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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2015-07-13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Question 이제 얼마가 지나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크리스마스는 즉, 성탄절을 기념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이겠죠?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12월 25일이 정말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예수님이 태어나신 때는 언제이며....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정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nswer 1. (마 2:1)을 보면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탄생하신 때는 헤롯 왕이 죽기 얼마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셉푸스는 헤롯 왕이 주전 4년 3월 말, 또는 4월 초 월식 직후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학자들은 주님께서 탄생하신 때를 주전 5년 말이나 주전 4년 초로 보고 있습니다. 카톨릭이나 개신교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신일(성탄절)로 지키고, 동방 정교에서는 1월 6일을, 그리고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19일을 성탄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예수께서 탄생하신 때는 주전 5년 말에서 주전 4년 초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2. 성탄절을 지금과 같이 지키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견해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1) 첫번째 견해 : 로마 축제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됨. "크리스마스"의 날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12월 25일 설은 고대 "로마"에서 지키던 "동지 날"을 채택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입니다. 당시 "로마"의 이교도들은 동지절(12월 24일-다음 해 1월 6일)을 하나의 대축제적인 명절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당시에 밤이 길어지던 날이 끝이 나고 낮이 다시 길어지고 태양이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를 축제일로 기념했습니다. 이런 동지 풍습은 각국마다 있는데, 우리나라도 역시 12월 22일, 즉 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는 등의 풍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교회는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가 된 후에 이러한 태양신의 축제일을 성탄일로 지키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방신의 축제일인 동지를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지키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현재에 가장 유력한 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회가 "크리스마스"를 교리적으로 지키기 시작한 것은 4세기 후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로마"교회에서 "크리스마스"를 지키기 시작한 년대는 335년이라고도 하고, 혹은 354년이라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후에 이러한 "성탄절" 예식은 동방 교회로 퍼져나갔고, "콘스탄티노플"(379년), "카파도기아"(382년)등에서도 지키기 시작되었습니다. 2) 두 번째 견해: 신현절이 교황에 의해 신현절과 성탄절로 구분되어 지켜짐. 고대 교회에서는 2세기에 1월 6일을 "에피파니", 즉 주님이 나타나신 절기라 하여 "신현절"로 지켰습니다. 고대 교회는 이 날을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과,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일을 겸하여 성탄절로 지켰습니다. 1월 6일은 동방박사의 방문을 기념하고, 세례받으실 때에 아버지와 성령이 나타나신 일을 기념하며, 또 주님께서 가나에서 처음 행하신 이적을 기념 하여 325년에는 전 교회 대부분이 성탄절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353~354년 경에 교황 리베리어스가 1월 6일을 신현절, 또는 세례절로 정하고, 반면에 12월 25일은 성탄절로 구분하여 예수 탄생일로 공식 발표하면서 로마에서 이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러한 예식에 동교회에도 동조했습니다. 3) 세번째 견해: 또 다른 학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에서는 원래부터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켰고, 동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켰는데, 후대에 와서 동-서교회가 모두 같은 날로 지키게 되었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한편 현재 개신교와 천주교에서는 12월 25일을, 희랍정교에서는 1월 6일을 알메니아 교회에서는 1월 19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위의 세 가지 견해 중에서 현재 가장 유력한 견해로 지지받고 있는 것은 첫 번째 견해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와 세 번째 견해도 참고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21세기 한국 사회와 목회상담의 과제 2004-01-16 15:03:11 read : 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 들어가는 말 눈 앞에 다가온 2000년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미래학자 존 내이스빗(John Naisbitt)과 패트리카 애버딘(Patrica Aberdene)은 그들의 저서 Megatrends 2000에서 2000년대에 우리를 맞이할 대표적인 10가지 거대한 흐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1.
21세기 한국 사회와 목회상담의 과제 2004-01-16 15:03:11 read : 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1. 들어가는 말 눈 앞에 다가온 2000년대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미래학자 존 내이스빗(John Naisbitt)과 패트리카 애버딘(Patrica Aberdene)은 그들의 저서 Megatrends 2000에서 2000년대에 우리를 맞이할 대표적인 10가지 거대한 흐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1. 전 세계에 걸친 경제적 호황 2. 예술분야의 부흥 3. 자유시장에 입각한 사회주의의 대두 4. 세계적 생활양식과 문화적 민족주의 5. 복지국가의 민영화 6. 태평양 연안의 부상 7. 1990년대 여성지도력 향상 경향의 지속 8. 생물학의 시대 9. 종교적 부흥 10. 개인의 승리 이들이 예견하는 미래사회의 변화는 너무나 빠르고 거대한 것이어서 우리가 미처 대처할 준비도 하기 전에 밀어닥치면서 우리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변화의 흐름은 거대한 힘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인간의 인격및 심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며, 인간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인 구조 개편을 이루고 사회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토플러는 앞으로의 세대를 지적노동에 근거를 두는 정보시대로 진단하면서 농업노동과 공장노동의 물결을 거치면서 점차 인간대 인간의 관계에 기초를 둔 신뢰와 인격의 사회에서 인간대 기계, 지식과 정보등 비인격적인 관계 속에서의 노동과 삶을 이야기 하는『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의 지식의 사회(Society of Knowledge)에로의(Drucker, 1993) 이전을 의미한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미래 사회는 인간의 두뇌회전을 기반으로 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에 촛점을 맞추게 될 것이요, 거기에서 경제활동을 창출하는 사회이다. 이것은 인격적인 인간과의 관계보다는 비인격적인 지식, 정보, 기계등과의 관계가 우선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는 인격의 상실, 인간가치의 전도, 친밀관계의 결핍등을 가속화 시킬 것이며, 인간으로 존중받고 대접받으며, 돌봄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욕구들은 억압을 받게 될 것이다. 목회상담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필요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며, 타락한 인간의 가치들을 회복시켜 존중받는 인간으로 성장시키며,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Wellbeing을 삶 속에 구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2000년대의 미래 세계는 목회상담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2. 2000년대 한국의 미래상 ⑴ 사회적인 변수들 2000년대의 한국은 오늘 우리 가운데 드러나고 있거나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적 변수들이 무르익어 꽃이 피는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다가올 변수들을 이야기하기 전에 오늘에 진행이 되면서 미래에 완성될 사회적 변수부터 검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테크놀러지의 발달과 다량생산체제및 소비사회가 가속화 될 것이다. 과거 한국사회는 절약이 미덕이요 내핍이 존중받는 삶의 태도였다. 그러나 미래 사회는 소비가 미덕이요, 소비를 더 촉진하는 사회로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돈이 삶의 기준을 좌우하게 될 것이요, 소유의 넉넉함으로 자랑을 삼는 사회가 될 것이다. 테크놀러지의 발달은 기계앞에서 서 있는 인간상을 만들어 낼 것이요, 기계와의 대화, 기계의 부속품화를 가속시켜 인간관계의 욕구를 더욱 억압시킬 것이다. 또한 소비사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그 갈등을 더욱 깊게 만들어 갈 것이다. 2)숨은 설득자로 가득한 세대가 되어 갈 것이다. 오늘의 사회에서 점점 대중매체에 의하여 인간의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결정되어 가고 있으며, 광고의 횡포로 더 편리 한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요, 더 새롭고, 더 부유한 것이 행복이요 존중받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설득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얼마나 더 많이 가질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어 재산은 그 자체의 공공성보다는 자기의 치부수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수입이 더 많은 행복을 만들어 낸다는 가치의 전도가 일어나고 있으며 2000년대에는 이것이 극대화 될 것이다. 광고와 대중매체의 물결속에 사는 자들은 인간보다 물질우위의 관념을 정착시킬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으로 대우를 받으며 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사랑과 돌봄을 받고 싶다는 욕구들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3) 우리는 뒤틀린 우선순위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2000년대에는 더욱 이 경향이 깊어질 것이다. 테크놀러지의 발달, 대량생산, 소비가 미덕인 사회, 숨은 설득자로 가득한 세계는 인간들의 관심을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에서 표면적이요, 외형적인 순간적 가치에도 전환시켜 놓을 것이다. ① 인간보다 업적을 중시하여 내가 무엇을 성취하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요, 사람을 돌보는 일보다는 무엇을 성취하는 일을 중시할 것이다. ②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여 삶 그 자체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어떠한 결과를 성취했느냐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③ 사랑보다 체면을 중시하여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그의 복지를 위해 힘쓰기 보다는 나의 체면이 어떻게 되고 있느냐 하는 자기 중심적 가치가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선 순위의 전도는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본성적인 욕구와 충동및 무의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요. 억압된 이 욕구들은 한편으로 강렬하게 사랑과 돌봄을 열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여러가지 비인도적이요 폭력적이요 비윤리적인 과격행동을 유발시킬수도 있을 것이다. 4) 우리는 가공스런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사회의 숨은 설득자들은 끊임없이 상대적인 빈부의 차를 강화 시킬 것이요, 인간이 되고자 하는 근본적인 본성적 욕구를 억압시킬 것이다. 따라서 미래사회는 오늘 보다도 더 폭력사회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범죄의 폭력, 전쟁의 폭력, 경제적인 폭력, 정신적인 폭력등 점차적으로 사회의 폭력의 소식은 많아질 것이요,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사랑과 돌봄과 존중을 갈망하며, 진정으로 자기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줄 사람을 찾게 될 것이다. 5) 핵무기의 공포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는 지구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테크놀러지의 발달은 끊임없이 핵확산을 우려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전략무기를 관리하는 자들의 실수에 따라서 온 세계를 핵 폭탄의 위기 속에 몰아 넣을 수도 있다. 클라인벨은 히로시마에 있는 전폭사망자 위령탑 앞에서 "앞으로 나는 인간의 생명을 파멸로 이끄는 저 거대한 핵 폭력에 항거하는 사회정의의 실현을 이야기하지 않는 목회상담을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강연했다. 핵무기의 파괴력과 살상력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핵무기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과연 인류에게 미래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6) 우리는 자원약탈과 자연파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연을 아름답게 지키게 하려고 인간을 창조하셨다(창1:27-29). 그러나 사탄의 시험으로 타락한 인간은 ①자연을 자기 욕망충족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고(창3:6), ② 자연은 인간에게 가시와 엉겅퀴로 괴로움을 주는 대상으로 바꾸어 졌다(창3:16-18). ③ 인간은 자연정복의 책임과 사명을 갖고 태어난 것처럼 인식하고, 자연을 아름답게 지켜야하는 책임과 사명을 잊어버렸다. 그 결과 온 세계가 자원약탈과 자연파괴에 동참하고 있으며, 자연파괴로 우리에게 다가올 엄청난 보복과 파멸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행동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만 보더라도 서울의 대기 오염은 심각할지경에 이르고 있고, 수도물은 마실 수 없는 물이 되어버렸고, 끊임없이 버려지는 공장폐수와 자연훼손등은 장래 우리 사회의 검은 구름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내다보며 절망하든지 자신을 마취시켜 어두운 미래를 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⑵ 미신의 부흥과 오컬트의 확산 지금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가속화되어 미래 사회를 지배하는 변수들 중에 미신 부흥과 오컬트의 확산을 또 하나의 다른 제목으로 다루는 이유는 이것이 목회상담에 중요한 변수중의 하나로 떠 오를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컬트라고 하면 신비적인 일,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등으로 해석되는 신비주의 현상들을 총칭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다. 머릿말에 언급한 내이스빗과 애버딘의 Megatrends 2000에서 지적하는 2000년대에 우리는 맞이할 대표적인 10가지 거대한 흐름 중의 하나인『종교적 부흥』은 기성종교들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흥종교들의 부상을 의미하고 있다. 즉 이제까지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집단,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던 집단들이 신흥종교의 기치아래 모여 새로운 인간관계를 표방하면서 세력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절대가치의 상실로 가치 진공에 빠져 버릴 미래 사회에서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귀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그린은 자기가 목사 안수를 받던 1950년대에 영국에서 오컬트 현상을 이야기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오컬트현상을 찾아 보기 어려웠으나 1980년대에 와서는 영국의 목사의 수와 여자무당(Witchcraft)의 수는 거의 비슷해졌으며 영국의 대학들과 마을마다 마술 써클이 없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Michael Green, 1994). 독일의 커트고츠박사는 그의 저서 『오컬트의 속박과 해방』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잘 알려진 의사요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죤스가 나를 초청하여 정신과 의사들에게 오컬트현상과 오컬트 억압에 관하여 강연하라고 하였다. 내가 강연을 마치고 나자 바로 한 사람의 정신과 의사가 성경에 기록된 귀신들린 자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정신병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나를 공격하였다. 그러자 또 다른 정신과 의사가 일어나더니 나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의 시술경험에서만 11회의 각기 다른 귀신들린 환자들의 사례를 언급했다.그리고 또 다른 정신과 의사가 일어나서 귀신들린 자들에 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그도 자기가 3-4회 귀신들린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변호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Michael Green, 1994, 157면 재인용) 오늘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오컬트의 현상들은 주로 세가지의 제목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마술과 점술과 강신술이다. 마술은 영들의 세계를 자기의 지식과 지배의 범위 아래로 불러 들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현상이요, 점술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초월적인 지식에 관심을 가지며, 손금보기, 카드점, 수정점, 정신측정신비술, 점성술등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한다. 강신술(Spiritism)은 죽은 자들의 영과 커뮤니케이트하려고 한다. 이러한 오컬트현상은 전셰계를 휩쓸고 있는 중대한 영적인 현상으로 앞으로의 사회가 물질적인 가치를 고양하는 사회로 더욱 가속화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반동으로 이런 오컬트 현상도 확산될 것이다. 오컬트현상이 더 확산되어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 유물론의 물질주의의 메마름 때문에 영적인 가치의 진공이 생기면서 미신과 오컬트는 이 기회를 교묘히 포착하여 영적인 구세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인간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동물이요 영적인 가치와 함께 살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어떠한 종교이든지 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기성종교들이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에 빠져 영 적인 세계를 비신화화시킬 때에 오컬티즘을 선택해서라도 자기의 본성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밖에 없다. ③ 기독교 세계에서 점차 그 힘을 얻어가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은 신비를 축출하고 초월을 과 소평가하기 때문에 사이비종교들은 더욱 신비주의적 형태로 미래사회의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④ 스릴을 맛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초월적인 힘을 지배하는 마술과 초월적인 지식을 얻 는 점술과 죽은 영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강신술에서 가슴 떨리는 스릴을 맛보고자 할 것이 다. 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욕망인 남들 위에 서고자 하는 힘의 욕망은 오컬트를 통하 여 얻은 초월적인 능력과 지식으로 만족을 얻고자 할 것이다.
Iconoclastic(성상폐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세요!/ 2015-07-13
Iconoclastic(성상폐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세요! iconoclastic(성상(화상) 폐지론)의 의미에 대해서 이 말은 중세 때의 8-9세기에 있었던 \"화상 논쟁\"(iconoclastic Controversy)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때에 일부는 \"화상\"(아이콘; 조각, 그림 등 예술품) 사용을 지지했으며, 다른 쪽은 \"화상\"의 사용을 반대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카톨릭이 예수 상이나 성모 마리아 상 등을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화상의 사용을 반대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화상의 사용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글자로 쓰여진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듯이, 그림이나 동상 등의 예술품도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화상사용을 반대하는 사람(iconoclastic)은 이런 그림이나 동상(아이콘)이 우상 숭배를 조장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8-9세기에는 교회 내에 매우 큰 갈등과 분쟁을 일으켰던 문제였습니다.
