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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동란 후 극히 살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6.25 동란 후 극히 살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교회 주일학교 예배에 나오는 한 어린이가 교회에 올 때마다 술에 취해 얼굴은 붉고 술 냄새를 풍겼습니다. 선생님은 이 아이에게“어린 것이 벌써부터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마땅히 야단을 맞아야 할 일이었습니다. 야단맞은 어린이는 서럽게 울었습니다.“뭘 잘했다고 울긴 우느냐.”하고 선생님은 또 야단을 쳤습니다. 그때 그 아이가 울면서 하는 말이“선생님, 우리 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옆집의 양조장에 가서 술 찌꺼기를 얻어다 먹습니다. 배가 고파 그것을 먹고 나면 이렇게 얼굴이 붉어지고 술 냄새가 나는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면서 더 서럽게 울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그 어린이를 부둥켜안고 같이 울면서“내가 네 사정을 모르고 야단을 쳐서 미안하구나.”라고 사과를 하며 우는 어린아이를 위로하며 달랬습니다. 그 선생님은 이 사실을 교회에 알려 쌀을 몇 가마니 사서 그 어린이 집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렇게 자라난 그 어린이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가 되어 있습니다.
6.25를 보는 눈/ 2010-06-25
6.25를 보는 눈 조중동의 사설에서는 6.25에 관한 사설을 쓰면서 남침임을 명확히 했다(물론 서울, 국민, 문화일보도=당연한데) 그런데 경향과 한겨레는 6.25 60년 동안 상처와 아픔이 있다. 미군이 민간인을 너무많이 죽였다라고 적고있다. 기어이 경향과 한겨레는 끝까지 북을 두둔하는가 마음이 아프다 12명의 정탐군을 가나안에 보냈더니 똑같이 보고 느끼고 확인했을 것인데 10명은 우리는 메뚜기다, 2명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60대 벤처 거부의 일하는 이유
60대 벤처 거부의 일하는 이유 2002-05-16 08:47:43 read : 75 엄길청 박사가 쓴 ‘봉사의 목표’라는 글이 있습니다.그 글 속에는 60대의 봉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미국 실리콘 밸리에 가면 60대의 한국인으로 재벌에 속하는 벤처기업인이 있습니다.그는 이미 나스닥에 상장,거대한 기업을 이루었 으며 지금도 현역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자가 그에게 찾아가서 “이제는 쉴 만한데 왜 이렇게 젊은이들 틈에서 밤낮없이 일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는 지 금 나 혼자 쓰기에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지만 남에게 나누어주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도 더 벌어야 한다”고 했답 니다. 실제로 그는 1년에 약 600만달러를 사회를 위해 기부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미국내에서 가장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섬기며 나누는 삶은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64번과 65번, 현석범
64번과 65번, 현석범 http://mission.bz/7271 예화자료 오래 전 일입니다. 내 나이 열 넷, 순진했던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여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키순서로 번호를 정했는데, 난 약간 큰 키라 약 70명 중 64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번호 순서로 각자의 책상을 지정해주셨습니다. 번호가 뒷번호였던 난 맨 뒷자리나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 짝은 당연히 65번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반, 새 친구들은 남자아이들 뿐이라 서로 누가 주먹이 세냐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주먹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난 여느 아이들처럼 순진하고 유치했던 것 같습니다. 남자아이들은 가끔씩 치고 받고 했습니다. 저 역시 덩치도 크고 키도 컸기에 반에서 힘 좀 쓰는 녀석들의 무리에 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도 별로 세 보이지도 않는 녀석과 시비가 붙었는데 때려주기는커녕 무지 맞았습니다. 졸지에 난 반에서 가장 약한 아이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녀석, 저 녀석 모두 날 무시했고 난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내 짝 65번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내 짝은 싸움을 잘 안 했지만 나름대로 반에서 힘 깨나 알아주는 녀석이었습니다. 약간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 냅다 주먹을 몇 번 날렸습니다. 65번은 맞더니 당황해하면서 화를 냈습니다. 조금 있으면 그보다 약한 난 무수히 그 녀석에게 맞을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인지 수업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그 녀석은 주먹 한 번 못 날리고 억울하게 몇 대 맞기만 한 거죠. 그 녀석은 억울하고 분해서인지 수업 시간 동안 '너 죽었다'는 듯이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더군요. 솔직히 전 몹시 떨었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보나마나 맞을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어떻게 수업 40여분이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종이 울리자 65번은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난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손을 내밀더군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우리 사이 좋게 지내자." 의외였습니다.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전 맞을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십여 년이나 지난 지금, 전 가끔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나에게 피해를 주었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그런데 내 마음에 분이 가득하고 억울함을 느낄 때면 가끔 65번이 생각납니다. 65번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처 준 사람들에게 손 내밀지 못하는 나로서는 지금도 나에게 손을 내밀던 짝의 그 용기가 부럽기만 합니다
666바코드 받으면 지옥? 그럼 RFID코드는?/ 2010-04-22
