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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ole in the heart(텅빈 가슴)/ 영한대역 간증/ 2005-06-26
A hole in the heart(텅빈 가슴) 영한대역 간증 by Shipei Chong(시페이 총) Jun 26, 2005 I was born as Singaporean Chinese in the Year 1983, into a Taoist family. I was automatically made a Taoist by birth. I was a big troublemaker since I was a baby, crying endlessly, and refusing to allow anyone to carry me except those people whose faces I recognize. As such, my grandmother suggested bringing me to a fortune- teller to see my fortune, and my mother agreed, worried for my future. The fortuneteller told my mother that I was an unlucky sort of baby, and most probably would not live past the age of 21 years old, unless I do not celebrate my birthdays for seven years. My mother followed what he said, and thus I never celebrated my birthday for the seven years of my life. Feeling still very unsafe over my future, my mother brought me to a Taoist temple and dedicated me as the adopted daughter of the Goddess of Mercy, one of the Chinese god in the Taoist religion. All these of course were kept as a secret from me for a long period of time. I do not know why, but from as young as the age of eleven years old, I was a very negative child, who do not desire to live long. I always have this belief that I will die before the age of 21. Since I believe I will be young, I dedicate my young life into indulging in pleasures. 나는 1983년에 중국계 싱가폴 인으로 태어났다. 도교 집안 이어서 날 때부터 도교인이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고 내가 아는 사람들 외의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말썽꾸러기였다. 내 앞날을 점쟁이에게 알아보러 가자는 할머니의 말씀에 내 장래를 염려한 어머니가 동의하고 데려갔는데, 점쟁이는 어머니에게 내가 매우 불운한 아이들 중 하나라고 하면서 아무리 살아도 21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일곱 살도 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고 나는 나의 삶 중에서 일곱 살이 되도록 생일 잔치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그 때까지 나는 미래가 매우 불운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내 어머니는 나를 불교사원에 데리고 갔고 도교 신 중 하나인 자비의 여신의 딸로 점지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나에게는 비밀로 붙여져 있었기 때문에 오랜 동안 나는 그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열한 살이 되면서부터 나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매우 비관적인 아이가 되었고 21살 전에 죽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곧 청춘을 맞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나 지신을 쾌락에 탐닉하는데 온 몸을 던졌다. Why? I enjoyed myself in this life, since I might die just any time in my life, thought the young me, and so that was how I lived my life when I was a child. My first suicide attempt was at the age of 11. After being unjustly slapped by my father, I intended to kill myself to make him regret for life. My mother foiled the attempt. Being a shy and reserve girl in school, I do not have any friend and thus, was a lonely and sad girl who always wishes that someday I might just cease to exist. I was also quite against Christianity, always siding with my Buddhist uncle to counter-attack all attempts by my Christian aunt, one of the only two Christians in my entire family, to share about Jesus. My knowledge of Jesus was very limited. I only knew him to be the weird guy that hanged on the cross, and my young perception of the church was very terrible. Whenever my dad drove me home, and we passed by a church, I would shudder just to see the cross on top of the church. To me, who then, had no idea what Christianity is, a church is a place that breeds Draculas. After all, my only contact with a church was the many Draculas\\\' shows I watch as a child. Therefore, the church to me was a terrible place where horrible monsters such as Draculas roam about in freedom. 왜냐 하면, 살아 있을 동안에 즐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젊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고 내가 어릴 때 살아온 방법도 그러했다. 나는 열 한 살 때 맨 처음으로 자살을 기도했다. 그후 부당하게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은 후 나는 아버지에 대한 보복으로 또 자살을 기도했다. 어머니가 말렸다. 학교에서는 부끄러움이 많고 말이 없었다. 언제인가 이 삶을 끝내고 싶어했기 때문에 친구가 없었으며 외로웠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다. 불교도인 삼촌과 항상 여기에 적대적인 그러나 예수님에 관해서 물어볼 수 있는 우리 집안에 두 사람 기독교인 중 한 사람인 숙모가 곁에 있었다. 예수님에 대한 나의 지식을 정말 제한된 것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신비로운 사람이었고 교회에 대한 젊은 나의 생각은 그저 끔찍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줄 때마다 교회 앞을 지나는데 교회 지붕의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는 진저리를 쳤다. 나에게는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전무하였다. 드라큘라를 키우는 교회도 있다고 알았다. 무엇보다도 나와 교회의 접촉은 아이로서 많은 드라큘라를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교회는 드라큘라가 자유스럽게 걸어 다니는 끔찍한 곳이었다. So, when my aunt brought me to her church to watch her Christian concert one-day, I was very reluctant. I was thinking about Draculas. Yet, I found no Draculas in the church. Eventually, I assured my young heart that Draculas appear only in shows, not in real life. We seat ourselves at the many benches in the Church, and the show began. It was a touching story about a virgin giving birth to a baby. During the whole performance, my eyes were glued to the actors and actress in the shows, and a feeling of peace entered into my little heart, a feeling I will never forget for the rest of my life. For a moment, I lost track of my fear; Draculas simply vanished from my mind as I watched the birth of this little baby. I was somehow touched in my heart by the show. After the show, I asked my mother many questions about Jesus, which she just answered briefly, being a non-Christian herself. That was my earliest and only true contact with Jesus during the period when I was a child, and it is important because it makes Church less frightening to me, and also destroys much of my hostile feeling towards Christianity. As I proceed to become a teenager, my negative feeling about living in this world intensified. I desire... to die. To vanish from this world. To cease to exist. I completely lose faith in humanity by the hypocrisy of everyone I see around me. 그런데 숙모가 그녀의 교회 찬양집회를 보게 하려고 나를 교회에 데리고 갔을 때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계속 드라큘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드라큘라를 발견하지 못했고 드디어 나의 어린 마음에 드라큘라는 쇼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 좌석을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자리를 정했는데 쇼가 시작되었다. 그 쇼는 어떤 처녀가 임신을 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연극을 보면서 연극 속의 여자 배우와 남자 배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작은 가슴에 평안의 느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느낌은 그 후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나의 두려워했던 과거를 잊어버렸다. 이 어린 아기를 본 순간 드라큘라는 내 마음에서 간단히 사라져버렸다. 연극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집회가 끝난 후 나는 어머니에게 예수님에 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비기독교인 이었으므로 간단히 대답했다. 그 때가 나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예수님과의 최초의 진실한 접촉이었는데 그 접촉은 나로 교회를 두려워 않도록 했고 기독교인들을 적대하는 느낌도 없애주었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내가 십대소녀가 되면서 세상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증강되었다. 나는 죽기를 원했고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다. 나라는 존재를 없애기 위해 나는 주변 사람들의 위선을 보고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I was very rebellious. I was always shouting and yelling with my parents, both of whom I thought do not love me. I hate the world I live in. I hate myself. I hate school. I hate everything around me, including everybody. My teachers hate me, too and always drove me to tears by their speech. My classmates reject me. In school, it was hell. I dread school. But home...was it any better? Absolutely no! I faced a mum that told me everyday how disappointed she was with a daughter that was always doing badly in her school examinations. I faced a father that I never spoke to, since I first began Secondary School (High school). I faced a sister that despised and looked down on me. Everywhere... it was the same, it was hell to me, and I wanted to die. My world is a miserable world, where I am all alone, the target of everyone\\\'s hate. I was disgusted with myself, and also with the whole of mankind after reading about wars and atrocities, as well as witness with my own eyes the hypocrisy of my teachers and classmates in school. At this point in time, I had already long lost faith in my Taoist god, and was believing in an unknown God, whom I believe was the one true God, but whom I do not know come from which religion. There were so many religions in this world, and how can I know for sure where he comes from? 나는 반항적이었다. 나는 항상 부모님에게 대들고 소리를 질렀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속한 세상을 미워하였다.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사람들을 포함해서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싫었다. 선생님들도 나를 미워했고 항상 꾸중을 하고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었다. 내 급우들은 나를 거부했다. 학교는 나에게 지옥이었다. 집은 나았는가? 절대 아니다. 매일 항상 학교 시험에서 꼴찌만 하는 딸이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엄마와 마주해야만 했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 이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아버지와 마주해야 했다. 나는 나를 경멸하고 깔보는 내 여동생과 마주해야 한다. 어디도 나에게는 마찬가지였다. 나에게는 지옥이었고 그래서 죽기로 작정했다. 나의 세계는 외롭고 모든 사람의 비난의 목표가 되는 비참한 세계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진저리가 났다. 전쟁과 포악함에 대한 책을 읽은 후로는 전체 인류에 진저리가 났다. 내 눈으로 본 증거에 의해 급우들과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점에서 나는 오래 전에 이미 내가 섬기던 석가모니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내가 믿는 분은 정말 한 분이신 하나님뿐이었지만 아직은 종교로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종교들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택해야만 하는 종교를 알 수 있겠는가? The truth is, I do not know, and I was lost and confused. Somehow, I started to mess with the occults, surf satanic websites, consult guardian angels and prayed to the devil once in a while for favor. I started to indulge in seeking pleasure through Japanese anime, comic books and collecting cards. While my pleasures were highly intensified, my emptiness... grows. Empty! Empty! I feel so empty! Why... why... why do I feel so empty? God, where are you? Who are you? Where do you come from? Why am I so empty? God, can you tell me? Can... you tell me? Will someone tell me WHY I am feeling so damn empty! Silence screams roamed and traveled in my heart, but no one could give me an answer, no one wants to give me an answer. My feeling of emptiness... a lack of meaning to my life... strengthens my desire to die. I... want to die! Somehow, I do not know why, but somehow, at this empty period of my life, my attachment to the Christian God grows. Somehow, he seems to be very similar to the unknown God I pray to. But I cannot be a Christian. My mum won\\\'t allow me, and so I never became a Christian through the whole period of my Secondary years, even though that desire was strong.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실망하고 혼란에 빠져버렸다. 나는 신비주의에 빠져 혼란스러워하면서 수호천사와 대화를 하고 한때는 취미로 악마에게 기도를 하기도 했다. 나는 일본의 에니메이션을 통해 기쁨을 찾으려고 탐닉하기 시작했다. 코믹한 책 또는 카드를 모아보기도 했다. 나의 기쁨이 고조될수록 공허감도 커져만 갔다. 허무해! 허무해! 너무 허무해! 왜.. 왜..왜.. 나만 공허할까? 하나님 어디 계셔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당신은 어디서 오세요? 왜 저는 이렇게 허탈한지요? 저에게 말해주실 수 있나요? 사람들은 저에게 왜 그렇게 자학적인 허무감을 느끼느냐고 말할 수 있나요! 적막이 내 가슴을 소용돌이치며 지나갑니다. 아무도 저에게 답하지 않습니다. 공허감에 대한 저의 느낌, 삶에 대한 의미의 결핍, 죽고 싶은 열망. 저는 죽고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왜 이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어있던 저의 삶의 기간 동안,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모 감은 커져만 갔다. 그분은 내가 기도해왔던 잘 모르는 신과 매우 닮은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 어머니가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전 기간을 통해 나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열망은 강해져갔다. In the Year 2000, I went to a junior college, and it was there that I met this girl Jia Yan who was thinking about becoming a Christian. Feeling positive about Christianity, I highly encouraged her to be one. She was convinced and not later, she was converted, and she told me about her wonderful conversion. I was jealous of her, thinking why she could be a Christian while I was searching harder for God than her. (I was a very self-righteous person in the past.) Jia Yan brought Jie Yin, the one who converted her to my school. Jie Yin started to talk to me about Jesus. I was very interested by what she said except when she told me that now Jia Yan believe in Christ, Jia Yan was spiritually higher than me, something I strongly disagree. However, when Jie Yin wanted to lead me to Christ, I agree and she led me through the sinner\\\'s prayer. And I prayed to God as she led me. I successfully prayed through the sinner\\\'s prayer. For some, their success stories or testimonies joyfully end here. Mine do not. For the first few months, I was happy as a Christian, desiring truly nothing in the world, but after a while, I was back to my own self, again. I went back to consulting guardian angels, began to surf Satanic websites on how to conjure spells etc, and continue to satisfy my pleasures by reading about the occults. 2000년에 나는 전문대학에 갔고 그곳에서 나는 기독교인이 되기로 생각하는 지아 얀을 만났다. 