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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1장 (갈라디아서 1장) [표준새번역]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1장 (갈라디아서 1장) [표준새번역] 1. 사람들이 세워 준 것도 아니요, 사람이 맡겨 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겨 주시고, 또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맡겨 주심으로써, 사도가 된 나 바울은, 2. 나와 함께 있는 모든 믿음의 식구와 더불어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3.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주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5.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다른 복음은 없다] 6.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그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몇 사람이 여러분을 교란시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8. 그러나 우리들이나, 또는 하늘에서 온 천사일지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마땅히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하였지만, 이제 다시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내력] 1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밝혀드립니다. 내가 전한 그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적에 한 행위가 어떠하였는가를, 여러분이 이미 들은 줄 압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또 아주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14.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에서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었습니다. 15.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분께서, 16.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 때에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갔습니다. 18. ○삼 년 뒤에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19. 그러나 나는 주의 동생 야고보 밖에는, 사도 가운데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21.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유대 지방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나를 개인적으로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23. 그들은 다만 ”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전에 없애 버리려고 하던 그 믿음을 전한다” 하는 소문을 들을 뿐이었습니다. 24. 그래서 그들은 내가 한 일로 하나님께 줄곧 영광을 돌렸습니다.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2장 (갈라디아서 2장) [표준새번역]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2장 (갈라디아서 2장) [표준새번역] [예루살렘 회의] 1. 그 뒤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내가 그리로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3. 나와 함께 있던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4.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어 든 자들입니다. 5.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아무런 제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지,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한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런 제안을 하지 않았습니다. 7. 도리어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과 같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8. 그들은, 베드로에게는 할례 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신 분이, 나에게는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사도직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9.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서, 친교의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이방 사람에게로 가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에게로 가기로 하였습니다. 10.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기억해 달라고 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해 오던 일입니다. [안디옥에서 바울이 게바를 나무라다] 11.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에 잘못한 일이 있어서,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그를 나무랐습니다. 12. 그것은 게바가,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오기 전에는 이방 사람들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자, 할례 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떠나 물러난 일입니다. 13. 나머지 유대 사람들도 그와 함께 위선을 하였고, 마침내는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끌려갔습니다. 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똑바로 걷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인데도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찌하여 이방 사람더러 유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합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다] 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죄인인 이방 사람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여 주심을 구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19. 나는 율법 앞에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대신하여 자기 몸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하여 주심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3장 (갈라디아서 3장) [표준새번역]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3장 (갈라디아서 3장) [표준새번역]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호소하다] 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이 여러분의 눈 앞에 선한데, 누가 여러분을 홀렸습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을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써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 5. 여러분이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서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러하신 것입니까? 6.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더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움으로 여겨 주신 것”과 같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아십시오. 8.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을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실 것을 미리 알고서, 아브라함에게 ”모든 이방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는 기쁜 소식을 미리 전하였습니다. 9.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10.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 있다” 하였습니다. 11.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2. 그러나 율법은 믿음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율법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4.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율법과 약속] 15. ○형제자매 여러분, 일상 생활에서 예를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사람 사이에 한 번 언약을 맺으면, 아무도 그것을 무효로 하거나, 거기에다가 어떤 것을 덧붙일 수 없습니다. 16.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을 하여 주실 때에,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자손들에게’를 쓰시지 않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너의 자손에게’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그 한 사람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17.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맺으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뒤에 생긴 율법이 이를 무효로 하여 그 약속을 폐할 수는 없습니다. 18.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나온 것이면, 그것은 절대로 약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거저 주셨습니다. 19. ○그러면 율법은 무엇 때문에 주셨습니까? 그것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실 때까지 죄를 밝히시려고 덧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천사들을 거치고, 중개자의 손을 거쳐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20. 그런데 그 중개자는 한쪽에만 속하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종과 아들] 21. ○그렇다면 율법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반대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어진 율법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의롭게 됨은 분명히 율법에서 생겼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경을 보면 모든 것이 죄 아래 갇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약속하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장차 올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습니다. 24. 그래서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개인 교사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5. 그런데 믿음이 이미 왔으므로, 우리는 이제 개인 교사 밑에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28.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으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라 유업을 이을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4장 (갈라디아서 4장) [표준새번역]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4장 (갈라디아서 4장) [표준새번역] 1. 내가 또 말합니다. 유업을 이을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릴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고, 2. 아버지가 정해 놓은 그 때까지는 보호자나 관리인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릴 때에는, 세상의 유치한 교훈 아래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자녀의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리고 또 여러분은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 각자는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염려하다] 8. ○그런데 전에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본디 하나님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을 하였지만, 9.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알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무력하고 천하고 유치한 교훈으로 되돌아가서, 또다시 그것들에게 종노릇 하려고 합니까? 10.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지키고 있으니, 11.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됩니다. 12.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과 같이 되었으니,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게 해를 입힌 일은 없습니다. 13. 그리고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14.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의 그 감격이 지금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은 할 수만 있었다면, 여러분의 눈이라도 빼어서, 내게 주었을 것입니다. 16.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진리를 전하였으므로, 여러분의 원수가 되었습니까? 17. 위에서 내가 말한 자들이 여러분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내게서 떼어놓아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들을 열심히 따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8. 그런데 그들이 좋은 뜻으로 여러분에게 열심을 낸다면, 그것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좋은 일입니다. 19. 나의 자녀 여러분, 나는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20. 이제라도 내가 여러분을 만나 어조를 바꾸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습니다. [하갈과 사라] 21. ○율법 아래 있기를 바라는 여러분, 내게 말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율법이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태어나고 하나는 종이 아닌 본처에게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신을 따라 태어나고, 본처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을 따라 태어났습니다. 24. 이것은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두 여자는 두 가지 언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서 종이 될 사람을 낳은 하갈입니다. 25.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뜻하는데, 지금의 예루살렘에 해당합니다. 지금의 예루살렘은 그 주민과 함께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종이 아닌 여자이며,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기록하기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여, 즐거워하여라. 해산의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를 높여서 외쳐라. 홀로 사는 여자의 자녀가 남편을 둔 여자의 자녀보다 더 많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28.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29. 그러나 그 때에 육신을 따라 난 사람이 성령을 따라 난 사람을 박해한 것과 같이, 지금도 그러합니다. 30.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여종의 아들은 절대로, 종이 아닌 본처의 아들과 함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3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한 여자의 자녀입니다.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5장 (갈라디아서 5장) [표준새번역]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5장 (갈라디아서 5장) [표준새번역]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의 자유] 2.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3. 내가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합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7. ○여러분은 지금까지 잘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을 가로 막아서,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까? 8. 그런 꾐은 여러분을 부르신 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9.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10. 나는 여러분이 다른 생각을 조금도 품지 않으리라는 것을 주님 안에서 확신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교란시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아직도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박해를 받겠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거리낌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12.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고 먹으면, 양쪽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니, 조심하십시오. [육체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 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는 것을 따르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체의 행실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노와 이기심과 분열과 분파와 21.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거리는 연회와, 또 이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5.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26. 우리는 허영에 들뜨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6장 (갈라디아서 6장) [표준새번역]
