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예화
  • 자료
  • 성경
1996년 제 1 학기 신약사 개론-노재관 교수- 강의 노트
1996년 제 1 학기 신약사 개론-노재관 교수- 강의 노트 2002-11-11 17:00:26 read : 13 * 헤롯의 통치중의 로마의 상황 * : 동부의 군사권자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B.C36년에 결혼하자, 로마의 대권자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과 이미 결혼했던 바 있는 안토니우스였기 때문에 옥타비아누스와의 갈등이 파생됨(그러나 둘 사이의 갈등이 이러한 이유뿐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음). ⇒악티움 해전 : B.C. 31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악티움에서 결전을 벌여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도피하여 수 년후에 둘 다 자살함. 헤롯은 안토니우스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는데, 안토니우스가 패하고 옥타비아누스가 로마를 일통3하자 옥타비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계속해서 팔레스틴지역에 통치를 계속 유지함. #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은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황제의 자리를 줌. + 헤롯의 통치 + 제 1 기 : 조성기- 로마의 세력을 등에 엎고 권좌에 앉았으나, 집권과정에서 하스모니안가의 인물 들을 제거하여 많은 반대세력을 두게 됨. 반대세력 : 바리새인- 중산 대중들의 지지를 반는 무리, 헤롯이 이두매 계열의 "HALF JEWS"라는 것과 친로마파이기 때문에 반대함. 하스모니안 가문-헤롯의 장모 알렉산드라가 자기 아들 아리스토불루스를 제사장 의 자리에 앉힐 것을 요구하고난 후, 아리스토불루스가 익사한 체로 발견 되자, 알렉산드라는 헤롯을 의심하고, 이때부터 바바스때까지 계속해서 반대함 클레오파트라-알렉산드라의 문제로 인해 헤롯의 통체영역을 빼앗음. (후에 옥타비아누스에게 다시 보상받게 됨). 안티오고구스의 귀족들-헤롯이 로마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의 기득권을 빼앗아 갔 으므로. +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에게 반대한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행했다고 기록함-그러나요세푸스는 유대의 역사를 개조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 알렉산드라와 하스모니안 대표자들, 마리암네등(아들까지도) 음모죄로 처형시킴 제 2 기 : 번영기-가이사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운동경기를 개최함, 건축 사업(극장, 원형 경기 장)→율법을 어기는 것이 많고, 로마의 문화를 유대 사회에 도입함. * 예루살렘 성전 건축:B.C. 20년(혹은 19년)부터 A.D. 63년까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유대 사회에서는 유대인으로, 유대밖에서는 이방인의 율례대로 살았음. 사마리아성 재건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사바스테 "Sabaste " 라고 칭함. - 세금 감면 제 3 기 : 10명의 아내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가정의 문제가 복잡함. 도리스에게 안티파터라는 아들을 얻었으나, 마리암네와 결혼하기 위해 두 모녀를 추방함. 마리암네에게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낳고, 마리암네2세와 결혼했으며, 네 번째로 말테스와 결혼해서 아켈라오와 안티파스를 낳음. ⇒ 마리암네의 두 아들을 헤롯이 사랑하여 후계자로 칭했는데, (아마도) 안티파터의 모략으로 두 아들을 처형함, 그 후 안티파터가 후계자 자리를 계승했으나 안티파터도 역시 처형됨.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에게서 필립을 낳아 아켈라오, 안티파스, 필립에게 유대를 분할하여 다스리게 함. + 헤롯의 유언 : 사망 5일 전에 여섯 번째로 유언을 변경함. 아켈라오는 최후의 유언이므로 존중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고, 안티파스는 헤롯의 정신상태를 지적하여 거부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여둘 사이의 갈등이 있음. →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유언을 인준하면서 아켈라오에게 "분봉왕"칭호를 사용하도록 제한함. +아켈라오의 통치+ B.C. 4- A.D. 6년까지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다스림. - 아켈라오의 어머니 말테스는 사마리아인, B.C. 22년 경에 출생한 것으로 생각됨. : 가이사가 유언을 인준할 당시 조건은 아켈라오가 사려깊게 통치할 경우 "왕"의 칭호를 하사할 것을 약속했으나, 아켈라오의 통치 초기부터 이것은 어렵게 되었다. - 유월절 당시의 폭동으로 3천명 정도의 시민을 살해 - 인준받은 후에도 폭동이 자주 일어나 그의 통치력에 문제의식이 대두됨. - 왕위 취임 후 조아자르라는 제사장을 폐하고 엘리아살과 예수를 번갈아 제위시켰다가 폐위함. ▷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됨 - 알렉산더(이복 형제)의 아내를 빼앗아 결혼하고 자기 아내를 버림-유대인들의 반감을 삼. - 성전 수리, 예루살렘 숲을 위해 관수로 공사 등의 건축을 행함 : 건축사업에 능함. - 유대인을 잔인하게 다스림 : B.C. 4년부터 9년까지 강압적인 통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아켈라오를 탄핵하기 위해 로마로 감. 무역로의 평화가 깨어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A.D. 6년 아켈라오를 프랑스로 추방함, 유대는 로마의 속령으로 총독의 통치를 받음. +필립의 통치+ : B.C. 4년부터 A.D. 34년까지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요세푸스는 필립이 다스린 영토가 넓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눅3:1에는 이두매와 드라고니밖에 소개되지 않는다. 필립의 통치 영역은 헬라인과 사마리아인의 거주지역이었다. * 판네아스의 해안 도시 건설 : 갈릴리 북쪽에 건설.. 많은 이방인들이 이주, 예루살렘 멸망이후 유 (가이사랴 빌립보) 대인들도 이곳으로 이주하였고, 산헤드린 공회도 이곳으로 이주함. * 벳새다를 증축함 : 필립이 로마화된 도시로 " Police " 라는 이름을 붙인 큰 도시였다. 로마 횡제 의 딸을 기리기 위해 "줄리아"라고 칭함. 안드레, 빌립등이 이 지역 출신, 예수 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지는 않았다. → 필립은 야망이 없었고, 정치를 잘 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백성들의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결혼했지만 자녀없이 34년에 죽었고, 이후에 3년동안 필립의 통치 구역은 시리아가 통치하다가 37년에 다시 유대인에게로 넘어 오게 된다. + 헤롯 안티파스 1세 + : B.C 4-A.D. 39년 까지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림, 세례 요한과 예수님, 제자들의 활동 무대였다. 분봉왕의 칭호를 받았는데, 누가와 요세푸스를 제외한 마태, 마가는 "왕"의 칭호를 사용함. * 세포리스(Sepporis) : 갈릴리의 가장 큰 도시로써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이 공사에 사역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그 목수의 아들 " , 주로 이방인이 거주했다. *디베랴 건설 : 원래는 공동 묘지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불결한 장소로 취급, 사람들이 이주하지 않았지만, 면세혜택 등으로 인구를 유치함. 후에 유대인들도 이주하여 학교를 건설함. ⇒ Nabtian 의 공주와 결혼(나바티안은 B.C. 9-A.D. 49까지 아레타스 4세가 다스림) 로마가 나바티안 왕국의 견제(페르시아에 대한)를 위해 안티파스와 나바티안의 공주를 정략적 으로 결혼시킴. 안티파스가 로마로 가던 중 헤롯 빌립(마리암네의 아들)의 집에 들린 동안 헤로디아에게 반해 전처와 이혼, 아레타스의 딸이 이것을 미리 알고 아버지의 왕국으로 도망감. - 세례 요한과의 반목(모세의 율법에 위배됨), *levirate:예외적,형제가 무자하게 죽었을 경우. * 안티파스와 세례 요한, 예수님과의 관계 :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의 부활로 여겼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충돌하지 않음.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이 이를 회피한 것으로 복음서는 보도함, 눅13장에서는 안티파스가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 있다.(주님 죽기 전에 대면하기도 함). - 나바티안이 갈릴리를 침공해서 대패했을 때,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함, 갈리굴라가 즉위하고 아그립바1세에게 빌립의 영토를 주어 다스리게 했는데, "왕"의 칭호를 주자 39년에 아그립바가 안티파스의 영토까지 다스리게 됨. <로마의 총독 정치(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A.D. 6-41> : 아켈라오 이후 구레니우스(시리아 총독)가 인구조사(A.D. 6:인구 조사가 2회 있었을 가능성), 세금 징수 등을 실행(구레뇨와 예수님의 출생 관계). 1. A.D. 6-9 코포나우스: 대제사장들의 법의를 보관-유대사회의 순종을 요구 코포니우스의 제임 기간중의 유월절에 사마리아인들이 사람의 뼈를 성전 에 뿌려서 성전을 모독했다는 기록이 있다. -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에 반감을 가짐 2. 암비불루스 총독 - 자료가 없음 3. 루푸스(A.D. 12~15) : 아우구스투스가 14년에 사망하고 티베리우스가 황제로 재임하는 기간동안에 다스림. 4. 그라투스( Gratus : A.D. 15~26 ) : 디베리우스가 루포스를 해임하고 그라투스를 그 자리에 임명 그라투스는 제사장을 자주 교체시켰으며-안나스를 해임시키고 가야바를 임명 하는 등- 유대인들의 반감을 삼. 5. 포티우스 빌라도 : 예수님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빌라도의 보고서"에 기록됨. 필로에 의하면 근위대 사령관 세자누스의 지지와 후원을 받는 사람인데, 세 자누스는 반 유대주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임. 빌라도는 세자누스에 의해 발탁되어 반 유대주의를 이어 받았다(요세푸스와 필로), 황제의 형상을 세긴 군기를 앞세우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려고 하다가 유대인의 반감을 삼, - 가이사랴에 머무는 동안 빌라도에게 유대인들이 찾아 가 시위하며 폭동을 일으킬 징조를 보이자 빌라도가 이 사건을 철회함.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수도공사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빌라도는 이러한 공사의 경비를 성직자들에게 요구하였는데, 거절당하자 성전의 궤를 도적질하여 가져 감. * A.D. 36년 :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궤를 그리심산에 두었다고 말하며 메시야적인 발언으로 백성들을 소동시키자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가기병대를 파병하여 그 무리를 쳐서 강제해산시켰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사마리아사람들이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에게 탄원을 내어 황 제의 소환으로 로마로 갔다가 빌라도는 복직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자유정책을 지지함, 필로는 헤롯대왕의 궁전에 황제의 상을 새긴 금방패를 세웠다가 후에 아우구스투스성에 맡겼다 고 한다. * 티베리우스는 세자누스의 정책을 반대하였고, 정치적으로 유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유익한 것으로 여겼다. 빌라도가 티베리우스의 소환명을 받아 로마에 도착하기 하루전에 황제가 죽고, 그 이후에는 빌라도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고 단지 구전만이 전해진다. 6. 마르셀루스 : 약 1년을 다스렸으나 별다른 치적이 없다. 7. 마룰루스 : 티베리우스 사후 갈리오(갈리굴라)가 황제가 되어 마룰루스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 (37~41) 갈리굴라는 취임처음에는 좋은 정치를 펼쳤으나 병을 앓고 난 후에는 난폭해짐. 마룰루스는 특별한 치적이 없음. 제1차 유대 총독정치의 마지막 제위 총독임.
19세기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에 관한 연구
19세기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에 관한 연구 2002-03-20 08:58:08 read : 5 출처/www.church4u.org 백 용 기 강남대학교 신학과 교회사 조교수 들어가는 말 신학의 직무 중 중요한 것은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다. 특히 역사의 미래의 방향과 삶의 가치관이 불확실할 때 신학은 그 시대 자기 존재의 의의를 분명히 들어내게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 보다 넓게 말해서 전 지구적으로 퍼져있는 신자유주의 삶의 질서는 과연 우리에게 보다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며, 더불어 사는 인류 공동체를 담보해 주고 있는가? 역사 속의 어떠한 경험적 사실도 도대체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활로에 암시를 주지 못하는가? 교회와 신학의 어떠한 가르침도 미래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가? 소위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원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사회 체제의 원리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 이 삶의 원리는 성서와 교회가 가르쳐온 인간 삶의 질서에 가장 근접한 것인가? 만일 이러한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신학과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 경험 속에서,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에 비추어서 새로운 삶의 가치질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논문은 독일의 19세기 사회와 기독교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여, 한국 기독교의 과제의 전망에 도움을 제공하고자 한다. 독일의 사회적 기독교는 기독교와 교회가 어떠한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며, 이러한 과제를 신학적으로 해명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을 통해서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기독교는 자율성과 평등의 기치 아래 함께 사는 세상을 목표로 하며,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노력하였다. 오늘날 사회적 기독교의 전통은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사회적 공간의 확장 속에서 망명자를 위한 활동, 부패에 대한 투쟁, 외국인 노동자의 지원, 제3세계의 원조, 왜곡된 사회구조, 불공평한 세계질서, 독재와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저항운동, 민주주의와 책임적인 복지 활동, 소득분배와 자유 등,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개척하고 있다. 사실 사회적 기독교는 초대교회 이후에 망각되었던 이웃 세계에 대한 관심의 재생이다. 1. 산업화 과정과 사회문제 1. 1. 산업화 과정 근대의 사회 경제적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소위 "산업 혁명"이다.(Brakelmann, soziale Frage, 13) 이 혁명은 18세기말부터 19세기의 초에 걸쳐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과정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시기에 많은 농민들이 도시의 부랑노동자로 전락하였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방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산업혁명에 의한 공업화는 노동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Greschat, Das Zeitalter, 27) 이런 초기 산업혁명의 특징인 공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빈민이나 고아원 출신, 또는 강제 노동소나 교도소 출신들이었다. 이들을 사회는 인간의 노동을 교육하는 학교로 보았다. 이 시기의 노동관계는 긴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이 특징인데, 이 사실 뒤에 부지런함을 칭찬하며 태만한 생활을 비난하는 개신교적-청교도적인 견해가 숨겨져 있다. 이 새로운 정신의 분위기는 공공 생활의 전 사고를 지배하게 되었고, 개인의 이해를 신성시하였으며, 이것은 곧 낡은 사회적 결합을 파괴하였다. 새로운 경제 정서를 담지한 계층은 의회의 입법을 통해서 그들의 관심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자유주의적인 입법화의 시대이다. 이 새로운 경제 정서와 경제 실천을 추진하는 자들은 경제적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절약과 강력한 경제 활동을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형태로 파악하는 개신교적 자유교회에 소속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혁명에 앞서 정신적인 방향의 전환이 없이는 기계가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계몽과 자유주의이다. 이 정신은 경제적 자유의 의미인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연결되며, 이 정신은 정치적 중상주의와 반대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국가의 규제반대, 개인의 경제적 자유, 경쟁의 자유, 계약자유의 원리 등의 사고구조를 갖는다.(Brakelmann, soziale Frage, 20 이하) 그러나 후발 산업국가로서의 독일은 자유주의적인 정서가 지극히 나약하였는데, 이것은 자유주의가 이념적으로 개인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정신이 강하기 때문이며, 또한 여기에 기독교 사회사상과 전통적인 독일의 가부장적인 가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Rimlinger, 107 이하) 그러나 독일 자유주의는 19세기의 5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기에 만개되었다. 이것은 급격한 경제성장에 대한 낙관과 프러시아 중심의 독일통일에 의해서 고양되었으며,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은 독일을 경제적 보호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였다.(Rimlinger, 120 이하) 독일의 산업은 70년대와 80년대에 처음으로 영국의 발전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증가와 함께 집중화 과정이 연결되어, 밀접한 공간에 거대한 공장이 집중하였다. 여기에는 교통, 특히 철로와 배의 길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또한 금융기관을 통해 산업국가에 필요한 거대한 자본이 조달되었다.(Seraphim, 122 이하) 1. 2. 사회문제 사회 문제는 이 시기에 넓은 의미로 "산업화를 통해서 일어난 인간 실존의 모든 위기"이며, 좁은 의미로는 이러한 위기에서 임금노동자들이 심하게 겪는 계급의 사회문제이며, 19세기 노동자의 문제이며, 제4 신분의 현존 사회체계로의 통합이며, 그리고 이것과는 분리될 수 없는데, 이러한 노동자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이념과 조치들이며, 제국 탄생 10년 전에 이것에 대한 상위개념 "사회정책"이 형성되었다.(Schick, 4) 초기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자들의 사회적 상황은 극히 비인간적이었다. 공장 내의 위생시설은 전혀 없었으며, 육체적 상태는 파멸이었고, 45세가 되면 쓸모가 없었다. 노동시간은 12시간에서 16시간이며 여성과 아동도 힘겹게 공장에서 학대되었다. 대부분 노동자는 방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거상태는 엉망이었다. 노동자들의 비참함은 가정과 고향의 옛날 관계가 파괴됨으로써 심화되고 사회로부터 배제됨으로써 더욱 증폭되었다. 사회적 퇴화의 감정은 노동자들의 정신에 빈곤 그 자체처럼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후반기에 완전한 무산화가 이루어졌으며, 이제 처음으로 옛 사회 질서에 위협을 주는 새로운 계급에 관해서 말해 진다. 경영의 집중과 대 경영으로의 발전은 의존된 임금 노동 계급을 출현하는 전제가 되었다. 이제 처음으로 노동자들은 주변 인물이었던 사회에서 자신의 경제적 중요성에 따라서 점점 사회적-정치적인 삶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이전의 경영자들이 오랜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을 통해서 이익을 얻었다면, 이제 경영은 기계화를 통해서 보다 높은 임금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가져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어떠한 법적 보호도 아직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병들거나 노후에는 대부분 빈민 구호소로 보내진다. 노동자들은 완전히 불안한 실존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단순한 노동력과 일반적인 경제적인 시장 상황에 의존되어 있다. 사고와 실업이 항상 그들을 덮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로 자신을 누르는 낯선 힘들을 느끼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경영의 한 구성요소지만, 사회적으로는 시민 사회의 주변부의 최하층에 속하며, 정치적인 책임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배제되었다는 감정과 절망감이 무산자를 지배하였다. 이제 시민-자본적인 체계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력이 탄생되었으며, 경제적인 의존성과 사회적인 중요성의 상실 그리고 정치적인 미성년 의식에서 무산자의 해방 투쟁에 들어섰다.(Brakelmann, soziale Frage, 40 이하) 1. 3. 노동운동 독일의 초기 사회주의는 1848년의 혁명기간과 그 이전에 적지 않는 정치적 역할을 한 프랑스의 초기 사회주의와 반대로 그 시대의 정치적 사건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단지 이념으로써만 존재하며, 재단공인 바이트링(Wilhelm Weitling: 1808-1871)과 유대출신 지식인 헤스(Moses Hess: 1812-1875)를 통해서 대변된다. 바이트링은 독일 하녀와 프랑스 장교의 결혼하지 않는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에서 독일의 비밀 단체인 "의인 동맹"을 결성하였으며, 현대적인 선동가와 직업 혁명가의 타입이다. 그는 엄격한 도덕적인 척도에 의해서 사는 공산주의적인 노동자 교육연맹을 세웠다. 그에 의하면 화폐가 사회를 탈 도덕화 시킨다. 타락한 사회에 대한 피의 심판으로써 재난이 있으며, 이후에 무산자의 독재가 뒤따르고, 그 다음에 조화, 사랑과 자유로 가득찬 새로운 공산주의적인 인류의 왕국이 열린다. 공산주의적인 인류의 원형은 바이트링에 의하면 나자렛의 예수다. 그의 책 "가난한 죄인들의 복음"(1844)에서 그는 예수의 삶의 원칙을 자유와 평등의 것으로 보았다. 그는 가정을 부정하였으며, 사회적 전쟁을 설교하였으며 그리고 소유에 대하여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았다. 바이트링은 매우 강력하게 사랑과 기독교적인 신앙을 얻고자 노력하였다.(Grebing, 26 이하) 맑스(Karl Heinrich Marx)는 1818년 유대 출신의 변호사의 아들로 트리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1817년 직업 때문에 개신교로 옮겼으며, 자녀들도 세례를 받게 하였다. 고등학교 자격을 마친 후 그는 1835년 본 대학에 법학도로서 입학하였으나, 그 다음 해에 베를린에서 역사와 철학에 몰두하였다. 1841년 그는 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맑스는 본 대학 교수직 응시에서 반동시기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탈락한 후, 1842년 자유주의적인 좌파 신문인 쾰른의 라인 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나 민주적인 개혁을 위한 날카로운 비판 때문에 퇴직당하였다. 그는 결혼을 한 후, 파리에서 푸르동을 알게 되었으며, 시인 하이네와 만났고 무엇보다 여기서 엥겔스(Friedrich Engels)와 삶에 대한 우정을 쌓았다. 그는 금지된 노동자 모임의 참석 때문에 파리에서 추방당해 브뤼셀에 정착하여, "독일 이데올로기"를 저술하였다. 그는 런던에서 "공산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였다. 이 연맹의 위임을 받아 공산당 선언을 1848년 2월에 출판했다. 같은 해에 푸르동에 대항하여 "철학의 빈곤"을 저술하였다. 공산당 선언은 젊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철학적 국민경제사상의 요약이며, 여기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결과를 끌어내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생애 마지막까지 역사적이고 국민경제적인 연구에 헌신하였다. 그는 중단없이 박물관에서 일하였으나, 그의 가족은 엥겔스의 도움에 의지하여 가난한 상태로 살았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 런던에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것은 맑스가 이미 40년대 초부터 생각해온 것이었다. 공산당 선언의 첫머리에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고 시작한다. 사회적 상황의 발전을 맑스는 계급투쟁의 결과로 보았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과 국민경제학 비판에서 무산자의 인간상실을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상실로 전개시켜 나간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인간소외를 가져오는 사유재산을 파기하고 인간을 통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존재를 현실적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자체가 역사의 긍극적 목표가 아니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단지 현상황을 파기하는 현실적 운동일 뿐이다. 새로운 미래는 비밀로 남겨져 있다.(Grebing, 28)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라살레(Ferdinand Johann Gottlieb Lassalle: 1825-1864)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1825년 부유한 유대출신의 비단 장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마친 후 베를린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공부하였으며, 파리 여행 중에 시인 하이네를 만났으며, 중요한 정치적 희망을 갖게 되었다. 1848년에 맑스를 사귀었고, 혁명 후 그는 체포되어 베를린에 1857년까지 수용되었다. 그후 개인교사로서 조용하게 보내는 동안 철학적이고 법률적인 논문을 서술하였다. 맑스와 그의 관계는 유지되었으나 성격 차이로 결코 더욱 가까워질 수 없었다. 1862년 초부터 1864년까지 그는 독일 노동운동에 헌신하였다.(Grebing, 50 이하) 라살레는 당시 독일의 공공 삶과 사고를 지배하는 자유주의에 공격의 화살을 당겼다. 진보 정당과 다른 "사회적 개혁"에 대립해서 임금노동자의 정치적 정당결성을 통하여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였다.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정치적 힘을 통해서만 자유와 모든 평등의 이념이 실현되어야 한다. 정치적 해방의 첫 수단은 보통 선거권과 평등 선거권이며, 이 선거권의 도움으로 국민은 국가를 세울 수 있다. 국가에 의해서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는 잔인한 노임철칙으로부터 해방시킨다. 한 민족 안에서 생존을 연맹하고 번식에 필수적인 생활필수품에 대한 평균노동임금으로의 제한은 잔인한 법칙이며, 이것에서 해방되는 길은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고유한 경영으로 나아갈 때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의 자발적인 회사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았다. 그는 합리적 정치의 힘으로 시민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였다.(Brakelmann, soziale Frage, 87 이하) 모든 노동 운동의 시작들은 50년대의 반동기의 경찰조치에 의해서 거의 완전히 파멸되었다. 60년대 처음으로 사회주의 노동당 출현과 관련해서 역시 노동조합 운동이 새로운 부흥을 하였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작센 주정부는 1861년 노동자들에게 동맹의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1869년 북부 독일 연맹을 통해서 일반 영업자유의 허가와 관련해서 역시 노동자들에게 동맹권을 인정되었다. 사회 지배계층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조운동은 진보하였다. 그것은 이제 지역 연맹을 넘어서 국가 영역의 거대한 연맹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사회주의자 법을 통해서 갑자기 정지되어, 중앙연맹은 해체되고, 문헌은 금지되었으며, 많은 지도자들이 체포되거나 혹은 추방당했다. 그래서 노조 역시 지하에서 작업하도록 강요받았다. 1890년 사회주의법 폐지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작이며, 자유 노조의 전체운동을 위한 "독일 노동조합 총위원회"가 창립되었다. 본래의 노조운동을 노동계급의 대중 조직으로써 가능하게 하는 이 조직은, 현존하는 국가와 경제의 중앙 중심주의에 대해 강력히 대항하는 데 필수적이 되었다. 노조는 직업에 따라서 조직되었고, 전 제국 위에 중심적으로 조직되었다. 모든 개별 연맹은 총위원회 안에 집중되었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중앙연맹이 그들의 행동에서 완전한 주권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 지도부는 노조의 전체 이해를 위해 연대적인 공동작업을 한다. 자유 노조는 90년대에서 제1차 대전까지 강력한 부흥을 이루었다. 노동조합은 1890년에서 1914년까지 큰 업적을 이루었는데, 임금수준이 증가하고, 사회 안전망이 건설되고, 국가의 입법에서 노동계급의 중요성이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덕분이다. 노조는 실질적으로 여러 방법으로 노동하는 국민을 변호하였다.(Brakelmann, soziale Frage, 100 이하) 2. 사회적 개신교 운동 기독교 교회는 모든 시대에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그들의 과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돌보는 행위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과된 이웃사랑에 놓여 있다. 동시에 사람들은 이러한 가난을 개인적 운명(불행이나 개인적 죄, 질병)이거나, 혹은 구원받지 못한 시대의 불완전의 표지라고 보았다. 또 이러한 기독교적인 사랑을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상태와 결합시키고, 또 나아가서 이 결합을 신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욱 먼일이었다. 여하튼 19세기초에 활동한 자선적인 노력들이 새로운 과제를 이해하기 시작하였으며, 강력한 목회적인 추동력은 경건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Kupisch, 95)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사회적 개혁 행동의 필연성은 빌헬름 시대와 함께 증가하였다. 이미 본질적으로 교회 안에서, 정치 그리고 사회에서 초기에 존재한 사회적 실험들과는 달리, 빌헬름 2세의 정부 진입과 비스마르크 시대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는 감정이 보다 확대되었다.(Kaiser, 94) 사실 빌헬름 2세의 정부 진입 이전에 그의 새로운 사회정치적 입장이 보였는데, 빌헬름 1세가 궁중설교가 아돌프 스퇴커의 정치적 선동에 화를 내며 갈라지고자 했을 때, 빌헬름 왕자는 스퇴커를 위해서 개입하였고, 궁중설교가로 그렇게 지내도록 그의 할아버지를 움직였었다.(Besier, 111) 2. 1. 사회적 개신교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의 개신교를 일반적으로 신개신교라 칭한다. 이 시대 개신교의 배경이 되는 사상적 흐름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계몽주의, 독일 관념론 등이며, 특히 자유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주의적인 특성이 강하다.(백용기, 106) 이 근대 이후를 특징짓는 개신교를 소위 "문화 개신교"라고도 하는데, 이 용어의 창시자는 알 수가 없다. 신개신교 또는 문화적 개신교 시대의 신학적 그리고 교회 정치적인 모든 종류의 모든 방향에 대한 표지는 세상과 기독교적인 고백, 그리고 기독교와 문화 사이의 통합이 중요한 문제였다.(Schick, 1-2) 문화적 개신교는 자유주의 신학의 각인을 묘사한다. 계몽주의 유산의 상황 속에서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시민적인 해방운동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와 현대문화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문화 개신교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연결하였다. 신학사적인 연구에서 그라프(Friedrich Wilhelm Graf)는 "문화 개신교"의 개념을 세 가지 방법으로 사용하였다.(Langner, 227) 첫째는 쉴라이엘마허에서 트뢸취까지, 두 번째는 내용적으로 마틴 라데의 잡지 "기독교세계""의 영향 아래서 리츨과 리츨학파에 제한하여, 세 번째는 황제 통치하의 독일에서 개신교 교양 시민층의 가치세계의 표시로 사용하였다. 아무리 늦어도 1904년 이후에 사용되어진 개념인 "문화개신교"는 비판적으로 평가 절하된 낯선 표현으로써 개신교 자체로부터 나왔다.(Graf, 230) 문화 개신교의 근본적인 관심은 한편에서는 기독교 사이의 간격을,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 문화와 종교적인 세계경험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며, 그리고 세상의 도덕화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기독교적 가치가 전체 사회에서의 중요성을 상실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한다.(Langner, 228) 자유주의 신학의 그리고 동시에 문화개신교의 근본문제는, 한편에서는 현대의 신학적 그리고 정치적 형상의 토대에 대한 자율성의 원칙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동시에 이러한 기본원칙을 종교적 그리고 정치적 관점에서 제한하려는 노력 속에서 보여진다. 그러한 제한은 문화 개신교 안에서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설정된 윤리가 개인을 넘는 구조, 즉 구조적 제도 윤리가 없는 곳에서는 문제성 있게 드러난다. 근대의 이 문화적 개신교와 함께 이 시대의 운명적인 문제인 "사회적 문제"를 근대 개신교인 신프로테스탄트는 필수적인 과제로 취급하였다.(Langner, 229) 2. 2. 각성운동의 사회봉사 19세기 전반기는 개신교의 사회 운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건주의 운동 속에 내포된 각성운동은 개인의 신앙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사랑의 행위를 요구하였다. 각성운동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된 경건한 개인들이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개신교적 사회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자들, 고아들, 병자들을 돕는 자선에 뛰어 들었다. 181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 고아들이 발생하였을 때, 청소년 보호운동의 첫 주자이며, 괴테의 친구인 팔크(Johannes Falk: 1768-1826)는 "기근 속의 우정회"를 세웠다. 이 회는 독일의 고아를 위한 첫 구제기관인 바이마르의 루터의 집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비슷한 일들을 베스트팔렌의 젊은 귀족인 폰 데어 렉케(Graf von der Recke von Volmarstein: 1791-1878)가 수행하였으며, 1820년 슈바벤의 법률가이며 교육가인 쩰러(Christian Heinrich Zeller: 1779-1860)는 "빈민학생을 위한 자원교사기관과 빈민아동자원기구"를 세웠다. 이 기구는 슈바벤 지역의 경건주의가 바탕이 된 독일 남부 구호소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대의 중요한 인물인 남작 코트비츠(Ernst von Kottwitz: 1757-1843)는 쉴레지엔 주에서 형제단을 통하여 활동적인 기독교 신앙인이 되어 자선 활동을 하였다. 그는 쉴레지엔에 특별한 직물 공장을 세웠으나, 곧 모든 재산을 상실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베를린에서 초라한 형편으로 살았지만, 베를린 각성운동의 중심이었으며, 실업자들을 위해 "취업 자원기구"를 세웠다. 개신교 사랑을 실천한 이 네 명의 대변자는 모두 각성운동에 깨우쳐진 평신도들이었다. 비록 이들이 개인적인 봉사차원에 머무르지마는, 이들은 기독교의 삶의 현장에서 제자도를 증명한 예이다. 이들의 시대는 개인주의적이며, "사회적 봉사"의 단계는 다음 세대를 기다려야 했다.(Brakelmann, soziale Frage, 116 이하) 2. 3. 비헤른 사회적 개신교 운동의 중요한 주창자는 비헤른(J. H. Wichern)이며 그의 내방선교는 교회의 사랑을 조직된 활동으로 전개하였다. 비헤른은 함부르크에서 소시민 계층의 출신으로 태어났다. 그는 이미 무산자적인 삶을 체험하였으며, 아버지가 사망한 15살 때부터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함부르크의 각성운동 친구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공부를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학창시절에 낭만주의적 예술과 문학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신학공부를 한 후, 자기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할레의 플랑켄 고아원을 방문했다. 함부르크에서 시험을 마친 후,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호른에 "광야의 집"을 세웠다. 이 기구는 공동체 원칙이 지배하며, 기도와 노동이 생활의 두 축이었다. 민속음악, 교회음악, 그리고 후일의 직업활동을 위한 교육과 휴식을 위한 체조, 놀이 등이 이루어졌다. 비헤른의 교육목적은 자유로운 기독교적인 인격을 함양하여 국가와 교회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이 광야의 집은 어려웠지만 해마다 성장하였다. 1844년에는 광야의 집 형제 기관인 구호협회가 설립되어 내방선교의 모든 일을 위해 교육되었다. 이와 더불어 비헤른은 남성 봉사기구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 해에 내방선교의 기관지인 "광야의 집 소책자"가 출판되어, 시대의 문제와 내방선교의 과제에 대한 베헤른의 중요한 모든 논문들이 발간되었다. "내방선교"라는 표지 그 자체도 비헤른에게서 유례하며, 이 말을 그는 "구원하는 사랑의 행위를 통한 신앙고백"으로 결정하였다. 내방선교는 신약성서에 모든 그리스도교적인 공동체가 행하는 봉사를 지칭하며, 외부의 파멸의 힘의 지배에 떨어진 기독교 대중들을 내적 외적으로 새롭게 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행동을 강요하는 사랑의 실천이 중요한데, 신앙으로부터 곤궁과 어려움에 대항하는 사랑이 내방선교 출발의 시작이다. 비헤른은 베를린에서 1848년 3월 혁명을 체험하였다. 그는 또한 독일 통일이 주요한 문제가 된 9월의 비텐베르크 교회의 날에 참석하여, 유명한 즉석연설에서 내방선교의 실천적 문제를 언급하였다. "사랑은 나에게 신앙처럼 속한다"라는 문장은 정점이다. 그의 연설에 참석한 500명은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곧 상설 중앙위원회 결성을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는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했는데, 이것이 곧 "독일 개신교의 내방선교"이다. 그는 중앙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작성한 독일민족에 대한 "백서"이며, 자신의 생각을 1849년까지 정리하였다. 1872년부터 보델슈빈(Bodelschwinh)이 이 기구의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비헤른은 7년간의 병고 끝에 1881년에 사망했다.(Brakelmann, soziale Frage, 119 이하) 비헤른은 19세기 개신교의 뛰어난 인물이며, 현대 개신교 사회적 사상의 한 선구자다. 그는 대량 빈곤의 뿌리가 경제적인 구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는데, 자연적인 빈곤 이외에 인위적인 가난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 무산계급의 운명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이것에 대한 해결도 역시 개인적인 도움이나 자력으로 극복될 수 없으며, 체계적인 대량 구호사업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호소에만 머물렀을 뿐, 사회개혁에 대한 실제적인 제안들을 하지 못했다. 혁명과 혁명정신에 대항한 투쟁은 그에게 있어서 무신앙에 대한 신앙의 투쟁이었다. 그의 혁명에 대한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 단순화는 어둠(=공산주의 등등)에 대한 빛(=교회와 내방선교)의 투쟁의 형식 속에서 내방선교를 사회적 복고세력과 결합하게 하였다. 이 결과 내방선교는 빠르게 반혁명적인 기구가 되었으며, 국가의 적은 "자동적으로" 내방선교의 적이 되었다. 비헤른과 내방선교는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적이며 기독교적인 국가를 꿈꾸는 빌헬름 4세 시대의 아들이었다. 그의 문제는 항상 새로운 현상을 낡은 사회적 구조 속에 끼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세속화의 과정에 대항하여 단지 복음화 만을 요청하였으며, 또한 기독교적인 사회 이념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정신적이고 신학적인 반동으로 옮겼다. 한편 그에게는 낭만주의적인 국가학으로부터 전수받은 유기체적 사고 외에 국가와 교회의 모호한 병렬, 하나님 나라 사상 그리고 현재와의 실제적 대화를 방해하는 그의 하나님 사상과 연결된 역사 이해 등이 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 교회와 노동자층의 관련하여 세속운동의 세계를 비헤른은 신학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Brakelmann, soziale Frage, 138 이하) 2. 4. 내방선교 비헤른의 백서를 통해서 내방선교(Innere Mission)의 프로그램과 기본 사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백서는 혁명의 해 1848년에 탄생하였는데, 내방선교의 과제는 분명히 혁명의 탈질서에 있다. 내방선교는 개별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탄생한 사랑으로부터 나온 전체적인 일이다. 이러한 일의 뿌리는 그리스도이며, 내적, 외적인 곤궁을 없애는 것이 기독교적이고 구원하는 사랑이 된다. 내방선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습득되고 파괴될 수 없는 삶의 통일성을 다음과 같은 곳에서 파악하는 데, 이것은 국가와 교회 안에서, 민족과 가정에서, 기독교 사회의 모든 지체들 속에서 필요한 삶의 구원하는 힘을 영향력 있게 한다. 내방선교의 활동의 중심점은 가정, 국가 그리고 교회이다. 세 가지 모두 내방선교에 무조건적으로 신적이며 살아서 서로서로 영향을 준다. 가정은 사회적 문제의 출발점이 되며, 여기서의 교육, 소유, 일 그리고 이것들을 통한 신분관계의 변화 및 중생은 내방선교의 주된 과제다. 또한 내방선교는 국가의 과제에서 자신의 과제를 구별하며, "세속권세의 이러한 신적인 추진"을 다시금 대중들 속에 인정하도록 한다. 내방선교는 "국가가 자기의 영역에서 이러한 기독교의 자비, 지혜 그리고 힘의 증명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요구할 때에" 국가에 자유스럽게 봉사하고자 한다. 국가로부터 내방선교는 자유로운 협회의 권리를 자신의 편에서 기대한다. 내방선교의 국가적 영역에서 과제는 백성들의 도덕적인 삶과 본질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혁명은 신실함의 붕괴이며 경외의 무덤이다". 따라서 이러한 혁명과 함께 도덕성이 붕괴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혁명으로부터 백성을 구원해야 하며, 무신론의 선포와 사탄주의의 혁명에 대한 투쟁이 내방선교의 과제이다. 내방선교는 교회 자체의 삶의 한 면을 계시하며, 잃어버린 보호받지 못한 대중을 찾는 신앙적인 사랑이다. 이런 대중들은 반그리스도적이고 사탄적인 시대 정신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에 대한 투쟁이 내방선교의 과제다. 그러나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많은 공동체가 있으며, 또한 너무 거대해서 정상적으로 돌볼 수 없는 공동체들도 있다. 이런 교회들은 국민 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죽어 가는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을 살리는 것이, 즉 성서의 보급과 사용, 가정 예배, 성서연구, 도서관 설립, 종교서적 출판 등이 내방선교의 과제이다. 빈곤이 더 이상 개인적이 아니며, 사회전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내방선교는 개별 공동체를 넘어서 백성과 국가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자신들의 내적인 빈곤에, 즉 대중의 도덕적이고 기독교적인 변질에 대해 영향을 미쳐야 한다. 내방 선교의 우선적인 과제는 "대중의 도덕적인 몰락을 제거"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일반 도덕적인 일만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대도시에서의 교회적-사회적 일은 긴급하다. 내방선교는 이런 도시들에서 가정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회적-사회적 단체들은 교회의 공무에 포함되어 "도시선교로서의 내방선교 연맹"을 결성했다. 비헤른은 이러한 도시선교의 모델을 제시하여, 팜프레트 출판, 국민도서관 설립, 수공업 동맹의 기구, 봉사제공, 학교 설립 등의 과제를 세분하였다. 가정은 계속 해체되고 어지러워 졌다. 황폐화된 결혼, 경솔하게 헤어지는 부부 그리고 미혼모를 통한 자녀들은 보호자 없는 어린이들이었다. 어른들과 어린이들은 타락하였으며, "기독교뿐만 아니라, 일반 도덕에 대한 감각이 여기서 몰락되었다." 악덕과 범죄가 여기에 있으며, 특히 대도시들 안에 심하다. 비헤른은 여기서 빈곤의 원인과 악순환이 도덕의 타락에 원인이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국가 경제를 통해서 제거되어야 하는 다른 부적절한 산업의 상태가 또 다른 곳에서 대량빈곤의 생산에 공헌한다. 이러한 경우가 생기는 곳에 도덕적으로 선한 가정이 빈곤화의 비참함에 마침내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탈도덕적인 군중의 거대한 위험과 비슷한 외형적인 상황의 몰락으로 내 던져져, 이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비슷한 수준이 된다."(Brakelmann, soziale Frage, 122 이하) 비헤른은 흔들리는 가정의 재생이 (빈민자를 위한) 임산부 연맹, 유치원, 일요학교, 어린이 예배, 어린이를 위한 구호기관 등등을 통해서 도달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빈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시민적인 빈민 구호 활동에는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지 법률과 기록된 도식에 의해서만 빈민구호를 하며, 가난한 자들의 도덕성을 위험하게 하며 부분적으로 이를 파괴하며 그리고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의 요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빈자들은 국가의 자선 기구를 통해서 사랑을 믿도록 배우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방선교의 빈민 구호 활동을 통해 국가의 자선 기구를 관철시켜 나가는 것이 내방선교의 과제다. 비헤른의 사회 문제에 대한 극복의 원리는 "혁명의 원리"가 아니라, "기독교적인 재생원리"이며, 이것을 그는 실천을 통해서 발전시켰다. 수공업단체를 공산주의 교육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자조로 이끌어 내어, 모든 백성을 "기독교적-사회적인 것"(Christlich-Soziale)으로 이끌어 내어야 했다." 비헤른의 사회개념은 근본적으로 유기체적이다. 개개의 기독교 백성들, 국가, 교회, 가정 그리고 신분은 특별한 방법으로 질서 지어wu 있는 하나의 거대한 기독교적인 사회 유기체이며, 이것의 창시자는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살아있는, 인격적인 원리"이다. 가장 상위의 유기체인 기독교계로부터 가장 가까운 유기체인 백성으로 이루어진다. 국가, 교회 그리고 사회는 모든 질서의 주인인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 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 그리스도가 세 가지 제도의 공동의 주인이며 중심이 된다. 또한 국가는 외형적인 복지와 질서를 유지하며, 경제를 최종 결정한다. 세상적인 재산이 국가에게 책임지어지는데 이는 인간의 공동 삶을 파괴하려는 죄 때문이다. 교회는 기독교 정신의 망대며, 전체 백성의 삶에 대한 영원한 토대이며 구원의 샘물을 제공한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며 믿는 자의 공동체다. 이 교회의 최상의 존재는 성령, 자유이다. 비헤른의 기독교적 국민 유기체는 "국가와 교회, 국민과 가정, 기독교적 사회의 이 모든 지체들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고 부서질 수 없는 삶의 통일체다." 이 이념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역사관과 결합한다, 즉 역사 발전의 최고의 통일점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관련되며, 역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발전한다. 반기독교적인 힘에 대한 투쟁 속에서 이것은 결국 역사적 과정 속에서 관철된다.(Brakelmann, soziale Frage, 133 이하) 2. 5. 토트 루돌프 토트(Rudolf Todt)는 1839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브란데부르크의 지방목사로, 1880년부터는 감독(Superintendent)으로 일하였으며, 1887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시골 목사 시절부터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여, 사회민주주의 언론과 문헌을 추적하였다. 1872년 말에 "기독교 국민일보"에 아우구스트 베벨과 빌헬름 립프트네히트의 사회주의에 대한 논문을 기고하였다. 스퇴커의 자극으로 1877년 "급진적 독일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회"라는 책을 출판하여 곧 유명하여졌다. 이 책은 70년대의 개신교 신학자와 독일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의 급진적 사회주의와의 최초의 학문적 논쟁이었다. 그러나 토트는 사실 개신교-사회운동에서 망각되어온 인물이다.(Brakelmann, Kirche, 111 이하) 그는 사회의 경제적인 삶 속에서 이중의 경향을, 소수가 부를 집중하는 것과 가난한 자가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가난한 자와 부자의 사회적 분열은 커지며, 중간층이 무너져서, 결국 자본가와 의존 임금 노동자만이 남게 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비인간적인 삶을 야기하며, 임금은 최저생계만을 보장할 뿐이다. 그는 맑스의 계급투쟁 이론이나 라살레의 임금 철칙설에 동의하였다. 그가 분석한 사회 퇴화의 정신적 원인은 소위 만체스타 자본주의인 경제적 자유주의에 있다. 이런 지나친 개인주의는 사회를 도덕적으로 붕괴시키며, 이 결과가 현대의 혁명적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급진적-사회주의적 사회비판은 그 시대 교회적-신학적 영역에서 토트가 유일회적이다. 그의 독특성은 다음과 같은 주장에 있다, 즉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자는 우편에 국민경제를, 좌편에 사회주의자들의 학문적 문헌을 그리고 앞에는 신약 성경을 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 중에 하나가 결핍되면 해결은 벗어나게 된다. 이 세 가지는 밀접하게 속한다." 이 문장을 통해 최초로 사회주의와 기독교 관계의 대화의 원리가 요약되었다.(Brakelmann, Kirche, 113 이하) 토트에게 기독교 윤리는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윤리적인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주의적인 원리들과 대결하기 위해 신약성서를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였다. 그는 사회주의적인 개념을 분석한 후 그것을 신약성서에 대립시켰다. 그런 후에 오늘의 사회 형태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를 묻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회주의는 경제와 정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역사적 운동이며, 역사적인 권리이며, 역사적 필연성이며, 또한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이념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교회에서 전혀 받아들이기 힘든 견해였다. 동시대인에게 공산주의는 인간 이하의 활동산물이었으나, 토트는 공산주의가 생산수단의 개인소유 폐지를 통해서 인간의 이기심을 지양한다고 인식하였다. 토트에 의하면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공동의 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하다. 이 필요성은 세계의 파괴와 인류의 소외,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재통합 때문이다. 그는 비교적 간단히 무신론에 대해서 설명하였는데, 무신론은 사회주의의 본질이 아니며, 시민적-자유주의적 종교 적대성과 철학적 유물론의 시대에 대중 선동을 위한 하나의 부과물일뿐이다. 기독교적 정신만이 사회주의적인 프로그램을 관철할 수 있으며, 단지 기독교 사회주의만이 참된 사회주의의 유일한 형상이다. 그는 기독교적인 노동이론과 가치론을 전개하였다. 산업사회 체제의 인간에게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과제다. 기독교의 과제는 인격과 가치를 다시 얻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현대 사회에 대한 교회와 기독교의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들은 인간적인 사회성에 대한 휴머니즘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제의 완성은 진보적인 인간화가 최고의 과제인 기독교 사회주의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개신교의 역사에서 토트의 중요성은 그가 대중적인 국민경제이론을 묘사하였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것을 의무로 신학적 연구의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신학과 국민경제의 대화를 수행하기 기독교 사회과학 과목의 개설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대화를 위해 스스로 "신학연구와 사회과학 연구 사이에 내적 관련과 필연적인 결합"이라는 제목의 작은 팜프렛을 저술하였는데, 이 작품은 이제까지 잊혀졌던 개신교-사회적 운동의 유일한 자료이다. 토트는 국가의 개입을 신학적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회정치적인 요구의 중심점에 세웠다. 그는 고유한 기독교적-사회적 정당창설을 호소하였으며, 사회문제를 체계적으로 관계하는 연맹을 설립하였다.(Brakelmann, soziale Frage, 153 이하) 2. 6. 스퇴커 아돌프 스퇴커(Adolf Stoecker: 1835-1909)는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학 학업을 마친 후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그는 일찍이 사회문제를 다루었다. 1874년 황제에 의해서 궁중과 성당의 목사로 베를린에 갔을 때, 여기서 그는 교회와 기독교로부터의 계속된 하층민 몰락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자가 되었다. 그는 내방선교와 도시선교의 과제에 헌신하였지만, 이러한 상황이 내방선교에 의해서 더 이상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였다.(Kupisch, 103) 스퇴커는 종교적으로 각성운동을 통해 결정되며, 신학적으로 정통주의에 속한다. 이는 성서에 대해 역사-비판적인 연구, 기독교와 현대 문화 그리고 학문성의 통합이 중요한 신학적 자유주의에 반대를 의미하며,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왕권과 재단의 분리를 선전하는 교회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설교가의 한사람이었다. 첫 번째 개신교-사회적 정당인 "기독교-사회 노동당"이 스퇴커에 의해서 1878년 1월 3일 베를린에 창립되었다. 이 정당과 함께 개별 봉사의 의미인 내방선교로부터 사회개혁 의미의 사회정책으로 단계를 실행하였다. 이 정당의 창당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와 함께 정치적 삶으로의 첫 단계가 시작되었다. 스퇴커의 기독교 사회 노동당의 기본강령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사회 노동당은 기독교 신앙과 왕과 조국에 대한 사랑의 토대 위에 있다. 2. 이 정당은 현재의 사회민주주의를 비실제적, 비기독교적 그리고 비애국적인 것으로 비난한다. 3. 이 정당은 국가 생활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필연적인 실제적인 개혁을 건설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평화로운 조직을 추구한다. 4. 이 정당은 목적으로써 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며 거대한 경제적 안정을 가져오도록 추구한다. 한편 스퇴커 운동의 특징적 사건은 황제생일의 축하다: "베를린의 거대한 강당에서 축제가 거행되었다; 그러한 힘든 시대에 거대한 현상인 가난한 노동자에게 저녁식사가 주어졌다; 역시 그들의 위엄인 황후가 거기에 풍부한 은총을 제공하였다. 애국적인 연설에 환호, 황제에 대한 만세가 끊이지 않았다..."(Brakelmann, soziale Frage, 167 이하) 그러나 이 새 정당에 어떤 여론의 호의도 없었으며,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자 이외에 자유주의, 민족자유주의, 보수주의 그리고 교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스퇴커는 개인적으로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궁정 설교가와 정치인의 일, 신학과 호민관의 개인적 연합이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과제는 사회민주주의 무신론적 조직에 기독교 노동자 연합을 대립시키는 것이었다. 노동자층으로의 진입이 실패함과 더불어 스퇴커의 반셈족 과정과 중상층 중심으로의 정책 전환은 이미 1880년 기독교-사회 정당이 더 이상 기독교-사회 노동자당이 아니라는 것이 표명되었다. 창립 당시의 무산계급 성향은 포기되었으며, 정치적으로 점점 보수화 되어 갔다. 이제 더 이상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기독교-사회적이라는 것은 반셈주의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보수적인 것을 의미하였다. 그는 구 보수적인 정당을 기독교-사회적 정당의 유산을 받아들이는 기독교-보수적 정당으로 변화시켰으며, 사회적 보수주의를 선전하기 위해서 활동하였다. 그의 세 가지 중심은 기독교-군주제-사회개혁이었다. 그는 개신교의 모든 진영을 하나의 통일연맹으로 조직하여 시대와 투쟁하고자 하여, 1890년 개신교-사회 회의(Evangelisch-Soziale Kongress)를 세웠다. 그는 이 기구를 통해서 개신교에 사회정치적 과제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교회의 다양한 적들과 정치적 적들이 상존하였으며, 특히 빌헬름 2세는 스퇴커의 기독교-사회적 사상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겼으며, 잘란트의 남작 폰 스툼(Freiherr von Stumm)은 개신교 사회적 운동을 사회민주주의 보다 위험한 것으로 여겼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0) 그는 무산자를 낡은, 그러나 개혁된 체제에 화해시키기를 원했으며 그리고 제4 신분을 기독교 사회의 전체 사회 안에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는 노동자를 얻기 위한 투쟁을 하였으나 이 투쟁에서 졌다. 세속화는 스퇴커에게 기독교적 세계의 종말이었으며, 세속화 속에서 인간 중심점의 인식을,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책임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궁중설교가 스퇴커는 투쟁적인 개신교 보수주의자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기독교 사회주의자다. "단지 기독교 노동조합만이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단지 기독교-사회 정당만이 비기독교적 사회주의적 정당을 제거할 수 있다. 그래서 거기에 당연히 강력한 지칠 줄 모르는 사회개혁이 속한다." 2. 7. 나우만 프리드리히 나우만(Friedrich Naumann: 1860-1919)은 1860년 작센의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족의 전통에 따라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883년 함부르크 호른의 광야의 집에서 상급보조자로 일하였으며, 당시 비헤른의 기구는 비헤른의 아들이 이끌고 있었다. 광야의 집에서 2년 활동한 후에 작센의 첫 목회지에서 노동자의 고통을 인식하였으며, 노동자의 문제가 그 시대의 중심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우만은 이제 "가난한 자들의 목사"로서의 활동 이외에 사회문제 문헌연구에 몰두하였으며, 특히 맑스적-사회민주주의 저술들, 맑스, 엥겔스, 라살레, 베벨 그리고 립프크네히트를 철저히 연구하였다. 나우만은 비헤른과 스퇴커의 사회정치적 사고의 중요한 영향 아래에 있었으나, 이들과는 일찍부터 독자적인 사고발전의 과정을 겪었다. 이것은 내방선교의 방법이나 스퇴커의 정치적 입장을 훨씬 넘어가는 것이었다. 스승들처럼 나우만은 맑스주의는 거절하였으나 사회민주주의를 현재의 과제로써 인정했다. 그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무산자적인 성격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이미 스퇴커와 결별의 성향이 있었다.(Kupisch, 107) 나우만은 반동과 혁명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취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것을 기독교 사회주의라 하였으며, 이것은 사랑과 정의의 기독교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활동적인 개혁 작업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논쟁하였다. 그는 역시 사회주의적인 원리인 자유, 평등 그리고 형제애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물질관이 국민의 영혼에 큰 위험을 준다는 것을 제시하며, -정치적 프로그램에 위험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빈곤 제거를 통하여 기독교 사상세계를 위해 노동자를 다시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위해 내방선교의 확장이 필요하였으며, 비헤른의 사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기독교 사회적 운동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즉 "성서적인 프로그램은 없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성서적 동기가 있다." 그는 제 2세대로서 기독교-사회적인 사회정책을 계속 이끌어갔다. 그는 내방선교의 자선활동을 통해선 극복될 수 없는 빈곤의 사회적 관계를 점점 더 인식하였다. 그는 기독교적 사회정책, 사회개혁으로 들어갔으며, 정치적, 사회정치적으로 거의 모두가 보수적인 정당에 가입되어 있는 내방선교의 "옛 사람"과 대립하게 되었다. 나우만의 기독교 사회적 활동은 "개신교-사회적 회의"의 활동 속에서 드러나는데, 스퇴커 주변의 "옛 사람"과 나우만 주변의 "젊음"의 이러한 투쟁은 이제 "개신교 사회적 회의"의 차원과 영역으로 옮겨졌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4 이하) 나우만이 1896년 민족사회 연맹을 창설함으로써 그의 개신교 사회적 운동은 끝났다. 그 스스로 1897년 목사직을 포기하고 직업정치가가 되었으며, 점점 민족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가가 되었다. 그는 세계와 교회, 정치와 종교, 힘과 선교라는 이원론으로 떨어졌다. 그는 기독교 사회적 입장에서 급진적으로 민족적 사회적 방향으로 움직였다. "군사주의는 모든 국가 질서와 유럽시민 복지의 기본토대다... 기독교의 미래는 주민들의 군사적 의미의 유지에 달려있다. 우리가 옛 독일의 영웅심의 마지막 나머지를 물리치지 말자." 2. 8. 개신교 사회 회의 1890년은 독일제국의 사회정치적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한 면을 표시한다. 빌헬름의 2월 칙령은 노동자 친화정책과 입법화를 계속 추진하였으며, 사회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특별한 책임을 강조하였다. 곧바로 4월에 개신교 교회 최고위원회(EOK)는 교회 정치적 방향을 180도 회전시켜 성직자들이 노동자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동자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도록 하였다. 이는 기독교 사회적인 작은 단체에게 강력한 추동력을 주었다. 스퇴커는 강당사회자들인 바그너(Adolf Wagner), 개신교 노동연맹의 지도자인 베버(Ludwig Weber), 보수적인 신문인 "십자가신문" 편집장인 크로파체크(Friedrich Kropatschek: 1875-1917)와 함께 새로운 사회적 교회정치적 출발을, 모든 기독교적 사회적인 자들을 하나의 중립적인 작업포럼에 연합하고자 시도하여, 1890년 오순절에 "개신교 사회 회의"를 베를린에 창립하였다. 다양한 교회정치적 그리고 신학적 흐름들을 하나의 사회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토론으로 결합시켰다. 780명의 회의 참석자들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한 선동이 거의 필요가 없었으며, 오히려 자기 국민의 사회적 상황을 편견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복음이 요구하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척도에 의해서 계산하고 이것을 오늘날의 경제적 삶을 생산력 있게 만들고 영향력 있게 만드는데 그들의 과제를 삼았다.(Besier, 116) 이 모임에서 여섯 가지의 제안이 이루어졌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8) a) 교회의 사회적 의미 안에서의 교회 공동체 b) 노동자 보호법제정 c) 노동하는 계급의 주택곤궁과 그들의 구제법 d) 개신교 노동자연맹과 그들의 중요성 그리고 계속적인 발전 e) 사회정책의 영역에서 현재의 노력 f)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이제 해마다 개최되는 주요회의에서 실제적인 사회정책의 문제들과 기독교 윤리의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 회의는 모든 정치적 그리고 교회정치적 정당의 대표로 구성된 의장단을 선출하였으며, 1891년부터 1902년 동안의 첫 의장은 중재적인 농업고문관인 놉베(Nobbe)였다. 1891년부터 1894년까지 첫 번째 총무는 신학 후보자인 젊은 목사 괴레(Goehre)였는데, 그는 그가 쓴 "3개월간의 공장노동자"라는 책 안에서 묘사한 공장활동을 통해서 잘 알려졌다.(Brakelmann/Traugott, 142) "개신교 사회 회의"에 참여한 회원들의 공동 견해는 다음과 같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9 이하) 1. 복음에 서 있는 종교개혁의 교회는 신앙 고백자와 봉사자가 시대를 배우며,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피해의 원인을 추적하며 그것을 극복하는데 협력할 때만이 국민의 양심을 인도하는 정신적 힘을 전개시키고, 특히 사회적 영역에서 화해하는 영향을 실행할 수 있다. 2.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공명심에 사로잡힌 교리이며 악마적인 혁명의 힘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종교적 타락의 자연적인 결과이다. 3.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법에 의해서 극복될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오류이다. 4. 고용된 노동력에 의거한 계급의 경제적 노력과 자주성은 정당하다. 5. 사회적 개선을 목표하는 헌법과 법률, 조국과 국왕의 토대 위해서 현명하게 지도하며 개입하여 소외된 국민의 진영을 데려오는 것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의 하나다. 그 사이에 개신교 사회 회의 내부에서 스퇴커-나우만의 대립이 점점 커졌으며, 나우만의 진영은 스퇴커로부터 벗어나 점점 발전하였다. "젊은이"들은 사회개혁을 위하여 보수진영을 얻고자하는 스퇴커의 노력이 좌절되었으며, 본질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점점 프로그램 과정이 보수적인 방향에서 자유주의로 변화되어 갔다: 1) 특별히 기독교적인 동기근거로부터 나우만적인 사회정치적 개혁 개념이 분리되었으며, 2) 기독교적인 근거에서 국민정치적 근거로 대치되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회원으로 가입하였다.(Pollamnn, 65 이하) 그러나 여전히 개신교적 정서, 확고한 황제에 대한 신뢰 그리고 합법적인 사회 개혁의 세 가지 위에 서 있는 개신교 사회 회의는 사회민주주적인 내지는 모든 사회혁명적인 추진하는 모든 것에 한계를 두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모든 측면에서 공격이 쏟아졌으며, 경영자에 친근한 언론, 농업보수주의자, 궁중 그리고 교회지도부, 우익들이 개신교 사회 회의에서 떨어져 나갔다.(Brakelmann, soziale Frage, 182) 개신교 사회 회의 그 자체에 위기가 왔으며, 스퇴커는 탈퇴하였다. 그는 나우만-진영과 더 이상 성공적인 협력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단지 작은 무리만이, 그 가운데 교사 베버도, 스퇴커와 함께 개신교 사회 회의를 떠나서, 1897년 교회-사회 회의(Kirchlich-soziale Konferenz)를 세웠으며, 이 단체는 내방선교와 개신교 노동자연맹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교회의 사회사업을 위해서 교회의 "적극적인 자"(Positiven)들을 모았으며, 반면에 개신교 사회 회의에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자유주의자들이 넘쳤다. 나가는 말 이미 산업혁명 이후 인간들의 삶의 현장이 과거와는 180도 방향 전환한 이후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삶의 현장에 대한 철저한 인식없이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 서양의 기독교 및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철저한 역사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오늘날 독일의 사회적 국가의 성격은 다양한 이념과 사회사적인 상황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개신교의 영역으로부터 "동기와 방향"을 얻었다. 국가를 권력과 문화국가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국가로서 보충하여 이해하며, 그리고 이 국가를 통해서 약자를 돌보는 것이 기독교인의 책임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들의 국가 이해는 본질적으로 개신교 전통으로 각인 되어졌고, 국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넘겨진 하나의 기구로써 이해된다. 사회적 개신교의 전통은 특별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오늘날 제3의 대안인 사회적 시장경제(Alfred Mueller-Armack)의 틀을 낳게 되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적인 맘몬의 정신을 집단주의적인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개인의 인격적 존엄을 인정하며, 개인의 도덕에 대해서 적지 않게 그러나 채워질 수 있는 요구들을 담는 경제제도를 찬성하였다.(Traugott, 6 이하) 이와 같이 사회적 기독교는 각 시대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복음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통과 말씀 속에서 새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따라서 각 시대에 큰 역할을 하였던 사회적 기독교의 연구는 더욱 중요하다. 참고문헌 Karl Janssen, Johann Hinrich Wichern, Ausgewaehlte Schriften Bd. I, II, III, Berlin 1956. Dietrich von Gertzen, Adolf Stoecker, Lebenslauf und Zeitgeschichte, Schwerin 1912 Guenter Brakelmann, Die soziale Frage des 19. Jahrhunderts, Bielefeld 1981. Guenter Brakelmann, Kirche und Sozialismus im 19. Jahrhundert, Witten 1966. Guenter Brakelmann/Traugott Jaehnichen, Die protestantischen Wurzeln der Sozialen Marktwirtschaft(Ein Quellenband), Guetersloh 1944. Traugott Jaehnichen, Sozialer Protestantismus und moderne Wirtschaftskultur, Muenster 1997. Karl Kupisch, Zwischen Idealismus und Massendemokratie, Berlin 1955. Manfred Schick, Kulturprotestantismus und soziale Frage, Tuebingen 1970. Gerhard Besier, Religion, Nation, Kultur, Neukirchener 1992. Albrecht Langner, Katholische und evangelische Sozialethik im 19. und 20. Jahrhundert Parderborn etc. 1998. Friedrich Wilhelm Graf, Kulturprotestantismus, in: TRe, Bd.20 Martin Greschat, Das Zeitalter der Industriellen Revolution, Stuttgart etc. 1980. Martin Greschat, Protestanten in der Zeit, Stuttgart 1994. Jochen-Christoph Kaiser, Protestantismus und Sozialpolitik, in: Soziale Reform im Kaiserreich, Stuttgart etc. 1997. Klaus Erich Pollamnn, Weltanschauungskampf an zwei Fronten, Der Sozialprotestantismus 1890-1914, in: Soziale Reform im Kaiserreich, Stuttgart etc. 1997. Theodor Strohm, Innere Mission, Volksmission, Apologetik, in: Sozialer Protestantismus und Sozialstaat, Stuttgart, etc. 1996, Helga Grebing, Geschichte der deutschen Arbeiterbewegung, dtv 1970, S.26-27. Peter-Heinz Seraphim, Deutsche Wirtschafts- und Sozialgeschichte, Wiesbaden 1966. Gaston V. Rimlinger, Welfare Policy and Industrialization in Europe, New York etc. 1971, 한국사회복지학 연구회 역, 한울 1991. 백용기, 독일의 기독교 사회복지, in: 기독교와 사회복지, 홍익재, 2001. Eine Studie ueber den sozialen Protestantismus Deutschlands in 19. Jahrhundert Paik, Young-Gi Pull-time Lecturer Kang-Nam Unisersity Kyongki-doSeoul, Korea Der vorliegende Aufsatz beschaeftigt sich mit dem sozialem Protestantismus in deutschland. Sie versucht, die soziale Frage und christliche Erfahrungen in 19 Jahrhundert zu analysieren und auch einen Ueberblick ueber christliche Aufgabe in Korea zu habe. Der soziale Protestantismus zeigt, welche Aufgabe das Christentum und die Kirche zeitlich haben. Er erklaert sowohl theologisch diese Aufgabe und beweist die als auch durch das soziale Handeln praktisch. Der soziale Protestantismus erzielt mit der Autonomie und Gleichheit mitlebende Gesellschaft und bestrebt sich eifrig, die Lebensqualitaet des Menschen zu entwickeln. Heuzutage folgt die Tradition des sozialen Protestantismus in Verschiedenheit. Tatsaechlich ist der sozialer Protestantismus Regeneration der Naechtsnliebe, die seit dem Fruehchristentum verliert werde. Fuer den Aufsatz ergibt sich folgende Aufgabenstellung: 1. Die industrielle Revolution und die soziale Frage behandlet werden, weil man den sozialen Protestantismus nicht verstehen kann, ohne die beiden zu erwaehnen. Besonders stellt der Aufsatz die Arbeiterbewegung von Marx und Lassalle ausfuehrlich dar, weil sie eine grosse Rolle in 19. Jahrhundert gespielt hat. 2. Die Arbeit untersucht die evangelischen sozialen Bewegungen. Die Grosse Gestaltungen zur sozialen Frage, aber noch nicht bekannt wird im Kreis der theologischen Geschichte, werden besonders beschaeftigt. Dadurch kann man die gute Impulse des christlichen sozialen Bewegung kriegen.