기독교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나도 그녀와 같이 되는 것에 고무되었다. 그녀는 확신을 하고 있었고 지체하지 않았다. 그녀는 바뀌었고 그녀의 놀라운 변화에 대해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기가 그녀보다 더 어려운데 왜 그녀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는가를 두고 질투를 느꼈다. (나는 과거에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아 얀은 그를 우리 학교로 오도록 한 지 인을 데리고 왔는데 지 인은 나에게 예수님께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지아 얀도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말 외에는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어떤 분야에 대해서는 나는 강하게 받아드릴 수 없었지만 지 인이 나를 교회로 인도하기를 원했을 때 동의했고 그녀는 회개 기도를 통해 나를 인도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르쳐 주는 데로 기도를 했다. 그들의 성공적인 이야기와 간증들은 여기서 이렇게 기쁘게 끝나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처음 몇 주 동안은 나는 다른 기독교인들처럼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나 자신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수호 천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돌아섰고 마술의 용어를 배우는 등 사탄의 웹사이트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으며 신비에 관한 글들을 읽으며 즐거움에 만족하기를 계속했다. Eventually, my empty feeling came back once again, swallowing away every joy I might derive from my pleasures. I pursue and pursue pleasures, one of which is the writing of stories. Such pleasures bring me away from the real world into a world of fantasy, where I interact with make-believe characters who satisfy the lonely feeling in my heart, and they give me so much pleasures that I temporarily lost tract of the deep empty feeling in my heart. But like I said, such pleasures were temporal, and whether I like it or not, I was soon brought back to reality.... the reality that I still does not understand what is lacking in my life. One day, I came across a new age book called, \\\"Conversation with God\\\" by Mr. Walsh, but I did not knew it was a new age book. I thought it was a Christian book. Mr. Walsh claimed that while writing some questions down on a piece of paper, \\\"God\\\" answered him and he was inspired to write down the replies \\\"God\\\" gave him. That was how he communicated with \\\"God\\\". I decided to try it out. I started to write a letter that goes something similar to this. God, I read a book written by Walsh on communicating with God, and if it is true, can you answer me. God, are you there??I prayed very sincerely. No response. I waited a while, and the pen started to move. I wrote the word, \\\"Yes.\\\" 드디어 공허감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다. 내게 웃음을 주는 모든 즐거움을 빼앗아 갔다. 나는 계속해서 나름대로 즐거움을 추구했고 그 방법 중 하나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그 즐거움은 나를 현실세계에서 환상의 세계로 데리고 갔고 나는 그곳에서 내 마음속의 외로움을 채워 주는 가공의 인격들과 대화했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고 한때는 내 마음에 있는 깊은 공허감의 궤적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 그러나 내가 말한 것처럼 그러한 즐거움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내가 좋아하든 아니든 곧 나는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그 현실은 그 때까지도 나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한 지 이해시켜주지 않았다. 어느 날 뉴에이지 책에 끌렸는데, 그것은 미스터 왈스의 \\\"하나님과 대화하라\\\"였는데 처음에 그것이 뉴 에이지 책이라는 것을 몰랐다. 기독교 책인 줄 알았다. 왈스는 한 장의 종이에 몇 가지 질문을 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응답을 했고 영감을 얻어 \\\"하나님\\\"이 주신 답을 썼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하나님\\\"과 통하느냐는 것이었는데 나는 즉시 해보기로 했다. 나는 그것과 비슷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님 저는 왈스가 쓴 하나님과 통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만약 이 책이 진실이면 저에게도 대답해 주세요, 하나님 계시는 거예요? 진실로 기도 드립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썼다. \\\"그래.\\\" And thus, I started to have a conversation with God? From communication through pen, this \\\"God\\\" started to communicate with me eventually through my thoughts. He was able to speak to me, by conveying his voices through my thoughts, and I in turn reply to him back either through my lips or my thoughts. I was completely deceived that he was God, and started to listen to him in everything he tells me. He kept telling me how much he loves me, and I was deceived soon into loving him back. He told me many truths, which made me even more convinced that he is God, and then he started to lie to me. But I believe in all of his lies. I believe in him for about seven months. Throughout this period, however, a feeling of uneasiness often came to me. I often doubted that the one I spoke to was God. But I dismissed the thought. More feeling of uneasiness came. I started to have nightmares. In my dream, I was always with Satan, and Satan was always portrayed as my best friend who kept oppressing me, but who lived in the same house as me, and refused to live. I started to feel uneasy. Why do I keep dreaming about Satan as living in my house, oppressing me? I became desperate, wanting some Christians to prove to me that the \\\"God\\\" who spoke to me everyday, every free moments of my life was not the devil, but truly God. 이렇게 나는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했다. 펜을 통한 대화에서 이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나의 생각과 서로 교통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목소리를 나의 생각 속에 전달함으로서 나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 생각이나 입술을 통해 대답했다. 나는 그가 하나님이라고 완전히 속고 있었고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듣기 시작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말했다. 나는 바로 속아서 그의 사랑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나에게 많은 진실을 말했고 나는 그가 하나님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그 리고 그는 나에게 거짓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모든 거짓 말을 믿었다. 나는 7개월 동안 그를 믿었다. 그러나 그 기간 내내 자주 찾아오는 불안감을 느껴야만 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대상이 정말 하나님인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 생각을 쫓아버렸다. 더 많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나는 밤마다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내 꿈속에서 나는 항상 사탄과 함께 있었다. 사탄은 항상 나를 억압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의 모습으로 또는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살기를 거부했다. 나는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 나는 내 집에서 나를 억압하는 사탄과 함께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자포자기하였다. 매일 나에게 말하는 그가 하나님이며 내 삶의 자유스러운 순간들은 악마가 아닌 정말 하나님과 함께 한 순간들이었다. So I went to a Christian message forum and get people to pray to me. A miracle happened in that Christian forum. One of the posters was posting a post about evil spirit deceiving me as God and confusing my life, but God will free me through all this. Her message, unfortunately vanish completely. While she was deciding whether or not to post the message again, the Holy Spirit told her to wait and see. Surprisingly, the next day, when she went on the forum, her message was there, but it was not posted by her, but by two other Christian posters in that forum. The combination message of these two Christian posters was the exact form of the message she posted earlier which vanished, word for word. I learnt of this miracle, and after a serious day of reflection, became convinced that the message was from the true God, despite what \\\"God\\\" tell me. I immediately renounce \\\"Go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Yet, at the same time, the self-righteous me, instead of thanking God for my release from deception blamed God for not stopping the deception in its earlier state. I could not understand why my sincere search for God resulted in the devil coming in disguise as God. I lost all hope, and felt that all was lost. I felt too ashamed to face God. 나는 크리스찬 메시지 포럼에 갔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사무직원은 하나님이 되어 나를 속이고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악령에 관한 편지를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하나님은 이일을 통해 나를 자유케 하셨다. 그녀의 편지는 불행하게도 여기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다시 나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성령께서는 그녀를 지켜보라고 하셨다. 놀랍게도 그 다음 날 내가 계속해서 그 포럼에 갔을 때 그녀의 편지가 그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직접 쓴 것이 아니었고 함께 참가한 그녀의 두 친구가 쓴 것이었다. 이 두 친구들의 복합적인 편지에는 일찍이 사라져 버린 종전의 그녀의 편지 형태와 꼭 같은 것이었는데 단어마다 다음 몇 일 동안의 반응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 편지는 \\\"정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즉각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안에서 그 하나님을 포기하였습니다. 동시에 제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 대신에 나를 속여온 종래의 상태를 중단하지 않고 하나님을 조롱해온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왜 진실한 하나님께 대한 갈구가 하나님인 체하는 사탄을 들어오는 결과를 가져왔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모든 희망을 잃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느꼈습니다. I was also very angry that God did nothing to stop me on my very first day of deception. That day, I was greatly humiliated. I had always thought I was a very wise person, and yet in my wisdom, I believe the most ridiculous of the devil\\\'s lies. I had always thought that I was the most God-seeking person in the world, and one of the most righteous person ever lived, but this incident, clearly a great sin in the eyes of God made me realized that like others, I too, sin against Go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realized I do not deserved to be saved. What will had happened to me if God had not saved me, if God had not use the miracle to tell me that it was the devil speaking to me? So much for me seeking God. So much for my wisdom. I felt... that day like the most foolish person in the whole wide world. So, not long later I rededicated my life to Jesus once again, telling God how sorry I was to believe the devil was God, asking God to forgive me once more, and this time, I sincerely accepted Jesus as my lord and savior. I asked God to make me into the Christian he wants me to be, and free me from all demonic deception in the future. My moment of victory came... at this moment, and I could have stopped here, but I do not want to. I want to share with you the many rich blessings God had brought into my life. 나는 내가 그렇게 속아지내던 첫 날부터 때 왜 하나님이 그것을 중지하게 하시지 않았는지에 대해 매우 화가 나 있습니다. 그 날 나는 정말 창피했습니다. 나는 항상 내가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고 아직도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터무니 없는 사탄의 거짓 말을 믿어왔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하나님을 찾은 사람이고 누구보다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대항하는 죄가 얼마나 큰 것임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의 삶에서 처음으로 내가 구원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그것이 사탄의 말이라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면요? 하나님을 너무나 갈구했지만 나를 위한 지혜를 구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얼마 있지 않아 저는악마를 하나님으로 믿은 것을 회개하고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하며 예수님께 저의 삶을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예수님을 저의 주로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나는 주님께 저를 그분이 원하는 기독교인이 되고 앞으로 마귀의 속임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승리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이 순간에 여기서 편지를 끝내야겠군요. 그러나 나는 그러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저에게 가져다 준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After I rededicate my life to God, my struggle did not stop here. The devil continued to try to talk to me, to pretend that he really was God. However, I was not fooled. I kept rebuking him in the name of Jesus Christ. When the devil knew that I could no longer be fooled, he revealed his true color. He told me all sort of horrible things about God and myself. It was hard ignoring what the devil said but I kept rejecting him in the name of Jesus. Soon, he gave out his control of me. And I was thus, set free from his deception. Praise is to God! God is great! Also, with my current new trust in God, I felt that I was more and more attracted by the love of God. This spurs up in me a new love for God, a love that I had never felt before for the one who made me. Suddenly, God became more real to me. He became closer to me, and this was not something I had experienced before. This made my heart grateful for what he had done for me. Written by: Shipei Chong The author may be contacted at shipeichong@gmail.com. 나의 삶을 헌신한 후에도 투쟁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정말 하나님인 체하며 계속 나와 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지 않았고 나는 예수 이름으로 그를 계속 거부했습니다. 마귀가 내가 더 이상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알게 그의 본색을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과 나에 대해 혹독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무시하기는 매우 어려웠지만 예수 이름으로 계속 거부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저에 대한 그의 통제를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의 속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지금 나의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믿음과 함께, 나는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갈구합니다. 이 자극은 나로 저에게 이전에 누구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사랑을 일깨웠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은 더욱 현실로 저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 일로 저의 가슴을 감사로 넘치게 합니다. 시페이 총 씀 저자는 이메일 shipeichong @ gmail. com.으로 접촉 가능함.
