 위한 독이 있음을 위장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단의 교리에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봅니다. 첫째는 미혹의 교리로 얼른 듣기에는 정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까지 합니다. 둘째는 완전히 미혹이 되고 나면, 핵심교리가 나옵니다. 자신이 보혜사, 이긴자, 구원자, 이 시대 계시록을 푼 자, 등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일에 철저하게 맹종하게 하여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살후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교리가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자신들의 욕망을(세속적인 욕망과 종교적 욕망을 포함) 채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빠지면 교주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그들도 자신들이 최고의 성경지식을 가진 것처럼 교만과 거만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심리적으로 그들의 열등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며, 이단의 교리를 통하여 자신의 열등의식뿐만 아니라, 자기만족이라는 자신의 종교적욕망을 채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주가 주님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은혜란 거저 주신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벌에 처할 인생들을 사랑하시어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거저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믿음 안에서 이미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를 거절하는 형태가 초대교회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를 대별해 보면 첫째는 율법주의, 즉 행위구원으로 이끌고 갑니다. 모든 이단들이 행위구원으로 갑니다. 유대교, 안식교, 여호와증인, 안증회, 신천지, 큰 믿음교회 변승우목사 등 모든 이단들은 행위구원을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신비주의입니다. 이들은 신비체험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한국에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박태선전도관, 계룡산의 나운몽, 통일교 문선명 등 한국의 최초 거대 이단들의 아류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등입니다. 세 번째는 방종주의입니다. 율법은 폐지되었으므로 지킬 필요도없고 어겨도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세력으로 이미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3:17). 오늘날 구원파와 같은 집단들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성화주의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체의 소욕이 완전히 사라지고 성령의 소욕에 사로잡혀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 “예수 왕권선교회” 라는 명칭으로 성화주의를 주장하는 심재웅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성경은 비유와 비사로 감추어진 비밀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들을 풀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한국에서 자생하는 이단들입니다. 이러한 교리들을 주장하기 위해 오늘날도 교회에 가만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이 영욕과 색욕거리고, 바꾸는 이단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부터 경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4절 하) 1) 이단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이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구원의 자신의 집단에서만 나오는 것처럼 과장하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원의 은혜의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자신들이 가로챈 행위에 불과합니다. 소요리문답 1번에 “인간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 의 질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요, 그 영광이 주님 한분에게만 돌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빼앗기면 우상숭배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주를 재림주, 구원자, 이긴자라고 하는 것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우리가 믿는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만물의 마지막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 중에 누가 이러한 존재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우리주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입니다. 그래서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른 이름의 구원자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이단들의 교리입니다. 신천지 마니교같은 경우 다른 이름으로 오신 보혜사 구원자 이만희를 그들의 교리에서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늙은이가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교리를 만들어 교회를 파괴하고 어지럽히고,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행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방법 과거 우리들의 무속신앙들을 살펴보거나 구약시대 이방인들의 신앙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리조상들은 밭에 큰 돌이 있으면 그 돌을 건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돌에게 재물을 바치고 섬기는 일도 있습니다. 큰 나무 아래서 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 나무나 돌들을 섬기고 절하는가? 물으면, 그들은 나무나 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임한 신들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주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합니다. 신천지마니교 같은 경우 교주 이만희 자신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천지미니교에 빠진 사람들은 이만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분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은 이처럼 이단교주들을 하나님을 만들려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결론: 지금도 본문과 같은 일이 교회 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1:3-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홀로 주재인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 위해 우리들은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고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신천지 마니교의 거짓교사들을 색출하여, 미혹하지 못하도록 할 때,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가 있기 때문에 이단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여 교회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키는 복된 교회가 됩시다. -아멘-
이단경계주일 설교문(2)/ 이단을 경계해야 할 이유/ 유1:3-4/ 김종한 목사/ 벌교상담소장
이단경계주일 설교문(2)/ 이단을 경계해야 할 이유 유1:3-4 총회에서 이단경계주일로 지키게 한 날입니다. 시대가 악해져가기 때문에 수많은 사이비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전범자나 폭력배보다 더 악한 세력들이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신앙을 지키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선 내부에 사이비 이단들부터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에도 교회 내에 은밀히 침투하여 미혹하는 사건이 있어, 유다는 이 사건에 대하여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신천지에서, 또는 다른 이단들이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파괴하고 목회자들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단의 잔재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단을 경계하고 교회의 거룩성과 진리수호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은총을 힘써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3절) 1)기독교는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종교이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더 나가가 용서를 빌 수조차 없을 정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떤 도덕적 삶이나, 철학적, 종교적 삶을 통하여 타락을 원상회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불행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죄악의 