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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행복/ 2015-05-27
1%의 행복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행복하냐고...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사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 한 겁니다. 어느 상품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불행하다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 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감미로운 음악 숲과 하늘과 안개와 별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나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행복하다고 당신은 1%의 행복을 어느 쪽에 올려놓으실 건가요? 오늘 하루의 행복은 나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행복한 하루하루 만들어 가시길 바래요.^^
1, 2, 3, 4차원의 세계/ 한태완 목사
1, 2, 3, 4차원의 세계 본문: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흔히 사람들은 1차원은 선. 2차원은 면(평면) 3차원은 공간(입체) 4차원은 시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1차원의 삶은 본능적인 삶(동물적인 삶)이고, 2차원의 삶은 사회적인 삶, 3차원의 삶은 차이나의 삶, 4차원의 삶은 거듭난 자의 삶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1차원의 삶이란 오직 먹고 싸고 자고, 자손번식과 쾌락을 추구하며 본능대로만 사는 삶이고, 2차원의 삶이란 오직 생존을 위해 무리를 짓고 때로는 더불어 사는 삶을 말하며, 3차원의 삶이란 보이는 것만을 중시하는 차이나의 삶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크게, 더 좋은 것을 추구하며 사는 삽니다. 즉 다른 사람과 차이나게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학벌, 더 높은 지위(벼슬), 더 많은 물질, 더 예쁜 몸매, 더 오래 살기 위해 몸부림치고 경쟁하는 삶을 말합니다. 교회건물을 다른 교회보다 더 크게 짓기 위해 엄청난 빚을 지는 것도 여기에 속합니다. 4차원의 삶은 차이나의 삶을 뛰어넘어 믿음으로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사는 성령의 세계이며, 이것을 거듭난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즉 4차원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왕의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며,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1, 2, 3차의 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갈 수 없는 세계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고전6:9)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15: 50)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21)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엡5:5) 사람들은 3차원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데 반해, 믿음은 4차원의 세계를 말합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4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3차원 밖에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못 보고 믿음의 세계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은 믿음의 세계, 4차원에 있습니다. 아직 현실 세상인 3차원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4차원에 있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내 삶속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 믿음의 팔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바라는 실상이 분명해야만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운동하지 않고 먹기만 하면 비만이 됩니다. 일하지 않고 말씀을 듣기만 하면 영적 비만에 걸립니다.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는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어 꿈을 꾸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사명을 갖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소망의 하나님, 주님을 멀리하여 소망을 잃고 생명을 잃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시고 소망 속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허탄한 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440만 원의 삶/ 기회/ 2008-04-05
1,440만 원의 삶/ 기회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전화는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당신 앞으로 어떤 사람이 1,440만 원을 은행에 예금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오늘 반드시 이 돈을 쓰셔야 합니다. 조건은 없습니다. 그러나 유익하게 쓰십시오.” 이 사람은 어리둥절하게 하루를 보내다가 1,440만 원을 써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당신 앞으로 1,440만 원이 또 입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예금된 돈은 쓰지 않았으므로 그 주인이 도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말하기를 오늘 찾아가서 그 돈을 쓰시면 그 돈은 당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날은 조금 미심쩍어 하면서도 이 사람은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다가 썼습니다. “에이. 한 번 기분이나 내보자.” 하고 기분 좋게 써버렸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또 전화가 걸려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또 썼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같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매일 쓰면서 기분은 좋았지만 이 사람의 마음 속에 자꾸만 불안이 생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것이 딱 멈추면 어떻게 할 것인가? 혹시 무엇인가 요구하면 어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24시간을 분으로 계산하면 1,440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1,440만원은 주시지 않았지만, 1,440분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그것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24시간을 공평하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 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이렇게 선언하시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이제 그만. 그리고 지금까지 네게 분배한 것을 네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계산하자.”
1-2%가 98-99%를 이기고 뒤집는다.
1-2%가 98-99%를 이기고 뒤집는다. 기독교의 덕목가운데 제일가는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겸손, 말이 쉽지 겸손한 생각, 마음, 말, 행동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겸손처럼 보이는데 겸손이 아닐 수 있는 것들이 우리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겸손을 위장한 겸손 말이다. 모조품과 같은 겸손은 겸손이 아니다. 진정한 겸손은 너무나 귀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을 요구하신다. 겸손의 삶을 원하신다. 겸손은 대가 없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를 보면 그렇다. 나도 목사로서 목회를 하면서 어려움들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마음이 저절로 낮아지든지 높일 것도 없지만 난 그때 어려움의 대가를 통해 완전한 겸손의 사람으로 바뀐 줄 알았다. 그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개척초기에 이런 저런 상상과 꿈을 꾸면서 교회를 부흥시켜주시면, 어떻게 부흥을 했는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지 하나님께도 누가 되지 않고 나에게도 좋은 답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었다. 친구 셋이 함께 비슷한 시기에 개척을 했다. 지역은 물론 달랐지만 첨 환경이야 셋 다 비슷비슷했다. 제가 가장 열약한 환경이었다. 완전 통치하 불을 끄면 암실과 같은 곳이었다. 여기에 누가 오겠는가 싶었다. 그래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몇 년 동안 한사람도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데는 계기가 있었다. 그런데 내 생각을 뛰어 넘는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친구는 물었다. 어떻게 사람이 오느냐고 그때 내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98-99%는 하나님의 은혜고 그래도 내의 기여도도 1-2%있지 않겠나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98-99%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나의 말이 1-2%의 나의 기여도? 이것이 98-99%의 하나님의 은혜를 덮어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지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퍼센트가 중요한 게 아니구나 그야말로 100%의 순수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2%의 자신의 의 이것을 죽이는 데는 또 다른 고난이 필요했다. 고난이야 말로 순수한 100%의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난 없이 겸손의 사람이 된 사람은 너무나 축복된 사람이다. 고난을 통해서도 겸손해지지 않는 사람도 불행한사람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그릇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임이 분명하나 그 고난을 통해서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겐 희망이 희박해진다. 웬만하면, 고난이 겸손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빗으시는 그릇으로 준비된다. 고난을 환영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오는 고난이라면 축복의 기회로 변환시키는데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릇보고 쓰신다. 그릇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도 잘 견디고 이기면 귀한 그릇된다. 그때 원 없이 쓰임 받아보자
1-2%가 98-99%보다 더 힘들게 한다.
1-2%가 98-99%보다 더 힘들게 한다. 한사람의 중요성이 많이 대두 되는 것을 본다. 한사람이라도 어떤 한사람이냐가 중요하다. 좋은 쪽으로 한사람이냐, 아니면 나쁜 쪽으로 한사람이냐가 중요하다. 앞에서 무리를 이끄는데 있어서 리더는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중요하다. 목회자에겐 성도, 회사 오너에게는 사원, 특히 교회를 예를 든다면 교회는 특수한 모임이라고 해야 한다. 어떤 강제성이 없다. 그들을 구속할 만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하더라도 자유로운 얽매임이지 강제성을 뛴 묶음은 아니다. 좋은 뜻에서 구속이다. 그래서 강제성이 없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성도는 참 중요한 존재들이다. 귀한 사람들이다. 함께 하나님의 나라건설과 확장위해 서로 노력하는 관계이니 너무나 귀하다. 그런데 수가 얼마나 되었든 상관없이 성도 회집인원가운데 퍼센트로 말하면 98-99% 잘하고 속을 썩이지 않아도 1-2%가 브레이크를 걸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힘들게 하면 그 한 두 사람 때문에 많은 힘을 잃게 되고 고통하게 된다. 1-2사람이니 무시하고 대의를 바라보면서 가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성도라면, 나 한사람이 목회자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늘 의식하면서 지도자인 목사에게 어떤 존재로 서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힘이 될 수도 짐이 될 수도 있다. 목회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몇 퍼센트냐 잘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1-2%라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1-2명을 좋은 뜻으로 생각하면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가시로... 나를 늘 경각심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나의 채찍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할지 모르나 그렇지가 않다. 목회자는 이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든지 아니면 만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다 잘해도 한 두 사람이 힘들게 하면 그것이 고통이다. 힘들게 하고 잘못하는 한 두 사람이 잘하는 98%를 뒤집을 수 있다. 이런 사람 몇 명 있으면 속이 다 썩어 빠진다. 목회자도 성도도 상대에게 힘이 될지언정 짐이 되고 고통을 안겨 주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를 늘 살피지 않으면 언제 한순간에 귀한 일꾼이 천한 일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을 잘 살피고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위로부터 공급 받아야 한다.
100%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 기다림/ 2010-02-15
100%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 기다림 옛날 어떤 동네에 우물 파는 전문가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고 실패해야 겨우 우물 하나를 팔뿐이었으나 그 사람은 땅을 팔 때마다 우물을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100발 100중으로 우물을 파는 것이 성공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하고. 그 사람의 대답은 간결했다. \"간단하지요. 저는 한 번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파 내려갑니다. 그러니 파는 곳마다 우물을 만들었지요.\"
1000만원 그리고 50만원/ 임종수 목사/ 큰나무교회
1000만원 그리고 50만원 이영화 집사는 새벽부터 오후 1시까지 발효음료를 배달합니다. 그러니 결코 넉넉하지 못한 처지입니다. 그런 이 집사가 어느 날 오후 1000만원이 든 건축헌금 봉투를 가지고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처지를 잘 아는 목사는 젖은 마음이 되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자 이 집사는 겉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봉투 하나를 더 내놓았습니다. 50만원이 들어있는 봉투였습니다. “이 헌금은요?” 목사의 물음에 이 집사는 머뭇거렸습니다. “헌금이라기 보다는요 목사님,저는 건축헌금을 작정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하나님께 약속한 날짜에 봉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긴 일수만큼 이자를 계산했는데 하나님은 이자를 받으시는 분도 아니고…목사님,아무튼 헌금으로 여겨주세요.” 하나님은 분명 이자를 셈하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향한 그 분명함과 정성어린 헌신은 셈하시는 분입니다.
1000억짜리 강의/ 마음을 여는 이야기/ 2010-10-07
1000억짜리 강의 명예, 지위, 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대단한 성공을 거둔 사람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과 기자들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지요. 그는 등장하자마자 칠판에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1,000억!\\\" 그리고 그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전 아마 재산이 천 억은 훨씬 넘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제가 부럽습니까?\\\" \\\"네!\\\"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지금부터 이런 성공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1,000억 중에 첫 번째 0은 바로 명예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0은 지위입니다. 세 번째 0은 돈입니다. 이것들은 인생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럼 앞에 있는 1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은 건강과 가족입니다. 여러분 만일 1을 지우면 1,000억이 어떻게 되나요? 바로 0원이 되어버립니다. 인생에서 명예, 지위, 돈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그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건강과 가족이 없다면 바로 실패한 인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 정수정 옮김 (새벽편지 가족) - 명예와 지위, 돈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기억하세요. -
1000원으로 우유를 마시며/ 2010-09-22
1000원으로 우유를 마시며 알코올 중독자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술을 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술의 유혹을 끊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가끔가끔 술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술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진열대에 진열된 술병들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옆 집에 간판이 보였습니다. <1000원만 내면 우유를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습니다.> 그는 즉시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우유를 정신없이 마셨습니다. 신선한 우유였습니다. 배 부를 정도로 마셨습니다.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이 마셨습니다. 술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1000원의 가치/ 가치관/ 2013-01-23
1000원의 가치 강유민 양(5)은 하루 1,000원 남짓의 용돈을 받는다. 그러던 지난 3월부터 꼬박꼬박 그 1,000원을 저금통에 넣었다. 그 전에는 의례히 700원짜리 사탕이나 과자를 사 먹었다. 한달에 3만원 남짓 모아진 돈은 국제 구호단체 굿네이버스를 통해 아프리카 차드에 사는 가마고움 가미(7) 어린이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유민양이 사탕을 포기한 건 어머니의 아프리카 얘기를 듣고서 부터라고 했다. \"유미야! 니가 사탕 하나를 포기하면 아프리카 어린이 한 명이 밥 3끼를 먹을 수 있단다.\" 유미 양의 어머니 주영선 씨는 유미가 세 아이중 둘째라서 너무나 소유욕이 강해 기부를 시켜보게 했다고 한다. 유미가 엄마의 권유로 가미 어린이를 돕고 부터 동생에게도 양보를 많이 하고, 언젠가 아프리카에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미 양은 어려운 아프리카 어린이의 마음을 읽으면서 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한사람의 일생은 다양한 교육을 통해 성장하지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은 부모의 몫이 아닐까 싶다.
1000원짜리 종이에 그린 그림이 900억/ 2010-09-22
1000원짜리 종이에 그린 그림이 900억 10원짜리 종이 한 장에 롱펠로우가 시를 썼습니다. 그 종이가 지금 600만원에 팔리고 있습니다. 록펠러가 작은 종이 위에 싸인을 하였습니다. 10원짜리도 안 되는 종이입니다. 그 종이 쪽지가 지금 100 만불 10억원이 넘게 팔리고 있습니다. 1000원짜리 종이 위에 밀레가 만종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이 지금 가치가 900억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찌들고 무가치한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님의 피흔적을 그리면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됩니다.
1000점을 얻는 비결/ 2010-12-09
1000점을 얻는 비결 평생 동안 열심히 신앙 생활하던 어떤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막 천국문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누가 붙들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베드로였습니다. “아, 잠깐만 기다리시오. 이곳을 통과하려면 약간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뭐, 복잡한 것은 아니고 당신이 일생 동안 살아온 것을 점수로 환산하여 1000점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1000점이라 구요? 별로 대단한 것 같지는 않군요.” “자 그럼 이제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얘기를 해보세요.” “저는 30년 동안이나 어떤 선교 기관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했지요.” “아! 그래요? 정말 대단하군요. 1점입니다.” “네? 1점이라 구요? 그것밖에 안됩니까? 이상하군요. 계속하지요. 저는 충실한 가장이었습니다. 한 여자와 결혼하여 무려 40년을 한 번도 싸우지 않고 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훌륭히 키웠습니다. 내 아이들은 지금 모두 목사, 교수 등 교계와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늘 행복했답니다.” “정말입니까? 당신은 매우 훌륭하군요. 요즘에는 당신 같은 사람이 매우 드문데, 2점 가산입니다.” “네? 2점이라 구요? 정말 모를 일이군요.” 그는 벌써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어서 1000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좀처럼 점수가 올라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바심이 난 그는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지난 60년 동안 한 번도 교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했고, 주일에는 장년부 성경 공부를 인도했어요.” “당신은 정말 모든 면에서 훌륭한 사람입니다. 또 1점 가산 하지요.” 베드로의 말에 그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겨우 4점이군요. 그런데 난 어떡하죠? 더 이상 점수에 보탬이 될 만한 얘기가 없는데 예수님 난 어떡하나요? 난 천국에 들어갈 만한 인격이 못되나 봅니다. 제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게 구원을 주실 이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소서.” 이 말을 마치자 베드로가 박수를 치며 말했습니다. “자 이제야 당신은 1000점을 얻었습니다. 이젠 들어가도 좋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상하다는 듯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제가 1000점을 얻었죠? ” 베드로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의와 공로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중보자이신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데 있답니다.”
