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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마25:35-40/ 성령강림주일설교/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15-05-10
그리스도인 마25:35-40 어느 분이 제 사무실에 방향기(芳香器)를 하나 놓아 주었는데, 제 방에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무슨 향기가 이렇게 좋으냐고들 했습니다. 방향기는 향기를 내뿜을 때마다 피익! 픽! 소리를 내어 혼자 있을 때는 깜짝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헌데 처음에는 호흡에 이상을 느낄 정도로 진한 향기를 뿜었으나 몇 달이 지난 지금에는 픽! 픽! 소리만 내고 향기를 내뿜지 않습니다. 아마도 향을 내는 진원이 다 말라버려 향기가 소멸된 것 같습니다. 향을 내뿜지 못하는 방향기? 다시 방향제를 넣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방향기는 무용지물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람다운 향을 뿜어내는 사람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기독교인들이 처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것은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서 많은 무리를 주님께로 오게 한 바나바가 다소에 가서 바울을 찾아 안디옥에 이르러 두 사람이 함께 일 년 동안 사역을 할 때였습니다(행 11:24-26).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인 동시에 웨슬리(J. Wesley) 회심 261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해서 참 그리스도인 상을 부각해보고자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란, 첫째 : 성령을 받은 사람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 해리슨(Harrison)은 “성령의 사역을 성도들에게 적용하고자 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시요 하나님의 영은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자기 속에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너희’란 성도들의 집합체일 뿐만 아니라 성도 각 개인을 의미하기도 하며, ‘거하시면’이라는 헬라어 ‘오이케오’는 ‘점검하다’ ‘점유하다’라는 뜻으로 일시적인 거주가 아니라 영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점령당한 사람이요 성령께서 영원토록 내주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집에 김○○가 살면 그 집은 김○○의 집인 것처럼 성령께서 내 안에서 사시면 그 사람은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통치와 지배, 다스림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와 너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의 점유물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점유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세계적인 화가 도레(P.G. Dore)가 남유럽을 여행하던 중 여권을 잃어버렸답니다. 출입국 관리 : 여권이 없으므로 통과시켜 드릴 수 없습니다. 도레 : 나는 당신도 잘 알고 있는 화가 도레라네. 통과시켜 주게나. 관리 :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유명 인사라고들 하지요. 도레 : 나는 정말 도레이네. 관리 : 그것을 어떻게 믿습니까? (도레가 간곡히 계속 부탁) 정 그러시다면 그림을 하나 그려 보시지요. 도레는 그곳에 펼쳐져 있는 계곡과 산들을 그렸습니다. 출입국 관리의 말입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확실히 도레이시군요. 도레 씨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러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니(롬 5:5).”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까? 성령이 내주하고 있는 자입니다. 성령이 내주하고 있음을 어떻게 압니까? 성령의 열매로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어떤 나무를 알고 싶으시나요? 열매를 보시면 된답니다(마 7:20).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충동을 받아 성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그곳에 모여 있던 무리들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두려워했고, 목숨을 아꼈으며, 숨어 있었습니다.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들이 되자 문을 박차고 나가 용감하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증거 하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의지로 무엇이 되어 보려 하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해보려고 한다면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한 참 그리스도인이 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할렐루야! 둘째 : 사랑을 나누는 사람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는 오른편에 양, 왼편에 염소로 구별된다.”라고 하시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십니다. 까닭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른편에 있던 의인들은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님께 그리하였나이까?”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오른쪽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상속권을 소유하게 된 이유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란 아주 미미한 자, 소외당한 자, 고통 받는 자, 즉 더없이 보잘것없는 자들을 의미한답니다. 구제와 자선은 다릅니다. 구제는 자기가 필요하지만 데어 주며 사랑하는 것이요 자선은 자기가 쓰고 남은 것을 가지고 베푸는 것입니다. 오른편의 양들은 자신들이 선행을 한 것도 잊고 있었으며 작은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바로 주님께 행하는 것임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순수한 사랑의 동기로 구제를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중세기 ‘로운 폴’ 경은 성만찬시의 성배를 찾고자 기약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그가 성문을 나오자마자 문둥이 한 사람이 구제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폴 경은 그를 본체만체 지나치며 “나는 성배를 찾아 길을 떠나는 몸, 너무나 바빠 너를 돌볼 여지가 없다.”라고 했지요. 그러자 문둥이가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했습니다. 이에 폴 경은 금화 하나를 귀찮다는 듯이 던져주고 말에 채찍을 가하며 달려갔습니다. 그는 구라파, 아세아를 두루 편력했으나 성배는 찾지 못하고 무일푼이 되었으며, 늙고 병이 들어 뼈라도 고국에 묻으려고 돌아왔습니다. 성 안에 들어서니 옛날 그 거지가 그 때까지 살아서 구걸하고 있었지요. 폴 경은 동정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자기에게 마지막 남은 유일한 빵 한 덩어리, 자신이 먹어야 할 빵을 거지에게 주고 허리에 차고 있던 쪽박으로 시원한 생수까지 떠다 주었습니다. 그 순간, 거지가 예수님으로 변하며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손에 들려 있는 그 쪽박이 바로 성배니라.” 폴 경이 깜짝 놀라 주여! 라고 소리쳤는데 모두 꿈이었답니다. 좋은 것, 참된 것, 거룩한 것이 나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 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사랑 나눔 운동본부를 만들고 이미 어려운 이웃들에게 구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1세기 교회는 교회 본질의 기능이 살아나야만 하고 살려내야만 합니다. 유럽을 돌아보면 한 때 그렇게도 번창했던 교회들이 지금은 아파트로, 관광지로 변해 있음을 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교회가 사회를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리십니다. 다음 주일에는 특별 구제 헌금을 하고자 합니다. 물론 계속해서 쌀과 옷도 모을 것입니다. 어렵지만, 나보다 더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이웃을 돌보아야만 됩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 21세기를 준비하는 교회로서 사랑을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재산을 내어놓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천 원짜리 한 장일지라도, 만 원짜리 한 장일지라도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쌀 없는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지 와서 쌀을 가져가게 하고, 옷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옷을 갖다 입을 수 있게 할 것이며, 구제비는 사랑 나눔 운동본부 운영위원들의 합의 하에 지급할 것입니다. 최근 만민교회 이재록 목사 사건으로 참 교회조차 사회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사회에 알리는 교회로서 우리나라와 성남시, 분당구에 없어서는 안 될 교회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엊그제 새벽 예배 시간에 한 청년이 십일조는 7만원인데 선교 헌금을 100만 원 했습니다. “제가 직접 선교는 못하지만 물질로라도 선교하기를 원합니다.” 청년이 선교헌금 봉투에 쓴 글입니다. 교황 그레고리(Gregory)대제는 미사를 집전하다가 로마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 입었던 예복을 벗으며 “바로 이 로마에서 사람이 굶어죽고 있다면 나는 미사를 집전할 자격이 없다.”라고 했답니다. 신학자 ‘풀턴 J 신’은 ‘공산주의와 서구의 양심’에서 말합니다. “서구의 그리스도인은 진리는 가지고 있으나 진리를 행하는 열심은 없다, 빛은 갖고 있으나 열은 없다, 이상은 가지고 있으나 실천하는 열정은 없다.”라고. 웨슬리 목사는 회심 3년 후인 1741년 7월 5일, ‘Almost Christian’이라는 설교를 했는데, 자신이 성령 체험을 하기 전에는 ‘거의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었음을 고백하며 ‘거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온전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비슷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사랑을 나누는 자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사람입니다. 셋째 : 칭송을 받는 사람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고, 사랑을 나누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웃과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게 되었으며, 그 결과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초대 교회의 모습은 당시 총독이었던 플리니우스(Plinius)가 트라얀(Trajan)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입증되고 있습니다. “비밀리에 모이는 (박해로 인하여) 기독교 공동체를 은밀히 조사해 보니 그들은 법 이상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름다운 덕을 실천함으로써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되고, 그로 인하여 전도의 문이 저절로 열리게 해야 합니다. 미국 남북 전쟁 시 이야기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부상을 당해 누워 있는 군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성경을 읽어드릴까요?” “아니오. 저는 지금 몹시 목이 마릅니다. 물을 먼저 주실 수 있습니까?” 목사님은 물을 주었습니다. “무엇으로 제 머리를 받쳐 주시겠습니까?” 목사님은 코트를 벗어 말아 그의 머리를 받쳐 주었지요. “너무나 추운데 덮을 것이 없을까요?” 목사님은 상의를 벗어 덮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당신이 내게 베푼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남을 위해 무엇을 하도록 하는 것이 그 책 속에 있다면 그것을 읽어 주십시오.” 기독교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종교입니다. 사랑을 전하기 전에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나의 몸을 통해 전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내가 그리스도인임이 증명되어야만 합니다. ․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의 통치와 지배, 다스림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의 점유물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점유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신분증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충동을 받아 성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 구제는 자기가 필요하지만 떼어주며 사랑하는 것이요, 자선이란 자기가 쓰고 남은 것을 가지고 베푸는 것입니다. ․ 좋은 것, 참된 것, 거룩한 것이 나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 나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 가까이에 있습니다. ․ 기독교는 사랑을 나누는 종교입니다. 사랑을 전하기 전에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나의 몸을 통해 전달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 주님! 교회를 이곳에 세우시고 사랑 나눔 운동을 펼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키워 주시고 자라게 하셨으니 이웃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일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적 윤리적 생활이 불신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원인이 되게 하시옵소서. 그리스도인이란 성령을 받은 사람이요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며, 칭찬 받는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새롭게 하소서/ 시51:7-12/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4-05-24
새롭게 하소서 시51:7-12 오늘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 회심기념주일입니다. 1. 존 웨슬리는 누구인가? 존 웨슬리는 영국의 엄격한 목사의 아들로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의 19남매중 15번 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동생 찬송가 작곡가 찰스 웨슬리는 18번째 아들입니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 대학 출신인 지식인이었습니다. 15년 동안은 옥스포드에서 학생으로 혹은 조수로 있었는데 그 동안에 그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21세 때 영국교회의 안수를 받았다. 웨슬리는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큰 감명을 받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동생 찰스와 함께 ꡐ홀리 클럽ꡑ(Holy Club)이라는 소그룹을 조직하였다. 그들은 여기에서 철저한 규칙을 지키면서 경건생활이 몸에 깊숙이 젖어 생활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클럽을 가리켜 \\\'규칙벌레\\\',\\\'성경클럽\\\',\\\'엄격한 종교 주의자‘(Methodist)\\\'라고 놀렸는데 후일에 \\\'감리교회\\\'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 되었다. 그는 여기서 경건 훈련으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좀 더 열성 있고 희생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1735년에 선교사로 자원하여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조지아주로 가서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선교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결심과는 다르게 미국선교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웨슬리의 생에그와같은 충격은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적 고민과 회의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그런 고민과 낙심속에 있을 때에도 말씀묵상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1783년 5월 24일 새벽5시에는 베드로후서 1:3,4을 묵상하던 중 가슴을 찔렀습니다. 이 부분을 현대어 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알면 알수록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지니신 위대한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십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선한 품성도 우리에게 나누어주십니다. . . . 그 덕분에 우리는 정욕과 부패에서 해방되어 그 분의 품성을 나누어 받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웨슬리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신학에는 정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싶은 겸손한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가지고 올더스케읻 거리를 걷고 있던 중에 모라비아 형제단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집회를 인도하는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런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서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변화시켜서 옛사람을 죽여서 우리의 마음과 기질과 성품을 완전히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창조적 생명적 활동적 능력의 사람이 되게 하시므로 계속 선한 삶을 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는데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뜨거워짐은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 사람들에게 열정이나 열심은 아주 중요합니다. *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에 대한 열정이 일어납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때 마음에 뜨거워집니다. 사랑이 불붙게 되는 것입니다. *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 그의 뜨거워진 사건, 때문에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거점이 마련된 것입니다. 요한복음3:3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회심해야 합니다. 지식으로만은 안됩니다. 결심만으로도 안됩니다. 웨슬리의 결심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것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속죄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마음에 불타 오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통해서 오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주석을 . . . 그 확신은 말씀을 들을 때 왔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 여러분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2. 한사람의 변화의 영향력 18세기 당시 영국 사회는 대단히 타락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음란, 음주, 도박. . 사회 전체가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정부가 복권 제도를 장려하여 국민들 사이에 사행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모두다 쉽게 돈벌고 쉽게 살아갈려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사회가 그 당시와 비슷합니다.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웨슬리 목사님이 일으킨 감리교 운동을 통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사회변화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야외설교를 시작으로 80세까지 4만~5만회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돈에 대한 설교는 유명합니다. 어떤 부자가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할 수 있는 대로 돈을 많이 버십시오’ 그 때 그 부자는 큰 소리로 ‘아멘’하고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 부자는 얼굴에 희색이 만발하여 ‘아멘’을 연발했습니다. 웨슬리는 세 번째, ‘여러분은 그 돈을 좋은 일에 많이 쓰십시오’ 그때 부자는 아멘을 그쳤다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설교와 함께 실제적인 구제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회복지 기관도 많이 설립했습니다. 웨슬리는 노예 제도 폐지와 노예 해방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흑인 노예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백인들과 함께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흑인 학교를 위한 모금 운동과 흑인 노예들의 교육에 필요한 도서 보내기 운동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책자를 출판해 노예 제도의 폐해를 강렬하게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1807년 ꡐ노예 매매 폐지법ꡑ과 1833년 ꡐ노예 해방 법령ꡑ통과는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에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세계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는 \\\"18세기 요한 웨슬리에 의해 일어난 감리교회가 영국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켰으므로 불란서와 같은 유혈혁명이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 성공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사회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각성 운동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다. * 웨슬리의 복음 운동은 영국에서 피 흘리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후 탄광 지대, 빈민촌. . 삶의 구석진 곳을 찾아갔습니다. * 영국사람들은 품위와 격식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국 국교인 성공회에서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추방시켰습니다. 웨슬리는 교회에서 설교할 수없었습니다. 이 때 웨슬리 목사님은 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교회의 뜰에서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나의 교구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디든지 가서 설교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감리교회는 변화된 웨슬 리가 야외에서 설교하고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들을 통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감리교회를 만들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영국 교회에서 설교를 못하게 하니까 . . . 한 사람의 회심이 이렇게 한 국가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 있습니다. 시대마다 중요한 회심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바울의 회심으로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라는 교회의 씨가 자라났습니다. 로마를 거쳐서 유럽으로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어거스틴의 회심은 <참회록>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는 많은 저작 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열매입니다. 세 번째, 루터의 회심입니다. 이것은 말씀의 회복으로 인한 개신교를 탄생시켰습니다. 네 번째, 웨슬리의 회심은 감리교라는 열매와 영국 사회의 구원, 그리고 그 영향으로 어둠으로 가득찼던 18세기의 횃불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뜨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3. 뜨거움을 회복하라 흔히 많은 크리스챤들은 구원을 체험하고나면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신앙생활에 대해서 느슨해 집니다. 자신의 그 모습에 만족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도 느슨해 집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때에 가서야 자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자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초대교회 일곱교회 중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만 받은 교회입니다. 왜 그런 신앙의 상태가 되었습니까?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그들은 스스로 부자요 부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입니다. 우리의 열정이 떨어지기 쉬운 때는 우리의 삶이 넉넉할 때입니다. 모자람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될 때입니다. 사람들은 조금 먹을 것이 풍족하고 넉넉하다고 느껴지면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교만해집니다. 자기가 다 했다고 거드름피웁니다. 하나님이 마음속에 들어오시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나라가 살기 힘들고 어려울 때는 얼마나 열심을 품고 모이기를 열심이었은지 모릅니다. 목사님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자신도 매달리고 . . . 그러나 먹고 살만 하니까 심방오는 것도 귀찮게 여깁니다. 주일날 빠져서 전화하는 것도 귀찮아 여깁니다.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서 하는 것들도 싫어합니다. 이것들 모두 교만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주와 교제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힘이 없어지게 된것입니다. 열정도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1) 회개하라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려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웨슬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슬리의 미국 조지아주 선교 실패는 하나님을 만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문의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늘 하나님앞에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만족에 빠져 살게 되었습니다. 느슨한 신앙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영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릅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남의집 여인을 범하고 남편을 죽였습니다. 그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죄에 빠져 있을 때에는 그것이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단선지자를 통해 죄인 것을 깨달은 후에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스트레스와 함께 근심했습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합니다. 열정이 사라지게 합니다. 성도가 언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죄를 짓고 죄책감에 시달릴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탈진하고 정신병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이때 죄책감으로 인하여 고달플 때 오늘의 어떤 사람들처럼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마약이나 ‘될데로 되라’는 식의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회개했습니다. 매달렸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절) 자신은 근본적으로 죄인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움심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이럴 때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훌쩍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2) 정결한 삶이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거룩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때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7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소서\\\"(10절) 자신의 과오를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는 것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눈물로 후회하는 것으로도 안됩니다.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그분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다시 창조해 주시기를 바라는 믿음이 회개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죄의 상처들이 씻겨지고, 치유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 사람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봅시다. ‘젊은 나이에, 다른 사람들 같으면 지금 엄청나게 돈도 잘 벌고, 활발하게 잘 살 나이인데 이게 뭐야?’ 그러면서 밥도 안먹고 병원에도 안가면서 한탄만 한다면 그 사람은 점점 병이 위독하게 될 것이고 중하게 되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병에 걸렸든지 소망을 가지고 식사도 잘하고 바른 습관을 가지면 얼굴 색깔이 달라지고 회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감기에 걸렸을 때 밥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잘 먹으면 감기가 뚝, 떨어집니다. 우리 영혼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하여 마음이 괴로울 때 교회 안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열심히 나와 우리의 창조자, 우리의 치료자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예배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마음이 치유되게 하십니다. 깨끗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생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죄사함의 확신이요 구원의 확신입니다. 이것이 영적힘입니다. 영적힘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우리가 성결케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기쁨이 회복됩니다. *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찬양의 능력이 회복됩니다. * 하나님의 영이 오면 내 속에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가 물러가고 그 속에 찬양과 감사가 나타납니다.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웨슬리의 회심은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의 결과입니다. 웨슬리의 사회개혁은 구원의 확신의 열매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런 그리스도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된 사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을 받으라/요20:19-23/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2-08-07