결과는 영벌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행동으로도, 그 어떤 지식으로도, 그 어떤 종교적 삶으로도, 과학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최대의 불행인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을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종교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내에서도 기독교라는 명칭을 가지고 인간의 의지나 노력, 종교심을 통하여 이러한 죄로부터 구원받으려는 시도들이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2) 구약의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된 이유는 은혜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사건은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으로, 능력으로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어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 이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서두에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즉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변질되어 유대교 율법주의, 행위구원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지키지 못하므로 유대교로 변질되는 이단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우리들의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므로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구속을 받은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힘써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으로 사는 것이 경건의 삶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것을 본문 4절에서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속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은혜를 지키는 것이요,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단들이란 이러한 은혜를 변질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일반으로 얻은 구원의 은혜”를 교회가 지켜야 할 것을 본문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죄와 형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해 주신 은혜를 결코 빼앗거나 놓쳐서는 않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말씀에서 “내 말을 지키며”라는 말의 뜻은 영어로 Keep입니다.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테레오’라는 헬라어로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즉 단번에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것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천국문이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은혜의 복음을 지켜야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놓치는 것이 타락한 교회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은혜를 변질 시킨 이러한 타락한 교회들입니다. 2. 하나님의 은총을 변질시키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4절) 1) 초대교회 내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려는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사단의 역사는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성경에서 죄의 문제를 다룰 때, 두 가지를 조심하도록 명합니다. 하나는 유혹이라는 단어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유혹은 양심과 도덕과 법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혹입니다. “미혹을 조심하라” 미혹은 하나님의 은혜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것, 즉 진리를 파괴하는 이론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단들의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유혹도 피해야 하지만 더욱 조심할 것은 미혹을 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혹은 영혼을 망치고, 교회를 파괴하는 무기로 변질되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도 저주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도 거짓선지자,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러한 미혹에 빠지면 영혼이 파괴도고 영벌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단들을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광명한 천사처럼 친절을 과장합니다. 또한 그들의 교리들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처럼 탐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우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자신들의 색욕거리를 채우기 위한 독이 있음을 위장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단의 교리에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봅니다. 첫째는 미혹의 교리로 얼른 듣기에는 정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까지 합니다. 둘째는 완전히 미혹이 되고 나면, 핵심교리가 나옵니다. 자신이 보혜사, 이긴자, 구원자, 이 시대 계시록을 푼 자, 등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일에 철저하게 맹종하게 하여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살후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교리가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자신들의 욕망을(세속적인 욕망과 종교적 욕망을 포함) 채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빠지면 교주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그들도 자신들이 최고의 성경지식을 가진 것처럼 교만과 거만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심리적으로 그들의 열등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며, 이단의 교리를 통하여 자신의 열등의식뿐만 아니라, 자기만족이라는 자신의 종교적욕망을 채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주가 주님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은혜란 거저 주신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벌에 처할 인생들을 사랑하시어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거저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믿음 안에서 이미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를 거절하는 형태가 초대교회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를 대별해 보면 첫째는 율법주의, 즉 행위구원으로 이끌고 갑니다. 모든 이단들이 행위구원으로 갑니다. 유대교, 안식교, 여호와증인, 안증회, 신천지, 큰 믿음교회 변승우목사 등 모든 이단들은 행위구원을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신비주의입니다. 이들은 신비체험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한국에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박태선전도관, 계룡산의 나운몽, 통일교 문선명 등 한국의 최초 거대 이단들의 아류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등입니다. 세 번째는 방종주의입니다. 율법은 폐지되었으므로 지킬 필요도없고 어겨도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세력으로 이미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3:17). 오늘날 구원파와 같은 집단들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성화주의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체의 소욕이 완전히 사라지고 성령의 소욕에 사로잡혀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 “예수 왕권선교회” 라는 명칭으로 성화주의를 주장하는 심재웅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성경은 비유와 비사로 감추어진 비밀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들을 풀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한국에서 자생하는 이단들입니다. 이러한 교리들을 주장하기 위해 오늘날도 교회에 가만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이 영욕과 색욕거리고, 바꾸는 이단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부터 경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4절 하) 1) 이단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이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구원의 자신의 집단에서만 나오는 것처럼 과장하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원의 은혜의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자신들이 가로챈 행위에 불과합니다. 