1006개의 동전
1006개의 동전 예상은 하고 갔지만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얼굴 한쪽은 화상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코가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할 말을 잃고 있다가 내가 온 이유를 생각해내곤 마음을 가다듬었다. "사회복지과에서 나왔는데요." "너무 죄송해요.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요. 어서 들어오세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밥상 하나와 장롱 뿐인 방에서 훅하고 이상한 냄새가 끼쳐 왔다. 그녀는 나를 보더니 어린 딸에게 부엌에 있는 음료수를 내어 오라고 시킨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계세요. 얼굴은 언제 다치셨습니까?" 그 한 마디에 그녀의 과거가 줄줄이 읊어 나오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나 다른 식구는 죽고 아버지와 저만 살아 남았어요." 그때 생긴 화상으로 온 몸이 흉하게 일그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아버지는 허구헌날 술만 드셨고 절 때렸어요. 아버지 얼굴도 거의 저와 같이 흉터 투성이었죠.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집을 뛰쳐 나왔어요." 그러나 막상 집을 나온 아주머니는 부랑자를 보호하는 시설을 알게 되었고,거기서 몇 년 간을 지낼 수 있었다. "남편을 거기서 만났어요. 이 몸으로 어떻게 결혼할 수 있었느냐고요? 남편은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 그와 함께 살 때 지금의 딸도 낳았고,그때가 자기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남편은 딸아이가 태어난지 얼마 후시름시름 앓더니 결국은 세상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전철역에서 구걸하는 일 뿐...말하는게 힘들었는지 그녀는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어느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성형 수술을 했지만 여러번의 수술로도 그녀의 얼굴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이 무슨 죄가 있나요. 원래 이런 얼굴.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수술만 하면 얼굴이 좋아져 웬만한 일자리는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곧 절망으로 뒤바뀌고 말았단다. 부엌을 둘러보니 라면 하나, 쌀 한 톨 있지 않았다. 상담을 마치고. "쌀은 바로 올라올 거구요. 보조금도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며 막 일어서려고 하는데 그녀가 장롱 깊숙이에서 뭔가를 꺼내 내 손에 주는 게 아닌가? "이게 뭐예요?"검은 비닐 봉지에 들어서 짤그랑 짤그랑 소리가 나는 것이 무슨 쇳덩이 같기도 했다. 봉지를 풀어보니 그 속 안에는 100원짜리 동전이하나 가득 들어 있는게 아닌가? 어리둥절해 있는 내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하는 것이었다. "혼자 약속한 게 있어요. 구걸하면서 1000원 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500원짜리가 들어오면 자꾸만 시력을 잃어가는 딸아이 수술비로 저축하고, 그리고 100원짜리가 들어오면 나보다 더 어려운 노인분들을 위해 드리기로요. 좋은 데 써 주세요." 내가 꼭 가져 가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녀의 말을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와서 세어 보니 모두 1006개의 동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 돈을 세는 동안 열 손가락은 모두 더러워졌지만 감히 그 거룩한 더러움을 씻어 내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한밤을 뜬 눈으로 지새고 넉넉지 않음 속에서도 남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 이런 따뜻한 마음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밝은가 봅니다 낮은울타리 99년 9월호
100가지 예화모음(1)/ 2010-05-20
100가지 예화모음(1) 첫번째 이야기 어머니의 기다림 홀어머니를 버리고 집을 나갔던 아들이 어느 날 자신의 불효를 깨닫고 먼 길을 걸어 깊은 밤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니 대문은 열려있고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서는 어머니가 편히 눕지도 않은 채 졸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아들이 그 까닭을 여쭙자 어머니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 내내 그렇게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혹 아들이 돌아왔다가 불이 꺼져 있으면 다시 나갈까 염려가 되어 그렇게 하셨다며 아들을 꼭 껴안았습니다.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1-2)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어머님 은혜라는 동요의 첫 구절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아프거나 두려운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엄마”하고 부르게 됩니다. 그만큼 어머니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안식처이자 피난처입니다. 혹 어머니께 투정을 부려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가끔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을 나눠주시기도 하신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세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약속있는 첫번째 계명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두 천사의 이야기 하나님이 인간의 기도를 모으려고 이 땅에 두 천사를 내려 보냈습니다. 한 천사는 그의 바구니에 사람들의 소원 기도를, 다른 천사는 감사 기도를 모으려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 천사는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인간들의 수 많은 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사 기도를 담아 오겠다는 천사의 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었고, 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고, 어디에서나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린도후서 2:14)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는 키가 작은데, 나는 공부를 못하는데, 나는...,이외에도 많은 불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난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을 잘하니까 감사합니다. 난 키는 작지만 건강하니까 감사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잘 둘러보면 감사할 조건이 생각 외로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세번째 이야기 아영이와 사촌동생 아영이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에 길을 잃어 가게 앞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꼬마를 만났습니다. 도와줄까 생각하다 딴 사람들처럼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영이는 오후 내내 그 꼬마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울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나쁜 아저씨들에게 잡혀 가지는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 때 엄마가 그 꼬마의 손을 잡고 들어 오셨습니다. “아영아, 시골에 사는 네 사촌 동생이야. 집을 못 찾아 울고 있는 걸 오다가 만났지 뭐니.” 아영이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드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 이름으로 너희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가복음 9:41) 살아가면서 우리는 뜻하지 않던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우린 그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그것은 주위의 도움을 받기 위함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는 동안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 수 있을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손을 내밀어 힘이 되어 주세요. 우리들의 맞잡은 손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네번째 이야기 소녀와 강아지 강아지를 파는 가게에 한 어린 소녀가 찾아와서 강아지의 값을 물었습니다. 그 소녀가 가리킨 강아지는 다리를 저는 강아지였습니다. 가게 주인은 이상하다는듯이 “왜 하필이면 다리를 저는 개를 사려고 하니?” “저도 다리를 다친 절름발이거든요. 이 강아지에게는 많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저 역시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지요. 불구의 몸으로 자라는 것이 보통 힘드는 것이 아니거든요.” 주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 개를 그 소녀에게 그저 주었습니다. 그 소녀가 그 강아지를 가장 잘 보살펴 줄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 25:40) 예수님께서는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의 다리를 고치셔서 걷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과 같은 형제요, 우리와 다를 바 전혀 없는 이웃임을 보이시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장애자들에게는 작은 관심도 큰 힘이 됩니다. 그렇다고 과잉 친절을 베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장애자들은 단지 조금 불편한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외면한다면 그들에게는 아주 힘든 형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애정어린 관심으로 함께 친구가 되어야겠습니다. 다섯번째 이야기 장미의 가시 꽃 중의 꽃이라고 늘 뽐내던 장미가 어느 날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 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만드셨으면서 왜 볼품없고 따가운 가시를 주셔서 벌이나 나비가 절 멀리하게 하셨습니까? 부디 가시를 없애주세요.” 하나님은 아무 말없이 장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장미는 너무나 기뻐서 한껏 우쭐대며 나비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때 저 멀리서 염소가 자기를 뜯어 먹으러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장미는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장미에게 다시 가시를 달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누가복음 12:15) 장미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장미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면서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의 욕심도 이 장미처럼 끝이 없습니다. 친구의 가방이 더 좋아 보이고, 다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 더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사실 옷이나 돈, 명예 따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들 모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려고 하지만 우리의 욕심이 그것을 지나칠 때 벌하십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다 그것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섯번째 이야기 어리석은 호랑이 깊은 숲 속에 무서운 호랑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는 발톱이 날카롭고 포악하여 숲 속 동물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 동물들이 모여 어떡하면 호랑이를 쫓아 낼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중 여우가 꾀를 냈습니다. 다음날부터 동물들은 호랑이굴 앞에 하루에 한 번씩 먹을 것을 갖다 놓았습니다.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생긴 호랑이는 매일 굴 앞에 놓이는 먹이만 기다리며 흐뭇해 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난 후 놀고 먹기만하던 호랑이가 발톱도 무뎌지고 빨리 달릴 수도 없게 되자 숲 속의 동물들은 힘을 모아 호랑이를 쫓아 내 버렸습니다.(95.2.19.주.낮) 손이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부유하게 된다.(잠언 10:4) 호랑이가 제 힘으로 사냥을 다닐 때는 다른 동물들이 그 모습만 봐도 도망가기에 바빴지만, 사냥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이 가져다 주는 먹이에 만족하며 게으름을 피울 때에는 무서워 하기는 커녕 힘을 모아 쫓아 내어 버렸습니다. 일하지 않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일하는 손, 땀 흘리는 모습을 가장 이뻐하십니다. 일하는 사람이 부유하게 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일곱번째 이야기 어미 독수리, 아들 독수리 아들 독수리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맛있는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며칠 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했던 까닭에 배가 고팠던 아들 독수리는 먹이를 먹으려다 집에 계시는 어미 독수리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와 나눠먹을까? 아냐, 혼자 먹기도 부족하니 엄마는 엄마가 직접 잡아 먹으라고 하지 뭐.” 먹이를 다 먹은 아들 독수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갔습니다. “얘야, 엄마가 먹이를 잡았는데 너와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단다. 어서 먹자꾸나.” 아들 독수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자녀가 되신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골로세서 3:20) 사랑은 흔히 내리 사랑이라고들 합니다. 우리들은 부모님께 늘 받기만을 원할 뿐 무언가를 해 드린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은 좋은 것이 있으면 우선 자식들 생각을 하지만 자식들은 자기의 욕심만 채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꽃 한송이 달아 드릴 때면 조금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부모님께선 늘 우리에게 주실 것만을 생각하십니다.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부모님께선 우리의 그러한 모습에 무척 기뻐하실겁니다. 여덟번째 이야기 눈사람의 희망 겨울이 끝날 즈음 고드름은 무척 슬퍼졌습니다. 곧 따뜻한 봄이 되면 녹아 버릴 테니까요. 그런데 곁에 있는 눈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만 있었습니다. 고드름은 이상하다는 듯이 “넌 녹아서 네 몸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지 않니?” 눈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난 녹아서 물이 되어 산과 들에 생기를 불어 넣고 꽃들을 잠에서 깨울테야. 그리고 계속 노력해서 바다로 가려고 해, 바다는 우리의 고향이거든, 그것이 뭐가 두렵겠니?” 그 이후로도 겨울만 되면 고드름은 걱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지내서 몸이 야위었고, 눈사람은 희망으로 늘 웃고 지내는 덕택에 살진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6-17) 고드름과 눈사람은 똑 같은 상황인데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기쁨과 슬픔이 갈렸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도록 소망이라는 걸 주셨습니다. 소망이 있는 삶은 늘 기쁘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소망이 없는 삶은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십자가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소망을 가집시다. 우리의 소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 줄 수 있는 소망이어야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아홉번째 이야기 돼지와 암소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기가 얼마나 인기가 없는가 하고 한탄 하였습니다. “너는 우유와 크림을 준다. 그러나 나는 더욱 많이 준다. 나는 베이컨과 햄을 주고 털을 주고 그들은 심지어 내 발을 소금에 절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돼지일뿐이다. 왜 사람들은 너만 좋아하고 나는 좋아하지 않는걸까?” 암소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글쎄, 아마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주기 때문일꺼야.”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 (잠언 11:25) 우리 주변에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 거리를 걷다가 부랑아나 구걸하는 걸인들을 본 적은 없습니까? 내 형제, 내 친구만 도울 줄 알고 그들을 못본 척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는답니다. 또 내가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다음에 많이 가질때 그들에게 나누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서 조금씩 나눕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가 됩시다. 열번째 이야기 특별히 준비된 자리 잔치집 대문을 열고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은 고급차를 타고 왔고 옷도 근사했는데, 또 한 사람은 반대로 남루한 모습이었습니다. 첫번째 손님은 상석에 앉아 거드럼을 피웠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와 사귀려 했지만 두번째 손님은 끝자리에 앉아 조용히 잔치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주인이 나와서는 첫번째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 이 자리는 저기 계신 손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자리이니 비켜 주시겠습니까?” 주인이 가리킨 곳에는 남루한 차림의 두번째 손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누가복음 14:11) 우리는 누구나 높아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라 할지라도 높은 것처럼 보이려고 치장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높아진다는 것은 가장 낮아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도 씻으셨습니다. 그 누가 그런 예수님을 낮은 자라 말하겠습니까? 권세있는 자의 높은 위치가, 가진 자들의 보화가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팔을 걷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찾아 묵묵히 행하십시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그 길만이 진정 하나님 안에서 높아지는 길입니다. 열 한번째 이야기 샛별과 혜성 샛별과 혜성 둘이서 세상 구경을 다니다가 어느 산 속에 소녀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샛별은 그 소녀의 길을 안내해 주기 위해 땅 가까이 내려와서 소녀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고 혜성은 못본 척 하늘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하나님은 샛별과 혜성을 불러 샛별에게는 밝은 빛을 선물로 주셔서 세상 많은 사람들의 좋은 길동무가 되게 하셨고, 혜성에게는 길 잃은 소녀를 외면한 벌로 평생동안 밤 하늘을 떠돌아 다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를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여러분이 쓸 것을 언제나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8)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외면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 하실겁니다. 착한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바로 나의 일인 것처럼 여기고 나서서 도와 주는 것입니다. 머리가 둘 달린 아기는 한쪽 머리가 아플때 다른쪽 머리도 아파하면 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웃고 있으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할 수 있는 한 몸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린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니까요. 열 두번째 이야기 초대 받지 못한 예수님 은주는 자기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제각기 값진 선물을 들고 와서 생일 잔치에 참가했는데 우성이는 빈 손으로 와서 문밖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습니다. 은주는 우성이의 남루한 옷차림과 선물이 없는 걸 보고는 “난 널 초대 한적이 없어, 미안하지만 나가주겠니?”라고 말하며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우성이는 무척 슬퍼졌습니다. 그런데 문 밖에는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울고 있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한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그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 2:8-9) 우리는 가끔 외모나 옷차림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속이 지저분한 금그릇이나 은그릇보다는 투박하지만 속이 깨끗한 질그릇을 더욱 귀히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속 마음을 보고 하늘 나라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외모를 보고 이웃을 쫓아 내면 예수님을 쫓아 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쫓아낼 수야 없지 않습니까? 열 세번째 이야기 감사할 조건 진수는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주일학교실에 들어가면서 신발장에 벗어둔 신발이 어느 새 없어진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찬양을 배우는 시간 내내 화가 풀리지 않아 찬양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때 앞에 앉아서 찬양을 드리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친구는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찬양을 드리는 그 친구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신발이 아니라 두 다리 모두 잃어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그 친구를 보며 진수는 무척 부끄러워 졌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진수는 신을 잃어 버렸을 때 화가 났지만, 그 친구는 한쪽 다리를 잃고도 기쁨으로 찬양 드릴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 일들의 대부분이 우리의 감정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될 수도, 낙심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들에 핀 꽃 한송이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범사에 감사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으로 돌려 드리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실 겁니다. 열 네번째 이야기 게으른 수탉 새벽마다 수탉은 지붕 높은 곳에 올라 목청 높여 우는 것으로 아침이 오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괜히 심술이 났습니다. “도데체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저 소나 돼지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여 주면서, 난 스스로 먹이를 구하도록 내버려 두겠어? 좋아! 내일부터는 아침이 와도 알려 주지 않을거야. 그러면 나의 소중함을 알겠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 되었는데도 수탉은 닭장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늦게 일어난 농부는 닭장에 있는 수탉을 보고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이 닭도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저녁에 돌아와서 잡아 먹어야겠다.” 부지런한 사람의 손은 남을 다스리지만, 게으른 사람은 남의 부림을 받는다.(잠언 12:24) 우린 가끔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또 나 아니고는 아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지만물중 가장 귀하게 만드셨지만 게으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수탉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주인에게 잡혀 먹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키워가야 되겠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칭찬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열 다섯번째 이야기 둘 다 옳은거야 나무는 언제나 바람으로부터 세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무마다 온갖 열매가 열리고 사람들은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가 있어서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지.” 그 때 북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야기를 가로 막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세상은 매우 춥고 온통 얼음으로 뒤덮힌 삭막한 곳이야.” 남풍과 북풍은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무가 이야기 했습니다. “너흰 둘 다 옳은거야, 너흰 서로의 고향 외에는 가보지 않아서 상대방의 말을 믿지 않을 뿐이지.”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디모데후서 2:15) 진리란 무엇일까요?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는 소인국에도, 거인국에도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걸리버는 자신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소인국에서는 너무 크다고, 또 거인국에서는 너무 작다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린 가끔 자기의 주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다투곤 합니다. 이 세상에 절대 진리란 성경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의견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한 의견 교환은 우리의 사고를 한단계 성숙시킬 것입니다. 