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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나는 새를 보고 직장을 바꾸라/ 마24:34
공중 나는 새를 보고 직장을 바꾸라 마24:34 오늘은 우리 생활에 관한 공부를 본문을 통해서 하고 또 생활의 지혜를 한번 얻어 볼까 생각합니다. 이 본문을 두고서 대체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영광을 먼저 구하고 또 교회 먼저 구하고, 자기 것 구할 일이 있으면 조금 뒤로 미루어 가지고서 끄트머리에 설치해 가지고 자기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은 맨 뒤에 기도하는 이런 예의를 갖추는 이런 기도도 하기도 합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쉽게 읽으면 그렇게 해석하기 쉽습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자기 것을 구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구하지 말라\' 이렇게 해석하기 참 쉽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나 지금에나 마찬가지이지만 무엇을 먹을까를 따지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먹을까를 안 챙길 수가 없다고요. 구약 시대만 하더라도 음식이 여러 가지인데 먹을 음식과 먹지 못할 음식이 얼마나 복잡했던지 무엇을 먹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굉장히 복잡하게 계명은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 따진다는 것, 구약시대에도 참 어렵고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셔야 될지, 또 우리 기독교인들은 뭐 마시지 못할 것도 있고 이런 것도 챙겨야 될 뿐만 아니라, 자기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도 몸에 맞지 아니하는 자기 현재 체질에 맞지 아니하는 또 병에 맞지 아니하는 그런 음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약도 좋지만 음식을 조절해야 되지요. 그러니까 무엇을 먹어야 되며 마셔야 되는지 잘 알아야 됩니다. 입을 것도 마찬가지지요. 잘 챙겨 입고 다녀야 됩니다. 요즘에는 가는 곳마다 강한 에어콘이 나오고 하니까 밖에 나가면 덥고 이럴 때에는 의복도 그저 한 벌쯤은 준비를 해 가지고 바깥에 더운데에 나가면 바깥에 벗어 들고, 아니면 허리에 잡아매든지 이렇게 하고 또 추운 에어콘이 막 나오면 너무 춥다 싶으면 입든지, 이렇게 온도 조절을 해야되니까 요즘은 나가면서도 의복을 챙겨야 되지요. 또 그것은 그렇지만은 요즘 아주 분위기 시대이고 패션 시대이기 때문에 자기 체형에 맞도록 옷을 색깔이라든지 형태를 잘 골라서 입으셔야지 자기 몸에나 나이에 맞지 않는 옷을 입게 되면 남의 눈이 불편합니다. 뚱뚱한 사람, 바짝 마른 사람 다 그 옷을 가지고 카바하는 것이고 옷도 아래위 색깔 조절, 그 다음에 넥타이 조절, 신발까지, 들고 다니는 핸드백까지 색깔 그리고 지갑까지도 요즘에는 색상을 다 계산해 가지고서 입고 걸치고 나가는 시대인데, 제가 이말 하니까 어떤 분들이 무슨 소리하나 하는 분이 있는데 참 편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만 요즘 내가 편하면 남들이 오히려 보기에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 정도로 요즘 입을 것도 많이 챙겨야 되는 그런 시대가 분명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챙기지 말라는 뜻이면 참 곤란하지 않겠나\' 이렇게 제가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마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니까 \"에이, 목사님 성경이 어디 그것을 말합니까? 성경이 그런 것 챙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구하지 말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 음식 저 음식 가린다든지, 이 옷 저 옷 색깔 맞추어서 가려 챙기는 것은 그것 못하라는 말이 아니고, 그런 것 달라고 구하지 말라 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것 구하지 말고 밥 주시오, 마실 것 주시오, 입을 것 주시오, 그것 구하지 말고 차라리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그것으로 이 성경이 말한 것이지요.\" 이렇게 이제 말씀을 하시고 싶은 분이 계실 겁니다. 또 이런 견해에 동의하는 분들이 대체로 많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 하셨는데 그 진정한 예수님의 말씀하신 의도가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그 주님께서 말씀하신 본문 가운데 주제 되는 내용은 24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번 다시 읽어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6:24-25) 이렇게 지금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하면 한 사람이 재물도 섬기면서 하나님도 섬긴다는 것은 가능치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따라다니는데 의외로 재물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재물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없고, 어느 한 쪽이 중하고 한쪽이 약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을 제대로 섬겨야지 너희가 재물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 섬기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말하기를 하나님도 잘 믿습니다 하고 있지만 너희 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 섬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원하노니 한 주인 하나님만을 섬기라. 그러기 위해서는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에 대해서 즉 돈에 대해서 제물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면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것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먼저 구해야 될 것이다. 너희가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다시 말씀드려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관심이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되고, 무엇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에 대해서 정말 관심이 많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너희가 착각할 뿐이지, 하나님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주님의 말씀인데 제가 이제 자세히 설명을 드려 보겠습니다. 자, 그러면 우선 제가 결론의 일부분을 갖고 와서 미리 말씀드린다면 이 본문 내용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 주제를 살펴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것인데 여러분 성경을 한번 보십시오. 우선 25절 하반 절에도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러니까 무엇 먹고 마시고 입을까가 주제가 아니고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염려하지 말라. 그 다음에 또 다시 더 내려가서 27절 말씀에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또 28절에도 계속 말씀합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또 31절에도 가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 구절을 깊이 생각하면 오늘 주님의 하신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젊은 분들 많이 안나오셨는데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한번 옛날에 우리가 공부하던 실력을 내여가지고서 한번 생각을 해 본다면, 31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라고 했는데 여기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염려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까? 염려해서 그것 구하지는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아예 하지 말라는 뜻입니까? 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아예 하라는 뜻입니다. 매일 매일 구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것 어떻게 안 구할 수 있어요? 매일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굳이 그러면 시장도 나가지 말아야지요. 시장 보러 나가지 말아야지요. 그런데 이 주제는 뭐냐 하면 그것들을 구할 때 염려되어서 구하지 말아라 그겁니다. 무엇을 위하여 염려가 되느냐? 염려가 되어서는 구하지 말라는 겁니다. 지금 주님의 말씀은 이 24절에서만 출발한 것이 아니고 이 6장에 계속되는데. 매일 하라고 하는 기도를 가르쳐주신 바로 조금 앞에 나옵니다. 11절에 보면,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딴 날 말씀한 것도 아니고 지금 말씀하고 계신 중이예요. 주님이 조금 전에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구하라는 것 아닙니까? 먹을 것을 구하라는 것, 마실 것을 구하라고 지금 말씀하시다가 또 금방은 \'구하지 말라\' 그런 뜻이겠습니까? 그러니까 아까 말씀드린 이 31절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지 말라\"라고 하니까 마실 것을 구하라는 뜻입니까?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구하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입을 것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구하기는 구하는데 염려함으로 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마 공부 하신지가 오래 되신 분들은 제가 이 말씀 드리니까 \'참, 잘 이해안가네\' 할 것입니다만 이해 안가도 할 수 없겠습니다. 이 문장이 그렇습니다. 이 문장을 정확하게 말씀드려서 염려함으로 그런 것을 구하지 말고 염려를 빼고 구하라는 겁니다. \"염려하지 말라.\" 하는데 이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데 무엇 때문에 무엇을 염려하는 것인지를 이제 한번 살펴보면 압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여 구하는데 성경이 무엇을 위하여 염려한다고 했습니까? 25절 한번 보실까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을 위하여요? \"목숨을 위하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지 말라 그겁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희가 구하는 음식이 목숨보다 크냐? 너희 목숨이 음식보다 크냐?\" 이럽니다. 여러분, 뭐가 큽니까? 목숨이 음식보다 큰데, 돈보다 큰데 자기 목숨을 위하여 돈에게 매달린다는 겁니다. \"당신 없으면 큰일입니다.\" 해서 돈 돈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얼마나 불쌍한 인생이냐는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위하여 목숨보다 작은 돈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던지 돈이 없으면 곧 죽는 줄로 알고 목숨을 위하여 재물이 없음에 대하여 염려한다는 겁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아, 그것이야 그렇지요. 목숨이 하루라도 부지하려면 먹어야 되지 한 3일 정도는 굶을 수 있겠지만 계속 굶으면 죽을텐데…, 목숨을 위하여 그래 재물이 있어야지\' 이렇게 이제 생각이 되실 겁니다. 그런데 주께서 하신 말씀은 \"네 목숨보다 못한 재물을 목숨이 그것을 귀한 줄로 알아서 매달려서 그대 없으시면 나 죽어요. 돈님이여, 당신이 없으시면 난 죽어요.\" 참 불쌍한 인생이라는 겁니다. 불쌍한 인생! 재물이 좀 있다고 목숨이 위로 받는 바보나, 재물이 곧 없다고 목숨이 불안해지는 이런 천치는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 안타까운 형편에 처해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물질을 좀 쌓아 두었다고 위로 받고 안심하는 목숨이나, 사업이 좀 어렵고 돈 떨어진다고 그냥 상(像)이 노래져 가지고서 곧 죽을 것처럼 요 이불자리 펴놓고 드러눕는 목숨이나 너무 너무 불쌍하다는 것이지요. 목숨보다 못한 것을 위하여 그에게 큰 기대를 받으려고 하고, 그 목숨보다 못한 재물에 굉장한 기대를 걸고 실망을 하고 그렇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지 말고 주께서 하신 말씀은 무엇이냐? 물질이 없어서 근심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없는 것을 근심하라는 겁니다. 재물 좀 있는 것으로 위로 받지 말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에 위로를 받아야지, 그놈의 물질 많이 모아가지고 \'창고에 쌓을 곳이 없구나\' 하지만 \"오늘 밤 네 영혼을 블러낼 수 있는 하나님이 네 영혼을 위하면 그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말이에요, 물질이 내 목숨을 지켜줄 수 있느냐 그것입니다. \"네가 염려하므로 그 물질 그 입을 것 그 마실 것이 키를 한 자나 더해 줄 수 있더냐? 그것들이 널 키워주는 줄로 착각하는 너희여, 그게 네 하나님이냐? 근심을 하려면 염려를 하려면 하나님이 없나 싶어 염려해야지, 하나님이 나를 자기 백성 아닌 것처럼 여길까봐 염려해야지, 들풀들도 먹이시고 공중에 나는 새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의 형상과 그의 모양대로 지음 받은 그리고 그의 혼을 불어 넣어주신 바로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데 어떻게 새 취급하겠느냐? 어떻게 들풀 취급하겠느냐? 너희에게 훨씬 비중을 더 두는데 새와 들풀도 틀림없이 기르시나니 너희를 지켜주지 않겠느냐? 문제는 물질이 있어 없어 너희가 위로 받고 근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서 근심해라. 오늘 당장 먹을 것이 없다하더라도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면 내일 아침 때 거리가 없음을 하나님이 아시면 그것은 채워질 수 있지만, 네가 여러 날 먹을 것을 저 쌀뒤주 속에 가득 채워 두었다해서 그것이 너의 목숨을 그날 밤 이틀 밤 지켜줄 수 있겠느냐? 그것을 네 목숨을 노리는 강도를 막아줄 수 있겠느냐?\" 돈 많아봤자 목숨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돈 많으면 언제 강도가 들어와서 돈을 찌릅디까? 사람을 찌르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그 얘기를 듣고 보면 아주 자연스럽고 맞는 얘기인데, 그것 참 인간이 우매하지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매우 상식적이고 매우 진실한 이 진리를 알고 이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지키시는 우리 아버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는 아버지와 자식의 사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를 확실히 믿는 자녀들은 돈 없는 것 걱정 안 합니다. 부모가 힘이 있고 용돈을 잘 주는 부모이면, 나쁜 짓만 안 하면 뭐든지 해 줄 수 있는 부모이면 그런 부모 밑에서 자라나는 아이는 용돈 떨어졌다고 걱정 안 합니다. \"아빠!\" 하면 끝입니다. 아침에 나가면서 \"돈!\" 하지. 밤새도록 걱정해서 잠 안자고 그런 것 안 합니다. 용돈 잘 주는 부모 만나서 그 부모를 믿는 자녀들은 돈 있다고 해서 그렇게 큰 위로 안 받습니다. 여러분 부모 훌륭한 부모 만난 자녀들은 용돈 주면 자기 책상 위에나 책꽂이에 그냥 보는 데다 다 놓아 놓고 다닙니다. \"돈 더 가져가라. 더 가져가라.\" 합니다. \"아, 이거면 됩니다.\" 그래요. 부모를 믿는 아이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그것을 잘 안주고, 꼭 줄 때도 안주고 이렇게 하면서 자꾸 구두쇠 노릇을 하게되면 자식들이 부모를 못 믿지요. \'내가 급한 일 있어서 돈 달라고 해도 안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뭡니까? 거짓말 해서 돈 빼어내지요. 꼬불쳐놓지요. 혹시 부모가 급한 일이 있어 가지고 \"나 카드는 있는데 통장은 있는데 잔돈이 없구나. 야야, 너 잔돈 좀 가져와 봐라.\" 안줍니다. 부모 믿을 수가 없어서요. 다만 얼마라도 제가 가져야 되지요. 그러니까 부모를 못 믿는 자녀는 돈을 모읍니다. 거짓말 해서라도 빼내어서 어디 양말 사이든지, 구두 밑창에 깔든지 해서 돈을 가지고 다니게 되지요. 못 믿는 못 믿는 자녀들은 그렇게 되지요. 이제 그런 자녀들이 사회에 나가도 좋지 않습니다. 이런 부모, 믿을 수 있는 부모는 자녀들이 돈 가지고 염려하지 않고 돈 많다고 해가지고 그날 밤에 \'할렐루야! 나 돈 생겼어\' 하고 좋아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쓸 데 있으면 쓸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요. 여러분, 하나님을 여러분의 부모보다 더 믿을 수 있지 않습니까? 잘 안 믿어집니까? 안 믿어지면 병입니다. 하나님이 안 믿어지면 병이예요. 하나님을 못 믿기로 지혜있는 사람은 그 지혜는 잘못된 지혜지요. 자기 목숨을 위하여 자기 목숨보다 귀한 하나님이 혹시 나와 함께 계시지 않을까, 나를 안 도우시지 않을까 해서 염려를 해야지. 돈이 없으면 걱정이고 있으면 안심이다 하면 돈이 무엇을 해 주겠느냐는 그겁니다. \"네 목숨을 연장 시켜줄 수 있으며 키를 키워줄 수 있느냐. 아무 힘이 없는 목숨보다 못한 돈으로 위로 받는 인생아, 거기에서 떠나라. 그것은 돈을 믿는 믿음이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 사시사철 저 새도 들풀도 먹이시고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하나님을 믿으면 왜 너희가 굶어죽는다는 말이냐? 하나님을 떠나 있을까봐 걱정을 해야지. 어떻게 돈 없다고 그렇게 걱정을 하느냐?\" 재물이 있으면 안심하는 분들은 아마 재물이 아니라 \'재물님\'이 될 것이지요. \"재물님이여, 그대만 내게 계시오면 나는 만사 OK입니다.\" 곗돈 찾으면 뭐, 그래서 돈 몇백 만원 장농 안에 갖다 넣으면 그날 저녁에 잠도 안 와요. 얼마나 좋은지, 하나님이 나를 항상 지켜주는 바람에 잠이 안 올 정도가 되어야 할텐데…. 여러분, 이 말씀에 은혜 받고 확실한 소망 중에 집에 가면 잠 잘 옵디까? 텔레비전 좋은 것이 눈에 어디 들어옵디까? 하나님으로 만족해서 잠 못 자는 밤이 있어야 되겠는데, 돈 다발 하나 들어보면 잠이 안 올 정도면 그건 돈 종이라 그 말이지요. 돈 종 하다가 재미 못 본다 그것이지요. 강도 만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없어 염려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을까봐 염려하고, 하나님이 날 지키지 아니할까봐 염려하고 그리고 무엇을 구해야 되느냐? 하나님 앞에 이런 것을 구하라는 겁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나의 나라요, 하나님 나라 임하셔서 나를 당신의 나라 왕으로 삼으소서\' 이런 기도하는 겁니까? \'하나님 나라 내게 임하셔서 나를 당신의 백성 삼으소서\' 하는 겁니까? \"나를 당신의 백성 삼으소서.\" 그겁니다. 기도는 듣는 이 좋으라고 하는 겁니까? 나 좋으려고 하는 겁니까? 나 좋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께서 우리 좋으라고 가르쳐주신 기도가 뭡니까? \"나라이 임하옵시고…\" 그랬어요. 어느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내게 임한다면 내가 그 나라 왕 됩니까? 그 나라의 백성 됩니까? 백성 되겠다는 말이지요. 그 나라의 백성이면 세상을 지으신 왕께서 자기 백성을 못 먹이면 왕이냐 그 말입니다. 지구촌 가운데 잘 사는 나라 미국을 제가 여러 차례 가 보았는데 미국 사는 사람들은 시민권만 가지면 걱정을 안 합니다. 나라를 믿어요. 병들면 병든 수당 나오지요. 직장 떨어지면 무직수당 나오지요. 무직 수당이 어떤 사람은 직장 다니는 것보다 더 나아요. 아이 둘 이상 낳으면 또 우유 값 다 나오지요. 돈 다 떨어져도 분명히 자고 먹고 입을 것은 국가가 다 해주지요. 돈 없어도 공부하게 다 해주지요. 그 나라 시민권만 따면은 절대로 굶어죽고 얼어죽는 법이 없습니다. 길거리에 나 앉을 수가 없습니다. 돌아다니면서 모포 뒤집어쓰고 지하철 같은데 자는 여러분 여행 가셔서 보신 분이 있겠지만 그 사람은 그게 좋아서 하는 것이지, 집을 안 주기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닙니다. 거지 노릇이 즐거워서 집을 주어도 거지 노릇해서 거지가 있는 것이지, 그 나라가 그 나라 시민을 굶기지 않습니다. 그 나라가 절대 굶기지 않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시민임을 자랑합니다. 미국 시민이 어느 나라에 납치되어 갔을 때 미국이 가만있습디까? 군대를 일으켜서 반드시 공격을 해서 찾아옵니다. 그래서 미국 시민을 함부로 납치 안 합니다. 납치해가도 꼼짝도 안 하는 나라는 \'저것들은 건드려도 아무 일 없어\' 하고 그냥 합니다. 막 끌고 가지만 미국 시민 못 건드립니다. 이 세상에 그런 멋진 나라도 있는데 여러분, \"하나님 나라이 임하옵소서. 내게 시민권을 부여하시옵소서. 나는 주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라고 하는 이 말은 \'그분 나라가 임하여 와서 영광스러우소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내일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구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겁니다. 그의 의가 무엇입니까? \"아이고 주여, 의롭지 못하니 의로우시옵소서, 주님, 어떻게 죄를 많이 지으십니까? 좀 의롭게 사십시오\' 그런 겁니까? 의는 뭡니까? 의리지요. 군주와 백성 사이에 의리, 형제의 의리(義理), 의(義), 관계(關契) 이런 것이지요. 의를 구하라는 겁니다. \"주여, 내가 누구입니까?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면 주여, 주님에게 나는 누구입니까?