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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부다/ 딤후2:6-
나는 농부다/딤후2:6- 2001-11-11 18:20:03 read : 118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모습을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었던 말씀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어떤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나는 농부입니다. 농부는 말 그대로 농사를 짓는 사람입니다. 그 농사를 통해서 수확을 얻고, 그 수확을 통해 배부름을 얻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농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즉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농사짓는 것이요, 주어진 환경, 상황이 우리가 농사짓는 논이요, 밭입니다. 이 농사를 잘 지으면 수확을 얻게 됩니다. 은혜를 덧입게 되고, 복을 덧입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그 얻은 수확으로 배부름을 얻습니다. 아니 우리는 많은 수확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부로 삼아 주셨습니다. 2.그렇다면 내가 농부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①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 않고는 거둘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또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심는 만큼, 심은 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응답이라는 수확을 얻게 됩니다. 믿음을 심으면 믿음의 결국 곧 구원의 수확을 얻게 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수확을 얻게 됩니다. 순종을 심으면 순종의 결국 축복을 얻게 됩니다. 보십시다. 성경에서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지? (눅 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수확을 얻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그 수확으로 인하여 배 부름을 얻는자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로 농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농부로서 열심히 심습니다. 많이 심읍시다. 내가 심은 것이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심은 것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열매가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심은 것은 꽃이 피고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열심히 심읍시다. ②돌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농부가 곡식을 심어 놓고 심은 것으로 끝이 난다면 그 곡식을 통하여 열매를 얻기는 힘듭니다. 설사 열매를 얻는다 하더라도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농부는 그가 심어 놓은 것이 잘 자라는지, 병균에 먹히지 않았는지, 비바람에 꺾이우고 넘어지지 않았는지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면서 영양분, 거름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과 저가 농부로서 우리가 심은 것이 잘 자라도록 잘 돌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하고, 넘어진 것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어야 하며, 병충해를 잡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믿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큰 믿음이 되게 돌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도록 믿음이 잘 자랄수 있는 양분을 공급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기도를 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응답이 될 때까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한 번 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수 없이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기도한 것이 응답이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밤낮 돌보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눅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순종하는 것, 말씀대로 사는 것도 그 말씀대로 살 때까지 행해야 합니다. 한번에 말씀 들은 것이 순종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순종하다 보면 순종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순종이 잘 안 된다고 그만 두어 버리고 돌보지 않으면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③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려 놓고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입을 내고, 꽃을 피어 열매를 따기까지는 오랫동안 기다립니다. 심어 놓고 금방 열매가 맺히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그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어련히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농부라는 것은 우리도 믿음의 농사를 지으면서, 기도의 농사의 지으면서, 말씀의 농사를 지으면서, 사랑의 농사를 지으면서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면 기다려야 합니다. 금방 나지 않습니다.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니 돌보는 일만 잘 하면 시간이 지나가면 반드시 열매가 맺히고야 맙니다. 사실 우리 믿음의 농사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기다림입니다. 예수님도 보십시오. 구약에 이미 하나님께서 구원의 씨를 뿌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는 중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제사장들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러니 우리들도 무엇해야 합니까?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기도했는데 아직 응답이 없습니까? 조금 더 기다립시오. 때가 되매 응답이 됩니다. 나름대로 믿고 의지했는데 아직 열매가 없습니까? 기다립시오. 반드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3.그렇다면 우리가 농부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①부지런해야 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게으르다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습니다. 부지런한 농부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농부로서 믿음의 농사를 잘 지어 많은 수확을 얻는 자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지런해야 합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②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농부가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결국 풍년, 흉년은, 즉 소출이 많으냐, 적으냐는 것은 농부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를 풍년을 바라고 최선을 다하여 농사를 지을 뿐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농부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저가 농부로서 열심히 믿음의 농사, 기도의 농사, 말씀의 농사, 사랑의 농사, 전도의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되던 안 되던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그것을 받아 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예수님/ 요15:1-8/ 조용기 목사/ 1981-03-22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예수님 요15:1-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이 놀라운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봄이 오면 본격적인 농사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농부들의 영농기술이 탁월해야 하고 또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종자는 좋은 종자를 가져야만 농사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종자가 있어도 영농기술이 없으면 안 되고 영농기술이 탁월해도 종자가 나쁘면 농사를 잘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이 성경 말씀을 읽어보니까 이 우주에서 가장 탁월한 영농기술을 가진 농부와 완벽하여 흠과 점이 전혀 없는 종자가 있어서 농사를 짓는데 이 어찌 성공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기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농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농사를 짓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농사짓는 종자 씨앗은 바로 예수께서 친히 내가 종자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니 흠도 없고 점도 없고 조금도 실수할 수 없는 완벽한 종자 포도나무인 예수님이 계십니다. 또 그것을 가꾸는 전지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께서 농부가 되고 있는 이상 이 천국 농사가 실패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여러분과 나 같이 부름을 받아 성도가 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자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며 영광스러운 축복이겠습니까.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가 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돌보셔서 농사를 지으니 여러분과 내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요,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당연지사고 실패하는 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이상한 일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은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쳐다볼 때 여러분과 나의 삶 전체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형통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이렇게 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간에 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떻게 우리가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위대한 삶을 창조적이고도 생산적인 삶을 찾아갈 수 있을까? 그 일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로,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를 우리는 유심히 살펴보고 우리 마음속에 깊이 그 뜻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포도나무는 가지가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생존해 나가는 모든 필요한 자원을 공급할 절대적인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경험과 상식을 통해서 보게 될지라도 가지가 땅속에 있는 습기를 끌어올리고 양분을 끌어올리고 그래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았었습니까. 가지의 의무는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포도나무가 그 땅속에 깊이 내밀어서 그래서 생존 및 결실을 위한 자원을 공급할 절대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요,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의무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주님께서 비유하셔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내가 신령한 생활, 육신적인 생활, 금세의 생활, 내세의 생활, 우리가 살아나가면서 열매를 맺는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공급할 절대적인 책임이 여러분께 있지 아니하고 바로 우리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인간적인 힘과 노력을 다하여 애쓰고 힘쓰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 염려와 근심에 짓눌려 실패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과 이미 다른 세계 속에 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살도록 새로운 차원의 세계 속에 인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사망의 세계 속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사랑의 하늘나라로 옮겨진 세계 속에서 여러분과 내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좀 더 깊이 규명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원의 절대 공급자인 우리 예수님을 한번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죄 사함의 근원적인 자원인 것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원죄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살아오면서 수없이 지은 이 자범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피를 쏟으신 그 공로 때문에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윤리나 도덕적인 행위나 우리의 의로운 삶 그 자체가 여러분과 나의 죄악을 용서하는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성경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자기 스스로의 자격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데 우리의 죄를 완전히 일생의 죄를 청산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때 여러분의 모든 과거의 죄와 여러분의 현재의 죄와 여러분의 미래의 죄 전체를 모두 청산해 버리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 죄 사함의 무궁무진한 자원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 있는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말갛게 씻어서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우리에게 치료의 자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생각하고 난 다음에 여러분의 인식 속에서 치료를 떠나서 생각해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치료하고 마음을 치료하시며 육체를 치료하고 생활을 치료하시며 전 인간을 치료하시는 예수님은 치료자인 것입니다. 나 여호와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병든 인간을 치료하려 오셨습니다. 오늘날 메시아는 치료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빗나가 병든 인간, 병든 사회, 병든 세계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직 우리를 치료하고 살릴 수 있는 자가 메시아인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지 않고는 치료받을 수 없으며 진실한 메시아 구세주는 여러분 우리의 병든 인간, 병든 사회, 병든 세계를 치료하는 자라야 진실한 메시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시자 말자 그 사역의 출발부터 치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의 영과 마음과 육체와 생활과 사회를 주님은 처처에 가는 곳마다 치료하셨습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치료의 무궁한 자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병든 인간과 병든 세계를 예수께 나아가서 그 발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고 간구할 때 그리스도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과 치료의 손길이 임하여서 우리로 하여금 치료받은 인간, 치료받은 사회, 국가, 세계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무궁한 축복의 자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잘 알다시피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이 세상의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이마에 땀이 흘려야 먹고 사는 저주의 세계 속에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도 인간이 하는 일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고 저주와 슬픔과 찢김이 다가온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인간이 하는 일 치고 하나도 완전한 유토피아적 세계란 이루어진 적이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이 절망적인 저주와 가난에서, 이 슬픔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저주에서 인류를 해방해야겠다. 내가 이 빈곤과 가난에서 국가와 민족을 해방하겠다고 외쳤지 않습니까? 물론 사람이 아무리 하기를 원해도 하나님께서 뒤에서 밀어주고 축복해 주지 아니하면 인간의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서 주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셔야죠. 그렇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성경을 밝히 말씀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음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였으니 이것은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음이라 하였음이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축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비단 우리의 죄악을 위한 고난밖엔 능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여러분과 나의 일생의 저주와 가난과 이 고통을 십자가에 걸어지고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시켜 주신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반역하여 가져온 저주를 마지막 아담 예수께서 십자가를 걸머지심으로 말미암아 이를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궁한 축복의 자원이 되어 버리고 마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축복, 장수의 축복, 자녀의 축복, 물질의 축복 이와 같이 오만 축복의 근원이 계시고 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천국의 자원이 되십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다.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천국이 바로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제도나 의식이나 형식이나 종교 가운데 천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이란 바로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계신 곳이 바로 천국이고 예수님이 만드신 곳이 천국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 심령 천국의 근원이 되시고 교회에 와서 모여 예배를 드릴 때 교회 천국의 근원이 되시고 주님께서는 영원 무궁세계의 천국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다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므로 주님께서는 삶의 일체의 자원이 되실 것을 자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예수를 여러분 종교적인 상황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나의 현실 생활에 와서 치료하는 치료의 하나님이시며 축복의 근원적인 자원의 하나님이시며 천국의 근원이 되시며 삶의 일체에 모든 것을 돌보시는 자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라고 이름을 부를 때 이는 여러분과 나의 삶의 무궁무진한 자원의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라 말한 것은 포도나무는 가지에게 잎 피고 꽃 피고 열매 맺고 할 수 있는 모든 습기와 양분과 자원을 공급할 절대 책임자라고 하는 것을 자원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나의 일생의 삶과 영원한 삶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고 나온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종교적으로만 이해하지 마십시오. 주일날 교회 와서 찬송이나 부르고 설교 듣고 기도 몇 마디 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연관성이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시간부터 사망에서 생명을 옮겼으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 예수 사람들이 되었으므로 이젠 우리가 먹으나 마시나 자나 깨나 사나 죽으나 예수로 말미암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여러분의 삶의 자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자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치료의 자원이 되십니다. 축복의 자원이 되십니다. 천국의 자원이 되십니다. 모든 삶의 자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담대하게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러므로 우리는 버림받은 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고아도 아닙니다. 우리는 의지할 곳 없이 방황하는 나그네도 아닙니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무궁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자원이 된 이상 우리가 무릎을 꿇어 엎드려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기도할 수 있는 이상 여러분과 나는 패할 수가 없고 버림받을 수도 없으며 빈손 들고 버림받아 나그네와 같이 떠나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는 위대한 삶의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요한복음 15장 4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을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말했고,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눈으로 우리가 쳐다보게 될 때 여러분과 나의 삶에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여러분과 나의 삶에는 고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신문이나 라디오나 텔레비전이나 세계 여러 가지 상황이 자원 고갈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삶에 무궁무진한 자원이 된 이상 우리의 주를 신뢰하는 사람은 자원 고갈로 말미암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있을 수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크나큰 저수지가 있어도 우리 집까지 파이프로 연결해 놓지 않으면 그 물은 구경하는 물밖에 되지 않고 한 방울도 내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예수와 저와의 연관성은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있어야 효과를 발생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내가 예수님 안에 있을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여기에는 상당한 협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위에서 붙잡으며 아래에서 붙잡고 그래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엇으로 붙잡을 까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여러분과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성경 말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읽고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공부하고 그래서 말씀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의 생각하는 것과 여러분의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잡히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포도나무에 붙어있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사람은 말씀에 잡힌 사람인 것입니다. 말씀을 떠난 신자는 신자가 아니요, 말씀 없는 신앙은 감정이지 신앙은 아닌 것입니다. 믿음이란 말씀의 지식 위에 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날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 있느냐 없느냐를 알고 싶으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잡혀서 사느냐 하나님 말씀에 떠나서 사느냐 이것을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워하고 말씀을 늘 읽고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살며 말씀에 잡혀서 살면 여러분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또 여러분 성령으로 붙잡혀 살 때 여러분과 나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어서 우리의 혼자 힘으로 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도 알지 못합니다. 연약하여서 우리의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셔서 우리의 돕는 자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과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에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고 의지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말씀과 성령이 여러분과 나를 붙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잡힌 생활, 성령의 은혜에 잡힌 생활을 할 때 여러분과 나는 포도나무에 잡혀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우리 편에서 할 일은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 우리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립니다. 손으로 느낄 수 없어도 믿음으로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제 우리 아이들하고 가정예배를 보면서 막내에게 너는 확실히 구원받은 체험이 있느냐 물어보니까 다른 녀석들은 다 아버지 구원받은 체험이이 있습니다 하는데 막내는 몰라요. 야, 목사 아들이 구원받은 체험이 없으면 큰일 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들이신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믿느냐 하니까 안 믿어져요. 아버지가 늘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안 믿어져요. 뭐 증거가 있어야 믿지.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 미국이 있는 것 미국 가봐서 아니. 너 미국 가봤니. 안 가봤어요. 그런데 미국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그거야 미국사람이 와서 코 크고 눈 노란 사람이 샬라샬라 하니까 내가 알지요. 야, 내 말이 꽉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야 이 녀석아 바로 말씀을 증거 하는 네 아버지 이렇게 예수 믿고 증거 하는 이것이 바로 증거다. 그러므로 믿어라. 그러니까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 해요. 야! 과연 성령의 역사 아니고는 안 믿어지는구나. 매일 예배보고 매일 설교하고 매일 그리스도의 분위기에 있어도 성령의 역사가 그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예수가 구주인 것이 아무래도 안 믿어진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서 한번만 와서 샬라샬라 해주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것은 여러분 성령으로 말미암아 눈에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고 손으로 만지지 않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에 설득을 시키고 반 협박을 해 가지고서 그래서 회개기도를 시키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했습니다만 그러나 성령께서 그 마음속에 인을 쳐주지 않고는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붙어있어야지 증거를 찾아서 믿으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고 또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리고 또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의무를 순종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주님을 붙잡고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 자원이 되시고 하나님 편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붙잡아 놓아도 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준비하시고 말씀으로 붙잡아 주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성령으로 붙잡아 주어도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3장 18절에서 19절을 보면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러므로 믿음으로 나무에 붙어있고 순종의 생활을 하므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은 우리가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제 성경은 우리에게 보장해 주시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우리는 수없이 하나님 앞에 구할 것이 많고 주의 능력의 도우심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가운데 내가 주님 안에 있어 무궁무진한 자원에 연결되어 있으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마음을 뜨겁게 하여 믿음을 주시고 설교를 들을 때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믿음이 생길 때 또 내가 잠잠히 묵상하고 기도할 때 주의 말씀이 나의 마음속에 뜨겁게 믿음을 주십니다. 성경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말씀이 성령으로 내 마음속에 뜨거워질 때 이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것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면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머리로 받아들이는 말씀이 있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head devout 그리고 heart devout이 두 가지는 다릅니다. 우리가 그냥 막연히 연구해서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머릿속에 받아들여서 머리로 수긍해서 믿는 지적인 신앙, 이것은 우리에게 기적을 발생하는 믿음을 줄 수는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학자들이 성경을 머리로써 연구해도 그 마음속에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머리의 신앙은 여러분과 내가 공부하고 연구하고 얻을 수 있지만 마음속에 뜨거워지는 신앙은 성령으로 역사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나님의 성령께서 머리의 신앙을 마음의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믿음으로 변화될 때 이것이 여러분과 나에게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기적의 원천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매일 같이 내가 예수 안에 있는 이상 우리는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주일날, 수요일 할 수 있으면 금요일 날 철야기도 구역예배를 드림으로써 말씀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머리에서 듣는 것을 마음속에 심어서 마 음속에 뜨거운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속에 조금도 의심 없이 부딪쳐 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서 그 다음에는 그대로 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오면 그 다음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 가만히 있어도 해주시겠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서 열심히 기도하고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믿음을 가지고 구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응답해주실 것을 기대할 때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될찌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의 크고 작은 모든 삶의 위대한 자원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농부에게 영광은 성공적인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는 여러분과 나를 통하여 열매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인간 농사를 지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이 잘 되는 것도 하나님이 짓는 농사인 것입니다. 범사에 잘 되는 것도 하나님의 농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강건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농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농부가 농사에 실패하고 난 다음 기뻐하는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예수님에게 붙은 여러분을 통하여 삶의 농사를 지으시는데 영혼이 여러분 잘 못되고 범사가 실패하고 낭패와 실망을 시켜드리고 병들고 암에 걸리고 관절염에 걸려서 병신이 되고 찢어지고 불구자가 되고 그래서 파탄이 된 것을 보고서 좋다고 손바닥 칠 농부가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영혼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범사가 형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병든 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 회개하고 나와서 건강을 얻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어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는 것이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근원적인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농사를 지금도 짓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에 삶의 무궁무진한 자원으로 삼고,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대한 농사를 지어서 온 세계만방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무궁무진한 삶의 자원으로 믿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있도록 말씀에 잡히고 성령에 잡히고 믿음과 순종으로 붙잡고 나아가며 나아가서 여러분과 내가 매일 같이 말씀 속에 살면서 말씀이 마음에 들어올 때마다 그것으로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적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만입이 있은들 무엇으로 감사하오리까? 온 세상이 자원 고갈로 허덕이고 불안과 공포가 꽉 들어찬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삶의 무궁한 자원이 되셔서 하나님께 연결된 우리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들어가며 나가며 꼴을 얻을 수 있는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으니 감사하옵나이다. 우리 아버지여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하늘 문을 여시사 오늘 하늘의 신령한 것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이 자리에 고개 숙인 주의 백성들에게 30배 60배 100배로 채워 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열매를 맺고 많이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의 백성 성도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낭패와 실망을 당하여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아와 같이 방황하는 자 없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신유기도- 살아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주의 백성들이 주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다. 여러 가지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짊어지고 왔사옵나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나와서 기도하오니 우리의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개인 생활 자녀 사업 여러 가지 문제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해결하여 주시옵시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과 능력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우리 아버지 축복의 생수를 받아 마시고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서 승리롭게 사는 우리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의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통하면서 이 자리에 참석한 성도들도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예수 이름으로 손을 내밀어서 무한한 치료의 근원에서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오늘 치료하여 주시옵시고, 영과 마음과 몸을 건강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사람의 힘과 능으로 못할지라도 우리 아버지시여 주님께서 능력과 권세로 축복해 주시므로 말미암아 오늘 이 시간에 치료해 주시옵소서. 병을 도말시켜 버려 주시옵시고, 건강과 생명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오, 사랑하신 아버지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께서 우리와 같이 하여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조용기 목사(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하나님의 꿈은 우리를 하루라도 빨리 칙칙하고 어두운 그 인간은 끊어내고, 왕의 아들을 만들어서, 정말 그 왕으로 자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속에는 그 왕의 프로그램이 참으로 많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경에 나오는 왕은 사랑의 왕, 은혜의 왕, 평화의 왕, 능력의 왕... 이런 왕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평화의 왕이요, 사랑의 왕이요, 능력의 왕인 그런 왕으로 자신을 훈련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큰 프로그램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 인간을 하루라도 빨리 아들 만들어서 그를 왕 되게 하시려는 꿈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이 하나님의 꿈 앞에 있는데,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도 늙을 때까지 그 아담의 짐을 지고 갑니다. 그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갑니다. 이것이 인생이니까 하고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죽을 때 가까워서야 주님 믿는다고 앉아서 펑펑 우는 그 눈물이야말로 진짜 억울한 눈물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왜 이렇게 열심히 복음 때문에 여러분들을 지도하는지 아십니까? 하루라도 빨리 받으면 그만큼 바뀌는데, 하루라도 깊게 받으면 그만큼 깊어지는데...이런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에 대해서는 일등으로 크게 자라가도록 힘써 나가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하루라도 빨리 만나야 됩니다. 이 복음을 만나면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변합니다. 바울이 이것 때문에 세계를 그 어디나 다니면서 이 복음을 전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지금 무슨 어려움이 있다면, 지금 당신은 복음은 깊게 만나지 못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복음을 깊게 만난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능히 이겨냅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문제로 생각지도 않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내가 환란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누가 우리를 그 사랑에서 끊으리요\" 아버지의 위대한 세계가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사람입니다. 