열 여섯번째 이야기 친구 효상이가 서울로 이사온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낯선 집, 낯선 학교 이 모든 것에 적응하기가 힘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힘이 든 것은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오늘부터 친구를 찾아 나서야겠어. 이 곳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 친구가 되어 줄 사람도 많을거야.” 효상이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효상이는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민혁아, 내일부터는 친구를 찾아다니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해 보려무나. 그러면 네가 가는 곳 어디서나 친구를 만날 수 있을거다.” 너의 친구나 너의 아버지의 친구를 저버리지 말아라. 네가 어렵다고 친척의 집을 찾아 다니지 말아라.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잠언 27:10)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따라 친구도 될 수 있고 원수도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우리가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희생과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까? 누구에게나 스스로 친구가 되어 주십시요. 열 일곱번째 이야기 바다, 그 생명력 호수와 바다는 작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여 살았습니다. 바다는 매일 바위에 몸을 부딪히고 쉬지 않고 소금을 자신의 몸에 뿌렸습니다. 호수는 그런 바다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호수는 바람과 이야기하고 나무와 놀기만을 즐겼습니다. 수 년이 지난 후 호수는 제 몸 어느 구석부터 물이 썩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픔을 느끼면서도 바위에 내 몸을 부딪히는 것은 잠들지 않기 위함이고 소금을 뿌리는 수고를 하는 것 역시 내 몸을 썩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어.” 슬픔에 빠진 호수를 향해 바다가 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그분의 영원한 영광으로 불러들이신 분께서, 잠시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10) 우리 주위에는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데도 늘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한 남의 것을 탐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면서도 잘 사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린 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잠시입니다. 그 고난과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릴 더욱 온전하게 해주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 만큼 우리게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 여덟번째 이야기 소녀와 호랑이 산골 마을 소녀가 산나물을 광주리에 하나 가득 담아서 산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큰 바위를 막 넘으려는데 바위 틈새에 아기호랑이 몇 마리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아기호랑이가 너무 이뻐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안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저 앞에서 어미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소녀는 나물 바구니도 버려둔 채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소녀는 너무 겁이 나서 그만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입에 물고 온 나물 바구니만 내려 놓고 가만히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이사야 49:15)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귀여워 해 주는 사람은 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록 하찮은 동물이라 할지라도 모성애라는 것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가끔 혼을 낼 때에도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혼을 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우릴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릴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아프실 겁니다. 열 아홉번째 이야기 동업자 가구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 한 손님이 들어 왔습니다. 그 가게의 가구들은 모두가 튼튼하고 멋지게 보였습니다. 손님은 가게 한 켠에서 열심히 대패질을 하고 있는 목수에게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모두 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둘이요”라고 목수가 대답했습니다. 손님은 다른 사람이 또 있나 둘러 보았습니다.목수는 웃으며 “하나님과 내가 여기서 일하지요. 하나님은 나무를 만드시고, 나는 침대를 만들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주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잠언 16:3)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상을 받고, 공부를 하는 것들이 오직 우리가 잘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관여해 주시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주위에서 나를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하나 잘했다고 해서 너무 자랑하거나 잘못된 일이 있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이루어 주실 겁니다. 스무번째 이야기 민들레 햇볕이 잘 드는 앞마당 화단에 장미가 피었습니다. 보람이는 장미가 너무 좋아 자주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수줍게 핀 민들레는 장미에 가려 보람이의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물을 조금 밖에 얻어 먹을 수 없었고, 벌레의 괴롭힘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을 맞아 보람이가 시골 외갓댁에 내려가는 바람에 아무도 화단에 물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도 내리질 않아 꽃들은 목이 탔습니다. 방학이 끝날 때 쯤 보람이가 집에 돌아와보니 장미는 이미 시들어 버렸지만, 민들레는 참고 이기어 끝끝내 홀씨를 틔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는 나의 환난을 보고,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에베소서 3:13) 만일 보람이가 민들레에게도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 주어 민들레가 아무런 수고도 없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면 방학 기간동안 민들레가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요? 아닐겁니다. 우리가 고난이라고 여기는 것 중 대부분은 이처럼 우리를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고난으로 단련된 사람만이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 그 일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가 있는 겁니다. 어른이 다 되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엄마’하며 숨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온실 속에서 자란 꽃이 오래가지 못하듯이 고난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스물 한번째 이야기 토끼가 구해온 것은 토끼와 여우와 원숭이는 평소 자신들을 보살펴 주던 주인 아저씨가 다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셋이서 먹을 것을 구해 오기로 했습니다.먼저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가 머루랑 사과를 따왔고 여우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왔습니다.하지만 토끼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금방 먹을 것을 구해 올테니 솥을 걸고 불을 피워 두렴.”토끼는 이 말을 하곤 숲 속으로 들어가서는 물이 끓을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손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무얼 가지고 온거니? 어서 내 놓아 봐.” 바로 그 때 토끼가 솥으로 뛰어 들었습니다.자신의 몸을 주려고 한 토끼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소나기를 내려 불을 꺼 주셨습니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창세기 22:12)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에게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를 보여줍니다.토끼가 주인 아저씨에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듯이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바치듯이 우리는 우리의 주인된 하나님을 위해 충성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세상에는 자신이 진정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돈을 섬기는 사람, 명예를 섬기는 사람, 우상을 섬기는 사람....,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진정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목숨을 바쳐 섬기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진 일일 것입니다. 스물 두번째 이야기 살아남은 이유 추운 겨울날 두 사람이 눈보라치는 벌판을 가다가 신음하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우리 이 사람을 데려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거요.”그러자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며 “무슨 이야기입니까? 저 사람을 데려가다가는 우리마저 죽게 될거요.”라고 말하고는 먼저 가버렸습니다.첫번째 사람은 노인을 업고 걷기 시작했습니다.힘이 들어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더운 기운이 끼쳐서인지 노인은 점차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마침내 이들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한 남자가 꽁꽁 언 채 쓰러져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2:15-16) 노인을 업고 그 눈오는 산길을 걸을 때는 무척 힘이 들었을 겁니다.하지만 결국 살아 남은 사람은 누구입니까?저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그 사람은 얼어 죽었지만 노인의 생명을 구하려고 업고 간 사람은 그 노인 덕분에 자신의 생명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이웃과 동행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은 함께 부축하며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모범이 되어야 겠습니다. 스물 세번째 이야기 티끌과 들보 어느 날 태웅이가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선생님, 아름이가 선생님께 혼날 일을 한 걸 제가 보고 왔어요. 뭐냐면요...,”“태웅아!”선생님은 태웅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막으시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넌 지금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등을 볼 수 있지? 하지만 네 등을 한번 보렴.”태웅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선생님 어떻게 자기가 자기 등을 볼 수 있습니까?”선생님은 태웅이를 끌어 안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그렇지? 우리들은 남의 허물은 쉽게 보면서 자신의 허물은 잘 보지 못한단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우린 누구나 한두 번 씩은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그런데 자신이 잘못하면 그것은 어쩌다가 일어나는 실수가 되고, 남이 잘못하면 그것은 큰 잘못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고, 책망을 하기전에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소한 일로 남을 헐뜯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하지만 이 이야기가 불의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라는 이야기로 받아 들여 진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불의를 보고도 못본 척 하는 것은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죄악된 길로 밀어넣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고자질과 비겁을 구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스물 네번째 이야기 세상을 넓게 보는 눈 제자 두 명이 스승을 찾아 왔습니다.오랫동안 함께 공부를 한 두 제자는 이젠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스승의 곁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스승은 두 제자 앞에 하얀 종이를 꺼내어 그 가운데 점을 하나 찍고서 제자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한 명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한 명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떠나도록 허락했지만 점이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공부를 더 할 것을 명령하며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공부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갖게하는 훈련인거야.”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전도서 3:11)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일까요?우린 가끔 세상을 자신만의 테두리 속에 가두어 놓고 그것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기도 합니다.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역사 속에서 세상을 바꿔온 위인들은 한결같이 세상을 넓게 본 인물들이었습니다.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편견이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은 없어야 되겠습니다.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어느 젊은이가 꿈에 하나님을 만나 하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하늘 나라를 구경하던 중 각 사람의 살아온 발자취를 그려 놓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겨 살펴 보았습니다.그 젊은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모래밭에는 발자욱이 두개가 나 있었습니다.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발자욱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젊은이가 하나님께 따지듯이 여쭈었습니다.“하나님, 왜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 내버려 두셨습니까?”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아들아,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었단다. 너와 동행하다가 네게 고난이 닥쳤을 때는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이사야 41:13)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까?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나 혼자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까?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지도 버리시지도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깊은 산 속에 홀로 있어도, 낯선 사람들 무리에 버려져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만의 증거입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쉽게 좌절하고 포기해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실망하실 겁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고난속에서 더욱 강하게 단려되기를 원하시니까요.이 세상에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니까요.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 강아지와 바위 아버지는 야솔이가 성경 읽기를 꺼려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야솔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야솔아, 앞에 가는 저 강아지를 따라 한 번 걸어보렴.”야솔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강아지를 따라 걸었습니다.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모래위에 발자욱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습니다.“그럼 이 번에는 앞에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걸어보렴.”야솔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걸었습니다.“어때, 이번에는 발자욱이 곧게 나있지? 네가 즐겨보는 만화책이나 텔레비전이 강아지라면 성경은 바로 저 앞의 바위와 같은 거란다.”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디모데후서 3:15) 성경 읽기가 어렵습니까?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이 많고 너무 두꺼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까?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려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거절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하루에 한 구절씩이라도 읽는 습관을 들이세요.어려운 구절이 나오면 목사님이나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보세요.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영적으로 커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살아가면서 강아지를 따라다녀야 되겠습니까?우리는 성경이라는 믿을 수 있는 큰 바위를 바라보며 담대히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스물 일곱번째 이야기 피묻은 칼 에스키모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이 늑대 사냥을 나갔습니다.아버지는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잔뜩 묻혀서 얼리더니 그 위에 또 피를 묻히기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아버지, 칼에 피를 묻혀서 얼리면 칼날이 뭉툭해져서 늑대를 잡기가 더 힘들어 지는 것 아닌가요?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늑대는 사나워서 그냥 잡기는 힘이 들지만 이렇게 피를 묻힌 칼을 늑대가 잘 다니는 길에 꽂아두면 늑대는 처음엔 칼에 묻은 피를 먹게 되지. 그러다 보면 혀가 얼어서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칼날에 자기 혀를 베어 결국엔 자기 피를 계속해서 먹다가 쓰러지는 거란다.”아들은 그 때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정의에 굳게 서는 사람은 생명에 이르지만, 악을 따르는 자는 죽음에 이른다. (잠언 11:19) 이야기가 조금 으시시 합니까?늑대가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피묻은 칼을 혀에 갖다 대듯이 우리도 죽음에 이른다는 경고를 잊고 악을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죄에 한 번 두 번 빠지게 되면 나중에는 자신의 행위가 죄라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게 됩니다.마치 늑대가 감각을 잃어 자신의 혀가 갈라져 흐르는 피인지도 모르고 계속 먹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어떤일이든 시작이 어려운 것이지 한번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게 됩니다.그렇다면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약속되어진 정의의 길로 한발짝 내딛는 결단을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어리석은 늑대는 되지 않아야 할테니까요. 스물 여덟번째 이야기 여성 전사의 눈물 예전에는 여자들도 전쟁이 나면 창과 칼을 들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어느 전투에서 여성 전사 둘이서 서로 맞부딪쳤습니다.날카로운 창과 칼이 몇번 오가는 동안 결국 한 명이 창에 찔려 쓰러지고 말았고 이긴 여성은 기쁨의 환호를 질렀습니다.하지만 곧 그 여성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었습니다.상대의 몸을 관통한 창이 뒤에 있던 꽃마저 찔러 그 꽃이 꺾여 버린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네 혀로 악한 말을 하지 말며, 내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여라.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시편 34:13-14) 사람을 죽이고는 기뻐하면서도 꺾여진 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람에게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둘 다 존재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악을 다스리고 선을 쌓아간다면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게 됩니다.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마음 속의 선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우리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따르려 노력할 때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기뻐하실겁니다. 스물 아홉번째 이야기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었습니다.현석이와 은혜는 각자 어머니께서 싸 주신 과일을 선생님께 드리려고 들고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학교 앞 골목길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던 꼬마들이 과일을 보고는 아주 먹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섰습니다.그래도 현석이는 못본 척 그냥 지나갔고 은혜는 선생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꼬마들에게 다 나눠주었습니다.현석이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전해 들은 선생님은 은혜의 손을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은혜야, 하나님은 가득찬 손보다는 나누어 주는 손을 더 사랑하신단다. 선생님도 은혜의 그 고운 마음씨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단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재난이 닥칠 때에 주께서 그를 구해 주신다.(시편 41:1) 현석이의 행동은 잘못이고 은혜의 행동만 옳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석이도 나름대로 제 할일을 한 것입니다.그렇지만 선생님이 과일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면서도 은혜의 행동을 칭찬하신 것은 은혜의 고운 마음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고운 마음씨 말입니다.선한 일은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내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현석이가 갖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아름다운 마음인 것입니다. 서른번째 이야기 하늘가는 길은 열려 있지않니? 교회 주일학교에서 섬으로 단체여행을 떠났습니다.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고 버려진 휴지도 주웠습니다.그런데 돌아오는 배에서 일행은 폭풍우를 만났습니다.겁이 나서 우는 아이도 있고 선생님께 꼭 매달려 떨고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목사님! 사방이 다 폭풍에 쌓여 도저히 더 갈 곳이 없습니다. 이젠 어떡하면 좋죠?”한 아이가 울면서 목사님을 쳐다 봤습니다.“얘들아, 그래도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열려 있지 않니?”아이들은 눈물을 그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목사님은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참 소망이 있기에 어려운 일에 부딪쳐서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되는 거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마태복음 8:26) 폭풍우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담대하게 견디어 낼 수 있을 겁니다.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알 수 있습니다.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갈 곳이 없다면 하늘을 보세요.하나님께서 우리의 갈길을 보여 주실테니까요. 서른 한번째 이야기 붕어 두마리 깊은 산속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연못엔 붕어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날 물을 먹으로 온 여우가 큰 붕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아니 이렇게 작은 연못에서 어떻게 같이 살고 있니? 저 작은 붕어만 없으면 이 연못은 네 것이 될텐데.”그 말을 들은 큰 붕어는 작은 붕어에게 싸움을 걸어 결국 죽이고 말았습니다. 연못을 혼자 차지하게 된 큰 붕어는 기분이 좋았습니다.하지만 곧 작은 붕어의 살이 썩어들어 가면서 물도 같이 썩기 시작했습니다.큰 붕어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습니다.얼마 안 있어 큰 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가지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고 먹으면, 양쪽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니, 조심하십시요.(갈라디아서 5:14-15) 형제가 있는 어린이들은 가끔 싸우기도 합니다.하지만 그 싸움은 서로의 살을 뜯는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이웃과도 마찬가지입니다.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이웃간에 사랑이 없을 때, 형제간에 우애가 없을 때, 우린 어느 한 쪽 만의 패배가 아니라 양쪽 다 멸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우리의 통일도 어느 한 쪽의 패배 위의 합침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사랑으로 만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른 두번째 이야기 장애인들의 친구 화창한 주일 혜미는 어릴 적부터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앉아 있기만 하는 민혁이를 전도해서 교회로 향했습니다.