I Will Survive!(살았구나!)/ Gloria Gaynor(글로리아 게이너)/ August 11, 2003(2003-08-11)
I Will Survive!(살았구나!) By Gloria Gaynor(글로리아 게이너) August 11, 2003(2003-08-11) If anyone had asked me what my religion was before 1982, I would have said that I was a Christian. I believed that I had a strong faith in God-but honestly, I wouldn\'t have known Jesus if I had fallen over Him in the street. I had my own form of religion: I called on God when I had absolutely no other choice; otherwise, I was in control. I told myself that God was too busy to be bothered with my requests, but the truth was that like most of us, I simply felt that I didn\'t need Him until I got desperate. Even then, I wanted Him on my terms. I grew up in a poor home in Newark, New Jersey, with five brothers and one sister. Our little house was crowded, but after my father and mother separated, it felt empty, and so did I. My emptiness followed me when I left home to start my singing career. In 1973, I got my first break when I recorded \"Honey Bee,\" a song that opened the door to American disco and to a whole new world for me. My music brought me lots of attention, and money freed me form my difficult past. But they weren\'t enough to fill my emptiness. I was afraid to be alone with my own thoughts. In my bachelorette apartment, I had the radio and TV going at the same time, all the time. 누구든지 나에게 1982년 이전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기독교인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안에서 강한 믿음보다는 정직하게 믿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거리에서 그에게 넘어진 적이 있으면 그를 믿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종교적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하나님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통제 속에 있었다. 나 자신에게 하나님은 너무 바빠 내 요구를 귀찮아 할 것이며 우리 대부분 사람들에게 진실은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망하기 전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단순히 느끼고 있었다. 설사 그렇더라도 하나님이 내편이기를 바랬다. 나는 뉴저지 뉴악의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육 형제에 딸이 하나 우리들의 집은 너무 좁았다.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집도 나도 텅 빈 것처럼 느꼈다. 집을 떠나 노래를 시작한 이후 항상 공허함이 나를 따라다녔다. 1973년에 나의 첫 음반 \"달콤한 꿀벌\"을 출간했는데 이 곡이 모든 미국인에게 디스코의 문을,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어주었다. 나의 음악은 나로 하여금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했고 돈은 나를 과거의 어려운 모습에서 자유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나는 나 혼자 생각에 빠져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의 독신자 아파트에는 텔레비와 라디오를 항상 켜 두고 있었다. When the TV programming ended, around 1:00 or 2:00 A.M., the national anthem would play, and then a preacher would come on. I never knew what the preacher said because I always made a mad dash from wherever I was in the apartment to shut off the TV before he spoke. Even in my emptiness, I just did not want to hear what God or any of His messengers had to say. In 1975 my singing career really took off when I recorded \"Never Can Say Goodbye,\" the first disco song ever to make it into the top forty on the pop music charts. Life was great! I won two Grammy Awards- number one album and number one song of the year. I was having great fun and filling my life with all the things I thought would make me happy. I deserved it. I worked hard and didn\'t want anything to stop me, and I especially didn\'t want God or any of His coworkers cramping my style. But when I was home alone, I still had the radio and TV going at the same time, all the time. My emptiness was always there, even when I was singing to packed houses of screaming, loving fans in crowded auditoriums, concert halls, and amphitheaters. Nothing could fill it. 새벽 한시나 두 시경에 TV 프로그램이 끝날 때 쯤 애국가가 나면 울려 퍼지고 목사님 설교가 시작된다. 나는 목사님 설교가 어땠는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가 아파트 안 어느 곳에 있던지 그 시간이 되면 목사님이 말하기 전에 TV를 끄려고 돌진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공허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이나 그의 사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1975년 나의 가수로서의 경력은 최고조에 달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세요\"라는 첫 디스코 음반은 팝 음악 차트 40 위안에 드는 기록을 세웠다. 인생은 대단한 거야! 나는 그해 최고의 노래와 최다판매실적으로 그래미상을 두 번이나 획득했다. 나는 재미있는 것을 모두 가졌고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이 내 삶을 채우고 있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일 했고 나를 방해하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나는 특별히 내 스타일을 구속하는 하나님이나 어떤 그의 협력자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혼자 있을 때 이직도 항상 라디오와 TV를 켜 둔다. 나의 공허함은 집을 꽉 채운 청중들의 외침 속에서도 청중석과 공연장, 그리고 체육관에서의 팬들의 사랑 속에서도 항상 그대로 있었다. 아무 것도 그것을 채울 수 없었다. Just as I hit the pinnacle of my success, I began to realize that I had finally acquired all of the things that were supposed to make me happy. I had money, cars, furs homes, jewelry, expensive clothes, a wonderful husband, fame, and access to anything I wanted. Yet I had a nagging sense that this wasn\'t all there was. I had done fun and wild things ad naeseam, but secretly I asked myself the six-million- dollar question: Are we having fun yet? I was engaged in an inner battle. Although I didn\'t get completely sucked into it, I spent my waking hours in the professional music world of parties, drugs, sex, and rock\'n\'roll- a way of life far removed from the way I had been raised. My childhood had been meager, but my upbringing had been moral and ethical, and my lifestyle as an adult was not satisfying. I often tried to pull away, but my desperate need for approval and love kept me emotionally tied to my peers. My head and my heart were playing tug -of-war. Something had to give. One day I said a final good-bye to the party scene and my so-called friends and started on a quest to find the answer to one question: What makes a person who has everything feel fulfilled? In the depths of my soul. that question would not go away. 바로 나의 성공의 정점에서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여겨온 모든 것을 만나게 된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돈, 자동차, 모피 옷, 집, 보석, 값비싼 옷 굉장한 남편, 유명세 등 내가 원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어떤 것도 채워줄 수 없는 괴로움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즐기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비밀이었다. 내 스스로 600만 불 짜리 의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재미가 있는가? 나는 내 안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완전히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내가 일어설 수 있는 길과는 거리가 먼 나의 직업적인 음악과 파티, 섹스, 그리고 록엔롤 속에서 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궁핍했지만 부모의 가르침은 도덕적이었고 윤리적이었으며 나의 삶의 스타일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나는 자주 모든 것을 밀어 버리려고 했다. 나는 흔히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동료들을 정서적으로 묶으려고 했었다. 나의 마음과 머리는 줄다리기 전쟁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주어져야 했다. 어느 날 나는 파티와 작별을 하고 소위 친구들과도 작별을 하고 한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그 질문은 떠나지 않았다. I started going to church because I felt that maybe my unrest was due to guilt for having ignored God when He had been so good to me. One Sunday morning in 1982, I sat in church absolutely bored to tears but determined to do my duty. So I bit my lip and stayed to the bitter end. Toward the close of the service, I had the wild thought that I should probably join the church. The problem was that on that very Sunday another family had the same idea. They were allowed to join- apparently on the condition that they believed that Jesus had lived and died for their sins and rose again. They had even been willing to tell others all about this. Well, I didn\'t ask to join, because I didn\'t believe all that. I just couldn\'t say everything they wanted to hear. As a matter of fact, I knew Jesus only as a prophet, and I was afraid of putting a mere man on the same level as God. So I left. When I got home, though, I kept myself, Why do I need to know Him? I couldn\'t shake off the question. Suddenly, I felt compelled to look in a Bible. I found one that someone had bought me as a gag gift. I blew off the dust, sat down at my dining-room table, and said, Okay, God, I\'ve got to have some answers. If You can talk to a priest, preacher, or rabbi, You can talk to me. 나는 나의 불안이 하나님께서 내게 잘해주셨던 그 때 하나님을 외면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끼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1982년 나는 내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면서 지루함을 참으며 교회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는 입술을 악물고 쓴 결론을 기다렸다. 예배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나는 교회와 연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같은 주일 날 같은 생각을 가진 다른 가족으로부터 나왔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고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상태여서 결신과 교회 출석이 허락되었었다. 그들은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결신 하겠다는 부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모든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실이 어떻든 내가 알기로는 예수님은 예언자인데 한 사람의 남자를 하나님의 반열에 올려놓을 까봐 두려워했다. 그리고는 교회를 떠났다. 집에 도착했을 때에도 나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왜 내가 그분을 알아야만하나? 그 질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갑자기 성경을 보라는 강권적인 충동을 느꼈다. 누군가 나에게 우스갯거리 선물로 준 성경책을 발견하였다. 나는 먼지를 불어 날려버리고 나의 식탁의자에 앉아서 말했다. 좋습니다. 하나님 전 지금 응답을 받겠습니다. 만약 당신이 설교자나 목사, 또는 랍비에게 말할 수 있으시면 저에게도 말하실 수 있습니다. I\'ve been praying all my life. but I never needed Jesus or anyone else. Now, I\'m really listening, and I need to know from You who this Jesus is. As I read, the answers just started flowing out. Everything was becoming clear, and I knew that this was where I could find out who Jesus was. I also knew the answer to my question: I would never find fulfillment in earthly things. Only God could give me the fulfillment I was seeking. That day, sitting alone in my dining room, reading that dusty, gag-gift Bible, I met God. I was convinced that God was leading me to the answers to all my questions but that I needed to spends time alone with Him. So I walked away from my booming career, and for a full year we sat there together, God and I, at my dining-room table as He taught me about Jesus. We began in the Old Testament book of Isaiah. Then He led me through all the prophesies of the coming Messiah in the Old Testament and through Jesus\' fulfillment of those prophesies in the New Testament. During that year, God also taught me how to be alone without being lonely. I turned off the TV and the radio because I didn\'t need them anymore. 