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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3 - 신영복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 2013년 07월 28일
내 인생의 책3 - 신영복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 2013년 07월 28일 작성자 나눔 내 인생의 책3 -신영복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 사람마다 자신의 인생의 지침으로 삼고 한 번 이상 여러 번 읽는 책이 있을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책들이 여러 권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신영복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1996,신영복,돌베개)입니다. 국토와 역사의 뒤 안에서 띄우는 엽서라는 부제가 있는 이 책은 신영복선생님이 우리 나라 국토의 나름대로 사상적으로 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닌 장소들을 찾아가서 그 장소와 관련된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들에 관한 당신의 사색이나 가치판단 내지 현대적 의미와 가치를 그리 길지 않은 함축적인 글로서 풀어낸 책입니다. 당신께서 직접 찍은 사진들도 곁들여서 독자와 저자가 마치 얼굴을 맞대고 역사에 대해서 사상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을 들게 하는 책입니다. 저는 전공이 지리교육이라서 국토의 특정한 장소를 답사하며 그 장소와 관한 여러 주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와 같은 형식의 책이 더욱 더 재미있고 가치있고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 한국사상사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인물들에 대한 가치판단과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풀어내어 정치,경제,사회,역사적인 한국사상사,철학사적인 내용들도 담고 있습니다. 특정 지리적 장소에서의 역사이야기를 통해서 현대적 과제의 문제들과 이 문제들의 해결방안에 대한 사색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합니다. 사실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들인데 이런 주제들을 쉬운 문장과 특유의 경어체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각자의 생각과 삶에 대해서 성찰하고 돌아보고 올곧은 자기철학의 수립과 삶의 변화를 위해 묵묵히 결단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첫마음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킬 목적으로 적어도 1년에 한번씩은 이 책을 읽어왔습니다. 그만큼 길지 않고 쉬우면서도 영혼을 살피도록 돕고 양심을 각성시키는 뜻을 함축하고 사색의 여백이 있는 시적 산문이기 때문입니다. 신영복선생님은 1968년 통혁당사건으로 20년 감옥살이를 하셨고 감옥생활을 자신의 제 2의 대학시절이라고 말씀하시며 감옥에서 만난 민초들과의 관계 속에서 민초들에 대해서 가슴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초들에 대한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20년 걸렸다고 말씀하시며 가슴으로의 사랑이 중요함을 강조하시지요. 신영복선생님의 책으로 처음 접한 책은 이러한 성찰들을 엽서에 담아서 가족들에게 보낸 내용들을 가지고 책으로 만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신영복,햇빛출판사)입니다. 보통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순이나 어둠을 주로 강조하는데 반해서 신영복선생님의 이 책은 세상을 보다 정의롭게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인격과 삶의 모순에 대해서 먼저 자각하며 성찰하여 자기부터 바꾸고 혁신할 것을 요구하는 그 당시에는 드문 주제의 책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서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관계론에 입각해서 인격이나 품성과 관련된 영성을 강조한 책이었습니다. 20대초반시절에 이 책을 읽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자기관리와 인격의 도야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지성인에게 있어서 우선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영복선생님의 책 중에서 또한 감명있게 읽은 다른 책은 두 권짜리인 “더불어 숲”(1998,신영복,중앙M&B)입니다. 제목의 연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전작인 “나무야 나무야”의 세계판입니다. “나무야 나무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세계 6대주의 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니는 장소들을 방문하여 그 장소들과 관련된 세계사적인 역사이야기와 신자유주의체제하의 세상에 대한 문명비판적인 내용들을 쉽게 재밌게 이야기로 풀어내어 이 땅의 지성인들로 하여금 보다 세계적인 시야에서 연대적인 입장에서 세계사의 주제들에 대해서 현대적 과제들,문제들과 이의 원인이나 해결방안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사색하고 성찰하고 모색하도록 독자들을 인도하는 책입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신 바탕에서 한국사상사적,철학적,인문학적인 지성과 교양을 배경으로 신영복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은 개인적으로는 우리 각자의 철학과 삶에 대해서 공동체적으로는 우리 사회와 민족 사회 나아가 지구촌 공동체의 21세기 대안적인 사상과 공동체와 삶에 대해서 성찰하고 사색하고 모색하도록 유도합니다. 신영복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사상가적인 반열에 오르신 지성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읽고 영향을 받은 선생님의 책은 나의 동양고전독법 “강의”(2004,신영복,돌베개)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사상적인 유산이 모두 다 파괴되고 전후의 가난으로 인해서 무시되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와서야 비로서 이 땅의 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동양사상과 철학에 대해서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십니다. “강의” 책을 통해서 선생님은 근대화의 추진이래로 무시되거나 간과되어왔던 동양사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유불선사상을 고전들의 강독과 현대적 독창적 재해석을 통해서 그 진수를 독자들에게 마치 강의하듯이 들려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중등학교나 대학시절 동양고전을 접하거나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재학시절 김용옥선생님이 대학로에서 운영하시던 도올서원에 찾아가서 동양고전중에 하나인 “주역”을 배워보기도 했지요. 가치판단 이전에 접해보고 읽어보기나 해야할텐데 근대화이후 사상적으로 지식적으로 서양문화에 거의 포섭되다 시피한 현실에서 공식적 강의를 통해서 이런 기회를 갖아보기가 힘들었지요. 