교회 앞 계단에 선 둘은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길이 없어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결국 친구들 몇명의 도움으로 겨우 예배당에 들어 갈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다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주위의 어른들과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흘깃 흘깃 쳐다보는 바람에 민혁이는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었고 혜미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그 다음주부터 민혁이도 혜미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목사님은 그 날 앉은뱅이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설교를 하셨지만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둘은 예수님이 더이상 장애인들의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주위의 온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병자를 모두 그에게 데리고 왔다. 그들은 예수께 그 옷술이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았다. (마태복음 4:35-36)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소경이나 앉은뱅이, 그리고 문둥병자들까지 거절 않으시고 고치시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이 천 년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왕이나 귀족의 모습으로 오실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목수의 아들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친구로 오셨습니다.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그들을 돕기를 바라고 계십니다.장애인들은 몸이 조금 불편할 뿐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는 한 형제 자매입니다.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배려나 도움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민혁이와 혜미가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서른 세번째 이야기 생명을 구하는 큰 일 바닷가를 거닐던 하민이는 바위 틈에서 불가사리를 떼내어 바다에 던지는 어느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호기심이 생긴 하민이가 그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가서 그 일을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그건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지면 불가사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햇볕에 그만 말라죽기 때문이지.” 라고 대답하셨습니다.하민이는 웃으면서 “할아버지, 바다에는 수많은 불가사리가 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힘들여 하시는 일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요?”할아버지는 금방 떼어낸 불가사리를 들어 보이시면서 “그렇지만 이 한마리의 불가사리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큰일이 될 수 있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시곤 바다로 멀리 던져 주셨습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요한복음 6:38) 그렇습니다.리가 지나가다가 가끔 만나는 걸인이나 부랑자들을 도와 주는 것이 수많은 어려운 이웃들 모두를 구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겁니다.물질적인 도움 뿐 아니라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알리는 것 또한 우리의 할 일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오직 나만을 위해 쓰여서는 안될 까닭은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신 건강, 물질, 예수를 믿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을 우리의 이웃과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겁니다. 서른 네번째 이야기 나비와 지렁이 봄이 되어 환하게 핀 민들레 위로 나비가 날아왔습니다.민들레는 꽃가루를 옮겨다 주는 나비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나비는 기분이 좋아져서 여기 저기 날아 다녔습니다.비 개인 어느 날 나비는 꽃밭에 나갔다가 땅 위로 나온 지렁이를 발견하고는 으시대기 시작했습니다.“난 꽃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귀중한 몸이야, 그런데 넌 남에게 한 번이라도 도움이 된 적이 있기나 하니?”가만히 듣고 있던 민들레가 입을 열었습니다.“나비야, 저 지렁이는 땅 속에 구멍을 만들어서 내가 공기를 마시기 쉽게 해주고 또 양분을 만들어 주어 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 준단다.”그 말을 들은 나비는 지렁이를 볼 낯이 없어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너는 자선을 베풀때에는, 네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를 네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은밀한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4)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선행에 대해 칭찬을 듣고 싶어 합니다.어떤 이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선행을 하고 또 그것을 알리기 위해 많은 애를 씁니다.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네 상을 다 받았다.”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는 받을 상이 없습니다.우리들이 선한 일을 했을 때 누군가가 보아 주지않는다고 실망하거나 그 일을 그만두는 미련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면서 하늘나라에서 주실 큰 상을 준비하신답니다.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다리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 점령 하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낙동강 줄기를 끼고 대대로 평화롭게만 살아오던 한 마을에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일삼는 관리 한 명이 일본 경찰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왔습니다.관리는 마을 사람들을 마을 앞 정자에 모아 놓고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고 단지 이 마을에 다리를 놓아 주려고 온 것이요. 그러니 다 함께 다리를 놓는데 힘을 모읍시다.”라고 말했습니다.그 때 마을의 제일 어른이신 촌장 어른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다리를 놓는 것이 우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라면 돕겠지만 당신네들이 우리 마을의 양식을 뺏어가기 좋으라고 놓는 다리라는 걸 아는 한 우린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다네.” 너는 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말아라. 그들의 마음은 폭력을 꾀하고, 그들의 입술은 남을 해칠 말만 하기 때문이다.(잠언 24:1-2) 뒷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요?마을 사람들은 나라를 되찾은 후 서로 서로 힘을 모아 멋지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 아주 편리하게 이용했다고 합니다.그 때까지 뗏목으로 그 강을 건넌 마을 사람 중에 그 누구도 다리가 일찍 놓이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세상에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악한 사람들은 종종 선한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의 작은 이익 때문에 나쁜 일을 보고도 못 본 척 하거나 그 일을 도와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서른 여섯번째 이야기 면접시험 어느 청년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하여 면접시험을 보러 왔습니다.자기 소개를 한 번 해보라는 면접관의 이야기에 그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저의 아버지는 시청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이고, 삼촌은 변호사십니다. 그리고 저의 할아버지는 예전에 군데에서 장군이셨구요. 그리고...,”“잠깐만요.” 면접관은 그 청년의 말을 막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우리가 알고 싶은건 지금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거지, 당신의 부모나 친척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게 아니라구요. 당신이 하지 않은 일은 당신을 뽑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3:16)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내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내 형제들이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내가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겁니다.반대로 우리 가족 중에 나 혼자만이라도 함께 구원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잘못입니다.언젠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질 때 내 부모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이 그 나라에서 함께 살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무척 아플 겁니다.지금이라도 당장 내 주위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전도하세요.더 늦기전에..., 서른 일곱번째 이야기 해와 달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해와 달이 만났습니다.해는 일을 마치고 쉬러 가는 길이었고, 달은 밤길을 밝히기 위해 일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해는 그런 달을 비웃으며 “야, 너는 나처럼 밝은 빛을 내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매일 저녁 일하러 가는거니?”달은 무척 상심하여 더 이상 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은 밤이 되면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못했고, 밤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아저씨는 돌부리에 채어 넘어지기도 했습니다.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짓지 않았습니다.그 때서야 해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달에게 사과하러 갔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태복음 25:21) 해는 무척 밝지만 무조건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사람들이 잠을 자야 하는 밤에는 밝은 해가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그리고 밤 늦게 귀가하는 아저씨에게는 은은한 달빛이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셔서 서로 도우며 살도록 하셨습니다.자기만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도 나쁘지만 ‘난 아무것도 못하는 가봐’라며 실망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개발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도 인정해 주며 서로 서로 도우며 사는
100가지 예화모음(2)/ 2010-05-20
100가지 예화모음(2) 쉰 한번째 이야기 잃은 것, 얻은 것 점심시간이 끝날 때 쯤 민철이는 운동장에서 지갑을 주었습니다.민철이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교실로 들어왔습니다.한참이 지난 후 미진이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어쩔줄을 몰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철이는 모른 척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민철이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미진이의 당황한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친구들이 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같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반대로 이 돈이면 축구공도 살 수 있고, 햄버거도 사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났습니다.밤새 고민하며 잠못 이룬 민철이는 다음날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미진이의 책상에 지갑을 넣어 두었습니다.미진이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민철이는 오래간만에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 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8:12) 민철이가 지갑을 주워서 자기가 가지려고 할 때 얻은 것은 양심의 가책이고, 다시 주인에게 돌려줄 때 얻은 것은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민철이가 주운 지갑이 미진이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난 후 민철이가 미진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을까요?성경은 우리가 형제 자매들에게 죄를 짓는 것은 곧 예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두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하나는 자기의 편리를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남을 돕는 일로 평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여러분들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민철이가 지갑을 돌려주고 나서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쉰 두번째 이야기 누구에게나 한가지씩은 교회 앞 마당에 목련나무, 사과나무, 전나무 이렇게 세 그루가 심겨져 있었습니다.봄이 되자 목련꽃들이 화사하게 피었습니다.목련은 다른 나무들에게 꽃도 피우지 못하는 나무들이라고 놀려댔습니다.가을이 되자 이번에는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사과나무는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나무는 나무도 아니라고 으시댔습니다.어느 새 찬바람이 불어 크리스마스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사람들은 전나무에 여러가지 장식물을 달아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습니다.다른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하지만 전나무는 으시대거나 다른 나무들을 놀리지 않았습니다.누구에게나 한가지 씩은 잘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수치가 따르지만, 겸손한 사람에게는 지혜가 따른다. (잠언 11:2) 교만이란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을 잘났다고 내세우는 것을 말합니다.우리 주위를 보면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한 친구들이 있습니다.그것은 우리들이 교만한 마음으로 그를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공부는 반에서 꼴찌를 하더라도 운동을 잘하는 친구가 있고, 운동은 좀 못하더라도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있습니다.아니 지금은 아무것도 잘 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장차 큰 일을 맡아 해낼 친구도 있는 것입니다.사람이 제각기 받은 달란트를 잘 다듬고 키워서 하나님안에서 귀하게 쓰이면 되지, 그 크기의 크고 작음은 아무런 문제가 아닙니다.겸손하게 자기를 낯출 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쉰 세번째 이야기 하나님께서 시키셨어요 그 날따라 지하철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규민이는 용케 자리를 잡아 앉아 있었는데 어느 역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아기를 업고 손에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차에 오르는 것이 보였습니다.규민이는 얼른 일어나 아주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가방을 들어 선반에 올려 드렸습니다.다리는 좀 아팠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한참을 가다가 아주머니께서 내리시려고 하자 규민이는 선반위의 가방을 내려다주며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아주머니는 “학생,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했습니다.규민이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하나님께서 시키셔서 하는 일인걸요. 저한테 고마워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고마워하세요.” 그리고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요.(골로새서 3:17) 우리가 가끔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우리가 가로채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다 이룬 것 같이 뻐기기만 하다가 힘든 일이 닥쳐 좌절하고 쓰러질 때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주예수의 이름에 의지하여 하고 일을 이루든지 못 이루든지 그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시니까요. 쉰 네번째 이야기 까치밥 가을이 되어 할아버지와 희수는 감나무에 감을 따기로 했습니다.오후내 감을 따느라 힘도 들고 땀도 많이 났지만 덕분에 감을 세 광주리나 딸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할아버지는 감나무마다 감을 서 너 개씩 남겨두고 따지 않으셨습니다.“할아버지, 아까운데 저것도 다 따시지 않고 왜 남겨두셨어요?” 라고 희수가 물어보자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저건 까치밥이라고 하는 건데, 저렇게 남겨 둬야 까치들이 감을 따먹고 똥을 누면 그곳에 씨가 퍼져 다시 감나무가 자라는 거란다.”그제서야 희수는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이제는 남겨둔 감들이 무척 정겹게만 느껴졌습니다. 포도를 딸 때에도 모조리 따서는 안된다.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사람들이 줍게, 그것들을 남겨두어야 한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다(레위기 19:10) 우리의 농부아저씨들이 까치밥을 남겨두는 풍습이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도 추수한 열매를 다 거둬가지 말고 어려운 이웃에게 가져가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어려운 때에도 이웃간의 정만은 잊지 않고 살아왔던 것입니다.내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들도 배부른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가 쉽습니다.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어려운 이웃들이 많습니다.점심을 굶는 학생들이 십만명도 더 된다고 합니다.까치밥을 남겨두는 마음으로 포도 송이를 다 거둬들이지 않는 마음으로 우리 이웃을 돌봐야 겠습니다. 쉰 다섯번째 이야기 굴 껍질 행운이와 예슬이는 방학을 맞아 어촌에 사시는 할아버지댁에 놀러 갔습니다.할아버지는 대문 밖으로 보이는 갯펄을 가리키시며 저곳에 가면 아주 아름다운 것들이 있을테니 가서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둘은 갯펄을 거닐며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에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할아버지 왜 거짓말 하셨어요.” 행운이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투덜거렸습니다.잠시후 예슬이는 손에 굴 껍질을 들고 들어왔습니다.“그게 뭐가 이뻐, 투박하기만 하고 보기 싫은데”행운이가 또 투덜거렸습니다.그러자 예슬는 굴의 속을 볼 수 있게 들었습니다.굴 속은 무지개빛 예쁜 무늬로 정말 아름다웠습니다.할아버지는 예슬가 그 아름다운 것을 발견한 것이 무척이나 흐뭇했습니다. 여러분은 머리를 치장하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3-4)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은 외모나 치장이 아니라 속마음입니다.우리가 겉모습만 보고 외면하는 조개 껍질도 속을 보면 아주 아름다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다른 사람을 대할 때 주의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한다면 아주 잘못하는 행동입니다.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참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습니다.굴 껍질 속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쉰 여섯번째 이야기 세상에서 쌓아 놓은 것 같은 날에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하늘나라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하늘 나라 천사들로부터 자신이 영원히 살게 될 곳으로 안내를 받았습니다.그런데 두 사람 다 자신이 지낼 곳이 아닌 것 같다며 천사를 찾아 왔습니다.관직을 이용해서 돈을 모은 부자가 간 곳에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그런데 가난했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기를 좋아했던 사람이 간 곳에는 잘 가꿔진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집이 있었습니다.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세상에서 자신의 것으로 쌓아둔 것은 하늘나라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하지만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준 것은 그것의 백배로 하늘나라에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부자는 땅을 치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습니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나라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마가복음10:21) 예수님을 따르는 데는 재물이 그리 소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무런 재물도 소유하지 말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것은 곧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직접 돌보신다는 뜻입니다.하지만 요즘은 재물에 가리워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주위에 우리보다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기꺼이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 나라의 상은 바로 이런 자들의 것입니다. 쉰 일곱번째 이야기 참 기독교인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된 아버지가 다른 지방에 사는 세 아들을 불러 주일마다 교회에 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주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한 달이 지난 후 아버지는 세 아들을 다시 불러 모아서 교회 나간 후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물었습니다.큰 아들은 자신의 삶이 보다 경건해졌고 사업도 잘된다고 말했습니다.둘째 아들은 덕분에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했습니다.그런데 세째 아들은 보이질 않고 대신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그 편지에는 요즘 마을의 장애자들과 노인들을 돌보느라고 도저히 올 수가 없었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아버지는 세 아들중 교회에 가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 받은 아들은 세째 아들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26)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은 나태한 신앙 생활에 채찍이 됩니다.성경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들이 그냥 가르침으로만 끝나서는 안되고 곧 실천이 되어야 함은 그것이 바로 참 신앙인의 자세이고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교회에서의 행동과 교회 밖의 생활이 다른 사람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그것은 하나님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 그것이 곧 실천이 되어야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배웠으면 생활 중에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깨달음이 곧 행동의 변화로 나타날 때만이 진정으로 변화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쉰 여덟번째 이야기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많은 승객을 태운 배가 폭풍우를 만나 심하게 흔들렸습니다.승객들은 구명보트를 찾았으나 폭풍이 너무 심하여 그마저도 소용이 없어지자 제각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폭풍은 그칠 줄을 모르고 오히려 번개까지 치면서 바람이 더 심해졌습니다.모두들 겁을 먹고 실의에 빠져 있는데 한 소녀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그러자 얼마 안있어 폭풍이 그치고 멀리서 육지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승객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습니다.육지에 내린 후 한 사람이 소녀에게 무어라고 기도를 했는지 물었습니다.소녀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어요.”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마태복음 26:42) 사람들은 제각기 소원을 빌었을 겁니다.폭풍이 멎게 해달라고한 사람도 있었을테고, 육지가 곧 나타나게 해 달라고한 사람도 있었겠지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방법을 미리 준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그러기에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가장 필요했던 것입니다.기도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참뜻을 알고자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빌었던 것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쉰 아홉번째 이야기 촛불 종정이는 어머니와 백화점에 다녀오는 길에 마주오는 장님과 마주쳤습니다.종정이는 옆에 가는 것이 싫어서 어머니의 팔을 잡아당겨서 멀리 떨어져서 걸었습니다.저녁이 되어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았을 때였습니다.