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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목양/ 딤전3:8-13/ 교역자보건주일설교/ 2007-03-03
건강한 목양 딤전3:8-13 오늘은 교역자 보건 주일입니다. 감리교회는 해마다 교역자의 건강을 위해서 교역자 보건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교역자의 건강이교회의 건강이므로 교회가 관심 깊게 돌보라는 것입니다. 교역자 보건 주일에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영육간에 건강한 우리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요즘, 우리교회에 특별기도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네가지 기도제목,키르키스탄 의료선교, 가을 영혼구원, 성전건축,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교회가 건강해 지는 것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할 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교역자의 건강이 중요합니다. 교역자가 기쁨으로 즐겁게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 교역자의 건강은 성도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목회 하는데 즐거움으로 하게 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근심으로 목회사역을 감당하는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교회에, 성도들에게 유익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는 목회자가 기쁨으로 일 할 수 있는 풍토가 중요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음악 지휘자’라고 합니다. 미국 미네소타 의과대학교 데일 앤더슨박사는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며 엔돌핀을 증가시킨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스트레스와 통증을 해소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볼펜과 젓가락을 흔드는 것도 동일한 효과가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최근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열광적으로 지휘를 하는 ‘지휘체조법’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여러분도 즐겁게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국신학대학교의 구약학 교수이셨던 고 김정준 박사의 일화입니다. 박사님은 20대 청년 시절에 폐결핵을 몹시 앓아 마산요양소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의술로 폐결핵은 요즘 암정도 만큼이나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망연자실하여 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 어느 날 기도하다가 섬광 같은 생각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네 병원요양소 생활을 즐거워하라. 네가 이 요양소에서 할 일을 찾아 일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박사님은 요양소에 머물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요양소의 궂은일을 찾아가며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원 모든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쉬지 않고 즐겁게 헌신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신의 병은 어느덧 오간 데 없니 다 나았습니다. 교회 생활도 그렇습니다. 즐겁게 교회 일을 하고 신앙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점점 더 풍성한 신앙과 풍성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즐거운 인생을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내 인생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만물이 주께서 나오고 주께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롬 11:36)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무릎을 꿇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 . .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심을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순종하고 따르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배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더 합시다. 전도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헌금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찬양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 청소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즐겁게 일하는 자를 복주십니다. 1. 건강한 목양이 이루어 지려면 순종과 감사의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무엇이 목회자를 대접하는 것이겠습니까? 그저 순종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목회자가 무능해도 그 교회에 목회자로 세웠으면 그 교인들은 순종해야합니다. 예를 들어서 목회자 없어도 우리는 신앙생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교만입니다. 그런 태도는 아버지 없어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는 자세나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는 사소한 일이라도 와서 묻고, 상의하고 그 부모의 뜻을 따라 순종합니다. 조금 나의 뜻과 달라도 . . . 무엇이든지 목회자에게 묻는 것은 옳은 태도입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즐거움으로 하는 것과 억지로 하는 것은 능률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근심하면서 일하게 되면 일의 능률이 없습니다.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면 어떤 일을 하든지 엔돌핀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건강에도 좋고 능률도 오르고 장수 한다고 합니다. 근심으로 하면 건강도 해치게 되고 일의 능률도 떨어지고 생명도 단축된다고 . . 우리교회는 목회자에게 힘을 실어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목사님 걱정마십시오. 우리가 밀어드리겠습니다.’ 그런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목회가 신나는 교회인줄 믿습니다. 그런 교회는 소문나는 교회가 됩니다. 목회자가 좀 실수를 해도 덮어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심리학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잘한다, 잘한다’고 말하면 정말로 잘하게 되는 행동변화를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릅니다. 그 반대로 못한다고 자꾸 지적하면 그 말대로 문제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낙인효과’라고 합니다. ‘저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부정적인 낙인이 찍히면 그 낙인에 걸맞은 행동을 한다는 것.’ 운전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사람이 자꾸 잘못한다고 잔소리하면 화가 나서 어떤 사람은 핸들을 확 꺾어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믿음있는 지혜있는 아내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활용하여 남편의 행동을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없는 아내는 남편에게 불평하고 잘못한다고 꾸지람을 하다 보면 남편의 기를 죽이고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는 일에 있어서 목회자에게 힘을 실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하는데도 기죽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겠습니까? 성경은 주의 종이 즐거움으로 하도록 성도가, 교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미국 레이트사이드교회 존 던컨목사님은 지친 목회자를 돕는 방법 5가지를 말했습니다. 1. 감사를 표시하는 것. (목사님 요즘, 목사님 설교에 얼마나 힘이 되는 지, 감사 . . ) 2. 잠시 교회를 떠나 조용히 쉴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좀 쉬었다 오세요) 3. 가끔씩 목회자 가족만이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할 것. 4. 가끔씩 목회자에게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용기를 줄 것. 5. ‘제가 도와드릴 것이 없나요?’라고 물을 것. 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가운데 22년 동안 108번이 교회를 옮긴 장로가 있었습니다. 이민교회의 특성은 이합집산(헤어짐과 모임. 헤어졌다 모였다.)이 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교회에서 오래 다니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1년에 약 5번 정도 교회를 옮긴 셈이고 평균 두달에 한번 정도의 교회를 바꾼 셈이 됩니다. 그런데 새 교회로 옮길 때마다 한번도 그 교회에 대해 만족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옮기는 날로부터 그 교회의 단점을 찾기 시작합니다. 목사의 허물을 맨 먼저 찾아냅니다. 그리고 마치 예언자나 된 것처럼 자기 눈에 드러난 허물을 떠벌리고 얘기합니다. 교회주보, 성가대, 주방 교인들의 태도등. . . 씹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108 교회의 단점을 낱낱이 노트에 적어서 마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으로 죽게 되자 어느 교회도, 어느 목사도, 그의 장례식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그가 섬긴 교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죽기 전 108번째 옮겨왔던 교회 목사님이 불쌍히 여겨 그의 장례식을 해주었습니다. 목사님은 장례식날 관 앞에서 “이 분의 유랑과 번뇌가 108번째로 끝나서 천만다행이다”라고 . . . 이런 사람이 교회안에 있으면 건강한 목양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참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양의 풍토가 잘 만들어 져야 합니다. 좋은 목양 풍토란?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도들이 말씀을 잘 받아 들이는 순종의 풍토를 말하는 것입니다. 풍토가 잘 만들어 져야 그 교회는 부흥할 수 있고 그 교회 성도들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즐거운 목양(양을 치는 것, 목회), 건강한 목양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2. 건강한 목양의 교회가 되려면 한 마음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한 몸, 한마음 의식’이 중요합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했습니다. 부부 사이가 한 몸이라는 말은 누구나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한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 롬6:3,5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결혼을 한다고 해서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님’ 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부가 되는 데에는 하나 되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잠자리도 같이 해야 하고, 같이 시장도 가고, 같이 TV도 보고, 같이 생활을 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 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회가 한 건물 안에서 예배드린다고 한 몸, 한 마음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가 될 수 있고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두 몸에 한 머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 아이를 놓고 ‘이 아기가 하나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둘인가?’ 고민이 생겼을 때, 한 사람이 이런 처방을 내렸습니다. ‘머리에 어떤 고통이 생겼을 때 양쪽 몸이 똑 같은 반응을 보이면 그 아이는 하나다. 만약 한 쪽 몸은 고통스러워하는데 다른 한 쪽 몸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면 그 아이는 둘이다’ 맞는 말입니다. 교회가 한마음으로 고민하고 함께 풀어가야 그것이 한 몸, 한 마음이 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기쁨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함께 슬퍼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며 주님이 바라시는 모습입니다. 우리교회가 한 몸 한 마음의 교회로 주님의 바램을 이루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한 몸이기 때문에 절대로 혼자서는 성공적이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원을 창설하고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고 대천덕 신부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한국 기독교인 중에는 자기만 행복하고 구원받으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진정한 의미의 신앙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생활이다.” 교회는 남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 있습니다. 성도도 남을 위해 존재합니다. 남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남의 소리를 들어 줄 때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교회가 될 때 참된 교회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포가 적을수록 하등동물이라고 하고 세포가 많은 동물을 고등동물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몸에는100조 개의 세포조직이 있고, 혀에만도 9천개 이상의 미각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많은 지체가 있음에도 한 마음, 한 몸이 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참된 교회, 성숙한, 수준 높은 교회입니다. 참 교회는 전 성도가 한 마음이 되는 교회입니다. 몇몇 사람만이 마음이 하나되면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힘없는 교회, 건강하지 못한 교회, 능력 없는 교회, 약한 교회 작은 교회입니다. ‘파레토의 법칙’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백 년 전 이탈리아인 경제학자 빌 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 1848-1923)가 처음 발견한 법칙입니다. 20%의 힘이 80%를 담당한다는 원리입니다. 이런 원리가 교회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도 중 20%만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여러 조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힘의 20% 외의 나머지는 낭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만 쓰고 80%를 그냥 버리고 있다면, 얼마나 많은 낭비입니까? 전 성도가 다 함께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합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럴 때, 건강한 목양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3. 건강한 목양의 교회가 되려면 경건한 성도가 많아야 할 것입니다.(8-9절).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8-9절). 즉, 경건한 성도가 많은 교회가 되라는 말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전하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단정합니다. ‘단정하다’는 말은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람 즉, 점잖은 행동으로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이미지 시대입니다. 한 사람이 이미지를 좋게 하면 전체에게 큰 영향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이 이미지를 망치게 되면 전체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기업이나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경건한 사람은 일구이언 하지 않습니다. 한 곳에서 말하는 것과 다른 곳에서 말하는 것이 일치되는 것을 말합니다. 언어에 조심성이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참소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3:2). 참소한다는 것은 남의 험담이나, 중상모략으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헛된 소문을 퍼트리거나 거짓으로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참소란, 마귀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집 저집 다니며 사람을 이간시키는 간교한 행위는 마귀의 행위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가득해야 할 교회가 온통 미움과 갈등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힘을 한데 묶어 주의 일에 열심 해도 모자라는 판에 분열과 분쟁을 일으키는 주범이 누구냐 참소하는 사단입니다. 에덴동산의 뱀이 이러한 수법으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고, 멸망케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술에 인박이지 않습니다. 유태인의 경전인 탈무드에는 “ 마귀가 분주하여 사람을 미혹할 시간이 없으면 대신 술을 보낸다.” 고 했습니다. 잠23:에도 “ 술은 쳐다보지도 말라” 였습니다. 술에 인박이지 않는 대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인박여야 됩니다. 경건한 사람은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재정적인 투명성을 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더러운 이(利)란 명예와 물욕을 말합니다. 사람이 죄에 빠지게 되면 더러운 이익에 눈이 멀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에 대한 이익을 기대합니다. 인사받기를 좋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세인들도 명예욕의 유혹에 빠졌습니다.그래서 어디서나 그들은 나타내길 좋아했습니다. 남에게 보이려 하고 남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거리나 길가에서 기도했습니다. 우리교회는 순종과 감사의 풍토가 형성되는 교회, 전 성도가 다 함께 마음을 합하여 한마음으로 섬기는 교회, 경건한 성도가 많은 교회가 되어, 건강한 목양이 일어나므로 새신자가 늘어가고 크게 부흥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신앙의 비결/딤전4:6-11/ 교역자보건주일설교/ 2002-02-07