\" \"어, 너는 내 백성이지!\" \"의(義) 지키십시요.\" 의를 지키십이요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주여,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마옵소서. 내가 마실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없으면 주께 구하라는 것인데, 돈 있으면 위로 받고 돈 없으면 걱정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찾아오다가 내 백성이 내일 먹을 것이 없지 싶어 찾아 오다보니까 돈 떨어졌다고 그냥 초죽음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실망하신 것이지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삐꿈 타신 것이지요. \"저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돈을 믿고있네 돈 그게 무엇 얼마나 자기를 도울 것이라고 저렇게 하는가\" 해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시게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날 때부터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가르칠 때에 \"돈 귀한 줄 알라. 돈 귀한 줄 알라.\" 이렇게 얼마나 많이 말씀을 하셨던지 돈 귀한 줄 알라는 말이 알게 모르게 어느 사이에 의식화되어 가지고서 귀에 못이 박혔어요. 그래서 우리들 아이들은 크면 돈 귀한 줄 알아요. 또 이어서 하는 말이 \"돈 없으면 죽어 이놈아. 돈 없으면 죽어.\" 그리고 학교에 갈 때 무슨 대학에 들어갈 때나 직장 택하기 위해서 할 때 얘기를 뭘 먼저 하느냐 하면 \"그 과(科)를 택하면 돈 잘 버나? 그 직장 돈 잘 준다 하나? 몇 프로 준다 하나?\" 전부 돈 돈, 전부 돈으로 인생을 방향을 잡게 만들어요. 돈 귀한 줄 알라하니까 돈 귀한 줄 알아요. 돈 많이 벌 데로 가요. 인생이 나서 자기에게 준 재능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준 달란트가 무엇인지, 그것을 따라 일평생 살아야 신날텐데 자기에게 준 끼가 있는데 끼는 둘째고 돈 끼라 돈 끼, 온통 부모들이 돈 귀한 줄 알라 하니까 돈 귀한 줄 알면 뭐 귀한 줄 모릅니까? 하나님 귀한 줄 모르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재물 가운데 하나님 귀한 줄 알도록 가르치라는 겁니다. 하나님 있으면 돈이 해결이지만 돈 있어서 하나님 해결은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돈 가지고 하나님 삽니까? 그래서 \"돈 귀한 줄 알라. 돈 없으면 죽는다. 거기 가면 돈버나?\" 정말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모양대로 지음받은 우리 인생이 이 지구를 지배하면서 하나님이 이 지구촌에 담아놓은 모든 것을 다 발견해 내라고, 땅속에 있는 기름도 파 쓰고, 석탄도 파 쓰고, 보석들도 빼어내고, 고기도 잡고, 공중나는 새도 잡고, 다 잡을 지혜까지 다 주어서 \"전부 너희에게 주노라.\" 해 놓았는데, 인생이 인생답게 그것들을 누리면서 장악하면서 다스리면서 살아야 할텐데 다스리기는커녕 종이 되어서야 되겠느냐 그겁니다. 그것 참 불쌍한 인생이지요? 항상 돈 귀한 줄 알라고 해서 아이들은 돈 귀한 줄 압니다. 직장도 돈을 중심으로 택합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하나님 귀한 줄을 모르는 것이지요. 제가 지난번 호주 시드니에 갔을 때 그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있지 않습니까? 호주 선전 딱 나오면 오페라하우스 이상하게 조개 껍데기처럼 그렇게 된 것 있지 않습니까. 참 그것은 제가 한번 보았으면 싶었는데 가 보았어요. 어떻게 저렇게 유명하게 이렇게 되었을까 해서 제가 가 보았어요. 가 보았는데 토요일 날 오후에 잠시 갔어요. 마침 그날 유명한 오페라가 있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막 사람들이 줄에 줄을 이어서(B면) 안으로 들어가요. 들어가는데 첫날 제가 공항에 내렸을 때 그 오페라 하우스를 거쳐가면서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도 다 클로스(close) 되어 있어서 제가 못 보았는데, 두 번째 잠시 시간 내어서 갔을 때에는 사람들이 막 들어가더라고요. 이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안이 어떻게 생겼나 보고 싶었는데 티켓이 있습니까? 우리는 좌석이 없으니까 못 가야 될 형편이지요. 그래서 그 안내하는 선교사님하고 저하고 막 사람들 들어가는 입구에 고개를 쑥 들어 밀어가지고서 어떻게 생겼는가 볼 수 있을까 해서 하니까 딱 눈치를 채고 여성 직원인데 그 직원이 \"당신들 안을 보기를 원하느냐?\" 그겁니다. \"아, 그렇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 \"안에 좌석은 없습니다. 오늘 만석입니다. 좌석은 없고 5분 후에 오페라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들어가서 5분 이내로 나오셔야지 불 꺼지고 나면 나오기 힘듭니다.\" 하면서 우리를 믿고 그냥 들여보내 주는 거예요. 구경하고 싶은 사람 구경시키는 거예요. 또 설령 안 나와도 그렇게 이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요. 그 사람들의 생각, 서양으로 가보면 뭐든지 사람을 만나서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주려는 사상에서부터 만납니다. 우리가 더러 관공서에 가보면 될 것도 안 된다는 조문부터 갖고 나와가지고 \"그것 안됩니다. 가시오.\" 이런 소리를 들을 때 참 우리는 익숙해 있어서 괜찮습니다만 이것은 근본 자세가 참 다른 것이지요. 그래서 내부도 제가 잘 보고 왔습니다만 그 오페라 하우스를 옛날에 짓기 전에 설계를 할 때 유명한 이태리에 있는 설계 건축가가 설계를 했답니다. 여러 설계를 했는데 뽑다가 보니까 떨어져나가고 \'이게 뭐 이런게 있느냐\' 해서 떨어져 나갔는데 다 챙기고 챙기다가 \"아까 그 이상하게 조개껍데기처럼 생긴 것 그것 한번 다시 한번 보자.\" 해서 채택이 되어서 그것을 짓게 되었는데 벌써 그 오래 전에 이 사람은 20세기를 내다보고 20세기 사람들도 깜짝 놀랠 설계를 했기 때문에, 당시에 검토하는 사람들이 그 설계한 사람만큼 실력이 없어 가지고서 내버렸다가 다시 짓게 된 것인데, 오늘날 호주라 하면 바로 그 건물이 호주를 전부 사람 오게 만드는 건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건물이 되었는데 그래서 이렇게 건물이 되고 나서 그 설계한 사람에게 설계비를 주려고, 그런데 무슨 설계비가 그리 많은지 우리 나라 돈으로 뭐 여러가지 해서 국가에서 주려는 돈이 70억인가, 근 100억에 가까운 이런 보상금과 함께 설계비를 주려고 이태리에 있는 그 설계자를 오라고 해서 국가적인 행사로 하려고 그렇게 해서 오라고 하니까, 자기가 하는 말이 \"난 안가겠소. 돈 안 받겠소. 당신들이 내 작품을 이해했다는데 대해서 당신들은 위대합니다. 난 그것으로 만족하지 돈은 필요 없소.\" 그래서 한푼도 안 가져가고 그 행사에 참여하라는데도 \"피곤해요.\" 하면서 안 왔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 귀한 줄 안다면 왔겠지요. 그 사람은 돈 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재능을 알아주는데 만족했다 그것입니다. 세상 사람 가운데는 이렇게 참 멋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돈 돈 하는데, 그 돈 벌 것 아닌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관심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없어 탈이지 하나님만 함께 있으면 돌들을 명하여 떡을 만드시는데 왜 못하시겠습니까? 저는 짧은 기간 살아오면서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먹을 것 입을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겁니다. 돈이나 재물, 그것은 큰 의미가 그렇게 있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에 있는 31절부터 다시 한번 읽어보면서 정리를 해 볼까 합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아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염려하여 그렇게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재물과 재물 없음을 인하여 재물이 다 도와주는 것처럼 생각해서 혹시 없다고 해서 재물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는 겁니다. 염려하지 말고 그런 것을 구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32절에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2-33)라고 했는데 이 구절을 잘 보십시요.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는데 주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우리가 안 구하기 때문에 구하라는 뜻입니까? 여기 내용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없을 때 하는 기도를 가리킵니까?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없을 때 하라는 행동을 가르칩니다. 이해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이 없으면 먼저 뭘 하라고요?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겁니다. 그것 아까 설명 드렸지요? \"하나님이여, 나는 당신 나라 백성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라는 겁니다. 미국 시민은 어려움을 당할 때 \"나는 이 나라 시민이요.\" 이것 항상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내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나라의 주인이신 왕이시여, 하나님이시여, 나는 당신의 백성입니다. 당신의 백성이 내일이면 굶어요.\"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고 하니까 \"영광 받으소서.\" 이런 것이 아니고 \"나는 당신 나라 백성입니다.\" 그 다음에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겁니다. \"내가 당신 나라 백성인데 왕 되신 주께서 자기 백성을 죽이실 겁니까?\" 그런데 이것이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해가 좀 덜 됩니다.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에는 이해가 잘 됩니다. 사회주의 국가에는 그 주석을 아버지라 합니다. \"김일성 아버지, 모택동 아버지, 스탈린 아버지.\" 이렇게 합니다. 왜입니까? 국가가 배급을 주니까요.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자기가 벌어 자기가 먹으니까 이게 돈 없으면 죽는 줄로 아는 이런 형편이 또 되는거라구요. 그런데 이 하나님의 나라에 개념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겁니다. \"들풀도 그리하시거늘 하물며 너희 일까보냐?\"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다 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너희가 먹을 것이 없으면 먼저 기도하기를 \'나라를 구하라\'는 겁니다. 누구나라?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겁니다. \"나는 마귀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성도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 된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다음에 또 구할 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이시여, 의를 행하시옵소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의로 사랑이 많으시니 자기 백성이 멸망할 것을 건지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내어놓기까지 하십니다. 주여, 주의 백성이 여기 굶어죽는 꼴을 보시겠나이까? 세상 사람이 뭐라 하겠나이까? 주여, 우리 아들 우리 딸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 주소서. 왜냐하면 믿는 사람이 동네에서 못 살고 아래에 있으면 주께도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이렇게 딱 챙겨서 하게되면 하나님도 그런데는 굉장히 민감합니다. 모세가 기도 드린 것 하나님 민감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다 죽이면 하나님 자존심 상할 일 생깁니다. 하나님 힘 없다 소리 듣습니다.\" 하니까 \"좋다. 네 말대로 하자.\" 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잘못되면 우리가 굶게되면 우리 집 앞에 십자가 패 붙여놓고 있는데, 하나님 믿는 사람들 잘되는 것 못 봤다 하면 난 괜찮아요. 하나님이 문제지요.\" 이렇게 기도를 해야할텐데 \"하나님은 괜찮고 내가 탈입니다.\" 하니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시지요. 오늘 정말 기도하는 법을 잘 배우셔서 재물 없음을 염려하지 말고, 자기 목숨을 위하여 하나님 없음을 오히려 염려하여 하나님을 먼저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나라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확정적으로 되거든 그 다음에 \"주여, 의를 행하시옵소서.\" 그 기도를 했을 때 마음속에 기쁨이 오고 응답이 오면 할렐루야! 걱정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먹이시고 입히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 여기까지만 하면 오늘 여러분께서 말씀을 배우시고 \"아이고, 있고 없고 걱정할 것 없네. 있다고 위로 받을 것도 없고, 없다고 너무 걱정할 것 없네. 기도다 기도.\" 하나님 나라 오늘 이제 바쁘게 되었어요. 전부 \"하나님 나라 임하시옵소서. 의를 구합니다. 의를 구합니다.\" 이제 굉장할 줄로 생각되는데 주께서 이어서 하신 말씀, 오늘 시간 관계상 다 뽑지 못했지만 6장에 이어지는 7장의 말씀을 가서 보면, 이제 7장 7절부터 그 구체적인 방법을 좀 알 수가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7장 7절 이하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선지자니라\"(마7:7-12) 이 말씀을 이제 제가 해석을 해 드리겠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라.\"라고 하니까 이제 기도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주여, 구합니다. 주시옵소서.\" 또 두드리라고 하니까 \'어디를 두드릴꼬? 마룻바닥을 두드려?\' 찾으라 하니까 \'어디…?\' 이렇게 찾으라는 겁니까? \"먹을 것이 없거든, 입을 것이 없거든, 마실 것이 없거든 그것 없어 죽는다고 염려하기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후에 하나님이 달라 하면 세상 부모도 생선 달라 하는데 뱀을 주며, 떡을 따라하는데 돈을 줄자가 있겠느냐? 세상 부모도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나님께서 하물며 좋은 것을 주지 않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찾으라는 겁니다. 찾아 나서라는 거예요. \"공중 나는 새를 보라.\" 하니까 공중 나를 새는 농사하지 않아도 창고에 쌓지 않아도 산다 하니까 모두 생각하기를 \'가만있어도 우리는 더 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 와(왜)? 서울에서 오신 분들은 \'와?\' 하면 잘 못 알아듣겠지만, 왜 공중 납니까? 여러분, 새가 왜 공중 납니까? 구석에 박혀 있는 보라 하지 않았어요. 공중 나는 새를 보라 했지요. 공중 나는 새는 찾아다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모이를 찾아다니는 것 아닙니까. 적어도 만들어 놓은 것 찾을 줄은 알아야지. 여러분, 우리에게 돈이 필요하다면 돈이 어디서 나옵디까? 직장에서 안 나옵디까? 가게에서 안 나옵디까? 여러분, 돈 나오는 구멍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직장 문을 두들겨야지요. 가게를 살려고 쫓아다녀야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점원 들어가려고 해야지요.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없거든 염려하지 말고 찾으라는 겁니다. 돈줄을 찾아라. 어디냐? 직장이다. 돈줄을 찾아라 어디냐? 구멍가계다. 돈줄을 찾아라. 날품팔이다. 돈줄을 찾아라. 우유배달이다. 돈줄을 찾아라. 신문배달이다. 돈 나오는 구멍을 헤아려서 찾으라는 거예요. 일을 찾아라. 뭘 찾을 겁니까? 일을 찾을 것이지.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라. 여기 가서 찾아보면 없으면 여기 가고 한달 쫓아다니면서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벼룩 시장인가 뭔가 아침에 부인네들 가면 조그마한 신문지에다 직장 만지 않아요. \"파출부 구함\" 찾으라. 그러면 적어도 먹을 것 나온다는 겁니다. 안나옵니까? 나오지. 그 시간에 찾을 시간에 교회 와서 \'주여\' 하고 있으니 기도 안 하면 배가 그래도 먹은 게 있어 괜찮은데 기도하면 배 더 고프지요. 먼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을 확인시키고 \"주여, 나 이 형편입니다. 이제 찾아 나섭니다. 내 발길과 함께 해 주소서. 쓰러지기 전에 찾게 해 주시옵소서. 내 형편에 맞는 돈구멍 발견하게 해 주소서.\" \"찾으라. 얻을 것이요, 두드려라.\" 여러분, 어떤 사람은 직장에 들어가려 하면 \'아이구, 저기는 내가 안돼. 저기는 이미 다 먼저 들어가서 인원이 다 차 있을 것이야\' 이렇게 생각하고 집에서 고민만 하지 말고 두들겨 보라는 거예요. 열리는 집이 있어. \"100집이고 200집이고 두둘겨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쓰러기지 전에 반드시 좋은 데를 열어주실 것이다 그 말입니다. 이것 믿으십시오. 됩니다. 여러분, 그 직장 찾고 하다못해 하루 하루 날품팔이라도 힘이 있으면 가서 찾고, 옛날의 실력가지고 찾고 새벽에 나가서 청소부라도 힘있으면 찾고 찾으면 하루 먹을 것 충분히 나옵니다, 여러분. 그렇게 찾다가보면 적은 데서부터 큰 사업하게되지요. 누가 처음부터 큰 것 됩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종노릇하면서부터 먹을 것 생겼지 않습니까 \"하나님이여, 내게 먹여주시니 감사합니다.\" 했더니 점점 점 커갔지 않습니까? 그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집사님 중에 한 분이 상당히 공부도 많이 한 분인데 \"아, 제가 돈을 벌어서 헌금도 많이 해야 되겠는데 직장 생활해 가지고는 얼마 못 버는데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하는데 리어카 한 대 2만원인가 3만원 주고 사가지고서 리어카 끌고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고물을 좀 해야 되겠다 해서 \"하십시요.\" 그래서 우리교회 안수 집사님인데 했어요. 참 그것, 리어카 끌고 다니는 것 좀 안됐기는 안되었어요. 고물 줍고 다니는데, 그래 제가 그랬어요. \"고물로서 끝내지 마시고 줍다 보면 그 고물이 굉장한 돈줄을 찾아낼 겁니다. 돈 되는 고물이 뭔지를 발견하고 나중에는 아주 고물상을 차리시오.\" 그렇게 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스탭 바이 스탭(step by step) 한 걸음 한 걸음 올려주는 것이지 한꺼번에 맡겨놓으면 감당도 못해요. 거기에 경험을 가져야 그 계통의 사업을 하지, 사장도 하지 처음부터 사장시키면 못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찾으십시오. 누구를 믿고? 하나님을 믿고. 그래서 마지막 말이 뭡니까? 네가 대접을 받으려면, 돈 받으려면, 네가 옷 입고 먹고 마시려면 뭡니까? 먼저 남을 대접하라 그거예요. 내가 일을 해야 돈을 주지요. 내가 일을 한다면 뭡니까? 그에게 일로 대접을 한다는 것 아닙니까? 내가 그에게 뭔가 꾸어 주어야 받을게 있고, 내가 누구 사업에다 내가 먼저 베풀어야 그 사람이 날 베풀지요. 이 뜻이 무엇입니까? 전혀 주지도 않으면서 달라 달라하니 배가 더 고프지요. 그렇게 하지 마시고 우리는 물질에게 목숨 갖다 매지 마시고 물질 많다고 너무 위로 받지 마십시오. 그것 위로 아닙니다. 여러분 중에도 옛날에 돈 많이 가진 분 계셨을 겁니다. 돈 많이 가진 분이 한번 돈 다 흘려보내고 다시 돈 가졌으면 싶은 분도 있는데, 두 번 실패하지 마십시오. 돈 다 날려보낼 때 여러분 충격 얼마나 컸습니까? 한 3층에서 떨어지는 것 같지 않습디까? 또 그 꼴 당하려고 돈 많이 모으려 합니까? 돈 도움되지 않습니다. 돈 많이 가졌던 분 돈에 위로 잠깐 있었을 겁니다만 그때는 돈이 좋았지 하나님 생각 안 났을 겁니다. 여러분, 돈과 함께 위로 받지 마시고 하나님과 함께 위로 받으십시요. 매일 매일 지키시는 하나님, 우리가 찾아 나설 때 직장을 찾아 나서고 돈벌이 할 때를 찾아 나설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에게 뭔가 사장에게다가 다른 일하는 주인에게다 내가 먼저 베풀면, 그런데 분명히 먼저 베풀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먼저 베풀 힘도 없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선 얻어먹으면 힘을 얻어 가지고 베풀면 올 것이라는 겁니다. 일도 하지 않고 돈 생기겠다고 그런 생각하지 마십시오. 노력하고 가지라는 겁니다. 공중에 나는 새들이 날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먹을 것 쌓아 두었으니 날아가야 잡아옵니다. 들풀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데 들풀 그냥 됩니까? 땅에 거름이 하나도 없으면 들풀이 납니까? 자기가 겨울 되면 죽어 썩어져서 땅에다가 거름을 주고 봄이 되면 자기가 다시 그 거름 뽑아서 먹어 살아나고 그리고 뭡니까? 좋은 백합화를 피우고 또 번식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벌들이 와서 나비들이 와서 자기의 꽃가루를 물고 가고 뜯어먹고 열매를 가져가고 여러분 이 나무가 저 산에 가도 감나무가 있고 없어야 될 그런데도 감나무가 있는 것 왜 그럽니까? 까치가 감을 익을 홍시를 먹을 때 무엇까지 먹어? 씨까지 먹어요. 가서 배가 아파 가지고서 저기에 날라 가서 통 하고 쏘았는데 무엇까지 쏘았어요? 씨도 쏘았어요. 그 씨가 거기 가서 심기워서 살아남기 위해서 뭘 해야 됩니까? 까치 배속에 들어가서 그것 속에 있어야지 않습니까? 여러분 쉬운 것이 없습니다. 다 살아남기 위하여 여러분 두들겨야 됩니다. 찾아야 합니다. 힘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하여 주시리라 했습니다.
