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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레 목회훈련 연구 2002-11-12 11:54:38 read : 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6F존웨슬레의 목회훈련 개발에 관한 연구 [=15F I. 서 론 A.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목적 웨슬레는 18세기에 부패한 영국 사회를 구원한 전도자요 개혁자로 교회제 도를 새롭게 조직함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단지 하나의 전도부흥사나 조직자 로 보고 그에게는 신학
웨슬레 목회훈련 연구 2002-11-12 11:54:38 read : 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6F존웨슬레의 목회훈련 개발에 관한 연구 [=15F I. 서 론 A.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목적 웨슬레는 18세기에 부패한 영국 사회를 구원한 전도자요 개혁자로 교회제 도를 새롭게 조직함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단지 하나의 전도부흥사나 조직자 로 보고 그에게는 신학이 없다는 편견과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본다. 그러나 오늘날 웨슬레를 정확히 신학자라고 평가하는 경향 이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스케빙톤 우드 (A. Skevington Wood)는 고찰하기를 "너무나 오랫동안 메 소디즘의 창시자는 주로 행동가요 최소한의 의미에서만 건설적인 사상가였 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급격히 웨슬레의 신학적 역할을 재평가하는 것을 본다. 오히려 그가 강조한 교리의 특징적인 성격을 진지 하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보았다.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18세기의 영국 교회의 상황에서 재천명하 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설교의 도장에서, 성서의 빛 아래서, 성도들의 체 험에 비추어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시정하였다. 웨슬레는 교리의 본체 (substance)와 교리에 대한 상세한 내용 (circumstance)을 구분하였다. 웨슬레는 전자 (substance)를 근본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후자 (circumstance) 곧 교리가 우리에게 적용되는 방법, 시간,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에게 체험되는 상세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그것 들을 성서의 빛 아래서, 또는 체험을 통한 경험으로 시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웨슬레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천명된 성서적 기독교의 기본 교리의 골자 (substance)를 재강조하면서 그 교리를 당시 선교 상황과 신앙 체험에 적응성을 지닌 산 신학 (a living theology)으로 형성한 것이다. 와인쿠프 박사는 "웨슬레의 공헌은 그가 신학에다 살과 피 (flesh and blood)를 덧붙였다는데 있다" 라고 말했다. 웨슬레는 위대한 실천가이며 신학자이다. 왜냐하면 웨슬레에게 있어서 신학과 실제는 진정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웨슬레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로도 소홀히 다루어진 부분이 있다. 그것은 웨슬레의 목회관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웨슬레를 목회자로 보는 것에 대하여 주저한다. 왜냐하면 현재 드류신학대학에서 목회신학을 강의하고 있는 토마스 오덴에 의하면 전 통적인 목회자라 함은 "하나님과 교회로부터 부름받아 안수식을 통하여 말 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행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하나님의 자기 노 출에 전적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양육하도록 따로 세워진, 그리스 도의 몸에 소속된 하나의 구성원이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레에게는 교구가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복음 전도자이지 목 회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웨슬레가 교구를 갖지 못한 이유는 영국 국교회가 교구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 는 나의 교구이다"(The World is my Parish) 라는 정신을 가지고 웨슬레는 진정한 목회를 하였다. 본 논문의 목적은 그동안 너무나 등한시 되어왔던 웨슬레의 목회에 대하여 보다 더 잘 이해하고 그로 인하여 현대교회에 필요한 목회훈련에 대한 통찰 력을 얻고자 하는데 있다. I. 서 론 B. 연구의 방법과 범위 본 논문은 웨슬레의 생애 전반이나 그의 신학 사상 전체를 다루려고 의도하 지 않는다. 다만 목회자로서, 목회훈련자로서의 그의 모습과 신학사상, 그리고 그의 목회활동을 찾아 그의 목회 훈련을 정립해 보고자 할 따름이 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광범위한 제목하에 많은 제약과 한계를 갖고 기 술된다. 이 논문을 기술함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큰 장애는 존 웨슬레의 목회관에 대하여 발표된 것이 극히 적다는 것이다. 본 논문을 위해 웨슬레가 직접 저술한 [Thomas Jackson (ed.), The Works of John Wesley (14 Vols., 3rd edition, Ohio, 1977-79)], [John Telford (ed.), The Letters of the Rev. John Wesley (8Vols., London, 1931)], [Edward H, Sudgen (ed.), Wesley's Standard Sermons (2Vols., London, 1951)]과 한국어 번역판인 [존웨슬레 총서] 제 1권 - 10권 (서울 : 유니온 출판사, 1983)을 일차자료로 사용하였 고, 그밖에 웨슬레에 관한 도서, 연구 되어진 논문, 목회학에 관한 도서 그 리고 정기 간행물을 이차 자료로 활용하여 논문을 기술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전체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I 장은 서론으로 본 논문 문제의 제기 및 연구의 목적, 연구의 방법과 범위를 다루었다. 제 II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기 위하여, 그의 생애, 목회 훈련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상황, 웨슬레의 교회관과 그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 III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의 조직과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목 회 훈련의 조직으로는 역사적인 고찰을 따라 연합신도회, 속회, 반회, 선발 신도회, 참회자반 그리고 연회를 다룸으로써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역사적 근거를 밝히고, 목회훈련의 내용으로는 하나님 말씀 (성경, 설교)과 성례전 (세례, 성만찬)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 IV 장에서는 웨슬레의 목회 훈련의 방법과 그 실천적 적용을 살펴보겠 다. 목회 훈련의 방법으로는 헌신훈련, 경건훈련, 성경탐구훈련, 설교훈 련 그리고 지도자훈련을 살펴보고, 그 실천적 적용으로는 성결교회를 중심 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제 V 장은 결론으로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을 요약하고, 그것을 근거로 하 여 오늘의 한국 성결교회 목회 훈련 개발을 위하여 몇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II. 존 웨슬레의 목회 훈련에 대한 이해 A. 웨슬레의 생애 웨슬레는 (1703 - 1791) 18세기의 대부분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한 위대한 목회자요 유력한 설교자이며 기독교 역사상 손꼽을 만한 대부흥사요 감리회를 조직한 조직자이다. 웨슬레는 1703년 링컨주 엡워드 교구의 주임 사제관에서 목사인 사무엘 웨 슬레 (Sammuel Wesley)와 부인 수산나 웨슬레 사이의 15번째 아들로 태어났 다. 3대에 걸친 선교적인 혈통 이 말해주고 있듯이 신앙생활은 거의 완 벽에 가깝도록 교육을 받았다. 어머니 수산나 웨슬레는 어린 자녀들이 말 을 하게 되면 일어날 때와 잠을 잘때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였고 가정 예배 시에는 항상 정숙하게 하였으며, 식사 시간에는 기도를 하게끔 하였다. 1709년 2월 9일 목사관의 화재는 웨슬레의 뇌리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하 나님의 은혜의 사건이었다. 이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노년에 초상화를 그 리게 하고 그 밑에다가 '이는 불꽃에서 끌어낸 타다 남은 나무 조각이 아닌 가?' 하고 적어 넣었다. 불타는 집은 멸망하는 세계를 상징한다. 웨슬 레의 사상에 있어서 각 사람의 영혼은 불에 둘러싸인 어린애와 같이 회개하 지 않은 죄때문에 하나님의 영원한 진노의 불길에 에워싸인 것이다. 한밤 중에 불타는 집에서 구출된 그는 더 무서운 불길에서 사람들을 건져내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멸망에 대한 기억이 죽는 날까지 그의 생각을 지배 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1711년 버킹검 (Buckingham) 공작의 추천으로 챠터하우스 (Charter - house)에 입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경건 생활과 성경 읽기 와 기도하기를 배웠다. 이 학교를 졸업한 후 1720년 옥스포드 (Oxford) 대학 크라이스트 처치 (Christ - church) 대학에 입학하여 히브리어, 라틴 어, 윤리학, 철학, 신학등을 공부하였다. 이후로 부터 학문적인 면에 꾸 준한 발전이 계속 되었다. 이 시기에 웨슬레가 접한 책들 가운데서 토마스 아 켐퍼스 (Thomas A.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n of Christ)를 읽고 (1726) 내적 종교의 본질과 범위를 깨닫고 그리스도에 대한 모방을 다짐했고, 제레미 테 일러 (Jeremy Taylor)의 [거룩하게 사는 그리고 거룩하게 죽는 규율과 연 습] (The Rule and Exercise Holy Living and The Rule and Exercise of Holy Dying)을 읽은 후에(1725년) 의도의 순수성이 중요함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것임을 확실하게 자각하여 헌신을 결단하였고, 윌리암 로 (William Law)의 [완전한 그리스도인] (Law's Practical Treatise upon Christian Perfection)과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로의 부름] (Serious call to a Devout and Holy Life)을 읽었던 바 (1728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 을 결단하였다. 이외에도 웨슬레가 전 생애를 통하여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었음을 그의 일 기가 말해주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하여 간접적인 경험을 쌓아나가 신앙생 활을 풍성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갔으며, 내적인 면을 늘 새롭게 발전시 켜 나아갔다. 지식 그리고 실천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행동으로 일치시키 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웨슬레는 그동안 축적한 모든 경험들을 행동 화 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펴 나갔다. 1725년에 영국교회 (성공회)에서 신부 (Deacon 서열로), 1728년에는 사제 서열로 안수를 받으면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726년에는 옥스포 드 링컨 대학의 강사로 피택이 되었고, 이곳에서 신성모임 (Holy Club)을 조직하여 멀지않는 훗날 영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교회에 새로운 생명을 불 어 넣어줄 운동이 시작되었다. 웨슬레는 신성모임에서 엄격한 원칙을 창 안해 나갔다. 그래서 웨슬레와 그의 동료들은 엄격주의자(Methodists), 성찬주의자 (Sacramentaians), 열광주의자 (Enthusiasts), 성경벌레 (Bible Moths), 개 혁모임 (Reforming Club) 그리고 적선하는 자 (Supererogation Men) 등으로 불렸다. 신성모임은 1735년 10월에 웨슬레 형제가 미국 죠지아주로 선교 를 위하여 떠나면서 해체되고 말았으나, 훗날 웨슬레의 목회훈련에 있어서 교회조직과 방법에서 그 영향을 볼 수 있으니 그에게 미친 영향이 대단히 크다 하겠다. 1735년 10월 미국 죠지아주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사로 파송되어 항해 도중 모라비안 교도들을 만나서 그들의 신앙을 보게 되었다. 그는 죠지아주에 도착하여 토착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웨슬레는 이들 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었다. 왜냐하면 이들 인디언들은 순수해서 복음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과 접촉하면 할 수록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점점 멀어짐을 느꼈다. 웨슬레 신학을 연구한 케논 (William R. Cannon)박사는 웨슬레 자신의 말을 인용하여, '그가 신성모임 운동을 하고 미국 죠지아주 선교를 하였던 그때까지의 자기는 아들의 신앙이 아니라 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 하였다. 즉 1738년 회심이전의 웨슬레의 신앙과 신학은 인간 중심적이었 으며 비신앙적이었다. 그는 죠지아주 선교에 실패를 하고 다시금 영국으 로 돌아왔다. 철저한 회심이 없는 상태에서 올바로 목회사역을 수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죠지아주 선교에 실패를 하고 돌아온 웨슬레에게 결정적인 신앙의 변화가 찾아왔다. 웨슬레는 자신의 변화에 대하여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다.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에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올더스게이트 가 (Aldersgate Street)에 있는 어느 회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었다. 9시 15분전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 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는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는 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 망의 법에서 구원 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어서 1739년 1월 1일 (월요일) 새벽 3시경에 페터 레인 모임에서 웨슬레 는 홀 (Hall)씨와 킨췬, 잉햄, 화이트필드, 동생 찰스등 60여명의 신앙동지 들과 통성기도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새벽 3시 경 계속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위에 강 하게 임하여 많은 사람들이 벅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분의 위엄이 임재하는 가운데 두려움과 감탄속에 조금 정신을 차리자마자 한 소리로 우리는 외쳤다. 오 하나님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은 우 리의 주 이십니다. 이러한 양 사건은 그의 목회사역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즉 설교의 내 용과 종교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고, 당시 영적 파산 상태에 처한 영국교회 를 구원할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의 원천을 체험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1739년에 처음으로 감리교 예배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이후 1751년에는 바질리 (Vazille) 부인과 결혼하였고, 1790년 10월 6일에는 최후로 야외 설 교를 하였으며, 향년 88세로 1791년 3월 2일 오전 10시 런던 씨크로드 주택 에서 서거하였다. B. 시대적 상황 18세기를 크게 특징 지운다면 첫째는 현저한 과학적 발전의 시대였다. 둘 째는 파국적인 정치적 변화의 시대였다. 세째는 문학과 철학적 성취의 시 대였다. 네째는 정신의 힘이 가장 심각하게 종교에 적용된 시기였다. 그러면 영국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 정치, 사회, 도덕적 상황과 종교 적 상황을 살펴 보고자 한다. 1. 정치, 사회, 도덕적 상황 이당시 영국의 정치적 상황은 의회정치와 왕정 복고의 변혁기를 맞이하여 혼돈, 무질서, 소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청교도들이 (Puritans) 일 어나 스튜잇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찰스 1세를 (Charles I, 1600-1649) 사 형에 처하고 공화국을 건설하여 약 10년간 통치를 했다. 이당시 청교도들 이 너무나 지나치게 엄격하여 아무 해도 없는 오락과 취미까지도 억제하였 다. 그러다가 다시 왕정이 복고되자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가 왕의 자리에 자 리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때처럼 타락하고 부패한 시기가 없었다. 그 원인 은 첫째가 왕실의 타락이요, 둘째는 청교도들의 지나친 엄격주의에 대한 반 발로 볼 수 있다. 그 결과로 극단의 향락주의가 만연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영국 사회의 사회적, 도덕적 상황을 보면 극장에서 상영되는 각본들 은 저속하고 음탕한 내용들로써 관람객의 풍기를 문란케 했는데, 이것은 가 정 불화의 요인이 되었고 이혼을 조장하는 등 영국 사회를 부패케하는 원인 이 되었다. 상류가정의 한가한 부인들은 소설읽는 품팔이를 고용하여 음 탕한 소설을 들으면서 소일하는 일이 많았다. 또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면 어디든지 도박장이 되어서 가산을 탕진하고, 도둑질, 자살, 가정불화, 가정파탄의 진원지가 되었다. 특히 군왕이나 대정치가들이 도박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음주 문제는 거리의 집들 가운데 1/4이 술집일 정도여서 그 피해는 악정과 전쟁의 피해 못지 않게 컸다. 국가의 도덕적 타락은 잔인하고 모욕적인 각종 경기로 나타났는데 닭 싸움, 거위타기, 개교미, 소 싸움, 소 놀리기 등... 그런데 이러한 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사소한 일로 격투와 폭행을 일삼는가 하면, 불량 청년들이 횡행하여 통행 인들을 괴롭히고 금품을 강탈하며 부녀자를 농락하곤 하였다. 웨슬레가 영국 사회를 "오늘의 영국 사회의 특징은 불경건이다" 라고 하였고, 역사 가 해롤드 니콜슨 (Harold Nicolson)도 18세기 영국 상황을 평가하길 "도덕 적으로 무질서한 시기였다" 라고 평가하였다. 2. 종교적 상황 영국 사회의 종교적 상황으로는 이성을 존중하는 이신론 (Deism) 사상이 종 교에 지배적이어서 기독교를 인간의 이성으로 부터 시작하는 종교로 변화시 켰다. 이신론의 대표적인 매튜 틴달 (Matthew Tindal)은 인간에게는 이 성이 긍극적 기준이다. 그러므로 이 이성이 곧 계시의 기초요, 신앙의 표 준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도 인간 사상의 또 하나의 집대성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이처럼 17,18세기의 종교가들은 계시와 이성의 조화로 시도하며, 위로부 터 임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의 가능성과 전통적인 초자연주의에 대하여 질문 을 제기하여 마침내 신앙을 이성에 예속시키는 일을 강조하였다. 왜냐하 면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자연법칙을 세웠고 인 간에게는 양심과 이성과 자유를 주어 자연이 법칙을 따라 운행하듯이 인간 도 양심을 따라 도덕률을 준수함으로 완전해 진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신앙은 영력을 잃어갔고 형식주의로 기울어 갔으며 지도자들은 아무런 종교적 열정이나 영감, 죄인을 구원하려는 뜨거운 구령열이 없었다. 나아가 상류사회는 종교에 대한 무용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으며 정치인들은 타락하였다. 종교인들 조차도 세속화되어 설교의 권위를 추락시켰고 경전 을 사문화시켰다. 이로 인하여 생명적 기독교가 희귀하게 되었다. 대 중은 기독교의 타당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하여 레키 (W. E. H. Lecky)가 논평한대로 종교적 권태가 영국을 뒤덮었던 것이다. 웨슬레는 이시대의 무력감에 대하여 "누가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는가 ? 누가 그들이 은총으로 성장할 것을 생각하는가 ? 누가 때때로 그들을 권 고하고 칭찬하는가 ? 누가 그들이 필요할 때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해 기 도했는가 ? ... 그러나 보라 !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 동서남북을 돌아보고 어느 교구의 이름을 대보라 !" 하면서 한탄하였다. 웨슬레는 자기 시대의 악과 종교적 무기력을 한탄하는 것으로 시간을 낭 비하지 않고, 18세기의 지적인 성격을 특징짓는 합리주의적이고 이신론적 철학에 직면한 기독교를 소생시키고, 그당시 영국에 있어서 현저하게 성행 했던 부도덕과 타락에 대한 정화를 가능케 하기 위하여 철저한 목회 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C. 웨슬레의 교회관 1. 교회의 본질 웨슬레는 신약성서주해에서 사도행전 5장 11절을 다음과 같이 주해하였다. 교회라는 말이 사도행전에 처음 나온다. 여기에 신약성서의 교회 원형을 비로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그들은 다 복음으로 부름을 받아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에게 접 붙임을 받았다. 여러 계급 사람들이 통일 되었고 사랑으로 생동하는 단체 가 되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즉음으로 엄격한 신도 신앙 생활의 지침 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웨슬레는 "교회에 관하여" (Of the Church)라는 그의 설교에서 말하 기를 교회라는 단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염려하면서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것같 이, 교회는 두세 신자가 함께 모이는 곳에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는 교회 는 제도나 의식이나 교권이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모인 회중 이라하여,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교회가 있다고 보 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숫자에 관계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가 모인 곳에 주님 이 계시기에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쓸때 그의 집안에 있는 교회 (몬 2) 라고 언급하였듯이 한 그리스도인의 가족이라도 교회라고 이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 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전체 이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함께 연합된 회중이다. 그러므로 넓 은 의미에서 교회는 우주적이다. 웨슬레는 "우주적 교회(the Catholic Universal Church)를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입게 한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서, 이들은 한 몸이며 한 성령에 의해 생명을 얻고 한 믿음과 한 소망 그리고 한 세례를 가지며 만민의 아버지 되시는 한 하나님 을 소유하여 결합된 하나님의 몸이다" 라고 하였다. 이처럼 웨슬레에게 있 어서 교회란 본질적으로 거듭난 성도의 모임 (Communion of Saints)인 것이 다. 2. 교회의 표적 (The Marks of the Church) 웨슬레는 영국 교회의 39개조 종교신조를 개정함에 있어서 교회에 관한 조 항 19조를 그대로 두었고, 19항을 13항으로 줄였을 뿐이다. 보이는 교회는 믿는 자들의 모임으로서, 거기서 그리스도의 규례를 따라 하 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적절하게 집행된다. 이 신조 자체는 종교 개혁 또는 고전적 개신교 전통이 내포되어 있으므로, 예를 들면 교회에 대한 정의에는 목회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나, 이 신조는 분명히 다양한 주장에 대하여 관용적이다. 콜린 윌리암즈 박사는 이 종 교신조가 의미하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지적하였다. 보이는 교회는 본질적인 것이다. 첫째 되는 것은 산신앙 (Living Faith) 인데, 사실상 이것 없이는 보이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교회가 전혀 존재할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결과적으로 이를 청취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할때 그 신앙은 쇠잔해지고 죽어 버린다. 세 째는 성례의 합 당한 집행, - 하나님의 신앙을 더하게 하시는 정상적 수단이다. 웨슬레의 주장은 말씀과 성례에 기존하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관련된 객관적 신성성이 신자들 속에 산 응답의 객관적 신성성을 초래하지 못한다면 교회 는 참으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세가지의 강조가 교회의 존재와 선교에 본질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함께 견지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 수다한 교회관 과 모이는 교회관이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 ? 경건성을 초래 고 산신 앙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성례와 설교에 관련될 것이다. 웨슬레의 해답은 교회속의 작은 교회 (ecclesiolae in ecclesia)의 개념, 곧 말씀 아래 살고 있고 세례를 받은 전체 회중 가운데서 규칙적 생활을 따 라 거룩함의 누룩이 되고자 하는 신자들의 임의적 소집단들의 개념을 사용 하는데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교회의 표적은 목회훈련의 근거로써 중요하다. 산신앙은 목회 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며, 순수한 말씀과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은 산신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목회훈련의 내용인 것이다. D. 웨슬레의 목회 훈련관 1. 목회의 계승 웨슬레는 1744년 실시한 제 1회 연회에서 목회의 임무는 무엇인가? 대하여 "하나님이 위탁하신 영혼을 돌보는 것" 이라고 하였다. 웨슬레는 목회를 하나님께서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위탁하신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웨슬레에게도 전통적인 목회의 개념이 있었던 것이다. 나아가 웨슬레는 목회의 계승을 정의함에 있어서 카톨릭의 수평적 견해와는 달리하고 있다. 그는 1761년 런던 {크로니클}지에 보낸 편지에서 개혁 교 회의 목회에 분명한 연속적 계승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개혁 교회에는 '하나님이 임명하시고 지원하시는 목사들과 교사들의 영구적 인 계승 (a perpetual succession)이 있다'. 따라서 개혁교회에는 하나님 이 임명하시고 또한 지원하시는 목사들과 교사들의 계승이 중단되지 않는 다. 그들은 죄인들을 하나님께로 개종시키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그들 을 임명하시고 지원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그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명칭이 그들에게 적합하다. 이 교사들은 처음 성자들에게 주어진 신앙 (the faith once delivered to the saints)을 모든 세대를 걸 쳐서 전달하는 특유한 계승자들이고, 그 회원들은 참 신자들이 모인 '하나 의 거룩한 집회' (the only society of true believers)와 더불어 진정한 정신적 교제를 나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전체 (the Whole people of God)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의 백성은 무시할 수 없는 일부분 이다. 여기서 목회의 계승은 말씀과 관련되어 정의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목회의 당위성이 엄연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웨슬레가 목회자라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며, 그 는 단순히 복음전도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 주장의 기본 개념 은 그는 교구를 갖지 못했고, 구체적인 목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러나 우리는 웨슬레가 교구를 갖지 못했음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서였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날더러 다른 교구에서는 이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말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는 현재로 내자신의 교구를 갖 고 있지 않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 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사람입니까 ? ... 이제 괴로운 마음으로 이 문제에 관한 나의 원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 는 온 세상을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내가 이세상의 어느 구석에 있더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합당하고 정당 하며 그것을 나의 본분으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는 하나님 께서 이 일을 위하여 나를 부르셨으며, 이 일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따른다 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웨슬레는 분명히 목회자였다. 그는 목사를 여전히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도구로 보았으며, 목사의 역할에 대하여 '목사에 대한 순종' (On Obedience to Pastors) 이라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목사들은 양 무리에 앞서가며 (이것은 오늘날까지 동양 목자들의 습관입니 다), 모든 진리와 성결의 길로 그들을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 원한 생명의 말씀으로 그들을 양육하며, 순전한 말씀의 젖으로 그들을 먹여 야 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교리에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들에게 그 안에 감추어진 모든 본질적인 교리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책망을 위하여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들이 바른 길에서 벗어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쳤다면, 그들을 경고해야 합니다. 바르게 하는데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들에게 그릇된 것을 어 떻게 수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하며, 평화의 길로 되돌아오도록 지 도해야 합니다. 의로 교육하기 위하여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즉 그 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외적인 성결을 성취할 때까지 그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웨슬레는 목사의 역할에 목회훈련이 있음을 명백하게 주장하였다. 사실 목사는 훈련되어진 사람이어야 하고, 또한 훈련시키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일 목사가 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 이고, 그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목사는 훈련시키는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한다. 왜냐하면 목사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훈련이란 신자의 삶을 말씀과 성례전으로 기인하는 능력이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 까지 미쳐 모든 진리와 성결의 길로 인도하도록 책 먕, 경고, 지도, 감독, 권면, 징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회훈련은 초대 교회에서 부터 존재하였다(갈 2:14 ; 고전 5:11-13). 린지(Lindsay, Thomas Martin 1843-1914)는 말하기를 "목회훈련은 초대교회의 신경(Nerve) 이었으며 교제와 수찬금지는 목회훈련의 신경과 같았다" 라고 하였다. 2. 교직제도 (Ministry) 교직제도에 있어서 웨슬레는 처음에 감독제도를 성경적이요, 사도적이라고 믿었으나, 스틸링플리트 (Stillingfleet)의 평화제의(Irenicon) 와 킹경 (Lord King)의 '초대교회에 관한 이해'(Account of the Primitive Church) 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부끄럽게 여겨 자신의 견해를 바꾸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교직에 관한 문제가 대두된 것은 그가 전도 사역을 위 하여 동생 찰스 (Charles Wesley)와 자신을 돕는 보조자를 뽑기 시작했을 때 부터 였다. 웨슬레가 임명한 평신도 설교자 (Lay Preacher)들은 대부 분 안수도 받지 않았는데 교회제도상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 하는 문 제였다. 또 미국에 감리교회가 생기게 되자 그곳에 감독과 목사를 임명하 고 안수하여 전도의 장으로 파송하였다. 이와같은 웨슬레의 일련의 행동 은 당시 영국 교회안에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웨슬레는 성경과 초대교회에서의 예를 들어 나름 대로 설명을 하였다. 그는 두 종류의 교직자가 있다고 보았다. 첫째는 설교하거나 전도하는 책임이 있는 교직자이고, 둘째는 교회를 다스리고 성 례전과 안수례를 집행하는 교직자이다. 전자는 특별한 전도자로서 제도적 인 통로가 아닌 좀더 직접적인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세워졌다고 보았으며, 후자는 목사 - 사제 (Pastors - Priests)로서 교회의 정상적이고도 기존화 된 제도적인 목회자로 보았다. 그리하여 웨슬레는 영국교회의 사제들은 목회나 성례전 그리고 안수례를 집행하는 권한을 갖는 교직자이고, 메소디스트의 전도자 - 설교자들은 설 교와 전도의 책임을 가진 교직자로 본 것이다. 이로 인하여 웨슬레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정규 목사들의 목회에 계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요청 하는 반면에, 평신도 보조자들은 참된 말씀을 조직함으로써 수직적인것과 수평적인 것을 함께 견지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교역자의 서열에 있어서 셋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셋은 감독 (Bishop)과 장로(Presbyters or Priests), 그리고 집사(Deacons)이다. 그 러나 감독과 장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본 질에 있어서는 두 서열로 보았다. 즉 성례전과 안수를 집행하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 (감독과 장로)와 그아래 서열의 교역자 (집사)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웨슬레는 교직제도는 모든 시대를 위해서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보았으며, 오히려 여러 다른 교직제도에 있어서 수없이 많은 다양 성이 있어온 것이 틀림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성경에서는 교직제도에 있어 어떠한 획일성이 없다고 하였다. 교직제도에 대하여 자유로운 태도를 견지한 웨슬레는 교직이 교회 또는 교 파에 따라 다종 다양할 것임을 인정했다. 왜냐하면 교회의 직책에 따라 그 수임자도 시대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그의 '교직자의 직무에 관하여'라는 설교에서 그가 항상 메소디스 트들을 사제 (Priests)로서가 아니라 예언자 (Prophets)로 임명했으며, "우 리는 그들이 성례전을 집행하지 않고 단지 설교만 하도록 용납했다." 라고 했다. 웨슬레는 어떤 댓가를 지불하든지 이 구분 만큼은 분명하게 하여 영구적인 것이 되게 하였다. 그는 일생 끝까지 메소디스트가 영국 교회와 분리된 한 종파로서가 아니라 영국교회내 성결의 누룩 (a leaven of holiness), 교 회안에 있는 작은 교회 (ecclesiolae in ecclesia)로 여전히 남아있게 하고 자 하였던 것이다. 웨슬레는 교회의 제도 및 교직에 대하여 상대적이며 실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웨슬레는 교직제도의 타당성을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사로 서 안수할 수 있는 이론적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세가지 교직제도 서열로써 문제에 대해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가시적 연속 성을 참으로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웨슬레는 자신이 목사나 감독 을 안수한 것에 대해서 두가지 근거를 들어 나름대로 정당화 시켰다. 첫째, 성서에서는 장로와 감독이 같은 것이므로 자기도 안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며, 둘째는 불가피한 필요성에 응한 것이라고 하였다. 즉, 교회의 제도나 법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고 이해한 웨슬레는 자신의 안수를 성서나 초대교회의 전통이나 또는 영국 교회의 교 리에도 일치될 수 있다고 하여 정당화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회가 복음을 널리 자유롭게 전파하는 것을 최상의 사명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에 순종하는 뜻에서 이를 정당화한 것이다. 웨슬레는 미국을 위한 자기의 안수가 '정당하나 변칙적'(valid but irregular)이라는 상징으로서 '감독' (Bishop)을 '감리사' (Superintendent)로, '장로' (Presbyter)를 '장로'(Elder)로 직함을 바꾸었 던 것이다. 웨슬레에 있어서 안수의 중요성을 콜린 윌리암즈박사는 다음과 같이 보았다. 웨슬레는 기계적 계승설을 용납하지 않는 반면에, 교회의 유기적 연속성 을 주장하였다. 웨슬레는 목회를 안수의 연속성의 상징으로 간주하였다. 웨슬레는 가시적 연속성 뿐만 아니라, 말씀과 교회의 선교의 연속성에도 관심을 두었다. 웨슬레가 확신한 것은 신약성서에는 제시된 '제도'가 없으므로 개혁교회 는 일개의 합법적 교회 (교회 전체가 아니라) 이지만 목회의 세가지 질서는 정상적인 것이었다는 것과, 연속성과 일치를 위하여 가급적이면 그것은 유 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웨슬레는 교역자의 서열에 있어서는 셋으로 구분하였 지만 본질적으로는 두 서열로 이해하였다. 즉, 성례전과 안수례를 집행하 는 권한을 위임받은 교역자 (감독과 장로)와 그 아래 서열의 교역자 (집사) 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시듯이 교직의 직분도 시대를 따라 다르게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그는 성서에는 어떤 결정적인 교회 정치제도를 주신 것이 없으며 따라서 일정한 형태를 주신것 도 없다고 하였다. 1836년에야 비로소 안수가 재개되었고, 그 세기 말엽 에 가서 감리교는 자체를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웨슬레는 18세기의 대부분을 산 사람으로 감 리교를 조직한 조직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의 집안에서 철저하게 교육 받았으며 그것이 훗날 목회훈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일생 에 있어서 1738년 5월 24일 중생의 체험과 1739년 1월 1일 성결의 체험은 그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웨슬레가 처해 있었던 시대는 정치적으로 혼란과 무질서, 사회.도덕적으로 불경건 시대였고, 종교적으로 이신론의 지배를 받았던 시대로 이로 인하여 신앙은 영력을 잃어갔고, 형식주의로 기울어졌으며, 종교 지도자들은 아무 런 종교적 열정이나 죄인을 구원하려는 뜨거운 구령열이 없었으니 실로 새 로운 갱신이 요청되는 시대였다. 웨슬레는 목회훈련의 장으로 교회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에게 있 어 교회란 본질적으로 거듭난 성도의 모임이며 교회의 표적은 산신앙, 순수 한 말씀, 그리고 성례의 올바른 집행이다. 웨슬레는 목회의 임무를 '하나님의 위탁하신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보았 고, 개혁교회에 분명한 목회의 연속적 계승이 있음을 피력하였다. 그는 목사를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도구로 보았으며 목사의 임무에 훈련이 있음 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교직자의 서열을 셋 (감독, 장로, 집사)으로 보았 으나 본질적으로는 두 서열(감독과 장로, 집사)로 이해함으로써 목회훈련의 길을 열어 놓았다. 이상으로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이해를 살펴보았고, 제 III 장에서는 목회훈 련의 조직과 내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III. 존 웨슬레의 목회훈련의 조직과 내용 웨슬레가 우룻에서 부목사 직에 있을 때 어떤 신도 한 사람이 그에게 "당 신이 ... 천국에 가려면 동지를 얻거나 그렇지 않으면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에 은둔적 신앙을 장려한 말씀은 하나도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는데 웨슬레의 머리 속에는 이 말이 언제나 떠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웨슬레는 실제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기독교인의 완전이라는 높은 수준도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 러므로 그의 교회에 대한 이해와 초기 메소디즘의 체험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 메소디스트 운동이 점차로 확장되고 신도가 증가됨에 따라 웨슬레는 영국교회에서 사용하던 신도회 (Society) 제도와 모라비아 교도들이 사용하 던 반회 제도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또한 웨슬레는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이었으며 일생을 설교로 살았고, 성례전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본 장에서는 웨슬레의 전도 (목회) 활동으로 형성된 연합신도회, 속회, 반 회,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그리고 연회의 조직과 성격을 살펴봄으로 웨슬 레의 목회훈련의 조직을 살펴보고, 목회훈련의 내용으로는 하나님 말씀과 성례전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A. 목회 훈련의 조직 1. 연합신도회 (The United Societies) 웨슬레는 영국사회의 성직자로 일생을 살기를 원했고, 또한 그렇게 살았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영국사회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새로운 교회나 교단을 만들 생각을 전혀 갖지 않았다. 그의 목회활 동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교구의 영국 국교회에 참석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원을 갈망하여 장래에 임할 진노를 피하고 진실 한 믿음을 간직하려는 이를 위하여 신도회 (Society)를 조직하기에 이르렀 다. 웨슬레는 신도회의 기원을 서술함에 있어서 "형식을 갖추고 성결한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서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모이고 권면의 말씀을 들으며 서로 사랑으로 돌봄으로써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돕는 다." 라고 하였다. 사실 웨슬레가 1739년 6월 11일 (월)자 일기에서 그의 확신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나의 원칙은 이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 되어지는 것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확신이 있으며,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하다면 어디라도 가야한다고 판단될 때 그곳에 가야한다는 확신입니다 ....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어디든지 부르시는 대로 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나의 확신입니다. 이와같은 확신과 신앙으로 그는 신도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신도회에 가입하는 유일한 조건은 "다가오는 진노에서 피하고 그들의 죄 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갈망"(To free from the wrath to came, to be saved from their sins) 이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영혼에 진실로 몰두되어야 하며 그 결실에 의해서 보여져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회원은 계속해 서 간구해야 하고 그들의 구원의 갈망을 계속 증거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웨슬레는 1743년 5월 1일 선포한 신도회 규칙에서 이의 설립에 대하여 다음 과 같이 기록하였으니, "1739년말 8-10명이 런던으로 나를 찾아와, 진노에 서 면하는 방법에 대한 권고를 위해 몇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요청하여 왔 고, 나는 매주 목요일 저녁에 모일 것을 정하였다." 라고 하였다. 이러 한 모임은 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그 수가 날마다 증가하였던 것이 다. 웨슬레는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규칙 (The Only Rule)과 충분한 규 칙 (The Sufficient Rule)으로 삼고 신도회의 총칙을 실행하도록 훈련시켰 다. 또 이 총칙을 습관적으로 범했을 경우 잘못을 타일렀고 그래도 회개 치 않으면 출회시켰다. 이 총칙은 그들의 일상생활의 구체적 상황과 관련 되어 있다. 그 조목들은 다음과 같다. 악을 행하지 말 것 실례로서, 웨슬레는 불경건한 말, 술취함, 밀수, 사치스런 옷, 불 필요한 낭비, 방종, 탐욕을 금하도록 하였다. 선을 행하라 특히 가난한 자, 병든 자, 실족한 자를 돌보아 주고, 믿음의 식구들에 대하 여 특별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가르침과 권고와 책망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규례에 참여하는 것 신도회에 속한 자들은 교회의 예전과 성례에 참여함으로써 전체 회중의 협 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웨슬레는 설교가 교회에서 저조함을 목격하고, 회원들은 신도회에서 말씀의 선교에 참여하고 거기서 기도하고 상호 격려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웨슬레는 복음 선전의 최선의 방법으로 신도 회를 활용하였다. "런던과 브리스톨과, 성 아이브스와 슈유카슬과, 그밖에 신도회가 있는 곳에서부터 점차로 조금씩 범위를 넓혀 전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적은 누 룩이 소리없이 점차로 큰 세력으로 퍼져나가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하 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늘 함께 하실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는 신도회 를 복음전파의 기지로 활용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신도회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신도회는 회심자를 훈련시키 기 위한 모임이었지, 다른 이유 즉 교회나 교단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으니 교회안에 있는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로 복음 선전의 최상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하며 영혼을 돌보고 격려하며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모인 것이다. 또한 성령의 증거를 통해서 진실한 믿음이 있음을 나타내어 사랑을 실천하며 선교를 돕고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레는 교구 교회가 예배중인 시간에는 신도회 모임을 허락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도회 회원들이 교구 교회 예배에 참여하는 것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만일 신도회에 가입한 신도들이 교회의 예 배 시간에 따로 모이면 그들과는 다시 상관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는 이 조직이 방대해지자 회심자를 속회와 개개인의 신앙 생활을 독려하 는 신앙 고백반인 반회로 나누었다. 속회가 연합신도회의 신앙 훈련적인 모임이라면 반회는 신앙 고백적인 모임이다. 속회가 연합신도회의핵심 조 직이라면 반회는 속회의 핵심 조직이다. 이것을 도표로 보면 다음과 같 다. (도표 1) (도표 1) +--------------------+ | 연 합 신 도 회 | +---------+----------+ +-------------------+-------------------+ +--------+-------+ +---------+-------+ | 신앙 훈련 모임 | | 신앙 고백적 모임| +--------+-------+ +---------+-------+ | | | | 속 회 +--------------------+ 반 회 | | 목 회 자 | | | | | | | | 순 회 설 교 자 | | 철 야 기 도 회 | | 애 찬 식 | | 평 신 도 보조자 | | | | | | 회 심 자 회 | 속 장 | 선 발 신 도 회 (새신자회) | | | | | 집 사 | | | | | | 회 원 포 교 부 | 병 자 심 방 인 | 참 회 자 반 (3개월 마다) | | | | | 교 사 | | | | | | 지도자의인도 | 회 원 | 개개인 스스로 +--------------------+ 2. 속 회 (Class Meeting) 웨슬레에게 있어서 속회의 기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을 속으로 나누어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돌 보게 하는 길밖에는 더 좋은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런던에서는 감리교의 속회의 기원이다. 여기에 대해서 내가 하나님께 충분히 감사드 릴 수 있는 길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 이 제도가 말할 수 없이 유용하 다고 하는 것은 그 후로 시간이 갈 수록 더욱 명백해졌다. 속회는 1742년 2월 15일 (월) 브리스톨 에서와 동년 3월 25일 (목) 런던에 서 처음으로 시작하였으며, 조직은 12명씩이 되었고, 매주 한번씩 목요 일에 모이도록 하였다. 1746에는 전 지역에서 메소디스트의 전형 (Patterns)이 되었다. 그리고 이 속회에는 전 감리회원이 조직되었으며 주거지역를 중심으로 지역과 회원들의 인접관계를 참고로 하여 조직 되었 다. 웨슬레는 이 속회가 감리회 전제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처럼 속회는 감리회 조직의 핵심일 뿐 아니라 새로 개종한 자를 위한 교회의 조직으로서 이상적인 것이었으며 신앙훈련의 모임이었다. 그러므 로 웨슬레는 작은 교회 (ecclesiolae)로 견지할 의도로 예언자적 직능과 제 사적 직능을 구별하도록 호소하였다. 웨슬레는 속회가 한 곳에 모이기 시작한 이유를 " 속장의 시간 허비 찾 아오는 것 싫어 하는 일 (집주인, 친척) 속장이 만나도 자유롭게 권면, 책망, 위로, 격려할 기회가 없음 찬반 의견을 한 데 모을 수 없음 친척 과 이웃 사이에 오해가 발생하므로 이를 풀기 위해 서로 대면이 필요하므 로 한곳에 모이기 시작하였다" 고 하였다. 속회원은 매주 한번 한 시간 정도로 저녁에 모여서 자신의 영적인 성장 상태에 대하여 말하고 특별한 필 요나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받거나 도움을 받았다. 또 한 그 운영을 보면 "필요한 때는 조언이나 책망을 받게 되었고 다투었던 일 을 화해하였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를 한 두 시간 하고 나서 기도와 감사로 결론을 맺었 다" 라고 하였다. 또한 속회원들은 일주일에 1페니, 세달에 1실링을 내도 록 되어 있었고 이것으로 가난한 자들을 돌보고 순회 전도자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도록 하였다. 웨슬레는 속회 회원들에게 조그만 티켓을 발행해 주었는데, 그 카드엔 그 사람의 이름과 날짜, 웨슬레나 메소디스트 설교자 한 사람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이것은 속회 회원증으로 이것을 가진 자는 애찬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신실치 못한 회원들은 그 다음 기회에 티켓을 새로 발급 받지 못 하고 결국은 애찬식에서 제외되었다. 속회의 회원이 되려는 사람의 자격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나 남녀 노소 구별없이 다 가능하였으나 신도회에 가입이 허락될 때 증서가 발급되 며 3개월의 예비 기간 후 마지막에 속장이 완전한 속회원의 자격을 자문 했다. 가입된 속회원은 속회에 규칙적인 출석을 이행해야 하였고, 만일 세 번 이상 연속 결석하면 자동으로 속회에서 추방되었다. 웨슬레는 속회원이 지켜야 할 규칙은 연합신도회 회원이 지켜야 할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미국의 속회 연구가인 데이빗 왓슨 박사 (David Lowes Watson)는 속회의 신 학적인 의미를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속회는 세상을 향해 증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인간 역사의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할당한 특별한 사역들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서 로를 격려할 수 있게하는 신통한 은혜의 수단이었다. 이와같이 속회는 그 신학적인 의미로 볼때에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역 할이 되었으며 동시에 이 은혜의 수단인 속회를 통하여 사람들을 회심시키 기도 하였다. 목회훈련적 측면에서 웨슬레가 속회 회원과 그 지도자들에게 부여한 지침들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회원 : 일주에 목요일 한번 모임 1. 가난한 자들의 생활을 보살피기 위하여 2.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3. 그들을 위로하고 충고하고 격려해 주기 위하여 (나) 속회지도자 (Leader) : 매주 한번씩 모임 1. 속회내의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영적 성장을 조사하고 기회 가 닿는 대로 충고하고 견책하고 위로하고 권고한다. 그들이 바치는 헌금 을 모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 2. 신도회에 교역자나 구역장을 만나서 병든 자나 생활이 흐트러진 자, 견책을 듣지 않는 자들에 대해 교역자에게 보고하고 전 주에 여러 속회 에서 받은 헌금을 전달한다. (다) 구원받기 위한 행동 지침 1.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있어서 악한 생각을 피한다. 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않는다. 나. 안식일에 사고 팔며 일하여 성일을 더럽히지 않는다. 다. 독한 술을 팔고 사지 않으며 마시지 않는다. 라. 말다툼을 피하고 법정에 고소하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마. 부정한 물품을 사고 팔지 않는다. 바. 고리로 돈을 빌려 주지 않는다. 사. 불경건한 농담을 하지 않는다. 2. 선한일을 행한다. 가. 기회가 있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되 특히 굶주 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며 환자나 죄수를 찾 아가서 도와준다. 나. 성결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잘못을 뉘우치게 하고 그들의 영 혼을 구원하도록 한다. 다. 이같은 일을 오래 참음과 꾸준한 노력으로 계속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매일 같이 진다. 3. 하나님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가. 공예배에 참석한다. 나. 설교를 들으며 다. 주의 만찬 (성만찬)에 참여 하며 라. 은밀히 기도하며 마. 성경을 보고 연구하며 바. 금식한다. (라) 경건 생활 지침 1. 기 도 가. 회개와 화해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가 ? 나.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개인 기도를 하는가 ? 다. 매일 아침 5시에 새벽 기도회를 드리는가 ? 2. 성서연구 가. 매일 일정한 분량을 계속적으로 읽는가 ? 나. 성경을 보기 전에 정기적으로 기도를 하는가 ? 다. 성경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려고 하는가 ? 라. 성경 연구를 치밀하게 하는가 ? 마. 시간을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성경을 연구 하는가 ? 3. 성 만 찬 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만찬에 참여 하는가 ? 나. 참석 전에 엄숙하고 진지한 기도를 드리는가 ? 다. 참여하면서 자기 몸을 바쳐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가 ? 4. 금 식 : 매주 금요일 마다 성경대로 금식하는가 ? 웨슬레가 속회 회원들을 철저히 훈련시키고자 하였음을 이와같은 지침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웨슬레는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각자 주일마다 방문하 는 교인들의 생활에 대해 유심히 관찰하여 보고해 줄 것을 당부하였고, 그 들은 지시대로 이행하였다. 그로인해 옳은 길을 가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 이 밝혀 졌다. 그 중 얼마는 가던 길에서 돌아서 회개했고 또 얼마는 우 리에게서 아주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경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이로인하여 웨슬레는 런던과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방법 을 실시하였다. 악한 자들이 색출되고 훈계받게 되었다. 만약 그들이 죄의 길을 끊어버린다면 다시 그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그러나 계속 그 길을 버리지 못하면 공개적으로 이름을 밝혔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위 해 슬퍼하며 기도하였다. 이와같이 웨슬레는 속회의 조직과 운영을 통하 여 목회 훈련을 실천해 나갔던 것이다. 3. 반 회 (The Bands) Band에 대한 번역은 대단히 다양하다. 송흥국씨는 소회라고 했고, 민 경배교수는 단이라고 번역하였으며, 노종해씨는 신도반이라고 번역하였으 나, 여기서는 반회라는 용어로 통일하고자 한다. 웨슬레는 속회 조직 이전에 1738년 페터레인회 (Fetter Lane Society) 조직 시부터 반회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모라비안 교도들의 조직에서 유래 한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모라비안 교도 조직에 있는 급장제를 채택하 지 않았다. 웨슬레가 급장제를 채용하지 않은 이유는 모라비안 교도들에 게 급장 (Moniters)이란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나 잘못을 범한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보고하고 그것을 권면하는 것이었다. 웨슬레가 이 제도를 폐지한 것은 이 일이 반회안에 있는 회원 상호간에 책임을 떨어뜨린 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반회는 남녀별, 기혼, 미혼별로 4개 반별로 6명 단위로 조직되었다. 반회 회원에게는 평균 3개월에 한번씩 반회 티켓이 발급되었다. 이 티켓 표면에는 'Band'나 'b'자가 표기되어 있고 속회 티켓과 같은 기능을 가지며 애찬식과 성찬예배 (Covenant Services)와 신도회 모임에도 참가할 수 있도 록 되어 있었다. 반회와 속회의 티켓이 발행된 수에 의하면 감리교 전체 회원이 속회 회 원인데 반하여 반회의 회원은 속회 회원 전체에 20%정도였다. 그리고 매 주 일회씩 남자반은 수요일 저녁에, 여자반은 일요일 저녁에 모였다. 웨슬 레는 반회 회원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목회 훈련을 시켰다. 1.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모임을 갖는다. 2.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지정된 시간에 정확히 모인다. 3. 참석자들은 정시에 찬송이나 기도로 시작한다. 4. 각자가 지난 번 모임 이후에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범해온 죄와 심령의 상태를 숨김없이 순서대로 말한다. 5. 참석한 개인의 상태에 적합한 기도를 드림으로 모임을 끝낸다. 6. 참석한 사람들 중 누군가가 먼저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한다면 그렇게 하고 다음에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죄와 심령의 상태와 및 유혹받은 것들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본다. 7. 매주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가. 지난 모임 이후에 어떤 죄를 범했는가 ? 나. 어떤 시험을 만났는가 ? 다.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 라.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는가 ? 그중에 죄인지 아닌지 의심나는 것은 어떤 것인가 ? 또한 웨슬레는 신도회의 가입 조건으로 내세웠던 것을 세분화하여 반회 회 원들에게 당신은 '세상을 이길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러므로 당신에게 아래의 사항은 무거운 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면서 다음 과 같은 규칙을 주었다. 1. 조심스럽게 악을 행하는 일을 피하라. 특히, 가. 주님의 날에는 무엇이든지 사거나 팔지 말라. 나.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면 어떤 술이든 먹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라. 다. 물건을 사고 파는 데 있어서 여러 말을 하지 말라 라. 아무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그런것들 중 아무것도 생명을 구할 수는 없다.
15장 : 최종적인 구원과 심판 준비 2006-07-19 17:41:45 read : 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본장의 개요 > 우리는 15장에서 유리 바닷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것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그리고 요한은 하늘의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았다고 했다. 이 이적은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재앙은 인류에 대한 마지막
15장 : 최종적인 구원과 심판 준비 2006-07-19 17:41:45 read : 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본장의 개요 > 우리는 15장에서 유리 바닷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은 누구이며 왜 이것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가? 그리고 요한은 하늘의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았다고 했다. 이 이적은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재앙은 인류에 대한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 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마쳐 진다. 이미 12장에서 예비처로 인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섯째 대접까지의 심판에서 유월 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인 일곱째 대접 재앙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 모습이 이곳에서 잠깐 보인다. < 본장의 분류 > 1 -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의 이적 2 - 4 최종적인 보호처의 모습 5 - 8 일곱 대접 심판 준비. < 본장의 강해 > 1절 :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1>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 . . 계시록엔 세 가지 이적을 보여 주고 있다. (1) 해 입은 여자의 이적 = 이것은 환난 날의 촛대 교회의 모습이다(12:1). (2) 붉은 용의 이적 = 사탄의 최종적 활동의 모습이다(12:3). (3)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을 가진 이적 =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의 모습. 2>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 . . 일곱째 나팔, 셋째 화를 말한다. 이 재앙은 또한 일곱 대접 심판으로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 이다. 3>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미치리로다 . .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이시기 때문에 이 진노로 하나님의 심판이 마쳐지게 된다(16:17.벧후 3:10). 2절 :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1> 또 내가 보니 . . . 최종적인 재앙과 함께 요한은 다른 계시를 또 보았다. 2>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 . . 이곳은 지구가 최후의 심판으로 불타고 있는 모습이 유리 바다에 비취고 있 는 모습이다(벧전 3;7,10). 이곳은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된 어느 장소를 말한다. 이곳에서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불 타는 지구의 모습이 마치 맑은 유리 바다에 비취어진 불꽃처럼 보인 것이다. 3>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아난 자들이 . . .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자들의 자격이 몇 가지로 나 와 있다. 공중휴거된 자들의 자격 a> 적 그리스도의 수를 이겼다 - 적 그리스도의 정체를 간파하여 그에게 신적인 경배를 하지 아니했다(13:1-17). b> 그 우상의 수를 이겼다 - 우상 앞에 경배치 아니했다(13:14,15) c> 그 이름의 수를 이겼다 - 666의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했다(14:9-11) d> 벗어났다 - 예비처로 인도 받았다. 공중으로 휴거됨. 4> 유리 바다 . . . 유리 바다란 성도들의 최종적인 보호처로 공중의 어느 장소를 의미한다. 최종적인 보호처는 공중 어느 것인가? a> 지구가 불로 태움을 받는 일곱째 대접 심판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의 지구에서의 탈출은 불가피하다. b> 공중이 반드시 하늘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폭발은 지구에서 가까운 하늘의 공간에서의 안전한 보호는 불가능하다. 공중이란 궁창을 말하며 그 궁창엔 수 천억 만개의 별들이 있다. 궁창엔 은하계 한 개에 태양 같은 항성이 무려 2천억 개 내지 6천억 개가 있으며 이런 은하계만도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수가 무려 500만개 이 상이 된다. c> 공중에 휴거된 성도들이 궁창 어느 곳에서의 잠정적 보호는 가능한 일이다. d> 그곳이 하늘의 어느 별 일수도 있다. e> 이곳에서의 체류 기간은? (단 12:11,12 ?). 공중휴거시 우리의 몸은 어떻게 되는가? ⓐ 변화체는 공중 휴거의 필요가 없다. 변화된 몸의 거주지는 공중인 것이 아니라 천국이다. ⓑ 공중 휴거의 이유는 천년왕국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다. ⓒ 천년왕국은 변화체가 사는 곳이 아니고 육체를 가진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다. (1) 천년간 죽음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사 66:20,21). (2) 농사를 짓는다는 증거(사 65:21). (3) 가정을 이룬다는 증거(사 65:23). (4) 마지막에 사탄의 유혹이 있다는 증거(20:8,9). ⓓ 과학의 힘으로도 달나라까지 왕복한 사실이 있는데 하나님의 권능으로 공중으로 올라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행 8;39). 5>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 . . 공중 휴거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 할 새로운 악기로 본다. 3절 :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 되시도다 4절 - 8절 (생략). 1>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 . . . 이 두 노래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세의 노래 = 홍해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노래(출15:1-8). 마지막 재앙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역 사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경우와 동일한데서 나온 말이다. 어린양의 노래 = 이 모든 구원이 오직 어린 양되신 그리스도의 피로 이긴 사실에 대한 노래, 둘 다 어린양에 영광을 돌 리는 노래다. 2>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 . . 성도들을 위한 최종적인 보호처와 그곳에서의 성도들의 모 습을 환상으로 본 요한이 이제 다른 계시를 보게 된다.
18장 : 큰 성 바벨론의 멸망 2006-07-19 17:42:46 read : 4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본장의 개요 > 인류의 종말인 후3년 반의 세계는 인류의 바벨론 사회이다. 바벨론으로부터 시작한 인류의 역사는 바벨론으로 망하므로 역사의 종결를 짓게 된다(단 2:31-45). 이미 온 세상이 짐승의 지배 아래 들어가 있으며 이 땅에 거하는 모든 인류는 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로 꽉 들어차 있다. 이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
18장 : 큰 성 바벨론의 멸망 2006-07-19 17:42:46 read : 4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본장의 개요 > 인류의 종말인 후3년 반의 세계는 인류의 바벨론 사회이다. 바벨론으로부터 시작한 인류의 역사는 바벨론으로 망하므로 역사의 종결를 짓게 된다(단 2:31-45). 이미 온 세상이 짐승의 지배 아래 들어가 있으며 이 땅에 거하는 모든 인류는 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로 꽉 들어차 있다. 이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한 천사가 외친 것이다. 인류의 마지막 바벨론 성은 하나님의 일곱째 대접 심판에 의하여 무너진 것이다. 이 바벨론의 최종적 심판의 모습이 계 16:17-21에 나와 있는데 18장은 음녀와 아울러 이 세상이 멸망당하는 셋째 화의 모습을, 화를 당하여 애곡하는 자들의 애가로 보여 주신다. < 본장의 분류 > 1 - 3 큰 성 바벨론에 대한 명망의 선언 4 - 하나님 백성들에 대한 경종 5 - 8 음녀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 9 - 11 왕들과 상고들의 애통하는 애가 12 - 14 사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한 상품들 15 - 19 상도들이 고난을 무서워하며 애통하는 애가 20 - 성도들의 기쁨 21 - 24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상. < 본장의 강해 > 1절 :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1> 이 일 후에 . . . 사도 요한이 17장의 계시를 본 이후를 말한다. 2> 큰 권세를 가졌는데 . . . 큰 권세를 가진 천사는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한다. (겔 43:2). 2절 :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1>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 . . 종교적으로 음녀화된 세상을 말한다. 바벨론이란 인간들이 자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쌓아 올리는 성으로 하나님 없이 경영되는 사회, 느브갓네살 왕의 상징 인물인 적 그리스도에 의하여 통치되는 종말 사회를 의미한다. 이 바벨론이 하나님에 의하여 이미 심판 받은 사실을 선언하고 있다(14:8). 2>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 . . 이 세상이 영적으로 완전히 더럽혀진 모습을 보여 준다. 이미 성령 은 이 세상에서 떠나셨고 긍휼이 없는 하나님의 심판만이 남았을 뿐이다. 귀신의 처소가 된 종말 사회 a>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 = 붉은 용과 그 사자들이 하늘에서 전부 내어 쫓겼다(계12:9). b>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 무저갱 속의 악령들도 다 올라왔다(9:2-3). c>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 온갖 더러운 범종교 세력들이 적 그리스도를 추앙하는 일에 하나가 된 다. 3절 :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또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1> 그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 . . 세상 나라가 심판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음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교회의 타락으로 세상이 더럽혀졌을 때 나타나신다. 2> 또 왕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 . . 땅의 통치자들도 음녀의 세력을 무시하지 못하며 그 세력을 등에 업고 있다 3> 땅의 상고들도 . . . 음녀화 된 세상은 사치와 음란과 방탕으로 망하는데 이 땅의 장사꾼들이 이들로 인하여 치부하게 된 사실을 말한다. 그들은 바벨론의 멸망을 애통하게 여겨 슬픈 애가를 부르게 된다(18:11). 4절 :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 . . 이 하늘의 음성은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을 의미한다(14:8). 요한에게 들려 온 하늘의 음성 a> 내 백성아 =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 b> 거기서 = 음녀의 조직에서, 세속화된 신앙생활에서(2:34 눅 21:34). c> 나와 = 그런 자리에서 단연 나와야 한다.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한다. d>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 결과적으로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에 그 곳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한다. e>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 그들은 결국 그들의 죄에 참여한 일로 인하여 셋째 화의 재앙을 받아 바벨론과 함 께 망한다(14:9-12). 5절 :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1>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 . 음녀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이 세상의 타락 된 죄악,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그의 심판을 내리셨다(창 6:5.5:16.18:20) 2>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 . . 하나님은 우리 입의 무익한 말까지 낱낱이 기억해 두신다.(마 12:36.말 3:16). 6절 :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1> 그가 준 그대로 . . .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심. 2>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 . . 하나님의 갚으심은 언제나 넘친다. 심판은 갑절로 축복은 30, 60, 100배, 이로 보 건대 하나님은 그의 심판에도 사실인즉 자비가 넘침을 알 수 있게 된다. 3> 그의 섞은 잔에도 . . . 음녀가 가진 음행의 포도주 잔, 그가 세상에 먹여 취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한 그 잔 속에 갑절의 보응으로 갚아 주시겠다는 경종이시다(2:22,23). 7절 :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 그가 . . . 음녀를 말한다.(여기서 음녀라고 할 때 대개의 경우 그 조직체의 상층부를 의미함). 2>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 . . 이미 그들은 적 그리스도와 짝하여 정치를 움직이는 특권층의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 에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있다. 3> 사치하였는지 . . . 사치로 세속화된 그들의 생활면을 말한다. 이들은 이처럼 주의 이름으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 며 사치와 방탕 생활에 젖어 있다. 그들의 생활에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은 없었다. 4>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 . . 그들이 사치하고 영광을 누린 만큼 고난과 애통의 보응으로 심판이 내려진다 (마 7;22,23). 5> 과부가 아니라 . . .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지는 아니했지만 음녀는 다른 신랑, 곧 적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있다는 뜻이다. 짐승이 음녀의 새로운 남편으로 등장하고 있다(17:3). 6>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 . . 짐승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거나 심판을 당하지 아니 할 것이란 자만으로 그들은 주의 재림이나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을 믿지 않고 있다(마 24:48-51). 8절 :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불에 갈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1>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 . . 하나님께서 갑자기 그들이 의뢰했던 짐승으로 하여금 하루 동안에 머리 위에 피 값을 갚게 하심(17:16). 2>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 . . 여기서 심판을 받는 대상은 음녀와 그의 음행의 포도주로 더럽혀진 이 세상을 함께 포함 한다. 이때는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 최 절정에 이르게 된다. 3>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 . . 음녀의 심판으로 이 세상이 불로 살라지기 직전 이들을 먼저 짐승에 의하여 불로 살 라지게 하신다. 9절 :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절 :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사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절 :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 . . 음녀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열락을 누리는 땅의 지배층들이 이 같은 심판을 바라보면서 (혹은 자신들이 당하면서) 애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 불붙는 연기를 보고 . . . 여기 불붙는 연기란 셋째 화로 인한 지구의 소멸의 모습입니다. 애통하고 있는 왕들도 실인 즉 그 불길 속에 포함되어 심판을 받고 있는데 객관적인 입장에 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애가를 부른다 3> 큰 음성, 견고한 성 바벨론 . . . 인간의 문화, 문명, 경제, 정치 등, 인간의 명예와 영광과 권위를 위하여 쌓은 도시로 결과적으로 그 영광이 짐승인 적 그리스도와 사탄을 위한 것이었다. 4>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 . . 땅의 장사꾼들도 이들처럼 애통하는 모습이다. 지구의 파멸로 인한 애통의 대상 으로 음녀, 왕들, 상고들로 나온다. 12절 :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항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13절 : 게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 그 상품은 금과 은과 . . . 이곳에 열거된 상품들은 종말에 세속화된 세상의 향락의 상품들을 의미한다(상고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던 상품들). 2>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 . . 어느 시대이건 인간이 값지게 여기는 보석류 3>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 . . 옷에 대한 사치품 4>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 등 등 . . . 고급 가구 재와 그릇 종류 5> 계피와 향료와 향과 유향과 . . . 호치스러운 생활에 따른 향품 종류들임. 6> 포도주 . . . 각종 술 종류 7> 감람유 . . . 각종 기름 종류 8> 고운 밀가루 밀 . . . 각종 양식 종류 9>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 . . 종들은 상류층들이 거느리고 있는 하인들이요, 사람의 영혼들이란 사람의 생명이 짐 승의 표에 의해 상품화되어 있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짐승의 표가 아니면 물건의 매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리 고 이 표를 받는 자는 그 영혼이 멸망 받게 되므로 상품으로 보았다(13:16,17). 14절 :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 네 영혼이 탐하던 과실이 . . . 이 과실이란 12,13절에 열거된 상품들이다. 2> 네게서 떠났으며 . . . 하나님의 심판으로 소멸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15절 :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절 : 가로되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절 : 그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 이 상품들의 상고들이 . . . 이 상품을 취급하여 치부한 장사꾼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소멸되는 지구의 멸망을 슬퍼 하면서 그 애가를 부르고 있다. 18절 :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9절 :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엣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1>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 . . 배로 상품을 운반하고 각국을 다니면서 장사하고 치부하고 있는 장사꾼들의 애통하는 모습인데 이들이 이 같은 상품의 무역으로 큰 재미를 보았었는데 이제 그들의 이런 소망이 영영히 끊어진 사 실에 대한 애가이다. 20절 :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하셨음이라 하더라. 1> 하늘과 . . .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를 말한다. 2>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 . . 선도들이란 일곱째 대접 심판 직전에 하늘 공중으로 휴거된 자들이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란 첫째 부활자들을 의미한다(6:10,11:10,10:4). 이들 은 공중 어느 곳에서인가 지상의 이 같은 심판을 바라 보면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과 어린 양되신 예수님께 영광과 찬양 을 돌리고 있을 것이다(15:2-4). 21절 :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1>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 . . 이 돌은 지구를 상징하는 돌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 지구가 다시는 일으킴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는 경종인데 이제 지나간 것은 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 22절 :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부는 자와 나팔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절 :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1>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부는 자와 나팔부는 자들의 . . . 지구의 파멸로 인해 인간 사회의 방종스러 운 즐거움이 사라진 모습을 보여 준다. a> 거문고 타는 자들의 소리 = 즐거운 노래로 인간을 기쁘게 해 준 자들. b> 풍류하는 자 = 음탕스런 노래로 퇴폐적 사회를 조성한 자들. c> 퉁소부는 자 = 나팔부는 자들. d> 세공업 자들 = 사치품 제조업자들. e> 맷돌 소리 = 가옥에 인기척이 없는 삭막한 모습의 표현. f> 등불 빛이 비취지 아니함 = 가정에 불빛이 없다. 사람이 살지 않으므로. g> 신랑과 신부의 음성 = 부부의 사랑과 즐거움도 사라져 버림. h> 네 복술을 인하여 = 음녀의 음행의 포도주가 담긴 잔으로 이로 인하여 심판을 받게 됐다는 뜻임. 24절 :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이 성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1>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빛 땅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 . . . 성도들의 피 값과 살인 으로 더렵혀진 이 세상의 심 판을 의미해 준다(마 23:35).
1996년 제 1 학기 신약사 개론-노재관 교수- 강의 노트
1996년 제 1 학기 신약사 개론-노재관 교수- 강의 노트 2002-11-11 17:00:26 read : 13 * 헤롯의 통치중의 로마의 상황 * : 동부의 군사권자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B.C36년에 결혼하자, 로마의 대권자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과 이미 결혼했던 바 있는 안토니우스였기 때문에 옥타비아누스와의 갈등이 파생됨(그러나 둘 사이의 갈등이 이러한 이유뿐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음). ⇒악티움 해전 : B.C. 31년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악티움에서 결전을 벌여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하자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로 도피하여 수 년후에 둘 다 자살함. 헤롯은 안토니우스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는데, 안토니우스가 패하고 옥타비아누스가 로마를 일통3하자 옥타비아누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계속해서 팔레스틴지역에 통치를 계속 유지함. #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은 "가이사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와 함께 황제의 자리를 줌. + 헤롯의 통치 + 제 1 기 : 조성기- 로마의 세력을 등에 엎고 권좌에 앉았으나, 집권과정에서 하스모니안가의 인물 들을 제거하여 많은 반대세력을 두게 됨. 반대세력 : 바리새인- 중산 대중들의 지지를 반는 무리, 헤롯이 이두매 계열의 "HALF JEWS"라는 것과 친로마파이기 때문에 반대함. 하스모니안 가문-헤롯의 장모 알렉산드라가 자기 아들 아리스토불루스를 제사장 의 자리에 앉힐 것을 요구하고난 후, 아리스토불루스가 익사한 체로 발견 되자, 알렉산드라는 헤롯을 의심하고, 이때부터 바바스때까지 계속해서 반대함 클레오파트라-알렉산드라의 문제로 인해 헤롯의 통체영역을 빼앗음. (후에 옥타비아누스에게 다시 보상받게 됨). 안티오고구스의 귀족들-헤롯이 로마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의 기득권을 빼앗아 갔 으므로. +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에게 반대한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행했다고 기록함-그러나요세푸스는 유대의 역사를 개조했을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 알렉산드라와 하스모니안 대표자들, 마리암네등(아들까지도) 음모죄로 처형시킴 제 2 기 : 번영기-가이사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운동경기를 개최함, 건축 사업(극장, 원형 경기 장)→율법을 어기는 것이 많고, 로마의 문화를 유대 사회에 도입함. * 예루살렘 성전 건축:B.C. 20년(혹은 19년)부터 A.D. 63년까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유대 사회에서는 유대인으로, 유대밖에서는 이방인의 율례대로 살았음. 사마리아성 재건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사바스테 "Sabaste " 라고 칭함. - 세금 감면 제 3 기 : 10명의 아내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가정의 문제가 복잡함. 도리스에게 안티파터라는 아들을 얻었으나, 마리암네와 결혼하기 위해 두 모녀를 추방함. 마리암네에게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루스를 낳고, 마리암네2세와 결혼했으며, 네 번째로 말테스와 결혼해서 아켈라오와 안티파스를 낳음. ⇒ 마리암네의 두 아들을 헤롯이 사랑하여 후계자로 칭했는데, (아마도) 안티파터의 모략으로 두 아들을 처형함, 그 후 안티파터가 후계자 자리를 계승했으나 안티파터도 역시 처형됨.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에게서 필립을 낳아 아켈라오, 안티파스, 필립에게 유대를 분할하여 다스리게 함. + 헤롯의 유언 : 사망 5일 전에 여섯 번째로 유언을 변경함. 아켈라오는 최후의 유언이므로 존중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고, 안티파스는 헤롯의 정신상태를 지적하여 거부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여둘 사이의 갈등이 있음. → 아우구스투스는 헤롯의 유언을 인준하면서 아켈라오에게 "분봉왕"칭호를 사용하도록 제한함. +아켈라오의 통치+ B.C. 4- A.D. 6년까지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다스림. - 아켈라오의 어머니 말테스는 사마리아인, B.C. 22년 경에 출생한 것으로 생각됨. : 가이사가 유언을 인준할 당시 조건은 아켈라오가 사려깊게 통치할 경우 "왕"의 칭호를 하사할 것을 약속했으나, 아켈라오의 통치 초기부터 이것은 어렵게 되었다. - 유월절 당시의 폭동으로 3천명 정도의 시민을 살해 - 인준받은 후에도 폭동이 자주 일어나 그의 통치력에 문제의식이 대두됨. - 왕위 취임 후 조아자르라는 제사장을 폐하고 엘리아살과 예수를 번갈아 제위시켰다가 폐위함. ▷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됨 - 알렉산더(이복 형제)의 아내를 빼앗아 결혼하고 자기 아내를 버림-유대인들의 반감을 삼. - 성전 수리, 예루살렘 숲을 위해 관수로 공사 등의 건축을 행함 : 건축사업에 능함. - 유대인을 잔인하게 다스림 : B.C. 4년부터 9년까지 강압적인 통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아켈라오를 탄핵하기 위해 로마로 감. 무역로의 평화가 깨어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A.D. 6년 아켈라오를 프랑스로 추방함, 유대는 로마의 속령으로 총독의 통치를 받음. +필립의 통치+ : B.C. 4년부터 A.D. 34년까지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요세푸스는 필립이 다스린 영토가 넓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눅3:1에는 이두매와 드라고니밖에 소개되지 않는다. 필립의 통치 영역은 헬라인과 사마리아인의 거주지역이었다. * 판네아스의 해안 도시 건설 : 갈릴리 북쪽에 건설.. 많은 이방인들이 이주, 예루살렘 멸망이후 유 (가이사랴 빌립보) 대인들도 이곳으로 이주하였고, 산헤드린 공회도 이곳으로 이주함. * 벳새다를 증축함 : 필립이 로마화된 도시로 " Police " 라는 이름을 붙인 큰 도시였다. 로마 횡제 의 딸을 기리기 위해 "줄리아"라고 칭함. 안드레, 빌립등이 이 지역 출신, 예수 님 당시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지는 않았다. → 필립은 야망이 없었고, 정치를 잘 한 것으로 평가되었고, 백성들의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결혼했지만 자녀없이 34년에 죽었고, 이후에 3년동안 필립의 통치 구역은 시리아가 통치하다가 37년에 다시 유대인에게로 넘어 오게 된다. + 헤롯 안티파스 1세 + : B.C 4-A.D. 39년 까지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을 다스림, 세례 요한과 예수님, 제자들의 활동 무대였다. 분봉왕의 칭호를 받았는데, 누가와 요세푸스를 제외한 마태, 마가는 "왕"의 칭호를 사용함. * 세포리스(Sepporis) : 갈릴리의 가장 큰 도시로써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이 공사에 사역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그 목수의 아들 " , 주로 이방인이 거주했다. *디베랴 건설 : 원래는 공동 묘지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불결한 장소로 취급, 사람들이 이주하지 않았지만, 면세혜택 등으로 인구를 유치함. 후에 유대인들도 이주하여 학교를 건설함. ⇒ Nabtian 의 공주와 결혼(나바티안은 B.C. 9-A.D. 49까지 아레타스 4세가 다스림) 로마가 나바티안 왕국의 견제(페르시아에 대한)를 위해 안티파스와 나바티안의 공주를 정략적 으로 결혼시킴. 안티파스가 로마로 가던 중 헤롯 빌립(마리암네의 아들)의 집에 들린 동안 헤로디아에게 반해 전처와 이혼, 아레타스의 딸이 이것을 미리 알고 아버지의 왕국으로 도망감. - 세례 요한과의 반목(모세의 율법에 위배됨), *levirate:예외적,형제가 무자하게 죽었을 경우. * 안티파스와 세례 요한, 예수님과의 관계 :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의 부활로 여겼고,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충돌하지 않음.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지만 예수님이 이를 회피한 것으로 복음서는 보도함, 눅13장에서는 안티파스가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 있다.(주님 죽기 전에 대면하기도 함). - 나바티안이 갈릴리를 침공해서 대패했을 때,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한 심판으로 이해함, 갈리굴라가 즉위하고 아그립바1세에게 빌립의 영토를 주어 다스리게 했는데, "왕"의 칭호를 주자 39년에 아그립바가 안티파스의 영토까지 다스리게 됨. <로마의 총독 정치(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A.D. 6-41> : 아켈라오 이후 구레니우스(시리아 총독)가 인구조사(A.D. 6:인구 조사가 2회 있었을 가능성), 세금 징수 등을 실행(구레뇨와 예수님의 출생 관계). 1. A.D. 6-9 코포나우스: 대제사장들의 법의를 보관-유대사회의 순종을 요구 코포니우스의 제임 기간중의 유월절에 사마리아인들이 사람의 뼈를 성전 에 뿌려서 성전을 모독했다는 기록이 있다. - 유대인들이 로마의 통치에 반감을 가짐 2. 암비불루스 총독 - 자료가 없음 3. 루푸스(A.D. 12~15) : 아우구스투스가 14년에 사망하고 티베리우스가 황제로 재임하는 기간동안에 다스림. 4. 그라투스( Gratus : A.D. 15~26 ) : 디베리우스가 루포스를 해임하고 그라투스를 그 자리에 임명 그라투스는 제사장을 자주 교체시켰으며-안나스를 해임시키고 가야바를 임명 하는 등- 유대인들의 반감을 삼. 5. 포티우스 빌라도 : 예수님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빌라도의 보고서"에 기록됨. 필로에 의하면 근위대 사령관 세자누스의 지지와 후원을 받는 사람인데, 세 자누스는 반 유대주의 감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임. 빌라도는 세자누스에 의해 발탁되어 반 유대주의를 이어 받았다(요세푸스와 필로), 황제의 형상을 세긴 군기를 앞세우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려고 하다가 유대인의 반감을 삼, - 가이사랴에 머무는 동안 빌라도에게 유대인들이 찾아 가 시위하며 폭동을 일으킬 징조를 보이자 빌라도가 이 사건을 철회함.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수도공사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빌라도는 이러한 공사의 경비를 성직자들에게 요구하였는데, 거절당하자 성전의 궤를 도적질하여 가져 감. * A.D. 36년 :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궤를 그리심산에 두었다고 말하며 메시야적인 발언으로 백성들을 소동시키자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빌라도가기병대를 파병하여 그 무리를 쳐서 강제해산시켰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사마리아사람들이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에게 탄원을 내어 황 제의 소환으로 로마로 갔다가 빌라도는 복직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자유정책을 지지함, 필로는 헤롯대왕의 궁전에 황제의 상을 새긴 금방패를 세웠다가 후에 아우구스투스성에 맡겼다 고 한다. * 티베리우스는 세자누스의 정책을 반대하였고, 정치적으로 유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 유익한 것으로 여겼다. 빌라도가 티베리우스의 소환명을 받아 로마에 도착하기 하루전에 황제가 죽고, 그 이후에는 빌라도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고 단지 구전만이 전해진다. 6. 마르셀루스 : 약 1년을 다스렸으나 별다른 치적이 없다. 7. 마룰루스 : 티베리우스 사후 갈리오(갈리굴라)가 황제가 되어 마룰루스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 (37~41) 갈리굴라는 취임처음에는 좋은 정치를 펼쳤으나 병을 앓고 난 후에는 난폭해짐. 마룰루스는 특별한 치적이 없음. 제1차 유대 총독정치의 마지막 제위 총독임.