건강한 신앙의 비결 딤전4:6-11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목회자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사합시다. 주의 은혜가 성도님들과 가정위에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의 가정에도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건강관리\"라는 말은 가난해서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옛날에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경제형편이 좋아지고 식생활이 풍족해진 오늘날은 너나 할 것 없이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50-60년대에만 해도 밥 먹고 나서 아이들이 뛰놀면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얘들아 뛰지 말아라 배 꺼진다\"였습니다. 요새는 밥 먹고 나면 배 좀 꺼지게 나가서 산보라도 하고 오라고 성화입니다. 옛날에는 너무 못 먹어서 영양실조 걸려 탈나거나 죽거나 했었는데 오늘날에는 영양과다섭취로 온갖 병이 생깁니다. 어쨌든 그래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커졌습니다. 건강은 누구나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건강관리를 위하여 나름대로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며 투자를 아끼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체질도 다르고 생활환경이나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들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영양섭취입니다. 잘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먹는다는 것은 무조건 많이 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균형 있게 먹는 것, 골고루 먹고 규칙적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운동입니다.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비만해지고 온갖 성인병이 찾아옵니다. 더욱이 나이가 들면 조금만 먹어도 다 살로 갑니다. 그래서 건강관리에 신경쓰는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조깅을 하거나 에어로빅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가 하면 헬스클럽에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집안에 런닝 머신이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전거를 들여놓고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이러한 비결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영적 건강, 믿음의 건강을 위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들이라 봅니다. 육신이 건강해야 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야 하나님 앞에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함께 은혜받아 신앙이 건강해지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에는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6-7)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육체의 연단이 약간의 유익이 있는데 반해 경건에 이르는 연단은 범사에 유익하고 이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서 뿐 아니라 영원한 삶을 위해서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짧은 세월 동안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토록 많은 관심과 수고와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영원한 삶을 위해서 건강한 믿음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위태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물질과 열성을 우리의 신앙의 건강을 위해서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앞서 언급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일반적 원리들을 우리의 신앙의 건강유지에 적용시키며 하나 하나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건강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양섭취를 잘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잘 먹어야 건강할 수 있듯이, 신앙도 영양공급을 잘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양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 6:3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먹는 사람은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주리지 않는 다는 말은 병들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연약해지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여러분! 말씀의 은혜를 잘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비쩍 마르고 병들게 됩니다. 말씀이 고갈되면 우리의 신앙은 말라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밥상에 앉으면 반찬 투정을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육체가 건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들어야 영이 잘 됩니다. 누가 말씀을 전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달게 들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아주 맛있게 먹는 성도가 참으로 좋은 성도입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마음에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꿀과 같이 단 것이라는 것을 심어 주려고 영아기부터 동판으로 성경의 모형을 만들어서 거기에 꿀을 묻혀 놓고 아이들로 하여금 혀로 할아 먹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인식이 들게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과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같이 소중하게 여겼던 이스라엘 민족은 우수한 민족으로 세계 각처에서 머리가 되며, 앞서 달리며, 항상 상위를 달리는 자들로 사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잘 먹는 자들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가 길다 짧다 내용이 있다 없다, 재미가 있다 없다!\"하면서 밥투정하듯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실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 처 놓고 건강한 아이 없듯이 말씀을 잘 먹지 않고 투정을 부리는 사람 처 놓고, 이 건강한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병들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주로 그런 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병든 사람은 음식을 주어도 맛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입맛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맛있는 것을 갖다 주어도 맛을 모릅니다. \"짜다, 싱겁다, 되다 하면서 말이 많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없어서 못 먹고, 주지 않아서 못 먹고, 배불러서 못 먹으면 못 먹었지 밥투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짜면 뜨끈한 물 부어 먹으면 되는 것이고 싱거우면 간장을 넣어 맞추어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밥이 되면 물 말아먹으면 되는 것이고, 질면 비벼 먹으면 되고, 돌이 들어 있어서 씹으면 뱉아 놓고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먹을 것인데 어떤 때는 맛있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맛없을 때도 있지 않습니까! \"입맛이 없을 때는 밥맛으로 먹고! 밥맛이 없을 때는 입맛으로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어쨌든 맛있게 먹는 것이 최고요, 건강하게 되는 비결 입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말씀을 이렇게 맛있게 먹을 때 성장하게 되고 건강해져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밥은 규칙적으로 먹는 것이 잘 먹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하루에 세 끼도 먹었다 한 끼도 먹었다, 매일 먹었다 하루걸러 한 번씩 먹었다 하면 병납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습니다. 주일예배에 격주로 나왔다 한 달에 한 번씩만 나왔다 하면 신앙적으로 병나기 쉽습니다. 아니 그렇게 불규칙하게 나오는 것 자체가 이미 병든 것입니다. 밥은 하루 한 끼만 걸러도 산다 못산다 난리치면서 예배 거르는 것은 아주 너그럽게 잘 하는 사람은 병든 겁니다. 식사시간은 단 5분만 늦어져도 못참겠다고 아우성치면서 예배시간 늦는 데엔 아주 여유만만한 사람들도 신앙적으로 살짝 병든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먹어야 합니다. 둘째,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럼 성도들은 어떤 운동을 해야 건강한가? 1) 기도운동을 해야 합니다. 아멘 건강을 위해서 음식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공기라고 했습니다. 잠시도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 없고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 건강유지에 필요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도 이 호흡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신앙생활의 호흡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입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공부는 좋아하고 그래서 성경지식이 굉장한데 기도에는 관심도 없고 하려 하지도 않고 할 줄도 모르는 사람 있습니다. 숨을 안 쉬면 죽듯이, 기도하지 않는 신앙은 뇌사하기 좋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늘 많이 호흡하면 정신도 맑아지고 몸도 상쾌해지듯, 기도 많이 하면 우리의 영이 맑아지고 신앙이 깨끗해집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자기 스스로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매사에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기도의 지원요청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기도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기도해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자기는 숨 안 쉬고 인공호흡으로만 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멀쩡한 사람이 산소마스크 쓰고 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필수요건입니다. 죠지 뮬러는 기도운동을 잘해서 복받은 사람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은 50,000만 번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비결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제목이 50,000만번 응답받은 뮬러의 기도 비밀입니다. 뮬러 목사님의 말을 들어보세요 우리가 기도를 하되 어떤 기도운동을 해야하는가? 뮬러는 말하기를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공중 기도 모임에서는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지만 은밀한 기도를 등한시하는 위험스런 직면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되, 기도모임이나 예배때만 하지 그외에는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뮬러는 골방에서 은밀하게 보시는 아버지를 \"오늘\" 갈급히 사모 하였다.(마6;5-8)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 로다\" (고후 6:2). 뮬러는 골방에서 마음을 100% 열어 하나님께 보여 드렸다. 뮬러는 은밀한 기도를 한시라도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 또 그의 기도는 말씀을 붙드는 기도였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17:5) \"우리 연악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8:17)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시107:20)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방법으로 말씀을 정기적으로 묵상하였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내적 음성을 듣는 일에 심취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인가 면밀히 점검 받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기록하고 점검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1) 작은 기도의 수첩을 마련하여 기도의 목록을 작성 한다. 2) 기도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제목이 떠오르면 무조건 기록해 둔다. 3) 기록한 것을 가지고 우선 순위대로 정리 하고 기도의 시작 날짜를 기록 한다. 4) 기도의 제목을 놓고 매일매일 하나님께 기도 드린다. 5) 기도를 진행 할 때 기도 제목 한쪽 여백에 약속 말씀의 성귀를 기록해 둔다. 6) 기도의 제목에 대한 점검 및 변화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유심히 살펴본다. 7) 응답 되어진 것을 기도 목록 옆에 기록 해둔다. 마지막으로 기도의 동기와 목적은 나의 욕구만을 채우는 데 급급하지 않도록 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휼륭한 기도를 하여 많은 응답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신의 기도나 경건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면 그 모든 기도는 수포로 돌아갈 것이며 더욱 불행한 결과를 초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작은 체험 하나라도 잊지 않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려 한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에 기도에 대하여 더 많은 은총을 에비 하실 것이다. 하나님 께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분을 신뢰하며 감사로 기도하는 자의 기도 제목들에 대해선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드린 기도의 내용들에 대하여 하나라도 잊거나 실수하는 일이 없으시고, 꼭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기도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이 말은 기도는 우리의 공기라는 말과 같습니다. 좋은 공기를 마셔야 합니다. 좋은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좋은 기도는 우리의 신앙를 건강하게 하는 기도는 100%우리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드리는 은밀한 기도입니다. 말씀을 의지하고 확신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기도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늘 쉬지않고 할 때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여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 봉사운동을 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늘 누워만 있어도 안됩니다. 누워 있다가 뒤집기도 하고 기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하고 화장대를 뒤집고 난리를 쳐도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건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온전하고 봉사하는 성도가 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라고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열심으로 섬기시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면 그 성령의 능력으로 열심히 봉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가만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자꾸 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병들었던 사람이 회복되어져 가는 징조가 무엇입니까! 입맛이 돌아오고 무엇이 하고 싶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도 그 사람이 성령을 받고 구원받고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뭔가가 하고 싶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고 구원받은 다윗은 고백하기를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연구하면서 일을 자꾸 하려고 하다가 드디어는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드리기까지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성도인 것입니다. 죽은 나무는 늘 보아도 싹도 보이지 않고 잎도 나오지 않고 꽃도 피는 법이 없고 열매를 맺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살아 있는 나무는 때가 되면 순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않습니까! 