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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북한 선교/ 신8:10-20/ 2004-06-19
6.25와 북한 선교 신8:10-20 이번 수요일은 6·25사변 53주년이고 오늘은 총회가 정한 북한선교주일입 니다. 6. 25 상기예배는 아직도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조국이 반만 해방된 채, 분단되어 있고, 북한의 동포와 지하교인들이 저토록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요, 우리 나라의 가장 급선무가 통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6. 25는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큰 상처를 남긴 전쟁 이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북한 인명피해는 인민군이 52만, 중공군 90만, 한국군이 28만, 부상 70만, 유엔군이 4만, 부상 11만, 민간인 학살이 11만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문 타살이 24만, 납치북송이 8만, 행방불명이 30만, 강제 의용군이 40만 명 등이었고, 이에 따라 고아와 전쟁 미망인이 수십만에 헤아리는 참극 이었습니다. 어느 잡지에서 6·25의 비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한 내용을 소개 했는데 1950년 7월 25일 서울이 수복되던 밤에 퇴각하던 인민군이 대전형무 소에 수감된 6,831명의 수감자들을 총 한방 쏘지 않은 채 다섯 개의 우물에 강제로 처넣어 순장들을 시키고 나머지는 쇠파이프로 때려 죽였던 것을 기 적 가운데 유일하게 생존한 이갑산이란 사람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악마들이나 할 짓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남긴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는 분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고향과 식구를 잃은 채 통일의 날 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이산가족이 천만이나 되는 것을 볼 때 이 전쟁이 얼 마나 참혹했나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날을 즈음해서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지만 세 가지로 깨어 있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1. 우리 성도들은 감사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뜻 있는 분들이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우리 나라의 현대 사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한 것은 우리 나라가 일제의 잔인한 압제 밑에서 고난을 받은 것과 같고, 모세의 10가지 기적 중에서 마지막 기적인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지 않은 집들은 사람이나 짐승의 첫째 것들은 죽임을 당하므로 완악한 바로가 마침내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준 것처럼 원자탄의 투하를 받고 일본 천황이 눈물을 흘리며 항복을 하고 한국을 해방시킨 것과 비교하여 해 방을 유월절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6. 25사변은 홍해 바다의 기적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사실, 6·25 사 변에는 큰 기적이 있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치다가 홍해바다 에 가로막혔습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최고의 막강한 정예부대가 뒤에서 살기 등등 쫓아오지요, 앞에는 거대한 바다가 막혔지요, 이제는 몰살당하는 줄 알 고 백성들은 울고불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를 높이 들 자, 동풍이 강하게 불면서 홍해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 까? 6·25사변 당시도 순식간에 밀려서 며칠만 있으면 부산까지 빼앗길 위 기에 놓였습니다. 이제 돈 있는 사람들은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도망칠 궁리를 할 정도로 우리 나라는 멸망직전에 있었습니다. 그 때, 기적이 나타났는데 맥아더 장군 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펼치어 인민군의 허리를 잘라 버림으로 역전 이 되고 말았습니다. 맥아더는 한국판 모세였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을 통해서 북한에 있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월남할 수가 있었던 것도 큰 뜻 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갇혀서 북한에서 모두 순교 당하는 큰 비극이 일어날 번했습니다. 또한 월남한 교인들을 통해서 남한복 음화의 큰 역사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변 이후 53년은 광야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 하시면 머지 않은 날, 통일의 나라, 가나안복지에 이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신명기 는 모세의 설교로, 오늘 본문 앞부분인 7절부터 9절까지는 모세가 가나안복 지의 풍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복지는 여호와의 동산 같이 물이 풍 성한 곳이요, 곡물이 많은 땅으로 밀과 보리의 산지요, 온갖 과일이 풍부하 며 지하자원도 풍부하여 철과 동이 풍부한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남북만 통일되면 얼마나 살기가 좋은 곳이 되겠습니까? 북한 은 지하자원도 풍부할 뿐 아니라, 경치가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전 혀 오염이 안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서구나 지중해 연안에 유명한 관광 지를 가보면 거의 인공으로 꾸민 것입니다. 그런데 비해서 우리 나라 자연미 는 세계 최고입니다. 그러므로 남한은 산업의 중심지로 세계무역의 중심지가 되고 북한은 인공적으로 잘 꾸며 놓으면 세계 유명한 관광지로 됨으로 그것 만 갖고도 먹고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복지의 풍요한 살을 설명한 후에 오늘 본문에서 그 풍요할 때에 주의할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아직도 광야 길을 가고 있는 우리 민족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오히려 12 절어 보면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데 네 마 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을 잊어버릴라 하노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질이 풍부하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을 때에 는 하나님이 주신 줄 알고 감사합니다. 14절부터 16절까지에 나오는 대로 하 나님이 우리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뙤약볕과 사막과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광야에서 낯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 고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시고 목마를 때에는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시고 4절 말씀대로 40년 동안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시고 발 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는 등, 기적의 인도를 베풀어주신 것도 감사한 데 풍 부한 의식주까지 주시니 너무 감사 감격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간사합니다. 잠깐은 대단히 감사하더니 어느 날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먹고 17절에 말씀대로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 로 이 매물을 얻었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 교만한 말을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교만한 자세입니다. 더욱 이나 지금의 잘사는 것이 자기 능력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 그런 민족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시겠다고 18-20절까지 경고하십니다. 6·25전쟁 53주년을 맞으면서 바로 우리 모습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모 습과 흡사하지 않는가 반성하게 됩니다. 사변 후에 우리는 얼마나 헐벗고 배 고프게 살았습니까? 지금 50대 중반 이상 되신 분들은 사변 때나 사변 이후 의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40대 이상 되신 분들도 저 배고픈 시절은 다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옷은 얼마나 꼬매 입었는지 엉덩이가 덕지덕지 하기 일 수입니다. 그래서 여학생 앞에 지나갈 때는 가방으로 뒤를 가리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양말은 얼마나 꼬매 신었는지 위만 있고 아래는 거의 없습니다. 신발도 검 정 고무신이 대부분인데 한번 떨어지면 여러 번 꼬매 신습니다. 그러다가 부 모님이 무슨 추석이나 설날, 검정 운동화라도 사주면 얼마나 좋은지 밤에 머 리맡에 놓고 자는데 잠이 안 옵니다. 대부분 집에는 이불이 한 두 채 뿐이었 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그렇게 토끼 새끼처럼 많이 낳았는지 보통 6-7 명입니다. 단칸방에서 자는 데 큰 이불에 모두 들어가 잡니다. 요가 어디 있 습니까? 맨 바닥에서 잡니다. 자다 보면 욕심 많은 녀석은 이불을 뚤뚤 말아 서 혼자 차지합니다. 그러나 옷 못 입는 것은 참을 수가 있는데 배고픈 것은 견딜 수가 없습니 다. 대부분 꽁보리밥을 먹습니다. 보리쌀 9정도에다가 쌀 1정도를 넣고 밥을 합니다 그러다가 손님이라도 오면 쌀밥은 손님에게 가고 꽁보리밥만 먹어야 합니다. 고기는 일년에 명절 때나 돼지고기 한 두 번 먹는 것이 전부요, 소 고기는 서민은 먹기가 힘들었습니다. 대부분 가정은 보리 고개가 되는 봄이 오면 죽을 먹습니다. 죽 종류는 왜 그리 많은지, 아욱 죽, 배추 죽, 김치 죽, 호박 죽, 시래기 죽, 콩나물 죽, 그것도 없어서 못 먹었습니다. 당시에는 점심 시간만 되면 슬그머니 나가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 시간 에는 우물이나 펌프에 가서 물로 배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여자들 의 화장품이란 고작 일본말로 구리무가 전부였습니다. 변소를 갈 때도 종 이가 없어서 호박잎이나 지푸라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조금 잘 사는 집이라 야 신문지를 여러 번 오려서 사용했습니다. 버스나 기차가 마땅치 않아서 3-4시간 기다려야 했고 차비가 없어서 보통 20-30리 보통 걸어다녀야 했습니 다. 자, 이러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왜 이 귀한 시간에 이런 구차 했던 이야기를 합니까? 그러한 헐벗은 시절에 비하면 지금 우리 나라는 천 국 같은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난방시설, 전자제 품, 시간이 나면 식구와 함께 얼마든지 나들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가정이 자가용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풍요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어떻게 된 노릇이 감사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점점 불만들만 더해 가는 것 같 습니다. 예전에는 여인들의 옷도 광목 적삼이나 구제품을 입었습니다. 속내의는 거 의 단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얼마나 옷들을 잘 입습니까? 거리에 나가면 너무나 화려한 옷들을 입고 답니다. 모두가 일류 멋쟁이들입니다. 그런데도 얼굴들은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이번에 일본에 다녀왔습니 다. 과연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사람들의 얼굴들은 기쁨이 하나 도 없고 어둡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봅니 다. 세계에서 가장 GNP가 1위인 스위스, 3위인 일본에 정신병자나 자살자가 제일 많은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셋방살이하면서 땀 흘려 먹고 살 때 더 얼굴이 환하고 더 인정이 넘치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도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눈이 밝아지면 온통 감사할 것 투성인 것을 발견합니다. 반대로 불만 의 눈이 밝아지면 온통 불만할 것 투성인 것을 발견합니다. 아니 됩니다. 이 사변의 날을 만나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 시절을 기억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그 감사를 빼앗기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하나님이 해방을 주었지만 감사하지 못하고 서로 정죄 하기 바쁘고 옳고 그르니 파당 짓고 교단 갈라 먹기에 열을 올린 결과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던 평양을 중심으로 북한 땅을 공산당에게 뺏기는 날이 오지 않았습니까? 53년 전에 비하면 온통 감사할 것뿐인데 우리는 감사보다도 욕심 때문에 점점 불 만으로 깨어 있는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성도들은 불평의 마음은 점점 무디어 가고 감사의 마음이 점점 강해가야 하 는 줄 믿고 범사에 감사로 깨어 있는 자가 되기로 다시금 새 결단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우리 성도들은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기도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과 충성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많 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도와 충성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손 을 들고 기도하고 여호수아는 충성을 다해 전투에 임합니다. 거기에서 승리 를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손을 내리면 여호수아의 충성도 무력해지고 맙니 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깨어서 기도하면서 우리의 충성의 자리 를 지키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빛과 소금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 가정, 그 교회, 그 사회 위에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 다. 6·25 사변 때에 이제 낙동강 이남만 남는 입장에서 낙동강 전선도 시시 각각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2-3일면 적화되는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재빠른 사람들은 일본으로 밀항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이북에서 월남한 성도들을 중심으로 부산 앞 바다 모랫벌에서나 교회에서나 수많은 성도들이 철야하며 금식하며 하나님께 생명을 내댄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기적이 나타나 유엔에서 16개국이 참전하는 결의를 하게 되었고 일 본에 있던 맥아더 장군이 본국의 훈령을 어기면서도 과감하게 한국전에 참 여하게 되었고 그는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인천상륙작전이 구상되므로 인민 군의 허리를 두 동강내어서 승기(勝機)를 잡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 교인들은 기도의 자리, 충성의 자리를 지키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우리에게 맡기신 충성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 을 다하지 못할 때 어둠의 세력이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직장, 우리의 사회 를 어지럽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6·25 날에 소위 기독교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모습은 너무나 한심했습니 다. 그는 정동감리교회의 교인이었음에도 주일날 교회는 나가지 않고 비원 연못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가 전쟁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 다면 전쟁의 비보를 듣고 나서 그 때라도 교회에 달려가 히스기야 왕처럼 눈물로 기도했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목숨이 아까운지 150만 서울 시민을 남겨 놓고 27일 새벽에 대전으로 도망치듯 피 난 갔습니다. 그러면서 한강 다리를 폭파함으로 백성들이 피난길을 막아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왕 하나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할 때에 큰 패망이 온 것처럼 되고만 것입니다. 오히려 이승만은 기독교인이면 서 그 자리를 악용해서 민족의 지도자 김구 선생을 6·25 사변이 나기 전 꼭 일년 전인 1949년 6월 24일 바로 주일날 안두희를 시키어 암살했으니 6· 25 사변의 큰 책임이 바로 그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깨달아서 깨어서 우리의 기도 자리를 지키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인들은 북한 회복과 북한 선교가 열리기를 위해서 집중 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때로 우리 민족을 생각하면 답답하여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작년 월드컵 때는 온 국민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임으로 이 제는 우리 민족이 한 단계 성숙되어 선진국에 진입되는 계기가 될 줄 알았 더니 요즈음 정치, 경제, 사회를 보면 너무나 답답할 뿐입니다. 젊고 패기가 넘치는 대통령이 됨으로 큰 기대를 했더니 미숙한 대통령, 미숙한 참모와 장 관들 탓인지 취임한지 100일 넘었어도 국정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습 니다. 그런데다가 북한의 김정일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한심합니다. 지금 남북 이 협력해야 남한도 막힌 숨통이 열리고 북한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북한 경 제가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미사일이나 핵을 무기로 해서 끝까지 미 국하고만 협상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한참 모자라거나, 아니면 막판에 몰린 범죄자가 칼을 들고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만 들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런 답답하고 안타까운 때에 우리 성도들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의지할 곳은 정치가들도 아니고 미 국도 아닙니다. 오직 의지한 분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오, 그 분이 지금까지 우리 나라를 이 만큼 지켜 주시면서 잘 사는 나라로 만드신 줄 알고 하나님 만 의지하시면서 집중적으로 나라와 민족, 특히 주안에서 남북이 통일이 되 기를 위해서 깨어 기도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우리 성도들은 선교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해외선교는 물론이고 이제는 구체적으로 북한 선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 금 온 세계의 공산주의는 다 무너졌고 모든 분단국도 사라졌습니다. 공산주 의 종주국인 러시아나 중국에 가보아도 공산주의 냄새가 거의 없습니다. 유 독 북한만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음으로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 있 으니 이처럼 한심한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하나님이 김정일이라는 몽둥이를 아직도 살려두는 이유는 한국을 마지막 때 크게 쓰 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머지 않은 곳에 지독한 공산주의자들이 있고 미사일과 핵을 가지고 위협하 는 안하무인격인 자가 있기에 한국교회는 늘 깨어서 기도하고, 영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나 대단히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침략성이 강한 러시아와 중국, 일본 틈에 낀 상태에서 남북인 분단된 채 반세기가 흘러감에도 세계 13위로 잘 사는 나라, 올림픽과 월드컵 을 개최하는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은 나라요, 한국교회이지만, 하나님이 아직도 어여삐 보시 는 것은 기도에 열심을 다하는 나라요, 세계 선교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 탓 이라는 저는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교회는 1970년대 중 반부터 해외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선교역사는 겨우 30년에 불과합니다. 그런 데 보십시오. 1974년도 24명의 선교사를 10개국에 파송했는데, 2001도 통계에 의하면 162개국에 9,514명의 선교사를 파송 함으로 세계 2위, 3위의 선교국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세계 선교사상 이처럼 놀라운 성장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얼마나 놀라 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나라가 부족한 것 투성일지라도 이렇게 세계 앞에 우뚝 서게 하신 것은 그래도 열심히 선교하는 일에 힘쓰는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일본여행에 7분의 목사님과 8분의 장로님들이 오사 카와 교토를 다녀오면서 너나 없이 느끼는 것은 일본은 우리 나라보다 앞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말하기를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했습니다. 물 가가 너무나 비싸서 숨이 막힌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교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오사카와 교토의 절간 뿐이요, 교회당을 본 곳 은 한 군데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나라는 정말 복 받은 나라입니다. 지 금 세계 가장 시급한 선교대상국들은 아시아 있습니다. 아시아의 인구 31억 7100만으로 세계인구 52억 9200만의 60%나 됩니다. 그 중에 중국 14억, 인도 12억,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1억 4천, 인도네시아 2 억, 일본 1억 3천인데 이 나라들에 기독교인은 전체의 1%에 불과합니다. 이 나라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또한 거기 사는 분들 도 자기들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되면 집안과 그 사회에서 쫓겨나기 도 합니다. 그러므로 일년 내내 열심히 선교해야 한 명 믿을까 말까 할 정도 로 선교의 벽이 높은 지역입니다. 특히 회교권 선교는 거의 막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목숨을 걸어야 선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이 너무나 급하신 지 하나님이 아시아 지역에 있 는 분들을 한국으로 몰아다 주십니다. 그 분들이 바로 외국인 근로자 분들입 니다. 우리 교회에도 네팔 분들과 인도네시아 분들이 열 명 이상 출석하십니 다. 이 분들은 한국에 와서 나쁜 대접을 많이 받지만, 그래도 저들의 편에 서는 분들이 바로 교회요, 기독교인들이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들에게 많은 사랑과 아울러 복음을 전하여 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전해도 반대하는 사람도 없고 저들도 아무 위험도 따르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저들은 자기 나라에서는 다 상위권에 있는 분들이 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저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후 자기 고국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우리 선교사 몇 명을 보내는 것보다 더 큰 효과 를 보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이렇게 많은 외국인 형제들을 맡 기신 것은 우리에게 큰 사명을 주신 것인 줄 알고 저들을 깊이 사랑하고 열 심히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 교인들 중에 사업하는 분들이나 식당을 하는 분들이나 가정부 를 쓰시는 분들은 선교하는 마음으로 저들을 일꾼으로 사용하시면서 특별 대우를 해보십시오. 마음의 문을 곧 열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 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원하시는 것은 아시아 선 교인 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 선교에 열심을 나타내는 한까지 하나님의 특별 보호와 경제가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이 너무 시급하시기에 한국교회의 영적 긴장이 풀어지지 않 기 위해 북한이라는 비상수단을 쓰시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막강하고 견고한 성 여리고성이 기적가운데 무너진 것처럼, 남북의 통일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루어주시는 날이 반드시 멀지 않다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 회의 할 일은 열심히 기도하는 것과 세계 선교와 북한 선교를 위해서 진력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교가 바로 우리 민족의 사는 열쇠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6·25 53주년을 맞으면서 감사로 깨어 있는 삶, 기도로 깨어 있는 삶, 선교로 깨어 있는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25와 애국자 예레미야/ 애1:1-4/ 2002-06-25
6.25와 애국자 예레미야 애1:1-4 저는 6.25의 산 증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레미야도 역시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함으로 고통 당한, ’고통의 산 증인’입니다. 그 고통 속에서 그는 참다운 애국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중국에 갈 기회가 있어서 상해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과거 우리 나라의 임시정부가 있습니다. 지금은 수리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그곳에서 저는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일제 식민시절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항일 투쟁을 벌렸던 애국자들의 발자취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의 이야기도 그런 ’애국의 발자취’입니다. 一. 진정한 애국자는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자이다. 요즘 골프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수뇌부들이 북한에서는 배가 넘어오는데, 그 시간에 골프를 치고 있었다고 해서 많은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뇌물을 받으며, 정직한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고, 정직한 일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가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시는 어떤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의 일하시는 곳을 둘러보다가 페인트가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페인트 어느 나라 것입니까?’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의 말이 ’전부 우리나라, 대한 민국 것입니다.’대답했습니다. 그분이 바로 애국자입니다. 외국에 나가 있어도 자신의 나라 물품을 사용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가 애국자입니다. 요즘 야구로 유명한 박찬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볼 하나를 잘 던져서 애국하는 사람입니다. L.A는 그 사람이 거의 우상처럼 인기가 좋습니다. 박세리는 골프를 잘 쳐서 애국하는 사람입니다. 이렇듯 다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가 나라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고,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직업에 귀천이 없는 나라입니다. 자신의 맡은 일에 충실하면, 인정되는 나라입니다. 이렇듯 우리도 차별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인정해 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참 애국자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4:2에는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한 그 사람이 참 애국자입니다. 二. 진정한 애국자는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이다. 사람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이번에 중국에 가서 한 장로님을 만나 제가 ’이곳에도 탈북자가 있는가?’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곳도 많은 탈북자들이 있고, 그들이 불쌍한 처지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들을 도와주다가 탄로가 나면, 그들도 죽고, 도와준 사람도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같은 공산당이면서도 서로에 대해 잔인하기가 그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렘33:2-3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6-7절에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9절에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고 말씀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에 찬송과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안타까운 상황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될 줄로 믿습니다. 느헤미야 1장을 보면 그의 동생 하나니가 느헤미야를 찾아오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동생 하나니가 느헤미야에게 본국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가 금식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가 하루는 왕에게 나아갑니다.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색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에게 안부를 물어봅니다. 그러니 느헤미야가 자기 고국의 형편을 왕에게 전하고, 왕은 느헤미야의 말에 감동을 받고 그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성벽을 쌓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느헤미야의 금식의 기도로 시작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게 됩니다. 기도로 시작된 그의 일이 고국을 회복시키는 놀라운 힘이었던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기독교는 기도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인이라 하면, 모두 애국자라 생각했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기독교인,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三. 진정한 애국자는 전도하여 복음화시키는 자이다. 국민일보 보도된 내용인데, 연길에서 교회를 공안들이 덮쳐 탈북자들을 색출하고,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바람에 그들이 다 처형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에는 북한의 지하교회가 발각이 되어서 1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처형되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북한은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그만큼 기독교가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나라의 통일은 복음화 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복음은 힘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을 전하는 그가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그 복음이 이 나라를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맡은 일에 충실함으로, 기도함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애국하는 이 땅의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가져야 할 믿음/ 창45:1-8/ 6.25기념주일설교/ 2006-06-25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가져야 할 믿음 창45:1-8 오늘은 6.25가 난 지 56년 되는 날입니다. 이 땅에 동족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병신되고 가족이 파괴되는 전쟁이었습니다. 생각만 하여도 끔직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625같은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온 국민의 마음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눈물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함 석헌은 이렇게 썼습니다.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역사, 세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 역사는 알아야 한다. 그래 수 천년을 두고 매맞고 짓밟히고 조롱받고 속임당하는 이 백성을 생각하면 눈물없이 넘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은 과연 백의 민족이고 침략을 당하기만 하였지 침략한 적이 없는 선량한 민족인가? 한국학을 하는 학자들 말을 들어 보면 양론이 있습니다. <그렇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아니다. 힘이 없어서 그렇지 힘만 있으면 언제든지 남을 침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잔인한 민족성이 있다.> <갈비를 뜯는다.>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 먹는다.> 잔인성입니다. 우리 민족은 아주 잔인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같은 동족끼리 이렇게 싸우고 있는 나라는 오직 우리 나라뿐입니다. 정말 온 세계인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동독과 서독이 싸우다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북 예멘과 남예멘에 동족끼리 싸우다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민족을 이렇게 둘로 나누어 놓고 미국, 쏘련, 중국 그리고 일본이 즐기고 있습니다. 속상하기 그지없습니다. 옆집 부부를 싸우게 만들어 놓고 주변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즐기며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남북한이 같이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떤 자세일가요? 이제는 남한도 북한도 이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1. 형제 믿음 야곱은 12명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요셉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내가 네 명이었는 데 그 중에 라헬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라헬이 오랫동안 아들을 못 낳다가 늘그막에 요셉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금이야 옥이야 길렀습니다. 형들은 아버지가 요셉만 그렇게 사랑하는 데 대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도단에서 요셉을 애급으로 팔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는 우리를 만나러 오다가 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요셉은 애급으로 팔려가서 보디발 시위대장 집에서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자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 갔다가 꿈 해석을 잘 하여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가정이 살고 있는 가나안과 애급에 똑같이 7년 풍년이 있다가 7년 흉년이 이어졌습니다. 요셉은 정치를 잘 하여 7년 풍년에 양식을 비축하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나라가운데 흉년을 대비한 나라는 애급밖에 없었습니다. 굶어 죽게 된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사러 애급에 왔다가 국무 총리 요셉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가정 식구 70명을 모두 애급으로 불러 드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형들은 요셉이 자기에게 복수할 것이 두려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창 50;16-17) 이 말을 들은 요셉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왜 울었을 가요? 