교회같은 가정, 교회같은 직장/ 엡6:1-24/ 2002-08-16
교회같은 가정, 교회같은 직장 엡6:1-24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최근 연일 매스콤을 타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 제목은 \\\\\\\"집으로\\\\\\\"라는 영화..입니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 영화는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가정에서 꼭 있어야 할 소중한 것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점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영화입니다. 사실 그동안 극장가를 강타했던 영화는 이런 영화가 아니라 폭력, 성(섹스), 엽기 등..을 주제로 다룬 영화들이었는데 모처럼 신선하고 좋은 영화가 나왔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일곱 살 먹은 꼬마 상우와 외할머니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도시에서 자랐으며, 버릇없이 투정이나 하는 꼬마 상우와 벽촌 산골에 사시면서 말을 못하시는 일흔 일곱의 외할머니.. 이 두 사람은 닳고 닳은 그리고 자기만 알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열 아홉에 가출하여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어머니를 찾아가는 한 여인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이 여자가 어머니를 찾아가는 이유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한달 간 아이를 어머니에게 맡기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꼬마 상우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골에 계시는 말 못하는 외할머니와 함께 같이 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 꼬마 상우는 나이도 어릴 뿐더러 개구쟁이였기 때문에 외할머니 앞에서 전혀 예의를 갖출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에게 \\\\\\\"벙어리! 병신!\\\\\\\"이라 하면서 욕을 하지 않나... 요강을 발로 차 깨 버리지 않나... 바늘로 기워 신으시는 할머니의 검정 고무신을 감춰버려 맨발로 다니시게 하질 않나... 게임기 밧데리가 다 닳았는데 그걸 못 갈아주는 할머니에게 온갖 강짜를 부리질 않나... 그렇지만 말을 하지 못 하시는 할머니는 이런 손자에게 계속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깡통에 든 햄만 먹으려는 상우의 밥에... 김치를 얹어주시기도 하시고... 잠든 상우가 누운 옆으로만.. 조심조심 비질을 하면서 청소를 하시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비록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상우와 함께 살다보니.. 상우가 왜 밥을 안먹는지, 상우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어느 날.. 나물 말린 것을 장에 들고 나가 팝니다. 그리고는 상우가 좋아하리라 생각하는 닭을 사 가지고 와서 푹 삶아 백숙을 끓였습니다. 그런데 상우는 투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할머니, 내가 언제 백숙 먹고 싶다 그랬어?.. 후라이드 치킨 먹고 싶다 그랬지\\\\\\\"... 바로 이런 모습이.. 할머니와 꼬마 상우 사이에 늘 일어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맞지 않는 것 같고... 그래서 영원히 평행선만 그을 것 같던 할머니와 상우도 언제부턴가... 어떤 계기로 인하여...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바늘에 실을 끼우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상우는 할머니가 부탁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바늘에 실을 꿰어 드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성스럽게... 바늘에 실을 꿰기 시작하였습니다. 실을 길게 늘여... 길이를 가위로 잘라 맞추질 않나.... 소나기가 오니까.. 빨랫줄에 널린 자기 옷과 할머니의 옷을 걷어내질 않나.... 앓아 누우신 할머니를 위해 진짓상을 차려드리면서 \\\\\\\"아침 먹어! 아니 점심!\\\\\\\" 하질 않나...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할머니와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하니 덩달아 동네의 형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절대로!! \\\\\\\"미안하다, 잘못했다\\\\\\\" 말 안하던 상우가... \\\\\\\"미안하다!\\\\\\\"는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철이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면 이 소년 상우가... 집이 뭔지, 가족이 뭔지.. 사랑이 뭔지.. 이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고는.... 눈물을 펑펑 쏟게 됩니다. 그 한 예로.... 힘없는 할머니가 게임기 밧데리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버스도 타지 않고 읍내에서 그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왔으며 그렇게 힘들게 걸어서 돈 몇 푼씩을 모아 자기의 게임기 밧데리를 살 돈 몇천원을 마련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바로 그때 였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상우라고 해도..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이 있지만.. 영화이야기는 여기서 중단하고...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사람에게는 이러한 가정이 있어야 하고 사람은 가정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고 변화되고 성숙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오늘 설교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말씀드리는가 하면 교회의 사명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가정 되게 하고.. 직장을 직장이 되게 하는 일에 누가 앞장서야 하는가?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먼저 믿는 성도 개개인이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리스도로 통일될 뿐 아니라... 서로 함께 자라가고 또 함께 지어져 가면서 오늘도 만물을 새롭게 하시며.. 또 공동체도 새롭게 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부응하여 각자가 속한 가정과 직장을... 그리스도로 충만케 그리스도 통일시켜 나아가면서!! 가정이나 직장을.. 정말 새로운 공동체..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할 책임이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교회란 무엇인가.. 이점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1:22-23). 함께 지어져 가고 함께 되어져 가는 공동체다(엡 2:21-22).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 곳이다(엡 3:10).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곳이다(엡 4:1-3). 거룩한 삶과 바른 삶을 가르치는 곳이다(엡 5:8). 이것이 지난 시간까지 살펴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어지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교회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 만물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란 믿는 사람들끼리.. 자기들끼리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드리고... 또 가르치며 배우기만 하는!!... 교회 자체만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공동체이기에 모이면 가르쳐야 합니다. 또 배워야만 합니다.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르며.. 서로 함께 지어져 가고.. 되어져 가야만 합니다. 또 이것 저것 훈련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교회 자체만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가정을 가정 되게 하고!! 직장을 직장 되게 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교회를 통하여 가정 직장 만물을 점점 새롭게 변화시켜 나아가기 위하여.. 교회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23절에서는 교회의 사명과 역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개인이 충만되고... 나아가... 교회가 충만 되고.. 또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가정과 직장과 만물을 충만케 하기 위하여..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교회 같은 가정, 교회 같은 직장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설교 제목을 정해놓고 다시 쳐다보아도.. 제목이 너무나 잘 정해져서 감사하였습니다. 사실 이것은 참 중요한 주제이며... 제목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가정은 가정이고.. 교회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르침입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부터 마지막절까지 보면 거기에는 가정에 대한 말씀이 나타나는데.. 남편과 아내는 어떠해야 하는가.. 또 가정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면서... 비유를 교회로 들고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부부를 설명하면서.. 교회를 비유로 드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들이니까!.. 맨날 교회에서 사니까!.. 아는 것이 교회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예를 든 것이 교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성경을 읽어보겠습니다. 5장 21-27절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 보십시요. 뭐라고 말씀하였습니까?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마치 뭐와 같다고요? 남편이란 아내의 머리됨과 같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됨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교회라고 하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또 몸과 머리라는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이 말!! 한 가지만.. 딱!! 분리해 가지고!! \\\\\\\"여보!! 성경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 했으니.. 당신은 내 말에 무조건 복종하시오!\\\\\\\" 이렇게 말하는 태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의미는 그런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복종이 복종 아니라는 말은 또... 아닙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복종이란 의미가 어떤 의미로 씌어졌으며!!.. 어떤 비유 가운데 설명되었는지!!.. 이 점을 바르게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점.. 그 복종이란 진정한 의미를.. 어디서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바로 그 곳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신 곳!!..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바르게 배울 수 있는 곳!!..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따라 바르게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바르게 정립하고 이상적인 부부, 이상적인 가정, 하나님의 가정을 세워나가는.. 가정의 기초를 배우는 곳!!.. 그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란 머리는 주님이시고.. 몸은 회중으로.. 이렇게 구성된 곳이.. 교회가 아닙니까? 바로 이러한 점에서 가정을 바라볼 때.. 바람직한 가정, 이상적인 가정을 살펴보면... 그 가정은 마치 교회와 같다는 것입니다.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 머리에 붙은 몸은.. 가족 구성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다운 가정은 교회 같은 가정... 그리스도가 머리인 가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6-27절을 보십시다. 26-2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가정을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제 뭔가... 희미하던 것이 점점... 걷히는 것 같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복종하고... 그러나 그 둘은 서로 시기하며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이상적 관계로서 마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몸된 교회와 같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열심히 교회생활 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교회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그 배운 것!!.. 그 훈련받은 것으로!! 가정에 적용하고.. 또 직장에 적용하기 위하여 교회생활이!! 공동체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고!!... 그래서 열심히 출석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 배우며.. 그리스도는 나의 머리이며 우리의 머리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교회 생활하던 사람이.. 가정생활은 엉망으로 하고 산다고 합시다. 가정에 돌아가면..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자식 알기를.. 가정 알기를 우습게 알고.. 교회만 제일이고... 교회 생활만 제일로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신앙이 제대로 된 신앙인가... 하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앙인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며 배우고 훈련받는 목적이 가정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 만이 목적이라면... 굳이 교회 나오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남편에게 복종하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실천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말하는 복종이라는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서의 복종이기에.... 가정도 먼저는 그런 가정을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교회에 모여 열심히 배우며 신앙생활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현실에서.. 그 처한 현실이 가정이든 직장이든 학교든 어디든지 간에...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리스도를 충만케 하며.. 그리스도로 통일케 하기 위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서!!... 만일 이것이 우리의 삶의 현실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하면 교회에서는 참으로 열심이고... 신앙생활도 잘하지만 그가 처한 삶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생활의 기초나 신앙생활의 자세를 다시 한번 더 점검하고 또 필요하다면 신앙생활의 궤도 수정까지도 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장 3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눈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그리고 또 6장으로 넘어가서도... 가정에 대하여 계속 말씀하시는데.. 자녀 교육... 자녀 양육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도... 매 한 가지...입니다.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몸은 가정이며... 자녀이다!! 이것입니다. 간단하지만!!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자....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그 다음에 말씀하시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직장...입니다. 이것도 설교제목에 나타나 있듯.. 어떤 직장이 되어야 하는가? 교회 같은 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이든지 간에.... 교회 같은 직장을 만들어 그리스도가 머리이며.. 모든 직원들은 몸과 같이 되어있는 구조로 변화되어가는 직장이... 가장 이상적인 직장, 희망적인 직장, 천국과 같은 직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직장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직장은 직장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직장 내부를 들여다 보면... 참 문제가 많습니다. 윗 사람이 수시로 보며.. 업무를 체크하고 감시하면.. 열심히 일하는 척 하고... 유심히 감시하거나 감독하지 않으면 딴짓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윗 사람이 인격적으로 잘 해주면... 알아서 일을 더 잘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악용한다는 것입니다. 근무 시간도 제멋대로.. 직장의 재정도 제멋대로.... 근무시간인지 개인시간인지 구분 안될 정도로... 근무시간에 사우나 가고.. 운동하러 가고.. 근무시간에 개인 공부나 하고... 전화나 걸고... 게임이나 하고... 왜 이런 자세로 전락하게 되는가 하면... 직장이 무엇이며... 직업이 무엇인지... 기본 교육이 제대로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으며.. 직업 윤리, 직장 윤리, 근무윤리... 이런 것들을 어디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입니까?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오직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거룩한 삶, 바른 삶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보든 안보든!! 감시 카메라가 붙어 있든 안붙어 있든!!... 주어진 업무를 주어진 시간, 주어진 장소에서 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은 그 직업이나 그 업무가 주님과 관련되어 바르게 이해할 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직업이란 천직(天職)이라 하였습니다. 하늘이 내려주신 직업,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직업, Vocation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인데..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눈 앞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 이것을 어디서 가르쳐 주는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머리이고.. 모든 직장 사원들은 몸과 같은.. 그래서 마치 교회는 아니지만 교회 같은.... 직장이 교회 같다는 말은 직장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몸은 직원이라는 그러한 의미이지만 이와같이 교회 같은 직장이 될 때에... 그 직장은!! 이상적인 직장, 희망의 직장으로서의 공동체가 되어... 곧 하나님 나라 같은.. 천국 같은!! 그러한 직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기 믿음을 갖고 사는 이유이며.. 교회 공동체 생활을 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을 변화시켜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더 잘 생각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왜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 속에서 믿음 생활을 공동체적으로 해 가야 하는가? 왜 혼자 기도하고.. 혼자 찬송하고.. 혼자 성경읽고.. 혼자 믿다가 천당가면 안되고!! 왜 모여 생활해야 하고.. 모여 훈련해야 하며.. 그래서 하나되고 자라가고 되어가고 세워가야만 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사회를 변화시켜 나아간다는 그 변화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왜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하는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등대처럼 비춘다는... 그 비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좀 어렵고 사색적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자주 하면서 그리고 깊이 음미하면서 교회 생활을 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교회는 정말 이 시대 속에서 거룩한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 희망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가 되어... 주를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직장생활/ 벧전2:18-21
그리스도인의 직장생활 벧전2:18-21 다 같은 흙으로 만든 그릇이지만 섭씨 500도에서 구우면 된장 뚝배기 같은 토기가 되고, 섭씨 1000도에서 구우면 도기가 되고, 섭씨 2000도에서 구우면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재료지만, 그 열기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500도에서 구운 토기와 2000도에서 구운 자기는 그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고려 자기, 이조 백자는 대단합니다. 보물입니다. 우리 모두 같은 흙으로 지어진 사람이고 같은 영혼을 갖고 있지만, 우리의 가치,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얼마나 들어가 있느냐, 성령의 뜨거운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그릇이라도 토기, 도기, 자기는 다르듯이, 다 같이 예수님을 믿어도 하나님 앞에 자기 같은 귀한 사람도 있고, 도기 같은 사람도 있고, 흙(토기)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보배로운 그릇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점점 더 깊은 은혜 속으로, 성령의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시 성령의 깊은 은혜, 뜨거운 은혜에 들어가서 토기는 도기가 되고, 도기는 자기가 되는 축복의 오늘 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 일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글라우디스는 \\\"직업은 의사요, 직업은 행복의 본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없으면 병이 오는데 열심히 일하면 건강하고, 일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는데 일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일할 때도 좋지만 일을 끝냈을 때의 그 기쁨이 한이 없습니다. 저는 한 주간 계속 사역을 하는데, 한 주일의 사역을 끝낸 주일 밤에는 날아갈 것 같이 기쁩니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도 영혼은 날아갈 것 같습니다. \\\'아, 한 주간의 사역을 끝냈구나!\\\' 이 맛은 저밖에 모릅니다. 제 아내도 모릅니다. 하루 일을 끝냈을 때의 그 보람이 얼마나 얼마나 큰지…. 일은 보람이요, 즐거움이요, 건강이요, 행복이요, 또 축복의 젖줄입니다. IMF 직후에 갑자기 실직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충격을 받는 일이 있는데, 가장 큰 충격은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랍니다. 어떤 사고로 아들이 죽고 딸이 죽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이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도 충격을 받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랍니다. 그 충격을 100으로 보면, 갑자기 실직 당했을 때 받는 충격은 70이랍니다. 그러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죽는 일 다음의 가장 큰 인생의 충격이 바로 실직인 것입니다. 실직을 당하면 정신적 아픔과 그 짐, 부담이 한이 없고,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실직자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실직자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일자리가 많아져 온 국민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우리 가운데 일을 찾지 못한 분이 계시면 하나님께서 불원간에 좋은 일거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고, 그리고 찾고, 두드려서 일거리를 찾아야 됩니다. 일이 있는 사람, 직장이 있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이 있다는 것,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떻게 하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근로자, 피고용인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경영주, 상사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모든 사환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환들아, 두려워함으로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복하라.\\\" 이 사환들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케타이\\\'인데, 둘로스와는 다릅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종, 노예는 거의 둘로스인데, 사환은 둘로스가 아니고 오이케타이입니다. 사환은 노예가 아닙니다. 노예는 품삯도 받지 않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에 죽도록 일을 해도 십 원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노예가 됩니까? 빚을 많이 져서 갚지 못하면 노예로 팔리게 됩니다. 그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빚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빚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옷도 알맞게 사 입고, 생활비를 줄여야 합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안 됩니다. 수입이 50만 원이면 50만 원에 맞게 살아야 됩니다. 100만 원이면 100만 원에 맞게 살아야 됩니다. 수입이 아무리 적어도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수입이 50만 원인데 70만 원을 쓰고, 수입이 100만 원인데 120만 원을 쓰면 나중에 노예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노예는 없을지라도 빚지면 그 사람 앞에서 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 포로가 되면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전쟁 포로는 무조건 끌려가서 노예가 됩니다. 전쟁에 지면 아픈 일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에 전쟁이 없기를 바라고, 전쟁해도 이기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환은 노예가 아니라 돈을 받고 일하는 하인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종업원, 회사의 근로자들도 사환이라 보면 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환들에게 상전, 육신의 주인들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두려워하라는 말씀은 존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내가 돈을 받고 일하는 사환이라도 주인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노예도 포함됩니다. 신분이 노예로 주인의 일을 하지만, 모든 주인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로마에는 노예가 6500만 명이나 있었습니다. 노예가 시민들보다 4배나 많았습니다. 로마시 안에만 65만 명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노예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노예들의 주인들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황소 한 마리의 값으로 주인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다 같지 않습니까? 예수 안에서는 하나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 얼굴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신분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주인이나 노예나 교회에서는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주인은 믿음이 약해서 집사님인데 노예는 믿음이 좋아서 안수 집사님인 경우도 있고, 주인은 아무런 봉사도 하지 않는데 노예는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상황이 어제와 달라졌습니다. 또 집에서는 종이지만 교회에 오면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을 높이지 않고 맞먹으려고 하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종들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주인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물론 노예 제도와 같은 악한 제도는 없어져야 되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 속에 노예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제도가 없어지기까지는 노예들이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사환들에게 \\\"사환들아,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을 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예나 사환이나 주인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은 모든 직장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회사의 경영주나 직장의 상사들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배나 윗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우리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 자녀가 부모를 존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공직 사회에서나 일반 단체에서나 어디에서나 사람을 존중히 여기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에베소서 6장 5절에 말씀하십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상전들에게 주님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회사의 과장님이나 부장님이나 이사님이나 상무님이나 사장님에게 주님을 대하듯 대하라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왜입니까? 그 사람만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직장은 우리가 우연히 들어간 곳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일터이기 때문에 그 위에도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의 주인이 까다롭든 까다롭지 않든, 선하든 악하든 하나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석에서든 공석에서든 직장의 상사나 경영주에게 악담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우리 사장님, 우리 부장님, 우리 과장님.\\\"하고 반듯하게 말하는 사람은 회사의 보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우리 목사님.\\\"하는 교인이 참 교인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이 가르치시는 교훈은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어느 자리에서나 상사를 존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상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로새서 4장 1절에 말씀하십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또 에베소서 6장 9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 종들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종들에게는 물론 상전들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회장이나 사장이나 중역들도 하나님 앞에는 똑같은 종입니다. 상전들도 하나님 앞에는 똑같은 사람에 불과하고, 청지기일뿐입니다. 그러므로 경영주도 하나님 앞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원들, 하나님께서 내 일터에 보내주신 직원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알고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경영주와 근로자가 서로 존중히 여길 때 그 회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교인들만 목사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도 교인들을 존중히 여기고, 장로님들만 목사님을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도 장로님들을 중히 여길 때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중히 여기는 회사가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경제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됩니다. 반도체 사업을 보십시오. 저는 반도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우리 나라 최고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이 반도체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업이 지금은 사양길에 접어들어서 형편없다는 것입니다. 경제는 아무도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에서나 땅에서나 친구 관계, 이웃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인슈타인이 좋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사람들을 살폈답니다. 마침 한 사람을 만나서 물었답니다. \\\"당신 아이큐가 얼마요?\\\" \\\"180이오.\\\" 아이큐가 180이라는 말을 듣고 아인슈타인이 매우 반가워하며 말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상대성 이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 조금 후에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물었습니다. \\\"당신 아이큐가 얼마요?\\\" \\\"130이오.\\\" 그 사람의 아이큐가 자신의 아이큐와 차이가 나니 아인슈타인이 약간 실망해서 말했습니다.\\\"그래도 당신과는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군요.\\\" 얼마 후에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이큐가 얼마요?\\\" \\\"80이오.\\\" 아인슈타인이 아주 낙담했지만 말했습니다. \\\"당신과 내가 상대성 이론이나 정치 이야기는 하지 못해도 경제 이야기는 할 수 있겠군요.\\\" 무슨 뜻입니까? 경제는 아이큐가 아무리 높은 사람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주식 투자할 때, 머리가 아무리 좋은 사람의 조언을 받아도 망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경제는 머리 좋은 사람이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을 받는 회사는 어떤 회사입니까? 경영주는 근로자를 존중히 여기고, 근로자는 경영주를 존중히 여기는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홛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5절에서 8절에 말씀하십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일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회사에서 일하면 회사의 사장님이 월급을 주지만, 그것은 잠시의 일, 일시적인 것이고, 참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까다로운 사람에게도 순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의 일을 너무나 잘 하니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가정 총무가 되어서도 가정 살림을 잘 살았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도 전옥, 옥사장에게 복종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일을 잘 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도 애굽 왕에게도 복종을 잘 했습니다. 80년간 총리로 일하면서 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복종을 잘 했습니다. 그러니 왕이 자기 나라 국민도 아닌, 애굽 국민도 아닌 이스라엘 사람인 요셉을 총리로 세워 놓고 그가 죽을 때까지 모든 국사를 그에게 맡기고 자기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도장까지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회사에서 경영주나 상사의 말에 복종할 때 주님께 하듯 해서 그분들에게 \\\"저 사람에게는 무엇을 맡겨도 틀림없다.\\\"하는 신뢰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회사의 방침대로 순종을 잘 해야 합니다. 성경에 순종하듯 회사의 방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일을 잘 하나!\\\"하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설혹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어느 회사에서든지 무조건 데리고 가려고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참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데모에 앞장서는 사람이 교인이고, 회사의 문제를 캐내고 약점을 캐내어 회사를 어렵게 하는 사람이 교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 나라의 중소기업 중에 데모를 많이 한 기업은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지 않았어도 데모하느라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 그 기업의 일감을 다른 기업에서 가져가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나가게 되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잠시의 내 이익을 위해 데모하다가 결국 회사도 망하고 자기도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큰 회사들 중에도 데모만 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건재했을 텐데, 데모했다가 망한 회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도 이제 살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노사 분규가 많으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까? 국가적인 손실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 교인들에게 데모하라는 말씀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주인에게 열 번이나 사기를 당했습니다. 야곱의 주인이 열 번이나 품삯을 사기쳤습니다. 그래도 그는 참았습니다. 20년간 머슴살이를 했어도 집 한 채 없었지만 참으니, 하나님께서 꿈에 지혜를 주셨습니다. 꿈대로 하니 불과 얼마 후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결국 우리는 회사 일을 해도 사장님을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의 주인을 보고, 상사를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을 믿으며 일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경영주는 우상을 섬겨도 우리는 그 회사가 하나님 회사인 것처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직장에서 순복하는 아주 겸손한 그리스도인, \\\'아, 기독교인 직원에게는 무엇을 맡겨도 되는구나.\\\'라는 신뢰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에서 악을 행해 벌을 받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회사 물건을 어떻게 하거나, 부정한 짓을 해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는 것, 그것은 정말 아픈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악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빅토르위고의 그 레미제라블을 아시지요? 너무 가난한 주인공 장발장이 굶는 가족을 위해 빵 하나를 훔쳤습니다. 그것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는데, 너무 억울했습니다.\\\'빵 하나를 훔쳤는데 이렇게 중형을 주다니!\\\'그는 탈옥을 시도하다가 죄 값만 더 많아져 7년간 감옥에서 고생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으나 전과자인 그를 고용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배가 고픈 그는 어쩔 수 없이 노 주교를 찾아갔습니다. 노 주교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해 주었습니다. 인간 대접을 해 주고, 잠까지 재워 주었습니다. 자리에 누운 장발장의 눈에 은촛대가 보였습니다. 큰 은촛대를 팔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돈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는 주교에게 미안했지만, 주교가 잠을 자는 시간에 은촛대를 갖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그만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어디에서 훔쳤나?\\\" \\\"주교님 댁에서 훔쳤습니다.\\\"경찰이 그를 데리고 주교의 집으로 갔습니다. \\\"주교님! 도둑놈을 잡아 왔습니다. 은촛대 도둑을 잡아왔습니다.\\\" 그때 노 주교가 말했습니다.\\\"오, 경찰관. 왜 그런 말을 하시오? 이것은 어제 밤에 내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이오. 이 사람이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갔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이것은 내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이오.\\\" 그 순간, 장발장은 온 몸의 피가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경찰관이 가고 난 후에 장발장과 노 주교의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이 은촛대로 자네 영혼을 샀네. 이제는 결코 악에 속하지 말고 선에 속하게.\\\" 7년간 감옥살이를 해도 변하지 않았는데, 노 주교의 그 말에 장발장은 새 사람이 됩니다. \\\'이 은촛대로 자네 영혼을 샀네.\\\'라는 말에 그는 중생합니다. 우리는 은촛대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사신 바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이제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악에 속할 수 없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아무리 기회가 있어도 부정을 행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해야 됩니다. 직장에서의 선은 무엇입니까? 직장을 살리는 것입니다.\\\'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가 살까? 어떻게 해서 우리 회사를 살릴까?\\\'를 생각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봉사하는 것입니다. 경제 침체로 영국이 흔들리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부도 직전의 회사에 다니는 두 기독교인 여공이 식사 후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우리 회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까?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회사를 한번 일으켜 보자.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 일찍 와서 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자. 회사를 위해 무급으로 일을 해 보자.\\\" 그래서 두 여공이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상사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일찍 와서 물건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퇴근한 후에도 남아서 일을 하면서 회사를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상사가 그 여공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서 열심히 일을 하는가?\\\" \\\"저희는 기독교인입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작은 힘이지만 저희들의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상사는 두 여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영국 전역에 그 소문이 퍼졌습니다. 모든 근로자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회사를 살려보자.\\\" 그래서 모든 회사의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여 영국 경제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우리 나라의 기업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우리 나라의 기업을 살려야 합니다. 일본의 기업보다, 미국의 기업보다 우리 기업이 더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합니다. 회사의 근로자들은 회사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물건 하나를 만들 때도 내 것, 아니, 하나님의 것을 만드는 것처럼 만들고, 회사를 위해 선을 행해야 합니다. 경영주들도 사원들을 위해 마음을 써야 합니다. 사원들을 대할 때 하나님 대하듯 잘 대해야 하고, 사원들이 행복한지, 즐겁게 일하는지를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하는 첫째 목적은 월급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명을 받고 회사로 선교하러 나온 사명자들입니다. 우리 선교단원들이 러시아에 단기 선교를 갑니다만, 선교하러 가는 그것만 선교가 아닙니다. 내가 일하는 그 직장, 그 자리가 나의 선교지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경영주라면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내게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 예수님을 믿는 근로자라면 \\\'회사에 충성하고 회사를 잘 섬기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사장님과 상사들과 동료들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아무런 죄 없이 죄인이 되시고, 그 힘든 고난을 참으신 것은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의 이야기에는 신비로운 점이 많습니다. 간음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그 자리에서 돌로 쳐죽이면 되는데, 예수님을 어려움에 빠뜨리기 위해 사람들이 그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로 치라.\\\" 고 말씀하시고,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무슨 글이었는지, 퀘스천 마크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것은 방언과 같아서 그 글을 본 사람들마다 자기 죄가 보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얼굴이 발개져서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글을 보았으면 모두 도망갔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죄인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도망간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씀은 그 죄를 예수님께서 덮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죄 지은 자는 벌해야 하는데, 벌하지 않는 것은 부정입니다. 그러니 간음한 여인의 죄를 예수님께서 덮어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이 말씀은 창조적인 삶을 허락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죄 짓지 말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은 죽어라 하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받아도, 잘못을 덮어쓰고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그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땅에서도 채워 주시고 하늘에서도 상 내려 주십니다. 내 생각, 내 철학으로 직장 생활하지 맙시다. 내 경영 마인드로 회사를 경영하지 맙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직장 생활하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회사를 경영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나 때문에 내가 속해 있는 직장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 직장이 예수님의 직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러시아 단기 선교팀 여러분, 큰 역사를 일으키고 큰 열매를 맺고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러시아에 가지 않는 우리도 여기에서 선교 열매를 맺는 역사를 일으키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직장생활/ 벧전2:18-21/ 2003-10-29