1세기의 눈으로 본 동성 연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
1세기의 눈으로 본 동성 연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 2002-11-11 15:27:24 read : 9 현대 사회속에서 동성 문제에 대하여 논의가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들도 이에 대한 답을 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동성연애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찾고자 노력을 할 것이다. 오늘날 특히 미국 교회안에서 동성연애에 대한 크게 세가지의 견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동성 연애는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그룹이 있다. 둘째는 성경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당시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서 볼 때 신구약에 언급되어 있는 동성 연애에 대하여 오늘날 잘못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동성 연애에 대하여 죄악시하지 아니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그룹은 이 두 견해의 사이에서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 연애는 죄악인가 아니면 병으로 취급되어질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하여 연구를 하여 볼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고는 동성 연애와 연계되어 있는 구약 성경 구절에 대하여 언급을 할 것이지만 초점은 신약의 바울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더욱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바울이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이 토대 위에서 오늘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신약 배경은 당시 헬라 문화와 로마의 문화에 대하여 연구하고, 이러한 문화 속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동성 연애를 해석하고 있는가를 중간사의 입장에서 연구하여 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의 견해를 연구하고자 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배경 연구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연구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전과 이후의 시대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먼저 그리스의 배경을 연구하고 나서 로마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리스 배경 그리스의 배경을 연구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그리스 고전에 동성 연애가 어떻게 언급되어 있는가를 연구하여야 한다. 이 고대의 그리스 문화의 시대에 대하여 Tannahill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한다. "Homer, Hesiod, Plutarch, Pausanias --the professional my preservers and myth-improvers--created a vivid, adventurous, amoral world in which gods and heroes spent as much of their time bedding and brawling as they did in performing deeds of valor. . ." 이 당시 그리스인들의 성에 대한 관점이 모든 신들, 여신들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성들에 대한 다양한 현대의 용어들이 당시 그리스 사회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예로 androgyny, aphrodisiac, eroticism, hermaphroditism, homosexuality, narcissism, nymphomania, pederasty, satyriasis, 그리고 zoophilia이다. 이러한 다양한 용어가 그리스 사회 속에서부터 나온 것을 볼 때 당시 그리스 사회의 성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이었는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또한 동성 연애에 대하여서도 상당히 일반적이었음을 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Smith는 "On all levels of society, homoerotic activity pervaded the Greco-Roman period."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여성에서보다도 남성에서 일반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던 그리스 사회 속에서는 주로 남성들의 활동 영역 속에서 동성 연애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당시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이루어지던 곳은 교육기관 과 정치집단 혹은 군대 속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동성 연애는 첫 번째 이루어 진 곳이 사회적인 기관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동성 연애를 당시는 이러한 사회적 집단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어른 남성이 어린 소년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던 남색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사회였다. 그래서 Tannahill은 남색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the word pederasty is generally used to describe the sexual attraction of an adult to an immature child, but to the Greeks it signified the love of a man for a boy who had passed the age of puberty but not yet reached maturity." 어떠한 사회적 단체에서 이러한 남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말은 사회적 계급의 차이에 의하여 동성 연애가 이루어질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반적으로 동성연애는 당시 사회 속에서 나이든 남자들이 젊은 남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 기원전 6-4세기에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관계에 대하여 학자들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Boswell 같은 학자들로 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당시 소년들의 정신적 도덕적 지적 발전을 도와주기 위하여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돌아보고 또한 이들의 목적은 그 사랑하는 소년의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이끌기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Keuls와 같은 학자들은 남색은 이러한 순수한 의미이기보다는 남창과 연계되어있다고 주장을 한다. "this pattern became compromised and led to male prostitution by citizens and to adult male love affairs; both of these practices were consistently stigmatized as socially unacceptable. Anal sex, generally associated with obscenity and coarse behavior, was the common form of these discredited types of homosexual contact." 그녀에 따르면 남색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480 BC에 이미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금지를 시키고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당시 예술품들과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들은 분명히 남색이 아니라 남자들간의 사랑이고 또한 동성 연애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당시의 동성연애는 학생동료들 사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나아가서 이러한 젊은 사람들이 남창으로 변하여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법령들이 통과 도기까지 하였다. 어찌하였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사회 속에서 남성들의 동성 연애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보면서 또한 당시 사회의 예술 작품을 보면서 동성 연애와 남색이 만연되어 있던 사회였음을 확신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동성 연애나 남색을 당시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동성 연애나 남색이 당시 사회에 만연되어 있으면서 또한 당시 사람들은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하나의 과정정도로 생각을 하였던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동성 연애나 남색의 문제점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Garland는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한다. " . . . homosexual attachments were believed to facilitate the transition from child to adult, thought it must be stressed that this view seems to have been more prevalent among the aristocrats. . . In Aristophanes' plays . . . there is clear evidence of revulsion against homosexual practices on the part of the Attenian middle class." 로마 그리스 사회에서 동성연애와 남색이 보편적이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었지만 로마에서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음을 볼 수 있다. 1세기 전후의 로마 사회에서는 동성연애와 이에 대한 언급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만연되어 있었고 또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공화정 시대나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 동성 연애나 남색이 불법으로 인식되어지지 아니하였고 또한 로마 안의 어떠한 종교나 법이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시 로마 사회 속에서는 동성 연애로 남색이 불법으로 혹은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적인 관계는 능동적인 역할과 수동적인 역할로 이루어진다. 능동적인 역할은 남성이 하고 수동적인 역할은 여성이 하는 것이다. 당시 사회는 명예와 수치를 중시 여기던 사회였기 때문에 남자가 여성의 역할인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명예가 손상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인인 남자가 수동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 속에서는 동성연애는 같은 사회적 신분 속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었다. 1세기 당시의 로마 사회속에서 명예의 중요성에 대하여 멜리나는 "명예는 원래 사회적으로 인정된 가치에 대한 주장이다." 이러한 정의 하에서 그는 명예는 권력과 성과 그리고 종교라는 세 분야에 의하여 나타나게 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계속하여 권력과 성과 종교를 설명한다. 그는 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을 한다. "성적 신분 또는 역할은 생물학적인 성의 구별을 상징화하는 일련의 의무와 권리들 --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또는 당신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것 -- 에 관해서 말한다. 남성의 '의무'는 여성의 '의무'와 동일한가? 남성에 대하는 방식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동일한가? 성적 신분은 한 사회집단에서 인정된 남성과 여성의 '의무'에 관해 언급한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1세기 로마 사회는 명예를 가장 주요하게 여기던 사회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멜리나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1세기의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자신의 명예의 등급이다. 가치에 대한 권리와 자격은 신분에 대한 권리이며, 그 신분 (그가 가진 일단의 권리와 의무)은 자신의 사회적인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은 그의 명예 등급에 의존하여, 그것은 그 공동체의 신분 서열에서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해 준다." 이렇게 명예에 의하여 신분이 결정되어지던 사회였기 때문에 명예에 의하여 사람의 행동이 결정되어졌던 사회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자유자인 남성은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는 일을 하지 아니하였다. 성적인 관계에서 남성은 능동적인 역할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곧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으로 성적인 관계에서 남성은 남성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이지 남성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여성의 역할인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명예에 손상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성 관계는 능동적인 위치에 있는 남성과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여성의 관계이고 동성 연예는 능동적인 위치에 있는 자유인 남성과 수동적인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종들과 혹은 젊은 남성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하여 Steggemann은 이렇게 말을 한다. "The view taken on sexual activity or passivity, then, corresponds to social hierarchy. And it is an established fact that Medterranean women were confined to passivity and had to act accordingly. How, then, is this represented in homosexuality? Well, it should be no surprise within this framework that homosexuality mainly means pederasty and that the object of homosexual desire had specific female characteristics; long hair, some sort of makeup, a tender face. In a word, he was effeminate (malakos). The prevailing form of homosexuality was pederasty. A secondary form was sexual intercourse between a master and his male slave. . . . Under these circumstances, obviously homosexual practice among free males regarded with contempt, because in this relationship a free adult male had to take on himself a role befitting women and slaves." Steggmann의 견해에서 우리는 1세기 로마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없었다고 할 수 없으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 안에서의 동성 연애는 경멸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동성 연애보다는 사회적 구조 때문에 남색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남색은 당시 사회적 관습에서 볼 때 결코 죄악시되지 아니하였고, 또한 정죄되었던 것도 아닌 일반적으로 1세기의 로마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졌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성 연애에 대한 유대인의 견해 1세기 당시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얼마나 성행을 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의하여 받아들여졌을지라도 Hellenistic Judaism을 연구해 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실제적으로 1세기 전후의 헬라화 되어 있는 유대문헌들을 연구하여 보면 이들은 동성 연애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를 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는 받아들이고 또한 일반화되어 있는 세계 속에서 왜 어떻게 유대인들은 동성 연애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를 하였을까? 하는 것이 의문점인 것이다. 이러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던 경전에 어떻게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는가를 연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면관계상 구약의 중요한 성경구절만 인용하여 연구하고 한다. 먼저 레위기 18:22절과 20:13절에서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시에 이집트의 풍속을 따르지 말 것을 권면하면서 주어진 명령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Eron은 이렇게 말을 한다. ". . . an ancient body of Israelite legal materail . . . (which) holds the Canaanite and Egyptians guilty of a wide variety of sexual sins that include incest, adultery, male sexuality, bestiality, and child sacrifice . . . The Israelites are warned not to follow any of these practices lest the Land of Israel spew them out . . . (Lev. 18:24-30; 20:22-26)." 이 두 성경 구절은 랍비들의 동성 연애에 대한 강한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창세기와 사사기에 나온 두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9장에 소돔의 멸망 사건이 언급이 되어 있는데 당시 소돔과 고모라 성의 타락상에 대하여 잘 언급이 되어 있은 것이다. 물론 일부 학자들이 이 소돔과 고모라성의 이야기와 사사기 19장에서 21장에 나와 있는 그들의 직접적인 죄는 동성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 남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가지지 아니하고 또한 불의를 행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을 한다. 예로 Eron은 그의 논고, "Homosexuality and Judaism"에서 이 두 본문을 선지서들의 견지에서 해석을 하고자 했다. 그는 이사야서 1:10절과 3:9절 그리고 예례미아 23:14절과 에스겔 16:48-49절에 근거하여 소돔, 고모라성과 기브온의 죄는 의가 부족하고 도덕과 윤리의 가치를 무시하고 또한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돌아보지 아니한 죄에 대하여 심판을 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처럼 현대 학자들 사이에 이 4개의 구절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본문이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고 또한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고는 구약 성경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구약 신학자들에게 남겨 놓을 생각이다. 다만 이러한 구약의 성경 구절을 중간사 시대에 어떻게 이해를 하였고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Eron이 내린 결론은 결국 동성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고 있으나 중간사시대의 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간 시대의 문헌을 살펴보면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분명하게 반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먼저 12 족장 이야기 (Testament of the Twelve Patriarchs)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이 레위의 이야기(The Testament of Levi)는 레위가 하늘을 여행하면서 그의 자손들이 행했던 일과 심판의 날에 이루어 질 일들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 17:11에서 악한 제사장들의 죄악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In the seventh week there will come priest; idolaters, adulterers, money lovers, arrogant, lawless, voluptuaries, pederasts, those who practice bestiality." 납달리의 이야기(The Testament of Naphtali)에서 소돔의 죄악을 따르지 말 것을 권하면서 소돔 성의 죄가 무엇인가 언급이 되어 있다. "But you, my children, shall not be like that: In the firmament, in the earth, and in the sea, in all the products of his workmanship which departed from the order of nature. 'Likewise the Watchers departed from nature's order; the Lord pronounced a curse on them at the Flood. On their account he ordered that the earth be without dweller or produce (TNaph 3:4-5). 또한 Sibylline Oracles의 저자도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지에서 언급을 하고 있다. "Male will have intercourse with male and they will set up boys in houses in ill-fame and in those days there will be a great affliction among men and it will throw everything into confusion. It will cut up everything and fill everything with evils with disgraceful love of gain, ill-gotten wealth, in many places, but especially in Macedonia (SibOr 3:185-188). 이러한 동성 연애와 남색에 대하여 Sibylline Oracles의 저자는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언급을 하고 또한 그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행위를 피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동성 연애와 또한 남색이 주변 지역에서 만연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결국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따르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또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또 다른 책 Pseudo-Phocylides의 저자도 동성 연애와 남색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반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Neither commit adultery nor homosexual passion(Ps-Phoc 3)." 그는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비율법적인 성 관계를 가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Do not transgress with unlawful sex the limits set by nature. For even animals are not pleased by intercourse of male with male. And let women not imitate the sexual role of men (Ps-Phoc 190-192)." 또한 Enoch의 저자도 역시 동성 연애를 소돔 성의 죄악과 연계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God convicts the persons who are idol worshipers and sodomite fornicators, and for this reason he brings down the flood upon them. . . . And all the world will be reduced to confusion by iniquities and wickednesses and /abominable/ fornications/ that is, friend with friend in the anus, and every other kind of wicked uncleanness which it is disgusting to report/, and the worship of (the) evil (one) (2 Enoch 34)." 위에 언급된 모든 글들에서 중간사 시대에는 소돔의 죄를 동성 연애와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저자들의 견해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그리스 문화권의 사회에서 만연되어 있던 동성 연애나 남색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이들은 레위기에 근거하여 동성 연애를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또한 Philo와 Josephus와 역시 동성 연애를 소돔의 죄악과 연계하여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hilo는 그이 책에서 소돔의 죄악을 동성 연애와 연계하여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성 관계를 가지는 행위를 자연의 순리에 위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 . . not only did they go mad after women, and defile the marriage bed of others, but also those who were men lusted after one another, doing unseemly things, and not regarding or respecting their common nature; . . . by degrees, the men became accustomed to be treated like women, and in this way engendered among themselves the disease of females, and intolerable evil; for they not only, as to effeminacy and delicacy, became like women in their persons, but they made also their souls most ignoble, corrupting in this was the whole race of man, as far as depended on them (On Abraham 135-36). 이러한 언급은 요세프스에게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Josephus는 그의 글 Antiquities과 Against Apion에서 천사들의 소돔 방문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And when God had replied that there was no good man among the Sodomites; for if there were but ten such men among them, he would not punish any of them for their sins, . . . Now when the Sodomites saw the young men [the angels] to be of beautiful countenances, and this to an extraordinary degree, and that they took up their lodgings with Lot, they resolved themselves to enjoy these beautiful boys by forces and violence (Anti 1, 11. 3)." "But then, what are our laws about marriage? That law owns no other mixture of sexes but that which nature hath appointed, of a man with his wife, and that this be used only for the procreation of Children. but it abhors the mixture of a male with a male; and if anyone do that, death is his punishment (Anainst Apion 2, 25)." 필로나 요세프스는 그들의 견해를 당시 유행하고 있던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동성 연애나 남색이 옳지 못한 행동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동성 연애는 순리(nature)에 적합하지 못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1세기 전후의 저작들을 살펴보면 당시 사회는 동성 연애나 남색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또한 이를 불법시 하거나 죄악시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 사회에서나 혹은 Diaspora의 유대 사회에서는 이를 죄악으로 취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동성 연애는 소돔 성의 멸망과 연계시켜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한 행위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나 남색을 취급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생각하여 볼 필요성이 있다. 동성 연애에 대한 바울의 견해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와 연계된 일련의 용어들을 로마서 1:26, 27절과 고린도 전서 6:9, 10절 그리고 디모데 전서 1:10에서 취급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대 학자들 사이 속에서 이 구절을 동성 연애를 지지하는 구절로 해석하고 자 하는 학자로부터 동성 연애를 반대하고자 하는 학자들까지 다양하다. 어떤 학자들은 신약에서는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반강제적으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남색을 반대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을 다시금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당시에 사도 바울은 만연되어 있던 동성 연애와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혹은 Diaspora에 있었던 유대 저자들과 같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1:9-10 여기서 동성 연애와 관련이 있는 용어는 9절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이다. 이 용어들은 헬라어로 ` 와 ' ~ 이다. 이 두 용어는 당시 사회속에서 유행하고 있던 동성 연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Witherington은 "Malakoi in its root meaning means 'smooth' or 'effeminate.' Dionysius of Halicarnassus (7.2.4) uses his term to refer to a young male prostitute. Pederasty, molestation of minors by adult males, was the most common form of homosexuality in antiquity. 여기서 ' ~ 가 본문과 디모데 전서 1:10절에 밖에 쓰여지고 있지 아니한 하팍스 레고메나인데 우리는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을 하는 것이 타당한가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이 단어는 Bauer의 사전에는 "남성간의 동성 연애," "남색," "비역장이 (sodomite)"로 번역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단어 하나를 연구하여 사도바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단어의 Context 와 연계하여 사도 바울이 어떠한 의도 속에서 쓰고 있는가를 우리는 연구를 하여 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이 남색이라는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일까를 연구하여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떤 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윤리적 차원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해석되어져야 하느냐 혹은 동성 연애로 해석할 것인가를 연구하여 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Wright는 이 단어가 레위기 18:22절과 20:13절에 근거하여 나왔다고 주장을 한다. 그래서 그는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the ones who lie/sleep with men" 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그는 강력하게 사도 바울은 당시 사회에서 만연되어 있던 남색이 오늘의 동성 연애의 개념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Fee 역시 이 견해에 동의를 하면서 이 단어는 양면적으로 해석이 되어질 수는 있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보면 동성 연애를 사도 바울이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이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불평등한 관계에서의 이루어지는 인권적 차원의 성 관계에 대하여 언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Malick 역시 정의에 동의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하고 있다. "The significance of this derivation is that these passages in Leviticus have nothing to do with pederasty. They refer to the act of homosexuality -- man with man. It is significant that of all terms avaliable in the Greek language, Pual chose a compound from the Septuagint that in the broadest sense described men lying with men as they would lie with women. This is broad denotation that could include pederasty but need not be limited to it. 이 또한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남색이라는 단어를 당시 사회 속에서 볼 때 불평등한 관계 안에서 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당시에는 평등한 관계에서는 동성 연애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는 동성 연애에 대한 비판으로 보아야 타당한 것이다. 또한 디모데 전서 1:10절에서 이러한 남색이 악의 종류의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어 사도 바울은 당시 남색이 동성 연애인데 비록 사회적으로 만연되어서 일반화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할 지라도 성경적으로 볼 때는 죄악이었음을 성도들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과 당시 성도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은 이미 구약 성경에 익숙하여 있었고 또한 중간사 시대의 문헌들에 익숙하였던 결과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마서 1:26-27 이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가 두 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의미에 따라서 본문의 이해가 달라 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단어는 우리말로 "바꾸어" 라는 과 "순리" 라는 ` 이라는 용어이다. Hays는 "바꾸어"라는 단어가 강조를 위한 수사학적 기교로 쓰였다고 주장을 한다. ". . . the direct parallelism between the rejection of God and the rejection of created sexual roles." 본문에서의 "바꾸다"라는 개념은 23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타락한 인간들은 창조주 대신에 창조되어진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창조되어진 것을 더 좋아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25절에서 인간들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보다도 피조물 섬기기에 열심을 내었고 이는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 놓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6절과 27절에서도 비슷한 의미에서 계속되고 있는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순리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성을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 본문에서 "바꾸다"라는 의미는 인간들이 타락함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섬기기 아니하고 인간들이 순리를 따라서 살지 아니하고 역리로 써서 남성이 남성을 향하여 음욕을 품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Dunn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The third appearance of the word 'changed' . . . seems to imply that the action described ('changing the natural use to that which is contrary to nature') is of a piece with and direct result of the basic corruption of the glory and truth of God in idolatry. . . Homosexuality is seen as a passion which is 'worthy of no respect.' Homosexual practice is characterized with the emphasis of repetition as 'unnatural. . .'" 여기서 순리와 역리라는 단어를 대칭하여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용어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중간사 시대의 문헌의 작가들에 의하여 사용되어진 언어이다. 또한 이러한 "순리"와 "역리"라는 단어는 1세기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철학적인 용어들이었다. 순리는 당시 사회에서는 이성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을 하였고 역리라는 단어는 동성 연애를 표현할 때 사용하고 있었다. 그 예로 Plutarch는 그의 책 Dialogue on Love, 751 C. E.에서 남성들 간에 의도적인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악한 행동이라고 하면서 이는 순리를 대항하는 역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두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성간의 사랑과 동성간의 사랑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도 바울은 순리와 역리라는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동성 연애를 반대하게 되는 배경에는 당시 사회는 중간사 문헌에 익숙하여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중간사 문헌의 저자들의 견해와 같은 견해 속에서 동성 연애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속에서 동성 연애를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우리는 앞에서 1세기 당시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당시 사회에서는 동성 연애가 일반적이었으며 또한 죄악시 여겨지지 아니하던 사회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더욱이 고린도 교회나 로마 교회는 그리스-로마의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에 동성 연애가 죄악으로 인식되어지지 아니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도 바울은 중간사 시대의 문헌들의 저자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강력히 반대를 하고 있다. 중간사 시대에도 동성 연애가 만연하고 있었지만 이 시대의 저자들은 구약의 성경 말씀이 당시 이집트의 문화를 배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고 또한 소돔에서 벌어진 일들은 인간들의 무자비한 행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동성 연애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와 같이 사도 바울 역시 동성 연애는 하나님의 섭리를 역행하는 행동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간사 시대의 문헌들의 저자들과 같은 견해속에서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동성 연애에 대한 비판이 인권에 대한 문제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동성 연애 행위에 대한 비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당시 문화적 사회적 배경 하에서 성경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오해를 만드는 해석을 하여서는 안된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 행위를 반대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오늘날 서서히 만연되어가고 또한 공론화 되어가고 있는 동성 연애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분명히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조심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말씀에 근거하여 동성연애자들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거나 혹은 그들을 정죄하는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참고 문헌 책 Andersen, F. I. "2 (Slavonic Apocalypse of) Enoch. 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 1 편집 James H. Charlesworth. New York: Doubleday, 1983. Boswell, John, Christianity, Social Tolerance and Christianit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0. Collins, J. J. "Sibylline Oracles." 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 1 편집 James H. Charlesworth. New York: Doubleday, 1983. Dunn, James D. G. Romans 1-8.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38a. Dallas: Word Books, 1988. Fee, Gordon D.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1987. Garland, Robert. The Greek Way of Life. Ithaca: Cornell Universisy Press, 1990. Josephus. The Antiquities of the Jews. The Works of Josephus. 번역, William Whiston.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87. , Against Apion. The Works of Josephus. 번역, William Whiston.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87. Kee, H. C. 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 The Old Testament Pseudepigrapha. vol. 1. 편집, James H. Charlesworth. New York: Doubleday, 1983. Keuls, Eva C. The Reign of the Phallus: Sexual Politics in Ancient Athens.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 Malina, Bruce, J. 신약의 세계: 문화 인류학적인 통찰. 번역, 심상법. 서울: 솔로몬, 2000. Philo, On Abraham. The Works of Philo. 번역, C. D. Yonge. Peabody: Hendrickson Publishers, 1993. Tannahill, Reay. Sex in History. New York: Stein and Day, Publishers, 1980. Witherington III, Ben. Conflict and Community in Corinthians: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on 1 and 2 Corintians.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1995. 논문 Eron, Lewis John. "Homosexuality and Judaism." Homosexuality and World Religions. 편집 Arlene Swidler. Valley Forge: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3. Hays, Richard B. "Relations Natural and Unnatural: A Response to John Boswell's Exegesis of Romans 1." Journal of Religious Ethics. 14 (1986): 184-215. Malick, David E. "The Condemnation of Homosexuality in 1 Corinthians 6:9." Bibliotheca Sacra 150 (1993): 479-92. Smith, Abraham. "The New Testament and Homosexuality." Quarterly Review 11(1991): 18-32. Steggemann, Wolfgang. "Paul and the Sexual Mentality of His World." Biblical Theology Bulletin 23 (1993): 161-66. Wright, David F. "Translating ." Vigiliae Christianae 41 (1987): 396-8.
2002년 디이트리히 본회퍼를 다시 생각한다?
2002년 디이트리히 본회퍼를 다시 생각한다? 2002-08-05 15:33:29 read : 9 디트리히 본회퍼와 풀뿌리 민주주의 6·13 지방선거가 국민의 시선을 잡지 못한 채 막이 올랐다. 월드컵 대회와 대통령선거에 밀려버린 이유가 있다. 그러나 실제 영향력을 가진 것은 지방자치다. 민생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다. 풀뿌리가 건강해야 민주주의 나무는 자라는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하나님의 위임으로 “교회, 결혼(가정), 노동, 정부(정치적 권위)”를 말하고 있다. 물론 후에 본회퍼가 옥중서간에서는 정부를 문화로 대신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까지나 세상속에 있는 삶, 세상적 삶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 하나님의 위임들을 수행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번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위임이란 말은 성경에 의해서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하나의 계명에 달려 있다. 세상 권력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위탁이다. 교회가 무엇인가? 결혼이 무엇인가? 문화 또는 정부가 무엇인가? 노동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임을 수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하나의 대리자로서 행동한다. 하나님께서 이 네가지를 다 모든 사람위에 부과했다. 이것은 세속적 영역으로부터 정신적 영역으로의 도피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먼저 교회의 위임이다. 교회위임은 두가지로 수행된다. 첫째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 선포의 도구이고 수단이다. 둘째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선포의 도구가 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의 목적점과 중심점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위임은 모든 인류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위임들 안에서이다. 두번째는 노동의 위임이다. 성경에 노동의 위임은 첫 사람 아담에게서 볼 수 있다. 아담은 에던 정원을 가꾸고 지켜야 했다. 타락 이후에도 노동은 하나님의 훈련과 은혜의 위임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이마에 땀을 흘려서 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복권 천국처럼 땀흘리지 않고 대박을 노리는 것은 범죄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노동은 경제활동 뿐 아니라 과학 예술에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세번째는 결혼의 위임이다. 본회퍼는 노동의 위임과 마찬가지로 결혼의 위임도 창조 뒤의 첫째 사람에게서 본다. 결혼에서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결합 위에 번성하는 축복 새로운 탄생을 준다. 결혼을 통해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봉사를 위한 존재, 그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존재가 된다. 단순히 아이를 출산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으로 양육(교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대리자다. 네번째는 정부의 위임이다. 정부의 신적 위임은 노동과 가정의 신적 위임을 전제하고 그것들에 의존한다. 정부는 직접생명이나 가치들을 생산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적이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 그에게 주어진 질서 안에서 피조된 것을 지탱한다. 법과 칼의 권력을 통해 정부는 예수그리스도의 현실을 위해 세상을 보존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정부에 복종할 책무가 있다. 본회퍼의 위임론은 철저히 그리스도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위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통해 존재한다.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위임들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것을 부정과 비리와 혼탁으로 더럽히는 일은 더 이상 해서는 안될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자랄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는 월드컵 16강 못지 않게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0세기 서구 신약학에 대한 반성(反省)과 제언(提言)
20세기 서구 신약학에 대한 反省과 提言 2002-11-09 10:57:23 read : 3 -\"역사적 예수연구\"와 관련하여- Retrospect and Proposal of New Testament Studies of the 20th Century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Jesus Quest 최갑종(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장, 신약학, Ph.D.) I.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는 지난 1세기 동안 서구 신약학의 가장 중심적이며, 지속적인 주제중의 하나가 되어왔던 \"역사적 예수연구\"를 중심으로 그 동안 서구 신약학이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추적해 보려고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우리 자신의 학문적 反省을 위해서이며, 둘째는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모색해 보기 위해서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일찍이 신학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하여 시작되고, 교회에 의해 발전되었다. 기독교 초기의 위대한 신학자로 불리어지는 사도 바울이 그랬고, 누가와 요한이 그랬다. 그들의 뒤를 이은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도 이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도들이 교회를 위하여 썼고,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보존되어온 성경을 또한 교회를 위하여 해석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지난 몇 십년 동안 서구 신학은 주로 교회 안에서보다도 교회밖에 있는 대학교 안에서, 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을 위해서라기보다도 그들과 관계없이, 때때로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주로 신학대학원이나 대학교의 종교학부에 소속된 학자들을 위하여 논의되고 발전되었다. 그 결과 신학과 교회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괴리는, 마치 호수를 떠난 고기나 고기 없는 호수처럼, 결국 신학과 교회 쌍방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신학은 그 생명력을 상실한 종교학이나 인문학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으며, 생명력 있는 신학을 잃어버린 많은 교회들은 교인들을 점점 잃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인 우리는 서구신학의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면책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인터넷을 통해 국경과 인종의 장벽이 무너진 같은 지구촌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과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서구신학과 서구교회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선교사들을 통해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우리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대다수 서구신학의 산실에서 신학적 훈련을 받아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지난 세기 서구 신약학 분야에 대한 우리의 반성작업은 어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성일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을 대비하는 우리 자신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의 준비이기도 하다. II. 지난 세기의 \"역사적 예수연구\"에 대한 회고 신약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20세기의 \"역사적 예수연구\"의 두 가지 방향의 길을 연 사람은 Adolf von Harnack(1851-1930)과 Albert Schweitzer(1875-1965)이다. 전자는 非終末論적, 비유대적 예수연구의 길을 연 사람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終末論적, 유대적 예수연구의 길을 연 사람이다. Harnack은 1901년에 출판된 책, What is Christianity?에서 새로운 다음 세기를 위하여 교회의 전통과 교리 및 철학 등에 의해 채색되지 않은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것(\"das Wesen\")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고, 그것은 바로 무시간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父性과 윤리적 교훈을 제시한 예수의 메시지라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Harnack의 주장은 새로운 주장이기보다도 H.S. Reimarus(1694-1768)에 의해 시작되어 D.F. Strauss(1808-74), E. Renan(1823-92), H.J. Holtzmann(1832-1910) 등에 의해 滿開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적 예수연구, 곧 역사적 예수를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인류의 죄를 代贖하신 구원자로 보기보다 단지 인류에게 普遍妥當한 윤리적 교훈을 준 모범적 교사로 보려고 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총체적인 결론이기도 하였다. Harnack의 예수연구가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면, Schweitzer의 예수연구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과의 단절과 함께 새로운 유대적, 종말론적인 예수연구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Schweitzer는 1906년에 출판된 Von Reimarus zu Wrede에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시도, 곧 근대적인 역사적 비평방법에 의해 교회의 전통적인 도그마에 의해 채색되어지지 않은 순수한 역사의 예수를 찾으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시도를 철저히 재조사한 다음 결론 내리기를, 그들이 재구성한 예수는 주후 1세기 유대교 안에서 실제로 살았던 예수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 당대의 사상적 이념이나 윤리적인 체계에 의해 창조되거나 재구성된 예수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그 대신 그는 1892년 J. Weiss가 Die Predigt Jesu vom Reiche Gottes에서 제시한 종말론적인 예수상, 곧 \'예수는 후기 유대교 종말 사상에 심취하여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선포한 유대 묵시적 예언자이다\'라는 주장을 발전시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이 제시한 비유대적, 비종말론적, 비초월적인 예수가 아닌 주후 1세기의 유대적, 종말론적, 초월적인 예수를 제시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Schweitzer가 제시한 예수도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위해 스스로 인자가 되어 십자가의 죽음을 자처한 한 영웅적 유대인 예언자에 지나지 않았다. R. Bultmann은 Schweitzer의 역사적 예수 無用論에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던 나아가 아예 역사적 예수연구의 不可能을 천명하였다. 일찍이 Martin K hler가 Der sogenannte historische Jesus und der geschichtliche, biblische Christus에서 역사적 비평방법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에 제시되고 있는 신앙의 그리스도는 구분된다는 주장을 하였을 때, K hler의 본래 의도는 양자 사이의 연속선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Bultmann은 양자를 완전히 서로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비평 방법의 대상이 되는 복음서 그 자체가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전승이 아니라 신앙의 산물이라는 전제 아래, 복음서를 역사적 예수연구의 자료로 사용하는 그 자체를 아예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양식비평의 집대성인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을 통하여, 복음서에 수록되어있는 예수에 관한 전승들이 주후 28년에서 30년까지 활동을 하셨던 역사적 예수 자신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후부터 기록된 복음서가 나타나기 시작한 주후 60년 때까지 예수를 추종하는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마치 고대의 희랍 사람들과 이스라엘 주변의 근동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자기 이해의 표현으로써 여러 가지 형태의 신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저들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와 교훈, 선교를 위하여 공동체 자체의 신앙적 자기이해의 표현으로써 만든 일종의 창조적인 산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Jesus and the Word라는 책에서 \"나는 참으로 우리가 예수의 삶과 인격에 관하여 거의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초대 기독교 자료는 예수의 인격과 삶에 관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 자료는 너무나 단편적이며, 종종 신화적이며, 그리고 그밖에 예수에 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복음서에 대한 非神話的 접근, 곧 복음서의 역사적 접근 아닌 實存主義的 접근을 시도하였다. 복음서의 모든 역사적 信任性을 거부함으로써 역사적 예수의 배격과 함께 결국 기독교를 일종의 가현설(Docetism)에 빠뜨리게 하였다고 볼 수 있는 Bultmann의 주장은 1960년대 이후에 와서 그 자신의 제자들에 의해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즉, 역사와 신앙[케류그마]을 철저히 분리시킨 Bultmann의 주장은 역사와 신앙[케류그마] 사이에 다시 다리를 놓으려는 E. K semann, E. Fuchs, G. Bornkamm, H. Conzelmann등의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New Quest)와 복음서의 예수 전승과 역사적 예수와의 연속선을 회복시키려는 J. Jeremias, B. Gerhardsson, R. Riesner, H. Sch rmann등의 유대 문맥에서의 복음 전승사 연구 등에 의해 허물어졌다. K semann을 위시한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그들의 스승에 반대하여, 복음서 안에는 역사와 케류그마가 서로 함께 얽혀져 있다는 전제 아래, 교회의 그리스도, 혹은 복음서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 사이에 연속선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복음서를 다시 역사적 예수 연구의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Jeremias는 C.H. Dodd와 함께 복음서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의 비유들은 예수 그 자신의 말씀(ipsissima verba Jesu)을 보존하고 있다고 보고, 그의 Gleichnisse Jesu를 통해서 독창적인 진정성의 기준을 따라 순수한 역사적 예수의 비유 말씀을 회복시키려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New Testament Theology: The Proclamation of Jesus에서 예수의 메시지와 인격을, 단순히 신약신학의 전제로 삼은 Bultmann과는 달리, 신약신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았다. Gerhardsson은 그의 Memory and Manuscript, The Origin of the Gospel Tradition에서 본래 유대적 문맥 안에서 시작되고 전승되었던 예수 전승들을, Bultmann이 유대교 문맥에서 보지 않고 오히려 희랍적 배경에서 본 그 자체가 잘못이며, 그리고 Bultmann이 예수 전승들이 그토록 짧은 기간동안에 초대교회 안에서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보는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구체적인 역사적 실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방법론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Sch rmann도 그의 논문, \"Die vor sterlichen Anf nge der Logientradition\"에서, 복음전승이 부활절이후 초대교회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Bultmann에 반대하여,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부활절 이전의 예수의 제자 선택과 교육, 선교파송 등의 구체적인 실례에 근거하여, 복음전승은 이미 부활절이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960대의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 와서 소위 역사적 예수가 살았던 유대적 문맥에서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는 \"제 삼의 예수 연구\"(The Third Quest)를 주도하는 학자들(B.F. Meyer, E.P. Sanders, J.H. Charlesworth, N.T. Wright, G. Vermes, J.P. Meier, B.D. Chilton, M. de Jonge, P. Stuhlmacher, J. Becker, J. Gnilka, B. Witherington III)과, 예수의 사건보다 예수의 진정성 있는 말씀에 의해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소위 \"예수 세미나\"(The Jesus Seminar) 학자들(R.W. Funk, J.M. Robinson, M. Borg, B. Mack, J.D. Crossan)에 의해 계승 발전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Schweitzer의 종말론적 예수 연구를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제 삼의 예수연구\"는 역사적 예수연구에 관한 획기적인 새로운 자료의 발견에 연유하고 있다기보다도 오히려 불투만이 허물었던 복음서에 대한 역사적 신임성의 재회복과,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를 헬라문맥에서 보지 않고 예수 당대의 유대교 문맥에서 보려는 강한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제 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19세기와 20세기초의 \"옛 역사적 예수연구\"(Old Quest)나 1960년대의 \"새로운 역사적 예수연구\"(New Quest)보다도 역사의 예수를 찾는데 있어서 훨씬 더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이점을 Sanders가 1985년에 출판한 그의 책 Jesus and Judaism에서 \"오늘날 지배적인 견해는, 예수가 무엇을 성취하려 하셨느냐에 관하여 우리가 매우 잘 알 수 있으며, 그가 무엇을 말하였느냐에 관하여 상당하게 많이 알 수 있으며, 그리고 이들 두 가지가 1세기 유대교 사회의 문맥에서 볼 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를 유대적 문맥에 한정시키는 제 삼의 예수 연구가들이 Old Quest나, New Quest와 달리 진정한 역사의 예수 회복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점을 제 삼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는 E.P. Sanders, N.T. Wright, J.P. Meier, J. Becker등이 제시하는 예수가 한결같이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85년부터 주로 北美의 서부 California에서 모이는 \"예수 세미나\" 운동은 일찍이 복음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예수의 초월적인 인격과 그의 사역을 철저히 거부하고 그 대신 예수의 윤리적인 교훈의 말씀에서 역사적 예수의 참 모습을 찾으려고 시도한 Harnack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The Jesus Seminar를 주도하고 있는 R.W. Funk, J.M. Robinson, B.L. Mack, J.D. Crossan등은 예수가 과연 누구인가? 예수가 과연 무엇을 행하셨는가?라는 질문보다도, 예수가 정말로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를 주 의제로 삼아 복음서로부터 역사적 예수 자신의 믿을 수 있는 말씀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진정성 있는 말씀을 찾는데 있어서 자주 비정경복음서인 도마나 베드로의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어떤 비유들과 어록들이 정경복음서보다 더 고대의 것이고 더 信任性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를 정경복음서로부터 진정한 예수 말씀을 찾는 잣대로 활용함으로써 복음서의 정경성과 역사적 신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예수 세미나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The Jesus Seminar 모임의 학자들은 복음서 전승들의 진정성과 그 가능성 여부를 참가한 학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하였는데 그 결과 놀랍게도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여러 예수 말씀 어록 중 실제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고 간주되는 말씀은 18%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결과를 토대로 하여 새로운 형태의 복음서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예수, 곧 갈릴리 출신의 비종말론적인 지혜 선생 예수를 제안하고 있다. III. 제기된 문제점과 反省 우리는 지금까지 지난 100년 동안 서구 신약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가 되어왔고, 사실상 모든 신약학의 방향을 좌우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고 볼 수 있는 역사적 예수연구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Old Quest든, New Quest든, Third Quest든, 혹은 The Jesus Seminar든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학자들이 제시한 예수는 서로 동일하지 않고, 때로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 주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예수 자신이 수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고, 그리고 자신을 탐색하려고 하는 질문자들에게 자신을 그때 그때 각각 다르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역사의 예수와는 관계없이 서구의 신학자들이 제각기 그들 자신의 예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일까? 무엇 때문에 학자들의 의견이 서로 다른가? 아마도 그 주된 이유는 대상과 자료에 대한 적합하지 못한 전제와 방법론 문제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추구함에 있어서 그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어떤 자료와 함께 방법론을 사용할 것인가는 패러다임의 문제, 곧 방법론의 문제는 연구하고자하는 대상이나 내용 못지 않게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패러다임으로 그 문제를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도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동안 예수에 대한 수많은 서구신학자들의 그림이 제각기 달랐던 주된 이유는, 학자들이 찾으려고 한 예수 자신이 수많은 얼굴을 가지고 학자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었거나, 혹은 예수에 관한 자료들이 학자들마다 달랐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예수에 대한 접근 방법론이 학자들마다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의 예수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자신의 방법론이 역사의 예수에게 접근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인지를 철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지난날에도 그래왔고,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탐색함에 있어서 먼저 자신의 방법론이 대한 철저한 자기비판 없이 자신의 방법론에 의존하여 어떤 문제를 접근하고, 그리고 그 방법론에 의해 제각기 다른 그림들을 산출하고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방법론에 의해 만들어진 그 그림이 마치 그가 애초에 그리고자했던 실제 인물이나 대상과 동일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연구에 있어서 역사의 예수에게 접근하는 가장 정당한 방법론이 무엇인가를 먼저 규명하고, 그런 다음 자신의 방법론을 거기에 일치시키지 않는 한, 역사의 예수는 그에게 숨어 있거나 혹은 그 스스로 참된 역사의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를 만들 놓고, 그리고 자신이 창작한 예수가 마치 역사의 예수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위험을 벗어나기 힘들다. 패러다임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자료에 대한 규정과 그 사용에 대한 문제이다. 고대 역사의 어떤 인물에 관한 우리의 역사적 지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설사 고대 세계의 어떤 인물이 자기 당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현존하는 자료가 없다면, 혹은 자료가 있다 할지라도 그 자료의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지식을 확립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사적 예수 연구도 이 점에 있어서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역사의 예수에 관한 한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어떠한 자료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그 자료가 얼마나 역사적 信任性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역사 비판학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에 관한 자료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 자신이 직접 썼다고 보이는 그 어떤 自書傳的인 기록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예수의 言行을 옆에서 목도하면서 찍은 그 어떤 비디오 테이프나 예수의 육성을 담은 그 어떤 녹음 테이프도, 예수 당대의 사람들이 직접 썼다고 보아지는 그 어떤 傳記物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역사의 예수에 관하여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현존하는 주후 1세기 자료들로서는 예수의 사후 약 30년 뒤에 쓰여졌다고 보아지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와, 50-60년대에 쓰여졌다고 보이지는 바울서신, 복음서와 거의 동시대에 쓰여졌다고 보여지는 그 밖의 신약성경과 유대 역사가 Josephus의 [유대고대사]외에는 없다고 해도 결코 과장된 말은 아니다. 1947년부터 수년간에 걸쳐 팔레스틴 유대 사해 서북쪽에 있는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쿰란문서는 최근의 구약과 신약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는 2000년만에 발굴된 쿰란 문헌을 통해서 현존하는 우리의 구약성경과 예수님 당대 유대인들이 사용하였던 구약성경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다라는 사실과, 그리고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중심적인 종교적, 문화적 사상 배경이, 그 동안 R. Bultmann을 위시하여 적지 않은 학자들이 추측한 것과는 달리, 헬라사상(Hellenism)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교(Judaism)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초대교회가 형성된 이후인 주후 67년경 멸망되었기 때문에, 쿰란 문서로부터 역사의 예수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기대감은 사실상 채워지지 않고 있다. 1945년 이집트의 낙 하마디 지역에서 도마복음서를 위시하여 많은 위경복음서들이 발견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학자들이 낙 하마디 문서들로부터 역사의 예수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었다. 물론 최근의 몇몇 학자들은, 예를 들면 The Jesus Seminar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도마나 베드로의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어떤 비유들과 어록들로부터 진정한 예수 말씀을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의 역사적 기원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그 연대도 정경복음서보다 훨씬 후대의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가 실제로 정경복음서와 독립적으로 역사의 예수 연구에 결정적인 새로운 빛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가, 주후 2-3세기에 익명의 여러 크리스챤들이 당시 비기독교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널리 읽혀지고 있었던 고대 헬라의 文人인 호머의 작품들의 영향을 받아썼던 많은 위경복음서들, 이를테면, [도마의 유년복음서], [나사렛인의 복음서], [히브리인의 복음서], [마가의 비밀 복음서], [에집트인의 복음서]들처럼, 2세기이후 고대교회안에서 큰 영향을 끼쳤던 영지주의(Gnosticism)의 영향을 받아 정경복음서의 예수 말씀이나 사건들을 재구성하였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대 역사가 Josephus의 [유대 고대사]는 어떠한가? 非크리스챤인 Josephus는 그의 [유대 고대사] 18권 3장 3절에서 예수에 관한 다음과 같은 짤막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 \"이때에, 실로 우리가 그를 한 인간으로 볼 수 있을찐데, 예수라는 한 현자가 출현하였다. 그는 놀라운 일들을 행한 자였고,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그를 따르는 자들 중에는 유대인들과 헬라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메시야였다. 우리 유대인들 중의 지도층 사람들이 그를 고소하였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의 처형을 받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이전부터 그를 따르던 자들은 그에 대한 추종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에 관한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운 일들에 대하여 말한바 그대로, 제 삼일에 다시 살아 그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크리스챤이란 종족들은 소멸되지 않고 존속하고 있다.\" 이 글이 참으로 Josephus자신의 글인가, 아니면 후대의 크리스챤들이 첨부한 것인가 하는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John P. Meier의 글에서 여실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최근의 경향은 적어도 이 글의 상당한 부분이 Josephus자신의 것이라는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설사 우리가 이 글을 Josephus자신의 글로 인정한다 할지라도, Josephus의 이 단편적인 증언으로부터 우리의 예수 연구에 핵심적인 질문들인, 이를테면, 예수는 어떤 메시야였으며, 예수는 자신에 대한 어떤 자기 의식을 가졌으며, 자신의 생애에 대한 어떤 프로그램을 가졌으며, 그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이었으며, 왜 그가 자신의 유대 종족들로부터 메시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소를 받아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의 죽음 및 부활과 초대 기독교회의 태동 사이에는 어떤 연결점을 가지고 있느냐 등등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소위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에 있는 非마가적인 공통자료로 간주되고 있는 Q자료는 어떠한가? 우리는 Q자료를 통해서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예수를 찾을 수 있는가? 오늘 날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 Q자료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믿을 수 있으며, 따라서 Q로부터 순수한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B.L. Mack은 Q자료를 통해서 기독교 신학에 의해 채색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 예수, 곧 非메시야적이고, 非신적이고, 非구원사적이고, 非종말론적인 예수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John Kloppenborg는 심지어 Q를 Q¹, Q², Q³로 분류하여 Q신학의 흐름 및 Q를 발전시킨 공동체를 추적하려고 한다. 그러나 설사 마태와 누가가 저들의 복음서 구성에 있어서 非마가적인 자료를 활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무슨 기준으로, 무슨 근거에서 마태와 누가에 의해 사용되기 이전의 수수한 Q자료를 재구성할 수 있으며, Q의 신학과 공동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가? 소위 Q 주창자들이 재구성한 Q와 예수가 일치하지 못하고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데 누구의 Q와 예수를 믿어야 할 것인가? 따라서 적지 않은 학자들은 Q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를 여전히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역사적 예수연구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주후 1세기의 역사적인 자료로는 신약성경, 특별히 예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정경 복음서 외에는 전혀 없다고 해도 결코 과장되거나 잘못된 주장은 아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예수연구는 결국 우리가 신약 성경, 그 중에서도 신약성경의 전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네 복음서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드리고,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해석하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역사적 예수를 찾는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과 신임성을 거부하고, 복음서와 역사적 예수와의 연관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정경 복음서를 역사적 예수를 찾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뢰할만한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역사적 예수연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물론 우리가 복음서의 신뢰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려 복음서를 예수 연구의 결정적인 자료로 삼는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예수 연구를 자동적으로 보장해 준다거나 통일된 결론에 도달해 주도록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첫째는, 복음서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특성에 따른 복음서의 해석에 관한 문제 때문이며, 둘째는 역사적 예수의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문맥이 되고 있는 주후 1세기 유대교의 재구성에 관한 문제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복음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예수에 관한 傳記로 보기는 어렵다. 마태와 누가 복음서만이 예수의 출생과 소년 시절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너무나 단편적이다. 그리고 네 복음서 모두 예수의 마지막 생애 3년간의 행적, 그것도 주로 최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그리고 복음서가 예수의 생애 마지막 3년 동안에 하셨던 말씀들과 행위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가 3년 동안 이 땅에서 하셨던 모든 말씀들과 행위들을 정확하게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움을 복음서 자체가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모든 복음서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5천명 이상을 먹이신 이적(마 14:15-21; 막 6:34-44; 눅 9:10-17; 요 6:1-15), 공관복음서와 바울의 고린도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의 성만찬 말씀(마 26:26-29; 막 14:22-25; 눅 22:15-20; 고전 11:23-27),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9; 막 4:3-9; 눅 8:5-8), 마태와 누가 복음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주기도문(마 6:9-13; 눅 11:2-4)등등의 본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공통점도 있지만 또한 서로간에 적지 않은 차이점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복음서 자체가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조금씩 조금씩 다르게 반복하여 말씀하셨거나 행동하셨으며, 그리고 각 복음서 저자들이 이 들 중 하나를 보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물론 이론적으로 각 복음서간의 차이점은 예수 자신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말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만찬말씀의 경우 예수께서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조금씩 다르게 네번 반복하여 말씀하셨다고 보기는 극히 어렵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복음서 자체의 현상을 볼 때, 설사 우리가 복음서가 수록하고 있는 예수 전승들이 초대교회나 복음서 저자들의 창작물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역사적 예수 자신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확신한다 할지라도, 예수 전승들이 그 전승과정과 기록과정에 있어서 사도들이나 초대교회나 혹은 각 복음서 저자 자신의 선교적, 목회적, 신학적, 문학적인 필요성과 강조점의 차이 때문에 복음서 저자들에게 어느 정도 편집상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복음서 자체가, 주후 28-30년에 있었던 예수의 언행에 관한 전승들이 예수 자신으로부터 예수 전승의 첫 전파자와 관리자가 되었던 사도들과 초대교회를 거쳐 주후 60년 이후의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 예수에 대한 傳記가 아닌 예수를 증거하는 福音이라는 문학적 장르로 기록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집이 주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하여 학자들이 복음서의 자료들을 사용할 때, 때때로 그 자료들이 예수 자신의 역사적인 언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지, 아니면 편집과 해석의 과정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위하여 복음서를 접근 할 때, 문학적 접근이든, 편집사적 접근이든, 수사학적 접근이든, 사회.경제적학적 접근이든, 우리의 역사 과학적 비평 방법 자체를 지나치게 맹신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학문의 세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가장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순수과학이라고 할지라도 탐구자 자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절대적으로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은 없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과학적인 비평적 자세를 가진다는 것은 복음서의 자료자체를 비판적인 안목에서 보는 것과 똑같이, 복음서 그 자체가 또한 탐구자 자신과 그의 방법론 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두는 것을 말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탐구자는 자신의 방법론이나 전제를 우상화하는 반면에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도 모르게 복음서 자체를 상대화시키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다음으로 둘째 문제인 주후 1세기의 유대교(Judaism)의 재구성(Reconstruction) 문제를 생각해 보자. 주후 1세기의 유대교의 정확한 복원 문제는 우리의 역사적 예수연구는 물론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위시하여 그 밖의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또한 긴요한 일이다. 하지만 예수 당시의 유대교의 모습을 정확하게 復元한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점은 최근에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의 복원 문제를 둘러싸고 신약학자들간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이후 전통적으로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는 인간 자신의 율법적 행위나 공로를 통하여 의나 구원 혹은 메시야 왕국에 참여하려는 일종의 \"율법주의\"(Legalism)였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1977년 E.P. Sanders가 Paul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는, 전통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믿어 온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의를 추구하는 일종의 율법주의적 종교나 행위 구원적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언약적 백성 가운데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Not getting in),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적 공동체 가운데 머물러 있기 위해서 (But staying in) 율법을 지키려고 힘썼던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였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였다. J.D.G. Dunn, H. R is nen, F. Watson, J.M.G. Barclay등은 기본적으로 Sanders의 주후 1세기의 새로운 유대교 구성에 찬동하면서 신약성경을 이와 같은 새로운 전망에서 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반면에 C.E.B. Cranfield, G. Klein, D.J. Moo, S. Westerholm, F. Thielmann, C.G. Kruse, Brendan Byrne, S.J., T.R. Schreiner, D.A. Hagner, M.A. Seifrid, T. Laato, I.H. Marshall등은 전통적인 입장에 서서 오히려 이와 같은 새로운 전망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둘 중 어느 입장이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의 모습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느냐에 관하여 우리가 쉽게 단언을 내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적 예수 연구와 관련하여 복음서 등 신약의 자료들을 해석하기 위해 주후 1세기 유대교를 재구성할 때는,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이 충분하게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주후 70년 이전의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거나 혹은 최근의 새로운 전망을 주창하는 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결코 획일적이지는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설사 우리가 저명한 유대교 학자 J. Neusner의 충고를 따라 주후 70년 이전의 유대교 상황을 정확하게 재구성하기 위해서 주후 2세기 이후의 규범적인 유대교 랍비 자료보다 현존하는 주후 70년 이전의 자료들을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할지라도, 현존하는 이들 자료에 의존하여 당시의 다양한 유대교 상황을 정확하게 구성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렵고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우선 자료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고, 그 제한된 자료도 참으로 당시의 다양한 유대교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느냐는 문제는 항상 남아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예수 연구를 위해서 당시의 유대교 자료가 진지하게 사용되어야하는 것과 꼭 같이,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재구성하는데 있어서도 유대교 문헌 못지 않게 복음서를 위시한 신약성경의 자료가 진지하게 사용되어야할 것이다. 이와 같은 순환적인 접근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예수는 물론 예수 당대의 유대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상황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오늘 우리 중에 그 누가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알지 않고 어떻게 유대인인 예수와 바울을 알 수 있겠으며, 오늘 우리 중에 그 누가 감히 바울 자신보다 주후 1세기 유대교를 잘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으며, 그리고 오늘 우리 중에 그 누가 복음서의 예수보다 예수 당대 유대교의 상황을 더 잘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와 똑같이 오늘 우리 중에 바울과 복음서 저자들보다 역사의 예수를 더 잘 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IV. 제안: 나사렛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의 身分과 그의 죽음 理解 그렇다면 나사렛 예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한편으로 역사-과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복음서의 역사적 신임성의 확신을 가지고 정직하게 복음서를 접근한다면 복음서를 통해서 어떤 예수를 만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죽음 이해를 중심으로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33살이 되던 기원 후 30년 4월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기 중에 예루살렘 근교에서 로마제국 당국자에 의해 그 당시 가장 처참하고, 잔인하고, 또한 모욕적인 사형제도인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다는 것은, 그가 기원전 4년경 유대나라의 왕인 헤롯이 사망한 해에 팔레스틴 유대지역에서 출생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는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예수의 십자가처형이 예수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인가? 아니면 예수 자신의 독특한 신분과 그의 사명에서 나온 필수적인 사건인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기독교의 시작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역사적 자료를 통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대답은, 예수는 주후 1세기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유대사회에서 유대나라의 독립을 가져오는 유대인의 왕으로 자처하다가, 당시 유대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로마제국의 반역자로 간주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예수 당대에 있어서 주로 로마제국의 반역자들에게 십자가처형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복음서의 자료도 우리에게 이점을 시사해 주는 듯 하다. 복음서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너가 그리스도, 곧 유대인의 왕이냐?\"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요한복음 18:33), 예수는 빌라도에게 \"내가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났고,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요한복음 18:37)라고 하면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다\"라는 사실 그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23:2,5절에 따르면, 예수를 재판한 산해드린 공의회원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고소할 때 그들은,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라는 제목으로 고소하였고, 빌라도는 결국 이러한 고소장에 의거하여 예수를 십자가 처형하도록 판결을 내렸고, 그리고 예수의 처형 때에 \"유대인의 왕\"이란 명패가 붙여졌다(참고 막 15:12-15). 그렇다고 해서 예수가 참으로 유대인의 왕으로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일을 하였는가? 혹은 예수 그 자신은 의도적으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의 언행과 그의 언행의 여파가 실제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일로 비추어졌기 때문에, 그는 결국 로마제국에 의해 실제 반역자로서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복음서의 증거에 따르면, 예수가 당시 유대지역의 치안을 위해 주둔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그들에 의해 먼저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복음서와 유대 역사가 Josephus의 글에 따르면, 예수를 실제로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한 자들은 로마제국 당국자들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의 정치, 종교 지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먼저 예수를 체포하고, 재판하고, 처형하기로 결정한 다음, 예수를 빌라도 법정에 넘겼다. 둘째, 예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그 어떤 추종자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처형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예수 당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자는 본인은 물론 그의 추종자들도 함께 붙잡아 처형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복음서는 물론 신약성경의 그 어떤 외적인 자료에서도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사도행전은 예수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남아 예루살렘 교회를 형성하고 예수 운동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 우리가 복음서로부터 예수나 그의 제자들이 실제로 로마제국에 반역하였다고 할 만한 일들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고 하는 점이다. 우리는 복음서로부터 예수가 그의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을 무장시켜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을 펼쳤다는 단 한 줄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예수 자신은 후일 유대 독립 전쟁을 주도한 열심당의 근거지인 갈릴리 출신이었지만, 예수가 열심당에 동조하였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을 우리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처럼 나사렛 예수가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반역행위자에게 부과되는 십자가처형을 당하였다면, 예수가 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였는가? 예수는 그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기 전에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셨으며, 그리고 자신이 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여만 하는지를,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아셨는가? 다시 말해서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분명한 자기이해를 가졌었는가? 예수의 사후 기독교 운동을 최초로 일으킨 초대 기독교 교회가 선포하고 가르친 교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나타나 있는 내용, \"예수는 우리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혹은 예수는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 라고 하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 예수 자신이 죽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을 하셨으며, 그래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자기 이해와 해석이 초대교회가 믿고 선포하는 핵심적인 교훈의 근간이 되었으며, 그 결과 후대 기독교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전승되었는가? 기독교의 가장 초창기 문서를 남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 고린도전서 15:3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 로마서 4:25절에서는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라고 말하면서, 예수는 자신의 허물 때문에 처형당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하여 우리 대신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다(역시 고후 5:21; 갈 2:20; 로마서 3:25-26; 8:3-4절 등). 그렇다고 한다면 바울 서신을 위시하여 초대교회 메시지 가운데 나타나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 예수 자신이 죽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죽음에 대한 그와 같은 해석을 하셨으며, 그래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그와 같은 자기 이해와 해석이 초대교회 메시지의 근간이 되었는가? 예수의 죽음 사건과 관련하여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몇 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복음서가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 중요하고, 그리고 그 마지막 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 예수 처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또한 예수와 당대 유대인들, 특별히 그 당대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의 반목관계는 마지막 한 주간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예수의 행동 중 특별히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반목을 불러일으킨 몇 몇 실례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예수의 죄용서 사건(막 2:1-12; 마 9:1-8; 눅 5:17-26);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음식을 먹은 사건(막 2:13-17; 마 9:9-13; 눅 5:27-32); 예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은 일(2:18-22; 마 9:14-17; 눅 5:33-39)과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일(2:23-28; 마 12:1-8; 눅 6:1-5);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을 보고, 예수에게 찾아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하고 불평한 일(7:1-23; 마 15:1-20; 눅 11:37-41).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는 그의 마지막 생애 한 주간 전에 이미 그 자신의 사역 중에 죄 용서문제로 인한 신성 모독죄, 안식일 날 병고친 일과 밀 이삭 잘라먹은 일로 인한 모세의 토오라 위반,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장로들의 전통 위반,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일로 인한 귀신의 왕의 힘을 얻는다는 모함 등을 받았다. 특별히 그는 바리새인들과 많은 대립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예수와의 갈등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있어서 실제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 보다 오히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다고 하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예수의 처형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공관복음서에 발견하는 특이한 현상은,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 이전에는 예수의 성전 청결 사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 악한 농부들의 비유를 통한 당대 정치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 등등과 같은 예수가 처형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자신이 이미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3번이나 알려주고, 그리고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마가복음 8:31-33절(역시 마 16:21-23; 눅 9:22)에 따르면,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처음으로 \"인자가(마태복음에는 \'그가\') 예루살렘에 마땅히 가서(마가와 누가 복음에는 \'예루살렘에 마땅히 가서\'라는 말은 생략)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그리고 제 삼일에 살아나게 될 것\"을 가르치셨다. 둘째, 마가복음 9:30-32절(마 17:22-23; 눅 9:43-45)에 따르면, 예수는 두 번째 제자들에게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어지게 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이 그를 죽일 것이요, 그런 다음 그가 삼일에 살아나게 될 것\"을 말하였다. 셋째, 마가복음 10:32-34절(마 20: 17-19; 눅 18:31-34)에 따르면, 예수는 예루살렘에 가는 길에 3번째 제자들에게, \"인자가 기록된 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어지게 될 것이요, 그리고 그들은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선고하고, 이방인들에게 그를 넘길 것이요, 이방인들은 그를 능욕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요, 그리고 삼일 후 그는 부활할 것이다\"라고 예고하였다. 우리가 이와 같은 예수 자신의 죽음 예고를 초대교회의 신앙적인 산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최근의 적지 않는 독일의 신학자들, 이를테면, O. Betz, M. Hengel, J. Jeremias, L. Goppelt, H.W. Wolf, P. Stuhlmacher, W. Grim-m등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역사적 진정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고 한다면, 적어도 예수자신에게 있어서 그의 독특한 죽음 인식은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마가복음서와 마태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3번째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를 한 다음 제자들에게 \"인자(예수 자신의 자기 호칭)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막 10:45)라고 하면서,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유대당국자들과의 결정적인 대립과 갈등을 갖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죽음의 이유와 그 의미를 명백하게 밝히셨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은 그의 사명 수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라는 사실도 밝히셨다. 심지어 제자 베드로가 예수의 자발적인 죽음을 방해하였을 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막 8:33)라는 말로 강하게 베드로의 말을 반박하고 자신의 죽음은 이미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암시하였다. 이점은 예수께서 자신의 게셋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 중에 자신의 죽음을 자기가 반드시 마셔야할 아버지께서 주신 잔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되어 진다. 예수가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으로, 많은 사람의 대속을 위하여 희생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예수가 자기 당대의 메시야 사상에 영향을 받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 당대의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은 민족 해방적이었으며, 메시야가 민족의 속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대단히 낯선 사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을 받을 때부터 이미 자신의 신분과 사명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로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또한 인자(단 7:13-14)와, 메시야와 야훼의 종으로 불리어지는 구약의 가르침을 따라(사 42, 43, 53장) 하나님의 백성의 죄사함과 회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속건제물로 희생하여야할 자이다라는 자기 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Hartmut Gese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는 이사야 53장 및 구약의 희생제사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화해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화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한 댓가의 지불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셨음이 분명하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그리스도와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변하고 있는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죽음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였을 것이다. 모든 공관복음서와 바울의 고린도전서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의 말씀은 예수 자신의 이와 같은 자발적인 희생적 죽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 도래와, 이 나라에 참여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앞당기기 위하여서는 그 자신을 통하여 그들을 대신하는 종말론적인 죽음과 부활 사건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한다는 사실을 내다 보셨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방해하는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이 정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셨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예수의 성전 청결 사건과 그의 성전 파멸과 새성전 회복에 대한 예언, 악한 농부의 비유를 통한 예루살렘 당국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선언, 산해드린 공의회 석상에서의 메시야, 인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공개적인 시인등이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할찌라도, 이들이 예수 자신의 죽음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예수 자신의 독특한 인격과 그의 사명이 그로 하여금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자발적으로 걸어가도록 하였고, 그러한 예수의 자발적인 죽음의 행로를 위해,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중에 있었던 그와 같은 모든 언행들이 있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죽음에 관한 이상과 같은 우리의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바울의 서신은 물론 전 신약서신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속죄적, 구속적 설명은 단순히 예수의 참흑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초대교회 자신의 신학적 해명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더 궁극적으로 예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기이해에서 유래되었다고 단언 할 수 있다. 사실상 우리가 예수 자신의 메시아적 죽음이해를 거부하게 될 경우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모든 행위와 말씀은 물론 예수에 대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그렇게 빠른 기독교적 고백의 형성과 선교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예수 자신이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로 보냄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독특한 자기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역사의 예수와 복음서의 예수, 복음서의 예수와 교회가 고백하여 온 예수가 각각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동일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다. V. 나가는 말 그 어떤 분야의 학문이든 전제나 목적 없이 시작할 수 없다고 한다면, 신약성경 연구에 종사하는 신약학 학자들도,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자기 나름대로 어떤 전제 아래 신약성경을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제를 가지고, 어떤 목적을 위해 신약성경을 연구하여야 할 것인가? 우리는 신약성경이 단순히 삼위 하나님(아버지, 예수, 성령)에 대한 인간/초대기독교 공동체의 종교적 경험이나 탐구 혹은 역사나 서술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접근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오히려 신약성경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삼위 하나님 자신의 구원 계시와 역사의 규범적 서술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의 많은 신약학자들은, 그가 신약성경의 가치 기준을 윤리적 이상에 둔 19세기의 Ritschl과 Harnack의 舊자유주의 노선에 속해있었던지, 아니면 살아있는 종교경험에 둔 W. Wrede, H. Gunkel, W. Bousset의 종교사학파의 노선에 속해 있었던지, 아니면 인간의 실존적 결단에 둔 20세기의 R. Bultmann의 양식사학파의 노선에 속해 있었던지 상관없이, 신약성경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경험이나 사색, 혹은 역사나 서술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접근하였다. 따라서 지난 세기 동안 서구의 많은 신약학자들은 신약성경의 영감성과 신적 권위는 물론 신약성경이 전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 곧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적들,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와 그리스도로서의 메시야적 자기의식, 그의 代贖的 죽음과 3일만의 육체적 부활, 오순절의 성령강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 교회를 통한 성령의 계속적인 역사들의 역사적 眞正性을 거부하였다. 이처럼 많은 서구신약학자들이 신약성경의 규범적 계시성과 구원역사성과 초월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약성경의 내용을 단순히 고대 사람들의 종교적 경험으로 간주하면서부터 신약성경은 서구 사회에서 교회와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하는 規範性을 지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역사-과학적 비평방법에 의해 얼마든지 비판되어야하고, 재해석되어야하는 상대성을 지닌 사람들의 말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서구신학자들에 의한 신약성경의 상대화와 비역사화는 신약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신약성경을 역사적 信任性을 가진 규범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근할 때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역사의 예수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상대화시키면서부터 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와 역사에 살았던 실제 예수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고,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예수와 다른 역사의 예수를 찾는 작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떠나서, 복음서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을 떠나서, 그들의 증언을 불신하고서는 역사적 예수를 찾는 것은, 마치 21세기에 사는 자신이 역사적 예수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바울과 복음서 저자들보다도 역사적 예수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오만이며,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을 떠나서 역사적 예수를 찾는 것은 결국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고 싶은 예수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가 아닌 학자들이 만들어낸 예수는 예수도 아니고 복음도 아니다.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예수는 교회의 유익도, 구원과 생명도 가져오지 못한다. 사도 바울이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나사렛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음을 믿는 복음만이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롬 1:3-4, 16; 고전 15:1-8).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 사도들이 선포하는 그 복음만이, 우리의 신학과 역사적 예수연구의 시금석이다.