성령을 받으라 요20:19-23 주제 ; 성령 찬송가 ; 172장 신약, 184면 이날 곧 安息 後 첫날 저녁때에 弟子들이 유대人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門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平康이 있을찌어다 !\\\'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弟子들이 主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平康이 있을지어다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向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聖靈을 받으라 ! (23) 너희가 뉘 罪든지 赦하면 赦하여질 것이요 뉘 罪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이 요한 웨슬리 회심 264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오늘은 또한 성령 강림 주일이기도 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1703년 6월 28일 영국 중부의 작은 마을인 엡웟의 교구목사인 사무엘 웨슬리와 수산나 사이에 15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청교도 목사의 딸로 자녀들을 엄격한 신앙 속에 교육시킨 모범적인 여인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는 18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찰스 웨슬리는 웨슬리의 가장 절친한 친구요 복음전파의 동료였으며, 전대 미문의 찬송가 작가였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목사관에 불이 났습니다. 웨슬리는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2층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웨슬리가 무사히 구출될 때까지 가족들은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웨슬리가 구출된 후 어머니 수산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웨슬리는 \\\"불 붙은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암 4:11)이라고 고백했다. 수산나는 하나님이 어린 웨슬리를 구해 준 것은 분명히 특별한 목적이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1735년 요한 웨슬리는 신대륙인 미국의 조지아로 갔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인디안 선교에 대한 꿈을 가지고 2년 동안 수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1737년 실의에 빠져 영국으로 돌아오던 존 웨슬리는 갑자기 풍랑을 만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떨 때, 요한 웨슬리는 배 한쪽 편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독일의 루터교 일파인 모라비안 교도 들이 풍랑 속에서도 평안한 모습으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영국에 돌아온 존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났고, 그 들의 경건한 신앙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나는 인디안들을 구원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그렇지만, 오,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 런던에 있던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저녁무렴 우연히 올더스게잍 거리에서 모이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때 한 사람이 마틴 루터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9시 15분전쯤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을 읽는 순간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 하였습니다. \\\"나는 갑자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느꼈다. 나는 주님께서 나의 죄를 제거하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요한 웨슬리 회심 기념 주일에 우리도 성령을 받아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일 저녁에 문을 닫고 무서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수여(受與)하시고,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 하셨을까요? 1. 성령은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심으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창2:7) 또한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마른 뼈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대언될 때 힘줄과 살과 가죽으로 덮인 사람이 되고, 생기가 들어갈 때 살아있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습니다.(겔37:1-10) 이와 같이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창1:2) (욥33:4) 하나님의 神이 나를 지으셨고 全能者의 氣運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성령이 죽은 성도를 살리시게 됩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者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靈이 너희 안에 居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者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居하시는 그의 靈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어느 나이든 고래잡이 배 선장의 고백입니다. \\\"벌써 오래 전 일이군요, 저는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항해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쪽에서 강한 역풍이 불어왔습니다. 저희 배는 남쪽으로 계속 전진하려 했으나 역풍 때문에 오전 내내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12시경 타륜 곁에 서 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 파도에 대항하려고만 하는가? 북쪽으로 가도 고래는 얼마든지 많을 것이다. 바람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것을 생각해보자.\\\' 저는 곧 배를 돌려 북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1시간 뒤 선두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 왔습니다. \\\'앞에 보우트들이 더 있다!\\\' 즉시 그 보우트들을 끌어 올렸을 때 거기엔 아사 직전의 승무원 14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 표류하면서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하나님께 언제나 저를 사람 돕는 일에 사용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그날 강풍이 불었을 때 북쪽으로 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틀림없는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14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일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는다하여도 믿음으로 사는 자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섭리에 순응할 마음의 자세를 항상 가져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좋으신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없는 것은 생명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2. 성령님을 받아야 참된 신앙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어떤 분은 예수를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성령의 증거로만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실에 대하여 믿어 질 수 있습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靈으로 말하는 者는 누구든지 예수를 詛呪할 者라 하지 않고 또 聖靈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主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되는 것은 성령이 계실 때만 됩니다. (롬8:9) 萬一 너희 속에 하나님의 靈이 居하시면 너희가 肉身에 있지 아니하고 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靈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기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영국의 허드슨테일러 선교사가 중국 내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중에 극도로 피곤하고 번민하여 좌절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거룩해지려고 노력할수록 그 반대의 행동이 나오고, 믿어야 될 줄 알면서도 자꾸 의심이 생기고, 열매를 맺으려고 해도 열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실망과 좌절에 빠졌을 때, 그의 누이한테 편지가 왔습니다. 오빠는 포도나무 가지에 불과하니까 그분에게 맡기고 의지하면서 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포도나무가지는 영양분을 끌어 올리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꽃을 피우려고, 열매를 맺으려고 힘쓸 필요도 없어요. 오직 원줄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테일러는 자신의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완전히 주님께 맡기고 쉴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는 주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많은 열매를 거두고,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패배를 당했고 그래서 승리를 간구했으나 승리는 도무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는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승리는 왔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노력해서 성취하려고 헛수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것을, 믿음과 기도로 내 것을 만들고 내 힘을 빼고 주님께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3. 성령을 받아야 거듭나게 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거듭나면 영적인 것을 감지할 수 있으며, 거듭나면 지적 정적 의지적으로 변화가 되며 변화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거듭나지 않고도 교인이 될 수 있으나 신자나 성도는 될 수 없습니다. 천국은 거듭난 사람만 갑니다. (요3:3-5) 예수께서 對答하여 가라사대 `眞實로 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 두번째 母胎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 (5) 예수께서 對答하시되 `眞實로 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聖靈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기에 거듭나야 합니다. 4. 성령을 받아야 그리스도인다운 신앙생활과 주님께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이요 사명을 감당한 사람들은 성령을 소유한 사람, 성령에 의하여 소유되어진 사람, 그들 안에 성령이 거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성령으로 진정한 기도를 할 수 있고, 성령으로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있고, 성령으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고, 성령으로 참다운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전도의 사명은 성령을 받은 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행1:8) 오직 聖靈이 너희에게 臨하시면 너희가 權能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證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기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 때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케네디대통령,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세를 쥐고 있습니다. 당신 손에 있는 권세로 세계의 역사와 운명이 좌우 됩니다. 당신은 노련한 전문가인 많은 보좌관을 데리고 있습니다. 만일 문제가 생기면 그 많은 보좌관이 제각기 자기의 전문적인 지식을 당신에게 말할 것이고, 당신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에 다 귀를 기울이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은 당신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모두 다 경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려야 할 때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하나님 앞에 묵상하고 가슴 속에서 울려나오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보좌관입니다. 마음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수학적이고 논리 정연하고 사회학적이며 통계적인 것들을 내 놓습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릴 때는 성령이 해야 합니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중에 우리의 영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판단을 얻어서 행하게 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영으로 사는 사람이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수염을 깎아야 하듯 그 마음도 매일 다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번 소제했다고 언제까지나 방안이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한번 반성하고 좋은 뜻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늘 우리 맘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먹은 뜻을 오늘 새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를 떠나고 맙니다. 요한 웨슬리 회심 264주년이 되는 주일, 성령 강림 주일에 우리는 성찬 예식을 거행하며 이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초대교회의 120여명의 성도는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전혀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성령을 충만히 받으십시다 1. 성령은 숨을 쉬는 것과 같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2. 성령님을 받아야 참된 신앙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3. 성령을 받아야 거듭나게 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4. 성령을 받아야 그리스도인다운 신앙생활과 주님께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설교를 듣고 대답하기 1. 요한 웨슬리가 회심한 날은 언제입니까? 2. 성령은 사람의 어떤 모습과 같습니까? 3. 참된 신앙과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무엇을 받아야 합니까? 4.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무엇을 받아야 합니까? 5.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무엇을 먼저 받아야 합니까?
성령의 임재와 역사/ 요14:16-20/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3-05-24
성령의 임재와 역사 요14:16-20 오늘 5월 24일은 감리교 창설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성령의 은혜를 받고 회심 한지 263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의 은혜를 부어주셨는데 그때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그때를 기독교에서는 \\\"성령감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웨슬레 목사 회심일과 성령강림절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로 이 시간은 성령의 임재와 역사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신이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태초부터 계셨고, 사람을 감화시키고 지도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하신 후에 더욱 강하게 임재 하시고 역사 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재하셔서 우리를 지도하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과 함께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보면 성령을 여러 가지로 호칭합니다. 호칭은 성령의 본질과 역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 아버지의 성령, 진리의 영, 생명의 성령, 그리스도의 영, 성결의 영, 보혜사, 은혜의 성령, 심판의 영, 지혜와 총명의 신, 대언의 영이라고 호칭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호칭 자체가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심을 입증합니다. 감리교 교리적 선언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사 우리의 지도와 위안과 힘이 되시는 성신을 믿으며\\\" 성령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삼위 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바르고 선하게 살도록 힘을 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십니다. 갈 5:22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좋은 삶을 살도록 역사 하시는 분이 성령이 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따라다니는 무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에 모두가 실망과 좌절에 처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시오, 메시아 시며, 구세주라고 믿고 추종했는데, 위선자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침략자 로마의 빌라도와 군병들에게 그렇게 억울하게 처형되고 형편없이 당하는 것을 경험하고 실망과 좌절에 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박해 자들을 피해서 숨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재 하시고 역사 하셨습니다. 실망과 좌절에 처한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임재 했습니다. 무리들은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고, 새로운 힘과 용기와 지혜와 능력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거의가 무식한 사람들 이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재 하시자 지혜로운 설교자들 능력 있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거리에 나가서 외치고 설교했습니다. 수 백 명씩 수 천 명씩 회개하고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은 무능력한 사람들이 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재 하시자 놀라운 능력은 나타났습니다. 기도 할 때에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보게되고 귀머거리가 귀가 열리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자 당시 세상의 지도자들이 십자가에 처형하여 저버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서 그리스도의 위상을 회복 시켰습니다.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재 하여 역사 하실 때에 신앙의 새로운 역사와 변화가 있습니다. 행 2:1을 보면 오순절날 저희가 한 곳에 모였을 때에 모인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새로운 능력을 받았습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숨어 다니는 사람들이 새 힘을 얻어 능력 있는 전도자들이 되었습니다. 263년 전 웨슬레이 목사님은 영국 \\\"올더스겟\\\"에서 성령의 임재와 은혜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신앙의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복음으로 피폐한 영국사회를 개혁하고 재건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성령의 임재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변하여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유구한 인류 역사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전도자가 되고 성인이 되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재 하시면 모든 것을 분별하는 지혜와 능력이 주어집니다. 의와 불의를 구별하고 선과 악을 분별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유혹을 분별하고 구원과 멸망을 분별하고 하늘나라와 지옥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은 것 유익한 것 복된 것을 선택하고 추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고전 12:8에 \\\"성령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믿음은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가질 수 없는 은사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갈 5:5에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쫓아 의의 소망을 가진다.\\\" 성령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하고 부활과 영생과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범사에 항상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십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절제하게 하는 것이 성령의 임재입니다. 갈 5:16에 \\\"성령을 쫓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로마서 8:12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듯이 죽은 것이로되 성령으로 몸의 행실은 죽으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끝없이 뻗어 가는 욕심을 무엇으로 제어하고 조절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은혜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40대 남자 분이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다가 격분하여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70% 건겅을 회복하는 데 3년 반이 걸렸습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운 것은 무엇으로 제재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사람의 욕심과 분노와 미움과 죄성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행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의 임재할 때에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전도인이 되고 선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의와 평강과 회락의 생활을 하게 합니다. 롬 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처럼 삭막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평강이 어디 있고 희락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의 임재가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영생의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 성령이 십니다. 갈 6:8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요 3:5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의 임재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영생의 소망과 영생의 확신과 하늘나라에 이르도록 선도하십니다. 성령의 임재와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인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바르고 선하게 살게 하시고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경로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재 하시고 역사 하시는 가? 힘써 간구 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재 하시고 함께 하십니다. 눅 11:13에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힘써 기도하는 사람, 힘써 간구 하는 사람 하나님의 듯을 따라 살기를 힘쓰는 사람이 성령의 임재와 감화와 역사 하심이 함께 하십니다. 함께 모여서 기도할 때입니다. 행 2:1에 \\\"오순절날에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여드니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했더라\\\" 고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 행위 중에 모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주일 날 모이고 속회로 모이고 기도회로 모이고 부흥회로 모이고 모이는 곳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 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한 목적으로 모이는 것은 은혜 받는 길입니다. 말씀은 전하고 들을 때에 성령께서 임재 하십니다. 행 10:44에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전 할 때에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재하셨습니다.\\\" 웨슬 리가 \\\"올더스겟\\\" 교회에서 로마서 강해 말씀을 듣던 중에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했습니다. 언제나 말씀은 전하고 듣는 과정 속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 하심이 있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할 때에 성령께서 임재 하십니다. 행 2:38에 \\\"베드로가 가로데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 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 성령의 임재와 은혜가 있습니다. 항상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령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죄된 일이 참 많습니다. 불의가 성하고 악이 난무하고 유혹이 많습니다. 재난이 극심하고 많습니다. 성난 파도위에 일엽편주처럼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못되고 넘어지고 실패하기 쉬운 인생행로입니다. 사람의 의지만으로 수양으로 사람의 지혜로 지식으로 사람의 힘만으로 사람의 노력만으로 사람의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고 극복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와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필히 성령의 임재와 도우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까지 신앙의 개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국을 구한 존 웨슬리/ 엡2:1-10