일년이 지나면 쑥 자라고, 또 자라지 않습니까! 신앙 생활하는 성도가 늘 움직일 줄을 알아야 살아있는 성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먹기만 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비만해지고 온갖 성인병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운동 안 하면 병이 날 수 있습니다. 예배에 출석해서 설교 듣는 것은 좋아하고 말씀 읽고 공부해서 성경지식은 많이 쌓는데, 부서활동이나 봉사나 선교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찌고 몸매 잃어버릴까봐 조깅, 에어로빅, 등산, 골프 등 운동이란 운동은 그렇게 열심히 하고 비싼 돈 들여가며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집안에서 아무리 페달 밟아도 한 치도 앞으로 안 나가는 자전거는 비지땀을 흘려가며 타면서도, 교회에 나와 봉사하며 땀 좀 흘리자고 하면 왜 그렇게 바쁘고 피곤한지 모를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운영하는 헬스클럽도 꽤 괜챦습니다. 우리 교회 헬스클럽에서 할 수 있는 운동종목 참 다양합니다. 주일학교교사, 성가대, 주일 예배봉사, 그리고 만들어 보세요. 그게 무슨 운동이냐구요? 하나님나라운동입니다. 여러분! 제가 좋은 헬스클럽을 소개합니다. 물왕교회 신앙헬스클럽을 많이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운동은 자기 자신 혼자만 좋고 잠시 좋지만, 오늘 본문말씀에 신앙의 건강을 위한 운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고 범사에 유익하며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운동은 젊어서 일찍부터 시작해서 생활화하는 것이 좋구요,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살 빼겠다고 운동 시작했다가 게으르거나 힘들다고 그만두면요 몸이 더 퍼집니다. 일찍부터 이 경건의 운동을 생활화하고 계속함으로써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건강한 신앙의 비결은 말씀을 잘 먹는 것입니다. 그리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기도운동, 봉사운동을 열심히 하면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집니다. 능력이 충만해집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건강한 신앙은) 범사(모든일에)유익 합니다. 금생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도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내생, 우리의 영혼의 삶속에 더욱 유익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건강해서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6:6-10/ 교역자보건주일설교/ 2014-09-06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6:6-10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사회는 모인 회중(會衆), 공동체를 말합니다. 인간이라는 말을 한문으로 풀어보면 ‘사람 사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 나의 존재입니다.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인간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상대가 있음으로 존재합니다. 또 내가 있음으로 ‘너’라는 관계로 상대방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관계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인생의 성패는 이 관계를 놓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나’라는 주체는 ‘너’라는 객체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는 인생의 과제입니다. 인간은 독립된 자아로는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 안에서 나를 발견하며, 나를 형성해가며,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오늘은 관계성을 가지고 몇 가지로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을 삼고자합니다. 1.대신관계(對神關系)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가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 계십니다. 인간이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자녀관계요, 둘째는 원수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누구든지 차별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불신자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물로 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물 아래 인간은 다 죽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다 죽습니다. 지옥가게 됩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말은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또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을 떠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이 임하시고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자녀답게 산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통해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까? ①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까? 예배 행위에는 그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창조주요, 예배하는 대상은 그의 피조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상을 만들지 말며 절하여 섬기지 말라고 하십니까? 하나님 외에 참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요, 만물을 주관하고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신론, 범신론을 믿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자기를 가리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나만이 너희를 지은 창조주다’ 말씀하십니다. 다른 신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비기리라’했던 마귀에게서 파생된 종교입니다. 종교는 구원의 길이 아닙니다. 사망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 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 대상과 더불어 언제나 중시되는 것은 예배의 태도입니다. 우상을 하나님 섬기듯 해도 안 되지만 하나님을 불신자들이 우상 섬기는 것만큼도 섬기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예배입니다. 예배에 임하는 여러분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②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그의 도움으로만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로서 연약한 인간은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심령이 죽습니다. 사무엘은 나는 여호와 앞에 결단코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기도가 잘 안된다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뭔가 장애물이 생긴 것입니다. 코를 막고 숨을 못 쉬면 질식할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기도가 안 될 때일수록 더욱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인간은 하나님을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함께 사는 부부가 대화가 없다면 그보다 삭막한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문제라도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문제가 있다면 기도로 풀어야 합니다. 죄지은 것이 있다면 기도로 고백하십시오. 소원도 기도로 아뢰십시오. 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기도를 호흡이라 했을 때 호흡은 어떻게 합니까? 들이마시고 또 내뽑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확신을 가지고 아뢰세요. 그리고 이번에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겸손하게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여러분의 심령에 천국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③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찾는 것은 믿는 자의 삶의 최우선 순위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구원받는 데 있습니다. 영혼구원은 하나님의 가장 주된 관심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최종목적입니다. 신앙의 좋고 나쁨은 하나님의 뜻을 본인의 마음과 환경을 초월해서 받아들이느냐로 판명되어집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통한 예수님의 출생을 “주의 계집종이오니......”하면서 받아들였습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려 할 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죽을 때까지 전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증거 되기를 원하십니다. 전도와 선교가 자기 인생의 목적인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바로 한 사람입니다. 2.대물관계(對物關系)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인하여 거룩하다 일컬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을 가리켜 성도라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를 성전이라 말합니다. 성전에 구비되어 있는 가구를 가리켜 성구라 말합니다. 예배에 사용되어지는 물건들을 성물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도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할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거룩은 구별을 통해 나타납니다.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 중에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할 줄 알아야 참된 신앙인입니다. ①물질의 구별, 곧 십일조입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모든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도 없고, 떠날 때 가지고 갈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청지기로 그것을 관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물질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요구하셔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각오는 하고 살아야 합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이 것이지만 그 중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으로 내어놓으라고 친히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이 물질이 없어서 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말라기서에 보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도적질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라 말씀하시면서 십일조는 너희가 여호와께 돌아온 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왔다면 십일조를 드리라 명령하셨습니다. 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는 그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를 말씀해줍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에 속할수록 축복을 잃어버립니다. 이렇듯 인간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여 십일조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통해 행복하게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②맡은 직분에 충성하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직분을 똑같이 나누어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위한 다양한 일들이 있고, 여러 직분들이 있습니다. 주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기에 작은 일이라도 중요합니다. 일을 맡은 자는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여야 합니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한 사람을 하나님은 큰일에 크게 충성한 사람과 동등하게 취급해 주십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동일하게 칭찬하셨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 25:21) 다윗은 양치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눅 16:10).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고전 4:2).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계 2:10). ③성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그 어떤 장소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성전의 모양이 아무리 초라해도 그곳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룩하게 구별한 장소입니다. 언젠가 우리도 우리 손으로 하나님의 집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하여야 합니다. 앞서서 우리는 교회 이름을 새롭게 바꾸고 단장하려고 생각합니다.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지하실에서 어렵게 목회 하시는 개척교회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건물을 잘못 얻어 지하실 벽에서는 줄줄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장마철을 만나 눅눅하고 습기가 심해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조그만 제습기가 있기는 했지만 거의 도움이 못되는 듯했습니다. 장롱을 다 열어젖히고 옷을 향해 선풍기 바람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책들은 곰팡이가 나서 책장에 꽂아놓지도 못한 채 한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6.25 피난민이 피난해 온 듯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일 평신도라면 이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 모습이 이러니 교인들은 거의 없는 듯 싶었습니다. 사뭇 안타까움과 연민의 정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와 같은 장소를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돌아서겠지만 주님은 이곳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고 계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며 돌아서는 사람이라면 신앙적으로는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꿋꿋하게 목회 하시는 목사님을 보고 감사하는 성도라야 희망이 있는 성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도는 성전을 성전으로 구별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참된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한번이라도 쓸고 닦고 치우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오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고 또 사랑하십시오.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 신앙의 척도를 가늠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3.대인관계(對人關系)를 바로 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귀합니다.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 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함께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존귀한 자입니다. 사회적으로, 인간적으로 우리가 상대방보다 훨씬 못한 위치에 있다할지라도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그래서 자기를 사랑할 줄 알고 긍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기 긍정과 사랑이 있을 때 불의에서도 자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을 통한 자기사랑과 더불어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입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동일한 분량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마 22:37-40)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우해 달라는 말처럼 낯 뜨거운 이야기도 없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교역자 보건주일이기에 제가 여러분에게 저를 향하여 이렇게 하라 말씀을 드려도 크게 부담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하나님이 이 강단에 여러분을 위하여 세운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그를 어떻게 상대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과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에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십시오. 애경사를 만나거든 교역자와 함께 그 아픔과 기쁨을 나누십시오. 