3. 애나하임 빈야드교회와 빈야드 운동
3. 애나하임 빈야드교회와 빈야드 운동 2005-12-19 15:10:39 read : 11738 1. 애나하임 빈야드교회(Anaheim Vineyard Christiiam Fellowship) 죤 윔버가 1977년 50명의 교인으로 설립한 애나하임 빈야드 교회는 1983년 3,000명이 되었고, 1987년에는 5,000명의 교인으로 성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의 중심지로써 600여 개 빈야드 교회의 모교회로서 역할과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1995년에는 애나하임 빈야드 교회 창립시부터 함께 했던 칼 터틀목사를 후임 담임목사로 세우고, 자신은 교회사역은 2선으로 물러나 빈야드운동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담임목사 교체 이후에 약간의 하양 곡선을 그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신임 칼 터틀 목사를 중심으로 스탭진이 재편성되어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2. 빈야드운동 갈보리 채플의 지교회로 사역하던 죤 윔버는 1983년에 켄 걸리스켄(Ken Gullisken)목사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6개 교회가 연합되어 있는 "빈야드"라는 이름의 교회 연합체에 동참하게 된다. 이후 존 윔버는 이 교회들의 지도자가 되며 1985년에는 빈야드 교회 연합회(The 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를 구성하게 된다. 죤 윔버를 지도자로 하는 빈야드 운동은 '빈야드 교회 연합회(AVC)'라는 이름으로 1995년 말 현재 전 세계에 670개 교회를 회원으로 갖고 있는 교단의 모양으로 발전하고 있다. 죤 윔버는 빈야드 운동이 교단이면서도 구속력이나 세력확장을 목표로 삼지 않으려 한다. 이는 "교회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다"라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AVC는 기존의 교회가 가입하는 것 보다는, 새로이 빈야드교회가 개척하는 것을 더욱 환영하고 장려한다. 불신자를 회심시켜 그들을 수용할 교회가 훈련되고 인정된 지도자에 의해 개척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교회 성장의 모습으로 보고,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 간다. 또 AVC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어 타 교단 소속이면서도 빈야드와 협력관계를 갖고 사역하는 지도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다른 기관으로는 빈야드 국제 선교회(Vineyard Ministries Intemational,이하 VMI는 전세계에서 빈야드 세미나를 주최하고 자료들을 출판한다. VMG는 1995년 VMI로부터 독립하였으며, 빈야드 사역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음악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3. 빈야드사역 1. 능력전도/능력치유 빈야드 운동이 갖는 궁극적 목표는 전도와 교회 성장 개척이다. 영혼이 회심하여 주님께 돌아오고 그 결과로 지역 교회가 생겨나고 성장하는 것이다. 바로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이루자는 것이다.(마 28:18-20) 이 지상명령을 이루는 데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그 성령과 함께 능력을 주셨다.(행 1:8)"는 것이다. 신약성서적인--특별히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한 예수와 제자들-- 사역은 거의 모든 경우에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수반하였다. 예수께서는 어느 여인의 과거를 아시기도 하였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며, 영, 혼, 육 전인격을 치유하시며, 복음을 선포하셨고 전도하셨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또한 그 나라의 실재를 보이셨다는 것이 빈야드 사역의 바탕을 이룬다. 그 일이 나타남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며, 그러기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열려 있으려 한다. 그러나 '표적과 기사' 지상주의는 경계하여 "우리의 목표는 능력전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도에 있다"고 말한다. 2. 하나님나라 신학(The Kingdom thelology) 빈야드 사역의 신학적 기초는 하나님 나라 신학 (The Kingdom thelology)에 있다. 특히 George Ladd의 하나님 나라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미 왔으나 정차 올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came, yet to come)"로 표현되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가 현재 모든 교회를 통하여 마땅히 나타날 수 있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3. 빈야드의 비젼 - 성도를 온전케 함 (Equipping the saint) 빈야드 사역에 있어서의 비젼은 에베소서 4:11-13을 바탕으로 한 '성도를 봉사(사역)의 일을 하도록 온전케(갖추게)하는'데에 있다. 이제까지의 많은 능력사역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에 반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보편 타당성 있게 주어졌음을 가르치고 또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주성하여 준다. 실제로 빈야드 교회들은 많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여러 가지의 영적 은사들을 실행하고 큰 열매를 거두고 있다. 어느 빈야드 목회자의 표현을 빌면 "나는 이 교회의 목회자로써 우리 교회 교인들이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역사하도록 하는 일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성도들을 갖추게 하여 사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일인 것이다. 4. 빈야드의 가치관 (Vineyard Values) 빈야드 사역의 뼈대를 이루는 가치관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것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추가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a. 하나님을 좇아감 - 우리의 모든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임재를 기대하며 기다린다.(요 4:35, 5:19-20) b. 성경 - 복음적인(Evangelical)기독교인으로, 성경은 최종적 권위이다. 우리의 삶과 사역 방법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딤후 3:16-17) c. 하나됨 -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은 우리의 대적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바 "모든 교회"를 사랑한다.(엡 4"3-6) d. 갖춤(온전케 함) -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달란트, 은사, 사역들을 주시고, 그것들을 나타내도록 믿는 자들을 부르시고 능케 하신다. 모든 사역의 지향하는 바는 성경적 진리를 일 상의 삶 속에 완성함으로 우리의 지역 사회 등에 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엡 4:11-13) e. 관용 -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과 자원을 맡은 청지기다. (마10:8, 10:39, 13:45-46) 우리의 사역을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갖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줄 것 을 얻기 위하여 준다" f. 간단성 - 우리는 "자연스럽게 초자연적"이기를 원한다. 이렇게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떠나 우리에게 주의를 갖게 하는 행동을 피한다.(고전 2:2-5, 약 3:13, 살전 4:11-12) g. 연민과 자비 -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을 살려는 모든 믿는 자들을,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는 자들, 우리의 모임에 받아들이기를 원한다.(약 2:13, 요8:1-11) h. 관계 -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다음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다. 왜냐 하면 십자가의 목적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12:9-13, 고전 13:4-9, 골 3:12-14) I. 위험 감수 - 은사의 개발은 시행착오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배우는 동안에 일어나는 약함과 실수에 대하여 오래 참음으로 대한다.(요 21:15-19, 갈 5:22-23) j. 문화적 현재성 (Culyure current) - 사역의 대상이 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 그들이 복음과 하나님께 접근하기 용이토록 한다.(고전9:19-23) 5. 구제사역 빈야드 사역을 설명할 때에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구제 사역이다. 기존의 많은 영적 운동이 사회에 대한 봉사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반해 빈야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드러남에 있어서, "...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하게 하시려고..."(눅4:18)",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 (갈2:10)" 하신 것을 행하고 있다. 거의 모든 빈야드 교회들에서 구제 사역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사역이 되고 있다. 애나하임 빈야드 교회의 구제 사역부는 1995년 현금을 제외한 구제 물품액만 백만불이 넘을 정도의 수준이고, 교회에서 가장 큰 사역부서로서 본당을 제외하고 가장 큰 면적을 사용하고 있다. 매 주일 이 삼백명 정도의 인근지역 빈곤층을 초청하여, 점심을 제공하고, 식료품 등을 배분하며, 병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도 한다. 6. 예배의 구성 빈야드의 거의 모든 예배 모임은 크게 경배, 말씀, 사역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a.. 경배(찬양) - Worship 이들은 찬양이라는 말보다는 경배(Worship) 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찬양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경배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찬양(경배)을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믿는 자로써의 행위라고 여긴다. "찬양(경배)는 준비가 아니라 바로 실제이다" 이 경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경험하고 병이 낫거나 더 큰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기도 한다. 경배(찬양)의 또 다른 특징은 사용하는 음악이 다른 모든 빈야드의 특징과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 현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b. 말씀(가르침) - Teaching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아주 중요한 사역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 가지 특징을 들자면 대체적으로 난해하거나 어려운 것 보다는 쉽고 간단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중 하나는 교인들이 배워 그것을 그대로 가르칠 수 있어야 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c. 사역 - Ministry 말씀을 가르친 다음에는 그 주제를 중심으로 기도사역의 시간을 갖는다. 예수와 제자들의 사역이 가르치고 행하였다는 것을 바탕으로 가르친 다음에는 성경께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기도 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모든 사역이 마찬가지 이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중요시 여기며, 여러 가지의 은사들을 따라서 행하여진다. 5. 기타 관련 연구과제 1. 토론토 블레싱 (Toronto Blessing): 토론토 에어포트 교회 2. 성령의 역사 및 현상 (Phenomena) 3. 죤 윔버 목사의 건강 뉴라이프 교회(New Life Community Church) 1. 뉴-라이프교회의 역사 (교회소개서에서 발췌) 저희 뉴 라이프 교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희 교회는 가리스마틱한 순복음교회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연구하기 힘쓰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믿으며 또한 현 시대에서도 신양성서 시대에 전파되었던 영적은사들의 운영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 교회를 여러 재능과 은사 곧 교육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다양하게 축복하셨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각양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캐톨릭, 어떤 이들은 개신 장로교, 감리교, 메노나, 침례교, 그리고 유대인 등... 하지만 우리들은 한가지 공통된 것일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온마음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세례를 받을 때 각양 다른 영적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여러모습들을 저희 교회 봉사가운데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은사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하실수 있습니다. 예배도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방언을 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기가막힌 영적 구원의 역사 또는 기적적인 고침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식으로 예배하는 이유는 구약과 신약성서에서 하나님께 예배함을 이같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 "손뼉을 치며 ... " "소리나는 꾕가리와 춤을 추며 찬양하며..." "소리내어 기뻐하며 ... " 그리고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예배하라..." 믿는 자들이 성령이 충만해지면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기쁨이 나타나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저희 뉴-라이프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계신 중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이면서 활력적인 관계를 맺도록 이끄는데 주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들의 삶에 생동력을 심어주고 기쁨을 가져다주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인 성경을 알게하려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새생명을 찾기위한 열쇠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2. 교회예배와 모임시간 주일 오전 8:00 - 9:30 (제 1부예배) (탁아 없음) 찬야, 예배와 성경공부 오전 10:00 - 정오 (제2부 대예배) 찬야, 예배와 어린이 교회 오후 6:00 - 8:30 (주일 저녁예배) 찬양, 예배와 성경공부 어린이 - 왕국 특공대와 작은 선교사들의 모임 수요일 오후 7:00 - 9:-00 T. A. G. 모임 중.고등부 학생들 주중에 점조직제들을 각 정하여진 시간에 성도들의 가정에서 만남, 점조직체 사역에 대하여 관심있으신 분들은 현관에 위치한 점 조직 인포메이션 센터에 오셔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뉴-라이프 교회의 입적인원은 지난해 출석인원들의 헌금기록을 토대로 합니다. 현 입적인원은 약 6.000여 명 입니다. 3. 교회 철학과 구조 여부 - 철학 뉴-라이프 교회의 철학은 성서에서 발견되는 바 신약시대의 교회 모습을 토대로 하여 우리는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합하여지며,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추구합니다. 예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모든 교인들은 그의 명령에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고치거나 아니면 원상복귀하는 일을 책임 갖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들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단번에 자기 자신을 오순절에 성령의 모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부으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면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난다 함은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물려받아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새로 거듭날 때 모든 것이 새로워 집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며 우리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새로운 기쁨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게되며 새로운 용서를 우리의 마음에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과 놀라움 그리고 두려움으로 서게 되며 교회의 성결을 지키기에 대단하 관심을 갖게 됩니다. 믿는자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과 그 가치관으로부터 관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분별되며 거룩하기로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며 선교를 통하여 이 도시와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성서적인 믿는 모임 단체들을 세우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중요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10월에는 저희 교회가 10/40 창문 계획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천여만명이 창문을 통하여 함께 기도에 동참하는 계획입니다. 개교회적으로 기도대원들을 동시에 조직하며 10/40 창문 계획의 각처에 있는 많은 비중의 아직 예수가 전해지지 않은 사람들이 직사각형의 10/40 창문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혁띠같이 서아프리카에서부터 아시아까지 이르는 위도 10도에서 위도 40도를 말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95%의 사람들이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했으며, 84%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대부분의 모슬람, 힌두종교인들과 불교인들이 있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 교회구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만 "교회"에 대하여 잘못 오해하고 환멸을 느끼는 것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중에 너무 복잡한 구조를 떠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또한 그의 말씀안에서 성장할 수 있기 기회를 줄 수 있는 교회라면 사람들의 관심을 사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의 성실성과 성결성과 교회의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까다로운 구조나, 수많은 위원회라든지 입교인들에 대한 요구사항이라든가 약정 카드 등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매주 얼마나 비치기로 작정했는지 등의 기록들을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십일조와 헌금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예배의 일부이며 그것은 각 개인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현인 것입니다. 저희 교회 행정은 교회 일부의 이사위원 5명(근교 목사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교회 목회자들이 책임 변명을 해야하는 그룹입니다. 그 외에도 24명의 장로들이 있어, 온 교우들을 섬기며, 건축위원회는 건물과 생건축을 책임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매주 작은 소그룹(점 조직)으로 각 가정에서 만납니다. 이 점 조직은 서로를 알게되며 서로의 구체적인 필요를 나누어 기도와 상담과 심방과 여러 가지 다른 도움으 로 서로를 도와 받혀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줍니다. 이 점 조직 그룹안에서는 매주 교회에서 가르치는 영적인 원리들을 논하며 영적 은사들에 사용과 용도 등에 대해 더욱 배우며 우리의 주위 이웃과 우리의 도시의 전도 기회들을 토론하게 되는 것입니다. 4. Ted 목사에 대하여 Ted 목사는 Oral Robert 대학교 1학년때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으로 사역에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 확인을 요구한 Ted목사는 그 몇일안에 편지와 전화 등을 받음으로 그의 부르심을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78년 졸업 후 그는 주로 철의장막과 제3세계 사회주의적인 나라들을 대상으로 배후에 선교하는 World Mission for Jesus (예수전도단)이라는 곳에서 일하였다. 계속 승진한 끝에 부사장이 되었지만 목회에 대한 사명이 더욱더 그의 가슴에 간절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후 Bethany World Prayer Center (베다니 세계 기도센터)로 접근한 후 청소년 담임목사로 일하며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가르쳐 그들로 세계 정세와 사건들이 교회 정세에 어떠한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아울러 Bethany Family Counseoing Center (베다니 가정 상담 센터)를 증설하는데 큰 도움을 가져다 주었다. 주님께서 Ted 목사와 그의 아내 Grace를 Colorado Springs로 지난 1984년 부르심으로 확신을 얻어 Bethany World Prayer Center의 전적인 후원하에 Ted 목사는 뉴-라이프 교회(New Life Church)를 창설하게 된다. 첫 예배를 자기 지하실에서 25명으로 시작하여 지난 10여년간 6,000여명의 교인수 교회로 성장하였다. 그는 자기의 어린시절 "보수적인"교회에서 자라며 경험하였기에 그는 무엇보다도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성실하기를 사랑하는 그러한 예수의 몸이 되는 교회를 창조하기로 이끌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뉴-라이프 교회가 되었다. 그 후 Ted목사는 여러 원근교회 목회자들로부터 그들의 교회를 새롭게 재조직하는 일에 도움을 요청받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성장과 전도 세계에서는 Ted목사의 영향이 Bill Moyers 등 Media 곧 U.S. Newst World Report, Los Angeles Times, New York Times Chicago Tribune, Washingtio Post, Denver Post, Charisma Magazine 등 ABD와 NBD국내 방송국 등 BBC와 Intemational News Network 들에게서 인정을 받은 바가 있다. 현재 그는 국제 정통교계위원으로 Colorado 정통 교계위원으로, 지구 추수사역위원으로, 모든 가정 그리스도화 단체와 기독인과 유대인의 대화 등의 단체에서 섬기고 있으며, 몇몇 책을 근래에 저서하였다. 그의 저서 한 책은 Primary Purpose (제일 첫째 목적)을 Creation House에서 인쇄하였으며 Discoverling Ancient Wisdom (구 세계의 지혜 발견하기)를 New Intmational Bible Society 를 위해 편집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 성경공부지들을 저서했으며, 가르침의 지침을 테입으로도 만들어 내었다. 그와 그의 아내 Grace에게는 다섯 자녀가 있다. Focus on the family 창시자 및 총재 : 제임스 답슨 박사 (Founder & President: Dr. James Dobson, Ph.D.) 본부: Focus on the Family, Colorado Springs, CO.80995 1. 사역소개 Focus on the Family 란 사역은 미국의 점차 악화되는 심각한 가정문제에 대한 제임스 답슨 박사의 개인적인 도전으로 1977년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U.S.C.(남가주 대학)의과 대학원에서 14년 동안 교수로 일하면서, 미국의 가정들이 내적과 외적의 여러 가지 압력과 악영향으로 여지없이 파괴되는 광경을 안타깝게 보면서, 여기에 교회나 그리스도인 단체들이 어떠한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도움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사역철학을 가지고 이 사역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활발하게 계속되고 있다. "Focus on the Family 사역의 근본적인 목적은 성령님과 협력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회개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또한 특별한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가정제도를 보전하는 방법으로 이 목적을 이루는데 있다." 사역초기 캘리포니아 주 알케디아 시에 있는 사무실방 2개를 빌려 제임스 답슨 박사 홀로 약 40-50개 밖에 안되는 방송국들을 통하여 25분 짜리 Radio 방송으로 시작된 이 사역은, 오늘날 1,300명이 넘는 직원들과 50개의 사역부서 약 4,000개의 방송국을 소유하는 세계적인 단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2. Focus on the Family의 사역들 A. Radio 프로그램 "Focus on the Family": 이 모든 사역의 대명사이며 이 모든 것들을 시작한 라이오 방송 사역으로 매일 30분 동안 가정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결혼, 자녀교육, 건강, 영적과 정신적인 성장 등등)일주일에 18,000회씩 4,000개의 방송국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방송되고 있다. 이 외에도 "Weekend", "James Dobson Family Commentary", "Focus on the Family Commentary", "Armed Forces Radio & Television Services Broadcast", "Family News in Focus:, "Adventures in Odyssey"등 가정에 관한 issue를 중심으로 방송한다. B. 정기 간행물 / 잡지 (Periodicals) "Focus on the Family": 월간으로 발행되어 현재 약 2천만 가정들에게 무료로 운송되고 있다. 그 외에도 혼자사는 부모들을 위해 "SingleParent Family"와 아이들을 위한 "Clubhouse Jr." 그리고 "Citizen", "brio", "Breakaway", "Teachers in Focus:, "Parental Guidancd", "Physician" 등의 정기간행물들을 발간한다. C. 필름과 비디오 Focus on the Family에서 제작한 여러 가지 영화와 비디오 및 T.V. Progran들이 있다. 여기서 몇 가지만 소개하면 "Adventure in Odyssey", "Children at Risk", "Focuw on the Family", "Last Chance Detective", "MaGee & Me", "Turn Your Heart Toward Home!등이 있다. D. 책 제임스 답슨 박사가 직접 쓴 여러 책들 (13권의 Best Sellers)외에도 미국에서 유명한 기독교작가, 심리학자, 목사들이 쓴 많은 책들도, 역시 죽어가는 미국가정을 살리는데 목적을 가지고 Focus on the Family 출판사에서 직접 출판하고 있다. E. 기타 사역 위엣 것 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여름캠프사역, 지역 선교 프로그램 사역들, 상담사역(카운슬링), 목회자들을 돕고 협력하는 여러 사역들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3. James Dobson 박사 James Clayton Dobson Jr. 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부친은 나사렛교회의 목사, 모친 가족은 3대째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장성하면서, 특히 진실한 부모님의 기독교인의 삶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신학교는 진학하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가정을 위한 사역에 대한 소명이 끓고 있었다. 그리하여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남가주 대학)에서 아동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그 후 모교인 U.S.C. 의과 대학원에서 14년 긴 세월의 소아과 교수로 지내오며, 오랫동안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현실, 즉 미국의 무너져가는 성경적인 가치관과 가정의 기초에 대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낄수가 있었다. 오랫동안의 기도와 준비 끝에 Dobson박사는 마침내 학교를 사임하고 Focus on the Family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쓴 "Dare to Discipline"이란 책은 미국에서만 이백만권이 넘게 팔렸고 "Love Must Be Tough"외에 12권의 Best Seller들이 있다. 그의 사역의 열매로 1982년에는 미국 복음주의 협회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에서 선정한 "그 해의 평신도 (Layman of the Year)상 외에도 기독교 단체와 비기독교 단체에서 많은 상들과 칭송을 받아왔다. 1980년 Jimmy Carter대통령 시기부터 George Bush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러 중요한 국가 연구위원회(National Commission)의 고문으로 섬겨 왔으며 현 미국의 심각한 가정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Adviser격으로 보조하여 왔다. 4. 사역의 특징 Focus on the Family는 결코 지역교회도 전형적인 선교기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에서 어두워져가는 도덕과 사라져가는 청교도들의 성경적 가치관과 윤리관, 그리고 너무나도 비참하게 무너져 가는 가정(예컨데, 2 가정중 1가정은 반드시 이혼하는 미국의 현재 통계)을 위하여 그 어떤 교회나 선교단체보다 더 미국의 가정과 사회의 교회에 그리스도의 충격을 (impact)을 주고 있는 단체이며 특히 사역 기관이다.'' 특히 지역교회에서나 선교기관에서 다루기가 거북한 문제들을 (가정의 정의, 결혼과 부부의 문제, 이혼과 이혼자들의 문제, 재결혼, 유산문제-특히 Focus on the Family는 Pro Life/Abortion 즉, 인공유산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으로 유명하다 - 안락사 (Euthanasia)문제, 동성연애 문제 등등) 성경적인 입장에서 담대하게 가르치며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Focus on the Family의 모든 사역을 조정 (govem)하는 그들이 5가지 official한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삶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하며, 또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하여 영생을 얻는 것이라 믿는다. 이 목적은 바로 우리 가정으로부터 시작하며, 아직도 그의 사랑과 희생을 알지 못하는 방황하는 모든 인생들에게 적용된다. 2) 우리는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친히 내신 제도로 영원하며(Permanent)남자와 여자의 평생관계 이며, 어떠한 역경이나, 병마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정신적인 어려움도 끊을 수 없다고 믿 는다. 3)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이요, 그 분의 손의 축복이라고 믿는 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자녀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인류을 위한 하나님을 사명을 위해 어떻게 양육하고 준비시키는가에 대하여 하나님앞에 책임이 있다. 4) 우리는 모든 인간의 생명(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모태안의 생명, 노약자, 정신박약자, 정신질 환자, 추남추녀, 신체장애/불구자, 또한 어떠한 상태의 생명)의 존엄성과 무한한 가치를 믿는 다. 5)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세가지 기본적인 제도를 친히 제정하셨다고 믿는 다. - 가정, 교회, 국가 가정은 인류의 번성을 위해 2세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고, 양육하는 안전하고 안정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각 가정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을 나누며 또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원을 전파하며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문화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사회질서의 뼈대를 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Focus on the Family는 이 원리를 모든 사역에 적용하며, 이 원리들이 모든 사역의 영역에 명백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다. 빌리그레함 박물관 시작 초기부터, 미국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또한 그렇게 살려고 애썼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져 왔다. 오늘날 빌리 그레함 센터 박물관은 이러한 풍부한 영적인 유산들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준다. 진귀한 예술품들, 역사적 발자취, 그리고 눈에 띄게 훌륭한 전시들을 통해, 방문객들은 미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과 복음주의의 영향들을 생생히 경험한다. 미국의 복음주의 (Evangelism in America) 초기 개척자들의 시대때부터, 복음주의는 미국의 삶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과거시대로 되돌아가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노력했던 헌신적이며 담대한 복음전도자들, 설교자들 그리고 선교사들을 만날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공헌했던 사람들, 즉 죠지 윗필드, 서져너 트룻, 챨스 피니, 프란시스 아스베리, D.L.무디, 이벤젤린 부스, 빌리선데이, 그리고 다른 많은 그리스도를 위해 담대히 헌신했던 사람들을 주목해 보자. 이 전시관은 또 한 과거의 영적 대각성 운동과 그것이 나라의 역사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들을 보여준다. 진리의 복된 소식(The Good News of the Gospel) 어두운 방, 성경 텍스트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 놓여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예술가 프레드릭 하트의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는 조각품인 "The Cross of the Millennium"(천년의 십자가)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생생히 자세하게 들려준다. 여러분이 그 주변을 돌 때 , 어떻게 그것이 그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하심을 나타내 주는지를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에 초점을 맞추고 보라. 빌리 그레함 스토리 가족 사진들과 개인적인 소장품들은 빌리 그레함의 전승을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그의 삶의 이정표들(10대 청소년 시절에 일어났던 그의 중생에서부터 그의 첫 번째 설교를 시도하기까지)은 후에 있을 세계전도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손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의 신앙의 확신을 형성했던, 그리고 그를 국제적인 관심속으로 이끌었던 전환점들을 주목하여 보자. 만약 여러분이 박물관에 있는 빌리 그레함의 전도여행 설교단에 서 있다면 여러분은 그의 성경책과 그의 설교노트를 검토해 볼 수 있고, 또한 3개의 특별 스크린 상영들을 통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전도집회가 운영되며, 그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해, 여러분은 빌리 그레함과 그의 연합조직이 전세계에 선포했던 메시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새 삶과 희망의 메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임무 (The Unfinished Task) 우리는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적으로 궁핍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점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여섯 개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비디오 자료들을 통해, 여러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궁핍한가를 알게되고, 땅끝까지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변화를 받게될 것이다. 진리를 통한 발걸음 (Walk Through the Gospel) 환경이나 장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는 지리적인, 문화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전달된다. 여러분은 빌리 그레함이 전하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듣기위해 마지막 상영관에 초대된다. 그런다음, 여러분은 예수의 죽으심, 장사지냄, 그리고 부활의 생생한 장면을 보게될 것이다. 단순하지만 그러나 심오한 진리들이 단계적으로 여러분 앞에 펼쳐진다. 박물관 채플룸은 미국과 전세계에 아직 남아있는 임무의 빛 아래서 조용히 반성하고, 기도하며, 그리고 개인적으로 헌신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여러분의 방문은 그것이 시작됐던 장소인 리셉션 지역(한시적으로 전시하는 박물관 시리즈 중에 하나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끝난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영적진리를 신선한 표현으로 묘사한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전시해 놓은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빌리 그레함 센터 박물관은 미국에서 일어났던 복음주의의 성장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초대교부들로부터 시작해서, 미국 복음전도자들을 통해, 진리에 대한 능력있는 사역들을 보여 주며 박물관에서는 이 땅위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전체적으로 보여준다. Moody Bible Institute 초기시절 1837년 2월 5일. 메세추세트 주 놀스필드시. 드와이트 라이맨 무디는 아버지인 에두윈 무디와 어머니인 베씨 홀튼 무디 여사 사이에서 여섯 번째의 자녀로 태어났다. 드와이트의 공식적인 학력은 국민학교 5학년이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농촌에서의 생활에 회의와 짜증을 느끼자 17살이 되던해 보스톤에서 직장을 구해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침내 집을 떠나고 말았다.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하자 삼촌을 찾아가 일자리를 구했다.' 삼촌인 사무엘 훌튼은 마지못해 운영하고 있던 신발가게에서 일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무디를 조건부로 고용했든데 그 조건은 드와이트가 마운트 벌논 회중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드와이트는 마운트 벌논 교회에서 에드워드 킴벌 교사가 가르치는 주일학교 성경공부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1855년 4월 21일 킴벌 교사는 드와이트가 일하고 있는 신발 가게에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고 무디는 그 사랑을 받아드리며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 다음해에 무디는 신발 장사를 통해 성공을 꿈꾸며 시카고로 옮겨 갔다. 신발 판매가 호전을 이룸과 동시에 시카고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주일학교를 개설해야 한다는 불타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술집을 개조해서 시작한 주일학교가 시간이 지나자 모여드는 수많은 어린이들로 인해 비좁아 지기 시작했다. 점차 학교가 터지기 시작하자 동료 한 사람이 무디에게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해왔다. 1864년 2월, 무디를 목사로 한 일리노이스 스트리트 교회(현 무디교회)가 자체 건물을 갖고 첫 예배를 드리게 된다. 신발 사업을 그만두고 복음을 위한 전도자로서 더욱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뒤 섬기던 목회 사역을 사임하고 미국 전지여과 영국을 다니며 영적 대 각성집회를 인도하는 부흥사로 더욱 혼열을 쏟는 사역을 세상을 떠나는 해인 1899년까지 계속하게 된다.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도 교육에 대한 관심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1870년 여름, 무디는 일리노이스 놀만 주립대학의 총장이며 교수인 에마 드라이얼을 만나게 된다. 그 다음해, 시카고 대화재 발생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고 무숙자가 되어 도움을 요청할 때 에마 드라이얼은 그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성경공부와 교육, 심방 사역을 시작한다. 무디는 드라이얼을 설득해 계속 시카고에 남아 교회의 후원으로 교육을 하도록 한다. 그후 무디는 계속 부흥집회를 인도하게 되고 드라이얼씨는 시카고에 여성들을 교육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하게 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드라이얼 여사는 젊은 청소년들에게 계속해서 공부를 하여 훈련을 받도록 권유하며 격려를 했다. 1833년 초기에 드라이얼 여사와 매주 모여 기도 모임을 가졌던 시카고의 주미들은 무디 선생이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새로운 학교 설립에 동참하기를 기도했다. 시카고 지역의 도시 전도 집회를 위해 모였던 1886년 2월 22일의 회의에서 학교 설립에 관한 한건이 토의되었다. 드라이얼 여사의 지속적이며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암도하였다. 청중들을 향해 무디는 "제 마음속에 있는 것, 즉 제가 원하는 바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갭(Gap)을 이어줄 수 있는 일꾼들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평신도와 사역자를 이어 주는 훈련된 자들로서 도시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는 일꾼들 말입니다. 은사를 지난 자들이 복음 전파에 필요한 훈련을 받아야 할 곳이 필요한 때 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카고 복음 협회(Chicage Evangelization Society)가 (무디 바이블 인스티튜트 (Moody Bible Institute)로 변경됨) 탄생하게 되었다. 학교의 발전 한동안 협회의 주사역은 가정 심방과 도심 선교 지역에서 열리는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매년 5월 협회에서는 "5월 훈련(May Institute)이라는 일주일 훈련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었다. 시카고 에비뉴 교회(시카고 대화재 이후 일리노이스 스트리트 교회명이 바뀜)의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무디는 교회 건물의 서북 방향의 안내 위원이었던 쟌 모리슨씨를 만나 이야기 하던 중 건너 편의 빈 땅을 하나님께서 학교를 위해 주시도록 함께 기도했다. 1889년에 있었던 May Institute는 무디의 가르침으로 인해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사회는 May Institute 가 점차 성황리에 많은 일꾼들을 키워내는 것을 보고 다음 사업 계획에 착수한다. 이사회는 무디와 모리슨이 기도했던 그 빈 땅과 더불어 인근의 다른 빈 땅과 집 3채를 사들여공사에 착수하여 153 Institute Place라고 불리는 학교의 사무실을 건축하게 된다. 1971년에 있었던 시카고 대화재 이후로 무디는 거의 거주지를 고향인 Narthfield로 옮겼다. 새로 새워진 학교에 시카고에 사는 전임 담당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무디는 전도자인 R.A. Torrey를 학장으로 청빙한다. 토레이 박사가 취임한 1889년 9월 26일 부터 학교는 연중 강의가 시작하게 된다. 1899년 12월 22일, D.L. Moody는 주님의 품으로 갔으며 그의 고향인 Northfield에서 장사되었다. 무디의 장례식 이후에 열린 이사회는 무디를 기념하기 위해 Chicage Evangelization Societ를 Moody Bible Institute로 개명하기로 결정했다. 탁월한 지도력 토레이 박사는 학장으로 학교의 학사 내용을 더욱 충실히 하고 우수한 교수들을 채용하여 사역에 필요한 실제적인 프로그램들을 짜는데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토레이 박사의 행정 아래 통신반과 저녁반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문서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Moody Magazine이라는 월간 잡지를 출판하였다. 1904년 무디와 친분 관계를 갖고 학교의 시간 강사로 강의해 오던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박사가 학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레이 박사는 세계 1차 대전과 미국의 암흑기였던 대불황기 시절을 탁월한 지도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그의 재임시 그레이 박사는 고등학교 졸업자에 한해 입학 허가를 하므로 신입생 입학 허가 수준이 높아져 더욱 학교가 발전하게 된다. 또한 1926년 7월 28일 학교 자체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그레이 박사의 뒤를 이어 윌 휴톤(Will Houghton)박사가 학장으로 취임하여 학교가 번창하게 되는데 12층 건물인 Crowell Hall과 Torrey-Gray Audiorium도 이때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경의 진리를 논증하는 Moody Bible Institute of Society가 새로 개설되었으며 무디가 창설한 Bible Institute Colporrage Association (성경연구 서적 협회)가 학교와 연합하여 Moody Press(무디 출판사)로 출발하게 되었다. 1947년 휴톤 박사가 타계함으로 이사회는 학감이었던 윌리암 커벌슨 (william Cubertson)박사를 학장으로 추대한다. 커벌슨 박사의 지도력 아래 학교의 정규 과목과 신설 과목 및 학위 수여 등이 강화되며 건물 신축이 계속 된다. 선교사 양성을 위한 항공 운항과 라디어 제직 프로그램들이 신설 교양과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1971년 M.B.I. 출신의 죠지 스위팅 (George Sweeting)박사가 바톤을 이어받아 학장으로 취임하여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이바지 하게 된다. 스위팅 박사는 M.B.I.가 급변하는 사회의 영적인 갈급함과 공허를 채울 수 있은데 목적을 두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된다. 스위팅 박사의 지시 아래 21개의 다른 지역에서 저녁반을 개설하여 많은 학생들이 교육 및 훈련을 받도록 배려하였으며, 처음으로 M.B.I. Pastor's Conference (목회자 수련회)를 개최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졸업생들에게 필요한 교육내용을 제공하는 등 혁신적인 방안으로 학교를 운영해 나갔다. 17년 동안 학장으로 학교를 위해 섬긴 스위팅 박사가 학교를 발전을 위해 사임하자 이사회는 목회자로 오랫동안 섬겨온 죠셉 스토웰 3세 박사를 7대 학장으로 임명한다. 방 송 드와이트 무디와 에마 드라이엘 여사가 시카고에 학교 개성에 대하여 비젼을 나누던 그해, 하인뤼치 헐츠 (Heinrich Herts)는 새로운 이론을 출판했는데 그것은 전신을 통하여 메시지를 송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 많은 실험을 통한 결과로 미국에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새로운 송신 수단이 1920년 초반기에 탄생하게 되었고 M/B.I. 는 1925년 첫방송을 전파에 실었다. 학교 소유 라디오 방송국을 갖기 이전인 1925년 첫 시험 방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되었다. M.B.I.의 두 학생이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리노이스 생산물 전시회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WGES라디오 방송국에서 전시회를 생방송으로 일리노이스 지역에 방송을 했는데 폭풍으로 인하여 준비해 놓은 배경음악을 방송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WGES 프로듀서가 M.B.I.학생들에게 복음성가를 생음악으로 연주해 달라는 부탁이 계기가 되어 매주 한시간씩 Moody Hour이라는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1926년 7월 28일 WMBI라는 학교 소유 방송 스테이션으로 M.B.I.는 첫 자체 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시카고 지역에 처음 방송을 시작한 무디 방송은 무디 방송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전파를 내보내는 방송국으로 성장했다. 1982년 무디 방송 네트워크는 인공 위성 방송을 통하여 북아메리카 전 지역에 동일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게 되었다. 무디 출판사 1894년 위스콘신 주의 메디슨 시에서 드와이트 무디는 연속적인 부흥집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는데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남겨줄만한 영적 도서나 출판물이 없다는 사실에 무디는 안타까워 했다. 오랜 기도와 조사 끝에 무디는 Bible Institute Colportage Accociation (성서 연구 서적 협회)를 창설하게 되는데 창설 목적은 기독교인들에게 좋은 양서를 출판하여 공급하는데 있었다. 출발 업계에 몸 담고 있었던 동서인 플레밍 리벨(Felmmong Revell)의 도움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초창기에 출판되었던 책들은 방문 판매를 통해야 판매 되었다. 독자들에게 출판되는 신간 서적들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A Book-of-the-Month"(이 달의 책)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독자들이 신간 서적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또한 초창기 때에는 많은 서적들이 교도소, 병원, 구제 선교회등으로 배부 되었다. 이렇게 배부했던 문서 사역은 120개가 넘는 여러 국가에 영질의 기독교 서적을 배부할 수 있도록 성장하였다. The Bible Institute Colportage Association은 Moody Institute과 연합하여 두가지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Moody Press라는 출판사로 양서를 공급하고 있고, Moody Literature Ministry라는 문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Moody Magazine 학생 및 학교 관계자들과 졸업생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 The Institute Tie라는 잡지를 1891년에 발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에 걸친 경제 불황으로 인하여 잡지는 그 다음해에 중단 되었다가 1900년부터 다시 발간하게 되었다. 처음엔 M.B.I. 가족들을 위해 격주로 발행되던 뉴스레터 형식의 잡지가 1930년 후반기에 이르러 Moody Monthly란 새로운 형식으로 발간되었다. 다시 한 번의 잡지의 이름과 내용, 형식 등을 변형시켜 1991년 부터 Moody Magazine이라는 이름으로 월간지를 발간하고 있다. Moody Institute of Science M.B.I.는 얼윈 문 (Irwin Moon)목사의 비젼으로 시작되었다. 목회자였던 얼윈은 젊은 청년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실질적으로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왔다. 얼윈 목사는 과학 실험을 사용하여 화학적, 물리적, 생물학적인 기적들을 교인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1945년 그가 품고 있었던 꿈이 Moody Institute of Science를 창설하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얼윈 문 박사의 목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들을 과학을 통하여 증명하고 증명된 증거들을 영상(Film)으로 담아 전세계로 보급하는 데 있었다. M.B.I.는 지속적으로 뛰어나고 전문성 있는 필름 제작에 힘쓰고 있다. 그러한 결과 그 우수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과학분야, 교육분야, 영상 효과 등의 분야에서 여러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Moody-Keswick Beble Conference 1880년 드와이트 무디는 Keswick Conference(영적 대 각성 및 부흥집회)를 미국에서 시작했다. 제일 처음 있었던 집회는 Northfield Conterence로 무디의 고향인 메세츄세추 놀스필드에서 있었다.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를 통하여 회심하고 헌신하는 역사가 일어났지만 M.B.I.와 이 집회를 연결해 주는 단체는 없었다. M.B.I. 역시 65년 이상 Moody Founder's Week Conference로 알려진 부흥집회를 매년 주관하고 있었다. 1977년 플로리다 세인트 피털스버그에 위치한 Southem Keswick Inc.회사가 건물을 M.B.I. 에 기증함으로 M.B.I. 와 연결이 되어 매년 Moody-Keswick Bible Conference를 주최하고 있다. 그 밖에도 매년 다양한 학회 및 집회, 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하나님의 일꾼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을 다하고 있다. 무디교회 (MOODY CHURCH) 무디교회의 각 사역내용과 프로그램들 당신이 만약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다면, 아마도 LaSalle Boulevard와 Clark 거리 사이에 위치한 큰 벽돌건물인 무디교회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건물은 1925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며, 대부분의 시카고 거주자들은 때때로 이 교회를 자동차로 혹은 걸어서 지나친다. 이 지면을 통해서 무디교회와 가르침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접하는 질문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겠다. "무디(Moody)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온 것인가? 그리고 무디교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디성경학교의 한 파트에 속하는가? 교회의 이름은 19세기 후반에 시카고에서 살았던 유명한 복음주의자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미국과 영국에 있는 많은 청중들에게 설교했던 그 당시의 빌리 그레함이었다. 무디 (D. L. Moody)는 그의 주일학교에 어린이들을 초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디가 죽은 후에 그를 예우하는 뜻으로 무디라는 이름을 교회의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다. 무디교회와 무디성경학교 둘 다 복음전도자 무디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비록 우리는 자매학교이긴 하지만, 유기적으로 관련되어있진 않다. 우리의 친밀한 우정의 목적은 두 학교 서로의 발전에 있다. 무디 교회는 비록 약 20%의 교회회원들이 카톨릭 교회에서 자랐지만, 개신교측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 나머지 회원들은 여러 개신교 그룹들, 유대교 배경을 가진 몇몇 회원들 , 혹은 종교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디교회는 또한 어떤 특정교단에 가입하지 않는 독립된 교회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개혁측 사람들, 즉 성경을 그들의 영적인 권위로 믿는 사람들과 함께 기독교의 일반적인 전통들을 나눈다. 이러한 확신 즉,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우리를 과거나 현재나 다른 많은 교회들과 하나가되게 만들어 준다. 무디교회가 그 지역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혹은 다른 말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 무엇보다 먼저 그 지역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랄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헌신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여러 이유들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들(즉,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사람들, 교도소에서 일하거나 혹은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사람들) 과 우리의 도움을 함께 함으로써 그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적에도 10개 정도의 그런일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으 이름으로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을 보낸다. 또한 매달 한 번씩 Moody Business Network과 Women in the Working World에 점심식사로 후원하고 있다. 1970년 이후 계속해서 3세부터 5세이하의 자녀들을 가진 가정을 위한 Childern's Leming Center를 운영해 오고 있다. 매주일 아침에 모이는 모임에서는 성인성경공부모임 뿐만 아니라 도시와 주변 외곡지역에서도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있다. 내주 게시판에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한 많은 기회들 (즉, 가르치는 것, 리더쉽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음악을 만드는 것, 혹은 다른 모든 중요한 분야인 것이든지간에)로 가득차있다. 주일아침 예배에 참석한다면, 어떠한 것을 그 예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은 것은? 찬양 예배는 약 1시간 15분 정도로 진행하고 있다. 예배의 구성은 우리의 삶 속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복음적인 메시지 뿐만이아니라, 찬양과 성경봉독 그리고 성가대의 합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과 또 실제적인 그분과의 영원한 삶 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The Moody Church Covenant (무디교회 서약) 우리 무디교회 회원은 하나님 말씀인 모임에 다같이 참여한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할 것이며, 서로 기도하고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다함께 사역한다. 우리는 모든 사악한 것들 분노, 성냄, 그리고 사악한 말들을 우리로부터 제거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하여,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죽이심 처럼, 서로를 용서한다. 우리는 경배와 예배를 위해 모이는 우리자신들의 모임을 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며 그리고 우리에 대하여 영적인 규율을 가진 자들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사람에 대해 선한 청지기 직분을 감당한다. 우리는 말과 행동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노력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며, 특별히 믿음의 가정에 더욱 그렇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인 복음을 전세계에 충만하게 전파되도록 노력한다. Corporate Worship(전체예배) - 주일찬양예배 - 주일찬양예배는 오전 10:30과 오후 6:00시에 각각 시작한다. 두 예배 모두 스페샬 음악, 회중찬양, 기도, 그리고 가르침으로 진행된다. - 성인 성경공부모임 - 이 모임은 성경공부와 여러 가지 관계-발전적인 활동 들을 통해 남녀간의 관계를 강화한다. 또한 거기에는 결혼한 부부들, 미혼자들, 노인들 그리고 전체 가족들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 있다. - 수요저녁모임 - 전체기도후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인들을 위해 마련되는 성경공부 시간이다. - 수요저녁친교 - 수요저녁모임 이전에 진행된다. 모두가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다. - Connections - 이 소규모그룹 사역은 성경공부, 제자훈련, 그리고 기도를 위해 모인 다양한 그룹들을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그룹들은 여러형태로 이루어지며, 참석자들의 특별 필요사항들을 발표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 3인조 기도(Triple Cords)- 3명이 한 그룹이 되어서 정기적으로 만나서 기도하는 모임이다. - Vine and Branches (포도나무와 가지들) - 사람들의 삶속에서 소그룹이 끼치는 영향이 어떠한지를 서로 나누는 연 4회 발간되는 회보지. - 장로들의 기도모임 - 교회의 장로들에 의해 인도되는 이 모임은 매주 주일예배 전에 시작한다. - 금식기도의 날 - 이 프로그램은 일년에 두차례 실시하고 교회의 가난한 자들과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자들을 위해 다같이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는 시간이다. - 아침기도 - 토요일 아침에 약 25분동안 진행되며 주로 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Youth Ministries (청소년 사역들) 중학생 Culb Time and 고등학생 Culb Time - 복음주의와 영적인 성장을 강조하는 재미있고, 활동적으로 짜여진 프로그램. Junior High Culb Time은 수요일 밤에 있고, Senior High Culb Time은 주일밤에 있다. 중등부와 고등부 주일학교-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주로 찬양, 말씀공부, 그리고 여러 놀이 등이 주일 아침에 이루어진다. 캠프 Ministry - 캠프 Moyoca - 안디록 일리노이주 근처 Loon 호수에 위치한 캠프 Moyoca는 우리교회 가족 회원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 성장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 공해준다. 캠프는 여름기간 동안 어린이들과 중.고등부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 교회 피크닉 - 교회 전체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 즐거움 그리고 친교가 있는 시간이다. 캠프 Moyoca에서 매년 여름마다 개최한다. 추수의 날- 하나님의 선하심과 섭리 가운데 교회 -확장 일을 정하여 축하하는 날이다. Childern's Ministries (어린이를 위한 사역) - 어린이 주일학교 - 찬양과 하나님의 말씀과 재미있는 활동 등을 통해 신앙심을 키우는 주일 학교. - Caraway Street -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서미 스트릿"과 같은 행태의 프로그램으 으로써 주일 아침에 1학년부터 4학년까지를 대상으로 가면극, 또는 음악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 ChurchTime - 2학년에서 5학년까지를 대상으로 디자인된 이 프로그램은 주일아침 예배시 간에 이루어진다. 이 프로그램은 성경과목과 찬양, 구연동화, 비디오상영 등 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Nursery (탁아소) - 주일아침에 간난 아이들을 잘 돌봐준다. - Pionner Clubs - 학교 기간동안에 6살부터 12살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매주 수요일 밤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러 게임과 성경암송, 찬양, 그리고 각종 훈련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Childern's Christmas Pageant - 음악과 드라마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 - Childern's Learning -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또 영적인 가치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안전하고 교육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Outreach Ministries (전도사역들) 무디교회는 크리스챤들에게 지역사회 활동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 Branch Ministries - "이 사역은 무디교회 사람들에게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헌신할 수 있도 록 하며, 우리 도시의 특별히 필요한 세부사항들을 체계화해서 준비하 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Evangelism Explosion (복음전도 폭발)- 참석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신앙을 나누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깊이있는 훈련과 전도에 필요한 훈련 등 을 제공한다. - Light of lsreal Fellowship - 한달에 두 번정도 정기적으로 모여서 이스라엘의 메시야로써의 예수를 찬양하는 시간이다. - Passover Seder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유대교의 뿌리를 나타내기 위한 전통적인 유대교 식 사를 하게된다. - Moody Business Network - 한달에 한 번 점심식사를 베풀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시 카고 상업지구에 심는 일을 한다. 주중에 한 번 성경 공부시간 을 갖고 1년에 한 번 저녁식사연회를 갖는다. - Moody Business Nwtwork Sunday Seminer - 일반상업지구와 교회사이에 벌어진 틈을 이 주는데 도움을 주는 성인성경공부모임이 주 일 아침에 있다. - Moody In the Park -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나누는 목적에서 지역사회 주민들과 무디교 회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매년 여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축제행사 이다. 드라마, 음악 그리고 다른 특별순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 INTRD - Sinlge Focus에서 후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3개월에 한 번씩 갖게 되는데 주로 지 역주민 사람들에게 무디교회의 신앙과 사역들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 Prison Ministry - 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나 대회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 Vacation Bible School -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있고 유익한 캠프 프로그램으로 매년 여름 일 주일 동안 교회에서 있게 된다. - 수요저녁예배 at Pacific Garden Mission - 무디교회에 있는 각 개인들이 시카고 도시에 있 는 무숙자 주거지인 퍼시픽 가든 미션에서 한달 에 한 번 인도하는 예배이다. Music Minstry - Sanctuary Choir - 주일 찬양예배 시간에 새로운 스페샬 음악과 콘서트를 갖는다. 때때로 오케 스트라 반주와 독창 발표회도 갖는다. - Orchestra Ensemble - 어떤 특정 주일예배 시간에 자원해서 오케스트라 반주를 제공해 주는 음악가들이다. - Handbell Choir - 1년에 몇차례 교회 예배 때 노래한다. 주로 1학년부터 6학년 까지를 대상으 로 하고 있다. - Worship Band - 어느 특별한 주일 밤 예배나 그 밖에 다른 특별한 행사시에 공연한다. 이 시 간에는 좀더 다양한 현대적인 스타일의 찬양을 드리게 된다. Radio Minstry 무디교회에서 만들어지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미 전역에 그 이상 지역에 400개 이상의 라디오 스테이션을 통해 전파를 탄다. 라디오 프로그램들 - 매일 우리의 삶 속에 영감을 주는 15분 메시지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적 고찰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적 고찰 2003-12-25 10:29:08 read : 18 이 덕 휴 목 차 제1장 들어가는 글/ 2 제1절 작품에 대하여/ 2 제2절 저자의 생애와 사상/ 4 제2장 기독교의 본질/ 7 제1절 서문/ 7 1. 제1판의 서문/ 7 2. 제2판의 서문/ 8 제2절 서론/ 10 1. 인간의 본질/ 10 2. 종교의 본질/ 12 (1) 제1부 종교의 진실한 본질/ 14 1) 본질론/ 14 2) 신 또는 종교의 비밀/ 17 3) 소결/ 22 (2) 제2부 종교의 허위의 본질/ 24 1) 종교의 본질적 입장/ 24 2) 신의 본질/ 26 3) 사변적 신학비판/ 29 4) 모순의 변증법/ 30 5) 결론/ 32 제3장 나가는 글/ 34 제1절 비판/ 34 제2절 평가/ 38 제3절 비판에 대한 반성/ 41 * 참고문헌/ 45 ** 필자와 이 논문에 대하여/ 46 제1장 들어가는 글 제1절 작품에 대하여 본서『기독교의 본질』은 포이에르바하(L.A. Feuerbach, 1804-1872)가 1841년에 출간한 책으로서, 서론(1-2장)과 본문, 즉 제1부(3-19장) 및 제2부(20-28장)로 구성되었다. 서론부 제1장에서는 "인간 일반의 본질"을 서술하고. 제2장은 "종교 일반의 본질"을 도출해 내고 있다. 여기서 그가 종교와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소위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시도하는 데, 그 결정적 테제는 다음과 같다. "종교는 무한성의 의식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자기 의식, 다시 말해서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무한한 존재로서의 자기 의식이며 그것 이외의 어떤 것일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이러한 인식론적 가치의 전도를 해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종교의 내용과 대상이 철저히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신학의 비밀이 인간학이고 신적 본질의 비밀이 인간적인 본질임을 증명했다." 여기서 포이에르바하가 '증명'이라고 한 것은 학문에 있어서 한 가지 주장을 각양각색의 문제에 대하여 일관되게 해석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적용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일관성 때문에 그의 저서가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이 계속되는 것이다. 서론부의 제1장과 제2장은 사실상 제1부와 제2부의 총론부 라고 할 수 있다. 제1부와 제2부의 관계는 저자 자신이 붙인 제2판의 서문에서 엿볼 수 있다. "확실히 나의 저서는 부정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나의 저서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은 단지 종교의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일 뿐, 종교의 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저서는 2부로 나누어진다. 그 중 제1부는 요점에 관해서는 긍정적이며, 부록을 포함한 제2부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그러나 양 부분에서는 동일한 것이 증명되고 있으며 단지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즉 제1부는 종교를 종교의 본질, 즉 종교의 진리로 인도하며, 제2부는 논박이다. 따라서 제1부는 신학이 인간학이라는 것의 직접의 증명이며 제2부는 간접의 증명이 된다. 그러므로 제2부는 필연적으로 제1부로 환원된다. 제2부는 전혀 독립된 의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제2부는 단지 제1부에서 말하는 의미와 반대되는 의미의 종교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제1부에서 말하는 의미의 종교가 정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제1부에서는 주로 종교를 취급하고 제2부에서는 신학을 취급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이 책을 칸트(Immanuel Kant, 1729-1804)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구상했으며, 본서의 구성도 칸트의『순수이성비판』과 유사한 서문과 제1부, 제2부 등으로 집필하였다. 1841년 3월 30일 에어랑겐 대학의 사강사 포이에르바하가 바이에른 내무성으로부터 파직통고를 받았을 때, 그를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만든『기독교의 본질』제1판이 인쇄되고 있었다.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제목은 발행인 비간트(Otto Wigant)가 붙인 것이며, 이는 종종 있는 일로서 상업성을 위하여 적당하고 인기 있는 제목을 제공하는 경우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자신의 책을 모든 것을 압도하는 칸트의 저작『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2)의 모델을 따르면서 그 대칭물이 되도록 구상했다. 이에 따라 그는 본서의 제목을『순수비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Unvernunft)이라 명명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이 책을 포이에르바하가 당초 제시했던 제목으로 불러도 좋다. 왜냐하면, 이념 정책적일 뿐만 아니라 순수이성비판과의 형식적 유사성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이에르바하의 서론은 칸트의 서문처럼 본론을 두 개의 주요부분으로 구획짓고 있으며,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코페르니쿠스처럼 회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선험적 미학과 분석론(순수이성비판의 제1부문)은 본서의 제1부인 "종교의 진실한 본질, 즉 종교의 인간학적 본질"(인간의 본질과 모순되는 종교)에 대응한다. 여기서는 신적인 제 가치의 형성에 작용하는 한편, 인간지성의 유한한 능력도 동시에 서술하고 있다. 선험적 변증론과 방법론(순수이성비판의 제2부문)은 본서의 제2부인 "종교의 허위의 본질"(인간의 본질과 모순되는 종교)에 대응한다. 여기서 교리의 체계는 이미 발전시켰던 방법에 따라 파괴되고 종교적 투사(投射)가 갖는 병적인 지적 성격이 폭로된다.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 종교현상은 그 자체가 비판의 목적은 아니었다. 종교란 단지 그가 새로운 학문을 정초 시키는데 사용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였다. 제2절 저자의 생애와 사상 포이에르바하(Feuer: 불, Bach: 시냇물)라는 문자적 의미는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의 대립이다. 전통적으로 그의 가계는 알려진 바대로 유명한 신학자. 법률가. 예술사가. 수학자·화가 그리고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이자 그의 부친 안젤름 포이에르바하(Paul Johan Anselm Ritter von Feuerbach, 1775-1833)를 배출한 '불의 강'의 집안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확신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자와 철학자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당신들 사변적인 신학자와 철학자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만일 당신들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면, 다시 말하여 진리에 접근하려 한다면 종래의 사변철학과 철학과 편견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당신들의 진리와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불의 강'을 통과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불의 강은 현대의 연옥(purgkatoium)이다. 철학자인 동시에 법률가인 아버지 안젤름 포이에르바하(Paul Johann Anselm Ritter von Feuerbach, 1775-1833)는 원래 타당한 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법은 인간에 의해 입법되는 것이며, 법과 도덕은 분리되는 것이라는 소위 법률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재판관이란, 엄격한 결과를 자의나 주관적 가치의식으로 완화시키거나 변경시킬 수 없으며, 오직 법 아래에서만 존재한다는 법치주의자였다. 1808년 작위를 받은 안젤름 포이에르바하는 형법의 형벌기능에 대한 위하설(威 說)을 주장하여 이른바, 심리강제설에 의한 일반예방이론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여 상대적 형벌이론을 주장하였으며, 오늘날 형법학의 최고의 이념인 "법률 없으면 형벌도 없다"(nulla poena sine lege)라는 명제 하에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수립하는데 공헌하였다. 당시까지의 형법학계는 소위 칸트와 헤겔(G.W.F. Hegel, 1770-1831)이 주장한 형법의 자기목적성에만 의지하는 절대적 형벌이론에 근거한 응보형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1798년에 트레스터(wi1helmine Tr ster)와 결혼하여 위로 세 아들을 낳고 이어서 1804년 7월 28일 란쯔후르트에서 네 번째로 태어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는 카톨릭 의식에 따라 바이에른의 시 교구에서 Jodocus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아버지 안젤름과 어머니 트레스터는, 비록 아버지가 정부와 지냈을지라도 다섯 아들을 낳은 후에도 딸 을 셋이나 더 두었다. 포이에르바하는 스스로 쓴 익명의 사전에서 자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1804년 7월 28일생. 형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저술가로서 가장 활동적임. 아버지의 학문을 계승할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즉 훈장도 작위도 얻을 수 없는 분야에서 활동함. 그는 먼저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에어랑겐에서 몇 년간 강의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학문 외에는 단지 경건한 양(羊)의 사육만이 번창하고 있는 대학'이 자신에게 적합한 곳이 아님을 깨닫고 '독자적이고 조용한 생활에서만 성숙될 수 있는 사상을 잉태하고 있음을 느끼고' 안스바하 부근의 시골로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저술활동을 1830년 아직 체계를 갖추지도 않았고 저자의 이름도 없는 저술인 -그러나 위대한 천재성과 풍부한 표현으로 가득찬- 『죽음과 불멸성에 대한 고찰』(Gedanken ber Tod und unsterblichkeit, 1830)로 시작했다. 그는 용암의 흐름과 같은 이 저술에서 젊음의 불꽃을 태우고 자신의 후기의 철학적 발전을 선취하여 풍자시의 형태로 대담하게 표현하고는 이를 더욱 전진시켜 나가는 대신 자신의 주관성을 순수하게 객관적인 요소 안에서 극복하고 또 형성하기 위해 철학사로 후퇴한다. 이렇게 자신의 본질을 억제하고 포기했던 시절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는 편견이 생기게 되었다. 그 편견이란 그가 이미 타인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재생하고 발전시키는 사상가이기를 그치고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헤겔 학파에 귀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의 비판의 시기는 『기독교의 본질』이후 종막을 내린다. 왜냐하면 이 저술에서 비판의 과제는 단순히 대상을 분석하여 모순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대상을 하나의 포괄적 원리로부터 발생적으로 산출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출의 근거는 '자연이라는 근거 위에서의 인간'이다. 이시기를 우리는 이전의 역사적 시기나 비판적 시기와 구별하여 실증적 또는 생산적 시기라고 명명할 수 있는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의 세 번째 시기라고 한다. 포이에르바하의 의미 다시 말하여 그의 철학적 의미를 전개시킨다는 것은, 이는 이미 그가 애초부터 역사와 경험 일반을 그의 사상의 초석으로 삼았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제2장. 기독교의 본질 제1절 서문 1. 제1판의 서문 저자는 지금까지 여러 저작에서 종교와 기독교, 신학과 사변적인 종교철학에 관하여 자신의 사상을 잠언(箴言)이나 논쟁의 형식으로 다루었다. 이 책의 특징은 한정된 주제에 대한 원리를 포함한다. 그것은 적극종교(positiven Religion)의 철학 또는 계시의 철학을 위한 원리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신화학(神話學)이 가지는 유치할 만큼 공상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철학 또는 사변철학을 위한 원리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기독교 신화학은 이야기로서 전해지는 허황 된 이야기를 그럴싸한 사실로서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일찍이 스콜라 철학이 그랬던 것처럼,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신앙개조(Articulus fidei)를 논리학적, 형이상학적 진리로서 논증한다.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철학을 위해 종교를 희생하며, 기독교적 신화학은 종교를 위해 철학을 희생한다.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종교를 제멋대로 사변적인 장난감으로 삼으며, 기독교적인 신화학은 이성을 공상적인 종교적 유물론의 장난감으로 삼는다. 확실히 철학과 종교가 일반적으로 양자의 種差를 제외하면 동일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사유하는 존재자와 신앙하는 존재자는 하나의 동일한 존재자이기 때문에 종교의 심상은 동시에 사상과 사실을 표현한다. 그러나 신앙과 이성사이의 본질적 구별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에서 종교의 형상은 사변적인 종교철학으로 고찰되지 않고 사실로서 고찰되지도 않으며 다만, 형상으로 고찰된다. 즉 신학은 기독교적 신화학에서 처럼 신비적 실용학으로서 취급되지 않고 사변적 종교철학에서처럼 본체론으로서 취급되지도 않으며 정신병리학으로으로 취급된다. 이 책의 목적은 정신적 수치료학(Pneumatishe Wasserheilkunde)을 촉진하고 자연적 이성이라는 冷水의 용법과 효용을 가르치며 고대 이오니아인의 단순한 수문학(hydrologie)을 사변적인 종교철학의 영역에서 부흥시키는 것이다. 탈레스(Thales, B.C. 640/24-546경)에 의하면, 물은 모든 사물 및 존재자의 근원이며 신들의 근원이기도 하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43)에 따르면. 만물이 탄생할 때에 특수한 존재자로서 물을 돕는 정신 또는 신은 명백히 훗날의 이교적인 유신론을 생각해낸 덤에 불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의 놀라운 치유능력이 있는 것이다. 수문학에서의 물은 단지 물질적인 생식수단이었지만, 포이에르바하의 물은 정신적 치료학으로서의 물이라는 것이다. 2. 제2판의 서문 나는 정신적인 자연과학자일뿐이다. 자연과학자는 물질적 수단이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정신적인 자연과학자로서 이 책을 썼다. 이 새로운 철학은 지금까지의 철학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원리로서 초인간적, 초자연적, 곧 반인간적, 반 자연적인 종교나 사변에 의해 부패하고 불구가 된 모든 인간에게 반항하는 철학이다. 단지 사유되었을 뿐인 추상적 존재자를 자신의 원리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존재자, 가장 실재적인 참된 실재원리를 자신의 원리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철학은 실재원리를 자신의 원리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철학은 사상을 그 반대물로부터, 곧 물질(Stoff)로부터, 실재(Wesen)로부터, 감각(Sinn)으로부터 산출하며, 자신의 대상을 사유에 의해 규정하기 전에 먼저 감각적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종교의 현존재를 폭로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다. 설사 종교 또는 오히려 신학이 그것을 거부하려고 할지라도 인간을 숭배한 것은 내가 아니라 종교이다. 나만 "신이 인간이며 인간이 신이다"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종교 그 자체도 그렇게 외친다. 인간이 아니라 단지 합리적인 존재일 뿐인 그러한 신을 거부하고 부인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종교 자체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우선 신을 인간으로 만들고 그리고 다음 지금 비로소 인간적으로 형성되고, 느끼고, 생각하는 신을 자신의 숭배와 존경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의 모순에 가득 찬 거짓덩어리와 속임수 덩어리를 제거했을 뿐이다. 확실히 나의 저서는 부정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의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일 뿐, 종교의 인간학적인 본질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저서는 2부로 나누어진다. 그중 제1부는 요점에 관해서는 긍정적이며, 부록을 포함한 제2부는 종교를 종교의 모순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양 부분에서 동일한 것이 증명되고 있으며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제1부는 종교를 종교의 본질로 인도하고 제2부는 종교를 종교의 모순으로 인도한다. 제1부는 발전이고 제2부는 논박이다. 따라서 나는 제1부에서 신학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학이라는 것, 신학의 본질(신적 존재)의 술어와 인간의 본질(인간 존재)의 술어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다는 것, 따라서 신적인 주어(주체) 또는 본질(존재자)과 인간적인 주어(주체) 또는 본질(존재자) 사이에도 아무 구별이 없이 양자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정신의 꿈이다. 그러나 우리는 꿈속에서도 무 또는 천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현실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종교에 대해서 행하는 작업은 오직 종교에 눈을 뜨게 하는 것, 안쪽에 향하여 있는 종교의 눈을 바깥쪽으로 돌려주는 것, 바꿔 말하면 표상 또는 상상 속의 대상을 현실 속의 대상으로 전화시키는 것만이 내가 종교에 대해 행하는 작업의 전부이다. 제2절 서론 1. 인간의 본질 종교는 동물과 본질적인 차이점에 기초한다. 인간이 동물과 본질적으로 구별짓는 것은 의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의식은 자기의 유(Gattung), 자기의 본질성(wesenheit)이 사고의 대상이 되는 본질(존재자, 있는 것)에게 있을 뿐이다. 의식이 개체와 관계하며, 학문에서는 유와 관계한다. 그러한 오직 자신의 유, 자신의 본질성이 사고의 대상이 되는 본질만이 다른 사물 또는 다른 본질을 그들의 본질적인 본성에 따라 사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종교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종교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교한 무한자(Unendlich, infinite)의 의식이다. 따라서 종교란 인간이 자기의 본질, 즉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는 본질이 아니라 무한한 본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식이다. 실제로 유한한 존재자는 무한한 존재자에 대해 극히 미미한 예감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물론이다. 무한자에 관한 의식에서는 주체가 그 자신의 본질의 무한성을 자신의 대상으로 가진다. 그러나 인간이 의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 의지, 그리고 심성이 그것이다. 완전한 인간에게는 사유하는 힘, 의지하는 힘, 심정의 힘이 필요하다. 사유의 힘은 인식의 빛이고 의지의 힘은 성격의 에너지이며 심정의 힘은 사랑이다. 이성과 사랑과 의지의 힘이란 완전성이고 최고의 힘이며 인간 그 자체의 절대적 본질이며 인간의 현존재의 목적이다. 인간은 인식하고 사랑하고 의욕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참된 존재자는 사유하고 사랑하고 의욕하는 존재자이다. 인간 안에 있고 개개의 인간 위에 있는 신적인 삼위일체란 이성과 사랑과 의지의 통일이다. 이성, 의지, 사랑 그리고 심정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며, 인간은 오직 그것들에 의해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인간에게 혼을 불어넣어 주고 인간을 규정하며 인간을 지배하는 힘으로서, 그리고 신적이고 절대적인 힘이다. 인간은 그들 힘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 인간은 대상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대상에서 자기자신을 의식한다. 대상의 의식은 인간의 자기의식이다. 우리는 대상에 의해서 인간을 의식한다. 대상에서 인간의 본질이 나타난다. 이것은 정신을 물론이고 감성에서도 나타난다. 대상은 인간의 노출된 본질이며 인간의 진실하고 객관적인 자아이다. 의식이란 자기 확증이며 자기긍정이며 자기사랑이며 자기자신의 완전성에 대한 기쁨이다. 의식은 어떤 완전한 존재자를 특색 짓는 표징이다. 의식은 어떤 만족하고 완전한 존재자 속에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한자를 사유한다면, 감정 능력의 무한성을 느끼고 또 확증하는 것이다. 또한 무한자를 느낀다면, 감정 능력의 무한성을 느끼고 또 확증하는 것이다. 이성의 대상이란 자기자신에게 대상적인 이성이며 감정의 대상이란 자기자신에게 대상적인 감정이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초월적인 사변이나 종교의 견지에서는 단지 희생적인 것, 주관적인 것 또는 인간적인 것, 신적인 것, 본질, 대상, 그 자체라는 것이다. 감정이 지각하는 신적 본질은 감정의 본질이 자기자신에게 황홀해지고 도취된 것, 즉 환희에 취해 자기 안에서 행복에 잠기는 감정이다. 이것은 감정이 무한자의 기관, 종교의 주관적 본질로 될 때에는 종교의 외적 표현들이 그 객관적인 가치를 잃는다는 것을 보아도 이미 명백해진다. 인간은 확실히 공상의 힘에 의해 자기보다 더 높은 다른 종류의 개인을 표상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자기의 유, 즉 자기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2. 종교의 본질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대상, 즉 감성적 인간을 포함하여 인간의 관계에 관해 주장한 것은 특히 종교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적용된다. 감성적 대상에 대한 의식은 자기의식과 구별된다. 그런데 종교적 대상의 경우에는 의식은 자기의식과 직접적으로 일치한다. 종교적 대상은 인간 안에 있으며 그것 자체로서 내면적인 대상이다. 때문에 종교적 대상은 인간의 자기의식, 인간의 양심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끊을 라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종교, 적어도 기독교는 인간이 자기자신에 대해 취하는 태도, 또는 인간이 자기의 본질에 대해 취하는 태도이다. 신적 본질이란 인간적인 본질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즉 인간의 본질이 개개의 인간의 제한으로부터 분리되어 대상화 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신적 본질이란 인간의 본질이 개인으로부터 구별되어 다른 독자적 본질로서 직관되고 숭배된 것이다. 그 때문에 신적 본질의 모든 규정은 인간 본질의 규정이다. 이것은 신의 술어, 즉 특성 또는 규정에 대한 관계에서는 실제로 주저 없이 인정되지만 주어, 즉 그들 술어의 기체(근본, 본질)에 대한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어를 부인하는 것은 무신앙, 무신론으로 간주되지만, 술어를 부인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신의 술어를 부인하는 방법도 있다. 사람들은 신적 본질의 술어가 유한한 인간적 규정임을 인정한다. 인간은 자기가 진실한 것으로서 표상하는 것을 곧바로 현실적인 것으로서 표상 한다. 인간에게는 현실적인 것만이 진실한 것이며 상상된 것과는 대립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개념, 즉 실존의 개념은 진리의 첫째가는 개념이며 근원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신이란 인간의 본질이 최고의 진리로서 직관된 것이다. 그러나 신 또는 종교란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파악하여 최고의 본질로서 직관할 때의 규정성이 각양각색인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하다. 인간이 신을 사유할 때의 이러한 규정성은 인간에게는 진리성이며 동시에 최고의 실존 또는 실존자체이다. 따라서 신이 규정된 본질임과 같은 이유로 신은 실존하는 현실적 본질이다. 왜냐하면 신의 질 또는 규정성은 인간 자신의 본질적인 질 바로 그 자체이지만, 특정한 인간은 자기의 본성, 자기의 실존, 자기의 현실성을 오직 자기의 규정성 안에서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의 술어와 인간의 술어의 동일성을 망각하고 그와 함께 신적 존재자와 인간적 존재자의 동일함을 망각하기 위해 신은 무한한 존재자로서 무한히 풍부하고 다양한 술어들이라는 표상에 구원을 청한다. 그 술어들 가운데서 우리가 현세에서 인식하는 것은 약간 닮았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적인 존재자와 약간 다른 것은 그것 이외의 술어, 즉 피안에서의 일이다. 무한히 풍부한 신의 술어들의 비밀은 다양하고 무한하게 규정될 수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감성적인 존재자로서의 인간적인 존재자가 가지는 비밀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대상화하며 그런 다음에 다시 자기를 이와 같이 대상화되고 주체는 인격으로 전화된 본질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것이 종교의 비밀이다. 여기서의 인간은 신의 대상이다. 따라서 믿음이 깊은 인간은 지가의 심성과 행위를 신의 대상으로 삼으며 인간을 신의 목적, 즉 정신에서 대상인 것은 행동에서는 목적이므로 신의 활동을 인간의 구원수단으로 삼은 것에 의해서 인간의 활동의 허무성을 다시 취소한다. 인간이 선해지고 행복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활동한다. 따라서 인간은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을 통해서 오로지 자기자신을 목적으로 한다. 분명히 인간은 신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신은 인간의 영원한 도덕적 구원 이외의 어떤 것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 안에서 인간은 단지 인간자신의 활동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나는 종교의 발전과정을 일반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므로 종교의 발전과정은 인간이 점점 신을 거부하고 자기자신을 승인하는 일이 많아지다는 것 속에서 성립한다. 애초에 인간은 만물을 구별 없이 자기 외부에 두었다. 이것은 계시신앙에 나타난다. 이스라엘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직 극히 자연적인 충동도 적극적인 신적 명령으로 생각하였다. 이 예로부터 인간은 자기를 거부하면 할수록 신은 그만큼 저급해지고 또 그만큼 더 보통의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인간의 충동이나 격정을 그것의 특성이나 내용에 따라 구별지었다. 기독교는 오직 선한 격정, 선한 기질, 선한 사상만을 신의 계시, 신의 작용, 즉 신의 심성, 신의 격정, 신의 사상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신이 계시하는 것은 신 자신의 규정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내면적인 도덕적 깨끗함을 외면적인 육체적인 깨끗함과 구별하지만, 이스라엘의 종교는 양자를 동일시했다.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와는 반대로 비판과 자유의 종교이다. 이스라엘은 외면적인 것조차 자기의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외면적인 것은 자율에 두었다. 즉 기독교는 이스라엘이 자기 외부에, 신 안에 두었던 것을 인간 안에 두었던 것이다. 이 적극주의의 가장 완결된 발로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인에게 기독교도는 교의를 믿지 않는 사람(Esprit fort, 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며 자유사상가이다. 사물은 이와 같이 변한다. 어제의 종교는 오늘은 이미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오늘 무신론으로 인정되는 것이 내일은 종교로 인정된다. (1) 제1부 종교의 진실한 본질, 즉 종교의 인간적인 본질 1) 본질론 종교는 인간이 자기자신과 분열한 것이다. 즉 인간은 종교에서 신을 자기와 대립한 존재자로서 설정한다. 신의 본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며 인간의 본성은 신이 아니다. 신은 무한자이고 인간은 유한자이다. 신은 영원하고 인간은 일시적이다. 신은 완전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신과 인간은 양극이다. 신은 단적으로 긍정적인 것이자 모든 실체성의 총체이며, 인간은 단적으로 부정적인 것이자 모든 허무성의 총체이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 안에서 자기자신의 감추어진 본질을 대상화한다. 따라서 종교는 신과 인간의 대립·갈등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그 갈등은 인간과 인간 자신의 본질과의 갈등이다. 만일 종교의 대상인 신적 본질(존재자)이 실제로 인간의 본질 이외의 본질이었다면 분열이라든가 같등은 일어날 수 없었다. 분열은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하나이어야 하고 또 하나일 수 있는 본질사이에서만 생기는 것이다. 이 본질은 지성과 이성 또는 오성(Verstant, understanding)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인간의 대극(對極)으로서의 신은 인간적인 본질, 즉 인격적으로 인간적인 본질이 아니라면 오성의 본질이 대상화된 것이다. 신의 본질은 오성의 자기의식이며 오성이 자기자신의 완전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이다. 오성은 심장과는 달리 욕망이나 열정이나 욕구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바로 그 때문에 결함이나 약점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순수한 오성인은 일면적이지만 특징적 규정성에서 오성의 본질을 상징화하고 인격화하는 인간이다. 이러한 순수한 오성인은 감정인이 갖는 고뇌나 열정이나 탐닉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오성은 본원적·원초적인 존재자이다. 오성은 만물을 제1원인인 신으로부터 끌어낸다, 오성은 오직 자기 안에서만 세계의 근거와 목적을 발견한다. 당신이 신 안에서 긍정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오성이다. 신이란 당신의 최고 개념인 오성이며 당신의 최고의 사유능력이다. 오성은 따라서 가장 실재적인 존재, 즉 옛날의 존재론적 신학(Ontotheologie)에서 말하는 어떤 것보다 더 실재적인 존재자이다. 또한 오성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자이며 절대적 주체이다. 오성의 통일성은 신의 통일성이다. 그 자체 절대적 통일성으로서의 자기자신(오성자신)을 의식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오성은 무한한 존재자이다. 따라서 오성은 통일성과 조정되며 유한성은 다수성과 함께 조정된다. 마지막으로 오성 또는 이성은 필연적인 존재자이다. 그것은 오직 이성의 실존만이 이성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이성도 어떤 의식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무이며, 존재는 비존재와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으로서의 신, 즉 오성의 무한한 본질, 일반적인 본질, 의인화하지 않은 본질이 종교에 대해 가지는 의의는 특수과학의 출발점인 일반적인 근본명제가 특수과학에 대해 가지는 의의 이상의 것은 아니다. 종교의 대상적인 본질이 인간과 다른 본질이라는 것은 그 본질의 본질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종교 안에서 자기를 만족시키기를 바란다. 종교는 인간의 최고의 선이다. 그러나 오성의 본질을 표현할 뿐인 신이 어떻게 종교를 만족시킬 것인가? 신은 종교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종교는 신이 아니다. 오성은 단지 인간에 관해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본질인 자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기독교도는 오직 자기만을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오성은 보편적이고 범신론적인 본질이며 우주에 대한 사랑이다. 그런데 특히 기독교는 전적으로 인신론(anthropotheistisch)적인 본질, 즉 인간의 자기자신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 보다 정확히 말하면 주관적으로 인간적인 존재자의 배타적인 자기긍정이라는 것이다. 오성은 전적으로 율법의 엄격함에 따라 판단한다. 심정은 자신에 순응하며 공평, 관대하며 동정심이 많고 인간적이다. 율법은 인간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며 사랑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사랑은 율법과 심정,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매개한다. 사랑은 신 그 자체이며 사랑 이외에는 어떤 신도 없다. 사랑은 인간을 신으로 만들고 신은 인간을 만든다. 사랑은 신과 인간의 참된 통일이며 정신과 자연의 참된 통일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신의 눈 속에서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피만이 신을 자비롭게 만들고 신의 분노를 가라앉힌다. 즉 우리의 가 용서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추상적인 존재자가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의 의식을 통해서 신 또는 자기와 화해한다. 신의 사랑의 의식, 즉 신을 그 자체 인간적인 본질로서 직관하는 것은 신의 성육신, 육화 또는 인간화의 비밀이다. 성육신이란, 신의 인간적인 성질이 감정적인 사실로서 드러나는 것이고, 인간화된 신이란 단지 신격화된 인간의 현상에 불과하다. 신이 인간에게로 내려온다는 것은 반드시 인간이 신에게로 올라간다는 것이 선행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즉 신성의 제1인격이 성육신 하는 것이 아니라 신 안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제2인격이 성육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2인격은 종교의 진실하고 전체적인 제1인격이다. 성육신이 신비적이고 불가해하고 사변적으로 보이는 것은 성육신의 출발점인 이 매개개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학이 사변철학과 어떻게 다른가는 다음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즉 인간학은 신비적인 가상(假像)에 의해 속고있는 특수한 경탄할 만한 비밀로는 보지 않는 것이다. 인간학은 신의 인간화라는 교의들 사랑으로 환원한다.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 더욱이 신은 자기 안에 아들을 가지고 있다. 신은 아버지이다. 인간성의 모든 관계는 신으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 인간적인 것은 신과 소원하지 않으며 미지의 것도 아니다. 성육신에서 종교는 자기자신에 대해 반성함에 있어서 신학으로서 말하고 싶지 않은 것, 즉 신은 철두철미하게 인간적인 존재자라는 것을 고백 할 뿐이다. 인간은 종교에서 자기를 신적인 활동의 대상이나 신적인 목적으로서 직관한다. 2) 신 또는 종교의 비밀 인간화된 신, 즉 그리스도의 본질규정의 하나는 열정(Passion,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사랑은 수난을 통해서 확실해 진다. 그리스도에 관련된 모든 사상과 감정은 수난이라는 개념에 집중한다. 사랑은 수난을 통해서 확실해 진다. 우선 그리스도에 관련되는 모든 사상과 감정은 수난이라는 개념에 집중된다. 신으로서의 신은 인간적인 완전성의 총체이며 그리스도로서의 신은 모든 인간적인 비참함의 총체이다. 고뇌(수난)는 기독교의 최고의 명령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그 자체가 수난사이다. 이교도에게는 감성적인 쾌락의 환상이 신들에 대한 예배 안에 혼합되어 있다면 기독교도 당연한 것이지만, 고대의 기독교도에게는 혼이나 심정의 눈물과 한숨이 신에 대한 봉사에 필요한 것이다. 신의 가장 내적인 혼, 즉 기독교에서는 신에 대한 내면적인 본질로부터 나오는 영적인 예배에서 나타나는 신이 참된 신이지 궤변적인 신학의 신이 인간의 참된 신은 아니다. 기독교는 수난의 종교이다. 우리가 오늘도 여전히 모든 교회 안에서 마주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의 초상은 우리에게 결코 구제자를 보여주지 않으며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수난자를 보여 줄 뿐이다. 신이 고뇌하는 것은 그러나 실은 신은 심정이다 라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심정은 모든 고뇌의 원천이며 총체이다. 고뇌를 가지지 않은 존재자는 심정을 가지지 않은 존재자이다. 그러므로 수난의 신의 비밀은 감정의 비밀이다. 종교는 인간의 본질이 자기자신 안에 반성되고 반영된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자신이 마음에 들고 자기자신에게 기쁨을 느끼며 자기를 사랑한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은 인간의 거울이다. 인간에 대해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인간에 의해 완전한 것이나 우수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인간에게 신이다. 감정이나 고뇌하는 능력을 가지지 않는 신은 느끼고 고뇌하는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만족을 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단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뿐 오성과 의지를 가지지 않은 존재자 또한 인간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 오직 전인을 자기 안에 포괄하는 존재자만이 전인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인간이 자기의 전체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이 삼위일체의 의식이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오성의 일반적 본질, 즉 신으로서의 신을 하나의 특수한 본질, 하나의 특수한 본질, 하나의 특수한 능력으로 끌어내린다. 우리는 단지 신학에 의해 삼위일체의 복제, 형상, 비유로서 특색 지어지고 있는 것을 사물 그 자체, 본질, 원형, 원물로서 이해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수수께끼를 푼 셈이다.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구상화하여 알기 쉽게 하고자 사용한 공식적인 형상을 주로 정신(Geist, mens), 오성(Verstant, intellectus), 기억(Ged chtnis, memoria), 의지(Wille, voluntas), 사랑(Liebe, amor 또는 caritas)이었다. 신은 사유하고 사랑한다. 사유된 것, 인식된 것, 사랑 받는 것은 신 자신이다. 자기의식의 대상화는 우리가 삼위일체 안에서 마주치는 최초의 것이다. 신의 자기의식이란 절대적 본질성 또는 본질성으로서의 의식에 관한 의식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신 그 자체, 단순한 존재자로서의 신은 단적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고독한 존재자, 즉 절대적 고독과 독립성이다. 사람은 혼자서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것은 오직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사랑할 때, 우리는 타자에게 의존한다. 사랑이란 자기와는 다른 존재자를 욕구하기 때문이다. 신적 존재자의 고독 속에 인격성에서는 신과 구별되지만, 본질에서는 신과 일치하는 존재자가 조정(措定)됨으로써 충족된다. 다시 말하여 아버지 신과 구별되는 아들 신이 조정됨으로써 만족된다. 아버지인 신은 나이며, 아들 신은 너이다. 나는 오성이고 너는 사랑이다. 그런데 오성을 동반하는 사랑 및 사랑을 동반하는 오성이 비로소 정신, 즉 성령이며 전인이다. 삼위일체에서의 제3인격은 두 개의 신적 인격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 이상의 것도 표현하고 있지 않다. 제3인격이란 아버지와 아들의 통일이며 연대성이 전혀 불합리하게 조정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분석의 특수한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다만 성령이란 주관적 측면으로 보아서 종교적 심성의 자기 표현, 종교적 감정의 표현, 종교적 영감의 표현이며 종교 안에서의 종교의 인격화, 대상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가족,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사랑의 유대를 보완하기 위해서 제3의 인격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여성적인 인격이 천국에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참으로 안성맞춤이다. 당초 마리아가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놓였던 것은 아버지가 마리아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모성적인 원리가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충분했다. 마리아는 오히려 삼위일체라는 관계를 나타내는 범주에 적합하다. 아들, 즉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아들은 그 자체에서 아버지의 남성적인 본질과 어머니의 여성적인 본질사이에 있는 중간본질이다.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서 가지는 사랑은 남성적인 본질이 여성적인 본질에 대해서 가지는 최초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신의 아들을 생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과 결부되어 왔다. 신의 어머니에 대한 신앙이 쇠퇴하는 곳에서는 신의 아들과 아버지인 신에 대한 신앙 또한 쇠퇴한다. 아버지가 진리인 것은 오직 어머니가 진리일 때뿐이다. 사랑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여성적이다. 신의 사랑에 대한 신앙은 신적 존재자로서의 여성적 존재자에 대한 신앙이다. 프로테스탄트교는 신의 어머니를 한쪽으로 밀쳐버렸다. 그러나 냉대 받은 여성은 그 대신 프로테스탄트교에 가혹하게 보복했다. 프로테스탄트교가 신의 어머니를 향해 삼위일체 전체에 향해졌다. 일단 신의 어머니를 오성을 위해 제물로 바치는 사람은 어느새 다시 신의 아들의 신비를 의인적(인격적) 표현으로서의 제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적 존재자가 배제된다면 확실히 의인적 표현이 은폐된다. 삼위일체의 신은 카톨릭교의 신이다. 삼위일체의 신은 내용이 풍부한 신이다. 이 때문에 신은 실제생활의 내용이 사상(捨象)되는 곳에서 요구된다. 생활이 공허할수록 신은 그만큼 더 풍부해지고 더 구체적이 된다. 신은 결핍의 감정으로부터 발생한다. 인간이 상실한 것이야말로 신이다. 따라서 공허함이나 고독함과 같은 허전한 감정은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는 존재자의 사회나 교제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종교 속에서 차지하는 본질적인 의의는 항상 제2인격의 본질 안에 집중되어 있다.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 동질, 동일한 본질)와 호모이우시오스(homoiousios, , 유질, 비슷한 본질)에 관한 격렬한 싸움은 비록 글자 한자의 차이에 불과 하였지만 공허한 싸움은 아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제2인격과 신의 동격성이었다. 교의학적 사변은 신의 형상인 신의 아들의 내적인 생성을 완전히 간과하면서 아들은 바로 신성의 형이상학적 관념으로부터 일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인격의 또 하나의 규정이며 형상의 본질과 관련된 것은 제2인격은 신의 말(Wort, Logos)이라는 규정이다. 말은 추상적인 형상, 상상 속의 사물이다. 또는 모든 사물이 항상 최후에는 사유력의 대상인 한, 말은 상상된 사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물의 말, 이름을 알면 사물 그 자체를 아는 것처럼 상상한다. 말은 구제하는 힘 행복하게 하는 힘, 해방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의 말이란 종교의 내부에서 인간에게 대상이 되는 신성이며 말의 참된 본질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말의 참된 본질을 인간의 말과는 구별된 특수한 본질로서 표상 한다. 자기를 계시하고 발현하고 표현하는 신인 제2인격은 신 안에 있는 세계창조의 원리이다. 세계가 신은 아니다(기독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싹은 이미 도래하고 있었다). 세계는 신과는 별개의 것이며 신의 대립물이다. 이 표현은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은 아들을 확실히 아들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세계는 적어도 신과 구별된다. 세계 창조의 과정은 심리학적(정신논리학적, psychologisch) 과정의 신비적인 표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의식과 자기의식의 통일화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신은 자기를 사유한다. 따라서 신은 자기를 사유함으로써 또한 자신과는 다른 것을 사유한다. 따라서 자기를 의식한다. 신이란 자기의식이 대상이나 본질(존재자)로서 조정(措定)된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사유함으로써 또한 자신과는 다른 것을 사유한다. 나는 너의 의식의 매개에 의해 세계의 의식을 획득한다. 이리하여 인간은 인간의 신이다. 인간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에 신세지고 있으며 타인이 없으면 물리적, 정신적인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추상적인 논리학적 범주에 의하면 신 안에 있는 세계창조의 원리는, 다른 것은 오직 차이성의 원리로부터 나올 수 있을 뿐이며 단순한 본질 자체로부터는 나올 수 없다. 기독교적 철학자나 신학자가 애써 무로부터의 창조를 변호하려 하지만 무로부터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근본명제를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적인 오성을 모든 사물을 자체 안에 총괄하는 정신적 물질로서 현실적인 물질의 근거로 삼았다. 사물(Ding)은 존재(existiren)하기 전에도 존재(sein)하고 있었다. 그 사물은 감관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정신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세계는 오직 세계 그 자체로부터 끌어낼 수 있을 뿐이다. 세계와 창조주로서의 신 사이의 구별은 단지 형식적인 구별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본질적인 구별은 아니다. 따라서 신의 본질이란 세계의 본질이 추상화되고 분리되어 사유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신의 본질이란 세계의 본질이 현실화되고 구체화되고 감성적으로 직관된 것이다. 신 안에 있는 자연의 교리는 자연주의를 통해서 유신론, 특히 최고의 존재자를 인격적 존재자로서 고찰하는 유신론을 확립하고자 한다. 인격적 유신론은 신을 모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인적적 존재자로 생각한다. 신이란 신의 존재이다. 신이란 신 자신의 본질이다. 이 점에서 유신론은 종교의 본질과 일치한다. 인격성은 신의 추상적인 신이다. 그러나 신이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신의 개념 안에 들어 있다. 인간은 신의 인격성 안에서 자기자신의 인격성의 초자연성, 불사성, 독립성, 비제한성을 찬미한다. 인격신이 하나의 진리성, 유일한 진리성인 곳에서는 자연은 아무런 실재적인 의의를 가지지 않으며, 실재적인 근거를 가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본래의 무로부터의 창조가 단 하나의 설명 근거이다. 왜냐하면 무로부터의 창조는 자연은 무라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표현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자연이 절대적 인격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의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오직 섭리나 기적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되고 설명되어질 뿐이다. 그러나 섭리는 인간에 관계한다. 섭리는 인간을 위해 사물을 마음대로 처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능한 법칙의 효력을 폐기한다. 자연의 섭리에 경탄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종교적 자연주의일지라도 자연주의에 속한다. 종교적 섭리는 오직 기적 안에서만 계시된다. 섭리는 인간의 특권이다. 섭리는 다른 자연적인 존재자나 사물과는 다른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섭리는 인간을 세계의 연관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러므로 오직 특수한 섭리만이 종교적 의미에서의 섭리이다. 섭리에 대한 신앙은 자기자신의 가치에 대한 신앙이다. 섭리가 믿어지는 곳에서는 신에 대한 신앙은 섭리에 대한 신앙에 의존한다. 섭리가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신이 신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종교적 섭리에 대한 신앙은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신앙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자기를 자연과 구분한다.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인간의 신이다. 범신론과 인격신론의 구별은 다음의 질문으로 해소된다. 즉 인간의 본질은 세계의 밖에 있는 본질인가 아니면 세계의 안에 있는 본질인가, 초자연적인 본질인가 아니면 자연적인 본질인가 하는 질문이다. 범신론은 인간을 자연과 동일시한다. 인격신론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독립시키며, 인간을 부분에서 전체로 바꾸어 독립된 절대적 존재자로 만든다. 이것이 범신론과 인격신론의 구별이다. 따라서 세계의 창조자란 다음과 같은 인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즉 세계는 창조된 것이며 의지의 산물, 다시 말하여 자기를 가지지 않는 실존, 위력이 없는 실존, 허무적인 실존이라는 증명 또는 의식에 의해서 자기자신의 중요성, 진리성, 무한성의 확실성을 자기에게 주는 인간이다. 따라서 세계는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무는 세계 자신의 무이다. 이상에서 말한 창조의 비밀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오직 다음의 것을 명심하라. 즉 창조에서는 결코 흙, 풀, 짐승, 물 -이것들에게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창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자나 영혼의 창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은 그 자체가 인격으로서의 인격성의 개념 또는 이념이며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자기 자신 안에 틀어박혀 있는 주관성이며 절대적 존재 및 본질로서 조정된 무욕구의 자기 충족태이며, 너를 가지지 않는 나이다. 3) 소결 그리스도는 주관성의 전능이며 자연의 온갖 속박과 법칙으로부터 구출된 심정이며 세계를 배제하고 오로지 자기 혼자에만 집중된 심정이며, 심정의 모든 소망의 심정이며, 공상의 승천이며, 심정의 부활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구별이 필요하다. 인간은 기독교에서 자기를 오직 자기자신에게로 집중시켰고 자기를 세계 전체의 연관으로부터 떼어놓았으며 자기를 자기자신에게 만족하는 전체로 만들고 세계의 밖에 있고 또 세계를 초월하는 절대적 본질로 만들었다. 인간은 더 이상 자기를 세계에 속하는 존재자로 간주하지 않고 세계와의 연관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이교도는 단지 인간을 우주와 연관시켜 고찰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교도는 인간을 오직 타인과 연관시켜, 공동체와 결합해서 고찰했다. 이교도는 적어도 철학자로서는 개체(인간 또는 개인)를 유와 엄밀히 구별했고 부분으로서의 개체를 인류라는 전체와 구별했으며 그리고 부분을 전체에 종속시켰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유를 방치하고 개체만을 안중에, 심중에 새겨두었다. 기독교는 이교에 대한 직접의 대립물이다. 기독교는 이교의 대립물로서 이해될 때에만 진실로 이해되고 독단적인 사변적 억지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의 대립물이 허위인 한, 기독교는 진실하지만 기독교의 대립물이 진실인 한 기독교가 허위이다. 기독교는 개체를 위해 유를 희생시켰다. 이교는 개체를 유라는 전체와 구별해서 오로지 부분으로서 이해했으며 그에 반해 기독교는 개체를 유와 직접적이고 무차별한 통일성 안에서 이해하였다. 기독교에서 개체는 직접적인 섭리의 대상이다. 즉 신적 존재자의 직접적인 대상이었다. 이교도는 개인의 섭리를 유, 법칙 그리고 세계질서를 매개로 해서 믿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개별적 존재자를 일반적 존재자와 동일시했다. 신은 하나의 개체로서 유라는 개념이다. 신은 유라는 개념 또는 본질이다. 더구나 신으로서의 "유의 본질"은 유로서 일반적 본질로서, 모든 완전성의 총체로서, 실제의 제한이든 가공의 제한이든 개별적인 본질이다. "신의 본질과 실존은 동일하다"는 것은 신은 하나의 실존, 개별적 본질이며 동시에 유개념(Gattungsbegriff)또는 유의 본질(Gattungswesen)말고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의 유와 개체성의 이러한 직접적인 통일성을 명확하게 상징하는 것은 기독교도의 실제의 신인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원상이며 인류의 실존하는 개념이며 신적인 완전성의 총체이며, 순수한 천상의 인간, 유적 인간이며 시조 아담(Adam Kadmon)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서의 시조 아담은 하나의 인격으로서 직관된다. 그리스도, 즉 종교적인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간이 아니라 역사의 끝이다. 인간의 유로서의 개념 및 생활의 의미는 기독교가 지배함과 동시에 소멸해 버렸다. 거기서는 또한 인간은 신 안에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신은 그 자체 이 목표가 달성된 것이며 인류의 이 최고 목적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신은 각 개인에게 따로따로 나타난다. 오직 신만이 기독교가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도는 반드시 타인이나 인류나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오늘날 기독교 특히 개신교들의 자기 편집에 가까울 정도의 편협한 신앙적 배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기독교도에게는 타인에 대한 내적 욕구가 결여되어 있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는 이것으로써 수행되었다. 우리는 신이 세계의 밖에 가지고 있는 자기의 본질, 신의 초자연적인 본질, 신의 초인간적인 본질을 인간적 본질의 성분으로 환원시켰다. 인간적 본질의 성분은 신의 본질의 근본성분이다. 우리는 결론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인간은 종교의 시작이자 중간이며 끝이다. (2) 제2부 종교의 허위의 본질, 즉 종교의 신학적 본질 1) 종교의 본질적 입장 종교의 본질적 입장은 실천적(praktisch)인 입장이다. 즉 여기서는 주관적인 입장이다. 종교의 목적은 인간의 복지, 구원, 행복이며,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인간의 관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즉 신이란, 영원의 구원이 실현된 것 또는 인간의 구원과 행복을 실현하는 무제한적인 위력이다. 기독교만큼 강하게 인간의 구원을 강조한 종교도 없다. 기독교는 특히 이점에서 다른 종교와 구별된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스스로를 신의 교리라고 부르지 않고 구원의 교리라고 부른다. 신은 본질적으로 종교의 대상이지 철학의 대상이 아니며, 심정의 대상이지 이성의 대상이 아니며 심정의 필요의 대상이지 정신의 자유의 대상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신은 이론적 입장의 본질이 아니라 실천척 입장의 본질을 표현하는 대상이며 존재자 이다. 신과 인간사이에 세계라는 표상, 즉 제2원인이라는 표상이 끼어 드는 곳에는 일반적으로 종교는 폐기된다. 종교는 신과 인간사이에 있는 사물의 현존재에 관한 예감을 단순히 감성적 자연적인 직관으로부터 받을 뿐이다. 그리고 종교는 일반적으로 혼자서는 제2원인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제2원인의 존재는 종교에서 보면 오히려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게2원인은 인간을 신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의 본질로서 특색 지은 것을, 종교 자신이 확증하는 종교의 본질적인 작용은 기도이다. 기도는 전능하다. 경건한 사람이 기도할 때 간절히 바라는 것을 신은 충족시켜준다. 그는 자연의 위력을 다름 아닌 기도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한다. 기도할 때 경건한 사람은 자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나의 초자연적인 수단을 택한다. 신은 그에게서 동떨어진 제1원인이 아니라 모든 자연적인 결과의 가장 가까운 동력인 이다. 기도의 직접 작용은 기적이다. 그러므로 기적은 본질적으로 종교의 사고방식 안에 포함되어 있다. 종교는 모든 것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설명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종교의 본질과 무관하며 단지 경험적인 또는 감성적인 사고방식에서만 그러할 뿐이다. 그러나 종교가 시작되는 곳에서는 기적이 시작된다. 참된 기도는 하나 하나가 기적이며 기적을 일으키는 힘의 작용이다. 종교적인 기적은 자연적인 기적과 절대로 다르다. 다만 사람들은 이성을 귀머거리로 만들거나 자연과학이라는 가상아래 종교적인 기적을 합리성과 현실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기적과 자연적인 기적을 항상 혼동하는 것이다. 2) 신의 본질 종교란 인간이 자기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관계하는 것이다. 여기에 종교의 진실성과 도덕적 치유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 안에서 자기자신의 본질로 관계하는 것 아니라 자기와는 대립된 다른 존재자로서의 자기의 본질에 대해서 관계한다. 여기에 종교의 비진실성, 종교의 한계, 이성이나 도덕과 종교의 모순이 있으며 또한 여기에 종교적 광신의 유해한 원천이 있으며 나아가 피비린내 나는 인간 희생의 최상의 형이상학적 원리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종교사라는 비극 속에 존재하는 모든 잔학과 소름끼치는 장면의 시원적 근거가 있다. 다시 말하여 종교가 신학이 된다면, 인간과 신의 통일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종교의 근원에는 신과 인간사이의 질적인 구별 또는 본질적인 구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대 유대교에서 여호와는 실존 측면에서 보아 인간적인 개체와 구별된 본질에 불과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여호와는 온전히 인간과 똑같았다. 후기 유대교에서 비로소 여호와는 인간으로부터 매우 날카롭게 분리되었으며 신인동감동정설(Anthropopathismus), 인간의 감정을 신에게 이입시키는 것에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비유 안으로 도피했다. 기독교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문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은 아직 나중처럼 그렇게 결정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특히 바울에게는 그리스도는 아직도 하늘과 땅 사이, 신과 인간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불명확한 존재였다.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천사 중에 첫 번째 천사였으며, 최초로 창조되기는 했지만 창조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신은 천사나 인간의 아버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명백하게 신과 동일시하고 그리스도를 신의 외아들로 만들고, 그리스도가 인간이나 천사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에게 피조물이 아닌 영원한 존재자라는 독점권을 주었던 것이다. 종교에 대한 반성, 즉 신학은 신의 본질을 인간의 본질과 다른 본질로 만들고 그것을 인간의 외부로 끌어낸다. 이러한 방식 중에서 개념상 최초의 것은 정식의 증명 대상이 되는 신의 실존이다. 신의 현존재에 관한 증명은 내적인 것을 이적인 것으로 전화시켜 인간에게서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신은 실존을 통해서 사물 그 자체가 된다. 내가 신에 대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은 나에 대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의 필연적인 귀결의 하나가 무신론이다. 신의 실존은 경험적인 또는 감성적인 실존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주지하듯이 칸트는 신의 현존재에 관한 증명을 비판하면서 신의 현존재는 이성으로부터 증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칸트는 헤겔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오히려 칸트는 적절하다. 즉 개념에서 실존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성은 자신의 객체를 자신의 감관의 대상으로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경험론과 유물론이 성행한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신의 경험적 실존이라는 개념이 완전하게 발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신의 실존에 대한 신앙은 인간의 실존, 자연의 실존과 구별된 하나의 특수한 실존에 대한 신앙이다. 신의 실존에는 계시의 개념이 연관되어 있다. 신의 실존의 자기증명, 신이 실존한다는 것의 진실한 증언은 계시이다. 신의 현존재에 관한 단순히 주관적 증명은 이성의 증명이며, 신의 현존재에 관한 객관적인 증명은 신의 계시이다. 신은 인간에게 이야기한다. 계시는 신의 말이다. 계시에 대한 신앙은 종교적 심성이 신앙하는 것, 소망하는 것, 표상 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에 관해서 종교적 심성이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확실성이다. 또한 계시에 대한 신앙은 종교적 의식에 특징적인 환상을 가장 분명하게 폭로한다. 그런데 신은 초인간적 존재자이다. 신은 오직 신 자신에 의해서만 알려 진다. 따라서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계시한 것 이외에는 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신이 계시하는 것은 신이 계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신이 인간을 위해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오는 것은, 단지 신 안에 있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으로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의 계시와 이른바 인간적 이성 또는 인간성 사이에는 환상적인 구별 이외의 어떤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신의 계시의 내용 또한 인간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확증된다. 기독교적인 궤변의 최상의 원리, 중심점은 신의 개념이다. 신은 인간적 본질(존재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간적인 다른 본질의 이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격적, 개체적 본질이어야 한다. 또는 신은 인격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본질로서 신이어야 한다. 즉 신은 결코 인격적인 본질이어서는 안 된다. 신은 존재한다. 즉 신의 존재는 특수한 존재로서는 지각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정의의 한쪽 절반은 다른 한쪽 절반과 언제나 모순된다. 존재(Ist)에서 주장되는 것은 당위(Soll)에서 항상 거부된다.근본개념은 단지 궤변에 의해서 숨겨져 있을 뿐인 모순이다. 우리
