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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0일)
2013년 9월 10일) ▒ 큰 공이 이뤄지는 것 ▒ - 柳溪 權聖吉 성공은 결단을 내리는 자의 것이지, 무슨 일이든지 망설이고 저울질해보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다. 큰 공은 위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네루 네루 수상이 딸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재능 있는 사람이 이따금 무능하게 되는 것은, 성격이 우유부단하기 때문이다. 망설이기보다는 차라리 실패를 선택하라.” -B.러셀의 이야기입니다. "큰 공은 위험을 통해서 이뤄진다"는 네루의 말을 마음에 깊이 새김합니다.
2014년 2월 21일)
2014년 2월 21일) ▒ 크게 이루는 사람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큰 일에는 진지하게 대하지만 작은 일에는 손을 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몰락은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된다. -헤르만 헤세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데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미세한 데서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가장 궂은 일, 가장 작은 일을 어떤 자세로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작은 데서 큰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크게 이이루는 사람입니다.
2014년 4월 3일)
2014년 4월 3일) ▒ 큰 꿈을 꾸어라 ▒ 柳溪 끄싱개 위대한 기업을 세우고자 한다면 위대한 꿈을 가질 용기가 있어야 한다. 작은 꿈을 꾼다면 어떤 작은 것을 이루는 데는 성공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것에 만족한다. 하지만, 광범위한 영향력과 영구적인 가치를 얻고 싶다면, 담대해져라.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그저 평균 이상을 목표로 하면 그것 밖에는 얻지 못합니다. 반면 어느 분야든 탁월함을 추구한다면, 직원들 역시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도록 자극을 받게 됩니다. 모든 위대한 지도자는 탁월함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가장 큰 죄/ 2008-05-07
가장 큰 죄 영국의 황태자가 죄인들이 수감되어 있는 감옥을 시찰하게 되었다. 황태자를 만난 죄인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고 호소하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모두 억울한 사람을 잡아 가둔 게 틀림없었다. 황태자는 실망했다.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가 \"무슨 죄로 들어 왔느냐\"는 황태자의 질문에 \"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를 짓고 들어와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황태자가 \"그 중 가장 무거운 죄가 뭐냐\"고 물었다. 죄수는 대답하기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죄가 가장 큰 죄였다\"는 것이었다. 황태자가 그 죄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도 하나님을 모르는 큰 죄인었소.\" 황태자는 북받치는 눈물로 회개를 했다. 그리고 황태자는 그 죄인을 곧 석방시켜 자신의 비서로 삼았다. 룻소는 말하기를 \"과실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회개치 아니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라고 하였다. 하나님 앞에 믿음 있는 자는 항상 자기를 쳐서 주님 앞에 회개하고 복종시켜야 할 것이다.
강철 왕 카네기의 묘비명
강철 왕 카네기의 묘비명 2014-05-07 14:58:36 read : 35 믿음으로 한 생애를 살았던 미국의 강철 왕 카네기의 무덤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자를 볼 줄 알았고, 그를 활용할 줄 알았던 세기의 거인 여기 잠들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실패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관계 의 미숙과 의사소통의 단절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남의 장점을 볼 줄 알고 타인의 말에 귀기울이 는 것, 이것이 인생성공의 필수요건인 것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강철왕 카네기
강철왕 카네기 2003-02-03 10:47:03 read : 165 1847년, 12살 때 부모를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힘들게 전보 배달원을 하며 살았다. 하루는 땀흘리며 전보를 배달했을 때 수취인이 소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총명하게 생겼구나. 지금이야 몇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인물로 자라거라" 소년에게는 갑자기 미래에 대한 비전과 확신이 생겼다. 이 소년은 후에 산업자본가로 대성, 교육과 사회복지에 헌신했다. 강철왕 카네기 이야기다.