복음이전의 나와 복음이후의 나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닙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우주적인 세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 식구들에게 복음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가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깊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깊이와 높이, 넒이, 길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뚫어갈수록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무섭게 변화시킵니다. 여러분, 복음으로 충만해서 멋있는 왕들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머물러 있는 모든 것을 다스려 가십시오. 작은 것을 주어도 작은 것을 다스리고, 큰 것을 주어도 그 큰 것을 다스려 가고, 어려움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외로움이 있어도, 고독한 것이 있어도...그 모든 것을 다스려 가는 일체의 비결을 가진 왕들로 자라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에게 하나님은 또 하나의 큰 꿈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을 보십시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아멘. 디모데 후서 4장 1, 2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아멘. 디모데 후서 1장, 2장 \"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아멘. 이것이 복음의 아주 중요한 생명입니다. 네 자체가 복음이 되고, 그리고 나면 많은 증인 앞에서 나에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디모데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의탁하라는 말입니다. 다 나눠주라는 말입니다. 할 수 있는 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내가 복음을 받았으면, 할 수 있는 대로 다 나눠주어야 합니다. 이 복음에 대해서만은 감춰놓고 내가 조금씩 주고 그러면 안됩니다. 여러분, 복음을 누구에게고 전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누구에게고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자기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본형입니다.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복음이 내 안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이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전도를 잘하고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붙잡고 무조건 양육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앞에서고 복음의 비밀을 묻는 자들에게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2년 후의 우리 교회입니다. 제가 우리의 비전을 2년 후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예배당 짓는 것으로 기준을 삼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형태적인 것에 촛점을 두지 않습니다. 예배당 짓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교회부터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천국열쇠를 가진 교회를 지어야 됩니다. 정말로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누구에게고 생명의 세계를 전할 수 있는, 말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자라 가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제가 교회를 다 뜯어서 한 사람, 한 사람 영적 수술을 하는 것이 이 이유에서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알고, 기쁘게 살고 잘 삽니다. 듣는 복음으로는 A급입니다. 그런데, 전하는 복음으로는 셋업이 안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훈련하는 것이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목표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속에 가져서 이 본문의 말씀이 우리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가 가리켰던 충성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하는... 그러니까 벌써 몇 단계가 내려간 것입니까? 바울에서 디모데, 디모데가 가르친 충성된 사람,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는 너는 내게, 이 한 단계 밖에 안됩니다. 충성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일부터는 아예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 충성된 사람들을 만들어가고, 그 충성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완벽한 복음의 시스템이 자리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분들로 자라시기 바랍니다. 이런 분들로 자라 가는데, 여기 있는 우리 100명이 다 열심히 노력해서, 한 사람도 이 교회 다니는 분들은 왕 안된 사람이 없고, 또한 왕 만드는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없고, 그 왕 만든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왕 만들어갈 수 있는... 그래서, 이 복음이 퍼져나가서 온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그런 리더로 서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리더가 되면, 제일 큰 축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나를 리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리더가 안되면, 자기를 절대로 리더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리더는 자기를 리더합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리더를 받습니다. 이것이 리더입니다. 늘 우중충하게 다니면서, 리더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자기 속에는 아무리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절대로 그런 모습이 안 나타납니다. 리더하는 사람은 그 인생자체가 평탄한 길로, 형통한 길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자기를 리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축복은 하나님은 리더를 곱하기 100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리더는 꽉 잡아주십니다. 아프지도 않습니다. 건강을 유지해서 안 아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꽉 잡아 주십니다. 리더는 실패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강권적으로 붙잡아 주셔서 형통하게 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빛이 되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리더가 되면, 만사가 형통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그것을 해주십니다. 그러니, 이 리더라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것을 꿈꾸면서, 우리 교회에 있는 분들은 전 교인이 다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리더는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에게 꿈꾸시는 꿈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런 꿈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생명의 세계, 이 복음을 정확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 사람들로 자라가야 우리 교회가 진짜 교회가 됩니다. 그렇지 않고, 복음을 어슬렁어슬렁하게 받으면 안됩니다. 복음을 받고, 예수 모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누가 못합니까? 우리 교회는 모든 분들이 새사람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 클리닉을 하면, 어딘가 어그러져 있고 이상하게 되어 있는 부분이 각각 다 있습니다. 영계의 내부적인 것을 뚫어나가면 그렇습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뚫어가지 못하면, 그 사람은 양육은 못합니다. 이것은 의대교육입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의학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하게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구원이 되는지, 그 세계와 인과 아웃을 정확하게 설정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들이 완전히 제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의학보다 더 세밀하고, 의학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에게 능력이 바로 나타납니다. 그 사람 속에 무엇을 어떻게 넣어주면, 그 사람이 딱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번 변하게 되면, 그 사람은 완전히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가고, 한 달만 지켜보면 그 사람은 영구적입니다. 받는 자리에 따라서, 그 사람이 일시적인 흥분이 되어서, 또는 좋은 것이니까 우선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가치를 잘 모르고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고, 한 달만 지나면, 그 사람이 진짜 그런 세계를 사모했고, 진짜 자기를 변화시키기를 원했고, 정말로 자기를 참되게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완전히 변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것을 해야 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에서 유일하게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다른 일하는 직분이나 이런 것은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구원하고, 생명을 키워 가는 이 사람들이 전도자들입니다. 목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흐름을 다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 교회를 해야 우리 교회가 진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주보든 그 어떤 교회 일이든지 간에,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해야 그 일들이 제대로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로 여러분들이 새로운 소망 속에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도록 힘써 노력해 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꿈꾸는 그 세계를 담은 자로서, 그 세계를 누군가에게 말하는 사람으로 커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농민이 살아야 이 나라가 삽니다/ 학1:5-6
농민이 살아야 이 나라가 삽니다 학1:5-6 지난 한주간은 참으로 바쁜 한 주간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에다 대심방에다 교회서 농사지은 무를 팔기위하여 동분서주하였고 어제까지 교인들 가정의 채 소를 팔아주느냐고 정신없이 다녔습니다. 마침 어제는 유석분권사님네 무를 들고 예산에 갔는데 3만원도 팔지못해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농부가 아닙니다. 전도사입니다. 그러나 이번 농사에 참여해보면서 도시사 람들은 모르는 농민의 아픈마음을 알았습니다. 항상 뒷북만치고 울음만 흘리고 손해만 보는 그 설움을 말입니다. 쌀값은 한푼도 않올랐고, 부배추값은 하나에 50원도않되고, 소값은 내년에 대폭락을 한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신세한 탄말 할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이렇게 어려울까요? 그 이유를 오 늘 말씀은 5절에 자기자신의 주위를 살펴보아 원인을 알아보라고 말하고 있습 니다. 이제 우리의 눈을 돌려 우리 농민의 형편과 우리의 어려움의 형편을 알 아봅시다. 1. 모든 것이 지나치게 풍부한 것이 흠입니다. 올해의 농사는 한 번의 태풍도불지않아서인지 대풍이었습니다 그러면 농민 도 좋고 사먹는 도시사람들도 좋고 이나라도 종와야 하는데 농민을 울고있습니 다. 차라리 흉년이 더나은 것 같습니다. 모든 먹을 것들이 지천에 널려있습니 다. 그래서 이나라사람들은 아까운줄을 모릅니다. 서울은 행복하게 음식쓰레기 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흥청망청 써댑니다. 도시의 소비물결이 이제 시 골에들어온지 오래입니다. 작년에 우리동네 사람 집들이를 갔더니 전부다 가전 제품이 외제라고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2. 장사꾼들의 농간도 흠입니다. 항상 농사를 잘지어도 농민들은 제값받기 여럽습니다. 가뜩이나 요즘 무하나 에도 100원 배추는 50원에 한답니다. 그런데 장사군들이 사가기만 하면 500원 이 되고 천원이 되는 요지경세상입니다. 죽어라 농사져도 100원받는데 하루만 에 백원짜리를 천원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중간상들입니다. 우리 농민들이 일한대로 대접받을 그때가 과연 언제있을까요? 3. 덩달아 춤추는 이나라 언론이 흠입니다. 테레비고 신문이고 채소값이떨어지자 신이난 듯 떠벌입니다. 싸다싸다고 하니 사람들이 깁장도 않합니다. 죽어라 농사지은 것을 제값도 못받는 것을 그것도 더깍을 려고합니다. 무100개에 만원도 않되는데 그것도 비싸다고 깍자고 합니 다. 지들은 광대처럼 떠벌이면 그만이지만 그로인해 고통받는 농민들의 아우 성은 귀담아듯지 않습니다., 무밭이 배추밭이 썩어들고 추워서 얼어가는데도 무 하나 배추하나 더먹자는 말은 하나도 없이 코메디 극에보면 탈랜트들이 배추김 장을 가지고 던지고 장난치는 모습을 볼 때 분노를 금할길이 없습니다. 4. 농민의 어려움을 모르는 이나라 정부와 부유층이 흠입니다. 도대체 이나라 정부관리는 뇌물먹기는 좋와하고 배추나 무 그리고 쌀먹기는 않 좋와하나봅니다. 비싸면 왜 비싼지 알아볼려고 하지도 않고 무조건 수입합니다. 지금 닭값이 병아리값인데도 수입품이 항구에 가득싸여있답니디. 소값이 떨어 지는데 소들이 냉장고에 가득차있답니다. 모든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따로따 로 만나면 선량들인데 모이면 하나같이 싸우느냐 정신없으니 한탕할 것 없나 정신없으니 이나라가 어디로 갈까 두렵습니다. 5. 우리 농민들이 바르게 살지않지 않는것도 문제입니다. 이나라 농민들은 술과 한탕주의에서 젖어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남자교인들도 다 술을 즐겨하니 문제입니다. 고분다리에 데모하러 간남자들은 이상하게도 다 얼큰하게 술에취해 있습니다. 술먹자고 가는것입니까?, 데모를 하자는것입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농사 기술만 자랑합니다. 자신의 힘만 믿습니다. 얼마전에 봉 산면에서 데모를 하는데 경찰이 오니까 다도망가버리고 트랙터 몰고온사람만 남더라는 얘기를 듣고 한참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지않고 경찰은 두 려워하니 웃을 노릇입니다. 하나님의 소리에는 관심도 두지않고 천년만년 살것 처럼 자신을 과장합니다. 하루하루 죄를 쌓아가고 자멸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이길을 걷는다면은 그결과가 바로 6절입 니다. 그 증거는 바로 멀리볼것이 아니라 바로 저북쪽의 북한을 보면 금방알 수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굶주림안에는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뇌물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되버렀습니다. 주먹구구로 농 사를 짓고 정치를 하고 이제는 배가고파 옆집의 식구까지 잡아먹는 지옥의 세 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무리 농사가 풍년이 되도 기쁨이 없는세상입니다. 더구 나 몇 년동안 계속해서 하늘의 진노가 내리고 있음을 봅니다. 북한을 동정만 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이렇게 나아간다면 머지않아 북한과같은 신세로 변하고 말것입니다. 결국 이모든 원인중 가장 큰원인은 바로 이나라 사람 모구가 죄를 밥먹듯이 짓기때문입니다. 너무나 죄에 둔감합니다. 하나님의 징벌을 아무렀지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큰 고통이 오기전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에게 돌아와야합니다. 바로살아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회개 해야만 합니다. 정치인도 바로서야합니다. 과소비도 버려야합 니다. 농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술과 한탕주의와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농사기술만 자랑하지말고 하나님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저 는 이번 무작업을 통해 아무리 기술이좋와도 기후가 좋지않으면 소용이없고 아 무리 좋은 열매를 내도 사먹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하루차이에 비오고 눈오고 값이변하고, 단하루차이에 와서 사먹고 아니면 건 들지도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알수있겠습니다. 그것은 엄연이 하나 님의 능력인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사리교우여러분! 앞으로 머지않아 2천년이 되면은 먹을 식량이 많은 나라가 큰소리치며 산답니 다. 세계곳곳에 굶어죽는 사람이 늘어난답니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린 다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침 지난주 어떤일이 생각납니다. 노인 이 무겁다고하여 골목길에 잠시 주차를하여 무를 내려주었습니다. 그사이에 어 떤 비싼 오토바이를 탄 50대 남자가 지나가다가 갑자기 씨발 장사해먹는 놈들 이 길을 막고그래! 하고 소리를 지르는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화가나 아저 씨는 무안먹고 삽니까? 하고 따졌던 일이 기억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쾌락을 위해 내일을 준비하지않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오늘 말씀처럼 나부터 먼저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의 지하며 살아야합니다. 내가 바로서야 우리 가족이 살고 우리교회가 살고 우리 마을이 바로 살고 더나아가 이나라가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나라가 됩니 다.. 남부터 먼저 하기 기다리기 전에 내가먼저 우리교인이 먼저 합시다. 이번 에 무를 팔아 수익금을 제하니 10만원가량이 남았습니다. 애초에 약속한데로 어려운이를 도와주는데 쓸려고합니다. 위해서 기도하십시요.네시작은 미약하나 네나중은 창대하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제라도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말고 열심히 주를 믿고 충성하여 하나님 잘믿고 축복받아 우리가정과 마 을살리는 귀한 여러분이 되길 노력합시다.
농부의 눈물과 신앙/ 시126:/ 2013-06-02
농부의 눈물과 신앙 시126: 이스라엘 유대 남방 지역(오늘의 네게브)에 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비만 제때 내려준다면 농사를 지어 근근이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가 가뭄 때문에 떠났을 정도로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파종기에 농부는 씨 뿌릴 준비를 하며 밭을 갈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치 못했습니다. 몇 해 계속된 가뭄이 올해도 이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비축해 두었던 곡식은 거의 바닥났습니다. 밭에 심으려고 아껴두었던 종자를 다 먹어도 올해 가뭄을 버틸 수 없었습니다. 종자를 심었다가 가뭄이 들면 가족들은 굶어 죽거나 노예로 팔려갈 것이고, 종자를 양식으로 먹어버리면 아예 수확할 것이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농부와 아내는 밤새도록 고민했습니다. 자식들이 굶어 죽거나 노예로 팔리는 것은 부모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기에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새벽 무렵, 부부가 내린 결정은 자신들의 눈에는 가망이 없어 보여도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서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은 캄캄하고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씨가 뿌려질 때 눈물도 함께 뿌려지고 나지막한 기도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여호와여 이곳 남방에 시내를 돌려보내소서.” 이 내용은 필자가 시편 126편의 배경을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해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편 126편을 읽으면서 5, 6절에만 집중하다보니 마치 땀 흘려 수고하는 자가 수고의 열매를 거둘 것이라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본 시편은 원래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로서 성전회복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동시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 후에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은 바벨론 이교문화와 우상으로 가득한 신전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왕이 볼모로 잡혀있는 그때에 나라와 성전의 재건은 꿈조차 꿀 수 없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차라리 바벨론 사람들과 동화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그들이 내린 결정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먼 타국 땅에서도 예루살렘 쪽을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성전은 없지만 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며 율법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결국 그렇게 고난 가운데 지켜낸 신앙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귀환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토록 만들었습니다. 불현듯 닥치는 고난이나 사건, 위기는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힘이 없는지를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평안할 때는 소망과 꿈이 있고 내 힘으로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인생의 커다란 고난을 접할 때마다 단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가?’ 분명한 것은 믿는 자들에게 있어 고난은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원솜니 목사(서울 올리브교회)
농부의 마음으로/ 고전3:1-9/ 추석설교
농부의 마음으로 고전3:1-9 오늘은 주님의 날이면서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중추절, 추석 입니다. 가을의 중간이요, 가을 의 맑은 하늘에서 달을 볼 수 있는 명절입니다. 우리 민족의 거의 절반인 2천만 명이 이동한다 고 합니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입니다. 열매를 따는 것처럼 기쁘고 흐뭇한 일은 없습니다. 오곡 백과를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 없습니다. 옛 사람은 춘화추실(春花秋實) 이란 말을 했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대질서요, 생명의 섭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농사하는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심었 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 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여름에는 거름을 주고 김을 매고 물을 주고 가꾸는 수고를 하면,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을 보는 흐뭇함이 있고 곡식을 추수 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농사는 사람이 하는 것 같지만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고 하 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농사는 사람과 하나님이 동역하는 것이라 고 말했 습니다. 사실 밭 갈고, 씨 뿌리고, 거름 주고, 김매고, 물 주는 것은 사람이 합니다. 그러나 씨 에서 움이 트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 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만 하더라도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 게 하기 위해서 농사하는 일에 대해서 말하면서 인생의 깊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농사하는 일뿐이겠습니까? 모든 일에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안되는 일이 없다. 고 옛 사람은 말했습니다. 이농심행 무불성사 (以農心行 無不成事) 라고 했습니다. 농(農)은 천하의 대본이요 만업의 근본입니다. 농사가 잘되어야 인심이 후해지고 국민의 얼굴 표정이 밝아집니다. 금년에 태풍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의 곡창인 호 남지역에 별 피해가 없었고 날씨가 좋아서 평년작이 넘는 수확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나라의 형편은 쌀을 자급자족하지 못해서 어떤 해엔 1천만 석의 쌀을 외국에서 수입해야만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농토를 확장하고 증수개발을 해서 우리 국민이 먹고도 남아서 북한에게까지 보내주어 나눠먹게 된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 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땀흘려 수고한 농부 들과 하나님께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농부의 마음을 배 워야 합니다. 농부의 마음으로 사업을 하면 천하에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1. 농부는 근면합니다.우리 국민 중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농부입니다. 쌀 한 알이 우리 밥상에 오르려면 농부의 손길이 적어도 백 번은 가야 한다고 합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김을 매고, 농약을 뿌려 벌레를 잡고, 추수하고, 방아 찧고, 가마니에 모두 넣어 도시로 운반해야 합니다. 쌀 한 알 한 알이 모두 피땀의 산물이요, 정성의 결과요, 노력의 결정 체입니다. 쌀은 하늘에서 저절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땅에서 혼자 솟아나는 것도 아닙니다. 농부들의 피와 땀의 소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적인 절약의 차원 이전에 농부의 피땀을 생각해서라도 쌀 한 알이라도 아껴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 밥상에 떨어진 밥알을 그냥 버리면 밥알이 소리지른다고 했습니다.그러므로 집에서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농부의 수고를 기억한다면 밥알 하나를 소홀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음식점에서 30% 정도가 쓰레기로 버려 진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사상가 루소는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하라. 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우 리 선조들의 생활 좌우명은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 번 참으면 집안에 큰 변화가 있다. 는 것이었습니다.항상 부지런한 사람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근면은 성공의 어 머니요, 나태는 실패의 근본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거미와 같은 착취형의 인생이요, 둘째 는 개미와 같은 근면형의 인생이요, 셋째는 꿀벌과 같은 봉사형의 인생입니다. 개미는 부지런하 게 일을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저축합니다. 여러분, 혹시 개미가 일하는 행렬을 보신 적이 있 습니까? 눈꼽만한 그 미물들이 수백 수천에 긴 대열을 지어 먹이를 운반하느라고 근근자자하게 분망하는 광경을 볼 때마다 우리는 생명의 놀라운 신비와 생의 강한 의지를 느끼고 숙연한 마음 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개미는 길에서 서로 마주치면 반드시 머리를 맞대고 말을 건네며 인사를 합니다. 좁쌀알만한 그 미물 속에도 오묘한 오장육부가 있고, 정확한 방향감각이 있고, 협동의 지혜가 있고, 자기의 생활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저는 가끔 시골에 가서 길을 가다가 개미의 행렬을 만나면 줄을 지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한참씩 들여다보곤 합니다. 보면 볼수록 신비하고 놀랍고 훌륭합니다. 우리는 개미한테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잠언 6장 6절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했습니다. 개미는 부지런합니다. 개미는 나태와 방탕을 모릅니다. 개미는 남을 해하지 않습니다. 내 노 력으로 내 생활을 건설하고,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자기의 노력으로 자기의 운명과 진로를 개척 해야 합니다. 이것이 존재의 근본원리입니다.이 땅 위의 만물을 보세요. 모두 자기의 힘으로 살 아갑니다. 풀과 나무도 제 힘으로 자라고, 새와 벌레도 제 힘으로 살아갑니다. 자주, 자립, 자 활은 우주만물의 근본법칙입니다. 우리는 남한테 의존하지 않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독립의 철학부터 배워야 합니다.독립과 고립은 다릅니다. 고립은 외톨이가 되어 외롭게 사는 것 입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독립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수출산업에 큰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술의 독립을 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가격경쟁에 큰 약점을 안고 있는 것입니 다. 독립하려면 먼저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독립할 능력이 없습니다. 부지런함은 만가지 선의 원천이요 게으름은 만가지 악의 근본이다. (일근천하무난사(日勤天下無難事)) 란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게으르니까 일이 어 려워지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그런데 개미는 생활 철학에는 한 계가 있습니다. 개미는 남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음과 동시에 남을 도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 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저축할 뿐입니다. 남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남 을 위한 봉사정신이 개미에게는 없습니다. 2. 농부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삽니다.농부가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은 자기만 먹고 살기 위 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식량을 위해서 입니다. 농부에겐 다른 사람을 이롭게하는 이타의 덕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높은 생의 차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꿀벌에게서 발견합니다. 꿀벌은 협동과 봉사의 정신이 가장 강한 곤충입니다. 꿀벌은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이기와 이타의 놀 라운 덕을 지니고 있습니다. 꿀벌은 여러 꽃을 찾아다니면서 부지런히 화분을 수집합니다. 그는 그 화분을 먹고 내가 사는 동시에 정교하고 감미로운 꿀을 만들어 인간에게 봉사합니다. 같은 풀잎의 이슬을 먹으면서도 독사는 무서운 독을 만들고 꿀벌은 맛있는 꿀을 만듭니다. 참 으로 놀라운 우주의 신비입니다. 꿀벌은 협동사회의 모델입니다. 일하는 벌은 일에만 전심하고 여왕벌은 여왕벌의 직책에만 전념합니다. 꿀벌은 근면의 천재요, 협동의 선수요, 봉사의 화신입 니다. 꿀벌은 우리에게 나도 살고 남도 사는 철학, 나도 이롭게하고 남도 이롭게하는 생활의 원 리, 서로 번영하는 공존공영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다섯 손가락을 꽉 쥐어야만 주 먹의 힘이 생깁니다. 시멘트와 모래와 물이 서로 협동할 때 쇠보다 강한 콘크리트가 생깁니다. 봉사는 인생의 최고의 행동입니다. 봉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위대한 사람입니다. 내 시간을 내 고 내 정성을 모으고 내 노력을 바쳐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봉사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개미형의 인간이 많아야 합니다. 일생일념의 정신을 가지고 자기의 일에 골몰 하고 몰두하고 전력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발전합니다. 일생동안 한 가지 일에 심 혈을 쏟고 정성을 기울이면 누구나 그 방면에서 대가가 되고, 선수가 되고, 권위자가 되고 일인 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꿀벌형의 인간이 더 위대합니다. 꿀벌은 꿀을 만들어 인간에게 봉 사합니다. 세상에 창조처럼 놀라운 것이 없고 봉사처럼 훌륭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중심의 생, 자기 위주의 유익과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생활을 하고 있 습니다. 그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 봉사입니다. 기업이나 사업을 하시는 분도 이 농부의 마음으 로 일해야 합니다. 이윤만 추구하여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는 멸시받아 야 할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자기 자신만 생각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의식 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도덕이요 윤리가 아닙니까? 장사에도 상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이 타락하면 상술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3. 농부는 정직합니다. 그리고 정성스럽습니다. 농사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는 일이 없고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는 일이 없습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나고 적게 심으면 적게 납니다.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아무것 도 나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가 없습 니다.농사는 자연을 상대로 합니다. 자연에는 추호도 거짓이 없습니다. 자연은 인간을 속이지 않습니다.나무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곡식이 우리를 속인 적이 있습니까? 흙이 우리를 속입니까? 자연은 정직합니다. 지난 주간 우리 집사님이 시작하는 기도처가 있는 강원도엘 다녀왔습니다. 그 산에 밤나무가 많았는데, 작년에는 미처 따기도 어려울 정도로 밤이 많이 열렸는데 금년에는 얼마 열리지 않았 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무도 한 해 힘껏 일했으면 그 다음 해엔 좀 쉬는 것입니다. 땅에는 자연비료인 퇴비를 주면 땅이 기름지고 좋아집니다. 물론 화학비료를 주면 당장은 힘이 들지 않 고 곡식을 많이 수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땅은 산성화되어 결국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연은 정직합니다. 이 우주에는 허위가 없습니다. 거짓이 없는 자연을 상대로 일 하는 농부는 정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거짓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농부처럼 자연의 정직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주신 말씀을 들어보세요.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곡식을 심고 일하는 대로 정성을 기울인만큼 곡식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정성입니다. 정성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밝은 빛이요, 아름다운 향기요, 숭고한 힘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기쁨을 주는 것은 정성입니다. 정성스러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어린 말씀과 행동은 우리의 생활을 훈훈하게 해 주고 우리의 정신을 즐거움으 로 채워줍니다. 정성없이 농사를 하면 곡식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남에게 속거나 배신을 당했을 때 우리는 인생을 저주하고 싶고, 살고 싶은 의욕 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배신과 절망으로 싸늘하게 얼어붙은 마음도 따뜻한 정성 앞에 는 저절로 녹아버리고 맙니다. 한문에 교사(巧詐)는 졸성(拙誠)만 못하다 는 말이 있습니다. 잘 하지만 꾀임수를 쓰는 것은 서투르면서 정성스러운 것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재간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얼마나 쏟느냐 하는 것을 찾으십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20대 청년시절 미국 농장에서 귤을 따는 노동을 했습니다. 그때도 그 분은 귤 한 개를 따도 자기 일처럼 정성껏 따라. 미국 과수원에서 귤 한 개를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 를 위하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외국인 과수원에서 품팔이 노동을 하면서 귤 한 개를 따더 라도 정성껏 따라는 것입니다. 정성의 반대는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나 성의 없이 되는 대로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되는 대로의 무책임한 성격이 되고 마는 것입 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종들아 모 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 게 하듯 하지 말라 정직과 정성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얼마나 필요합니까? 농사뿐이겠습니까? 모든 일이 그렇다 고 믿습니다. 우리가 모든 생활에서 농부의 정직과 정성을 배운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지 겠습니까? 우리 민족은 재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정성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과거에 역사적으 로 눌려만 살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나 되는 대로 하는 무책임과 무정성의 습관과 태도가 수십 년, 수백 년, 수천 년 쌓여서 오늘 우리 한국인의 생활 자세로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여러분, 이제라도 우리 나라를 구하는 길은, 우리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기고 잘 살 수 있 는 길은 국민 하나하나가 무슨 일을 하든지 정직하게, 정성스럽게 하는 마음과 습관과 능력을 기르는 일입니다. 사람은 요행으로 성공하거나 요행으로 잘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잘 살려면 잘 살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고, 행복하려면 행복해질만한 소지를 마련해야만 합니다. 그런 노 력을 하지 않고 행복과 번영을 바라는 것은 밥 먹지 않고 배불러 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 다. 농부의 마음으로 정직하게 삽시다. 농부의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입시다. 맹자는 지성에 동 하지 않는 자 없다 고 했습니다.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정직하게 살고 정성스러워질 때 행복의 태양이 환하게 우리를 비쳐줄 것을 믿습니다. 4. 농부는 순리대로 삽니다.밭에 씨앗을 심는다고 금방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씨를 뿌린 다음 움이 트고, 싹이 나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익을 때까지 기 다려야 합니다. 어린 묘목이 하루 아침에 정정한 거목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장과 성숙에는 반 드시 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은 순리대로 자라납니다. 세 상의 모든 일을 순리대로 해야 합니다. 역리대로 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리는 흥과 성의 원리요, 역리는 망과 패의 원리입니다. 농부는 결코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다릴 줄 압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일반적으로 매사에 너무 급합니다. 순리와 인 내로 기다릴 줄을 모릅니다. 만리장성을 하룻밤에 쌓을 수는 없습니다. 로마가 결코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갓난아기도 열 달이 되어야 세상에 태어납니다. 아무리 바빠도 기다려야 합니다.한 나라도 마찬 가지입니다. 갑자기 중진국이 되고, 선진국이 되고, 복지사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점 진적 발전의 길을 걷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기면서 점점 높은 단계에 올라가는 것이요, 작은 것이 수없이 모여서 서서히 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에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에 가서야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 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 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했습니다. 옛날 맹자의 말 가운데 있는 어느 제나라 사람은 곡식을 심어 놓고 빨리 크지 않으니까 너무 급해서 얼른 커서 열매를 맺으라고 하루는 아침에 나가서 전부 고개를 뽑아 놓았다고 합니다. 참아야합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순리입니다. 때가 올 때는 반드시 거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와 사람의 때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일에 당장 성과 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조급한 마음으로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여러 분, 이 세상을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농부처럼 부지런하게 살아갑시다. 농부처럼 정직하 게 살아갑시다. 농부처럼 순리대로 기다리며 살아갑시다. 그럴 때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줄을 믿습니다.