갈라디아 사람에게 보낸 편지 6장 (갈라디아서 6장) [표준새번역] [서로 짐을 져 줍시다] 1. 교우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는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이런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십시오. 3.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행실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5.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6.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누어야 합니다. 7.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8. 자기 육체의 욕망을 따라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9.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않으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마지막으로 하는 경고와 축복] 1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직접 이렇게 큰 글자로 적습니다. 12.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3.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15.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16. 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17.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18.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갈라디아서 1장 [개역개정]
갈라디아서 1장 [개역개정] [인사]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다른 복음은 없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이 사도가 된 내력]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갈라디아서 1장 [개역한글]
갈라디아서 1장 [개역한글]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2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년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 오일을 유할쌔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갈라디아서 1장 [공동번역](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
갈라디아서 1장 [공동번역](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1장) [인사] 1. 사도인 바울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사도직을 사람에게서나 사람을 통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았습니다. 2. 나는 나와 같이 있는 모든 형제들과 함께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에 문안드리며 3. 우리 아버지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시기를 빕니다. 4.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 내시려고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5. 하느님 아버지께서 영원토록 영광을 받으시기를 빕니다. 아멘. [오직 하나밖에 없는 복음] 6.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하느님을 외면하고 또 다른 복음을 따라 가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사실 다른 복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뒤흔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8. 우리는 말할 것도 없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전한 복음과 다른 것을 여러분에게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이미 받은 복음과 다른 것을 전하는 자기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합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합니까? 내가 사람들의 호감이나 사려는 줄 압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닐 것 입니다. [바울로가 사도가 된 경위] 11. 형제 여러분,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 둡니다. 12. 이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 유다교 신자였을 때의 소행은 여러분이 다 들었을 터이지만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습니다. 아니 아주 없애 버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14. 나는 그 때 내 동족 중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다교를 신봉하는 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 주셨고 16.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 때 나는 어떤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 갔습니다. 18.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 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19. 그 때 주님의 동생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21.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나를 직접 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23. 그들은 다만 전에 자기네를 박해하고 그 교를 없애 버리려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 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24. 내가 하는 일을 두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우리말성경]
갈라디아서 1장 [우리말성경]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인해 된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사도가 된 나 바울과 2.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이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 내시려고 우리 죄를 대신해 자신의 몸을 내 주셨습니다. 5.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다른 복음은 없음] 6.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을 부르신 분을 여러분이 그렇게 쉽게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사실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8. 그러나 우리든 하늘에서 온 천사든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것처럼 내가 지금 다시 말합니다. 만일 누구든지 여러분이 받은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을 좋게 하려고 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좋게 하려고 합니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려고 애씁니까? 만일 내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려고 애쓴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바울 ] 11. 형제들이여,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사람에게 받은 것도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 한 행위에 관해 여러분이 이미 들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핍박했고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14. 나는 내 동족 가운데 나와 나이가 같은 또래의 많은 사람들보다 유대교를 믿는 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에 대해서도 매우 열성적이었습니다. 15. 그러나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나를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16.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을 내 안에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과 의논하지도 않았고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되돌아갔습니다. 18. 3년 뒤 나는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와 함께 15일을 지냈습니다. 19. 그리고 사도들 가운데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장담하건대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이것은 결코 거짓말이 아닙니다. 21. 그 후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내 얼굴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3. 다만 그들은 “전에 우리를 핍박하던 사람이 지금은 전에 그가 파괴하려고 하던 그 믿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24. 나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현대인의성경]
1 사람이 보냈거나 사람을 통해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 사도가 된 나 바울과 2 그리고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안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우리를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하시려고 우리 죄를 위해 자기를 바치셨습니다. 5 하나님 아버지께 길이길이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6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을 그처럼 쉽게 저버리고 다른 복음을 따르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사실 다른 복음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혼란 가운데 빠뜨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8 우리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기쁜 소식 외에 다른 것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9 우리가 전에 말한 대로 내가 다시 말하지만 누구든지 여러분이 이미 받은 기쁜 소식 외에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와서 사람을 기쁘게 하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11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알게 합니다만 내가 전한 기쁜 소식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12 이 기쁜 소식은 내가 사람에게서 받았거나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입니다. 13 내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 한 일들을 여러분은 들어서 알 것입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였고 아예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까지 했습니다. 14 나는 같은 나이 또래의 그 어떤 유대인들보다 유대교를 신봉하는 데 앞장섰으며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이었습니다. 15 그러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택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16 자기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어 이방인들에게 그분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을 때 나는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으며 17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고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커스로 돌아왔습니다. 18 그 후 나는 3년 만에 베드로를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가서 15일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 19 나는 거기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 외에는 다른 사도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20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21 그 후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때까지만 해도 유대에 있는 교회들은 내 얼굴을 몰랐습니다. 23 그들은 전에 자기들을 괴롭히던 사람이 지금은 박해하던 그 믿음을 전한다는 말만 듣고 24 나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주석
