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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부부/ 창2:23-25/ 강영래 목사/ 부부주일설교/ 2012-05-20
가장 아름다운 부부 창2:23-25 만년설로 덮인 에베레스트 산에는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가 전해내려 옵니다. 그 중에서 에베레스트 산 중턱의 어느 작은 마을에 전해지는 감명 깊은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이 산간 마을에 어느 날 젊은 처녀가 찾아왔습니다. 등산객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말없이 마을 앞에 냇가에 멍하니 앉아 있을 뿐입니다.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밤 먹고 잠자는 시간 말고는 언제나 냇가에 앉아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마을 사람이 궁금해서 물어보았지만 그녀의 굳게 다문 입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났습니다. 그 젊은 여인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사한 봄날 냇가에 앉아 있던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습니다.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냇물에 길쭉한 물체가 둥둥 떠내려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냇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그 물체를 끌어올렸습니다. 그것은 한 젊은 남자의 시신이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젊은 청년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청년은 그녀의 약혼자였습니다. 30년 전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다가 발이 미끄러져 그만 눈 속에 묻히고 만 것입니다. 그녀는 믿었습니다. 언젠가는 눈은 녹을 것이고 눈이 녹으면 시체라도 떠내려 올 것이라고, 그리고 마침내 긴긴 세월의 여울을 건너 두 사람은 만났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여 한번 만난 그 만남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지켜나간 사랑, 이것이 바로 가정이요 부부의 관계입니다. 부부란 본질적으로 한 몸이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들에게 부부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 되라고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한 가정, 한 부부의 모델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은 23절의 감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아담은 여자를 처음 본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예쁘게 생겼는데 자기와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아담은 여자를 보고 감탄하였습니다. 아담은 저 여자는 또 다른 나라고 느꼈습니다. 하와는 갈비뼈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한 몸입니다. 몸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나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부부의 신비이며 오묘함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나뉘고 헤어지는 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고 처음 한 말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여자는 남자의 진액이라는 말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뼈와 살로 만들어졌습니다. 남자의 엑기스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고 사랑을 받아 마땅하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남자의 뼈 중에 시시한 뼈가 아니라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2:13절에 보면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 하와가 그 후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코 아담과 하와가 동시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만드셔서 준비를 시키신 다음에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것은 완성을 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자가 없는 남자는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보통 여자가 남자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1:8-9절에 보면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아도 남자를 낳은 것이 아닙니다. 여자의 본질은 남자에게서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남자와 여자를 차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누가 먼저이고 나중이며 누가 높고 낮은가 하는 것을 구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한 몸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모음 하나 차이입니다. 남자라는 뜻을 가진 말은 “아담”인데 히브리말로 이쉬입니다. 하나님이 그 여자의 손을 잡고 아담에게로 왔을 때 아담이 그 여자를 보고 “이솨”라고 말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한 몸입니다. 부부가 싸우고 갈등하는 이유는 성경의 창조의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철학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자기들은 다른 사람들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자기의 것을 찾아야만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하나를 행해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행복한 부부의 삶을 무엇일까요? 1.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것입니다. 24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 결혼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합하는 것입니다. 여기 떠나라는 것은 부모를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가정은 독립하라는 것입니다. 결혼이란 부모의 연속된 삶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종족 보호 본능 때문에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해도 계속 부모의 영향력이 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젊은 남녀가 사랑해서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은 부모와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결혼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부모의 삶의 계승이 아닙니다. 부모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세포가 새로 독립분열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세포가 분열을 해서 떨어져 나갈 때 그것은 독자적인 세포를 이루는 것처럼 결혼이란 부모를 떠나 독자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때로 자식이 결혼하기를 원했던 부모도 막상 자식이 결혼하면 섭섭해 하고 고독해합니다. 그래서 자주 전화를 하고 소식을 묻고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갖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간섭을 자주하면 안 됩니다. 일단 아들이든 딸이든 결혼하면 독립을 시켜야 합니다. 독립시키고 외롭고 고독해지면, 모두 잃어버렸다고 생각이 되면 교회에 나오십시오. 교회에 오셔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하고 생각합니다. 자식에게 기대하던 마음을 끊고 인생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며 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자세입니다. 자식을 포기하시 바랍니다. 자식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식에게 기대지도 마십시오. 당신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 있을 뿐입니다. 자식은 자식의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자녀를 무능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후에도 항상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부모에게 다 말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남편의 말을 친정에 가서 말해 흉을 보고, 아내의 말을 부모에게 가서 다 흉을 봅니다. 이렇게 부부 생활을 하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남편의 말을 친정에서 하고 아내의 말을 부모에게 하는 부부는 절대로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미성숙한 사람들만이 부부의 문제를 부모에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자녀는 모든 일을 항상 부모에게 의존적으로 하기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뚫고 나갈 힘이 없습니다. 부모가 이들을 돕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자녀를 무능하게 만들어버립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자녀들은 결혼하면 독립해서 스스로 악착같이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자식들이 서로 흉보는 것을 듣지 마십시오. 오히려 자식이 아내 이야기를 하면 혼을 내야합니다. 다 들으면서 고소해 해서는 안 됩니다. 딸이 남편 흉을 보면 절대로 듣지 마십시오. 그 딸을 혼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결혼하는 순간부터 독립하라고 말합니다. 그가 아무리 3대 독자라고 하더라도 결혼을 하였으면 독립을 시켜야합니다. 물론 신혼들은 인생과 가정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수도 많이 하고 싸움도 하곤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부모가 개입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독립해서 여러 가지 겪고 살 때 비로소 성장하는 것입니다. 2. 서로 합하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그 아내와 연합하여”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합한다는 말은 아교풀로 두 물체를 붙인다는 말입니다. 이는 두 사람이 모든 면에서 영원히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부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란 말입니다. 진정한 결혼은 부부가 아교로 붙여 놓은 것처럼 하나 되어 어떤 누구도 들어올 수 없도록 밀착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남녀가 결혼을 해서 연합할 때 세 가지를 조심해야합니다. 첫째는 문화의 차이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했다고 해서 갑자기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문화라는 것이 그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가정, 학교,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부모에게서 길들여진 습관, 가풍, 물질관계, 대인 관계 등 모두가 다 다릅니다. 둘이 만나서 사랑하지만 문화가 맞지 않기 때문에 매일매일 부부는 문화적으로 충동을 합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살아온 배경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인식하고 부부는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을 하여야합니다. 서로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상대방을 위해서 자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서로 상처와 잘못된 부분을 깨끗이 치유해야합니다. A 라는 물체와 B라는 물체를 붙이려면 그 접촉 부분을 깨끗이 닦아야 합니다. 그 곳에 물기가 있다거나 녹이 슬었다거나 먼지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접착제로 붙였다고 할지라도 곧 떨어지고 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가 잘 연합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상처와 잘못된 부분을 깨끗이 치유해야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용서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한 잘못을 사랑으로 감싸야합니다. 서로를 세워 주어야 합니다. 서로를 깎아 내리면 안 됩니다. 과거의 상처를 알고 있습니까? 그러면 덮어 주어야합니다. 상처 난 부분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용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와 치유와 사랑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다리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셋째는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부부 생활에 행복은 서로를 칭찬해주고 격려하고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에 참 긴요한 요소입니다. 어느 책에 보니까 남편의 기를 살리는 말과 아내의 기를 살리는 말에 대해서 나와 있었습니다. 여기에 소개를 합니다. 남편의 기를 살리는 말 * 여보 아이가 당신을 닮아서 저렇게 똑똑한가 봐요. * 내가 결혼 하나는 잘했지. * 내가 당신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아요. *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 * 제가 시어머니 복은 있나봐요. * 당신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당신 덕분에 이렇게 잘 살게 되었잖아요. * 여보! 당신 곁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는 것 아시죠? * 당신 없인 난 하루도 못 살 거야. * 당신은 언제 봐도 멋있어요. *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요? *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질적으로 달라요. * 당신 품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해요. * 당신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 당신과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에요. 아내의 기를 살리는 말입니다. * 당신 음식 솜씨는 일품이야. * 역시 나는 처복이 있어. * 역시 장모님밖에 없어. * 당신 사림엔 타고난 소질이 있나봐. * 당신은 멀리서도 한눈에 띠어. * 당신은 뭘 입어도 폼이 난다니까. * 당신 웃을 때 보면 꼭 사춘기 여고생 같아. * 당신, 장모님 닮아서 그렇게 이해심이 넓은 거 맞지? * 난 아직도 연애할 때 생각하면 마음이 막 떨려. * 아마 당신 같은 사람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걸? * 당신 마음씀씀이를 보면 내가 부끄러워질 정도야. * 당신 기억력이 보통이 아닌데. * 당신은 나한테 너무나 과분해 * 당신 그럴 땐 너무 예뻐. 당신은 안 꾸며도 예뻐. 서로 칭찬하시고 서로 아껴주세요. 서로 격려해주세요. 서로 사랑을 고백하세요. 이것이 서로 하나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비결입니다. 토머스 칼라일은 위대한 문필가요 문호입니다. 그의 아내는 결혼 생활 내내 단 한순간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사랑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결국 삶의 희망을 포기하고 그의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토머스 칼라일은 좋지 못한 남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죽은 후 토머스 칼라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무도 내 속을 모른다. 단 5분만이라도 좋다. 아니 2분만이라도 좋다. 아내가 다시 살아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아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죽었다. 나는 이 말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가 이 마음을 알아줄까? 나는 내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토머스 칼라일이 진작 고백을 했더라면 아내가 자살을 했을까? 여러분 행복한 부부는 서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칭찬과 용서와 사랑을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로소 연합이 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사랑을 고백하십시오. 칭찬을 하십시오. 격려를 해주십시오. 이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3. 끝까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결혼의 궁극적인 목표는 끝가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영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만이 영원토록 살도록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영원히 살도록 부활의 몸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성경은 부부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기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하라. 부부의 관계가 무슨 관계입니까? 주님과 교회의 관계입니다. 영원한 관계입니다. 헤어져서는 안 되는 관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부가 헤어지면 따로 살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가 한 몸이기 때문에 헤어지면 죽습니다. 몸이 갈라지면 죽습니다. 그것이 몸의 특징입니다. 한 몸을 이루는 것은 단순히 정신적이고 이상적인 관계이상이며 육체적이고 성적인 것 이상입니다. 부부란 영적이고 인격적이며 영원한 것입니다. 부부는 한 몸이여, 모든 면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며, 언제까지 함께 인생길을 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철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발이 미끄러져 철로와 침목 사이에 끼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때 기차가 모퉁이를 돌아 돌진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미친 듯이 발을 빼려 애썼고 남편도 그녀를 빼내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기관사도 부부를 발견한 듯 쇳소리를 내며 급정거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기차는 점점 부부를 덮쳐오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피하는 것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이제 곧 기차는 이 부부를 깔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 때 겁에 질려 지켜만 보던 구경꾼들의 귀에 절규를 하는 듯 한 부인의 말이 아주 또렷이 들려왔습니다. “여보 난 빠져 나갈 수 없어요. 당신만이라도 얼른 피하세요.” 기차가 그들을 덮치기 바로 직전 남편은 부인을 꼭 안으며 이렇게 소리를 외쳤습니다. “여보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있을 거요.” 그들 부부는 이제 없지만 그들이 남긴 말은 우리에게 긴 여운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부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마다 누구든지 다 가정에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그 아픔과 상처들이 다 회복되고 진정 아름다운 가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행복하게 이루어나가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원리, 부부의 원리를 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한 몸임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각자가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십시오. 어엿한 부부로 사십시오. 서로 연합하도록 힘을 쓰십시오. 용서하고 사랑하며 격려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함께 가십시오. 절대로 헤어지면 안 됩니다. 언제까지나 함께 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