경제성장위주의 근대화와 과학기술의 발달과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로 특징지어지는 서양사상이 더 이상의 철학이나 체제나 개인적 공동체적 대안적 삶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주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동양사상과 동양고전에서 무엇인가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사상적 모색은 나름대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지적인 노력이라고 봅니다. “강의” 책을 통해서 동양고전들에 대해서 그간의 편견을 버리고 사상적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접하고 사색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특히 자구나 문구에 매이지 않고 21세기 우리사회나 인류공동체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 창의적으로 동양고전의 내용과 접목시키고 재해석하고 재적용한 것은 참 인상적이었고 동양고전이나 동양사상이 결코 과거 전통에 매인 박제화된 지식이나 고리타분한 보수적 내용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습니다. 분단체제 속에서 21세기 한반도평화와 동북아평화 나아가 자주적,평화적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와 신자유주의경제사회체제의 어둠 속에서 지구온난화와 같은 여러 환경문제들과 실업과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문제,빈곤과 기아와 질병과 인권과 자원고갈과 인종적,종교적,민족적,이념적 갈등과 분쟁 등의 많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는 지구촌인류공동체적 과제를 이 땅의 시민들과 세계시민들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소통과 연대의 방식으로 이런 과제들을 보다 지혜롭게 해결해 나 나무야 나무야.hwp 가야 할 것입니다. 세계평화,지속가능한 세계,더불어 행복한 세상의 창조를 위해서 이 땅의 시민들과 세계시민들이 개인적으로 바람직한 자기철학과 사상을 수립하고 대안적인 삶을 창조해야 하며 대안적인 사상과 대안적인 경제사회체제를 창조해야 합니다. 신영복선생님의 위에서 소개한 책들은 그와 같은 대안들의 창조를 위한 성찰과 모색과 사색 나아가 공부와 연구와 연대적 실천들에 귀한 동기를 부여하고 사색과 공부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어느덧 70대로 접어드신 신영복선생님의 뒤를 이어 이 땅의 젊은 지성들이 고귀한 목적을 지닌 공부를 계승하여 민족사적 과제들과 세계사적 과제들의 해결에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 2012년 03월 13일
너 자신을 알라 2012년 03월 13일 작성자 늘 종 (tschoi45@hanmail.net) 스펙이라는 허황된 신화 얼마 전 우리 사회는 신정아라는 한 큐레이터로 인해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일들이 모두가 부정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일을 통해 가짜학력에 대한 실체가 드러나 우리 사회가 정화되기도 했고, 학력지상주의에 매달리는 우리 사회의 헛점이 드러나기도 하고,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가진 자들의 탐욕의 모습 또한 다시 한 번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지탄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신정아씨는 한 대기업의 화랑을 맡은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대학 교수가 되기도 하고, 광주 비엔날레라는 국제행사에 예술 감독으로 초빙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대단한 실력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에는 자신의 실력이 유수한 대학의 박사학위 소지자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이 늘 자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는 그런 자신의 실력을 자신이 생각하는만큼 인정해주지 않기에 가짜 학력을 위조하기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스펙 없이 그냥 실력 있는 사람도 스펙을 가진 사람만큼 실력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만일 그런 사실을 사회가 인정한다면 스펙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힘은 훼손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과도하게 스펙에 집착하는 사회입니다. 스펙이라는 허황된 신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KS, SKY대 출신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아무리 학력 제한 철폐를 외쳐대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요원한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은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더 치명적인 스펙 그 사건이 사람들에게 여러 교훈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그 사건을 통해 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배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것은 스펙이 가지고 있는 해악을 사람들이 여전히 보지 못하고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펙은 분명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교만한 인간을 만들어 냅니다. 인류에게 가장 해로운 존재는 바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우리 사회에 계층이 생기고 과도한 경쟁이 인간관계를 파괴하기에 이르게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고 훈훈한 인정이 사라지게 되는 것도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스펙은 특별히 영적으로는 더더욱 치명적입니다. 바른 종교라면 어떤 종교이건 자아의 확장이나 자기실현을 목표로 삼는 경우란 없습니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자기의 한계를 직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세를 낮추는 것이 모든 종교의 공통된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스펙은 극복해야 할 걸림돌입니다. 한 가지 신정아씨 사건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특이한 현상은 다른 사회의 가짜 학력 소지자들은 양심고백을 하거나 스스로 물러났고, 강화된 검증에 의해 가짜임이 드러나 쫓겨나기도 했는데 정작 가장 정직해야 할 기독교 사회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가짜 박사가 많은 곳도 기독교 사회이고, 가짜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거의 아무런 노력 없이 돈만 내면 자동으로 박사학위(특히 목회학박사의 경우)를 취득할 수 있는 곳이 기독교 사회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어쩌면 그 사건을 통해 영원히 정화될 수 없는 기독교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졌기에 그런 것일까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어느 사회보다도 가짜가 판을 치는 사회, 그러면서도 새로운 목회자를 청빙하는데 스펙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곳이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스펙은 필연적으로 교만한 인간을 만들어냅니다. 