19세기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에 관한 연구
19세기 독일의 사회적 개신교에 관한 연구 2002-03-20 08:58:08 read : 5 출처/www.church4u.org 백 용 기 강남대학교 신학과 교회사 조교수 들어가는 말 신학의 직무 중 중요한 것은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일이다. 특히 역사의 미래의 방향과 삶의 가치관이 불확실할 때 신학은 그 시대 자기 존재의 의의를 분명히 들어내게 된다. 오늘날 한국 사회, 보다 넓게 말해서 전 지구적으로 퍼져있는 신자유주의 삶의 질서는 과연 우리에게 보다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며, 더불어 사는 인류 공동체를 담보해 주고 있는가? 역사 속의 어떠한 경험적 사실도 도대체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활로에 암시를 주지 못하는가? 교회와 신학의 어떠한 가르침도 미래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가? 소위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원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사회 체제의 원리 중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인가? 이 삶의 원리는 성서와 교회가 가르쳐온 인간 삶의 질서에 가장 근접한 것인가? 만일 이러한 물음에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신학과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 경험 속에서, 그리고 성서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에 비추어서 새로운 삶의 가치질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논문은 독일의 19세기 사회와 기독교의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여, 한국 기독교의 과제의 전망에 도움을 제공하고자 한다. 독일의 사회적 기독교는 기독교와 교회가 어떠한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며, 이러한 과제를 신학적으로 해명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활동을 통해서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기독교는 자율성과 평등의 기치 아래 함께 사는 세상을 목표로 하며,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 노력하였다. 오늘날 사회적 기독교의 전통은 다양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사회적 공간의 확장 속에서 망명자를 위한 활동, 부패에 대한 투쟁, 외국인 노동자의 지원, 제3세계의 원조, 왜곡된 사회구조, 불공평한 세계질서, 독재와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저항운동, 민주주의와 책임적인 복지 활동, 소득분배와 자유 등,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를 개척하고 있다. 사실 사회적 기독교는 초대교회 이후에 망각되었던 이웃 세계에 대한 관심의 재생이다. 1. 산업화 과정과 사회문제 1. 1. 산업화 과정 근대의 사회 경제적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소위 "산업 혁명"이다.(Brakelmann, soziale Frage, 13) 이 혁명은 18세기말부터 19세기의 초에 걸쳐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과정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시기에 많은 농민들이 도시의 부랑노동자로 전락하였고,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방황하기 시작하였으며, 산업혁명에 의한 공업화는 노동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Greschat, Das Zeitalter, 27) 이런 초기 산업혁명의 특징인 공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빈민이나 고아원 출신, 또는 강제 노동소나 교도소 출신들이었다. 이들을 사회는 인간의 노동을 교육하는 학교로 보았다. 이 시기의 노동관계는 긴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이 특징인데, 이 사실 뒤에 부지런함을 칭찬하며 태만한 생활을 비난하는 개신교적-청교도적인 견해가 숨겨져 있다. 이 새로운 정신의 분위기는 공공 생활의 전 사고를 지배하게 되었고, 개인의 이해를 신성시하였으며, 이것은 곧 낡은 사회적 결합을 파괴하였다. 새로운 경제 정서를 담지한 계층은 의회의 입법을 통해서 그들의 관심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는데, 이것은 자유주의적인 입법화의 시대이다. 이 새로운 경제 정서와 경제 실천을 추진하는 자들은 경제적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며, 절약과 강력한 경제 활동을 하나님에 대한 봉사의 형태로 파악하는 개신교적 자유교회에 소속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혁명에 앞서 정신적인 방향의 전환이 없이는 기계가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계몽과 자유주의이다. 이 정신은 경제적 자유의 의미인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연결되며, 이 정신은 정치적 중상주의와 반대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국가의 규제반대, 개인의 경제적 자유, 경쟁의 자유, 계약자유의 원리 등의 사고구조를 갖는다.(Brakelmann, soziale Frage, 20 이하) 그러나 후발 산업국가로서의 독일은 자유주의적인 정서가 지극히 나약하였는데, 이것은 자유주의가 이념적으로 개인에 대한 사회적 보호의 정신이 강하기 때문이며, 또한 여기에 기독교 사회사상과 전통적인 독일의 가부장적인 가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Rimlinger, 107 이하) 그러나 독일 자유주의는 19세기의 5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기에 만개되었다. 이것은 급격한 경제성장에 대한 낙관과 프러시아 중심의 독일통일에 의해서 고양되었으며,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은 독일을 경제적 보호주의로부터 벗어나게 하였다.(Rimlinger, 120 이하) 독일의 산업은 70년대와 80년대에 처음으로 영국의 발전과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증가와 함께 집중화 과정이 연결되어, 밀접한 공간에 거대한 공장이 집중하였다. 여기에는 교통, 특히 철로와 배의 길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또한 금융기관을 통해 산업국가에 필요한 거대한 자본이 조달되었다.(Seraphim, 122 이하) 1. 2. 사회문제 사회 문제는 이 시기에 넓은 의미로 "산업화를 통해서 일어난 인간 실존의 모든 위기"이며, 좁은 의미로는 이러한 위기에서 임금노동자들이 심하게 겪는 계급의 사회문제이며, 19세기 노동자의 문제이며, 제4 신분의 현존 사회체계로의 통합이며, 그리고 이것과는 분리될 수 없는데, 이러한 노동자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이념과 조치들이며, 제국 탄생 10년 전에 이것에 대한 상위개념 "사회정책"이 형성되었다.(Schick, 4) 초기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자들의 사회적 상황은 극히 비인간적이었다. 공장 내의 위생시설은 전혀 없었으며, 육체적 상태는 파멸이었고, 45세가 되면 쓸모가 없었다. 노동시간은 12시간에서 16시간이며 여성과 아동도 힘겹게 공장에서 학대되었다. 대부분 노동자는 방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거상태는 엉망이었다. 노동자들의 비참함은 가정과 고향의 옛날 관계가 파괴됨으로써 심화되고 사회로부터 배제됨으로써 더욱 증폭되었다. 사회적 퇴화의 감정은 노동자들의 정신에 빈곤 그 자체처럼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후반기에 완전한 무산화가 이루어졌으며, 이제 처음으로 옛 사회 질서에 위협을 주는 새로운 계급에 관해서 말해 진다. 경영의 집중과 대 경영으로의 발전은 의존된 임금 노동 계급을 출현하는 전제가 되었다. 이제 처음으로 노동자들은 주변 인물이었던 사회에서 자신의 경제적 중요성에 따라서 점점 사회적-정치적인 삶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이전의 경영자들이 오랜 노동시간과 낮은 임금을 통해서 이익을 얻었다면, 이제 경영은 기계화를 통해서 보다 높은 임금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가져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어떠한 법적 보호도 아직 받지 못하고 있었으며, 병들거나 노후에는 대부분 빈민 구호소로 보내진다. 노동자들은 완전히 불안한 실존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단순한 노동력과 일반적인 경제적인 시장 상황에 의존되어 있다. 사고와 실업이 항상 그들을 덮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로 자신을 누르는 낯선 힘들을 느끼고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경영의 한 구성요소지만, 사회적으로는 시민 사회의 주변부의 최하층에 속하며, 정치적인 책임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배제되었다는 감정과 절망감이 무산자를 지배하였다. 이제 시민-자본적인 체계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력이 탄생되었으며, 경제적인 의존성과 사회적인 중요성의 상실 그리고 정치적인 미성년 의식에서 무산자의 해방 투쟁에 들어섰다.(Brakelmann, soziale Frage, 40 이하) 1. 3. 노동운동 독일의 초기 사회주의는 1848년의 혁명기간과 그 이전에 적지 않는 정치적 역할을 한 프랑스의 초기 사회주의와 반대로 그 시대의 정치적 사건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단지 이념으로써만 존재하며, 재단공인 바이트링(Wilhelm Weitling: 1808-1871)과 유대출신 지식인 헤스(Moses Hess: 1812-1875)를 통해서 대변된다. 바이트링은 독일 하녀와 프랑스 장교의 결혼하지 않는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파리에서 독일의 비밀 단체인 "의인 동맹"을 결성하였으며, 현대적인 선동가와 직업 혁명가의 타입이다. 그는 엄격한 도덕적인 척도에 의해서 사는 공산주의적인 노동자 교육연맹을 세웠다. 그에 의하면 화폐가 사회를 탈 도덕화 시킨다. 타락한 사회에 대한 피의 심판으로써 재난이 있으며, 이후에 무산자의 독재가 뒤따르고, 그 다음에 조화, 사랑과 자유로 가득찬 새로운 공산주의적인 인류의 왕국이 열린다. 공산주의적인 인류의 원형은 바이트링에 의하면 나자렛의 예수다. 그의 책 "가난한 죄인들의 복음"(1844)에서 그는 예수의 삶의 원칙을 자유와 평등의 것으로 보았다. 그는 가정을 부정하였으며, 사회적 전쟁을 설교하였으며 그리고 소유에 대하여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았다. 바이트링은 매우 강력하게 사랑과 기독교적인 신앙을 얻고자 노력하였다.(Grebing, 26 이하) 맑스(Karl Heinrich Marx)는 1818년 유대 출신의 변호사의 아들로 트리어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는 1817년 직업 때문에 개신교로 옮겼으며, 자녀들도 세례를 받게 하였다. 고등학교 자격을 마친 후 그는 1835년 본 대학에 법학도로서 입학하였으나, 그 다음 해에 베를린에서 역사와 철학에 몰두하였다. 1841년 그는 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맑스는 본 대학 교수직 응시에서 반동시기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탈락한 후, 1842년 자유주의적인 좌파 신문인 쾰른의 라인 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나 민주적인 개혁을 위한 날카로운 비판 때문에 퇴직당하였다. 그는 결혼을 한 후, 파리에서 푸르동을 알게 되었으며, 시인 하이네와 만났고 무엇보다 여기서 엥겔스(Friedrich Engels)와 삶에 대한 우정을 쌓았다. 그는 금지된 노동자 모임의 참석 때문에 파리에서 추방당해 브뤼셀에 정착하여, "독일 이데올로기"를 저술하였다. 그는 런던에서 "공산주의자 연맹"에 가입하였다. 이 연맹의 위임을 받아 공산당 선언을 1848년 2월에 출판했다. 같은 해에 푸르동에 대항하여 "철학의 빈곤"을 저술하였다. 공산당 선언은 젊은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철학적 국민경제사상의 요약이며, 여기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결과를 끌어내었다. 그는 영국 런던에서 생애 마지막까지 역사적이고 국민경제적인 연구에 헌신하였다. 그는 중단없이 박물관에서 일하였으나, 그의 가족은 엥겔스의 도움에 의지하여 가난한 상태로 살았다. 1848년 혁명이 일어나기 전 런던에서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것은 맑스가 이미 40년대 초부터 생각해온 것이었다. 공산당 선언의 첫머리에 "이제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고 시작한다. 사회적 상황의 발전을 맑스는 계급투쟁의 결과로 보았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과 국민경제학 비판에서 무산자의 인간상실을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상실로 전개시켜 나간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인간소외를 가져오는 사유재산을 파기하고 인간을 통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존재를 현실적으로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자체가 역사의 긍극적 목표가 아니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단지 현상황을 파기하는 현실적 운동일 뿐이다. 새로운 미래는 비밀로 남겨져 있다.(Grebing, 28) 정치적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라살레(Ferdinand Johann Gottlieb Lassalle: 1825-1864)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1825년 부유한 유대출신의 비단 장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마친 후 베를린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공부하였으며, 파리 여행 중에 시인 하이네를 만났으며, 중요한 정치적 희망을 갖게 되었다. 1848년에 맑스를 사귀었고, 혁명 후 그는 체포되어 베를린에 1857년까지 수용되었다. 그후 개인교사로서 조용하게 보내는 동안 철학적이고 법률적인 논문을 서술하였다. 맑스와 그의 관계는 유지되었으나 성격 차이로 결코 더욱 가까워질 수 없었다. 1862년 초부터 1864년까지 그는 독일 노동운동에 헌신하였다.(Grebing, 50 이하) 라살레는 당시 독일의 공공 삶과 사고를 지배하는 자유주의에 공격의 화살을 당겼다. 진보 정당과 다른 "사회적 개혁"에 대립해서 임금노동자의 정치적 정당결성을 통하여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였다. 노동자 계급의 조직된 정치적 힘을 통해서만 자유와 모든 평등의 이념이 실현되어야 한다. 정치적 해방의 첫 수단은 보통 선거권과 평등 선거권이며, 이 선거권의 도움으로 국민은 국가를 세울 수 있다. 국가에 의해서 노동자 계급을 지배하는 잔인한 노임철칙으로부터 해방시킨다. 한 민족 안에서 생존을 연맹하고 번식에 필수적인 생활필수품에 대한 평균노동임금으로의 제한은 잔인한 법칙이며, 이것에서 해방되는 길은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고유한 경영으로 나아갈 때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그는 노동자의 자발적인 회사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았다. 그는 합리적 정치의 힘으로 시민 자본주의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하였다.(Brakelmann, soziale Frage, 87 이하) 모든 노동 운동의 시작들은 50년대의 반동기의 경찰조치에 의해서 거의 완전히 파멸되었다. 60년대 처음으로 사회주의 노동당 출현과 관련해서 역시 노동조합 운동이 새로운 부흥을 하였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작센 주정부는 1861년 노동자들에게 동맹의 자유를 주었다. 그리고 1869년 북부 독일 연맹을 통해서 일반 영업자유의 허가와 관련해서 역시 노동자들에게 동맹권을 인정되었다. 사회 지배계층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노조운동은 진보하였다. 그것은 이제 지역 연맹을 넘어서 국가 영역의 거대한 연맹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사회주의자 법을 통해서 갑자기 정지되어, 중앙연맹은 해체되고, 문헌은 금지되었으며, 많은 지도자들이 체포되거나 혹은 추방당했다. 그래서 노조 역시 지하에서 작업하도록 강요받았다. 1890년 사회주의법 폐지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작이며, 자유 노조의 전체운동을 위한 "독일 노동조합 총위원회"가 창립되었다. 본래의 노조운동을 노동계급의 대중 조직으로써 가능하게 하는 이 조직은, 현존하는 국가와 경제의 중앙 중심주의에 대해 강력히 대항하는 데 필수적이 되었다. 노조는 직업에 따라서 조직되었고, 전 제국 위에 중심적으로 조직되었다. 모든 개별 연맹은 총위원회 안에 집중되었다.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중앙연맹이 그들의 행동에서 완전한 주권을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 지도부는 노조의 전체 이해를 위해 연대적인 공동작업을 한다. 자유 노조는 90년대에서 제1차 대전까지 강력한 부흥을 이루었다. 노동조합은 1890년에서 1914년까지 큰 업적을 이루었는데, 임금수준이 증가하고, 사회 안전망이 건설되고, 국가의 입법에서 노동계급의 중요성이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덕분이다. 노조는 실질적으로 여러 방법으로 노동하는 국민을 변호하였다.(Brakelmann, soziale Frage, 100 이하) 2. 사회적 개신교 운동 기독교 교회는 모든 시대에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을 그들의 과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돌보는 행위는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과된 이웃사랑에 놓여 있다. 동시에 사람들은 이러한 가난을 개인적 운명(불행이나 개인적 죄, 질병)이거나, 혹은 구원받지 못한 시대의 불완전의 표지라고 보았다. 또 이러한 기독교적인 사랑을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상태와 결합시키고, 또 나아가서 이 결합을 신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욱 먼일이었다. 여하튼 19세기초에 활동한 자선적인 노력들이 새로운 과제를 이해하기 시작하였으며, 강력한 목회적인 추동력은 경건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Kupisch, 95)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사회적 개혁 행동의 필연성은 빌헬름 시대와 함께 증가하였다. 이미 본질적으로 교회 안에서, 정치 그리고 사회에서 초기에 존재한 사회적 실험들과는 달리, 빌헬름 2세의 정부 진입과 비스마르크 시대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다는 감정이 보다 확대되었다.(Kaiser, 94) 사실 빌헬름 2세의 정부 진입 이전에 그의 새로운 사회정치적 입장이 보였는데, 빌헬름 1세가 궁중설교가 아돌프 스퇴커의 정치적 선동에 화를 내며 갈라지고자 했을 때, 빌헬름 왕자는 스퇴커를 위해서 개입하였고, 궁중설교가로 그렇게 지내도록 그의 할아버지를 움직였었다.(Besier, 111) 2. 1. 사회적 개신교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근대의 개신교를 일반적으로 신개신교라 칭한다. 이 시대 개신교의 배경이 되는 사상적 흐름은 르네상스, 인문주의, 계몽주의, 독일 관념론 등이며, 특히 자유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이고 주관주의적인 특성이 강하다.(백용기, 106) 이 근대 이후를 특징짓는 개신교를 소위 "문화 개신교"라고도 하는데, 이 용어의 창시자는 알 수가 없다. 신개신교 또는 문화적 개신교 시대의 신학적 그리고 교회 정치적인 모든 종류의 모든 방향에 대한 표지는 세상과 기독교적인 고백, 그리고 기독교와 문화 사이의 통합이 중요한 문제였다.(Schick, 1-2) 문화적 개신교는 자유주의 신학의 각인을 묘사한다. 계몽주의 유산의 상황 속에서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시민적인 해방운동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와 현대문화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은 문화 개신교와 자유주의를 하나로 연결하였다. 신학사적인 연구에서 그라프(Friedrich Wilhelm Graf)는 "문화 개신교"의 개념을 세 가지 방법으로 사용하였다.(Langner, 227) 첫째는 쉴라이엘마허에서 트뢸취까지, 두 번째는 내용적으로 마틴 라데의 잡지 "기독교세계""의 영향 아래서 리츨과 리츨학파에 제한하여, 세 번째는 황제 통치하의 독일에서 개신교 교양 시민층의 가치세계의 표시로 사용하였다. 아무리 늦어도 1904년 이후에 사용되어진 개념인 "문화개신교"는 비판적으로 평가 절하된 낯선 표현으로써 개신교 자체로부터 나왔다.(Graf, 230) 문화 개신교의 근본적인 관심은 한편에서는 기독교 사이의 간격을,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 문화와 종교적인 세계경험 차이를 극복하고자 하며, 그리고 세상의 도덕화의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기독교적 가치가 전체 사회에서의 중요성을 상실하는 것을 극복하고자 한다.(Langner, 228) 자유주의 신학의 그리고 동시에 문화개신교의 근본문제는, 한편에서는 현대의 신학적 그리고 정치적 형상의 토대에 대한 자율성의 원칙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다른 한편에서는 동시에 이러한 기본원칙을 종교적 그리고 정치적 관점에서 제한하려는 노력 속에서 보여진다. 그러한 제한은 문화 개신교 안에서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설정된 윤리가 개인을 넘는 구조, 즉 구조적 제도 윤리가 없는 곳에서는 문제성 있게 드러난다. 근대의 이 문화적 개신교와 함께 이 시대의 운명적인 문제인 "사회적 문제"를 근대 개신교인 신프로테스탄트는 필수적인 과제로 취급하였다.(Langner, 229) 2. 2. 각성운동의 사회봉사 19세기 전반기는 개신교의 사회 운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경건주의 운동 속에 내포된 각성운동은 개인의 신앙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건설"을 위한 사랑의 행위를 요구하였다. 각성운동을 통해서 새롭게 변화된 경건한 개인들이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개신교적 사회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들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자들, 고아들, 병자들을 돕는 자선에 뛰어 들었다. 181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전쟁 고아들이 발생하였을 때, 청소년 보호운동의 첫 주자이며, 괴테의 친구인 팔크(Johannes Falk: 1768-1826)는 "기근 속의 우정회"를 세웠다. 이 회는 독일의 고아를 위한 첫 구제기관인 바이마르의 루터의 집을 운영하였다. 이러한 비슷한 일들을 베스트팔렌의 젊은 귀족인 폰 데어 렉케(Graf von der Recke von Volmarstein: 1791-1878)가 수행하였으며, 1820년 슈바벤의 법률가이며 교육가인 쩰러(Christian Heinrich Zeller: 1779-1860)는 "빈민학생을 위한 자원교사기관과 빈민아동자원기구"를 세웠다. 이 기구는 슈바벤 지역의 경건주의가 바탕이 된 독일 남부 구호소 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대의 중요한 인물인 남작 코트비츠(Ernst von Kottwitz: 1757-1843)는 쉴레지엔 주에서 형제단을 통하여 활동적인 기독교 신앙인이 되어 자선 활동을 하였다. 그는 쉴레지엔에 특별한 직물 공장을 세웠으나, 곧 모든 재산을 상실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베를린에서 초라한 형편으로 살았지만, 베를린 각성운동의 중심이었으며, 실업자들을 위해 "취업 자원기구"를 세웠다. 개신교 사랑을 실천한 이 네 명의 대변자는 모두 각성운동에 깨우쳐진 평신도들이었다. 비록 이들이 개인적인 봉사차원에 머무르지마는, 이들은 기독교의 삶의 현장에서 제자도를 증명한 예이다. 이들의 시대는 개인주의적이며, "사회적 봉사"의 단계는 다음 세대를 기다려야 했다.(Brakelmann, soziale Frage, 116 이하) 2. 3. 비헤른 사회적 개신교 운동의 중요한 주창자는 비헤른(J. H. Wichern)이며 그의 내방선교는 교회의 사랑을 조직된 활동으로 전개하였다. 비헤른은 함부르크에서 소시민 계층의 출신으로 태어났다. 그는 이미 무산자적인 삶을 체험하였으며, 아버지가 사망한 15살 때부터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함부르크의 각성운동 친구들이 고등학교와 대학공부를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학창시절에 낭만주의적 예술과 문학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신학공부를 한 후, 자기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할레의 플랑켄 고아원을 방문했다. 함부르크에서 시험을 마친 후,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호른에 "광야의 집"을 세웠다. 이 기구는 공동체 원칙이 지배하며, 기도와 노동이 생활의 두 축이었다. 민속음악, 교회음악, 그리고 후일의 직업활동을 위한 교육과 휴식을 위한 체조, 놀이 등이 이루어졌다. 비헤른의 교육목적은 자유로운 기독교적인 인격을 함양하여 국가와 교회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 이 광야의 집은 어려웠지만 해마다 성장하였다. 1844년에는 광야의 집 형제 기관인 구호협회가 설립되어 내방선교의 모든 일을 위해 교육되었다. 이와 더불어 비헤른은 남성 봉사기구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 해에 내방선교의 기관지인 "광야의 집 소책자"가 출판되어, 시대의 문제와 내방선교의 과제에 대한 베헤른의 중요한 모든 논문들이 발간되었다. "내방선교"라는 표지 그 자체도 비헤른에게서 유례하며, 이 말을 그는 "구원하는 사랑의 행위를 통한 신앙고백"으로 결정하였다. 내방선교는 신약성서에 모든 그리스도교적인 공동체가 행하는 봉사를 지칭하며, 외부의 파멸의 힘의 지배에 떨어진 기독교 대중들을 내적 외적으로 새롭게 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행동을 강요하는 사랑의 실천이 중요한데, 신앙으로부터 곤궁과 어려움에 대항하는 사랑이 내방선교 출발의 시작이다. 비헤른은 베를린에서 1848년 3월 혁명을 체험하였다. 그는 또한 독일 통일이 주요한 문제가 된 9월의 비텐베르크 교회의 날에 참석하여, 유명한 즉석연설에서 내방선교의 실천적 문제를 언급하였다. "사랑은 나에게 신앙처럼 속한다"라는 문장은 정점이다. 그의 연설에 참석한 500명은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곧 상설 중앙위원회 결성을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서 그는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했는데, 이것이 곧 "독일 개신교의 내방선교"이다. 그는 중앙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작성한 독일민족에 대한 "백서"이며, 자신의 생각을 1849년까지 정리하였다. 1872년부터 보델슈빈(Bodelschwinh)이 이 기구의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비헤른은 7년간의 병고 끝에 1881년에 사망했다.(Brakelmann, soziale Frage, 119 이하) 비헤른은 19세기 개신교의 뛰어난 인물이며, 현대 개신교 사회적 사상의 한 선구자다. 그는 대량 빈곤의 뿌리가 경제적인 구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는데, 자연적인 빈곤 이외에 인위적인 가난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 무산계급의 운명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이것에 대한 해결도 역시 개인적인 도움이나 자력으로 극복될 수 없으며, 체계적인 대량 구호사업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호소에만 머물렀을 뿐, 사회개혁에 대한 실제적인 제안들을 하지 못했다. 혁명과 혁명정신에 대항한 투쟁은 그에게 있어서 무신앙에 대한 신앙의 투쟁이었다. 그의 혁명에 대한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 단순화는 어둠(=공산주의 등등)에 대한 빛(=교회와 내방선교)의 투쟁의 형식 속에서 내방선교를 사회적 복고세력과 결합하게 하였다. 이 결과 내방선교는 빠르게 반혁명적인 기구가 되었으며, 국가의 적은 "자동적으로" 내방선교의 적이 되었다. 비헤른과 내방선교는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적이며 기독교적인 국가를 꿈꾸는 빌헬름 4세 시대의 아들이었다. 그의 문제는 항상 새로운 현상을 낡은 사회적 구조 속에 끼어 넣었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 세속화의 과정에 대항하여 단지 복음화 만을 요청하였으며, 또한 기독교적인 사회 이념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정신적이고 신학적인 반동으로 옮겼다. 한편 그에게는 낭만주의적인 국가학으로부터 전수받은 유기체적 사고 외에 국가와 교회의 모호한 병렬, 하나님 나라 사상 그리고 현재와의 실제적 대화를 방해하는 그의 하나님 사상과 연결된 역사 이해 등이 있다. 기독교와 사회주의, 교회와 노동자층의 관련하여 세속운동의 세계를 비헤른은 신학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다.(Brakelmann, soziale Frage, 138 이하) 2. 4. 내방선교 비헤른의 백서를 통해서 내방선교(Innere Mission)의 프로그램과 기본 사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 백서는 혁명의 해 1848년에 탄생하였는데, 내방선교의 과제는 분명히 혁명의 탈질서에 있다. 내방선교는 개별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탄생한 사랑으로부터 나온 전체적인 일이다. 이러한 일의 뿌리는 그리스도이며, 내적, 외적인 곤궁을 없애는 것이 기독교적이고 구원하는 사랑이 된다. 내방선교는 그리스도 안에서 습득되고 파괴될 수 없는 삶의 통일성을 다음과 같은 곳에서 파악하는 데, 이것은 국가와 교회 안에서, 민족과 가정에서, 기독교 사회의 모든 지체들 속에서 필요한 삶의 구원하는 힘을 영향력 있게 한다. 내방선교의 활동의 중심점은 가정, 국가 그리고 교회이다. 세 가지 모두 내방선교에 무조건적으로 신적이며 살아서 서로서로 영향을 준다. 가정은 사회적 문제의 출발점이 되며, 여기서의 교육, 소유, 일 그리고 이것들을 통한 신분관계의 변화 및 중생은 내방선교의 주된 과제다. 또한 내방선교는 국가의 과제에서 자신의 과제를 구별하며, "세속권세의 이러한 신적인 추진"을 다시금 대중들 속에 인정하도록 한다. 내방선교는 "국가가 자기의 영역에서 이러한 기독교의 자비, 지혜 그리고 힘의 증명을 언제 그리고 어디서 요구할 때에" 국가에 자유스럽게 봉사하고자 한다. 국가로부터 내방선교는 자유로운 협회의 권리를 자신의 편에서 기대한다. 내방선교의 국가적 영역에서 과제는 백성들의 도덕적인 삶과 본질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혁명은 신실함의 붕괴이며 경외의 무덤이다". 따라서 이러한 혁명과 함께 도덕성이 붕괴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혁명으로부터 백성을 구원해야 하며, 무신론의 선포와 사탄주의의 혁명에 대한 투쟁이 내방선교의 과제이다. 내방선교는 교회 자체의 삶의 한 면을 계시하며, 잃어버린 보호받지 못한 대중을 찾는 신앙적인 사랑이다. 이런 대중들은 반그리스도적이고 사탄적인 시대 정신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신에 대한 투쟁이 내방선교의 과제다. 그러나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많은 공동체가 있으며, 또한 너무 거대해서 정상적으로 돌볼 수 없는 공동체들도 있다. 이런 교회들은 국민 생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죽어 가는 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을 살리는 것이, 즉 성서의 보급과 사용, 가정 예배, 성서연구, 도서관 설립, 종교서적 출판 등이 내방선교의 과제이다. 빈곤이 더 이상 개인적이 아니며, 사회전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내방선교는 개별 공동체를 넘어서 백성과 국가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자신들의 내적인 빈곤에, 즉 대중의 도덕적이고 기독교적인 변질에 대해 영향을 미쳐야 한다. 내방 선교의 우선적인 과제는 "대중의 도덕적인 몰락을 제거"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일반 도덕적인 일만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대도시에서의 교회적-사회적 일은 긴급하다. 내방선교는 이런 도시들에서 가정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교회적-사회적 단체들은 교회의 공무에 포함되어 "도시선교로서의 내방선교 연맹"을 결성했다. 비헤른은 이러한 도시선교의 모델을 제시하여, 팜프레트 출판, 국민도서관 설립, 수공업 동맹의 기구, 봉사제공, 학교 설립 등의 과제를 세분하였다. 가정은 계속 해체되고 어지러워 졌다. 황폐화된 결혼, 경솔하게 헤어지는 부부 그리고 미혼모를 통한 자녀들은 보호자 없는 어린이들이었다. 어른들과 어린이들은 타락하였으며, "기독교뿐만 아니라, 일반 도덕에 대한 감각이 여기서 몰락되었다." 악덕과 범죄가 여기에 있으며, 특히 대도시들 안에 심하다. 비헤른은 여기서 빈곤의 원인과 악순환이 도덕의 타락에 원인이 된다는 것을 지적한다. "국가 경제를 통해서 제거되어야 하는 다른 부적절한 산업의 상태가 또 다른 곳에서 대량빈곤의 생산에 공헌한다. 이러한 경우가 생기는 곳에 도덕적으로 선한 가정이 빈곤화의 비참함에 마침내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탈도덕적인 군중의 거대한 위험과 비슷한 외형적인 상황의 몰락으로 내 던져져, 이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비슷한 수준이 된다."(Brakelmann, soziale Frage, 122 이하) 비헤른은 흔들리는 가정의 재생이 (빈민자를 위한) 임산부 연맹, 유치원, 일요학교, 어린이 예배, 어린이를 위한 구호기관 등등을 통해서 도달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빈민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시민적인 빈민 구호 활동에는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단지 법률과 기록된 도식에 의해서만 빈민구호를 하며, 가난한 자들의 도덕성을 위험하게 하며 부분적으로 이를 파괴하며 그리고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의 요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빈자들은 국가의 자선 기구를 통해서 사랑을 믿도록 배우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방선교의 빈민 구호 활동을 통해 국가의 자선 기구를 관철시켜 나가는 것이 내방선교의 과제다. 비헤른의 사회 문제에 대한 극복의 원리는 "혁명의 원리"가 아니라, "기독교적인 재생원리"이며, 이것을 그는 실천을 통해서 발전시켰다. 수공업단체를 공산주의 교육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자조로 이끌어 내어, 모든 백성을 "기독교적-사회적인 것"(Christlich-Soziale)으로 이끌어 내어야 했다." 비헤른의 사회개념은 근본적으로 유기체적이다. 개개의 기독교 백성들, 국가, 교회, 가정 그리고 신분은 특별한 방법으로 질서 지어wu 있는 하나의 거대한 기독교적인 사회 유기체이며, 이것의 창시자는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살아있는, 인격적인 원리"이다. 가장 상위의 유기체인 기독교계로부터 가장 가까운 유기체인 백성으로 이루어진다. 국가, 교회 그리고 사회는 모든 질서의 주인인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 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 그리스도가 세 가지 제도의 공동의 주인이며 중심이 된다. 또한 국가는 외형적인 복지와 질서를 유지하며, 경제를 최종 결정한다. 세상적인 재산이 국가에게 책임지어지는데 이는 인간의 공동 삶을 파괴하려는 죄 때문이다. 교회는 기독교 정신의 망대며, 전체 백성의 삶에 대한 영원한 토대이며 구원의 샘물을 제공한다.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며 믿는 자의 공동체다. 이 교회의 최상의 존재는 성령, 자유이다. 비헤른의 기독교적 국민 유기체는 "국가와 교회, 국민과 가정, 기독교적 사회의 이 모든 지체들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지고 부서질 수 없는 삶의 통일체다." 이 이념은 필연적으로 하나의 역사관과 결합한다, 즉 역사 발전의 최고의 통일점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관련되며, 역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발전한다. 반기독교적인 힘에 대한 투쟁 속에서 이것은 결국 역사적 과정 속에서 관철된다.(Brakelmann, soziale Frage, 133 이하) 2. 5. 토트 루돌프 토트(Rudolf Todt)는 1839년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브란데부르크의 지방목사로, 1880년부터는 감독(Superintendent)으로 일하였으며, 1887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시골 목사 시절부터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하여, 사회민주주의 언론과 문헌을 추적하였다. 1872년 말에 "기독교 국민일보"에 아우구스트 베벨과 빌헬름 립프트네히트의 사회주의에 대한 논문을 기고하였다. 스퇴커의 자극으로 1877년 "급진적 독일 사회주의와 기독교 사회"라는 책을 출판하여 곧 유명하여졌다. 이 책은 70년대의 개신교 신학자와 독일 사회민주주의 노동당의 급진적 사회주의와의 최초의 학문적 논쟁이었다. 그러나 토트는 사실 개신교-사회운동에서 망각되어온 인물이다.(Brakelmann, Kirche, 111 이하) 그는 사회의 경제적인 삶 속에서 이중의 경향을, 소수가 부를 집중하는 것과 가난한 자가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가난한 자와 부자의 사회적 분열은 커지며, 중간층이 무너져서, 결국 자본가와 의존 임금 노동자만이 남게 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비인간적인 삶을 야기하며, 임금은 최저생계만을 보장할 뿐이다. 그는 맑스의 계급투쟁 이론이나 라살레의 임금 철칙설에 동의하였다. 그가 분석한 사회 퇴화의 정신적 원인은 소위 만체스타 자본주의인 경제적 자유주의에 있다. 이런 지나친 개인주의는 사회를 도덕적으로 붕괴시키며, 이 결과가 현대의 혁명적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급진적-사회주의적 사회비판은 그 시대 교회적-신학적 영역에서 토트가 유일회적이다. 그의 독특성은 다음과 같은 주장에 있다, 즉 "사회적 문제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자는 우편에 국민경제를, 좌편에 사회주의자들의 학문적 문헌을 그리고 앞에는 신약 성경을 열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요소 중에 하나가 결핍되면 해결은 벗어나게 된다. 이 세 가지는 밀접하게 속한다." 이 문장을 통해 최초로 사회주의와 기독교 관계의 대화의 원리가 요약되었다.(Brakelmann, Kirche, 113 이하) 토트에게 기독교 윤리는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윤리적인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주의적인 원리들과 대결하기 위해 신약성서를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였다. 그는 사회주의적인 개념을 분석한 후 그것을 신약성서에 대립시켰다. 그런 후에 오늘의 사회 형태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를 묻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사회주의는 경제와 정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역사적 운동이며, 역사적인 권리이며, 역사적 필연성이며, 또한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이념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교회에서 전혀 받아들이기 힘든 견해였다. 동시대인에게 공산주의는 인간 이하의 활동산물이었으나, 토트는 공산주의가 생산수단의 개인소유 폐지를 통해서 인간의 이기심을 지양한다고 인식하였다. 토트에 의하면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공동의 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하다. 이 필요성은 세계의 파괴와 인류의 소외,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재통합 때문이다. 그는 비교적 간단히 무신론에 대해서 설명하였는데, 무신론은 사회주의의 본질이 아니며, 시민적-자유주의적 종교 적대성과 철학적 유물론의 시대에 대중 선동을 위한 하나의 부과물일뿐이다. 기독교적 정신만이 사회주의적인 프로그램을 관철할 수 있으며, 단지 기독교 사회주의만이 참된 사회주의의 유일한 형상이다. 그는 기독교적인 노동이론과 가치론을 전개하였다. 산업사회 체제의 인간에게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과제다. 기독교의 과제는 인격과 가치를 다시 얻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현대 사회에 대한 교회와 기독교의 활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들은 인간적인 사회성에 대한 휴머니즘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며, 이러한 과제의 완성은 진보적인 인간화가 최고의 과제인 기독교 사회주의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사회적 개신교의 역사에서 토트의 중요성은 그가 대중적인 국민경제이론을 묘사하였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것을 의무로 신학적 연구의 개혁을 요구한 것이다. 신학과 국민경제의 대화를 수행하기 기독교 사회과학 과목의 개설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대화를 위해 스스로 "신학연구와 사회과학 연구 사이에 내적 관련과 필연적인 결합"이라는 제목의 작은 팜프렛을 저술하였는데, 이 작품은 이제까지 잊혀졌던 개신교-사회적 운동의 유일한 자료이다. 토트는 국가의 개입을 신학적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회정치적인 요구의 중심점에 세웠다. 그는 고유한 기독교적-사회적 정당창설을 호소하였으며, 사회문제를 체계적으로 관계하는 연맹을 설립하였다.(Brakelmann, soziale Frage, 153 이하) 2. 6. 스퇴커 아돌프 스퇴커(Adolf Stoecker: 1835-1909)는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학 학업을 마친 후 이탈리아를 여행하였다. 그는 일찍이 사회문제를 다루었다. 1874년 황제에 의해서 궁중과 성당의 목사로 베를린에 갔을 때, 여기서 그는 교회와 기독교로부터의 계속된 하층민 몰락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자가 되었다. 그는 내방선교와 도시선교의 과제에 헌신하였지만, 이러한 상황이 내방선교에 의해서 더 이상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였다.(Kupisch, 103) 스퇴커는 종교적으로 각성운동을 통해 결정되며, 신학적으로 정통주의에 속한다. 이는 성서에 대해 역사-비판적인 연구, 기독교와 현대 문화 그리고 학문성의 통합이 중요한 신학적 자유주의에 반대를 의미하며,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왕권과 재단의 분리를 선전하는 교회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 시대의 가장 사랑받는 설교가의 한사람이었다. 첫 번째 개신교-사회적 정당인 "기독교-사회 노동당"이 스퇴커에 의해서 1878년 1월 3일 베를린에 창립되었다. 이 정당과 함께 개별 봉사의 의미인 내방선교로부터 사회개혁 의미의 사회정책으로 단계를 실행하였다. 이 정당의 창당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와 함께 정치적 삶으로의 첫 단계가 시작되었다. 스퇴커의 기독교 사회 노동당의 기본강령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사회 노동당은 기독교 신앙과 왕과 조국에 대한 사랑의 토대 위에 있다. 2. 이 정당은 현재의 사회민주주의를 비실제적, 비기독교적 그리고 비애국적인 것으로 비난한다. 3. 이 정당은 국가 생활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필연적인 실제적인 개혁을 건설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평화로운 조직을 추구한다. 4. 이 정당은 목적으로써 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의 간격을 좁히며 거대한 경제적 안정을 가져오도록 추구한다. 한편 스퇴커 운동의 특징적 사건은 황제생일의 축하다: "베를린의 거대한 강당에서 축제가 거행되었다; 그러한 힘든 시대에 거대한 현상인 가난한 노동자에게 저녁식사가 주어졌다; 역시 그들의 위엄인 황후가 거기에 풍부한 은총을 제공하였다. 애국적인 연설에 환호, 황제에 대한 만세가 끊이지 않았다..."(Brakelmann, soziale Frage, 167 이하) 그러나 이 새 정당에 어떤 여론의 호의도 없었으며, 오히려 사회민주주의자 이외에 자유주의, 민족자유주의, 보수주의 그리고 교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스퇴커는 개인적으로 날카로운 비판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궁정 설교가와 정치인의 일, 신학과 호민관의 개인적 연합이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과제는 사회민주주의 무신론적 조직에 기독교 노동자 연합을 대립시키는 것이었다. 노동자층으로의 진입이 실패함과 더불어 스퇴커의 반셈족 과정과 중상층 중심으로의 정책 전환은 이미 1880년 기독교-사회 정당이 더 이상 기독교-사회 노동자당이 아니라는 것이 표명되었다. 창립 당시의 무산계급 성향은 포기되었으며, 정치적으로 점점 보수화 되어 갔다. 이제 더 이상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기독교-사회적이라는 것은 반셈주의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보수적인 것을 의미하였다. 그는 구 보수적인 정당을 기독교-사회적 정당의 유산을 받아들이는 기독교-보수적 정당으로 변화시켰으며, 사회적 보수주의를 선전하기 위해서 활동하였다. 그의 세 가지 중심은 기독교-군주제-사회개혁이었다. 그는 개신교의 모든 진영을 하나의 통일연맹으로 조직하여 시대와 투쟁하고자 하여, 1890년 개신교-사회 회의(Evangelisch-Soziale Kongress)를 세웠다. 그는 이 기구를 통해서 개신교에 사회정치적 과제를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교회의 다양한 적들과 정치적 적들이 상존하였으며, 특히 빌헬름 2세는 스퇴커의 기독교-사회적 사상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겼으며, 잘란트의 남작 폰 스툼(Freiherr von Stumm)은 개신교 사회적 운동을 사회민주주의 보다 위험한 것으로 여겼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0) 그는 무산자를 낡은, 그러나 개혁된 체제에 화해시키기를 원했으며 그리고 제4 신분을 기독교 사회의 전체 사회 안에 자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는 노동자를 얻기 위한 투쟁을 하였으나 이 투쟁에서 졌다. 세속화는 스퇴커에게 기독교적 세계의 종말이었으며, 세속화 속에서 인간 중심점의 인식을,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책임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궁중설교가 스퇴커는 투쟁적인 개신교 보수주의자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기독교 사회주의자다. "단지 기독교 노동조합만이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 단지 기독교-사회 정당만이 비기독교적 사회주의적 정당을 제거할 수 있다. 그래서 거기에 당연히 강력한 지칠 줄 모르는 사회개혁이 속한다." 2. 7. 나우만 프리드리히 나우만(Friedrich Naumann: 1860-1919)은 1860년 작센의 목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족의 전통에 따라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1883년 함부르크 호른의 광야의 집에서 상급보조자로 일하였으며, 당시 비헤른의 기구는 비헤른의 아들이 이끌고 있었다. 광야의 집에서 2년 활동한 후에 작센의 첫 목회지에서 노동자의 고통을 인식하였으며, 노동자의 문제가 그 시대의 중심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우만은 이제 "가난한 자들의 목사"로서의 활동 이외에 사회문제 문헌연구에 몰두하였으며, 특히 맑스적-사회민주주의 저술들, 맑스, 엥겔스, 라살레, 베벨 그리고 립프크네히트를 철저히 연구하였다. 나우만은 비헤른과 스퇴커의 사회정치적 사고의 중요한 영향 아래에 있었으나, 이들과는 일찍부터 독자적인 사고발전의 과정을 겪었다. 이것은 내방선교의 방법이나 스퇴커의 정치적 입장을 훨씬 넘어가는 것이었다. 스승들처럼 나우만은 맑스주의는 거절하였으나 사회민주주의를 현재의 과제로써 인정했다. 그는 기독교 사회주의의 무산자적인 성격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이미 스퇴커와 결별의 성향이 있었다.(Kupisch, 107) 나우만은 반동과 혁명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취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것을 기독교 사회주의라 하였으며, 이것은 사랑과 정의의 기독교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활동적인 개혁 작업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비판적으로 논쟁하였다. 그는 역시 사회주의적인 원리인 자유, 평등 그리고 형제애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물질관이 국민의 영혼에 큰 위험을 준다는 것을 제시하며, -정치적 프로그램에 위험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빈곤 제거를 통하여 기독교 사상세계를 위해 노동자를 다시 부를 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위해 내방선교의 확장이 필요하였으며, 비헤른의 사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기독교 사회적 운동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즉 "성서적인 프로그램은 없다, 그러나 사회정치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성서적 동기가 있다." 그는 제 2세대로서 기독교-사회적인 사회정책을 계속 이끌어갔다. 그는 내방선교의 자선활동을 통해선 극복될 수 없는 빈곤의 사회적 관계를 점점 더 인식하였다. 그는 기독교적 사회정책, 사회개혁으로 들어갔으며, 정치적, 사회정치적으로 거의 모두가 보수적인 정당에 가입되어 있는 내방선교의 "옛 사람"과 대립하게 되었다. 나우만의 기독교 사회적 활동은 "개신교-사회적 회의"의 활동 속에서 드러나는데, 스퇴커 주변의 "옛 사람"과 나우만 주변의 "젊음"의 이러한 투쟁은 이제 "개신교 사회적 회의"의 차원과 영역으로 옮겨졌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4 이하) 나우만이 1896년 민족사회 연맹을 창설함으로써 그의 개신교 사회적 운동은 끝났다. 그 스스로 1897년 목사직을 포기하고 직업정치가가 되었으며, 점점 민족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가가 되었다. 그는 세계와 교회, 정치와 종교, 힘과 선교라는 이원론으로 떨어졌다. 그는 기독교 사회적 입장에서 급진적으로 민족적 사회적 방향으로 움직였다. "군사주의는 모든 국가 질서와 유럽시민 복지의 기본토대다... 기독교의 미래는 주민들의 군사적 의미의 유지에 달려있다. 우리가 옛 독일의 영웅심의 마지막 나머지를 물리치지 말자." 2. 8. 개신교 사회 회의 1890년은 독일제국의 사회정치적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한 면을 표시한다. 빌헬름의 2월 칙령은 노동자 친화정책과 입법화를 계속 추진하였으며, 사회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특별한 책임을 강조하였다. 곧바로 4월에 개신교 교회 최고위원회(EOK)는 교회 정치적 방향을 180도 회전시켜 성직자들이 노동자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동자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도록 하였다. 이는 기독교 사회적인 작은 단체에게 강력한 추동력을 주었다. 스퇴커는 강당사회자들인 바그너(Adolf Wagner), 개신교 노동연맹의 지도자인 베버(Ludwig Weber), 보수적인 신문인 "십자가신문" 편집장인 크로파체크(Friedrich Kropatschek: 1875-1917)와 함께 새로운 사회적 교회정치적 출발을, 모든 기독교적 사회적인 자들을 하나의 중립적인 작업포럼에 연합하고자 시도하여, 1890년 오순절에 "개신교 사회 회의"를 베를린에 창립하였다. 다양한 교회정치적 그리고 신학적 흐름들을 하나의 사회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토론으로 결합시켰다. 780명의 회의 참석자들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한 선동이 거의 필요가 없었으며, 오히려 자기 국민의 사회적 상황을 편견없이 연구하고, 그것을 복음이 요구하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척도에 의해서 계산하고 이것을 오늘날의 경제적 삶을 생산력 있게 만들고 영향력 있게 만드는데 그들의 과제를 삼았다.(Besier, 116) 이 모임에서 여섯 가지의 제안이 이루어졌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8) a) 교회의 사회적 의미 안에서의 교회 공동체 b) 노동자 보호법제정 c) 노동하는 계급의 주택곤궁과 그들의 구제법 d) 개신교 노동자연맹과 그들의 중요성 그리고 계속적인 발전 e) 사회정책의 영역에서 현재의 노력 f)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입장 이제 해마다 개최되는 주요회의에서 실제적인 사회정책의 문제들과 기독교 윤리의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 회의는 모든 정치적 그리고 교회정치적 정당의 대표로 구성된 의장단을 선출하였으며, 1891년부터 1902년 동안의 첫 의장은 중재적인 농업고문관인 놉베(Nobbe)였다. 1891년부터 1894년까지 첫 번째 총무는 신학 후보자인 젊은 목사 괴레(Goehre)였는데, 그는 그가 쓴 "3개월간의 공장노동자"라는 책 안에서 묘사한 공장활동을 통해서 잘 알려졌다.(Brakelmann/Traugott, 142) "개신교 사회 회의"에 참여한 회원들의 공동 견해는 다음과 같다.(Brakelmann, soziale Frage, 179 이하) 1. 복음에 서 있는 종교개혁의 교회는 신앙 고백자와 봉사자가 시대를 배우며,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피해의 원인을 추적하며 그것을 극복하는데 협력할 때만이 국민의 양심을 인도하는 정신적 힘을 전개시키고, 특히 사회적 영역에서 화해하는 영향을 실행할 수 있다. 2.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공명심에 사로잡힌 교리이며 악마적인 혁명의 힘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종교적 타락의 자연적인 결과이다. 3.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법에 의해서 극복될 것으로 본다면 그것은 오류이다. 4. 고용된 노동력에 의거한 계급의 경제적 노력과 자주성은 정당하다. 5. 사회적 개선을 목표하는 헌법과 법률, 조국과 국왕의 토대 위해서 현명하게 지도하며 개입하여 소외된 국민의 진영을 데려오는 것이 중요한 시대적 과제의 하나다. 그 사이에 개신교 사회 회의 내부에서 스퇴커-나우만의 대립이 점점 커졌으며, 나우만의 진영은 스퇴커로부터 벗어나 점점 발전하였다. "젊은이"들은 사회개혁을 위하여 보수진영을 얻고자하는 스퇴커의 노력이 좌절되었으며, 본질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점점 프로그램 과정이 보수적인 방향에서 자유주의로 변화되어 갔다: 1) 특별히 기독교적인 동기근거로부터 나우만적인 사회정치적 개혁 개념이 분리되었으며, 2) 기독교적인 근거에서 국민정치적 근거로 대치되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회원으로 가입하였다.(Pollamnn, 65 이하) 그러나 여전히 개신교적 정서, 확고한 황제에 대한 신뢰 그리고 합법적인 사회 개혁의 세 가지 위에 서 있는 개신교 사회 회의는 사회민주주적인 내지는 모든 사회혁명적인 추진하는 모든 것에 한계를 두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모든 측면에서 공격이 쏟아졌으며, 경영자에 친근한 언론, 농업보수주의자, 궁중 그리고 교회지도부, 우익들이 개신교 사회 회의에서 떨어져 나갔다.(Brakelmann, soziale Frage, 182) 개신교 사회 회의 그 자체에 위기가 왔으며, 스퇴커는 탈퇴하였다. 그는 나우만-진영과 더 이상 성공적인 협력의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단지 작은 무리만이, 그 가운데 교사 베버도, 스퇴커와 함께 개신교 사회 회의를 떠나서, 1897년 교회-사회 회의(Kirchlich-soziale Konferenz)를 세웠으며, 이 단체는 내방선교와 개신교 노동자연맹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교회의 사회사업을 위해서 교회의 "적극적인 자"(Positiven)들을 모았으며, 반면에 개신교 사회 회의에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자유주의자들이 넘쳤다. 나가는 말 이미 산업혁명 이후 인간들의 삶의 현장이 과거와는 180도 방향 전환한 이후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삶의 현장에 대한 철저한 인식없이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 서양의 기독교 및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철저한 역사적 연구가 필수적이다. 오늘날 독일의 사회적 국가의 성격은 다양한 이념과 사회사적인 상황으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개신교의 영역으로부터 "동기와 방향"을 얻었다. 국가를 권력과 문화국가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국가로서 보충하여 이해하며, 그리고 이 국가를 통해서 약자를 돌보는 것이 기독교인의 책임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들의 국가 이해는 본질적으로 개신교 전통으로 각인 되어졌고, 국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넘겨진 하나의 기구로써 이해된다. 사회적 개신교의 전통은 특별히 경제적인 측면에서 오늘날 제3의 대안인 사회적 시장경제(Alfred Mueller-Armack)의 틀을 낳게 되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적인 맘몬의 정신을 집단주의적인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개인의 인격적 존엄을 인정하며, 개인의 도덕에 대해서 적지 않게 그러나 채워질 수 있는 요구들을 담는 경제제도를 찬성하였다.(Traugott, 6 이하) 이와 같이 사회적 기독교는 각 시대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복음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통과 말씀 속에서 새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다. 따라서 각 시대에 큰 역할을 하였던 사회적 기독교의 연구는 더욱 중요하다. 참고문헌 Karl Janssen, Johann Hinrich Wichern, Ausgewaehlte Schriften Bd. I, II, III, Berlin 1956. Dietrich von Gertzen, Adolf Stoecker, Lebenslauf und Zeitgeschichte, Schwerin 1912 Guenter Brakelmann, Die soziale Frage des 19. Jahrhunderts, Bielefeld 1981. Guenter Brakelmann, Kirche und Sozialismus im 19. Jahrhundert, Witten 1966. Guenter Brakelmann/Traugott Jaehnichen, Die protestantischen Wurzeln der Sozialen Marktwirtschaft(Ein Quellenband), Guetersloh 1944. Traugott Jaehnichen, Sozialer Protestantismus und moderne Wirtschaftskultur, Muenster 1997. Karl Kupisch, Zwischen Idealismus und Massendemokratie, Berlin 1955. Manfred Schick, Kulturprotestantismus und soziale Frage, Tuebingen 1970. Gerhard Besier, Religion, Nation, Kultur, Neukirchener 1992. Albrecht Langner, Katholische und evangelische Sozialethik im 19. und 20. Jahrhundert Parderborn etc. 1998. Friedrich Wilhelm Graf, Kulturprotestantismus, in: TRe, Bd.20 Martin Greschat, Das Zeitalter der Industriellen Revolution, Stuttgart etc. 1980. Martin Greschat, Protestanten in der Zeit, Stuttgart 1994. Jochen-Christoph Kaiser, Protestantismus und Sozialpolitik, in: Soziale Reform im Kaiserreich, Stuttgart etc. 1997. Klaus Erich Pollamnn, Weltanschauungskampf an zwei Fronten, Der Sozialprotestantismus 1890-1914, in: Soziale Reform im Kaiserreich, Stuttgart etc. 1997. Theodor Strohm, Innere Mission, Volksmission, Apologetik, in: Sozialer Protestantismus und Sozialstaat, Stuttgart, etc. 1996, Helga Grebing, Geschichte der deutschen Arbeiterbewegung, dtv 1970, S.26-27. Peter-Heinz Seraphim, Deutsche Wirtschafts- und Sozialgeschichte, Wiesbaden 1966. Gaston V. Rimlinger, Welfare Policy and Industrialization in Europe, New York etc. 1971, 한국사회복지학 연구회 역, 한울 1991. 백용기, 독일의 기독교 사회복지, in: 기독교와 사회복지, 홍익재, 2001. Eine Studie ueber den sozialen Protestantismus Deutschlands in 19. Jahrhundert Paik, Young-Gi Pull-time Lecturer Kang-Nam Unisersity Kyongki-doSeoul, Korea Der vorliegende Aufsatz beschaeftigt sich mit dem sozialem Protestantismus in deutschland. Sie versucht, die soziale Frage und christliche Erfahrungen in 19 Jahrhundert zu analysieren und auch einen Ueberblick ueber christliche Aufgabe in Korea zu habe. Der soziale Protestantismus zeigt, welche Aufgabe das Christentum und die Kirche zeitlich haben. Er erklaert sowohl theologisch diese Aufgabe und beweist die als auch durch das soziale Handeln praktisch. Der soziale Protestantismus erzielt mit der Autonomie und Gleichheit mitlebende Gesellschaft und bestrebt sich eifrig, die Lebensqualitaet des Menschen zu entwickeln. Heuzutage folgt die Tradition des sozialen Protestantismus in Verschiedenheit. Tatsaechlich ist der sozialer Protestantismus Regeneration der Naechtsnliebe, die seit dem Fruehchristentum verliert werde. Fuer den Aufsatz ergibt sich folgende Aufgabenstellung: 1. Die industrielle Revolution und die soziale Frage behandlet werden, weil man den sozialen Protestantismus nicht verstehen kann, ohne die beiden zu erwaehnen. Besonders stellt der Aufsatz die Arbeiterbewegung von Marx und Lassalle ausfuehrlich dar, weil sie eine grosse Rolle in 19. Jahrhundert gespielt hat. 2. Die Arbeit untersucht die evangelischen sozialen Bewegungen. Die Grosse Gestaltungen zur sozialen Frage, aber noch nicht bekannt wird im Kreis der theologischen Geschichte, werden besonders beschaeftigt. Dadurch kann man die gute Impulse des christlichen sozialen Bewegung kriegen.