그리스도인의 직장생활 벧전2:18-21 다 같은 흙으로 만든 그릇이지만 섭씨 500도에 구우면 된장 뚝배기 같은 토기가 되고, 섭씨 1000도에 구우면 도기가 되고, 섭씨 2000도에 구우면 자기가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재료지만, 그 굽는 온도에 따라 그릇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500도에 구운 토기와 2000도에 구운 자기는 그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고려 청자, 이조 백자는 대단한 보물입니다. 우리 모두 같은 흙으로 지어진 사람이고 같은 영혼을 갖고 있지만, 우리의 가치,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얼마나 들어가 있느냐, 성령의 뜨거운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그릇이라도 토기, 도기, 자기는 다르듯이, 다 같이 예수님을 믿어도 하나님 앞에 자기 같은 귀한 사람도 있고, 도기 같은 사람도 있고, 흙(토기)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보배로운 그릇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점점 더 깊은 은혜 속으로, 성령의 깊은 은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시 성령의 깊은 은혜, 뜨거운 은혜에 들어가서 토기는 도기가 되고, 도기는 자기가 되는 축복의 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 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글라우디스는 \"직업은 의사요, 직업은 행복의 본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없으면 병이 오는데 열심히 일하면 건강하고, 일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는데 일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일할 때도 좋지만 일을 끝냈을 때의 그 기쁨이 한이 없습니다. 저는 한 주간의 사역을 끝낸 주일 밤에는 날아갈 것 같이 기쁩니다. 몸은 파김치가 되어도 영혼은 날아갈 것 같습니다. \'아, 한 주간의 사역을 끝냈구나!\' 이 맛은 저밖에 모릅니다. 제 아내도 모릅니다. 하루 일을 끝냈을 때의 그 보람이 얼마나 얼마나 큰지…. 일은 보람이요, 즐거움이요, 건강이요, 행복이요, 또 축복의 젖줄입니다. IMF 직후에 갑자기 실직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충격을 받는 일이 있는데, 가장 큰 충격은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랍니다. 어떤 사고로 아들이 죽고 딸이 죽는 것도 기가 막힌 일이고,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도 충격을 받지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랍니다. 그 충격을 100으로 보면, 갑자기 실직 당했을 때 받는 충격은 70이랍니다. 그러니까 남편이나 아내가 죽는 일 다음으로 큰 인생의 충격이 바로 실직인 것입니다. 실직을 당하면 정신적 아픔과 그 짐, 부담이 한이 없고,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실직자들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실직자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심으로 일자리가 많아져 온 국민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우리 가운데 일을 찾지 못한 분이 계시면 하나님께서 불원간에 좋은 일거리를 주시길 축원합니다. . 기도하고, 그리고 찾고, 두드려서 일거리를 찾아야 됩니다. 일이 있는 사람, 직장이 있는 사람은 감사함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이 있다는 것,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떻게 하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근로자, 피고용인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경영주, 상사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모든 사환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환들아, 두려워함으로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복하라.\" 이 사환들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케타이\'인데, 둘로스와는 다릅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종, 노예는 거의 둘로스를 가리키는데, 사환은 둘로스가 아니고 오이케타이입니다. 사환은 노예가 아닙니다. 노예는 품삯도 받지 않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에 죽도록 일을 해도 십 원도 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노예가 됩니까? 빚을 많이 져서 갚지 못하면 노예로 팔리게 됩니다. 그 자녀들도 노예가 됩니다. 여러분은 빚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빚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옷도 알맞게 사 입고, 생활비를 줄여야 합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안 됩니다. 수입이 50만 원이면 50만 원에 맞게 살아야 됩니다. 100만 원이면 100만 원에 맞게 살아야 됩니다. 수입이 아무리 적어도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수입이 50만 원인데 70만 원을 쓰고, 수입이 100만 원인데 120만 원을 쓰면 나중에 노예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노예는 없을지라도 빚지면 그 사람 앞에서 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 포로가 되면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전쟁 포로는 무조건 끌려가서 노예가 됩니다. 전쟁에 지면 아픈 일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에 전쟁이 없기를 바라고, 전쟁해도 이기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환은 노예가 아니라 돈을 받고 일하는 하인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종업원, 회사의 근로자들도 사환이라 보면 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환들에게 상전, 육신의 주인들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두려워하라는 말씀은 존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내가 돈을 받고 일하는 사환이라도 주인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노예도 포함됩니다. 노예도 모든 주인을 존중히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노예가 6500만 명이나 있었습니다. 노예가 시민들보다 4배나 많았습니다. 로마시 안에만 65만 명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노예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노예들의 주인들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당시 노예는 황소 한 마리의 값으로 주인의 재산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다 같지 않습니까? 예수 안에서는 하나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 얼굴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신분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주인이나 노예나 교회에서는 똑같아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주인은 믿음이 약해서 집사님인데 노예는 믿음이 좋아서 안수 집사님인 경우도 있고, 주인은 아무런 봉사도 하지 않는데 노예는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상황이 어제와 달라졌습니다. 또 집에서는 종이지만 교회에 오면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을 높이지 않고 맞먹으려고 하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종들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주인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물론 노예 제도와 같은 악한 제도는 없어져야 되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 속에 노예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제도가 없어지기까지는 노예들이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사환들에게 \"사환들아,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을 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노예나 사환이나 주인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은 모든 직장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회사의 경영주나 직장의 상사들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선배나 윗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바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우리 기독교인의 삶의 자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 자녀가 부모를 존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공직 사회에서나 일반 단체에서나 어디에서나 사람을 존중히 여기라고 하나님께서 가르치십니다. 에베소서 6장 5절에 말씀하십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상전들에게 주님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회사의 과장님이나 부장님이나 이사님이나 상무님이나 사장님에게 주님을 대하듯 대하라는 것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왜입니까? 그 사람만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직장은 우리가 우연히 들어간 곳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일터이기 때문에 그 위에도 하나님께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의 상전이 까다롭든 까다롭지 않든, 선하든 악하든 하나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석에서든 공석에서든 직장의 상사나 경영주에게 악담하면 안 됩니다. 언제나 \"우리 사장님, 우리 부장님, 우리 과장님.\"하고 반듯하게 말하는 사람은 회사의 보배가 될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우리 목사님.\"하는 교인이 참 교인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이 가르치시는 교훈은 주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어느 자리에서나 상사를 존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상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로새서 4장 1절에 말씀하십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또 에베소서 6장 9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 종들을 존중히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종들에게는 물론 상전들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회장이나 사장이나 중역들도 하나님 앞에는 똑같은 종입니다. 상전들도 하나님 앞에는 똑같은 사람이고, 청지기일뿐입니다. 그러므로 경영주도 하나님 앞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원들, 하나님께서 내 일터에 보내주신 직원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알고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경영주와 근로자가 서로 존중히 여길 때 그 회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교인들만 목사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도 교인들을 존중히 여기고, 장로님들만 목사님을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도 장로님들을 중히 여길 때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중히 여기는 것, 그것이 복을 받는 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중히 여기는 회사가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경제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됩니다. 반도체 사업을 보십시오. 저는 반도체가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우리 나라 최고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사업이 반도체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업이 지금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경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천국에 갔답니다. 천국에서나 땅에서나 친구 관계, 이웃 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 아인슈타인이 좋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사람들을 살폈답니다. 마침 한 사람을 만나서 물었답니다. \"당신 아이큐가 얼마요?\" \"180이오.\" 아이큐가 180이라는 말을 듣고 아인슈타인이 매우 반가워하며 말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상대성 이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군요.\" 조금 후에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물었습니다. \"당신 아이큐가 얼마요?\" \"130이오.\" 그 사람의 아이큐가 자신의 아이큐와 차이가 나니 아인슈타인이 약간 실망해서 말했습니다. \"그래도 당신과는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군요.\" 얼마 후에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이큐가 얼마요?\" \"80이오.\" 아인슈타인이 아주 낙담했지만 말했습니다. \"당신과 내가 상대성 이론이나 정치 이야기는 하지 못해도 경제 이야기는 할 수 있겠군요.\" 무슨 뜻입니까? 경제는 아이큐가 아무리 높은 사람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주식 투자할 때, 머리가 아무리 좋은 사람의 조언을 받아도 망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경제는 머리 좋은 사람이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을 받는 회사는 어떤 회사입니까? 경영주는 근로자를 존중히 여기고, 근로자는 경영주를 존중히 여기는 거기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홛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5절에서 8절에 말씀하십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일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 할렐루야!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이 회사에서 일하면 회사의 사장님이 월급을 주지만, 그것은 잠시의 일, 일시적인 것이고, 참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까다로운 사람에게도 순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의 일을 너무나 잘 하니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가정 총무가 되어서도 가정 살림을 잘 살았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도 전옥, 옥사장에게 복종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일을 잘 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도 애굽 왕에게도 복종을 잘 했습니다. 80년간 총리로 일하면서 왕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복종을 잘 했습니다. 그러니 왕이 자기 나라 국민도 아닌, 애굽 국민도 아닌 이스라엘 사람인 요셉을 총리로 세워 놓고 그가 죽을 때까지 모든 국사를 그에게 맡기고 자기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도장까지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회사에서 경영주나 상사의 말에 복종할 때 주님께 하듯 해서 그분들에게 \"저 사람에게는 무엇을 맡겨도 틀림없다.\"하는 신뢰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회사의 방침대로 순종을 잘 해야 합니다. 성경에 순종하듯 회사의 방침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떻게 저렇게 일을 잘 하나!\"하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설혹 명문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어느 회사에서든지 무조건 데리고 가려고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참 성도인 줄로 믿습니다. 데모에 앞장서는 사람이 교인이고, 회사의 문제를 캐내고 약점을 캐내어 회사를 어렵게 하는 사람이 교인이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 나라의 중소기업 중에 데모를 많이 한 기업은 거의 문을 닫았습니다. 문을 닫지 않았어도 데모하느라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 그 기업의 일감을 다른 기업에서 가져가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나가게 되고,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기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잠시의 내 이익을 위해 데모하다가 결국 회사도 망하고 자기도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큰 회사들 중에도 데모만 하지 않았으면 아직도 건재했을 텐데, 데모했다가 망한 회사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도 이제 살 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노사 분규가 많으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까? 국가적인 손실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 교인들에게 데모하라는 말씀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은 주인에게 열 번이나 사기를 당했습니다. 야곱의 주인이 열 번이나 품삯을 사기쳤습니다. 그래도 그는 참았습니다. 20년간 머슴살이를 했어도 집 한 채 없었지만 참으니, 하나님께서 꿈에 지혜를 주셨습니다. 꿈대로 하니 불과 얼마 후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결국 우리는 회사 일을 해도 사장님을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의 주인을 보고, 상사를 보고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을 믿으며 일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경영주는 우상을 섬겨도 우리는 그 회사가 하나님 회사인 것처럼 일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직장에서 순복하는 아주 겸손한 그리스도인, \'아, 기독교인 직원에게는 무엇을 맡겨도 되는구나.\'라는 신뢰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직장에서 악을 행해 벌을 받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회사 물건을 어떻게 하거나, 부정한 짓을 해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는 것, 그것은 정말 아픈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악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빅토르위고의 그 레미제라블을 아시지요? 주인공 장발장이 너무 가난하여 굶는 가족을 위해 빵 하나를 훔쳤습니다. 그것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는데, 너무 억울했습니다. \'빵 하나를 훔쳤는데 이렇게 중형을 주다니!\' 그는 탈옥을 시도하다가 죄 값만 더 많아져 7년간 감옥에서 고생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으나 전과자인 그를 고용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배가 고픈 그는 어쩔 수 없이 노 주교를 찾아갔습니다. 노 주교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해 주었습니다. 인간 대접을 해 주고, 잠까지 재워 주었습니다. 자리에 누운 장발장의 눈에 은촛대가 보였습니다. 큰 은촛대를 팔면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돈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는 주교에게 미안했지만, 주교가 잠을 자는 시간에 은촛대를 갖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그만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어디에서 훔쳤나?\" \"주교님 댁에서 훔쳤습니다.\" 경찰이 그를 데리고 주교의 집으로 갔습니다. \"주교님! 도둑놈을 잡아 왔습니다. 은촛대 도둑을 잡아왔습니다.\" 그때 노 주교가 말했습니다. \"오, 경찰관. 왜 그런 말을 하시오? 이것은 어제 밤에 내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이오. 이 사람이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갔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이것은 내가 이 사람에게 준 것이오.\" 그 순간, 장발장은 온 몸의 피가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경찰관이 가고 난 후에 장발장과 노 주교의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이 은촛대로 자네 영혼을 샀네. 이제는 결코 악에 속하지 말고 선에 속하게.\" 7년간 감옥살이를 해도 변하지 않았는데, 노 주교의 그 말에 장발장은 새 사람이 됩니다. \'이 은촛대로 자네 영혼을 샀네.\'라는 말에 그는 중생합니다. 우리는 은촛대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사신 바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이제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악에 속할 수 없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아무리 기회가 있어도 부정을 행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해야 됩니다. 직장에서의 선은 무엇입니까? 직장을 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가 살까? 어떻게 해서 우리 회사를 살릴까?\'를 생각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봉사하는 것입니다. 경기 침체로 영국이 흔들리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부도 직전의 회사에 다니는 두 기독교인 여공이 식사 후 잔디밭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회사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까? 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회사를 한번 일으켜 보자.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 일찍 와서 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자. 회사를 위해 무급으로 일을 해 보자.\" 그래서 두 여공이 다른 사람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상사가 그것을 보았습니다. 언제나 일찍 와서 물건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퇴근한 후에도 남아 일을 하면서 회사를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상사가 그 여공들에게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서 열심히 일을 하는가?\" \"저희는 기독교인입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작은 힘이지만 저희들의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습니다.\" 상사는 두 여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영국 전역에 그 소문이 퍼졌습니다. 모든 근로자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우리 회사를 살려보자.\" 그래서 모든 회사의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하여 영국 경제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우리 나라의 기업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우리 나라의 기업을 살려야 합니다. 일본의 기업보다, 미국의 기업보다 우리 기업이 더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합니다. 회사의 근로자들은 회사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물건 하나를 만들 때도 내 것, 아니, 하나님의 것을 만드는 것처럼 만들고, 회사를 위해 선을 행해야 합니다. 경영주들도 사원들을 위해 마음을 써야 합니다. 사원들을 대할 때 하나님 대하듯 잘 대해야 하고, 사원들이 행복한지, 즐겁게 일하는지를 늘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하는 첫째 목적은 월급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명을 받고 회사로 선교하러 나온 사명자들입니다. 우리 선교단원들이 러시아에 단기 선교를 갑니다만, 선교하러 가는 그것만 선교가 아닙니다. 내가 일하는 그 직장, 그 자리가 나의 선교지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경영주라면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내게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 예수님을 믿는 근로자라면 \'회사에 충성하고 회사를 잘 섬기는 나의 모습을 보고 사장님과 상사들과 동료들이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아무런 죄 없이 죄인이 되시고, 그 힘든 고난을 참으신 것은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의 이야기에는 의문점이 많습니다. 간음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데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그 자리에서 돌로 쳐죽이면 되는데, 예수님을 어려움에 빠뜨리기 위해 사람들이 그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로 치라.\" 고 말씀하시고,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그 글이 무슨 글이었는지, 퀘스천 마크입니다. 많은 분들이 그것은 방언과 같아서 그 글을 본 사람들마다 자기 죄가 보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얼굴이 발개져서 도망을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글을 보았으면 모두 도망갔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죄인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도망간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를 정죄하는 자가 있느냐?\"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씀은 그 죄를 예수님께서 덮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죄 지은 자는 벌해야 하는데, 벌하지 않는 것은 부정입니다. 그러니 간음한 여인의 죄를 예수님께서 덮어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이 말씀은 창조적인 삶을 허락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제 죄 짓지 말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회사에서 일은 죽어라 하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받아도, 잘못을 덮어쓰고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그것이 주님을 따라가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땅에서도 채워 주시고 하늘에서도 상을 내려 주십니다. 내 생각, 내 철학으로 직장 생활을 하지 맙시다. 내 경영 마인드로 회사를 경영하지 맙시다. 그러면 여러분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직장 생활하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회사를 경영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나 때문에 내가 속해 있는 직장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 직장이 예수님의 직장이 될 줄로 믿습니다. 러시아 단기 선교팀 여러분, 큰 역사를 일으키고 큰 열매를 맺고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러시아에 가지 않는 우리도 여기에서 선교 열매를 맺는 역사를 일으키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직장윤리/ 골3:22-4:1/ 2006-06-20
그리스도인의 직장윤리 골3:22-4:1 그리스도인의 가정윤리와 직장윤리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을 달 5월을 맞아 지난 3주 동안 가정에 관한 설교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5월 첫 주에는 ‘부모들아!’라는 제목으로 성경은 자녀교육을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는가 생각해 보았고, 둘째 주에는 ‘자녀들아!’라는 제목으로 진정한 효도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내들아! 남편들아!’라는 제목으로 부부윤리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지요.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그리스도인의 직장윤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직장이 가정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을 분도 있겠지만 사실 가정은 직장과 너무나도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직장생활이 바로 서야 가정이 든든하게 설 수 있고, 가정이 든든할 때 직장생활이 바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이 실직을 하거나 사업에 실패하니 가정도 함께 무너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정에 불화가 있으니까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스트레스를 훨씬 많이 받고 힘들어하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한 직장인의 일기를 공개합니다. 하루 종일 김 부장에게 시달렸다. 차라리 내 업무능력에 대해 직접적으로 잘 했다 못 했다 말해주면 좋겠는데 교묘하게 인신공격을 해대며 말로 비꼬아서 나를 못살게 군다. 퇴근시간까지 겨우 겨우 견디다가 즐거운 우리 집으로 직행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나를 개선장군처럼 반길 아이들을 상상했건만, 큰 녀석은 제 방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작은 녀석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얼굴도 돌리지 않는다. 아내는 무슨 이유인지 인상만 쓰며 입이 오리만큼 나와 있다. 차려놓은 밥을 몇 술 뜨고 방에 들어와 TV를 켰다. 한참 뉴스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툴툴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 결론도, 해결방법도 없는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으며 나를 힘들게 한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지... 우리 가정이 정말 즐거운 우리 집일까? 이렇게 가정에서 뒷받침이 되지 못하면 직장생활도 좋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직장에서 시달리고 가정에서도 스트레스 받으면 직장도 어려워지고 가정도 위기를 맞습니다. 그러니 우리 주부들은 남편들에게 잘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사일 하랴 자녀들 키우랴 정말 힘든 것 알지만 남편이 바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정이 안정되고 평안을 주면 우리 남편들, 정말 힘이 나고 잔소리 안 해도 정말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아내의 모습이지요. 이렇게 가정과 직장이 밀접하게 연관된 것을 성경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 본문인 골로새서도 그리스도인의 가정윤리 중 맨 마지막으로 크리스천 직장윤리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노예제도를 극복하는 그리스도적 윤리 : 종들의 자세 오늘 본문은 고대 로마제국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노예는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습니다. 모든 가사는 노예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노예는 가정의 가장 중요한 일원이었습니다. 물론 노예는 전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하고 재산의 일부분이나 가재도구 정도로만 취급 받기는 했지만 아무튼 노예는 가정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도 보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생활 맨 마지막 요소로 종과 주인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2절부터 25절까지 보면 먼저 종들에게 올바른 윤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가 로마 제국 내에 퍼져가면서 노예들 가운데 예수 믿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앙을 가진 노예들에게 올바른 크리스천 종의 자세에 대해 가르친 것입니다. 22~23절을 읽읍시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 교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종들은 상전에게 순종하되 사람에게 대하듯 순종하지 말고 마치 예수님께 대하는 듯한 태도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에게 하듯 행동하는 구체적인 예를 들고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22절에 나온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입니다. 사람만 기쁘게 하려고 사람 눈치만 보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눈가림으로 사람을 대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만 잘 하는 척 하고, 안 볼 때는 딴 짓을 합니다. 앞에서는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지만 돌아서서는 욕하고 비난합니다. 옛날 학교 다닐 때 선생님 계시면 열심히 청소하는 척 하면서 선생님 가시면 노는 친구들 있지 않습니까? 마치 그런 사람들처럼 눈가림으로 일하는 종은 어떻게 될까요? 주인이 모를 것 같지요? 모르기는 왜 모릅니까? 다 압니다. 손님을 마음속으로부터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앞에서만 감언이설 하다가 뒤돌아서서는 딴 소리 하면 손님이 모를 것 같지요? 다 압니다. 가게를 하나 해도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면 그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는데 직장이나 무슨 일이나 다 마찬가지 원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실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결코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참된 성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앞에서만 잘 하려고 하지 상전이 안 보면 딴 짓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전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입니다(시 121:4). 언제나 나를 지켜보시고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엄위하신 주님 눈앞에서 어떻게 감히 딴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성실하게 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노예제도를 극복하는 그리스도적 윤리 : 주인들의 자세 사도 바울이 이번에는 4장 1절로 들어가서 크리스천 상전들에게 권면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상전들은 종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종을 내 재산이나 물건처럼 생각하지 말고 사람으로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라는 말입니다. 종이라도 의롭고 공평하게 대해야지 편파적으로 대하거나 억울한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바울은 노예제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노예제도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비인격적인 관계를 그리스도의 질서로 바꾸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당시 노예제도 속에서 일반적인 주인과 노예관계는 무엇이었는가? 노예는 22절에 나온 대로 어떻게든 눈가림으로 주인을 속여 일을 조금만 하려고 들고, 주인은 이런 노예를 어떻게든 더 닦달하고 못살게 굴어 일을 시켜먹어야 하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그러니 주인과 노예 관계는 언제나 비인격적이고 서로 못 믿는 불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잘못된 관계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기독교의 정신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이 제일 잘 드러나는 성경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빌레몬서는 성경에서 드물게도 사도 바울이 빌레몬이라는 한 개인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빌레몬은 사도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인데 많은 종들을 거느린 꽤 부유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오네시모가 주인의 재산을 훔쳐 로마 혹은 에베소로 달아난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도망한 노예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일을 맡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잘 돕던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냅니다. 언제까지나 도망한 노예로 숨어 살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 편에 한 통의 편지를 써 보내는데 이 편지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는 혹시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끼친 물질적 손해가 있다면 그것을 자신이 갚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오네시모를 이후로는 종과 같이 여기지 말고 사랑 받는 형제로 여겨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생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오네시모가 끼친 손해를 자신이 배상하겠다는 바울의 생각도 참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오네시모를 종이 아닌 형제로 대해주라는 말입니다. 당시 노예제도 속에서 주인이 노예를 형제처럼 여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당시 노예제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없애기는 어려웠겠지만 그 제도를 뛰어넘어 재산이나 가재도구의 하나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노예를 사람취급 해주고 나아가 내 형제처럼 여기라는 것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 편지를 받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정말 용서하고 형제처럼 대해주었는지는 빌레몬서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골로새서 4:9에 보면 오네시모가 다시 바울에게 돌아와 바울의 사역을 돕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빌레몬은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를 해방시켜 바울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노예제도는 없어졌지만 모든 상하관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윗사람과 아랫사람,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는 존재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질서로만 친다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윗사람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부려먹고 얼마든지 비인격적으로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돈 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본전을 뽑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랫사람에게 심하게 대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랫사람을 일하는 기계로 보아서도 안 되고, 내 마음대로 부려먹는 종처럼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을 형제로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올바로 대해 줄 때 그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아 진정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질 때에만 그들에게 복음이 전해질 통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직장인의 원칙 오늘 본문은 직장에서 크리스천 아랫사람은 어떻게 윗사람을 대할 것인지 두 가지로 가르칩니다. 첫째, ‘나는 종이다’라는 정신으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특히 사업을 시작하는 분이나 가게를 개업하는 분들에게 반드시 강조합니다. 당신이 만나는 손님이나 고객은 나와 동등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꾸 동등하다고 생각하니 더럽고 치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요 내가 이런 꼴까지 당해가면서 꼭 이 일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저 사람과 내가 동등하다고 생각하니 생기는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저 사람 종이다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종이니까 내가 낮아지는 것, 섬기는 것이 당연하고 욕먹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쉽게 풀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윗사람을 대할 때나 손님을 대할 때 반드시 ‘내가 저 사람 종이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둘째, ‘직장이나 사업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눈가림으로 일하지 말고 그 사람 앞에서만 잘 하는 척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난다면 내가 정말 모든 정성을 다 하고 최선을 다해 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자세로 윗사람을 대하고, 손님들을 대하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뀌고 내 직장과 사업장이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가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본문은 직장에서 크리스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두 가지로 가르칩니다. 첫째, 직장에서 크리스천 상사가 부하를 대할 때, 믿음을 가진 경영주가 직원들을 대할 때 무엇보다 ‘의와 공평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공평하게 대하면 그들도 윗사람을 존중하게 됩니다. 지난주 설교에서 남편은 아내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존경하고 순종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마찬가지로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진정으로 존중하고 따르도록 반드시 의와 공평으로 대해야 합니다. 사적인 감정으로 흐르거나 편파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무엇보다 그가 내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 형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감동을 받고 변화됩니다. 아랫사람을 감동시키면 그는 나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하는 사람이 됩니다. 둘째는 무엇보다 내가 상전이 아니라 하늘에 진짜 상전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한다는 부담이 너무 커지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성패가 나 한 사람에게 달려있고, 내 밑에 딸린 입이 도대체 몇 개인데 하는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사장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라고 생각하면 이 모든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직장을, 이 사업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제가 아는 한 사업가가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제 회사 사장 자리에는 제가 앉아 있지만 저는 절대 제 책상에 ‘사장 아무개’라는 명패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회사 사장은 제가 아니고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장님은 날마다 출근하면 제일 먼저 진짜 사장이신 주님을 만나 결재를 받고 업무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기도로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정말 주님이 사장 되셔서 그 기업을 책임져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해결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내 상전이 주님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업이나 직장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주님도 반드시 만 배나 갚아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직장생활 하고, 사업을 운영하면 손해 보기 딱 알맞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약속해 줍니다. 세상적인 기준, 사람의 기준으로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하지 말라, 그렇게 되면 당장은 이익을 볼 것 같으나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직장생활과 사업을 해가며, 무엇보다 누구를 만나든지, 그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아니면 나의 고객이든 사람에게 대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대하면 틀림없이 그의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성경의 방법, 그리스도의 방법이 우리의 직장과 사업을 변화시키며 나아가 우리 가정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단순한 직장인, 사업가가 아니라 내 직장, 내 사업체로 파송 받은 주님의 선교사입니다. 나 자신의 직장생활을 위해, 내 남편의 직장생활을 위해 기도로 나아갑시다.