소요리문답 1번에 “인간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 의 질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요, 그 영광이 주님 한분에게만 돌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빼앗기면 우상숭배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주를 재림주, 구원자, 이긴자라고 하는 것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우리가 믿는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만물의 마지막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 중에 누가 이러한 존재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우리주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입니다. 그래서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른 이름의 구원자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이단들의 교리입니다. 신천지 마니교같은 경우 다른 이름으로 오신 보혜사 구원자 이만희를 그들의 교리에서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늙은이가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교리를 만들어 교회를 파괴하고 어지럽히고,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행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방법 과거 우리들의 무속신앙들을 살펴보거나 구약시대 이방인들의 신앙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리조상들은 밭에 큰 돌이 있으면 그 돌을 건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돌에게 재물을 바치고 섬기는 일도 있습니다. 큰 나무 아래서 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 나무나 돌들을 섬기고 절하는가? 물으면, 그들은 나무나 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임한 신들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주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합니다. 신천지마니교 같은 경우 교주 이만희 자신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천지미니교에 빠진 사람들은 이만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분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은 이처럼 이단교주들을 하나님을 만들려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결론: 지금도 본문과 같은 일이 교회 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1:3-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홀로 주재인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 위해 우리들은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고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신천지 마니교의 거짓교사들을 색출하여, 미혹하지 못하도록 할 때,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가 있기 때문에 이단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여 교회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키는 복된 교회가 됩시다. -아멘-
이단경계주일 설교문(3)/ 인간을 구원자로 믿는 이단/ 신천지 이만희 교주/ 벧후2:1/ 황의종 목사/ 부산상담소 소장/ 부산 새학장교회/ 2009-09-03
이단경계주일 설교문(3)/ 인간을 구원자로 믿는 이단/ 신천지 이만희 교주 벧후2:1 한 옹기점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단지를 가리키며 “이 단지는 얼마죠?” “예 4만 원입니다.” “이 옹기는 얼맙니까?” 예 2만 원입니다. 그러면 옹기를 가져가겠습니다. 2만원을 지불하고 옹기를 가져갔다. 그러나 5분쯤 지난 뒤 돌아와 “아까 2만 원을 드렸죠?” “예” “이 옹기가 2만 원짜리죠?” “예” “그러면 합하면 4만 원이죠?” “예? 예…” “그러면 저 단지 가져가면 되죠?” “예” 손님은 단지를 가져갔고 옹기점 주인은 왠지 계산은 맞는 것 같은데 느낌은 손해 본 것 같아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현실이 바로 이렇습니다. 이단들은 전술전략을 개발해서 성도들을 미혹하여 인간을 섬기는 자리로 유도하고 있는데 교회는 당하고만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신천지가 성도들을 미혹해서 인간 이만희를 섬기게 만들고, 산 옮기기 전략으로 교회를 가로채서 인간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고, 위장교회를 세워 단기간의 신학공부로 정통교단에 편입시켜 일반교회 간판 걸고 성도들을 미혹해서 신천지 교리를 교육시켜 인간을 섬기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대책 없이 탄식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늘은 신천지의 실체가 어떤지 살펴봅시다. 1. 신천지는 인간을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신천지는 교주가 예수님이라고 하며 이만희는 총회장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천지 책자와 교재들을 살펴보면 인간 이만희를 만유의 대주재라고 하며, 영광보좌를 버리고 섬기러 내려오신 존재라고 하며, 보혜사라고 함으로서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긴 자, 백마 탄 자, 인 떼는 자, 두 증인 중의 하나, 생명록·사망록·중단록을 쓰는 자, 주, 그리스도, 구원자, 삼위일체 중의 하나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인간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라고 하고 예수님을 교주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이만희가 교주인 것이 여실하게 드러납니다. 신천지는 예수님이 없어도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임해서 이만희가 예수님의 새 이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만희가 없으면 신천지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천지 교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이만희가 되는 것입니다. 2. 신천지는 비윤리적인 집단입니다 신천지는 신천지를 위한 거짓말과 악행을 하나님의 모략이라고 하여 정당화시키고 있습니다. 2005년도에는 신천지 청년 6명이 광주 조선대학교 후문에서 임웅기 전도사를 납치해서 차로 끌고 다니며 폭행하다가 체포되어 유죄선고를 받은 일이 있으며, 이단상담소에 와서 시위하면서 거짓된 소문을 지어내어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일들이 잦습니다. 2008년도에는 부산의 정모 목사님을 폭행혐의로 고소하려고 연기(演技)하고 거짓증언을 했다가 무산된 적도 있으며, 황의종 목사를 폭행혐의로 구속시키려고 교회 앞에서 연기하다가 불신자들의 목격으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불의한 짓들을 자행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를 멸망당할 바벨론이라고 하면서 교회를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신실한 목사님들을 삯군들이라고 매도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려고 거짓을 지어내어 목사와 성도사이를 이간시키고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 사이를 이간시켜 담임목사를 고립무원으로 만들고 거짓으로 모함해서 목사를 곤경에 빠트리는 일들이 일어난 적도 있습니다. 신천지는 이런 행동을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핑계를 대며 거리낌 없이 저질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볼 때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여겨집니다. 3. 신천지는 성경을 왜곡시켜 가르칩니다 신천지는 모든 성경을 비유로 봅니다. 그리고 모든 단어마다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그 방법으로 성경을 풀어나갑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자매 아버님은 혹시 도둑이 아니신가요? 왜냐하면 하늘의 별을 훔쳐다가 그 눈에 넣어 놓으셨으니까요”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그 자매의 눈이 아름답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천지식 비유풀이는 아버지 - 하나님, 하늘 - 영계·지도자, 별 - 성도, 도둑-도둑, 이런 식으로 다른 의미를 대입시켜 풀어나갑니다. 그러므로 신천지식 풀이로 눈이 아름답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가 있을까요? 신천지식 풀이로는 절대로 눈이 아름답다는 결론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잘못은 목적에 따라 성경구절들을 연결시켜 짝을 맞춰나간다는 것입니다. 일명 목적에 따른 성경짜깁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나 조작해 낼 수 있는 만능열쇠입니다. 곧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원하는 대로 성경구절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마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목매어 죽은지라. 눅 10:37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 요 13:27 네 하고자 하는 바를 속히 하라. 