농부의 심장/ 약5:7-11
농부의 심장 /약5:7-11 2010-03-10 15:35:47 read : 1 요즈음 심장이 나쁘면 심장 이식 수술을 한다고 합니다. 돼지 심장을 사람에게 이식할 수 없을 가하고 연구중이라고 합니다. 누구의 심장을 가지고 사느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미국 크린턴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 때 나는 케네디처럼 행동하면서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 후 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크린턴은 케네디의 심장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케네디를 모델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어떤 모습을 모델로 하여야 할 가요? 야고보 사도는 믿음 생활은 농부의 심장을 가지고 살라고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그렇다 하는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정함을 면하리라>(약5;7-12) 그러면 농부의 심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가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한 마디로 농부의 심장을 말하라고 하면 <바라고, 참고, 기다립니다.> 1. 바라고 농부는 우선 씨앗을 심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바랍니다. 바람이 없이는 심지 않습니다. 봄에 아낌없이 뿌리면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을 바라는 것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바람의 근거는 소망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 용기 장로님이 늘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농부의 마음은 열매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가요?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예수님의 강림을 바라고 그 때까지 참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것이 정리됩니다. 그 날 모든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환란과 핍박중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가장 큰 바람이었습니다. 에밀 브루너는 말했습니다. <폐에 산소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 동생 찰스 웨슬리는 7,000개의 찬송가를 썼습니다. 그 중에 5,000개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내용으로 담았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주관했던 켄터베리 대주교는 왕관을 그 녀의 머리 위에 얹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오. 여왕 전하, 제가 이 왕관을 드리오니 마땅히 쓸 권리를 가지신 분이 돌아오실 때까지 전하께서 쓰시옵소서.> 유명한 칼럼니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세상은 무질서하고 위험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누가 질서를 회복시킬 것인가? 누가 핵 위험을 막아줄 수 있겠는가? 누가 에이즈와 우리 시대의 다른 전염병을 박멸시킬 수 있는가? 누가 홀로 세상을 통치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약속하셨고 어느 날엔가 완전히 그의 통치 아래 둘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믿음의 사람들이 해방되고 그들의 억울함이 신원될 것이다. 그때에 비그리스도인들은 왜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그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는지 이해할 것이다. 폭풍이 몰려온다.>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것을 정리하여 줄 것입니다. 마지막 정리가 주님의 재림입니다. 그 때를 바라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농부의 심장이 무엇입니가? 끝가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청량리 중앙교회 임 택진 목사는 상도동 어느 큰 교회로부터 초빙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의 마음 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장로님이 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큰 교회로 가시면 생활비를 많이 받으셔서 그렇습니까? 다음 달부터 생활비를 좀 올려 드릴 테니 떠나지 마십시오.> 이 때 임목사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소시장에 묶어놓은 소는 값을 부르는 사람 따라 값이 오르고 내리지요. 나는 소시장의 소는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큰 교회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하고 있는 교회가 큰 교회가 될 때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여 큰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농부의 심장은 바라는 것입니다. 2. 참고 농부의 두 번째 심장은 참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7-8) 농부는 씨를 심고 조금도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릴 것을 믿고 있습니다. 농부는 씨를 땅속에 심고 추수할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바울 사도는 말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8-9) 우리는 영적 농부입니다. 무엇이나 심고 때가 이르면 거둘 것을 기다리는 영적인 농부들입니다. 농부는 봄에 뿌리고 가을까지 기다립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 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4;26-29) 씨를 심고 싹이 나고 자라서 이삭이 되고 충실한 곡식이 될 때까지 농부는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농사의 비결은 오직 인내입니다. 진화론자 촬스 다윈은 어릴 적에 머리가 깨이지 않아 지진아였습니다. 의사인 아버지는 두 살 아래인 딸과 바꾸어 태어날 것을 잘못 하였다고 평하였습니다. 다윈은 어릴 적부터 조개껍질과 우표 그리고 돌멩이등 무엇인가 수집하는 수집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를 의사나 목사로 기르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다윈이 수집한 것들을 화가 나서 내다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불태워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윈이 실망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소녀의 격려때문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죽은 깨가 얼굴에 많고 별로 예쁘지 않은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다윈이 수집하는 것을 도와 주었습니다. 때로는 아버지 때문에 속상하여 울고 있을 때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였습니다. 다윈을 알아 준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이 작은 알아줌이 다윈이 진화론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칭찬하고 알아주는 것은 위대한 계기를 만들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격려하여 주고 사랑하여 주는 인내는 큰 인물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농부의 인내가 본받은 인내입니다. 지난 10일 우리가 살고 있는 광진구에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오후 4시 50분 경 64살 된 이 모씨가 개를 끌고 공원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개 목줄을 매지 않았습니다. 그 개가 똥을 쌌습니다. 그 옆을 지나던 남자가 말했습니다. <개 목줄을 매고 끌고 다녀. 똥 치워. 이 새끼야.> 50대 남자였습니다. 개 주인은 자기보다 나이가 작은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 것이 분하여 큰 소리로 다투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 남자는 150 미터 떨어진 집으로 가더니 낫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 새끼 어디 갔어?> 소리지를 때 옆에 47살 남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잘못 하였지요. 목줄도 안 매고 개를 끌고 나와 공원에 똥을 쌌는 데 거냥 갔잖아요?> 개 주인은 순간적으로 그 남자에게 달려 들어 낫으로 입을 찢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정말 참지 못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농부의 심장은 참는 것입니다. 3. 기다리라. 농부는 기다립니다. 기다림이 없는 농부는 농부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참고 기다린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많은 자손을 준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5년만에 이삭 겨우 아들 하나를 주셨습니다. 25년 기다려 겨우 씨앗 하나 생겼지만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민족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40살에 민족을 해방시키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급 사람을 죽여서 모래속에 파묻었습니다. 급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급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이 브엘쉐바를 떠날 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0년만에 축복을 주셨습니다. 기다림이 없이는 거둠이 없습니다. 내가 집회를 인도하면서 잊을 수 없는 집사님이 한분 계십니다. 모 교회 변 집사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딸만 셋을 낳았습니다. 그만 낳으려고 하였는 데 부모님들 극성에 하나를 더 낳기로 하였습니다. 네 번째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네 번째 아이를 낳는 날 산부인과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이다!> 이런 소리를 듣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들인 데 고추가 쏙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들인데 병신인가 보다.> 그리고 실망하여 있는 데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런 아이가 가끔 있을 수 있습니다. 수술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립니다. 3살이나 4살되면 데리고 오십시오. 약간 수술하면 됩니다.> 안심하고 길렀습니다. 4살이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가서 물어보니 100만원 정도 수술비가 들겠다고 하였습니다. 100만원을 꾸었습니다. 그 때 막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00만원을 장롱속에 넣어 두고 부흥회 마치면 수술하러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돈을 병원에 갖다 주지 말고 하나님께 헌금하면 하나님이 더 완벽하게 고쳐 주실 것이다.> 그래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예배시간 마다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흥회에 고침을 받지 못 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 왔습니다. <변집사! 지금까지 고침받지 못 하였지 앞으로도 고침받지 못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벽기도 계속하면서 기도하세요.>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제가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한 달 이자를 주었어요. 나는 새벽기도를 모르는 집사였어요. 그러나 부흥회 마치고 아들 고추 문제로 매일 새벽기도를 한번도 안 빠졌어요.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와서 이불을 들추고 팬티를 내리고 고추가 나왔나 안 나왔나 점검해 봐요. 그런데 한 달 되어도 안 나와요.> 그리고 하소연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 집사! 지금까지 안 나왔다는 것이지 내일도 안 나온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기다려요.> 내 이야기를 듣고 변 집사가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가난한 살림에 돈을 또 100만원 꿀 수가 없어요.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전화를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외쳤습니다. <변 집사 전화 끊지 말아.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어.> <무엇인 데요.> <변집사. 농부가 씨를 심어 놓고는 싹이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 조바심이 나서 매일 아침마다 흙을 파보면 싹이 나지 않아.> 변 집사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목사님!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3달이 지났습니다. 전화가 울렸습니다. 받았습니다. 변집사였습니다. <목사님! 나왔어요. 3달 만에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셨어요. 나는 목사님이 부흥회때 기도할 적에 왜 응답 못 받았는 지 알았어요. 그 때 고침을 받았으면 나는 새벽기도 성도가 되지 못 하였을 거예요. 만일 한 달만에 나왔으면 나는 새벽기도 하다가 중단하였을 거예요. 3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기도 하고 나니 이제 나는 완전히 새벽기도 집사가 되었어요. 이제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목사님! 선물 하나 보냈습니다. 받으세요.> <무슨 선물인데..> 나는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받아 보시면 알 것입니다.> 선물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선물이 왔습니다. 그는 표주박에 그림을 그리는 이였습니다. 표주박에 예수님이 양 떼를 몰고 가는 그림을 그리고 그 밑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들 고추를 고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지금도 변 집사 사건을 잊지 못 하고 있습니다. 농부의 심장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농부는 열매가 맺혀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떤 거지가 한 신사에게 와서 동정을 구하였습니다. 신사는 약간의 돈을 주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다시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사는 약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전에 당신에게 얼마를 주지 않았소? 나는 당신에게 동정을 베푸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고 싶지는 않소.> 그러나 그 거지는 물러가지 않고 뻔뻔 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나는 선생님을 아침 저녁으로 찾아 오려고 합니다. 선생님이 거절하시거나 거절하지 않으시거나 나와 관계 없습니다. 나는 부지런히 찾아 다닐 것입니다.> 그러자 신사가 말했습니다. <정 그렇다면 나는 당신의 출입을 막기 위해 항상 문을 잠가 두겠소.> 그런데도 거지는 물러가지 않고 신사를 빤히 쳐다 보면서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나는 아예 문이 잠기기 전에 들어와서 한 시간에 한번씩 선생님에게 조를 것입니다. 한 시간에 한번씩 오겠습니다. 나는 선생님에게 요구하는 것을 얻기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침내 신사는 그 거지의 추근거림에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항복하고 달라는 대로 조금씩 주었습니다. 농부는 열매 맺기까지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춥거나 덥거나 관계하지 않습니다. 열매까지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 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7-8) 농부의 심장은 바라고,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농부의 심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농부의 심정으로(2)/ 약5:7-11
농부의 심정으로(2)/약5:7-11 2004-06-19 12:07:40 read : 205 지난주일 이 시간에도“농부의 심정으로”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리면서 시간 관계상 다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심고 거두는 농사에 비유하여 교훈하신 말씀이 성경 여러 곳에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마태복음 13:3~23을 중심으로“농사하는 농부는 풍년을 기대하면서, 먼저 단단해진 땅을 갈아엎고 돌을 가려내며, 좋은 종자를 선별하여 심으며,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를 없애기 위해 열심히 김을 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외에도 풍년을 바라는 농부의 심정이 있습니다. 4. 농부의 심정은 시기에 민감합니다. 모든 농작물은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기에 적절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이른 봄에 뿌리는 씨앗이 있고, 늦은 봄에 뿌리는 씨앗이 있습니다. 여름에 뿌리는 씨앗이 있는가 하면, 찬 서리가 내리는 가을에 뿌리는 씨앗도 있습니다. 논에 심는 모내기의 경우 하루 이틀만 늦어도 성장과 수확에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심는 것만 아니라 거두는 데에도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름에 수확하는 밀 보리의 경우 장마가 오기 전 서둘러 수확을 해야 합니다. 가을에 거두는 벼는 서리가 오기 전 수확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양질의 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일의 경우도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기 전에 거둬들여야 합니다. 얼어버리면 못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든 농작물은 심는 시기와 거두는 시기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도서 3:1-2)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의 이치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에 때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15~16에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하셨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기회를 사라”는 뜻입니다.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 즉 기회를 후회함이 없는 것, 보람된 것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쉬 지나가는 기회를 사려면, 지혜와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시라큐스”지역에 이상하게 생긴 동상이 있습니다. 앞머리에 머리카락은 무성하고,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없어 반질반질 하며, 어깨에 있어야할 날개는 발에 붙어 있습니다. 이 동상 아래의 동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 “리스퍼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기회” 그대의 앞머리는 왜 무성한가? “내가 왔을 때 사람들이 빨리 잡을 수 있게 하려고” 그대의 뒷머리는 왜 반질반질한가? “한번 지나면 잡을 수 없게 하려고“ 그대의 날개는 왜 발에 달려있는가? “잽싸게 날아가려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곧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회에 민감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그 좋은 기회들을 놓쳐 버리고 후회를 남기게 될 것입니다. 매사에 때가 있습니다. 그 경우를 살펴보면? 첫째, 구원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하셨습니다. 구원을 받는 데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대홍수의 심판으로 온 천하가 멸망을 받았던 노아 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덮었고, 끊임없이 비가 내려 멸망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심판 이전, 100년간 준비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은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세월을 아끼며 하나님을 섬겼던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홍수심판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으로 멸망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롯의 처는 구원의 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을 받는 데에도 분명히 때가 있습니다. 구원의 문이 닫힐 날이 있습니다. “구원의 문 열렸으니 주의 공로 힘입어 주저 말고 들어가서 생명 길로 갑시다. 구원의 문 닫힌 후엔 들어가고 싶으나 한번 닫힌 구원의 문 또 열려지지 않으리“(253장) 구원의 문이 열렸을 때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주 앞으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내일 일을 아무도 모르는데도, 오늘과 동일할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인터넷 뉴스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느 중견 배우가 대학로에 있는 한 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마친 후 분장실에서 쓰러져 위독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회복을 바라는 글들을 올렸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아무도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내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3-14)하셨습니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은“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6-21)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분명한 시간과 기회는 오늘이며, 바로 지금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곧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문이 언제 닫힐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할 시기인 젊음도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하셨습니다. 노쇠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젊음의 때를 계절에 비유한다면 여름과 같습니다. 여름에 부지런히 일을 해야 가을의 열매가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일할 기회에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때를 놓치고 나면 일할 기회는 오지 않고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셋째, 기도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한 간구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쿨쿨 잠만 잤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당부하시기를“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0-41)하셨습니다. 기도해야 할 때에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생애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기도할 때를 놓치면 악한 영들이 득세하여 나를 짓누르게 됩니다. 악한 영들이 이끄는 데로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삶의 발자취는 부끄러움을 남기게 됩니다. 씻기 어려운 오점을 남기게 됩니다. 후회를 남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가리켜 악한 영과 싸우는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악한 영들과 힘써 싸워 이겨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8-9의 말씀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악한 영인 마귀와 대적하여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인간적인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악한 영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내가 하나님 품안에 거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시므로 나는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곧 예수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는 내 믿음의 농사를 풍년으로 이끄는 가장 소중한 방법입니다. 5. 농부는 오래 기다립니다. 모든 농작물은 하룻밤 사이에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땀 흘려 일하되 결실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8절에“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농부는 인내의 상징입니다. 이른 봄 씨를 뿌리되 가을까지 기다립니다. 어떤 농작물은 여러 해를 기다립니다. 인삼의 경우 3년 근이라면, 3년을 기다린 것입니다. 6년 근이라면, 6년을 기다리며 인삼을 가꾸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때로는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메마릅니다. 때로는 장마가 져서 농작물에 피해를 줍니다. 때로는 병충해가 농작물을 해칩니다. 그러나 농부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농작물을 위해 온갖 지혜와 노력을 다 기울입니다. 이러한 인내의 과정을 거친 농부만이 풍년의 웃음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흔히 인스턴트 시대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교통수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속 전철 시대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옛날에는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한양까지 오려면 2~3개월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이제는 고속전철이 개통되면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됩니다. 통신 수단도 만찬 가지입니다. 광케이블을 이용한 인터넷을 보시기 바랍니다.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이 사람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노래를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빠른지 도무지 노랫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예배 시간에 부르는 찬송가까지 느린 것은 싫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이 조급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하루해의 길이는 변함이 없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잉태하여 출산하기까지의 10개월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는 변함이 없습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때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때에 맞춰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갈 길을 가다가 다가지 못했다 하여 저무는 해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발걸음을 빨리하는 것만이 우리들의 할일입니다. 농부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하여 바뀌는 계절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일손을 빨리 움직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풍년을 가져왔던 앞서간 신앙인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홍수의 심판을 이기고 기족과 더불어 구원을 받은 노아는 100년간 기다리며 방주를 예비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처가살이로 40년 동안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얻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이루시기까지 20년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13년 동안 모진 고난과 억울함을 참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환란에도 낙심하지 말며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되 응답의 시기는 하나님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개인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을 이해하기보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에게는 남을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이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은 원수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마음과는 거리가 너무도 멉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이처럼 차가워질 것을 하나님은 성경은 예언하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 3:1~4)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정확하게 이루어진 악한 시대 속에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향해 본문 11절에 권면하시기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매사에 인내하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큰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삶의 풍년을 소망하신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영국의 조지 왕이 한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공장을 시찰하는 길목에 두개의 꽃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보기에 도자기답게 윤기가 났습니다. 그 도자기는 생동감이 넘치고, 예술품다웠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는 보기에 볼 폼이 없을 뿐 아니라 색상조차 흐리고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조지 왕이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이 도자기는 이렇게 윤기가 나는데 저 도자기는 왜 저렇게 볼 폼이 없습니까?”이 물음에 안내자가 대답하기를 “이 윤기 나는 도자기는 불에 구워졌기 때문이고, 저 도자기는 아직 불속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윤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 도자기도 불속에 들어가서 구워지게 되면 이와 같이 윤기가 나게 되지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연단과 인내는 물건이나 사람을 세련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내하는 것은 신앙농사에 있어서 풍년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임산부는 열 달을 기다려야 하고, 갓난아기는 소년 되기를 기다려야 하고,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사원은 승진할 때까지 다려야 하고, 젊은 부부는 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절약하여 저축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어느 분야이든 성숙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은 최강의 정복자이며, 삶의 승리로 연결되는 긴 파이프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름날 시원한 그늘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매미의 낭만은 굼벵이로 땅속에서 6년 동안 인내한 후에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17년 매미”라는 이름의 매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 매미는 17년 동안이나 캄캄한 땅속에서 굼벵이로 살아야만 비로소 매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매미의 유충인 굼벵이는 나무뿌리의 수액을 빨아먹고 사는데, 물을 너무 많아 빨아먹으면 나무가 말라 죽게 됩니다. 나무가 죽으면 굼벵이도 죽게 되므로 나무가 죽지 않을 정도로 수액을 먹으면서 17년 동안을 참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매미의 수명은 겨우 한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한달을 위해 어떤 매미는 6년을, 어떤 매미는 17년을 캄캄한 땅속에서 때를 기다립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겠습니까? 인내에 인내를 거듭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 30:18)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7절~8절에 말씀하시기를“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하셨습니다. 풍년을 기대하는 농부는 시기에 민감합니다. 씨앗을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도 때가 있습니다. 구원의 문이 열려 있을 때가 있고, 닫힐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악한 영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젊음의 날 헌신할 때가 있고, 그러한 기회가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 하셨습니다. 또한 풍년을 기대하는 농부는 기다립니다. 이른 봄부터 씨를 뿌리되 찬바람 부는 가을까지 기다립니다. 대지가 타들어가는 가뭄의 때에도 농부는 포기하지 않고 우물을 파서 물을 끌어 올립니다. 장마에도 낙심하지 않고 농작물을 돌봅니다. 풍년은 인내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도 이와 똑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되 응답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헌신하되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순종하되 순종에 대한 약속을 이루어 주시는 날까지 하나님이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때에 민감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농부의 심정으로/ 마13:3-23
농부의 심정으로 마13:3-23 성경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곡식을 심고 거두는 농사에 비유하여 교훈하신 말씀이 여러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도 그 한부분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경작지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씨앗에, 신앙생활은 곡식을 가꾸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농사를 잘 지어 풍년을 맞이한 농부의 표정을 한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 땀 흘려 농사를 지을 때에는 힘이 들었지만 풍년을 맞이한 농부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넉넉한 생활이 보장됩니다. 추운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풍년을 맞이한 농부의 마음은 넉넉하여 인심이 후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아가는 신앙생활은 좁을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열락들을 함께 즐기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때로는 모진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려면 힘이 들고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 승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임하게 됩니다. 이 진리를 깊이 깨달은 바울사도는 성경에 기록하기를“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농부의 심정으로, 내 마음에 심겨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진리의 씨앗을 잘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풍년을 기대하며 곡식을 가꾸는 농부의 심정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Ⅰ. 농부는 먼저 묵은 땅을 기경합니다. 모든 농사는 땅을 갈아엎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이 되면 농부는 쟁기를 들고 논밭에 나가 묵은 땅을 갈아엎습니다. 그리고 돌들을 가려냅니다. 이는 모두 곡식을 심어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지 않은 상태에서 씨앗을 뿌린 경우에 대하여 본문 3절-6절에 말씀하시기를“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하셨습니다. 땅을 갈아엎지 아니한 단단한 길가의 땅에 씨앗을 뿌렸지만 땅속에 묻혀지지 않으므로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습니다. 돌을 가려내지 아니한 돌밭에는 씨앗을 심어도 싹은 나지만 흙이 얕아 곧 말라지고 결실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길가와 같다는 것은 굳은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 단단해진 땅을 가리킵니다. 농촌에는 이런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나있는 길이 있지만 지름길로 가기 위해 논이나 밭 가운데를 밟고 다닙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리는 반질반질 하게 굳어지고 마는데 이런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씨앗을 뿌린들 결실은 기대하기 어려운 땅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땅, 굳은 땅, 닫힌 땅, 닫혀진 마음, 굳은 마음, 고집스러운 마음, 교만한 마음을 가리켜 길가와 같은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길가와 같이 단단하게 굳어져 진리의 씨앗인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대한 과신, 또는 기독교에 대한 편견, 그리고 지난날의 습관들이 사람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 땅위에 살고 있는 뭇 사람들의 마음 밭을 밟고 가서 굳어지게 한 요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의 발자국이 천년간 밟았습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 윤회설에 의한 운명론입니다. 유교가 오백년간 밟았습니다. 효도하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지만 이것이 도에 지나쳐 풍수지리설까지 동원되어 전국의 산야를 황폐하게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천 년간 허무맹랑한 미신이 우리들의 마음을 밟았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나라 운전자 가운데 80%이상이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교통사고는 세계1위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씨앗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 요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평생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모시고 살기로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단단한 길가 같은 마음을 파헤쳐 부드럽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돌밭이 있습니다. 돌밭이란, 팔레스틴에서 매우 흔한 지형으로 석회석 지층위에 얇은 지층이 형성되어 있어서 바위의 온기에 의해 쉽게 싹이 납니다. 그러나 흙이 깊지 않으므로 계속 성장하지 못하고 곧 말라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본문 20절-21절의 말씀에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얼마 못가서 곧 낙심하며 포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받고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옳은 말씀, 좋은 말씀”이라 인정을 합니다. 저 말씀처럼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도덕적인 인정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 없습니다. 이 세상만이 아닌 하늘나라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소망이 없이 이 땅의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곡식에 비유하면 뿌리가 깊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핍박이 있을 때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유일하게 한국교회에만 있는 부끄러운 제도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학습이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주기 전 6개월을 다렸다가 그때까지 믿음이 변치 않으면 세례를 베푸는 제도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겠다는 사람에게는 즉석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선교사들이 한국 교인들을 얼마나 변덕쟁이로 보았으면 이러한 제도를 만들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굳은 마음으로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믿음의 뿌리가 깊이 박히도록 말씀과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마음 밭이 좋은 옥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 10:12)하셨습니다. Ⅱ. 좋은 종자를 심습니다. 종자 선택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다 행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한다 하여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행복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조건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어떤 종교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어떤 사람과 일생을 함께 하느냐하는 배우자 선택입니다. 