Q 연구의 최근 동향
Q 연구의 최근 동향 2002-11-11 16:26:36 read : 7 소기천 (미국 The Claremont Greduate School, Ph. D. 과정) * 헬라어와 히브리어 글자가 지원되지 않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 1."Q"란 표지(標識) 19세기 초부터 유럽과 신약학계(新約學界)에서 중심적인 연구주제로서 그 자리를 굳혀 온 "Q" 연구는, 오늘날 "Q" 본문이 확정되기까지 많은 신약학자(新約學者)들 사이에 관심을 불러 일으켜 왔다.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 연구는 "Q" 연구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Q"를 통하지 않고서는 공관복음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Q"는 독일의 단어 Quelle에서 온 것으로, "자료"란 뜻이 있으며, 신약학자들이 편의상 그 첫 철자를 따서 일반적으로 "Q"라고 부른다. "Q"가 독일어 단어에서 왔지만, 그러나 누가 언제 어떤 책에서 그 용어를 사용하였는지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바이써(C. H. Weisse)가 Q에 관한 연구를 학문적으로 시작한 때가 1838년으로써 그때가 "Q"란 표지의 시작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는 있지만, 현재 "Q"란 표지가 어디서 기원하였는지 하는 문제는 학자들마다 주장이 너무나도 다르다. 바이쓰(Bernhard Weiss)는 1889년에 "Q"란 표지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Q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자신의 책 Lehrbuch der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Berlin: Verlag von Wilhelm Hertz), 486-500에서 "최초의 자료"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Q의 실체를 확고하게 제시하였다. 베른러(Paul Wernle)는 그의 책 Die synoptische Frage, 1899를 통해서, 공관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Q"의 불가피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Q"를 마태복음의 자료적 측면에서 "QMt", 누가복음의 자료적 측면에서 "QLc", 그리고 유대적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서 "QJ"라고 구분 지었고, 그들의 배후에 "Q1", "Q2", "Q3"가 서 있다고 시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Q"란 표지는 사용하였지만, 그가 주장한 "Q1", "Q2", "Q3"는 클로펜보그(John S. Kloppenborg)의 개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디벨리우스(M. Dibelius,1953)는 우리에게, "Q"가 독일에서 1898년에서 1901년 사이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디벨리우스는 그 예로써 베른러의 책 Die synoptische Frage, 1899을 거론한다. 슐츠(S. Schulz, 1972)도 의심 없이 "베른러가 이들 자료들을 처음으로 Q라고 명명하였다"고 평가한다. 슈미탈스(W. Schmithals, 1985)도 베른러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네이륑크(F. Neirynck, 1978)도 이 문제를 간결하나마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Q"란 표지를 제일 먼저 사용한 학자는 바이쓰(J. Weiss)로서 그의 논문 "Die Verteidigung Jesus den Vorwurf des Buendnisses mit Beelzebul(1890)"란 논문을 예로 들고 있다. 1987년에 합본(合本)으로 재(再) 인쇄된 벨하우젠의 도서들 Einleitung in die ersten drei Evangelien, 1911; Das Evangelium Mattaei, 1914; Das Evangelium Marci, 1909; Das Evangelium Lucae, 1904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가 "Q"란 표지에 별표(*)를 붙여서 "Q*"로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그 자신은 "Q"란 표지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다. 단지 벨하우젠은 "Q"가 공관복음서의 배후에서 비(非) 마가자료를 나타내면서도 마태와 누가가 공통으로 사용한 자료의 의미로써 사용하였다고 간주함으로써, 오늘날 Q 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Q"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실버맨(Lou H. Silberman, 1979)은 좀더 소급하여 벨하우젠의 Geschichte Israels, Erster Band(1878)와 Jahrbuch fu¨r Deutsche Theologie 21(1876) 등을 들어서 또 다시 벨하우젠이 "Q"란 표지의 최초 사용자란 제안을 시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네이륑크(1979)는 다시 간략한 논문을 발표하여, 벨하우젠이 1876년에 사용한 "Q"란 표지는 구약성서에 있는 "제4의 책"을 시사하면서 사용한 라틴어 "Quattuor"였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벨하우젠이 "Q"란 표지를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가 아니라고 논박하였다. 이상의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바이써(C. H. Weisse), 베른러(Paul Wernle), 벨하우젠(J. Wellhausen) 혹은 바이쓰(J. Weiss)가 거명된다. 그러면, 누가 정말 "Q"란 표지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을까? 비록 "Q"란 표지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에 대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미 약 한세기 반 전부터 "Q"의 분명한 실재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일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 Q란 무엇인가? 공관복음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마태와 누가의 공통자료를 지칭하는 많은 용어들 이를테면 독일어로 Logienquelle의 철자를 줄여서 "L"로, Redenquelle의 철자를 줄여서 "R"로, Sprachquelle의 철자를 줄여서 "S" 등 다양한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영어식으로 표현할 때에도 "Sayings Source", "Sayings Material" 등 다양한데, 왜 단순히 독일어 Quelle의 철자를 단 한 자(字)로 줄여서 Q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Q의 연구역사에 있어서 Q란 표지(標識)가 사용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예수 말씀"에 대한 초기 기독교 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비록 Q란 표지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도마복음서」의 서문(incipit) 즉 "살아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또 디두모란 유다 곧 도마가 기록하였던 비밀스런 말씀들이 있다"와 「파피루스 옥시린쿠스」(P.Oxy 645:1)의 서언 즉 "살아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또 유다 곧 도마가 기록하였던 비밀스런 말씀들이 있다"에 이미 예수 말씀에 관한 높은 관심이 표명되고 있다. 그리고 예수 말씀을 기억하는 일련의 관심들이 계속적으로 초기 기독교의 여러 문서들 속에서 다량으로 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들면, 사도행전 11:16, 20:35과 클레멘트전서 13:1, 46:7 그리고 야고보의 외경 2:7 등을 그 중요한 문건(文件)으로 간주 할 수 있다. 또한 서기 100년경에 파피아스의 작품 즉 Λογ?ων Κυριακ?ν 'Εξηγ?σεω?(「주의 말씀들에 대한 해석」)에 이미 예수 말씀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초기 교회의 역사에서부터 현존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 유세비우스의 증언은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신약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Q"란 용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중시되어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Q에 대한 개념이 분명히 정립되어야 한다. 지난 150년간 학계의 논쟁 속에 있었던 공관복음서 연구의 방향은 Q를 가설의 영역에서 다루어왔다.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은 1931년에 양식비평적 접근 방법에 입각하여 그 이전에 있었던 공관복음서에 관한 논의들을 총망라하면서 과거에 Q 연구가 마태와 누가의 재구성(再構成)에 의존해 왔지만, 그러나 예수 말씀에 대한 끝없는 관심이 이미 마가와 Q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자료(傳承資料)에서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줌으로써 Q 연구의 폭을 문서(文書) 이전의 전승단계에로 까지 확장시켰다. 이것은 현대적 Q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은 중대한 변화라고 평가 받을 수 있다. 그 후에 맨슨(T. W. Manson)은 1937년에 Q 문서(The Q document)의 원시적 의미의 복원을 시도하였다. 맨슨은 엄격한 의미에서 오늘날 IQP(International Q Project)가 성취한 것과 같이 Q 본문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복원(reconstruction)을 시도(試圖)한 것은 아니였다. 단지 마태와 누가에 보존되어 있는 Q를 드러내기 위하여 단순히 그 평행구절들을 제안하는 정도의 복원(restoration)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Q 본문을 위한 복원 작업은, 그 후에 폴락(A. Polag, 1979)에 의해 보다 진일보(進一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1979년에 보다 최신의 Q 자료에 관한 목록(目錄)들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의 공관복음서 연구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이상의 여러 학자들의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에, 1970년대 말까지 줄기차게 Q의 연구상황은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라고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1983년에 클레어몬트 대학원(The Claremont Graduate School)의 로빈슨 교수(James M. Robinson)를 중심으로 범세계적 Q 학자들로 구성된 IQP의 출범 후에 Q 본문의 복원을 위한 활발한 연구 작업은 단순히 Q를 가설의 영역에서 파악하였던 기존의 개념을 뛰어 넘어서게 하였다. 클로펜보그(John S. Kloppenborg, 1987)는 IQP의 연구를 토대로 The Formation of Q란 책을 통하여 Q를 하나의 독립된 문서로 간주하고서, "단층 분석법(stratigraphic analysis)"을 통해서 Q의 편집층(즉 Q1, Q2, Q3)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이 후에 Q는 더 이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이미 하나의 독립적인 문서로서 마태와 누가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문서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1994년 시카고에서 열렸던 SB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연례모임에서,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부설기관인 IAC(Institute for Antiquity and Christianity)의 IQP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Q 본문을 위한 복원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이로써 Q 본문은 더 이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독립적인 문서로서 세상에 그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Q는 더 이상 마태나 누가의 공통 자료를 뜻하는 문서 자료로서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러면 이제 Q는 무엇인가? Q는 예수 말씀 복음서(福音書)이다. 예수 말씀 복음서로서 Q는 현존하는 모든 복음서들과 비교해 볼 때, 가장 오래된 최초의 복음서이다. 로빈슨(1964)에 의하면, Q는 순수히 예수의 말씀들을 보존하고 있는 점에서 도마 복음서와 함께 "지혜자들의 말씀들(Λ?γοι Σοφ?ν)"이란 특수한 형태의 가퉁(Gattung)에 속한다. 로빈슨은 Q와 도마 복음서 이외에도 "지혜자들의 말씀들(Λ?γοι Σοφ?ν)"이란 가퉁에 속하는 문서들로서 디다케(The Didache), 마가복음 4장, 랍비 문서들인 m'Abot, 고대 애굽 및 초기 유대 지혜 문서들, 그리고 콥틱어(Coptic)로 된 문헌들 등 다수 그 예들로서 제시하고 있다. 3. 구전이냐, 문서냐? Q가 문서(文書)로 기록되어 전해졌는가 하는 문제는 초기 Q 연구의 논쟁거리였다. 이 논쟁에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 즉 바이쓰(B. Weiss), 베른러(Paul Wernle), 바이쓰(J. Weiss), 맨슨(T. W. Manson) 등 여러 학자들이 관련이 되어 있다. 이들은 Q가 구전(口傳) 보다는 문서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그러나, 예레미아스(J. Jerernias,1930)와 브레게(H. T. Wrege, 1968)는 Q 자료 자체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Q가 문서로 전승된 것이 아니라 구전(口傳) 전승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클로펜보그(1987)는 과거에 있었던 Q의 구전전승에 관한 주장들을 일축(一蹴)하면서, "언어일치"를 Q의 문서전승에 관한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클로펜보그에 의하면 마태와 누가 사이의 "언어일치"는 그 정도(程度)에 있어서 결코 미약하지 않다. 과거에 알렌(W. C. Allen, 1899-1900)과 라이트(A. Wright, 1899-1900)는 마태와 누가 사이의 어떤 언어적 일치점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고 일찌기 결론을 지었지만, 클로펜보그는 Q에 나타난 구절들 중에서 "Q 3:7-9; 4:1-13; 7:24-28, 31-35; 9:57-60; 10:21-22, 23-24; 11:31-32; 13:34-35" 등을 마태와 누가 사이의 언어일치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귀절들로 제시하고 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클로펜보그가 예를 든것 외에도 많은 귀절들 중에서 한 가지를 더 들어보면, Q 11:24은 누가와 마태 사이의 언어일치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 마태 12:43-44a ?ταν δ? τ? ?κ?θαρτον πνε?μα ?ξ?λθ? ?π? το? ?νθρ?που, δι?ρχεται δι' ?ν?δρων τ?πων ζητο?ν ?ν?παυσιν: κα? ο?κ ε?ρ?σκει: τ?τε λ?γει? ε?? τ?ν ο?κ?ν μου ?πιστρ?ψω ?θεν ?ξ?λθον 누가 11:24 ?ταν τ? ?κ?θαρτον πνε?μα ?ξ?λθ? ?π? το? ?νθρ?που, δι?ρχεται δι' ?ν?δρων τ?πων ζητο?ν ?ν?παυσιν: κα? μ? ε?ρ?σκον: [τ?τε] λ?γει ε?? τ?ν ο?κ?ν μου ?πιστρ?ψω ?θεν ?ξ?λθον Q 11:24 ?ταν τ? ?κ?θαρτον πνε?μα ?ξ?λθ? ?π? το? ?νθρ?που, δι?ρχεται δι' ?ν?δρων τ?πων ζητο?ν ?ν?παυσιν κα? ο?κ ε?ρ?σκει: [τ?τε] λ?γει. ε?? τ?ν ο?κ?ν μου ?πιστρ?ψω ?θεν ?ξ?λθον 이상의 헬라어 본문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언어 일치에 관한 논의들을 중시할 때, Q의 구전 전승에 관한 가설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Q 본문의 복원 작업을 통해서 Q 문서를 확실히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Q가 구전 전승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Q 본문의 복원 작업은 시작조차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4. Q의 언어 Q가 처음에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가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고 회람(回覽)되었다는 가설이 일찌기 서기 100년경에 파피아스(Papias)에 의해 제기된 후에, 근래에 이르기까지 공관복음서 연구에 통용되어 왔다. 그 이유는 쉴라이에르마허(1832) 이후, 파피아스에 의해 제기된 가설 즉, 아람어 Q 가설이 신약 학계에서 정식으로 통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이 가설은 하르낙(A. von Harnack, 1907)과 맨슨(T. W. Manson, 1937)에 의해 지지를 받게 되었다. 1985년에 슈미탈스(W. Schmithals)도 Q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많은 학자들을 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Q가 처음에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었을 것이란 가설은 고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는 블랙(Matthew Black, 1954)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블랙은 아람어 가설에 대하여 보다 광범위한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누가 6:23과 마태 5:12의 비교에서, 블랙은 누가의 "그들의 조상들(ο? πατ?ρε? α?τ?ν)"과 마태의 "너희들 전에 [있었던] 자들(το?? πρ? ?μ?ν)"은 비슷한 아람어 ????[??]??????????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논증하였다. 즉 ο? πατ?ρε? α?τ?ν은 주어로서 사용된 아람어 ??????????????에서 온 것이며, το?? πρ? ?μ?ν은 "예언자들"과 동격으로 사용된 아람어 ??????????????에서 왔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두 귀절의 복원을 시도하면서, 누가 귀절의 복원을 위해서 누가 6:22a과 23b를 묶었고, 마태 귀절의 복원을 위해서 마태 5:10a, 12b, 그리고 11a을 묶어 주었다. 그러나 클로펜보그(1987)에 의하면, 특히 Q 본문의 복원에 있어서 블랙의 이와 같은 제안은 중대한 실수를 한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의 ο? πατ?ρε? α?τ?ν은 "전형적인 누가적 표현"이기 때문에 Q 본문의 복원에서 제외되는 기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Q 본문의 복원을 위해서 마태의 귀절과 누가의 귀절 사이에서 어느 것이 아람어 Q인지 선택을 해야하는 문제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블랙은 마태와 누가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현재 Q 학계에서는, Q가 처음에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었을 것이란 가설 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헬라어로서 Q가 편찬(編纂)되었다고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 위에서 Q 본문이 헬라어로 복원되었다. 클로펜보그에 의하면, Q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셈족어로 화(化)한 헬라어 문체(a Semitizing Greek style)"를 나타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Q의 기원이 아람어를 말하는 사회적 환경속에서 가능하였지만, 그렇다고해서 처음부터 아람어로 기록되었다는 문학적 증거를 확신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Q가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제안을 중시해야 한다. 여기서 헬라어 Q에 대한 제안은 이미 블랙(1954) 자신에게도 인식되어 있었던 중심 주제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블랙은 Q에 나타난 원래 헬라적 표현 방식을 중시하여, "번역되지 않은 헬라어(non-translation Greek)"가 곧 Q의 번역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간주하면서, "Q 전승의 형성에 관계된 최종 언어가 헬라어의 문화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고 결론 짓는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번역되지 않은 헬라어, 즉 원래 헬라어에 있는 고유한 표현 방식이다. 클로펜보그는 Q에 나타난 전형적인 헬라어 특징들을 검토한 후에, "Q는 원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결론 짓는다. 다시말해서, Q는 셈족어를 말하는 인근 지역, 즉 70인역 성서(LXX)가 셈족어 화(化)한 헬라어의 영향권 하에서 기록되었다. 예를들면, Q에 나타난 헬라어의 관용적 표현들(μ?ν… δ?, γ?ρ, ο?ν 등)은 결코 아람어에서 올 수 없는 것들이다. Q 11:20, 48과 12:42에 사용된 ?ρα는 오히려 70인역(LXX) 성서의 사용을 뒷받침하는 것이지, 아람어 Q에서 온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 특별히 Q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속격 독립구문들은 그 어순에 있어서, 본래 헬라어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Q 4:3, 9의 "ε? υ??? ε? το? θεο?"와 Q 7:25의 "ο? ?ν ?ματισμ? ?νδ?ξ? κα? τρυφ? ?π?ρχοντε?"는 결코 아람어에서 올 수 없는 전형적인 헬라적 관용 표현들이다. 과거에 많은 학자들이, 예수와 그의 첫 추종자들인 제자들이 모국어로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고 주장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정황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이 헬라어를 말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Q가 빈번하게 "언어적 일치(word-for-word agreements)"를 보이고 있는 점을 중시할 때, 이는 결코 아람어의 번역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Q에 나타나 있는 구약성서 구절들에 대한 인용귀나 표현들도 헬라어로된 70인역 성서에 의존해 있다. 이같은 사실을 미루어 볼 때, Q는 아람어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원래 헬라어로 기록된 사실을 알 수 있다. 5. 결론 Q의 정의와 기원에 관한 문제는 공관복음서 문제에 비견(比肩)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 그러나, 이미 IQP에 의해서 예수 말씀 복음서 Q가 복원이 된 작금(昨今)의 상황에서, 더이상 Q의 정의와 기원은 문제시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Q는 예수 말씀 복음서와 동의어로 사용될 것이고, 예수가 하신 말씀들 가운데 복원과정을 통하여 현존하게 된 가장 오래된 문서이자 최초의 복음서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Q는 더이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문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된 것이다. 참고로 Q 연구에 보다 더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1996년부터 향후 8년동안 유럽의 PEETERS 출판사로부터 발간되는 Documenta Q : Reconstructions of Q Through Two Centuries of Gospel Research Excerpted, Sorted and Evaluated 를 구입하시기를 바란다.
Renewal Theology 요약
Renewal Theology 요약 2002-08-05 15:44:52 read : 6 제1장 중생 Ⅰ. 중생이란? 구원을 얻게 된 자에게 일어나는 내적인 변화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본질적으로 의미한다. 성령을 통해서 영적인 중생이 가능하다. 중생에 대하여 묘사한 세 구절은 요 3:7, 벧전 1:23, 딛 3:5 이다. Ⅱ. 중요성 중생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영적으로 죽은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유일한 희망은 영적인 중생뿐이다. Ⅲ. 수단 중생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러한 이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가능하다. A. 성령의 역할 중생은 일차적으로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이러한 거듭남은 영적인 태어남으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예수님조차도 성령으로 태어나셨다(마 1:20). 중생에서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은 "물", "씻음"과 같은 말이다. 요 3:5에서 물은 "물세례"를 가리킨다. "물"은 깨끗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생된자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물은 성령에 앞서 있고 성령의 활동을 예비하는 것으로 물세례는 중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중생이나 갱신은 성령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B. 심기운 말씀 중생은 성령의 직접접인 사역이나 심기운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그 말씀은 (벧전 1:23, 1:25, 약 4:3-9, 1:18). 그러므로 성령이 중생의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심기운 말씀, 복음의 말씀, 즉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Ⅳ. 발생 중생은 인간의 마음과 지성과 의지의 모든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사랑하라"는 큰 계명을 이루려면 생활의 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A. 조명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사람의 마음은 내적 조명에 의해서만 구원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다. 조명의 빛이 비추어진 실례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행 2:23, 2:36, 26:17-18). 하나님의 의로움을 훨씬 더 초월하여 원수조차 사랑하라는 명령이 절망적인 자신을 깨달을 때, 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깨달을 때 성령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눈이 열려야만 사람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올 수 있는 것이다. B. 뉘우침 중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뉘우침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죄악에 대한 깊은 뉘우침을 뜻한다. 뉘우침에 대한 성경에 언급은 (행 2:37) 여기서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죄를 깊이 깨닫는 것만이 아니라 심오한 내적 변화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일들은 성령이 말씀을 적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깊은 뉘우침이 일어날 때 가능해진다. C. 회개 중생으로 나아가는 절정의 순간은 회개하는 순간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종종 언급하셨다(대하 6:36-39, 대하 7:14). 그러나 완벽하게 돌이킨 경우는 없었다. 반면에 복음의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야 삶을 변화시키는 참된 회개가 가능케 되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쳤고 예수께서 계속해서 회개할 것을 외치셨다 하더라도 순수하고도 전적인 회개가 이루어진 것은 예수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이후였다. 회개는 전 인격이 전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생에 있어서 정점의 순간을 이루는 것이다. 옛 생활에서 새로운 생활로의 180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과거와는 철저하게 간격을 두는 것과 그리스도가 구세주와 주가 되시는 영광스러운 개 세계에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회심이라 할 수 있다. 회개한다는 말 그 자체가 회심의 의미를 담고 있다. 행 15:3에서 회심이란 조명과 뉘우침에 뒤이어 중생에 이르는 정점의 순간이 일어나는 회개의 행위뿐만 아니라 구원 전체를 총칭해서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회심은 구원과 중생 모두를 나타낼 수도 있다. 회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회개가 잘 표현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주고, 의자가 수반되어야 하므로 행동이 요구된다(롬 10:9).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행 5:31, 11:18). 회개란 인간의 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의미한다(행 2:38, 고전 6:19, 고후 13:8). Ⅴ. 결과 : 새로운 피조물 A. 새로운 존재 1. 변화된 마음 중생은 일차적으로 사람의 존재의 중심 되는 부분 즉, 마음이나 영에서 먼저 일어난다. 마음을 깨끗케 하라는 말씀은 (겔 36:26, 마 15:19, 딛 3:5, 행 15:9) 중생의 한 놀라운 측면이다. 또한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짐을 의미한다(렘 31:33, 히 8:10). 그리고 마음의 변화는 마음이 하나되는 역사가 있다(겔 11:19, 32:39, 시 86:11). 진실로 중생의 기적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마음, 즉 하나의 단일한 마음을 얻게 되고 우리의 모든 존재를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새로워진 생각 중생은 또한 생각의 문제라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중생은 생각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엡 4:22-23, 롬 1:21). 여기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렘 331:34, 히 8:11). 그들은 마음이 새로워지고 진실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관점에서 삶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옛 자아가 물러가고 마음이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생각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게 됨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달라지게 된 것이다. 3. 자유롭게 된 의지 중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지는 죄악의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딛 3:4-5, 고전 6:9-10). 이러한 자유는 사람을 속박하는 모든 것(어두움의 세력을 포함)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중생한 사람은 결국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제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중생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지를 근본적으로 본받게 되고, 순종하는 이지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기쁨에 찬 의지이기도 하다. B. 새로운 성품 1. 거룩함 새로운 성품은 먼저 거룩함과 의로움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고 말한다. 중생한 사람은 그 내적 깊은 곳에서 의로움과 거룩함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의로움이 지배하는 삶이요, 근본적으로 의로움과 거룩함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열에 사로잡히게 된다. 의를 행함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의 성품이다(요 1서 2:29). 2. 사랑 새로운 성품을 특징 짓는 것은 또한 사랑이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포하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다"(고후 5:14)라고 말씀하였다.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1서 4:19)고 말씀하였다. 따라서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과 자기의 이웃을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3. 진실함 새 성품을 특징 짓는 것은 진실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기 때문에(약 1:18) 거짓과 속임수는 이전 날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에게 새로운 사실은 그의 성품 안에 진실함이 있다는 것이다. C. 새로운 생활 결국 중생을 통하여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이제 영적인 삶에서 세 가지의 생활이 새롭게 된다. 먼저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된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다(롬 6:11).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하여 만들어진 인간 존재의 목적이 결국 완성되어짐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다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생활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참된 행복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예수 안에는 풍성한 삶이 있다(요 10:10). 풍성하다는 것은 행복을 가능케 해 주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또한 예수 안에는 심오하고도 영속적인 기쁨이 있다(요 15:11, 눅 2:10).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주님의 기쁨을 알게 되며 이것이 바로 참된 행복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가 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1서 5:4). 그리스도가 승리하셨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승리를 나누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끝으로, 새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행복이다. 이러한 삶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그 궁극적인 영광이 있다. 제3장 칭 의 Ⅰ. 배경 칭의의 교리는 의롭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로움을 요구하신다. 이에 대하여 죄악된 성품 때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수 없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의까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순수하신 현존 앞에서는 불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볼 때 사람은 실로 절망적이다. 사람편에서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의로움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Ⅱ. 의미 칭의의 통상적인 의미는 의롭다고 말하거나 선포하는 것이다. 「칭의」라는 뚜렷한 특징은 선언적인 측면에 있다. 의롭게 혹은 정의롭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롭게 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다고 선포된 사람이다. Ⅲ. 양상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심에는 두 가지 혹은 이중의 양상이 있다. A. 죄를 인정치 아니함 죄를 인정치 아니한다는 것은 죄를 산정하지 않는 것 또는 죄를 계산하지 않는 것으로 불릴 수도 있다. 이는 죄가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책잡지 아니하신다는 의미다. 죄를 인정치 아니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 그 한가운데 있다. 죄를 인정치 않는다는 것은 또한 죄를 사해준다는 의미이다(시 130:3-4, 사43:25, 미 7:18-19). 완전한 죄사함은 복음의 핵심이다. B.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옮기심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전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옮기시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의는 나 자신의 혹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의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는 당신의 아들의 의로움으로 옷 입혀진 우리를 바라보신다. 우리 각자는 예수안에서 완전함을 입는다. 그러므로 칭의란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의로와졌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Ⅳ. 근거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 사역이다(롬 3:23-25). 칭의는 값진 구속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다. 칭의의 교리에 대하여(롬 3:23-24) 살펴보면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행위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기초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구속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말미암은 속죄로써 일어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칭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있다. Ⅴ. 수단 - 믿음 지금까지 하나님의 선언적인 의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그 의가 근거한다는 것에 관하여 언급된 모든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그 효력이 발생된다. 칭의의 수단은 믿음인 것이다. 롬 3:25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배경으로 하는 칭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엡 2:8에서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든가 구원의 원천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믿음은 구원이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수단이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창세기를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3)고 했다. 바울이 의로 여기신 바 된 것이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했다. 따라서 믿음은 "신뢰하며 믿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을 얻기 위해 그 구원을 이루신 분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단순히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써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신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신뢰이다. 이 신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감사의 응답이다. 이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의 칭의에 대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만이 칭의의 수단이 된다. Ⅵ. 행위의 지위 우리의 행위는 죄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게 하는 어떤 공헌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주된 요점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이 없다(롬 3:20). 율법의 행위, 즉 모든 행위는 의롭다함을 얻는데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한다. 믿음과 행위에 대하여 살펴보면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었지만 믿음 단독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이란 즉 의롭게 하는 믿음이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했다. 아주 적합한 말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관하여 바울은 행위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행위란 우리를 구원하는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구원을 입증해 주는 가치를 지닌다. 실로 구원 즉 다름 아닌 칭의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바로 선한 열매요 선행이다. 선행이야말로 진실하고도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인 것이다. Ⅶ. 칭의의 결과 칭의의 일차적인 결과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칭의로 말미암아 새로운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가 기쁘게도 생겨난 것이다. A. 자유 칭의의 두드러진 결과 가운데 하나가 자유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 자유는 세속적인 모든 제도로부터의 자유이다. 가장 큰 구원은 간단히 말해서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이다. 결국 칭의에는 걱정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칭의를 올바로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범하는 어떠한 범죄든 간에 이미 용서받았다고 하는 걱정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자유를 얻은 것이다. B. 평화 칭의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결과는 평화이다. 이 평화는 세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님과의 평화를 보면,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고(롬 5:9) 하나님의 대적자였으나(롬 5:10)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과 불화 관계에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당신의 진노 아래에 있지 않으며 절망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것이다. 다음에 이웃과의 평화를 보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고 받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서로 용서해 주고 용납하도록 요구받는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 속의 평화로 요 14:27에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내적 평화를 말한다. 이 평화는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그 이상이다. 이러한 평화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생겨나는 평화이다. C. 상속 칭의의 마지막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갈 3:26, 29에 분명히 영원한 상속에 대한 약속이 있다. 갈 4:7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상속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풍부한 상속물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상속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롬 8:17)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속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다(고전 3:21-23).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딛 3:5,7). 이 장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이며 그 절정에 이른 결과로서 우리가 영생을 바라보는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4장 성화(sanctification) Ⅰ. 의미 성화를 시킨다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나, 거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화란 신성화하거나 거룩하게 하는 행동 그리고 성화되거나 거룩하게 된 상황 또는 상태를 말한다. 거룩함이란 ①"분리" 혹은 "따로 떨어져 있음"을 지칭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속했기 때문에 거룩한 백성인 것이다. ②순결함과 깨끗함을 의미한다. 깨끗하게 해야할 것은 육과 영이며 이는 거룩함 혹은 성화를 온전히 이룸을 의미하는 것이다. ③도덕적으로 온전함을 의미한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는 악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길과 행위, 즉 의, 사랑, 진리에 있어서 완전하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모든 방면에서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온전함을 요구하신다. Ⅱ. 발생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인 것이다. 1. 시작 성화 혹은 거룩함이란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즉,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에서 기초적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성화란 단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멀리하고 정결케함으로 인하여 이루어 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하는 것은 그저 죄와 떨어져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내적 정화와 청결을 도모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즉 성화에는 분리와 깨끗함의 두요소가 있다. 성화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야 하며, 이 성화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일로 말미암아 실제로 성취된 실제이다. 따라서 성화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받아드려 지는 것이다. 온전케 된 양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온전히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당연히 생겨난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성화란 그리스도께 속한 모두에게 주어진 실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때부터 성화된 것이다. 2. 지속 성화란 하나님의 백성의 삶 속에서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사는 것이다. 성화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존재에 있어서 처음부터 체험하는 실체인 것만 아니라 계속되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신자들은 비록 성화되었다 해도 그들의 삶속에 죄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즉 옛 생활의 죄악된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정화와 청결케함은 계속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화란 점진적인 변화이다. 이는 거룩함으로 행하는 운동이 아니라(왜냐하면 신자는 이미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함 안에서 커가는 것을 의미하며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우리가 영광의 주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그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도 영광에서 영광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3. 목표 결국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목표이다. 즉, 전적인 거룩함이다. 이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완성되어 질 것이다. 순결함과 온전함과 완전함과 거룩함은, 그 어법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천의 목표인 것이다. 우리는 기도로써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성서의 전반적인 경향은 이 세상에서 온전한 성화에 도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 이유로서 ①우리의 삶을 통하여 죄가 계속 살아있어 온전함으로 계속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증거하는 성구가 많이 있다.(빌3:12,14-15, 히5:14,12:3-13, 요일3:2-3, 창6:9, 욥1:1, 겔14:14,20, 눅1:6, 엡4:13-14, 고전14:20, 골1:28 등) ②우리가 죽을 때나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건 간에, 이생의 끝날에는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생에서는 정결케함이 계속되는 반면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게 되는 것은 당신께서 최후로 강림하실 때 이루어진다. ③우리의 완전함을 향한 목표와 완전함의 성취를 서로 구분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았으며, 이것은 점진적인 성화를 의미한다. Ⅲ. 범위 (SCOPE) 성화란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전인을 갱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1. 갱신(Renewal) 성화의 전 영역을 반영하는데 "갱신"이란 말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갱신이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등과 같은 성구에서 보듯 성화의 시작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중생이란 새로운 탄생을 가리키며, 갱신(새롭게 함)이란 그리스도인이 생활을 시작할 때 주어진 성화를 가리킨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새 삶을 가리키며 의와 거륵함의 새 품성을 말한다. 또한 계속적인 성화를 의미하며 계속적인 진행의 의미를 내포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요구되는 계속적인 새로워짐이 또는 계속적인 회복은 성도를 더욱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하는 것이다. 2. 온전한 사람(The Whole Person) 온전한 사람에 관한 핵심적인 성구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특별히 "온전히"라는 말과 그리고 "영"과 "혼"과 "몸"이라는 말에 대해 고찰해 나갈 것이다. 1) 영(The Spirit) 사람의 영은 인간 본질의 가장 깊은 차원이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특히 인간 존재의 중심이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과 직접적으로 만나시는 인간 자신의 영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안에 있는 의로움을 인하여 인간의 영은 다시 살아있는 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이 다시 살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성령은 우리의 영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한다.(롬8:16) "영"과 "마음"은 서로 바꾸어 사용될 수 있는 용어들이다. 영과 마음의 거룩은 서로 병행한다. 로마서 2장 15절에서 양심은 마음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양심은 특별히 마음의 최고의 도덕을 반영하는 것으로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고통"은 서로 바꾸어 표현될 수있다. 이 두 표현에 대한 가장 인접한 표현은 청결한 마음과 청결한 양심이라는 성경적 관심 속에서 더욱 나타나 있다. "영" "마음" "양심" 이 세 가지 성서적 용어들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 있는 성품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구원 안에는 영의 소생, 마음의 변화, 양심의 정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졌다해도 여기에는 더 나아가 성화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2) 혼(The Soul) 혼은 이를 통해 영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인간의 내적인 생명이라고 말할 수있다. 인간은 지적, 감정적, 의지적인 행위의 폭넓은 영역으로 증거되는 자아, 또는 의식하는 살아 있는 생령이다. 따라서 지성, 감정, 의지는 활동중인 혼의 제 국면들이다. 죄의 침투가 있자 인간의 혼은 어두워졌고 인간의 이같은 모든 활동적인 영역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구원 받음으로 인하여 인간의 지성은 다시 하나님의 일들을 성찰할 수 있고, 감정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기뻐하며, 의지는 하나님의 목적에 일치하여 행하도록 활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혼은 계속 정결함과 강건함을 필요로 한다. (1) 마음 성화는 마음의 계속적인 새로움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즉 이미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의 마음도 진실로 계속적인 새로워짐과 더 나아가서 변화를 필요로 한다. 마음은 악한 생각들, 부정한 생각들, 세상적인 계획들로 지배될 수 있다. 지성은 영적인 관심사들로부터 멀어지고 육신에 속한 일에 휩쓸려 내려갈 수 있다. 지성은 그리스도의 본을 좆아 겸손함을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빌립보 교회 신자들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라고 한 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종의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겸손하여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성도는 필연적으로 이와 같은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향한 성도의 생각의 변화와 생각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2) 감정들(정서, 소욕, 정욕) 성화는 또한 내적인 감동들과 소욕을 처리함으로 이루어 가게 된다. "육체의 소욕"이 자리하고 있는 영역이 성화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이 모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성도들을 끊임 없이 유혹하지만 성도는 거기에 빠져서는 안된다. 즉 이는 거룩한 가운데 날마다 성장하는 성도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감정과 욕구의 영역에는 성화되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 거룩한 온전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소욕과 정욕을 깊이 있게 처리해야 한다. (3) 의지 성화는 또한 의지와 관련이 있다. 구원받기 전의 의지는 죄에 매어 있었다. 사람은 늘 하나님께로부터 죄악으로 돌아서서 죄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된 의지로 인해 자유의 새 길이 마련되었다. 그러함에도 거기에는 항상 우리를 죄의 습관에로 되돌아 가도록 끌어 당기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게 하소서"라고 간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몸(The Body) 마지막으로 성도의 몸은 성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 이전에 몸은 실제로 죄에 바쳐졌다. 그러나 우리의 옛 본성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죄지은 상태는 멸망되었다. 몸의 죄가 발견되는 곳마다 그 죄를 씻고 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으심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이다. 죄가 생겨나면 우리 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다시 영화롭게 하기 위해 "몸의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또한 성도의 몸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이므로 성적인 부도덕은 진실로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거스리는 가증한 죄인 것이다. 모든 성적인 부도덕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을 망령되게 하는 죄이다. 오늘날 이에 대한 심각성은 첫째로, 성에 대한 관습적 기준이 퇴락해 가고 있는 문화 속에서 정욕에 대한 끊임 없는 유혹이다. 둘째로, 우리의 사회는 더욱더 쾌락 추구의 사회로 변해 가고 있기 때문에 외적인 부도덕한 형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점, 즉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 몸은 성생활과 먹고 마시는 생활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형상(The Like of God)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한 성화의 목적은 하나님 형상으로 새로워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형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화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형상으로의 변화이다. 이는 또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께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과 함께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 성장되어 가는 것이다.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Ⅳ. 방법(METHOD) 1. 하나님의 사역(The Work of God) 성화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다. 즉 하나님 안에 성화의 능력이 있다. 성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행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의롭다 함을 얻은 인간이 그 후에 성화하도록 요구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게 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성화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화의 대행자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집단적으로는 교회)에 대한 성화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마지막으로 성화의 원동력은 성령이다. 성화를 위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성령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준비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활동은 ①성령은 그리스도의 몽을 이루는 성도들의 공동체 내에 거하신다. 믿음의 공동체는 멸망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 때문이다. ②성령은 또한 각 성도들의 몸 안에 거하신다. 성화의 사역을 깊이 있게 수행하시는 이는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은 거룩하신 영으로 성도의 삶의 어두운 면을 끊임 없이 조명하시며 그리고 인간성의 모든 국면(영,혼,육)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려 애쓰신다. 성령은 성결케 하시는 영이시다.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점차로 이루시는 것이 성령의 주요 직임이다. 2. 사람의 과업(The Humon Task) 성화는 또한 사람의 과업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에 우리의 개입이 없이는 역사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행하시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의미이다. 인간적인 온전함과 거룩함의 좆음이 사람의 과업인 것이다. 사람의 과업에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부정적 측면이란 사람이 끊임 없이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고, 긍정적인 측면이란 의에 대한 확고 부동한 삶이다. 1) 죄에 대하여 죽음(Dying to Sin) 이 말은 첫째, 죄에 대한 거부로 이해할 수 있다. 딛2:11-12에서 "경건치 않은 것"이란 성도의 삶속에서 하나님께 반대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이 세상 정욕"이란 하나님의 일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욕망을 말한다. 이러한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은 거부되어야 한다. 이는 포기되어야 한다. 마치 금욕으로 어떠한 덕을 쌓으려는 것과 같은 자신과 자기의 인격의 포기를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자신안에서 계속되는 죄에서 거부, 즉 죄많은 자아의 거부를 의미한다. 성령은 죄많은 자아와 대립하여 거하시기 때문에 성도편에서 행하는 죄에 대한 모든 거부의 행동은 성령에 의해 강하게 뒷바침될 것이다. 죄에 대해 죽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욕심의 제어로 이해할 수 있는데, ①성도들은 악한 몸의 행실들을 제어하는 심각한 일을 행하도록 권고받았다는 것, ②이 일은 성도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여져야한다는 사실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악한 몸의 행실을 제어해야할 자는 성도 자신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일은 육신에 반대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계속해서 죄를 거부하는데 힘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에 속한 관점에서 자신의 죄를 더 확실하게 지각하여 이를 더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성도는 자신 안에 구체적으로 죄로 알고 보고 있는 것(죄라고 이름지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죽음에 처해야 한다. 죄를 죽이는 또 하나의 심층적 방법은 죄를 벗어 버리는 것이다. 즉 그것은 죄를 벗어버리기 위해서 그것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이는 곧 분과 악의와 훼방 같은 죄에 사로잡혔던 성도가 그 죄를 던져버리는 그의 의지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성도가 죄를 죽이는 일에 있어 한가지 성령의 심층적 역할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①그것은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반복해서 죄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가 성령의 빛으로 가까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전에는 거의 알 수 없었던 자신의 죄들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이 성도들의 생활이 죄에 의해 눌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근본적이고도 기쁜 사실은 죄가 성도들의 삶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성도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②성도는 죄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있는 성도의 관점에서 보아 죄들은 진실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의 새 생명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③때때로 성도가 죄에 대한 죽음을 통하여 어떤 죄들은 더 이상 성도에게 존재하지 않게 되는 기쁨의 실현이 있다. ④주님의 임재를 계속 확신할 수 있는 안락함이 있다. 마침내 죄와의 모든 투쟁이 끝났을 때 주님은 영광 중에 우리의 성화를 완성하실 것이다. 2) 의로운 생활(Living for Righteousness) 성화에 있어서 인간의 과업의 다른 측면은 의로운 생활이다. 이말은 성도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의에 대한 강한 열망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거룩함 가운데 자라가는 성도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어야 하며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우선 순위는 의로움이어야 한다. 사람은 어떻게 의에 대하여 살 수 있는가?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의 예로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만약 성도가 거룩함 가운데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①성도는 성경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그의 일상적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②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읽어나가는 일에는 말씀대로 실천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산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다. (2)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 의로운 생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께 끊임없이 관심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도는 자신의 죄를 점차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그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따르는 것은 분명히 예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일이므로 예수에 대한 헌신은 우리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최우선되어야 한다. 실제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를 바라 보는 일은 날마다 예수를 증거하는 성경 말씀에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가 폭넓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바라보고 진실로 그리스도의 본을 좆으려 할 때 성도의 전 인격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이것이 거룩함안에서 자라가는 방법이다. 가장 높은 것을 추구하는 일은 또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곳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성화는 정결한 마음을 갖는 생활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다. 즉 성화는 겸손과 사랑과 자기 희생의 생활이다. 성화는 옷입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은 그리스도께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변화시키는 강한 힘과 비젼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거하다"는 말은 특히 성도가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도 안에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3) 성령으로 행하는 일 의로운 생활은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다. 이는 ① 자유함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성령 안에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행하는 새 생활에는 무엇보다도 참된 거룩함이 있다. 성도가 의를 추구하기를 열망할 때 이는 단순히 성도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의를 이루도록 그에게 능력을 공급하시는 성령의 문제이다. ②성도는 성령으로 행하므로 율법을 성취할 수 있다. 이제 율법은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마음판에 기록되었으므로 성도는 그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은혜는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다. 율법은 성도가 지니고 있는 죄지을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필요한 억제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성도는 성령의 자유함 가운데 행하고 이로 인해 성도는 처음으로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그는 여기서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것은 성화가 계속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도가 성령으로 행하므로 그는 더욱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율법과 자유, 이 두가지를 연합시키는 실체는 사랑이다. 사랑 가운데 행한 최고의 모범은 그리스도셨다.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하여 기꺼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다. 이 사랑은 율법의 어떠한 요구도 훨씬 능가한 사랑이었고 값없이 전적으로 당신을 완전히 내어주신 사랑이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와 동일한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하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율법이 값없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사랑하는 성도는 진실로 성령으로 행하는 자이다. 제6장 성령(THE HOLY SPIRIT) Ⅰ. 명칭 1. 성령 성령 즉, 거룩한 영(The Holy Spirit)이란 단어를 역순으로 생각해 보자. 1) 영(Spirit) "영"이란 단어는 ①촉감할 수 없고, 무형이어서 비물질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영은 혼과 육을 통해서 활동하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실재를 나타낸다. 영은 사물처럼 위치하거나 인지되거나 무게가 있거나 절개되지 않는다. 그것은 비물질적이다. ②역시 "움직임의 자유함"을 나타낸다. 영은 물질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규정된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는다. 성령안에는 자발성과 자유함이 있다. ③영은 "에너지"와 "기력"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나타낸다. 2) 거룩한(Holy) 성령의 명칭에 있는 "거룩한"이란 단어는 신성함을 강조한다. 거룩하다는 것은 ①통속적이고 평범한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거룩한 것은 성스럽고 신성한 것이다. ②거룩함은 또한 전적으로 정결하고 의로운 것을 함의한다. ③거룩함은 존엄과 영광의 특징을 강하게 나타낸다. 3) 정관사(The) 정관사 "the"는 성령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아주 간명하게 말한다. 많은 영들이 있지만, 오직 "한 성령"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성화된 영을 가지고 있는데 언젠가는 완전히 거룩해진 영(곧 거룩한 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성령"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2. 성령의 여러 명칭들 1) 신약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과 영은 서로 바뀌어 동의어로써 사용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성령"과 연합하여 사용되고 있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구분되어 지는 실체이기는 하나 분리되어 질 수는 없는 것이 틀림없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다. 그러나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 당신의 실재와 동일하시다. 2) 구약성경 구약에서는 영, 하나님의 영, 나의 영, 너의 영 등의 이 표현들은 성령과 하나님의 사이에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말해준다. 그러나 구약에서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주의 신"이다. Ⅱ. 성령의 칭호와 상징 1. 성령의 칭호 1) 진리의 성령(The Spirit df Truth) "진리의 성령"은 ①세상이 "받을 수 없는" 것(육에 속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을 나타낸다. ②일반적이거나 전체적인 진리를 언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 관련된 진리를 언급하시는 것이다. ③성령은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한 진리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 2) 성결의 영(The Sprit of Holiness) 서신서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호칭은 ①성결의 성령 :바울은 예수께서"성결의 영으로는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쓰고 있다.(롬1:4) 그러므로 "성결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것이다. "성결의 영"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가장 심오한 실재였다. 이는 성결케 하는 영인 동시에 부활의 영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주 앞에서 순결하게 살아가도록 성화시키는 영이다. 3) 생명의 성령(The Sprit of Life) 성령은 "생명을 주는 영이시다. 더 이상 죄나 사망이나 율법의 속박이 없다. 성령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위하여 생명과 자유를 가져 오셨다. 4) 양자의 영(The Sprit of Adoption)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을 "양자의 영"으로 표현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5절) 여기서는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①양자 결연에 의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이고, ②이 양자 결연에 수반되는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양자의 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우리를 입양하는 것을 보증하도록 하기 위해 보내신 성령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아빠"와 같은 단어가 전해 주는 그런 인격적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5) 은혜의 성령(The Sprit of God) "은혜의 성령"은 구원의 사역에 자비롭게 참여해 오신 분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과 새 생명을 가져오시기 위해 행하신 모든 것들을 쓸모 있게 하신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6) 영광의 영(The Sprit of Glory) 영광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자들 위에 특별히 머무신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영광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 위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된다. 7) 영원하신 성령(The Eternal Sprit) 그리스도의 희생은 일시적인 사건 훨씬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가져 오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역이었다. 2. 성령의 상징(Symbols) 성령은 형체가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징들(형상들, 묘사들, 모양들)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준다. 1) 바람(Wind)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이 두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바람 혹은 생기(숨)은 움직이는 힘과 신성한 에너지의 일종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묘사하는 언어의 생생한 모습이다. 2) 불(Fire) 성령에 의한 세례는 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불은 악을 소멸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3) 물(Water) 예수께서 주시고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생수"는 그것이 흘러 나올 떄의 성령의 활동이다. 4) 비둘기(Dove) 사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세례받으신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내려 오셨다. 비둘기가 상징하는 바의 온전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비들기는 흔히 온유하고 순결하 것을 나타낸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 사역의 초창기에 비둘기에 대한 묘사는 구속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심을 나타낸다. 5) 인치심(Seal) 성령을 하나님의 소유권과 보호에 대한 호칭의 의미에서 인침으로 묘사한다. ①인침은 소유권의 표시이며 정체의 증거이다. ②인치심은 또한 안전을 보장한다. 그것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보호의 표시이다. 이 인치심은 대환난 중에 그들을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도 "구속의 날까지" 사람을 인치신다. ③성령은 또한 보증 혹은 서약의 의미에서의 인치심이다. 인치심은 이미 받은 어떤 물건에 대한 서약이 아니라 장래에 받을 소유물에 대한 보증이다. ④인치심은 또한 확증과 헌신의 표시이다. 6) 기름(Oil) 성령은 하늘의 기름 부으심, 즉 높은 곳으로부터 내리는 성유인 기름으로 볼 수 있다. 기름 부음에 대한 관념은 예수께서 부여받은 전 사역에 대해서 예수 자신이 신성케 됨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늘의 기름이고(성유), 따라서 성도는 기름부음 받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받는다. Ⅲ. 성령의 품성(NATURE) 성령은 누구신가 혹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옮겨가고자 한다. 1. 하나님(God) 성령은 하나님보다 못한, 혹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실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다. 1) 신적 인식과 신적 신분(Divine Reconignition and Identification) 성령은 하나님으로 인식된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은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 구석 구석에 이르기까지 오직을 의미하는 언어로 성령을 언급하셨다. 구약 성경에서는 성령이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불리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 "하나님의 신", 그리고, "성신"에 대한 수많은 언급은 하나님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령은 분명 당시의 백성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게다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적 임재를 개인적으로 즐기며,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속에 내주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2) 신적인 완전성(Divine Perfections) 성령은 또한 하나님의 완전성을 갖고 계신다. 완전성에 대한 고찰을 차례대로 해보자. ① 성령은 편재하신다. 하나님의 신(성령)은 어디에나 계시고 영원히 계신다. 성령께선 특별히 당신을 영접한 성도들과 계속적으로 함께하신다. ② 성령은 전지하시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고 모든 것을 헤아리기 때문에 진실로 전지하시다. 또한 지식의 부족이 전혀 없으시다. 성령은 곧 하나님 자신의 전지하심을 갖고 계신다. ③성령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의 신은 전능하시고 이에 대한 증거가 창조에 있어서의 당신의 사역이다. 3) 신적인 사역(Divine Work) 성령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성령은 하나님 자신임이 틀림없다. 성령은 운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2. 인격체(Person) 성령은 신적인 영향력이나 능력일 뿐만 아니라 본래 한 인격체시다. 1)인격적 명칭(Personal Designation) 성령은 "보혜사(Paraclete)로 여러번 언급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위로자", "상담자". '조력자', '옹호자'등과 같은 말로 번역되는데 이로써 한 인격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부으심, 성령의 강림하심, 성령으로 세례받음, 성령으로 충만함과 같은 말은 비인격적인 어떤 능력과 힘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께서 오시는 방법을 언급하는 것이다. 2) 인격적 특징(Personal Characteristics) 성령의 인격적 특징의 하나로 지성이 있다. 성령은 교회의 으뜸가는 안내자와 감독자로서 활동하시는 한 인격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따라서 간구한다. 다음으로 성령의 인격적 특징은 의지이다. 2차 선교 여행 중에 바울과 디모데는 성령에 의해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려는 것을 포기해야했다. 이처럼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계셔서 그들을 막으셨던 것이다. 또한 성령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구약 성경에서 공히 성령은 근심하시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하고 있다.(롬8:26) "탄식"이란 말은 성령의 감정이 매우 깊으심을 나타낸다. 3) 인격적인 관계(Personal Relationships) 성령은 타자와 인격적으로 관계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중요한 예는 확실히 예수와의 인격적인 관계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과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이 아름다운 축도는 성령과 기독교 공동체 사이의 긴밀한 인격적 관계를 말해 주고 있다. 3. 독특성(Distinct)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반면 성령은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창세기는 역사하시는 중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이라'(1:1)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 행하시니라"(2절)이다. 따라서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신은 둘다 하나님이다. 하지만 두분의 역할은 동일하지 않다. 즉 그분들 사이에는 분리가 아닌 구분이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서 그들에게 보내질 보혜사 "진리의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다.(요15:26). 마찬가지로 그는 보혜사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7).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 모두에 의해서 보내심을 입게 되었다. 성령의 보내심은 성령께서 성자를 통해 성부의 보내심을 입는다는 의미에서 성부와 성자께로서 나오시지만, 결국 성령은 오직 성부께로만 나오시는 것이다. 즉 성부는 성령의 영원한 근원이다. 성령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발현하거나 퍼져나간다. 하나님 안에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이는 성령의 보내심 같이 성부의 의지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고 하나님의 내적인 존재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움직임이다. 성령은 성육신 후에 오시고 당신의 오심은 성부와 성자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흔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로서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의 어떤 종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도 영원한 신격으로서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는 성령의 영원한 독특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제7장 능력을 주시는 성령(THE ENABLING SPIRIT) 신앙 공동체안에서의 성령의 활동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위해 개인의 다양한 역할에 따라 지헤와 힘을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특수한 역할과 기능 구약시대의 선민의 삶과 선교를 위해 권능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셨다. 1) 성막과 성전 설계 성막의 설계와 건축을 위해 지명된 장인 브살렐에 관하여 성경은 "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출31;3-5) 라고 하여 , 브살렐이 성령의 조명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구상하신 성막이 실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성전의 식양 역시도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에 의해 다윗에게 주어졌고 , 솔로몬에 의해 완성되었다. (대하 28:12) 그리고 성막과 성전 건축 사엄의 완료에 대한 인정을 표하신 때는 구름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과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하였다. (출 40:34) (대하 5:13-14) 2) 백성의 인도 성령은 사람들에게 지도력을 부여하시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을 지도하며 그들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와, 칠십 인의 장로들과,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지혜와 힘을 부여하셨다. 칠십 인 장로들을 소집할 것을 명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민 11:17) 또, 모세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백성을 위해 또 하나의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그에게 안수하고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 결과, "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순종하였더라" 고 하고 있다. 3) 재판 가나안 땅 입성 후, 하나님은 "사사(士師)"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치리하고 재판을 담당하고 적들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도록 하셨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 웃니엘, 기드온, 입다, 삼손 등에 대해서 모두 "여호와의 신이 임하셨으므로 " (삿3:10)-웃니엘-,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삿6:34) -기드온- 에서 볼수 있듯이 사사들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으로써가 아니라, 성령의 지혜와 힘을 받아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입다...삿11:29 참조 삼손...삿13:25 참조 4) 통치 사사시대 이후 왕정시대에서 사울, 다윗 왕은 모두 성령에 감동되어 전쟁과 통치를 감당하고 있다. (삼상11:6) (삼상16:13) 특히 다윗은 그의 행위의 선악 간에 지속적으로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로 남아 있었다. (삼상16:13) 다윗 이후에는 성령에 의한다기보다는 자연적 상속인에게 왕위가 계승되어 왕에대한 영적 기름부음의 보증이 없었다. 5) 예언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주어지는 예언적 말씀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다. 모세가 선택한 칠십 인의 장로들이 성막에 인도되었을 때, 여호와의 신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예언이 순간적으로 터져나왔다. 진 중에있던 엘닷과 메닷에게도 신이 임하여 그들도 예언하였다.(민11:25-26) 메소포타미아인 발람에게 성령이 임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은(민24:2-3,9) 예언이 이스라엘신앙공동체와의 연관 속에서 행해지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외 예언이 나타났던 예는 삼상 10:5-6에서 왕으로서 기름부음받은 직후의 사울이고, 19:20 에서 다윗을 잡으려고 보낸 사신에게도 일시적으로 있었다. 예언의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고 사울은 사실상 예정된 선지자가 아니었지만 그 발언들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터져나온 발언이라는 암시는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울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고 나온다. 다윗에게는 성령의 지속적 기름부음이 "이 날 이후로(삼상16:13)" 있었고, 이것은 예언자적 기름부음을 함축한다. (삼하23:1-2) 다윗과 함께 한 용사 아마새(대상12:18), 여호사밧왕 시대 제사장 야하시엘(대하21:14), 요아스왕 시대 제사장 스가랴(대하24:20)에게도 여호와의 신이 감동하여 선민의 앞날에 대한 축복, 격려, 질책의 예언을 하게 한다. 그외에도 미가(미3:8), 바벨론 유수기 선지자 스가랴(슥7:12) 등에 의해서도 여호와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오신 것임을 밝히 알게해준다. 6) 능력부여 구약성경에서는 능력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힘으로서의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슥4:6-7)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전 재건축은 오직 성령께서 부여하는 능력에 의해서 완수될 것임을 증명한다. 이와 유사한 예언이 학개에게도 선포된다.(학2:4-7) 다른 곳으로 들어올리시는 성령의 힘에 대한 언급도 있다. 오바댜에의해 엘리야의 승천의 기적을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왕하상18:12), 승천 후 선지자의 생도들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하나이다"(왕하2:16). 선지자 에스겔은 "주의 신이 나를 어떻게 들어올리신다"는 말을 여러번 하였다.(겔8:3,11:1,24,43:5) 실제로 에스겔은 바벨론, 하늘과 땅의 사이 어느 곳으로 들어올려졌거나, 또는 환상 속에서 갈대아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옯겨졌던 것이다. 부기: 결른적 요약 및 단평 1>장인, 사사, 선지자 또는 제사장들의 임무수행을 위해 개인능력에추가된 초자연적인 능력 2>일반적으로 그 활동이 순간적이며 일시적이었다. 성령은 누구를 사로잡을 수는 있었으나 의복처럼 누구의 항구적인 복장이 되지는 않았다. 임무를 위해, 또는 증거를 위해 임하셨고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실재하는 분이 아니었다. 단, 여기에 예외적인 인물이 다윗이며, 모세에게 임하신 성령의 기름부으심도 한시적 성격 이상의 것이었으나 영원한 능력부여라는 성경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3>신앙 곧동체(하나님의 백성)의 생활에 관계되는 활동이다. 단지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만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사역과 상관이 없을 수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이처럼 성령은 이스라엘의 삶과 선교를 위해 그들에게 힘과 권능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임하였다. 2. 메시야적 사명 우리는 이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사역( 즉 기름부은 자,메시야를 준비하는 사역)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메시야는 신.구약성경을 통털어 사역을 행하기 위하여 성령과 일치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 오실 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신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의 오실 것을 선포한다. "이새의 줄기에서...한 가
Tissa Balasuriya의 위성 신학 연구