Q.T는 왜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하는 지 가르쳐 주세요!/ 2015-07-13
Q.T는 왜 해야 하고, 또 어떻게 하는 지 가르쳐 주세요! Q. 큐티는 왜 하며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감사합니다. A. * 다음 웹페이지에 접속하시면 큐티에 관한 자세한 지침을 온라인 강의로 들을 수 있습니다. * 온누리 큐티 강좌 (http://onnuritv.com/web2/seminar/2001qt_theme/theme_0616.htm )
가정 폭력 2004-01-16 14:48:03 read : 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윤 홍 선 I.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가정 폭력은 폭행자에 의해 한 가정의 질서가 파괴당하고, 존중 받아야 할 인간의 권리가 무참하게 짓밟히며 희생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안겨주는 폭력행위이다. 한 가족 안에서의 폭력은 가족 구성원간의 평등이 무시되고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소유관계로 되어버려 건
가정 폭력 2004-01-16 14:48:03 read : 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윤 홍 선 I. 서론 1. 연구의 필요성 및 목적 가정 폭력은 폭행자에 의해 한 가정의 질서가 파괴당하고, 존중 받아야 할 인간의 권리가 무참하게 짓밟히며 희생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안겨주는 폭력행위이다. 한 가족 안에서의 폭력은 가족 구성원간의 평등이 무시되고 힘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소유관계로 되어버려 건강한 가정의 모습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가정 폭력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아내와 자녀들이다(Gayford, 1975a ; Hilberman, 1980 ; Viken,1982 ; 김광일, 1985). 아내 구타는 일반적인 폭력과는 다르게 의례히 있을 수 있는 가정안의 일이며, 문제삼는 것을 부도덕한 일로 여기거나 금기처럼 덮어버리고는 매맞는 아내에게 책임을 묻고, 폭력자는 대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관대함을 받는 것이 사회 통념이었다(Lystad, 1975 ; Martin, 1976 ; Dobash & Dobash, 1978 ; Rounsaville, 1978 ; Hilberman, 1982 ; 김광자,김광일, 1985 ; 서명선, 1985). 또한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남편과 아내가 주종관계를 이루며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점, 과거로부터 매를 맞고 살아온 타당성으로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맞을만 하니까 맞는다는 인식, 실제로 매맞는 아내가 법과 사회에 호소를 해도 그 심각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매맞는 아내에게 잘못이 있는 것으로 인식, 구타문제에 개입하기를 꺼리고 개인문제로 돌리며 당사자끼리 해결하도록 미루어버리는 태도 등이 아내 구타의 심각성에 비해 실지로는 사회문제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밝히고 있다(Martin, 1976 ; Straus, 1978 ; Walker, 1978 ; Hilberman, 1980 ; Schechter, 1982 ; 김광자, 김광일, 1985). 폭력적인 가정은 그 가족들로 하여금 폭력과 폭력방법을 학습하게 할 뿐 아니라 폭력의 사용을 문제 해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며 가정이 폭력을 학습시키는 훈련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Gelles, 1978 ; Straus, 1978). 가정이 구타의 학습장이 되어도 구타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미흡한 상태이므로 희생자인 아내는 법과 사회에 호소를 할 용기가 꺽여버리고 호소 후에는 더욱 심한 구타가 예상되므로 두려움을 갖는다(Pizzey, 1974 ; Dewsbury, 1975 ; Gayford, 1975a, 1975b ; Lystad, 1975 ; Martin, 1976 ; Dobash & Dobash, 1978 ; Schechter, 1982 ; 김광일, 1985 ; 김희선, 1985). 현재 아내 구타의 해결책이 미흡한 상태이며, 또한 가족 폭력이 세대간 전이됨에 따라 그것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관습으로 굳어져서, 우리의 생활이 지배됨을 볼 때, 가족 폭력의 세대간 전이는 심각한 문제로 다가와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본 연구자는 가족폭력의 세대간 전이에 대해, 그 심리적 배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II. 이론적 배경 1. 아내 구타의 이유 구타자의 정신병리, 병적 질투, 미성숙한 인격장애, 성도착증, 공격적 성격, 약물이나 술 중독, 정신질환들이 구타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Scott, 1974), 부권 중심의 가정과 문화에서 자란 남편의 권위의식, 사회 경제적 수준, 불안정한 결혼상태등이 구타를 하는 배경적 요인이 되고 있다(Scott, 1974 ; Gayford, 1975b ; Martin, 1976 ; Hilberman, 1978 ; 신은혜, 1984). 주로 남편에게 문제가 있어 아내를 구타하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권위적인 남편이 지위나 능력에 열등감을 갖거나, 의처증이나 피해망상이 심할 때, 직장에서 당한 기분 나쁜 일로 화풀이하고 싶을 때 외형적으로 적당한 구실을 찾아서 구타하므로 아내는 진정한 이유도 모르고 맞는 경우가 많다(Martin, 1976 ; Gayford, 1975a ; 신은혜, 1984 ; 김광일, 1985). 또한 남편이 외도를 하고, 술을 먹고, 노름하는 것들을 지적할 때 이해를 못한다고 트집을 잡아서 구타를 하기도 한다. Snell과 그 동료들(1964)은 여자의 자학증을 구타당하는 동기로 지적하며 아내는 남편에게 거칠게 취급받기를 좋아하고 신체적인 고통을 통해 지배받기를 즐거워하므로 잔소리나 바가지를 긁어 구타를 유발시킨다고 한다. 이외에도 매맞는 아내는 얼굴이 못 생겼다, 몸이 뚱뚱하다, 친정 집이 가난하다, 아들을 못 낳는다, 말대꾸를 한다, 살림을 못한다는 이유로 구타를 당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김광일(1985)이 지적했듯이 소수에 달하는 정신병자 남편을 제외하고는 구타의 이유들은 모두 구타를 하기 위한 트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2. 구타당하는 아내의 특징 아내의 자라온 성장과정, 부모와의 관계, 성격, 결혼과정이 구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Gayford, 1975b ; Martin, 1976 ; Lynch & Norris, 1978 ; Dobash & Dobash, 1978). 구타당하는 아내의 성장배경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가정에서 자라온 경우보다 대부분 부모가 일찍 이혼하거나 별거하는 등 결손 가정, 붕괴된 가정에서 자란 아내가 많다. 이들의 약 20%는 부모로부터 구타를 당하며 자라왔고, 아버지로부터 성적 유혹과 학대를 받아 왔다(Levinger, 1975 ; Gayford, 1975b ; Martin, 1976 ; Parker & Schumacher, 1977 ; Lynch & Norris, 1978 ; Rounsaville, 1978 ; Walker, 1978 ; 김광일, 1985). 매맞는 아내의 어머니도 약 50%는 구타당하는 아내였다(Scott, 1974 ; Parker & Schumacher, 1977 ; Hilberman, 1980). 또한 폭력가정에서의 생활에 대한 반항과 두려움으로 일찍 가출하기도 하며, 폭력가정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충동에 경솔하게 결혼하기도 한다(Hilberman, 1978 ; Rounsaville, 1978). 매맞는 아내의 결혼 과정이나 형태는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 결혼 전 임신으로 인한 원치 않는 결혼, 남편에게 강간당한 후, 학비 조달, 생활비 원조로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결혼, 결혼 전 동거생활 등 전통적이고 정상적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Gayford, 1975a ; 김광일, 1985). 어려서부터 폭력가정에서 자란 여성은 폭력에 적응하기 위하여 복종적이고 비굴해지면서 무기력해진다. 결단력이 상실된 우유부단한 상태로 절망과 체념 속에서 살아가는 폭력에 의한 노예 상태가 되는 것이다(Hanks & Rosenbaum, 1977 ; Hilberman & Munson, 1978 ; Walker, 1978 ; 김광일, 1985). 자존심이 결여되면서 수동적인 태도를 갖는다. 자신은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고 믿으며, 자신의 행동을 변화시켜야만 남편의 때리는 행동이 교정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수동적인 태도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며, 죄책감으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더우기 만성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사는 아내는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고, 주체성을 갖기 어렵다(Rounsaville, 1978 ; Walker, 1979). 구타당하는 아내에게서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난다. 구타에 대한 공포, 당혹, 남편에 대한 분노, 적개심, 불안, 초조, 우울과 더불어 자신에 대한 자학, 무력감을 나타내며 정신신체장애도 일으킨다(Resnick, 1976 ; Walker, 1979). 3. 구타하는 남편의 특징 남편의 교육수준, 연령, 직업과 구타와는 특정한 관계를 갖고 있지는 않다(Rounsaville, 1978 ; 신은혜, 1984 ; 이화수, 1984 ; 김광일, 1985). 오히려 아내와 같이 남편의 성격, 자라온 환경, 부모관계, 습관 등이 폭력과 관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Gayford, 1975a ; Rounsaville, 1978 ; Straus, 1978 ; 신은혜, 1984 ; 김광일, 1985). 어려서부터 폭력가정이나 붕괴된 가정에서 성장해 온 남편이 50-80%나 되며, 아버지가 폭력적이고 어머니가 수동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라온 남편에게서 구타자가 많다(Scott, 1974 ; Gayford, 1975a ; Straus, 1978 ; Hilberman, 1980 ; Fitch & Papantonio, 1983 ; 김광일, 1985).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구타당하며 지내온 경우가 50%,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구타당하며 지내온 경우가 20%, 어머니로부터 구타당하며 자라온 남편이 40%, 아버지로부터 구타당하며 자라온 남편이 42%나 된다(김광일, 1985).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 구타를 당하며 자라온 남편은 구타자가 되거나 폭력에 무기력한 사람이 된다는 폭력의 악순환적 학습이 다음 시대로 폭력을 전달시킨다(Gayford, 1975a). 아내 구타자는 질투심이 많다. 여성과는 동등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격적인 기질을 갖고 있어 잔인하고 가학적이다. 이는 의심이 많아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고, 의존적이며 피동적인 상태로 성적(性的)인 확신을 못갖고 있는 점에 기인한다고 보았다(Schultz, 1960 ; Snell, 1964 ; Levinger, 1966 ; Dewsbury, 1975 ; Faulk, 1977). Walker(1979)는 때리는 남편은 자존심이 낮아 사소한 일에 감정 폭발이 잘 되고, 전통적으로 가부장적인 남성 우월의식에 빠져 있으며, 이중 성격을 갖는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지나친 방어로 남을 비난하는 편집증적 반응과 병적인 질투로 가득 찼고, 공격적인 성행위를 즐기며 자신의 폭력행위가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광일(1985)은 구타자를 두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첫째 유형은 정신병의 증상으로 구타하는 사람, 즉 정신분열증, 조울병, 뇌증후군, 뇌매독에 의한 진행성 마비의 경우, 구타자의 인격 자체보다 병적인 피해망상, 질투망상, 관계망상, 환청 등의 증상에 의해 구타를 하며, 이는 정신병의 치료로 해결될 수 있다. 둘째 유형은 정신병이 없이 인격장애로 구타하는 사람, 즉 미성숙하고 편집적이고 반사회적이며 폭발적인 인격으로 인해 아내에 대한 의심과 감시가 심하고, 사사건건 트집잡아 시비를 걸고, 난폭한 행동을 하면서도 불안이나 죄책감이 없이 폭행을 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구타자로 이 경우를 규정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인 치료가 필요하다(Pizzey, 1974 ; 김광일, 1985). 아내 구타자의 50-90%가 폭음자이거나 알코올 중독자이며, 도박을 즐기고 있다(Gayford, 1975b ; Martin, 1976 ; Hilberman & Munson, 1978 ; Rounsaville, 1978 ; Walker, 1979 ; 김광일, 1985). 음주가 구타의 원인으로 지목을 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아내를 구타하기 위한 구실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음주 상태에서의 폭행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며, 결국 계속적으로 구타를 하다 보니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리고 만다(Gelles, 1976 ; Martin, 1976). 이들은 좌절과 분노를 견디는 힘이 약하고, 음주의 영향으로 통제력을 더욱 상실하여 구타를 반복하게 된다. 또한 Gayford(1975a)와 Rounsaville(1978)은 아내 구타자 중 전과경력이 있는 사람이 50% 이상 된다고 하였다. III. 연구방법 ㉠ 석,박사의 논문을 참고해서, 연구 기술을 습득한다. ㉡ 학회지나 신문자료, 서적을 이용하여 접근도를 높힌다. ㉢ 통계 자료를 이용하여 각 상황을 분석한다. IV. 연구결과 및 해석 1. 신체적 정신적 손상 장기적으로 반복되는 구타는 아내나 자녀에게 심한 신체적 손상과 정신적 장애를 가져오며 성격 변화, 사회생활의 적응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먼저 아내가 당하는 신체적 손상은 다른 폭행에 비해 얼굴 부위의 손상이 많다(Fonseka, 1974). 주로 코뼈 골절, 치아 골절, 고막 파열이 흔하며, 드물게는 안구 파열,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기도 한다. 손상 정도는 타박상이 제일 많고, 흉기로 찔린 열상, 늑골 골절, 화상, 뇌손상과 그 후유증으로 오는 간질, 임신 중 구타로 인한 유산 그리고 사망하는 경우까지 있으며,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불구장애가 남아 일생을 고통 속에 살아가기도 한다(Dewsbury, 1975 ; Gayford, 1975a ; Hilberman, 1978 ; Viken, 1982 ; 신은혜, 1984 ; 김광일, 1985). 구타당하는 아내의 정신적 장애는 장기적으로 반복되는 구타에 맞고 참는 것이 창피하고, 남편이 중지해 주기를 기대하며, 자신이 지탱해 낼 수 있을지 당혹감을 갖고 혼란스런 정신상태로 주체성이 파괴되고 무기력해지는 것이 문제이다(Resnick, 1976). 행동의 장애로는 분노, 수치심과 체념으로 자살을 기도하거나 가출을 하고 살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웃에서 알까봐 두려워 매맞는 것을 숨기려고 애쓰고 당황하며 부끄러워 심한 상처를 받고도 단순한 사고로 다친 것처럼 변명하고, 상처가 치유될 때까지 이웃 접촉을 피한다(Gayford, 1975b ; 김광일, 1985). 남편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고 살아가므로 우울증, 불안증이 다양한 신체증상으로 위장되어 나타나고 자신은 맞을만하니까 맞는다고 막연히 믿고 이러한 결과로 자신이 매맞을 짓을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으며, 남편에 대한 죄책감마저 갖는다. 반복적인 구타로 불안, 초조, 공포, 분노, 체념의 정서 반응으로 적절한 감정 표현을 못하여 불면증, 두통, 소화불량, 가슴답답증, 속열이 얼굴로 치솟는 느낌등 정신신체장애의 증상이 나타난다(Hilberman, 1980 ; Viken, 1982 ; 김광일, 1985). 또한 자기 개념을 확립 못하고, 자살,자혜로서 남편에 대한 증오심을 자신에 대한 공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낸다(Hilberman, 1978).
가족상담 신앙상담 2004-01-16 15:10:09 read : 4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죠지 A. 레커즈 편집자 서문 가족 상담 컨퍼런스에서 거의 매주마다 나에게 강연해 달라는 요청이 한 두 건은 꼭 있다. 학문적인 연구기관들, 전문단체들, 기독교기관들, 특히 교회단체들은 가족문제 세미나, 웍샾, 주말 수양회, 만찬등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군대 지휘관들은 가족불안정과 잦은 별거 생활로 인해서 군인들이 혼란에 빠
가족상담 신앙상담 2004-01-16 15:10:09 read : 4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죠지 A. 레커즈 편집자 서문 가족 상담 컨퍼런스에서 거의 매주마다 나에게 강연해 달라는 요청이 한 두 건은 꼭 있다. 학문적인 연구기관들, 전문단체들, 기독교기관들, 특히 교회단체들은 가족문제 세미나, 웍샾, 주말 수양회, 만찬등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군대 지휘관들은 가족불안정과 잦은 별거 생활로 인해서 군인들이 혼란에 빠지고 있으며, 사기에도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족과 관계된 가정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으며, 산업체에서도 가족문제가 고용인들의 효율성을 파괴시키고, 사기를 저하시켜 간접적으로 기업이익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제임스 돕슨(James Dohson)의 가족영화들과 라디오 프로그램은 계속 광범위한 청중들을 확보해가고 있으며, 다양한 잡지의 기고들은 다음의 멧시지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 현대의 가족은 문제투성이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여러해 전체 2000여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오늘 우리 시대가 당면한 가장 긴박한 문제인 가족문제들 중에 몇 가지라도 해결해 보려고 한 주간동안 가족컨퍼런스를 가진 적이 있다. 참석자들은 북미에서 가장 뛰어난 가족문제 전문가들이 지도하는 여러 그룹모임에 참여했다. 컨퍼런스가 끝나면서 우리는 성경적인 기초에 근거하여 "가정에 대한 긍정적 이해"라는 글을 발표하고, 가정과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가족의 삶을 개선해 나가자고 결단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결과로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는지 의심하고 있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혼문제는 대중화되고 있으며, 이혼율은 높고, 아름다운 가족 연합은 찾아보기 힘들다. 상담자들은 역기능 가족식구들과 계속 상담하고 있으며, 목사들은 교회의 중직자들의 가정에서도 싸움과 불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가족상담자들과 기독교 지도자들마저도 상담소와 교역현장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 가끔 긴장과 부딪치고, 커뮤니케이션이 깨어지고, 대인관계의 문제들 앞에서 당황해 한다. 기독교 상담 자원 시리즈를 계획하면서, 워드회사(Word)에서 일하는 나의 동료들은 가족상담를 심도있게 연구하여 이 시리즈에 포함시키자고 제의했다. 가족상담의 저자는 전문적인 저술가로서 가족상담에 정통하고 경험이 많은 분이 되어야 한다고 합의했다. 조지 레커즈(George A. Rekers)박사가 적임자로 선정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가족들과 상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실천적인 도움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 상담 시리즈는 한 권 한 권 모두 실천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고안되었다. 이 시리즈는 상담의 전문가이면서 강한 기독교 신앙과 광범위한 상담 경험을 가진 저자들이 저술하였다. 한 권 한 권은 정확한 심리학의 실예들을 제시하고 주의 깊은 성경연구에 기초하였다. 이 시리즈는 분명한 복음적이 관점과 주의 깊은 문서적인 뒷받침과 강력한 실천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상담분야 서적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포괄적인 설명들과 문서적인 근거가 없는 수사적 표현들을 탈피하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목표는 이 시대의 기독교 상담이 당면하고 있는 최근의 것이다. 논점들을 분명하게 기술하고, 유익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 상담자원 시리즈는 모두 비슷한 외형으로 만들 것이며 함께 모으면 유익한 기독교상담백과사전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저자와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여름 워싱턴 D.C.의 쇼레함 호텔에서이다. 저드슨 스위하트(Judson Swihart: 기독교 상담자원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을 집필함)와 함께, 죠지 레커즈는 가족복지와 건강에 대한 국가 지도자 포럼을 주최하고 있었다. 이 포럼은 연구모임으로 학문분야, 신학분야, 상담분야, 그리고 정부관리등이 참여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족의 운명을 슬퍼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방법으로 가족들을 강화시키고(특히 기독교 가족들을) 그들을 더 안전하게 도와주기 위해서 모였다. 후에 죠지 레커즈는 이 컨퍼런스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모든 문서들과 토의 요약들을 한데 묶어 가족생활에 대한 의미있는 책으로 출간했다(조지 레커즈가 편집하고, 레갈사에서 출판하였으며, 제목은 Family Building: Six Qualities of a Strong Family이다). 이 책은 레커즈가 계속적으로 가족문제를 연구한 결과로 재술한 여러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이다. 죠지 레커즈는 계속하여 가족상담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미국 남부에 소재한 권위있는 의과대학에서 전임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저술가와 연구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웍샾과 훈련교육을 지도하고 있다. 대부분의 해외웍샾과 훈련교육은 대개 가족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대상들의 대부분은 선교사들, 신학생들, 그리고 지역교회목사들이다. 가능할 때에는 레커즈 가족식구들이 함께 여행하며 웤샾을 지도한다. 죠지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가족들이 하나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자기는 자기가족들과 자녀들을 홀로 버려두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에 나오는 글들을 읽으면서 당신은 가족을 중시하는 남자요, 가족생활의 논점들을 깊이 이해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일급 전문 도우미(helper)를 만날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실천적이요, 자신의 상담경험들로부터 얻은 풍부한 실례들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요, 과학적인 연구조사에 근거한 것이요,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민감성과 정열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다. 이 책은 가족상담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담은 책은 아니다. 가족 컨퍼런스와 쎄미나와 웍샾들은 계속 될 것이며, 가족식구들은 계속문제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족들이 당신의 교회에 있거나 그들이 자기의 문제들을 갖고 당신의 상담사무실에 찾아 왔을 때에 이 책은 당신을 돕는 유익한 도우미가 될 것이다. 당신이 가족상담을 할 때에 당신은 기독교교역 가운데서도 가장 도전을 주는 분야들 가운데 하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게리 R. 콜린스, Ph. D. 일리노이주 킬디어에서 서론 내가 미국 상원 공식청문회 지정석에 앉으려고 안내를 받으면서 걸어가는 동안에 여러 방향에서 내 눈을 자극하는 휘황한 불빛이 타오르는 불꽃과 같이 비쳐왔다. 나를 안내하는 상원직원은 상원들을 마주보고 제일 앞줄에 앉으라고 했다. 그가 내 자리 바로 오른 쪽에 앉은 갤렆조사연구소의 죠지 갤렆박사에게 나를 소개하는 동안에 나는 그 방안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대화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텔레비젼 카메라는 갤렆박사와 내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향하여 있었다. 우리는 가족과 인간봉사에 대한 상원 소위원회 앞에서 청문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새로운 갤렆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캘렆박사와 나는 청문회에서 이야기할 내용을 최종점검하였다. 어쨌든 그는 카메라 앞에서 나보다 더욱 편안한 것 같았다. 카메라 후래쉬가 터지고 TV담당자들이 그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있는 동안에 그는 최근 수십 년간에 조사한 갤렆여론조사 수치들을 검토했다. 그는 가족생활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미국인들의 열망이 50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지금도 강열하지만 이나라 사람들 중 소수만이 가족의 가치들을 실천하고 있다고 힘있게 결론지었다. 결혼한 두 쌍 가운데 거의 한 쌍이 붕괴되고 있는 미국의 엄청난 이혼율에 비추어서 상원은 이 청문회를 "붕괴된 가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내 자신의 증언은 주로 이혼이 자녀들의 정서적, 사회적, 학문적인 성취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같은 날 여러 전문가들이 이혼이 개인들과 지역사회와 우리 국가에 미치는 경제적 심리학적 영향에 대해서 증언한다. 안정된 가족생활에 대한 열망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가족들을 위하여 교회는 어떤 교역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수십년동안 상담해 달라고 목사들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고난의 가족들은 증가일도에 있다. 우리의 지역 사회에는 교회와 나란히 수많은 기독교상담소들이 설립되었다. 가족상담에 대한 요청은 대단히 증가되고 있다. 20세기가 끝나고 21세기가 시작되어도 이러한 요구는 감소될 것 같지 않다. 신학교에서 가족상담분야에서 제한된 훈련밖에 받지 못한 목사들이 교회에서는 수많은 가족상담의 요청을 받고 있다. 사실 최근의 조사에서 지역사회주민들이 가족문제에 대해서 성직자를 선택한 비율은 77%이다. 이에 비해 비종교적인 상담자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14%에 불과했다. 다른 문제들(우울증, 심각한정신질환등)에서 성직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은 이처럼 높지 못하다. 수많은 목사들은 상담봉사를 제공함으로 그러한 요구에 적절하게 응답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결국 가족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사회기관이요, 아직도 가족은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고 훈련하는 선택된 환경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교회와 사회의 구조 자체가 가족이 붕괴될 때에 함께 붕괴될 것이다. 