성공적인 직장생활 십계명/ 살전4:11
성공적인 직장생활 십계명 살전4:1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 직장, 사업이 있고, 나름대로 사회생활이 있습니다.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성공적일까? 첫째:남보다 먼저 출군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남보다 30전에 먼저 출근하여 준비하여 업무를 보고 효과적이다. 둘째:일을 남보다 조금 더하는 것이다, 직장에 편하게 다니면 안된다. 자신의 일에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1인자가 되라. 셋째:회사로부터 불평하지 말라.불평보다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라. 회사를 위한 노조를 해 보자. 넷째:회사가 부는 월급으로 왈가왈부 하지 말라. 먼저 자신이 잘해야 회사가 잘된다. 그러면 자신에게 오는 것이 많다. 다섯째:시키는 일에 능동적인 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억지로 하지말고, 기쁘게 부지런히 해야한다. 여섯째:창의력을 가져야 한다. 성공한 사람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다. 일곱째:연구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효과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연구해야 한다. 여덟째:웃어른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다. 권위에 도전하는 자세보다 상사에게 인사를 잘하는 예의가 필요하다. 아홉째:위사람의 약점에 도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나를 그 직장에 있게 한 것은 내가 직장상사의 필요를 채워주는 참모 역할을 위한 것이다. 열째:찾지 말고 만들어 내는 자세가 필요하다. 남의 직장 부러워 하지 말고 자기의 직장을 좋은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
전도서강해(27)/ 직장상사가 화낼 때 대처법/ 지혜자는 오른쪽, 우매자는 왼쪽?/ 전도서전10:1-4/ 유동근 목사/ 온누리선교교회/ 2009-04-18
전도서강해(27)/ 직장상사가 화낼 때 대처법/ 지혜자는 오른쪽, 우매자는 왼쪽? 전10:1-4 10:1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향유는 향기가 너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좋다고 하고 소유하려 한다. 그런데 좋은 향유에 파리가 한 마리 빠지면 그 파리 때문에 악취가 나게 된다. 이는 인간의 행동을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혜가 많고 명예와 덕망을 쌓고 지위를 많이 차지하고 훌륭한 명성을 소유할 수 있지만, 파리 한 마리 같은 작은 실수나 잘못된 일 때문에 모든 일생의 업적이 악취가 나고 패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말이 있지만, 작은 한 가지 일로 그 공든 탑은 무너질 수 있다. 사람들 대다수는 그런 특징이 있다. 수년동안 좋은 일을 하고 헌신적이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일지라도, 한 번 결정적으로 잘못 하게 되면 사람들은 모든 공적은 잊어버리고 한 가지 경솔한 행동만으로 그를 한 마디로 매도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에게 그저 한두 마디만 해 버리면 그 사람의 평판은 그것으로 다 끝나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다 일종의 지혜이다. 누군가 ‘나는 일생동안 잘 해왔기 때문에 한 가지 잘못을 하더라도 그런 것 쯤이야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1백 번에 한 번, 1천 번에 한 번도 죽은 파리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나서 ‘아는 것인데 아차 해서 하나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실수로 하나 틀리는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실력이다. 그런 사람은 다음에 또 틀린다. 언제나 실수 없이 완전하게 행하기를 배워야 한다. 성경에서는 ‘완전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는 완전하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작은 실수를 용납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것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해 왔던 1백가지 일이 다 무효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작은 한 가지 어리석은 행동이 그 사람의 모든 지혜로운 역사를 다 패망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름을 굳이 거명하지 않아도 이런 경우를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나 훌륭한 사람인데도, 정치계에 한 번 발을 잘못 들여놓아 모든 일생의 훌륭한 점들이 다 구겨져버리기도 한다. 또 헌법을 만드는 데 기여한 어떤 분도 단 한 번 정치에 잘못 발을 딛는 바람에 그분의 이름을 대면 그 잘못만을 떠올리지 그분이 일생토록 이 나라 법을 위해 수고한 것은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죽은 파리 한 마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이다. 2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지혜자의 마음이 있고 우매자의 마음이 있다. 어떤 사람이 지혜자인가? 마음을 오른편에 두는 사람이다. 우매자는 그 마음을 왼편에 두는 사람이다. 우편과 좌편, 우익과 좌익, 두 개밖에 없다. 우편에 두든지 좌편에 두는 것이다. 지혜자는 그 마음을 언제나 우편에 둔다. 우편이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쪽을 말한다. 오른손으로 하는 것은 다 힘이 있고 잘 된다. 왼편은 왠지 어색하고 일이 잘 안 된다. 밥을 왼손으로 먹게 되면 하다 잘 안 되기 때문에 다시 오른손으로 먹게 된다. 왼손은 어색한 쪽이고, 결국 안 되는 쪽이다. 오른쪽은 힘이 있는 쪽이고, 일로 말하면 올바른 방법이다. 그런데 왼쪽은 안 되는 방법이다. 틀린 방법이다. 지혜자와 우매자를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여러분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다 오른편에 마음을 둘 것 같지 않은가? 그러나 놀랍게도 안 되는 쪽에다 마음을 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측이든 좌측이든 한 편을 골라야 하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되는 쪽인 우편을 선택한다. 3 우매자는 길에 행할 때에도 지혜가 결핍하여 각 사람에게 자기의 우매한 것을 말하느니라 ‘길을 걸어갈 때’는 진짜 도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행로를 의미한다. 또 살면서 행하는 어떤 단순한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행할 때 우매자는 그의 결핍된 지혜를 각 사람에게 나타내게 된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행하려고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안 되는 일을 엉뚱한 생각을 갖고 하려는구나’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은 사람은 각 사람에게 자기의 우매한 것을 말하는데 정작 본인은 그 우매한 것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모른다는 뜻이다. 안 되는 일이고 헛바퀴를 돌릴 일이고 뜬구름을 잡는 일인데 그것을 모르고 계속 말한다. 4 주권자가 네게 분을 일으키거든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공순이 큰 허물을 경하게 하느니라 주권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권세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이다. 회사로 말하면 상사도 될 수 있다. 학교로 말하면 교장·교감선생님, 교무과장이 될 수 있다. 정부로 따지면 상위 공직자가 되겠다. 그런데 별로 좋지 않은 주권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불의한 취급을 당할 때 여러분에게는 분이 일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자리를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주권자의 처사를 불쾌하게 여겨 반항하지 말라는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당할 때 아주 불쾌한 얼굴로 퇴근해서는 ‘내일 출근하면 그 상사의 얼굴에 사표를 던져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순히’ 행하라고 했다. 이는 ‘양보’, 혹은 ‘유순’이라는 뜻이다. 주권자의 분노에 억울한 처사를 당하고 분이 일어나는 상황에 있어서의 지혜란 무엇인가? 그 자리를 급히 떠나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말한다. 만일 그런 때 분노를 누르고 완전히 파열될 것 같은 분위기와 위기를 유순함과 양보로 치료시켜 잘 싸맨다면 앞으로 일어날 많은 충돌과 파괴, 상처와 오해, 분열과 파멸을 제거할 수 있다. 다윗은 사울에게 엄청난 불이익을 당해 충분히 분을 일으킬만한 상황이었음에도, 사울 밑에서 이룩한 많은 공로를 주장하지 않고 공순히 대했다. “공순이 큰 허물을 경하게 하느니라”. 흠정역 성경은 “치리자의 영이 너를 대항하여 일어나면 너는 네 자리를 떠나지 말라. 이는 굴복함이 큰 화를 진정시키느니라”고 했다. 굴복하는 것, 양보하는 것, 느슨하게 상대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그런 상황을 대처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이런 말씀은 젊은 사람들이 꼭 유념해서 들어야 한다. 예로부터 책에서 간접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내가 꼭 그렇게 살아보고 체험해보지 않아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흔히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실패한 후에야 ‘아, 이래서는 안 되는구나’라고 배운다. 그러나 우리가 꼭 그렇게 해보지 않아도, 실패해보지 않아도 먼저 경험한 이런 지혜자의 말씀으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 인생을 세이브하고 그런 난관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이 주의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잘 행하면 솔로몬의 지혜보다 더 나은 지혜로 행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몰라도 여러분이 이미 이렇게 행했을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솔로몬보다 더 나은 지혜를 갖고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운데는 ‘그때 내가 참 잘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그때 내가 실수했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수한 것은 바로 자신의 육체 때문이다.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겠어!’ 하면서 육체로 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 굴복함으로 공순히 행하며 모든 허물과 화를 진정시키고 치료하는 방식으로 행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직장 복음화/ 골4:2-6/ 2003-03-23
직장 복음화 골4:2-6 세계복음화의 현장들을 살펴보고있다. 오늘은 우리가 일하는 삶의 터전인 직장에 대하여 살펴보자. 우리 삶의 직장의 의미가 무엇이지를, 그리고 우리가 살아 가는 삶의 터전의 현실을 살펴보자. 삶의 터전을 살펴 볼 때, 복음을 전할 수 밖에 없음을 알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어떻게 전하는 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복음화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세계복음화의 비젼, 소원을 품으라 하는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복음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단지 남에게 전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복음화라는 것은 내가 먼저 나의 삶속에서 복음이 임하고 경험하는 것이며, 내가 경험한 것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 확산되어지는 것이 복음화이다. 복음때문에 내가 살고 남이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비젼을 갖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비젼을 갖더라도 피상적으로, 관념적으로 가지고 살고 있다. 삶과는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다.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 삶속에 우리 현장들을 못 보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현장들이 복음화가 되어야 할 현장인데, 이것을 놓쳐버린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삶의 현장이 있다. 거기서 활동하고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삶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묻어 나가야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놓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부는 가정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가정 복음화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학교라는 삶의 현장에서는 가르치는 사람들은 가르치는 곳에서, 배우는 학생은 배움에서 복음을 의식하며 복음을 나타나는 현장으로,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환자까지도 복음을 나타내야 한다. 군인이면 군대에서,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 현장에서, 농부는 농부가 일하는 현장에서 복음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신자로 있으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일하고 마시고 즐기며 육신의 충족에만 모든 신경이 묶여 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은 필요하지만, 구원받은 신자라면 단지 그것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우선적인가? 복음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 간다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책임지시겠다고 하셨다. 2. 우리의 모든 삶은 복음화에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삶의 구석구석에서 복음화에 대하여 생각하며 살아 갈때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 질 것이다. 우리의 모든 삶은 복음화에 연결되어야 한다. 성경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라\' 하였다. 그것이 구원받은 삶의 길이다. 그러한 눈으로 살아 간다면, 많은 일들이 복음화와 관련되어질 것이다. 기회전도, 관계전도: 인간관계를 통해서 복음화의 길로 연결시키는 것과 모든 기회를 복음을 전하는 길로 생각하고 살아 간다면 복음 전하는 일이 나타날 것이다. 이와 같이 살아가야 되는데, 많은 경우에 이렇게 살아가면 손해보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우리의 삶속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인간관계를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좋은 인간관계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다. 또 사업하는 경우에 어떨 때는 복음 전하는 일 때문에 손해를 볼 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절대로 손해보게 하시지 않으신다. 세상 속에서 따돌림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질 것 같지만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남에게 환영받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으로 세워주실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3. 직장의 의미가 무엇인가? 왜 내가 이 직장을 갖게 되었는가? 이 직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우리가 정말 신자라면 질문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직장이 내가 간절히 원하였던 직장이든, 원하는 직장이 아니든, 아니면 우연히 얻은 직장이라도 나를 거기에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거기에 보내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가락 하나까지도 세고 계시며, 참새 한마리도 그냥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하물며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를 않으신다. 우리가 가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계획을 가지고 우리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성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이 온 만류를 주장하신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인사를 할 때, \'만유의 주께 영광을\'이라고 하였다.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통치하시고 우리의 걸음걸음 모든 일에 하나님이 간섭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성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거기에 원하든, 원치 않든, 거기에 보내셨다. 많은 경우에 직장생활을 먹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만큼 우리를 따분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우리를 아주 의미 없게 만든다. 하나님이 먹고 마시는 일 책임지신다. 우리가 그것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짜 구원받은 신자라면,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많은 신자들이 직장은 직장이고 교회는 교회라고, 삶과 신앙을 이분화시켜 구분하여 살아간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모든 곳에서 하나님이시다. 구원하신 나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는 삶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직장에 있으며,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이루어 드리는 일에 쓰여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일하는 곳이 우리가 선교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나의 직장의 복음화를 위해서 나를 쓰신다 이 생각을 하여야 한다. 이 때 우리의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4. 우리는 직장에서 인정을 받으며 믿음을 주어야 한다. 우리가 직장 복음화를 한다고 할 때, 직장 안에서 돌아 다니며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복음화의 소원을 품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붙여 주시는 영혼을 기다려야 한다. 나의 생활에 평안을 가지고 여유롭게 살면서 나의 삶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보여져야 한다. 마음의 흔들임이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여져야 한다. 우리의 소망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을 때가 올 것이다. 도움을 청하고 상담을 원할 때, 나는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음을 전하면 된다. 아울러 우리는 직장에서 승리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시한다. 내가 많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성실한 삶으로, 책임있는 사람으로, 유능한 사람으로 내가 만들어야 한다. 내게 주어진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을 시키지 아니하고 해 내야 한다. 할 수 있다. 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복음화의 삶을 살아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지혜를 주신다. 나에게 능력을 주신다. 전능하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내 삶속에 가장 아름다운 최선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진정으로 그 소원을 품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하신다. 직장에서 첫째 인정을 받아야 된다. 믿음을 주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럴 때 반드시 보답이 온다. 인정을 받아야 복음이 전해진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신자는 많지만 예수를 믿는 사실을 숨긴다. 왜? 자기 자신의 삶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복음은 나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의지하면서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다. 내가 진짜로 복음을 안다면 숨길 이유가 없다. 나는 부족할 지라도 내 삶속에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을 증거하면 된다. 이것이 믿음이요, 용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숨긴다. 크리스챤인 것을 숨긴다. 또 자기를 나타내더라도 회사 내에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직장에서 시간을 쪼개어 기도생활을 갖는 등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하면 누가 좋아 하겠는가? 회사의 것을 축내는 사람들을 누가 인정하여 주겠는가? 회사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회사일을 하여야 하며 다른 시간에 하나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기도하며 힘을 얻고 나간다면 회사내 영적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5. 회사내에 살려야 할 사람을 놓고 기도하며 실제적으로 살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진짜 사람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인간 관계에서도 상당히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직장 문화에서도 많은 갈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일로 인하여 건강을 헤치는 경우도 많다. 늦은 퇴근으로 가정에도 문제가 있고, 자녀문제로 갈등을 갖는 경우도 많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병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는 상담할 곳도 없고 도움을 받을 만한 곳도 없다. 우리 신자들이 거기에 있다면, 우리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간단하게 답을 주면 된다.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영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면 된다. 이것이 직장 복음화이다. 이것이 쉽지는 않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경에 보면 다니엘은 포로로 남의 나라에 잡혀 갔지만, 그 나라에 총리 대신까지 되었다. 그가 유대인이면서 이방나라에 가서 우상에게 절 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고난을 극복하였다. 그는 공무원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직장인으로 성공한 경우이다. 내가 직장인으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이라면 성공할 것이다. 요셉의 경우에는 노예생활을 하였지만, 그의 주인 보디발의 집에도 복을 받았다. 그는 노예로서 살면서 그의 주변을 복되게 만든 사람이었다. 얼마든지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다윗은 일국의 왕이다. 바쁜 국정을 하는가운데 훌륭한 하나님 일을 하면서 살았다. 우리가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말은 전부 핑계이다. 또 군인으로서 백부장 고넬료, 그는 군인이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였다. 부르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장사를 하면서 훌륭한 전도인의 삶을 살았다. 어떤 직업이라도 복음인으로서 살 수 있다. 주님이 기뻐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나의 시간과 힘을 쓴다면 나의 모든 일에 주님이 함께 하셔서 내가 애쓰고 노력하는 것 이상으로 축복이 나타나고 내 삶에 형통함이 나타나는 삶이 된다. 그것을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이것이 복음화를 위해 살아 가는 삶의 축복이다. 이것때문에 못하고, 저것이 겁이 나서 못하고 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겁을 내라.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살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편이시면 무엇을 무서워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본문을 보면: 구원받은 자의 삶, 복음을 어떻게 전하는가? (골4:4-6)\"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구원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지혜로 행하도록 말하고 있다. 환경속에 있는 시간을 아껴야 한다. 불신자들과 만나면 쓸데 없는 말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말을 아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지혜롭게 시간을 아끼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말이 소금처럼 맛을 내며 말을 하여야 한다. 우리에게 한시간이 주어 졌을 때, 세상일을 말하며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 시간을 아끼며, 복음화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할 말을 남겨 두어야 한다. 마땅히 할 말을 하기 위해서, 복음의 비밀을 전하여야 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수 그리스도안 에 모든 것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것을 경험하고 이것을 전하여야 한다. 이 비밀을 우리가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골4:2,3)\"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 복음화의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기도에 힘써야 한다.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한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생명 살리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의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여, 오늘도 내가 깨어 있어 전도할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여야 한다. 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전도하기 위해서 뛰어 다닌다면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문이 열리도록 기도 하는 가운데 주님이 문을 열어 주시면 우리가 마땅히 할 말을,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직장 복음화요, 우리 삶의 복음화이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이것을 놓치고 사는가? 전부 육신을 위해서 살며, 시간이 있으면 온갖 세상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전도의 문은 꼭꼭 닫으면서 우리는 전도가 안된다고 한다. 아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기도하고 있을 때, 주님이 문을 열어주시는데로 복음의 말씀을 전하면 된다. 우리 모든 신자들이 그 일을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이다. 우리의 인생을 힘들게 고통 당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살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바라 보면서 주님이 나의 인생을 살아주시고 나는 주의 일을 하면 된다. 어느 것이 쉬운가? 주의 일이 훨씬 더 쉽다. 이러한 삶을 여러분 사시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 구석 구석에서, 우리의 삶 현장에서 하나님의 소원을 품고 기도하면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릴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말하면 된다. 이것이 하나님 바라시는 삶이요,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새롭게 깨닫고 이 일을 하기로 다짐하며 나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구원을 주셨으며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 안에 다 있고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로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삶을 살게 된것을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이것이 복음이요, 이 비밀을 우리가 남에게 알릴 수 있는 사람들 되게 하시고 나만 누리지 말게 하시고 내가 먼저 이 삶을 만족하게 누리는 삶이 되게 하시고 이 귀한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낭비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이 복음의 비밀을 누리게 하시며 이 비밀을 전하는 축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직장과 사업을 살리자!/ 엡6:5-9
직장과 사업을 살리자! 엡6:5-9 <서론> 아이들 동화책에 보면, 눈이 하나뿐인 원숭들이 사는 동네에 눈 둘 달린 원숭이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눈 하나밖에 없는 원숭이들이 일제히 하는 말이, ‘저기 병신이 하나 들어왔군!’ 했답니다. 그러면서 그 눈 둘 달린 원숭이를 하도 병신이라고 놀려대는 바람에 얼마 머물지 못하고 도망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 두개 달린 사람이 분명히 정상인데도 눈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으면, 눈 두개 달린 사람이 불구자가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같은 세태를 풍자한 교훈적인 이야기 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 너무 악한 자가 많아서 여러분들이 살기가 아주 힘들 것입니다. 지난 한주간 동안도 여러분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양사방에 불신앙의 사람들인데,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사업 하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직장 다니고, 또 공부해야 했을 것입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이 가득 둘러 싸인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신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바로 그와같은 생각에 빠지면 큰일 납니다. 앞에는 홍해바다가 막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연히 불평 불만하고, 이치에 맞는 원망의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그들이 언행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왜냐면, 능히 그 문제의 홍해를 가르실수 있는 그분 앞에서 지금 원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든 인생의 호흡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그들이 지금 원망하고 있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실수를 하였습니까? 왜 이런 실수가 나옵니까?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때문입니다. 도무지 믿지를 않거든요. 이치에 맞고 타당한 핑게요, 원망이었으나, 문제는 거기에 신앙이 없고, 불신앙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 앞에 속은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무서운 환경 앞에서 불신앙의 함정에 빠져 스스로 멸망받는 길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듣기에 너무너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 믿음을 결정적으로 떨어 뜨리는 악한 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길 가다가 배가 고파서, 먹을것 달라!고 하는 것이 어찌 잘못이겠습니까? 그리고 40도를 오르내리는 뙈약볕을 걷다가 목이 말라서 물달라!고 하는 것이 무슨 잘못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말을 한, 그 사람들을 멸망시켰습니다. 왜 그러느냐? 한 가지를 몰라서입니다. 지금 그들을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불러내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요, 동시에 뙈약볕 길을 데리고 가시는 분도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끝까지 못믿고, 배고프다! 목마르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한 것이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무슨 수련회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나서, 반성회라는 것을 잘 안합니다. 옛날에 한번 수련회를 마치고, 평가회라고 하는 것을 하는데, ‘이번에 프로그램 흥미가 적다!’ ‘질서가 어떻다!’ ‘너무 통제가 심했다!’ ‘시간이 빡빡하다!’ 하면서 터진 입들로 말이 막 나오는데,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 맞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엇이 빠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신앙이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좋은 은혜 받은 이후에, 무슨 불신앙 경연대회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너무너무 옳은 소리인데, 듣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한 겁니다. 맞는 말을 하지만, 불신앙을 이야기하므로 듣고나면 유익이 하나도 안되는 겁니다. 너무 맞는 말이지만, 불신앙인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사람들과 많은 말을 안합니다. 저는 제직회 같은 것도, 법이나까 하지, 하도 불신앙을 많이 하니까, 가능하면 간단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제직회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12지파가 보고 하는데, 10지파가 일어나서 ‘안된다!’고 보고하지 않습니까? 안되는 것만 놓고 10지파가 보고하고, 그 중에서 약간 정신이 이상하게 보이는 2사람만 ‘된다!’