왕상 18:23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약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마 26:24 저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위와 같이 6구절을 신천지식으로 줄 세워 놓으면 이렇게 완벽하게 “당신은 이 세상에 살 가치조차 없는 존재이므로 가서 자살하라고 하십니다.”라는 메시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천지 목적에 따른 성경짜깁기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천지의 비유풀이나 짝풀이라는 것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전혀 동떨어져 교주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켜 인간을 우상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빌어 인간의 사상을 전파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4. 신천지는 다른 복음입니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죽게 하시고 그 은혜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구원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신천지는 전혀 다른 구원관을 갖고 있습니다. 신천지는 구원자로 예수님만 오신 것이 아니라 아담, 노아, 아브라함, 예수님, 이만희가 다 구원자로 왔다고 말합니다. 아담도 구원자로 왔으나 실패했고, 노아도 구원자로 왔으나 실패했고, 아브라함도 실패했고, 예수님도 구원에 실패한 것을 이만희가 양과 염소를 나누고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고 구원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관문이 바로 비유를 깨달아야 구원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 비유는 이만희가 완벽하게 풀었기 때문에 신천지 말씀을 알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왜 이만희가 구원을 완성시키느냐 하면 재림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활하셨고 영적으로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신천지 총회장인 이만희에게 임했기 때문에 이만희라는 이름이 재림하신 예수님의 새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눅24:39절을 가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영육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셨으므로 절대로 인간 이만희의 몸에 임재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예수의 영이 이만희에게 임했다는 것은 이만희를 신격화시키기 위한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신천지의 미혹에 대처해야 할까요? 교회 밖에서 하는 성경공부는 반드시 목사의 허락을 받은 뒤 하시기 바랍니다. 강사는 누구인지? 배우는 내용은 무엇인지? 주관하는 단체는 어디인지를 먼저 정확하게 파악하고 목사에게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신천지는 자신들이 떳떳지 못하므로 가르치는 강사들의 이름조차 가르쳐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교재도 제공하지 않고 반드시 노트에 필기하라고 합니다. 이름도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당당하지 못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 꿈 이야기로 접근하는 사람, 환상 속에 여러분의 얼굴을 보았다는 사람, 전화번호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천지의 추수꾼(영혼 도둑)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유도하는 곳은 성경공부입니다. 성경공부로 세뇌를 시켜서 예수님 대신 이만희를 구원자로 섬기게 만들려는 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므로 절대로 교회 밖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미혹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신천지의 미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단경계주일 설교문(4)/ 자기 피로 사신 교회/ 행20:28-32/ 이덕술 목사/ 동산교회/ 서울상담소 소장
이단경계주일 설교문(4)/ 자기 피로 사신 교회 행20:28-32 본문은 교회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 그 가치성을 깨닫게 합니다. 교회의 관리자로 세움을 받은 청지기들이 경계해야 할 이단들에 대하여 밝혀 줍니다. 어떻게 이단들에 대하여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권면합니다. 1.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28절). 바울이 강조한 것은 교회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곧 교회는 어떤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결코 어떤 인간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목사나 직분자들은 단지 본 절의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라는 표현처럼 하나님이 당신의 소유인 교회를 잘 관리하도록 세우신 관리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자들은 자신들의 직분이 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았고 또 교회의 소유는 하나님뿐이심을 깨달아 오직 교회를 잘 관리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여기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표현은 교회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잘 보여 줍니다. 여기서 ‘자기 피’란 물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의 외아들의 생명을 내어주고 교회를 사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있어서 자기 자식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더욱이 그가 외아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를 내어주고 교회를 사셨으니 교회가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것이겠습니까? 한편 성자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께서 자기 피로 교회를 사셨습니다. 본문의 정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교회를 피로 사신 분은 다름 아닌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이는 여호와증인들이나 신천지와 같이 예수님의 신성 즉 하나님이심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사탄에게 흥정하여 자기의 피 값을 지불하고 교회의 성도들을 산 것처럼 주장하는 다락방(류광수)과 같은 ‘사탄 배상설’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이단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 까요? 2. 교회가 경계해야 할 이단은 무엇입니까? 이단들은 교회 안팎으로 활동하며 때로는 ‘우는 사자’와 같이, 때로는 ‘광의의 천사’와 같이 양면작전을 쓰며 미혹의 손길을 뻗어오고 있습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고후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29절)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 밖에서 들어온 ‘흉악한 이리’란 에베소 교회 밖에서 침투하는 영지주의자나 유대주의자 또는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는 그리스도교의 하나의 이단설입니다. 기원 1-4세기경, 그리스, 로마, 유대, 소아시아, 애굽 등 근동의 여러 지역에 유행된 혼합 종교로, 신약 및 사도후시대에 교회가 대결한 이단사상이었다. ‘그노시스’란 헬라어로 ‘지식’(gnosis)을 뜻하는 말로서 신약에도 아주 많이 씌어져 있는데, 영적 지각(靈的知覺)을 의도하여 ‘그노시스’라 부른 것이다. 그 내용은, 신의 세계와 물질세계를 말하는 2원론으로서, 그 사이에 영적 존재인 천사, 인간, 마귀(악마)가 있고, 인간은 물질세계의 포로됨을 피하여 신(神)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금욕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 또한 그 물질세계에서의 해방을 방해하는 악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고 완전한 신지(神知, 그노시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영육이원론으로서, 영의 청순성과 신비성을 강조하고, 그 반면 육체적면을 타락으로 이해했다. 그 때문에 영적 그리스도와 육적 그리스도는 이어지지 못하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중심적 결점이었다. 초대교회의 유대주의의 특징은 ‘할례’를 반드시 지켜야하며, ‘주일’이 아닌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여 율법주의 신앙생활과 율법주의 행위로 말미암는 구원을 주장한 자들입니다. 오늘날도 이단들의 대부분은 율법주의 행위 구원을 주장합니다. ‘주일’이 아닌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단으로는 안식교와 안상홍증인회(일명; 하나님의 교회) 등이 있습니다. 안식교에서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주장하며, 안식교에서 나온 안상홍증인회(일명; 하나님의 교회) 측에서는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할 규례로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인’이란 ‘유월절’이라고 하여 각각 이러한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아니하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율법주의 구원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해외로부터 국내에 들어온 외국유입 신흥종파들이 있습니다. 