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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왜 공동체를 요구하나
21세기는 왜 공동체를 요구하나 2002-01-30 09:42:22 read : 43 21세기는 왜 공동체를 요구하나 하용조목사 8세기 사회 사상의 핵심이 ‘사회 계약’이었다면, 19세기 사회학 창건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공동체’였다. 이 시기에 콩트, 퇴니스, 베버 등이 공동체 연구에 앞장섰다. 20세기 전반에는 두 차례의 전쟁에 휘말려 인류의 내일을 조망할 여유가 없었고, 1950년대 이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극도로 첨예화 됨에 따라 소외된 집단이 늘어가면서 공동체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교회는 공동체 운동의 핵심 역량 공동체의 사상적 맥락은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서 보아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공동체주의적 전통으로, 산업 혁명과 민족 혁명이 일어나고 도시화, 조직화, 전문화 등이 진행되어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안정감과 공동체 이해, 박애와 공동체 정신이 파괴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헤르더, 쉴러, 헤겔, 루소, 마르크스, 퇴니스를 거쳐 니스벳을 비롯한 많은 사회학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개인주의적 전통으로, 근대화를 전통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해방 과정으로 파악하여 인간의 자유와 이성 및 자유로운 의지를 주장하는 흐름이다. 홉즈, 흄, 벤담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의 이론 가운데 퇴니스의 공동체 개념의 유형론적 분석은 공동체적 중세 유럽이 산업화된 근대적 형태로 역사를 이행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탁월한 이론이다. 그는 유럽 사회의 발전은 ‘합일적 공동 사회’로부터 ‘결합적 공동 사회’로, 그 다음에는 ‘결합적 이익 사회’로부터 ‘합일적 이익 사회’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합일적 공동 사회는 혈연, 지연, 친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를 말한다. 결합적 공동 사회는 공통된 일과 소명, 신념에 따라 모인 길드, 동업 조합, 교회, 성직 등을 말한다. 결합적 이익 사회에 이르면 비인격적 경쟁인 이기주의가 점점 지배하는 현상과 함께 인간 관계의 개인화가 심화된다. 그러나 마지막 합일적 이익 사회가 되면 이익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과거 사회의 공동체적 안전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다소 흔들리는 감은 있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잘 짜여진 유럽 사회를 보면 퇴니스의 사회적 전망 네 단계를 이미 거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에 비해 미국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합일적 이익 사회로의 전망이 불투명한 것처럼 보인다. 19세기 사회 사상가들은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을 통하여 얻은 것은 개인 자유와 기계 생산이었고, 잃은 것은 공동체적 삶과 형제애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 역시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21세기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우리는 공동체적 삶이야말로 억압적(공동체주의가 아닌)현대인과 인류가 절실하게 추구하는 미래 사회의 이상적 삶이라는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그러나 퇴니스가 결합적 공동 사회로 분류한 교회마저 경쟁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이익 사회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회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적 이상향을 이 땅에 심어 가야 할 인류 공동체의 유일한 핵심 역량인 교회가 본분을 잊어버리고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공동체 운동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한 물질 문명의 사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철저한 경쟁의 원리가 적용되는 사회이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개인은 늘 희생될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여기서 인간의 소외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병리 현상이 나타난다. 전세계적으로 최강국인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성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그와 동일한 정책 기조에 편승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앞날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자본주의 승리자들 뒤에는 다수의 땀, 눈물, 고통이 그늘진 채로 고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원리를 협동의 원리로 대체하고, 나눔과 연대의 사회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일, 이것만이 사회 전체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와 같은 인식 아래 공동체 운동을 펼쳐가는 다양한 그룹들이 있다. 공동체의 성격과 관련해 가드너라는 학자는 1960년대 이후 미국 공동체 운동을 예로 들어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무정부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하며 구조화되지 않은 공동체이다. 히피운동이 그 예이다. 둘째는 종교적 지향이 강하며 질서가 잡혀 있고 권위주의적이며 위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공동체이다. 부르도프나 후터 공동체가 그 예이다. 캔터라는 학자는 이를 다른 표현으로 은둔 공동체와 봉사 공동체로 표현한다. 은둔 공동체는 외부 사회의 압력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하며 성원들 사이에 가족 같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는 통제 방법을 발전시키기 어렵고 구성원의 헌신도 얻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봉사 공동체는 특정한 범위의 인구에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물론 이 두 가지가 혼합된 경우도 많기에 이 분류 방법은 한계를 갖지만, 공동체의 주요 기조를 분류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우리 나라에서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공동체 운동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시골로 이주하여 생태 마을을 만들어 가는 생태 공동체 운동이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삶의 형태로서 공동 소유, 공동 생산, 공동 소비를 추구하는 소공동체 운동들이 농촌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편 도시에서는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지역 공동체 운동과 아파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지 중심의 공동체 운동도 크게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공동체 운동으로는 댐 건설 반대 운동과 공해 공장 이전 운동 등 지역 주민이 공동의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함께 대응해 나가는 운동이다.동강댐의 경우는 운동 초기부터 교회가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역 이기주의가 스며들 위험이 있고 일시적 목표를 위해 모이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로서의 미래상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협동조합운동으로서의 공동체 운동은 현대 산업 사회의 문제점들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운동이다. 유기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거래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은 도시와 농촌간에 상부상조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과 농촌 지역의 자립성 강화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교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강한 의식성을 바탕으로 좁은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자급 자족적인 공동체 운동들이 있다. 기독교 운동인 두레마을과 비종교 운동인 무주 생태마을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생산 관계에서 인간 소외 그리고 자연 소외의 문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대안을 찾고자 하는 운동들이다. 그러나 폐쇄적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교회가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일으키자 한편 우리 시대의 주된 주거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운동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우리 사회에 아파트가 들어선 지는 35년이 지났고, 그 동안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 의해 도시 지역에서의 아파트 주거는 50%를 넘고 있으며 대도시의 경우는 70%를 넘고 있다. 지금까지의 아파트 공동체 운동은 주로 건축 하자 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관리비 부정 문제와 절감 방법 등에 대한 감시와 관리 차원의 운동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98년 2월 참여연대 아파트공동체연구소가 창립된 것을 비롯하여, 경실련, 녹색 소비자 연대, 녹색연합, 여성 민우회, YMCA 등 시민 단체들은 ‘녹색아파트 만들기’ 등의 명칭으로 아파트 관련 운동들을 펼치면서 이웃 알기, 공동체 마을 만들기,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도 ’99년 3월에 제2건국위원회에서 지역 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자원봉사자 운동과 함께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선정하여 아파트 공동체 운동 관련 사업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시작된 운동이 동아일보와 주거문화21이 펼치고 있는 공동체네트웍국민운동이다. 이 운동의 의의에 대해 양주모 사무처장은 “아파트는 주거 생활의 편리성이라는 큰 혜택을 입주민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고밀도 집합형, 폐쇄성의 특성으로 인해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관심도 없어 공동체 문화 해체라는 중대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의 목적은 아파트 단지마다 홈페이지를 통해 서로를 알고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마을 문화를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 운동에는 250개의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고 운영도 주민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에는 6개 광역시를 대상으로 하여 1,000개의 홈페이지가 제작, 운영될 예정이다. 이 운동은 아파트를 비리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격려와 축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공동체 이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새로 조성되면 인근의 교회들은 경쟁적으로 전도에 열을 올린다. 한 집에 여러 교회의 안내지와 선물이 전달된다. 이같은 전도의 열정도 귀한 것이지만 아파트 주민의 가장 약점인 서로를 알게 해주는 다리의 역할과 소원한 관계에 따뜻한 사랑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동체네트웍국민운동에 이같은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교회 안으로 사람을 데려올 생각에만 매몰되어 있지 말고 세상에 나아가 자신이 사는 지역 주민을 돕는 네트웍 봉사자로 나선다면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 사도로서의 한 역할을 하는 것이리라. 21세기 문턱에서 1세기를 되돌아 보는 까닭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은 교회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 운동의 흐름이다. 이처럼 경쟁과 효율을 시대의 중심축으로 하여 몰아치는 자본주의 격류 속에서도 하나됨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원공동체로의 구심력은 계속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통해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공동체 소명은 무엇인가? 우선 첫 번째는 회개일 것이다. 공동체성서연구원장 김영운 목사는 오늘날 제도 교회의 현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콘스탄틴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제도화된 교회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면서부터는 특히 힘의 우위와 물질적 풍요만이 미덕이요, 축복인양 여기며 살아왔다. 더욱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물질적 자기 이익과 물질적 생존에 관심이 쏠리면서 세상의 가치관이 여과되지 않은 채 교회의 가치관을 압도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성공의 신화’와 ‘성장의 모형’과 ‘힘의 논리’와 더불어 ‘물질적 축복’이 교회 안에서조차 공동체성의 의미와 의의를 거의 퇴색시키고 말았다.” 성공과 돈과 교인 숫자의 위력 앞에서 일시적으로 위축되기는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순결한 신앙 양심과 내면의 신앙 논리마저, 세상적인 성공 논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크리스천 리더십들의 힘 앞에서 굴복한다면 한국 교회의 희망은 없다. 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 섬김과 하나됨을 강조해야 할 리더십들이 경쟁을 부추기는 성공, 고지 점령, 파워 크리스천 등의 구호를 앞세우며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은, 연약한 자를 위로하고 기다려 부축하고 나가야 할 목자의 마음을 저버린 논리가 아닐까? 세상은 남을 밟고 앞서가는 논리로 앞서가더라도, 우리는 세상에서 넘어진 자를 일으켜 더디 가더라도 함께가는 하나됨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할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과 똑같은 논리로 경쟁하는 교회를 세상은 구원의 방주로 생각할 것인가? 지금은 세상의 원리를 따라 우리의 탐욕을 한껏 부풀려온 종교적 껍데기를 벗어놓고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할 때이다. 두 번째는 교회 구조를 ‘목사의 교회’에서 ‘공동체 모두의 교회’로 바꾸어야 한다. 현대 교회의 목회는 전체 그리스도인의 사역이라기보다 안수 받은 목사나 교육받은 전문인이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을 돌보는 사역으로 고착되어가고 있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서로 돌아보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적 공동체이다. 이러한 구조는 네트워크 시대인 21세기가 요구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공동체를 수단화하지 말고 목적화해야 한다. 대형 교회를 관리하는 수단으로서 셀 그룹이나 공동체를 일시 도용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제자 훈련도 지상명령의 성취 이전에 공동체의 완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도시 공동체 쉴터 대표 석금호 목사는 “예수님이 의도한 작은 제자 공동체의 본질은 제자 훈련이 아니라 ‘관계성’이었다. 이것이 예수님 공동체의 본질이었다. 예수님의 바람은 스스로 택한 방식인 공동체를 통해서 영원히 희석되거나 약화되지 않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21세기의 문턱에서 1세기의 사도적 공동체를 되살피고 또 살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에 다니는 이들은 많아도 정말 교회가 무엇인지, 참 예수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 아닐까? 유종성/ 「소금과빛」 기자.
21세기는 왜 공동체를 요구하나?
21세기는 왜 공동체를 요구하나 하용조 목사 8세기 사회 사상의 핵심이 ‘사회 계약’이었다면, 19세기 사회학 창건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공동체’였다. 이 시기에 콩트, 퇴니스, 베버 등이 공동체 연구에 앞장섰다. 20세기 전반에는 두 차례의 전쟁에 휘말려 인류의 내일을 조망할 여유가 없었고, 1950년대 이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극도로 첨예화 됨에 따라 소외된 집단이 늘어가면서 공동체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교회는 공동체 운동의 핵심 역량 공동체의 사상적 맥락은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흐름에서 보아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공동체주의적 전통으로, 산업 혁명과 민족 혁명이 일어나고 도시화, 조직화, 전문화 등이 진행되어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안정감과 공동체 이해, 박애와 공동체 정신이 파괴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헤르더, 쉴러, 헤겔, 루소, 마르크스, 퇴니스를 거쳐 니스벳을 비롯한 많은 사회학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개인주의적 전통으로, 근대화를 전통 사회로부터의 개인의 해방 과정으로 파악하여 인간의 자유와 이성 및 자유로운 의지를 주장하는 흐름이다. 홉즈, 흄, 벤담 등이 이에 속한다. 이들의 이론 가운데 퇴니스의 공동체 개념의 유형론적 분석은 공동체적 중세 유럽이 산업화된 근대적 형태로 역사를 이행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탁월한 이론이다. 그는 유럽 사회의 발전은 ‘합일적 공동 사회’로부터 ‘결합적 공동 사회’로, 그 다음에는 ‘결합적 이익 사회’로부터 ‘합일적 이익 사회’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합일적 공동 사회는 혈연, 지연, 친족을 중심으로 한 사회를 말한다. 결합적 공동 사회는 공통된 일과 소명, 신념에 따라 모인 길드, 동업 조합, 교회, 성직 등을 말한다. 결합적 이익 사회에 이르면 비인격적 경쟁인 이기주의가 점점 지배하는 현상과 함께 인간 관계의 개인화가 심화된다. 그러나 마지막 합일적 이익 사회가 되면 이익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과거 사회의 공동체적 안전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다소 흔들리는 감은 있지만 사회적 안전망이 잘 짜여진 유럽 사회를 보면 퇴니스의 사회적 전망 네 단계를 이미 거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에 비해 미국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합일적 이익 사회로의 전망이 불투명한 것처럼 보인다. 19세기 사회 사상가들은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을 통하여 얻은 것은 개인 자유와 기계 생산이었고, 잃은 것은 공동체적 삶과 형제애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공동체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 역시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21세기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우리는 공동체적 삶이야말로 억압적(공동체주의가 아닌)현대인과 인류가 절실하게 추구하는 미래 사회의 이상적 삶이라는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그러나 퇴니스가 결합적 공동 사회로 분류한 교회마저 경쟁과 이기심이 난무하는 이익 사회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회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적 이상향을 이 땅에 심어 가야 할 인류 공동체의 유일한 핵심 역량인 교회가 본분을 잊어버리고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공동체 운동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철저한 물질 문명의 사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철저한 경쟁의 원리가 적용되는 사회이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개인은 늘 희생될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여기서 인간의 소외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병리 현상이 나타난다. 전세계적으로 최강국인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성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그와 동일한 정책 기조에 편승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앞날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자본주의 승리자들 뒤에는 다수의 땀, 눈물, 고통이 그늘진 채로 고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의 원리를 협동의 원리로 대체하고, 나눔과 연대의 사회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일, 이것만이 사회 전체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와 같은 인식 아래 공동체 운동을 펼쳐가는 다양한 그룹들이 있다. 공동체의 성격과 관련해 가드너라는 학자는 1960년대 이후 미국 공동체 운동을 예로 들어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무정부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하며 구조화되지 않은 공동체이다. 히피운동이 그 예이다. 둘째는 종교적 지향이 강하며 질서가 잡혀 있고 권위주의적이며 위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공동체이다. 부르도프나 후터 공동체가 그 예이다. 캔터라는 학자는 이를 다른 표현으로 은둔 공동체와 봉사 공동체로 표현한다. 은둔 공동체는 외부 사회의 압력에서 벗어나기를 추구하며 성원들 사이에 가족 같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는 통제 방법을 발전시키기 어렵고 구성원의 헌신도 얻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봉사 공동체는 특정한 범위의 인구에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물론 이 두 가지가 혼합된 경우도 많기에 이 분류 방법은 한계를 갖지만, 공동체의 주요 기조를 분류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우리 나라에서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공동체 운동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친화적인 삶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시골로 이주하여 생태 마을을 만들어 가는 생태 공동체 운동이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삶의 형태로서 공동 소유, 공동 생산, 공동 소비를 추구하는 소공동체 운동들이 농촌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편 도시에서는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지역 공동체 운동과 아파트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지 중심의 공동체 운동도 크게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역 현안에 대응하는 공동체 운동으로는 댐 건설 반대 운동과 공해 공장 이전 운동 등 지역 주민이 공동의 이해 관계를 갖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함께 대응해 나가는 운동이다.동강댐의 경우는 운동 초기부터 교회가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역 이기주의가 스며들 위험이 있고 일시적 목표를 위해 모이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로서의 미래상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협동조합운동으로서의 공동체 운동은 현대 산업 사회의 문제점들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비하는 공동체를 통해서 해결하려는 운동이다. 유기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거래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은 도시와 농촌간에 상부상조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과 농촌 지역의 자립성 강화 등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교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강한 의식성을 바탕으로 좁은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자급 자족적인 공동체 운동들이 있다. 기독교 운동인 두레마을과 비종교 운동인 무주 생태마을 등이 그 예이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생산 관계에서 인간 소외 그리고 자연 소외의 문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대안을 찾고자 하는 운동들이다. 그러나 폐쇄적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교회가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일으키자 한편 우리 시대의 주된 주거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운동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우리 사회에 아파트가 들어선 지는 35년이 지났고, 그 동안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에 의해 도시 지역에서의 아파트 주거는 50%를 넘고 있으며 대도시의 경우는 70%를 넘고 있다. 지금까지의 아파트 공동체 운동은 주로 건축 하자 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관리비 부정 문제와 절감 방법 등에 대한 감시와 관리 차원의 운동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98년 2월 참여연대 아파트공동체연구소가 창립된 것을 비롯하여, 경실련, 녹색 소비자 연대, 녹색연합, 여성 민우회, YMCA 등 시민 단체들은 ‘녹색아파트 만들기’ 등의 명칭으로 아파트 관련 운동들을 펼치면서 이웃 알기, 공동체 마을 만들기, 환경 교육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도 ’99년 3월에 제2건국위원회에서 지역 공동체 운동의 일환으로 자원봉사자 운동과 함께 아파트 공동체 운동을 선정하여 아파트 공동체 운동 관련 사업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시작된 운동이 동아일보와 주거문화21이 펼치고 있는 공동체네트웍국민운동이다. 이 운동의 의의에 대해 양주모 사무처장은 “아파트는 주거 생활의 편리성이라는 큰 혜택을 입주민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고밀도 집합형, 폐쇄성의 특성으로 인해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관심도 없어 공동체 문화 해체라는 중대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의 목적은 아파트 단지마다 홈페이지를 통해 서로를 알고 도움을 주고 받음으로써 이웃과 함께하는 따뜻한 마을 문화를 회복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 운동에는 250개의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고 운영도 주민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에는 6개 광역시를 대상으로 하여 1,000개의 홈페이지가 제작, 운영될 예정이다. 이 운동은 아파트를 비리 감시의 대상이 아니라 격려와 축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공동체 이념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가 새로 조성되면 인근의 교회들은 경쟁적으로 전도에 열을 올린다. 한 집에 여러 교회의 안내지와 선물이 전달된다. 이같은 전도의 열정도 귀한 것이지만 아파트 주민의 가장 약점인 서로를 알게 해주는 다리의 역할과 소원한 관계에 따뜻한 사랑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동체네트웍국민운동에 이같은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교회 안으로 사람을 데려올 생각에만 매몰되어 있지 말고 세상에 나아가 자신이 사는 지역 주민을 돕는 네트웍 봉사자로 나선다면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 사도로서의 한 역할을 하는 것이리라. 21세기 문턱에서 1세기를 되돌아 보는 까닭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은 교회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동체 운동의 흐름이다. 이처럼 경쟁과 효율을 시대의 중심축으로 하여 몰아치는 자본주의 격류 속에서도 하나됨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원공동체로의 구심력은 계속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통해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공동체 소명은 무엇인가? 우선 첫 번째는 회개일 것이다. 공동체성서연구원장 김영운 목사는 오늘날 제도 교회의 현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콘스탄틴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제도화된 교회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면서부터는 특히 힘의 우위와 물질적 풍요만이 미덕이요, 축복인양 여기며 살아왔다. 더욱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물질적 자기 이익과 물질적 생존에 관심이 쏠리면서 세상의 가치관이 여과되지 않은 채 교회의 가치관을 압도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성공의 신화’와 ‘성장의 모형’과 ‘힘의 논리’와 더불어 ‘물질적 축복’이 교회 안에서조차 공동체성의 의미와 의의를 거의 퇴색시키고 말았다.” 성공과 돈과 교인 숫자의 위력 앞에서 일시적으로 위축되기는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순결한 신앙 양심과 내면의 신앙 논리마저, 세상적인 성공 논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크리스천 리더십들의 힘 앞에서 굴복한다면 한국 교회의 희망은 없다. 경쟁보다는 협력과 연대, 섬김과 하나됨을 강조해야 할 리더십들이 경쟁을 부추기는 성공, 고지 점령, 파워 크리스천 등의 구호를 앞세우며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은, 연약한 자를 위로하고 기다려 부축하고 나가야 할 목자의 마음을 저버린 논리가 아닐까? 세상은 남을 밟고 앞서가는 논리로 앞서가더라도, 우리는 세상에서 넘어진 자를 일으켜 더디 가더라도 함께가는 하나됨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할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과 똑같은 논리로 경쟁하는 교회를 세상은 구원의 방주로 생각할 것인가? 지금은 세상의 원리를 따라 우리의 탐욕을 한껏 부풀려온 종교적 껍데기를 벗어놓고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할 때이다. 두 번째는 교회 구조를 ‘목사의 교회’에서 ‘공동체 모두의 교회’로 바꾸어야 한다. 현대 교회의 목회는 전체 그리스도인의 사역이라기보다 안수 받은 목사나 교육받은 전문인이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을 돌보는 사역으로 고착되어가고 있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서로 돌아보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적 공동체이다. 이러한 구조는 네트워크 시대인 21세기가 요구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공동체를 수단화하지 말고 목적화해야 한다. 대형 교회를 관리하는 수단으로서 셀 그룹이나 공동체를 일시 도용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제자 훈련도 지상명령의 성취 이전에 공동체의 완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도시 공동체 쉴터 대표 석금호 목사는 “예수님이 의도한 작은 제자 공동체의 본질은 제자 훈련이 아니라 ‘관계성’이었다. 이것이 예수님 공동체의 본질이었다. 예수님의 바람은 스스로 택한 방식인 공동체를 통해서 영원히 희석되거나 약화되지 않는 신뢰와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21세기의 문턱에서 1세기의 사도적 공동체를 되살피고 또 살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에 다니는 이들은 많아도 정말 교회가 무엇인지, 참 예수 공동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 아닐까? 유종성/ 「소금과빛」 기자.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1) 1-50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1) 1-50 1. The great point of Abraham’s faith in God was that he was prepared to do anything for God.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있어서 위대한 점은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뭐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점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 Jesus Christ can afford to be misunderstood. We cannot. Our weakness lies in always wanting to vindicate ourselves. 예수 그리스도는 오해 받으시는 것을 충분히 견디실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의 약점은 언제나 억울함을 신원하고 싶어하는데 있다. (도움의 장소) 3. I have no right to say I believe in God unless I order my life as under His all-seeing Eye. 나의 삶을 주님의 감찰하시는 눈 앞에서 살아가도록 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진짜 제자인가) 4. Beware of reasoning about God’s Word. Just obey it. 하나님의 말씀을 따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단지 순종하라. (진짜 제자인가) 5. Beware of battering the Word of God for a more suitable conception of your own. 당신 자신의 개념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들겨 맞추지 않도록 주의하라. (진짜 제자인가) 6. In every age it has always been the despised crowd that have been called Christians. 모든 시대를 거쳐서 언제나 멸시 받았던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무리들이었다. ( 기독교 제자도 ) 7. Knowledge of what sin is in inverse ratio to its presence. Only as sin goes you realize what it is. 죄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은 죄가 임한 상태와 반비례한다. 오직 죄가 떠날 때 당신은 죄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성경적 윤리) 8. One second of realization ourselves in the light of God means unspeakable agony and distress.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순간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임한다. (최상의 선) 9. There is nothing attractive about the Gospel to the natural man. The only man who finds the Gospel attractive is the man who is convicted of sin. 자연인에게 복음이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복음이 매력적임을 발견하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성경적 윤리) 10. The holiest person is not the one who is conscious of sin, but the one who is most conscious of what sin is. 가장 거룩한 사람은 죄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죄가 무엇인지 가장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다. (최상의 선) 11. Spiritual courage is the high heart that sees the difficult and faces it. That is the courage that is valuable to God. 영적인 담력은 어려움을 보고 직면하는 용기이다. 이러한 용기는 하나님께 귀하다. (예레미야서에 대한 짧은 깨달음) 12. Death to us has become natural, but the Bible reveals it to be abnormal. 우리에게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지만, 성경은 죽음이란 비정상인 것이라고 계시한다. (구속의 심리학) 13. If you want a good time in this world, do not become a disciple of Jesus. 이 세상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원한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말라. (우리의 찬란한 유산) 14. Saving soul is God’s work. Man’s work is disciplining those souls.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구원받은 영혼을 제자답게 훈련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성경적 윤리) 15. Never let the sense of failure corrupt your new action. 절대로 실패 의식이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16. Faith never knows where it is being led, but it loves and knows the One Who is leading. 믿음은 자신이 어디로 이끌리는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이끄시는 그 분을 사랑하고 아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7. The revelation of forgiveness in the Bible is not that God puts snow over a rubbish heap, but that He turns a man into the standard of Himself, the Forgiver. 성경에서 계시하는 용서란 하나님께서 쓰레기 더미 위에 흰 눈을 덮는 개념이 아니라 용서하시는 분이신 하나님 그분의 기준에 맞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18. What is needed today is not a new gospel, but live Christians who can re-state the gospel of the Son of God in terms that will reach the very heart of our problems. 오늘날 필요한 것은 새로운 복음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의 중심을 정확히 지적할 수 있는 용어로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재언급할 수 있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인정 받는 사역자) 19. The Gospel of Jesus Christ awakens an intense craving and an equally intense resentment.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강렬한 열망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반발을 일으킨다. (인정 받는 사역자) 20. It is just as futile to tell a man convicted of sin to cheer up. What he needs is the grace of God to alter him and put in him the well-spring of joy. 죄책감에 빠진 사람에게 힘을 내라고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변화시켜 기쁨의 샘으로 인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경적 심리학) 21. The grace we had yesterday won’t do for today. 어제 받은 은혜가 오늘도 역사하지는 않는다. (실체를 대하면서) 22. God’s grace turns out men and women with a strong family likeness to Jesus Christ.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을 변화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든든한 가족으로 만든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3. God never tells us what He is going to do. But He reveals who He is. 하나님은 우리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실 것인지 절대로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신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4. Nothing happens by chance to a saint, no matter how haphazard it seems. 아무리 우연하게 발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도에게 우연이란 없다. (구속의 심리학) 25. The end and aim of human life is not happiness, but “to glorify God and enjoy Him for ever.” 인생의 목적과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성경적 윤리) 26. Happiness is not a sign what we are right with God. Happiness is a sign of our satisfaction. Jesus Christ disturbs every kind of satisfaction that is less than delight in God. 행복이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행복은 우리의 만족의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이 아닌 모든 종류의 만족을 방해하신다. (만일 완전하려면) 27. The Holy Spirit is the first Being we practically experience but the last Being we come to understand. 성령은 우리가 실제로 가장 먼저 체험하는 분이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다. (성경적 심리학) 28. The Holy Spirit is absolutely honest. He indicates the things that are right and the things that are wrong. 성령은 완벽하게 정직하시다. 성령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지적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9. There is one thing we cannot imitate. We cannot imitate being full of the Holy Spirit. 우리가 흉내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흉내낼 수 없다. (진짜 제자인가) 30. The gifts of the Spirit are not for individual exaltation, but for the good of the whole body of Christ. 성령의 은사들은 개인을 드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 몸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31. God never gives us discernment in order that we may criticize, but that we may intercede. 하나님은 남을 비난하라고 분별력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라고 주신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2. The people who influence us are those who have stood unconsciously for the right thing. They are like the stars and the lilies, and the joy of God flows through them all the time.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옳은 것을 위해 서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마치 별들과 백합처럼 하나님의 기쁨이 언제나 그들을 통하여 흐른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33. It is a great education to try and put yourself into the circumstances of others before passing judgment on them.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당신 자신을 그 사람의 상황 속에 넣어 보고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교육이다. ( 주님 손의 그늘 ) 34. We slander God by our very eagerness to work for Him without knowing Him.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일하는 것은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5. Spiritual sloth must be the greatest grief to the Holy Spirit. Sloth has always a moral reason, not a physical one. 영적 태만은 성령님께 가장 큰 근심임에 틀림없다. 태만은 언제나 신체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도덕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다. (진짜 제자인가) 36. Liberty means ability not to violate the law. License means personal insistence on doing what I like. 자유란 법을 어기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방종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고집이다. (진짜 제자인가) 37. Nothing is too hard for God, no sin too difficult for His love to overcome, not a failure but He can make it a success. 하나님께 어려운 것은 없으며, 주의 사랑이 이기지 못할 큰 죄가 없고, 하나님께서 성공으로 만들지 못할 실패란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38. The principle lust works on is, “I must have it at once, I cannot wait for God’s time, God is too indifferent.” That is the way lust works. 정욕이 우리에게 역사할 때의 원칙은, “나는 당장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하나님은 너무 무관심하다” 라는 것이다. 정욕은 이렇게 역사한다. (죄의 철학) 39. If Christianity does not affect my money and my marriage relationship, it is not worth anything. 만일 기독교가 나의 물질 생활과 결혼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이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도움의 장소) 40. In the moral realm if you don’t do things quickly you will never do them. Never postpone a moral decision. 영적인 영역에 있어서 마땅히 할 일을 신속하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로 그 일들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코 영적인 결단을 미루지 말라. (진짜 제자인가) 41. See that you do not use the trick of prayer to cover up what you know you ought to do.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 그것을 하지 않으려고 꾀부리는 기도를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진짜 제자인가) 42. We have nothing to do with the afterwards of obedience. 우리는 순종 후에 결과에 대하여 관계할 바 없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43. Right feeling is produced by obedience, never vice versa. 