교만한 인간들이 경영하는 기독교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과 연관 자체가 없는 곳이 되는 것 역시 필연입니다. 지각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스펙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 되어야 할 기독교 사회가 다른 어떤 사회보다 스펙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비극적인 현실을 가슴아파해야 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스펙이 지배하는 사회에 교훈을 주는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69~기원전 399)는 붓다, 예수, 공자와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철학사 전체를 '소크라테스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눌 정도로 일종의 분기점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키케로는 소크라테스를 두고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사상가"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서구 철학의 기초를 형성한 사람으로서 플라톤과 그 이후 그리스철학자들뿐 아니라 서양 사상사 전체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국의 철학자 펑유란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및 아리스터텔레스의 관계를 공자와 맹자, 순자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35~40세 정도 였을 때 그의 친구 하나가 "아테네에서 제일가는 현자는 소크라테스이다"라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소크라테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당시 아테네에 사는 유명 인사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도 역시 무지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는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아테네의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차이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자기의 무지를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테네에서 제일가는 현자로 칭해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이라는 식으로 자기의 무지를 아는 것을 중세철학자 쿠자누스는 '박학한 무지'(docta igrantia)라 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을 그의 철학적 삶을 이끄는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이 말은 사실 소크라테스 자신의 말이 아니라 델포이 신전의 신탁으로 그 신전의 비명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처럼 아테네 사람들이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고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소크라테스가 취한 방법 중 하나는 '대화'였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지만 특히 소크라테스는 대화야말로 진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교육이란 모르는 사람이 질문을 하고 아는 사람이 가르치는 것처럼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일방통행식으로 지식을 주입시키는 통상적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신 대화를 통해 서로 일깨움을 얻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대화할 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이론이나 논리를 전개해서 상대방을 가르치거나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질문하고 상대방의 대답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보여주어 상대방이 스스로 자기의 무지를 깨닫고 앎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입니다. 산파는 아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기가 산모의 몸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인 것처럼, 서로 대화를 통해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진리의 씨앗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스스로를 아테네 사람들을 괴롭히는 '쇠파리'라 했습니다. 안이한 생각과 지적 자만에 빠진 아테네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여 아테네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기들의 참나를 발견하도록 애썼다는 뜻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소크라테스이지만 귀찮은 '쇠파리'를 쫓거나 죽이지 않았던 아테네 사람들 역시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소크라테스이지만 그는 정규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책 한 권 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에 의해 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참된 삶이었고, 그러한 삶은 결코 책을 통해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그런 자기의 스승을 가리켜 "당대의 모든 사람 중 가장 사려 깊고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한 소크라테스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살았다면 과연 그런 칭송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스펙을 추구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배부른 돼지'로 살면서 '가난한 소크라테스'의 칭송도 함께 받으려는 모순된 길을 걷고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사도 바울 참된 자아의 발견이야말로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였고, 모든 것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펙이 보여주는 자아는 과장되고, 포장된 자아이며 실체없는 자아입니다. 