영국을 구한 존 웨슬리 엡2:1-10 웨슬리는 18세기 영국을 구원한 대 부흥사이며, 감리교의 창시자이다. 제가 처음 신학을 공부할 때 감리교에는 신학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감리교에서 특별히 내세우는 교리가 없기 때문이다. 장로교는 예정론을 주장하며 칼빈이라는 대 신학자와 \"기독교강요\"라는 그의 책이 있어서 자랑으로 내세운다. 침례교는 나름대로 침례를 주장하며 독특성을 말하고, 오순절에 해당하는 교단들은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부르짖어 주장한다. 성결교는 성결의 복음을 주장한다. 그 당시에는 무엇인가 우리도 있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특별히 주장할 것이 없었다. 감리교의 특색이나 주장하는 것을 물으면 대답할 것이 없습니다. 아니 그 당시는 감리교인들 조차도 존 웨슬리에 대하여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최근들어 웨슬리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시작되고 그를 현대신학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신학서적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통하여 재평가되고 있다. 예수와 바울이 신학서적을 쓰지 않았지만 그의 설교를 통하여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틸리히는 \"존 웨슬리는 현대신학을 논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 시대적 배경(18세기) 철학사상 - 웨슬리 당시에 유행하던 철학 사상은 이신론, 자연신론이다. 이것은 합리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나온 신안으로 하나님의 계씨, 기사, 이적등 초월적인 것을 믿지 않았다. 도덕적인 상황 - 한미디로 부패의 시대이다. 정치가나 학자들은 종교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이었다. 일반대중은 빈곤하고 무지하였으며 잔인하였다. 장터에는 야만적인 경기가 가득찼다.(닭싸움, 소싸움, 개싸움, 곰싸움). 나라는 세금을 걷기 위하여 이것을 방임하였다. 뿐만 아니라 결투와 폭행이 성행하였다. 문학과 연극은 저속하기 짝이 없었다. 상업도 타락하였다. 1770년까지 무려 30만명의 흑인 노예들 미국에 판매하였으며, 음주와 향락으로 거리의 집들의 1/4이 술집일 정도였다. 거리에는 창녀가 우굴거리고, 감옥은 만원이며, 폭행범들의 사형집형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사형집행에 밧줄을 쓰다가는 영국해군의 밧줄이 동이 날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서 교회도 타락해서 성직이 뇌물로 좌우되었다. 이런 사회는 곧 멸망할 수 밖에 없는 곳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이전의 사회를 연상케하는 것이며, 오늘날 우리의 사회를 연상케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영국을 구한 것이 존 웨슬리목사님이다. 2. 웨슬리의 삶 ① 믿음의 가문 존 웨슬리는 3대째 목사가문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증조부, 조부, 부는 모두 영국의 옥스퍼드 출신이다. 증조부는 청교도 목사이고, 조부는 비국교도 목사이며, 부친은 영국국교회 목사이다.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는 엡윗이라는 작은 마을에 목사로 임명되어 38년간 봉직하였으며, 이 교회 시무중 1703년 15번째 자녀로 웨슬리가 태어났다. 그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유명한 청교도 목사인 사무엘의 24자녀중에 막내 딸이었다. 믿음의 가문을 만드는 성도가 되야 한다. ② 가정교육 - 가정교육의 중요성 그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엄격하고 짜임새 있는 교육을 실시하였다. 생활교육 - 순종하는 교육을 통해 한살위의 형제들에게 존대하도록 교육, 심지어는 하인에게까지도 존대하게 교육을 하였다. 규칙적인 생활, 거짓말을 철저히 금하였다. 종교교육 - 일어나 걷고 말하게 되면 \'ABC찬치\'를 하였고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였고, 구약부터 성경을 일게 하였다. 더 장성하면 교리문답과 성구암송을 통하여 신앙교육을 시켰다. ③ 대학시절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성클럽을 조직하여 동생인 찰스 웨슬리와 동료들이 침식을 줄이며 공부하고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메서디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신론적인 철학이 판치는 시대에 성경연구에 몰두하며 매일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고 매주 1회씩 성찬식을 하였으며 주2회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기도와 성경공부의 열매로서 구제운동이 일어나서 죄수들을 찾아가고, 병자들을 위문하며, 고아를 찾아갔다. ④ 일상생할 남루한 옷을 입은 소년이 웨슬리에게 구걸을 하였다. 그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으나 돈이 없었다. 그 때 그의 방에 걸려있던 비싼 그림들이 생각이 났다. 그때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고 이때부터 그 회원들은 그들의 수입 중에 생활비와 그 밖의 어쩔 수 없는 지출을 제하고는 전액을 구제비로 썼습니다. 웨슬리의 생활비에 대한 중요 예화 첫해에 30파운드를 벌어서 28파운드 생활비를 쓰고 2파운드를 구제비 다음해 60파운드를 벌어서 28파운드 생활비를 쓰고 32파운드를 구제비 다음해 90파운드를 벌어서 28파운드 생활비를 쓰고 62파운드를 구제비 3. 웨슬리의 거듭남 웨슬리는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아주 열심히 누구보다 열심히 선교를 하였지만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그런 열심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실패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만족도 없었다. ① 거듭남 1938년 5월 24일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런던시 올더스케이트 거리를 지나다 한 작은 비회장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사회자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서문을 읽고 있었으며 마음이 갑자기 뜨거워 졌다. 그이 일기에 보면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내 죄, 내 자신의 죄를 가져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내게 주셨다. 그후로 나는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들을 위하여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 때 그는 그 자리에서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심의 경험을 말하였다. 이런 웨슬리의 경험은 그의 성격과 전도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외식주의는 지금까지 웨슬리의 눈을 가리워 복음의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의 도덕적인 생활은 고상하였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였다. 이제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으로 바뀌어지게 된 것이다. ② 성령세례 1739년 1월 1일 새벽 3시 러던의 페터레인 집회에서 철야예배시에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하였다. 그들이 통성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그들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이 두가지 사건을 계기로 감리교가 시작되었다. 1739년 4월 1일 당시 영국의 제2도시인 브리스톨에서 시작한 야외설교에서 시작하여 179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52년간 말을 타고 전도여행을 하였으묘 4만 2천번 이상 설교를 하였다. 매일 18Km씩 40여회 여행을 하였으며, 매년 800번, 배일 2번 이상 설교를 하였다. 웨슬리는 \"온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하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다. 구원받은 성도를 교육하기 위해 신도회를 조직하였고 이것이 속회의 기원이다. 4. 웨슬리의 사회사업 웨슬리는 오늘날 사회사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킹스우드 광부들의 자녀를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뉴캐슬에 고아원을 설립하였다. 파운드리 교회에서는 풍요한 사람들에게서 의류를 모아다가 간나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였으며, 예배당을 공장으로 사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하였다. 의료원을 설치하여 병자를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의학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빈민들을 위해 은행을 창시한 장본인이다. 뿐만 아니라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예화) 그가 3만 파운드나 되는 막대한 돈을 들여 구제사업이 쓰는 것을 보고 세무원이 그의 재산이 많은 줄 알고 그에게 불었다. 목사님 재산이 얼마나 되세요? 은수저 2게와 브리스톨 2개 밖에는 없다고 하면서 \"내 주위에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기 전에는 은 기명을 더이상 사지 않겠다\"고 하였다. \"힘껏 벌고, 힘껏 저축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잘 써라\" 웨슬리의 변화는 꺼져가는 세계의 태양을 살리는 놀라운 역활을 하엿습니다. 피의 혁명을 당해야 할 영국을 그곳에서 복음으로 건지는 역활을 하였습니다. 프랑스에는 불란서 혁명, 피의 혁명이 있었다면 영국에는 예수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십자가에 죽으므로 인류를 살렸듯이 한 사람이 변하니 한 나라가 살아났습니다. 오늘 나의 변회가 내 가정을 살리고, 내 이웃을 살리고 이 나라를 살리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웨슬리는 성도의 신앙의 표본입니다. 크리스찬은 예수를 믿은 후 변화되야 합니다. 변하지 않은 성도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의 생활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교회만 나가면 하나님이 없습니다. 입에는 하나님이 살아있는데 행동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는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뜨겁게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령충만 한 사람에게는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온유, 충성, 절제, 자비, 양선, 오래참음 그는 뜨거운 사랑의 사람입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 영혼을 사랑 복음전파의 열심 육체를 사랑하였습니다. - 긍휼과 구제의 열심. 그는 성경의 사람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너무나 혼란합니다. 물질문명병이 판을 치고 황금만능주의가 교회를 뒤덮고 있으며, 문명의 발전의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웨슬리의 변화가 영국을 살렸듯이 예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인류를 살렸듯이 나의 변화가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 웨슬리를 아시나요?/ 롬1:14-17/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4-05-24
요한 웨슬레를 아시나요? 롬1:14-17 오늘은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John Wesley) 탄생 300주년 회심 265주년 기념 감사 예배로 드리는 주일입니다. 이 날을 기념하면서 웨슬레 목사님의 간단한 생애를 살펴봅니다. 1.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출생과 가족(혈통적으로 신앙가문에서 태어났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1703년 6월 17일 런던(London)에서 한 400리 북쪽 \\\'리컨사이언주\\\'의 \\\'엡윗\\\' 교회 목사관에서 15째 출생했습니다. 그의 가족은 증조부 : 바돌로매 웨스틀리 목사님, 조부 : 죤 웨스틀리 목사님, 부 : 사무엘 웨슬레 목사님, 요한으로 옥스포드의 출신 영국 성공회 목사로 40년간 엡웟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습니다. 영국 명문목사 가문의 출신이며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위대한 세계 현모 중의 한 분인 그의 어머니 아네슬리 수잔나도 할아버지 아버지가 다 목사님 집안이었습니다. 그는 고상한 재능이 있고 청교도파이며 헬라어 라틴어 불어 등에 능한 분이었습니다. 자녀들은 19남매 중 10 명이 죽고 딸 여섯과 아들 삼 형제만 길렀습니다. 딸들도 뛰어나는 교육을 받고 평범한 가정으로 출가했습니다. 아들 셋은 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2.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화재사건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6살이 된 해 겨울 즉 1709년 2월 9일 한 밤 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목사관에 발생하였을 때 \\\'요한\\\'은 이층 다락에서 잤습니다. 깨어나 조금도 당황하지 아니하고 창문 곁에 다가서서 \\\"사람 살리세요\\\"라고 외쳤으며, 이를 본 불을 끄던 교회 청년들이 무등을 서서 그를 구출해내는 순간에 그 집이 쓰러졌습니다. \\\'요한\\\'은 구사일생으로 구원받은 자기 생명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조각\\\"(스가랴 3:2) 이라 비유하여 생각하고 자기 사진 밑에 이 성경구절을 쓰고 항상 하나님이 왜 나를 죽음에서 구해주셨을까 그 이유를 생각하며 평생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3.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학문 어머니 수잔나의 교육철학에는 \\\"제 마음대로\\\" 라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조용히 울도록 가르쳤으며 다섯 번째 생일에 알파벳을 배우고 다음날 아침부터는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읽기를 철저하게 교육시켰습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1714년에 11세 때 런던 차터하우스 학교에 입학하여, 1720년에 17세 때에는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의 대학시절 목사의 아들로서 매일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엄숙한 소명에로의 부름」등 경건한 서적을 읽으면서 학문에 심취함과 동시에 신앙과 경건의 훈련을 철저히 쌓으면서 행복한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1725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1726년에는 옥스포드대학교 Lincoln대학의 조교수가 되었으며 1729년에는 동생 촬스 웨슬레가 조직한 \\\"경건한 친우회\\\"(Holy Club) 리더가 되어 기도와 성경공부 및 영적인 경건의 훈련을 규칙적으로 하는 \\\"성경벌레\\\" \\\"규칙장이\\\" (Methodist)들의 모임을 이끌었으며 감옥과 고아원 심방, 빈민구제 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하였습니다. 여기 감리회(Methodist)란 법칙주의자 곧 규칙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이 모임이 점점 커진 것이 속회의 시작이요 감리교회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신성구락부(속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어 감리교회의 속회는 감리교단의 생명이기도 합니다. 4.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북미 선교사 2년 18세기 미국은 인디언과 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 정신적 불안정을 지니고 살아, 이들을 위한 선교사를 필요로 하였고 이에 영국교회는 \\\'요한 웨슬레 목사님\\\'을 적임자로 선발하였으며 그는 1735년 10월 14일 출항하여 \\\'죠지아주 사바나\\\' 항에 도착하기까지 57일간의 긴 항해를 했는데 그동안 큰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죽음의 공포에 있을 때, 그와 동승한 독일인 \\\'모라비안\\\' 교파의 교인들은 태연하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본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자기의 신앙이 그들에 비교해서 아주 미약함을 깨닫고, 그들과 깊은 사귐을 통해서 신앙의 많은 도움을 받는 가운데 미국에 도착하여 북미 선교사업에 심혈을 다하여 전도하였으나 주민들에게 배척을 받고 2년만에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5.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신앙체험 1738년 5월 20일 동생 촬스 웨슬레의 늑막염으로 고통, 철야기도 성령강림, 평화 회복을 위하여 애쓰는 중 .......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밤 \\\"올더스케잍\\\" 소집회에 참석, \\\'마틴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강론시 8시 45분 경 그의 심령이 이상하게 뜨거워졌습니다(이사야의 회심=사6장; 예레미야의 회심=렘20장; 사도 바울의 회심=행9장). 그당시 그의 나이가 35세되던 해였습니다. 그후 그는 확신과 능력과 마음의 평화 불붙는 마음이 생기여 은혜의 복음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전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고 외치며 대 전도운동을 전개하여 놀라운 복음주의적인 부흥을 가져와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지구를 15회 이상 돌만한 160만 마일이나 전도 여행을 말을 타고 다녔고 그는 141편의 설교집(42,400회 설교), 의학서적, 영문법, 논문 등의 무수한 책(440여권)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항상 자기 생명을 땅위에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평생을 주의 일에 힘쓰다가 1791년 3월 2일에 53년의 전도사업을 마치고 88세를 일기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란 말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6. 우리 감리교회의 형성 우리 감리교회는 요한 웨슬레 목사님에 의해 영국에서 처음 \\\'메도디스트\\\'란 이름으로 1744년에 시작되었고, 1784년 미국 선교에 착수, 미국에서 크게 부흥하여 현재는 제일 큰 교파로 성장하였으며, 한국에는 초대 선교사로 미국인 \\\'아펜셀러 선교사\\\'(1858-1902)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인천항에 상륙하여 배재학당과 이화학당과 인천 내리감리교회, 서을 정동감리교회 등을 설립하고 선교를 시작하면서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7. 감리교인이란 ? 감리교인이란 받은 바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 가운데 가득한 사람이며 주 하나님을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감리교인은 항상 즐거워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그의 마음은 모든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차 있으며 시기와 분노, 남을 해치려는 생각과 모든 불친절한 마음씨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의 요구와 생의 계획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리교인은 크고 작은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허울은 좋으나 본성이 나쁜 악덕을 물리치고 세상의 관습을 따르지 않습니다.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도 아니하며 황금이나 비싼 옷으로 자신을 꾸미지도 않습니다. 악으로 기울어 질만한 어떠한 오락에도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감리교인은 허탕한 말이나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금하며 불친절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 이웃과 나그네와 친구 뿐만 아니라 원수에게까지 선을 행합니다. 이런 일들은 참 감리교인의 원칙이요, 생활이요, 표적입니다. 이로써 감리교인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감리교회는 시대적인 사명을 재인식하여야 합니다. 제2의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은 무엇입니까??? 1)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은 성령 운동입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모든 영적 운동은 성령 운동으로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앙의 성장이나 변화는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참다운 성령 운동만이 이 민족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아 멘. 2)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은 기도 운동입니다. 88세의 생신을 맞은 그에게 장수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60년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한 결과라고 하였으며, 감리교인으로써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타락한 증거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철야기도, 새벽기도, 금식기도 등을 하였습니다. 3)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은 전도 운동입니다. 본문 말씀 롬1: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는 말씀을 기초로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슬로건을 가진 감리교 운동/복음주의 운동입니다. 감리교인들은 선교/전도병(病)의 환자들이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축복된 병인가? 사도 바울도 이 병에 걸려서 죽었고, 사도 베드로도 그랬고, 성 어거스틴도, 허드슨 테일러도, 아펜셀러 선교사도 이 병에 걸려서 기뻐하다 죽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레 목사님도 이 병에 걸려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4)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은 헌금 운동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처음 1년 동안 300달러를 받았을 때에 20달라를 드렸습니다. 600달라를 받게 된 때에는 280달라만 생활비로 소비하고 320달라는 헌금했습니다. 그의 수입이 1200달라가 되었을 때는 920달라를 드렸습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죽었을 때 재산목록을 보면 옷, 서적, 마차 한 대 뿐이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24만 달라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성경적으로 헌금하는 방법을 살펴보면 : (1) 외모로 하지 말라(마 6:3). (2)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고후 9:7). (3) 관대한 마음으로 하라(잠 11:25). (4) 공손하게 하라(삼하 16:2). (5) 규칙적으로, 분수대로 하라(고전 26:2). 5)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은 사회정화(이웃사랑) 운동입니다. 감리교는 처음부터 빈민구제운동, 금주운동, 학교와 병원을 세워 불우한 사람을 가르치고 치료하였으며, 형무소를 찾아가 전도하였고, 노예해방 운동을 하였으며, 사회로부터 소외된 계층과 노동자, 농민을 상대로 도움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유산을 받은 감리교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될 수는 없지만,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남기고간 그 위대한 정신과 신앙만은 우리가 계승시켜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위대한 유산들을 잃어버렸습니까? 이제 이것을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주여, 제2의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운동으로 이 민족과 지구촌 전역이 영혼이 변화되게 하옵소서 !!! 우리 함께 기도해요. 아 멘.
웨슬리 운동을 이 땅에/ 살전1:2-9/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7-05-24
웨슬리 운동을 이 땅에 살전1:2-9 오늘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 267주년 주일입니다. 1. 웨슬리를 아십니까? * 웨슬리의 어린시절 존 웨슬레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입니다. 웨슬레는 증조부로부터 3대째 목사를 이어온 집안의 열아홉 남매 중 열다섯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웨슬리가 6살 때, 그의 집에 불이 났는데 그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구출 받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훗날, 그는 가끔 자기를 가리켜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 웨슬리의 청년시절 웨슬리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데에는 여러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웨슬레는 청년 시절에 하나님의 모든 계명만 잘 지키면 구원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남보다 더 경건하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고, 온갖 선행에 힘썼습니다. 매일 한 두 시간씩 꼭꼭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힘써 지켰고, 매주 성찬식에 참석했습니다. 말에나 행실에나 단 한 번이라도 실수가 있을까 하여 언제나 조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속사람의 성결을 위하여 언제나 기도하였습니다. * 열심있는 종교생활 참 열심히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경건, 자신의 노력, 자신의 기도와 성결 뿐이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없었던 것입니다. 나이가 들자 교역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 을 공부하기 위해 명문 옥스포드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신학도가 되었습니다. 그때에도 그는 여전히 그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옥중에 있는 죄수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빈민굴을 찾아 가난한 사람들을 돌봐주며 병든 사람들을 찾아 위안했습니다. 또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엔 금식을 했습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자신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 뒤 웨슬레는 병들어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다른 적이 있었습니다. 이대로 죽으면 하나님 이 자기를 받아주실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 두 권의 책 그는 두 권의 책, 토마스 아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테일러의 ‘거룩한 생활의 규칙과 훈련’이었습니다. 그는 성직자로 임명되었고, 옥스포드 대학의 조교도 겸하게 되었다. 그는 의심을 없애기 위해 더욱 경건한 생활을 했다. * 홀리클럽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하기 위해 ‘신성클럽(The Holy Club)’을 조직하고 신앙생활에 관하여 경험을 나누고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철저한 규칙을 지키면서 경건생활이 몸에 깊숙이 젖어 생활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클럽을 가리켜 ‘규칙벌레’, ‘성경클럽’, ‘엄격한 종교 주의자(Methodist)’라고 놀렸는데 후일에 ‘감리교회’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 되었습니다. 나중에 휫필드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도 이 클럽에서 활동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곧 이 단체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는 더 신중히 교회출석, 성찬식, 검소한 삶 . . 등에 모범을 보였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이라면 모든 일에 열성적이었습니다. * 아메리카 선교사 그는 옥스포드대학의 버튼 박사의 추천으로 아메리카 선교 길에 오릅니다. 1735년 10월 14일 시몬스호를 타고 아메리카로 향했습니다. 사나운 파도가 이는 대서양 항해의 3개월 동안도 일과표를 만들어 놓고 신앙생활에 힘썼습니다. 매 시간을 오직 자기의 신념에 충실하게 생활하려 한 것입니다. * 종교가 짐이 된 웨슬리 명성이 쟁쟁한 옥스포드대학 신학부를 졸업,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 선교의 모든 여건, 자격을 다 갖추었습니다. 근면 성실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죄사함의 확신에서 오는 기쁨과 평강도 없었습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종교는 하나의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 항해도중 만난 모라비안 교도들 항해 도중 그들이 탄 배는 무서운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웨슬레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배에 타고 있던 25명의 모라비아교인들은 한 사람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모라비아교인 : 진젠도르프 백작을 중심으로 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 그들은 항해하는 배 속에서 음식을 나르고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뻐기지 않고, 허세를 부리지 않고, 혈기를 부리지도 않았습니다. 배위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덮쳐 눌르고 갑판 사이로 물결이 노도처럼 밀려들어왔습니다. 선실도 아비규환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아교인들은 조용히 찬송을 계속해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그들에게 묻습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부인들도 아이들도 . . .무서워 하지 않았습니다. 웨슬레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 미국에서 만난 슈팡 베르크 목사 마침내 웨슬레는 미국 땅에 도착했고, 모라비아교인들의 소개로 그 곳에 먼저 파견된 선교사 아우구스트 슈팡겐베르크 목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웨슬레는 그 목사에게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슈팡겐베르크 목사는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알고 있읍니까? 당신 속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만한 증거가 있습니까?”(요1서5장10절) 웨슬레는 그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매우 당황했습니다. 슈팡 겐베르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시오?” 웨슬레는 궁리 끝에 “나는 그 분이 세상의 구주신 줄을 알고 있읍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분이 당신을 이미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나는 그가 나를 구원하기 위해 돌아가셨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웨슬리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 소피아 홉키와의 사랑 그러던 중 소피아 홉키 (Sophia Hopkey)라는 부자집 딸과 사랑하게 되었으니 홉키는 윌리암슨이라는 남자와 결혼해 버립니다. 그 뒤 웨슬레는 홉키에게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일로 홉키의 숙부가 웨슬레를 고소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 다시 영국으로, 뵐러 목사님을 만나 영국에 도착한 웨슬레는 또 한 사람의 모라비아교 페터 뵐러목사를 만나게 됩니다. 웨슬리는 설교를 하지 않을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복음을 깨닫지 못했으면서 어떻게 남에게 전 할 수 있겠는가?’ 고민하는 웨슬리에게 뵐러목사는 설교를 하지 않을려는 웨슬리에게 “당신이 확실한 믿음이 생기기까지 믿음을 전하시지요. 그런 다음엔 믿음을 얻었으므로 믿음을 전하시게 될 것입니다” 뵐러 목사님은 믿음은 순식간에 마음에 이름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웨슬리는 뵐러목사님이 말한 사실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구원이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가?’ ‘어떻게 믿음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사실이 순간적으로 구원 얻은 것만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웨슬리의 고집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웨슬리는 체험을 얻지 못했으나, 누구든지 믿는 순간에 구원이 단번에 이루어짐을 거리낌 없이 외쳤습니다. 그런데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영국의 교회들은 웨슬리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성직자 대접을 못 받게 되었습니다. * 그후 1738년 5월24일 그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5월 24일 수요일 아침 5시경 나는 성경을 열어서 벧후1:4를 읽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라는 말씀이 내 눈에 닿았다. 그 날 오후, 교회에서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130편) 라는 성가대 합창을 들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올더스게이트가의 모임에 갔다. 그 집회는 페인트공인 홀런드씨가 인도하고 있었다. 그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였다. 8시 45분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에 대하여 그 사람이 말할 때에 이상하게 내 마음에 감동이 왔다. 나는 나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나의 죄를, 바로 내 죄를 제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직후 나를 특히 괴롭히며 박해하던 원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리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내가 처음으로 마음속에 경험한 사실을 간증했다.” 말씀을 듣고 있는데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뜨거워짐은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열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 사람들에게 열정이나 열심은 아주 중요합니다. *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에 대한 열정이 일어납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때 마음에 뜨거워집니다. 사랑이 불붙게 되는 것입니다. *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 그의 뜨거워진 사건, 때문에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거점이 마련된 것입니다. 