666바코드 받으면 지옥? 그럼 RFID코드는?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9)- 계 13:18, 14:9 장운철 요즘 또다시 ‘666’ 바람이 불고 있다. ‘사탄의 표인 666을 받으면 지옥간다’는 게 그 핵심 주장이다. 그 666은 바코드로 대변된다. 오늘날 상거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바코드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666표라는 것이며, 이것을 사람의 이마에나 손등 등에 받게 되면 지옥행이기 때문에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내용의 핵심이다. 서울 시내 곳곳에 이것을 알리는 전단지가 대량으로 살포되고 있다. ‘누구든지 손이나 이마에 사탄의 짐승표 666바코드를 받으면 지옥에 간다’, ‘오른손이나 이마에 666칩 받으면 영원불지옥’ 등의 내용들이다. 심지어 “바코드와 상관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 간다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의 주장”이라는 어처구니없고 비성경적인 주장도 들어있다. 그들에게 ‘복음’이란 ‘예수’가 아닌 ‘바코드’인 셈이다. 지난 1992년 시한부종말론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덩달아 유행했던 주장들인데, 지금도 일부 단체를 중심으로 여전히 우리네 주변을 맴돌고 있다. 시한부종말론 사상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666=바코드’ 사상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 요즘 배포되고 있는 전단지 과거나 현재나 위의 주장들을 취재할 때마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에게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바코드=666’을 이마나 손등에 받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 바코드가 들어 있는 상품을 사거나 파는 행위는 괜찮은 것인가라는 점이다. 사탄의 표라고 하는 666바코드가 부착된 상품 구입 및 판매 행위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한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바코드가 붙었던, 또는 붙어 있는 의류를 입는 것, 음식을 먹는 것, 물건을 사용하는 것 또는 그러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것 등에 대해서 말이다. 기자의 질문을 받은 당사자들은 순간 당황해 한다. ‘OK’나 ‘NO’ 중 어느 것 하나도 시원한 답이 되지 못함을 스스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할 경우, 생활과 활동이 즉각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탄의 표라는 바코드를 이마나 손등에 받지 말라는 주장만 할뿐 그 표가 붙은 상품의 사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고 있다. ‘666=바코드’ 주장이 아직도 식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그중에 하나는 성경구절 중 요한계시록 13:18과 14:9의 오해 때문이다. 그 성경구절들을 잘못 해석, 적용한 것의 결과인 셈이다. 그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8, 개역개정)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계 14:9, 개역개정) 쟁점 중 하나는 ‘666’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의 수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상징의 수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정통신학에서는 상징의 수로 본다. 하지만 ‘666=바코드’ 추종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666표가 상징이라고 하는 교회는 거짓교회’라고 공격적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반문이 든다. 666을 바코드로 보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행위 아닌가? 위 성경본문(계 13:18)을 있는 상징이 아니라고 본다면 ‘666’은 어떤 짐승 666마리 아니면 특정한 사람 666명 등을 가리킨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본문이 언급하고 있지 않은 전혀 다른 용어인 ‘바코드’라는 것과 연관시키려는 것이 상징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바코드에 6이라는 숫자 3개가 숨겨져 있는 것이라 변론할지 모른다. 그 논리가 맞는 것인지는 차치하고, 만일 그렇다면 6자 3개만 있으면 모두 성경의 666과 연관시킬 수 있다는 말도 가능하게 된다. 과연 그런가? 전화번호 중 666이 들어 있으면 그것은 사탄의 전화번호인가? 666번 버스는 사탄 나라에 가는 것인가?(광주에 실제 그 번호 버스가 있다). 666이라는 숫자가 요한계시록 외에 성경 다른 곳에서 사용된 바가 있다. 바로 역대하 9:13이다.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육백육십륙 금 달란트요”(대하 9:13). 솔로몬이 세입금으로 받은 액수가 666 달란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사탄으로부터 또는 사탄의 달란트를 받았다는 뜻인가? 이때의 666은 글자 그대로 666개의 금 달란트를 말한다. 역대하 9:14에는 그 외에 금과 은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음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계 13:18의 ‘666’은 상징적인 용어임은 그 다음 구절(계 14:1)의 ‘14만4천’이라는 숫자와 대조를 이루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14만4천’은 어린양과 함께 있는 사람들로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구원받은 백성들을 의미하는 용어다(참고, 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 장운철 목사의 신천지 교리서 <요한계시록의 실상> 분석 22, ‘이만희 씨는 14만4천명에 속하나?’). 물론 상징적인 표현의 숫자이다. 이것을 일부 이단단체에서는 자신들의 신도 숫자라고 주장하는데 옳지 않다. ‘14만4천’이라는 수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라면 그 앞에 대조적으로 등장한 ‘666’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대조되는 용어가 또 있다.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계 14:1)과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계 14:9)의 두 구절이다. 전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위 인침을 받은 것, 후자는 우상으로부터 인침을 받은 것을 각각 뜻한다(계 7:3 등 참조). 인침을 받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소유했다’는 의미다(데이비드 E 아우네, <요한계시록>(6-16) WBC 주석, 솔로몬, 2004, p.193). 다시 말해 14만4천은 하나님께 소유된 백성을, 후자는 우상(사탄)에 소유된 백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이미 결정된 일이다(요 5:24 참조). 데이비드는 “14:1은 어린양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의 이마에 지니고 있는 14만4천명을 소개하고, 14:9~11은 짐승을 경배하고 그의 인을 받은 자들을 영원한 고통에 배정한다”며 역시 두 구절을 대조시키고 있다(데이비드, p.826).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백성의 소유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666바코드를 이마나 손 등에 받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말들에 전혀 현혹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인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끊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QR코드(QR-code)라는 것을 들어봤는가? RFID코드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바코드가 1세대라면 QR코드는 2세대, RFID코드는 3세대에 해당된다. QR코드는 바코드보다 100배의 용량을 담을 수 있다. 사각형 모양으로 많은 점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숫자 외에 알파벳이나 한자까지도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이미 상용화되고 있다. 비슷한 것들로 데이터 메트릭스(Data Matrix)코드, PDF417, 맥시코드(MaxiCode) 등도 있다. ▲ QR 코드(위쪽 작은 사각형)와 바코드(아래쪽)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코드는 그것보다 더 발달된 것이다. 전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이다. 