갑자기 정전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자 종정이는 겁이 났지만 아버지께서 곧 촛불을 켜셔서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그 때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종정아 우린 잠시 정전이 되어도 이렇게 불편한 데 평생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어렵고 힘이 들겠니?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을 돕지는 못하고 오히려 멀리했으니 그들은 더 힘이 들었을거야. 우리가 그들에게 촛불이 되어주는게 어떻겠니?” 어머니의 말에 가족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찬성했습니다.그때 다시 전기가 들어와 방안이 환해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압니다. (로마서 8:28) 방안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오분만 있어보세요.보이지 않아 불편한 것도 불편한 것이지만 조금은 무서운 생각도 들게 될 겁니다.행하게도 우리 주위에는 평생을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창세기에 보면 소경과 귀머거리까지도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셔서 만드셨다고 되어 있습니다.그 뜻은 아마도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돌보며 화목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정전이 되어 어두운 방안에 촛불을 켜는 심정으로 우리가 그들에게 촛불이 되어 주어야 하겠습니다.우리는 다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순번째 이야기 오아시스 이야기 메마른 사막에 비가 내렸습니다.빗방울들은 제각기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바다에는 친구들도 많고 물고기들과 해초들을 키우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뜨거운 모래를 뚫고 지하로 스며들어 어두운 땅속을 헤치고 계속 흘러갔습니다.며칠이 지난 후 빗방울들은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나왔습니다.하지만 그 곳은 바다가 아니라 작은 웅덩이었고 실망한 빗방울들은 자기들을 사막에 내려준 구름을 원망하기도 했습니다.그 때였습니다.저 멀리서 낙타를 탄 상인들이 다가와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물통에 물을 긷기도 했습니다.방울들은 무척 기뻤습니다.비록 바다에는 가지 못했지만 더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곳은 바로 오아시스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한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죄가 됩니다. (야고보서 4:17)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하고 명예를 얻기를 좋아합니다.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꼭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우린 기꺼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바다로 가고 싶었던 빗방울이지만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여행자들의 목을 축여 줄 수 있었기에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한 가지 씩의 잘하는 일이 있습니다.그것을 선한 일에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겠지만 악한 일에 사용한다면 죄가 됩니다.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 보고 그것을 선한 일에 사용해야겠습니다. 예순 한번째 이야기 어항 속의 물 토요일 오후 주신이는 금붕어를 보고 있다가 어항 속의 물이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물을 갈아주기로 했습니다.물을 빼내고 유리를 닦은 다음 새 물을 넣고 나니 어항이 새것처럼 변했습니다.금붕어들도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저녁에 아버지께서 퇴근하셨을 때 주신이는 자랑하고 싶어서 어항을 아버지께 모여드렸습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어항 속의 물이 다시 뿌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광호는 속이 상했습니다.아버지는 어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더러운 물만 바꾼다고 해서 어항이 깨끗해지지는 않는단다. 모래속에 묻혀있는 더러운 것들이 다시 그 물을 더럽히게 되니까. 어항을 깨끗하게 하려면 모래속을 먼저 깨끗하게 만들어야지.”주신이는 다시 어항을 청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새들이 거기에 깃들고, 황새도 그 꼭대기에 집을 짓습니다. 높은 산은 산양이 사는 곳이며, 바위 틈은 오소리의 피난처입니다. (시편 104:17-18)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지금 너무도 더럽혀져서 사람도 나무도 동물들도 모두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새들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찾아 떠나고 강에는 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우리가 마실 물마저 안심하고 마실 수가 없습니다.쓰레기 안버리기, 나무 안꺽기 정도로는 더럽혀진 지구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어항 속의 모래를 다 청소해야 물이 깨끗해지는 것처럼 바다 속, 땅 속, 하늘까지 다 청소해야 합니다.그래야지만 새들이 돌아오고, 다람쥐가 산에서 뛰어 놉니다.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게 지으신 이 하늘, 이 땅을 다시 되살리는데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휴지를 줍고, 재활용품을 사용하며, 세제를 안 쓰는 일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 하나 실천해나가야 이 지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순 두번째 이야기 욕심 어느 마을에 아주 게으른 청년이 한 명 살았습니다.어느 날 그 청년에게 한 스승이 찾아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자네에게 천만원을 그저 준다면 자네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겠나.”청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렿게 대답했습니다. “천만원 가지고는 조금 부족한데요. 이천만원을 준다면 몰라도....,”스승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청년의 집에서 나와버렸습니다.그 청년에게 이천만원을 준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당하는 것은 각각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서, 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야고보서 1:14-15) 꿈은 클수록 좋은 것이라고 합니다.하지만 욕심과 꿈을 혼돈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아무런 노력도 없이 허황된 꿈을 꾸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자람도, 남음도 없이 우리의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욕심을 버리고 우리의 주어진 형편에서 최선을 다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참 평안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예순 세번째 이야기 청지기 한 마을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선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는 부자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웃마을의 구두쇠 노인이 그 부자 노인을 찾아왔습니다.“난 당신이나 별 다를 바 없이 살아 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나는 구두쇠라고 따돌림을 당하고 당신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 모르겠소. 뭐 귀한 물건이라도 숨겨둔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좀 알려주시오. 나도 그것을 사게 말이오.”구두쇠 노인의 말에 부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특별히 숨겨둔 것은 없소. 단지 나는 내게 있는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지요. 그래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재산을 쓴답니다.”‘내가 평생 일해 모은 재산이 내것이 아니라니, 그리고 그것을 이웃을 위해 사용하다니’ 구두쇠 노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그 후로도 구두쇠 노인은 평생을 따돌림을 당하며 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베드로전서 4:10) 부자 노인에게는 있고 구두쇠 노인에게 없는 것은 바로 청지기 정신이었습니다.청지기란 하나님의 직분 맡은 자라는 뜻입니다.내 가진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내 몸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내가 함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내가 가진 재산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낭비할 수가 있겠습니까?내게 주어진 능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의 자세입니다.하나님의 청지기로 살아가세요.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순 네번째 이야기 웃음으로 상대해 보럼 동호가 밖에 나갔다가 씩씩거리며 들어왔습니다.옆집 철이가 먼저 욕을 하는 바람에 같이 욕설을 하며 싸움을 했다고 했습니다.아버지는 동호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동호야. 앞으로는 철이가 욕을 하면 넌 웃음으로 상대를 해보렴. 그러면 철이도 달라질거야.”“아니, 욕을 듣고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요?” 동호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못 박은 로마 군인들 마저도 용서하셨단다.”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터 동호는 철이가 욕설을 하면 웃으며 고운 말만 했습니다.철이가 욕을 하지 않게 된 것은 그 후 며칠 뒤의 일이었습니다.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 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잠언 15:4) 사람들이 범하는 실수 중 가장 많은 경우가 바로 말에 의한 실수입니다.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사랑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생명나무와도 같다고 합니다.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다면 먼저 다가가서 따뜻한 말을 건네 보십시오.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늘 웃음으로 대해 보십시오. 언젠가 그 친구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올 때가 있을 겁니다.하나님을 믿는 친구들은 말 한마디에서도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순 다섯번째 이야기 부지런한 자 젊은이가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그 곁을 지나가던 노인이 그 사나이에게 물었습니다.“젊은이, 여기서 무얼하고 있소?”“예, 우물을 파고 있는 중입니다.”젊은이는 연신 땀을 닦으면서 대답을 했습니다.“이곳은 강과는 거리가 멀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 곳이니 헛수고 하지 말고 다른 데를 파보는 게 어떻겠소?” 라며 노인이 충고를 했습니다.“나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물은 땅 속에 있을테니까 어디라도 열심히 파기만 하면 분명 물이 나올 것입니다.”노인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그리고 그 젊은이는 끝내 물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그 곳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당신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디도서 2:14) 우리 주변에는 부지런하고 매사에 열심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하지만 악한 일에 열심을 낸다면 그것은 오히려 열심이 없는 것만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예컨데 자기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집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우리가 어떠한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하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져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이웃을 돕는 일, 전도하는 일,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일등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열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대로 갚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순 여섯번째 이야기 장애인, 예비 장애인 전쟁이 끝나자 아들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어머니는 너무나 기뻐서 어서 집으로 달려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친구와 같이 있는데 그 친구가 팔을 하나 잃었어요. 그리고 그는 고아여서 돌아갈 집도 없거든요. 어머니, 그 친구와 함께 살 수 있을까요?”“얘야, 그 친구 사정은 딱하다만, 그런 불구자와 평생을 같이 살 수는 없지 않겠니. 그건 너무도 어렵고 힘든 일이란다.아들은 힘없이 전화를 끊었습니다.그 다음날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당신 아들이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했으니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였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어머니는 오열하고 말았습니다.아들의 주검은 팔이 하나 없는 상태였습니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십시오.(갈라디아서 6:2) 만일 아들의 팔이 없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비록 불구지만 아들과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마찬가지입니다.우리 주변의 많은 장애인들이 만일 우리의 부모 형제라면 그렇게 외면하거나 피하지는 않을 겁니다.아니, 오히려 힘든 것이 있으면 도울려고 할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당장 몸이 건강하다고 해서 장애인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면 우리가 장애인이 된다고 해도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이 아니라 예비 장애인인것입니다.하지만 장애인이든 예비 장애인이든 하나님 안에서 모두 한 형제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예순 일곱번째 이야기 단 한 명이라도 점심시간이 되자 모두들 도시락을 먹기에 바빴습니다.그렇지만 집이 가난하여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오늘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학생 있으면 선생님께로 와요. 선생님이 김밥을 많이 싸왔으니 선생님 것을 나눠 줄께요.선생님의 이 말이 끝나자 몇 명의 아이들이 앞으로 나왔고, 선생님은 김밥을 나눠 주기 시작했습니다.“선생님, 자기 도시락이 있는 아이들도 김밥을 받으려고 거짓으로 나왔어요. 선생님 김밥 주지 마세요.”한 아이가 소리쳤습니다.“그래도 괜찮다. 이 중 한 명 이라도 도시락을 안 싸온 학생이 있다면, 난 그 학생을 위해서 모두에게 김밥을 나눠 줄 수도 있단다.”말을 마치신 선생님은 다시 김밥을 나눠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었으면, 그는 아흔아홉마리를 산에다 남겨 두고서, 길을 잃은 그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18:12) 선생님은 점심을 굶는 아이들을 위해 김밥을 싸오셨습니다.그런데 거짓으로 김밥을 먹으려는 아이들에게 김밥을 주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김밥을 주지 않는다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아이들은 점심을 굶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선생님은 김밥을 달라는 아이들 모두에게 김밥을 주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그러기에 단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아낌 없이 주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마저도 말입니다.우리도 그런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되겠습니다. 예순 여덟번째 이야기 시계 종민이는 어제 본 시계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하지만 돈이 조금 모자라서 심부름을 하고 받은 돈을 조금씩 조금씩 모았습니다.드디어 돈이 다 모여서 종정이는 시계를 사러 가게로 향했습니다.그런데 가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울고 있는 친구를 보았습니다.그 친구는 시골에서 올라 왔다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종민이는 몇번을 망설이다가 시계 살 돈을 그 친구에게 주었습니다.그러자 그 친구는 돈을 그저 받을 수는 없다면서 자기가 차고 있던 시계를 끌러 주었습니다.그 시계는 종민이가 봐 두었던 시계와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6:33) 종민이가 만일 그 친구를 외면하고 시계를 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아마도 그 친구는 집에까지 가는데 어려움을 겪었을테고 종민이도 시계는 샀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우리들이 삶에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재물이나 명예 따위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마음을 두고 힘써 행해야 합니다.그 나머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길 잃은 친구에게 자신이 모은 돈을 아낌 없이 줄 수있는 종민이의 마음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예순 아홉번째 이야기 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가 산 꼭대기까지 경주를 하기로 했습니다.토끼는 긴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갔고, 거북이는 엉금엉금 기어갔습니다.토끼는 한참을 가다가 거북이가 보이지도 않게 되자 쉬어 가려고 나무 그늘에 드러누웠습니다.거북이가 쉬지 않고 가다보니 토끼가 저 앞에서 자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거북이는 토끼를 깨웠습니다.깜짝 놀란 토끼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뛰어 갔습니다.거북이도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습니다.토끼가 먼저 결승점에 도착했습니다.거북이도 한참 후에 도착했습니다.토끼가 이겼습니다.하지만 아무도 거북이가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은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2:6) 이긴 사람은 있는데 진 사람은 없는 경기라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하지만 우리는 토끼에게 보다도 거북이에게 더 많은 박수를 치게 됩니다.그것은 거북이가 정당한 승부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자고 있는 토끼를 깨우지 않고 달렸다면 거북이가 먼저 결승점에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거북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그것은 진정한 승부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살아 가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맞잡고 가야합니다.졸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깨우고,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르쳐 주며 가야합니다.하늘나라의 월계관은 그런 사람만이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일흔번째 이야기 선을 행할 힘 한 청년이 급히 교회로 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길에서 한 노인이 자전거의 체인이 풀려 끼우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간단한 일이지만 처음 해보는 노인에게는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청년은 자기가 도와 줄까도 생각했지만 오늘은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는 날이고 자기가 오늘 맡은 순서가 생각이 나서 그냥 못본 척하며 지나갔습니다.교회에 도착하니 부흥회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초청된 목사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약속된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청년은 깜짝 놀랐습니다.그 목사님은 자전거를 고치고 있던 바로 그 노인이었습니다. 또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 주라고 하십시오.(디모데전서 6:18)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재주가 하나 씩은 있습니다.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만, 친구는 운동을 잘 할 수도 있고, 내가 힘이 세면, 다른 친구는 지혜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그것은 왜 일까요?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서로 돕고 살라고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지혜있는 자가 미련한 자를 서로 서로 도와 가면서 그렇게 말입니다.그 청년이 목사님을 도와 체인을 갈아 주었다면 부흥회가 좀 더 일찍 시작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내게 선을 행할 힘이 있을때 주저하지 말고 행하십시요.우리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일흔 한번째 이야기 진달래 아직은 바람이 차가운 이른 봄이지만 산 중턱에는 진달래가 꽃망을을 피우고 있었습니다.한 청년이 산에 갔다가 그 모습을 보고 빨리 꽃을 피우고 싶어서 캐어 집으로 가져왔습니다.진달래를 화분에 심어서 방안 햇볕이 잘드는 창가에 두었습니다.과연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진달래는 꽃을 피웠습니다.청년은 너무도 기뻤습니다.하지만 산에 진달래가 막 꽃을 피울 무렵 화분에 옮겨심은 진달래는 이미 시들고 있었습니다.추위를 이겨내지 못한 진달래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이러한 여러 가지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3:3) 대장간에서 연장을 만들때는 쇠를 불로 달구고 망치질을 하는 것을 여러번 반복합니다.그것은 쇠를 연단시켜 강하게 만들려는 이유입니다.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어릴적부터 많은 고난을 경험하고 힘들게 자라온 사람들은 더 큰 고난이 닥쳐도 절망하지 않고 이겨내지만, 아무런 시련도 없이 자란 사람들은 조그만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맙니다.젊어 고생은 사서도 다는 옛 속담은 그래서 널리 공감을 하는 것이지요.추위를 이겨내는 연습을 해 보지 못한 진달래가 쉽게 시들어 버리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고난 앞에서 강해지세요.크게 쓰임받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일흔 두번째 이야기 어머니 외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어머니는 아침 일찍 시골로 내려가셔서 집에는 지혜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아버지도 회사에 가셨기 때문입니다.학교에서 돌아온 지혜는 혼자 있으면서 어머니대신 집안 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먼저 방안을 쓸고 닦았는데, 방 청소를 하면서 방이 그렇게 크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쓰레기를 버리면서도 쓰레기통이 무거워서 한참 땀을 흘린 후에야 겨우 버릴 수 있었습니다.저녁 식사시간이 되어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지만 맛이 없어서 겨우 한 두 젓가락 먹다가 말았습니다.방안에 혼자 앉아서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어머니가 오신 것입니다.어머니를 본 순간 지혜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너의 어버이를 즐겁게 하여라. 특히 너를 낳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여라.(잠언 23:25) 어머니께서 늘 옆에 계셔서 모든 일을 대신해 줄 때는 그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하지만 아은이의 경우처럼 어머니의 일을 대신 해 보면 그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어머니의 사랑은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적인 사랑이며, 언제나 변치 않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도 닮은 것입니다.집에 있을 때는 어머니를 도와 드리세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해서 어머니의 일을 덜어 드리는 것도 어머니를 돕는 일입니다.우리는 아직 어머니의 수고와 희생의 크기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단지 그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기 시작할 뿐인 것입니다. 일흔 세번째 이야기 게으름뱅이의 안식일 한 마을에 게으름뱅이가 살고 있었습니다.하루는 사람들을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이상한 일은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자신처럼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거나, 성경을 읽는 것이 전부였는데도 아무도 따분해 하거나 짜증을 내는 사람이 없이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게으름뱅이는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목사님 저는 매일 매일이 지겹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즐거운 표정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목사님은 게으름뱅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당신에게 없는 것은 바로 노동입니다. 안식일이 진정한 안식일이 되려면 나머지 엿새 동안의 노동이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엿새를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기 때문에 안식일이 와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지요.”다음 날부터 게으름뱅이는 연장을 들고 밭에 나가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는 엿새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20:9-10) 하나님께서 엿새동안 일하시고 제 칠일에는 쉬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거룩하게 보냅니다.그런데 문제는 ‘엿새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고 하신 말씀은 무시하고 그 다음에 나오는 안식하라는 말만 지키려 하는데 있습니다.안식이 필요한 것은 엿새 동안 힘써 일했기 때문입니다.이 글의 게으름뱅이처럼 늘 게으른 생활을 하다가 안식일이라 해서 또다시 안식을 취한다고 하면 그 안식일이 아무런 의미없는 날이 되고 맙니다.