1세기의 눈으로 본 동성 연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
1세기의 눈으로 본 동성 연애에 대한 사도 바울의 견해 2002-11-11 15:27:24 read : 9 현대 사회속에서 동성 문제에 대하여 논의가 각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들도 이에 대한 답을 구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문은 동성연애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찾고자 노력을 할 것이다. 오늘날 특히 미국 교회안에서 동성연애에 대한 크게 세가지의 견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동성 연애는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그룹이 있다. 둘째는 성경에 대한 해석을 하면서 당시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서 볼 때 신구약에 언급되어 있는 동성 연애에 대하여 오늘날 잘못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동성 연애에 대하여 죄악시하지 아니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그룹은 이 두 견해의 사이에서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동성 연애는 죄악인가 아니면 병으로 취급되어질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하여 연구를 하여 볼 필요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본 논고는 동성 연애와 연계되어 있는 구약 성경 구절에 대하여 언급을 할 것이지만 초점은 신약의 바울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더욱이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연구하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바울이 어떻게 대처를 하고 있는가를 연구하고 이 토대 위에서 오늘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신약 배경은 당시 헬라 문화와 로마의 문화에 대하여 연구하고, 이러한 문화 속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동성 연애를 해석하고 있는가를 중간사의 입장에서 연구하여 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의 견해를 연구하고자 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배경 연구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연구는 알렉산더 대왕의 이전과 이후의 시대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먼저 그리스의 배경을 연구하고 나서 로마의 역사적 배경을 연구하고자 한다. 그리스 배경 그리스의 배경을 연구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그리스 고전에 동성 연애가 어떻게 언급되어 있는가를 연구하여야 한다. 이 고대의 그리스 문화의 시대에 대하여 Tannahill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한다. "Homer, Hesiod, Plutarch, Pausanias --the professional my preservers and myth-improvers--created a vivid, adventurous, amoral world in which gods and heroes spent as much of their time bedding and brawling as they did in performing deeds of valor. . ." 이 당시 그리스인들의 성에 대한 관점이 모든 신들, 여신들을 통하여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성들에 대한 다양한 현대의 용어들이 당시 그리스 사회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예로 androgyny, aphrodisiac, eroticism, hermaphroditism, homosexuality, narcissism, nymphomania, pederasty, satyriasis, 그리고 zoophilia이다. 이러한 다양한 용어가 그리스 사회 속에서부터 나온 것을 볼 때 당시 그리스 사회의 성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이었는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에 대하여 개방적인 사회였기 때문에 또한 동성 연애에 대하여서도 상당히 일반적이었음을 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Smith는 "On all levels of society, homoerotic activity pervaded the Greco-Roman period."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여성에서보다도 남성에서 일반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남성들이 주도하고 있던 그리스 사회 속에서는 주로 남성들의 활동 영역 속에서 동성 연애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당시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이루어지던 곳은 교육기관 과 정치집단 혹은 군대 속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동성 연애는 첫 번째 이루어 진 곳이 사회적인 기관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동성 연애를 당시는 이러한 사회적 집단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어른 남성이 어린 소년과 성적인 관계를 가졌던 남색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사회였다. 그래서 Tannahill은 남색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the word pederasty is generally used to describe the sexual attraction of an adult to an immature child, but to the Greeks it signified the love of a man for a boy who had passed the age of puberty but not yet reached maturity." 어떠한 사회적 단체에서 이러한 남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말은 사회적 계급의 차이에 의하여 동성 연애가 이루어질 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일반적으로 동성연애는 당시 사회 속에서 나이든 남자들이 젊은 남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 기원전 6-4세기에 일반적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관계에 대하여 학자들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Boswell 같은 학자들로 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당시 소년들의 정신적 도덕적 지적 발전을 도와주기 위하여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돌아보고 또한 이들의 목적은 그 사랑하는 소년의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이끌기 위한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Keuls와 같은 학자들은 남색은 이러한 순수한 의미이기보다는 남창과 연계되어있다고 주장을 한다. "this pattern became compromised and led to male prostitution by citizens and to adult male love affairs; both of these practices were consistently stigmatized as socially unacceptable. Anal sex, generally associated with obscenity and coarse behavior, was the common form of these discredited types of homosexual contact." 그녀에 따르면 남색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480 BC에 이미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금지를 시키고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당시 예술품들과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들은 분명히 남색이 아니라 남자들간의 사랑이고 또한 동성 연애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주장을 한다. 당시의 동성연애는 학생동료들 사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나아가서 이러한 젊은 사람들이 남창으로 변하여 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법령들이 통과 도기까지 하였다. 어찌하였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사회 속에서 남성들의 동성 연애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보면서 또한 당시 사회의 예술 작품을 보면서 동성 연애와 남색이 만연되어 있던 사회였음을 확신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동성 연애나 남색을 당시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가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동성 연애나 남색이 당시 사회에 만연되어 있으면서 또한 당시 사람들은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하나의 과정정도로 생각을 하였던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동성 연애나 남색의 문제점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있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Garland는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한다. " . . . homosexual attachments were believed to facilitate the transition from child to adult, thought it must be stressed that this view seems to have been more prevalent among the aristocrats. . . In Aristophanes' plays . . . there is clear evidence of revulsion against homosexual practices on the part of the Attenian middle class." 로마 그리스 사회에서 동성연애와 남색이 보편적이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었지만 로마에서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음을 볼 수 있다. 1세기 전후의 로마 사회에서는 동성연애와 이에 대한 언급이 사회 전반에 걸쳐서 만연되어 있었고 또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더욱이 공화정 시대나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 동성 연애나 남색이 불법으로 인식되어지지 아니하였고 또한 로마 안의 어떠한 종교나 법이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당시 로마 사회 속에서는 동성 연애로 남색이 불법으로 혹은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지 아니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적인 관계는 능동적인 역할과 수동적인 역할로 이루어진다. 능동적인 역할은 남성이 하고 수동적인 역할은 여성이 하는 것이다. 당시 사회는 명예와 수치를 중시 여기던 사회였기 때문에 남자가 여성의 역할인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명예가 손상을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인인 남자가 수동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 속에서는 동성연애는 같은 사회적 신분 속에서는 이루어 질 수 없었다. 1세기 당시의 로마 사회속에서 명예의 중요성에 대하여 멜리나는 "명예는 원래 사회적으로 인정된 가치에 대한 주장이다." 이러한 정의 하에서 그는 명예는 권력과 성과 그리고 종교라는 세 분야에 의하여 나타나게 되어 있음을 강조하면서 계속하여 권력과 성과 종교를 설명한다. 그는 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을 한다. "성적 신분 또는 역할은 생물학적인 성의 구별을 상징화하는 일련의 의무와 권리들 --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또는 당신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것 -- 에 관해서 말한다. 남성의 '의무'는 여성의 '의무'와 동일한가? 남성에 대하는 방식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과 동일한가? 성적 신분은 한 사회집단에서 인정된 남성과 여성의 '의무'에 관해 언급한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정보는 "1세기 로마 사회는 명예를 가장 주요하게 여기던 사회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멜리나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1세기의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자신의 명예의 등급이다. 가치에 대한 권리와 자격은 신분에 대한 권리이며, 그 신분 (그가 가진 일단의 권리와 의무)은 자신의 사회적인 정체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은 그의 명예 등급에 의존하여, 그것은 그 공동체의 신분 서열에서 그 사람의 위치를 결정해 준다." 이렇게 명예에 의하여 신분이 결정되어지던 사회였기 때문에 명예에 의하여 사람의 행동이 결정되어졌던 사회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자유자인 남성은 자신의 명예가 손상되는 일을 하지 아니하였다. 성적인 관계에서 남성은 능동적인 역할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남성이 여성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곧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으로 성적인 관계에서 남성은 남성의 역할을 하여야 하는 것이지 남성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여성의 역할인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명예에 손상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성 관계는 능동적인 위치에 있는 남성과 수동적인 위치에 있는 여성의 관계이고 동성 연예는 능동적인 위치에 있는 자유인 남성과 수동적인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종들과 혹은 젊은 남성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하여 Steggemann은 이렇게 말을 한다. "The view taken on sexual activity or passivity, then, corresponds to social hierarchy. And it is an established fact that Medterranean women were confined to passivity and had to act accordingly. How, then, is this represented in homosexuality? Well, it should be no surprise within this framework that homosexuality mainly means pederasty and that the object of homosexual desire had specific female characteristics; long hair, some sort of makeup, a tender face. In a word, he was effeminate (malakos). The prevailing form of homosexuality was pederasty. A secondary form was sexual intercourse between a master and his male slave. . . . Under these circumstances, obviously homosexual practice among free males regarded with contempt, because in this relationship a free adult male had to take on himself a role befitting women and slaves." Steggmann의 견해에서 우리는 1세기 로마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없었다고 할 수 없으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 안에서의 동성 연애는 경멸의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동성 연애보다는 사회적 구조 때문에 남색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남색은 당시 사회적 관습에서 볼 때 결코 죄악시되지 아니하였고, 또한 정죄되었던 것도 아닌 일반적으로 1세기의 로마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졌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성 연애에 대한 유대인의 견해 1세기 당시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얼마나 성행을 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의하여 받아들여졌을지라도 Hellenistic Judaism을 연구해 보면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실제적으로 1세기 전후의 헬라화 되어 있는 유대문헌들을 연구하여 보면 이들은 동성 연애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를 하고 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는 받아들이고 또한 일반화되어 있는 세계 속에서 왜 어떻게 유대인들은 동성 연애에 대하여 강하게 반대를 하였을까? 하는 것이 의문점인 것이다. 이러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던 경전에 어떻게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는가를 연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면관계상 구약의 중요한 성경구절만 인용하여 연구하고 한다. 먼저 레위기 18:22절과 20:13절에서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시에 이집트의 풍속을 따르지 말 것을 권면하면서 주어진 명령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Eron은 이렇게 말을 한다. ". . . an ancient body of Israelite legal materail . . . (which) holds the Canaanite and Egyptians guilty of a wide variety of sexual sins that include incest, adultery, male sexuality, bestiality, and child sacrifice . . . The Israelites are warned not to follow any of these practices lest the Land of Israel spew them out . . . (Lev. 18:24-30; 20:22-26)." 이 두 성경 구절은 랍비들의 동성 연애에 대한 강한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창세기와 사사기에 나온 두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 19장에 소돔의 멸망 사건이 언급이 되어 있는데 당시 소돔과 고모라 성의 타락상에 대하여 잘 언급이 되어 있은 것이다. 물론 일부 학자들이 이 소돔과 고모라성의 이야기와 사사기 19장에서 21장에 나와 있는 그들의 직접적인 죄는 동성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 남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가지지 아니하고 또한 불의를 행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을 한다. 예로 Eron은 그의 논고, "Homosexuality and Judaism"에서 이 두 본문을 선지서들의 견지에서 해석을 하고자 했다. 그는 이사야서 1:10절과 3:9절 그리고 예례미아 23:14절과 에스겔 16:48-49절에 근거하여 소돔, 고모라성과 기브온의 죄는 의가 부족하고 도덕과 윤리의 가치를 무시하고 또한 어려움을 당한 자들을 돌아보지 아니한 죄에 대하여 심판을 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처럼 현대 학자들 사이에 이 4개의 구절에 대하여 많은 논쟁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본문이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고 또한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을 하신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반면 일부에서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고는 구약 성경을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구약 신학자들에게 남겨 놓을 생각이다. 다만 이러한 구약의 성경 구절을 중간사 시대에 어떻게 이해를 하였고 동성 연애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Eron이 내린 결론은 결국 동성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고 있으나 중간사시대의 유대인들은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간 시대의 문헌을 살펴보면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분명하게 반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먼저 12 족장 이야기 (Testament of the Twelve Patriarchs)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할 것이다. 이 레위의 이야기(The Testament of Levi)는 레위가 하늘을 여행하면서 그의 자손들이 행했던 일과 심판의 날에 이루어 질 일들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 17:11에서 악한 제사장들의 죄악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In the seventh week there will come priest; idolaters, adulterers, money lovers, arrogant, lawless, voluptuaries, pederasts, those who practice bestiality." 납달리의 이야기(The Testament of Naphtali)에서 소돔의 죄악을 따르지 말 것을 권하면서 소돔 성의 죄가 무엇인가 언급이 되어 있다. "But you, my children, shall not be like that: In the firmament, in the earth, and in the sea, in all the products of his workmanship which departed from the order of nature. 'Likewise the Watchers departed from nature's order; the Lord pronounced a curse on them at the Flood. On their account he ordered that the earth be without dweller or produce (TNaph 3:4-5). 또한 Sibylline Oracles의 저자도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지에서 언급을 하고 있다. "Male will have intercourse with male and they will set up boys in houses in ill-fame and in those days there will be a great affliction among men and it will throw everything into confusion. It will cut up everything and fill everything with evils with disgraceful love of gain, ill-gotten wealth, in many places, but especially in Macedonia (SibOr 3:185-188). 이러한 동성 연애와 남색에 대하여 Sibylline Oracles의 저자는 계속해서 부정적으로 언급을 하고 또한 그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행위를 피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동성 연애와 또한 남색이 주변 지역에서 만연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결국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따르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또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경에 기록된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또 다른 책 Pseudo-Phocylides의 저자도 동성 연애와 남색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반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Neither commit adultery nor homosexual passion(Ps-Phoc 3)." 그는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비율법적인 성 관계를 가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Do not transgress with unlawful sex the limits set by nature. For even animals are not pleased by intercourse of male with male. And let women not imitate the sexual role of men (Ps-Phoc 190-192)." 또한 Enoch의 저자도 역시 동성 연애를 소돔 성의 죄악과 연계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God convicts the persons who are idol worshipers and sodomite fornicators, and for this reason he brings down the flood upon them. . . . And all the world will be reduced to confusion by iniquities and wickednesses and /abominable/ fornications/ that is, friend with friend in the anus, and every other kind of wicked uncleanness which it is disgusting to report/, and the worship of (the) evil (one) (2 Enoch 34)." 위에 언급된 모든 글들에서 중간사 시대에는 소돔의 죄를 동성 연애와 연결시켜 생각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저자들의 견해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그리스 문화권의 사회에서 만연되어 있던 동성 연애나 남색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이들은 레위기에 근거하여 동성 연애를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또한 Philo와 Josephus와 역시 동성 연애를 소돔의 죄악과 연계하여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hilo는 그이 책에서 소돔의 죄악을 동성 연애와 연계하여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성 관계를 가지는 행위를 자연의 순리에 위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 . . not only did they go mad after women, and defile the marriage bed of others, but also those who were men lusted after one another, doing unseemly things, and not regarding or respecting their common nature; . . . by degrees, the men became accustomed to be treated like women, and in this way engendered among themselves the disease of females, and intolerable evil; for they not only, as to effeminacy and delicacy, became like women in their persons, but they made also their souls most ignoble, corrupting in this was the whole race of man, as far as depended on them (On Abraham 135-36). 이러한 언급은 요세프스에게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Josephus는 그의 글 Antiquities과 Against Apion에서 천사들의 소돔 방문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And when God had replied that there was no good man among the Sodomites; for if there were but ten such men among them, he would not punish any of them for their sins, . . . Now when the Sodomites saw the young men [the angels] to be of beautiful countenances, and this to an extraordinary degree, and that they took up their lodgings with Lot, they resolved themselves to enjoy these beautiful boys by forces and violence (Anti 1, 11. 3)." "But then, what are our laws about marriage? That law owns no other mixture of sexes but that which nature hath appointed, of a man with his wife, and that this be used only for the procreation of Children. but it abhors the mixture of a male with a male; and if anyone do that, death is his punishment (Anainst Apion 2, 25)." 필로나 요세프스는 그들의 견해를 당시 유행하고 있던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동성 연애나 남색이 옳지 못한 행동임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동성 연애는 순리(nature)에 적합하지 못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1세기 전후의 저작들을 살펴보면 당시 사회는 동성 연애나 남색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또한 이를 불법시 하거나 죄악시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 사회에서나 혹은 Diaspora의 유대 사회에서는 이를 죄악으로 취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동성 연애는 소돔 성의 멸망과 연계시켜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한 행위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나 남색을 취급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생각하여 볼 필요성이 있다. 동성 연애에 대한 바울의 견해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와 연계된 일련의 용어들을 로마서 1:26, 27절과 고린도 전서 6:9, 10절 그리고 디모데 전서 1:10에서 취급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현대 학자들 사이 속에서 이 구절을 동성 연애를 지지하는 구절로 해석하고 자 하는 학자로부터 동성 연애를 반대하고자 하는 학자들까지 다양하다. 어떤 학자들은 신약에서는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반강제적으로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남색을 반대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구절을 다시금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당시에 사도 바울은 만연되어 있던 동성 연애와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혹은 Diaspora에 있었던 유대 저자들과 같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1:9-10 여기서 동성 연애와 관련이 있는 용어는 9절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이다. 이 용어들은 헬라어로 ` 와 ' ~ 이다. 이 두 용어는 당시 사회속에서 유행하고 있던 동성 연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Witherington은 "Malakoi in its root meaning means 'smooth' or 'effeminate.' Dionysius of Halicarnassus (7.2.4) uses his term to refer to a young male prostitute. Pederasty, molestation of minors by adult males, was the most common form of homosexuality in antiquity. 여기서 ' ~ 가 본문과 디모데 전서 1:10절에 밖에 쓰여지고 있지 아니한 하팍스 레고메나인데 우리는 이 단어를 어떻게 해석을 하는 것이 타당한가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이 단어는 Bauer의 사전에는 "남성간의 동성 연애," "남색," "비역장이 (sodomite)"로 번역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단어 하나를 연구하여 사도바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단어의 Context 와 연계하여 사도 바울이 어떠한 의도 속에서 쓰고 있는가를 우리는 연구를 하여 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이 남색이라는 어떤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일까를 연구하여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를 어떤 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윤리적 차원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해석되어져야 하느냐 혹은 동성 연애로 해석할 것인가를 연구하여 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Wright는 이 단어가 레위기 18:22절과 20:13절에 근거하여 나왔다고 주장을 한다. 그래서 그는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해석을 한다. "the ones who lie/sleep with men" 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그는 강력하게 사도 바울은 당시 사회에서 만연되어 있던 남색이 오늘의 동성 연애의 개념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Fee 역시 이 견해에 동의를 하면서 이 단어는 양면적으로 해석이 되어질 수는 있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보면 동성 연애를 사도 바울이 비판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는 이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불평등한 관계에서의 이루어지는 인권적 차원의 성 관계에 대하여 언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 연애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Malick 역시 정의에 동의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하고 있다. "The significance of this derivation is that these passages in Leviticus have nothing to do with pederasty. They refer to the act of homosexuality -- man with man. It is significant that of all terms avaliable in the Greek language, Pual chose a compound from the Septuagint that in the broadest sense described men lying with men as they would lie with women. This is broad denotation that could include pederasty but need not be limited to it. 이 또한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남색이라는 단어를 당시 사회 속에서 볼 때 불평등한 관계 안에서 성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당시에는 평등한 관계에서는 동성 연애가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는 동성 연애에 대한 비판으로 보아야 타당한 것이다. 또한 디모데 전서 1:10절에서 이러한 남색이 악의 종류의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어 사도 바울은 당시 남색이 동성 연애인데 비록 사회적으로 만연되어서 일반화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할 지라도 성경적으로 볼 때는 죄악이었음을 성도들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과 당시 성도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성도들은 이미 구약 성경에 익숙하여 있었고 또한 중간사 시대의 문헌들에 익숙하였던 결과라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로마서 1:26-27 이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가 두 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단어의 의미에 따라서 본문의 이해가 달라 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단어는 우리말로 "바꾸어" 라는 과 "순리" 라는 ` 이라는 용어이다. Hays는 "바꾸어"라는 단어가 강조를 위한 수사학적 기교로 쓰였다고 주장을 한다. ". . . the direct parallelism between the rejection of God and the rejection of created sexual roles." 본문에서의 "바꾸다"라는 개념은 23절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그 의미는 타락한 인간들은 창조주 대신에 창조되어진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창조되어진 것을 더 좋아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25절에서 인간들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보다도 피조물 섬기기에 열심을 내었고 이는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것으로 바꾸어 놓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6절과 27절에서도 비슷한 의미에서 계속되고 있는데 인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에 순리에 역행하는 행동으로 성을 더 좋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이 본문에서 "바꾸다"라는 의미는 인간들이 타락함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섬기기 아니하고 인간들이 순리를 따라서 살지 아니하고 역리로 써서 남성이 남성을 향하여 음욕을 품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Dunn은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The third appearance of the word 'changed' . . . seems to imply that the action described ('changing the natural use to that which is contrary to nature') is of a piece with and direct result of the basic corruption of the glory and truth of God in idolatry. . . Homosexuality is seen as a passion which is 'worthy of no respect.' Homosexual practice is characterized with the emphasis of repetition as 'unnatural. . .'" 여기서 순리와 역리라는 단어를 대칭하여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용어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중간사 시대의 문헌의 작가들에 의하여 사용되어진 언어이다. 또한 이러한 "순리"와 "역리"라는 단어는 1세기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철학적인 용어들이었다. 순리는 당시 사회에서는 이성간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을 하였고 역리라는 단어는 동성 연애를 표현할 때 사용하고 있었다. 그 예로 Plutarch는 그의 책 Dialogue on Love, 751 C. E.에서 남성들 간에 의도적인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을 악한 행동이라고 하면서 이는 순리를 대항하는 역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두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성간의 사랑과 동성간의 사랑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사도 바울은 순리와 역리라는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동성 연애를 반대하게 되는 배경에는 당시 사회는 중간사 문헌에 익숙하여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중간사 문헌의 저자들의 견해와 같은 견해 속에서 동성 연애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속에서 동성 연애를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우리는 앞에서 1세기 당시 사회에서 동성 연애가 얼마나 만연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당시 사회에서는 동성 연애가 일반적이었으며 또한 죄악시 여겨지지 아니하던 사회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교회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더욱이 고린도 교회나 로마 교회는 그리스-로마의 문화권에 있었기 때문에 동성 연애가 죄악으로 인식되어지지 아니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사도 바울은 중간사 시대의 문헌들의 저자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강력히 반대를 하고 있다. 중간사 시대에도 동성 연애가 만연하고 있었지만 이 시대의 저자들은 구약의 성경 말씀이 당시 이집트의 문화를 배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어진 말씀이 아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행위임을 강조하고 있고 또한 소돔에서 벌어진 일들은 인간들의 무자비한 행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동성 연애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와 같이 사도 바울 역시 동성 연애는 하나님의 섭리를 역행하는 행동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중간사 시대의 문헌들의 저자들과 같은 견해속에서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의 동성 연애에 대한 비판이 인권에 대한 문제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동성 연애 행위에 대한 비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당시 문화적 사회적 배경 하에서 성경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오해를 만드는 해석을 하여서는 안된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동성 연애 행위를 반대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오늘날 서서히 만연되어가고 또한 공론화 되어가고 있는 동성 연애에 대한 성경적 답변을 분명히 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조심하여야 할 것은 이러한 말씀에 근거하여 동성연애자들에 대하여 편견을 가지거나 혹은 그들을 정죄하는 모습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참고 문헌 책 Andersen,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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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디이트리히 본회퍼를 다시 생각한다?
2002년 디이트리히 본회퍼를 다시 생각한다? 2002-08-05 15:33:29 read : 9 디트리히 본회퍼와 풀뿌리 민주주의 6·13 지방선거가 국민의 시선을 잡지 못한 채 막이 올랐다. 월드컵 대회와 대통령선거에 밀려버린 이유가 있다. 그러나 실제 영향력을 가진 것은 지방자치다. 민생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다. 풀뿌리가 건강해야 민주주의 나무는 자라는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하나님의 위임으로 “교회, 결혼(가정), 노동, 정부(정치적 권위)”를 말하고 있다. 물론 후에 본회퍼가 옥중서간에서는 정부를 문화로 대신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까지나 세상속에 있는 삶, 세상적 삶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 하나님의 위임들을 수행하는 삶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번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위임이란 말은 성경에 의해서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하나의 계명에 달려 있다. 세상 권력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위탁이다. 교회가 무엇인가? 결혼이 무엇인가? 문화 또는 정부가 무엇인가? 노동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임을 수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하나의 대리자로서 행동한다. 하나님께서 이 네가지를 다 모든 사람위에 부과했다. 이것은 세속적 영역으로부터 정신적 영역으로의 도피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먼저 교회의 위임이다. 교회위임은 두가지로 수행된다. 첫째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 선포의 도구이고 수단이다. 둘째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선포의 도구가 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의 목적점과 중심점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위임은 모든 인류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위임들 안에서이다. 두번째는 노동의 위임이다. 성경에 노동의 위임은 첫 사람 아담에게서 볼 수 있다. 아담은 에던 정원을 가꾸고 지켜야 했다. 타락 이후에도 노동은 하나님의 훈련과 은혜의 위임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은 이마에 땀을 흘려서 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복권 천국처럼 땀흘리지 않고 대박을 노리는 것은 범죄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노동은 경제활동 뿐 아니라 과학 예술에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세번째는 결혼의 위임이다. 본회퍼는 노동의 위임과 마찬가지로 결혼의 위임도 창조 뒤의 첫째 사람에게서 본다. 결혼에서 남자와 여자는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결합 위에 번성하는 축복 새로운 탄생을 준다. 결혼을 통해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봉사를 위한 존재, 그의 나라의 확장을 위한 존재가 된다. 단순히 아이를 출산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으로 양육(교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대리자다. 네번째는 정부의 위임이다. 정부의 신적 위임은 노동과 가정의 신적 위임을 전제하고 그것들에 의존한다. 정부는 직접생명이나 가치들을 생산할 수 없다. 그것은 창조적이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 그에게 주어진 질서 안에서 피조된 것을 지탱한다. 법과 칼의 권력을 통해 정부는 예수그리스도의 현실을 위해 세상을 보존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정부에 복종할 책무가 있다. 본회퍼의 위임론은 철저히 그리스도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위임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통해 존재한다.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위임들은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것을 부정과 비리와 혼탁으로 더럽히는 일은 더 이상 해서는 안될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잘 자랄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는 월드컵 16강 못지 않게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0세기 서구 신약학에 대한 반성(反省)과 제언(提言)
20세기 서구 신약학에 대한 反省과 提言 2002-11-09 10:57:23 read : 3 -\"역사적 예수연구\"와 관련하여- Retrospect and Proposal of New Testament Studies of the 20th Century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Jesus Quest 최갑종(천안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장, 신약학, Ph.D.) I.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는 지난 1세기 동안 서구 신약학의 가장 중심적이며, 지속적인 주제중의 하나가 되어왔던 \"역사적 예수연구\"를 중심으로 그 동안 서구 신약학이 어떻게 걸어왔는가를 추적해 보려고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우리 자신의 학문적 反省을 위해서이며, 둘째는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모색해 보기 위해서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일찍이 신학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하여 시작되고, 교회에 의해 발전되었다. 기독교 초기의 위대한 신학자로 불리어지는 사도 바울이 그랬고, 누가와 요한이 그랬다. 그들의 뒤를 이은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도 이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사도들이 교회를 위하여 썼고,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보존되어온 성경을 또한 교회를 위하여 해석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지난 몇 십년 동안 서구 신학은 주로 교회 안에서보다도 교회밖에 있는 대학교 안에서, 교회 목회자와 신자들을 위해서라기보다도 그들과 관계없이, 때때로 그들의 의사에 반하여, 주로 신학대학원이나 대학교의 종교학부에 소속된 학자들을 위하여 논의되고 발전되었다. 그 결과 신학과 교회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괴리는, 마치 호수를 떠난 고기나 고기 없는 호수처럼, 결국 신학과 교회 쌍방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신학은 그 생명력을 상실한 종교학이나 인문학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으며, 생명력 있는 신학을 잃어버린 많은 교회들은 교인들을 점점 잃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인 우리는 서구신학의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면책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인터넷을 통해 국경과 인종의 장벽이 무너진 같은 지구촌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들과 한국교회가 이와 같은 서구신학과 서구교회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의 선교사들을 통해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으며, 우리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대다수 서구신학의 산실에서 신학적 훈련을 받아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 지난 세기 서구 신약학 분야에 대한 우리의 반성작업은 어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반성일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오늘과 내일을 대비하는 우리 자신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의 준비이기도 하다. II. 지난 세기의 \"역사적 예수연구\"에 대한 회고 신약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20세기의 \"역사적 예수연구\"의 두 가지 방향의 길을 연 사람은 Adolf von Harnack(1851-1930)과 Albert Schweitzer(1875-1965)이다. 전자는 非終末論적, 비유대적 예수연구의 길을 연 사람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終末論적, 유대적 예수연구의 길을 연 사람이다. Harnack은 1901년에 출판된 책, What is Christianity?에서 새로운 다음 세기를 위하여 교회의 전통과 교리 및 철학 등에 의해 채색되지 않은 기독교의 가장 본질적인 것(\"das Wesen\")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고, 그것은 바로 무시간적이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父性과 윤리적 교훈을 제시한 예수의 메시지라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Harnack의 주장은 새로운 주장이기보다도 H.S. Reimarus(1694-1768)에 의해 시작되어 D.F. Strauss(1808-74), E. Renan(1823-92), H.J. Holtzmann(1832-1910) 등에 의해 滿開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의 역사적 예수연구, 곧 역사적 예수를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야로, 인류의 죄를 代贖하신 구원자로 보기보다 단지 인류에게 普遍妥當한 윤리적 교훈을 준 모범적 교사로 보려고 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총체적인 결론이기도 하였다. Harnack의 예수연구가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면, Schweitzer의 예수연구는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과의 단절과 함께 새로운 유대적, 종말론적인 예수연구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Schweitzer는 1906년에 출판된 Von Reimarus zu Wrede에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시도, 곧 근대적인 역사적 비평방법에 의해 교회의 전통적인 도그마에 의해 채색되어지지 않은 순수한 역사의 예수를 찾으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시도를 철저히 재조사한 다음 결론 내리기를, 그들이 재구성한 예수는 주후 1세기 유대교 안에서 실제로 살았던 예수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 당대의 사상적 이념이나 윤리적인 체계에 의해 창조되거나 재구성된 예수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그 대신 그는 1892년 J. Weiss가 Die Predigt Jesu vom Reiche Gottes에서 제시한 종말론적인 예수상, 곧 \'예수는 후기 유대교 종말 사상에 심취하여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선포한 유대 묵시적 예언자이다\'라는 주장을 발전시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이 제시한 비유대적, 비종말론적, 비초월적인 예수가 아닌 주후 1세기의 유대적, 종말론적, 초월적인 예수를 제시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Schweitzer가 제시한 예수도 하나님의 나라 도래를 위해 스스로 인자가 되어 십자가의 죽음을 자처한 한 영웅적 유대인 예언자에 지나지 않았다. R. Bultmann은 Schweitzer의 역사적 예수 無用論에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던 나아가 아예 역사적 예수연구의 不可能을 천명하였다. 일찍이 Martin K hler가 Der sogenannte historische Jesus und der geschichtliche, biblische Christus에서 역사적 비평방법에 의해 재구성된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에 제시되고 있는 신앙의 그리스도는 구분된다는 주장을 하였을 때, K hler의 본래 의도는 양자 사이의 연속선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Bultmann은 양자를 완전히 서로 분리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비평 방법의 대상이 되는 복음서 그 자체가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전승이 아니라 신앙의 산물이라는 전제 아래, 복음서를 역사적 예수연구의 자료로 사용하는 그 자체를 아예 거부하였다. 그는 자신의 양식비평의 집대성인 Die Geschichte der Synoptischen Tradition을 통하여, 복음서에 수록되어있는 예수에 관한 전승들이 주후 28년에서 30년까지 활동을 하셨던 역사적 예수 자신으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사후부터 기록된 복음서가 나타나기 시작한 주후 60년 때까지 예수를 추종하는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마치 고대의 희랍 사람들과 이스라엘 주변의 근동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자기 이해의 표현으로써 여러 가지 형태의 신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저들 기독교 공동체의 예배와 교훈, 선교를 위하여 공동체 자체의 신앙적 자기이해의 표현으로써 만든 일종의 창조적인 산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Jesus and the Word라는 책에서 \"나는 참으로 우리가 예수의 삶과 인격에 관하여 거의 아무 것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초대 기독교 자료는 예수의 인격과 삶에 관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 자료는 너무나 단편적이며, 종종 신화적이며, 그리고 그밖에 예수에 관한 자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복음서에 대한 非神話的 접근, 곧 복음서의 역사적 접근 아닌 實存主義的 접근을 시도하였다. 복음서의 모든 역사적 信任性을 거부함으로써 역사적 예수의 배격과 함께 결국 기독교를 일종의 가현설(Docetism)에 빠뜨리게 하였다고 볼 수 있는 Bultmann의 주장은 1960년대 이후에 와서 그 자신의 제자들에 의해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즉, 역사와 신앙[케류그마]을 철저히 분리시킨 Bultmann의 주장은 역사와 신앙[케류그마] 사이에 다시 다리를 놓으려는 E. K semann, E. Fuchs, G. Bornkamm, H. Conzelmann등의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New Quest)와 복음서의 예수 전승과 역사적 예수와의 연속선을 회복시키려는 J. Jeremias, B. Gerhardsson, R. Riesner, H. Sch rmann등의 유대 문맥에서의 복음 전승사 연구 등에 의해 허물어졌다. K semann을 위시한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그들의 스승에 반대하여, 복음서 안에는 역사와 케류그마가 서로 함께 얽혀져 있다는 전제 아래, 교회의 그리스도, 혹은 복음서의 예수와 역사적 예수 사이에 연속선이 있음을 주장하면서, 복음서를 다시 역사적 예수 연구의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Jeremias는 C.H. Dodd와 함께 복음서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의 비유들은 예수 그 자신의 말씀(ipsissima verba Jesu)을 보존하고 있다고 보고, 그의 Gleichnisse Jesu를 통해서 독창적인 진정성의 기준을 따라 순수한 역사적 예수의 비유 말씀을 회복시키려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 New Testament Theology: The Proclamation of Jesus에서 예수의 메시지와 인격을, 단순히 신약신학의 전제로 삼은 Bultmann과는 달리, 신약신학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았다. Gerhardsson은 그의 Memory and Manuscript, The Origin of the Gospel Tradition에서 본래 유대적 문맥 안에서 시작되고 전승되었던 예수 전승들을, Bultmann이 유대교 문맥에서 보지 않고 오히려 희랍적 배경에서 본 그 자체가 잘못이며, 그리고 Bultmann이 예수 전승들이 그토록 짧은 기간동안에 초대교회 안에서 형성될 수 있었다고 보는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구체적인 역사적 실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방법론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Sch rmann도 그의 논문, \"Die vor sterlichen Anf nge der Logientradition\"에서, 복음전승이 부활절이후 초대교회에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주장한 Bultmann에 반대하여,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부활절 이전의 예수의 제자 선택과 교육, 선교파송 등의 구체적인 실례에 근거하여, 복음전승은 이미 부활절이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1960대의 새로운 역사적 예수 연구는 1980년대 이후에 와서 소위 역사적 예수가 살았던 유대적 문맥에서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는 \"제 삼의 예수 연구\"(The Third Quest)를 주도하는 학자들(B.F. Meyer, E.P. Sanders, J.H. Charlesworth, N.T. Wright, G. Vermes, J.P. Meier, B.D. Chilton, M. de Jonge, P. Stuhlmacher, J. Becker, J. Gnilka, B. Witherington III)과, 예수의 사건보다 예수의 진정성 있는 말씀에 의해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고 시도하는 소위 \"예수 세미나\"(The Jesus Seminar) 학자들(R.W. Funk, J.M. Robinson, M. Borg, B. Mack, J.D. Crossan)에 의해 계승 발전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Schweitzer의 종말론적 예수 연구를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제 삼의 예수연구\"는 역사적 예수연구에 관한 획기적인 새로운 자료의 발견에 연유하고 있다기보다도 오히려 불투만이 허물었던 복음서에 대한 역사적 신임성의 재회복과, 역사적 예수와 복음서를 헬라문맥에서 보지 않고 예수 당대의 유대교 문맥에서 보려는 강한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제 삼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19세기와 20세기초의 \"옛 역사적 예수연구\"(Old Quest)나 1960년대의 \"새로운 역사적 예수연구\"(New Quest)보다도 역사의 예수를 찾는데 있어서 훨씬 더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이점을 Sanders가 1985년에 출판한 그의 책 Jesus and Judaism에서 \"오늘날 지배적인 견해는, 예수가 무엇을 성취하려 하셨느냐에 관하여 우리가 매우 잘 알 수 있으며, 그가 무엇을 말하였느냐에 관하여 상당하게 많이 알 수 있으며, 그리고 이들 두 가지가 1세기 유대교 사회의 문맥에서 볼 때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를 유대적 문맥에 한정시키는 제 삼의 예수 연구가들이 Old Quest나, New Quest와 달리 진정한 역사의 예수 회복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점을 제 삼의 역사적 예수 연구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는 E.P. Sanders, N.T. Wright, J.P. Meier, J. Becker등이 제시하는 예수가 한결같이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85년부터 주로 北美의 서부 California에서 모이는 \"예수 세미나\" 운동은 일찍이 복음서에서 제시되고 있는 예수의 초월적인 인격과 그의 사역을 철저히 거부하고 그 대신 예수의 윤리적인 교훈의 말씀에서 역사적 예수의 참 모습을 찾으려고 시도한 Harnack의 입장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The Jesus Seminar를 주도하고 있는 R.W. Funk, J.M. Robinson, B.L. Mack, J.D. Crossan등은 예수가 과연 누구인가? 예수가 과연 무엇을 행하셨는가?라는 질문보다도, 예수가 정말로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를 주 의제로 삼아 복음서로부터 역사적 예수 자신의 믿을 수 있는 말씀을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진정성 있는 말씀을 찾는데 있어서 자주 비정경복음서인 도마나 베드로의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어떤 비유들과 어록들이 정경복음서보다 더 고대의 것이고 더 信任性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아래,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를 정경복음서로부터 진정한 예수 말씀을 찾는 잣대로 활용함으로써 복음서의 정경성과 역사적 신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예수 세미나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The Jesus Seminar 모임의 학자들은 복음서 전승들의 진정성과 그 가능성 여부를 참가한 학자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하였는데 그 결과 놀랍게도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여러 예수 말씀 어록 중 실제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고 간주되는 말씀은 18%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결과를 토대로 하여 새로운 형태의 복음서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예수, 곧 갈릴리 출신의 비종말론적인 지혜 선생 예수를 제안하고 있다. III. 제기된 문제점과 反省 우리는 지금까지 지난 100년 동안 서구 신약학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 중 하나가 되어왔고, 사실상 모든 신약학의 방향을 좌우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고 볼 수 있는 역사적 예수연구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Old Quest든, New Quest든, Third Quest든, 혹은 The Jesus Seminar든 정도의 차이는 있다고 하더라도, 학자들이 제시한 예수는 서로 동일하지 않고, 때로는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 주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예수 자신이 수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고, 그리고 자신을 탐색하려고 하는 질문자들에게 자신을 그때 그때 각각 다르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역사의 예수와는 관계없이 서구의 신학자들이 제각기 그들 자신의 예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일까? 무엇 때문에 학자들의 의견이 서로 다른가? 아마도 그 주된 이유는 대상과 자료에 대한 적합하지 못한 전제와 방법론 문제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추구함에 있어서 그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어떤 자료와 함께 방법론을 사용할 것인가는 패러다임의 문제, 곧 방법론의 문제는 연구하고자하는 대상이나 내용 못지 않게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패러다임으로 그 문제를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도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동안 예수에 대한 수많은 서구신학자들의 그림이 제각기 달랐던 주된 이유는, 학자들이 찾으려고 한 예수 자신이 수많은 얼굴을 가지고 학자들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었거나, 혹은 예수에 관한 자료들이 학자들마다 달랐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예수에 대한 접근 방법론이 학자들마다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역사의 예수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자신의 방법론이 역사의 예수에게 접근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인지를 철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지난날에도 그래왔고,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탐색함에 있어서 먼저 자신의 방법론이 대한 철저한 자기비판 없이 자신의 방법론에 의존하여 어떤 문제를 접근하고, 그리고 그 방법론에 의해 제각기 다른 그림들을 산출하고 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방법론에 의해 만들어진 그 그림이 마치 그가 애초에 그리고자했던 실제 인물이나 대상과 동일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연구에 있어서 역사의 예수에게 접근하는 가장 정당한 방법론이 무엇인가를 먼저 규명하고, 그런 다음 자신의 방법론을 거기에 일치시키지 않는 한, 역사의 예수는 그에게 숨어 있거나 혹은 그 스스로 참된 역사의 예수가 아닌 다른 예수를 만들 놓고, 그리고 자신이 창작한 예수가 마치 역사의 예수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위험을 벗어나기 힘들다. 패러다임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자료에 대한 규정과 그 사용에 대한 문제이다. 고대 역사의 어떤 인물에 관한 우리의 역사적 지식은 우리가 사용하는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설사 고대 세계의 어떤 인물이 자기 당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현존하는 자료가 없다면, 혹은 자료가 있다 할지라도 그 자료의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지식을 확립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사적 예수 연구도 이 점에 있어서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역사의 예수에 관한 한 우리는 역사적 예수에 관한 어떠한 자료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며, 그 자료가 얼마나 역사적 信任性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역사 비판학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런데 역사적 예수에 관한 자료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예수 자신이 직접 썼다고 보이는 그 어떤 自書傳的인 기록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예수의 言行을 옆에서 목도하면서 찍은 그 어떤 비디오 테이프나 예수의 육성을 담은 그 어떤 녹음 테이프도, 예수 당대의 사람들이 직접 썼다고 보아지는 그 어떤 傳記物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역사의 예수에 관하여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현존하는 주후 1세기 자료들로서는 예수의 사후 약 30년 뒤에 쓰여졌다고 보아지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와, 50-60년대에 쓰여졌다고 보이지는 바울서신, 복음서와 거의 동시대에 쓰여졌다고 보여지는 그 밖의 신약성경과 유대 역사가 Josephus의 [유대고대사]외에는 없다고 해도 결코 과장된 말은 아니다. 1947년부터 수년간에 걸쳐 팔레스틴 유대 사해 서북쪽에 있는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엄청난 양의 쿰란문서는 최근의 구약과 신약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우리는 2000년만에 발굴된 쿰란 문헌을 통해서 현존하는 우리의 구약성경과 예수님 당대 유대인들이 사용하였던 구약성경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다라는 사실과, 그리고 신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중심적인 종교적, 문화적 사상 배경이, 그 동안 R. Bultmann을 위시하여 적지 않은 학자들이 추측한 것과는 달리, 헬라사상(Hellenism)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교(Judaism)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가 초대교회가 형성된 이후인 주후 67년경 멸망되었기 때문에, 쿰란 문서로부터 역사의 예수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러한 기대감은 사실상 채워지지 않고 있다. 1945년 이집트의 낙 하마디 지역에서 도마복음서를 위시하여 많은 위경복음서들이 발견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학자들이 낙 하마디 문서들로부터 역사의 예수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졌었다. 물론 최근의 몇몇 학자들은, 예를 들면 The Jesus Seminar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도마나 베드로의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어떤 비유들과 어록들로부터 진정한 예수 말씀을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의 역사적 기원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그 연대도 정경복음서보다 훨씬 후대의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가 실제로 정경복음서와 독립적으로 역사의 예수 연구에 결정적인 새로운 빛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도마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가, 주후 2-3세기에 익명의 여러 크리스챤들이 당시 비기독교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널리 읽혀지고 있었던 고대 헬라의 文人인 호머의 작품들의 영향을 받아썼던 많은 위경복음서들, 이를테면, [도마의 유년복음서], [나사렛인의 복음서], [히브리인의 복음서], [마가의 비밀 복음서], [에집트인의 복음서]들처럼, 2세기이후 고대교회안에서 큰 영향을 끼쳤던 영지주의(Gnosticism)의 영향을 받아 정경복음서의 예수 말씀이나 사건들을 재구성하였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대 역사가 Josephus의 [유대 고대사]는 어떠한가? 非크리스챤인 Josephus는 그의 [유대 고대사] 18권 3장 3절에서 예수에 관한 다음과 같은 짤막한 증언을 남기고 있다: \"이때에, 실로 우리가 그를 한 인간으로 볼 수 있을찐데, 예수라는 한 현자가 출현하였다. 그는 놀라운 일들을 행한 자였고,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드린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그를 따르는 자들 중에는 유대인들과 헬라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메시야였다. 우리 유대인들 중의 지도층 사람들이 그를 고소하였기 때문에, 빌라도는 그를 정죄하여 십자가의 처형을 받도록 하였다. 그렇지만 이전부터 그를 따르던 자들은 그에 대한 추종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그에 관한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운 일들에 대하여 말한바 그대로, 제 삼일에 다시 살아 그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크리스챤이란 종족들은 소멸되지 않고 존속하고 있다.\" 이 글이 참으로 Josephus자신의 글인가, 아니면 후대의 크리스챤들이 첨부한 것인가 하는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John P. Meier의 글에서 여실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최근의 경향은 적어도 이 글의 상당한 부분이 Josephus자신의 것이라는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설사 우리가 이 글을 Josephus자신의 글로 인정한다 할지라도, Josephus의 이 단편적인 증언으로부터 우리의 예수 연구에 핵심적인 질문들인, 이를테면, 예수는 어떤 메시야였으며, 예수는 자신에 대한 어떤 자기 의식을 가졌으며, 자신의 생애에 대한 어떤 프로그램을 가졌으며, 그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무엇이었으며, 왜 그가 자신의 유대 종족들로부터 메시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소를 받아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의 죽음 및 부활과 초대 기독교회의 태동 사이에는 어떤 연결점을 가지고 있느냐 등등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소위 마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에 있는 非마가적인 공통자료로 간주되고 있는 Q자료는 어떠한가? 우리는 Q자료를 통해서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예수를 찾을 수 있는가? 오늘 날 적지 않은 신학자들이 Q자료가 가장 오래되고 가장 믿을 수 있으며, 따라서 Q로부터 순수한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B.L. Mack은 Q자료를 통해서 기독교 신학에 의해 채색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 예수, 곧 非메시야적이고, 非신적이고, 非구원사적이고, 非종말론적인 예수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John Kloppenborg는 심지어 Q를 Q¹, Q², Q³로 분류하여 Q신학의 흐름 및 Q를 발전시킨 공동체를 추적하려고 한다. 그러나 설사 마태와 누가가 저들의 복음서 구성에 있어서 非마가적인 자료를 활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무슨 기준으로, 무슨 근거에서 마태와 누가에 의해 사용되기 이전의 수수한 Q자료를 재구성할 수 있으며, Q의 신학과 공동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가? 소위 Q 주창자들이 재구성한 Q와 예수가 일치하지 못하고 학자들마다 서로 다른데 누구의 Q와 예수를 믿어야 할 것인가? 따라서 적지 않은 학자들은 Q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고 하는 시도 자체를 여전히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역사적 예수연구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주후 1세기의 역사적인 자료로는 신약성경, 특별히 예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중점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정경 복음서 외에는 전혀 없다고 해도 결코 과장되거나 잘못된 주장은 아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의 예수연구는 결국 우리가 신약 성경, 그 중에서도 신약성경의 전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네 복음서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드리고,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해석하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우리의 역사적 예수를 찾는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과 신임성을 거부하고, 복음서와 역사적 예수와의 연관성을 전혀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다시 말해서 우리가 정경 복음서를 역사적 예수를 찾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뢰할만한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의 역사적 예수연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물론 우리가 복음서의 신뢰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려 복음서를 예수 연구의 결정적인 자료로 삼는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예수 연구를 자동적으로 보장해 준다거나 통일된 결론에 도달해 주도록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첫째는, 복음서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특성에 따른 복음서의 해석에 관한 문제 때문이며, 둘째는 역사적 예수의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문맥이 되고 있는 주후 1세기 유대교의 재구성에 관한 문제 때문이다. 먼저 첫 번째 문제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복음서는 현대적인 의미에서 예수에 관한 傳記로 보기는 어렵다. 마태와 누가 복음서만이 예수의 출생과 소년 시절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너무나 단편적이다. 그리고 네 복음서 모두 예수의 마지막 생애 3년간의 행적, 그것도 주로 최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 초점이 주어져 있다. 그리고 복음서가 예수의 생애 마지막 3년 동안에 하셨던 말씀들과 행위들을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복음서가 역사적 예수가 3년 동안 이 땅에서 하셨던 모든 말씀들과 행위들을 정확하게 그대로 보도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움을 복음서 자체가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모든 복음서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의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5천명 이상을 먹이신 이적(마 14:15-21; 막 6:34-44; 눅 9:10-17; 요 6:1-15), 공관복음서와 바울의 고린도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예수의 성만찬 말씀(마 26:26-29; 막 14:22-25; 눅 22:15-20; 고전 11:23-27),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마 13:3-9; 막 4:3-9; 눅 8:5-8), 마태와 누가 복음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주기도문(마 6:9-13; 눅 11:2-4)등등의 본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많은 공통점도 있지만 또한 서로간에 적지 않은 차이점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복음서 자체가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조금씩 조금씩 다르게 반복하여 말씀하셨거나 행동하셨으며, 그리고 각 복음서 저자들이 이 들 중 하나를 보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물론 이론적으로 각 복음서간의 차이점은 예수 자신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말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만찬말씀의 경우 예수께서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조금씩 다르게 네번 반복하여 말씀하셨다고 보기는 극히 어렵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복음서 자체의 현상을 볼 때, 설사 우리가 복음서가 수록하고 있는 예수 전승들이 초대교회나 복음서 저자들의 창작물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역사적 예수 자신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확신한다 할지라도, 예수 전승들이 그 전승과정과 기록과정에 있어서 사도들이나 초대교회나 혹은 각 복음서 저자 자신의 선교적, 목회적, 신학적, 문학적인 필요성과 강조점의 차이 때문에 복음서 저자들에게 어느 정도 편집상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복음서 자체가, 주후 28-30년에 있었던 예수의 언행에 관한 전승들이 예수 자신으로부터 예수 전승의 첫 전파자와 관리자가 되었던 사도들과 초대교회를 거쳐 주후 60년 이후의 복음서 저자들에 의해 예수에 대한 傳記가 아닌 예수를 증거하는 福音이라는 문학적 장르로 기록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어느 정도 자유로운 편집이 주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역사적 예수 연구를 위하여 학자들이 복음서의 자료들을 사용할 때, 때때로 그 자료들이 예수 자신의 역사적인 언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지, 아니면 편집과 해석의 과정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 예수를 위하여 복음서를 접근 할 때, 문학적 접근이든, 편집사적 접근이든, 수사학적 접근이든, 사회.경제적학적 접근이든, 우리의 역사 과학적 비평 방법 자체를 지나치게 맹신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학문의 세계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가장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를 다루는 순수과학이라고 할지라도 탐구자 자신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절대적으로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은 없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과학적인 비평적 자세를 가진다는 것은 복음서의 자료자체를 비판적인 안목에서 보는 것과 똑같이, 복음서 그 자체가 또한 탐구자 자신과 그의 방법론 자체를 비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두는 것을 말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탐구자는 자신의 방법론이나 전제를 우상화하는 반면에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도 모르게 복음서 자체를 상대화시키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다음으로 둘째 문제인 주후 1세기의 유대교(Judaism)의 재구성(Reconstruction) 문제를 생각해 보자. 주후 1세기의 유대교의 정확한 복원 문제는 우리의 역사적 예수연구는 물론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위시하여 그 밖의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또한 긴요한 일이다. 하지만 예수 당시의 유대교의 모습을 정확하게 復元한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점은 최근에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의 복원 문제를 둘러싸고 신약학자들간에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종교개혁자 Martin Luther이후 전통적으로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는 인간 자신의 율법적 행위나 공로를 통하여 의나 구원 혹은 메시야 왕국에 참여하려는 일종의 \"율법주의\"(Legalism)였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1977년 E.P. Sanders가 Paul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는, 전통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믿어 온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율법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의를 추구하는 일종의 율법주의적 종교나 행위 구원적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의 신분과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의 언약적 백성 가운데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Not getting in),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적 공동체 가운데 머물러 있기 위해서 (But staying in) 율법을 지키려고 힘썼던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였다는 새로운 주장을 하였다. J.D.G. Dunn, H. R is nen, F. Watson, J.M.G. Barclay등은 기본적으로 Sanders의 주후 1세기의 새로운 유대교 구성에 찬동하면서 신약성경을 이와 같은 새로운 전망에서 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반면에 C.E.B. Cranfield, G. Klein, D.J. Moo, S. Westerholm, F. Thielmann, C.G. Kruse, Brendan Byrne, S.J., T.R. Schreiner, D.A. Hagner, M.A. Seifrid, T. Laato, I.H. Marshall등은 전통적인 입장에 서서 오히려 이와 같은 새로운 전망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둘 중 어느 입장이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의 모습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느냐에 관하여 우리가 쉽게 단언을 내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역사적 예수 연구와 관련하여 복음서 등 신약의 자료들을 해석하기 위해 주후 1세기 유대교를 재구성할 때는,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 사실이 충분하게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주후 70년 이전의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가,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 왔거나 혹은 최근의 새로운 전망을 주창하는 학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결코 획일적이지는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설사 우리가 저명한 유대교 학자 J. Neusner의 충고를 따라 주후 70년 이전의 유대교 상황을 정확하게 재구성하기 위해서 주후 2세기 이후의 규범적인 유대교 랍비 자료보다 현존하는 주후 70년 이전의 자료들을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할지라도, 현존하는 이들 자료에 의존하여 당시의 다양한 유대교 상황을 정확하게 구성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렵고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우선 자료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고, 그 제한된 자료도 참으로 당시의 다양한 유대교 상황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느냐는 문제는 항상 남아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예수 연구를 위해서 당시의 유대교 자료가 진지하게 사용되어야하는 것과 꼭 같이,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재구성하는데 있어서도 유대교 문헌 못지 않게 복음서를 위시한 신약성경의 자료가 진지하게 사용되어야할 것이다. 이와 같은 순환적인 접근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역사의 예수는 물론 예수 당대의 유대교에 대한 보다 정확한 상황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오늘 우리 중에 그 누가 예수와 바울 당대의 유대교를 알지 않고 어떻게 유대인인 예수와 바울을 알 수 있겠으며, 오늘 우리 중에 그 누가 감히 바울 자신보다 주후 1세기 유대교를 잘 알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으며, 그리고 오늘 우리 중에 그 누가 복음서의 예수보다 예수 당대 유대교의 상황을 더 잘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와 똑같이 오늘 우리 중에 바울과 복음서 저자들보다 역사의 예수를 더 잘 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IV. 제안: 나사렛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의 身分과 그의 죽음 理解 그렇다면 나사렛 예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한편으로 역사-과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복음서의 역사적 신임성의 확신을 가지고 정직하게 복음서를 접근한다면 복음서를 통해서 어떤 예수를 만날 수 있는가? 이제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죽음 이해를 중심으로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33살이 되던 기원 후 30년 4월 유대인들의 명절인 유월절기 중에 예루살렘 근교에서 로마제국 당국자에 의해 그 당시 가장 처참하고, 잔인하고, 또한 모욕적인 사형제도인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다는 것은, 그가 기원전 4년경 유대나라의 왕인 헤롯이 사망한 해에 팔레스틴 유대지역에서 출생하였다는 사실과 함께,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는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예수의 십자가처형이 예수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우연히 일어난 사건인가? 아니면 예수 자신의 독특한 신분과 그의 사명에서 나온 필수적인 사건인가?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기독교의 시작과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역사적 자료를 통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대답은, 예수는 주후 1세기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는 유대사회에서 유대나라의 독립을 가져오는 유대인의 왕으로 자처하다가, 당시 유대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로마제국의 반역자로 간주되어 십자가 처형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예수 당대에 있어서 주로 로마제국의 반역자들에게 십자가처형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복음서의 자료도 우리에게 이점을 시사해 주는 듯 하다. 복음서의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너가 그리스도, 곧 유대인의 왕이냐?\"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요한복음 18:33), 예수는 빌라도에게 \"내가 왕이다. 내가 이를 위하여 났고,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다\"(요한복음 18:37)라고 하면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다\"라는 사실 그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23:2,5절에 따르면, 예수를 재판한 산해드린 공의회원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고소할 때 그들은,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라는 제목으로 고소하였고, 빌라도는 결국 이러한 고소장에 의거하여 예수를 십자가 처형하도록 판결을 내렸고, 그리고 예수의 처형 때에 \"유대인의 왕\"이란 명패가 붙여졌다(참고 막 15:12-15). 그렇다고 해서 예수가 참으로 유대인의 왕으로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일을 하였는가? 혹은 예수 그 자신은 의도적으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의 언행과 그의 언행의 여파가 실제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일로 비추어졌기 때문에, 그는 결국 로마제국에 의해 실제 반역자로서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되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첫째, 복음서의 증거에 따르면, 예수가 당시 유대지역의 치안을 위해 주둔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그들에 의해 먼저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복음서와 유대 역사가 Josephus의 글에 따르면, 예수를 실제로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한 자들은 로마제국 당국자들이 아니고, 오히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의 정치, 종교 지도층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먼저 예수를 체포하고, 재판하고, 처형하기로 결정한 다음, 예수를 빌라도 법정에 넘겼다. 둘째, 예수의 제자들을 포함하여 예수의 그 어떤 추종자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처형을 받지 않았다고 하는 점이다. 예수 당시 로마제국에 반역하는 자는 본인은 물론 그의 추종자들도 함께 붙잡아 처형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복음서는 물론 신약성경의 그 어떤 외적인 자료에서도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사도행전은 예수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남아 예루살렘 교회를 형성하고 예수 운동 확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 우리가 복음서로부터 예수나 그의 제자들이 실제로 로마제국에 반역하였다고 할 만한 일들을 전혀 찾을 수가 없다고 하는 점이다. 우리는 복음서로부터 예수가 그의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을 무장시켜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을 펼쳤다는 단 한 줄의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예수 자신은 후일 유대 독립 전쟁을 주도한 열심당의 근거지인 갈릴리 출신이었지만, 예수가 열심당에 동조하였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을 우리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이처럼 나사렛 예수가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반역행위자에게 부과되는 십자가처형을 당하였다면, 예수가 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였는가? 예수는 그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기 전에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셨으며, 그리고 자신이 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여만 하는지를,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아셨는가? 다시 말해서 예수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분명한 자기이해를 가졌었는가? 예수의 사후 기독교 운동을 최초로 일으킨 초대 기독교 교회가 선포하고 가르친 교훈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나타나 있는 내용, \"예수는 우리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혹은 예수는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 라고 하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해석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 예수 자신이 죽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죽음에 대한 해석을 하셨으며, 그래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자기 이해와 해석이 초대교회가 믿고 선포하는 핵심적인 교훈의 근간이 되었으며, 그 결과 후대 기독교 교회의 가장 중요한 교훈으로 전승되었는가? 기독교의 가장 초창기 문서를 남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1: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 고린도전서 15:3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 로마서 4:25절에서는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라고 말하면서, 예수는 자신의 허물 때문에 처형당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기 위하여 우리 대신 죽으셨다고 말하고 있다(역시 고후 5:21; 갈 2:20; 로마서 3:25-26; 8:3-4절 등). 그렇다고 한다면 바울 서신을 위시하여 초대교회 메시지 가운데 나타나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 예수 자신이 죽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죽음에 대한 그와 같은 해석을 하셨으며, 그래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그와 같은 자기 이해와 해석이 초대교회 메시지의 근간이 되었는가? 예수의 죽음 사건과 관련하여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몇 가지 주목할만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복음서가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 중요하고, 그리고 그 마지막 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 예수 처형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또한 예수와 당대 유대인들, 특별히 그 당대의 정치, 종교 지도자들과의 반목관계는 마지막 한 주간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예수의 행동 중 특별히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반목을 불러일으킨 몇 몇 실례를 든다면 다음과 같다: 예수의 죄용서 사건(막 2:1-12; 마 9:1-8; 눅 5:17-26); 예수가 세리와 죄인들과 음식을 먹은 사건(막 2:13-17; 마 9:9-13; 눅 5:27-32); 예수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은 일(2:18-22; 마 9:14-17; 눅 5:33-39)과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일(2:23-28; 마 12:1-8; 눅 6:1-5);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 먹는 것을 보고, 예수에게 찾아와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하고 불평한 일(7:1-23; 마 15:1-20; 눅 11:37-41).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는 그의 마지막 생애 한 주간 전에 이미 그 자신의 사역 중에 죄 용서문제로 인한 신성 모독죄, 안식일 날 병고친 일과 밀 이삭 잘라먹은 일로 인한 모세의 토오라 위반,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음으로써 장로들의 전통 위반,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일로 인한 귀신의 왕의 힘을 얻는다는 모함 등을 받았다. 특별히 그는 바리새인들과 많은 대립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예수와의 갈등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있어서 실제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 보다 오히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다고 하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예수의 처형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공관복음서에 발견하는 특이한 현상은, 예수의 생애 마지막 한 주간 이전에는 예수의 성전 청결 사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 악한 농부들의 비유를 통한 당대 정치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선언 등등과 같은 예수가 처형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자신이 이미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3번이나 알려주고, 그리고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마가복음 8:31-33절(역시 마 16:21-23; 눅 9:22)에 따르면,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처음으로 \"인자가(마태복음에는 \'그가\') 예루살렘에 마땅히 가서(마가와 누가 복음에는 \'예루살렘에 마땅히 가서\'라는 말은 생략)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그리고 제 삼일에 살아나게 될 것\"을 가르치셨다. 둘째, 마가복음 9:30-32절(마 17:22-23; 눅 9:43-45)에 따르면, 예수는 두 번째 제자들에게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어지게 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이 그를 죽일 것이요, 그런 다음 그가 삼일에 살아나게 될 것\"을 말하였다. 셋째, 마가복음 10:32-34절(마 20: 17-19; 눅 18:31-34)에 따르면, 예수는 예루살렘에 가는 길에 3번째 제자들에게, \"인자가 기록된 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어지게 될 것이요, 그리고 그들은 그를 사형에 처하도록 선고하고, 이방인들에게 그를 넘길 것이요, 이방인들은 그를 능욕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요, 그리고 삼일 후 그는 부활할 것이다\"라고 예고하였다. 우리가 이와 같은 예수 자신의 죽음 예고를 초대교회의 신앙적인 산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최근의 적지 않는 독일의 신학자들, 이를테면, O. Betz, M. Hengel, J. Jeremias, L. Goppelt, H.W. Wolf, P. Stuhlmacher, W. Grim-m등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역사적 진정성을 가진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고 한다면, 적어도 예수자신에게 있어서 그의 독특한 죽음 인식은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마가복음서와 마태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는 3번째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고를 한 다음 제자들에게 \"인자(예수 자신의 자기 호칭)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막 10:45)라고 하면서,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유대당국자들과의 결정적인 대립과 갈등을 갖기 전에 이미 자신의 죽음의 이유와 그 의미를 명백하게 밝히셨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은 그의 사명 수행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다라는 사실도 밝히셨다. 심지어 제자 베드로가 예수의 자발적인 죽음을 방해하였을 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막 8:33)라는 말로 강하게 베드로의 말을 반박하고 자신의 죽음은 이미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임을 암시하였다. 이점은 예수께서 자신의 게셋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 중에 자신의 죽음을 자기가 반드시 마셔야할 아버지께서 주신 잔으로 받아드리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되어 진다. 예수가 어떻게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으로, 많은 사람의 대속을 위하여 희생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예수가 자기 당대의 메시야 사상에 영향을 받아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 당대의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은 민족 해방적이었으며, 메시야가 민족의 속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대단히 낯선 사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을 받을 때부터 이미 자신의 신분과 사명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로 부름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또한 인자(단 7:13-14)와, 메시야와 야훼의 종으로 불리어지는 구약의 가르침을 따라(사 42, 43, 53장) 하나님의 백성의 죄사함과 회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속건제물로 희생하여야할 자이다라는 자기 의식을 가질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Hartmut Gese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는 이사야 53장 및 구약의 희생제사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화해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화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한 댓가의 지불을 요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셨음이 분명하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그리스도와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변하고 있는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죽음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였을 것이다. 모든 공관복음서와 바울의 고린도전서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의 말씀은 예수 자신의 이와 같은 자발적인 희생적 죽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나라 도래와, 이 나라에 참여하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앞당기기 위하여서는 그 자신을 통하여 그들을 대신하는 종말론적인 죽음과 부활 사건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한다는 사실을 내다 보셨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방해하는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이 정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셨을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예수의 성전 청결 사건과 그의 성전 파멸과 새성전 회복에 대한 예언, 악한 농부의 비유를 통한 예루살렘 당국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선언, 산해드린 공의회 석상에서의 메시야, 인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공개적인 시인등이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할찌라도, 이들이 예수 자신의 죽음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예수 자신의 독특한 인격과 그의 사명이 그로 하여금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자발적으로 걸어가도록 하였고, 그러한 예수의 자발적인 죽음의 행로를 위해, 예수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중에 있었던 그와 같은 모든 언행들이 있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죽음에 관한 이상과 같은 우리의 주장이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바울의 서신은 물론 전 신약서신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속죄적, 구속적 설명은 단순히 예수의 참흑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초대교회 자신의 신학적 해명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더 궁극적으로 예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기이해에서 유래되었다고 단언 할 수 있다. 사실상 우리가 예수 자신의 메시아적 죽음이해를 거부하게 될 경우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의 모든 행위와 말씀은 물론 예수에 대한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그렇게 빠른 기독교적 고백의 형성과 선교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예수 자신이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로 보냄을 받은 자로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독특한 자기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사실상 역사의 예수와 복음서의 예수, 복음서의 예수와 교회가 고백하여 온 예수가 각각 다른 사람이 아니라 동일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다. V. 나가는 말 그 어떤 분야의 학문이든 전제나 목적 없이 시작할 수 없다고 한다면, 신약성경 연구에 종사하는 신약학 학자들도,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런 것처럼, 앞으로도 자기 나름대로 어떤 전제 아래 신약성경을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전제를 가지고, 어떤 목적을 위해 신약성경을 연구하여야 할 것인가? 우리는 신약성경이 단순히 삼위 하나님(아버지, 예수, 성령)에 대한 인간/초대기독교 공동체의 종교적 경험이나 탐구 혹은 역사나 서술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접근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다. 오히려 신약성경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삼위 하나님 자신의 구원 계시와 역사의 규범적 서술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세기 동안 서구의 많은 신약학자들은, 그가 신약성경의 가치 기준을 윤리적 이상에 둔 19세기의 Ritschl과 Harnack의 舊자유주의 노선에 속해있었던지, 아니면 살아있는 종교경험에 둔 W. Wrede, H. Gunkel, W. Bousset의 종교사학파의 노선에 속해 있었던지, 아니면 인간의 실존적 결단에 둔 20세기의 R. Bultmann의 양식사학파의 노선에 속해 있었던지 상관없이, 신약성경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경험이나 사색, 혹은 역사나 서술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신약성경을 접근하였다. 따라서 지난 세기 동안 서구의 많은 신약학자들은 신약성경의 영감성과 신적 권위는 물론 신약성경이 전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 곧 예수의 동정녀 탄생, 이적들,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과 인자와 그리스도로서의 메시야적 자기의식, 그의 代贖的 죽음과 3일만의 육체적 부활, 오순절의 성령강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 교회를 통한 성령의 계속적인 역사들의 역사적 眞正性을 거부하였다. 이처럼 많은 서구신약학자들이 신약성경의 규범적 계시성과 구원역사성과 초월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약성경의 내용을 단순히 고대 사람들의 종교적 경험으로 간주하면서부터 신약성경은 서구 사회에서 교회와 세상을 향해 선포되어야 하는 規範性을 지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역사-과학적 비평방법에 의해 얼마든지 비판되어야하고, 재해석되어야하는 상대성을 지닌 사람들의 말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서구신학자들에 의한 신약성경의 상대화와 비역사화는 신약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즉 신약성경을 역사적 信任性을 가진 규범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접근할 때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역사의 예수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상대화시키면서부터 학자들은 신약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와 역사에 살았던 실제 예수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고,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예수와 다른 역사의 예수를 찾는 작업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을 떠나서, 복음서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을 떠나서, 그들의 증언을 불신하고서는 역사적 예수를 찾는 것은, 마치 21세기에 사는 자신이 역사적 예수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바울과 복음서 저자들보다도 역사적 예수를 더 잘 알 수 있다는 오만이며,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예수에 대한 복음서 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을 떠나서 역사적 예수를 찾는 것은 결국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고 싶은 예수를 찾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가 아닌 학자들이 만들어낸 예수는 예수도 아니고 복음도 아니다.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예수는 교회의 유익도, 구원과 생명도 가져오지 못한다. 사도 바울이 증언하고 있는 것처럼, 나사렛 예수만이 하나님의 아들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음을 믿는 복음만이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롬 1:3-4, 16; 고전 15:1-8). 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 사도들이 선포하는 그 복음만이, 우리의 신학과 역사적 예수연구의 시금석이다.