개미와 바다코끼리
개미와 바다코끼리 바다코끼리는 일생을 거의 잠을 자면서 보낸다. 사이언스 뉴스지는 이렇게 보고한다. “수컷 바다코끼리는 코끼리 코같이 생긴 코에서 지느러미까지의 길이가 16피트나 된다. 몸무게는 3톤 가량. 가끔 거대한 몸집에 비해 아주 작은 앞 지느러미를 이용해 몸을 긁거나 햇빛을 막아주는 모래를 몸에 뿌린다.” 이 거대한 동물은 이 일 외에는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육지에서 번식하는 기간에도 거의 먹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만 잔다. 잠언 저자는 현명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표본으로 개미를 설명한다. 개미는 작은 체구에도 지칠 줄 모르고 집단을 위해 먹이를 저장하는 일을 한다. 바다코끼리 같은 신자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잠만 자는 신자는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된다. 성경은 개미와 같은 신자가 되라고 가르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신자인가요.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건달 정치와 크리스천/ 2008-04-25
건달 정치와 크리스천 “정치는 건달이 하는거야.” 정치부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은 회사 임원이 된 정치부 베테랑 선배로부터 간혹 듣던 말이다. 몇년간 정치판을 지켜보면서 “과연,선배의 말이 맞구나”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지난 시절 국민이 가장 착각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정치인들이 중요한 의안을 심의할 때 고도의 정책적 프로세스를 통해서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건달의 정치인’들은 국민의 삶을 옥죄는 법안에 대해 정책적 판단보다는 당리당략적 판단을 먼저 하기 마련이다. 권력의 장악과 유지를 위해서 쉽게 대의를 버리는 것이 우리 정치판의 현실이다. 물론 다른 국가도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어차피 정치의 속성이 그런 것이니까. 이번 탄핵안 통과 과정을 지켜보며 ‘건달 정치론’을 펼쳤던 선배의 말이 다시 생각이 났다. 의장석에 신발이며 명패가 던져지는 사태,국민적 상식을 벗어난 결정,대화의 예술은 사라지고 대결만이 난무하는 모습들은 건달의 세계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런 건달 세계에 학처럼 고고한 인물은 물론 필부들조차 낄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선배는 당시 정치부를 떠나려는 내게 “기자를 하려면 정치부에서 하라”고 권했다. 그 말은 정치라는 현상이 외면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닥터 지바고 이야기를 해줬던 타사 선배도 있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의사 지바고가 정치의 변동 속에서 허물어지는 모습을 봐. 정치는 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어. 무시할 수 없지.” 탄핵안 통과 과정을 지켜보면서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 가운데 크리스천 의원들도 있었겠지. 그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번 사태에 임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의문이 들었다. 많은 크리스천 의원이 기독교적 양심을 가지고 투표를 했을까? 현실 정치에서 기독교적인 가치를 그대로 의정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는 사실은 굳이 증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실 세계사적으로 올리버 크롬웰이나 아브라함 카이퍼 등 현실 정치에 기독교 정신을 심어보려 했던 노력은 대부분 실패했다. 현실은 사라지고 신정정치(Theocracy)의 이상만 남아있다. 정치 현실은 냉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정치는 중요하다. ‘건달의 정치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중요성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하늘만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도 펼쳐져야 한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말씀의 성육신은 이뤄져야 한다. 정치계에 들어가면 ‘건달’이 될 수밖에 없고 외면하자니 정치가 너무나 중요하고…. 이것이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탄핵으로 어지러운 가운데 기독교정당 창당 소식이 들린다. 크롬웰과 카이퍼가 실패했던 신정정치의 이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란 이름으로 또 다른 ‘정치 건달’들이 생겨날 것인가. 이왕 탄생한다면 ‘건달 정치인’들의 행태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신선한 청량제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2002-12-11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성 루시안(S. Lucianus)은 이단과 싸우다가 9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다. 311년 맥시미아노 황제가 박해할 때 그도 잡혀서 끌려나가 심문을 받을 때, 그가 위대한 학자임을 아껴 배교하면 목숨을 살려 주고 부귀끼지 주겠노라고 약속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다만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한 마디만 말할 뿐이었다. 재판하는 법관 앞에서도 일체 말하지 않고 다만 \\\"나는 크리스챤입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였다는 것이다. 감옥에 그를 면회하러 찾아온 성도를 보고 자기는 판자에 쇠사슬로 묶여 누워 있으면서도 도리어 신자를 보고 신앙을 끝까지 지킬 것만 권면했다. 그리고 그가 쇠사슬에 묶여 누워있는 그의 가슴을 제대(祭臺)롤 삼아 그 위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고는 그 다음날 끌려나가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박해자들은 그의 시체에 큰 돌을 매달아 깊은 바다에 던져 넣었으나 2-3일 후에 시체는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랑하고 고백해야 할 말 -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세상과의 타협이 들어와도, 유혹이 눈웃음쳐도, 죄가 미혹시켜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외쳐 야 할 말,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2002-12-11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성 루시안(S. Lucianus)은 이단과 싸우다가 9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다. 311년 맥시미아노 황제가 박해할 때 그도 잡혀서 끌려나가 심문을 받을 때, 그가 위대한 학자임을 아껴 배교하면 목숨을 살려 주고 부귀끼지 주겠노라고 약속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다만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한 마디만 말할 뿐이었다. 