셋째,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직업의 선택입니다. 이 세 가지가 다 소중한 것이지만 첫째가 종교의 선택입니다. 이것은 영혼의 문제로 우리들의 육신세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후의 세계까지 관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입니다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 여러 가지 씨앗의 종교를 심어보았습니다. 수천 년간 미신을 숭상했습니다. 불교를 천년간 심어보았습니다. 유교를 오백년간 심어보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유물론 사상인 공산주의를 칠십년이 넘도록 심어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한번도 끼니해결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100여전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씨앗이 심겨졌습니다.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이 울려 퍼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 수가 인구의 25%에 달합니다. 지금의 우리나라의 위상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약속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1-6)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사람을 종자에 비유하여 로마서 11:17에“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하셨습니다. 감람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흔한 돌감나무인 고염나무와 감나무를 비유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염나무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가도 고염나무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가꾸어도 고염열매 밖에 맺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종자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은 열매를 맺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좋은 종자인 감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접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지에는 탐스러운 감이 가지가 휘어지도록 굵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곧 참 생명의 씨앗, 참된 복의 씨앗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는 모두 마음 밭에 이 참된 생명의 씨앗을 심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20 말씀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 깊은 곳에 영접하여 모시고 정성을 다해 섬기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 참된 행복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Ⅲ. 잘 가꿉니다. 좋은 땅에 좋은 종자를 심었다하여 저절로 풍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성을 다해 잘 가꾸어야만 합니다. 곡식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본문 22절에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땅이 좋고 종자가 좋아도 잡초를 뽑아주고 잘 가꾸지 않으면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옥토에 좋은 씨앗을 심었다 할지라도 잡초를 뽑아내지 않으면 영양분을 빼앗겨 곡식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그 무더운 뙤약볕 논밭에서 땀을 흘리며 김을 맵니다. 요즘 같으면 제초제가 있어서 쉽겠지만 옛날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김매기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밭도 마찬가지로 잡초가 끊임없이 돋아납니다. 마음 밭에 심겨진 그리스도를 섬기는 생명의 씨앗의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는 무엇일까요? 이를 가리켜 본문에는 염려라고 했습니다. 염려 즉 근심 걱정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하셨는데, 염려는 우리들의 마음에 기쁨을 빼앗아갑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하셨는데, 염려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하는 마음을 사라지게 할뿐만 아니라 도리어 원망과 불평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염려와 금심은 소망을 사라지게 하며 끝내 낙망하게 합니다. 이렇게 하여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자 다짐했던 믿음은 사라지고 의심으로 가득하게 합니다. 마침내 하나님을 떠나 이방종교 즉 우상숭배에 이르게 합니다. 심리학자(노먼 빈센트 필 박사)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걱정 중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사건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닌 작은 것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진짜 사건에 대한 걱정이 4%, 결국 사람들은 96%의 쓸데없는 걱정 때문에 기쁨도, 웃음도, 감사도, 평안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그러므로 염려는 곡식의 잡초와 같습니다. 반드시 마음속에서 뽑아내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염려에 대한 해결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1-34절 말씀에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하셨습니다. 또한 염려와 근심 걱정의 해결 방법으로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4에는“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하셨습니다. 주님께 기도함이 염려와 근심의 해결책임을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을 해결하는 기도에 대한 진리를 깊이 깨달은 한 성도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죄 짐 맡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근심걱정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한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또 한 가지 마음 밭의 잡초는 재리의 유혹이라 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유혹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 돈입니다. 약 육천 년 전 사탄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이 물질의 유혹으로 넘어지게 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지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맡고 있습니다. 모두가 물질로 인한 일들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하셨습니다. 물질의 유혹은 이처럼 마음 밭의 생명의 곡식을 자라나지 못하도록 하는 무서운 잡초입니다. 이러한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을 잘 공경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풍성한 물질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4:9-10)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씨앗입니다. 행복의 씨앗입니다. 성공의 씨앗입니다. 이 고귀한 진리의 씨앗을 좋은 마음 밭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길가 밭같이 굳은 마음에는 심겨지지 않습니다. 돌밭 같이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하면 싹은 나지만 곧 말라지고 맙니다. 옥토라 할지라도 부지런히 김을 매지 않으면 결실하지 못합니다. 땅을 갈아엎고 돌을 가려내며, 부지런히 김을 매며 곡식을 가꾸는 농부의 심정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진리의 씨앗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의 열매, 승리의 열매, 행복의 열매를 거두는 복된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농부의 인내를 배우라/ 약5:7-11/ 2005-08-24
농부의 인내를 배우라 약5:7-11 흔히들 오늘 우리가 사는 세대를 일컬어 비인간화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현대는 과학 기술의 시대요, 참으로 편리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성을 상실한 크나큰 슬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대단히 희한한 것을 보면서 옛날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못보고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오늘의 이 시대는 고귀한 인간성을 파괴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인간 존재 그 자체에 위협을 느끼는 그러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영어로 쓰리 아이(three I)가 문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I)자로 시작되는 세 단어를 두고 하는 말인데, 첫째가 아이큐(I.Q.), 둘째가 인더스트리(industry), 그리고 셋째는 인스턴트(instant)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들 세 단어가 문제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첫째 아이 큐란 지능지수를 말하는 것인데 아이큐와 창의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아이 큐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그 시험도 대체로 아이 큐 테스트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거기에다 점수를 주는데, 사실 이것으로 인해 사람을 평가한다고 하는 것은 극히 잘못된 평가입니다. 천천히 깊이 생각하고, 오래 생각하는 거기에 창의도 있고, 능력도 있으며, 지혜도, 발명도 있는 것입니다.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머리가 돌아간다고 하여 그것이 좋은 머리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기에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성과 인간됨과, 인간의 도덕성은 무시당하고 오직 머리 회전만 인정받는 그런 시대로 전락하고 있다는 걱정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공업(industry)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공업화하고 하는 것이 결국에 와서는 자연을 파괴하였고, 생태계까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 세게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나라 어린이들에 비해 기계 문명이 발달한 미국의 어린이들은 대체로 암산력이 부족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저들은 계산기만 믿기 때문입니다. 그저 손으로 꾹꾹 찍는 것만 알았지 머리로 헤아릴 줄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교포 아이들이 미국으로 처음 이민을 가게 되면 말은 한 마디 못하면서도 수학은 전부 만점을 받아 수학은 천재라는 말을 보통 듣게 됩니다. 이런 결과는 계산기만 믿고 그것을 사용하는 동안에 사람의 암기력이나 계산 능력 같은 것이 점점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정신력의 빈곤, 정신 세계에 대한 무관심, 이러한 것들이 오늘 이 세대에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마지막 또 하나의 문제는 인스턴트의 대용품입니다. 인스턴트 때문에 진실을 잃어버립니다. 정성도 기다림도 사라져 갑니다. 가짜에 밀려서 진짜가 무색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조화를 잘 만들었는지 이제는 진짜 꽃을 보고도 저것이 조화가 아니냐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들이 다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무엇이나 급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재촉! 그것이 공통점입니다. 이제는 사람을 찾아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을 찾고, 인스턴트라고 해서 3분 라면이라 하더니 요즈음은 1분 라면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보다 빨리 먹겠다는 것이지요만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날 마님들은 바가지에다 쌀을 일어서 돌을 고른 후에 솥에 안치고 불을 지펴 익히고, 다시 뜸을 들여야 먹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끓인 물만 부어도 먹게 되어 있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전자자다, 압력솥이다 해서 무엇이든지 삽시간에 처리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거기에 문제가 많더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점점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음식을 안쳐 놓고 기다리는 그만한 인내도 없다는 말입니다. 농부의 인내는 고사하고 음식 끓는 그 시간을 못 참아서 1분 라면만 찾으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것에서 인간성은 점점 없어지고, 소위 정성이라고 하는 것과 사랑이라고 하는 그 정신적 의미는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우리는 인내가 없는 세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유서라고도 하는 편지인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의 인간 특성을 여러 가지로 열거하는 중에 특별히 인간성에 대해서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사납고 포악해지겠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조급하며 급한 마음들이 되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사실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농부의 인내를 말하고 있습니다. 농부처럼 기다리라! 농부로부터 인내를 배우라! 그런데 이제는 그 농부도 문제입니다. 이는 왜냐하면 비닐하우스라고 하는 것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여름 음식을 먹고, 겨울에는 겨울 음식을 먹었으면 되겠는데 겨울에 여름 것을 먹겠다고 비닐하우스를 만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겨울에도 다양한 과일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까지는 좋았지만 제가 경험하는 대로는 계절의 진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농촌에서 자랄 때에 보면 봄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일 먼저 먹는 것이 감자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이, 수박, 옥수수 이런 식으로 하여 가을이 되면 감을 먹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차례 차례 먹었으면 좋겠는데 이것을 단번에 먹어버리겠다고 하는 동안에 입맛도 다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것을 먹는 재미도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계절에 대한 기다림도 없어지고, 계절에 대한 감각조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조금은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할 말을 잃게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에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니는 한 꼬마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치룬 시험지를 들고 왔는데 보니 다 맞았는데 한 문제가 틀려 있었습니다. 이에 그 어머니가 어떤 문제였기에 틀렸나 하고 자세히 보니 수박은 어느 계절의 과일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이는 그 답으로 겨울에다 O표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어째서냐고 물어 보았더니 우리 집 냉장고에는 겨울에도 수박이 있지 않습니까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겨울에는 여름처럼 살겠다 하여 감기가 들고 여름에는 겨울처럼 살겠다 하여 에어컨을 달아 찬 공기를 만듭니다만 이것 때문에 몸뚱이가 말썽입니다. 겨울은 춥게 살고 여름은 덥게 사는 그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거꾸로 만들어 놓고 살겠다 하니 우선은 편리한 것 같지만 그것으로 인해 체질이 약해졌음은 물론 인간성도 약해지고, 마침내는 인간 상실의 위기에까지 왔습니다. 체질에서 성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변질되었습니다. 기다림이 없는 인간, 변질된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대단히 슬픈 이야기입니다. 하나를 얻고 둘을 잃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얻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실하였습니다.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순간적인 것을 얻고 영원한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현상을 얻고 근본적인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물질을 얻고 인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잃어버린 인간! 어디서부터 잃어 버렸는지 그쪽으로 다시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인내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인내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격자라고 하는 것도 인내에 있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는 자는 인격자가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여 그것으로 인격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얼마나 참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인내가 그 사람의 인간성을 결정하고 맙니다. 자! 이제 어디로부터 인간 됨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귀한 말씀들이 많이 있으나 구절 구절을 다 해석해 드리지 못하고 그 요점만을 거들어 드립니다. 먼저 인내하되 그 한계는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대단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1년, 2년이 아니라 주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참으로, 끝까지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에 우리가 부부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나오는 소리가 10년을 두고 참았는데하고 대듭니다. 하지만 그 말을 안 했어야 참은 것이지, 이제 그 말을 하고서는 참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벼른 것입니다.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참으라!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참으라! 그런데 멀지 않았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주께서 가까우니라고 하셨습니다. 문밖에 서서 계시느니라! 별로 오래 참을 것도 없어요,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그때까지 참으라! 그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땀 흘려 수고하며 하늘을 쳐다봅니다. 비가 와야 합니다. 햇볕이 나야 합니다. 우리가 수고하되 위로 주시는 축복, 위로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려야지요. 이것이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어디 내 수고대로 다 되는 것입니까 내 계획대로 다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내 할 본분을 다하고 이제는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누구 탓, 누구 때문이라는 원망이 없어야 심판을 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선지자, 많은 주의 종들이 다 참았습니다. 여러분! 진정 인내가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성경을 읽으세요. 성경에서 인내의 교훈을 찾으세요. 욥기를 읽고, 에스겔서를 보고, 다니엘서를 보세요. 성경을 읽으면서 옛 믿음의 조상들이 얼마나 참았는가를 발견하고 그리고 본을 삼아 길이 참는 자가 되라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3절에 보면 인내의 결정적인 모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 예수를 배반한 자를 끝까지 참아 주신 그 예수를 생각하라! 나를 참아 주신 예수를 생각하라! 바로 여기에서 인내를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말씀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하는 말씀입니다. 이는 주께서 마지막 결말을 해피 엔드(happy end)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 그것을 보고 나도 그러한 결말을 얻게 될 줄로 믿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계십니다. 이제 잘 살고, 못 살고 하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건강하고 병들고의 문제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어떻게, 얼마만큼 참나 하는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참는 그 모습을 보십시다. 울고 있는지 한을 품고 있는지, 이를 갈고 있는지, 아니면 온유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참는 모습을 유심히 보십니다. 그리고 주께서 결말을 맺어 주십니다. 그런고로 믿음으로 온유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감사함으로 주께서 주시는 결말을 볼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길이 참으라! 그러면 이제 어떻게 참아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먼저는 생각에 있어서 인내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너무 빠른 은 내리지 맙시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다 부족하기 때문에 완전한 이해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보아도 완전치 못하다면 남의 말 듣고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우리가 안다는 것은 지극히 부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도 불완전한데 내가 남을 아는 것이야 어떻게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나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별히 남에게 대해서는 판단을 중지하여야 합니다. 어쨌든 너무 속단을 내려서는 아니 됩니다. 마태복음 1장 19절에 보면 예수께서 탄생하신 기사를 중심한 내용으로 흔히들 슬쩍 지나치고 맙니다만 자세히 읽어보면 정말 놀랄 만한 사건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요셉이라는 총각이 마리아라고 하는 고운 아가씨와 정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약혼한 사이인데 얼마 후 소식이 들려오기를 이 약혼녀인 마리아가 임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니 요셉은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으면 이 정도 되었으면 걱정할 것도 없이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그는 가만히 생각하였습니다. 내 약혼녀 마리아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게 임신을 하였다면 아마도 피치 못할 무슨 일이 있겠지 하고 가만히 혼자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만약 이 일을 발설하게 되면 그는 돌에 맞아 죽게 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요셉은 무슨 이유가 있겠지 생각을 하고 조용히 끊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 의인입니다. 이제 생각을 좀 조용히 하세요. 그렇게 너무 급하게 판단하지 말 것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기도 중에 생각하고, 뜻을 생각하며 저 미래로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4장 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곧 결정적인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빨리 결정적인 말을 많이 합니다.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큰 잘못입니다. 간혹 어떤 경우에 저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누가 하더라면서 전해 주는 분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고자질이지요. 그럴 때면 제가 그 분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요하면 아니에요 제가 너무 분해서 왔습니다하고 흥분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제가 분하면 혼자 분하시지, 나까지 분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 소식 제가 모르면 그 사람 옛날처럼 잘 대할 수 있는데, 제가 성자가 아닙니다. 모르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것을 당신이 말했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할 때 힘이 듭니다. 왜 쓸데없는 일을 하셨어요라고 이야기해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이 그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겠지, 내가 미워서 한 것도 아니고 나와 잘못된 관계도 아닌데 하고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변명하지 마세요. 세상에 남의 말을 바로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바로 들을 수 있는 것입니까 바로 전할 수 있는 것입니까 생각을 늦추세요. 다 알기도 전, 상황 판단을 하지도 못한 채 흥분부터 미리하지 마세요. 생각하는 자체에 인내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에 복과 저주를 너무 쉽게 말하지 마세요. 복받았느니, 저주 받았느니, 행복하다느니, 불행하다느니, 두고 보아야 알 일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생각에 있어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한 말에 있어서 인내하여야 하겠습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보면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전도서 5장 2절에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말을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에 모세가 견디지 못하여 패역한 너희여라고 저주를 합니다. 이를 지적하여 시편 기자는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시 106:33)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것이 결정적인 죄가 되어서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맙니다. 말실수를 한 것입니다. 급하게 말하지 마세요. 축복도 저주도 말이니까 말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 중에 제게 말하기를 목사님! 이 세계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큰일났습니다 하고는 하는데 그 사람이 그 소리하는 지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큰일 가지고 살았지, 언제는 편했던가 말입니다. 어느 때 보면 당장 오늘이 끝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그러한 것은 없습니다. 20년전 신문을 보세요.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나 오늘이나 매양 그렇게 살아 왔어요. 이만하면 훌륭한 것이지 무슨 딴 소리 할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 너무 그렇게 아는 척도 하지 말고 속단도 하지 말며 더욱이 절망하는 말을 하지 맙시다. 망한다, 망한다 하면 정말 망합니다. 그것이 다 저주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속단은 금물입니다. 참으로 말조심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좀 서서히 행동하여야 하겠습니다. 제가 지난 정월 미국에 갔을 때에 눈이 많이 왔었습니다. 마침 워싱톤 거리를 자동차를 타고 가게 되었는데 눈이 많이 쌓였기 때문에 차들이 막혀 제대로 가지를 못하고 이삼십분씩 기다리며 거북이 걸음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저를 태우고 가던 목사님이 클락숀을 빵빵거리기 시작하는데 가만히 두고 보다가 나중에는 정 안되겠어요. 그래서 제 후배가 되기도 하고 제자이기도 하기에 김 목사, 여기 빵빵거리는 사람, 어느 나라 사람인지 한번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전부 한국 사람이군요! 합니다. 다시 제가 그것을 좀 생각해야지, 그렇다고 빨리 가지는 것도 아닌데 유달리 조급해! 안 그러나고 했더니 그 김 목사 말이 내 일생 동안 클락숀 누르지 않겠습니다하고 아예 맹세를 했습니다. 정말 유달리 그렇게 조급합니다. 하지만 그것 쓸데없는 짓입니다. 그래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의 운전 13년의 무사고 비결은 느긋한 것입니다. 급하게 서두르다가는 아주 급하게 가고 맙니다. 서두른다고 안 될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될 일이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잊지 마세요. 행동을 조금 늦추십시다. 우리는 급하게 서둘러 바로 행동하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겠지요. 반면에 느리고 더디하면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좀 어리석은 사람이 되십시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앙이요 인격이니까 말입니다. 굳이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 행동의 너무도 조급함! 그것을 제거하여야 하겠습니다. 인내는 소망의 소신입니다. 미래가 보장되고 이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주의 강림을 믿고 주께서 주시는 결말을 보고 따라가는 자는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자의 인내는 지옥의 고통입니다. 시간적인 유한의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데에 인내 외에 무엇이 또 있겠습니까 알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길을 모르면서 따라가는 우리가 이 인내 외에 무슨 다른 길로 따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8정 25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으로 기다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참음으로, 무던히 기다려 보십시다. 급하게 판단하지도 말고, 급하게 말하지도 말고, 급하게 행동하지도 말고 주님을 기다리듯이 온유한 마음으로 기다립시다. 인내하여 인격을 회복하고, 인내하여 신앙의 사람이 되고, 인내하여 후회 없는 생을 삽시다. 이미 큰 성공은 못했어요. 이제 참지 못한 후회는 이상 더 하지 맙시다. 이제는 인내하여 힘있는 자가 되고 그로 인해 영광된 생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침내 주께서 아름답고 귀한 결말을 주실 것입니다. 그 인내 위에 하나님께서 크신 축복과, 크신 위로를 더하실 것입니다. 참는 뒤에는 결코 후회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참는 일은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참은 일은 그리스도께서 보상하십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참은 인내는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기도 자비하신 주님! 작은 참을성도 갖지 못한 저희들을 용납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참을성이 없기에 해서는 안 될 말을 함부로 하며, 해서는 아니될 행동도 마구 하였사옵고 그리고 또한 후회하는 미련한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이제는 믿음 위에 인내의 덕을 더하게 하시어 길이 참아 주의 약속을 받으며, 주의 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주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결말을 보게 해주시옵소서. 저희 모두가 주 앞에 서는 그 날까지 온전히 참을 수 있어서 주의 약속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제병모 목사
농부의 정신으로/ 갈6:7-10
농부의 정신으로/갈6:7-10 2007-03-03 13:46:59 read : 82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은 제가 신학 대학에 다닐 때에 공부하는 것이 재미없어서 1년 동안 쉬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학 공부가 생각처럼 재미없더라구요. 하나님을 삶에서 만나는 것은 재미있는데,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니까 영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 고민 고민하다가 휴학을 했습니다. 학교를 쉬니까 할 것이 있어야지요. 형님이 계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와서 살 줄을 알았더라면 영어나 많이 배워 두는 건데, 그 때는 미국에 가서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을 때거든요. 저는 농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씨앗을 물에 불려서 땅에 뿌리는데 그러면 싹이 트잖아요. 그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꼭 아가들 피부 같아요. 그 파릇파릇한 싹이 자라면 시집을 보낸다고 그래요. 그걸 옮겨 심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기도 하고 약도 쳐주고, 그러다 보면 가을에 열매를 거두게 되는데, 이러한 것이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뿐이 아니에요. 가을에 누런 색으로 들녘을 물들일 때는 참 기가 막힙니다. 수채화 같습니다.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황금빛 같지요. 그들 속에 트랙터를 몰고 들어가서 추수하는데, 기계가 가기만 하면 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 시간만 일해도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 하루 종일 작업하면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이게 되는데 보기만 해도 좋아요. 아마 목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농사를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의 정신을 배울 수가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학교는 1년 늦게 졸업을 했지만, 학교 공부에서 배울 수 없는 귀한 진리를 농부의 마음을 통해서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목회와 제 삶에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자연 세계의 이치는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좋지 않은 씨앗을 심으면 좋지 않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겁니다. 또한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7절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서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과정을 통해서 농부의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농부의 정신을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농부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의 씨를 뿌리고 가꿀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영적인 열매, 오늘 말씀에 있는 것과 같이 성령의 열매,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첫째로, 농부는 때를 분별할 줄을 압니다. 농부는 심을 때와 거둘 때를 잘 분별합니다. 적기에 씨앗을 심고 적기에 열매를 거둡니다. 어떤 것은 한 주간만 늦게 심어도 안 될 때가 있고, 어떤 것은 한 주간만 늦게 거두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농부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때를 놓치지 않아요. 때가 정확합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급하고 바쁜 일이 있다고 해도 때를 분별하는 것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때를 분별한다는 것은,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농사 짓는 농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위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때를 분별했다는 겁니다. 심을 때와 거둘 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심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들은 심었어요. 땀흘려서 심었어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앞서 가게 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면 거둘 수가 없다는 진리, 씨앗을 뿌리는 기회를 놓치면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 하나만 제대로 해도 신앙생활을 근사하게 할 수가 있을 거예요. 하나님께 칭찬 받을만한 믿음이 될 수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때요?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삶으로는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예요. 있는 게 아니고 아주 많지요. 믿음은 아무 때나 뿌리면 될 거야. 에이 조금 있다가 해도 될 거야. 다음 달에 해도 돼. 내년에 해도 될 거야. 주일은 매주 돌아오는데 뭐.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잘 하셔야 합니다. 심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뿌린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에요. 뿌릴 때에 뿌려야 하고 심을 때에 심어야 하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심을 때에 심지 않고 남들 거둘 때에 거두려고 하는 사람은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심을 때에 심는다는 거예요. 믿음을 심을 때에 믿음을 심어요. 사랑을 심을 때에 사랑을 심어요. 헌신을 심을 때에 헌신을 심고, 충성을 심을 때에 충성을 심어요. 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꼭 심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신앙생활도 씨앗과 같아서 아무 때나 심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것은 나이하고는 상관이 없지요. 누구나 할 것 없이 심을 때에 심으면 돼요. 지난주간에 청년들은 수련회를 심었어요.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랑하고 돌보고 섬기고 헌신하고 찬양하고 이런 씨앗을 심었어요. 수련회 씨앗은 아무 때나 심을 수가 없지요. 금년 수련회에 심을 것이 따로 있고 내년 수련회에 심을 것이 따로 있어요. 수련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아시잖아요. 수련회에 갔다가 오면 신앙이 업그레이드가 됩니까? 번아웃이 됩니까? 업그레이드가 돼요. 그 2박 3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신앙이 성장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신앙 생활하실 때에 심어야 할 때가 반드시 있어요. 그 때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꼭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은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대부분은 심을 때인 줄로 압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심으세요. 교회를 위하여 심으세요. 나라를 위해서도 심으세요. 나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열심히 심으세요. 만일에 농부가 씨앗을 심을 때에 심지 않고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거두려고 하면 거둘 것이 없어서 1년 농사를 망치는 거예요. 농부는 1년 농사 망치면 그 다음해에 정신차려서 다시 지으면 괜찮아요. 그러나 사람은 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번 신앙 농사를 잘못 지으면 나중에 다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어야 할 때에 반드시 심어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합심하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의 씨앗을 심게 되면 하나님께서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싹이 나게 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농부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농사철이 됐다고 아무거나 심지 않습니다. 지난해에 이것을 심었으니까 금년에도 이것으로 심자. 아무 생각 없이 농사짓는 농부는 없습니다. 수박이나 참외 같은 과일을 재배하다가 보면 하나의 씨앗을 계속해서 심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수박을 계속해서 심으면 병충해에 약해져서 소출이 줄어요. 그래 농부들이 생각해요. 작년에는 이 밭에다가 수박을 심었으니까 금년에는 참외를 심어야겠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품질을 개량합니다. 접을 붙인다고 그러지요. 수박 싹에다가 칼로 살짝 그어서 호박 싹을 붙여서 싸매 줘요. 그러면 호박수박이 됩니다. 열매도 많고 병충해에게 강해집니다. 이처럼 농부는 아무 것이나 심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엇을 심을까 생각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은 농부의 이러한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뭐라고 하십니까? 8절을 보실까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다는 것은 로마서 5장 8절에 의하면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만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모시고 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한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나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사람들은 거룩하고 신령하고 영원한 목적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의 좇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습니다. 