바른 감정은 순종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거꾸로 되는 일은 없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44. It is easy to stand fast in the big things, but very difficult in the small things. 큰 일에서 견디는 것은 쉬운데 작은 일에서 견디는 것은 매우 어렵다. (실체를 대하면서) 45. The “show-business” has caused us to drift far from our Lord’s conception of discipleship. “쇼 사업”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제자 훈련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한다. (나도 너를 보내노라) 46. The greatest insult you can offer God is pious talk unless it is backed up by holy actions. 당신이 하나님을 가장 많이 모독하는 때는 거룩한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경건한 말을 할 때이다. (성경적 윤리) 47. We cannot talk to God unless we walk with Him.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48. Prayer not so much alters things as alters the man who prays. 기도는 상황을 바꾸기 보다 기도하는 사람을 바꾼다. (성경적 윤리) 49. Prayer is other than meditation. It is that which develops the life of God in us. 기도는 명상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개발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50. Prayer is God’s answer to our poverty, not a power we exercise to obtain an answer. 기도는 우리의 가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지, 응답을 얻기 위해 휘두르는 힘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2) 51-100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2) 51-100 51. We have to pray with our eyes on God, not on the difficulties. 기도할 때 우리는 어려움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솜씨) 52. The reason for intercession is not that God answers prayer, but that God tells us to pray. 중보기도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진짜 제자인가) 53. In times of prosperity we are apt to forget God. 형통할 때에 하나님을 잊기 쉽다. (최상의 선) 54. Touchstone of truth is not a big intellect but a pure heart. 진리를 분별하는 시금석은 뛰어나 머리가 아니라 깨끗한 마음이다. (성경적 윤리) 55. I have perfect power not to do God’s will, and I have that power by the sovereign will of God. But I can never thwart God’s will ultimately. 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하여 주어졌다. 그러나 긍극적으로 나는 하나님의 뜻을 좌절시킬 수 없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56. It is the process, not the end, which is glorifying to God.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57. When we are born again, we are brought into the realization of God’s great purpose for us. 우리가 거듭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깨닫게 된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58. Thank God for logic and for reason. They are instruments for expressing our life, but our life itself is not reasonable. 논리와 이성이 있기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논리와 이성은 우리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삶 자체는 논리적이지 않다. (구속의 심리학) 59. Never court anything other than the approval of God. 하나님의 인정 외에 다른 인정을 얻으려 애쓰지 말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60. When a man jealously guards his secret life with God the public life will take care of itself. 열정을 다하여 하나님과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지켜나가면 공적인 삶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게 될 것이다. (진짜 제자인가) 61. Be carefully careless about everything saving one thing, that is, your relationship to God. 하나님과의 관계 외에 다른 모든 것에 염려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산상수훈) 62. Paul was devoted to a Person not to a cause. He was absolutely Jesus Christ’s. 바울은 어떤 명목에 헌신한 것이 아니라 인격체에게 헌신하였다.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63. When a man does love his enemies, he knows that God has done a tremendous work in him. 어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게 될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게 된다. (산상수훈) 64. Repentance means that I estimate exactly what I am in God’s sight and I am sorry for it, and on the basis of the Redemption I become the opposite. 회개란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죄송한 마음 가운데 구속을 바탕으로 하여 반대로 변하는 것이다. (더 나은 싸움을 위한 좌절 ) 65. God will do everything I cannot do, but He will do nothing He has constructed me to do. 하나님께서는 내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하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가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삶의 도덕적 토대) 66. The thing that awakens indignation in us is the thing that upsets our present state of comfort. The thing that made Jesus blaze is pride that defies God. 우리 속에 분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의 현재의 안락을 깨뜨리려는 것들이다. 예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이다. (최상의 선) 67. It is impossible to guard our spirit. The Only One who can guard all its entrance is God.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영혼의 모든 입구를 지키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68. Most of us take our salvation much too cheaply.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구원을 너무 값싸게 여긴다. (더 나은 싸움을 위한 좌절) 69. We are to live in heavenly places in Christ Jesus while on this earth and among worldly people. That is the glorious discipline of the sanctified life. 우리는 이 땅에서 세속적인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거룩함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야 하는 영광스러운 훈련이다. (성경적 윤리) 70. The test of sanctification is not our talk about holiness and singing pious hymns, but what we are like where no one sees us. 성화의 시험은 거룩에 대하여 말하고 경건한 찬송을 부르는데 있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있다. (참된 제자) 71. Sanctification is an instantaneous and continuous work of grace. 거룩은 은혜의 순간적이고 또한 연속적인 역사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72. In sanctification the regenerated soul deliberately gives up his right to himself to Jesus Christ. 중생한 영혼은 성화의 과정에서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에 대한 권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양도한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73. Satan does not tempt to gross sins. The one thing he tempts to is putting myself as master instead of God. 사탄은 흉악한 죄악들로 유혹하지 않는다. 그의 한가지 유혹은 하나님 대신에 우리 자신을 주인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참된 제자) 74. Scandal should be treated as you treat mud on your clothes. If you leave it till it is dry you can flick it off with a touch. 비방을 다룰 때는 옷에 묻은 진흙처럼 다루어야 한다. 마를 때까지 두었다고 가볍게 털어내라. (산상수훈) 75. If we dwell much on the Second Coming without having a right spiritual relationship to God, it will make us ignore the need for spiritual tenacity. 하나님과의 바른 영적 관계를 유지함이 없이 (주님의) 재림만 따지고 있다면 이는 영적인 끈기의 필요를 무시하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솜씨) 76. Every religious sentiment that is not worked out in obedience carries with it a secret immorality.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는 모든 종교적 감상은 비밀스러운 영적 부패로 빠지게 된다. (고통의 그림자) 77. It is a slander to the Cross of Christ to say we believe in Jesus and please ourselves all the time, choosing our own way.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언제나 제 멋대로 자신만을 기쁘게 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최상의 선) 78. The Sermon on the Mount is a statement of the life we will live when the Holy Spirit is getting His way with us. 산상수훈은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가 살게 되는 삶을 언급한 것이다. (산상수훈) 79. Remember you are accountable to no one but God. 당신의 삶을 정산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라. (인정받는 사역자) 80. Christian service is not our work. Loyalty to Jesus is our work. 우리가 할 사역은 기독교적인 봉사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역이다. (참된 제자) 81. The three main sensibilities is a man’s life are sex, money and food. They are not sinful. They are plain facts which can be either devilish or sublime. 인간의 삶이 민감하게 느끼는 주된 세 가지는 성과 돈과 음식이다. 이러한 것들은 죄악된 것은 아니지만 악마적으로 되거나 또는 고상하게 될 수 있는 명백한 사실들이다. (고통의 그림자) 82. Whenever you talk about sin, it must be “my” sin. So long as you speak of “sins” you evade Jesus Christ for yourself. 죄에 대하여 말할 때 “내 죄”에 대하여 말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죄악들”을 말하는 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피할 것이다. (참된 제자) 83. The essential nature of sin is my claim to my right to myself. 죄의 근본적인 속성은 내 자신에 대한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이끌어 영광으로) 84. Always beware of an estimate of life which does not recognize the fact that there is sin. 죄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삶의 견해들을 언제나 주의하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85. Sleep is not meant only for the recuperation of a man’s body but also for a tremendous furtherance of spiritual life. 잠이란 신체적인 충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삶의 놀라운 촉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주님 손의 그늘) 86. The Bible characters never fell on their weak points but on their strong ones. 성경의 인물들은 결코 자신의 약점 때문에 실패하지 않고 오히려 강점 때문에 실패하였다. (도움의 장소) 87. It is quite possible to be enchanted with Jesus Christ and with His truth and yet never to be changed by it. 예수 그리스도와 주의 진리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전혀 변화되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도움의 장소) 88. Measure your growth in grace by your sensitiveness to sin. 은혜 가운데 당신의 영적 성장을 측정하고 싶으면 죄에 대하여 얼마나 예민하여졌는가로 측정하라. (참된 제자) 89. There is no snare, or any danger of infatuation or pride in intercession. It is a hidden ministry that brings forth fruit whereby the Father is glorified. 중보기도에는 함정이나 중독이나 교만의 위험이 없다. 중보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는 열매를 자아내는 숨겨진 사역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90. Prayer is not meant to develop us, but to develop the life of God in us after new birth. 기도란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생명을 얻은 후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자라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구속의 심리학) 91. Don’t go to your Bible in a yawning mood. 하품하면서 성경을 읽지 마라. (참된 제자) 92. One way in which Satan comes as an angel of light to Christians today is by telling them there is no need to use their minds. We must use our minds and keep the full power of our intellect. 오늘날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광명의 천사로 찾아오는 방법은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머리를 사용하여 지적으로도 충분한 실력을 가져야 한다. (나도 너를 보내노라) 93. Never put your dream of success as God’s purpose for you. His purpose may be exactly the opposite. 당신의 성공을 향한 꿈을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두지 말라. 하나님의 뜻은 정확하게 정반대일 수 있다. (하나님의 솜씨) 94. We are not called to be successful in accordance with ordinary standards, but in accordance with a corn of wheat falling into the ground and dying. 우리는 세상 기준에서 볼 때 성공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95. When you put God first you will get your times of prayer easily. 당신이 하나님을 첫째로 두면 당신은 기도할 시간을 쉽게 갖게 될 것이다. (참된 제자) 96. A man may be perfected through suffering or be made worse through suffering. It depends on his disposition. 사람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온전하여질 수도 있고 더 악하여질 수도 있다. 이는 그 사람의 성향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도움의 장소) 97. God has no respect for anything we bring Him. He is after one thing only, and that is our unconditional surrender to Him. 하나님은 우리가 그 어떠한 것을 가져가도 감동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 한가지는 주를 향한 우리의 무조건적인 순복이다. (우리의 찬란한 유산) 98. Temptation trains innocence into character or else into corruption. 유혹은 순진한 사람을 좋은 성품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던지 아니면 부패한 성품의 사람으로 타락시킨다. (죄의 철학) 99. Immediately we are born into the Kingdom of God, we get out first introduction into what God calls temptation, viz., the temptations of His Son. 하나님의 나라에서 태어나는 즉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험이라고 부르는 것, 즉 하나님의 아들이 겪은 시험을 먼저 치러야 한다. (구속의 심리학) 100. The central citadel of the devil’s attack is the same in us as it was in our Lord - viz., to do God’s will in our own way.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중심적으로 공격하는 요새는 주님께 하였던 것과 같다. 즉, 내 방법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구속의 심리학)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3) 101-150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3) 101-150 101. It is the trial of our faith that makes us wealthy towards God.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를 풍요하게 하는 것은 믿음의 시련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102. Whenever we put theology before a man’s personal relationship to God, we depart from the Bible line, because religion in the Bible is not faith in the rule of God, but faith in the God who rules.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보다 신학을 앞세울 때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 이유는 성경의 신앙은 하나님의 법칙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주님 손의 그늘) 103. A wrong temper of mind is the most blame-worthy thing there is. It is not only what we say but what we think that tells. 나쁜 기질의 마음은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비난 받아 마땅한 것이다. 나쁜 마음은 말에서 뿐만 아니라 생각에서 나타난다. (나도 너를 보내노라) 104. The great need for the saint is to get his brains at work on the Word of God.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도의 두뇌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사야서 요약) 105. Time is nothing to God. 하나님께 시간이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106. Don’t glory in man, for the best of men are but the best of men. Bank on God alone.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 말라. 최고의 사람이 되어 보았자 사람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께 인정 받기에 힘쓰라. (우리의 찬란한 유산) 107. When we have the simple, childlike trust in God that Jesus exhibited, the overflowing grace of God will have no limits.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이신 어린아이와 같은 진실한 믿음을 하나님께 가지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하게 흘러 넘친다. (최상의 선) 108. Truth is not a system, not a constitution, nor even a creed. The Truth is only the Lord Jesus Christ Himself. 진리는 시스팀이 아니며 기관도 아니고 심지어 신조도 아니다. 진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뿐이시다. ( 그리스도인의 훈련) 109. Un-belief is a fretful, worrying, questioning, annoying, self-centered spirit. To believe is to stop all this and let God work. 불신은 초조, 염려, 의심, 짜증등의 자기 중심적 영이다. 그러나 믿음이란 이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께서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110. When a man is related to God through Jesus Christ, God protects not only the conscious life but the unconscious life as well.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의식적인 삶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삶도 보호하신다. (주님 손의 그늘) 111. Vengeance is the most tyrannical passion of the carnal mind. 복수심은 부패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강력한 열정이다. (성경적 심리학) 112. Don’t vow. If you make a vow and do not keep it, you will reap terrific damage to your own characters. 맹세하지 말라. 맹세를 하고 지키지 않으면, 당신의 성품에 큰 손상이 생긴다. (주의 손의 그늘) 113. Plans made apart from trusting God’s wisdom are rotten.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함이 없이 세워진 계획은 헛수고이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114. The reason we know so little about God’s wisdom is that we will only trust him as far as we can work things out according to our own reasonable commonsense.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이성적인 상식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만 주님을 신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115. The more we talk about work, the less we work, and the same with prayer. 일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할수록 덜 일을 하게 된다. 기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참된 제자) 116. The value of our work depends on whether we can direct men to Jesus Christ. 우리의 사역의 가치는 우리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느냐 하는 점에 달려 있다. (참된 제자) 117. The sign that what we are doing is God’s work is that we experience the supernatural recuperation.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일 때 나타나는 표시는 초자연적인 영적 회복을 체험하는 점이다. (하나님의 솜씨) 118. Worship is giving to God the best He has given us. 예배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것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실체를 대하면서) 119. All our fret and worry is caused by calculating without God. 우리의 모든 초조와 염려는 하나님을 고려치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0. You can never argue anyone into the Kingdom of heaven. The only result of arguing is to prove to your own mind that you are right and the other fellow wrong. 당신은 논쟁을 통해서 사람을 천국으로 가게 할 수 없다. 논쟁의 유일한 결과는 당신의 마음 속에 당신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하는 것 뿐이다. (삶의 도덕적 토대) 121. Put on the whole armor of God and keep continuously practicing, then the wiles of the devil cannot get you unawares.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계속 연습하라. 그러면 마귀의 궤계가 당신 몰래 당신을 사로 잡지 못한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122. Most of the difficult in forming a special habit is that we will not discipline ourselves. 특별한 습관을 만드는데 있어서 대부분의 어려움은 자신을 훈련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123. We waste our time looking for justice for ourselves. We have to see that we always give it to others.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공의를 추구하느라 인생을 낭비한다. 우리는 우리가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공의를 행하고 있는지 주의해야 한다. (최상의 선) 124. Beware of justifying yourself when God alone is the justifier. 하나님만이 의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당신 스스로 의롭다 하지 말라. (갈 바를 알지 못하나) 125. Darkness is our point of view, light is God’s point of view. 어둠은 우리의 관점이며, 빛은 하나님의 관점이다. (삶의 도덕적 토대) 126. Have you ever noticed what Jesus said would choke the word He puts in? The devil? No, the cares of this world. 당신은 주님께서 심으신 말씀을 무엇이 질식시키는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주목하였는가? 마귀라고 말씀하셨는가? 아니다. 세상의 염려라고 말씀하셨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127. Faith in God is a terrific venture in the dark. I have to believe that God is good in spite of all that contradicts it in my experience.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란 어둠 속에서의 대단한 모험이다. 내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선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한다. (더 나은 싸움을 위한 좌절) 128. The only platform from which the holiest saint on earth is ever heard is the platform of the blood of Jesus Christ. 이 땅에서 가장 거룩한 성도의 기도라도 그 기도가 응답되는 유일한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129. Love for the good must involve displeasure and grief for the evil. 선을 사랑한다는 것은 악을 싫어하고 슬퍼하는 것을 포함해야 한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130. It is easier to be true to a conviction formed in a vivid religious experience that to be true to Christ. 그리스도께 충성하기 보다 생생한 체험에 의하여 빚어진 확신에 충성하기가 훨씬 쉽다. (예레미야서 요약) 131. When you are rightly related to God, it is a life of freedom and liberty and delight, you are God\\\\\\\'s will, and all your common-sense decisions are His will for you unless He checks.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맺혀지면 당신의 삶은 자유함과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차게 된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이며, 당신이 상식적으로 내리는 결정들이 만일 하나님께서 특별히 막지 않으신다면 보통 당신을 향한 그분의 뜻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32. We can talk to God only through the right of Jesus Christ’s atonement. There is only one way into the holiest, and that is by the blood of Jesus.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권한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는 길이다. (우리의 찬란한 유산) 133. Loyalty to Jesus Christ is the supernatural work of Redemption wrought in me by the Holy Ghost who shed abroad the love of God in my heart.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은 나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은 바 되시는 성령께서 내 안에 구속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킬 때 나타난다. (하나님의 부르심) 134. Experience is a gateway, not an end. Beware of building your faith on experience. 체험은 과정이지 목표가 아니다. 당신의 믿음을 체험 위에 세우지 않도록 주의하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135. The reason for perplexity in meeting the actual occurrences of life is because we are losing face-to-face contact with Jesus Christ through His Cross. 삶의 현실을 대하면서 혼돈에 빠지는 이유는 주의 십자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면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도움의 장소) 136. You are “more than conqueror” every time, because your heart is being filled with the love of God. 당신의 가슴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당신은 언제나 승리자 이상의 자리에 있다. (성경적 심리학) 137. If you put your trust in human beings first, You will end in despairing of everyone. 만일 당신이 당신의 신뢰를 사람에게 첫번째로 둔다면 당신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138. Faith that is sure of itself is not faith. Faith that is sure of God is the only faith there is. 믿음 그 자체를 확신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만이 유일한 믿음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39. It is not our earnestness that brings us into touch with God, not our devotedness, nor our times of prayer, but our Lord Jesus Christ’s vitalizing death. 우리가 하나님을 접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간절함이나 헌신이나 기도하는 횟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주는 죽음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140. The highest Christian love is not devotion to a work or to a cause, but to Jesus Christ. 최고의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일이나 명분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것이다. (도움의 장소) 141. It is not faith when you trust in what you see. Faith is trusting in what you don’t see, hanging in the God whose character you know. 당신이 보는 것을 신뢰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성품을 붙들고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사야서 요약) 142. When we pray in the Holy Spirit, we begin to realize the resources of God. He is our perfect heavenly Father, and we are His children.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깨닫기 시작한다. 주님은 우리의 완전하신 하늘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143. There is no such thing as God overlooking sin. That is where people make a great mistake with regard to love. 하나님께는 죄를 간과하는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이 사랑에 대하여 가장 큰 실수를 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성경적 심리학) 144. It is a life of faith, not of intellect and reason, but a life of knowing who makes us \\\\\\\"go.\\\\\\\" 믿음의 삶이란 지성이나 이성적인 삶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라”고 하신 그 분을 알아가는 삶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45. We have no faith at all until it is proved through conflict. 갈등을 이기고 증면된 믿음이 아니라면 아직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146. Never pretend to have an answer when you have not. 결코 기도 응답을 받지 않았으면서 응답을 받은 것처럼 행세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도움의 장소) 147. The “cares of this world” will produce worry, and the “lusts of other things” entering in will choke the word God has put in. 세상의 염려는 근심을 만들고 여러 가지에 대한 탐욕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말씀을 질식시킨다. (성경적 심리학) 148. If your right hand hinders you in following His precepts, cut it off. This line of discipline is the sternest one that ever struck mankind. 당신의 오른 손이 당신이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데 방해가 된다면 잘라 버리라. 이 훈련은 사람들에게 가장 혹독한 훈련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149. The greatest demand God makes of us is to believe that He is righteous when everything that happens goes against that faith.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가장 큰 요구는 발생하는 모든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이 의롭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끝까지 주님은 의롭다고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솜씨) 150. The only way to get into the relationship of “asking” is to get into the relationship of absolute reliance on the Lord Jesus. “구하는”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주 예수님을 완벽하게 의존하는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참된 제자)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4) 151-200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4) 151-200 151. When the Holy Spirit comes in He sheds abroad the love of God in our hearts, so that we are able to show our fellows the same love that God has shown to us.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분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으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똑 같은 사랑을 우리의 동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성경학적 심리학) 152. Experience is never the ground of my faith, experience is the evidence of my faith. 체험이 결코 나의 믿음의 바탕이 되어서는 안된다. 체험은 내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다. (믿음의 심리) 153. Prayer sounds stupid, but it is a stupidity based on His redemption. The reason that our prayers are not answered is that we are not stupid enough to believe what Jesus says. 기도는 어리석게 들린다. 그러나 기도는 주님의 구속에 바탕을 둔 어리석음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너를 보내노라) 154. Love never professes. Love confesses. 사랑은 장담하지 않는다. 사랑은 고백한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155. Salvation is not merely deliverance from sin, nor the experience of personal holiness; the salvation of God is deliverance out of self entirely into union with Himself. 구원은 단순히 죄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며 개인의 거룩을 경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주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56. Faith fears nothing because the heart is blazing with the love of God. 믿음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타오르고 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157. The more you go through the trial of faith, the wealthier you will become in the heavenly regions. 당신이 믿음의 연단을 지날수록, 당신은 하늘의 영역에서 더욱 부유하여질 것이다. (산상수훈) 158. As long as you are self-sufficient and complacent, you don’t need to ask God for anything, you don’t want Him. 자아 충족 및 안일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하나님께 구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하나님을 원하지도 않는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159. If you only take your own ideas, you will never know the truth. The whole truth is Jesus Christ. 만일 당신이 자신의 생각만 취한다면 결코 진리를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모든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160. A Christian worker has to learn how to be God\\\\\\\'s noble man or woman amid a crowd of ignoble things. 기독교 사역자는 하찮은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고결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61. God broke the life of His own Son to redeem us, and now He wants to use our lives as a sacrament to nourish others.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아들의 생명을 찢으셨다. 이제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성찬으로 사용하시길 원하신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162. No one hears the call of God who has not the nature of God in him. 자신 안에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없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163. It is God’s will for us to be sons and daughters of God. But He does not prevent us paying the price of being sons and daughters.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녀답기 위하여 치루어야 할 대가를 막지 않으신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164. The burden God places squeezes the grapes and out comes the wine; most of us see the wine only. 하나님께서 지워주시는 멍에는 포도송이를 짓이기게 되며 그 결과로 포도주가 나온다. 우리들 대부분은 포도주만 본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65. To make disciples, you must have been made disciples ourselves. 제자를 삼으려면 당신 자신이 먼저 제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166. The call of God only becomes clear as we obey, never as we weigh the pros and cons and try to reason it out.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순종할 때에만 분명하여진다. 절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가부를 물으며 따지려 하지 말라. (갈 바를 알지 못하나) 167. The Holy Spirit cannot delight in our wisdom. It is the wisdom of God He delights in. 성령은 우리의 지혜 때문에 즐거워할 수 없다. 성령이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168. See everything in God’s perspective. Learn to take the long view of God and you will breathe His benediction among the squalid things that surround you.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라. 하나님의 긴 안목을 배우리. 그러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너저분한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믿음의 심리) 169. Remain loyal to God and to His saints in private and in public. And you will find that not only are you counting on God, but that God is counting on you.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보이는 곳에서나 하나님과 주의 성도들에게 충성하라. 그러면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신뢰하시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움의 장소) 170. The aim of the missionary is to do God\\\\\\\'s will, not to be useful, not to win the heathen. 선교사의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지 유용한 사람이 된다거나 이방인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71. The characteristics of man’s union with God are faith in God and love for Him.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을 때의 특징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다. (성경적 심리학) 172. Satan not only slanders God to us, but accuses us to God.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비방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는 우리를 고소한다. (성경적 심리학) 173. We can see God only from a pure heart, never from an able intellect. 우리는 결코 똑똑한 지능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으로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174. If you want to know God’s original design for man, you see it in Jesus Christ. 만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본래 계획을 알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175. Pentecost made them the incarnation of what they preached--\\\\\\\"Ye shall be witnesses of ME.\\\\\\\" 성령 강림은 그들이 외쳤던 메시지가 그들 자신에게 임하게 된 사건이었다.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176. If we give ourselves over to Satan, there is no end to the growth in devilishness. If we give ourselves over to God, there is no end to our growth in grace. 