요3:3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거듭나야 합니다. 변화되어야 합니다. 회심해야 합니다. 지식으로만은 안됩니다. 결심만으로도 안됩니다. 웨슬리의 결심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것으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속죄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마음에 불타오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통해서 오게 된 것입니다. 그 확신은 말씀을 들을 때 왔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이 순간은 웨슬레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는 82세의 고령에 이르도록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전국을 일주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 뜨거움을 회복하라 회심이라고 하면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회심을 하고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도 회심입니다. 낙심에서 다시 돌아온 것도 회심입니다. 뜨뜻미지근한 믿음을 가졌다가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된 것도 회심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가운데 회심이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많은 크리스챤들은 구원을 체험하고 나면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구원에 대해, 신앙생활에 대해서 느슨해집니다. 자신의 그 모습에 만족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도 느슨해 집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초대교회 일곱교회 중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우리의 열정이 떨어지기 쉬운 때는 우리의 삶이 넉넉할 때입니다. 모자람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될 때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합니다. 열정이 사라지게 합니다. 영적힘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우리가 성결케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기쁨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찬양의 능력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오면 내 속에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가 물러가고 그 속에 찬양과 감사가 나타납니다.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령께서 도우시지 않으시면 않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교회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하게 되는 회심, 내 일생을, 목숨을 바쳐 주님께 바쳐야 하겠다는 결심으로 충만케 되는 회심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가운에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3. 한 사람의 변화는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18세기 당시 영국 사회는 한마디로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18세기 영국 국교회(성공회)는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성도들은 습관적으로 교회에 출석했으며 사회에 불신앙과 부도덕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교회 설교는 도덕성 강연회 같았고 노동자와 빈민들은 교회의 영역 밖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사회의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원리와도 같습니다. 당시 영국은 음란, 음주, 도박. . . 정부가 복권 제도를 장려하여 국민들 사이에 사행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와 너무 비슷합니다. 소망이 없던 영국 사회가 변화된 웨슬리 한 사람의 복음운동으로 인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웨슬리는 야외설교를 시작으로 80세까지 4만-5만회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설교와 함께 실제적인 구제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회복지 기관도 많이 설립했습니다. 웨슬리는 노예 제도 폐지와 노예 해방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흑인 노예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백인들과 함께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흑인 학교를 위한 모금 운동과 흑인 노예들의 교육에 필요한 도서 보내기 운동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책자를 출판해 노예 제도의 폐해를 강렬하게 공격하므로 1807년에는 ‘노예 매매 폐지법’과 1833년 ‘노예 해방 법령’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세계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회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고 미국의 대각성 운동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웨슬리의 복음 운동은 영국에서 피 흘리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후 탄광 지대, 빈민촌. . 삶의 구석진 곳을 찾아갔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때 웨슬리 목사님의 감리교 운동이 없었다면 영국에서는 틀림없이 유혈폭동이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 있습니다. 시대마다 중요한 회심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회심, 어거스틴의 회심, 루터의 회심,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을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라고 합니다. 이 네 회심은 각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참회록」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는 많은 저작 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개신교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은 조금 전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감리교라는 열매와 어둠으로 가득 찼던 18세기의 영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한국 감리교회도 150만이 넘는 큰 교회로 발전하였습니다. 교파는 다르지만 성결교회 역시 웨슬리의 후예들입니다. 전 세계의 웨슬리 가족이 4천만은 된다고 합니다. 하나의 중생의 경험이 이렇게 엄청만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지도력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진정한 지도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심각한 현상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들의 생애를 통해서 사회는 변화됩니다. 웨슬리는 영적 침체의 시대에 비전의 사람, 개혁의 사람, 헌신의 사람으로서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웨슬리 운동이 이 땅에 다시한번 나를 통하여 꽃이 피기를 바랍니다. 4. 우리 이 땅에 웨슬리의 운동이 필요합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참으로 비참했고 열악했습니다. 웨슬리는 가난한 자들에 관해 구호 차원을 넘어 이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고 제거하는 것을 기독교의 사명을 보여 준 사람입니다. 당시 메도디스트들은 곤궁에 처해 있는 자들을 돕기 위해 매주 모금을 했습니다. 농사의 작황이 안 좋을 때에는 특별 모금을 했습니다. 때로는 웨슬리가 직접 거리에 나가 모금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직자들을 위해 목화 손질과 방적 일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도 했습니다. 기숙사 학교제도로 1748년에 설립한 새로운 킹스우드 학교에서는 읽기, 쓰기, 셈하기, 영어, 불어, 라틴어, 희랍어, 히브리어, 수사학, 역사, 작문, 지리, 대수, 물리, 원예, 음악 등. 당시의 관점으로 볼 때 매우 혁신적인 것으로서, 교육에 대한 선각자였습니다. 웨슬리는 회심을 한 다음에 탄광 지대를 찾아가서 광부들에게 설교하고 빈민촌을 찾아가서 설교했습니다. 당시 영국 교회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금지했습니다. 영국 교회는 품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 웨슬리 목사님은 “세계가 나의 교구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개척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유대인들의 위협과 박해와 훼방이 아주 심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교회를 개척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방해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직 교회다운 면모를 갖추지 못하고 미숙한 상태인데도 사도 바울은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 그 교회에 대한 염려가 참 많았습니다. 늘 그 교회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파송해서 그 교회가 여전히 잘 모이고 있는지, 잘 견디어내고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잘 지켜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근처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도 모범이 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본 장에서 감사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3절에 보면 이것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입니다. 1) 믿음의 역사 - 데살로니가교회는 박해 속에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그래서 애착이 더 있습니다. 바울은 멀리 있어도 그 교회를 위해서 매일 기도합니다. 얼마나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겠습니까. 어린아이를 떼어놓은 부모의 심정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기를, 환난과 핍박을 잘 견디고 성장하기를. . .궁금해서 디모데를 보내어 들으니 바울이 떠난 뒤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우상도 버리고 회개하여 완전히 변화 받은 모습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믿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이런 변화를 수반합니다. 웨슬리가 믿음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영국 사회가 변화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입니다. 2) 사랑의 수고 - 데살로니가 교인은 지금까지 우상 숭배하던 삶을 끊고 완전히 변화되어 하나님만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했던 그 열심을 바꾸어 하나님께 더욱 쏟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사랑에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가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도 헛말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고통 없는 사랑에는 삶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수고와 희생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입으로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지만 . . . 예수님의 사랑은 입술로만의 사랑이 아닙니다. 십자가 희생을 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이겨 내셨습니다. 3) 소망의 인내 - 사람은 아무런 목적 없이 맹목적으로 수고하거나 희생 하지 않습니다. 농부의 소망은 추수입니다. 그 소망 이 있기에 1년 동안 수고하고 땀 흘리고 인내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바라보며 투자하고 또 열정을 다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인내의 동기는 ‘예수님 재림 신앙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는 사람은 매일같이 놉니다. 우리의 신앙은 회심 전 웨슬리처럼 개인의 경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뜨거운 신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사회에 영향을 주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가 그런 교회, 웨슬리의 후예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웨슬리 회심의 둘째 열매/ 잠11:25-31/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2-05-24
웨슬리 회심의 둘째 열매 잠11:25-31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金益斗) 목사님에게 이런 잘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 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황해도 일대를 주름잡던 불량배였다가 예수를 믿고 회개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어느 더운 여름날, 전도를 다니다가 고개 마루턱에 앉아서 땀을 들 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조무래기 불량배 하나가 공연히 시비를 걸더니 무작정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직접 하신 표현을 빌면 \\\'복날 개 패 듯이\\\' 팼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대항하지 않고 그 매를 고스란히 다 맞 고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다 때리셨소?\\\" \\\"그래, 다 때렸다. 왜 더 맞고 싶으냐?\\\" \\\"그런데 형님 내가 누구인줄 아시오?\\\" \\\"네가 누군지 내가 알게 무어냐?\\\" \\\"형님, 내가 김익두요!\\\" 이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만 얼굴이 흙빛이 되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무릎 을 꿇고 싹싹 빌었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그 조무래기 불량배를 일으키 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형님이 받았소!\\\"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날 정말 무 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당신이 받았다.\\\' 하는 말은 맞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에 대해 생각할 때 지금 소개해 드린 김익두 목 사님이 한 말을 이야기를 이렇게 변형할 수 있습니다.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18세기 영국 사회가 대단히 타락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사회 의 모습을 여섯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무질서와 혼란\\\' 이것입니다. 뒤죽박 죽이었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으며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무엇인가 터지기 직전 의 상태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때웨슬리 목사님의 감리교 운동이 없었다면 영 국에서는 틀림없이 유혈폭동이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 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두 개의 큰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감리교회라는 열매입니다. 여기에는 구세군과 성결교를 비롯하여 감리교 에서 파생된 몇 몇 교파들이 포함됩니다. 참으로 큰 열매이고 알찬 열매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 열매들 가운데 하나 입니다. 우리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저희 교회에서 열리는 용인서지방 요한 웨슬리 회심기념 집회에서는 이 열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피게 될 것입니다. 연합집회의의 설교 제목이 \\\'감 리교인의 마음\\\'이지요. 또 하나는 영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입니다.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웨슬리 목사님이 일으킨 감리교 운동을 통해 변화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사회변화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경제정의를 강조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 될 수 있는 대로 좋 은 일에 많이 써라.\\\' 웨슬리 목사님의 이 말은 경제정의의 대 원칙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설교와 함께 실제적인 구제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회복지 기관도 많이 설립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는 \\\"18세기 요한 웨슬리에 의 해 일어난 감리교회가 영국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켰으므로 불란서와 같은 유혈 혁명이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라일의 이 말에서 중간 부분을 빼면 \\\'감리교회가 영국 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 이렇게 됩니다. 바울의 회심, 어거스틴의 회심, 루터의 회심,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을 인류 역사 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라고 합니다. 이 네 회심은 각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참회록」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는 많은 저작 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개신교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은 조금 전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감리교라는 열매와 영 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회심이라고 하면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데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회심을 하고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 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 회심입니다. 예수를 믿다가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났는데 이기고 다시 돌아온 것, 회심입니 다. 뜨뜻미지근한 믿음을 가졌다가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된 것, 회심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다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확신하게 된 것, 회심입니 다. 교회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해야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내 일생을 예수님께 바쳐야하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회심의 바른 뜻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 회심을 하지 않은 분들은 한 분도 없다 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회심이 얼마나 분명한 것이냐, 얼마나 강렬한 것이냐, 얼마나 뜨거운 것이냐, \\\'나는 회심을 했다.\\\'는 의식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느냐, 회심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르냐, 그 회심이 얼마나 사후관리(양육)가 잘 되고 있느냐, 이것이 차 이가 나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분명한 회심, 강렬한 회심, 뜨거운 회심, 의식화된 회심, 회심 이 전과 이후가 다른 회심, 사후관리가 잘 되고 있는 회심이 되기 바랍니다.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요. \\\'종은 울려야 종이고, 노래는 입밖으로 나와야 노래이고 사랑은 실천되어야 사랑이다.\\\' 여기 에 하나를 덧붙이면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회신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회심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작아도 좋습니다. 열매가 있어야합니다. 찬송가 378장의 가사 끝 절을 기억하지지요?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 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회심의 열매가 크냐 작으냐 하는 것도 안 살피시는 것은 아닙니 다. 먼저 살피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열매를 맺기 위 해 얼마나 충성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 가의 무화과나무가 작더라도 열매가 있었으면 예수 님의 저주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의 변화라는 열매, 가정의 변화라는 열매, 내가 속해 있는 직 장의 변화라는 열매, 주변의 변화라는 열매, 전도의 열매, 회심의 열매를 맺으 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는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이 맺은 두 번째 열매, 사회의 변화와 구 원, 국가의 변화와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아니 명하십니다. 이 사회가 그것을 원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아까 웨슬리 목사님 당시 영국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요약된다고 했는데 이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것들이 음란, 음주, 도박입니다. 사회 전체가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고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도박장이었습니다. 특별히 정부 가 복권 제도를 장려해서 사행심이 국민들 사이에 만연되었습니다. 건강하게 땀 흘려서 돈벌려 하지 않고 손쉽게, 일시에 돈 벌려 하는 사회는 골병든 사회인데 골병이 들대로 들었습니다. 무슨 강연처럼 될까봐 많이 말씀 드리지 않겠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가 이와 얼 마나 비슷합니까? 지난 5월 13일자 「중앙일보」보도에 따르면 작년 1년 동안 만 20세 이상 성인 한 사람이 맥주는 119병, 소주는 79병씩 마셨다고 합니다. 소주와 위스키 같은 독한 술 소비는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기사의 제목이 \\\"술 갈수록 더 마신다\\\"입니다. 내년에는 더 많이 마셨다는 통계가 발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도 어디엔가 만들어진 카지노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매스컴에서 종종 대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대낮에 큰 규모의 도박판 을 벌이다가 경찰에 단속되는 장면이 그치지 않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 당시에는 마약 문제가 어떻하였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마약 문제, 얼마나 심각합니까? 웨슬리 목사님은 이런 것들에 도전하여 하나 하나 극복하고 변화시켜 나갑니다. 영국을 방문한 여행자 한 사람이 술을 사러 상점에 들렸더니 \\\"여기는 \\\'Dry Town\\\'이어서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Dry Town\\\'이 무엇인 가 했더니 웨슬리 목사님이 전도 여행을 다닌 곳에서는 그 영향으로 지금도 술 을 팔지 않는데 그런 마을들을 이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양교회가 있어서 수지가 Dry Town이 되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 나 좋겠습니까? 1907년에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나라를 일본에 거 의 빼앗기고, 흉년이 계속되어 살기 어렵고, 견딜 수 없이 답답하고, 교회 안에 서는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20년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초기 단계 의 흥분을 지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런 때 평양에서 있었던 한 부흥사경 회가 계기가 되어 폭발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교회의 성장이라는 열매입니 다. 이 때 교인과 교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1년 사이에 두 배, 또는 두 배 반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월요일마다 새벽에 극동방송을 통해 북한 각 지역을 하나 하나 순방하면 서 \\\'이 지역에는 과거에 어떤 교회들이 있었고 그 교회는 몇 년에 세워졌고 어 떤 목사님이 담임했었습니다\\\' 하는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주보 4쪽 제일 밑에 싣고 있는데 여러분 그것을 보면서 그 지역들을 위해서 기 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일과 북한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추상적인 데서 조금 구체적인 것으로 진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다보면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세워진 교회들이 유난히 많은 것 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한국 교회에 제2의 1907년을 주옵소서. 특별히 목양교회에 제2의 1907 년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또 하나의 열매가 사회의 변화입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하 고 예전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과를 합니다. 깨어진 가정이 다 시 결합됩니다. 가게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느닷없이 웬 사람이 나타나 \\\'나, 얼마 전에 이 가게에서 이 물건을 훔쳤습니다. 돌려 드립니다.\\\' 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직접 찾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편지로 보냈다고 합니다. 주인은 머슴에게 \\\'내가 자네에게 품삯을 이만큼 주어야 할 것을 그 때 왜 그렇 게 인색했는지 후려쳐 깎았네. 미안하네. 그 때 제대로 주지 않은 품삯일세\\\' 이 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07년의 대부흥운동을 \\\'실천적 회개가 동반된 윤리적인 부흥운동\\\'이라 고 말합니다. 여러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지요?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제일 큰 문제가 개인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과 사회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 사이에 의견이 잘 맞지 않는 것입 니다. \\\'보혁(保革)간의 갈등\\\'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이라고 하면 부정을 폭로하는 것, 성명서를 발표하 는 것, 정부에 대항하는 것, 데모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았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부정과 독재가 심해서 빚어진 현상이지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 다. 개인이 회심을 하고 구원 받고, 변화된 삶을 살고 그 변화된 삶이 확대되어 주변이 변화되고 나가서는 사회가 변화되는 것, 이것이 사회구원의 본질입니다. 사회구원이라고 하면 교회 안의 젊은이들이나 하는 것, 운동권이나 하는 것, 액 션 그룹(Action Group)이나 하는 것,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전 교인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사회구원으로 연결되지 않 는 개인구원은, 오늘 설교의 표현에 맞춘다면 사회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 는 개인구원은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또 변화된 사회 속에서는 개인구원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과 감리교 운동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웨슬리 목사님 회심이 두 번째 열매, 사회와 국가의 변화, 그리 고 구원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수분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햇볕을 받아 야 합니다. 신앙의 영양은 기도, 말씀, 묵상, 경건생활입니다. 이것 없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평생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신 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한 것입니다. 또한, 함께 있어야합니다. 집에서 과일나무 한 두 그루씩 키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매를 잘 맺습니까? 잘 맺지 못합니다. 과일나무는 과수원에 있어야 크고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라는 과수원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증에 힘써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1738년 5월 24일 밤, 올더스게잇 거리의 작은 모임에서 회심을 하고 첫 번째로 한 것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회심을 말한 것이었습니 다. 지난 주일 주보 7쪽 목양광장에 소개한 웨슬리 목사님이 회심한 날의 일기를 기억하시지요? 감리교인이면 암송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오후 아홉 시 15분 전 그 사람(낭독자)이 그 서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의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논하는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나의 마 음이 이상스럽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내 죄, 나 자신의 죄를 가져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내게 주셨다. 그 후에 나는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 위해서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경험을 다 말 하였다. 우리는 남의 간증을 통해서 은혜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내 간증을 통해서 남 에게 은혜를 줄 생각도 해야합니다. 이름난 분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 지만 이웃 성도의 소박한 간증을 통해서 그에 못지않는 은혜를 받는 일이 많 습니다. 어제 저희 교회 호산나 찬양대 지휘자 함석헌 선생이 영산 아트홀에서 귀국 독 창회를 가졌는데 앙코르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마지막 앙코르 곡을 부르기 전 에 한 마디 했지요. \\\"내가 늘 잊지 못하는 분이 둘 있는데 한 분은 예수님이고 한 분은 지도교수님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불렀습니다. 이거, 짧지만 감동적인 간증입니다. 멋있는 간증입니다. \\\'내 예술은 예수님을 바 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고백이지 요. 