좋은 일이 있을 때, 슬픈 일이 있을 때 하나님 다음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목사라면 여러분은 신앙적으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저는 성미가 떨어지면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쌀을 가져오라고 말을 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카드를 보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말을 해도 오해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이요, 그 이유 정도는 여러분이 알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러분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다락방 집회가 있어서 충주에 가면 꼭 식사대접을 하려하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말씀하시는 장로님 가정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대접을 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 신앙과 믿음이 귀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런 대접을 받고 기쁘게 장로님 가정을 축복합니다. 여러분, 목사를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래야 여러분 신앙이 축복된 믿음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목사님 잘못이 있다 해도 덮어드리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목사이기에 제가 먼저 목사님들을 먼저 대접하는 일들에 힘을 쓰려고 합니다. 매주 세 개 교회의 주보를 작성해 드립니다. 인쇄소에서 다섯 개 교회 주보를 찾아다 교회까지 배달해 드립니다. 목사님, 안 바쁩니까? 시간 남아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니까 합니다. 제가 목사니까 더욱 목사님들에게 더욱 그렇게 합니다.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25일에 대전에 어느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목사님과 사모님이 가족들과 삼계탕 끓여 드시라며 토종닭 세 마리와 미역과 쌀 한 포대를 주셨습니다. 운전하면서 오다가 생각나는 목사님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더 어렵고 고생하시는 목사님입니다. 찾아가서 대전에서 준 거 그대로 다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아이들 먹이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성경학교 준비하느라 땀 흘리는 교사들에게 닭죽이라도 끓여주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아이들보다, 우리 교사들보다 하나님이 그 목사님을 더욱 안타깝게 여기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렇게 했으니 그렇게 알고 그 목사님, 사모님 만나면 잘 먹었다고 인사나 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내가 잘했다 그래요. 나무라지 않고 그렇게 말해주는 그런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다시 감사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과장이 아니라 별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라고 부탁을 드리는 것은 여러분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교역자를 어떻게 상대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과 필연적인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역자 보건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이렇게 도와달라는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합니다. ①영적으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를 늘 기억하고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는 사도들로 하여금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게 하기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목사가 목사 본연의 영적인 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도로 늘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②마음으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목사에게 근심거리가 되지 마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십시오. 사랑해 주시고, 화목해 주시고, 평안한 마음을 주십시오. ③물질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사렙다 과부는 자식과 함께 마지막 먹고 죽을 양식을 엘리야를 공궤하는 일에 드렸습니다. 목사가 어려울 때는 여러분이 어려움을 각오하고라도 물질적으로 도우십시오.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입니다. 목사도 지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들어가 처음 싸울 때에 모세의 팔이 내려 왔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옆에 그 두 팔을 들어주는 아론과 훌이 되십시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지쳐서 죽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떡과 물로 엘리야에게 힘을 공급하던 천사가 되십시오. 사울이 성도를 핍박한 것이 그리스도를 핍박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다메섹 언덕에서 사울에게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했습니다. 주의 종과 백성들을 돕는 일도 주님께 한 일로 인정해 주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에베소서에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하셨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대하듯 상대방을 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하듯 목사에게 하십시오. 그 신앙과 믿음이 복된 것입니다.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교역자를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라는 이유로 허물이 있어도 덮고 최선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기억하고 사랑하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축복 받은 영혼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모든 목회사역에 최선을 다해 협력하시고 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시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살아 계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단7:15-18/ 교역자보건주일설교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단7:15-18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가면서 이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은 사실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내편이 아닌”게 아니라, 반대로 “내가 세상 편이 아니라”기에 생기는 분노(憤怒)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참사(慘死)사건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은 타인(他人)과 세상 탓으로 돌리려는 빗나간 마음이 만든 비극적(悲劇的)인 사건(事件)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豫言書를 읽으면서 종말(終末)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음성적(陰性的) 비관주의의 범람(汎濫)과 악에 의한 세상 정복을 염려(念慮)합니다. 그러나 성서적인 종말론(終末論)의 진정한 의도(意圖)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 하나님의 정리된 질서 속에서 살게 되는 희망과 구원의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7장은 벨사살 원년(元年)을 배경으로 합니다, 전반부는 네 짐승에 관한 환상과 하나님의 정사와 공의의 보좌에 관한 환상을 보았는데 이것을 해석하지 못하여 근심하며 번민하였습니다. 이렇게 번민하던 중 하나님을 모신 자 중 하나에게 이 일을 물어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해석은 세상에서 일어날 왕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글이 쓰여진 연대로는 안티쿠오스 칙령으로 성전(聖殿)이 모독(冒瀆) 당하고 재정화 사건이 있었던 기원전 17년경으로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전반부의 계시의 내용은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네 짐승에 대한 것과 옥좌에 앉으신 이에 대한 것, 그리고 구름 타고 오시는 인자에 대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꿈은 하늘에서 갑자기“네 바람”이 큰 구름을 타고 몰려오는 것을 시작됩니다. 그러자 거대한 짐승 네 마리가 바다에서 올라오게 되는데 모두 괴상한 형체를 지닙니다. 첫 번째 짐승은 독수리 날개를 가지고 있는 사자였고, 그 날개가 뽑히면서 사람처럼 일어나는 모습이고, 두 번째 짐승은 입에 갈비뼈 세 개를 물고 있는 곰인데 이 괴물의 특징은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서 있다는 점이고 마지막 짐승은 가장 끔찍한 무서운 모양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쇠 이빨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든지 으스러 뜨릴 수 있는 짐승입니다. 이 짐승은 열개의 뿔을 가지고 있고 그 뿔들 사이에서 갑자가 작은 뿔들이 생기더니 먼저 생긴 뿔 세 개가 뽑힙니다. 놀랍게도 이 작은 뿔에 사람의 눈 같은 것이 박혀있고 입이 있어서 말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끔찍한 짐승의 등장으로 세상이 부서지고 망하는 파멸로 하나님의 계시의 끝이 아니라 다니엘이 본 환상 가운데 천상 옥좌에 앉으신 “연세 많은 분”을 보게 됩니다. 하늘 보좌는 책들이 펴 있었는데 천상 법정이 펼쳐집니다. 이 때 입을 가지고 있던 네 번째 짐승이 살해되고 그 몸은 불태워지게 됩니다. 나머지 짐승들은 통치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통치권과 영예가 주어집니다. 이 예언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우리에게 과연 내일을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하여 앞으로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눕시다. 1. 계시(啓示)는 성도들의 위로(慰勞)를 위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그가 행한 죄과대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강대국의 힘에 의한 진노(震怒)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과 그의 동료 세 명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어 교만한 강대국 갈대아의 지혜와 학문과 재능을 꺾으시고 다니엘을 왕의 곁에 두심으로써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를 알도록 하셨습니다(단1장). 즉 하나님은 그의 종 다니엘에게 환상을 통한 계시의 말씀을 계속 주시므로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미리 알도록 하셨습니다. 또 이것은 갈대아 왕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를 알게 하시고 끝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나라를 얻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단 7:18, 22, 27 마 25:34). 이 말씀은 포로로 잡혀 온 선민(選民)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비록 그들이 바벨론에서 애급에서처럼 큰 학대나 자유의 억압을 받지는 않았으나, 고향을 떠나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이 큰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말씀은 귀환(歸還)의 빛은 보이지 않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는 상황에서도 그들로 하여금 귀환의 소망을 버리지 않게 하였을 것입니다. 2. 계시에는 겸손(謙遜)을 위한 배려(配慮)까지도 포함됩니다.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중요한 계시를 받았지만 그것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번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번민하고 근심(謹審)케 하심은 그 이상의 중요함을 확실하게 깨닫게 하면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적인 지혜(智慧)나 짧은 지식을 사용케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통속적(通俗的)으로 다루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조차도 하나님께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配慮)가 있었기에 다니엘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고 세상에서 제일 큰 지식과 학문과 지혜를 받고도 교만(驕慢)하지 아니하며 겸손(謙遜)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이상을 보이시고 말씀을 주시지만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끝까지 겸손할 수 있도록 섭리하시고 배려하십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의 경우 자신에 대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너무 커서 바울은 세 번이나 그것이 떠나기를 주께 간구하였는데 주께서 응답(應答)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받은 은혜가 큰 자에게는 겸손(謙遜)을 위한 사탄의 사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우리의 자만을 방지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 모든 역사(歷史)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자 중의 하나가 다니엘에게 이상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는 네 짐승의 이상은 네 왕국의 일어섬을 말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네 제국(帝國)에서 네 왕이 일어나고 그들이 서로를 멸망시키는 역사가 오리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 와 있는 갈대아의 왕 벨사살에게 이미 멸망이 다가와 있음을 말해 주며, 다니엘과 그의 백성들이 포로로서 암흑과 같은 시대를 보내고 있으나 곧 해방의 기쁨을 맞이하게 될 것을 말해 준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역사는 인간의 의지대로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실 세상의 강한 것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또 다른 강한 것이 나와 그 전의 강한 것을 부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종래에는 하나님의 성도들, 백성들이 승리하며 그 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오늘날도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그의 손길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굳게 믿는다면 인간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주관자(主管者)이신 하나님 앞에 순복(順服)하며 따름이 옳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을 알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일은 그리스도에 의하지 않고서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그리스도에 의하지 않으면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실로 사람이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도마에게 말씀하시었다. ’내가 곧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지나치게 숙고하는 자는 무엇이든 거의 이루어 놓지 못합니다. 용기 있는 이들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타인들 모두가 내편이 되어 주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남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내 편이 되어 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신 황금률이 그러합니다. “남에게 대접(待接)을 받고자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그 기본 틀이 하나님 편에 있을 때를 전제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을 때에 비로소 종말론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삶의 비틀어짐이 불특정(不特定) 다수(多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것은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세상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는 마음의 덫을 성경은 여실히 고발해 줍니다. 현재의 불행이 누구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더욱 증폭 시키면 우리에게 내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내일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절망 속에 몸부림치게 되고 이 병든 생각이 세상을 망가뜨리는 주역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도 죄인지만 너 역시 죄인이니 세상이 망하여야 이 분풀이가 풀릴 것 같은 상상은 세상을 파괴합니다. 나를 죄인으로 만들고 너희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게 하는 치우진 분노와 증오의 풍조가 망해야 할 것의 진정한 정체 입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새 하늘, 새 땅, 종말론적인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종말 사상의 궁극적인 의미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내일이 있기에” 소망 속에 살아갑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소망의 인내를 기억하고 붙잡고 살아갑시다. 오늘 교역자 보건주일에 영원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고 섬기는 이들을 돌보는 여러분의 사랑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주일이 되리라 믿습니다.