우리 자신을 사탄에게 주면 마귀와 같은 모습으로 무한하게 닮아간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면 은혜 가운데 무한하게 자란다. (성경적 심리학) 177. No human being can ever give you satisfaction. When I demand it from others and do not get it I become cruel and spiteful. 그 어떤 사람도 당신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만족을 요구하고 그것을 얻지 못하면 나는 잔인하여지고 심술궂게 된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178. In the Bible, “world” means the system of religion or of society or of civilization that never takes Jesus Christ into account. 성경에서 “세상”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고려치 않은 종교, 사회, 문명 시스템을 의미한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179. When we come up against the dark forces at work in the world we are paralyzed by fear and get into despair. But we need never do if we are built up in faith in God who is sovereign. 이 세상에서 어두움의 세력이 역사하는 것을 겪게 되면 우리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마비되고 절망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이사야서 요약) 180. To love God with all my heart means to be weaned from the dominance of earthly things as a guide.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의 것들에 더 이상 이끌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181. The nearer we come to God in intercession the more we recognize our entire unworthiness. 중보기도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 자신이 전적으로 무가치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182. Love requires careful developing. Love won’t stay if it is not sedulously cultivated. 사랑은 세심한 개발이 필요하다.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경작하지 않으면 사랑은 머물지 않는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183. The one thing Satan tries to shake is our confidence in God. It is not difficult for our confidence to be shaken if we build on our experience. 사탄이 흔들어 놓기 원하는 한가지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확신이다. 우리의 확신이 체험에 있을 때 그 확신이 흔들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순례자의 노래) 184. We are not judged by the fact that we live up to the light of our conscience. We are judged by the Light - Jesus Christ. 우리는 양심의 빛에 따라 살지 못한 사실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심판 받는다. (도움의 장소) 185. God so loves the world that He hates sin in it. Do I so love men and women that I hate sin in them?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 속의 죄를 미워하신다. 나는 사람들을 매우 사랑하기에 그들 속의 죄를 미워하는가? (주의 형상을 본받아) 186. It is not our trust that keeps us. It is the God in whom we trust who keeps us. We are always in danger of trusting in our trust, believing our belief, having faith in our faith. 우리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신뢰가 아니다. 우리는 지키는 분은 우리가 신뢰하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신뢰를 신뢰하고 우리의 의지함을 의지하며 우리의 믿음을 믿는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순례자의 노래) 187. The root of faith is the knowledge of a Person, and one of the biggest snares is the idea that God is sure to lead us to success. 믿음의 뿌리는 그분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이다. 가장 큰 함정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성공시키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188. Live a natural life of absolute dependence on Jesus Christ.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온전하게 의지하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삶을 살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189. We are shy with God not because we are unworthy, but because we think God has not given enough consideration to our case. 우리는 우리가 무가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일에 충분한 고려를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190. A little child is certain of its parents, but uncertain about everything else, but it lives a perfectly delightful healthy life. 어린 아이는 부모님만 확신하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하여 확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기쁘고 건강한 삶을 산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191. No love of the natural heart is safe unless the human heart has been satisfied by God first. 사람의 마음이 먼저 하나님에 의하여 만족되지 않으면 그 마음의 자연적인 사랑은 안전하지 않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192. Satan cannot shake the fact that God remains faithful. 사탄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흔들 수 없다. (순례자의 노래) 193. If we base our philosophy on reason, we shall produce a false philosophy. But if we base it on faith in God, we can begin to expound life rightly. 우리가 이성에 우리의 철학을 세우면 우리는 틀린 철학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을 세워가면 우리는 삶을 바르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더 나은 싸움을 위한 좌절) 194. It is righteous behavior that brings blessing on others. The heart of faith sees that God is working things out well.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가져오는 것은 의로운 행위이다. 믿음의 중심은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시는 것을 본다. (순례자의 노래) 195. If you are living a life right with God, you will have feeling, most emphatically so, but you will never run the risk of basing your faith on feelings.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면 당신은 가장 강력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당신은 당신의 믿음을 느낌에 의존하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성경적 윤리) 196. This is the condemnation, that light is come into the world, and men loved the darkness rather than the Light. 정죄는 이것이니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은 빛보다는 어둠을 사랑한 것이다. (도움의 장소) 197. The marvel of the Gospel of God’s grace is that Jesus Christ can make us what He wants us to be.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의 놀라운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만드실 수 있다는 것이다. (최상의 선) 198. Certainty is the mark of the common-sense life. Gracious uncertainty is the mark of the spiritual life. They must both go together. 확실성은 상식적인 삶의 표지이다. 영적인 삶의 표지는 은혜로운 불확실성이다. 이 둘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199. Men are not judged by the light they have, but by the Light they have refused to accept. 사람들은 자신들의 양심에 빛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빛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다. (도움의 장소) 200. The essence of Christianity is that we give the Son of God a chance to live and move and have His being in us. 기독교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우리 안에서 살고 움직이고 거하실 기회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5) 201-250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5) 201-250 201. When once God’s mighty grace gets my heart wholly absorbed in Him, every other love of my life is safe.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나의 마음을 사로 잡아 주님께 온전히 빠지게 되면 내 삶의 모든 다른 사랑은 안전하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202. The reason faith is starved in your soul is that you are not in contact with Jesus. Get in contact with Him and lack of faith will go in two seconds. 당신의 영혼 속에서 믿음이 기갈되는 이유는 예수님과 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접하라. 믿음의 결핍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믿음의 심리) 203. Satan was the originator of sin, Adam was not. But the moment a man places his faith in the devil and disobeys God, the connection with God is shut off. 죄의 근원은 아담이 아니라 사탄이다. 사람이 마귀를 믿고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된다. (성경적 심리학) 204. Many today are spending and being spent in work for Jesus Christ, but they do not walk with Him.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지만 주님과 동행하지는 않는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05. Faith is not what I see God, but that I know God sees me. 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06. The strength of life is not in the certainty that we can do the thing, but in the perfect certainty that God will. 힘찬 삶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확신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완벽한 확신에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07. The great enemy of the life of faith in God is not sin, but the good which is not good enough. The good is always the enemy of the best.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원수는 죄가 아니라 충분치 못한 차선이다. 차선은 언제나 최선의 원수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08. Prayer is an effort of will and the great battle in prayer is the overcoming of mental wool-gathering. 기도는 의지적인 노력이다. 기도에 있어서 가장 큰 싸움은 정신적 산만함을 극복하는 것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209. The river of the Spirit of God overcomes all obstacles. Never get your eyes on the obstacle or on the difficulty. 하나님의 성령의 강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 절대로 당신의 시야를 장애물 또는 어려움에 고정시키지 말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210. The Christian revelation is that God is a personal Being and He is good. By “good,” I mean morally good. 기독교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이며 그분은 선하시다. “선하다”는 의미는 도덕적으로 선하시다는 뜻이다. (성경적 윤리) 211. God will not give us good habits, He will not give us character, He will not force us to walk aright. We have to work out the salvation God has worked in us. 하나님께서는 좋은 습관 및 성품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신다. 우리로 하여금 강제로 바르게 걷도록 하지도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신 구원을 힘써 나타내야 한다. (산상 수훈) 212. We talk glibly forgiving when we have never been injured. When we are injured we know that it is impossible, apart from God’s grace, for one human being to forgive another. 피해를 입지 않았을 때는 용서에 대하여 멋있게 말한다. 그러나 피해를 입으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움의 장소) 213. The love of God gives us a new method of seeing Nature. We see Him in the rising sun, and in the setting He is fair. In the singing of the birds, in the love of human hearts, the voice of God is in all. 하나님의 사랑은 자연을 새롭게 보게 한다. 돋는 태양과 지는 석양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들과 사람들의 사랑스런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가득히 들을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14. Faith is not rational, therefore it cannot be worked out on the basis of reason. It can only be worked out by living obedience. 믿음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성에 기반을 두고 역사할 수 없다.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만 역사할 수 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15. When God’s call comes, I have to do at once what He tells me, taking no thought for the morrow.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미래를 생각하지 말고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당장 행하여야 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16. The bedrock of our Christian faith is the unmerited, fathomless marvel of the love of God exhibited on the cross of Calvary.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반석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보이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은혜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17. Spiritual sulks arise because we want something other than God. We want God to give us something to make us feel well. 영적인 못마땅함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할 때 발생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주시길 원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18. Discipline has to come through all the things we believe in order to turn them into real spiritual possessions. 우리가 믿는 모든 것들이 실제적인 영적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연단을 지나야 한다. (도움의 장소) 219. Sometimes there is nothing to obey, the only thing to do is to maintain a vital connection with Jesus Christ, to see that nothing interferes with that. 가끔 특별하게 순종할 만한 것이 없을 때도 있다. 이러한 때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주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고 계속 주님과의 활기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20. Spiritual character is only made by standing loyal to God’s character no matter what distress the trial of faith brings. 믿음의 시련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충성할 때에 영적인 성품이 만들어진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221. Our Lord was never in a hurry with the disciples. He kept on sowing the seed whether or not He reaped their understanding. 우리 주님은 결코 제자들에게 서두르신 적이 없으셨다. 주님은 제자들이 이해하던 말던 계속 씨를 심으셨다. (주가 되시는 종) 222. We must have faith in God, not in His gifts. 우리는 하나님께 믿음을 가져야지 하나님의 은사에 믿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23. “Do you love Me? Then feed My sheep.” - Identify yourself with My interests in other people, not identify Me with your interests in other people.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나의 양을 먹이라.” 즉, 다른 사람에 대한 너의 관심에 나를 일치시키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향한 나의 관심에 네 자신을 일치시키라. (그리스도인이 훈련) 224. Atonement takes away fearfulness and unbelief, and brings us back again into the relationship of faith and love to God. 속죄는 두려움과 불신을 제거하고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과 믿음과 사랑의 관계로 돌아오게 한다. (성경적 심리학) 225. God did not create man as a puppet to please a despotic idea of His own. He created us out of the superabundant flow of overflowing love and goodness. 하나님은 자기 맘대로 우리를 주물럭거리시며 오직 자기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꼭두각시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분의 차고 넘치는 사랑과 선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26. When the love of God is in me I must learn how to let it express itself. I must educate myself in the matter. It takes time.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을 때 나는 그 사랑이 그 자체를 나타낼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하여 내 자신을 교육하여야 한다. 이러한 교육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도움의 장소) 227. If my love to God is not dominant, my love may prove to be lust. 만일 하나님께 대한 나의 사랑이 우세하지 않으면 나의 사랑은 정욕이 되어 버릴 것이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228. The thing that tells in the long run for God and for men is the steady persevering work in the unseen, and the only way to keep the life uncrushed is to live looking to God. 결국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꾸준하게 인내하는 것이다. 짓눌리지 않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29. Can you trust Jesus Christ where your common sense cannot trust Him? 상식적으로는 주님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가?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230. Never consider whether you are of use; but ever consider that you are not your own but His. 당신이 유용한가 아닌가를 절대로 고려하지 말라. 단지 당신은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항상 생각하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231. Most of us are pagans in a crisis, only one out of a hundred is daring enough to bank his faith in the character of God. 우리는 대부분 위기를 당하면 이방인이 된다. 오직 극소수의 사람만이 위기 가운데 과감하게 하나님의 성품을 믿는다. (산상수훈) 232. Whenever we take what God has done and put it in the place of Himself, we instantly become idolaters.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을 취하여 하나님 자리에 대신할 때 그 즉시 우리는 우상 숭배자가 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33. If the mainspring of your service is love for God, no ingratitude, no sin, no devil can hinder you from serving your fellow-men, no matter how they treat you. 당신의 섬기는 동기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라면 배은 망덕이던, 죄악이던, 사탄의 역사던,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이, 당신은 계속 사람들을 섬길 수 있다. (성경적 심리학) 234. Repentance brings us to the place where we are willing to receive any punishment from God as long as the law we have broken is justified. 회개는 자신이 율법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부터 기꺼이 형벌을 받겠다는 자리에 가는 것이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235. The impossible is exactly what God does.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정확하게 불가능한 일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36. The love of God performs a miracle of grace in graceless human hearts.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가 전혀 없는 인간의 마음에 은혜의 기적을 일으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37. Many of us are loyal to our notions of Jesus Christ, but how many of us are loyal to Him?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짧은 생각에 충성한다. 그러나 과연 주님께 충성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주님은 나의 최고봉) 238. Repentance involves the receiving of a totally new disposition so that I never do the wrong this again. 회개는 완전히 새로운 성향을 받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다시는 같은 죄악을 범치 아니한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239. Take an absolute plunge into the love of God, and when you are there you will be amazed at your foolishness for net getting there before. 하나님의 사랑에 푹 빠지라. 그러면 전에 그 자리에 가지 않으려던 당신 자신의 어리석음에 놀라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240. When I love Jesus Christ supremely so that all other loves are hatred in comparison, then He can trust me with the hundredfold more because the interest of self-love no longer rules. 예수 그리스도를 최상으로 사랑하고 다른 모든 사랑을 비교적 미워할 때, 주님께서는 이제 내가 더 이상 자기 사랑에 대한 관심이 다스리지 않는 것을 아시고 백배로 맡기실 수 있다. (하나님의 솜씨) 241. People go wrong spiritually because they stubbornly refuse to discipline themselves physically, mentally.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을 고집스럽게 거부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잘못된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42. One of the greatest strains in life is the strain of waiting for God. 인생에 있어서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43. It is not the question of the surrender of soul for sanctification, but the unreserved surrender of a sanctified soul to God. 거룩함을 위하여 영혼을 내어 드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룩케 된 영혼을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문제이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244. No man can believe God unless God is in him. 어떤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45. There is no end to His grace if we will keep in the humble place. 우리가 겸손한 자리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끝이 없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246. Holiness, like sin, is a deposition, not a series of acts. 거룩이란, 죄성처럼, 어떤 연속적인 행위들이 아니라 하나의 성향이다. (믿음의 심리) 247. Religious enterprise that has not learned to rely on the Holy Spirit makes everything depend on the human intellect. 성령님께 의지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종교 기관은 모든 면에서 인간의 지식만을 의지한다. (성경적 윤리) 248. Until we know God, we have no faith.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의 솜씨) 249. The basis of Jesus Christ’s religion is the acceptance of a new Spirit, not a new creed, and the first thing the Holy Spirit does is to awaken us out of sleep. 기독교의 기초는 새로운 신조가 아니라 새 영을 받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제일 먼저 사람들을 잠에서 깨우시는 일을 하신다. (성경적 윤리) 250. We ought to love the most what is best. The Spirit of God in us can teach us how to love the best. 우리는 최상의 것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최상의 것을 사랑할 수 있는지 가르치신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6) 251-300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6) 251-300 251. Faith is not the means whereby we take God to ourselves, faith is the gift of God whereby He fulfills His purposes through us. 믿음이란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오시게 하는 수단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은 믿는 우리를 통하여 주의 목적을 이루신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52. When we know the love of God, we shall see the highest possibilities in each other, and shall love each other for what God will yet make of us.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우리는 서로의 최고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이루실 일을 바라보며 사로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53. The love which springs from self-interest ends in being cruel because it demands an infinite satisfaction from another human being which it will never get.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은 결국 잔인하게 된다. 그 이유는 결코 인간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무한한 만족을 인간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솜씨) 254. Religion in the Bible is not faith in the rule of God, but faith in the God who rules. 성경의 신앙은 하나님의 법칙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주님 손의 그늘) 255. Once we learn to walk in the light of the Lord, bitterness and contention are impossible. 주님의 빛 가운데 걷는 것을 배우게 되면 증오와 사나움은 불가능하다. (성경적 심리학) 256. Seen apart from God, the clouds are accidents, but when seen as from the Spirit of God they become our teachers which show us how to walk by faith. 하나님이 없이 구름을 보면 우연히 발생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성령으로 구름을 보면 어떻게 믿음으로 걷는지를 보여주는 선생이 된다. (하나님의 솜씨) 257. Faith is faith in the Redemption and in the indwelling Spirit of God. 믿음은 구속과 내주하시는 성령을 믿는 것이다. (실체를 대하면서) 258. If my desire for the salvation of souls is the evangelical commercial craze, may God blast it out of me by the fire of the Holy Ghost. 영혼 구원을 위한 나의 열정이 복음적 상업주의적 붐을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내 안의 그러한 악한 마음을 태우시길 바란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259. The best example of a lover of men is Jesus Christ, and the mainspring of His love for men was His love for God. 사람을 가장 사랑했던 최고의 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사람을 사랑했던 주된 동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솜씨) 260. Never look for other people to be holy. It is a cruel thing to do, and it distorts your view of yourself and of others. 거룩한 사람을 찾아 다니지 말라. 비참을 겪게 될 것이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잘못된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삶의 도덕적 토대) 261. There is such a thing as commercialism in souls as there is in business. 세상에 사업이 있는 것처럼 영혼 장사꾼들이 있다. (만일 당신이 완전하려면) 262.When you are in darkness, do not say “This is the devil. I have no business to be in darkness.” There are things God cannot explain to you. 어두움에 처할 때 “이것은 마귀의 짓이야. 내가 이러한 어두움에 처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어” 라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사야서 요약) 263. Begin to trace the finger of God and the love of God in the great calamities of earth, and in the calamities that have befallen you. 이 땅에 큰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또한 당신에게 재난이 임하였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손길의 흔적을 찾기 시작하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64. The best measure of a spiritual life is not its ecstasies, but its obedience. 영적인 삶의 최고의 진단은 황홀함이 아니라 순종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65. Thousands of people are happy without God in this world, but that kind of happiness and peace is on a wrong level.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행복과 평강은 잘못된 선상에 있는 것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266. If our hopes are being disappointed just now, it means that they are being purified. 만일 우리의 소망이 지금 좌절되고 있다면 이는 그 소망이 정결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67. Do not live at a distance from God, live near Him, delighting yourself in Him. 하나님과 거리를 두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68. Sacrifice is the exuberant passionate love-gift of the best I have to the one I love best. 희생이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것을 즐거운 사랑의 열정으로 선물하는 것이다. (삶의 도덕적 토대) 269. It seems stupid to think that we can pray and all that will happen, but remember to whom we pray. 우리가 기도할 수 있고 또한 기도한대로 모든 것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기억하라.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270. The springs of love are in God, not in us. It is absurd to look for the love of God in our natural hearts. 사랑의 샘은 우리 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찬란한 유산) 271. God will never allow you to hold a spiritual blessing for yourself.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 자신만을 위하여 영적인 축복을 붙들고 있는 것을 허락치 아니하신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72. Remove all barriers of selfishness and fear, and plunge into the fathomless love of God. 이기심과 두려움의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푹 빠지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273. Could anyone have had a sterner view of sin than Jesus had, and yet had anyone a more loving, tender patience with the worst of men than He had? 그 누가 예수님보다 죄에 대하여 엄격한 관점을 가질 수 있겠는가? 누가 예수님보다 더 예수님께서 가장 악한 자에게 보이신 사랑과 온유하신 인내를 지닐 수 있겠는가? (삶의 도덕적 토대) 274. Sin is a disposition of self-love that rules the life apart from God. 죄란 하나님 없이 삶을 꾸려가려는 자기-사랑의 성향이다. (죄의 철학) 275. A spiritual blessing has to be given back to Him that He may make it a blessing to others. If you hoard it, it will turn to spiritual dry rot. 영적인 축복은 다시 하나님께 바쳐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축복을 깔고 앉고 있으면 당신은 영적으로 썩은 마른 뼈가 될 것이다. (갈 바를 알지 못하나) 276. Jesus Christ came to send a sword through every peace that is not based on a personal relationship to Himself.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뿌리를 두지 않은 모든 평강에 칼을 대시기 위하여 이곳에 오셨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277. If God were love according to our natural view of love He ought never to cause us pain. He ought to allow us always to be peaceful. 인간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사랑이라면, 그분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면 안되고 언제나 평화만 주셔야 한다. (이사야서 요약) 278. God loves the man who needs Him most. 하나님은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279. God will bring around us any number of people we cannot respect, and we have to exhibit the love of God to them as He has exhibited it to us.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변에 우리가 귀히 여길 수 없는 여러 사람들을 두신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셨던 하나님의 그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야 한다. (우리의 찬란한 유산) 280. Keep praying in order to get a perfect understanding of God Himself. 하나님 그분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하여 계속 기도하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281. The Atonement does not mean that God forgives a sinner and allows him to go on sinning and receiving forgiveness. It means that God saves the sinner and turns him into a saint. 속죄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셔서 맘껏 죄를 짓도록 허락하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속죄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셔서 성자(saint)로 만드시는 것을 의미한다. (죄의 철학) 282. Human love may illustrate the Divine, it is not identical with the Divine love because of sin.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예는 되지만, 죄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종류가 될 수 없다. (도움의 장소) 283. God overlooked one sin in me, He would cease to be God. 내 속에 있는 단 하나의 죄라도 하나님께서 간과하신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284. Love is not blind. Love sees a great deal more than the actual. If you love someone you are not blind to his defects but you see the ideal which exactly fits that one. 사랑은 눈이 먼 것이 아니다. 사랑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본다. 만일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당신의 눈에 그의 단점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그 사람의 이상을 보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285. All God asks of men is that they acknowledge they are not right, then He will do all the rest.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자신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나머지를 알아서 하신다. (삶의 도덕적 토대) 286. God’s own love is so strange to our natural conceptions because of our sin.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우리에게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도움의 장소) 287. When we are abandoned to God, He works through us all the time.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하게 바쳐질 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통하여 일하신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288. We impoverish God in our minds when we say there must be answers to our prayers on the material plane. The biggest answers to our prayers are in the realm of the unseen. 보이는 물질의 선상에서 우리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되어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기도에 대한 최대의 응답들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주어진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289. When I am saved by God’s almighty grace I am delivered completely from what He has condemned.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로 구원을 받으면 나는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삶으로부터 완전하게 구출 받는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290. There is no such thing as being neutral, we are either children of God or of the devil. 중간이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아니면 마귀의 자녀이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291. The judgments of God leaves scars, and the scars remain until I humbly and joyfully recognize that the judgments are deserved. 하나님의 심판은 상처를 남기는데, 그 상처는 내가 겸손하게 기쁨으로 주의 심판이 마땅한 것이라고 인정할 때까지 남게 된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292. Give thanks to God that He is there, no matter what is happening.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니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라.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293. God will surround us with ample opportunity of doing to others as He has done to us.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들로 우리 주변을 채우신다. (산상수훈) 294. God sees all our crudities and defects, but He also sees the ideal for us. He sees “every man perfect in Christ Jesus,” consequently He is infinitely patient.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누추함과 단점을 보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향한 이상을 보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한 모든 사람들”을 보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무한하게 인내하신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295. Not until we are awakened by the conviction of our sin and anarchy do we realize God’s great love towards us “while we were yet sinners.” 우리의 죄와 반란에 대하여 죄책감을 갖고 영적으로 깨어야만 우리는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도움의 장소) 296. God gives me a revelation of my own pride and bad motives towards Him. 하나님은 주님을 대항하는 나의 교만과 악한 동기를 드러내신다. (우리의 찬란한 유업) 297. The first Adam, the federal head of the race, swung the race on the basis of wrath, and Jesus Christ, the last Adam, swung the human race back on to the basis of love. 인류의 언약적 대표인 첫째 아담은 인류를 진노 가운데 쳐 넣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인류를 사랑의 반석 위에 올려 놓으셨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298. Paul did not say that God separated him to show what a wonderful man He could make of him, but “to reveal His Son in me.”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를 말하기 보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아들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를 따로 구별하셨다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299. Never take your obedience as the reason God blesses you. Obedience is the outcome of being rightly related to God. 하나님께 축복 받기 위해서 순종하지 말라. 순종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오는 결과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00. What hinders me from hearing is that I am taking up with other things. It is not that I will not hear God, but I am not devoted in the right place. 다른 뭔가에 사로 잡혀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안 들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다른 곳에 빼앗겨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7) 301-370