재판하는 법관 앞에서도 일체 말하지 않고 다만 \"나는 크리스챤입니다\"만 반복할 뿐이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도 \"나는 크리스챤입니다\"였다는 것이다. 감옥에 그를 면회하러 찾아온 성도를 보고 자기는 판자에 쇠사슬로 묶여 누워 있으면서도 도리어 신자를 보고 신앙을 끝까지 지킬 것만 권면했다. 그리고 그가 쇠사슬에 묶여 누워있는 그의 가슴을 제대(祭臺)롤 삼아 그 위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고는 그 다음날 끌려나가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박해자들은 그의 시체에 큰 돌을 매달아 깊은 바다에 던져 넣었으나 2-3일 후에 시체는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랑하고 고백해야 할 말 -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세상과의 타협이 들어와도, 유혹이 눈웃음쳐도, 죄가 미혹시켜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외쳐 야 할 말, \"나는 크리스천입니다!\"
노벨평화상 지미 카터 前美대통령
노벨평화상 카터 前美대통령 2002-12-03 13:35:47 read : 189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78세).. 그는 땅콩 농장주 출신인 고향 조지아주 침례교회에선 손자벌 아이들을 손수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 인것은 이미 우리들이 잘 아는 사실 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78세)이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1일 카터 전 대통령이 중동 평화협상 등 국제 분쟁을 중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켰으며 세계 경제 사회 발전에 기울인 노력을 인정해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스의 자택에서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감사하면서도 영광스럽다”며 “카터센터는 지난 20여년간 세계에 큰 공헌이 되는 작업들을 해왔다”고 공을 카터센터에 돌렸습니다. 그는 94년 6월 개인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 김일성(金日成) 주석과 회담을 갖고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지미 카터, 퇴임후 21년간 ‘세계 평화 전도사’ 소웨토AP연합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78)은 재임시보다 퇴임 후가 더 화려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으로 불립니다. 1981년 재선에 실패하고 물러났지만 이후 21년을 전 세계를 누비며 인권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해 왔습니다. 1977년부터 4년간 제39대 대통령을 지낸 카터 전 대통령은 미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에 속합니다. 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공화당의 인기가 형편없던 시절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습니다.》 재임 기간 이스라엘과 이집트간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캠프데이비드 중동평화협정 체결을 유도하고 옛 소련과의 전략무기감축협정(SALT)을 타결짓는 등 분쟁 해결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패한 그는 그러나 편안한 퇴임 대통령의 노후생활을 거부하고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 옷을 바꿔 입었습니다. 1982년 부인 로절린 여사와 함께 세운 비영리재단 카터센터가 그 출발점이었고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애틀랜타에 세운 이 센터는 인권과 분쟁 해결, 민주주의와 자유이념 전파를 열망하는 전문가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보내온 연 3500만달러의 기부금에 의해 움직 입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 센터의 무보수 이사장을 맡아 분쟁지역을 쫓아다니며 화해 방안을 모색하는 해결사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또 빈곤한 아프리카 등지의 질병 퇴치, 개발도상국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정책수립도 그의 관심사였고... 지난해 8월에는 한국을 방문,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가해 자원봉사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카터 전 대통령은 CNN과의 회견에서 “노벨평화상 자체가 평화와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운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따라서 감사하고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성경: 잠언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두 종류의 크리스천
두 종류의 크리스챤 2013-05-21 15:33:03 read : 4087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두 종류의 크리스챤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Worldly Christian(세속적 신자)와 World Class Christian(세계적 신자) 입니다. 세속적 신자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로서 구원은 받았으나 자기중심적입니다. 은혜 받고 복 받는 것은 좋아하지만 전도나 선교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기도는 본인의 필요, 축복, 행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반대로 세계적 크리스천들은 섬기기 위해서 구원받았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임무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흥분합니다. 열정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염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일하시기를 항상 기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의 그리스도인이십니까?