그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경의 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에도 뒤지지 않을 스펙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런 자신의 스펙에 이끌려 살아갈 때 그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자신의 참자아가 어떤 자아인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하기도 하고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15:8)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 힘으로는 영원히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자기 존재의 한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곤고한 사람"(롬7:24)이라는 말에 담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자신의 참자아를 보고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스펙의 허망함을 보고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리이신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3:8) 참자아를 발견하자 자신이 그때까지 자랑으로 여기던 모든 것들, 다시 말해 스펙이라는 것이 오히려 진리가 들어오는 길을 막고 있는 방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방해물을 제거하자 그때서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크자누스가 말한 자신을 아는 '박학한 무지'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자기의 무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하지만 스펙을 쌓고, 스펙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자기 자신을 알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아무리 은혜를 말하고, 성경의 모든 말씀들을 꿰어 보배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진리와는 반대의 길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그러한 모순된 현상을 발견한다고 해도 그때까지 자기가 쌓아놓은 스펙을 버리거나 허물 수가 없습니다. 스펙이란 그렇게 영적으로 치명적인 해악입니다. 그래서 깊은 영적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언제나 무명이거나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인들의 도서목록의 상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주인공인 로렌스 수사는 구두를 수선하고 부엌일을 하는 평수사였습니다. <영혼의 성>이라는 걸작을 남긴 아빌라의 테레사 역시 배운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렇게 보잘것없었기 때문에 대담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깊은 영적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의 영성가인 헨리 나우엔 역시 그것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상과 견해와 개념과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은 좋은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귀 기울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잘 받은 성직자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선악이 어떤 위치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어떻게 가는지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 속에서 그 날의 여러 사건 속에서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의 경험을 담은 여러 책 속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생각의 가난입니다." "자신의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 말은 반대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여기는 사람, 자신의 스펙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스펙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펙의 허망함을 보고 스펙을 버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스펙을 넘어 자신의 참자아를 보고 발견하고, 스펙을 넘어 인간을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아는 사람들일까요? 우리 곁에 소크라테스는 없지만 우리들 스스로 자신에게 끊임없이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는 내면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도 소크라테스처럼 현자가 되고, 사도 바울처럼 오로지 그리스도를 향해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스펙 추구하기를 멈추고, 모든 스펙을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는 영적 대각성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08월 09)
(2012년 08월 09) ▒ 나눔의 행복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 잠자는 척 하고 있는 한 아가씨가 있었다. 깐깐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아가씨를 흔들며 "아가씨, 여기는 노약자 지정석이야" 이 때 아가씨는 "저도 돈 내고 탔는데요?" 이 때 할아버지 왈 "이 자리는 돈 안 낸 사람이 앉는 곳이야" 우리는 언제나 자신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늘 나보다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언제나 넉넉한 사람입니다. 특히 타인의 단점을 덮어주는 사람 또한 우리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나누는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눔은 내게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열매로 돌오게 합니다.
(2012년 08월 10)
(2012년 08월 10) ▒ 사랑의 마음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강아지를 보고 "나는 네가 밉다"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쓰다듬어 주면 좋다고 꼬리를 칩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해"하면서 소리를 지르면 콱 물어 버립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사랑한다고말했느냐, 미워한다고 말했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이니라 사랑의 마음이 있으냐 없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육도 어떤 비판도 어떤 훈계도,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만 틀립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말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푸념이나 험담을 하면 일순간 쾌감을 느끼는 것 같지만, 사실 부정적인 마음으로 하는 말에는 분노라는 독소가 포함되어 있어 결국 말하는 사람 스스로 불쾌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부정적인 마음으로 하는 말은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겠습니다.