Tissa Balasuriya의 위성 신학 연구 2002-11-12 11:49:30 read : 3 지 도 변 선 환 교수 감 리 교 신 학 대 학 신 학 대 학 원 조 직 신 학 전 공 조 병 철 목 차 Ⅰ. 서 론 - - - - - - - - - - - - - - - - - - - - - - - 1 1. 문제 제기 : 위성 신학(衛星 神學)이란 무엇인가? - - - 1 2. 티사의 위성 신학의 위치와 연구 가치 - - - - - - - - 2 (1) W. C. 스미스의 세계 신학 - - - - - - - - - - - - - 3 (2) R. 파니카의 종교 신학 - - - - - - - - - - - - - - 5 (3) A. 피어리스의 해방 신학 - - - - - - - - - - - - - 7 3. 연구의 방법 및 목적 - - - - - - - - - - - - - - - - 9 Ⅱ.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 - - - - - - - - - - - - - 13 1. 아시아의 상황 : 다종교(多宗敎)와 고난 - - - - - - - 14 (1)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 - - - - - - - - - - - - 14 (2)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 - - - - - - - - - - - - 20 (3) 아시아 교회의 희망 - 해방과 정의 - - - - - - - - 26 2. 세계 체계(World System)와 제 3 세계의 현실 - - - - - 31 (1) 세계 체계의 기원과 특성 - - - - - - - - - - - - - 32 (2) 세계 경제 구조의 위기 - - - - - - - - - - - - - - 36 (3) 세계 체계과 인간해방 - - - - - - - - - - - - - 38 3.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향한 추구 - - - - - - 42 (1) 신세계 질서의 가치와 목표 - - - - - - - - - - - - 43 (2) 세계 변형을 향한 투쟁과 전략 - - - - - - - - - - - 48 (3) 신세계 질서와 인간 해방 - - - - - - - - - - - - 51 Ⅲ.위성 신학: 세계 종교 해방에로의 길 - - - - - - - - - - - 54 1. 전통 신학의 재고(再考) - - - - - - - - - - - - - - 54 2. 창조와 해방의 하느님 - - - - - - - - - - - - - - - 58 (1) 하느님과 창조 - - - - - - - - - - - - - - - - - 58 (2) 하느님과 해방 - - - - - - - - - - - - - - - - - 60 3. 우주적 그리스도와 보편적 성취 - - - - - - - - - - - - 62 (1) 예수와 하느님 나라 - - - - - - - - - - - - - - - 62 (2) 예수와 인간 해방(人間 解放) - - - - - - - - - - - 65 (3) 우주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적 실천 - - - - - - - - 68 4. 변화하는 시대의 교회론 - - - - - - - - - - - - - - - 71 (1) 교회의 근본적 전환과 선교 - - - - - - - - - - - - 71 (2) 성찬(聖餐)과 인간 해방 - - - - - - - - - - - - - - 73 (3) 교리 교육의 재검토 - - - - - - - - - - - - - - - - 76 (4) 예배의 갱신과 아시아 종교 - - - - - - - - - - - - 79 5. 정의의 영성 - - - - - - - - - - - - - - - - - - - - 82 (1) 정의의 필요성 - - - - - - - - - - - - - - - - - - 82 (2) 신학적 덕목과 사회정의의 덕목 - - - - - - - - - - 85 (3) 사회 정의(社會 正義)의 영성 - - - - - - - - - - 87 Ⅳ. 결 론 - - - - - - - - - - - - - - - - - - - - - - - - 91 1. 요약 - - - - - - - - - - - - - - - - - - - - - - - 91 2. 세계 종교 해방의 신학을 향하여 - - - - - - - - - - - 93 참고 문헌 - - - - - - - - - - - - - - - - - - - - - - - - - 96 Abstract Ⅰ. 서 론   1.문제 제기 :위성 신학이란 무엇인가 ? 위성 신학의 출발점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 곧 정치- 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세계의 종교 문화적 변동에 대응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에 주어진 상황적 신학인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세계 역할은 미미하면서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가지고 시작한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는 비인간적이고 불의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자만심에 빠져있는 현실을 볼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할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 것이다. 더우기 종교-문화적 다원 상황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배타적 그리스도교의 모습만을 유지하려는 전통적인 신학을 우리는 타파하고 새롭게 정향된 신학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세계 체계는 몇 세기전 서구 열강들에 의해 불합리하고, 불의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단편 일엽적인 지엽적 변화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계의 변형을 위한 그 전략을 보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발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제 하나의 전체로서의 위성(衛星)인 지구는 신학하기 위한 하나의 장(a context)으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의 모든 질서는 서로 연관되고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기적 공동의 장으로서 하나의 위성으로서의 지구에 관심하는 신학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위성 신학은 21세기를 위한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다. W.스미스에 의하면 새로운 세계 공동체는 '서로 빈틈없이 협력하고 살아가는 다문화(多文化) 적인 가치들과 종교적인 다원성(多元性)의 모습을 띤 세계'라고 말한 것과 같이 오늘의 신학은 이러한 세계적 지평을 가져야 할 것이다. 2. 티사의 위성 신학의 위치와 연구 가치 현대 신학의 중요한 동기는 전통적 신학과 같이 지엽적인 것이 되어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세계의 현실이 하나의 지구촌으로서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선진 공업국은 후진 자원국과의 관계에서 발전되었으며 서구는 제 3 세계에 막대한 빚 -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은 평화, 인권, 정의, 국제적 갈등의 해결, 나아가서 식량과 고용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찬란한 위성적 상호 의존의 세계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또한 전세계에 일어나는 빈번한 전쟁, 테러, 분쟁, 지역 감정 등은 종교적, 문화적 현실의 다원적 추구를 배타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원적 종교 신학에 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적인 무역 역조, 빈곤, 기아 등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지역 엘리트의 비인간적인 이기주의는 끝없이 정치-경제적 해방을 추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특히 아시아에서의 지역 갈등은 냉전 시대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결과로 빚어졌으며, 이 지역의 민중을 끝없는 해방 투쟁에 밀어 넣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변화 되었고 공산주의는 패배하였다. 이를 기회로 미국은 제국주의적 근성을 드러내어 신패권주의(新覇權主義)로 부상하기 시작하였으며, 독일과 일본과 같은 양차대전 패전국들은 지역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화는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위성 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의한 현실 앞에 놓인 신식민주의(新植民主義)에 대응하는 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위성 신학이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위성 신학과 연계해서 위성 신학의 가치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세 신학자의 신학 - 스미스의 세계 신학, 파니카의 종교 신학, 그리고 피어리스의 해방 신학 - 을 간단히 다루고 위성 신학의 연구 가치를 제시할 것 이다. (1) W. C. 스미스의 세계 신학 W. 스미스는 국제적인 상호 관련성 가운데 있는 세계 공동체를 지향하는 다문화적(多文化的) 차원을 긍정하면서 냉소적인 그리고 비(非)건설적이며 파괴적인 상대주의를 넘어서서 현실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이는 우리가 신앙의 다양성에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신을 섬긴다는 원초적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스미스가 제시하는 비교종교학적 세계이해이다. 스미스에게서 우리가 수용해야할 새로운 개념은 바로 '협동적-비판적 자의식(Corporate critical self- consciousness)이다. 이는 하나의 주체 대 주체의 관계성을 유일한 상태로 인식함으로서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초월하려는 의도적 방법이다. 휴즈(E. Hughes)는 이를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에서 참된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 방식은 신학에 협동적- 비판적 자의식을 통해 타자를 하나의 주체로써 받아들임으로서 배타적이고 편파적인 비인격적 의식을 탈피하고 세계적이고 인격적인 의식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타문화, 타종교에 관한 풍부한 지식이 서구에 알려지고 서구 신학은 타종교의 통찰을 자신들의 사고 속으로 통전 시키도록 도전 받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교 신학은 자신만이 참 실재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소유한다는 독선주의적 신학을 포기하고 더 큰 진리에 대한 다원주의적 비젼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은 신학에 있어서 지식적인 의무일 뿐만 아니라 목회적인 필연(Pastoral Necessity)이 되었다. 바로 세계 신학은 종교 참여자들이 협동적 비판적 자의식을 통해 종교적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확장하는 과정이며, 이런 과정은 특정 종교의 통전적 사상을 필연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바로 스미스는 이러한 대화의 방식을 통해 종교학적 만남을 제시한다. 그러나 기독론에 있어서 스미스의 비판은 그리스도교 절대주의에서의 중심적 지주로서 기능한다고 보면서 신중심적인 정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로고스(Logos)의 인간적 현실화(actualization)로서 이해되어진 나사렛 예수와 보편적 계시와 구원행위 속에서 하느님으로 이해되어진 로고스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선교에 있어서 개종보다는 각 전통의 신학자들이 세계의식 안에서 자신들의 진리나 초월 이해를 설명하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발생하기를 스미스는 희망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스미스의 세계 신학은 축소주의적 계시 이해, 기독론의 불명확성, 구원 혹은 해방에 관한 의견이나 실천적 방향이 결여되고 단순히 비교종교학적인 면에서 종교의 문화적 대화에 치중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2) R. 파니카의 종교 신학 파니카의 종교 신학은 다원주의적 종교 상황을 긍정하면서 그가 속한 힌두 전통 안에서 그리스도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토착화신학이다. 카 릭 어머니와 힌두교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그는 두종교 사이의 종교적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파니카에 의하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다른 한편으로는 힌두교의 교리가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진리는 흔히 완고하지는 않지만 특수하고 제한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실제에 있어서 그것들은 보다 보편적인 진리가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제한된 공식화"라고 보면서 이는 대화를 통해 하나의 종교적 진리가 두 전통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서술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파니카는 이러한 다원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변증법적 대화(Dialectical Dialogue)를 거부하고 대화적 대화(Dialogical Dialo- gue)를 사용한다. 대대적 대화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절대화 하기를 거부한다. 이 대화는 제 종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히 실재적 요소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결국 대화적 대화는 제 종교들은 그 보편성과 특수성 모두가 동시에 긍정되면서 상호 만남과 성장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파니카의 기독론은 그리스도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 길을 걸을 때 유일한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전체로서 신비의 한 양상일 뿐(Christ is but one aspect of the Mystery as a whole)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인간, 신성, 그리고 물질을 성장케하는 실재의 중심(centre of reality)이며 결정체점(cyristallization-point)이다. 그리스도는 라마, 크리슈나 이쉬바라와 같은 또 다른 이름이며, 인간, 신성 그리고 우주와 같은 실재의 전체성에 대한 생생한 상징(a living symbol for the totality of reality: human,divine and cosmos)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영, 진리, 사랑, 정의와 같은 중성적인 상징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재인 것이다. 파니카는 기능론적으로 그리스도는 타종교의 구세주와 일치된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구원의 의지 자체이며 예수는 그 구체적 표현이지만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파니카는 역사적 이름이나 형태는그리스도의 완전한 혹은 최종적 표현이 되어질 수 없다고 진술한다. 바로 대화적 대화는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와 불가분의 연결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고 봄으로서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그는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중심적 확신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타종교와의 대화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카워드에 의하면 파니카는 현대의 그리스도는 역동적으로 현존하며,성령으로서 우리를 이끈다고 본다. 성령으로서의 아들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배타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과 자신의 교회, 자신의 종교를 뛰어넘게 하여, 신비에 대한 범세계적인 경험을 인정하고 참여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파니카는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한 참된 경험은 인간과 우주적 코이노니아(Koininia)"에 있다고 보았다. (3) 피어리스의 해방신학 오늘날 제 3 세계란 피어리스에 의하면 "인종과 계급과 성(性)의 차원에서 사회-경제적 의존이 정치적이고 문화적 예속을 발생시킨다면, 그 곳이 어디든지 또 그 때가 언제든지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를 말한다. 이러한 제 3세계에서는 해방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현재 비그리스도교 종교와 문화의 고유어들을 이용해서 자기네 궁극의 염원을 파악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을 상징화 하고 있다. 이러한 해방의 투쟁에 그리스도교적 종교 신학은 다른 종교들과 문화들의 해방하는 물결 속으로 들어감에 있어서 현재의 전통적 경계선을 확장 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피어리스는 주장한다. 피어리스에 의하면 모든 종교에 공통된 것은 구원 사상이며 모든 종교의 관심사가 해방 혹은 열반(nirvana)이며, 가정적인 어떤 해방자에 대한 사변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현재의 종교 신학들이 한결같이 자신이 소속된 종교의 경전의 언어적 해석이나 개인의 자기정화라는 소승적(小乘的)인 사회-문화적 혁명에만 관심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종교의 대승적(大乘的) 차원 곧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구조적 혁명이라는 대의(大義)에 관심한다. 그리하여 그는 제 3세계의 종교 신학이라면 마땅히 종교와 혁명을 단일하게 파악하는 신학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질문한다. 또한 해방 신학은 교회의 관심을 ① 삶의 전례 (the Liturgy of Life)와 ②십자가의 신학, 그리고 ③ 역사적 예수와 그의 인간성에 두고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교의 영성의 세차원인 성사적 차원, 관상적 차원, 행동적 차원을 통해 세계 변혁을 위해 투신하는 그리스도교적 투신이 형성되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전례와 영성과 세속 활동들이 상호 포괄되고 그것이 교회의 참된 쇄신을 가져오는 것이 실천적 해방신학이라고 보았다. 아시아의 해방 신학은 아시아의 실재인 종교심과 가난의 상호 작용에 관심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 그들을 가난하게 붙들어 묶는 심리-정신적 자유, 사회-정치적 자유라는 것이 아시아 신학의 본질적인 관심사가 된다. 이 한 해방의 과정은 예수 생애의 두 중심인 요르단과 갈보리에 집중된다. 해방의 과정으로서의 예수 생애는 요르단 강의 수세를 통해 전통에서의 해방을 위한 결단을 보여준다. 요르단은 '세계 - 포기(出世間)'의 영성이며 이는 자발적 가난과 야훼의 가난한 사람들의 합류점이다. 이는 곧 아시아의 수행(修行) 종교의 초우주적인 영성과 소박한 농민들의 우주적 종교심이 만나는 장인 것이다. 오직의 교회 역시 이러한 아시아의 요르단에서 예수와 같이 수세를 받아야 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예수의 갈보리에서의 죽음의 세례는 그의 예언자적 사명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워 전적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 만이 할 수 있는 해방의 역할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야말로 성사(聖事)라고 일컫는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하게 참된 세례이며, 십자가야말로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심과 경건한 아시아인들의 가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아시아의 물길에 교회가 뛰어들어야 모든 것을 나누는 이상적인 공동체, '종교적 사회주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피어리스의 소승불교의 금욕적 차원에서 나타난 그의 해방 신학은 종교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대해 애매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비체험과 아시아의 고난받는 백성의 해방이라는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변선환 교수는 비판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이와같은 세계적인 관점의, 종교신학적 사유를 가진, 민중의 참된 해방에 동참할 수 있는 신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소유한 것이 바로 티사 발라수리야의 위성신학(Planetory Theology)이다. 발라수리야의 위성 신학은 신학의 관점을 지구라는 위성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새 지평을 열어주며, 아시아의 종교심과 자본주의의 세력에 의해 착취당하고 압박받는 민중의 해방을 추구하는 신학인 것이다. 3. 연구의 방법 및 목적 위성 신학은 신학의 근거로서 세계의 체계(World system)에 관심한다. 그리고 이 세계 내의 열악한 상황 속에 구체적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가운데서 해방을 촉구한다. 2부에서는 아시아의 상황을 다종교(多宗敎)와 고난(苦難)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것이다. 아시아의 종교 문화적 상황은 다원주의적이며, 이전의 배타적인 종교심으로서는 아시아에서 타종교로부터 배타적인 태도를 당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배타적인 종교심을 넘어서 다원주의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세계 체계 속에 있는 아시아의 한계를 서구 문화에의 대립을 넘어 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는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위성인 지구 공동체 안에서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서 모든 질서와 환경이 발생한다는 것을 재고 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는 고난 받는 지구의 일부이며, 그리스도교를 비롯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자이나교 등 종교의 집단적 다원 구조를 가진 곳이다. 또한 이곳은 과거에 서구 식민지로서의 정치.경제의 침략지로서 초토화되었던 '땅의 백성들'의 거주지이며, 이제는 새롭게 아시아 교회의 희망을 요구하는 변혁의 땅이다. 한국의 6.10 운동과 필리핀 민중의 2월 혁명을 통해 정치적 승리로 변화하는 정치적 민중 승리의 터전이다. 곧 아시아 민중의 희망과 교회의 희망은 정의이며, 새 하늘과 새땅이다. 위성 신학은 세계 체계를 살펴봄으로서 그 문제점을 파악한다. 즉 인간의 집단적 그리고 개인적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종교적, 정치-계급적, 인종적 그리고 성적(性的) 구분에 따른 불평등에 대하여 위성 신학은 해방의 영성으로 도전한다. 바로 이 해방의 영성은 정의의 영성(Spirituality of Justics)이며, 해방의 정치 윤리이다. 이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종교적 변형을 추구한다. 또한 생명의 해방과 만유(萬有)의 회복을 향해 세계는 혁신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3부에서는 위성 신학의 개념을 다룬다. 위성 신학은 곧 세계 종교 해방에로의 길이다. 이제 까지의 교회중심적이고 남성 위주의,시대-우월적인, 그리고 전기-자본주의적이며, 반공적이고, 반혁명적인 신학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제 동서의 대립은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상호 배타적인 대결 구조에서 벗어나 평화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없다. 이제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만이 존재한다. 여기에 신학은 해방적이며 상황적일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창조와 제 2의 창조로서의 해방의 하나님으로, 인류와 더불어 새로운 해방을 추구하도록 권면하고 용기를 주시는 분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지평을 우리에게 희망을 통해 보여주신다. 우주적 그리스도(Universal Christ)는 전세계와 인간 역사의 혁명 안에서 더 나은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은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며, 다른 종교 전통과 사상에 진정한 대화를 하도록 개방시킨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 인간 연대의 원리를 발견한다. 예수는 인간 해방의 원리이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 교회는 말씀과 예전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함으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시대의 현실에 응답하여야 한다. 교회는 위성 시대(衛星 時代)에 있어서 과거로 부터 물려받은 조직적인 구조와 다른 잔존하는 것들이 현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고 통전적 회심을 통해 모든 것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지구적 상호교통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진정한 사랑이 교회의 결합 원리이며, 교회 내에서의 여성해방에 관심한다. 신앙은 정의의 영성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는데 성서는 진정한 종교의 기초를 이웃에 대해 정의로운 것, 즉 사회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통전적 해방을 선포했다. 그는 최후 심판 비유에서 인간의 고난을 경감시키고 압박 받는 자의 해방을 위한 노력을 계수하신다고 가르쳤다. 예수의 삶은 압박받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한 삶으로서 그들의 통전적 해방을 위해 그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세계의 모든 물질을 정의롭게 사용해야 하며,인간 존재의 관계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희망은 잃었던 신학적 덕목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사랑은 바로 정의의 성장이며, 정의는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며, 혁명적 변화에 참여함으로서 상황적이며 급진적이어야 한다. 결론에서는 이제까지의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이해와 세계종교해방에로의 길인 위성 신학을 요약하고 세계 종교-해방 신학의 가능성을 타진함으로서 본 논문을 마칠 것이다. 이러한 추구는 세계 신학과 종교 신학 그리고 해방신학의 관점을 통합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적 신학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토착화 작업의 하나가 될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성 신학은 현대 후기의 신학(Post-modern Theology)으로서 통전적 가능성을 제시하며, 이는 한국에서의 종교 신학과 민중신학을 통합하는 새로운 세계종교-해방신학(世界宗敎-解放神學;World religio- liberation theology)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Ⅱ.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2부에서는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 세계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세계체계에 대한 파악이며, 그 체계의 현실에 대한 재고(rethink)만이 참된 해방의 길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는 제 3 세계의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약 13%를 차지하고 있다. 티사의 위성 신학은 아시아에 우선적으로 관심한다. 물론 그의 위성 신학에서는 세계 체계(World System)에 대해 먼저 다루고 있지만, 아시아의 위기가 곧 세계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시아의 현실은 다종교(多宗敎)와 고난의 차원에서 이해되는데 이는 아시아가 세계 열강의 식민지적 착취에 이용당해 왔으며, 여기에서 해방하려는 추구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세계의 체계와 신세계 질서의 관련성을 다루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아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제 3세계와 관련해서 검토함으로서 신세계 질서에 대한 요청을 인식하도록 할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교회와 세계 체계와의 관련성을 파악함으로서 신세계 질서의 필요성을 밝힐 것이다. 바로 위성 신학이 관심하는 근거로서의 세계는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구로서의 위성(衛星)이란 상호 연관성 아래 놓였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1. 아시아의 상황 : 다종교(多宗敎)와 고난 (1)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 티사는 아시아의 문화들과 종교들에 대한 이해는 세계 체계와 관련하여 비판적으로 설명한다. 아시아의 세계에 대한 연관성은 식민지적 접촉과 무역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 민중들에게 서구의 과학과 문화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결합한 서구 과학은 인간의 신성함이나 사회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에 대해 파괴적인 역할을 하였고 서구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서구 과학에 영감을 주기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아시아 문화와 종교는 서구 자본주의의 것과는 아주 다른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 티사에 의하면 아시아는 아직도 농촌중심적-땅중심적이고, 전통적인 가족관계 즉 대가족(大家族) 제도나 공동체 의식 그리고 경로 사상(敬老 思想)을 가지며, 삶에 있어서의 가치의 비중을 물질에 두기 보다는 인간에게 두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적(大乘的)인 태도는 자연과 모든 생명 형태를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 신앙과 실천들을 포함한 타인의 관점에 대해 중용(中庸)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전통에서와 불교에서 '관용의 중도(the Middle path of tolerance)'라는 사상에서 잘 발견된다. 아시아에는 다종교(多宗敎)의 상황 가운데 대부분의 아시아 민중들은 아시아의 종교를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 신앙은 아시아 종교의 지적 총합에 앞서 아시아 민중의 내면에는 정령 신앙(animism)과 제례(祭禮)가 중요시 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아시아 사회의 토대이다. 아시아의 종교성은 단지 철학적 훈련이나 명상적 금욕주의가 아니라, 전통들과 신조들, 관습과 삶에의 외경,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아시아 민중의 이야기 속에서 짜여져 있다. 종교는 인간 존재들에게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생활을 자극하는 세계-침투 세력이다. 종교들은 그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응답을 추구한다. 그러나 각각의 다른 응답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좀 더 나은 방식에로 인간적 삶을 추구하고 인식시키는 것에 모두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각 종교 전통은 그것이 뿌리박고 생활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관계성을 가지며 사회 세력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평화로운 실존과 외적 성장이 계속되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 그룹에 의해 조직된다. 티사는 종교적 전통과 조직화에서 두가지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그 혁신적 메세지의 핵심이며, 둘째는 그 사회-문화적 상황(狀況)이다. 전자는 기본적 삶의 의도와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종교의 조직화와 외적 양상을 평가를 위한 하나의 비판이 되어져야 한다. 후자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종교는 그 신앙의 내용이나 질(質)보다는 사실상의 인간 집단화에 더 관계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은 핵심 메세지에 대한 응답이며, 한 종교 전통의 전(全)사회-문화적 상황을 수용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종교주의'의 등장은 인종 차별주의나 계급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와 같이 극단의 한 형태로써 배격해야할 것으로 티사는 간주한다. 이러한 종교주의는 우월한 문화, 사상 혹은 인종적 집단에 묶여있는 종교라면 더욱 강하다. 즉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우월성 또한 종교적 영역에로 전이(轉移)되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주의는 다종교(多宗敎) 가운데서 관용과 대화 그리고 일치운동(ecumenism)의 현대 정신에 확실히 위배되는 것이다. 종교주의는 또다른 종교 신자에 대한 존경심과 하느님에 대한 외경을 저버리는 것이다. 종교가 종교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화가 필요하며, 타자에 대한 겸손과 봉사의 덕을 수행하며, 존경과 대화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그 자신의 독점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시아의 종교는 아시아의 방식대로 전파되었다. 즉 인도의 종교로서의 힌두교와 불교는 동쪽과 남향으로 전파되었으나 그리스도교와 같이 폭력적이거나 상업적인 것이 배제된, 문화적이며, 비폭력적이고, 공존적인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아 아는 고대로부터 인생의 의미와 세계 이해와 신적인 교제를 추구했다. 티사는 그러한 종교를 힌두교와 불교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교, 자연에 대한 무제약적 경험에 대한 일본인의 표상인 신도(神道), 명상 수련을 통해 정신 반성과 실재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선불교(ZEN),그리고 코란에 의해 사회-정치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슬람을 포함 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아시아인의 기억 속에 서구 세력이나 상업적인 동맹 세력의 압제하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아시아 민중은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며 먼저 그리스도인은 진실로 존경하는 태도로 다른 종교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곧 관계성의 개방(Openness of Relationships)을 요구한다. 우 는 우리 자신을 타자에게 개방하고 진정한 인간성을 배워야 한다. 이는 모든 인격과 민중을 돌보시는 하느님을 그리스도교의 독점물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며, 하느님이 그들의 영적 성장과 성취를 위한 수단 없이(without the means) 아시아의 민중을 버려두지 않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구원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이 취해야 할 것에 대해 질문되어져야 한다. 왜 아시아인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고 그들의 종교에서 영감을 계속 받고 있는가? 그리스도교로서의 응답은 새로운 질문을 일으킨다. 그리스도의 메세지가 아시아와 아시아 민중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깊은 변화를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의 복음의 핵심에 대한 재전환(reconversion)을 의미한다. 아시아 종교와의 충실한 대화는 그리스도교 계시가 하느님의 유일하고, 특권적이며, 궁극적 계시라는 관점에서 시작한다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티사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신학에 대한 재고를 심각하게 질문한다. "역사적 인물인 예수를 신약성서의 우주적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관시킬것인가? 힌두교에서 예배하는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하느님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상호 의존적인 지구 공동체의 일치와 다종교(多宗敎)안에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관점에서 모든 종교의 일치를 향하여( an ecumenism of all religions) 하나의 공동적 영성의 핵심을 만들어 나아갈 수 없을까? 그리스도교는 그의 메세지가 이러한 영적핵심을 유지하면서 정화되어질 수 있는가?" 동시에 그는 위의 종교 신학적 질문외에 해방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와 다른 아시아 종교들이 아시아 민중의 통전적 해방(the integral liberation of Asian people)에 대한 공헌을 요구한다. 즉 그는 아시아의 종교들이 그의 한계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해방을 위한 아시아 공동체의 추구에 동기 부여와 세력의 근거가 되어져 왔다고 평가한다. 이는 인도에서는 힌두교, 중동에서는 이슬람교, 그리고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그 자신의 개성과 독립을 위하여 동기부여를 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3.1운동은 다종교(多宗敎)의 연대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며, 필리핀의 2월 혁명은 그리스도교 세력과 사회주의적 민중의 승리라고 볼수 있다. 티 는 과연 "그리스도교는 가난과 죽음에 대항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요청과 다른 종교들이 아시아 민중의 해방투쟁에 동참하도록 하기위해 갱신될 수 있는가?"하고 질문한다. 특히 여성해방의 심각한 문제는 아시아 여성이 이제까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티사는 아시아의 전통적 양상에 여성들과 모성에 대한 확실한 존경이 있었다 할지라도 여성을 불공평하게 취급해왔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남성에 의존되어 왔으며, 노동, 임금에 대해서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왔다. 또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생활에 적잖은 제한이 있어왔다. 이러한 상황은 일부 도시지역과 교육받은 여성 가운데서 변화되기 시작했으나, 이러한 차별대우의 원인은 심리적으로 깊게 자리잡은 남성 우월 의식과 여성의 의존성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종교들은 여성의 권리들을 일반적으로 강조해 왔다. 아시아 사회에 널리퍼진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는 종교적 가르침과, 관습들 그리고 성성(聖性:sanction)들에 의해 보호되었다. 아시아에서의 완전한 여성 해방은 아시아 여성들이 스스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용납되어지고, 용납할 때까지는 아직도 먼길이며 많은 투쟁들이 남아있다. 또한 아시아에서의 인종 차별과 소수 민족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계급제도는 모든 아시아 나라에서 - 특히 서아시아에서의 아랍과 이슬라엘의 갈등과 대만에서의 인종 차별에서도 볼수 있는 명백한 현실이다. 아시아 전체에서 인종에 대한 정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식민 통치에 의해 소수 민족의 권리는 짓밟혔고, 모든 민중은 가장자리로 쫏겨나고, 제 2 계급의 시민으로 전락되었다.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의 국경은 식민 통치자에 의해 선을 그어 제멋대로 나누어 졌다. 또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많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낮은 카스트에 속한 민중들은 대부분 땅없는 노동자로 구조적 규정, 사회주의적 생활 방식의 채택, 가난 근절에 대한 정당의 서약에도 불구하고 계속 착취되어 왔다. 아시아의 이러한 종교-문화적 상황은 다종교(多宗敎) 안에서의 끝없는 갈등으로 존재하였고, 문화전반에 걸쳐 해방을 향한 희망에로 그 촛점이 맞추어 나가게 되었다. 아시아는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하나의 희망을 추구한다. 이는 종교 해방이며, 민중과 모든 존재의 해방이다. (2)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은 또한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정치적 현실은 결국 경제적 현실로 연관된다. 이는 서구 식민 통치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티사는 제 3 세계가 제 1 세계의 기호에 어울리게 세계 체계를 형성하도록 그 번영의 대금을 오랫동안 치뤄왔음을 상기시킨다. 제 3 세계 민중들은 개발되거나 선진 제국들을 위해 미가공된 물질과 값싼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제공하는 것이 엄청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점차 알기 시작했다. 지난 400여년간 아시아는 무자비한 서구의 착취적인 체계의 원조하에 있었으나 아시아는 깨어나기 시작했고, 21세기의 아시아는 세계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신흥공업 국가의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점차 무역 개방을 시도하여 아시아의 빈곤에서 벗어 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는 전세계 인구의 6할인 29억 4,100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가 절대적 내지 상대적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이제 아시아 민중들은 그들 자신의 정치-경제적 해방을 위해 세계 체계를 움직이고자 했다.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이러한 해방을 추구하였다. 일본은 서구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서 서구 우월주의에 참여하였고 그들은 세계의 대기업과 자신의 중소기업을 결합시켜 육성하였고, 그 사업에 인간 보호라는 일본의 문화 가치를 결합시켜 노사 관계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일본의 기업은 아시아의 여러나라에 대한 착취를 통해 성장시켰다. 이러한 성공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모델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티사는 비판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 대한 아주 무자비한 착취에 의존하고, 독재적인 정부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약 40%를 차지하고 아시아 인구의 약 20%를 가지고 있는 구 소련(舊 蘇聯)은 시베리야의 자체 개발이 불가능함에 따라 그의 사회주의 사상에도 불구하고 서구와 일본 그리고 미국 자본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구소련의 해체에 따라 새로운 민족주의적 국가들이 탄생하였고, 러시아 연방은 자본주의에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 했다. 그들의 경제 불황과 부족한 식량 문제, 외화 부족 그리고 핵과학자들의 외부 유출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의 모택동의 통치하에 문화혁명도 시대적 조류에 함께 흐르게 되었고 천안문 사태에도 불구하고 삼자(三自)정책의 기치아래 그들의 경제 발전을 온건 보수파인 등소평에 의해 계속 추진되고 있다. 모든 것은 혁명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교육도 혁명 과정의 도구였으며, 문화와 예술도 민중과 혁명에의 봉사를 위한 것이 되었다. 중국 역시 사회적 민주화는 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의 참여를 허용한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국제 정의의 추구와는 달리 국수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최근 중국 정치는 대만정부에 대해 유화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대만정부 역시 그들의 삼불(三不) 정책을 철회하였다.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도 이데올로기 갈등하에 있었으나 최근의 남북합의서 채택과 베트남의 개방정책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동참하고 있다.세계는 세계의 정의 보다 국가적 관심을 더 추구하고, 정당들은 정권에 대한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서남 아시아와 중동의 산유국들은 그들의 기름 가격 조정을 통해 자원의 무기화하고 있어서 부유한 나라나 비산유국인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도 하였으며,그들은 기름의 판매 수익을 경제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중동은 최근의 이라크 전쟁으로 계속 긴장 상태에 놓여 있고,미국의 리비아 제재는 새로운 종교 전쟁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바로 세계의 문제는 이 지역에서의 화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터전을 위한 투쟁, 종교적-인종적 갈등, 이슬람의 군비 강화, 자유와 참여를 위한 일반적 투쟁들, 외국 군대 주둔, 여성해방, 사막 환경에의 대처 등 모든 주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다가오는 수십년간의 위성적 경제, 정치, 군사, 문화, 종교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동남 아시아의 국가들은 개발에 대하여 전기-서구자본주의 노선(pro- Western capitalist lines of developement)을 따르는 정부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들 나라의 특징들을 티사는 12가지로 다루고 있다. 이 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우선적인 경제 성장 추구, 사회 정의와 부(富)와 수입의 공정한 분배를 이차적으로 다루는 것, 외자의 투자 환영, 무역에의 고무, 노동 환경의 취약, 도시 중심의 발전, 정부나 기업에 의한 방송 매체의 통제, 정부의 권력 강화 등이다. 또한 서 아시아는 인도 문명권 하에 있는 나라들로 인도와 스리랑카를 들수 있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선거(general election)를 통해 정부를 바꾸는 민주적 정부 조직을 보류하고 있다. 이런지역은 외자 도입과 지역 엘리트들의 협동에 의해 자본주의적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또한 서 아시아는 주요 종교 전통의 터전- 힌두교, 이슬람교,불교-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또한 다양한 가치를 가진 사회 정의와 정치적 자유, 그리고 종교적으로 정향된 문화와 경제 성장을 위한 가치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또한 엘리트층과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치적 엘리트들은 부(富),사회적 위신, 정치세력, 문화적 추구, 군사 세력과 종교적 특권, 세습적 지위 같은 것들의 다양한 발전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적 엘리트들은 부유하지 않지만 민중에게 사상을 주입함으로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중국 정부 차원의 경제 계획은 일반적으로 엘리트들의 손에 의해 다루어진다. 여기에 사업 엘리트는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서로 공존한다. 이러한 통치 세력으로서의 이기적 엘리트들은 아시아 제국들에 있어서 사회적 정의의 실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이와 달리 문화적 엘리트들과 급진주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들은 국가 생활의 변화를 촉구하며 그 필요성을 인식한다. 종교 지도자의 일부는 세계 종교의 평등주의적 사신( the egalitarian message of the world religions)에 더 심각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시아 엘리트의 비극은 그들의 압제자나 매국노가 되는 것 대신에 대중의 해방자가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들에게 수많은 희생이 요구된다.그들은 민중의 급격한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능력은 있으나 그 변화를 이행할 인간성과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 엘리트의 역할에 대한 이해는 가난한 나라 안에서의 정의와 세계 차원에서 그의 시도를 위해서 극히 중요하다. 다국적 기업(Multi National Corperation)의 문제는 동남 아시아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물건 판매와 값싼 원자재 구입, 그리고 생산고를 위한 토지 구입을 통해 아시아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아시아의 지역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다국적 기업으로 네슬레, 코카 콜라, 펩시, 맥스웰, 존슨즈, 코닥, 필립스, 소니, 미쯔비시, 산요, 외국 비행사들, 호텔체인 ,그리고 외국계 은행등 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국제 경제 질서에로 세계의 가난한 나라를 통합시켰다. 티사에 의하면 다국적 기업의 다음의 주장들을 부정하고 있다. 즉다국적 기업은 그들이 가난한 나라의 원자재를 사용하고, 자본을 투입하였고, 고용을 창조함으로서 가난한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경우 그 지역의 원자재를 이용하여 음료수를 만들지 아니함으로서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자본의 투자금보다 이윤의 반송이 더욱커지고 있으며, 숙련된 기술자를 훈련시키지 않음으로 단순 노동직으로 착취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그들의 축적된 기술 이전의 거부로 인해 그 기술은 낙후되었고 자본은 그나라 밖으로 유출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아시아국가는 대기업의 상품을 팔아줌으로서 그들을 돕고 가난한 나라의 값싼 노동력은 기업주의 착취에 의해 심각해지고, 그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다국적 기업은 개발 도상국의 저임금, 노조의 통제, 사회보장비 면제, 적은 사회 간접자본 투자및 세율 인하의 혜택을 누린다. 아시아 민중의 희망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에게 놓여진 역사적 현실이며, 이에 응답할 책임을 우리는 부여 받고 있다. 교회는 아시아 민중의 종교심(宗敎心)과 고난 -정치적 고통 혹은 경제적 가난-에 동참하여 해방과 정의를 창출해야 할것이다. (3) 아시아 민중의 희망 - 해방과 정의 티사에 의하면 인도와 스리랑카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정의(socio- economic Justice)와 종교-문화적 대화 (Religio-cultural Dialogue)는 해방에 대한 하나의 통전적 접근(a integral approach to liberation)을 위한 추구에서 만나게 된다. 이러한 경제 정의와 종교 상호간의 대화는 아시아의 해방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의 정립에 까지 연관되는 것이다. 아시아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모든 것은 상호 연관된다. 바로 위성 신학(衛星 神學)은 이러한 세계의 현실에서 고통받는 아시아에 관심하는 것이다. 가난은 아시아의 사회-경제적 여건에서 그치지 않는 정치적 현실이다. 이러한 아시아의 현실은 고난이다. 고난받는 민중은 민중 자신과 세계가 해방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어떤 상징이나 이념, 표현들이 그들을 이끌거나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외부로부터 얻어질수 없으며, 억압받는 민중 가운데서 태어나야 한다. 즉 그 해방에는 종교적 자각과 자기 이해의 변혁이 일어나야만 한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과 정치-경제적 현실은 간단히 다종교(religions)와 고난(suffering)으로 이해되어 진다. 아시아에서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간의 상호 대화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러한 대화를 통한 접근이 아시아적이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 민중의 현실이 고난으로 집중되는 것은 불교적 요소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생활 양식에 오랫동안 삼투되어져 왔기 때문이며 바로 고난의 문제가 인간 운명에 대한 질문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Ywangoe는 인간 운명과 관계지어 고난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종교가 고난에 대해 양면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종교가 고난에서 해방되는 길을 보존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종교가 민중을 고난에로 영원히 묶어두는 것이다. 아직도 빈곤, 불의 그리고 착취 가운데 있는 아시아 민중은 아시아 종교의 영성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조장된 생활, 정치 제도, 사회적 인습, 그리고 문화적 관례에 대하여 새로운 인간 실존의 기초를 세우고자 대항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송천성의 말대로 그리스도교 영성과 아시아의 영성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빛으로 실존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게 하며,그것들로부터 창출된 새로운 영성이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기초가 될수 있는가 질문해야 할 것이다. 티사의 통전적 해방에로의 접근은 M.M. 토마스의 사상과 만날수 밖에 없다. 그 "아시아인의 투쟁과 그리스도교인의 행동"에서 미래의 방향에 대한 전망을 다음과 같이 상정하고 있다. 1)아시아인의 투쟁은 아시아적 삶의 모든 영역 - 정치, 국가의 형태, 경제-사회적 구조 문화적 가치와 개인과 단체 사이에 연관된 영성 - 의 전환을 의미한다. 2)분명한 논점은 가나하고, 눌린자 들을 후원하여 보다 나은 근대화와 결단 행위 과정과 권력의 실천에 있어서 현재 권력 구조의 변형을 위한 투쟁이다. 3)아시아 교회는 통전적 인본주의 이념과 에토스를 향해서 일해야 하고 타종교인들과 접촉하는 그리스도를 위한 공동의 틀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4)지역 상황 속에서 정의를 위한 민중의 투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다. 5우리는 국제적 , 정치적, 경제 구조와 그들의 억압자들에 대한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가난에 저항하는 아시아 민중의 투쟁과 관련된 그리스도교의 행동 전략을 인식해야 한다. 6)아시아 민중의 투쟁과 관련해서 교회와 회중의 정신과 구조가 갱신되어야 한다. 이는 이웃 공동체를 위한 연대성과 책임을 위해서이다. 7)교회는 평신도와 여성 청년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고, 교육하여 세속적으로 아시아인의 투쟁에 응답해야 한다. 이제 아시아인은 각성하고 있으며, 그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아시아를 비롯한 제 3세계의 신학은 제 1세계의 교회와 신학이 잘못된 세계체계의 변혁에 동참하라는 호소이며, 신학 전체의 새로운 역사적 계기이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은 폭팔적인 인구증가, 기아, 삶과 자유에의 요구, 다종교(多宗敎)와 다문화(多文化) 그리고 많은 이데올로기의 다원성, 인종차별,카스트 제도, 계급주의, 신식민주의, 자연 파괴라는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바로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것에 혁신적 접근을 재고하도록 도전 받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해방 더 나아가서 핵으로부터의 해방은 한 국가나 문화, 혹은 한 종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과제이다. 우리는 이 해방과 정의의 투쟁을 향해 문화 상호간, 종교 상호간의 협력과 해방 실천을 위한 이론의 교환이 요청되고 있다. 그리하여 니터는 "종교간의 대화는 세계적 해방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아시아에서의 신학은 단순히 아시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구라는 하나의 위성 안에서 형성되는 지구 일부에서의 사유인 동시에 지구 전체를 위한 관계성에 놓이게 된다. 아시아 민중의 해방과 정의는 세계 민중의 해방이며,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의미한다. 우리는 니터의 다음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종교에서 "한 하느님","나의 궁극적 인 것","공동 본질" 또는 "신비적 중심"을 추구하는 대신 에, 모든 종교가 이용할 수 있는 종교 체험의 공유된 자 리를 인식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종교 신자들은 억압당하 는 다른 많은 그룹을 위해 또 그들과 함께 해방과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할 때 그들의 결심을 가능하게 하고, 그들의 희망을 고취시키고, 불의를 극복하고 일치를 추구하도록 그들의 행동을 지시했던 것을 공동으로, 그러나 서로 다 르게 체험할 수 있다." 2. 세계 체계(World System)와 제 3 세계의 현실 우리는 이제 구(舊)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냉전 시대는 종식되었고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기술, 자본, 군사력에 의한 신패권주의 시대에 놓여졌다. 그리하여 신세계질서의 개편이라는 중차대한 역사적 현실앞에서 각 국가는 그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나가야만 할 때가 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세계 체계(World System)는 현대국가의 부상과 일명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명목하에 막강한 세력을 가진 국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우리는 하나의 제한된, 상호 연관성과 지구의 대양으로 연결된 하나의 기후, 하나의 포괄적인 기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위성 지구(planet earth)에서 살고있다. 그러므로 지구의 생태학적 불균형과 자원의 고갈은 자연과 인간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수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권리와 자연 보호를 위한 관심의 일치하는 발전없이 현대 과학과 기술의 성장은 인류와 자연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겨 주었다. 특히 이러한 재해는 지구의 한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이며, 이러한 지구 파괴의 원인이 현대 과학의 무분별한 사용에 근거한다. 이 서부 유럽의 영토 확장과 자국내 경제의 현대화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하여 세계체계는 이러한 서구의 우월주의에 힘입어 이미 세력이 강한 자들을 더욱 강하게 하는 구조로 발전되었다. 세계의 관계성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이며, 힘있는 국가들은 세계 기구를 세우고 그들의 우월한 지배력으로 경제, 정치, 군사, 문화적인 것들의 작인(作因)을 훈련시켰다. 이를 통해 그들의 우월성은 그들의 언어, 기술 문명, 경제 조직, 정치 형태, 군사력, 그리고 종교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것으로 평가 받게 하였다. 서구 열강에 의한 세계 체계는 자신을 "발전된" 나라로, 가난한 나라를 발전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우월 의식을 강하게 반영 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체계의 기원과 그 현실을 제 3 세계와 관련하여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1) 세계 체계의 기원과 특성 현재의 세계체계는 전에 논술한 것과 같이 주로 서구 유럽인들의 지구의 다른 부분에 대한 영토적이며, 경제적 확장의 결과이다. 서구의 관점에서는 지난 오백년은 거대한 확장과 성장의 시기 였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여러 형식의 패배와 약탈, 식민지화, 착취, 변두리화(Marginal -ization)의 수백년 이었다. 서구의 확장주의는 아메리카와 호주, 뉴질랜드 및 아시아의 대부분을 식민지화하거나 침략하였다. 이러한 식민지의 풍부한 자원과 더불어 그들의 손에 있는 우월한 기술, 군사력, 그리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현재의 세계 질서를 건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그들은 그들의 지배에 어울리도록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가치까지 새롭게 심어 놓았다. 이러한 서구의 지배로 말미암아 아시아 민중의 정신적 경제적 삶은 파탄에 이르렀고, 그 정복자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티사는 제 3세계 국가의 저개발은 유럽인의 창작물이었다고 비판하면서, 현 세계 체계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 "콜럼버스와 더불어 시작된 유럽은 "저개발" 국가에 가 거나 찾은 것이 아니다. 유럽은 그들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단일 재배 생산"의 구조는 하늘에서 떨어진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인들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 고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그들의 정복지에 옮겨놓고 강요 한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예증은 유럽-아메리카의 세력이 현대 세계 체계를 세우기 위해 사용한 비인간적인 사상을 보게된다. 이것을 다시 회상한다는 참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에 의해 행해진 - 한국인들과 아시아인들에게 있어서는 일본인들의 행위 - 세계의 오랜 침략사가 무시된다면 오늘날의 세계 체계에 대한 심원한 이해를 할수 없기 때문이다. 티사는 세계 체계의 특성을 토지 분배, 세계인구의 배치, 세계 인종차별에서 찾고 있다. 먼저 토지의 분배는 백인종적인 세계 체계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오늘날 백인은 세계인구의 34%이지만 지표면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즉 아시아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토지의 확장 이라는 여지가 없으나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백인 지역은 세계의 1% 인구가 지구 토지의 16%를 차지하는가 하면, 구(舊) 소련의 아시아 통치 지역은 6.6%라는 적은 인구를 가지지만, 세계 토지의 16%를 소유하고 있다. 두번째로 인구의 불균형과 인구가 적은 나라에의 이주 정책은 세계 자원의 분배와 인간 발전과 정의에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고 본다. 이러한 세계 인구의 배치에 대한 문제는 이주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호주의 이주 정책은 숙련된 기술자를 제외한 아시아인의 이주할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호 와 더불어 미국, 구 소련, 카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국가들은 자신의 인구가 적은 넓은 땅으로 이주하여 개발할 수 있는 아시아인의 유입에 제동을 걸고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토지의 분배는 아시아의 인구 증가 때문에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세계가 그것을 위한 급속하고 혁신적인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의 사태나 비하르에서의 재해와 같은 기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티사는 "개발"과 "저개발"의 문제는 단지 GNP나 공업화의 용어로 주목될 뿐이며, 개발 개념은 현상태를 유지하려는 세계에서 넓은 땅을 소유한 국가에게나 어울리는 용어라고 비판한다. 또한 티사는 현재의 세계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하는데 그에 의하면, "흑인, 황인종 그리고 갈색인종이 자유롭게 이주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백인을 위해 노예나 값싼 노동자가 되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셰계 체계(World System)은 일종의 인종차별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구소련과 동구 역시 그들의 자원을 민중과 더불어 공유하지 않으며, 지배 계급에 의해서 독점되고 있으며, 서구 자본주의는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함으로서 이데올로기 논쟁도 사라진 상태이다. 이제 더욱 가난한 민중- 세계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은 서구로 부터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진보를 위해 서구 세력과 미국에 대항하여 오랫동안 힘들여 투쟁해 오고 있다. 각 단계 마다 주요 세력들에 의해 자유와 해방운동이 방해되어 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평화스런 태도로 국제 정의와 자유를 위한 쟁점들을 치유할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가난한 자들을 편드는 세계 체계에서의 주요 정치적 변화의 부재 동안에 세계 경제는 수축되고 그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지배는 계속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부유한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조정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식 개발 독재를 채용하는가 하면, 반(半) 시장 경제-반(半)계획 경제를 추구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경제 개발과 환경의 조화, 기술의 현대화, 사회 정의 구현, 자유,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정책에의 대중 참여 등은 현재의 세계 체계에서 쉽게 정착되기는 어렵다. 바로 우리는 이러한 기존 세계 체계가 점차 위기에 직면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2) 세계 경제 구조의 위기 지구 경제의 구조는 세계 체계의 현실과 밀접하다. 티사는 지구 경제가 땅과 자연 자원의 분배에 기초한다고 파악하면서 , 자본의 축적,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개발된 기술, 국가들간의 무역관계, 그리고 세계에서의 중요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변화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땅에서 기원하는 근본적인 불평등이 수입, 자본, 기술, 무역, 사업 조직, 그리고 자원 사용에 있어서 불균형의 관계가 더욱 강화된다고 보았다. 이는 불평등한 시작이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부유한 개인, 가족, 회사, 나라에게 축적된다. 이는 그들의 뛰어난 사업 전략, 기술 우위,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와 특권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구도는 최대 이익의 기초하에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최대 이익은 정유회사의 경우, 산유국이 원유에 높은 가격을 책정해도 더많은 이득을 위해 그들의 기술로 부가 가치를 추가하기 때문에 기름을 사용하는 산유국의 입장에서도 높은 정유비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세계적인 경제 기구 -IMF,GATT 등- 를 이용하여 현 체제를 유지시키려고 한다. 이에 대항하여 비동맹 기구(77그룹)혹은 동남아시아
'하나님의 나라' 혁명과 방향전환의 요청
'하나님의 나라' 혁명과 방향전환의 요청 2002-11-11 17:21:39 read : 19 '하나님의 나라' 혁명과 방향전환의 요청 윤응진 1. '하나님의 나라 혁명'에 관한 명제들 (1) '하나님의 나라' 혁명은 성서의 핵심 메시지이며, 성서적 신앙내용을 타종교로부터 구분하는 표준이다. (2) '하나님의 나라'는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에 의한, "모든 다른 변혁들을 능가하는 혁명"이며, "우리가 만들 수 없지만 우리에게 발생해야만 하는 혁명"이다. 이것은 인간들(무엇보다도 지배자들과 부자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음의 그늘 아래 있는 세계를 전복하고 생명이 충만한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려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다. (3)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를 종식시키는 '하나님의 지배', 곧 '하나님의 정치'의 현실이다. (4)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목표는 샬롬이다. 하나님의 나라 혁명이 추구하는 샬롬은 지배자들과 부자들, 그리고 억압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리고 일방적으로 피지배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성취된 새로운 삶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의한 혁명은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현실적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삶의 체제와 구조, 가치 및 질서 체계에 대한 철저한 거부이며 심판일 수밖에 없다. 이 심판은 지금 특권을 누리는 자들에게는 재앙이 되지만, 지금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은총이다. 하나님의 혁명은 현상태(status quo)에 대한 철저한 거부(Nein!)를 통하여 인간과 세계를 창조의 첫 아침처럼 철저히 긍정(Ja!)하는 은총의 사역이다. 이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은 스스로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계시한다. (5) 하나님의 나라 혁명은 특권계급을 재생산하는 지배적인 사회구조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신성화하는 모든 종교적 합리화에 맞서서 기존 현실을 철저히 하나님의 현실로 변혁하기 위한 하나님의 혁명일 뿐만 아니라, 이 땅을 포기하려는 모든 종교적 현실도피와 역사와 삶에 대한 책임회피에 맞서서 이 세계를 샬롬의 영역으로 재탈환하려는 하나님의 투쟁이다. 성서적 신앙과 경건은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요 3: 16)에 대한 '아멘'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관심사와 일에 대한 적극적 '참여'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관심사를 외면하거나 이러한 하나님의 일에 저항하는 것은 불신앙이며 불순종이다. (6)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받던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일 뿐만 아니라, 예수의 복음 선포(마 1: 15)의 중심 내용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에 철저히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물꼬를 터놓았기 때문이다. 그가 십자가 위에서 처형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 혁명을 위한 철저한 투쟁과 헌신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그의 부활은 다름아니라, 그가 선포한 말씀과 그가 행한 사역의 정당성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연대의 표식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혁명은 인간의 음모와 폭력, 그리고 온갖 조직적 저항을 뛰어넘어 현실화됨을 명백히 보여주는 하나님의 권능의 표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맥락을 떠나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없으며, 그렇게 고백할 필요도 없다. (7) 하나님의 나라 현실에 참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예수는 우리에게 '메타노이아(회개, 방향전환)'를 요청하며, 동시에 그를 따라서 살아가도록 초청한다. 초대 교회는 이러한 예수의 부름에 응답한 신앙공동체였다. 이로써 '하나님의 지배'라는 혁명이 이미 현재 안으로 옮겨진 것이다. (8) '성령'은 하나님의 지배라는 혁명의 "영향력"이다. 성령의 능력이란 "현재의 시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이래 침입해 들어오며, 사람들을 동원하며, 세계를 변혁시키는 능력, 이미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 도래의 능력(Kraft)"이다. 성령은 옛 인간을 재생산하고 있는 옛 사회구조 아래에서 새로운 인간을, 즉 새로운 사회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키는 것은 옛 것, 옛 시대에 저항하는 지속적인 투쟁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 되어간다'(werden). (9)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현실화되기 시작한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완수를 위해 일하도록 부름 받은 증인 공동체로서, 이 땅 위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표식이며, 하나님 나라 혁명의 전초기지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의미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일과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봉사하는 일에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는 하나님 나라 혁명에 상응하는 대안적 삶의 모델을 실천하여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그 나라의 현실을 증언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계급적 지배 질서와 착취적 소유 질서가 극복된 대안적 삶을 실천함으로써 '소금과 빛'(마태 5:13-16)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사도행전 2:43-47, 4:32-35). 하나님의 나라 혁명과 관계없는 자기충족적 교회란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종교집단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제의종교의 "성전"이 아니라, 예언자 전통에 서 있는 '회당'("교회당")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2. 기독교의 제도화와 복음의 왜곡 기독교는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어 갔으며, 4세기에 이르자 로마 황제도 거부할 수 없는 종교적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히브리적 신앙전승의 맥락에서 형성된 기독교의 복음의 씨앗이 그리이스 사상과 로마법이 지배하는 땅에 뿌려졌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나라 혁명에 관한 신앙과 메시지가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도덕적, 종교적 측면에서는 기독교로 회심했으나 사고방식의 방향전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독교의 선교적 "성공"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에 왜곡을 초래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기독교는 현실도피적인 신비주의적 분위기가 지배하는 토양에서 확산되면서, 이교적인 요소들(특히 영지주의)이 기독교 신학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적절히 방어하지 못했다. 3세기 말에 기독교는,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사회가 기독교에 의해 뒤집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기독교를 뒤집었다". 특히 철저한 개인적 회개 없이 집단적인 세례가 행해짐으로써 그리스도교인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으나, 그 결과 진정한 '회개' 없는 대중들의 교회 유입과 함께 그들이 지니고 있던 이교적인 사고방식 및 신앙양태도 기독교 안으로 유입되고 말았다. 특히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세속적인 권력과 물질적인 부를 향유하게 되자 하나님 나라 복음 및 기독교 신앙에 대한 왜곡이 급속히 발생하였다. 기독교는 더 이상 세계를 변혁하는 혁명적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순응하는 종교적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계급사회 내부에서 각종 특권을 향유하기 위하여, 예수가 걸었던 저항적이고 비타협적인 고난의 길을 포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의 '위험한' 복음으로부터 사회혁명적 폭발력을 제거함으로써 피지배자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회개하지 않은 지배자들과 부자들을 포함한!) 만민에게 복된' 말씀으로 변질시켰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세계를 변혁하는 하나님의 혁명으로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세계와 관련된 것으로 혹은 피안에서의 영혼구원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기에 이르렀다. 동시에 교회는 현재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로 간주되었다. 교회의 성례전에 참여하는 종교적 업적을 쌓음으로써 훗날 피안에서의 영혼구원이 보장된다고 선전되었다. 사람들을 교회의 지배 아래 묶어 두기 위해 '연옥'과 '지옥'이라는 관념적 공포물들이 만들어졌다. 결국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봉건적 체제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인 교권체제에 순응하도록 요청받았다. 이러한 중세 교권체제와 교회들의 가르침에 저항하여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나, 개인주의적인 구원이해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했으며, 현실변혁적인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복음이 되살아나지는 못했다.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복음을 깨닫고 그 혁명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투쟁한 종교개혁자들은 뮨처와 쯔빙글리였으나, 그들의 가르침과 투쟁은 오랫동안 종교개혁사 서술에서 바르게 평가되지 못했다. 이렇게 왜곡되고 변질된 '기독교의 복음'은 한편으로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의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던 노동자 계급에게 - 칼 마르크스가 바르게 지적하였듯이! - 현실적 고통을 잊게 하는 '아편'으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감당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민 사회였던 미국에서 불안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불확실성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도록 돕는 종교적 기능을 담당하였다. 특히 미국에서 유행한 '심령대부흥회'는 고통스러운 세상을 버리고 피안의 세계로 도피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3. 하나님 나라 혁명의 재발견 1. 자유주의 신학의 하나님 나라 이해 19세기에서 20세기초까지 서구에서는, 유럽의 정통주의 신학 및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이 '하나님의 나라'를 피안의 세계로 옮겨 놓은 것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지상으로 환원시키려는 신학적 운동이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졌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독교적 서구의 백인들이 전개해 나가는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질 현실로서 이해하였다. 이러한 낙관적인 견해에 따르면 서구의 역사적 전개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발전'과정이었다. 따라서 서구의 사회체제 및 문화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그것들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서 간주되었다.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서구 사회와 문화를 변혁시키는 혁명적 기능, 즉 '메타노이아'를 발생시키는 기능보다는 기존의 서구적 질서 체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착오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백인들의 역사적 전개를 통하여,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현존하는 백인들의 질서와 체제를 하나님의 나라 현실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던 것이다. 2. 종교사회주의와 바르트의 '하나님 나라 혁명' 이해 서구의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극복하려 시도한 것은 독일과 스위스의 종교사회주의자들이었다. 크르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 Blumhardt)는, 서구의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적 경건의 세계에 안주하고 있는 반면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민족주의적 제국주의라는 "경건의 탈을 쓴 사탄의 세력"이 급성장하고 있는 산업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세계를 제패하고 파괴하는 현실을 통찰하였다. 그는 개인적 경건과 구원을 얻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교회라는 편협한 집단"으로부터 탈출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바로 이 사탄의 세력에 대하여 투쟁하는 하나님을 만났고, 이 투쟁에서 "예수가 승리자"라는 확신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는 반대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사회민주주의의 주장보다는 "지배자들의 종교"로 변질된 기독교의 거짓된 종교적 사고가 더 큰 재앙을 초래하고 있다고 보았다. 헤르만 쿠터(Hermann Kutter)는 '기독교'라 불리는 "엄청난 오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추상적인 교리들로 대치시켰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기존의 사회상황을 변혁하려는 혁명적 의도와 희망을 지니고 있던 사회민주주의를 역사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무의식적 기독교"라고 불렀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하나님의 나라의 운동으로서 이해하였다. 쿠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회개하도록 요청하였으며, 복음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부터 결별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는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르주아적 문화 및 사회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치명적 혼동으로부터 벗어나도록 촉구하였다. 레온하르트 라가츠(Leonhard Ragaz)는 기독교의 현실 안주적 형식, 즉 하나님을 이용(Gottesgenuß)하는 데에 바탕을 둔 형식을 '종교'라고 부르고, 예수를 통해서 계시된 역동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종교'와 구별된다고 보았다. 그의 통찰에 따르면, 당시 기독교는 "기존하는 세계의 마술"에 사로잡혀 있는 '종교'였다. 그는 "윤리적 예언자적 경건"은 제의적인 하나님 경배로 소진되어 버리지 말고 세계와 인간을 위한 참여적 행위로 곧 바로 넘어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로 변질된 "현실안주적 기독교"는 "미래지향적이며 사회변혁적인 하나님의 나라" 신앙과 관계없음을 명백히 하였다. 종교는 지상에 완성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통한 세계변혁"의 희망을 확증하였다. 라가츠는 하나님이 경건한 자들의 도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도움을 통해서 불의와 소외의 세계인 자본주의 사회를 공격하고 있다는 확신을 지닌다. 이러한 확신에 따라 라가츠는 1912년의 츄리히 총파업에 동참하여 투쟁하였고, 1913년에는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다. 인간을 더 이상 노예화하지 않고 비인간적 노동을 강요하지 않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인간을 개체화하지 않고 실제적인 연대성이 출현하도록 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생산수단들이 사적인 이윤동기에 종속되지 않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그는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에 연대하여 투쟁하였다. 이처럼 "라가츠는 예수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을 시작했고, 사회주의적 연대성과, 예수를 복음적으로 따르는 것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종교사회주의자들로부터 '하나님의 혁명' 혹은 '하나님의 나라 혁명' 개념을 받아들인다. 그에게도 복음이란 개인의 구원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혁명과 관계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나님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인 하나님의 나라는 "참된 사회주의"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견해로는 하나님의 나라는 서구 기독교적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직접 대립해 있는 혁명적 영향력으로서 "근본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혁명은 서구 시민사회의 자본주의 체제의 해체를 지향한다. 3. '하나님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나라 혁명'으로! 1950년대 초에 형성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해 일하고 계신 하나님과 구원받을 대상으로서 세계를 재발견하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세계교회협의회가 1960년대 초에 이 개념을 수용하여 세계교회 운동의 노선을 설정한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하나님의 선교' 신학 위에서 세계변혁을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1983년 밴쿠버 총회에서는 특히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PIC)"을 인류의 생존을 위한 주요 선교과제로서 선언하였다. 이러한 세계교회의 노선에 연대하여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하나님의 선교' 신학의 토대 위에서 이미 1970년대 초에 교단의 신앙고백과 선교 및 교육정책 등의 방향을 설정하였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 신앙의 맥락에 서 있으나, 종교사회주의자들이나 바르트가 이해한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이해에는 미치지 못하는 매우 온건한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 자체가 "하나님의 '혁명'"에 비하여 소극적인 인상을 준다. 실제로 세계교회협의회가 (비록 '협의회'가 지니고 있는 제한성을 감안할지라도) 종교사회주의나 바르트처럼 철저히 자본주의 체제에 대하여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교'라는 신학적 토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새 천년'이 곧 시작된다. 그러나 새 천년을 맞으며 우리는 낙관적인 기대보다는 오히려 더욱 심각해질 인류의 생존 위기들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의 역사적 실험의 실패로 인하여 우리는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는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착각에 사로 잡혀 있다. 미국은 유일한 패권국가로서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세계 곳곳을 그늘지게 하고 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시작된 민족분쟁은 '민족청소'라는 전대미문의 비극까지 초래하고 있다. 인류는 두 번이나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숱한 파괴와 폭력의 폐해를 경험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아우쉬비츠'의 비극을 경험하였지만, 아직도 '새로운 시간'을 맞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 '새로운' 시간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류가 탄생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시간을 맞을 진정으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기다릴 시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이 비극이다. 결국 우리가 맞을 '새로운' 시간도 '낡은' 시대에 형성된 인류와 인간사회에 의해 또 다시 오염되고 말 것이다. 인간과 사회가, 무엇보다도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철저히 새롭게 변혁되지 않고는 '새로운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은 헛되고 헛된 일일 뿐이다. 유대청년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선포로 시작되었던 지난 2000년의 역사는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현실화시킨 역사라기보다는 철저히 왜곡시키고 은폐시킨 역사였다. 서구에서 기독교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나마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다면, 20세기초에 화두로 등장했던 '하나님 나라 혁명'에 대한 논의가 청년 예수의 가슴을 뜨겁게 하던 그 신앙의 불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나라 혁명만이 새 천년의 시간들을 진정으로 새롭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의 나라 혁명은 우리에게 진정한 새로움을 위해 철저한 "메타노이아"를 요청한다. 하나님의 나라 혁명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자본주의의 포로가 된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 개개인에게 근본적인 자기비판을 통하여 "메타노이아"에 도달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4. 신학교육의 방향전환 요청 1. 하나님 나라 혁명의 한국적 왜곡의 현실 대부분 미국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봉건적인, 그리고 후에는 제국주의적인 지배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던 한국인들에게 세계를 변혁하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소개하는 대신에 세계로부터 도피하도록 부추기는 "예수-천당" 도식을 심어 주었다. 미국식 '심령대부흥회'가 수입되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산되었으나, 청년 예수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던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전혀 다른 형태로 왜곡된 채 한국인들에게 소개되었다. 특히 3·1운동의 실패 이후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패배주의적 분위기에 "예수-천당" 도식은 새로운 소망을 심어주었으나, 그 소망은 현실변혁적인 혁명적 희망이 아니라, 현실도피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영혼구원"에 대한 환상에 불과하였다. 오늘날까지도 한국 그리스도인 대부분의 관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예수가 선포하고 가르친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천당"이라는 종교적인 개인주의적 도식이다. 지금도 우리가 즐겨부르는 찬송가들에는 대부분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러한 왜곡된 관념과 소망이 담겨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의 현대사에서 대부분의 한국 교회 및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는 현실적응 지향성 혹은 현실도피 지향성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독재정치 체제 아래에서도 대부분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이름으로 저항할 수 없었으며, 오히려 체제 순응적인 보수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예수-천당" 도식은 모든 관심을 피안의 세계에서의 개인 영혼 구원에 돌리게 하는 아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성장"한 한국 기독교의 "부흥"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 혁명" 수행의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 혁명"을 철저히 배반한 부수적 결과로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급속한 부흥은 사회적 현실이 그만큼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는 사실과 그 고통 속에서 "예수-천당" 도식이 아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음을 보여줄 뿐이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현실화가 아니라, 그 혁명에 대한 철저한 외면과 방해였으며, 예수의 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예수의 길에 대한 철저한 거부와 반역이었다. 예수는, 당시의 유대인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 의해서도 헛되이 선포되고, 헛되이 가르쳐지고, 헛되이 고난받은 것이 아닐까? 지난 100여 년간 한국교회의 역사는 양적인 성장을 위해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던 샤마니즘적 기복신앙을 비롯한 전통적인 종교들(유교, 불교, 도교)이 지니고 있던 잡다한 종교적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혁명을 왜곡시킨 역사였다. 이제 우리는, 한국교회의 왜곡된 신앙양태를 바로잡고 질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하여, 성서적 신앙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 신앙으로 돌아가도록, 즉 '메타노이아'를 실행하도록, 새롭게 그리스도인들을 계몽해야만 하는 매우 어려운 교육적 과제 앞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학의 해방'이 우선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신학자들의 연구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2. 신학연구 자세의 방향전환을 위한 명제들 (1) 한국의 신학계는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종교적인 식민주의적 의존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의존성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은 신학작업은 하나님의 나라 혁명보다는 인간의 경직된 교리체계 수호를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다. (2) 한국의 신학계는 교권주의적 이해관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교권주의의 포로가 된 신학은 종교적 지배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3) 신학자들은 지배자들의 시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신학의 연구 대상인 하나님의 말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은 피지배자들, 가난한 사람들,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지배자들과 부자들의 시각은 물론, 중산층의 낙관적 시각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 힘 없고 가진 것 없는 작은 사람들, 무엇보다도 현실 속에서 고난받는 사람들과의 연대의식 없이는 '기독교'적 신학을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신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지속적인 자기비판 없이는 바른 신학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 (4) 신학은 히브리인들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재해석하려는 학문적 노력이다. 따라서 신학은 추상적인 종교적 가르침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즉 '출애굽'의 하나님에 대한 증언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은 성서시대의 증언을 재해석함으로써 오늘도 일하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회변혁적 사역을 증언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관념적인 서구적 신학체계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신학은 사회체제를 비판하고 사회변혁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일도 신학적 과제에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5) 신학은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교회를 위한 신학의 봉사는 교회의 교권체계나 교리체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끊임없이 비판함으로써 교회갱신을 돕는 데에 있다. 신학은, 교회의 선포와 봉사를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끊임없이 '비판'함으로써, 교회가 참으로 선택받은 신앙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뜻을 바르게 선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치'에 바르게 참여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적 신학작업은 사회비판 뿐만 아니라 교회비판 없이 행해 질 수 없다. 교회를 위한 신학의 봉사를 이유로 "성직자" 중심의 교회체제와 교회현실에 대한 정당화만을 요구하는 자들의 주장은 신학의 임무를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혁명을 거부하는 것으로써 어느 경우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3. 바른 신학교육을 위한 제언들 하나님의 나라 혁명에 대한 바른 신앙을 형성하기 위해 요청되고 있는 신학교육이 바르게 실행되기 위해서는, 우선 신학과 신앙 사이의 이분법에 바탕을 둔 교회의 신학거부 경향성이 극복되어야 한다. 신학은 신앙의 학문적 체계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신앙은 특정한 신학적 체계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신앙만을 다루고 신학교에서는 신학만을 다룬다"는 도식적 구분은 정당하지 않다. 교회 안에서 이미 '신앙'과 함께 (대부분) 근본주의적 '신학'체계가 주입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학교에서의 '신학'과 교회에서의 '신앙'이 갈등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체계와 교회가 신앙의 이름으로 주입한(!) '신학'체계가 대립되기 때문이다. 이 대립은 결코 신학일반과 신앙일반 사이의 대립이 아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은 근본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신앙양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식의 신앙을 형성할 이론체계인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대립을 간과하고, "신앙을 고수하기 위하여" '신학'교육을 무시하도록 종용하는 일부 목회자들의 태도는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는 무책임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교육 때문에 '신앙교육'이 방해받기보다는 오히려 교회에서의 그릇된 '신앙'교육 때문에 '신학'교육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고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신학의 본고장이라는 독일에서는 근본주의적 신앙 때문에 신학교육이 방해받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미국적 근본주의 신학의 틀에서 형성된 신앙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교사들에 의해 조작된 "예수-천당"이라는 전이해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신앙을 형성할 신학이론에 대한 교육이 철저히 방해받고 있다. 학문적 수련을 닦아야 할 귀중한 시간들이 교회에서 형성된 아마추어 신학을 극복하기 위해 낭비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나라 신앙의 본질을 깨닫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목회 현장에 투입되면, 교회의 '전통'에 매몰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예수-천당"이라는 "신앙"에 사로잡힌 평신도들을 성숙한 '하나님의 나라' 신앙인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평신도들의 선입견과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적지 않은 신학도들이 신학교에서의 학문적 수련을 통해 획득한 신학적 통찰력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새 천년은 새롭게 성숙한 교회와 신학적 통찰력을 지닌 목회자들을 요청할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교회의 양적인 성장을 위해 교인 대중들의 종교적 욕구만을 충족시켜주던 구태의연한 태도에서 벗어나, 교인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변화되는 질적인 성장을 이루도록,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 혁명'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성숙하도록 돕기 위해, 다각적인 목회적, 교육적 방법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목회자 양성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신학교육이 요청된다: (1) 신학교육은 교회학교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교회학교 교육의 내용이 하나님 나라 혁명을 이해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학교 교육이 바르게 이루어진다면 신학교에서 겪게되는 불필요한 갈등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교회학교 교육은 곧 바로 전문적 신학교육의 준비교육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문적 교회학교 교육을 위해 기독교교육학을 이수한 전문가들이 교육적 갱신을 위해 역할을 담당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2) 신학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나라 복음이 히브리적 신앙전승 맥락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하며, 동시에 신학적 통찰력을 평신도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독교 교육학적 훈련이 요청된다. (3) 하나님의 나라 혁명 신앙에 적합한 새로운 경건의 스타일이 개발되어야 한다. 흔히 신학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때 "학문과 경건(영성)"사이의 부조화 문제가 제기된다. 신학은 본질상 실천적 학문이므로, 신학을 수련하는 신학도들의 학문적 통찰력의 성숙만이 아니라 인격 및 신앙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경건'(혹은 '영성')이 어떤 의미에서 요청되고 있는지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일 근본주의 신학적 체계 아래에서 요청되고 있는 '경건'(혹은 '영성')을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이론 체계와 결합시키려 한다면 "학문과 경건"사이의 부조화는 필연적인 것이며, 심지어 요청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종교적 경건과 하나님의 나라 신앙(그리고 그 신앙의 학문적 체계인 신학) 사이에는 일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 혁명은 제의종교적 영성이 아니라 예언자적 영성, 사회변혁적 영성을 요청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이론 체계는 새로운 경건의 양식과 새로운 영성훈련을 요청한다. 지금 요청되고 있는 경건, 영성은 선교사들이 전해준 것과는 차원을 달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혁명은 '이 땅 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기 위한 투쟁을 요청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 혁명은 종교적이고 위선적인 경건, 개인주의적 영성을 거부하는 새로운 경건과 영성을 요청한다. (4)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빛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 신학교육이 필요하다. 하나님나라의 혁명이 빛을 잃는 것은 세속적인 계급지배 구조만이 아니라 교권주의적 계급지배 구조 때문이다. 개혁교회의 신앙전통은 이미 중세 카톨릭의 교권지배 구조 및 질서에 저항함으로써 새롭게 출발하였다. 따라서 교권주의적 체제는 종교개혁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종교적 체제로 굳어진 교회 자체의 유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우상숭배일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체제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현실화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교회나 교회지도자들을 목회의 성공 모델로 간주하기보다는 극복해야 할 대상들로서 비판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주는 신학교육, 현실에 안주하고 자족하던 교회의 '과거청산'과 대안적 목회 모델 개발을 돕는 실천적 신학교육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5) 일상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실천하도록 돕는 신학교육이 필요하다. "믿음으로만!"이라는 종교개혁적 슬로건은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왜곡되고 말았다. 마치 '행위'는 불필요한 것처럼 인식되고, 오직 '믿음'만을 추구함으로써, '믿음' 자체가 또 다른 의미에서 '업적'처럼 되었다. 그러나 바울도, 루터도 결코 행함 없는 믿음을 요구한 적이 없다. 선하고 바른 행동은 구원의 조건으로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의 신앙의 열매로서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일상적인 삶에서 유대 청년 예수의 뒤를 따르는 삶의 실천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거슬러 예수의 뒤를 따르는 신앙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실천해야 할 (정의, 평화, 생태계 보전 등을 위한) 신앙인의 삶의 과제들과 대안적 삶의 모델들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그러한 삶을 실천하도록 돕고 격려하는 신학교육이 요청된다. (6) 신학교육은 에큐메니칼 정신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 혁명의 도구(선봉대)로서 기능을 담당해야 하므로 개교회적 집단이기주의나 개교파적 폐쇄성은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 세계교회가 그 동안의 운동과정에서 깨달았던 문제의식과 과제인식, 그리고 그동안 활동들이 소개되는 '에큐메니칼 학습'이 요청된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학습'을 통하여 세계교회와 연대하는 신앙인을 양성함으로써, 교회가 에큐메니칼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신앙공동체로 거듭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7) 신학교육은 종교적 특권을 누리는 특수집단("성직자") 양성을 위한 교육에서 벗어나 교회의 평신도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교육으로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새 천년에는 평신도들이 스스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들로서 하나님의 나라 혁명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성숙을 돕기 위한 평신도 신학교육이 시급히 요청된다. 이러한 평신도 신학교육을 통하여 목회자 자신도 신학적으로 성숙하도록 자극받을 것이며, 더 이상 비성서적이며 비민주적인 논리들이 교회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평신도가 신학적으로 성숙할 때에만,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비성서적인 신앙 양태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며, 아울러 바른 신학적 통찰력이 결여된 "성직자"들의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때에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교회갱신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 혁명은 교회당 안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새 천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제2의 종교개혁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 이것이 오늘날 우리를 향한 '하나님 나라 혁명'의 요청이다. "회개하라! 방향전환 하라!" - 예수의 이 요청은 다름 아니라 바로 우리들, 그리스도인들과 "성직자"들을 향한 것이며, 지금이야말로 유효한 요청이다.
가정교회 사역이야기(1)
가정교회 사역이야기(1) 2002-08-05 15:18:49 read : 49 이 글은 "21세기 신교회론, 이것이 가정교회다"(최상태 목사/도서출판 국제제자훈련원)의 9장 가정교회 사역이야기에 실린 내용 중 발췌한 것입니다. 따스한 우리 가정교회 초대가정교회 총무 | 이선희 98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비도 유난히 많이 내렸고 우리 가정은 눈물과 두려 움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해 여름 남편은 직장이 폐사되어 명동성당이며 서울역 광장이며 농성장으로 밤을 지새우며 다녔고 울분 속에 지냈고, 나는 앞으로의 일 이 걱정되어 아침마다 눈물이 흘렀다. 이때 주님은 우리를 가정교회 지도자로 부르셨고, 처음에 우리는 적합하지 않다고 강하게 거부를 하였다. 하지만 맘 한가운데 ‘이 모습 이대로 쓰시렵니까? 하나님 께서 쓰시겠다면….’ 이런 순종의 마음과 두려움으로 가장총무수련회를 마치고 9 월부터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음속으로는 직장 없는 가장 총무 부부로 인하 여 가원들이 불편해하지 않길 바라며, 우리는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하며 이 일 을 시작하였다.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모습을 가원 모두가 목도 하기를 바라며, 또한 하나님께 누를 끼치지 않길 바라며, 직장 없이 우리는 시작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 가운데 우리 부부는 직장을 갖게 되었고, 지난 3년 동안 사역 하면서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가원들을 섬기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하나님께선 늘 채워주셨다. 한치의 착오도 없으신 하나님께서…. 남편은 3년 동안 많이 변화했다. 한때는 직장인 가평에서 2시간 남짓 달려와 또 원당으로 1시간 달려가서 가정교회 섬기길 다하였다. 기쁨으로 가원들을 위하는 기도와 찬양이 늘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지하는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하지만 지금 나는 직장, 가정, 총무 이런 일이 무척 힘들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남편이 직 장 관계로 먼저 가라 하면 원당으로 달려갈 일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퇴근하고 어르신 식사 드리고 설거지하고 서대문까지 택시 타고 3호선 전철로 갈아타고 허 겁지겁 달려가다 보면 왜 이렇게 멀리서 섬겨야 하나 하는 불평이 저절로 나온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원들의 모습을 뵈면 ‘그래 오길 잘했지’하며 방금 전의 불평 이 사라진다. 지금은 정다운 교회, 정다운 가정교회를 사모하며 멀다 않고 달려가 게 된다. 좀더 가까이 가서 섬길 날이 오길 기대하면서…. 처음 시작할 때 우리 가원들은 J집사님을 비롯하여 12명의 충성당원들이었다. 그 러던 중 전도하고 하여 인원이 17명 이상이 되어 분가하였다. 충성당원이었던 집 사님들이 다른 가정교회로 가셔서 파송된 선교사처럼 그 가정교회의 주춧돌이 되 어 잘 섬기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고 감사하다. 그리고 함께 가정교회에 서 나눔을 가졌던 L집사님은 IMF로 인하여 시골집으로 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셨다. 다른 곳으로 가시지 않고 또 다시 화평교회로 돌아오셔서 우리와 다시 교제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감사하던지. 또한 멀리 이사하셨다가 교회가 그리워 다시 가까 이 돌아오신 C집사님을 뵐 때 우리의 만남과 나눔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고 감사하게 되었다. 우리 가정교회의 만남이 부담스러웠다면 이분들은 다시 돌아오 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셨으련만…. 이런 일로 인하여 우릴 만나게 하시고 지금까 지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우리 형제님 한 분은 가정교회를 통하여 처음 교회 나오시게 되었는데, 어 찌나 가정교회를 사모하며 열심으로 나오시던지 집에 계신 부모님과 아내가 이단 교회에 빠진 것이 아니냐며 걱정을 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화평교회를 방문하여 보시고 우릴 만나보신 뒤에는 누이동생도 그 교회 나가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도 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 형제님은 훈련받는 데에 열정이 있으셔서 양육자반을 수료하고 지금은 제자반에 열심으로 참여하고 계시다. 이 분은 기도문을 늘 세 가 지 이상 준비하고 다니신단다. 언제 무슨 기도를 시켜도 아주 멋있게 기도 드리고 싶어 기도문책을 사서 기도문을 준비하셨다며 지나치다 할 정도로 열심인 모습을 뵐 때 또한 마음이 기쁘다. 지금 함께하는 7명의 가원들은 새가족반, 양육자반, 제자반을 거치며 신실하게 성 장하여 가고 있다. 나의 신앙과 비교해 볼 때 우리 가정교회 식구들의 성장 속도 는 굉장히 빠르다. 10년 걸릴 믿음의 길을 3년 안에 다 마치는 기분이 든다. 화평 교회 안의 훈련 프로그램을 통하여 바르게 양육되고 참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초 대 교회의 성도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아직도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마음 따스하여 가원들을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며 기도해주는 가장, 총무가 될 것을 다시 다짐해 본다. 세상의 어떤 만남과 같지 아 니하고 주님 안의 형제요 자매로 만난 우리 가정교회 식구들, 더욱 더 서로가 서 로를 사랑하며 위로하길 쉬지 않기 바라며, 또한 하나님 기뻐하시는 나눔의 장, 위로의 장으로, 이웃을 돌아보며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길 소원한다. 감사 또 감사! 은총가정교회 가장 | 박래백 화평교회에서 가정교회가 시작되기 전에 구역모임에 참석한 것은 손가락을 접어 셀 정도였다. 모임의 참관자로서 가까스로 아무런 준비 없이 그저 성경책만을 들 고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서로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정확히 표현하면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성경공부 위주의 모임은 변화보다는 부담스럽고 별 재미가 없는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가정교회에서 서로를 위한 기도와 섬김과 나눔을 통하여 주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임을 깨달았음을 너무 감사드린다. 교회가 예배의 장소이면서 교회 밖에 서는 혼자로 돌아서지만 가정교회 안에서 지속적으로 돌봄이 있고, 깊은 교제가 있음이 참 좋다. 혼자가 아니고 항상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원과 가장, 총무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특히 초신자들은 편안한 가정교회를 통하여 교회 생활을 배우고, 기도하는 방법도 배우고, 서로의 교제와 나눔 가운데 성장하게 된 다. 화평교회에서 가정교회가 시작될 때 마침 나는 힘들었던 부기장 생활을 마치고 항 공사 기장으로 임명된 때라, 이제는 편안(?)하게 교회 생활, 직장 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은 때였다. 그런데 어쩜 그렇게도 절묘하게 하나님께서는 담임목사님을 통 하여 가정교회의 가장으로 부족한 나를 세우셨는지…. 가장으로 섬기면서 받은 은 혜와 축복은 헤아릴 수 없는 것 같다. 먼저 하나님은 나를 기도하는 자녀로 만드셨다. 평생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기 도하고 가끔 형식적으로 나라를 위해 기도했던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가원들을 위하여, 선교사님을 위해, 교회와 가정과 사회를 위해, 내 직장과 동료와 특별히 나를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총무로 수고하면서 제자훈련을 받고, 새벽기도를 나가고, 섬기는 삶을 통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었다는 것이 감사하다. 사랑하는 자녀 지은이, 지훈 이를 위해 축복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자녀를 맡기게 되었고, 하나님을 모르던 장 인 어른, 처남, 그리고 친척들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였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물질의 관리자로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갈수록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물질을 채워주 셨고, 기쁨으로 섬기고 대접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더 넘쳐남을 경험하게 되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온 우리 가정에 넓은 아파트도 주시고, 그곳을 주님께 드리는 예배의 장소로 사용하게 하셨으니 이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가장으로서 가정교회 부흥을 위한 계획과 비전이 있다면 튼튼한 가정교회, 건강한 가정교회를 위하여 지도자인 나 자신의 삶과 인격에 성령의 열매가 충만하길 원하 는 것이다. 우리 주님처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 유, 그리고 절제가 충만하기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그 향기를 늘 발 하고 싶다. 모든 가원들이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깊은 교제가 있는 가정교회가 되기를 원 한다. 원망 없이 대접하는 은총가정교회 가원들이 되기를 원한다. 모든 가원의 인 격이 주님처럼 멋지게 변화하며 하나님 나라와 그 의에 우선순위를 두는 가정교회 가 되기를 기도한다. 가난하고 배고파하는 이웃에게 빵을 주고, 우유를 나누어 먹 을 줄 아는 사랑의 가정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또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전도 자의 사명을 다하는 가정교회가 되길 기도한다. 남편과 아내가 깊이 서로를 사랑 하는 부부들이 있는 가정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교회에 정을 붙일 수 있게 한 가정교회 은총가정교회 가원 | 김준동 가정교회에 참여하면서 제가 받은 은혜와 축복은 우선 신앙생활이 회복된 것입니 다. 믿지 않는 아내와 결혼한 저에게 교회는 나만의 만족 대상이었고 아내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해서 교회는 같이 가자고 했는데 교회에 정을 붙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는 막막했습니다. 그때 다가온 것이 가정교회였습니 다. 인간적으로 다가온 가정교회의 총무는 맞벌이 생활을 하는 저희들의 심부름꾼 이 되어주기도 했고 아내의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아내 는 신앙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저 또한 주님을 먼저 만난 자로서 모범을 보여야 했습니다. 요즘은 아내가 먼저 주일을 성수하자고 할 정도입니다. 저는 은총가정교회의 찬양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가정교회를 위해 가장 혼자서 기 도와 말씀, 찬양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서로가 소속감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다 는 점에서 분담사역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가정교회 식구들과 함께할 찬양을 준비하고 나면 가정교회 예배 시간이 기다려지는 것 같이 말입니다. 가정교회와 구역모임은 우선 어감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있습니다. 구역이라면 무 엇인가 인위적이고 강압적인 느낌이 납니다. 마치 고양시 덕양구와 같은 행정구역 이라든가 민간인 출입금지 같은 군사지역 정도의 개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 간 의 관계를 강제적으로 분할해 놓은 권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 나 가정교회는 가정(Home)이라는 원래의 의미가 가지는 것처럼 언어적인 측면에서 자연 발생적인 조직의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둘째는 구성원의 차이입니다. 이전의 구역예배는 남성들은 남성들끼리 여성들은 여성들끼리의 조직으로 구성원 각자 가정의 문제라든가 내부적인 갈등을 부부가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이로 인해 부부가 서로 상대방이 속 한 구역모임에 대해 맹목적인 비판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적어도 저의 경우는 그 러했습니다. 그러나 가정교회를 실시하고 나서 좋은 점이 있는데 첫째, 부부생활의 활력입니 다. 앞서 언급했듯이 가정 내, 특히 부부 간의 갈등을 해결할 만한 곳이 없었는데 가정교회는 그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때때로 부부 간의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로 가정교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가정교회 내에 우리와 같은 부부가 참석한 경우를 보거나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 받을 때가 많습니다. 또한 각자의 속내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귐에 있 어 가장 친밀한 단계는 자기의 집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족도 아닌 사람을 집에 초대한다거나 집에서 음식을 함께 한다는 것이 거부감을 가지게 했고 부담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을 통해 삶의 방식과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어 무엇보다 좋습니다.