영적 웰빙의 사람/ 요삼1:1-8/ 교역자보건주일설교/ 2005-01-26
영적 웰빙의 사람 요삼1:1-8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기독교대한 감리회가 교역자들의 건강이 교회의 건강에 지대하기 때문에 정한 주일입니다. 교역자의 건강과 영혼이 늘 맑아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성도의 영혼을 보살피는데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해마다 건강진단을 하게하고 온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와 순종과 협력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의 열심과 능력있는 목회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준종해야 할 것입니다.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성도여러분 영과 육이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영적 건강을 위해 설교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교역자의 건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웰빙(well being)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웰빙이란? 사전을 찾아보면 \\\"행복\\\", \\\"안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삶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웰빙의 삶입니다. ‘웰빙’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 단순한 의식주 해결을 넘어 ‘질병 없이 건강한 인생을 살자,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뜻이다. 요즘, 웰빙족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래의 세가지를 균형있게 갖고 싶어합니다. 1) 육체적 웰빙-건강 증진을 위한 생활습관-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휴식. 2) 정신적 웰빙 - 자신에 대한 만족과 자부심 중요 - 명상과 요가 등 정신수양,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정신건강을 추구합니다. 3) 사회적 웰빙 - 직장 또는 공동체에서 소속감과 함께 성취감을 느끼는 상태. 이 웰빙 생활의 단점은 이기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자기만 잘 먹고 살면 된다는 의식 . . .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러 가지로 힘들고 피곤하고 찌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보통 사람들이 늘 추구하는 일반적인 삶의 가치는 잘사는 것, 훌륭하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등일 것입니다. 모든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이런 웰빙의 소망을 다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교회도 웰빙교회(Well Being Community Church)도 생겨났습니다. 동숭동에 있습니다. 웰빙교회는 대형 교회들이 갖지 못하는 최대의 강점인 ‘소규모’교회로서의 장점을 살리는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의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축제의 예배,, 행복한 주말교회 추구, 전인적 치유를 통한 아름다운 대인관계의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요즘 유명한 새안산교회는 불신자가 좋아서 스스로 찾아오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다양한 레포츠 시설(체육관, 헬스실, 스쿼시실, 수영장, 사우나, 카페 등)과 문화시설(소극장, 콘서트 홀, 세미나실, 컴퓨터실, 연회장 등) 그리고 복지시설(장애우 교실, 놀이방, 이동목욕차량, 편의시설 등)을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문화교실, 다양한 문화 행사, 세미나, 음악회, 놀이 이벤트 등으로 건강한 생명문화를 만들어가는 센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기쁨으로 감사하게 사는 것을 영적인 웰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육체적으로는 가난과 환란과 핍박이 닥치는 삶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웰빙의 삶을 살았던 무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을 주신 때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2절)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교회 가이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라는 말의 뜻은 헬라어의 어원적 의미는 “잘, 좋게, 행복하게, ” 즉 웰빙입니다.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육체에 생명이 있으면 심장이 뜁니다. 이와같이 영혼이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호흡이 그치듯이 하나님이 영혼을 거두시면 멈춥니다. 현대인들은 육체를, 건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1위 건강, 2위 돈 3위 인간관계라고 . 육체가 중요하듯이 영혼이 중요합니다. 영혼이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아입니다. 속사람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찬양과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지성소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된다는 것(영혼이 건강하다는 것)은 그 영혼이 하는 일 즉, 하나님께 기도 찬양 예배하는 일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시42:1을 보면, 이러한 영혼의 갈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을 찾아 갈망하는 내면의 자아, 이것이 바로 영혼의 건강한 모습입니다. 몸에 좋다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보양식으로는 우리나라게 세계에서 제일 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닏다. 그러면서도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그는 젊고 건강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되어 재산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다른 사람보다도 2-3배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는 쌓아놓을 창고가 없을 정도로 곡식이 넘쳐 났습니다. 그는 가끔 자기의 배를 두들기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영혼에 대해 무관심한 어리석은 사람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인해서 병들고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망가진 영혼의 기능을 다시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제는 영혼이 우리 영혼의 지성소가 올바르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교인인가? 교인의 종류를 흥미있게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1) 뒤에서 밀어 줘야 간신히 앞으로 가는 휠체어 교인 2) 등을 두드려 줘야 칭얼거리기를 그치는 어린애같은 교인 3) 도무지 언제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미식 축구공같은 교인 4) 바람만 잔뜩 들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무풍선같이 불안한 교인 5) 끌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 트레일러같은 교인 6) 항상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깜빡등과 같은 교인 7) 성령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꾸준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실한 성도. 당신은 . . . .? 꾸준히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령충만하고 건강한 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년에 한번씩 건강 진단을 해 봐야 하듯이 우리 영혼의 건강진단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간암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모두들 좀 일찍 검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몇 년 전부터 검사를 한번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장에 혹이 생겨 증상이 나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젊어서부터 줄담배를 피우고 폭음을 해왔는데 건강을 생각해서 절제하라고 권하면 ‘담배 피우고 술 마셔도 오래 사는 사람 많더라, 이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사냐\\\'면서 듣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생활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문제가 없으니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를 짓고 불순종할 때마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금방 돌이킬 텐데,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그 은혜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진단도 정기적으로 해봐야 합니다. 그럼 영적으로 건강진단을 할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1. 예배가 즐거운가? 예배는 영적 건강진단에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가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모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불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대부분은 휴일이니까 잠도 푹- 많이 잡니다. 그래서 교회가는 것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 믿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주일날 하나님 앞에가서 에배드리는 것을 즐거워하지 못하는 성도가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할머니 사랑을 맛본 손자 손녀는 할머니집에 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시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기자는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 . 시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성전에 거하는 참새와 제비가 부럽다고까지 하였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의 맛이 단가?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는 첫째, 말씀의 맛이 좋은 것입니다. 몸이 아프면 입맛이 딱,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병들면 말씀의 맛부터 잃어버리게 됩니다. 설교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 됩니다. 가장 졸린 시간, 가장 괴로운 시간이 됩니다. 연애하는 중에 조는 사람 있습니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겠죠? 어떤 분은 설교시간에 껌을 짝짝 씹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행위입니다. 옆사람과 얘기 하는 사람. . .그렇게 이야기 할 시간이 없습니까? 다 병든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병들고 메마른 사람들입니다. 어떤 성도가 매일 성경을 20장을 읽기로 작정했습니다. 며칠 지나니까 부담스러워 10장으로 줄였습니다. 그런데도 부담스러웠습니다. 5장, 1장으로 줄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도 귀찮아서 ‘하나님이 많이 읽기만 해야 기뻐하시냐? 말씀대로 살아야지’하면서 그날 그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한절만 확실히 읽고 확실이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탁 펴서 손가락으로 집히는곳을 읽기로 했습니다. 어느날입니다. 손가락으로 짚은 말씀이 마27:5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이상하다. 싶어 다시 한번 짚었습니다. 그랬더니 눅10:37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렇게 되니까 빨리 가서죽으라는 말 같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했습니다. 손가락으로 탁 짚었습니다. 그랬더니 요13:27절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바르게 잘 읽자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에너지입니다. 말씀은 묵상해야 힘이 됩니다. 묵상은 우리 영혼을 위한 좋은 약입니다. 묵상은 영적 건강을 위한 유산소 운동이다. 묵상을 생활화합시다. 묵상하지 않고 많이 읽는 것 보다 성경 한 구절을 읽고 그 구절을 묵상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성경은 묵상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고 묵상은 기도에 필요한 양식을 제공합니다. 닭이 알을 품어 알을 까듯이 성경말씀을 마음에 품고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묵상의 기본이다. 그래서 묵상은 ‘되새김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되새김질은 단맛을 냅니다. 사골의 깊은 맛과 묵상은 같은 원리입니다.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 . . 오직 말씀을 주야로 묵상 . . . 여러분 영혼이 건강하고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무시로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은 것처럼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끊어지면 영적 건강을 상실한 증거가 됩니다. 기도는 아무리 커도 큰 기도가 없고, 아무리 작아도 작은 기도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시시한 것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시시한 기도가 신령한 기도로 위대한 기도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시한 것 같은 기도라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뢰라고 하신 약속을 의지하여 간구합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그 사람의 영적 건강의 척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듯이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기도에 게으른 성도가 많습니다. 마음은 기도해야 하는데 . . .그런 마음만가지고는 안됩니다. TV보고, 신문과 잡지는 다 읽으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평소에 기도하십시오. 무슨 문제를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만나야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도록 하시기 위해 계속 문제를 허락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으실 것입니다. 기도는 급할 때만 사용하는 비상벨이 아니라 매일 승리하는 삶의 원천이 됩니다. 이 세상 험한 나그네의 길입니다. 이 길은 잘 가려면 하나님과 기도 중에 만나고 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 살 때 우리는 능력 있는 삶, 어떤 시험에서도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기쁨과 즐거움이 뒤따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지금은 이처럼 기도하며 살아갈 때입니다. 3.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가? 여러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봉사하십니까? 억지로 짜증스럽게 하십니까? 봉사가 즐거운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가이오라는 분입니다. 가이오는 당시 순회 전도자를 잘 대접한 분입니다. 순회전도자가 누구입니까? 당시에는 한 곳에 상주하는 목회자가 많지 않아서 순회하는 전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대접하고 다음 순회자까지 갈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가이오는 선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이런 것이 영혼이 잘되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가이오와 같지 않았습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가이오 같은 분을 멸시하고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돕고 협력하는 자가 아니라 방해하고 허물어뜨리는 자입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항상 기뻐하는 자세는 건강을 가져옵니다. 기쁨은 바로 우리 마음에 가장 중요한 비타민입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시험들고 넘어지고 비난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 거리는 것입니다. 잠언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양약입니다. 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한 왕입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최고의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윗도, 백성의 지도자들도 즐거움으로 헌신했습니다. 대상29:9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즐겁게 헌신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드리고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14) 라고 고백합니다. 억지로 하지말고,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움으로 헌신할 때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나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네마음을 새롭게하소서- 새부대가 되게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 -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4. 예수를 자랑하고 싶은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전도입니다. 이것이 의무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의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교육의 의무\\\",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국민의 의무입니다. \\\"전도\\\"도 성도의 의무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학생이 공부하지 않는다면 학생입니까? 직장인이 일은 안하고 농땡이를 친다면 . . .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참 그리스도인이겠습니까? 전도는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하는 것이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 강조합니다. 최근 미국의 기독교 조사기관인 바나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도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삶이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74%라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전도에 충실하지 않을 것으로 오해되고 있으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미국내 크리스천들 전체 성인의 38%가 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도자들이 비전도자들보다 훨씬 더 신앙과 생활면에서 훨씬더 만족감을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도들은 전도를 어렵게 생각한다. 무거운 짐으로 여깁니다. 전도는 내 일이 아니라 교회 행사로만 생각하고, 은사자만이 할 일이라고 미룹니다. 그러나 전도는 은사이기 이전에, 예수님의 명령이요 유언입니다. 전도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전도는 신앙이 온전해 지는 길입니다. 전도하는 성도는 복음에 굳게 서게 되고,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에 사탄이 틈타지 못합니다. 전도하면 산 신앙이 됩시다. 예레미야는 20장 9절에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전도의 불이 붙는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 좋은 청년이 친구들과 등산을 가서 절에서 물을 먹다가 갑자기 스님에게 전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스님한테 가서 종교에 대해 관심이 얘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스님이 불교신자 하나 생기는 줄 알고 좋아하면서 응해 주었습니다. 한참 질문하다 이 청년이 말했습니다. \\\"스님!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네요. 스님은 훌륭하신 것 같은데 종교는 잘못 택하신 것 같아요. 교회 다녀 보세요.\\\" 그러니까 스님이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래서 고얀 놈이라고 욕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이 청년이 말할 때마다 \\\"나무 관세음보살. . .\\\"하더랍니다. 대화가 끝나고 이 청년은 떠나면서 \\\"스님, 꼭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일주일만에 이 청년이 그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님! 예수 믿으세요. 제가 기도할께요.\\\" 스님은 그 편지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또 똑같은 편지가 왔습니다. 또 찢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매 주간, 몇 달 오니까 찢어버리긴 해도 편지 오는 날만 되면 \\\"오늘 또 오나\\\"하고 편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또 왔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편지를 받던 중 이 스님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2년 만에 스님이 답장을 했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구나!\\\" 그래서 며칠 후에 빵집에서 만나 청년은 그 날 저녁 부흥회에 한번 가자고 했습니다. 스님은 옷 때문에 사양했지만 청년은 괜찮다고 하며 스님을 모시고 부흥회에 갔습니다.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흥강사가 승복을 입은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설교하는데 자꾸만 스님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고 나서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길 원하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러자 스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결국 그 날 스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중에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불교권을 집중으로 선교하는 목사가 되었고, 그분을 통해 많은 스님이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라\\\" 여러분 웰빙시대에 영적으로 건강하십시오. 예배가 즐거운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단사람, 무시로 기도하는 삶,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사람, 수를 자랑하는 사람. 영적으로 웰빙의 삶을 사십시오.