이것도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기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 예를 들어 대형상점에서 쇼핑카트에 물건을 담고 계산대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모든 물건의 계산이 한순간에 이루어지게 된다. 물건에 인쇄된 바코드를 하나씩 읽을 필요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재고관리도 한순간에 끝나게 되기도 한다. ‘666바코드를 받으면 지옥간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RFID코드 시대가 오는 것이 반갑지 않을 것 같다. 666과 RFID를 연결지을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논리야 만들면 된다. 어떤 방법으로든 ‘RFID코드를 이마나 손 등에 받으면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이 또 등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이상의 어떠한 주장이 나타난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확실히 믿고 있다면 말이다. 왜? 성경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666의 여러 해석들/ 2013-05-30
666의 여러 해석들 1) 로마로 생각하는 이론 2) 로마의 반대 이론 3) 네로로 생각하는 이론 4) 네로를 상징적으로 보는 이론 5) 네로의 반대 이론 6) 교황으로 보는 이론 7) 교황으로 보는 반대 이론 8) 테이탄( ) 9) 테이탄의 반대 이론 10) 솔로몬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런 죄를 가리킴 11) 솔로몬 반대이론 12) 요한복음 6:66 13) 개신교가 666이다. / 안식교의 이론 14) 마틴루터가 666이다. / 로마교회 이론 15) 개인을 지칭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16)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로 보는 이론 17) 사이비 단체로 보는 이론 18) 상징으로 보는 이론 1) 로마로 생각하는 이론 로마는 헬라어로 \"라테이노스\"( )인데 이 수치의 합산이 666이다. - (람다)=30 - (알파)=1 - (타우)=300 - (엡실론)=5 - (이오타)=10 - (뉘)=50 - (오미크론) - (시그마)=200 30+1+300+5+10+50+70+200=666( 나원준, \"휴거와 666의 정체\", 월간현대종교 탁명환 편, 국종출판사, 1991, p 27. ) 이 된다. 666과 616중 666이 요한이 본래 사용한 숫자이며 이 수가 가리키는 이름은 라테이노스이며 따라서 로마 황 제와 로마제국 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기독교 대백과 사전\", 기독교문사, 91(7판), p 772. ) 이 견해는 당시 기독교 핍박의 최대 세력인 로마제국이 바로 짐승의 수라고 본다(Irenaeus).(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3. ) 6의수는 요한 당시로서 로마이다. 666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로마에 굴복 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 6의 숫자를 나열한 것은 6의 인물의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세 인물을 말한다. 용과 짐승과 새끼양이다. 이들 세 인물을 인정하는 자들은 살아 남을 수 있으나 그 밖의 사람들은 환난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환난은 12장에 의하면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된다. 그리고 11장에 의하면 두 선지자의 교회에 속한 자들이 되고 13장에서는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하며 다니엘서 11장에 의하면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에 해당한다. 이들 외에는 모두가 그들에게 굴복하기 때문이다.( 최정현, \"성경의 대예언\", 도서출판 한글, 1992, p 214. ) 2) 로마의 반대 이론 666은 로마를 가리키는 \"라테이노스\"( )란 헬라어의 숫자란 것이다. 그러나 신약의 아무 곳에서도 로마를 \"라틴\"이라고 부른 곳이 없는 것은 이 견해의 크나큰 약점이다.(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3. ) 3) 네로로 생각하는 이론 \"네로 황제\"를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네론 카사르\'( )이다. 이 것을 당시 유행하던 게마트리아 해석법(히브리어의 문자를 알파벳의 수치로 환산하는 유대 랍비들의 해석법)을 따라 풀이하면( 여기에 들어갈 문자는 히브리어로 표기하지 못했음) = 50 , = 200 , = 6 , = 50 , = 100 , = 60, = 200 이 되는데 이 수치를 종합하면 666이 된다. 이 견해는 로마 황제 네로(Nero, 54-68년)에 의한 기독교인 대 핍박 의 잔혼이 남아있던 그 시대적 상황이 참작되어 널리 신봉되었다.(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3. ) 수세기에 걸친 그와 같은 시도 가운데 선택된 인물 중 가장 그럴듯 한 인물은 네로일 것이다.( \"성서 대백과\" 정인찬 편, 기독지혜사, 1985, p 394. ) 사도 요한은 로마 황제(국가)에 의한 기독교 대박해라는 당시대의 역사적 배경에서 666의 기본 의미를 추출해 낸 다음, 그것을 장차 도래할 종말의 세속적이고 사단적인 인물(적 그리스도 혹은 그의 세력)에 결부시킨 듯하다.( 요일 2장, 핵심연구 [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4, 재인용 )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문자들은 각각 숫자상의 가치를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666은 로마 황제 네로를 가리킨 것이다. 이 666은 어느 시대를 통해서든 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강봉국, \"성서 주해\", 성서교재 간행사, 1976, p 373. ) 4) 네로를 상징적으로 보는 이론 바클레이 같은 주석가는 이 수가 네로를 뜻한다는데 의심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이 적 그리스도를 네로의 형태로써 악의 화신이 되어 이 땅에 되돌아 오는 자로 내다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과거의 네로라고 할 수 없으며 네로 적인 적 그리스도의 출현이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입니다.( 이용호, \"주님은 다시 오신다\", 한국문서선교회, 1991, p 174. ) 5) 네로의 반대 이론 현대 학자들이 보는 일반적 견해는 \'네로-시이저\'(Nero-Caesar)이다. (만 약 라틴어 철자와 같이 만들기 위해 마지막 R자를 생략한다면 다른 수인 616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히브리어로 음역된 라틴 어 이름을 헬라어로 바꾸어야 하며 철자도 좀 달리 써야 한다. (모음 y가 qysr에서 빠져야 함). 이러한 방법이 상당히 타당성을 가진 것 처럼 보이지 만 왜 히브리어 이름을 헬라어로 변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리고 네로를 위대하게 생각했던 그 당시에는 이 방법은 결코 적용할 수 없었다(네로 황제가 소생하는 신화는 학자들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임).( \"틴텔주석\", p 1983. ) 어찌 하여 헬라말로 본서를 기록하던 저자가 하필 여기 와서만 새삼스럽 게 히브리어 표기를 심중에 두었을까 하는 문제와 고대의 어느 주경가도 이 를 네로의 이름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원한 해답이 못된다.(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3. ) \"네로 가이사\"를 히브리말로 계산하면 666이 된다고 하여 이 수는 네로 황제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네로 가이사를 신약의 헬라어로 계산하면 1005가 되며 사도 요한이 요한 계시록을 헬라어 로 썼고 히브리말로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한, \"요한계시록강해\",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5, p 283. ) 네로 황제 등에 숫자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해석해보려는 시도는 아무것 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계시록은 상징의 책이지 수수께끼의 책이 아니 다.