안시일교분파로는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교회, 엘리야복음선교원 등이 있습니다. 몰몬교분파로는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복원예수그리스도교회 등이 있습니다. 세칭 구원파로는 기독교복음침례회(권신찬, 유병언)와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 대한예수교침례회 서울중앙교회(이요한) 등이 있습니다. 2) 내부에서 생겨나는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30절)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 안에서 생겨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이란 에베소 교회의 자생적 이단인 니골라당 같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니골라당(Nicolaitans)은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에 보여진 이단의 일파입니다(계 2:6,15). 그들은 발람의 교훈에 따라,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규정된 우상에게 드린 것과 음행을 피해야 할 명령(행 15:20,29)에 거스리고, 이 구속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결국 이단의 그릇된 길에 빠졌습니다. 국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한국기독교신비주의의 계열로서 통일교(문선명),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정명석), 전도관(박태선), 세계연합승리제단(영생교 조희성), 신천지교회(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 실로등대중앙교회(김풍일) 등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이단이든 내부에서 생겨난 이단이든 모두 다 교묘한 거짓 교리로서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킨 유사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초대 교회 당시나 오늘이나 교회는 바로 이렇게 복음을 교묘하게 왜곡시켜 유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특별히 경계하고 그들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들은 교회의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들입니다. 사실 교회에 대한 세상의 물리적 핍박은 고통스럽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교회를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가 세상의 물리적 박해를 받을 때 교회는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사 복음을 다릅니다. 복음과 유사하나 본질적인 면에서 복음을 대적하는 유사 복음은 교회 전체를 무서운 타락의 길로 들어가게 하여 교회마저 망하게 합니다. 예컨대 성경을 보면 사단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흉내를 냄으로써 아담과 하와를 돌이킬 수 없는 범죄의 길로 몰아넣었습니다(창3장). 또한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거짓 평화를 예언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무서운 심판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였습니다(렘6:14). 또한 초대 교회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는 영지주의자들(Gnostic)과 율법과 할례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일어나 수많은 성도들을 망하는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떤 기업에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그 기업의 제품을 모방한 유사 상표, 유사 제품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외적으로 다가오는 핍박과 고난 못지않게 변질된 복음, 사이비 복음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임을 인식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위와 같은 이단들을 어떻게 경계할 수 있을까요? 1) 이미 받은 기본진리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31절) 본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영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때문에 평상시에 일반적으로 들어오던 말씀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식상해 하며 특별한 영적체험 및 영적지식을 추구하다가 이단에 미혹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더 열심히 더 특별히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심리를 이단들은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좋으나 평상시 일반적으로 늘 들어오던 기본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난 내용이 나오면 본 교회 담임목사 및 담당 교역자들과 구체적으로 상담하여 진단을 받아보아야 합니다. 2) 주와 은혜의 말씀에 부탁해야 합니다(32절) 본문은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기서 두드러진 특징은 ‘말씀’의 의인화요 인격화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치 예수님께 에베소 교회와 장로, 성도들을 부탁하듯 하나님의 말씀에 의탁합니다. 말씀이 능히 그들을 든든히 세워 줄 것을 단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증거 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합니다(히4:12) 종교 개혁자 루터(M. Luther)는 말하기를 “성경은 살아 있다(The Bible is alive)”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이기를 “그래서 성경은 나에게 말씀하신다. 말씀은 발이 있다. 그래서 나를 따르신다. 말씀은 손이 있다. 그래서 나를 붙드신다.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바른 말씀으로 무장하여 전신갑주를 입을 때에만이 이단들을 식별하고 미혹당하지 않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의 바른 교리와 이단교리의 비교공부를 통하여 이단 식별능력을 증진시키는 예방교육이 중요합니다. 결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존귀한 교회를 교회의 청지기들인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팎으로 도전해오는 이단들을 식별하여 잘 대응함으로 교회가 이단의 거짓 교리에 미혹되지 않도록 늘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새로운 영적 욕구를 채우려는 욕심보다 평상시에 늘 듣고 배운 기본 진리의 말씀을 잘 기억하며 묵상하여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자들과 같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바른 말씀운동을 통해 말씀의 전신갑주를 입고 이단교리에 대한 비교공부와 같은 예방교육을 통해 이단 식별 능력과 이단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이단을 대적하는 차원을 넘어서 이단에 잃어버린 주님의 어린양을 되찾아 오는 수준에 이르도록 교회의 질적 성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이단경계주일설교(2)/ 이단을 경계해야 할 이유/ 유1:3-4/ 김종한 목사/ 벌교이단상담소장/ 벌교대광교회/ 2009-09-03
이단을 경계해야 할 이유 유1:3-4 총회에서 이단경계주일로 지키게 한 날입니다. 시대가 악해져가기 때문에 수많은 사이비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는 전범자나 폭력배보다 더 악한 세력들이 한국교회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신앙을 지키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선 내부에 사이비 이단들부터 척결해야 할 것입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에도 교회 내에 은밀히 침투하여 미혹하는 사건이 있어, 유다는 이 사건에 대하여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신천지에서, 또는 다른 이단들이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 교회를 파괴하고 목회자들을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단의 잔재들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지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단을 경계하고 교회의 거룩성과 진리수호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은총을 힘써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3절) 1)기독교는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종교이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더 나가가 용서를 빌 수조차 없을 정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어떤 도덕적 삶이나, 철학적, 종교적 삶을 통하여 타락을 원상회복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불행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죄악의 결과는 영벌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행동으로도, 그 어떤 지식으로도, 그 어떤 종교적 삶으로도, 과학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최대의 불행인 것입니다. 