갈라디아서 제 1장 =====1:1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이암은 것도 아니요 -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인간적인 기원이나 수단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처럼 자신의 사도 권을 편지의 서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당시 바울이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에 하나가 아 니었다는 이유를 들어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 대주의를 고수하는 거짓 교사들로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을 심하게 미혹(迷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바울은 실제로 예수의 열 한 사도들처럼 예수의 지상 사역을 목 격하거나 맛디아처럼 공식적으로 선출되지 않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소명을 받았으므로 조금도 사도의 자격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행 9:1-17;26:14-18).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고전 4:1-5 주제 강해 '바울의 사도적 자기 인식과 고린도 교회의 오해'를 참조하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 은 '알라'(* ,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어 바울의 사도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유 래되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사도권의 기원을 언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함께 언급하였다. 이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 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신 분이심을 전제하였음을 보여준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기원(起源)이 부활 하신 주님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더욱 그의 논지를 분명히 한다. 주의 부활은 당시 초 대 교회성도들의 신앙의 근거요 '다메섹의 경험'(행 9:1-18)을 통해서 회심한 바울 자 신의 신앙의 근거였다(Longenecker). 사도된 바울 - '아포스톨로스'(* , '사도')는 관사 없이 사용되 었다. 이는 사도 바울 자신만이 유일한 사도인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 사실 예수의 열 두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도'라는 칭호는 사용되었다. 원래 '아포스톨로 스'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이나 단체의 권익을 옹호하는 대표 자를 의미했으나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Boice). 한편 초대 교회는 사도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행 1:21-26). (1)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과 부활하신 주를 목격하고, (2) 그리스도 에 의해 복음 사역자로 택함받은 자가 그것이다.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 - 바울은 보통 그의 서신서의 서두에서 인사말을 할 때에 동 역자들의 이름을 밝히지만(고전 1:1;고후 1:1;빌 1:1;골 1:1 등), 단지 '형제들'이라 고 표현한 경우도 종종 있다(살전 1:4). 여기서 '형제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1) 혹자는 믿음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의 무 리라고 한다(Lenski). (2) 혹자는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 중에 있는 선교단 전체를 의 미한다고 한다(R.E. Howard). (3) 혹자는 바울을 지지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을 의미한다고 한다. (4) 혹자는 이 편지가 수리아 안디옥에서 남쪽 갈라디아에 보내 는 것이라고 보고 '형제들'이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Longenecker). (5) 혹자는 이 편지가 고린도에서 북쪽 갈라디아에 보낸 편지라면 고린도에 선교가 시 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믿기시작한 사람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본다(Hendricksen). 위의 견해들 중(4),(5)번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 다른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수신자에 대한 칭찬과 존경 에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마 그의 불편한 심기(心氣)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교회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교회냐 하는 문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1차 전도 여행 때(A.D. 47-48) 복음을 전했던 곳으로서 바울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들 었던 교회들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곁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해 본서를 쓰고있다. =====1:3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 , 파트로스)로 부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주'(* , 퀴리 오스)라는 칭호를 붙여 쓰고 있다. 이 두 칭호는 사도 바울의 신앙을 대변할 뿐만 아 니라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 오스'는 히브리어의 '아도나이'(* )와 같은 뜻으로 70인역에서는 '야웨'(* )를 읽을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 신약에서의 예수의 호칭 가운데 하나인 '주'의 헬 라어 '퀴리오스'는 구약의 '야웨'와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상 동일함을 보여준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예수를 '주'로 섬김으로써 유일한 믿음의 대상(행 5:14;9:42;11:24)으 로 여겼으며 또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분으로(행 7:59, 60:고후 12:8) 믿 었다. 은혜와 평강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 )는 죄로 인해 더러 워진 인간에게 자유와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게속적인 선물을 뜻하며 '평강'의 헬 라어 '에이레네'(* )는 히브리어의 '샬롬'(* )으로 그리스도로 인 해 하나님과 죄인사이에 이루어진 평화를 뜻한다. =====1:4 이 악한 세대에서 - '세대'(* , 아이온)의 시간적 개념은 현재적인 시점과 다가오는 시점을 포함한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악한세대'는 '다가오는 세대' 즉 영원 한 축복의 세대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세대'를 의미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준으로 이전 시대를 가리켜 '이 세대'(* , 하 올람 하제)라 칭하였고 메시야가 도래한 이후의 시대를 '올 세대'(* , 하올람 합바)라고 하였다. 결국 '세대'에 대한 신약의 개념은 구약에서 유래(由來) 된 것이다. 바울은 본절에서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이 세대'를 언급하면서 '악 한'(* , 포네루)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 '이 세대'가 갖는 특성을 강조 하였다(Longenecker).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돈토스 헤 아우톤'(* )은 앞 구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 하는 형용사절이다. 이렇듯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하는 예를 다른 서신들의 서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가지고있는 오류가 독특하 였고, 따라서 바울이 이를 시정해 주기 위해 본 구절을 덧붙여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Mare). 즉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 의 죽음을 제시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외에 다른 것을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며,율법을 섬긴다는 이유로 예 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시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볘반하는 일임을 경고한 것이다. =====1: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 바울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 이는 흔히 인사말 뒤에 나오는 부드러 운 송영(頌詠)의 의미라기보다는 롬 1:25절에 나타나는 송영과같이 하나님과 아들 예 수에 대한 헌신과 충성다짐하는 의도를 지닌다. 아멘 - 헬라어 '아멘'(* )은 히브리어(* , 아멘)에서 유래되었다. 바 울에게 있어서 아멘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나 서신서의 결미어로 사용되었다(롬 16:27;빌 4:20 등). 본절에서 '아멘'은 하나님께대한 찬양과 영광이 영원히 있을 것이 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악한 세대'의 일시적이며 덧없는 속성과 선명한 대조를 보여 준다.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 - '부르신 이'는 3절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며(엡 1:3-5;벧 전 1:2) 또한 계획하신 대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분이시다(고전 1:9). 바울은 이 처럼 당신의 자녀를 부르시는 분이 삼위 중에 제일 위격인 성부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 러번 강조했다(15절;롬 8:30;9:24;고전 7:15, 19;살전 2:12 등). 하나님이 성도를 부 르시는 것은 명백한 계획으로 되었고 그 계획은 완전하며 하나님의 의지에 속하는 것 으로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갖는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1)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케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전 1:9). (2) 성도들로 하여금 부정한 가운데 있지 아니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셨 다(살전 4:7). (3) 평화를 위하여 부르셨다(고전 7:15;골 3:15). (4)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부르셨다(살전 2:12). (5)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얻게 하기위하여 부르셨다(살후 2:13). 이와 같이 성부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구원을 얻게하 셨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는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자들이 있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는 거짓된 유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빙자(憑藉)하여 율법의 교훈들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속히 떠나 - '이같이'(* , 후토스)라는 말속에는 바울의 깊은 탄 식과 안타까움이 있으며 '속히'(* , 타케오스)라는 표현 속에는 전혀 기대 하지 못했던 상황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 이 거짓 복음을 좇은 것도 이상한데, 상상외로 빠르게 복음을 떠나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더욱 의아해 하고,안타까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 교인들 중 유대주의를 추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룩한 삶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진리를 버리고 구원에서 떠나는 자들이 되었을 것 이다.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 '다른'(* , 알로)은 6절에 사용된 '다른'(* , 헤테론)과 차이가 있다. 즉 '알로'는 많은 것들이 있는 가운데 다른 것을 지칭하고, '헤테론'은 단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TDNT). 이렇게 볼 때 본절에 '헤테론' 대신 '알로'가 사용된 것은 복음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 음을 알수 있다. 한편 6절의 '다른 복음'은 '또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 왜곡된 복음을 의미한다(Cole). 왜곡되어 그릇된 복음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 님께서 주신 것으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요란케 하여 - 헬라어 '타랏손테스'(* )는 문자적으 로 '소란케 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이단어는 행 17:8에서 바울을 시기하는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켰던 일에 사용되기도 했다.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소란케 하는내용은 (1) 복음을 변질시키며, (2) 교회의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1:8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 갈라디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 게 거짓의 율법을 강조하면서 천사에 대해서도 가르쳤는지 모른다(Cole).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천사를 율법의 중보자(仲保者)로 생각했다. 특히 이러한 사상은 후기 유대 교의 이단들에게서 부각되었다. 아무튼 바울은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복음을 왜곡시키 려는 것은 도무지 용납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설명한다. =====1:9 누구든지...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바울은 8절에 이어 저주를 반 복한다. '저주'의 헬라어 '아나데마'(* )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것 으로 우상이 파멸되는 것과 갈은 저주를 뜻한다(신 7:26). 바울은 이 단어를 같은 의 미를 가진 '카타라'(* )와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카타라'는 3:10, 13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았던 저주는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저주를 대신 지신 것이다. 이제 예수 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은 저주를 부인하고 다시 율법의 저주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는 우상의 파괴와 같은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누구든지'라는 말은 '다른 복 음을 전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하는봐 앞절의 '어떤 사람들'(7절), '하늘로부터 온 천 사들'(8절), 심지어는 사도 바울 자신까지 포함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 나님의 뜻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否認)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저주 를 받을 것임을 바울은 극령하게 보여준다. =====1:10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적인 배 경을 갖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던 것 같다. 그래 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한 바울의 가르침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율법의 요구 들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 을 얻으려는 인간적 야심을 결코 갖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종'(* , 둘로스)은 한 주인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바 울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열심을 가진 자였으나 이제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에 게 철저히 복종한다. =====1:11 형제들아 - 헬라어 '아델포스'(* )가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조상을 가진사람'(행 3:22;롬 9:3), '믿음으로 연합한 가족'(마 23:8;롬 1:13). '그리스도의 동역자'(고후 1:1)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포괄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 로 받아들이고 참된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바 울은 여기서 갈라디아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지칭하여 이 말을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 헬라어 본문에서는 본절의 '뜻'에 해당하는 단 어가 없고 다만 '사람을 따라'(* , 카타 안드로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문맥상 4절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 카타 토 델레마 투데우)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사람 의 뜻을 따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처럼 바울은 반대되는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사도권이 사람의 전승이나 인위적인 교육등에 의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1:12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에서 유대교의 사도로 일한적이 있었다. 당시 사도의 개념은 산헤드린이나 여제사장 등 높은 직위에 있는 종 교 지도자들로부터 명령을 받아 임무를 완수하는 자들을 칭하기도 했다. 바울이 다메 섹으로 향할 때에 그의 임무는 이러한 성격의 것이었다(행 9:2). 그러나 바울 사도는 지금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이전에 사람들의 명령에 따라 하는것과 다르다는 것을 주 장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바울은 반복적으로 부정어를 사용하여 사도권의 근거 를 피력하다가 이제 접속사 '알라'(* , '그러나')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전한 복음이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의 열 두 제자들과는 달리 바울은 예수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사도적 권위에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주님과의 만남을 기 점으로 사도의 사명을 받았다(행 9:4-26). 또한 열 두 제자들이 비록 바울보다 먼저 사도가 되긴 했지만, 그들 역시 성령에 대한 약속(요 14:16;16:13)이 오순절 사건으로 성취된 이후에야 비로소 사도가 되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을 받아 비로소 사도로서 활약했듯이 바울은 다메섹의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 접 만나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1:13 유대교에 있을때에 행한 일 - '행한'의 헬라어 '아나스트로펜'(* )은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그가 행한 일들과 근본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을 포함 한다(Huxtable). 