축구 선수가 슛을 성공시키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도 간증입니 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고, 재능 주시고 기회 주셔서 득점을 했습니다.\\\' 하는 간 증이지요. 들려주는 간증이 아니라 보여주는 간증이지요. 이번 월드컵에서 이런 간증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들 앞에서 간증하는 분들, 저희 교회에서 여선교회가 주최하는 간증성회에 서 간증하는 분들의 간증은 전도에 도움을 주고 듣는 이들에게 도전과 은혜를 주고 재훈련이라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속회나 선교회에서 모임들에서 간증을 나누는 일이 많아져야 겠는 데 요, 앞으로 목양교회 속회에는 그런 순서를 고정적으로 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 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간증,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간증 성격의 내용을 말할 때는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주면서 간증을 하는 분에게는 \\\'나는 이 간증대 로 살겠습니다.\\\' \\\'나는 이 간증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다짐하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간증을 많이 나누고 그 간증대로 사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 러면 우리의 주변의 변화, 사회의 변화 나가서는 사회 구원으로 연결되고 확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곳에 있는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을 한 다음에 탄광 지대를 찾아가서 광부들에게 설교하고 빈민촌을 찾아가서 설교합니다. 영국 교회에서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 다. 영국 교회는 품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습니다. 격식을 중요하 게 생각했습니다. 교구 제도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이런 것을 고교회(高敎會 High Church)라고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영국 교회에 속한 목사님이었는데 영국 교회에서는 웨슬리 목 사님이 그런 곳에 가서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금지했습니 다. 이 때 웨슬리 목사님은 \\\"세계가 나의 교구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지금은 해외선교를 강조하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의 뜻은 \\\'나는 내 교구 안에서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전도하겠습니다.\\\'라 는 뜻입니다. 영국 교회에서 더 못마땅하게 여기고 웨슬리 목사님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하는 수 없이 만든 것이 감리교회입니다. 처음부터 갈라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 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 \\\'땅 끝\\\'을 오랫동 안 지리적인 개념을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먼 곳, 가기 힘든 곳, 이렇게 생각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문화적인 차이를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외선교라는 말 대신에 타문화권 선교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상징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합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땅 끝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260 여 년 전부더 이 시대의 땅 끝 선교를 미리 하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참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 영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가 없었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입 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회심도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를 하나님이 원하시고 사람들이 기대합니다. \\\'신앙생활은 감리교인들이 잘 하고 구원은 한국 사회가 받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영양분을 힘써 공급하고 간증에 힘쓰고 낮은 곳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 게 관심을 갖아서 이 열매를 많이 맺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우리를 감 리교인으로, 웨슬리안으로 부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웨슬리 회심의 둘째 열매/ 잠11:25-31/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2-05-24
웨슬리 회심의 둘째 열매 잠 11:25∼31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金益斗) 목사님에게 이런 잘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 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황해도 일대를 주름잡던 불량배였다가 예수를 믿고 회개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어느 더운 여름날, 전도를 다니다가 고개 마루턱에 앉아서 땀을 들 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조무래기 불량배 하나가 공연히 시비를 걸더니 무작정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직접 하신 표현을 빌면 \'복날 개 패 듯이\' 팼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대항하지 않고 그 매를 고스란히 다 맞 고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다 때리셨소?\" \"그래, 다 때렸다. 왜 더 맞고 싶으냐?\" \"그런데 형님 내가 누구인줄 아시오?\" \"네가 누군지 내가 알게 무어냐?\" \"형님, 내가 김익두요!\" 이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만 얼굴이 흙빛이 되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무릎 을 꿇고 싹싹 빌었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그 조무래기 불량배를 일으키 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형님이 받았소!\"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날 정말 무 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당신이 받았다.\' 하는 말은 맞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에 대해 생각할 때 지금 소개해 드린 김익두 목 사님이 한 말을 이야기를 이렇게 변형할 수 있습니다.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18세기 영국 사회가 대단히 타락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사회 의 모습을 여섯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무질서와 혼란\' 이것입니다. 뒤죽박 죽이었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으며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무엇인가 터지기 직전 의 상태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때웨슬리 목사님의 감리교 운동이 없었다면 영 국에서는 틀림없이 유혈폭동이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 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두 개의 큰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감리교회라는 열매입니다. 여기에는 구세군과 성결교를 비롯하여 감리교 에서 파생된 몇 몇 교파들이 포함됩니다. 참으로 큰 열매이고 알찬 열매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 열매들 가운데 하나 입니다. 우리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저희 교회에서 열리는 용인서지방 요한 웨슬리 회심기념 집회에서는 이 열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피게 될 것입니다. 연합집회의의 설교 제목이 \'감 리교인의 마음\'이지요. 또 하나는 영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입니다.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웨슬리 목사님이 일으킨 감리교 운동을 통해 변화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사회변화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경제정의를 강조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 될 수 있는 대로 좋 은 일에 많이 써라.\' 웨슬리 목사님의 이 말은 경제정의의 대 원칙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설교와 함께 실제적인 구제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회복지 기관도 많이 설립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는 \"18세기 요한 웨슬리에 의 해 일어난 감리교회가 영국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켰으므로 불란서와 같은 유혈 혁명이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라일의 이 말에서 중간 부분을 빼면 \'감리교회가 영국 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 이렇게 됩니다. 바울의 회심, 어거스틴의 회심, 루터의 회심,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을 인류 역사 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라고 합니다. 이 네 회심은 각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참회록」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는 많은 저작 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개신교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은 조금 전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감리교라는 열매와 영 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회심이라고 하면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데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회심을 하고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 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 회심입니다. 예수를 믿다가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났는데 이기고 다시 돌아온 것, 회심입니 다. 뜨뜻미지근한 믿음을 가졌다가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된 것, 회심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다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확신하게 된 것, 회심입니 다. 교회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해야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내 일생을 예수님께 바쳐야하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회심의 바른 뜻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 회심을 하지 않은 분들은 한 분도 없다 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회심이 얼마나 분명한 것이냐, 얼마나 강렬한 것이냐, 얼마나 뜨거운 것이냐, \'나는 회심을 했다.\'는 의식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느냐, 회심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르냐, 그 회심이 얼마나 사후관리(양육)가 잘 되고 있느냐, 이것이 차 이가 나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분명한 회심, 강렬한 회심, 뜨거운 회심, 의식화된 회심, 회심 이 전과 이후가 다른 회심, 사후관리가 잘 되고 있는 회심이 되기 바랍니다.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요. \'종은 울려야 종이고, 노래는 입밖으로 나와야 노래이고 사랑은 실천되어야 사랑이다.\' 여기 에 하나를 덧붙이면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회신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회심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작아도 좋습니다. 열매가 있어야합니다. 찬송가 378장의 가사 끝 절을 기억하지지요?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 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회심의 열매가 크냐 작으냐 하는 것도 안 살피시는 것은 아닙니 다. 먼저 살피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열매를 맺기 위 해 얼마나 충성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 가의 무화과나무가 작더라도 열매가 있었으면 예수 님의 저주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의 변화라는 열매, 가정의 변화라는 열매, 내가 속해 있는 직 장의 변화라는 열매, 주변의 변화라는 열매, 전도의 열매, 회심의 열매를 맺으 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는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이 맺은 두 번째 열매, 사회의 변화와 구 원, 국가의 변화와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아니 명하십니다. 이 사회가 그것을 원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아까 웨슬리 목사님 당시 영국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요약된다고 했는데 이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것들이 음란, 음주, 도박입니다. 사회 전체가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고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도박장이었습니다. 특별히 정부 가 복권 제도를 장려해서 사행심이 국민들 사이에 만연되었습니다. 건강하게 땀 흘려서 돈벌려 하지 않고 손쉽게, 일시에 돈 벌려 하는 사회는 골병든 사회인데 골병이 들대로 들었습니다. 무슨 강연처럼 될까봐 많이 말씀 드리지 않겠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가 이와 얼 마나 비슷합니까? 지난 5월 13일자 「중앙일보」보도에 따르면 작년 1년 동안 만 20세 이상 성인 한 사람이 맥주는 119병, 소주는 79병씩 마셨다고 합니다. 소주와 위스키 같은 독한 술 소비는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기사의 제목이 \"술 갈수록 더 마신다\"입니다. 내년에는 더 많이 마셨다는 통계가 발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도 어디엔가 만들어진 카지노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매스컴에서 종종 대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대낮에 큰 규모의 도박판 을 벌이다가 경찰에 단속되는 장면이 그치지 않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 당시에는 마약 문제가 어떻하였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마약 문제, 얼마나 심각합니까? 웨슬리 목사님은 이런 것들에 도전하여 하나 하나 극복하고 변화시켜 나갑니다. 영국을 방문한 여행자 한 사람이 술을 사러 상점에 들렸더니 \"여기는 \'Dry Town\'이어서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Dry Town\'이 무엇인 가 했더니 웨슬리 목사님이 전도 여행을 다닌 곳에서는 그 영향으로 지금도 술 을 팔지 않는데 그런 마을들을 이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양교회가 있어서 수지가 Dry Town이 되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 나 좋겠습니까? 1907년에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나라를 일본에 거 의 빼앗기고, 흉년이 계속되어 살기 어렵고, 견딜 수 없이 답답하고, 교회 안에 서는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20년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초기 단계 의 흥분을 지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런 때 평양에서 있었던 한 부흥사경 회가 계기가 되어 폭발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교회의 성장이라는 열매입니 다. 이 때 교인과 교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1년 사이에 두 배, 또는 두 배 반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월요일마다 새벽에 극동방송을 통해 북한 각 지역을 하나 하나 순방하면 서 \'이 지역에는 과거에 어떤 교회들이 있었고 그 교회는 몇 년에 세워졌고 어 떤 목사님이 담임했었습니다\' 하는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주보 4쪽 제일 밑에 싣고 있는데 여러분 그것을 보면서 그 지역들을 위해서 기 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일과 북한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추상적인 데서 조금 구체적인 것으로 진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다보면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세워진 교회들이 유난히 많은 것 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한국 교회에 제2의 1907년을 주옵소서. 특별히 목양교회에 제2의 1907 년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또 하나의 열매가 사회의 변화입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하 고 예전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과를 합니다. 깨어진 가정이 다 시 결합됩니다. 가게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느닷없이 웬 사람이 나타나 \'나, 얼마 전에 이 가게에서 이 물건을 훔쳤습니다. 돌려 드립니다.\' 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직접 찾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편지로 보냈다고 합니다. 주인은 머슴에게 \'내가 자네에게 품삯을 이만큼 주어야 할 것을 그 때 왜 그렇 게 인색했는지 후려쳐 깎았네. 미안하네. 그 때 제대로 주지 않은 품삯일세\' 이 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07년의 대부흥운동을 \'실천적 회개가 동반된 윤리적인 부흥운동\'이라 고 말합니다. 여러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지요?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제일 큰 문제가 개인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과 사회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 사이에 의견이 잘 맞지 않는 것입 니다. \'보혁(保革)간의 갈등\'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이라고 하면 부정을 폭로하는 것, 성명서를 발표하 는 것, 정부에 대항하는 것, 데모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았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부정과 독재가 심해서 빚어진 현상이지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 다. 개인이 회심을 하고 구원 받고, 변화된 삶을 살고 그 변화된 삶이 확대되어 주변이 변화되고 나가서는 사회가 변화되는 것, 이것이 사회구원의 본질입니다. 사회구원이라고 하면 교회 안의 젊은이들이나 하는 것, 운동권이나 하는 것, 액 션 그룹(Action Group)이나 하는 것,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전 교인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사회구원으로 연결되지 않 는 개인구원은, 오늘 설교의 표현에 맞춘다면 사회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 는 개인구원은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또 변화된 사회 속에서는 개인구원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과 감리교 운동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웨슬리 목사님 회심이 두 번째 열매, 사회와 국가의 변화, 그리 고 구원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수분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햇볕을 받아 야 합니다. 신앙의 영양은 기도, 말씀, 묵상, 경건생활입니다. 이것 없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평생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신 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한 것입니다. 또한, 함께 있어야합니다. 집에서 과일나무 한 두 그루씩 키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매를 잘 맺습니까? 잘 맺지 못합니다. 과일나무는 과수원에 있어야 크고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라는 과수원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증에 힘써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1738년 5월 24일 밤, 올더스게잇 거리의 작은 모임에서 회심을 하고 첫 번째로 한 것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회심을 말한 것이었습니 다. 지난 주일 주보 7쪽 목양광장에 소개한 웨슬리 목사님이 회심한 날의 일기를 기억하시지요? 감리교인이면 암송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오후 아홉 시 15분 전 그 사람(낭독자)이 그 서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의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논하는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나의 마 음이 이상스럽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내 죄, 나 자신의 죄를 가져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내게 주셨다. 그 후에 나는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 위해서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경험을 다 말 하였다. 우리는 남의 간증을 통해서 은혜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내 간증을 통해서 남 에게 은혜를 줄 생각도 해야합니다. 이름난 분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 지만 이웃 성도의 소박한 간증을 통해서 그에 못지않는 은혜를 받는 일이 많 습니다. 어제 저희 교회 호산나 찬양대 지휘자 함석헌 선생이 영산 아트홀에서 귀국 독 창회를 가졌는데 앙코르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마지막 앙코르 곡을 부르기 전 에 한 마디 했지요. \"내가 늘 잊지 못하는 분이 둘 있는데 한 분은 예수님이고 한 분은 지도교수님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불렀습니다. 이거, 짧지만 감동적인 간증입니다. 멋있는 간증입니다. \'내 예술은 예수님을 바 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고백이지 요. 축구 선수가 슛을 성공시키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도 간증입니 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고, 재능 주시고 기회 주셔서 득점을 했습니다.\' 하는 간 증이지요. 들려주는 간증이 아니라 보여주는 간증이지요. 이번 월드컵에서 이런 간증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들 앞에서 간증하는 분들, 저희 교회에서 여선교회가 주최하는 간증성회에 서 간증하는 분들의 간증은 전도에 도움을 주고 듣는 이들에게 도전과 은혜를 주고 재훈련이라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속회나 선교회에서 모임들에서 간증을 나누는 일이 많아져야 겠는 데 요, 앞으로 목양교회 속회에는 그런 순서를 고정적으로 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 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간증,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간증 성격의 내용을 말할 때는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주면서 간증을 하는 분에게는 \'나는 이 간증대 로 살겠습니다.\' \'나는 이 간증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다짐하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간증을 많이 나누고 그 간증대로 사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 러면 우리의 주변의 변화, 사회의 변화 나가서는 사회 구원으로 연결되고 확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곳에 있는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을 한 다음에 탄광 지대를 찾아가서 광부들에게 설교하고 빈민촌을 찾아가서 설교합니다. 영국 교회에서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 다. 영국 교회는 품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습니다. 격식을 중요하 게 생각했습니다. 교구 제도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이런 것을 고교회(高敎會 High Church)라고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영국 교회에 속한 목사님이었는데 영국 교회에서는 웨슬리 목 사님이 그런 곳에 가서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금지했습니 다. 이 때 웨슬리 목사님은 \"세계가 나의 교구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지금은 해외선교를 강조하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의 뜻은 \'나는 내 교구 안에서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전도하겠습니다.\'라 는 뜻입니다. 영국 교회에서 더 못마땅하게 여기고 웨슬리 목사님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하는 수 없이 만든 것이 감리교회입니다. 처음부터 갈라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 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 \'땅 끝\'을 오랫동 안 지리적인 개념을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먼 곳, 가기 힘든 곳, 이렇게 생각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문화적인 차이를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외선교라는 말 대신에 타문화권 선교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상징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합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땅 끝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260 여 년 전부더 이 시대의 땅 끝 선교를 미리 하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참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 영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가 없었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입 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회심도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를 하나님이 원하시고 사람들이 기대합니다. \'신앙생활은 감리교인들이 잘 하고 구원은 한국 사회가 받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영양분을 힘써 공급하고 간증에 힘쓰고 낮은 곳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 게 관심을 갖아서 이 열매를 많이 맺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우리를 감 리교인으로, 웨슬리안으로 부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웨슬리 회심의 둘째 열매/ 잠11:25-31/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2-05-24