21세 기독교 윤리(낙태) 2002-11-12 10:54:57 read : 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낙 태(落胎) 서론: 문제의식 많은 윤리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역시 "삶과 죽음" 의 문제들 일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낙태' 는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첫 번째 중요한 문제이다. 생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적인 가치이며, 또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가치이다. 그렇다면, 우
21세 기독교 윤리(낙태) 2002-11-12 10:54:57 read : 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낙 태(落胎) 서론: 문제의식 많은 윤리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역시 "삶과 죽음" 의 문제들 일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낙태' 는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첫 번째 중요한 문제이다. 생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적인 가치이며, 또한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가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아의 생명을 끊는 일' 이 될 수 있는 '낙태' 가 과연 윤리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논의해 보아야 한다. 낙태(落胎) 에 대한 논의 전, 우리는 두 가지 큰 문제의식을 가진다. 첫째로, 태아(胎兒)는 인간인가? 라는 '태아의 지위' 에 관한 것이다.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에 따라 우리는 낙태에 대한 완전히 상반된 견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태아(胎兒) 는 언제나 보호 받아야 하는 무고한 인간인가? 라는 '태아의 권리' 에 관한 것이다. 태아가 인간임을 확증한 이후에도, 태아의 권리는 항상 산모의 권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바, '태아의 무고성' 이 항상 확립이 되지 않는다면, 산모의 '권리' 가 치명적으로 위협 받을 경우에 '정당방위' 에 의한 '낙태' 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된다. 이에, 본 연구는 '태아의 지위' 와 '태아의 권리' 라는 두가지 문제의식 속에서, 성경주해를 통해 '기독교적 가치'를 확립하며, '사회적' '윤리적' 맥락에서 '낙태' 의 문제와 그 반인륜성등을 살펴볼 것이며, 기독교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본 론 I. 태아는 인간인가? 위 표에서 우리는 태아의 지위에 대한 세가지 견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태아가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이 아닌가?' 라는 결국 두 가지 의견에 이르게 된다. 소위 '잠재성 논증' 은 '태아가 인간이다' 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도입된 논증이다. 노르만 L. 가이슬러는 이 잠재성 논증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이야기 함으로, 마치 "인간 vs 비인간 vs 잠재적 인간" 의 구조로 책을 서술하고 있으나, '잠재적 인간' 은 결국 '인간이 반드시 될 잠재성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태아'를 말하는 것으로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논증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낙태 이슈의 핵심은 '태아가 인간인가? 인간이 아닌가?' 이며, 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논증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으로서 우리는 잠재성 논증을 이용한 '태아의 인간성' 논증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1) 태아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1-1. 호흡으로부터 인간생명의 시작이라는 성경의 증거들 ①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 이 구절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그 코에 호흡을 받은 이후에야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became a living being) 고 말하고 있다. 출생하기 전까지는 '호흡' 하지 못하므로, 태아는 태어나기 전까지는 인간이 아니다. ② 욥 34:14-15, "그(하나님) 가 만일... 그 신과 기운(breath)을 거두실찐대 ... 사람도 진토로 돌아가니라" 고 했다.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생명은 호흡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호흡하기 이전에는 인간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론할 수 있다. ③ 사 57:16, "...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the breath of man that I have created)" 에서도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호흡' 과 함께 시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1-2. 출생으로부터 인간생명의 시작이라는 성경의 증거들 ④ 전 6:3-5,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라고 했다. 이것은 태아가 어두운 무덤 속에 누워 있기만 하는 죽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⑤ 마 26:24,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라는 말에는 인간의 생명이 출생과 더불어 시작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는 유다에 대해 "그는 임신되지 않았어야 했다" 고 말했을 것이다. 이상의 성경구절들에서 낙태 찬성론자들은 "인간의 생명은 호흡할 때 부터이다" 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의 시작은 '출생시-호흡할 때부터' 라고 주장한다. 출생 전 태중의 상태는 의미없는 '죽음' 과 같다고 말한다. 1-2. 반론(과연 그렇게 성경이 해석되는가?) ① 아담은 독특한 경우였다. 아담은 태중을 경험할 수 없었으므로, 그가 호흡을 받을 때, 진정한 인간이 되었다는 성경의 구절은 첫 인간의 특수한 창조를 말씀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② 호흡은 인간 생명의 시초가 아니다. 욥 34:14-15 은 생명의 종결에 관련된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신' 과 '호흡'을 취하실 때, 인간은 종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생명이 '호흡' 으로 시작된다고 추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사 57:16 에서도 인간의 '호흡'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 '호흡' 이 인간 생명의 출발점임을 드러내는 구절은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호흡은, 히브리어로 ' ' (ruah) 인데 이것은 하나님과 관련되어서는 '영(靈)' 혹은 '신(神)' 또는 '영감' 등으로 사용된다. '호흡' 과 '생명' 과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기에 인간의 '호흡'(ruah) 이 생명, 영혼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것이 '생명의 시작은 호흡이다' 라는 공식화된 명제로 이끌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경은 호흡 이전의 '생명(인간)' 에 대해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한다. 다윗은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라고 말함으로 '잉태된 나(인간)'를 이야기 한다. 또한 천사는 요셉에게 "저(마리아)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 1:20) 고 함으로써 '잉태된 자(예수님)' 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호흡' 에 관한 성경 구절들이 인간 생명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최초의 '소개식'(coming-out) 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출생은 세상으로의 생명의 소개이지, 그것이 생명의 시작은 아닌 것이다. ③ 전도서 6:3-5 은 낙태된 자의 죽은 자와 같은 '상태' 에 대한 것이지, 그 '본질' 에 대한 것이 아니다. 태아가 어두운 중에 있다고 하여 '죽은 자' 라면, 탄광에서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는 광부들은 다 '죽은 자' 인가?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둠속' 에 있기 때문에 '죽은 자' 로 취급하는가? ④ 마 26:24에서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탄식어린 저주는 유다의 삶과 행위에 대한 탄식과 저주이다. 어느 누가 탄식과 저주의 말을 할 때, '차라리 잉태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는 표현은 유대 문헌에 상응하는 표현이지, 그것이 '출생이 생명의 시작'을 나타내는 증거구절이 될 수는 없다. (우리말에도 "어머니, 왜 절 낳으셨어요!" 라고 하지, "어머니, 왜 절 잉태하셨어요!" 라고 말하는가?) 1-3. 낙태에 관한 직접적인 성경 구절 ㉮ 출 21:22-23,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낙태케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재판장 의 판결을 좇아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이는 이로,손은 손으로,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상하게 한것은 상함으로,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이 구절은 태아가 사망하고, 산모에게 다른 해가 없으면 벌금형이 부과되지만, 산모가 사망하면 사형에 처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산모의 태아의 생명은 '벌금' 의 가치 뿐이며, 산모의 생명만이 '생명' 의 가치로서 존중되는 것으로 보인다. ㉯ 반론 : 우리말 번역의 '낙태케 하였으나' 의 원문은 " " 로서 "아이를 가진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 는 뜻이다. " " 는 '아기를 낳는다' 는 뜻으로서 '유산'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문의 영문 번역은 다음과 같다. "When men are scuffling with each other, and they hit a pregnant woman, resulting in the premature birth of her child, but without harm, ..." (사람들이 서로 난투를 벌이다가, 그들이 한 임산부를 쳐서 그녀의 아이를 '조산(早産)' 하게 되었으나, 해가 없으면...) 따라서 이 구절은 아이를 낳되, 만삭이 되지 못한 '조산아'를 낳게 되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모' 이든 '조산아' 이든 상해가 크지 않으면 벌금을 내면 되지만, 둘 중 하나라도 '생명' 이 상할 때는 '생명' 으로 갚아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태아도 산모와 같은 '인간' 으로서의 가치와 지위를 지닌 생명임이 분명하다. 2) 태아는 인간이다. 2-1. 태아가 인간임을 드러내는 성경의 증거 1) 태아는 '아이' 로 불리우는데, 이것은 유아와 어린아이를 동시에 가리키는 말이며(눅 1:41,44; 2:12,16; 출 21:22) 때로는 성인을 가리키기도 한다.(왕상 3:17) 2)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것처럼 태아도 창조하고 계신다.(시 139:13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창 1:27) 3) 성인을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면 처벌 받듯이 (창9:6), 태아를 죽이거나 상처를 입혀도 처벌을 받는다.(출 21:22) 4) 그리스도는 성모 마리아의 모태 속에서 임신된 순간부터 인간이었다.(마 1:20-21; 눅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5) 하나님의 형상은 '남성과 여성'을 포함하지만 (창 1:27), 남성인가 여성인가(성의 구분) 은 임신이 이루어진 순간(수정란의 염색체 구조) 에 결정된다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이다. 6) 태아는 죄와 같은 인간적 특성들을 공유하며(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인간에게 있는 고유한 기쁨을 소유한다.(눅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7) 태아를 가리킬 때도 여타의 인간을 가리킬 때와 똑같이 인칭대명사가 사용된다.(렘 1:5; 마 1:20-21) 8) 하나님은 개개인에 대해 각각의 태아에 대해서까지도 자세하게 알고 계신다.(시 139:15-16; 렘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9) 태아도 태어나기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창 25:22-23; 삿 13:2-7; 사 49:1,5; 갈 1:15) 이러한 성경 구절들은 태아가 어린아이나 성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임을 의심의 여지없이 확고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 태아는 잉태서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며, 태아의 임신 기간 중의 생명도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귀중하며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적용을 받는다. 2-2. 과학적인 '인간' 의 출발점 2-2-1. 유전학적 증거 일반적으로 인간의 최소 조건은 46개의 염색체 존재이다.(이 중 23개는 난세포에 의해서, 또 다른 23개는 정자에 의해서 구성된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은 전혀 새로운 존재인 수정란을 구성한다. 또한 이 수정란에 인간의 모든 유전적인 정보가 존재한다. 아기의 성 또한 임신이 이루어질 때 결정된다.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는 말씀은 그러므로 '수정란'(성별이 결정되는) 이 인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2-2-2. 수정란 인간의 약점 1개의 수정란이 반드시 한 인간을 구성한다는 '연속성 논증' 과 '개별성 논증' 이 최근 도전을 받고 있다. 한 아이의 형성에 두 수정란이 관여하기도 하고(샴 쌍둥이, 태아속 태아) 혹은 하나의 수정란이 두 아이의 형성에 관여한다. (일란성 쌍둥이)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1) 원치 않는 상황(강간, 근친상간) 에 처했을 때 종종 기독교인들이 발빠르게 대처하는 방법은 '낙태' 는 반대하지만 '피임'은 허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정란'을 인간으로 보게 될 때, '피임' 자체가 어려워진다. 수정은 정자가 여성의 질에 들어가 자궁 안의 공간으로 헤엄쳐서 나팔관을 빠져 나가 난자를 만나는 것인데, 이 때 걸리는 시간은 20분이고, 첫 번째 세포 분열은 정자가 들어간 지 30분 후에 일어난다. 결국 대부분의 이러한 사건의 피임(혹은 치료)은 성관계 후, 수정란의 착상을 방해하는 방법이 된다. 2) 아이를 원하지만 낳지 못할 때의 해결(불임시술) 등에 있어서 종종 기독교인들은 찬성의 입장을 취한다. 하나님의 일반은총도 은총임을 믿기에, 인공시술(체외수정) 등은 자주 시행된다. 그런데 체외수정시 몸 밖에서 추출한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를 인공적으로 결합시켜 다시 자궁속으로 들여보내게 되는데, 이 때 수정란을 단 하나만 결합시키지 않고 수 많은 수정란을 만들고 그 중에서 가장 '활발한' 수정란만을 주입하게 되므로, 수 많은 수정란의 파기가 따른다. 이에 대한 윤리적 물음과 실제적인 크리스챤의 현실 간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있어 보인다. 2-2-3 대안 '수태' 와 '수정' 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사용하면 될 것이다. 1960년대 미국 식품 위생국(FDA) 는 미국 산부인과 대학교에서 '수태' 라는 단어는 '착상'을 의미한다고 재정의했다. "수태는 포배낭이 착상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수정과 동의어가 아니다" 수정 후 난세포는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두 번씩 분화 과정을 겪는데, 2.4.8.16 세포로 발달한다. 일란성 쌍둥이는 수정란이 둘로 분할되는 때로부터 시작되지만, 난세포가 8개로 분할되어서도 각각의 세포가 모두 배아가 되어 인간이 될 잠재성을 가지게 되며, 착상이 된 이후에야 더 이상의 변화가 없다. 착상은 수정 후 7일경에 시작하여 14일에 완성이 된다. 수정 후 14일, 곧 착상이 된 후에야 "개별적 자아 동일성" 은 확보된다.(1개체로서 확립) 이러한 생태학상의 증거 뿐 아니라, 종종 '임신' 혹은 '잉태' 의 진단은 수정 후 3주경에나 가능하다. 현대의학에 의하면 수정 후 3주경에 영양막에서 만들어져 산모의 소변으로 배출되는 융모막성 성선자극 호르몬을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임신을 진단할 수 있다. 따라서 수정 후 14일 경, '착상' 의 완료시기를 인간의 존재로 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잉태' 와도 부합되며, 현실적인 어려움들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하는 대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II. 태아는 '무고' 한가? 태아가 인간이라는 사실로부터 곧바로 '임신중절은 항상 도덕적으로 그르다' 는 결론을 낼 수 없다. 이는 산모의 도덕적 책임, 태의 무고성 유무, 산모의 생명과 태아 생명의 충돌 등 여러 문제가 해명되어야 한다. 1)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때 노만 L. 가이슬러는 임신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모든 예방 조치를 다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의도 자체는 태아를 죽이려는 데 있지 않고, 임신부의 생명을 구하려는데 있다. 둘째, 이것은 생명과 생명의 교환이라는 문제이지, 낙태를 요청받고 실행하는 상황의 문제는 아니다. 셋째로, 임산부는 물론 그 누구든지 자기 생명이 위태로울 때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살인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정당방위) 2)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강압적 근친상간 포함) 강간이라는 부정적인 사건 이후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제2의 희생을 줄이려면 사후 처리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2주 이내에 즉각적인 의료 처리를 하여 임신을 방해한다면 임신을 막을 수 있다.(사실 원치 않는 임신은 얼마든지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또한 실제로 강간에 의한 임신 확률은 대단히 낮다. 피해자가 주기적으로 볼 때 임신 가능 기간이 아닐 수도 있고, 임신하기에는 너무 어리거나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감정적인 충격으로 배란이 저지되는 경우가 많고, 완전한 성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도 있고, 강간범이 성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기(미국 시카고 경찰의 조사 결과 강간범의 58%가 삽입불능, 지루, 조루의 문제가 있었다.)때문이다. 이런 케이스는 전 낙태 건수의 3만분의 1밖에는 안된다. 그러나 임신했을 경우의 문제이다. 특히 청소년 강간의 경우, 그것이 첫 임신이 되었다면 낙태로 인해 향후 불임을 감수해야 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한 성인의 범죄에 대한 대가를 무죄한 태아에게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법리에 맞지 않는다. 한편, 아기를 낳는 것과 아기를 자신이 키우는 것의 부담을 다 질 것인가 아닌가는 차후 선택이 가능하다. 입양을 의뢰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3) 기형아 출산이 예상되는 경우 기형이란, 장애란 무슨 뜻인가? 기형아가 예상되기 때문에 낙태해야겠다는 철학을 가졌다면, 그는 현재 주변에 있는 많은 기형아, 정신 장애자, 기능 장애자, 노약자 나가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인가? '죽어 없어져야 할 것들' 이 아닌가? 기형 또는 장애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사전에는 없다는 말이 있다. 순전히 인간이 편의에 의해 만들어 낸 단어라는 것이다. 만약, 장애아이기 때문에 '낙태' 가 가능하다면, 그 논리는 현재 '장애자' 들에 대한 '학살' 도 가능한 것이 된다. 단지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인간' 이기에 죽일 수 있는 논리는 누구의 논리인가? 많은 경우 기형아는 자연 유산이 된다. 그리고 기형아 출산이 유전적인 경우는 20% 미만이고, 주로 산모의 운동 부족, 18세 이하 40세 이상의 임신, 마약, 항생제, 술, 담배, X선, 방사선 노출이 그 이유인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기형아 임신을 피할 것인가에 더욱 주력해야 지 관리를 소홀히 하고 그 태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낙태라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외에도 정부의 산아제한 시책과 무한 경쟁 시대의 여성의 생활권 선택권리등이 부각되고 있으나, 이러한 것이 '태아의 생명' 보다 귀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부담을 진다. 만약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낙태' 가 아닌 사전 '피임' 으로 얼마든지 산아제한과 여성의 생활권은 보장된다. 결국 여전히 생명 대 생명의 경우가 아닌 이상에는 '낙태' 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과학적, 철학적, 사회적, 성경적 근거가 없다. III. 낙태의 반인륜성 1) 비디오 시청 - "이성의 소멸"(eclipse of reason) 2) 낙태의 방법들 2-1. 흡입술(suction - aspiration) : 낙태시술자는 먼저 자궁 경부(자궁입구) 의 둥근 근육을 마비시켜야 하며 그것을 벌려 입구를 넓혀야 한다. 이것은 딱딱하고 '질기며' 열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다. 그리고 나서 시술자는 끝에 칼처럼 날이 달려 있고 속이 빈 플라스틱 튜브를 자궁 안으로 삽입한다. 흡입기는 아이의 몸을 갈기갈기 찢는다. 그리고 시술자는 자궁 벽 안으로 깊게 박혀 있는 태반의 뿌리르 자른다. 부서진 조각들은 병으로 빨려 들어온다. 이 때 사용하는 흡입력은 가정용 청소기보다 스물아홉 배나 강하다. 2-2. 소파수술(dilation & curettage, D&C) : 이것은 시술자가 둥그런 모양의 쇠칼을 자궁 안에 넣는 것을 제외하면 흡입법과 비슷하다. 이 칼을 가지고 시술자는 태반과 아이를 갈기갈기 찢고 부서진 조각들을 끄집어내서 통에 담는다. 일반적으로 출혈이 심하다. 2-3. 자궁 경부 확장 제거술(dilatation & evacuation, D&E) : 이것은 12주 이후에 시행한다. 아이의 뼈가 석회화되어 있기 때문에 펜치와 같은 기구로 자궁 깊숙히 삽입하여 전혀 마취되지 않은 아이의 다리나 다른 부분을 잡고 비틀어서 아이 몸체로부터 뜯어낸다. 이 작업을 반복하여 등뼈도 부러뜨리고 두개골도 으깨서 끄집어낸다. 간호사가 할 일은 태아가 완전히 나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끄집어 낸 몸의 부분을 재조립하는 것이다. 2-4. 약물낙태 : 첫째로, 소금 중독 방법은 큼직한 주사 바늘을 어머니의 복부를 관통해 아이의 양수막강에 찔러 넣어 농축된 소금물을 양수가 있는 곳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아이는 이것을 호흡하고 마시면서 중독되고, 살려고 발버둥치며 때로는 경련을 일으킨다. 한 시간 정도 이렇게 하면 아이는 죽는다. 성공적으로 아이가 죽었을 때, 산모는 하루 뒤에 분만이라는 과정을 거쳐 죽은 아이를 낳는다. 둘째로, 프로스타글란딘 약품은 호르몬으로서 격렬한 산통을 일으켜 자궁 안에 있는 아이의 크기에 상관없이(중기에 사용) 모두 유산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만약 아이가 출산의 고통을 견딜 만큼 자랐으면, 죽지 않고 나올 수도 있지만, 대개는 너무 작아서 생존하지 못한다. 어떤 논문에는 합병증 중 하나가 '산 채로 출생하는 것'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3) 낙태에 따른 심리적 고통들 1. 심리적 고통들이 거의 없다는 주장 1963 년의 한 연구에서 크레이머(Kramer)는 L.A. 지역의 정신과 의사 32 명을 조사하였다. 그에 따르면, 평균 개업 기간이 12 년 되는 의사들의 75%가 낙태 경험자들에게서 심각한 정신적 문제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1973년 126 명의 낙태 경험자들을 조사한 유윙(Ewing)과 루즈(Rouse)는 "대개의 경우 여자들은 낙태 수술의 과정을 잘 참아 넘긴다"고 결론지었다. 2. 심리적 고통들이 있다는 주장 매덕(Maddock) 박사와 섹스튼(Sexton) 박사는 낙태와 같이 민감한 사안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여자들이 자기의 억압된 심리를 다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한 도시에서 약 2 년간, 낙태 경험자 상담소에 95 명의 여성들이 전화를 했다. 이들 중 58 명이 죄의식, 불안, 우울증, 상실감, 후회, 자기 비하 등의 감정들에 시달린다고 털어놓았다. 가장 공통적인 감정은 죄의식이었다(예를 들면, "나는 살인을 했다", "나는 엄마로서 못할 짓을 했다" 등). 심지어는 25년 또는 37년 전의 낙태로 인하여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도 있었다. 낙태 경험자들의 남편들이나 남자 친구들도 역시 심리적 후유증을 겪는다. 이런 남자들 수 백 명을 조사한 한 사회학자는 "그들은 낙태를 단지 여성들이 겪은 수술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부성(父性, fatherhood)의 상실로 여긴다"고 말한다. 한 인터뷰에서 '태아'(fetus)라는 말이 언급되자 한 남자는 "지금 우리는 태아에 대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애는 내 아들입니다. 낙태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그 애는 세 살일 것입니다"고 말했다. 낙태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에게도 심리적 갈등을 안겨준다. 의학 본연의 임무 즉 생명을 치료하고 보존하는 사명을 저버렸다는 자책감이 그들을 괴롭힌다. 뉴욕에서 하루에 약 백 번 정도의 낙태 수술을 하는 '낙태 클리닉'의 소장이었던 나단슨(Nathanson) 박사는 후에 낙태 반대자로 돌아선 사람이다. 그에 의하면, 수술실에서 어떤 의사들은 땀을 많이 흘리거나 몸을 심하게 떨거나 음료수를 계속 홀짝거린다고 한다. 또한 어떤 간호사들은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IV. 한국의 낙태법 한국에서 행해지는 낙태는 그 정확한 통계를 측정할 수 없으나, 학자에 따라서는 한 해 200만명까지 추산하기도 한다. 이는 1년에 출산되는 아기 60-80만 명의 두 배에 이르며, 하루에 4천명 꼴로, 20초에 한 명 꼴로 생명을 잃고 있다. "한국에서는 세 명의 아이가 임신되면 한 명만이 남고 두 명이 죽는다." 형법 제 269조 [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전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치상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치사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모자보건법 제 15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 ① 인공임신중절수술은 임신한 날로부터 28주일 이내에 있는 자에 한하여 할 수 있다. ②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 장애나 신체 질환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유전성 정신분열증 2. 유전성 조울증 3. 유전성 간질증 4. 유전성 정신박약 5. 유전성 운동신경원 질환 6. 혈우병 7. 현저한 범죄 경향이 있는 유전성 정신장애 8. 기타 유전성 질환으로서 그 질환이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현저한 질환 ③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전염성 질환은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풍진, 수두, 간염, 후천성면역결핍증 및 전염병 예방법 제2조 제1항의 전염병을 말한다. 결 론 (윤리이론으로 살펴 본 낙태) 상황: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 참석한 후 몇 달이 지나 A 집사님은 그녀의 딸이 '임신'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밝히기에' 매우 '곤란한' 사람이었다. 그 딸은 평소 좋아하던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평소 '낙태' 가 반인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크리스챤이었다. 그러나 임신 전 조치를 취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어 버렸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자니, 어린 딸이 겪을 육체적 정신적 충격과 이후에 벌어질 한 생명과의 생 이별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었다. 이 문제로 당신을 찾아 온 A 집사님에게 당신은 어떤 윤리적 대안을 가지고 접근하겠는가? 1. 도덕률 폐기론 : 이 이론대로라면 낙태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판단대로 행하면 된다. 2. 상황주의 : 모든 행동의 근거는 '사랑' 에 기초해야 한다. 딸에 대한 '사랑' 으로 '낙태'를 한다면 이 상황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태아' 에 대한 '사랑' 은 실종되어 버리는 것이니 딜렘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3. 일반주의 : 공리주의적으로 접근한다면 '낙태' 가 '출산' 과 '입양' 등 보다 덜 손해가 되고, 덜 괴롭고, 더 빠르고, 더 간편한 방법이 된다. '출산' 으로 인해 겪을 가정적, 물질적 고통과 손해 보다는 '낙태' 가 더 선호된다. 4. 무조건적 절대주의 : '낙태' 는 '인간' 이므로 무조건 거부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법대로 하면, 비록 잠시의 괴로움이 있을지도 모르나, 결국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 이 확실하다. 결의론적 말씀의 원리를 좇으라. 5. 상충적 절대주의 : 이 경우 '낙태' 와 미성년 미혼모의 '출산' 은 갈등적 상황이다. 어느 쪽을 택해도 우리의 '죄됨' 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물론 '출산' 이 죄는 아니다. 그러나 그와 상응하는 '죄값' 이다. 죄의 값은 '낙태' 가 덜해 보인다. 반대의 경우는 일생 겪을 죄값이 너무나 중하다. 그러나 죄의 중량은 '살인죄인 낙태' 가 더 크다. 어느 모로 보나 갈등적인 문제이다. 6. 차등적 절대주의 : 만약 미성년 미혼모의 '출산'을 막는 것이 '낙태'의 심각성 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낙태' 는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낙태' 의 경우가 성경에서 훨씬 더 상위법에 속해 있음으로 '출산' 의 죄값이 크다 해도 '낙태' 는 해서는 안된다. 태아는 인간이며, 보호 받아야만 하는 인권이다. 우리는 이미 생명의 시작점을 고찰하였으며, 착상 후 14일(임신2주) 이상의 태아에 대한 여하한 상해는 거부해야 할 것임을 밝혔다. 물론 산모의 생명의 위협의 경우는 매우 신중한 윤리적 판단이 필요하지만, 낙태의 심각성과 반인륜성은 마땅히 우리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반낙태운동의 선봉에 서게한다. 반대자들의 견해에 대한 윤리적 반박과 대안 제시를 거친 우리는 교회와 사회 속에 생명이 바르게 대우받고 보호받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Bibliography 노르만 L. 가이슬러 "기독교 윤리학" 위거찬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171-197 윌키 부부, "낙태" 정길용 옮김 (낙태반대운동연합, 1997) 김상득, "생명의료 윤리학" (철학과 현실사, 2000) 황필호 편저, "산아제한과 낙태와 여성해방" (종로서적, 1990) 박원기,「기독교사회윤리」,(서울: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1995) 프란시스 쉐퍼, "인류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윌리암 L. 할러데이 편집, "히브리어 아람어 사전" 손석태, 이병덕 공역 (솔로몬, 1998) Roland Murphy, "Ecclesiastes"(WBC) Donald A. Hagner, "Matthew"(WBC) John I. Durham, "Exodus"(WBC) J. J. Davis, Evangelical Ethics, (Phillipsburg: P&R Publishing, 1993) 낙태반대운동연합 홈페이지 http://www.prolife.or.kr
21세기 지구의 상황과 희년의 성취 2002-02-01 21:10:18 read : 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민중신학의 Paradigm Shift를 위하여 - 김 용 복 박사 <머리말> 1.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어 지구적 상황이 지역, 민족사회 그리고 세계사회의 지평이 접속되고 정치계, 경제계, 사회계, 문화계, 종교계, 생명계에서 인간과 생명이 다중
21세기 지구의 상황과 희년의 성취 2002-02-01 21:10:18 read : 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민중신학의 Paradigm Shift를 위하여 - 김 용 복 박사 <머리말> 1. 지구는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커다란 시장으로 개편되어 지구적 상황이 지역, 민족사회 그리고 세계사회의 지평이 접속되고 정치계, 경제계, 사회계, 문화계, 종교계, 생명계에서 인간과 생명이 다중 적인 희생의 제물이 되는 현실이 압도하여 오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는 (1) 지정학적인 재구성과 (2) 모든 차원의 상호연관성이다. 지정학적 재구성이란 지역적 지평과 민족 사회적 지평과 지구적지평이 동시적으로 결합 되여 있는 지정학적 구조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또 상호연관성이란 자연,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종교적 차원은 총체적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인간사회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시장화된 지구적 상황에서 인간의 다중적 희생은 새로운 신학적 과제와 접근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의 한 전략가의 관찰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는 문명의 충돌(Civilizational Clash)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1.1 지구시장은 초국적 기업에 의하여 장악된다. 초국적 기업은 지구적 조직망과 통신망을 가지고 경쟁적으로 시장을 장악하여 사회주의권 내지는 구 사회주의권을 비롯하여 소위 제3세게권은 물론 산업선진국과 신흥공업국의 걍제시장도 장악하려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세계경제성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지역적 빈부의 격차는 물론 지구전역에 있어서 경제적 약자는 희생을 당하게 된다. 기아, 가난, 실업 등의 경제적 불안은 그 강도에 있어서나 그 범위에 있어서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될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은 이러한 세계시장경제질서의 개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여기소 소위 국가경제체제라는 근대국가의 고정적 개념은 와해되고 오직 세계시장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경제생활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치열한 경제적 경쟁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1.2.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근대국민국가(Nation State)의 체제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초국적 기업의 세계시장의 장악은 국가권력의 약화를 초래하고 국가사회는 세계경제의 운동방식에 적응하도록 강요되고 국가사회의 개방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주권의 개념은 절대적인 개념으로 될 수 없으며 지구시장적 역학관계에 노출될 것이며 국민의 주권은 상대적으로 약화라는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소위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체제는 심각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고 세계시장에 개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3.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세계적 경제경쟁의 격화는 물론 모든 사회관계의 대립, 갈등, 모순은 심화될 것이며 격화되고 심지어는 폭력화 될 전망이다. 이 경쟁관계를 무한 경쟁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정글의 현상으로도 비유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경험해 왔던 민족간의 갈등, 계급간의 대립은 물론 모든 사회관계가 다차원적으로 대립, 강등, 모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1.4.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정신생활과 문화생활에 대한 충격은 가장 심각하다. 세계시장은 세계적인 통신망을 구축하고 정부를 유통하며, 세계는 지구적 다중매체에 위하여 지배될 것이며 따라서 모든 민족 또는 공동체 문화의 정체성, 문화적 도덕적 정신적 가치 그리고 삶의 양식은 시장의 소용돌이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지구시장의 경쟁적 논리는 문화적 차원에서는 문화전쟁으로 까지 치닫게 될 것이며 이런 차원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종교와 종교의 관계도 치열한 시장적 경쟁관계에 종속되게 될 것이다. 1.5.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개편됨에 따라 지구의 생명은 더 커다란 회생을 당하게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생태계의 위기는 서구형 산업경계체제와 산업발전의 모순 즉 자연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관계에서 인식되어 왔다. 이제 시장의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시민의 정치적 압력을 초월하여 군림함으로 그 사회 정책적으로나 생명계에 대한 정책이 파괴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 더욱 커 졌다. 생명의 환경은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의 결집이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어 가고 있다. 2. 민중과 생명은 공히 희생되고 있다. 2.1. 지금까지 전통신학은 물론 민중신학은 민중의 희생은 생명의 파괴와 연대관계 없이 이해되었었다. 민중신학에서 조차 생명의 파괴는 별도의 문제로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민중의 생명은 자연의 생명과 일체적인 것이다. 민중의 생명은 민중의 삶과 구분되지 않으며 민중의 삶은 생명 그 자체와 구별될 수 없다. 우리는 생명일반의 파괴를 민중의 생명파괴에서 체험한다. 따라서 일반 생명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모든 생명은 차별없이 지구시장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신학의 共生的 또는 相生的 생명론(Minjung Ecology)을 말할 수 있다. 2.2. 일반생명과 민중의 생명과 민중의 삶은 일체적인 실체이다. 생명과 삶은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다. 민중의 살림살이(삶)가 민중의 생명을 좌우한다. 민중의 생명은 민중의 졍제적 살림살이(Minjung Political Economy)에 의하여 크게 좌우된다. 민중신학은 생태계(Ecology)와 정치경제(Political Economy)를 유기적으로 이해한다. 로마서 8장 21절(우주의 신음) 2.3. 생명체의 파괴와 민중의 희생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기반에 의한 계급적 모순과 갈등구조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의 파괴는 생명의 자생성의 붕괴이며(토지훼손) 민중의 생산적 주체성(노동과 경영)의 종속이다. 생명체의 파괴는 계급적 모순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적 산업조직과 거대기업의 현대과학기술(Technocracy)을 기반으로한 총체적인 경쟁적 통제적 경영논리에도 기인한다. 이 과정은 생명의 자생성과 민중의 노동과 생산적 주체성이 부정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경제적 가치(화페등과 같은 금융경제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가치)가 생명이나 공동체의 삶에서 유리된 채 창출되어 경제적 힘이 생명 희생적 주체 억압적 실재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제적 희생은 단순한 재화의 결여나 빈부의 구조적 격차에 의한 에 의한 빈곤이나 기아에서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2.4. 생명체와 민중은 살림살이를 결정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성과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억압당하고 있다. 생명체와 민중의 삶은 생명과 삶의 공동체의 민주적 형성이 독재체제(예 개발독재)에서는 물론 자유주의체제 또는 신 자유주의어려워 짐에 따라 그 주체성이 억압된다. 2.5. 민중의 삶과 생명은 정보산업과 문화산업에 의하여 더 희생당할 전망이며 다중매체에 의하여 그들의 생명과 삶이 문화적 폐허와 정신적 억압으로 고난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3.. 민중은 포괄적이고 상호연관성을 가진 모순관계에 의하여 수난을 당하고 있다. 3.1.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정치적 억압 즉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없는 자의 모순과 갈등과 계급적 모순과 갈등을 축으로 하여 민중의 고난을 이해하여 왔다. 민중의 생명과 삶을 파괴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 경제적인 모순과 갈등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산업문명과 생태계의 모순, 문화적 피폐와 억압, 폭력, 생명의 정신적 기반의 붕괴라는 종속적이 아닌 독자적인 요인과 모순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3.2. 그리고 민중의 삶에 있어서 대립과 갈등은 상호연관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모순관계로 이해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상호연관성을 간과하고 분석적 차원을 절대화하는 우를 범하였다. 따라서 민중의 생명과 삶은 분석적 모순관계로 축소되고 환원되었다. 3.3. 민중신학은 80년대에 들어와서는 또 이 모순의 위계질서를 물질 우선적으로 정하였다. 물질을 기반으로한 계급갈등이나 민족갈등을 우선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다른 차원의 모순과 갈등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또 1980년 이전에는 민중의 고난과 투쟁을 명확한 모순의 분석이전의 상태에서 인식하였었다. 그러나 이제는 민중신학이 모순과 갈등과 대립을 다차원적으로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각차원의 상대적 독자성과 고유성 그리고 각 차원간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생명체와 민중은 다차원적 희생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3.4. 민중의 생명과 삶에 있어서 폭력과 평화의 문제를 정의의 문제보다 우선순위를 낮게 정하였다. 정의는 평화의 기본조건이고 평화는 정의의 충분조건이다. 모든 모순과 갈등과 대립은 폭력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으며, 평화적으로 모순과 대립을 극복하는 것도 민중의 생명과 삶을 일으켜 세우는 데 중요한 요건이다. 지금까지 민중신학은 폭력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폭력의 다양한 실체를 소홀히 파악하였으며 폭력극복을 위한 노력을 미온적으로 하여 왔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폭력의 실체를 단순히 수단적인 차원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민중의 희생은 결국 폭력에 의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은 폭력문제를 물리적인 수단의 차원을 넘어서 다차원적인 생명파괴의 실체로 인식하여야 한다. 3.5. 민중의 생명은 자연적 조건, 정치 경제적 조건만으로는 지탱될 수 없다. 민중의 생명과 삶은 문화적, 예술적, 심미적, 정신(영)적 차원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런 조건은 물질이나 자연에 종속된 요건이 아니라 독립되어 물질적 요건과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민중의 생명과 삶에 있어서 감성의 풍성함과 운율의 다채로움도 본질적인 활력의 일부이다. 민중의 생명과 삶은 그 정신과 혼백의 활력을 중심에 지녀야 살아있게 된다. #4. 민중의 주체성의 재구성 4.1. 민중신학은 민중의 역사적 주체성을 정치 경제적 차원을 중심으로 이해하여 왔다. 그리고 민중의 주체성을 정치 경제적인 소유와 권력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민중의 주체성인식에 있어서 정치 경제적 축소주의에 빠져 비 정치 경제적 요소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4.2. 그러나 민중의 주체성은 그 모순관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다차원적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민중과 생명체는 생명의 주체이며, 삶전체의 주체이다. 그럼으로 민중의 사회전기는 정치 경제적 차원에 국한될 수 없고 종교적, 정신적, 정신적 차원이 상호연관성안에서 공히 인식되어야 한다. 민중의 주체성은 同活體로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다차원적 주체성간에 공생관계와 협동관계를 내포한다., 이것은 마치 다양한 주체들이 원탁에 공히 지리를 같이하는 조합적 또는 집합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4.3. 민중신학은 권력이나 소유의 문제에 있어서 그 실체를 표면적으로 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민중의 소유, 민중의 권력을 낭만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다. 4.4. 그러나 민중의 생명과 삶은 소유의 문제나 권력을 획득하고 장악하는 데서 해결되지 않고 소유관계나 권력관계를 원적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민중이 소유나 권력관계에서 종속되고 억압당하고 있을 지라도 그 생명과 삶은 간헐적으로 소유와 권력관계의 쇠사슬에서 "자유로운 주체"로서의 체험을 가지게 된다. 민중의 주체는 권력과 소유이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4.5. 민중의 생명과 삶은 소유와 권력을 장악하는 데서 성립되지 않고 소유와 권력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소유와 권력관계자체에서 "초월(Kenosis and Diakonia)"됨으로 이루어 진다. 민중신학은 소유와 권력관계의 악순환을 근원적으로 차단하여야 했다. 5. 민중과 연대관계 5.1. 민중신학은 연대관계를 너무 단순차원에서 인식하였다. 민중의 연대를 정치 경제적 소유나 지배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경향은 민중의 주체의 배타성과 파당성을 강조한 나머지 민중의 고립을 자초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다. 5.2. 민중의 연대관계는 민중주체성의 포괄성을 전제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민중생명과 삶은 소유와 권력관계에서 중요하게 이루어지지만 그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독자적이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5.3. 생명체와 민중의 삶의 연대관계는 전통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계급간의 연대(Inter-class Solidarity), 문화적 차별을 넘어서는 연대 (Inter-gender Solidarity), 정치적 지배관계를 넘어서는 연대(Inter-political Solidarity)등 모순과 갈등 등의 대립관계속에서도 연대의 다리를 모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체과 민중의 삶이 이러한 연대망을 구축하는 것은 모순을 애매하게 인식하거나 억압세력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와 민중의 삶이 포괄적인 주체로 성립하고 포괄적인 연대를 수립하여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5.4. 따라서 민중신학이 주창하여오던 절대적 적대관계란 논리적으는 있을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 5.5. 주체로서의 생명체외 민중은 포괄적인 주체성을 토대로 다양한 연대관계 그리고 모든 적대관계를 뛰어 넘는 연대관계(공생, 협동, 연대)를 형성하여야 할 것이며, 항상 유동적이고 열려있는 연대운동을 벌려가야 할 것이다. 6. 종의 형체와 Diakonia의 살림살이 생명공동체(Oikonomia Tou Theou) 우리는 성경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민중적 사회전기 즉 예수의 형체를 통하여 민중의 주체를 재구성하려한다. 희년은 노예의 해방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노예적 생산관계에서 해방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노예가 그 주체성을 항구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빌립보서 2장에 종의 형체를 입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기까지한 하나님을 영광의 주로 고백하는 구절이 있다. 이것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자화상 즉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을 받으러 왔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이는 이사야서에 표출된 "고난의 종"즉 메시아라는 신앙적 체험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나아가서 초대교회는 종(Diakonos)을 공동체의 직분으로까지 세웠다. 여기서 역설적으로 이야기되는 종의 형체, 종의 사역, 고난의 종은 민중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 종의 실체 안에 주체적 실체를 역설적으로 함유함을 의미한다. 이 종의 형체를 공동체(교회론)적으로 표현하면 이는 "섬김의 공동체"로 이해된다. 여기서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주체로 일으켜 세운다. 섬김이란 모든 사람은 일으켜 세운다. 실로 DIAKONIA운동은 모든 생명체와 민중을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운동을 의미한다. 예수를 따르는 민중은 이미 종속적 관계에서 종의 "사역"에 강요되었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안에서는 모든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메시아적 DIAKONOS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중의 주체성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즉 민중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메시아적 종의 형체"를 입게 된다. 이 섬김의 공동체 안에서는 민족적 주체성, 사회경제적 주체성, 문화적 주체성, 정치적 주체성, 종교적 주체성, 생명적 주체성의 기적을 일으키는 섬김의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 <갈라디아서 3장, 예배소서 4장>에서 이 역설적 同活體의 실체가 이야기되고 있다. 7. 희년과 민중신학 7.1 땅은 생명의 그루터기이다. 땅의 회복이란 생명의 회복을 의미한다. 생명과 땅은 공생동활의 연대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1995년 민족희년의 선포는 삼천리금수강산을 민족의 생명의 정원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7.2. 희년은 민족의 삶을 보장하고 안전하게 하는 경제적 살림살이를 의미한다. 즉 민중이 경제적 살림살이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금 펼쳐지고 있는 세계시장에서 민중의 살림살이공동체는 지역적 지평과 민족적 지평과 세계적 지평에서 그 주체성을 공히 확보하여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물질적 소유관계만을 의미하지 않고 살림살이 전반의 경영(DIAKONIA)적 주체를 의미한다. 이것이 민중신학이 말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우리는 희년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을 근거로 한 경제행위에서 "경제적 주체의 형체"를 발견한다. 레위기 25장과 마태복음 6장에서 이 실체가 들어 나고 있다. 한국민족의 성원들이 복된 살림살이를 꾸미는 일이 민족경제의 과제 일 것이다. 기독인과 민중교회는 경제적 주체로서 민족경제의 요체를 실현하여야 한다. 7.3. 희년에서 선포되는 해방은 노예의 사회경제적인 주체회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민중의 포괄적인 삶의 주체형성을 의미한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과 삶에 대한 주권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억압체제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억압체제를 변혁하고 새로운 살림살이의 주역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에스겔서 37장(전반부)은 생명과 삶의 주역을 일으켜 세우는 비전을 그린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희년이 부과하는 정치적 과제를 지역 사회적 차원에서, 민족 사회적 차원에서 그리고 세계 정치적 차원에서 민주시민을 일으켜 세우는 일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7.4. 희년의 선포는 샬롬(화평)의 계약을 의미한다. 이는 총괄적인 생명과 인간의 사회안전보장체제를 민중이 주체적으로 이루고 가꾸어 가는 운동을 의미한다. 사회적 DIAKONIA는 사회적 평화의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생명과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사회복지와 안전의 주역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사야 11장이 이런 희년의 표상이다. 그리고 에스겔서 37장 후반부의 "화평의 계약"은 민족DIAKONIA와 민족통일과의 관계를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의 비전은 민족DIAKONIA의 과제로 설정될 수 있다고 본다. 7.5. 희년은 생명과 삶의 축제이다. 축제 없는 곳에 생명도 삶도 있을 수 없고 생명과 삶을 이룰 수도 없다. 시와 노래와 춤이 어울려 생명체와 민중의 문화적 영적 주체가 날개를 펴고 땅과 하늘에 생명과 삶의 향연을 이루는 축제가 희년이다. 요한 계시록 21장 22장이 이런 희년의 표상이다. 우리한국교회는 민족의 문화와 종교를 천시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민중신학은이에 대한 회개운동을 전개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제 주신 시와 노래와 춤과 아름다움과 신선도와 같은 그림을 활성화하여 희년의 나팔을 불면서 생명과 삶의 축제마당을 열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와 한국 개신교 2002-02-01 20:42:42 read : 2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김 경 재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 / 한신대 교수) 1. 한국 개신교의 1990년대 회고와 성찰 이 글은 20세기중 지난 10년을 뒤돌아보고, 21세기중 다음 10년을 내어다 보면서, 한국사회속에서 한국 개신교의 총체적 위상을 성찰하고 지향해야 가야할 과제를 점검하려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1990년대 한국 개신교
21세기 한국사회와 한국 개신교 2002-02-01 20:42:42 read : 2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김 경 재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 / 한신대 교수) 1. 한국 개신교의 1990년대 회고와 성찰 이 글은 20세기중 지난 10년을 뒤돌아보고, 21세기중 다음 10년을 내어다 보면서, 한국사회속에서 한국 개신교의 총체적 위상을 성찰하고 지향해야 가야할 과제를 점검하려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볼 때, 1990년대 한국 개신교는 1970-80년대 급성장하던 교세가 급격히 둔화되면서 총체적 위기의식과 더불어 조정국면에 들어갔는데, 크게 '보수적 개신교'입장, '중도적 개신교' 입장, '진보적 개신교'입장의 대응 태도가 뚜렷이 구별되는 경향을 나타내 보인 시기였다. '보수적 개신교'는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의 급성장을 이룬 주도세력이라고 자처하면서, 199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 성장추세의 둔화요인이 자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성찰에는 둔감하고, 급변화는 사회 상황이나 시대적 종말현상이라고 치부한다. 그리하여, 약 970만명 으로 추산하는 한국 개신교 교인숫자의 약 40%를 차지하는 '보수적 개신교' 집단은 배타적 종파주의, 공격적 선교정책, 부흥회적 대중 전도집회, 기복신앙적 영성, 그리고 임박한 종말신앙으로 무장하고 있다. '보수적 개신교'는 20-21세기가 인류문화가 과학기술적 정보화 사회, 문화종교적 다원사회, 정치경제적 지구화 사회로 전환되어 간다는 엄연한 사실에 눈을 감으려한다. '진보적 개신교'는 한국교회협의회(KNCC) 가입 교단중 특히 진보적 입장의 교회들로 구성되는데,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의 사회참여운동,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통일운동을 주도하면서 정치신학으로서 '한국민중신학'과 문화신학으로서 '한국 토착화신학 및 종교신학'을 형성해간 한국 개신교 집단을 일컫는다. 교세적으로는 한국 개신교인 970만명의 약 30% 로 추산되는 '진보적 개신교' 집단은, 그 통계숫자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창조적 변혁세력으로서 '누룩'의 역할을 해왔다. '진보적 개신교'의 자기진단 입장에 의하면, 1990년대 한국 개신교 교세의 둔화는 도리혀 비정상적 '거품'이 가라앉는 단계로 보면서, 개신교 교세의 둔화및 감소 현상을 개신교의 자기정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철저한 비판적 성찰을 강조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무한성장 경제논리에 편승한 교회 성장론에 대한 비판, 사회역사의식의 부재와 사회윤리의식의 둔감성에 대한 비판, 개교회중심적인 종교집단의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 배타주의적 선교신학에 대한 비판이 강하다. '중도적 개신교'는 한국 교회협의회(KNCC)에 가입교단에 소속한 교회및 기존 보수적 성향을 띄던 교회지도자들 중에, 극우적 '보수'와 극좌적 '진보'를 동시에 경계하면서 개신교를 좀더 온건한 중도로선을 취하여 발전시키려는 개신교 집단을 말한다. 대략 970만 개신교 중에서 30% 정도를 차지하는 '중도적 개신교' 지도그룹은 최근 '한국 교회미래를 준비하는 모임'(대표 이동원 목사)을 결성하고 한국 갤럽에 의뢰하여 1,000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를 통해 '개신교회인의 교회활동과 신앙의식 조사'를 사회과학적 조사방법을 통해 점검하고 오늘의 위기도전(Challenge)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게 창조적 응전(Response)을 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한국 갤럽에 의뢰하여 연구조사한 '개신교의 교회활동과 신앙의식 조사' 결과분석에 의하면, 개신교를 바라보는 한국민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1980년 이후 한국 개신교의 성장율도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970만명 개신교인중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는 신도수는 57%에 불과하며, 개신교회를 다니다가도 그만두는 종교이탈율도 한국 종교중 가장 높은 67%로 나타났다. 일반 사회인을 대상으로하는 설문조사에서 개신교 천주교 불교에 대한 선호도는 각각 22%, 40%, 37% 로나타나서, 개신교 지도자의 자질과 개신교에 대한 종교적 신뢰도가 가장 낮게 나타났다. 전철 속이나 역 광장등에서 전도를 받을 때 일반인들의 84%가 부정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한국 사회인이 개신교에 대한 인상은 지역사회및 사회봉사에 별고 관심이 없고 종파적 개교회 집단이기주의에 메몰되어있다는 비판적 평가로 나타났다. 위에서 나타난 갤럽조사에 근거하여 '한국교회미래를 위하여 준비하는 모임'의 개신교 지도자들은 양적교회성장에 치중해온 한국교회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는데 견해를 같이하고, 개신교회의 자기정화노력, 교회의 사회봉사적 기능강화, 건전한 지속적 교회성장을 위한 선교신학과 영성강조등을 제안하였다(기독교사상, 1998년 12월호참조). 이상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지난 10년간을 돌아보고, 발제자는 한국 개신교의 앞으로 나아갈 10년을 내어다 보면서 개신교의 중심과제를 다음 몇가지로 총괄하여 제시해보려고 한다. 2. 한국 개신교의 21세기 과제 (1) 문화다원사회 사회 속에서 선교신학및 정책의 패러다임전환 한국 개신교는 20세기에 들어가서 개신교가 지닌 창조적 역동성을 견지하려면, 기존의 선교신학및 선교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함께 그것의 재정립을 시급히 이뤄야한다. 기존의 선교신학및 정책이란 대체로, 19세기 말 '서세동점'의 시류를 타고 서구문명국들의 정치경제적 아시아 식민정책에 편승하여 전파되고 정책수립된 문화제국주의적 선교신학및 선교정책을 말한다. 한국의 개화기에 이 땅에 들어와서 포교활동을 한 선교사들 모두가 서구 문화제국주의자들의 하수인 이였다고 통틀어서 매도하는 일을 매우 위험한 일이며, 사실과도 다르다. 언더우드 아펜셀라등 개신교 선교사 1세들의 헌신적 노력, 특히 교육, 의료, 사회사업, 인권운동,여성운동,농촌계몽,인쇄문서활동,과학지식보급,민주주의 가치와 그 훈련, 그리고 한국 독립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끼친 '창조적 소수자'로서의 공헌과 헌신은 한국 개신교도들이 아니더라도 한국현대사 속에서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일부 창조적 소수자들의 종교적 순수열정이나 헌신과는 다르게, 대부분 그 이후 선교사들의 행태와 19세기 서구기독교의 선교정책의 본질은, 아시아인들의 종교, 문화, 가치세계를 '이교세계'라고 규정하거나, 무지와 몽매와 미신과 비진리 내지 악마적 소산쯤으로 매도하고, 기독교를 그 대안으로 주입시키는 공격적, 배타주의적 선교신학과 선교정책을 지니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 지니고 있었던 이런 선교신학과 선교정책을 한국 '보수적 개신교' 집단이 시대착오적으로 지금까지 그대로 견지하면서 더욱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인류사회와 한국 사회는 19세기사회와 다른 가치론적 다원사회로 전환하였다. 이젠 어떤 종교나, 특정 이념철학이나 가치론이 인간공동체를 획일적으로 지배하거나 통제 할 수 없다. 그러한 사회가 아직 지구촌에 일부 상존하지만, 그런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인류문명의 거대한 성숙단계에로의 진입에 실패하여, 권위주의적사회, 신분차별사회, 폐쇄적 사회, 후진국사회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는 종교의 역동적 생명력을 가능케하고 지속시키는 종교가 지니는 '궁극성'(Ultimacy)을 '배타성'(Exclusiveness)과 혼돈하여 그 양자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모든 진지한 종교인들은 자기가 진리라고 믿거나 생각하는 '실재'나 '가치체계'에 전심전력 충성과 사랑과 헌신을 쏟는다. 적어도 살아있는 신앙인이라면 그렇다. 그러나,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에 대한 '궁극적 관심과 궁극적 헌신'이 진솔하기 위해서 반드시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이거나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논리적 비약은 특정 종교의 패러다임에 메몰된 사람들이 빠지는 비성숙한 태도이다. 비유하건데, 자기 아내나 연인에 대한 절대헌신적 사랑이 가능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나 연인에 대한 절대적 사랑이나 헌신은 거짓이거나 있을 수 없어야 한다는 독선적 논리나 사고는 언어도단임과 같은 이치이다. 한국의 '보수적 개신교' 지도자들과 그런 지도자들의 신앙지도를 받은 개신교신도들이 한국과 같은 종교다원사회 속에서 일으키는 종교적 갈등과 분쟁은 10년 이내에 청산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1998년 8월 제주도 조계종 산하 원명선원에서 발생한 훼불사건을 계기로,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KNCC)가 타종교, 특히 불교에 대한 배타적 공격적 태도가 잘못임을 공시적 문서로 사과하고, KNCC산하 8개교단( 예수교장로교 통합, 기독교장로교, 기독교대한 감리회, 기독교 대한 복음교회, 대한성공회,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 구세군대한 본영, 한국정교회)의 교단장에게 보내는 협조공문을 통하여, 교인들에게 타종교 특히 불교와의 "상호존중에 바탕한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교단산하 교회지도자들에게 권면 당부한 사건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월간 기독교 사상, 1998년 11월호 특집참조). 뿐만 아니라, 자라나고 있는 젊은 성직자 후보생들과 성숙해가는 한국 개신교 평신도들의 건전한 상식이 기존의 '보수적 개신교'가 지닌 배타적, 공격적 선교정책이나 신앙을 점차로 용납해가지 않을 것이다. (2) 정행(Orthopraxis)을 통한 생명, 화해, 정의를 추구하는 '제3의 길'의 추구 '진보적 개신교'가 추구해오던 열정, 곧 한국사회 속에 사회정의 실현, 인권의 신장, 민주주의가치의 실현, 화해와 통일의 물꼬, 그리고 가난한자와 소외된자들과 함께 연대하려는 열정은 향후 10년동안 더욱 불타오를 것이다. 특이 지난 1990년대 후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구성교단의 일원으로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가입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 드려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 개신교의 '성령운동'과 '사회참여적 교회운동'의 연대와 화해 그리고 공동전선의 구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탈냉전세계의 붕괴이후, 소위 신자유주의 정치경제이념이 세계를 이끌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옛 사회민주주의의 경직된 세계관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의 이념을 동시적으로 비판하고 '제3의 길'로서 상징화되는 21세기 인류의 비젼은 성서적 신앙이 중요시하는 정의, 연대, 평등,인류애의 보편적 가치를 다시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개인의 자유, 창의성, 경쟁을 통한 잠재력의 개발, 경제적 효울성 제고, 자발적 시민단체의 참여등을 살려내고, 동시에 인간으로서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연대성, 복지정책, 사회정의와 평등성을 희생시키지 않는 '제3의 길'이 인류 미래의 비젼임에 틀림없다. 한국사회의 갈등현상은 사회 계층간, 노사간, 지역간, 세대간 ,남녀간, 그리고 남북간의 갈등은 소위말하는 "IMF경제위기' 가 극복된 이후에도 쉽게 극복되기 어려운 도덕적, 영적 황폐화의 징표이다. 한국 개신교는 향후 10년간, 한국 사회안에서, 그리고 남북 통일을 준비하는 화해와 연대, 정의와 평등, 생명가치와 복지를 증진시키는 '바른 실천을 통한 복음의 생활화'에 진력해 갈 것이다. 그 길이 동시에 1990년대 실추된 한국 개신교의 신뢰도를 다시 회복 할 수 있는 최첩경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교회헌금의 방대한 예산이 보다 투명하게 집행되고, 보다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보람있게 사용되고, 교회정치의 조직과 운영이 세속적 명예욕과 권력욕에서 탈피하게 될 때, 한국 개신교의 제2의 도약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3) 유기체적-생태론적 세계관에 걸맞는 영성함양의 과제 21세기, 특히 향후 10년간 한국 개신교는 '성숙과 퇴락'의 갈림길에 설 것인데, 그것의 관건은 한국 개신교가 시대 문명사적 전환의 의미를 얼마나 바르게 파악하고 거기에 상응한 '역동적 영성' 함양에 힘쓸 수 있는냐의 여부로 판가름 난다. 21세기는 20세기 초에 양자물리학의 출현으로 시작된 새로운 세계관, 우주론, 실재관이 보다 보편적으로 삶의 각분야에서 그 의미를 드러내는 시기가 될 것이다. 다시말하면, 지난 300년간 서구사회와 그리고 그 영향을 받은 비서구사회를 지배했던 '뉴톤-데까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서서히 극복되면서, 유기체적-과정적-생태론적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특징을 이루었던 물질/정신의 이원론, 주체/객체의 이분법, 자연/초자연의 이원론, 개인/사회의 이원론은 요소론적 환원주의, 가부장적 권위주의, 인간중심주의, 생태계파괴, 인간영성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특히 개신교는 국내외적으로 그 종교적 영성의 지향점이 뉴톤적 세계관에 의하여 무의식적으로 침윤당해왔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인중심주의적 구원론, 문자중심적인 '오직 성경만의 신앙원리', 계약중심의 구원신학, 이 세상과 저 세상이라는 단순 이분법적 도식, 종교적 상징에 대한 감수성 퇴화, 자연과 창조세계를 도외시한 도시사회를 배경으로한 시민종교 의식등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러나, 21세기 문명사회의 패러다임전환은 온생명적, 유기체적, 과정적, 상호침투 상호의존적, 신-인간-자연의 통전체험을 강조하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전환된 새로운 문명시대의 종교적 영성은, 보다 자연친화적인 생태학적 윤리의식으로 숙성된 인간을 기다리며, 신과 인간과 자연이 각각 혼동할 수 없는 공능을 지니면서도 서로 불가분리적 사귀임과 현묘한 상호침투가 이뤄지는 '우주-신-인론적 영성'(Cosmotheandric Spirituality)을 진작시켜나갈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가 대신해 줄수 없는 책임적 존재라고 하는 자의식이 투철해짐과 동시에 인간의 개체성이 사회적 전체성과 불가분리적 연대성 속에서 가능하다는 자각이 투철해질 것이다. 논리적, 합리적, 교리적 신앙이해 못지않게, 직관적, 감성적, 상징적 초월체험 이 중요하다는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설교나 교리나 경전의 문자 못지않게 침묵, 상징, 명상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 리더쉽보다는 수평적이고 참여적 리더쉽을 따르면서, 부성적 원리와 모성적 원리를 조화를 이루는 영성을 기다릴 것이다. 21세게 한국 개신교가, 변화해가는 시대조짐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숙해가려면 그와같은 '영성'의 패러다임전환에 부응하여 자기를 수련하고 교회공동체가 환골탈퇴하는 창조적 변화가 요청된다. 한국 개신교는 한국의 종교사 속에서 볼 때, 아주 그 역사가 짧은 종교이다.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개신교는 그 짧은 역사적 기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창조적 변화와 인간화를 위하여 적지않은 공헌을 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특히 지난 30여년간 한국개신교는 물량적 성장과정에서, 오도된 신학적 로선과 성숙한 경건성의 부재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도덕적 영적 지도력 위기에 직면했을 뿐만아니라, 더 나아가서 선교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동시에 자기자신을 크게 성찰하고 엄숙한 자기비판을 통하여 창조적 전진을 이뤄낼 수 있는 전화점이 될 수도 있다. 한국 개신교는 그 안에 지닌, 무한한 잠재력 때문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가는 창조적 노력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한다.
21장 : 우리의 영원한 본향 2006-07-19 17:43:44 read : 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본장의 개요 > 21장에서 소개되는 새 예루살렘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최종적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기업이다. 우리는 이 기업을 얻기 위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슬픔과 환난을 겪으며 참아 왔다. 이제 그 나라가 소개되면서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격려해 준다. < 본장의 분류 > 1
21장 : 우리의 영원한 본향 2006-07-19 17:43:44 read : 9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 본장의 개요 > 21장에서 소개되는 새 예루살렘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최종적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기업이다. 우리는 이 기업을 얻기 위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슬픔과 환난을 겪으며 참아 왔다. 이제 그 나라가 소개되면서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격려해 준다. < 본장의 분류 > 1 - 2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3 - 7 이기는 자가 받을 새 예루살렘에서의 위로 8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 9 - 23 천사가 보인 새 예루살렘의 모습 24 - 27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 < 본장의 강해 > 1절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1>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 . . 이 표현은 천년왕국에 대한 것이 아니다. 계20:11절에서 눈 에 보이는 세계는 이미 간데 없어졌다. 이 표현은 21:10절의 "새 예루살렘"을 말해 준다. 2> 처음 하늘과 처음 땅 . . . 물질 세계에 속한 모든 존재들이다. 이곳엔 천년왕국까지 포함 되어 있다. 창1장에서 창조하 신 모든 물질 세계는 이제 완전히 소멸된다. 2절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1>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 . . > 성도들의 영원한 기업이다(롬 8:17). > 우리가 당하는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곳이다(롬 8:18). > 바울이 가 본 셋째 하늘이다(고후 12:1-4). > 바울이 소망한 하늘의 영원한 집이다(고후 5:1-2). > 아브라함이 바라본 성이다(히11:10). >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처소다(요 14:1-3). 2> 그 예비한 것이 . . .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은 최고 최상의 예비를 의미한다(21:11-27). 3절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1>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 . . 하늘 아버지의 음성으로 > 하나님의 장막이 삶과 함께 있게 된다. > 하나님의 저희와 함께 계신다. > 하나님과 한 가족으로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는 음성을 들려주신다. 4절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1>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 . . 하나님의 위로하심. 이 눈물은 환난 중에 흘린 눈물이요 주님을 위해 흘린 눈물이다(마 5:10-12). 다시 사망이 없다는 말은 우리가 영생을 실제로 누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애통, 곡, 아픈 것이 없다는 것도 이런 것들은 지난날 죄에 속했을 때 죄의 저주로 온 것이었기 때문인데 이곳에서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5절 :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절 :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절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1>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 . 환난 중에 있는 교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시다. 이때 우리가 볼 수 있는 만물은 완전히 새로워진 것이다. 2> 생명수 샘물로 . . . 하늘에 예비된 영원한 기업을 의미한다. 3> 이기는 자는 . . . 7 교회에서 이기는 성도가 받는 상급이다. 환난 중에 회개하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다. 8절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1>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 . . 새 예루살렘을 유업으로 못 받을 자들. 새 예루살렘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자들은 누 군가? a> 두려워하는 자들이다(요일 4:18) ; 심판 날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심판의 대상이 된다(6:15-17). b> 믿지 아니 하는 자들이다(요 3:18) ;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한 자들. c> 흉악한 자들이다(9:20-21.시 50:16-21) ; 성령의 감동하심을 거역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 초하는 자들. d> 살인자들이다(16:6) ;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자들. e> 술객 들이다(출 7;11.살후 2;9-10.마 7:22) ; 거짓 기적으로 미혹한 자들. f> 우상 숭배자들이다(13:15) ; 적 그리스도와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는 자들. g>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다(갈 1:6-9) ;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 이단의 무리, 인간의 지식으로 가르치고, 거짓 계 시로 가르친 무리들. 결론 : 이들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게 된다. 9절 :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절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 이리 오라 . . . 새 예루살렘을 보여 주시기 위해 요한에게 오라고 하심. 2>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 . . 새 예루살렘을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로 비유하고 있다. 주님이 정성 드려 단장하신 모 습을 의미해 준다. 3>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이니 . . . 하늘에서 내려온 이 새 예루살렘 성은 실제 하늘에 있는 천 국이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 주신 것을 의미한다. 11절 :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절 :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 . . 천국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조명된 도시임. 그래서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고 했다. 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 . . 천국의 성곽이나 길이나 넓이나 그 모든 구조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영적인 뜻이 함유되어 있다. a> 성곽은 12 기초석이었다 ; 12 기초석이란 교회의 신앙고백의 터전을 의미하고 12사도들의 이름이 있는 것은 진실 한 신앙적 사람들만이 거처할 도성이란 뜻이다. b>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다 ; 거룩한 성도들의 도성을 의미한다. c> 성곽의 기초석은 각 색 보석으로 꾸몄다 ; 12가지 보석은 최상의 신앙생활을 말한다. d> 성곽은 144 규빗이다 ; 1 규빗은 45cm로 65M 정도의 높이를 말한다. 3> 열두 문이 있는데 . . . 성의 문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이곳에 들어 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a> 성문은 12문이다 ; 구원받은 성도들만이 들어 갈 수 있는 문. b> 성문엔 12천사가 문지기로 있다 ;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출입은 불가능하다. c> 성문들 위에는 12지파 이름이 쓰여 있다 ; 12 지파는 육적 유대인의 12 지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으로 신령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눅 22:30. 계 7:4) d> 성문은 동쪽에 셋, 북쪽에 셋, 남쪽에 셋, 서쪽에 셋이다 ; 세계 만방에서 어느 곳으로든 들어갈 수 있다. e> 성문은 12진주로 되었는데 한 문마다 한 진주로 되었다 ; 값진 신앙으로만이 들어간다(마 13:45-46). 4> 성의 모양 . . .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다. 이 성은 장과 광과 고가 12,000 스다디온으로 동일하다. 1 스다디온은 약 180M임. 12,000 스다디온은 약 2천 KM의 정방형임. 마일로는 1,500마일의 사방으로 전체적으로는 225 만평방 마 일로 런던의 약 530만 배로 계산된 다(런던은 117평방 마일). 인구의 수용력을 계산하면 530억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물론 상징적인 의미도 들어가 있다. 22절 :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절 - 25절 까지. 1> 성안에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 . . 성소를 말하며 이곳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것인데 새 예루살렘은 그 성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그 성안에서 언제나 만나며 늘 경배하며 찬양하 기 때문이다. 2>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 . . 하나님과 어린양의 영광의 빛이 성 전체를 비취고 있기 때문이다. 3>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 . . 만국은 원어의 원래의 뜻이 그 민족들이란 말로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 성들을 의미한다. 4>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 . . 이들은 첫째 부활 성도들로 순교자들임. 5>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 . . 밤이 없고 어두움도 없다. 26절 :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절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1>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 . .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영광과 존귀함을 의미한다. 생명의 부활에서 얻은 영광이기도 할 것이다. 2> 무엇이든지 . . . 이곳에 다시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할 자들의 분류가 나온다. a> 속된 것 ; 세상에 속한 것들로 중생되지 못한 자들이다. b> 가증한 일하는 자 ; 이 일은 짐승이나 그 우상 앞이나 다른 허탄한 신상 앞에 경배하는 자들이다. c> 거짓말하는 자 ; 거짓 선지자, 이단자들, 거짓을 계시를 받고 전한 자들이다. 3>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 .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들은 오직 이들뿐이다. 이들을 위 해 예비해 두셨기 때문에 여기에 속하지 아니한 무리들은 이 성에서 제외될 수 밖에 없다(엡 1:3).