English Sayings by Chambers(챔버스의 명언)(7) 301-370 301. When you are in the dark, listen, and God will give you a very precious message. 당신이 어두움에 있을 때 들으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아주 귀한 메시지를 주실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02. It may be hard for a rich man to enter into the Kingdom of heaven, but it is just as hard for a poor man to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부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03. In a conflict of loyalty, obey Jesus Christ at all costs. 충성에 갈등이 생길 때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순종하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304. Do not pray with your motive to be known as a praying man. Have no other motive than to let your Father in heaven know your prayer. 기도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위해 기도하지 말라. 오직 하늘의 아버지만이 당신의 기도를 알게 하라. (산상 수훈) 305. Look back over your own history as revealed to you by grace, and you will see one central fact growing large - God is love. 은혜 가운데 당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라. 단 한가지 사실만이 크게 보일 것이다.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306. Are we prepared to set ourselves apart for the Holy Spirit\\\\\\\\\\\\\\\'s ministrations in us?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따로 구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주님은 나의 최고봉) 307. Do not say, “I am here because I am so useful.” But say “I am here because God wants me here.” “내가 이곳에서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말라. 대신 “하나님께서 내가 이곳에 있기를 원하시니 내가 이곳에 있다” 고 말하라.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08. God will not bring every thought and imagination of ours into captivity. We have to do it. That is the test of spiritual concentration.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상상을 바르게 잡아주시지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한다. 이것이 영적 집중력에 대한 시험이다. (삶의 도덕적 토대) 309. Whisper it to your heart in the hour of darkness that God is love. 어둠의 시간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당신의 마음 속에 속삭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310. The one and only characteristic of the Holy Ghost in a man is a strong family likeness to Jesus Christ, and freedom from everything that is unlike Him. 성령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뚜렷하고 유일한 특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만들면서 예수님과 관계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는 점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11. It is never wise to underestimate an enemy. We look upon the enemy of our souls as a conquered foe. So he is, but only to God, not to us. 원수를 과소 평가하는 것은 결코 지혜롭지 않다. 우리는 우리 영혼의 원수를 이미 정복된 적으로 본다. 그렇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패배자이지 우리에게 패배자는 아니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12. It is the work that God does through us that counts, not what we do for Him.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13. Impulse in anyone but a child is dangerous. It is the sign of someone unstable and unreliable. 어린아이가 아닌 사람이 충동적일 경우 위험하다. 불안정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시는 충동이다. (성경적 심리학) 314. We may have the fulfillment of our ambitions, we may have love and money, yet there is the sense of something unfulfilled. 야망이 이루어지고 사랑과 돈이 있어도 여전히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315. We love the lovely because it is flattering to us to do so. God loves the unlovely, and it broke His heart to do it. 우리는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한다. 그 이유는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은 찢어진다. (최상의 선) 316. Sanctification means being made one with Jesus so that the disposition that ruled Him will rule us. 거룩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 예수님을 다스렸던 성향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17. When you fear God you fear nothing else, whereas if you do not fear God you fear everything else. 하나님을 경외하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18. Love is to make life worth living, bus sin is to curse life. 사랑은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지만, 죄는 인생을 저주스럽게 만든다. (최상의 선) 319. Whenever there is doubt, quit immediately, no matter what it is. Nothing is a mere detail. 의심이 생기면 무엇이던 당장 멈추라.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무시하고 지나가서는 안된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20. The depth of the love of God is revealed by that wonderful word, “whosoever.” The Bible reveals God to be the Lover of His enemies.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는 “누구든지” 라는 놀라운 단어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분으로 계시한다. (최상의 선) 321. The fundamental revelation made in the Bible is that God redeemed the human race when we were spitting in His face. 성경에서 가장 근본적인 계시는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셨다는 사실이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322. Sanctification means intense concentration on God\\\\\\\\\\\\\\\'s point of view. 거룩이란 하나님의 관점에 열정적으로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23. The devil is a bully, but when we stand in the armor of God, he cannot harm us. If you tackle him in our own strength we are soon done for. 마귀는 깡패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갑옷을 입고 서면 그는 우리를 해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마귀와 겨루면 즉시 끝장 난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24. A heartless Christian must be a terrible grief to God.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가장 큰 슬픔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25. The love of God is not an earning or a working for, but a gift and a receving. 하나님의 사랑은 돈으로 사거나 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선물이며 받는 것이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326. God does not guard the natural heart that does not worship Him.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마음을 보호하지 않으신다. (창세기에서 우리의 모습) 327. When communion with God is severed the basis of live is chaos and wrath. The chaotic elements may not show at once, but they will presently.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면 인생은 혼돈과 분노 가운데 빠진다. 당장 혼돈스러운 요소들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어도 곧 나타나게 될 것이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328. A stoic overcomes the world by making himself indifferent, by passionlessness. The saint overcomes the world by the passion of his love for Jesus Christ. 금욕주의자는 자신을 무감각하고 열정없는 존재로 만들어 세상을 정복한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세상을 이긴다. (최상의 선) 329. Wandering thoughts in prayer do not come through supernatural agents, but through lack of concentration. 기도할 때에 쓸데없는 생각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집중력의 부족 때문에 온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330. The fundamental fact is that supreme love for our Lord alone gives us the motive power of service to any extent for others.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주님만을 향한 최상의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331. The more impulsive you are, the less concentrated you will be. 충동적일수록 덜 집중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332. When a man turns to God, chaos is turned into cosmos, wrath into love, distress into peace.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서면 혼돈은 질서로, 분노는 사랑으로, 근심은 평강으로 바뀌게 된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333. Faith is deliberate commitment to a Person where I see no way. 믿음은 다른 방법으로는 만나 뵐 수 없는 주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34. Get into the habit of saying, \\\\\\\\\\\\\\\"Speak, Lord,\\\\\\\\\\\\\\\" and life will become a romance. \\\\\\\\\\\\\\\"주님, 말씀하소서\\\\\\\\\\\\\\\" 라고 말하는 습관을 가지라. 그러면 인생은 사랑의 연주곡이 될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35. God is pointing out that we have not been interested in Himself, but only in His blessing.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관심을 가질 때 이를 지적하신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36. The world can shut the mouth of the man who has faith in God, but it cannot get away from the fact that he is being kept by God. 세상은 하나님께 믿음을 둔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있지만, 그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주가 되시는 종) 337. By what right do we become “a royal priesthood”? By the right of the Atonement. 우리는 어떤 권리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는가? 속죄의 권리에 의하여 되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38. It is only when we have been awakened by conviction to the sin and anarchy of our hearts against God that we realize the measure of His love toward us.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죄와 반란에 대하여 책망을 느낄 때에야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우리의 찬란한 유산) 339. The way we are to overcome the world, the flesh, and the devil is by the force of our love for God. 세상과 정욕과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힘이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340. Our prayers should be in accordance with the nature of God, therefore the answers are not in accordance with our nature but with His.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 응답도 우리의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에 일치되어 응답된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341. The sneer of Satan was that no man loved God for His own sake, but only for what God gave him. 사탄이 빈정거렸던 것은 사람은 하나님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산상수훈) 342. God does not give us power to love as He loves. The love of God, the very nature of God, possesses us, and He loves through us.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자체의 속성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 잡아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찬란한 유산) 343. The meaning of prayer is that we get hold of God, not of the answer. 기도의 의미는 기도의 응답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344. All I do ought to be founded on a perfect oneness with Him, not a self-willed determination to be godly. 나의 행함은 거룩해지려는 자기 의지적 결단이 아니라 주님과의 완전한 하나됨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45. The servants of God in the Bible never stole hearts to themselves, but handed them over to God.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신들에게 훔치지 않고 하나님께로 넘겨드렸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346. To talk about cost when you are in love with anyone is an insult to love. 당신이 어떤 사람과 사랑할 때 비용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주가 되시는 종) 347. Many of us have no faith in God at all, but only faith in what He has done for us.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믿음이 없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만을 믿는다. (더 나은 싸움을 위한 좌절) 348. We can get to God as Creator apart from Jesus Christ, but never to God as our Father except through Him.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할 수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349. The surest sign that God has done a work of grace in my heart is that I love Jesus Christ best. 하나님께서 내 마음 속에 은혜를 베푸셨다는 가장 확실한 표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적 심리학) 350. Drink deep and full of the love of God and you will not demand the impossible from earth’s love. 하나님의 사랑을 깊게 가득 마시라. 그러면 당신은 이 세상으로부터 불가능한 사랑을 요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351. Our importunity must be intercessory and the whole power of our intercession lies in the certainty that prayer will be answered. 우리가 강청은 중보기도여야 한다. 중보기도의 모든 능력은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확신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352. God has left us on earth. What for? To be saved and sanctified? No, to be working for Him.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남기셨다. 무엇을 위해서? 구원받고 깨끗하게 되기 위하여? 그렇지 않다. 주님을 위하여 일하라고 남겨 두셨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사역자) 353. Bring your problems to God and stay with Him while He solves them. 당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온 후 하나님께서 그 문제들을 해결하시는 동안 주님과 함께 있으라. (갈 바를 알지 못하나) 354. God heeds not our faults nor our mistakes. He looks at our hearts.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이나 실수에 신경쓰시지 않으신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그리스도인의 훈련) 355. Identification with the death of Jesus Christ means identification with Him to the death of everything that never was in Him.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치된다는 것은 그분과 관련 없는 모든 것이 제거되는 자리까지 주님과 일치됨을 의미한다. (오늘의 경주를 달리라) 356. Let other things come and go as they may, let other people criticize as they will, but never allow anything to obscure the life that is hid with Christ in God. 다른 모든 것들은 오고 가도록 두고, 사람들의 비판과 수군거림도 내 버려 두라.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생명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절대로 허용치 말라. (주님은 나의 최고봉) 357. When the Holy Spirit comes in He makes us as “light.”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분은 우리를 빛으로 만드신다. (자녀들을 이끌어 영광으로) 358. God’s Spirit will lead us away from our limitations and teach us to think the thoughts of God behind the things that contradict them. 하나님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한계를 벗어나게 하셔서, 모순되는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 있는 하나님의 생각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치신다. (이사야서 요약) 359. It is His presence that judges us. We long to meet Him, and yet we dread to. 주님께서 임하시면 우리를 심판하신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 원하지만 여전히 두려워한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60. The fellowship of the saints is based not on natural affinities of taste, but on fellowship in the Holy Spirit. 성도의 교제는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교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교제에 기초를 둔 것이다. (도움의 장소) 361. If you only give up wrong things for Jesus Christ, don’t talk any more about being in love with Him. When you love a person, do you only give up what is wrong for him?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잘못된 것만 내려 놓았다면, 더 이상 주님과 사랑에 빠져있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만 내려 놓겠는가? (구속의 심리학) 362. When we receive the nature of God into us, the first thing that happens is that God takes away all pretence and pious pose.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면 제일 먼저 발생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모든 위선과 경건의 모양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리의 찬란한 유업) 363. Lust makes me impulsively impatient so that I want to take short cuts. But Love makes me able to wait endlessly. 정욕은 충동적으로 나를 참지 못하게 만들어서 결국 지름길을 택하도록 한다. 그러나 사랑은 끝없이 기다릴 수 있도록 한다. (도움의 장소) 364. Get into the habit of recalling what Jesus was like when He was here. 주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어떤 분이셨는지를 기억하는 습관을 만들라. (주의 형상을 본받아) 365. The triumphant thing for a saint is to stand true to God in spite of all the odds the world can bring. 성도의 승리란 이 세상의 모든 이상한 일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서는 것이다. (이사야서 요약) 366. What ups and downs we experience because we build not on faith but on feeling, not on the finished work of Christ but on our own work and endeavor and experience. 삶의 기폭이 심한 이유는 믿음이 아니라 느낌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의지하기 보다 자신의 일과 노력과 경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367. God is my Father, He loves me. I shall never think of anything He will forget. Then worry becomes an impossibility.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며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잊으신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염려란 불가능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기도한다면) 368. We can discern everything spiritually as long as we keep intimate relationship with God.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 영적으로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다. (그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369. The last delusion God delivers us from is the idea that we don’t deserve what we get.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셔야 하는 마지막 미혹은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주의 형상을 본받아) 370. The love of God is not revealed by intellectual discernment, it is a spiritual revelation. 하나님의 사랑은 지적인 능력에 의하여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적인 계시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English Sayings(영어 명언) 100가지
English Sayings(영어 명언) 100가지 Think like a man of actin and act like man of thought.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Courage is very important. Like a muscle, it is strengthened by use. (용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근육과 같이 사용함으로써 강해진다.) Life is the art of drawing sufficient conclusions from insufficient premises. (인생이란 불충분한 전제로부터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By doubting we come at the truth.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도달한다) A man that hath no virtue in himself, ever envieth virtue in others. (자기에게 덕이 없는 자는 타인의 덕을 시기한다.) When money speaks, the truth keeps silent. (돈이 말할 때는 진실은 입을 다문다.) Better the last smile than the first laughter. (처음의 큰 웃음보다 마지막의 미소가 더 좋다.) In the morning of life, work; in the midday, give counsel; in the evening, pray. (인생의 아침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충고하며, 저녁에는 기도하라.) Painless poverty is better than embittered wealth. (고통 없는 빈곤이 괴로운 부보다 낫다.) A poet is the painter of the soul. (시인은 영혼의 화가이다.) Error is the discipline through which we advance. (잘못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발전할 수 있는 훈련이다.) Faith without deeds is useless.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 Weak things united become strong. 약한 것도 합치면 강해진다. We give advice, but we cannot give conduct. 충고는 해 줄 수 있으나, 행동하게 할 수는 없다. Nature never deceives us; it is always we who deceive ourselves. 자연은 인간을 결코 속이지 않는다. 우리를 속이는 것은 항상 우리 자신이다. Forgiveness is better than revenge. 용서는 복수보다 낫다. We never know the worth of water till the well is dry. 우물이 마르기까지는 물의 가치를 모른다. Pain past is pleasure. 지나간 고통은 쾌락이다 Books are ships which pass through the vast seas of time. 책이란 넓고 넓은 시간의 바다를 지나가는 배다. Who begins too much accomplishes little. 너무 많이 시작하는 사람은 성취하는 것이 별로 없다. Better the last smile than the first laughter. 처음의 큰 웃음보다 마지막 미소가 더 좋다. Faith is a higher faculty than reason. 믿음은 이성보다 더 고상한 능력이다. Until the day of his death, no man can be sure of his courage. 죽는 날까지는, 자기의 용기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Great art is an instant arrested in eternity. 위대한 예술은 영원 속에서 잡은 한 순간이다. Faith without deeds is useless.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 The world is a beautiful book, but of little use to him who cannot read it. 세상은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별 소용이 없다. Heaven gives its favourites-early death. 하늘은, 그가 사랑하는 자에게 이른 죽음을 준다. I never think of the future. It comes soon enough. 나는 미래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는 곧 오고 말것이므로. Suspicion follows close on mistrust. 의혹은 불신을 뒤따른다. He who spares the rod hates his son, but he who loves him is careful to discipline him.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훈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All good things which exist are the fruits of originality. 현존하는 모든 훌륭한 것들은 독창력의 결실이다. The will of a man is his happiness. 인간의 마음가짐이 곧 행복이다. He that has no shame has no conscience. 수치심이 없는 사람은 양심이 없다. Weak things united become strong. 약한 것도 합치면 강해진다. A minute\\\\\\\'s success pays the failure of years. 단 1분의 성공은 몇 년 동안의 실패를 보상한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쓰러진다. To doubt is safer than to be secure. 의심하는 것이 확인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 Time is but the stream I go a-fishing in. 시간은 내가 그 속에서 낚시질을 하는 흐름이다. A full belly is the mother of all evil. 배부른 것이 모든 악의 어머니이다.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 It is a wise father that knows his own child. 자기 자식을 아는 아버지는 현명한 아버지이다. By doubting we come at the truth.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도달한다 Absence makes the heart grow fonder. 떨어져 있으면 정이 더 깊어진다 Habit is second nature.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Who knows much believes the less.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적게 믿는다 Only the just man enjoys peace of mind. 정의로운 사람만이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Waste not fresh tears over old griefs.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Life itself is a quotation.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인용이다. He is greatest who is most often in men\\\\\\\'s good thoughts. 사람들의 좋은 회상 속에 자주 있는 자가 가장 위대하다. Envy and wrath shorten the life. 시기와 분노는 수명을 단축시킨다. Where there is no desire, there will be no industry. 욕망이 없는 곳에는 근면도 없다. To be trusted is a greater compliment than to be loved. 신뢰 받는 것은 사랑받는 것 보다 더 큰 영광이다. Education is the best provision for old age. 교육은 노년기를 위한 가장 훌륭한 대책이다. To jaw-jaw is better than to war-war. 전쟁보다 협상이 낫다. Music is a beautiful opiate, if you don\\\\\\\'t take it too seriously. 음악은 너무 심하게 취하지만 않는다면 일종의 아름다운 마취제이다. Appearances are deceptive. 외모는 속임수이다. Let thy speech be short, comprehending much in few words. 몇 마디 말에 많은 뜻을 담고, 말은 간단히 하라 Things are always at their best in the beginning. 사물은 항상 시작이 가장 좋다. A gift in season is a double favor to the needy. 필요할 때 주는 것은 필요한 자에게 두배의 은혜가 된다. In giving advice, seek to help, not to please, your friend. 친구에게 충고할 때는 즐겁게 하지 말고, 도움이 되도록 하라. The difficulty in life is the choice. 인생에 있어서 어려운 것은 선택이다.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e world is, of course, the world itself.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물론 세상 그 자체이다. All fortune is to be conquered by bearing it. 모든 운명은 그것을 인내함으로써 극복해야 한다. Better is to bow than break. 부러지는 것보다 굽는 것이 낫다. Good fences makes good neighbors. 좋은 울타리는 선한 이웃을 만든다. 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가:명언들/ 2009-10-13
가:명언들 가끔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반역은 정부의 건강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약이다.(토머스 제퍼슨) 가난과 희망은 어머니와 딸이다. 딸과 사귀고 있노라면 어머니는 어느 틈엔가 잊어버리고 만다.(장 파울 - 독일 소설가:1763~1825) 가난은 가난하다고 느끼는 곳에 존재한다.(에머슨) 가난이란 그리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의 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세네카) 가난한 사람은 덕행으로, 부자는 선행으로 이름을 떨쳐야 한다.(주베르) 가는 자는 쫓지 말지며, 오는 자는 막지 말라.(맹자) 가르치는 것은 두번 배우는 것이다.(주베르) 가시나무를 심는 자는 장미를 기대해서는 안된다.(필페이)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가 없다.(필페이) 가장 감사해야 할 것은 신이 주신 능력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이다.(트릴로프) 가장 곤란한 것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알랭) 가장 깊은 감정은 항상 침묵속에 있다.(토머스 무어 - Thomas Moore) 가장 깊은 진리는 가장 깊은 사랑에 의해서만 열린다.(하인리히 하이네 - 독일 시인 : 1797-1856)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과거이다.(바이런)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다.(호라티우스 - 로마 시인 : BC 65-8) 가장 부유한 사람은 절약가이고 가장 가난한 사람은 수전노이다.(상포르) 가장 오래 지속되는 사랑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다.(윌리엄 서머싯 몸 - 영국 작가:1874 ~ 1965) 가장 최상의 길은 없다. 많은 사람이 가고 있다면 그 길이 최상이다.(루신) 가장 큰 어려운 일 중 세가지, 첫째는 명성을 얻는 것, 둘째는 생명있는 동안 명성을 유지 하는것, 셋째는 죽은 뒤에도 명성을 보유하는것.(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 오스트리아 작곡가) 가장 탁월한 천분도 무위도식에 의해서 멸망된다.(몽테뉴) 가장 훌륭한 기술, 가장 배우기 어려운 기술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이다.(메이시) 가장 훌륭한 예언은 상식,즉 우리의 원래의 지혜이다.(에우리피데스) 가장 훌륭한 인간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이다.(마호메트 - 이슬람교창시자:570~632) 가정과 가정 생활의 안전과 향상이 문명의 중요 목적이요, 산업의 궁극적 목적이다.(C.W.엘리어) 가정은 그대가 그곳에 가야만 할 때, 그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곳이다.(R.L.프로스트) 가정은 나의 대지이다. 나는 거기서 나의 정신적인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펄 벅 - 미국 작가:1892~1973) 가정은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표시할 수 있는 장소이다.(A.모루아) 가정은 삶의 보물상자가 되어야 한다.(코르뷔제) 가정이 가난하고 신분이 천한 것은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고,올바른 진리를 배워 가지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강 수) 가정이란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인생의 커다란 목표이다.(J.G.홀랜드) 가정이여, 그대는 도덕의 학교이다.(J.H.페스탈로치) 가족, 친구, 조국, 모든 사람을 위해서 힘을 써라. 들뜬 마음, 나약함을 물리쳐라, 용기를 가져라, 강해져라. 즉 남자가 되라.(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 스위스 철학자 : 1821-1881) 가치있는 적이 될 수 있는 자는 화해하면 더 가치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펠담) 갑작스럽게 착한 사람이 되거나 악인이 되는 사람은 없다.(시드니) 값진 성과를 얻으려면 한 걸음 한 걸음이 힘차고 충실하지 않으면 안된다.(단테) 강도는 당신의 돈이나 생명의 어느 하나를 요구한다. 그러나 여자는 그 양쪽을 요구한다.(버클러) 강렬한 욕망을 버리고 싶거든 그 어머니인 낭비를 버려라.(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 Marcus Tullius Cicero) 강을 거슬러 헤엄치는 자가 강물의 세기를 안다.(윌슨) 강한 사람이란 가장 훌륭하게 고독을 견디어 낸 사람이다.(쉴러)
가상 현실과 교회의 대응