특별히 도와 달라고 긴급하게 요청하는 상황하에서 교회는 어떻게 조용히 서서 자기들의 눈 앞에서 붕괴되어가는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볼 수만 있겠는가? 나는 캘리포니아 주 반 누이스에 있는 가족상담소에서 여러해동안 임상심리학자로서 일했다. 이 기독교 상담센터는 한 지교회에서 시작했으나 여러 복음적인 교회들의 지원을 받는 독립봉사기관이 되었다. 이 상담소는 12명의 파트타임 상담자들과 전임 상담자들을 고용하여 목사들과 함께 개인들과 가족들을 상담하고 있다. 나는 12년 이상 목사들과 개인적으로 또는 그룹으로 만나서 그들의 교회와 지역사회에서 상담이 필요한 가족들에 대해서 토의하였다. 목사들은 이런 만남에서 토의내용들을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면 "내가 상담하고 있는 가족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하고 이야기하면서 토의 내용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상담의 기술들과 신학적인 원리들을 같이 나눈다. 이런 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 많은 것을 배운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지역사회와 교회에서 모두 가족문제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1950년에 12명의 아동들 중에 1명이 결손부모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이혼율이 계속 높아지고 결혼하지 않은 어머니가 4배가 증가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4명의 어린이 가운데서 1명이 결손부모밑에서 자라나고 있으며, 모든 어린이의 반 이상이 적어도 한 번 이상 결손가정에서 자란 경험이 있다. 미국 통계청은 1985년에 출생한 모든 어린이의 삼분의 이는 아동기에 적어도 일정기간 동안만이라도 결손부모 밑에서 자라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참고 인내하며 결혼서약을 지키는 부부들이 헌저하게 줄어든 결과로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은 비극적인 정서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내가 편집한 Family Building 이라는 책에서 하바드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아만드 니콜라이(Armand Nicholi)의 연구조사는 미국의 부모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발견을 하였다. "미국의 부모들은 아마도 영국을 제외한 세계의 어느 다른 나라의 부모들보다도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 그런데 영국은 폭력범죄와 청소년 범죄율에서 미국보다 더 높은 유일한 나라이다. 경력 쌓기와 물량주의가 가족헌신과 경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 결과로 자녀들은 불행스러운 희생자가 되어 고통을 당한다. 교인이든 아니든지 미국의 국민들은 약간만이라도 이유가 생기기만 하면 무비판적으로 이혼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너무 많은 가정의 어린이들과 십대들은 엄청난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세뇌되고 있다. 사실 텔레비전은 가족관계에 관해서 왜곡된 가치들을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웃에서 가족식구들은 가족생활에 대한 비성경적인 사고방식들을 무의식중에 배우고 있다. 만약 이런 가치들을 적절하게 도전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하면, 가족은 그런 가치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요, 그 결과로 가족간의 결속은 부식되어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목사들과 기독교인들이 가족상담의 기술로 무장하여 상담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긴급한 요청이다. 내가 나의 조국 미국에서의 가족상담의 필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요청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나는 오늘 아침에 홀란드 배드호베도프에 있는 틴데일 신학교(Tyndale Theological Seminary)에서 상담과목을 가르치는 동안에 이 사실을 생각했다. 나는 암스텔담시에 인접한 시외에서 미국에서 뿐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유우럽 여러나라에서 온 상담전공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 생각을 하고 있다. 인간의 필요는 나라에 따라 서로 다르다. 그러나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구조인 가정에서 삶의 문제들이 점점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20세기 말의 징조인 것 같다. 바로 일년전에 나는 오스트리아, 그리스, 터키(다른 여러나라들 가운데서)등에서 일하고 있는 복음주의 선교사 단체의 정기 필드컨퍼런스에 강사로 초청받았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외곽에서 실시된 웍샾에서 나는 유우럽의 가족들을 어떻게 상담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많은 질문들을 받았다. 논점들 중에 많은 것들이 미국과 별차이가 없었다. 지역마다 문화환경과 전통이 다를지라도 가족문제만큼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오히려 복음화되지 못한 나라에서 일하는 미국 선교사들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가족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가족상담의 필요는 너무 크게 나타나고 있으며, 고난은 너무 깊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가족상담기술을 갖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멧세지들을 들을 귀를 쉽게 찾아낸다. 유우럽에서의 방문강의 경험들과 제 3세계 여러나라에서 미국의 대학에 공부하러 온 나의 학생들은 목사들의 대부분의 요구가 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가족 상담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은 현명한 그리스도인 교역자들의 임무이다. 앞으로 나는 이론적인 진리를 증명하기 위하여 수 많은 상담사례연구들을 사용할 것이다. 모든 이야기들은 진짜 사례에 근거하였다. 그러나 이름, 내용등은 비밀 보장을 위하여 바꾸었다. 이 책에 나오는 도표와 목록들은 더 효과적인 가족상담을 실천할 수 있게 여러분 상담자들은 도울 것이다. 상담자들은 자기의 상담시간에 필요하다면 어떠한 도표든지 스스로 복사하여 사용할 수 있다. 나는 베키 킬구스(Becky Kilgus)가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정확한 타자기술을 사용하여 부지런히 도와준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또한 이 씨리즈의 편집자인 게리콜린스에게 감사하며, 전문가로서 지혜로운 지도를 아끼지 않은 워드사의 편집자 케리무어(Carey Moore)씨에게도 감사드린다. 나는 오스티리아 인스부룩대학교에서 온 방문의학도인 윌리 그랜더에게 특별한 격려를 받았다. 윌리, 고마워요, 상호간의 우정은 나에게 너무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책을 쓰는 동안에 사랑으로 지원해 주고 견디어 준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5명의 아들들에게도 뜨거운 고마움을 드린다. 나는 이 책에 있는 어떠한 실수들도 활기 넘치는 나의 자녀들이 수도 없이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말은 진실도 아니고 정당하지도 못하다. 사실 나의 가족은 나의 멘토들과 같이, 나의 교재들과 같이, 그리고 나의 내담자들과 같이 나를 많이 도왔다. 그리고 독자들이 나에게 지적해주는 어떤 실수든지 그것들은 바로 나의 개인적인 책임이라는 사실을 밝혀두고 싶다. 제 1 장 가족상담의 필요 "열광적"이라는 말이 앤드류 모간목사의 그날 하루 스케쥴을 대변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그는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일을 추진하는 성격이다. 그는 아침일찍 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저녁 기도회에서 가르칠 성경말씀 준비를 하고 나서 곧 바로 시립병원으로 달려가 수술을 받고 회복실에 누워있는 환자 세명을 심방하고, 초산엄마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나서 곧바로 도시변두리에 사는 그 교회청소년 지도목사를 만나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계청소년 수양회 계획을 확정지었다. 그가 교회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다섯통의 전화가 그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2시의 약속 때문에 그중에 두통의 전화만 응답했다. 그는 곧바로 결혼전 상담을 위해 기다리는 두 쌍의 남녀를 만났다. 3시까지 그 상담을 끝내고 나자 긴급한 또 다른 전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전화는 남편 없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에게서 온 것인데, 그녀는 지금 밀린 방세를 내지 못하여 좌절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목사에게 심각한 행동장애를 갖고 있는 자기 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울먹였다. 몇통의 편지에 싸인을 하고 나서 교회 구제기금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이 여인을 만나 의논하게 하라고 교회비서에게 지시하고 곧 바로 집으로 향했다. 급히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고 늦지 않게 수요일 저녁 예배를 인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예배가 끝나서 가족과 함께 집에 도착하여 막내를 재우고 나서는 기진하여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쉬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가 부엌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여보, 이 전화 당신에게 온 거예요, 다넬 부인이래요." "열다섯 살 난 내 아들 숀 때문이예요"하고 말하면서 다렐 부인은 흐느꼈다. "내 남편과 숀이 다투다가 숀은 자기 방으로 뛰어 가더니 문을 쾅소리나게 닫았어요. 우리는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렸지요. 그래도 그는 다시 나오지 않았어요. 한참 후에 우리는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그가 사려졌어요. 그리고 집을 나가니 경찰을 부르지 말라는 글만 남겨놓았어요. 만일 경찰이 자기를 뒤 쫓아 온다면 들고나간 사냥총으로 자살해버리겠다는거예요." 다넬 부인을 진정시키고 숀이 갈만한 장소를 생각해 보라고 하고 나서 모간은 전화로 그녀와 함께 기도했다. 모간목사는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이제는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눈대로 따라 행하세요. 그래서 숀을 만나면 전화하세요. 나는 내 사무실에서나 부인의 집에서 부인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스케쥴을 잡아 놓을께요" 다음날 아침, 다넬부인은 정각 9시에 전화했다. "로버트부인에게 전화했더니, 숀이 자기가족과 함께 자기 집에 있다는 거예요. 숀은 그 집에서 잤어요. 그리고 아빠와 함께라면 목사님을 만나겠다고 동의했어요. 톰이 두 아들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목사님도 아실꺼예요. 그는 항상 자기 일에 메달려 있고, 내가 무어라해도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아요. 애들은 아빠의 관심이 필요한데, 실제로 아빠가 애들에게 이야기하는 유일한 시간은 그들에게 숙제하라든지 무엇을 하라고 소리지를 때 뿐이예요. 에젯밤에도 톰이 지난학기 숀의 성적표를 보다가 성적이 형편없다고 야단을 쳤는데 드디어 숀이 폭발한 겁니다." 모간 목사는 그의 사무실에서 그날 오후 늦게 숀의 가족들을 만났다. 모간목사는 숀의 가족식구들에게 현재의 갈등, 감정들, 그리고 가족관계개선에 대한 희망등을 이야기하라고 격려했다. 모간 목사가 성경말씀에서 용서라는 주제로 이야기하자 숀은 화가나서 집을 뛰쳐나간것을 용서하라고 말하여 다른 가족들을 놀라게 했다. 목간목사는 친구와 함께 놀러 가는 여부는 숀이 전날 숙제를 완성했는지에 따라 그날 그날 결정하기로 새로운 약속을 이끌어 내었다. 이렇게 해서 현재의 위기는 넘겼지만 숀의 가족의 근원적인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간은 알고 있었다. 그는 숀이 기독교 심리학자와 만나서 그의 우울증의 정도와 자살가능성을 더 점검해 본 후에 필요하다면 숀의 가족과 계속 상담하기로 약속했다. 목사와 가족상담 1980년대 이래로 미국 복음주의 협회는 계속적으로 가족 특별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하고 각 교단에서 각기 대표를 파송하여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여러명의 가족전문가를 초청하여 이 위원회에서 의논하기로 했는데 나도 가족 상담전문가로 초청을 받아 그 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 위원회는 정기적으로 모여 지교회 상담교역을 통하여 가족을 강화시킬 방안들을 토의한다. 우리는 337명의 목사에게 가족상담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문으로 조사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는 1985년 복음주의 년차 대회에서 미쉬간 주립대학교와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교수인 테드와드(Ted Ward)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 설문들 가운데 하나는 목사들에게 가족교역자원들을 가장 필요로하는 주제를 열거하라는 것이었다. 다음 두가지 주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가정경제문제, 그외에 가족교역자원을 필요로하는 주제들을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부모와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 자녀교육 결혼상담과 결혼전 상담 알콜중독과 약물중독 이상의 6가지는 목사들이 교인가족들을 도우려고 할 때에 가족교역자원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주제들이다. 이 연구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발견을 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여러해동안 목회하는 동안에 기독교가정의 문제들과 비기독교 가정의 문제들이 점점 더 비슷해지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누가 가족문제로 당신에게도움을 요청했는가하는 질문에 대해 목사들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많이 도움을 요청했으며, 남성혼자 보다는 부부가 함께 도움을 요청하는 비율이 높다고 대답했다. 세속상담자들도 비슷한 발견을 했는데, 사회적응문제로 상담요청을 해 오는 경우를 보면 사춘기 여자보다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많으며, 남성들보다도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이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상담전문가들인 심리학자들과 정신과의사들은 미국 문화에서 우선적으로 여성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어떤 일을 문제로 규정하기를 더 좋아하며, 그것을 문제라고 더 쉽게 인정하며 더 많이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가족 상담에서 대체로 여성들이 첫번째 접촉을 시도한다. 목사들은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가족문제들을 순서에 따라 기술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목사들의 관심을 끄는 4가지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커뮤니케이션 문제들 2. 재정문제 3. 정서(감정)문제 4. 자녀들과의 관계빈곤 이러한 문제들은 발생빈도에서 볼 때, 세속 상담자들의 보고와 별 반 다른 것이 없다.다만 목사들은 외도의 문제를 별로 보고하지 않는 반면에, 세속 상담자들은 배우자의 외도문제에 자주 부딛친다고 보고한다. 57%의 조사대상 목사들은 다음의 진술에 동의했다. "가족파탄은 우리교회에서 점차 증가되고 있다" 그러나 조사에 응답한 목사들의 거의 절반정도는 가족상담이나 가족교역기술개발프로그램에 단 한번 밖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목사들의 절반 정도는 그런 일로 다른 목사의 도움요청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시에 목사들의 의견을 쓰라는 난에서 목사들은 교회밖에 있는 상담자들이나 불신상담자들을 불신하도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자기 교회에서 부딛치는 가족문제들을 다루는 기술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20세기의 가족생활변화 최근 수십년동안에 많은 목사들과 다른 그리스도인 상담자들은 가족상담에 자신들의 시간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가족상담을 점점 더 많이 요구하게 만든 오늘의 가족상태는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1984년 6월에 열린 가족복지와 건강에 관한 미국지도자 포럼이 미국에서의 가족생활강화방안들을 탐구할 때에 표면에 떠오른 논점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포럼에서 강연한 주요연사들 가운데 한 분은 아-만드 니콜라이(Armand Nicholi)였다. 니콜라이 박사는 미국 대통령취임축하연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인 워싱턴 D.C.의 쇼레함호텔 대연회장에서 강연했다. 그는 미국인의 가족생활에 대하여 진지한 평가를 제시했다. 어느 국가에서이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대체로 그 사회의 가족들의 상태를 반영합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나라의 어린이들과 사춘기청소년들을 주시다면, 이 나라에서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의 경향성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 가운데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족할만큼 상당한 자살증가를 봅니다.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자행되는 폭력 범죄들 뿐 아니라, 그들에 의하여 자행되는 폭력범죄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또한 정서장애와 우울증과 성적정체성위기(동성관계도 꾸준히 증가되고 있다)의 증가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현상을 봅니다. 그것은 곧 만연되어가고 있는 약물남용입니다. 개인의 정서적 상태를 바꾸기 위해서 심리적 자극성 약물을 들이마시거나 먹거나 주사하는 경향이 곧 그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경향을 어린이에게서도 발견합니다. 이것은 30여년전에 시작된 가족 안에서의 변화에 상응하는 변화입니다. 그 변화는 무엇입니까? 1. 어린이 돌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것. 2. 밖에 나가 일하는 어머니가 증가된 것. 3. 이혼이 점차 증가된 것등입니다. 니콜라이는 부모들이 점차 자기들의 자녀를 돌보는 책임을 아이를 돌보는 자와 탁아소와 유아원에 맡겨 왔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는 텔레비젼이 미국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광범한 영향을 끼쳐 왔으며, 특히 어린이들에게 반가족적인 가치를 전달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혼과 사생아 오늘 서구 사회에서는 수 많은 아이러니가 일어나고 있다. 한 편으로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쌍들이 많아지고, 젊은이들은 나이들까지 결혼을 연기시키고 있다. 비슷하게 1960대 이후에 서구세계의 국가들 가운데서 피임수단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사생아의 출생율은 지난 30여년간 배가되었으며 임신중절의 비율도 급격히 증가되고 있다. 1970년에서 1982년까지 미국에서, 미혼모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이의 수는 50만에서 280만으로 6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재 5명의 어린이중 한 명은 혼외관계에서 태어나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어린이의 수는 1970년에서 1982년까지 230만에서 510만으로 배 이상증가했다. 그 외에 310만의 어린들은 별거중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편부모가족의 증가율은 양부모가족의 증가율보다 20배 가까이나 된다 이혼은 새로운 가난의 사례를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어머니가 가장인 미국 가정의 52% -600만의 어린이들을 포함해서-가 가난하게 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혼율은 1980년대에 조금 떨어지긴 했으나 1890년 이래 수백퍼센트 증가 되었다. 부모와의 소원감 그러나 이혼만이 우리사회에서 부모와의 소원감을 가져오는 요인은 아니다. 어린이를 가진 결혼한 부부의 52%는 부부모두가 직장을 갖고 있으며 너무 직장에 메여 어린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빼앗기고 있다. 그 결과로 소위 "열쇠아이" 즉 양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돌봄을 받지 못하고 하루 중 대부분을 홀로 버려지는 12세 이하의 아이들이 현재 650만에 달하고 있다. 양부모가 모두 직장을 갖는 가족의 꾸준한 증가와 직장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부모들로 인해서, 미국의 아이들은 영국을 제외한 어느 다른 나라들 보다도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다. 니콜라이는 바로 이 한가지 사실에 오늘 미국의 가족들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정서적인 문제를 증가시키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정신적인 정서장애(육체적인 원인에서 오지 않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이 아동기에 부모의 죽음이나 이혼이나 또는 부모가 직장일로 너무 바빠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급진적인 여성운동의 요소들 가운데 이 사회의 수 많은 여성들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급진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집에서 가사일만 담당한다면 남녀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된"삶의 방식에도 불안을 느낀다. 어린 아이들의 어머니도 돈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 때문에 일을 해야겠다는 압력을 받는다. 많은 여성들은 직장에 취직하여 일하면서도 불안을 느낀다. 그들은 자식들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산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죄책감을 갖는다. 그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덜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탁아소에서 월급을 받으며 아이들을 돌보는 여성들은 자기 집에서 자기 자녀를 돌보는 여성들보다 자신들을 더 가치 있다고 느낀다(사실 직업을 갖고 있다는 생각과 봉급 때문에). 여성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여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글쎄요, 많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대학교육을 헛되이 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물질 운명의 가치관이다: 만약 당신이 무엇에든지 돈을 붙여 놓는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의 배운지식과 교육을 가지고 자기 자식을 돌보는데 사용하는 것은 돈과 지위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별로 의미가 없는 것같이 여겨지고 있다. 많은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가 질 높은 시간을 갖는다면 양적인 결핍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하고 가정한다. 베스트 셀러 목록에 들어 있는 책들은 "일분 아빠", "일분 엄마"등을 이야기하며, "질 높은 전화사용"과 같은 구절들을 주장한다. 그러나 당신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우리가 호흡하는 공중의 산소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양질의 공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만약 당신이 앉아 있는 곳의 공기가 과도한 탄산까스나 매연으로 오염되었다면, 당신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기의 질만이 아니다. 공기의 양도 중요하다. 우리는 8시에서 8시 15분까지 양질의 산소를 호흡하고 9시까지 공기를 마실 수 없다면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산소와 같은 것이다. 자녀들은 질 높은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게는 양도 필요하다. 가족문제의 공통근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다른 수많은 문제들은 가족생활의 타락의 결과로 오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아동학대와 유기쎈타는 적어도 130만의 학대와 유기사례들이 미국의 가족들 가운데서 매년 발생한다고 추산한다. 6만 미성년자 매춘이 해마다 미국에서 보고되고 있으며, 이중 80%는 가출자들이다. 매년 180만명의 청소년들이 가출하고 있으며, 집으로 돌아온 자들 가운데 10%는 가출해 있는 동안에 성적으로 학대당했다고 보고한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하여 아버지와 따로 살고 있는 사춘기 소녀들은 10대에 임신하게 되는 확율이 다른 소녀들보다 훨씬 높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서 편부모 슬하에서 살고 있는 소녀들은 양부모 슬하에서 살고 있는 소년들보다 행동장애, 정서장애, 자존감 결여, 사회적 성숙장애, 성적 정체성문제, 약물과 알콜 남용, 청소년 범죄행위, 자살, 학교적응 문제, 학교공부장애들에 빠지는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최근 수십년간의 가족생활 불안정으로 기독교 가족상담에 대한 욕구가 점차 증가되고 있다. 가족상담을 요청하게 만드는 문제의 종류들은 다양하다: 아동행동장애, 가족식구에 의한 알콜이나 약물남용, 재혼후의 부모-자녀 부적응, 미혼십대의 임신,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실직에 대한 대책문제, 아동양육권분쟁, 가족 식구중 심각한 정서장애, 범죄문제, 숙제하기 거절, 십대반항, 아동징계문제, 또래 압력등등. 최근에 나는 워싱턴 D.C.에 소재한 죠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거행된 가족 연구위원회의 년차회의에 참석했다. 거기에서 채플힐에 소재한 노드케롤라이나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인 피터 얼렌버그(Peter Ulhlengerg)박사는 미국 사회의 사춘기 청소년들의 복지에 일어난 최근의 변화에 대한 강연을 했다. 얼렌버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켰다. 사회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어린이 복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지표의 대부분은 청소년 복지의 증진을 가져올 수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연구 조사에 따르면 같은 기간 동안에 청소년 복지는 실제로 하락했다. 