3. 애나하임 빈야드교회와 빈야드 운동
3. 애나하임 빈야드교회와 빈야드 운동 2005-12-19 15:10:39 read : 11738 1. 애나하임 빈야드교회(Anaheim Vineyard Christiiam Fellowship) 죤 윔버가 1977년 50명의 교인으로 설립한 애나하임 빈야드 교회는 1983년 3,000명이 되었고, 1987년에는 5,000명의 교인으로 성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의 중심지로써 600여 개 빈야드 교회의 모교회로서 역할과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1995년에는 애나하임 빈야드 교회 창립시부터 함께 했던 칼 터틀목사를 후임 담임목사로 세우고, 자신은 교회사역은 2선으로 물러나 빈야드운동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담임목사 교체 이후에 약간의 하양 곡선을 그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신임 칼 터틀 목사를 중심으로 스탭진이 재편성되어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다. 2. 빈야드운동 갈보리 채플의 지교회로 사역하던 죤 윔버는 1983년에 켄 걸리스켄(Ken Gullisken)목사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6개 교회가 연합되어 있는 "빈야드"라는 이름의 교회 연합체에 동참하게 된다. 이후 존 윔버는 이 교회들의 지도자가 되며 1985년에는 빈야드 교회 연합회(The 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를 구성하게 된다. 죤 윔버를 지도자로 하는 빈야드 운동은 '빈야드 교회 연합회(AVC)'라는 이름으로 1995년 말 현재 전 세계에 670개 교회를 회원으로 갖고 있는 교단의 모양으로 발전하고 있다. 죤 윔버는 빈야드 운동이 교단이면서도 구속력이나 세력확장을 목표로 삼지 않으려 한다. 이는 "교회 분열을 조장하지 않는다"라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AVC는 기존의 교회가 가입하는 것 보다는, 새로이 빈야드교회가 개척하는 것을 더욱 환영하고 장려한다. 불신자를 회심시켜 그들을 수용할 교회가 훈련되고 인정된 지도자에 의해 개척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교회 성장의 모습으로 보고,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이끌어 간다. 또 AVC에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어 타 교단 소속이면서도 빈야드와 협력관계를 갖고 사역하는 지도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다른 기관으로는 빈야드 국제 선교회(Vineyard Ministries Intemational,이하 VMI는 전세계에서 빈야드 세미나를 주최하고 자료들을 출판한다. VMG는 1995년 VMI로부터 독립하였으며, 빈야드 사역의 매우 중요한 부분인 음악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3. 빈야드사역 1. 능력전도/능력치유 빈야드 운동이 갖는 궁극적 목표는 전도와 교회 성장 개척이다. 영혼이 회심하여 주님께 돌아오고 그 결과로 지역 교회가 생겨나고 성장하는 것이다. 바로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이루자는 것이다.(마 28:18-20) 이 지상명령을 이루는 데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고, 그 성령과 함께 능력을 주셨다.(행 1:8)"는 것이다. 신약성서적인--특별히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한 예수와 제자들-- 사역은 거의 모든 경우에 기적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수반하였다. 예수께서는 어느 여인의 과거를 아시기도 하였고,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며, 영, 혼, 육 전인격을 치유하시며, 복음을 선포하셨고 전도하셨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또한 그 나라의 실재를 보이셨다는 것이 빈야드 사역의 바탕을 이룬다. 그 일이 나타남은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이며, 그러기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열려 있으려 한다. 그러나 '표적과 기사' 지상주의는 경계하여 "우리의 목표는 능력전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도에 있다"고 말한다. 2. 하나님나라 신학(The Kingdom thelology) 빈야드 사역의 신학적 기초는 하나님 나라 신학 (The Kingdom thelology)에 있다. 특히 George Ladd의 하나님 나라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미 왔으나 정차 올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came, yet to come)"로 표현되어진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가 현재 모든 교회를 통하여 마땅히 나타날 수 있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3. 빈야드의 비젼 - 성도를 온전케 함 (Equipping the saint) 빈야드 사역에 있어서의 비젼은 에베소서 4:11-13을 바탕으로 한 '성도를 봉사(사역)의 일을 하도록 온전케(갖추게)하는'데에 있다. 이제까지의 많은 능력사역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에 반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보편 타당성 있게 주어졌음을 가르치고 또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주성하여 준다. 실제로 빈야드 교회들은 많은 평신도 사역자들이 여러 가지의 영적 은사들을 실행하고 큰 열매를 거두고 있다. 어느 빈야드 목회자의 표현을 빌면 "나는 이 교회의 목회자로써 우리 교회 교인들이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역사하도록 하는 일에 헌신했다"는 것이다. '성도들을 갖추게 하여 사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일인 것이다. 4. 빈야드의 가치관 (Vineyard Values) 빈야드 사역의 뼈대를 이루는 가치관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이것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추가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a. 하나님을 좇아감 - 우리의 모든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찾으며, 그의 임재를 기대하며 기다린다.(요 4:35, 5:19-20) b. 성경 - 복음적인(Evangelical)기독교인으로, 성경은 최종적 권위이다. 우리의 삶과 사역 방법은 성경의 가르침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딤후 3:16-17) c. 하나됨 -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은 우리의 대적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바 "모든 교회"를 사랑한다.(엡 4"3-6) d. 갖춤(온전케 함) -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달란트, 은사, 사역들을 주시고, 그것들을 나타내도록 믿는 자들을 부르시고 능케 하신다. 모든 사역의 지향하는 바는 성경적 진리를 일 상의 삶 속에 완성함으로 우리의 지역 사회 등에 그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엡 4:11-13) e. 관용 -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과 자원을 맡은 청지기다. (마10:8, 10:39, 13:45-46) 우리의 사역을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갖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줄 것 을 얻기 위하여 준다" f. 간단성 - 우리는 "자연스럽게 초자연적"이기를 원한다. 이렇게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떠나 우리에게 주의를 갖게 하는 행동을 피한다.(고전 2:2-5, 약 3:13, 살전 4:11-12) g. 연민과 자비 -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을 살려는 모든 믿는 자들을,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는 자들, 우리의 모임에 받아들이기를 원한다.(약 2:13, 요8:1-11) h. 관계 -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다음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다. 왜냐 하면 십자가의 목적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롬 12:9-13, 고전 13:4-9, 골 3:12-14) I. 위험 감수 - 은사의 개발은 시행착오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배우는 동안에 일어나는 약함과 실수에 대하여 오래 참음으로 대한다.(요 21:15-19, 갈 5:22-23) j. 문화적 현재성 (Culyure current) - 사역의 대상이 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 그들이 복음과 하나님께 접근하기 용이토록 한다.(고전9:19-23) 5. 구제사역 빈야드 사역을 설명할 때에 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구제 사역이다. 기존의 많은 영적 운동이 사회에 대한 봉사가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반해 빈야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드러남에 있어서, "...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하게 하시려고..."(눅4:18)",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 (갈2:10)" 하신 것을 행하고 있다. 거의 모든 빈야드 교회들에서 구제 사역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사역이 되고 있다. 애나하임 빈야드 교회의 구제 사역부는 1995년 현금을 제외한 구제 물품액만 백만불이 넘을 정도의 수준이고, 교회에서 가장 큰 사역부서로서 본당을 제외하고 가장 큰 면적을 사용하고 있다. 매 주일 이 삼백명 정도의 인근지역 빈곤층을 초청하여, 점심을 제공하고, 식료품 등을 배분하며, 병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도 한다. 6. 예배의 구성 빈야드의 거의 모든 예배 모임은 크게 경배, 말씀, 사역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a.. 경배(찬양) - Worship 이들은 찬양이라는 말보다는 경배(Worship) 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찬양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경배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찬양(경배)을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믿는 자로써의 행위라고 여긴다. "찬양(경배)는 준비가 아니라 바로 실제이다" 이 경배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경험하고 병이 낫거나 더 큰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기도 한다. 경배(찬양)의 또 다른 특징은 사용하는 음악이 다른 모든 빈야드의 특징과 마찬가지로 문화적으로 현재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b. 말씀(가르침) - Teaching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아주 중요한 사역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한 가지 특징을 들자면 대체적으로 난해하거나 어려운 것 보다는 쉽고 간단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중 하나는 교인들이 배워 그것을 그대로 가르칠 수 있어야 된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c. 사역 - Ministry 말씀을 가르친 다음에는 그 주제를 중심으로 기도사역의 시간을 갖는다. 예수와 제자들의 사역이 가르치고 행하였다는 것을 바탕으로 가르친 다음에는 성경께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병이 낫기도 하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모든 사역이 마찬가지 이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중요시 여기며, 여러 가지의 은사들을 따라서 행하여진다. 5. 기타 관련 연구과제 1. 토론토 블레싱 (Toronto Blessing): 토론토 에어포트 교회 2. 성령의 역사 및 현상 (Phenomena) 3. 죤 윔버 목사의 건강 뉴라이프 교회(New Life Community Church) 1. 뉴-라이프교회의 역사 (교회소개서에서 발췌) 저희 뉴 라이프 교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희 교회는 가리스마틱한 순복음교회로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연구하기 힘쓰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믿으며 또한 현 시대에서도 신양성서 시대에 전파되었던 영적은사들의 운영을 믿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희 교회를 여러 재능과 은사 곧 교육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다양하게 축복하셨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저희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각양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캐톨릭, 어떤 이들은 개신 장로교, 감리교, 메노나, 침례교, 그리고 유대인 등... 하지만 우리들은 한가지 공통된 것일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중 예수 그리스도를 온마음을 다하여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세례를 받을 때 각양 다른 영적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여러모습들을 저희 교회 봉사가운데서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은사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하실수 있습니다. 예배도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방언을 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기가막힌 영적 구원의 역사 또는 기적적인 고침도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식으로 예배하는 이유는 구약과 신약성서에서 하나님께 예배함을 이같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 "손뼉을 치며 ... " "소리나는 꾕가리와 춤을 추며 찬양하며..." "소리내어 기뻐하며 ... " 그리고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예배하라..." 믿는 자들이 성령이 충만해지면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기쁨이 나타나는 것은 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저희 뉴-라이프 교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살아계신 중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이면서 활력적인 관계를 맺도록 이끄는데 주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들의 삶에 생동력을 심어주고 기쁨을 가져다주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인 성경을 알게하려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새생명을 찾기위한 열쇠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2. 교회예배와 모임시간 주일 오전 8:00 - 9:30 (제 1부예배) (탁아 없음) 찬야, 예배와 성경공부 오전 10:00 - 정오 (제2부 대예배) 찬야, 예배와 어린이 교회 오후 6:00 - 8:30 (주일 저녁예배) 찬양, 예배와 성경공부 어린이 - 왕국 특공대와 작은 선교사들의 모임 수요일 오후 7:00 - 9:-00 T. A. G. 모임 중.고등부 학생들 주중에 점조직제들을 각 정하여진 시간에 성도들의 가정에서 만남, 점조직체 사역에 대하여 관심있으신 분들은 현관에 위치한 점 조직 인포메이션 센터에 오셔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뉴-라이프 교회의 입적인원은 지난해 출석인원들의 헌금기록을 토대로 합니다. 현 입적인원은 약 6.000여 명 입니다. 3. 교회 철학과 구조 여부 - 철학 뉴-라이프 교회의 철학은 성서에서 발견되는 바 신약시대의 교회 모습을 토대로 하여 우리는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합하여지며,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추구합니다. 예수께서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모든 교인들은 그의 명령에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구원하거나, 고치거나 아니면 원상복귀하는 일을 책임 갖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일들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단번에 자기 자신을 오순절에 성령의 모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부으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면 거듭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듭난다 함은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물려받아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새로 거듭날 때 모든 것이 새로워 집니다. 하나님께서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며 우리를 안에서부터 밖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새로운 기쁨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할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게되며 새로운 용서를 우리의 마음에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과 놀라움 그리고 두려움으로 서게 되며 교회의 성결을 지키기에 대단하 관심을 갖게 됩니다. 믿는자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과 그 가치관으로부터 관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분별되며 거룩하기로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이며 선교를 통하여 이 도시와 온 세계에 있는 모든 성서적인 믿는 모임 단체들을 세우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중요 초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10월에는 저희 교회가 10/40 창문 계획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천여만명이 창문을 통하여 함께 기도에 동참하는 계획입니다. 개교회적으로 기도대원들을 동시에 조직하며 10/40 창문 계획의 각처에 있는 많은 비중의 아직 예수가 전해지지 않은 사람들이 직사각형의 10/40 창문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혁띠같이 서아프리카에서부터 아시아까지 이르는 위도 10도에서 위도 40도를 말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95%의 사람들이 아직 복음을 접하지 못했으며, 84%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대부분의 모슬람, 힌두종교인들과 불교인들이 있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 교회구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만 "교회"에 대하여 잘못 오해하고 환멸을 느끼는 것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중에 너무 복잡한 구조를 떠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또한 그의 말씀안에서 성장할 수 있기 기회를 줄 수 있는 교회라면 사람들의 관심을 사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의 성실성과 성결성과 교회의 목적을 유지하기 위해 까다로운 구조나, 수많은 위원회라든지 입교인들에 대한 요구사항이라든가 약정 카드 등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매주 얼마나 비치기로 작정했는지 등의 기록들을 유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십일조와 헌금등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예배의 일부이며 그것은 각 개인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표현인 것입니다. 저희 교회 행정은 교회 일부의 이사위원 5명(근교 목사님)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교회 목회자들이 책임 변명을 해야하는 그룹입니다. 그 외에도 24명의 장로들이 있어, 온 교우들을 섬기며, 건축위원회는 건물과 생건축을 책임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매주 작은 소그룹(점 조직)으로 각 가정에서 만납니다. 이 점 조직은 서로를 알게되며 서로의 구체적인 필요를 나누어 기도와 상담과 심방과 여러 가지 다른 도움으 로 서로를 도와 받혀줄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줍니다. 이 점 조직 그룹안에서는 매주 교회에서 가르치는 영적인 원리들을 논하며 영적 은사들에 사용과 용도 등에 대해 더욱 배우며 우리의 주위 이웃과 우리의 도시의 전도 기회들을 토론하게 되는 것입니다. 4. Ted 목사에 대하여 Ted 목사는 Oral Robert 대학교 1학년때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으로 사역에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 확인을 요구한 Ted목사는 그 몇일안에 편지와 전화 등을 받음으로 그의 부르심을 확신을 갖게 되었다. 1978년 졸업 후 그는 주로 철의장막과 제3세계 사회주의적인 나라들을 대상으로 배후에 선교하는 World Mission for Jesus (예수전도단)이라는 곳에서 일하였다. 계속 승진한 끝에 부사장이 되었지만 목회에 대한 사명이 더욱더 그의 가슴에 간절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후 Bethany World Prayer Center (베다니 세계 기도센터)로 접근한 후 청소년 담임목사로 일하며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을 가르쳐 그들로 세계 정세와 사건들이 교회 정세에 어떠한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에 대해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아울러 Bethany Family Counseoing Center (베다니 가정 상담 센터)를 증설하는데 큰 도움을 가져다 주었다. 주님께서 Ted 목사와 그의 아내 Grace를 Colorado Springs로 지난 1984년 부르심으로 확신을 얻어 Bethany World Prayer Center의 전적인 후원하에 Ted 목사는 뉴-라이프 교회(New Life Church)를 창설하게 된다. 첫 예배를 자기 지하실에서 25명으로 시작하여 지난 10여년간 6,000여명의 교인수 교회로 성장하였다. 그는 자기의 어린시절 "보수적인"교회에서 자라며 경험하였기에 그는 무엇보다도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성실하기를 사랑하는 그러한 예수의 몸이 되는 교회를 창조하기로 이끌림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금의 뉴-라이프 교회가 되었다. 그 후 Ted목사는 여러 원근교회 목회자들로부터 그들의 교회를 새롭게 재조직하는 일에 도움을 요청받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성장과 전도 세계에서는 Ted목사의 영향이 Bill Moyers 등 Media 곧 U.S. Newst World Report, Los Angeles Times, New York Times Chicago Tribune, Washingtio Post, Denver Post, Charisma Magazine 등 ABD와 NBD국내 방송국 등 BBC와 Intemational News Network 들에게서 인정을 받은 바가 있다. 현재 그는 국제 정통교계위원으로 Colorado 정통 교계위원으로, 지구 추수사역위원으로, 모든 가정 그리스도화 단체와 기독인과 유대인의 대화 등의 단체에서 섬기고 있으며, 몇몇 책을 근래에 저서하였다. 그의 저서 한 책은 Primary Purpose (제일 첫째 목적)을 Creation House에서 인쇄하였으며 Discoverling Ancient Wisdom (구 세계의 지혜 발견하기)를 New Intmational Bible Society 를 위해 편집하기도 했다. 그는 개인 성경공부지들을 저서했으며, 가르침의 지침을 테입으로도 만들어 내었다. 그와 그의 아내 Grace에게는 다섯 자녀가 있다. Focus on the family 창시자 및 총재 : 제임스 답슨 박사 (Founder & President: Dr. James Dobson, Ph.D.) 본부: Focus on the Family, Colorado Springs, CO.80995 1. 사역소개 Focus on the Family 란 사역은 미국의 점차 악화되는 심각한 가정문제에 대한 제임스 답슨 박사의 개인적인 도전으로 1977년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U.S.C.(남가주 대학)의과 대학원에서 14년 동안 교수로 일하면서, 미국의 가정들이 내적과 외적의 여러 가지 압력과 악영향으로 여지없이 파괴되는 광경을 안타깝게 보면서, 여기에 교회나 그리스도인 단체들이 어떠한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도움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사역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사역철학을 가지고 이 사역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활발하게 계속되고 있다. "Focus on the Family 사역의 근본적인 목적은 성령님과 협력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회개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또한 특별한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가정제도를 보전하는 방법으로 이 목적을 이루는데 있다." 사역초기 캘리포니아 주 알케디아 시에 있는 사무실방 2개를 빌려 제임스 답슨 박사 홀로 약 40-50개 밖에 안되는 방송국들을 통하여 25분 짜리 Radio 방송으로 시작된 이 사역은, 오늘날 1,300명이 넘는 직원들과 50개의 사역부서 약 4,000개의 방송국을 소유하는 세계적인 단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2. Focus on the Family의 사역들 A. Radio 프로그램 "Focus on the Family": 이 모든 사역의 대명사이며 이 모든 것들을 시작한 라이오 방송 사역으로 매일 30분 동안 가정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결혼, 자녀교육, 건강, 영적과 정신적인 성장 등등)일주일에 18,000회씩 4,000개의 방송국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방송되고 있다. 이 외에도 "Weekend", "James Dobson Family Commentary", "Focus on the Family Commentary", "Armed Forces Radio & Television Services Broadcast", "Family News in Focus:, "Adventures in Odyssey"등 가정에 관한 issue를 중심으로 방송한다. B. 정기 간행물 / 잡지 (Periodicals) "Focus on the Family": 월간으로 발행되어 현재 약 2천만 가정들에게 무료로 운송되고 있다. 그 외에도 혼자사는 부모들을 위해 "SingleParent Family"와 아이들을 위한 "Clubhouse Jr." 그리고 "Citizen", "brio", "Breakaway", "Teachers in Focus:, "Parental Guidancd", "Physician" 등의 정기간행물들을 발간한다. C. 필름과 비디오 Focus on the Family에서 제작한 여러 가지 영화와 비디오 및 T.V. Progran들이 있다. 여기서 몇 가지만 소개하면 "Adventure in Odyssey", "Children at Risk", "Focuw on the Family", "Last Chance Detective", "MaGee & Me", "Turn Your Heart Toward Home!등이 있다. D. 책 제임스 답슨 박사가 직접 쓴 여러 책들 (13권의 Best Sellers)외에도 미국에서 유명한 기독교작가, 심리학자, 목사들이 쓴 많은 책들도, 역시 죽어가는 미국가정을 살리는데 목적을 가지고 Focus on the Family 출판사에서 직접 출판하고 있다. E. 기타 사역 위엣 것 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여름캠프사역, 지역 선교 프로그램 사역들, 상담사역(카운슬링), 목회자들을 돕고 협력하는 여러 사역들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3. James Dobson 박사 James Clayton Dobson Jr. 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부친은 나사렛교회의 목사, 모친 가족은 3대째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장성하면서, 특히 진실한 부모님의 기독교인의 삶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신학교는 진학하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가정을 위한 사역에 대한 소명이 끓고 있었다. 그리하여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남가주 대학)에서 아동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그 후 모교인 U.S.C. 의과 대학원에서 14년 긴 세월의 소아과 교수로 지내오며, 오랫동안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현실, 즉 미국의 무너져가는 성경적인 가치관과 가정의 기초에 대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낄수가 있었다. 오랫동안의 기도와 준비 끝에 Dobson박사는 마침내 학교를 사임하고 Focus on the Family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쓴 "Dare to Discipline"이란 책은 미국에서만 이백만권이 넘게 팔렸고 "Love Must Be Tough"외에 12권의 Best Seller들이 있다. 그의 사역의 열매로 1982년에는 미국 복음주의 협회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에서 선정한 "그 해의 평신도 (Layman of the Year)상 외에도 기독교 단체와 비기독교 단체에서 많은 상들과 칭송을 받아왔다. 1980년 Jimmy Carter대통령 시기부터 George Bush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러 중요한 국가 연구위원회(National Commission)의 고문으로 섬겨 왔으며 현 미국의 심각한 가정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Adviser격으로 보조하여 왔다. 4. 사역의 특징 Focus on the Family는 결코 지역교회도 전형적인 선교기관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국에서 어두워져가는 도덕과 사라져가는 청교도들의 성경적 가치관과 윤리관, 그리고 너무나도 비참하게 무너져 가는 가정(예컨데, 2 가정중 1가정은 반드시 이혼하는 미국의 현재 통계)을 위하여 그 어떤 교회나 선교단체보다 더 미국의 가정과 사회의 교회에 그리스도의 충격을 (impact)을 주고 있는 단체이며 특히 사역 기관이다.'' 특히 지역교회에서나 선교기관에서 다루기가 거북한 문제들을 (가정의 정의, 결혼과 부부의 문제, 이혼과 이혼자들의 문제, 재결혼, 유산문제-특히 Focus on the Family는 Pro Life/Abortion 즉, 인공유산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으로 유명하다 - 안락사 (Euthanasia)문제, 동성연애 문제 등등) 성경적인 입장에서 담대하게 가르치며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Focus on the Family의 모든 사역을 조정 (govem)하는 그들이 5가지 official한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삶의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영화롭게 하며, 또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하여 영생을 얻는 것이라 믿는다. 이 목적은 바로 우리 가정으로부터 시작하며, 아직도 그의 사랑과 희생을 알지 못하는 방황하는 모든 인생들에게 적용된다. 2) 우리는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친히 내신 제도로 영원하며(Permanent)남자와 여자의 평생관계 이며, 어떠한 역경이나, 병마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정신적인 어려움도 끊을 수 없다고 믿 는다. 3)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이요, 그 분의 손의 축복이라고 믿는 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자녀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인류을 위한 하나님을 사명을 위해 어떻게 양육하고 준비시키는가에 대하여 하나님앞에 책임이 있다. 4) 우리는 모든 인간의 생명(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모태안의 생명, 노약자, 정신박약자, 정신질 환자, 추남추녀, 신체장애/불구자, 또한 어떠한 상태의 생명)의 존엄성과 무한한 가치를 믿는 다. 5)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세가지 기본적인 제도를 친히 제정하셨다고 믿는 다. - 가정, 교회, 국가 가정은 인류의 번성을 위해 2세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고, 양육하는 안전하고 안정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각 가정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을 나누며 또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구원을 전파하며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문화적인 균형을 유지하며 사회질서의 뼈대를 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Focus on the Family는 이 원리를 모든 사역에 적용하며, 이 원리들이 모든 사역의 영역에 명백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고 있다. 빌리그레함 박물관 시작 초기부터, 미국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또한 그렇게 살려고 애썼던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져 왔다. 오늘날 빌리 그레함 센터 박물관은 이러한 풍부한 영적인 유산들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준다. 진귀한 예술품들, 역사적 발자취, 그리고 눈에 띄게 훌륭한 전시들을 통해, 방문객들은 미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과 복음주의의 영향들을 생생히 경험한다. 미국의 복음주의 (Evangelism in America) 초기 개척자들의 시대때부터, 복음주의는 미국의 삶 속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과거시대로 되돌아가 보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자 노력했던 헌신적이며 담대한 복음전도자들, 설교자들 그리고 선교사들을 만날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공헌했던 사람들, 즉 죠지 윗필드, 서져너 트룻, 챨스 피니, 프란시스 아스베리, D.L.무디, 이벤젤린 부스, 빌리선데이, 그리고 다른 많은 그리스도를 위해 담대히 헌신했던 사람들을 주목해 보자. 이 전시관은 또 한 과거의 영적 대각성 운동과 그것이 나라의 역사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들을 보여준다. 진리의 복된 소식(The Good News of the Gospel) 어두운 방, 성경 텍스트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에 놓여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현대예술가 프레드릭 하트의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는 조각품인 "The Cross of the Millennium"(천년의 십자가)은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생생히 자세하게 들려준다. 여러분이 그 주변을 돌 때 , 어떻게 그것이 그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하심을 나타내 주는지를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에 초점을 맞추고 보라. 빌리 그레함 스토리 가족 사진들과 개인적인 소장품들은 빌리 그레함의 전승을 상세히 이야기해 준다. 그의 삶의 이정표들(10대 청소년 시절에 일어났던 그의 중생에서부터 그의 첫 번째 설교를 시도하기까지)은 후에 있을 세계전도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손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의 신앙의 확신을 형성했던, 그리고 그를 국제적인 관심속으로 이끌었던 전환점들을 주목하여 보자. 만약 여러분이 박물관에 있는 빌리 그레함의 전도여행 설교단에 서 있다면 여러분은 그의 성경책과 그의 설교노트를 검토해 볼 수 있고, 또한 3개의 특별 스크린 상영들을 통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전도집회가 운영되며, 그후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통해, 여러분은 빌리 그레함과 그의 연합조직이 전세계에 선포했던 메시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새 삶과 희망의 메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임무 (The Unfinished Task) 우리는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감정적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적으로 궁핍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점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여섯 개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비디오 자료들을 통해, 여러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궁핍한가를 알게되고, 땅끝까지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변화를 받게될 것이다. 진리를 통한 발걸음 (Walk Through the Gospel) 환경이나 장소에 관계없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는 지리적인, 문화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전달된다. 여러분은 빌리 그레함이 전하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듣기위해 마지막 상영관에 초대된다. 그런다음, 여러분은 예수의 죽으심, 장사지냄, 그리고 부활의 생생한 장면을 보게될 것이다. 단순하지만 그러나 심오한 진리들이 단계적으로 여러분 앞에 펼쳐진다. 박물관 채플룸은 미국과 전세계에 아직 남아있는 임무의 빛 아래서 조용히 반성하고, 기도하며, 그리고 개인적으로 헌신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여러분의 방문은 그것이 시작됐던 장소인 리셉션 지역(한시적으로 전시하는 박물관 시리즈 중에 하나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끝난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영적진리를 신선한 표현으로 묘사한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혹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들을 전시해 놓은 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빌리 그레함 센터 박물관은 미국에서 일어났던 복음주의의 성장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초대교부들로부터 시작해서, 미국 복음전도자들을 통해, 진리에 대한 능력있는 사역들을 보여 주며 박물관에서는 이 땅위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전체적으로 보여준다. Moody Bible Institute 초기시절 1837년 2월 5일. 메세추세트 주 놀스필드시. 드와이트 라이맨 무디는 아버지인 에두윈 무디와 어머니인 베씨 홀튼 무디 여사 사이에서 여섯 번째의 자녀로 태어났다. 드와이트의 공식적인 학력은 국민학교 5학년이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농촌에서의 생활에 회의와 짜증을 느끼자 17살이 되던해 보스톤에서 직장을 구해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마침내 집을 떠나고 말았다.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하자 삼촌을 찾아가 일자리를 구했다.' 삼촌인 사무엘 훌튼은 마지못해 운영하고 있던 신발가게에서 일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무디를 조건부로 고용했든데 그 조건은 드와이트가 마운트 벌논 회중 교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드와이트는 마운트 벌논 교회에서 에드워드 킴벌 교사가 가르치는 주일학교 성경공부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1855년 4월 21일 킴벌 교사는 드와이트가 일하고 있는 신발 가게에 찾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었고 무디는 그 사랑을 받아드리며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그 다음해에 무디는 신발 장사를 통해 성공을 꿈꾸며 시카고로 옮겨 갔다. 신발 판매가 호전을 이룸과 동시에 시카고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주일학교를 개설해야 한다는 불타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술집을 개조해서 시작한 주일학교가 시간이 지나자 모여드는 수많은 어린이들로 인해 비좁아 지기 시작했다. 점차 학교가 터지기 시작하자 동료 한 사람이 무디에게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해왔다. 1864년 2월, 무디를 목사로 한 일리노이스 스트리트 교회(현 무디교회)가 자체 건물을 갖고 첫 예배를 드리게 된다. 신발 사업을 그만두고 복음을 위한 전도자로서 더욱 뜨거운 열정과 헌신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뒤 섬기던 목회 사역을 사임하고 미국 전지여과 영국을 다니며 영적 대 각성집회를 인도하는 부흥사로 더욱 혼열을 쏟는 사역을 세상을 떠나는 해인 1899년까지 계속하게 된다.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도 교육에 대한 관심은 변하지 않고 있었다. 1870년 여름, 무디는 일리노이스 놀만 주립대학의 총장이며 교수인 에마 드라이얼을 만나게 된다. 그 다음해, 시카고 대화재 발생으로 인해 수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고 무숙자가 되어 도움을 요청할 때 에마 드라이얼은 그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성경공부와 교육, 심방 사역을 시작한다. 무디는 드라이얼을 설득해 계속 시카고에 남아 교회의 후원으로 교육을 하도록 한다. 그후 무디는 계속 부흥집회를 인도하게 되고 드라이얼씨는 시카고에 여성들을 교육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하게 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드라이얼 여사는 젊은 청소년들에게 계속해서 공부를 하여 훈련을 받도록 권유하며 격려를 했다. 1833년 초기에 드라이얼 여사와 매주 모여 기도 모임을 가졌던 시카고의 주미들은 무디 선생이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새로운 학교 설립에 동참하기를 기도했다. 시카고 지역의 도시 전도 집회를 위해 모였던 1886년 2월 22일의 회의에서 학교 설립에 관한 한건이 토의되었다. 드라이얼 여사의 지속적이며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암도하였다. 청중들을 향해 무디는 "제 마음속에 있는 것, 즉 제가 원하는 바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갭(Gap)을 이어줄 수 있는 일꾼들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평신도와 사역자를 이어 주는 훈련된 자들로서 도시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는 일꾼들 말입니다. 은사를 지난 자들이 복음 전파에 필요한 훈련을 받아야 할 곳이 필요한 때 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카고 복음 협회(Chicage Evangelization Society)가 (무디 바이블 인스티튜트 (Moody Bible Institute)로 변경됨) 탄생하게 되었다. 학교의 발전 한동안 협회의 주사역은 가정 심방과 도심 선교 지역에서 열리는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매년 5월 협회에서는 "5월 훈련(May Institute)이라는 일주일 훈련 프로그램을 주관하고 있었다. 시카고 에비뉴 교회(시카고 대화재 이후 일리노이스 스트리트 교회명이 바뀜)의 예배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무디는 교회 건물의 서북 방향의 안내 위원이었던 쟌 모리슨씨를 만나 이야기 하던 중 건너 편의 빈 땅을 하나님께서 학교를 위해 주시도록 함께 기도했다. 1889년에 있었던 May Institute는 무디의 가르침으로 인해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사회는 May Institute 가 점차 성황리에 많은 일꾼들을 키워내는 것을 보고 다음 사업 계획에 착수한다. 이사회는 무디와 모리슨이 기도했던 그 빈 땅과 더불어 인근의 다른 빈 땅과 집 3채를 사들여공사에 착수하여 153 Institute Place라고 불리는 학교의 사무실을 건축하게 된다. 1971년에 있었던 시카고 대화재 이후로 무디는 거의 거주지를 고향인 Narthfield로 옮겼다. 새로 새워진 학교에 시카고에 사는 전임 담당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무디는 전도자인 R.A. Torrey를 학장으로 청빙한다. 토레이 박사가 취임한 1889년 9월 26일 부터 학교는 연중 강의가 시작하게 된다. 1899년 12월 22일, D.L. Moody는 주님의 품으로 갔으며 그의 고향인 Northfield에서 장사되었다. 무디의 장례식 이후에 열린 이사회는 무디를 기념하기 위해 Chicage Evangelization Societ를 Moody Bible Institute로 개명하기로 결정했다. 탁월한 지도력 토레이 박사는 학장으로 학교의 학사 내용을 더욱 충실히 하고 우수한 교수들을 채용하여 사역에 필요한 실제적인 프로그램들을 짜는데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토레이 박사의 행정 아래 통신반과 저녁반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문서 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Moody Magazine이라는 월간 잡지를 출판하였다. 1904년 무디와 친분 관계를 갖고 학교의 시간 강사로 강의해 오던 제임스 그레이(James Gray)박사가 학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레이 박사는 세계 1차 대전과 미국의 암흑기였던 대불황기 시절을 탁월한 지도력과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학교를 운영하게 된다. 그의 재임시 그레이 박사는 고등학교 졸업자에 한해 입학 허가를 하므로 신입생 입학 허가 수준이 높아져 더욱 학교가 발전하게 된다. 또한 1926년 7월 28일 학교 자체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하기에 이른다. 그레이 박사의 뒤를 이어 윌 휴톤(Will Houghton)박사가 학장으로 취임하여 학교가 번창하게 되는데 12층 건물인 Crowell Hall과 Torrey-Gray Audiorium도 이때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경의 진리를 논증하는 Moody Bible Institute of Society가 새로 개설되었으며 무디가 창설한 Bible Institute Colporrage Association (성경연구 서적 협회)가 학교와 연합하여 Moody Press(무디 출판사)로 출발하게 되었다. 1947년 휴톤 박사가 타계함으로 이사회는 학감이었던 윌리암 커벌슨 (william Cubertson)박사를 학장으로 추대한다. 커벌슨 박사의 지도력 아래 학교의 정규 과목과 신설 과목 및 학위 수여 등이 강화되며 건물 신축이 계속 된다. 선교사 양성을 위한 항공 운항과 라디어 제직 프로그램들이 신설 교양과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1971년 M.B.I. 출신의 죠지 스위팅 (George Sweeting)박사가 바톤을 이어받아 학장으로 취임하여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이바지 하게 된다. 스위팅 박사는 M.B.I.가 급변하는 사회의 영적인 갈급함과 공허를 채울 수 있은데 목적을 두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된다. 스위팅 박사의 지시 아래 21개의 다른 지역에서 저녁반을 개설하여 많은 학생들이 교육 및 훈련을 받도록 배려하였으며, 처음으로 M.B.I. Pastor's Conference (목회자 수련회)를 개최하고 라디오 방송을 통하여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졸업생들에게 필요한 교육내용을 제공하는 등 혁신적인 방안으로 학교를 운영해 나갔다. 17년 동안 학장으로 학교를 위해 섬긴 스위팅 박사가 학교를 발전을 위해 사임하자 이사회는 목회자로 오랫동안 섬겨온 죠셉 스토웰 3세 박사를 7대 학장으로 임명한다. 방 송 드와이트 무디와 에마 드라이엘 여사가 시카고에 학교 개성에 대하여 비젼을 나누던 그해, 하인뤼치 헐츠 (Heinrich Herts)는 새로운 이론을 출판했는데 그것은 전신을 통하여 메시지를 송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 많은 실험을 통한 결과로 미국에는 라디오 방송이라는 새로운 송신 수단이 1920년 초반기에 탄생하게 되었고 M/B.I. 는 1925년 첫방송을 전파에 실었다. 학교 소유 라디오 방송국을 갖기 이전인 1925년 첫 시험 방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되었다. M.B.I.의 두 학생이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리노이스 생산물 전시회에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WGES라디오 방송국에서 전시회를 생방송으로 일리노이스 지역에 방송을 했는데 폭풍으로 인하여 준비해 놓은 배경음악을 방송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WGES 프로듀서가 M.B.I.학생들에게 복음성가를 생음악으로 연주해 달라는 부탁이 계기가 되어 매주 한시간씩 Moody Hour이라는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1926년 7월 28일 WMBI라는 학교 소유 방송 스테이션으로 M.B.I.는 첫 자체 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시카고 지역에 처음 방송을 시작한 무디 방송은 무디 방송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적으로 전파를 내보내는 방송국으로 성장했다. 1982년 무디 방송 네트워크는 인공 위성 방송을 통하여 북아메리카 전 지역에 동일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게 되었다. 무디 출판사 1894년 위스콘신 주의 메디슨 시에서 드와이트 무디는 연속적인 부흥집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는데 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남겨줄만한 영적 도서나 출판물이 없다는 사실에 무디는 안타까워 했다. 오랜 기도와 조사 끝에 무디는 Bible Institute Colportage Accociation (성서 연구 서적 협회)를 창설하게 되는데 창설 목적은 기독교인들에게 좋은 양서를 출판하여 공급하는데 있었다. 출발 업계에 몸 담고 있었던 동서인 플레밍 리벨(Felmmong Revell)의 도움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초창기에 출판되었던 책들은 방문 판매를 통해야 판매 되었다. 독자들에게 출판되는 신간 서적들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A Book-of-the-Month"(이 달의 책)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독자들이 신간 서적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또한 초창기 때에는 많은 서적들이 교도소, 병원, 구제 선교회등으로 배부 되었다. 이렇게 배부했던 문서 사역은 120개가 넘는 여러 국가에 영질의 기독교 서적을 배부할 수 있도록 성장하였다. The Bible Institute Colportage Association은 Moody Institute과 연합하여 두가지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Moody Press라는 출판사로 양서를 공급하고 있고, Moody Literature Ministry라는 문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Moody Magazine 학생 및 학교 관계자들과 졸업생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 The Institute Tie라는 잡지를 1891년에 발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에 걸친 경제 불황으로 인하여 잡지는 그 다음해에 중단 되었다가 1900년부터 다시 발간하게 되었다. 처음엔 M.B.I. 가족들을 위해 격주로 발행되던 뉴스레터 형식의 잡지가 1930년 후반기에 이르러 Moody Monthly란 새로운 형식으로 발간되었다. 다시 한 번의 잡지의 이름과 내용, 형식 등을 변형시켜 1991년 부터 Moody Magazine이라는 이름으로 월간지를 발간하고 있다. Moody Institute of Science M.B.I.는 얼윈 문 (Irwin Moon)목사의 비젼으로 시작되었다. 목회자였던 얼윈은 젊은 청년들에게 성경의 진리들을 실질적으로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왔다. 얼윈 목사는 과학 실험을 사용하여 화학적, 물리적, 생물학적인 기적들을 교인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나갔다. 1945년 그가 품고 있었던 꿈이 Moody Institute of Science를 창설하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얼윈 문 박사의 목표는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들을 과학을 통하여 증명하고 증명된 증거들을 영상(Film)으로 담아 전세계로 보급하는 데 있었다. M.B.I.는 지속적으로 뛰어나고 전문성 있는 필름 제작에 힘쓰고 있다. 그러한 결과 그 우수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과학분야, 교육분야, 영상 효과 등의 분야에서 여러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Moody-Keswick Beble Conference 1880년 드와이트 무디는 Keswick Conference(영적 대 각성 및 부흥집회)를 미국에서 시작했다. 제일 처음 있었던 집회는 Northfield Conterence로 무디의 고향인 메세츄세추 놀스필드에서 있었다.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집회를 통하여 회심하고 헌신하는 역사가 일어났지만 M.B.I.와 이 집회를 연결해 주는 단체는 없었다. M.B.I. 역시 65년 이상 Moody Founder's Week Conference로 알려진 부흥집회를 매년 주관하고 있었다. 1977년 플로리다 세인트 피털스버그에 위치한 Southem Keswick Inc.회사가 건물을 M.B.I. 에 기증함으로 M.B.I. 와 연결이 되어 매년 Moody-Keswick Bible Conference를 주최하고 있다. 그 밖에도 매년 다양한 학회 및 집회, 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하나님의 일꾼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을 다하고 있다. 무디교회 (MOODY CHURCH) 무디교회의 각 사역내용과 프로그램들 당신이 만약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다면, 아마도 LaSalle Boulevard와 Clark 거리 사이에 위치한 큰 벽돌건물인 무디교회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 건물은 1925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며, 대부분의 시카고 거주자들은 때때로 이 교회를 자동차로 혹은 걸어서 지나친다. 이 지면을 통해서 무디교회와 가르침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접하는 질문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겠다. "무디(Moody)라는 이름은 어디서 따온 것인가? 그리고 무디교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디성경학교의 한 파트에 속하는가? 교회의 이름은 19세기 후반에 시카고에서 살았던 유명한 복음주의자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미국과 영국에 있는 많은 청중들에게 설교했던 그 당시의 빌리 그레함이었다. 무디 (D. L. Moody)는 그의 주일학교에 어린이들을 초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디가 죽은 후에 그를 예우하는 뜻으로 무디라는 이름을 교회의 이름으로 정하게 되었다. 무디교회와 무디성경학교 둘 다 복음전도자 무디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비록 우리는 자매학교이긴 하지만, 유기적으로 관련되어있진 않다. 우리의 친밀한 우정의 목적은 두 학교 서로의 발전에 있다. 무디 교회는 비록 약 20%의 교회회원들이 카톨릭 교회에서 자랐지만, 개신교측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 나머지 회원들은 여러 개신교 그룹들, 유대교 배경을 가진 몇몇 회원들 , 혹은 종교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디교회는 또한 어떤 특정교단에 가입하지 않는 독립된 교회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개혁측 사람들, 즉 성경을 그들의 영적인 권위로 믿는 사람들과 함께 기독교의 일반적인 전통들을 나눈다. 이러한 확신 즉,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은 우리를 과거나 현재나 다른 많은 교회들과 하나가되게 만들어 준다. 무디교회가 그 지역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혹은 다른 말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는가? 무엇보다 먼저 그 지역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자랄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헌신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여러 이유들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들(즉,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사람들, 교도소에서 일하거나 혹은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사람들) 과 우리의 도움을 함께 함으로써 그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적에도 10개 정도의 그런일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으 이름으로 일하는 자원 봉사자들을 보낸다. 또한 매달 한 번씩 Moody Business Network과 Women in the Working World에 점심식사로 후원하고 있다. 1970년 이후 계속해서 3세부터 5세이하의 자녀들을 가진 가정을 위한 Childern's Leming Center를 운영해 오고 있다. 매주일 아침에 모이는 모임에서는 성인성경공부모임 뿐만 아니라 도시와 주변 외곡지역에서도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있다. 내주 게시판에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한 많은 기회들 (즉, 가르치는 것, 리더쉽 기술을 개발하는 것, 음악을 만드는 것, 혹은 다른 모든 중요한 분야인 것이든지간에)로 가득차있다. 주일아침 예배에 참석한다면, 어떠한 것을 그 예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은 것은? 찬양 예배는 약 1시간 15분 정도로 진행하고 있다. 예배의 구성은 우리의 삶 속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복음적인 메시지 뿐만이아니라, 찬양과 성경봉독 그리고 성가대의 합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과 또 실제적인 그분과의 영원한 삶 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The Moody Church Covenant (무디교회 서약) 우리 무디교회 회원은 하나님 말씀인 모임에 다같이 참여한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 안에서 서로 사랑할 것이며, 서로 기도하고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을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다함께 사역한다. 우리는 모든 사악한 것들 분노, 성냄, 그리고 사악한 말들을 우리로부터 제거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친절하여,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죽이심 처럼, 서로를 용서한다. 우리는 경배와 예배를 위해 모이는 우리자신들의 모임을 폐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며 그리고 우리에 대하여 영적인 규율을 가진 자들을 따르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사람에 대해 선한 청지기 직분을 감당한다. 우리는 말과 행동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노력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며, 특별히 믿음의 가정에 더욱 그렇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인 복음을 전세계에 충만하게 전파되도록 노력한다. Corporate Worship(전체예배) - 주일찬양예배 - 주일찬양예배는 오전 10:30과 오후 6:00시에 각각 시작한다. 두 예배 모두 스페샬 음악, 회중찬양, 기도, 그리고 가르침으로 진행된다. - 성인 성경공부모임 - 이 모임은 성경공부와 여러 가지 관계-발전적인 활동 들을 통해 남녀간의 관계를 강화한다. 또한 거기에는 결혼한 부부들, 미혼자들, 노인들 그리고 전체 가족들을 포함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 있다. - 수요저녁모임 - 전체기도후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인들을 위해 마련되는 성경공부 시간이다. - 수요저녁친교 - 수요저녁모임 이전에 진행된다. 모두가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다. - Connections - 이 소규모그룹 사역은 성경공부, 제자훈련, 그리고 기도를 위해 모인 다양한 그룹들을 협력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그룹들은 여러형태로 이루어지며, 참석자들의 특별 필요사항들을 발표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 3인조 기도(Triple Cords)- 3명이 한 그룹이 되어서 정기적으로 만나서 기도하는 모임이다. - Vine and Branches (포도나무와 가지들) - 사람들의 삶속에서 소그룹이 끼치는 영향이 어떠한지를 서로 나누는 연 4회 발간되는 회보지. - 장로들의 기도모임 - 교회의 장로들에 의해 인도되는 이 모임은 매주 주일예배 전에 시작한다. - 금식기도의 날 - 이 프로그램은 일년에 두차례 실시하고 교회의 가난한 자들과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자들을 위해 다같이 모여 금식하며 기도하는 시간이다. - 아침기도 - 토요일 아침에 약 25분동안 진행되며 주로 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Youth Ministries (청소년 사역들) 중학생 Culb Time and 고등학생 Culb Time - 복음주의와 영적인 성장을 강조하는 재미있고, 활동적으로 짜여진 프로그램. Junior High Culb Time은 수요일 밤에 있고, Senior High Culb Time은 주일밤에 있다. 중등부와 고등부 주일학교-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주로 찬양, 말씀공부, 그리고 여러 놀이 등이 주일 아침에 이루어진다. 캠프 Ministry - 캠프 Moyoca - 안디록 일리노이주 근처 Loon 호수에 위치한 캠프 Moyoca는 우리교회 가족 회원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 성장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 공해준다. 캠프는 여름기간 동안 어린이들과 중.고등부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 교회 피크닉 - 교회 전체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 즐거움 그리고 친교가 있는 시간이다. 캠프 Moyoca에서 매년 여름마다 개최한다. 추수의 날- 하나님의 선하심과 섭리 가운데 교회 -확장 일을 정하여 축하하는 날이다. Childern's Ministries (어린이를 위한 사역) - 어린이 주일학교 - 찬양과 하나님의 말씀과 재미있는 활동 등을 통해 신앙심을 키우는 주일 학교. - Caraway Street -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세서미 스트릿"과 같은 행태의 프로그램으 으로써 주일 아침에 1학년부터 4학년까지를 대상으로 가면극, 또는 음악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 ChurchTime - 2학년에서 5학년까지를 대상으로 디자인된 이 프로그램은 주일아침 예배시 간에 이루어진다. 이 프로그램은 성경과목과 찬양, 구연동화, 비디오상영 등 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Nursery (탁아소) - 주일아침에 간난 아이들을 잘 돌봐준다. - Pionner Clubs - 학교 기간동안에 6살부터 12살의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매주 수요일 밤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러 게임과 성경암송, 찬양, 그리고 각종 훈련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Childern's Christmas Pageant - 음악과 드라마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 - Childern's Learning -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에게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또 영적인 가치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안전하고 교육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Outreach Ministries (전도사역들) 무디교회는 크리스챤들에게 지역사회 활동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제공하고 있다. - Branch Ministries - "이 사역은 무디교회 사람들에게 그들의 시간과 재능을 헌신할 수 있도 록 하며, 우리 도시의 특별히 필요한 세부사항들을 체계화해서 준비하 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Evangelism Explosion (복음전도 폭발)- 참석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신앙을 나누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깊이있는 훈련과 전도에 필요한 훈련 등 을 제공한다. - Light of lsreal Fellowship - 한달에 두 번정도 정기적으로 모여서 이스라엘의 메시야로써의 예수를 찬양하는 시간이다. - Passover Seder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유대교의 뿌리를 나타내기 위한 전통적인 유대교 식 사를 하게된다. - Moody Business Network - 한달에 한 번 점심식사를 베풀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시 카고 상업지구에 심는 일을 한다. 주중에 한 번 성경 공부시간 을 갖고 1년에 한 번 저녁식사연회를 갖는다. - Moody Business Nwtwork Sunday Seminer - 일반상업지구와 교회사이에 벌어진 틈을 이 주는데 도움을 주는 성인성경공부모임이 주 일 아침에 있다. - Moody In the Park -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나누는 목적에서 지역사회 주민들과 무디교 회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매년 여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축제행사 이다. 드라마, 음악 그리고 다른 특별순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 INTRD - Sinlge Focus에서 후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3개월에 한 번씩 갖게 되는데 주로 지 역주민 사람들에게 무디교회의 신앙과 사역들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 Prison Ministry - 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나 대회로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한다. - Vacation Bible School - 어린이들을 위한 재미있고 유익한 캠프 프로그램으로 매년 여름 일 주일 동안 교회에서 있게 된다. - 수요저녁예배 at Pacific Garden Mission - 무디교회에 있는 각 개인들이 시카고 도시에 있 는 무숙자 주거지인 퍼시픽 가든 미션에서 한달 에 한 번 인도하는 예배이다. Music Minstry - Sanctuary Choir - 주일 찬양예배 시간에 새로운 스페샬 음악과 콘서트를 갖는다. 때때로 오케 스트라 반주와 독창 발표회도 갖는다. - Orchestra Ensemble - 어떤 특정 주일예배 시간에 자원해서 오케스트라 반주를 제공해 주는 음악가들이다. - Handbell Choir - 1년에 몇차례 교회 예배 때 노래한다. 주로 1학년부터 6학년 까지를 대상으 로 하고 있다. - Worship Band - 어느 특별한 주일 밤 예배나 그 밖에 다른 특별한 행사시에 공연한다. 이 시 간에는 좀더 다양한 현대적인 스타일의 찬양을 드리게 된다. Radio Minstry 무디교회에서 만들어지는 라디오 프로그램들은 미 전역에 그 이상 지역에 400개 이상의 라디오 스테이션을 통해 전파를 탄다. 라디오 프로그램들 - 매일 우리의 삶 속에 영감을 주는 15분 메시지
90년대 한국사회에서 경제정의에 대한 신학적 전망 2002-02-01 21:10:43 read : 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남섭 교수 (한일신대) 1. 문제제기와 연구 주제 1.1.1. 문제제기 - [경제기적] 뒤에 오는 [경제정의론]의 의미 [경제정의]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현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경제기적'도 이루었고, 올림픽도 치렀고, '중산층'도 많아졌고, GNP도 높아졌고, 자
90년대 한국사회에서 경제정의에 대한 신학적 전망 2002-02-01 21:10:43 read : 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남섭 교수 (한일신대) 1. 문제제기와 연구 주제 1.1.1. 문제제기 - [경제기적] 뒤에 오는 [경제정의론]의 의미 [경제정의]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현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경제기적'도 이루었고, 올림픽도 치렀고, '중산층'도 많아졌고, GNP도 높아졌고, 자가용도 많아졌는데, '경제정의'를 내세운 한 시민운동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시민사회로부터 그렇게 많은 호응을 받을 수 있었는가 하는 소박한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기적'뒤에 몰려오는 이 황당한 '경제정의'의 요구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황당한 현상은 당연히 다음의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하나는 경제성장으로 상징되는 '경제기적'이 곧 경제정의는 아니라는 문제이다. 경제의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왜 우리사회가 정의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고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성장과 정의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또 다른 문제는 왜 지금 '경제정의'가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게 되었으며 현재의 경제질서 속에서 그 실현 가능성은 사실상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불가사이한' 현실의 존재가 바로 오늘 우리가 '경제정의'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하는 출발점이 된다. 사실 교회는 지난 몇 년 사이에 경제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표명해 왔다. 이것은 한국교회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교회의 공통된 관심사로 나타났으며, 자본주의 사회뿐만이 아니라 구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전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동구의 몰락]이후 자본주의가 인간의 발전과 경제정의 실현의 가장 효율적인 체제라면 이제 그것을 가만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데 왜 [경제]가 심각한 주제가 되고 [경제정의]가 계속 요구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소위 변화된 오늘의 세계에서 논의되는 [경제정의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검토할 필요를 제기한다는 점이다. 1.1.2. 연구주제와 방법 그리고 한계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우리는 경제정의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시작하려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90년대 한국사회에서 경제정의에 대한 신학적 전망이 무엇인지를 논의 하는데 이 연구의 기본 목적이 있다. 우리의 연구과제는 어떤 새로운 신학적 경제정의론을 제시하는데 있지 않고 현 우리사회의 경제현실에서 지배적으로 논의되는 경제정의론의 타당성을 거시 이론적 차원에서 검토하는데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 우리사회의 지배적 경제질서를 [신 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규정하고 먼저 이 정책의 출현 배경과 특징을 정리 분석한 다음 이 정책이 표명하는 [경제정의론]의 의미를 규명할 것이다. 그 다음 이 정책의 국내적 조명을 김영삼 민간 정부의 [신경제 5개년 계획]과 경실련의 [경제정의론]을 중심으로 전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미시적 접근 방법보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제정의론의 논의를 전체적 의미에서 평가하는 거시적방법을 취할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의 연구목표는 처방이 아니라 진단에 있다. 왜냐하면 골비쳐가 이미 지적하였듯이 "대안의 모색은 올바른 진단 뒤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서 논의되는 경제정의론]의 이데올로기성 규명에 분석의 초점을 둘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다분히 이론적 논의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 점이 이 연구의 한계가 될 것이다. 이 연구는 토론을 위한 시론적 성격의 것으로 완결된 것은 아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서 논의 되는 경제정의론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가능하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뿐만아니라 성서적, 신학적 근거에서 볼때도 바람직하지 않는 것이다. 나머지도 이에 대한 설명을 하나씩 하는것으로 2. 이론적 방법론적 전제들 : 왜 신학은 경제를 문제삼는가 신학이 경제를 다루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한 가지 비유를 들면서 이 문제를 접근하려고 한다. "경제문제에 대하여 오랫동안 교회는 '앰뷸런스적'인 일을 많이 해왔다. 그러나 이 일은 언제나 필요하나 그것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재해는 다루나 그것의 원인과 예방은 다루지 않는다. '앰뷰런스적'인 행동은 주로 아마츄어적인 이해에 의존한다. '앱뷸런스식'의 차원을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이슈를 아주 진지하게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전문가 없이 할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러나 전문가가 다룰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제에 포함된 이슈는 (경제문제) 전문가에게만 맡기기에는 사안이 너무나 중요하다." 이 비유는 오늘 신학이 경제문제를 다루어야 함을 상식적 차원에서 잘 설명해 준다. 이제 좀더 깊이 있는 이론적 근거들이 필요하다고 본다. 성서적 근거와 신학적 근거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의의 개념정의, 여기서 우리는 제3세계,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적 입장을 참고할 것이다. 2.1.1. 성서적 근거들 경제 문제에 대하여 성서가 이야기하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모두 요약 할 수 없다.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개입의 책으로서 성서는 경제적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하게 신뢰하고 자연을 보존하고 타인을 사랑하라는 책임성을 다루는 창조주 하나님을 다룬다. 하나님의 중심 주제로서 정의에 대하여 논의한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의를 빵과 기구들로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준다. 성서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개입주의자(intervencionista)임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의지와 예언자는 백성들에게 죄로 가득한 구조를 정당화 하지 않도록, 불평등을 허용하지 않도록, 그리고 노예를 증가하지 않도록, 타자의 희생 위에 부를 축적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가난한 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구를 창조하도록 요구한다. 예수 자신은 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하여, 구약에서의 해방의 예언자적 메시지를 가득 채웠다. 이것을 그는 나사렛의 선언에서, 가난한 자와의 연대 속에서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성서적 전망이 우리가 경제적 삶과 신앙을 분리시키는 것을 불가능 하게 한다. 그 자신의 고유한 법과 절대적 원칙을 선호하는 오늘의 세계경제는 우상숭배에 대한 성서적 비판을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하나님과 맘몬사이의 선택이 함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 할 필요가 있다. 너는 하나님과 맘몬을 둘 다 섬길 수 없다(눅 16:13). 우리는 정의롭고 존속될 수 있는 대안적 경제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미 만들어진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우리에게 새로운 꿈과 우리의 탐구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행동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 세계는 무에서 창조되었다.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준다. 5개의 빵조각으로 5천명을 먹인 기적이야기, 죽음에서 살아난 예수의 이야기, 이 모든 것은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제시하며, 그리스도는 새땅과 새하늘을 약속하시는 분( 계시록 21:5 )임을 가리킨다. 2.1.2. 신학적 근거들 어떤 사람들은 신학은 경제를 분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경제에 대한 윤리적 성찰의 역사는 오래 전부터 있으나 신학적 성찰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위대한 신학자들은(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칼빈) 경제와 정치는 결코 교회의 영역이 아니라고 진술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들 신학자들은 신앙과 사회, 정치적 실천을 연결 시켰으나 언제나 간접적으로 하였다. 예를 들면, 루터와 칼빈은 경제와 정치를 세상적 영역의 부분으로 고려하였지, 영적 영역의 부분으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는 칼빈과 개혁교회의 전통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우리의 이해에 따르면, 신앙 그 자체는 경제생활의 원칙이다. 정치와 경제 또한 "영적 영역"의 부문이다. 경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개혁교회의 기여가 본질적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이다. 우리는 개혁교회의 신학적 유산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개혁교회의 신학적 유산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영역의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요구하는 오늘 우리의 세계질서와는 대립된다. 여기서 우리는 개혁교회의 세 가지 신학적 전제에 대한 빠른 이해를 요구받는다. - sola scriptura(오직 성서로)는 (우리는) 삶의 모든 부문에 있어서 오직 성서가 우리를 인도함을 가르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현재 세계 경제에서 우리는 율법, 예언자 그리고 복음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와는 독립되어 살도록 요구하는 사회와 직면하고 있다. 불의한 경제실천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과 착취당한 자의 편에 선 하나님의 개입은 분명하게 십계명과 예언자의 가르침, 그리고 그리스도의 관심에 표현되어 있다. Sola gratia (오직 은총으로)는 이해타산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무한한 선물로 선포된다. 그러나 근대세계 경제에서 우리는 삶의 모든 부분을 노예화하도록 위협하는 파렴치한 힘과 직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구원과 삶은 신앙의 체험(sola fide)이라는 진리를 확고하게 고수하여야 한다. 그러나 근대세계경제에서 우리는 역사의 종말이 도래하였다는 주장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요구는 해방을 위한 가난한 자의 희망을 죽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세속화한다. 개혁교회의 신학에 따르면 인간구조의 영원성, 역사적 순간을 적대화하려는 욕망은 진정한 이단이며 신앙의 적이다. 이점을 16세기의 사회경제적 관계의 변화에 신학적으로 적용하였다는 점이 교회에 대한 칼빈의 최대의 선물이었다. 그는 다른 개혁자들이 하지 않은 방법으로 태어나고 있던 자본주의 질서와 쉽지 않은 평화를 이루었다. 여기서 이것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교리는 예정설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론이었다.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칼빈은 봉건주의의 구질서를 방어할 필요가 없음을 느꼈으며 또 그 질서가 지나가는 것을 슬퍼할 이유가 있음을 느끼지 않았다. 또 하나님이 모든 새질서에 대한 주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칼빈은 그 안에서 기독교의 소명을 발휘하는 정당한 가능성과 적극적 가치를 보았다. 이리하여 경제적 삶과 사상에 대한 칼빈신학의 최대의 기여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경제체제는 하늘아래 없다는 원칙을 제시하였다는 데 있다. 2.1.3. 경제학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경제활동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행동규범에 대하여 끊임없이 관심을 표명해 왔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교회의 사회적 교리는 경제적 무질서를 문제삼았다. 가령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Rerum Novarum (새로운 사태)", "개신교 종교 사회주의(쿠터, 라카츠, 바르트)", 불가코프(Bulgakov)와 베르자에프(Berdiaev)와 같은 러시아의 망명 신학자들, "미국의 라인홀드 니버",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의 "책임사회 윤리", 1961년 교황 요한 23세의 회칙 "Matar et Magistral", "Facem in Terris (땅의 평화 1963)", 1967년의 교황 파울로 6세의 회칙 "Populorum Progressio"등 이 모든 것은 경제적 현실의 문제에 대한 교회와 신학의 우려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경제활동에 대하여 영향을 주려는 교회와 신학의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가르침이 사실상 경제학자, 경영자, 기업가, 다국적 기업에 의하여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교회와 신학이 현대 경제체제의 지배적 방향을 비판하고 [공공선]의 중요성과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부의 생산과 분배]를 호소하나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만약 어떤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거의 의미가 없는 것이며 불의한 경제구조는 평상시처럼 계속된다. 여기서 더 심각한 문제는 경제활동에 있어서 주요한 위치에 있는 평신도 - 경제학자, 기업가, 경영가 -들이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전혀 반응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가르침에 정반대 되는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에 있다. 교회는 경제적 문제에 대하여 개입할 수 없으며, 교회는 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는 도덕 또는 윤리적 원칙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경제는 가치 중립적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경제적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며, 이것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내는 데 있다. 한마디로 교회와 이들 경제적 활동의 책임자들 사이의 대화는 "귀머거리 사이의 대화"의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회와 경제계사이의 이러한 관계의 부재는 민중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경제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주지 못하며 이점이 오늘 신학과 경제에 대한 새로운 관계의 정립이 요구되는 배경이 된다. 경제학자들과 기업가들이 신학을 거부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신학자들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경제를 관리하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면 [공공선]에 대하여 말하는데) 경제학자들과 기업가들은 이러한 신학적 주장들을 당위적인 것에 대한 것이지 존재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한다.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지적해야 할 사실은 이들 경제계의 주체(은행가, 사업가, 상인)들의 입장에서 나타나는 허위의식이다. 이들은 경제적 삶과 윤리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윤리는 인간 삶이 보다 인간적이 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윤리는 삶의 재생산을 위해 염려하는 데 이것은 경제적 행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이것은 윤리에게 있어서 중립적 지역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삶의 물질적 조건에서 출발하여, 경제가 삶의 재생산을 돕든지 또는 돕지 않든지를 결정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며 가치중립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이해관계를 숨기려는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이 된다. 이와 반대로, 프리드만(M, Freedmann)과 시카고 학파의 입장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경제를 도덕 밖의 것으로 설정하려고 한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본성이 다루어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여기에 신학이 경제학을 비판하게 되는 고유한 경제적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신학자들과 교회를 세계의 현실 밖으로 놓으려는 도덕주의적 관점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를 세계의 현실 밖으로 격리하려는 대표적인 경제학이 바로 고전적 또는 신고전주의 경제이며, 맑스주의 경제학자들 가운데서는 스탈린의 경제적 저술을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제를 과학이라고 규정하고 신학을 미신이라고 간주, 세계 밖으로 추방하려 하는데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모두 분석할 수 없다. 단지 고전적 경제학자들에 제한하여, 그들의 비합리적 허위의식을 지적하려 한다. Julio de Santa Ana 가 정확하게 보았듯이 이들의 중요저작들에는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은 경제적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대표적 표현이다. 그는 모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시장을 조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서 그는 시장은 동일한 사회적 힘이 만나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적 개념을 마술적으로 (신학적으로) 도입하면서 모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을 숨기려 하였다. 이외에도 고전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종교적 언어의 예들은 많이 있다. "기적", "희생", "구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희생"의 개념은 종교적 실천에 그 기원이 있다. 오늘날 이 희생의 언어는 끊임없이 반복되나 "대중 계층의 희생"만을 가르치지 풍요 속에 사는 이들의 희생은 요구되지 않는다. 이 개념은 시카고 학파와 밀턴 프리드만의 사상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즉 "높은 사회적 희생" 없이 경제 성장은 불가능하다. "구원"의 개념은 외채 - 제3세계의 외채 - 에 대해서 말할 때 많이 사용되는데, 여기서 외채는 민중의 희생으로 또는 외채의 "구제"로 해결된다. 외채의 "구제"와 같은 말들은 겨우 형이상학적인 것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하는 사실은, 경제이론은 근본적 입장을 표현하기 위하여, 종교와 신학에 고유한 단어들을 사용하며, 이러한 상징의 사용도, 무의식적으로, 경제이론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숨기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고전적 정치경제학을 가리켜 종교이론이라 규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경제 이론은 하나의 함축적 신학을 포괄하고 있으며 정반대로 모든 신학적 성찰은 또한 그 속에 함축적 경제학을 지니고 있다"는 Julio Santa Ana의 진술은 정당하다고 본다. 이것은 또 우리의 경제정의에 대한 논의가 경제 현실과 유리된 도덕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경제적 현실 그 자체에서 출발하게 되는 근거가 된다. 2.1.4.경제정의의 주요 원칙들 이제 우리가 이 연구에서 전제하는 '경제정의' 의 주요 원칙들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이 개념 정의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성서적 ,신학적 논의를 그 주요내용으로 한다. 첫째 우리에게 있어서 -교회공동체- 경제정의는 생산과 분배가 중요하게 고려되나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이며, 노동자의 세계이며 인간 노동의 가치이다. 생산성과 성장은 신학적으로나 성서적으로 볼 때 사회경제적 질서를 위한 마지막 기준으로 받아들 일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정의로운 경제 체제로의 가능한 전환은 오직 [하나님의 왕국]의 담지자인 가난한 자들의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은 가난한 자들의 삶이 사회경제적 질서를 위한 최후의 기준이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수의 논리 (la logia de las mayorias)가 기준이 되는 생산의 새로운 사회관계가 형성되는 사회를 전제한다. 경제 정의는 불의한 경제체제의 변혁을 위해 저항하고 실천하는 착취당하는 이들과의 연대를 요구한다. 3.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있어서 경제정의 "변화된 세계", "새로운 세계질서","경제 제일주의로의 세계질서의 재편"이 오늘의 세계를 묘사하는 대표적 용어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표현-수식어-뒤에 놓여 있는 공통적인 현실은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세계적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세계를 지배하는 이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정치경제학을 {경제정의}와 관련하여 검토해 보려고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이러한 [세계질서]가 태동하게된 배경을 이해하여야 할 필요를 느끼며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는 [동구권 이후]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된 것이라는 점을 분석할 것이다. 3.1.1. 현 국제 경제질서의 재편의 배경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국내 경제학자들은 최근의 세계 경제 질서의 위기와 재편에 대한 분석에 있어서 3자위원회의 전략(Comision Trilateral) 대한 평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세계자본주의 주도국의 자체 분석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1960년대 말에 시작한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위기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로 하여금 국제적 차원에서 자본주의 프로젝트의 실현을 보장하는 새로운 전략의 수립을 요구하였다. 이 당시 논의된 기본적인 적은 이제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제 3세계와 제4세계의 빈곤이었다. 가난한 나라들은 갈수록 집요하게 [새로운 국제질서]를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부의 균등한 재분배, 원자재의 가격과 공산품 사이의 균등한 상호교환, 일련의 기술이전,유리한 환율등을 함축하였다. 부유한 북의 나라들에 대한 가난한 남의 나라들로 결집된 새로운 적의 도전과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구조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1973년에 록펠러, 키신저, 브렌진스키의 지도아래 3자 위원회(Comision Trilateral)를 구성하였다. 이 위원회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한 세나라, 미국,서유럽,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은행가,다국적 기업의 최고 경영인,정치가,학자 들로 구성되었다. 3자위원회의 이름은 바로 이 세나라가 연합 한데서 나왔다. 이 3자위원회에서 논의된 중요한 결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전지구적이라면, 해결책 또한 전지구적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사회주의와 같은 다른 체제로의 전환 또는 남쪽의 가난한 나라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의 수립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혁신이 아니라 갱신이다.(세계적 차원에서 직면하고 있는 체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조정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새로운 국제체제]의 출현이 아니라 [갱신된 국제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이리하여 3자위원회는 자본주의 위기의 극복을 위한 기본적인 전략을 다음과 같이 작성하였다. 첫째, 경제적 차원에서 다국적 기업을 통하여 자본의 국제화를 강화하는 것,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소속된 모든 나라들의 체제의 지구적 해결에 가담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족 경제의 자율성에 대한 희구와 독자정치의 수립은 이러한 협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방해물로 간주되어야 한다. 둘째, 재정적 차원에서 기존하는 국제금융기구들(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등)의 기능을 다국적 은행을 통해 강화한다. 세째, 과학-기술적 차원에서,고전적이고 더러운(환경오염)산업기술을 남의 주변부 나라들로 이전하고 중심부 나라들엔 보다 역동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기술 산업의 주요 부분을 보존한다. 여기서 환경산업은 3자위원회를 위하여 아주 중요한 산업으로 고려된다. 네째, 정치적 차원에서,세계자본주의의 위기의 해결은 이 체제를 구성하는 모든 나라들에게 그 혜택이 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가능한] 나라들과 [가능하지 않은]나라들 사이의 선택이 제기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능한 나라들은 브라질, 베네쥬엘라, 멕시코 등 소수의 중진국들이 3자위원회 나라들과 강력하게 협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나라들로 선택된 나라들은 3자위원회에서 중요하다고 간주하는 가치들의 회복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즉 "상대적 민주화" 또는 "보호된 민주화"의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이 말은 제3세계 정치가 또는 학자들에 의하여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3자위원회에 의해 만들어 졌다. (간혹 이 용어는 보다 사회적인 언어로 "기독교 민주당",또는 "사회 민주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 이들 나라에 있어서 임금의 상대적 회복을 장려하여 중간층의 구매력을 증가시키고 이를 통해 내수시장의 소비망을 확대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3자위원회의 외부시장(국제시장)에 활력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이다. 왜냐하면 모든 나라가 수출하기를 원함으로 인하여 3자위원회의 시장은 포화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서구 자유 민주주의]의 이미지를 더럽힌 '국가안보국가'의 야만적 행위를 청소하기 위하여 인권의 옹호와 고무를 진작하는 정책을 취한다. 이상이 3자위원회가 오랜 시간의 협의와 연구끝에 수렴한 체제 위기의 장기적 극복 전략의 전체적 대안이었다. 따라서 이 기본 전략의 실제적 적용은 3자위원회와의 긴밀한 협력의 방식을 통하여(G7회담)실시되며 이 과정에서 개별 나라들의 특수한 결정은 전체적 전략을 준수한다는 조건아래에서 허용되어 졌다. 이 장기전략의 1단계는 카터의 인권정책으로 나타났고 2단계는 레이건 - 부쉬 - 대처 - 콜-나까소네 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과감한 실시로 나타났다. 지난 80년대 동안 실시된 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대부분 실패로 평가되고 있으나 예상하지 않았던 동구권의 붕괴로 인해 이 정책의 전환 내지 포기는 아직 미결정의 상태에 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으로 시장경제체제의 우수성을 선전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이 신자유주의 정책에 남아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 오늘 "변화된 세계" 또는 "새로운 국제질서"라는 요란한 소리로 떠들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태동하게 된 배경이다. 3.1.2.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특징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태동배경에서 지적하였듯이, 이 경제질서는 제3세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던 [정의로운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의 요구에 대항하기 위하여 구상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전략적 경제 정책의 한 단계이다. 기본적으로 불의한 기존의 경제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갱신된"경제정책의 하나이다. 이제 갱신된 이 경제질서의 특징이 무엇이며 그리고 이 질서가 제시하는 경제정의론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분석해 보자.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주요한 특징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시장경제의 세계화'(또는 지구화, 국제화)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의 사유화' 또는 '민영화'가 그것이다.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1.2.1.1.. 시장경제의 세계화 시장경제의 세계화는 이미 10년 전부터 추진되어 왔으나 이것이 국제적 여론의 파고를 타기 시작한 것은 "동구의 몰락" 이후이다. '동구의 붕괴'는 시장경제체제의 환상을 더욱 부풀렸다. 그러나 매스컴을 통한 국제화 논의는 국제화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심지어는 허황된 의식까지 유포하고 있음을 지적되어야 한다. 세계화는 두 가지 모순된 현상을 동반한다. 한편으로는 범지구화 현상이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배타적인 지역 경제블록화 현상이 오히려 강화된다. 이 상반되게 보이는 현상은 사실은 단일한 논리에서 기인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이데올로기로서의 글로발리즘(Globalismo)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주도해 왔던 미국이 1950년대 중반 이후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하면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지배체제의 수립으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3자 위원회(Comision Trilateral)에 의해 재편되어 졌다. 글로벌리즘은 제한 없는 자유무역을 통하여 세계경제질서를 발전시키자는 강자의 논리이다. 그것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의 확장적, 공세적 이데올로기로서 불균등한 세계경제의 갈등구조를 극복 내지 해소하기 보다는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시장질서의 회복은 흔히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가정된다. 이른바 왈라스-파레토(Walras-Pareto)의 일반균형론(teoriade equibrio)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에서 그러한 가정이 나온다. 더구나 국가 주도의 전형적인 발전모델로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시장은 그 안에 인간이 움직이고 있는 하나의 제로이며 결코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물론 1930년대 이후의 국가개입(뉴딜 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이 라는 새로운 형태의 모순을 낳은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전후에 복지국가가 이룬 모든 개혁적 성과를 부정하고 시장으로 돌아가자는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만능론은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비약이다. 다른 한편 경제의 세계화는 시장의 '개방화'로 나타난다. '개방'을 하지 않으면 세계경제에서 낙후되는 것으로 평가된다.이 이론에서는 선진국의 보호주의 정책(슈퍼301조와 같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며 한국보다 500년이나 앞서서 세계경제에 개방한 라틴아메리카 경제의 낙후성에 대한 설명이 없다. 지난 500년 진행된 개방의 실패경험은 역사의 박물관속에 갇혀 버린다. 