형들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이 가엽게 보여서 울었을 것입니다.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 그렇게 말하면서 요셉은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4) 요셉은 형제들과 싸우다가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우리 남북한은 형제입니다. 동족입니다. 나는 이북 사람입니다. 이북이 내 친척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남북한이 이제는 전쟁하지 말고, 헐뜯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도하는 형제의식을 갖는 날이 오도록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요셉 의 믿음은 참으로 본받을 만한 자세입니다. 615 남북정상회담 6주년을 기리면서 <615 남북 민족 통일 대 축전>이 전라도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북측 대표가 안 경호입니다. 안 경호가 누구입니까? 남북기차가 서로 통하게 만들어 놓고 반대한 사람입니다. 무산시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조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게 된다면 개성공단도 사라지고, 금강산 관광도 끊어지게 되고, 한반도는 전쟁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말을 듣고 남한의 김지하, 이부영, 윤여준 등의 정치인들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떤 분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남북의 교류협력, 평화공존으로 나갈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십시오.> 이런 요청을 받고 안경호는 완강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하였을 뿐이며 한나라당이 꼭 먹어야 할 약을 주었을 뿐이다. 급소를 찔리고 추악한 정체가 드러난 자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리고 6월 17일 북한으로 떠나면서도 악담을 하고 떠났습니다. 이번 북한 측이 타고 온 고려 항공 전세기 연료비도 우리가 6천만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름값을 대주고 욕만 먹고 말았습니다. 어서 남북이 형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월남 전쟁에 참전하였을 때였습니다. 나트랑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밤에 베트콩들이 쳐들어 왔습니다. 비상이었습니다. 우리는 팬티만 입은 채 옷도 입지 못 하고 반공호로 들어 갔습니다. 철모는 그래도 쓰고 있었습니다. 반공호에서 총을 전방을 향하여 조준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고 적막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옆에 총을 겨누고 있던 병장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강 병장! 앞에 베트콩이 나타나면 쏘아서 죽일 수 있어?> 그 때 나는 가만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앞에 적이 나타났다면 나는 총을 쏘아 죽일 수 없을 것같았습니다. 그런데 남북은 같은 형제인 데 어떻게 서로 죽이고 파괴할 수 있을 가요?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셉과 같이 향제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월남에서 전투에 참여하였던 친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쟝글에서 서로 탐색을 하다가 고개를 들고 보니 서로 적이었습니다. 둘은 총을 겨누고 웃고 서로 숨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남북은 형제입니다. 형제의식을 서로 갖는 사랑의 날이 오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2. 섭리 믿음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에게 사과하였을 때 요셉이 말했습니다. <당신을 구하려고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7) 요셉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떨어진다는 섭리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의 드라마는 끝나서야 모든 해석이 나왔듯이 민족의 드라마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625는 비극적인 전쟁이었지만 625가 준 이득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도 들어 있었습니다. 몇 가지 집어 볼 것이 있습니다. 1. 당시 기독교인들은 평양을 중심을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렀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었는 데 625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북에 순교하였을 것입니다. 2. 이북의 성령의 바람과 기독교를 이남으로 보내셔서 이남이 복음화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3. 그리고 만일 625가 없었다면 우리 나라는 공산화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습니다. 당시 공산 세력이 우세하였습니다. 그래서 김 일성이 남한의 공산당을 믿고 쳐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바로 625입니다. 전에 유언 총장이었던 다그하마 슐트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모든 일은 긍정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가요? 지금까지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감사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섭리 믿음입니다. 역사의 배후에서 하나님이 움직이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요 설교가인 헬무트 텔리케는 2 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함부르크 시내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중년 부인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제 밤 폭격으로 제 남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시신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가 쓰고 다니던 모자 하나를 찾았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난 주일 남편과 함께 교회에 가서 목사님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모든 것을 받아 드리고 하나님이 더 좋게 하여 주실 것을 믿는 것이 섭리 신앙입니다. 어떤 역경과 어려움이 닥친다 하더라고 하나님은 반드시 섭리하여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어떤 역경이 와도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그러면 이 지구상에 나라 가운데 유독 한국 우리 나라만 분단되어 공산주의와 싸우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무엇일가요? 이것은 남북 전쟁이 아닙니다.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주의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싸움입니다. 하나님께 대적하는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마귀는 복음을 제일 싫어 합니다. 예수님에게 마귀가 왔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니라.> 그 때 마귀가 물러 갔습니다. 깡패는 두목 말이면 꼼짝 못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이면 벌벌 떱니다. 그래서 마귀는 이 세계가 복음화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합니다. 미국과 한국이 하나가 되면 무서운 복음 전파의 힘이 생깁니다. 한국의 선교력과 미국의 돈이 합하면 세계는 금방 복음화됩니다. 마귀는 한국과 미국이 하나가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미군을 철수하라고 평택에서, 광주에서 외치고 있습니다. 작전권을 내놓으라고 서울에서 조르고 있습니다. 미국은 물러가고 우리끼리 통일하고자고 평양에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남북한은 지금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견디지 못 할 것입니다. 우리는 늘 고백하는 대로 이렇게 확실하게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의의 최후 승리를 믿노라.> 욥을 통하여 하나님은 마귀와 대항하시다가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남북한이 대결하다가 하나님이 남한을 통하여 승리하는 것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모든 뒤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고 섭리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작은 불행한 소년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무신론자가 부모를 여의고 비참하게 생활하는 유신론자 소년을 만났습니다. 더구나 불구였습니다. 동전 한 개를 던지면서 말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면 너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너야 말로 이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산 증거물이다.> 이 때 소년이 말했습니다. <아니요.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누구엔가에게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말고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계실 것예요. 그 사람이 듣지 못 하고 있는 것뿐일 거예요.> 언제나 하나님이 자기를 섭리하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며 생활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축복은주어지는 법입니다. 남북이 갈라지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하는 데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 있습니다. 3. 장점을 합하는 믿음 요셉은 애급에서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목축으로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목축에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바로왕에게 목축하기 좋은 고센 땅을 형제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서 야곱의 식구들이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70명이 들어가서 200만명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에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번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곳이 고센 땅이었습니다. 요셉의 권력과 형제들의 기술이 합하여 만들어진 걸작품입니다. 요셉은 장점을 합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남북한의 장점이 합하여져서 강대국이 되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남북한 장점이 합하면 강대국이 될 수 있습니다. 남남 북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부터 남북이 합하면 단점이 보완되고 장점이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의 장점과 형제들의 장점이 합하여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처럼 남의 장점과 북의 장점을 합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북의 지하자원과 남의 기술이 합하면 모든 지하자원이 놀라운 자원이 될 것입니다. 서로 장점들이 합하는 공동체는 큰 역사가 일어나고 조화가 됩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자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 민국을 사랑하고 길러야 합니다. 영원히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작년 우리 교회가 선교하는 선교지에서 두 목사님이 방문하였습니다. 그가 남북 분단된 것을 가보고 싶다고 하여서 통일전망대에 가서 보여 주었습니다. 철조망을 철저히 설치하고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한 목사님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왜 동족끼리 이렇게 싸워요?>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워싱톤 국립 묘지에 한국 전쟁에서 죽은 병사 묘비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누군지도 모를 나라의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려 싸우다가 전사한 젊은이들이 묻혀 있다.> 그렇게 21개국 외국 젊은이들이 와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그 전쟁이 잊혀지고 왜곡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여름에 동국대학의 강 정구 교수가 말했습니다. <지난 6∙25 전쟁 때에 공산화가 못된 것이 심히 아쉽다.> 그리고 6∙25 전쟁에서 유엔군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무너뜨리자는 운동이 일어났었습니다. 동상 앞에 5천여명이 모여서 극성을 부렸었습니다. 625를 잊지 말고 늘 기억하면서 우리 민족이 요셉 형제같은 믿음을 가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말세에 제사장 나라로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 증거들이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미국이 제일 많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10대국에 들었습니다. 물동량이 세계 10위입니다. 우리 민족은 선교하기에 정말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이 많은 민족입니다. 우선 여름과 겨울이 있습니다. 남북이 합하면 북쪽 중강진과 제주도 온도 차이가 30여도 됩니다. 열대에 가도 한대에 가도 잘 견딜 수 있는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결코 추운 지방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또 우리는 황인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백인에게 가도 흑인에게 가도 잘 어울릴 수 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복음을 잘 증거하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우알 알타이어입니다. 혀가 제일 자유로운 언어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가든지 그 나라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는 혀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력이 탁월합니다. 또 장점이 있습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면 우리 나라 민족만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잘 체험한 나라가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공산주의가 이북입니다. 그래서 사상적으로 모두를 아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쏘련이 열렸을 때 제일 먼저 밀려 들어 간 선교사가 우리 민족입니다. 은혜 한인교회에서는 불과 수 년만에 1300개 교회를 쏘련에 세우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음식이 타월합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음식에 잘 적응을 합니다. 매운 것도 잘 먹는 민족입니다. 뜨거운 것, 찬 것에 잘 적응되어 있습니다. 남북한이 하나가 되면 온 세계를 안을 수 있는 민족입니다. 625를 맞으면 우리는 우리 민족을 이런 면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세 가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 형제 믿음 2. 섭리 믿음 3. 장점 합하는 믿음 마지막으로 외국에서 우리 나라를 바라보는 안목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한국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처럼 빨리 부자가 된 나라도 드물고 그토록 급작스럽게 모욕을 당한 나라도 드물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북녘 땅에도 복음을/ 사7:1-14/ 북한선교주일설교
북녘 땅에도 복음을/사7:1-14 2004-02-09 12:24:26 read : 44 I. 드로르 합동측 평안교회에 이성택 원로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6.25때 북한에 사모님과 자녀들을 두고 남하해 오셔서 50년동안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독신으로 수절해 오셨습니다. 금년 광복절에 100여명의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게 된다고 하는데 행여 목사님께서도 북한의 가족을 만나 50년 맺힌 한을 풀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통일! 그것은 1천만 실향민 이산가족들만의 꿈은 아닙니다. 우리 민족 모두의 소원이요 한국 땅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숙제입니다. 그것은 북진통일이나 적화통일이 아닙니다. 오직 복음으로 미움을 없애고 무신론을 무너뜨리고 물질주의의 허상을 깨는 것입니다. 한반도에 통일은 단순히 분단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통일을 꿈꾸어 봅니다. 통일 한국은 복음화된 사회,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지배하는 이땅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오늘은 이땅에 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발발한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주일이었습니다. 50주년을 성경은 희년이라 부릅니다. 성경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7번 지난 그 다음해 7×7=49 즉, 50년째 해를 희년이라 일컬었습니다. 이해를 다른 해와 달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땅에 사는 모든 거주자들에게 󰡒드로르󰡓 즉,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라고 명했습니다. 드로르 - 해방과 자유가 선포되면 종으로 팔려갔던 사람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습니다. 빚 때문에 토지나 가옥을 잃었던 사람들이 되돌려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과 환경이 원대복귀된 동일한 조건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평등과 자유의 날이 희년입니다. 성경은 희년의 정신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땅과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을 억압하고 분열시키는 그 무엇도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그래서 이 민족이 분단된 채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1945년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며 우리는 해방이 되는 줄 알고 마냥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곧 바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두 동강이 났습니다. 국토가 갈라지고 민족이 엉뚱한 이념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침략국가였던 독일이 제2차 대전이후 책임국가로서 분단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침략국가인 일본이 분단된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전쟁의 희생자인 한반도가 왜 분단이 되어야 했는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입니다. 우리 민족이 언제 분단을 원했습니까? 그 분단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참여하고 동의한 적이라도 있었더란 말입니까? 분단이후 침략 전쟁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시작된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동안에 유럽전지역에 투하된 폭탄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이 투하되어 삼천리 금수강산은 하루아침에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250만의 군인과 600만의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300만의 피난민과 1,000만명의 이산가족을 낳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얻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어 진 것 말고는. 그후 50년 우리는 통일을 소원하며 꿈에도 소원을 노래해 왔습니다. ---------------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 이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 이겨레 살리는 통일 이나라 살리는 통일 ---------------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이 노래는 지금은 카나다에 살고 있는 안병현 선생의 곡입니다. 임수경 양이 북한에 들어간 후 북쪽에서 크게 유행을 했던 노래입니다. 한번은 북쪽에서 안병현 선생을 초청했습니다. 그때 선생은 정중히 거절하며 남북이 화해하면 판문점에서 평화의 합창단을 조직하여 선생이 직접 지휘하며 목매이게 부르고 싶다고 대답을 하셨답니다. II. 한민족 앞의 소망 우리는 얼마나 오랜세월 통일의 날을 기다리며 통일을 소원해 왔습니까? 이 소원은 어느 개인의 소원이거나 어느 정당, 어느 계층, 어느 종교의 소원이 아닙니다. 전 민족의 소원입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50년 참으로 분단된 국토 안에서 서로 아픈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고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되는 역사, 눈물을 닦으면서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역사. 섹스피어를 못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 역사는 알아야 한다. 그래, 수천년을 두고 매맞고 짓밟히고 조롱받고 속임당하는 이 백성을 생각하면 눈물없이 넘어갈 수가 없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조국이 있습니다. 저는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민족과 통일에 대한 남다른 열망과 기도가 많은 사람입니다. 우리교회는 이곳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북녘에 있는 동포들에게까지 전 한민족 앞에 예수그리스도의 소망을 선포하고자 한소망교회라 이름했습니다. 우리교회는 한민족 앞에 소망을 선포합니다. 통일한국, 복음한국은 세계 앞에 당당한 소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소망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한강너머 북한 땅이 보이는 이곳 일산에 자리 잡은 것도 이곳이 통일도시가 되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이곳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피를 흘렸다면, 나는 예수복음으로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피를 흘리렵니다. 내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죽었다면 나는 예수복음으로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해 죽으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1년전 1989년 저희 총회교육부는 여름 성경학교 교육주제를 󰡒통일 교육󰡓으로 잡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통일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그때 이종은 「하나님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소년부 여름 성경학교 교재를 집필했습니다. 이 일로 많은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빨갱이로 모함을 받았는가 하면 총회교육부 총무의 목이 이 일로 날아갔습니다. 동료 집필자들이 교회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찌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III. 무너진 북한교회 재건의 꿈 이러한 제가 지난 6월 13일 - 15일 대통령 일행이 그 옛날 화려했던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땅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감회가 어떠했겠습니까? 이것은 분명히 통일을 염원하며 불철주야로 기도해 왔던 한국교회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체육등 모든 분야에 걸쳐 합의를 보았으나 그 누구도 종교의 문제를, 신앙자유의 문제를, 무너진 북녘 땅에 교회를 수축하는 이 문제를 거론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번 회담의 가장 결정적인 약점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화해의 사신들이었습니다. 대통령은 천주교 신자요 영부인은 기독교 장로입니다. 임동원 국정원장은 감리교 권사입니다. 한광옥 비서실장, 황원탁 안보수석은 장로교 안수집사입니다. 대통령 곁을 지켰던 강성모 실향민 돕기회장은 장로입니다. 프레스센타에서 브리핑을 맡고 있는 사람은 협상대표를 맡았던 통일부차관 양영식 장로였습니다. 저들이 진정 신앙인이었다면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무엇을 기도했겠습니까? 차후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에 오면 분명히 신앙의 자유, 무너진 북한교회 재건문제에 합의가 있기를 크게 기대해 봅니다. 그러면서도 식사시간마다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나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기도하는 영부인과 수행원들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문 어느 구석에서도 심지어 기독교신문에서 조차 이 광경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명한 것을 제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식사시간마다 눈을 감으니까 한 북한관리가 󰡒왜 밥만 들어오면 눈 감습네까?󰡓 묻더랍니다. 대답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다음부터 밥만 들어오면 󰡒빨리 또 눈 감으시라요󰡓 그러더랍니다. 식사중에 󰡒교회에서는 장로가 높습네까? 목사가 높습네까?󰡓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평안한 얼굴과 당당함을 저들이 보았습니다. 대통령 일행이 북한에 들어가기 전에 기독교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를 여러통로로 알려 왔습니다. 북한의 문을 연 것은 바로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한국교회의 헌신과 애절한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빌리그레함은 북한 땅에서 폐결핵 환자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가슴아파하며 오랫동안 세계도처에서 돈을 모아 의약품을 보내왔습니다. 끝도 없이 사랑의 자전거를 보냈습니다. 남한에 많은 교회와 목사님들이 은밀하게 양식을 보냈습니다. 화목제물로 소떼를 몰고가는 기업가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에대해 전쟁물자로 쓰여지면 어떻게하나 염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평화를 위해서는 든든한 안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김정일 신드롬을 경계합니다. 공산주의 무신론 사상을 너무 쉽게 생각할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구걸하듯 양식을 이곳 저곳에서 얻어먹은 군대가 전쟁을 하면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적군의 양식을 얻어먹은 군대가 얼마나 당당히 총을 쏠 수 있겠습니까? 북한에 복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북녘땅에 무너진 교회를 수축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노력도, 어떤 댓가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앞에 우리의 땅끝은 분명 북녘땅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동쪽으로 서쪽으로 끝없이 달릴 수가 있고 육지가 끝나면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일본도 미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세계 어디든지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저 별나라도 달나라도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 일산에서 북쪽으로 30분을 채 마음껏 달리지 못하여 철의 장막이 우리 앞을 가로막습니다. 달리던 기차는 우뚝 서서 󰡒철마는 오늘도 달리고 싶다󰡓 외친 세월 50년이 흘러 갔습니다. IV. 지옥에서 해방 오늘 본문에 분단의 한 역사가 나옵니다. 때는 예수님이 나시기 약 800년전 일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조가 깨지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지고 말았습니다.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유다 나라를 건설했고 북쪽엔 10지파가 모여 이스라엘을 세웠습니다. 나뉘어진 남북왕조는 걸핏하면 싸움을 했고 때로 외국의 힘을 빌어서까지 상대를 치곤 했습니다. 본문 이사야 7장에서 북쪽 이스라엘 왕이 아람 나라를 등에 엎고 남쪽 유다를 침공해 왔습니다. 유다로서는 전혀 예측도 준비도 못한 일이라 아하스 임금과 온백성은 두려워 떨 수 밖에요.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유다를 위로하고 오히려 큰 꿈을 꾸게하는 일련의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낙심하지 말아라. 지금 너희 나라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 저들은 부지깽이처럼 꺾여지게 될 것이다.󰡓 그 결론이 본문 마지막 14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앞에서 조국의 장래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하는 백성들에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적들은 지금 개미떼처럼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막을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응답을 주신다면 강한 무기를 공급해 주마. 아니면 넉넉한 지원군을 보내 주마.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너는 반드시 이긴다. 약속의 징표를 보이리라. 처녀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열세한 군대와 조악한 무기로 강한 적군을 이기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처녀가 아기 낳는 일이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본문이 말하는 메시지는 처녀가 얘기 낳는 엄청난 일을 통해 전인류를 구원할 내가, 나는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자이며 전능자임이니라. 불리한 전쟁을 역전시켜 너를 구원하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렵겠느냐? 이 말입니다. 한국교회는 참으로 오랜 시간동안 중국과 러시아에 복음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 왔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믿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루 아침에 선교의 문이 열려졌습니다. 통일도 북한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한국교회는 신뢰해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처녀 몸에서 구세주가 나게 하신 그 하나님을 믿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땅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선교에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인 시각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친 낙관론도 금물입니다. 물론 지금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교회가 봉수교회와 칠곡교회 둘 뿐입니다. 그 외에 지하에 500내지는 1,000여 처소교회가 있어서 5만 내지는 10만여명의 교인들이 은밀히 예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대통령이 평양에 감으로 김정일이 은둔생활에서 해방됐다고 죠크를 했습니다. 그가 국제사회에 문호를 개방하려고 할 때에 가장 큰 걸림돌은 종교의 쇠빗장을 푸는 일입니다. 이는 마치 터키가 유럽 연합 EU에 가입하고자 할 때에 선교의 자유를 선언하지 아니하고서는 불가능한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김정일을 서울에도 데려오고 미국, 일본과도 만나게 해 주어 문호를 개방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선교의 문, 복음의 문을 여는 일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교회 문이 열려지고 있습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쟁기를 들려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남한교회가 더욱 성장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더 큰 부흥의 불길을 맛보아야 될 책임이 여기에 있는 것이고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그들을 은둔생활에서 해방시켰다면 이번에 우리교회가 그들을 지옥에서 해방시킬 차례입니다. 뱃길이 뚫렸습니다. 휴전선 육로가 열렸습니다. 하늘로 비행기가 날아 들어갔습니다. 경의선 철도를 놓는다고 합니다. 이제는 천국길만 뚫어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케도(KEDO) 직원들 가운데 많은 크리스챤들이 있어서 지금 이시간에도 북한땅에서 당당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언어, 그들의 찬송, 그들의 태도, 무언의 향기, 부드러운 삶, 이 모든 것들은 이미 놀라운 선교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다니는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예수믿는 사람들은 저렇게 말하는 구나. 우리교회 최대일 집사님이 케도(KEDO) 시공단장으로 북한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한 마음으로 여러분 많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 엄청난 기적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휴전선을 녹이지 못하겠습니까? 철의장막 북한땅의 문을 열지 못하겠습니까? 칼과 총을 녹여 괭이를 만들고 보습을 만들지 못하시겠습니까? 비료를 싣고 쌀을 싣고 들어가던 그 차에 선교사와 평신도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들고 들어가는 날이 반드시 우리 앞에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계속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을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겨레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난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주님은 역사의 구경꾼이 아닙니다. 그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셨습니다. 그분은 분명 나와 함께 하셨고 여러분과 함께 하셨습니다. 분명 성경은 임마누엘 - 우리와 함께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교회와 함께 하셨던 주님, 북녘 동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우리주님, 북한 형제자매들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기도가 있고 비젼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사실 통일에 드는 비용은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만만한 것은 아닙니다. 쉽게 생각하면 통일하지 말고 우리끼리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잘 살 수도 있습니다. 기득권 층에 계신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 댓가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마땅히 우리가 지불해야 될 것들입니다. 