바울이 여기서 '유대교'(* , 유다이스모)라는 호 칭을 사용하는 것은 비록 바울이 이전에 유대교에 속하여 모세 율법을 삶의 절대적 표 준으로 삼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자 했지만, 유대교가 단지 '인간 종교 집단'에 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제 유대교에서 벗어나 객관적 입장에서 자신 이 과거에 유대교를 위해 일했던 사실을 회상(回想)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있어서 가히 광신 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편견과 교만으로 교회를 핍박했다. 본절 에서 '하나님의 교회'(* , 엑클레시아 투 데우)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1)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메시야이신 예 수를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2) 구약 시대에는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아 특권을 누리고 있었으나, 신약 시대에 는 교회가 참 이스라엘로 전이되었다. 따라서 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하는 열심으 로 교회를 핍박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었다. =====1:14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 바울이 과거에 유대교를 신봉했던 정도를 나타내는데, '지나치게'의 헬라어 '프로에코프톤'(* )은 '길을 밝히다', '숲에 서 앞서서 길을 개척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Robertson). 유대교의 대학자인 가말리 엘 문하에서도 뛰어난 제자였고 유대교에 속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나아가고 있었 다. 이처럼 유대교에 대해 열심이었던 바울은 율법과 랍비들의 전승에서 해방되어 복 음으로 말미암은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게 되었다. 만약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한 자유자가 되지 못했다면 할례와 율법을 돌아보는자(행 15:5)가 되고 말았을 것이 다.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하여(12절) 그 높은 율법의 벽을 훌쩍 넘어설 수 있었다. 내 조상의 유전 - 유대인의 율법은 두 가지 형식을 취했는데 하나는 정언적 (categorical) 또는 절대적(absolute)이며 또 하나는 결의법 또는 판례법 형식이다. 전자는 십계명과 같이 예외가 없는 지상 명령의 성격을 띤 것으로 운율을 가지고 있어 예배시에 낭송되거나 암송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반면에 후자는 실제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관습법과 같은 것으로 본절의 '유전'(tradition) 은 후자에 가깝다. 랍비들은 613개 조항의 법 조문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바로 전자를 실생활에 확대 적용하여 세분화(細分化)한 것이다(Lenski). 결국 '유전'은 인간이 만 들어 놓은 것이다. 바울은 인간이 만든 유전의 울타리에 갇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 였다. =====1:15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 '택정하시고'의 헬라어 '아포리사스'(* )는 '어떤 경계로부터 떨어지게 한다'는 뜻으로서 어떤 특정한 직분이나 사역에 관련 하여 성별(性別)됨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2:12;행 19:9).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부르심이 '어미의 태로부터'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사 49:1;램 1:5). 바울 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울 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과 예정을 선지자나 사도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 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된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다(롬 9:11). =====1:16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때에 - 예수께서 바울의 영혼과 마음속에 내적 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냈음을 말한다. 바울은 내적 계시를 통하여 예수가 누구시 며 그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본절은 또한 역사적으로 다 메섹 도상의 체험(행 9:1-9)을 시사하며 아울러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Chrysostom, Huxtable). 이렇듯 바울이 내적 계시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말씀을 소유한 것은 자신의 이해를 위한 것일뿐만 아 니라 이방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1:17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오직'(* , 알라)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또한 구 태여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16절) 을 언급하고 있는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아라비아'는 매 우 광범위한 지역이기 때문에 바울이 갔던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하개 알수 없다. 사실 다메섹도 아라비아에 속한 곳이므로 다메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갔으리라 추 측된다(Cole, Huxtable). 혹자는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여 이곳을 시내산 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Lightfoot). 그러나 이 견해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 의미상 '아라비아'는 예루살렘과 상관없는 장소이며 또한 바울 자신이 개인적으로 예수의 계 시를 체험하고 이해한 장소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남으로 그의 삶과 가치관이 변화되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계시를 체계화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 을 것이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그의 사역을 준비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나 가 기도하신 것과 유사하다. 바울은 광야에서 혈육과 분리되고,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영향도 받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계시, 즉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사역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을 가졌다. =====1:18 그 후 삼 년 만에 - 본 구절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1) 바울이 회심하고나서 삼 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즉 문맥상 바울이 자신의 독특한 회심을 강조 하고 있기 때문에 회심에 역점을 두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Boice, Huxtable, Lenski).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온 때로부터 삼년이 경과되었다는 것이 다. 아무튼 본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게바를 만나기 전에 상당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어떤 학자는 3년이란 기간을 문제삼아 본문의 기록이 행 9장에 나타난 바울의 행적과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누가가 행 9장에서 바울 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할때 '아라비아로 간것'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기때문이다. 그 러나 누가의 침묵이 바울의 아라비아행을 부정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는 못된다. 누가 는 단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아니한 기간에 대하여 침묵한 것뿐이며, 그 반면에 바 울은 본서에서 게바를 만나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재정립(再定立)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는것이다. 게바를 심방하려고 - '심방하려고'의 헬라어 '히스토레오'(* )는 영 어의 '히스토리'(history, '역사')의 어원이 되는 말로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 이다. NEB는 이를 '게바와 가까워지려고'(to get know)라고 번역하였다. 본 구절은 행 9:26-30에 기록된 사건으로 바울은 바나바에 의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된 이후에 베드로를 찾아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주장하면서 베드로와의 만남 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다. (1) 2절에 서 언급한 자신을 지지하는 '형제' 가운데 베드로가 포함되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이 다. (2)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이 방문이 사적인 방문이며 어떤 인간적인 권위의 지지 를 얻으려는 방문이 아니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 이 주께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양자가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하겠으나 문맥상 후자를 택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사도는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 자신이 사도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5일 동안 머무르며 게바를 통 하여 예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바울은 그때에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과 가르침을 바르게 정립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 로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설명하였을 것이다. =====1:19 주의 형제 야고보 - 바울이 만난 야고보가 세베대의 아들이면서 요한의 형제인 야 고보(마 10:2)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가 아니라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라는 것을 분명히한다. 예수의 선교 초기에 그의 형제들과 친족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미친 자로여겼다(막 3:21;요 7:5).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그들은 어 머니 마리아와 함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진실한 신자가 되었으 며(행 1:14)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영향력있는 지도자가 되었다(2:9, 12;행 12:17;21:18 등). 어떤 학자는 바울이 야고보를 사도로 인정하느냐 또는 인정하지 않 느냐에 관심을 가지지만(Cole), 당시 교회의 보편적인 사도 개념으로 이해할 때 지도 자인 야고보를 사도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바울이 왜 열두 제자 중 베드로 외에 야고보만을 보았다는 것을 강조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바울은 예수에 대한 보다 넓고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수제자를 택했으며 또한 예수 의 친형제를 택한 것 같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도 너그러웠으며 온유한 인격을 소 유하였으므로 바울에게도 친절하게 예수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1:20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 바울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교회의 구성원 중에는 아직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 었던 것 같다. 아마도 바울이 교회의 지도자들과 충돌할때에 발생되는 문제는 그의 진 정한 사도권에 관한 것이었지만, 교회의 구성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의 마음을 아 프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지난 날에 그들을 핍박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거짓 교사들을 멀리 하고 복음에서 떠나지 말라고 엄숙하게 권고하고 있다. =====1:21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의 연대기적인 행적 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를 들 러 길리기아 지방으로(행 9:30) 갔다가 안디옥에서 함께 사역하기를 바라는 바나바의 요청에 의해 수리아지방으로 갔다(행 11:25,26). 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동남부 연안 지대로서 바울의 고향인 다소를 포함하는 지역이며 수리아는 팔레스틴 북부 지역으로 수도인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지역이다. 바울이 이 두 지역을 언급하는 것은 (1) 예 루살렘 교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먼 곳에서 사역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며, (2) 또한 예수를 만난 이후에 복음을 위해서 열심으로 헌신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 다. =====1:22 유대에...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 '얼굴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프로소포'(* )는 '개인적으로'라는 의미이다(Longenecker). 행 8장에 나타난 박해로 인해 유대 지방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어떤 인물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지 구체적으로 아는사람은 예루살렘 교회에 국한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변방(邊方)에 있던 유대인의 교회는 바 울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Cole).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 바울이 13절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는데 본절 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표현한 것은 유대교의 회당과 구분짓기 위함인 것 같다(Cole). 또한 이러한 표현은 살전 2:14의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라는 표현과 동일한 용어로 보인다(Longenecker). 그러므로 본문 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따로 교회로 모이는 것을 시사한다거나, 유대 지역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지역 교회의 형태를 가졌음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편 '교회'를 복수인 '엑클레시아이스'(* )로 사용하는 것은 단지 유대 지역에 있는 교회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의 교회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행 9:30). =====1:23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 '지금'(* , 뉜)은 현재 사실을 과거 사실 과 대조하여 사도 바울이 회심한 사실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낸다. 교회를 핍박했던 바 울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바울로부터 직접 핍박을 받았던 유대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되고도 남았 다. 본문은 바로 그와 같이 변화된 바울을 두고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했 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Ernst Bammel). =====1: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돌리니라 - 본절의 이면(裏面)에는, 바울의 사도직과 메시 지를 부정하면서 정면으로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에 대해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한 모습 과 바울의 초기 선교 사역의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 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한편 본절의 내용은 하나 님께서 당신의 종에 관하여 말씀하신 부분인 사 49:3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Longenecker).