( C.F. Wishart, op. cit., p 25. 핸드릭스, 아카페출판사, p 184(주) ) 네로를 적그리스도를 닮은 자로 비유들 하기도 하나 이는 심히 빗나간 해 석(주장)들 입니다. 왜냐하니 네로 황제는 제1세기에 살다가 죽은 자이지만 나타날 적 그리스도는 장차 마지막 때에 출현할 자이기에 다르다는 것을 명 심해야 됩니다.( 송기호, \"대환란(제4권) 666의 비밀\", 정오출판사, 1991, p 322. ) 6) 교황으로 보는 이론 로마교황 모자에 라틴어로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라 했으며 교황의 공식 칭호 Vicarius Filii Dei를 666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해석한다.( 이광복, \"성경종말론\", 목양성경연구원, 1991, P 174. ) V I C A A R I U S . F I L I I D E I 5 1 100 1 5 1 50 1 1 500 1 교황은 이미 카톨릭 신자에게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 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평화의 왕\", \"평화 의 사도\", \"세계의 빛나는 별\"이라는 칭호를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그는 세계 평화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회복된 교황권의 모습이 얼마나 크고 강하여지고 있는가를 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소수의 충성된 자들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 의 모든 사람들이 다 교황을 추앙하고 경배할 때가 올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목하에서 \"교회 일치 운동\"(the Ecumenical Movements)과 초교파적 \"은사 쇄신 운동\"(the Charismatic Renewal Movement)으로 부지런히 그 성 취를 보고 있는 것이다.( 유석근, \"666 적그리스도\", (주)임마누엘, 1992, p 123. ) 라틴 십자가(The Latin Cross)는 전 카톨릭 조직에 찍힌다. 그것은 미사 때 사용되며, 교회 기도문에 군데군데 신비한 신호로 삽입되고, 사제의 가 운, 교회의 성구와 건물에 장식된다. 로마 교회는 그의 모든 추종자들에게 태어나서 죽기까지 라틴 십자가를 표해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로마 교황권 이 가지고 있는 구별되는 표(Mark)로서, 짐승의 표 곧 666표이다.( 유석근, 전게서, p 147. ) 루터, 위클리프, 허스, 칼빈 그리고 그외의 모든 종교 개혁자들은 한결같 이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계시록 13장의 \'짐승\', 17장의 \'음녀\', 데살 로니가후서 2장의 \'불법의 사람\'이 온갖 비성경적 교리들로 배도를 주도해 온 교황권(papacy)이라고 지적하였다. 칼빈은(John Calvin)은 그의<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밝혔다. \"다니엘과 바울은 적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을 것이라고 예언하 였다. 서방 교회에 있어서 이 저주받은 가증한 왕국의 머리를 우리는 교황 이라고 단정한다\"( Calvin, Institutes, Vol. 2, p 314-315. (유석근, \"666 적그리스도\", (주)임마누엘, 1992, p 141.)재 인용. ) 적그리스도는 미래에만 잠깐 나타나거나 과거에만 잠깐 있었던 것이 아니 라 사도요한때 부터 있어 왔고 앞으로도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인물이 나타 날 것인데 현재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분명히 666적그리스도인 것이 다. 왜냐하면 그의 명칭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이름의 숫자가 666이기 때문인 것이다. 라틴어가 666이며 그 이름의 숫자를 받은 로마 교황이 라틴 어로 666이 되어 적그리스도의 이름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의 총통이 나타난다 해도 같은 666이 될 것이며 유럽공동체 공식언어를 라틴어 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에서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교황이 바로 예수님 을 모방했기에 사탄의 직통화신이 될 것이며 우리가 살피고 있는 666의 숫 자를 가진 적그리스도이며 현재 교황이든 장래 교황이든 666이란 사실을 깨 닫고 깨어 있기 바란다.( 서달석, \"바이블 뉴스합본 V\", 생명의 서신, 1992, p 14. ) 666 적그리스도였고 현재도 적그리스도인 로마 카톨릭( 서달석, \"바이블 뉴스합본 X\", 생명의 서신, 1992, p 28. ) 이다. 7) 교황으로 보는 반대 이론 로마교황이나 검은 교황이나 모두 적 그리스도일 수 없습니다. 적 그리스 도는 로마 제국에서 나오는 것이지 로마 교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적그리스도)의 번호는 \"사람의 번호\"이며 그 번호는 666입니다. 적 그 리스도는 이 사람의 번호를 간단히 자기 것으로 전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교황이 사용하고 있는 삼중관에 대하여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그 왕 관에는 어떠한 글자나 숫자가 나타나 있지 아니합니다. 한 때, 왕관에는 \"하나님 아들의 대리자\"라는 뜻의 글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탁월한 인물의 이름에 로마 숫자를 합하여 표시하는 방법은 신뢰 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나폴레옹이 적그리스도임을 증명하기 위해 이러한 방법이 채택되었습니다. 뭇솔리니도 역시 이렇게 그 의 타이틀을 사용함으로써 적그리스도로 증명되었습니다. 다름 많은 이름들 이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기껏 교황은 지상에 거하고 있 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할 뿐입니다. 대환난기가 계속되는 동안 로 마교회의 지도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고 거짓 선지자이겠습니다.( 윌리암 베이르네스, \"재림에 대한 의문과 해답\", 보이스사, 1985, p 81-82. ) 로마 교황께서 머리에 쓴 관에 새겨진 글자의 수이니 로마 교황 요한 바 오로 2세가 바로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대행(대신)해서 나타날 것이란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주로 미주지역과 한국등지에서만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솔직히 로마 교황이 적그리스도라 한다면 왜 적그리스도가 수 천년간 계속되어 나타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싯점에서 영어권적 666수와 라틴어권적 666수와 그리고 기타 서구 방언적 666수는 반드시 수정과 보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동양 종교임에도 왜 서양화하거나 되어져서 계속 굴러가고 있 는지 식상할 지경입니다.( 송기호, \"대환란(제4권) 666의 비밀\", 정오출판사, 1991, p 328. ) 8) 테이탄( ) 테이탄은 헬라 신화에 나오는 거대한 신(神)을 가리키는데, 그 헬라어 문 자를 수치화하면, 300+5+10+300+1+50으로서 종합하면 666이다. 그런데 이 테이탄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대체 적으로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로마 장군 디도(Titus)나 혹은 사도 요한 때의 로마 황제를 네로에 이어 2차 대박해를 주도한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81-96년) 등으로 추측한다.