이러한 불행을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종교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내에서도 기독교라는 명칭을 가지고 인간의 의지나 노력, 종교심을 통하여 이러한 죄로부터 구원받으려는 시도들이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2) 구약의 이스라엘이 유대교가 된 이유는 은혜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사건은 이스라엘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력으로, 능력으로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어 은혜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백성에게 이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모세를 통하여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서두에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즉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변질되어 유대교 율법주의, 행위구원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3)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지키지 못하므로 유대교로 변질되는 이단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고 우리들의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므로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따라서 구속을 받은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힘써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으로 사는 것이 경건의 삶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것을 본문 4절에서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구속의 주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은혜를 지키는 것이요,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단들이란 이러한 은혜를 변질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일반으로 얻은 구원의 은혜”를 교회가 지켜야 할 것을 본문에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죄와 형벌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해 주신 은혜를 결코 빼앗거나 놓쳐서는 않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말씀에서 “내 말을 지키며”라는 말의 뜻은 영어로 Keep입니다.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테레오’라는 헬라어로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즉 단번에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것에 지속적으로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천국문이 열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은혜의 복음을 지켜야합니다. 왜냐하면 은혜를 놓치는 것이 타락한 교회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은혜를 변질 시킨 이러한 타락한 교회들입니다. 2. 하나님의 은총을 변질시키는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4절) 1) 초대교회 내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려는 거짓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사단의 역사는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은 언제나 교회를 파괴하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성경에서 죄의 문제를 다룰 때, 두 가지를 조심하도록 명합니다. 하나는 유혹이라는 단어입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유혹은 양심과 도덕과 법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혹입니다. “미혹을 조심하라” 미혹은 하나님의 은혜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것, 즉 진리를 파괴하는 이론들을 말하는 것으로 이단들의 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유혹도 피해야 하지만 더욱 조심할 것은 미혹을 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혹은 영혼을 망치고, 교회를 파괴하는 무기로 변질되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도 저주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도 거짓선지자,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러한 미혹에 빠지면 영혼이 파괴도고 영벌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단들을 경계하고 조심하여야 합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색욕거리고 바꾸는 세력들입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광명한 천사처럼 친절을 과장합니다. 또한 그들의 교리들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처럼 탐스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우들이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자신들의 색욕거리를 채우기 위한 독이 있음을 위장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단의 교리에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음을 봅니다. 첫째는 미혹의 교리로 얼른 듣기에는 정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기까지 합니다. 둘째는 완전히 미혹이 되고 나면, 핵심교리가 나옵니다. 자신이 보혜사, 이긴자, 구원자, 이 시대 계시록을 푼 자, 등으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자리에 자신이 앉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원하는 일에 철저하게 맹종하게 하여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살후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한 핵심교리가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자신들의 욕망을(세속적인 욕망과 종교적 욕망을 포함) 채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빠지면 교주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그들도 자신들이 최고의 성경지식을 가진 것처럼 교만과 거만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심리적으로 그들의 열등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며, 이단의 교리를 통하여 자신의 열등의식뿐만 아니라, 자기만족이라는 자신의 종교적욕망을 채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들은 교주가 주님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은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지키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킨다는 것이 무엇인가? 은혜란 거저 주신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벌에 처할 인생들을 사랑하시어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거저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믿음 안에서 이미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를 거절하는 형태가 초대교회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를 대별해 보면 첫째는 율법주의, 즉 행위구원으로 이끌고 갑니다. 모든 이단들이 행위구원으로 갑니다. 유대교, 안식교, 여호와증인, 안증회, 신천지, 큰 믿음교회 변승우목사 등 모든 이단들은 행위구원을 주장합니다. 두 번째는 신비주의입니다. 이들은 신비체험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한국에 많은 신비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박태선전도관, 계룡산의 나운몽, 통일교 문선명 등 한국의 최초 거대 이단들의 아류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등입니다. 세 번째는 방종주의입니다. 율법은 폐지되었으므로 지킬 필요도없고 어겨도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세력으로 이미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3:17). 오늘날 구원파와 같은 집단들을 말합니다. 네 번째는 성화주의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육체의 소욕이 완전히 사라지고 성령의 소욕에 사로잡혀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요즘 “예수 왕권선교회” 라는 명칭으로 성화주의를 주장하는 심재웅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성경은 비유와 비사로 감추어진 비밀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유들을 풀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들은 한국에서 자생하는 이단들입니다. 