갈라디아서 2장 [개역개정]
갈라디아서 2장 [개역개정]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개역한글]
갈라디아서 2장 [개역한글] 1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2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라디아서 2장 [공동번역](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갈라디아서 2장 [공동번역](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바울로와 다른 사도들] 1. 그리고 십 사년 뒤에 나는 디도를 데리고 바르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습니다. 2. 나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올라 갔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과 따로 만나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해 놓은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3. 나와 동행했던 디도는 그리이스 사람이었는데도 그들은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4. 그런데 가짜 신도들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몰래 들어 와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엿보고 있었으므로 실상 디도가 할례를 강요당할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5. 그러나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려고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6.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보지 않으시므로 소위 지도자 라는 사람들이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든간에 나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그들도 나에게 어떤 새로운 제언을 한 일은 없습니다. 7. 도리어 그들은 마치 베드로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8. 곧 하느님께서 할례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을 베드로에게 주신 것같이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직을 나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9. 그뿐만 아니라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은총을 인정하고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10. 한 가지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전부터 열심히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게파에게 면박을 주는 바울로] 11. 그러나 게파가 안티오키아에 왔을 때 책망받을 일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12. 그의 책망받을 일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게파가 이방인 교우들과 한 자리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들어 오자 그는 할례를 주장하는 그 사람들이 두려워서 슬그머니 그 자리에서 물러 나갔습니다. 13. 나머지 유다인들도 안 먹은 체하며 게파와 함께 물러 나갔고 심지어 바르나바까지도 그들과 함께 휩쓸려서 가식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16.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는 길이 율법을 지키는 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가 죄를 조장하시는 분이란 말입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18. 만일 내가 전에 헐어 바린 것을 다시 세운다면 나는 스스로 법을 어긴 사람이 될 것입니다. 19.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일이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우리말성경]
갈라디아서 2장 [우리말성경] [사도들의 인정을 받은 바울] 1. 그 후 14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따른 것으로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도 제시했습니다. 다만 유명하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별적으로 복음을 제시했는데 이는 내가 달음질하고 있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었지만 억지로 할례를 받도록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4. 그 이유는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5.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가 여러분에게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6.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러한 사람들이 누구든 간에 내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 유명하다는 사람들은 내게 아무것도 보태 준 것이 없습니다. 7. 오히려 그들은 베드로가 할례받은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처럼 내가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알았습니다. 8. 베드로가 할례받은 사람의 사도가 되도록 역사하신 분이 내게도 역사하셔서 이방 사람의 사도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9. 기둥같이 여김받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청했습니다. 우리가 이방 사람에게로, 그들은 할례받은 사람에게로 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10. 다만 그들은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는데 이것은 나 또한 힘써 행해 오던 일입니다. [베드로에 대한 책망 ] 11. 그러나 게바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에게 책망할 일이 있어서 얼굴을 마주대하고 그를 책망했습니다. 12. 게바는 야고보가 보낸 몇몇 사람들이 오기 전에 이방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자 그는 할례받은 사람들을 두려워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13. 그러자 다른 유대 사람들도 게바와 함께 위선을 행했고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휩쓸렸습니다. 14.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대로 바르게 행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게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 사람으로서 유대 사람처럼 살지 않고 이방 사람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 사람에게 유대 사람처럼 살라고 강요합니까?”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음] 15. 우리는 본래 유대 사람이요, 이방 죄인들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을 알기에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으려 하다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시는 분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18. 만일 내가 허물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려 한다면 나 스스로 율법을 어기는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율법으로 인해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 대해 살고자 함입니다.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만일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는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게 죽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현대인의성경]
1 그로부터 14년 후에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파하는 기쁜 소식을 공식 석상에서 전하였고 지도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한 일과 현재 하는 일이 헛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습니다. 3 나와 동행한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었지만 억지로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4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몰래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몰래 들어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다시 율법의 종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을 언제나 기쁜 소식의 진리 안에 있게 하려고 한시도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6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제시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건간에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7 그들은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같이 내가 이방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은 것을 보았습니다. 8 베드로에게 능력을 주어 그를 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을 주어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신 것입니다. 9 그리고 기둥 같은 지도자로 알려진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10 또 그들은 우리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고 부탁했는데 그 일은 내가 전부터 열심히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11 그런데 베드로가 안디옥에 왔을 때 그가 잘못한 일이 있었으므로 나는 여러 사람 앞에서 그를 책망하였습니다. 12 그것은 그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 몇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나가 버린 일이었습니다. 13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도 안 먹은 체하며 밖으로 나갔고 바나바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유혹을 받았습니다. 14 그래서 나는 그들이 기쁜 소식의 진리대로 바로 살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에게 유대인인 당신이 이방인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방인에게는 유대인답게 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고 책망했습니다. 15 우리는 날 때부터 유대인이지 소위 말하는 이방 죄인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되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사람은 없습니다.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고 하다가 우리 자신이 죄인으로 판명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18 내가 이미 헐어 버렸던 율법의 체계를 다시 세운다면 나는 율법을 범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19 나는 율법에 관한 한 율법 그 자체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해 살기 위해서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21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귀중합니다. 만일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된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주석
갈라디아서 제 2장 =====2:1 십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 사 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세 번에 걸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첫번째 방문은 그가 회 심한지 삼년 후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고(행 9:26), 두번째 방문은 안디옥 교 회의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으며(행 11:29,30), 세번째 방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하러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행 15:1 이하). 본절에 나타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이 이차 방문인지 삼차 방문인지 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갈라진다. 먼저 두번째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견해 (Bruce, Calvin)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행 15장의 세번째 방문은 공적 회의에 참석한 것이지만, 2절에 의하면 바울은 개인적으로 예루살렘 지도자를 만났으므로 세 번째 방문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2) 행 15장에는 디도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 어 있으나 본절에는 디도와 바나바가 동행(同行)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본구절 의 방문은 세번째 방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다. (3) 본절의 '다시'를 두번째 방문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견해는, 만일 1:18에 기록된 방문이 첫번째 방문이라 면 문맥상 본 구절의 방문이 두번째 방문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진다. 다음으로 세번째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Berkhof, Eerdman, Findlay, Robertson). (1) 행 15장과 본장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인데, 두 곳 모두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할례'를 다루고 있다. (2) 행15장에서 지도자들 간의 연합을(행 15:8,9) 강조하고 있는데, 본장에서도 동일하게 연합을 서술하고 있다 (9절). (3) 행 15장이나 본장이 모두 유대주의자들에 대하여 단호한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이상의 견해들 가운데 본절이 말하는 바울의 방문이 세번째 방문이라는 것이 더 욱 타당한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예루살렘 공의회의 연대를 A.D. 49년경으로 보고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연대를 추정하면 1차는 A.D. 35년, 2차는 A.D. 46년(행 11:30;12:25), 3차 방문은 A.D. 49년에 이루어졌다. 