가난과 대가족구성과 낮은 부모의 교육수준등은 아동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널리 인정되어 왔었다. 지난 25년간 위의 세가지 요인(가난, 대가족구성, 부모의 낮은 교육수준)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십대의 비율이 ⅓에서 ⅔로 거의 배가 되었다. 동시에 학교제도에서 학생당 경비가 상승되었고, 교사들도 질적으로 향상되었으며, 학급당 학생수는 감소되었다. 연방정부가 지출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사회복지 예산은 크게 증가되었으며, 여러 연방기관들은 수백가지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주관하였다. 그러나 청소년 복지의 지수는 이 기간동안에 실제로 하락하였다. ·학교의 학력과 지성적 성취는 하락하였다.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미국 국민의 사망율은 23%나 감소했다. 그런데 다른 나이 집단에서는 모두 사망율이 감소한 반면 15세에서 25세까지의 사망율은 증가되었다. 이 집단에서 오토바이, 차량등의 사고로 인한 죽음, 자살, 그리고 살인등에 의한 죽음의 비율은 급격히 증가했다. · 청소년 범죄율이 1960년에서 1980년 사이에 증가했다. · 약물과 알콜 남용이 현저하게 증가되었다. · 성관계를 가졌다고 보고하는 십대의 비율이 1971년에서 1979년 사이에 배가 되었으며, 그 결과 ⑴ 미혼 10대 어머니가 낳은 자녀들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⑵ 성관계로 전염되는 병에 걸린 10대가 증가 되었고, ⑶ 10대 임신중절이 현저하게 증가되었다. 우리 나라의 어린이들이 점점 더 많이 물질적 풍요속에서, 소가족안에서 그리고 높은 교육을 받은 부모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어째서 10대의 복지는 현저하게 하락되었을까? 얼렌버그는 어린이와 청소년 복지의 결정적인 요소는 자녀와 부모간의 결속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1960이래 계속 되어온 부모-자녀 관계의 양과 질의 저하는 다음의 두가지 경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⑴ 여성들의 노동력 참여의 증가, ⑵ 이혼율의 증가. 이 두가지 요소들은 모두 부모와 자녀들간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얼런버그는 자기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어머니들의 "시간의 질"이 어머니들의 직장에서 일하므로 해서 매우 제한되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부모들이 이혼한 어린이들은 심각한 정서적 격변을 경험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또다른 요인은 성인들이 자기 자신의 성취에 더 많이 헌신하기 때문이다. "자기-성취, 또는 자기-완성, 또는 자기-실현은 필수적으로 자기-희생적인 행위의 감소를 가져온다. 그러한 환경에서 어린이들은 나쁘게 대우 받는다. 미숙하고 의존적인 자녀들의 욕구는 자기 자녀의 복지를 위해서 자기의 개인적인 목표들을 희생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회에서 만족스럽게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1970년대에 일어난 사고방식의 변화의 연구에서 다니엘 양켈로비치(Daniel Yankelovich)는 오늘의 부모들은 과거의 부모들보다 자기들의 자녀들을 위하여 더 작은 희생만을 한다는 말로 자기의 연구를 요약한다. 얼렌버그의 미국 문화비평은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대-기독교적인 가치관에서 더 자기 중심적인 개인주의 가차관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기 중심적인 개인주의는 강한 가족개념과 강한 공동체 개념과 상반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의 문화위에 미치는 대중매체의 영향은 반복적으로 다음의 사실들을 제안하여 우리에게 프로그램시키고 광고하고 있다. 즉 물질주의는 개인적인 행복에 이르는 합당한 수단이요, 개인적인 행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라는 것이다. 가족상담자들이 직면하게 될 문제들 가운데 많은 것들은 더 이상 남편-아내 관계와 부모-자녀관계를 영구적인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개인들의 숫자가 증가되는데 따른 부산물들이다. 인생행로중에 초기단계에서 문제들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증가되고 있다. 그 이유는 점점 더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돌보는 책임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문화가 하나님이 세운 가족생활에 대한 법칙들을 던져 버리는 일을 가속화시키는 만큼 우리는 가족을 함께 결속 시켜오던 연속성과 헌신을 포기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약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족 식구들-아이들과 노인들 모두-은 돌보지 않고 버려졌기 때문에만 크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날 수십년전만해도 생각할 수 없었던 임신중절, 유아살해, 그리고 안락사등의 옹호로 말미암아 크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상담의 초점 우리는 가족상담의 필요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이것은 서구 사회에서 수많은 가족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통계자료뿐 아니라 복음주의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을 연구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명백하다. 이러한 경향성을 내다보면서, 기독교가족상담자는 가족들의 합당한 기능수행에 관해서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기독교 상담자는 누구나 가족에 대한 수 많은 긍정적인 성경의 가르침을 마음에 갖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가족 상담은 분명한 가치관에 근거해서 상담해야 한다. 예를 들면, 가족상담자는 커뮤니케이션 빈곤에 반대하여 훌륭하고, 분명하고, 열려진 커뮤니케이션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족식구들간의 화해와 갈등의 해소를 미해결의 갈등이 영구화되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으로 여긴다. 적극적으로 부모가 자녀양육과 자녀돌봄에 참여하는 것을 자녀의 필요를 거절하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판단한다. 목사에게나 기독교 상담자에게 찾아오는 가족은 세속적인 상담자들이 택하고 있는 가치 보다는 가족에 관한 기독교적 가치에 따라서 상담해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가끔 가족 상담자들은 이러한 가치를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든지 기독교 상담자들은 기독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가족들을 상담해야 할 것이다.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사람들이 가족에 대해서 가지는 기대는 가족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적인 구조로 인식하느냐 또는 편리에 의해서 인간이 만든 인간의 창조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세속 상담자들은 가족이 단순한 인간들의 계약이거나 사회적인 인습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우에 가족식구들이 창조주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개념은 없다. 자녀를 가질 것이냐 또는 계획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을 것이냐 하는 결정은 자기 자신이 선택해야 할 개인의 권리로만 인식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부부간의 갈등이 상승하거나 계속되는 경우에, 부부관계 포기는 중요한 하나의 선택으로 고려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히브리서 13:4, 고린도전서 6:14, 에베소서 5:21-33, 시편 127:1, 잠언 18:22). 이에 반해서 기독교 가족상담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가족구조를 창조하셨다고 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 하와를 창조하시고 평생동안의 결혼언약으로 그들을 하나가 되게 만드셨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남자와 여자의 3자간의 언약이 포함된다(창2:22-24, 사49:15). 하나님께서 가족단위를 지으셨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 땅에 자기의 형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하셨다(엡5:22,23, 창1:27,28). 가족관계들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세속적인 가족 상담자들중에는 비논리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가족관계를 정의하는데에 고도로 탄력성을 갖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같은 집에 살면서 경제적인 자원들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모두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서로간에 혈연관계가 없거나 동성연애 파트너까지도 가족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상담자들이 인정하는 성경적 가족의 정의는 결혼한 양성부부와 그들의 자녀들 또는 입양한 자녀들로 구성된 핵 가족에 기초하고 있다. 성경적인 의미의 가족은 또한 공동조상에 뿌리를 둔 모든 핵가족들을 포함한 대가족을 말하기도 한다. 성경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람들간에 가족관계가 있다고 할 때에, 그것은 남성과 여성간에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 혈연관계, 부모가 낳은 자녀, 공식적으로 입양한 자녀등을 의미한다. 한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혼란에 빠진 오늘의 사회에서, 가족상담자가 진정한 가족관계의 기초인 헌신이 무엇임을 분명히 밝혀주고, 헌신적인 가족관계와 다른 인간관계를 분명하게 구별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예를 들면, 입양한 자녀는 낳은 자녀와 똑같이 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위탁자녀는 다른 수준의 헌신을 가지고 양육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기관이 위탁자녀를 다른 가정에 맡기게 되면 관계가 끝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위탁자녀에게 행사하는 부모의 책임과 권위도 자기가 낳은 자녀나 입양한 자녀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다. 가끔 기독교 상담자는 성경적인 관점이 어떻게 세속사회의 관점과 다른가를 강조해야만 한다. 성경은 동성연애에 관해서, 그들의 관계가 아무리 특별하다고 할찌라도 그것을 결혼이나 가족이라고 취급하지 않는다. 가족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세속가족상담자는 단위가족식구의 필요와 욕구라는 관점에서만 가족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들은 가족식구들의 개인적인 필요와 욕구들이 합당한 수준으로(물론 타협과 절충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충족되는 상태를 최선의 가족기능으로 보고 있다. 가족은 자기의 가정을 단순히 "충전소"로 보고 여러가족 식구들이 필요할 때에 들려서 "봉사받는 장소로"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나의 욕구가 가족 밖에서 더 잘 충족이 된다면, 내가 나가서 다른 관계를 추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어린이들의 욕구들은 부모의 보호에서 보다 탁아소 시설에서 더 훌륭하게 봉사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기능의 대부분은 가족 밖에 있는 사회기관으로 이전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서는 심지어 성적인 욕구까지 부부간에 동의만 된다면 다른 데서 충족시킬 수도 있다.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것들을 오늘의 부부와 가족관계의 새로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와 반대로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특별한 명령을 주셨으며 가족안에서 식구들 각자의 역할 위임을 주셨다고 믿는다. 가족의 중심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대로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게 훈련시킴으로 이 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환대, 긍휼, 그리고 전도의 교역은 기독교 가족생활의 필수적인 부분들이다. 성경은 자녀들을 주님이 주신 기업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상급이요, 하나님께서 친히 부모의 손위에 주신 것이라고 가르친다(시편 127편, 128편). 그러므로 부모들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받은 자녀들을 돌보는 책임을 수행하여야 한다.이것은 부모들이 이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 맡기거나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가족은 자기들의 책임을 완성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다른 자원들을 사용할 수 있으나 부모들에게는 자기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교훈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엡6:4) 그러므로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부모와 자녀들간의 소원한 관계를 어쩔 수 없는 사회현실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즉 부모는 자식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이와는 반대로 가족생활을 다스리시며 가족관계 모델을 정하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규범적인 지침들과 명령들을 받았다고 믿는다(창33:5, 시78:1-8, 신4:9, 6:1-9, 딤전 2:15, 잠17:6, 엡6;1-4). 가족은 하나님이 주신 기능과 목적들을 가졌기 때문에, 기독교 가족상담자들은 상담의 목표를 설정할 때 이것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상담하는 동안에 자주 이러한 목표들을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상담자는 이 과정에서 성령께서 모든 진리 가운데로 그 가족을 인도하시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기독교 가족상담자는 가족식구들이 가족의 필요들을 희생시키고 자기 개인의 독립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지원해 주어서는 안된다. 가족상담자는 성경을 열고, 하나님의 기본적인 계획을 가족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은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생산적으로 봉사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땅위에서 실현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러한 독특한 목적을 확인하고 실천하기를 원하신다(창1:27,28, 마28:18-20, 신6:7, 11, 19, 딤전 2:15-3:13, 고전 7:2-16). 상담시간에 목표를 정하면서 가족상담자는 가족들을 격려하여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순종하도록 도와야 한다. 상담자는 가족들에게 분명한 성경의 명령들을 지적해 주어야 한다. 자녀를 부양하고, 어린이들과 나이가 많아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족식구들의 육체적인 필요들을 채우고, 장애가족식구들을 돌보며, 가족환대와 긍휼의 실천을 통하여 자기의 지역사회의 필요까지 채우는 것등은 가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다. 결론적으로, 이혼률의 증가, 무혼부모의 증가, 심각한 성적 방종, 그리고 부모의 자녀양육 책임포기등으로 인해서 가족상담의 필요성은 높아만 가고 있다. 오늘날 자식이 부모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점차 감소되어가고 있고, 부모-자녀 결속은 약화되고있다. 그러므로 목사와 다른 기독교 상담자들은 가족상담방안에 특별한 기술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모든 가족 상담이 기초해야 할 틀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 2장 근원적인 문제탐구 어느날 오후 나는 10대소녀 말린다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결혼도 하지 않는 자기 딸 말린다가 임신했기 때문에 상담 받기를 원했다. 어머니는 자기 딸이 임신중절을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임신중절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로 이것이 당면한 그녀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의 근원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겉으로 나타난 문제밑에 숨겨져 있는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근원적인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와 딸 사이에 감정적인 거리감이 있을 것이다. 연구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와의 관계에 거리감이 있는 미혼십대소녀들이 임신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다. 또는 말린다와 그녀의 어머니사이에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연구조사는 자기 어머니와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갖고 있는 10대 소녀들의 임신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어쩌면 그 임신이 근친상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아버지나 오빠와의 관계에서 임신할 수도 있다. 근친상간관계는 친아버지와 살고 있는 가족에서보다 계부와 살고 있는 가족에서 4배내지 5배가 높다. 우리는 이혼과 재혼의 증가로 계부와 살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므로 이점이 근원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는 그 10대 소녀는 독립을 위해 자기 부모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딸이 보통 누구나 갖고 있는 건전한 독립을 허락해 주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해방시키고, 어린애를 가짐으로 성인이 되려고 반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가능성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족상담자에게 이야기하는 표면의 문제가 여러가지 근원적인 문제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기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하나의 문제는 죄의 문제이다. 말리나는 결혼전에 성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일 수도 있고(자기의 죄), 강제로 당한 것(강간자의 죄)일 수도 있다. 어떤 가족들은 자기들의 딸에게 성문제에 관하여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전혀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도덕적 가르침의 결여가 또 하나의 근원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제1차 가족상담면접 일반적으로 말린다의 어머니와 같이 가족식구들 중 한 사람이 상담자에게 전화하여 자기 개인의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며 면담을 약속하든지 또는 여기의 사례와 같이 다른 가족 식구들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가끔 가족 식구들 중 어느 한 식구를 불평하며 전화할 수도 있다("말리다가 임신을 했는데 임신중절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라든지 또는 "나의 10대 아들이 귀가시간에 집에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있어요"라는 불평을 한다). 많은 가족상담자들은 그러한 불평을 단순히 "우! 내 가족이 상처입고 있어요"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결국 그들은 그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모든 가족 식구들이 첫번째 가족상담 면접시에 함께 오겠다고 요구했다. 이것은 그 가족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하여 가족식구들이 어떠한 전략들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얻는 기회가 되었다(이 경우의 스트레스는 첫번째 상담면접으로 말미암아 받는 스트레스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 유명한 가족 치료사인 버지니아 새터(Virginia Satir)는 가족상담을 할 때에 처음 두번의 면접상담은 자녀없이 아내와 남편만 함께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부모로서 그들 부부가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과 함께 그들 부부의 관계를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터의 주장에 따르면, 4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있을 때에는 처음 면접상담때 그들도 부부와 함께 데려오고, 그 다음에 부부간의 문제를 상담할 것이요, 그리고 나서 4세 이상의 아이들도 포함하여 상담하는 것이 좋다. 4세 이상의 어린이들은 그 이후 가족상담이 끝날 때까지 부모와 함께 상담에 참여하여, 현재 당면한 어린이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일어나는 자녀들의 모든 삶을 상담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다른 가족상담자들도 부모들만 먼저 만나 가족상담의 접근방향을 알게 하고 그후에 모든 자녀들을 상담에 포함시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가족치료사인 죤E.벨(John E. Bell)은 9세미만의 어린이들을 제외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9세 미만의 아이들은 아직도 자기 중심적인 감정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가족의 문제를 심사숙고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향력이 있는 가족상담의 저술가인 제이 할리(Jay Haley)는 첫번째 가족 면접시간은 어떤 문제 또는 문제들에 관심을 집중할 것인지를 합의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리는 미리 계획된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다음과 같은 것들을 얻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⑴ 모든 가족 식구들을 가족 상담에 참여하게 한다. ⑵ 가족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변화들을 확인하게 한다, ⑶ 해결방안을 세우기 전에 가능한한 완벽하게 가족 문제를 정의한다. "경험이 풍부한" 가족 상담자는 첫번째 가족면접 때에 가족식구들 각자가 자기 노출을 통해서 자기들의 취약성을 드러나게 한다. 가족식구들이 상담자에게 서로에 대하여 불평할 때에, 상담자는 직접적으로 가족식구들을 향하여 자기 감정을 이야기하라고 해야 한다. 가족 식구들이 서로에게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하게 하고 자신들의 내면을 노출시키도록 하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가족문제를 풀어나갈 해법을 발견할 희망이시작되기 때문이다. 가족상담자 월터 켐플러는 가족상담을 하면서 대결적인 방법으로 가족상호간의 대화를 촉진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서로 다른 가족 상담자들은 첫번째 가족면접에서 서로 다른 접근들을 사용한다. 그들의 접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방향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또한 도움을 요청하는 가족들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서 달라진다. 새터와 같은 몇몇 상담자들은 과거의 가족 이벤트들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통해서 가족식구 각자의 관점들을 비교하면서, 첫번째 면접시간에 가족생활의 역사를 수집한다. 제랄드 쥬크(Gerald H. Zuk)와 같은 다른 상담자들은 현재의 가족기능상태와 활동들을 우선적으로 점검하면서 가족사에 대한 정보를수집하려고 한다. 또 다른 상담자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현장상황을 중시하고 공식적인 가족 역사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가족도표 또는 족보 가족의 역사를 얻으려고 작정한 가족상담자들은 가족도표위에 그 가족의 3대나 그 이상의 가계를 지도로 그리는 테크닉을 사용한다. 그들은 이 도표를 종이 위에나 또는 칠판에 그린다. 이 도표는 그 가족의 전체적인 구조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가족식구들과 가족경계선을 정의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도표는 가족 식구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간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하여 표준화된 상징들을 사용한다. 속이 빈 원은 여성을 의미하고, 네모는 남성을 묘사한다. 결혼은 여성을 의미하는 원과 남성을 의미하는 네모를 연결하는 가로선으로 표시한다. 그 가족의 자녀들은 가로선(결혼을 의미하는)중간에서 밑으로 세로선을 그어 표시한다. 가로선을 가로 질러서 가로선을 찌르는 두개의 사선은 이혼을 의미하고, 재혼은 새로운 배운자의 상징을 그리고 또다른 가로선을 그려서 표시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족보를 만드는 것은 가족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데에 위협을 줄이기 위한 한가지 방법이다. 상담자는 이름들, 나이들, 그리고 경력들과 같은 이미 확인된 정보를 질문하면서 족보그리기 작업을 시작한다. 결혼, 이혼, 죽음, 이사, 그리고 재혼과 같은 중요한 삶의 변화를 이 과정에서 얻게 되며, 가족도표를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가족식구들의 분쟁이 노출되기도 하고, 가족의 위기들과 가족의 비밀들이 드러나기도 하는등 상담에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이 발견된다. 상담자가 가족도표의 방법을 사용하든지 아니하든지간에 가족문제들을 점검하는 것은 가족 상담의 첫번째 단계가 되어야 한다. 가족 상담자는 가족문제가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하며, 가족생활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파악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가족 도표를 그린 후에 가족상담자는 가족역사를 더 완전히 파악하기 위하여 좀 더 구체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다. 이것은 부부가 원하는대로 부부와 함께 면담하면서 할 수도 있고 부부각기 따로 따로 면접하면서 할 수 도 있다.