그런점에서 오늘 진정 울어야 할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이 아니라 저들을 구원해야 할 이땅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멸망이 다가온 민족의 비운과 거기서 함께 타락해 가는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예수님 오늘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다고 하면 한국교회도 북한 선교에 대한 비젼을 평화에 복음을 좀더 깊이 있게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더라고 한탄하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은 일찍이 평양 땅을 바라보며 울며 울며 설교하셨습니다. 󰡒평양아 평양아 예의동방에 내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백세대에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구나.󰡓 북녘땅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해야 할 때입니다.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부르짖던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기도만이 이 민족을 구원하고 기도만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의 환상을 가진 민족을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복음화의 비젼을 가진 교회를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것입니다. V. 예수정신 다시 말씀드립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조국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 한가운데서 한국민족이 함께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일찌기 사도 바울은 자기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 애끓는 고백을 한적이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처녀 몸에서 잉태되시고 임마누엘로 우리 가운데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그분은 이땅의 정치 지도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빵을 나눠주는 경제 지도자로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 죄악으로부터 이 백성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민족의 문제는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달러가 말라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 메마르고 진리가 말라서 망하는 것입니다. 휴전선 철조망 세워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을 세우고 정의를 세워야 나라가 바로 섭니다. 이제 이민족의 죄를 우리가 함께 가슴에 끌어안고 회개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전쟁을 일으켰던 북한 동포의 모든 허물도 우리가 가슴에 끌어안고 회개해야 합니다. 일찌기 맥아더 원수는 한국을 떠나며 이제 이땅의 문제는 신학의 문제라고 역설했습니다. 국방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의 문제요, 도덕의 문제요, 양심의 문제요, 진리의 문제요, 정의의 문제란 말입니다. 일본의 한 비평가는 IMF이전에 한국의 경제번영을 꼬집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지게 될 것이다. 한국백성은 노동의 신성함을 모르기 때문에 돈을 벌면 일하지 않는다. 한국의 지도자들,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애국심이 없다. 그런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으며 북녘땅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저들에게 자유를 나눠주며 해방을 선포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미국이 잘 포장하여 가져다 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우연한 기회에 굴러 들어오는 요술 호박이 아닙니다. 시간만 가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기계장치도 아닙니다. 예수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늘보좌에서 내려와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신 예수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까지, 말구유까지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흘려 절규하며 돌아가신 그 구원의 정신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삽니다. 그래야 한국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통일될 수 있습니다. VI. 가시고기 같은 희생으로 최근 서점가에서 꾸준히 베스트 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책 가운데 조창인의 「가시고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가시고기의 얘기를 함께 함으로 오늘 6.25 희년 예배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가시고기이라는 작은 민물고기가 있습니다. 이 민물고기는 엄마 가시고기가 알들을 낳은후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아빠 가시고기가 혼자 남아서 알들을 돌봅니다.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웁니다.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알들을 보호하지요. 알들은 깨어납니다. 새끼들이 자라 제갈길로 가고 나면 홀로 남은 아빠 가시고기는 돌틈에 머리를 쳐박고 죽어 버린답니다. 이 소설은 백혈병에 걸린 열살자리 정다움이라는 아들과 가난한 아빠를 떠나버린 아내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아빠의 독백을 통해 부자간에 뗄 수 없는 절절한 사랑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이 아빠는 자신보다 더 소중한 아들을 살리겠다고 병든 아들을 2년 세월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보지요. 전 재산을 팝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양심마저 팔아 병원비를 마련해 봅니다. 마지막에는 골수이식을 하는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불법인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한쪽 눈마저 팝니다. 아빠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습니다. 눈을 뽑기 위해 종합검진을 하는 가운데에 자기 몸에서 커다란 암덩어리, 간암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지요. 이 아빠는 교회나가지 않았지만 자신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아니하고 오직 고통속에 있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 앞에 애원합니다. 아들대신 내 목숨을 가져가 달라고 몸부림합니다. 아이는 다행히 골수이식이 잘되어 건강을 회복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간암말기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엄마에게로 떠나보내고 이 가시고기 아빠는 아들과 40일 동안 지냈던 산골마을로 들어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백혈병든 아이처럼 만신창이 된 북녘땅을 구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찢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임마누엘 예수님을 기억하십시다. 새끼를 살릴 수 있다면 내 머리를 돌틈에 처박고 죽어도 좋다는 한마리 가시고기의 사랑을 한국교회는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을 살릴 수 있고 겨레를 살릴 수 있습니다. 범죄한 내 백성을 살릴 수 있다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도 좋다며 몸부림했던 모세의 절규만이, 사도 바울의 몸부림만이, 저기 황무한 북한땅을 구원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이 사명이 주어 졌습니다. 함께 준비하십시다. 차분히 기도하며 준비하십시다. 이 교회에서 자란 많은 젊은이들이 복음 안고 북녘땅으로 들어가는 그날을 꿈꾸며 기도하십시다. 주여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애굽 노예의 사슬을 끊으시던 당신의 손으로 이제 남북 분열의 사슬을 끊어 주시옵소서. 그 옛날 에서와 야곱이 미움을 삭이고 얼싸안고 울었던 것처럼 이제 남과 북이 서로 용서하는 사랑에 감격하여 울게 하소서. 맛잃은 소금같은 한국교회를 용서하시고 빛잃은 등대되어 민족을 방황케 했던 교회에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이제 한국교회 때문에 조국이 살맛나는 세상이 되고 남과 북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게 하시옵소서.
북한 땅의 영적 회복/ 욜1:1-7/ 2008-01-13
북한 땅의 영적 회복 욜1:1-7 히브리말에는 하나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들이 늘 사용하는 칭호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여호와로 본래 이 여호와는 변형된 것으로 야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여호와로 바뀐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라는 칭호를 한 글자로 줄일 수 있습니다. “요”입니다.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도 한 글자로 줄일 수가 있습니다. “엘”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부르실 때 신약 성경에 보면 “엘리”라고 부르신 게 나와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이 요엘이라고 했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한 글자씩으로 줄여서 합성어로 요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아버지 브두엘이 자기 아들의 이름을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지어준 것입니다. 그래서 요엘은 B.C 830년경에 유대에서 예언자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적인 것을 빼놓고 인간적인 것으로만 계산한다면 예언자들은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 불쌍한가? 하나님의 책망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할 때는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돌아왔습니다. 기독교 최초의 교회에 담임목사 감독을 30년이나 지낸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감독이 야고보서 3장 1절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많이 선생 되지 말라.” 하나님의 더 큰 심판이 이 예언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말 한마디만 실수해도 큰일 납니다. 하나님의 책망이 주어집니다. 우리 설교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다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이단이라고 합니다. 어쩌다가 이데올로기 설교를 할 때 한마디만 잘못해도 ‘공산당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 한마디만 잘못해도 ‘반정부인가?’ 한마디에 인생 운명이 달려있는 그런 사람들이라서 인간적으로 보면 참 불쌍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누구든지 내가 말한 것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한 재앙을 그에게 줄 것이다.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생명나무에 기록된 말씀에서 너를 제할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듭니까? 구약의 모세를 보시면 40년 그토록 고생을 했습니다. 아마 인류 역사에 나타난 지도자 가운데 가장 긴 시간을 가장 훌륭하게 했는데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실수해서 하나님의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백성들이 목이 마르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러면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냐?” 하나님이 “이 반석을 치면 거기서 물이 나올 테니 네가 그렇게 해라!” 해결 방법을 주셨는데 모세가 화가 났습니다. 말마다 자기에게 원망을 하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마치 자기가 하는 것처럼 말 한마디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반석을 한번 쳐도 되는 것을 화가 나니까 두 번을 때려버렸습니다.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 순간적 실수 하나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아니하였느니라. 왜 내가 시키는 대로 안하고 성질을 내고 야단이냐?” 그래서 “너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도 모세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못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예언자들은 이 사명이 올 때 대개는 하기 싫어합니다. 모세도 안하겠다고 수없이 거절했습니다. 요나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인지 알면서도 “나는 그런 거 못하겠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갔다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언자 가운데 마지막은 세례 요한으로 추종을 하는데 그의 생활이 성경에 자세하게 나타났습니다. 그의 옷은 우리들과 같이 디자인된 옷을 입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약대를 잡은 그 털옷을 몸에 두르고 가죽 띠 하나를 메고 음식은 야생의 메뚜기를 잡아먹으면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세례요한도 자연스런 인간입니다. 그런 생활을 그리워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해야 되는 일의 성격이 민중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계속 해야 합니다. 사람이 이 대중 앞에서는 코미디언들 인기 있는 소리를 해서 기분 좋게 해서 박수를 받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야 신이 나고 대중 앞에서는 사람이 살맛이 나고 그러는 것이지 예언자가 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민중의 죄 때문에 죄를 회개하라는 예언자가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회개하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 소리는 누구나 다 듣기 싫어하는 소리입니다. “뭘 잘못 했다고 이 야단이냐?” 듣기 싫어하라는 소리를 날마다 하라니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신약의 스데반을 보십시오. 회개하라고 설교했다가 그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 요엘 예언자도 똑같은 일을 지금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자는 하나님께 잘못하면 큰 심판을 당하고 백성들에게도 항상 버림당하고 소외당하고 보기 싫어하고 욕만 먹기 때문에 하기 싫은 겁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목사 될 사람 인터뷰 107명을 했습니다. 젊은 20대 중반의 응모자가 있었습니다. “왜 응모자가 되려고 하느냐? 왜 목사가 되려고 신청했는지 답하시오.” “엄마가 자꾸만 하라고 하셔서요.” 그러면 요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뭐냐? 여기 이상한 말 한마디를 합니다. 1장 4절에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우리가 잘 알 수 없는 말을 합니다. 백성들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이 주셔서 하는 말이 이겁니다. 그리고 이 말을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이것이 너희의 역사가 될 것이니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 말하는 이 네 가지 이름의 벌레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농작물을 손상시키는 병충해 벌레들입니다. 이 말대로 해석하면 농부가 피땀 흘려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배추라고 합시다. 팟종이라고 하는 병충해가 달라붙어서 배추를 갉아먹은 것입니다. 다 먹지 못하고 좀 남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메뚜기가 남아서 남은 부분을 또 뜯어먹었다고 했습니다. 다 먹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보이지도 않는 늣이라고 하는 것이 달라붙어서 야금야금 배추를 다 뜯어먹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병충해 중에 성격이 가장 강한 황폐스러운 황충이가 날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몽땅 갉아먹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농사지으신 분들은 제일 골치가 이 병충해입니다. 농사 잘 지어놨는데 이런 것들이 날아와서 들러붙으면 하루아침에 농사가 헛농사입니다. 그런데 이 병충해의 성격과 그 강인성이 날로 심해져서 지금은 이 병충해가 달라붙지 못하도록 하는 농약이 성분이 아주 지독합니다. 점점 더 독한 성격의 농약을 주지 않으면 농작물이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먹을 때는 인체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완전히 이제 보편화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습니다. 무공해 식품, 유기농 식품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 사회에 우리가 먹고 있는 이 모든 농산물은 다 오염되어 있는 것을 우리가 먹고 살고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먹으라 그런 뜻 아닙니까?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수입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탐스러운 식료품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 농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레가 뜯어먹어서 형편없이 잘 안되니까 시중에 나와 있는 이 농산물은 아주 탐스럽고 보기 좋은 것은 농약을 많이 친 것이라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안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렇게 안하면 안 사가니까요. 그런데 어떤 현명한 주부는 ‘저렇게 보기 좋고 탐스러운 식료품은 농약이 많이 오염된 것이다. 그러므로 봐서 시들시들하고 벌레가 많이 뜯어먹은 것은 농약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돈을 좀 더 주고라도 그런 이상한, 시들시들하고 벌레가 뜯어 먹힌 것을 오히려 사가는 현명한 주부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농부들이 그것을 또 알아가지고 벌레를 기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 기른 배추를 좀 뜯어 먹혀서 비싸게 파는 농부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병충해는 인간의 기본 생활에 절대적 피해를 주는 벌레들이라고 우리가 결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타나는 이 네 가지의 병충해는 그 시대 그 사회에서 제일 질병스러운 농작물 피해자들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뜻인가? “앞으로 이스라엘 나라는 이렇게 뜯어 먹힐 것이다. 팟종이 같은 바벨론이 와서 뜯어먹게 될 것이다. 다 먹지 못하고 남은 부분을 메뚜기 떼가 와서 또 뜯어먹을 것이며 헬라와 로마가 차례로 와서 다 뜯어먹고 아무것도 안남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라!” 이런 뜻입니다. “나라 형편이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아무것도 안 남았도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겁니다. “나라와 국민이 하나님의 뜻을 버렸기 때문에 굶어죽게 되는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육신 생활도 매우 중요하게 취급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인간을 여기서 살게 하실 때 약속하셨습니다. 신명기적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배부르게 먹고 윤택하게 살라!”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신명기적 축복은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 내려서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게 할 것이요 육축을 위해서 들에 풀이 나게 하시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다.” 이것이 신명기적 축복 약속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에 순종하면 약속한 이 모든 복은 네게 돌아갈 것이니 네가 만약 도시에 살면 그 성읍에서도 너는 복의 사람이 될 것이요 저 들판에 나가서 살면 들판의 복을 받을 것이요 네가 만약 어린 아이를 낳으면 그 소생이 복을 받을 것이요 네가 농사를 지으면 그 토지의 소산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요 만약 네가 짐승을 기른다면 그 짐승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요 네가 사용하는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아서 윤택한 식량이 거기에 담길 것이요 네가 들어가면 들어가는 대로 나오면 나오는 대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네가 만약 창고를 지었다면 그 창고가 가득하게 될 것이다.” 신명기적 축복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네가 만일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섬기면 나는 저주하겠다.” 이것이 신명기입니다. “요엘이여! 나가서 이렇게 말하라.” 그러면 이런 말씀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가?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민족 역사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지나간 기독교 2000년 역사의 세계사를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 주변의 개인의 역사 속에 나타납니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하면 이 말씀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객관성 있는 신앙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자가 될 때 어느 나라나 요새 우리말로 “선진국이 되었다. 위대한 국가 건설이 되었다. 만약 너희 중에 어떤 국민이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이데올로기 전쟁 같은 것이 일어나서 무슨 공산당을 만든다든지 사회주의 복음을 한다든지 이런 이상한 일을 할 때 주었던 것도 다 빼앗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래 전에 소련 공산권이었던 우크라이나 청년 20명이 제가 목회하던 미국의 교회에 온 일이 있습니다. 간증하는 시간을 달라고 해서 주었습니다. 그들의 간증 골자는 이겁니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는 공산당에게 속았습니다. 공산당이 가장 열심히 한 일이 교회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준다던 그 약속은 정반대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좋은 환경의 가장 좋은 땅을 가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히틀러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고 땅이 너무 좋아서 수천대의 자동차를 동원해서 우크라이나의 흙을 독일로 실어 날랐습니다. 그렇게 좋던 땅이 황폐하고 아무것도 먹고 살게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으니까 없애버린다고 교회를 다 없애버렸는데 소련은 없어지고 하나님은 살아났습니다.” 그렇게 간증했습니다. 저는 옛날에 모스크바 수양회에 가서 일주일동안 위성국가 15개국에서 몇 백 명이 왔습니다. 제가 일주일동안 강의하는데 그때는 사실상 지금 같지가 않아서 잘못하면 그곳 감옥에 투옥됩니다. 그러나 15개국에서 지도자들 수백 명이 왔는데 나를 바라고 왔기에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간에 지금도 기억이 아주 생생하게 납니다. 몰다비아에서 오신 목사님 한 분이 나이는 70이 넘었는데 제 강의 도중에 이 강대상 앞으로 뛰어올라오셨습니다. 그 시간이 마지막 시간이었는데 이때가 아니면 내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 끝나기 전에 저에게 시간 1분만 달라고 하셔서 제가 허락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옆으로 물러났는데 그분이 청중들 앞에서 “여러분, 들으셨지요? 우리는 속은 겁니다. 70년 동안 속은 겁니다. 나 감옥에 5번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보내진 한 한국 목사에 의해서 역사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속았습니다. 왜 이렇게 좋은 우리나라가 못살아야 됩니까? 우리는 속은 겁니다.” 그 말을 하신 겁니다. 제가 일주일 강의한 것보다 그분의 1분 소리침이 더 은혜가 되어서 박수 받으셨습니다. 객관성 있는 평가로 지금 대한민국은 이럭저럭 경제적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 10대 강국 안에 들어가는 평가를 받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땅이 적은 나라! 우리 대한민국 국토는 미국의 94분의 1입니다. 그렇게 조그만 땅 덩어리 69.6%가 쓸모없는 산입니다. 뭐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절대 에너지 자원인 석유는 이 땅에서 한 방울도 안 나옵니다. 전 세계 전쟁율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죠? 뭘 잘해서? 뭐가 넉넉해서? 200개가 넘는 세계 모든 국가 가운데 인구 비례로 하나님 믿는 숫자가 현재로 제일 많습니다. 그것이 이렇게 한 것입니다. 세계의 그렇게 많은 기독교 국가 가운데서도 세계 선교는 미국 다음으로 공헌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선교 안하면 세계 선교는 끝입니다. 가장 열정적인 집회 숫자와 새벽 기도를 드리는 나라! “하나님이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그 역사는 지금 우리에서 영적으로 얼마든지 해석 가능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북한 땅이 회복되는 길이 뭐냐? 영적 회복입니다. 신앙 회복하면 그 나라는 회복됩니다. 저는 미국 장로교단 목사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30년 전에 북한 교회 지도자들과 대화한 적 있습니다. 그때 말했습니다. “아니, 북한은 왜 교회를 다 없애버린 겁니까?” 북한 지도자들이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미국에 와서 “당신들은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평양이 동양의 예루살렘이었던 것 아십니까?” “그래요. 그런데 왜 그렇게 되었느냐 말입니다.” “한반도의 복음은 대동강과 압록강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 맞아요. 토마스 목사 제너럴셔먼호 타고 들어와서 대동강에서 순교 당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은 창호지를 접어서 노끈을 만들어서 몰래 어깨 상인의 멜빵으로 만들어 압록강 넘어온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입니다. 다 북한 땅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다 없앴느냐 말입니다.” “당신들이 다 없앴습니다. 6·25 동란 때 미국 폭격기가 북한의 교회를 다 폭격해서 2300개가 다 불타버렸습니다. 그 후로 복음이 전파 안 되는 겁니다. 미국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당신들이 뭘 잘했습니까? 북한의 교회 다 없애버린 것은 미국이지 우리가 아닙니다.” 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요? 그러면 책임지겠습니다. 북한 땅에 2300개의 교회를 미국 장로교단에서 원형 회복시켜주겠습니다. 사인합시다. 당장 들어가서 달러 보따리를 자동차로 싣고 들어가서 6·25이전에 있었던 2300개의 교회를 다 건축해 주겠습니다. 사인합시다. 우리가 없앴으니 우리가 다시 다 회복시켜드리겠습니다.” 3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안 됩니다. 북한이 사는 길은 기독교 회복이 급선무입니다.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선교의 문만 연다면 다른 나라는 그만하고 미국과 한국의 절대 예산이 북한에 가도록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왜? 교회마다 북한 선교 예산을 예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교회의 예산이 북한 정부 예산보다 많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 선교를 위해서 예치해둔 달라만 들어가도 북한 경영이 일 년 안에 달라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기 북한이 고향이신 교우님들! 북한이 열린다면 “내 고향 당에 교회 한 채 짓겠다. 내 재산 다 털어도 좋다.” 그러신 분이 우리 갈보리교회에도 얼마든지 계십니다. 대한민국 다 합치고 미국 다 합치면 문제없습니다. 북한 경제는 선교비만 들어가도 일 년 안에 회복될 것입니다. 저는 십년 전에 회령을 봤습니다. 북한의 함경북도 회령! 십년 후에 또 가봤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발전을 해서 일 년이면 지도가 바뀝니다. 회령이 북한의 유명한 도시인데 10년이 지나도 변한 게 하나도 없고 더 초라합니다. 밤이면 불빛 하나 있습니다. 김일성 동상에 비취는 것 하나입니다. 같은 문화를 가지고 같은 인종이 같은 지역에서 같이 살아왔는데 이 차이는 뭐냐? 금년에도 사상 유래 없는 홍수 재앙을 만나서 국토의 11퍼센트 가까이를 못 쓰게 되었으니 내년의 식량난은 뻔하게 보입니다. 조선기독교연맹회 위원장 강영석 목사님이 LA에 오셨을 때 제가 환영 위원장이었습니다. 둘이서 밥 먹고 농담 같이 살짝 말을 건넸습니다. “왜 북한은 선교의 문을 안 여는 겁니까? 당신 목사잖아요? 열면 절대적으로 북한이 유익할 텐데 왜 그렇게 꽉 닿고 선교의 문을 안 여는 겁니까? 2300개의 교회가 다 어디로 가고 봉수 교회라고 선전용 하나만 내놓으면 어떡합니까? 선교의 문을 열어보세요. 우리 다 들어가서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잖아요?” 나와 둘이 앉았는데 내가 자꾸 자꾸 말했더니 내 귀에 대고 “더 잘 알면서 왜 자꾸 야단이십니까?”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여호와를 찾으라.” 영적 감각이 없으니까 보이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는 겁니다. “여호와를 버리면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을 것이다.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허사로다. 요엘이여! 가서 그렇게 말하라. 순교 당해 죽어도 가서 말해라.” 여러분, 인간 구원을 위해서 최초의 사역자로 부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무슨 말입니까? “너를 만나는 사람들은 다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는 나라는 다 복을 받을 것이다.” 영적으로 봐야 합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습니다. 심방을 가지 않을 때는 거의 책을 읽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 대통령 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잘 쓴 글이 없나 하고 모두 찾아 읽었습니다. 나온 책들은 다 읽은 것 같습니다. 글 속에 그 사람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신다고 나왔는데 국민으로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김우중 씨가 쓴 책도 다 읽었고 현대 건설 회장님이 쓰신 책도 다 읽었고 괜찮은 사람이 쓴 책은 제일 먼저 사서 다 읽었습니다. 김우중씨 자신이 쓴 책, 이명박 자신이 쓴 책 읽어본 중에 철저하게 밝힌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자신들의 어머니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길거리에서 쫓겨 다니며 좌판행상으로 끼니를 이어가는 정도의 곤고한 생활자였다. 그래서 자기들도 어머니가 하는 일 따라서 그런 일을 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똑같이 강조점을 둔 것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어머니는 그 가난하고 곤고한 생활 속에서도 새벽 기도는 일 년에 하루도 안 빠지고 하시는 것을 봤다.” 저는 목회자로서 그분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들은 어머니를 잘 두셨소.”라고 말할 것입니다.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으라.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한 자의 길은 망하리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다음 달에 북한 통치자를 만나러 가신다고 하는데 저 같은 사람의 기도 제목은 어찌되었던 이 오고 가는 발걸음을 통해 북한 땅에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땅은 살 것이다. 이러한 가장 빠른 길을 영적으로 볼 수 있을 때 그 땅이 희망이 될 것이다. 다른 길은 없을 것이다.” 개인도 국가도 아무리 농사를 잘 지었어도, 아무리 부강하고 튼튼해도 병충해가 들러붙으면 끝이 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포도나무가 열매가 없이 하얗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보호가 있어야만 됩니다. 열매 맺는 포도나무가 되어 풍성한 삶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의 뜻을 저희들이 잘 깨닫고 그대로 잘 실천하여 개인이 살고 교회가 살고 민족이 살 수 있게 하옵시고, 영적 회복이 저 북녘 땅에 하루 속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은 역사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 사랑하는 모든 어린 양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했던 저 북녘 땅의 영적 회복이 이제는 때가 되어 성취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북한 방문할 때마다 이승만 대통령께 고마워/ 렘1:13/ 김진홍 목사/ 2009-07-19
북한 방문할 때마다 이승만 대통령께 고마워 렘1:13 지난 대선 당시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김진홍 목사가 19일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이승만 대통령께 고마운 마음을 느끼곤 한다”고 밝혔다. 전날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이승만 박사 44주기 추도식’에서 설교를 했던 김 목사는 두레교회 홈페이지 오늘의 묵상 코너에 ’이승만 건국대통령 44주기에’라는 글을 통해 추도식 설교 내용을 소개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했다. 특히 김 목사는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고마운 이유 세 가지를 들어 설명했다. 첫째, 1948년 8월 15일에 건국한 점. 김 목사는 ”그때 만일 건국을 하지 못한 채로 6.25 전쟁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며 ”십중팔구는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방의 반대를 무릅쓰고 남한 단독으로나마 건국을 고집하여 관철시켰던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라고 밝혔다. 둘째, 자유민주주의를 대한민국의 체제로 선택한 점. 김 목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대부분의 신생 독립국가의 원수들이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다고 지적한 뒤, ”남달리 시대를 보는 안목이 뛰어났던 이승만 박사는 ’자유민주주의라야 한다’는 일관된 신념을 품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 선택이 지금 우리가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고 지금의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기초가 되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께 마음깊이 고마움을 표하게 된다.” 뉴라이트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북한민주화위원회,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조갑제닷컴, 노노데모 등 100여개 보수단체들이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개최한 공동후원행사에서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촬영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마지막으로 북한이 남침하였을 때에 최상의 외교력을 발휘하여 미국과 유엔을 움직이고 국민들의 단합을 이루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점을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고마운 점으로 꼽았다. 김 목사는 ”그때 공산침략을 막아내지 못하였더라면 지금 우리는 ‘김정일 장군님...’하며 고개 숙이고 살아가고 있게 되었을 것”이라며 ”생각만 하여도 아찔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래서 북한을 방문할 적마다 이승만 대통령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은 어른이신 이승만 대통령의 공적을 좀 더 기리는 후손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깊다.” 김 목사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뉴라이트 전국연합을 이끌면서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선관위로부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또한 김 목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감당할 자질이나 능력이 없이는 굳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려 들지 말라”는 ’막말’을 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북한 선교/ 엡2:14-18/ 6.25기념주일설교/ 2008-06-25