여기서 만일 본장의 방문을 2차 방문과 연결시킨다면 바울의 1차 방문은 A.D. 46년에서 14년 전인 A.D. 32년의 되며 또한 그가 회심한 시기는 그보다 3년 전인 A.D. 29년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때가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이어야 하므로 불가능하다. (2) 두번째 방문을 주장하는 자들은 디도에 대한 언급이 행15장에 없다는 이유로 세번 째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디도에 대한 기록은 사도행전 전체에서 누락되어 있다. (3) 바울이 두번째 방문을 생략한 것은 무슨 속임수나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이 방인의 할례 문제를 다루는 본장에서 다른 주제, 즉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 문제를 취급한 두번째 방문에 대하여 언급할 필요성을 못느꼈기 때문이다. (4) '다시'(* ,팔린)는 두번째를 뜻하기도 하지만 요 18:27에서 베드로의 세번째 부인 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두번째'를 의미하는 헬라어 '듀테론'(* ) 을 쓰지 않고 '팔린'을 사용한 것은 단지 방문의 반복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바나바 - 그는 레위 지파 출신의 유대인으로 구브로에서 태어나 바울보다 먼저 복 음을 받아들였던 사람으로서 이방인들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 교회로 파송되었다(행 11:22). 그의 본명은 요셉이 었으나 사도들은 그를 '권위자', '권위의 아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바나 바'로 불렀다(행 4:36).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소(행 11:24) 초대 교회의 헌 신적인 지도자였다. 그는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고 바울의 체험을 변호하며 함께 사역하였으나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마가의 동행 문제로 바울과 결별(訣別) 하게 되었다(행 15:36-41). 디도 - 그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으로서 고린도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목회자이다(고후 8;23;12:18). 본절에서 이방인의 할례 문제로 등장하는 그는 바 울이 '나의 참 아들 디도'라고 말할 만큼 바울의 총애를 받았으며 그에 대한 성경의 마지막 기록은 그가 로마에서 달마디아로 갔다는 것이다(딤후 4:10). =====2:2 계시를 인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아포칼립신'(* )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어떠한 인간적인 동기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준다. 한편 행 13장에서는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이방인을 위해 파송되는 과정이 안디옥 교회의 결정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바울의 선교 사역이 교회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본절에서 언급된 바, 바울의 선교 사역의 동기가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은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결정 배후 (背後)에 하나님의 계시하심이 있음을 확신하였을 것이다(Hendriksen) 달음질하는 것 - 바울은 개종 이후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당시의 운동 경기를 염두에 두어 묘사하였다. 그의 달음질은 향방없는 것이 아니라(고전 9:26) 분명하고 확고한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그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도자들을 사사로이 만나는 면밀한 계획을 갖기도 하였으며 교회의 화합과 일치를 위해 지도자로 서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결국 변하거나 바울의 달음질을 헛되게 하는 것은 자 신이 아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이었으므로 본절에는 바울 자신이 유대주의자들의 모든 거짓된 것들을 반드시 고치고야 말겠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2:3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 으시고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자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거행하도록 명령하셨다(창 17:10-14). 그러나 세월이 경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의 언약적인 의미보다는 종족적이며 문화적인 우월감의 상징으로서 외적인 할례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급 기야는 구원을 위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교 회안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것과 함께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 이 된다고 주장하여 이방인 신자들에게까지 할례를 강조했다. 할례에 대한 보다 자세 한 내용은 구약 호크마 창 17:1-14의 주제 강해 '할례 언약과 세례', 창 34:25-31의 주제 강해 '할례 실시에 따른 제반 사항'을 참조하라. 한편 '억지로...아니하였으니' 의 헬라어 '우데...에낭 카스데'(* ... )는 할례를 주장하는 강한 압력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는 바울의 굳건한 의지를 나타낸다.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 교사들의 회유(懷柔)에 말려들어 할례를 중요하게 생각한 상황에서 바 울이 할례받지 않은 디도를 유력한 증인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디도가 갈라디아 교회의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2:4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 '거짓 형제'의 헬라어 '프슈다델푸스'(* - )는 '프슈데스'(* )와 '아델포스'(* )의 합성어이다.'프슈데스'는 '거짓 사도'(고후 11:13),'거짓 선지자'(벧후 2:1) 등에서 처럼 '거짓'이라는 의미를 가진 접두사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본절에서 '파레 이사크투스'(* ,'가만히 들어온')와 함께 이 말을 사용하여 은밀하고 은근하게 복음을 훼손시키는 거짓 교사들의 교활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한 편 바울이 1:11에서 유대주의자들에게 미혹된 갈라디아 교인들을 '형제'라고 부른 것 은 그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본절에서 유대주의자들을 향하여 '거짓 형제'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 속에 그들이 설 자리가 없음을 나타낸다.그 러나 그들이 누구인가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들은 최소한 내부에서 믿음을 배반한 사도들이나 성도들은 아닐 것이다(Lenski).아마 '거짓 형제'는 (1) 예루살렘 공의회에 서 이방 그리스도인도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을 주장하며 모세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 자들이거나 (2) 공의회의 결과가 갈라디아와 안디옥 교회에 소개되었다(행 15:30). 그 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에는 계속해서 교인들을 미혹하는 유대주의자들이 존재했으 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케 된 성도들을 다시 율법 아래로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더욱이 그들은 신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열심은 있으나 실제로는 복음을 거부 하고 교회를 파괴하려고 하였다(고후 11:26;벧후 2:1). 이러한 갈라디아 교회의 형편 가운데서 디도가 할례 받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은 자유 얻은 자로 하여금 자유를 잃 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2:5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 복종을 요구하던 자는 디도에게 할례를 요구했던 무리들로 국한시켜 이해하기보다는 더욱 광범위한 의미에서 유대주의화를 꾀하던 '거 짓 형제'들이 라고 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사도 바울 일행은 위의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나 율법을 강조하는 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어떤 서방 사본들 에서는 '호이스우데'(* , '...한 자들에게 조금도...않다')가 생략되 어 본 구절이 '잠시동안만 복종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사본에 의하면 바울이 잠 시 동안만 평화를 위하여 타협할 수도 있었던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베자(Bezae) 사 본을 제외한 모든 언셜(Uncial) 사본과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P46), 그리고 고대 헬라 교부의 번역에서 '호이스 우데'는 생략되어 있지 않다. 또한 본장의 문맥상 바울이 거 짓 형제들과 조금이라도 타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지금까지 달려온 길이 헛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할례는 초대 교회의 최대 논쟁이 며 또한 복음에 대한 최대의 도전(挑戰)이었다. 이 논쟁 앞에서 바울이 진리를 양보했 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Lenski). 복음의 진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알레데이아 투 유앙겔리우'(* )는 본절과 14절에만 나오는 것으로 '결 함이 전혀 없는 복음'(Lightfoot) 또는 '진리가 담겨 있고 진리에 속해 있는 복음' (Burton)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복음을 들어 언급하는 것은 디도의 할 례 문제는 한 개인의 구원 문제에만 제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 문제에 직결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2:6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 바울은 세 번에 걸쳐 '호이 도쿤데스'(* ,'유력한 자들')를 사용하여(2절) 베드로, 요한,야고보 등 예루살렘의 사도를 지칭하였다(9절). 이러한 호칭 후에 곧바로 하나님은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고 언급하 는 것을 보면 바울이 이 호칭을 풍자적 의미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Cole).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 헬라어 본문에 나와 있는 후치사 '가르'(* )는 선행 구절을 보다 충분하게 설명해 주는 삽입구가 시작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 구절은 선행 구절에서 제시된 '외모를 취하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어떤 유 명한 자들일지라도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 접 받은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과 동시에 예루살 렘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 명하고자 했다. =====2:7 내가 무할례자에게...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 여기서 '할 례자'와 '무할례자'는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킨다(롬 4:9;엡 2:11 등). 유대주의자들은 베드로와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서로 다른 것이 있다고 주장한 것 같다(Lenski). 그러나 바울은 사역상 서로 다른 책임이 있을 뿐 어디까지나 복음의 내용은 동일(同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바울이 할례자에게 복음 전하는 자로 열 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 를 대표로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정해 볼 수 있다. (1)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Lenski, Huxtable). 그러나 전자는 타당하 지 않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복음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가 이사랴와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또한 그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행 15:7). 바울 역시 이방인들에 게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한 바 있다(행 23:11). 그는 또한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행 26:20ff.)보아, 본절에서 바울이 의도 하는 바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자신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베 드로와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2:8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 - '사도로'의 헬라어 '에이스 아포스톨렌'(* )은 베드로의 지도자로서의 자리를 명확하게 인정하는 표현이 다. 바울은 베드로보다 가문이나 학문에서 뛰어난 자로소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 었으나 자신을 베드로보다 우월한자로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는 바울의 겸손함이 포함 되어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바울이 이와 같이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사도로 세우신 이가 동일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을 사도로 세우신 하 나님과 베드로를 사도로 세우신 하나님을 동일시함으로 자신의 사도됨을 증거하고 있 다. 두 사도 중에 하나는 유대인을 중심으로, 또 하나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사역했으 나 그들의 사역의 내용은 같은 것이었으며 둘 다 동일한 섭리와 은혜에 의하여(고전 15:9,10)사도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맺어지는 열매도 무할례자 이거나 할례자이거나 동일한 것이었다. =====2:9 기둥같이 여기는 - '기둥'(* ,스튈로이)이라는 표현은 중요성을 강조하 는 말이다. 탈무드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이스라엘의 세 '기둥'(* ,암무딤)이라 하였고 이스라엘의 계약 공동체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그들 위에 세 워졌다고 한다(Longenecker). 이러한 개념을 사용하여 바울은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을 '기둥'에 비유한 것 같다.실제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가는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지도자들이었다. 