가지치기를 잘하자 2004-02-06 13:29:52 read : 4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표영학 목사(백영고등학교 교목) 모든 일에는 그것을 해야 할 시기가 있다. 그러나 급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하다 보면 해야 할 것들을 등한시할 경우가 있다. 특별히 상담자라고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상담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돕고 싶은 것도 포기해야 하는 때가 있다. 의욕이 넘쳐서 그냥 마구잡이로 벌려만
가지치기를 잘하자 2004-02-06 13:29:52 read : 4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표영학 목사(백영고등학교 교목) 모든 일에는 그것을 해야 할 시기가 있다. 그러나 급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하다 보면 해야 할 것들을 등한시할 경우가 있다. 특별히 상담자라고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상담은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돕고 싶은 것도 포기해야 하는 때가 있다. 의욕이 넘쳐서 그냥 마구잡이로 벌려만 놓으면 아무것도 수습할 수 없고 본인이 능력이 되어 슈퍼맨처럼 움직인다 해도 자신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시기에 후임자를 찾을 수 없어 열정을 드렸던 것들이 삭으러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일은 자신이 맡을 수 있는 부분과 남이 맡을 수 있는 부분을 분명히 하여 동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면 위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주실 뿐 아니라 일 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고 말씀하셨기에 분명히 나에게 맞는 일이라면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으며,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재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떠한 일을 했는가로 평가하시지 않는다. 너의 마음이 나(하나님)에게 있느냐로 판단하시고 인정하십니다. 그런데 세상의 풍조가 우리의 삶으로 들어와 업적 주의와 자신의 명예를 중요시 생각하고, 물량 주의가 팽배해져 나의 시대에 내가 일 할 때에 좋았다는 말을 해 주기를 바래서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의 휴식 원리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정을 뒤로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아닌지 모르겠다. 대개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남을 돕는 일에 은사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까지도 규모 있게 행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무를 재목으로 크게 키우려면 매년 가지치기를 잘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일의 과중한 분량 때문에 인상을 쓰고, 힘들어 보이며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서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 가정의 가장은 큰 방향을 정하면 된다. 본인의 마음에 좀 안 맞는다 고하여 집안 일부터 아이들 공부까지 다 해줄 수 없는 일이다. 지도자가 못하나 박는 일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어떻게 쥐고 얼마의 힘으로 해라"라고 간섭하면 그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라 노동자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진실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특히 기독교상담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고유한 부분에서 특별한 위치를 지킬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하는 바 먼저 자신의 가지치기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보여진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고유한 부분을 목회자의 심정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 이제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때 우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우선 쉬느것과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먼저 깨우쳐야 할 것이다. 군에서 사단장이 싸움의 선두에 서지 않느다고 아무도 욕하지 않는다. 또 아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싸움은 소대장이 진두 지휘 하는 것이다. 분대장이 앞서는 것이다. 사단장은 모든 상황을 보고 받고 모든 정황을 미루어 보아 방향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일일이 누가 어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 몰라도 된다. 그리고 소대도 마찬가지이다. 미리 작전계획을 모두 알 필요가 없다.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생각하며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단지 주어진 임무에 충실함만이 최선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사단장이 소대장의 일을 하려는 것도 곁가지요, 소대장이 사단장의 일을 하려는 것도 곁가지이다. 이것에 매여 있으면 효과적으로 일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큰 혼란에 빠지고 힘을 낭비할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걱정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단지 나의 고유한 분야에 그분이 주시는 기쁨과 그분이 허락하시는 범위를 분명히 인식하고 청지기적인 자세로 우리의 삶을 누리길 원하신다. 우리의 우선 순위를 바로 하고 가지치기를 잘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삶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저희들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바란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8)
같은 누룩이 어디에서는 복음으로 어디에서는 죄로 상징되는 이유는?/ 2015-07-13
같은 누룩이 어디에서는 복음으로 어디에서는 죄로 상징되는 이유는? Q. 마 13;33에서의 누룩은 누룩의 확산력을 긍정적인 면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마16;6-12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한 말씀에서 누룩의 부정적인 면을 나타낸 것 같습니다. 막 8;15, 출 12;15, 레 2;11 에서도 누룩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고, 마13;33에서만 긍정적으로 사용되어 진 것 같아요. 왜 그런지 알려주세요. A. 1. 주님은 말씀을 하실 때에 여러가지 이미지(상징)들을 사용해서 보다 쉽게 진리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이미지 중에 한 가지는 "누룩"입니다. 누룩은 해로운 박테리아의 배양에 의해 감염된 것입니다. "누룩"은 밀가루 에 들어가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적은 양으로도 많은 반죽을 발효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전하실 때에 이러한 누룩의 특성을 두 가지 의미에서 언급하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은 누룩의 의미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은 누룩의 발효 능력을 "복음의 침투력과 영향력"의 상징으로 비유하셨습니다(예-"천국은 가루 서 말에 넣은 누룩과 같으니..."). 주님은 복음이 마치 누룩처럼 밀가루를 신속하게 발효시키는 것처럼 온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주님은 누룩의 의미를 부정적인 의미에서도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은 밀가루를 변하게 만드는 누룩의 특성을 사회를 오염시키는 "죄와 부패"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종종 누룩을 사람과 사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악한 영향력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헤롯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누룩은 헤롯과 바리새인들의 정직하지 못한 기만적인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2. 이와 같이 주님은 한 가지 이미지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 한 가지 이미지가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서 "불"이란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성령"의 상징으로도 사용되고(사도행전), 또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혀"(야고보서)의 상징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서를 보면 "여인"이란 이미지도 긍정적으로는 사람을 진리로 인도하는 "지혜 부인"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고, 부정적으로는 사람을 죄로 이끄는 "음녀"의 싱장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경우/ 2015-07-13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응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경우 Question 안녕하십니까, 수고가 많습니다. 본인은 이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으로...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일어난 사소한 일(?)로 몇가지 의문점이 들어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제가 다니는 곳은 미국 엘에이의 개척교회로써 신도가 몇되지 않습니다. 가족으로 해서 약 10가족 정도였는데, 이상한 일로 교회가 분열되어 가고 있어 과연 어떻게 이 사태를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교회 초창기 신도였던 제임스 가족과 조셉가족은 이 교회 이전부터 서로 가깝게 교류하는 사이였으며, 조셉가족과의 친분으로 저희 가족과 테리가족, 그리고 크리스가족등이 합류햐여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전부터 제임스 가족은 개척교회에서의 신앙생활에 회의를 조금씩 가져오던중 (그들의 말에 의하면), 몇가지 목사님과의 마찰에서 목사님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되고 결국 교회를 떠나겠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 조셉가족과 테리가족및 크리스가족 그리고 저희가족은 제임스가족과의 대화를 해보았으나, 그들은 확고한 결단을 내린 듯 합니다. 특히 제임스 부부는 두분 모두 여러가지 방향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셨다고 하며 (교회를 떠나라는...) 강건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날 조셉가족 부인되시는 분이 하시는 말씀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데, 제임스가족은 교회를 떠나지 않아야 된다는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두가지 상반된 말씀을 내리실 수가 있을까요? 두 사람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둘 중 한사람은 자신의 뜻을 여러가지 상황에 비추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제임스가족이 내세우는 목사님과 교회에 대한 흠(?)중 한 가지가, 지금 현재의 교회로 이사오기 이전에 있었던 장소가 그때 당시 계약 만료가 되지 않았는데도 계약을 깨고 나온 것이 나쁘다고 합니다. 물론 잘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그 때 당시 교회의 재정적 상태가 2개월 이상 임대료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결국 강제축출 당하기 직전에 계약파기하고 나온 것인데, 제임스가족이 말하는 바대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교회/목사\'라고 비난되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참, 제임스가족에게 어떤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느냐, 목소리로 들었느냐, 눈앞에 나타나셨느냐 하고 물었더니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글을 읽어도, 성경책으로 펴도 그런 식의 말씀만 나오고, 한동안 왕래 없던 집사님/목사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시는 말씀중에도 그런 말이 있으며, 여타 등등 주변 여러가지 상황이 자신들이 교회를 떠나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이런 식으로 나타납니까? 자신들이 믿고 싶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자신들의 의가 아닌지 싶습니다만.. 우문이었을지 모르나 신앙의 초보자로써 심각한 의문사항이 아닐수 없습니다. 명쾌한 답변을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Answer. 1. 우리는 개척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도 있고, 또 좀 더 큰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를 선택해서 봉사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자가 자신이 받은 은사와 부르심을 따라서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어느 교회를 섬기든지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봉사를 해야 그것이 자신에게도 유익할 수 있고, 또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나 목사님에 대해서 불평을 하거나 원망을 하면서 억지로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의 봉사는 하나님께 열납되기도 힘들고, 또 본인에게나 다른 성도들에게도 별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2. 개척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숙한 인격이 필요합니다. 개척 교회에서의 봉사는 환경이나 재정적으로 여러 가지 많은 짐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조그만 일을 해도 당장에 각 가정에 부담이 돌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섬기는 은사를 주신 분들은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함과 기쁨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개척 교회에서의 봉사가 교회와 본인에게 모두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개척 교회를 다니다가 중간에 개척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목사님과의 관계에 깊은 갈등이 생길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로 인해서 그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이 부담스럽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일단 마음을 낮추어 겸손한 자세를 갖고, 그 교회에서 봉사할 힘을 회복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에서 봉사하는 일을 고려해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4. 하나님은 교회에서 성도들이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하는 봉사는 하나님께 드려질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오히려 교회에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충분히 기도하고 나서, 자신이 정말로 존경할 수 있는 목사님이 계신 교회로 옮기는 것도 가능합니다. 만일 교회를 옮겨서 감사함으로 교회를 섬길 수 있다면 원망하면서 교회에 남아 있는 것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억지 봉사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와 기쁨속에서 행복하게 신앙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자유와 기쁨과 평화의 나라이지, 강요나 억지와 싸움하는 독재국가가 아닙니다. 5. 그러므로 본인이 교회에서 목사님과 갈등을 일으키고, 기도하는 중에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축복하는 마음으로 보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한 성도님이 그가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지시를 들었다고 하면, 한 번 더 정말로 교회를 떠나야 하는지 깊이 기도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보아도 교회를 떠나야 감사함으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그 교회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6. 이때에 중요한 것은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그 사람을 찾아와서 \"너 그때에 왜 그 교회를 떠났느냐?\"고 물으실 때에 \"나는 이러이러해서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라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의 신앙 양심에 비추어서 주님 앞에서 결정한 일은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각 사람들은 개척교회에 남아 있어도 주님을 섬길 수 있고, 그 교회를 떠나도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고, 또 주님을 위해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죽으나 사나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떠날 때에도 주님을 위해 떠나야 하고, 교회에 남아 있어도 주님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합니다. 7. 어떤 문제를 놓고 서로의 견해가 다를 때에는, 각자가 다른 사람이 주님 앞에서 스스로 결정한 일에 대해서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주님 앞에서 진실되게 결정한 일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연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이해해줄 수 없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에게 맞추어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숙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의 짐을 담당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의 견해가 맞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짐을 져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진지하게 기도해보고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하는 사람이 잇으면, 축복하는 마음으로 보내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남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더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것이 옳습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교회를 떠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고, 교회에 남아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결론>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경우 해결법\" 1. 각 사람이 자기 신앙 양심에 비추어 주님 앞에서 내린 결정을 존중해 줄 것 2. 각 사람은 자기가 내린 결정에 대해 주님 앞에서 심판받을 것을 기억할 것 3. 각 사람은 어떤 다른 결정을 내리더라도 주님을 위해 결정해야 함. 4. 보다 강한 사람이 연약한 사람을 위해 자기 주장을 포기하고, 연약한 사람의 입장에 맞추어 줄 것 답변 감사합니다. 구절구절 옳으신 말씀이구요, 저도 개인적으로 (신앙적으론 아직 깊이가 엷으므로) 말씀 하나하나 수긍이가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중입니다. 하지만 제 질문의 핵심을 짚어서 답변을 해주시진 않은 듯 하군요. 모범정답성 말씀만 있는 듯 하고, 가려운 제 부분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제 질문은, (1) 하나님의 말씀을 신도 개개인이 받을 수 있는가? (2)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받는가? (앞에서 열거한 두 가족은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얘기를 자주 함) (3) 같은 사항에 대하여 전여 반대되는 메세지가 각 이해 상충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될 수 있는가? (4) 혹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하고자 하는 행위를 강조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5) 교회/목사가 인간적인 (그러나 법적 구속력있는) 약정을 피치못할/불가피한 상황에 의하여 파기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인가? 첫번 글에서 저희 교회의 상황을 말씀 드린 것은 위의 질문만 드렸을 때 잘 이해가 가지 않으시리라 싶어서 입니다. 위의 질문은 앞으로 제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궁금하고 꼬 잣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이지 싶어서 이렇게 다시한번 글을 올립니다. 명쾌한 해답을 기대하면서 이만 접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운영자님과 이 사이트에 있기를 기원하면서.. Answer. 1. 하나님의 말씀을 신도 개개인이 받을 수 있으며,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받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일은 \"예언의 은사\"에 속합니다. 때로는 \"방언\"과 \"방언의 통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신약 성경 중에서 고린도전서(12-14장)에 집중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초대 교회 당시에는 성도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교회에 전달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에는 이러한 초자역적인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여 불신자들을 믿게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일부 신학자들은 신약 성경이 기록된 후에는 예언의 은사가 중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선교지나 최선선에서 복음을 전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간증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개척 교회의 경우에 교회를 세우고, 불신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때로 이러한 은사가 주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성령께서 임의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은사를 받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아래 주소를 클릭해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http://biblenara.org/q&a/Q392.htm). 2. 같은 일에 대해 반대되는 메세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될 수 있는가? 혹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하고자 하는 행위를 강조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신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은사를 주실 경우에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게 하십니다. 방언의 은사를 주실 경우에는 그것을 통역하는 은사를 함께 주시고, 예언의 은사를 주실 경우에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지 분별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진 은사를 주십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방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로 인해 큰 혼란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통역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에만 공적 예배에서 방언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것도 2-3인 이상이 함께 통역을 해서 그 통역이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할 수 있을 경우에만 허락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초자연적인 일들이 있는 경우에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어서 그 말이 성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악령으로부터 온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같은 일을 놓고 다른 해석이 주어지는 경우에는 어느 것이 진실 인지 분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클릭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영 분별의 은사에 대해서 (http://biblenara.org/q&a/Q149.htm) * 성령/악령의 음성 구별하기 (http://biblenara.org/q&a/Q29.htm) 3. 같은 일을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여 선지자 한 사람이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큰 박해를 받게 된다고 예언을 하고, 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고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여선지자의 예언대로 그 곳에서 유대인들로 인해 체포되어, 감옥에서 오랫 동안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과연 여선지자가 한 말이 맞을까요? 아니면 사도 바울의 행동이 맞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두 사람이 모두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선지자가 바울의 고난에 대한 계시를 받은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후에 그 모든 예언이 사실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고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라기보다는 지도자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충정이었을 것입니다. 성도로서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가 큰 위험에 처할 것을 알면서, 그 곳으로 가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 선지자의 권고는 바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사랑의 권고였습니다. 바울 역시 선지자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환난을 겪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는 결국 감옥에 갇혔다가 죄인의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고난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도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같은 일을 놓고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어느 한 사람이 맞고 다른 한 사람이 틀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라면 두 사람이 모두 다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라면 성령께서 각 사람을 이끄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세월이 지나면 결국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3. 교회(목사)가 인간적인 (그러나 법적 구속력 있는) 약정을 피치 못할(불가피한) 상황에 의해서 파기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인가? 가능하면 성직자로서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목회자들이 무리하게 건물을 빌려서 교회를 세웠다가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해서 부득이하게 나가야 되는 경우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목회자는 신뢰도에 있어서 타격을 입고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피치 못할 일로 인해 계약을 파기하게 되는 일이 생긴 경우에 너무 그 일에 매달려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일이 생기면 성도들은 비난이나 원망하는 일에 에너지를 사용하기 보다는, 더욱 더 하나가 되어서 더 많이 기도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때에는 교회를 떠나려는 분의 경우 계약을 파기한 일보다는, 목회자에 대한 신롸와 사랑이 식어진 점이 더 큰 문제로 보여집니다. 목회자와 성도 간에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사라지면, 교회를 떠나야 할 이유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신뢰 관계가 사라지면 모든 일들이 은헤가 되지 않고, 또 떠나야 할 일들만 보이기 마련입니다. 제가 앞의 글에서 사랑에 대해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개척 교회 멤버들이 교회가 성장하면서 목회자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떠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 경우에 실제로 그 사람이 그 교회를 떠나는 것이 교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척에 은사가 있어서 개척 당시에는 그의 역할이 크지만, 어느 정도 교회가 안정이 되면, 또 다른 개척지로 옮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적당한 때가 되어 교회를 떠나는 일은 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욕심으로 교회를 떠나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겸손함과 인내로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교회를 떠나는 경우에 는 그가 교회를 떠난 후에 많은 고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첫 번째 교회에서 받을 연단을 옮긴 교회에서도 다시 한번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연단을 통과하면 또 다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한 번 실수한 경우에, 그들을 아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해주시고 다시 불러서 귀한 그릇으로 사용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굳이 교회를 떠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분을 축복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에 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국 남게 될 것이고,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용납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두고 그 분에게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개신교 안에 있는 여러 종파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주세요!/ 2015-07-13