전 평생 기도를 해 왔습니다만 예수님을 비롯하여 누구도 저에게 필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 당신이 누구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내가 읽기 시작해서 그 대답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지금 이 자리가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도 알게 되었다. 나는 한번도 땅위에서 충족을 맛보지 못했다. 하나님만이 내가 찾는 채움을 주실 것이다. 그날 식당에 혼자 앉아 먼지가 가득한 우스갯거리 선물인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만났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인도하셨으며 이제 그분과 함께 나 혼자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분망한 경력에서 떠났다. 그리고 .꼭 일년간 그분과 함께 앉아있었다. 하나님과 나 ,나의 식탁 의자 위에서 그는 나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는 구약의 이사야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때 그분은 구약을 통해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한 예언자들 속으로 나를 안내하셨다. 그리고 신약이 이 모든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이 해에 하나님은 혼자서도 어떻게 외롭게 되지 않는지를 가르치셨다. 나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았기 때문에 TV와 라디오를 껐다. 나는 이제 정말 외롭지 않다. I was never really alone because Jesus was always with me. I was getting validation from Him through the Bible, I was coming to understand His unconditional love, and He was answering all my questions. He was showing me that He was the only one who could fill my emptiness. One year later, I reentered the music world. Singing with the greatest conviction, I recorded my hit song \"I will Survive.\" This time, I didn\'t feel any pull toward the party scene around me, I didn\'t need validation from my acquaintances in the business, and I wasn\'t tempted by the lure of fame and success. God and I were a team, and my work became for Him. Over the past eighteen years I have matured emotionally and spiritually and gained that deep feeling of affirmation and fulfillment I so badly needed- the kind that comes only from God. He has shown me the gifts and attributes He has placed in me that make me worthy of the respect of others. Most importantly, He has shown me that all the things of the world cannot satisfy, because only He can give me all that I need. Since the day I met God, I have been truly blessed. And guess what? I will survive! 왜냐하면 예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성경을 통해 법적으로 그분에게서 인정을 받았다. 나는 그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해해 가고 있다. 그리고 그분은 나의 모든 질문에 대답하신다. 그분은 내게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실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일년 후 나는 음악의 세계로 되돌아갔다. 커다란 확신으로 노래를 하여 \" 나는 살았구나.\"라는 힛트 송을 불렀다. 이 때부터 내 주변의 어떤 파티도 나를 끌어당기지 못했다. 나는 나의 사업상 아는 사람들의 인정을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었고 더 이상 성공과 유명세라는 쓰레기의 시험도 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과 나는 한 팀이었다. 나의 일은 그를 위한 것이 되었다. 지난 18년 동안 나는 정서적으로나 영적으로 많이 성숙해졌고 성취와 확신의 깊은 느낌도 갖게 되었다. 나에게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분은 선물과 소지품을 주셨고 내 속에 자리잡고 계셔서 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셨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분만이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것도 만족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난 그날 이후 나는 정말로 축복을 받게 되었다. 추측하기로는 \"이제 살았구나!\"
Now I Understand(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2003-08-11
Now I Understand(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By Kitty Chappell(키티 차펠) August 11, 2003(2003-08-11) I Liked transcribing, but not full time. When I worked \"on-call\" status, I could work around my Christian speaking engagements and my writing. But circumstances had changed, When my husband, Jerry, quit his job and started his own business, we lost our benefits. To obtain health insurance, I now worked full time, but I missed the speaking engagements. I reasoned with the Lord , \"My mind understands, but my heart doesn\'t. It longs to serve You, Lord. If only there were a key to unlock my door of frustration.\" After finishing a rushed transcription and sending it to the patient\'s floor, I sighed and noted Betty\'s empty desk. It was her day off. I recalled that first morning when she shuffled into the department behind Linda and was introduced. Though she came highly qualified, her appearance was unkempt- sloppy clothes, stringy hair, no makeup. I smiled at her, but my emotions were mixed when she was assigned the desk next to mine. Her appearance wasn\'t her only unattractive characteristic. Caustic and argumentative, she\'d ask me my opinion and then debate my response. 나는 번역하는 일을 좋아했다. 풀타임은 아니다. 주문을 받아서 일을 할 때에는 크리스천으로써 교제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었다. 남편 제리가 직장을 그만 두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해서 우리는 고정적인 수입원을 상실하였다. 지금 나는 의료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 풀타임 일을 한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교제는 상실했다. 나는 주님께 이유를 달았다. \"저의 마음으로는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이해가 안됩니다. 주님 만약 저의 좌절의 문을 열어줄 열쇠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쇄도하는 번역 일을 마친 후 그것을 환자들의 방으로 보낸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베티의 빈 책상을 기록한다. 베티와 헤어지는 날이다. 나는 그녀가 린다의 뒤에서 발을 끌면서 백화점으로 들어와 소개받던 일을 기억한다. 그녀는 높은 보수로 들어왔음에도 외모는 손질하지 않은 허름한 옷차림에 다듬지 않은 그대로의 머리였다. 나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그러나 그녀가 내 다음 자리에 앉게될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녀의 외모는 그녀 자신만의 매력 없는 외모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도화선이 되고 논쟁거리가 되어 내 의견을 물어왔고 내 반응에 논쟁을 해왔다. \"I don\'t know why she asks,\" I complained to Jerry. \"She never agrees with me. Whatever the subject-from vitamins to Christianity-it\'s always the same. She argues and I pray.\" When we typed reports of alcohol-related injuries, Betty always reacted strongly. \"Drunks ought to be locked up and the key thrown away.\" Turning to me, she\'d snarl, \"Don\'t you agree?\" \"They should be punished, of course, and compelled to undergo rehabilitation before they\'re allowed to drive again, \"I said. \"It is terrible that innocent people are hurt and killed. However,\" I added gently, \"it\'s also tragic for drunken drivers. Many are good people who buy into the lie that there are benefits to drinking alcohol- and they live the rest of their lives with guilt for maiming or killing someone.\" \"Yeah, sure! Try explaining that to the innocent victims!\" Despite Betty\'s crusty nature, we became friends and enjoyed evening meals together in the cafeteria. I noted a gradual improvement in her appearance and attitude. Sitting in the cafeteria that evening, I thought, I\'m glad I\'m alone tonight. Then I looked up and saw Betty approaching my table with her tray. \"Don\'t tell me you\'ve come on your night off just to have dinner with me!\" \"그녀가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제리에게 불평을 했다. \"그녀는 내 말에 한번도 동의하지 않아요. 비타민에서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무슨 주제이든 같아요. 그녀는 시비를 걸고 나는 기도해요.\". 우리가 알콜 해독에 대한 보고서 타이핑을 할 때. 베티는 항상 강하게 반응했다. \"음주운전자들은 가두어 놓고 열쇠는 없애야 해.\" 화살을 나에게 돌려대고 으르릉거렸다. \"안 그래?\" 물론 처벌을 받아야해 다시 운전을 하기 전에 재활과정을 강제로 받도록 해야 해\" 내가 말했다.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죽임을 당하는 것만은 피해야지.\" 나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음주 운전자에게도 불행한 일이야. 술이 유익을 준다는 거짓 말에 속아 술을 산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죽였다는 쓸데없는 죄책감에 남은 여생을 보내게 돼.\" \"그래 정말이야! 죄없는 희생자를 구하기 위한 설명을 하도록 노력하자!\" 베티의 거친 성격에도 불구하고 베티와 나는 친해졌고 저녁에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의 외모와 태도가 점점 개선되는 것이 눈에 두드러졌다. 그날 저녁 식당에 앉아 오늘밤에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베티가 쟁반을 들고 내 테이블 쪽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야간작업이 없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나와 밥을 함께 먹겠다고 말하지 마!\" I teased.\"That\'s right. I\'m here to celebrate, and to give you something,\" she said, tossing a key onto the table. I picked up the key and looked at her blankly. \"New car?\" \"Read it,\" she said, beaming. \"Sobriety, One Year.\" I shrugged. \"Don\'t you know what that is?\" \"No\" \"I received that today for being sober for one year.\" \"Sober?\" \"I\'m an alcoholic. I joined Alcoholics Anonymous a year ago after starting to work here. You\'ve been my \'spiritual mentor.\' Without you I wouldn\'t have made it. I\'m giving this to you.\" \"How could I be your spiritual mentor? I didn\'t even know you were an alcoholic.\" \" I know. I didn\'t want someone to just say spiritual things. I wanted someone to care for me as I was. since my first day here you\'ve accepted me and treated me with loving respect. Even though,\" she added, \" I must have driven you crazy at times.\" \"I don\'t understand. How could you learn from me when I didn\'t know about your problem?\" \"Just by talking with you and observing you, I\'ve received all the spiritual counsel I need. You never downgrade anyone and you look for the best in people. I was married to an abusive alcoholic for years. We divorced just before I moved here, and I tried to drown my pain in alcohol. Each time I lambasted drunks I was really berating myself. 내가 놀렸다.\" 맞아, 축하하려고 왔어 너에게 줄 것이 있어.\" 열쇠를 식탁 위에 던지면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 열쇠를 집어들고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새 차야?\" \"읽어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일년 간 금주 성공.\"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게 뭘 말하는지 아니?\" \"그럼\" \"오늘이 1년간 금주한 기념일이야.\" \"금주?\" \"나는 중독자야 익명의 금주클럽에 가입하면서 여기 일을 시작했어. 넌 나의 정신적인 스승이었어. 네가 없었더라면 결코 해내지 못 했을 거야 이것을 네게 줄게.\" 나는 네가 알콜 중독자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는걸.\" \"알아\" 나는 누구에게도 나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말하기 싫었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돌봐줄 누군가를 원하고 있었어. 내가 여기 온 첫 날부터 넌 나를 받아주었고 사랑과 배려로 대해주었어. 그럼에도,\" 그녀는 덧붙였다. \"난 자주 널 미치게 했어.\" \"내가 너의 문제를 모르는데 어떻게 나에게서 배울 수 있었어?