북한 선교 엡2:14-18 1. 너 자신을 알라.. 자신을 아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한국인은 누구인가? 우리 자신들을 알면, 우리나라의 사회현실에 대한 생각과 대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강준만의 한국인의 코드라는 책을 보면 한국인의 특징을, 우선, 냉소주의라고 지적합니다. 너나 잘하세요 자기는 책임을 회피하고... 남이 잘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냉소주의입니다 역동성과 조급성을 지적합니다 역동성 때문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지만... 빨리 빨리문화..냄비문화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깡다구 문화도 있습니다. 죽기아니면 살기...급격한 사회해체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우리 한민족이 평화적인 기질이 많을까요? 호전적인 기질이 많을까요? 흰옷을 사랑하는 백의민족의 어떤 전통, 또 이웃 나라의 침략을 받았을지언정 우리가 별로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지 않았다는 어떤 그런 전통에서부터 평화적인 민족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조시대의 무서운 사색당파 싸움들, 그 피 묻은 보복의 역사, 그래서 전쟁 때문에 죽은 사람보다도 당파싸움 때문에 인재가 더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 까지 있습니다 아직도 지구상에서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아서 남북 사이에 대결을 지속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성이 의외로 상당히 호전적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 그렇지 힘만 있었더라면 열방을 향한 침략도 얼마든지 가능한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 이중성이 함께 우리 민족성 안에 있습니다 이런 이중성이 우리의 국가가 위치하고 있는 특별한 그 공간성과 지리적 이유 때문입니다 열강 사이에 샌드위치로 끼어서 계속적인 고통의 역사를 해왔다는 것 또 하나는 공간이 너무나 좁은 공간이라는 것. 여러분 좁은 공간에서 오래 살다 보면 계속 우리가 소위 스킨쉽, 피부를 맞대고 살다 보면 굉장히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 또 이렇게 맞대고 살다 보면 의외로 상처를 쉽게 받고 상처를 주다 보면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한순간 원수로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이중적 역설의 성격이 우리 안에 조성된 어떤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넓은 대륙에서 비교적 살아가는 민족들의 민족성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좀 더 넓은 공간에서 사는 대륙성을 가진 민족들을 보면 좀 다투는 일이 있어도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라고 나는 내 길을 가겠다고 축복하며 서로 헤어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 그들에게 있음에 반해서 우리는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남을 비난하는 냉소주의...너나 잘하세요 조급함..빨리 빨리.....복수심...두고 보자....복수심이 더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빛이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내 탓입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내탓입니다. 우리를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코드를 이식시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록....회개가 많아집니다. 미안한 마음이 많아집니다 자기반성속에서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 집니다. 사회생활도 잘합니다. 그래서 앞서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여유가 있습니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성실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으면...한국인의 체질 중에... 역기능의 체질을 바꾸어 감으로 말미암아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2. 오늘,,,상암 경기장에서 남북한 월드컵 예선전이 열립니다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북한에서는 응원단이 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항상...이렇게 오가며 축구도 하고...배구도 하고.... 평양에 가서...냉면도 먹고...대동강 숭어국이 일품이랍이다.. 그런 날이 곧 오기를 기도합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현실은, 남북이 대치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하여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국토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은 전쟁이기도 합니다. 남한 230만여 명, 북한 292만여 명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엔군의 인적 손실은 약 15만 명, 중국군은 약 90만 명으로 추정... 아직도 1,000만명의 이산가족이 슬픔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는 100만명의 군대와 남한에는 60만명의 정규군이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핵실험을 했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요청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 교회와 성도가 이 민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16-17절에 그 해답이 하나 있습니다. 같이 읽어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켈리포니아...신실한 성도인 베노즈델이라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인이 매우 특이한 혈액형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등록을 해 놓고 있었습니다. 혹시나..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자기 피를 남에게 주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날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칼에 찔린 사람이 위급하니..수혈을 부탁한다고.. 그래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병원 수술실에 가서... 젊은 환자 옆에서 수혈을 합니다. 남편이 간호사에게.. 저분은 어디가 아파서.... 아... 어머니날...형제가 모여서 식사를 하다가..유산문제도 다투다가... 서로 칼부림을 하다가 찔려서 생명이 위독해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화가 났습니다. 저런 못된 인간을 위해 우리 아내가 피를 뽑아주어야 하나?... 그럼에도 시작한 것이니... 기분 좋지 않게 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교회를 다녀오고 자선단체를 위한 선물을 마련하느라.. 지쳐서 그만 아내가...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정말 화가 났습니다. 왜...부모에게 효도하지도 못하고... 서로 싸우는 못된 인간을 위해...피를 뽑고 내 아내는 죽어가야 하나? 분통이 터졌습니다. 분을 삭이며.그래도 아내의 회복을 위해..아내의 침대 옆에서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되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그 환자가 불쌍해서 기도했습니다 Jesus died for me,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힘입니다. 용기입니다 Jesus died for me, 이것이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또 그리스도인의 전망, 성서적 입장에서 볼 때 저도 도무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수용할 수 없습니다. 수용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수용할 수 없는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구원받아야 할...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죄는 밉지만 죄인은 사랑해야 한다고 하지요...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죄를 범하는 사람들, 그들을 우리는 인정할 수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은 여전히 우리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선교학에서는 독특한 개념이 있습니다. potential brotherhood 가능성의 형제의식이라고 합니다. 가능성의 형제의식,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하나님 모르니까 넓은 의미에서 형제라는 단어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도 복음을 듣기만 하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기만 하면 나와 꼭 같이 저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가능성의 형제의식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내 남편이 하나님 모르지만 복음을 듣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남편도 입술이 열려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날이 올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꼭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의식을 가지고 내 남편을 대할 수가 있다면 복음 전도의 시기는 훨씬 더 앞당겨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능성의 형제의식 Potential brotherhood 입니다. 그렇습니다. 남북한이 분단된 지 63년입니다. 변한것이 별로 없습니다. 적대감을 가지고...아직도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가능성의 형제의식입니다. 우리는 대동강에 놀러가서 숭어국을 먹고...저들은 횡성에 와서 한우 고시로 점심을 먹을 수 있고... 어디에서나 함께...아리랑도 부르고... 같이 예배를 드리고..찬양을 하고 무너졌던 교회들을 같이 세워가는 형제가 될 날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영상을 보겠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자신이 죽으심으로...죄인들에게 평안을 주셨다..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셨다... 생각해 보십시오...강한 자가 남을 도울수 있습니다. 그리고 강한자가 약한 자를 먼저 도와야 합니다. 약한 자는 남을 돕기가 쉽지 않습니다 강한 자가 남을 돕습니다. 이것을 섬김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성들을 아주 존중합니다. 제 아내를 포함해서...안에 있는 해.. 아내를 포함해서 여성들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입니다. 창세기에 그 아내를 표현할 때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서 아내인 하와를 지으면서 저를 무엇으로 지었다구요? 돕는 배필로 지었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여성들이 돕는 자입니다. 여성들은 돕는 자입니다. Helper 라는 단어, 돕는 자. 이 단어를 연구해 보면 흥미롭습니다. 이 돕는 자란 단어가 제일 많이 적용된 것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요... 하나님이 약자예요? 하나님이 강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성을 강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을 도울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돕습니까? 아내들이 얼마나 남편을 잘 돕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돕는 자가 아니라 공주가 되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강한 자가 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이 도울 수가 있어야 건강하고 아름다운 문화가...건전한 문화.. 행복한 문화가 창출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갈수록 더욱 남을 돕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더욱 강해집니다. 영적으로 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남을 도울수 있는 위치가 되게 하십니다. 도울수 있는 물질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바다처럼..생명이 살아 숨쉬는 항상, 아름다운 바다가 됩니다 4. 우리 교단 총회에서는 오늘을 6.25를 기억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북한 선교주일로 정하고 온 교회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악을 행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저들이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북한의 굶주리는 동포들을 도웁시다 이번에 저희 교회에서는 북한 어린이들에게 분유보내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렵지만...봉투를 하나씩 넣었습니다. 정성을 베풀어 주십시오 공산주의는 믿습니다.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한 짓들이 매우 밉습니다 그리고도 떵떵거리는 것이 꼴보기가 싫습니다. 그럼에도 어린이들이 가능성의 형제 자매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것이 다...그들에게 전달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전해진다고 해도..그래서 몇 명의 어린이라도 생명을 구하고 살아날 수 있다면 보내야 합니다 물론, 한국내에서도 할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생존경쟁,,,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처신.... 아이들 교육하고 학원보내고...옷도 사입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와야 합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에게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보복의 타이밍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칼과 힘을 가지고 한 번 멋지게 자기를 밟았던 그 사람들을 향해서 그 칼을 휘두를 수가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말합니다. 형님들..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염려하지 마십시오..형님들과 가족들을 내가 돌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신앙인인 요셉의 위대함입니다 북한이 전쟁을 일으켜서 이 땅이 쑥밭이 되었었습니다 지금도 이산가족의 아픔이 있습니다. 가고 싶어도 고향을 못갑니다 이제 우리가 힘이 있고...더 힘을 키워...보복을 할 수도 있지만 이북의 동포들이 굶주려 죽어가고 있고... 탈북자들이 살기 위해서...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에 가서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배를 위해...백성을 죽게 만드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는 요셉처럼...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적어도..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역사의 모든 해프닝,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한 민족에게 역사하고 계심을 믿고... 이 민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아닌..보복으로서가 아닌.. 예수님의 복음으로 평화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이북에 있는 김일성 동상 22,000개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그 동상이 무너진 곳에 우리 가정이 교회를 세우게 하여 주십시오 제 생전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여러분의 비전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2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행하시나니... 여러분의 소원이 여러분의 인생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까지 건강하게 살게 하실 것입니다. 물질도 축복하실 것입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 북음은 생명입니다. 복음이 통일입니다. 평화통일의 코드는 예수코드입니다 우리가 더 강해지고 그리고 더 도우며 삽시다 7,000만 민족의 복음화를 이루어 가는..선교한국의 역사를 성취하여 가는 주인공이 됩시다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충성을 다합시다. 아멘.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요1:12-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요1:12- 2001-10-20 16:39:38 read : 38 2.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김일성은 그를 신봉하던 북한 주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과 기와집이 아니라 가난과 절망을 유산으로 남기고 죽었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의 차원에서 볼 때 김일성은 한국 교회에 적지 않은 숙제를 남기고 갔다. 첫째, 북한 주민들은 유물론과 진화론, 즉 무신론적 사상 교육만을 받고 자랐다. 따라서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은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둘째, 북한 주민들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지식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북한 주민들은 \"종교란 정신 빠진 사람들이 믿는 것으로 기도 드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낮잠이나 자겠다\"고 말하거나 \"종교(하나님, 신, 미신)는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 낸 추상적인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셋째, 북한 주민들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주체사상은 기본적으로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 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종하는 힘도 인민 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다시 말해 주체사상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그와 동시에 주체사상은 \"인간은 가장 발달된 물질\"이라고 주장함으로 유물론적 입장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 주민들이 철저하게 세뇌 교육을 받아 온 주체사상은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론적 사상이자 인간의 자주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 사상이라 하겠다. 이 같은 사상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요인의 하나로 밝혀지고 있다. ★ 하나님의 존재를 변증하라. 유물론적 즉 인본주의적 사상에 세뇌된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와 천지창조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영리나 전도 폭발과 같은 전도 방법은 기본적으로 신의 존재를 전제하고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좀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변증을 하기 위해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그동안 북한에서 어떻게 유물론 즉 진화론적 입장에서 교육을 받아 왔는지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추적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적절한 설득력 있는 변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변증을 하는 과정에서 그 전 단계로 북한 주민들에게 종교의 신비와 능력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남북한 주민들의 일상 생활을 비교해 보면 의외로 많은 접촉점들을 찾을 수가 있다. 다음과 같은 상식적 예들은 우리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 1.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고 팔린 책이 성경이다. # 2. 각국에 설치된 적십자 표시는 기독교의 십자가를 뜻한다. # 3. 미국은 기독교인(청교도)이 세워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다. # 4.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감람나무는 성경에서 유래했다. # 5. 세계적 위인인 정치가 링컨이나 과학자 뉴톤 등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 6. 삼일운동의 지도자 33인은 대부분 종교인들이었다. # 7. 북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김구선생도 기독교인이다. # 8.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도 기독교인이었으며, 이름은 성경에서 딴 것이다. # 9.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다닌 평양 숭실중학교도 기독교계 학교이다. ★ 하나님의 능력있는 메세지를 선포하라 더 나아가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 계셔서 북한 주민들의 문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결하실 수 있는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북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수준에 맞는 능력 있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실제로 많은 월남자들이 기독교로 회심하거나 신앙적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능력 있고 적절한 말씀을 접한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북한 주민들의 필요에 맞는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북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하며, 또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수준에 들어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든지 찾아낼 수 있도록 성경과 신학에도 정통해야 한다. ★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라 북한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논리적/과학적으로 변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바로 그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삶을 통해 개인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체험만 갖고 충분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체험은 기독교로 회심하거나 신앙이 성장하는데 필요하며 때로는 매우 유익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북한을 탈출하여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많은 북한 주민들이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하고 기적적으로 응답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였다. 더구나 북한 주민들이 오랫동안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게 속아 온 점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들은 보통 남한 사람들 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좀 더 강렬한 체험이 필요하다. 우리는 \"살아 있는 김일성에게도 감쪽같이 속았는데, 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란 말인가?\" 라고 반문하는 북한 주민들의 처연한 심정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 하나님의 가정- 교회 공동체를 보여 주라 게다가 교회의 예배와 북한의 집회가 형식상 매우 유사한 점을 고려할 때, 북한 주민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인격적으로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월남자들이 교회를 방문하면 하나같이 놀라고 당황해 할 정도로 교회와 북한 사회는 형식이나 분위기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김일성의 교시가 있고, 찬송 대신에 김일성 찬가가 있고, 참회기도 대신에 자아비판이 있고, 아멘! 할렐루야! 대신에 만세가 있고, 헌금 대신에 맹비가 있고, 십계명 대신에 유일사상 체계 확립의 십대 원칙이 있고,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대신에 수령, 당, 대중의 삼위일체가 있고, 경건의 시간 대신에 아침 독보회 시간이 있다. 더욱이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들도 기독교와 매우 유사하다. 북한에서 발표된 글이나 노래를 살펴보면 영생, 사랑, 구세주, 믿음과 희망, 기쁨과 감사, 낙원, 죄의식 같은 용어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 하려면 교회는 무엇보다도 북한의 사이비 종교 체험과 철저하게 차별화 된 신앙적 감동을 체험할 수 있는, 성령이 충만한 역동적인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이 예배당에 들어와 하나님의 임재와 평안을 느낄 수 있고, 목사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찬송을 부르면서 기쁨이 넘쳐야 하고,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하며, 성도들과의 만남을 통해 참 사랑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 위대한 하나님 만세, 조선 예수당 만세 교주 김일성이 죽은 데다가 북한 전역에 미신이 만연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할 때 북한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모습을 바꾸겠는\"(마16:26)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북한의 식량난에 충격을 받아 영혼 구원의 중요성과 절박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 지금이야말로 북한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호기라고 할수 있다. 또 우리는 북한 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만 하면 믿음과 기도로 작금의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북한동포를 돕고 선교하는 교회/ 창44:1-3/ 2004-02-11
북한동포를 돕고 선교하는 교회 창44:1-3 요셉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범사에 형통했다는 말이 창세기 39장에 네 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39:23). \"The Lord was with Joseph; and whatever he did, the Lord made it prosper.\" 여러분들도 모두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지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시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요셉이 한 일들 중에서 세 가지 아름다운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첫째, 요셉은 굶주리는 자기 동포들에게 양식을 보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인신 매매해서 먼 나라 애굽에 노예로 팔아 버린 형들에게 원수로 갚는 대신 사랑으로 갚았습니다. 굶주리는 형제들과 동포들에게 사랑의 양식을 보냈습니다. 그 때에 온 땅에 극심한 기근과 흉년이 들었습니다. 애굽은 물론 가나안 땅에도 7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모든 강들과 나무와 풀이 다 말라 버렸습니다. 야곱과 그 자손들은 양식이 없어서 모두 다 굶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에는 양식이 풍부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지시대로 7년 풍년 기간에 양식을 많이 비축해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자녀들을 애굽으로 보냈습니다. 양식을 구해 오기 위해서 였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모두 요셉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양식을 구했습니다. 요셉은 자기 앞에 무릎을 꾼 형들을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를 팔아 버린 형들을 복수하는 대신 그들에게 사랑으로 갚았습니다. \"요셉이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인의 돈은 그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창42:25). \"요셉이 그 청지기에게 명하여 가로되 양식을 각인의 자루에 실을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인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소년의 자루 아구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대로 하고\"(창44:1,2). 성경은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과 같고 하나님께 금식기도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 주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사58:6-8). 성경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리는 자가 네 원수일지라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롬12:20).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요셉과 같은 사람입니다.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에게 사랑의 양식을 보낼 수 있는 요셉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6.25전쟁으로 해를 입힌 북한동포들에게 총칼을 보내는 대신 사랑의 양식과 의약품을 보낼 수 있는 요셉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요셉이 누구입니까?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에게 양식과 비료와 의약품을 보낼 수 있는 오늘의 요셉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들이 오늘의 요셉이 될 수 있고 우리 강변교회가 오늘의 요셉이 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북한동포를 위해서 기도하고 북한동포돕기를 위한 헌금에 참여한다면 바로 여러분들이 오늘의 요셉이 될 수가 있습니다. 2. 둘째, 요셉은 눈물로 자기를 판 형들과 화해했습니다. 요셉은 굶주리는 동포들에게 양식을 보냈을 뿐 아니라 자기를 팔아 버린 형들과 눈물로 화해를 했습니다. 요셉은 마음이 부드러운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이 울었다는 말이 여러번 나옵니다. \"요셉이 그들을 떠나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창42:24). \"요셉이 마음이 타는듯 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창43:20). 마지막에는 방성대곡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창45:1-2). \"요셉이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창45:14,15). 요셉은 눈물로 형들과 화해하면서 두려워하는 형들을 위로하며 격려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5). 요셉은 눈물의 사람이요 화해의 사람이요 위로의 사람이요 격려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들이 화해와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해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엡2:14). 여기 화평이란 말은 화해라는 말과 같은 어원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이십니다.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셨으니\"(고후7:6). 요셉은 갈라졌던 형들과 눈물로 화해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요셉과 같은 눈물과 화해의 사람입니다. 시기와 미움으로 갈라졌던 동포들을 눈물로 끌어 안고 울면서 화해할 수 있는 화해의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원수 갚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해를 이루는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화해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은 부드러운 마음과 뜨거운 눈물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보아도 불쌍하게 보이는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화해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저는 신학적으로는 보수주의자이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진보주의자입니다. 정치 사회적인 보수주의를 저는 싫어합니다. 정치 사회적인 보수주의에는 대결과 정죄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요셉과 같은 화해의 사람입니다. 남북의 대결을 남북의 화해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화해의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의 요셉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부드러운 마음과 뜨거운 눈물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우리들이 오늘의 요셉이 될 수 있고 우리 강변교회가 오늘의 요셉이 될 수가 있습니다. 복음찬송 48장 \"화해하세요\"를 함께 불러 보겠습니다. 3. 셋째, 요셉은 하나님을 높이 드러냈습니다. 요셉은 처음부터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을 밝히 드러냈습니다. 바로가 요셉을 불러서 자기가 꾼 꿈을 해몽하라고 했을 때 요셉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41:16).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했을 때 바로는 이렇게 요셉의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바로가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창41:38-40). 요셉은 바로에게 하나님을 밝히 드러내 보였고 바로로 하여금 하나님을 높이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 드러내는 것이 선교입니다. 요셉은 또한 자기 형들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을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들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셨나이다\"(창45:5-8). 하나님을 높이 드러내는 것이 곧 선교입니다. 하나님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이 곧 선교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바로 앞에서도 하나님을 드러냈고 자기 형들 앞에서도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높이 드러내는 선교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높이 드러내는 요셉과 같은 선교의 사람입니다. 북한에 가서도 남한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삶으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그리고 높이 드러낼 수 있는 요셉과 같은 선교의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누가 오늘의 요셉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의 진실한 삶으로 하나님을 높이 드러낼 수 있다면 바로 우리들이 오늘의 요셉이 될 수 있고 우리 강변교회가 오늘의 요셉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강변교회의 네번째 목표는 \"북한동포를 돕고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새 천년을 맞은 우리 나라와 우리 교회가 이룩해야 할 제일 큰 과제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이루는 일입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그 일에 앞장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화해와 통일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힘써서 해야 할일 세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첫째는 북한동포를 돕는 일입니다. 북한동포돕기 헌금을 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남북의 화해를 이루는 일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북한동포를 끌어 안는 일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높이는 일입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높이 드러내는 일입니다. 우리 강변교회가 이 일에 앞장서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는 일을 힘쓰십시다. 갈라진 곳에 화해를 이루는 일을 힘쓰십시다.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높이 드러내는 일을 힘쓰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북한을 위한 기도/ 마6:9-13