절대로 자기 만족이 아니에요. 자기 중심이 아니에요. 반드시 성경 중심이고 하나님 중심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열매가 좋아요. 성령으로부터 영생의 열매를 거두는 복을 받게 됩니다. 주인의 즐거움의 자리에 함께 앉게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은 무슨 씨앗을 심어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생을 거두기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매 주일마다 하나님께 나아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섬기고 헌신하는 것들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기 위하여 심는 씨앗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금년 한 해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농부가 땀흘려 일하는 것을 행인들이 보고 칭찬했습니다. \"아, 저렇게 부지런히 일을 하다니 일은 저렇게 해야 돼. 대단하네\" 나무 위에서 이것을 원숭이가 보고는 욕심이 났어요. \"아, 저렇게 땀흘리고 일하면 칭찬 받는구나.\" 그래서 원숭이가 열심히 일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다가 던졌어요. 이것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말했겠어요? 원숭이를 칭찬하겠어요? 원숭이를 욕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땀흘린다고 다 칭찬 받는 게 아니에요. 무엇을 위해서 땀흘렸느냐? 누구를 위해서 땀흘렸느냐? 무엇을 위하여 심었느냐? 누구를 위하여 심었느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을 위하여 투자했는냐, 아니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는 데에 투자했는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저와 여러분 모두는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에 씨를 뿌리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위하여 씨앗을 뿌리는 데에 투자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농부는 인내합니다. 농부들의 공통된 특징은 참고 기다리며 인내한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묵묵히 기다립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 긴긴 시간 동안을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로 피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니까 때로는 정성을 드려서 심은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내지 못하고 썩기도 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수장시킬 때도 있고, 비가 적기에 내리지 않아 말라버릴 때도 있습니다. 씨앗이 싹이 나서 자라다가 잡초 때문에 질식해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1년 농사를 잘 지어서 결실의 때가 다가와서 병충해의 피해로 소출이 많이 떨어질 때도 있고, 급작스러운 한파가 몰아닥쳐서 다 익은 열매를 미처 거두어 드리지 못한 채 얼려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사 짓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농부는 씨앗을 심고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지난해에 그러한 어려움이 있었어도 금년에 낙심하지 않고 다시 씨앗을 심습니다. 그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심고 기다리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러한 고난이 올 줄 알면서도 여전히 씨앗을 심습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영생을 심는 사람들은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느끼시는 것이지만 믿음 생활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침에 씨앗이 뿌려져서 저녁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서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지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결려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런 하소연을 해요. 아이 목사님 답답해 죽겠어요. 뭐가 답답해요. 그랬더니 나도 빨리 예수를 잘 믿어서 누구처럼 되었으면 좋겠는데, 마음은 되는데 왜 안돼요. 안 돼요? 예. 제가 그맘 알지요. 초신자들은 그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인내하세요. 조금 참으세요. 그러면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때로는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그것을 묵묵하게 이겨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따라서 합시다.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여러분, 조급해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심는 모든 믿음의 씨앗은 때가 되면 거두게 됩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심는 모든 씨앗도 때가 되면 거두게 됩니다. 그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조급해서 그렇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보잘 것 없는 것 같고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믿음으로 농부의 정신을 가지고 씨앗을 심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믿음의 대 선배들이 닦아놓은 유산 때문입니다. 그들이 눈물 흘려서 기도하고 목숨 걸고 충성하며 헌신하는 씨앗을 뿌렸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 덕을 보고 사는 거예요. 그거 잊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 동안 우리가 심어 놓은 것도 있지요. 왜 없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아직 열매 맺을 때가 아니에요. 자라고 있어요.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선배들이 뿌려놓은 믿음의 씨앗의 열매를 먹고 살아간다면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까? 후손들을 위하여 뿌려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믿음 생활을 더 편안하고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며 눈물의 기도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보화를 쌓을 것이 아니라 하늘에 보화를 쌓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의 덕을 보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두고, 때가 있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신앙생활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심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금년 한해동안 사랑의 씨앗을 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의 씨앗을 심으십시다. 기도의 씨앗을 심고 헌신의 씨앗을 심고 물질의 씨앗을 심고 전도의 씨앗을 심으십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씨앗을 심으십시다. 가족을 사랑하는 씨앗을 심으십시다. 교회를 사랑하는 씨앗을 심으십시다. 농부의 정신을 가지고 씨앗을 심을 때에 헛되이 되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귀한 은혜를 2006년에도 맛보며 살아가시는 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때를 분별하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심을 때에 심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씨앗을 심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좋은 씨앗을 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내하게 하셔서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농부의 정신으로/ 갈6:7-10/ 2007-06-07
농부의 정신으로 갈6:7-10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은 제가 신학 대학에 다닐 때에 공부하는 것이 재미없어서 1년 동안 쉬었던 적이 있습니다. 신학 공부가 생각처럼 재미없더라구요. 하나님을 삶에서 만나는 것은 재미있는데,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니까 영 재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 고민 고민하다가 휴학을 했습니다. 학교를 쉬니까 할 것이 있어야지요. 형님이 계신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와서 살 줄을 알았더라면 영어나 많이 배워 두는 건데, 그 때는 미국에 가서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을 때거든요. 저는 농사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거예요. 씨앗을 물에 불려서 땅에 뿌리는데 그러면 싹이 트잖아요. 그게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꼭 아가들 피부 같아요. 그 파릇파릇한 싹이 자라면 시집을 보낸다고 그래요. 그걸 옮겨 심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잡아 주기도 하고 약도 쳐주고, 그러다 보면 가을에 열매를 거두게 되는데, 이러한 것이 너무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뿐이 아니에요. 가을에 누런 색으로 들녘을 물들일 때는 참 기가 막힙니다. 수채화 같습니다. 고개 숙인 벼이삭들이 황금빛 같지요. 그들 속에 트랙터를 몰고 들어가서 추수하는데, 기계가 가기만 하면 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 시간만 일해도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몰라요. 하루 종일 작업하면 산더미처럼 수북하게 쌓이게 되는데 보기만 해도 좋아요. 아마 목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농사를 지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해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의 정신을 배울 수가 있는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록 학교는 1년 늦게 졸업을 했지만, 학교 공부에서 배울 수 없는 귀한 진리를 농부의 마음을 통해서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목회와 제 삶에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자연 세계의 이치는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좋지 않은 씨앗을 심으면 좋지 않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겁니다. 또한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7절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서 좋은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과정을 통해서 농부의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농부의 정신을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농부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의 씨를 뿌리고 가꿀 수만 있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영적인 열매, 오늘 말씀에 있는 것과 같이 성령의 열매,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첫째로, 농부는 때를 분별할 줄을 압니다. 농부는 심을 때와 거둘 때를 잘 분별합니다. 적기에 씨앗을 심고 적기에 열매를 거둡니다. 어떤 것은 한 주간만 늦게 심어도 안 될 때가 있고, 어떤 것은 한 주간만 늦게 거두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농부는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때를 놓치지 않아요. 때가 정확합니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급하고 바쁜 일이 있다고 해도 때를 분별하는 것은 실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때를 분별한다는 것은, 때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농사 짓는 농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위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때를 분별했다는 겁니다. 심을 때와 거둘 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심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들은 심었어요. 땀흘려서 심었어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앞서 가게 되고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면 거둘 수가 없다는 진리, 씨앗을 뿌리는 기회를 놓치면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 하나만 제대로 해도 신앙생활을 근사하게 할 수가 있을 거예요. 하나님께 칭찬 받을만한 믿음이 될 수가 있을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때요?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삶으로는 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거예요. 있는 게 아니고 아주 많지요. 믿음은 아무 때나 뿌리면 될 거야. 에이 조금 있다가 해도 될 거야. 다음 달에 해도 돼. 내년에 해도 될 거야. 주일은 매주 돌아오는데 뭐.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단 말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잘 하셔야 합니다. 심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뿌린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에요. 뿌릴 때에 뿌려야 하고 심을 때에 심어야 하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심을 때에 심지 않고 남들 거둘 때에 거두려고 하는 사람은 굉장히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심을 때에 심는다는 거예요. 믿음을 심을 때에 믿음을 심어요. 사랑을 심을 때에 사랑을 심어요. 헌신을 심을 때에 헌신을 심고, 충성을 심을 때에 충성을 심어요. 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면 꼭 심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신앙생활도 씨앗과 같아서 아무 때나 심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것은 나이하고는 상관이 없지요. 누구나 할 것 없이 심을 때에 심으면 돼요. 지난주간에 청년들은 수련회를 심었어요.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면서 사랑하고 돌보고 섬기고 헌신하고 찬양하고 이런 씨앗을 심었어요. 수련회 씨앗은 아무 때나 심을 수가 없지요. 금년 수련회에 심을 것이 따로 있고 내년 수련회에 심을 것이 따로 있어요. 수련회에 참석하신 분들은 아시잖아요. 수련회에 갔다가 오면 신앙이 업그레이드가 됩니까? 번아웃이 됩니까? 업그레이드가 돼요. 그 2박 3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신앙이 성장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신앙 생활하실 때에 심어야 할 때가 반드시 있어요. 그 때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때를 꼭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은 어느 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 대부분은 심을 때인 줄로 압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심으세요. 교회를 위하여 심으세요. 나라를 위해서도 심으세요. 나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열심히 심으세요. 만일에 농부가 씨앗을 심을 때에 심지 않고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거두려고 하면 거둘 것이 없어서 1년 농사를 망치는 거예요. 농부는 1년 농사 망치면 그 다음해에 정신차려서 다시 지으면 괜찮아요. 그러나 사람은 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번 신앙 농사를 잘못 지으면 나중에 다시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어야 할 때에 반드시 심어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우리가 합심하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의 씨앗을 심게 되면 하나님께서 뿌리를 내리게 하시고 싹이 나게 하시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농부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농사철이 됐다고 아무거나 심지 않습니다. 지난해에 이것을 심었으니까 금년에도 이것으로 심자. 아무 생각 없이 농사짓는 농부는 없습니다. 수박이나 참외 같은 과일을 재배하다가 보면 하나의 씨앗을 계속해서 심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수박을 계속해서 심으면 병충해에 약해져서 소출이 줄어요. 그래 농부들이 생각해요. 작년에는 이 밭에다가 수박을 심었으니까 금년에는 참외를 심어야겠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품질을 개량합니다. 접을 붙인다고 그러지요. 수박 싹에다가 칼로 살짝 그어서 호박 싹을 붙여서 싸매 줘요. 그러면 호박수박이 됩니다. 열매도 많고 병충해에게 강해집니다. 이처럼 농부는 아무 것이나 심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엇을 심을까 생각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은 농부의 이러한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뭐라고 하십니까? 8절을 보실까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다는 것은 로마서 5장 8절에 의하면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만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모시고 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선한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나의 의지와 나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방법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사람들은 거룩하고 신령하고 영원한 목적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의 좇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삼습니다. 절대로 자기 만족이 아니에요. 자기 중심이 아니에요. 반드시 성경 중심이고 하나님 중심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열매가 좋아요. 성령으로부터 영생의 열매를 거두는 복을 받게 됩니다. 주인의 즐거움의 자리에 함께 앉게 되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신앙 생활하는 우리들은 무슨 씨앗을 심어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생을 거두기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매 주일마다 하나님께 나아와 기쁨으로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섬기고 헌신하는 것들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기 위하여 심는 씨앗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금년 한 해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농부가 땀흘려 일하는 것을 행인들이 보고 칭찬했습니다. “아, 저렇게 부지런히 일을 하다니 일은 저렇게 해야 돼. 대단하네” 나무 위에서 이것을 원숭이가 보고는 욕심이 났어요. “아, 저렇게 땀흘리고 일하면 칭찬 받는구나.” 그래서 원숭이가 열심히 일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뭇가지를 꺾어 가지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다가 던졌어요. 이것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말했겠어요? 원숭이를 칭찬하겠어요? 원숭이를 욕하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땀흘린다고 다 칭찬 받는 게 아니에요. 무엇을 위해서 땀흘렸느냐? 누구를 위해서 땀흘렸느냐? 무엇을 위하여 심었느냐? 누구를 위하여 심었느냐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을 위하여 투자했는냐, 아니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는 데에 투자했는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저와 여러분 모두는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에 씨를 뿌리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위하여 씨앗을 뿌리는 데에 투자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농부는 인내합니다. 농부들의 공통된 특징은 참고 기다리며 인내한다는 것입니다. 농부는 묵묵히 기다립니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 긴긴 시간 동안을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여러 가지로 피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니까 때로는 정성을 드려서 심은 씨앗이 땅속에서 싹을 내지 못하고 썩기도 합니다. 비가 많이 와서 수장시킬 때도 있고, 비가 적기에 내리지 않아 말라버릴 때도 있습니다. 씨앗이 싹이 나서 자라다가 잡초 때문에 질식해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1년 농사를 잘 지어서 결실의 때가 다가와서 병충해의 피해로 소출이 많이 떨어질 때도 있고, 급작스러운 한파가 몰아닥쳐서 다 익은 열매를 미처 거두어 드리지 못한 채 얼려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사 짓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농부는 씨앗을 심고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지난해에 그러한 어려움이 있었어도 금년에 낙심하지 않고 다시 씨앗을 심습니다. 그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심고 기다리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러한 고난이 올 줄 알면서도 여전히 씨앗을 심습니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영생을 심는 사람들은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다 느끼시는 것이지만 믿음 생활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아침에 씨앗이 뿌려져서 저녁에 맺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서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지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결려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런 하소연을 해요. 아이 목사님 답답해 죽겠어요. 뭐가 답답해요. 그랬더니 나도 빨리 예수를 잘 믿어서 누구처럼 되었으면 좋겠는데, 마음은 되는데 왜 안돼요. 안 돼요? 예. 제가 그맘 알지요. 초신자들은 그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인내하세요. 조금 참으세요. 그러면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는 것,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으로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때로는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그것을 묵묵하게 이겨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따라서 합시다.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아멘. 여러분, 조급해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심는 모든 믿음의 씨앗은 때가 되면 거두게 됩니다. 자녀들을 위하여 심는 모든 씨앗도 때가 되면 거두게 됩니다. 그때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조급해서 그렇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보잘 것 없는 것 같고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믿음으로 농부의 정신을 가지고 씨앗을 심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믿음의 대 선배들이 닦아놓은 유산 때문입니다. 그들이 눈물 흘려서 기도하고 목숨 걸고 충성하며 헌신하는 씨앗을 뿌렸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그 덕을 보고 사는 거예요. 그거 잊으면 안 됩니다. 물론 그 동안 우리가 심어 놓은 것도 있지요. 왜 없겠어요. 그러나 그것은 아직 열매 맺을 때가 아니에요. 자라고 있어요. 열매를 맺으려면 아직 멀었어요.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선배들이 뿌려놓은 믿음의 씨앗의 열매를 먹고 살아간다면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위하여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까? 후손들을 위하여 뿌려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믿음 생활을 더 편안하고 쉽게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충성하며 눈물의 기도로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보화를 쌓을 것이 아니라 하늘에 보화를 쌓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의 덕을 보고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두고, 때가 있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자 신앙생활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에도 심을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심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금년 한해동안 사랑의 씨앗을 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씨앗을 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의 씨앗을 심으십시다. 기도의 씨앗을 심고 헌신의 씨앗을 심고 물질의 씨앗을 심고 전도의 씨앗을 심으십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씨앗을 심으십시다. 가족을 사랑하는 씨앗을 심으십시다. 교회를 사랑하는 씨앗을 심으십시다. 농부의 정신을 가지고 씨앗을 심을 때에 헛되이 되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귀한 은혜를 2006년에도 맛보며 살아가시는 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때를 분별하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심을 때에 심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씨앗을 심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좋은 씨앗을 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내하게 하셔서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찬길 목사(미국 샌프란시스코 좋은교회)
농부이신 하나님/ 하나님 농사와 마귀 농사/ 요15:1-8/ 2010-08-04
농부이신 하나님/ 하나님 농사와 마귀 농사 요15:1-8 요절 :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15:1) 하나님은 농부요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사람은 가지입니다. 핵심되는 단어입니다. 청계산 기도원 밑에는 호박밭이 많습니다. 농부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호박덩굴이 죽을 때까지 호박이 몇 개나 달립니까? 물으니, 80-90개정도 달린다고 합니다. 본문에 “내 아버지는 농부라‘ 했으니, 농사하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감자농사 고구마농사 고추농사 벼농사 물질농사보다, 사람농사, 사람을 만드는 일을 하는 농부입니다. 마귀가 농사 짖으면, 인간은 비참뿐입니다. 용인병원에 미친자가 2천800명이나 있습니다. 마귀가 인간을 미치게, 아프게, 불행케 하는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부 하나님의 농사는 사람을 고치는 작업을 합니다. 농부하나님은 언제 일하셨는가? 창세전에, 창조시, 구약시, 신약시, 지금도 일하십니다(요5:17) 복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농부 하나님은 무슨 작업을 하십니까? 一. 참 포도나무 예수를 심었습니다. 농부하나님의 첫 농사가 예수그리스도를 세상에 심은 것입니다. 이 땅은 죄악으로 병든 땅이요, 저주 땅이요, 불행 땅이요, 오염된 땅이요, 마귀아래 있는 박토요, 구원이 없는 불행 땅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구원되신 참 포도나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이 땅에 심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함이라”(요3:17)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이 사는 이 땅은 타락되어 죽음뿐이요, 비참 저주뿐입니다. 죽은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9-10) 농부하나님은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을 땅에 심어서, 구원, 치료, 자유, 사죄, 능력, 이김, 영생복을 인생에 베풀었습니다. 할렐루야! 二. 참 포도나무에 가지를 접붙이는 일을 합니다. 가지는 인간이라 했습니다. 5절에 ‘너희는 가지니 그가 내안에 내가 그안에 거하며“ 하셨으니, 농부 하나님은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농부하나님은 가지를 둥치에 접붙이는 농사를 했습니다. 완전히 죄로 죽은 사람을 생명 예수께 접붙이는 일을 농부하나님이 두 번째로 했습니다. 접붙이는 작업을 보니 가지를 대각선으로 잘라서 둥치에 붙이고 진흙으로 발라서, 천으로 감아 두니, 가지가 둥치로 살아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 하지 말라 자긍 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롬11:17-18) 돌 감람나무은 타락한 죄인을 말하며, 예수께 접목되어 동치의 생명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접붙이므로, 가지는 둥치 것으로 살고, 좋아지고, 성공하고, 영생하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 청주농업 기술원에서 도마도 나무에 고추를 접복하여 도마도와 고추가 한 나무에 달리게 한 뉴스가 오래전에 보도되었습니다. 가지 인생은 둥치 예수 것으로 삽니다. 둥치 것인, 생명, 치료, 영양, 능력, 사죄, 기쁨, 자유, 사랑, 만족, 구원, 영생으로 삽니다. 둥치 것이 가지로 흘려들어 갑니다. 가지는 점점 예수화 됩니다. 작은 예수화 됩니다. 진리화, 영생화 됩니다. 가지는 예수로 좋아집니다. 사람자기는 없어지고 예수화되고, 참 포도나무화 되는 것입니다. 작은 예수화 된 것입니다. ‣ 토요일은 워크힐 뒤산 아차산 높은 곳에 가서 큰 나무 밑, 시원한 그늘에서 기도하고 설교준비를 합니다. 피곤하여 잠깐 누어서 나무를 처다 보니,싱싱하게 자라서 쭉쭉 뻗은 가지가 있는데, 또 다른 가지는 바싹 말라서 뻗어 있는, 죽은 가지를 봅니다. 잡아 당겨보면 뚝 부러집니다. 한 나무 둥치에 붙여 있는데, 둥치의 진액, 영양, 생명의 흐름이 없는 가지는 죽어있어요. 교회 안에 교회등록은 했고, 이름은 기록되어 있어나, 성령과 진리역사가 중단된 신자는 죽은 가지입니다. 가지는 둥치 것으로 살아났고, 좋아졌고, 치료되었고, 사죄되었고, 자유 되었고, 영생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작업을 농부하나님이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三. 열매를 맺게 합니다, 농부하나님은 열매가 달리도록 작업을 합니다. 열매가 맺히도록 가지를 잘라주고, 또 깨끗하게 해 줍니다. 2절에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농부하나님의 작업은 많은 열매 맺게 합니다. ① 묶은 가지를 짤라 줍니다, 2절“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이를 제해버리시고” 했으니, 열매 맺는데 방해하는 가지는 짤라 줍니다. 불순종, 고집, 악성, 거짓, 게으름, 속을 제거하려고, 잘라주니, 손목도 자르고, 발목도 자르고, 장기도 자르고, 흉년으로 아합의 왕권도 자르고, 요나를 물에 넣어서, 고집을 자르고, 불레셋 군대를 통원하여 사울왕을 자르고, 고통으로 탕자를 잘라냈습니다. ②깨끗하게 합니다(2절). 더러운 죄를 씻어 냅니다. 문화로, 책으로, 사람으로, 돈으로, 더럽힌 부분을 씻어 내 줍니다. 깨끗함이 성도의 실력입니다. 성도의 실력은 성령과 진리에 순종성이 실력이요, 자신에 진실성이 실력이요, 교회 충성성이 실력입니다. 이러한 실력을 갖추도록 농부하나님이 작업합니다. ③열매맺게 합니다. 열매는 예수화 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인격을 말합니다. 둥치의 사죄, 영감, 말씀, 생명, 능력, 참, 의, 겸손, 사랑, 온유, 절제, 희락, 등이 가지로 가서, 가지에 맺은 열매는 예수의 인격이요, 모습이니, 예수화 된 것입니다. 사랑열매, 온유열매, 겸손열매, 평강열매, 존귀열매, 믿음열매, 용서열매, 화평열매 물질열매 은, 동치것이 가지에 건너와서 맺어진 것입니다. 가지 것은 없습니다. 전부 예수 것입니다. 할렐루야!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전제가 포도나무로 보입니다. 예수님과 성도가 한 나무로 보이고, 예수로 보이고, 예수운동, 구원운동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나무와 가지를 하나로 만드는 작업이 농부하나님의 작업입니다. 예수화된 것만 영원히 좋고, 유익되고, 영생화되고, 영광 존귀화 되고 천국을 100% 누리는 자 됩니다. 사람가지를 예수화 시키는 작업이 농부하나님의 최종 작업입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누리는 모든 영광 존귀 얻습니다. 또 참 포도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지구촌을 완전히 덮이는 작업을 농부 하나님이 하십니다. 포도나무에 접붙인 가지 베드로 바울 마태, 도마, 주기철 한상동 주남선 손명복 양복석 등 계속 가지가 접목되어 온 지구촌에 가득 채워, 예수화 되는 선교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께 접목된 나에게 또 접목된 가지가 있지요, 자식이 있지요! 제자가 있지요! 계속 접목되어, 천국화 시키는 이 놀라운 작업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지들이여! 작은 예수들이여! 참 포도나무에 붙여서. 예수로 보이시기를 주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농부처럼 삽시다/ 시126:6
농부처럼 삽시다 시126:6 사람이 사는 것은 농사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동산에서 밭 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곡식을 가꾸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정직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 다. 우리는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행 복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게으른 농부, 어리석은 농부, 무책임한 농부, 불행한 농부가 많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농민 화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고갱의 씨 뿌리는 농부라는 그림을 보셨을 것 입니다. 한 젊은이가 넓은 밭에서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의 몸에 는 생기가 충만합니다. 그의 얼굴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팔다리는 씩씩한 기운이 넘쳐 흐릅니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힘찬 그림입니다. 소박하면서도 뜻이 깊은 그림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의 씨, 내 말의 씨, 내 행동의 씨를 날마다 뿌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데는 시기가 있습니다. 씨앗은 봄에 뿌려야 합니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에는 아무리 씨를 뿌려도 자라나지 않습니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위에 씨를 뿌려 보아야 싹 이 나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씨는 봄에 부드러운 땅에 뿌려야 합니다. 봄에는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인생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의 씨앗, 지혜의 씨앗, 근면의 씨앗, 선의 씨앗, 겸손의 씨앗, 노력의 씨앗을 생활의 밭에 부지런히 뿌려야겠습니다. 그러면 행복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우리는 심지 않고 거두려는 어리석은 농부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생과 역사에는 인과율의 철칙이 지배합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 게 됩니다. 선한 원인에서 선한 결과가 생기고 악한 원인에서 악한 결과가 생깁니다. 이것이 존 재의 법칙이요 자연의 섭리입니다. 인생과 역사를 짧은 눈으로 보면 악이 한때 득세하고 선이 불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 필귀정입니다.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자리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긴 눈으로 인생을 보고 먼 눈 으로 역사를 관찰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나 순리와 정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순리대로 살고 정 도를 걸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둡니다. 아주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거두는 시기는 종자에 따라 각각 다릅니다. 봄에 심어서 여름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가을에 거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논이나 밭에 심은 것은 보 통 그 해에 거둡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농사는 일 년 후에 거두는 경우도 있고, 10년 후에 거두는 수도 있습니다. 젊어서 뿌린 씨앗을 늙어서 거둡니다. 어떤 것은 당대에 거두지 못하고 다음 대에 가서 거두는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뿌린 씨를 자식이 거두고, 자식이 뿌린 씨를 손자가 거둡니다. 오늘 우리 세대가 열심히 일하면 다음 우리 자손 세대에 가서 번영의 결과를 거둡니다. 과거의 세대 가 게으르고 방탕하면 오늘의 세대가 불행과 파멸의 결과를 거둡니다. 현재는 과거의 아들이요, 미래의 어머니입니다. 과거 나의 행동이 현재의 나를 결정하고 현재 나의 행동이 미래의 나를 지배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흥망성쇠와 길흉화복은 우리가 어떤 씨앗을 뿌렸느냐에 의해서 좌 우됩니다. 내 행동이 내 존재를 결정하고 내 운명을 지배합니다. 내가 뿌린 씨를 내가 거두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가 연출하는 연극과 같습니다. 나의 운명은 나의 행동의 소산입니다. 나의 행동에 대해서 나 자신을 만들어 나갑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나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요행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우연을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복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힘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는 언제나 주인정신과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주인이다 라는 말처럼 힘찬 말이 없습니다. 나는 인생의 주인이요, 운명의 주인입니다. 나는 내 가정의 주인이요, 직장의 주인이 요, 나라의 주인이요, 민족의 주인이요, 역사의 주인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디서나 주인정신 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인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무슨 일이나 남의 일처럼 방관하지 아니합니다. 주 인은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주인 정신은 독립정신이요 책임정신입니다. 주인은 부지 런히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뿌린 씨를 자기가 거둡니다. 이 세상은 밭이요, 우리는 농부입니다. 농부는 정직해야 합니다. 농부는 속이거나 거짓말해서 는 안 됩니다. 또 할 수도 없습니다. 정직이 행동의 근본 원칙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 에서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공명정대하게 살아야 합니다. 새 한국건설을 위하여 정부가 앞장을 섰습니다. 과거는 그렇지 못했지만 이제는 정부나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정직해야 새 한국을 건설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할 때 새 한국건설은 구호로 그치고 말 것이고 그렇게 되면 큰 일입니다. 그리고 농부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근면은 번영의 어머니요행복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부지런 히 일할 때 마음에 잡념이 없어지고 생활에 충실감이 생기고 성취욕의 만족을 느낄 수가 있습니 다.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옛 말에도 부지런이 반 복이라. 고 했 습니다. 게으르니까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나태는 악의 원천입니다. 게으름이 가난을 낳고 불행 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성실의 허리띠와 근면의 구두를 신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선이 무엇입니까?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인생을 태만하게 사는 것 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위대한 것은 땀의 산물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부지런합니다. 그래 서 세계 사람이 주목할 정도로 앞을 달렸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이 열심히 달리 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힘든 것, 더러운 것, 위험한 것은 피했던 것 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고, 성실한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열심히 일합시다. 부지런하게 삽시다. 더구나 농부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가 무엇입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내가 해 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가을 옳게 판단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우리의 앞을 밝게 비쳐 주 는 생활의 등불입니다. 