바울은 유대주의 자들을 향해 의도적으로 히브리적 개념을 도입 해 논리를 펴나가면서 세 사도가 갖는 비중(比重)을 강조하였다.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지도자적 입 장에 서 있었던 사실에 역점을 둔 것이다(행 15장). 먼저 야고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바울은 1:19에서 '주의 형제 야고보'라고 구체적으로 기록하였으나, 본절에서는 그냥 '야고보'라고 칭하고 있다. 이는 본장의 전체 맥락이 예루살렘 공의회를 언급하 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이었다(1:19 주석 참조). 바울이 다른 두 사도보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먼저 기록한 것은 우연의 일 치라기보다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의장으로서의 야고보를 설명하기 위함인 것 같다(Boice). 그러나 다른 사도들의 이름이 뒤에 나왔다고 해서 예루살렘 교회 속에서 이들의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 다음으로, 바 울은 모두 아홉 번에 결쳐 베드로를 언급하는데 일곱번은 '게바'라고 불렀으며(14 절;1:18;고전 1:12;3:22;9:5;15:5) 두 번은 '베드로'로 칭하였다(7,8절). 특히 유대주 의자들과 논의할 때 게바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베드로와 자신의 관계를 오해없이 설명하려 한 것 같다(Huxtable). 끝으로, 요한이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다는 기 록은 성경에서 본절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여러 곳에서 함께 등 장하며 또한 사역하였다(행 3:1;4:13;8:14 등)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덱시아스 에도칸 코이노니아스' (* )는 '교제의 오른손을 주었다' 라고 직역된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동의한다는 의사 표시였다 (Longenecker). 본절에 언급된 다섯 사람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야고보와 게바, 요한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 방인을 위한 복음 전파에 주력하였다. 이 두 그룹은 서로 독자적이면서도 하나님의 나 라를 건설하는 사역에 협력하였다(행 15:25,26). 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것은 사적(私的)인 장소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는 의미보다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공식 석 상에서 결의한 사항을 실행할 때에 함께 협력하기 위하여 공식적으로 손을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Lenski). =====2:10 가난한 자들 - 이에 해당하는 헬라에 '톤 프토콘'(* )은 '가 난'을 뜻하는 일상 용어로서 돈이나 재산이나 생활 수단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는 뜻으로 쓰인 단어이다. 신약에서 이 말은 '거지'에게도 사용되었으며 (눅 16:20) 주로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자들에게 사용되었다(마 19:21;눅 19:8;요 13:29). 당시 가 난한 자들은 복음 전파의 주요 대상이었다(마 11:5).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 게 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셨으며 자신을 찾아온 부자들에게 재산을 팔아 가 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마 19:21) 자신과 제자들이 함 께 거하는 공동체 속에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준비된 공동궤를 가지고 있었다(요 13:29). 사도행전에 와서는 '엔데에스'(* )라는 말이 등장하는데(행 4:34) 이는 초대 교회 안의 '가난한 자','궁핍한 자'로서 다른 사람들이 재산을 팔아 나누어 준 덕분에 살아가는 자들을 뜻한다. 초대 교회에 있어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제 문 제는 할례와 같이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히 행하여야 되는 임무로 인식되어 있었 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임무는 공의회의 결정에 의하여 수립된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요 13:29), 또한 초대 교회의 출발부터 교회가 감당했던 사명이다(행 24:17).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 바울은 믿음과 구제 문제를 믿음과 할례 문제처럼 대 립시키지 않는다. 바울의 힘써 행하는 구제는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외식적인 것이 아 니다. 본절의 구제가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알 수는 없으나 바울의 생애 가운데 구제의 사건은 여러 번 등장한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가 모은 구제 헌금을 가 지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으며(행 11:29,30) 여러 서신서에서 구제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행 24;17;롬 15:25-27;고후 8:1-5). 또한 그는 구제에 대한 교훈을 남겼으며(롬 12:13;엡4:28;딤전 6:18)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그 일을 위하여 정 직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엡 4:28). 이러한 삶의 요구는 선행이 신앙의 살아 있는 증 거요(약 2:14-17) 신앙 고백의 진실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요일 3:17,18) =====2:11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 여기서 베드로의 행위가 명백하게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 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더욱 뚜렷해진다. (1)'면책하였노라'의 헬라어 '안테 스텐'(* )이 문자적으로 '대항하다', '저항하다' 혹은 '반발하다'라는 의미로 베드로의 행위가 '복음의 진리'를 훼손(毁損)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있었음 을 시사한다. (2) '안텐스텐'의 시제가 부정과거로서 바울이 베드로를 성공적으로 책 망했으며 베드로는 바울의 책망에 대항하지 못하고 굴복했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Lenski). (3) 더욱이 바울은 베드로를 개인적으로 아니고 공개적으로 면책하며 저지 했다는 사실로 베드로의 잘못의 심각성이 더해간다(Hendriksen). 이와 같이 바울은 예 루살렘에서와는 달리 안디옥에서는 베드로보다 높은 위치에 서서 성도들을 대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이는 베드로의 잘못이 너무도 명백하여 견책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Robertson).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바울이, 신자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완전한 동등권을 항상 공격하며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좁고 치우 쳐 있는 유대 중심적 신앙관에 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며(Huxtable) (2) 예루살렘 교 회의 그 어떠한 권세자도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나아가 그것에 대하 여 책망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Cole). =====2:12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 본 구절은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던 식탁 교제나 성찬을 가리키는 것같다. 이것이 정식 예배였는지 아니면 비공식적인 그 리스도인의 모임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본절에서 초대교회 당시 유대 출신의 그리 스도인들이 이방 출신 그리스도인과의 식사를 꺼린 사실이 나와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 은 이유 때문이었다. (1) 유대인들은 레 11장에 있는 정함과 부정함에 관한 규례를 철저히 지켜왔고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준수하려 하였다(민 25장, 31장;단 1:8;토비 트 1:1-12;마카베오상 1:62).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그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이방인들이 먹는 음식 중에는 레 11장의 정결(精潔) 규례에 위배되는 것이 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따라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방 출신의 그 리스도인들과 식사를 함께 하지 않으려 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들을 부연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한 규정들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들은 그 종류가 대단 히 많고 다양했는데 초대교회 당시에는 하나님의 율법 못지않게 존중된 것으로 보인 다. 그 실례로 장로들의 유전에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데, 이는 단순히 위생상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고 이방 사람들과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손으로 음식을 먹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마 15;1-20;막 7:1-23). 위와 같은 이유로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이방인에 대한 배타심이 굳어져왔다. 이러한 것은 사마리아인도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사실이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 인에게 물을 달라고 할 때 그 여인은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대답한다(요 4:7-9). 따라서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뿐 아니라 대단히 죄악된 행동으로 간주되 기까지 했다(Hendriksen).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약의 율법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실제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 며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며 삶이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러한 사 실을 인식하고 늘어나는 이방 그리스도인에 대해 몇가지 제한 사항을 제시하고 다른 어떠한 율법의 행위로도 짐을 지우지 않는다는 결의를 한 바 있다(행 15:14-21). 저희가 오매...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 베드로가 이방 그리스도인과 함께 식사 하는 것이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오자 이방인들과 식사 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행동의 동기는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Hendriksen). 또한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랑이나 자기 확신에 의해 나온 행동이 아니라 거짓과 위선의 행동 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베드로의 외식적인 행동를 책망했다. =====2:13 남은 유대인들도...외식하므로 - 주님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 중 한 사람이요 공적 인 위치에 있었던 베드로가 한 외식은 유대교의 율법주의와 복음의 자유가 첨예(尖銳) 하게 대립되고 있는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베드로의 이러한 실수는 단 순히 개인적인 외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1) 다른 사람들 심지어 바나바같은 지 도자까지도 외식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근거가 되며 (2) 예루살렘 공의회(A.D. 49)의 율법 무용론에 대한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것이고 (3) 결과적으로는 율법주의에 굴복한다는 위미를 지닌다. 여기서 우리는 공적인 위치에 있는 지도자의 행동의 중요 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중요성과 함께 한 사람의 외식적인 행동은 다름 사람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막 7:1-23). =====2:14 모든 자 앞에서 - 바울은 베드로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 공개적으로 책망을 했다. 이는 (1) 베드로뿐만 아니라 여러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잘못을 했으며 (2) 공적인 잘못은 사적으로 고칠 수 없기 때문이고(Lenski) (3) 그러한 실수를 베드 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Hendriksen). =====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 본절에서 바울이 '본래 유대인'임을 밝히는 것은 그도 태어나면서부터 유대인의 종교적 특권을 지녔음을 보여주어 다른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반감을 줄이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Cole).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 이방인들에게 '죄인'(* , 하마르톨로 이)이라고 말하는 것은 윤리적인 판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유대인의 독선에서 나오는 이방인에 대한 통상적인 언급이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지만 본문에서 바울은 그 특권을 자랑하거나 또는 이방인들을 조소하기 위 해 '죄인'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비록 바울이 유대교 내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이방 죄인'으로 표현하였지만 이 말 속에는 매우 반어적(反語的)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즉, 당시 유대인들에 의해 죄인으로 간주된 이방인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사실은 스스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이방인들을 하찮게 여기며 조금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의 독선적이고 교만한 태도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이다(Cole).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 본절에는 법정 용어인 '디카이오스'(* , '의로운')에서 파생된 말이 세 번 반복되고 있다. '의'는 하나님의 속성에 속하는 것 이므로 그 근원은 인간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다. 