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하지만 엿새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일흔 네번째 이야기 하나님께 맡깁시다. 오랜 옛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갔습니다.“하나님, 저희 인간은 자연 앞에서 너무도 연약합니다. 가뭄이 들어도 걱정이요, 비가 너무 많이 와도 걱정이요, 날씨가 너무 추워도 또 너무 더워도 걱정입니다. 저희들에게 날씨를 다스릴 능력을 주십시오.”하나님은 쾌히 승낙하시고 사람들에게 날씨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그런데 그 때 부터 사람들 사이에 큰 혼란이 벌어졌습니다.농부들은 농사를 위해 비가 와야 된다고 주장했고,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위해서 비가 오면 안된다고 했습니다.또 아이들은 눈이 내리게 해달라고 떼를 썼습니다.며칠이 지난 후 생활은 오히려 엉망이 되었습니다.사람들은 회의를 갖고 날씨를 다시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정했습니다.그 후론 날씨를 원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곧,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게 하시고, 먹을거리를 주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사도행전14:17) 가끔은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일이 생기게 하시지는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시려고 하십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당장 이루어 지지 않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을 저버리신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지금 우리 인간에게 날씨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그것이 우리에게 가져올 엄청난 혼란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나님은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늘 기억합시다. 일흔 다섯번째 이야기 부적과 마스코트 어느 시골 교회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하늘을 날게 된다는 두려움때문에 점쟁이를 찾아 부적을 사서 품에 품었습니다.비행기 안에 앉은 할아버지는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자꾸 꺼내서 들여다 보았습니다.에 앉은 선교사가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할아버지,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보면 비웃어요.”할아버지는 멋쩍은듯 부적을 휴지통에 버렸습니다.잠시 후 비행기가 기류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그러자 비행기를 타고 있던 많은 외국인들이 주머니에서 마스코트를 꺼내 들었습니다.잠시후 비행기가 아무 일 없이 공항에 도착하자 할아버지가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마스코트를 붙잡고 안전을 바라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닌가요”선교사는 무안해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희는 우상을 만들거나 조각한 신상을 세우거나 돌기둥을 세워서는 안된다. 또 너희가 사는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것들에게 절해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다.(레위기 26:1) 우상이란 신의 형상을 다른 물질로 대신 만들어 섬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 속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우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우리가 흔히 부적을 우상의 대표적인 것으로 보면서도 마스코트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입니다.하지만 마스코트 또한 우상의 일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위험한 일이 닥쳤을때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스코트를 보며 안전을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모습인 것입니다.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우리가 부적을 가지고 다니거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실 것입니다.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십계명중 첫번째 계명입니다. 일흔 여섯번째 이야기 새장속의 새 으뜸이는 부모님과 동물원에 놀러 갔습니다.우리마다 갖가지 신기한 동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앵무새 우리에 갔을 때는 앵무새가 서툴게 사람들의 말소리를 따라해서 구경온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습니다.“야, 저 앵무새는 좋겠다.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먹이도 저렇게 많이 주니까.”으뜸이가 엄마를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그러자 어머니는 “으뜸아, 그렇지만 자유란 먹을 것이나 보금자리보다도 더 우선적인 것이란다.”라고 말했습니다.으뜸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어머니는 하늘을 올려다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저 하늘을 나는 참새를 보렴. 먹이도 스스로 구해야 하고, 집도 여기 새장보다 못하지만 저렇게 자유롭게 날 수 있지 않니? 아마 저 앵무새도 자유롭게 날고 싶을 거야. 사람들이 그런 앵무새를 가둬놓은 거지.”으뜸이는 그날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5:1) 자유란 무엇일까요?그것은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묶이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동물원의 앵무새가 새장에 갇힘으로써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 갈 수 없기 때문에 그 새는 자유를 잃은 것이 됩니다.반면에 참새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날아 갈 수가 있습니다.하지만 참새는 자기가 살기 위해 먹이를 스스로 구해야 하고, 추위나 비바람을 피할 집도 구해야 합니다.이처럼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롭게 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은 무엇일까요?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유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히 따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된 우리들이 져야할 책임입니다. 일흔 일곱번째 이야기 양심에 묻은 오물 선주가 친구의 가방을 뒤져 친구의 시계를 훔쳤는데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들킬 것 같아 방과후에 가져갈 생각으로 학교 뒷 뜰에다가 묻었습니다.교실로 돌아오는데 손에 흙이 묻어 수돗가에가서 손을 씻었습니다.교실에 돌아온 선주는 깜짝 놀랐습니다.선생님이 먼저 들어와서 선주의 행동을 다 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선주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그런 선주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난 널 용서할 수 있단다.그렇지만 선주야, 네 손에 묻은 오물은 물로 씻어 내렸지만, 네 양심에 묻은 오물은 어떻게 씻어내지?”선주는 시계를 다시 친구의 가방에 넣었습니다.양심의 가책을 느낀 선주는 그 후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하되, 세상의 지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다는 사실입니다.(고린도후서 1:12)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곧 자신의 양심을 따르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이처럼 양심이란 선과 악을 분별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합니다.하지만 악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양심이 굳어져서 결국에는 악한 일을 해도 그것이 악한 일인지도 모르게 됩니다.성경은 오직 선한 양심만이 하나님을 향해 찾아간다고 말합니다.선주가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도 계속 남의 물건을 훔쳤다면 악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하지만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을 고쳤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우리도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일흔 여덟번째 이야기 약속 학생들이 다 떠나간 시골 국민학교 운동장 한 구석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신사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시후 청년 한 명이 급히 운동장으로 들어와 그 신사에게로 다가갔습니다.신사는 어릴적 친구와 나이 오십이 되면 이 운동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이어서 친구를 만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저, 혹시 어릴적 친구를 만나러 오셨나요?” 청년이 물었습니다.“예, 그런데 당신은....”“저의 아버님이 이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어릴적 친구와 약속을 했다면서 오늘이 되면 대신 만나 달라고 저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신사는 친구의 죽음이 슬펐습니다.하지만 약속을 지켜준 친구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일상 생활에서 예를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사람 사이에 한 번 언약을 맺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15) 어릴적 맺은 약속이 나이 오십이 되는 날까지 기억되고 또 지켜지는 것이 부럽게 느껴집니다.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쉽게 약속을 합니다.약속은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을 불신하게 만듭니다.약속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하다가는 우정에 금이 갈 수가 있습니다.또한 한 번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십시오.그렇게 할 때 만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부터 신뢰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일흔 아홉번째 이야기 장미 화단 구석에 장미가 한 송이 피었습니다.런데 얼마나 불평이 많았는지 눈만 뜨면 불평을 털어 놓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장미는 밤이면 춥고 어두워서 못있겠으니 거실로 옮겨 달라고 주인을 졸랐습니다.주인은 장미를 화분에 옮겨서 거실에 두었습니다.얼마 후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여기는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니 창가에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주인은 장미를 창가에 옮겨 주었습니다.하지만 이번에도 장미는 창가에는 고양이가 지나다녀서 싫다며 방안 꽃병에 꽂아 달라고 했습니다.주인은 다시 장미를 화분에서 꽃병에 옮겨 방안에 두었습니다.며칠 뒤 장미는 또다시 주인에게 바깥 화단으로 옮겨 달라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이미 뿌리가 잘린 장미는 시들어버렸고 주인은 장미를 뽑아 쓰레기통에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고린도전서 10:10) 장미처럼 아름다운 꽃이 왜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했을까요?그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만족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누구의 삶이 더 행복할까요?행복은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졌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는 가에 달린 것입니다.불평하지 마세요.어디에건 행복은 숨겨져 있으니까요. 여든번째 이야기 하나님의 증거 두 사람이 등산을 갔다가 산속에서 큰 비를 만나 길을 잃고 갇혀버렸습니다.한 사람은 겁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한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습니다.“당신은 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소?”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바람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을 감고 기도하면 느낄 수가 있죠.”아직도 못 미더워하는 사람에게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당신은 불안에 떨고 있지만 난 지금도 마음이 평안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있다는 증거지요.”이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한복음 14:27) 하나님을 믿는 자는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음에 근심 걱정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문제를 온전히 맡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다른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늘 찡그리고 다닌다거나, 화를 자주 낸다면 그 누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마음의 근심 걱정 다 하나님께 맡기고 웃어보세요.생활이 한층 즐거워 질겁니다. 여든 한번째 이야기 차라리 네가 바보 천치였다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지배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그 당시 유명한 소설가 한 명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워낙 글재주가 뛰어나 사람들은 그 사람이 지은 소설을 읽기를 좋아했습니다.그 당시 대부분의 소설가들이 일본의 침략을 반대하는 글을 썼기 때문에 일본 경찰의 단속을 받았고 생활도 어려웠으나, 그 소설가는 일본의 침략을 미화하고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글을 썼습니다.세월이 흘러 해방이 되자 그 소설가는 자신의 행동을 친구들에게 변명하기에 바빴습니다. “내가 그런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찌 아직까지 살 수 있었겠나? 다 먹고 살려고 한 일이니까 용서하고 다시 친구가 되어주게.”그 말을 들은 그이 옛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만일 자네가 바보 천치였었다면 우린 아직도 친구였을텐데 이젠 너무 늦었네.”그 소설가는 평생을 외톨이로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라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묻기를 “내가 예수를 넘겨주면, 내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였다. 그들은 유다에게 은돈 서른 닢을 셈하여 주었다.(마태복음 25:14-15) 어느 시대에나 이런 소인배들이 있는가 봅니다.일제 식민지 시절에 독립군으로 만주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해방후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그 후손들마저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통이 터집니다. 그런데 일본에 빌붙어 우리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그때 그때 변신을 하여 아직도 떵떵거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지만 가룟 유다는 자신의 죄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맛보아야 했습니다.일본에 자신의 재능을 바쳤던 그 매국노들이 차라리 바보 천치였더라면 역사에 그토록 치욕적인 이름은 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지만 강도가 사용하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여든 두번째 이야기 도시락 가방 학교 앞에서 도시락 가방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그런데 가방 중에는 겉은 멀쩡해도 가죽이 낡았거나 끈이 잘못 만들어져서 쉽게 망가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아저씨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학생들에게 팔았습니다.하루는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생일이 되어 아저씨는 일찍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아들의 친구들이 와서 생일 잔치를 벌렸는데 아저씨는 깜짝 놀랐습니다.아들의 생일선물로 한 친구가 준 것은 바로 그 아저씨가 팔았던 도시락 가방이었던 것입니다.다음 날 아저씨는 가게에 있는 가방중에서 불량품을 모두 새 것으로 바꾸고 다시는 불량품을 속여 팔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저마다 제 이웃에게 무엇을 팔거나, 또는 이웃에게서 무엇을 살 때에는,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서는 안된다. (레위기 25:14) 자기 아들에게 줄 가방이었다면 그 아저씨가 불량품 가방을 팔았을까요?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해서 남을 속이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거짓말을 하면 결국 그 피해는 자신에게 돌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시편에서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서지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하나님은 거짓말을 싫어하십니다.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린 죽음의 벌도 그들의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모든 일에 정직하세요.거짓말로 자신의 이익을 구하기 보다는 정직함으로 조금 손해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여든 세번째 이야기 교육이란 어느날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잡고 스승을 찾아왔습니다.“선생님, 이 아이가 단 것을 너무 좋아해서 큰 일이에요. 선생님이 좀 고쳐주세요.”스승은 아주머니에게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말했습니다.어머니는 영문도 모른 채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왔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서 아들은 단 것을 좋아하는 버릇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선생님, 이렇게 아들의 버릇을 고칠 수 있으시면서 그때는 왜 일주일 후에 오라고 하셨습니까?” 어머니가 물었습니다.“사실은 저도 단 것을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그런 제가 아이에게 단 것을 먹지 마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스승은 일주일 동안 자신부터 단 것을 먹지 않는 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는 그 진리 안에 머무십시오. 그대는 그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4)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합니다.하지만 진리를 배우고도 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 되고 맙니다.또한 자신이 행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일은 더더욱 소용없는 것입니다.그런데 우리가 아무 것이나 닥치는 대로 배우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악한 일에 능숙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배우지 않는 것보다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우리가 참으로 배워야 할 것은 성경입니다.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또 실천하세요.우리의 실천으로 인해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여든 네번째 이야기 경험 두 청년이 누가 먼저 산 정상에 오르는가 하는 내기를 했습니다.한 청년은 등산로를 따라 열심히 산을 올라갔지만 다른 청년이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와 있었습니다.그 청년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던 것이었습니다.이번에는 누가 빨리 산에서 내려오는가 하는 내기를 했습니다.먼저 올라왔던 청년이 또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려고 했지만 케이블카가 고장이 나서 운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걸어서 올라갔던 청년은 한번 지나갔던 길이었기 때문에 쉽게 내려 올 수 있었지만 다른 청년은 처음 가보는 길이라 내려오는 동안 미끄러지기도 하고 길을
100가지 예화모음(3)/ 2010-05-20
100가지 예화모음(3) 아흔 여덟번째 이야기 하나님께서 주신 것 전쟁터에서 팔 하나를 잃어버리고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간호하기 위해 왔습니다.어머니는 누워있는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려고 했습니다.아들은 어머니가 들고 있는 성경을 빼앗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다 필요없어요. 하나님이 있다면 내 팔이 이렇게 잘려지도록 내버려 둘 리가 있겠어요?”어머니는 아들의 오른손을 잡으며 “네게는 아직도 오른손이 남아 있지 않니? 하나님은 네 왼팔을 가져가신 것이 아니라 오른 팔을 남겨주신 것이란다. 이 엄마는 그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단다.”그 후로 아들은 한 쪽 팔만 가지고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아, 이 미련한 민족아, 너희는 어찌하여 주께 이처럼 갚느냐? 그는 너희를 지으신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희를 만드시고 일으키신 분이 아니시냐? (신명기 32:6)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백성입니다.아무것도 아닌 흙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셔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불평을 합니다.‘왜 나는 키가 작을까?’‘왜 나는 뚱뚱할까?’그러다가 다쳐서 팔이라도 하나 잃는 날이면 하나님을 저주하기도 합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서 팔을 하나 가져 가신 것이 아니라 그 외의 나머지 몸뚱이를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토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왜 나는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항의할 수 없다는 비유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의 지금 모습에 불평해서는 안됩니다.생명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아흔 아홉번째 이야기 무릎의 상처 아버지는 유명한 도공이었습니다.아들은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도공이 되기 위해 아버지께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배웠습니다.하지만 아들이 만든 도자기는 모양도 볼품 없고 쉽게 깨져버렸습니다.얼마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더이상 도자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난 네가 처음 걸음마를 시작할 때 너무도 기뻤단다. 하지만 그 후로도 넌 수도 없이 넘어져서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지. 하지만 그 덕분에 넌 잘 걸을 수 있게 되었어. 네가 정말 훌륭한 도공이 되고 싶다면 수 천 번도 더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자기를 만들어야만 돼.”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더했습니다.“아버지는 너의 걸음마 연습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거야.”아들은 다시 흙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보아라, 내가 너를 단련시켰으나, 은처럼 정련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의 풀무질로 달구어 너를 시험하였다. (이사야 48:10)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도 없이 넘어집니다.그러다가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될 때쯤 우리는 자전거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와 하는 것입니다.어떤 일이건 우리가 처음부터 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수 많은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맛보고 나서야 그 부분의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우리를 단련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사람에게는 많은 고난이 따르지만 그 고난을 이기고 서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되고 싶지 않으세요?그러면 고난이 닥쳐오면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 이겨내세요.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입니다. 백번째 이야기 거짓말 민혁이는 방과 후에 형을 만나 영화구경을 가기로 약속 되어 있었습니다.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대청소를 하기로 하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민혁이는 선생님께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선생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은 민혁이는 약속장소로 갔습니다.“형과 약속을 지키느라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고 왔어.” 민혁이가 자랑스레 이야기했습니다.그러자 형은 “약속을 못 지키는 일이 있더라도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나을 뻔 했구나. 거짓말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네가 사실을 말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널 믿지 않게 될 지도 몰라.”라고 말했습니다.민혁이는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하기로 형과 약속했습니다. 주님은 거짓말을 하는 입술은 미워하시지만,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기뻐하신다. (잠언12:22) 거짓말을 한번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그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그러다 보면 늘 불안하고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결국 죽게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에 들어올 수가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거짓말을 멀리 하세요.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래도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면 신뢰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 까닭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그 믿음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책임입니다.