뒤바뀐 크리스마스
뒤바뀐 크리스마스 몇년 전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라는 말 을 ‘윈터벌’로 바꾸자고 해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윈터벌’이라는 말은 겨울에 해당하는 윈터와 축제에 해당하는 페스티벌의 합성어입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과 상관없이 겨울의 한 축제가 되었으니 굳이 크리스마스라는 용어를 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국 하면 감리교의 발상지로 개신교의 요람이라고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윈터벌'로 바꾸자는 것이 얼마나 세속적이고 믿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잘못된 생각입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감사해야 할 성탄절에 주인공이신 아기 예수님은 간곳이 없고 크리스마스를 빙자한 휴일이나 선물, 그리고 파티만 있으니 하나님 앞에 너무 죄스러울 마음 뿐입니다. 이런 일들은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1200만 성도로, 국민의 4명 중의 1명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최근에 문화선교단체 팻머스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서울·경기 소재 중 고등학생 377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그 결과 ‘산타클로스’라는 대답이 29.9%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 다음은 크리스마스 트리로 13.4%였고,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 응답자는 7.2%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마광수 교수의 꽁트, 개미/ 2014-05-02
마광수 교수의 꽁트, ‘개미’ 어느 남자가 유명해지고 싶어서 개미를 기르면서 길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개미에게 춤을 추게 하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개미가 춤을 추면 모든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할 것이고, 텔레비전에도 출연하고, 자신은 유명한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개미에게 춤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 일에 집착하여 무려 7년 동안 고생하였고, 정신병에 걸렸다고 병원까지 끌려갈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개미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신문에 내려고 신문사로 가다가 배가 고파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문득 음식을 가져오는 종업원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성냥갑에 넣어온 개미를 식탁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여보시오. 여기 개미 좀 보시오!”라고 외치며 종업원을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이 종업원이 개미를 보고는 “아저씨 정말 미안해요!”라고 하면서 개미를 얼른 손가락으로 싹 문질러버렸습니다. 음식을 먹는 식탁에 개미가 올라와 있으니까 너무 미안해서 재빨리 치워 버린 것입니다. 이 순간, 7년 동안 공들인 것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런 일에 7년씩이나 공을 들이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헛고생하고 잘못된 목표를 정하였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사랑해 주신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어떤 꿈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까? 미국 유명한 플랭클린 루스벨트대통령을 기리는 루스벨트 재단이 있는데, 뉴욕주 하이드파크에 세워진 루스벨트 센터 강당의 127개 의자가 있습니다. 이 의자에는 자유, 인간애, 민주주의 등 루스벨트의 비전을 공유하고 고무시킨 127명의 위인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예술가 정치인, 언론인, 자선사업가, 연방대법원 판사, 의사, 배우, 외교관, 법률가 등 세계적인 위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강영우박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미신과 편견을 여겨낸 한국의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강영우박사는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는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축구하다가 망막을 다쳐 실명하여 맹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연세대학을 나오고, 유학하여 피츠버그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맹인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 미행정부의 차관보를 두 번이나 지낸 최고의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는 “나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고백하면서, 어려운 순간순간에도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고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마틴 루터 킹 2002-12-03 13:36:13 read : 188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1955년 12월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몽고메리 페어의 창고에서 근무하는 재봉사 로자 파크스 부인은 클리블런드가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42세의 그녀는 하루종일 이리저리 오가느라 피곤했다. 파크스 부인은 앞쪽 백인 좌석 바로 뒤 첫번째 열에 앉았다. 그녀가 앉자마자 버스 기사는 “방금 올라탄 백인 손님들이 앉아야 하니 흑인들이 앉는 뒤쪽으로 옮겨 앉으라”고 말했다. 그쪽에는 빈 자리가 없었다. 기사의 말을 따르면 그녀는 서서 가야 하고 늦게 탄 백인은 자리에 앉아 가게 된다. 파크스 부인과 함께 버스에 오른 흑인들은 운전기사의 말에 따랐지만 그녀는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버스 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그녀는 체포됐다. 