고 보고하는 겁니다. 당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린 제직회는, 거의가 다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왜 들어갈 수 없느냐? 하는 점을 논리 정연하게 보고하고 말하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이 듣고서는 낙심되어 대성 통곡하면서 ‘우리가 이제 이 모래 땅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웁니다. 그런데, 이때 역시 모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제직회 의견을 따르지 않고, ‘우리는 들어가겠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고, 들어가라!고 하였으므로 들어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믿음이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들이 전부 맞는 말인데, 우리를 멸망 가운데로 몰아넣는 불신앙의 말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사람이 경험있지요. 지식 있지요. 다 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들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고 사리가 밝은 말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듣고나면 이상하게 우리를 불신앙으로 다 몰아쳐 넣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지혜있게 잘 살아야 됩니다. 말도 잘 들어야되고 사람도 잘 사겨야 됩니다. 여러분을 멸망으로 몰아넣는 말이 있습니다. 불신앙에 사로 잡히면, 사단에게 틀림없이 잡힙니다. 어쩔수가 없는 겁니다. 엡4:23-27절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불신앙으로 가득 싸인 세상에서 신앙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교회에 왔더니, 교회까지 불신앙에 싸였다면, 그때부터는 교회가 문제가 오는 겁니다. 예수 잘 믿으려는 새신자들이 언제부터 갈등이 생기느냐? 교회에 와보니, 교회조차 믿음이 없는 것에서 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이러니 교회가 부흥될리가 없습니다. 그런 교회가 부흥 안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 전부 모여 앉아가지고 회의한다고 하는 것이, 불신앙 회의만 하니까,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할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신자들이 다 떠나가게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날이 갈수록 줄고, 아무리 몸부림치고 전도지 인쇄해서 고함치고 돌아 다녀도 자꾸 줍니다. 왜요? 불신앙이 자꾸 모여 앉아서 불신앙을 말해대니, 신앙을 바로 가진 사람들은 다 떠나 버리고, 다 죽는 겁니다. 여러분, 청년들이 언제 갈등 생기는지 압니까? 교회에 와보니, 교회마저 불신앙 할때입니다. 교회만큼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교회가 하나님을 안믿으면 갈등생깁니다. 교회만큼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믿어야 되는데, 그것을 안믿어버리면 갈등생깁니다. 그러면 그건 나중에 죽어요! 그러니까, 교회는 10년 되어도 줄고, 20년 되어도 줄고 그러는 겁니다. 교회가 아무리 전도운동, 프로그램 짜서 뛰어본들 안되는 겁니다. 불신앙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지금 우리가 핑게대기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드냐?’고 하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또 ‘우리가 신앙으로 계속 살수 있겠느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도 된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점점쌓여서 우리를 죽이는 불신앙이 된다는데 있습니다. 그게 쌓여서 자꾸만 운명적으로 멸망 가운데로 떨어지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신앙의 눈을 뜨시고, 믿음의 눈을 뜨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쉬브라고 하는 사람이 청소부로 취직을 했습니다. 조그만한 일에 너무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청소부로 취직해서,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주신줄로 알고 감사함으로 청소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청소부로 일하는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회사 안에 조그마한 마당만 쓰는 것인데 말입니다. 7시 출근해야 될 것을 6시에 출근을 합니다. 또 5시 퇴근해야 될 것을 6시에 퇴근합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러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그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하나님도 알고, 사람도 알고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청소반장이 되었습니다. 청소반장이 되니까, 더 열심히 합니다. 아픈사람까지 대신해 주고 그랬습니다. 드디어 이 사람이 생산직에 반장이 되고, 또 올라가서 높은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그랬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감사하고 일을 잘합니다. 나중에는 드디어 사장이 불러서, 사장 바로 밑에 비서실장으로 일하게 합니다. 그래도 너무 일을 잘합니다. 이 사람이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 사장이 회사를 물려줄 때에, 누구에게 물려주느냐? 자기 아들에게도 안물려주고, 그 밑에 있는 똑똑한 박사가 있었는데, 거기에 안물려주고 자기 밑에 청소부로 들어왔던 쉬브에게 강철회사 카네기가 후계자로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이 친구가 한번도 사장님 말씀에 거절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만 거절했습니다. 왜냐면, ‘아들도 있고, 박사님도 계시는데 어찌해서 내가 사장을 하겠습니까?’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때, 카네기가 뭐라고 말했느냐? ‘지식이 핖요하면, 지식인을 불러라! 과학자가 필요하면 과학자를 불러라! 돈주면 된다! 나는 자네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네야 말로 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장감이네!’ 그렇고 말고요! 그 이후에 그 쉬브가 그 회사에 많은 변화를 불러 왔습니다. 여러분, 핑게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이들 말로 핑게는 커트라인이 없습니다. 불신앙 한번 하면 두번, 두번하면 세번, 세번하면 네번, 네번하면 다섯번, 여섯번, 일곱번, 열번, 백번, 나중에는 끝없는 불신앙에 뺑 둘러싸여서 죽어버리는 겁니다. 이것을 가리켜 마귀충만이라고 합니다.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좀 모자라도, 믿으면, 믿음이 둘, 셋, 넷, 다섯, 자꾸 계속되면, 믿음이 충만해져 버립니다. 거기에 성령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머리가 좋을려면, 썩 좋든지, 아니면 썩 나쁘든지 그래야 합니다. 어중간해 가지고는 나라 망치고, 집안 망치고, 교회망칩니다. 머리가 아좋든지, 아주 나빠 버려야 합니다. 아주 나빠 버려야 무조건 아멘! 할것 아닙니까? 또 아주 좋으면, 알고 아멘!하는 겁니다. 택도 없는데, 예스 할것에 노! 하고, 노! 할곳에 예스! 해가지고는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터일려면 확트여 버리고, 안그러면 캄캄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니까, 다 알아도 다 틀린 것입니다. 죤 와나메이커는 백화점 왕이 되고, 초대 체신부 장관이 되기전에 남의 집에 점원으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점원으로 일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원으로 일하는 이것이 너무 감사해서, 늘 기도하면서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직장생활을 하고있고,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고있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사는 이것을 하나님의 만족과 감사를 못느낀다면, 미안하지만 신앙생활을 틀리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아무리 받아도, 그것은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불을 아무리 받아도 그것은 불이 아닙니다. 감기몸살이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감사가 나와야 그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외에는 아무리 은사를 받아도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틀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자꾸만 많은 신자들이 빠져 죽는 겁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직장생활과 사회에 대해서 나왔습니다. 1. 기독교인의 직장관(사업관)은? (엡6:5-8)“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8) 이는 각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1) 그래서,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하듯이 하라!고요? ‘주께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가 무슨 사람의 소유인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니는 일터는 하나님의 일터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를 사장으로 시켰을 뿐입니다. 그 사업을 망치면 내가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면 그것이 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불신자입니다. 누구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장생활도 바로해야 됩니다. 직장 생활을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지말고, 어디를 가든지, 감사하면서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2) 회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사장은 주님의 종이요, 종업원들은 주의 일꾼들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사장이나 주인에 대하여 일을 할때, ‘주께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사장이나 주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또 동시에 사장이나 주인도 무엇을 기억해야 되느냐? (엡6:9)“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상전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은 하나님의 종이고, 사장이 고용한 일꾼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3)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일터는 선교지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일터나, 직장이 선교지요, 공부하고 있는 학교는 선교지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모든 지역은 선교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잘 깨닫고 일을 해야 됩니다. 우리나라 제품이 외국에 나가서 인정을 못받고, 일본보다 한단계 밑으로 쳐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압니까? 기술이 뒤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물건이 도대체 오래 가지를 못하고 자주 고장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물건이 자주 고장이 납니까? 그것은 종업원들이 일을 해도 너무 성의없이 일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나사 하나를 조여도, 제대로 안 조으니, 자동차 바퀴가 빠지고 나사가 풀려서 대형사고가 나는 겁니다. 그만큼 정신이 나사가 빠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기독 신자가 들어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자꾸 핑게를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제대로 일하지 않고, 데모만 하면, 우리 민족만 손해입니다. 일을 제대로 해놓고 데모해야지, 일도 하지 않고 데모하면 모두 다 손해입니다. 직장은 하나님이 주신 일터요, 일꾼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요,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은 선교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핑게를 댈려면 끝이 없습니다.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핑게를 대면, 불신앙으로 자꾸만 자꾸만 빠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헤어나오기도 어려울 정도로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시 시작하면, 우리가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나님께로 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염려 내버리고, 믿음 회복되어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요셉의 축복(창39:1-6) -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보고 요셉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은 크게 3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크게 3가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왜냐? 1)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다락방 교회를 보고서, 미금시에 있는 전 시민들이 하나님 알 수 있는 축복을 보아야 됩니다.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하나님 계시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옛날에 저희 집안이 전부 불교나 유교였는데, 저희 어머님이 예수믿고 구원받은 이후에 저희 형제 3형제가 예수믿고 복을 누리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독하게 제사지내며, 조상을 섬긴다고 자랑하던 큰 집이 완전히 폭삭 망하더군요. 그 아들 손자까지 망하는데, 그야말로 3-4대까지 확실히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옛날에 큰집에 친척이 주일날 들리러 오면, 저희는 천하없는 일이 있어도 우리는 예배드리거든요. 그래서, ‘맛있는 것 많이 잡숫고, 있으세요! 예배드리고 오겠습니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아니, 모처럼 공일에 사람이 왔는데, 예배당은 매 주 갈 수 있지만, 친척은 일년에 한두번 올까말까 하는데, 이럴 수 있느냐?’면서 투덜거립니다. 그래도, 천하 없어도 예배드리러 가거든요. 그래서, 돌아 앉아 가지고 가서는 ‘예수쟁이가 되어가지고, 형제도 친척도 못알아 본다!’며 입방아를 찌어 댑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완전히 망해버린것 있지요. 무슨 조상찾고, 어른찾고 하든 어른들은 이제, 다 죽고 저희 어머님만 제일 오래 살아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불신 친척이 할 말이 없게된 것입니다. 요셉을 쳐보니, 누가 계셔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들어가면 누가 역사합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인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불신자입니다. 2)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무엇을 보았느냐? ‘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하는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다락방 정신입니다. 여러분을 쳐다보고, 여러분의 집을 쳐다보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직장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저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는 곳에 흑암 권세가 떠나갈 줄로 믿습니다. 나와 같이 주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장에 가면, 직장에 역사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나와함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3)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그의 범사에 형통케하심을 보았습니다. 불신자 보디발이 보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므로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믿는 자입니다. 다시말해, 직장 안에 주의 성령은 분명히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핑게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죽습니다. 우리가 핑게대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다락방교회 성도님들이 일어나서, 복음 전해야 되겠습니다. 국민학생, 중학교 고등학생들이 불신앙이 심기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대학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서 흑암의 권세를 결박시켜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깨끗히 전하다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놀라운 사명입니다. 그런데, 거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 선배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담임 목사님이 전도사에게 주보 인쇄를 항상 하던 곳에 가지말고, 다른데 가서 해오라!는 겁니다. 전도사는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사람인지라, 좀 이상해도 아무말 하지 않고 순종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갔다오는데, 거의 하루가 걸리는 겁니다. 그리고 또 보니, 그곳이 주보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슨 명암찍는 곳입니다. 목사님이 해오라!고 하니, 그때부터 문제가 오는 겁니다. 주보의 글짜가 다 틀리게 나옵니다. ‘복음송 대회’를 ‘뽁음송 대회’라고 해놓고, 말을 잘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목사님 설교 제목이 ‘열고을 권세를 주리라!’인데, ‘열고을 전세를 주리라!’고 해놓은 겁니다. 도저히 글자도 틀리고 거리도 멀고 해서, 담임 목사님에게 ‘목사님, 도저히 글자를 너무 틀리게하고, 거리가 멀어서 안되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도, 웃으면서 ‘그렇지요? 그럼 본래대로 하시오!’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전도사님이 본래대로 했는데, 주보가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교회 장로님중 한 분이 담임 목사님에게 자꾸만 주보를 거기 먼데서 하라!고 압력을 넣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슨즉, 그 인쇄소가 자기 조카라는 겁니다. 목사님도 할수 없어서 해보지요! 하고 했는데, 너무 글자가 틀리니, ‘안되겠다!’고 하여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 장로님이 그 전도사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는데, 그 전도사가 말해서 자기 조카에게 주보를 맡기지 않는다며, 유감을 가진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무슨 조그만 잘못이 나오기만 하면, 그 전도사님에게 시비걸고 넘어지는 겁니다. 자기 조카에게 일거리를 못맡기는 것네 재래 섭섭해 하는 것이 이해는 되는데, 못말릴 정도로 앙갚음을 할려고 하는 겁니다. 조카를 밀어주고자 하는 그 갸륵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나 사명감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교회를 이용하고, 또한,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복음을 막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겁니다. 그러므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 그리스도를 제대로 심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소망 없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싸우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제직회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요? 합법적으로 발언권 얻어가지고 마음껏 싸울 수 있거든요. 어쩌다가 한번 제직회를 안하면, ‘왜 제직회 안하느냐?’고 따집니다. 싸우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그래서 제직회를 해야 되는 겁니다. 인생을 그렇게 바보처럼 보내는 겁니다. 축복받고, 능력받고, 증거하고 이래야 될 것인데, 매일 모여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아니다! 맞다! 도다! 게다!’ 하고 앉은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매일 모여서 떠들고 그러는 겁니다. 전부 불신앙 이야기들로, 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전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렇게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땅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삽니까? 우리 인생을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송할 것입니까? 나가서 마음껏 축복받고, 증거하고, 민족 살리고, 직장 살리고, 회사를 살려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직장과 사업을 살리자!/ 엡6:5-9
직장과 사업을 살리자! 엡6:5-9 <서론> 아이들 동화책에 보면, 눈이 하나뿐인 원숭들이 사는 동네에 눈 둘 달린 원숭이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눈 하나밖에 없는 원숭이들이 일제히 하는 말이, \'저기 병신이 하나 들어왔군!\' 했답니다. 그러면서 그 눈 둘 달린 원숭이를 하도 병신이라고 놀려대는 바람에 얼마 머물지 못하고 도망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 두개 달린 사람이 분명히 정상인데도 눈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으면, 눈 두개 달린 사람이 불구자가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같은 세태를 풍자한 교훈적인 이야기 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 너무 악한 자가 많아서 여러분들이 살기가 아주 힘들 것입니다. 지난 한주간 동안도 여러분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양사방에 불신앙의 사람들인데,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사업 하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직장 다니고, 또 공부해야 했을 것입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이 가득 둘러 싸인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신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바로 그와같은 생각에 빠지면 큰일 납니다. 앞에는 홍해바다가 막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연히 불평 불만하고, 이치에 맞는 원망의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그들이 언행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왜냐면, 능히 그 문제의 홍해를 가르실수 있는 그분 앞에서 지금 원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든 인생의 호흡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그들이 지금 원망하고 있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실수를 하였습니까? 왜 이런 실수가 나옵니까?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때문입니다. 도무지 믿지를 않거든요. 이치에 맞고 타당한 핑게요, 원망이었으나, 문제는 거기에 신앙이 없고, 불신앙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 앞에 속은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무서운 환경 앞에서 불신앙의 함정에 빠져 스스로 멸망받는 길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듣기에 너무너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 믿음을 결정적으로 떨어 뜨리는 악한 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길 가다가 배가 고파서, 먹을것 달라!고 하는 것이 어찌 잘못이겠습니까? 그리고 40도를 오르내리는 뙈약볕을 걷다가 목이 말라서 물달라!고 하는 것이 무슨 잘못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말을 한, 그 사람들을 멸망시켰습니다. 왜 그러느냐? 한 가지를 몰라서입니다. 지금 그들을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불러내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요, 동시에 뙈약볕 길을 데리고 가시는 분도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끝까지 못믿고, 배고프다! 목마르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한 것이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무슨 수련회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나서, 반성회라는 것을 잘 안합니다. 옛날에 한번 수련회를 마치고, 평가회라고 하는 것을 하는데, \'이번에 프로그램 흥미가 적다!\' \'질서가 어떻다!\' \'너무 통제가 심했다!\' \'시간이 빡빡하다!\' 하면서 터진 입들로 말이 막 나오는데,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 맞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엇이 빠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신앙이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좋은 은혜 받은 이후에, 무슨 불신앙 경연대회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너무너무 옳은 소리인데, 듣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한 겁니다. 맞는 말을 하지만, 불신앙을 이야기하므로 듣고나면 유익이 하나도 안되는 겁니다. 너무 맞는 말이지만, 불신앙인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사람들과 많은 말을 안합니다. 저는 제직회 같은 것도, 법이나까 하지, 하도 불신앙을 많이 하니까, 가능하면 간단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제직회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12지파가 보고 하는데, 10지파가 일어나서 \'안된다!\'고 보고하지 않습니까? 안되는 것만 놓고 10지파가 보고하고, 그 중에서 약간 정신이 이상하게 보이는 2사람만 \'된다!\'고 보고하는 겁니다. 당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린 제직회는, 거의가 다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왜 들어갈 수 없느냐? 하는 점을 논리 정연하게 보고하고 말하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이 듣고서는 낙심되어 대성 통곡하면서 \'우리가 이제 이 모래 땅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웁니다. 그런데, 이때 역시 모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제직회 의견을 따르지 않고, \'우리는 들어가겠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고, 들어가라!고 하였으므로 들어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믿음이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들이 전부 맞는 말인데, 우리를 멸망 가운데로 몰아넣는 불신앙의 말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사람이 경험있지요. 지식 있지요. 다 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들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고 사리가 밝은 말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듣고나면 이상하게 우리를 불신앙으로 다 몰아쳐 넣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지혜있게 잘 살아야 됩니다. 말도 잘 들어야되고 사람도 잘 사겨야 됩니다. 여러분을 멸망으로 몰아넣는 말이 있습니다. 불신앙에 사로 잡히면, 사단에게 틀림없이 잡힙니다. 어쩔수가 없는 겁니다. 엡4:23-27절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불신앙으로 가득 싸인 세상에서 신앙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교회에 왔더니, 교회까지 불신앙에 싸였다면, 그때부터는 교회가 문제가 오는 겁니다. 예수 잘 믿으려는 새신자들이 언제부터 갈등이 생기느냐? 교회에 와보니, 교회조차 믿음이 없는 것에서 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이러니 교회가 부흥될리가 없습니다. 그런 교회가 부흥 안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 전부 모여 앉아가지고 회의한다고 하는 것이, 불신앙 회의만 하니까,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할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신자들이 다 떠나가게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날이 갈수록 줄고, 아무리 몸부림치고 전도지 인쇄해서 고함치고 돌아 다녀도 자꾸 줍니다. 왜요? 불신앙이 자꾸 모여 앉아서 불신앙을 말해대니, 신앙을 바로 가진 사람들은 다 떠나 버리고, 다 죽는 겁니다. 여러분, 청년들이 언제 갈등 생기는지 압니까? 교회에 와보니, 교회마저 불신앙 할때입니다. 교회만큼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교회가 하나님을 안믿으면 갈등생깁니다. 교회만큼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믿어야 되는데, 그것을 안믿어버리면 갈등생깁니다. 그러면 그건 나중에 죽어요! 그러니까, 교회는 10년 되어도 줄고, 20년 되어도 줄고 그러는 겁니다. 교회가 아무리 전도운동, 프로그램 짜서 뛰어본들 안되는 겁니다. 불신앙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지금 우리가 핑게대기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드냐?\'고 하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또 \'우리가 신앙으로 계속 살수 있겠느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도 된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점점쌓여서 우리를 죽이는 불신앙이 된다는데 있습니다. 그게 쌓여서 자꾸만 운명적으로 멸망 가운데로 떨어지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신앙의 눈을 뜨시고, 믿음의 눈을 뜨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쉬브라고 하는 사람이 청소부로 취직을 했습니다. 조그만한 일에 너무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청소부로 취직해서,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주신줄로 알고 감사함으로 청소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청소부로 일하는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회사 안에 조그마한 마당만 쓰는 것인데 말입니다. 7시 출근해야 될 것을 6시에 출근을 합니다. 또 5시 퇴근해야 될 것을 6시에 퇴근합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러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그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하나님도 알고, 사람도 알고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청소반장이 되었습니다. 청소반장이 되니까, 더 열심히 합니다. 아픈사람까지 대신해 주고 그랬습니다. 드디어 이 사람이 생산직에 반장이 되고, 또 올라가서 높은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그랬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감사하고 일을 잘합니다. 나중에는 드디어 사장이 불러서, 사장 바로 밑에 비서실장으로 일하게 합니다. 그래도 너무 일을 잘합니다. 이 사람이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 사장이 회사를 물려줄 때에, 누구에게 물려주느냐? 자기 아들에게도 안물려주고, 그 밑에 있는 똑똑한 박사가 있었는데, 거기에 안물려주고 자기 밑에 청소부로 들어왔던 쉬브에게 강철회사 카네기가 후계자로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이 친구가 한번도 사장님 말씀에 거절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만 거절했습니다. 왜냐면, \'아들도 있고, 박사님도 계시는데 어찌해서 내가 사장을 하겠습니까?\'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때, 카네기가 뭐라고 말했느냐? \'지식이 핖요하면, 지식인을 불러라! 과학자가 필요하면 과학자를 불러라! 돈주면 된다! 나는 자네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네야 말로 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장감이네!\' 그렇고 말고요! 그 이후에 그 쉬브가 그 회사에 많은 변화를 불러 왔습니다. 여러분, 핑게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이들 말로 핑게는 커트라인이 없습니다. 불신앙 한번 하면 두번, 두번하면 세번, 세번하면 네번, 네번하면 다섯번, 여섯번, 일곱번, 열번, 백번, 나중에는 끝없는 불신앙에 뺑 둘러싸여서 죽어버리는 겁니다. 이것을 가리켜 마귀충만이라고 합니다.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좀 모자라도, 믿으면, 믿음이 둘, 셋, 넷, 다섯, 자꾸 계속되면, 믿음이 충만해져 버립니다. 거기에 성령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머리가 좋을려면, 썩 좋든지, 아니면 썩 나쁘든지 그래야 합니다. 어중간해 가지고는 나라 망치고, 집안 망치고, 교회망칩니다. 머리가 아좋든지, 아주 나빠 버려야 합니다. 아주 나빠 버려야 무조건 아멘! 할것 아닙니까? 또 아주 좋으면, 알고 아멘!하는 겁니다. 택도 없는데, 예스 할것에 노! 하고, 노! 할곳에 예스! 해가지고는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터일려면 확트여 버리고, 안그러면 캄캄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니까, 다 알아도 다 틀린 것입니다. 