어두운 길을 걸으려면 밝은 등불이 필요합니다. 인생은 앞길을 분간하기 어려운 미로와도 같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처럼 내일 일을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그 미로를 옳게 헤쳐 나아가려면 지혜의 밝은 등불을 켜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 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 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고 했습니다. 인생이라는 농사를 짓는데 공부를 많이 한 농부도 실패하고, 돈이 많은 농부도 실패하고, 권 력 있는 농부도 실패하고, 경험 많은 농부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어 농사한 농부는 성공하고 승리했습니다. 농부는 농사하는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 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즐깁니다. 인생을 즐기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 하고,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피곤함을 덜 느끼고, 권태를 느끼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권태를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항상 신선한 마음과 넘치는 의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젊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밝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기쁘게 감사하면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눈에는 밝은 정기가 빛나고, 얼굴에는 훈훈한 화기가 감돌고, 몸에는 힘찬 생기가 넘쳐야 합니다. 지난 주간 우연히 TV를 켰더니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 가서 국제농 업시험소에서 일하는 김 박사에 대한 것이 방영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저는 많은 감명을 받았습 니다. 나이지리아는 적도에 위치한 나라로 가난한 나라입니다. 일억이 넘는 많은 인구가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운 형편입니다. 외국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UN 원조기구에 서 좀더 건설적으로 돕는 길을 모색해 낸 것이 그 곳에 백만 평이 넘는 농업 시험장을 세워 그 곳에서 재배될 수 있는 곡식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김 박사는 옥수수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인데 그는 나이지리아에도 옥수수가 잘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변 다른 학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고 실험해서 드디어 성공하게 되었고, 몇 년 안에 양산체제로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이지리아에서 생산되는 옥수수가 자급의 단계를 넘어 오히려 외국에 수출까지도 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젊은 학자요, 농업 전문가가 멀리 아프리카에 가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대견하기 이를 데 없고 자랑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자기 하는 일에 열중했던 지 김 박사는 잠자면서 꿈에도 옥수수 꿈을 꾸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새벽 한시 두시 가리 지 아니하고 연구실에 나가 연구를 계속하면서 연구실에서 새벽을 맞는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 는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성공하고 그런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인생은 농사와 같습니다. 부지런히 밭을 갈고 열심히 씨를 뿌리고 정성껏 가꾸어서 풍성한 열 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삶의 의미는 열매에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는 결실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질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너는 인생에서 무슨 열매를 얼만큼 거두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풍성한 추수를 거두는 행복한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봄이 왔습니다. 저마다 부지런히 인생의 밭을 갈고 생명의 씨앗을 뿌립시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 9절을 보세요.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인생의 밭을 갈고 생명의 씨앗을 뿌 리다가도 사기를 잃고 맥이 빠져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씨앗을 심는 것 같다. 우리가 뿌린 씨가 당장 열매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온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농부처럼 우리도 길이 참아야 합니다. 존 브라운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심고 거두는 일에 있어서 너무 어 린애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 날 심어서 그 날 거두려고 합니다. 올바른 지적입니다. 우 리는 씨를 뿌리고 너무 빨리 거두려고 합니다. 길이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 바울이 말한 선이란 무엇입니까? 착한 일, 좋은 일을 가리키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 니다.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서 구원을 받게 하는 일처럼 선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전도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내가 필요합니다. 낙 심하지 말고 전도해야 합니다. 포기하거나 기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이는 쉽게 되는 경우 도 있지만, 어떤 이는 5년, 10년, 그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맥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전도뿐이겠습니까? 봉사도 선한 일입니다. 청지기로 봉사하는 일, 교회 학교 교사로 봉 사하는 일, 성가대로 봉사하는 일, 구역 책임자로 봉사하는 일, 선교회나 봉사회에서 봉사하는 일 모두가 선한 일입니다. 그런데 봉사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닙니다.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선한 씨를 뿌리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다른 말로 맥풀리지 말라는 말입니 다. 피곤하지 아니하면, 맥풀리지 아니하면,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올 것이고 그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때 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때 를 가리킨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자라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새로 지으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영적인 작품입니다. 이렇게 지으신 목적이 선한 일을 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선한 씨를 뿌리게 하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씨를 뿌리다가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선한 씨를 뿌리다가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고 권면했습니다. 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합니까? 선을 행하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면 낙심 하기 쉽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건강이 나빠지기도 합니다. 사업이 실패하기도 합니다. 가정적으로 우환질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눈물의 사자가 방문하기도 합니다. 욥을 생각 해 보십시오. 그는 아주 견디기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아 나중에 승 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악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을 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시편 73편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선을 심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많고 오히려 악을 심는 사 람이 더 흥해 갈 때 하나님을 섬기며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 심할 정도까지 됩니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이 시인이 성소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악인의 승함이 잠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전에 요셉도 이런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가운데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러므로 도덕적인 의심이 생겨도 낙심하면 안됩니다. 더구나 선을 행해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을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내가 아무리 바로 살려고 애쓰고, 교회를 위해서 애써 봉사하지만 이 사정을 누가 알아주나 하는 이와 같은 고독을 느낄 때 맥이 풀리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남이 알아주고 칭찬이 나 듣고 그 말에 격려를 받아서 우리가 선한 씨를 뿌린다면 그것이 무슨 참된 선의 파종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옛날에도 선한 일을 한 사람을 주변에서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도와 주고 격려해 준 것이 아닙니다. 퍽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선한 씨를 계속 뿌렸습니다. 그랬 더니 나중에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하다가 핍박을 받으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도 낙심하면 안됩니다. 여러분, 모세를 기억하시지요? 그의 신앙이 얼마나 크고 애국심이 얼마나 불타고 얼마나 위대 한 지도력을 가진 영도자였습니까? 그러나 그가 당한 오해와 비난, 지도력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에 또 새 힘을 얻어 그대로 나아간 것입니다. 비난과 오해와 핍박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면 안됩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핍박을 받고, 욕을 먹고, 악하 다고 하는 거짓말을 들으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냐하면 옛날 선지자들도 그와 같은 일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받은 상이 크다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을 행해도 열매가 맺지 않을 때에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낙심하 지 말라 고 권면하면서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했습니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때가 아니고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사람의 때는 다릅니다. 하 나님의 때가 올 것인데 그때는 반드시 거둘 것입니다. 심는 생활을 공동체 안에서의 선행이라고 한다면 거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것이 무 엇인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의 상상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 회나 사회 속의 끊임없는 선행은 결과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선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안위와 도움을 줍니다. 선행은 죄인으로 하여금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선행은 사회의 도덕적 부패를 방지하는 데 이바지합니다.말하자면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마침내 세상을 더욱 단란하고 아늑한 살기 좋은 울 안으로 밝힐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삶의 가 치 기준이 몰락해 가고 있는 이 세대에서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드높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직한 농부처럼 부지런하고 지혜롭게 삽시다.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랑합시 다. 낙심 말고 선한 씨를 뿌리십시다. 어려움이 있어도, 악이 승리한 것 같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핍박을 받아도, 성과가 나지 않아도 선한 씨를 뿌리십시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 으면 하나님의 때에 많은 것으로 거두게 될 것을 믿습니다. 신령한 농부인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농사짓는 농부처럼/ 시126:1-6/ 2001-11-09
농사짓는 농부처럼 시126:1-6 주님의 평안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행복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그 생활에 만족하십니까? 더 행복해지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이대로 충분합니까? 지금 복을 많이 받으셨습니까? 아니면 더 받아야 합니까? 참 이상하지요. 복을 많이 받아서 이제 내 생활에 만족한다고 하면서도 복을 더 받고는 싶다고 하니 앞뒤가 말이 맞지 않습니다. 만족하면 된거지 더 받고 싶을 리가 없습니다. 더 받고 싶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족하면서도 복은 더 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았다고 해도 더 받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나는 만족합니다 하면서도 복을 더 받고 싶은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면 복을 더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이 시간 복 받는 비결을 배워서 복을 많이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때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의 혀에는 찬양이 차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대사를 행하셔서 우리는 기쁘다 했습니다. 대사라는 말은 큰 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큰 일을 해 주셔서 우리는 기쁘고 즐겁고 찬양이 넘쳐 납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 하나님이 일을 해 주셔서 그렇게 기쁜 것입니까? 나는 놀고 있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서 그리도 즐거운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지를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농부는 가을에 추수를 하면 가장 좋은 것을 씨앗으로 삼습니다. 가장 잘 익은 열매, 가장 보기 좋은 열매를 씨앗으로 삼아 다시 뿌립니다. 물론 요즘에는 종자회사가 있어서 사다가 심으면 됩니다마는 종자를 구하기가 어려울 때는 자기가 거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다시 뿌렸습니다. 그런데 내가 뿌린 씨앗이 싹이 잘 터서 자라 열매를 거둔다는 보장이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씨를 뿌릴 수 있을 것이지만 거둘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 내가 먹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종자를 남겨 두었다가 씨를 뿌립니까? 이런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나에게 씨앗이 있는데 당장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일단 먹고살아야 나중에 씨를 뿌리든지 할 것이니까 종자를 먹어야 합니까? 아니면 그래도 종자는 잘 보관해서 나중에 뿌려야 합니까? 굶어 죽으면 종자가 있다고 한들 누가 뿌립니까? 내가 살아있다고 한들 종자가 없으면 어떻게 씨를 뿌립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상황입니다. 풍년을 기대하면서 뿌리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뿌리는 이 열매를 내가 거둘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눈물로 씨를 뿌립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뿌립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대사를 행해 주시는 것이지 구경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사를 행하시지 않습니다. 복을 받을 만한 일을 해야 복을 받는 것이지 복을 받을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복을 받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착각입니다. 환상입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농사 짓는 농부처럼 일을 해야 합니다. 농부는 가장 좋은 것을 다시 씨를 뿌립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심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좋은 시간, 가장 중요한 것들, 가장 소중한 것으로 심어야 합니다. 일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을 해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방송을 보니까 무당이 점을 칩니다. 그러더니 당신이 복을 받으려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니까 그대로 합니다.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합니다. 무당에게 가서 점을 치고 나서 그 결과대로 그대로 순종하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복을 받는다고 기다릴 수 있습니까?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자기가 할 일도 하지 않으면서 복만 받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복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에 아주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서양의 기독교와 한국의 전통 종교들을 온통 뒤 석어서 자기 편한 대로만 골라 믿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양의 기독교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그들은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룬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믿음은 생각으로, 혹은 마음속으로 인정하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은 평소에는 잘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큰 힘을 발휘하는 믿음입니다. 한 여객선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여객선이 항해를 하다가 그만 기관에 고장이 나서 배가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구명보트에 옮겨 타야 하는데 구명 보트의 숫자가 좀 모자랍니다.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나라 같으면 서로 먼저 탄다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 먼저 태우고 약한 여자들 먼저 태우고 노약자 먼저 태우고 그리고 자리가 남으면 때로는 양보하기도 합니다. 당신이 먼저 타라. 그들은 평소에는 교회도 안 나가고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위기가 닥쳐오면 의연합니다. 그들은 그리 열정적이지 않습니다. 조용합니다. 우리 나라의 종교 전통은 어떻습니까? 아주 열정적입니다. 푹 빠져야 됩니다. 목숨을 걸고 나갑니다. 내가 믿는다면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벽에 정한수 떠놓고 기도라도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내가 아무일도 하지 않고 복을 받는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복을 달라고 합니다. 무슨 배짱인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실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동 서양의 좋지 않은 모습들만 골라다가 내 것으로 만들어 놓고는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해 주십니까? 울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있는 것이지 씨를 뿌리지 않는 사람은 거둘 수 없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일을 해도 제대로 해야지 엉뚱한 일을 하고 있으면 오히려 책망을 받고 어려움만 당합니다. 가끔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데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는 않고 어려움만 주신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것은 잘못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자기 욕심만 생각하고 엉뚱한 일을 하고 있으면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제대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대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대사를 행하십니다. 대사입니다. 작은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큰 복입니다. 넘치는 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보고 놀랄 그런 복입니다. 그런데 일은 하지 않고 그 큰 복만 받겠다고 하니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아쉬워서 우리에게 일을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쉬운 것이 없습니다.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보고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복을 주시려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복을 주시려고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습니다.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힘이 없어 일하기 어려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받습니다. 기쁨이 넘치고 즐거움이 넘치는 그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광의 가족 여러분.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일하십시오. 일하지 않으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대사를 행하지 않으십니다. 농사 짓는 농부처럼 가장 좋은 것으로 씨를 뿌리십시오. 쓰다가 남은 것, 먹다가 남은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릴 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대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올바로 잘 감당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농어촌도 선교지/ 요12:24/ 2003-06-02
농어촌도 선교지 요12:24 동아일보 3월 27일 기사에서 10년간 한국인들의 이동분포를 조사하여 발표했는데 그것에 의하면, 농촌인구는 10년간 37%나 줄었고 어촌인구는 약 50%나 줄었습니다. 그래서 대전에서 한시간만 벗어나도 만나는 농촌은 아이들 구경하기가 어렵고 아이들이 수백명씩 모이던 농촌 학교는 학생이 없어 잡초만 무성하고 폐교가 되어가는데 도시는 밀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학교가 모자라 닭장처럼 운동장 없는 학교를 자꾸 건축하고 있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농어촌지역의 인구가 감소하므로 자연적으로 농어촌 교회의 실정도 매우 열악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회에서는 오늘을 농어촌주일로 지켜 농어촌교회를 돌아보게 한 것입니다. 농어촌교회는 도시교회를 성장시킨 신앙인들의 못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주님나라를 위해 힘쓰고 애쓰는 태평양의 성도 여러분! 지금 농어촌 교회는 농어촌 사회의 급속한 몰락 때문에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농촌교회 교역자의 생활비와 교회 유지비조차 해결하지 못해 큰 어려움도 겪고 있으며 찬양대원이나 교사나 구역지도자들 같은 고급 인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몇년 전 어느 기독교 잡지에서 실시한 한국 농어촌 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어촌 교회 가운데 90% 가량이 장년부 50명 이하의 영세한 소형교회이며 농어촌 교회의 약 40% 가량은 교역자의 최저 생활비도 해결 못하고 있어 원조를 받고 1년 헌금수입이 500만원도 안되는 교회가 절반이라는 통계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어촌 교회는 교육, 선교, 구제, 봉사라는 교회의 본래적 사명수행을 충실하게 하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의 존립문제 자체로 고심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오늘 소개 드린 이 상황은 농어촌교회의 현재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태평양의 성도들도 농어촌 교회에 관심갖고 기도로 함께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어촌 교회는 오늘날 크게 성장한 한국교회의 밀알이었습니다. 봄에 뿌린 씨앗이 없이 어찌 가을 밀 추수가 가능하겠습니까? 반드시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하려면 봄에 뿌리는 밀알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도시교회의 풍요로움과 부흥은 바로 농어촌교회의 몫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산모였던 농어촌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헌신하는 교사나 찬양대원들이 부족하고 재정이 부족하여 지붕을 수리하지 못해 비가 새는 교회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의 선교를 함께 동참하는 성도 여러분! 농어촌교회를 살리는 것도 선교의 좋은 또 다른 방법입니다. 은혜를 받은 동물들 조차도 평생 그 은혜를 갚으며 살다가 죽는데 하물며 십자가 복음을 접하게 해주고 천국가게 해준 농어촌교회를 우리몸이 떠났다고 우리들의 마음까지 떠나 버린다면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것입니다. 농어촌 교회없는 도회지 교회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농어촌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첫째, 밀알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도 한 알의 밀알이 되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밀알 하나의 의미를 강조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면서 그 생명의 첫 역사를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떨어진다는 말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밀알은 땅에 떨어지기 위해 먼저 지금까지 소중히 붙어있던 이삭을 떠납니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직선적인 행동을 통해 흙을 향해 자신의 생명체를 투신합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때가 찬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의 생명을 창조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은 반드시 죽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죽음은 통속적인 의미의 죽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죽음 즉 죽으면 다시 살 수 있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크리소스톰은 “꿀벌이 다른 곤충보다 칭찬받는 까닭은 부지런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개미나 나비처럼 꿀벌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곤충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곤충들은 이기적인 결과밖에 없지만 꿀벌은 아주 유익한 꿀을 제공하기 때문에 칭찬을 받는 겁니다. 오늘 한국교회도 농어촌 교회를 위해 밀알의 정신으로 그들과 함께 하자는 것입니다. 이 길이 모두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도시와 농어촌간에 확고한 접붙임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과일나무에 접붙이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귤나무 가지를 탱자나무 가지를 베고 거기에다 접붙이면 귤이 열리게 됩니다. 좋은 감람나무를 돌 감람나무에 접붙이면 돌 감람나무가 좋은 감람나무가 됩니다. 좋은 감나무 가지를 고염나무 가지에 접붙이면 아주 좋은 감나무가 됩니다. 수박의 줄기를 박 넝쿨에 접붙이면 맛있고 탐스럽고 단단한 수박이 됩니다. 그렇다고 귤나무를 아무 나무에나 접붙인다고 해서 모두 귤나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귤나무가지를 탱자나무와 같은 귤과가 아닌 사과나무나 복숭아나무에 접을 붙이면 그 귤 가지는 절대로 귤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시교회는 자기 자신이 아름답게 열매맺을 수 있는 곳에 접붙임을 해야 합니다. 성질이 비슷한 곳에 접을 붙여야 같이 더 잘 산다는 겁니다. 바로 그곳이 농어촌 교회입니다. 도시교회가 농어촌 교회라는 나무에 접을 붙이면 농어촌 교회도 살고 농어촌교회로 보내진 도시교회의 가지도 잘 살아 결국 도시교회도 사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농어촌의 한 생명도 우리가 같이 지켜야 할 주님의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농어촌을 살리는 길은 한국교회 전체가 사는 길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농어촌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농어촌 교회를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 일부지체가 잘못되면 우리의 몸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 몸에 지체인 농어촌 교회와 긴밀한 협력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먹 힘이 약한 사람이 태권도를 배우고 기왓장을 격파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훈련을 시작하면서 기왓장 한 장을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주가 지나서는 다섯 장을, 몇 년 후에는 스무 장까지 격파하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기왓장 한 장도 깨뜨릴 수 없는 약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능력! 즉 자기 자신을 극대화하는것! 즉 자신의 은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여러분!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을 주님이 찾으시고 상주시듯이, 우리 각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도시교회 교인들도 농어촌 교회 교인들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환경에 안주한다거나 좌절하면 마귀가 기뻐합니다. 비록 가시떨기 밭과 같고, 돌짝 밭 같고, 길가 밭 같을지라도 복음의 옥토를 일구어내기 위한 수고와 투자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한평생 큰일을 이룬 사람들은 한결같이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언제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는 고원에서 목축을 하여 뽕나무를 재배하며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그를 불러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습니다(암 7:14). 다윗은 양떼를 치는 목동으로 최선을 다할 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삼상 16:11).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인권운동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목요일 우리 교인들이 함께 방문해서 견학했던 가나안농군학교! 그 학교를 일으킨 김용기장로님은 일평생 헌신을 다했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우리도 농어촌교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 농촌은 모내기를 한창 진행중입니다. 제가 어릴때에는 모내기철이 가장 활력이 넘치는 때였습니다. 모를 낼때에는 갖은 산나물 반찬들을 요리하고 하얀 쌀밥을 지어 머리에 이고 와서 누런 박바가지에다가 쓱쓱 비벼 먹으며 못줄을 띄우면서 모내기를 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모를 쪄서 늦은 밤까지 모를 심는 일이 허리가 부러질듯한 고역이었지만 논둑에 앉아서 못줄을 띄워주는 어르신들의 구수한 노랫가락으로 풍년을 꿈꾸며 고달픔을 이겨가면서 손으로 그 넓은 논마다 모내기를 했습니다. 그러한 낭만과 활력은 이제 농촌에서 별로 보여지지 않습니다. 기계 한대가 사람 오십명이 하던 일을 후딱 해 치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가고 있는 농촌의 비경제성이라는 문제 때문에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어 우리가 뛰어놀던 그 들녂은 농번기인 지금 한산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따끔 보이는 농민들의 고달픈 얼굴에는 절망적인 주름살만 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WTO 체제하에서 외국 농산물 개방 압력은 더욱 드세어지고 있습니다. 값싼 칠레 포도의 대량수입 때문에 포도농사도 완전히 전멸하게 되었습니다. 참깨, 콩, 옥수수 등을 비롯한 중국의 값싼 농산물이 물밀 듯이 침공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지은 우리 농부들이 생산한 우리 농산물은 가격이 폭락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네 농촌에는 마땅히 지을만한 농사가 없습니다. 갖은 고생을 해서 지은 자식 같은 농작물들을 갈아 엎는 농민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늘어가는 빚 때문에 근심과 고된 노동으로 생겨난 병 때문에 대부분이 병자들입니다. 비 오는 날이면 보건소나 읍내 병원에는 신음하는 농민들로 가득 찹니다. 이렇게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농촌은 온통 절망으로 빠져가고 있습니다. 제가 담임목회를 하던 10년 전보다 지금은 더 심각하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살펴 주어야 할 우리들의 이웃은 바로 농어촌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기독교인답게 농어촌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농어촌 사람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정당한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농부가 수고한 댓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농부들이 정말로 수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농부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 문제인 음식물을 제공하는 1차 생산자입니다. 농부들의 수고가 담긴 먹거리가 없이는 우리가 살수가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는 농부의 수고를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쌀농사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이른 봄에 종자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해서 종자를 소독하고, 싹을 띄우고, 모판을 내고, 모가 자라면 모내기를 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논물 관리를 하고, 병충해를 방제하고 수확하고 탈곡할 때까지 농부의 고달픈 나날...수 없는 손길이 가야 합니다. 오죽하면 식물들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처럼 애쓰고 수고하지만, 농부는 일년에 한번밖에 수확 할 수 없습니다. 농사는 일년에 한번만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어 실패를 하면 1년 농사 다 망치는 것이 바로 농업입니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그렇게 농사지은 쌀도 정부가 다 사주질 않아 재고가 쌓입니다. 그러니 어찌 농어촌 사람들이 병에 안 걸리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농어촌이 살아야 도시도 삽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은 농어촌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쓰레기증가, 수질오염, 환경파괴, 인구과밀, 청소년 범죄의 급증 등 여러 가지 문제들 그것들의 해결점을 찾기 위해서는 농어촌을 살려내야 합니다. 농어촌에서 지금처럼 도시로 자꾸 밀려들게 되면, 도시는 정화능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런데 농어촌의 경제적, 문화적 소외감,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감 등이 나아지지 못하면 결국 농어촌을 떠나 도시로 무작정 몰려드는 사람들은 증가할것이고 도시는 몰려든 농어촌 사람들 때문에 실업문제도 발생하고 환경파괴, 교통문제도 생겨나고, 결국에는 사회악도 발생하게 됩니다. 농어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야말로 난리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여름 장마비를 손바닥 만한 논이라도 담아 주니까 수해가 나지 않는것처럼 농어촌이 유지되니까 도시가 그나마 살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가지 실천사항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째, 개인적으로는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우리 농산물을 사 먹어야 합니다. 값이 싸다고 외국 농산물을 사 주면 우리 농어촌은 무너지고, 결국 우리도 망합니다. 둘째, 농어촌 교회와 자매결연을 통해 공동체라는 의미를 확고히 다지고, 연중 교류를 통해 농어촌 교회가 위치한 농어촌 지역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자는 겁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농촌을 살립시다/ 렘32:6-15, 요15:1
농촌을 살립시다 렘32:6-15, 요15:1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서구사회는 일대변혁을 가져왔다. 그 변혁이란 자국 이기주의이고 이것은 결국 무한경쟁시대의 경제전쟁으로 돌입하였다. 작년 12월 15일에 타결된 우루과이 라운드는 20세기 막바지의 최대의 경제전쟁이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쌀과 기초농산물을 전면 개방하게 되었고 농촌의 살림은 어려워지게 되었다. 물론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에 농촌이 어려워진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이미 어려워졌던 농촌은 이제 더 이상 회생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영농의욕을 상실하였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사촌 하나멜이 찾아오면 아나돗의 땅을 사라고 하셨다. 다들 피난가고 바벨론 포로를 눈앞에 둔 때에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다 버리는 밭을 사라고 하신 것이다. 첨단과학시대에 무슨 농사냐고 하는 이 세대에도 하나님은 우리 땅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농촌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1. 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근래에 와서 땅이란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생명을 자산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땅은 재산이 아니라 생명이다.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흙을 생명의 자리로 이용하신 것이다. 우리가 사는 땅도 마찬가지다. 땅은 곡식의 생명의 자리이며, 아름다운 꽃의 생명의 자리이다. 땅이 좋아야 물도 맑고 모든 생명이 건강할 수 있다. 토양이 중독되고 있는 현실속에서 땅을 살릴 수 있는 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땅에 미생물이 살게 하고 지렁이와 두더지가 살게하여 땅을 비옥하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흙과 친근하게 살아온 전통이 있다. 집은 온통 흙이었다. 이러한 친근한 흙으로 돌아가고 땅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우선 회복해야 한다. 2. 직접 간접으로 농촌을 지원해야 한다. 농촌이 피폐해진 원인은 산업기술의 발달로 인한 가치관의 전도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도시가 발달하고 농촌은 점점 죽어갔다. 그러므로 도시는 농촌에 대한 빚을 갚는 자세로 농촌을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농산물을 적극 구매해 주어 그들에게 의욕과 용기를 주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쉽게 화학비료를 써서 농사짓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농산물 직거래에 적극 동참해 주고 그렇게 함으로 중간상인의 농간을 배제해야 한다. 우리 체질엔 우리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체질과 서양인의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을 사랑하는 것이 농촌을 사랑하는 것이다. 3. 농촌선교정책이 변해야 한다. 도시교회의 성정은 농촌의 덕이 크다. 그러므로 도시교회는 농촌교회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간 10만원 정도의 작은 재정을 지원해주어 농촌 교회로 하여금 여러 교회의 보조를 받게 하고 선교보고와 영수증 발송에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하게 하던 인습에서 한 교회에 생활비를 완전히 보조하고 목회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돈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목회적 관계가 되어 서로 목회적 관심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농촌교회는 자립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일은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농부이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땅을 가꾸고 농촌을 살리자.