영적 웰빙의 사람/ 요삼1:1-8/ 교역자보건주일설교/ 2005-01-26
영적 웰빙의 사람 요삼1:1-8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기독교대한 감리회가 교역자들의 건강이 교회의 건강에 지대하기 때문에 정한 주일입니다. 교역자의 건강과 영혼이 늘 맑아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성도의 영혼을 보살피는데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해마다 건강진단을 하게하고 온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와 순종과 협력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자의 열심과 능력있는 목회의 삶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준종해야 할 것입니다.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성도여러분 영과 육이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영적 건강을 위해 설교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교역자의 건강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웰빙(well being)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웰빙이란? 사전을 찾아보면 \"행복\", \"안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삶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육체적인 질병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질병도 없는 상태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웰빙의 삶입니다. ‘웰빙’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 단순한 의식주 해결을 넘어 ‘질병 없이 건강한 인생을 살자,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뜻이다. 요즘, 웰빙족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대개 아래의 세가지를 균형있게 갖고 싶어합니다. 1) 육체적 웰빙-건강 증진을 위한 생활습관-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휴식. 2) 정신적 웰빙 - 자신에 대한 만족과 자부심 중요 - 명상과 요가 등 정신수양, 독서와 사색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이기고 정신건강을 추구합니다. 3) 사회적 웰빙 - 직장 또는 공동체에서 소속감과 함께 성취감을 느끼는 상태. 이 웰빙 생활의 단점은 이기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자기만 잘 먹고 살면 된다는 의식 . . .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여러 가지로 힘들고 피곤하고 찌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보통 사람들이 늘 추구하는 일반적인 삶의 가치는 잘사는 것, 훌륭하게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등일 것입니다. 모든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이런 웰빙의 소망을 다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교회도 웰빙교회(Well Being Community Church)도 생겨났습니다. 동숭동에 있습니다. 웰빙교회는 대형 교회들이 갖지 못하는 최대의 강점인 ‘소규모’교회로서의 장점을 살리는 ‘성도들이 행복한 교회’의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축제의 예배,, 행복한 주말교회 추구, 전인적 치유를 통한 아름다운 대인관계의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라고 합니다. 요즘 유명한 새안산교회는 불신자가 좋아서 스스로 찾아오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다양한 레포츠 시설(체육관, 헬스실, 스쿼시실, 수영장, 사우나, 카페 등)과 문화시설(소극장, 콘서트 홀, 세미나실, 컴퓨터실, 연회장 등) 그리고 복지시설(장애우 교실, 놀이방, 이동목욕차량, 편의시설 등)을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문화교실, 다양한 문화 행사, 세미나, 음악회, 놀이 이벤트 등으로 건강한 생명문화를 만들어가는 센터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안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기쁨으로 감사하게 사는 것을 영적인 웰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육체적으로는 가난과 환란과 핍박이 닥치는 삶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웰빙의 삶을 살았던 무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을 주신 때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2절)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 교회 가이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향해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라는 말의 뜻은 헬라어의 어원적 의미는 “잘, 좋게, 행복하게, ” 즉 웰빙입니다. 영혼이란 무엇일까요? 육체에 생명이 있으면 심장이 뜁니다. 이와같이 영혼이 생명이 있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심장이 멈추면 호흡이 그치듯이 하나님이 영혼을 거두시면 멈춥니다. 현대인들은 육체를, 건강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모릅니다.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1위 건강, 2위 돈 3위 인간관계라고 . 육체가 중요하듯이 영혼이 중요합니다. 영혼이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자아입니다. 속사람입니다.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찬양과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잡은 지성소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된다는 것(영혼이 건강하다는 것)은 그 영혼이 하는 일 즉, 하나님께 기도 찬양 예배하는 일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시42:1을 보면, 이러한 영혼의 갈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을 찾아 갈망하는 내면의 자아, 이것이 바로 영혼의 건강한 모습입니다. 몸에 좋다면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먹어대는 보양식으로는 우리나라게 세계에서 제일 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에 얼마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닏다. 그러면서도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어리석은 부자가 나옵니다. 그는 젊고 건강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마다 잘되어 재산이 점점 불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다른 사람보다도 2-3배 많은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나중에는 쌓아놓을 창고가 없을 정도로 곡식이 넘쳐 났습니다. 그는 가끔 자기의 배를 두들기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영혼에 대해 무관심한 어리석은 사람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죄로 인해서 병들고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흘리신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우리의 망가진 영혼의 기능을 다시금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제는 영혼이 우리 영혼의 지성소가 올바르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교인인가? 교인의 종류를 흥미있게 묘사한 것이 있습니다. 1) 뒤에서 밀어 줘야 간신히 앞으로 가는 휠체어 교인 2) 등을 두드려 줘야 칭얼거리기를 그치는 어린애같은 교인 3) 도무지 언제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미식 축구공같은 교인 4) 바람만 잔뜩 들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무풍선같이 불안한 교인 5) 끌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 트레일러같은 교인 6) 항상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깜빡등과 같은 교인 7) 성령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꾸준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실한 성도. 당신은 . . . .? 꾸준히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령충만하고 건강한 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년에 한번씩 건강 진단을 해 봐야 하듯이 우리 영혼의 건강진단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간암말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모두들 좀 일찍 검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은 몇 년 전부터 검사를 한번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다가 장에 혹이 생겨 증상이 나타나서야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젊어서부터 줄담배를 피우고 폭음을 해왔는데 건강을 생각해서 절제하라고 권하면 ‘담배 피우고 술 마셔도 오래 사는 사람 많더라, 이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사냐\'면서 듣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당장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생활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문제가 없으니까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를 짓고 불순종할 때마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금방 돌이킬 텐데,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그 은혜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적인 진단도 정기적으로 해봐야 합니다. 그럼 영적으로 건강진단을 할 수 있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1. 예배가 즐거운가? 예배는 영적 건강진단에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가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나님이 좋아서 모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너무나 좋기 때문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는 일찍 일어나야 하는 불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의 대부분은 휴일이니까 잠도 푹- 많이 잡니다. 그래서 교회가는 것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 믿는 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주일날 하나님 앞에가서 에배드리는 것을 즐거워하지 못하는 성도가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할머니 사랑을 맛본 손자 손녀는 할머니집에 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시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편기자는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 . 시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성전에 거하는 참새와 제비가 부럽다고까지 하였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의 맛이 단가?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영적으로 건강한 성도는 첫째, 말씀의 맛이 좋은 것입니다. 몸이 아프면 입맛이 딱,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병들면 말씀의 맛부터 잃어버리게 됩니다. 설교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 됩니다. 가장 졸린 시간, 가장 괴로운 시간이 됩니다. 연애하는 중에 조는 사람 있습니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겠죠? 어떤 분은 설교시간에 껌을 짝짝 씹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행위입니다. 옆사람과 얘기 하는 사람. . .그렇게 이야기 할 시간이 없습니까? 다 병든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의 설교를 평가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망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심령이 병들고 메마른 사람들입니다. 어떤 성도가 매일 성경을 20장을 읽기로 작정했습니다. 며칠 지나니까 부담스러워 10장으로 줄였습니다. 그런데도 부담스러웠습니다. 5장, 1장으로 줄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것도 귀찮아서 ‘하나님이 많이 읽기만 해야 기뻐하시냐? 말씀대로 살아야지’하면서 그날 그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한절만 확실히 읽고 확실이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탁 펴서 손가락으로 집히는곳을 읽기로 했습니다. 어느날입니다. 손가락으로 짚은 말씀이 마27:5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이상하다. 싶어 다시 한번 짚었습니다. 그랬더니 눅10:37절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렇게 되니까 빨리 가서죽으라는 말 같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한번 더 했습니다. 손가락으로 탁 짚었습니다. 그랬더니 요13:27절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바르게 잘 읽자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에너지입니다. 말씀은 묵상해야 힘이 됩니다. 묵상은 우리 영혼을 위한 좋은 약입니다. 묵상은 영적 건강을 위한 유산소 운동이다. 묵상을 생활화합시다. 묵상하지 않고 많이 읽는 것 보다 성경 한 구절을 읽고 그 구절을 묵상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성경은 묵상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고 묵상은 기도에 필요한 양식을 제공합니다. 닭이 알을 품어 알을 까듯이 성경말씀을 마음에 품고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묵상의 기본이다. 그래서 묵상은 ‘되새김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되새김질은 단맛을 냅니다. 사골의 깊은 맛과 묵상은 같은 원리입니다.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 . . 오직 말씀을 주야로 묵상 . . . 여러분 영혼이 건강하고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무시로 기도하고 있는가?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은 것처럼 영혼의 호흡인 기도가 끊어지면 영적 건강을 상실한 증거가 됩니다. 기도는 아무리 커도 큰 기도가 없고, 아무리 작아도 작은 기도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시시한 것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시시한 기도가 신령한 기도로 위대한 기도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시한 것 같은 기도라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뢰라고 하신 약속을 의지하여 간구합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그 사람의 영적 건강의 척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듯이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요즘 기도에 게으른 성도가 많습니다. 마음은 기도해야 하는데 . . .그런 마음만가지고는 안됩니다. TV보고, 신문과 잡지는 다 읽으면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평소에 기도하십시오. 무슨 문제를 만나고, 어려운 일을 만나야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도하도록 하시기 위해 계속 문제를 허락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으실 것입니다. 기도는 급할 때만 사용하는 비상벨이 아니라 매일 승리하는 삶의 원천이 됩니다. 이 세상 험한 나그네의 길입니다. 이 길은 잘 가려면 하나님과 기도 중에 만나고 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의 품안에 안겨 살 때 우리는 능력 있는 삶, 어떤 시험에서도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기쁨과 즐거움이 뒤따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지금은 이처럼 기도하며 살아갈 때입니다. 3.