가정교회 사역이야기(2)
가정교회 사역이야기(2) 2002-08-05 15:19:34 read : 25 세 번째 모인 날 일산가정교회 가장 | 박미종 저녁 퇴근 시간 직원들 중에 가장 먼저 서둘러 퇴근을 했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15분쯤 지각한 8시 15분. 오늘은 우리 일산가정교회가 새롭게 출범하고 세 번째 모이는 날, 이미 모든 가원들이 도착하여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황급히 인사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이진연 성도가 핸드폰 통화를 하더니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멀리 군산에 근무하는 남편이 갑자기 서울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는데 지금 막 버스를 타고 능곡을 지나고 있다며 난감해했다. 모든 가원들이 일제히 얼른 만나서 모시고 와서 함께 식사하자고 권유하자 이진연 성도도 그렇게 해 보겠다면서 하선미 성도 차를 빌려 남편을 모시러 나갔다. 기다렸다가 같이 식사하기에는 너무 지체될 것 같아 먼저 식사를 마친 우리는 처음 방문하시는 이진연 성도의 남편 강○○ 형제님 모시기에 초점을 맞추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총무를 중심으로 저녁식사를 따로 한 상 차려 준비하고, 가장은 준비한 모든 순서를 접어두고 강○○ 형제님을 편안하게 맞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마음을 먹고 가원들도 긴장하며 기다렸다. 벨소리에 일제히 나가서 반갑게 맞아들였고 간단한 인사 후 곧바로 식사를 대접했다. 두 분만 식사를 하게 해서 미안했지만 우리도 차를 나누며 강○○ 형제님에 초점을 맞추고 대화를 해나갔다. 처음에 들어오실 때 형제님은 표정이 많이 굳어있었고 생산현장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검게 탄 얼굴로 인해 피로해 보이기도 했지만 모두들 밝은 얼굴로 진심으로 반갑게 대한 탓인지 식사를 하면서 차츰 표정이 풀어지는 것 같아 내심 안도했고 분위기도 편안해졌다. 나중에 가원들도 이야기했지만 조촐하나마 정성이 담긴 식사, 특히 보글보글 끓으며 진한 냄새를 풍긴 된장찌개가 그분의 긴장과 피로를 푸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식사는 맛있게 다 드셨다. 강○○ 형제님은 오늘 중장비를 수출선박에 실어내는 힘들고 중요한 일을 막 끝내고 아내를 보기 위해 먼길을 달려 온 참이었다. 몸도 무척 피곤한 상태였고 또 신앙생활도 하지 않는 분이라 낯선 집에서 초면의 사람들, 더구나 자기보다는 열 살에서 스무 살 이상 어린 사람들 앞에서 식사하며 대화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주로 혼자서 말씀을 해 나가셨다. 이진연 성도는 자신의 간청에 못 이겨 왔지만 말은 한 마디도 못할 거라고 했던 분이 너무 이야기를 잘 하시니까 신기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쳐다보며, 나중에는 그만 일어났으면 하는 눈치였다. 대화의 내용은 일터 이야기, 직장이 소재한 지역민들의 정서 등 신앙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우리는 맞장구치며 경청했고, 이따금씩 교회와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는 신앙을 갖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조심스럽게 드리는 정도였다. 박성익 성도가 자신도 신앙생활 초년생이라며 의외로 그분과의 대화를 잘 맞춰 나갔고 하선미 성도도 아버지와 남편의 초기 신앙 이야기로 적절히 응대해b 주었다. 마침 박성익 성도와 고향이 아주 가까운 동네라 그분이 마음 문을 여는데 일조를 해서 나중에 우리들끼리 남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 형제님을 위해 박성익 성도님을 그곳에 태어나도록 예비하셨다며 웃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다가 맏아들이 기다린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두 분이 먼저 일어나셨는 데 모두들 다음에 또 만나자며 정감 있게 인사하자 그분도 싫은 표정은 아니었으며, 가장은 형제님을 위해 많이 기도하겠다고 인사하며 전송했다. 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15분전, 가원들에게 오늘 모임은 새로운 식구 한 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도 값진 시간이었다고 양해를 구했고 모두들 기쁜 마음으로 이해하는 표정이었지만 아쉬움이 남아 잠깐이나마 나눔의 시간을 갖고 헤어지기로 했다. 박성익 성도는 요즘 기도를 어떻게 잘할까 궁리하다가 기도문을 작성해서 아내에게 읽어주기도 하며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기도의 내용은 자신들을 위한 기도문을 쓰기에는 어딘가 몰염치한 것 같아서 집중호우로 피해를 겪는 수재민을 위한 기도 같은 것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기도문을 써가며 기도 연습을 한다는 사실도 그렇고, 오래 믿은 우리도 자신을 위한 기도가 우선인데 이웃을 위한 기도가 먼저라는 사실도 우리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가 몰염치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필요를 간구해도 들어주신다는 말에 이경희 성도는 처음으로 하나뿐인 중학생 딸의 장래를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하선미 성도는 이번 달 17일에 남편이 싱가포르로부터 귀국이 확정되었고 그의 앞길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인도되도록 기도부탁을 했다. 총무 추진희 집사도 친정 부모님의 믿음 성장을 위해서, 가장도 새롭게 맡게된 목회자가정교회세미나 준비위원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 부탁을 했다. 시간상 성경공부는 교재를 나누어주고 각자 집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선교헌금을 드렸다. 선교헌금의 취지를 다시 한 번 설명했고 헌금 금액을 얼마로 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박성익 성도 부부에게는 가장이 자신의 전반적인 헌금생활과 함께 가정교회 헌금은 이렇게 드린다며 솔직히 이야기해 주었다. 선교와 회계를 담당하기로 한 하선미 성도에게 헌금의 관리를 부탁했다. 오늘 모임은 처음 방문했던 강○○ 형제님을 위해서도 꼭 필요했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누었으니 특별히 합심해서 기도하자고 했고 가장이 기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잠깐 나누기로 했는데 헤어질 무렵에는 밤 12시가 다 되어 있었다. 멀리 가야하는 박성익 성도 부부를 비롯한 가원들의 피곤을 염려하며 모레 주일날 교회에서 보자며 아쉽게 헤어졌다.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다음 모임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식사준비로 땀흘린 총무의 등을 두드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월, 화, 수, 목, 금 매일 만났던 우리들 그리심가정교회 가장 | 원종구 교회 직분자들의 대부분이 목사님의 권유에 의해 사역을 감당하듯이 저도 남자 구역장으로 구역 모임을 인도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목사님께서 가정교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시자 저는 별 생각 없이 전에 인도했던 대로하면 되겠지 하고 시작을 했는데 주일 오후마다 가장 모임과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구역과 가정교회의 다른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기에 고민과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일방적인 인도가 아니라 개척 교회의 목회자 심정으로 가정교회 가원들을 섬기고 돌봐야 하는 것에 솔직히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새 3년이 지나 가원들을 통해 인내와 사랑을 배우고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많은 힘을 얻는 나 자신을 발견 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세 번째 가정교회의 가장을 맡고 있습니다. 여섯 가정과 한 분의 남자 가원으로 구성되어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30분에 모여서 10시 30분 정도에 헤어집니다. 처음에는 남자 분들이 대부분 참석하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가정교회 모임과는 별도로 부부 중심으로 식사모임을 여러 번 갖고 예의상으로라도 가정교회 모임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 분들이 마지못해 몇 번 참석한 뒤, 다음부터는 부탁도 연락도 하지 말라고 말할 때에는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약 2개월이 지난 후 1박 2일 가정교회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가원들에게 단합을 요구했습니다. 2주간 기도로 준비하면서 계획을 세웠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보다도 더 많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인도해 나가셨습니다. 그러나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한 가정이 출발 이틀 전에 이사를 해야 했고, 또 떠나기 하루 전에는 한 가정이 부부싸움으로 인해 도저히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단 가원들에게 전화를 해서 있는 처소에서 기도를 부탁했고 한편으로는 그가원들과 저녁식사를 하자고 약속했습니다(남편과 아내에게 따로따로 연락해서 모였음). 그분들은 화해했고 6가정 모두가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가원들이 많이 친해졌고 교제가 풍부해져 감사와 찬양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저희 가정교회 식구들은 자주 만나며 교제를 나눴습니다. 어떤 주간에는 토요일만 빼고 매일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식사와 운동과 교제를 통해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제주도로 2박 3일 함께 수련회를 다녀오면서 다시 한 번 가족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늘 기쁨과 은혜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자 가원들의 신앙 수준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잘 조화가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때로는 갑자기 모이지도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아 그 아내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어려울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속이 상하고, 또 달래줘야 하나 하며 불평과 원망도 합니다. 한번은 가정불화로 인해 며칠 동안 연락이 되지 않고 피하기만 하던 가원을 퇴근시간 10분 전에 직장으로 찾아가 만났습니다. 그 날도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하고 집에 늦게 들어갈 상황이었는데 그 약속을 취소하고 저와 함께 5시간 동안 식사를 했습니다. 그 가원과 교제를 하면서 그의 입장과 상황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권면하였을 때 아내와 화해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아 아쉽지만 가정교회 모임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한 가원이 있습니다. 그 가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찬송도 열심히 따라하고 어떻게 하던지 참석하려고 하는 모습에서, 그리고 가원들과 교제하는 모습에서 이제 머지 않아 교회에도 출석하게 되고 변화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주일 오후 가장총무모임의 그룹별 나눔 시간에는 다른 분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같은 문제점, 고민, 갈등, 어려움을 함께 느끼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를 얻습니다. 저는 가원들을 말씀이나 훈련으로 양육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기에 그분들이 훈련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가원들에게 꼭 이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가정교회의 가장이 되었을 때 여러분의 기억에 남는 가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우리 가원들은 이번에 남자 세 분과 여자 세 분이 새가족반, 양육반을 거쳐 제자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들이 한 사람도 낙오 없이 양육되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신실한 일꾼들로 쓰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늘 부족함을 느끼며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할 때에 변함 없이 청지기의 자세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카타르시스- 동역자 의식 교역자가정교회 가원 | 김영신 결혼하기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계시던 선교사님으로부터 제자훈련을 받았는데 이때부터 내 인생의 목표는 제자훈련의 삶이었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우선 순위도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것은 결혼 후에도 변함이 없었으며 교회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화평교회에서 교역자 부부로 편성된 교역자가정교회에 참석하면서 가정교회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결혼 전에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지만 막상 사모의 위치에 서게 되니 외롭고 소외된 자리였다. 그저 조용히 예배만 참석할 뿐 특별히 삶을 나누며 함께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성도들과 함께 예배에는 드렸지만 뚜렷하게 소속된 곳이 없었고, 속사정을 함께 털어놓으며 교제할 수 있는 장이 없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늘 갈급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조용히 교회생활 하기에는 편안한 때도 있었지만 자기관리와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하는 게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정체감의 위기에 빠지곤 했다. 그런데 교역자가정교회에 참석하면서부터 이러한 고민들이 해결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이다가 시간관계상 한 달에 한 번 모이기는 하지만 그 동안에 있었던 모든 삶을 나누는 그 시간이 어느 시간보다 더 기다려진다. 가정교회를 통하여 같은 길을 걸어가는 목회자 부부 간에 비전을 함께 나누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동역자 의식을 한층 더 갖게 되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는 부교역자 아내가 목회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는 1년에 한두 차례, 회식 때문에 모이는 시간이 전부였다. 그리고 부교역자 아내로서 담임목사님을 대하는 것이 불편했고 자리를 같이하며 삶을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교역자가정교회에서는 이러한 벽을 넘어 스스럼 없이 말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게 된다. 목회자의 내조자이기 전에 한 남편의 아내로서 갖는 불만 보따리(?)를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사소한 일로 다투며 부부싸움을 한 내용을 들려주는 다른 목회자 가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은 적도 있다.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하고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연출되기도 한다. 목회자 부부가 함께 모여 식탁교제도 하고 깊이 있는 삶을 나누다보면 어느덧 한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모든 것들이 화평교회 교역자가정교회에서만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이러한 나눔과 교제를 중요시하는 교역자가정교회에 참석하면서 처음 제자훈련 받을 때 흥분했던 그 감동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이 시대의 한국 교회가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러한 때에 제자훈련과 가정교회 사역을 두 기둥으로 삼고 본질에 충실하며 나아가고 있는 건강한 화평교회로 만들어야 하겠다.
가정교회 사역이야기(3)
가정교회 사역이야기(3) 2002-08-05 15:20:07 read : 20 이 사역 감당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가정교회 가장 | 이희정 가정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목사님께서 ‘개척교회를 세운다’라는 마음가짐 으로 시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믿지 않는 남편을 가진 여성도들과 낮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전의 구역예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 각했고 그래서 목사님의 그 말씀은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닌 것으로 생각해 실 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믿음가정교회라는 이름을 지어주셨고 그 이름으로 처음 모인 가정교회는 참으로 연약했습니다. 가원들은 겨우 두세 명에 불과했고 교제도 되지 않아서 분 위기는 언제나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나도 가원은 늘지 않 고 그나마 참석하던 가원도 자주 결석을 하며 가정교회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가장으로서 실족해서 이 사역 감당 못하겠다고 목사님께 여러 번 말씀도 드 렸습니다. 가장의 영성이 부족하고 기도도 부족하고 자질도 없고 능력도 없어서 가정교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후퇴만을 거듭하고 있다고 자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이제는 부질없는 과거로 웃으며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 다.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한 우리 가정교회의 현주소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 습을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죠. 우선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가원이 8명에 아이들까 지 하면 12명 정도로, 모이면 항상 산만하고 시끌시끌 떠들썩합니다. 처음에는 예 배에 지장이 있고 진지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에 고민했지만 지금은 가원들 모두 그 분위기에 익숙해져, 이것이 우리가정교회의 특징이고 또한 장점일 수 있 다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한주 한주 지나고 친교가 이루어지면서 사랑과 나눔이 싹트고 이제는 한 가족이라는 의식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저희 믿음 가정교회는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초신자가 많아서 배움의 의지가 왕성합니다. 그 래서 새가족반, 양육반, 제자반 등 교회에서 제공하는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열심히 훈련을 받으며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새가족이 새로 들어오면 기존의 가원들이 제일 먼저 이 훈련 프로그램들을 소개하 고 자랑하며 본인들의 경험담을 생생하게 들려주고 새가족에게 배워야 산다는 강 한 의지와 도전을 품게 합니다. 또한 구역예배에선 찾아볼 수 없는 찬양담당, 선 교헌금담당, 친교담당, 총무 등 개개인의 은사에 맞는 사역이 있고 그래서 책임감 을 갖고 결석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가장 혼자 힘겹게 예배를 이끌어 가는 것 이 아니라 가원들 모두 가정교회 예배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 참여하는 것이 죠. 초신자의 미숙했던 신앙으로 출발했던 우리 가원들이 이제는 사랑과 섬김을 알게 되고 성도들과의 교제가 활발한, 적응력 있는 신앙인으로 자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이제는 가정교회가 저의 소중한 안식처가 되고 있습니 다. 고민이 있을 때,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할 때, 기도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달 려갈 그곳이 있습니다. 두려움과 부담을 갖고 가장의 사역을 마지못해 시작했던 저를 지금 이곳까지 인도해주시고 가정교회 예배를 통해, 가원들과의 사랑이 넘치 는 교제를 통해 이만큼 변화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먼저 맛있는 저녁을 주시고 늘푸른가정교회 가원 | 이상구 가정교회 나오기 전의 제 생활은 한 마디로 형편없었습니다. 자영업을 하다보니 출근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또한 퇴근 시간도 어떤 날은 10시, 어떤 날은 12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들어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고도 집사람이 뭐라 고 하면 경제적인 문제만 어느 정도 책임져 주면 남편 역할을 다 한 줄 알고, ‘ 내가 할 일 다하고 놀다 오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으냐?’고 오히려 큰소리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말과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후회스럽습니 다. 지금 제가 그때의 일들을 후회하고 반성할 수 있는 것은 늘푸른가정교회가 있 었기 때문입니다. 가장님과 총무님, 여러 가원님들 모두가 정말 저에게는 구세주 였습니다. 만날 때마다 관심을 가져 주시고 제가 정말 사랑을 느낄 정도로 잘해 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이런 생활이 하나님을 믿는 분들의 삶이구나 하고 느꼈습 니다. 그 느낌을 받은 후부터는 주일 낮 예배는 빠져도 가정교회 모임은 빠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꼭 참석하고 싶어서 평소보다 가게문을 한 시 간씩 일찍 닫고 참석했습니다. 모임에 참석해 보면 제일 먼저 맛있는 저녁을 주시고, 식사 후에는 제가 알지 못 했던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가장님께서 자세히 가르쳐 주시고 또 일주일간 서로가 살아온 삶에 대하여 거짓없이 이야기꽃을 피우죠. 또 서로의 바램을 나누고 이루 어지도록 기도해주죠. 제가 어떻게 그 아름다운 시간에 빠질 수 있겠습니까? 정말 백번 천번 생각해봐도 우리 늘푸른가정교회 가원이 되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 니다. 이제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저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믿음의 식구로서 이웃에게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개혁주의 성경신학(改革主義 聖經神學)과 설교(說敎)
改革主義 聖經神學과 說敎 2002-08-05 15:45:22 read : 3 개혁 신학적(改革 神學的) 관점(觀點)을 가지고서 성경신학(聖經神學)을 하는 분명한 모델을 제시한 개할더스 보스(G. Vos)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 모임을 갖고 있다. 아라빅 연구(Arabic studies)로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고(1888), 현재 칼빈 신학교의 전신인 기독교 개혁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비롯한 폭넓은 신학 분과를 가르치고 강의하던 그가 1893년 초에 프린스턴 신학교의 성경신학 교수로 초빙 받고서 그가 은퇴할 때(1932)까지 39년 동안 성경신학을 강의하여 그 기록을 우리에게 큰 유산으로 남겨 놓은1) 보스는 개혁신앙을 가지고서 신학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많은 개혁신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의 영향을 받고서 신학적 작업을 하였던 대표적인 인물을 몇 명만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그의 성경 신학적 통찰을 변증학과 기독교 윤리 영역에 적용시킨 코르넬리우스 밴틸(Cornelius Van Til)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2) 사실 그는 보스를 무척 존경하여 그의 연구실에 보스의 사진을 늘 걸어 놓았다고 한다.3) 그리고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준 이로서 보스의 성경신학을 신약신학 영역에서 계승하여 발전시키며 이제는 이를 조직 신학 영역에도 적용하고 있는 리쳐드 개핀(Richard Gaffin, Jr.)을 들어야만 할 것이다.4)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접근에 가장 유사한 모범을 보여준 이는 최낙재 목사님일 것이다. 그리고 개핀과 함께 조직신학에 있어서 소위 보스적 접근(Vosian Approach)을 하고 있는 이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런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에 이미 그 내용에 있어서 그런 작업을 하여 보스의 성경 신학적 이해, 특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와 기독론적 이해를 신학에 잘 반영한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5) --사실 벌코프의 조직신학이 그 내용에 있어서는 얼마나 보스적인 성경신학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지를 잘 의식하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많은 이들은 그저 교과서적인 그의 진술 양식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쟌 머레이(John Murray), 그리고 보스적인 신학을 다음 세대의 복음주의 신학이 모델로 삼아 추구하고 나가야 할 신학이라고 제시하는 리처드 린츠(Richard Lints),6) 그리고 기독론 분야에서 이를 잘 적용하고 좀더 폭넓은 글들을 써서 그런 접근의 기반을 다지고 있는 데이비드 웰즈(David F. Wells)7) 등을 이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천 신학 특히 설교에 있어서 보스적인 성경신학을 잘 반영해 보려고 한 에드문드 클라우니(Edmund P. Clowney)를 들어야 한다.8) 시작하는 말: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설교에 대한 함의 이제 우리는 우리의 상황 속에서 보스적 성경신학을 우리의 신학과 목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좀더 구체화시켜 보는 일을 하려는 것이다. 이 일의 첫째 과제로 우리는 이 논문에서 보스적 성경신학이 우리의 설교 사역에 주는 함의를 찾아 보려고 한다. 이는 결국 어떻게 하면 우리의 설교가 진정한 개혁파적 설교가 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한 측면을 다루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보스는 진정한 개혁주의 성경신학을 수립해 보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성경 신학적 노력이 반영된 설교 사역은 진정한 개혁주의적 설교 사역이 될 것이다.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설교 사역에 대한 함의를 찾는 이 일의 첫째 작업인 이 논문에서는 보스가 보여준 바와 같은 개혁주의 성경신학에 대한 탐구가 우리의 설교에 어떤 도움과 지침을 주는지를 아주 일반적인 용어로 진술해 보려고 한다. (1)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섬기는 일로서의 설교에 대한 인식 강화 가장 먼저 '보스가 제시한 바와 같은 성경신학'(즉, '개혁주의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계시 앞에 우리를 세운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스의 정의에 의하면 성경신학이란 "특별 계시의 역사"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9) 계시사에 관심 하는 성경신학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로 하여금 계시의 독특성 앞에 서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 자체의 성격이 본래 그러한 것이지만 개혁주의 성경 신학적 관심을 반영한 설교를 하려는 이들은 가장 먼저 설교란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된 것임을 각별히 유의하게 된다. 여기서 개혁주의 성경신학과 개혁주의적이지 않은 성경신학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이는 보스가 말하고있는 개혁주의 성경신학의 세 가지 원칙을 생각할 때에 분명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 세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계시의 무오한 성격에 대한 인식("하나님께서 인격적이시고, 의식적이시라면, 당신 님의 모든 자기 계시 양식에 있어서도 당신 님의 성품과 목적에 대한 무오한 표현을 할 것이라는 추정은 불가피하다"10) (2)계시의 기본 사역의 객관성("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계시는 밖으로부터 옮을 의미하는 것이다....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계시를 주셨으면, 그것을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를 [즉 객관적인 방식으로 할 것인가, 시편 등에서와 같이 주관적 계시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하나님이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엄성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의 말씀을 충분히 신적인 가치를 가진 것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11)); (3)기록 과정에서의 만전영감(plenary inspiration: "이 문제에 대한 성경 자체의 의식을 생각하면 우리는 곧 '만전 영감'이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영감된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12) 그러므로 이런 원칙을 가지고 계시의 역사를 드러내고 탐구하는 것이 개혁주의 성경신학인 것이고, 이런 원칙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개혁주의적이지 않은 성경신학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성경신학에 유의하면서 설교를 하는 이들은 객관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를 성문화시킨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고 그 뜻을 해명하는 것이란 의식에 충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오늘날 하나님의 특별 계시와 접촉할 수 있는 수단이 성경뿐이듯이,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세상에 선포하는 귀한 사역이라는 강한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두려움과 떨림"을 가지고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일(Vervum Dei Minister)에 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일에 유의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를 곡해시키거나 오용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큰 범죄 행위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잘 파악하고 그 시대의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하는 교회를 해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신학에 관심을 가지고 설교한다고 할 때에 무엇보다 먼저 이 설교 사역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분명히 하고, 밝혀주고, 해명하는 일임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할 때에 이런 설교의 본래적인 사명에서 벗어나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일까? 첫째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본문의 강조점과 상관없는 다른 것이 강조될 때에 계시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지 못하는 것이 된다. 시드니 그레이다너스가 잘 말하고 있듯이, 설교자가 아무리 성경에 대한 고등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성경 본문을 "독단이나 자기 자신의 개념들을 제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한다면, '오직 성경'이라는 고백을 그것을 주창하는 사람이 해치는 것이 되는" 것이다.13) "말씀을 섬긴다는 것은 본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를 회중들에게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각 본문이 전달하려는 "특별한 내용"을 찾아 설교해야 하는 것이다.14) 또한 성경을 해석하여 설교한다고 해도 성경의 의미를 잘못 해석하여 전달하는 것은 사실상 설교를 모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시간에 실질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어지럽히는 것만큼 무시무시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그런 죄와 잘못을 회개하기보다는 어찌하든지 은혜만 되면 된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후안무치의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결국 계시를 주시고 그것을 성문화하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성경 본문의 풍성한 의미를 다 드러내지 못하는 것도 말씀을 잘 섬기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한 설교 시간에 본문의 모든 측면을 다 말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상황이나 설교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인간의 제한성을 생각할 때에 한 설교에서는 본문의 한 측면만을 잘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연속되는 설교나 몇 년에 걸쳐서 한 교회에서 강설하여 가면서는 결국 본문의 모든 측면을 다 잘 드러내어서 그 본문의 풍성한 의미가 다 잘 드러나게끔 해야만 한다. 클라우니도 개혁파 적인 설교는 결국 "응용된 내용이 풍성할 것이다"(Will be rich in applied content)라고 말한 바 있다.15) 이런 풍성한 설교의 결과로 모든 교우들이 하나님의 경륜 전체를 잘 이해하고 그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설교자가 나름의 편견과 제한을 가지고 있어서 본문의 다양한 측면을 다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셋째로,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경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때는 우리의 생각을 쳐서 성경의 생각에 복종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오랫동안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죽은 후에 "천국"(Kingdom of Heaven)에 간다고 생각해 왔고, 성경에서 천국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을 생각해 온 일이 많다. 그러나 보스를 비롯한 성경 신학자들이 성경에 나온 "천국"이라는 용어와 그 의미를 연구하고서 내린 결론은 천국은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즉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실현"과 동의어로 사용된 말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보스의 다음과 같은 강조를 깊이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숙명도, 그의 통치의 추상적인 권한, 즉 그의 주권(His Sovereignty)도 아닌 것이다. 이는 그의 통치의 실제적 실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만 이는 '올'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주권을 창세전 부터 가지셨으므로, 주권이란 의미의 하나님 나라는 '올' 수 없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가진 신적 최고권의 실제적 행사를 의미한다.16) 그러므로 보스의 성경 신학적 탐구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의 추상적 권한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고, 그런 통치의 실제적 실현인 것이다. 이런 입장은 보스만의 견해가 아니라, 천국에 대한 성경 신학적 연구를 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예를 들어서, 래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복음서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구속적인 행위,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뜻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추상적인 원리-- 심지어 '신적 통치의 원리'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개념은 너무 철학적이며, 너무 하나님의 활동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적 행위이다."17) 또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핵심적인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들 사이에 그의 통치를 확립하기 위하여 역동적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적 통치라는 것과 세대 말에 묵시론적 행위로 등장할 이 나라가 악을 정복하고, 인간을 이 악의 세력에서 구출하고, 그들을 하나님의 통치의 축복에로 인도하기 위하여 예수의 인격과 사역과 함께 인류 역사에로 이미 임하셨다는 사실이다."18) 또한 칼빈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 취임 강연에서 레커 교수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지 조금만 숙고해 보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어떠하든 간에,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명백해진다. 역사의 말기에 일어날 종말론적이며 완전한 친교, 혹은 이 세대 안에서 갖는 하나님과의 합당한 사귐, 혹은 역사 내에 이루어질 천년간의 그리스도의 통치 기간, 혹은 금세 에서 신자들의 마음속에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영적 통치, 혹은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들을 굴복시키고,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의 세상에 개선하시고, 세상에 대한 그의 주재권을 재 천명하시므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활동 -- 이러한 모든 것들이 구 속의 도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능동적인 신적 능력을 반영한다.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란 용어는 하나님의 권위의 역사적 표현과 그의 우주의 마지막 구속을 효과 있게 하는 능력을 지칭하는 신약 성경의 요약이다.20)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은 이 땅과 역사에로 오는 통치이고, 오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는, 보스를 비롯한 많은 성경 신학자들이 연구하고 잘 정리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서 이미 원리적으로 실현되었으며, 그의 재림에서 그 나라의 극치에 이를 것이다. 이런 성경 신학적 연구의 결과는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점차적으로라도 우리의 용어 사용과 설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이런 성경 신학적 연구의 결과를 도외시하고 우리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개념과 선입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결국 성경의 계시를 계시답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천국은 이 세상에로 침노하여 오는 것이고(신약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미 우리에게 임하여 온 것이며), 장차 그 나라의 극치에 이를 것이며, 이런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고, 극치에 이를 그 나라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실 것이다. 다음과 같은 웰즈의 요약은 지금까지 성경학자들이 발견한 천국에 대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잘 요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찾고, 이를 위해 기도하고, 바랄 수 있으나, 래드가 지적한 바와 같이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이를 가져오실 수 있는 것이다. [눅 23: 51; 마 6:10, 33; 눅 12:31] 하나님 나라를 주시고 취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는 오직 이를 받고, 이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것일 뿐이다(마 21: 43; 눅 12:32)....우리가 이 나라를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이 나라를 파괴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것이다....물론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할 수는 있으나 이 나라를 수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마 10:7; 눅 10:9, 12:32).21) 그러므로 우리의 설교는 모든 개념과 사상에 있어서, 심지어 그 용어 사용에 있어서도 이런 성경신학의 발견을 잘 반영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렇게 할 때에 종말론적 사역으로서의 설교가 그 기능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시의 계시로서의 성격에 유의한다는 것은 이 보다 좀더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진 방식, 즉 그 역사적 점진성에 유의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다음에는 이점을 언급해 보기로 하자. (2) 특별계시사에 유의하는 설교 보스적인 성경 신학을 염두에 두면서 설교할 때에 우리가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단번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점진적인 계시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 특별 계시사를 반영하는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보스는 이렇게 말한다. 계시는 한 소진적(消盡的) 행위 안에서 완결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진적 행위의 긴 과정 중에서 전개된 것이다....왜냐하면 계시는 그것 자체로서 자족하게 서는 것이 아니고, (특별계시에 관한 한) 우리가 구속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다른 행위와 불가피하게 연관된 것이며, 또 이 구속은 역사적으로 계속되는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는 구속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구속이 점차로 전개되듯이, 계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22) 그러나 이렇게 점진적으로 주어진 계시는 유기적인 성격의 계시이므로 계시의 절대적 완전성을 부인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기적 점진성이란 씨형태로 부터 완전한 성장에의 도달을 말한다."23) 그러므로 우리는 유기적 점진성을 가지고 주어진 계시의 역사적 과정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고, 우리의 설교도 이 과정을 반영해야만 한다.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목사님들은 전문적으로 특별계시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물론 우리 주변에 특별계시사만을 전문적으로 깊이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맺으신 언약이나 하나님의 약속의 역사를 연구한 이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24) 왜냐하면, 보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역사적 측면을 염두에 둔 개혁파의 언약 교리는 계시사를 구성하려는 첫 시도였고 오늘날 성경신학이라고 불리는 것의 선구로 옳게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25) 그렇다면 이렇게 특별계시의 역사를 염두에 두면서 설교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첫째로, 어떤 본문을 해석하여 설교할 때에 일차적으로 그 본문이 다루는 그 시대까지 주어진 계시의 빛에서 그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후대에 주어진 계시까지를 염두에 두고서 그 본문을 해석하게 되면 무리한 해석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아직 희생제사에 대한 계시가 주어져 있지 않은 시대를 다루는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하면서 그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도출해 내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이와 연관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축출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3:21)는 말씀은 분명히 희생제사에 대한 계시가 주어지기 전의 상황이므로 이 본문을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대한 표상으로나 그림자로 해석하고26) 그렇게 설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물론 이 일을 하시기 바로 전에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가 표현되어 있고 그 구원 방식에 대한 암시도 주어지긴 하였다. 바로 원복음(原福音, Protoevangelium)이라고 불리는 '뱀으로 표상되는 사단의 세력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이 그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 원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인간들과 사단의 세력 사이에 원수 관계를 설정하시리라는 것, 그 우주적 투쟁에서 결국 여자의 씨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것 등이 시사되고 약속되어져 있다.27) 아담은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이런 약속을 믿었든 싶다. 그래서 그는 자기 아내의 이름을 "생명"이란 뜻에서 하와라고 칭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원 복음에는 아직 이 여자의 씨에 의한 결정적인 승리가 어떤 방식으로 성취되려는 지에 대한 계시나 시사와 암시는 아직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와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것은 그 당시까지 주어진 계시의 내용을 넘어가는 것이다. 키드너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구속을 미리 예견하는 것은 지나치게 나가는 것이고 문맥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28) 따라서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에서 그런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시대착오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 계시사를 생각하지 않고서 아직 주어져 있지 않은 계시를 본문에서 미리 삽입하는 잘못된 해석의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29) 그러므로 이 본문에 대한 바른 해석은 범죄하여 하나님 앞에서 축출되는 이들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점에서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을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키드너는 이렇게 말한다: "가죽옷은 인간의 죄 때문에 필요하게 된 도덕적, 물리적 복지의 다양한 측면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30)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보존자이심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31)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사건과 관련하여 이런 무리한 해석의 또 하나의 예를 들 수 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을 때에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 것"(창 4:4, 5)과 연관해서 그 이유를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그 제물을 삼아드린 것에서 찾는 해석이 있어왔는데, 이런 것도 계시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해석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아벨의 제사와 연관해서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는 말씀을 연관시켜 설명하는 것은 그런 시대착오적 해석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일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스코필드 관주 성경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다음과 같이 진술되어 있다: "가인의 피없는 제사는 신적인 방식에 대한 거부였다.... 속죄의 피를 흘린(히 9:22)[아벨의]의 제사는 곧 바로 그의 죄의 고백이며, 대리 (희생제)에 대한 그의 믿음의 표현이다(히 11:4)."32) 그러나 희생제사에 대한 계시는 후대에 모세를 통해서 명확하게 주어진 것이다. 혹자는 이 모든 계시가 모세를 통해 주신 모세 오경에 기록되었으니 모세 시대의 계시를 배경으로 하여 보아야 하지 않는 가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그 이전의 역사 자체의 상황과 그 시기에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적 의도를 무시한 채 그 계시가 기록된 시기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만을 염두에 두는 또 하나의 시대 착오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희생 제사에 대한 계시가 주어져 있지 않는 상황 가운데서는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리든지, 양과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리든지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 본문에서는 가인과 아벨이 드린 두 가지 제사 모두에 대해 다 같은 단어 "민하"(????????)가 사용되어져 있다.33) 이는 후대의 제사 법에 의하면 폭넓게 사용된 예들도 있기는 하지만(삼상 2:17) 주로 곡물 제사인 소제에 대해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서는 아직 어떤 것으로 제사를 드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키드너가 말하는 대로 "피가 없음이 가인의 제물을 무자격하게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34)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 창세기 본문 가운데서는 그 이유가 주어져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이 생각하듯이 가인의 제물은 그의 소산 중에서 최선의 것이 아니었다고35) 추론할 근거가 본문 가운데에는 없는 것이다. 창세기 본문은 단지 그런 사실이 발생했다는 것과 그런 상황에 대해서 가인과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중심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때때로 어떤 이들은 가인이 후에 이 문제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제사에 임하는 가인의 마음을 찾아보려고 한다. 즉, 후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은 것은 그가 처음부터 순수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36)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후대의 계시에서만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하고도 분명한 시사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즉,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히 11:4)는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는 아벨의 예물이 열납된 이유가 그의 믿음에 있었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주석을 볼 수 있다. 즉, 그 때까지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그와 그의 제물이 받아들여진 이유임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인은 제사를 드렸어도 믿음이 없이 이런 종교적 행위에 참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칼빈과 함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인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마음이 없이 외적인 희생 제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자신들을 우롱하는 모든 허구는 다 불신의 산물임이 언급되어야만 한다."37) 이런 것과 연관된 또 하나의 예로 하나님의 이름 "엘로힘"(????????????)이 복수형인 것이나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말씀하실 때(창 1:26)나 사람의 타락에 대해서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실 때(창 3:22), 바벨탑과 관련하여 "자 우리가 내려가서"라고 말씀하신 때(창 11:7), 그리고 이사야를 파송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실 때(사6:8) 등에서 "우리"라는 복수형을 쓰신 것 등을 후대 계시의 빛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계시나 그에 대한 시사라고 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계시의 유기적 발전을 생각한다면 삼위일체와 관련해서도 우리는 밴틸과 함께 "삼위일체 교리가 구약에서도 가르쳐졌으리라, 그러나 신약에서 훨씬더 분명하게 가르쳐졌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38) 그러나 위와 같은 예들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찾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월필드는 옛 저자들은 이런 예들과 같은 현상들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시사"(intimations of the Trinity)를 발견했었다고 말한다.39) 그런데 옛 저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런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엘로힘'과 관련해서는 도날드 블뢰쉬가 그런 언급을 한적이 있다. 그는 엘로힘은 "통일성(단일성)안에 있는 신적인 복수성"(a divine plurality in unity)을 함의한다고 말한다.40) 그러나 엘로힘의 복수형에 대해서는 그렇게 까지 직접적인 계시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밴틸은 '엘로힘'이란 명칭과 관련하여 "우리는 최대한 말한다면 그것이 후에 계시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41) 이를 우리말로 번역한 이는 이에 대해서 "그 자체가 삼위일체를 계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대의 계시의 빛에서 볼 때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는 있다는 뜻"이라는 보역을 달고 있다. 그러므로 최대한으로 양보하여 말할 때 후대 계시에 대해서도 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도 좀더 조심스럽게 엘로힘이란 명칭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증명을 찾는 것은 "최소한도로 말한다고 해도 매우 의심스럽다"(to say the least very dubious)고 말하는42) 벌코프와 같이 말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엘로힘'이라는 명칭과 관련해서는 삼위일체에 대한 증거나 시사를 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43) 이에 대해서는 델리취가 보고 있듯이 "생명과 능력의 충만함을 시사하는 집중의 복수(an intensive plural)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4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제일 먼저 거부되어야 하는 견해는 이를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다신론의 반영으로 보아야 한다는 궁켈(Gunkel)의 견해이다.45) 이에 대해서는 창세기 1장이 가지는 반 다신론 적인 입장을 고려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부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복수형을 쓰신 것과 관련해서 고대 유대인 학자 필로를 비롯해서 폰 라트 등이 생각하듯이 "하나님이 자신을 천상적 존재들[천사들] 가운데 포함시킨다"고46) 보는 것도 거부되어야 할 것이다. 창 1:26을 그렇게 보면 함의상 인간이 천사의 형상으로도 창조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47) 이 구절의 직접적인 문맥에서 사람이 천사들의 형상으로 언급된 것이 없고, 또한 27절의 단수형이 이런 해석을 불가능하게 한다.48) 비슷한 해석을 하는 웬함은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이 견해에 좀 변형을 시도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만들자'라는 것은 창조의 최종 걸작인 사람에게 만군의 천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말씀하시는 하늘 궁전에 대한 신적인 선언으로 여겨져야만 한다."49) 그는 이렇게 보는 것이 욥기 38: 4, 7의 말씀과도 일치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는 다음의 언급할 엄위의 복수로 보는 견해와 연관될 수는 없을까?) 사람이 천사의 형상으로도 간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만 있다면 이런 견해가 소위 왕적 선언으로서의 "우리"를 취하는 해석 중에서 가장 나은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는 이하에 언급될 하나님의 자기 의논형의 복수형과도 어울릴 수 있는 해석이라고도 여겨진다). 엄위의 복수로 보는 견해들이 현대에 많이 시도된 견해들이다. 떼오도루스 프리젠은 이를 장엄의 복수로 보아 창세기 1:26에 삼위일체에 대한 함의가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50) 그런가 하면 이사야 6:8에서는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둘러 싸여진 것으로 보면서 천사들을 포함한 천상회의에서 "우리"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이해한다.51) 이사야 6;8과 관련해서는 이처럼 천상회의에서 천사들을 포함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1:26 이하와 관련해서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 그렇게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장엄의 복수로 사용된 예가 없다는 지적들도 있다.52)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웨인 그루뎀도 하나님께서 "우리"라는 복수형을 쓰신 것이 "엄위의 복수"(a plural of majesty)로 볼수 있는 증거가 없다고 하면서,53) 이에 대한 최선의 설명은 "하나님 자신 안에 다양한 위격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한다.54) 물론 그는 창세기 기록에는 "하나님의 신격 안에 위격이 몇 있으신 지, 또 온전한 삼위일체 교리에 접근하는 것은 전혀 없고, 단지 한 인격 이상이 관여하고 있음만이 시사되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55) 창세기 1:26과 11:7과 관련해서 벌코프도 그 구절들이 삼위일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인격의 복수성이 시사되어있다고 보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다고 한다.56) 이런 표현들이 단도직입적으로 "삼위일체가 함의되어 있다"고57) 말하는 것이나 "신성안에 위격들의 복수성이 있다"고58) 말하는 것보다 좀더 계시사에 유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월필드의 주장도 계시사를 유의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구약 본문에 신약적 개념을 무리하게 넣어 읽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신약 계시의 조명 아래서 구약 본문을 읽는 것이다. 구약은 풍성하게 가구가 놓여져 있으나 조명이 잘 안된 방과 비교될 수 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구약에 계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비는 구약 계시 밑에 깔려 있어서, 이곳 저곳에서 보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구약의 계시는 그 후에 오는 온전한 계시에 의해 교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더 온전해 지고, 확대되며, 더 넓어진다고 할 수 있다.59) 이런 입장과 연관될 수 있는 좀 복합적이고 독특한 견해는 데렉 키드너의 견해이다. 그는 창세기 1:26의 "우리"라는 복수를 "충만의 복수"(the plural of fullness)라고 보면서, "구약에서는 얼 듯 시사된 이 충만함이 후에 요한 복음 14:23(14:17)의 '우리'에서 삼일체(triunity)로 전개될 것이었다"고 한다.60) 카일도 장엄의 복수와 삼위일체적 견해의 기초적 시사로 보는 견해를 연관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를 장엄의 복수(pluralis majestatis)로 여기는 것 외에 다른 어떤 해석이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이 복수형을] (하나님께서 경외적 이유(reverentiae causa)에서가 아니라, 당신 님께서 가지신 신적 능력과 본질의 충만함을 언급하면서 복수로서 자기 자신에게 자기 자신과 함께 말씀하신다는)가장 깊이 있고 가장 집중적인 형태[의 복수]로 이해하는 해석이다. 또한 이는 절대적 신적 존재 안에 집중되어 있는 잠재력들(potencies)이 하나님의 능력과 속성들 이상의 것이라는 삼위일체적 견해의 토대에 놓여있는 진리이다. 즉, 그것들이 그의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후대의 계시의 과정에서 신적 존재의 위격들로서 점점 뚜렷하게 구별되어 나타날 위격들(hypostases)이라는 것이다.61)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너무 지나치게 후대의 계시를 넣어서 이해하는 듯한 이런 해석들도 계시의 진전을 염두에 두면서 진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웬함은 별 논의 없이 단적으로 "원저자에게는 이것이 [삼위일체에 대한 시사]이 복수에서 의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제는 보편적으로 인정된다고 한다."62) 그 자신은 위에서 보았듯이 이 "우리"가 천사들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라고 본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시사가 이 구절에 대한 소위 "충만한 의미"(the sensus plenior)로 있을 수는 있다고 보면서 "신약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성부와 함께 창조 사역에 함께 하셨다고 보고 있으며, 이것이 초대교회로 하여금 삼위일체적 해석을 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으나" 그런 통찰은 분명히 창세기의 기록자의 지평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63) 이 복수를 자기 의논의 복수(a plural of self-deliberation)로 보자는 의견이 제출되었고 많은 이들이 이 견해를 따른다.64) 이런 견해를 따르면 이 구절에서 신적 인격의 복수성이나 그에 대한 시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의견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세일하머는 비슷한 경우로 인용되는 창11:7에서 복수가 사용된 것은 "우리가 만들자"(창 11:3)는 말과 교차구조적 말장난(the chiastic wordplay) 때문에 "우리가 혼동시키자"는 표현이 나온 곳이며, 창 18:7에서는 그런 의논에 단수가 사용되었다는 점들을 지적하고 있다.65) 그러므로 창세기 1:26 이하의 "우리가"라는 이 복수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복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구절과 관련해서는 (1) 창세기 1:26 이하에 하나님의 인격의 복수성에 대한 함의가 있으나 당시 사람들은 그 충분한 함의를 알 수 없었고, 후대의 계시의 빛에 비추어 볼 때 그 충분한 함의가 나타난다고 보는 견해와 (2) 왕적 선언으로서의 "우리"(royal we), 장엄의 복수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그리고 (3) 이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시사보다는 하나님의 자기 의논의 복수로 보아야 본문의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는 견해 등의 해석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지금까지 학자들의 논의는 각각에 대해서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며 논란해 가는 형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입장을 취하든지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 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취하든지 계시의 진전을 생각하면서 논의하고, 계시의 진전을 반영하는 식으로 진술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반 삼위일체적 해석을 하는 일들도 이런 계시의 진전을 생각하면 sensus plenior 로서 이런 함의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은 웬함과 같이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의 진전을 탐구하는 성경신학의 도움을 얻어서 일차적으로는 당시까지 주어진 계시의 빛에서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계시를 계시답게 받아들이는 일의 한 부분인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는 이 계시의 좀 더 폭넓은 문맥 안에서 그 의미의 진전을 살피는 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3) 구속역사의 진전에 유의하는 설교 계시사에 유의하는 것은 이 계시사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구속사의 진전에 유의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경신학에 유의하는 우리의 설교는 구속사적 설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본문의 구속사에서의 위치를 밝히며, 이 구속사의 최종적 성취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과의 관계를 밝히는 설교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가 될 것이다.66)그러나 이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무시간적인 접근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구약의 어떤 본문에서든지 그리스도의 모형을 무리하게 찾아가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고,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설교를 제시한 이들의 생각과 아주 거리가 먼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 정탐군들과 맺은 약속인 라합의 집 창문에 붉은 줄을 내려뜨려 놓겠다는 것에서,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시대로부터 교회 내에서 많이 시도된 대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서 흘려진 피에 대한 상징이나 모형을 찾아보려는 것은67) 잘못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한 우드스트라의 말은 시사적이다. 이런 종류의 모형론적 연관은 아주 조심해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사실 신구약 사이의 참된 모형론적 연관 성은 성경 자체의 의식의 빛에서만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형'으로부터 그것이 모형하는 바 사이에 실제로 연속성이 있는가 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주의가 요청된다. 그저 색깔이 같다든지 다른 외적인 것들이 같은 것으로는 충분치가 않은 것이다.68) 이런 주장을 유의하면서 생각한다면 유월절 의식의 붉은 피와 여기서의 붉은 줄을 연관시키는 것도69) 과연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는 생각인지를 물어야 한다. "어쩌면 이 줄과 출애굽 유월절 때에 문에 바른 피 사이의 어떤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런 연관성을 찾는데는 상당한 주의가 요청된다"고 말하는70) 우드스트라의 조심스러운 태도보다 좀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유월절의 붉은 피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모형론적인 관계를 가지며 성경 자체가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여기서의 붉은 줄은 "성경 어디에서도 모형론적 관계를 지닌 것으로 진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71) 그러므로 이 붉은 줄은 "그저 이스라엘 사람들이 [라합]의 집을 알고, 그 안에 있는 이들을 살려 두겠다는 표(sign)일 뿐이다."72) 또한 시편의 거의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와의 연관성을 드러내려고 한 루터의 시도들은 좀 지나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르침과 설교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사역을 계시답게 받아들이지 않는 일의 전형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지나치게 나아가지 아니하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본문 자체가 다루고 있는 시기의 구속사적 위치에 끊임없이 유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 시대에 주어진 계시의 한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충분히 한 후에는 이제 구속사의 최종적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 속의 성취의 빛에서 각각의 본문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드러내는 노력을 해야한다. 여기서 과거의 본문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구약의 본문이 지금 여기서도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이런 구속사적 연관성 안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의식할 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약, 특히 서신서 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시대적 지평, 즉 원칙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임하여온 "종말의 시대", 즉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시대"라는 지평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는 2000년의 시대적 거리와 과거의 본문에 대한 현대의 해석이라는 해석학 일반의 문제 외에는 별다른 문제를 가지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에게 제시된 형태가 그대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응성 있는 계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신 서에 대한 설교에서의 적용은 비교적 쉬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는 말 우리는 이제까지 개혁주의 성경신학이 우리의 설교에 주는 함의를 간단히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개혁주의 성경신학에 유의하면 (1) 우리의 설교가 참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계시답게 받고, 전달하는 일이 될 수 있고, (2) 계시의 역사에 유의하면서 주어진 본문을 해석하고 설교해야하고, (3) 구속사적 진전에서 그 본문의 독특한 위치와 내용을 드러내는 설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 유의하는 우리의 설교는 얼마나 풍성하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을 까? 그런데 이런 제안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설교를 돕고 그 사역을 강화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우리의 마음을 좁게 하고 성경의 풍성하고 다양한 내용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이 시대를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전달하시고자 하는 풍성한 내용을 다 전달해야만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Vervum Dei Minister)자신의 직무를 다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더 상기하도록 하자. 이 일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남겨진 다음 과제는 (1) 보스의 실제 설교문들을 잘 분석하여 그로부터 우리의 설교 사역에 대한 지침을 이끌어 내는 일, (2) 보스적 성경신학에 유의하며 작업했던 다른 저자들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일에 있어서 가장 먼저 탐구해야할 대상은 클라우니일 것이다), 그리고 (3) 구체적으로 이런 일에 유의하는 구체적인 설교문의 작성과 실행이 될 것이다. 1)그 유산이 바로 그의 강의 노트와 강의록을 책자의 형태로 출판한 그 유명한 [성경신학] 책이다. Cf. Geerhardus Vos, Biblical Theology(Grand Rapids: Eerdmans, 1948), 한역, [성경신학] 이승구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5). 여기엔 어떤 점에서는 강의록의 냄새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가 좀더 전문적으로 성경신학 책을 쓸 수 있었다면 이 보다 좀더 풍성한 제시가 있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특히 신약의 계시를 다루는데서 말이다. 2) 그의 많은 저작이 그러하지만 보스의 영향을 특히 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들로는 다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Cornelius Van Til, Christian Theistic Ethics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80), Chapters 5, 10: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71), especially Chapter 6. 또한 이를 잘 보여주는 글로 E.P. Clowney, "Preaching the Word of God: Cornelius Van Til, V. D. M," Wesminster Theological Journal 46(1984): 233-53, 한역, in 한 제호, [성경의 해석과 설교] (서울: 진리의 깃발, 1995), pp. 410-40, 특히 pp. 413, 430을 보라. 3) Richard B. Gaffin, Jr. "Geerhardus Vos and the Interpretation of Paul," in Jerusalem and Athens: Critical Discussions on the Philosophy and Apologetics of Cornelius Van Til, ed. E.R. Geehan (Phillipsburg New Jerse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1), p. 228. 4) 그의 여러 저작과 함께 다음을 특히 유의해 보라. "Systematic Theology and Biblical Theology," The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38 (1975-76): 284-88; "Geerhardus Vos and the Interpretation of Paul," in Jerusalem and Athens, pp. 229-37; "Introduction," to Redemptive History and Biblical Interpretation: The Short Writings of Geerhardus Vos (Phillipsburg, New Jerse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80), ix-xxiii.(한역 : "구속사 와 성경 해석"이 길호 원 광연 공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그리고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개정해 내면서 이를 보스와 머레이에게 헌정하고 있음을 보라. The Centrality of the Resurrection; A Study in Paul's Soteriology (Grand Rapids: Baker, 1978/한역 "부활과 구속" 손 종국 옮김 도서출판 엠마오 1985), p.5 5)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41), 권수경, 이상원 옮김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1), p.147(성경 신학에 대한 이해와 관련하여), p. 248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분류와 관련하여), pp. 497, 510 (은혜언약과 관련하여), p. 542 (인자 칭호와 관련하여), pp. 543f. ('하나님의 아들' 용어와 관련하여), pp. 652f.(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p. 832 (교회의 권세와 관련하여), 벌코프는 주로 바빙크, 카이퍼, 보스, 핫지, 댑니, 쉐드 등의 책을 일차적으로 참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6) Richard Lints, The Fabric of Theology: A Prolegomenon to Evangelical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93). 특히 보스를 다루고 있는 pp. 181-90을 보라. 7) David Wells, The Person of Christ: A Biblical and Historical Analysis of the Incarnation (Westchester: Crossway Books, 1984), 한역, [기독론: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서울: 엠마오, 1994). 그의 근자의 작품으로 다음을 보라 No Place For Truth (Grands Rapids: Eerdmans, 1993); God in the Wasteland: The Reality of Truth in a World of Fading Dreams (Grand Rapids: Eerdmans, 1994). 8) Edmund P. Clowney, The Preaching and Biblical Theology (New Jerse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79). 한역: [설교와 성경신학] 김정훈 역 (한국기독교 교육연구원 1982). 9) 사실 보스 자신은 성경신학이란 용어 보다 "특별 계시사(特別啓示史)"란 명칭이 보다 알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신학이란 용어는 그것만이 성경적이라거나, 이것이 다른 신학 분과 보다 좀더 성경적이라고 오해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스에 의하면 "모든 참된 기독교 신학은 성경신학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계시가 아닌 성경이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취급할 유일한 자료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것이다 (Vos, [성경신학], "서언"에서). 10) Vos, [성경신학], p. 28. 11) Vos, [성경신학], pp. 28, 29. 12) Vos, [성경신학], p. 30. 13)Sidney Greidanus, Sola Scriptura: Problem and Principles in Preaching Historical Texts (Toronto: Wedge Publishing Foundation, 1970), p.1.(한역: 권수경 옮김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도서출판 학생신앙운동 1989). 그러나 부연해서 사족을 달자면 한역의 제목이 원제 "오직 성경"이라는 제목이 번역본에서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로 바뀜은 의도적으로 한국 신학계와 교계에서 회자되는 '구속사적 성경 해석'이라는 방법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구속사적 성경해석도 성경 본문의 문맥이 그것을 요구하고 뒷받침 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리하게 '구속사'라는 틀을 성경 어느 본문이든지 획일적으로 적용할 때 오히려 무리한(?) 본문의 문맥에 위배되는(?) 기형적 해석(?)이 도출 될 위험성(?)이 있다고 본다. 14) D. Van Dijk, "Tot onze Leering," Pro-Ecclesia, VI (1940/41), p. 279, cited in Greidanus, p. 42. 15) Clowney, "Preaching the Word of the Lord," p. 425. 16) Vos, Biblical Theology, [성경 신학], pp. 424f. 17) G. E. Ladd, The Presence of the Future: The Eschatology of Biblical Realism(Grand Rapids: Eerdmans, 1974), pp. 188f. 18)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74), p. 91(강조 점은 필자의 것임) (한역/ 신성종, 이한수 공역 "신약 신학"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19) Robert Recker, "Redemptive Focus of the Kingdom of God," in [구속사와 하나님의 나라] 오광만 편역(서울: 풍만출판사, 1986), p. 26. 20) Recker, p. 57. 21) Wells, [그리스도는 누구 신가?], pp. 51f. 22) Vos, [성경신학], pp. 21f. 23) Ibid, p. 23. 24) 그 대표적인 글들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John Murray, The Covenant of Grace: A Biblico-Theological Study (London: Tyndale House, 1954); J.B. Payne, The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1962); O. Palmer Robertson, Christ of the Covenants (1980)./한역 김의원 역[계약신학과 그리스도] 기독교문서선교회 1983. 25) Vos, "Hebrews, The Epistle of the Diatheke," The Princeton Theological Review 14 (1916), p, 60=in Redemptive History, p. 232. 26) 그런 해석의 대표적인 예로 다음과 같은 세일하머의 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저자가 이 기사 자체에서는 이런 의미에 대한 시사를 주고 있지는 않으나, 저자는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 동물을 죽인 것에서 희생제사 개념을 선취하고 있을 수도 있다"(John H. Sailhamer, "Genesis,"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 2[Grand Rapids: Zondervan, 1990], p. 58.) 이렇게 까지는 나가지 않아도 "하나님의 준비에는 동물 희생 제사가 함의되어 있다. 그러나 현저하게 나타난 것은 희생 제사적 방법이 아니라, 치유적 결과이다"고 말하는 클라인의 말에는 어느 정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의 의도가 나타나고 있다고 여겨진다.(Meredith G. Kline, "Genesis," in The New Bible Commentary [Leicester: IVP, 1970], p. 85). 클라인이 이렇게 나아가는 것은 좀 의아스러운 일이다. 27) 이런 요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서는 Vos, [성경신학], pp. 58-60.을 보라. 28) Derek Kidner, Genesis: 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in Tyndale Old Testament Commentary, Vol. 1(Leicester: IVP, 1967/한역 한정건 역 [창세기] 기독교 문서선교회 1994), p. 72: "It is unduly subtle, and a distraction, to foresee the atonement here". 29) 그런 잘못된 해석은 때로는 창세기 기록의 역사성을 무시하고 이 본문을 이 글이 기록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 가운데서 이해하려는 의도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다음과 같은 죤 스키너의 말을 생각해 보라: "페니키아의 우소오스(Usoos) 전설에서는 [가죽옷 입는 일의 기원은] 야생 동물 사냥과 연관되며, 이는 또다시 희생제사 제도와 연관된다..... 고대 셈족들에게서는 희생 제사 제도와 동물의 고기를 음식으로 먹는 것이 불가 분리 적으로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이는 사람들이 자연의 자연스러운 열매로만 살던 황금 시대로 부터의 첫 이탈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John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 Second Edition [Edinburgh: T. & T. Clark, 1930), p. 87). 스키너는 로버트슨 스미뜨도 이와 비슷하게 이 구절에서 가축의 희생 제사제도의 도입에 대한 J 문서 편집자들의(Yahwistic) 이론을 찾고 있다고 밝힌다.(Robertson Smith, Lectures on the Religion of the Semites, Second Edition (1984), pp. 306ff., cited in Skinner, p. 87). 30) Kidner, p.72: "The coats of skins are forerunners of the many measures of welfare, both moral and physical, which man's sin makes necessary." 31) 폰라트는 심지어 우리가 여기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보존자로 볼 수 있게 된다고 까지 말한다. Cf. Gerhard von Rad, Genesis: A Commentary, E.T. by John H. Marks, revised by John Bowden (London: SCM Press, 1972), p. 96. 32) Scofield Reference Bible, pp. 10-11. 33) 아주 세심하게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이들로 다음을 보라. C. F. Keil and F.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1: The Pentateuch, E. T. by James Martin, Reprinted (Grand Rapids: Eerdmans, 1976), p. 109; John H. Sailhamer, "Genesis,"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 2 (Grand Rapids: Zondervan, 1990), pp. 61, 63. 34) Kidner, p. 75. 35) 유대인들 가운데서 가인의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그가 충실한 곡식으로가 아니라, 잘 여물지 않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듯 싶다. 칼빈은 이런 생각을 어리석은 상상이라고 하였다. Cf. John Calvin, Commentary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E. T by John King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7; reprinted,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93), p. 196. 다른 점에서는 매우 세심한 카일과 델리취 주석이 이점에서는 가인의 제물은 첫 열매가 아니었는데 이런 선택의 잘못이 그의 하나님께 대한 온전하지 못한 마음을 드러낸다고 말하는 점(Keil and Delitzsch, pp. 110f)이 매우 의아스럽다. 스티거즈 역시 그런 입장을 취하는 데 그는 주로 아벨의 제물을 묘사하는 용어에 대한 분석에 근거해서 비교적으로 가인의 제물을 낮추어 보는 듯하다(Harold G. Stigers, A Commentary on Genesis [Grand Rapids: Zondervan, 1976], p. 87). 웬함도 그들과 같은 입장을 표한다(Gordon J. Wenham, Genesis 1-15: Word Biblical Commentary 1[Waco, Texas: Word Books Publisher, 1987], pp. 103, 104). 그러나 가인의 제물이 첫 열매가 아니었다는 그들의 주장에 반하여 Sailhamer는 그들의 제물이 모두 첫 열매로 여겨질 수 있다고 한다(p. 61). 36) 대표적인 예로 다음을 보라. Sailhamer, p. 61: "In his response we see the heart that lay behind the unaccepted offering." 37) Calvin, p. 196. 38) Cornelius Van Til, An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Phillipsburg, New Jersey: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1), 한역, [개혁주의 신학 서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p. 366. 39) B. B. Warfild, "The Biblical Doctrine of the Trinity," in Biblical and Theological Studies (Philadelphia: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mpany, 1968), p. 29. See also Arthur W. Wainwright, The Trinity in the New Testament (London: SPCK, 1962, 1982), p. 18. 바빙크는 '엘로힘'과 관련하여 삼위일체에 대한 시사를 찾던 인물 중의 하나가 롬바르드(Rombard)라고 한다. [Herman Bavinck, The Doctrine of God, trans William Hendriksen [Grand Rapids: Eerdmans, 1951]; Grand Rapids: Baker, 1977], p. 100=한역, [개혁주의 신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8), p. 141). 40) Donald G. Bloesch, Essentials of Evangelical Theology, Vol. 1: God, Authority, and Salvation (New York: Harper and Row, 1978), p. 48, n. 20. 벌코프는 그런 해석을 하는 이로 Rottenberg를 들고 있다.(De Triniteit in Israels Godsbegrip, pp. 19ff., cited in Berkhof, p. 86). 41) Van Til, Systematic Theology, p. 366. 핫지의 다음 같은 견해도 이와 연관시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에조차도 후대의 계시에서 그 참된 해석을 찾을 수 있는 이 교리에 대한 시사들이 있다.....그러나 계시의 진전으로부터 신성안에 삼위 계시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때에 라야 그런 표현 형태가 그 위대한 교리[삼위일체 교리]에 그 토대를 두고 있음이 분명히 인식되는 것이다"(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Vol. 1[Riprinted, Grand Rapids: Eerdmands, 1977], pp. 446f.). 42) Berkhof, p. 86. 43) Payne, pp. 146, 167. 또한 Bavink, p. 256=한역, pp. 372f.을 보라. 44) Bavink, p. 100=한역, p. 141에서 재인용. 또한 Bavink, Our Reasonable Faith, tran. Henry Zylstra (Grand Rapids: Eerdmans, 1956; Grand Rapids: Baker, 1977), p.147: "...Elohim is in plural form, and therefore, although it does not, as was formerly generally supposed, designate the three persons of the divine Being, it does, in its character as an intensive plural, point to the fullnes of life and of power which are present in God"도 보라(강조 점은 필자의 것임). 월필드도 바빙크를 인용하면서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Warfield, "The Biblical Doctrine of the Trinity," in Biblical and Theological Studies, p. 30). 또한 Berkhof, p. 48도 보라: "The plural is to be regarded as intensive, and therefore serves to indicate a fulness of power." 45) Wenham, p. 28에서 재인용. 46) Von Rad, Genesis, p. 58. 또한 그의 [구약성서신학], 제 1 권, 허혁 역 (왜관: 분도 출판사, 1976), p. 152도 보라. 이와 같은 견해를 표현하는 이들로 다음을 보라. John Skinner,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Genesis(Edinburgh: T & T. Clark, 1930), p. 31; M. G. Kline, "Genesis," in NBC, p.83; Donals E. Gowan, Genesis 1-11: From Eden to Babel, 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entary (Grand Rapids: Eerdmans, 1988), p. 27. Gordon Wenham에 의하면 다음 같은 학자들도 같은 견해를 취한다고 한다. W. Zimmerli, T. N. D. Mettinger, W. H. Gispen, Day (Wenham, p. 27). 47) 이 점에 대한 강한 지적과 논의로 Keil and Delitzsch, Genesis, p. 62를 보라. 이는 어거스틴 때부터도 있어온 반론이다. Augustine, City of God, 해당 부분을 보라. 48) 이에 대한 좋은 지적으로 Sailhamer, p. 37을 보라. 49) Wenham, p. 28. 50) Theodorus Vriesen, An Outline of Old Testament Theology, Trans. S. Neuijen (Oxford: Basil and Blackwell, 1958), p. 179. /(한역 노항규 옮김 [구약신학개요],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51) Ibid, pp. 179-80. 52) 비록 엘로힘과 관련해서 이기는 하나 바빙크가 그렇게 말한다.(Bavink, p. 100=한역, p. 141). 53)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Grand Rapids: Zondervan, 1994), p. 227. 그는 이와 관련해서 이 구절들에서 복수형이 "옳지 않게 이와 같은 식으로 [즉, 엄위의 복수로] 설명되었다"고 말하는 카우취가 편집한 게세니우스의 히브리 문법을 인용하고 있다(E. Kautzsch, ed, Gesenius' Hebrew Grammar, 2nd ed. (Oxford: Clarendon Press, 1910), section 124g, n. 2). 그는 또한 자신의 랍비 문학에 대한 조사를 언급하면서 "후기 유대인 해석자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만족할 만한 의견의 일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Sysmatic Theology, p. 227, n. 2). 54) Ibid., p. 227. 55) Ibid, p. 227. 56) Berkhof, p. 96. 57) Payne, p. 167. 비슷한 입장의 표현으로 Sailhamer, pp. 37f 을 보라. 58) Calvin, p. 92: "Christians, therefore, properly contend, from this testimony, that there exists a plurality of Persons in the Godhead." 그는 다음과 같이 계속하여 말한다: "하나님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누가복음의 선교신학적 관심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누가복음의 선교신학적 관심 2002-11-11 17:11:50 read : 7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누가복음의 선교신학적 관심 누가복음 8장 26-39절 소 기 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 신약학) 누가복음이 이방인 선교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직접 만나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전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발행된 성서신학마당 시리즈 가운데,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주님:설교를 위한 누가복음 연구』(서울:한국성서학연구소, 2000)에서 김경진 교수는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여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적 관심이 현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이방인들과 전혀 접촉하고 있지 않다"(p. 269)라고 영국의 성서학자 터키트(C.M. Tuckett)에 의존하여 주장하였지만, 필자는 본문의 분석을 통해서 예수가 갈릴리의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가서 이방인을 만났던 사실을 중시하면서 누가복음의 선교 신학적인 관심을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본 소고는 거라사 혹은 가다라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하는데, 이는 예수가 공생애 활동 가운데 유대와 갈릴리 지역에서 유대인 선교뿐만 아니라 이방 지역에서도 이방인을 위한 선교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예수의 이방인 선교에 우리의 관심을 돌리는 것은 그의 공생애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관복음서와 본문을 비교하여 누가복음의 본문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어떻게 본문이 이방인 선교 문제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누가의 선교 신학이 추구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인 (1) 기독론적 특성과 (2) 사고방식의 전환, 그리고 (3) '하나님의 선교'라는 요소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거라사인인가 가다라인인가? 공관복음서에서 거라사인에 대해서는 본문과 마가복음 5장 1절에, 가다라인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8장 28절에 언급되어 있다. 실제로 사본상의 증거를 보면, 어느 지역이 정확한 지명인지 결정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다단하여, 신약학자들 사이에 최대의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리스어로 된 신약성서 원전을 복원하는 일에 참여하였던 프린스톤 신학교의 메츠거(Bruce M. Metzger)는 거라사인 혹은 가다라인에 관한 사본상 본문의 다양성에 대해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C등급의 판정으로, 누가복음의 본문에 대해서 D등급의 판정으로 각각의 지명을 소개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거라사'이든지 혹은 '가다라'이든지 모두 유대인의 땅이 아닌 이방인의 땅을 지칭하고 있으며, 바로 그 지역에서 귀신에 들려 고생하는 자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당시에 유대인들은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살면서도, 유대와 갈릴리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뿌리를 두고 있는 디아스포라 사람들만을 선민으로 간주하였으며, 자신들을 중심으로 '유대인'이라는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 자기들과 지척에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사마리아 사람들(눅 9:52-56; 10:30-35; 17:11-19)을 포함한 모든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하였다(마 15:26-27; 막 7:27-28). 거라사와 가다라는 갈릴리 바다를 기준으로 서로 상이한 지명이다. 갈릴리 바다에서 동남쪽으로 약 6 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움 퀘이스(Umm Qeis)라는 지명인 가다라와는 달리, 본문의 거라사는 약 33 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오늘날의 제라쉬(Jerash)라는 곳이다. 거라사와 발음이 유사한 케르사는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에 위치한 곳이며, 26절에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이라고 언급되어 있으므로, 거라사를 케르사로 혼동한 우려가 있다. 갈릴리 동쪽 해안가에 위치한 케르사는 귀신들린 사람이 격리될만한 장소로는 적합치가 않으므로, 거라사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거라사와 가다라 지역은 모두 데가볼리 지역에 속한 곳이다. 공관복음서에 '데가볼리'라는 지명은 세 군데만 나오고 있는데(마 4:25; 막 5:20; 7:31), 이들 모두 예수의 행적과 관련하여 예수의 이방인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마가복음 7장 31절은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라고 기술함으로써,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 이방인의 땅 가운데 동서남북을 종회무진하면서 다닌 것을 강조하고 있다. 과연 예수가 거라사인의 땅을 다닌 것이 사실인가? 거기서 이방인을 만났는가? 우리의 대답은 의심의 여지없이 '예'이다. 그 이유로 우리는 마가복음 이전의 전승을 손꼽을 수 있다.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의 내용을 참고로 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은 그 내용을 어디에서 가져 온 것일까? 신약성서 학자들 대부분은 한결같이 마가복음 이전의 전승 내용에서 가져 온 것이라고 대답한다. 예수가 공생애 동안에 유대인의 땅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땅에도 즐겨 다니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공히 만난 사실에 근거하여, 마가복음은 이방인의 지역인 거라사인의 땅에 선교여행을 다닌 예수에 관한 전승을 수집하여 기록하였으며, 그러한 마가복음 이전 전승에 대한 기록을 참고로 하여 후대에 이르러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예수의 이방인 선교에 관한 자료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공관복음서와 비교 공관복음서는 거라사인 혹은 가다라인에 관한 이야기를 기적 이야기의 수집물 속에 보존하여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마태복음은 8-9장에, 마가복음은 4장 35절-5장 43절에, 누가복음은 8장 22-56절에 여러 가지의 기적들을 수집해 놓고 있다. 공관복음서에서 거라사인 혹은 가다라인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예수가 광풍을 잔잔케 한 이야기 다음에 배치됨으로써 예수의 권위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저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마 8:27; 막 4:31; 눅 8:25)라는 제자들의 놀라움은 곧 이어서 전개된 무덤 사이에서 귀신에 들려 고생하는 자를 고친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마 8:29; 막 5:7; 눅 8:28), 예수의 권위에 대한 논란이 그 뒤를 이어서 계속되는 기적 이야기들을 통해서 일단락 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예수의 권위 문제와 관련하여 예수가 귀신들린 자를 고친 이야기는 기독론적 주제와 연결되고 있으며, 예수가 거라사인의 땅에 간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방인 선교 주제와 연결되고 있다. 우선 마가복음 5장 1-20절을 마태복음 8장 28-34절과 비교해 보면, (1)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의 자료를 상당수 축소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 무덤 사이에서 나온 귀신들린 사람의 숫자에 대해서 마가복음은 한 사람이지만(막 5:3), 마태복음은 두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마 8:28). 마가복음은 그 사람의 귀신들린 상태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만(3-5절), 마태복음은 간단하게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28절)고 전하고 있다. (3) 마가복음에서는 귀신들린 자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막 5:7)라고 최상의 인사말을 던지고 있지만, 마태복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여!"(마 8:29)라고 언급하고 있다. (4) '무릎을 꿇다'는 뜻의 그리스어 동사인 '프로스퀴네오'는 마태복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로써(마 2:2,8,11; 4:9,10; 8:2; 9:18; 14:33; 15:25; 20:20; 28:9,17), '경배하다', '예배하다', '절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동사이지만 마태복음은 8장 29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마가복음 5장 6절은 '프로스퀴네오'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귀신들린 자의 제의적인 행동을 통해서 예수가 경배의 대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5) 마가복음 5장 7절과는 달리, 마태복음 8장 29절은 "때가 이르기 전에"라는 단어를 삽입함으로써 종말론적 파멸의 때가 임박해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6) 마가복음 5장 13절은 "허락하신대"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 8장 32절은 "저희더러 '가라' 하시니"로 되어 있다. 이러한 마태복음의 표현은 짤막하지만, 예수의 권위있는 행동을 강조하는 명령어법이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명령 앞에서 순종하는 귀신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의 권위를 아주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마가복음 5장 18-20절에 나타나 있는 예수와 고침을 받은 자 사이의 대화와 전도모습이 마태복음 8장 34절에서는 무리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갑작스럽게 중단되면서 생략되고 있다. (7) 마가복음의 본문에는 전혀 없는 표현인 '그런데 보라'(그리스어로 '카이 이두')라는 단어가 마태복음에는 8장 29, 32, 34절에 연거푸 등장함으로써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제 마가복음 5장 1-20절을 누가복음 8장 26-39절과 비교해 보면, (1) 누가복음 역시 마가복음의 자료를 어느 정도 축소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 마가복음이 무덤 사이에서 나온 사람에 관해서 심각하게 귀신이 들려서 "아무도 제어할 힘이 없는 자"(막 5:4)요 '돌로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하는 자'(막 5:5)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누가복음은 그가 귀신이 들려서 무덤 사이에 거하지만 단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한"(눅 8:27) 자라고 묘사함으로써 예수뿐만 아니라 아무라도 만날 수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 8장 29절의 내용은 한글성경에도 괄호로 묶여져 있는데, 이것을 누가는 부연설명으로 처리하여 마가복음과 비교해 볼 때 귀신들린 자의 완화된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묘사는 선교적인 관점에서 아주 중요하다. 선교는 특별한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전혀 전하지 못할 불가능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 (3) 그 귀신의 이름이 마가복음에 '군대'라고 두 군데에 명기되어 있는 것을(5:9,15) 누가복음은 한 군데서만 명시하고 있는데(눅 8:30), 그리스어 '레기온'은 군대의 연대급이나 사단급 규모의 병력(5000명이나 6000명 규모)을 지칭하는 단어로서, 마가복음 5장 13절에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2000개의 악령이 그 사람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누가복음은 이러한 숫자를 완전히 생략하고 있다. (4) 마가복음과는 달리 누가복음은 '무저갱'(그리스어로는 '아뷔소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눅 8:31), 이는 우리말에 '지옥'과 동일시되는 단어로서 '깊은 곳' 혹은 '지하세계'를 가리키며(롬 10:7; 계 9:1,11; 11:7; 17:8; 20:1,3), 악한 세력을 감금해두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누가복음이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마태복음 8장 29절이 '때'에 대해서 언급한 것처럼, 본문에 종말론적 의미를 첨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 대체로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의 본문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귀신들린 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특히 그 이야기의 결론은 양자가 아주 유사하다. 예수와 고침 받은 자 사이의 대화와 무리들의 반응에 대한 묘사뿐만 아니라(막 5:14-19//눅 8:34-39a), 이야기의 총 결론부분도 유사하다(막 5:20//눅 8:39b). 특히 예수가 고침 받은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장면(막 5:19; 눅 8:39)은 그가 귀신에 들렸을 때 잃어버렸던 사회적인 신분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회복해주는 차원에서 전인적인 치유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총 결론부분에서 고침 받은 사람이 '예수가 자기에게 행하신 큰 일에 관해서 전파'하는 장면은 그가 영적인 차원에서도 완전히 치유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6) 마가복음 5장 17절에서 사람들은 예수에게 '그 지경에서 떠나기를 요청'하였는데, 누가복음 8장 37절은 그 사람들이 바로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라고 명시해 줌으로써 예수가 귀신들린 자를 고친 사건이 이방인의 지역에서 대단한 파급효과를 지니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귀신들린 자가 고침을 받은 후에 이방인들이 예수를 그 지역에서 떠나라고 요청한 대로 예수가 다시 배에 오른 것이 사실이지만, 곧 이어서 예수는 귀신 나간 사람에게 이방인인 자기 동족에게 그에게 일어난 그 큰 일을 전파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러한 명령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복음이 예수에게서 비롯되는 이방인 선교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예수의 명령대로 그는 그 놀라운 사건에 대해서 이방인의 "온 성내"(눅 8:39)를 다니면서 전파하였다. 누가복음의 선교 신학 누가복음의 선교적 관심은 공생애 동안의 예수에게서 기인하는 것이다. 본문은 누가복음의 선교 신학에 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본문을 근거로 해서 누가복음의 선교 신학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첫째, 기독론적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덤 사이에서 나온 귀신들린 자가 아니다. 그가 고침을 받고 마지막에 자기에게 일어난 큰 일에 관해서 전파하였다고 해서 마침내 그가 주인공으로 뒤바뀌는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생애를 사신 예수이다. 본문 26-27절이 우리말 번역 성경에 "갈릴리 맞은편 마을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육지에 내리시매"라고 되어 있어서 그 행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불분명하지만, 그리스어 원전 성서에 복수와 단수 3인칭의 단어가 각각 사용되고 있으므로 우리는 예수 일행과 예수 자신이 그 이야기의 주체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마태복음 8장 28절은 아예 마가복음 5장 1절의 복수 3인칭 동사를 단수 3인칭으로 바꾸어 줌으로써 모든 행동의 주체가 예수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예수가 행하신 놀라운 기적 이야기는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누가복음에 보존되게 된 것이다. 적어도 누가복음에서 예수는 선교 여행에 함께 동행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방인 선교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 스스로 거라사인의 땅에 들어가는 결단을 내리고 앞서서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 선교는 예수가 처음부터 주도한 일이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이방인 선교를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고침을 받은 자가 곧바로 전도를 실천한 모습을 통해서, 장차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이방인 선교가 활성화 될 것이라는 새로운 선교 방안과 모델을 예수는 본문을 통해서 예시해 주었다.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만나자마자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부르며' 하는 말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눅 8:28)라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철저히 예수를 주인공으로 인식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사고방식의 전환(paradigm shift)이다. 본문 전후에 전개되고 있는 기적 이야기의 활동 무대는 갈릴리이다. 갈릴리에서 공생애 동안의 예수는 선교의 대상을 유대인으로 삼았다. 그러나 사고 방식이 전환되었을 때, 예수는 유대 특수주의라는 사고방식의 한계를 깨뜨리고 이방인의 땅으로 갔다. 누가복음은 이러한 예수의 정신을 계승하여 사고방식의 틀을 바꾸는 실천적 선교 신학을 수립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무관심하여 그 인격과 생존권마저도 인정하지를 않고 무덤에 버렸던 사람을 예수는 찾아가서 만났다. 사고방식의 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평생을 군대라는 귀신에 들려서 광야로 내몰렸던 그 사람도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게 되었을 때, 사고방식을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예수를 통해서 구원의 큰 일이 나타나게 되었을 때, 그는 전인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변화되었고 지금까지의 옛 생활을 과감하게 벗고서 복음 선교의 증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본문 가운데 '예수가 더러운 귀신을 명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눅 8:29)고 하였을 때, 그 사람에게서 나온 귀신은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 비탈길로 내리 달았다. 귀신과 돼지 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요소들이지만, 예수의 새로운 사고방식은 귀신들린 자를 고치는데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돼지 떼를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사고방식의 전환이 가져오는 놀라운 결과이다. 새로운 사고를 하게 되면 아무 관련이 없는 것들도 요긴하게 쓰이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사고방식의 전환을 예수에게서 철저하게 배워서 이방인 선교에 적용한 복음서 기자이다. 셋째,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본문 39절에서 예수는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친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이고, 또한 예수가 그를 고친 것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예수는 '하나님이 이러한 큰 일을 행하셨다'고 일깨우며 고침을 받은 자에게 선교를 명령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선교의 궁극적인 주체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선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사실상 누가복음은 39절의 말씀을 마가복음 5장 19절에 근거하여 기록한 것인데, 거기서 마가는 '주님'이라고 표현한 것을 누가는 '하나님'으로 바꾸어서 분명하게 표현해 줌으로써,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능력의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특히 누가복음은 폭풍우를 잔잔케 한 사건(눅 8:22-25)과 귀신들린 자를 고친 사건(눅 8:26-39)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극대화하고 있다. 구약성서 시편 65편 7절의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은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시키시는" 분이다. 이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연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인생(시편의 '만민의 훤화'라는 말은 '모든 민족의 요동' 혹은 '모든 이방의 고난'을 뜻한다)까지도 다스리는 분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은 구약성서적인 개념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우리는 이방인의 땅에서 일어난 이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장차 하나님이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이루실 커다란 '하나님의 선교'를 보여주며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자기의 동족인 이방인을 위한 선교적 실천을 명령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겨자씨비유에 나타난 하나님나라의 비유/ 김영선