북한을 위한 기도 마6:9-13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최근에 북한 평양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고향이 평북 선천이었기 때문에 저의 평양 방문을 남다른 감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은혜가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묵고 있는 호텔에서 같이 간 일행들이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었던 경건회 시간은 참으로 깊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첫날 아침 예배를 마치면서 함께 외웠던 주기도문에서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이 바로 오늘 우리가 북한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가장 완벽한 기도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북한을 위하여 그리고 통일을 위하여 많은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남북정상 회담 이후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평화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50년간은 서로 주적관계로 대치하고 살아왔던 남과 북이 갑자기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또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깊은 그리고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추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북한과 평화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를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한민족복지재단이라고 하는 단체의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었습니다. 한민족복지재단은 북한에 의료장비와 약품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식품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지난 한해만도 제약회사와 교회들의 협조를 받아 약 천 만불이 넘는 장비와 약품 그리고 식품을 지원하였습니다. 이번에 평양을 방문한 것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더 효과적으로 북한을 지원할 수 있을까를 의논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 일에 참여하면서 왜 이 일을 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 일을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주기도문에서 찾았습니다. 주기도문은 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제 자신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이 지금 우리가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려고 할 때 가장 구체적인 완벽한 기도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첫 번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입니다. 저는 평양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순간 북한을 위한 사역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 동안 하나님의 이름은 잘못 왜곡되게 이해되어져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기독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거룩하고 명예스러운 이름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 주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들의 삶과 행동을 통하여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거짓 없고 순수한 그리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행동과 활동을 통하여 우리는 북한 땅에서 다시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잘못 왜곡되게 이해되어지고 있는 북한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바르게 인식되게 하는 일을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심 없고 깨끗한 봉사를 통하여 그리고 헌신적인 봉사를 통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사랑하는 북한 동족들에게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말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져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우리의 피를 쏟아 부어도 기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의 사역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대북한 사업을 할 때 항시 이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고 순수하고 반듯한 자세로 일을 하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점점 더 북한 땅에서 왜곡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평양에서 드린 첫 번째 경건회 시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며 주기도문을 시작하면서 받았던 은혜와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첫 번째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사랑하는 북한 땅과 그곳에 사는 우리 동족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기를 위하여 늘 간절한 기도를 드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와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하여 하는 모든 사업과 행동을 통하여 사랑하는 북한과 북한의 주민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두 번째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입니다. 일주일 동안을 평양에 머므르면서 함께 동행하는 북한의 참사에게 ’당신은 우리들이 왜 이와 같은 일을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는 저들에게 저는 그 이유와 목적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북한에 있는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말씀과 뜻대로 살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가 나름대로 이렇게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단 하나 우 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기 위함이다. 우리는 부족하여 서로 싸우고 그 동안 서로 원수와 같이 살아왔지만 하나님께는 남과 북이 다 똑같은 한 하나님의 자녀이시다. 하나님은 남과 북이 서로 하나가 되고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뜻으로 비유하여 설명을 하니 이해가 빠른 듯 싶었습니다. 그밖에 더 좋은 설명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설명을 했습니다만 한민족복지재단의 대북한 사업의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나름대로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돕고 섬기는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북한과 북한의 주민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저들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저들을 섬기고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저들을 섬기고 저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한과 남한의 사람들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똑같이 북한과 북한의 동포들을 사랑하십니다. 북한과 북한의 동포들이 어렵게 되었을 때 남한과 남한의 사람들이 북한과 북한의 동족을 섬기고 함께 나누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그 분명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고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평양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에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말 저희들의 적은 수고와 희생을 통하여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의 헌신과 열심을 통하여 북한에 이루어지게 된다면 그와 같은 일을 통하여 북한 땅에 다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본시 기독교가 왕성하였던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평양과 정주와 선천과 같은 곳들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는 두 곳의 교회 밖에는 없습니다. 봉수 교회와 칠곡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그리하여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을 뜻이 북한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면 다시 북한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회복되게 될 것이고 우리 북한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아름다운 명예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회복되고 북한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회복하게 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북한의 교회를 통하여 북한에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남한의 교회를 통하여 남한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북한의 교회를 통하여 북한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남한의 교회를 통하여 남한을 축복해 주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북한에 다시 재현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와 같은 역사가 북한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남한의 교회와 북한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 세계와 세계교회를 섬기게 된다면 세계는 우리 남한과 북한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교회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세 번째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입니다. 오늘날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처럼 구체적인 간절한 기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최근 몇 년 동안 홍수와 가뭄의 피해로 말미암아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7월 11일날 평양에 도착을 하였었는데 그 전날 단비가 내렸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단비가 오기 전 가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50년만의 가뭄이라며 걱정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북한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하여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굶주림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에 북한을 위한 기도는 당연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다 저들의 먹을 것을 해결해 줄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것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면 5천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이 오늘도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으로만 기도하지 아니하고 오병이어를 하나님께 내어놓는 행동으로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이번에 저희들은 평양에 한국의 유명한 제빵 회사의 도움을 받아 평양에 제빵 기계를 설비하고 하루 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아주 크고 영양가가 높은 빵을 생산하여 배급하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 명의 어린이에게 한 달분의 빵을 공급하는데 약 5천원 정도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5 천원이면 한 명의 어린이에게 한 달분의 빵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성공하면 이북의 12개 도를 비롯하여 각 지방마다 이와 같은 시설을 하고 북한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빵을 공급해 나가는 일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북한의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말로만 기도하지 아니하고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우리의 오병이어를 내어놓으면서 행동으로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몸으로 오병이어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북한의 동포들에게도 일용한 양식을 허락해 주시고 12 광주리가 남는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평양 호텔 방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 뜨거웠던 마음의 감동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는 지금 우리가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 빠트려서는 아니 될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네 번째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입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서로 피맺힌 원한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북한에는 남한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남한에는 북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남한과 북한에는 그 죽임을 당한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정확한 표현으로 서로 원수입니다. 말 그대로 피맺힌 한이 있는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도 중에 하나는 당연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이어야만 합니다. 피맺힌 원한을 푼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서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간절하게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줄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약품과 의료장비를 보내는 일보다 더 힘들고 더 중요한 일은 서로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평양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기도할 때 온몸에 감전된 듯 흘렀던 전율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되 저들은 불행히도 아직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먼저 이 일과 기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다섯 번째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남과 북이 하나되는 일에 있어서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좋아하고 환영하는 것 같으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와 같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은 남과 북 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미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일본도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할 리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근히 남과 북이 하나되는 것을 경계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거의 불가능하다 싶으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막아 주시지 않으신다면 남과 북은 얼마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고 악에게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기도문을 통하여 배우는 북한을 위한 기도는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어느 기도보다도 이 기도가 북한을 위하여 가장 절박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훌륭한 지도자로 또는 국부로 추앙하고 섬기는데는 의의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자기들의 주석과 위원장을 훌륭한 지도자로 믿고 따르는데 우리가 기다 아니다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다시피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은 훌륭한 지도자 이상의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신격화 되어 있습니다. 북한에는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이 몇 년째 홍수와 가뭄을 격으면서 재앙을 격고 있는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북한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기도를 간절히 그리고 아주 열심히 하여야 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평양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 이 주기도문이야말로 완벽한 북한을 위한 기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주기도문을 암송하실 때마다 북한을 생각하며 암송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주기도문을 기억해 주시고 주기도문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북한을 위한 기도/ 마6:9-13
북한을 위한 기도 마6:9-13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최근에 북한 평양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고향이 평북 선천이었기 때문에 저의 평양 방문을 남다른 감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은혜가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묵고 있는 호텔에서 같이 간 일행들이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었던 경건회 시간은 참으로 깊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특히 저는 첫날 아침 예배를 마치면서 함께 외웠던 주기도문에서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이 바로 오늘 우리가 북한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가장 완벽한 기도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북한을 위하여 그리고 통일을 위하여 많은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남북정상 회담 이후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지만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평화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50년간은 서로 주적관계로 대치하고 살아왔던 남과 북이 갑자기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또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 보다 더 깊은 그리고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막연한 기도가 아니라 추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북한과 평화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를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한민족복지재단이라고 하는 단체의 이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였었습니다. 한민족복지재단은 북한에 의료장비와 약품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식품을 지원하는 단체입니다. 지난 한해만도 제약회사와 교회들의 협조를 받아 약 천 만불이 넘는 장비와 약품 그리고 식품을 지원하였습니다. 이번에 평양을 방문한 것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더 효과적으로 북한을 지원할 수 있을까를 의논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방문하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 일에 참여하면서 왜 이 일을 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 일을 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하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주기도문에서 찾았습니다. 주기도문은 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제 자신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기도문이 지금 우리가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려고 할 때 가장 구체적인 완벽한 기도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첫 번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입니다. 저는 평양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순간 북한을 위한 사역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 동안 하나님의 이름은 잘못 왜곡되게 이해되어져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기독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거룩하고 명예스러운 이름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 주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들의 삶과 행동을 통하여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들의 거짓 없고 순수한 그리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행동과 활동을 통하여 우리는 북한 땅에서 다시 하나님과 기독교에 대한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잘못 왜곡되게 이해되어지고 있는 북한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바르게 인식되게 하는 일을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심 없고 깨끗한 봉사를 통하여 그리고 헌신적인 봉사를 통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사랑하는 북한 동족들에게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말해서 부정적으로 인식되어져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우리의 피를 쏟아 부어도 기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의 사역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우리는 대북한 사업을 할 때 항시 이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고 순수하고 반듯한 자세로 일을 하여야만 합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점점 더 북한 땅에서 왜곡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평양에서 드린 첫 번째 경건회 시간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며 주기도문을 시작하면서 받았던 은혜와 감동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첫 번째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입니다. 사랑하는 북한 땅과 그곳에 사는 우리 동족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있기를 위하여 늘 간절한 기도를 드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와 그 기도를 이루기 위하여 하는 모든 사업과 행동을 통하여 사랑하는 북한과 북한의 주민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두 번째는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입니다. 일주일 동안을 평양에 머므르면서 함께 동행하는 북한의 참사에게 \\\'당신은 우리들이 왜 이와 같은 일을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는 저들에게 저는 그 이유와 목적을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북한에 있는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말씀과 뜻대로 살기 위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가 나름대로 이렇게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단 하나 우 리가 섬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기 위함이다. 우리는 부족하여 서로 싸우고 그 동안 서로 원수와 같이 살아왔지만 하나님께는 남과 북이 다 똑같은 한 하나님의 자녀이시다. 하나님은 남과 북이 서로 하나가 되고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뜻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뜻으로 비유하여 설명을 하니 이해가 빠른 듯 싶었습니다. 그밖에 더 좋은 설명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설명을 했습니다만 한민족복지재단의 대북한 사업의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나름대로 완벽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돕고 섬기는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북한과 북한의 주민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저들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저들을 섬기고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저들을 섬기고 저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한과 남한의 사람들을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똑같이 북한과 북한의 동포들을 사랑하십니다. 북한과 북한의 동포들이 어렵게 되었을 때 남한과 남한의 사람들이 북한과 북한의 동족을 섬기고 함께 나누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그 분명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우리의 최선을 다하여야 하는 것이고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평양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에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말 저희들의 적은 수고와 희생을 통하여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의 헌신과 열심을 통하여 북한에 이루어지게 된다면 그와 같은 일을 통하여 북한 땅에 다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은 본시 기독교가 왕성하였던 나라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평양과 정주와 선천과 같은 곳들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는 두 곳의 교회 밖에는 없습니다. 봉수 교회와 칠곡 교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그리하여 북한을 향하신 하나님을 뜻이 북한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면 다시 북한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회복되게 될 것이고 우리 북한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아름다운 명예를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회복되고 북한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회복하게 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북한의 교회를 통하여 북한에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실 것입니다. 남한의 교회를 통하여 남한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북한의 교회를 통하여 북한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남한의 교회를 통하여 남한을 축복해 주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북한에 다시 재현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반드시 그와 같은 역사가 북한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남한과 북한 그리고 남한의 교회와 북한의 교회가 하나가 되어 세계와 세계교회를 섬기게 된다면 세계는 우리 남한과 북한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교회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세 번째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입니다. 오늘날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 이처럼 구체적인 간절한 기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최근 몇 년 동안 홍수와 가뭄의 피해로 말미암아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난 7월 11일날 평양에 도착을 하였었는데 그 전날 단비가 내렸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단비가 오기 전 가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50년만의 가뭄이라며 걱정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북한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하여 지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굶주림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에 북한을 위한 기도는 당연히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이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굶주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굶주리고 있는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다 저들의 먹을 것을 해결해 줄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것을 하나님께 내어 놓으면 5천명이 먹고도 12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이 오늘도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으로만 기도하지 아니하고 오병이어를 하나님께 내어놓는 행동으로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이번에 저희들은 평양에 한국의 유명한 제빵 회사의 도움을 받아 평양에 제빵 기계를 설비하고 하루 만 명의 어린이들에게 아주 크고 영양가가 높은 빵을 생산하여 배급하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한 명의 어린이에게 한 달분의 빵을 공급하는데 약 5천원 정도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5 천원이면 한 명의 어린이에게 한 달분의 빵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성공하면 이북의 12개 도를 비롯하여 각 지방마다 이와 같은 시설을 하고 북한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빵을 공급해 나가는 일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북한의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말로만 기도하지 아니하고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우리의 오병이어를 내어놓으면서 행동으로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몸으로 오병이어의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북한의 동포들에게도 일용한 양식을 허락해 주시고 12 광주리가 남는 역사를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평양 호텔 방에서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할 때 뜨거웠던 마음의 감동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는 지금 우리가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 빠트려서는 아니 될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네 번째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입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서로 피맺힌 원한이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북한에는 남한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남한에는 북한에 의해 죽임을 당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남한과 북한에는 그 죽임을 당한 가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정확한 표현으로 서로 원수입니다. 말 그대로 피맺힌 한이 있는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도 중에 하나는 당연히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이어야만 합니다. 피맺힌 원한을 푼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서로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간절하게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줄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약품과 의료장비를 보내는 일보다 더 힘들고 더 중요한 일은 서로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평양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기도할 때 온몸에 감전된 듯 흘렀던 전율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되 저들은 불행히도 아직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먼저 이 일과 기도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기도문이 가르쳐 주는 북한을 위한 기도의 다섯 번째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입니다. 남과 북이 하나되는 일에 있어서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좋아하고 환영하는 것 같으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와 같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은 남과 북 밖에는 없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미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일본도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할 리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근히 남과 북이 하나되는 것을 경계하고 방해하는 세력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거의 불가능하다 싶으리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막아 주시지 않으신다면 남과 북은 얼마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고 악에게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주기도문을 통하여 배우는 북한을 위한 기도는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어느 기도보다도 이 기도가 북한을 위하여 가장 절박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을 훌륭한 지도자로 또는 국부로 추앙하고 섬기는데는 의의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자기들의 주석과 위원장을 훌륭한 지도자로 믿고 따르는데 우리가 기다 아니다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다시피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은 훌륭한 지도자 이상의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신격화 되어 있습니다. 북한에는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게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북한이 몇 년째 홍수와 가뭄을 격으면서 재앙을 격고 있는 이유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북한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는 기도를 간절히 그리고 아주 열심히 하여야 하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저는 평양에서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 이 주기도문이야말로 완벽한 북한을 위한 기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주기도문을 암송하실 때마다 북한을 생각하며 암송해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북한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주기도문을 기억해 주시고 주기도문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소의 풀을 먹는 사자/ 북한을 다녀와서/ 사11:6-9/ 2000-10-01