웨슬리 회심의 둘째 열매 잠11:25-31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金益斗) 목사님에게 이런 잘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 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황해도 일대를 주름잡던 불량배였다가 예수를 믿고 회개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어느 더운 여름날, 전도를 다니다가 고개 마루턱에 앉아서 땀을 들 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조무래기 불량배 하나가 공연히 시비를 걸더니 무작정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직접 하신 표현을 빌면 \'복날 개 패 듯이\' 팼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대항하지 않고 그 매를 고스란히 다 맞 고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다 때리셨소?\" \"그래, 다 때렸다. 왜 더 맞고 싶으냐?\" \"그런데 형님 내가 누구인줄 아시오?\" \"네가 누군지 내가 알게 무어냐?\" \"형님, 내가 김익두요!\" 이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만 얼굴이 흙빛이 되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무릎 을 꿇고 싹싹 빌었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그 조무래기 불량배를 일으키 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형님이 받았소!\"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날 정말 무 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당신이 받았다.\' 하는 말은 맞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에 대해 생각할 때 지금 소개해 드린 김익두 목 사님이 한 말을 이야기를 이렇게 변형할 수 있습니다.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18세기 영국 사회가 대단히 타락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사회 의 모습을 여섯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무질서와 혼란\' 이것입니다. 뒤죽박 죽이었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으며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무엇인가 터지기 직전 의 상태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때웨슬리 목사님의 감리교 운동이 없었다면 영 국에서는 틀림없이 유혈폭동이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 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두 개의 큰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감리교회라는 열매입니다. 여기에는 구세군과 성결교를 비롯하여 감리교 에서 파생된 몇 몇 교파들이 포함됩니다. 참으로 큰 열매이고 알찬 열매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 열매들 가운데 하나 입니다. 우리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저희 교회에서 열리는 용인서지방 요한 웨슬리 회심기념 집회에서는 이 열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피게 될 것입니다. 연합집회의의 설교 제목이 \'감 리교인의 마음\'이지요. 또 하나는 영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입니다.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웨슬리 목사님이 일으킨 감리교 운동을 통해 변화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사회변화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경제정의를 강조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 될 수 있는 대로 좋 은 일에 많이 써라.\' 웨슬리 목사님의 이 말은 경제정의의 대 원칙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설교와 함께 실제적인 구제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회복지 기관도 많이 설립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는 \"18세기 요한 웨슬리에 의 해 일어난 감리교회가 영국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켰으므로 불란서와 같은 유혈 혁명이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라일의 이 말에서 중간 부분을 빼면 \'감리교회가 영국 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 이렇게 됩니다. 바울의 회심, 어거스틴의 회심, 루터의 회심,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을 인류 역사 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라고 합니다. 이 네 회심은 각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참회록」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는 많은 저작 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개신교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은 조금 전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감리교라는 열매와 영 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회심이라고 하면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데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회심을 하고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 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 회심입니다. 예수를 믿다가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났는데 이기고 다시 돌아온 것, 회심입니 다. 뜨뜻미지근한 믿음을 가졌다가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된 것, 회심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다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확신하게 된 것, 회심입니 다. 교회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해야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내 일생을 예수님께 바쳐야하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회심의 바른 뜻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 회심을 하지 않은 분들은 한 분도 없다 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회심이 얼마나 분명한 것이냐, 얼마나 강렬한 것이냐, 얼마나 뜨거운 것이냐, \'나는 회심을 했다.\'는 의식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느냐, 회심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르냐, 그 회심이 얼마나 사후관리(양육)가 잘 되고 있느냐, 이것이 차 이가 나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분명한 회심, 강렬한 회심, 뜨거운 회심, 의식화된 회심, 회심 이 전과 이후가 다른 회심, 사후관리가 잘 되고 있는 회심이 되기 바랍니다.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요. \'종은 울려야 종이고, 노래는 입밖으로 나와야 노래이고 사랑은 실천되어야 사랑이다.\' 여기 에 하나를 덧붙이면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회신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회심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작아도 좋습니다. 열매가 있어야합니다. 찬송가 378장의 가사 끝 절을 기억하지지요?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 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회심의 열매가 크냐 작으냐 하는 것도 안 살피시는 것은 아닙니 다. 먼저 살피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열매를 맺기 위 해 얼마나 충성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 가의 무화과나무가 작더라도 열매가 있었으면 예수 님의 저주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의 변화라는 열매, 가정의 변화라는 열매, 내가 속해 있는 직 장의 변화라는 열매, 주변의 변화라는 열매, 전도의 열매, 회심의 열매를 맺으 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는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이 맺은 두 번째 열매, 사회의 변화와 구 원, 국가의 변화와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아니 명하십니다. 이 사회가 그것을 원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아까 웨슬리 목사님 당시 영국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요약된다고 했는데 이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것들이 음란, 음주, 도박입니다. 사회 전체가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고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도박장이었습니다. 특별히 정부 가 복권 제도를 장려해서 사행심이 국민들 사이에 만연되었습니다. 건강하게 땀 흘려서 돈벌려 하지 않고 손쉽게, 일시에 돈 벌려 하는 사회는 골병든 사회인데 골병이 들대로 들었습니다. 무슨 강연처럼 될까봐 많이 말씀 드리지 않겠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가 이와 얼 마나 비슷합니까? 지난 5월 13일자 「중앙일보」보도에 따르면 작년 1년 동안 만 20세 이상 성인 한 사람이 맥주는 119병, 소주는 79병씩 마셨다고 합니다. 소주와 위스키 같은 독한 술 소비는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기사의 제목이 \"술 갈수록 더 마신다\"입니다. 내년에는 더 많이 마셨다는 통계가 발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도 어디엔가 만들어진 카지노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매스컴에서 종종 대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대낮에 큰 규모의 도박판 을 벌이다가 경찰에 단속되는 장면이 그치지 않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 당시에는 마약 문제가 어떻하였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마약 문제, 얼마나 심각합니까? 웨슬리 목사님은 이런 것들에 도전하여 하나 하나 극복하고 변화시켜 나갑니다. 영국을 방문한 여행자 한 사람이 술을 사러 상점에 들렸더니 \"여기는 \'Dry Town\'이어서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Dry Town\'이 무엇인 가 했더니 웨슬리 목사님이 전도 여행을 다닌 곳에서는 그 영향으로 지금도 술 을 팔지 않는데 그런 마을들을 이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양교회가 있어서 수지가 Dry Town이 되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 나 좋겠습니까? 1907년에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나라를 일본에 거 의 빼앗기고, 흉년이 계속되어 살기 어렵고, 견딜 수 없이 답답하고, 교회 안에 서는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20년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초기 단계 의 흥분을 지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런 때 평양에서 있었던 한 부흥사경 회가 계기가 되어 폭발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교회의 성장이라는 열매입니 다. 이 때 교인과 교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1년 사이에 두 배, 또는 두 배 반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월요일마다 새벽에 극동방송을 통해 북한 각 지역을 하나 하나 순방하면 서 \'이 지역에는 과거에 어떤 교회들이 있었고 그 교회는 몇 년에 세워졌고 어 떤 목사님이 담임했었습니다\' 하는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주보 4쪽 제일 밑에 싣고 있는데 여러분 그것을 보면서 그 지역들을 위해서 기 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일과 북한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추상적인 데서 조금 구체적인 것으로 진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다보면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세워진 교회들이 유난히 많은 것 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한국 교회에 제2의 1907년을 주옵소서. 특별히 목양교회에 제2의 1907 년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또 하나의 열매가 사회의 변화입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하 고 예전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과를 합니다. 깨어진 가정이 다 시 결합됩니다. 가게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느닷없이 웬 사람이 나타나 \'나, 얼마 전에 이 가게에서 이 물건을 훔쳤습니다. 돌려 드립니다.\' 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직접 찾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편지로 보냈다고 합니다. 주인은 머슴에게 \'내가 자네에게 품삯을 이만큼 주어야 할 것을 그 때 왜 그렇 게 인색했는지 후려쳐 깎았네. 미안하네. 그 때 제대로 주지 않은 품삯일세\' 이 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07년의 대부흥운동을 \'실천적 회개가 동반된 윤리적인 부흥운동\'이라 고 말합니다. 여러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지요?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제일 큰 문제가 개인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과 사회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 사이에 의견이 잘 맞지 않는 것입 니다. \'보혁(保革)간의 갈등\'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이라고 하면 부정을 폭로하는 것, 성명서를 발표하 는 것, 정부에 대항하는 것, 데모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았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부정과 독재가 심해서 빚어진 현상이지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 다. 개인이 회심을 하고 구원 받고, 변화된 삶을 살고 그 변화된 삶이 확대되어 주변이 변화되고 나가서는 사회가 변화되는 것, 이것이 사회구원의 본질입니다. 사회구원이라고 하면 교회 안의 젊은이들이나 하는 것, 운동권이나 하는 것, 액 션 그룹(Action Group)이나 하는 것,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전 교인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사회구원으로 연결되지 않 는 개인구원은, 오늘 설교의 표현에 맞춘다면 사회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 는 개인구원은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또 변화된 사회 속에서는 개인구원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과 감리교 운동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웨슬리 목사님 회심이 두 번째 열매, 사회와 국가의 변화, 그리 고 구원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수분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햇볕을 받아 야 합니다. 신앙의 영양은 기도, 말씀, 묵상, 경건생활입니다. 이것 없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평생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신 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한 것입니다. 또한, 함께 있어야합니다. 집에서 과일나무 한 두 그루씩 키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매를 잘 맺습니까? 잘 맺지 못합니다. 과일나무는 과수원에 있어야 크고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라는 과수원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증에 힘써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1738년 5월 24일 밤, 올더스게잇 거리의 작은 모임에서 회심을 하고 첫 번째로 한 것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회심을 말한 것이었습니 다. 지난 주일 주보 7쪽 목양광장에 소개한 웨슬리 목사님이 회심한 날의 일기를 기억하시지요? 감리교인이면 암송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오후 아홉 시 15분 전 그 사람(낭독자)이 그 서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의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논하는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나의 마 음이 이상스럽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내 죄, 나 자신의 죄를 가져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내게 주셨다. 그 후에 나는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 위해서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경험을 다 말 하였다. 우리는 남의 간증을 통해서 은혜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내 간증을 통해서 남 에게 은혜를 줄 생각도 해야합니다. 이름난 분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 지만 이웃 성도의 소박한 간증을 통해서 그에 못지않는 은혜를 받는 일이 많 습니다. 어제 저희 교회 호산나 찬양대 지휘자 함석헌 선생이 영산 아트홀에서 귀국 독 창회를 가졌는데 앙코르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마지막 앙코르 곡을 부르기 전 에 한 마디 했지요. \"내가 늘 잊지 못하는 분이 둘 있는데 한 분은 예수님이고 한 분은 지도교수님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불렀습니다. 이거, 짧지만 감동적인 간증입니다. 멋있는 간증입니다. \'내 예술은 예수님을 바 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고백이지 요. 축구 선수가 슛을 성공시키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도 간증입니 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고, 재능 주시고 기회 주셔서 득점을 했습니다.\' 하는 간 증이지요. 들려주는 간증이 아니라 보여주는 간증이지요. 이번 월드컵에서 이런 간증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들 앞에서 간증하는 분들, 저희 교회에서 여선교회가 주최하는 간증성회에 서 간증하는 분들의 간증은 전도에 도움을 주고 듣는 이들에게 도전과 은혜를 주고 재훈련이라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속회나 선교회에서 모임들에서 간증을 나누는 일이 많아져야 겠는 데 요, 앞으로 목양교회 속회에는 그런 순서를 고정적으로 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 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간증,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간증 성격의 내용을 말할 때는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주면서 간증을 하는 분에게는 \'나는 이 간증대 로 살겠습니다.\' \'나는 이 간증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다짐하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간증을 많이 나누고 그 간증대로 사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 러면 우리의 주변의 변화, 사회의 변화 나가서는 사회 구원으로 연결되고 확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곳에 있는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을 한 다음에 탄광 지대를 찾아가서 광부들에게 설교하고 빈민촌을 찾아가서 설교합니다. 영국 교회에서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 다. 영국 교회는 품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습니다. 격식을 중요하 게 생각했습니다. 교구 제도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이런 것을 고교회(高敎會 High Church)라고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영국 교회에 속한 목사님이었는데 영국 교회에서는 웨슬리 목 사님이 그런 곳에 가서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금지했습니 다. 이 때 웨슬리 목사님은 \"세계가 나의 교구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지금은 해외선교를 강조하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의 뜻은 \'나는 내 교구 안에서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전도하겠습니다.\'라 는 뜻입니다. 영국 교회에서 더 못마땅하게 여기고 웨슬리 목사님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하는 수 없이 만든 것이 감리교회입니다. 처음부터 갈라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 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 \'땅 끝\'을 오랫동 안 지리적인 개념을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먼 곳, 가기 힘든 곳, 이렇게 생각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문화적인 차이를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외선교라는 말 대신에 타문화권 선교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상징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합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땅 끝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260 여 년 전부더 이 시대의 땅 끝 선교를 미리 하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참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 영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가 없었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입 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회심도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를 하나님이 원하시고 사람들이 기대합니다. \'신앙생활은 감리교인들이 잘 하고 구원은 한국 사회가 받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영양분을 힘써 공급하고 간증에 힘쓰고 낮은 곳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 게 관심을 갖아서 이 열매를 많이 맺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우리를 감 리교인으로, 웨슬리안으로 부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웨슬리의 불길을 우리 가슴에/ 행22:3/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3-05-24
웨슬리의 불길을 우리 가슴에 행22:3 오늘은 우리 감리교회의 뜨거운 불길을 전세계에 일으켜준 요한 웨슬레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는 제 257회 요한 웨슬레 회심주일 입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그 생애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뜨거운 삶이었다고 말할수 있읍니다. 그 분은 생애를 오직 열심으로, 뜨거움으로 살아간 분이었읍니다. 1738년 5월 24일 가슴이 뜨거워지는 회심의 체험을 한 후에 60년이라는 생애를 33만 4천 672Km를 여행하며(대부분 말위에서:지구 12바퀴반 도는 거리) 4만 4천번이상의 설교를 하였는데 이것은 1년에 평균 734회, 한달에 62회 하루에 2번이상의 대중설교를 하였다는 대기록 입니다. 또한 10만명의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였읍니다. 그야말로 복음을 위한 열심과 뜨거움으로 온 일생을 바친 분이셨던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감리교회가 해마다 5월 24일이 들어있는 주간을 요한 웨슬레 회심주일로 지켜오는 것은, 그분의 이러한 뜨거움과 열심을 본받아, 우리도 그 분처럼 귀하고 값진 신앙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오눌 저는 설교의 제목을 「요한 웨슬리의 불길을 우리가슴에」 라고 하였읍니다. 즉 우리의 가슴에 요한 웨슬리와 같은 뜨거움과 열심을 가지고 살아가자는 말씀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가졌던 뜨거움의 신앙과 그신앙의 열정을 배우고 실천하자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요한 웨슬리도 우리처럼 처음부터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는 아니었읍니다. 매우 청교도적인 결백성과 엄격한 생활로 딱딱하고 멋없는 그러한 사람이 었읍니다. 원리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히 싫어하고 모든 것을 규칙적으로 예외없이 사는 전형적인 완벽주의자 였읍니다. 겉으로 느끼기에는 차갑고 냉냉하며 가까이 하기 어려운 그런 타입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감리교회의 별명이 “Methodist”(규칙주의자) 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가운 사람이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냉냉하고 엄격하여 근접하기 어렵던 사람이 뜨겁고 정열적인 사람이되어 엄청난 신앙의 불길을 온세계에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 었겠읍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구원의 확신에 대한 체험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잇 거리의 모라비안 교도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들을때 그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고 구원의 확신을 할수 있었을때 변화되기 시작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요한 웨슬리 목사님처럼 뜨거운 신앙의 사람이 되자면, 그런 열심있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려 한다면 가장 먼저 그분의 확신의 불길을 우리가슴에 가져야 할 것입니다. 확신의 불길이란 신앙 체험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중에나 찬송중에 또는 말씀을 듣는중에 집회에 참석을 하는 중에 기도를 통하여, 또는 찬송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게 되며, 회개를 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 구원의 역사를 깨닫고 마음에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은 기도중에 찾아올수도 있읍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할수도 있읍니다. 찬송을 부르는 중에 경험할수도 있읍니다. 아니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 열려 있을때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령의 역사로 내게 나타날 수도 있읍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신비한 체험없이 마음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경우도 있읍니다. 대개 극심한 죄악이나 방탕의 경험이 없이 모태신앙으로 신앙속에 성장해 온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신비한 체험은 없었으나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이신것과 그분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의심없이 믿고 확신하는 사람들 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분들은 열정적이라기 보다는 미온적일수가 있는데 그것은 말로만 듣고 믿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이나 확신이 결코 신비적 체험의 신앙이나 확신보다 못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너희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자는 더욱 복되도다.”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즉 체험있는 신앙은 보고 믿는 신앙이요, 체험없이 확신을 가지는 신앙은 보지 않고 믿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체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바로 이 확신, 죽을수 밖에 없고, 죄 속에서 멸망할수 밖에 없던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을 아무 값 없이 받아서 구원을 받았다는 이 귀한 사실을 확신하고 감격하는 것으로 부터 새로운 생애를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 없고, 내가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수 없다면 그사람은 분명히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의 시작이 바로 이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구원의 확신이 있는 성도님들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 아 멘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의지하고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결심하신 분은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 아 멘 - 아마 여러분 중에서는 아직도 조금은 자신이 없어서 아멘하시지 못하신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셔서 앉으신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있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기 위해서 오셨읍니다. 돈을 벌려고 이곳에 오신분은 없을실 것입니다. 그런 분은 시장으로 가셔야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하려고 이곳에 오신분도 없으실 것입니다. 그런분은 학교에 가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인기를 얻으려고 이곳에 오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분은 탈랜트나 가수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오신줄로 믿읍니다. 세상에서 지치고 어려운 생활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살아가려고 이곳에 오신줄로 믿읍니다. 아직도 구원의 확신은 미약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오신 것입니다. 그러신 분들은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요:1:12에 “영접하는자 곧 그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하셨읍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자,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기로 결심한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주셨다고 했읍니다. 주실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요 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나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하셨읍니다. 여기에서 믿는자는 얻었고,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과거에 이미 얻은것임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었읍니다.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읍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 또있읍니다. 엡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언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가 이미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살기로 결심하셨읍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 받았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여러분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이제부터는 우리 성도님들은 이 구원의 확신으로부터 뜨거운 신앙의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나지 말고 계속해서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하여 놀라은 영적 체험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체험은 우리를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될때 여러분도 요한 웨슬리처럼 정열의 삶, 뜨거운 열심의 삶을 살아 가실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본받아야할 웨슬리 목사님의 뜨거움은 어떤 것인지 살펴 보겠읍니다. 제일먼저 웨슬리 목사님의 뜨거움은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움이었읍니다. 또한 사명을 감당하는 뜨거움 이었고, 헌신의 정열이었읍니다. 지구를 12바퀴 반 이나 돌수있는 그 많은 거리를 말을 타고 여행을 한 이유는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 주시기 위해서 였읍니다. 바로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세상 모든 영혼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있었읍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지냄으로서 다가오는 심판과 멸망을 피할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60년의 모든 남은 생애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열정을 다 쏟아 부었던 것입니다. 그렇읍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면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하는 헌신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들의 삶과 영혼을 멸망에서 구하려는 뜨거운 가슴 일 것입니다. 