김영선/겨자씨비유에 나타난 하나님나라의 비유 2002-11-12 10:05:11 read : 27 목 차 Ⅰ. 서 론 A. 연구의 목적과 중요성 본 논문은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유 중에서 24-30절에 기록된 가라지 비유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 나라에 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대의 학자들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중심 메시지라는 것에 일치된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해석들은 세부적으로 상당히 다양하지만 몇가지 특징적인 형태들을 갖는다. 어거스틴으로부터 개혁자들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견해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의미에서 교회와 동일시되고 있으나, 이런 견해는 현재 카톨릭 학자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지만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되어질 수 없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예수에 의해 가르쳐진 순수 예언적 종교 - 하나님의 부성, 인간의 형제됨, 개별 영혼의 무한한 가치, 사랑의 윤리 등 - 로 이해한다. 예수의 교훈 속에 나타난 묵시론적 요소는 그의 실제적인 종교 메시지의 핵을 담고 있는 껍질에 불과하다.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우선적으로 개인의 종교체험 - 하나님께서 개별 영혼을 다스리심 - 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여 왔다. 대다수 학자들의 총의를 모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이며 미래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왕국이 전적으로 미래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너무 가깝기 때문에 이미 그 능력이 체험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들에 의하면 새벽이 일출을 앞서는 것 같이 왕국의 표증들은 현재하지만 왕국 자체는 현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예레미야스는 독특한 입장을 취한다. 예수의 전사역을 왕국이 실현된 사건으로 이해하여, 심지어 세례요한도 성취의 때에 속한 사람으로 본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에게 임하였고 구원의 때는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메시지와 그의 귀신 축출 기적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는 역사 속에 뚫고 들어왔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의 부활과 재림을 포함하는 임박한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완성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스는 예수가 그의 부활, 재림, 왕국의 완성을 하나님의 승리가 나타나는 단일 사건으로 간주하였다는 도드의 재의를 따른다. 미국과 영국의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보다 새로운 견해가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구약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음이 분명하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날카롭게 구분짓는다. 후자는 지상에서의 천국(하나님) 통치이며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지상적 신정 왕국을 우선적으로 지칭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왕국의 제시를 거절했기 때문에 예수는 이스라엘을 위한 왕국을 세우는 대신 믿는 자는 누구나 안식과 봉사를 제공받을 수 있으며, 인종적인 모든 장벽들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신앙가족을 형성할 새 메시지를 소개하였다.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난 천국 비유가 이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거절한 천국은 이스라엘이 회심하고 다윗 왕국의 회복을 예언한 구약의 약속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실현되어질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명백한 가르침을 비유라는 문학형태로써 사용하였다(막 4: 33, 34). 그래서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의 1/3이 비유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비유의 중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비유에 관한 이해에 있어서 그것을 하나님 나라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지금까지 살펴 본 하나님 나라의 견해에 대하여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나타난 가라지 비유를 통해 살피려고 한다. 비유란 일상생활의 친숙한 상황을 예증함으로써 화자가 말하려고 하는 요점을 납득시키고자 하는 말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는 이런 비유의 독특함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는데 이 비유들은 단순한 예들이 아니고 예수의 전체 사역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예수의 가라지 비유 속에는 하나님 나라 그 자체가 비록 감추어진 형태로 표현되어 있기는 하지만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 자신의 인격과 사명에 대해 증언을 하였다. 또한 이 가라지 비유는 마태복음의 특수 자료이다. 따라서 이 비유를 통하여 마태 기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의도를 알 수 있다. 또한 이 비유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비교하여 그 중요성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가라지 비유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만이 해석 본문을 가지고 있는 점으로 미뤄보아도 가라지 비유에 대한 마태 기자의 각별한 관심을 알 수 있으며, 의미의 적용에 있어서도 가라지 비유 만이 하늘나라(Kingdom), 씨 뿌림(sowing), 분리(separation)의 세 요소를 결합하고 있는 점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보다 한층 복잡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가라지 비유는 어떤 비유보다도 생생하게 마태 교회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선과 악\'의 혼합으로부터 야기되는 갈등과 문제점은 마태 당시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의 끊임없는 관심과 촛점의 중요한 대상이 되어왔다. 이런 점에서 가라지 비유는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나아가서는 인간의 실존적인 차원까지 폭넓게 포함하고 있는 비유이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마태복음의 가라지 비유를 연구하여 예수의 신약성서 중심 메시지인 하나님 나라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필자는 이와같은 연구를 통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규명하고 교회의 복음 선교와 구원의 사역, 그리고 신학 연구에 이바지 하고자 한다. B. 연구 방법 및 범위 본 논문은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 비유를 중심으로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연구이다. 따라서 비유 해석에 대한 성서 연구 방법이 중요하다. 성서 연구 방법들에는 자료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 그리고 최근의 사회학적 성서해석 방법등이 있다. 자료비평은 복음서가 형성되던 기록단계의 연구에 그 중점을 두며, 복음서 저자들이 복음서를 편집하기 위해서 어떤 기록 자료들을 사용하였는가를 밝혀내려고 노력한다. 특히 공관복음서 사이에 나타나는 정확한 일치나 큰 차이점이 나타나는 원인을 분석하고 그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가정을 찾고자 한다. 여러가지 가설들이 제안되었고, 특히 두 문서설이 중요하다. 이후 이 문서설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여 발전시킨 것이 스티리터(B.H. Streeter)의 네문서설이다. 양식비평은 구전당시의 상황에 관심을 집중한다. 우선 신약의 여러 문서들을 문학 장르별로 분류하고, 또한 전승자료의 가장 작은 단위들을 문자 이전의 구전 시대에 지녔던 양식 혹은 모양에 따라 분석한다. 그러나 양식비평 학자들은 비유들을 해석하는 데는 노력하지 않고 대신에 그것들을 양식에 따라 분류하고, 그것들의 구조적, 형태적(stylistic) 특징들을 기록하며, 그것들이 기여했다고들 여기는 초대교회의 \"삶의 정황(자리)\"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시도한다. 그러므로 성서의 특정한 이야기와 가르침의 일정한 양식을 취하며, 그 양식은 그것의 삶의 자리 혹은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의 자리를 결정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본다. 사회학적 성서해석이란, 성서 이면의 사회적 세계를 밝히는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동시대라고 하는 시간의 평면 위에서 여러 사회적 사항들, 사회제도, 기구, 통치제도, 이해집단 등등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밝힌다. 이런 방법들은 역사와 사회라는 차원에 강조를 둔다. 따라서 본문의 신학적이고 문학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가 약했다. 편집비평은 성서 저자들의 자료사용 방법을 분석하여 그 신학적 의도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 저자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가지고 창조적이고 의도적으로 하나의 문학작품을 구성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도한 주장이나 가설을 펼침으로 부당한 적용에 다다를 가능성이 있다. 이 원리를 제대로 사용한다면 매우 긍정적으로 성서 연구에 공헌할 것이다. 예수는 그 자신의 상황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비유들을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마태 역시 그가 속한 그 교회의 상황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에게 전수돼 내려온 비유들을 채용했다.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들은 그 자신의 시대와 그 자신의 신학에 기여하도록 배치된 것이다. 그러므로 비유들이 마태의 복음서의 문맥 내에서 연구될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 시대와 이 시대의 신학을 반영하리라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마태의 가라지 비유를 마태 자신의 견지로 이해하여 분석하기 위하여 편집비평의 방법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그러므로써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본문의 의미와 예수의 메시지를 살펴나가고자 한다. 그 범위에 있어서 Ⅱ장에서는 예수의 복음 선포, 특히 비유 선포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성격을 찾아볼 것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다라고 이미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비유에 대한 개념적 정리를 해 본 후에, 예수께서 선포하신 비유의 독특성을 찾아볼 것이다. 그런 뒤 예수의 비유 속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격과 신학을 정리하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본 연구의 중심 주제인 가라지 비유의 의미 파악을 위하여 우선 마태복음 13장의 구조를 살피려고 한다. 왜냐하면 예수의 중심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라고 한다면, 마태복음 13장은 천국 비유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13장을 마태복음의 핵심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3장의 구조를 살핀 후에 13장에서의 가라지 비유의 위치와 구조를 연구하고 난 후, 가라지 비유 주석을 통하여 비유 속에 숨어있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정리하고자 한다. Ⅳ장에서는 지금까지 연구한 가라지 비유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의 통치 실현으로서의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파악하고, 이어서 하나님 나라가 갖는 심판 사상을 다루어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연구하며,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하나님 나라의 삶의 양식에 대하여 구체적 사상을 정리할 것이다. Ⅴ장에서는 결론으로서 가라지 비유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총괄 정리하고자 한다. C. 연구사 신약 연구의 전 영역에서 어떠한 주제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계시\'보다 더 다양한 이론들을 유발시키거나 더욱 격심한 논쟁을 야기시킨 적이 없었다. 이런 사실은 특히 지난 50년 동안에 주지되었던 바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개념이 성서 전체에 내포되어 있는 중심 메시지이며, 그 사상은 예수의 메시지와 사역에서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곧 복음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해석하는 입장은 시대와 학자들마다 서로 그 차이의 현격함을 보이고 있어서, 그 강조점의 지나침에 따라서 성서가 말하는 본래의 하나님의 나라의 성격과 현재성과 미래성의 긴장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오해케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내재적이고 윤리적인 것으로 해석했으며, 하르낙(A. Harnack)은 하나님의 나라를 \"개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통치\"로 이해했다. 리츨(Albrecht Ritschl)은 자기 자신의 고유적 개념으로서 예수의 설교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께서 창건하시어 복음의 사랑의 법을 실행하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로 구성되는 윤리·종교적 공동체로 이해하였다. 교회가 진척시켜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공동체였다. 요하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는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종말론을 거부하고, 신약성서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자 했다. 그는 리츨이 제시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을 공격하였다. 바이스에 의하면 리츨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의 근원은 칸트의 도덕 왕국에 대한 견해와 계몽주의 신학에서 유래된 것임을 주장한다. 종교사학파의 대표자인 바이스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의 설교는 오직 예수 당대의 사상계, 특히 후기 유대 묵시 문학들의 배경의 관점에서만 이해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윤리적 이상이라든지, 발전도상에 있는 내재적 공동체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제개념들은 궁극적으로 기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종국을 전제하는 것으로, 전적으로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대사건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나라 자체는 결코 이 세상에 이미 계시된 실체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임하였다고 선포하셨을 때 그 나라는 오직 묵시문학에서 대망하여 온 새로운 세상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 자체는 현시대의 파국적인 격동 후에 계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종말론적 이해에 있어서 전형적인 대표자는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이다. 그는 바이스의 해석을 확장하여 종말론적 개념이 예수의 가르침 뿐 아니라 전 생애와 사역을 통하여 종말론적 기대감으로 충만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의 복음 전파가 완료되기 전에 세상에 종말이 올 것으로 믿었으나, 실제로 성취되지 않음으로 재림의 지체 혹은 연기로 보고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하고 말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신뢰하던 종말론의 바퀴에 눌려서 의미없는 생애를 마쳤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예수를 메시야로 출현하여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선포하고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다가 자신의 위업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치고 죽은, 실제적인 역사적 과제들에 의해 충격을 받고 그 자체 안에서 스스로 균열된 인물로 이해하고 있다. 바이스와 슈바이처는 하나님 나라는 윤리적인 행위와 동일시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배경에서 슈바이처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은 없고 미래성만 있다는 \'철저한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과는 전혀 별개의 윤리가 통용되는 초월적인 어떤 세계이며 시간적으로 볼 때, 현재보다는 항상 미래의 시점에 있는 것이다. 바이스와 슈바이처는 하나님 나라의 한 측면 만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의 긴장을 파악하지 못했다. 다드(Dodd)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사역 가운데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주장한 대표적 학자이다. 다드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서 통치하는 것\"이며, 예수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이며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자기의 사역 속에서 실현되었다고 가르쳤다고 주장하며, 예수에게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나타내는 용어는 상징적인 표현일 뿐이라고 하여 미래적 요소를 부인하였다. 다드는 그 나라가 무시간적인 것으로서, 올 세상의 것들인 하나님 나라, 심판,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명의 궁극적인 일들이 이미 예수의 시대에 현존하였고, 그 영향이 지금 이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실현되고 파급된다는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을 주장하였다. 다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예수 당대에 현존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의 때에 대하여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나라는 그 이후 계속 현재 상태에 있으므로 지금 우리에게도 현존한다는 것이다. 다드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우선적으로 현재의 종교적 경험의 문제로 간주했다고 이해한 것이다. 다드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만을 주장한 슈바이처의 일방적인 견해를 극복하는 업적은 인정되나 그 또한 일방적으로 치우친 것이다. 불트만(Bultmann)은 실존적인 종말론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미래에 경험될 문자적인 사건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하나님 나라가 미래에 도달하리라는 기대는 있으나 그것은 헛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불트만도 현재성만을 강조한 것이다. 학자들의 하나님 나라에 관한 제 견해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긴장된 양면성을 통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서가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오해하게 된다. 그래서 래드(Ladd)는 현대 성경 신학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이며, 그 일련의 말들 - 현재적 성취와 미래적 완성 -을 어떻게 고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열쇠를 찾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의 교훈에 있어서 또 하나의 특징을 찾는다면 비유의 사용이며,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관계되고 있어서 그 중요성을 더해준다. 비유의 해석에 있어서 1888년 율리허(A. Julicher)의 『예수의 비유』란 책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우의적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율리허는 비유와 알레고리의 차이점을 반박할 수 없도록 증명하였다. 그것이 C.H. 다드의 『천국비유』란 책이 출판된 이후 비유는 삶의 정황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원리를 제시해주었다. 그후 비유 연구의 최대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예레미아스의 『예수의 비유』란 책이 나와서 비유 해석학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역사 비판 방법으로 인해 성경의 권위와 그 무오성을 해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다드의 문제점은 양식사 비판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과 천국 개념을 오로지 현재적 측면에서만 봄으로써 미래적 측면을 제거 내지는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알레고리적 비유 해석은 비판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루터의 말대로 \"원숭이의 잔재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마태복음 13장의 예수의 천국 비유 중 가라지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를 연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상과 같은 학설을 종합하므로써 예수께서 선포하신 가라지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균형있는 신학을 정립할 것이다. Ⅱ. 예수의 복음 선포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비유 A.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 성격 예수께서는 그의 사역을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하셨는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식으로 마가복음 1: 14, 15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시어 수행하신 활동에 대해 소개해준다. 마태와 누가는 동일한 메시지를 상이한 용어들로써 표현한다(마 4: 17, 23; 9: 35; 눅 9: 11). 우리는 누가복음 4:43의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 가운데서 그의 사역의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전파한 말씀(눅 8: 11)은 또한 \"그 나라의 말씀\"(마 13: 19)이라고 불릴 수 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전 케리그마(Kerygma)로 요약되는 복음은(눅4: 43; 8: 1; 16: 16)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취지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전체 설교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이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사도들의 설교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그 뜻과 의미를 파악해 보고자 한다. 달만(G. Dalman)은 \'하늘 나라\'가 히브리어 (Malkuth Shamayim)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계명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하늘 나라\'라는 말로 불렀는데 이는 실제로 하나님의 통치를 뜻하는 동의어로 보고 있다. 스트라우슨(W. Strawson)은 그의 저서 『Jesus and the Future』(1959, 67)에서 \'하늘나라\'가 원형이라고 주장한다. 마태에서는 \'하나님 나라\'와 \'하늘나라\'가 동의어이지만, 각각 하나님의 통치의 다른 면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하늘 나라\'는 하나님 통치의 초자연적 특성을 강조하고, \'하나님 나라\'는 지금 활동하는 하나님의 통치가 장래에 완성될 것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예수가 위의 두 어구를 모두 사용했을 것이며 \'하나님 나라\'와 \'하늘 나라\'를 동의어로 간주했을 것으로 보는 달만의 견해와 입장을 같이하며 본 논문을 전개한다. 또한 신약의 헬라어 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것은 하늘에 있는 나라, 또는 하늘로부터 오는 나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분의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라는 용어는 왕권, 혹은 왕의 지배권과 왕국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가 왕권(kingship) 곧 왕의 지배권 혹은 하나님의 주권(the supremacy)을 의미하고, 구체적인 개념으로는 왕국을 의미하며, 공간적이며 실제적인 국가(a static entity)를 나타낸다.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추상적인 의미로 또는 구체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추상적 의미가 더욱 흔하게 사용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삼중의 본질(the threefold essence)을 소유한다. 첫째는 구원-능력의 범위, 둘째는 의(righteousness)의 범위, 셋째는 축복의 상태의 범위이다. 이와 같은 의미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정의하고자 한다. 1.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배경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 사상이 구약과 유대교 문헌에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또한 초대교회와 신약성경으로 연결되는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고자 한다. 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구약성경은 그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통치하신다는 사상으로 뒤덮여 있다. 또한 십여가지 다른 형식으로 표현된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의 소망으로 일관되고 있다. 또한 구약은 그 분량에 있어서나 관심의 강도에 있어서 거의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존재에 치중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논의를 구약의 큰 역사적 흐름과 연결지을 때, 자연히 이스라엘이라는 존재와 끊임없이 맞닥드리게 된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여호와의 나라\'(역대상 28: 5)라는 표현을 제외하고는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개념을 구약의 여러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왕 되심, 혹은 하나님의 왕적 권위를 나타내는 용어들이 있다. 특히 구약의 왕권 사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며, 전세계의 왕이심을 나타내고 있다. 인간과 하나님의 에덴 동산에서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그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처음부터 확립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창조하심으로써 자신이 창조주로서 만물을 다스릴 권리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따라서 피조물이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틀 안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절대주권을 소유하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다스리고 계신 것이다. 그러나 에덴 동산에 대한 서술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진 않는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아담과 하와), 하나님의 처소(에덴 동산) 안에서, 하나님의 다스림 하에서(하나님의 말씀) 라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창세기 기자는 에덴 동산을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지켜지고 다스려지는 거룩한 지역으로 이해하고 있다. 구속사(history of redemption)인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하나님 나라가 반영되어 나타난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근원을 언급할 때 예외없이 아브라함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적-혈통적 근원으로서의 아브라함에 대해 구체적 내용을 제공하는 기록은 창 11: 10이하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 핵심 내용은 창 12: 1-3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시되 본토와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실 땅으로 가라 하시며 그 땅에서 아브라함은 큰 민족이 되고 세계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한 축복의 나라를 세우시며, 세계 모든 민족이 그 축복에 동참하게 될 것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를 세우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므로 명칭을 붙인다면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창 12: 1-3과 창 11: 1-9의 관계를 살피면 그 구조와 내용이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두 본문이 다같이 나라 건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자의 나라는 그 주체가 하나님이신 반면 후자의 나라는 인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두 본문에는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후자는 인간 스스로를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높이려는 오만함과,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시도했음을 보인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적 나라였다. 그결과 단일 언어를 사용하던 인류 공동체가 언어 혼잡이 초래한 내적 통일성 붕괴를 통하여 여러 민족으로 분열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맞게 된다. 이와같은 과정에서 하나님의 아브라함 선택은 불가피했다. 아브라함의 후사의 선택에서, 하나님은 롯 계열을 상속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며, 충직한 종이었던 엘리에셀도 제외시키고 오직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미 자녀 생산이 불가능한 사라에게 말씀과 능력을 주시므로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이삭이 상속자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 원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정하심과 하나님의 이적적 능력에 의한 출생임을 밝힌다. 또한 이삭의 아들인 에서와 야곱 중에서 동생이 형을 대신하여 부자연스러운 선택이 되는데, 이것은 우주적인 통치의 개념에 응하여 발생된 것이며, 이 통치는 백성들의 주인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통치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출애굽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노예로 살아가는 그들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활동들 가운데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계시하고 있다. 사사시대에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8:23)는 말로 그의 왕위를 거절한 일이 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의 다스림이 있는 나라로 인정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사실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지상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일 뿐이다. 솔로몬 이후 분열왕국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여덟 번 왕조가 바뀌었으나 남왕국 유다는 단일 왕조를 유지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역사에 친히 개입하셔서 율법을 따르는 자들을 축복하시고, 반대로 율법을 떠난 타락한 자들은 징벌로 다스리심을 보여준다. 이와같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서 현재적으로 통치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포로가 되었을 때에는, 이스라엘의 소망은 역사적(historical)인 이 세상적인 다윗 왕국의 영광이 회복되고 이스라엘이 자기의 적들에 완전한 승리를 성취하는 역사적 힘들에 의해 영향받을 하나님 나라를 기대했다. 이런 사상은 후기 묵시문학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지상적 왕국 사상을 비판하며, 그렇게 된 원인을 규명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의 하나님 나라를 제시한다. 그래서 인간의 계획에 의해 수립되는 국가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회개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희망이 있다고 선언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 나라 개념을 명백하게 제시해 준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 이스라엘 국가와 동일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장차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킨 것은 다니엘이었다. 다니엘 2장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왕국, 세상의 모든 왕국을 무너뜨릴 견고한 하나님의 나라를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역사 속으로 하나님이 격변적으로 들어오심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적 질서는 구체적이며 지상적이며,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 밖의 어떤 것이 될 것이다. 이 기대되는 세상 - 질서(world - order)는 종류상 현재의 것과 다르다. 이와같이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현재적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며, 또한 예언을 통하여는 미래적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사상\'은 신약에서처럼 일정하지 못하다. 그러나 도래하는 그 나라는 자기 백성을 회복하고 반대 세력을 물리치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의 대망을 성취하는 나라, 그리고 우주적 지배를 성취하는 나라인 것이다. ⑵ 후기 유대교 문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야웨의 왕직에 대한 언어적, 개인적인 발언들과는 대조적으로 후기 유대문학에서는 거의 일정하게 malkuth-shamayim(하늘들의 나라)라는 추상적 표현이 발견된다. 그것은 앞서 살폈듯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치 않으려는 경향을 갖고 있으므로 shamayim이란 단어가 하나님이란 단어의 완곡어로 간주될 수 있다. 이 malkuth-shamayim이란 표현은 후기 유대문학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모든 인간들 위에 임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의미하여, 인간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피조물이란 사실을 암시하며, 온 인류가 거부하였던 것이 아브라함의 자손 안에서 다시 인정받게 되고 이스라엘 속에서 고수된 통치이다. 둘째, 좀 더 광범위하여 이스라엘을 이교의 세력에서 해방시키고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하나님께로 복종시키게 할,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다가올 통치를 지시한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함으로써 모든 인류들에게 충만히 실현될 하나님의 왕직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하고 다윗의 집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자의 개념은 위경 문학가운데 하나인 『솔로몬의 시편』(The Psalms of Solomon)에서 특징적으로 다루어지는데 여기서는 미래의 대망들이 지상적이고 국가적인 성격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구원의 위대한 시기의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특성이 더 강조되는 후자와 같은 개념은 『열두족장들의 증거』(The 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와 같은 작품에서 국가의 미래에 관한 대망은 초자연적인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올 메시야 왕국은 전 우주의 구원, 죽은 자들의 부활, 전 세상에 대한 우주적인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낙원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포함한다. 『바룩의 묵시록』(Apocalypse of Baruch)에서는 두 개념이 혼합되어서 마지막 세대의 지상 메시야 통치 후에는 초월적이고 천상적인 종말론에로의 전이로 나타난다. 그러나 『제 4 에스드라서』에서는 현세가 갱신되고 다시 태어날 지상이 세상의 심판 후에 이 세상의 새로운 시대의 자리에 다시 차지하게 될 것으로 묘사되었다. 여기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은 구약에서처럼 종말적 성격을 가지는데,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역사의 궁극적 결과로서 마지막 구원단계로 보고 있다. 그당시 유대인들이 가졌던 \'종말적 미래 희망\'에 대하여 우리는 그 양상을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 뜻에 대한 순종의 표로서 그들 스스로가 천국의 멍에를 지는 것이다(토라에 대한 순종과 쉐마를 매일 읽고 암송함). 둘째, 메시야적 왕국이 이스라엘에게서 성취된다는 기대이다. 셋째, 순간적으로 나타날 우주적 천국에 대한 묵시적 기대이다. 이 사상의 원형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세상 제국, 하나님의 나라, 인자 사상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그들의 기대하는 왕국은 모든 지상적 존재가 없어지면서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을 통해서 이룩되는 미래적 왕국이다. 유대교 문헌은 구약에서와 같이 세상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왕권 이외에 이스라엘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현재적 통치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말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 나라가 세상적이고 일시적이라고 보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적이고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초월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변함없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종말론적인 특성이었다. 그 나라가 세상적이고 역사적이라고 이해한 자들은 메시야가 지휘하는 군사적 행위를 통한 정치적 회복에의 기대를 하였으며, 이 기대가 무산되고 메시야 왕국이 도래하지 않았을 때, 동조자를 규합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로마의 통치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는 정치적 메시야 사상 또는 거짓 메시야상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나라를 초월적인 나라로 보는 자들은 그 나라를 \'이 세상\'과 대립해 있는 \'초월적인 피안의 세상\'으로 이해했으며, 이 사상은 후에 에세네파와 바리새파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두 견해에 대하여 사해사본을 연구한 Kuhn박사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이 두 이질적인 견해는 내적인 관련에 있어서 서로 연결되지 않고있음을 지적하여 메시야 왕국이 malkuth shamaim이라든지, 메시야는 그 활동에 의하여 malkuth shamaim을 가져온다는 개념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이러한 견해들은 메시야상이 잘못되었음으로 두 견해 안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천국의 개념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유대교 문헌에는 구약성서의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는 다른 변질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⑶ 1세기 유대인들이 이해한 하나님의 나라 1세기는 로마가 최대로 확장되는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로마는 기원전 63년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틴으로 진입하여 팔레스틴은 로마 총독의 지배 하에 있던 시리아의 속주로 편입되었고, 로마의 통치권 하에 있게 되었다. 특히 분봉왕 헤롯은 자신의 통치기간 동안(40-4 B.C.) 팔레스틴 백성들로부터 엄청난 부를 착취했다. 그러므로 1세기 팔레스틴의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였고, 로마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는 강한 욕구가 배태되어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순수한 형태의 메시야보다는 오히려 군대의 무력을 갖춘 메시야에 대한 기대가 우세했다. 백성들을 압제자의 멍에로부터 해방시킬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온다는 메시야에 대한 약속은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것에 대한 약속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예수님 당대 유대인들의 하나님 나라 개념은 근본적으로 구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구약의 세가지 주된 개념, 하나님이 현재 왕이시지만 장차 왕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상, 다윗의 가문을 통하여 메시야가 와서 영원한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사상, 다니엘서에 나타난 인자와 종말론적인 나라 개념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강조점에 있어서 구약과는 차이가 있거나 발전적인 면들이 나타난다. 첫째,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 즉 현세계에 세워지는 나라라기보다 오는 세상, 즉 미래에 세워질 나라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는 현재 역사와는 전혀 다른 초월적인 역사가 아니라, 현재 역사의 연장에 있는 미래세계이다. 둘째, 메시야에 의하여 세워질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 민족 중심적이며 동시에 역사 세계에 군림하는 나라라는 점이 강조된다. 즉 이 나라는 현재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는 모든 이방나라들을 타파하여 세워지는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나라인 것이다. 셋째,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이 하나님 나라가 미래에 갑작스럽게 묵시적으로 임하게 될 나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독립을 위해 성전(聖戰) 운동을 일으켰던 열심당(the Zealots)은 로마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무력으로 쟁취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게릴라식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하여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현재적인 하나님의 통치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기도 했으며, 또한 지상에 세워질 하나님의 왕적 통치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였으나, 그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메시야에 의하여 세워지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였다. 즉 당시 유대인들의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⑷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 신약성경의 전체 케리그마(Kerygma)로 요약되는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취지를 천명하고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전체 설교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공관복음서의 공통된 주제는 구약에서 약속된 때가 차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독특한 양상을 지닌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뜻하며, 이차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축복의 영역을 뜻한다.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자기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시대를 끝내시고 오는 시대를 시작하게 하실 것이라고 전하셨다. 공관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현재적으로 임한 것을 역사 안에서의 실제적 사건으로 선포하고 있으며, 이 선포는 유대교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독특한 것이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과 인격을 통하여 현재적으로 성취된 하나님 나라와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긴장된 양면성을 나타내고 있다. Ⅳ장을 통하여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에는 초반에 \'하나님 나라\'란 말이 2번 나오고, 후반에 빌라도의 신문 과정에서 예수 자신의 말씀을 통해 \'내 나라\'( )라는 말이 3번 나온다(요 18: 36). 전자의 경우 천국은 성령과 관계 된다. 즉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 신자에게 역사하고 있으나 그러나 \'그 나라\'로써 하늘에 있는 처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요 3: 13) 미래에 완성되는 \'그 나라\'로써 묘사하고 있다(요 18: 36; 14: 14; 21: 22). 그러므로 요한복음서는 공관복음보다 구원의 현재성을 더 강조하지만, 공관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종말론적인 현재성과 미래성의 양면적 구조를 갖고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하나님 나라는 양면적 구조의 긴장을 보여준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가 현재 임했으며, 종말론적 축복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며,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롬 6: 4).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영적으로 다시 살리시고 하늘 나라에 앉히신 것이다(엡 2: 1-10). 또한 바울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을 바라보면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키게 될 날을 기대하였다(고후 5: 4). 그날이 오면 우리는 신령한 몸(고전 15: 44)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때가 와야만 신자들은 충만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주어질 종말론적 축복의 나라이기도 했다(고전 15: 50; 딤후 4: 1, 18). 그러나 신자의 삶은 단순히 그 날을 바라보는 소망적인 삶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자의 현재의 삶은 미래의 충만한 삶의 최초 단계이며,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질적으로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와 차이가 없는 것이다. 현재 성령 안에서의 삶은 내세의 삶이며, 충만한 추수의 삶은 아니지만 종말론적인 추수의 최초의 삶이다. 현재의 삶은 부패와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 안에서의 삶인 것이다. 즉 바울은 신자가 현재적으로 누리는 하나님 나라와 미래에 성취되는 하나님 나라의 실존과 이에 대한 소망이 현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말하며, 하나님 나라의 양면적인 긴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의 긴장 관계를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생각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첫째, \'그 나라\'는 빛의 나라요 용서와 사랑의 나라이다. 그리고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 나라에 이미 들어갔다(골 1: 13). 둘째, 물질적이 아닌 영적인 것을 강조하는 나라이며 그곳에 나타나는 것은 의, 평강과 희락이다(롬 14: 17). 그것은 능력의 나라이다(고전 4: 20). 셋째, 신자들에게는 미래에 온전히 완성될 그 나라가 약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나라에 들어갈 자들은 그들이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골 4: 11; 살전 2: 12; 살후 1: 15; 딤후 4: 18; 고후 12: 2-4). 즉 미래에 완성될 그 나라는 현재 이 세상에서부터 윤리적인 삶과 신앙적 결단이 요구된다. 넷째, 신자가 이미 속한 하나님 나라와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계속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2. 하나님 나라가 소유한 삼중의 본질 ⑴ 구원-능력의 범위 하나님 나라는 구원-능력의 범위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주권이다. 구원-능력의 요소는 하나님 왕권의 근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출애굽기 15장 1절에서는 모세가 여호와께서 원수들을 정복하신 것을 인하여 여호와를 왕이라고 찬양했다. 그때부터 구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 혹은 왕국에 관하여 말씀한 것에서 원수를 정복한다는 개념이 계속되었다(예, 단 2: 45).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 25절에 그리스도의 왕권이 원수 하나하나를 계속하여 정복시키는 과정과 같다고 묘사한다. 이 구절에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원수 곧 죽음을 정복하시고 난 후에는 정복할 것이 남아있지 않으므로 자기의 왕권을 하나님 아버지께 바친다고 했다. 정복하는 순서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보다 먼저 임하고,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정복당하고 나서 완성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정치적인 왕국의 개념을 영적인 왕국 개념으로 무한히 높였다. 예수께서 나타내신 원수의 정복은 사탄과 귀신과 죄와 악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들은 하나님의 왕권이 구원-능력의 범위에서 드러난 것을 증명한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메시야적인 구원 행위로서의 종말론적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복음서에서 지적해 주는 바 마귀의 활동과 질병, 사악한 행위들, 그리고 사람을 위협하는 재난들 사이에 연계성이 있음으로 인하여 추론된 것이다. 이런 이적들은 단지 일시적일 뿐이요 암시적인 의의를 지닐 뿐이다. 즉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들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활동으로서의 수단이요 복음 선포의 보조적인 것으로서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이때의 이적들은 예수의 지상 사역을 인증한다. 이적은 하나님 왕국의 기호들이요 하나님의 구원-능력의 공개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적을 통하여 인간에게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기회가 되게 하여서,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주권의 규칙이 인간의 전반적인 내적 생활 속에 새롭게 세워졌다. 또한 이적들이 외부적 범위에서 하나님 나라에 연결된 것은 이적의 능력이 하나님의 왕권-능력을 예언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들이 종말에 나타날 하나님의 왕권-능력을 예언하고 기대하게 한다. 그러므로 이적이 보여주듯이 말세의 끝에는 병고침을 받은 것처럼 우주가 재생하여 \"새하늘과 새땅\"이 되고 모든 죄악이 정복되고 육체적인 것과 동시에 영적 세계가 재생하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⑵ 의의 범위 하나님의 주권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 )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특별한 의미를 표시한다. 의는 율법을 주신 자이며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취한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행위와 도덕적 상태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품의 높으신 수준으로 볼 때 올바르다고 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의는 하나님의 도덕적 영광을 다시 산출하게 된다(마 5: 48). 예수는 두가지 큰 계명인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것과 자기의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리고 이 커다란 두 계명을 실천하기 위한 실제적인 시험(the practical test)으로 예수님은 자신에게 누가 해주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남에게 행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 말씀이 율법과 선지자들을 종합한 것이다(마 7: 12). 의로움의 실제 내용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심이고, 하나님의 의의 덧씌우심(imputation, )이다.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의롭다함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로 칭의가 하나님 나라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들 가운데 하나이다.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왕권이 메시야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갈 것을 예언했다. 예레미야 31: 33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자기의 율법을 기록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에스겔 36: 27에도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기의 율법 안에서 걸어다니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사야 55: 1에서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의를 나누어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표현된 심령의 상태는 산출적(productive)인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는(receptive) 마음의 상태이다. 자기 자신 안에 선한 것을 갖고 싶으나 갖지 못했으므로 하나님이 그것을 공급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이와 같이 마음에 원하던 선한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질 때 이것은 자기들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다. 의는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요구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 의는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예수의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5: 39ff, 마 19: 29ff, 마 7: 6 등등의 계명의 요점들은 자기의 목숨, 아내 및 결혼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가치있는 것들은 만약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필요하다면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계명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이런 것들의 가치가 아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나라야말로 지고의 선이며 모든 인간적인 가치, 관심사, 이상들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는 의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주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의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들을 철저히 희생시키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의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와 의는 인간의 가치 구조와 관심사보다는 훨씬 고상한 것이며 우리들의 모든 것이 그의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의의 또 다른 내용은 의 자체가 상급인 것이다. 마태복음 5: 20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것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훨씬 뛰어난 의라고 했다. 그리고 제자들의 생활을 포도원과 추수할 밭과 일하는 일꾼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주었다. 예수가 산상설교에서 지적한 상급은 도덕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즐거움이다. 이런 최고의 즐거움은 이미 내적인 하나님의 왕국에 부속된 축복이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받은 달란트보다 배나 이익을 남기고 상급을 받게 한 원래의 달란트가 종들의 것이 아니고 주인이 종들에게 위탁한 것이다. 이 비유가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상급이 종들이 행한 것보다 더 많다(마 24: 47, 25: 21,23). 궁극적.으로 상급은 거저 주신 선물인 것이며, 따라서 잠간동안만 포도원에서 일한 자도 똑같은 품값을 받은 것이다. 십자가에 매달린 도적 중 하나가 예수님께 돌아갔을 때 그도 온전히 구원을 받은 것이다. ⑶ 축복 상태의 범위 하나님의 주권 곧 하나님의 왕국이 축복의 상태와 같이 묘사된 것이 어린 무리에게 하나님이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눅 12: 32; 마 20: 23). 유사(analogy)로 말하면 고대 동양의 왕은 아낌없이 여러 가지 선물을 주는 습관이 있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어떤 왕이 자기의 아들을 위하여 결혼 잔치를 백성에게 베푼 모습을 인용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셨다(마 22: 2). 감추인 보물과 값비싼 진주의 비유(마 13: 44-46)에서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자가 아주 귀중하고 좋은 것을 사기 위해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파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25: 34의 왕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모습을 가장 구체화한 것이라고 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축복으로 되어있고, 그 축복은 부정적인 것과 동시에 긍정적인 것이다. 부정적으로는 하나님의 왕국이 모든 악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것은 죄를 사하여 주는 축복이다. 이 진리를 예수는 용서하지 않는 종의 비유(마 18: 23-35)에서 가르치고 있다. 긍정적으로는 위의 부정적인 면에서 본 축복 즉 속죄 안에 나타난 정의의 선물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축복이 영적 즐거움과 만족이다. 죄의 짐에서 심령이 해방되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함을 받은 확증이 받는 자들에게 무한히 깊은 평화와 안식의 상태에 들어가게 한다(마 11: 28-29; 막 5: 34; 눅 7: 50). 이와 같은 축복의 궁극적인 모습이 아들의 신분과 생명이라는 두 개념으로 묘사된다. 아들의 신분(sonship, )에 관하여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마 6: 32)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들 신분\"의 유일한 가치를 단언한 가장 강력한 단언이다. 이 사실을 마태복음 11: 27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① 가장 완전한 상호간의 지식(the most perfect mutual knowledge), ② 가장 직접적인 생명의 교제(the most direct communion), ③ 가장 절대적인 목적(의도)의 통일성(the most absolute unity of purpose)이다. 이 세가지가 하나님의 왕국을 구성하는 \"아들 신분\"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런데 이 하나님과 자녀와의 관계는 경건한 자의 특권이 아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똑같이 아버지가 되신다(마5: 45). 이 의미는 하나님은 가까이 계신 분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미쁘신 분이라는 뜻으로서 이 뜻은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실 때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마 6: 9)라고 말하면서 가능한 한 가장 자연스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심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자연히 아버지 되심이라는 영역을 그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 놓는다.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구약성경에 기초를 두었다. 이미 모세의 노래에서 그 문제가 제기되어 있다.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신 32: 6). 한 시편 기자는 다윗에 관하여 이야기한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저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시 89: 26). 다른 시편에서 다윗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 103: 13). 호세아도 11장 1절에서, 이사야는 63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노래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관계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하여 아들이 된다는 관계에서 가장 깊은 의미를 발견한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배경에서 예수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이야기하였다. 구약성경에서 생명 개념은 성장과 번영과 하나님의 호의를 가지게 됨으로 일어난 행복이 특징이다. 이것에 예수님이 동의하여 구약성경의 생명 개념을 미래에 반영시키고 있다. 생명이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축복과 즐거움의 총체(total)와 같은 것이며 \"기업\"이다(마8:22; 눅15:24-32, 20:28). 그리고 생명은 주관적 의미로 믿는 자들에게 영적 성장과 활동이고, \"사는 것\"(lived)과 기업으로 받는 것(inherited)이다. 요한복음17:3에서 예수님이 생명을 정의하시고 참되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지식은 지금 벌써 나누어 주었고, 나누어 주신 생명은 종말론적 끝날에 완성되고 완전한 소유가 될 것이다. 이 지식은 실제적인 지식과 성품의 일치(congeniality of nature), 혹은 적응에서 일어나는 애정 깊은 판단과 최고의 영적 사랑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이 지식은 교훈의 과정(a process of instruction)이 아니고 위에서 온 재생이고, 이 재생으로 말미암아 근본적 성격이 변화되어 낮은 지상의 감각 세계에서 변하여 영적 세계의 존재로 하나님을 위하여 살게 되는 새 생활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 6에서 예수님이 스스로 지상에서 하늘 생명의 대표이고 실체화(embodiment)가 되므로 예수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라고 했다. 탕자의 비유(눅15: 11-)에서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된 것이라고 묘사했다(15: 32). 이처럼 아들 신분에서 다시 양자 되어지는 것(readoption)과 생명이 다시 회복된 것이 일치한다. 예수의 가르침 중 많은 말들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이 상급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동시대의 유대 사상은 공적과 상급의 교리의 많은 것을 만들었고 얼핏 보면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에서도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핍박에 대하여(마 5: 12), 자기 원수를 사랑함에(마 5: 46), 올바른 정신으로 행해지는 구제에(마 6: 4), 금식에(마 6: 18) 상급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고용자나 주인과 그의 노동자나 종의 관계이다. 상급은 어떤 때는 행한 일에 대해 엄격히 동등하게 보상하는 것으로써, 혹은 손실과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보여진다. 상급은 어떤 때는 의무를 수행한 성공도에 따라 약속된다. 그리고 어떤 때는 징계도 유사하게 등급이 매겨진다. 이러한 말들에서 예수의 가르침이 상급은 양적으로 보상된다는 평범한 유대인의 공적(功績) 개념과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급에 대한 가르침을 전혀 다른 조명에서 비추는 다른 말들이 있다. 그는 결코 공적(merit)의 윤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충성은 결코 상급을 바라보고 행해져서는 안된다. 상급 그 자체는 전적으로 은혜에 속한 것이다. 상급에 대해 말한 비유들은 정확히 모든 상급은 결국 은혜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한다. 상급은 그들의 노동의 결과에 상관없이 충실했던 모든 자에게 부여되고 있다. 상급은 하늘 나라 자체이다(마 5: 3, 10). 이것은 위하여 준비된 자들에게 주어진다(마 20: 23; 25: 34). 봉사를 위한 기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다(마 25: 14f). 그러므로 상급은 공적에 관계없는 무상의 은혜가 되며 행해진 봉사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그려진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해야 하는 반면에 그럼에도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눅 12: 31, 32). 사람을 무죄방면하는 것은 변호하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동이다. 그러므로 종말론적 형태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한 대가로 받는 상급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미래의 선물 뿐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모든 다른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 은혜 위에서 자신은 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현재의 선물이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의는 둘 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속한 것이다. 이처럼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에게(이것도 은혜의 선물이지만) 하늘 나라에서 주어질 하나님의 보상을 약속한다. 이 보상 사상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입장과 관계된다. 하나님은 주인이시며 인간은 그의 종이다. 이 관계는 보상의 사상을 제외시키거나 제한시켜 준다. 왜냐하면 종은 몸이나 목숨이 다 주인의 것이어서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신분이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나 천국에서의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순종의 표현일 뿐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능력의 범위와 의의 범위와 축복의 상태의 범위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
경건주의
경 건 주 의 2002-11-12 15:16:57 read : 11 Ⅰ. 서 론 A. 문제 제기 및 연구 목적 경건주의는 유대-기독교의 역사 중에서 가장 관심을 갖지 못했던 운동 중의 하나였다. 미국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경건주의가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경건주의에 관한 연구가 부족하여 미국의 교회사료 편집에 가장 큰 공백을 남기고 있다. 1 0세기 신학 용어로서의 경건주의는 도덕주의, 율법주의, 분리주의, 개인주의 등 부정적 평가 일변도로 취급받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묘사들은 경건주의에 대한 초기 정통주의적 반대자들의 논쟁적 발언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이 운동은 개신교 내에서 가장 역동적인 운동으로서 생활 방식, 성서적 주제, 초교파 운동, 선교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갱신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건주의 운동은 루터파 안에서 최초로 분명한 형태를 취하여 나타났다. 1546년 루터가 사망한 후 루터파 내에서는 많은 신학적 논쟁이 벌어졌다. 루터파들과 칼빈주의자들은 각기 자기의 신학을 옹호하기 위하여 정교한 신학적 방법론, 스콜라 주의, 혹은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odoxy)라고 알려진 학구적 신학의 특징을 묘사하는 어휘를 개발해 냈다. 경건주의는 오늘날 복음주의 신학의 배경이 되고 있는 이와같은 개신교 정통주의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그 객관주의에 대한 종교적 주관성이 강한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건주의자들은 정통주의로 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나, 정통주의는 메마르고 논쟁적이며 편협하고 실질적인 경건 생활에 대한 관심이 결여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들은 개인적인 중생과 성화 및 종교 체험에 대한 강조로 교회에 갱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국 경건주의는 종교 개혁자들의 생동감과 개방성과는 거리가 먼 부패된 정통주의에 항거하여, 삶의 성화와 사회의 윤리적 실천을 도모하면서 교회에 갱신을 일으킨 것이다. 독일내의 경건주의자들의 개신운동은 교회안에 새롭게 퍼져나가 교회안에서 무기력한 신앙에 중생의 체험을 강조함으로 생동감을 주었고, 교회안의 작은 교회 (Ecclesiolue in Ecclesiu) 를 통해서 성경공부와 삶을 서로 나누면서 교회에 새롭게 갱신을 일으켰다. 따라서 본 논문은 독일 경건주의자들의 경건 활동을 통해서 교회에 어떻게 갱신을 일으켰는지를 살펴보고, 경건주의자들의 갱신이 선교와 모라비안과 웨슬레와 미국의 대각성 운동에 끼친 영향을 통해서 경건주의자들이 갱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겠다. B. 연구 방법 및 범위 경건주의 운동은 독일에서 보다 화란에서 먼저 그 태동을 보이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경건주의 운동을 전반적으로 다루기에는 본 논문으로 너무 벅찬 작업이고 또 본 논문의 목적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독일내에 이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 세 사람 (Arndt, Spener, Franke) 이 신앙의 내적 체험을 강조하고 성경중심의 그룹모임을 통해서 교회내의 성도들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교회가 갱신된 형태를 살펴 보겠다. 사회운동의 시각에서 살펴봄을 지양하고 성도들의 신앙의 내적 갱신을 중심으로 연구해 보고자 한다. 독일경건주의에 관한 자료가 빈약함을 인지하면서 본연구는 Snyder 가 쓴 "Signs of the spirit" 와 Brown 이 쓴 "경건주의 이해" 및 Erb 이 쓴 "경건주의자들과 그 사상" 을 참고하여 문헌연구방법에 의한 이론적 접근방법을 시도하겠다. 저술 방법은 Ⅱ장에서 경건주의 이해를 얻기 위하여 경건의 정의에서부터 시작하여 경건주의가 17,18C에 어떤 배경 속에서 일어났는지를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제Ⅲ장에서는 독일의 경건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인 Arndt, Spener, Franke의 생애와 경건 활동을 살펴보겠다. 특히 Arndt의 경건 활동 내용에서는 영적인 삶 안에서 새 삶을 향하기 위한 수단을 살펴보겠고, Spener에게서는 그의 저서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를 중심으로 그의 경건을 살펴보겠고, Franke에게서는 그가 가장 크게 활동하였던 Halle 대학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제Ⅳ장에서는 경건주의자의 경건 활동이 교회 갱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 보겠는데 갱신의 정의와 갱신의 본질과 갱신의 모델을 살펴보고, 독일 경건주의자들의 갱신이 근대에 있어 선교에, 모라비안 교도에게 요한 웨슬레에게 19C미국 대각성 운동에 미친 영향을 통해서 그 내부의 갱신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경건주의의 이해 A. 경건주의의 정의 1. 경건주의의 유래 서기1670년 독일 개신교 안에서 형성된 경건주의 운동은 경건성과 교회의 철저한 갱신을 위한 하나의 운동이었다. 1690 - 1740년 사이 반백년 동안 절정에 이른 경건주의는 교회생활의 모든 분야, 예배의식에 대한 신학에서부터 각 개인의 경건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깊은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경건의 유래를 살펴보겠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말은 "유세베이아"(eusebeia)인데, 이것은 "공경"을 의미하며 때로는 "경건함"으로 번역된다. "유세베이아"(eusebeia)를 라틴어로 "피에타스"(Pietas)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애정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파이어티"(Piety)이며 "불쌍히 여김"(pity)과 "동정"(compassion)을 의미한다. 독일어로는 "프롬"(fromm)인데 "경건하고 독실한"이나 "온화하고 순진하고, 소박한"을 의미한다. 이런 호의적인 해석들 말고도 이 단어는 오랫동안 부정적인 의미를 지녀 왔다. 예를 들면, 디모데후서 3:5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경건한 사람은 예배와 행동에서의 독실함에 의하여 특징지워질 수 있으나, 경건이란 그 행동이 의식적인 덕행이나, 보이기 위한 종교 행위 또는 위선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사람에게 언급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경건주의는 경건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의해 후손에게 전해진 비난조의 별명이었다. 그 이름의 개념은, 교회의 개혁을 바라는 스페너의 간절한 소망들을 수록한 요한 아른트(Johann Arndt)의 "교회 예전"(Church Postil)에다 스페너가 쓴 서문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에서 유래된 것 같다. 1675년에 있었던 이 서문의 출판은 독일 경건주의의 탄생을 촉진시킨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이 말의 개념은, 1669년에 스페너가 거짓된 의를 다룬 한 편의 설교를 한 데 이어 최초로 제안한 "경건 집회"라 불리는 집회들로부터 유래되었던 것 같다. 2. 경건주의의 기원 역사적 운동으로서의 경건주의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 50년 동안에 있었던 독일의 스페너와 프랑케를 중심으로 한 신앙운동이다. 경전주의의 기원은 신비주의(Mysticism)와 영국의 청교도주의(Puritanism)에서 찾는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교회가 본질을 잃고 영적각성을 소홀히 할 때에 기존 체제에 대한 개혁적 의지를 가지고 교회의 사명을 재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독일 경건주의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발생하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신비주의는 엑카르트(Meister Eckhart), 타울러(John Tauler), 수도(Henry Suso), 아 켐피스(Thomas A. Kempis)등에 의하여 학문적으로 발전하였다. 이중 타울러는 루터와 종교개혁, 그리고 스페너의 경건주의가 발생하는데까지 영향을 끼쳤다. 타울러는 엑카르트의 제자이며 영력과 지력을 겸비한 설교가였는데, 그의 설교집은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에게 읽혀졌다. 왜냐하면 그의 설교는 성경, 어거스틴, 그레고리, 디오니시우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자유롭게 인용하였고, 내적 생명력을 강조하여 외적 의식에 의존하는 것을 비난하였을 뿐 아니라, 복음적 사상이 강했고, 실제적이며 은총과 회개를 강조하였기 때문이었다. 신비주의와 관련된 두 개의 단체가 있었는데, 이들은 경건주의의 발생과 스페너의 이론적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신비주의의 두 단체는 "하나님의 친구들"(the Friends of God)과 "공동생활 형제단"(the Brothers of the Common Life)이다. '하나님의 친구들'은 14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발생하였다. 이 단체는 교회에서 영적 고갈을 느껴 모여든 평신도들로 구성되었는데, 성경연구와 경건생활, 그리고 성별생활을 강조하였다. 이 단체에서 나온"독일신학"(German Theology)이라는 책은 프랑크프르트의 어느 사제가 14세기 후반에 쓴 글로서 독일교회의 영적 부흥을 가져오게 하는 중요한 책이 되었다. 또한 "공동생활 형제단"은 14세기 말 네덜란드에서 발전한 운동인데, 이들은 공동의 규칙 아래서 수도원 생활을 강조하였다. 왜냐면 이들은 타락한 교회의 개혁은 교육으로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 형제단은 학교를 세워 성직자와 사회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교육내용은 복음주의와 경건주의 사상을 훈련시키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15세기 네덜란드와 독일의 경건생활과 종교개혁의 터전을 닦아 놓았다. 이 단체에 속해 있던 아 켐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n of Christ)라는 책에서 소박하고 신비한 교회적 경전을 주장하여 스페너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들 형제단은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평신도의 목회참여를 강조하였다. 신비주의의 신비적 요소는 종교개혁에 까지 계속되어 그 신학적 사상은 정통 신학자들에 의해 흡수되었다. 17세기 경건주의가 형성되기 전 몇몇 신비주의자들 중 뵈메(Jakob Boehme)는 깊은 영적 체험과 계시를 추구하여 프랑케(August Franke), 진젠돌프(Nikolaus Zinzendorf)에게 영향을 끼쳤고, 아른트(John Arndt)는 카톨릭의 신비주의 사상을 폭넓게 받아들여 그의 "진정한 기독교"(Von Wahren Christentum)라는 책은 루터교의 대표적 경건서적이 되었으며 스페너의 경건주의가 탄생하는데 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모라비안 운동과 영국 웨슬레 부흥운동의 정신적 배경이 되었다. 한편 17세기 이전의 경건주의적 요소는 청교도 주의에서도 찾을 수 있다. 대륙적 경건주의와 같이 청교도주의도 영국 국교회의 교리와 형식적 예배의식과 정치체제에 반대한 개신교 운동이었다. 청교도주의는 청교도운동의 지도자인 윌리암 에임즈(William Ames)가 말한대로, 하나님께 의존하며 사는 성경적 생활이 기본이 되는 사상이다. 청교도의 종교적 배경은 유럽대륙의 프로테스탄티즘, 즉 루터와 칼빈의 신앙과 영국의 위클리프의 개척정신과 관련되어 있다. 청교도는 종교개혁자들이 해결치 못한 것을 개혁하고자 하였는데, 그 이유는 루터나 칼빈은 중세 로마 카톨릭을 개혁한다고 하였지만 중세적 교회 문명(Church Civillization)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교도는 중세기 문화의 잔존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교도는 목사의 복장 문제로 개혁을 일으키게 되었으며, 왕의 권위보다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또 이들은 형식적 교육대신 내적인 영적 체험을 강조하였고 지식인이 사회적 정의를 등한시 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청교도들은 가정의 경건생활 실천, 청소년의 철저한 종교교육, 자기훈련 그리고 명상을 강조하였다. 이들 청교도의 대표자들로는 루이스 베일리(Lewis Bayly), 존 밀턴(John Milton), 존 번연(John Bunyon), 리차드 박스터(Richard Baxter), 존 오엔(John Owen)등이 있는데, 박스터, 베일리, 번연의 저서가 번역되면서 대륙에 청교도주의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책중에서 박스터의 "이교도의 부르심"(A Call to the Unconberted), 베일리의 "경건의 훈련"(The Practice of Piety),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과 에임즈의 "거룩한 신학에 관한 수필"(Medalla Sacrae Theologiae)등이 경건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경건주의는 종교개혁자들에게서도 신학적 영향을 받았다. 특히 스페너는 그의 스승인 요한 단하우에르(Johann Dannhauer)로 부터 성실성, 성경주의 및 보다 민주적인 정책 등에 대한 칼빈주의의 강조는 경건주의의 원리가 되었다. B. 경건주의 운동의 배경 1. 역사적 배경 경건주의는 개신교의 영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산물이었다. 그 근원은 16세기 말로부터 17세기에 일어난 경건의 실천에 대한 루터파 및 금욕적인 칼빈주의자들의 관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운동들은 영국의 청교도 운동과 네덜란드 개혁주의 진영들 속에서 최초로 나타났고, 아른트(Arndt), 스페너(Spener), 프랑케(Francke), 벵겔(Bengel), 진제도르프(Zinzendorf)등의 많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루터 교회에서도 나타났으며, 고트프리드 아놀드(Gottfried Arnold), 에른스트 호크만(Ernst Hochmann), 요한 디펠(Johann K. Dippel) 및 페터젠파(Petersens)등과 같은 사람들에 의하여 근본적으로 개혁되었고, 모라비안파(Moravians)와 형제 교회(Church of the Brethren), 스웨덴 선교단(Swedish Mission Friends), 웨슬레주의 운동(Wesleyan move- ment)및 복음주의적 부흥 운동들로 말미암아 채택되었으며, 많은 기관, 협회들과 교파들의 기본적인 종교적 기풍으로 계속되고 있는 개신교의 주요한 운동들이다. "독일 경건주의"(Der deutsche Pietismus)는 요한 아른트(Johann Arndt)로부터 시작된 경건 운동(Frommigkeitsbewegung)과 개혁 운동에 뿌리를 두며, 30년 전쟁(der Dreissigjahrige Krieg)후 다시금 힘차게 활기를 띠었던 신비주의적 영성주의에서 분파되고, 지하로 들어간 물결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 동시에, 하나의 총체적 유럽 경건 운동에도 근거를 두는데, 17세기 앵글로 색슨의 "청교도 주의"(Puritanismus), 네덜란드의 "엄정주의"(Prazisismus), 프랑스의 "얀센주의"(Jansenismus) 그리고 "정적주의"(Quietismus), 마지막으로 동구의 유대인의 "차씨드주의"(Chassidismus)를 들 수 있다. 경건주의가 발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은 30년 전쟁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경건주의의 시작은 스페너의 저서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에서 찾는다. 스 너는 1674년 아른트의 [진정한 기독교]의 재판에 나오는 서문을 부탁받아 그 책에서 경건주의를 피력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피아 데시데리아]이다. 이 책은 아주 대담한 개혁의 내용이 담긴 작은 책으로서 교회와 사회에 대한 솔직한 비판과 아울러 교회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개혁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피아 데시데리아]는 3부로 편집되어 있는데, 제 1 부에서는 교회의 비참한 영적 빈곤과 통치자의 타락상, 성직자의 부패와 불신앙을 공격하였고, 제 2 부에서는 교회개혁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제 3 부에서는 개혁을 이룩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 여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바로 이 [피아 데시데리아]가 독일 경건주의의 시작인 동시에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에 경종을 고하는 중요한 책이 되었다. 2. 사회적 배경 루터의 1517년 종교개혁 이후 카톨릭과 신교는 줄곧 크고 작은 종교전쟁을 치루었고 부분적으로 서로의 종교 자유를 허용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누군가 지뢰밭을 밟으면 터질듯이 불안한 휴전으로 전운이 감도는 시대상황이었다. 그렇다가 보헤미아 국왕이었던 카톨릭 신자인 페르디난드가 카톨릭 정책을 노골적으로 내세우자 프로테스탄트들은 왕의 고문 두 명을 창 밖으로 집어던졌다. 흔히 "프라하 폭동"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30년 전쟁의 도화선이었다. 이 30년 전쟁이 결국 독일 경건주의 운동을 발생케 한 원인이었다. 30 년 전쟁이 끝난 후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군주중심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으로 교회법 제정과 성직자 임명의 절대적 권한을 군주가 행사하고 있었고, 독일 궁궐생활은 백성을 돌아보지 않고 프랑스의 화려한 생활에 못지 않을 정도로 생활하는 정치부재의 상태였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력이 심히 악화되어 어떤 곳에서는 돈의 가치가 떨어져 경제가 물물교환으로 까지 감축되었고, 학교는 문을 닫았으며 교회는 불타 버리고, 음식창고는 바닥이 남으로 집없는 무리들은 이리저리 구걸하러 몰려 다니면서 남의 것을 강탈하고 닥치는대로 파괴하였다. 이 의 경제적 심각성을 Christian Geber는 "농민들이 동물처럼 살았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경제적 손실은 국민의 도덕적 가치관의 타락을 가져왔다. 교회적 측면에서도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고, 목회자들은 국가의 관리가 되어 국가에 종속된 채 교회는 정치의 노예화 되었다. 이러한 스콜라적 기독교는 고립된 엄격한 교리해석을 전제로 하여 누구나가 다 여기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성례에 참석할 것을 요청하면서 그것이 마치 기독교의 생활 전부인 것처럼 교인들을 우민화시키고 있었다. 즉 '사멸된 정통'의 종교만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정통주의에 반발하여 종교적 정열과 내면적 생활을 중시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는 운동이 독일 경건주의 운동이다. 이와같은 경건주의 운동의 태동은 복잡한 정치, 종교적 전쟁이 빚어낸 경제적 불황으로 인한 사회와 도덕의 타락, 그리고 정치권력과 타협함으로써 오게된 교회의 세속주의화와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지 못했던 성직자들의 타락과 무의미한 신학논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종교적 배경 정치 상황이 이처럼 무척 비참한 상태이지만 성직계급들도 완전히 타락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성직자들이 도처에서 추문에 연루되며, 또한 기독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는 듯한 사람들이 많음을 고백하여야만 한다. 그들의 생활은 세속적인 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육체의 쾌락과 안목의 정욕과 교만한 행동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독교의 으뜸가는 실천 원리, 즉 자기 부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승진, 한 교구에서 다른 교구로의 영전을 얼마나 간절히 추구하며, 온갖 종류의 권모술수에 몰두해 있는지 살펴보라! 그러나 가장 비참한 것은, 이러한 목회자들의 생활과 그들 속에 신앙의 열매들이 없는 것은 바로 그들의 신앙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목회자들이 이 정도니 그의 신도들이 무엇이 필요한 지를 어찌 인식할 수 있겠는가? 이 당시 17C의 상황은 종교개혁의 신학은 점차 지엽적인 신학 논쟁으로 경쇄되고 교회의 세속화로 말미암아 신앙의 열정은 식어가고 있었다. 당시의 루터교회는 종교개혁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성경을 교리와 생활의 표준으로 삼기 보다는 신조와 독단적 교리에 집착한 나머지 영적인 감정과 고결한 실제 생활을 소홀히 하였다. 목회자들의 교육에 있어서는 상호고백적인 논증법이 주요 위치를 점유하였다. 대학의 신학 교육의 매체로는 여전히 라틴어가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당대의 논쟁에 근거하여 주석을 한 신학의 내용들을 기계적으로 암기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교회의 교훈의 계통적 서술이나 공적인 논쟁에서 학생들이 자신이 가르침을 받은 신학을 옹호하도록 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존하는 윤리학의 논법은 궤변적이었다. 성경의 내용들이 신조안에 적절히 표현되어 있다고 주장되던 시대에는 독자적인 성서 주석이 교육과정에 거의 포함되지 못했다. 과거, 심지어는 종교개혁 시대에 대한 역사적 이해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신학적 진술들을 영원한 진리로 간주하고, 기독교 신앙과 지적 명제들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라틴어로 교육받은 목회자들은 자신들이 배운 신학을 백성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옮기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설교 중에 외래어로 된 인용문을 삽입하는데 대한 당시의 불평들은 이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전반적으로 논쟁과 논쟁법만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은 목회자들이 그들의 교구민들을 교화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에 직면하였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당대의 비평가들이 이것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한 당시 뚜렷이 구분된 계급사회에서 목회자들은 많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이 군주나 귀족들 앞에서 너무나 비굴하게 아첨하였으며, 또한 평민들 위에 군림하였다는 당대의 불평들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한 당시 많은 목회자들이 마술을 믿고 있었고 폭음과 폭식 등 당시 백성들이 행했던 악덕에 굴복했음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도 대부분의 백성들은 주일 예배에 정규적으로 참석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예배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기도와 찬양 도중에 잡담을 하거나 걸어다니지 못하도록 금지한 규정이 있다는 사실에 의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설교자가 설교 도중에 잠을 자는 것은 청취자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러한 일은 매우 빈번하였으므로 유명한 신학자 게르하르트(John Gerhard)가 죽었을 때에 사람들은 그가 교회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는 점을 찬양하였다. 백성들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법에 의해 요구되었다는 데에도 있으며, 또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행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동적인 효과를 지니는 행위라고 간주되어 많은 사람들은 1년, 또는 계절마다, 때로는 1달마다 정규적으로 성찬에 참여했다. 교회가 이처럼 외적으로는 번영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진정한 기독교인의 생활의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듯이 보였다. 이렇게 17C 정통주의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이들의 성경에 대한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기초로 해서 이룩되었다. 이들은 성경 맹신자라는 비난을 면키 위해서 그 당시의 성례전 신학에서 이미 전통적으로 받아들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와 형상의 구별을 성경에도 적용하였다. 이러한 구별은 성경에 대한 과도한 신비화를 막아준다고 확신했다. 이처럼 17C의 신학은 루터의 위대한 발견을 어느 정도 잃어버리고 중세 스콜라주의의 최악의 요소를 또 다시 만들어 냈다. 모든 것을 체계화하려는 이들의 태도는 루터 자신이 그렇게도 배격했던 율법주의에 또다시 접근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또 다시 이용하는 것도 - 그래서 '스콜라적'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이지만 - 루터가 아주 혐오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Martin Schmidt의 해석에 의하면 Pia Desideria에 대표적으로 나타난 스페너의 교회개혁을 위한 강령의 현저한 특징은 스콜라적 전통을 배격하고, 그 대신에 신비적인 영성훈련이라는 전통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했다는 것으로서, 이 영성운동의 근원은 중세 말기의 아른트, 타울러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통의 특색은 칭의(법률적인 개념)대신에 중생(생물학적인 개념)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결국 경건주의는 17C 정통주의가 가져온 여러 병패들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Ⅲ. 독일 경건주의 운동의 형성 A. 아른트(John Arndt) 독일 경건주의는 John Arndt에서 이미 발판을 굳쳐가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Arndt는 경건주의의 아버지로 간주될 수 있는데 그는 루터가 이해한 말씀의 교리를 윤리적 교리로 변형시킴으로 말미암아 의인의 경험을 성화의 경험으로 변화 시켰다고 Friedman은 지적한다. 또한 Koepp도 이것을 주장한다. 