흑인과 여성운동가들은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덱스터 침례교회를 빌려 집회를 열기로 했다. 그 교회의 담임목사인 마틴 루터 킹은 그때까지 파크스 부인 사건을 알지 못했다. 당시 26세였던 킹목사는 그해 보스턴대학교에서 갓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몽고메리로 부임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책상물림이었다. 몇주전 킹목사는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 ‘유색인들의 복지증진을 위한 전국협의회’ 의장직을 거절한 참이었다. 4일 뒤 집회가 열리는 날 킹목사는 준비회의에 조금 늦게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그에게 “당신을 의장으로 뽑았소”라고 인사했다. 흑인들이 저항한다는 사실에 백인들이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의장은 그 증오의 창끝에 서는 일이었다. 킹목사는 천천히 대답했다. “누군가 해야하는 일이라면” 그는 불과 20분 뒤 교회에 모인 5000명의 군중과 기자들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아무런 메모도 없이 연단에 오른 킹목사는 “우리는 억압당하고 짓밟히는 데 지쳤다”고 입을 열었다. 청중은 갈채를 보냈다. 텔레비전 카메라의 불빛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킹목사는 백인들의 폭력적 인종차별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u Klux Klan·KKK단)의 행태와 시의회의 잔혹함을 언급하면서 흑인들은 평화적 방법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스 안 타기 거부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집에 돌아온 킹목사에게 조롱과 협박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그에게는 2년전 결혼한 아내와 태어난 지 몇 주 되지 않은 딸이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책상 앞에 엎드렸다. “주님, 저는 의로운 일을 위해 투쟁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무력하게 용기를 잃고 그들 앞에 서면 그들도 흔들릴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습니다” 그 순간 킹목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이때 “정의와 진리를 위해 일어서라. 내가 항상 네 곁에 있겠다”는 내적인 음성을 들었다고 그는 훗날 회상했다. 한달 뒤인 1956년 1월3일 밤 9시30분쯤이었다. 킹목사의 집 베란다에서 찢어지는 폭발음이 들렸다. 킹 목사 가족은 급히 다른 방으로 옮겨갔다. 그때 또 한번 폭발음이 집을 뒤흔들었다. 유리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났다. 밖에서 연설중이던 킹목사는 즉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접근을 막는 경찰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두 흥분한 상태였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늘어났다. 폭탄 폭발로 부서진 베란다에 오른 킹목사는 손을 들었다. 군중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는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제 아내와 아이는 무사합니다. 제발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복수를 통해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백인 형제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내가 이 투쟁을 계속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하는 한 이 운동은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확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사람들은 흩어졌다. 군중 가운데서 한 경관은 “흑인 목사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모두 시체가 됐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킹목사가 흥분한 군중을 진정시킨 일은 다음날 신문에 보도됐다. 사람들은 그를 흑인들의 위대한 지도자로 보기 시작했다. 그해 12월20일 연방법원은 버스 안에서의 인종차별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몽고메리의 흑인들이 버스를 타지 않은지 382일만의 일이었다. 킹목사를 비롯한 흑인 목사들은 그날 아침 일찍부터 하루종일 버스에 올라타고 다녔다. 운전기사에게 “당신의 버스를 타게 돼 기쁩니다”고 인사하고 앞자리에 앉아 승객들에게도 미소를 지었다. 흑인에게나,백인에게나.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29년 1월15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모두 침례교 전도사였다. 15세에 애틀랜타 모어하우스 대학에 입학한 그는 의학과 법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졸업후 신학교에 진학한다. 크로저신학교에서 그는 간디의 비폭력철학과 현대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의 사상을 접한다. 신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보스턴대학교에서 파울 틸리히와 헨리 넬슨 위먼에 대한 논문을 섰다. 보스턴에서 그는 뉴잉글랜드 음악하교의 코레타 스콧을 만나 1953년 결혼하고 박사학위를 마친 해 코레타의 고향인 몽고메리로 부임한다. 몽고메리 흑인들의 비폭력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남부 도시 곳곳에서 비슷한 운동들이 일어났다.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서는 흑인 학생들이 백인들만 들어가는 식당에 들어가 연좌농성을 벌였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버스를 타고 남부지방을 순회하는 ‘자유의 여행’도 시작됐다. 남부 기독교지도자협의회에서는 흑인들의 투표권을 요구했다. 농성과 평화행진에 참여한 킹 목사는 여러 차례 체포당하고 법정에 섰다. 흑인 지도자에 대한 구속과 시위금지령 같은 탄압이 계속됐다. 곳곳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 킹 목사의 비폭력 노선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실질적인 결실이 보이지 않는 데 대해 조바심을 느낀 흑인들은 점점 호전적으로 변해갔다. 1963년에는 10주간 186개 지역에서 750회 이상의 시위가 일어났다. 