\" \"너와 이야기하고 또 너를 관찰하면서 느낀 모든 것을 내게 필요한 정신적인 상담과 조언으로 받아들였어. 넌 누구든지 한번도 깎아 내린 적이 없고 사람들 속에 있는 최고를 찾아내었어. 나는 몇 년 간 욕지거리 잘하는 알콜 중독자와 결혼생활을 했는데 이곳으로 오기 바로 전에 이혼했어. 나는 알콜로 인한 고통을 제거하려고 노력했어. 술이 먹고 싶을 때마다 진심으로 나를 채찍질 했어. I hated myself and sought punishment, but you refused to cooperate. You never let me put myself down. You said, \'I wouldn\'t tolerate anyone else saying bad things about you, nor will I tolerate it from you.\' Your compassionate responses helped me to see that everyone has value- even me. How could I ask for a better spiritual mentor?\" Driving home, something bothered me. \"Lord. I\'ve been scrutinized by Betty for a year and didn\'t know it,\" I complained. \" I could\'ve blown it at any time, and I wouldn\'t have know that either! Who else is watching me? This pressure only adds to my frustration of working. I don\'t understand\" Later, I understood that I must learn to trust God as much as He trusts me. I had been given the key I had asked for in the midst of my frustration. His trust is a gift - Betty\'s key was evidence of that gift and was the real reason I was there. Many are the plans in a man\'s heart, but it is the Lord\'s purpose that prevails. Proverbs 19:21 나 자신을 미워하면서 벌 줄 방법을 생각했어. 그러나 너는 나와의 협력을 거부하고 넌 한번도 나를 자포자기하게 만들지 않았어. 넌 말했어 \"나는 결코 누구도 널 나쁘게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어, 너 자신도 마찬가지야.\" 너의 열정적인 반응이 나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이 가진 가치를 볼 수 있게 했어. 그 이상 다 좋은 스승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겠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뭔가 나를 괴롭혔다. \"주님 베티가 일년 동안 저를 세심히 관찰해왔는데 저는 몰랐습니다.\"라고 불평을 했다.\" \"나는 누가 나를 관찰하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압력이 나의 일을 좌절시키는데 추가되었어요. 저는 이해가 안 되요.\" 그 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신뢰하시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좌절의 한 가운데에서 좌절을 해결하는 열쇠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베티의 선물이 바로 그 선물임이 틀림없었고 내가 그곳에 있게 된 이유였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Somebody Loved Him(누군가가 그를 사랑했다)/ 영한대역간증자료/ 2003-06-23
Somebody Loved Him(누군가가 그를 사랑했다) Rebecca Manley Pippert(레베카 만리 피퍼트) 2003-06-23 He was an eastern European Jew. He had prospered professionally, married a gentile and had one son. Then came World War II and the deportation of the Jews. His Jewish identity was not widely known, and because of his marriage he thought he might be protected from going to prison camp. But one day as he returned home from work, he saw to his horror that the Gestapo were waiting for him. They grabbed him and led him off to the train. His mind was dazed, wondering who had betrayed him. As they were dragging him away, he cried out to one of the soldiers that he had\\\'nt even been allowed to embrace his wife before he left. The soldier laughed grimly and said, You fool. Dont you know that it was your wife who tipped us off? You liar! Jacob cried. She would never do a thing like that! But the soldier replied, Then you must be the only one who doesn\\\'t know. Your wife is having an affair with the chief of police. Jacob looked back at his wife in disbelief and horror. But the expression of guilt on her face and her inability to look him in the eyes confirmed that it was true. He spent the next five years in a prison camp. Several times he nearly died. 그는 동부 유럽에 사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전문직으로 성공했으며 결혼을 해서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다. 그때 2차 대전이 일어났고 유대인들에게 국외 추방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은 그리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했기 때문에 유태인수용소로 가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직장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게슈타포가 기l다라고 있는 끔직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들은 그를 결박하여 기차에 태웠다. 그의 마음은 누가 밀고했을까 생각하였다. 그를 다른 곳으로 끌고 갔을 때 그가 떠나기 전 아내와 이별 인사도 못했다면서 군인들에게 울부짖었다. 그 군인은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보 같은 친구야 당신을 밀고한 사람은 당신 아내인 줄을 왜 모르는가? 거짓 말입니다. 야곱은 울부짖었다. 그녀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군인은 대답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당신 혼자 밖에 없는 것이 틀림없어. 당신의 아내는 경찰서장과 불륜의 관계에 있었소. 야곱은 의혹과 황당한 생각으로 아내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서 죄의식이 없었고 바로 쳐다보지 못했음을 생각하고 그 일이 진실임을 확신했다. 그는 그 후 5년간을 수용소에서 보냈다. 여러 번 그는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He certainly hoped that he would. The bitterness and despair that filled him was the only reminder that he was still alive. One thing, however, occasionally gave him a flicker of hope. If he could survive prison camp, perhaps his son would still be home and they could be reunited. That was the only thought that ever brought light into his darkness. Finally the war was over and he was released. As he made the long journey home only one thought obsessed him: the intense desire to see his son. When he arrived at his hometown he was told that his wife had left years before to an unknown destination. Somewhere in northern Europe, he was told. She had taken their son with her. He now knew that he would never see his son again. His last hope was gone. He was physically ill, emaciated, desperately hungry, and penniless. He had nowhere to go, so he went to a park bench where the bums of the town gathered. Even in his misery he could not overlook the irony. These were the men that he had given loose change to on his way to work in days gone by .Now he was one of the, before long the police arrested him for loitering. He told the police it was a relief. At least in jail he would get some food and a place to sleep. 그에게는 살리라는 소망이 있었다. 그의 고통과 실망은 그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럼에도 가끔 그에게 명멸하는 소망을 주는 하나의 일이 있었다. 만약 그가 수용소에서 살아나가게 되면 아들은 아직 집에 있을 것이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만이 그의 어두움 속으로 빛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드디어 전쟁은 끝났고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먼 여정 동안 그는 한가지 생각만 했다. 그는 그의 아들을 보기를 열망했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아내는 몇 해전 집을 떠났으며 목적지는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북부 유럽 어디라고 하며 아들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마지막 희망까지 사라졌다. 그는 육체적으로 병을 앓고 있었고 쇠약하였으며 절망적인 굶주린 상태에서 가진 돈이 없었다. 갈 곳도 없어서 도시의 부랑자들이 모이는 공원 벤취로 갔다. 비참했지만 그는 빈정거리는 말을 들어 넘길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과거 자신이 일터로 가는 길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도 그들 중 한사람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가 빈둥거리는 것을 보고 경찰이 체포를 했는데 그는 경찰에게 자기가 구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옥에 가면 최소한 밥은 먹을 수 있고 잠잘 곳도 있었다. They saw immediately that he was not a skid row bum but a man in desperate straits. They asked him if he had family. He said he had one brother he had not seen since he was a teenager, who now lived in Tel Aviv. The government decided to pay for the ticket to send him there, as they did not know what else to do with him. Jacob arrived in Israel with no money. He had hardly eaten in a week and was terribly ill. He went to his brothers home and the brother would not let him in the door. That is almost unheard of in Jewish culture, but the brother had not seen him in years and refused to believe that this haggard, decrepit-looking bum at his door was really his brother Jacob. He told him to come back with papers to prove that it was really. Jacob did not give him the chance to find out. He could not suffer the indignity of one more rejection. Now he was almost too poor to secure the means to kill himself. And too tired. So he found another park bench where the lowest of the low gathered and he waited to die. He did not eat, because there was nothing to eat. He had actually sunk to begging for food in his own country, but here he could not bear the humiliation of it. All he thought of was death. 잠도 잘 수 있었다. 경찰관들은 즉시 그가 막되 먹은 사람이 아니고 자포자기한 막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가 가족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형제가 한 사람 있는데 텔아비브에 살고 있었으나 십대 이후에는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으므로 그를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작정했다. 자콥은 돈 한푼 없이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그는 거의 일주일간 먹지 못했고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는 그의 동생의 집으로 갔으나 그의 동생은 그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대 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동생은 문 앞에 서있는 이 여위고 노쇠한 부랑자 같이 보이는 남자가 설마 그의 형 야곱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동생은 그에게 진실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야곱은 동생에게 진실을 증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거절당하는 모욕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제 그는 자살이라는 수단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해졌다. 너무 피곤해서 하층 중에 하층 사람들이 모이는 공원 벤치를 찾았다. 그는 먹을 것이 없어 먹지 못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했던 것처럼 구걸을 하려고까지 했으나 여기서까지 굴욕감을 참어 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생각해본 결과 죽기로 했다. He knew it would only be days now. Several days had passed as he lay on the park bench, when at a distance he saw a blond, freshly scrubbed teenage girl, obviously an American, entering the park with a friend. He wondered what on earth someone so innocent and angelic-looking was doing in a park for derelicts. He closed his eyes. Suddenly he heard a soft voice speaking to him. Jacob opened his eyes and to his astonishment he saw her looking at him with a compassion and sincerity that caught him off guard. It was the first time he had heard anyone speak to him with kindness in six years. He did not know whether he wanted to cry in gratitude or laugh in cynicism. But her concern moved him in spite of himself. What do you want? he growled at her. Sir, I wasn\\\'t even supposed to be here in this park. I got off the bus at the wrong place. But when I saw you, and the terrible sadness in your face I just couldnt leave without telling you something, she said softly. Why don\\\'t you get back on your bus and leave me alone! he snapped, appalled as he heard himself sounding as surely as the street people he used to give money to. 