가정과 부부/ 엡5:22-33/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1992-05-10
가정과 부부 엡5:22-33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가정과 부부’라는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삶의 전쟁터에서 치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가장 따뜻하게 치료받고 새로운 삶의 용기와 힘을 얻는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가정처럼 진실한 사랑과 이해와 동정이 넘치며 기쁨과 고뇌, 성공과 실패를 함께 걸머져 주는 곳도 천하에 다른 곳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가정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병들어가고 파괴되어가고 있습니다. 산업화 사회 속에서 밤낮으로 밤과 시간에 쫓기다가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고 대화는 사라지고 가정은 공동화 되어버리고 맙니다. 수많은 가정이 법정에서 깨어져가고 그 뒤에 남은 것은 가정을 잃은 자녀들밖에 희생당하는 것이 없습니다. 혹은 부모가 집을 뛰쳐 나가버린 텅빈 집에서 삶을 이어가는 소년 소녀 가장들을 보게 될 때 가슴이 미어지듯이 아픕니다. 우리는 또 올해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과 부부에 관해서 다시 한번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지상의 가정이란 바로 하늘나라 에 우리가 살아갈 영원한 가정의 모형입니다. 지 상의 남편과 아내와 자식이란 것은 하늘나라에 아 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 보혜사가 계시고 우리 의 맏형,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고 그 곳에 우리들이 다 함께 모여 함께 살아갈 모범을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땅 에서 남편과 아내는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우 리와의 관계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의례히 가 정의 달이 와서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하면 혼자 사 는 남녀들은 이 설교는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지상의 가정이란 천국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 다. 지상의 가정에 우리 관계는 그를 통해서 천국 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되어 야 된다는 것을 미리 교육하는 교육 현장인 것입 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문제는 우리 모든 사람에 게 깊은 관심이 있고 지상에서 영원까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에덴 동산의 가정 을 우리가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 어 일어났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 하시고 돕는 배필을 지어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 하여 몸을 이룰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 옆구리 뼈를 취해 서 그곳을 살로 메우고 하와를 그 옆구리 뼈를 가 지고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데리고 오니 아담이 보고 반기는 말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남자에 게서 났으니 여자라 부르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성경은 인용해서 우리는 예수 그 리스도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습 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를 영적으로 예수 그리 스도의 신부로 만들기 위해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옆구리 뼈를 취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서 몸을 찢고 피를 흘 리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서 거듭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 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바로 예수 그리스 도와 우리의 관계를 깊이 깊이 모형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녀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교훈을 우리가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먼 저 지음을 받았습니다. 똑같이 한 날 한 시에 태 어났으면 네가 앞이다, 내가 앞이다, 내가 낫다, 네가 낫다고 경쟁이 있을 수 있는데 한 가정에도 형제간에 먼저 태어난 자가 있고 나중에 태어난 자가 있습니다. 먼저 태어났으면 나중 태어난 자 의 존경을 받습니다. 누님이 먼저 태어났으면 동 생들은 누님 말을 들어야 됩니다. 형님이 먼저 태 어났으면 형님 말을 듣고 따라야 됩니다. 왜냐하 면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이 세상을 먼저 보고 먼 저 알므로 지도하고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 나님 남녀 창조에 있어서도 남자를 먼저 지어 놓 으시고 난 다음에 그 후에 여자를 지으셨기 때문 에 남자가 여자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음을 하나님 께서 보여 주고 계십니다. ”남자면 다냐? 나를 지 도하려고 하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렇지가 않습니다. 먼저 난 자가 나중 난 자를 지 도하게 되어 있는 것을 하나님이 여기서 분명하게 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 원히 우리들을 지도하고 인도해야될 그러한 위치 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가 남자 속에서 나 왔으므로 여자의 소속은 남자임을 말해 주고 있습 니다. 남자가 여자 속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남 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들어갔기 때문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를 보고 ’이는 내 뼈 중의 뼈 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자 속에 서 여자가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 속 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 속했으며 남자가 여자를 거느리지 여자가 남자를 거느리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예수 안에서 나왔기 때문에 예수님께 우리가 속했지 예수님이 우리 속 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거느리 지 우리가 예수님을 거느리면 문제가 보통이 아닙 니다. 나는 많은 가정을 보면 여자가 남편을 거느 리고 있는 가정을 봅니다. 콩가루 집안입니다. 그 건 절단강산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 믿는 사람 이 예수님을 거느리고 다니려는 것과 마찬가지입 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지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깊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 님께서 남자의 머리뼈를 취했다면 여자가 남자보 다 높습니다. 남자의 뒷발꿈치 뼈를 취해서 여자 를 만들었다면 여자는 남자의 종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옆구리 뼈는 옆으로 동등한 것을 말합니다. 인권에 있어서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다는 것입니 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옆구리에 창 을 받아서 크게 흘린 피로써 우리가 죄사함을 받 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 들인 것처럼 우리도 다같이 동일하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됨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곳 에서 모형으로 주님께서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 니다. 그런데 남녀의 관계, 부부의 관계에서 문제 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할 때 이성과 지성으로 해 결하려면 해결이 안됩니다. 머리뼈를 취해서 관계 를 맺었으면 부부의 관계는 이성과 지성의 관계입 니다. 이성과 지성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무리 시간을 노력해도 그것으로 해결이 안됩니다. 혹은 발뒤꿈치 뼈를 취해서 만들었다면 주종관계니까 주인이 종 다루듯이 호령을 하고 명령을 하고 채 찍을 들어 때리고 그렇게 해서 해결할 수 있지만 남녀 관계, 부부 관계는 그렇게 해결이 안됩니다. 절대로 주종관계 문제라 해결이 안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남자의 갈비뼈는 심 장에 가장 가깝습니다. 부부와의 관계는 심장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애정의 관계입니다. 사랑으로 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부부 관계의 문제가 생겼는 데 사랑으로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의지적 으로 논리적으로 혹은 주종 관계로 폭력으로 문제 를 해결하려면 이것은 결코 해결하지 못하고 파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랑의 관계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와의 관계는 뜨거운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러므 로 우리가 성령을 받고 마음이 사랑으로 뜨거워 질 때에 예수께 가장 가깝지 신학 공부를 많이 해 서 지식이 많다고 해서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 것 도 아니고 그렇지 않으면 종교적 의식으로 그리스 도 앞에 꿇어 엎드려서 종처럼 섬긴다고 해서 가 까워지는 것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뜨거운 피흘린 사랑의 관계입 니다. 이처럼 부부의 관계도 사랑의 관계입니다. 문제가 있으면 사랑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 야지 사랑을 내놓고 다른 것으로써 문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 성경은 말하기를 ’남자가 그 부모를 떠 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리라’는 것 인데 여러분 일단 아들이나 딸이나 결혼을 하면 부모에게 의지도 말고 간섭도 받지 말아야 됩니다. 부모가 결혼한 자녀를 자꾸 간섭하고 그들에게 이 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남자는 결혼하면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가정을 떠나 고 집을 떠나는 것보다도 정신적으로 부모에게 의 지하는 것을 떠나라, 그리고 부모의 간섭을 떠나 라 이제는 너희 둘이 너희 운명을 개척하는 것입 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명령했습니다. 오늘날 한국 에서 전통적으로 부모가 많이 자녀들의 생활에 간 섭을 해 왔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많이 간섭을 하고 또 아버지는 아들에게 간섭을 많이 했는데 그러한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낳지 않고 얼마나 감추인 원한 관계를 낳았는지 모릅니다. 이러므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결혼하면 빨리 내 보내 주어야 합니다. 외아들이라도 결혼하면 내보내 주어서 자기들 스스로가 살게끔 부모에게 의지도 말고 간섭도 받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 했으니 한 몸은 떨어져 있 을 수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떨어지 지 말고 항상 함께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 지 함께 살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 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룩하신 에덴의 첫 가정에 하나님께서 주신 교훈을 깊이 음미하고 가정이란 어떤 것이며 남편과 아내의 위치가 어떤 것인가를 우리가 잘 알아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가정의 질서를 깊이 알아봐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고 아내는 몸이 된다고 성경은 말했는데 여러분 몸은 동일한 생명체이지 만 그러나 직분이 다릅니다. 남편과 아내가 동등 한 인권을 갖고 있지만 한 가정을 이루는데는 직 분이 다릅니다. 수레 하나를 끄는 것도 앞에서 끄 는 사람이 있고 뒤에서 미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 리 모두가 다 똑같은 인권을 갖고 있는데 누가 누 구를 지배하고 누구를 다스리느냐하고 말하면 그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조직 사회에서는 인권은 같아도 직분은 틀립니다. 한 회사에도 사장이 있 으면 부사장이 있습니다. 똑같은 인간으로 인권이 있지만 회사를 이끌어 가는데 직분은 다릅니다. 그 다음에는 전무가 있고 상무가 있고 부장이 있 고 과장이 있고 계장이 있고 평사원이 있고 이와 같은 자기 직분이 각각 있어 직분을 다할 때 조직 체가 살아서 움직입니다. 가정이란 하나님의 조직 체입니다. 이 조직체가 움직여 가기 위해서는 남 편과 아내의 직분이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성 경은 말하기를 ’남편은 아내의 머리되고 그리스도 가 교회의 머리됨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머리의 직분은 무엇입니까? 몸을 다스리 는 직분이 있습니다. 한 가정에서 남편은 가정과 함께 그 아내를 다스리는 지위에 있습니다. 폭력 으로 다스리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은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릴 때 폭 력으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려 극 한의 사랑을 가지고서 우리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사랑에 감동해서 우리가 주를 따라가는 것처럼 머 리되는 남편은 몸인 아내를 다스리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 에는 남편은 다스리는 위치에 있고 아내는 다스림 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몸을 지도합니다. 머리가 몸을 보고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앉으라 하면 앉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그 몸을 지도하는 것처 럼 한 가정의 남편이 아내를 지도해야 하는 것입 니다. 아내가 남편을 지도하고 끌고 가면 질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교육도 많이 받고 현명하더라도 남편을 잘 받들어주고 내조해 서 남편이 머리가 되어 아내의 말을 듣고 지도해 도 지휘권은 남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가정이 올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끝없이 지도하는 것처럼 우리도 남편은 예수의 형 상입니다. 아내를 지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는 몸의 필요를 채워 줍니다. 머리가 목마르 다 하면 물을 갖다 마셔라, 배고프다 하면 머리가 음식을 찾아가자, 춥다 하면 옷을 입자 이렇게 머 리가 몸을 돌보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어야 되는 것 입니다. 