소의 풀을 먹는 사자/ 북한을 다녀와서 사11:6-9 한완상 무릇 여행이란 자기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고 조용히 그러나 깊이 반성해 보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여행은 값진 인생 경험입니다. 여행에서 자기성찰을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여행의 참 맛과 멋을 모르는 사람이지요. 인생을 하나의 여행으로 본다면, 사람다운 사람일수록 자기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새롭게 깨닫고 배우면서 앞날을 더 밝고 맑게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번에 북한을 돌아보면서 내 믿음이 형편없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북한 동포들은 그들 나름대로 믿는 바를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믿음과 실천이 함께 가는 삶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믿는 바는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바와는 아주 다르지요. 그러기에 信言一致가 저를 더욱 부끄럽게 했습니다. 특히 북한의 열악한 경제 형편 속에서도 그들 나름의 을 믿고 그들의 표어대로 를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사도 바울이 권면한 것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지를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체로 북한 사회는 두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항일유격대 정신으로 살아가는 유격대 국가의 특징입니다. 다른 하나는 神政國家 또는 信政國家的인 특징입니다. 이같은 특징은 북한 동포들로 하여금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자면, 북한은 하나의 거대한 교회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신자들이 교회가 주관하는 기도회나 수양회에 즐겁게 자발적으로 참여하듯, 북한 주민들도 각종 집회에 그들 나름의 믿음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쁨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북한의 집단주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는 일은 경솔한 것 같습니다. 남북한 교차관광은 남북장관회의의 합의사항이었습니다. 이 합의에 따라 저는 백두산과 그 주변을 닷새간 둘러보았고, 묘향산에 일박하면서 묘향산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웅장함의 향기를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평양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이 여행기간동안 예술인단의 공연도 보았습니다. 특히 자연 부락을 지나면서 감자 캐는 농부들,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 주민들, 순례지에게 놀이하고 있는 학생들을 자유롭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모두 열린 마음으로 저희들을 맞아주었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우리 일행 중 어떤이들이 그들의 금기사항을 거론해도 안내인들은 인내하면서 그것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들이 신성한 곳으로 믿는 온갖 순례지에서 우리 일행은 자유롭게 행동했습니다. 그래도 북쪽의 안내원들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거대한 교회 같은 것일까요? 그것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보다 더 강한 믿음을 지닌 교인들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남과 북이 각기 자기 식으로 살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으며, 이것을 위해 예수 따르미들은 어떤 각오를 해야 할까요? 먼저 제 눈에 확 띄는 북한의 글귀, 여기 저기 중요한 곳에 걸려있는 표어가 있었습니다. . 이 글귀를 보자 저는 마태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저절로 상기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러날에 걸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지요. 그리고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습니다.(마태 28:20)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사망했으나, 북한동포의 마음속에는 살아있을 뿐 아니라, 항상 그들과 함께 있어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는 믿음이 확고한 듯 했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랐듯이, 그것도 온갖 환난과 곤경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참소망으로 삼고 즐겁게 살았듯이, 오늘의 북한 동포도 그들 나름의 독특한 신앙으로 웃으며 험난한 길을 걸어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남쪽의 예수 따르미의 믿음이 그들 믿음 보다 나을까를 저는 반성해 보았습니다. 북한사회는 이 같은 믿음과 가치를 아주 어릴 때부터 학습시키고 있습니다. 초기 사회화 과정에서 부터 이 같은 확실한 가치를 어린이들은 수용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삶의 목적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라는 인식을 교육자들이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양 소년 궁전 같은 곳에는 하루에 5천명의 어린이들이 자기의 소망과 자질을 살리는 온갖 과외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가가 그 모든 경비를 부담하지요. 그만큼 국가와 당, 그리고 지도자에 대한 경외심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같은 초기교육이 중고등학교 수준을 거쳐 대학에 까지 뻗어나고 있습니다. 대학 이후에도 끊임없는 믿음 교육이 사회교육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김일성 대학을 두차례 지나가면서 퍽 인상적인 것은 대학의 고층 건물 높은 곳에 김일성 지도자가 영원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최고 학부인 김일성 대학도 긍정적인 뜻에서 신과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쪽의 그 어느 신과대학 보다 더 뚜렷한 신념과 목표를 구현하는 있는 세속적 신학대학일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정보는 넘쳐 흐르는데 뜻있는 메시지는 고갈되어 가는 듯 합니다. 특히 남쪽에는 그러합니다. 공교육이나 사교육이나 간에 나쁜 정보가 좋은 정보를 밀어내는 듯 합니다. 정보의 그래샴 법칙이 통용되는 듯 합니다. 게다가 의미있는 메시지는 점점 더 줄어드는 듯 합니다. 그래서 퍽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그들 나름의 메시지는 너무 많은 듯 했습니다. 교육은 그들 식의 메시지로 가득 찬 듯 했습니다. 이것이 교육현실에 있어서 남북간의 차이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서 저의 믿음이 형편없이 약하구나 하고 느끼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참 를 만들어 갈수 있을까를 고심했습니다. 우리 남쪽 광광단은 대체로 지도자급의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도 그 중에는 남북을 하나의 로 보지 못하는 듯한 태도를 가끔 보여주는 분도 있었습니다. 예수 따르미들이 남과 북을 하나의 민족으로 참된 로 엮어가는 일에 앞장서야 할 터인데, 과연 우리가 그런가를 반성해 보면서 성서는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주고 있는지를 찬찬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여기서 선지자 이사야의 꿈을 다시 생각하게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자기의 삶의 정황이 불신, 대결, 증오의 현실이었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민족간, 계급간의 처절한 마찰이 심각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 속에서 그는 정의와 평화가 구현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은 이사야 선지자 개인의 꿈만이 아니라, 그 이스라엘이 지향해야 할 민족의 비젼이자, 하나님 당신의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이리같은 인간과 어린 양같은 인간이 함께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사는“ 꿈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뿐입니까.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누우며 사자가 소 처럼 풀을 먹는“ 그러한 꿈을 꾸었습니다.(이사야 11:6-9). 표범과 새끼와 염소는 결코 가 될 수 없습니다. 새끼 염소에게는 표범이 일 뿐이지요. 이 둘 간에는 불신과 증오가 항상 끼어있습니다. 초식동물은 항상 육식 동물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들판에서 물을 먹는 사슴은 조그마한 소리에도 화다닥 놀라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면 육식동물의 눈은 예외없이 무섭고 잔인합니다. 그러기에 이 둘 사이엔 죽음과 죽임이 있을 뿐, 평화는 없습니다. 하기야 지난 반세기동안 남과 북간의 관계가 그러했습니다. 냉전불신, 냉전증오, 냉전대결로 남과 북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의 소중한 자원을 소진시켜 왔습니다. 같은 동족인데도 말입니다. 육식의 존재와 초식의 존재로 나눠지지 않는 동족인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비극의 상황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이사야의 꿈같은 힘, 바로 그 꿈의 힘으로 극복해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꿈 속에 참 를 만들 수 있는 지혜가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다음의 메시지가 바로 그 지혜입니다. “사자가 소 처럼 풀을 먹는다“ 이 꿈은 강자인 사자가 약자인 소의 主食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약자인 초식동물이 강자인육식동물의 주식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곧 강자가 약자의 주식을 먹어야 비로소 둘간의 관계가 아름답게 변할 수 있습니다. 다른 존재의 피를 흘리기까지 하면서 자기 배를 채우는 강자의 삶을 전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易地思之나 易地感之의 수준을 뛰어 넘어 易地食之 해야 함을 뜻합니다. 약자의 주식(主食)을 먹음으로써 강자는 자기의 체질, 자기의 삶, 자기의 관행, 자기의 이기적 가치를 뒤집어야 합니다. 폐기해야 합니다. 바로 이같은 이사야의 꿈은 약한 원수를 닮고 사랑하는 꿈이기도 합니다. 약한 상대방의 좋은 점을 수용하여 내 행동과 삶을 고칠 수 있을 때 참 우리는 형성되는 것입니다. 잔인한 육식의 삶을 비워야만, 풀 먹은 존재와 참된 우리, 참된 공동체, 참된 하나를 이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참 우리를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친히 보여주신 분이 아닙니까? 더더군다나 예수님은 남의 피를 흘리게 하는 강자나 가해자가 아닌데도, 스스로 자기를 철저히 비워 진정한 를 구현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이 같은 예수의 자기 비움의 삶을 실천한다면 흡수 통일이나 적화통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일에 끼어들 수가 없는 법이지요. 저는 감옥에서 개마고원을 생각하며 남북의 하나됨을 꿈 꾼 시인이요, 목사인 문익환님의 을 바로 그 개마고지에 있는 갑산지역에서 생각했습니다. 보천보가 있는 곤장덕 언덕에서 멀리 백두산의 그 은은한 웅장함을 가슴에 품으며 문 목사님의 시를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의 아들이 바로 내 곁에 있어 아버지의 그 시를 다 욀 수 있느냐를 확인 한 뒤 우리 관광단과 북쪽 안내원들 앞에서 문호건씨를 소개하고, 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문 목사님의 꿈 역시 이사야의 꿈을 바탕삼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155마일 휴전선을 해뜨는 동해바다 쪽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오르다가 푸른 바다가 굽어보이는 산정에 다다라 국군의 피로 뒤범벅이 되었던 북녘 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 땅 한 삽씩 떠서 합장을 지내는 꿈, 그 무덤은 우리 5천만 겨레의 순례지가 되겠지. 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다보면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들이 제대로 돌아 산이 산으로, 내가 내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그도 아니면 이런꿈은 어떻겠소? 그 무덤 앞에서 샘이 솟아 서해바다로 서해바다로 흐르면서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노는 꿈,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나는 꿈,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 말이외다.“ 나는 이 시에다가 이사야의 꿈을 하나 더 보태고 싶었습니다. “벗들이여! 이런 꿈은 어떻겠소? 사자가 소의 여물을 먹는 어처구니 없는 꿈 말이외다.“ 바로 이러한 꿈의 힘으로 냉전체제속에서 사팔뜨기가 되어 현실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위선자가 되어 언행일치도 이루지 못하는 우리 기독교 신자들이 거듭나야 하고 이태까지 북한동포를 주적으로 미워하고 북한체제를 악마화 했던 냉전관행이 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 꿈이 명령하는 대로 상대방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평화스러운 참 우리가 한반도 조국 땅에 우뚝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따르미들이 사자가 소의 여물을 먹듯 자기 체질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사자가 소의 여물을 먹는 꿈이 현실이 될 때, 비로소 한반도 남북간에는 하나님의 샤롬(shalom)이 저 한강물 처럼, 저 대동강물 처럼 여유있게 흐르게 될 것이고, 라는 참 공동체의 배가 그 위를 자유롭게 드나들 것입니다.
자기 비움의 힘/ 두번째 북한을 다녀와서/ 빌2:1-18/ 2000-11-05
자기 비움의 힘/ 두번째 북한을 다녀와서 빌2:1-18 두 번째 북한 방문은 첫 번째 못지 않게 큰 깨달음을 준 값진 여행이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그들의 국경일이요 명절인 당 창건 55돌 행사에 남쪽의 여러 사회단체들과 개인들에게 행사에 참관해 달라고 초청을 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남의 냉전 보수언론은 즉각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북한의 정치행사에 참가하는 것은 그들의 이른바 통일전선전략에 휘말려드는 것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이 같은 반응에 정부는 흔들렸습니다. 6·15공동선언을 이룩해 낸 현정부가 이렇게 흔들려 이번 행사참가를 불허하겠다고 하니까, 10월 5일 평양당국은 이 같은 우리정부의 태도를 염려하는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화해협력의 흐름을 타고 변화하고 있는데도, 이번 초청에 불응하도록 하는 서울 당국의 태도나 냉전수구언론을 “시기도 때도 분간할 줄 모르고 하는 한심한 소리“라고 일갈했습니다. 저도 갈까말까 퍽 망설였습니다. 저의 개인적 신변 안전을 먼저 생각하면 안가는 것이 좋을 듯해서 가지 않기로 했다가, 다시 한번 역사적 이 흐름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더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하고 스스로에게 가야 한다고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이 저도 갈팡질팡 했으나, 마침내 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제가 이렇게 마음을 굳힌데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작용했습니다. 민노총, 전국연합, 민가협등 남한에서 가장 뚜렷한 소신을 가지고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단체들이 평양에 가기 위해 김포 비행장에 모였습니다. 이미 북한이 보낸 고려민항기는 김포공항에 도착했었습니다. 그런데 몇몇 단체들의 장들이 정부 방침에 의해 방북 할 수 없게되자 공항에서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부 당국은 행정 편의주의 잣대로 이 소란을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슬아슬하게 이 위기를 넘기고 모두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이 두려운 여행을 바로 그 두려움과 어려움 때문에 해내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평화를 위해 모험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어 이번 여행을 뜻있게 마무리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이번 방북을 통해 저는 크게 두 가지를 참관했고 또 보았습니다.. 하나는 외양적 행사였습니다. 군인과 학생들의 열병과 주민들의 퍼레이드, 집단야회춤과 횃불시위, 그리고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 바로 그 외양적 거대 행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지상 최대의 쇼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는 엄청난 규모의 행사였고 절도 있는 집체주의의 예술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는 짜임새 있는 집단행위, 절도 있게 집행되는 집체운동이었습니다. 모두 감탄하는 듯 했습니다. 백만명의 참가자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였던 거대한 매스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았던 더 값진 모습은 이러한 거대한 외양적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당국자들이 우리의 처지를 염려해 주는 마음, 그 내적 모습을 뚜렷이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우리와 易地思之하고 易地感之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술적인 의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여행을 하고 있는 저희 남측 평화참관단이 돌아가서 어려움을 겪을까봐 염려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 염려는 일종의 이라는 compassion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우리 참관단들의 행위가 인 것으로 오해 받을만한 것은 남한 정부의 입장을 어렵게 한다고 해서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김일성주석의 시신이 놓여 있는 금수산 인민궁전에 참배하고 싶어하는 일부 참관단원들의 소망을 북한 당국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남쪽 정부의 어려움을 덜어 주려는 배려 때문이지요. 게다가 북한 당국은 이 같은 참배가 자칫 6·15공동선언을 훼손하게 되지 않을까를 염려했습니다. 이것은 6·15선언 이후 북한은 그 전에 견주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은 변하는데, 우리 남한이 오히려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북한의 不變을 신화처럼 믿고 있는 남쪽의 냉전수구세력들은 자기들의 不變을 확고하게 지키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남북간의 화해협력으로 민족사 흐름이 마침내 세계사의 탈냉전 흐름과 합류하게 된 것을 그들은 두려워하고 반대한다는 뜻입니다. 不變은 북한의 특징이 아니라 이제는 남한의 냉전세력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이 화해협력 전략으로 크게 바꿔지고 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번 우리 방북을 비난했던 수구언론이 바로 이 같은 북한의 통일전선전략에 초점을 맞춰 비난했는데, 그들의 비난의 화살은 전혀 과녁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새 역사의 흐름을 놓친 것이지요. 저희들이 평양에 머물고 있는 동안 두 가지 희소식이 날아왔습니다. 하나는 10·12 북미공동선언이고 또 하나는 DJ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 같이 들렸던 것은 이 두 소식이 6·15가 터준 화해협력의 물꼬를 더욱 세차게 흐르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환송만찬때 참관단장으로서 답사를 하면서 6·15와 10·12는 한반도 평화의 쌍둥이 선언이라고 감히 규정했습니다. 이번 두 번째 방북을 통해 저는 북한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했고, 북한 당국의 易地思之, 易地感之의 자세를 또한 확인했습니다. 이 같은 확인을 통해 우리 예수 따르미들은 어떤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먼저 이번 참관단의 방북을 불허하려고 했을 때 평양 방송이 했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가 이렇게 변했는데····명절을 같이 쇠자는 것 마저 라고 하니, 그것이야말로 시기도 때도 분간 할 줄 모르고 하는 한심한 소리다.“ 저는 이 따끔한 지적 속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듯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위선적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 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는가?“라고 탄식하신 적이 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나게 되면 예수살렘 성전의 그 웅장한 돌들이 무너지게 될 것을 예측하신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율법주의에 함몰되고 종교적 근본주의에 사로 잡혀 독선에 빠져있던 당시 종교지도층의 을 나무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가 냉전이후 시대로 들어갔고, 이제 6·15선언을 통해 한반도도 냉전이후 시대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바로 이런 카이로스의 때에 남한의 냉전세력은 시기도 때도 분간 할 줄 모르는 한심한 작태를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한반도에 사는 예수 따르미들은 지난 반세기간 같은 민족을 더욱 미워하고, 더욱 불신하고, 더욱 박살내야 한다고 부추겼던 냉전체제와 냉전가치를 누구보다 먼저 극복해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평화를 이 냉전의 외딴섬 한반도에 우뚝 세우는 복음사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6·15선언을 하나님의 평화를 이룩하려는 선언, 바로 복음적 선언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저는 북한 당국이 우리와 역지사지하고 역지감지 하는 모습을 보고 의 메시지를 새삼 다시 반추해 보았습니다. 북한 보다 경제적으로 수십 배 더 잘 사는 남쪽이 사자일 터인데, 우리가 못사는 북측 곧 소의 입장에 서서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기뻐해 야 할 터인데 입장이 바꿔졌다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역지사지는 하나님의 compassion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신 예수님의 삶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예수께서 병든 자, 소외당한 자, 나그네, 과부, 고아, 이방인등 변두리 인생과 역지사지, 역지감지 했던 사실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 남쪽이 또한 북쪽과 먼저 역지사지해야 하는데, 이번 여행에서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역지사지를 받게 되니까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자가 풀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좀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풀을 먹는다는 것은 피 흘리는 일을 중단한다는 뜻입니다. 사자가 약한 초식동물을 주식으로 삼을 때 반드시 피를 흘리고, 죽이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이 같은 피 흘리는 죽임이 일상화됩니다. 그런데 사자가 풀을 먹는 순간부터 피 흘림은 중단되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풀을 먹게 되면 반드시 소처럼 반추해야 합니다. 씹고 되씹어내야 합니다. 이것은 가해자, 피 흘리기 좋아하는 세력이 자기반성을 계속함을 뜻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반성, 끊임없는 회개를 뜻합니다. 사자가 소의 여물을 먹게 되면 이 같은 메타노이아(회개)를 거듭 거듭 하면서 다른 존재들과 평화의 관계, 협력의 관계를 맺어나가야 합니다. 소가 반추할 때 소는 눈을 편안하게 감습니다. 외부의 적이나 먹이감에 대해 시도 때도 없이 사나운 눈알을 굴리는 육식동물과 다릅니다. 소가 여물을 먹고 씹고 되씹는 시간은 편안한 평화의 시간입니다. 눈을 부라리며, 증오하며, 대결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바로 이점에 주목하면서 나는 이번 북한 행사에서 부족한 점 한가지를 꼭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예수님의 삶과 연결시켜 보고 싶습니다. 당 창건기념일에 우리가 보았던 북한의 집단사열, 집단체조, 집체예술 공연이 모두 엄청난 규모의 인간이 동원되어 이루어 낸 대규모의 힘을 과시한 사건이었습니다. 카드섹션은 마치 맘모스 스크린에 나타난 컴퓨터 그래픽 같이 정교하게 여겨지게도 했습니다. 그 대규모 인간의 절도 있는 행위는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대규모 집단행위와 시위는 강력한 외적(外敵) 또는 주적(主敵)에 대한 집단적 증오의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근본주의 교회가 왕 마귀에 대항하여 교인들의 믿음을 끊임없이 고조시키는 것과 같이 그들은 외세, 제국주의적 공격을 방어하고 격퇴하기 위하여 기와 같은 거대한 시위와 단합을 보여주었습니다. 북한 사회가 일종의 기능적 종교(functional religion)같고 거대한 교회 같은데, 그 종교와 교회의 바탕이 바로 집단적 증오를 통한 단합 같았습니다. 과연 역사적 예수님은 어떠했을까요? 먼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결코 대중 추수주의자(populist)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의 치유, 나눔, 격려, 가르침 등에 반했던 군중이 모여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했을 때, 주님은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퇴수) 조용히 홀로 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았던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려 했을 때 오히려 편히 가서 그 기쁜 소식을 증거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결코 다수의 추종자들을 활용하거나 조직하거나 조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이용하여 거대한 교회를 세울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점에 주목하게 되면 집체주의 시위가 예수께서 선호하신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한국의 거대교회들과 예수 선교간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집체주의적 단합을 토대로 거대교회를 더욱 확장해 가며 그것도 자기 대에 끝나지 않고 다음대로 세습시키려는 일부 한국 거대교회는 북한의 수준을 도덕적으로 뛰어넘지 못하는 듯 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본질은 외부의 원수나 주적이나 마귀에 대항하기 위하여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집체적 단합, 그것도 거대한 단합에 결코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자기를 철저히 비워서 남을 채워주시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제국주의를 박멸하기 위해 십자군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제국주의에 의해 박살이 나더라도 십자가를 지는 자기 비움의 실천이 바로 예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십자군을 거대하게 조직하는 전투적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면서 우리 모두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는 평화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이 같은 하나님을 김일성 광장에서, 능라도 5·1경기장에서 그리워했고 사모했습니다. 바라건대 하루 빨리 6·15선언을 통해 터져 나온 화해와 협력의 새 역사 흐름이 예수 따르미들의 되기 결단을 통해 더욱 세차게 흘러내리길 간원합니다. 이 흐름으로 냉전 빙벽은 완전히 녹아 없어지길 희망합니다. 그리고 참 힘은 집단적 증오에 기초한 거대한 집체적 단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움에서 나오는 것임을 우리 모두는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바로 그러한 참 힘을 증거해 주신 삶이었기에 우리 예수 따르미들도 그 증거를 다시 오늘 우리의 분단된 민족 상황에서 용기 있게 해 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이름이요 우리들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위한 잔치(Buffet, just for God!)/ 북한선교/ 롬11:1-12/ 2004-09-16