( \"크로스\", 시내출판사, p 1003. ) 9) 테이탄의 반대 이론 테이탄은 헬라 신화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적대하는 거대한 신이었으며, 저자는 도미시안을 테이탄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왜 하필 여 기서 갑자기 헬라 신화를 연상했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3. ) 10) 솔로몬의 호화스럽고 사치스런 죄를 가리킴 헹스텐베르크는 666의 문제에 대해 에스라 2:13에 그 자손들의 수가 666 으로 기록되어 있는 아도나김에게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고 있다. 하 지만 666이라는 숫자는 열왕기상 10:14에서 솔로몬이 한 해에 거두어 들였 던 금 달란트의 수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지혜자의 표징으로 간주되었던 솔로몬은 호화롭고도 사치스러운 생활로 인하여 결국 말년에 우상을 섬기는 사악한 죄에 빠지고 말았는데, 이 666이라는 수는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 에게 특별히 경계하라고 가르쳐 주시던 세속적인 탐욕을 가리키는 것은 아 닌가? 17절에서 이 세상의 재물을 추구하는 자들이 짐승을 섬기는 자들로 서술되어 있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러한 제안을 타당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W.T. 린).( \"베이커 주석\", 기독교문사, 1988, p 561. ) 11) 솔로몬 반대이론 과거 이스라엘의 임금인 솔로몬 때에 세입금의 중수가 666 금 달란트였는 데(열왕기상 10:14) 솔로몬 왕은 이 엄청난 금 666 달란트를 소유케 됨으로 서 타락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이 666수는 어딘지 모르게 유물주의가 적그 리스도의 상징적인 기초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고 지적들을 하나 이 또한 의미하는 바는 있으나 상호 완전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송기호, \"대환란(제4권) 666의 비밀\", 정오출판사, 1991, p 322. ) 12) 요한복음 6:66 나는 이에 대하여 기도하는 중 요한복음 6:66을 보라는 음성을 듣고 빨리 펴 보았다. 그 구절은 \"이러므로 제자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이 육백 육십 육은 예수의 참 제자 외에는 다 예수를 떠나게 되는 것을 말하는 수인 것을 깨닫고 이 뜻을 알게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이 육백 육십 육을 요 6:66이라고 믿고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은 다 적그리스도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종우, \"요한계시록해석\", 도서출판국제, 1984, p 279. ) 13) 개신교가 666이다. / 안식교의 이론 안식일 교회에서는 계시록에 나오는 표중 하나는 짐승의 표요. 하나는 하 나님의 표인데 안식일은 하나님의 표요, 일요일은 짐승의 표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을 받으려면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합니다.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자들을 짐승의 표 받는 것으로 인정하는 이유는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하는 교황이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했기 때문이며 그가 또한 앞으로도 강제 일요일 휴업령을 내려 성도들을 죽이게 될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희생을 각오 해서라도 교황이 내리는 일요일 휴업령을 지키지 말고 짐승의 표도 받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교황 은 앞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며 그에게 불순종하는 자는 다 죽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수영, \"666을 이긴사람들\", 소문출판사, 1991, p 86. ) 안식교의 성서 학자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썻다. \"우리들은 지금 모든 영혼들을 위한 큰 싸움의 최고 절정에 도달하고 있다. 지금 세상은 두 패로 갈라져 서로 대진하고 있다. 수백만명이 속고 있다. 죽음의 위협과 보이콧(boycott)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거짓 안식일을 지 키게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이 저들은 거짓 안식일을 지키므로 짐승에게 충 성을 다하고 있다.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낸 안식일이지 결코 하나님 의 안식일이 아니다. 안식일을 지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데 목숨을 바치 고저 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안식일을 지키도록 법이 제정될 날이 올 것이 다. 그 날이 가까왔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안식교도들은 요한 게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은 안식일을 지 킨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저들은 제칠일을 안식일로 지키기 때문에 \"살아계 신 하나님의 인\"을 맞게 된다고 주장한다. 매매하기 위하여 토요일을 안식 일로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면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고 주장 한다.( J.N. 고트너, 이희숙역,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1970, p 212-213. ) 14) 마틴루터가 666이다. / 로마교회 이론 로마 교회는 개혁자 마틴 루터(Luther)의 이름이 히브리어로 666이 산출 된다면서, 마틴 루터를 적 그리스도로 지목하여 했고 현재도 그렇게 단정하 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는 적그리스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적 그리 스도는 다니엘이 예언한 \'작은 뿔\'의 여덟 가지 특성들이 다 발견되어야 하 는데, 루터에게는 그와 같은 특징들이 전혀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이름의 수치가 666이 산출된다고 해서 누구든지 적그리스도로 간주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석근, \"666 적그리스도\", (주)임마누엘, 1992, p 139. ) 15) 개인을 지칭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이 숫자는 어떤 특별한 인물이나 국가를 국가를 나타내지 않는다. 666은 단순히 본문에 나타난 짐승들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숫자를 연구할 때 그것이 역사장의 특정 인물이나 국가를 가리 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잘못된 해석을 8:1,2에 대한 그 들의 해석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두 구절은 독립된 사건을 나타내는 구절임에도 불구하고 한 사건을 나타 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8:1,2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어린양이 일 곱째 인을 뗄 때 하늘이 반시간 동안 고요하였다. 그후 나는 일곱 나팔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 다.\" 그들은 계속하여 일곱 나팔이 울리는 것은 일곱번째인이 떼어지는 사 건 바로 뒤에 따라온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는 일곱 나팔이 일곱번째 인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하늘이 반 시간 동안 잠잠할 때, 어떻게 일곱 천사가 서로 모여서 나팔을 받았느냐 하는 등등의 문제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만 약 그들이 요한이 본 환상의 내용과 형식을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이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8:1,2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 구절은 첫번 째부터 여섯번째 인이 열리고 난 후부터 일곱째 인이 열리기 전까지의 반시간 동안 요한이 이제껏 보고들은 것을 묵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일은 요한의 서신이 아시아에 있는 교회의 회중에게 전달되어 그들이 그것을 읽은 때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났을 것이다. 