특별히 아무 상관도 없는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생활습관이 다른 그러한 이방인들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움이 없이는 결코 할수 없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87세가 되던 1790년 1월 1일의 일기를 보면 그분이 얼마나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움이 있었고 사명을 위해 정열을 다하였는지 알수가 있읍니다. 그는 8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 나는 이제 머리에서 발끝까지 노쇠한 늙은이다. 나의 눈은 침침해졌고 오른손은 많이 떨린다. 아침마다 내입은 타는듯이 메말라있다. 나는 거의 날마다 열이 더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을 송축할 것은 나의 수고를 늦추지 않음이라. 나는 아직 설교할수가 있고 글을 쓸수가 있다.” 라고 쓰고있읍니다. 또 다른 일기에서 “ 나는 킹스우드로 갔다. 이얼마나 달콤한 휴식이냐 지금 여기서는 모든것이 꼭 내가 원하는 대로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늘에 누워 있으라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일하자. 우리는 얼마안가서 안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전세계를 변화시키는 놀라은 신앙의 부흥을 이루었던 것은 영국 제일의 명문 옥스포드에서 배운 박학한 지식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심때문입니다. 사명을 위한, 정열적인 헌신이 이루어낸 결과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웨슬리 목사님은 고지식하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읍니다. 선교사로 미국에 갔다가 여자 문제 때문에 되돌아 와야 했던 보잘것 없는 인물이었읍니다. 그러나 웨슬리 목사님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뜨거운 신앙의 체험을 얻은후에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정열로 일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혼을 사랑하고 사명을 감당하는 뜨거운 가슴으로 웨슬리 목사님은 온 영국을 변화시키고 온세계를 변화시키셨읍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뜨거운 신앙을 이어 받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처럼 온 일평생이 열심으로 계속된 그런 분이었읍니다.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오직한 일’만을 위하여 한평생을 뜨겁게 사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온 세계의 존경받는 신앙의 인물이 되고 온세계를 신앙의 뜨거움으로 뒤집어 놓은 놀라운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의 확신이 없읍니까 ? 아닙니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대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으며 확신을 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한 웨슬리 목사님처럼 그런 신앙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읍니까 ? 전세계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고사하고서라도 내가정, 내교회, 내가 살고있는 지역사회에서 조차 그 영향력이 미약 합니까 ? 그것은 열심때문입니다. 신앙의 뜨거움이, 정열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죽어도 주를위해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 살겠다는 각오와 결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깊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얕은 물가에서 망설이다가, 서성이다가, 주저하다가 그런 열심을 가지지못하고 뜨거운 정열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주저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망설이지도 마십시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이 정열적인 하나님니라의 일꾼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웨슬리목사님을 사용하시던 하나님께서 바로 여러분들도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이제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부족하지만 웨슬리 목사님처럼 바울처럼 뜨거운 정열로,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속에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나라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일꾼 답게 화끈하게 살아보겠노라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웨슬리 목사님을 돕고, 사도바울을 도우시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을 붙드시고 여러분의 뜨거운 삶을 도우시리라 분명히 믿읍니다. 롬 12:11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나이 때문에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85세의 갈렙도 산위의 생수를 마시고 88세의 요한 웨슬레도 말을 타고 복음을 전세계에 전했읍니다. 100세의 아브라함도 축복의 약속을 바라보고 살았읍니다. 배운것이 없어서 못하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일자무식 무디도 세계 최고의 부흥사가 되어 한번 설교에 수천명씩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역사를 일으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읍니다. 가진것이 없어서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아닙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백낙준 박사님은 정열적인 신앙으로 고난과 어려움의 학업을 마치고 사학의 명문인 연세대학의 총장이 되셨읍니다. 병이들어 못한다고 생각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천막속에서 몸부림치며 폐병으로 고생하던 조용기 목사님은 한국 최대의 아니 전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루셨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이가 아닙니다. 재산이 아닙니다. 지식이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겠다는 뜨거운 열심입니다. 두번 오지않는 인생 부끄럽지않게 보람있게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신앙의 정열입니다. 뜨겁게 기도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전도하는 교회에 부흥이 안일어 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주일을 맞는 여러분들은 단순히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의 헌신적이고 정열적인 열심을 여러분의 가슴에 담고 뜨거운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2의 존 웨슬리/ 롬1:14-17/ 임경택 목사/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2006-05-24
제2의 존웨슬리 롬1:14-17 오늘은 존 웨슬리회심268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는 1703년에 사무엘 웨슬리와 수잔나 아네슬리의 19자녀 중 15번째로 태어나 1791년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웨슬리는 “전세계는 나의 교구이다”라고 외치며 대 전도운동을 전개하여 놀라운 복음주의적인 부흥을 가져와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50년 동안 말을 타고 다니며 40만 킬로 이상 여행했습니다. 그는 141편의 설교집(42,400회 설교), 의학서적, 영문법, 논문 등의 무수한 책(200여권)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항상 자기 생명을 땅위에 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평생을 주의 일에 힘쓰다가 1791년 3월 2일에 53년의 전도사업을 마치고 88세를 일기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란 말을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 존 웨슬리의 생애 그는 영적이 훈련의 좋은 토양이 되는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잔나 아네슬리는 그의 영적 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옥스포드의 출신 영국 성공회 목사로 40년간 엡웟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했습니다. 영국 명문목사 가문의 출신이며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위대한 세계 현모 중의 한 분인 그의 어머니 수잔나 아네슬리도 할아버지 아버지가 다 목사님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 목사님은 청교도파이며 헬라어 라틴어 불어 등에 능한 분이었습니다. 자녀들은 19남매 중 10명이 죽고 딸 여섯과 아들 삼 형제만 남았습니다. 딸들도 뛰어나는 교육을 받고 평범한 가정으로 출가했습니다. 아들 셋은 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수잔나의 교육철학에는 “제 마음대로” 라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조용히 울도록 가르쳤으며 다섯 번째 생일에 알파벳을 배우고 다음날 아침부터는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읽기를 철저하게 교육시켰습니다. 런던 챠터하우스학교에 다녔으며 옥스퍼드대학교의 그리스도 쳐치 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졸업 후에 영국국교회의 신부가 되기 위해 1725년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 후 옥스퍼드 대학교의 링컨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학문적인 심화를 이루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웨슬리는 동생 챨스와 함께 젊은이들의 작은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 그룹의 목적은 성서와 고전을 함께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웨슬리는 곧 그 그룹의 리더가 되었으며 다른 활동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성서를 연구하며 예배를 드리며 일주일에 한두번씩 금식을 하였습니다. 감옥을 방문하고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을 찾아갔습니다. 이러한 영적 교제는 웨슬리의 영적 생활이 점진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포함하며 확장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들을 ‘성경벌레’ 혹은 ‘신성클럽’ ‘규칙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감리회(Methodist)란 법칙주의자 곧 규칙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입니다. 이 모임이 점점 커진 것이 속회의 시작이요 감리교회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신성구락부(속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어 감리교회의 속회는 감리교단의 생명이기도 합니다. 신성그룹 운동을 통해 경건한 생활을 몸에 익혔던 웨슬리는 자신 만만하여 1735년 10월 14일 출항하여 ‘죠지아주 사바나’ 항에 도착하기까지 57일간의 긴 항해를 했는데 그동안 큰 풍랑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죽음의 공포에 있을 때, 그와 동승한 독일인 ‘모라비안’ 교파의 교인들은 태연하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이를 지켜본 ‘존 웨슬리’는 자기의 신앙이 그들에 비교해서 아주 미약함을 깨닫고, 그들과 깊은 사귐을 통해서 신앙의 많은 도움을 받고 미국에 도착하여 북미 선교사업에 심혈을 다하여 전도하여 처음에는 많은 청중들이 모이기까지 하였으나 그 결과는 완전히 실패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고 2년만에 강제로 귀국해야 했습니다. 2. 존 웨슬리의 회심 웨슬리는 그가 1738년 5월 24일 모라비안교도들의 모임인 올드스케잇의 작은 모임에서 중생의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오랫동안 신앙적 고민과 회의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특히 5.24일을 전후해서 그는 심각한 신앙적 고민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24일 올더스케잇의 작은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회에서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를 변화시켜 새로 하나님께로 거듭나게 하며 옛 사람을 죽여 우리를 마음, 기질 , 성품과 모든 능력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성령이 오신다는 믿음은 생명적이고 창조적이며 활동적이고 능력 있는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글로 또는 신학적 이론으로 웨슬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인가? 웨슬리는 감리교인에게 중요한 것은 머리, 가슴, 손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웨슬리는 그 진리를 머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대학 강사로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 그의 신학적 지식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는 박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변화하게 하고 중생시키는 것은 신학적 이론이나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뜨거운 역사입니다. 물론 이 말은 신학적 이론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학이 없을 때 잘못된 경험이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종교는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경험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천을 했습니다. 손과 발이 실천하지 않는 중생은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감리교회는 개인의 중생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개인은 공동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변화에 직결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이 변화되고 가정이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의 온전성을 추구하는 그것이 웨슬리의 최종적 목표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인류사회로써 우리가 목표하는 지상에서의 하나님나라 실현입니다.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9시15분쯤 되어 그가 그리스도안에서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우리 마음에 변화를 가져오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진정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을 느꼈고 구원을 위해 주님만을 의지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내 죄를 다 사해주셨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이 내용이 무슨 특별한 것이거나 독특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개신교 복음주의가 주장하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그 내용이 그 시간에 웨슬리에게 그렇게 큰 감명을 주고 중생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뜨거워짐은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지식으로만은 안됩니다. 결심만으로도 안됩니다. 웨슬리의 결심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지만 그것으로 되지 않았습니다. 속죄의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마음에 불타 오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통해서 오게 된 것입니다. 3. 웨슬리의 회심이 가져 온 결과 사람들에게 열정이나 열심은 아주 중요합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에 대한 열정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때 마음에 뜨거워집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뜨거워진 사건, 때문에 영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거점이 마련된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 목사님에 의해 뜨거운 성령운동이 영국에서 ‘메도디스트’란 이름으로 1744년에 시작되어 당시 부패했던 영국을 휩쓸었습니다. 18세기 당시 영국 사회는 대단히 타락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질서와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음란, 음주, 도박. . 사회 전체가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정부가 복권 제도를 장려하여 국민들 사이에 사행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모두 다 쉽게 돈 벌고 쉽게 살아갈려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사회가 그 당시와 비슷합니다.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웨슬리 목사님이 일으킨 감리교 운동을 통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사회변화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야외설교를 시작으로 80세까지 4만-5만회의 설교를 하였습니다. 웨슬리의 이 운동은 1784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에서 크게 부흥하여 세계에 수 많은 선교사를 파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에는 초대 선교사로 미국인 ‘아펜셀러 선교사’(1858-1902)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 인천항에 상륙하여 배재학당과 이화학당과 인천 내리감리교회, 서울 정동감리교회 등을 설립하고 선교를 시작하면서 오늘의 150만이 넘는 기독교 대한 감리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교파는 다르지만 성결교회 역시 웨슬리의 후예들입니다. 전 세계의 웨슬리 가족이 4천만은 된다고 합니다. 하나의 중생의 경험이 이렇게 엄청만 결과를 가져오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을 것입니다. 4. 감리교인의 삶 감리교인? 감리교인은 성령의 충만한 힘을 입어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모든 영적 운동은 성령 운동으로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신앙의 성장이나 변화는 성령으로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4:32)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것을 보고 실의에 빠진 채 길을 가던 두 제자가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으나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뜨거워진 마음을 가지고 예루사렘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 영의 눈이 열리고 비전과 용기가 생깁니다. 부활의 확신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후 자기 한 목숨 살기 위하여 도망가던 제자들이 그 밤에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이 뜨거운 마음은 동력이 됩니다. 마음이 뜨거워진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태웠습니다. 1) 감리교인은 모든 세계 온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 조그마한 것에 옹졸한 마음으로 시기와 분노,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떨치는 자들입니다. 2) 감리교인은 크고 작은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메도디스트입니다. 거룩한 신앙의 삶을 위하여 세상의 어떤 오락과 관습도 따르지 않습니다. 3) 감리교인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88세의 생신을 맞은 그에게 장수의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60년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한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감리교인으로써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타락한 증거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철야기도, 새벽기도, 금식기도 등을 하였습니다. 4) 감리교인들은 전도병(病) 환자들이어야 합니다. 이 얼마나 축복된 병인가? 사도 바울도 이 병에 걸려서 죽었고, 사도 베드로도 그랬고, 성 어거스틴도, 허드슨 테일러도, 아펜셀러 선교사도 이 병에 걸려서 기뻐하다 죽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 목사님도 이 병에 걸려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다가 천국에 가셨습니다. 롬1: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는 말씀을 기초하여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습니다. 감리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복음주의 교단입니다. 5) 감리교회는 이웃과 사회를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빈민구제운동, 금주운동, 학교와 병원을 세워 불우한 사람을 가르치고 치료하였으며, 형무소를 찾아가 전도하였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계층과 노동자, 농민을 상대로 도움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웨슬리는 사회복지 기관도 많이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흑인 학교를 위한 모금 운동과 흑인 노예들의 교육에 필요한 도서 보내기 운동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책자를 출판해 노예 제도의 폐해를 강렬하게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1807년 ‘노예 매매 폐지법’과 1833년 ‘노예 해방 법령’통과는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에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세계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흑인 노예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백인들과 함께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는 “18세기 요한 웨슬리에 의해 일어난 감리교회가 영국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켰으므로 불란서와 같은 유혈혁명이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 개혁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각성 운동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였다. 한 사람의 회심이 이렇게 한 국가를 넘어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5. 제2의 웨슬리안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 있습니다. 시대마다 중요한 회심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바울의 회심으로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바울의 회심으로 초대 교회라는 교회의 씨가 자라났습니다. 로마를 거쳐서 유럽으로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어거스틴의 회심은 <참회록>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는 많은 저작 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열매입니다. 세 번째, 루터의 회심입니다. 이것은 말씀의 회복으로 인한 개신교를 탄생시켰습니다. 네 번째, 웨슬리의 회심은 감리교라는 열매와 영국 사회의 구원, 그리고 그 영향으로 어둠으로 가득찼던 18세기의 횃불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필요합니다. 제2의 웨슬리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뜨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흔히 많은 크리스챤들은 구원을 체험하고 나면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자신의 현재의 그 모습에 만족합니다.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도 느슨해 집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예수님께 책망을 받은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느슨함 때문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그들은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지 모릅니다. 착각에서 일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스스로 부자요 부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열정이 떨어지기 쉬운 때는 우리의 삶이 궁핍할 때가 아니고 넉넉할 때입니다. 모자람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될 때입니다. 사람들은 배부르고 등 따듯하면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깁니다. 교만해집니다. 자기가 다 했다고 거드름피웁니다. 먹고 살만 하니까 주일날 빠지는것도 자기 맘대로입니다. 배부른 탓입니다. 우리나라가 살기 힘들고 어려울 때는 얼마나 열심을 품고 모이기를 열심이었은지 모릅니다. 목사님께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자신도 매달리고 . . . 다윗이 실패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느슨할 때입니다. 죄는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지게 합니다. 열정이 사라지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무기는 거룩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 때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거룩이 힘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우리가 성결케 되고 기쁨이 회복됩니다. 찬양의 능력이 회복됩니다.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가 물러갑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역사가 나타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런 그리스도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를 살리는 사람, 이 나라를 살리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저 교인의 수가 불어나는 것에 있지 않고 변화된 사람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필요한 때입니다. 제2의 웨슬리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제2의 요한 웨슬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감리교회/ 사44:6-8/ 웨슬리회심기념주일설교
진정한 감리교회/사44:6-8 2002-10-18 10:09:27 read : 43 이번 주간의 수요일, 5월 24일은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선생 회심 262주년 기념일입니다. 존 웨슬리 선생은 신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고, 신앙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뜨거운 확신이 없어 갈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1738년 5월 24일 밤에 영국 런던 올더스게잇의 한 작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밤 8시 45분쯤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오직 그리스만을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죄를 가져가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고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자기가 내면으로 체험한 것을 다 말하였습니다. 이 회심의 체험 후에 시작된 것이 감리교 운동입니다. 이번 주간에 우리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기 바랍니다. 이번 주간은 감리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리교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감리교회는 어떤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감리교인은 무엇을 믿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보내야 합니다. 감리교인과 감리교회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는 주간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감리교인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진리로 믿는 것을 다 믿습니다. 감리교의 정체성을 확립한다고 해서 장로교나 성결교나 침례교나 구세군이나 순복음교회를 배척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감리교회만이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감리교회가 제일이야!\\\" 하자는 것 아닙니다.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으면 지금 얼른 버리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안에 감리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따로, 감리교 따로, 아닙니다. 그러므로 감리교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감리교인은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리교인입니다. 감리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생각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기독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리교인이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은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기독교인이 공통으로 고백할 수 있는 첫 번째입니다. 이 말씀은 감리교 신앙고백 제1조를 풀이하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정경옥(鄭景玉)이라는 아주 뛰어난 신학자가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을 해설한 책을 썼습니다. 책을 다 쓴 다음에 제목을 「감리교의 원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기독교의 원리」라고 했습니다. 이 책은 65년 전인 1935년에 나왔지만 지금도 이 책을 능가할 책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감리교 교리적 선언을 해설하면서 감리교의 원리라고 하지 않고 기독교의 원리라고 한 것은감리교의 원리가 곧 기독교 원리이고 기독교의 원리가 곧 감리교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도신경을 비롯하여 많은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대표적인 신앙고백들의 이름을 말씀 드리면 니케아 신조, 콘스탄티노플 신조, 칼케돈 신조, 아우스부르크 신앙고백,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영국성공회의 종교강령 등입니다. 존 웨슬리는 이 신앙고백들을 잘 요약해서 25개조의 종교강령을 확정해서 감리교의 신앙고백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25개조의 내용을 압축해서 말씀 드립니다. 다 잘 아는 것들입니다. 들으시면서 \\\'아, 그렇지! 나는 바로 그것을 믿고 있지!