하나님만을 위한 잔치(Buffet, just for God!)/ 북한선교 롬11:1-12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것이 매우 위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다 드디어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게 됩니다. 저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자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되어 환난과 핍박의 상황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부흥을 하게 됩니다. 하루에도 수 천 명씩 회개하고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날마다 구원 얻는 사람의 수가 더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생명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교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교회는 생명력을 가지고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그로 인해 교회와 교인이 부흥하고 성장하게 될 때 언제나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초대교회에도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자마자 핍박이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교회의 핍박이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가해지기 시작하자 성도들을 그 핍박으로 인하여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핍박을 통하여 교인들을 흩으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붙기 시작한 성령의 불을 끄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계산 착오였습니다. 사탄이 초대교회와 교인들을 너무 우습게 보았습니다. 저들은 사탄의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졌으나 전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뭉쳐있을 때에도 강했지만 흩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강했습니다. 때문에 흩어져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불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들이 흩어져 가는 곳 마다 성령의 불이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에는 흩어지지 말고 모여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오히려 모여 있는 것 보다 흩어지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에 모여 있게 하셨고, 막상 저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핍박을 통하여 오히려 저들을 흩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흩음을 통하여 복음의 확산이 이루어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이와 같은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와 같은 역사가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 안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음은 남한보다 북한 쪽으로 먼저 들어 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북한이 남한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크고 빨랐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옛날 평양과 정주와 선천은 80% 이상이 교인이었으며 그와 같은 곳들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까지 불리었던 곳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부흥과 똑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합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오순절 날 성령 충만 함을 받은 후 일어났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부흥도 우리한국교회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1907년 대 회개운동 이후 일어났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은 길선주 목사님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일어나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죽은 친구의 재산을 정리해 주면서 그 중 얼마를 떼어 먹었다는 사실을 울면서 자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교인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의 죄를 울며 고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는 눈물바다가 되었고 저녁에 시작한 부흥회는 새벽까지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시작된 회개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전국의 교회가 똑같은 회개의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 때 우리 한국교회는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1907년 대 회개운동이라고 부릅니다. 1907년 대 회개운동 이후 우리 한국 교회는 대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와 똑같이 날마다 구원 얻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어 1907년 대 부흥운동이라고도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워야만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참된 모습을 갖게 될 때 교회는 언제나 부흥하고 성장하였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였을 때에도 계속해서 성령 충만 함이 계속되어져야만 하는데, 성장이 가져온 열매에 급급하여 회개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되면 교회는 부패하게 되어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통하여 부흥과 성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결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과 결론입니다. 문제는 부흥과 성장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계속적인 성령충만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회의 사이즈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이즈와 관계없이 늘 성령의 충만함을 통하여 교회의 건강을 유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사이즈가 작으면 건강할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생명력은 사이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충만 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에서와 우리 한국교회에서 보여 진 바와 같이 성령충만함을 통하여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을 때 언제나 부흥과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교회가 오순절 날 성령 충만을 통하여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있었듯이 우리 한국교회도 1907년 대 부흥운동이 있은 후 그에 못지않은 핍박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910년 한일합방을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긴 후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통하여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려야만 하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교회에 대한 핍박을 끝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평양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점령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왜정시대 때 신사참배보다 더 심한 박해가 주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이북의 많은 사람들이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 올 수밖에 없었는데 사람들은 그냥 자유를 찾아 내려온 것이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그 자유는 그냥 자유가 아니라 신앙의 자유이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예루살렘 핍박 이후 교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던 것과 똑같은 일이 우리 한국교회에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섬긴지 불과 반세기 만에 남한의 교회는 세계선교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성장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남한이 복음화 되면서부터 남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예외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언제나 보면 기독교신앙을 가진 개인과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의 중심이 북한에 있었을 때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 보다 월등하다시피 앞서 가고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북한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옮겨오게 되었을 때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남한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풍성함이 남한 교회의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남한이 격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이 우리 남한 교회의 타락과 부패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 남한과 남한교회는 북한과 특히 북한의 교회에 대하여 큰 빚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배울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상식으로는 공산화를 통한 핍박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이루어졌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식과 생각은 사도행전 초대교회 때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경우 모두 성령 충만 함을 받은 교회와 교인들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저들을 통하여 영육간의 복을 세상으로 펼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또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의 사명과 축복은 자기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잠시 동안의 고생과 핍박을 감수하면서라도 남을 잘 살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명을 위하여 우리 크리스천들은 비록 잠시 동안이라고는 하여도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한의 복음화를 위하여 북한을 영영히 버리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바울이 똑같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하여 답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핍박을 가하시고 이스라엘을 영영히 버리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바울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롬 11: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그 땅에 의인 7천명을 남겨 놓으셨으며, 이방의 부흥과 성장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 건강한 영적 시기가 일어나게 되어 드디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회복 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 되는 날 세상은 예루살렘의 핍박을 통하여 받은 세상은 그 보다 더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 리요> (롬 11: 11 - 12) 여러분 이 말씀은 오늘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남한 교회를 통하여 다시 북한과 북한 교회를 살리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북한과 북한 교회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단호히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북한에 북한과 북한을 살릴 의인 7천명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에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의인 7천을 하나님은 남겨 두셨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들이 북한 교회 회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한과 남한 교회의 풍성함이 저들로 하여금 건강한 영적 시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저들이 전보다 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결국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우리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의 덕을 보게 될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틀림없이 북한은 우리 보다 더 예수를 잘 믿는 나라가 다시 될 것입니다. 우리 남한 교회가 조금만 도와주면 (사실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빚을 갚는 것) 저들은 신속히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일어날 뿐 아니라 오늘 성경의 표현대로 충만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남한 교회는 다시 북한 교회의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저들을 통하여 다시 예수 믿는 것과 교회 섬기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쉽게 말해 북한 교회를 통하여 우리 남한 교회가 새로워 질 것입니다. 건강해 질 것입니다. 북한 교회는 우리 남한 교회를 통하여 살아나고, 우리 남한 교회는 북한 교회를 통하여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남한 교회와 북한 교회가 하나 되어 세상과 세계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루살렘과 같았던 평양을 치신 이유입니다. 잠시 사랑하는 평양을 치심으로 복음이 남한으로 흩어지게 되고 남한이 풍성해짐을 통해 다시 평양을 회복하시고, 평양의 회복을 통하여 남한 교회를 다시 한번 거듭나게 하시고, 남한과 북한의 교회를 통하여 세계와 세상을 축복하시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과 같이 예루살렘과 같은 평양이 핍박을 받지 않았다면 북한은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남한으로 내려 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이 계속 되어야 할 축복의 순환은 우리 남한 교회의 몫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적 육적 축복의 빚을 갚아야만 합니다. 북한과 북한 교회에 갚아야만 합니다.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저들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몫을 나누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많은 선교가 있지만 그 중에 우선순위를 두고 우리가 하여야 선교가 저는 바로 북한선교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가 빚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빚을 갚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몫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오래 전에 북한 선교에 헌신하고 계시는 남서울 은혜교회의 홍정길 목사님이 통일이 되려면 우리 재산의 1/3은 내 놓을 수 있어야만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수치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만큼의 희생이 있어야만 된다는 것을 역설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나름대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것을 원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할 마음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3년 후면 2007년이 되는데, 2007년은 앞에서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우리 땅의 오순절 사건이었던 1907년 대 회개운동과 대 부흥운동이 있은 지 꼭 100년이 되는 해 입니다. 2007년에 다시 평양에서 대 회개와 대 부흥의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1907년의 역사는 길선주 목사님에 의하여 촉발이 되었으나, 2007년의 역사는 우리 남한 교회가 촉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양은 예루살렘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버리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평양을 찾으실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염려와 회의를 버리고 북한에 투자하고 북한에 선교 해야만 합니다. 오늘 하나님을 위한 뷔페의 메뉴는 ‘북한 선교’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안에 북한선교를 위한 모임이 결성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활발하게 북한선교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북한선교의 대와 맥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기도하고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서울 높은뜻숭의교회)
하나님의 땅으로 회복되기 위하여/ 대하7:11-22 / 2008-06-28
하나님의 땅으로 회복되기 위하여 대하7:11-22 북한선교주일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 최다관객 순으로 5위 안에 2개가 같은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편 모두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보았습니다. <실미도>는 1100만 가량, <태극기 휘날리며>는 약 1200만 명이 봤습니다. 이 모두가 6.25 전쟁과 전쟁 이후의 분단의 아픔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그 전쟁으로 인해 많은 분들은 가족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헤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가족 가운데 월복한 사람들, 납북된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은 연좌제에 걸려 직장이나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대접받지 못했습니다. 분단이었기 때문에 독재가 가능했고,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첩으로 몰려서 죽었습니다. 이런 일은 남한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북한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살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58년, 남과 북으로 나뉘어진지 63년이 되었습니다. 반세기를 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숙제는 곧 통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날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6.25가 주는 역사적 교훈과 신앙적으로 주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늘 한 가지 큰 의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최초로 선교사로 파송하여 3차에 걸쳐서 세워진 교회를 통해 복음이 왕성했던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있었던 그 땅에 서머나 교회를 제외하고는 기둥이나 기초 등 자리의 흔적만 남겨둔 채 이슬람교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왜 복음이 먼저 들어와서 평양에 신학교가 제일 먼저 세워졌고, 부흥운동이 제일 먼저 일어났던 북한이 공산화 되어 아직도 복음을 제대로 믿을 수도, 전할수도 없는 동토의 땅이 된 채 통일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뭘까? 목사인 저로서도 정확한 해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은 해답을 알고 계십니까? 앞의 질문에 대한 이유는 해답을 할 수 없지만 북한에 복음이 쉽게 접근할 수 없고 믿음의 표현을 할 수 없는 현재적 상황은 정권의 기반이 신은 없다고 부정하며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주장하는 유물론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상이 변하지 않는 한 복음의 전달은 어렵고 교회의 재건도 어렵습니다. 지금 북한에 세워진 몇 개의 교회도 보면 신앙심에서 세워진 교회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정치적으로 필요해서 건축해 놓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까지도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을 믿고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사실 우리가 과거만 생각하면 지금의 하는 모든 일들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으며, 얼마나 많이 순교를 당했습니까? 특히 6.25전쟁이란 것은 이 민족의 아픔을 지금도 느끼게 만들고 있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역사적 전쟁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점점 잊혀져간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도 6.25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 불립니다. 이유는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끼여 상대적으로 관심과 조명을 많이 받지 못한 탓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현실이 미국은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어느 사이에 ‘잊혀진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월간지가 최근 서울의 초등학교 3-6학년 3,600여명을 상대로 한 조사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응답자의 37.8%가 6.25를 ‘조선시대에 일어난 전쟁’으로 알고 있는가 하면, 5명 중 1명꼴로 ‘일본과 우리나라가 싸운 전쟁’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41.7%는 남북한의 경계선을 휴전선이 아닌 38선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나이어린 학생들이라 하지만 전쟁시기와 상대방 등 가장 핵심적인 전쟁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역사교육의 현주소이며 이는 심각하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현재 초등학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2005년도 한 신문이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 남녀767명을 대상으로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 전쟁 발발연도를 1950년이라고 정확히 답한 사람은 66%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20대는 절반도 안 되는 46%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6.25를 ‘조국해방전쟁’ ‘통일전쟁’이라고 우기는 한 ‘해방’을 위해, ‘통일’을 위해 제2의 6.25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까?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놓고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고 한 메시지는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6.25를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피해가 너무도 컸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의 희생이 없다고 해서 무관심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6.25가 일어난 것은 1950년6월25일 당시 주일날 새벽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나흘이 지난 6월28일에 서울이 함락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이 주일을 선택하여 공격한 것만 보아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비신앙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일은 기독교의 안식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그 날을 선택하여 기습 공격한 그들의 정체는 공산주의입니다. 그리고 6.25 전쟁의 피해 자료를 보면, 국토의 80%이상 파괴되었고, 아군 전사자가 무려 19만 5천여 명, 실종된 자가 2만여 명, 그리고 100여만 명의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남북한 합치면 약 300만 명이고 민간인 희생자도 약 300만 명, 그래서 남북한 합해서 600여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사상을 당했습니다. 전쟁미망인만 약 20만 명, 전쟁고아가 10만 명이 길거리를 방황하고 오갈 데 없이 굶주리고 고통을 당하다가 죽어 갔습니다. 파괴된 가옥만도 60만 채가 넘고, 산업생산력의 80%가 파괴됨으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비극 중의 비극이었습니다. 헤어진 이산가족이 약 1천만 명이 되는 민족의 대 재난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피해를 보면 교회가 2,122개나 파괴되고, 535명의 목회자가 공산당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역사의 질곡을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이런 역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25장17-18절 말씀에 보면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괴롭혔던 아말렉이 행한 일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광야생활에서 지친 연약한 모습으로 행진할 때 괴롭혔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말렉이 행한 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출애굽기17장8절 이하에 있는 내용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행군을 하고 있던 중 아말렉이 침공을 했습니다. 그 아말렉과 맞서 싸울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장수로 전선에 배치하고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기도함으로 인해 승리하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쟁 승리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리신 특명이 하나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7장14절에 보면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서 그 제단 이름을 “여호와 닛시”즉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16절에 보면 백성들에게 “여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말렉을 당신의 영원한 적으로 단정하시고 대대로 싸우시겠다고 선포하셨는가? 그 이유는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백성이요, 하나님이 사랑하고 아끼는 백성들을 무참히도 짓밟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의 피곤함을 타서 낙오된 자들을 쳤다고 한 것을 보면 이들의 비겁하고도 악랄한 행위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오히려 더 처참하게 죽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적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남침할 때 남쪽에서는 전혀 방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한 것은 너무 비겁한 처사였습니다. 그리고 장교들이 휴가가고 외출나간 주일새벽4시에 전쟁을 개시한 것을 보면 얼마나 악날한지 모릅니다. 이런 북한에 과연 변화가 있는가? 다른 것 아무리 변해도 공산주의 사상이 변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를 망각하는 민족에게는 내일이 없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각인하여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그 역사의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기억이며 오늘에 남긴 자국을 보여주면서 반성과 성찰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과거에 한정된 사건들이 아니며 오늘과의 대화이며 다가올 혹은 다가오는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와 철학을 제공해줍니다. 이사야46장8-9절 말씀,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그런데 이사야43장18절에 보면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분명하게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 하신 말씀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면 “잊지 말라”와 “기억하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잊지 말아야 중요한 것은 명절로 만들어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월절입니다. 유대인은 지금도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들도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면 1939년부터1945년의 대전의 종전까지 나치 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명의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 있는데, 그 기념관의 이름이 “야드 바심”입니다. 히브리 말로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우려가 되는 것은 전쟁을 외곡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설마 공격하겠느냐’‘설마 동족인데 총부리를 겨누겠느냐’고 말합니다. 동족은 안해도 공산주의는 합니다. 공산주의사상에 물들면 형제도 부모도 안중에 없었던 것을 우리는 해방이후 좌익과 우익간의 분쟁 속에서 얼마든지 알 수 있습니다. 전쟁이란 어떤 명목으로도 좋은 전쟁은 없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B.Franklin)은 “ 이세상에 좋은 전쟁이란 있을 수 없고 나쁜 평화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인간들은 전쟁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인류 역사가 전쟁의 역사입니다. 성경을 보아도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전쟁사를 통하여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북한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실 것인가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북한도 아말렉과 같은 성격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을 끝까지 대적할 것이며, 그들을 적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민족이 원하는 통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들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신앙고백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북한선교입니다. 북한을 선교로서 점령해나가야 합니다. 그들의 사상을 점령하고 백성들의 가치판단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 방법들이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쌀도 주고, 산업시설도 해주고 연료도 주고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줄 계획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쟁야욕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그들을 굶겨놓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야비한 방법 보다는 대등한 입장에서 통일을 하자고 하는 뜻은 좋으나 그 좋은 뜻을 그들이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아직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치사상을 바꾸지 않는 한 절대로 변화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사상적 기초를 바꾸지 않는 한 통일은 어렵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사상인 유물사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복음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선교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내용은 사실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북한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방향으로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고 알아야 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솔로몬이 기도를 했습니다. 그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응답한 내용입니다. 그 내용 속에 특히 관심이 가는 말씀이 14절 하반절에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입니다. 왜 땅을 고쳐야 하는가? 땅이 어떻게 되었기에 고쳐야 하는가? 13절 말씀에 보면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라고 했습니다. 자연재해나 아니면 질병으로 백성들을 죽게 만드는 재앙이 내린 땅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런 재해나 환란이 언제 왜 일어나는가? 19절 이하에 보면 “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을 경배하면 / 내가 너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성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리니 / 이 성전이 비록 높을지라도 그리로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할 정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거나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을 경배하면 삶을 어렵게 만들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이지만 그것을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경배함으로 여호와께서는 모든 재앙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이 36년 동안의 일본 밑에서 신음하는 것을 해방시켜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망각하고 공산주의 사상에 물들은 자들이 점령을 하여 해방자이신 하나님을 배신하고 유물사상에 젖어 하나님 경외하는 성전까지도 다 없애버린 결과 아직도 하나님은 통일을 주시지 않고 있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는 외갓집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자기들의 통치이념 속에 적용하여 일인독재와 함께 자신들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우상화시켜버린 그 결과 북한의 성전이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복의 길은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땅을 고침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한 마디로 말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찾아 회개기도하면 됩니다. 실제적으로 6.25전쟁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이 침략한지 4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3개월 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하고 전국을 장악했습니다. 유엔은 즉시 군사지원을 결정하여 16개국의 군대가 한국전에 참전을 하여 비참한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부산만 남아 있었을 때 더 이상 밀리면 대한민국은 완전히 적화되는 것입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 기독교 대표적인 목사 장로들을 부산 도지사 관사에 불러 모아 놓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젠 우리는 갈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습니다. 내 친구 맥아더가 비행기를 보내서 낙동강 유역을 융단폭격을 해주기를 원하지만 그때 한참 칠팔월에 구름이 끼고 비가 오면 비행기가 뜰 수 없고 그러면 한국은 바다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말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당시 목사 장로들이 모여서 열흘 동안 금식하며 철야하며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7,8월에 비가 오지 않았고 맥아더 장군은 일본에서 수십대의 B-29를 보내어 낙동강에 융단폭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9월18일에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까지 점령을 했지만 다시 1.4후퇴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회복의 기회는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이 하나님의 땅을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교회 관계자들이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먼저 공산주의 사상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한 북한의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통일이 힘듭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우리는 부지런히 선교해야 합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저들이 복음을 믿게 만들고 복음을 가진 자들이 자력으로 북한에 교회를 세워 마음 놓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울러 한국의 교회들도 회개기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이분법적으로 동족을 원수처럼 여겼고 저들은 망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저들은 구제불능인 냥 사랑과 화해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아말렉과 같은 북한을 지나치게 옹호하면서 수많은 젊은 이들을 희생시키면서 이 나라의 우방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미움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도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자그마한 땅, 미국의 51개 주 중의 한 두 개 주 넓이에 불과한 한반도를 위해서 전쟁 발발 후 3년 동안 무려 54,246명이 죽었고, 103,284명이 부상을 당하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워싱턴의 링컨기념과 앞뜰에는 한국전쟁을 추모하는 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거기에 유명한 글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Freedom is not Free!" 즉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또한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생활의 잘못된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면”우리 우리나라의 악이 무엇입니까? 우리나라는 일등하지 말아야 할 것도 1등하는 것이 많습니다. 술 소비, 자동차사고,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률, 강간범죄 사고율, 외국인노동자학대, 자살율 등은 월등한 1등입니다. 부정부패의 정도가 심각합니다. 이혼율 세계2위, 자녀저출산 1위, 거기다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정부패, 노사갈등, 교육현실의 피폐함, 집단이기주의 만연, 지나친 사치와 낭비, 쾌락주의 등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우선되지 않고서는, 즉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그 어떤 화해도, 통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회개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그래야 화해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통일케 하십니다. 아직도 대립과 갈등관계에 있는 우리들의 눈에서 회개의 눈물이 흘러나올 때, 통일을 이루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로 변할 것입니다.