링컨 기념일인 8월28일에는 25만명의 군중이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에 모였다. 연단에 선 킹 목사는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며 연설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이전 노예의 자녀들과 노예 주인의 자녀들이 형재애로 한 식탁에 앉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앨라배마의 인종주의자들이 물러가고 거기서 나의 어린 아들과 딸이 백인의 아들딸들과 형재와 자매로 손에 손을 잡고 살아갈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듬해 킹목사는 35세라는 젊은 나이로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였다. 킹목사의 저항운동은 점차 흑인의 경계를 넘어섰다. 그는 흑인들만의 차별을 위해 운동하는 것은 다른 가난한 사람들의 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흑인 인구의 반이 극빈계층에 속했지만 그 수는 전체 빈곤층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그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혜택을 위해 노동조합들과 손을 잡고 투쟁했다. 그 즈음 미국 정부는 베트남 참전을 결정한다. 킹 목사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서 한 사람의 적군을 죽이기 위해 50만달러를 쓰면서 미국내 빈곤 퇴치를 위해선 한 사람에게 52달러를 지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인종차별과 빈곤,전쟁이 상호 관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1968년 4월4일 테네시주 멤피스의 한 모텔에서 총성이 들렸다. 총을 쏜 사람은 제임스 얼 레이,총탄을 맞은 사람은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킹목사가 죽자 미국 전역의 63개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4월8일 애틀랜타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15만명이 참석했다.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적지 않았다. 제임스 얼 레이는 몇년 뒤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자신을 암살범으로 고용했다고 털어놨다.
먼저 크리스천이 되어라.
먼저 크리스천이 되어라. 2002-12-03 14:11:01 read : 306 산부인과 의사 '강주심' 선생의 대문에는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창문마다 성경말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고 그분은 말했습니다. 가끔 불고기나 닭고기를 먹을 때도 "하나님이 우리 백성들에게 이런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은 그 책임이 너희들에게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고 책임의 식을 확인시켜주곤 한다고 했습니다. 또 좋은 집에 살게 하는 것도 같은 목적이라고 일러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벌거나 혹은 과학자가 되더 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교 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무슨 말을 자녀들에게 자주 들려줍니까? 무엇인가 강조하고 보여주는 것이 자녀들의 최고의 가치가 됩니다. 만종을 그린 '밀레'가 파리에 공부하러 갈 때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나 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어긴다든지 믿음이 없어진다든지 하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라. 너는 화가가 되기 전에 먼저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어라. 그릇된 일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 라. 그림을 그리려거든 영원을 위해서 그릴 것이며 늘 하나님의 심판의 나 팔소리가 들려올 것을 생각하고 살아라." 얼마나 귀한 교훈입니까! 진실로 하나님 제일주의 정신이 아닙니까? 참으로 천국 지향적인 신앙입니다. 우리도 이런 교훈을 자녀들에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먼저 크리스천이 되어라/ 2003-03-21
먼저 크리스천이 되어라. 산부인과 의사 \'강주심\' 선생의 대문에는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창문마다 성경말씀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고 그분은 말했습니다. 가끔 불고기나 닭고기를 먹을 때도 \"하나님이 우리 백성들에게 이런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은 그 책임이 너희들에게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고 책임의 식을 확인시켜주곤 한다고 했습니다. 또 좋은 집에 살게 하는 것도 같은 목적이라고 일러준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돈을 벌거나 혹은 과학자가 되더 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교 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무슨 말을 자녀들에게 자주 들려줍니 까? 무엇인가 강조하고 보여주는 것이 자녀들의 최고의 가치가 됩니다. 만 종을 그린 \'밀레\'가 파리에 공부하러 갈 때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나 는 네가 하나님의 뜻을 어긴다든지 믿음이 없어진다든지 하는 것보다 오히 려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잊지 말아라. 너는 화가가 되기 전 에 먼저 올바른 크리스천이 되어라. 그릇된 일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 라. 그림을 그리려거든 영원을 위해서 그릴 것이며 늘 하나님의 심판의 나 팔소리가 들려올 것을 생각하고 살아라.\" 얼마나 귀한 교훈입니까! 진실로 하나님 제일주의 정신이 아닙니까? 참으로 천국 지향적인 신앙입니다. 우 리도 이런 교훈을 자녀들에게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인도에 간 크리스천