개방화 속에서도 선진국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보호주의의 장벽에 대해서는 쌍무협정의 조항으로 슬그머니 처리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계화 또는 개방화의 선택적 적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3.1.2.1.2. 경제의 사유화(Privatization) 또는 민영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두번째 특징은 공기업의 사유화 또는 민영화이다. '국가개입의 최소화','작은 정부론','정부규제의 완화','민간의 활력','행정의 간소화'등 경제의 사유화를 상징하는 대표적 용어들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국가의 경제개입을 견제 또는 국가기능의 역할(경제에 있어서)을 최소화하는데 있다.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n)은 케인즈의 개입주의 국가론이 자본주의의 모든 위기의 원인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이것은 경제의 사유화를 추진하는 기본이론이 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선진제국에서 보여지는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은 복지국가체제의 실패에 있다. 케인즈 주의에 입각한 복지정책은 본질적으로 인플레와 노동의욕의 상실로 인한 경기침체로 말미암아 국가재정이 파탄에 직면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재정의 건전화를 기하기 위해서 공적부문-복지부문-의 지원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고용과 복지를 창출하는데 드는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고 공익에 대한 기업의 부담을 덜어 줌으로써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은 고용과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통한 케인즈주의적 유효수요관리 정책으로부터 유연생산적 공급 지향적 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개입국가적 조치와 함께 꾸준히 늘어난 국가 지출 및 공급지향경제를 지원키 위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국가채무규모의 엄청난 증대를 가져 왔으며 이러한 부담은 민영화와 탈규제조치에 의해서만 해결될 것으로 전제한다. 이리하여 이제껏 공익과 고용안정,사회복지의 상징이던 공기업이 어느새 낭비와 비효율의 상징으로 급변하면서 대대적인 민영화의 수난을 겪게 되는 것이다. 민영화 조치는 각종 규제완화,사회복지 삭감,긴축재정과 함께 국제화시대의 각국 정부들이 가장 애호하는 경쟁력 강화전략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할 사실은 경제의 민영화보다는 복지국가가 먼저 선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서구의 이 복지국가는 동구의 사회주의 복지국가와의 경쟁 상태에서 형성,전개되었다는 점이며 결과는 체제자체의 위기를 불러온 엄청난 부담이었으며 결국 이 정책의 상호 포기로 귀결되었다.단지 차이는 사회주의적 국가개입을 채택하였던 자본주의 복지국가(케인즈식)정책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원래의 자본주의 노선으로 복귀하였다면 동구의 현 사회주의 국가들은 기존의 강력한 국가주도의 복지국가사회주의 정책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적'시장경제정책'을 채택하였다는 데 있다. 이것 은 궤도,노선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지 체제의 붕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뉴딜정책을 시행하였을때 아무도 미국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라고 평가하지 않았듯 유신체제의 긴급조치 8.3을 시행하였을때 아무도 한국자본주의 체제의 ꝷ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3.1.2.1.3. 지배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형성배경에서 언급하였지만,'국제화'현상은 세계 각 지역간의 상호의존적 관계의 자유로운 발전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다만 지난 수십 년간 심화되어온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팽창,과학기술의 비약적 발전, 통신위성,정보의 전달 및 수송체계의 비상한 발달로 인하여 세계적 통상의 기회와 규모와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고 단정할 수 없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국제화'는 현대사의 오랜 질곡인 제국주의적 지배와 종속관계가 더욱 악화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적으로 지금 자본과 기술과 상품의 자유로운 교류는 가능하지만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불가능하다는데 이미 드러나 있다. 무너진 동구의 장벽은 이제 제1세계와 제3세계사이의 국경선으로 옮겨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 구체적 작업은 유럽에서의 이민법제정과 미국의 나프타 체결(NAFTA)의도에서 나타난다. 서구의 지역별 경제블록화 이면에는 제3세계 노동의 제1세계로의 이동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다국적 기업은 싸고 자원이용이 용이한 세계 어느 지역이건 옮겨 다닐 자유를 누리지만 세계의 기층민중에게는 자신의 일자리를 선택하여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사실상 제한되어 있다. 자유는 자본의 것이지 민중의 것은 아니다. 여기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라은 자만이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자 김종철이 "국제화 논의는 성장과 경제개발 및 자유무역의 논리를 전세계적으로 확대하려는 다국적 기업들과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직접 간접으로 봉사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라고 단언한 것은 타당성이 있다. 3.1.3.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경제신학과 경제정의론 지금까지 서구신학은 서구자본주의 자체를 노골적으로 기독교의 본질과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사회학자들이 서구의 자본주의 발전을 기독교윤리와의 관계에서 해석해 보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교회 내에서 자본주의와 기독교를 동일시한 신학은 없었다. 오히려 기독교와 자본주의 가치 사이의 긴장관계를 보여주는 신학적 진술이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낙관적 신뢰는 "숨은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처음으로 서구신학은 자본주의를 두려움 없이 기독교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체제로서 정당화하였으며 이것은 신보수주의 신학(Neoconservadurismo ; 이하 NC로 약칭) 또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경제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어졌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오랫동안 적대 관계에 있었던 보수주의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이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더 가관인 것은 고전경제학이 도덕신학과의 결합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경제학이 신학임을 공식적으로 시인하는 행위이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재편은 단순히 새로운 경제정책의 부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러한 정책의 변화를 보장하고 촉진하는 이데올로기적 정당화과정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수립자들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모순 - 윤리적 위기 - 을 단순히 정책의 변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에서 출현한 것이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경제신학 또는 NC이다. 이 NC는 유럽에서 출현하였으나 북미에서 훨씬 대중적 차원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신학자뿐만 아니라 미국의 유명대학의 사회학자, 경제학자, 정치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지며(Think Toank) 이것은 제도적으로 "종교와 민주주의를 위한 연구소(Institution on Religion and Democracy)"산하에 결집되어졌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학자로는 카톨릭사제출신의 미첼 노박(Michael Novak), 개신교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톤(Samuel Huntington), 루터교의 노이하우스(J. R. Neuhaus)와 글라사르(N.. Glasar) 그리고 크리스톨(I. Kristol)을 지적할 수 있다. 이기구의 최대의 과제의 하나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있으며 여기에서 경제학은 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제 신자유주의 경제신학의 신학적 전제를 경제정의론에 제한하여 정리해 보려고 한다. 3.1.3.1.1.시장경제가 생산하는 상품으로서 경제정의 (개인연금시대 - 개인연금을 위한 경제정의) 신자유주의 경제신학의 근본적 목표는 "민주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가장 인간적이고 합리적이고 정당한 체계로 제시하는 데 있다. 이들 NC이론에 의하면,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민주적 자본주의"경제제도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경제체계"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정치경제제도보다 인간의 사회적 문제해결책으로서 더욱 능률적이며, 보다 현실적이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자유를 확보하면서 인간 공동체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건인 재화의 생산분재(경제정의)문제에 있어서 다른 어떤 사회경제체제보다 훨씬 합리적인 사회제도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의 역사의 내적 구조는 이것을 입증한다. 겨우 200년도 채 안되는 자본주의 지배동안에 부르주아는 그이전의 세대들이 이룬 것보다 훨씬 막강한 생산력을 창조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이러한 생산기술의 끊임없는 혁명과 동시에 억압적 관계를 해소하는 사회적 관계의 다른 혁명"을 보았다면 신자유주의 경제신학(노박과 피터 버그)은 거의 배타적으로 자본주의의 장점만을 찬양하였다. NC의 경제신학에 따르면, 자본주의 정신의 핵심에 있는 덕목은 효율성과 성장 그리고 인간의 창조성과 기업정신이다. 창조적 환상없이 이윤도 효과적 성장도 없다. 창조적 상상력과 함께 기업의 팀웍이 있으며, 기업적 관리를 견디는 합리적, 인간적 조정이 있다. 시장경제의 이러한 덕목은 자유와 정의(경제)에 유리한 조건들을 창조하도록 이끈다. 이것은 사회적 다원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그와 함께 자유와 연대의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자본주의의 덕의 극치는 분배능력에서 나타난다. 시장경제도 다른 어떤 체제보다 나은 분배를 실현한다. 당연히 국가의 계획경제보다 나으며 심지어는 복지국가의 빈곤에 대항한 투쟁의 방법들보다 낫다. 이점을 버거는 입증할 수 있는 경험적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소위 쿤츠(Kunts)의 곡선에 의하면, "만약 경제성장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부와 이익의 불평등은 처음에는 심해지나 그후에는 빠른 시간안에 감소되며 그후에는 상대적으로 안정한 위치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쿤츠의 테제를 입증해 주는 구체적인 예로 아시아의 자본주의(NICS)경험을 제시한다. 요약하면, 자본주의는 모두의 운명을 개선한다. 부자와 가난한자 둘 다 동등하게 자본주의로 인해 더 많은 것을 확보한다.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혁명은 지금까지 존재하는 그 어떤 체제보다 정치경제적 과정에서 보다 해방적이다. 빈곤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보장하며 자유와 경제정의의 생산을 보장한다. 그리고 자유와 경제정의의 생산은 시장경제가 확대될수록 더욱 증가한다. 말하자면 시장경제가 생산하는 상품으로서 '경제정의' 인 셈이다. 2) 자본주의체제의 도덕적 위기 극복책으로서 경제신학 앞에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은 객관적 분석보다도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훨씬 많이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이란 보다 폭넓은 프로그램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NC의 민주적 자본주의 신학은 자유주의 전통의 재건을 위한 신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반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랫동안 적대관계에 있었던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동맹을 맺게 된 위기의식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 자본주의는 깊은 사회-문화적 위기 앞에 직면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이 진단은 정치적, 문화적 세계뿐만 아니라 종교적 세계에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근대성 자체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나타난다. 이들에 의하면 근대사회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 모순에 있다. 근대자유의 두 가지 역동성 사이의 충돌, 즉 경제적 역동성과 문화적 역동성이 충돌할 상황에 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근대 경제학은 갈수록 많이 생산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의무를 추진한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조건의 추구가 근대경제학의 주요관심사였다. 이를 위해 적합한 계획, 효과적 관리와 높은 이윤을 끈덕지게 추구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잘 훈련된 대담한 기업적 인간이 요구되어졌다. 다른 한편으로, 자기실현의 표현을 향한 근대적 근대성, 자신의 본래성의 실현을 추구하는 문화적 근대성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주관성과 그 실현을 중심에 둔다 이 문화적 근대성의 극단은 나르시즘과 쾌락주의(hedonismo)의 탐구로 나타난다. 신보수주의 이론가들은 상반된 이 두개의 역동성이 현재 극적으로 충돌할 과정에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이들이 이과정을 심각하게 느끼는 이유는 문화논리가 경제논리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들을 방해한다는 데에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것은 자본주의를 위해 아주 위험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의 기술적 과학적 생산의 근본을 뿌리채 흔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난 200년 동안 자본주의체제를 뿌리내리게 해온 것에 대한 도덕적 가치와 태도들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NC가 염려하는 중심적 도덕은 청교도적 윤리이다. 근대성에 대한 NC진단의 핵심을 성격 지운다면, 그것은 청교도적인 도덕성의 상실, 가치의 상실에 있다. 보다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자본주의 근대성의 하나의 영적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들 NC이론가들은 민주적 자본주의의 현실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자본주의 근대성의 허약성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니엘 벨의 테제는 바로 이것을 포착하고 있다. 소비주의와 쾌락주의는 자본주의 근대성의 문화적 역동성의 표현이다. 여기서 지배적인 가치는 소유와 소비가 제공하는 기쁨이다. 이 기쁨을 통해 체제의 멤버들에게 (대중)체제를 정당화하여 체제는 이렇게 그들의 멤버를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근본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는 도덕적, 성스러운 것의 경험이 없다. 금지된 것과 허용된 것의 한계가 허공에서 사라져 버린다. NC의 우려는 문화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있다. 새로운 것을 맛보려고 하는 소비주의와 쾌락주의의 희구는 단지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만을 위해 움직이는 윤리이다. 이 윤리는 질서로 훈련되고 질서를 사랑하는 노동자의 인격을 양성하지 않는다. 정반대로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개념, 완전히 쾌락주의적인 개인, 체제가 요구하는 특성을 지니지 못한 개인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쾌락주의적 병폐를 중단시켜야 하며 생산성의 윤리, 질서, 규율의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NC의 사상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능의 기본에는 아담 스미스가 아미 본 것처럼, 그것 없이는 체제가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일련의 가치체계가 있다. 그것은 체제의 규범을 존중하는 것, 협약의 준수정신이다. 또 중요한 다른 가치는 다른 이를 위한 희생의 능력이다. 이 두 가치는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여기서 NC이론가들은 생산적이고 희생적 윤리의 나무는 종교적 기반이 없이는 고사한다는 것을 인식한다. NC의 진단에는 윤리를 회복하기 위한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일반화된 의견이 있다. (유대-기독교) 종교 없이는 노동, 포기, 질서등과 같은 정신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보증이 없다. 다시 말해, 체제의 봉사를 위한 종교적 부흥이 필요하게 된다. 체제의 도덕적 기능을 위한 봉사, 체제의 정신적 기능을 위한 봉사에 윤리와 종교가 요구되어 진다.여기서 체제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도덕적 덕목에 대한 교리적 강화가 일어난다. 미첼 노박의 민주적 자본주의의 경제신학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미첼 노박의 경제신학은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성서)를 이용한다. 기독교는 민주적 자본주의의 정신으로 받아들인다. 자본주의의 문화적 "영혼"으로서, 궁극적 인간화와 조화의 힘으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 이점이 또한 NC의 경제신학이 우리시대의 사회。 문화적 위험중의 하나가 되는 이유이며 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근거이다. 4. 한국사회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와 경제정의 앞에서 우리는 우리시대 지배적인 경제체제인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발생배경, 특징 그리고 경제정의론의 한계를 분석하여 보았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한국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고 이과정에서 제기되는 경제정의론의 의미와 한계를 김영삼 민간정부의 경제5개년계획과 [[경실련]]의 「경제정의론」을 중심으로 논의해 보려한다. 여기서 우리의 논의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측면을 다루지 않고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들의 경제정의론의 정책논의의 전체적 의미를 평가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4.1.1. 「신경제5개년계획」의 성격과 경제정의관 김영삼 민간정부가 지난 1년간 추진해온 경제정책의 방향은 경제활성화, 경제개혁 그리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추진하여 왔다. 이러한 기본 경제정책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1960년대부터 6공화국 말기인 1993년 2월까지 약 30년간 이어져온 경제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30년간의 경제정책이란 중앙 통제적(국가 계획적) 경제정책을 의미하며 중앙 통제적 경제정책은 i)중앙정부의 계획에 따라 세운 성장목표의 추구; ii)중앙정부의 금융, 세금감면 또는 보조금, 행정지원 등의 직。간접지원; iii)중앙정부의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의 직접적 통제, 규제를 특징으로 한다. 30년간 6차에 걸친 경제개발정책은 한마디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그 형식상 크게 차이가 없는 계획경제였다. 김영삼 민간정부는 취임이후 1960년대 이후 30년간 6차에 걸쳐 추진해왔던 '경제개발계획(제7차경제사회개발1992-1996)을 포함하여'이란 이름을 폐기하고 '신경제5개년계획(92-97)'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입안하였다. '신경제 100일계획'이라는 단기 전략아래 시행해온 경기활성화의 추구와 토지공개념과 금융실명제 실시로 표현되는 개혁적 경제정책, 그리고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조인에 따른 국제화, 개방화의 추진과 국가경쟁력 강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김영삼정부가 지난 1년간 시행해온 경제정책의 방향은 지난 30년간 군사정부가 추진해온 성장지상주의 경제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금인상의 억제를 노사합의의 형태로 강제하고, 금년을 노사분규가 없는 해로 만들겠다는 선언등은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를 직접 통제해온 과거 30년의 정책기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다시 말해 지난 1년간의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은 지난 30년간 군부통치 시대의 중앙 통제적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해 계승하고 유지하되, 낡은 중앙 통제적 정책에 새로운 이름만 붙인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평가는 '신경제5개년계획'에 관련하여 계속된다. 정부는 '신경제5개년계획지침'에서, 민간의 창의를 최대한 발현시킬 수 있도록 과거의 정부주도적이고 개입 위주의 경제운용에서 벗어나 시장의 자원배분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민간주도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이 '지침'에 의하면, '신경제'의 기본이념도 정부의 지시와 통제 대신 국민의 참여와 창의가 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는 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국제가 대폭 줄어들어 기업 활동이 자유로운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달 후 발표된 '신경제5개년계획'에 따르면, '신경제'란 "모든 국민이 함께 하는 경제"를 말하며, 여기서 말하는 모든 국민에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포함되었다. 즉 신경제란 "정부와 민간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경제"를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신경제'는 민간주도경제운영과 차이가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요약하면, 김영삼 민간정부의 '신경제'는 산업독점자본의 이익을 관철하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으로 규정할 수 있다. '신경제'는 자본분파간의 관계를 합리화하여 산업자본을 강화하고, 생산자계층에 대한 통제와 지배를 강화하여 사적 독점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국제적인 자본경쟁에 대처하는 것이 핵심이다. '신경제'는 '신자유주의'전략에 의한 슘페터적 근로국가로의 이행을 기본으로 하되 신국가주의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는 장상환의 평가는 적절하다고 보여진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상반된 평가에 직면하게 된다. 개혁지향적인 진보적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김영삼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철저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이와 달리 [경실련]의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김영삼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철저하게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진보적 경제학자들에 의하면, 김영삼 민간정부의 '신경제'는 전혀 새로움이 없는 과거의 성장정책의 재판이다. 차이는 지난 80년대 한국경제의 여건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채 신자유주의 논리-시장경제논리-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비결은 재벌지배의 강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이 점을 신경제의 대외무역정책, 산업발전, 금융정책, 재정정책, 토지, 주택부문정책, 농업정책, 노동정책, 사회복지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였다. 이 분석에 의하면, 재정정책안을 제외하고, 신경제의 대부분의 정책이 철저하게 시장논리를 따르고 있으며, 현재의 경쟁력 강화대책은 재벌위주로 짜여져 있다고 지적된다. 그러나 민간정부의 '신경제'가 신자유주의의 시장논리를 철저하게 반영되지 않는 부문도 인정한다. 그것은 재정정책부문에서 발견되는데, 이상영은 정부가 내세운 '작은 정부'라는 것이 재정정책에서 전혀 0반영되지 않고 있음을 분석하면서 이것은 구호와 정책이 따로 놀고 있는 예라고 지적한다. 경제정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노동 부문과 사회복지부문에 대한 [신경제]의 정책 방향은 부정적이다. 노동부문을 분석한 이병희는 신노동정책이 국가 경쟁력의 강화를 목표로 고통 분담과 의제적 합의만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별 자본의 노동 통제 강화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감소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사회복지부문을 다룬 강혜구는 기초복지에 대한 정수 지출이 다른 중간 수준의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낮은 현실에서 (도표 참조) 신경제정책은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신경제정책은 재정의 지원이 필요한 기초복지는 외면한 채 민간이 사회복지부문에 적극 개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 가령 실버타운 건설에 민간 자본의 주도를 장려 - 비판한다. 시장논리에 입각한 이러한 정책은 사회복지부문에서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라 전망하였다. 노동부문과 복지부문에 있어서 경실련의 경제학자들도 긍정적 결론을 얻지 못한다. 93년호에 7-8%의 경제성장률과 4-5%의 물가상승억제선을 제시한 김영삼정부의 경제학은 국민에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통분담 및 임금인상의 자제를 요구했으나, 결과는 저성장, 고물가상승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고통분담에 참여한 국민에게 더 큰 고통을 부담시겼다고 비판한다. 경실련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이근식도 신경제의 경제개혁은 재벌 위주로 경제가 운용되었음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분배정의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경제개혁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분배정의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불로소득의 배제를 강조한다. 요약하면 [신경제]는 재벌위주의 종전의 성장정책이 크게 변화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하여 부정적인 [경제적 민주화]의 전망을 제시한다. 심지어, 강철규는 '1백일 계획' 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발상자체가 시장경제질서로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그는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하는 개혁을 요구한다. 4.1.2. 경실련의 경제정의론의 성격 1989년 7월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건전한 변화를 추구한다는 취지 아래 창립된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제 거의 4년에 걸친 활동 끝에 명실공히 한국 사회의 중요한 시민운동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경실련의 시민운동으로서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긍정적인 평가가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가 보기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정의]의 문제를 짧은 시간에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였다는 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동시에 [경실련]의 한계에 대한 논의도 당연히 경실련이 제기한 [경제정의]의 향방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실련]이 그동안 제시한 경제정의의 향방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경실련]이 그동안 제시한 경제정의의 구체적인 정책 대안에 대한 미시적 분석보다 구체적인 정책대한에 내포된 전반적인 철학적 성격을 검토해보려 한다.0 필자가 보기에는, 경실련의 [경제정의론]의 철학적 기조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경제신학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비록 민주복지국가형에 대한 기대에서 보여지는 모순적 이념형성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토대로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제정의론]을 제시하고 있다. 아마도 경실련의 [경제정의론]의 새로운 점은 한국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모순을 노사간의 모순이라는 시각에서보다는 생산계층과 비생산계층의 모순이라는 각도에서 파악하였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토지투기로 인한 엄청난 불로소득과 이로 인한 빈부의 격차 심화 현상은 노사간의 모순이라는 접근방식으로 풀리지 않는, 그러나 한국 사회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경제 문제라고 인식한다. 따라서 경실련은 한국 사회 '경제민주화'의 핵심을 불로소득의 척결에 두고 토지 세제의 개혁과 금융자율화, 그리고 임대주택을 비롯한 복지정책의 확대를 목표로 설정하였다. 당연히 국가 또는 정부의 역할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제 질서를 확립하는 것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경실련]의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따르고 있음을 보나, 국가의 역할에 있어서는 약간의 수정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원칙적으로 경제분야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우는 개발 독재 과정에서 세제와 금융 혜택을 통한 정부와 재벌의 유착이라는 정경유착 - 금권정치의 왜곡된 형태로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져왔다고 진단한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국가의 역할은 공공복지에 국한되어야 하며 그 이외의 것들은 시장의 자율적 기능에 맡겨야 한다고 처방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역할을 넘어서는 경제분야의 정책은 반시장적, 중앙통제적이며 반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도모하는 것으로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정책들이라고 규정한다. [경실련] 경제학자들의 경제정의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시장경제 질서에 기반을 둔 인본적 시장경제이다. 이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민주적 자본주의론'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경실련] 경제정의론의 문제점을 지적해보도록 하자. [경실련]의 경제정의론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가정은 성장과 분배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노동자와 기업가의 관계는 결코 적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공존공생의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 계급의 일방적인 이익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기업가 모두의 공동 이익 - 사회의 일반 이익이나 공공 선 - 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이 '공동 이익' 또는 '사회의 일반 이익'과 '공공 선'의 내용을 누가 정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경실련의 한국 중산계층의 초계급적 입장을 취한다는 평가는 지나치게 이상화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경실련의 경제정의론에서 문제되는 두번째 전제는 경제와 정치의 지나친 구분이다. 경실련은 경제의 정치화를 두려워한다. 시장경제의 자율성에 대한 신화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는 시장 기능을 민주적으로 통제해나가야 하는 데서 당연히 직면하는 정치적 역학 관계의 중요성이 무시된다. 이것은 시민단체, 노조, 소비자운동 등이 직접 시장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한 정치적 인식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적 고찰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비판적 고찰 2003-12-25 10:29:08 read : 18 이 덕 휴 목 차 제1장 들어가는 글/ 2 제1절 작품에 대하여/ 2 제2절 저자의 생애와 사상/ 4 제2장 기독교의 본질/ 7 제1절 서문/ 7 1. 제1판의 서문/ 7 2. 제2판의 서문/ 8 제2절 서론/ 10 1. 인간의 본질/ 10 2. 종교의 본질/ 12 (1) 제1부 종교의 진실한 본질/ 14 1) 본질론/ 14 2) 신 또는 종교의 비밀/ 17 3) 소결/ 22 (2) 제2부 종교의 허위의 본질/ 24 1) 종교의 본질적 입장/ 24 2) 신의 본질/ 26 3) 사변적 신학비판/ 29 4) 모순의 변증법/ 30 5) 결론/ 32 제3장 나가는 글/ 34 제1절 비판/ 34 제2절 평가/ 38 제3절 비판에 대한 반성/ 41 * 참고문헌/ 45 ** 필자와 이 논문에 대하여/ 46 제1장 들어가는 글 제1절 작품에 대하여 본서『기독교의 본질』은 포이에르바하(L.A. Feuerbach, 1804-1872)가 1841년에 출간한 책으로서, 서론(1-2장)과 본문, 즉 제1부(3-19장) 및 제2부(20-28장)로 구성되었다. 서론부 제1장에서는 "인간 일반의 본질"을 서술하고. 제2장은 "종교 일반의 본질"을 도출해 내고 있다. 여기서 그가 종교와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소위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회를 시도하는 데, 그 결정적 테제는 다음과 같다. "종교는 무한성의 의식이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자기 의식, 다시 말해서 유한하고 제한된 존재로서가 아니라 무한한 존재로서의 자기 의식이며 그것 이외의 어떤 것일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이러한 인식론적 가치의 전도를 해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종교의 내용과 대상이 철저히 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으며, 신학의 비밀이 인간학이고 신적 본질의 비밀이 인간적인 본질임을 증명했다." 여기서 포이에르바하가 '증명'이라고 한 것은 학문에 있어서 한 가지 주장을 각양각색의 문제에 대하여 일관되게 해석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적용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일관성 때문에 그의 저서가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이 계속되는 것이다. 서론부의 제1장과 제2장은 사실상 제1부와 제2부의 총론부 라고 할 수 있다. 제1부와 제2부의 관계는 저자 자신이 붙인 제2판의 서문에서 엿볼 수 있다. "확실히 나의 저서는 부정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러나 주의하라! 나의 저서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은 단지 종교의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일 뿐, 종교의 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저서는 2부로 나누어진다. 그 중 제1부는 요점에 관해서는 긍정적이며, 부록을 포함한 제2부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그러나 양 부분에서는 동일한 것이 증명되고 있으며 단지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즉 제1부는 종교를 종교의 본질, 즉 종교의 진리로 인도하며, 제2부는 논박이다. 따라서 제1부는 신학이 인간학이라는 것의 직접의 증명이며 제2부는 간접의 증명이 된다. 그러므로 제2부는 필연적으로 제1부로 환원된다. 제2부는 전혀 독립된 의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제2부는 단지 제1부에서 말하는 의미와 반대되는 의미의 종교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제1부에서 말하는 의미의 종교가 정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제1부에서는 주로 종교를 취급하고 제2부에서는 신학을 취급한다." 포이에르바하는 이 책을 칸트(Immanuel Kant, 1729-1804)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구상했으며, 본서의 구성도 칸트의『순수이성비판』과 유사한 서문과 제1부, 제2부 등으로 집필하였다. 1841년 3월 30일 에어랑겐 대학의 사강사 포이에르바하가 바이에른 내무성으로부터 파직통고를 받았을 때, 그를 결정적으로 유명하게 만든『기독교의 본질』제1판이 인쇄되고 있었다.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제목은 발행인 비간트(Otto Wigant)가 붙인 것이며, 이는 종종 있는 일로서 상업성을 위하여 적당하고 인기 있는 제목을 제공하는 경우이다. 포이에르바하는 자신의 책을 모든 것을 압도하는 칸트의 저작『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2)의 모델을 따르면서 그 대칭물이 되도록 구상했다. 이에 따라 그는 본서의 제목을『순수비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Unvernunft)이라 명명하려고 하였다. 우리는 이 책을 포이에르바하가 당초 제시했던 제목으로 불러도 좋다. 왜냐하면, 이념 정책적일 뿐만 아니라 순수이성비판과의 형식적 유사성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이에르바하의 서론은 칸트의 서문처럼 본론을 두 개의 주요부분으로 구획짓고 있으며,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코페르니쿠스처럼 회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선험적 미학과 분석론(순수이성비판의 제1부문)은 본서의 제1부인 "종교의 진실한 본질, 즉 종교의 인간학적 본질"(인간의 본질과 모순되는 종교)에 대응한다. 여기서는 신적인 제 가치의 형성에 작용하는 한편, 인간지성의 유한한 능력도 동시에 서술하고 있다. 선험적 변증론과 방법론(순수이성비판의 제2부문)은 본서의 제2부인 "종교의 허위의 본질"(인간의 본질과 모순되는 종교)에 대응한다. 여기서 교리의 체계는 이미 발전시켰던 방법에 따라 파괴되고 종교적 투사(投射)가 갖는 병적인 지적 성격이 폭로된다.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 종교현상은 그 자체가 비판의 목적은 아니었다. 종교란 단지 그가 새로운 학문을 정초 시키는데 사용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였다. 제2절 저자의 생애와 사상 포이에르바하(Feuer: 불, Bach: 시냇물)라는 문자적 의미는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의 대립이다. 전통적으로 그의 가계는 알려진 바대로 유명한 신학자. 법률가. 예술사가. 수학자·화가 그리고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이자 그의 부친 안젤름 포이에르바하(Paul Johan Anselm Ritter von Feuerbach, 1775-1833)를 배출한 '불의 강'의 집안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확신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자와 철학자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당신들 사변적인 신학자와 철학자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만일 당신들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면, 다시 말하여 진리에 접근하려 한다면 종래의 사변철학과 철학과 편견에서 벗어나라. 그리고 당신들의 진리와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불의 강'을 통과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불의 강은 현대의 연옥(purgkatoium)이다. 철학자인 동시에 법률가인 아버지 안젤름 포이에르바하(Paul Johann Anselm Ritter von Feuerbach, 1775-1833)는 원래 타당한 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법은 인간에 의해 입법되는 것이며, 법과 도덕은 분리되는 것이라는 소위 법률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재판관이란, 엄격한 결과를 자의나 주관적 가치의식으로 완화시키거나 변경시킬 수 없으며, 오직 법 아래에서만 존재한다는 법치주의자였다. 1808년 작위를 받은 안젤름 포이에르바하는 형법의 형벌기능에 대한 위하설(威 說)을 주장하여 이른바, 심리강제설에 의한 일반예방이론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여 상대적 형벌이론을 주장하였으며, 오늘날 형법학의 최고의 이념인 "법률 없으면 형벌도 없다"(nulla poena sine lege)라는 명제 하에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수립하는데 공헌하였다. 당시까지의 형법학계는 소위 칸트와 헤겔(G.W.F. Hegel, 1770-1831)이 주장한 형법의 자기목적성에만 의지하는 절대적 형벌이론에 근거한 응보형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1798년에 트레스터(wi1helmine Tr ster)와 결혼하여 위로 세 아들을 낳고 이어서 1804년 7월 28일 란쯔후르트에서 네 번째로 태어난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는 카톨릭 의식에 따라 바이에른의 시 교구에서 Jodocus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아버지 안젤름과 어머니 트레스터는, 비록 아버지가 정부와 지냈을지라도 다섯 아들을 낳은 후에도 딸 을 셋이나 더 두었다. 포이에르바하는 스스로 쓴 익명의 사전에서 자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 1804년 7월 28일생. 형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저술가로서 가장 활동적임. 아버지의 학문을 계승할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분야에서 즉 훈장도 작위도 얻을 수 없는 분야에서 활동함. 그는 먼저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에어랑겐에서 몇 년간 강의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한 학문 외에는 단지 경건한 양(羊)의 사육만이 번창하고 있는 대학'이 자신에게 적합한 곳이 아님을 깨닫고 '독자적이고 조용한 생활에서만 성숙될 수 있는 사상을 잉태하고 있음을 느끼고' 안스바하 부근의 시골로 내려갔다. 그는 자신의 저술활동을 1830년 아직 체계를 갖추지도 않았고 저자의 이름도 없는 저술인 -그러나 위대한 천재성과 풍부한 표현으로 가득찬- 『죽음과 불멸성에 대한 고찰』(Gedanken ber Tod und unsterblichkeit, 1830)로 시작했다. 그는 용암의 흐름과 같은 이 저술에서 젊음의 불꽃을 태우고 자신의 후기의 철학적 발전을 선취하여 풍자시의 형태로 대담하게 표현하고는 이를 더욱 전진시켜 나가는 대신 자신의 주관성을 순수하게 객관적인 요소 안에서 극복하고 또 형성하기 위해 철학사로 후퇴한다. 이렇게 자신의 본질을 억제하고 포기했던 시절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는 편견이 생기게 되었다. 그 편견이란 그가 이미 타인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재생하고 발전시키는 사상가이기를 그치고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헤겔 학파에 귀속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의 비판의 시기는 『기독교의 본질』이후 종막을 내린다. 왜냐하면 이 저술에서 비판의 과제는 단순히 대상을 분석하여 모순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대상을 하나의 포괄적 원리로부터 발생적으로 산출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출의 근거는 '자연이라는 근거 위에서의 인간'이다. 이시기를 우리는 이전의 역사적 시기나 비판적 시기와 구별하여 실증적 또는 생산적 시기라고 명명할 수 있는 포이에르바하에 있어서의 세 번째 시기라고 한다. 포이에르바하의 의미 다시 말하여 그의 철학적 의미를 전개시킨다는 것은, 이는 이미 그가 애초부터 역사와 경험 일반을 그의 사상의 초석으로 삼았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제2장. 기독교의 본질 제1절 서문 1. 제1판의 서문 저자는 지금까지 여러 저작에서 종교와 기독교, 신학과 사변적인 종교철학에 관하여 자신의 사상을 잠언(箴言)이나 논쟁의 형식으로 다루었다. 이 책의 특징은 한정된 주제에 대한 원리를 포함한다. 그것은 적극종교(positiven Religion)의 철학 또는 계시의 철학을 위한 원리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신화학(神話學)이 가지는 유치할 만큼 공상적인 의미에서의 종교철학 또는 사변철학을 위한 원리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기독교 신화학은 이야기로서 전해지는 허황 된 이야기를 그럴싸한 사실로서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일찍이 스콜라 철학이 그랬던 것처럼,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신앙개조(Articulus fidei)를 논리학적, 형이상학적 진리로서 논증한다.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철학을 위해 종교를 희생하며, 기독교적 신화학은 종교를 위해 철학을 희생한다. 사변적인 종교철학은 종교를 제멋대로 사변적인 장난감으로 삼으며, 기독교적인 신화학은 이성을 공상적인 종교적 유물론의 장난감으로 삼는다. 확실히 철학과 종교가 일반적으로 양자의 種差를 제외하면 동일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사유하는 존재자와 신앙하는 존재자는 하나의 동일한 존재자이기 때문에 종교의 심상은 동시에 사상과 사실을 표현한다. 그러나 신앙과 이성사이의 본질적 구별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에서 종교의 형상은 사변적인 종교철학으로 고찰되지 않고 사실로서 고찰되지도 않으며 다만, 형상으로 고찰된다. 즉 신학은 기독교적 신화학에서 처럼 신비적 실용학으로서 취급되지 않고 사변적 종교철학에서처럼 본체론으로서 취급되지도 않으며 정신병리학으로으로 취급된다. 이 책의 목적은 정신적 수치료학(Pneumatishe Wasserheilkunde)을 촉진하고 자연적 이성이라는 冷水의 용법과 효용을 가르치며 고대 이오니아인의 단순한 수문학(hydrologie)을 사변적인 종교철학의 영역에서 부흥시키는 것이다. 탈레스(Thales, B.C. 640/24-546경)에 의하면, 물은 모든 사물 및 존재자의 근원이며 신들의 근원이기도 하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43)에 따르면. 만물이 탄생할 때에 특수한 존재자로서 물을 돕는 정신 또는 신은 명백히 훗날의 이교적인 유신론을 생각해낸 덤에 불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의 놀라운 치유능력이 있는 것이다. 수문학에서의 물은 단지 물질적인 생식수단이었지만, 포이에르바하의 물은 정신적 치료학으로서의 물이라는 것이다. 2. 제2판의 서문 나는 정신적인 자연과학자일뿐이다. 자연과학자는 물질적 수단이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나는 정신적인 자연과학자로서 이 책을 썼다. 이 새로운 철학은 지금까지의 철학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원리로서 초인간적, 초자연적, 곧 반인간적, 반 자연적인 종교나 사변에 의해 부패하고 불구가 된 모든 인간에게 반항하는 철학이다. 단지 사유되었을 뿐인 추상적 존재자를 자신의 원리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존재자, 가장 실재적인 참된 실재원리를 자신의 원리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철학은 실재원리를 자신의 원리로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철학은 사상을 그 반대물로부터, 곧 물질(Stoff)로부터, 실재(Wesen)로부터, 감각(Sinn)으로부터 산출하며, 자신의 대상을 사유에 의해 규정하기 전에 먼저 감각적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종교의 현존재를 폭로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다. 설사 종교 또는 오히려 신학이 그것을 거부하려고 할지라도 인간을 숭배한 것은 내가 아니라 종교이다. 나만 "신이 인간이며 인간이 신이다"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종교 그 자체도 그렇게 외친다. 인간이 아니라 단지 합리적인 존재일 뿐인 그러한 신을 거부하고 부인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종교 자체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우선 신을 인간으로 만들고 그리고 다음 지금 비로소 인간적으로 형성되고, 느끼고, 생각하는 신을 자신의 숭배와 존경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나는 신학의 모순에 가득 찬 거짓덩어리와 속임수 덩어리를 제거했을 뿐이다. 확실히 나의 저서는 부정적이며 파괴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의 비인간적인 본질에 대해서일 뿐, 종교의 인간학적인 본질에 대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저서는 2부로 나누어진다. 그중 제1부는 요점에 관해서는 긍정적이며, 부록을 포함한 제2부는 종교를 종교의 모순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양 부분에서 동일한 것이 증명되고 있으며 단지 방법이 다를 뿐이다. 제1부는 종교를 종교의 본질로 인도하고 제2부는 종교를 종교의 모순으로 인도한다. 제1부는 발전이고 제2부는 논박이다. 따라서 나는 제1부에서 신학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학이라는 것, 신학의 본질(신적 존재)의 술어와 인간의 본질(인간 존재)의 술어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다는 것, 따라서 신적인 주어(주체) 또는 본질(존재자)과 인간적인 주어(주체) 또는 본질(존재자) 사이에도 아무 구별이 없이 양자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종교는 인간정신의 꿈이다. 그러나 우리는 꿈속에서도 무 또는 천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현실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종교에 대해서 행하는 작업은 오직 종교에 눈을 뜨게 하는 것, 안쪽에 향하여 있는 종교의 눈을 바깥쪽으로 돌려주는 것, 바꿔 말하면 표상 또는 상상 속의 대상을 현실 속의 대상으로 전화시키는 것만이 내가 종교에 대해 행하는 작업의 전부이다. 제2절 서론 1. 인간의 본질 종교는 동물과 본질적인 차이점에 기초한다. 인간이 동물과 본질적으로 구별짓는 것은 의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의식은 자기의 유(Gattung), 자기의 본질성(wesenheit)이 사고의 대상이 되는 본질(존재자, 있는 것)에게 있을 뿐이다. 의식이 개체와 관계하며, 학문에서는 유와 관계한다. 그러한 오직 자신의 유, 자신의 본질성이 사고의 대상이 되는 본질만이 다른 사물 또는 다른 본질을 그들의 본질적인 본성에 따라 사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은 종교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종교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교한 무한자(Unendlich, infinite)의 의식이다. 따라서 종교란 인간이 자기의 본질, 즉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는 본질이 아니라 무한한 본질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식이다. 실제로 유한한 존재자는 무한한 존재자에 대해 극히 미미한 예감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물론이다. 무한자에 관한 의식에서는 주체가 그 자신의 본질의 무한성을 자신의 대상으로 가진다. 그러나 인간이 의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성, 의지, 그리고 심성이 그것이다. 완전한 인간에게는 사유하는 힘, 의지하는 힘, 심정의 힘이 필요하다. 사유의 힘은 인식의 빛이고 의지의 힘은 성격의 에너지이며 심정의 힘은 사랑이다. 이성과 사랑과 의지의 힘이란 완전성이고 최고의 힘이며 인간 그 자체의 절대적 본질이며 인간의 현존재의 목적이다. 인간은 인식하고 사랑하고 의욕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참된 존재자는 사유하고 사랑하고 의욕하는 존재자이다. 인간 안에 있고 개개의 인간 위에 있는 신적인 삼위일체란 이성과 사랑과 의지의 통일이다. 이성, 의지, 사랑 그리고 심정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며, 인간은 오직 그것들에 의해서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인간에게 혼을 불어넣어 주고 인간을 규정하며 인간을 지배하는 힘으로서, 그리고 신적이고 절대적인 힘이다. 인간은 그들 힘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 인간은 대상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대상에서 자기자신을 의식한다. 대상의 의식은 인간의 자기의식이다. 우리는 대상에 의해서 인간을 의식한다. 대상에서 인간의 본질이 나타난다. 이것은 정신을 물론이고 감성에서도 나타난다. 대상은 인간의 노출된 본질이며 인간의 진실하고 객관적인 자아이다. 의식이란 자기 확증이며 자기긍정이며 자기사랑이며 자기자신의 완전성에 대한 기쁨이다. 의식은 어떤 완전한 존재자를 특색 짓는 표징이다. 의식은 어떤 만족하고 완전한 존재자 속에만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한자를 사유한다면, 감정 능력의 무한성을 느끼고 또 확증하는 것이다. 또한 무한자를 느낀다면, 감정 능력의 무한성을 느끼고 또 확증하는 것이다. 이성의 대상이란 자기자신에게 대상적인 이성이며 감정의 대상이란 자기자신에게 대상적인 감정이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초월적인 사변이나 종교의 견지에서는 단지 희생적인 것, 주관적인 것 또는 인간적인 것, 신적인 것, 본질, 대상, 그 자체라는 것이다. 감정이 지각하는 신적 본질은 감정의 본질이 자기자신에게 황홀해지고 도취된 것, 즉 환희에 취해 자기 안에서 행복에 잠기는 감정이다. 이것은 감정이 무한자의 기관, 종교의 주관적 본질로 될 때에는 종교의 외적 표현들이 그 객관적인 가치를 잃는다는 것을 보아도 이미 명백해진다. 인간은 확실히 공상의 힘에 의해 자기보다 더 높은 다른 종류의 개인을 표상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자기의 유, 즉 자기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2. 종교의 본질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대상, 즉 감성적 인간을 포함하여 인간의 관계에 관해 주장한 것은 특히 종교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적용된다. 감성적 대상에 대한 의식은 자기의식과 구별된다. 그런데 종교적 대상의 경우에는 의식은 자기의식과 직접적으로 일치한다. 종교적 대상은 인간 안에 있으며 그것 자체로서 내면적인 대상이다. 때문에 종교적 대상은 인간의 자기의식, 인간의 양심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끊을 라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종교, 적어도 기독교는 인간이 자기자신에 대해 취하는 태도, 또는 인간이 자기의 본질에 대해 취하는 태도이다. 신적 본질이란 인간적인 본질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즉 인간의 본질이 개개의 인간의 제한으로부터 분리되어 대상화 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신적 본질이란 인간의 본질이 개인으로부터 구별되어 다른 독자적 본질로서 직관되고 숭배된 것이다. 그 때문에 신적 본질의 모든 규정은 인간 본질의 규정이다. 이것은 신의 술어, 즉 특성 또는 규정에 대한 관계에서는 실제로 주저 없이 인정되지만 주어, 즉 그들 술어의 기체(근본, 본질)에 대한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어를 부인하는 것은 무신앙, 무신론으로 간주되지만, 술어를 부인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신의 술어를 부인하는 방법도 있다. 사람들은 신적 본질의 술어가 유한한 인간적 규정임을 인정한다. 인간은 자기가 진실한 것으로서 표상하는 것을 곧바로 현실적인 것으로서 표상 한다. 인간에게는 현실적인 것만이 진실한 것이며 상상된 것과는 대립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개념, 즉 실존의 개념은 진리의 첫째가는 개념이며 근원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신이란 인간의 본질이 최고의 진리로서 직관된 것이다. 그러나 신 또는 종교란 인간이 자기의 본질을 파악하여 최고의 본질로서 직관할 때의 규정성이 각양각색인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다양하다. 인간이 신을 사유할 때의 이러한 규정성은 인간에게는 진리성이며 동시에 최고의 실존 또는 실존자체이다. 따라서 신이 규정된 본질임과 같은 이유로 신은 실존하는 현실적 본질이다. 왜냐하면 신의 질 또는 규정성은 인간 자신의 본질적인 질 바로 그 자체이지만, 특정한 인간은 자기의 본성, 자기의 실존, 자기의 현실성을 오직 자기의 규정성 안에서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의 술어와 인간의 술어의 동일성을 망각하고 그와 함께 신적 존재자와 인간적 존재자의 동일함을 망각하기 위해 신은 무한한 존재자로서 무한히 풍부하고 다양한 술어들이라는 표상에 구원을 청한다. 그 술어들 가운데서 우리가 현세에서 인식하는 것은 약간 닮았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적인 존재자와 약간 다른 것은 그것 이외의 술어, 즉 피안에서의 일이다. 무한히 풍부한 신의 술어들의 비밀은 다양하고 무한하게 규정될 수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감성적인 존재자로서의 인간적인 존재자가 가지는 비밀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대상화하며 그런 다음에 다시 자기를 이와 같이 대상화되고 주체는 인격으로 전화된 본질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것이 종교의 비밀이다. 여기서의 인간은 신의 대상이다. 따라서 믿음이 깊은 인간은 지가의 심성과 행위를 신의 대상으로 삼으며 인간을 신의 목적, 즉 정신에서 대상인 것은 행동에서는 목적이므로 신의 활동을 인간의 구원수단으로 삼은 것에 의해서 인간의 활동의 허무성을 다시 취소한다. 인간이 선해지고 행복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활동한다. 따라서 인간은 신 안에서 그리고 신을 통해서 오로지 자기자신을 목적으로 한다. 분명히 인간은 신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신은 인간의 영원한 도덕적 구원 이외의 어떤 것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 안에서 인간은 단지 인간자신의 활동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나는 종교의 발전과정을 일반적으로 서술했다. 그러므로 종교의 발전과정은 인간이 점점 신을 거부하고 자기자신을 승인하는 일이 많아지다는 것 속에서 성립한다. 애초에 인간은 만물을 구별 없이 자기 외부에 두었다. 이것은 계시신앙에 나타난다. 이스라엘인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아직 극히 자연적인 충동도 적극적인 신적 명령으로 생각하였다. 이 예로부터 인간은 자기를 거부하면 할수록 신은 그만큼 저급해지고 또 그만큼 더 보통의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인간의 충동이나 격정을 그것의 특성이나 내용에 따라 구별지었다. 기독교는 오직 선한 격정, 선한 기질, 선한 사상만을 신의 계시, 신의 작용, 즉 신의 심성, 신의 격정, 신의 사상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신이 계시하는 것은 신 자신의 규정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내면적인 도덕적 깨끗함을 외면적인 육체적인 깨끗함과 구별하지만, 이스라엘의 종교는 양자를 동일시했다.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와는 반대로 비판과 자유의 종교이다. 이스라엘은 외면적인 것조차 자기의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외면적인 것은 자율에 두었다. 즉 기독교는 이스라엘이 자기 외부에, 신 안에 두었던 것을 인간 안에 두었던 것이다. 이 적극주의의 가장 완결된 발로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인에게 기독교도는 교의를 믿지 않는 사람(Esprit fort, 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며 자유사상가이다. 사물은 이와 같이 변한다. 어제의 종교는 오늘은 이미 종교가 아니다. 그리고 오늘 무신론으로 인정되는 것이 내일은 종교로 인정된다. (1) 제1부 종교의 진실한 본질, 즉 종교의 인간적인 본질 1) 본질론 종교는 인간이 자기자신과 분열한 것이다. 즉 인간은 종교에서 신을 자기와 대립한 존재자로서 설정한다. 신의 본성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며 인간의 본성은 신이 아니다. 신은 무한자이고 인간은 유한자이다. 신은 영원하고 인간은 일시적이다. 신은 완전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 신과 인간은 양극이다. 신은 단적으로 긍정적인 것이자 모든 실체성의 총체이며, 인간은 단적으로 부정적인 것이자 모든 허무성의 총체이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 안에서 자기자신의 감추어진 본질을 대상화한다. 따라서 종교는 신과 인간의 대립·갈등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그 갈등은 인간과 인간 자신의 본질과의 갈등이다. 만일 종교의 대상인 신적 본질(존재자)이 실제로 인간의 본질 이외의 본질이었다면 분열이라든가 같등은 일어날 수 없었다. 분열은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하나이어야 하고 또 하나일 수 있는 본질사이에서만 생기는 것이다. 이 본질은 지성과 이성 또는 오성(Verstant, understanding)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인간의 대극(對極)으로서의 신은 인간적인 본질, 즉 인격적으로 인간적인 본질이 아니라면 오성의 본질이 대상화된 것이다. 신의 본질은 오성의 자기의식이며 오성이 자기자신의 완전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이다. 오성은 심장과는 달리 욕망이나 열정이나 욕구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바로 그 때문에 결함이나 약점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순수한 오성인은 일면적이지만 특징적 규정성에서 오성의 본질을 상징화하고 인격화하는 인간이다. 이러한 순수한 오성인은 감정인이 갖는 고뇌나 열정이나 탐닉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오성은 본원적·원초적인 존재자이다. 오성은 만물을 제1원인인 신으로부터 끌어낸다, 오성은 오직 자기 안에서만 세계의 근거와 목적을 발견한다. 당신이 신 안에서 긍정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오성이다. 신이란 당신의 최고 개념인 오성이며 당신의 최고의 사유능력이다. 오성은 따라서 가장 실재적인 존재, 즉 옛날의 존재론적 신학(Ontotheologie)에서 말하는 어떤 것보다 더 실재적인 존재자이다. 또한 오성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자이며 절대적 주체이다. 오성의 통일성은 신의 통일성이다. 그 자체 절대적 통일성으로서의 자기자신(오성자신)을 의식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오성은 무한한 존재자이다. 따라서 오성은 통일성과 조정되며 유한성은 다수성과 함께 조정된다. 마지막으로 오성 또는 이성은 필연적인 존재자이다. 그것은 오직 이성의 실존만이 이성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이성도 어떤 의식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무이며, 존재는 비존재와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으로서의 신, 즉 오성의 무한한 본질, 일반적인 본질, 의인화하지 않은 본질이 종교에 대해 가지는 의의는 특수과학의 출발점인 일반적인 근본명제가 특수과학에 대해 가지는 의의 이상의 것은 아니다. 종교의 대상적인 본질이 인간과 다른 본질이라는 것은 그 본질의 본질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종교 안에서 자기를 만족시키기를 바란다. 종교는 인간의 최고의 선이다. 그러나 오성의 본질을 표현할 뿐인 신이 어떻게 종교를 만족시킬 것인가? 신은 종교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종교는 신이 아니다. 오성은 단지 인간에 관해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본질인 자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기독교도는 오직 자기만을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면 오성은 보편적이고 범신론적인 본질이며 우주에 대한 사랑이다. 그런데 특히 기독교는 전적으로 인신론(anthropotheistisch)적인 본질, 즉 인간의 자기자신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 보다 정확히 말하면 주관적으로 인간적인 존재자의 배타적인 자기긍정이라는 것이다. 오성은 전적으로 율법의 엄격함에 따라 판단한다. 심정은 자신에 순응하며 공평, 관대하며 동정심이 많고 인간적이다. 율법은 인간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며 사랑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사랑은 율법과 심정,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을 매개한다. 사랑은 신 그 자체이며 사랑 이외에는 어떤 신도 없다. 사랑은 인간을 신으로 만들고 신은 인간을 만든다. 사랑은 신과 인간의 참된 통일이며 정신과 자연의 참된 통일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신의 눈 속에서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깨끗하게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피만이 신을 자비롭게 만들고 신의 분노를 가라앉힌다. 즉 우리의 가 용서받게 되는 것은 우리가 결코 추상적인 존재자가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존재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랑의 의식을 통해서 신 또는 자기와 화해한다. 신의 사랑의 의식, 즉 신을 그 자체 인간적인 본질로서 직관하는 것은 신의 성육신, 육화 또는 인간화의 비밀이다. 성육신이란, 신의 인간적인 성질이 감정적인 사실로서 드러나는 것이고, 인간화된 신이란 단지 신격화된 인간의 현상에 불과하다. 신이 인간에게로 내려온다는 것은 반드시 인간이 신에게로 올라간다는 것이 선행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의 가르침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즉 신성의 제1인격이 성육신 하는 것이 아니라 신 안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제2인격이 성육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2인격은 종교의 진실하고 전체적인 제1인격이다. 성육신이 신비적이고 불가해하고 사변적으로 보이는 것은 성육신의 출발점인 이 매개개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학이 사변철학과 어떻게 다른가는 다음에서 보면 알 수 있다. 즉 인간학은 신비적인 가상(假像)에 의해 속고있는 특수한 경탄할 만한 비밀로는 보지 않는 것이다. 인간학은 신의 인간화라는 교의들 사랑으로 환원한다. 신은 인간을 사랑한다. 더욱이 신은 자기 안에 아들을 가지고 있다. 신은 아버지이다. 인간성의 모든 관계는 신으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 인간적인 것은 신과 소원하지 않으며 미지의 것도 아니다. 성육신에서 종교는 자기자신에 대해 반성함에 있어서 신학으로서 말하고 싶지 않은 것, 즉 신은 철두철미하게 인간적인 존재자라는 것을 고백 할 뿐이다. 인간은 종교에서 자기를 신적인 활동의 대상이나 신적인 목적으로서 직관한다. 2) 신 또는 종교의 비밀 인간화된 신, 즉 그리스도의 본질규정의 하나는 열정(Passion,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사랑은 수난을 통해서 확실해 진다. 그리스도에 관련된 모든 사상과 감정은 수난이라는 개념에 집중한다. 사랑은 수난을 통해서 확실해 진다. 우선 그리스도에 관련되는 모든 사상과 감정은 수난이라는 개념에 집중된다. 신으로서의 신은 인간적인 완전성의 총체이며 그리스도로서의 신은 모든 인간적인 비참함의 총체이다. 고뇌(수난)는 기독교의 최고의 명령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그 자체가 수난사이다. 이교도에게는 감성적인 쾌락의 환상이 신들에 대한 예배 안에 혼합되어 있다면 기독교도 당연한 것이지만, 고대의 기독교도에게는 혼이나 심정의 눈물과 한숨이 신에 대한 봉사에 필요한 것이다. 신의 가장 내적인 혼, 즉 기독교에서는 신에 대한 내면적인 본질로부터 나오는 영적인 예배에서 나타나는 신이 참된 신이지 궤변적인 신학의 신이 인간의 참된 신은 아니다. 기독교는 수난의 종교이다. 우리가 오늘도 여전히 모든 교회 안에서 마주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의 초상은 우리에게 결코 구제자를 보여주지 않으며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힌 자, 수난자를 보여 줄 뿐이다. 신이 고뇌하는 것은 그러나 실은 신은 심정이다 라는 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심정은 모든 고뇌의 원천이며 총체이다. 고뇌를 가지지 않은 존재자는 심정을 가지지 않은 존재자이다. 그러므로 수난의 신의 비밀은 감정의 비밀이다. 종교는 인간의 본질이 자기자신 안에 반성되고 반영된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기자신이 마음에 들고 자기자신에게 기쁨을 느끼며 자기를 사랑한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은 인간의 거울이다. 인간에 대해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 인간에 의해 완전한 것이나 우수한 것으로 인정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인간에게 신이다. 감정이나 고뇌하는 능력을 가지지 않는 신은 느끼고 고뇌하는 존재자로서의 인간에 만족을 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단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뿐 오성과 의지를 가지지 않은 존재자 또한 인간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 오직 전인을 자기 안에 포괄하는 존재자만이 전인을 만족시킬 수 있다. 인간이 자기의 전체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이 삼위일체의 의식이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오성의 일반적 본질, 즉 신으로서의 신을 하나의 특수한 본질, 하나의 특수한 본질, 하나의 특수한 능력으로 끌어내린다. 우리는 단지 신학에 의해 삼위일체의 복제, 형상, 비유로서 특색 지어지고 있는 것을 사물 그 자체, 본질, 원형, 원물로서 이해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수수께끼를 푼 셈이다.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구상화하여 알기 쉽게 하고자 사용한 공식적인 형상을 주로 정신(Geist, mens), 오성(Verstant, intellectus), 기억(Ged chtnis, memoria), 의지(Wille, voluntas), 사랑(Liebe, amor 또는 caritas)이었다. 신은 사유하고 사랑한다. 사유된 것, 인식된 것, 사랑 받는 것은 신 자신이다. 자기의식의 대상화는 우리가 삼위일체 안에서 마주치는 최초의 것이다. 신의 자기의식이란 절대적 본질성 또는 본질성으로서의 의식에 관한 의식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신 그 자체, 단순한 존재자로서의 신은 단적으로 단독으로 존재하는 고독한 존재자, 즉 절대적 고독과 독립성이다. 사람은 혼자서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것은 오직 두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사랑할 때, 우리는 타자에게 의존한다. 사랑이란 자기와는 다른 존재자를 욕구하기 때문이다. 신적 존재자의 고독 속에 인격성에서는 신과 구별되지만, 본질에서는 신과 일치하는 존재자가 조정(措定)됨으로써 충족된다. 다시 말하여 아버지 신과 구별되는 아들 신이 조정됨으로써 만족된다. 아버지인 신은 나이며, 아들 신은 너이다. 나는 오성이고 너는 사랑이다. 그런데 오성을 동반하는 사랑 및 사랑을 동반하는 오성이 비로소 정신, 즉 성령이며 전인이다. 삼위일체에서의 제3인격은 두 개의 신적 인격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 이상의 것도 표현하고 있지 않다. 제3인격이란 아버지와 아들의 통일이며 연대성이 전혀 불합리하게 조정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분석의 특수한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 다만 성령이란 주관적 측면으로 보아서 종교적 심성의 자기 표현, 종교적 감정의 표현, 종교적 영감의 표현이며 종교 안에서의 종교의 인격화, 대상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가족, 아버지와 아들사이의 사랑의 유대를 보완하기 위해서 제3의 인격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여성적인 인격이 천국에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참으로 안성맞춤이다. 당초 마리아가 아버지와 아들사이에 놓였던 것은 아버지가 마리아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모성적인 원리가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충분했다. 마리아는 오히려 삼위일체라는 관계를 나타내는 범주에 적합하다. 아들, 즉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아들은 그 자체에서 아버지의 남성적인 본질과 어머니의 여성적인 본질사이에 있는 중간본질이다. 아들이 어머니에 대해서 가지는 사랑은 남성적인 본질이 여성적인 본질에 대해서 가지는 최초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신의 아들을 생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과 결부되어 왔다. 신의 어머니에 대한 신앙이 쇠퇴하는 곳에서는 신의 아들과 아버지인 신에 대한 신앙 또한 쇠퇴한다. 아버지가 진리인 것은 오직 어머니가 진리일 때뿐이다. 사랑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여성적이다. 신의 사랑에 대한 신앙은 신적 존재자로서의 여성적 존재자에 대한 신앙이다. 프로테스탄트교는 신의 어머니를 한쪽으로 밀쳐버렸다. 그러나 냉대 받은 여성은 그 대신 프로테스탄트교에 가혹하게 보복했다. 프로테스탄트교가 신의 어머니를 향해 삼위일체 전체에 향해졌다. 일단 신의 어머니를 오성을 위해 제물로 바치는 사람은 어느새 다시 신의 아들의 신비를 의인적(인격적) 표현으로서의 제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적 존재자가 배제된다면 확실히 의인적 표현이 은폐된다. 삼위일체의 신은 카톨릭교의 신이다. 삼위일체의 신은 내용이 풍부한 신이다. 이 때문에 신은 실제생활의 내용이 사상(捨象)되는 곳에서 요구된다. 생활이 공허할수록 신은 그만큼 더 풍부해지고 더 구체적이 된다. 신은 결핍의 감정으로부터 발생한다. 인간이 상실한 것이야말로 신이다. 따라서 공허함이나 고독함과 같은 허전한 감정은 서로 열렬하게 사랑하는 존재자의 사회나 교제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종교 속에서 차지하는 본질적인 의의는 항상 제2인격의 본질 안에 집중되어 있다.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 동질, 동일한 본질)와 호모이우시오스(homoiousios, , 유질, 비슷한 본질)에 관한 격렬한 싸움은 비록 글자 한자의 차이에 불과 하였지만 공허한 싸움은 아니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제2인격과 신의 동격성이었다. 교의학적 사변은 신의 형상인 신의 아들의 내적인 생성을 완전히 간과하면서 아들은 바로 신성의 형이상학적 관념으로부터 일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인격의 또 하나의 규정이며 형상의 본질과 관련된 것은 제2인격은 신의 말(Wort, Logos)이라는 규정이다. 말은 추상적인 형상, 상상 속의 사물이다. 또는 모든 사물이 항상 최후에는 사유력의 대상인 한, 말은 상상된 사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물의 말, 이름을 알면 사물 그 자체를 아는 것처럼 상상한다. 말은 구제하는 힘 행복하게 하는 힘, 해방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의 말이란 종교의 내부에서 인간에게 대상이 되는 신성이며 말의 참된 본질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말의 참된 본질을 인간의 말과는 구별된 특수한 본질로서 표상 한다. 자기를 계시하고 발현하고 표현하는 신인 제2인격은 신 안에 있는 세계창조의 원리이다. 세계가 신은 아니다(기독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싹은 이미 도래하고 있었다). 세계는 신과는 별개의 것이며 신의 대립물이다. 이 표현은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은 아들을 확실히 아들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세계는 적어도 신과 구별된다. 세계 창조의 과정은 심리학적(정신논리학적, psychologisch) 과정의 신비적인 표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의식과 자기의식의 통일화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신은 자기를 사유한다. 따라서 신은 자기를 사유함으로써 또한 자신과는 다른 것을 사유한다. 따라서 자기를 의식한다. 신이란 자기의식이 대상이나 본질(존재자)로서 조정(措定)된 것이다. 그러나 자기를 사유함으로써 또한 자신과는 다른 것을 사유한다. 나는 너의 의식의 매개에 의해 세계의 의식을 획득한다. 이리하여 인간은 인간의 신이다. 인간은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에 신세지고 있으며 타인이 없으면 물리적, 정신적인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추상적인 논리학적 범주에 의하면 신 안에 있는 세계창조의 원리는, 다른 것은 오직 차이성의 원리로부터 나올 수 있을 뿐이며 단순한 본질 자체로부터는 나올 수 없다. 기독교적 철학자나 신학자가 애써 무로부터의 창조를 변호하려 하지만 무로부터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근본명제를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적인 오성을 모든 사물을 자체 안에 총괄하는 정신적 물질로서 현실적인 물질의 근거로 삼았다. 사물(Ding)은 존재(existiren)하기 전에도 존재(sein)하고 있었다. 그 사물은 감관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정신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세계는 오직 세계 그 자체로부터 끌어낼 수 있을 뿐이다. 세계와 창조주로서의 신 사이의 구별은 단지 형식적인 구별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본질적인 구별은 아니다. 따라서 신의 본질이란 세계의 본질이 추상화되고 분리되어 사유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신의 본질이란 세계의 본질이 현실화되고 구체화되고 감성적으로 직관된 것이다. 신 안에 있는 자연의 교리는 자연주의를 통해서 유신론, 특히 최고의 존재자를 인격적 존재자로서 고찰하는 유신론을 확립하고자 한다. 인격적 유신론은 신을 모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된 인적적 존재자로 생각한다. 신이란 신의 존재이다. 신이란 신 자신의 본질이다. 이 점에서 유신론은 종교의 본질과 일치한다. 인격성은 신의 추상적인 신이다. 그러나 신이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신의 개념 안에 들어 있다. 인간은 신의 인격성 안에서 자기자신의 인격성의 초자연성, 불사성, 독립성, 비제한성을 찬미한다. 인격신이 하나의 진리성, 유일한 진리성인 곳에서는 자연은 아무런 실재적인 의의를 가지지 않으며, 실재적인 근거를 가지지 않는다. 여기서는 본래의 무로부터의 창조가 단 하나의 설명 근거이다. 왜냐하면 무로부터의 창조는 자연은 무라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표현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자연이 절대적 인격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의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오직 섭리나 기적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되고 설명되어질 뿐이다. 그러나 섭리는 인간에 관계한다. 섭리는 인간을 위해 사물을 마음대로 처리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능한 법칙의 효력을 폐기한다. 자연의 섭리에 경탄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종교적 자연주의일지라도 자연주의에 속한다. 종교적 섭리는 오직 기적 안에서만 계시된다. 섭리는 인간의 특권이다. 섭리는 다른 자연적인 존재자나 사물과는 다른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섭리는 인간을 세계의 연관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러므로 오직 특수한 섭리만이 종교적 의미에서의 섭리이다. 섭리에 대한 신앙은 자기자신의 가치에 대한 신앙이다. 섭리가 믿어지는 곳에서는 신에 대한 신앙은 섭리에 대한 신앙에 의존한다. 섭리가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신이 신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종교적 섭리에 대한 신앙은 무로부터의 창조에 대한 신앙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자기를 자연과 구분한다.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인간의 신이다. 범신론과 인격신론의 구별은 다음의 질문으로 해소된다. 즉 인간의 본질은 세계의 밖에 있는 본질인가 아니면 세계의 안에 있는 본질인가, 초자연적인 본질인가 아니면 자연적인 본질인가 하는 질문이다. 범신론은 인간을 자연과 동일시한다. 인격신론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독립시키며, 인간을 부분에서 전체로 바꾸어 독립된 절대적 존재자로 만든다. 이것이 범신론과 인격신론의 구별이다. 따라서 세계의 창조자란 다음과 같은 인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즉 세계는 창조된 것이며 의지의 산물, 다시 말하여 자기를 가지지 않는 실존, 위력이 없는 실존, 허무적인 실존이라는 증명 또는 의식에 의해서 자기자신의 중요성, 진리성, 무한성의 확실성을 자기에게 주는 인간이다. 따라서 세계는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무는 세계 자신의 무이다. 이상에서 말한 창조의 비밀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오직 다음의 것을 명심하라. 즉 창조에서는 결코 흙, 풀, 짐승, 물 -이것들에게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창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자나 영혼의 창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은 그 자체가 인격으로서의 인격성의 개념 또는 이념이며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자기 자신 안에 틀어박혀 있는 주관성이며 절대적 존재 및 본질로서 조정된 무욕구의 자기 충족태이며, 너를 가지지 않는 나이다. 3) 소결 그리스도는 주관성의 전능이며 자연의 온갖 속박과 법칙으로부터 구출된 심정이며 세계를 배제하고 오로지 자기 혼자에만 집중된 심정이며, 심정의 모든 소망의 심정이며, 공상의 승천이며, 심정의 부활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와 이교의 구별이 필요하다. 인간은 기독교에서 자기를 오직 자기자신에게로 집중시켰고 자기를 세계 전체의 연관으로부터 떼어놓았으며 자기를 자기자신에게 만족하는 전체로 만들고 세계의 밖에 있고 또 세계를 초월하는 절대적 본질로 만들었다. 인간은 더 이상 자기를 세계에 속하는 존재자로 간주하지 않고 세계와의 연관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이교도는 단지 인간을 우주와 연관시켜 고찰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교도는 인간을 오직 타인과 연관시켜, 공동체와 결합해서 고찰했다. 이교도는 적어도 철학자로서는 개체(인간 또는 개인)를 유와 엄밀히 구별했고 부분으로서의 개체를 인류라는 전체와 구별했으며 그리고 부분을 전체에 종속시켰다. 이에 대해 기독교는 유를 방치하고 개체만을 안중에, 심중에 새겨두었다. 기독교는 이교에 대한 직접의 대립물이다. 기독교는 이교의 대립물로서 이해될 때에만 진실로 이해되고 독단적인 사변적 억지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의 대립물이 허위인 한, 기독교는 진실하지만 기독교의 대립물이 진실인 한 기독교가 허위이다. 기독교는 개체를 위해 유를 희생시켰다. 이교는 개체를 유라는 전체와 구별해서 오로지 부분으로서 이해했으며 그에 반해 기독교는 개체를 유와 직접적이고 무차별한 통일성 안에서 이해하였다. 기독교에서 개체는 직접적인 섭리의 대상이다. 즉 신적 존재자의 직접적인 대상이었다. 이교도는 개인의 섭리를 유, 법칙 그리고 세계질서를 매개로 해서 믿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개별적 존재자를 일반적 존재자와 동일시했다. 신은 하나의 개체로서 유라는 개념이다. 신은 유라는 개념 또는 본질이다. 더구나 신으로서의 "유의 본질"은 유로서 일반적 본질로서, 모든 완전성의 총체로서, 실제의 제한이든 가공의 제한이든 개별적인 본질이다. "신의 본질과 실존은 동일하다"는 것은 신은 하나의 실존, 개별적 본질이며 동시에 유개념(Gattungsbegriff)또는 유의 본질(Gattungswesen)말고는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의 유와 개체성의 이러한 직접적인 통일성을 명확하게 상징하는 것은 기독교도의 실제의 신인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원상이며 인류의 실존하는 개념이며 신적인 완전성의 총체이며, 순수한 천상의 인간, 유적 인간이며 시조 아담(Adam Kadmon)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로서의 시조 아담은 하나의 인격으로서 직관된다. 그리스도, 즉 종교적인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간이 아니라 역사의 끝이다. 인간의 유로서의 개념 및 생활의 의미는 기독교가 지배함과 동시에 소멸해 버렸다. 거기서는 또한 인간은 신 안에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신은 그 자체 이 목표가 달성된 것이며 인류의 이 최고 목적이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신은 각 개인에게 따로따로 나타난다. 오직 신만이 기독교가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도는 반드시 타인이나 인류나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오늘날 기독교 특히 개신교들의 자기 편집에 가까울 정도의 편협한 신앙적 배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기독교도에게는 타인에 대한 내적 욕구가 결여되어 있다.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과제는 이것으로써 수행되었다. 우리는 신이 세계의 밖에 가지고 있는 자기의 본질, 신의 초자연적인 본질, 신의 초인간적인 본질을 인간적 본질의 성분으로 환원시켰다. 인간적 본질의 성분은 신의 본질의 근본성분이다. 우리는 결론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인간은 종교의 시작이자 중간이며 끝이다. (2) 제2부 종교의 허위의 본질, 즉 종교의 신학적 본질 1) 종교의 본질적 입장 종교의 본질적 입장은 실천적(praktisch)인 입장이다. 즉 여기서는 주관적인 입장이다. 종교의 목적은 인간의 복지, 구원, 행복이며, 신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구원에 대한 인간의 관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즉 신이란, 영원의 구원이 실현된 것 또는 인간의 구원과 행복을 실현하는 무제한적인 위력이다. 기독교만큼 강하게 인간의 구원을 강조한 종교도 없다. 기독교는 특히 이점에서 다른 종교와 구별된다. 이 때문에 기독교는 스스로를 신의 교리라고 부르지 않고 구원의 교리라고 부른다. 신은 본질적으로 종교의 대상이지 철학의 대상이 아니며, 심정의 대상이지 이성의 대상이 아니며 심정의 필요의 대상이지 정신의 자유의 대상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신은 이론적 입장의 본질이 아니라 실천척 입장의 본질을 표현하는 대상이며 존재자 이다. 신과 인간사이에 세계라는 표상, 즉 제2원인이라는 표상이 끼어 드는 곳에는 일반적으로 종교는 폐기된다. 종교는 신과 인간사이에 있는 사물의 현존재에 관한 예감을 단순히 감성적 자연적인 직관으로부터 받을 뿐이다. 그리고 종교는 일반적으로 혼자서는 제2원인의 존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제2원인의 존재는 종교에서 보면 오히려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게2원인은 인간을 신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의 본질로서 특색 지은 것을, 종교 자신이 확증하는 종교의 본질적인 작용은 기도이다. 기도는 전능하다. 경건한 사람이 기도할 때 간절히 바라는 것을 신은 충족시켜준다. 그는 자연의 위력을 다름 아닌 기도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한다. 기도할 때 경건한 사람은 자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나의 초자연적인 수단을 택한다. 신은 그에게서 동떨어진 제1원인이 아니라 모든 자연적인 결과의 가장 가까운 동력인 이다. 기도의 직접 작용은 기적이다. 그러므로 기적은 본질적으로 종교의 사고방식 안에 포함되어 있다. 종교는 모든 것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설명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종교의 본질과 무관하며 단지 경험적인 또는 감성적인 사고방식에서만 그러할 뿐이다. 그러나 종교가 시작되는 곳에서는 기적이 시작된다. 참된 기도는 하나 하나가 기적이며 기적을 일으키는 힘의 작용이다. 종교적인 기적은 자연적인 기적과 절대로 다르다. 다만 사람들은 이성을 귀머거리로 만들거나 자연과학이라는 가상아래 종교적인 기적을 합리성과 현실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기적과 자연적인 기적을 항상 혼동하는 것이다. 2) 신의 본질 종교란 인간이 자기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관계하는 것이다. 여기에 종교의 진실성과 도덕적 치유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종교 안에서 자기자신의 본질로 관계하는 것 아니라 자기와는 대립된 다른 존재자로서의 자기의 본질에 대해서 관계한다. 여기에 종교의 비진실성, 종교의 한계, 이성이나 도덕과 종교의 모순이 있으며 또한 여기에 종교적 광신의 유해한 원천이 있으며 나아가 피비린내 나는 인간 희생의 최상의 형이상학적 원리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종교사라는 비극 속에 존재하는 모든 잔학과 소름끼치는 장면의 시원적 근거가 있다. 다시 말하여 종교가 신학이 된다면, 인간과 신의 통일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종교의 근원에는 신과 인간사이의 질적인 구별 또는 본질적인 구별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대 유대교에서 여호와는 실존 측면에서 보아 인간적인 개체와 구별된 본질에 불과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여호와는 온전히 인간과 똑같았다. 후기 유대교에서 비로소 여호와는 인간으로부터 매우 날카롭게 분리되었으며 신인동감동정설(Anthropopathismus), 인간의 감정을 신에게 이입시키는 것에 본래의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비유 안으로 도피했다. 기독교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기독교의 가장 오래된 문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은 아직 나중처럼 그렇게 결정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특히 바울에게는 그리스도는 아직도 하늘과 땅 사이, 신과 인간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불명확한 존재였다. 바울에게 그리스도는 천사 중에 첫 번째 천사였으며, 최초로 창조되기는 했지만 창조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신은 천사나 인간의 아버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명백하게 신과 동일시하고 그리스도를 신의 외아들로 만들고, 그리스도가 인간이나 천사와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그리하여 그리스도에게 피조물이 아닌 영원한 존재자라는 독점권을 주었던 것이다. 종교에 대한 반성, 즉 신학은 신의 본질을 인간의 본질과 다른 본질로 만들고 그것을 인간의 외부로 끌어낸다. 이러한 방식 중에서 개념상 최초의 것은 정식의 증명 대상이 되는 신의 실존이다. 신의 현존재에 관한 증명은 내적인 것을 이적인 것으로 전화시켜 인간에게서 배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신은 실존을 통해서 사물 그 자체가 된다. 내가 신에 대해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은 나에 대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순의 필연적인 귀결의 하나가 무신론이다. 신의 실존은 경험적인 또는 감성적인 실존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주지하듯이 칸트는 신의 현존재에 관한 증명을 비판하면서 신의 현존재는 이성으로부터 증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칸트는 헤겔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오히려 칸트는 적절하다. 즉 개념에서 실존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성은 자신의 객체를 자신의 감관의 대상으로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경험론과 유물론이 성행한 근대에 이르러 비로소 신의 경험적 실존이라는 개념이 완전하게 발달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신의 실존에 대한 신앙은 인간의 실존, 자연의 실존과 구별된 하나의 특수한 실존에 대한 신앙이다. 신의 실존에는 계시의 개념이 연관되어 있다. 신의 실존의 자기증명, 신이 실존한다는 것의 진실한 증언은 계시이다. 신의 현존재에 관한 단순히 주관적 증명은 이성의 증명이며, 신의 현존재에 관한 객관적인 증명은 신의 계시이다. 신은 인간에게 이야기한다. 계시는 신의 말이다. 계시에 대한 신앙은 종교적 심성이 신앙하는 것, 소망하는 것, 표상 하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에 관해서 종교적 심성이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확실성이다. 또한 계시에 대한 신앙은 종교적 의식에 특징적인 환상을 가장 분명하게 폭로한다. 그런데 신은 초인간적 존재자이다. 신은 오직 신 자신에 의해서만 알려 진다. 따라서 우리는 신이 우리에게 계시한 것 이외에는 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 신이 계시하는 것은 신이 계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신이 인간을 위해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오는 것은, 단지 신 안에 있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으로 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의 계시와 이른바 인간적 이성 또는 인간성 사이에는 환상적인 구별 이외의 어떤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신의 계시의 내용 또한 인간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확증된다. 기독교적인 궤변의 최상의 원리, 중심점은 신의 개념이다. 신은 인간적 본질(존재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인간적인 다른 본질의 이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 인격적, 개체적 본질이어야 한다. 또는 신은 인격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본질로서 신이어야 한다. 즉 신은 결코 인격적인 본질이어서는 안 된다. 신은 존재한다. 즉 신의 존재는 특수한 존재로서는 지각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정의의 한쪽 절반은 다른 한쪽 절반과 언제나 모순된다. 존재(Ist)에서 주장되는 것은 당위(Soll)에서 항상 거부된다.근본개념은 단지 궤변에 의해서 숨겨져 있을 뿐인 모순이다. 우리
Karl Barth의 기독론은 위로부터의 기독론인가?/ 2002-11-12
Karl Barth의 기독론은 '위로부터의' 기독론인가? 이 제목에서 우리는 적어도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바르트의 기독론은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아닌 '아래로부터'나 '안으로부터' 등의 기독론일 수도 있다는 점이며, 둘째는 '위로부터'라고 하는 말이 현대 기독론에서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 하는 점이며, 셋째는 이 논제의 신학적 중요성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고로 우리는 이 세 가지 점을 중심으로 본 논제에 접근하고자 한다. 제 1장 논제에 대한 최근의 발달 1. 현대 기독론에 있어서의 이 논제에 대한 선구자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위로부터'나 '아래로부터'라는 개념은 간단히 정의하기엔 너무 복잡하다. 이 개념의 모호성과 복잡성은 '위로부터'와'아래로부터'라는 단순비교에서도 나타나지만 각 개념 안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개념적으로나 범주적으로,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를 신성과 인성으로, 혹은 사실과 의미해석으로, 혹은 방법론과 인식론으로 대비해서 묘사할 수 있다. 방법론적으로도 역시 두 형태의 기독론을 서술하는 것은 문제다. 왜냐하면 기독론의 의미를 추구하여 예수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재건하는 '위로부터'의 기독론도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으로 이해되는 예수의 사실 위에 놓여있으며, 오직 이 '아래로부터'가 '위로부터'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콘은 기독론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그리스도의 과거와 현재가 상호 배타적인 게 아니라 포괄적임을 강조하면서 과거를 '위로부터'로, 현재를 '아래로부터'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반면에 로사토는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로고스 기독론'으로,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성령 기독론'으로 말한다. 또한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높은' 기독론으로,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낮은' 기독론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위로부터/아래로부터'의 개념이 접근방법을 특징 지울 때 사용된 반면, '높은/낮은'개념은 기독론의 현실과의 상관성을 논할 때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한국바르트학회(2000.2.21)에서 발표된 것임 손영진 목사(부산평화원교회 목사, 부산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조직신학)
M. Luther의 인간론 2002-02-01 20:46:42 read : 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박 찬 희(Th.M 2차) 들어가는 말 루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떠나서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던 시기에 성서적 인간론을 직시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행동 즉, 인간과의 관계의 역사 안에서 재발견했다. 헬라적 사유에서 성서적 사유로 넘어가는 신학방법론은 인간에 대한 인식을 독립적 인간의 '육' 혹은 '영'으로서