두 가지의 농사/ 호10:1-15
두 가지의 농사 호10:1-15 심은 대로 거두리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 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 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8절 말씀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바로 이 구절이 우리 에게 이야기하는 바입니다. 육체를 심으면 육체의 열매를, 성령을 심으면 성령의 열매를 거둔다는 사실 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것을 거둘 것입니다. 육체를 심고 성령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심었다면 반드시 성령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여기에는 실수 가 있을 수 없습니다. 계산 착오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이것이 갈라디 아서 6:7,8절이 우리들에게 교훈 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무 엇을 심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그토록 땀을 흘리시고 계십니까? 혹 썩어질 육신의 것을 얻기 위해서 땀을 흘리며 인생을 일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인생이라는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습니다. 우리들은 저마다 자신의 인생이라는 밭에 씨 를 뿌리고 있습니다. 좀 더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 땀흘리며 애를 쓰고 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생을 일구고 있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인생이 열매 없는 인생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헛된 열매들만 맺는 그런 인생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 역 시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여러분들은 무엇을 심고 있는 가를 곰곰이 살펴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나의 인생에 어떤 열매들이 맺어 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 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 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말씀에 비추어 여러분들이 뿌리고 있는 것들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농사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점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 면서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농사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했던 농사법입니 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던 방법입니다. 이 두 농사법은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뿌리는 씨앗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두어들이는 것도 또한 다릅니다. 이제 말씀을 살펴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농사를 짖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뿐만 아 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런 삶의 농사를 지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농사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했던 농사법입니다. 13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했던 농사에 대해서 이렇 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 보십시오. 무엇을 밭에 심었습니까? 그렇습니 다. 악을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무엇을 거두죠? 그렇습니다. 죄를 거두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심은 대로 거두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있습니다. 악을 심었기에 죄를 거둡니다. 악을 심 고 의를 거둘 수 없습니다. 의를 심었는데 죄를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우 리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콩을 심어 놓고 팥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악을 심고 의를 거둘 수 없습니다. 반드시 죄를 거 둘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이 먹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헛된 열매를 먹습니다. 아무 쓸모 도 없는 그런 열매를 먹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농사였습니다. 악을 심고 죄 를 거두고 헛된 열매를 먹었습니다. 악을 심어서 그렇다면 이들이 심은 악이란 어떤 것일까요? 곧 이어서 13절은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 무엇이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자신을 의지하였습니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고 자신의 힘을 의지했습니다. 이것이 저들이 심은 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요?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얼마든지 악을 심을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주간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을 의지하며 살았습니까? 진정 하나 님을 의지하는 삶을 사셨습니까? 혹 세상을 의뢰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도 악을 심은 것입 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들은 선한 열매들을 기대하시지는 않습니까? 절대로 그것을 거둘 수 없습니다. 악을 심었다면 죄를 거둘 것입니다. 은혜를 저버림 그렇다면 왜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신뢰할 만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셨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하신 것은 아닐까요? 물론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이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말 하고 있습니다. \\\"......................\\\" 1절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 다. 열매 맺는 포도나무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도나무에 비유하 고 있습니다. [시 80:8-10]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이를 심으셨나 이다 주께서 그 앞서 준비하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땅에 편만 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우고 그 가 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이 구절은 하나님을 농 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도나무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포도나무가 처음에는 어디 에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애굽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었습니 다. 그래서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는 자리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옮겨 놓았습니 다. 그랬더니 어떻게 됩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사 5:2] 에서는 하나 님께서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엄 청난 은혜를 임은 민족이었습니다. 정말 우리들이 시기심이 날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 았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성경은 곧이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열매가 많을 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 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 수록 더욱더 범죄 했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넘칠 수록 하나님을 버리고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부강 이 말씀은 이 본문이 기록될 당시를 보면 실감이 납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될 당시는 여로보암 2세가 북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이 때는 북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평안했던 때였 습니다. 여로보암 2세가 차지했던 땅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왕하 14:25] \\\"...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 것은 솔로몬 시대의 땅 넓이와 같은 것입니다. 즉, 솔로몬 시대의 번영을 다시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얼마나 북 이스라엘의 위력이 대단했는가를 호 13:1절은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하나님을 전심을 다해 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우상을 섬기는 일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있어지는 풍성함으로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서 사용하기보다 우상을 꾸미는 일에 더 바빴던 것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도 악을 심었던 것입니다. 배은망덕 우리들은 이미 말라기서를 살펴보았었습니다. 여러분 말라기서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리발이었습니다. 왜 오리발이 생각나죠? 그렇습니다. 말라기서에서 하나님께서는 계속 이 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들이 죄를 지었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 라 말했죠? 그렇습니다. 언제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이 이야기가 반복되죠. 그렇다면 호세아서에서 생각해야 할 단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배은망덕이라는 단어입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혜를 입고도 은혜를 저버린 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매 장 마다 이 문제를 다루 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고멜을 들 수 있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 나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은혜를 저버립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본문도 바로 그런 본문 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났을 때 마치 광야에서 만난 포도송이와 같이 첫 무화가 열매를 만나는 것 같이 그렇게 만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렇 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으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배은망덕한 모습이지요. 호세아의 메시지 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 이야기죠. 여러분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호세아 하면 배은망덕에 대해서 떠올리면서 여러분들의 삶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의 자리를 헛된 자리로 이런 배은 망덕은 호세아서에 나타나는 몇몇 지명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살 펴보았던 길갈이라는 지명입니다. 여러분 길갈이 어디라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길갈입니다. 이 길갈에는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가르 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요단강에서 돌을 주어다가 비석을 쌓은 곳입니다. 따라서 저들이 가나안을 진군 해 들어가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 길갈에 와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생각 하면서 은혜를 입었던 곳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마치 십자가 아래와 같은 곳입니다. 우리들도 어려움 이 있고 힘들 때마다 십자가 아래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9:15절을 다시 한 번 보죠. \\\"......................\\\" 이 은혜의 자리가 무엇으로 바뀌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악의 자리로 바껴 버 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자리에서 오히려 이들은 하나님께 범죄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오늘 본문 5절에 소개되고 있는 벧아웬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벧엘을 말합니다. 여러 분 이 벧엘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도착을 해서 감사의 제단 을 쌓던 곳이 바로 이 벧엘입니다. 야곱이 잠 깨어 돌단을 쌓던 곳도 바로 이 벧엘입니다. 사사 시대에 언약괘를 두었던 곳도 이 벧엘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를 정도였습 니다. 저들의 믿음의 선진들이 이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5절에 이 벧엘에 무엇이 있습니까? 예, 금 송아지가 있었습니다. 그 래서 그 이름도 이제는 벧아웬 즉, 헛된 집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은 은혜의 자리를 헛된 자리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하게 은 혜를 저버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함으로 오히려 이제는 우상 을 섬기고 꾸미는 일에 사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을 어떻게 관리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 분들에게 많은 은혜들을 주셨을 것입니다. 영적인 은혜, 육적인 은혜, 물질적인 은혜 이러저러한 것들을 따져 보면 셀 수 없이 많은 은혜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은혜들이 우리들의 삶에 넘치고 있습니다. 구원의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인생의 길이 마치 사막을 걷는 것과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사막 길처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단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받은 은혜로 무엇 을 하십니까? 진정 그 모든 은혜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쓰여지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 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 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그 은혜를 통하여 우리들의 삶에 선한 것들이 많아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 에는 함께 나누는 삶이 얼마나 넘치고 있습니까? 오늘 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기보다는 세상을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 러분들의 물질, 여러분들의 시간, 여러분들의 건강, 이 것들이 과연 어떻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하나님 을 위함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스스로를 위함입니까? 우리들이 입은 은혜를 저버린다면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악을 심는 것입니다. 헛된 것을 거둠 그렇다면 이런 악을 심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될까요? 5절 말씀을 읽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벧아웬의 그 송아지로 인하여 두려운 일이 발생할 것이라 말합니다. 슬퍼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 말합니다. 욀까요? 5,6절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여기서 말하는 그 영광이란 벧아웬의 송아지의 영광을 말 합니다. 벧아웬의 송아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 이것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자신을 지켜 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그런데 이 송아지에게 그 모든 화려한 영 광이 떠나갈 날이 이를 것이라 말합니다. 어떻게 영광이 떠나가는 가를 잘 보십시오. 이 송아지가 앗수 르로 옮겨져서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드려질 것이라 말합니다. 이것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약 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때 화려하게 꾸며 놓은 이 금 송아지가 무엇을 할 수 있 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금 송아지가 값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약탈되고야 말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저들이 섬기던 금 송아지,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앗수르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이 금송아지를 가꾸었습니까? 열매가 많을 수록 제단을 만들고 주상을 아름답게 했습니다. 정성을 다해 이것을 모셔 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무너지는 날 이것이 저들을 위해서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어떤 능력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 자신도 앗수르로 끌려가고 맙니다. 저들이 기대했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때 이들이 얼마나 허무한 마음을 갖겠습니까?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내가 겨우 이것을 위해 살았구나 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의 신세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단어가 7절에 있습니다. 그렇습니 다. 물거품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3절에서 거짓 열매 를 먹는 다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들이 다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입 니다. 그렇습니다. 악을 심는 것들은 모두 이렇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아무 일이 없을 때는 그것이 화려하게 보일 것입니다. 마치 금송아지가 아무 일이 없을 때는 번쩍번쩍 빛나며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처럼 세상에 심어 놓은 것들은 그렇게 화려하게 빛날 것입니다. 여러분 화려하게 장식을 해 놓은 백화점에 가 면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게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러 나 언젠가는 그런 것들이 거짓 것이라는 것이 밝혀질 것입니다. 이때 우리들이 당할 일이 무엇입니까? 8 절 하반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수치를 당할 것이 라는 말이죠. 왜죠? 예, 아무 일이 없을 때는 그것들이 여러분들을 화려하게 꾸며 주지만 하나님께서 세 상을 심판하실 땐 이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물거품이 될 거짓 열매를 얻기 위해서 그토록 수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분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11절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여기 서 말하는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을 말하죠? 그런데 저들의 과거의 처지가 어떠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길 들인 암소 같이 곡식 밟기를 좋아했다고 말합니다. 여기 곡식을 밟는 것은 추수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 타작마당에 곡식을 쌓아 놓고 가축을 밟게 해서 타작을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소는 곡식을 떨면서 마음껏 그것들을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신명기 25:4절에 보면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말할 정도로 곡식을 떠는 소에게는 특권이 주어 졌었습니다. 따라서 이 소는 풍요로움을 나타냅니다. 바로 다음에 기록되고 있는 아름다운 목을 보면 이들의 처지가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잘 먹고 목에 털을 기름지게 한 소와 같은 신세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제 어떤 신 세로 바껴집니까? 그렇습니다. 목에 멍에를 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사람을 태우고는 밭에 나가 밭을 가 는 신세로 바껴지고 맙니다. 처지가 달라지는 것이죠? 왜 이렇게 됐죠? 그렇습니다. 은혜를 저버렸기 때 문입니다. 잘못된 것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악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쫓았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농사법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농사법은 어떤 것입니까? 12절을 읽습니다. \\\"......................\\\"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었던 것과 다르죠? 뿐만 아니라 거두어들이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까? 무엇을 심습니까? 그렇습니다. 의를 심으라고 말합니다. 그 러면 무엇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하죠? 예, 긍휼을 거둘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하 심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의를 심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뒤에 보면 지금이 여호와 를 찾을 때라 말하죠? 따라서 의를 심는다는 것은 여호와를 찾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찾는 삶 을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긍휼로 저들을 만나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이 어떤 삶이 되어야 할 것인가가 정리됩니다. 어떤 삶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삶이 되어야죠.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던 다윗도 이렇게 말합니다. [시 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 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 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스코틀랜드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 역을 해 놓고 있습니다. \\\"사슴이 갈급하여 숨을 헐떡이며, 울음소리를 내면서 시냇물을 찾는 것 같이\\\" 그 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까? 묵은 땅이란? 아마 저의 질문에 아멘으로 대답을 하는 분도 계실 터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목사 님 저는 하나님을 찾으려 해도 잘 안되네요.\\\"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자 12절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는 일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 업지 않고는 씨앗이 자랄 수 없습니다. 다시 말 하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 상태를 그냥 이대로 두고는 이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갈아엎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혹 여러분들이 묵은 땅인지 아닌지 아직 구분이 가지 않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들 의 마음이 묵은 땅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드리지요. 묵은 땅은 굳어져서 물이 잘 스며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도 잘 스며들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묵은 땅임에 틀림없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재미가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묵은 땅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사람은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스폰지에 물이 스며들듯이 말씀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 눈물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여러분들 스스로를 묵은 땅으로 간주해도 좋 을 것 같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려 보거나, 함께 성경 공부를 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예배에 별 재미가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저 졸립기만 한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묵은 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느낀다면 그대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의 묵은 땅을 기경하십시오. 또 묵은 땅은 잡초가 우거져 있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밭에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이 자라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보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 더 많다면 묵은 땅으로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하는데도 자꾸 엉뚱한 생각만 납니다. 말씀을 펼쳐 들었는데도 자꾸 세상 생각만 납니다. 바로 묵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땅입니까? 묵은 땅이 라면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대로 두어서는 곤란합니다.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는 쓸모 없는 땅이 되 고 말 것입니다. 잡초만 우거진 그런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을 갈아엎으십시오. 묵은 땅을 기경하라 그러면 어떻게 우리들의 마음을 갈아엎을 수 있겠습니까?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겠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새 신을 주어서 부드럽게 하겠다고 말씀하 십니다. 그렇다면 여기 새 신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러워 지기 위해서는 성령께 우리들을 의탁해야 합니다. 성령께 내 자신을 내어 맡기는 작업이 있어 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마음을 기경하기 위해서 조용히 하나 님께 무릎을 꿇으십시오. 아니 그것으로 안되면 가슴을 치십시오. 제가 안타까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 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묵은 땅인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 다. 무릎을 꿇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분이 그렇게 많지가 안아요. 왜들 그러는지... 조용한 시간 교회에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성도가 별로 없어요. 울부짖고 도와 달라는 성도가 없어요. 이런 일을 위해서 라면 얼마든지 울부짖으십시오. 좀 무릎을 꿇고 성령의 도우심을 기도해 보십시오. 우리 사랑하는교회에 이런 사람이 너무 귀합니다. 왜들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묵은 땅으로 판명이 난 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마십시오.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저 겉만 갈아 엎는 것이 아니라 속까지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이 무엇입니까?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 에게 내리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갈고 부드러운 마음을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이 들에게는 의를 비처럼 내려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 러분들의 인생이 풍성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농사법으로 여러분 들의 인생을 경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의를 심으십시오. 긍휼을 거둘 것입니다. 여호와를 찾으십시오. 긍 휼하심으로 만나 주실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들의 묵은 땅을 기경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한없는 은 혜의 비를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A.W 토저는 자신이 무엇을 심고 있는가를 발견하기 위한 몇 가지 지침을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 다. 1. 지금 내가 가장 소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2. 지금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3. 나는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4.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5. 내가 만나고 사귀는 친구들은 어떤 사람인가? 6. 내가 사모하는 혹은 흠모하는 성공의 대상은 누구인가? 7.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웃을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바로 지금 여러분들이 심고 있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그 것은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농사법입니까?