남편이라고 하면서 자기 요구만 하고 아 내의 필요를 채워 주지 않는다면 그는 남편으로서 의 자기 책임을, 위치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격 상실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좌우간 남편이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은 하든 밤일을 하든 있는 힘을 다해서 돈을 벌어서 아내의 필요를 채워 주 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 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떻게 살까 그 염려한 것을 면하게 해 주어야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남 편 되시는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염려하 는 것이요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 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 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신랑 되신 예 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겠다고 했 는데 여러분 우리가 한 가정에서 머리가 되었으면 그 몸에 필요한 것 아내의 필요한 것 모두다 더하 여 주므로 남편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는 몸을 보호합니다. 머리 는 몸을 언제나 지켜서 사고 나지 않게 하고 상처 입지 않고 보호하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울타리 가 되어서 아내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어서 상처받 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몸 의 건강과 행복을 책임집니다. 머리는 몸에 땀이 많이 나 있으면 목욕을 하라고 해서 깨끗하게 하 고 추우면 옷을 입어라, 몸이 아프면 쉬어라, 치료 받아라 머리가 몸의 건강과 행복을 늘 돌보아 주 는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건강과 행복에 깊은 관 심을 가지고 돌봐 주어야 됩니다. 결혼하고 난 다 음 아내는 아내고 나는 나다, 나 혼자 행복하게 살면 되지 상관할게 뭐냐 이렇게 생각을 하면 그 것은 중대한 잘못입니다. 머리의 역할을 하려면 끊임없는 관심을 가집니다. 여러분 머리가 손톱 밑에 조그마한 가시까지 깊이 관심을 가지고 그것 을 기어코 뽑아내고 치료합니다. 이처럼 남편은 아내의 기쁘고 슬픈 것을 관심을 가지고 살펴서 돌봐 주어서 행복을 가지고 올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들어줄 책임이 있습니다. 머리는 몸을 전적으로 사랑합니다. 몸을 사랑하지 않는 머리를 봤습니 까? 머리는 몸을 정말 사랑하고 몸에 상처를 입으 면 밤새도록 주물러서라도 상처를 고쳐 놓는 것입 니다. 이처럼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남편은 머리이므로 가지의 몸된 아내를 깊이 사랑하고 돌보아 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머리의 직분을 잘 할 때 남편으로서 의 그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 면 몸의 직분은 뭡니까? 몸은 머리에 복종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머리가 몸에 복종하 는 것 봤습니까? 지금 머리가 말한다. 조용기 오 른팔 들어, 왼팔 들어, 우로 한 보, 좌로 한 보, 몸 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합니다. 몸은 머리에게 복 종해야 합니다. 가정의 머리가 남편이면 아내는 그 머리에 복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병든 몸만이 머리에 복종 안 합니다. 몸이 고혈압으로 중풍에 걸리면 머리가 아무리 손들어 해도 안 들 어요. 발들 들어 해도 안 들어요. 병든 몸입니다. 병든 가정만이 아내가 남편에게 반발하고 남편 말 을 안 듣지, 정상적인 가정은 남편이 머리니까 몸 은 머리에게 순종해야 되요. 나는 머리가 시원찮 아서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은 원래 머 리를 잘못 택했으니 그것은 불쌍한 것이지만 그 이상은 머리에 순종해야 되요. 남편이 거지면 아 내는 거지 아내고 남편이 대통령이면 아내는 대통 령 아내가 되는 것이지 별 도리 없는 것입니다. 선택할 때 잘하라는 것입니다. 일단 선택해 놓은 다음에는 그 머리를 순종해야 되요. 그리고 몸은 머리를 받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머리를 보십시 오. 머리가 제일 위에서 몸이 받들고 있어요. 그래 서 언제나 머리를 가장 좋은 위치에 두고 있습니 다. 그처럼 아내는 가정에서 남편을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받들어야되는 것입니다. 남편을 잘 받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으로 하여 금 언제나 가정에서 가장 받듦을 받는 위치에 있 도록 해 놓아야 몸이 좋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많 은 가정을 보면 남편을, 머리를 꽁무니에 달고 다 녀요. 좀 더한 사람은 발뒤꿈치에 끌고 다녀요. 그 건 엉망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머리는 언 제나 몸 위에 있어야 되요. 아내는 언제나 남편을 받들고 그를 잘 모시는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우 리 교회가 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받들어 야지, 언제나 모셔야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뒤 에 끌고 다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몸은 머리를 최우선으로 돌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여 러분 뭘 제일 먼저 합니까. 먼저 양치질하고 먼저 세수하고 머리 마지고 머리를 제일 중요하게 돌봅 니다. 그 다음 다른 문제는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가정에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모든 문제에서 남 편을 제일 먼저 돌봐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 정의 머리이니까 제일 먼저 음식도 제일 맛있는 것 먼저 드리고 잠자리도 제일 좋은 자리 드리고 모든 면에 먼저 하면 머리를 그렇게 받들면 몸도 자동적으로 그 자리에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언제나 몸은 머리를 최우선으로 돌 보고 또 몸은 모든 일에 머리와 상의합니다. 여러 분 이 몸이 머리와 상의 안하고 하는 것이 있습니 까. 이 물 마셔도 괜찮아요? 마셔라. 밥을 한 술 더 먹을까요? 더 먹어라. 더 먹지 말라 하면 놓아 야 합니다. 옷을 두꺼운 것 입을까요, 얇은 것 입 을까요? 머리 속에서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다 얇 은 것 입어라 그러면 몸은 얇은 것 입어야죠. 언 제나 몸은 머리와 상의해서 일을 합니다. 아내도 역시 남편하고 늘 모든 일에 상의해서 허락을 맡 고 일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대개 보 면 40대 50대가 되면 아내들이 여태껏 내가 자식 놓고 집안일 보고 고생했는데 모든 것 의논할 것 이 뭐냐. 일찍 들어가면 아내가 온데 간데 없습니 다. ’엄마 어디 가셨니?’ ’친구들하고 나갔어요.’ ’어 디 갔니?’ ’온천장에 가서 일주일 있다가 온다고 갔어요.’ 남편이 왔어도 의논도 안하고 자기 마음 대로 동서남북 뛰면 그런 가정은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내는 자기가 머리 밑 에 있는 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그와 같은 위치로써 그에게 복종하고 머리를 받들고 머리를 최우선으로 돌보고 모든 일에 머리와 상의하는 그 러한 삶을 살면 아내로서의 직분을 다하게 됩니다. 또 그런 아내를 머리된 남편이 사랑 안 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개 부부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이러한 것을 가만 히 보면 남편 책임도 있지만 아내 책임도 대단히 많습니다. 며칠 전에 자매님으로부터 내게 편지가 왔는데 자기 남편이 자기를 몹시 때린다는 것입니 다. 남편이 자기를 너무너무 때리기 때문에 남편 과 도저히 살 수 없고 어떤 때는 남편을 죽여버리 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남 편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편지 윗부분만 읽어서는 내가 분노가 일었습니다. ’이런 나쁜 놈이 어디 있는가. 자기 아내를 때리 는 것은 자기 몸을 때리는 것인데 이런 고약한 놈 이 어디 있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다음 구절을 읽고 난 다음에 ’아하, 얻어맞을 짓하고 있구나.’ 그 다음 편지에 뭐라고 기록했냐면 굉장히 율법적 입니다. 제가 교회에서 설교하는데 제가 많은 설 교를 일일이 꼬집어서 비평합니다. 그 다음에는. 뭐라고 말하냐면 왜 목사님이 설교할 때 대발이 이야기하느냐는 겁니다. 대발이 아버지는, 신령한 목사님이 할 말이 없어서 대발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느냐, 그 대발이 아버지 볼 시간이 있거든 그 시간에 엎드려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또 제가 이 몸은 고난과 시련을 통해야 건강해지 는 것처럼 고난을 통해야 영혼이 강해진다는 이야 기하면서 내가 우리 집에서 나오는데 어떤 40대 남자가 별로 잘나지도 못한 빼빼한 사나이가 매일 사람이 지나가는 곳에서 아령을 한다고 하니까 내 가 차 타고 다니면서 속으로 ’병신, 달밤에 체조 한다.’ 하고 다녔는데 1년 지나고 보니까 몸이 좋 아졌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소위 목사가 지나 가는 죄없는 사람보고 병신 달밤에 체조한다는 말 이 무슨 말이냐, 말부터 고쳐라 하고 사사건건이 그렇게 써 놔서 내가 보고 이렇게 율법주의고 내 가 그 말은 한 것은 인생은 유머가 있어야 합니다. 유머가 없는 인생은 톱니바퀴에 기름을 치지 않는 인생이라 서로 죄없는 유머로써 웃기고 웃으면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 자매님을 보니까 일일 이 남을 할퀴고 결점을 들춰내고 유머가 없는 것 을 보니 그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의 잘못을 자꾸 지적하고 그리고 남편과 조금도 유머가 없으니 이 는 맞을 짓을 하고 있어요. 내가 보기에도. 내가 그 편지 읽고 난 다음에 솔직한 말로 내 마누라가 그렇게 했더라도 내게 얻어 맞았아요. 사람들이 남편이 자꾸 때린다고 하지 말고 자기가 맞을 짓 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사람 들은 자기 일방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왜 내 가 이런 처지에 놓여 있는가도 스스로 깊이 살펴 보아야 됩니다. 이러므로 남편은 머리 역할을 톡 톡히 하면 아내는 몸의 역할을 착실히 하면 이러 한 불행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부부는 일신이라도 머리와 몸이 각각 자기의 직분을 충실히 다하므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부부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가정은 화초밭과 같습니다. 그대로 버려두면 잡 초와 벌레로 화초밭은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이 열심을 다해서 풀을 뽑고 벌레를 잡고 물을 주고 비료를 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 므로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하게 살려면 좋은 남편 이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좋은 아내가 되겠다고 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놓아 서는 안됩니다. 나는 좋은 남편이 되어 보겠다. 아 는 좋은 아내가 되어 보겠다. 그런 마음의 작심이 없이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우리 신앙 생활도 구래요. 우리 신랑 되신 예수님은 가장 좋은 남편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잘 모시고 한번 살아보겠다. 한번 예수님께 걱정 끼 쳐 드리지 않고 기쁨을 주고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예수를 믿어야지 그런 결심도 없이 그냥 왔다갔다해서 예수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 인가? 한 가정에서 부부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 면 항상 대화의 통로를 열어놔야 됩니다. 항상 많 은 시간을 서로 얘기해야 됩니다. 타산과 감정을 털어놓고 이야기해서 그 마음속에 오해가 없도록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대화 안 하 기 때문에 조그마한 것이 오해가 되어서 눈덩이처 럼 되고 그것이 마음속에 상처를 지고 원한을 가 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항상 서로 많은 시간 대화의 통로를 열어 놔야 되는데 요사이 같 은 바쁜 세월에 아침에 일찍 서로 헤어지고 저녁 늦게 들어오고 지치고 짜증나고 대화가 오히려 마 음속에 귀찮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오 해가 쌓이고 천리 만리 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좋은 가정을 이루려면 어찌하든 지 많은 시간을 대화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이 를 위해서 가정 예배도 가져야 되고 주일날 함께 교회도 참석해야 되고 이런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그 다음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짓밟아서는 안됩니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는 자존심입니다. 사람이 자존심 하나 버려버리면 그때는 짐승처럼 될 수 있습니다. 사 람으로서 예의 범절을 지키고 사는 이유는 그 속 에 자존심 하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기 때 문에 아무리 부부간에 같이 지낸다고 하더라도 부 모 자식간이라도 자존심을 짓밟으면 안됩니다. 자 존심이라는 것은 과거의 교육 문제라든지 친정 문 제 시집 문제 그렇지 않으면 자기 모든 생활 문제 에서 결점을 드러내어서 공개적으로 짓밟아버리면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부부간에 싸움을 안 할 수 있나요. 싸움합니다. 나는 회갑 잔치에 축하하러 갈 때 우리는 회갑일 될 때까지 한번도 안 싸웠습 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속으로 ’얼마나 서로 무관 심하고 살았기에 한번도 안 싸웠나’ 서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면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싸움 이란 있는 것입니다. 안 싸웠다는 것은 둘이 무관 심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싸우더라도 부부간에 싸울 때는 한계점을 두고 싸우는 것입니다. 아무 리 치고 받아도 한계점을 두고 싸워야 합니다. 요 사이 민자당처럼 싸우면 안됩니다. 민자당처럼 온 갖 수치를 다 끄집어내고 다 치고 받고 나중에 승 리하면 국민들이 뭐라고 봅니까. 피투성이의 인간 을 보고 무슨 말을 합니까. 부부간에 절대로 싸우 더라도 자존심 하나만들 손대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존심 내놓고 그 다음 다른 일 가지고 싸워야 합니다. 이 거지야, 너 시집올 때 뭐해왔노. 거지 같은 집안 아무 것도 없는 것 갔다가 잘 먹고 잘 입혀 주니까 어쩌고 어째. 그러면 그것은 끝장 나 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화해를 하고 난 다음에도 부인의 마음속에 끝없는 억울함과 분함 이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자존심에 손을 댔어 요. ’두고보자, 너 거지 한번 만들어 볼 테니 내가 너 위해서 알뜰살뜰 살림 살아줄 것 같아. 너 거 지 되는 것 내 눈으로 보고야 만다.’ 이렇게 마음 에 감정을 품습니다. 절대로 여러분 자존심에 손 을 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서로 같이 살려면 사 랑과 온유해야지 사납지 말아야 됩니다. 사나운 남편 사나운 여자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사람이 사납지 말아야 되요. 사나운 부인을 가진 남자는 현관에 들어올 때부터 기어 들어옵니다. 부인 눈 치보고 온 몸에 소름이 끼쳐 있어요. 사나운 남편 벌써 바깥에서 남편 소리만 들려도 대발이 어머니 처럼 되버리고 맙니다. 초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사 납지 말아야 됩니다. 사람이 같이 살면 같이 있을 때 마음이 푸근해야지 마음이 찬 서리가 내리듯이 오그라들면 어떻게 같이 살아요. 이러므로 어찌하 든지 푸근한 선량한 남편, 선량한 아내가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이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마음이 푸근한 사람이 돼야지 마음 에 고통을 갖다 주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같이 살려면 서로 위해서 헌신 봉사해야 합니다. 잘 해 주는 남편, 잘 해주는 아내는 깊기 깊이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신앙 상담 해 보면 우리 남편은 제게 잘 해줘요. 목사님, 내 아내는 내게 참 잘해 줘요. 사람은 자기에게 잘 해 주는 것은 깊이 깊 이 마음에 감동이 됩니다. 조그마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헌신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깊은 감동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가 먼저 세수하는 데 가서 세숫물 떠놓고 칫솔에다 치약 얹어 놓고 화장품 갖다 놓고 타월 갖다 놓는 이런 것은 간단 한 일입니다. 별로 힘드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남 편이 세수하러 들어갔다가 어 치약이 얹혀 있네. 양치질할 물도 다 해 놓고. 아, 고맙다. 내게 관심 을 가지고 있구나. 감사하다. 작은 일에 굉장한 감 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런 것 못해요? 이런 조그마한 일이 마음속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게 하 는 것입니다. 나는 존 허스튼 목사님과 과거에 여 행을 종종 했는데 그 분이 언제나 같은 호텔 방에 있었으니까 설교를 하려고 옷을 입으면 포켓에 ”어, 포켓에 뭐가 있어.” 그 부인이 꼭 포켓에 글 을 써 놓습니다. 그 글을 읽어보면 ”나는 당신을 깊이 깊이 사랑해요. 오늘 당신이 설교하러 나갈 때 내가 당신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러면 그 종이를 포켓에서 끄집어 내서 (목사님 행동) 우리 한국 사람들은 노접떤다 고 그런 것 안 하는데 서양 사람은 그런 일 잘해 요. 그 별 큰 힘 안 되는 데도 굉장한 마음에 감 동을 받아요.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조그마한 일에 서로 잘 해주고 관심을 가져 주는 이러한 여러분 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 드리는 것 참 좋습니다. 왜냐하면 서 로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할 수 있기 때 문입니다. 한 가정에 같이 살면서 그래 잘나면 얼 마나 잘나고 못나면 얼마나 못나겠습니까. 자기 타당화를 하지 말고 서로 잘못한 것 있으면 솔직 히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용서해 주어야 되요. 자 기만 잘났다고 타당화하는 남편이나 비틀어져서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안 하고 용서안 하 는 아내도 있어요.