개신교 안에 있는 여러 종파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주세요! Question 장로교.감리교.성결교,침례교.하나님의 성회 등과 같은 개신교 종파들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를 가슴에 두고 진리를 찾으니 기쁨이 넘칩니다.^^ 수고 하시고 답변 기다립니다. Answer 1. 개신교의 각 교파는 기독교 역사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약점들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장로교는 카톨릭의 부패와 비성경적인 제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어난 종교개혁자들과 깊은 관계 속에서 생겨났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카톨릭이 성경에 없는 제도를 만들어 내게 되자 오직 성경만을 좆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카톨릭이 지나치게 사제 중심으로 운영되자 평신도의 참여를 강조했으며, 카톨릭이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선행을 강조하게 되자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2. 장로교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태어났으며, 이러한 교리를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장로교는 카톨릭과 달리 평신도 중에서 비례 대표를 선출해서 목회자와 함께 교회 운영에 참여시켰습니다. 이러한 평신도 대표들을 장로라고 불렀기 때문에 장로교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장로교는 특히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믿는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3. 그러나 장로교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반면에 인간의 책임을 소홀하고, 교리를 강조했기 때문에 교회가 경직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감리교는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주권보다 인간의 믿음과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 의지로 예수를 믿기로 결심함으로 구원을 얻으며, 택한 사람들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는 활발한 전도 운동과 사회 사업으로 침체된 교회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4. 침례교는 좀더 자유롭고 독립적입니다. 침례교는 특별한 신조가 없이 각자 양심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 받아들입니다. 장로교나 감리교가 총회나 연회, 또는 노회의 감독을 받는 반면, 침례교는 개 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합니다. 침례교는 감리교와 정반대로 모든 교인들이 직접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제도로 운영됩니다. 장로교가 대의 민주제라면, 감리교는 중앙집권제, 그리고 침례교는 직접 민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침례교의 특징은 침례에 대한 교리에 있습니다. 침례교에서는 물을 머리에 뿌리는 약식 세례를 거부하고 온 몸을 물에 잠그는 침례를 주장하며, 믿음이 없는 어린 아이에게 세례를 주는 것(유아세례)을 반대합니다. 5. 성결교는 원래 동양에 있는 나라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생겨난 단체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교파들과 특별히 다른 특징은 없습니다. 한 가지 있다면 구원을 받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성결한 삶(성화)을 강조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성회 역시 다른 교단과 교리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 나라의 순복음교회와 같이 성령 운동을 강조하는 점입니다. 그들은 구원 받을 때에 특히 방언의 은사를 강조하고, 성령에 의해 나타나는 신유나 기적들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성령 운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성회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각 교단은 교리에 있어서 다른 교단의 약점을 보완하고 있거나, 아니면 강조하는 점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으며,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6. 더 자세한 자료는 아래 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개신교의 각 종파에 대해서 (http://biblenara.org/q&a/gyopa.htm)
결혼상담에 대하여 2004-01-16 15:04:03 read : 3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MARRIAGE COUNSELING REPORT A Research paper presented to : Dr. Ed decker, School of Theology and Missions. Oral Roberts University In partial fulfillment of the requirement for the class P
결혼상담에 대하여 2004-01-16 15:04:03 read : 3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MARRIAGE COUNSELING REPORT A Research paper presented to : Dr. Ed decker, School of Theology and Missions. Oral Roberts University In partial fulfillment of the requirement for the class PRM 676 MARRIAGE COUNSELING by Sungki Kim October 1995 서론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1:26)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협력하며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도록 창조되었다. 사실상 엄밀하게 말해서 사람은 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태어나고 성장되며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형상을 이루기까지 완전해져가는 존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에릭슨(Erickson)에 의하면 사람은 여러성장발달기를 거치면서 각각의 특유한 발달과업을 이룩하는데 청년기에는 특별히 친밀성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다정한 관계를 맺으면서 가까이 있고 싶어하고 친밀감을 갈구하게 되는 데 일생 동안 같이 살아갈 생의 반려자로서의 이성을 갈망하며 친밀감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남녀간에 서로 매력을 느끼며 마음이 끌리는 것은 하나의 자연적인 현상이요 하나님의 만드신 육체적인 생리 현상이다. 그래서 결혼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그 행복을 위해 서로서로 협력하고 노력하므로 하나님의 예정하신 무한 정한 은혜를 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안다 두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하나로 뭉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인 풍성한 결혼 생활이 전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 자는 이들이 번영하고 잘되기를 위해 혼전 상담을 한다. 그리고 결혼 상담도 하고 이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예비하시고 축복하시는 풍성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도와주고 인도해 주는 것이다. 1. 혼전 상담 혼전상담시 첫 번째 들어가기 전에 질문을 해야 한다. 왜 당신들이 결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10가지를 말하라고 질문지를 준다. 이것을 할 때 주의 점은 절대로 상대방 파트너에게 보여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 쓴 다음 상담 자와 만나서 5가지씩만 말하게 하는데 상대방 파트너는 듣기만 해야 한다. 그것은 1, 커피 끓여 주는 것, 2. 때리는 것 금지, 설거지 도와주는 것등으로서 이런 것들을 서로가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보기로 듣고 있는 파트너에게 네 느낌이 어떠냐라고 라고 상담 자가 물어 보는 것이다. 이것은 결혼하기 전에 행동을 구체화하라고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것은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쓰는 것이다. 이것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떤 종류의 남자들은 자기 과장하고 이상주의로 파트너에게 말하므로 서 결혼전 여자 쪽이 진정한 남자를 보지 못하니까 이 문 제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는 이유가 서로가 자신을 보게 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사실 혼전 상담은 이혼을 막는 방법의 하나이다. 이것을 하는 이유는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것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이성적이고 현실적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또 불안감이나 감추인 것을 끄집어내어서 안정되게 하는 것이 이혼 상담이다. 영적인 문제나 실제적인 문제를 잘 조화를 이루어서 결혼까지 하게 하는 것이 혼전 상담인 것이다. 남녀를 상담할 시 상담 자는 우선 틀리게 서로를 만드셨음을 그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성격도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또 우리들의 자라 온 환경의 영향력도 우리의 인격을 만드는데 굉장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감정적인 사람, 생각하는 사람, 의지적인 사람, 대체로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음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두 남녀에게 상담할 시 서로의 장점만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좋다. 가정의 불화의 원인은 서로가 단점을 바라보고, 말하고, 생각하므로 일어나는 것으로 상담 자는 서로 상대가 장점을 개발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진 짜기 되어 가는 것이다. 진짜가 된다는 것은 우리 대부분이 그 뒤에 숨어 있는 가면들을 벗는 것을 덜 두려워하며 참되고 진정한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는 뜻이 된다. 2. 결혼 상담 결혼의 축복과 하나님의 무한하신 가정에 대한 비밀을 결혼한 두사람에게 알려주므로 결혼 생활에 문제를 갖고 괴로워하는 부부에게 긍정적이고 새롭게 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결혼 상담의 목적이다. 결혼이란 우리에게 지원을 주는데 우리가 혼자있는것보다 더 많이 얻게 된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혼자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아이를 가지는 것이나 교회를 세우는 것도 우리 혼자서는 안돼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하므로 서 우리는 불완전함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을 부부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보면 혼자서 하는 것이 더 잘할 수 있고 번영할 수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를 보면 이해가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성령 이 세분은 서로를 높이셨고 서로를 존중히 여기셨고 서로에게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남자 --> 여자 ---> 어린이 이 세종 류의 사람들이 반드시 서로 세워 주고 존중히 여겨 주고 서로에게 양보한다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처럼 완전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 3:28절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고 다같이 형제자매라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해서 서로가 학대하는 것은 안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고린 도전서 7장 15절 말씀에 결혼한 사람이 결혼 약속을 어기는 것은 엉뚱한 감정을 노출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엉뚱한 감정을 노출하는 것을 범죄로 단정한다. 여기 결혼의 5가지 문화의 특징이 있다. 1) coffling - habituated 이것은 부부가 성생활이 없다. 가정이 많이 마찰되어 있는데 고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습관적으로만 내려오는 것이다. 이것을 가정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사회적으로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 de -vitalized 마치 김빠진 코카콜라처럼 결혼 생활이 김빠진 것처럼 부부가 살아간다. 3) passive congenial marriage 수동적인 결혼 생활, 한 번씩 사고로 성생활이 있다. 남녀간에 관심이 없고 각각 자신들의 개인적으로만 관심이 있다. 4) vital marriage 결혼 생활이 즐겁다. 성생활도 재미있게 가지는 삶이다. 5) total marriage 4번째와도 같지만 이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이 왔을 때 힘을 합해 처리해 나가는 결혼 생활을 한다. total marriage는 high level인데 relational efficacy를 갖고 있다. 서로가 긍정적인 것을 가지고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 자는 어려움에 있는 부부들을 high level 부부로 끌어올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 상담 자는 그 원인을 조사해서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결혼상담시 최소한 5번 만나서 상담한다. 만일 전진이 없으면 15번까지 만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상담 시간은 보통 50-60분이나 어떤 사람은 1시간이나 1시간 30분 정도로 만난다. 3. 풍성한 결혼 생활 풍성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 상담 자는 부부가 번영하고 행복을 누리도록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상담이 대부분의 경우 여자들이 많이 온다. 그러나 만일 남자가 여자를 데리고 올 경우는 심각하다. 대부분이 심각한 상황에서 오는 것이 보통이다. 여자가 남자를 데리고 올 경우는 대부분 쉽게 해결된다. 상담하려 올 경우 상담 자는 그들의 장점을 봐야 한다. 그래서 평가를 일단 해야 하는데 이 상담을 어디로 끌고 가야 될지를 알아야 한다. 이 상담을 어디고 끌고 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상담 자는 상담하러 온 사람이 내놓은 것만 상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인이 상담 자를 찾아 남편이 도색영화를 본다고 말했어도 막상 찾아온 남자가 그 문제를 말하지 않을 때에는 절대 그 문제를 건드리면 안된다. 본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그리고 정직하게 Open할 때에 성령께서 해결해 주신다. 그러나 본인 자신이 문제를 알고도 말하지 않을 때 상담 자는 절대로 그 문제를 건드리면 않된다. 풍성한 결혼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은 부부가 서로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 당신의 배우자의 특별한 것을 감사하는 것이다. 둘째 당신의 배우자에 대해서 풍요한 무엇인가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특정한 부분에 대하여) 특히 부정적인 것이 느끼고 보여지면 셋째 아내나 남편의 중요한 것 굉장히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즉 신경질, 알콜중독, 화를 자 주내는 것, 이런 것에 대하여 기도하자. 우리가 서로 소망 적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부정적인 그것을 긍정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그때부터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결론적으로 가정의 균형은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부모들이 좋은 부부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때 그 가정은 안정된다. 부모가 안정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가정의 가풍을 세우는 것이다. 집안의 지표를 세워라 주일에 아이들이 우리 부모는 이렇게 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라. 아이가 화가나 있을 때에라도 부모에게 와서 얘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갈 때 우리들은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bible 참고 1. Dating, Sex & Friendship. page 9, 10. 2. Dating, Sex & Friendship. page 23, 24. 3. 강의 노트 98page, 99, 96, 97, 102, 103, 105page. 4. 강의 노트 210, 211, 213, 216, 224, 225page. 5. Scripture 사도행전 2:42, 갈라디아서 3:28, 고린도전서 7:15,
결혼전 갈등 유형과 해결 방법 2004-01-16 14:43:55 read : 4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의수목사(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 연구원) 결혼하려는 한 쌍의 남자와 여자는 두 개의 톱니바퀴에 비유할 수 있다. 또 각각의 톱니바퀴에는 톱니와 홈들이 있어서 이것이 서로 잘 맞물려야만 원활하게 바퀴가 돌아갈 수 있다. 물론 이 때도 톱니의 짝이 잘 맞는 정도와 두 톱니바퀴의 마찰 정도, 그리고 두 톱니바퀴가 상충하면서도 서로 계속
결혼전 갈등 유형과 해결 방법 2004-01-16 14:43:55 read : 4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의수목사(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 연구원) 결혼하려는 한 쌍의 남자와 여자는 두 개의 톱니바퀴에 비유할 수 있다. 또 각각의 톱니바퀴에는 톱니와 홈들이 있어서 이것이 서로 잘 맞물려야만 원활하게 바퀴가 돌아갈 수 있다. 물론 이 때도 톱니의 짝이 잘 맞는 정도와 두 톱니바퀴의 마찰 정도, 그리고 두 톱니바퀴가 상충하면서도 서로 계속 물려 있으려고 하는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잡음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겨나는 소리를 가리켜 '결혼 전 갈등'이라 부른다.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것이 바로 결혼 전 갈등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온전히 수용하고 섬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이런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떻게 그 갈등을 보다 생산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배워두는 것이 좋다. 결혼 전의 갈등해결은 결혼 후 부부관계 속에서 발생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는 보여주는 일종의 데모 버젼(Demo Version)과도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혼 전에 발생되는 크고 작은 갈등 구조를 잘 다룰 수 있어야만 결혼 후에도 건전한 갈등 해결 방법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결혼 전의 갈등은 배우자의 의사소통방식과 문제해결방식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이 폭력을 휘두르거나 마음을 닫아버리는 미숙한 갈등 해결 방법을 갖고 있다면 더더욱 결혼 전의 갈등이 필요할 것이다. * 갈등의 원인 그렇다면 결혼 전에 갈등이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안타깝지만 결혼 전 갈등의 주요 원인은 당사자들 때문이 아닐 때가 많다. 오히려 본인들과 상관없는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부모를 떠나라'는 성경 말씀처럼 주위로부터 떠나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이 가장 많은 셈이다. 예를 들어 신세대들은 결혼을 일대일의 연합으로 이해하는 반면 기성세대들, 즉 부모나 친족들은 집안과 집안의 연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다. 특히 본인들과 상관없이 각 가정에 자리잡은 이런 저런 전통들과 고정관념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도 일종의 결혼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가족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 전에 나타나는 갈등의 또 다른 원인은 '차이', 즉 남녀의 차이, 성격의 차이, 성장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것들이다. 심지어 결혼 직전에 결혼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결혼 전 갈등이라는 단어보다는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조정국면', 혹은 '노력'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갈등의 유형 위와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결혼 전 갈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현장에서 상담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갈등의 유형들은 다음과 같다. 제일 먼저는 종교 갈등이다. 교회에서 결혼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갈등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배우자 가족의 동의를 받지 못할 경우에는 교회가 아닌 제3의 장소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결혼식장의 선택, 결혼식의 규모, 주례자 선정, 식사 접대, 하객 선물, 청접장과 같은 일들을 처리하다 생기는 갈등도 있다. 바로 '형식 갈등', 혹은 '절차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외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어른들이 집안에 많은 경우에 이런 갈등이 생기기 쉽다. 이외에도 두 사람만의 달콤한 신혼을 보내고 싶어하고, 구속받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시부모를 모시기 않기 위한 빚어지는 갈등도 있을 수 있다. 그 뿐 아니다. '마마보이 갈등'도 있다. 이런 갈등은 결혼 전까지 잘 드러나지 않다가 막상 결혼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뒤늦게 발생하기 쉬운 잠복형 갈등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앞두고 서로 가정을 방문하고 부모님들과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예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배우자의 단점이, 그것도 부모님 앞에서 아무런 의지도 없는 마마보이가 되어 버리는 모습이 눈에 띠는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갈등은 결혼을 앞둔 남녀가 심심치않게 겪는 성(性)적 갈등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경우 형제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괜찮다'는 식으로 지나친 육체적 관계를 요구하고 자매는 반대로 마지막까지 순결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성적 갈등이다. 또 이런 갈등은 종종 '첫 사랑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직도 첫사랑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을 거절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결혼 전에 자신의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결혼 전 갈등의 단골 메뉴라고 할 수 있는 '혼수 갈등'이다. 혼수는 두 사람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의 경제수준에 어느 정도 맞추어야 한다는 비교 의식 때문에 적지 않는 문제가 생기곤 한다. 심지어 적절한 수준으로 혼수를 합의했다고 해도 다른 커플의 사례를 들을 때마다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아니면 함을 주고받을 때 누구는 함을 받고 싶고 또 누구는 생략하고 싶어서 생기는 '함 갈등', 서로 예복과 시계 등을 주고받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며 바꿔달라는 '스타일 갈등', 계속 사회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자매와 전업주부를 고집하는 형제 사이에 일어나는 '맞벌이 갈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재미있는 것은 결혼 전에 서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일어나는 '주도권 갈등'이다. 예를 들어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는 분명히 부탁이었는데 결혼을 결정하고 난 후엔 명령조가 되는 것도 일종의 주도권 갈등이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은 조만간 고정 관념 갈등이나 문화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도 자녀를 낳는 시기와 자녀수, 성별에 대한 차이에서 오는 '2세 갈등', 신혼여행지를 국내로 하느냐 마느냐, 비용은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서 비롯된 '허니문 갈등' 등 헤아릴 수 없는 함정이 결혼 전에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결혼 전 갈등의 유형이 많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것보다는 결혼 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 요소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일종의 평가전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결혼 전 갈등해결을 위한 10가지 제안**** 그러면 이제부터 결혼 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실제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1. 윈 윈 작전으로 갈등을 해결하라. 싸움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승자가 있고 패배가 있는 '윈 앤 루즈(win & lose)' 싸움이 있고 아무리 겨루어 봤자 둘 다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루즈 앤 루즈(lose & lose)' 게임도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아무도 지지 않고 서로 발전하는 '윈 앤 윈(win & win)' 게임이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 전 갈등도 당연히 배우자 모두가 서로 발전하고 성장하는 '윈 앤 윈' 게임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거나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는 결혼 전 갈등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차라리 배우자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선한 의도로 결혼 전 갈등을 해결해보라. 진정한 리더십은 상대의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을 이해하고 수용하여 지지해 주는데 있다. 먼저 배우자의 필요를 고려해야한다. 자신과 배우자에게 중요한 일이라는 이해를 서로 같게 되면 진정한 윈윈 작전(Win & Win)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2. 서로의 차이를 연구하라 남자와 여자는 신체 구조도 다르고 몸 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도 다르다. 이처럼 다른 점을 갖고 있는 배우자가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분명하다. 따라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서로 아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차이를 알기만 해도 공연한 신경전은 벌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결혼에 앞서 결혼예비학교 프로그램을 참여하여 서로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공부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결혼예비학교를 참여할 수 없다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비롯한 존 그레이 박사의 여러 저서들을 독파할 것을 권하고 싶다. 독학이라도 해서 서로의 차이를 아는 것이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에는 정말로 아는 게 힘이 된다. 3. 배우자의 가족 전체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라 결혼 전에 배우자와 배우자의 가족을 위한 중보기도는 서로를 가슴에 품게 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초석이 된다. 며느리 될 자매를 탐탁해 하지 않다가 중보기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관계가 개선된 경우도 있었다. 필자는 중보기도를 통하여 갈등이 해결되고 서로의 사랑이 더욱더 견고해 지는 모습들을 많이 경험했다. 배우자의 가족들에게 기도제목을 꼼꼼히 묻고 그 제목을 위해 기도해보라. 기도보다 더 큰 관계 회복제는 없을 것이다. 4. 눈에 보이지 않는 혼수감을 준비하라. 혼수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람들은 그 동안 집, 자동차, 가구, 보석, 전자제품, 이불, 그릇처럼 눈에 보이는 혼수감을 중시해 왔지만 그것들이 결코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배우게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혼수감,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혼수감에 관심을 돌려 보라. 결혼 후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남편은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아내는 남편을 위해 가정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가정 경제는 누가 관리하고 가사는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부부간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이며 가정을 건강하게 꾸려가기 위해 어떤 규칙들을 세울 것인지 등을 정해 두라. 그리고 가급적 그 규칙들을 문서로 기록해 두라. 그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혼수감이 될 것이다. 5. 차라리 왕자병과 공주병에 걸려라. 필자가 인도하는 부부모임에 나오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그들이 결혼 후 6개월 동안 싸운 이유는 잠자리에 누워서 소등하는 일 때문이었다. 서로 자리에 누워 '불꺼'라는 말로 서로를 부리려하다가 싸운 것이다. 지옥같은 가정과 천국같은 가정의 차이는 간단할 수도 있다. 대접받기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지옥같은 가정이고 조금이라도 더 대접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천국같은 가정이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딸아, 네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너는 왕비가 될 것이고 하인으로 부리면 너는 하인의 여인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이렇게 바꾸고 싶다. "결혼 전 갈등을 해결하려면 차라리 왕자병과 공주병에 걸리라"고. 하지만 자기 스스로 왕자와 공주병에 걸리지 말고 배우자를 왕자와 공주로 대해주는 그런 병에 걸려라. 그것이 갈등을 해결하는 비결이다. 6. 남의 결혼식이 아니라 자기 결혼식을 하라. 결혼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주위 친구나 선배가 주인공일 수 없다. 그들이 어떻게 결혼했건 자신의 경우와 비교하지 말라. 누가 어떤 패물을 해줬건, 누가 어떤 집을 장만했건, 어느 댁 부모님이 어떻게 도와주었건 절대 비교하지 말라.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준비한 결혼은 자신들의 결혼식이 아니라 남의 결혼식일 수 있다. 이제라도 자기 결혼식을 어떻게 코디할 것인지 자기만의 개성과 소신을 세워보라. 7. 가지고 갈 것과 가지고 가지 말 것을 구분하라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를 떠나기 위해 가지고 가야할 것과 가지고 가지 말야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불건전한 전통이나 좋지 못한 습관들은 두고 가야할 것이다. 우선 결혼 전에 집안에서 쓰던 물건 중에 가지고 가야 할 것과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할 것을 골라보라. 양쪽에 리스트를 만들어두면 더욱 좋다. 필자가 아는 한 형제는 첫 사랑과 주고받은 편지를 그대로 가지고 갔다가 이혼직전까지 갔던 적도 있다. 그 다음엔 자신의 습관 중에 가지고 가야 할 것과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어두라. 그리고 결혼 후에 자신이 꿈꾸고 있는 일 중에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리스트도 만들어두라.