100가지/ 아내에게 점수 따는 방법 100가지/ 2010-11-24
100가지/ 아내에게 점수 따는 방법 100가지 1.집에 돌아오면 각시부터 찾아 가볍게 포옹하라. 2.오늘 그녀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당신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특별한 질문을 하라.(예를 들면, 병원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됐소?) 3.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적절한 질문을 하라. 4.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대신 그 녀의 편에서 이해해 주어라 5.20분 정도는 아내에게 적극적이고 순도 높은 관심을 기울여라.(그 동안에는 신문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지 마라.) 6.꼭 무슨 날이 아니더라도 때로은 불쑥 꽃다발을 건네 아내를 놀래 주어라. 7.금요일 밤이 되어서야 그녀에게 주말에 뭘 하고 싶냐고 묻지말고 며칠전부터 미리 데이트 계획을 세워 두라. 8.보통 때 저녁준비를 아내가 하거나, 아니면 오늘 그녀가 할 차례인데 바쁘고 피곤해 보이거든 당신이 하겠노라고 자청해 보라. 9.아내의 외모에 대해 찬사를 보내라. 10.그녀가 언짢아할 때 그 기분을 이해해 주어라. 11.아내가 피곤해 모이면 뭐든 거들어 주려고 애쓰라. 12.여행할 때는 그녀가 급히 서두르지 않아도 되도록 시간계획을 여유 있게 짜라. 13.귀가가 늦어질 것 같으면 아내에게 미리 전화로 알려라. 14.아내가 도움을 요청해 올 때는 그것이 잘못된 행동인 것처럼 생각되게 하지 말고 단지 당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만 분명하게 말하라. 15.그녀가 기분이 언짢아 보이면 “당신이 그렇게 우울해하니 내 마음이 안됐군.” 이렇게 말하고 공감을 표시하라. 너무 많은 말을 하지는 말되 당신이 그 녀의 기분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하여금 느끼게 하라. 공연히 해결책을 제시하려 하거나,그 녀가 언짢아하는 것이 당신 탓은 아니라고 애써 변명하려 하지마라. 16.혼자있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좀 필요하며, 대충 어느 정도 걸릴 것같다고 미리 아내에게 귀뜸해 주어라. 17.생갈을 정리하고 나오면,아내가 최악의 상상으로 마음 졸이지 않도록 당신이 고민하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친절하게 이야기해 줘라. 18.겨울철에는 화로나 벽난로에 불을 피우는 일을 하라. 19.아내가 당신한테 이야기 할 때는 잡지를 덮고 텔레비젼을 끈 다음 온전히 관심을 귀울여라. 20.보통 때 설거지가 아내의 몫이거나 특히 그녀가 피곤해 보니는 날엔 당신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하라. 21.아내가 우울해하거나 지쳐 보이면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이 무엇 무엇이냐고 물어, 그 중에서 몇가지를 기꺼이 해주어라. 22.밖에 나갈 때는 들어오는 길에 가게에서 뭐 사올 것이 없느냐고 묻고,반드시 그것을 사 가지고 와라. 23.낮잠을 자거나 외출할 계획이라면 아내에게 미리 알려 주어라. 25.직장에서 집으로 가끔 전화를 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고 즐거운 일이 있다면 함께 나눠라.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라. 26.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당신을 사랑해.”라고 말하라. 27.이불을 펴고 개는 일은 당신이 하라. 28.아내가 빨래를 한다면 양말을 벗을 때 뒤집어 벗지마라. 29.휴지통이 가득 찼으면 알아서 비워라. 30.집을 떠나 멀리 가게 되었을 때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리고, 그 녀가 당신에게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일러 주어라. 31.아내의 차를 대신 세차해 주어라. 32.아내와 외출할 때는 미리 세차하고 차 안을 말끔히 정돈하라. 33.부부관계전에 샤워하고, 그 녀가 좋아한다면 향수를 사용하라. 34.아내가 누군가와 다투고 감정이 상해 있으면 아내 편을 들어 주어라. 35.아내의 등이나 목, 혹은 발을 안마해 주어라. 36.꼭 애무가 아니더라도 가끔은 아내를 꼭 껴안아 주고 애정표현을 하라. 37.그 녀가 얘기 할 때는 참을성을 갖고 끝까지 들어라. 도중에 자꾸만 시계를 들여 보지마라. 38.아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리모컨으로 자꾸 채널을 바꾸지 마라. 39.남들 앞에서도 애정을 표현하라. 40.아내와 손을 잡고 걸을 때는 마지못해 잡고 있는것처럼 흐느적거리지 말고 손을 꼭 쥐어라. 41.아내가 좋아하는 술이나 칵테일을 기억해 두어라. 42.외식하러 나갈 때는 몇 군데 괜찮은 식당을 제안하라. (어디로 갈 것인지 생각해 내야 하는 짐을 그 녀에게 지우지 마라) 43.연극이나 고향악단 연주회, 오페라, 발레, 그리고 그 외에 그 녀가 좋아하는 공연을 기간중 내내 관람할 수 있는 정기 입장권을 구해 놓아라. 44.가끔은 두 사람이 잘 차려입고 외출하는 기회를 만들어라. 45.외출 준비가 오래 걸리거나 다른 옷으로 바꿔 입어야겠다고 해도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라. 46.남들 앞에서는 더 다정하고 상냥하게 하라. 47.아이들 보다 아내를 먼저 생각하고 당신이 최우선으로 관심을 쏟는 대상은 아내임을 아이들에게도 알게 하라. 48.앙증맞은 상자에 든 초콜릿이나 향수와 같은 작은 선물을 아내에게 건네라. 49.아내에게 정장 한 벌을 선물하라 50.특별한 날에는 아내의 사진을 찍어 주어라. 51.짧고 로맨틱한 여행을 즐겨라. 52.당신이 직갑 속에 아내의 사진을 지니고 다니며 이따금 한번씩 최근 사진으로 바꾸어 넣는다는 것을 그녀가 알게 하라. 53.아내와 함께 호텔에 투숙하게 될 때는 거품이 이는 사과주스,꽃장식 등 뭔가 특별한 것을 준비해 두도록 호텔측에 미리 부탁하라. 54.결혼기념일이나 생일 같은 특별한 날를 잊지 않도록 메모해 두어라. 55.긴 여행길에서는 당신이 운전하겠다고 하라. 56.운전석 옆에 앉은 아내를 배려하면서 천천히 안전하게 차를 몰아라. 57.아내의 기분을 살펴 관심을 주어라. 58.아내와 함께 외출할 때는 미리 방향을 생각애 두어 그 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 59.댄스 파티에 같이 가거나 함께 댄스 강습을 받으러 다녀라. 60.사랑의 편지나 시로 그 녀를 깜짝 놀라게 해주어라. 61.처음 만났을 때의 기분으로 대하라. 62.망가진 것이 있으면 고쳐 주겠다고 말하라. \\\\\\\\\\\\\\\"여긴 뭐 손봐야 할 것 없나? 시간 있을때 고쳐 줄께.” 단, 자기 능력 밖의 일을 떠맡지는 마라. 63.주방용 칼이 무뎌졌으면 갈아 주어라. 64.초강력 접착제를 사다가 깨지거나 떨어진 것을 새 것 처럼 고쳐 주어라. 65.전구가 다 되었으면 제때에 갈아 끼워라. 66.쓰레기 분리수거를 도와 주어라. 67.그녀가 흥미로워할 신문 기사를 오려 두거나 큰 소리로 읽어 주어라. 68.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는 단정한 글씨로 메모를 남겨 좋아라. 69.욕실 바닥을 더럽혀 놓지 말고 샤워 후에는 반드시 물기가 없도록 해놓아라. 70.아내를 위해 문을 열어 주어라. 71.쇼핑한 식료품은 당신이 들고와라. 72.무거운 상자 등은 당신이 들어 주어라. 73.‘고쳐야 할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주방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손봐 주어라. 74.아내가 설거지를 하면 냄비를 솔로 박박 문지르는 일 같은 힘든일을 맡아서 하라. 75.여행할때 는 여행가방을 당신이 책임지고 가방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는일도 당신이 알아서 하라. 76.아내의 요리 솜씨를 칭찬해 주어라. 77.그녀의 이야기를 들을때에는 눈을 쳐다봐라. 78.아내에게 이야기할때는 가끔 그 녀의 몸에 다정하게 손을 올려 놓아라. 79.그 녀가 하루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어떤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지 관심을 가져라. 80.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눈을 쳐다보아라. 81.그녀의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아라. 82.그녀가 얼마전 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면 요즘은 상태가 어떻고 기분이 어떤지 물어 보아라. 83.아내가 피곤해 보이면 차를 끊여다 주겠다고 말하라. 84.잠자리에는 가능하면 함께 들어라. 85.집을 나설때는 키스를 해주면서 다녀 오겠다고 말하라. 86.아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나 농담을 하면 유쾌하게 웃어 주어라. 87.아내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해주었을 때는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라. 88.그녀가 머리를 새로 하고 오면 아는 체를 해주고 보기 좋다고 안심시켜 주어라. 89.가끔은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져라. 90.둘만의 은밀한 시간이나, 그 녀가 속상한 마음을 하소연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리면 받지 마라. 91.비록 짧은 거리라도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려 보아라. 92.피크닉을 계획하고 함께 준비하라. 93.세탁물 처리가 아내의 책임이거든 상관 없이 옷가지들을 세탁소까지 갖다 주거나 세탁기를 돌려 주어라. 94.아이들을 동반하지 않고 둘이서만 산책을 나서라. 95.당신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고 싶어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도 갖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녀가 알게 하라. 아내에게 자상하게 마음을 써주되 자신이 희생자가 되지는 마라. 96.집을 떠나 있을 때면 아내가 보고 싶어진다고 말하라. 97.집에 돌아 올때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온다. 98.장보기가 아내의 책임이지만 가끔은 장보기를 자청한다. 99.로맨틱한 날에는 가볍게 먹어라. 너무 배가 부르면 곧 식곤증이 찾아오므로... 100.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라. 101.소변을 본 후엔 변기의 앉은 부분을 도로 내려 놓아라.