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 면서 깨어지고 서로 용서해 주고 용서받아야 됩니 다. ’자존심이 있는데 내가 마누라에게 가서 나 잘 못했어 용서해 줘. 그걸 내가 어떻게 합니까.’ 그 건 간단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보고 하라고요. 들으라고 아내 옆에 앉혀 놓고 ’아버지 하나님이 여, 내가 잘못했습니다. 내가 우리 아내에게 잘못 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시고 아내의 마음을 위로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면 직접 안해도 하나님 을 통해서 했으니까 다 알아들었고 문제 해결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그게 참 좋습니다. 나 는 전에 우리 교회 나오시는 분인데 지금은 안 나 옵니다만 부부간에 싸워서 한 달을 이야기 안 합 디다. 내가 가니까 온 집안이 얼음장인데 어떻게 사느냐? 애들이 중간에 서서 서로 편지를 주고받 아요. 편지해서 ’아침 준비 해놓아요.’ 하면 부인 이 ’와이셔츠는 어디 있고 양말은 어디 있어요’ 하고 편지가 와요. 같은 집에서 편지로 왔다갔다 해요. 그래서 내가 남편을 만나서 남자가 손위에 있으면 먼저 가서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 줘 하고 끌어안고 두드려주고 화해하라고 하니까 아니 내 가 자존심이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난 못 합니다. 그러면 내가 비결을 알려 주겠다고 당신 방에서 기도하라. 큰 소리 내서 부인이 들리도록 기도를 하되 내가 기도문을 적어 주겠다. 그래서 내가 기도문을 적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내가 이 가정에 가장인데 하나님이 주신 연약한 그릇인 내 아내를 밟아 싸워서 이렇게 마음에 상 처를 입히고 눈에 눈물을 흘리게 했으니 내가 죽 을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벌을 주시옵소 서. 그리고 나는 용서하시고 내 아내는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그런 작문의 기도문을 내가 적 어 주었습니다. 이걸 크게 읽어라. 아내 귀에 들리 도록 혼자서 중얼거리면 소용없다. 그 다음 부인 이 내게 와서 ’목사님,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아침에 큰 소리로 기도하는데 들으니까 절절히 하 나님께 회개하고 내게 잘못했다는 것을 하는데 내 마음에 뭉클해졌어요. 그러니 목사님 우리 집에 와서 식사를 같이 해 주세요.’ 그래서 같이 갔지 요. 그만 해결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직접 회개 못하면 하나님을 통해서 하세요. 서로의 잘 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해 주는 마음을 가 져야 됩니다. 부부간에 이론이나 폭력으로 이기려 고 하지 마십시오. 부부간은 져 주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겨봤자 이익 될 것 하나 없어요. 여자 가 남편을 이겨서 굴복시켜 버리면 남자는 집에 안 들어옵니다. 밖으로 돌아다니고 잘못하면 바람 나기 십중팔구입니다. 그리고 또 남편이 여자를 폭력으로 굴복해서 이겨 버리면 그 다음에는 찬밥 먹지 뭐. 따뜻한 손길이 반찬 어디에 들어가겠습 니까. 그러니 이겨도 손해고 져도 손해입니다. 그 러므로 부부간에는 안 싸우는 것이 제일 좋고 서 로서로 자꾸 져 주기 시합을 해야 합니다. 남편도 부인에게 져 주고 남편이 개똥철학을 말하거든 속 으로 뻔히 알면서도 옳아요, 옳아요 하면 남편은 내가 집에서 제일이다. 그 맛으로 사는 겁니다. 그 러므로 서로서로 져주면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가정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삶의 복음자리이며 부부는 인생행로의 가 장 친한 친구입니다. 이와 같은 가정과 부부의 향 기로운 애정과 즐거움이 사라져 갈 때 이를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길은 예수 앞에 나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애정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의지나 지성 으로나 이론으로는 절대로 폭력으로는 문제가 해 결되지 않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절망에 처했을 때 예수님이 계셔서 예수 님이 맹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 가정이 맹물처럼 되 버렸을 때 이 맹물에 다 시 향기가 나고 취하게 하는 사랑이 생겨나게 하 는 것은 예수님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이 갈라진 것 누가 변화시킵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변화가 안됩니다. 주님께 와서 같이 회개하고 자 백하고 주님 도움을 구하면 주께서 또다시 부부 사이에 포도주를 만들어 주셔서 사랑의 향긋한 향 기가 나고 사랑의 취함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떠한 가정도 완전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애정이란 기간이 지나가 면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맹물이 되어 버립니 다. 이것을 거듭거듭 포도주로 변화시켜서 거듭거 듭 향기 나는 인생을 살게 하는 우리 주 예수 그 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항상 그리스도에게 도움 을 구하는 길 이외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 는 것입니다. 이것만은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됩니다. 예수님만이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 로 부부간에 꼭 예수님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주여 우리의 가슴속에 맹물 대신 사랑의 포도주를 만들어 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거듭거듭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가정이 그 리스도 안에서 따뜻한 보급자리가 되고 부부간에 사랑과 존경이 함께 하고 평안하면 자녀들이 행복 하게 자라고 하늘 나라의 모형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날 수많은 가정이 황무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가정 의 달에 우리 다시 한 번 깊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고 나는 남편으로서의 온전한 일을 하고 있는가, 나는 아내로서의 나의 직분을 다하고 있 는가 가정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가를 깊 이 생각해 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가정의 달에 참 가정인 하늘 나라에 우리 신랑 되신 예수 님과 나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는가 영적인 상황을 깊이 점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나의 머리요 나는 몸이요 예수님은 나의 신랑이요 나는 신부가 되었으니 나는 예수님 앞에서 정말 올바른 몸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신부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래서 가정의 달 에 예수님과 나의 관계, 우리 가정에서 남편과 아 내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고 새로운 신앙의 자리에 들어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 동안 우리의 잘못 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잘못 생각하고 잘 못 말하고 잘못 행동한 죄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다 씻어 주시옵소서. 깨어지게 도와 주시옵 시고 하나님 앞에 정의로운 진리로 돌아서게 도와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올바른 남편 올바른 아내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건강하고 바른 부부관계/창2:18-25
건강하고 바른 부부관계/창2:18-25 2002-04-06 16:38:16 read : 349 18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는 짝을 만들어 주겠다.\" 19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 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20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21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22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23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24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25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1. 알맞는 짝으로 -하나님은 중매쟁이? 남자와 여자가 만나 짝을 이루어 가정을 이룹니다. 가정을 이루기까지 많은 수고와 애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알맞는 짝을 찾는 일에 많은 힘을 쏟습니다. 저마다 이상형이라 하면서 자신에게 알맞는 사람의 그림을 그리고 상상하며 짝을 찾기 위하여 헤매며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결혼합니다. 여러분의 짝은 알맞는 짝입니까? 혹시 옛날 낭만을 이야기 하며 아내와 남편의 매력 없음을 투덜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혼하기 전에 가졌던 여자에 대한 환상, 남자에 대한 환상이 모두 깨어졌다고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냉소적으로 결혼을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이상형이고 알맞는 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원수처럼 미워지지는 않았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부부관계가 적절하고 알맞은 관계를 갖고 있는 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지를 돌아봅시다. 그리고 적절하고 알맞은 짝으로 거듭나는 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98년도 서울지역 통계자료를 보면 하루에 202쌍이 결혼하고 61쌍이 이혼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이혼율은 33%를 넘어섰고 2000년에는 35%를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열 쌍이 결혼하여 예식장을 나올 때, 3-4쌍은 이혼하여 법정을 나옵니다. 1/3이 갈라서는 것입니다. 이혼을 왜 합니까? 서로 알맞는 짝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혼하지 않은 2/3는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것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알맞는 짝이라고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알맞는 짝으로 맺어주셨다고 믿습니까? 아담과 하와는 알맞는 짝이었습니까? 아담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하와 때문에 인생을 망친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실 때 아담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여자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었다고 변명을 합니다(창3:12). 막말로 하자면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그 여자 때문에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 여자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나님께서 그 여자를 데려다 주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는 원망도 섞여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 아담 같은 사람은 없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게서는 분명히 \"알맞는 짝\"이었다고 하신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여자가 유혹에 약하여 넘어졌다면 남자가 일으켜 바로 세웠어야지 여자하고 똑같이 유혹에 넘어간 아담에게 문제가 있었습니다. 배필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2. 돕는 배필로 - 서로 다른 것이 천생연분이다(아내를 생각함). 성경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알맞는 짝이 필요합니다. 이 것은 혼자서는 온전할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아담에게 알맞는 짝을 만들어주십니다. 그 알맞는 짝은 하와, 곧 여자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개역에서 배필로 번역하였고 표준새번역은 돕는 사람이라고 번역합니다. 배필이라는 단어의 본래 뜻에는 \"반대 쪽\"\"맞은 편\", \"다른 쪽 시각\" \"상대\" 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내는 서로 똑같은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적인 사람들이 만납니다. 다른 편에 있는 사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본래 매력이란 자신과 똑같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없는 것을 지니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없는 다른 반쪽을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부부는 상대적으로 만납니다. 서로 다르게 만난 것이 천생연분입니다. 배필은 자기와 똑같은 것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다르지 않다면 도움이 필요없습니다.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니까요. 아담과 하와는 똑같은 사람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으로 지었습니다. 아담이 부족한 것을 하와가 지녔고 하와가 부족한 것을 아담이 지녔습니다. 이 다른 점이 매력입니다. 이 매력을 서로에게 도움이 되게 해야하는 데 한 쪽으로만 갔을 때 아담과 하와처럼 실패한 가정이 되고 맙니다. 알맞는 짝은 부부의 균형이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잘 맞지 않는다면, 두 사람의 다른 점을 어떻게 이해하는 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기계의 톱니바퀴가 서로 달라도 잘 맞물리는 큰 힘을 내어 잘 돌아갑니다. 그러나 서로 잘 맞추지 않아서 같은 요철끼리 맞부디치면 깨어지고 부서집니다. 다르지만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게 하는 것이 부부생활의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지금부터라도 공부하여 익히십시오. 서로 다른 것이 천생연분입니다. 남편 되시는 분들, 당신의 아내는 다른 편에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십시오. 돕는 사람이되 다른 방법으로 돕는 사람입니다. 다른 데도 도움이 되는 것이 배필이요 천생연분입니다. 당신의 아내를 천생연분으로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게 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함으로써 온전함을 이루게 하십니다. 반 쪽이 다른 반쪽을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점을 사랑하십시오. 장점과 단점은 항상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다른 한 면을 보지 못하고 오직 한 면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데 있습니다. 상대의 단점이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죄인은 좋은 점을 쉽게 잊고 단점은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부부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다른 점이 주는 유익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하면 돕는 배필이 될 것입니다. 3. 나의 뼈와 나의 살 - 든든한 기둥(남편을 생각함) 성경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여자를 남자의 뼈를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들은 남자 옆구리를 좋아하고 갈비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여자들은 남자 옆구리를 파고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짝이 없는 사람은 오뉴월에도 옆구리가 시리다고 엄살을 부리기도 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옆구리에 붙을 때가 행복하답니다. 사실 남자도 그렇습니다. 남자의 옆구리에는 다 임자가 있습니다. 다른 여자가 옆구리에 붙으면 큰일 납니다. 최근 린다 김이라는 여자가 전임 국방장관의 옆구리를 훔쳤다는 이야기로 떠들석합니다. 신문은 그들의 관계를 \"부적절한 관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적절치가 않다는 것은 틀리고 바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옆구리는 단 한 사람에게 허락되었습니다. 한 여자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여자는 한 남자의 옆구리를 의지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옆구리 관리를 잘 하십시오. 여자를 남자의 뼈로 지으셨는데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남자의 갈비뼈가 하나 모자란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여자를 만들었는냐 보다,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한 몸 되게 하시는 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뼈란 골격입니다. 든든히 세우는 것입니다. 여자의 남편은 여자를 든든히 세우는 기둥입니다. 남자 여러분은 여자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바람이 불고 어떤 환난을 만나도 남자는 여자의 든든한 바람막이요, 쓰러지지 않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에게 모성애를 발동시키는 연약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자에게 매력을 갖는 것은 뼈 구실을 해야 합니다. 든든한 기둥이 되십시오. 여자는 남편이 든든한 기둥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편에 대하여, 그리고 아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것은 별 도움이 안되지만, 한 가지 든든한 맛이야\", 어떤 분은 남편이 죽고 난 뒤, 죽고 나니 차라리 병치레를 하며 방안에 누워 있던 시간들이 더 나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없으면 힘을 잃고, 허전하고, 의욕을 잃는다 합니다. 