죤 와나메이커는 백화점 왕이 되고, 초대 체신부 장관이 되기전에 남의 집에 점원으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점원으로 일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원으로 일하는 이것이 너무 감사해서, 늘 기도하면서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직장생활을 하고있고,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고있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사는 이것을 하나님의 만족과 감사를 못느낀다면, 미안하지만 신앙생활을 틀리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아무리 받아도, 그것은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불을 아무리 받아도 그것은 불이 아닙니다. 감기몸살이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감사가 나와야 그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외에는 아무리 은사를 받아도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틀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자꾸만 많은 신자들이 빠져 죽는 겁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직장생활과 사회에 대해서 나왔습니다. 1. 기독교인의 직장관(사업관)은? (엡6:5-8)\"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8) 이는 각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1) 그래서,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하듯이 하라!고요? \'주께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가 무슨 사람의 소유인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니는 일터는 하나님의 일터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를 사장으로 시켰을 뿐입니다. 그 사업을 망치면 내가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면 그것이 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불신자입니다. 누구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장생활도 바로해야 됩니다. 직장 생활을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지말고, 어디를 가든지, 감사하면서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2) 회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사장은 주님의 종이요, 종업원들은 주의 일꾼들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사장이나 주인에 대하여 일을 할때, \'주께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사장이나 주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또 동시에 사장이나 주인도 무엇을 기억해야 되느냐? (엡6:9)\"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상전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은 하나님의 종이고, 사장이 고용한 일꾼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3)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일터는 선교지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일터나, 직장이 선교지요, 공부하고 있는 학교는 선교지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모든 지역은 선교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잘 깨닫고 일을 해야 됩니다. 우리나라 제품이 외국에 나가서 인정을 못받고, 일본보다 한단계 밑으로 쳐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압니까? 기술이 뒤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물건이 도대체 오래 가지를 못하고 자주 고장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물건이 자주 고장이 납니까? 그것은 종업원들이 일을 해도 너무 성의없이 일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나사 하나를 조여도, 제대로 안 조으니, 자동차 바퀴가 빠지고 나사가 풀려서 대형사고가 나는 겁니다. 그만큼 정신이 나사가 빠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기독 신자가 들어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자꾸 핑게를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제대로 일하지 않고, 데모만 하면, 우리 민족만 손해입니다. 일을 제대로 해놓고 데모해야지, 일도 하지 않고 데모하면 모두 다 손해입니다. 직장은 하나님이 주신 일터요, 일꾼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요,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은 선교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핑게를 댈려면 끝이 없습니다.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핑게를 대면, 불신앙으로 자꾸만 자꾸만 빠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헤어나오기도 어려울 정도로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시 시작하면, 우리가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나님께로 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염려 내버리고, 믿음 회복되어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요셉의 축복(창39:1-6) -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보고 요셉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은 크게 3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크게 3가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왜냐? 1)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다락방 교회를 보고서, 미금시에 있는 전 시민들이 하나님 알 수 있는 축복을 보아야 됩니다.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하나님 계시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옛날에 저희 집안이 전부 불교나 유교였는데, 저희 어머님이 예수믿고 구원받은 이후에 저희 형제 3형제가 예수믿고 복을 누리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독하게 제사지내며, 조상을 섬긴다고 자랑하던 큰 집이 완전히 폭삭 망하더군요. 그 아들 손자까지 망하는데, 그야말로 3-4대까지 확실히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옛날에 큰집에 친척이 주일날 들리러 오면, 저희는 천하없는 일이 있어도 우리는 예배드리거든요. 그래서, \'맛있는 것 많이 잡숫고, 있으세요! 예배드리고 오겠습니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아니, 모처럼 공일에 사람이 왔는데, 예배당은 매 주 갈 수 있지만, 친척은 일년에 한두번 올까말까 하는데, 이럴 수 있느냐?\'면서 투덜거립니다. 그래도, 천하 없어도 예배드리러 가거든요. 그래서, 돌아 앉아 가지고 가서는 \'예수쟁이가 되어가지고, 형제도 친척도 못알아 본다!\'며 입방아를 찌어 댑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완전히 망해버린것 있지요. 무슨 조상찾고, 어른찾고 하든 어른들은 이제, 다 죽고 저희 어머님만 제일 오래 살아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불신 친척이 할 말이 없게된 것입니다. 요셉을 쳐보니, 누가 계셔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들어가면 누가 역사합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인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불신자입니다. 2)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무엇을 보았느냐? \'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하는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다락방 정신입니다. 여러분을 쳐다보고, 여러분의 집을 쳐다보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직장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저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는 곳에 흑암 권세가 떠나갈 줄로 믿습니다. 나와 같이 주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장에 가면, 직장에 역사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나와함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3)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그의 범사에 형통케하심을 보았습니다. 불신자 보디발이 보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므로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믿는 자입니다. 다시말해, 직장 안에 주의 성령은 분명히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핑게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죽습니다. 우리가 핑게대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다락방교회 성도님들이 일어나서, 복음 전해야 되겠습니다. 국민학생, 중학교 고등학생들이 불신앙이 심기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대학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서 흑암의 권세를 결박시켜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깨끗히 전하다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놀라운 사명입니다. 그런데, 거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 선배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담임 목사님이 전도사에게 주보 인쇄를 항상 하던 곳에 가지말고, 다른데 가서 해오라!는 겁니다. 전도사는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사람인지라, 좀 이상해도 아무말 하지 않고 순종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갔다오는데, 거의 하루가 걸리는 겁니다. 그리고 또 보니, 그곳이 주보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슨 명암찍는 곳입니다. 목사님이 해오라!고 하니, 그때부터 문제가 오는 겁니다. 주보의 글짜가 다 틀리게 나옵니다. \'복음송 대회\'를 \'뽁음송 대회\'라고 해놓고, 말을 잘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목사님 설교 제목이 \'열고을 권세를 주리라!\'인데, \'열고을 전세를 주리라!\'고 해놓은 겁니다. 도저히 글자도 틀리고 거리도 멀고 해서, 담임 목사님에게 \'목사님, 도저히 글자를 너무 틀리게하고, 거리가 멀어서 안되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도, 웃으면서 \'그렇지요? 그럼 본래대로 하시오!\'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전도사님이 본래대로 했는데, 주보가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교회 장로님중 한 분이 담임 목사님에게 자꾸만 주보를 거기 먼데서 하라!고 압력을 넣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슨즉, 그 인쇄소가 자기 조카라는 겁니다. 목사님도 할수 없어서 해보지요! 하고 했는데, 너무 글자가 틀리니, \'안되겠다!\'고 하여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 장로님이 그 전도사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는데, 그 전도사가 말해서 자기 조카에게 주보를 맡기지 않는다며, 유감을 가진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무슨 조그만 잘못이 나오기만 하면, 그 전도사님에게 시비걸고 넘어지는 겁니다. 자기 조카에게 일거리를 못맡기는 것네 재래 섭섭해 하는 것이 이해는 되는데, 못말릴 정도로 앙갚음을 할려고 하는 겁니다. 조카를 밀어주고자 하는 그 갸륵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나 사명감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교회를 이용하고, 또한,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복음을 막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겁니다. 그러므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 그리스도를 제대로 심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소망 없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싸우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제직회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요? 합법적으로 발언권 얻어가지고 마음껏 싸울 수 있거든요. 어쩌다가 한번 제직회를 안하면, \'왜 제직회 안하느냐?\'고 따집니다. 싸우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그래서 제직회를 해야 되는 겁니다. 인생을 그렇게 바보처럼 보내는 겁니다. 축복받고, 능력받고, 증거하고 이래야 될 것인데, 매일 모여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아니다! 맞다! 도다! 게다!\' 하고 앉은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매일 모여서 떠들고 그러는 겁니다. 전부 불신앙 이야기들로, 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전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렇게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땅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삽니까? 우리 인생을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송할 것입니까? 나가서 마음껏 축복받고, 증거하고, 민족 살리고, 직장 살리고, 회사를 살려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직장과 사업을 살리자/ 엡6:5-9
직장과 사업을 살리자 엡6:5-9 아이들 동화책에 보면, 눈이 하나뿐인 원숭들이 사는 동네에 눈 둘 달린 원숭이가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눈 하나밖에 없는 원숭이들이 일제히 하는 말이, \'저기 병신이 하나 들어왔군!\' 했답니다. 그러면서 그 눈 둘 달린 원숭이를 하도 병신이라고 놀려대는 바람에 얼마 머물지 못하고 도망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 두개 달린 사람이 분명히 정상인데도 눈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으면, 눈 두개 달린 사람이 불구자가 되는 것이 세상입니다. 이같은 세태를 풍자한 교훈적인 이야기 입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 너무 악한 자가 많아서 여러분들이 살기가 아주 힘들 것입니다. 지난 한주간 동안도 여러분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양사방에 불신앙의 사람들인데,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사업 하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직장 다니고, 또 공부해야 했을 것입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이 가득 둘러 싸인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신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바로 그와같은 생각에 빠지면 큰일 납니다. 앞에는 홍해바다가 막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왔을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연히 불평 불만하고, 이치에 맞는 원망의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그들이 언행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왜냐면, 능히 그 문제의 홍해를 가르실수 있는 그분 앞에서 지금 원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모든 인생의 호흡과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그들이 지금 원망하고 있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실수를 하였습니까? 왜 이런 실수가 나옵니까?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 때문입니다. 도무지 믿지를 않거든요. 이치에 맞고 타당한 핑게요, 원망이었으나, 문제는 거기에 신앙이 없고, 불신앙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 앞에 속은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무서운 환경 앞에서 불신앙의 함정에 빠져 스스로 멸망받는 길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듣기에 너무너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 믿음을 결정적으로 떨어 뜨리는 악한 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길 가다가 배가 고파서, 먹을것 달라!고 하는 것이 어찌 잘못이겠습니까? 그리고 40도를 오르내리는 뙈약볕을 걷다가 목이 말라서 물달라!고 하는 것이 무슨 잘못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말을 한, 그 사람들을 멸망시켰습니다. 왜 그러느냐? 한 가지를 몰라서입니다. 지금 그들을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불러내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시요, 동시에 뙈약볕 길을 데리고 가시는 분도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끝까지 못믿고, 배고프다! 목마르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한 것이 큰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는 무슨 수련회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하고나서, 반성회라는 것을 잘 안합니다. 옛날에 한번 수련회를 마치고, 평가회라고 하는 것을 하는데, \'이번에 프로그램 흥미가 적다!\' \'질서가 어떻다!\' \'너무 통제가 심했다!\' \'시간이 빡빡하다!\' 하면서 터진 입들로 말이 막 나오는데,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다 맞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엇이 빠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신앙이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듣고 있으면, 좋은 은혜 받은 이후에, 무슨 불신앙 경연대회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너무너무 옳은 소리인데, 듣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한 겁니다. 맞는 말을 하지만, 불신앙을 이야기하므로 듣고나면 유익이 하나도 안되는 겁니다. 너무 맞는 말이지만, 불신앙인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사람들과 많은 말을 안합니다. 저는 제직회 같은 것도, 법이나까 하지, 하도 불신앙을 많이 하니까, 가능하면 간단하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제직회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12지파가 보고 하는데, 10지파가 일어나서 \'안된다!\'고 보고하지 않습니까? 안되는 것만 놓고 10지파가 보고하고, 그 중에서 약간 정신이 이상하게 보이는 2사람만 \'된다!\'고 보고하는 겁니다. 당시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린 제직회는, 거의가 다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다. 왜 들어갈 수 없느냐? 하는 점을 논리 정연하게 보고하고 말하니까, 이스라엘 민족들이 듣고서는 낙심되어 대성 통곡하면서 \'우리가 이제 이 모래 땅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죽게 되었다!\'고 하면서 웁니다. 그런데, 이때 역시 모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제직회 의견을 따르지 않고, \'우리는 들어가겠다!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고, 들어가라!고 하였으므로 들어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믿음이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많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들이 전부 맞는 말인데, 우리를 멸망 가운데로 몰아넣는 불신앙의 말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사람이 경험있지요. 지식 있지요. 다 판단력이 있기 때문에 그 말들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고 사리가 밝은 말들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듣고나면 이상하게 우리를 불신앙으로 다 몰아쳐 넣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지혜있게 잘 살아야 됩니다. 말도 잘 들어야되고 사람도 잘 사겨야 됩니다. 여러분을 멸망으로 몰아넣는 말이 있습니다. 불신앙에 사로 잡히면, 사단에게 틀림없이 잡힙니다. 어쩔수가 없는 겁니다. 엡4:23-27절에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불신앙으로 가득 싸인 세상에서 신앙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교회에 왔더니, 교회까지 불신앙에 싸였다면, 그때부터는 교회가 문제가 오는 겁니다. 예수 잘 믿으려는 새신자들이 언제부터 갈등이 생기느냐? 교회에 와보니, 교회조차 믿음이 없는 것에서 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이러니 교회가 부흥될리가 없습니다. 그런 교회가 부흥 안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 전부 모여 앉아가지고 회의한다고 하는 것이, 불신앙 회의만 하니까, 거기에 성령께서 역사할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신자들이 다 떠나가게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날이 갈수록 줄고, 아무리 몸부림치고 전도지 인쇄해서 고함치고 돌아 다녀도 자꾸 줍니다. 왜요? 불신앙이 자꾸 모여 앉아서 불신앙을 말해대니, 신앙을 바로 가진 사람들은 다 떠나 버리고, 다 죽는 겁니다. 여러분, 청년들이 언제 갈등 생기는지 압니까? 교회에 와보니, 교회마저 불신앙 할때입니다. 교회만큼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교회가 하나님을 안믿으면 갈등생깁니다. 교회만큼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믿어야 되는데, 그것을 안믿어버리면 갈등생깁니다. 그러면 그건 나중에 죽어요! 그러니까, 교회는 10년 되어도 줄고, 20년 되어도 줄고 그러는 겁니다. 교회가 아무리 전도운동, 프로그램 짜서 뛰어본들 안되는 겁니다. 불신앙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지금 우리가 핑게대기 너무 좋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기가 얼마나 힘드냐?\'고 하는데, 사실 그렇습니다. 또 \'우리가 신앙으로 계속 살수 있겠느냐?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도 된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점점쌓여서 우리를 죽이는 불신앙이 된다는데 있습니다. 그게 쌓여서 자꾸만 운명적으로 멸망 가운데로 떨어지게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신앙의 눈을 뜨시고, 믿음의 눈을 뜨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쉬브라고 하는 사람이 청소부로 취직을 했습니다. 조그만한 일에 너무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청소부로 취직해서,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주신줄로 알고 감사함으로 청소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청소부로 일하는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회사 안에 조그마한 마당만 쓰는 것인데 말입니다. 7시 출근해야 될 것을 6시에 출근을 합니다. 또 5시 퇴근해야 될 것을 6시에 퇴근합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러는 겁니다. 기도하면서 그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하나님도 알고, 사람도 알고 다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청소반장이 되었습니다. 청소반장이 되니까, 더 열심히 합니다. 아픈사람까지 대신해 주고 그랬습니다. 드디어 이 사람이 생산직에 반장이 되고, 또 올라가서 높은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그랬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감사하고 일을 잘합니다. 나중에는 드디어 사장이 불러서, 사장 바로 밑에 비서실장으로 일하게 합니다. 그래도 너무 일을 잘합니다. 이 사람이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 사장이 회사를 물려줄 때에, 누구에게 물려주느냐? 자기 아들에게도 안물려주고, 그 밑에 있는 똑똑한 박사가 있었는데, 거기에 안물려주고 자기 밑에 청소부로 들어왔던 쉬브에게 강철회사 카네기가 후계자로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이 친구가 한번도 사장님 말씀에 거절한 적이 없었는데, 그때만 거절했습니다. 왜냐면, \'아들도 있고, 박사님도 계시는데 어찌해서 내가 사장을 하겠습니까?\'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때, 카네기가 뭐라고 말했느냐? \'지식이 핖요하면, 지식인을 불러라! 과학자가 필요하면 과학자를 불러라! 돈주면 된다! 나는 자네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네야 말로 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장감이네!\' 그렇고 말고요! 그 이후에 그 쉬브가 그 회사에 많은 변화를 불러 왔습니다. 여러분, 핑게는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이들 말로 핑게는 커트라인이 없습니다. 불신앙 한번 하면 두번, 두번하면 세번, 세번하면 네번, 네번하면 다섯번, 여섯번, 일곱번, 열번, 백번, 나중에는 끝없는 불신앙에 뺑 둘러싸여서 죽어버리는 겁니다. 이것을 가리켜 마귀충만이라고 합니다. 빠져나올 길이 없습니다. 좀 모자라도, 믿으면, 믿음이 둘, 셋, 넷, 다섯, 자꾸 계속되면, 믿음이 충만해져 버립니다. 거기에 성령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머리가 좋을려면, 썩 좋든지, 아니면 썩 나쁘든지 그래야 합니다. 어중간해 가지고는 나라 망치고, 집안 망치고, 교회망칩니다. 머리가 아좋든지, 아주 나빠 버려야 합니다. 아주 나빠 버려야 무조건 아멘! 할것 아닙니까? 또 아주 좋으면, 알고 아멘!하는 겁니다. 택도 없는데, 예스 할것에 노! 하고, 노! 할곳에 예스! 해가지고는 안되는 겁니다. 그러니, 터일려면 확트여 버리고, 안그러면 캄캄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니까, 다 알아도 다 틀린 것입니다. 죤 와나메이커는 백화점 왕이 되고, 초대 체신부 장관이 되기전에 남의 집에 점원으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점원으로 일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원으로 일하는 이것이 너무 감사해서, 늘 기도하면서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직장생활을 하고있고, 여러분이 사회생활을 하고있고, 여러분이 지금까지 사는 이것을 하나님의 만족과 감사를 못느낀다면, 미안하지만 신앙생활을 틀리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아무리 받아도, 그것은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불을 아무리 받아도 그것은 불이 아닙니다. 감기몸살이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감사가 나와야 그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외에는 아무리 은사를 받아도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틀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자꾸만 많은 신자들이 빠져 죽는 겁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직장생활과 사회에 대해서 나왔습니다. 1. 기독교인의 직장관(사업관)은? (엡6:5-8)\"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7)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하지 말라 (8) 이는 각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1) 그래서,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하듯이 하라!고요? \'주께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가 무슨 사람의 소유인 것같이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다니는 일터는 하나님의 일터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를 사장으로 시켰을 뿐입니다. 그 사업을 망치면 내가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잘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조그마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면 그것이 내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불신자입니다. 누구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장생활도 바로해야 됩니다. 직장 생활을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지말고, 어디를 가든지, 감사하면서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2) 회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사장은 주님의 종이요, 종업원들은 주의 일꾼들입니다. 일하는 사람은 사장이나 주인에 대하여 일을 할때, \'주께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면 사장이나 주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또 동시에 사장이나 주인도 무엇을 기억해야 되느냐? (엡6:9)\"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상전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님은 하나님의 종이고, 사장이 고용한 일꾼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3)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일터는 선교지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일터나, 직장이 선교지요, 공부하고 있는 학교는 선교지입니다. 내가 속해 있는 모든 지역은 선교지역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잘 깨닫고 일을 해야 됩니다. 우리나라 제품이 외국에 나가서 인정을 못받고, 일본보다 한단계 밑으로 쳐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압니까? 기술이 뒤떨어져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물건이 도대체 오래 가지를 못하고 자주 고장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 물건이 자주 고장이 납니까? 그것은 종업원들이 일을 해도 너무 성의없이 일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나사 하나를 조여도, 제대로 안 조으니, 자동차 바퀴가 빠지고 나사가 풀려서 대형사고가 나는 겁니다. 그만큼 정신이 나사가 빠진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일해야 합니다. 기독 신자가 들어가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자꾸 핑게를 대기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제대로 일하지 않고, 데모만 하면, 우리 민족만 손해입니다. 일을 제대로 해놓고 데모해야지, 일도 하지 않고 데모하면 모두 다 손해입니다. 직장은 하나님이 주신 일터요, 일꾼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요, 우리가 서 있는 그곳은 선교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핑게를 댈려면 끝이 없습니다.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핑게를 대면, 불신앙으로 자꾸만 자꾸만 빠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헤어나오기도 어려울 정도로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시 시작하면, 우리가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나님께로 까지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염려 내버리고, 믿음 회복되어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요셉의 축복(창39:1-6) -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보고 요셉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요셉은 크게 3가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크게 3가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왜냐? 1)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다락방 교회를 보고서, 미금시에 있는 전 시민들이 하나님 알 수 있는 축복을 보아야 됩니다.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하나님 계시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신앙입니다. 옛날에 저희 집안이 전부 불교나 유교였는데, 저희 어머님이 예수믿고 구원받은 이후에 저희 형제 3형제가 예수믿고 복을 누리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독하게 제사지내며, 조상을 섬긴다고 자랑하던 큰 집이 완전히 폭삭 망하더군요. 그 아들 손자까지 망하는데, 그야말로 3-4대까지 확실히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옛날에 큰집에 친척이 주일날 들리러 오면, 저희는 천하없는 일이 있어도 우리는 예배드리거든요. 그래서, \'맛있는 것 많이 잡숫고, 있으세요! 예배드리고 오겠습니다!\'고 하면, 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아니, 모처럼 공일에 사람이 왔는데, 예배당은 매 주 갈 수 있지만, 친척은 일년에 한두번 올까말까 하는데, 이럴 수 있느냐?\'면서 투덜거립니다. 그래도, 천하 없어도 예배드리러 가거든요. 그래서, 돌아 앉아 가지고 가서는 \'예수쟁이가 되어가지고, 형제도 친척도 못알아 본다!\'며 입방아를 찌어 댑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완전히 망해버린것 있지요. 무슨 조상찾고, 어른찾고 하든 어른들은 이제, 다 죽고 저희 어머님만 제일 오래 살아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불신 친척이 할 말이 없게된 것입니다. 요셉을 쳐보니, 누가 계셔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들어가면 누가 역사합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인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불신자입니다. 