이러한 교리들을 주장하기 위해 오늘날도 교회에 가만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들어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이 영욕과 색욕거리고, 바꾸는 이단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변질시키는 세력들로부터 경계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4절 하) 1) 이단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들이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구원의 자신의 집단에서만 나오는 것처럼 과장하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원의 은혜의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자신들이 가로챈 행위에 불과합니다. 소요리문답 1번에 “인간의 제일 된 목적이 무엇인가?” 의 질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은 오직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요, 그 영광이 주님 한분에게만 돌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빼앗기면 우상숭배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주를 재림주, 구원자, 이긴자라고 하는 것은 우상숭배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단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단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는 세력들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우리가 믿는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만물의 마지막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 중에 누가 이러한 존재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우리주 예수그리스도 한 분만입니다. 그래서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다른 이름의 구원자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이단들의 교리입니다. 신천지 마니교같은 경우 다른 이름으로 오신 보혜사 구원자 이만희를 그들의 교리에서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늙은이가 하나님의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교리를 만들어 교회를 파괴하고 어지럽히고,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행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방법 과거 우리들의 무속신앙들을 살펴보거나 구약시대 이방인들의 신앙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우리조상들은 밭에 큰 돌이 있으면 그 돌을 건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돌에게 재물을 바치고 섬기는 일도 있습니다. 큰 나무 아래서 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왜 나무나 돌들을 섬기고 절하는가? 물으면, 그들은 나무나 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임한 신들을 섬긴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교주들도 마찬가지 주장을 합니다. 신천지마니교 같은 경우 교주 이만희 자신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계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천지미니교에 빠진 사람들은 이만희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분에게 예수의 영이 임하여 있기 때문에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요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한 것은 이처럼 이단교주들을 하나님을 만들려는 것을 경계하신 것입니다. 결론: 지금도 본문과 같은 일이 교회 내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1:3-4]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홀로 주재인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 위해 우리들은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고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신천지 마니교의 거짓교사들을 색출하여, 미혹하지 못하도록 할 때, 교회는 진정으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가 있기 때문에 이단을 철저히 경계해야 합니다. 이단을 철저히 경계하여 교회의 은혜의 거룩성을 지키는 복된 교회가 됩시다. -아멘-
이단과의 싸움/ 벧후2:1-8
이단과의 싸움 벧후2:1-8 <서론> 이단이란 헬라어 단어는 다른 의견이나 교훈을 가진 자들이란 뜻. 종교적으로 하 나님의 말씀의 바른 교리에서 벗어나 다른 교훈,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을 이 단이라 함. 한자로는 끝이 다르다는 뜻. 비슷한 것같지만 재어보면 그 끝이 다르 다. 그 목적이 다르다. <본론> 이단의 역사는 그 유래가 깊다. 1절. 구약시대, 오래 전부터 거짓선지자들이 있었 는데 이들이 바로 이단의 전형이다. 이교는 기독교와 상관없는 종교들, 불교, 이슬 람교, 유교, 샤마니즘 등이 이교이다. 이단이란 기독교의 이름을 가장하고 같은 성 경을 사용하거나 같은 하나님의 이름, 예수니 여호와니, 하는데 그 교훈이 성경의 정통적 해석을 벗어나 성경교훈과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40일간 있으면서 십계명과 여러가지 율법들을 받을 동안 백성들은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여호와라 ! 하며 섬김. 금송아지는 이교가 아니라 이단이었다. 이스라엘 12지파중 북쪽 10지파를 차지하여 북이스라엘왕국의 태조가 되엇던 여로 보암왕도 이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당시 이스알엘 백성들은 3대 명절을 지켰는데 이 대는 우리나라 구정명절과 추석을 지낼 때 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조상신에게 제 사지내듯 그들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이 되면 모두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하나 님께 제사를 드렷다.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래서 온 북오아국 백성들도 명절때가 되면 남쪽의 에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니 민심이 남왕국으로 기울어질까봐 겁이 남 그래서 북왕국의 저 북쪽의 단이라는 도시와 남쪽의 벧엘이란 도시에 에배당을 세 우고 거기 번쩍 번쩍 빛나는 금송아지우상을 세움, 그 이름이 기가 막힘. 이것이 우리조상님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여호와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남쪽의 예루살렘에서 하는 것과 비슷하게 제 사장을 세우고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비슷하게 다 지켰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예 믿지 못하게 하면 반대를 하고 봉기 할텐데 같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단을 만들어 섬기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그 가증한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그 숭 배받던 금송아지는 실상 누구일까요? 하나님입니까? 마귀사단이다. 마귀는 속이는 천재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과 경배를 자기가 찬탈하려고 한다. 여러 분! 이단이 얼마나 가증한가! 이름도 여호와요, 에수요, 책도 같은 성경인데 실상은 다릅니다. 실상은 여호와가 아니라, 금송아지요 마귀사단이란 말입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자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여호와의 증인들은 가장 열심히 믿는 자들 같지만, 그들은 여호와란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 대신 예수의 이름을 형편없이 떨어뜨리고 잇다.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며, 천사장에 불과하다고 한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성경의 교훈 을 무시하고 열심히 여호와 증인 전도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행위구원론을 주장 한다. 귿르이 열심히 전도하는 것은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서가 아니라, 멸망받을 까봐 겁이 나서 하는 행동이다. 예수님은 지옥에는 불도 꺼지지 않고 사람마다 소 금치듯함을 받으리라고 막 9: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지옥은 없다고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지옥을 만들겠느냐고 주장한다. 여호와증인을 믿는 자기네들 144,000명만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나머지는 사라져 버린다는 멸절론을 주장하는데 성경을 거꾸로 사용한 자들이다. 몰몬교도들(소위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회)은 19세기 조셉 스미스라는 사람이 멀로니 천사에 의해 계시를 받아 몰몬경을 기록한 금판을 발견하여 그것을 번역하 여 믿는 것인데 그 금판은 아직 아무도 본 적이 없고 스미스만 주장하는 미스테리 이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은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라, 피조물이며 인간도 하 나님이 될 수 잇다고 한다. 일부다처제를 주장하여 많은 처를 거느린다. 그들은 많 은 처를 두어 많은 자녀를 영적 자녀들을 출행시켜야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합법적인 간음인가! 그래서 조셉 스미스는 50명의 아내를 두엇고 브링 함 영은 27명의 아내를 두고 잇다 함. 어찌 이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계실 수 있겠는가! 본문 3절에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 저들 이 말하는 몰몬경은 하나님의 천사가 준 책이 아니라, 실상 마귀가 준 책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음욕을 채우기 위해 지어낸 무수한 말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우롱하 고 노엽게 하고 잇다. 