경제사정이 어려워서 마이너스 상태인데 꼭 십일조를 내야합니까?/ 2015-07-13
경제사정이 어려워서 마이너스 상태인데 꼭 십일조를 내야합니까? Q1.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급여가 작아서 현재 생활을 해도 계속 마이너스가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통장에는 \"-\"이지만 십일조는 계속 드려야 된다는 생각에 그래도 급여를 받는 그대로 드리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풍족히 드리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생활비가 계속 마이너스가 되어 적금을 깨서 메꾸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언젠가 파산이 될 지도 모른다는 심적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좋은 답변을 부탁합니다.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만 본인의 재산이 마이너스가 되면서 정확한 십일조를 드리는 일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형편에 따라서(예를들어 이십일조) 헌금을 드리면 안되는 지 알려주십시오! 참고로 저희 교회는 십일조 금액이 적혀 있어서 교회에 낸 헌금이 금방 알려집니다. 그래서 더 고민입니다. 바쁜시간 죄송합니다. 몸은 건강하신지요. 목사님 답변에 순종하겠습니다. A1. 요즈음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서 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 생각에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 기도하면서 지출하지 않아도 될 부분을 정하고 가능한 지출을 줄여본다. 요즘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지출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만큼 필요없는 소비를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 필요없는 소비를 하면서 재정이 모자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2. 정상적으로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기도한다. 소비를 최대한 줄였는 데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정상적인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을 항상 채워주십니다. 물론 특별한 이유로 인해서 잠시 어려움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실족할만큼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적금을 깼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에는 그 돈이 떨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만 우리에게 주시며, 또한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어 우리로 그 시험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저는 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한다면, 결코 하나님께서 님을 경제적으로 파산을 당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경제의 은사를 받은 분에게 조언을 구하고 기도를 부탁한다. 성도들 중에는 경제의 부분에서 은사를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하나님께서 그 은사를 주시기 위해서 물질적인 면으로 여러 가지 연단과 시험을 거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물질에 대한 여러 가지 체험을 가지고 있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특별한 길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이러한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중보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4. 십일조를 할 때에 결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님의 경우와 같이 교회에서 십일조 액수를 공개하는 경우에는(참으로 아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헌금을 할 유혹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험에 들지 않도록 더 많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경제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혼자만 어려움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글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해 답변한 경우인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빛을 진 상태에서도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http://biblenara.org/q&a/Q57.htm) Q2. 요즘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서 쓰고 있어요. 월급은 그 통장으로 들어가면서 마이너스를 메꾸고 있죠. 그런데 통장관리가 어려워지면서 계속 많은 마이너스로 유지가 되면서 이번에 들어온 월급으로 정산을 해도 마이너스 몇십만원이 되는군요. 그런데 여기서 십일조를 내면 마이너스 백만원이 넘어요. 저는 결국 소득은 있지만 쓰지 못하는 소득이 되는 입장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십일조를 내야하나요? 십일조를 내면 계속해서 마이너스를 정리하지 못하고 누적된 마이너스가 저를 힘들게 할텐데요. 이런 경우에도 내야 하는지요. 성경에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가 그걸 잠시 빌어쓰는것이어서 소득중 그 일부를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저처럼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사람도 십일조를 내야 하는 것인지요. 힘들어서 그러니 답을 좀 주세요. 잠시 십일조를 유예할 수도 있는 것인지요. 아니면 십일조를 안내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인지요. 인터넷 어디선가 보았는데 십일조를 강권하면서 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하던데요. 천주교도 그렇게 심하게 권하지도 않구요. 알기쉽게 설명 좀 부탁드릴께요. A2. 전에 비슷한 상황을 당한 분이 십일조에 대해서 질문을 해서 답변해 드린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아래 페이지 주소를 복사해서 인터넷으로 접속해 보시면 참고할 만한 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슷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혼자만 당하는 어려움이 아니니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2015-07-13
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이 글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답변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이 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6번(문서 열기)을 클릭하면 문서를 읽거나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1. 요한 계시록의 시대적인 배경 2. 요한 계시록의 4가지 해석 방법 1) 과거주의적 해석 방법 2) 현재주의적 해석 방법 3) 미래주의적 해석 방법 4) 영적 해석 방법 5) 종합적 해석 방법 3. 묵시문학과 요한 계시록 4. 요한 계시록의 저자 문제 1. 요한 계시록의 시대적인 배경 요한 계시록은 요한 당시에 소아시아에 퍼져있던 일곱 교회에 보낸 회람 서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신은 1세기를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레니우스는 계시록이 81-96년에 있었던 도미티안 황제의 통치 말기에 쓰여졌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도미티안은 "황제숭배"를 이슈로 제기한 최초의 황제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을 가장 먼저 박해한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로마 시의 화재범으로 몰아 사나운 짐승과 불에 태우고, 참수형으로 죽였습니다. 그리고 네로 뒤에도 몇 몇 황제들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박해는 로마에 인접한 지역에서만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미티안 황제 때에 이르러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로마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던 사람들은 로마 공화정 말기와 로마 제국의 초기에 "로마의 정신"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가 세계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고 이에 감사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로마의 정신"은 점차적으로 "황제의 인격"을 숭배하는 곳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로마 제국은 영국에서 유프라테스, 그리고 다뉴브 강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는 이 광대한 영토를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해서 "가이사 숭배 사상" 즉 "황제숭배 사상"을 이용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황제를 중심으로 로마 제국에 속한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민족의 종교를 없애버리고 황제숭배를 절대신앙으로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는 단지 로마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황제를 중심으로 통일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당국은 1년에 한 번씩만 황제를 위해 소량의 향을 태우고 "가이사는 주님이다!" 라고 말만 하면 다른 종교를 갖는 것을 묵인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제국에 속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황제 숭배 예식을 실시한 후에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황제 숭배가 아시아 지역에 파급되면서 유일신을 섬기는 교회와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만 주님이라고 고백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리 황제라 해도 인간을 경배의 대상으로 섬기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황제숭배를 거부하게 되자 로마 당국은 그때부터 기독교인들을 불충한 백성으로 보게 되었으며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인들을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회는 황제들에게 조직적인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황제를 주라 부르기를 거부하다가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순교자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만 갔습니다. 당시의 교회는 어느 정도 기틀을 잡아가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로마 당국의 질풍과 같은 대 박해를 견디기는 어려운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교회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한 마음으로 주님께 충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교회들은 세속화와 사치와 타락에 빠져서 영적인 힘을 완전히 상실한 무능력한 교회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회들은 한쪽으로는 열심히 주님께 충성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세상과 거짓 종교와 타협하여 적당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점차적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을 잃고 영적, 윤리적으로 타락해갔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가던 1세기의 아시아 교회들에게 요한을 통해서 이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당시의 교회들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모습을 통해서 세상의 박해가 아무리 강해도 그들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 앞에서 방황하는 교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환상은 황제로 인해 당황하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교회를 박해하는 황제의 배후에 사단이 조종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모습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싸움이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결국 최후에 사단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성도들에게 승리의 확신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들을 향해서 세상이나 거짓 교훈에 타협하지 말고 계속해서 정결한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첫 사랑을 상실하고, 윤리적 영적으로 부패해 가던 당시의 교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였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서 이러한 부패 요소들과 싸워 이길 것을 권면하셨던 것입니다. 2. 요한계시록의 해석 방법 그러면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동안 요한 계시록을 해석해 온 방법을 나누어보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과거주의 학파의 해석(The preterist' view)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첫 번째 방법은 요한 계시록의 모든 내용을 요한이 살던 1세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과거주의적인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모든 내용이 이미 요한이 살던 1세기에 다 성취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이 계시의 말씀이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말한 천사의 말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들은 이 예언들이 "반드시 속히 될 일"이기 때문에 요한이 살던 1세기에 모두 다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1세기 당시의 교회와 로마 당국과의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교회가 승리할 것을 (상징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과거주의적 해석 방법은 당시 상황을 살펴볼 때에 매우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이미 과거에 다 성취된 것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의 내용을 1세기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하면 오늘을 사는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말을 요한 당시로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속히"라는 말은 "반드시"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롬 16:20, 눅 18:7-8 참조). 그러므로 이 말은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실 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과거 1세기 뿐 아니라 모든 시대를 사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요긴한 말씀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현재주의(역사주의) 학파의 해석(The historicist' view)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두 번째 방법은 계시록에 나오는 예언을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시작해서 재림할 때까지 일어나는 모든 사건으로 보는 방법입니다. 학자들은 이 방법을 '현재주의' 또는 '역사주의적인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이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모든 사건들을 모두 다 현재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연결시키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종종 계시록의 내용을 억지로 역사 사건에 뜯어 맞추는 실수를 범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을 현재 역사 사건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을 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족이나 모슬렘의 침입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천사가 요한에게 준 작은 책을 루터나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을 로마 카톨릭으로 보고, 짐승의 멸망을 로마 카톨릭의 멸망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요한계시록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억지로 현실에 적용시키다가 실수하게 되는 단점도 있습니다. 3) 미래주의 학파의 해석(The futurist' view)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세 번째 방법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역사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학자들은 이 사람들이 계시록의 내용을 먼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견해를 '미래주의적인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초대교회-주님의 재림 때까지 있을 모든 교회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4장 이후에 나오는 내용은 역사의 마지막 때(주님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7년 대 환난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도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책의 내용이 먼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라면 이 책은 요한 당시에 박해를 받던 성도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도 주님께서 당시 교회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들을 요한을 통해서 편지로 써주셨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당장 로마의 칼날의 위협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중동전쟁의 위협이나 E. C. 공동체의 출현 같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요한 계시록의 내용이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은 다소 무리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상징주의 학파(영적 해석 학파)의 해석(The allegoricalist' view)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네 번째 방법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지 않고 영적(상징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은 어느 시대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원리를 상징을 통해서 기록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이 견해를 "영적인 해석"(또는 "상징주의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계시록에서 선(교회)과 악(사단)의 전쟁 속에서 선(교회)이 승리하는 보편적인 신앙의 원리들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원리는 보편적이기 때문에 어느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단점은 사람들이 성경을 지나치게 자기 주관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5) 그러면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종합적 해석) 우리는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네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러한 네 가지 해석 방법은 모두 다 그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방법들은 단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요한계시록을 해석해야 합니까? 우리는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방법의 장점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단점을 피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종합형" 또는 네 가지 방법의 "절충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을 해석할 때에 다음의 사항들에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 메시지가 요한 당시의 1세기의 교회들에게 주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에 그 내용이 요한이 살던 1세기의 교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지를 충분히 고려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 메시지는 그 당시에 실제로 존재했던 교회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과거주의자들의 견해를 참고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 메시지들이 1차적으로 1세기 교회를 위해 쓴 것이지만, 동시에 이 메시지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도 적용되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1세기 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필요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내용을 해석할 때에 전시대를 걸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 그리고 복음과 거짓 종교사이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영적, 또는 상징주의의 견해도 참조하여 해석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한 가지 예언이 두 개 이상으로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약의 예언서를 보면 이러한 예를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그 당시에 이사야의 아내가 낳은 아들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예언은 처녀 마리아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서 이사야의 아들은 모형이었고, 마리아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는 원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가지 예언이 두 가지 사건으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묘사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도 시간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건을 한 사건 안에서 동시에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원근 통시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마치 하나로 붙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도 묵시적인 예언서이기 때문에 이러한 "원근 통시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짐승이 나타나는데, 이 짐승은 당시 교회를 박해하던 로마의 황제, 또는 로마제국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마지막에 나타날 최후의 적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가지 예언이 두 가지 이상의 사건으로 성취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1세기의 사건인 동시에 현재와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역시 현재주의나 미래주의의 견해도 참고하게 될 것입니다. 3. 묵시문학과 요한 계시록 1) 요한계시록과 묵시문학의 유사점 우리가 계시록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 구약 중간기에 유행했던 묵시사상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계시록이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고 또 내용상으로도 그들과 흡사한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Revelation), 또는 '묵시'(Apocalypse)라는 말은 '감취었던 것이 드러난 것'(unveiling)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연극을 시작할 때에 막이 올려지면 그 뒤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묵시'란 말은 주전 2세기와 주 후 1세기 사이에 씌여진 유대 종교 서적들에 붙여진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책들을 '묵시문서' 또는 단순히 '묵시'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묵시문학 속에는 강력한 이방민족들 사이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느껴야 했던 민족적인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묵시문학은 소수 민족아 당해야만 하는 핍박과 착취에 대한 내용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묵시 문학은 억압받는 민족의 원한을 갚고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줄 메시야에 대한 희망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묵시 문학은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주권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악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난을 받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개선될 것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은 항상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천재지변을 통해 역사에 개입하시고 악을 제거하실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묵시문학의 결말은 항상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하는 것으로 끝을 맺게됩니다. 이러한 묵시 문학은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들의 통치를 받을 때마다 항상 주어졌으며,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묵시문학을 통해서 계속되는 이방 세력으로부터 피난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이 바로 이러한 묵시 문헌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이방 민족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는 자신의 백성이나 교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요한 계시록은 일시적으로 성도들과 교회가 악한 세력들에 의해 고난을 받으나, 결국에는 메시야를 통해 악한 세력들을 심판 받을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마침내 악이 멸망하고 평화가 깃드는 영원한 세계가 임할 것이라는 소망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묵시 문학의 특징은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밧모섬에 있는 요한에게 전해주실 계시를 매우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전달해 주셨습니다. 계시록에는 행동과 직접적인 말씀과, 극적인 용어로 표현된 것과, 그리고 여러 가지 상징과 형상들을 통하여 전달된 계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그림이나 드라마, 그리고 영상 등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데에 익숙해졌습니다. 이러한 그림이나 드라마, 또는 영상을 통한 상징들은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록에서 바로 이러한 형상과 상징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해 주신 것도 이러한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계시록의 언어는 현대인들에게 더 익숙한 언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형상과 상징들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계시록을 보다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짐승이나 뿔 등과 같은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짐승들은 그 당시 통치자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한이 이러한 상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의 통치자들의 멸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당시 교회의 독자들은 계시록에서 사용된 어휘나 상징에 익숙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계시록에 나타난 상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와 멀리 떨어져서 태어난 우리들은 이 책에 사용된 상징이나 어휘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시록을 이해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2) 요한계시록과 묵시 문학의 차이점 그러나 요한계시록과 묵시문학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들이 있습니다. 묵시 문학은 주로 저자들의 이름을 숨기고 과거의 유명한 사람들(에녹이나 에스라와 같은)이 이름을 빌려서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사도 요한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묵시 문학은 사변적인데 관심이 있으며, 세상의 종말의 때와 징조와 최후의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호기심을 채우기보다는, 당시의 대 박해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은 종말의 시기에 관해서는 단순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22:20). 또한 요한계시록은 다른 묵시문헌들과는 달리 사변적인 일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읽거나 듣고, 이 예언에 응답하여 그대로 살아야 한다"고 윤리적인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에 묵시문헌의 요소를 배려하면서도 묵시문헌과 동일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4. 저자 문제 그러면 요한 계시록을 쓴 저자는 누구일까요? 여러분은 "그거야 당연히 사도 요한이 아닙니까?" 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요한이 계시록을 썼다는 주장에 대하여 반대합니다. 요한이 계시록을 쓰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요한 계시록은 너무나 많은 히브리적 표현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문법에 있어서도 요한 복음이나 요한 서신과 그 내용이 많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2) 사도 요한이 아닌 다른 요한이 본서를 썼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3) 나이가 80이 된 사도 요한이 이러한 계시를 받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본서를 누가 기록했는가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전통적으로 계시록의 저자를 요한으로 간주한 이상, 결정적인 반대 증거가 없는 한 이 견해를 따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저자는 (계 1:1)에서 자신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소개했습니다(1:1,4).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며(1:1), 예언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22:19). 그는 당시 성도들의 환난에 함께 참여한 자였으며(1:9), 예수를 믿는 신앙 때문에 밧모라는 섬에 유배되었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를 받고 이 편지를 기록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1:9). 또한 그는 당시에 서 아시아의 도시들에 대해서도 익숙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도시들은 요한이 유배당했던 섬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도시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이 책의 저자로 가장 적합한 사람은 12사도 중 하나였던 사도 요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요한계시록 외에도 요한 복음과 세 편의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고난받은 이들을 위한 목회상담 2004-01-16 15:02:26 read : 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I.서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현재까지 고난의 문제는 인간과는 결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난이라는 문제를 어느 시대인들 피할 수 있었겠으며 누구라고 예외가 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도덕적 악의 증가로 범죄,전쟁등의 부산물로 고난의 문제가 동반되게 되고 아프리카와 같이 낙후된 곳에서는