즉 그들이 일곱째 인을 떼 때 발생하는 사건을 읽기 전에는 다음의 일어날 사건에 대한 흥분과 긴 장에 휩싸여서 얼마 동안의 적막이 흘렀을 것이다. 즉 그들은 1절과 2절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적인 공백이 있음을 깨닫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몇몇 고지식한 학자들은 이 공백 기관을 배제하고 1절과 2절을 연속적인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러면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본문 18절을 해석해 보기로 하자. 먼저 우 리는 666 이라는 것이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RV)라는 구절을 심사 숙고해 보자. 바울은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유추를 사용하여 어떤 영적 진리 를 암시하고자 할 때 이와 같은 구절을 여러번 사용하였다(롬3:5619, 고전9:815:32,갈3:15). 사도요한도 영적 진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때 (time)와 \'숫자\'(number)를 사용하고 있다. 한가지 예로서 3년 반은 전역사를 통해 존속하는 교회시대 를 상징하고 있다. 이 기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마24:36). 또한 주님께서는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 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행1:7)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연대의 실제 계수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지 사람이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은 독자들에게 그 긴 기간을 나타내주는 3년 반 (42개월 = 1260일) 숫자를 제시해 주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3년 반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에까지 존재하는 교회의 시대를 말한다. 따라 서 이 숫자는 어떤 신비적인 상징을 갖고 있다기보다는 인간의 이성으로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 숫자는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인 3년 반과 일치하기 때 문이다. 또한 만일 이 숫자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기간(그의 세례 받으심 과 승천까지) 인 3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어떤 것들을 가리킨다면, 3년 반 이라는 기간은 오순절에 일어난 교회의 성령 세례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를 만나기 위해 들리움을 받을 때까지 기간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계수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 백성의 실제 숫자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이다. 성경은 오직 \"주님만이 자기 백 성들을 아신다\"(딤후2:19) 고 했으며, 또한 요한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 도의 많은 군중이었다(7:9). 그러나 계시록을 읽는 독자들의 편리를 도모하 기 위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은 144,000명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준 것이다. 세번째 실례는 21:17에 나오는데, 하늘 성곽의 벽이 144규빗으로 나와 있 다(이는 아마 높이가 아니고 두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상징적인 것이지 실제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수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수치로써 하늘의 성곽을 표현한 것은 우리들로 하여 금 하늘의 성곽을 상상할 수 있게끔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짐승과 숫자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왜곡되게 해 석함은 어리석은 일이다. 계시록에서 교회는 여러가지 다른 형상(24장로들, 여인, 증인들)이나 또는 숫자(144,000)에 의해 상징되어져 있다. 마찬가지 로 교회가 존속하는 기간도 어떤 형상(여인이 용으로 부터 보호받고 있는 것, 증인들이 예언을 선포하는 것,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을 짓밟는 것)이나 숫자 (3년 반)에 의해 상징되어져 있다. 한편 거짓 종교는 땅에서부터 올라온 짐승과 666 이라는 숫자에 의해 상 징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666은 네로황제나 칼리굴라 또는 제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짐승과 거짓 종교를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요한이 말하고 있는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고지 식한 학자는 18절을 한번 힐끗 곁눈질하고는 하나의 독립된 절로 취급하여 해석한다. 그는 18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이것이 지혜를 요구한다. 총 명이 있는 자는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인간을 가리키는 숫자이며 666을 말한다.\" 그는 18절 전체를 하나의 수수께끼로 보고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출 발점이 바로 666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666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666은 네로황제나 또는 다 른 황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666의 의미를 알아내 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단지 \'666을 세어보라\'고 말했을 뿐이다.( 마이클 윌콕, 이종일역, \"역사의 저편 새 하늘과 새 땅\", 기독지혜사, 1988, p 167-168. ) 16)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로 보는 이론 저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 짐승의 수이면서 사람의 수라고 했기 때문에 짐 승은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반항하는 반기독교자이기 때문에 반기 독교 독재주의자는 모두 666에 해당하는 적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봅니다. 네로, 레닌, 스탈린, 히틀러, 김일성, 반기독교 독재주의자는 사단의 충 복입니다. 17) 사이비 단체로 보는 이론 외모가 양과 같다고 했으니, 곧 기독교의 형태를 가지고 활동한다는 것이 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용의 말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짐 승을 한 개인으로 보기보다는 기독교의 단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W.C.C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선명, 박태선처럼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면서도 기독교가 아닌 단체들이 여기에 속 한다는 점이다. 18) 상징으로 보는 이론 본구절에서 요한의 질문은 \'사람의 수니\'라는 부분까지이고, 나머지 부분 은 그것에 대한 해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본 구절에서 666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거짓 종교이다. 