가상 현실과 교회의 대응 Ⅰ. 들어가는 말 어떤 건장한 남자가 문앞에 서서 카드키( card key)를 가지고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본 다음 책상 위에 놓인 헬멧과 특이하게 생긴 장갑을 낀다. 그리고 잠시후 그는 발차기를 비롯해 찌르기를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한다. 그는 마치 실제로 싸움을 하는 듯 하다. 미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가상 현실 프로그램을 이용해 무술을 수련중 이었다. 이런 내용은 어느 영화에서 상영되었다. 요즈음 들어 부쩍 컴퓨터의 관심이 높아지고 생활이 고도의 정보를 통한 세계화 추세에 들다보니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은 '컴맹'으로 불리우며 무시 당하는 세태이다. 특히 컴퓨터의 발달이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제 컴퓨터는 기계를 떠나 생활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요즘들어 가장 관심을 끄는 컴퓨터 프로그램 가장 널리 쓰이는 게임등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만도 대기업에서 조차 가상 현실 게임산업에 손을 댔다고 하니 가상 현실이 우리 생활에 얼마큼 영향을 주며 얼마나 널리 쓰이게 될지 환하게 알 일이다. 가상 현실이 각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상 현실은 구성이 복잡한 만큼 광범위한 응용 분야를 창출할 수 있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커다란 변혁과 전환을 몰고 올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러분야의 관련 기술을 하나로 집약시키는 한편 그 결과를 실생활에 접목 시킬수 있다는 점이 단지 컴퓨터 기술의 하나로 보기에는 너무나 큰 파급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Ⅱ가상현실과 미래 1.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란 무엇인가 요즘 신문에서 "가상 현실을 이용한 xx 개발"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상'과 '현실' 이라는 이질적 의미를 담고 있는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기술의 이름은 이미 그 실체 보다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이미 실제로도 군사분야와 교육, 인텔리어, 분야에서는 초보적인 실용화를 이루고 있기는 하다 수년 전 나온 '토탈리콜' 이나 '론머맨' 같은 미국의 공상 영화에[ 등장해 흥미를 끌었던 이 기술은 사람들에게 "머리로 떠올릴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실현이 가능한" 놀라운 기술로 이해되고 있다. 실제로 가상 현실이란 개념은 정의 자체부터 매우 모호하다. 단어 자체가 가상(Virtual)과 현실(Reality) 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하난로 묶었을 뿐 아니라 가상 현실을 구현하는 기술도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를 포함하는 컴퓨터 기술 뿐 아니라 심리학 생리학 인간공학등의 다양한 분야가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상 현실이란 "컴퓨터를 이용하여 가상적인 환경을 만들어 그 환경내에서 3차원의 의사체험(擬似體驗)을 가능하게 하는 첨단 기술"로 정의될 수 있다. 즉 가상 현실은 실제 물체는 없지만 이를 시뮬레이션해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2. 가상 현실의 역사 가상현실이라는 말이 일반인에게 거부감없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이 용어가 정착되기 전에는 가상 환경(Virtual environment) 인공현실(Artficial reality) 인공 두되공간(Cyber space) 등으로 이름이 불리웠는데 이 같은 용어의 흔재는 그 개념을 확실히 설정하는데 적 잖은 장애 요소로 작용했다. 가상 현실에 대한 연구는 60년대 중반 CAD의 원조로 불리우는 MIT의 이반 서덜랜드 교수에 의해 시작 된다. 넓은 의미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인 CAD가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의 모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컴퓨터 그래픽은 대상물을 수치화시켜 실시간 내에 표현하고자 하는데 3차원의 실세계를 평면으로 표현하는 데는 어딘지 답답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그래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상 현실은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데데이타를 컴퓨터에 기억시켜 그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디스플레이에 기억시키고 표시하는 것이다. 이 때 가상 공간에 있는 인간의 위치는 마우스 등의 입력기에 의해 이동 시킬수 있고 그에 따라 보이는 장면의 변화를 계산해 낸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인공 지능이나 산업공학, 등의 연관 과학 학문이 어우러지면서 가상 현실(Virtual Reality)기술이 본격화 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였다. 특히 멀티 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음성 인식과 화상처리 기술의 진보는 이를 통합한 기술의 하나로 가상현실의 출현을 예고 하고 있었다.85년 미항공 우주국(NASA)은 좁은 우주선의 복잡한 작업을 단순화 하기 위하여 3차원 데이터 공간을 비행하며 몇 개의 컴퓨터 조작 패널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우주선 외부에서도 우주복을 입은채 조작할 수 있는 VIEW(Vitual Intreface Environment Workstation)을 만들었다. 사진이 최초로 발명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고 텔베비젼이나 영화관이 등장한 것도 20세기 초에 불과하다. 이들 매체는 모두 사물을 2차원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발명 당시 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2차원의 한계를 넘어서 3차원의 표현방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이들 발명품보다 앞서 일어났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동안 좀더 현실감 있는 입체 이미지에 접근하고자 수 많은 입체경에 발명되어 왔으며 그 맥은 오늘날 가상현실시스템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입체화 발견에 대한 연구는 1백 50년 전에 휘트스톤 이란 인물이 프리즘과 거울을 사용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최초의 입체경을 발명해 명성을 얻은바 있는 그는 사람의 양쪽 눈이 보는 이미지 차이가 입체적인 깊이를 지각 시킨다는 사실을 영국학술원에 보고했다. 그는 마주 향하는 이미지들을 반사시키기 위해 45°각도의 거울을 사용해 두 개의 사진이 보는 사람의 눈을 향해 반사되도록 측면에 배치했다. 이 거울 입체경은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눈에 하나씩 2개의 2차원 그림을 제공함으로써 기술적으로 망막의 불일치를 만들었다. 렌즈없이 보는 유일한 입체경인 이 발명품은 이 후 관찰자의 눈 사이 거리와 이미지의 크기를 조절하는 렌즈가 부착돼 정교함을 더했다. 한편 무작위 점 입체화(random - dot stereogram)라 불리우는 입체 기술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베라 유레즈라는 사람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얼마전 관심을 끌었던 '매직아이(magic eye)'라는 것은 바로 이 무작위 점 입체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난수표에서 힌트를 얻어 흑백의 점으로 그려낸 두장의 그림을 일정한 방법을 통해 보면 입체적인 도형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인간의 두눈이 양안 시각을 갖는 다는 것과 대상인식은 항상 입체시 (立體視) 이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레즈의 발견 이전까지 사람들은 한눈의 대상물 인식은 입체시전에 일어나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는 두눈의 영상은 두뇌의 중간 지점에서 합쳐지고 깊이가 인식되기 때문에 편시야 시각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시초로 그 후 입체 환경을 통해 보는 입체 영화와 3-D 영상기법이 발전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부르스터라는 인물은 양쪽 눈이 정확히 다른 그림을 보는데 도움이 되는 렌즈를 사용한 입체경을 발명했는데 오늘 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이 발명품은 두눈이 같은 광경을 보는 것을 막기위해 두 개의 렌즈 사이에 경계 분리기가 동시에 놓여 있다. 이것은 후에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뷰마스터(View Master) 라는 간단한 입체 그림을 보는 도구로 발전하게 된다. 3. 인간과 가상 현실 1)생활속에 파고드는 가상현실 우리 주변에도 가상 현실 기술을 응용한 예가 적지 않다. 가장 구체적으로 가까운 예가 가상 현실 게임관인 어뮤즈21관이다(이 곳은 HMD를 착용하고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채 게임하는 곳이다.) 가상 현실의 응용 분야는 비단 흥미 위주의 오락만은 아니다. 산업용으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한새퍼시스가 시도한 가상 부엌 시스템이 있다. 부엌용 가구를 일일이 설치하지 않아도 입체 영상을 통해 위치를 바꿀 수 있으며 냉장고나 싱크대 등을 가상 세계안에서 사용할 수 있다. 동아 건설도 가상 모델 하우스 계획을 발표해 주위의 관심을 끌었다.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모델 하우스를 찾아다닐 필요없이 아파트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원하는 스타일의 아파트를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특히 아파트 실내에 들어가 걸어다닌다거나 베란다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벽제나 바닥제의 촉감을 느낄수 있다. 2)컴퓨터 문화를 새롭게 정의 가상 현실이 컴퓨터 관련업계에 일으키는 파장은 단순히 활용 분야가 많다는 이유외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가상현실의 인터페이스이다. 실제로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가상 현실을 대표하는 장비로 알려져 있는 HMD(Head Mounted Display)를 단순히 영상을 입체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HMD는 출력 장치로서 역할외에 사용자의 머리 움직임이나 이동을 컴퓨터 시스템에 전달하는 입력장치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이런 면에서는 촉각 디스플레이 장치인 데이터 글러브(장갑형태)와 바디 슈트( 옷과 같은 형태)도 마찬가지 이다. 특수 장비를 통해 감지된 인간의 동적은 컴퓨터가 처리하고 결과는 디스 플레이 장치로 보내진다. 보내진 결과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다시 컴퓨터로 보내지는 일련의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HMD는 인간의 동작을 감지함은 물론 그 동작에 대한 처리 결과를 나타내 주기 때문에 입력장치와 출력 장치의 기능을 모두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의 연결 고리인 셈이다. 이런 일련의 개발과정은 키보드로 시작해서 마우스로 이어져 온 컴퓨터와 인간간의 인터페이스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우선은 인간이 컴퓨터가 할 일을 하나 하나 지시해야 하는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 말이나 손짓 등 일상적인 행동만으로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컴퓨터를 단순한 작업도구가 아닌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3)인간 연구가 기초 가상 현실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매우 광범위하다. 컴퓨터와 관련된 하드웨아 소프트웨어 외에도 인간의 감각 기관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생리학 인간공학 등의 바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역시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이다. 3차원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시각 장치로는 HMD외에도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홀로그래피 등이 있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 웨어는 일반 3차원 그래픽보다 빠른 속도로 랜더링해야 함은 물론 사용자의 시점(view point) 변화에 따라 물체의 모든 면을 연출해 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컴퓨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면 가상 현실 시스템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감각이 어디에서 어떻게 감지되어 대뇌에 전달되는 지 알아야 인간 감각 기관의 어디를 어떻게 자극해서 전달할 것인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여주는 주체인 가상 현실 시스템과 그것을 즐기는 인간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또한 이에 걸맞게 진보된 것이어야 한다. 4) 가상 현실과 오감 가상 현실의 작용을 살펴보면 가상 현실을 이루는 요소들을 알 수 있다. 우선 가상 현실 시스템은 실체 세계에 있는 인간의 동작을 측정하고 입력할 수 있는 기기를 사용한다. 그 다음 입력받은 동작을 컴퓨터가 관장하는 가상 공간에 전달해 작용과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가상공간은 인간의 동작에 대응해 영상과 소리 체감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합성한 후 이를 특수한 하드웨어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한다. 이런 일련이 과정들을 통해서 사용자는 실제 세계에서 컴퓨터가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상 현실 시스템의 주요 임무는 인간의 오감을 통한 체험의 전달이기 때문에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정확한 감성공학을 필요로 한다. 가상 현실의 공학적인 명제는 다름아닌 경험의 전달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한 가상 현실의 효과를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감각 전달 방법의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상 현실은 기술적 차원의 진보뿐 아니라 인간적 요소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1) 시각 디스플레이 (Display)장치 인간이 감각을 받아들이는 상당 부분은 시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가상 현실 시스템에서 각각 디스플레이 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눈앞에 소형 컬러 액정 디스플레이를 고정시켜 3차원 영상을 보게 하는 HMD는 시각 디스플레이 장치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머리에 착용하는 헬멧 형식으로 머리의 움직임을 측정한는 센서를 함께 장착하고 있다. 또한 헬멧의 각도와 높이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시스템을 관리하며 약 135°의 넓은 시야에 걸친 화상을 비춰준다. HMD의 성능중 하나 중요한 것은 넓은 시야를 확보해 가상 세계에 몰입과 존재의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실재로 인간은 수평으로 155°의 시야를 갖기 때문에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HMD일수록 보다 사실감 있는 가상 활경을 즐기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HMD에도 문제점이 있다. HMD는 형태나 외양 및 기능에 있어서 다양하지만 모두 불편하다는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며 시야의 크기와 직결되는 액정의 크기, 해상도, 새로운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걸리는 시간(Frame refresh rate), 머리에 장착함으로 해서 야기되는 위생상의 문제, 중량, 누의 피로감, 화면과 동작의 불일치로 인한 감각 기관의 혼란등이다. 또한 많은 케이블로 인해 이동에 제한이 있다는 결점도 가상 현실 시스템의 사용에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첫 번째 난제는 낮은 해상도롤 인해 눈의 피로와 현실감 감쇄의 원인이 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아직 그래픽 처리속도가 사람의 반응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아직 그래픽 처리속도가 사람의 반응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시점 이동에 대한 실시간 화상처리가 약간 높다. 센서에서의 시간 자체는 시스템과 그래픽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시간 지체와 함쳐져 시스템이 반응하기 ¼-⅓초 이전의 위치가 HMD에 의해 전달된다. 따라서 사용자가 고개를 돌릴 때 가상의 그래픽 세계가 시야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현저한 시간 지연이 생기게 된다. 이런 현상은 사용자에게 방향감각의 혼란을 야기하는 등 후유증을 남기기도한다. 세 번째 머리에 장착함으로써 야기되는 위생상은 문제, 중량, 피로감, 장시간 착용시의 멀미 증상 등이다. 현재 발표된 상업용 HMD의 경우 무게가 보통 2㎏인데 현실감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리고 HMD의 특성상 눈앞의 무게 비중이 커서 HMD가 앞으로 처지지 않게 손으로 잡고 머리를 회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초당 프레임수인데 TV정도의 화면에서는 매초 30프레임 이하면 보이는 것이 불안정해 눈이 피로해 진다. 현제의 가상 현실 기술은 10-20프레임 정도가 한계이다. 이 종도의 화상을 10분이상 계속 사용한다면 모니터를 10시간 사용한 것과 같다는 보고 결과도 있다. 다섯째로 HMD를 착용한고 있는 동안은 오직 한 장소로 활동이 제한도며 가상 세곙 이외의 환경에서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장치를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HMD의 문제점은 현실재적응이라는 문제로 집중된다. 감각궤한의 지연 실세계의 경험과 가속 운동으로 인한 시각 및 전정기관 체성감각기관에서 대뇌로 전달되는 감각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뇌가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어지럼증 피로감 구토 땀흘림 방향감각의 상실 복부팽만감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이를 전문 용어로 사이버 병(Cybersickness) 이라고 부르는 데 보통 가상현실을 체험한 후 장시간 쉬었다가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청각디스플레이 장치 가상 현실에 사용되는 음향은 HMD에 연결돼 시각과 동시에 작동한다. 현재 사용되는 이 분야의 기술수준은 스테레오로 입체음향을 재생하는 정도지만 홀로포닉스라는 신기술의 접목이 시도하고 있다. 홀로포닉스는 3차원 공간내에서 눈을 감고도 소리가 나는 곳을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따라 그 감지도가 변화해 생생한 소리를 제공하는 음향기술이다. 귀는 눈과 마찬가지로 입체적인 음향을 들을 수 있는 데 사물의 위치와 얼마나 먼곳에 있는지를 뇌가 판단하도록 해준다. 중이(中耳)에는 서로 연결된 세 개의 뼈가 있어 소리 에너지를 고막으로부터 액체가 차 있는 내이 (內耳)로 보낸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이 뼈를 고정하는 근육이 음향반사작용을 일으켜 조여지고 이 때문에 내이에 도달하는 에너지의 양을 최고 100분의 1정도로 감소시켜 준다. 이 근육은 지속적인 큰소리에 대해 10분이상 버틸수 없다. 귀는 또 어떤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주파수를 여과함으로써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맹인이나 눈을 가린 어른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휘파람 소리로 최고 3미터 까지 떨어진 곳에 물체가 있는 지 없는 지를 알수 있다. 강한 오디오 이미지는 사물에 대한 공간적 정보를 제공하며 체험자에게 가려진 가상존재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적 단서는 귀와 귀사이에 이르는 소리의 세기와 귀에 도달하는 소리의 시간 지연에 차이가 있다. 가상 현실 시스템에서 소리의 역할은 현장감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일반 스테레오 사운드는 2개의 채널을 통해 소리가 머리 중간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만든다. 입체 음향은 외이를 통해서 고막으로 전달되는 음향신호를 좌우로 따로따로 생성해 임의의 장소에서 음원이 재생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가상현실 시스템에서 청각디스플레이 장치는HMD에 연결 돤 헤드폰이나 이어폰이 주로 이용된다. 3차원 공간에서 현실적인 소리의 구현은 다수의 스피커를 사람 주위에 배치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다. 3차원 음향을 출력하기 위해서는 3차원 사운드 프로세서와 소리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는 음원이 필요하다. 이 분야의 성과 중 하나가 NASA가 개발한 컨볼보트론(Convol- votron)이다. 컴볼보트론은 아주 강력한 오디오 전용 DSP로서 HRTF로 만들어진 아날로그형 소리를 통해 3차원 사운드 효과를 내는 데 HRTF라 불리우는 일련의 계산법을 이용해 음원이 마치 소리가 특정 위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만든다. 이 시스템은 방음 장치가 되어 있고 소리의 반사가 없는 방에 설치된 144개의 스피커에서 출력되는 다양한 소리의 주파수에 의해 귀에 충격이 가해질 때 음향의 변화를 그려낸다. 최근에는 인간의 청각 특성에 관한 연구가 진전되어 음성 신호의 실시간 처리로 일반적인 헤드폰을 사용해 3D 공간 임의의 위치에 음원을 높은 정밀도로 정립시키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3) 촉각 디스플레이 장치 촉각과 포스 피드백은 가상현실의 완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사항이다. 실제에서 촉감으 통해 사물의 존재를 인지하듯 물리적 저항 감각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된 장치들은 피부에 맞닿는 표면의 질감과 작은 압력을 시뮬레이트하는 데 사용된다. 전기적 촉각 및 진동 촉각 장치들이 전류나 작은 진동으로 피부의 자극 수용체들을 자극함으로써 사용자의 손가락 끝에 표면적 착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가상의 터치 동작은 특히 텔레로보틱스 분야나 수술 시물레에션과같은 고도의 정확성을 요하는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상 촉감을 만들기 위해 개발된 것이 촉각과 포스 피드백 시스템이다. 실제생활에서 감촉이나 포스피드백에 의존하는 수많은 체험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촉각은 물리적 자극에 대한 수용기를 통해 일어난다. 반면 포스피드백은 손가락이나 손에 작용하는 실제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 감각은 근육이나 관절에 적용된다. 생리학에서는 촉각과 압각의 분류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만약 모발에 가볍게 접촉을 하면 모근의 신경말단망에 의해 촉각이 발생하고 페치니소체를 가볍게 누르면 압각이 발생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촉각은 피부표면에서 느끼는 피부감각과 피부 밑의 근육에서 느끼는 시부감각을 통한다. 피부에는 압각, 온각, 냉각, 통각을 만드는 점들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피부 전체에 이들 감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감각적음 압점, 온점, 냉점, 통점으로 불리며 각각 그 종류가 다른 감각을 만들어 낸다, 심부 감각은 근육,관절기 등 수용기의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감각이며 물체를 움직일 때의 저항감과 중량감등 운동이나 위치에 대한 감각과 심부통각으로 나누어지며 피부감각과 심부감각을 합쳐서 체성 감각이라고 한다. 가상현실에서도 체성 감각에 대한 제시는 아직 모색 단계인데 몸 전체에 분포돼 있는 촉각을 공학적으로 모방해 실시간으로 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실현의 범위를 손에 한정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촉각의 피드백은 피부에 가해지는 힘을 말하고 포스 피드백은 근육이나 관절에 가해지는 힘의 되먹임을 말한다. 어떤 물체를 형성하고 손가락 끝으로 뭔가를 조종하고나 특정 방향에서 물체를 잡기 위해서는 손가락과 손의 움직임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범용적인 피드백 장치들은 비용,효율, 유용성에 있어서 충분치 못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 장치들은 더욱 가벼워지고 더욱 더 나은 성능을 갖게 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이 장치는 센서와 액튜에이터(ACTUAYOR)가 집적된 얇고 유연성 있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며 새롭게 개발된 기술이 효과적 경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용될 것이다. 현재 연구되어지고 있는 포스 피드백 방식으로는 마스터암, 조이스틱. 조이스트링, 데이터 글러브의 네가지를 들수 있다. 이들 장치는 현재 가상 현실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4) 후각과 미각 디스플레이어 장치 현재 실현되고 있는 가상 현실은 시각과 청각 및 촉각이 중심이지만 사용 목적에 따라 언젠가는 미각과 후각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오감은 2000년 전 아리스토 텔레스가 처음 알아낸 것이지만 과학자 들이 인간 감각의 깊은 비밀을 풀어내고 그 케카니즘을 규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가상현실에서 후각과 미각은 아직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맛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후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콧속에 들어 있는 후각세포로 4천가지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고 향수업계의 전문가는 약 1만가지의 향내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맛에 대한 감각의 대부분은 후각을 구성하고 있는 100만개의 세포에서 나온다. 후각은 뇌가 가장 원시적인 부분인 변연계와 연결되어 있는 데 이곳은 정서 식욕, 성욕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이 후각 세포들은 다양한 수용기를 갖고 있어서 특정한 화학물질만이 들어갈 수 있고 수용기는 화학 물질의 냄새가 들어오면 신경신호를 일으킨다. 가장 중요한 후각 신경 조직과 후각 세포는 코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 3차 신경조직 세포는 각기 다른 신경을 통해 뇌로 신호를 보낸다. 이들 두감각은 물리 세계에서 화학적인 인터페이스를 갖는데 컴퓨터는 아직 적합한 인테페이스를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 나와 있는 가상 현실 시스템의 전조인 모턴 헤이리그(Morton Heilig)는 센서라마(sensorama)라는 시각 청각 진동외에 배기 가스 꽃의 향수 행수 등 냄새의 감각까지 제공하는 개인용 오락기구를 발명하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오늘날 가상현실의 오감 제어에 관한 선구자적인 고안의 발상이었다. 센서라마 기구는 일종의 1인용 극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상요자가 의자에 앉아 오토바이를 타고 뉴육시내를 다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영상과 음향은 물론 바람 냄새 진동까지 제공한다. 오토바이 시뮬레이터와 비슷한 체감을 갖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지만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가상현실 시스템은 아니었다. 결국 오늘날 진정한 가상현실시스템의 원형으로써 앞날을 예견하는 선구자적인 고안인 셈이었다. 또 다른 실례로써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디즈니 랜드에 있는 미래도시는 선사시대의 광경, 습기를 느낄수 있는 모의 향기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후각 입력 장치로서 개발된 방향 디스플레이가 있으나 아직까지는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후각 디스플레이는 냄새의 가각이 잔존하기 때문에 급작스런 환겨의 변화에 빠르게 적용하기 힘들다. 가상 현실속에서 사용자가 갑자기 다른 환경속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행동을 취할 때 이에 따른 냄새의 변화를 빠를게 바꿀 수 없는점이 후각 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단점이다. 냄새와 맛의 감각은 실제적인 분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수신기 역할을 하는 코와 입을 통해 특정 신호를 뇌에 보내게 된다. 따라서 후각과 미각 디스플에이의 개발은 매우 어렵지만 궁극에 가서는 뇌파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냄새나 맛을 강제로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5) 가상 현실의 응용 모니터와 같이 평면에 나타난 이미지를 입체영상으로 나타내려는 기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기술의 미숙으로 오늘날과 같이 폭넓게 전파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근래들어 입체시를 지원하는 각종 장치나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대폭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광고나 예술, 분자구조 모델링, 사진측량법, 모의 비행 시뮬레이터, CAD나 CAM, 방사선 수술, 컴퓨터 단층촬영, 3차원 비디오 게임, 3D TV, 다차원 데이터이 시각화에서부터 가상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입체영상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술은 앞으로 군사과학 의학 산업 교육 오락등 실제적인 모든 분야에 확대될수 있다. 가상 현실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이것이 기존의 기술을 능가하는 무엇이 바탕이 되서라기 보다는 그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게 더 클 것이다. 가상 현실의 응용분야는 쉽게 설명해 가상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공간 내에 존재하면서 안가고도 체험하는 것인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저자를 가상현실의 연습(Virtual Reality walkthrough)이라 하고 후자를 원격존재(Tele-presence)라 부른다 원격존재는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자신의 분신인 로봇의행동을 손에 잡힐 듯이 알게 되고 필요한 경우 로봇을 자신의 수족처럼 조작해 마치 자신이 그 장소에 있는 듯한 감각을 가질수 있는 기술이다. 원격존재와 가상현실의 관계는 하나를 거꾸로 말하는 것과 같다. 가상현실은 자신의 주변에 현실과는 다른 자연스런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원격존재는 자신이 현재의 자리에 있으면서 별도의 환경으로 가는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원격 존재가 한쪽이 다른편을 조작한다는 것 외에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로봇뿐만 아니라 원격으로 조작되는 기계 전체를 일컬어 털레오페레(Teleoperator)라 부르는데 이 부분의 본격적인 연구개발이 진전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원자력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부터 이다. 최초의 연구는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를 중심으로 개발된 '매직핸드'라는 이름의 마스터 슬레이브 매니플레이터(manipulator) 였다, 1960년대의 텔레오퍼레이션 연구는 엑조스켈톤형 인력증폭기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1950년대 후반에 행해진 GE(Generak Electric)사의 모셔박사의 연구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다시 미국 정부와 GE사의 공동프로젝트인 '하디만( Hardymann)'으로 진전했다. 이들 연구는 사람이 장치 속에 들어가 힘을 증대시켜 무거운 것을 드는 일 등에 쓰이도록 고안됐는 데 만일 장치에 고장이 생기면 인간의 생명도 위험해지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상영화의 '에어리언'을 본 사람이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이 '기계옷'을 입고 괴물과 싸우는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1)의학분야 3차원 입체영상이 적용돼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의학분야이다. 3차원의 비디오 영상은 의사로 하여금 수술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시행착오를 방지하게 하며 수술경로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외과 의사들의 사전수술 시뮬레이션 계획에 3D영상기술은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실례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임상협회는 외과의사들이 아주 미세한 범위의 뇌에서 위치를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뇌수술을 위한 3D의 응용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기술은 동시에 뼈의 재봉합기술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전자적인 3차원 입체영상은 의사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게 되고 뼈가 어떻게 구성되고 재위치 되어야 하는지 에 대한 계획을 제대로 세울수 있게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미소대상의 수술을 마이크로수술(microsugery)라고 하는데 이 수술은 현재 미소한 혐관유합 신경이나 정관 난관의 재생수술 등 다방면에서 이용되고 있다. 마이크로 수술은 대단히 미묘한 손의 동작을 필요로 하기에 고도의 숙련을 요구한다. 여기에 원격존재 기술을 도입해 보통의 수술과 같은 감각으로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가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은 현재 급속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마이크로 머신 기술의 진보에 바탕한 것이다. 손의 동작을 미소한 매니플레이터에 전달하고 환부의 영상을 확대해 관찰하면서 원격조작으로 수술한다는 것이 골자 최근에는 마이크로머신을 캡슐의 형태로 체내에 넣고 체외에서 원격존재기술을 이용해 진단이나 수술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되고 있다. 가상 현실이 의료계에 대비되면서 의술혁명의 서곡을 울렸다. 병든 부위를 절개하지 않고도 가상현실 장비를 이용하여 인체 내부를 생생하게 들여다보면서 수술을 할 수 있는데 정확성도 있고 수술의 성공률도 높다고 한다.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이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여 시술할 수 있는 장이 열릴 경우 외국의 유명한 외과 의사를 찾아 비행기로 몇시간씩 나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음은 물론 의료 해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지역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 해부 실습용 시신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실제로 시신을 해부하지 않고도 모의 해부 실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오락 최근 우리 주변에 가상현실 기술을 응용한 예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상 현실 게임관인 어뮤즈21에 가보면 HMD를 착용하고 일반 게임과 달리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게임에 몰입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현재 가상 현실 기술이 가장 많이 응용되고 있는 분야이며 가상 현실 산업이 발전하는 초기에 각광받을 분야가 오락분야이다. 가정용 게임기 분야에서는 3D를 이용한 입체게임기가 일본 세가사에서 개발돼 특수 LCD 안경과 함께 판매되기도 했다. 이 안경은 LCD셔터 방식을 채용한 특수안경으로 사용자에게 실감있는 입체그래픽영상을 제공해 준다. 최근 이 회사는 가상현실기술을 응용한 3차원의 비디오 게임기와 입체안경보다 더 몰입감을 주는 영상을 제공하는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개발해 제품화시켰다. (3) 가상건물 세우고 이상을 점검 아마도 가상 현실의 응용 중 가상 현실 연습 분야는 건축가들에게 큰 경제적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대학에 설치된 가상건축의 내부를 살펴보면 건물 구조의 청사진을 CAD프로그램으로 그래 놓고 이를 컴퓨터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으로 보내 이미지에 입체감을 입혀 2차원 데이터를 3차원 이미지로 만든다. 이 이미지는 엔지니어나 건축가가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쓰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학 연구진은 이와 함께 가상의 빌딩 공간을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기 위해 핸들이 달린 러닝머신 시스템을 개발했다. 가상 환경에서 앞으로 움직이고자 하면 사용자는 러닝머신에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코너를 돌거나 방을 보고 싶으면 걸으면서 원하는 방향에 있는 핸들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빌딩 주변을 걸을 때 걸음속도를 조절해 움직임의 비율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은 실세계와 매우 비슷하다. 걷고있는 동안 머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주위를 둘러본면 물체는 실세계에서와 같이 원근감을 갖고 보여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히 재미있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축설계에 있어서도 기존의 설계방식에 비해 실제적 장점을 지니고 있다. 기존이 설계방식으로는 3차원적인 공간감을 2차원적인 모니터에서 표현하기란 쉽지가 않을 뿐 아니라 3차원 모델을 실제 크기로 만들어 보지 않고는 디자인의 잘못된 점을 알 수가 없었다. 가상 현실 기술은 이러한 점들을 개선시켜 줄 것이다. 건축도면을 입력해 설계단계에서 컴퓨터 속에 미리 건축물을 만들어보고 그 안을 둘러본다면 도면상에 나타나지 않는 문제점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예로 가상 박물관을 들수 있다.현재 박물관들은 유적물을 컴퓨터 그랙픽 작업을 통해 복원하고 있다. 시스템 공학 연구소에서는 미륵사지탑 복원을 계기로 문화재 연구소와 계속적으로 이 작업을 진행중인데 이는 원형고증 작업에 신속성고 정밀도를 향상시켜 문화재 보존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입체영상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가상박물관이 만들어지면 멀리 떨어져 있는 유적지까지 가지 않고서도 인파에 방해받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마치 그곳에 들어가서 살펴보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설계분야에서도 기계적 설계환경의 연구에 입체시각이 2배에서 4배까지 정확도를 증진시키며 설계오류와 변경을 덜 초래 한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CAD나 CAM등 모든 설계응용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다. 입체 영상은 자동화된 도구생산을 위한 설계도를 만들며 CAD프로그램에 그대로 공급될 수 있다. 가상의 움직임으로 사용자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시험과 오류에 의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건축설계의 경우 일련의 계획을 세우고 3차원의 모델을 만들며 HMD를 이용하여 그 내부를 돌아다니며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건축물의 완공을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 정확한 내부설계까지도 상세하게 설계할 수 있다. 또한 3차원을 통한 분석은 동시에 건축기사들이 잠재적인 문제점을 예견하는 것을 돕는다. 건축가는 3차원 공간을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여 탐험할 수 있으며 여러각도에서 건물을 바라볼 수도 있다. 따라서 설계가 활용되는 모든 분야는 3D의적용이 매우 긴요하게 쓰일 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과 노력을 절감시켜 줄 수 있다. (4) 인테리어 응용분야 VR연습이 실제 생활에서 가장 각광 받고 있는 분야는 인테리어 응용이다. 그 한예로 작년 시스템 공학연구소가 연구한 부엌 인테리어의 세계를 보면 이 장치는 미국의 VPL사가 개발한 데이터 글러브와 디스플레이 기술을 이용한 시스템으로 이용한 시스템으로 컴퓨터로 부엌의 CAD모델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머리에 아이폰을 쓰고 가상 부엌을 돌아 다닐수 있다. 식탁의 의자도 옮겨보고 냉장고의 색을 바꾸어도 보고 전자레인지를 즉석에서 배치하는 등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느것이나 변경 추가할 수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것과 동일한 3차원 입체 영상을 제작하고 제작된 입체영상을 실제와 동일한 느낌을 갖도록 실제감을 표현하며 실제와 동일하게 재작된 물체를 3차원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동시킨다는 데 있다. 이 시스템은 주방가구를 대상으로 개발되었으니 실제로는 전시장에 전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제품에 응용이 간으하다. 특히 무게가 무겁고 부피가 커서 배치가 용이하지 않고 표준품의 종류와 숫자는 많지만 전시될 물품의 수가 제한되는 제품이라면 더욱 유리하다. 가상 현실을 이용한 CAD는 디자이너가 제품을 디자인 할 때부터 사용자를 함께 참여시켜 디자인 할 수 있다. 즉 디자인 상태의 물품을 가상의 세계에서 사용자에게 이용토록 함으로써 사용상에 문제점은 없는 지를 체크해 가면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다. 이로써 제품개발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디자인 경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는 부품은 각자에 맞는 개별 디자인이 가능해 진다. 음향설계 분야에서 콘서트 홀이나 집을 디자인 할 때 건축가는 청각적인 문제에 시달려 왔다. 건축되기 전에 건축물의 청각을 결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콘서트 홀에 청중이 가득찼을 때 음향의 반향 등 예견되는 많은 경우를 생각해서 건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상현실을 이용해 가상의 건축물에 가상의 청중을 앉도록 하고 연주되는 음향을 가상의 청중을 통해 느끼도록 하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5)비행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교육 교육은 가상 현실연습이 적용될 수 있는 관심 분야의 하나이다.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을 이루고 있는 응용분야로 꼽히는 비행기 조종사의 시뮬레이터는 바로 어떤 방식으로 VR이 교육에 접합되는 가를 잘 보여준다.신형기의 시범 비행은 위험이 따르는게 보통이다. 개발된 비행기가 안전한지의 여부는 그 비행기의 동적 요소를 조합해 제작된 플리이트 시뮬레이터로 모의 비행을 실시함으로써 미리 알아보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음주나 약물 복용후의 운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실제 운전자에게 술과 약을 먹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를 대신하는 장치가 바로 운전 시뮬레이터다. 또한 체험이나 오락용 시뮬레이터의 한 종류인 '스페이스 월드'는 체험형 레저시설이라 고도 불리우는데 이곳에서는 미리 프로그램된 과정을 시뮬레이터로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의 의지에 따라 대상의 운동이나 상활이 변하도록 하는 피드백 장치가 시도되고 있다. 이는 마치 컴퓨터가 이해되는 데 컴퓨터 오락이 큰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VR이 보통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도 오락과 레제 분야에서는 VR을 구체화 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연구비가 투입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VR오락이 흡인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는 그동안 등장했던 첨단의 오락기 들이나 레저용 디스플레이에 익숙해진 일반인들이 이제 막 초보적인 단계에 들어선 VR게임이 어설픈 화면에 쉽게 설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6) 사실감을 추구 목표로 한 기술 별도의 장소에 있는 3인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이 원격지 화상 회의의 큰 목표다. 종래 텔레비젼 회의 모습을 표시할 뿐 이고 배경이 달라 한자리에서 회의한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이 기술이 보편화 된다면 현재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재택 근무는 좀더 본격화될 수 있다. 우선 가상의 회의실을 만들어 실공간과 같은 조명조건을 주고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을 이용, 실제공간에 있는 책상이나 의자 등의 연속성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인물을 영사한다. 또 인물도 같은 조명조건 내에서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을 구사해 표시한다. 실제 공간에서의 인물은 입체적으로 존재하고 파악되지만 지금까지의 디스플레이는 이를 평면으로만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을 응용한 원격지 화상회의에서는 실제와 같은 입체감이 표현되도록 한다, 이것은 수신자측에 3차원 모델을 준비하고 상대의 얼굴 크기나 복장색 등을 합해 모델을 변형시킨 후 가상 회의실에 영사하도록 해 시각적 상호작용을 만든다. 예를 들어 A라는 인물이 B라는 인물을 볼 때 B는 상대방의 시선을 느끼고 A의 방향을 향하며 또 제3자 C도 이 시선의 오고 감을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가상 현실의 응용에 있어 사실감의 추구를 목표로 한 것이다. (7) 군사분야 군사분야에서는 입체영상 활용도가 눈여겨 볼만하다. 근래에는 항공 촬영된 3D입체 사진을 이용해 적 지역의 정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형의 구조물과 형태를 3차원 정보로 저장함으로써 지질 형태를 보다 더 생생한 이미지로 관찰할 수 있다. 최근 미국방성은 스테레오 그래픽스사의 크리스탈아이즈 가상 현실시스템으로 성공적인 군사작전과 모의 전쟁 실험을 시행했다. 이 모의 훈련은 항공모함이 작전을 위해 가고 있는 동안에도 항공모함안에서 원격으로 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좀 더 본격화된다면 가상 환경에서 실시간에 필요한 모든 훈련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8) 로봇 원격 조정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리모콘 사용에 익숙하다. 텔레비젼이나 오디오 등과 같이 가까이 있고 정지한 상태의 제어는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먼 거리에 있는 움직이는 기계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같은 기계를 조종하기위해서는 간단한지 않은 원격조작(teleperation) 기술이 필요하다. 인간이 직접 들어가거나 다룰수 없는 환경의경우를 생각해 보자. 원자로 내의 냉각로를 교환하거나 해양의 바닥에 파이프 라인을 세우는 작업 또는 극히 위험한 폭발성 물질을 다루는 작업에 사람이 직접 투입된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가진 유연성과 판단력, 정밀함 등이 반드시 요구된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느 도저히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술이 가상현실의 한 분야로 연구되고 있다. 미래에는 모든일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로봇이 등장하겠지만 현 상태에서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서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대안으로 개발중이다. 이 시스템이 바로 로봇에게 지능을 부여해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는 팔을 가진 원격로봇(Telerobot) 이다. 이러한 로봇을 먼 거리에서 조종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직접 작업을 하는 듯한 착각이나 자신이 그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원견 임장, 혹은 원격 존재라고 부른다. (9) 우주항공 및 과학분야 우중항공 및 원격응용 등의 과학 분야에서도 입체 영상은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우주과학에서의 3D입체 사진은 행성의 탐사나 분화구의 관찰에 이용된다.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는 달탐험 임무수행시 달표면에 첫발을 내디디는 장면과 무중력 상태에서의 골프 스윙과 같은 입체사진을 촬영해 왔으며 최근에는 목성과 해왕성의 근접통과 때도 입체영상을 시도했다. 이러한 형태의 연구는 한 행성 내의 분화구와 다른 표면의 깊이를 측정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 행성표면에 대한 입체사진 촬영법 기술은 보다 생생한 지도를 그릴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그곳을 직접 탐험하기 전까지 표면 상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NASA의 제트 추진연구소에서는 마젤란이 지구로 보내오는 금성의 사진을 정확히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스테레오그래픽스사의 입체시각시스템을 사용한다. 이 응용에서 둥근 돔이나 단층처럼 점진적으로 변하는 형상의 지리학적 모양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추가 정보가 제공된다. 예를 들어 화산의 2차원 영상을 보는 과학자는 2차원 영상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동심원에서 색깔차이에 대한 이유를 해석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3차원에서 같은 영성을 보면 내부의 원이 원추형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화산 핵심 구조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미국 항공사인 록히드사는 우주 시스템부의 태양판넬에 대한 검사응용에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술 응용전까지 검사자는 각 태양판넬의면에 있는 많은 수의 회로가 단절됐는지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미경을 통해 판넬의 앞뒤로 움직여야 했다. 이로 인해 검사자의 피곤과 잦은 오류가 발생했었으나 이제는 현미경 대신에 입체 비디오시스템을 대치시켜 작업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앚아 편안히 검사할 수 있게 되었다. 6) 가상현실의 문제점 이러한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어진다. 특히 가상 현실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수도 있다. 며칠전 쯤 논문에 참고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볼려고 비디오 가게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채널69'라는 제목의 테잎을 빌려주었다. 내용은 뉴스에 식상해 있던 전직 PD가 조작된 뉴스에 대해 반감으로 9시 뉴스시간에 컴퓨터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이동 방송국을 만들고 해적전파를 띄워 성인용 프로그램을 보내어 이 사회를 비꼰다는 조금은 황당무개 하지만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바로 "나는 나의 동정을 사이버 섹스를 통해 샤론스톤에게 줄거야" 하는 대사이다. 그런데 현재 인터넷이라든가 아니면 가까이에 용산에 가더라도 CD-ROM을 통한 2차원적 음란물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아무런 제재 없이 10대들에게 파는 것 또한 목격하였다. 그렇다면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실용화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가상 현실은 의학분야라든지 학문 과학 분야에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이버 섹스라든지 폭력성이 다분히 있는 게임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날에는 텔레비젼이나 비디오, 영화 잡지 게임등을 통해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는데 가상현실이 바로 이것을 더욱 부추길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상현실 게임이 폭력용 주제로 다루는 내용이 많아 이들의 범죄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학부에 있을 때 미션스쿨에서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았는데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을 때가 음란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 라고 대답한 경우가 60%이상이 된다는 것이며 폭력에 대해서는 폭력용 게임을 하고있을 때 이와 같은 폭력을 하고 싶다는 아이들도 절반 정도는 되었고 심하면 자기와 그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느낌까지도 받는다고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가상현실은 또한 중독성이 강해 중독될 경우 마치 마약처럼 인간의 정서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한다. 가상 현실이 사이버시크니스(가상질병, Cybersickness)를 유발시키고 있다. 가상 현실 시스템이 많이 보급되는 만큼 그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이버 시크니스의 증세는 다양하다. 가벼운 현기증에서 두통 구토 시력장애 방향감각 상실 등이다. 특히 현실감각의 적응이 빨리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전문가들은 "가상현실 시스템을 사용한 뒤 현실세계에 적응 못해 몇시간 동안 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Ⅲ. 21C와 목회(멀티미디어 중심으로) 1). 21C의 목회 멀티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멀티미디어는 하나의 사회적 강요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을 위하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멀티미디어를 모르면 세계를 모르고 멀티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처럼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정보와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상식에 뒤지는 사람이 되는것이며 삶의 다양한 기능에 있어서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는 위기감까지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는 신학적, 종교적, 처학적 상상력의 빈곤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자동화, 기계화된 정보사회에서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테크닉만 알면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성찰 사색 명상의 중요성 신존재를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될 수 있다. 멀티미디어의 보편화는 인간을 도덕적 인격적으로 보다는 기계적 기능적으로 평가하는 풍조를 조성할 것이다. 인간이 기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기계가 인간을 조작하는 비극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상의 윤리와 도덕적 자질에 대한 가르침도 멀티미디어로부터 제공받게 된다. 