지금이 바로 그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원 벤치에 누워 있은 지 여러 날이 지나갔다. .그 때 그는 얼마 떨어진 곳에 금발의 말쑥한 십대 소녀를 보았는데 분명히 미국아이였다. 친구와 함께 공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천진난만하고 천사 같은 소녀가 이렇게 버려진 공원에 왔을까 의아해 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그에게 말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다. 야곱은 놀라서 눈을 떴는데 소녀가 동정과 진실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으므로 경계심이 늦추어졌다. 친절한 말을 듣게된 것은 6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감사로 울어야할지 냉소로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러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다가 왔다. 왜 그래요? 소녀에게 빈정거렸다. 아저씨 저가 이리로 올 줄은 젼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버스를 잘 못 탓는데 아저씨를 보게 되었어요 아저씨 얼굴에서 엄청난 슬픔의 표정을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저씨에게 무슨 말을 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었어요. 학생 버스로 돌아가요 날 좀 내버려두고! 그 남자는 짜증을 내었다. 이 소리가 자신의 거리의 부랑자들에게 돈을 줄 때 내는 소리처럼 들려 등골이 오싹했다. Sir, I was afraid to come over here, but I feel like God is nudging me to tell you something, before I get back on my bus. I wish I knew how to say it better but, well, sir, Jesus loves you. He loves you. He really does. He looked at her in disbelief. This child was telling him that somebody in heaven loved him? After all the hell he had been through, all the indignity he had suffered, all the rage that had filled his soul for so many years. And now this naive American, who had probably never known a day of real suffering, who had lived a sheltered and protected life, in her innocence, was telling him that some Gentile God loved him. He could not decided whether he was outraged by the audacity, or moved that she took the effort to talk with him. But as he looked up at her face he saw tears streaming down her cheeks, and to his astonishment he began to weep as well. No one could love me, child. Its too late for me, he said between sobs. No, she replied urgently as she took his thin, gnarled hand into hers. Its not too late. God will gladly take you if only you\\\'d let him. Just tell him that you want to. He will love you and help you. He said it was at that moment that he knew that someone was reaching out to him through her. He could not have imagined a more. 저도 여기 오기가 겁이 났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버스로 돌아가기 전에 당신에게 뭔가 말해야한다는 하나님의 신호를 느꼈어요.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궁금해요 좋아요.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 말하는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이 사람에게는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고통받으며 겪었던 모든 모욕의 지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수년 동안 그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분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제 수용소에서 보호받는 삶을 산 이 사람의 고통을 알리 없는 이 순진한 이 미국 소녀가 거룩하게 그 남자에게 그를 사랑한 이방인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 남자는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그 아이가 뻔뻔스러운 것인지 그 소녀가 그와의 대화를 계속하려고 하는 것인지 판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을 때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남자도 놀라서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 없어 예야 너무 늦었단다. 그는 울면서 말했다. 아뇨 그녀는 급히 대답하면서 그 남자의 가늘고 마디진 손을 잡았다. 늦지 않았어요. 당신이 원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그는 맞아 주실 거예요. 그는 그 순간 누군가 그녀를 통해 손을 내밀어 자기를 돕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후에 말했다. 그 남자는 보통 전도자 같지는 않다는 생각 이상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다. But he knew deep within that he was being offered help in his last hour. But the choice was his. He decided to take it. He prayed with this girl on some park bench in the outskirts of nowhere, in his own language. Then he looked at her and said, I am thankful to you, more than you can ever know. But I am very sick. I am dying. With that, the girl and the friend Who was wit her helped him up and they took him by bus to the home where they were staying. The family nursed Jacob back to health for one entire year. During the course of that year they shared their faith, read to him from the Bible and prayed wit him. Eventually what began as a dying mans desperate invitation to God to take his life, and soul to his Messiah. He laughed and said to us, The problem with you Gentiles is that you always keep forgetting that Jesus is Jewish! He belonged to us first! Jacob eventually found a good job, lived in his own apartment and went back to his brother and was reconciled. He came to faith in his mid-fifties; when I met him he was in his early seventies. As long as I live I will never forget the expression on his face as he spoke of what Jesus meant to him. 그러나 그 남자는 거의 마지막 시간에 어떤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선택여부는 자신의 것이었다. 그는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 남자는 그 여자 아이와 아무도 없는 변두리 공원 벤치에서 자신의 말로 기도를 했다. 그리고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고맙다. 네가 모를 정도로 크게 고맙다. 그러나 나는 많이 앓고 있단다. 죽어가고 있어. 그렇게 하여 소녀와 소녀를 아는 친구는 그 남자를 도왔고 그를 버스에 태워 가족이 기다라고 있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가족은 야곱을 간호했고 거의 일년 만에야 완쾌되었다. 그해 치료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서로의 믿음을 나누었으며 성경을 읽어주었고 자신이 아는 기도를 해 주었다. 드디어 하나님의 절망적인 초대로 죽어가던 사람이 새로운 삶과 구세주를 향한 역적인 삶을 찾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이방인인 당신들의 문제는 항상 예수님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맨 처음 우리들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야곱은 드디어 좋은 직업을 구했다. 자신의 아파트에 살며 그의 동생에게 가서 화해를 했다. 그 남자는 50 중반에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그를 만난 때는 70대 초반이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가 예수님의 의미를 이야기 할 때 그의 얼굴에 나타난 인상을 잊을 수 없습니다. It would have been so easy, he said, to have rejected that girl. To have chosen to harbor all the years of resentments and disillusionment in my heart. above all else, filled my heart with a gladness and joy I never knew was possible! You know what I want to do when I get to heaven? I want to be the one who offers a cup of water to everyone else. What could I ever do to express my gratitude to God for all that he has done for me? How will I ever be able to thank Jesus enough? So much has happened in my life since that moment twenty years ago. But the one fact that staggers me most of all, is that the girl was right. Jesus loves me. He really does. 그는 그 소녀를 거절하여 자기 마음에 원한과 환멸의 종착지를 선택하는 것은 정말 쉬웠을 것이라고 그는 내게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이전에 알 수 없었던 기쁨과 즐거움으로 내 마음을 채워준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천국에 갔을 때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 아십니까?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한 컵씩 물을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해 주신 일에 대해 내가 무엇이든 감사를 표시하기나 할 수 있을지?. 예수님께도 어떻게 충분히 감사할 수 있을까? 20년 전 그 계기가 있은 후 많은 일이 나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틀거리는 나에게 무엇보다는 분명한 사실은 여자아이가 옳았고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으며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Summer Vacation(여름 휴가)/ Bruce Larson(부르스 라손)/ 2003-09-02
Summer Vacation(여름 휴가) By Bruce Larson(부르스 라손) I have a great friend down in Montgomery, Alabama, and a few years ago he told me an unforgettable story of a summer vacation he had planned for his wife and children. He was unable to go because of business, but he helped them plan every day of a camping trip in the family station wagon from Montgomery all the way to California, up the West Coast, and then back to Montgomery. He knew their route exactly and the precise time they would be crossing the Great Divide. 나는 몇 해 전 알라바마 몽고메리에 살 때 정말 위대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그가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계획했던 여름 휴가 때에 있었던 정말 잊지 못할 이야기를 내게 말해 주었다. 일이 바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가족들로 하여금 가족용 웨곤을 타고 몽고메리에서 캘리포니아 서해안에 이르기까지 길을 따라 켐핑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몽고메리로 돌아왔는데 그 후 그는 그 여행이 바로 그레이트 디바이드를 정말 적합한 시간에 귀하게 가로지를 수 있는 여행 코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So, my friend arranged to fly himself out to the nearest airport and hire a car and a driver to take him to a place which every car must pass. He sat by the side of the road several hours waiting for the sight of that familiar station wagon. When it came into view, he stepped out in the road and put his thumb out to hitchhike a ride with the family who assumed that he was 3,000 miles away. I said to him,” Coleman, I’m surprised they didn’t drive off the road in terror or drop dead of a heart attack. What an incredible story. Why did you go to all that trouble?” ”Well, Bruce,” he said, ”someday I’m going to be dead, and when that happens, I want my kids and my wife to say, ’You know, Dad was a lot of fun.” Wow, I thought. Here’s a man whose whole game plan is to make fun and happiness for other people. It made me wonder what my own family will remember about me. I’m sure they will say,” Well, Dad was a nice guy but he sure worried a lot about putting out the lights and closing the windows and picking up around the house and cutting the grass.” But I’d also like them to be able to say that Dad was the guy who made life a lot of fun. 그래서 친구들은 그를 가까운 비행장으로 데리고 나가 자동차를 빌려 가족들의 자동차가 반드시 지나야 할 모든 곳으로 데리고 가는 배려를 해 주었다. 그는 길가에 몇 시간씩 자동차를 세우고 낯익은 가족용 스테이션웨곤이 시야에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웨곤이 나타나면 길 가운데로 들어가 손을 들어 차를 세워 3,000마일 밖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가족과 함께 타고 갔다..내가 그에게 말했다. ”콜만, 그들이 마음속에 엄습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무릅쓰고 한 치도 여정을 벗어나지 않은 데 놀랐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왜 그런 어려운 일을 계속했나?” ”그래, 브루스.” 그가 말했다. ”언제인가 나는 죽을 것이고 그 일이 일어나면 나의 자식들과 아내가 이렇게 말하기를 바라네, ”아빠 정말 재미 있었어.” 야, 여기 그의 모든 게임 계획이 다른 사람들은 재미있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내가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가족이 나에게 대한 기억을 하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야, 나는 그들이 ”아빠는 굉장한 사람이야 그는 불이 꺼지고 창문이 닫히는 것을 정말 염려했고 집 주변에서 차를 태우는 것과 풀을 깎는 것을 정말 염려한 분이었어.”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아빠는 인생을 재미있게 만드는 분이었다고 말해주기를 더 좋아한다네.