M. Luther의 인간론 2002-02-01 20:46:42 read : 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박 찬 희(Th.M 2차) 들어가는 말 루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떠나서는 인간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던 시기에 성서적 인간론을 직시하고 인간을 하나님의 행동 즉, 인간과의 관계의 역사 안에서 재발견했다. 헬라적 사유에서 성서적 사유로 넘어가는 신학방법론은 인간에 대한 인식을 독립적 인간의 '육' 혹은 '영'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 관한 진술에 대 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철학적 인간론은 인간의 구성 즉 '육'과 '영'이라는 존재론적 진술이라면 신학적 인간론은 그 지평을 하나님으로 넓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아래서 보며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이다. 루터의 인간이해는 이런 면에서 언제나 하나님을 염두에 둔다. 파울 알트하우스는 그의 책에서 인간을 '죄 중에 있는 인간',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는 인간',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 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알트하우스의 설명은 인간을 독립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관계의 측면에서 보고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을 향한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의 그늘 놓여 있다. 동시에 죄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 사랑의 이면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사이에서 그리스도로 인해 성취되는 사탄으로부터의 인간 탈취라는 면에서 그러하다. 본고는 알트하우스의 책이 진술하고 있는 루터의 인간이해를 중심으로 몇가지 문헌들을 참고하여 보충하는 방법으로 전개될 것이다. 가능하면 책의 설명보다는 각주에 기록된 루터 자신의 글에 비중을 두고자 했으나 이 또한 번역된 것이어서 원문을 함께 부기했다. 1.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 루터의 인간이해는 하나님 이해에 있어서 그 분이 내리신 율법과 복음의 관계성 속에서 드러난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의 표현은 계명이다. 즉 하나님의 뜻은 계명으로 인간에게 다가오는데 이 계명은 구원에의 부름으로서 복음인 동시에 율법이다. 이 말은 복음이 동시에 또한 하나님의 계명의 형태로 인간에게 다가온다는 말이다. 인간은 계명, 특히 제1계명을 통하여 그 속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며 "그의 약속에서 그를 믿는 자, 오로지 그를 바라는 자는 이와 아울러 그의 신성과 그의 능하심 그리고 참됨과 선하심을 고백"한다. 그러나 악한 영은 온 힘을 기울여 인간이 그 높은 위엄자에게 간구하기에 합당한 자인지를 의심케 하며 방해한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 우리의 행위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수평적 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이런 수평적 관계에서의 이웃사랑 요구는 이미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드러났으며,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더 이상 요구하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직접 나에게서 나의 신앙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또 필요로 하시지 않는 바와 같이, 나 또한 하나님께 직면하여, 내가 신앙 가운데 나의 구원인 그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원받기에 필요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이 때에도 수평적 관계에서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웃사랑이다. "참으로 너는, 구원과 죄사함을 받고 양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 이외에 더 많은 것을 행할 필요가 없다. 너는 너의 신앙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내 이웃은 아직 충분하지 않은데, 너는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네가 너의 삶과 함께 너와 같은 죄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네 이웃을 섬기라고...너를 살게 하시는 것이다."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아래 있는 인간에 대한 이런 이해는 루터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이란 자기 자신 안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의 이웃 안에서, 신앙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통하여 이웃 안에서 사는 것이다. 신앙을 통하여 그는 자신을 넘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며, 하나님으로부터 그는 다시 사랑을 통하여 자신 밑으로 나아가서 언제나 하나님 안에 그리고 신적인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 루터에게 있어서 이런 이웃 사랑의 원형은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나와 만나는 것과 같이, 나의 이웃과 만나도록 요구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의 계명인 것이다. 2. 죄 중에 있는 인간 1)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가? 인간은 어떤 경우에서든 죄의 참된 본질과 그 깊이에 있어서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인간이 때로 "선천적으로 개별적인 죄들은 인식하나, '근본 죄, 큰 죄 그리고 참된 죽음의 죄', 원죄, 첫째 계명에 대한 죄는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은 또한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이러한 죄를 인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말씀의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율법을 통하여 인간은 그의 죄를 전적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2) 시민적 의 루터에게도 인간의 도덕적 제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한정적이다. 인간 사이의 의, 즉 '도덕적', '시민적', '외적', '정치적' 의가 그것이다. 이런 것들은 시민법 혹은 도덕법의 성취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열방의 역사 및 현실에서 나타난다. 이런 의는 "열방에서 질서와 평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시민적 의'를 원하시며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이 평화와 질서 가운데 머물고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도록 그 의를 필요로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의를 그 영역에서 인정하시는데, 참으로 그는 세상에서 최고가는 보화로써 그 의를 보상하고 꾸미시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적 의에는 은밀한 곳이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리(시 51,6)가 없으며 이 의가 가지는 한계는 "하나님은 인간과 훨씬 다르게 판단하신다"는데 있다. 정치적 재판관 앞에서 나를 변명하는 그런 의가 또한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의 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에 대한 찬탈행위로서의 죄 루터에게 있어서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설명된다. 물론 원죄의 개념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적 측면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모든 죄의 시작은 '자기 사랑'이다. 이것은 "마음의 토대에 들어있는 불신앙"이다. 자기 사랑은 자신의 것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그 분께 속한 것을, 사람에게서 그에게 속한 것을 탈취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있고 존재하고 좋아하는 것 중 무엇인가도 주지 않는다." 이것은 곧 불신앙이며 이런 불신앙은 자기 사랑, 자기 자신에의 만족, 자기 신뢰, 자신의 의에 대한 신뢰에 의존하게 하며, 끊임없이 첫째 계명을 범하고 그의 온 신뢰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루터는 죄 곧 악은 "인간이 악의 의향이나 성향이 있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전적으로 악하다는 말이며 또한 인간은 평생동안 악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고 꿈꾸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루터는 그 이유를 인간 본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하여 이해한다. 인간의 본성은 "모든 사물에서 자신만 보고 자신만 추구하고 경주하며 그 사이에 놓인 다른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결코 그것을 보지 아니한 것처럼, 넘어가서 완전히 자기 자신만 향한다."-"그것은 다른 모든 것의 자리에, 참으로 하나님 자신의 자리에 자기 자신을 두고 하나님께 속한 것은 추구하지 않고 자기의 것만 추구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중요한 우상이다." "인간의 본성은 너무나도 타락되어 있기 때문에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광을 그 자신에게 돌리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이 잘못되어 있음은 알면서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는다" 루터의 이러한 인간본성에 대한 간파는 인간이 "하나님이 그에게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유용할 경우에만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에 대한 지적을 이끌어 내는데, 이런 '자기사랑(amor sui)'은 인간이 "그의 행위에서 자기 자신을 즐기고 자신을 우상으로서 경배"하게 하며, 이런 교만(superbia)은 탐욕(concupiscentia)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찬탈행위로서의 죄는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기를 원하고 하나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의에 대해서 자신을 닫는다는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대신 자신을 신뢰하는 이런 신성모독의 절정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세주로 주셨던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곳 가장 꼭대기에서 일어난다." 4) 이웃에 대한 찬탈행위로서의 죄 루터는 제1계명으로부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추출한다. 그에 의하면 바리새인은 "형제에 대하여 자신을 의로운 자로 느끼고 즐기기 위하여 형제가 낙심하고 쓰러지는 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이 자기 의(義) 가운데서 그는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그는 사랑이 요구하고 있는 바 그들의 도덕적 곤경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이 어두운 배경을 기뻐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가 이웃에 대한 봉사를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지려 한다. 이런 superbia가 인간 내면으로부터 이웃에 대한 찬탈행위를 자아낸다. 물론 루터가 인간의 도덕적 의지의 능력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의지가 "마음의 토대'와 그의 비밀한 가정들과 생각 그리고 소원들까지는 이르진 못하여 마음으로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계명에 대하여 '의식적 의지'는 '예'(긍정)를 말하나 '마음의 토대'는 여전히 '아니오'(부정)를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 할지라도, 동시에 그는 아직도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육'이기 때문"이다. 3. 육적 인간과 영적 인간 "사람은 영적이며 육체적인, 이중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영혼이라고 표시하는 영적인 본성에 의하면 그는 영적, 내적, 혹은 새사람이라고 불리운다. 사람들이 육이라고 표시하는 육체적인 본성에 의하면 그는 현세적, 외적 혹은 옛사람이라고 불리우는데 … 이러한 인간 본성의 다양성 때문에 성서는 동일한 사람에 대하여 대립되는 점을 주장한다. 그것은 동일한 사람 안에서 이 두 사람이 서로 배치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superbia, 곧 인간을 진정한 인간 사랑이나 하나님 사랑으로 이끌지 못하는 자아(Ich-Wille)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약함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 있는데, 인격과 본성과 전 본질은 우리 안에서 아담의 타락을 통해서 부패"하였고 인간은 행위로 그 죄있음을 인식할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성은 그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에 이미 선행"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생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기 전에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 그것이 죄 전체이다." 이런 본성적인 죄는 인격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인격이 있는 한 그곳에 죄가 있다. 오직 하나님만 그 죄를 살피신다. 루터는 '육'을 이해함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육"은 "그리스도의 은총과 그리스도의 영 바깥에" 있는 모든 것, 신앙에서 나오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다. 루터의 전인적 이해에 의하면 인간은 육적이면서 또한 영적이다. "인간의 자기 만족성, 자부, 뻔뻔함, 그의 불신앙,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가지고 가려는 시도, 이 모든 것은 영적인 것이나, 바로 이 때문에 그리고 바로 이 속에서 인간은 "육"(종교적인간으로서의 육)이다. 모든 철학과 신학 모든 인간의 지혜가 신앙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육적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인간은 그가 하나님이 율법을 사랑하는 한에 있어서, '영', '영적'이다." 루터에게 자연적 인간은 전적으로 "육"이지만 "육"이 완전히 악한 일에만 치우치는 것도 아니다. 선과 악은 평생 모든 행위에 뒤섞여 있으며 인간은 "경미한 움직임"을 가지고 선을 원하기도 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을 이런 "모순 속에 있는 인간"으로 보았고, 그리스도 없는 인간은 그러한 "경미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탐욕으로 가득찬 전인(全人)이라고 하였다.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루터가 말하는 '육'에 대한 설명은 좀더 구체적이다. '영'과 '육'의 구분에 있어서 육적인 요소는 동물 일반의 소질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동물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고 동물과 다른 특이한 점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더 나아가 '육'을 바울이 이해한 성적 욕망이나 동물적 정욕, 감각적 기호 등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전체적으로 자기 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루터는 인간이 육체성 그 자체인 것처럼 인간은 육이라고 말한다. 그 까닭은 "인간이 육에 속하는 것을 너무나 많이 소망하며 사실상 그외 다른 아무 것도 소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육적인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도 없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루터에게는 "믿음을 통해 거듭나지 않은 인간은 육적인 인간"일 뿐이다. 루터는 이러한 육적인 인간이 갖는 한계를 탁상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너무나 부패되어 있기 때문에 영적인 것과 영생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욕망도 가지지 않는다" 반면에, 영적인 인간은 말씀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죄악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다. 인간은 이것을 통해 영적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인간의 노력이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역사함으로 인간은 사망과 마귀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언인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세우신 법에 따라서 아직까지도 불결한 짐승을 정결하다고 선포하신 것처럼 지금도 이방인들과 우리 모두가 그 동물들이 불결한 것처럼 죄인이지만 의롭다고 선포"하신다. 1) 종속의지 신앙으로 말미암은 중생이 없는 인간의 의지는 종속된 의지(Servum arbitrium)이다. 인간은 그가 존재하고 행하는 바 그 모든 것과 더불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필연적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책임성과 죄책을 덜해주지는 않는다. 인간은 그의 깊숙한 의지에 반하여 죄를 짓도록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에 있어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한다. "아담은 자발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죄를 지었고 그로부터 죄를 짓는 의지가 우리와 함께 생겨난 것인데, 그와 같이 우리는 의지에 반하여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더불어 죄를 짓는다. 확실히 이것이 우리의 악이다." 죄와 죄책에 있어서 "인간은 그의 죄 가운데 죄책이 있고 또 그것으로 머문다. 그것은 율법이 그에게 수여되었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이 율법에서 그에게 자기의 선한 뜻을 알리신다. 죄인은 끊임없이 율법에 반하여 행동하므로 그의 행위는 악하며 죄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은총과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힐 때 "하나님에 의하여 방향을 돌릴 수 있으며 계속해서 이것을 할 능력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영원한 생명으로 창조하고 규정하셨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존속하기 때문이다. 2) 원죄(Peccatum originale) "이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의 원죄인데, 그것은 우리에게 천적인 것이며 개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천성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죄있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아담은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악에의 경향없이 오로지 선에의 경향만 있었다. 루터의 "인간에 관한 논제"(Disputatio de homine) 21은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육체의 생령으로 구성되었으며, 태초에 죄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자손을 번식하고 모든 것들을 다스리며 영생을 받도록 규정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담은 타락했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인간은 사탄과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죄를 만들지 않으셨는데 아담은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루터의 대답은 명쾌하다. "하나님은 그 창시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명령하시지 않고 도리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금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마와 우리의 의지가 죄의 원인이다." 그렇지만 비록 아담의 타락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허용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보존하실 수 있지만 허용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루터는 이것에 대하여 물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드려야 하는 하나님의 "위엄의 비밀들"에 속하는 영역이다. 단지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나의 아들을 준다고 하는 인생에 대한 나의 인자함이 알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라고 대답하실 것이다. "아담 안에서 인류의 타락이 없다면, 죄와 죄책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전체적인 것을 체험하지도 또 알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인간에 관한 논제"23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만일 그를 믿으면)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영생을 선물받게 된다." 4. 죄인인 동시에 의인인 인간 루터의 인간 이해의 또 다른 일면은 인간을 변증법적 이해를 통해 보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주석」(1519)에서 '두 전인과 한 전인이 있다"(Sunt duo toti homo et unus totus homo)고 말한다. 두 종류의 전인, 즉 영적인 전인과 육적인 전인이 있지만 이것은 각기 한 사람의 전인을 의미한다. 현실인을 의인인 동시에 죄인으로 설명하는 신학형식에서 보는 것처럼 여기에서도 루터는 관계적 현실이해 안에 있는 인간을 염두에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영과 육의 성경의 구분은 각자가 결코 인간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닌, 하나님의 판단의 시각에서 본, 전인의 삶의 형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철학적 인간론에 대한 루터의 결정적 거절이다. 1532년 시51편 2절에 대한 강의에서 루터는 "하나님과 인간을 인식하는 것은 신적인 지혜이며 본래적인 의미에서 볼 때 신학적이고, 게다가 그것은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학의 대상은 곧 죄인이며 잃어버린 인간인 동시에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였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기 인식이 있을 때에만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다. 이런 동시적(同時的) 이해는 언제나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전제로한 관계적 인식을 의미하며 인간이 하나님 앞에(coram Deo) 설 때에만 '영'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안에서 볼 때 죄인 안에 있는 이성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자기에게로 구부러진 인간'(incurvatus in se)이다. 이런 인간이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뿐이다. 하나님의 의롭게 하시는 은총에 의하여 즉, 신적인 전가(傳價)에 의하여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철저히 '자기 밖에서' 의롭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고, 완전히 치유할 때까지 실제로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확실한 언약과 전가에 근거하여 의로운 것"(peccator re vera, Sed Iustus ex reputatione et promissione Dei certa)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죄인인 동시에 의인'(simul peccator et iustus)이다. 5.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는 인간 루터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는 가운데 귀속되어 있는 권세를 나타내고자 할 때 '육'과 '세상'과 '악마'에 대해 거론한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반대하는 의지를 내포한 것들로서 인류 전체를 내포하는 어떤 인격적 의지의 영향인 동시에 그 영역이다. 여기서 루터가 논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큰 상대자로서의 악마이다. "악마는 하나님의 본원적이며 가장 강대한 적대자로서 범사에 하나님께 대항한다. 그는 하나님께 대항하여 죄와 불복종의 나라를 창건하였다. 그는 첫 인간들을 죄로 유혹하였고 아직도 계속하여 유혹하는 자요 충동하는 자이다. 그는 역사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진리와 복음에 대항하여 역사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그의 공동체에서 그를 핍박한다." 악마의 일은 성서의 그릇된 해석과 가르침, 철학 뒤에 서있으며 신앙으로 말미암은 칭의를 변조한다. 인간을 강퍅하게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에 놀라지 않도록, 자신의 가련함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며 그리스도의 자비에 대한 희망없는 절망을 가져오게 한다. 이러한 악마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와 대립하며 인간 곁에서 위협하고 유혹한다. 이런 악마와 하나님의 싸움은 인간, 인류에 대한 지배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없는 곳에는 악마의 나라가 있다. 그 사이에는 어떠한 중간적 나라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과 악마 사이에 있다. "인간은 그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사건 가운데, 그의 구원이나 멸망의 사건에 있어서 어떠한 자유도 없는데,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세력이나 사탄의 세력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악마의 권세에서 인간을 탈취하신다. 인간은 세례 안에서 이 자유를 얻으며 이 자유는 악마와의 필생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을 때 유지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함으로써 악마를 "죽이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여전히 세상과 역사에서 머물러 있기에 그리스도의 세계는, 다시 오실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악마를 궁극적으로 쳐부술 최후의 심판을 기다린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루터의 악마에 대한 인식은 "악마 또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으로 정향된 그의 의지와 역사에도 불구하고-필경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봉사한다.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봉사하게끔 하시고 자신의 행위를 위하여 그를 사용하신다. 그는 그를 무엇보다도 그의 진노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은 그의 진노에 있어서나 그의 은총에 있어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활동하신다. 하나님은 "불행과 몸과 영혼의 고난과 죽음을 사용하시는데, 그것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을 겸손케 하고 그들을 모든 이 세상적인 것에 대한 신뢰로부터 오로지 그 분에 대한 신뢰로 이끌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을 치신다 할지라도, 언제나 자비로우신 그 동일하신 하나님과 언제나 관계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과만 관계한다. 사탄이나 율법은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과 사탄은 때로 동일한 일을 인간에게 행하지만 그 의도는 서로 다르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으로 몰아 가지만 사탄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탈취하려 한다. 악마는 인간들의 죄사함에 대하여 절망하도록 이끌지만 그리스도는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피난처를 취하도록 하신다. 만일 그리스도 자신이 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도로 찾으시고 그 자신에게 불러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양심의 휴식과 평화를 가질 수 없으며 악마, 죽음 및 지옥을 피할 수도 없으며 우리 자신을 돕거나 권면할 수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오고 믿음 가운데 있을 때도 만일 그리스도 자신이 이 동일한 말씀과 그의 능력으로 부단히 우리를 높여 주시고 받쳐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음 가운데 보존하거나 지속할 수 없다. 하나님은 그의 "낯선 행위"(opus alienum)를 위하여 사탄을 사용하시지만 이 경우에 있어서 그는 언제나 그의 "자신의 행위"(opus propurium)를 의도한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opus alienum은 도구와 통로에 불과하지만, 사탄에게 있어서 그것은 목표, 곧 삶의 파괴의 자기목적이다 ; 하나님은 사탄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사탄에 대항하여 그에게서 구원해 주신다. 6.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인간 하나님의 의는 죄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진노가 된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는 거룩한 질투심을 가지고 그의 유일한 신성의 영광을 살피신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이외에 다른 사람을 주님으로 받들고 자기 대신에 그리고 자기보다 더 많이 다른 무엇을 사랑하는 것-그러나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을 감내할 수도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다. 이 열성은 죄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진노가 된다. 그에게는 벌할 뜻과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이 감내할 수 없는 현실이며,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시고 전능하시며 헤아릴 수 없고 무한하신 것처럼 그의 진노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그의 진노 가운데 참으로 '소멸하는 불'로서, 철두철미하게 멸망시키신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은 사랑이시며 진노는 본질상 그에게 낯선 행위(opus alienum)이다. 죄에 매여 있어 믿을 수 없는 죄진 인간은 그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 하나님의 진노를 체험한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망상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의 예증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믿지 않는 사람 위에 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벗어난 인간은 진노 아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서,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는 더 이상 진노가 없으며 낯선 행위는 사랑의 자기 행위로서 인식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진노를 화해시키셨기 때문이다. 여기에 opus alienum(낯선행위)과 opus proprium(자신의 행위)의 변증법, 율법과 복음의 변증법적 관계가 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분명한 진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그의 사랑에 대한 신뢰로 나아가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에게서 '엄격함의 진노'(ira severitatis)는 '선하심의 진노와 아버지의 채찍'(ira benignitatia et flagellum patris)으로 바뀐다. 진노는 그의 '자신의 행위', 곧 사랑을 의도로 한, 하나님의 '낯선 행위'로 이해된다. 진노는 사랑의 수단이며 아버지의 징계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의 사랑에 봉사하고 있음은 복음의 신앙 안에서 인식된다. 진노는 인간을 놓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의 표식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를 체험하는 곳은 율법이며 그와 더불어 양심이다. 율법은 본래 하나님의 진노의 수단이 아니었다. 원 상태에서 인간은 그것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를 억눌렀던 것이 아니라, 그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 그것은 전적으로 다르게 되어버렸다. 인간은 율법을 더 이상 성취할 수 없다. 이로 말미암아 이전에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수단이었던 것이 이제부터는 그의 진노의 도구가 된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이 죄를 짓는 다는 것은 두가지 의미에서이다. 하나는 인간이 율법을 결코 성취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기 만족과 율법성취에 대한 자기 자랑 곧 자기의 의를 세운다는 데서 죄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율법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를 알게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보다 큰 죄는 없다. 율법아래 있는 인간은 율법에 대한 방자함과 자기 만족에 빠지거나 성취 불가능성을 통찰함으로 더욱 큰 죄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지옥이다. 지옥은 악한 양심의 형태로 인간을 내적으로 치는 하나님의 진노를 통하여 지옥이 된다. 이 지옥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체험하는 것처럼 현재적이며 실재적이다. "모든 사람은 그가 죽음의 단말마와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는 한, 자기가 존재하는 자기의 지옥을 자기와 더불어 갖고 있다." 이런 진노의 치명적 결과 아래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함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넘어설 수 있다. 죄인인 인간은 이것을 할 수 없다. 인간 그 자신은 진노아래 머물 뿐이다. 단지 하나님 자신만이, 만일 그가 복음과 더불어 인간과 만나시고 그의 영을 통하여 그의 마음을 신앙에로 여신다면, 이 감옥을 여실 수 있다. 나가는 말 루터로부터 비롯된 종교개혁은 인간의 본질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재발견을 가능하게 하였다.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인간의 존엄과 하나님 앞에선 독립적 인격으로서, 제 1계명이 지시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양면의 책임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루터가 강조한 '만인제사장직'(die Allgemeine Priesterheit)은 안수받은 사제에 대한 불필요성을 지시하거나 인간의 가능성(능력) 혹은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을 향한 사랑과 봉사의 의무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루터는 결코 인간 각자가 성서를 주관적이고 독선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진리에 근거하여 겸손한 태도로 개인의 실존과 직접 관계된 뜻을 그 말씀 속에서 발견하려는데 본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실존을 올곧게 보는 영적인간은 겸손할 수밖에 없다. 영적인간은 자신 스스로 제 운명의 지배자가 된다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아니라 '자기를 향해 구부러진'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은총 앞에서 그 사랑의 실체인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뒤쫓는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지만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인내로 죄인조차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총 아래 있는 것이다.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거스려질 수 없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간을 죄인인 채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인간은 하나님으로 인해 존엄성을 갖는 존재이다. 그의 자기를 십자가에 내맡기는 철저한 자기 부인은 하나님을 하나님되게 하는 열쇠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의롭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자에 의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을 통하여서 의로우시며 그의 말씀과 우리 안에서 의로우시다. -------------------------------------------------------------------------------- 각주 1) 파울 알트하우스, 「마르틴 루터의 신학」 구영철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4. 2) Ibid., 187. 3) Ibid., 188-189. 4) Ibid., 192. 5) 10 Ⅲ, 168, 19 : Ibid., 192-193. 6) 7,38,6: Ibid., 193-194. 7) Ibid., 203. 8) Ibid., 204. 9) Ibid., 206. 10) 39 Ⅰ,459,17 : Ibid. 207. 11) 39 Ⅰ,230,7 : Ibid. 12) 7,212,4 : Ibid., 208. 13) 56,178,24 :179,13 quod facit ipsa complacentia(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이 이것을 행한다) Ibid. 14) Luther, "On the Bondage of the Will", Luther and Erasmus:Free will and Salvation,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edit, trans. Rupp, E Gordon &. Watson, Philip S(Philadelphia:Westminster Press, 1969), 266. 15) 56,356,4,27 : 357,2 : 파울 알트하우스, op. cit., 210. 16) M. 루터, 탁상담화, 140. : M. 루터, 「탁상담화」 지원용 편역, (서울:대한기독교서회,1963), 64. 17) 7,800,24 : 파울 알트하우스, op. cit., 211. 18) Ibid. 19) Ibid., 214. 20) 39Ⅰ,233,2 : Ibid. 21) Ibid., 215. 22) 루터는 이웃사랑에 대하여 자신의 논문 "크리스챤의 자유"에서 그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 논문은 1997년에 컨콜디아사에서 지원용 편역으로 출간한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에 번역, 전재되어 있다. 23) 파울 알트하우스, 217. 24) Ibid., 218. 25) M. 루터, "크리스챤의 자유"「마틴루터의 종교개혁 3대논문」지원용 역,(서울:컨콜디아사, 1997), 295-296. 26) 10Ⅰ,1,508,6.-8,104,26 : 파울 알트하우스, op. cit., 219. 27) 40, Ⅱ322,20 : ...peccatum esse hoc totum, quod est natum ex patre et matre, antequam homo possit per aetatem aliquid dicere, facere aut cogitare. Ibid. 28) Ibid., 220. 29) 2,509,34 : Ibid., 221. 30) Ibid., 222-223. 6,275,22 : Sed inspice totum hominem plenum concupiscientiis(non obstante istomotu parvissimo) 31) Luther, Lecture's on Galatians(1531), trans and ed., Jaroslav Pelikan, Luther's works, Vol.26(St. Louis: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8), 216. 32) Luther, "On the Bondage of the Will", op. cit., 31. 33) Ibid. 34) M. 루터, 탁상담화 63. : M. 루터, 「탁상담화」 지원용 편역, 37. 35) Luther, "The Disputation Concerning Justification", Luther's Works, Vol.34(St. Louis: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8). 68. 36) ① 루터의 종속의지 혹은 노예의지론은 많은 점에서 해석이 난해하다. 이 책은 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이 책은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리고 루터가 신적인 필연성을 강제력(coactio)과 우리의 선택의 자유(liberum arbitrium)에 어떻게 연결시키고, 감추어진 하나님(Deus absconditus)과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을 어떻게 관련시키는가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 루터교의 고백서들은 노예의지론에서 루터가 주장한 극단적인 주장들을 채택하지 않았다. 후기 작품들에서 루터 자신도 예정론의 문제를 보통 기독론의 관점에서 논의하였다. 베른하르트 로제, 「루터 연구입문」 이형기 역(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3), 186-187. ② 루터의 <노예의지론>은 지원용 편집 「루터선집」 제6권 -교회의 개혁자Ⅱ(서울:컨콜디아사, 1982), 21-321에 번역 전재되어 있다. ③ 루터의 '감추어진 하나님'에 대한 연구는 전경연, "노예 의지론과 루터의 하나님 이해", 「루터연구」 제3호(서울:컨콜디아사, 1966),1-11을 참고할 것 37) 39 Ⅰ,378,27 : 파울 알트하우스, op. cit., 224. 38) 16,143,5 :Ille autem, qui facit (malum), malus est, quia legem habet(그러나 악을 행하는 사람은 악하다. 그것은 그에게 율법이 있기 때문이다) Ibid. 39) 8,636,16 : Ibid., 225. 40) 39Ⅰ,84,16 Hoc est peccatum originale post lapsum Adae, nobis ingenitum et non tntum personale, sed et naturale Ibid., 226. 41) 40Ⅱ,323,10 Creavit deus hominem rectum(하나님은 인간을 의인으로 창조하셨다) Ibid. 42) 인용한 루터의 "인간에 대한 논제"는 정흥열, "루터의 인간론에서 전인개념 : 루터의 "인간에 관한 논제"(1536)를 중심으로"「기독교사상」통권 478호,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98. 10.에 번역 첨부된 자료이다. 루터의 이 논제는 지원용이 편집, 1982년에 컨콜디아사에서 발행한 「루터선집」제6권 -교회의 개혁자Ⅱ의 359-366쪽에도 "인간에 관한 토론문"이란 제목으로 논쟁이 첨가되어 번역 소개되어 있다. 43) 루터, "인간에 관한 논제" 22 ;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은 사탄의 권세 아래로, 즉 죄와 죽음이라는,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영원한 두 개의 악의 권세로 떨어지게 되었다." 44) 39Ⅰ,379,4 : Deus non est autor, quia ipse non jussit, sed prohibuit magis, ne peccemus. Sed diabolus et voluntas nostra sunt causa peccati. 파울 알트하우스, op. cit., 226. 45) 18,712,29 : Ibid. 46) 18,712,25,29 : Ibid., 228. 47) Ti 5071. : Ibid., 229. 48) 정흥열, op. cit., 54. 49) B.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h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Goetingen, 1995.(이하 Lohse, Luthers Theologie로 표기함) 미간행 정병식 역 중 "하나님과 인간의 인식" 중에서 50) B. Lohse, Luthers theologie, 미간행 정병식 역 중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 중에서 51) 파울 알트하우스, op. cit., 231. 52) Ibid., 232-233. 53) 18,743,32 :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와 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것이 사탄의 나라와 영 아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그것은 상호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싸운다-사이에는 중간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Ibid., 234. 54) Ibid. 55) Ibid., 235. 56) 40Ⅲ,519,13 : Ibid., 236. 57) 40Ⅲ,517,4 : Ibid., 238. 58) 40Ⅱ,417,5 : Ibid. 59) 40Ⅱ,417,30 : Ibid. 60) Ibid., 239-240. 61) M. 루터, 탁상담화, 110. M. 루터, 「탁상담화」 지원용 편역, 52. 62) 파울 알트하우스, op. cit., 240-241. 63) Ibid., 243-244. 64) 28,557,8;558,4;559,5;581,13 : Ibid., 244. 65) 40Ⅱ,343,3 : Ibid., 246. 66) 28117,30 : Ibid. 67) Ibid. 68) Ibid., 247. 69) 3,69,24 : Ibid., 248. 70) Ibid. 71) Ti 5554a;6670;1179 : Ibid., 249. 72) 19,210,7;226,12 : Ibid., 250. 73) 39Ⅰ,364,10 : Ibid. 74) Ibid. 75) 5,557,4 : Ideo statunt suam justitiam, arbitrantes pro caecitate sua, se legem implevisse. (그러므로 그들은, 눈이 먼 관계로 자기들이 율법을 성취하였다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의를 세운다.) Ibid., 251. 76) 5,557,10 -39Ⅰ,50,26 :Ubi vero coeperit homo arguente spiritu hanc vim (legis) sentire et intelligere(그러나 거기서 인간은 영의 표명 가운데서 이 (율법의) 능력을 느끼고 이해하기 시작한다.) Ibid. 77) 19,225,28 : Ibid., 255. 78) 19,222,11,16 : Ibid., 256. 79) Ibid., 257. 80) 지원용, 「루터와 종교개혁」 (서울:컨콜디아사, 1988), 159. 81) Iustitia passiva : Lohse, Luther's Theologie, 정병식 미간행 역본, "죄의 개념" 중에서 참고문헌 Luther, Lecture's on Galatians(1531), trans and ed., Jaroslav Pelikan, Luther's works, Vol.26, St. Louis: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8. Luther, "The Disputation Concerning Justification", Luther's Works, Vol.34, St. Louis: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8. Luther, "On the Bondage of the Will", Luther and Erasmus:Free will and Salvation,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edit, trans. Rupp, E Gordon &. Watson, Philip S., Philadelphia:Westminster Press, 1969. M. 루터, 「루터선집」제6권 -교회의 개혁자Ⅱ, 지원용 편집, 서울:컨콜디아사, 1982. M. 루터, 「마틴루터의 종교개혁 3대논문」지원용 편역, 서울:컨콜디아사, 1997. M. 루터, 「탁상담화」 지원용 편역,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63. B. Lohse, Luthers Theologie in ihrer historischen Entwicklung und in ihrem systematischen Zusammenhang, Goetingen, 1995. 미간행 정병식 역본. 베른하르트 로제, 「루터 연구입문」 이형기 역, 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3. 파울 알트하우스, 「마르틴 루터의 신학」 구영철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4. 지원용, 「루터와 종교개혁」 서울:컨콜디아사, 1988. 전경연, "노예 의지론과 루터의 하나님 이해", 「루터연구」 제3호, 서울:컨콜디아사, 1966. 정흥열, "루터의 인간론에서 전인개념 : 루터의 "인간에 관한 논제"(1536)를 중심으로"「기독교사상」통권 478호, 서울:대한기독교서회 1998. 10 이승호, "칸트와 루터의 인간이해와 구원", 장로회신학대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0. 2.
Q 연구의 최근 동향
Q 연구의 최근 동향 2002-11-11 16:26:36 read : 7 소기천 (미국 The Claremont Greduate School, Ph. D. 과정) * 헬라어와 히브리어 글자가 지원되지 않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 1."Q"란 표지(標識) 19세기 초부터 유럽과 신약학계(新約學界)에서 중심적인 연구주제로서 그 자리를 굳혀 온 "Q" 연구는, 오늘날 "Q" 본문이 확정되기까지 많은 신약학자(新約學者)들 사이에 관심을 불러 일으켜 왔다.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 연구는 "Q" 연구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Q"를 통하지 않고서는 공관복음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다. "Q"는 독일의 단어 Quelle에서 온 것으로, "자료"란 뜻이 있으며, 신약학자들이 편의상 그 첫 철자를 따서 일반적으로 "Q"라고 부른다. "Q"가 독일어 단어에서 왔지만, 그러나 누가 언제 어떤 책에서 그 용어를 사용하였는지 명확하게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바이써(C. H. Weisse)가 Q에 관한 연구를 학문적으로 시작한 때가 1838년으로써 그때가 "Q"란 표지의 시작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는 있지만, 현재 "Q"란 표지가 어디서 기원하였는지 하는 문제는 학자들마다 주장이 너무나도 다르다. 바이쓰(Bernhard Weiss)는 1889년에 "Q"란 표지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Q에 대한 분명한 개념을 자신의 책 Lehrbuch der Einleitung in das Neue Testament(Berlin: Verlag von Wilhelm Hertz), 486-500에서 "최초의 자료"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Q의 실체를 확고하게 제시하였다. 베른러(Paul Wernle)는 그의 책 Die synoptische Frage, 1899를 통해서, 공관복음서 연구에 있어서 "Q"의 불가피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Q"를 마태복음의 자료적 측면에서 "QMt", 누가복음의 자료적 측면에서 "QLc", 그리고 유대적 내용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서 "QJ"라고 구분 지었고, 그들의 배후에 "Q1", "Q2", "Q3"가 서 있다고 시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Q"란 표지는 사용하였지만, 그가 주장한 "Q1", "Q2", "Q3"는 클로펜보그(John S. Kloppenborg)의 개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디벨리우스(M. Dibelius,1953)는 우리에게, "Q"가 독일에서 1898년에서 1901년 사이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디벨리우스는 그 예로써 베른러의 책 Die synoptische Frage, 1899을 거론한다. 슐츠(S. Schulz, 1972)도 의심 없이 "베른러가 이들 자료들을 처음으로 Q라고 명명하였다"고 평가한다. 슈미탈스(W. Schmithals, 1985)도 베른러에게 우선권을 주고 있다. 네이륑크(F. Neirynck, 1978)도 이 문제를 간결하나마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Q"란 표지를 제일 먼저 사용한 학자는 바이쓰(J. Weiss)로서 그의 논문 "Die Verteidigung Jesus den Vorwurf des Buendnisses mit Beelzebul(1890)"란 논문을 예로 들고 있다. 1987년에 합본(合本)으로 재(再) 인쇄된 벨하우젠의 도서들 Einleitung in die ersten drei Evangelien, 1911; Das Evangelium Mattaei, 1914; Das Evangelium Marci, 1909; Das Evangelium Lucae, 1904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가 "Q"란 표지에 별표(*)를 붙여서 "Q*"로 사용하기는 하였지만, 그 자신은 "Q"란 표지의 기원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다. 단지 벨하우젠은 "Q"가 공관복음서의 배후에서 비(非) 마가자료를 나타내면서도 마태와 누가가 공통으로 사용한 자료의 의미로써 사용하였다고 간주함으로써, 오늘날 Q 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Q"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나 실버맨(Lou H. Silberman, 1979)은 좀더 소급하여 벨하우젠의 Geschichte Israels, Erster Band(1878)와 Jahrbuch fu¨r Deutsche Theologie 21(1876) 등을 들어서 또 다시 벨하우젠이 "Q"란 표지의 최초 사용자란 제안을 시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네이륑크(1979)는 다시 간략한 논문을 발표하여, 벨하우젠이 1876년에 사용한 "Q"란 표지는 구약성서에 있는 "제4의 책"을 시사하면서 사용한 라틴어 "Quattuor"였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벨하우젠이 "Q"란 표지를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가 아니라고 논박하였다. 이상의 논의들을 종합해 보면, 바이써(C. H. Weisse), 베른러(Paul Wernle), 벨하우젠(J. Wellhausen) 혹은 바이쓰(J. Weiss)가 거명된다. 그러면, 누가 정말 "Q"란 표지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을까? 비록 "Q"란 표지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에 대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이미 약 한세기 반 전부터 "Q"의 분명한 실재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일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 Q란 무엇인가? 공관복음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마태와 누가의 공통자료를 지칭하는 많은 용어들 이를테면 독일어로 Logienquelle의 철자를 줄여서 "L"로, Redenquelle의 철자를 줄여서 "R"로, Sprachquelle의 철자를 줄여서 "S" 등 다양한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영어식으로 표현할 때에도 "Sayings Source", "Sayings Material" 등 다양한데, 왜 단순히 독일어 Quelle의 철자를 단 한 자(字)로 줄여서 Q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Q의 연구역사에 있어서 Q란 표지(標識)가 사용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예수 말씀"에 대한 초기 기독교 시대 때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비록 Q란 표지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도마복음서」의 서문(incipit) 즉 "살아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또 디두모란 유다 곧 도마가 기록하였던 비밀스런 말씀들이 있다"와 「파피루스 옥시린쿠스」(P.Oxy 645:1)의 서언 즉 "살아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셨고 또 유다 곧 도마가 기록하였던 비밀스런 말씀들이 있다"에 이미 예수 말씀에 관한 높은 관심이 표명되고 있다. 그리고 예수 말씀을 기억하는 일련의 관심들이 계속적으로 초기 기독교의 여러 문서들 속에서 다량으로 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들면, 사도행전 11:16, 20:35과 클레멘트전서 13:1, 46:7 그리고 야고보의 외경 2:7 등을 그 중요한 문건(文件)으로 간주 할 수 있다. 또한 서기 100년경에 파피아스의 작품 즉 Λογ?ων Κυριακ?ν 'Εξηγ?σεω?(「주의 말씀들에 대한 해석」)에 이미 예수 말씀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초기 교회의 역사에서부터 현존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준 유세비우스의 증언은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신약학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Q"란 용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이 중시되어야 한다. 그 무엇보다도 Q에 대한 개념이 분명히 정립되어야 한다. 지난 150년간 학계의 논쟁 속에 있었던 공관복음서 연구의 방향은 Q를 가설의 영역에서 다루어왔다. 루돌프 불트만(R. Bultmann)은 1931년에 양식비평적 접근 방법에 입각하여 그 이전에 있었던 공관복음서에 관한 논의들을 총망라하면서 과거에 Q 연구가 마태와 누가의 재구성(再構成)에 의존해 왔지만, 그러나 예수 말씀에 대한 끝없는 관심이 이미 마가와 Q로 확정되기 이전의 전승자료(傳承資料)에서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해 줌으로써 Q 연구의 폭을 문서(文書) 이전의 전승단계에로 까지 확장시켰다. 이것은 현대적 Q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은 중대한 변화라고 평가 받을 수 있다. 그 후에 맨슨(T. W. Manson)은 1937년에 Q 문서(The Q document)의 원시적 의미의 복원을 시도하였다. 맨슨은 엄격한 의미에서 오늘날 IQP(International Q Project)가 성취한 것과 같이 Q 본문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복원(reconstruction)을 시도(試圖)한 것은 아니였다. 단지 마태와 누가에 보존되어 있는 Q를 드러내기 위하여 단순히 그 평행구절들을 제안하는 정도의 복원(restoration)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Q 본문을 위한 복원 작업은, 그 후에 폴락(A. Polag, 1979)에 의해 보다 진일보(進一步)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1979년에 보다 최신의 Q 자료에 관한 목록(目錄)들을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의 공관복음서 연구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눈부신 업적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이상의 여러 학자들의 연구들을 종합해 볼 때에, 1970년대 말까지 줄기차게 Q의 연구상황은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라고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1983년에 클레어몬트 대학원(The Claremont Graduate School)의 로빈슨 교수(James M. Robinson)를 중심으로 범세계적 Q 학자들로 구성된 IQP의 출범 후에 Q 본문의 복원을 위한 활발한 연구 작업은 단순히 Q를 가설의 영역에서 파악하였던 기존의 개념을 뛰어 넘어서게 하였다. 클로펜보그(John S. Kloppenborg, 1987)는 IQP의 연구를 토대로 The Formation of Q란 책을 통하여 Q를 하나의 독립된 문서로 간주하고서, "단층 분석법(stratigraphic analysis)"을 통해서 Q의 편집층(즉 Q1, Q2, Q3)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이 후에 Q는 더 이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이미 하나의 독립적인 문서로서 마태와 누가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문서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1994년 시카고에서 열렸던 SBL(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의 연례모임에서,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부설기관인 IAC(Institute for Antiquity and Christianity)의 IQP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Q 본문을 위한 복원작업이 마무리 되었다. 이로써 Q 본문은 더 이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독립적인 문서로서 세상에 그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Q는 더 이상 마태나 누가의 공통 자료를 뜻하는 문서 자료로서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러면 이제 Q는 무엇인가? Q는 예수 말씀 복음서(福音書)이다. 예수 말씀 복음서로서 Q는 현존하는 모든 복음서들과 비교해 볼 때, 가장 오래된 최초의 복음서이다. 로빈슨(1964)에 의하면, Q는 순수히 예수의 말씀들을 보존하고 있는 점에서 도마 복음서와 함께 "지혜자들의 말씀들(Λ?γοι Σοφ?ν)"이란 특수한 형태의 가퉁(Gattung)에 속한다. 로빈슨은 Q와 도마 복음서 이외에도 "지혜자들의 말씀들(Λ?γοι Σοφ?ν)"이란 가퉁에 속하는 문서들로서 디다케(The Didache), 마가복음 4장, 랍비 문서들인 m'Abot, 고대 애굽 및 초기 유대 지혜 문서들, 그리고 콥틱어(Coptic)로 된 문헌들 등 다수 그 예들로서 제시하고 있다. 3. 구전이냐, 문서냐? Q가 문서(文書)로 기록되어 전해졌는가 하는 문제는 초기 Q 연구의 논쟁거리였다. 이 논쟁에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 즉 바이쓰(B. Weiss), 베른러(Paul Wernle), 바이쓰(J. Weiss), 맨슨(T. W. Manson) 등 여러 학자들이 관련이 되어 있다. 이들은 Q가 구전(口傳) 보다는 문서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학자들이다. 그러나, 예레미아스(J. Jerernias,1930)와 브레게(H. T. Wrege, 1968)는 Q 자료 자체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Q가 문서로 전승된 것이 아니라 구전(口傳) 전승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클로펜보그(1987)는 과거에 있었던 Q의 구전전승에 관한 주장들을 일축(一蹴)하면서, "언어일치"를 Q의 문서전승에 관한 강력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클로펜보그에 의하면 마태와 누가 사이의 "언어일치"는 그 정도(程度)에 있어서 결코 미약하지 않다. 과거에 알렌(W. C. Allen, 1899-1900)과 라이트(A. Wright, 1899-1900)는 마태와 누가 사이의 어떤 언어적 일치점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고 일찌기 결론을 지었지만, 클로펜보그는 Q에 나타난 구절들 중에서 "Q 3:7-9; 4:1-13; 7:24-28, 31-35; 9:57-60; 10:21-22, 23-24; 11:31-32; 13:34-35" 등을 마태와 누가 사이의 언어일치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귀절들로 제시하고 있다.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클로펜보그가 예를 든것 외에도 많은 귀절들 중에서 한 가지를 더 들어보면, Q 11:24은 누가와 마태 사이의 언어일치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 마태 12:43-44a ?ταν δ? τ? ?κ?θαρτον πνε?μα ?ξ?λθ? ?π? το? ?νθρ?που, δι?ρχεται δι' ?ν?δρων τ?πων ζητο?ν ?ν?παυσιν: κα? ο?κ ε?ρ?σκει: τ?τε λ?γει? ε?? τ?ν ο?κ?ν μου ?πιστρ?ψω ?θεν ?ξ?λθον 누가 11:24 ?ταν τ? ?κ?θαρτον πνε?μα ?ξ?λθ? ?π? το? ?νθρ?που, δι?ρχεται δι' ?ν?δρων τ?πων ζητο?ν ?ν?παυσιν: κα? μ? ε?ρ?σκον: [τ?τε] λ?γει ε?? τ?ν ο?κ?ν μου ?πιστρ?ψω ?θεν ?ξ?λθον Q 11:24 ?ταν τ? ?κ?θαρτον πνε?μα ?ξ?λθ? ?π? το? ?νθρ?που, δι?ρχεται δι' ?ν?δρων τ?πων ζητο?ν ?ν?παυσιν κα? ο?κ ε?ρ?σκει: [τ?τε] λ?γει. ε?? τ?ν ο?κ?ν μου ?πιστρ?ψω ?θεν ?ξ?λθον 이상의 헬라어 본문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언어 일치에 관한 논의들을 중시할 때, Q의 구전 전승에 관한 가설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Q 본문의 복원 작업을 통해서 Q 문서를 확실히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Q가 구전 전승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Q 본문의 복원 작업은 시작조차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4. Q의 언어 Q가 처음에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가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고 회람(回覽)되었다는 가설이 일찌기 서기 100년경에 파피아스(Papias)에 의해 제기된 후에, 근래에 이르기까지 공관복음서 연구에 통용되어 왔다. 그 이유는 쉴라이에르마허(1832) 이후, 파피아스에 의해 제기된 가설 즉, 아람어 Q 가설이 신약 학계에서 정식으로 통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이 가설은 하르낙(A. von Harnack, 1907)과 맨슨(T. W. Manson, 1937)에 의해 지지를 받게 되었다. 1985년에 슈미탈스(W. Schmithals)도 Q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많은 학자들을 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Q가 처음에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었을 것이란 가설은 고대로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는 블랙(Matthew Black, 1954)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블랙은 아람어 가설에 대하여 보다 광범위한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한가지 예를 들면, 누가 6:23과 마태 5:12의 비교에서, 블랙은 누가의 "그들의 조상들(ο? πατ?ρε? α?τ?ν)"과 마태의 "너희들 전에 [있었던] 자들(το?? πρ? ?μ?ν)"은 비슷한 아람어 ????[??]??????????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논증하였다. 즉 ο? πατ?ρε? α?τ?ν은 주어로서 사용된 아람어 ??????????????에서 온 것이며, το?? πρ? ?μ?ν은 "예언자들"과 동격으로 사용된 아람어 ??????????????에서 왔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는 두 귀절의 복원을 시도하면서, 누가 귀절의 복원을 위해서 누가 6:22a과 23b를 묶었고, 마태 귀절의 복원을 위해서 마태 5:10a, 12b, 그리고 11a을 묶어 주었다. 그러나 클로펜보그(1987)에 의하면, 특히 Q 본문의 복원에 있어서 블랙의 이와 같은 제안은 중대한 실수를 한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의 ο? πατ?ρε? α?τ?ν은 "전형적인 누가적 표현"이기 때문에 Q 본문의 복원에서 제외되는 기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Q 본문의 복원을 위해서 마태의 귀절과 누가의 귀절 사이에서 어느 것이 아람어 Q인지 선택을 해야하는 문제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블랙은 마태와 누가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서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현재 Q 학계에서는, Q가 처음에 아람어로 기록되었고 후에 헬라어로 번역되었을 것이란 가설 보다는 오히려 처음부터 헬라어로서 Q가 편찬(編纂)되었다고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 위에서 Q 본문이 헬라어로 복원되었다. 클로펜보그에 의하면, Q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셈족어로 화(化)한 헬라어 문체(a Semitizing Greek style)"를 나타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Q의 기원이 아람어를 말하는 사회적 환경속에서 가능하였지만, 그렇다고해서 처음부터 아람어로 기록되었다는 문학적 증거를 확신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Q가 아람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제안을 중시해야 한다. 여기서 헬라어 Q에 대한 제안은 이미 블랙(1954) 자신에게도 인식되어 있었던 중심 주제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블랙은 Q에 나타난 원래 헬라적 표현 방식을 중시하여, "번역되지 않은 헬라어(non-translation Greek)"가 곧 Q의 번역 사실을 입증해 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간주하면서, "Q 전승의 형성에 관계된 최종 언어가 헬라어의 문화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고 결론 짓는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번역되지 않은 헬라어, 즉 원래 헬라어에 있는 고유한 표현 방식이다. 클로펜보그는 Q에 나타난 전형적인 헬라어 특징들을 검토한 후에, "Q는 원래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결론 짓는다. 다시말해서, Q는 셈족어를 말하는 인근 지역, 즉 70인역 성서(LXX)가 셈족어 화(化)한 헬라어의 영향권 하에서 기록되었다. 예를들면, Q에 나타난 헬라어의 관용적 표현들(μ?ν… δ?, γ?ρ, ο?ν 등)은 결코 아람어에서 올 수 없는 것들이다. Q 11:20, 48과 12:42에 사용된 ?ρα는 오히려 70인역(LXX) 성서의 사용을 뒷받침하는 것이지, 아람어 Q에서 온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 특별히 Q에 빈번히 나타나고 있는 속격 독립구문들은 그 어순에 있어서, 본래 헬라어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Q 4:3, 9의 "ε? υ??? ε? το? θεο?"와 Q 7:25의 "ο? ?ν ?ματισμ? ?νδ?ξ? κα? τρυφ? ?π?ρχοντε?"는 결코 아람어에서 올 수 없는 전형적인 헬라적 관용 표현들이다. 과거에 많은 학자들이, 예수와 그의 첫 추종자들인 제자들이 모국어로서 아람어를 사용하였다고 주장한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정황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이 헬라어를 말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Q가 빈번하게 "언어적 일치(word-for-word agreements)"를 보이고 있는 점을 중시할 때, 이는 결코 아람어의 번역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Q에 나타나 있는 구약성서 구절들에 대한 인용귀나 표현들도 헬라어로된 70인역 성서에 의존해 있다. 이같은 사실을 미루어 볼 때, Q는 아람어에서 번역된 것이 아니라 원래 헬라어로 기록된 사실을 알 수 있다. 5. 결론 Q의 정의와 기원에 관한 문제는 공관복음서 문제에 비견(比肩)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하다. 그러나, 이미 IQP에 의해서 예수 말씀 복음서 Q가 복원이 된 작금(昨今)의 상황에서, 더이상 Q의 정의와 기원은 문제시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앞으로 Q는 예수 말씀 복음서와 동의어로 사용될 것이고, 예수가 하신 말씀들 가운데 복원과정을 통하여 현존하게 된 가장 오래된 문서이자 최초의 복음서란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Q는 더이상 가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자적인 문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된 것이다. 참고로 Q 연구에 보다 더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1996년부터 향후 8년동안 유럽의 PEETERS 출판사로부터 발간되는 Documenta Q : Reconstructions of Q Through Two Centuries of Gospel Research Excerpted, Sorted and Evaluated 를 구입하시기를 바란다.
Renewal Theology 요약
Renewal Theology 요약 2002-08-05 15:44:52 read : 6 제1장 중생 Ⅰ. 중생이란? 구원을 얻게 된 자에게 일어나는 내적인 변화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본질적으로 의미한다. 성령을 통해서 영적인 중생이 가능하다. 중생에 대하여 묘사한 세 구절은 요 3:7, 벧전 1:23, 딛 3:5 이다. Ⅱ. 중요성 중생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영적으로 죽은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유일한 희망은 영적인 중생뿐이다. Ⅲ. 수단 중생이 어떻게 가능하며 그러한 이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가능하다. A. 성령의 역할 중생은 일차적으로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이러한 거듭남은 영적인 태어남으로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예수님조차도 성령으로 태어나셨다(마 1:20). 중생에서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은 "물", "씻음"과 같은 말이다. 요 3:5에서 물은 "물세례"를 가리킨다. "물"은 깨끗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중생된자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물은 성령에 앞서 있고 성령의 활동을 예비하는 것으로 물세례는 중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중생이나 갱신은 성령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B. 심기운 말씀 중생은 성령의 직접접인 사역이나 심기운 말씀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그 말씀은 (벧전 1:23, 1:25, 약 4:3-9, 1:18). 그러므로 성령이 중생의 기적을 행하시는 것은 심기운 말씀, 복음의 말씀, 즉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이다. Ⅳ. 발생 중생은 인간의 마음과 지성과 의지의 모든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사랑하라"는 큰 계명을 이루려면 생활의 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A. 조명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사람의 마음은 내적 조명에 의해서만 구원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다. 조명의 빛이 비추어진 실례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다(행 2:23, 2:36, 26:17-18). 하나님의 의로움을 훨씬 더 초월하여 원수조차 사랑하라는 명령이 절망적인 자신을 깨달을 때, 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깨달을 때 성령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눈이 열려야만 사람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올 수 있는 것이다. B. 뉘우침 중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죄에 대한 뉘우침도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죄악에 대한 깊은 뉘우침을 뜻한다. 뉘우침에 대한 성경에 언급은 (행 2:37) 여기서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죄를 깊이 깨닫는 것만이 아니라 심오한 내적 변화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일들은 성령이 말씀을 적용함으로써 죄에 대한 깊은 뉘우침이 일어날 때 가능해진다. C. 회개 중생으로 나아가는 절정의 순간은 회개하는 순간이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종종 언급하셨다(대하 6:36-39, 대하 7:14). 그러나 완벽하게 돌이킨 경우는 없었다. 반면에 복음의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야 삶을 변화시키는 참된 회개가 가능케 되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쳤고 예수께서 계속해서 회개할 것을 외치셨다 하더라도 순수하고도 전적인 회개가 이루어진 것은 예수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신 이후였다. 회개는 전 인격이 전적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생에 있어서 정점의 순간을 이루는 것이다. 옛 생활에서 새로운 생활로의 180도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으로 과거와는 철저하게 간격을 두는 것과 그리스도가 구세주와 주가 되시는 영광스러운 개 세계에 들어가게 됨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회심이라 할 수 있다. 회개한다는 말 그 자체가 회심의 의미를 담고 있다. 행 15:3에서 회심이란 조명과 뉘우침에 뒤이어 중생에 이르는 정점의 순간이 일어나는 회개의 행위뿐만 아니라 구원 전체를 총칭해서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회심은 구원과 중생 모두를 나타낼 수도 있다. 회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회개가 잘 표현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해주고, 의자가 수반되어야 하므로 행동이 요구된다(롬 10:9).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행 5:31, 11:18). 회개란 인간의 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을 의미한다(행 2:38, 고전 6:19, 고후 13:8). Ⅴ. 결과 : 새로운 피조물 A. 새로운 존재 1. 변화된 마음 중생은 일차적으로 사람의 존재의 중심 되는 부분 즉, 마음이나 영에서 먼저 일어난다. 마음을 깨끗케 하라는 말씀은 (겔 36:26, 마 15:19, 딛 3:5, 행 15:9) 중생의 한 놀라운 측면이다. 또한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짐을 의미한다(렘 31:33, 히 8:10). 그리고 마음의 변화는 마음이 하나되는 역사가 있다(겔 11:19, 32:39, 시 86:11). 진실로 중생의 기적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마음, 즉 하나의 단일한 마음을 얻게 되고 우리의 모든 존재를 다 바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새로워진 생각 중생은 또한 생각의 문제라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 중생은 생각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엡 4:22-23, 롬 1:21). 여기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약속의 말씀이 있다(렘 331:34, 히 8:11). 그들은 마음이 새로워지고 진실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관점에서 삶의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옛 자아가 물러가고 마음이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생각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게 됨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달라지게 된 것이다. 3. 자유롭게 된 의지 중생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지는 죄악의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다(딛 3:4-5, 고전 6:9-10). 이러한 자유는 사람을 속박하는 모든 것(어두움의 세력을 포함)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중생한 사람은 결국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제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중생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는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지를 근본적으로 본받게 되고, 순종하는 이지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기쁨에 찬 의지이기도 하다. B. 새로운 성품 1. 거룩함 새로운 성품은 먼저 거룩함과 의로움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고 말한다. 중생한 사람은 그 내적 깊은 곳에서 의로움과 거룩함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의로움이 지배하는 삶이요, 근본적으로 의로움과 거룩함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열에 사로잡히게 된다. 의를 행함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의 성품이다(요 1서 2:29). 2. 사랑 새로운 성품을 특징 짓는 것은 또한 사랑이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포하기에 앞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다"(고후 5:14)라고 말씀하였다. 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1서 4:19)고 말씀하였다. 따라서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과 자기의 이웃을 전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3. 진실함 새 성품을 특징 짓는 것은 진실함이라 할 수 있다.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기 때문에(약 1:18) 거짓과 속임수는 이전 날의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에게 새로운 사실은 그의 성품 안에 진실함이 있다는 것이다. C. 새로운 생활 결국 중생을 통하여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이제 영적인 삶에서 세 가지의 생활이 새롭게 된다. 먼저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된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다(롬 6:11).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하여 만들어진 인간 존재의 목적이 결국 완성되어짐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다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생활이 진정한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참된 행복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삶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예수 안에는 풍성한 삶이 있다(요 10:10). 풍성하다는 것은 행복을 가능케 해 주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또한 예수 안에는 심오하고도 영속적인 기쁨이 있다(요 15:11, 눅 2:10).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주님의 기쁨을 알게 되며 이것이 바로 참된 행복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가 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요1서 5:4). 그리스도가 승리하셨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승리를 나누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끝으로, 새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행복이다. 이러한 삶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그 궁극적인 영광이 있다. 제3장 칭 의 Ⅰ. 배경 칭의의 교리는 의롭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로움을 요구하신다. 이에 대하여 죄악된 성품 때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수 없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의까지라도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순수하신 현존 앞에서는 불결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볼 때 사람은 실로 절망적이다. 사람편에서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의로움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Ⅱ. 의미 칭의의 통상적인 의미는 의롭다고 말하거나 선포하는 것이다. 「칭의」라는 뚜렷한 특징은 선언적인 측면에 있다. 의롭게 혹은 정의롭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롭게 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하여 의롭다고 선포된 사람이다. Ⅲ. 양상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심에는 두 가지 혹은 이중의 양상이 있다. A. 죄를 인정치 아니함 죄를 인정치 아니한다는 것은 죄를 산정하지 않는 것 또는 죄를 계산하지 않는 것으로 불릴 수도 있다. 이는 죄가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책잡지 아니하신다는 의미다. 죄를 인정치 아니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 그 한가운데 있다. 죄를 인정치 않는다는 것은 또한 죄를 사해준다는 의미이다(시 130:3-4, 사43:25, 미 7:18-19). 완전한 죄사함은 복음의 핵심이다. B.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옮기심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전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옮기시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의는 나 자신의 혹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의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는 당신의 아들의 의로움으로 옷 입혀진 우리를 바라보신다. 우리 각자는 예수안에서 완전함을 입는다. 그러므로 칭의란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의로와졌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Ⅳ. 근거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 사역이다(롬 3:23-25). 칭의는 값진 구속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다. 칭의의 교리에 대하여(롬 3:23-24) 살펴보면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행위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기초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구속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말미암은 속죄로써 일어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칭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있다. Ⅴ. 수단 - 믿음 지금까지 하나님의 선언적인 의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그 의가 근거한다는 것에 관하여 언급된 모든 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그 효력이 발생된다. 칭의의 수단은 믿음인 것이다. 롬 3:25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배경으로 하는 칭의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엡 2:8에서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든가 구원의 원천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믿음은 구원이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게 하는 수단이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창세기를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3)고 했다. 바울이 의로 여기신 바 된 것이 아브라함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라고 했다. 따라서 믿음은 "신뢰하며 믿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구원을 얻기 위해 그 구원을 이루신 분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단순히 하나님이 현존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써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신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신뢰이다. 이 신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에 대한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감사의 응답이다. 이 신뢰하는 믿음이 우리의 칭의에 대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만이 칭의의 수단이 된다. Ⅵ. 행위의 지위 우리의 행위는 죄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게 하는 어떤 공헌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주된 요점이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이 없다(롬 3:20). 율법의 행위, 즉 모든 행위는 의롭다함을 얻는데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한다. 믿음과 행위에 대하여 살펴보면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었지만 믿음 단독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참된 믿음이란 즉 의롭게 하는 믿음이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했다. 아주 적합한 말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 관하여 바울은 행위란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행위란 우리를 구원하는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 구원을 입증해 주는 가치를 지닌다. 실로 구원 즉 다름 아닌 칭의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바로 선한 열매요 선행이다. 선행이야말로 진실하고도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인 것이다. Ⅶ. 칭의의 결과 칭의의 일차적인 결과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칭의로 말미암아 새로운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가 기쁘게도 생겨난 것이다. A. 자유 칭의의 두드러진 결과 가운데 하나가 자유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 자유는 세속적인 모든 제도로부터의 자유이다. 가장 큰 구원은 간단히 말해서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이다. 결국 칭의에는 걱정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 칭의를 올바로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범하는 어떠한 범죄든 간에 이미 용서받았다고 하는 걱정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자유를 얻은 것이다. B. 평화 칭의가 가져오는 또 하나의 결과는 평화이다. 이 평화는 세가지가 있다. 먼저 하나님과의 평화를 보면,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고(롬 5:9) 하나님의 대적자였으나(롬 5:10)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과 불화 관계에 있지 않으며 더 이상 당신의 진노 아래에 있지 않으며 절망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것이다. 다음에 이웃과의 평화를 보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고 받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서로 용서해 주고 용납하도록 요구받는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강이다. 마지막으로 내 자신 속의 평화로 요 14:27에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는 내적 평화를 말한다. 이 평화는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그 이상이다. 이러한 평화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생겨나는 평화이다. C. 상속 칭의의 마지막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갈 3:26, 29에 분명히 영원한 상속에 대한 약속이 있다. 갈 4:7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상속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는 풍부한 상속물이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상속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롬 8:17)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상속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다(고전 3:21-23).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딛 3:5,7). 이 장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이며 그 절정에 이른 결과로서 우리가 영생을 바라보는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4장 성화(sanctification) Ⅰ. 의미 성화를 시킨다는 것은 거룩하게 하는 것이나, 거룩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화란 신성화하거나 거룩하게 하는 행동 그리고 성화되거나 거룩하게 된 상황 또는 상태를 말한다. 거룩함이란 ①"분리" 혹은 "따로 떨어져 있음"을 지칭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속했기 때문에 거룩한 백성인 것이다. ②순결함과 깨끗함을 의미한다. 깨끗하게 해야할 것은 육과 영이며 이는 거룩함 혹은 성화를 온전히 이룸을 의미하는 것이다. ③도덕적으로 온전함을 의미한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는 악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길과 행위, 즉 의, 사랑, 진리에 있어서 완전하심을 의미하는 말이다. 모든 방면에서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온전함을 요구하신다. Ⅱ. 발생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인 것이다. 1. 시작 성화 혹은 거룩함이란 본질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즉,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에서 기초적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성화란 단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만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멀리하고 정결케함으로 인하여 이루어 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죄를 멀리하는 것은 그저 죄와 떨어져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내적 정화와 청결을 도모하는 것도 포함하는 것이다. 즉 성화에는 분리와 깨끗함의 두요소가 있다. 성화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야 하며, 이 성화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일로 말미암아 실제로 성취된 실제이다. 따라서 성화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를 통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받아드려 지는 것이다. 온전케 된 양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온전히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당연히 생겨난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성화란 그리스도께 속한 모두에게 주어진 실체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때부터 성화된 것이다. 2. 지속 성화란 하나님의 백성의 삶 속에서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사는 것이다. 성화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존재에 있어서 처음부터 체험하는 실체인 것만 아니라 계속되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신자들은 비록 성화되었다 해도 그들의 삶속에 죄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즉 옛 생활의 죄악된 요소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정화와 청결케함은 계속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화란 점진적인 변화이다. 이는 거룩함으로 행하는 운동이 아니라(왜냐하면 신자는 이미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함 안에서 커가는 것을 의미하며 점진적인 변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우리가 영광의 주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그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도 영광에서 영광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3. 목표 결국 성화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목표이다. 즉, 전적인 거룩함이다. 이 목표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완성되어 질 것이다. 순결함과 온전함과 완전함과 거룩함은, 그 어법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실천의 목표인 것이다. 우리는 기도로써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성서의 전반적인 경향은 이 세상에서 온전한 성화에 도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 이유로서 ①우리의 삶을 통하여 죄가 계속 살아있어 온전함으로 계속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음을 증거하는 성구가 많이 있다.(빌3:12,14-15, 히5:14,12:3-13, 요일3:2-3, 창6:9, 욥1:1, 겔14:14,20, 눅1:6, 엡4:13-14, 고전14:20, 골1:28 등) ②우리가 죽을 때나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건 간에, 이생의 끝날에는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생에서는 정결케함이 계속되는 반면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게 되는 것은 당신께서 최후로 강림하실 때 이루어진다. ③우리의 완전함을 향한 목표와 완전함의 성취를 서로 구분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았으며, 이것은 점진적인 성화를 의미한다. Ⅲ. 범위 (SCOPE) 성화란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전인을 갱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1. 갱신(Renewal) 성화의 전 영역을 반영하는데 "갱신"이란 말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갱신이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3:5)등과 같은 성구에서 보듯 성화의 시작을 보여 준다. 여기에서 중생이란 새로운 탄생을 가리키며, 갱신(새롭게 함)이란 그리스도인이 생활을 시작할 때 주어진 성화를 가리킨다. 새롭게 된다는 것은 새 삶을 가리키며 의와 거륵함의 새 품성을 말한다. 또한 계속적인 성화를 의미하며 계속적인 진행의 의미를 내포한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요구되는 계속적인 새로워짐이 또는 계속적인 회복은 성도를 더욱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게 하는 것이다. 2. 온전한 사람(The Whole Person) 온전한 사람에 관한 핵심적인 성구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의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특별히 "온전히"라는 말과 그리고 "영"과 "혼"과 "몸"이라는 말에 대해 고찰해 나갈 것이다. 1) 영(The Spirit) 사람의 영은 인간 본질의 가장 깊은 차원이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특히 인간 존재의 중심이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과 직접적으로 만나시는 인간 자신의 영역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안에 있는 의로움을 인하여 인간의 영은 다시 살아있는 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이 다시 살게 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 성령은 우리의 영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한다.(롬8:16) "영"과 "마음"은 서로 바꾸어 사용될 수 있는 용어들이다. 영과 마음의 거룩은 서로 병행한다. 로마서 2장 15절에서 양심은 마음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양심은 특별히 마음의 최고의 도덕을 반영하는 것으로 "양심의 가책"과 "마음의 고통"은 서로 바꾸어 표현될 수있다. 이 두 표현에 대한 가장 인접한 표현은 청결한 마음과 청결한 양심이라는 성경적 관심 속에서 더욱 나타나 있다. "영" "마음" "양심" 이 세 가지 성서적 용어들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감 있는 성품을 지닌 사람을 가리킨다. 구원 안에는 영의 소생, 마음의 변화, 양심의 정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근본적으로 이루어졌다해도 여기에는 더 나아가 성화의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2) 혼(The Soul) 혼은 이를 통해 영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인간의 내적인 생명이라고 말할 수있다. 인간은 지적, 감정적, 의지적인 행위의 폭넓은 영역으로 증거되는 자아, 또는 의식하는 살아 있는 생령이다. 따라서 지성, 감정, 의지는 활동중인 혼의 제 국면들이다. 죄의 침투가 있자 인간의 혼은 어두워졌고 인간의 이같은 모든 활동적인 영역 속에서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구원 받음으로 인하여 인간의 지성은 다시 하나님의 일들을 성찰할 수 있고, 감정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기뻐하며, 의지는 하나님의 목적에 일치하여 행하도록 활동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혼은 계속 정결함과 강건함을 필요로 한다. (1) 마음 성화는 마음의 계속적인 새로움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즉 이미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의 마음도 진실로 계속적인 새로워짐과 더 나아가서 변화를 필요로 한다. 마음은 악한 생각들, 부정한 생각들, 세상적인 계획들로 지배될 수 있다. 지성은 영적인 관심사들로부터 멀어지고 육신에 속한 일에 휩쓸려 내려갈 수 있다. 지성은 그리스도의 본을 좆아 겸손함을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관하여 바울은 빌립보 교회 신자들에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5)라고 한 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종의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겸손하여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성도는 필연적으로 이와 같은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면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향한 성도의 생각의 변화와 생각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2) 감정들(정서, 소욕, 정욕) 성화는 또한 내적인 감동들과 소욕을 처리함으로 이루어 가게 된다. "육체의 소욕"이 자리하고 있는 영역이 성화를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이 모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성도들을 끊임 없이 유혹하지만 성도는 거기에 빠져서는 안된다. 즉 이는 거룩한 가운데 날마다 성장하는 성도의 삶을 요구하는 것이다. 감정과 욕구의 영역에는 성화되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 거룩한 온전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소욕과 정욕을 깊이 있게 처리해야 한다. (3) 의지 성화는 또한 의지와 관련이 있다. 구원받기 전의 의지는 죄에 매어 있었다. 사람은 늘 하나님께로부터 죄악으로 돌아서서 죄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방된 의지로 인해 자유의 새 길이 마련되었다. 그러함에도 거기에는 항상 우리를 죄의 습관에로 되돌아 가도록 끌어 당기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이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되어지게 하소서"라고 간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몸(The Body) 마지막으로 성도의 몸은 성화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 이전에 몸은 실제로 죄에 바쳐졌다. 