과거의 종교적 견해를 대신하는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새로운 종교로 멀티미디어가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멀티미디어는 더 이상 인간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역할가지 대신하는 메신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는 오늘의 목회현장을 향한 하나의 문화적 도전이다, 이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서 극복해 내려면 목회적 차원에서 현대문명에 대한 건전한 비판적 시각이 형성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 스스로의자기 갱신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목회는 멀티미디어를 바르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멀티미디어의 세계가 이루어나가는 기술의 자동적 증대성에 대한 비판 능력도 필요로 한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목회는 더욱 강한 인격성,공동체성, 진실성, 거룩의 체험, 등을 나누는 신앙 공동체 형성에 목회적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바르게 수행하기 하려면 오늘의 목회현장 속에서 문화 비판적인 통찰력이 운용됨은 물론 기존의 목회에 대한 냉철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멀티미디어 시대의 인간들도 여전히 인간이며 여전히 구원의 복음과 복음을 통한 해방적 사역을 필요로하는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우리는 과거에 체험하던 신앙세게보다 더욱 폭 넓은 의미에서 새로운 신앙세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더욱 강한 신앙적 체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2) 가상 현실과 목회 (1)교회에서의 활용 가상 현실이 우리 생활속에 파고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의 되어진 과학 기술의 진보에 의하며 빠르면 5년안에 실생활속에 깊숙히 파묻힘 것이고 컴퓨터 역시 커다란 것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컴퓨터가 실용화 될것이고 음성을 인지하는 컴퓨터 시스템이 우리생활과 관련이 되며 우리는 컴퓨터와 대화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개인화가 이루어지고 공동체 생활이 약해 지며 가족이라는 최소 사회집단의 개념까지도 흔들리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인해 인간의 손과 발은 점점 퇴화될 수 있고 또 신을 생각하는 사고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컴퓨터 즉 멀티미디어가 지배하는 사회속에서 가능한 일이며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가상현실 즉 VR기술이 한몫을 하리라 생각이 된다. 우리는 다가오는 21세기 목회에 있어서 한발 앞서가야 한다. 즉 가상현실을 무조건 비판한다기 보다는 장단점을 골고루 알아내고 목회에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컴퓨터 특히 본인이 다루는 가상현실부분에 있어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말 할 것이다. 특히 지금의 신세대들을 위한 선교방향이라든지 아니면 시대에 뒤지지 않는 교회가 되기위해서는 교회에서 자체로 그것들은 준비해 나아가야 한다. 먼저 나는 교회에서 가상현실의 프로그램을 교회에서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애배당이나 교육관을 건축할 때, 혹은 교회의 조경사업, 기동원시설의 장단기 계획을 세울 때 가상현실은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 즉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프로그램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가상현실을 실용화하고 전도의 도구로서 사용하기 위해서 먼저 게임기의 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게임은 청소년들이 쉽게 친해지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시기에 중요한 청소년 선교의 한 도구가 되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성경의 내용을 게임화한다든지 (예를 들면 다윗과 골리앗 게임,노아의 방주등)해서 성서의 내용에 친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가상 현실을 통한 예배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에 대한 찬반 양론이 펼쳐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장애인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은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서 이용될 수 있다. 즉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어떤 예배도 시행할 수 있고 또한 예배 참석자에게 여러 가지 선택의 폭을 주어 예배에 흥미를 준다는 점도 있다. 또한 개발되어야 할 프로그램이 있다면 바로 성경에 바탕을 가상현실의 프로그램화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 하기를 원하고 아픔을 같이 나누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상상해 보라. 만약 우리가 엑소도스를 경험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그 커다란 대열 가운데서 그들과 같이 길을 떠난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는 데 내가 가서 옆에서 있다면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 같다. 기독교에서는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또 개발되어야 할 것이 성지에 대한 가상현실 프로그램화이다. 실상 신학도로서 성지에 가보고 싶지만 시간도 없을뿐더러 경제적이 어려움에 봉착하는 자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완성이 된다면 우리는 멀리까지 시간을 허비하며 다녀올 필요가 없다.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 성가대원이 찬양을 개별적으로 연습할 때도 유익할 것이다. 가상현실을 통하여 오케스트라를 연주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의 파트만을 연주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은 교회 교육에도 유익을 줄수 있다. 다윗과 골리앗이 나오는 성경을 말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가상 현실로 제공하면 실제로 옆에서 구경하는 듯한 생생한 체험을 하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다윗이 되어 골리앗과 겨루어 본다면 그 느낌이 어떨까? 가상현실은 새신자 양육에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말로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에게 가상현실을 통하여 경험하게 함으로써 좀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도록 이끌수 있다. (2)문제점 교회에서도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많은 유익함을 주고 있으나 반면에 단점들도 내비친다. 먼저 가상현실을 통한 예배로 인해 코이노니아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즉 가상 현실을 에배로 제공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예배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신앙의 개인화가 이루어 지고 이러한 개인화현상으로 교회 공동의 친교의 기능인 코이노니아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혼자서 가상현실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습관이 몸에 배면 오히려 사람과 만나서 교제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교회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고 목회자들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한 목사와 성도들 사이에 대면하는 기회가 적어져서 결속과 연대의식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됨으로 목회자 고유의 권한인 설교의 권한이 약화되고 치유목회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것이라는 우려도 된다. 이렇게 된다면 자연히 목사님과 성도들 사이에 대면하는 기회가 적어져서 결속과 연대의식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이야기 한 부분과 겹쳐지겠지만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는 재택예배로 인한 에배당의 공동화(空洞化)현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들수 있다. 한 때 미국의 빌게이츠는 사람들이 TV나 비디오가 생기면 극장이 모두 없어질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그것은 기우였으며 아직도 극장은 건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멀티미디어가 본격적으로 생활하되면 재택근무가 늘어나게 된다. 현재에도 몇몇의 기업에서 재택근무가 실시되고 있고 또한 학교에서 재택수업이 이루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자연히 직장일도 집에서 보는 데 왜 예배만 교회에 가서 드려야 하는냐 하는 반론이 거세어 질 것으로 보인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을 것이다. 교통도 복잡하고 주차장도 부족하니 재택예배를 드리자는 의식이 일반하될 우려가 있다. 또한 주5일 근무로 주말여행이 일반화 되면 여행지에서 일행과 함께 드리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게 되고 그러면 교회는 실제로 텅텅비게 될 것이다. 실제 지금 실시되고 있는 케이블 TV를 통해 드려지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상 현실을 통해 프로그램화되어진 예배에서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 실제 교회에 가지 않고 자기가 만든 환경속에서 자기의 구미에 맞는 목회
가상 현실과 교회의 대응
가상 현실과 교회의 대응 1. 들어가는 말 어떤 건장한 남자가 문앞에 서서 카드키( card key)를 가지고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본 다음 책상 위에 놓인 헬멧과 특이하게 생긴 장갑을 낀다. 그리고 잠시후 그는 발차기를 비롯해 찌르기를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한다. 그는 마치 실제로 싸움을 하는 듯 하다. 미친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가상 현실 프로그램을 이용해 무술을 수련중 이었다. 이런 내용은 어느 영화에서 상영되었다. 요즈음 들어 부쩍 컴퓨터의 관심이 높아지고 생활이 고도의 정보를 통한 세계화 추세에 들다보니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은 '컴맹'으로 불리우며 무시 당하는 세태이다. 특히 컴퓨터의 발달이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이제 컴퓨터는 기계를 떠나 생활이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요즘들어 가장 관심을 끄는 컴퓨터 프로그램 가장 널리 쓰이는 게임등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만도 대기업에서 조차 가상 현실 게임산업에 손을 댔다고 하니 가상 현실이 우리 생활에 얼마큼 영향을 주며 얼마나 널리 쓰이게 될지 환하게 알 일이다. 가상 현실이 각광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상 현실은 구성이 복잡한 만큼 광범위한 응용 분야를 창출할 수 있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커다란 변혁과 전환을 몰고 올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러분야의 관련 기술을 하나로 집약시키는 한편 그 결과를 실생활에 접목 시킬수 있다는 점이 단지 컴퓨터 기술의 하나로 보기에는 너무나 큰 파급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Ⅱ가상현실과 미래 1.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란 무엇인가 요즘 신문에서 "가상 현실을 이용한 xx 개발" 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상'과 '현실' 이라는 이질적 의미를 담고 있는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진 새로운 기술의 이름은 이미 그 실체 보다도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이미 실제로도 군사분야와 교육, 인텔리어, 분야에서는 초보적인 실용화를 이루고 있기는 하다 수년 전 나온 '토탈리콜' 이나 '론머맨' 같은 미국의 공상 영화에[ 등장해 흥미를 끌었던 이 기술은 사람들에게 "머리로 떠올릴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실현이 가능한" 놀라운 기술로 이해되고 있다. 실제로 가상 현실이란 개념은 정의 자체부터 매우 모호하다. 단어 자체가 가상(Virtual)과 현실(Reality) 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하난로 묶었을 뿐 아니라 가상 현실을 구현하는 기술도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를 포함하는 컴퓨터 기술 뿐 아니라 심리학 생리학 인간공학등의 다양한 분야가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상 현실이란 "컴퓨터를 이용하여 가상적인 환경을 만들어 그 환경내에서 3차원의 의사체험(擬似體驗)을 가능하게 하는 첨단 기술"로 정의될 수 있다. 즉 가상 현실은 실제 물체는 없지만 이를 시뮬레이션해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2. 가상 현실의 역사 가상현실이라는 말이 일반인에게 거부감없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이 용어가 정착되기 전에는 가상 환경(Virtual environment) 인공현실(Artficial reality) 인공 두되공간(Cyber space) 등으로 이름이 불리웠는데 이 같은 용어의 흔재는 그 개념을 확실히 설정하는데 적 잖은 장애 요소로 작용했다. 가상 현실에 대한 연구는 60년대 중반 CAD의 원조로 불리우는 MIT의 이반 서덜랜드 교수에 의해 시작 된다. 넓은 의미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인 CAD가 가상 현실(Virtual Reality)의 모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컴퓨터 그래픽은 대상물을 수치화시켜 실시간 내에 표현하고자 하는데 3차원의 실세계를 평면으로 표현하는 데는 어딘지 답답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그래픽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상 현실은 3차원 공간을 표현하는데데이타를 컴퓨터에 기억시켜 그 가상공간에서 인간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을 디스플레이에 기억시키고 표시하는 것이다. 이 때 가상 공간에 있는 인간의 위치는 마우스 등의 입력기에 의해 이동 시킬수 있고 그에 따라 보이는 장면의 변화를 계산해 낸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인공 지능이나 산업공학, 등의 연관 과학 학문이 어우러지면서 가상 현실(Virtual Reality)기술이 본격화 된 것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였다. 특히 멀티 미디어의 발달에 따른 음성 인식과 화상처리 기술의 진보는 이를 통합한 기술의 하나로 가상현실의 출현을 예고 하고 있었다.85년 미항공 우주국(NASA)은 좁은 우주선의 복잡한 작업을 단순화 하기 위하여 3차원 데이터 공간을 비행하며 몇 개의 컴퓨터 조작 패널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우주선 외부에서도 우주복을 입은채 조작할 수 있는 VIEW(Vitual Intreface Environment Workstation)을 만들었다. 사진이 최초로 발명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고 텔베비젼이나 영화관이 등장한 것도 20세기 초에 불과하다. 이들 매체는 모두 사물을 2차원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발명 당시 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2차원의 한계를 넘어서 3차원의 표현방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이들 발명품보다 앞서 일어났다는 것이다.그리고 그 동안 좀더 현실감 있는 입체 이미지에 접근하고자 수 많은 입체경에 발명되어 왔으며 그 맥은 오늘날 가상현실시스템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입체화 발견에 대한 연구는 1백 50년 전에 휘트스톤 이란 인물이 프리즘과 거울을 사용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최초의 입체경을 발명해 명성을 얻은바 있는 그는 사람의 양쪽 눈이 보는 이미지 차이가 입체적인 깊이를 지각 시킨다는 사실을 영국학술원에 보고했다. 그는 마주 향하는 이미지들을 반사시키기 위해 45°각도의 거울을 사용해 두 개의 사진이 보는 사람의 눈을 향해 반사되도록 측면에 배치했다. 이 거울 입체경은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눈에 하나씩 2개의 2차원 그림을 제공함으로써 기술적으로 망막의 불일치를 만들었다. 렌즈없이 보는 유일한 입체경인 이 발명품은 이 후 관찰자의 눈 사이 거리와 이미지의 크기를 조절하는 렌즈가 부착돼 정교함을 더했다. 한편 무작위 점 입체화(random - dot stereogram)라 불리우는 입체 기술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는 베라 유레즈라는 사람에 의해 고안된 것이다. 얼마전 관심을 끌었던 '매직아이(magic eye)'라는 것은 바로 이 무작위 점 입체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는 난수표에서 힌트를 얻어 흑백의 점으로 그려낸 두장의 그림을 일정한 방법을 통해 보면 입체적인 도형이 떠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인간의 두눈이 양안 시각을 갖는 다는 것과 대상인식은 항상 입체시 (立體視) 이전에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레즈의 발견 이전까지 사람들은 한눈의 대상물 인식은 입체시전에 일어나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는 두눈의 영상은 두뇌의 중간 지점에서 합쳐지고 깊이가 인식되기 때문에 편시야 시각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시초로 그 후 입체 환경을 통해 보는 입체 영화와 3-D 영상기법이 발전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부르스터라는 인물은 양쪽 눈이 정확히 다른 그림을 보는데 도움이 되는 렌즈를 사용한 입체경을 발명했는데 오늘 날에도 사용되고 있는 이 발명품은 두눈이 같은 광경을 보는 것을 막기위해 두 개의 렌즈 사이에 경계 분리기가 동시에 놓여 있다. 이것은 후에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뷰마스터(View Master) 라는 간단한 입체 그림을 보는 도구로 발전하게 된다. 3. 인간과 가상 현실 1)생활속에 파고드는 가상현실 우리 주변에도 가상 현실 기술을 응용한 예가 적지 않다. 가장 구체적으로 가까운 예가 가상 현실 게임관인 어뮤즈21관이다(이 곳은 HMD를 착용하고 바깥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채 게임하는 곳이다.) 가상 현실의 응용 분야는 비단 흥미 위주의 오락만은 아니다. 산업용으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한새퍼시스가 시도한 가상 부엌 시스템이 있다. 부엌용 가구를 일일이 설치하지 않아도 입체 영상을 통해 위치를 바꿀 수 있으며 냉장고나 싱크대 등을 가상 세계안에서 사용할 수 있다. 동아 건설도 가상 모델 하우스 계획을 발표해 주위의 관심을 끌었다.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모델 하우스를 찾아다닐 필요없이 아파트 데이터 베이스를 통해 원하는 스타일의 아파트를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특히 아파트 실내에 들어가 걸어다닌다거나 베란다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물론 벽제나 바닥제의 촉감을 느낄수 있다. 2)컴퓨터 문화를 새롭게 정의 가상 현실이 컴퓨터 관련업계에 일으키는 파장은 단순히 활용 분야가 많다는 이유외에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가상현실의 인터페이스이다. 실제로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 가상 현실을 대표하는 장비로 알려져 있는 HMD(Head Mounted Display)를 단순히 영상을 입체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HMD는 출력 장치로서 역할외에 사용자의 머리 움직임이나 이동을 컴퓨터 시스템에 전달하는 입력장치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이런 면에서는 촉각 디스플레이 장치인 데이터 글러브(장갑형태)와 바디 슈트( 옷과 같은 형태)도 마찬가지 이다. 특수 장비를 통해 감지된 인간의 동적은 컴퓨터가 처리하고 결과는 디스 플레이 장치로 보내진다. 보내진 결과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다시 컴퓨터로 보내지는 일련의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HMD는 인간의 동작을 감지함은 물론 그 동작에 대한 처리 결과를 나타내 주기 때문에 입력장치와 출력 장치의 기능을 모두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의 연결 고리인 셈이다. 이런 일련의 개발과정은 키보드로 시작해서 마우스로 이어져 온 컴퓨터와 인간간의 인터페이스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우선은 인간이 컴퓨터가 할 일을 하나 하나 지시해야 하는 현재의 상태에서 벗어나 말이나 손짓 등 일상적인 행동만으로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컴퓨터를 단순한 작업도구가 아닌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3)인간 연구가 기초 가상 현실을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매우 광범위하다. 컴퓨터와 관련된 하드웨아 소프트웨어 외에도 인간의 감각 기관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심리학 생리학 인간공학 등의 바탕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역시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 웨어이다. 3차원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시각 장치로는 HMD외에도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홀로그래피 등이 있다. 또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 웨어는 일반 3차원 그래픽보다 빠른 속도로 랜더링해야 함은 물론 사용자의 시점(view point) 변화에 따라 물체의 모든 면을 연출해 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컴퓨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자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면 가상 현실 시스템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의 감각이 어디에서 어떻게 감지되어 대뇌에 전달되는 지 알아야 인간 감각 기관의 어디를 어떻게 자극해서 전달할 것인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여주는 주체인 가상 현실 시스템과 그것을 즐기는 인간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또한 이에 걸맞게 진보된 것이어야 한다. 4) 가상 현실과 오감 가상 현실의 작용을 살펴보면 가상 현실을 이루는 요소들을 알 수 있다. 우선 가상 현실 시스템은 실체 세계에 있는 인간의 동작을 측정하고 입력할 수 있는 기기를 사용한다. 그 다음 입력받은 동작을 컴퓨터가 관장하는 가상 공간에 전달해 작용과 반응을 일으킨다. 이때 가상공간은 인간의 동작에 대응해 영상과 소리 체감등 다양한 감각 정보를 합성한 후 이를 특수한 하드웨어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한다. 이런 일련이 과정들을 통해서 사용자는 실제 세계에서 컴퓨터가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가상 현실 시스템의 주요 임무는 인간의 오감을 통한 체험의 전달이기 때문에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정확한 감성공학을 필요로 한다. 가상 현실의 공학적인 명제는 다름아닌 경험의 전달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또한 가상 현실의 효과를 충분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감각 전달 방법의 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상 현실은 기술적 차원의 진보뿐 아니라 인간적 요소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1) 시각 디스플레이 (Display)장치 인간이 감각을 받아들이는 상당 부분은 시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가상 현실 시스템에서 각각 디스플레이 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눈앞에 소형 컬러 액정 디스플레이를 고정시켜 3차원 영상을 보게 하는 HMD는 시각 디스플레이 장치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머리에 착용하는 헬멧 형식으로 머리의 움직임을 측정한는 센서를 함께 장착하고 있다. 또한 헬멧의 각도와 높이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시스템을 관리하며 약 135°의 넓은 시야에 걸친 화상을 비춰준다. HMD의 성능중 하나 중요한 것은 넓은 시야를 확보해 가상 세계에 몰입과 존재의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실재로 인간은 수평으로 155°의 시야를 갖기 때문에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HMD일수록 보다 사실감 있는 가상 활경을 즐기는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HMD에도 문제점이 있다. HMD는 형태나 외양 및 기능에 있어서 다양하지만 모두 불편하다는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며 시야의 크기와 직결되는 액정의 크기, 해상도, 새로운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걸리는 시간(Frame refresh rate), 머리에 장착함으로 해서 야기되는 위생상의 문제, 중량, 누의 피로감, 화면과 동작의 불일치로 인한 감각 기관의 혼란등이다. 또한 많은 케이블로 인해 이동에 제한이 있다는 결점도 가상 현실 시스템의 사용에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첫 번째 난제는 낮은 해상도롤 인해 눈의 피로와 현실감 감쇄의 원인이 된다. 두 번째 문제점은 아직 그래픽 처리속도가 사람의 반응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점은 아직 그래픽 처리속도가 사람의 반응을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시점 이동에 대한 실시간 화상처리가 약간 높다. 센서에서의 시간 자체는 시스템과 그래픽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시간 지체와 함쳐져 시스템이 반응하기 ¼-⅓초 이전의 위치가 HMD에 의해 전달된다. 따라서 사용자가 고개를 돌릴 때 가상의 그래픽 세계가 시야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현저한 시간 지연이 생기게 된다. 이런 현상은 사용자에게 방향감각의 혼란을 야기하는 등 후유증을 남기기도한다. 세 번째 머리에 장착함으로써 야기되는 위생상은 문제, 중량, 피로감, 장시간 착용시의 멀미 증상 등이다. 현재 발표된 상업용 HMD의 경우 무게가 보통 2㎏인데 현실감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 무겁다. 그리고 HMD의 특성상 눈앞의 무게 비중이 커서 HMD가 앞으로 처지지 않게 손으로 잡고 머리를 회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초당 프레임수인데 TV정도의 화면에서는 매초 30프레임 이하면 보이는 것이 불안정해 눈이 피로해 진다. 현제의 가상 현실 기술은 10-20프레임 정도가 한계이다. 이 종도의 화상을 10분이상 계속 사용한다면 모니터를 10시간 사용한 것과 같다는 보고 결과도 있다. 다섯째로 HMD를 착용한고 있는 동안은 오직 한 장소로 활동이 제한도며 가상 세곙 이외의 환경에서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장치를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HMD의 문제점은 현실재적응이라는 문제로 집중된다. 감각궤한의 지연 실세계의 경험과 가속 운동으로 인한 시각 및 전정기관 체성감각기관에서 대뇌로 전달되는 감각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뇌가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어지럼증 피로감 구토 땀흘림 방향감각의 상실 복부팽만감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이를 전문 용어로 사이버 병(Cybersickness) 이라고 부르는 데 보통 가상현실을 체험한 후 장시간 쉬었다가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청각디스플레이 장치 가상 현실에 사용되는 음향은 HMD에 연결돼 시각과 동시에 작동한다. 현재 사용되는 이 분야의 기술수준은 스테레오로 입체음향을 재생하는 정도지만 홀로포닉스라는 신기술의 접목이 시도하고 있다. 홀로포닉스는 3차원 공간내에서 눈을 감고도 소리가 나는 곳을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움직임에 따라 그 감지도가 변화해 생생한 소리를 제공하는 음향기술이다. 귀는 눈과 마찬가지로 입체적인 음향을 들을 수 있는 데 사물의 위치와 얼마나 먼곳에 있는지를 뇌가 판단하도록 해준다. 중이(中耳)에는 서로 연결된 세 개의 뼈가 있어 소리 에너지를 고막으로부터 액체가 차 있는 내이 (內耳)로 보낸다. 갑자기 큰 소리가 나면 이 뼈를 고정하는 근육이 음향반사작용을 일으켜 조여지고 이 때문에 내이에 도달하는 에너지의 양을 최고 100분의 1정도로 감소시켜 준다. 이 근육은 지속적인 큰소리에 대해 10분이상 버틸수 없다. 귀는 또 어떤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주파수를 여과함으로써 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 연구에 의하면 맹인이나 눈을 가린 어른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휘파람 소리로 최고 3미터 까지 떨어진 곳에 물체가 있는 지 없는 지를 알수 있다. 강한 오디오 이미지는 사물에 대한 공간적 정보를 제공하며 체험자에게 가려진 가상존재를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의 공간적 단서는 귀와 귀사이에 이르는 소리의 세기와 귀에 도달하는 소리의 시간 지연에 차이가 있다. 가상 현실 시스템에서 소리의 역할은 현장감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일반 스테레오 사운드는 2개의 채널을 통해 소리가 머리 중간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만든다. 입체 음향은 외이를 통해서 고막으로 전달되는 음향신호를 좌우로 따로따로 생성해 임의의 장소에서 음원이 재생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가상현실 시스템에서 청각디스플레이 장치는HMD에 연결 돤 헤드폰이나 이어폰이 주로 이용된다. 3차원 공간에서 현실적인 소리의 구현은 다수의 스피커를 사람 주위에 배치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다. 3차원 음향을 출력하기 위해서는 3차원 사운드 프로세서와 소리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는 음원이 필요하다. 이 분야의 성과 중 하나가 NASA가 개발한 컨볼보트론(Convol- votron)이다. 컴볼보트론은 아주 강력한 오디오 전용 DSP로서 HRTF로 만들어진 아날로그형 소리를 통해 3차원 사운드 효과를 내는 데 HRTF라 불리우는 일련의 계산법을 이용해 음원이 마치 소리가 특정 위치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만든다. 이 시스템은 방음 장치가 되어 있고 소리의 반사가 없는 방에 설치된 144개의 스피커에서 출력되는 다양한 소리의 주파수에 의해 귀에 충격이 가해질 때 음향의 변화를 그려낸다. 최근에는 인간의 청각 특성에 관한 연구가 진전되어 음성 신호의 실시간 처리로 일반적인 헤드폰을 사용해 3D 공간 임의의 위치에 음원을 높은 정밀도로 정립시키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3) 촉각 디스플레이 장치 촉각과 포스 피드백은 가상현실의 완성에 있어서 필수적인 사항이다. 실제에서 촉감으 통해 사물의 존재를 인지하듯 물리적 저항 감각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발된 장치들은 피부에 맞닿는 표면의 질감과 작은 압력을 시뮬레이트하는 데 사용된다. 전기적 촉각 및 진동 촉각 장치들이 전류나 작은 진동으로 피부의 자극 수용체들을 자극함으로써 사용자의 손가락 끝에 표면적 착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가상의 터치 동작은 특히 텔레로보틱스 분야나 수술 시물레에션과같은 고도의 정확성을 요하는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 가상 촉감을 만들기 위해 개발된 것이 촉각과 포스 피드백 시스템이다. 실제생활에서 감촉이나 포스피드백에 의존하는 수많은 체험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촉각은 물리적 자극에 대한 수용기를 통해 일어난다. 반면 포스피드백은 손가락이나 손에 작용하는 실제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 감각은 근육이나 관절에 적용된다. 생리학에서는 촉각과 압각의 분류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만약 모발에 가볍게 접촉을 하면 모근의 신경말단망에 의해 촉각이 발생하고 페치니소체를 가볍게 누르면 압각이 발생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촉각은 피부표면에서 느끼는 피부감각과 피부 밑의 근육에서 느끼는 시부감각을 통한다. 피부에는 압각, 온각, 냉각, 통각을 만드는 점들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피부 전체에 이들 감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감각적음 압점, 온점, 냉점, 통점으로 불리며 각각 그 종류가 다른 감각을 만들어 낸다, 심부 감각은 근육,관절기 등 수용기의 충격에 의해 발생하는 감각이며 물체를 움직일 때의 저항감과 중량감등 운동이나 위치에 대한 감각과 심부통각으로 나누어지며 피부감각과 심부감각을 합쳐서 체성 감각이라고 한다. 가상현실에서도 체성 감각에 대한 제시는 아직 모색 단계인데 몸 전체에 분포돼 있는 촉각을 공학적으로 모방해 실시간으로 재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실현의 범위를 손에 한정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촉각의 피드백은 피부에 가해지는 힘을 말하고 포스 피드백은 근육이나 관절에 가해지는 힘의 되먹임을 말한다. 어떤 물체를 형성하고 손가락 끝으로 뭔가를 조종하고나 특정 방향에서 물체를 잡기 위해서는 손가락과 손의 움직임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범용적인 피드백 장치들은 비용,효율, 유용성에 있어서 충분치 못하다. 그러나 머지않아 이 장치들은 더욱 가벼워지고 더욱 더 나은 성능을 갖게 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이 장치는 센서와 액튜에이터(ACTUAYOR)가 집적된 얇고 유연성 있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며 새롭게 개발된 기술이 효과적 경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용될 것이다. 현재 연구되어지고 있는 포스 피드백 방식으로는 마스터암, 조이스틱. 조이스트링, 데이터 글러브의 네가지를 들수 있다. 이들 장치는 현재 가상 현실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다. (4) 후각과 미각 디스플레이어 장치 현재 실현되고 있는 가상 현실은 시각과 청각 및 촉각이 중심이지만 사용 목적에 따라 언젠가는 미각과 후각도 필요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오감은 2000년 전 아리스토 텔레스가 처음 알아낸 것이지만 과학자 들이 인간 감각의 깊은 비밀을 풀어내고 그 케카니즘을 규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가상현실에서 후각과 미각은 아직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맛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후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콧속에 들어 있는 후각세포로 4천가지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고 향수업계의 전문가는 약 1만가지의 향내를 식별할 수 있다고 한다. 맛에 대한 감각의 대부분은 후각을 구성하고 있는 100만개의 세포에서 나온다. 후각은 뇌가 가장 원시적인 부분인 변연계와 연결되어 있는 데 이곳은 정서 식욕, 성욕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이 후각 세포들은 다양한 수용기를 갖고 있어서 특정한 화학물질만이 들어갈 수 있고 수용기는 화학 물질의 냄새가 들어오면 신경신호를 일으킨다. 가장 중요한 후각 신경 조직과 후각 세포는 코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 3차 신경조직 세포는 각기 다른 신경을 통해 뇌로 신호를 보낸다. 이들 두감각은 물리 세계에서 화학적인 인터페이스를 갖는데 컴퓨터는 아직 적합한 인테페이스를 갖고 있지 못하다. 현재 나와 있는 가상 현실 시스템의 전조인 모턴 헤이리그(Morton Heilig)는 센서라마(sensorama)라는 시각 청각 진동외에 배기 가스 꽃의 향수 행수 등 냄새의 감각까지 제공하는 개인용 오락기구를 발명하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오늘날 가상현실의 오감 제어에 관한 선구자적인 고안의 발상이었다. 센서라마 기구는 일종의 1인용 극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상요자가 의자에 앉아 오토바이를 타고 뉴육시내를 다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도록 영상과 음향은 물론 바람 냄새 진동까지 제공한다. 오토바이 시뮬레이터와 비슷한 체감을 갖도록 설계된 시스템이지만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에 진정한 가상현실 시스템은 아니었다. 결국 오늘날 진정한 가상현실시스템의 원형으로써 앞날을 예견하는 선구자적인 고안인 셈이었다. 또 다른 실례로써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디즈니 랜드에 있는 미래도시는 선사시대의 광경, 습기를 느낄수 있는 모의 향기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후각 입력 장치로서 개발된 방향 디스플레이가 있으나 아직까지는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후각 디스플레이는 냄새의 가각이 잔존하기 때문에 급작스런 환겨의 변화에 빠르게 적용하기 힘들다. 가상 현실속에서 사용자가 갑자기 다른 환경속으로 들어가거나 다른 행동을 취할 때 이에 따른 냄새의 변화를 빠를게 바꿀 수 없는점이 후각 디스플레이의 가장 큰 단점이다. 냄새와 맛의 감각은 실제적인 분자를 받아들이기 위한 수신기 역할을 하는 코와 입을 통해 특정 신호를 뇌에 보내게 된다. 따라서 후각과 미각 디스플에이의 개발은 매우 어렵지만 궁극에 가서는 뇌파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냄새나 맛을 강제로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5) 가상 현실의 응용 모니터와 같이 평면에 나타난 이미지를 입체영상으로 나타내려는 기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기술의 미숙으로 오늘날과 같이 폭넓게 전파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근래들어 입체시를 지원하는 각종 장치나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대폭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광고나 예술, 분자구조 모델링, 사진측량법, 모의 비행 시뮬레이터, CAD나 CAM, 방사선 수술, 컴퓨터 단층촬영, 3차원 비디오 게임, 3D TV, 다차원 데이터이 시각화에서부터 가상 현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입체영상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술은 앞으로 군사과학 의학 산업 교육 오락등 실제적인 모든 분야에 확대될수 있다. 가상 현실이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이것이 기존의 기술을 능가하는 무엇이 바탕이 되서라기 보다는 그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게 더 클 것이다. 가상 현실의 응용분야는 쉽게 설명해 가상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공간 내에 존재하면서 안가고도 체험하는 것인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저자를 가상현실의 연습(Virtual Reality walkthrough)이라 하고 후자를 원격존재(Tele-presence)라 부른다 원격존재는 자신이 있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있는 자신의 분신인 로봇의행동을 손에 잡힐 듯이 알게 되고 필요한 경우 로봇을 자신의 수족처럼 조작해 마치 자신이 그 장소에 있는 듯한 감각을 가질수 있는 기술이다. 원격존재와 가상현실의 관계는 하나를 거꾸로 말하는 것과 같다. 가상현실은 자신의 주변에 현실과는 다른 자연스런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원격존재는 자신이 현재의 자리에 있으면서 별도의 환경으로 가는 것이라 이해하면 된다. 원격 존재가 한쪽이 다른편을 조작한다는 것 외에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로봇뿐만 아니라 원격으로 조작되는 기계 전체를 일컬어 털레오페레(Teleoperator)라 부르는데 이 부분의 본격적인 연구개발이 진전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원자력이 본격적으로 연구되면서부터 이다. 최초의 연구는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를 중심으로 개발된 '매직핸드'라는 이름의 마스터 슬레이브 매니플레이터(manipulator) 였다, 1960년대의 텔레오퍼레이션 연구는 엑조스켈톤형 인력증폭기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1950년대 후반에 행해진 GE(Generak Electric)사의 모셔박사의 연구를 토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다시 미국 정부와 GE사의 공동프로젝트인 '하디만( Hardymann)'으로 진전했다. 이들 연구는 사람이 장치 속에 들어가 힘을 증대시켜 무거운 것을 드는 일 등에 쓰이도록 고안됐는 데 만일 장치에 고장이 생기면 인간의 생명도 위험해지는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공상영화의 '에어리언'을 본 사람이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이 '기계옷'을 입고 괴물과 싸우는 장면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1)의학분야 3차원 입체영상이 적용돼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의학분야이다. 3차원의 비디오 영상은 의사로 하여금 수술에서 발생할지도 모를 시행착오를 방지하게 하며 수술경로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외과 의사들의 사전수술 시뮬레이션 계획에 3D영상기술은 매우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실례로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임상협회는 외과의사들이 아주 미세한 범위의 뇌에서 위치를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뇌수술을 위한 3D의 응용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 기술은 동시에 뼈의 재봉합기술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전자적인 3차원 입체영상은 의사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주게 되고 뼈가 어떻게 구성되고 재위치 되어야 하는지 에 대한 계획을 제대로 세울수 있게 한다. 현미경으로 봐야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미소대상의 수술을 마이크로수술(microsugery)라고 하는데 이 수술은 현재 미소한 혐관유합 신경이나 정관 난관의 재생수술 등 다방면에서 이용되고 있다. 마이크로 수술은 대단히 미묘한 손의 동작을 필요로 하기에 고도의 숙련을 요구한다. 여기에 원격존재 기술을 도입해 보통의 수술과 같은 감각으로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가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은 현재 급속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마이크로 머신 기술의 진보에 바탕한 것이다. 손의 동작을 미소한 매니플레이터에 전달하고 환부의 영상을 확대해 관찰하면서 원격조작으로 수술한다는 것이 골자 최근에는 마이크로머신을 캡슐의 형태로 체내에 넣고 체외에서 원격존재기술을 이용해 진단이나 수술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되고 있다. 가상 현실이 의료계에 대비되면서 의술혁명의 서곡을 울렸다. 병든 부위를 절개하지 않고도 가상현실 장비를 이용하여 인체 내부를 생생하게 들여다보면서 수술을 할 수 있는데 정확성도 있고 수술의 성공률도 높다고 한다. 원격지에 있는 환자에게 이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여 시술할 수 있는 장이 열릴 경우 외국의 유명한 외과 의사를 찾아 비행기로 몇시간씩 나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음은 물론 의료 해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지역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다. 해부 실습용 시신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실제로 시신을 해부하지 않고도 모의 해부 실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오락 최근 우리 주변에 가상현실 기술을 응용한 예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가상 현실 게임관인 어뮤즈21에 가보면 HMD를 착용하고 일반 게임과 달리 바깥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채 게임에 몰입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현재 가상 현실 기술이 가장 많이 응용되고 있는 분야이며 가상 현실 산업이 발전하는 초기에 각광받을 분야가 오락분야이다. 가정용 게임기 분야에서는 3D를 이용한 입체게임기가 일본 세가사에서 개발돼 특수 LCD 안경과 함께 판매되기도 했다. 이 안경은 LCD셔터 방식을 채용한 특수안경으로 사용자에게 실감있는 입체그래픽영상을 제공해 준다. 최근 이 회사는 가상현실기술을 응용한 3차원의 비디오 게임기와 입체안경보다 더 몰입감을 주는 영상을 제공하는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개발해 제품화시켰다. (3) 가상건물 세우고 이상을 점검 아마도 가상 현실의 응용 중 가상 현실 연습 분야는 건축가들에게 큰 경제적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대학에 설치된 가상건축의 내부를 살펴보면 건물 구조의 청사진을 CAD프로그램으로 그래 놓고 이를 컴퓨터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으로 보내 이미지에 입체감을 입혀 2차원 데이터를 3차원 이미지로 만든다. 이 이미지는 엔지니어나 건축가가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쓰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학 연구진은 이와 함께 가상의 빌딩 공간을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기 위해 핸들이 달린 러닝머신 시스템을 개발했다. 가상 환경에서 앞으로 움직이고자 하면 사용자는 러닝머신에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코너를 돌거나 방을 보고 싶으면 걸으면서 원하는 방향에 있는 핸들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 빌딩 주변을 걸을 때 걸음속도를 조절해 움직임의 비율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은 실세계와 매우 비슷하다. 걷고있는 동안 머리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주위를 둘러본면 물체는 실세계에서와 같이 원근감을 갖고 보여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단순히 재미있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건축설계에 있어서도 기존의 설계방식에 비해 실제적 장점을 지니고 있다. 기존이 설계방식으로는 3차원적인 공간감을 2차원적인 모니터에서 표현하기란 쉽지가 않을 뿐 아니라 3차원 모델을 실제 크기로 만들어 보지 않고는 디자인의 잘못된 점을 알 수가 없었다. 가상 현실 기술은 이러한 점들을 개선시켜 줄 것이다. 건축도면을 입력해 설계단계에서 컴퓨터 속에 미리 건축물을 만들어보고 그 안을 둘러본다면 도면상에 나타나지 않는 문제점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예로 가상 박물관을 들수 있다.현재 박물관들은 유적물을 컴퓨터 그랙픽 작업을 통해 복원하고 있다. 시스템 공학 연구소에서는 미륵사지탑 복원을 계기로 문화재 연구소와 계속적으로 이 작업을 진행중인데 이는 원형고증 작업에 신속성고 정밀도를 향상시켜 문화재 보존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입체영상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가상박물관이 만들어지면 멀리 떨어져 있는 유적지까지 가지 않고서도 인파에 방해받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마치 그곳에 들어가서 살펴보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설계분야에서도 기계적 설계환경의 연구에 입체시각이 2배에서 4배까지 정확도를 증진시키며 설계오류와 변경을 덜 초래 한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CAD나 CAM등 모든 설계응용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다. 입체 영상은 자동화된 도구생산을 위한 설계도를 만들며 CAD프로그램에 그대로 공급될 수 있다. 가상의 움직임으로 사용자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시험과 오류에 의해 실험을 할 수 있다. 건축설계의 경우 일련의 계획을 세우고 3차원의 모델을 만들며 HMD를 이용하여 그 내부를 돌아다니며 관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 건축물의 완공을 미리 시뮬레이션할 수 있어 정확한 내부설계까지도 상세하게 설계할 수 있다. 또한 3차원을 통한 분석은 동시에 건축기사들이 잠재적인 문제점을 예견하는 것을 돕는다. 