You just feel deeper(더 깊은 신앙으로)/ 영한대역 간증자료/ 2004-06-01
세상 사는 이야기(Living Story) You just feel deeper(더 깊은 신앙으로) ’You just feel deeper’ Local Korean congregations cherish freedom to worship in native tongue. By Bob Mathews Savannah Morning News Sarah Rhee came to America 36 years ago from South Korea, but still thanks God that she lives in a country where she has the freedom to worship in a church where the Word of God is proclaimed in her native tongue. ”We speak our own language,” she says excitedly when asked what she most enjoys about worship at the Korean Americ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Savannah. ”Faith is such a personal thing, you know. It is more real when you have your language. You just feel deeper.” For her pastor, the Rev. Isaac G. Moon, the freedom offered by America presents a golden opportunity to obey the Great Commission -- found in the Gospel of Matthew -- to reach others for Christ. ”Our religious freedom gives us the chance to build up our Korean American church, so that we can reach out and relate more to Korean and English-speaking people and people of other nationalities,” he said. But freedom also brings responsibility and, sometimes, concern. The Rev. Heahwan Rim, pastor of the newly formed Savannah Korean Presbyterian Church, worries that freedom in America is sometimes misused where religious faith 더 깊은 신앙으로 지역교회의 한국교인이 자신의 나라 언어로 설교를 듣게 되다 밥 마튜 사바나 아침뉴스에서 사라 리는 36년 전에 남한에서미국으로 왔다. 그녀는 지금까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그녀의 고국언어로 들을 수 있는 교회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나라에 살게되었다는 점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인과 미국인의 연합교회인 사바나감리교회에서의 예배가 얼마나 즐거운지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면 흥분해서 ”우린 우리말로 통합니다,” 라고 말한다. ”당신이 알다시피 믿음은 개인적인 것이다. 자신이 쓰는 언어로 믿음을 갖게 되면 더욱 실감이 난다. 그럴 때에 더 깊은 신앙심을 느끼게 된다. ”이런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그녀의 목사인 아이삭 문 목사를 통해 다른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마튜선재단에 있는 미국이 제공하는 황금의 기회인 그래이트커미션과 연결되면서 가능해졌다. ”이러한 자유스러운 종교활동이 한국인*미국인교회가 만들어지는 기회가 되었고 더 많은 한국인은 물론 영어를 쓰는 다른 민족들에게 다가가고 관계를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라고 문목사는 말한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을 수반하며 때때로 책임을 져야한다. 새롭게 변모한 사바나의 장로교회 목사인 임희안목사는 ”미국에서의 자유는 때로는 믿음의 문제와 관련 오용되기도 한다.”고 염려한다 is concerned. One example he cited was a recent court fight over whether the 10 Commandments could be displayed in a courtroom. ”The state and religion were separated in this country some time ago to protect religion. Now it is being used the other way around. It is being used to attack religion,” said Rim, who entered the ministry in November 1997 after a 20-year Army career. Rim believes language is the most important reason for formation of a Korean American church. ”There is always a language barrier in worship, and I believe that using the language that you are comfortable with most is the best way to worship the Lord because it will touch your heart. That’s the main reason a Korean church is needed for the Korean community in this area.” The sense of community and connection with their native South Korea half a world away are important to the local Korean churches as well. ”I prayed for North Korea this morning and all the people in the world who cannot have their own civil rights,” said Rhee. ”I think it is wonderful that I have been given this opportunity to worship. This morning, I was praying for the reunification of Korea, the famine (in North Korea) and the lack of freedom and liberty over there. And I prayed for South Korea, the economic problems. And then 한 예로 그는 고리도전서1절의 명령을 두고 법정싸움까지 있었는데 ”이 나라에서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정치와 종교를 분리했으나 지금은 사방에서 다른 종교를 공격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20여년 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1997년부터 목회사역을 시작한 임목사는 말했다. 그는 한국인과 미국인의 연합교회의 형성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언어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미국에서는항상 언어의 장벽이 있는데 만약 사람들은 편안하게 해주는 언어를 사용하여 주님께 예배를 드릴 수 방법이 있다면 그것 으로 인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한국인교회가 필요한것은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공동체의 생각은 반은 자신들의 고국인 남한과 연결되고 반은 세계를 향해 열려있기 때문에 지역의 한국인교회도 마친가지로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목사는 말했다. ”저는 오늘 아침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기이하게 여깁니다. 저는 한국의 통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북한의 기아, 자유, 해방을 위해 기도합니다. 남한의 경제적 문제가 해결 되기를 기도합니다. I also prayed for the problems in the whole world.” There are the social aspects, too. At the Methodist church, American and Korean members have lunch together each week after the service, ”to share together as a family.” They also have a picnic every year. Prayer sessions are held each day at the church and prayer meetings are conducted in homes. ”Most of our members are extended family, Korean and American husbands and wives. The families come together to share our heritage,” said Rhee, who has been a member of the Korean Methodist church since its formation in 1982. Her pastor, Moon, said that before the Korean church was formed, the families sometimes were divided on Sunday mornings because of the language barrier. ”Husbands would go to an American church. Wives would go to a Korean church. So we built up this kind of program to work it together for the family,” Moon said. The Rev. Peter W. Park, pastor of Burkhalter Korean Baptist Church, said the Korean people are ”a religious people” whose worship is more formal than that of other believers. Park expressed concern about second-generation Koreans not being able to speak Korean, and thus losing an important part of their Korean identity. ”We need to educate them, much 세계의 여러 문제를 두고 기도합니다.” 연합교회 구성에는 사회적인 고려도 있다 이 감리교회에서는 주일 예배가 끝난 후 미국교인과 한국교인이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가족으로서의 함께함을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일년에 한 번은 함께 피크닉을 간다. 기도주간에는 매일 교회에서 기도하고 가정기도모임도 함께 한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확대된 가족개념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섞여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이 전통을 살리려고 모든 가족이 항상 함께 옵니다.” 1982년 이 교회가 생길 때부터 다니던 감리교도인 이씨는 말했다. 그녀의 목사인 문목사는 한국인교회가 만들어지기 전에 언어 장벽 때문에 가족들이 주일 날 아침 때때로 나뉘어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남편들은 미국인교회로 가고 부인들은 한국인교회로 갔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함께 있게 하려고 이러한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문목사가 말했다. 버크홀터의 한국인 감리교회를 시무하는 피터박목사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예배형태는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들에 비해 형식에 더 치우치는 ”종교적인 국민들”이라고 말한다. 박목사는 한국어를 못하는 제2세대 한국인들과 관련해서는 한국인들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멀한다. ”유대인 가족들이 그들의 언어로 아이들을 like the Jewish families educate their children (in the Hebrew language)” he said. But Park wants second-generation Koreans to be ”fully immersed in America,” as well. At the Korean Methodist church, classes are offered to address this concern. ”We want to build up our Korean identity. We want to build up our American identity. And then we can build up our Christian identity,” Moon said. Word of God times two The Rev. Heahwan Rim and his congregation at Savannah Korean Presbyterian Church are trying to find just the right way for him to preach the Word of God to them each Sunday. ”Right now, I preach in Korean and give a short sermon in English,” he said. But that’s on a ”trial basis.” One way, Rim said, would be to preach in Korean and have someone translate it. ”But I’m not quite sure my context would be translated exactly as I said it.” Another way would be to record the sermon in English the night before and give the Americans a cassette. Still another solution: have the sermon typed and give the Americans a hard copy before the service. At the heart of the issue is the fact that in Rim’s church and in other Korean churches, the families want to sit together to worship, even though one member may speak Korean as a first language and the 교육을 하는 것처럼 우리도 아이들을 그렇게 교육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한국인2세들은 미국생활에도 완전히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 감리교회의 교육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확립한다. 그래야만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고 문목사는 말했다. 사바나 한인감리교회의 임목사와 교인들은 매 주일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임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바른 길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방금, 저는 한국어로 설교하고 영어로 짧은 요약을 해주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시험적으로말입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설교하면 통역을 하는 방법외에는 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경우 내 설교가 정확하게 통역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설교 바로 전에 영어설교를 녹음해 두었다가 카셋트로 틀어 들려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예배 전에 미국인들에게 영어설교문을 복사해서 주는 것인데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가슴에 와 닿는 잇슈는 임목사의 교회도 다른 한국인교회에서도 한사람은 영어를 사용하고 또 한 가족은 한국어를 사용하든 간에 모든 가족이 같은 자리에 앉아 other English as a first language. The Korean American United Methodist Church of Savannah and the Burkhalter Korean Baptist Church are bilingual as well. At the Methodist church, a guest American minister delivers a sermon each week in English, and the Rev. Isaac G. Moon, pastor, preaches in Korean. At Burkhalter, the Rev. Peter W. Park delivers some of the sermon in English and some in Korean. Music to the Lord’s ears One issue facing Korean churches is whether to sing the hymns in English or Korean -- or both. Some compromise, singing some verses in English and some in Korean. The Rev. Peter W. Park of Burkhalter Korean Baptist Church smiled as he placed a hymnbook before a reporter and noted that the words were in both Korean and English. ”We sing the hymns in English and in Korean,” he said. At the same time? Park laughed. ”Yes,” he said, ”God understands!” 예배드리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사바나의 한국인, 미국인 연합감리교회나 버크홀터의 한국인교회 모두 이중 언어교회이다. 연합교회에서 미국목사가 손님으로 와서 설교를 할 때는 아이삭 문목사가 한국어로 통역 설교를 한다. 벌크홀터 한닝교회에서 피터박목사는 가끔 영어설교를 하고 가끔 한국어 설교를 한다. 주님의 귀에 한국어 찬양이 들려지기도 한다. 한인교회가 당면한 잇슈 중 하나는 한국어로 찬양을 해야할지 , 아니면 영어로 해야 할지 ,아니면 한꺼번에 해야 할지 하는 문제인데 영어로 할 때가 많고 가끔은 한국어로 한다. 벌크홀터의 한인감리교회 피터박 목사는 기자가 그 말을 기록할 때 한글과 영어로 된 찬송가를 가르키면서 빙그레 웃었다.. ”우리는 영어로도 찬양을 하고 한국어로도 합니다.” 같은 시간에요? 박목사는 웃었다. ”그럼요,” ”하나님은 이해하십니다!”