무인도에 간 크리스천 2008-04-08 08:26:58 read : 1857 세상에서 잘나가던 한 크리스천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유람선을 타고 가다가 그만 그 배가 침몰했고 간신히 자기 혼자만 무인도에 떠내려가게 되었다. 원망도 있었지만 살았다는 기쁨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파묻힐 틈도 없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했다. 낮에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 돌과 나무를 엮어서 겨우 움막을 완성하던 날, 감격에 기쁨이 복받쳐 올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잠간 자리를 비운 사이 움막에 불이 나고 말았다.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그의 움막은 이미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후였다. 드디어 그는 하나님께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무인도에 혼자 남은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상황이 더 악화되어 남은 전 재산과 물건마저 몽땅 잿더미로...‘ 바로 그때 어디선가 뱃고동소리가 울렸고 그 배가 무인도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결국 그는 구출되었고 너무나 뜻밖이라 선장에 물어보았다. `이곳은 무인도인데 어떻게 오게 되었고 내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선장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당신이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지 않았던가요? 우린 그 연기를 보고 찾아 왔답니다!`
백화점 왕 잔 워너메이커/ 크리스천/ 2008-04-01
백화점 왕 잔 워너메이커/ 크리스천 잔 워너메이커(Johon Wanamaker:1838~1922)는 흔히 백화점의 왕이라 불립니다.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말은 그가처음 하였고, 사람을 비누에 비유한 말은 그의 연설은 유명합니다. "비누는 쓸수록 물에 녹아 없어지는 하찮은 물건이지만 때를 씻어줍니다. 물에 잘 녹지 않는 비누는 좋은 비누가 아닙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사회를 위해 일하려 하지 않고 자기 힘을 아끼는 사람은 나쁜 비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릴 적에 그의 집은 무척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계속 다닐 형편이 되지 못해 벽돌 공장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교회가 낡아 다시 짓기로 했다는 광고를 했습니다. 어린 와나메이커도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 바치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가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벽돌 공장의 벽돌을 한 수레 바치기로 하고 아버지와 의논했습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벽돌 한 수레를 싣고 목사님 사택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열심에 감동한 목사님은 그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습니다. 23세 때 그는 조금씩 저축한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남과는 다르게 고객을 왕으로 받드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찰제 판매와 판매한 제품의 반품을 허용하는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왕으로 대접받는 고객들은 만족스러워 했으며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습니다. 그리고 백화점의 왕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나중에는 미국의 10대 재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업이 크게 성공한 어느 날 워너메이커는 100만 달러를 들여서 교회를 지을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헌당식에서 그는 어렸을 때 구차한 중에 헌금 대신 벽돌을 드린 나에게 큰돈을 낼 수 있게 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선교비로 헌금하였습니다. 어느 날 선교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나 알아보려고 중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곳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를 보고 감격했습니다. 때마침 한 노인이 소 한 마리와 한 젊은이가 함께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이상히 생각하여 왜 이렇게 하느냐고 그 뜻을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은 "우리가 저 예배당 건축에 헌금할 돈이 없어 소를 팔아 헌금하고 한 마리의 소 대신 우리가 멍에를 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워너메이커는 그 자리에서 "주님! 나로 하여금 멍에를 메게 하사 저렇듯 희생적인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와나메커는 백화점 왕으로서 체신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장관 때도 시골에 있는 유년 주일학교 교사를 계속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1)
불에 타지 않은 성경/ 감찰/ 2010-02-11
불에 타지 않은 성경/ 감찰 어떤 남자가 알코올에 중독돼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사람이 그의 아내에게 성경을 한권 줬는데 아내는 성경을 읽다 예수를 믿게 됐다. 아내는 성경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고 그것을 보물처럼 여겼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새로운 신앙을 비웃기만 했다. 하루는 남편이 또 만취해 집에 돌아와 아내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난로속에 던져버렸다 .“보자,네 성경이 뭐가 될지” 다음날 아침 남편은 남은 재를 치우다가 타다 남은 성경 몇쪽을 보게 됐다. 그중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나의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구절을 읽고 그는 깜짝 놀랐다. 성령께서 그 경험을 사용하신 것이다. 그는 죄책감을 강하게 느꼈고 결국 그의 영혼은 구원의 믿음을 얻게 됐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