고난받은 이들을 위한 목회상담 2004-01-16 15:02:26 read : 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I.서론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현재까지 고난의 문제는 인간과는 결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난이라는 문제를 어느 시대인들 피할 수 있었겠으며 누구라고 예외가 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도덕적 악의 증가로 범죄,전쟁등의 부산물로 고난의 문제가 동반되게 되고 아프리카와 같이 낙후된 곳에서는 굶주림,말라리아,가뭄등의 우주적인 악으로 인한 고통이 존재하게 되는 차이는 있을수 있다. {마이클 커웬, 박종수 역, 아프리카와 선교사 , (서울 : 보문 출판사, 1994), 112.} 또한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위치나 신분이나 부에 따라 느끼는 고난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고난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것이다. 1. 고난받는 이들의 현주소 이제 이렇게 인간과 밀접하게 관련된 고난의 유형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 고난의 현주소에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풀기 어려운 고난의 모습은 질병의 문제이다. 질병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각가지 종류로 인간을 괴롭혀왔고 그리스도 인들도 하나님의 은총이 질고로 부터의 분리가 아니기에 이 인간적인 조건에서 제외될 수는 없었다. 토마스c.오덴, 이기춘 역, 목회신학, (서울 : 한국신학연구소, 1986), 361 이 질병이 인간에게 사무치는 고난이 되는 경우는 그것이 평생 고칠수 없을 경우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될 때 일것이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가 상대하던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덴 , op.cit, 423. 부모가 죽던지 자식이 죽던지 아내나 남편이 죽던지 형제 자매나 친구가 죽던지 그 죽음을 통하여 그 사람이 속한 공동체에는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내세의 사상 이 있긴 하지만 죽음이 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기는 마찬가지 이다. 이 외에도 현대사회와는 웬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 는 가난의 문제가 있다. 가난한 자란 이 세상에서 필요한 재원이 없고 또한 쉽사리 그것들을 취득할 수 없는 사람이다. Ibid., 385. 사람이 가난한 상황에 놓여지게 되는 요인이 자신의 게으름에서만 비롯되는 것이면 수용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자본주의의 사회 구조에 의해 어쩔수 없이 생산되어지는 희생물이라 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 구조 속에서 가난한 자의 목소리는 어느 곳에서도 묵살 당할 수 밖에 되는 것이다. 혹은 자신이 속한 나라가 기근과 전쟁 등으로 인하여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는 상황 이라면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고 불가피한 고난을 당해야만 한다. 또한 요즘에 특히 부각되고 있는 가정간의 불화는 가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 회문제로 이어지고 있어서 더 큰 문제이다. 부부의 이혼문제나 자식과 부모의 단절 문제로 많은 가정들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떤 비 정상적인 가정에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가정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이다. 2. 성서의 고난 인식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고난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다가온다. 그렇다면 성서 는 이 고난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구약에서는 고난의 이해에 대한 상당수의 본문들은 하나님의 교육방법의 일환 으로 인간의 고통을 고찰한다.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그 고통은 우선 정화의 방법 으로 제시된다. 시련을 통한 정화의 방법을 구약의 인간들을 필요하며 또 유효한 것으로 여겼다(사 48:10,슥 13:9,렘 6:29). 이러한 정화 가치와 함께 구약성서는 고통이 하나님의 계획을 드러내주는 역활을 한다고 언급한다.(신 8:2,시 119:71,94:12). 마지막으로 고난은 회개에로의 호소로 본다(대하 32:26,시 119:67, 호 2:8-9). 장 레베크, 김건태 역, 욥기 , (서울 : 가톨릭 출판사, 1990), 138. 이 세번째 회개로의 호소는 하나님의 구속순환 모형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주시고 그들의 삶을 풍성케 하시지만 죄악이 만연 해지고 우상들을 섬기게 되는 상황에서는 고통을 면치 못하게 하시고 거기서 회개 하면 다시 구원을 허락하시는 구속 싸이클(cycle)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한편 신약에서는 나서부터 소경된자의 이야기(요 9:1-3) 속에서 고난에 대한 신약 시대의 사상에 대해 알수 있다. 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며 예수께 묻기를 소경된 원 인이 누구의 죄로부터 기인하냐는 사람들의 질문을 통해서 그 시대의 고난의 원인 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죄로부터라는 생각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3. 현대교회는 고난 받는 이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줄 수 있나? 그렇다면 현대교회는 고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하고 있으며 성서 전통을 설교의 핵심으로 간주하고 있는 현대교회가 고난받는 이들을 위해 어떠한 메세지를 전해줄 수 있는가? 고난이라는 것이 인간의 보편사라고 하여서 그 문제에 관하여 깊은 관 심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고난 당하는 개인에 대해 주의깊은 통찰이 미흡한 상태로 있지는 않는가. 또한 성서를 근거로 하지만 고난자에게 참 위로를 주지 못하고 있 는 현실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논문을 통하여서 현대교회가 그 동안 간과하며 지나갈 수도 있었던 고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가지는 계기를 마련 하고자 하며 고난의 문제가 일률적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다가오는데 이 럴때 현대교회로 하여금 더 폭 넓은 고난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하고자 한다. 그리고 많은 고난자들 가운데서도 이유를 알기 어려운 의인들의 고난의 문제를 생 각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논문을 통해 원인 모르게 고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현 대교회가 좀 더 특별한 배려와 대안의 준비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자 한다. 이 러한 특수한 고난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생각할 것은 이런 문제가 비단 현대인 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고대 근동으로 부터 성서적 전통까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고대 근동에서 '수메르판 욥기'로 불려지는 "남자(또는 인간)와 그의 신"에서는 신 들이 인간을 처음부터 결함을 가진채로 만들었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러한 인 간이 신으로 부터 부당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신들이 고통 당하는 자에게 은총을 주며 고통 당하는 동안의 올바른 처신에 대해서는 그의 보상으로 기쁨을 선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한 '바벨론 의 욥기'라고 부르는 "나는 지혜의 주를 찬미하리라"는 곳에서는 한 귀족이 뒤바뀐 운명으로 사회에서 버림받고 중병에 걸리게 된다.그는 좌절하는 가운데서 자신이 회복될 것이라는 확신을 고백하게 되며 그때에 비로소 초 인간적인 힘의 지배를 받 으며 완전히 회복하게 된다. 제임스L.크렌쇼 , 강성일 역, 구약 지혜 문학의 이해, (서울 : 한국장로교 출판사 ,1993) 316-318. 이처럼 고대 근동에서도 부당한 고통을 받는 의인들 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대 근동의 지혜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구약의 욥기 역시 의인의 고 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욥은 의로운 자라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였고(욥 1:1) 하나님이 유의하여 보심으로 사탄에 의해 재산,자녀,질병등으로 고난을 받게 되고(욥1:7-12), 고난의 과정에서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게 된다. 이 논쟁속에서 욥 은 자신의 무죄함과 정당함을 변호해 줄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결국 욥은 하나님 과 대면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한 일들을 찬양 하며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한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항변이 잘못 되었음을 발견하게 되고 우주가 합리성이라는 원리를 따라 운행된다고 보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음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와 은총이 반드시 인간 의 선악개념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욥의 고난의 의문점이 해결되게 되었다. Ibid., 169-170. 그 밖에도 의인의 고난에 대해 시편의 기자들은 종종 자신의 깨끗함과 무고함을 주 장한다. 윌리엄 헨리 그린, 윤영탁 역, 욥기이해, (서울 : 엠마오, 1993), 179. 또한 예레미아와 같이 조국의 패망을 지켜보며 개인적인 고통을 감수 해 야 하는 예언자도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며 재난을 공포했기 때문 에 그는 자연히 모든 백성과 왕,제사장,거짓 예언자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다. 그 가 당한 내적 고통은 여간 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탄식시를 보자면 욥이 자신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것만큼 예레미아도 자신의 생일을 저 주한다. 저주 받을 날, 내가 세상에 떨어지던날, 어머니가 나를 낳던날. 복과는 거리가 먼날 ...... 어찌하여 모태에서 나와 고생길에 들어서 이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는가 이렇게 수모를 받으며 생애를 끝마쳐야 하는가(렘20:14-18) 이러한 그의 탄식시를 보면서 예레미아는 하나님의 종이었지만 그 시대의 누구보다 도 고난 당하는 자였음을 알수 있게 된다 {{ ) 장일선, 생명나무와 가시덤불 (서울 : 전망사, 1991), 232-233. }} 위의 근거로 보아 의인의 고난은 고대로 부터 있어왔던 것이며 이러한 많은 전승들 은 인간이 아무리 의로울지라도 인간이 관여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영 역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같은 불가해한 고난을 인정치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규격을 맞추어 놓은 이들에게 새로운 교훈을 제시하여 주게 된다. 이러한 우주적 성격을 지닌 고난에 대한 전이해를 바탕으로 본론에서는 한국교회에 서 교회 생활을 하는 한 기독교인을 모델로 하여 그 기독교인의 경험을 성서적 전 통과 접맥하고 해석하며 대화를 시도함으로서 현대교회의 고난자들을 위한 목회신 학에 있어서 하나의 가능성있는 제안을 하고자 한다. 방법론에 있어서는 먼저 한인물의 고난의 경험과 해결을 위한 시도,응답등을 제시 하면서 성서의 욥과 접맥하여 그들의 고난에서 나타난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면 서 이들과 같이 인간으로 풀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는 이들의 심리적,신앙적 상황을 검토, 분석하려고 한다. II.몸 말 1. A 인물의 경험과 욥의 경험 비교 고난자 A는 현재 인천에서 살고 있는 31세의 임OO라고 하는 기혼여성이다.이 A라는 인물은 현재 나와 함께 교회의 중.고등부 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노동조합과 관련된 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A는 2남 2녀 중에 2째,차녀로 태어났으며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왔다. 그녀의 성격은 내성적이지만 한번 하자고 마음 먹으면 끝까지 하고 자 하는 성격이었다. 특별히 모나지 않게 착하다는 평을 들으면서 자랐으며 꾸준하 게 신앙생활을 하여왔다. 그러던 중 오랜 기도를 통해서 이OO라는 한 남자와 만나서 1991년 결혼을 하게 되 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들을 낳기 위하여 무당에게 굿을 하는 정성을 가졌던 어머 니의 밑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그 어머니는 어렵게 낳은 아들에게 온갖 비위를 맞 추어 주었으므로 그러한 편협한 사랑속에서 의타심이 강했으며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라났다. 또한 그의 아버지가 10여년간 병석에 누워계시다가 국민학교 시절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어려서의 성장과정이 그리 밝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늘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무엇인가 남을 도와 주면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것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는 무척이나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둘은 서로의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연립주택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새집을 마련하고 그 집으로 이사가기 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의 신혼의 단꿈과 새집에 대한 모 든 희망을 정리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 주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남편 의 큰 질병의 문제 때문이었다.
공관복음(마,막,눅)과 요한복음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2015-07-13
공관복음(마,막,눅)과 요한복음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Question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점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성경에 현대인의 성경을 만드실 생각은 없으신지? Answer 1.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서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주소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http://biblenara.org/gospel/gospel6-2.htm). 2. 현대인의 성경은 사랑의 교회 홈페이지에서 이미 자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곳(http://www.sarang.org/)에 접속하신 후에, 우측에 있는 "e-bible"(디지털성경)이라고 쓰여진 배너를 클릭하시면 쉬운 성경과 현대인의 성경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에 나타난 메시아관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2015-07-13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에 나타난 메시아관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Q. 저는 신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에 마태, 마가, 누가가 본 메시아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마태는 만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라고 짧게 메시아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이것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습니다. A. * 메시아관에 관한 문제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 동안 이 주제에 대해 수많은 토론이 있어왔고, 또 많은 논문이 이 주제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일은 이 자리에서는 어렵습니다. 여기에서는 복은서에서 언급된 메시아에 대해서 개략적인 내용만 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1. 메시아의 의미-"기름부음", 또는 "기름부음 받은 자" 2. 구약 성경에 언급되 메시아 개념들 1) 아담과 메시아-아담의 실패를 극복하고 인류에 승리를 가져올 분(암 9:13, 사 11:6-9, 시 72:16) 2) 모세와 메시아-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와서 백성을 인도할 분(신 18:15-19) 3) 다윗과 메시아-다윗의 위를 이어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분(삼상 7:12-16) 4) 하나님이 세우신 종-고난을 통해 백성의 구원을 완성할 분(사 42:1-4, 49:1-6, 50:4-9, 52:13-53:12) 5) 기름부음 받을 정복자-세계적인 왕(사 9:3-5, 42:13, 45:16, 49:24-26) 6) 여자의 씨-여인의 후손으로 출생할 분(창 3:15, 사 7:14, 49:1, 미 5:3) 7) 인자-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신적인 사람(단 7장) 8) 기름부음 받을 왕(단 9:24-27) 3. 예수님 당시의 메시아관-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고 세계적 왕국을 세울 정치적 지도자- 예수님 당시에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가진 메시아관 중에 가장 강조된 부분은 다윗과 같은 정치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이 당시에 백성들이 기다려왔던 메시아는 다윗과 같이 이방 나라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세계적인 왕국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리아의 왕이었던 에피파네스 4세가 성전을 짓밟고 유린할 때에 유다 족속(다윗의 후손) 중의 하나인 마카비와 그 가족들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시리아의 손에서 건져낸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카비를 메시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자 그들은 이러한 믿음을 포기되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은 또 다시 로마의 속국이 되어 이방인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메시아를 고대하는 열망이 커졌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손에서 구원하고, 세계적인 왕국을 세울 메시아를 간절하게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4.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타난 메시아관-다윗의 후손, 고난받는 종, 인자 요한복음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요 4:25, 6:14). 사마리아인들은 유다 족속으로부터 분리된 북 이스라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다 족속의 왕을 인정하는 역사서나 선지서, 그리고 시가서를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인정한 것은 12지파를 모두 인정하는 모세오경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이 고대한 메시아는 "모세가 언급한 선지자적인 메시아"였습니다. 공관복음에 나타난 유대인들은 "로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세계적인 왕국을 세울 정치적인 지도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일어나서 로마에 반기를 들고 무력으로 로마 정부를 무너뜨리고 세계적인 국가를 세우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메시아는 로마 정부에게 는 큰 위험과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아관은 성경적인 메시아는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메시아라고 부르는 일을 피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로마를 위협할 혁명가로 오해받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주님은 사역이나 기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계시해주셨습니다(눅 4:18-, 마 11:2-5).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로마를 정복할 정치적 지도자로 오해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메시아라 부르는 대신에 "인자"라고 부르기를 선호하셨습니다. * 12제자와 메시아 베드로는 주님을 가리켜 "주는 그리스도(메시아)"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때에 주님은 베드로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 사실을 아직 사람들에게 알리지는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때에도 자신이 정치적인 지도자로 오해받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때까지도 베드로는 메시아를 정치적인 지도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러한 베드로의 메시아관이 옳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진정한 메시아는 죄인을 위해 대신 고난을 받을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난받고 십자가를 지고 죽는 메시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을 향해 "결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일로 인해 베드로를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즉시 자신에게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셨습니다(막 8:29-33). 이러한 사건을 통해 보면 12제자 역시 메시아를 정치적인 지도자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염두에 두신 메시아는 이와는 달랐습니다. 주님은 사무엘상에 예언된 "다윗의 후손"과, 다니엘에서 말하는 "인자", 그리고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 받는 종"의 개념을 모두 성취하는 메시아를 마음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아관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나 종교 지도자들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들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것이었습니다. *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기 시작함 예수님을 심문하던 대제사장이 "네가 그리스도냐?"고 물었을 때에 주님은 "그렇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권세를 갖게 되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막 14:61-). 주님은 자신이 고난을 받게 되고 십자가를 지게 될 때가 이르자, 자신을 메시아라고 나타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고난을 받을 때에는 더 이상 자신이 정치적인 지도자라는 오해를 받을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공개적으로 계시되는 메시아 주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후부터 주님은 공개적으로 자신을 메시아로 계시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주님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셨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진정한 메시아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주님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부활 후에 주님은 당당히 자신을 메시아라고 계시하셨습니다. 특히 복음 전파를 명령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주님은 자신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우주의 왕"으로 계시하셨으며, 또한 "영원히 교회와 함께 계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실 분"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마 28:18--20, 행 1:8). (요한복음이나 사도행전, 계시록에 나타난 메시아, 또는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면, 신학 사전에서 "메시아"란 단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약신학"이란 제목을 가진 책 중에서 "메시아"라는 주제를 찾아보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관복음서의 공통점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2015-07-13
공관복음서의 공통점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Q: 공관복음에 대한 비평은 많은것 같은데 공통점을 기록한 도서가 없어요__; 공통점에 대해 알고싶어요. 빠른시일 내요--도와주셔요^^ A: 1.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을 우리는 "공관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공관복음"이란 말은 "같은 시각으로 본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세 복음서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은 그 주제와 내용, 그리고 구성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공관복음서의 공통점 1) 내용(구조)상의 유사성 이 세 권의 책은 공통적인 역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권의 책들은 모두 예수님의 시험과 세례로 시작하고 있으며, 갈릴리에서의 공적 사역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모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그 사역의 전환점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복음서는 모두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시련, 십자가의 수난 사건,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복음서는 모두 복음의 내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 문체와 용어 상의 유사성. 이 세 복음서들은 내용과 구조에 있어서 유사할 뿐 아니라, 사용하는 어휘에 있어서도 매우 비슷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문둥병 자 치유 사건(마 8:1 이하, 막 1:40 이하, 눅 5:12 이하). * 예수의 권위에 대한 질문(마 21:23 이하, 막 11:27 이하, 눅 20:1이하) * 종말론 강화(마 24:4 이하, 막 13ㅣ5 이하, 눅 21:8 이하) * 아리마대 요셉의 요청(마 27:58, 막 15:43, 눅 23:52) 위와 같은 주제에 대해 세 복음서 기자들이 기록한 내용을 보면 이 세 복음서 저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어휘와 용어가 얼마나 유사한지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3) 두 복음서 간의 유사성 * 누가복음에 비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더 유사한 내용들 * 마가복음에 비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더 유사한 내용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세례 요한의 설교(마 3:7-10, 눅 3:7-9) - 두 주인을 섬기는 일(마 6:24-, 눅 16:13) -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탄식(마 23:37-39, 눅 13:34-35) 3. 공관복음의 차이점 그러나 세 복음서 간에는 서로 다른 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와 누가의 예수 탄생 기사가 다르고, 예루살렘을 행한 여행 기사 중에는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것이 많으며(눅 9:51-18:14), 마태복음의 산상 설교와 누가복음의 평지 설교의 내용이 다른 점 등입니다. 4. 공관 복음 문제 그러면 왜 세 복음서간에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이 문제를 가리켜 "공관복음서 문제"라고 부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 동안 수많은 성경 학자들이 고민을 하고 논문을 썼습니다. 이에 대한 감력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다음과 같이 제 홈페이지에 올려진 자료를 찾아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홈페이지 메뉴 중에서 "7. 성경 묵상 자료" 안에 있는 "4복음서 연구(1)"을 클릭한다. 2) 그 안에 있는 자료 중에서 4주 3,4,5일에 올려진 "공관복음서 문제" 부분을 클릭하여 읽어본다.
교리/ C. S. 루이스의 신학 사상은 알미니안적인가요?/ 2015-07-13
교리/ C. S. 루이스의 신학 사상은 알미니안적인가요? Q. 코넬리우스 반틸의 변증학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합니다. 일반적으로 c.s.루이스에 대해서 보수적 복음주의라 평가 받아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이 책에서는 알미니안적인 모습으로 평가 되있는 것 같네요. 루이스의 신학적 관점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반틸의 변증학을 읽다보니 전제에서 출발한 기독교의 변증이 혹 순환 논법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개인적으로는 비판할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러한 비판에 어떻게 변호해야 할지 궁금하기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참.. 이곳의 입장은 칼빈의 개혁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것 맞죠? 아직은 신학에 입문단계라 잘못된 영향력을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진리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이곳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A. * 아래 웹페이지에 접속하시면 c.s 루이스와 프란시스 쉐퍼의 신학 사상을 비교해 놓은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자세히 읽으시면 웨슬리-알미니안 전통의 신학 사상을 가진 신학자들이 루이스를 알미니안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칼빈주의자의 요소와 알미니안주의의 요소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어서 꼭 어디에 속했다고 분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질문은 시간이 날 때에 올리겠습니다. * 루이스와 쉐퍼의 신학 사상(http://www.kcsi.or.kr/news/notice/newsletter/news52/10.html) * 저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물었는데, 저는 총신신대원 졸업자이며 복음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습니다.
교리/ 각 기독교 교단의 교리의 차이점에 대해서/ 2015-07-13
교리/ 각 기독교 교단의 교리의 차이점에 대해서 Q. 축도와 기도의 답변을 읽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각 교단마다 약간씩 다른 기독교교리(예정론, 구원론등)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근거에서 나왔고, 어떤 것이 하나님 말씀과 맞는 교리인지요? 성경과 같이 교리도 불변한 것인지요? A. 다음과 같이 하시면 개신교 안에 있는 각 교파들의 교리나 조직 및 특성을 요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제 홈페이지 하단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보기\"를 클릭한다. 2. 그 안에 있는 질문 중에서 \"4. 왜 교회 안에는 그렇게 많은 교파가 많이 있는가?\"를 클릭한다. 3. 그 안에 있는 내용 중에서 \"4. 개신교의 여러 교파들\"이라고 된 내용을 참고한다. 이 부분에는 루터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교회, 무교회주의 등의 자료가 요약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