자식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다면서 남편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남편과 남자에 대한 칭찬인지 모욕인 지 헛갈리지만, 남편은 여성의 든든한 기둥이 되는 존재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성이 여성을 잃고 나면 더 침울합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말하기를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했거든요. 그러니 하와 없는 세상은 뼈도 없고 살도 없는,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다 무너집니다. 그런데 여성은 혼자서도 생존률이 남자보다 높습니다. 이유는 남자는 여자가 뼈와 살인 반면 여자는 뼈만 아담 것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성 여러분, 남편을 든든한 기둥으로 여기십시오. 남편들이여 든든한 기둥이 되십시오. 그러면 알맞는 짝이 될 것입니다. 4. 부모를 떠나라 - 남자와 여자에게 알맞는 부부, 적절한 관계, 건강하고 바른 부부관계에는 반드시 부모를 떠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는 부부여야 합니다. 어릴 때 끈을 지금도 끌고 다니면 안됩니다. 부모 밑에 있던 모든 습관을 버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서는 본토 아비 집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듯이 건강하고 바른 부부관계를 위하여서는 부모를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만나야 합니다. 모두가 결혼을 할 때는 두 사람이 하지만, 신혼방에 들어가 함께 살 때는 4명이 삽니다. 까닭은 현재의 남녀와 과거 부모 밑에 있던 두 남녀가 다 따라 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그 사람과 과거의 그 사람이 혼재하여 혼란에 빠지게 되고, 많은 사람은 속아서 결혼하였다고 말하거나, 눈에 콩깍지가 끼여 결혼했다는 등의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부모 밑에 살던 습관이 좋은 것만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잘못된 습관이 대부분입니다. 역기능을 안고 살아갑니다. 부모의 영향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역기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진정으로 부모를 떠났는 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십년을 살아도 여전히 부모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면 건강하고 바른 부부관계는 어려울 것입니다. 두 사람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란히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새로운 존재가 되십시오. 정서적으로 부모 아래서 얻은 역기능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찾아가십시오. 그리하면 어린아이가 아닌 성숙한 사람으로서 부부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우연히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람을 만납니다. 신앙에서 우연은 없습니다. 필연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짝이 알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바꾸십시오. 다른 것이 천생연분입니다. 당신의 짝을 통하여 당신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 가십니다. 뼈에 살을 채우듯이 여러분을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부부의 관계를 통하여 여러분을 훈련하게 하시고 다듬어 가십니다. 둘이 한 몸 되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건강하고 바른 부부관계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실천할 덕목을 반드시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건강한 부부/ 창2:18-25
건강한 부부 창2:18-25 ‘건강한 부부’란 부부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즐겁고 행복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부부를 말합니다. 따라서 즐겁고 행복해야 될 가정들이 불행해 지는 것은 부부 각자가 해야 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건강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 부부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서로에게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Ⅰ. 아내의 역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18절) 이 말씀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맞지 않으므로 남자를 조언하고 보조하고 반려하고 짝이 될 아내를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매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21절). 이런 과정으로 세상에 태어난 여자의 역할은 남자와 짝을 이루어 남자의 가정생활, 사회생활, 자신이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조언자가 되고, 보조자가 되고, 반려자가 되어서 모든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외경 중에 에클레시아 스티커스 26:6-7에 보면 “뱀의 독보다 더 나쁜 독이 악한 여자이며, 여자의 벌보다 더 큰 벌이 없고, 악한 여자와 살기보다는 차라리 사자나 큰 뱀과 함께 사는 것이 나으며, 질투하는 여자가 주는 고통, 슬픔, 그 혀의 채찍은 온 세상에 슬픔을 준다. 이어서 악한 여자와 사는 것은 맞지 않는 황소의 멍에와 같고, 이런 여자를 붙잡는 것은 전갈을 잡는 것과 같다.” 여자가 잘못되면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기도 하고, 부부사이에 아내는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부사이에 행복도 남편의 영향도 크지만 아내의 영향 역시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투지와 불굴의 여성 한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루즈벨트 여사입니다. 어렸을 때, 몹시 수줍음을 타고, 구식을 좋아하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습니다. 루즈벨트 여사는 이 수줍음을 없애기 위하여 일부러 모르는 사람을 만나려고 애를 썼고, 고달픔을 이기는 인내심을 기르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갔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이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도 약한 마음을 이기고, 프랑스로 건너가 교육을 받던 중 루즈벨트 청년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이 소아마비 증세로 절름발이가 되어 8년간 고생하는 동안 그녀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면서 남편 대신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남편의 정치적 야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와 총명한 지혜를 가지고 남편을 믿어준 결과 그 남편은 고난의 병석을 박차고 일어나서 마침내 1932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루즈벨트 여사는 불구의 남편에게 팔과 다리가 되는 것은 물론 백악관 안주인으로 활동함으로 반려자로, 보조자의 역할을 잘 해낸 것입니다. 1) 남편에게 믿음을 주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잠31:11) 이 말씀은 아내가 남편의 마음에 믿음을 주게 되면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남편 찰스 왕세자 사이가 원만치 못했습니다. 영국의 작가 모턴은 ‘다이애나, 그녀의 새로운 인생’이란 글에 다이애나는 찰스와 이혼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만나 재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결혼한 지 13년이 지나서는 부부간의 갈등이 너무도 심해서 공공장소에서도 어색하게 서로 외면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에 군 장교와 바람을 피웠다는 추문이 나돌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돈 있고,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고, 만 백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신뢰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비극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 최선의 반려자란 변함없는 믿음을 남편이 가질 때 힘 있고, 용기 있는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을 때, 한 가정이 있었는데 남편은 서울대학을 나와 수학선생님을 하고, 아내는 부산대학을 나온 엘리트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수 년 잘 살다가 남편이 바람이 나 자식과 부인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부인은 침례병원 청소요원으로 일하다가 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집을 떠났지만 부인은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올 대까지 집과 가정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10년이 지나서 남편이 돌아왔을 때, 다시 행복한 가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한 가정은 아내는 막일을 하면서 열심히 사는데 남편은 술만 먹으면 아내를 구타하고 가정을 파경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남편을 사랑하고 살았더니 지금은 회사와 가정과 교회에서 모범이 되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도 아내가 남편의 반려자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때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신뢰성을 잃으면 그 가정은 깨지고 말게 됩니다. 잠31: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내들은 남편들의 마음에 반려자, 보조자, 조언자, 짝이라는 투철한 믿음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2)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 자기 남편에게 별의 별 욕을 다 퍼붓고, 머리를 잡아 뜯는 아내도 있고, 남편을 악평하고 바보 취급하는 아내도 있다고 합니다. 벧전3:5-6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부인이 남편에 순복했다는 것과 주라고 칭했다는 말은 칭찬하고 존경했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 존경스러운 아버지로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어떤 아내들은 으레 자기만 훌륭한 어머니처럼 말해서 자식들에게 존경과 효도를 자기만 받으려하는 아내들도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남편이 아니더라도 아내는 남편의 조언자요,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잘해서 자신도 존경하고 자식들도 아버지를 존경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 어느 가정에 남편이 오랜 병상으로 누워있게 되자 부인이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쌀밥 한 그릇 해놓고 도망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데 도마뱀 한 마리가 들락거리면서 떨어진 쌀알을 물어다가 도랑을 덮은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다리를 놓을 때 도마뱀 수놈의 꼬리가 나무에 끼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암놈의 도마뱀이 수놈의 도마뱀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자기가 도마뱀 보다 못한 인간임을 자책하고 도망갈 것을 포기하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잘 간호했더니 남편의 병이 나아서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Ⅱ. 남편의 역할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23절)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엡5:25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골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잠5:18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벧전3:7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엡5:28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한 부인이 길에서 신음하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부인이 다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청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지갑까지 빼앗겼다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청년을 위로하고 가까운 병원에 가서 응급 치료를 받으라고 돈 3만원을 주었습니다. 청년은 몇 번이고 감사하며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보답을 하고 싶다면서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속이 상해 남편에게 그 사실을 다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대에서 낯익은 편지와 함께 만 원짜리 지폐 3장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보, 당신의 착한 마음이 행여나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요, 청년 대신에 내가 갚는 것이요.” 남편의 편지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깊은 사랑에 진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아내들의 눈물방울과 웃음의 횟수를 세고 계십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고 남편의 일입니다. 결혼할 때 아내에 대한 배려가 깊던 사람들이 결혼 후에 소극적이고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은 시작하는 의미일 뿐 결혼을 한 후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부부의 모습입니다. 윌리암 제임스 브리안 이란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화가를 그를 보고 왜 장발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브리안이 대답하기를 구혼시절에 나의 아내가 귀가 튀어나온 것이 보기가 싫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즐겁게 해 주고 싶어서 머리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화가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수년전 일이 아닙니까?” 화가의 말을 들은 브리안은 깜짝 놀라면서 “무슨소리요, 부부간의 사랑은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결혼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꾸준히 받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이 사랑스러운 말을 해주기를 바라고, 품어주기를 바라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의 보살핌을 받을 때 행복을 느끼고,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Ⅲ.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느니라”(25절)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자기 몸을 보고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마19:5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부부는 네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삶입니다. 금슬이 아주 좋은 80세 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애정을 간직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까?” 부부가 대답하기를 “항상 예의를 가지고 서로가 대하며 서로 떠나 있을 동안에 하루에 한두 번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애정을 표했고, 집에 돌아올 때는 선물을 가지고 왔고, 말로도 풍부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남편은 남편의 위치와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항상 노력하여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우아함, 아름다움, 온유, 따뜻한 애정이 표현되도록 노력하면서 살 때, 부부 서로가 행복해 집니다. 라듐을 제조한 큐리 부인은 자기 남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남편이 곁에 있어 행복해요.” 남편은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고,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귀한 존재로 사랑받아서 둘이 한 몸을 이룰 때 건강한 부부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건강한 부부사이에서 건강한 자녀가 탄생됩니다. 우리 신탄진침례교회 모든 성도들은 남편과 아내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여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가 되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부부/ 창2:18-25