그러나 우리의 옛 본성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죄지은 상태는 멸망되었다. 몸의 죄가 발견되는 곳마다 그 죄를 씻고 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죽으심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이다. 죄가 생겨나면 우리 몸 안에 계신 하나님을 다시 영화롭게 하기 위해 "몸의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또한 성도의 몸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전이므로 성적인 부도덕은 진실로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거스리는 가증한 죄인 것이다. 모든 성적인 부도덕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을 망령되게 하는 죄이다. 오늘날 이에 대한 심각성은 첫째로, 성에 대한 관습적 기준이 퇴락해 가고 있는 문화 속에서 정욕에 대한 끊임 없는 유혹이다. 둘째로, 우리의 사회는 더욱더 쾌락 추구의 사회로 변해 가고 있기 때문에 외적인 부도덕한 형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점, 즉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 몸은 성생활과 먹고 마시는 생활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형상(The Like of God) 온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한 성화의 목적은 하나님 형상으로 새로워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의 형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화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형상으로의 변화이다. 이는 또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께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활과 함께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계속 성장되어 가는 것이다.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Ⅳ. 방법(METHOD) 1. 하나님의 사역(The Work of God) 성화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다. 즉 하나님 안에 성화의 능력이 있다. 성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행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중생하여 의롭다 함을 얻은 인간이 그 후에 성화하도록 요구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의롭게 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성화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화의 대행자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집단적으로는 교회)에 대한 성화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마지막으로 성화의 원동력은 성령이다. 성화를 위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성령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준비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 안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활동은 ①성령은 그리스도의 몽을 이루는 성도들의 공동체 내에 거하신다. 믿음의 공동체는 멸망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처가 되기 때문이다. ②성령은 또한 각 성도들의 몸 안에 거하신다. 성화의 사역을 깊이 있게 수행하시는 이는 바로 성령이시다. 성령은 거룩하신 영으로 성도의 삶의 어두운 면을 끊임 없이 조명하시며 그리고 인간성의 모든 국면(영,혼,육)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려 애쓰신다. 성령은 성결케 하시는 영이시다.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점차로 이루시는 것이 성령의 주요 직임이다. 2. 사람의 과업(The Humon Task) 성화는 또한 사람의 과업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에 우리의 개입이 없이는 역사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행하시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신다는 의미이다. 인간적인 온전함과 거룩함의 좆음이 사람의 과업인 것이다. 사람의 과업에는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부정적 측면이란 사람이 끊임 없이 죄에 대하여 죽는 것이고, 긍정적인 측면이란 의에 대한 확고 부동한 삶이다. 1) 죄에 대하여 죽음(Dying to Sin) 이 말은 첫째, 죄에 대한 거부로 이해할 수 있다. 딛2:11-12에서 "경건치 않은 것"이란 성도의 삶속에서 하나님께 반대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이 세상 정욕"이란 하나님의 일을 따르지 아니하고 이 세상을 따르고자 하는 모든 욕망을 말한다. 이러한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의 정욕"은 거부되어야 한다. 이는 포기되어야 한다. 마치 금욕으로 어떠한 덕을 쌓으려는 것과 같은 자신과 자기의 인격의 포기를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자신안에서 계속되는 죄에서 거부, 즉 죄많은 자아의 거부를 의미한다. 성령은 죄많은 자아와 대립하여 거하시기 때문에 성도편에서 행하는 죄에 대한 모든 거부의 행동은 성령에 의해 강하게 뒷바침될 것이다. 죄에 대해 죽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욕심의 제어로 이해할 수 있는데, ①성도들은 악한 몸의 행실들을 제어하는 심각한 일을 행하도록 권고받았다는 것, ②이 일은 성도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권능으로 행하여져야한다는 사실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악한 몸의 행실을 제어해야할 자는 성도 자신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일은 육신에 반대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계속해서 죄를 거부하는데 힘을 부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늘에 속한 관점에서 자신의 죄를 더 확실하게 지각하여 이를 더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성도는 자신 안에 구체적으로 죄로 알고 보고 있는 것(죄라고 이름지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죽음에 처해야 한다. 죄를 죽이는 또 하나의 심층적 방법은 죄를 벗어 버리는 것이다. 즉 그것은 죄를 벗어버리기 위해서 그것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이는 곧 분과 악의와 훼방 같은 죄에 사로잡혔던 성도가 그 죄를 던져버리는 그의 의지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성도가 죄를 죽이는 일에 있어 한가지 성령의 심층적 역할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①그것은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반복해서 죄를 의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가 성령의 빛으로 가까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전에는 거의 알 수 없었던 자신의 죄들이 더 많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이 말이 성도들의 생활이 죄에 의해 눌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근본적이고도 기쁜 사실은 죄가 성도들의 삶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성도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②성도는 죄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있는 성도의 관점에서 보아 죄들은 진실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있는 성도의 새 생명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③때때로 성도가 죄에 대한 죽음을 통하여 어떤 죄들은 더 이상 성도에게 존재하지 않게 되는 기쁨의 실현이 있다. ④주님의 임재를 계속 확신할 수 있는 안락함이 있다. 마침내 죄와의 모든 투쟁이 끝났을 때 주님은 영광 중에 우리의 성화를 완성하실 것이다. 2) 의로운 생활(Living for Righteousness) 성화에 있어서 인간의 과업의 다른 측면은 의로운 생활이다. 이말은 성도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의에 대한 강한 열망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거룩함 가운데 자라가는 성도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이어야 하며 성도의 생활에 있어서 최고의 우선 순위는 의로움이어야 한다. 사람은 어떻게 의에 대하여 살 수 있는가?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뜻을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의 예로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만약 성도가 거룩함 가운데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①성도는 성경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그의 일상적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②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읽어나가는 일에는 말씀대로 실천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의에 대하여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산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다. (2)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 의로운 생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께 끊임없이 관심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성도는 자신의 죄를 점차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는 것은 그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따르는 것은 분명히 예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일이므로 예수에 대한 헌신은 우리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최우선되어야 한다. 실제적으로 말한다면 예수를 바라 보는 일은 날마다 예수를 증거하는 성경 말씀에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가 폭넓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바라보고 진실로 그리스도의 본을 좆으려 할 때 성도의 전 인격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 이것이 거룩함안에서 자라가는 방법이다. 가장 높은 것을 추구하는 일은 또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곳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 성화는 정결한 마음을 갖는 생활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다. 즉 성화는 겸손과 사랑과 자기 희생의 생활이다. 성화는 옷입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은 그리스도께 우리의 생각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변화시키는 강한 힘과 비젼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거하다"는 말은 특히 성도가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도 안에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3) 성령으로 행하는 일 의로운 생활은 성령으로 행하는 삶이다. 이는 ① 자유함 가운데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는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성령 안에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행하는 새 생활에는 무엇보다도 참된 거룩함이 있다. 성도가 의를 추구하기를 열망할 때 이는 단순히 성도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의를 이루도록 그에게 능력을 공급하시는 성령의 문제이다. ②성도는 성령으로 행하므로 율법을 성취할 수 있다. 이제 율법은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신자의 마음판에 기록되었으므로 성도는 그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은혜는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다. 율법은 성도가 지니고 있는 죄지을 가능성에 대한 하나의 필요한 억제력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성도는 성령의 자유함 가운데 행하고 이로 인해 성도는 처음으로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그는 여기서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것은 성화가 계속되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이는 성도가 성령으로 행하므로 그는 더욱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율법과 자유, 이 두가지를 연합시키는 실체는 사랑이다. 사랑 가운데 행한 최고의 모범은 그리스도셨다. 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하여 기꺼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다. 이 사랑은 율법의 어떠한 요구도 훨씬 능가한 사랑이었고 값없이 전적으로 당신을 완전히 내어주신 사랑이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와 동일한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하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힘으로 율법이 값없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사랑하는 성도는 진실로 성령으로 행하는 자이다. 제6장 성령(THE HOLY SPIRIT) Ⅰ. 명칭 1. 성령 성령 즉, 거룩한 영(The Holy Spirit)이란 단어를 역순으로 생각해 보자. 1) 영(Spirit) "영"이란 단어는 ①촉감할 수 없고, 무형이어서 비물질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영은 혼과 육을 통해서 활동하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실재를 나타낸다. 영은 사물처럼 위치하거나 인지되거나 무게가 있거나 절개되지 않는다. 그것은 비물질적이다. ②역시 "움직임의 자유함"을 나타낸다. 영은 물질적인 제한이 없기 때문에 규정된 행동양식을 따르지 않는다. 성령안에는 자발성과 자유함이 있다. ③영은 "에너지"와 "기력"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나타낸다. 2) 거룩한(Holy) 성령의 명칭에 있는 "거룩한"이란 단어는 신성함을 강조한다. 거룩하다는 것은 ①통속적이고 평범한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거룩한 것은 성스럽고 신성한 것이다. ②거룩함은 또한 전적으로 정결하고 의로운 것을 함의한다. ③거룩함은 존엄과 영광의 특징을 강하게 나타낸다. 3) 정관사(The) 정관사 "the"는 성령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아주 간명하게 말한다. 많은 영들이 있지만, 오직 "한 성령"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은 성화된 영을 가지고 있는데 언젠가는 완전히 거룩해진 영(곧 거룩한 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성령"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2. 성령의 여러 명칭들 1) 신약성경 많은 곳에서 성령과 영은 서로 바뀌어 동의어로써 사용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성령"과 연합하여 사용되고 있다. 성령은 성부, 성자와 구분되어 지는 실체이기는 하나 분리되어 질 수는 없는 것이 틀림없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다. 그러나 또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따라서 성령은 하나님 당신의 실재와 동일하시다. 2) 구약성경 구약에서는 영, 하나님의 영, 나의 영, 너의 영 등의 이 표현들은 성령과 하나님의 사이에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말해준다. 그러나 구약에서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주의 신"이다. Ⅱ. 성령의 칭호와 상징 1. 성령의 칭호 1) 진리의 성령(The Spirit df Truth) "진리의 성령"은 ①세상이 "받을 수 없는" 것(육에 속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을 나타낸다. ②일반적이거나 전체적인 진리를 언급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 관련된 진리를 언급하시는 것이다. ③성령은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한 진리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 2) 성결의 영(The Sprit of Holiness) 서신서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호칭은 ①성결의 성령 :바울은 예수께서"성결의 영으로는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쓰고 있다.(롬1:4) 그러므로 "성결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것이다. "성결의 영"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가장 심오한 실재였다. 이는 성결케 하는 영인 동시에 부활의 영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주 앞에서 순결하게 살아가도록 성화시키는 영이다. 3) 생명의 성령(The Sprit of Life) 성령은 "생명을 주는 영이시다. 더 이상 죄나 사망이나 율법의 속박이 없다. 성령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자들을 위하여 생명과 자유를 가져 오셨다. 4) 양자의 영(The Sprit of Adoption)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을 "양자의 영"으로 표현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5절) 여기서는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있는데, ①양자 결연에 의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것이고, ②이 양자 결연에 수반되는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양자의 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가정 안으로 우리를 입양하는 것을 보증하도록 하기 위해 보내신 성령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아빠"와 같은 단어가 전해 주는 그런 인격적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5) 은혜의 성령(The Sprit of God) "은혜의 성령"은 구원의 사역에 자비롭게 참여해 오신 분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과 새 생명을 가져오시기 위해 행하신 모든 것들을 쓸모 있게 하신다. 그것은 전적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6) 영광의 영(The Sprit of Glory) 영광의 영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자들 위에 특별히 머무신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영광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 위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된다. 7) 영원하신 성령(The Eternal Sprit) 그리스도의 희생은 일시적인 사건 훨씬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가져 오는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역이었다. 2. 성령의 상징(Symbols) 성령은 형체가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징들(형상들, 묘사들, 모양들)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더 깊은 통찰력을 준다. 1) 바람(Wind) 히브리어 '루아흐'와 헬라어 '프뉴마'는 이 두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바람 혹은 생기(숨)은 움직이는 힘과 신성한 에너지의 일종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을 묘사하는 언어의 생생한 모습이다. 2) 불(Fire) 성령에 의한 세례는 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불은 악을 소멸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3) 물(Water) 예수께서 주시고 영생하도록 솟아 나는 "생수"는 그것이 흘러 나올 떄의 성령의 활동이다. 4) 비둘기(Dove) 사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께서 세례받으신 때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그 위에 내려 오셨다. 비둘기가 상징하는 바의 온전한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비들기는 흔히 온유하고 순결하 것을 나타낸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 사역의 초창기에 비둘기에 대한 묘사는 구속 사역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심을 나타낸다. 5) 인치심(Seal) 성령을 하나님의 소유권과 보호에 대한 호칭의 의미에서 인침으로 묘사한다. ①인침은 소유권의 표시이며 정체의 증거이다. ②인치심은 또한 안전을 보장한다. 그것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보호의 표시이다. 이 인치심은 대환난 중에 그들을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도 "구속의 날까지" 사람을 인치신다. ③성령은 또한 보증 혹은 서약의 의미에서의 인치심이다. 인치심은 이미 받은 어떤 물건에 대한 서약이 아니라 장래에 받을 소유물에 대한 보증이다. ④인치심은 또한 확증과 헌신의 표시이다. 6) 기름(Oil) 성령은 하늘의 기름 부으심, 즉 높은 곳으로부터 내리는 성유인 기름으로 볼 수 있다. 기름 부음에 대한 관념은 예수께서 부여받은 전 사역에 대해서 예수 자신이 신성케 됨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늘의 기름이고(성유), 따라서 성도는 기름부음 받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받는다. Ⅲ. 성령의 품성(NATURE) 성령은 누구신가 혹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옮겨가고자 한다. 1. 하나님(God) 성령은 하나님보다 못한, 혹은 하나님 아닌 다른 실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다. 1) 신적 인식과 신적 신분(Divine Reconignition and Identification) 성령은 하나님으로 인식된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은 하나님과 동일하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역 구석 구석에 이르기까지 오직을 의미하는 언어로 성령을 언급하셨다. 구약 성경에서는 성령이 하나님으로 분명하게 불리우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 "하나님의 신", 그리고, "성신"에 대한 수많은 언급은 하나님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령은 분명 당시의 백성 중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게다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내적 임재를 개인적으로 즐기며,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속에 내주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2) 신적인 완전성(Divine Perfections) 성령은 또한 하나님의 완전성을 갖고 계신다. 완전성에 대한 고찰을 차례대로 해보자. ① 성령은 편재하신다. 하나님의 신(성령)은 어디에나 계시고 영원히 계신다. 성령께선 특별히 당신을 영접한 성도들과 계속적으로 함께하신다. ② 성령은 전지하시다. 성령은 모든 것을 살피고 모든 것을 헤아리기 때문에 진실로 전지하시다. 또한 지식의 부족이 전혀 없으시다. 성령은 곧 하나님 자신의 전지하심을 갖고 계신다. ③성령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의 신은 전능하시고 이에 대한 증거가 창조에 있어서의 당신의 사역이다. 3) 신적인 사역(Divine Work) 성령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성령은 하나님 자신임이 틀림없다. 성령은 운행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2. 인격체(Person) 성령은 신적인 영향력이나 능력일 뿐만 아니라 본래 한 인격체시다. 1)인격적 명칭(Personal Designation) 성령은 "보혜사(Paraclete)로 여러번 언급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위로자", "상담자". '조력자', '옹호자'등과 같은 말로 번역되는데 이로써 한 인격체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부으심, 성령의 강림하심, 성령으로 세례받음, 성령으로 충만함과 같은 말은 비인격적인 어떤 능력과 힘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께서 오시는 방법을 언급하는 것이다. 2) 인격적 특징(Personal Characteristics) 성령의 인격적 특징의 하나로 지성이 있다. 성령은 교회의 으뜸가는 안내자와 감독자로서 활동하시는 한 인격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따라서 간구한다. 다음으로 성령의 인격적 특징은 의지이다. 2차 선교 여행 중에 바울과 디모데는 성령에 의해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려는 것을 포기해야했다. 이처럼 성령은 의지를 가지고 계셔서 그들을 막으셨던 것이다. 또한 성령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구약 성경에서 공히 성령은 근심하시는 분으로 말씀하고 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하고 있다.(롬8:26) "탄식"이란 말은 성령의 감정이 매우 깊으심을 나타낸다. 3) 인격적인 관계(Personal Relationships) 성령은 타자와 인격적으로 관계하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중요한 예는 확실히 예수와의 인격적인 관계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과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이 아름다운 축도는 성령과 기독교 공동체 사이의 긴밀한 인격적 관계를 말해 주고 있다. 3. 독특성(Distinct)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반면 성령은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 창세기는 역사하시는 중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이라'(1:1)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역사는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 행하시니라"(2절)이다. 따라서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신은 둘다 하나님이다. 하지만 두분의 역할은 동일하지 않다. 즉 그분들 사이에는 분리가 아닌 구분이 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서 그들에게 보내질 보혜사 "진리의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다.(요15:26). 마찬가지로 그는 보혜사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7). 그래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 모두에 의해서 보내심을 입게 되었다. 성령의 보내심은 성령께서 성자를 통해 성부의 보내심을 입는다는 의미에서 성부와 성자께로서 나오시지만, 결국 성령은 오직 성부께로만 나오시는 것이다. 즉 성부는 성령의 영원한 근원이다. 성령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발현하거나 퍼져나간다. 하나님 안에는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이는 성령의 보내심 같이 성부의 의지에 의한 움직임이 아니고 하나님의 내적인 존재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움직임이다. 성령은 성육신 후에 오시고 당신의 오심은 성부와 성자의 행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흔히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로서 기술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성령의 어떤 종속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도 영원한 신격으로서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는 성령의 영원한 독특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제7장 능력을 주시는 성령(THE ENABLING SPIRIT) 신앙 공동체안에서의 성령의 활동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목적 성취를 위해 개인의 다양한 역할에 따라 지헤와 힘을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특수한 역할과 기능 구약시대의 선민의 삶과 선교를 위해 권능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셨다. 1) 성막과 성전 설계 성막의 설계와 건축을 위해 지명된 장인 브살렐에 관하여 성경은 "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출31;3-5) 라고 하여 , 브살렐이 성령의 조명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구상하신 성막이 실재가 될 수 있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성전의 식양 역시도 하나님의 성령의 조명에 의해 다윗에게 주어졌고 , 솔로몬에 의해 완성되었다. (대하 28:12) 그리고 성막과 성전 건축 사엄의 완료에 대한 인정을 표하신 때는 구름과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과 성전에 가득하였다고 하였다. (출 40:34) (대하 5:13-14) 2) 백성의 인도 성령은 사람들에게 지도력을 부여하시는 분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을 지도하며 그들을 약속된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와, 칠십 인의 장로들과, 여호수아에게 특별한 지혜와 힘을 부여하셨다. 칠십 인 장로들을 소집할 것을 명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민 11:17) 또, 모세가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듣고 백성을 위해 또 하나의 지도자를 세워 달라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그에게 안수하고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 결과, "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순종하였더라" 고 하고 있다. 3) 재판 가나안 땅 입성 후, 하나님은 "사사(士師)"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치리하고 재판을 담당하고 적들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도록 하셨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 웃니엘, 기드온, 입다, 삼손 등에 대해서 모두 "여호와의 신이 임하셨으므로 " (삿3:10)-웃니엘-,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삿6:34) -기드온- 에서 볼수 있듯이 사사들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으로써가 아니라, 성령의 지혜와 힘을 받아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입다...삿11:29 참조 삼손...삿13:25 참조 4) 통치 사사시대 이후 왕정시대에서 사울, 다윗 왕은 모두 성령에 감동되어 전쟁과 통치를 감당하고 있다. (삼상11:6) (삼상16:13) 특히 다윗은 그의 행위의 선악 간에 지속적으로 성령의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로 남아 있었다. (삼상16:13) 다윗 이후에는 성령에 의한다기보다는 자연적 상속인에게 왕위가 계승되어 왕에대한 영적 기름부음의 보증이 없었다. 5) 예언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주어지는 예언적 말씀에 대한 언급이 많이 있다. 모세가 선택한 칠십 인의 장로들이 성막에 인도되었을 때, 여호와의 신이 그들에게 임하시자 예언이 순간적으로 터져나왔다. 진 중에있던 엘닷과 메닷에게도 신이 임하여 그들도 예언하였다.(민11:25-26) 메소포타미아인 발람에게 성령이 임하여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은(민24:2-3,9) 예언이 이스라엘신앙공동체와의 연관 속에서 행해지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외 예언이 나타났던 예는 삼상 10:5-6에서 왕으로서 기름부음받은 직후의 사울이고, 19:20 에서 다윗을 잡으려고 보낸 사신에게도 일시적으로 있었다. 예언의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고 사울은 사실상 예정된 선지자가 아니었지만 그 발언들이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으로 터져나온 발언이라는 암시는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사울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고 나온다. 다윗에게는 성령의 지속적 기름부음이 "이 날 이후로(삼상16:13)" 있었고, 이것은 예언자적 기름부음을 함축한다. (삼하23:1-2) 다윗과 함께 한 용사 아마새(대상12:18), 여호사밧왕 시대 제사장 야하시엘(대하21:14), 요아스왕 시대 제사장 스가랴(대하24:20)에게도 여호와의 신이 감동하여 선민의 앞날에 대한 축복, 격려, 질책의 예언을 하게 한다. 그외에도 미가(미3:8), 바벨론 유수기 선지자 스가랴(슥7:12) 등에 의해서도 여호와의 말씀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오신 것임을 밝히 알게해준다. 6) 능력부여 구약성경에서는 능력을 부여하는 역동적인 힘으로서의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슥4:6-7)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전 재건축은 오직 성령께서 부여하는 능력에 의해서 완수될 것임을 증명한다. 이와 유사한 예언이 학개에게도 선포된다.(학2:4-7) 다른 곳으로 들어올리시는 성령의 힘에 대한 언급도 있다. 오바댜에의해 엘리야의 승천의 기적을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왕하상18:12), 승천 후 선지자의 생도들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하나이다"(왕하2:16). 선지자 에스겔은 "주의 신이 나를 어떻게 들어올리신다"는 말을 여러번 하였다.(겔8:3,11:1,24,43:5) 실제로 에스겔은 바벨론, 하늘과 땅의 사이 어느 곳으로 들어올려졌거나, 또는 환상 속에서 갈대아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옯겨졌던 것이다. 부기: 결른적 요약 및 단평 1>장인, 사사, 선지자 또는 제사장들의 임무수행을 위해 개인능력에추가된 초자연적인 능력 2>일반적으로 그 활동이 순간적이며 일시적이었다. 성령은 누구를 사로잡을 수는 있었으나 의복처럼 누구의 항구적인 복장이 되지는 않았다. 임무를 위해, 또는 증거를 위해 임하셨고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실재하는 분이 아니었다. 단, 여기에 예외적인 인물이 다윗이며, 모세에게 임하신 성령의 기름부으심도 한시적 성격 이상의 것이었으나 영원한 능력부여라는 성경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3>신앙 곧동체(하나님의 백성)의 생활에 관계되는 활동이다. 단지 능력을 부여하는 활동만으로는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사역과 상관이 없을 수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과 이스라엘이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이처럼 성령은 이스라엘의 삶과 선교를 위해 그들에게 힘과 권능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임하였다. 2. 메시야적 사명 우리는 이제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사역( 즉 기름부은 자,메시야를 준비하는 사역)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메시야는 신.구약성경을 통털어 사역을 행하기 위하여 성령과 일치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 오실 자 이사야는 여호와의 신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의 오실 것을 선포한다. "이새의 줄기에서...한 가
Tissa Balasuriya의 위성 신학 연구
Tissa Balasuriya의 위성 신학 연구 2002-11-12 11:49:30 read : 3 지 도 변 선 환 교수 감 리 교 신 학 대 학 신 학 대 학 원 조 직 신 학 전 공 조 병 철 목 차 Ⅰ. 서 론 - - - - - - - - - - - - - - - - - - - - - - - 1 1. 문제 제기 : 위성 신학(衛星 神學)이란 무엇인가? - - - 1 2. 티사의 위성 신학의 위치와 연구 가치 - - - - - - - - 2 (1) W. C. 스미스의 세계 신학 - - - - - - - - - - - - - 3 (2) R. 파니카의 종교 신학 - - - - - - - - - - - - - - 5 (3) A. 피어리스의 해방 신학 - - - - - - - - - - - - - 7 3. 연구의 방법 및 목적 - - - - - - - - - - - - - - - - 9 Ⅱ.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 - - - - - - - - - - - - - 13 1. 아시아의 상황 : 다종교(多宗敎)와 고난 - - - - - - - 14 (1)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 - - - - - - - - - - - - 14 (2)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 - - - - - - - - - - - - 20 (3) 아시아 교회의 희망 - 해방과 정의 - - - - - - - - 26 2. 세계 체계(World System)와 제 3 세계의 현실 - - - - - 31 (1) 세계 체계의 기원과 특성 - - - - - - - - - - - - - 32 (2) 세계 경제 구조의 위기 - - - - - - - - - - - - - - 36 (3) 세계 체계과 인간해방 - - - - - - - - - - - - - 38 3.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향한 추구 - - - - - - 42 (1) 신세계 질서의 가치와 목표 - - - - - - - - - - - - 43 (2) 세계 변형을 향한 투쟁과 전략 - - - - - - - - - - - 48 (3) 신세계 질서와 인간 해방 - - - - - - - - - - - - 51 Ⅲ.위성 신학: 세계 종교 해방에로의 길 - - - - - - - - - - - 54 1. 전통 신학의 재고(再考) - - - - - - - - - - - - - - 54 2. 창조와 해방의 하느님 - - - - - - - - - - - - - - - 58 (1) 하느님과 창조 - - - - - - - - - - - - - - - - - 58 (2) 하느님과 해방 - - - - - - - - - - - - - - - - - 60 3. 우주적 그리스도와 보편적 성취 - - - - - - - - - - - - 62 (1) 예수와 하느님 나라 - - - - - - - - - - - - - - - 62 (2) 예수와 인간 해방(人間 解放) - - - - - - - - - - - 65 (3) 우주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적 실천 - - - - - - - - 68 4. 변화하는 시대의 교회론 - - - - - - - - - - - - - - - 71 (1) 교회의 근본적 전환과 선교 - - - - - - - - - - - - 71 (2) 성찬(聖餐)과 인간 해방 - - - - - - - - - - - - - - 73 (3) 교리 교육의 재검토 - - - - - - - - - - - - - - - - 76 (4) 예배의 갱신과 아시아 종교 - - - - - - - - - - - - 79 5. 정의의 영성 - - - - - - - - - - - - - - - - - - - - 82 (1) 정의의 필요성 - - - - - - - - - - - - - - - - - - 82 (2) 신학적 덕목과 사회정의의 덕목 - - - - - - - - - - 85 (3) 사회 정의(社會 正義)의 영성 - - - - - - - - - - 87 Ⅳ. 결 론 - - - - - - - - - - - - - - - - - - - - - - - - 91 1. 요약 - - - - - - - - - - - - - - - - - - - - - - - 91 2. 세계 종교 해방의 신학을 향하여 - - - - - - - - - - - 93 참고 문헌 - - - - - - - - - - - - - - - - - - - - - - - - - 96 Abstract Ⅰ. 서 론   1.문제 제기 :위성 신학이란 무엇인가 ? 위성 신학의 출발점은 급변하는 세계 정세 곧 정치- 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세계의 종교 문화적 변동에 대응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에 주어진 상황적 신학인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세계 역할은 미미하면서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가지고 시작한다.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는 비인간적이고 불의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그리스도교적 자만심에 빠져있는 현실을 볼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할을 재고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 것이다. 더우기 종교-문화적 다원 상황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배타적 그리스도교의 모습만을 유지하려는 전통적인 신학을 우리는 타파하고 새롭게 정향된 신학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세계 체계는 몇 세기전 서구 열강들에 의해 불합리하고, 불의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단편 일엽적인 지엽적 변화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체계의 변형을 위한 그 전략을 보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발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제 하나의 전체로서의 위성(衛星)인 지구는 신학하기 위한 하나의 장(a context)으로서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의 모든 질서는 서로 연관되고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기적 공동의 장으로서 하나의 위성으로서의 지구에 관심하는 신학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위성 신학은 21세기를 위한 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갈 것이다. W.스미스에 의하면 새로운 세계 공동체는 '서로 빈틈없이 협력하고 살아가는 다문화(多文化) 적인 가치들과 종교적인 다원성(多元性)의 모습을 띤 세계'라고 말한 것과 같이 오늘의 신학은 이러한 세계적 지평을 가져야 할 것이다. 2. 티사의 위성 신학의 위치와 연구 가치 현대 신학의 중요한 동기는 전통적 신학과 같이 지엽적인 것이 되어져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는 세계의 현실이 하나의 지구촌으로서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선진 공업국은 후진 자원국과의 관계에서 발전되었으며 서구는 제 3 세계에 막대한 빚 -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은 평화, 인권, 정의, 국제적 갈등의 해결, 나아가서 식량과 고용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찬란한 위성적 상호 의존의 세계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또한 전세계에 일어나는 빈번한 전쟁, 테러, 분쟁, 지역 감정 등은 종교적, 문화적 현실의 다원적 추구를 배타적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원적 종교 신학에 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적인 무역 역조, 빈곤, 기아 등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지역 엘리트의 비인간적인 이기주의는 끝없이 정치-경제적 해방을 추구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특히 아시아에서의 지역 갈등은 냉전 시대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결과로 빚어졌으며, 이 지역의 민중을 끝없는 해방 투쟁에 밀어 넣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변화 되었고 공산주의는 패배하였다. 이를 기회로 미국은 제국주의적 근성을 드러내어 신패권주의(新覇權主義)로 부상하기 시작하였으며, 독일과 일본과 같은 양차대전 패전국들은 지역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시아에서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화는 점차 강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위성 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불의한 현실 앞에 놓인 신식민주의(新植民主義)에 대응하는 신 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위성 신학이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위성 신학과 연계해서 위성 신학의 가치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세 신학자의 신학 - 스미스의 세계 신학, 파니카의 종교 신학, 그리고 피어리스의 해방 신학 - 을 간단히 다루고 위성 신학의 연구 가치를 제시할 것 이다. (1) W. C. 스미스의 세계 신학 W. 스미스는 국제적인 상호 관련성 가운데 있는 세계 공동체를 지향하는 다문화적(多文化的) 차원을 긍정하면서 냉소적인 그리고 비(非)건설적이며 파괴적인 상대주의를 넘어서서 현실에 대한 이해를 촉구한다. 이는 우리가 신앙의 다양성에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신을 섬긴다는 원초적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스미스가 제시하는 비교종교학적 세계이해이다. 스미스에게서 우리가 수용해야할 새로운 개념은 바로 '협동적-비판적 자의식(Corporate critical self- consciousness)이다. 이는 하나의 주체 대 주체의 관계성을 유일한 상태로 인식함으로서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초월하려는 의도적 방법이다. 휴즈(E. Hughes)는 이를 '객관주의와 주관주의에서 참된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 방식은 신학에 협동적- 비판적 자의식을 통해 타자를 하나의 주체로써 받아들임으로서 배타적이고 편파적인 비인격적 의식을 탈피하고 세계적이고 인격적인 의식으로 전환하게 되는 것이다. 타문화, 타종교에 관한 풍부한 지식이 서구에 알려지고 서구 신학은 타종교의 통찰을 자신들의 사고 속으로 통전 시키도록 도전 받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교 신학은 자신만이 참 실재와 진리에 이르는 길을 소유한다는 독선주의적 신학을 포기하고 더 큰 진리에 대한 다원주의적 비젼을 수긍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일은 신학에 있어서 지식적인 의무일 뿐만 아니라 목회적인 필연(Pastoral Necessity)이 되었다. 바로 세계 신학은 종교 참여자들이 협동적 비판적 자의식을 통해 종교적 진리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확장하는 과정이며, 이런 과정은 특정 종교의 통전적 사상을 필연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바로 스미스는 이러한 대화의 방식을 통해 종교학적 만남을 제시한다. 그러나 기독론에 있어서 스미스의 비판은 그리스도교 절대주의에서의 중심적 지주로서 기능한다고 보면서 신중심적인 정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로고스(Logos)의 인간적 현실화(actualization)로서 이해되어진 나사렛 예수와 보편적 계시와 구원행위 속에서 하느님으로 이해되어진 로고스 사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선교에 있어서 개종보다는 각 전통의 신학자들이 세계의식 안에서 자신들의 진리나 초월 이해를 설명하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발생하기를 스미스는 희망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스미스의 세계 신학은 축소주의적 계시 이해, 기독론의 불명확성, 구원 혹은 해방에 관한 의견이나 실천적 방향이 결여되고 단순히 비교종교학적인 면에서 종교의 문화적 대화에 치중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2) R. 파니카의 종교 신학 파니카의 종교 신학은 다원주의적 종교 상황을 긍정하면서 그가 속한 힌두 전통 안에서 그리스도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토착화신학이다. 카 릭 어머니와 힌두교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그는 두종교 사이의 종교적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파니카에 의하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다른 한편으로는 힌두교의 교리가 보편적이라고 주장하는 진리는 흔히 완고하지는 않지만 특수하고 제한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실제에 있어서 그것들은 보다 보편적인 진리가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제한된 공식화"라고 보면서 이는 대화를 통해 하나의 종교적 진리가 두 전통에서 각각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서술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파니카는 이러한 다원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변증법적 대화(Dialectical Dialogue)를 거부하고 대화적 대화(Dialogical Dialo- gue)를 사용한다. 대대적 대화는 특정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절대화 하기를 거부한다. 이 대화는 제 종교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공히 실재적 요소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결국 대화적 대화는 제 종교들은 그 보편성과 특수성 모두가 동시에 긍정되면서 상호 만남과 성장이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파니카의 기독론은 그리스도 이해에서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 길을 걸을 때 유일한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전체로서 신비의 한 양상일 뿐(Christ is but one aspect of the Mystery as a whole)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인간, 신성, 그리고 물질을 성장케하는 실재의 중심(centre of reality)이며 결정체점(cyristallization-point)이다. 그리스도는 라마, 크리슈나 이쉬바라와 같은 또 다른 이름이며, 인간, 신성 그리고 우주와 같은 실재의 전체성에 대한 생생한 상징(a living symbol for the totality of reality: human,divine and cosmos)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영, 진리, 사랑, 정의와 같은 중성적인 상징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재인 것이다. 파니카는 기능론적으로 그리스도는 타종교의 구세주와 일치된다고 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구원의 의지 자체이며 예수는 그 구체적 표현이지만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파니카는 역사적 이름이나 형태는그리스도의 완전한 혹은 최종적 표현이 되어질 수 없다고 진술한다. 바로 대화적 대화는 그리스도가 나사렛 예수와 불가분의 연결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고 봄으로서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그는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중심적 확신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타종교와의 대화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다. 카워드에 의하면 파니카는 현대의 그리스도는 역동적으로 현존하며,성령으로서 우리를 이끈다고 본다. 성령으로서의 아들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배타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과 자신의 교회, 자신의 종교를 뛰어넘게 하여, 신비에 대한 범세계적인 경험을 인정하고 참여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파니카는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한 참된 경험은 인간과 우주적 코이노니아(Koininia)"에 있다고 보았다. (3) 피어리스의 해방신학 오늘날 제 3 세계란 피어리스에 의하면 "인종과 계급과 성(性)의 차원에서 사회-경제적 의존이 정치적이고 문화적 예속을 발생시킨다면, 그 곳이 어디든지 또 그 때가 언제든지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를 말한다. 이러한 제 3세계에서는 해방을 필요로 한다.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현재 비그리스도교 종교와 문화의 고유어들을 이용해서 자기네 궁극의 염원을 파악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을 상징화 하고 있다. 이러한 해방의 투쟁에 그리스도교적 종교 신학은 다른 종교들과 문화들의 해방하는 물결 속으로 들어감에 있어서 현재의 전통적 경계선을 확장 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피어리스는 주장한다. 피어리스에 의하면 모든 종교에 공통된 것은 구원 사상이며 모든 종교의 관심사가 해방 혹은 열반(nirvana)이며, 가정적인 어떤 해방자에 대한 사변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현재의 종교 신학들이 한결같이 자신이 소속된 종교의 경전의 언어적 해석이나 개인의 자기정화라는 소승적(小乘的)인 사회-문화적 혁명에만 관심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면서, 종교의 대승적(大乘的) 차원 곧 사회적- 정치적 차원의 구조적 혁명이라는 대의(大義)에 관심한다. 그리하여 그는 제 3세계의 종교 신학이라면 마땅히 종교와 혁명을 단일하게 파악하는 신학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질문한다. 또한 해방 신학은 교회의 관심을 ① 삶의 전례 (the Liturgy of Life)와 ②십자가의 신학, 그리고 ③ 역사적 예수와 그의 인간성에 두고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교의 영성의 세차원인 성사적 차원, 관상적 차원, 행동적 차원을 통해 세계 변혁을 위해 투신하는 그리스도교적 투신이 형성되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전례와 영성과 세속 활동들이 상호 포괄되고 그것이 교회의 참된 쇄신을 가져오는 것이 실천적 해방신학이라고 보았다. 아시아의 해방 신학은 아시아의 실재인 종교심과 가난의 상호 작용에 관심하며,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 그들을 가난하게 붙들어 묶는 심리-정신적 자유, 사회-정치적 자유라는 것이 아시아 신학의 본질적인 관심사가 된다. 이 한 해방의 과정은 예수 생애의 두 중심인 요르단과 갈보리에 집중된다. 해방의 과정으로서의 예수 생애는 요르단 강의 수세를 통해 전통에서의 해방을 위한 결단을 보여준다. 요르단은 '세계 - 포기(出世間)'의 영성이며 이는 자발적 가난과 야훼의 가난한 사람들의 합류점이다. 이는 곧 아시아의 수행(修行) 종교의 초우주적인 영성과 소박한 농민들의 우주적 종교심이 만나는 장인 것이다. 오직의 교회 역시 이러한 아시아의 요르단에서 예수와 같이 수세를 받아야 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예수의 갈보리에서의 죽음의 세례는 그의 예언자적 사명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워 전적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해 가난한 사람들 만이 할 수 있는 해방의 역할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야말로 성사(聖事)라고 일컫는 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하게 참된 세례이며, 십자가야말로 진정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종교심과 경건한 아시아인들의 가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아시아의 물길에 교회가 뛰어들어야 모든 것을 나누는 이상적인 공동체, '종교적 사회주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피어리스의 소승불교의 금욕적 차원에서 나타난 그의 해방 신학은 종교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에 대해 애매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비체험과 아시아의 고난받는 백성의 해방이라는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변선환 교수는 비판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 이와같은 세계적인 관점의, 종교신학적 사유를 가진, 민중의 참된 해방에 동참할 수 있는 신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소유한 것이 바로 티사 발라수리야의 위성신학(Planetory Theology)이다. 발라수리야의 위성 신학은 신학의 관점을 지구라는 위성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서 그리스도교 신학의 새 지평을 열어주며, 아시아의 종교심과 자본주의의 세력에 의해 착취당하고 압박받는 민중의 해방을 추구하는 신학인 것이다. 3. 연구의 방법 및 목적 위성 신학은 신학의 근거로서 세계의 체계(World system)에 관심한다. 그리고 이 세계 내의 열악한 상황 속에 구체적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가운데서 해방을 촉구한다. 2부에서는 아시아의 상황을 다종교(多宗敎)와 고난(苦難)이라는 관점에서 평가할 것이다. 아시아의 종교 문화적 상황은 다원주의적이며, 이전의 배타적인 종교심으로서는 아시아에서 타종교로부터 배타적인 태도를 당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배타적인 종교심을 넘어서 다원주의적인 상황을 인식하고 세계 체계 속에 있는 아시아의 한계를 서구 문화에의 대립을 넘어 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는 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위성인 지구 공동체 안에서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서 모든 질서와 환경이 발생한다는 것을 재고 하는 것이다. 또한 아시아는 고난 받는 지구의 일부이며, 그리스도교를 비롯해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 자이나교 등 종교의 집단적 다원 구조를 가진 곳이다. 또한 이곳은 과거에 서구 식민지로서의 정치.경제의 침략지로서 초토화되었던 '땅의 백성들'의 거주지이며, 이제는 새롭게 아시아 교회의 희망을 요구하는 변혁의 땅이다. 한국의 6.10 운동과 필리핀 민중의 2월 혁명을 통해 정치적 승리로 변화하는 정치적 민중 승리의 터전이다. 곧 아시아 민중의 희망과 교회의 희망은 정의이며, 새 하늘과 새땅이다. 위성 신학은 세계 체계를 살펴봄으로서 그 문제점을 파악한다. 즉 인간의 집단적 그리고 개인적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종교적, 정치-계급적, 인종적 그리고 성적(性的) 구분에 따른 불평등에 대하여 위성 신학은 해방의 영성으로 도전한다. 바로 이 해방의 영성은 정의의 영성(Spirituality of Justics)이며, 해방의 정치 윤리이다. 이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종교적 변형을 추구한다. 또한 생명의 해방과 만유(萬有)의 회복을 향해 세계는 혁신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3부에서는 위성 신학의 개념을 다룬다. 위성 신학은 곧 세계 종교 해방에로의 길이다. 이제 까지의 교회중심적이고 남성 위주의,시대-우월적인, 그리고 전기-자본주의적이며, 반공적이고, 반혁명적인 신학은 재고되어야 한다. 이제 동서의 대립은 동유럽의 몰락과 소련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상호 배타적인 대결 구조에서 벗어나 평화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없다. 이제는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만이 존재한다. 여기에 신학은 해방적이며 상황적일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창조와 제 2의 창조로서의 해방의 하나님으로, 인류와 더불어 새로운 해방을 추구하도록 권면하고 용기를 주시는 분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지평을 우리에게 희망을 통해 보여주신다. 우주적 그리스도(Universal Christ)는 전세계와 인간 역사의 혁명 안에서 더 나은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은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며, 다른 종교 전통과 사상에 진정한 대화를 하도록 개방시킨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편적 인간 연대의 원리를 발견한다. 예수는 인간 해방의 원리이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 교회는 말씀과 예전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함으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시대의 현실에 응답하여야 한다. 교회는 위성 시대(衛星 時代)에 있어서 과거로 부터 물려받은 조직적인 구조와 다른 잔존하는 것들이 현대에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하고 통전적 회심을 통해 모든 것을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지구적 상호교통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진정한 사랑이 교회의 결합 원리이며, 교회 내에서의 여성해방에 관심한다. 신앙은 정의의 영성을 통해서 나타나야 하는데 성서는 진정한 종교의 기초를 이웃에 대해 정의로운 것, 즉 사회 정의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통전적 해방을 선포했다. 그는 최후 심판 비유에서 인간의 고난을 경감시키고 압박 받는 자의 해방을 위한 노력을 계수하신다고 가르쳤다. 예수의 삶은 압박받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한 삶으로서 그들의 통전적 해방을 위해 그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세계의 모든 물질을 정의롭게 사용해야 하며,인간 존재의 관계에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을 가르친다.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희망은 잃었던 신학적 덕목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다. 사랑은 바로 정의의 성장이며, 정의는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해석하며, 혁명적 변화에 참여함으로서 상황적이며 급진적이어야 한다. 결론에서는 이제까지의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이해와 세계종교해방에로의 길인 위성 신학을 요약하고 세계 종교-해방 신학의 가능성을 타진함으로서 본 논문을 마칠 것이다. 이러한 추구는 세계 신학과 종교 신학 그리고 해방신학의 관점을 통합하고 재창조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것이다. 이는 한국적 신학에 기여하기 위한 새로운 토착화 작업의 하나가 될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성 신학은 현대 후기의 신학(Post-modern Theology)으로서 통전적 가능성을 제시하며, 이는 한국에서의 종교 신학과 민중신학을 통합하는 새로운 세계종교-해방신학(世界宗敎-解放神學;World religio- liberation theology)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Ⅱ.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의 세계 2부에서는 위성 신학의 근거로서 세계에 대한 현실적 이해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세계체계에 대한 파악이며, 그 체계의 현실에 대한 재고(rethink)만이 참된 해방의 길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는 제 3 세계의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약 13%를 차지하고 있다. 티사의 위성 신학은 아시아에 우선적으로 관심한다. 물론 그의 위성 신학에서는 세계 체계(World System)에 대해 먼저 다루고 있지만, 아시아의 위기가 곧 세계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시아의 현실은 다종교(多宗敎)와 고난의 차원에서 이해되는데 이는 아시아가 세계 열강의 식민지적 착취에 이용당해 왔으며, 여기에서 해방하려는 추구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세계의 체계와 신세계 질서의 관련성을 다루게 되는데 여기에서는 아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제 3세계와 관련해서 검토함으로서 신세계 질서에 대한 요청을 인식하도록 할것이다. 또한 아시아의 교회와 세계 체계와의 관련성을 파악함으로서 신세계 질서의 필요성을 밝힐 것이다. 바로 위성 신학이 관심하는 근거로서의 세계는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구로서의 위성(衛星)이란 상호 연관성 아래 놓였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1. 아시아의 상황 : 다종교(多宗敎)와 고난 (1)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 티사는 아시아의 문화들과 종교들에 대한 이해는 세계 체계와 관련하여 비판적으로 설명한다. 아시아의 세계에 대한 연관성은 식민지적 접촉과 무역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 민중들에게 서구의 과학과 문화로 인해 정체성을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우월성과 결합한 서구 과학은 인간의 신성함이나 사회적이거나 자연적인 것에 대해 파괴적인 역할을 하였고 서구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는 서구 과학에 영감을 주기에 실패하였다. 그러나 아시아 문화와 종교는 서구 자본주의의 것과는 아주 다른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 티사에 의하면 아시아는 아직도 농촌중심적-땅중심적이고, 전통적인 가족관계 즉 대가족(大家族) 제도나 공동체 의식 그리고 경로 사상(敬老 思想)을 가지며, 삶에 있어서의 가치의 비중을 물질에 두기 보다는 인간에게 두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적(大乘的)인 태도는 자연과 모든 생명 형태를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종교적 신앙과 실천들을 포함한 타인의 관점에 대해 중용(中庸)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전통에서와 불교에서 '관용의 중도(the Middle path of tolerance)'라는 사상에서 잘 발견된다. 아시아에는 다종교(多宗敎)의 상황 가운데 대부분의 아시아 민중들은 아시아의 종교를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 신앙은 아시아 종교의 지적 총합에 앞서 아시아 민중의 내면에는 정령 신앙(animism)과 제례(祭禮)가 중요시 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아시아 사회의 토대이다. 아시아의 종교성은 단지 철학적 훈련이나 명상적 금욕주의가 아니라, 전통들과 신조들, 관습과 삶에의 외경, 희망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아시아 민중의 이야기 속에서 짜여져 있다. 종교는 인간 존재들에게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생활을 자극하는 세계-침투 세력이다. 종교들은 그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응답을 추구한다. 그러나 각각의 다른 응답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좀 더 나은 방식에로 인간적 삶을 추구하고 인식시키는 것에 모두를 참여시키는 것이다. 각 종교 전통은 그것이 뿌리박고 생활하는 사회에서 특별한 관계성을 가지며 사회 세력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평화로운 실존과 외적 성장이 계속되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 그룹에 의해 조직된다. 티사는 종교적 전통과 조직화에서 두가지 요소를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그 혁신적 메세지의 핵심이며, 둘째는 그 사회-문화적 상황(狀況)이다. 전자는 기본적 삶의 의도와 영원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종교의 조직화와 외적 양상을 평가를 위한 하나의 비판이 되어져야 한다. 후자는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종교는 그 신앙의 내용이나 질(質)보다는 사실상의 인간 집단화에 더 관계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은 핵심 메세지에 대한 응답이며, 한 종교 전통의 전(全)사회-문화적 상황을 수용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문화적인 상황 속에서 '종교주의'의 등장은 인종 차별주의나 계급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와 같이 극단의 한 형태로써 배격해야할 것으로 티사는 간주한다. 이러한 종교주의는 우월한 문화, 사상 혹은 인종적 집단에 묶여있는 종교라면 더욱 강하다. 즉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우월성 또한 종교적 영역에로 전이(轉移)되기도 한다. 이러한 종교주의는 다종교(多宗敎) 가운데서 관용과 대화 그리고 일치운동(ecumenism)의 현대 정신에 확실히 위배되는 것이다. 종교주의는 또다른 종교 신자에 대한 존경심과 하느님에 대한 외경을 저버리는 것이다. 종교가 종교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화가 필요하며, 타자에 대한 겸손과 봉사의 덕을 수행하며, 존경과 대화의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그 자신의 독점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시아의 종교는 아시아의 방식대로 전파되었다. 즉 인도의 종교로서의 힌두교와 불교는 동쪽과 남향으로 전파되었으나 그리스도교와 같이 폭력적이거나 상업적인 것이 배제된, 문화적이며, 비폭력적이고, 공존적인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아 아는 고대로부터 인생의 의미와 세계 이해와 신적인 교제를 추구했다. 티사는 그러한 종교를 힌두교와 불교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유교, 자연에 대한 무제약적 경험에 대한 일본인의 표상인 신도(神道), 명상 수련을 통해 정신 반성과 실재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선불교(ZEN),그리고 코란에 의해 사회-정치 공동체를 추구하는 이슬람을 포함 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아시아인의 기억 속에 서구 세력이나 상업적인 동맹 세력의 압제하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아시아 민중은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며 먼저 그리스도인은 진실로 존경하는 태도로 다른 종교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는 곧 관계성의 개방(Openness of Relationships)을 요구한다. 우 는 우리 자신을 타자에게 개방하고 진정한 인간성을 배워야 한다. 이는 모든 인격과 민중을 돌보시는 하느님을 그리스도교의 독점물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이며, 하느님이 그들의 영적 성장과 성취를 위한 수단 없이(without the means) 아시아의 민중을 버려두지 않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구원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이 취해야 할 것에 대해 질문되어져야 한다. 왜 아시아인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지 않고 그들의 종교에서 영감을 계속 받고 있는가? 그리스도교로서의 응답은 새로운 질문을 일으킨다. 그리스도의 메세지가 아시아와 아시아 민중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깊은 변화를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의 복음의 핵심에 대한 재전환(reconversion)을 의미한다. 아시아 종교와의 충실한 대화는 그리스도교 계시가 하느님의 유일하고, 특권적이며, 궁극적 계시라는 관점에서 시작한다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티사는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신학에 대한 재고를 심각하게 질문한다. "역사적 인물인 예수를 신약성서의 우주적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관시킬것인가? 힌두교에서 예배하는 하느님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하느님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상호 의존적인 지구 공동체의 일치와 다종교(多宗敎)안에서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관점에서 모든 종교의 일치를 향하여( an ecumenism of all religions) 하나의 공동적 영성의 핵심을 만들어 나아갈 수 없을까? 그리스도교는 그의 메세지가 이러한 영적핵심을 유지하면서 정화되어질 수 있는가?" 동시에 그는 위의 종교 신학적 질문외에 해방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와 다른 아시아 종교들이 아시아 민중의 통전적 해방(the integral liberation of Asian people)에 대한 공헌을 요구한다. 즉 그는 아시아의 종교들이 그의 한계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의미와 사회적 해방을 위한 아시아 공동체의 추구에 동기 부여와 세력의 근거가 되어져 왔다고 평가한다. 이는 인도에서는 힌두교, 중동에서는 이슬람교, 그리고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그 자신의 개성과 독립을 위하여 동기부여를 해 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3.1운동은 다종교(多宗敎)의 연대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며, 필리핀의 2월 혁명은 그리스도교 세력과 사회주의적 민중의 승리라고 볼수 있다. 티 는 과연 "그리스도교는 가난과 죽음에 대항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요청과 다른 종교들이 아시아 민중의 해방투쟁에 동참하도록 하기위해 갱신될 수 있는가?"하고 질문한다. 특히 여성해방의 심각한 문제는 아시아 여성이 이제까지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티사는 아시아의 전통적 양상에 여성들과 모성에 대한 확실한 존경이 있었다 할지라도 여성을 불공평하게 취급해왔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남성에 의존되어 왔으며, 노동, 임금에 대해서도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왔다. 또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생활에 적잖은 제한이 있어왔다. 이러한 상황은 일부 도시지역과 교육받은 여성 가운데서 변화되기 시작했으나, 이러한 차별대우의 원인은 심리적으로 깊게 자리잡은 남성 우월 의식과 여성의 의존성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종교들은 여성의 권리들을 일반적으로 강조해 왔다. 아시아 사회에 널리퍼진 여성에 대한 차별 대우는 종교적 가르침과, 관습들 그리고 성성(聖性:sanction)들에 의해 보호되었다. 아시아에서의 완전한 여성 해방은 아시아 여성들이 스스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용납되어지고, 용납할 때까지는 아직도 먼길이며 많은 투쟁들이 남아있다. 또한 아시아에서의 인종 차별과 소수 민족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계급제도는 모든 아시아 나라에서 - 특히 서아시아에서의 아랍과 이슬라엘의 갈등과 대만에서의 인종 차별에서도 볼수 있는 명백한 현실이다. 아시아 전체에서 인종에 대한 정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식민 통치에 의해 소수 민족의 권리는 짓밟혔고, 모든 민중은 가장자리로 쫏겨나고, 제 2 계급의 시민으로 전락되었다. 말레이지아와 인도네시아의 국경은 식민 통치자에 의해 선을 그어 제멋대로 나누어 졌다. 또한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많은 개혁에도 불구하고 낮은 카스트에 속한 민중들은 대부분 땅없는 노동자로 구조적 규정, 사회주의적 생활 방식의 채택, 가난 근절에 대한 정당의 서약에도 불구하고 계속 착취되어 왔다. 아시아의 이러한 종교-문화적 상황은 다종교(多宗敎) 안에서의 끝없는 갈등으로 존재하였고, 문화전반에 걸쳐 해방을 향한 희망에로 그 촛점이 맞추어 나가게 되었다. 아시아는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하나의 희망을 추구한다. 이는 종교 해방이며, 민중과 모든 존재의 해방이다. (2)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은 또한 아시아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아시아의 정치적 현실은 결국 경제적 현실로 연관된다. 이는 서구 식민 통치의 결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티사는 제 3 세계가 제 1 세계의 기호에 어울리게 세계 체계를 형성하도록 그 번영의 대금을 오랫동안 치뤄왔음을 상기시킨다. 제 3 세계 민중들은 개발되거나 선진 제국들을 위해 미가공된 물질과 값싼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제공하는 것이 엄청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점차 알기 시작했다. 지난 400여년간 아시아는 무자비한 서구의 착취적인 체계의 원조하에 있었으나 아시아는 깨어나기 시작했고, 21세기의 아시아는 세계 사회에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의 신흥공업 국가의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점차 무역 개방을 시도하여 아시아의 빈곤에서 벗어 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는 전세계 인구의 6할인 29억 4,100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절대 다수가 절대적 내지 상대적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이제 아시아 민중들은 그들 자신의 정치-경제적 해방을 위해 세계 체계를 움직이고자 했다.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이러한 해방을 추구하였다. 일본은 서구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서 서구 우월주의에 참여하였고 그들은 세계의 대기업과 자신의 중소기업을 결합시켜 육성하였고, 그 사업에 인간 보호라는 일본의 문화 가치를 결합시켜 노사 관계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일본의 기업은 아시아의 여러나라에 대한 착취를 통해 성장시켰다. 이러한 성공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모델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티사는 비판한다. 이는 다른 나라에 대한 아주 무자비한 착취에 의존하고, 독재적인 정부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약 40%를 차지하고 아시아 인구의 약 20%를 가지고 있는 구 소련(舊 蘇聯)은 시베리야의 자체 개발이 불가능함에 따라 그의 사회주의 사상에도 불구하고 서구와 일본 그리고 미국 자본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 구소련의 해체에 따라 새로운 민족주의적 국가들이 탄생하였고, 러시아 연방은 자본주의에로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 했다. 그들의 경제 불황과 부족한 식량 문제, 외화 부족 그리고 핵과학자들의 외부 유출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의 모택동의 통치하에 문화혁명도 시대적 조류에 함께 흐르게 되었고 천안문 사태에도 불구하고 삼자(三自)정책의 기치아래 그들의 경제 발전을 온건 보수파인 등소평에 의해 계속 추진되고 있다. 모든 것은 혁명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교육도 혁명 과정의 도구였으며, 문화와 예술도 민중과 혁명에의 봉사를 위한 것이 되었다. 중국 역시 사회적 민주화는 되지 않았지만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의 참여를 허용한다. 중국의 대외정책은 국제 정의의 추구와는 달리 국수주의적 경향이 강하다. 최근 중국 정치는 대만정부에 대해 유화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대만정부 역시 그들의 삼불(三不) 정책을 철회하였다. 한국과 베트남은 아직도 이데올로기 갈등하에 있었으나 최근의 남북합의서 채택과 베트남의 개방정책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동참하고 있다.세계는 세계의 정의 보다 국가적 관심을 더 추구하고, 정당들은 정권에 대한 개인적 욕망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다. 서남 아시아와 중동의 산유국들은 그들의 기름 가격 조정을 통해 자원의 무기화하고 있어서 부유한 나라나 비산유국인 가난한 나라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도 하였으며,그들은 기름의 판매 수익을 경제 발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중동은 최근의 이라크 전쟁으로 계속 긴장 상태에 놓여 있고,미국의 리비아 제재는 새로운 종교 전쟁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바로 세계의 문제는 이 지역에서의 화해라고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터전을 위한 투쟁, 종교적-인종적 갈등, 이슬람의 군비 강화, 자유와 참여를 위한 일반적 투쟁들, 외국 군대 주둔, 여성해방, 사막 환경에의 대처 등 모든 주제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다가오는 수십년간의 위성적 경제, 정치, 군사, 문화, 종교의 새로운 중심으로 만들고 있다. 동남 아시아의 국가들은 개발에 대하여 전기-서구자본주의 노선(pro- Western capitalist lines of developement)을 따르는 정부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들 나라의 특징들을 티사는 12가지로 다루고 있다. 이 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우선적인 경제 성장 추구, 사회 정의와 부(富)와 수입의 공정한 분배를 이차적으로 다루는 것, 외자의 투자 환영, 무역에의 고무, 노동 환경의 취약, 도시 중심의 발전, 정부나 기업에 의한 방송 매체의 통제, 정부의 권력 강화 등이다. 또한 서 아시아는 인도 문명권 하에 있는 나라들로 인도와 스리랑카를 들수 있는데, 이들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선거(general election)를 통해 정부를 바꾸는 민주적 정부 조직을 보류하고 있다. 이런지역은 외자 도입과 지역 엘리트들의 협동에 의해 자본주의적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또한 서 아시아는 주요 종교 전통의 터전- 힌두교, 이슬람교,불교-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또한 다양한 가치를 가진 사회 정의와 정치적 자유, 그리고 종교적으로 정향된 문화와 경제 성장을 위한 가치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시아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는 또한 엘리트층과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도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치적 엘리트들은 부(富),사회적 위신, 정치세력, 문화적 추구, 군사 세력과 종교적 특권, 세습적 지위 같은 것들의 다양한 발전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적 엘리트들은 부유하지 않지만 민중에게 사상을 주입함으로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중국 정부 차원의 경제 계획은 일반적으로 엘리트들의 손에 의해 다루어진다. 여기에 사업 엘리트는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서로 공존한다. 이러한 통치 세력으로서의 이기적 엘리트들은 아시아 제국들에 있어서 사회적 정의의 실현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된다. 이와 달리 문화적 엘리트들과 급진주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들은 국가 생활의 변화를 촉구하며 그 필요성을 인식한다. 종교 지도자의 일부는 세계 종교의 평등주의적 사신( the egalitarian message of the world religions)에 더 심각하게 반응하고 있다. 아시아 엘리트의 비극은 그들의 압제자나 매국노가 되는 것 대신에 대중의 해방자가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들에게 수많은 희생이 요구된다.그들은 민중의 급격한 발전을 위해 요구되는 능력은 있으나 그 변화를 이행할 인간성과 정치적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 엘리트의 역할에 대한 이해는 가난한 나라 안에서의 정의와 세계 차원에서 그의 시도를 위해서 극히 중요하다. 다국적 기업(Multi National Corperation)의 문제는 동남 아시아에서 중요한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다국적 기업들은 그들의 물건 판매와 값싼 원자재 구입, 그리고 생산고를 위한 토지 구입을 통해 아시아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아시아의 지역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데 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다국적 기업으로 네슬레, 코카 콜라, 펩시, 맥스웰, 존슨즈, 코닥, 필립스, 소니, 미쯔비시, 산요, 외국 비행사들, 호텔체인 ,그리고 외국계 은행등 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국제 경제 질서에로 세계의 가난한 나라를 통합시켰다. 티사에 의하면 다국적 기업의 다음의 주장들을 부정하고 있다. 즉다국적 기업은 그들이 가난한 나라의 원자재를 사용하고, 자본을 투입하였고, 고용을 창조함으로서 가난한 나라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경우 그 지역의 원자재를 이용하여 음료수를 만들지 아니함으로서 수입에 의존하게 되고, 자본의 투자금보다 이윤의 반송이 더욱커지고 있으며, 숙련된 기술자를 훈련시키지 않음으로 단순 노동직으로 착취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그들의 축적된 기술 이전의 거부로 인해 그 기술은 낙후되었고 자본은 그나라 밖으로 유출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아시아국가는 대기업의 상품을 팔아줌으로서 그들을 돕고 가난한 나라의 값싼 노동력은 기업주의 착취에 의해 심각해지고, 그들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다국적 기업은 개발 도상국의 저임금, 노조의 통제, 사회보장비 면제, 적은 사회 간접자본 투자및 세율 인하의 혜택을 누린다. 아시아 민중의 희망은 무엇인가? 이는 우리에게 놓여진 역사적 현실이며, 이에 응답할 책임을 우리는 부여 받고 있다. 교회는 아시아 민중의 종교심(宗敎心)과 고난 -정치적 고통 혹은 경제적 가난-에 동참하여 해방과 정의를 창출해야 할것이다. (3) 아시아 민중의 희망 - 해방과 정의 티사에 의하면 인도와 스리랑카에 있어서 사회-경제적 정의(socio- economic Justice)와 종교-문화적 대화 (Religio-cultural Dialogue)는 해방에 대한 하나의 통전적 접근(a integral approach to liberation)을 위한 추구에서 만나게 된다. 이러한 경제 정의와 종교 상호간의 대화는 아시아의 해방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의 정립에 까지 연관되는 것이다. 아시아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모든 것은 상호 연관된다. 바로 위성 신학(衛星 神學)은 이러한 세계의 현실에서 고통받는 아시아에 관심하는 것이다. 가난은 아시아의 사회-경제적 여건에서 그치지 않는 정치적 현실이다. 이러한 아시아의 현실은 고난이다. 고난받는 민중은 민중 자신과 세계가 해방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어떤 상징이나 이념, 표현들이 그들을 이끌거나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외부로부터 얻어질수 없으며, 억압받는 민중 가운데서 태어나야 한다. 즉 그 해방에는 종교적 자각과 자기 이해의 변혁이 일어나야만 한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상황과 정치-경제적 현실은 간단히 다종교(religions)와 고난(suffering)으로 이해되어 진다. 아시아에서의 신학은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간의 상호 대화없이는 불가능하며 이러한 대화를 통한 접근이 아시아적이기 때문이다. 또 아시아 민중의 현실이 고난으로 집중되는 것은 불교적 요소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생활 양식에 오랫동안 삼투되어져 왔기 때문이며 바로 고난의 문제가 인간 운명에 대한 질문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Ywangoe는 인간 운명과 관계지어 고난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종교가 고난에 대해 양면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는 종교가 고난에서 해방되는 길을 보존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종교가 민중을 고난에로 영원히 묶어두는 것이다. 아직도 빈곤, 불의 그리고 착취 가운데 있는 아시아 민중은 아시아 종교의 영성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조장된 생활, 정치 제도, 사회적 인습, 그리고 문화적 관례에 대하여 새로운 인간 실존의 기초를 세우고자 대항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송천성의 말대로 그리스도교 영성과 아시아의 영성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빛으로 실존의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게 하며,그것들로부터 창출된 새로운 영성이 새로운 인간 공동체의 기초가 될수 있는가 질문해야 할 것이다. 티사의 통전적 해방에로의 접근은 M.M. 토마스의 사상과 만날수 밖에 없다. 그 "아시아인의 투쟁과 그리스도교인의 행동"에서 미래의 방향에 대한 전망을 다음과 같이 상정하고 있다. 1)아시아인의 투쟁은 아시아적 삶의 모든 영역 - 정치, 국가의 형태, 경제-사회적 구조 문화적 가치와 개인과 단체 사이에 연관된 영성 - 의 전환을 의미한다. 2)분명한 논점은 가나하고, 눌린자 들을 후원하여 보다 나은 근대화와 결단 행위 과정과 권력의 실천에 있어서 현재 권력 구조의 변형을 위한 투쟁이다. 3)아시아 교회는 통전적 인본주의 이념과 에토스를 향해서 일해야 하고 타종교인들과 접촉하는 그리스도를 위한 공동의 틀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4)지역 상황 속에서 정의를 위한 민중의 투쟁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다. 5우리는 국제적 , 정치적, 경제 구조와 그들의 억압자들에 대한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가난에 저항하는 아시아 민중의 투쟁과 관련된 그리스도교의 행동 전략을 인식해야 한다. 6)아시아 민중의 투쟁과 관련해서 교회와 회중의 정신과 구조가 갱신되어야 한다. 이는 이웃 공동체를 위한 연대성과 책임을 위해서이다. 7)교회는 평신도와 여성 청년들을 영적으로 훈련시키고, 교육하여 세속적으로 아시아인의 투쟁에 응답해야 한다. 이제 아시아인은 각성하고 있으며, 그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아시아를 비롯한 제 3세계의 신학은 제 1세계의 교회와 신학이 잘못된 세계체계의 변혁에 동참하라는 호소이며, 신학 전체의 새로운 역사적 계기이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인은 폭팔적인 인구증가, 기아, 삶과 자유에의 요구, 다종교(多宗敎)와 다문화(多文化) 그리고 많은 이데올로기의 다원성, 인종차별,카스트 제도, 계급주의, 신식민주의, 자연 파괴라는 복잡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바로 그리스도교는 이러한 것에 혁신적 접근을 재고하도록 도전 받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해방 더 나아가서 핵으로부터의 해방은 한 국가나 문화, 혹은 한 종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과제이다. 우리는 이 해방과 정의의 투쟁을 향해 문화 상호간, 종교 상호간의 협력과 해방 실천을 위한 이론의 교환이 요청되고 있다. 그리하여 니터는 "종교간의 대화는 세계적 해방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아시아에서의 신학은 단순히 아시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구라는 하나의 위성 안에서 형성되는 지구 일부에서의 사유인 동시에 지구 전체를 위한 관계성에 놓이게 된다. 아시아 민중의 해방과 정의는 세계 민중의 해방이며,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의미한다. 우리는 니터의 다음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든 종교에서 "한 하느님","나의 궁극적 인 것","공동 본질" 또는 "신비적 중심"을 추구하는 대신 에, 모든 종교가 이용할 수 있는 종교 체험의 공유된 자 리를 인식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종교 신자들은 억압당하 는 다른 많은 그룹을 위해 또 그들과 함께 해방과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할 때 그들의 결심을 가능하게 하고, 그들의 희망을 고취시키고, 불의를 극복하고 일치를 추구하도록 그들의 행동을 지시했던 것을 공동으로, 그러나 서로 다 르게 체험할 수 있다." 2. 세계 체계(World System)와 제 3 세계의 현실 우리는 이제 구(舊) 소련의 붕괴로 말미암아 냉전 시대는 종식되었고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기술, 자본, 군사력에 의한 신패권주의 시대에 놓여졌다. 그리하여 신세계질서의 개편이라는 중차대한 역사적 현실앞에서 각 국가는 그 나름대로의 삶을 꾸려나가야만 할 때가 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세계 체계(World System)는 현대국가의 부상과 일명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명목하에 막강한 세력을 가진 국가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우리는 하나의 제한된, 상호 연관성과 지구의 대양으로 연결된 하나의 기후, 하나의 포괄적인 기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위성 지구(planet earth)에서 살고있다. 그러므로 지구의 생태학적 불균형과 자원의 고갈은 자연과 인간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수 있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권리와 자연 보호를 위한 관심의 일치하는 발전없이 현대 과학과 기술의 성장은 인류와 자연에게 심각한 피해를 안겨 주었다. 특히 이러한 재해는 지구의 한부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문제이며, 이러한 지구 파괴의 원인이 현대 과학의 무분별한 사용에 근거한다. 이 서부 유럽의 영토 확장과 자국내 경제의 현대화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하여 세계체계는 이러한 서구의 우월주의에 힘입어 이미 세력이 강한 자들을 더욱 강하게 하는 구조로 발전되었다. 세계의 관계성은 지배와 종속의 관계이며, 힘있는 국가들은 세계 기구를 세우고 그들의 우월한 지배력으로 경제, 정치, 군사, 문화적인 것들의 작인(作因)을 훈련시켰다. 이를 통해 그들의 우월성은 그들의 언어, 기술 문명, 경제 조직, 정치 형태, 군사력, 그리고 종교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것으로 평가 받게 하였다. 서구 열강에 의한 세계 체계는 자신을 "발전된" 나라로, 가난한 나라를 발전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우월 의식을 강하게 반영 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세계 체계의 기원과 그 현실을 제 3 세계와 관련하여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1) 세계 체계의 기원과 특성 현재의 세계체계는 전에 논술한 것과 같이 주로 서구 유럽인들의 지구의 다른 부분에 대한 영토적이며, 경제적 확장의 결과이다. 서구의 관점에서는 지난 오백년은 거대한 확장과 성장의 시기 였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여러 형식의 패배와 약탈, 식민지화, 착취, 변두리화(Marginal -ization)의 수백년 이었다. 서구의 확장주의는 아메리카와 호주, 뉴질랜드 및 아시아의 대부분을 식민지화하거나 침략하였다. 이러한 식민지의 풍부한 자원과 더불어 그들의 손에 있는 우월한 기술, 군사력, 그리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들은 현재의 세계 질서를 건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그들은 그들의 지배에 어울리도록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가치까지 새롭게 심어 놓았다. 이러한 서구의 지배로 말미암아 아시아 민중의 정신적 경제적 삶은 파탄에 이르렀고, 그 정복자들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티사는 제 3세계 국가의 저개발은 유럽인의 창작물이었다고 비판하면서, 현 세계 체계의 기원을 밝히고 있다. "콜럼버스와 더불어 시작된 유럽은 "저개발" 국가에 가 거나 찾은 것이 아니다. 유럽은 그들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단일 재배 생산"의 구조는 하늘에서 떨어진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인들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 고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그들의 정복지에 옮겨놓고 강요 한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예증은 유럽-아메리카의 세력이 현대 세계 체계를 세우기 위해 사용한 비인간적인 사상을 보게된다. 이것을 다시 회상한다는 참으로 무자비하고 잔인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유럽인들에 의해 행해진 - 한국인들과 아시아인들에게 있어서는 일본인들의 행위 - 세계의 오랜 침략사가 무시된다면 오늘날의 세계 체계에 대한 심원한 이해를 할수 없기 때문이다. 티사는 세계 체계의 특성을 토지 분배, 세계인구의 배치, 세계 인종차별에서 찾고 있다. 먼저 토지의 분배는 백인종적인 세계 체계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오늘날 백인은 세계인구의 34%이지만 지표면의 57%를 차지하고 있다. 즉 아시아에는 인구 증가에 따른 토지의 확장 이라는 여지가 없으나 카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백인 지역은 세계의 1% 인구가 지구 토지의 16%를 차지하는가 하면, 구(舊) 소련의 아시아 통치 지역은 6.6%라는 적은 인구를 가지지만, 세계 토지의 16%를 소유하고 있다. 두번째로 인구의 불균형과 인구가 적은 나라에의 이주 정책은 세계 자원의 분배와 인간 발전과 정의에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고 본다. 이러한 세계 인구의 배치에 대한 문제는 이주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호주의 이주 정책은 숙련된 기술자를 제외한 아시아인의 이주할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호 와 더불어 미국, 구 소련, 카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국가들은 자신의 인구가 적은 넓은 땅으로 이주하여 개발할 수 있는 아시아인의 유입에 제동을 걸고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토지의 분배는 아시아의 인구 증가 때문에 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세계가 그것을 위한 급속하고 혁신적인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의 사태나 비하르에서의 재해와 같은 기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티사는 "개발"과 "저개발"의 문제는 단지 GNP나 공업화의 용어로 주목될 뿐이며, 개발 개념은 현상태를 유지하려는 세계에서 넓은 땅을 소유한 국가에게나 어울리는 용어라고 비판한다. 또한 티사는 현재의 세계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강력하게 비난하는데 그에 의하면, "흑인, 황인종 그리고 갈색인종이 자유롭게 이주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백인을 위해 노예나 값싼 노동자가 되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셰계 체계(World System)은 일종의 인종차별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구소련과 동구 역시 그들의 자원을 민중과 더불어 공유하지 않으며, 지배 계급에 의해서 독점되고 있으며, 서구 자본주의는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함으로서 이데올로기 논쟁도 사라진 상태이다. 이제 더욱 가난한 민중- 세계에서 착취당하는 민중은 서구로 부터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의 진보를 위해 서구 세력과 미국에 대항하여 오랫동안 힘들여 투쟁해 오고 있다. 각 단계 마다 주요 세력들에 의해 자유와 해방운동이 방해되어 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는 평화스런 태도로 국제 정의와 자유를 위한 쟁점들을 치유할 효과적인 정치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가난한 자들을 편드는 세계 체계에서의 주요 정치적 변화의 부재 동안에 세계 경제는 수축되고 그들에 대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지배는 계속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부유한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조정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식 개발 독재를 채용하는가 하면, 반(半) 시장 경제-반(半)계획 경제를 추구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최근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경제 개발과 환경의 조화, 기술의 현대화, 사회 정의 구현, 자유,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정책에의 대중 참여 등은 현재의 세계 체계에서 쉽게 정착되기는 어렵다. 바로 우리는 이러한 기존 세계 체계가 점차 위기에 직면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것이다. (2) 세계 경제 구조의 위기 지구 경제의 구조는 세계 체계의 현실과 밀접하다. 티사는 지구 경제가 땅과 자연 자원의 분배에 기초한다고 파악하면서 , 자본의 축적,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개발된 기술, 국가들간의 무역관계, 그리고 세계에서의 중요 정책 결정자들에 의해 변화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땅에서 기원하는 근본적인 불평등이 수입, 자본, 기술, 무역, 사업 조직, 그리고 자원 사용에 있어서 불균형의 관계가 더욱 강화된다고 보았다. 이는 불평등한 시작이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은 부유한 개인, 가족, 회사, 나라에게 축적된다. 이는 그들의 뛰어난 사업 전략, 기술 우위,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와 특권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구도는 최대 이익의 기초하에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최대 이익은 정유회사의 경우, 산유국이 원유에 높은 가격을 책정해도 더많은 이득을 위해 그들의 기술로 부가 가치를 추가하기 때문에 기름을 사용하는 산유국의 입장에서도 높은 정유비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세계적인 경제 기구 -IMF,GATT 등- 를 이용하여 현 체제를 유지시키려고 한다. 이에 대항하여 비동맹 기구(77그룹)혹은 동남아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