이 제 우리는 이 구절을 요한 당시의 독자들이 읽었던 것처럼 해석해 보기로 하자. 지혜있는 그는 그 짐승의 수 곧 \'사람의 수\'를 세어보라. 그런데 그 숫자는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와 전 역사를 통해 존재하는 교 회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666이라는 숫자는 완전수 777에 가깝기는 하지 만 결코 그것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있지 않는가? 만약 참되고 완전한 것을 상징하는 숫자가 7이라면 거짓 종교는 6이라는 숫자로 표현될 수 있지 않는 가? 따라서 우리는 666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을 수 있다. 즉 이 숫자는 신 약시대 때 온 세상을 대적하는 모든 거짓 종교 즉 적 그리스도의 권세를 상 징한다. 그런데 이 짐승의 수는 단순한 6도 66도 아닌 완전히 채워진 666이 니, 이 는 완전수인 7에서 1일 모자란 불완전한 수 6을 3개 포개 높은 것으 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완전에 대한 마귀적인 모방, 현혹성, 환난, 저주 등 을 의미한다. 결국 666은 하나님의 완전함을 상징하는 777에 반대되는 숫자 이다. 따라서 이 숫자는 하나님의 의에 미달하고 당신의 주권에 도전하는 모든 악한 세력들을 뜻하고 있다.( 마이클 윌콕, 이종일역, \"역사의 저편 새 하늘과 새 땅\", 기독지혜사, 1988, p 167-168. ) 수를 센다는 것은 본질을 안다는 뜻이고, 다음에 나오는 \"육백 육십 육\" 도 질(質)을 표현한 수이다. 그 \"수\", 곧 \"질\"이란 것은 말씀의 여러 진리 가 저들에게서 거짓화 되었다는 표현이다. \"짐승의 수\"란 말씀의 확증, 곧 그 교리와 신앙을 확증하는 특질을 뜻하고, \"666\"이란 원칙적으로는 선한 속한 척하는 거짓된 교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666\"의 뜻이 이같이 표현되 는 것은, 여섯은 셋의 곱수인데, 셋의 충만이나 전부를 표현하므로 진리를 전제로하는 수요, 선과 진리의 결혼을 표현하는 수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여섯은 말씀에 속한 여러 진리를 표현하나, 여기서는 거짓화된 그 교리들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또 \"666\"은 여섯의 세 겹인데, 세겹은 완결을 뜻하므 로, 그들에게 함께 한 선을 가장한 모든 교리가 온전히 파괴된 것이란 표현 이다.( 임종은, \"열어 놓은 계시록\", 도서출판 소망사, 1989, p 215. ) 그 수가 사람의 수라고 하며 따라서 사람이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으 로 말하였는데 요한계시록은 언제나 문자적인 뜻이 아니라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손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불완전수 6의 삼중 적 표현으로 666이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이순한, \"요한계시록강해\",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1985, p 283. ) 오늘 우리의 견해로는 그것을 상징적인 숫자로 보는 것이 계시록의 문서 적인 성격을 볼 때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상징으로 볼 때 불완 전 숫자 6(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이 세 개 모인 것으로서, 마귀의 수, 불 완전의 수, 인본주의 수인 것이다. 777이 하나님의 삼위일체 수라면 666은 마귀의 삼위일체 수이다. 마귀는 언제나 모자라고 실패하는 것이다. \"실패 에 실패에 실패\"를 나타낸다(Hendsiksen) 그것은 불완전의 삼위일체다(T. Torrance).( 박수암,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대한기독교출판사, 1991, p 184. ) 13:18의 말씀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절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666의 의미는 6이란 완전 숫자인 7에서 하나가 부족한 숫자이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레 중 엿새를 일해야 했 으며 노예도 다만 6년을 일했고 밭도 6년을 사용한 뒤에는 7년째는 쉬도록 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짐승의 숫자가 6을 세 개 나란히 배열한 수자 란 점이다. 이것은 인본 주의의 극단을 말하며 마귀의 삼위일체 수이기도 하다.( 신성종, \"요한계시록강해\", 정음출판사, 1983, p 99. ) 우리는 이 예언을 신약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의, 구조나 또는 요한계시 록의 나머지(예를 들면, 종말까지 인내하라는 가르침) 부분에서 따로 떼어 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복음에 무엇을 덧붙이 는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로만\"이라는 원리들을 이 시대의 마지막 날에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원리라고 간주하여 내팽개쳤 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의 편협한 예언 해석에 근거 하여 어떤 행위를 그 원리들에 추가해야 한다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3장과 14장을 제대로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원히 구원받은 자들을 인친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반면에 짐승의 표는 불경건과 불신에 대 한 특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레엄 골즈워디, 김영철역, \"복음과 요한계시록\", 한국성서유니온, 1991, p. 195-196. ) 이 숫자를 단순한 상징으로 보는것도 가능하다. \'예수\'를 헬라어로 쓴 이 예수스란 단어의 숫자 가치를 합산해 보면 888이 된다. 모든 수가 완전 수 인 7을 넣고 있다. 그러나 666은 그 반대로 모든수가 7에 미달되고 있다. 즉 이 수는 어떤 개인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의에 부족한 사람들을 가 리키는 것 같다. 본문의 숫자가 특정한 한 개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을 가 리킨다고 생각하면 이 해석은 더욱 합리성을 띄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요 한은 우리에게 중생치 못한 사람은 항상 악하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범사마다 짐승의 표가 붙어있다. 즉 그리스도가 없는 모든 문화는 불가향력적으로 사단의 지배아래 있는 것이다.( 틴텔주석, 1983. ) 666이라는 수를,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힘이 악한 영에 의하여 인도될 때 행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나타내 주는 상징적인 수로, 그리고 짐승의 힘이 가장 지고한 발전단계에 도달하고 인간의 모든 문명과 예술과 노래와 과학 과 이성이 하나로 연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허무맹 랑한 것으로 간주하게 하고 미래의 삶에 대한 소망을 현세의 행복을 손상시 키는 것으로 간주하게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수로 해석하고자 한 다. 그때 세속적인 힘의 영향력은 절정에 이를 것이며, 오직 참된 지혜자만 이 신앙의 세계와 무신앙의 세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인식하게 될 것이 다.( 베이커 주석, 기독교문사, 1988, p 560. ) 본문이 왜 하필 666을 말했는가? 그것은 우상이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위함이다. 만약 하나님의 숫자라면 7이다. 그리고 7이 세 번이면 완전한 하나님이다. 