(2012년 09월 17)
(2012년 09월 17) ▒ 나는 누구일까?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한 노인이 공원의자에 앉아 인생문제를 깊히 명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가 황혼이 깃들고 공원문을 닫혔을 때 공원지기가 다가왔습니다. 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앉아서 나가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이거 누구야 이 사람 어디서 왔어!" 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그러자 이 노인은 눈을 번쩍 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디서 왔어? 아 내가 그걸 알면야! 나는 그것을 몰라서 지금까지 눈을 감고 앉았다네…" 이 사람이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에게 주어지 사명(일)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주어진 삶을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진실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2012년 10월 16일)
(2012년 10월 16일) ▒ 자기 돌봄의 시간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은 부딪치는 일마다 모두 약이 될 것이요. 남을 원망하는 사람은 움직이는 생각이 모두 창칼이 될 것이다. - 채근담 일반적으로 남에 의해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더욱 더 발전하기 위해서 주기적인 자기 평가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2012년 10월 17일)
(2012년 10월 17일) ▒ 친절함의 열매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단테의 ‘신곡’을 강의하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학생들에게 단테에 대해 가르치는 것보다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아무리 단테를 잘 배운다 해도 밖에 나가서 버스에 탄 할머니들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면 나는 선생으로서 실패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 포르니(P.M.Forni)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 영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는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친절이고, 둘째, 셋째도 친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친절하십시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삶의 힘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면 힘든 일들이 조금은 가벼워 질 것입니다. 나의 친절함이라는 작은 행동이 나와 모두에게 놀라운 결과를 안겨줄 것입니다. 성공, 그것의 친절의 열매일테니까요.
(2012년 11월 27일)
(2012년 11월 27일) ▒ 노력과 성공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위대한 작곡가는 영감이 떠오른 뒤에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작곡을 하면서 영감을 떠올린다. 베토벤, 바그너, 바흐, 모차르트는 경리사원이 매일 수치 계산을 하듯 매일같이 책상 앞에 앉아 작곡을 했다. 그들은 영감을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어니스트 뉴먼(Ernest Newman) 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아침에 유명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공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집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의 별명입니다. 꾸준한 노력이 보통 사람을 천재로 만들고, 또 승리자로 만듭니다.
(2012년 12월 03일)
(2012년 12월 03일) ▒ 바보 아이디어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모든 기회는 불확실함에 숨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것을 찾지만 확실하게 보이는 것에는 이미 기회가 없다. 불확실성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바로 창의적인 사람의 특징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탄생에서 주목할 점은 그 아이디어가 처음 제시될 때는 누구도 그 아이디어에 대해 쉽게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종하, ‘틀을깨라’에서 처음 들었을 때 멋지고, 합리적인 아이디어라면 그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첫인상은 바로 바보 아이디어입니다. 너무나 엉뚱해서 바보 같은 이야기로만 들리는 것입니다.
(2012년 12월 08일)
(2012년 12월 08일) ▒ 듣는 것은 학습이다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대중에게 다가서는 지름길은 그들에게 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귀를 내미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달콤한 말을 한다 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기가 말하고 싶어하는 얘기의 절반만큼도 흥미롭지 않은 법이다. -도로시 딕스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지름길은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 것입니다. 듣는 것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입니다. 듣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증진시켜 주는 효과만점의 마법지팡이지만, 당장에는 노동과 고통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획득할 수 있습니다. 가슴이나 어깨 근육처럼 듣는 근육도 훈련을 하면 할수록 발달합니다.
(2012년 1월 26일)
(2012년 1월 26일) ▒ 생존을 위한 수단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생명의 신비 중 하나는, 모든 일에 200%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초식동물에게 뜯어 먹힐 것을 대비해 풀은 두 배로 자라고, 새들이 알을 두 개씩 낳는 것도 만약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생존경영 연구소 서광원 소장 (이국명, ‘해봤어?’에서 인용) 35억년간 축적된 위대한 자연의 지혜처럼 이정도면 되었지 하며 적당히 마무리 하고 싶을 때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생존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살아남는 것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 변화의 풍랑에 몸을 맡기는 것 역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12년 2월 13일)
(2012년 2월 13일) ▒ 지도자의 능력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사람은 가장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동료들의 머리와 능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사람이다. -알톤 존스(W. Alton Jones) 몇몇 지도자들은 조직 내에서 본인이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우쭐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누구보다도 많이 알아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모든 직원의 역량을 마지막 1%까지 완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어야 합니다. 무한 경쟁이라는 환경에서 장기적으로 살아남는 길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을 100%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 2월 7일)
(2012년 2월 7일) ▒ 비전인과 몽상가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비전이 있는 사람은 말은 적으며 행동은 많이 한다. 몽상가는 말은 많으나 행동은 적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확신에서 힘을 얻는다. 몽상가는 외부 환경에서 힘을 찾는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한다. 몽상가는 가는 길이 힘들면 그만둔다. -존 C. 맥스웰(John C. Maxwell) 말보다는 행동을 많이 하는 사람, 우호적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확신에서 힘을 얻는 사람, 가는 길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전진하는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전구도, 비행기도, 컴퓨터도 만들었습니다. 나는 비전을 가진 사람인가? 몽상가인가?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2012년 2월 9일)
(2012년 2월 9일) ▒ 보다 더 즐거운 것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부자는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주는’ 사람이다. 주는 것은 잠재적 능력의 최고의 표현이다. 준다고 하는 행위 자체에서 나는 나의 힘, 나의 부(富), 나의 능력을 경험한다. 고양된 생명력과 잠재력을 경험하고 나는 매우 큰 환희를 느낀다. 주는 것은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준다고 하는 행위에는 나의 활동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우리의 인생 뒤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사랑받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즐겁습니다.