\\\' 다시 한번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우리는 말씀, 곧 하나님의 아들이 참 사람이 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구원에 족하며 구약과 신약이 서로 반대되지 않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인류가 근본적 의에서 멀리 떠나 그 성품이 늘 죄악으로 치우치는 원죄를 가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믿습니다. 우리는 선행으로는 구원받지 못하지만 선행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하고 기뻐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한 일을 다하고서도 무익한 종이라고 해야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얻은 후에 지은 죄도 사함 받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참 믿는 이들이 모인 교회를 믿습니다. 우리는 천주교에서 말하는 연옥은 거짓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공중기도나 성례를 행할 때에 교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쓰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초대교회의 규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성례가 그리스도인들이 공인하는 표적과 증거가 됨을 믿습니다. 우리는 세례가 신생의 표가 됨을 믿습니다. 우리는 성찬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당연히 있을 사랑을 표한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한 번 제물이 되신 것이 온 세계의 모든 죄를 위하여 완전한 구속과 화목과 보상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각 사람이 재산을 가질 권리가 있음을 믿고 또한 각 사람이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힘대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구제함이 마땅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감리교인들이 믿는 종교강령 25개조를 요약한 것입니다. 이 25개조는 존 웨슬리 선생이 1784년에 제정했습니다. 대부분 모든 기독교인들이 공통으로 고백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주간에 감리교인과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것은 감리교라는 울타리를 굳게 세우고 허술한 곳을 고쳐서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으로서의 정체성, 모든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성도로서 신앙을 새롭게 하자는 뜻입니다. 이번 주간에 여러분과 저의 신앙이 새로워지고 뜨거워지기 바랍니다. 둘째, 감리교인은 감리교인으로서의 특색을 지키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같은 대한민국 백성이지만 어느 지역 사람은 섬세하고, 어느 지역 사람은 선이 굵고, 어느 지역 사람은 생활력이 강하고, 어느 지역 사람은 품위가 있고, 각기 특색들이 있습니다. 그 특색들은 보존되고 장려되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감리교인은 감리교인으로서의 특색이 있습니다. 이번 주간은 그 특색이 무엇인지 알고 새롭게 하는 주간이 되어야합니다. 감리교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감리교에 대해서 많이 아는 분들은 \\\"그야 감독정치, 감리사 제도, 속회, 중앙집권제도, 의회제도이지요\\\" 하실 것입니다. 틀렸습니다. 그것은 감리교회의 특징이지 감리교인의 특색이 아닙니다. 그와 같이 제도적인 것, 형식적인 것부터 생각하고 들고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위험합니다. 천주교인들이 그런 대답을 한다면 크게 탓할 것이 없습니다. 천주교는 제도적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제도적인 면, 교리적인 면, 실제적인 면이 있습니다. 감리교는 제도와 교리와 실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도나 교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제도를 통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원이 있고 교리가 있지, 교리가 있고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교리는 구원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구원 그 자체가 아닙니다. 제도와 교리와 실제 가운데서도 감리교인은 실제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감리교인의 특색입니다. \\\"감리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감리교의 내면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대답해야합니다. 감리교는 영적이며 도덕적인 생활에 기초한 인격적 종교입니다. 감리교는 기독교의 참된 구원의 진리와 성서적 경건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올더스게잇의 회심은 웨슬리 선생을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사람\\\"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바꿔 놓은 사건입니다. 올더스게잇의 회심은 웨슬리 선생을 믿는 크리스천에서 체험하는 크리스천, 증거하는 크리스천으로 바꿔 놓은 사건입니다. 올더스게잇의 회심은 웨슬리 선생을 지적으로, 객관적으로 믿던 신앙인에서 주체적, 인격적 신앙인으로 바꿔 놓은 사건입니다. 올더스게잇의 체험은 제도와 이론보다 자기의 마음이 이상스럽게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할 때 비로서 새싹이 튼 사건입니다. 올더스게잇 회심의 열매는 성화와 사랑과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에 대해 믿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는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체험하고 증거하는 크리스천이 되시기 바랍니다. 선교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감리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구속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 주어서 그 사람이 내가 얻은 것 같은 체험을 하도록 해야합니다. 지적으로, 객관적으로 믿습니까? 주체적, 인격적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로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하며 실천을 강조하는 야고보서도 함께 읽으시기 바랍니다. 감리교인은 기독교의 참된 구원의 진리와 성서적 경건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서적인 구원의 길을 살아가는 것이며 믿음과 사랑을 통해 성화와 완전으로 나아가는 실천적 제자의 도리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하였는데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하였고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르다가 동생에게 명해서 나를 도와주게 해 달라고 하니까 주님께서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마리아가 옳고 마르다는 그렇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마이테르 에크하르트 감독은 이 말씀에 대해 \\\"마리아는 아직 재학 중에 있는 수련생이요 그의 언니 마르다는 졸업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에크하르트 감독은 여자 수도원의 감독이었고 쾨른 대학의 신학교수도 지낸 분입니다. 그는 이 사실을 수도원생들에게나 신학생들에게 강조해서 자주 말했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가르침은 조용하게 유럽의 교회에 퍼져 나가며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크하르트는 하늘과 땅, 영원과 시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신앙과 실천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요 하나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리교인은 마리아에 머물지 않습니다. 마리아를 거쳐서 마르다의 입장에 가 있습니다. 감리교인은 모여 배우기만 하는 제자에 머물지 않습니다. 나가서 전하는 사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한 것은 마르다입니다(눅10:38). 마르다가 예수님을 초청했기 때문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전도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전도적 정열은 감리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뜨거운 것이 감리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뜨겁다고 하면 순복음교회를 생각하기 쉬운데 감리교회가 더 뜨거워야합니다. 목욕탕에 들어가면 냉탕이 있고 온탕이 있고 열탕이 있는데 감리교는 열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상하게 냉탕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리교는 노천탕이요!\\\"합니다. 이것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웨슬리 선생은 전도의 정열이 넘치니까 노천에서도 막 설교했습니다. 웨슬리 선생은 올바른 교리를 세우고 가르치는 일에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 선생의 근본적인 공헌은 신앙적 정열을 소중하게 보았다는데 있습니다. 감리교는 262년 전 이 주간의 수요일, 뜨거워지는 체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지식, 윤리, 교회생활, 모든 하나의 재료들입니다. 이 재료를 그대로 내 놓으면 맛있어 하는 사람들 별로 없습니다. 오늘 여선교회가 성전신축을 이한 음식 바자회를 하는데 어제까지 애써 준비한 재료들을 오늘 익혀서 내 놓을 것입니다. 신앙도 뜨거운 체험으로 익혀야 맛이 납니다. 웨슬리 선생은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유럽이나 혹은 미국에서 감리교도라고 칭함을 받는 사람들이 장차 어느 때나 그 존재가 없어질 날이 있을지라도 나는 이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는 오직 한 가지 것은 능력을 잃은 형식의 종교를 가진데 지나지 아니한 하나의 종파로 타락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감리교는 감리교의 특징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제도적 형식을 열심히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 웨슬리 선생의 이 염려는 사실이 되지 않았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기독교의 참된 구원의 진리와 성서적 경건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감리교회의 특징이요 전통입니다. 이 특징과 전통의 불꽃을 다시 살리고 활활 타오르게 하는 이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한국 감리교인으로서 책임을 다 해야합니다. 감리교회는 영국에서 발생해서 미국에서 크게 부흥했습니다. 감리교회는 미국에서 116년 전에 한국에 건너와서 이제 한국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먼저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 해야합니다. 한국 감리교회는 1930년에 자치시대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하고 여덟 개 조항으로 된 교리적 선언을 제정했습니다. 동시에 하나를 더 제정했습니다. 사회신경을 제정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구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감리교의 전통임을 생각하면서 사회적 삶의 새로운 실천 원칙을 정한 것입니다. 사회신경은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 말씀 드리는 것은 이 사회신경의 내용입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하나님의 창조를 보존하고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가정을 올바로 보존하며 성의 순결성을 지키는 사명이 있음을 압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 자유와 인권이 있음을 믿습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자유와 평등한 사회 건설에 헌신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압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노동의 존엄성과 직업을 소중하게 여기고 분배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압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복지 사회 건설에 앞장서야 할 것임을 압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인간화와 도덕성 회복에 앞장 서야합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생명공학에 대한 책임 있는 대책과 의료 윤리의 확립이 시급함을 강조합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유일한 구주임을 믿고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다른 종교와 공동 노력합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평화적 통일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한국 감리교인은 전쟁 억제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책임이 있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 주간이 되기 바랍니다. 감리교회는 종교를 산업화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을 종교화하기 위해서 힘씁니다. 종교를 교육화하는 것보다 교육을 종교화하기 위해 힘씁니다. 한국 감리교회는 한국을 기독교화 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다음, 한국 감리교인은 우리 민족의 전통을 존중하고 예배와 치리나 규칙에 잘 이용해야합니다. 무엇을 받아들일 때는 한국 문화와 풍속과 습관에 조화되도록 해야합니다. 다음, 한국 감리교인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감리교회로서의 책임을 다 해야합니다. 세계에서 첫 번째로 큰 감리교회는 미국의 감리교회입니다. 미국에서는 감리교회와 침례교회가 양대 교파입니다. 그 다음이 한국 감리교회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한국 감리교회에는 그만한 책임이 있습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책임이 있고 형제 감리교회들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선교의 사명을 다 해야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자세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성경은 첫 번째 아들보다 두 번째 아들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칭찬합니다. 아벨, 야곱, 모세,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아들, 모두 두 번째 아들입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한국 감리교회도 칭찬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에 감리교회가 들어온 것은 1884년의 일입니다. 1930년에 이르러 기독교 대한감리회가 조직되어 자치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조직하면서 대표들이 \\\"기독교대한감리회를 조직하는 목적은 이렇습니다\\\"라고 목표로 정한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이 새 교회는 반드시 진정한 기독교회가 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이 교회는 진정한 감리교회가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이 교회는 한국적 교회가 되게 하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설교도 이와 같은 구조에 따라 말씀 드렸습니다. 이 주간에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한국적 교회 이 말의 뜻도 잘 기억해야 합니다. 감리교회 창설자인 존 웨슬리 선생의 회심 기념일이 들어 있는 주간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만을, 오직 그리스도만을 구주로 힘있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힘있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감리교인으로서의, 한국 감리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바른 모습이 회복되어지는 이 주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개하는 자의 축복/ 시32:/ 웨슬리회심주일설교
회개하는 자의 축복 시32: 오늘은 감리교 창시자 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 258주년을 맞이하는 기념주일입니다. 한국 초대교회 때에는 회개를 많이 외치게 된 것이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초대교회 시대에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외침으로 복음전파가 시작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어떻습니까? 회개보다는 축복과 성공의 말씀이 주종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회개\\\" 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넘치는 선물 입니까? 회개가 있기에 실패한 이들이 다시금 회생할 수 있고, 기회를 다시금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가 있기에 새롭게 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시편 기자는 자신이 회개치 아니하였을 때에는 종일 신음하므로 자신의 뼈가 쇠하여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이 누르므로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토설치 아니했을 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의 신앙 경험을 통해서도 우리가 죄를 품고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답답하고, 괴로운 심 령일 뿐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한숨만 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토설치 아니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누르시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이나 죄짓고 숨어 다니던 사람들이 죄의 대가를 받는 감옥에서 더 평안을 얻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종종 들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부잣집 아들이 새총을 가지고 놀다가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며 소중히 여기는 희귀한 오리를 쏘게 되 어 죽게 되었답니다. 아들은 얼른 연못에 떠 있는 오리를 건져 숲 속에 감추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못 보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집 하녀가 보았습니다. 하녀는 올커니 하고 아들을 골려줄 생 각으로 그날 밤부터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도련님. 설거지좀 하세요\\\" \\\"아니, 감히 나한테 설거지를 하라고?\\\" 아들은 소리쳤지만 \\\"알지요?\\\" 한 마디만 하면 꼼짝을 못하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하녀는 아침에는 청소시키고, 물길어 오게 만들고 저녁에는 설거지에 집안정리 등을 매일 시키게 되었습 니다. 아들은 일에 시달리고, 오리를 죽인 두려움에 괴로워 하며 며칠을 보내니 안색이 안좋아지고 살도 빠져 헬쓱해져 갔습니다. 아버지가 근심스레 물었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몇날몇일을 괴로워하다가 하루는 아빠 방을 힘차게 열고 엎드려 울면서 \\\"아빠 사실은 제가 아빠 가 귀여워 하는 오리를 죽였어요. 용서해 주세요.\\\" 하면서 엉엉 울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괴로웠니?\\\" 하시며 오히려 아들을 위로해 주었답니다. 그것도 모르고 하녀는 그날 밤도 일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아무리 \\\"알지요?\\\" 하고 협박을 해도 아들은 태연하게 \\\"알지.\\\" 하면서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답니다. 이 이야기에서도 죄악을 숨겼던 아들은 시편 기자의 말과 같이 그 진액이 말라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 었던 것입니다. 회개치 아니한 심령을 가지고 살면 이렇게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룟유다가 회개치 아니하므로 얼마나 괴로운지 나무에 목메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승을 배반한 배은망덕한 사람임에도 말입니다. 베드로는 유다보다 죄를 더 졌으면 졌지 결코 덜 짓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할 수 있었 기에 그 괴로움 속에서 건짐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회개치 않는 심령은 주의 손이 그를 누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여러분을 그의 손으로 누르실텐데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마음에 기쁨이 없고, 한숨만 쉬게 만드는 답답함이 있을 것이며, 또한 꿈 속에서도 시달리게 됩니다. 회개치 않는 심령은 결코 좋는 꿈을 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시에 우리는 이제 시편기자의 또다른 고백을 들어볼 수 있도록 합시다. 그가 그의 죄를 자복하고, 아뢰고,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렇게 기쁨의 고 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시편 32편은 다윗의 시인데, 다윗이 어떠한 사람이었나요? 그의 부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고, 우리야를 죽이는 무서운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러한 자신의 죄를 괴로워 하며 지내다가 뼈가 쇠하기까지 되었고 그의 진액이 다 마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무서운 죄를 그가 회개하였을 때 용서하셨고 평안을 주시게 된 것입니다. 실로 우리는 이사야 1장 18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 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하신 말씀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 다. 주홍이나 진홍이란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우리의 죄가 그렇게 덕지덕지 딱정이가 지듯이 되었다 할지라 도 기꺼이 깨끗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잘 깨달아서 어떠한 죄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주님께 속히 돌아가는 역사가 있어야겠습니다. 성경은 계속 어떠한 큰 죄악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들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던 주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탕자를 보도록 합시다. 그 자신도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매우 절감한 듯 \\\"이제는 아들이라 하지 마시고 품꾼의 하나 로 써 주소서\\\" 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의 큰 재산을 다 허비했지요? 창기와 더불어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지요. 이러한 사실은 그 로 하여금 아버지가 그를 아들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날마다 기다렸고 아버지와 늘 함께 있었던 큰 아들보다도 그를 귀하게 아들 의 위치로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주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항상 이처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들의 죄악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하나님께 상달되었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려 하였 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요나의 외침을 듣고도 짐승으로부터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 금식하며 회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뜻을 돌이키셨던 것입니다. 아합 임금은 이스라엘의 어떠한 임금보다도 악한 임금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 이세벨의 꼬임에 빠져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었고, 나봇의 포도원 이 탐나 무고한 나봇에게 엉뚱한 죄를 뒤집어 씌워 죽게 만들고 그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았던 것을 보 게 됩니다. 그러나 아합이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 그리고 자식들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심판하 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열왕기상 21장 27절에 나타나 있는대로 \\\"하합이 이 말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이렇게 회개하 며 나오는 아합을 보자 하나님은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보느냐\\\" 하시며 그 당대에는 그러한 죄값을 묻지 않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죄악의 극치를 달렸던 아합에게도 그가 회개하게 되었을 때 긍휼을 베푸셨던 하나님이신 것 입니다. 미국 오래곤 주 어떤 읍에 「룻 기본」이란 부인이 있었는데 결혼 후 남편과 사별한 후 재혼하여 샤일롯 이라는 동네에 살게 되었는데, 사별한 남편과는 「아이린」이라는 딸이 하나 있었던 것입니다. 재혼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에게 버림받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이 룻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 다. 술, 도박, 성적 타락등 그는 세상의 온갖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의 서해안 대도시의 향락에 그는 빠져들었고, 중부 시카고의 암흑가의 생활 후 뉴욕 변두리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와는 달리 아이린은 아주 착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학교에도 열심히 다녀 선생님 과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으며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린이 12살이 되던 해 어머니 룻이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지나던 사람들이 신고하여 경찰서 유치장에 뉘었는데,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린이 찾아갔지만 안 일어나니 한 시간 후에 오라 는 아저씨의 말만 듣고 다시 가 보았지만 깨어나지 않아 밤이 늦었으므로 다음날 찾아가 보았습니다. 룻은 딸은 보자 학교나 가지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쌀쌀하게 대하며 등짝을 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룻은 딸이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방을 물끄러미 살펴 보던 중 딸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무심 히 읽어갔습니다. 몇 장을 넘기다가 자신의 눈이 멈추게 됨을 느꼈는데, 아이린의 일기 가운데 \\\"오늘은 주일학교 선생님을 통하여 룻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엄마도 성경의 룻처럼 훌륭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글이었 습니다. 룻은 그 글을 읽는 순간 강한 전율을 느끼며 감동을 받고 구약성경의 목차를 보니 룻기가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4장에 불과한 룻기서를 읽는 동안 룻은 큰 은혜를 받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흉악한 죄인들을 용서하셨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무슨 죄는 용서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여기 다윗보다 더 큰 죄를 지은 분이 있나요? 여기 아합임금보다 더 큰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 있나요? 여기 오늘의 이야기 가운데 나온 룻 기본이라는 부인보다 더 방탕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나요? 성령 그렇다 치더라도 주께서는 지금도 용서해 주실 준비가 되어져 있는 것이고,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6절 말씀과 같이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주께 회개하며 기도 하는 자는 진정 용서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말씀은 또한 회개하고 용서 받은 사람의 평안한 상태가 잘 기록되었지 않습니까?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라\\\" 하였고, \\\"주가 은신처가 되시고 환란에서 보호하시며 구 원의 노래로 에우시며,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참으시며,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꼭 기억 하시고 주께 속히 회개하며 돌아가 주님의 품에 안겨 평강을 얻어야겠습니다. 일본 에도시대(江所)\\\"시무라\\\"라는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답니다. 어느 방학때 성경학교를 열게 되었는데, 훌륭한 선생인지라 많은 학생들이 등록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매일 도둑을 맞는 일이 생기게 되어 학생들은 시무라 선생께 도둑을 잡아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시무라 선생은 알았네, 하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씩 건의하던 학생들은 끝내 시무라 선생에게 최후의 통첩으로 도둑을 계속 잡지 않으면 하산하겠다 고 했습니다. 시무라 선생은 태연하게 \\\"마음대로 하게나. 나는 자네들처럼 의인이거나 정직한 사람들은 필요없네. 나 는 그 도둑이 회개할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도둑은 시무라 선생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시무라 선생의 인내심 보다도 더 큰 인내심을 가지고 오늘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 니다. 이제 이러한 사랑을 확신하며 주를 만날 기회이니 주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불의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없나요? 죄악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이는 없습니까? 은혜를 상실한 채 강팍하고 메마른 상태로 지금 주님을 섬기고 있는 사람은 없나요? 처음사랑을 잃은 채 맥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는 없습니까? 세상의 염려와 근심을 갖고 기쁨을 다 빼 앗긴 채 괴롭고 답답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없나요? 다윗이나, 아합처럼 흉악한 죄는 아니다 할지라도 신앙의 본연의 자세와 상태에서 멀어진 신앙생활을 지 금 하고 있다면 속히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와야 겠습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들이 조금치라도 곁길로 치우쳐 살아가고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지 못 하다면 속히 그 가운데서 돌이켜야겠습니다. 우리의 무덤덤한 영적상태에서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사랑이 넘치며 늘 깨어서 기도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이 되도록 회개 하도록 합시다. 자꾸만 나태해져 가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면 그 가운데서 속히 돌이켜 주님께 돌아가도록 합시다. 그래서 저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우리의 심령에 항상 차고도 넘쳐, 처음사랑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동거 함을 만민이 알 수 있도록 합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