본절에서도 이 용어가 수동 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능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 니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의롭다고 선언한다'는 뜻이지 '의 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의로움에 이를 수가 없다(롬 3:20). 그러나 의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 시는 것은 인간의 윤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이며 신적 표준에 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 본서에서 처음 나타나는 '율법'에 해당하는 헬 라어 '노모스'(* )는 바울 서신 중 특히 로마서와 본서에 많이 등장하는데 '의'(* , 디카이오쉬네), '행위'(* , 에르곤) 등과 함 께 복음의 핵심을 설명할 때마다 '믿음'(* , 파스티스)과 관련되는 개 념으로 사용되었다. 본절에서 관사없이 사용된 '노모스'는 모세의 율법을 지시하는 것 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선한 행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자 하는 인간들이 '자기 의'를 위해 구축한 규범들을 가리킨다. 그것은 유대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거짓된 규범들이 다. 인간이 만들어낸 규범으로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 인간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의롭다고 선언 하시게 되는 수단일뿐 절대적인 자격이나 요건이 되지 못한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믿 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자들을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이다(롬 5:18,19). 죄악 된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만이 인간들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할 수 있으며 이를 신뢰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이러한 믿 음은 생명력이 있어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역동적(力動的)인 삶을 살도 록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주의자들은 그 믿음에다가 할례와 같은 율법적이요 외적인 조건을 더 하려고 하였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본절은 시 143:2(LXX, 142:2)의 인용이며 아울러 롬 3:20 내용과 병행을 이룬다. 아래의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편의 '파스존'(* , '모든 생명') 대신에 로마서에서는 '파사 사륵 스'(* , '모든 육체')를 사용하였고, 로마서와 본절에서는 시편에 없 는 '율법의 행위'를 부가(附加)시키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단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2:17 그리스도 안에서 - 이 말은 바울 신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용어로서 그리스도와 성 도 간에 누리는 친밀한 개인적 교제를 시사한다. 그가 이방인에 대한 복음 전파 사역 을 강조하는 것도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며, 예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전파하는 것과 미래 세계에 대한 거룩한 소망을 가지는 것도 그가 그리스도안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유일한 신앙의 대상이며 동시에 전부라고 고백하 고 있다. 특히 바울 신학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아담 안에서'(롬 5:12-19)라고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아담은 죄와 사망의 옛사람을 대표하지만, 그리 스도는 자유와 생명의 새 사람을 대표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표현은 십자가의 죽 음과 부활을 실현하신 그리스도와 실존적으로 연합하여(롬 8:39;14:7;빌 2:1) 구원받 은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죄인으로 나타나면 - 본절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1) 바울이 유대주 의자들의 입장에서 이 말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Hendriksen). 다시 말해서 유 대주의자들이 의롭게 되기 위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율법을 폐기하는 죄인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할 경우에 대하여 그들을 위로하고 회심을 독려하는 문구로 해석한다 (Cole). 이 견해에 따르면, 유대주의자들이 예수를 믿고 율법을 폐기했다면 그들은 스 스로 이방인과 같이 율법을 도외시하는 죄인이 된 것이고 그것은 모세 율법보다 저급 한 수단의 삶으로 여겨질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그리스도마저 '죄를 위한 봉사자' (* , 하마르티아스 디아코노스)로 전락시키는 어리 석음을 범하는 것과 같다. (2) 바울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는 견해이다. 즉 바 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기속에 죄악의 본성이 남아 있음 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죄악된 옛 사람의 습관 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롬 7:24)라고 고백한 바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오히려 유대주의자들 앞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한다. 이 는 유대주의자들이 가진 의식법과 율법주의적 관점에서는 언제나 죄인인 것을 시인하 는 역설이다(R.E. Howard). 그가 유대주의자들의 관점에서 자신의 죄인됨을 시인한다 고 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신을 정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8:1). 본절의 해석은 자신이 계속해서 죄 인으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전체의 맥락과 연결시 킬 때 후자가 보다 타당할 것 같다. =====2:18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며 - 본문은 다분히 베드로가 유대주의자들을 두려워하 여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로부터 떠나 다시 유대인의 옛 습관으로 돌아간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다(2:11). 바울은 다메섹의 체험(행 9:1-7)이후에는 한 번도 뒤를 돌아 보지 아니한 일관된 삶을 살았음을 고백한다. 또한 율법의 공로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의도가 결단코 없음을 밝힌다.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 '범법한 자'의 헬라어 '파라바텐'(* )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가 정의되는 '하마르톨로스'(* , '죄인')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파라바텐'은 문자적으로 '배신자','이단자'를 뜻하며 본절자서는 바울 자신이 다시 율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 (背信) 행위가 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 바울은 '나'라는 1인칭 대명사 를 사용함으로 자신에게 있었던 실제적인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을 향하여 '죽는 다'는 표현은 모든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의미하며 더이상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었나니'의 헬라어 '아폐다논'(* )은 다음 절에 나 오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 쉬네스타우로마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들은 둘 다 단회적인 것으로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 갈 수 없으며 다시 십자가에 못박힐 수 없는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역설적으로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는 것은 '율법으로부터 벗어나 살아났다'는 표현이다. 로마서 에서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표현했는데(롬 7:4), 이 두 표현은 모두 단 순히 사변적인 표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경험한 것을 고 백한 말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죄악으로부터 밀려오는 좌절감과 실패를 극복할 수가 없다. 오히려 율법은 인간 속에 있는 죄를 더욱 죄되게 만든다. 율법은 단지 죄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믿음과 새 생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는 기능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2:20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 본 구절은 본서의 여러 곳에 거듭 언급되 는 내용으로(1:4;3:1,13;6:12,14)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초대 교회의 가르침의 초점이 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본절은 예수님을 핍박했던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변화 와 율법으로부터 단절되었다는 신학적인 논증을 나타낸다. 실로 그토록 교만하고 자존 심 강한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예수와 함께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유대교에 철저했던 그에게 있어 종래의 모든 삶과 사랑에 대 한 부정이요 새로운 삶을 향해 전환(轉換)을 이루는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이 변화된 삶은 그리스도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지고 고난 가운데서도 자기를 부인하며 그리스도 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이후에 그가 지고 가는 십자 가는 궁극적으로 고통의 삶이 아니라 오히려 영광과 승리의 삶이었다(W.G.Coltman). 한편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스타우로마이'(* )는 성도가 그의 십자가를 짐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에 영적으로 동참하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본서에 처음 등장하는 '십자가'는 율법의 요구를 완성 하는 의미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려 함이며(롬 8:4), 또 한 실존적으로 구약의 모든 율법적 요구들을 완성한 역사적 사건이다. 바울은 그리스 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이제까지 자기가 메고 있던 율법의 요구들로부터 자유 와 해방을 얻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이 짧은 구절 안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모두 언급되고 있다. 바울은 십자가 위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완성하시고 죽 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롬 6:4). 그리스 도와 바울의 완전한 연합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는 것이며 그 결과 그리스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옛 사람의 자기 교만과 바리새인의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잠시 동안 자신에게 패배감과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사심으로 인하여 얻은 자유와 평화는 그 고통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롬 8:18).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 본절에는 세 가지 변화가 나타난다. (1) '나' 대신에 '그리스도',(2) '율법' 대신에 '믿음',(3) 과거의 '옛 사람' 대신에 현재의 '새 사람'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울로 하여금 모든 변화를 경험하게 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율법 아래서 종노 릇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의와 사랑의 종이 되었으며(롬 6:19), 비록 제한된 육체 가운데 살지만 더이상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으며, 성령을 좇는 삶을 살게 되었다 (롬 8:4).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 안에서'사는 것이 다. 이는 과거에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고 애썼던 삶과는 판이하게 다르 다. 예수께서는 '내 말이 너희 안에'(요 15:7)라고 말씀하셨지만, 바울은 '아들을 믿 는 믿음안에'라고 말한다. 이는 주께서 우리 안에 계실때에는 말씀으로 존재하시며 우 리가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믿음으로 그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2:21 하나님의 은혜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바울 자신이 그 죽으심과 부 활에 참여하게 된 신비적 연합의 사건이 '하나님의 은혜'로 묘사되고 있다. '은혜'의 헬라어 '카린'(* )은 '하나님이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과 우리로 아들을 믿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 이다.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 '헛되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레안'(* )은 '연고없이','이유나 목적이 없이','불필요하게'등의 의미를 지닌다. 갈라 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이 다시 율법으로 도아갈 것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율법에 대한 애착심과 관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 들어 버리는 결정적인 잘못이다.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옛 생활에 대한 단순한 향수 (鄕愁)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자 하는 범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신 행위이다.
갈라디아서 3장 [개역개정]
갈라디아서 3장 [개역개정]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호소하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율법과 약속] 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하나님의 아들]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3장 [개역한글]
갈라디아서 3장 [개역한글]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5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