(2012년 5월 24일)
(2012년 5월 24일) ▒ 내가 할 수 있는 일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내가 생각하건데 잘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그런데 범인들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일만 바라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은 때를 놓치지 말고 하라! 그것으로 사람은 충분한 것이다. 인생의 불행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은 데에 그 근원이 있다. " -로맹.로랑(1866-1914/프랑스 문인)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나는 재능이 없었어’ 라고 말합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재능이 없었다는 것이라면 꿈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재능이 있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맞겠지만 성공한 사람 중에 그런 대답을 한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정을 가지고 계속 했을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2012년 5월 27일)
(2012년 5월 27일) ▒ 생명과 희망의 빛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삶에 크고 작은 문제에 방황하며 그 어둠에 잠식당할 때 우리는 주가 함께하심을 잊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이 빛을 잃어가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떠나간 자녀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삶의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홀로 고독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십자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우리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으셨던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을 입은 우리가 얼마나 귀한 삶을 살고 있는지, 지금까지 인도하신 주의 은혜를 헤아려 보십시오. 삶의 가장 어두운 곳에도 임하는 주의 사랑에 힘입어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일어서십시오. 오늘은 그분을 만나는 주의 날입니다. 그분께 드리는 예배는 주님의 사랑을 아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이자 희망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2012년 7월 22일)
(2012년 7월 22일) ▒ 빛의 사람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그리스도인은 빛의 사람들입니다 예전에는 눈을 떴으나 소경처럼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눈을 뜨고 빛을 품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당신 안의 빛을 세상사람들이 보게 하십시요. 세상을 향한 당심의 빛이 어두워 졌다면 오늘 빛의 주인이신 그분을 만나 다시 충전한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게 하소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누가복음 11장 35절)
(2012년 7월 25)
(2012년 7월 25) ▒ 진정한 사랑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먹어봐야 아는 게 국 맛이고 겪어봐야 아는 게 사람이지요. 아무리 자세하게 일러 주어도, 누구를 소개하는 '말'만 듣고서 그 사람을 알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겪어도 그냥 거죽으로만 근사하게 겪어 가지고는 아직 멀었어요. 말 그대로 밑바닥 밑창까지, 잘난 구석 못난 구석 모두 겪어본 다음 비로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오늘은 아리아의 피아노 선율을 들으면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들이 무엇인가 하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무엇을 사랑을 사랑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는 것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생각을 다시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렵니다.
(2013년 1월 2일)
(2013년 1월 2일) ▒ 희망의 꽃, 행복의 열매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처했어도 여유를 잃지 않으면 반드시 열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에는 그에 맞는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면 두려움으로 인해 도피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도피할수록 어려운 상황은 엉킨 실타래처럼 더욱 복잡해질 뿐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시련에 맞서야합니다. 그러다보면 절박하고 위험한 시련을 이겨낼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꽃은 핍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희망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2013년 1월 3일)
(2013년 1월 3일) ▒ 나눔과 주인의식 ▒ 柳溪 끄싱개 權聖吉印 CEO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눠주는 사람이다. CEO는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나눠주는 사람이다. ‘내가 다 책임질게 하라는 대로 해!’라고 하는 것은 직원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책임을 나눠줄 때 주인의식이 생기고, 일이 고역이 아니라 재미와 놀이가 된다. -연세대 김형철 교수 당연히 책임을 나눌 때 주인의식도 커질 것입니다. 내가 직접 해야만 하는 극소수의 일과 나눠줄 다수의 일을 정하는 것, 그리고 일반적인 책임은 나누지만 큰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 바로 그런 것들이 최고경영자의 중요한 임무일 것입니다. 망각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조직의 생사와 운명에 대한 책임,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한 최종 책임은 리더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책임을 나눠줄 때 주인의식이 생겨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