건강한 부부 창2:18-25 ‘건강한 부부’란 부부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즐겁고 행복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부부를 말합니다. 따라서 즐겁고 행복해야 될 가정들이 불행해 지는 것은 부부 각자가 해야 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건강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 부부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서로에게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Ⅰ. 아내의 역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18절) 이 말씀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맞지 않으므로 남자를 조언하고 보조하고 반려하고 짝이 될 아내를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매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21절). 이런 과정으로 세상에 태어난 여자의 역할은 남자와 짝을 이루어 남자의 가정생활, 사회생활, 자신이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조언자가 되고, 보조자가 되고, 반려자가 되어서 모든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외경 중에 에클레시아 스티커스 26:6-7에 보면 “뱀의 독보다 더 나쁜 독이 악한 여자이며, 여자의 벌보다 더 큰 벌이 없고, 악한 여자와 살기보다는 차라리 사자나 큰 뱀과 함께 사는 것이 나으며, 질투하는 여자가 주는 고통, 슬픔, 그 혀의 채찍은 온 세상에 슬픔을 준다. 이어서 악한 여자와 사는 것은 맞지 않는 황소의 멍에와 같고, 이런 여자를 붙잡는 것은 전갈을 잡는 것과 같다.” 여자가 잘못되면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기도 하고, 부부사이에 아내는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부사이에 행복도 남편의 영향도 크지만 아내의 영향 역시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투지와 불굴의 여성 한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루즈벨트 여사입니다. 어렸을 때, 몹시 수줍음을 타고, 구식을 좋아하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습니다. 루즈벨트 여사는 이 수줍음을 없애기 위하여 일부러 모르는 사람을 만나려고 애를 썼고, 고달픔을 이기는 인내심을 기르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갔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이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도 약한 마음을 이기고, 프랑스로 건너가 교육을 받던 중 루즈벨트 청년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이 소아마비 증세로 절름발이가 되어 8년간 고생하는 동안 그녀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면서 남편 대신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남편의 정치적 야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와 총명한 지혜를 가지고 남편을 믿어준 결과 그 남편은 고난의 병석을 박차고 일어나서 마침내 1932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루즈벨트 여사는 불구의 남편에게 팔과 다리가 되는 것은 물론 백악관 안주인으로 활동함으로 반려자로, 보조자의 역할을 잘 해낸 것입니다. 1) 남편에게 믿음을 주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잠31:11) 이 말씀은 아내가 남편의 마음에 믿음을 주게 되면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남편 찰스 왕세자 사이가 원만치 못했습니다. 영국의 작가 모턴은 ‘다이애나, 그녀의 새로운 인생’이란 글에 다이애나는 찰스와 이혼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만나 재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결혼한 지 13년이 지나서는 부부간의 갈등이 너무도 심해서 공공장소에서도 어색하게 서로 외면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에 군 장교와 바람을 피웠다는 추문이 나돌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돈 있고,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고, 만 백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신뢰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비극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 최선의 반려자란 변함없는 믿음을 남편이 가질 때 힘 있고, 용기 있는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을 때, 한 가정이 있었는데 남편은 서울대학을 나와 수학선생님을 하고, 아내는 부산대학을 나온 엘리트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수 년 잘 살다가 남편이 바람이 나 자식과 부인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부인은 침례병원 청소요원으로 일하다가 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집을 떠났지만 부인은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올 대까지 집과 가정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10년이 지나서 남편이 돌아왔을 때, 다시 행복한 가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한 가정은 아내는 막일을 하면서 열심히 사는데 남편은 술만 먹으면 아내를 구타하고 가정을 파경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남편을 사랑하고 살았더니 지금은 회사와 가정과 교회에서 모범이 되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도 아내가 남편의 반려자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때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신뢰성을 잃으면 그 가정은 깨지고 말게 됩니다. 잠31: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내들은 남편들의 마음에 반려자, 보조자, 조언자, 짝이라는 투철한 믿음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2)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 자기 남편에게 별의 별 욕을 다 퍼붓고, 머리를 잡아 뜯는 아내도 있고, 남편을 악평하고 바보 취급하는 아내도 있다고 합니다. 벧전3:5-6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부인이 남편에 순복했다는 것과 주라고 칭했다는 말은 칭찬하고 존경했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 존경스러운 아버지로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어떤 아내들은 으레 자기만 훌륭한 어머니처럼 말해서 자식들에게 존경과 효도를 자기만 받으려하는 아내들도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남편이 아니더라도 아내는 남편의 조언자요,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잘해서 자신도 존경하고 자식들도 아버지를 존경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 어느 가정에 남편이 오랜 병상으로 누워있게 되자 부인이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쌀밥 한 그릇 해놓고 도망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데 도마뱀 한 마리가 들락거리면서 떨어진 쌀알을 물어다가 도랑을 덮은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다리를 놓을 때 도마뱀 수놈의 꼬리가 나무에 끼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암놈의 도마뱀이 수놈의 도마뱀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자기가 도마뱀 보다 못한 인간임을 자책하고 도망갈 것을 포기하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잘 간호했더니 남편의 병이 나아서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Ⅱ. 남편의 역할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23절)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엡5:25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골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잠5:18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벧전3:7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엡5:28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한 부인이 길에서 신음하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부인이 다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청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지갑까지 빼앗겼다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청년을 위로하고 가까운 병원에 가서 응급 치료를 받으라고 돈 3만원을 주었습니다. 청년은 몇 번이고 감사하며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보답을 하고 싶다면서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속이 상해 남편에게 그 사실을 다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대에서 낯익은 편지와 함께 만 원짜리 지폐 3장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보, 당신의 착한 마음이 행여나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요, 청년 대신에 내가 갚는 것이요.” 남편의 편지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깊은 사랑에 진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아내들의 눈물방울과 웃음의 횟수를 세고 계십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고 남편의 일입니다. 결혼할 때 아내에 대한 배려가 깊던 사람들이 결혼 후에 소극적이고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은 시작하는 의미일 뿐 결혼을 한 후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부부의 모습입니다. 윌리암 제임스 브리안 이란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화가를 그를 보고 왜 장발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브리안이 대답하기를 구혼시절에 나의 아내가 귀가 튀어나온 것이 보기가 싫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즐겁게 해 주고 싶어서 머리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화가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수년전 일이 아닙니까?” 화가의 말을 들은 브리안은 깜짝 놀라면서 “무슨소리요, 부부간의 사랑은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결혼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꾸준히 받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이 사랑스러운 말을 해주기를 바라고, 품어주기를 바라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의 보살핌을 받을 때 행복을 느끼고,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Ⅲ.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느니라”(25절)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자기 몸을 보고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마19:5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부부는 네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삶입니다. 금슬이 아주 좋은 80세 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애정을 간직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까?” 부부가 대답하기를 “항상 예의를 가지고 서로가 대하며 서로 떠나 있을 동안에 하루에 한두 번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애정을 표했고, 집에 돌아올 때는 선물을 가지고 왔고, 말로도 풍부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남편은 남편의 위치와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항상 노력하여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우아함, 아름다움, 온유, 따뜻한 애정이 표현되도록 노력하면서 살 때, 부부 서로가 행복해 집니다. 라듐을 제조한 큐리 부인은 자기 남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남편이 곁에 있어 행복해요.” 남편은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고,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귀한 존재로 사랑받아서 둘이 한 몸을 이룰 때 건강한 부부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건강한 부부사이에서 건강한 자녀가 탄생됩니다. 우리 신탄진침례교회 모든 성도들은 남편과 아내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여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가 되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부부/창2:18-25
건강한 부부/창2:18-25 2004-06-17 12:32:54 read : 1257 ‘건강한 부부’란 부부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즐겁고 행복하고 복된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부부를 말합니다. 따라서 즐겁고 행복해야 될 가정들이 불행해 지는 것은 부부 각자가 해야 될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건강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 부부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서 서로에게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Ⅰ. 아내의 역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18절) 이 말씀은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맞지 않으므로 남자를 조언하고 보조하고 반려하고 짝이 될 아내를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매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21절). 이런 과정으로 세상에 태어난 여자의 역할은 남자와 짝을 이루어 남자의 가정생활, 사회생활, 자신이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조언자가 되고, 보조자가 되고, 반려자가 되어서 모든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외경 중에 에클레시아 스티커스 26:6-7에 보면 “뱀의 독보다 더 나쁜 독이 악한 여자이며, 여자의 벌보다 더 큰 벌이 없고, 악한 여자와 살기보다는 차라리 사자나 큰 뱀과 함께 사는 것이 나으며, 질투하는 여자가 주는 고통, 슬픔, 그 혀의 채찍은 온 세상에 슬픔을 준다. 이어서 악한 여자와 사는 것은 맞지 않는 황소의 멍에와 같고, 이런 여자를 붙잡는 것은 전갈을 잡는 것과 같다.” 여자가 잘못되면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기도 하고, 부부사이에 아내는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부사이에 행복도 남편의 영향도 크지만 아내의 영향 역시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투지와 불굴의 여성 한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루즈벨트 여사입니다. 어렸을 때, 몹시 수줍음을 타고, 구식을 좋아하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였습니다. 루즈벨트 여사는 이 수줍음을 없애기 위하여 일부러 모르는 사람을 만나려고 애를 썼고, 고달픔을 이기는 인내심을 기르기 위하여 노력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갔습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이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도 약한 마음을 이기고, 프랑스로 건너가 교육을 받던 중 루즈벨트 청년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결혼 후, 남편이 소아마비 증세로 절름발이가 되어 8년간 고생하는 동안 그녀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면서 남편 대신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남편의 정치적 야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환경을 극복하고 이겨내려는 강한 의지와 총명한 지혜를 가지고 남편을 믿어준 결과 그 남편은 고난의 병석을 박차고 일어나서 마침내 1932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고 연임하게 되었습니다. 루즈벨트 여사는 불구의 남편에게 팔과 다리가 되는 것은 물론 백악관 안주인으로 활동함으로 반려자로, 보조자의 역할을 잘 해낸 것입니다. 1) 남편에게 믿음을 주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잠31:11) 이 말씀은 아내가 남편의 마음에 믿음을 주게 되면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남편 찰스 왕세자 사이가 원만치 못했습니다. 영국의 작가 모턴은 ‘다이애나, 그녀의 새로운 인생’이란 글에 다이애나는 찰스와 이혼하고 사랑하는 남자와 만나 재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결혼한 지 13년이 지나서는 부부간의 갈등이 너무도 심해서 공공장소에서도 어색하게 서로 외면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죽기 직전에 군 장교와 바람을 피웠다는 추문이 나돌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돈 있고,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고, 만 백성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서로가 신뢰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비극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 남편을 위해 최선의 반려자란 변함없는 믿음을 남편이 가질 때 힘 있고, 용기 있는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을 때, 한 가정이 있었는데 남편은 서울대학을 나와 수학선생님을 하고, 아내는 부산대학을 나온 엘리트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수 년 잘 살다가 남편이 바람이 나 자식과 부인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부인은 침례병원 청소요원으로 일하다가 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집을 떠났지만 부인은 남편이 회개하고 돌아올 대까지 집과 가정을 지키고 살았습니다. 