알런데 Arndt가 일반적으로 성화의 경험으로 변화시켰다고 간주되고 있지 않은 것은 Ritschl이 경건주의를 정의 할 때 "경건주의는 비밀 집회가 동반해야 한다"고 한 언급속에서 볼 수 있듯이 Arndt는 비밀 집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Stoeffler는 분석한다. 이렇게 볼 때 Arndt는 비밀집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에 경건주의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Ritschl의 정의는 천박했다. 더 중요한 것은 Arndt와 스페너의 경건이 현저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에 주의 했어야 했다. Stoeffler에 의하면, 그들의 목표와 강조는 근본적으로 같았고 스페너가 영적 선조로 느꼈던 사람들과 거의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왔다고 한다. 1. Arndt의 생애 Arndt의 안할트(Anhalt)의 발렌슈타트(Ballenstadt) 근처에 있는 에데릿츠라는 시골에서 그곳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576년 그는 의학을 전공하기 위하여 헬름슈타트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거기서 심한 병을 앓고 그는 의학에서 성경과 신학 연구에로 방향을 바꾸었다. 신의 연구에 보충을 하기 위해 그는 빗텐베르그(Wittenberg), 스트라스버그(Strassburg), 바젤(Basel)대학에서 청강하였다. 1583년에 그는 안할트(Anhalt)의 바데본(Badeborn)에서 목사가 되었다. 그해 그는 Anna Wagner와 결혼했는데 죽을때까지 38년 동안 행복한 가정생활을 했으나 자녀는 없었다. Arndt는 그의 주요 목적이 머리를 채우는데 있기 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교화하고 확신케하는데 있었다. 설교자는 양떼를 먹이기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영적 생활을 개발하는데 부지런해야하고 매일 기도하면서 하는 성경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교는 단순하고 정서적이었다. 꾸밈이나 가담이 없었다. 그의 설교는 듣기만 하는 사람을 만들기 보다 오히려 말씀을 행하게 하는 열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Arndt는 한 사람의 진실되고 위대한 루터교회 목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증오하고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미지근한 사람들을 고무하고, 그들의 의심을 조심스럽게 일깨우고, 낙심한자들을 격려하고, 슬픈자들을 명랑하게 하고, 무식한자들을 교육하고, 사악한자들을 견책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는 1611년에 Celle시의 수석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1621년 Arndt 자신이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있었다. 그의 목사의 일은 논쟁으로 얼룩지었고 세례 전에 귀신 쫓는 의식을 버릴 것을 거부한 부분에 대한 칼빈주의의 반대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저술 활동은 그를 폭 넓은 태도를 가지게 했다. 그가 출판한 모든 것들은 영적과 실제 크리스챤 생활에 관계된 것이지만 신비적인 경향이 있다. 1597년 그는 루터가 출판했던 독일 신학의 신판을 편집하면서 긴 서론을 썼다. 그의 서론은 그 당시 많은 출판물의 논쟁이 되었던 것처럼 비판되었다. 독일 신학의 신판은 분명히 성공적이어서 1605, 1617, 1621년에 재 출판되었다. 이 일로 Arndt는 유명해지고 그의 "진정한 기독교"(True Christianity)는 매우 선풍적이었다. 이것은 1605년에 처음 출판되었고, 1607년 개정판이 나왔다. Arndt는 추가로 그의 원래 원본에 세 권의 책들을 더하여 1610년 4권으로 된 [진정한 기독교]가 책으로 커다란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1621년 그가 죽기까지 약 20판이 재판되었고 18세기 말까지 125번 출판되었다. 그의 저서들은 중세에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신비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루터처럼 그는 독일 도미니카 신비주의자인 요한 타울러에 매우 호의적이었고 독일 신학의 작가와 같이 생각되었다. Arndt는 [진정한 기독교]의 처음 세권의 책들에서는 타울러로부터 종종 인용하였다. 타울러의 영성은 실천적인 목사였고 이런 이유로 Arndt가 매우 밀접하게 따르게 되었다. 비록 Arndt가 신비적인 근거를 사용하였지만 그의 주제는 하나님의 신비적인 연합보다는 크리스챤의 새로운 생활이었다. 2. Arndt의 경건 Arndt는 항상 그 자신을 순수한 루터교회 교훈을 가르치는 자로 생각했다. 이 사실은 그가 쓴 모든 책에 나와 있다. 그는 모든 면에서 "Augusburg Cenfession"과 "Formula of Concord"를 지지하는 루터교인이 되기를 원했다. 실제로 그가 그랬느냐는 보기에 따라 달려있으나 그의 강조는 역사적 루터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 Arndt의 경건은 세가지 주제 즉 영적 쇄신과 새로운 삶을 함양하기 위한 수단들로 토론될 수 있다. a. 영적 쇄신 Arndt는 인간의 영적 쇄신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어떤 루터교도 못지않게 깊이 확신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가 한번에 모든 이를 위한다는데 강조점을 두는 대신에 그것은 기본적인 것이지만, 그는 개인 안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강조했다. 경험주의적이고 실존주의적인 구원 체험을 강조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의 영을 통하여 개인 안에 참된 신앙을 움직인다고 Arndt는 믿었고 거기서 새사람이 나온다고 믿었다. 그는 이 새로워지는 과정을 비약하지 않는데 이 과정 속에 참된 회개가 있다고 한다. 이 회개에 대하여 그는 말하였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부르셨다. 참되고 바르고 진심으로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전향하도록 불렀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회개 없이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아무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도 영적 쇄신을 위해 절대로 필요한 요소이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절대 신뢰하고 그리스도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여기서 Stoeffler가 밝히는 대로, 최선의 신앙이 역사적 행위를 신뢰하는 것이라는 그 당시인들과 많은 차이가 난다. 그의 신앙의 열정은 바로 이 실존적이고 주관적인데서 나오는 것이다. Arndt는 새로운 삶에 대하여 그 일반과정이 거듭남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서 영적인 삶으로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에 의하여 급격한 이동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b. 새로운 삶 Arndt는 세례적인 거듭남으로 완전하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산다는 일반적인 루터교회의 개념에 대하여 반대하고 그리스도와 하나됨과 거룩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데에 강조를 둔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완전하다. 그런데 왜 거룩한 생활에 대해 염려하는가?"라고 어떤 유명한 설교자가 말하는데 대하여 Arndt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세례를 통해 완전하다. 그러 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데로 살아가자. Arndt에게 거듭남의 즉각적인 결과는 하나님과의 일치였다. 여기서도 그 당시 루터교회 경건주의자들과 차이가 난다.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는데 그리스도의 몸의 일원으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인격적인 수준에서 연합된다고 주장하면서 때때로 신비주의의 경향을 나타낸다. 연합 속에 그리스도인이 이제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인간성은 하나님의 조명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받기에 합당 하게 변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rndt의 핵심 주제는 연합문제에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신비주의자가 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는 "간구하옵나니 내가 새 삶을 위하여 세례를 받았음을 매일 기억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c. 새 삶을 함양하기 위한 수단 Arndt는 그리스도인이 신앙과 덕있는 생활 속에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형상에 이르도록 성장해 간다고 주장하는 한편 덕있는 생활은 세상과 자신에 대해 죽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세상을 부인하기 보다 십자가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Arndt는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이세상 일과 분리하고 그의 영적인 안락을 가지고 해야할 일들을 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기도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자연적인 삶이 정확하게 몸을 움직이듯이 그렇게 성령은 기도를 통해 영혼을 움직인다"고 그는 믿는다. Arndt의 저서들은 선풍적인 지지와 영향을 끼쳤으나 반면에 Lucas Osiander같은 사람들에 의해 혹독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Arndt가 이런 신학 논쟁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꿋꿋이 걸어 온 것은 그의 고난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 모든 증거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모든 세대에 하나님의 증거들은 진리를 위해 고난 당하게 된다는 것을 진지하게 믿었다. B. 스페너(P.J. Spener) 1. 스페너의 생애 스페너는 1635년 1월 13일, 스트라스부르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라폴트스타인의 알사티안(Alsatian)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라폴라스타인 공작의 청지기였으며, 후에는 시의회 의원이 되었다. 스페너는 일찌기 그의 어머니로부터 종교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세례를 받을 때에 대모가 되었던 라폴트스타인가의 여인도 또한 그의 소년 시절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영향을 준 사람은 그가 전도사, 설교자, 그리고 상담역으로 활동하던 청년 시절에 그의 목사였던 요아힘 스톨(Joachim Stoll)이었다. 스페너는 청년 시절 어느 책이든지 닥치는대로 읽곤 하였으며, 그의 초기의 생애는 부친의 서재에서 읽은 책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성경 다음으로 아끼는 책은 요한 Arndt의 [진정한 기독교](True Christianty)라는 경건 서적이었다. Arndt는 기독교인의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정통 교리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주장하고, 중세 후반에 있었던 신비주의를 모방하고 그것을 옹호하였다. Arndt는 독단적인 주지주의에 대항하여 엄격한 종교적, 도덕적 생활을 강조하였다. Spener는 무도회 등 다른 학생들이 즐겨하는 것에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여성들의 모임에 참여하기를 꺼렸으며 친구들도 많지 않았다. 후일 그의 매부가 된 스톨의 충고에 따라 주일에는 세속적인 오락은 물론 신학 연구도 삼갔다. 1659년 여름 신학 연구 과정을 마친 후 그는 스위스의 바젤, 베른, 로잔, 제네바, 그리고 프랑스의 리용, 몽베리알, 독일의 튀빙겐과 프라이 부르그 등을 여행하였다. 그는 제네바에서 프랑스 개혁파의 교회생활과 그 조직에 대하여 잘 관찰하였다. 여행 후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20세의 여인과 결혼했으며, 프랑크푸르트의 암 마인 교회의 수석 성직자로 부임하였다. 그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사람으로서는 놀라운 정열로 일에 임했다. 그는 주일 오후에 어린이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여기서 그의 활동 중 보다 중요한 것은 평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장려한 것이다. 그는 교구민들의 요청으로 최초의 영성 개발을 위한 사적인 모임인 "경건회"(Collegia Pietatis)를 성립하였다. 그 모임은 매주 일요일과 수요일에 스페너의 집에서 있었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참석하였으며 각기 구별하여 앉았으며 발언권은 오직 남성에게만 주어졌다. 모임은 기도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 주일의 설교에 대하여 토의하거나, 혹은 경건 서적을 읽었다. 후에는 성경을 읽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였다. 이어 그는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를 지어 대답하고 완전한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는 하나의 강령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즉 신학 교육의 개혁, 스콜라 철학과 신학적 논증법에 대한 비평, 상호 신앙 고백적인 신앙의 자유에 대한 변호, 지성의 종교는 물론 심령의 종교에 대한 강조, 생활과 행위로 표현되는 신앙을 요구함, 완전론적인 경향을 지닌 것으로서 개인의 영성 배양, 평신도의 지위 향상, 경건 생활 함양을 위한 사적인 모임의 권장, 신자들의 영적 제사장직의 개발, 신비주의를 인정하는 것 등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20년간 사역을 한 후, 스페너는 삭소니에 있는 드레스 덴(Dresden)으로 임명되어갔다. 이는 여기서 A.H. Franke를 만났다. 이들 공동의 노력으로 모임은 점차 학구적인 연구에서 부터 내적 경건 생활의 배양으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심한 반대자에 부딪혀 제대로 꿈을 달성하지 못하고, 1691년 베를린으로 가서 사망할 때 까지 14년 동안 지냈다. 그는 다정다감하고 민감하며 낙관적이었다. 그는 기독교 사상의 개혁가라기 보다는 기독교 생활의 개혁가였으며, 또한 기독교 교리사에서보다는 기독교 경건사에 합당한 인물로 평가되어진다. 그러나 비록 신학에 대한 그의 관심이 실질적이었다고 해도 그가 신학적으로 무능하거나 발언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그러한 면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며, 알지도 못하지만 기독교 사상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2. Spener의 경건 a. 성경 스페너에 있어서 갱신 사상은 루터교 정통주의자들의 그릇된 성서 이해를 지적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기꺼이 이해한다. 그것은 믿는 모든 이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롬 1:1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이 듣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고 말씀이 믿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손이기 때문 에도 아니고 말씀 스스로 성령을 통해 그들을 깨우치기 때문이다. 성서 자체를 성령의 내주 속에서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는 말씀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점을 루터교 정통주의자들에게 알림으로써 Spener는 성서 자체의 능력과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Spener는 모든 성도 스스로가 성경을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스로가 성경을 늘 읽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약 은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아니할 것이다. 가정의 모든 아버지들이 자신의 성경을 또는 최소한 신약을 손에 들고서 매일 약간씩 읽는다거나 또는 그가 글을 보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낭독하게 하면 될 것이다. 고 하면서 늘 성경과 같이 하고 성경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매일의 삶 속에서 나에게 새롭게 말씀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 공부를 위한 교회 성도들의 모임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또한 바람직한 일은, 모든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성 경을 읽는 시간을 갖는 그것이다. 가능할 수만 있다 면, 모든 성도가 정한 시간에 공식적으로 교회에 모여 서, 설명없이 순서에 따라 성경을 소리를 높여 한 사람 씩 앞에 나와서 낭독하는 일이다. 물론, 이때에 중간 중간 짤막한 요지를 말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성경을 잘 보지 못한다거나, 전혀 읽을 수 없다 거나 또는 아직 성경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있지 못한 성도들의 경건을 위해서 매우 유익할 것이다. 고 보면서 Spener는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성경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나 대화 가운데서 서로 연구하는 그것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성경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 구하는 것이 무언가를 개혁해 보려고 할 때, 가장 최선 의 방책이라는 사실이다(설교를 청종하는 것 뿐만 아니 라, 읽고, 연구하고, 그에 대해서 대화하는 그러한 태 도를 여기에서 의미한다. - 시 1:2). 이러한 열심있는 성경연구는 앞서 말씀 드린 이런저런 성도의 모임을 통 해서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한 성도의 모임은, 그 모 임을 통하여 모든 선한 것들이 우리 가운데서 성장해야 만 좋은 씨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성도 들이 열심을 내어 그러한 성경모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생명의 책에서 그들이 기쁨을 발견할 수 있도록 협조 하며, 영적인 삶이 그들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충만해져 서, 그들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성경 공부 그룹을 통해서 Spener는 자기만의 독특한 생각을 여러사람들에게 나누기를 원하고 성경을 잘못 이해한 면을 지적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삼는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읽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성경은 특정의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대상으로 하며, 특정의 개인이 아니라 만민을 대상으로 하는 책 이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가능한한 그 말씀을 독자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이해하며, 또한 하나님께 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시거나, 또는 말씀을 직접 받 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읽는 모든 사람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여겨야 한다. 고 하면서 Spener는 성경에 대한 관심과 성경의 중요성을 알림으로 갱신의 시발점을 삼았다. 2) 신생 신생(Wiedergeburt)의 주제는 스페너 교회학의 기초열쇠가 된다. 그의 교회학은 최근 몇년동안 점차적으로 인식되어 왔다. 스페너가 분명히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정통 교리를 고수하는 반면 신생에 대한 어원적인 개념은 기독교 경험에 대한 그의 이해에 역동적인 요소였다. 스페너는 종종 신생에 대한 설교를 하였다. 그의 저작으로서 특별히 1696년 발간된 "신생에 대한 중대한 소고"(Hockwichtige Articul von der Wiedergeburt)는 신생이 스페너에게 중요한 주제임을 보여준다. Martin Schmidt에 따르면 Wiedergeburt가 스페너의 사상의 내면의 의미이고 경건주의 신학의 근원적인 주제이다. 스페너의 신생의 개념은 단순하게 그의 신학에 있어 한 기초적인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개인의 영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교회의 전체 과정을 보게되는 중심 사상이 되었다. 그에게 있어 우선적으로 법적 용어나 은유보다는 유기적인 사용이 루터와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Thomas Kuhn의 의식 가운데서 전형적 변천(Paradigm Shift)인 이것은 경건주의 운동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다. 스페너에 따르면 신생은 세개의 단계를 수반한다. 즉, 믿음의 시작, 칭의와 양자,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온전해짐 등이다. 혁신의 개념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즉 순간적이거나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단계와 분기점에 의해 표시되는 효과적인 과정에 있는 것이다. 스페너는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한 그리고 갱신된 하나님의 백성의 신실함에 근거한 교회를 위한 더 좋은 때(besserer Zeiten)를 위한 희망을 끝까지 붙잡았다. 그는 교회 스스로 다시 태어나고 갱신되는 것을 보기를 고대했다. 그의 완전에 대한 강조는 단지 개인적인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관계적 완전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3) 영적 제사장직(The Spiritual Priesthood)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에서 스페너는 또다른 제안을 하는데 "영적 제사장직의 확립과 부지런한 실행"이다. 모든 영적인 기능들은 예외 없이 모두 공개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들의 규칙적이며 공적인 실행이 이런 목적을 위해 임명된 목사들에게 맡겨졌다 할지라도, 그 기능은 비상시인 경우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행되어야 한다. 특히 공적인 행위와 관계없는 일들은 집에서나 매일의 삶 속에서 모든 이들에 의해 계속적으로 행해져야만 된다. 스페너는 다음과 같이 영적인 제사장직을 정의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과 그가 성령으로 모든 믿는자에게 기름붙기 위해 값을 지불하고 사신 권 리이며 그들이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질 제물을 가져오고 가져와야 되는 것으로 인해서 그들 자신들과 다른 사람 들을 위해 기도하는 권리이며 각자가 자신들과 그들의 이웃을 교화하는 권리이다. 스페너는 영적 제사장직은 세례에 있어 신생과 그리스도의 기름부음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그 개념은 고차원의 기독론이다. 즉, 만인 제사장설을 예수의 대제사장직으로 부터 연유된다. 스페너는 베드로전서 2:9에서 구분 없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갈라디아서 3:28에서 늙으나 젊으나, 남자나 여자나, 구속자나 자유자나 영적인 제사장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제사장의 이름은 모든 크리스챤들을 위한 보편적인 이름이다. 즉, 그들의 직무에 따른 적절하지 않은 제사장들인 목사들을 위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스페너는 영적 제사장들의 직무를 1)제사 2)기도 및 축도 3) 말씀 선포 등으로 세분하였다. 공적인 사역이 사역의 직무로 지정되어 있고 특별한 소명을 요구하는 반면, 모든 신자들은 이런 제사장적인 기능을 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들 사이에서 행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신자들은 자신들에게서나 그들 사이에서 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된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그래서 그들이 그들의 설교자들의 가르침을 시험하게 될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야만 한다. 영적 경건주의에 대한 스페너의 강조에 있어 하나의 흥미있고 교회학적으로 많은 면들이 그가 성찬식에 대해 만든 연결장치이다. 세례는 영적 경건주의에 들어가는 입구이다. 그리고 영성체, 그것은 사람의 축제이며 우리 모두 하나라는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우리 모두 하나의 빵을 나누는데 참여한다. 제물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에 근거한, 영적 제사장은 성만찬적 친교이다. 영적 경건에 대한 이러한 강조에 있어 스페너는 개신교 교리에서 새로운 강조점을 둘 뿐만 아니라 사실상 제도적인 언어가 훨씬 덜하게 하여 더욱 생명력 있게 교회학을 개선한 것이다. 이것이 그의 교회에 대한 본질적인 정의와 그의 신생에 대한 강조로 계속 주장되었다. 하나의 특유한 교회학이 스페너에게 교회의 갱신된 삶(실질적인 목회개선)을 위한 관심으로 출현한다. 신자들의 제사장적 교회는 그리고 그것이 성례전과 함께한 것으로 스페너의 교회학적인 사고 가운데 이 전형적 변형에 의해 새로운 생명이 개척되고 주어졌다. 4) 경건회(Collegia Pietatis) 스페너는 경건회를 교회구조에 대한 뚜렷한 강조점의 맥락 가운데에 두었다. 스페너에게 그런 경건회는 단순히 목회전략(비록 명백히 그것이 있었다 해도)만은 아니었다. 즉 그는 확고하게 그 개혁자들의 근본적인 교회학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스페너의 경건단체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의 아이디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결국 소그룹으로 활성화 되었다. "경건한 소원"(Pia Desideria)에서 스페너는 교회에 대한 호감을 두고 그처럼 가정에 모이는 것에 대한 그의 제안을 소개한다. 고대 로마시대에 사도적인 일종의 가정회합을 다시 소개하기 위한 제안이다. 고린도전서 14:16 - 20은 모델로서 보여주고 있다. 스페너의 견해에 있어 교회갱신의 가장 훌륭한 소망은 영적 제사장직에 대해 모아진 표현들의 맥락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다. 선포하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토의하는 일(시편 1:2)은 어떤 일을 개혁하기 위해 중요한 방법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 안에 좋은 모든 것으로 부터 씨로 남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자라야만 한다. 비록 열심히 성실하게 함께 성서를 연구한다해도 신자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Stoeffler는 세포그룹을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경건회는 교회를 통해 도구가 되어야만 한다. 그 교회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하여 다시 가져와야만 되는 것이다.... (그들은)다른 이들로 부터 진실한 크리스챤들을 분리 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새로 운 개혁의 중요한 면을 구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 다. 그들을 통하여 목사와 헌신된 집사들은 삶의 개혁 에 대한 교리의 개혁에 부언하기 위한 협의에 있어 작 업을 하기 위해 시도되어졌다.... 그 제도는 너무도 혹 독하게 스페너의 적들에 의해 이 개혁안의 함축성 때문 에 거부 되어졌다. 이상이 언급되었을 때 스페너는 그들의 훈련 사역에 있어 목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그리고 신자들의 제사직을 기능적인 실제로 돌리기 위한 교회 안에서의 지방 장로회의 형성을 옹호하였다. 스페너의 견해에 있어서 경건회는 그와같은 장로 의회의 직접적인 하나의 진전이 되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국내적인 회중 교회조직이다. 본질에 있어 경건회 조직이 장로들의 의회에 의해 길러지고 통합되어졌다. 그런데 그 구조는 많은 새로운 기독교교회를 성장시키었고 과거 15년에 20년까지 북미에서 기획된 공동체를 성장시켰다. 결론적으로 스페너의 저작은 그가 신자들의 내면적인 영적 경험뿐 아니라 전체 교회의 갱신을 가지고 관심을 쏟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는 그와같은 일반적인 갱신을 성취하기 위하여 신학과 초보적인 전략을 개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적인 영적경험을 스페너의 제 1 차적인 관심의 촛점이었다. C. 프랑케 (A.H. Franke) 프랑케는 스페너와 마찬가지로 요한 Arndt의 경건의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개신교회 내에서 경건주의의 결정적 관철을 이룬 사람이었다. 여기 이 경건주의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는 프랑케의 생애와 할레 대학과 그의 경건 생활에 대해서 살펴보자. 1. 프랑케(Franke)의 생애 프랑케는(1663 - 1727)는 스페너보다 연하였다. 그는 스페너의 제자로서 1690년 이후에 경건주의의 유력한 인물 즉 그의 후계자로 간주 되었다. 그는 1663년 3월 22일 Hamburg에서 북쪽으로 40마일 떨어진 인구 35,000명의 매우 전통적인 자유주의 도시인 Lubeck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다소 안정된 생활을 하는 법률가였다. 그의 가정은 진보적인 정통 루터파의 하나였다. 그는 16살때 근처의 Erfurt대학에 진학하여 논리학과 순수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학기 후 그의 숙부가 그를 위해 장학금을 마련하였을 때에 그는 Kiel대학으로 전학하였다. 거기서 그는 영향력 있는 역사 신학자이며 스페너의 친구이고 교회 개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신앙심이 깊은 K. Korthold의 집에 머물렀다. 프랑케는 Kiel에서 신학, 역사학, 철학, 물리학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3년동안 공부하였다. 그는 히브리어 그리스어 영어를 공부하면서 몇달을 보냈다. 그는 총명한 학생이었으며 특히 언어학에 뛰어났다. 1684년 봄에 그는 정통 루터교의 중심부로 인정되던 이름난 대학인 Leipzig에 가서 J.B. Carpzov, J. Dornfeld, 그리고 다른 사람들 밑에서 1687년까지 공부하였다. 그는 1658년에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무급강사 - 공식적으로 대학에 등록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학생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강사 - 로서 Leipzig에서 강의했다. 1691년 스페너의 소개로 새로이 설립된 Halle 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동양어 교수로 임명되어 36년 후 그가 죽기까지 그곳에서 있었다. Kiel과 Leipzig대학에 있는 동안 프랑케는 공부에 전념했으나 그의 신학적 흥미는 영적이기 보다는 학구적이었다. 나의 신학은 나의 가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믿음이라기 보다는 죽은 과학이었다." Leipzig에서 강의하는 동안 1686년 7월 18일 Otto Mencken교수 집에서 처음으로 접한 "성경 연구 그룹"(a collegium philobiblicum)이라는 성경공부를 위한 소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8명의 젊은 학자들의 모임은 Carpzov교수의 시사아래 얼마간 모임을 시작하였으며 프랑케는 일찍 리더가 되었다. 학생들은 원어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프랑케가 그의 공부에 있어서 체계적인 신학보다는 오히려 주석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후 "성경연구그룹"(Collegium Philobiblicum)은 인기있게 되었다. 1687년 10월 프랑케는 Luneberg에 돌아가기 전 Hamburg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이 기간동안 그는 스페너의 경건주의 [Speneriun Pietism]에 점점 감화되었다. 프랑케는 1689년 2월 Leipzig에 돌아와서 강의를 시작하였고, 그의 강의는 매우 인기있게 되었고 몇개의 "성경 연구 그룹" (Colleregium Philobiblicum)이 조직되었다. 곧 영적 자각이 학생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좋은 반응도 많았지만 배타성을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와 대학 동료인 Loscher교수는 "학생 모임이 교회의 예배 의식을 모독하였고 영적 자부심과 배타성을 조장하였고, 신학적 과학을 낮추었으며 주관적인 접근을 통해 영존을 낙담시켰다"고 호소하기 까지 하였다. 경건주의자 [anti-pietist]의 반대로 인해 1년 후 그의 교수직을 잃었다. 그는 그후 1692년 1월 Halle에서 교수와 목사로서 그의 착무를 시작하기 전에 Spener와 여러날을 보냈다. Halle에서 프랑케는 저급한 대학에서 처음으로 보수 없이 강의하면서 Halle의 작은 교회인 Clalucha에서의 목사직을 통해 생활하였다. 그는 그의 목사 생활을 성실히 수행하였으며 그의 영향력 아래서 다소 세속적인 Glancha의 마을 - "Halle의 저급한 나이트 클럽" - 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라우하에서 그는 청소년들의 바른 지도를 위해, 부족한 자본에도 불구하고, 1695년 빈민자 학교와 고아원을 세웠다. 할레의 그 고아원은 매우 보잘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몇년이 지나자 교육 기관, 경영 기관 그리고 기업체로 번성하게 되었다. 독일 땅에서 개신교의 거대한, 유일무이한 기관의 총체로서 성장하였다.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란케가 이 할레의 교육 도시에서 추구하였던 목적은 가장 먼저 '대학 강연'(Seminarium Universale)의 계획과 더불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세미나로부터 매년 수백명이 경건주의적으로 교육을 받는 능력있는 사람들로서, 독일의 안과 밖에 있는 모든 신분의 사람들, 물론 유럽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의 실질적 개혁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2. 할레(Halle) 대학 할레 대학은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의 경건주의 운동의 본산이었다. 할레 대학의 정책이 주로 스페너의 주장과 교육방침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었지만 실지로 행정적인 면에서 이를 실천한 사람은 프랑케였다. 그는 이 학교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목사가 되게 하기 위한 교육을 시키는 데 전념했다. 할레에서 그는, 새로운 교육 제도로 인해 유명해진 학교들을 세웠는데, 이 제도들은 경건주의에 젖은 분위기에서 실천됐다. 할레 대학에서 그의 업적은 선교 기관을 통한 가난과 부도덕의 생활에 빠져 있던 소외된 대중들에게 교육과 자선의 손길을 뻗친 것이었다. 고아원, 학교, 과부의 집, 여자방, 교사 양성학원, 화학 실험실, 약국, 책방, 인쇄소, 무료 숙박소, 빈민 수용소 등등의 기관들을 세워 내지 선교에 힘썼다. 이러한 기관들은 경건주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이며, 또한 내지 선교 사업의 계획은 독일 교회에 새생명을 불어 넣어 주었고 또한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생명이 없는 하나의 전통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실제의 종교가 되게 하였다. 한편 내지 선교 뿐 아니라 할레 대학을 중심으로 외지 선교에도 힘써서 개신교 선교가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일에 큰 공헌을 하였다. 같은 할레 대학의 교수들의 비난 속에서도 프랑케를 중심한 경건주의는 18C의 선교사업의 산실의 역할을 했다. 모이어(Moyer)는 '할레의 경건주의자들이 성공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교도인 백성들을 위한 선교 사업을 시작한 일이다'고 말한다. 할레 대학은 18C 동안에 60명 이상의 선교사를 배출하였으며, 창설된 지 3,40년 만에 약 6,000명 이상의 경건주의 목사를 배출하여 독일 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일꾼을 보냈다. 특히 모라미안 선교의 중심 인물인 진젠도르프도 할레 대학에서 공부하고 세례를 받을 때, 스페너가 그의 대부가 되었으며 프랑케에 큰 영향을 받았다. 3. 프랑케(Franke)의 경건 독일 경건주의의 지도적 인물로서 스페너의 영적 아들이며 궁극적으로 그의 상속자인 프랑케는 본질에 있어 그의 지도자의 신학을 신봉하였다. 스페너처럼 루터-Arndt의 전통에서 자란 프랑케는 스페너적인 기질이 있는 경건주의 자였다. 프랑케의 경건주의는 세가지 강조점에 의해서 특별히 나타난다. 1) 회심의 경험에 특별히 강조점을 둔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 경험에 있어 심리학이라 불리는 것에 더욱 일반적인 강조점을 두었다. 2) 기독교 양육, 특히 제자라는 말에 있어서, 훈련과 생활을 위한 규칙을 강조하였다. 3)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의무 등이다. 이러한 강조점들은 일반적으로 경건주의에서 마땅히 발견되어져야 한다. 프랑케 신학의 중심 주제는 회심과 빈번하게 그것에 수반하는 특히 참회의 투쟁이었다고 종종 말해왔다. 이점에 있어 프랑케와 스페너 사이의 비교는 스페너의 Pia Desideria와 널리 유포되었던 Nicodemus(1701)로 비교될 수 있다. Pia Desideria처럼 Nncidenus는 종교적인 사역을 위해 의도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의 형상을 사용한다. 하지만 개혁을 제안하기 보다는 프랑케는 교회의 커다란 문제로서 인간의 두려움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두려움은 참기독교 신앙의 반대를 만들게 되었다고 Sdchmidt는 지적한다. 그리고 분열된 마음의 치료가 하나님의 깊은 경험에 의해 극복되어져야 한다. 그 문제에대한 이 심리학적 공식화는 사상의 전체 방향을 결정한다. Manfred Kohl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스페너의 신생(Wiedergeburt)이 더욱 수동적인 의미의 말인 반면에 프랑케의 개념 현인 회심(Bekehrung)은 능동적인 언어이다. 계 해서 프랑케는 "참회"(Busskampf)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것은 영혼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구습의 사람과 싸우는 것이다. 즉, 그는 오직 아주 강한 출생의 고통만이 다시 말하면 Busskampf와 Rene(참회의 형태)가 새로운 사람을 그 낙원으로 가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몇몇의 작가들은 프랑케의 심리학적인 경향에 대해 주의력을 끌어 내렸다. 즉 그의 회심에 따르고 수반되는 과정과 내적 경험에 대한 촛점등에 대해서이다. 프랑케는 기독교에 있어 신생의 교리보다 더 중요한 교리는 없다
계시록 20장과 천년왕국
계시록 20장과 천년왕국 2002-11-09 10:41:46 read : 23 서론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성경 가운데서 유일하게 천년왕국에 대한 가르침이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하여 파생된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는 크게 4가지 상이한 견해들이 있다. 그것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그리고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이다. 앞의 두 입장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반면에, 뒤의 두 입장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천년왕국이 있을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 네 가지 견해는 아직도 자신들의 주장에 맞춰 여러 가지 시도를 통하여 믿는 바 천년왕국설을 관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국 본문에 대한 철저한 주해를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필자는 이 논문를 통하여 요한계시록 20장 본문이 말하는 바의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한가지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를 설명하려다 보면 상충되는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 대한 변경을 가하거나, 내용에 추측을 사용하는 경우가 생기기 쉽다. 이러한 문제는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며, 해석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 모든 것은 요한계시록을 점진적 병행법으로 보느냐, 혹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보느냐에 대한 결정에 의하여 좌우되며, 상징적인 해석을 하느냐, 문자적인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나 뜻이 결정된다. 또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과거적인 사건으로 보느냐 미래적인 사건으로 보느냐, 아니면 총괄적, 혹은 역사적인 것으로 보느냐를 결정해야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을 이해한다고 해도 20장의 문제를 다 해결한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산재된 문제점들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서, "살아서"라는 문구를 부활을 육체의 부활로 보느냐, 아니면 영혼의 부활로 보느냐 하는 문제, 통치가 '지상에서냐, 천상에서냐'의 문제 등이 있다.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하여 먼저 본문을 충실히 주해해야 한다. 이런 주해의 과정에서 자연히 천년왕국이 거론되게 된다. 따라서 주해하는 과정 중에서 각각의 천년왕국들이 주장하는 것이 과연 본문의 가르침과 일치하는지를 살핌으로서 어떤 천년왕국설이 더 타당성이 있는지를 살필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필자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세워진 하나님 나라와 천년왕국과의 관계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과 요한계시록 20장이 서로 맞물려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가르치시며, 전하도록 하셨다는 사실과 이를 요한이 적용했다는 측면을 고려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해석이라고 여겨진다. 요한계시록 20장이 하나님 나라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주해를 통하여 살피려고 한다. 제 Ⅰ 장 문맥적인 고찰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환상과 사건들이 '어느 시기에 대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로 나뉜다.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이 과거에 대한 묘사라고 하는 과거론자의 대답, 미래에 대한 것이라 하는 미래론자의 대답, 그리고 그리스도 왕국의 전 역사를 총괄한다고 보는 총괄론자들의 대답등이 그것이다. "과거론자들"은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시대의 배경 가운데서 그 의미를 찾으려는 자들이다. 과거론자들의 해석에 따른다면 요한계시록이 황제 숭배가 성행하던 아시아 지역에서, 로마 통치하에 가공할 만한 박해의 위협에 직면한 교회를 위해 기록된 것으로 이해하며, 따라서 짐승은 로마 황제들 가운데 하나이며, 거짓 선지자는 황제 숭배 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당시에 박해와 순교를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함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하여 이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어는 이 학파의 시조가 제슈이드(Jesuit)파의 알카자(Alcasar)로서, A.D. 1614년에 이러한 해석 방법을 채택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모리스가 말하고 있듯이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미래론자들"은 요한계시록이 미래에 환난을 겪을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고 해석하는 자들이다. 이들을 대표하는 제슈이트파의 리베라(Ribera)는 이 학파의 시조로서 A.D. 1603년에 이러한 해석법을 주장한 이후 죤 다비(John Darby), 왈터 스코트(Walter Scott), 반하우스(D.G. Banhouse)등이 이러한 견해를 선택 및 발전시켰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주로 세대주의자들이다. 이러한 견해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것들이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 의미가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난점이 있다. 또한 현재의 성도들이 환난에 대한 대처를 느슨하게 할뿐이다. "역사론자들", 혹은 "총괄론자들"은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까지의 총괄적인 역사를 다룬다고 본다. 이 입장에도 여러 가지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 모두는 적어도 요한계시록이 그리스도 왕국의 전 역사를 다루고 있다는 시각에서는 일치한다. 여기서 말하는 서로 다른 관점이란 요한계시록이 교회 역사의 주요한 국면, 혹은 단계들을 보여주며, 예언된 환상이 자신들 시대에 실현되고 있으며 세상 종말에 성취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교회의 전 역사를 보여주되 요한계시록의 여러 현상은 서로 겹쳐 있지 않으며 일련의 연대기적인 순서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면서 복음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주님의 둘째 강림 때에 도래할 하나님의 왕국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견해들이다. 이러한 총괄론자들의 주장은 신약의 다른 부분과 일치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요한계시록을 치우쳐 해석하지 않도록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 견해는 과거주의와 미래주의 두 입장을 다 수용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요한계시록이 당시(과거)의 수신자들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다 해당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는 장점이 있다. 전천년주의자들이나 무천년주의자들도 역사론자, 즉 총괄론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총괄론적 입장에서 본다고 해도 또 다른 문제가 남게된다. 그것은 요한 계시록을 "어떻게 주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해석 방법을 전천년주의가 생각하듯이 시간적 연속성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무천년주의가 생각하는 점진적 평행법(progressive parallelism)으로 보아야 하는지의 문제이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19장 11절 - 21장 8절까지의 환상들은 연속되는 환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연속이 다음과 같은 흐름이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1. 최후 심판자로 나타난 그리스도와 그의 뒤를 따르는 하늘 군대의 모습 = 19:11-16. 2. 마지막 전쟁의 선포, 그리고 짐승과 그의 군대의 파멸. = 19:17-21. 3. 사단의 감금. = 20:1-3. 4. 그리스도의 통치. = 20:4-6. 5. 마지막 반역과 그것의 진입. = 20:7-10. 6. 죽은 자의 심판. = 20:11-15. 7. 새 하늘과 새 땅. = 21:1-8 그리고 이러한 사건을 쪼개어 볼 필요도 없고, 같은 사건이 겹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에서 래드도 무천년주의가 말하는 '19장과 20장이 중복을 포함하면서 교회의 전역사의 끝에서 되돌아본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한다. 래드는 요한계시록 20장 본문에서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어떤 암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19장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20장은 두 단계를 거친 사단의 멸망을 말한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18장 - 20까지의 연관성을 제시한다. 이렇게 전천년설은 20장이 19장 11절로부터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무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이 그 내용상 상호 병행(또는 평행)적인 일곱 단락으로 구성된 이른바, 점진적 평행법(progressive parallelism)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요한계시록은 1장 - 3장, 4장 - 7장, 8장 - 11장, 12장 - 14장, 15장 - 16장, 17장 - 19장, 20장 - 22장까지 7부분으로 나누어 구성되었으며, 그 각각의 내용들은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재림 때까지의 교회와 이 세상과의 관계를 묘사하되, 내용에 있어서 종말론적인 점진성을 나타내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도 종말론적인 점진성을 나타내며, 강조점과 내용의 초점이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A. 19장과 20장의 관계 20장 초두에 나오는 '또 내가 보매( )'는 "그리고 내가 보았다"라는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표현을 시간적인 연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시간적인 연속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것을 본 시점이 앞서 기록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시간적으로 앞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4장에 하늘 보좌 환상이 기록되어 있고, 5장에 '그리고 나는 보았다'는 문구와 함께 두루마리 떼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두 사건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한 사건의 두 가지 묘사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에서의 이러한 표현은 반드시 시간적 선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전천년주의자들은 19장과 20장이 시간적으로 연속적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18장부터 20장은 연관성이 있는 일련의 환상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래드의 경우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을, 19장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20장은 두 단계를 통해 사단의 멸망을 다루고 있다고 말하면서 20장이 19장의 연속된 것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시간적 연속을 나타내고 있다는 결정적인 단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멸망에 대한 기사의 중복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래드는 요한계시록의 중복적인 측면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연속성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 래드의 이러한 주장은 천년왕국에 대한 이해의 주된 문제인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의 중복을 부인하는데, 이는 요한게시록 20장이 교회의 전 역사의 끝에서 되돌아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19장과 20장의 관계를 시간적 연속성을 중심으로 하려는 의도가 포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주장을 하여도 내용이 중복되는 것이 등장을 하는 경우 이 논증은 난감하게 된다. 19장 19절 이하를 보면 백마 탄 군사들과 전쟁을 벌인 짐승, 거짓 선지자는 유황불 못에 던지우고 미혹된 자들은 새의 먹이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20장 3절에 들어서면 아직 미혹 당하지 않은 자들인 만국이 나온다. 19장에서 이미 심판을 받았는데 어떻게 이미 새의 먹이가 된 사람들이 다시 등장할 수 있는가? 또 20장 7절 이하의 전쟁, 그리고 사단이 잠시 풀려나서 성도들의 진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미혹되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다 멸망된 사단의 군대가 어디서 또 생겼는가?'하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이러한 근거를 통하여 살펴보더라도 19장과 20장이 연속적인 관계, 즉 시간적 연속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 없다. 19장과 20장을 시간적 연속이라는 개념이 아닌 하나의 묶음으로 볼지라도 무천년설을 주장할 수 있다. 묵시적인 환상들로 구성된 여섯 동아리와, 이 여섯 동아리 앞에 한 동아리의 편지, 그리고 여섯 동아리 뒤에 나오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절정적인 환상으로 본다. 그리고 첫째 동아리에서 여섯째 동아리까지 각 동아리 사이마다 사잇말이 들어간다. 이 사잇말은 동아리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패턴으로 요한계시록을 분류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섯 개의 동아리와 마지막 하나님 나라의 절정에 해당하는 동아리를 합한 일곱 동아리를 요한계시록 장별로 살펴보면 2-3(편지들), 6(인들), 8-9(나팔들), 12-14(짐승들), 16(재앙들), 19-20(여러가지 환상들), 21-22(완성: 새하늘 새 땅)이다. 이렇게 일곱 동아리들은 일종의 동일한 환상들이 한데 어울려져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 동아리 사이에는 사잇말이 들어가고 처음 1장은 머리말이 나오는 것을 요한계시록의 구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점진적 평행법으로 보는 것과 유사하지만 그 분류 방법은 차이가 있다. 점진적 평행법은 19장과 20장이 그 내용 때문에 서로 나누어지나 이 동아리로 묶는 것은 서로 유사한 환상이므로 한 묶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19장과 20장을 한 동아리로 분류한다. 이 동아리로 묶는 방법은 요한계시록을 주해할 때 성경 전체의 중심 사상인 복음과의 연결을 통한 해석의 내용이 무천년주의 입장으로 결론을 맺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의 중요한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 방법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B. 묵시와 상징 요한계시록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상징적인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환상 가운데서 계시되었으며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일종의 묵시문학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이 당시의 묵시문학서들과 구분되는 점이 있다. 이점에 대하여 모리스는 묵시는 예언과 구별 되는데 요한계시록은 예언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묵시문학서는 저자가 익명인데 비하여 요한계시록은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묵시문학과는 달리 염세주의가 자리잡고 있지 않으며, 과거에 근거한 현재를 밝히려는 묵시와는 달리 계시록은 현실에 근거한 미래를 예상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한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그 특성에 있어서 매우 독특하므로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가면서 요한계시록을 살펴야 할 것이다. 이와 연관해서 생각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계시록을 쓴 요한이 환상을 보고 이 본 것을 글로 옮겼다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을 마치 보통 예언서처럼 그 내용을 바로 해석하려 한다면 내용을 곡해하기 쉽다. 물론 요한계시록 내에는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말하고 들은 것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보여준 것을 보고 이를 글로 바꾸어 전달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이 본 것을 정확히 그림으로 구성을 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어서 무엇을 전달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대부분 요한계시록 주석의 서론에서 환상이 뜻하는 바를 찾기 위하여 요한계시록의 쓰여진 바 문체에 초점을 맞추어 시도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시도는 매우 중요한 것이며 필수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법적 해석에 앞서서 요한이 본 것이라는 사실에 먼저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로 썼는지를 결정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의도를 파악하기 전에 우선 요한이 글로 그리고 있는 그림이 어떤 모양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의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한 후에 문학적 이해 작업이 진행되어야 바른 해석이 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계시를 보는 것을 통하여 받았다(1:1-2). 또한 그는 본 것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1:11, 19). 때문에 처음부터 언어로 받은 것이 아니며 그가 본 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한이 본 것을 기록했다는 말은 문자적 의미를 해석하도록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소위 말하는 바 문자적 해석보다는 상징적 해석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계시 전달 방법이 마치 그림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과 동일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은 환상을 보았다. 이 그림을 단지 미래에 언제 일어날 사건의 증거 자료나 스냅 사진의 공개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환상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되어 있으나 사실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요한계시록을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나가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문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계와 상징적인 의미를 바르게 찾기 위한 방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요한이 본 것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환상을 요한이 본 것과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그림을 그린 후에 이 그림이 말하는 즉 환상이 말하는 바 의미의 상징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그림 뒤에 나오는 해설들이 있다. 이것은 천사의 말일 수도 있으며 주님의 사자의 말이나 요한이 직접 그 의미를 말하기도 한다. 본문도 이러한 접근 방식에 의하여 접근하며 그 의미를 이해 하고자 한다. 물론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 문화적 배경을 전혀 고려치 않고 해석할 수 없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러한 배경의 내용이 이미 고려되어 있다는 전제로 하고자 한다. 그리고 가능한 전천년주의의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해와 무천년주의의 주해를 함께 살피면서 본문의 의도를 살피고자 한다. 제 Ⅱ 장 요한계시록 20:1-10 주해 요한 계시록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먼저 본문에서 요한이 본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이때 상징적 의미와 해설이 있으면 그 해설의 내용을 통하여 그 환상의 의미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당시의 독자들의 상황을 이해하기 앞서 이 글을 쓴 요한의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요한이 본 것,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이해, 그림에 대한 설명들을 찾아 본문의 내용을 살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살피면서 본문을 주해하고자 한다. A. 1절 - 3절 주해 1절에서 3절까지의 내용 중 무엇이 그림인지 살피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본문에서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라는 부분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이라는 부분이 그림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인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라는 부분과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라는 부분이다. 이 나머지 부분은 그림에 대한 설명에 해당한다. 그것은 천사가 용을 잡아 무저갱에 잡아넣고 결박한 그림을 그리고 그 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또 그 용을 잡아 가두되 천년 동안 가두고 인봉하는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천년이 차기까지는 만국을 미혹치 못하게 함을 말한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천사가 용을 잡아 무저갱에 잡아넣고 결박하고 그 용을 잡아 가두되 천년 동안 가두고 인봉한다'. 그리고 설명으로는 "그 용은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며 천년이 차기까지는 만국을 미혹치 못한다"는 것이다. 1. 사단의 결박. 20장 1절과 2절에 사단이 결박되었다는 언급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결박을 '어떠한 상태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첫째로는, 사단의 활동을 완전히 막았다는 견해와 둘째로 사단의 활동을 완전히 막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활동의 범위만을 정하고 막았다는 해석이 있다. 래드의 경우 사단의 능력과 활동에 대한 철저한 속박을 묘사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한편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을 미혹의 시기에 국한된 사단의 활동이 있을 것으로 본다. 왈부드의 경우는 사단의 활동이 없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천년왕국 이전에 사단의 활동이 있는 것이 당연한데 이에 대하여서 살펴보면, 사단이 갇히는 때에는 벧전 5:8과 같은 사단의 미혹이 있을 수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의 경우는 결코 사단이 묶여 있다면 활동이 있을 수 없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후크마의 경우 사단의 활동이 약화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핸드릭슨도 후크마의 견해와 같이 약화된 사단의 활동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다. 그것은 성경의 어떤 부분들을 채용해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선 분명한 것부터 정리해 보면 사단은 결박당한다. 그리고 사단을 결박하기 위하여 한 천사가 손에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고랑을 들고 있었다. 이 큰 쇠고랑이나 무저갱의 열쇠와 인봉은 사단을 가두는 것만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사단을 가두는 권세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가두기도 하며 풀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저갱, 열쇠, 인봉이 '가둔다'는 개념에서만 그치면 하나님의 권세 하에 있는 모습을 놓칠 수 있다. 본문은 무저갱, 열쇠, 쇠고랑, 인봉, 잡았다, 묶었다, 던졌다, 잠갔다 등으로 사단의 결박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사단의 결박이 다른 어떤 형태의 능력이나 권세로 풀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권세 하에 있게 된 사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사단의 활동에 대단한 제한이 있음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 제한은 천년과 연결되어 있다. 때문에 이 제한의 의미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면 천년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쉬울 것이다. 본문은 사단을 지칭하는 이름 넷을 다 모아 놓았다. 요한은 이러한 사단이 체포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용이었다. 그리고 그 용은 사단, 혹은 마귀를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이 앞의 사단의 결박에 대한 것, 즉 쇠고랑, 열쇠, 무저갱, 묶다, 잡다, 인봉하다 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상징적인 것이냐', 혹은 '문자적인 것이냐'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사단의 결박이 상징적이라면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문 자체의 시각이나 계시록 전체의 시각에서 본다면 사단의 활동이 완전히 묶인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의 일하신 것과 비교해 볼 때 사단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는 사단을 무저갱에 던져 놓고 잠근 다음 인봉을 한다. 사단이 갇혀 있는 기간은 천년이다. 그리고 사단은 그 천년 후에 잠시 풀려나게 되어 있다. 19장에 이어서 20장이 시간적으로 연속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인 전천년설은 재림이 19장에 되어진 것으로 보고 재림 후에 천년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9장과 20장이 연속적인 상태라고 보는 것은 19장의 마지막에서 용(사단)과 적그리스도(바다에서 나온 짐승)와 거짓 선지자(땅에서 나온 짐승) 중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19장 마지막에서 최종 심판을 받고, 20장에서 사단이 천년 간 투옥되었다가 잠시 풀려난 후 마침내 최종 심판을 받는 것으로 말한다. 그런데 19장에서 사단과 관련된 모든 대상들이 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20장에 와서 다시 사단이 미혹할 대상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19장과 20장이 연속적인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19장과 20장이 시간적 연속선상에 있지 않다고 는는 견해인 무천년설이 본문의 의도에 가깝게 접근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장의 사단 결박을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사단 결박(마 12:28; 눅 11:20)과 동일시해야 한다. 이 본문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사단이 일정 기간 결박되어서 만민을 미혹치 못함을 말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며, 요한계시록이 연대순으로 기록된 책이라고 보는 견해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2. 천년 본문에서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천년이라는 문구일 것이다. 1절 - 6절에서 천년이라는 수치는 모두 네 번 사용되었다. 그 중 두 번은 요한이 본 광경이었고, 두 번은 설명에서 나온다. 이는 각각 성도의 묘사와 사탄의 결박에서 나오고 있다. 본문의 천년은 무한정 계속되는 기간이 아니라 제한된 기간임에는 틀림없다. 더군다나 '천년이 차도록'이라는 표현이 이를 더욱 확증해 준다. 이 천년이 일정한 기간이라면 그 기간이 상징적인 기간인지 문자적인 기간인지는 계시록 전체의 숫자 사용 방법과 연결해서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천년의 기간은 사단이 묶여 있는 기간이며, 4절에 언급된 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는 기간이다. 그런데 용이 묶인 것이 상징적이라면 그가 묶인 기간 역시 상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게 보인다. 만일 이 어구를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이를 천년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천년이라는 개념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이 이 천년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부각시키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천년이 상징적 의미라면 다른 개념들을 종합하여 이 의미를 찾는 방법이 가장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해도 천년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미약하다. 그러므로 당연히 무리한 해석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각양의 천년왕국론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 이 본문과 유사한 천년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천년을 해석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천년이라는 기간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 문자적으로 설정되거나 주장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기간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상징적 표현은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이 천년에 대하여 상징수로 생각하고 완전한 하나의 기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핸드릭슨의 경우 그의 주석에서 이 천년은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광된 의미를 갖고 있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천년을 '주의 날', '사탄이 결박되는 날', '그리스도의 승리와 통치의 날'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문학 장르상으로 볼 때 묵시문학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계시록에서 '천년'이란 말이 유대교의 종말론에 대응하는 기독교적 종말론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도래하고 있는 "새 시대", "하나님 나라의 시대" 등을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봄이 더욱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천년의 개념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하여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본문에서의 "천년"의 의미가 성경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해석이 된다. B. 4절 - 6절 주해 4절에서 6절까지는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라는 부분은 요한이 본 그림이다.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라는 부분은 이 그림에 해당하는 설명이다. 이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보좌에 앉았고, 그들에게 심판권이 주어졌는데 그들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이 잘린 자들의 영혼과 우상에 절하거나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 그러나 죽은 자들 중 남은 사람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아나지 못한다"는 그림이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난 것은 첫째 부활이다. 이(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고 거룩하며, 둘째 사망이 이들에게 아무런 권세도 행치 못하고 오히려 이(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라는 설명으로 이 그림에 대한 의미를 세우고 있다. 1. 보좌에서 다스림(왕노릇하다 ; ) 본문에서 말하는 보좌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 점에 대하여 모리스는 요한이 사단의 보좌(2:13)와 짐승의 보좌(13:2, 16:10)를 제외하고 계시록에 총 47회 사용되는데, 이 모든 경우에 보좌들은 모두가 하늘에 있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리스의 주장은 천년왕국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살아나다'는 의미를 결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래드는 이 본문을 보면서 4절이 원문 상 두 그룹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선 보좌 위에 앉은 자들은 모든 성도들로서 이들에게 심판이 주어졌고, 순교자들 그룹은 성도들 그룹보다 더 작은 그룹으로 특별한 주목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휴즈는 동일한 의미의 나열로 본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17장 6절의 순교자의 피와 성도들의 피로써 표현된 것으로 보며 요한과 야고보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한다. 휴즈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으나 본문에서 멀리 떠나 있는 해석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본문에서 성도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순교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교하지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믿음을 끝까지 지킨 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이라면 휴즈의 적용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이러한 사실에 '살아나다'라는 말을 연결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좌의 위치를 말한 모리스의 초점이 중요한 이유가 된다. '왕 노릇하다', 혹은 '다스리다'의 개념은 왕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같은 단어라 해도 왕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다른 무엇이 주체로 취할 때는 그 의미가 달라진다. 이와 같을 경우 왕이 백성들에게 그 대권을 행사하듯이 한 주체가 객체에게 막강한 권한이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문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고 표현하는 사실에서 왕으로서의 권한이나 영향을 미치는 그런 형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단어가 쓰인 문맥대로 이해한다면 그리스도의 통치에 성도가 함께 참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에 동참하는 것이며, 이는 주체가 그리스도이며, 성도는 동참하는 자들이다. 더군다나 본문에서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주님과 함께 다스린다고 말한다. 즉, 제사장으로 통치에 동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요한계시록 5장 10절에도 발견된다.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하더라". 제사장 직분과 관련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린다는 개념은 이미 초대 교회에 확산된 개념이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서론 부분인 1장 6절에서는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 결코 이상할 것이 없듯이 본문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스림을 이해해야 한다. 이럴 경우 성도들의 통치는 성도들이 그 다스림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형태로 본다면 사탄의 이용물이 되고 있는, 즉 미혹을 당하는 자들과 관계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치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요한이 이 계시록을 쓰고 있을 당시도 해당될 수 있다. 본문이 '하늘의 장면을 묘사하는가?', 혹은 '땅의 장면을 묘사하는가?'라는 질문은 중요한 결과를 갖고 온다. 만일 본문이 땅의 통치를 묘사한다면 지상의 천년왕국을 지지하는 전천년설을 뒷받침할 수 있으며, 또한 성도들이 땅에서 영적인 통치에 참여한다는 입장의 무천년설도 뒷받침 할 수 있다. 만일 본문이 하늘의 장면을 묘사한다면 성도들이 영적으로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에서 통치한다는 무천년설을 지지하기에 충분하다. 또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다스리는 자들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도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들이 초림과 재림간의 성도들 이거나, 혹은 죽은 자들이 영적으로 살아나서 다스림에 동참하는 하늘의 성도들일 경우 무천년설을 지지하게 된다. 그러나 땅의 천년왕국에서 다스리는 성도들이나 순교자들이 육체적인 부활 후 다스린다면 전천년설이 더 타당할 것이다. 또 제사장이 되어 다스린다는 것이 구약의 제사제도의 회복을 말한다면 그것은 전천년설 혹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주장을 지지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라면 무천년설의 입장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리나 이미 앞에서 살핀 보좌에 대한 이해와 왕 노릇하는 것을 보아도 오히려 무천년설의 입장이 그 타당성을 더욱 세워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 살아나다( ) : 첫 부활 요한이 이 장면을 '첫 부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리스의 경우 '살아서'라는 용어가 일반적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후크마는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그의 견해를 밝힌 '천년왕국'에서 무천년주의의 견해를 밝히면서도 육체적 부활을 언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이 본문의 경우 모리스와 그 견해를 같이 한다. 분명한 것은 요한이 살아나는 광경을 보았으며 그것이 첫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살아난 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난을 받은 자들이다. 요한이 이들을 가리켜서 복되고 거룩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결국 첫 부활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이 살아남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래드는 이 '살아나다( )'가 육체적인 부활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5절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문구의 의미를 생각할 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동일한 문장에서 두 단어가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면 의미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래드가 지적한 대로 서로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살지 못하는 영혼에 대하여 염두에 둘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영혼들이 살아 있을지라도 의미상 죽은 영혼들이기 때문에 영적인 부활로 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이 '살아났다'는 표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첫 부활'이라는 말은 두 번째 부활과 또 다른 부활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용어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성도들의 부활이라면 '성도들의 부활'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첫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래드는 첫째 사망은 재림시에 살아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만인이 체험할 육체적인 죽음을 말하고 둘째 사망은 불못의 영원한 죽음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래드의 주장대로 둘째 사망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호수)이다. 또 그곳은 사단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영원한 고통을 당하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본문에서 첫 부활과 비교해서 볼 수 있는 것은 둘째 사망이다. 첫째와 둘째를 대조하여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둘째 사망의 권세에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데서 살필 수 있다. 설사 그렇지 않다 하여도 첫 부활은 성도들이 제사장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 요한은 이러한 부활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가 본 광경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은 성도들이 살아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본 것은 하늘에서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좌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다스림은 보좌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둘째 사망의 면제자들이다. 그것은 첫 부활이 하나님 앞에서 있을 영원한 운명의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운명의 변동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즉, 요한계시록의 수신자들에게 이러한 경고를 하는 요한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현재 운명의 변동에 대한 위협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 대한 경고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둘째 사망을 거론하면서 첫 부활의 복됨을 선포하기에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휴즈의 경우 부활은 육체적 부활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첫째 부활도 몸의 부활이어야 함을 말한다. 그러면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있으면서 그의 능력으로 부활의 보장됨, 즉 그리스도의 의와 연합된 것을 중심으로 논증을 펼쳐 나간다. 이 연합된 삶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성도가 연합하듯이 그의 부활하심에도 성도가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이며, 그 분의 승천은 우리의 승천이며 그 분의 영화는 우리의 영화임을 강조한다. 덧붙여서 에베소서의 말을 인용함으로 부활의 의미를 더욱 드러낸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5, 6). 이것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참된 몸의 부활에 성도가 참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휴즈의 논증은 실제적인 육체적 부활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성도에게 적용되어진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휴즈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성도가 연합하여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둘째 사망은 성도를 다스릴 권세를 갖지 못하였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이 생명의 보증과 함께 부활의 보증이 됨을 말한다. 이러한 견해로 본다면 본문의 의미는 매우 자연스럽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성도의 육체가 부활한다는 것은 신약성경의 일반적 가르침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전천년설의 강점은 5절의 죽은 자들의 부활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이 부활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과연 육체적 부활이라 단정할 수 있는가? 이미 본문 주해로부터 이 문제의 타당성을 검증했으나 이 본문이 육체의 부활을 가리키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더군다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한다는 5절의 표현을 생각한다면 천년왕국 후에 나머지 성도들이 부활하는 이중적 구조를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본문의 형태가 매끄럽지 못하다. 또한 요한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살아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천년왕국을 그리고 있지 않는다는 반증이 된다. 무천년설은 본문의 가장 문제점인 살아남에 대한 논증을 매끄럽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4절의 살아남, 즉 부활의 장면을 육체적 부활이 아닌 영적인 부활로 보는 것이다. 후크마는 이러한 논증을 잘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첫 부활에 대한 논증에 대한 몇 가지 뒷받침을 하고자 한다. 우선 마가복음 12장 18절-27절의 말씀을 보면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이 와서 예수님께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한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출애굽기 3장 6절의 말씀인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며 산 자의 하나님 되심"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죽은 조상이 현재 어떤 형태로든지 그 삶을 누리고 있음을 뜻한다. 이렇듯 죽은 자들에게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요한의 복음서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영생의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소유한다(1:12).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14:6)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6:35)이며 생수이다(4:10-14). 또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이미 소유하고 있으며 사망에 권세에 속박되지 않는다(5:24).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살아나는 것과 죽는 것의 의미가 부활과는 다른 것이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이러한 관점으로 살아남을 표현할 수 있었을 가능성 역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요한계시록 20장 11절-13절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그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그리고 있다. 전천년주의는 5절과 연결하여 여기서의 부활을 악인들의 부활로 해석한다. 그럴 경우 악인들과 성도들의 부활이 천년이라는 기간의 차이가 있는데, 이것의 타당성이 요한복음 5장 28절에서 말하는 바 성도들과 악인들이 함께 부활하여 각각의 심판을 언급하는 것과 맞지 않는다. 요한복음 내에서는 요한계시록 20장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본문이 5장 19절-29절이다. 사실 래드는 요한계시록의 구절과 어떠한 유사성도 없다는 이유로 연관성을 거부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의 내용 중 도움이 될 구절을 거절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더군다나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이 동일한 저자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연결의 타당성이 사라진다면 바울의 서신들의 내용을 종합하여 어떠한 교리나 바울을 이해하는 것 역시 거절할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요한복음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을 병으로 고생한 사람을 고쳐 주시면서, 자신이 안식일에 행한 일의 근거를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께 돌린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일이란 살리는 것과 심판하는 행위이다(21-22). 이러한 언급을 하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는 것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것을 선언하신다(24). 예수님께서는 이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는 때가 지금이라고 말씀하신다(25, 26).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은 마치 지금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이미 언급한 영생을 취한 것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심판하는 권세를 주님이 지니셨음을 말씀하시면서(27) 마지막 때에 심판하는 때가 올 것인데 의인은 생명의 부활로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을 말씀하신다(28, 29).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 중에 25절 이하는 마치 요한계시록 20장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25절의 살아남과 요한계시록 20장 4절의 살아나는 것과 비교되며, 28절과 29절은 첫 부활과 둘째 사망을 언급한 부분과 연결된다. 더군다나 이 요한복음 5장은 요한계시록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에서 연결이 쉬우며, 요한복음서는 살아나는 것과 중생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의미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요한복음서의 내용과 함께 요한계시록의 본문을 연결하여 해석할 때 무천년기설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서 말하는 생명의 책 외에 다른 책이 있음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을 통하여서도 무천년설이 더 설득력 있음을 살펴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서 성도들이 부활을 하였는데 20장 12절에서 그들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헤아린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6장 9절-11절에 보면 본문(4절)의 내용과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10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6:9의 영혼들은 주님의 세상 심판에 대하여 부르짖는다(10). 그러나 그들은 그 수가 차기까지 쉬라고 말한다(11). 여기서 흰옷은 성도들의 순결이나 부활을 말한다. 그러나 어떠한 해석을 해도 성도들이 지상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주님과 대면하여 교제를 나누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후의 심판 때까지 흰옷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그 수가 차기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4절과 유사할 뿐 아니라 그 영혼들이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함으로 부활의 상태라고 표현한 것과 동일시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부활은 육체적 부활이 아니라 영적인 부활일 것이다. 이것은 산 자의 하나님 되심(막 12:18-27)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무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타당성에 있어서 전천년기설 보다 더 자연스럽다. C. 7절 -10절 주해 7절에서 10절까지의 내용에서 그림은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라는 부분이다. 그리고 설명은 "천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라는 부분과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앞부분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그림과 설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앞부분에 대한 연속된 설명으로 '천년이 차면 사탄이 반드시 풀릴 것과 그가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을 모아서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전쟁을 위해 모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그림으로 '사탄에게 미혹된 사람들이 지면에 올라와서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읍을 포위하며 이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삼키고 저희를 미혹한 마귀는 불과 유황 못에 던지 운다'는 그림을 그린다. 또 이 그림에 대한 덧붙인 설명으로 불과 유황 못에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있으며 그들은 영원토록 밤낮으로 괴로움을 받을 것임을 말한다. 이 본문은 에스겔서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래드는 곡과 마곡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적이며, 그의 백성들에 적대적인 나라들에 대한 성경의 명칭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곡은 마곡 땅의 왕이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마지막 날에 북쪽에서부터 온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일시적인 메시아 왕국이 먼저 있고, 그 후에 새로운 시대에서의 영원한 왕국이 온다는 에스겔서의 구조와 요한계시록의 구조가 동일하다고 보고 있다. 모리스도 래드와 같이 곡과 마곡은 '악의 세력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된다'고 보고 이는 하나님께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전쟁이며,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곡과 마곡과의 전투와 그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말한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악의 세력은 더 이상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데 이는 사단을 포함한 모든 사단의 세력이 궁극적인 심판을 받게 되고 생명 책에 기록된 자들과 또 다른 책에 기록된 자들이 나뉘며 각각의 심판이 행하여진다. 많은 주석가들은 본문의 구약적 배경을 에스겔 36장 - 48장의 예언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의 부활을 표현한 뼈들의 살아남과 새 다윗의 통치 아래 성지의 회복됨(36-37), 마곡의 반란(38-39),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의 축복(40-48)이 그 배경이다. 그러나 에스겔서의 본문과 계시록의 본문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계시록 20장은 메시아의 통치가 1000년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뒤 일반적 부활과 심판이 있을 것으로 말하는 반면, 에스겔 37장 15절 -28절은 메시아의 통치가 영원하다고 보며 일반적 부활이나 심판은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구약이 천년왕국에 대한 도움을 실제적으로 주고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래드의 경우 에스겔서의 예언이 요한계시록 20장과 구조가 동일하다고 주장을 하면서 에스겔서 36-37장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묘사하고, 이스라엘은 땅의 회복과 메시아적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될 것(겔 36:24-29)과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가운데 거하심을 말하면서 메시아적 왕국의 축복은 마지막이 아님을 말한다. 이 메시아적 왕국은 곡과 마곡이 일으킨 전쟁에 혼란에 빠질 것이며(겔 38장-39장), 하나님의 승리 이후에 영원한 세계를 볼 것임을 묘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분명 요한계시록 20:8의 곡과 마곡은 에스겔서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다. 휴즈는 사단을 따르는 허다한 무리를 곡과 마곡으로 지칭한 것은 '마곡의 땅에 있는 곡'이 하나님의 원수로 제시된 에스겔 38, 39장의 예언과 관련되어 있으며, 곡과 마곡은 열국에서 나온 하나님의 백성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기 위하여 말년에 발진하며, 그들은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을 것'이라고 선언되어 있다(겔 38:1-9)고 말한다. 또 에스겔서에 나오는 "여러 날 후"라는 말은 요한계시록의 '천년이 찰 때'와 동일한 날짜로 보고 있다.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을 서로 비교해 보면, 요한계시록 20장의 사건 순서는 사단의 패전, 성도의 부활, 천년 통치, 사단이 풀려날 때의 곡의 반란, 마지막 성도들의 부활, 마지막 전쟁, 21장에 이르러는 새 예루살렘의 수립이 기록되어 있다. 에스겔서의 경우 에돔과 패전한 이스라엘의 부활, 오랜 평화(35-37), 곡의 반란과 패전(38-39), 새 예루살렘의 비전(40-48)으로 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계시록에서는 새들에 대한 초청(19:17-18)이 사탄의 몰락 및 천년왕국 이전에 나오는데, 에스겔서에서는 그것이 마지막 반란 이후에 나온다. 또 에스겔서 38장과 39장이 요한계시록 19장 11절 - 21의 내용과 20장 7절 -10절에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19장의 내용은 에스겔서 39장 17절 - 20절을 거의 문자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 7절 - 10절에서도 천년왕국 후 반역하는 만국을 "곡과 마곡"이라고 한 점과 이 곡과 마곡을 멸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불'이 내린 것은 동일한 예언 구를 인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요한계시록의 두 문구(19장과 20장)는 동일한 사건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9장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초점으로 하였다면 요한계시록 20장의 곡과 마곡은 사단의 멸망을 초점으로 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것은 핸드릭슨이 요한계시록을 점층적 병행법으로 보는 것이나 골즈워디가 일련의 동아리로 묶어 이해하는 것과 잘 일치한다. 때문에 전체적인 조화를 살펴보더라도 무천년설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제 Ⅲ 장 그리스도의 오심과 하나님의 나라 A. 그리스도의 초림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초림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오심(초림)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성립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초림을 구약의 선지자들과 성도들이 고대하고 있었다. 비록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도래(초림과 재림)를 분명히 구별하지 않았지만, 주님 자신과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초림 후 재림이 있을 것을 매우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신약의 많은 구절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백성들이 고대했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은 이 종말론적인 완성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고 있는 현세계의 역사를 '이 세대' 혹은 '현세상'으로 표현하고, 반면에 궁국적인 완성 이후의 역사를 '오는 세대' 혹은 '오는 세상'으로 표현하였다. 유대인들은 이 궁국적인 완성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현 세상이 오는 세상으로 전환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특별한 개입인 메시아의 오심과 사역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즉, 이 세상이 오는 세상으로 전환되는 단계를 '주의 날', '여호와의 날', '메시아 시대', 혹은 '하늘 나라'의 도래로 간주하고, 그리고 이 날에 즈음하여 전세계적인 종말론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였다(사 2:11-17, 61:2, 슥 1:11-2:3, 암 5:18-20, 욜 2:1-2). 이렇게 표현된 '날'은 종말론적 사건이 일어나는 날을 가리킨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 개입하실 것을 가리키며, 이 개입으로 주님을 부인하는 백성들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의 백성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심판이 되는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심판과 구원이 함께 결부되어 있으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현현(the theophany tradition)에 근거하여 주의 날을 선포하였으며,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패역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죄악으로부터 청결케하시고, 신실한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그의 의로운 뜻을 관철하실 것을 기대하였다. 그리고 주의 날과 더불어 시작될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시대가 올 것 역시 기대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초림이 나타내고 있는 시대는 다윗의 자손, 혹은 인자되신 그리스도의 도래와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초림이 주는 의미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도래는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권세로 온 세상을 통치하는 결정적인 사건이며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는 시대인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에 대하여 사가랴는 다음과 같이 찬양하였다.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74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68-79). 그리고 그리스도의 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이었다(눅2:10, 14).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인하여 그들이 고대하던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유대인들이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천사들이 구약의 예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나심을 알려 주었다는 것과 백성들의 기대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사건 속에서 살필 수 있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초림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보고 그 나라가 곧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이다. 이점에 대하여 골즈워디는 그리스도의 초림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의미를 이미 세워놓은 것이라 말하면서 사람들이 이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곡해한다고 말한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까닭은 새로운 또는 다른 사역을 하시기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분께서는 영광 가운데 다시 오셔서 이미 그 분의 삶과 죽음, 부활을 통해 성취하신 사역을 궁극적으로 완성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을 강조하고 이 초림과 재림이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초림은 그 분이 이루시는 구속의 전 사역을 의미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초림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아도 그리스도의 초림은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말한 바 천년왕국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구약의 구절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하고 있으며, 특히 유대인들은 구약 언어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찬양하였는데 그 구절들이 천년왕국에 해당되는 구절들로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과연 그리스도의 초림은 천년왕국의 시작이다. 이 초림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이 실제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B. 하나님 나라 : 이미와 아직 그리
고대 근동의 여러 신(神)들
고대 근동의 여러 신(神)들 2002-08-05 15:46:35 read : 5 신 나 라 지 위 성 경 언 급 성경에 언급된 팔레스틴의 신들 바 알 가나안 젊은 폭풍신 왕상 16:31, 18:18-46 아스다롯 가나안 모신, 사랑, 다산 삿 2:13, 10:6 삼상 12:10, 왕상 11:5 그 모 스 모압 국가의 전쟁신 민 21:29, 삿 11:24 왕상 11:7, 33, 렘 48:7 몰 록 (말감, 밀곰) 암몬 국가의 신 습 1:5, 렘 49:1 왕상 11:5, 7, 33 다 곤 블레셋 국가의 곡물신 삿 16:23, 삼상 5:2-7 하늘 황후 가나안 아스다롯과 동일 렘 7:18, 44:17-25 므 로 닥 바빌론 젊은 폭풍신, 주신 렘 50:2 성경에 언급된 메소포타미아 신들 벨 바빌론 마르둑의 다른 명칭 사 46:1, 렘 50:2, 51:44 느 보 바빌론 마르둑의 아들 사 46:1 담 무 스 수메르 젊은 폭풍신 겔 8:14 이 집 트 메소포타미아 가나안-시리아 성경에 없는 신들 오시리스-죽음 이시스-생명 호루스-태양 하솔-모신 레-태양 셋-악, 폭풍 프타-명장, 아누-만신전의 우두머리 엔릴-폭풍 에아엔키-태초의 깊음 신(난나)-달 이쉬탈-성(性),다산 티아맛-염수(소금물) 엘-가나안의 만신전의 우두머리 아나트-전쟁 모트-죽음, 불모 아다드-시리아의 폭풍신 테슙-힛타이트의 폭풍신 아린나-힛타이트의 태양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