에수님을 아담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자라 하고 예수님 도 세번 결혼하엿다는 것이다. 이런 가증한 자들에게 딱 알맞은 것은 하나님의 심 판이 그 위에 임라여 잇다는 것외에 다른 것이 무엇인가! 10절---- 하나님, 예수님 을 멸시, 두려운 형벌이 그들에게 있다. 저 못된 교리를 전파하는 코큰 몰몬교 선교사들이 신사적인듯한 태도로 영어를 가 르쳐 준다고 따라가는 학생들이 적지 않게 미혹을 당한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꼭 일러 주어 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 외에 베뢰아 이단, 안식교, 크리스찬 사이언스, 한국의 박태선 전도관, 문선명 의 통일교, 김명석의 장막교, 엘리야 복음선교회, 베뢰아 귀신론을 배워서 활동하 는 이초석목사나, 한만영 장로, 1992년 10월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주장하는 이장 림파, 기타 여러 사이비 목사들이 잇다. 조만간 이런 이단들에 대해 요점을 정리 해서 드리겠다. 또 하나 더 들자! 개신교의 이름을 가지고 잇으면서도 자유신학과 세속화신앙노선 을 추구하여 성도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들도 이단 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함. 자유주의 신학이란 전문용어로 더 다양하지만, 근본 입 장은 성경에 인간이성으로 믿어지는 것만 믿고 인간이성으로 믿어지지 않는 부분들 은 제거하거나 인간이성에 맞게 해석하자는 것이다. 컴퓨터 시대, 하이테크의 고도 시술시대에 무슨 기적이 어디잇나는 것이다. 에수님이 물위로 걸어가신 것이 아니 라, 안개긴 바다가를 걸어오시는데 제자들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것으로 착각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신앙도 술담배 하는게 무슨 죄냐, 목사부터 술을 즐기고 담배 피우며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이미 기독교이기를 포기한 셈이다. 세속화물결이 점점 거세게 도전해 온 다. 미국엔 신자들의 마음을 끌기위해 교회 지하실에 기도실이 아닌, 덴스실을 만 들어 남녀가 사교춤을 추게 하는 교회도 있다 한다. 우리 나라도 남전도회니, 청년 회원들이 일부에배를 마치고 2부순서로 맥주파티를 하는 곳들이 잇다한다. 이들은 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한 본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 우매한 인간지혜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이단들의 특성들을 성경에서 발견해 보면---- 1. 1절. 가만히 들어온다고 함. 조용히 접근하여 교인들을 유혹하여 끌고 간다. 2. 주님을 부인한다. 성경이 가르치고 잇는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에 대해 올바 로 가르치지 않고 지기들의 교리를 위해 짜 맞춘다. 여호와 증인은 그리스도와 성 령의 신성을 비인. 몰몬교와 크리스찬은 범신론(만물에 신이 잇다는 식), 문선명이 나 김명석은 가기자 곧 재림 예수요, 심지어 멓해 전 죽은 박태선은 자기가 하나님 이라고 주장. 신관이 잘못되어 잇다. 우리는 내가 믿는 예수, 내가 믿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겨야 한다. 3. 호색하고 음란한 것을 쫓는다. 마귀는 더러운 영이기 때문에 마귀의 사주를 받 아 만들어진 종교집단이 결코 순결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줄 곧 그 들이 음란하다. 더러운 정욕가운데 행한다. 음신이 가득한 눈으로 범죄하기를 쉬지 않는다 이런 표현들을 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름없다. 4. 교주의 말에 지나친 열심을 내어 가정을 팽개치고 생활질서를 파괴한다. 박태선이도 말세에 자기들에게로 모여야 예수재림때 구원받는다며 신앙촌을 형성 했고, 지금 이장림목사파도 에수 오시니 날마다 철야하며 에수기다려야 한다고 야 단, 얼마전 심방갓더니 그 친척인데, 부인이 거기에 빠져 집안살림팽개치고 그 교 회에 가서 사는데,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아직 믿지 않는 남편, 자 녀들이 잇는데 자기구원을 위해서 날마다 교회가서 살면서 남편과 자녀들은 다 지 옥가란 말인가! 엘리야 복음서원도 강원도 원주로 모두 다 버리고 강원도 원주에 모여 예수 오실 날만 기다린다는데, 이렇게 가정질서를 파괴하는 것들은 다 마귀의 소행이다. 예수님도 마 24장에 40, 41절에 주님이 오실 때 들림받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실 때 기도하다 오라간다, 성경보다 올라간다 하지 않고, 밭을 갈다 올라라 고, 맷돌을 갈다 올라간다고 하셨다. 만약 내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어떻게 될 까! 꼭 교회에서 에배하고 전도하다 재림해야 내가 구원받는게 아니다. 죄를 회개 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예수믿는 사람이 시장에서 남편과 지녀들을 위 해서 고등어, 콩나물, 시금치 사고 거스름돈 받으면서 깍아 달라고 할 때 하필 오 셔도 에수를 믿는 성도는 들림받을 줄 믿으시기 바란다. 자동차 타고 직장갈 때 예 수님이 오시든지, 공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을 때 예수님 오셔도 두려울 게 없다. 이런 자들의 모델케이스들을 베드로는 소개하였다. 1)범죄한 천사들(4절)---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보다 높아지려 하다가 지 옥밑창에 떨어진 자들이다. 이단자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요 겸손히 자기 자리를 지 키지 않고 제맘대로 믿으려다 망하는 자들이다. 2)노아시대 사람들이다(5). ----이 세대 사람들을 보면 일부다처요, 신자들마져 불 신자들과 마구 좋은대로 결혼하여 신앙의 순결을 상실햇고, 폭력이 가득햇다. 선지 자의 경고를 우롱하고 듣지 않앗다. 결국 전세계를 뒤덮는 홍수로 망하고 말았다. 3)소돔고모라 사람들은(6) ---- 동성연애가 이 도시에서 행해졌고, 풍요한 물질적 부를 누리며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오히려 타락의 극을 달리다 결국 유황불 심판을 당하여 휘황찬란하던 도시는 하루아침에 재가 되고 말앗다. 이 모델케이스들이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고 막나가다가 다 심판을 당햇다. 이단의 종말이 곧 심판이라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이 패역하고 간교한 이단자들, 그리고 세속주의적 신앙행태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신앙을 바로 지켜야 하겠는가? 1)성경을 주의하고 성경대로 믿도록 해야 한다. 이단들은 다 지어낸 말, 사람듣기에 좋은 말들을 가지고 유혹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잇고 항상 잇는 진리의 말씀에 기초한다. 19- 21절. 성경에 무엇을 더하지 말자. 성경에 잇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 성경에 나타난 진리 를 아니라고 부인하는 자들이 있을 때 분명히 가르치며 대적하자. 여호와의 증인들 이 성경을 가지고 떠들어 대지만 그들이 인용하는 성경도 앞뒤문맥까지 잘 살펴보 면 사실 엉터리로 인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이 앉으라 하는 곳에 앉고, 성경 이 서라 하는 곳에 서야 한다. 이것이 참 신앙이요, 구원얻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을 많이 읽고 바로 배우면 이단의 각종교 훈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현재 나타나지 않은 새로운 이단이 나와서 친구나 친척을 통 하여 여러분에게 접근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성경진리를 배워 잘 알고 잇으면 그 잘못된 점을 간파하여 그들에게 빠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올바로 이끌어 줄 수 잇습니다. 새로운 말을 하니 와보라, 좋은 말같지만 매우 위험한 것이다. 진 리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 바뀌고 갈아야 한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 가 항상 새롭다는 말은 진리의 내용이 바뀌거나 그 교훈, 교리가 달라진다는게 아 니라, 진리를 대할 때 내 마음이 늘 새로와 지고 깨끗하게 된다는 뜻이다. 진리는 변함이 없건만 우리를 항상 새롭게 하는 힘이 잇다.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2)평생 깨끗하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세속주의신앙에 타협하지 말고 성경대로 거룩하고 깨끗한 생활을 지키며 신앙생 활 하시기 바란다. 노아는 5절에 보니 의를 전파햇다고 한다. 노아는 의롭게 살면 서 의로운신 하나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살앗다. 롯도 소돔고모라에서 살면서 그 의로운 심령이 저들의 죄악을 들을 때마다 늘 가슴아파햇다고 햇따. 여러분! 우 리 주위의 폭행,강도,강간사건, 살인사건,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탄식해야 하고 거룩한 분노를 느껴야 한다. 우리가 깨끗하게 신자답게 살면 이단자들이 감히 우리 집에 들어와 유혹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3)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노아는 사람들에게 의를 전파햇다. 즉 의로운신 하나님을 전했다. 하나님을 믿으 라, 죄를 회개하라, 함께 방주를 만들고 이리 들어와 구원을 얻으라고 전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앗다. 결국 그는 자기의 일곱식구들을 구원할 수 잇엇따. 여 러분! 여러분의 가족들을 주님게로 인도하세요. 나아가 이웃을 전도하세요. <결론> 그리스도의 재림이 문앞에 이른 시각이다. 이단들과 세속주의가 우리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이 때 성경대로 믿는 바른 신앙을 지키고 거룩하게 살고, 가족과 이웃에 게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힘써 하자. 예수 않믿고 예수 비슷하게 믿는 이단자들은 예수가님재림하실 때 얼마나 원통해 하며 두려워 할까! 우리는 에수님을 바로 믿고 인격적으로 섬기어 그 분이 오실 때 그 분앞에 올라가 영광중에 영원히 섬기는 자들 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