2)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불신자 보디발이 요셉을 쳐다보니 무엇을 보았느냐? \'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하는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다락방 정신입니다. 여러분을 쳐다보고, 여러분의 집을 쳐다보니,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직장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저와 같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는 곳에 흑암 권세가 떠나갈 줄로 믿습니다. 나와 같이 주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장에 가면, 직장에 역사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 나와함께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3)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그의 범사에 형통케하심을 보았습니다. 불신자 보디발이 보니까, 틀림없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므로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믿는 자입니다. 다시말해, 직장 안에 주의 성령은 분명히 역사하기 때문에 우리가 핑게대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죽습니다. 우리가 핑게대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다락방교회 성도님들이 일어나서, 복음 전해야 되겠습니다. 국민학생, 중학교 고등학생들이 불신앙이 심기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대학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서 흑암의 권세를 결박시켜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깨끗히 전하다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놀라운 사명입니다. 그런데, 거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희 선배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담임 목사님이 전도사에게 주보 인쇄를 항상 하던 곳에 가지말고, 다른데 가서 해오라!는 겁니다. 전도사는 담임목사의 목회를 돕는 사람인지라, 좀 이상해도 아무말 하지 않고 순종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갔다오는데, 거의 하루가 걸리는 겁니다. 그리고 또 보니, 그곳이 주보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슨 명암찍는 곳입니다. 목사님이 해오라!고 하니, 그때부터 문제가 오는 겁니다. 주보의 글짜가 다 틀리게 나옵니다. \'복음송 대회\'를 \'뽁음송 대회\'라고 해놓고, 말을 잘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목사님 설교 제목이 \'열고을 권세를 주리라!\'인데, \'열고을 전세를 주리라!\'고 해놓은 겁니다. 도저히 글자도 틀리고 거리도 멀고 해서, 담임 목사님에게 \'목사님, 도저히 글자를 너무 틀리게하고, 거리가 멀어서 안되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도, 웃으면서 \'그렇지요? 그럼 본래대로 하시오!\'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전도사님이 본래대로 했는데, 주보가 잘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교회 장로님중 한 분이 담임 목사님에게 자꾸만 주보를 거기 먼데서 하라!고 압력을 넣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슨즉, 그 인쇄소가 자기 조카라는 겁니다. 목사님도 할수 없어서 해보지요! 하고 했는데, 너무 글자가 틀리니, \'안되겠다!\'고 하여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이 장로님이 그 전도사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는데, 그 전도사가 말해서 자기 조카에게 주보를 맡기지 않는다며, 유감을 가진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 무슨 조그만 잘못이 나오기만 하면, 그 전도사님에게 시비걸고 넘어지는 겁니다. 자기 조카에게 일거리를 못맡기는 것네 재래 섭섭해 하는 것이 이해는 되는데, 못말릴 정도로 앙갚음을 할려고 하는 겁니다. 조카를 밀어주고자 하는 그 갸륵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나 사명감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교회를 이용하고, 또한,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복음을 막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겁니다. 그러므로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에 그리스도를 제대로 심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소망 없습니다. 어떤 교회는 아예 싸우는 것을 밥먹듯이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제직회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요? 합법적으로 발언권 얻어가지고 마음껏 싸울 수 있거든요. 어쩌다가 한번 제직회를 안하면, \'왜 제직회 안하느냐?\'고 따집니다. 싸우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그래서 제직회를 해야 되는 겁니다. 인생을 그렇게 바보처럼 보내는 겁니다. 축복받고, 능력받고, 증거하고 이래야 될 것인데, 매일 모여서 \'이것이다, 저것이다! 아니다! 맞다! 도다! 게다!\' 하고 앉은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매일 모여서 떠들고 그러는 겁니다. 전부 불신앙 이야기들로, 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전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렇게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 땅에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삽니까? 우리 인생을 얼마나 산다고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송할 것입니까? 나가서 마음껏 축복받고, 증거하고, 민족 살리고, 직장 살리고, 회사를 살려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직장에서의 믿음의 표현은 신우회인가?/ 엡6:5-9/ 2004-04-02
직장에서의 믿음의 표현은 신우회인가? 엡6:5-9 《 직장에서의 믿음의 표현은 신우회인가 》 ‘오늘은 직장에서의 믿음의 표현은 신우회인가’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까? 우리가 직장생활 속에서 예수를 잘 믿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은 시위하는 것, 나타내고 같이 모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믿는 것을 표시하고 나타내고 같이 모이는 것, 자동차에 물고기마크를 붙이고 다니고 성경책을 들고 다니고 종종 앉았을 때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신앙의 중요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한정짓는다고 하면 너무 기독교를 작은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의 신앙의 표현을 이것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우회(信友會)가 신앙의 표현이고 기도모임이 신앙의 표현이고 직장에서 전도하는 것만이 신앙의 표현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신앙의 표현은 직장 속에서 더 폭넓게 우리의 일하는 모습과 일하는 내용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모습 부분에서 항상 동일하게 접근합니다. 신앙은 형식과 함께 내용, 질로써 표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천국이라고 하면 천국이 왜 좋은 것입니까? 영생이 있기 때문에, 영원히 살기 때문에 좋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 보면 정말 내가 싫어하는 사람, 밥맛 떨어지는 사람과 영원히 산다면 그것이 천국입니까? 지옥이지…… 영원히 같이 산다는 가치도 중요한 것이지만 정말로 사랑스러운 사람, 정말 기쁨을 주는 사람과 영원히 같이 사는 것, 다시 말해서 질적인 내용이 꼭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10절을 보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처럼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구원받는 것,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내용이 풍성해지는 것까지 포함된 내용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직장생활 속에서 내가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이 피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직장생활의 내용 자체로 복음적이고 신앙생활다운 모습을 보여줄 때 그것이 바로 직장 속에서의 신앙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에베소서 6장7절부터 까지 다시 보시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직장에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상전에게 우리 윗사람들에게 태도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는 것, 단 마음으로 하는 것, 이 두 가지 내용이 있어야 한다니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것이 있지 아니하면 아무리 외형적으로 예수 믿는 티를 낸다고 할지라도 제대로 된 신앙내용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윤리적인 내용을 성경에 또 집어넣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떻게 직장생활을 해야 되는지 일반적인 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을 성경에 집어넣은 이유는 책임의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규정도 어디에 규정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어제 본 영화가 「선생 김봉두」였는데 한번 생각을 해 봅시다. 예를 들어서 어떤 학교에서 ‘교사가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오는 것은 안된다’라는 규정을 정했다고 합시다. ‘교사는 반바지를 입고 학교에 와서는 안된다’, 이것이 어디에서 세운 규정입니까? 학교에서 학교규칙으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규칙을 어기면 학교 안에서만 문제가 됩니다. 최악의 상황이 된다고 해 보아야 쫓겨나는 정도에서 끝나버립니다. 그런데 이럴 리는 없겠지만 이런 내용을 대한민국형법에 규정했다고 합시다. “대한민국 형법 제250조 (살인, 존속살해) ①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옛날에 제가 고시공부할 때에 형법을 공부했는데 이것 하나만 기억납니다. 왜 250조만 기억나는지? (성도들 웃음)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리고 예를 들어서 형법 제251조에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는 반바지를 입지 않는다. 어길 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물론 이런 것 없습니다만 가상적으로 이런 것이 있다고 합시다. 똑같이 규정을 어긴다고 하더라도 적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학교의 규칙이라고 하면 학교 안에서의 처벌로 머무르지만 형법에 적용된다고 하면 반바지 입고 다니는 교사들을 경찰이 잡아야 될 것입니다. 검사가 움직이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어디에 규정되어 있느냐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직장윤리 같은 말씀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 속에 포함시켰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듣는 얘기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직장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직업윤리 정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우리 자세는 신앙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왜 신앙생활을 교회에서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직장에서 하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앙인입니까? 직장에서 무조건 달라야합니다. 무조건 신앙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상관이 누구든 간에 어느 직장이든 간에 그리스도께 하듯 단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절대로 눈가림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입니까? 눈가림으로 하는 일이 있습니까? 잘못된 신앙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 하듯 헌신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상관이 누구든 간에 관계없습니다. 잘못하고 있으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직장생활 속에서 누가 되었든 간에 그리스도께 하듯 하고 단 마음으로 충성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래서 참된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항상 경제가 살아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신용이 살아나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신앙하듯이 경제생활에 뛰어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원리입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하나!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규정해 주셨기 때문에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와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상황논리를 얘기합니다. ‘우리 상관이 얼마나 악한 자인지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우리 직장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런 식으로 우리가 충성하고 살면 그 충성된 삶에 대한 결과와 평가와 책임은 그 상관이 지는 것이 하나님이 지십니다. 신앙의 차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차원으로 헌신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채워주십니다. 마태복음 10장41절을 보니까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누구에 대한, 즉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선지자같이 하나님 앞에 뛰고 의인같이 뛰고 상황에 맞게 뛰면 그것에 대한 평가도 하나님이 해 주신다, 이것이 중요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눈에 연연해하지 않는 초월의 인생을 살 수 있는 비결, 직장 속에서도 초월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는 이 원칙에 따라 살 때 나타나게 되는 현상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어느 직장, 어느 모양으로 서 있든 간에 그리스도께 하듯 충성 다 하는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과까지도 하나님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이 내용들을 정리하면 됩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신앙으로서 직장생활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눈가림이 아닙니다. 누가 보면 잘하고 안보면 안하고 체크하면 잘하고 체크 안 하면 막판 일보직전까지 가는 것은 절대로 신앙이 아닙니다. 그 정도는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가 잘못할 수 있습니다. 긴장이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다가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지.’ 하면서 자기반성을 통해서 자기격려를 통해서 충성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두 번째 성령의 능력으로 내가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14절을 보니까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창세기 12장 3절의 얘기와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3절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직장 속에 우리를 왜 보냈습니까? 내가 복의 근원이 되도록…… 내가 복입니다. 창세기 39장을 보니까 보디발의 집에 요셉이 갔을 때에 요셉 때문에 그 집이 형통해졌습니다. ‘내가 서있는 이 직장이 나 때문에 형통함이 임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하고 이러한 모습으로 서있어야 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우리가 서있는 직장에서 마귀를 멸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논쟁이 아닙니다. 논쟁 가지고 세상이 변화된 적이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힘입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령의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4절을 보니까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직장 가운데 보내신 것은 제사장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능력을 가지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성령의 능력이 사라진 직장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도록 만들어야 되고 그곳이 그리스도의 통치가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제사장의 사명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넘어지고 정답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곳에 나아가서 갈등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선진자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직장 속에서 가져야할 성도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직장 속에서 제사장과 선지자로, 마귀를 멸하는 모습으로, 또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앙생활의 증명은 사람들의 눈가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생활답게, 그리스도께 하듯 충성하는 우리의 직장에서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보여주는 믿음의 거룩한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월~토, 직장에서 충성하는 모습을 통해서 힘 있게 증거될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 공휴일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직장 속에서의 일들을 시작하면서 하나님나의 신앙의 표현이 오늘 직장에서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능력을 더해 달라고 간구하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다 같이 직장 속에서 나의 신앙이 생활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간구하도록 하겠습니다.
행복한 교회, 행복한 직장/ 골3:22-25/ 2007-06-07
행복한 교회, 행복한 직장 골3:22-25 룻소(J.J. Rousseau)는 말하기를 “우리는 이를테면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생존하기 위하여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생활하기 위하여 태어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기를 제 2의 탄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어떤 이는 “사람은 세 번 태어난다”고 하는 말도 들었는데 매우 설득력 있게 들었습니다. 제 1의 탄생은 육체적 탄생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을 말하고, 제 2의 탄생은 영적인 탄생으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여러분들은 모두 제 2의 탄생을 다 경험하신 줄로 믿습니다. 제 3의 탄생은 사명적 자아의 탄생으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과 그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생을 정말 보람있고 바르고 자신있게 살려면 사명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명감은 나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사명감은 나를 근면하게 만들고, 진지하게 만들고, 사명감은 나를 최후의 승리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에밀 브룬너는 “성공은 소유의 정도가 아니라 사명의 정도로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이 세상에 태어난 사명, 가정에서의 사명, 교회에서의 사명, 직장에서의 사명 그 사명을 깊이 깨닫기 바라고 그 사명 때문에 행복한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명자의 모습을 민족시인 윤동주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여기 “나에게 주어진 길”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바로 그것이 여러분들의 직업이고 교회에서의 직분이고 사회적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직업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만약 그가 일거리가 없다면 금방 무기력하고 무능한 인간이 되고 불행한 인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평생 몸 바쳐 일할 것이 있고, 평생 몸 바쳐 일할 장소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다못해 이사가도 그 교회를 다니겠다고 할만큼 자기 교회가 확실하게 정해진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맡은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된 일입니다. 왜 그걸 안할려고 합니까. 왜 축복을 걷어차고 있습니까. 자원해서 주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시되 보다 더 적극적으로 달려 들어서 교회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왕에 하는 거 먼 발치에서 막연하게 하지 말고 적극성을 띨 때 아름다운 열매가 있습니다. 자기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하여 분골쇄신 충성봉사하여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든 행복한 삶이 되셔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첫째 소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소명감은 주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셨으니 부르신 그 분 앞에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특이한 사실은 짧은 4절에서 “주”라는 단어가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오직 주를 두려워 하여”(22절), “주께 하듯 하고”(23절), “주께 받을 줄 앎이니”,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24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25절), 이상의 성경귀절들은 전부 주님 앞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을 생각한다면 감사함으로 직장 일을, 교회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직장없던 사람이 직장이 생기니까 밤낮없이 일을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으니 그 직분이 너무 고귀하고 감사해서 그 직분 더럽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그 직분에 합당하게 살려고 무진 애를 씁니다. 일을 하는 자세에 따라서 세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이 됩니다. 첫째는 생업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원망과 불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지못해 월급 때문에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직업인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원망도 감사도 없이 그저 직업적 의무감 때문에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소명인이 있습니다. 소명인은 내가 그 일을 하므로 다른 사람한테 유익이 되고 나한테도 경제적 소득도 되고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불러 주셨다는 것 때문에 그 일이 교회 일이든 직장 일이든 감사함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저 감사할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감사함으로 교회 일을 하시기 바라고, 직장 일도 감사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이 없는 사람도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퇴출에 불안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진짜 밀려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직장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시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부모가 계시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바른 인간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 것은 돈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지식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관계를 잘해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윗 사람한테 지켜야 할 예절이 있고, 아랫사람한테 보여야 할 모범도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이가 나보다 어려도, 학력이 나보다 낮아도, 경륜이 나보다 약해도, 하나님이 세워주신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순종하면, 다 그렇게 한 나한테 점수 올라가고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극상을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하극상은 인과응보적인 심판을 받습니다. 롬13;1-2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했습니다. 셋째 성실한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22절에 보면 “눈가림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눈가림으로 일하면 안됩니다. 지난 주간 광주에서 5층짜리 연립을 짓는데 거의 다 짓고 마무리 작업하다가 그만 건물이 기우뚱하더니 폭삭 무너졌습니다. 준공을 며칠 앞 둔 건물이 왜 무너집니까. 눈가림으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빨리 짓는 것만 잘하는 것인 줄 알았지 견고성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건 건축주나 시공자나 공동의 책임입니다.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때 각국 사람들의 질문이 서로 다르다고 합니다. 미국인은 “이 물건이 얼마나 실용적입니까?”를 묻고, 독일인은 “몇년간 품질보증을 할 수 있습니까?”를 묻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 물건이 언제 유행합니까?”를 묻고, 유태인은 “이 물건이 얼마나 DC가 되느냐?”를 묻고, 한국인은 “이 물건이 진짭니까?”를 묻는다고 했습니다. 슬프게도 눈가림, 속임수, 부정직이 한국인의 국민성이 된 것입니다. 부실공사, 부실기업, 가짜상품, 부실감사, 부실점검, 부실수사 등 눈가림 사건들이 우리나라엔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국제 신인도가 수준이하인 것입니다. 23절엔 “마음을 다하여 일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일을 하면 행복도 있고 성취감도 있고 자부심도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전문가가 되십시오. 집사에 전문가, 반주에 전문가, 찬양에 전문가, 빵굽는 전문가, 운동에 전문가, 기도에 전문가, 봉사에 전문가 최고의 실력자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박사학위를 받는데 그 연구하는 분야가 광범위하지 않습니다. 어느 한 분야를 심층적으로 깊이 연구하여 그 분야에 최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겁니다. 어느 한 가지에 전문가가 되면 성공합니다. TV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은 라면 하나를 잘 끓여서 손님들이 항상 바글바글하여 돈을 번 사람이 아침마당에 나와서 간증하는 걸 봤습니다. 작가 레니 L. 위트는 “기쁨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데서 온다. 비록 우리가 하는 일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고 우리가 원하는 기쁨을 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마침내 기쁨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고, 고전 4;2에는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24절에는 “주의 보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사람한테 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주님께서 주시는 보상을 기대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한테 기대했다가 그것이 안되면 상처받고, 또 사람한테 보상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받을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 왼 손이 모르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겸손히 주를 섬길 때 아름다운 주의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뭘 그렇게 남이 알아주는 거에 기대를 합니까. 그냥 주님만 아시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칭찬 안 받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내 진실을 아십니다. 다 행한대로 갚아 주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한 중에 또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나 오해와 갈등과 비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이런 면이 좋은가 하면 저런 면은 나쁘고, 교회도 이 교회는 이런 면은 좋은데 이런 것은 안 좋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100% 만족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혼도 처음엔 100% 좋아서 결혼했는데, 살다보니 좋은 점이 30% 밑으로 떨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신혼여행 갔다 오다가 아예 갈라서는 커플도 최근엔 많이 생겼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너무 경망스럽고 너무 쉽게 결정하고 너무 가볍게 행동하는 우리네 풍조가 인간미를 다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에게 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야 합니다. 때로는 모함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참는 자가 최후의 승자인 줄로 믿습니다. 세월이 약이라는데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은 다 드러나는 것이고 누가 진짜였고, 누가 진국이었고, 누가 철부지였고, 누가 우리교회에 진짜 공신이었고,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가슴치며 깨닫게 될 것이고, 애타는 그 부모의 심정을 철들고 느낄 때는,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나가서 효도하기엔 때가 늦은 경우를 경험하고 날마다 눈물로 후회하는 어른도 나는 봤습니다. 시1;6에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을 망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계2;10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삶에 성실한 자세를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사 성공을 못했을지라도 끝까지 성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 하는데 까지 하다 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하는 것은 그 분의 인격이고 그 분의 아량이니까 그건 참견할 바 아니고 내 할 도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배우자를 위해서 하는 일, 자식을 위해서 하는 일,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하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고 거기엔 대한 메아리는 상대방의 인격에 맡기는 것입니다. 바울은 행복한 삶을 위하여 어떤 윤리적인 행동을 말하기 전에 그 행동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을 말했습니다. 그 원동력이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골3;15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평강의 축복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일평생 교회와 직장을 떠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생활도 행복하고 즐거워야겠고 직장생활도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것입니다. 매일 보는 사람이 지겹다면 지옥입니다. 집에서 매일 보는 가족, 교회에서 만나는 성도들, 직장에서 만나는 직장동료 모두가 좋은 사람이들이고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고 행복한 사람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길게 살아야 백년인데 불행하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생활, 직장생활 모두가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질서와 각자 자기의 위치에 충실하면 됩니다. 행복한 소리가 끊이지 않는 우리교회가 되시기 바라고 여러분들의 일터가 행복하고 즐겁고 신나고 거기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전당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