6은 7에 못미치는 숫자로서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이적 을 행하고 신(神)인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하나님까지는 못미친다는 것이 다. 그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문의 의도를 망각하고 666 숫자 그 자체가 마치 신비적인 숫자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바른 성경해석 에 근거하지 못한 불건전한 종말론이다.( 한정건, \"기독교문서선교회\", 1991, p 185. ) 우리가 이제 계13장을 통해서 얻어야 할 중요한 것은 짐승과 우상을 섬겨 그 표를 받느냐 하나님을 섬겨 하나님의 표를 받느냐 또는 짐승의 표를 받 고 멸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표를 받아 영생을 얻는냐 하는 두가지의 일 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표를 받을 수 없듯이 짐승을 섬기지 않으면 짐승의 표를 받을 수 없다. 짐승을 섬기지 않 고 표만 받는 것은 짐승의 표가 아니다. 짐승의 표란 반드시 짐승과 우상을 섬기고 받는 것이다.( 김수영, \"666을 이긴 사람들\", 소문출판사, 1991, p 81. ) 666은 \'상징수\'로 보아야하고 결코 666의 문자적 표나 마크로 보면 안된 다. 666의 해석을 강조하지 말고 666의 상징자인 짐승, 거짓선지자를 이길 수 있는 신앙을 강조해야 한다. 진정한 신앙은 어떤 제도의 변화, 정치의 변화 체제의 변화속에서라도 다니엘처럼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신앙의 훈련 과 연단에 관심을 둘뿐이며 미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선한 목자 여호와가 우리를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천정웅, \"휴거와 666의 정체\", 월간 현대종교 편집부, 1991, p 47. )
69세 할아버지 고입-68세 할머니 대입검정시험 합격/ 조선일보 뉴스/ 사회/교육/교통/ 1992-05-19
69세 할아버지 고입-68세 할머니 대입검정시험 합격/ 조선일보 뉴스/ 사회/교육/교통/ 1992-05-19 서울시 교육청이 20일 발표하는 검정고시 합격자 중에서 고입 부문 최고령자로 밝혀진 이근복 할아버지(69)와 대입 부문 최고령자인 안원희(68)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못배운 한’을 마침내 풀었다는 기쁨 탓 인지 “기분이 너무 좋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어린 아이처럼 웃었다. 경기도 강화 출신의 이 씨는 가난 탓에 학교 문턱에는 가 보지도 못한 채 막노동, 남의집 살이, 식객 등 온갖 궂은 신세를 겪어가며 가시밭길 같은 인생을 억척스럽게 헤쳐 온 사람이다. 일제 때는 징용으로 끌려가 홋카이도, 남양군도 등지에서 탄광 노동자 생활도 했다. 광복 후에도 등짐 장사 등으로 유복한 생활을 거의 해 보지 못한 이 씨지만, 네 아들만은 대학, 고교 졸업을 시켰다. 평북 용천 출신의 안 씨는 한때 소설가를 지망하던 꿈 많은 소녀였지만 보통학교(국민학교) 밖에 마치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출가시킨 삶의 뒤안길에서 1989년도에 책과 연필을 잡았다. 만년에 시작한 공부가 쉬울리 없었다. 하루 4,5시간씩 책과 씨름하는 일이 고통스럽고 피로에 지쳐 학원 선생님의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일이 있을 때 몇 차례씩이나 포기하려고도 했다. 더구나 이씨는 서울 아현동에 있는 쌀가게에서 일을 맡고 있었 기에 매일 새벽 4시부터 서울 신당동 중앙시장에 나가 쌀을 받아오고 저녁에는 학원으로 나가 밤 11시가 넘어서 돌아와야 했다. 안씨도 건축재료상을 하는 남편 일을 돌봤다. 주변의 친구들도 격려는 커녕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면 됐지 이제 와서 무슨 노망 이냐\"고 곁눈질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공부를 멈추지 않은 까닭은 진학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 니었다. 공부는 세상에 대해 지금까지 이들이 모르고 살아왔던 새로운 세계에 눈 뜨는 기쁨을 안겨줬다. 그래서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에게 영어 수학을 물어봐도 부끄럽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ABC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니 길거리에 지나다니는`EXCEL\'`ROYAL\' 등의 차 이름을 알아보게 된 것이 정말 기분 좋았어요.\"(안씨) \"신문을 읽다가 `유기적 관계\'같은 말이 나오면 누구한테 물어보지도 못하고 답답했는데 이젠 그런 갑갑증이 없어 졌어요.\"(이씨) 그래서 이들은 한결같이 \"목숨 남아 있을 때까지 계속 진학하여 공부를 마치겠다\"고 말했다. 국어가 가장 재미있다는 안 할머니의 꿈은 대학의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문학 작품을 한 번 써보는 것이다.
6가지/ 사랑의 6가지 시험(4)/ 말 다툼의 시험/ 2002-05-05
6가지/ 사랑의 6가지 시험(4)/ 말 다툼의 시험 한 쌍의 남녀가 니게 와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그들에게 정말 말 다툼 즉 단순히 간혹 있는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정말 싸움을 한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많은 경우 그들은\' 아, 아뇨,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요점은 말 다툼이 아니라 서로 화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입니다. 이 능력은 결혼하기 전에 훈련되고 시험되어야만 합니다. 성교가 아니라 오히려 이 말 다툼이 결혼 전의 시험으로써 요구되는 것입니다. 네번 째 시험의 질문은 우리가 서로 용서할 수 있으며 서로에게 질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6월, 그대 생각
6월, 그대 생각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 하루해가 갑니다.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 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 창가에 턱을 괴고 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 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 그것이 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 하루 종일 당신 생각으로 6월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해가 갑니다. - 김용택의 시 <6월>(전문)에서 - * 이 시를 읽는 순간 그대 생각이 온 몸을 휘감습니다. 6월의 바람소리가 그대 음성으로 들리고, 6월 숲의 빗방울에서 그대 향기가 스며옵니다. 6월뿐만 아니라 7월, 8월, 아니 일 년 열두 달 내내 그대 생각을 하면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하루 해가 행복하게 갑니다
6월에 쓰는 편지/ 2011-06-03
6월에 쓰는 편지 잊었는가 육이오를 동족상잔 피의 비극 평화의땅 한반도에 이른새벽 포성소리 휴전이후 갖은만행 걸핏하면 무장공비 청와대를 까러오고 폭음속의 랭군사태 하늘위의 칼기폭파 땅속에는 침투땅굴 바다에선 천안함과 연평도를 포격하니 흡혈귀의 최후발악 천인공노 인류공분 핵카드를 들고나와 세계평화 위협하는 극악무도 천하공적 삼대세습 광대놀음 더이상은 용서없다 심은데로 거두리라 삼십육년 일제치하 초근목피 연명하다 해방인가 싶더니만 육이오가 왠말이냐 무덤속을 헤치고서 잿더미를 기반삼아 고픈배를 움켜쥐고 살겠다는 몸부림이 한손에는 총칼이요 다른손에 망치소리 피를흘려 지킨나라 땀방울로 세운조국 겨레가슴 불을지핀 근대화의 초석이여 꿈에서도 잊지못할 나의사랑 대한민국 한국이여 깰지어다 일어나라 코리아여 민족혼을 되살려서 온세계를 경영하라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러르라 젊은이여 찬란하게 피어나는 새시대의 주역들아 네가사는 이나라가 딛고있는 땅덩이가 하늘에서 내렸느냐 바다에서 솟았더냐 삼천리라 금수강산 하늘주신 이산하를 한몸던져 지켜냈고 내청춘을 불살랐다 헐벗었고 굶주렸던 지난역사 뒤로하고 세계속의 대한민국 선진대열 이뤘으니 찰나라도 방심할까 잠못드는 호국영령 자손만대 번영한국 백의민족 배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