마태복음강해(14)/ 사람을 낚는 어부/ 마4:12-25
마태복음강해(14)/ 사람을 낚는 어부 마4:12-25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귀로부터 세번이나 거듭 시험받으신 후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잡히심을 들으시 고 바로 공생애에 들어가시는데, 이제부터는 능력있는 공생애에 대해서 또 사역을 위하여 제자들을 선택하신 일에 대하여 공부하 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신 시기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문맥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신 다음, 바로 이어서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히고 예수님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가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으로, 그래서 그 시간적인 간격이 없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보면 그 중간 기간은 상당히 길게 잡혀 있습니다. 근 1년쯤 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는데 요한이 잡히기 이전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 을 만나신 일이 있고 그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뵈온 일도 있습니다. 또 가나의 혼인 잔치 기사가 있는가 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깨 끗하게 정화하신 일도 있었고 니고데모를 만나서 대화하시면서 영생의 비결을 가르쳐 주셨던 여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세례 요한은 요단 강에서 세례 주는 일을 계속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사역 기간에 상당한 중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러한 모든 일들을 다 생략하고 시험받으신 후 곧 바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신 것으로 기록하 고 있습니다. 왜 이러하였을까. 그것은 마태는 오직 예수님은 우리 민족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이다, 그리스도이다 하고 증거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 니다. 오직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기록했기 때문에 그 밖의 다른 일에 대해서는 과감히 생략한 것입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예수님을 증거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적절하게 말씀과 예수님의 사역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 에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히는 것에 관해서는 앞으로 14장 공부하면서 설명하겠습니다마는 예수님의 사역은 세례 요한과 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공생애에 들어 오셔서 처음 시작하신 전반기 사역에도 보면 전도를 시작하시면서 곧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대 를 받으셨는데 세례 요한이 잡힌 데서부터 예수님의 전반기 전도 사역이 시작된 것도 그렇습니다. 후반기의 사역 역시 많은 반대 속에서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앞으로 당하실 십자가 고난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여러가지 천국 복음에 대한 교훈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후기사역 또한 세례 요한이 잡혀서 참수를 당한 그 기점 에서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마태는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언제나 선구자로서의 사명에 철저하였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지역에 오 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셨을 때, 요한복음의 설명으로는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마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근심스런 얼굴로 스승 요한을 찾아와 말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소개한 저 예수님 에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모두 가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그랬더니 세례 요한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그 말 그대로 흥하여야 될 예수님을 두고 그는 잡혀갑니다. 그리고 곧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갈릴리로 물러 가셨다가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일하시고 나사렛에서 예수님이 사셨던 일은 우리가 이미 상고해 보았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나셔서 헤롯의 칼날을 피해 애굽 으로 피난 가셨다가 유대로 돌아오시면서 나사렛에 가셔서 성장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성장하신 후에 그곳에서 사역하지 아니하시고 떠나셔서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24절에 보면 \"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고향 나 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것입니다. 아니 메시아가 오셨으면 온 동네 사람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환영해 드렸어야 되었을 터인데 오히려 고향에서 배척하다니...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너무 익숙하다가 그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는 축복은 받지 못하였 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향을 떠나셔서 가버나움에서 사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사실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 그대로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예언의 말씀의 성취라고 하는 것을 여기 분명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좀, 자유롭게 인용을 하였습니다마는 15절부터 보면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 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인데 이스라엘의 베가 왕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웃의 강대한 나라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왕 이 침략해 왔습니다. 강력한 철 병거로 이스라엘 땅을 짓밟았습니다. 그리고는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비참한 일이 이스라엘 땅에 벌어졌습니다. 그랬는데 다행히 정세(政勢)가 호전되어 새로운 구원의 은총이 이스라엘 땅에 임하게 되어졌습니 다. 이렇게 외국의 핍박에 의해 고통을 당했던 흑암의 땅에 새로운 구원의 빛이 비췄던 바로 이 일은 신앙이 없고 영적으로 어둠 속 에 빠졌던 도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나라가 그 어둠의 그늘에서 사망의 골짜기에서 빛 되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나라가 회복 되어질 것을 미리 내다보고 예언한 말씀의 성취가 이렇게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시고 갈릴리 땅에 사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어졌다... 이렇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방의 갈릴리여\" 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본래 갈릴리는 이방의 땅이 아닙니다. 유대 땅에 있는 지역입 니다. 그런데 \"이방의 갈릴리\"라고 표현된 연유(緣由)는 이러합니다. 여호수아가 이끌고 들어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 땅에서 고통 당하다가 모세가 인도해 왔지만 그 민족의 죄로 광야에서 40년 유리 방황하였지요. 모세는 느보 산 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그곳에 남아있는 모든 이방 족속들을 가차없이 다 멸해 버 려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방 신을 섬기던 족속들이 그곳에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감동시키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동화(同化)되어서 하나님 이외의 우상을 섬길 것 같은 그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리 염려하셔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지없이 다 멸해 버려라, 한 사람도 남기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원주민들 가운데 일부 는 없애 버리고 일부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과 피가 섞이게 되었고 그들의 신들을 함께 섬기 게 된 것입니다. 거기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북쪽의 힘 센 나라들이 자주 침범해 들어와 자주자주 짓밟아버렸습니 다. 쳐들어오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남아서 외국의 병사들이 자리를 잡고 가정을 이루고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이 있었는가 하면 외국의 군대들이 주둔하면서 피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갈릴리 지역은 유대 본토 안에 있으면서도 이방인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방의 갈릴리여\" 이렇게 칭하게 되어졌 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지명(地名) 모두가 다 그러합니다. 스불론 땅, 납달리, 요단강 저편, 해변 길.... 갈릴리의 모든 지명을 그렇게 일컬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백성들이 큰 빛을 보았고 그 죽음의 땅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 했던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하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보게 되어지는 점은 예수님께서 성장하셨던 나사렛에서 배척받으셨던 일이 오히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하 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계기가 되어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 8장 28절에 말씀하는 대로 \"하나님 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는 것은 이 경우에도 합 당하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모든 일이 내가 있는 곳에서 환영을 받아야 되고 내가 정착한 그곳에 계속적으로 터를 닦고 살아야 될 터인데 때로는 내 주거지가 바뀌게 되고 내 직장이 바뀌게 되고 내 사업이 잘 안되어 여러가지 곤고한 일을 우리가 당할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데도 뜻하지 않은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서 내 계획과 내 생각대로 되어지지 않는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절망과 낙망으로 극히 비관할 때도 있습니다. 사는 곳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 다니는 일도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낙심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하시는가, 예수님도 안주(安住)하실 수 있었던 나사렛에서 배척을 받으심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하는 점에서 우리는 어떤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믿음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갈릴리 지역 일대를 일컬어 \"이방인\"이라 하고 거기에 \"빛이 비취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곳은 버려진 땅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외면하고 부끄러워하는 땅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람들을 혼혈족이기 때문에 정당한 인 격을 가진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네들보다 열등할 뿐만 아니라 구원의 반열에서도 도외시되었던 사람이라고 멸시했는 데 이미 예수 그리스도 오신 그때부터 그들은 구원의 백성으로 다 밝은 생명의 빛이 비취도록 하나님께서는 역사해 주셨다는 말 씀이고 이것은 벌써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었다고 하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우리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불필요한 우월감 속에서 이방 사람들을 냉대하고 교회 안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과오를 범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의 갈릴리까지 생명의 빛이 비춰짐으로 해서, 그 그늘의 땅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기에 오늘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복음의 보편성, 우주 성이 이미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신앙 안에서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어느 특정 계층만, 어느 범주에 들어오는 특별한 사람들만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의 갈릴리\"까지 모든 죽음의 그늘이 뒤덮여 있는 그곳까지 그 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빛이 비춰졌음을 기억하면서 온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저 사람들은 불교 나라 사람들이 기 때문에, 또 누구는 회교 국가이기 때문에, 또 저 사람들이야 주님과는 상관이 없기에... 하고 우리가 짐짓 제(除)하여 놓을 땅도, 족속도 없음을 알면서 우리는 천하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언제나 강하게 들려옴을 우리는 기 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어떤 빛을 이방 땅까지 비추셨는가, 여기 23절을 보면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 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 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빛을 비추셨는가, 먼저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승의 역할을 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을 깨우 쳐 주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이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선생 교사였다고 하는 말입니다 . 또 전도사 선교사의 직분을 행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의사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는 말입니다. 이것을 일컬어 \"예수님 전도 방법의 삼위일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르치시는 일을 했는가 하면 복 음을 증거 하시는 선포자의 역할, 선교사의 역할을 하셨고 다음으로는 병을 고치심으로 인간들의 육신적인 고통을 해결해 주시고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 주시는 일을 하셨다 하는데서 \"삼위일체의 전도 방법\"을 예수님께서는 하신 것입니다.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방법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야 합니다. 이 세대 가 양식이 없어 주리는 것이 아니고 마실 물이 없어서 갈(渴)하는 게 아니라 영의 양식이 없어서 심령이 고갈되고 목말라 합니다 . 그러나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이들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선교 방법이었습니다. 여기 23절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는 것은 각종 질병을 모두 내포한 말씀입니다. 그런가하면 \"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을 가진 자\"라고 하였는데 이 병들의 일반 명칭과 함께 또 구체적인 병명을 들어서 \"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 이런 모든 사람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연약함을 안고 있는 모 든 사람들까지 그 병에서 건져 주심으로 그들의 심령을 건져 주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될 일입니다. 오늘은 마침 \"장애자의 날\"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많은 장애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장애자들은 점점 더 많 아질 것입니다. 우리들이야 대부분 아이를 다 낳으시고 이제는 단산(斷産)들을 하셨습니다마는 또 앞으로 태어날 우리 자녀 가운 데 그럴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만 세계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점점 더 많은 장애자가 많이 나옵니다. 또 낳기는 건강한 아이를 낳 았는데 그만 복잡한 현대 생활을 하다가 보면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든지, 산업 재해를 입는다든지 해서 우리의 삶에 편의를 가져 오는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여러가지 생각지 못했던 우리 육체의 질병과 장애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들이 그러한 모든 사람에 게 그들의 필요를 따라 공급해주고 그들을 사랑하고 감싸주고 또 주 앞으로 인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육체는 병들고 불구이지만 그들의 심령은 건강하고 이 땅에서는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건강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 도록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들을 회복시켜 주는 일, 그리고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 다. 물론 요즘 우리에게도 병 고치는 능력을 주신다면 그들을 다 일으키고 고쳐주면 더 좋겠습니다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해도 그 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효과적으로 인도하고 보살필 수 있을까에 대하여 우리 교회가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됩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 안팎을 보수(補修)하면서 예배당 올라오는 길을 연만하신 어른들이나 장애자들도 올라오기 쉽게 한 것은 매우 잘하신 일입니다. 앞으로는 휠체어를 준비하기도 하고 듣지 못하고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시설도 하여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이 육체적으로 연약한 이들에게 최대의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 모두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 앞으로 우리가 마태복음을 공부하겠습니다마는 9장, 11장 12장 14장 15장 19장을 보아도 예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이 연약한 병든 사람들의 육신을 회복시켜 주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또 우리 교회에서 몇년 전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밤낮으로 지역 사회를 위해 애쓰는 일이 있습니다. 예, \"한글 학교 \"입니다. 여러가지 여건 때문에 배움의 기회를 놓치고 한글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교회가 그들에게 한글을 깨우쳐 준다고 하는 것 아주 좋은 일입니다. 어쨌든 그런 여러가지 면으로 우리들이 연약한 사람들을 다 고쳐주고 회복시켜 주고 하는 일들을 복음을 전하는 일처럼 귀중하게 알아서 우리들이 더 여러 방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힘을 써야만 할 줄 압니다. 그렇다고 하면 오 늘도 우리들이 심령을 살리는 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육체의 연약함도 관심을 갖는 것, 또 육체의 병만이 아니라 먹을 게 없어 배고파하는 사람들이라든지 굶주린 사람들을 만족시켜 주는 일은 우리 모두가 힘써 해야 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소문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25절을 보면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 편에 서 허다(許多)한 무리가 좇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보면 여러 곳, 각 지역에서 예수님에게로 다 나아왔습니다. 데가볼리(Decapolis)는 알렉산더 대왕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세웠던 열 개의 도시라는 말이 데가볼리라고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또 예루살렘과 유대는 남쪽 지역이지요. 갈릴리 지역 저 동쪽 북쪽 요단 강 건너 편 사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는 이 소식을 듣고서 모두가 다 와서 건강함을 얻 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심령이 구원 얻는 이중적인 구원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께서 비로소 말씀하시기 를 \"회개하라 ! 예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십니다. 육신적으로 필요한 것이 주어졌을 때 비로소 복음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필요도 채워 주면서 그들의 심령을 구원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이 방법을 우리가 늘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 \"천국(天國)이 가까이 왔느니라\"하는 말씀은 이미 다 말씀 드렸습니다마는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이기 때 문에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유대 사람들은 망령되게 생각합니다. 아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하고 거부 감을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이,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마태복음에도 \"하 나님의 나라\"라는 말이 다섯 번 정도 나옵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天國)\"라는 말은 서른 두 번이나 나옵니다. 어떻게 하든지 듣는 사람들의 귀가 거슬리지 않게 하면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렇게 용어 사용도 구별하였다고 하는 것은 오늘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 지혜로워야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 \"전하는 자 중심\"이 아니라 \"듣는 자 중심\"의 선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셨는데, 예수님 오신 다음에 바로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 졌습니까 ?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이 무엇이냐, 세례 요한이 증거 했던 천국이 어떤 곳이냐, 천국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셨을 때 이 말씀을 두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하 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든지 그렇다고 이 다음 죽으면 천국 간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해해서 왜곡하는 사람 들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가능해졌습니다마는 그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모신 그 곳 이 하나님의 나라인 줄 알고 거기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숨을 거두면 가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그림자입니 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셔서 그곳에 계셨지만 거기에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성취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전 해졌지만 아직 불완전한 악의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로서 그리고 예수님이 계셔서 그의 말씀이 능력을 행사하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복음을 전하시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면서 하신 내용이 여기 본문 중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택하신 일입니다. 18절 이하를 보면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 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 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 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배대와 한 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복음 전하시는 일이 긴급한 일입니다. 또 예수님에게는 무한하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 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흙을 빚어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셔서 인간을 만들어 놓으신 능력이 충만하신 분 입니다. 그리고 세계의 역사를 다 당신이 주관하십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병자를 고쳐주니까 전 지역에서 구름 떼처럼 몰려와서 병이 다 낫고 세례를 받는 무한한 능력을 나타내셨던 분입니다. 그러기에 당신 자 신이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사역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탁하실 제자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은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한 마디로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사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라고 할만큼 인간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세상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시고 그 다음에 아담을 만드시고 그리고 아담에게 이름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거기 있는 동물들, 식물들의 모든 이름을 아담 마음대로 부르라고 그러셨어요. 아담이 이것은 여우요 이것은 호랑 이요 이것은 토끼요 이것은 개구리요 붙이는 대로 이름이 다 붙여졌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름 지으실 능력이 없으셔서 아담 에게 그 이름을 붙이라고 하셨겠습니까 ? 하나님은 부족함도 모자람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이 창조해 놓은 이 아름다운 천지에 아담과 이브를 두시고 함께 그곳에서 그들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붙이는 대로 함께 불러 주시면서 하나 님은 즐거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이 땅을 정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혼자 능히 구원의 역사를 다 감당하실 수 있음에도 사람을 먼저 선택하셔서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누가 복음 5장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밤이 맞도록 베드로가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힘이 모두 빠 져서 물 가에 나와서 그물을 씻는데 그때 나타나셔서 \"깊은데 가서 그물을 던져라\" 하시고는 다시 가서 고기를 잡게 하시고 잡은 고기가 너무 많으니까 동무를 손짓해서 오라고 해서 야고보 요한도 와서 체험한 다음에 나를 따라 오너라 하고 부르 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로 하여금 주의 사역에 동역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제자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예수님이 올라가신 후에 또 그들에게 모든 사 역을 맡기셨다는 것에 우리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도 주께서는 일하실 때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 을 훈련시킨다고 하는 것,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은 지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교회적으로도 우리 노량진 교회가 해야될 많은 일이 있는 중에 인재를 양성한다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 교회 학교 도 인재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더 두드러지게 우리가 이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을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좋은 인재들을 양성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에서 장학 제도를 두고 어린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면서 격려해 주고 온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서 인재를 양성하는 일에 힘을 쏟는다 고 하는 일은 아무리 힘을 기울여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지 우리 교회의 내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우리 교회 자체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우리 교단을 위해서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고 아무리 인류의 문명이 발달되어 보아야 사 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 점점 더 인물이 필요합니다. 과학이 발달되고 국가의 산업이 발달되고 이 나라의 GNP가 올라갈수록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인재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우리 원로 목사님께서 목회 하시는 동안 좀더 우리 교회에 많은 시간을 내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우리 모두가 다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우리 원로 목사님으로 하여금 우리 교회를 목회 하시면서도 밖에 나가서 더 큰 일, 더 많은 일을 하시므로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 아마 우리 원로 목사님만큼 정열적이시고 신앙적인 열의가 있으시고 헌신 적으로 모든 일을 하신 분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훌륭한 우리 교계와 이 사회의 좋은 일꾼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 노량진 교회 안에서 우리를 보살피시면서 또 밖에 나가셔서 큰 일을 하셨다는 것은 우리 노량진 교회가 우리 교계와 이 나라 이 사회를 위해 기여하신 아주 좋은 일이었다고 아무리 찬사를 보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우리 교회 안에서 이렇게 목회적인 면뿐만 아니라 앞으로 학계, 또는 교육계라든지 아니면 정치계라든지 그 밖의 모든 분 야에 많은 인재를 양성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에 예수님께서 제자를 먼저 선택하셨고 그들을 3년 동안 교육시키셨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깊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면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여러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맨 먼저 무엇 하는 사람들이었습니까 ? 예 어부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있었고 권력자도 있었습니다. 또 정치인들도 있었어요. 물질 많은 부 호들도 많았어요. 사업가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겨우 어부들이었어요. 물고기나 잡는 사람들이었어요. 그 사람들 조상 대대로 한 다는 것이 겨우 짠 냄새나 풍기고 그물 당기고 씻느라고 손은 거칠대로 거칠고 다 부르터서 만져 보아야 뻣뻣하기나 할 터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택해서 제자로 삼으셨어요. 아마 열 두 제자 중에 일곱 제자가 어부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됩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디베랴 바닷가에 나타나셨을 때 거기에 제자들이 있었는데 시몬 베드로, 디 두모라 하는 도마, 또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물고기 잡으 러 가는데 이 일곱 사람이 따라 간 것을 보면 아마 그들 직업이 일곱은 어부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이렇게 배운 것도 많지 못했을 터이고 남들에게 인정도 받지 못했을 터이고 또 가진 것도 별로 없어 어느 면으로 보아도 누구도 존경하지 못할 사람들을 선택하셨을까요 ? 고린도전서 1장 26절 말씀에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 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 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연약한 자들, 미련한 자들, 약한 자들, 갖지 못한 자들, 천 한 자들, 멸시받는 자들, 이런 사람들을 선택해서 주께서는 제자로 삼으셨어요. 왜 그러셨을까요 ? 가령, 실력있는 사람들, 유능한 사람들, 능력있는 사람들을 선택하였으면 어떠했을까요 ? 제 자랑이나 하면 서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배웠으니까 나를 선택하셨지, 내가 사업에 이만큼이라도 성공할 수 있는 능력 이 있으니까 예수님이 선택하셨지... 하면서 자랑들을 하였을 것입니다. 글쎄, 잘 배운 사람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예 수님은 아무 자랑 거리가 없는 가장 연약한 자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갈릴리 같이 버림받은 사람들이 산다고 생각하는 그런 동네에 가셔서 그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은 주의 능력이 말씀에 있는 것이지 인간의 지혜나 인간의 어떤 능력에 있는 게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서도 그러하셨습니다 . 여기서 우리가 귀한 것을 또 하나 얻을 게 있습니다. 우리가 인재 양성할 때 인간의 눈으로만 선택할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 니다. 우리가 볼 때는 도무지 지도자가 될만하지 못한 사람들도 주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주께서 선택하시면 그도 유능한 제 자, 누구보다도 능력있는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안목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사실 우리가 사람을 양성하려고 해야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 주님 은 사람들 같으면 제(除)해 놓았을 어둠과 같은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그들로 하여금 천국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 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모든 일에 힘을 기울일 때에 너무 인간적인 생각으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누구를 어여삐 보시는가 누구를 선택하셔서 일을 맡기려고 생각하시는가 하는 것에 우리는 착념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부들을 선택한 이유를 그 오렌 웨어스비(W. Wiersbe)라고 하는 분이 쓴 주석(註釋)을 보니까 여러가지로 해석을 했어 요. 먼저, 이 어부들은 바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어부들은 잠시도 쉴 사이가 없어요. 늘 바쁜 사람들입니다. 고기 잡으러 나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일부터 바쁜 사람들입니다. 고기를 잡을 때에도 잠시도 눈을 돌릴 사이가 없어요. 그물을 던지고 당기고 또 고 기를 잡아 가지고 와서는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분류해야 상품 가치가 있는 것 아닙니까 ? 고기를 다 잡았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음 고기 잡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물을 씻어야 되고 기워야 되고 또 사려 놓아야 됩니다. 어부는 잠시도 쉴 사 이가 없이 바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역시 바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부들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선택해서 쓰시는 사람들은 일을 겁 내지않고 무슨 일이나 맡을 때는 성실하게 해 내는, 그래서 늘 바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나같이 바쁜 사람에게 또 그 일을 맡기느냐고 해요. 그런데 일하는 것을 보면 바쁜 사람이 또 일해요.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그런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일이 잘 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늘 바쁜 사람들에게 또 일을 맡겨도 잘 하지, 할 일이 없이 한가(閑暇)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 보았 자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에 대한 의욕도 그 중요성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바쁜 어부들을 선택하였다, 아주 좋은 착안입니다. 그 다음에 이 어부에게는 용기와 인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가 늘 잔잔하지만 갑자기 풍랑이 몰려오면 거친 파도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풍랑 속을 계속 노 저어 가면서 그물을 던지면서 끌어들입니다.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느라고 파도와 싸 우기도 합니다. 이 때에 필요한 것은 용기와 인내입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공회에 잡혀갔 을 때 거기서 석방하면서 너희가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아라 했더니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했지요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 아니 거기가 어딘데 이런 말 을 함부로 합니까. 그런데 그들에게는 어부의 용기가 있었습니다. 어부들은 바로 이렇게 용기가 있고 인내심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선택하신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 어부는 기술이 있어야 됩니다. 고기 잡는데 아무렇게나 그물을 던진다고 고기가 잡힙니까 ? 그물을 잘못 던져 놓으면 절대로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자꾸 기술을 개발합니다. 사람을 낚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 무턱대고 전도한다고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심리를 알고 인간의 요구가 무엇인지 항상 연구하면서 계속적으로 노력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전도자들은 바로 어부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 어부들은 고기를 잡을 때 혼자 잡는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을 하면서 잡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 일에도 또 인재로서 사 회를 위해 일할 사람들도 남들과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유능하고 똑똑해도 자기 혼자서는 일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남들과 손을 잡고 마음을 합하고 협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부들에게는 남과 함께 일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었고 협동이 미덕입니다. 그래서 어부들을 제자들로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고기를 잡는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던질 때 눈으로 고기를 보면서 던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넓은 바다 어디에 고기가 있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어부들은 믿음을 가지고 그물을 여기도 던졌다 저기도 던졌다 하면서 계속 던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또 당장 잡히는 것도 아니지만 계속 그물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고기를 잡아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디 에 어떻게 그물을 던져야 고기가 잡히고 내가 일한 보람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계속해서 그 리고 분명히 나는 생명을 살릴 수 있겠노라는 분명한 믿음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분명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로 어부와 같은 사람들을 선택해서 주님은 제자 삼으셨고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상당히 설득력있는 주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말하자면, 학생일 경우에는 열심히 공부에 전력하는 학생들, 주부라면 가사에 전념하 는 여인들, 직장인은 일터에 나가서 열심히 일함으로 이 사회를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또 온갖 지혜를 동원 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들, 그리고 남들과 더불어 각 분야에서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해 일하 는 사람들를 택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하시면서 이 제자들을 선택한 데서 배우게 됩니다. 오늘 여기 있는 이 모든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복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육신의 필요를 채워 주셨는데 오늘 우리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되 이 지역 사회 사람들이 무엇을 우리 교회에 요구하는지를 알 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러해야 합니다. 또 주님께서 고향에서 배척을 받은 그 일이 오히려 세계 복음화에 유익한 결과가 주어졌 다고 하는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도 함께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회와 사회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도 우리 교회가 감당해야 할 귀중한 책임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이 거두는 농부/ 고후9:6
많이 거두는 농부 고후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농사를 지으려면 논이나 밭같은 땅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엔 심을 씨앗이 있어야 하고, 심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이 밖에 비료라든지 농약들도 필우라지만 그런 것은 다 조금 전 에 말한 땅, 씨앗, 농부 다음에 들여야지 하는 엉뚱한 욕심만 부리다 니 참 웃기는 일이지요. 이건 마치 서울은 동쪽인데 북쪽으로 가면서 서울 가야지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을 정도지요. 김화홍이란 농부와 강두식이란 농부가 나란히 지붕을 맞대고 살고 있 었습니다. 김화홍 농부네는 식구가 여덟인데 강두식 농부네는 아홉식 구였어요. 감자를 심게 되었습니다. 봄입니다. 밥도 다 먹히고 간식도 자꾸 먹 고 싶어지는 봄철이 된 것입니다. 해가 길어진 탓입니다. 김화홍 농부는 감자를 아끼지 않고 먹었습니다. 그러나 강두식 농부 는 밭에 심을 씨 감자를 아주 토실토실 여문 것으로 골라 넉넉히 덜어 놓고 규모있게 조금씩 필요한 때가 되면 그때만 먹었습니다. 밭에 씨 감자는 심는 날이 되었습니다. 김화홍 농부는 400평 밭에 다 심지 못하고 말았지만, 강두식 농부는 700평에 넉넉히 심을 수 있었습니다. 김화홍 농부는 심을 때 감자를 너무 잘게 쪼개고 쪼개어 마치 구슬만큼 작은 씨 감자를 심었고, 강두 식 농부는 크고 눈이 똑똑한 감자를 큼직큼직하게 잘라 아끼지 않고 넉넉히 크게 쪼개어 심었습니다. 7월 장마철이 되기 전에 두 집이 다 감자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수확 량은 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많이 거두었을까요? 김화홍 농부는 아끼면서 깍쟁이같이 심었습니다. 강두식 농부는 그 반대였습니다. 이것은 헌금하는 태도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내는 것은 농부가 자기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 습니다. 이것은 남에게 자비와 은혜를 베푸는 태도에 대한 말씀도 됩니다. 우 리가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은 농부가 자기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노랭이짓, 깍쟁이짓하며 바들바들 떨면서 억지로 헌금을 반가와 하시지 않는다고 성경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큰 보상을 받을 생각을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고 모른체하고 지나가는 사람 도 축복하기 싫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넉넉히 헌금 하는 사람에게 더욱 넉넉히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농사짓는 농부입니다. 우리는 모두 많은 곡식, 많은 과일과 채소를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농사에 쓰일 씨앗을 아까와서 바들바들 떨며 적게 심으면 우리가 결코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게 바칠 때 기쁘고, 넉넉히 그리고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노 랭이짓 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하나님께선 충만히 갚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