100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청년 이위종 이야기
100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청년 이위종 이야기 지난 7월 14일 서울 수유리의 한 묘소에서 지극히 간소하고도 조촐한, 그러나 의미심장한 작은 추모식이 거행되었다. 이 날은 1907년에 이역만리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병원에서 과로로 인한 악성종양으로 숨을 거둔 이준 열사(당시 48세)의 96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원래는 네덜란드의 한 공동묘지에 묻혀 있었는데 1963년 서울 수유리로 이장해 온 바 있다. 물론 과로의 원인 제공자는 일본이었다. 모처럼 정신을 차린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큰맘먹고 이준 일행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보내서 을사보호조약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폭로하라고 시켰는데... (사실은 이것도 헐버트 목사가 권유한 일이지만...) 청일전쟁, 노일전쟁을 이미 승리로 이끌어 세계적인 강대국의 일원으로 자리를 굳힌 일본이 이준 일행을 만국평화회의 본회의장에 참석도 못하게 하자....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유인물도 만들어 돌리고, 각국 대표들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하소연을 하며 돌아 다니다가 과로에다가 울화통까지 겹쳐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불과 며칠만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예전에 올린 \"이준열사 할복자살 -- 정말 사실인가\"란 제목의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번에는 그 때에 좌충우돌 맹활약을 했던 약관 20세의 용감한 한국청년 이위종 공의 특별회견 내용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이위종 공은 당시 주 러시아 공사였던 이범진의 아들로서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의 20세 청년이었다. -- 을사보호조약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어 이범진 공사는 공식적으로는 힘이 없었지만 당시 러시아 니콜라이 황제의 특별 배려로 러시아의 서울 페테르스부르그(현지 발음으로는 뻬쩨르부르그)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사실은 미 만국평화회의도 러시아 황제가 주창하여 탄생된 미팅이었다. 노일전쟁 패배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은근히 일본을 견제하던 중이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 20세의 이위종은 고종황제와 같은 이씨라서 그랬는지 일부 외국 신문에는 \"이위종 왕자\"로 소개되기도 했다. 어쨌든 이위종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은 만국평화회의 기자협회의 대표주필과 단독 회견도 가능하게 했고, 날카로운 언변은 특종기사감이 되어 만국평화회의보 신문의 1면 톱 기사로 올라가게 만들었다. 당시 전세계를 놀라게 했고, 특히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결국에는 그 며칠 뒤에 고종황제를 쫓겨 나게 만든 그 문제의 신문 기사를 공개하고자 한다. ----------------------------------------- 만국평화회의보 1907년 7월 5일자 1면 톱 기사 ----------------------------------------- 제목 - 이위종과 만국평화회의보 편집장 W.T.Stead 의 특별 인터뷰 - 내용 고대 이집트인들은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생물이란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라는 \'허무\'를 일깨워 주기 위해 잔칫상 위에다 사람의 해골 하나를 올려놓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이번 만국평화회의 테이블에 불멸의 신이 내린 은총인지 이집트의 그 비상한 관습처럼 비장한 성명서가 한 장 올랐다. (필자 설명=대한제국 대표단이 각국 대표와 기자들에게 배포한 프랑스어 성명서. 이 성명서에서 일본의 부당함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옛날의 이집트 사람들이 즐겨 쓴 그 해골이 오늘에 재현되는 듯 대한제국에서 왔다는 이위종 씨가 만국평화회의장 리테르자르 궁전 앞에 버티고 서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위종 씨는 여러 나라 언어를 마음대로 구사하며 대한제국의 왕족으로서 생기와 의욕이 넘치는 청년 신사이다. 그가 정말 시체의 머리에 붙은 해골처럼 흉측하게 생겼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잔칫상에 내놓은 해골이 손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주기만을 위해서 있었던 것이 아니듯이, 대한제국에서 온 이 청년 신사의 출현은 이집트의 고궁 멤피스가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창연한 모습으로 오늘에 재현되었다. 이위종 씨는 오로지 황제를 향한 충성심 하나민 가지고 \'불변의 진실\'이란 허울을 쓴 허위(虛僞)를 세계에 폭로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곳으로 이위종 씨가 온 이유는 한일간에 맺어진 여러 가지 조약들에 구속되어 불리하게 기울어진 대한제국의 운명을 바로잡고 당면한 곤경을 풀어줄 것만 같은 의문부호와도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부정의 뿌리\'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도 같은 이위종 씨는 이 평화회의의 벽두에서 허위의 정체를 기어코 밝혀 내고야 말겠다는 것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다음은 본보 편집장 윌리엄 스테드 씨와 이위종 씨의 특별 인터뷰 내용이다. □스테드 : 여기는 무엇 때문에 왔는가? 왜 험상궂은 표정으로 회의장 분위기를 흔들어 놓고 있는가? ■이위종 : 나는 헤이그에 세워진 제단에 강림한다는 법의 신, 정의의 신, 그리고 평화의 신을 만나 보려고 먼 나라에서 급히 달려 왔다. □스테드 : 1899년 헤이그의 메종뒤보아에서 제1회 만국평화회의의 제단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 ■이위종 : 그렇지. 바로 그 1899년! 그 이후 법의 신도 숨어 자취를 감춰 버렸지. 내가 도로 물어 보겠는데, 도대체 이 회의장에 모인 열강대표들은 무엇을 하러 온 사람들인가? □스테드 : 그들은 세계 각국에서 평화와 정의를 확인하는 여러 가지 조약들을 제정하고 있다. 이위종 씨는 얼굴 가득히 빈정대는, 그러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위종 : 조약? 도대체 그 조약이란 게 무언가? 다시 묻겠는데, 어째서 평화회의에서 대한제국이 제외되어 있는 것인가? 그 조약이란 게 결국 한 나라의 주권을 탈취 당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약속이란 말인가? □스테드 : 그러나 한일간에는 1905년 11월 17일 체결된 을사보호조약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이위종 : 여기 모인 대표들도 그런 따위 조약을 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인가? □스테드 : 그들은 단지 조약을 비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위종 : 한일간의 그 조약은 한국의 외무대신이 황제의 훈령도 받지 않고 단독으로 꾸민 조약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까 전혀 비준도 받지 않은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 결국 그 조약이란 아무 것도 아니고 발생할 효력도 없는 것이었다. 이 불법문서 때문에 대한제국이 평화회의에서도 제외되어야 하니 딱하고 억울한 일이다. □스테드 :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위종 : 헤이그에 강림한 법과 정의의 신의 부름을 받고 이런 조약이 국제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따지고자 왔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당한 이 국치를 따지고 바로잡을 곳이 여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딘가 말이다. □스테드 : 그러나 설사 이 조약이 파기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귀국에 무슨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결국 한국이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함에 있어서는 일본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이위종 : 당신네들은 여전히 그 조약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 조약 하나로 한국의 주권과 국력은 모두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갔고 황제폐하는 지금 연금 상태에 들어가 계시다. 이제 한국의 국토는 일본이 잠식하였고 한국인은 노예상태로 들어갔다. 일본의 이런 폭력을 막아내고 한국을 독립국으로 확인시켜줄 수 있는 논의가 헤이그에서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테드 : 그대는 일본은 부국이고 강대국이란 사실을 잊었는가? ■이위종 : 그렇다면 당신네가 내세우는 법의 신이란 허깨비고, 정의를 존중한다는 말도 체면치레에 불과한 것이며 당신네 기독교 정신이란 것도 위선이란 말인가? 어째서 한국만이 약소국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희생되어야 하는가? 일본은 부강한 나라란 이유로 국제간의 온당한 의무와 신의를 파기해도 좋다는 법은 어디에 있는가? 어째서 총포가 유일한 당신네의 율법이고, 폭력이란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는 못하는가? 제발 내 앞에서 정의가 어떻다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는 늘어놓지 말라. 당신네는 소위 말하는 평화주의자란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그런 당신네 호칭을 전적으로 부정하겠다. 한국은 무장되어 있지 않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려는 야욕은 없다. 또 일반적인 평화와 고립을 원하지도 아니한다. 다만 당신네 평화주의자들이 복음을 우리에게 전도해 주기만 바랄 뿐이다. 자, 이제 우리가 서야 할 땅이 어딘가? 여기에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다. 한국이란 땅은 이웃 열강들의 내침을 성공적으로 방위하기가 어렵지는 않은 지형을 가지고 있다. 산곡마다 천혜의 이점을 가졌고, 극동의 스위스라고 할 만큼 훌륭한 자연 속에 2000만 국민이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전쟁을 원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를 애호하는 국민이다. 군대라고는 겨우 7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 주 월요일 7월 8일 오후 8시 만국평화회의 참가기자단 국제기자협회에서 이위종 씨는 한국의 비운에 대한 호소연설을 프랑스어로 발표할 계획이다. 윌리엄 T 스테드 씨도 이 연설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필자 해설= 이 연설이 끝난 뒤 만국기자단은 대한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다. 당황해진 일본은 즉각 고종황제를 폐위시키고 고종황제보다 훨씬 더 나약한 순종황제를 즉위시키게 된다.) --------------------------------------------------------- 도저히 20세의 앳된 청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대단한 담력과 용기를 지녔다. 순전히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국제회의의 실체를 신랄하게 비판한 20세기 최대의 특종 기사였다. 전 세계가 당장이라도 우리를 도와 줄 것으로 착각한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문과도 비교가 안 되는 특집기사였다. 그러나 이 때에 전세계 신문에서만 떠들어 댔을 뿐, 실제적으로 이 기사를 가지고 일본에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용감한 나라는 없었다. 그래서 이 때의 만국평화회의도 일본의 뜻대로 평화적으로 잘 끝날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어떤 나라도 일본의 행위에 대해서 시비를 걸 수 없었던 이러한 상황을 두고 최근에 일본의 모 정치인이 \"일본의 조선지배는 당시에 국제적인 승인을 받은 사항이다\"라는 발언을 하여 한국 사람들의 심경을 건드리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쎈 나라인 것을... 요즘 우리 민족의 정통성이 급속히 사라지는 속도를 보면 일제 치하의 식민지 시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리의 민족성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참으로 걱정이다. 자진해서 앞장서는 사람도 일제치하보다 더 많은 것 같아서 정말 큰 걱정이다. 이러한 때에 이위종 공의 용기와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위종처럼 강대국들과 맞서서 싸우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 그랬다가는 정말로 흐흐흐.... 반미, 반전 운동은 대단히 행복하고 또 한가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옛날 병자호란 때 최명길의 말을 무시한 채, 쥐뿔도 없으면서 끝까지 입만 살아서 버티다가 머리, 팔, 다리, 가슴까지 다 박살 난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대세의 흐름을 재빨리 파악하고 아까운 목숨 한 명이라도 더 살려 놓고 보자는 뜻에서 \"그래, 졌다. 니 맘대로 하세요\" 라고 주장했던 병자호란 때의 최명길과 을사보호조약 때의 이완용은 거의 같은 맥락에서 움직였다. 이완용이 아니었더라도 그 때 이미 대세는 기울어 있었고, 최악의 경우 그 때 쓸만한 사람들 다 죽어 버리고 나중에 독립운동할 사람도 씨가 말라 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이위종의 용기를 가슴 속에 깊숙이 간직한 채, 조용히 아주 조용히 일본과 미국을 배워야 할 때다. 그것도 목숨을 걹고 아주 열심히 배워야 한다. 대책없이 반미 반일 했다가는 현재 우리의 국력으로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꼴이 될 수도 있다. 약 150년 전 일본이 미국 군함에 그토록 망신을 당한 뒤에... \"그래, 지금은 졌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긴다. 앞으로 100년 동안 미국을 열심히 배워서 힘을 기른 뒤에 너희들 미국을 기필코 이기고 말 것이다\" 이러한 정신이 공감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일본은 그들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미국의 장점만을 철저히 배워 오늘의 초강대국 일본이 있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도 배워야 한다.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 미국도 정말 열심히 배워야 한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리고 전세계의 어떤 강대국도 두려워 하지 않는 이위종의 패기도 가슴 속 깊이 묻어 두고 내일을 기약하자.. ------------------------------- 빨리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도 다방면에서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데.. 그리고 난 뒤에는 그 힘을 바탕으로 반전이다, 반미다, 반일이다 맘 놓고 할 수 있을텐데.. 하버드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땄던 이승만 청년의 말이 갑자기 생각이 난다. 이승만은 미국의 국제경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뉴저지 주지사로 가 있던 옛 프린스턴 대학총장 윌슨(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됨)이 저녁을 산다고 해서 저녁 먹으러 갔다가 윌슨에게 따진 적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국제법이란 것을 왜 나한테 배우라고 했습니까?\" 이승만도 그 때 이미 국제 사회는 힘이 법이란 것을 알아 차렸다는 이야기이다. 이승만도 사실은 1905년 말에 고종황제의 밀사로 헐버트 목사와 함께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가 그냥 미국에 눌러 앉은 케이스이다. 이준, 이상설, 헐버트, 그리고 이위종의 헤이그 사건은 고종이 내보낸 두 번째 밀사가 일으켰던 사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위종이든, 이승만이든, 이완용이든 역사는 한두 사람의 힘으로 좌우되지는 않는다. 국민 모두가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할 때 역사가 바뀐다. 참, 국민 모두가 방황과 혼란에 빠져도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100달러/ 기적의 100달러/ 김창주 목사/ 예닮교회/ 2003-01-05
기적의 100달러 데니.리사 벨레시 지음, 박혜경 옮김, 두란노 펴냄 [미국서 실제로 있었던 일…청지기 사명 새롭게 확인시켜] 이 책의 내용은 모두 ‘따끈 따끈한’ 이야기들이다. 미국에서는 2001년에 출판되었고, 한국에서는 2002년 11월에 두란노에서 초판 인쇄를 했으니 최근에 번역된 책이다. 원서의 제목은 ‘The Kingdom Assignment’로 한국에서 출판된 책 제목과는 약간 다르다. 책 제목이 의역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2월 7일에 1만 달러를 가져간 사람들이 모여 보고회를 가졌으니, 그보다 세 달 전인 2000년 11월 어느 주일 데니 벨레시 목사가 자기 교회 교인들에게 100달러씩을 나누어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 역시 최근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이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코스트 힐 커뮤니티 교회(Coast Hills Community Church)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개한다. 이 일은 일명 ‘하늘나라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상한 제안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광고를 낸다. “지원자 100명을 구합니다.” 이 지원자들은 교회가 나누어 주는 100달러씩을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쓸 수 있지만, 다음의 세 가지 조건만은 지켜야 한다. 첫째,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라 주님의 돈, 곧 하나님의 돈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둘째, 이 돈이 어디에 쓰이든지 관계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만 사용할 것. 셋째, 그 날로부터 90일이 되는 날, 결과를 전 교인에게 보고해야 할 것. 이상 3가지 조건이었다. 이 이상하고 부담스런 프로젝트에 나서는 사람이 처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주일 4부 예배를 통해서 1만 달러는 모두 교인들의 손에 넘겨졌다. 그래서 그 돈을 받아간 사람들은 모두 고민에 빠졌다. 그 돈이 자기 돈이 아니고 하나님의 돈이라고 생각하니 쉽게 쓸 수가 없었다. 이 100달러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져본 돈 가운데 가장 쓰기 곤란한 돈이었던 것이다. 90일이 지나고 미국의 엔비씨(NBC) 방송은 이 장면을 ‘데이트라인’(Dateline)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미국 전역에 방송하기 위해 녹화했고, 2000명이 넘는 교인이 모여서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결과가 아주 놀라웠다. 지원자들이 간증하는 동안 교회는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감동의 물결이 넘쳤다. 그 100달러들은 여러 곳에서 기적을 만들었던 것이다. - 불치병 어린이 환자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일을 시작한 킴(Kim)은 창고에 하나 가득 아동 도서를 모으게 되었고, - 어떤 이는 노숙자에게 담요를 사주었고, -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는 데 사용되기도 했고, - 어떤 100달러는 ‘예수’라는 영화를 상영하는 일에 쓰였고, 열 명의 친구들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면서 금액은 6000달러로 불어났다. - 아기를 유산하거나 어린 아기를 잃은 가정에 꽃을 보내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 어떤 사람의 100불은 미혼모의 보조금으로, - 혹은 교도소 사역을 위한 헌금으로, - 멕시코의 무주택자를 위한 주택 기금으로, - 중국의 신학생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이기도 했으며, - 어떤 사람에게 간 100달러는 90만에 1만3000불이 되어 돌아왔다. 결국 1만 달러는 미국 전역과 전세계 25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90일이 지난 후에는 15만달러가 넘는 돈으로 불어났던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처음에는 교회에서 받은 100달러가 다만 하나님의 돈인 줄 알았는데, 차츰 자기들의 모든 돈, 재능과 시간까지도 전부가 하나님의 것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그 분의 청지기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둘째,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교회는 ‘폐쇄된 공동체’ ‘교인들만의 거룩한 집합소’라고 인식되었던 부정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참가자 스스로가 많은 것을 깨달았고, 영적 성숙의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깨달은 것을 ‘여섯 가지 비밀’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첫째 비밀은 주는 것 보다 받는 것이 더 많았음을 알았다. 둘째 비밀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셋째 비밀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발견했다. 넷째 비밀은 적은 돈으로도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알았다. 다섯째 비밀은 섬길 기회는 우리 주변에 매일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여섯째 비밀은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다. 참신한 프로젝트와 보고서를 함께 담고 있는 이 작은 부피의 책은 상상할 수 있는 많은 도전과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줄 뿐만 아니라 신선한 충격도 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의 선교부를 설득해 이 프로젝트를 한번 실시해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많지 않은 돈 100달러(우리 돈 약 12만원), 그 ‘하나님의 돈’을 쓰는 훈련을 통해서 그 돈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돈, 모든 재능, 모든 시간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이겠는가! 연말 연시에 믿음의 형제들과 모든 동역자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다.
100달러짜리 수표/ 명강의/ 가치관/ 2008-03-22
100달러짜리 수표/ 명강의/ 가치관 명강사로 소문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서 그 강사가 열변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 강사는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100달러짜리 수표 한 장을 높이 쳐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돈을 갖고 싶지요? 어디 이 돈을 갖고 싶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십시요.\" 그러자 세미나에 참석한 그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 한 사람에게 이 돈을 드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먼저 나의 손을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쳐들었던 100달러짜리 수표를 손으로 이리저리 마구 구겼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이 수표를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강사의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역시 거의 모든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좋아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그 100달러 짜리 수표를 땅바닥에 던지더니 구둣발로 밟으며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떨어져있는 구겨지고 더러워진 그 100달러짜리 수표를 집어들고, 아직도 그 돈을 갖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또다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때 강사는 힘찬 어조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100달러짜리 수표를 마구 구기고 발로 짓밟고 더럽게 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습니다. 100달러짜리 수표는 항상 100달러짜리 수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있습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배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그 아픔들... 그런 아픔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 합니다. 허나 놀라운 사실은 당신이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 수표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