건축가는 3차원 공간을 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하여 탐험할 수 있으며 여러각도에서 건물을 바라볼 수도 있다. 따라서 설계가 활용되는 모든 분야는 3D의적용이 매우 긴요하게 쓰일 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과 노력을 절감시켜 줄 수 있다. (4) 인테리어 응용분야 VR연습이 실제 생활에서 가장 각광 받고 있는 분야는 인테리어 응용이다. 그 한예로 작년 시스템 공학연구소가 연구한 부엌 인테리어의 세계를 보면 이 장치는 미국의 VPL사가 개발한 데이터 글러브와 디스플레이 기술을 이용한 시스템으로 이용한 시스템으로 컴퓨터로 부엌의 CAD모델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머리에 아이폰을 쓰고 가상 부엌을 돌아 다닐수 있다. 식탁의 의자도 옮겨보고 냉장고의 색을 바꾸어도 보고 전자레인지를 즉석에서 배치하는 등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느것이나 변경 추가할 수 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것과 동일한 3차원 입체 영상을 제작하고 제작된 입체영상을 실제와 동일한 느낌을 갖도록 실제감을 표현하며 실제와 동일하게 재작된 물체를 3차원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동시킨다는 데 있다. 이 시스템은 주방가구를 대상으로 개발되었으니 실제로는 전시장에 전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제품에 응용이 간으하다. 특히 무게가 무겁고 부피가 커서 배치가 용이하지 않고 표준품의 종류와 숫자는 많지만 전시될 물품의 수가 제한되는 제품이라면 더욱 유리하다. 가상 현실을 이용한 CAD는 디자이너가 제품을 디자인 할 때부터 사용자를 함께 참여시켜 디자인 할 수 있다. 즉 디자인 상태의 물품을 가상의 세계에서 사용자에게 이용토록 함으로써 사용상에 문제점은 없는 지를 체크해 가면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다. 이로써 제품개발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디자인 경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는 부품은 각자에 맞는 개별 디자인이 가능해 진다. 음향설계 분야에서 콘서트 홀이나 집을 디자인 할 때 건축가는 청각적인 문제에 시달려 왔다. 건축되기 전에 건축물의 청각을 결정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콘서트 홀에 청중이 가득찼을 때 음향의 반향 등 예견되는 많은 경우를 생각해서 건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상현실을 이용해 가상의 건축물에 가상의 청중을 앉도록 하고 연주되는 음향을 가상의 청중을 통해 느끼도록 하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5)비행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교육 교육은 가상 현실연습이 적용될 수 있는 관심 분야의 하나이다.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을 이루고 있는 응용분야로 꼽히는 비행기 조종사의 시뮬레이터는 바로 어떤 방식으로 VR이 교육에 접합되는 가를 잘 보여준다.신형기의 시범 비행은 위험이 따르는게 보통이다. 개발된 비행기가 안전한지의 여부는 그 비행기의 동적 요소를 조합해 제작된 플리이트 시뮬레이터로 모의 비행을 실시함으로써 미리 알아보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음주나 약물 복용후의 운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실제 운전자에게 술과 약을 먹이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를 대신하는 장치가 바로 운전 시뮬레이터다. 또한 체험이나 오락용 시뮬레이터의 한 종류인 '스페이스 월드'는 체험형 레저시설이라 고도 불리우는데 이곳에서는 미리 프로그램된 과정을 시뮬레이터로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객의 의지에 따라 대상의 운동이나 상활이 변하도록 하는 피드백 장치가 시도되고 있다. 이는 마치 컴퓨터가 이해되는 데 컴퓨터 오락이 큰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이 VR이 보통사람들에게 알려지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도 오락과 레제 분야에서는 VR을 구체화 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연구비가 투입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VR오락이 흡인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는 그동안 등장했던 첨단의 오락기 들이나 레저용 디스플레이에 익숙해진 일반인들이 이제 막 초보적인 단계에 들어선 VR게임이 어설픈 화면에 쉽게 설득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6) 사실감을 추구 목표로 한 기술 별도의 장소에 있는 3인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이 원격지 화상 회의의 큰 목표다. 종래 텔레비젼 회의 모습을 표시할 뿐 이고 배경이 달라 한자리에서 회의한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이 기술이 보편화 된다면 현재 부분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재택 근무는 좀더 본격화될 수 있다. 우선 가상의 회의실을 만들어 실공간과 같은 조명조건을 주고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을 이용, 실제공간에 있는 책상이나 의자 등의 연속성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인물을 영사한다. 또 인물도 같은 조명조건 내에서 컴퓨터 그래픽스 기술을 구사해 표시한다. 실제 공간에서의 인물은 입체적으로 존재하고 파악되지만 지금까지의 디스플레이는 이를 평면으로만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가상현실을 응용한 원격지 화상회의에서는 실제와 같은 입체감이 표현되도록 한다, 이것은 수신자측에 3차원 모델을 준비하고 상대의 얼굴 크기나 복장색 등을 합해 모델을 변형시킨 후 가상 회의실에 영사하도록 해 시각적 상호작용을 만든다. 예를 들어 A라는 인물이 B라는 인물을 볼 때 B는 상대방의 시선을 느끼고 A의 방향을 향하며 또 제3자 C도 이 시선의 오고 감을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가상 현실의 응용에 있어 사실감의 추구를 목표로 한 것이다. (7) 군사분야 군사분야에서는 입체영상 활용도가 눈여겨 볼만하다. 근래에는 항공 촬영된 3D입체 사진을 이용해 적 지역의 정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형의 구조물과 형태를 3차원 정보로 저장함으로써 지질 형태를 보다 더 생생한 이미지로 관찰할 수 있다. 최근 미국방성은 스테레오 그래픽스사의 크리스탈아이즈 가상 현실시스템으로 성공적인 군사작전과 모의 전쟁 실험을 시행했다. 이 모의 훈련은 항공모함이 작전을 위해 가고 있는 동안에도 항공모함안에서 원격으로 할 수 있다, 이 기술이 좀 더 본격화된다면 가상 환경에서 실시간에 필요한 모든 훈련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8) 로봇 원격 조정 우리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리모콘 사용에 익숙하다. 텔레비젼이나 오디오 등과 같이 가까이 있고 정지한 상태의 제어는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먼 거리에 있는 움직이는 기계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같은 기계를 조종하기위해서는 간단한지 않은 원격조작(teleperation) 기술이 필요하다. 인간이 직접 들어가거나 다룰수 없는 환경의경우를 생각해 보자. 원자로 내의 냉각로를 교환하거나 해양의 바닥에 파이프 라인을 세우는 작업 또는 극히 위험한 폭발성 물질을 다루는 작업에 사람이 직접 투입된다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간만이 가진 유연성과 판단력, 정밀함 등이 반드시 요구된다.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느 도저히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술이 가상현실의 한 분야로 연구되고 있다. 미래에는 모든일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는 로봇이 등장하겠지만 현 상태에서는 사람이 멀리 떨어져서 로봇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대안으로 개발중이다. 이 시스템이 바로 로봇에게 지능을 부여해 인간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는 팔을 가진 원격로봇(Telerobot) 이다. 이러한 로봇을 먼 거리에서 조종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직접 작업을 하는 듯한 착각이나 자신이 그곳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것을 원견 임장, 혹은 원격 존재라고 부른다. (9) 우주항공 및 과학분야 우중항공 및 원격응용 등의 과학 분야에서도 입체 영상은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우주과학에서의 3D입체 사진은 행성의 탐사나 분화구의 관찰에 이용된다.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는 달탐험 임무수행시 달표면에 첫발을 내디디는 장면과 무중력 상태에서의 골프 스윙과 같은 입체사진을 촬영해 왔으며 최근에는 목성과 해왕성의 근접통과 때도 입체영상을 시도했다. 이러한 형태의 연구는 한 행성 내의 분화구와 다른 표면의 깊이를 측정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 행성표면에 대한 입체사진 촬영법 기술은 보다 생생한 지도를 그릴 수 있으며 이는 우리가 그곳을 직접 탐험하기 전까지 표면 상태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NASA의 제트 추진연구소에서는 마젤란이 지구로 보내오는 금성의 사진을 정확히 분석하고 해석하기 위해 스테레오그래픽스사의 입체시각시스템을 사용한다. 이 응용에서 둥근 돔이나 단층처럼 점진적으로 변하는 형상의 지리학적 모양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추가 정보가 제공된다. 예를 들어 화산의 2차원 영상을 보는 과학자는 2차원 영상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동심원에서 색깔차이에 대한 이유를 해석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3차원에서 같은 영성을 보면 내부의 원이 원추형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화산 핵심 구조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미국 항공사인 록히드사는 우주 시스템부의 태양판넬에 대한 검사응용에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이 기술 응용전까지 검사자는 각 태양판넬의면에 있는 많은 수의 회로가 단절됐는지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미경을 통해 판넬의 앞뒤로 움직여야 했다. 이로 인해 검사자의 피곤과 잦은 오류가 발생했었으나 이제는 현미경 대신에 입체 비디오시스템을 대치시켜 작업자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앚아 편안히 검사할 수 있게 되었다. 6) 가상현실의 문제점 이러한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가상현실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발견되어진다. 특히 가상 현실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수도 있다. 며칠전 쯤 논문에 참고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볼려고 비디오 가게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채널69'라는 제목의 테잎을 빌려주었다. 내용은 뉴스에 식상해 있던 전직 PD가 조작된 뉴스에 대해 반감으로 9시 뉴스시간에 컴퓨터 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이동 방송국을 만들고 해적전파를 띄워 성인용 프로그램을 보내어 이 사회를 비꼰다는 조금은 황당무개 하지만 앞으로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바로 "나는 나의 동정을 사이버 섹스를 통해 샤론스톤에게 줄거야" 하는 대사이다. 그런데 현재 인터넷이라든가 아니면 가까이에 용산에 가더라도 CD-ROM을 통한 2차원적 음란물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아무런 제재 없이 10대들에게 파는 것 또한 목격하였다. 그렇다면 가상현실 프로그램이 실용화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가상 현실은 의학분야라든지 학문 과학 분야에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이버 섹스라든지 폭력성이 다분히 있는 게임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정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날에는 텔레비젼이나 비디오, 영화 잡지 게임등을 통해 감각이 무디어지고 있는데 가상현실이 바로 이것을 더욱 부추길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상현실 게임이 폭력용 주제로 다루는 내용이 많아 이들의 범죄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학부에 있을 때 미션스쿨에서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았는데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을 때가 음란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 라고 대답한 경우가 60%이상이 된다는 것이며 폭력에 대해서는 폭력용 게임을 하고있을 때 이와 같은 폭력을 하고 싶다는 아이들도 절반 정도는 되었고 심하면 자기와 그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느낌까지도 받는다고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가상현실은 또한 중독성이 강해 중독될 경우 마치 마약처럼 인간의 정서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한다. 가상 현실이 사이버시크니스(가상질병, Cybersickness)를 유발시키고 있다. 가상 현실 시스템이 많이 보급되는 만큼 그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사이버 시크니스의 증세는 다양하다. 가벼운 현기증에서 두통 구토 시력장애 방향감각 상실 등이다. 특히 현실감각의 적응이 빨리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하며 전문가들은 "가상현실 시스템을 사용한 뒤 현실세계에 적응 못해 몇시간 동안 정상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Ⅲ. 21C와 목회(멀티미디어 중심으로) 1). 21C의 목회 멀티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멀티미디어는 하나의 사회적 강요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삶을 위하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멀티미디어를 모르면 세계를 모르고 멀티미디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마치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처럼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정보와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상식에 뒤지는 사람이 되는것이며 삶의 다양한 기능에 있어서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는 위기감까지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는 신학적, 종교적, 처학적 상상력의 빈곤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자동화, 기계화된 정보사회에서는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테크닉만 알면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성찰 사색 명상의 중요성 신존재를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될 수 있다. 멀티미디어의 보편화는 인간을 도덕적 인격적으로 보다는 기계적 기능적으로 평가하는 풍조를 조성할 것이다. 인간이 기계를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기계가 인간을 조작하는 비극이 초래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일상의 윤리와 도덕적 자질에 대한 가르침도 멀티미디어로부터 제공받게 된다. 과거의 종교적 견해를 대신하는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새로운 종교로 멀티미디어가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멀티미디어는 더 이상 인간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역할가지 대신하는 메신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는 오늘의 목회현장을 향한 하나의 문화적 도전이다, 이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맞서서 극복해 내려면 목회적 차원에서 현대문명에 대한 건전한 비판적 시각이 형성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공동체 스스로의자기 갱신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목회는 멀티미디어를 바르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멀티미디어의 세계가 이루어나가는 기술의 자동적 증대성에 대한 비판 능력도 필요로 한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목회는 더욱 강한 인격성,공동체성, 진실성, 거룩의 체험, 등을 나누는 신앙 공동체 형성에 목회적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바르게 수행하기 하려면 오늘의 목회현장 속에서 문화 비판적인 통찰력이 운용됨은 물론 기존의 목회에 대한 냉철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멀티미디어 시대의 인간들도 여전히 인간이며 여전히 구원의 복음과 복음을 통한 해방적 사역을 필요로하는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우리는 과거에 체험하던 신앙세게보다 더욱 폭 넓은 의미에서 새로운 신앙세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더욱 강한 신앙적 체험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2) 가상 현실과 목회 (1)교회에서의 활용 가상 현실이 우리 생활속에 파고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동안의 되어진 과학 기술의 진보에 의하며 빠르면 5년안에 실생활속에 깊숙히 파묻힘 것이고 컴퓨터 역시 커다란 것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컴퓨터가 실용화 될것이고 음성을 인지하는 컴퓨터 시스템이 우리생활과 관련이 되며 우리는 컴퓨터와 대화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개인화가 이루어지고 공동체 생활이 약해 지며 가족이라는 최소 사회집단의 개념까지도 흔들리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컴퓨터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인해 인간의 손과 발은 점점 퇴화될 수 있고 또 신을 생각하는 사고가 사라질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컴퓨터 즉 멀티미디어가 지배하는 사회속에서 가능한 일이며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가상현실 즉 VR기술이 한몫을 하리라 생각이 된다. 우리는 다가오는 21세기 목회에 있어서 한발 앞서가야 한다. 즉 가상현실을 무조건 비판한다기 보다는 장단점을 골고루 알아내고 목회에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컴퓨터 특히 본인이 다루는 가상현실부분에 있어서 많은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말 할 것이다. 특히 지금의 신세대들을 위한 선교방향이라든지 아니면 시대에 뒤지지 않는 교회가 되기위해서는 교회에서 자체로 그것들은 준비해 나아가야 한다. 먼저 나는 교회에서 가상현실의 프로그램을 교회에서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애배당이나 교육관을 건축할 때, 혹은 교회의 조경사업, 기동원시설의 장단기 계획을 세울 때 가상현실은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다. 즉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프로그램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가상현실을 실용화하고 전도의 도구로서 사용하기 위해서 먼저 게임기의 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진다. 게임은 청소년들이 쉽게 친해지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는 시기에 중요한 청소년 선교의 한 도구가 되리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성경의 내용을 게임화한다든지 (예를 들면 다윗과 골리앗 게임,노아의 방주등)해서 성서의 내용에 친숙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가상 현실을 통한 예배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에 대한 찬반 양론이 펼쳐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프로그램이 장애인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은 예배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서 이용될 수 있다. 즉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어떤 예배도 시행할 수 있고 또한 예배 참석자에게 여러 가지 선택의 폭을 주어 예배에 흥미를 준다는 점도 있다. 또한 개발되어야 할 프로그램이 있다면 바로 성경에 바탕을 가상현실의 프로그램화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 하기를 원하고 아픔을 같이 나누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상상해 보라. 만약 우리가 엑소도스를 경험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그 커다란 대열 가운데서 그들과 같이 길을 떠난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는 데 내가 가서 옆에서 있다면 생각만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 같다. 기독교에서는 가상현실을 이용하여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또 개발되어야 할 것이 성지에 대한 가상현실 프로그램화이다. 실상 신학도로서 성지에 가보고 싶지만 시간도 없을뿐더러 경제적이 어려움에 봉착하는 자들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완성이 된다면 우리는 멀리까지 시간을 허비하며 다녀올 필요가 없다.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 성가대원이 찬양을 개별적으로 연습할 때도 유익할 것이다. 가상현실을 통하여 오케스트라를 연주해 볼 수도 있고 자신의 파트만을 연주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은 교회 교육에도 유익을 줄수 있다. 다윗과 골리앗이 나오는 성경을 말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가상 현실로 제공하면 실제로 옆에서 구경하는 듯한 생생한 체험을 하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다윗이 되어 골리앗과 겨루어 본다면 그 느낌이 어떨까? 가상현실은 새신자 양육에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말로 잘 이해되지 않는 사람에게 가상현실을 통하여 경험하게 함으로써 좀더 체험적인 신앙을 가지도록 이끌수 있다. (2)문제점 교회에서도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많은 유익함을 주고 있으나 반면에 단점들도 내비친다. 먼저 가상현실을 통한 예배로 인해 코이노니아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즉 가상 현실을 에배로 제공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예배의 체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신앙의 개인화가 이루어 지고 이러한 개인화현상으로 교회 공동의 친교의 기능인 코이노니아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혼자서 가상현실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습관이 몸에 배면 오히려 사람과 만나서 교제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교회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고 목회자들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또한 목사와 성도들 사이에 대면하는 기회가 적어져서 결속과 연대의식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됨으로 목회자 고유의 권한인 설교의 권한이 약화되고 치유목회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것이라는 우려도 된다. 이렇게 된다면 자연히 목사님과 성도들 사이에 대면하는 기회가 적어져서 결속과 연대의식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이야기 한 부분과 겹쳐지겠지만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는 재택예배로 인한 에배당의 공동화(空洞化)현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들수 있다. 한 때 미국의 빌게이츠는 사람들이 TV나 비디오가 생기면 극장이 모두 없어질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그것은 기우였으며 아직도 극장은 건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멀티미디어가 본격적으로 생활하되면 재택근무가 늘어나게 된다. 현재에도 몇몇의 기업에서 재택근무가 실시되고 있고 또한 학교에서 재택수업이 이루어질 전망이라고 한다. 이렇게 된다면 자연히 직장일도 집에서 보는 데 왜 예배만 교회에 가서 드려야 하는냐 하는 반론이 거세어 질 것으로 보인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을 것이다. 교통도 복잡하고 주차장도 부족하니 재택예배를 드리자는 의식이 일반하될 우려가 있다. 또한 주5일 근무로 주말여행이 일반화 되면 여행지에서 일행과 함께 드리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게 되고 그러면 교회는 실제로 텅텅비게 될 것이다. 실제 지금 실시되고 있는 케이블 TV를 통해 드려지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상 현실을 통해 프로그램화되어진 예배에서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 실제 교회에 가지 않고 자기가 만든 환경속에서 자기의 구미에 맞는 목회자
가장 소중한 믿음/ 명언/ 2011-02-19
가장 소중한 믿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믿음은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이다. - 닐 앤더슨
가정사역을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시도/ Charles M. Sell의 이론을 중심으로/ 2002-11-14
가정사역을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시도/ Charles M. Sell의 이론을 중심으로 주 제 : 실천신학 목차 1장. 서론 1)연구목적과 의의 2)연구의 범위와 방법 2장. 가정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근거 1)가정의 성경적 근거 2)가정의 교육 신학적 근거 3)가정의 기독교 역사적 근거 3장. 가정사역의 근거와 C. M. Sell의 가정사역 이론 1)교회생활과 가정사역의 관계 2)가정과 교회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3)교회를 통한 가정사역의 방법론들 4장. 가정사역과 교회교육-C. M. Sell의 이론을 중심으로 1)부모교육 2)가정교육 3)자녀교육 5장. 가정목회 프로그램-C. M. Sell의 이론을 중심으로 1)부모 교육-부모와의 문제를 다루며 2)가족수양회 3)가정양육프로그램 4)가족 캠프 6장. 새로운 가정목회 프로그램 1)가족간의 친밀성훈련 2)영성적 가족규율 만들기 3)가정선언문 만들기 7장. 요약 및 제언 1)요약 2)제언 참고문헌 1장. 서론 1)연구목적과 의의 왜 오늘날 가정이 문제가 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답하기 위해 사회학적으로 혹은 윤리학적으로 대답할 수 있겠지만 본 연구자는 인간의 가정의 문제를 성경적 신학적 입장에서 진단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성경적으로 그 해결방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경우 급격한 산업사회의 도래로 인하여 인간의 삶은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 그 외 여러 면에서 편리함과 더불어 많은 혜택을 가져왔다. 한국사회는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중반까지 농경사회였다. 농경사회는 대가족사회를 지향하는 법이다. 유교는 이러한 농경사회를 지켜주는 커다란 틀이었다. 500여 년이 넘는 동안 유교는 가부장적 틀로서 가정이 중요시 되는 가운데 고유한 기능을 사회적으로 잘 수행해 왔다. 그러나 근대화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960년대 이후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도시화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에 따른 가정교육 약화와 여권의 신장 등으로 유교적 가치관들도 빠르게 붕괴되어 갔다. 피임기구의 발견과 기술 개발로 혼 외의 성문화가 확산되는 것도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로 인해 가정에 대한 가치관의 공동화 현상을 경험케 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정은 삶의 기초이며 원천이 된다. 가정은 이러한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기본적인 공동체이며 시민양성을 위한 교육공동체 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해마다 증가하는 이혼 률, 간통, 동성애, 낙태, 미혼모의 증가, 청소년의 비행, 노인문제 등이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IMF사태로 인해 가정의 갈등이 점차 확대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가정을 전통적 가치관에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21세기 목회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가정을 회복할 것인가를 교회는 앞장서서 연구해야 한다. 교회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가정들의 위기는 속속들이 나타났다. 이혼율의 증가와 결손과정의 증가, 또 이에 따른 결손 가정 자녀들의 문제는 이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기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부부관계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을 위시하여 카나다, 유럽의 이혼율은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이지만 한국의 상황도 이에 뒤지지 않고 상승하고 있다. 1980년에 6%이던 것이 1987년에는 11%, 1992년에는 13%, 1993년에는 16.8%(결혼 320, 985쌍, 이혼 53.877쌍)라는 경이적인 통계를 보여주고 있다. 가정은 사회 공동체의 원형이며 중핵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는 존재기반을 잃게 되고, 사회 또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든 가정의 문제는 다름 아닌 인간의 죄 성 때문이라는 것이 본 연구자의 시각이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은 성경에 근거한 전인적 방법이어야 한다. 성경 적으로 볼 때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작품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었다(창1:30-31). 그러나 오늘날 믿음을 가지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자들의 가정에서도 이러한 가정의 불화와 화목이 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정과 결혼생활 문제는 점점 사회적인 조류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목회자들의 가정까지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비슷한 상황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교회의 사역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가정에 대한 사역을 '가정 사역(Familt Ministry)'이라고 한다. 교회의 가정사역은 성경 적이다. 전통적 개념으로 본다면 교회란 기껏해야 신자들의 영적인 일에 설교를 통하여 도전을 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교회의 목회는 이제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볼 뿐 아니라 육 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서 보는 "전인적 인간 이해"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이나 사회생활도 당연히 교회가 맡아야 할 영적인 사역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 사역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넓혀준 이가 챨스 M. 셀이다. 그는 교회의 전인적 사역의 일환으로서 가정 사역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또 많은 힌트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그의 이론을 중심으로 가정사역에 대한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가정이라는 제도의 창시자가 하나님이시고(창 1:26), 예수님께서 가정 속에서 태어나셔서 양육 받고 사랑가운데 유년시절을 보내셨으며, 친히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가셔서 그들의 기쁨에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이루는 가정의 비밀과 아름다움을 대체할 수 있는 법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가정 생활의 문제는 기독교 사역의 핵심이다. 흔히 우리는 예수님의 현대 사역을 Teaching, Preaching, Heaeing이라고 하는데 가정을 온전케 하는 것은 이 세 가지에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고 또한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의 가정들이 온전하고 건강하도록 해야 하는 데에 사역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가정생활, 결혼생활의 사역은 실제적이다. 그러므로 이는 연구해야 할 중요한 주제인 것이다. 오늘날 드러나지는 않지만 문제를 앓고 있는 가정들이 의외로 많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공고히 하고 더욱 건강한 가운데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이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2)연구의 범위와 방법 본 연구자는 가정사역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가정에 대한 교회의 목회 적 관심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문헌과 조사연구를 통하여 이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래의 논문들은 문헌연구자료로 참고하려고 하는 논문들이다. 먼저 "Horace Bushnell의 입장에서 본 가정종교교육" 이라는 논문에서는 기독교 교육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학자를 중심으로 가정의 신학적 위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가족 목회를 위한 기능적 가족 향상 프로그램 연구(V. Satir 이론을 중심으로)" 이 논문은 가정의 Communication을 중심으로 목회 현장의 실천적 방향으로 이끌어 내는데 힘을 쏟았고, "가정목회(H. Bushnell과 M. Sawin)의 이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H. Bushnell를 의 이론적 배경과 M. Sawin의 실천적 프로그램을 접목을 시도함으로 목회현장에 가정목회의 가능성을 연구했다고 보이며, 그 외 "기독교 교육적 입장에서 본 가정사역 연구(1196. 12)" "신앙공동체의 가정목회에 관한 보고(1989. 12)" "한국교회의 가정목회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1993. 11)" "기독교 가정교육에 관한 연구(1995)" "가정목회에 사회 사업적 접근에 관한 연구(1994. 12)" 등 다양한 연구들이 한국교회에 가정목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고 본다. 최근에 소개된 C. M. Sell의 저서들은 한국교회·가정목회 현장에 이론과 현장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라 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적 근거가 희박한 가정목회란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본 연구는 7장으로 구성하여 2장에서는 가정의 근거가 신학과 교육과 성경의 근거가 무엇인가를 원론적인 면에 해답을 찾고자 했으며 3과 4장에서 M. Sell의 가정목회의 이론적 근거에 대해서 5, 6장에는 이러한 M. Sell의 이론이 한국적 목회현장에 접목이 가능한가? 어떤 프로그램이 정착에 합당한 가를 실제 프로그램을 제시하여 보겠다. 7장에서는 본 연구를 요약하고, M. Sell의 가정목회 현장에서 잘 진행되기 위한 절제들과 이 연구의 발전적인 제안으로 논문을 끝맺고자 한다. 2장. 가정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근거 가정 사역(Family Ministry)은 무엇인가? 이 말은 물론 기독교에서만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가정사역이라는 말은 흔하지 않은 말로서, 이는 교회가 가정목회에 초점을 모아 병 들어가는 가정을 치유하고 또 예방하고 이미 깨어진 가정의 상처받고 버림받아 고독한 자들이 된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것을 가정치유사역(Family Heaeing Ministry)이라고 한다. 이 말을 제일먼저 사용한 사람이 챨스 M. 쉘이다. Charles M. Sell박사는 미국 목회자들의 경우를 예를 들어 교회가 가정 사역을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문제에 빠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즉 자신들의 병든 가정을 거론해야 하는 고통 때문에... 문제에 개입하기를 싫어한다." 고 했다. 이 말은 의외로 많은 목회자들도 가정 생활에서는 자신감이 없고 또한 문제점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미국내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가정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성구(마6:33, 마22:30, 눅14:26, 막3:33,-35, 고전7:31,32)들이 있어서 오해의 소지도 있으나 결혼과 가정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성구(요2:12, 마25:2, 엡5:,딤전 4:1-5)들이 있음을 주시해야한다. 현대 교회가 가정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사역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선 가정 사역이 영적이고 도덕적인 사역이기 때문이며, (Family Ministry is Spiritual and moral Ministry)가정 사역 자체가 전도(Evavgelism)요 제자 훈련(Discipling)이요. 영적진리(Spiritual truth)란 가르침에 있어서 성경을 적용(Biblical Application)하기 때문이다. 가정 사역은 곧 교회 성장 사역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 분담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더욱이 목회자에게 있어서는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어리가 태어난 가정들, 그리고 우리가 성인으로 살고 있고 가정들이 출생부터 사망까지 우리를 만들어 간다. 그것들은 우리의 최선의 시대와 최악의 시대를 이루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에 어떤 단체도 가정만큼 우리를 서로에게 연결시켜주지 못하며 어떤 것도 그만한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는 가정 사역에 절대적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왜 이러한 가정의 파괴가 쉽게 일어나고 자주 일어나는 가? 그것은 현대사회가 고도로 산업화 전문 화 되면서 핵가족 중심과 개인주의, 그리고 물질주의로 인간 비 인간 화 등을 들 수있다. 또한 가족에 대한 새로운 사회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앞으로는 더욱 높은 비율로 이혼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게되고 이는 목회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베리쏘온의 글에 따르면 상담자중 81%가 종교인이며 그중 41%가 기독교인이다. 이 상담 내용 중 51%는 부부에 대한 문제이다. 이러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또한 부부사이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의 60%가 결혼에 불만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 최고의 이유가 대화의 결핍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부부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경 속에서 기독교 가정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예방 적 차원에서 해결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1)가정의 성경적 근거 (1) 구약 성경과 가정 Charles M. Sell은 많은 교인들이 교회 생활을 하기 위해 자기의 가정 생활을 희생시키는 것을 마음 아파했고 또 많은 교회들이 교인들이 교인들의 가정을 풍성하게 사역해 주지 못하는 것을 지적했다. 찰스 셀은 말한다. "가정 사역은 교회가 가정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입장에서 가정사역에 관한 책을 쓰게 됐다"고, 하나님께서는 가정사역을 활용하셔서 교회를 돕고, 나아가서는 가정들이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대로의 삶을 누리도록 하나님께 기대하고 기도하면서 "가정 사역" 책을 쓴 찰스 M. 셀은 가정사역의 기초를 하나님이 창조원리 가운데 하나로 주신 결혼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결혼의 성격과 근거에서 말했다. 그러므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해는 성경 그리고 구약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찰스 M. 셀은 결혼의 성격에 대하여 구약성경에서 볼 때, 결혼은 하나님의 의도 그리고 그 성격은 철저히 일부 일처제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결혼한 부부는 친밀한 관계로서 개인적인 헌신과 사회적 헌신과 하나님께서 승인한 헌신 이 무엇보다 기초되어야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가족의 의미는 넓은 범위의 공동체를 포함한다. 결혼을 해서 결속된 친 가족 공동체로부터 시작해서 그들 집에 함께 거하는 노예, 첩, 고용인, 외국인까지 가족개념 속에 포함시켰다. 은준관은 가정을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실현하는 도구는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생활화되고 종교교육의 살아있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은준관은 또 다른 저서에서도 "......이와 함께 성경의 역사에는 예배 공동체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해 온 또 다른 공동체가 존재해 왔다. 그것은 가정공동체였다. 예배공동체가 이스라엘 민족과 교회에 있어서 공동적이고, 사회적이며, 또 공식적인 의미를 지녔다면, 가정 공동체는 이스라엘이나 교회를 향하여 신앙과 교육의 개별적이고, 비공식 적인 장르로서 역사의 심층 속에 자리를 지켜온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는 히브리 민족 공동체의 가정들은 가정을 통해 민족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도우신 여호와께 대한 신앙의 훈련을 시키는 현장으로 삼았다. 즉 "예배적 기구"로서의 가정이 교육이나 친교보다 우선했던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 나갔던 것이다. 구약에서의 결혼의 목적과 십계명의 제5계명은 사회질서와 윤리 개념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정은 넓은 가정인 사회와 문화를 책임지는 사명 적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근삼은 "구약의 하나님은 최고의 생활자 또는 통치자만이 아니라, 도덕, 진리, 과학, 예술 등 모든 생활권에 있어서 자존하시는 지배자"이기 때문에 인간의 전 생활 영역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존재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요약하면 예배적 기능, 교육적 기능, 안위적 기능, 보존적 기능 등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가정"이라는 용어에는 자연적, 심리적, 사회적인 용어의 뜻을 초월해서 그 가정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의 참 능력은 인간들의 어떤 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적 힘이었다. 이스라엘의 가장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사랑하신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그들 또한 그 사랑 속에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지속적인 교육 훈련이 대대손손 지켜지도록 하나님이 명령하신 계명들을 재인식시키며 교육시켰던 것이다. 성경 전체의 흐름도 그러하거니와 특히 신명기서의 모든 내용들은 하나님의 사랑, 능력 약속을 자손들에게 이해시키는 반복적 명령이다. 히브리 가정의 가장은 특별히 자녀들의 교사로서 영적 복지의 수호자로서 그 사명이 주어진 것을 알 수 있다. (2) 예수의 가정관 찰스 M. 셀은 가정에 대한 예수의 이해를 눅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에서 찾는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가정에 대한 이해는 이 비유에서 볼 때 아주 깊은 친밀감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가정은 사랑 안에서 친밀감을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는 가정에 관해서 많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으나 이혼에 대해서는 깊이 말씀하셨고, 성적 윤리에 대해서는 구약에서의 계명보다 더 깊이 말씀하셨다. 예수는 모세 율법에 의한 이혼 방법과 이혼 증서의 허용을 반대하는 입장을 신명기 24장 1-4을 인용하셔서 말씀하셨다. 특히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성경 인용과 위선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 심도 있게 책망을 하시고 무리들에게 당신의 깊은 진리를 전파했다.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 중에는 남편의 판단과 그가 원하는 대로하게 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 되어버렸다. 어떤 랍비는 종교적인 이유( 스10 :3,44 )나 아이가 없다는 이유( 말2 : 15 )로 이혼을 허용하였다. 또 어떤 랍비는 아내가 요리는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이혼을 당할 정도로 율법은 타락한 인간들의 수단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지극히 사소한 일에도 이혼을 제기 하기도 하고 이혼 이유를 설명도 않고 일방적 이혼이 자행되자 이스라엘 랍비들 중에서 이혼 문제가 크게 대두되어서 논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혼의 질문을 받으셨을 때( 막10 :2-12, 마19 : 3-9 ) "결혼은 일부일처제가 돼야하고 일생을 나눔이 없는 결합( Cleaving )속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예수는 여기서도 모세 율법을 인용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너희의 완악 함" 때문이라고 지적하시고 창조주의 의지와 행위에 따라 이뤄지고 제정된 결혼은 인간이 나눌 수 없다고 반박하시고 유대교적 실천의 모순성, 즉 모세율법을 악용하는 타락의 근성에 대해 무섭게 반박하셨다. 뿐만 아니라 당시 거룩한 결혼과 가정을 파괴하는 자들에 대해서 비판하셨다. 또 예수 당시 남성들은 간음죄에 대해서 별로 자책이 없었고 유별나게 여성들이 간음죄를 지은 것에는 민감했던 것이다. 이것을 예수께서 지적, 남녀 구별 없이 똑같은 죄를 지적하셨다.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에 대한 예수의 말씀은 하나님의 최초에 창조하신 가정창조에 연결시켜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 가정, 성경적 결혼의 기초이고 기독교적 결혼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Georgia Harkness는 그의 저서 [Christian Ethics] 에서 "가정은 거룩한 관계이고 결혼은 신성한 인격적 결합이어서 가볍게 파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결혼 생활에는 기쁨이 있는 동시에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했다. 다만 예수께서는 모든 종류의 불법적인 성행위로인한 더 큰 죄악이 있을때에는 이를 제하기 위하여 이혼이 불가피 하게 허락될 수 있으나 유대인들처럼 정욕과 허영을 채우기 위해 타락의 행위로 이혼을 악용할 수 없음을 밝히시면서 창세기 1:27, 2:24을 근거로 하여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 예수는 가정이 일종의 생활 방편이나 사회적 관계나 개인적인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님을 특별히 강조하신 것이다. 결혼이 너무 쉽게 그리고 이기적으로 행해지고 너무 속히 깨어지는 오늘의 현실에 있어서 예수의 가정 관은 영원히 인간 모두에게 깊이 뿌리 박혀야 할 진리이기도 하다. (3) 바울의 가정관 찰스 M. 셀은 바울 서신 서에 나타나는 다양한 비유와 가정에 대한 가르침을 근거로 들면서 가정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특히 바울이 가정에 대하여 강조한 것이 가정의 질서와 질서보다 더 중요한 사랑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많은 서신 서들 가운데 가정 윤리에 대하여 많이 언급했다. 