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가? 여러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봉사하십니까? 억지로 짜증스럽게 하십니까? 봉사가 즐거운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가이오라는 분입니다. 가이오는 당시 순회 전도자를 잘 대접한 분입니다. 순회전도자가 누구입니까? 당시에는 한 곳에 상주하는 목회자가 많지 않아서 순회하는 전도자들이 많았습니다. 교회는 그들을 대접하고 다음 순회자까지 갈 수 있도록 후원합니다. 가이오는 선한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이런 것이 영혼이 잘되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가이오와 같지 않았습니다.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있었는데 가이오 같은 분을 멸시하고 교회에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돕고 협력하는 자가 아니라 방해하고 허물어뜨리는 자입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항상 기뻐하는 자세는 건강을 가져옵니다. 기쁨은 바로 우리 마음에 가장 중요한 비타민입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시험들고 넘어지고 비난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 거리는 것입니다. 잠언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기쁨으로 주의 일을 하십시오 이것이 양약입니다. 힘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한 왕입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최고의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윗도, 백성의 지도자들도 즐거움으로 헌신했습니다. 대상29:9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즐겁게 헌신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드리고도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14) 라고 고백합니다. 억지로 하지말고,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움으로 헌신할 때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나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네마음을 새롭게하소서- 새부대가 되게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 -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4. 예수를 자랑하고 싶은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의무는 무엇일까요?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전도입니다. 이것이 의무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의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교육의 의무\",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국민의 의무입니다. \"전도\"도 성도의 의무중에 하나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학생이 공부하지 않는다면 학생입니까? 직장인이 일은 안하고 농땡이를 친다면 . . .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참 그리스도인이겠습니까? 전도는 환경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하는 것이다.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 강조합니다. 최근 미국의 기독교 조사기관인 바나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도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삶이 매우 행복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74%라고 합니다. 사실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전도에 충실하지 않을 것으로 오해되고 있으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미국내 크리스천들 전체 성인의 38%가 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전도자들이 비전도자들보다 훨씬 더 신앙과 생활면에서 훨씬더 만족감을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도들은 전도를 어렵게 생각한다. 무거운 짐으로 여깁니다. 전도는 내 일이 아니라 교회 행사로만 생각하고, 은사자만이 할 일이라고 미룹니다. 그러나 전도는 은사이기 이전에, 예수님의 명령이요 유언입니다. 전도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전도는 신앙이 온전해 지는 길입니다. 전도하는 성도는 복음에 굳게 서게 되고,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에 사탄이 틈타지 못합니다. 전도하면 산 신앙이 됩시다. 예레미야는 20장 9절에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전도의 불이 붙는 사람입니다. 어떤 믿음 좋은 청년이 친구들과 등산을 가서 절에서 물을 먹다가 갑자기 스님에게 전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스님한테 가서 종교에 대해 관심이 얘기하고 싶다고 하니까 스님이 불교신자 하나 생기는 줄 알고 좋아하면서 응해 주었습니다. 한참 질문하다 이 청년이 말했습니다. \"스님!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네요. 스님은 훌륭하신 것 같은데 종교는 잘못 택하신 것 같아요. 교회 다녀 보세요.\" 그러니까 스님이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래서 고얀 놈이라고 욕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이 청년이 말할 때마다 \"나무 관세음보살. . .\"하더랍니다. 대화가 끝나고 이 청년은 떠나면서 \"스님, 꼭 예수 믿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일주일만에 이 청년이 그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님! 예수 믿으세요. 제가 기도할께요.\" 스님은 그 편지를 찢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에 또 똑같은 편지가 왔습니다. 또 찢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매 주간, 몇 달 오니까 찢어버리긴 해도 편지 오는 날만 되면 \"오늘 또 오나\"하고 편지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또 왔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편지를 받던 중 이 스님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이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2년 만에 스님이 답장을 했습니다. \"한번 만나고 싶구나!\" 그래서 며칠 후에 빵집에서 만나 청년은 그 날 저녁 부흥회에 한번 가자고 했습니다. 스님은 옷 때문에 사양했지만 청년은 괜찮다고 하며 스님을 모시고 부흥회에 갔습니다.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흥강사가 승복을 입은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른 척 하고 설교하는데 자꾸만 스님 때문에 신경이 거슬렸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고 나서 담대하게 선포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길 원하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러자 스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결국 그 날 스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중에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지금은 불교권을 집중으로 선교하는 목사가 되었고, 그분을 통해 많은 스님이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라\" 여러분 웰빙시대에 영적으로 건강하십시오. 예배가 즐거운 사람, 하나님의 말씀이 단사람, 무시로 기도하는 삶,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 사람, 수를 자랑하는 사람. 영적으로 웰빙의 삶을 사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하였도다/ 갈4:12-15/ 교역자 보건주일설교/ 2001-09-05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하였도다 갈4:12-15 오늘은 감리교 교역자 보건주일이다. 한 교회의 교역자가 질병으로 시달리면 한가정의 가장이 질병으로 고생할 때에 당하는 고통과 같은 고통이 따르는 줄 믿습니다. 건강이란 평소의 건강관리를 통하여 지속되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면 명예나 지위 재물을 모두다 잃어버리고 마는 줄 믿습니다. 건강한 목사는 건강한 교회를 만들 수 있고 건강한 목사에게 튼튼한 교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역자가 병들어 있으므로 어려움을 당하지 말고 위하여 염려하여 주고 건강을 돌보아 주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1. 육체의 연약함이 인연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육체의 건강만을 생각했으나 요즘엔 건강을 말할 때 정신적인 건강을 함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육신적으로 건강한 이도 정신적으로 병이 들면 신앙이 약해져 참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한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병이 없다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당장은 특별한 병이 나타나지 않아도 병들 소지를 안고 있다면 이것은 건강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단 시간내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늘 조절하고 돌볼 때 그리고 건강관리를 생활해 나갈 때 가능한 것인데 여기엔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습니다. 교역자들은 이 범주에서 예외가 아님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자요 설교자 교회의 설립자이면서 뛰어난 신학자였고 온유한 심령을 소유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인자한 목회자 였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훌륭한 교육자 상이 담겨있는 모든 문제를 성령 안에서 해결했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 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하며 깊은 탄식을 뱉아 냈습니다. 이것은 실로 기막힌 패배자의 비명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때의 바울은 어떤 상태이며 어떤 자아였을까요? 그것은 이중적인 자아였으며 죄악의 자아(롬7:19-20) 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곤고한 사람`이라고 영혼을 쥐어짜는 고민을 호소한 것입니다. 바울의 탄식의 탄식은 교회의 믿음이나 인류의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탄식인 것입니다. 과연 그가 회심과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이런 탄식을 했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 고백은 그가 회심한 후 사도가 되어 주를 쫓을 때 했던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 고민을 온갖 간고를 겪고 고난을 뼈 속까지 절감한 자의 호소입니다. 이는 교역자만이 안고있는 아픔이요 절망과 극심한 의로움 속에서 우러나오는 부르짖음입니다. 절대 고독 속에 빠져 있는 존재의 가슴을 찢는 울부짖음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역자들이 때론 바울과 같이 우리의 교역자들이 때로 영육의 피곤함과 삶의 이중성으로 인해 고민할 때 사도 바울을 통해 위로 받고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역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길을 천직으로 알고 날마다 소명으로 인식하며 사는 분들을 존경하는 일은 마땅한 일입니다. 평신도야 직장도 옮기고 직업도 바꾸고 싶으면 바꿀 수 있으나 목사는 죽을 때까지 그 길을 가야하니 더더욱 외길을 걷고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든 교역자야 더욱 존경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양을 지키기, 위해 교역자들은 얼마나 참았고 얼마나 울었고 얼마나 아파했습니까? 양들에게 빛을 주기 위해 어둠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푸른 풀밭으로 양들을 이끌기 위해 질퍽거리는 시궁창을 거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 성도는 교역자에게 큰 위로와 소망 용기를 주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2. 천사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하듯이 영접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을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로 받아들였습니다. 바른 생각은 바른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해하여 주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신이 아니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말이나 행동에 실수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쉽게 낙심하거나 할 수도 있습니다. 과로하면 쓰러지기도 합니다. 엘리야도 쉽게 낙심하여 지기도 하였습니다. 걱정도 있는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역자는 제사장의 입장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신령한 양식을 공급하며, 교사의 입장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행정가로 교회의 행정을 맡아 살피며, 전도자로서 복음을 여러가지 모양으로 전하고, 상담자로서 여러분의 생활문제를 상담하고, 심방자로서 교인들의 가정을 방문하고 권면과 위로를 하며 지나고 있으므로 항상 바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소아시아 교회에 편지하면서 두 가지 부류의 성도를 언급하는데, ①그들을 통해 위로 받는 성도요, ②근심스러운 성도였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의 성도는 바울의 건강을 위하여 참으로 아름다운 덕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로, \"업신여기지도 아니하였다\"(14)라고 했습니다. 흔히들 자기들은 병원이나 약방에 가도 목사는 가서는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뿐 아니라 주초문제를 자기들은 해결 못해도 목사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좋은 교회는 교역자의 약한 문제에 대하여 업신여기지 아니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줄 믿습니다. 둘째로, \"버리지도 아니하고\"(14)했습니다. 근래의 교회가 목사가 병들거나 늙으면 배척하는데가 있습니다. 목사가 별세하면 그 가족을 배척해 버립니다. 그게 교회의 모습입니까? 오히려 더 위로하고 도와주어야 할터인데 말입니다. 마25:31-46에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을 보면 이렇습니다.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모든 민족의 심판의 비유에서 양과 염소를 분류함과 같은 목사의 심정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합니다.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혀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의인들이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하자 임금은 대답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리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왼편에 있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빼어\" 바울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눈은 지체 중 제일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또한 눈입니다. 자신의 제일 중요한 것을 바울에게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 줄 수 있었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온 천사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갈라디아의 성도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3. 아름다운 것은 지켜져야 합니다. 바람직한 이해란 돕는 것입니다. 목사를 이해하는 것과 목사를 돕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순종하고 복종함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마치 양이 목자를 따라가듯이 목사가 인도하는 대로 좀 거부되는 일이 있더라도 따라 가는 것은 역시 목사를 돕는 것입니다. ㉯비방하지 아니함으로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를 교회 밖에서 비방하거나 시비하게 될 때에 목사뿐만 아니라 교회가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를 비방하는 것은 자기를 비방하는 일과 동일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협조할 수 있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13:17)고 했습니다. 마음에 없는 봉사 이런 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물질로 도울 수 있습니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느13:10) 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할 일을 해랴하응데 생활보장이 안되니까 떠나갔다는 사실이 기록되었습니다. 목사가 생활 때문에 걱정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겠다. ㉲기도로 도울 수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6:18-20) 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훌륭하던 갈라디아 교회가 변했습니다. 교인들은 진실 된 사랑이 변하여 바울에 대하여 원수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처음의 교역자에게 대한 순수한 사랑이 변함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은퇴 후에도 변함이 없이 적극적인 생활보호를 보장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할 줄 믿습니다. ◇결심기도 목회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담임목사에게 영, 육 중에 더욱 건강을 허락하소서! 성도들도 목회자를 잘 돕고 협력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교회는 더욱 부흥케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행복한 목회자, 행복한 성도/ 시65:1-13/ 교역자보건주일설교