한반도에 필요한 것(1)/ 겔37:1-10, 욜2:12-18/ 북한선교주일/ 2008-06-26
한반도에 필요한 것(1) 겔37:1-10, 욜2:12-18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일제 36년 동안 지배를 당한 가운데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31독립운동을 일으킬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16인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8.15해방을 이 민족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해방 된지 불과 5년이 지난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예루살렘인 평양에서 신학교가 세워졌고 7명의 목사를 배출하며 성령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왜 그곳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해방을 맞은지 6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도 복음이 전해지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던 평양이 왜 저렇게도 배고파 죽어가는 백성들이 많은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커지고 있는 국제적 환경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 한반도에 통일을 가져와서 북한 백성들의 기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이와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한반도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던 나라가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역대하7:19-22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돌이켜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숭배하면 / 내가 저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리니 / 이 전이 비록 높을찌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셨다 하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성전을 헐어버리고 그 땅에서 뿌리를 뽑아버린다고 했습니다. 모든 민족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도록 하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무슨 이유로 이 땅을 옛날과 같이 척박한 땅이 되게하셨는고’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수치를 당했습니다. 바벨론에 망하였을 때 상황이 어떠했는지 아세요. 선지서를 읽어보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특히 예레미야애가서2장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가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버리셨고, 제단을 버리셨습니다. 궁전의 성벽들이 원수의 손에 넘어갔고, 왕과 지도자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완전히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으며, 처녀들과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기근이 얼마나 심하였든지 칼에 죽은 자가 주려죽은 자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어른들이 자식을 삶아먹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는 등 너무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북한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북한선교주일을 맞았습니다만 북한을 선교하려고 하면 우선 북한을 바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는 구호에 그치고 맙니다. 최근에 발간된 책 “벼랑에 선 북한 생존의 길” 유석렬씨가 썼습니다.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핵과 위조지폐, 마약밀매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북한의 핵보유와 그에 따른 국제 압력 등은 한반도의 위기적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을 높여 놓았고 한미간의 갈등관계를 노출시켰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8장에서는 북한의 종교정책과 기독교 실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에 과연 진정한 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북한 지하교회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외부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철저하게 종교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교를 믿지 말라고 계속 교육해 왔습니다. 노동당 출판사에서 발간된 ‘우리는 왜 종교를 반대하여야 하는가’라는 책자에서 공화국 북한부에 아직 남아서 준동하고 있는 일부 악질 종교인들의 반혁명적인 행위를 제때에 적발 폭로하고 처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 참된 교회는 없습니다.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지어놓고 종교행사를 하지만 대외용이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 사람이 평양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평양을 방문하여 교회를 찾아갔다가 그는 결국 붙잡혀 감옥에 갔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이들에게는 성경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사형을 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지하교회에 출석하다가 발각되면 공개처형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하교회와 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뜨거운 기도는 그들의 영혼을 보다 맑고 정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1990년대, 북한정권은 주민들에게 중국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중국은 사정이 북한보다 더 나쁘다고 선전했습니다. 북한정권은 주민들에게, 중국에는 내전이 일어났고, 식량사정은 북한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 선전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에 못 견딘 북한주민들은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쳤고, 이 첫 난민들은, 북한의 허위선전과는 달리, 중국이 그들이 보기에는 바로 \\\\\\\\\\\\\\\\\\\\\\\\\\\\\\\"지상낙원\\\\\\\\\\\\\\\\\\\\\\\\\\\\\\\" 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중국에는 전기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그들에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중국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식은 곧 북한에 전해졌고, 그 후 북한주민들은 최소한 5십만 명이 중국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지금도 중국에는 탈북자들이 약 30여만 명이 있고 매년 5천여 명씩 북으로 호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근이 심하면 사람을 잡아 먹겠습니까? 그래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2년, 김정일을 악의 축에 끼워 넣었다고 조롱을 당했었습니다만 그러나, 1년 후 김정일에게 그들의 입장을 밝힐 기회를 주기 위하여 북한을 방문했던 두 BBC 기자들은, 북한정권이야말로, 정말 \\\\\\\\\\\\\\\\\\\\\\\\\\\\\\\"악\\\\\\\\\\\\\\\\\\\\\\\\\\\\\\\"이란 것을 확인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오늘 우리나라 한반도에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한반도에 일어나는 상황과 같은 이런 일들이 이스라엘에 발생했을 때 그 처방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첫 번째 내용은 회개입니다. 이 나라가 사는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고 이 민족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중 요엘2:12-13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만 사도행전3:19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우리가 회개를 하되 모든 백성이 다 함께 해야 합니다. 15-17절에서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 /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우리가 그토록 피를 흘리는 순교자들을 많이 배출한 일제시대와 맞싸워 결국 해방을 주셨던 하나님이 왜 6.25동란을 겪게 만들고 나라가 두 나라가 되게 하셨는가에 대한 해답을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6.25당시 인민군에 체포되기 직전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미완성 설교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손목사님 설교의 중심 내용이 크게 네 가지입니다. 6.25가 발발하게 된 원인은 1) 국가 지도자가 지은 죄, 2) 민족의 지도자가 지은 죄, 3) 미군정의 잘못된 정책, 4) 기독교의 죄악 등 손양원 목사님은 특히 기독교 죄악을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기독교가 저지른 죄로 기도의 부족, 우상숭배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우상숭배를 한 점, 의인을 몰아냄, 목사들의 변절, 기독교 성도의 추태, 하나님 말씀을 변경한 신학자들의 행위, 노회 총회의 분쟁 등을 들고 있습니다. 결국 6.25동란은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일이 금년 있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노회장 권영복)가 4월 17일 남양주시 동화고등학교에서 신사참배 결의와 주기철 목사의 순교와 관련해서 참회예배를 하고, 파면 조치했던 주기철 목사를 67년 만에 복권시켰습니다. 평양노회는 1939년 12월19일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평양 산정현교회를 담임하던 주기철 목사에게 목사직 파면의 중벌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날 회개의 고백서를 보면 \\\\\\\\\\\\\\\\\\\\\\\\\\\\\\\"평양노회가 신사참배에 앞장섰으며,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기철 목사를 파면하고, 산정현교회를 폐쇄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 추악한 전대미문의 역사적 범죄 행위를 회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압적 통치하에서 교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신앙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신사참배에 가담한 것과,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일제에 항거했던 주기철 목사를 목사의 직에서 파면하고 산정현교회를 강제로 폐쇄하는 일을 자행했던 우리 노회의 죄악상을 애통하는 마음으로 참회하며 고백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기철 목사의 가족을 추방하고, 해방이후 까지도 유가족을 외면하고 박대했다\\\\\\\\\\\\\\\\\\\\\\\\\\\\\\\"고 고백하고, 이날 자리에 참석한 순교자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기독교가 저지른 죄인 기도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기도의 회복과 우상숭배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우상숭배를 한 것을 회개하기 위해서 우상을 제거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변절한 신앙의 모습을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아울러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기독교 성도들의 추태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변경한 신학자들의 행위도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신학교의 신학자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아울러 노회와 총회는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분쟁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한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회개하고 이어서 북한에 있는 수많은 백성들이 회개하면 반드시 회복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모스8:11-13말씀,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 북한이 왜 저렇게도 처절하리만큼 기근이 심합니까? 양식의 기근은 말씀의 기근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통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이 들어가지 않고는 변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읽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환상으로 보여주셨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말씀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른 뼈는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묘사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죽은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삶이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뼈들이 골짜기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골짜기에 버려진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마른 뼈들을 향하여 여호와께서는 게스겔에게 묻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은 대답하기를 “주께서 아십니다” 그때 다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니 탈골되었던 뼈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게 됩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롭게 회복된다는 야속의 메세지입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렇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들이 말씀이 그립고 성전이 그리워서 그발강 가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는 말씀의 능력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일 수 없습니다. 롬4:17에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개인적인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앙상한 뼈만 남아 있거나 무기력하게 있는 성도가 새롭게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야 합니다. 시19: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소성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운동력이 있어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있던 북한 땅에 말씀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임재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이 역사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북한에 말씀을 들고 들어갈 수 있도록 선교해야 합니다. 저 북녁땅에 말씀이 들어가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붉은 사상의 군대가 되어 있지만 말씀이 들어가서 변화시키면 위대한 십자가의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북한이 겪고 있는 기근도 말씀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바뀌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실행되어지면 해결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하지 않고도 살게 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육은 밥을 먹어야 살지만 영은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저 북한에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에스겔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뼈들이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였지만 그곳에 생기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생령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생기라는 것은 신약에서는 성령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무리 든든한 육체라고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9절 이하에 보면 “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고 했습니다. 능력있는 신앙, 능력있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평양에 임재하셔서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으켰던 그 성령님이 다시 임재하셔야 합니다. 성령부흥운동100주년을 앞둔 우리 교회들은 앞장서서 성령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사방에 있는 하나님의 령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증인이 될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미사일일까요? 남북정상회담일까요? 금강산관광특구에 관광가는 것일까요? 이북에 공장을 세우는 것일까요? 대학을 세우면 될까요? 물론 이런 것들이 작은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궁극적인 방법은 이런 참상이 누구로부터 왔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북한이 겪고 있는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처방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야 합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북한을 향하여 선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우리가 건져내어야 할 우리의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동족들이며 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24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들을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라.”어서 속히 굶주림에서 건져주어야 합니다.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참된 안식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한반도에 필요한 것(1)/ 겔37:1-10, 욜2:12-18/ 북한선교주일설교
한반도에 필요한 것(1) 겔37:1-10, 욜2:12-18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일제 36년 동안 지배를 당한 가운데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습니다. 민족의 지도자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31독립운동을 일으킬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16인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8.15해방을 이 민족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해방 된지 불과 5년이 지난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예루살렘인 평양에서 신학교가 세워졌고 7명의 목사를 배출하며 성령부흥운동이 일어났는데 왜 그곳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해방을 맞은지 6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도 복음이 전해지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던 평양이 왜 저렇게도 배고파 죽어가는 백성들이 많은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장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커지고 있는 국제적 환경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 한반도에 통일을 가져와서 북한 백성들의 기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이와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한반도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우리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던 나라가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한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역대하7:19-22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돌이켜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숭배하면 / 내가 저희에게 준 땅에서 그 뿌리를 뽑아내고 내 이름을 위하여 거룩하게 한 이 전을 내 앞에서 버려 모든 민족 중에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되게 하리니 / 이 전이 비록 높을찌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 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셨다 하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율례와 명령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 성전을 헐어버리고 그 땅에서 뿌리를 뽑아버린다고 했습니다. 모든 민족 앞에서 조롱거리가 되도록 하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하는 말이 ‘여호와께서 무슨 이유로 이 땅을 옛날과 같이 척박한 땅이 되게하셨는고’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수치를 당했습니다. 바벨론에 망하였을 때 상황이 어떠했는지 아세요. 선지서를 읽어보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특히 예레미야애가서2장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가 어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초막을 동산처럼 헐어버리셨고, 제단을 버리셨습니다. 궁전의 성벽들이 원수의 손에 넘어갔고, 왕과 지도자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완전히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가 다 길바닥에 엎드러졌으며, 처녀들과 청년들이 칼에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기근이 얼마나 심하였든지 칼에 죽은 자가 주려죽은 자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어른들이 자식을 삶아먹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는 등 너무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북한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북한선교주일을 맞았습니다만 북한을 선교하려고 하면 우선 북한을 바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는 구호에 그치고 맙니다. 최근에 발간된 책 “벼랑에 선 북한 생존의 길” 유석렬씨가 썼습니다.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핵과 위조지폐, 마약밀매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북한의 핵보유와 그에 따른 국제 압력 등은 한반도의 위기적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을 높여 놓았고 한미간의 갈등관계를 노출시켰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8장에서는 북한의 종교정책과 기독교 실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에 과연 진정한 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북한 지하교회의 실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외부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철저하게 종교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교를 믿지 말라고 계속 교육해 왔습니다. 노동당 출판사에서 발간된 ‘우리는 왜 종교를 반대하여야 하는가’라는 책자에서 공화국 북한부에 아직 남아서 준동하고 있는 일부 악질 종교인들의 반혁명적인 행위를 제때에 적발 폭로하고 처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들에게 참된 교회는 없습니다.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지어놓고 종교행사를 하지만 대외용이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 사람이 평양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평양을 방문하여 교회를 찾아갔다가 그는 결국 붙잡혀 감옥에 갔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이들에게는 성경을 소지한 것만으로도 사형을 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특히 지하교회에 출석하다가 발각되면 공개처형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하교회와 교인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눈물은 아직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뜨거운 기도는 그들의 영혼을 보다 맑고 정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1990년대, 북한정권은 주민들에게 중국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중국은 사정이 북한보다 더 나쁘다고 선전했습니다. 북한정권은 주민들에게, 중국에는 내전이 일어났고, 식량사정은 북한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 선전에도 불구하고, 굶주림에 못 견딘 북한주민들은 먹을 것을 찾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도망쳤고, 이 첫 난민들은, 북한의 허위선전과는 달리, 중국이 그들이 보기에는 바로 \\\"지상낙원\\\" 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중국에는 전기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텔레비전도 있고, 그들에게 제일 중요했던 것은 중국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소식은 곧 북한에 전해졌고, 그 후 북한주민들은 최소한 5십만 명이 중국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지금도 중국에는 탈북자들이 약 30여만 명이 있고 매년 5천여 명씩 북으로 호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근이 심하면 사람을 잡아 먹겠습니까? 그래서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2년, 김정일을 악의 축에 끼워 넣었다고 조롱을 당했었습니다만 그러나, 1년 후 김정일에게 그들의 입장을 밝힐 기회를 주기 위하여 북한을 방문했던 두 BBC 기자들은, 북한정권이야말로, 정말 \\\"악\\\"이란 것을 확인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오늘 우리나라 한반도에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한반도에 일어나는 상황과 같은 이런 일들이 이스라엘에 발생했을 때 그 처방방법은 무엇이었는가? 첫 번째 내용은 회개입니다. 이 나라가 사는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고 이 민족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중 요엘2:12-13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만 사도행전3:19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우리가 회개를 하되 모든 백성이 다 함께 해야 합니다. 15-17절에서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 /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우리가 그토록 피를 흘리는 순교자들을 많이 배출한 일제시대와 맞싸워 결국 해방을 주셨던 하나님이 왜 6.25동란을 겪게 만들고 나라가 두 나라가 되게 하셨는가에 대한 해답을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6.25당시 인민군에 체포되기 직전에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미완성 설교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손목사님 설교의 중심 내용이 크게 네 가지입니다. 6.25가 발발하게 된 원인은 1) 국가 지도자가 지은 죄, 2) 민족의 지도자가 지은 죄, 3) 미군정의 잘못된 정책, 4) 기독교의 죄악 등 손양원 목사님은 특히 기독교 죄악을 특별히 강조하였습니다. 기독교가 저지른 죄로 기도의 부족, 우상숭배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우상숭배를 한 점, 의인을 몰아냄, 목사들의 변절, 기독교 성도의 추태, 하나님 말씀을 변경한 신학자들의 행위, 노회 총회의 분쟁 등을 들고 있습니다. 결국 6.25동란은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성도가 성도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일이 금년 있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노회장 권영복)가 4월 17일 남양주시 동화고등학교에서 신사참배 결의와 주기철 목사의 순교와 관련해서 참회예배를 하고, 파면 조치했던 주기철 목사를 67년 만에 복권시켰습니다. 평양노회는 1939년 12월19일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평양 산정현교회를 담임하던 주기철 목사에게 목사직 파면의 중벌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 날 회개의 고백서를 보면 \\\"평양노회가 신사참배에 앞장섰으며, 신사참배를 거부한 주기철 목사를 파면하고, 산정현교회를 폐쇄시키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 추악한 전대미문의 역사적 범죄 행위를 회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강압적 통치하에서 교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신앙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신사참배에 가담한 것과,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신앙을 고수하기 위해 일제에 항거했던 주기철 목사를 목사의 직에서 파면하고 산정현교회를 강제로 폐쇄하는 일을 자행했던 우리 노회의 죄악상을 애통하는 마음으로 참회하며 고백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기철 목사의 가족을 추방하고, 해방이후 까지도 유가족을 외면하고 박대했다\\\"고 고백하고, 이날 자리에 참석한 순교자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기독교가 저지른 죄인 기도의 부족을 채우기 위한 기도의 회복과 우상숭배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우상숭배를 한 것을 회개하기 위해서 우상을 제거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변절한 신앙의 모습을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아울러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기독교 성도들의 추태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변경한 신학자들의 행위도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신학교의 신학자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아울러 노회와 총회는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분쟁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한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회개하고 이어서 북한에 있는 수많은 백성들이 회개하면 반드시 회복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모스8:11-13말씀,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 북한이 왜 저렇게도 처절하리만큼 기근이 심합니까? 양식의 기근은 말씀의 기근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통로를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이 들어가지 않고는 변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읽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환상으로 보여주셨던 마른 뼈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말씀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마른 뼈는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묘사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죽은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삶이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뼈들이 골짜기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골짜기에 버려진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마른 뼈들을 향하여 여호와께서는 게스겔에게 묻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은 대답하기를 “주께서 아십니다” 그때 다시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니 탈골되었던 뼈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게 됩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롭게 회복된다는 야속의 메세지입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렇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다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들이 말씀이 그립고 성전이 그리워서 그발강 가에서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역사는 말씀의 능력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일 수 없습니다. 롬4:17에 보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개인적인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앙상한 뼈만 남아 있거나 무기력하게 있는 성도가 새롭게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야 합니다. 시19: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소성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복음이 생명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살아 있어서 운동력이 있어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신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있던 북한 땅에 말씀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임재하고 말씀을 듣고 말씀이 역사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북한에 말씀을 들고 들어갈 수 있도록 선교해야 합니다. 저 북녁땅에 말씀이 들어가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붉은 사상의 군대가 되어 있지만 말씀이 들어가서 변화시키면 위대한 십자가의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북한이 겪고 있는 기근도 말씀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바뀌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땅이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실행되어지면 해결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하지 않고도 살게 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육은 밥을 먹어야 살지만 영은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저 북한에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입니다. 에스겔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해 뼈들이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가죽이 덮였지만 그곳에 생기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생령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생기라는 것은 신약에서는 성령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무리 든든한 육체라고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9절 이하에 보면 “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고 했습니다. 능력있는 신앙, 능력있는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평양에 임재하셔서 한국교회의 부흥을 일으켰던 그 성령님이 다시 임재하셔야 합니다. 성령부흥운동100주년을 앞둔 우리 교회들은 앞장서서 성령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사방에 있는 하나님의 령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증인이 될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미사일일까요? 남북정상회담일까요? 금강산관광특구에 관광가는 것일까요? 이북에 공장을 세우는 것일까요? 대학을 세우면 될까요? 물론 이런 것들이 작은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궁극적인 방법은 이런 참상이 누구로부터 왔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북한이 겪고 있는 고통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처방은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야 합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북한을 향하여 선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우리가 건져내어야 할 우리의 형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동족들이며 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24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들을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라.”어서 속히 굶주림에서 건져주어야 합니다.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참된 안식으로 인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