즉 가정은 하나님이 축복하신 거룩한 공동체로서 가정을 가정되게 지키려면 하나님이 제정하신 가정의 질서 즉 결혼의 신성, 부모와 자녀 관계의 질서, 공동체 보존에 대해서 깊은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 없는 가정은 온전한 가정이 아니며, 비참한 가정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혼의 순결을 강조했다. 하나님 없는 가정 속에는 언제나 사탄이 틈탈 수 있는 약점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부도덕한 애정 관계는 가정을 파괴하고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고 했다. 고린도 교회의 성적 타락에 대해서 강력히 지적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도 하나님의 뜻은 가정의 순결임을 강조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쫓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오 거룩케 하심이니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고 가정의 신성을 일깨워 주는 서신을 보냈다. 바울은 한 가정을 형성하는 부부 관계를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밀접한 관계를 말했다. 이것은 사랑의 질서와 복종의 관계를 말한 것이다. 즉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셔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희생적 사랑을 하고 아내는 남편을 순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고 했다. 이것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만이 그리스도에게도 복종할 수 있음을 말했다. 아내의 순종은 남편의 우월이나 아내의 열등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 같이 남편이 가정의 머리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전8 : 11) 따라서 아내는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배움으로써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남편의 권위가 가정의 폭군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예수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라" 고 했다. 칼빈은 바울에 이 사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남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소유했다면 마땅히 그 의무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고 했다. 또한 바울은 자녀들에게 권면하는 메시지에서 주안에서 부모공경을 강조했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처럼 주종관계 즉 노사관계의 질서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관계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ohn Howell은 성경에 입각하여 "가정은 남자와 여자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됨에 그 기원이 있음을 말했고 Maston은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했고, 아담스 (Jay E. Adams)는 "가정은 사회보다 먼저 제정되었고 국가보다 먼저 존재하였기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최초의 것이다.고 했다. 이처럼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이고 타락한 후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가정을 회복시키시고 회복된 가정을 통하여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굳게 지키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생명의 장이고 사명의 현장이다. 2)가정의 교육 신학적 근거 윌리엄 바클레이는 그의 연구 저서 「고대 세계에 나타난 교육적 이념」에서 바벨론 포로 이전의 이스라엘 역사에는 "가정만이 유일한 학교"였으며 부모는 유일한 교사였다고 증언한다. 바클레이는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포로 되기 이전에는 학교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포로 이전의 이스라엘 속에는 예배공동체와 가정이 민족의 신앙과 교육의 역사적 계승을 위한 양대 현장임에 틀림없다고 설명한다. 찰스 M. 셀은 신약에 와서 교회가 제도적 형태를 취함에 따라 그 교육과정이 공격을 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정사역의 면에서 본다면 교회교육이란 가정에서의 기독교교육과는 너무나 분명하게 다르다고 했다. 목회는 어머니가 어린 생명을 돌보듯이 그리고 목자가 양떼들을 돌보듯이 하는 것이다. 즉 예수의 심정 곧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인생의 그늘진 외곽에 소외된 영혼까지 찾아 상한 심령을 치료하시던 그 정신, 그 마음 , 그 손길로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 하겠다. 그래서 유영심은 개인영혼의 발달과 성장, 치유, 구원을 중시하고 특별히 배려하는 접근으로서 "영혼을 돌봄"이라 했다. "영혼(Seele)"은 독일어의 인격적 전인으로서의 영혼을 의미하고 "돌봄(Sorge)"이란 영혼이 병든 것을 치료하는 의미로서 라틴어의 "Cure(치료)"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어의 "Care(돌봄)"과 "Cure(치료)"이고 독일어의 "Heilung(치유)", "Heilend(구세주)"는 "고침"이다. Carroll A. Wise는 목회(Pastoral Care)에서 "Care"라는 말은 "관심"을 나타내는 말로 "의학적 돌봄(Medical Care)"이 아닌 영적이고 인격적 돌봄이라는 이론을 정립했다. 목회의 초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사역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내신 사랑의 관심, 즉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신 것처럼 모든 영혼에 대한(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인격적 영적 관심과 개인영혼에 대한 구체적 돌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있는 가정에 대한 목회자의 관심은 당연한 것으로서 이들 문제있는 가정도 중요한 목회적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유는 기독교교육에 의해서 일어 나는 것이 기독교목회의 특징이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침으로 되는 것이라 할 수있는데. 이러한 기독교 교육을 가정의 회복 특히 문제있는 가정을 치유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회대상으로서의 가정을 이해하면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한다. 하지만 찰스 M. 셀은 가정에서의 기독교 교육에 대한 가치 평가는 절하되고 교회의 교육은 학교식 교육으로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깊이있는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현대산업 사회의 허다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 압력을 이기기 위한 사회기본 단위이며 인간회복과 구원의 장(場)인 가정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워서 하나님의 뜻이 가정에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더욱 긴요한 일일 것이다. 요즈음 미국에는 4천만 이상의 어머니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 600만은 자녀가 없다. 3살 이하의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약 3분지1이 온종일 일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직장이 없는 많은 어머니들은 TV에 몰두하거나 이곳 저곳을 방황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자녀교육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산업 문명권에 속한 사회는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로는 도시화의 문제로서 인류가 농경문화에서 산업문명으로 발전됨에 따라 전원적 농경문화가 도시문화로 변천하게 되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3%만이 농촌에서 살고 97%가 도시에 몰려 살게 되었다. 따라서 도시에는 주택 난, 교통 난, 교육 난을 비롯하여 매춘, 도박, 절도, 강력범, 마약 범, 등 각종 범죄와 그리고 퇴폐풍조와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가 수없이 발생하게 되었다. 둘째로는 산업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노사문제와 이윤분배, 노동자들의 인권, 환경오염, 자원고갈, 직업병, 다국적 기업의 횡포, 생산제일주의, 공해, 복지시설 부족, 빈부의 격차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셋째로는 기계가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게 됨으로서 작업의 량과 질에 있어서 사람이 기계보다 낮은 대우를 받게 되었고 사람이 기계를 수종들 뿐만 아니라 기계의 일부처럼 비인간 화 되어 가는 문제이다. 그러면 이러한 산업사회의 문제들 속에서 가정에는 어떠한 문제들이 생길 것인가? 이러한 사회 변동 중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도시현상으로 가족들이 농촌과 도시에서 헤어져서 살게 되거나, 근무시간 등으로 가족들의 얼굴보기가 힘들 정도로 자리를 같이하기 힘들게 되었다. 방치되거나 과잉보호를 받게되는 자녀와 청소년들의 문제와 부부의 탈선문제 등이 발생하고 가정불화와 이혼문제, 배교(背敎). 불신앙의 문제 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도산(倒産) 또는 실직으로 가정경제의 파탄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문제 등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가정문제는 가정에서 해결되야 할 것이며, 그리고 그 가정의 문제는 가정을 구성하는 가정의 문제에서 그리고 그 가족의 문제는 종교문제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사회는 그야말로 급변해 간다. 따라서 이 세대는 삶의 모든 면에서 변동이 일어나고 개혁이 단행되고 혁명이 폭발한다. 그 결과 사람의 삶에 근본적으로 위협을 주는 것이다. 역사관의 변동, 가치관의 변동. 전통에 대한 도전 등은 종교인의 삶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부인할 뿐 아니라 자연인과 신앙인의 삶의 형태까지 부인하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 결과 자연인이 가지는 인간과 인간과의 중요성은 무시하고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는 동시에, 종교인이 가지는 수직적인 변동을 간접적으로 부인함으로서 신앙인의 삶의 형태도 부인하고 나아가서는 삶의 근본구조를 붕괴하는 위험성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변화되어 지는 가족변동의 문제는 현대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관계가 있다. 특히 산업화, 도시화, 전문화를 통하여 나타나게 된 가족변동의 요인들인 가족형태의 변화, 가족기능의 변화, 가족윤리의 변화는 각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 시키고 있다. 핵가족화, 가족기능의 변화, 역할분담의 혼동 등은 현대가족에게 사회문제를 나타나게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족의 불안정 문제와 노인문제, 청소년문제 등은 중요한 문제이다. 가족의 불안정의 문제라 함은, 현대가족은 부부중심 가족이며 부부가족은 자유연애 결혼을 전제로 한다. 그 결과 부부의 사랑이 식으면 쉽게 해체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부부 가족의 결함은 위약하고 불안정 할 수 있다. 부부가족의 불안정성은 그것 자체도 문제가 있으려니와 그로 인한 자녀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부인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여 의견충돌이 되고 감정적 대립, 나아가서는 역할수행을 포기하고 결국 가족의 붕괴 즉 이혼으로 발전하는 것에 이른다. 또한 노인문제는 산업화, 도시화, 가족의 세대적 분열에 의한 핵가족화가 가부장적 가족에서 부부중심 가족으로 바뀌어지고, 효(孝)의 권위가 흔들리고 노인의 지위와 역할의 변동으로 노인의 권위가 저하되고 노인의 지식과 경험이 별로 소용없는 것이 되었으며, 노인이 가정경제에 있어 오직 부담 적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사회변동의 여러 요인들 즉 가정형태의 변화, 가정기능의 변화, 가정윤리의 변화, 등에 의하여 부부 당사자들 뿐 만 아니라 자녀 양육문제,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등 삶의 모든 세대에 걸쳐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노출되어지고 있다. 가정이란 사회의 기본적인 요소요 기초되는 공동체이며 아울러 교회의 기초요 기본 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가정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제도라고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이 위기에 놓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이러한 죄 된 세상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명령을 받았으므로 우리는 먼저 믿게된 신자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에디스 쉐퍼(Edith Shaeffer)는 그의 저서 "What is Family?"에서 "가정은 생명체요 올바른 행위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예술로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개인들의 모임이다."고 말했다. 겐 게츠는 그의 저서 '가정생활 세미나'에서 '신약시대에 있어서 기독교 가정은 거의 교회와 흡사 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개개인의 가정은 가정이 생성되는 그날부터 지상교회의 지체였다."고 했다. 초대 교회와 그 당시 크리스챤 가정들의 형태는 교회가 가정 같았고 가정이 교회 같은 모습이었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전 16 :15, 롬16 :3-5; 고전16 :19 골4 : 15) 그래서 겐 게츠는 "교회는 가정을 감싸고 있는 우산과 같은 개념이 있고 가정은 교회의 축소형이다.고 힘있게 강조했다. 디트리히 본 회퍼는 "연애 중일 때에는 두 사람의 자아만 보지만 결혼을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세대를 연결하는 사슬의 고리가 된다. 연애중일 때는 자기의 행복의 천국만을 보지만 결혼 생활에서는 세상과 인류를 위한 책임을 맡는 것, 결혼을 개인적 이상의 것으로서 신분이며 임무이다."고 했다. 래리 크리스텐스(Larry Christenson) 은 그의 저서 [The Christian Family]에서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촉진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가정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세우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서 우리의 영적인 지각력을 개발시키며 가정을 위한 하나님의 길과 뜻에 대한 우리의 의식을 증강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모험이 가정 사역" 이라고 했다. 이 모든 이론들을 종합해 볼 때,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창조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가정은 창조론 적 근원을 지닌다. 이 가정이 범죄, 타락했을 때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하신 일도 가정의 빛을 죄로부터 회복하시는 구속과 치유, 회복의 역사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야 하는 구원론 적 근원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지속적으로 성화 되어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는 거룩한 사명을 마지막날까지 이뤄야 하기 때문에 가정은 종말론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모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가정에 대해 세속적 가치로 이 세상 풍습을 쫒는 결과로 세상의 많은 가정은 위기를 맞고 있으며 또 맞을 위기에 놓여 있다는 찰스 M. 셀의 주장은 타당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계시를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계시 안에 나타난 창조원리로서의 가정을 가르쳐야 한다. 여기에 교육적 목표가 있는 것이다. 3)가정의 기독교 역사적 근거 (1)초대교회의 가정 에디스 쉐퍼(Edith Shaeffer)는 그의 저서 "What is Family?"에서 "가정은 생명체요 올바른 행위를 필요로 하는 하나의 예술로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개인들의 모임이다"고 말했다. 겐 게츠는 그의 저서 '가정생활 세미나'에서 '신약시대에 있어서 기독교 가정은 거의 교회와 흡사 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개개인의 가정은 가정이 생성되는 그날부터 지상교회의 지체였다."고 했다. 초대 교회와 그 당시 크리스챤 가정들의 형태는 교회가 가정 같았고 가정이 교회 같은 모습이었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전 16 :15, 롬16 :3-5; 고전16 :19 골4 : 15)그래서 겐 게츠는 "교회는 가정을 감싸고 있는 우산과 같은 개념이 있고 가정은 교회의 축소형이다.고 힘있게 강조했다. (2)중세와 근세 S Hiltner는 그의 'Preface to Pastoral Theology'에서 개신교에 신학이 정립된 것은 19세기 때부터이다. 고 했다. 최초의 목회신학의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Bu-Cer로서 그들 종교개혁자들은 목회신학의 관심을 영혼치료와 인격회복에 두었다. 가정사역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훨쒼 뒤인 것을 알 수있다. 기독교초기(A.D.180년)에는 환란과 핍박이 극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 단위는 교회 중심이었다고 하기 보다 가정중심이었음을 알 수있다. 빌립보성의 자주장사 루디아처럼 먼저 여자들이 신앙을 가지게 되고 그 다음 온 가정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흔하였다. 사도시대에서 믿음의 가정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시련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된 가족들이 물건을 하나님께 바치고 땅을 팔아 바치는 은혜 충만한 생활이 있었으나, 그 반면에 박해가 겹쳐와서 가정에 대 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가족들은 흩어지게 되었다. 기독교의 발전 역사에 잃어버린 영혼 구원이 항상 있었던 것과 같이 가정문제는 항상 존재해 왔다. 믿음의 가정에게 박해가 심해졌을 때 믿음이 부족한 가족들은 교회를 떠나게 됨으로 가정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AD 50-200). A.D.200-306년에는 Dioclection황제의 박해 속에 견디다 못해 이탈한 사람들을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연결 화해시키는(Reconciling)기능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가정의 문제들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기독교문화시대가 도래한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 후 비잔틴 문화의 개화기(동방기독교시대)에는 기독교문화예술이 번성함과 동시에 기독교 가정의례들이 새롭게 제정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결혼예식이 카톨릭의 7성례 가운데 하나가 되는 등의 비정상적인 교리들이 제정되기도 하는 문제도 있었다. 중세기(AD 500-1500)에는 로마 카톨릭의 세력으로 인하여 기독교가 크게 손상을 입었으며 기독교 가정이 빛을 보지도 못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은둔 생활을 하면서 특별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카톨릭은 항상 교황과 분쟁을 일으키고 교권싸움에 몰두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려는 계획이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가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으며 오직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카톨릭은 기독교적인 신앙에서 크게 벗어난 생활을 했으며 오히려 기독교를 박해했을 뿐만 아니라 말살시키려 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기의 기독교 가정은 영적인 생활에 큰 수난 시대를 맞았다. 종교 개혁 시대부터 근대(AD 1500-1900)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의 자유를 되찾아서 활기찬 활동을 하게 되었으며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하여 대형전도 집회가 열렸고 성결 운동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개종하게 되기도 했으며 개심 자들이 많아 저서 기독교 발전에 절정기를 이루었다. 또한 선교사를 파송 하는 일을 시작하였으며 가정의 믿지 않는 많은 가족들이 구원을 얻었다. 근세에 와서는 성경공부와 개인전도 훈련 프로그램들이 교회에서 개발되었고 전도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많아졌다. 교회에서 총동원 주일을 계획하고 가족들을 초청하여 그들을 전도함으로 짝 믿음 가정의 가족들이 믿음의 가족이 되어 합심 가정이 많아졌다. 그러나 불신 가정의 가족을 구원시키려는 특별한 훈련 프로그램은 아직도 부족하다. (3)현대의 가정이해 가정 사역의 구체적인 목적은 자녀와 부모와의 연구가 처음으로 시도 된 것은 1910년대 정신분석학에 의해 체계화되기 시작했고 사이몬드(D. Symodds. 1930)에 의해 기초 이론이 형성되었고 우리 나라는 1960년대부터 가족 관계, 부모와 자녀 문제를 다루는 연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 온다. 그 동안 각계 각층의 전문가들의 연구를 분석해 보면 사회학자들은 인간의 갈등을 가정 환경과 생활 양상에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사회 복지 가들은 사회 복지 적 측면에서, 심리학에서는 가정 구성의 인격, 욕구의 부조화를, 문화인류학에서는 전통적 가정과의 마찰에서 오는 갈등을 연구해 왔으나 오늘의 가정 문제는 더욱 심각해 가고 있다. Charles M. Sell은 그의 책에서 가정문제에 경종을 울려준 사람으로 1937년 레지나 와이맨(Regina Wieman)을 꼽는다. 그는 이 책에서 "가정은 지금 길고도 위험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고, 그것이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며, 그 결과가 어떠할 지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Charles M. Sell은 이 말들을 종합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정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암시해준다고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교회의 모든 문제는 가정에서 문제의 확대라고 생각한다. 또 가정의 모든 문제는 교회가 마땅히 품고 치유해야 할 곧 교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가정 사역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의 창(Mission Home)이 되도록 예방 관리 치유의 사역이다. 그 사역의 중심은 교회의 본질과 깊은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가정이 복음으로 회복 될 때 만 가정이 가정다울 수 있고 이런 가정을 통해서 교회의 교회다움의 갱신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가정들을 둘러보면 모든 문화와 양상들은 무섭게 가정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부식시켜 안정을 잃고 위기 상황 속에 고통의 정서를 느끼며 무기력해 가고 있다. 그러나 본래의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적 기관으로서 교회의 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치유되고 회복되고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가정에 대한 이해이다. 3장. 가정사역의 근거와 C. M. Sell의 가정 사역 이론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그 이전의 만물 창조와는 다르게 창조되었다. 다른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뤄졌으나 인간은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직접 만드신 걸작품이다. 즉 신적인 속성 (지, 정, 의, 양심, 독창성, 합리성, 관계성)으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을 위로 모시고 모든 피조물들을 아래로 다스리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즉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이 명령 수행을 위한 결혼의 원리는 하나님이 다음과 같이 명령하심으로 시작됐다. "그러므로 남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찌로다 남자와 그의 아내가 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 하더라" (창2 : 24) 여기서 결혼 관계의 3요소로서 첫째는 부모로부터 환경 적 정신적 해방을 (감정적 의존)받아 두 사람만의 가정을 만들기 위해 구조개발, 발전을 위한 새로운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다. 두 번 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의 책임은 서로가 연합(Cleave)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물체처럼 총체적 영원 결합(Total Ceaving)이다. 세 번째 관계 요소는 '둘이 한 몸이 될 찌라'는 것으로 삶 속에 둘이 더욱 밀착되어 관심과 행동에서 계속 가까워지는 경험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이 개개의 존재로부터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한 몸 원리로 요약되는 결혼은 시간, 장소, 문화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없는 영원히 함께 되는 하나님의 제정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규범으로 주어진 항속 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결합과 조화의 목적은 전술한바와 같이 하나님과의 조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대행 적 사명 수행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결합되어 조화를 이루기 위해 창조주와 조화를 늘 유지해야 했다. 칼빈(John Calvin)은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교통과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서 창조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짐을 강조한다."고 했다. 이 특별한 관계란 하나님과의 교제로서 이는 하나님과의 거룩하며 신성한 연합을 뜻하는 응답, 복종, 서로의 사귐, 적정한 조화라고 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안에만 창조의 질서가 유지되고 인간의 인간 됨의 현주소도 망각 않고 탈선도 안하고 가정의 거룩한 목적이 이뤄지는 것이다. 즉 가정의 가정됨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장된 하나님이 그 가정의 중심이 되셔서 가정의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1) 교회생활과 가정생활의 관계 C. M 셀은 그의 책 "아직도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에서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사람을 지배하는 잠재의식은 유아기 때의 기억에 위해서 결정되는데, 대개의 경우 그 유아기 때의 부정적인 상처가 사람을 무의식중에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유아기 때의 상처들이 생기게 만드는 곳이 다름 아닌 가정이라는 것이다. 가정이 정상적인 경우에는 덜 하지만 정서적인 문제를 보이는 대개의 성인의 경우는 어릴 때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사람의 일생을 시작하는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근거라 할 것이다. 거룩하고 아름답던 질서와 조화의 아담의 가정! 거기에 사탄(Satan)이 공격을 해서 범죄 타락함으로 질서와 조화가 깨어져 버렸다. 그런데 사탄은 다름 아닌 가정을 파괴함으로 어린 유아기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상처를 맡겨 놓아 일평생 부정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을 회복하여 가정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기 위한 노력이 교회의 사역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교회의 가정사역은 어떤 방향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무엇보다 성경적인 원리로 돌아와야 한다. 성경적인 원리란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따라 질서를 잡는 일이다. 성경적인 근거로 보건대, 하나님은 아담을 하와의 머리로 세우셨다. 그런데 사탄은 하나님이 정하신 아담의 해드쉽(Headship)을 무시한 채 아담을 상대 안하고 하와를 상대했다. 사탄의 가정 파괴는 아담의 해드쉽을 무시한 도전에서 봐야 한다. 가정에 죄가 들어오자마자 비극이 일어났다(창4 : 8) 사탄은 아담의 가정을 공격한 이래 가고 오는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가정을 공격해 왔다. 모든 전쟁, 살인, 파괴 등 인류역사의 모든 비극들은 죄로 말미암았고 그 죄는 가정의 죄였으며 가정의 죄는 사탄의 도전이었다. 그러므로 가정사역의 근간은 죄와의 영적 정쟁이며 결국은 그 배후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어야 한다. 이처럼 인간의 죄로 인한 가정의 타락은 가정 내에서의 살인, 증오,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에도 무질서와 파괴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가정의 부패 현상은 종말의 징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족 공동체 내에서도 불신과 이기심, 시기, 질투등 불화의 요소들이 등장, 별거, 이혼, 가출, 폭력 등으로 인간 타락의 극치를 가정이라는 삶의 마당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아서는 안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세로 과ㅣ감히 이들과 대적하여야한다. 이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타락한 인간들이 불꽃 문명을 이뤄놓고 손뼉을 쳤으나 그 빛은 참 빛이 아니고 탕자문명(하나님 멀리 떠난 인간의 금자탑?) 이며, 현대인은 이 탕자의 계절 속에서 쥐엄 열매를 먹는 동물적 인간화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원섭 박사는 "문명의 발전은 신(Godship) 적인 것으로부터 인간적인 (Human)것을 지나 동물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고 했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 하나님의 정하신 남성 헤드쉽(남녀동등 전제) 의 원리를 깨뜨린 사탄은 가정을 계속 파괴하고 있다. 그의 수단은 탕자 문명을 최대로 활용하고 발판 삼고 있다. 일부다처(창4:19,23), 성비행(창9:22), 간음(창16:1-3), 동성연애(창19:4-11), 강간(창34:1-2), 근친상간(창38:13-18), 유혹(창39:7-12)등 모두 사탄의 흉계화 작업의 결과인 것이다. 가정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타락된 가정 회복을 위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경건 된 가정의 품(마리아)을 통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는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청산하셨고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 받은 백성들의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를 통해 지금도 끊임없이 가정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당시 유대 나라는 지위가 짓밟혀 있는 때였다. 오로지 생식과 남성을 위한 존재였다. 간음의 경우 남자가 처녀와 관계를 가지면 간음이 되지 않았다. (처녀를 범한 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적당한 예물을 주고 결혼하면 되었고 그가 받은 유일한 법은 그녀와 이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한 여자와 관계를 갖는 것은 간음죄로 여겼다. 간음한 여자는 남편의 '명예'를 훔치(?)는 것이고, 부정한 아내는 그 남편에게만 소유된 것을 남에게 제공함으로서 남편의 권한을 무시하고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여성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오로지 남편의 소유였고 재산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의 유대 전통의 타락성과 전혀 다른 자세로 당시의 유대 전통과 멸시받던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셨다. 수많은 여아들(병든 여인들. 죄인들)을 만나 죄를 용서하시고 저들의 불구 된 인격과 정서를 치유하셔서 새 인생을 살아가게 하셨다. 또 어린아이들을 '천국인의 모형'으로 제시하면서 당시 교만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성차별도 없음을 말씀하셨다. Leon Smith 와 Edwad D.Steples, Oscar E.Feuht의 기독교 가정의 본질적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독교 가정은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두 사람 이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사랑 안에서 신앙으로 복종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사람이다. 기독교의 가정의 근본적인 징표는 주인이신 예수 안에서 신앙이다. 기독교 가정은 완성된 모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만들어져 가기 때문이다. 어린 아기나 아직 신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식구가 있다해도 기독교 가정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부 관계 어버이 됨, 가족 관계가 충실해야 한다. 기독교 가정은 자연법이 아닌 하나님의 언약아래 충성해야 한다. 이를 가르치는 책임이 교회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으로서 결혼은 개인적인 만족이나 사회의 외부 압력이 아닌 기독교적 사랑과 신실에 기초한 거룩한 관계다. 기독교 가정은 각 개인들의 요구와 가정 전체의 요구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기독교 가정의 특징은 자신 존중과 함께 타인 존중이다. 셋째 기독교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공동 신앙과 "기독교인"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다. 이것은 삶의 질을 의미한다. 넷째 기독교 가정은 가족들의 관계의 질에 의해 드러난다. 기독교 가정의 관계는 성령 안에서 삶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각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는 것이다.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한 통로이다. 이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며 돌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가족 공동체를 강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활동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적 위기를 만나도 성숙한 반응을 할 수 있으므로 최선의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다. 여기에 교회의 장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감화와 인도를 받는 삶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기독교 가정은 세상에서 "제자의 직분"을 수행하려는 사명감이 있다. 기독교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로서 작은 단위이다. 제자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독교 가정은 이 세상에서 작은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 책임적으로 응답하는 청지기 직 수행의 공동체다. 여섯째 기독교 가정은 일반 가정의 문화와는 달리 그 문화가 기독교 전통과 가치에 의하여 개발되고 정신을 전달해 줘야한다. 기독교 문화의 원천은 성경이고 문화를 전달하는 주요 기관은 교회와 가정이다.예배가 살아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가정이어야 한다 성령을 통해 전통적이고 평상적인 교회구조를 넘어가서 복음을 들을 수 있으며 또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2) 가정과 교회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1) 가정과 교회의 상호관계 챨스 M 셀은 성경은 교회의 조직보다 우선한 것이 가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가정은 천지창조의 한 중요한 부분이었다(창1:27-28) 때문에 교회는 각 가정들이 모여 성립이 된다. 교회는 가정이 타락하고 파괴된 결과로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나온 하나의 대안이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은 가장 먼저 부부관계의 파괴로 그 결과로 나타났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던 그 배필을 하나님의 준엄한 진노 앞에서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채 책임을 전가시켜 멸망으로 내어 모는 배반으로 내어 모든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아담의 가정은 자식들의 반목과 질시, 그리고 존속 살인이라는 엄청난 파국으로 그 비극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가장 순결하고 신뢰되어야 할 가정의 관계가 인간의 죄성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홍수 뒤에 노아의 실수로 말미암아 자식들이 저주받게된 사건이나 야곱의 형과 부모를 속이며 결국 밧단 아람으로 쫓겨가게 된 일 요셉의 형제들의 미움을 사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된 일등은 인간세상의 가정 파괴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파괴되어 있는 가정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 회복시키며, 나아가 지역사회와 국가까지도 회복시키려는 원대한 꿈을 가져야 하며, 또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가정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함으로 다른 가정도 회복시키는 일에 적극 동참하여야 한다. (2) 가정이 교회를 향한 기대 한 개인이 영적으로 거듭나서 신앙의 성장을 할 때 그것은 곧 교회생활을 의미한다. 60년대 한국교계에 간혹 일어났던 무 교회주의나 탈 교회주의는 개인의 철학적 인생관이나 신앙 관은 될지 몰라도 그 가정이 건전하게 신앙 성장을 시키는 데는 허약하다 하겠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에서 공급하는 많은 영향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각 가정이 요구하는 신앙성장의 프로그램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 거듭하는 얘기지만 챨스 M 셀의 이론에 의하면 오늘의 교회는 각 가정에 유익한 프로그램은 주지 않고 모든 프로그램을 교회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각 가정은 많은 피해를 입고 있으며, 또 어떤 이는 교회 일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가정 일을 등한시하는 경우까지 생겨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파탄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수가 허다한 것이다. 이러한 예는 한국교회에 얼마든지 있으며, 교회중심의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보니(매일 새벽기도, 삼일기도, 철야기도, 또 주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야 기껏 구역(속회)예배밖에는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는 적어도 매주 1회 이상은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시행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가 성도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기독교적인 가정 문화정착이 일어나도록 연구 개발해야 할 책임이 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불교와 유교의 혼합적인 가정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교회부흥의 전초기지로서의 가정 가정목회의 목표는 전 가족의 구원에 있다. 한 가정 안에서 서로 신앙이나 가치관의 다르면 결국 보이지 않는 불화가 깊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신앙을 가진 식구들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짐을 대신 져야 한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 복음화의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고 기도해야 할 책임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전 가정이 다 같이 믿고 한 교회에 등록하게 되면 가정의 평화와 교회봉사에 도움이 되고 아울러 교회도 따라서 부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가정목회가 곧 교회부흥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가정목회란 결코 가정교회(House Church)가 아니다. 가정을 올바른 믿음으로 육성하고, 전 가정이 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돕는 사역이며 따라서 교회의 지체가 된 그 가정을 통하여 또 다른 가정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그러한 순화가정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사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가정목회는 교회부흥의 절대적인 요소 이다고 할 수 있다. 성도들의 가정이 정상화 될 때 교회도 정상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가정을 도전하고 가정을 교회를 견고케 하는 상호작용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3) 교회교육 프로그램에 있어서의 가정사역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세상에서의 과제와 역할을 부여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안에서 예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로이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요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인 것이다. 아울러 시민으로서의 과제와 역할도 부여받았다.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교회 이미지의 이해는 새로운 인간이 자신의 회복된 커뮤니케이션을 표현하도록 부르심을 입게되는 구체적인 장에 대해 더 분명한 상을 제시해 준다. 신약의 교회 이미지는 네 가지인데 하나님의 백성, 새로운 피조물, 믿음 안의 교제(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그것이다. 하나님의 백성(고전1:2)으로서의 교회 이미지는 그 중의 강조 점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만들고 존재하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다.
가정에 대한 명언
가정에 대한 명언 토머스 제퍼슨 행복한 가정은 천국의 지점이다. 리처드 에번스 가정이란 상호간에 책임과 존경, 격려와 협조 그리고 칭찬 정직과 일에 대한 자발성, 유사시에는 훈계, 사랑과 소속감 그리고 대화할 어떤 이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카울리(영국의 작가) 정다운 내 집이 없으면 온 세상일지라도 커다란 감방에 지나지 않는다.
가정에 대한 명언/ 2010-02-09
가정에 대한 명언 인명:토마스 제퍼슨 행복한 가정은 천국의 지점이다. 인명:리차드 에반스 가정이란 상호간에 책임과 존경, 격려와 협조 그리고 칭찬 정직과 일에 대한 자발성, 유사시에는 훈계, 사랑과 소속감 그리고 대화할 어떤 이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인명:카울리(영국의 작가) 정다운 내집이 없으면 온 세상일지라도 커다란 감 방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명언/ 가정/ 2010-02-09
가족에 대한 명언/ 가정 아브라함 링컨 지금의 나, 앞으로의 나, 나는 나의 어머니 때문 에 이렇게 되었다. 테드 쿡 부모란 일생 중 절반의 신간은 아이가 언제 자라 밖에 나갈 것인지를 걱정하고, 나머지 절반의 시 간은 언제 아이가 밖에서 돌아올 것인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존 로크 부모들은 샘을 오염시켜 놓고 시냇물이 왜 씁쓸한지 궁금하게 여긴다. 페릭스 앨더 가정은 사랑이라는 기초위에 세워진 의무를 가르 치는 학교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는 착한 어머니들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그들은 착한 아들들을 가질 것이다. 무디 사람은 모든 사람들, 무엇보다도 그의 가족이 그 가 크리스찬임을 알도록 살아야 한다. 중국 속담 깨진 둥지에는 완전한 알이 별로 없다. 호웰스 인간은 너무 늦게 어머니의 은혜를 깨닫는다. 마크 트웨인 14살의 소년 시절, 나는 나의 아버지가 너무나 무식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가 내 가까이 서 있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러다가 21살 이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아버지가 많이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 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태 속담 하나님은 어디에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는 어머니들을 만드셨다. 헨리 워드 비쳐 아기는 처음에는 어머니의 젖을 빨다가 떠나버리 지만, 항상 어머니는 아기를 잊지 못한다.
감사에 대한 명언
감사에 대한 명언 1) 감사는 결코 졸업이 없는 과정이다. - 발레리 앤더스 - 2)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미덕의 근원이 된다. - 키케로 - 3)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 - 죤밀러 - 4) 시련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구원받은 모든 죄인들은 감사할 이유를 언제나 발견할 수 있다. - 빌립 E.하워드 - 5) 그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주시든지 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귀를 물리치는 확실한 방법이다. - 스피로스 J.히아테스 - 6)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는 거두시 나,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허락하신다. - 토마스 아 켐피스 - 7) 베품에는 세 종류가 있다. 아까와 하며 베푸는 것, 의무적으로 베푸는 것, 감사함으로 베푸 는 것이다. - 로버트 N. 로덴 메이어 - 8) 우리는 눈물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눈물은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비젼을 위해 준비시키기 때문이다. - 윌리암 A.워드 -
감사에 대한 명언
감사에 대한 명언 존슨(영국의 사전 편집자, 시인) 감사는 위대한 교화의 결실이다. 칼빈(장로교 창시자) 외식하는 신자는 위급한 때에 하나님께 기도할 줄 안다. 그러나 그 위험에서 건짐 받았을 때는 감사할 줄 모른다. 힐티(스위스의 철학자, 법학자) 아침이면 아침마다 눈을 뜨면 곧 하나님께 감사하라. 착한 일을 하는 기회가 날마다 기대에게 주어질 것이다. 우찌무라 칸조오(일본의 신학자) 아무리 이해가 깊고 열심이 뛰어난 행동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향한 높은 감사심이 없다면 생명 있는 신앙생활이란 불가능하다. 헬리 팩스(영국의 웅변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매튜 헨리(신학자) 진정한 사람은 누더기 가운데서 살면서도 그것을 은혜로 안다. 그 이유는 보석은 진흙 가운데서도 보석인 까닭이다. 힐티(스위스 법학자)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그런 때에는 우선 감사할 만한 것을 구하여, 그것에 대하여 정직하게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