10년이 지나서 남편이 돌아왔을 때, 다시 행복한 가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한 가정은 아내는 막일을 하면서 열심히 사는데 남편은 술만 먹으면 아내를 구타하고 가정을 파경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가정을 지키고 남편을 사랑하고 살았더니 지금은 회사와 가정과 교회에서 모범이 되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도 아내가 남편의 반려자로 흔들림 없이 살아갈 때 회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신뢰성을 잃으면 그 가정은 깨지고 말게 됩니다. 잠31: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내들은 남편들의 마음에 반려자, 보조자, 조언자, 짝이라는 투철한 믿음을 주며 살아야 합니다. 2)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 자기 남편에게 별의 별 욕을 다 퍼붓고, 머리를 잡아 뜯는 아내도 있고, 남편을 악평하고 바보 취급하는 아내도 있다고 합니다. 벧전3:5-6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부인이 남편에 순복했다는 것과 주라고 칭했다는 말은 칭찬하고 존경했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 존경스러운 아버지로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어떤 아내들은 으레 자기만 훌륭한 어머니처럼 말해서 자식들에게 존경과 효도를 자기만 받으려하는 아내들도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존경받을 만한 훌륭한 남편이 아니더라도 아내는 남편의 조언자요, 보조자로서의 역할을 잘해서 자신도 존경하고 자식들도 아버지를 존경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옛날 어느 가정에 남편이 오랜 병상으로 누워있게 되자 부인이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 쌀밥 한 그릇 해놓고 도망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데 도마뱀 한 마리가 들락거리면서 떨어진 쌀알을 물어다가 도랑을 덮은 다리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다리를 놓을 때 도마뱀 수놈의 꼬리가 나무에 끼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암놈의 도마뱀이 수놈의 도마뱀을 먹여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자기가 도마뱀 보다 못한 인간임을 자책하고 도망갈 것을 포기하고 그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하고 잘 간호했더니 남편의 병이 나아서 큰 벼슬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Ⅱ. 남편의 역할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23절)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엡5:25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골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잠5:18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벧전3:7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엡5:28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 한 부인이 길에서 신음하는 한 청년을 보았습니다. 부인이 다가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청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불량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지갑까지 빼앗겼다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청년을 위로하고 가까운 병원에 가서 응급 치료를 받으라고 돈 3만원을 주었습니다. 청년은 몇 번이고 감사하며 고개를 숙이고 감사의 보답을 하고 싶다면서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부인이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속이 상해 남편에게 그 사실을 다 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대에서 낯익은 편지와 함께 만 원짜리 지폐 3장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보, 당신의 착한 마음이 행여나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요, 청년 대신에 내가 갚는 것이요.” 남편의 편지였습니다. 부인은 남편의 따뜻한 배려와 깊은 사랑에 진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아내들의 눈물방울과 웃음의 횟수를 세고 계십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고 남편의 일입니다. 결혼할 때 아내에 대한 배려가 깊던 사람들이 결혼 후에 소극적이고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혼은 시작하는 의미일 뿐 결혼을 한 후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아내를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건강한 부부의 모습입니다. 윌리암 제임스 브리안 이란 사람이 초상화를 그리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화가를 그를 보고 왜 장발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브리안이 대답하기를 구혼시절에 나의 아내가 귀가 튀어나온 것이 보기가 싫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즐겁게 해 주고 싶어서 머리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화가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수년전 일이 아닙니까?” 화가의 말을 들은 브리안은 깜짝 놀라면서 “무슨소리요, 부부간의 사랑은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결혼은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꾸준히 받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이 사랑스러운 말을 해주기를 바라고, 품어주기를 바라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의 보살핌을 받을 때 행복을 느끼고,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Ⅲ.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느니라”(25절)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누가 자기 몸을 보고 부끄러워하겠습니까?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마19:5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부부는 네가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하나 되어 살아가는 것이 부부의 삶입니다. 금슬이 아주 좋은 80세 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애정을 간직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까?” 부부가 대답하기를 “항상 예의를 가지고 서로가 대하며 서로 떠나 있을 동안에 하루에 한두 번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애정을 표했고, 집에 돌아올 때는 선물을 가지고 왔고, 말로도 풍부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남편은 남편의 위치와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항상 노력하여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아내는 우아함, 아름다움, 온유, 따뜻한 애정이 표현되도록 노력하면서 살 때, 부부 서로가 행복해 집니다. 라듐을 제조한 큐리 부인은 자기 남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좋은 남편이 곁에 있어 행복해요.” 남편은 아내로부터 존경을 받고,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귀한 존재로 사랑받아서 둘이 한 몸을 이룰 때 건강한 부부가 이루어지며, 이러한 건강한 부부사이에서 건강한 자녀가 탄생됩니다. 우리 신탄진침례교회 모든 성도들은 남편과 아내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여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가 되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부부생활/엡5:22-33
건강한 부부생활/엡5:22-33 2003-05-30 14:43:57 read : 123 가정은 생활의 보금자리입니다. 가정은 잠만 자는 여관이 아닙니다. 또 밥만 먹는 식당이 아닙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밥을 먹고, 가정에서 육신의 쉼을 얻고, 가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습니다. 가정은 삶의 용기와 소망을 줄 뿐만 아니라 위로와 평화를 주는 안식처입니다. 여관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끔 좋은 것이지 매일처럼 여관에서 잠을 자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관/ 관심이나 애정같은 것이 없는 곳입니다. 식당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때문에 잘 해주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러니 삭막합니다. 매일처럼 여관에서 잠을 자고 매일처럼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면 질릴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며 형제간의 우애를 지키는 관계 속에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며 배워가게 됩니 다. 우리는 이 가정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인생을 설계하며, 세상을 상대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 생활이란 것은 잘못 풀어 나가면 엉킬 수밖에 없는 가느다란 실뭉치와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실뭉치를 잘 풀리게 만드는 것이 사랑입니다. 부부 간의 사랑이 견고한 가정일수록 가족들이 여러 가지 갈등을 잘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가족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게 되고 가족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게 되는 한몸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가족에게 다정해야 하며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변에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면서 가족들에게는 퉁명스럽게 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를 만났을 때는 웃음을 머금고서는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는 화를 버럭버럭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을 거꾸로 사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잘 해 주지 말라는 말이 아 닙니다. 가장 잘 대해주고 사랑을 표현해 주어야 할 대상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가족이 아닌 사람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끊어지지만 가족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가족으로 남게 된다는 생각 때문에 소홀히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 관계가 끊어지면 그 고통이 치명적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생존을 위하여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가족일수록 더 많은 교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부부관계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다른 관계들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보다 더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에 대하여 더욱 말씀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부부 관계가 다른 관계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남편의 책임 1. 섬김으로 지도하는 것입니다(23).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 라\"(엡 5:23) 1. 머리라는 말은 지도하는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지도한다는 말만큼 세상적으로 오염된 단 어도 없습니다. 지도라는 단어의 개념을 바꾸어야 합니다.(마 20:25-27) 1) 사람들은 지도란 상대방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2) 많은 사람들은 지도자란 피지도자에 비하여 인격적으로 우월한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 다. 3) 사람들은 지도란 상대의 개성을 무시하고 자기의 뜻을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4) 사람들은 지도자가 되면 피지도자를 자기 편리한 대로 이용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지도의 성경적인 의미는 세상에서 말하는 지도의 의미와 같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의미 성경적인 의미 1) 위에 서서 지배하는 것 1) 밑에 서서 섬기는 것 2) 뽐내며 군림하는 것 2) 겸손하게 봉사하는 것 3) 굴복시키는 것 3) 보살피는 것 4) 강요하여 시키는 것 4) 스스로 따르게 하는 것 5) 강제로 빼앗는 것 5) 기쁨으로 내 놓게 하는 것 2. 진정한 지도는 섬김으로 이루어 집니다.(요 13:14-15) 1) 지도자가 자기를 낮추고 섬길 때 피지도자는 기쁨으로 따르게 됩니다. 힘으로 눌러서 하는 것은 지도가 아니고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섬기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3) 영적으로는 수준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4) 섬김으로 지도하는 것은 성숙한 성품과 인내를 요구합니다. 5) 남편의 수준 높은 행복감은 섬기는 삶을 통하여서만 얻어집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여기지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 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빌 2:6-11) 3. 남자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롬 13:1) 1) 남편이 가정을 지도하는 것은 힘이 강해서 지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따르는 것입니다. 2) 우주의 만물은 권위와 이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약 4:5) 인간은 자연 만물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창 1:28) 남편은 아내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엡 5:22) 부모는 자녀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엡 6:1) 지배자는 피지배자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벧전 2:13-14) 3) 가정은 가정의 모든 구성원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습니다. 2.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과 같이 할지니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 하는 것이다.\" (엡 5:28) 1. 아내를 사랑하되 성경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고전 13:4-7) 1)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사랑해 줘야 될 아내에게 가장 참지 못합니 다. 성경에는 참는다는 말 앞에 반드시 오래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2) 사랑은 온유합니다. 아내는 남편의 부드럽고 온유한 말 한마디로 모든 피로를 풉니다. 3)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치 않고 교만하지 않고 아내의 지위를 높여 주는 것입니다. 4) 사랑은 아내에게 무례히 행치 않고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5)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참은 것 입니다. 2. 진정한 사랑은 희생하는 것 만큼만 표현됩니다(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 1) 아내의 잘못이나 결점을 조건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용과 용납은 아내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그녀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 에 근거합니다. 2) 그의 생각뿐 아니라 그의 취미나 느낌들 까지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아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3) 사랑은 자기 중심적인 것을 버리고 상대방 중심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아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4) 자기 희생이란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을 먼저 시키는 것이고 좋은 것을 상대에게 양보하는 것 입니다. 5) 자기 희생이란 아내의 필요를 나의 필요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3. 사랑은 아내의 필요를 민감하게 느끼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결혼 후 남편이 채워주기를 바라는 아내의 다섯 가지 필요) 1) 아내는 남편의 자상한 보살핌을 원합니다. 사랑은 구체적인 표현을 통하여서만 전달됩니다. 