세상 사는 이야기(Living Story)/나의 노래(My Song)
세상 사는 이야기(Living Story) May 17, 2004 (09:26) 2004-5 나의 노래(영한대역 간증) My Song By Brent Austring I flunked piano lessons. After years of lessons, thousnads of dollars in fees, and what seem ed like a billion hours of practice, I still couldn’t play ”Mary Had a Little Lamb” with one finger. My mother dreamed of giving her son the musical opportunitues she never had. Perhaps he would become a concert pianist, wooing audiences worldwide. But the ship of her dreams was shattered and left to sink upon the rocks of reality. It piano and I were quite simply not made of each other. Hours of painful practice and tedious theory were made all the more grievous by the call of the great outdoors. My favorite stringed instruments were the fishing pole and the bow and arrow, my music the wind in the pines and the red-winged blackbird in the marsh. My notions of culture were shaped by a fascination with the great chiefs like Sitting Bull, Red Cloud and Crazy Horse, none of whom played the piano. The final blow came at a prestigious music festival in downtown Toronto where the piano students who performed ahead of me were amazingly polished, bordering on genius. I was totally out of my league and I knew it. Sitting down at the giant grand, I began to play. My fingers were like noodles slapping on a tinny toy piano and everyone 나의 노래 브랜트 오스트링 나는 피아노 낙제생이다. 수년간 레슨과 수천불의 학비를 내고 천만 시간 같은 연습을 했다. 나는 아직도 ”메리는 작은 양을 가졌네” 라는 곡을 연주하지 못한다. so 어머니는 자신은 가진 적이 없었던 음악적 기회를 자기 아들에게 부여하는 꿈응 꾸었다. 아들이 아미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회 연주자가 될 것을 기대했다. 그러난 그녀의 꿈의 배는 부서지고 gustlf이라는 바위에 갈아앉은체 남게 되었다. 그 파이노라는 것과 나는 맞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연습시간과 진저리 나는 론공부 거대한 세상에서 부르는 소리로 인해 무나 가혹한 것이 되어버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의 도구는 낚시대와 활과 화살이었고 내 음악은 숲속의 바람과 습지의 붉은 날개를 가진 검은 새였다. 나의 문화적 관념은 붉은구름, 미친 말 등 아무도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앉아있는 황소 같은 높은 지위의 환상에 매혹되어 있었다. 재능의 경계선에 있는 번쩍이는 옷을 입은 피아노학생들이 내 앞서연주를 한 다음 토론토 도심에서의 유명한 음악 페스티발의 마지막 마지막 차례가 왔다., 나는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고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거대한 피아노 앞에 앉아 나는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내 손가락은 작은 피아노 위에서 국수가락처럼 빨리 움직였고 was amused- everyone except my mother. Not quite halfway through I bogged down and came to a complete stop. A silence even more terrible than my playing followed the last fumbled note. I began again, but soon ground to a halt once more. Rising to my feet with all that was left of my dignity, I walked away from the piano, never to return. My attempts at cultural refinement were over. ”Most people die with their music still in them,” said Benjamin Disreali. Perhaps I was destined to be one of them. After all, I had just flunked piano once and for all. Was there any hope for a musical dropout? Would I, in fact, ever discover what I was truly made for? I was not the only one wondering these things. Soon afterward I awoke one night to find my mother praying and crying on her knees by my bed. She had good reason. Having given up on a miraculous dispensation of musical ability, she was also painfully aware that my spiritual life was ebbing into the mire of evangelical mediocrity and dead religion. The friends I chose were no help and I found myself utterly without direction. At times throughout high school and university I would awake to find her there by my bed crying out to God for me. I always pretended to be asleep, but couldn’t escape the enduring awareness 내 어머니를 빼고는 모든 청중이 열광했다. 반쯤 지나서 나는 실수를 해서 완전히 연주를 멈추었다. 무시무시한 침묵이 흐른 후 마지막 서투른 쏨씨로 연주를 계속했다. 나는 반복해서 노력 했지만 자꾸 멈추었고 내가 일어서는 순간이 바로 내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피아노로부터 걸어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의 문화적 순화 기도는 물건너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그들 속에 잇는 음악 때문에 죽어간다.” 벤자민 디즈렐리의 말이다. 아마도 내가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것 같다. 여하튼 나는 피아노에서 낙제를 고 모두를 잃었다. 음악 낙제 후에 또 무슨 희망이 있었겠는가? 사실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이일을 두고 염려했는데 얼마되지 않아 어머니가 매일 밤에 내 곁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울고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좋은 이유가 있었다. 놀랄만한 음악적 재능을 포기하고 복음적 평범성과 죽은 믿음의 구덩이 속으로 내가 빠져 들어가는 것을 어머니는 고통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선택했던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 자신이 전혀 방향감각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고교와 대학 전 기간 동안 나는 잠이 깨면 어머니가 나르르 위해 내 침대 곁에서 울면서 하님께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항상 깊이 잠든척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내가 위대한 that beyond her dream of my becoming a great musician, my mother’s deepest desire was for me to become a man who loved and passionately served the living God. I gradeated high School in 1979 and, remarkably, my faith sprang to life and became my own in university when it was challenged most severely. As l broke out of my religious lethargy, Jesus became a friend I walked and talked with. A healthy church and the In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 helped me grow and prosper spiritually and I met my wife Lynn when we were both on staff at Ontario Pioneer Camp. Together we pursued out goal of cross-cultural ministry with SEND International, and after completing seminary we left for northern British Columbia to serve the people of the Tahltan nation. Lynn and I quickly discovered that the people were not ovejoyed to see a white missionary family move into their community. Attitudes varied from ambivalence to hostility and when our first attempts at reaching out were met with indifference, we realized that it would take time and a working of God to give us the opportunities we yearned for. Help was to come from a strange and unexpected source. My favorite stringed instruments, the fishing pole and bow and arrow, began 음악가가 되야 한다는 그 꿈을 무시하고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깊은 열망은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경배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1979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괄목할 만큼 믿음이 내 삶에서 진전되었고 대서의 가장 어려운 시련에서도 스스로 이기게 되었다. 내가 종교적인 무감각을 깨고 나오면서 예수님이 나의 동반자 대화상대자가 되었다. 건강한 교회와 대학생선교단체(IVF)는 영적으로 자라고 성장하도록 도와주었고 온타리오 개척캠프의 참모역활을 함께하면서 나의 아내 린을 만났다. 우리는 함께 국제교류를 통한 타 문화권 선교를 목표로 노력을 했고 세미나를 완전히 끝낸 후에 우리는 탈탐족 선교를 위해 영국령 북콜롬비아로 떠났다. 린과나는 그곳 사람들이 백인선교사가 그들사회에 들어오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빨리 개달았다. 적들에 대한 모순된 감정에서 오는 다양한 태도로 그들과 친해지려는 우리의 첫 번째 시도는 무관심에 직면했다. 우리가 그리던 기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움은 이상하게 예기치 않은 곳에서 온다. 내가 좋아하는 현이 있는 도구인 낚싯대와 활과 화살 to play a music that could only be heard by the people of the wilderness. While I had come to do the work of a church planter- that strange combination of pastor, evangelist, counselor, and disciple-maker- more often I found that is most effective ministry happened in the bush of on the mountains. These hours spent in the wilderness were on neutral ground, and a man who might have slammed the door in my face had I come to his home carrying a Bible would often open the door to his soul when we sat with fishing poles in a boat. Men who would never darken the door of a church would talk openly about spiritual things while hiking on the side of a mountain with a bow or rifle in hand. One evening I sat high on the slopes overlooking a vast river valley with a young man I had recently met. The air was so clear and the expanse so huge that we could see moose and bear feeding down below. With the sunset reflecting off their wings, flocks of geese moved past us in a silence disturbed only by the breeze. We seemed to be the only humans for hundreds of miles and I wondered if God had designed the beauty of the evening to inspire awe in the two mortals perched on the crags of that mountain. Then the young man spoke,” Don’t hesitate to talk to me about God and 광야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리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는 목사, 선교사, 상담자, 제자훈련가로서의 이상한 교회개척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나는 이것이 산 위에 있는 숲속에서의 효과적인 사역이라는 점은 자주 깨닫게 되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 기간 동안 중립지대에 머물면서 우리가 보트에서 낚싯대를 들고 앉아있는 동안 내 얼굴 앞에서 마음의 문을 닫았을 한 사람이 자주 나를 그의 집으로 데려 가서 성경을 가져오고 마음 문을 여는 일이 일어났다. 교회 문을 열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활과 화살을 들고 산 언덕에서 하이킹을 하면서 영적인 문제를 공공연히 말하게 되었다. 어느날 저녁 최근에 만난 한 젊은 이와함께 넓은 강의 계곡이 보이는 언덕 위에 앉아있었다. 공기는 맑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은 너무나 넓었고 아래에는 기르는 사슴과 곰이 보였다. 그들의 날개에 석양을 반영하면서 거위와 양들은 고요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미풍만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백마일 안에서 우리들만이 유일한 인간이었는데 문득 하나님R[서 이러한 두려운 아름다움은 이 산위의 암석 위에 죽어야만하는 운명의 두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설게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젊은 사람이 말했다.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stuff. I want to hear about it.” And so I did. He would eventually accept Christ, and now his young family follows Jesus. I discovered that this kind of openness was not unusual in the wilderness and pondered the reason why. I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re was an element of trust built up on the trail - even through hours of silence- that did not come any other way. I would find this more and more as I spent time with the people in their element , pursuing moose on snowshoes in the company of Tahltan hunters, fishing through the ice for burbot and lake trout, sneaking up on mountain goats and bears with a bow and arrow, and cutting endless loads of firewood- always in the company of someone God had sent my way. When the Tahltan people moved to their summer fish camps where they would net sockeye and King Salmon to be preserved for the long winters ahead, our family would pack up and go with them. We hauled water, chopped firewood, dug outhouses, cur fish mended nets, and watched our children play together. The shared experience and the work set in the context of the indescribable beauty of God’s creation was a powerful combination that allowed trusting relationships to develop. We became part of the community and over 하나님에 대해 듣고싶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다. 그는 결국 그리스도를 받아드렸고 지금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젊은 가족이 되었다. 나는 이런 류의 마음 열기는 흔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그 이유에 대해 숙고했다. 나는 그것은 침묵 속에서 지나간 시간의 흔적 위에 세워진 신뢰의 한 요소가 작용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나는 시간이 흐를 수록 사람들에게서 이 요소를 발견했다. 탈탄사냥꾼들의 캠프에서 설상화를 신고 사슴을 추적하면서, 얼은을 뚫고 버복과 호수송어를 잡으면서 활과 화살을 들고 곰과 산양에게 몰래 접근하면서 회사켐프에서 끝 없는 장작더미를 자르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이길로 나를 인도하신 것을 알았다. 탈탄인들이 그들의 여름 고기잡이캠프로 이동하면 그들은 그물로 다가오는 긴 겨울에 대비하여 속아이와 대왕연어를 잡는다. 우리 가족도 그들과 함께 짐을 싸서 따라갔다. 우리는 물과 화목을 준비하고 집앞 땅을 파고 그물을 수선하고 아이들이 뚜노는 것을 바라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의 맥락 속에서 경험을 나누고 함께 일 한다는 것은 발전을 위한 신뢰의 관게를 허락받는 막강한 연합이다. 우리는 그들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time were given ample opportunity to share our love for Jesus. Gradually I realized that what I had always thought were selfish outdoor pursuits were really pertals of ministry. These passions and skills, when given to God for His purposes, were my music! I could play choruses of praise with the whisper of a fishing line, underscore the wonders of God with the perfect flight of an arrow, and point men to Him with analogies of the pack and paddle. Instead of experiencing feelings of guilt while out enjoying the bush I came to understand that I was truly playing my own music at last and others were listening. Here was my most powerful pastoral work and I was bringing glory to God by using my gifts. He in turn was using these things to draw men to Himself. I believe my mother’s prayers at my bedside years ago were answered after all, in ways neither of us could have imagined. She had longed to see me find my song and play it well. ”God has given gifts to each of you,” says 1 Peter 4:10. ”Manage them well so that God’s generosity can flow through you.” When I yielded my life to Christ, He set the music free to flow unhindered, in His time, in His way.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눌 더 넓은 기회가 부여되었다. 점차 나는 항상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이기적인 외부로의 탐구이고 그것이 내 사역의 목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나에게 주신 열정과 훈련은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되자 나는 낚싯줄의 속삭임과 함께 찬양을 합창하게 되었고 화살을 쏘았을 때 하나님의 경이를 배경음악으로 삼으며 노와 물고기의 조합으로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다. 숲 속에서 즐기는 동안 죄의 감정을 경험하는 대신 나는 드디어 내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감상하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가장 힘이 있는 목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내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게 된데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 하나님은 돌이켜 우리를 그의 소용대로 사용하신다. 나는 수년간 내 옆에서 한 어머니의 기도가 우리가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완전히 응답된 것을 믿는다. 어머니는 나의 노래와 연주가 잘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를 보기를 갈망하고 게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베드로전서 4:10 ”네 속에서 하나님게서 잘 운행하시도록 그것을 잘 관리하라.” 내 삶을 예수님께 맡겼을 때 그는 그의 시간에 그의 방법으로 내 음악이 방해받지 않고 흐르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