행복한 목회자, 행복한 성도 시65:1-13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교역자 보건 주일은 교회가 교역자의 건강을 보살피고 교역자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주일입니다. 교우들 중에 만나면 ”목사님 건강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무리하지 마세요”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습니다. 교역자, 특히 담임목사의 건강 문제는 교회의 발전 문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에 따라 그 단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교회는 더 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건강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야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마음으로 살면 건강할 수 있습니다. 교역자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행복한 목회자와 행복한 성도가 되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살피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다”고 믿고 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택함 받았다는 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즉 소명 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철저한 소명감이 없으면 목회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회가 어렵다고 합니다. 목회를 소명의식이 없이 하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소명감을 가지고 하면, 목회가 쉽고, 즐겁고, 귀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전에 우리 교회 부흥회 강사로 오신 적이 있는 이중표 목사님은『별세의 지도자』라는 책에서 소명을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자기의 하는 일을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굶어도 좋다”라고 생각하며 자기 일에 만족합니다. 이 일로 죽어도 영광으로 압니다. 둘째, 하는 일이 쉽습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기르는 것이 어려운 줄 모르고 쉽게 기릅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힘듭니다. 목회는 쉬운 것입니다. 세우신 분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므로 쉽고 가볍습니다. 목회자는 하는 일이 쉽고 삯꾼은 힘듭니다. 셋째,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이 일 이상 더 큰 행복과 만족은 없다고 고백합니다. 일에서 최고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는 물론이고, 모든 성도들도 철저하게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면, 일을 해도 귀찮고 힘들고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고, 쉬울 뿐만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하면 건강하고,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보면,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다. 주의 집,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겠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말씀이 저는 참 은혜가 되고 좋습니다. 사실 목회자는 주님의 뜰, 주의 성전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목회자는 물론이고, 택함 받은 모든 성도들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물론이고, 택함 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이처럼 귀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모여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시인은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에서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로 살며, 하나님이 맡기신 각자의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해 나갈 때―목회자이든 성도이든―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5절에 보면,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미(讚美)의 대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 한(限)하지 않고, 세계 만민(萬民)의 하나님이신 광대(廣大)한 신(神)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시오, 우리가 의지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의지할 것이 많아 보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에 의지할 것이 별로 없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사랑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길임을 똑똑히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17:7에 보면,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지한다,” ”의뢰한다”는 말은 ”믿고 맡긴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꾸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을 것이 못됩니다. 왜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더위가 와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나의 구주: 다른 모든 것―사람이나, 돈이나 학식이나, 부모나, 자식이나 다 나를 구원하지 못하되, 예수만이 구원하시는 구주가 됩니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았던, 신앙의 위대한 선배, 이용도 목사는 그의 일기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미쁘시고 신실(信實)하신 지라. 그를 바라고 의지하는 자, 사랑과 은혜를 잃지 아니하리로다. 우리가 눈물로 불러 아뢸 때에 귀를 기울이시고, 머리를 흔들어 찾을 때에 사랑의 손을 주시는 이시로다. 주 외에 나를 알자가 어디 있으며, 주 외에 나를 긍휼히 여길 자가 어디 있으리요. 오직 주님만이 나의 위로요, 나의 힘이요, 또 나의 기쁨이로다. 주가 있어 나의 존재가 의미 있고 주가 있어 나의 먹고 잠도 뜻이 있었도다. 주께서 나의 중심에 계셔, 혹은 눈물로, 혹은 노래로, 나의 생활을 향기롭게 하고 또 윤택케 하는 도다... ... 오 나의 생의 맛이 되시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주님만 계셔 주옵소서. 병들든지 성하든지 주님만 계셔 주옵소서. 욕을 받거나 칭찬을 듣거나 주님만 계셔 주옵소서. 고생스럽거나 평안하거나 주님만 계셔 주옵소서. 살거나, 죽거나 주님만 계셔 주옵소서. 그러면 모든 것이 다 의미 있고, 생명이 있겠나이다. 잘못하면, 자기가 이룬 학문이나 업적이나 연륜이나 경험, 혹은 사람들의 지원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목회(주님의 일)는 이런 걸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지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만 받는 종이 되어야 진정 하나님이 쓰시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공로, 보혈의 공로만 의지하며 나갈 때, 주님의 종으로 제대로 살 수 있고, 주님이 직접 도와주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당신이 시무 하는 교회 장로를 택하고 1년 동안 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첫 시간의 대화입니다. ”장로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목사님을 잘 도와서 목회에 협조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할 것이니 내 걱정은 마시고 이보다 큰 일을 하시오.” ”그러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은혜를 받으십시오” ”우리는 예배 시간마다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나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가 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대화가 있은 후에 장로가 될 사람들에게 자기 죽음을 선언한 일이 최고의 은혜요, 최고의 지도력이요, 최고의 영광이라고 가르쳐주고 기도하는데 이 공부가 믿음의 공부요, 최고의 공부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려면 내(自我)가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야곱이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는 형보다 먼저 나오려고 형의 뒷다리를 잡을 정도로 시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자기가 잘 되는 일이면 별 일을 다 했습니다. 속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족장(지도자)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환도 뼈를 쳐서 부러뜨리셨습니다. 그를 완전히 쳐서 자아가 죽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에게 야곱이라는 이름대신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족장이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지금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민족은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행복한 성도로 살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십시오.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것도 의지할 것이 못된다는 것을 분명히 아십시오. 세상 것들은 다 변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농부 두 사람이 밭을 갈게 되었습니다. 한 농부가 밭을 다 갈고 보니, 밭고랑이 너무 비뚤비뚤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농부는 아주 밭고랑을 똑바로 갈았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을 앉혀놓고 물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먼저 사람은 밭을 갈 때, 그 앞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놓고 거기다 맞춰서 밭을 갈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밭을 똑바로 간 사람은 앞에 있는 미루나무를 바라보면서 밭을 갈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제대로 주님 주신 일을 할 수 있고, 또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날마다 살 수 있는 것입니다. 3. 받은 복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며 살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10절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을 넉넉히 대어 주시고, 단비로 싹을 키워 주시고, 오곡 백과가 풍성한 풍년을 주시니, 기쁘고 즐겁게 주님을 찬양한다는 내용입니다. 요즘 제국의 아침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왕요라는 인물에 대해서 잠깐 알아봅시다. 그는 자기 이복 형, 혜종 일파를 다 제거하고 수많은 신료(臣僚)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결국 심약(心弱)해져서 자기 아들에게도 왕위(王位)를 물려주지 못하고 3년 6개월밖에 재위(在位)하지 못하고 27세에 죽었습니다. 그가 바로 고려 3대 왕 정종입니다. 드라마에 보면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이게 아니었는데...”라고 그가 혼자 되뇌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즉위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으나 그에겐 허무감과 죄책감이 있었고, 자꾸 헛것이 보이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한 걸 보면, 아마 심각한 우울증과 정신 분열증세(幻視·幻聽)가 심했나 봅니다. 정종 다음에는 그의 동생 왕소가 왕이 되는데 그가 광종입니다. 그는 수많은 호족들을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이복 형 혜종의 아들 흥화군과 친조카(정종의 아들)도 죽이고, 심지어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죽이려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왕권을 유지하려고 공포 정치를 행한 것은 반란을 늘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26년 2개월 간 재위하며 51세까지 살았지만,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역사를 보면서 ”너희가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생명(영혼)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편 128편에 보면,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성도의 행복이 무엇인지 잘 그려져 있습니다. 무엇이 행복입니까? 세상의 것들을 많이 얻는 것이 행복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주신 복(福)과 평강(平康)을 헤아려 보고, 늘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교역자 보건 주일은 오늘 한 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목회자를 위해 진정으로 기도해 준다면, 목회자인 저는 그것으로 만족입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이 목회자에게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여러분이 주안에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저는 행복한 목회자가 되고, 여러분은 행복한 성도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택해 주셨다는 확실한 소명의식(召命意識)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해 나갑시다. 그리고, 세상의 것들이나 어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만 의지하며, 주님만 바라보며 삽시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복(평강)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