이것은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2) 아내는 남편이 대화의 짝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구체적인 생활 스케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나누어야 합니다. 3) 아내는 남편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을 애정적으로 또 지도자로써 믿을 수 있을 때 진정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습니 다. 4) 아내는 남편이 가정을 경제적으로 안정시켜 주기를 바랍니다. 5) 아내는 남편이 가장으로서 집안 일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고 특히 자녀들과 처가집과 좋 은 관계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 위 다섯 가지 필요중 가장 소흘히 하기 쉬운 것이 자상한 보살핌입니다. 3. 가정을 돌보는 것입니다. 1. 아버지는 그의 가족을 돌보는 목자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 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 1) 가족들의 모든 필요를 보살피고 채워 주어야 합니다. 2) 이 일에 최고의 우선 순위를 두어야 됩니다. 이것은 짐이 아니고 특권입니다. 3) 가정은 가족들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도덕적인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4) 아버지의 생각과 성품은 그 가족의 판단의 기준이 되고 이 판단은 가족들의 삶의 운명을 결 정합니다. 5) 남편은 집안 일에 관심을 가지고 아내가 기쁨으로 가정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아내의 수고와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2. 아버지는 가정 제단의 제사장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 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찌니라.(신 6:6-9) 1) 하나님의 사랑은 나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고 나로 인하여 태어날 모든 후손들에게까지 확장 됩니다. 2) 아버지는 자녀들을 바로 훈계 양육하여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인간으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습 니다. 3) 아버지는 가정 제단의 제사장이고 가정 예배의 인도자 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문의 전통을 새우고 이를 전수시켜야 합니다. 4) 자녀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기 보다는 자녀들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5)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혜로 다스리되 기도함으로 해야 합니다. * 아내의 책임 1. 기쁨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 니라.\"(엡 5:23-23) 1. 복종이라는 말은 종종 잘못 이해되고 있습니다. 1) 사람들은 복종이란 맹목적인 굴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복종하기를 꺼려합니다. 2) 많은 사람이 복종이란 열등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3) 사람들은 복종이 개성을 잃어버리고 남을 따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4) 사람들은 복종이 상대에게 위축되는 느낌을 가지게 되어 꺼려 합니다. 5) 복종의 성경적인 의미는 세상에서 말하는 복종의 의미와 같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의미 성경적인 의미 1) 강제로 억제당하는 1) 스스로 절제하는 2) 굽실거리는 굴복 2) 경의를 표하는 충성 3) 타의적으로 위축되는 3) 자의적으로 동의하는 4) 열등해서 아첨하는 4) 자신있게 적응하는 5) 줏대없이 빼앗기는 6) 유연하게 양보하는 2. 진정한 복종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뢰로 이루어집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23-24) 1) 복종은 절대적인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고 그럼에도 진정한 복 종하는 데서부터 진정한 복종입니다. 2)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복종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3) 복종은 지혜로운 행위를 요구합니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 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벧전 3:12) 4) 복종은 여성의 아름다운 내면적인 미를 갖추는 것입니다. 5) 아내의 수준 높은 행복감은 복종하는 삶 속에서 얻어집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 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 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 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벧전 3:3-6) 3.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 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롬 13:1) 1) 아내가 복종하는 것은 힘이 약하여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에 따르는 것입니다. 2) 우주의 만물은 권위와 권위에 대한 복종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 (약 4:5) 인간은 자연 만물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 (창 1:28) 남편은 아내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 (엡 5:22) 부모는 자녀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 (엡 6:1) 고용주는 고용인에 대해 권위가 있습니다. (벧전 2:8) 3) 아내에게만 복종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도 하나님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복 종을 가르치는 최선의 길입니다. 2.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딛 2:4) 1. 남편을 사랑하되 성경적으로 사랑해야 됩니다.(고전 13:4-7) 1)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사랑해야 될 남편에게 가장 참지 못합니다. 성경에 참는다는 말 앞에는 항상 오래라는 말이 붙습니다. 2) 사랑은 온유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온유한 보살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습니다. 3)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치 않고 교만하지 않고 공중 앞에서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입니다. 4)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남편을 존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는 가정의 지도자입니다. 5)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참는 것 입니다. 2. 진정한 사랑은 희생하는 것 만큼만 표현됩니다. 1) 남편의 잘못이나 결점들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용은 남편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그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에 근거 합니다. 2) 그의 생각뿐 아니라 그의 취미나 느낌들 까지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3) 사랑은 자기 중심적인 것을 버리고 상대방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보하고 그이 때문에 생긴 생활 양식도 수용하는 것입니다. 4) 자기 희생이란 어렵고 힘든 일을 먼저 하는 것이고 외부로부터 오는 비난에 대하여 그이를 포옹하는 것입니다. 5) 자기 희생이란 남편의 필요를 나의 필요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3. 사랑은 남편의 필요를 민감하게 느끼고 채워주는 것입니다. (결혼후 아내가 채워 주기를 바라는 남편의 다섯 가지 필요) 1) 남편은 아내로부터 성적 만족을 얻기를 원합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은 성적 만족을 상호 성취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성적 거부는 남편에게 치명적인 좌절을 느끼게 하고 아내의 깊은 성적 반응은 남편에 게 큰 만족감과 자신감을 가져다 줍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 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고전 7:4) 2) 남편은 아내가 취미 활동의 짝이 되기를 원합니다. 3) 남편은 아내의 매력적인 몸매를 원합니다. 아내가 아름답게 보일 때 남편은 행복을 느낍니다. 4) 남편은 아내의 내조로 아늑한 가정 환경이 꾸며지기를 원합니다. 5) 남편은 아내로부터 칭찬과 존경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한 남자에게서 성공을 맛보기 위하여는 아내로부터의 칭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칭찬은 남편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 위의 다섯 가지 중 가장 소흘히 하기 쉬운 것이 성적 만족입니다. 3.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 씀이 훼방을 받지않게 하려 함이니라.\"(딛 2:5) 1.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은 세상적인 관점과 다릅니다. 1) 여자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녀의 제일차적인 사역지입니다. 2) 여자에게 있어서 가정은 그녀의 가치에 대한 표현의 장입니다. 여성의 최고의 가치는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 안에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특권을 여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짐이 아니고 축복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세상의 관점 하나님의 관점 1) 따분한 일을 하는 곳이다. 1) 행복과 보람을 주는 곳이다. 2) 가정 살림과 자녀는 짐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3) 현재의 물질적 성공과 자기 3) 인격과 경검함의 가치를 만족에 가치를 두라. 두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 4) 자녀는 탁아소에 맡겨라. 4) 부모가 직접 가르치고 책임을 영양을 위하여 우유를 먹이라. 다하도록 훈련시키라. 5) 자녀양육, 가정관리는 나의 뜻 5) 자녀양육, 가정관리는 하나님의 을 실현시키는 방법이다. 뜻을 성취시키는 방법이다. 6)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을 쟁취 6) 권리를 포기하고 섬기는 자가 2. 아내가 직업을 가지는 것은 하나의 가능한 선택입니다. \"밭을 간품하여 사며 그 손으로 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 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며\" (잠 31:16,24) 1) 아내는 남편이 전적으로 동의할 때만 직업을 가져야 합니다. 직업은 하나됨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 여자는 직업을 생각하기 전에 그녀의 능력을 고려해야 합니다. 3) 가정과 연관이 있고 시간 조절이 가능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4) 여자는 직업을 갖기 전에 그녀의 동기가 올바른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5) 이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능력을 얻을 때에 완수할 수 있습니다.
결혼과 부부생활/엡5:22-31
결혼과 부부생활/엡5:22-31 2002-05-30 19:38:57 read : 227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을 맞으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과 부부생활에 대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여러 번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정치도 아니고 경제나 외교도 아닙니다.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정은 사회나 국가의 세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몸의 세포가 죽기 시작하면 중병에 걸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할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가정을 잘 지키는 일입니다. 가정의 가장 큰 기둥은 부부입니다. 부부가 자기들의 위치를 튼튼히 지키면 가정은 흔들림이 없지만,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모든 것을 갖춘 가정일지라도, 혹은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부부관계가 흔들리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부모나 자녀들도 가시방석 앉은 것처럼 불행의 샘을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최효섭 목사님은 그의 저서「결혼과 가정」에서 쓰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직업 면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부부생활에 실패하면 그 인생은 성공작이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직업이 주는 행복이란 부부생활이 주는 깊은 행복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이가 그의 직업 면에서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정말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였다면 그의 인생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청년들은 결혼을 신중히 해야하고 한번 결혼한 이상 어치든지 부부관계를 튼튼히 함으로 가정을 잘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많은 청년들이 결혼하고 나서 부부관계가 깨어지기 시작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갈라섭니까? 지나친 기대로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랑이나 신부는 90점 짜리 이상이라고 믿고 결혼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한 그 다음 날부터 이런 결점 저런 결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는 것이 대부분 결혼한 부부들의 고백입니다. 세상에는 100점 짜리 신랑감도 없고 100점 짜리 신부감도 없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하는 것이 결혼생활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의 남편이나 아내로 산다는 것은 너무나 숨막혀서 결국 \'못 살겠다\'고 하소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부란 서로의 허물과 부족을 도와주는 속에서 성숙한 사랑의 부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노래로 말하면 같은 목소리로 제창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로 화음을 나타내는 뚜엩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부부애가 두터울 때 금슬이 좋다고 말합니다. 금(琴)은 거문고이며 슬(瑟)은 비파로서 많은 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거문고와 비파가 어울려 연주되면 최상의 화음이 울려 퍼지게 되며, 이는 조화를 잘 이루는 행복한 부부사이를 상징합니다. 부부가 둘이서 화음을 나타내면서 부르는 뚜엩의 기쁨은 혼자서 독창하면서 얻는 기쁨과는 감히 비교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가정과 부부들에게서 아름다운 화음을 커녕 시끄러운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면 왜 많은 결혼관계, 부부관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있습니까? 그 이유는 성경적인 원리를 너무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결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성경이 요구하는 부부의 삶을 살 수 있는가를 배우심으로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여러분들의 가정을 잘 지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1. 성경적인 결혼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오늘 많은 부부들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이유는 결혼을 시키는 부모나 당사자들이 성경적인 원리를 무시하고 결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혼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31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창2:18을 인용한 것입니다. 결혼은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말입니다. 동물의 세계도 보면 새끼가 어느 만큼 자라면 너무나 냉정할 정도로 내쫓고는 돌보지 않는 것을 봅니다. 독수리를 예를 들면 둥지를 틀 때 가시나무 가지를 깔고 돌멩이를 놓고 그 위에 새의 깃털을 얹어 포근하게 하고 거기에서 새끼를 키웁니다. 그러다가 어느 만큼 자라서 이제는 독립할 때가 되면 둥지의 깃털을 다 거두어 버립니다. 그러면 가시와 딱딱한 돌멩이만 남으므로 새끼들이 견디지 못함으로 떠나서 독립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자연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녀들이 30살이 넘어도 여전히 끼고 살면서 보호하려고 합니다. 아니, 자녀들 중에도 그렇게 부모의 그늘에 깃들어 살면서 독립하지 못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더욱이나 자녀가 결혼한 다음에도 끝까지 끼고 살려는 부모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어느 부모님은 나름대로 원칙을 정하기를 자녀들이 결혼하면 식구의 정을 키워주기 위해서 한 3년 동안 데리고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적인 원리에 벗어나는 것입니다.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의 설교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많은 한국의 가정들이 결혼한 후에 부모의 지배를 떠나지 못하므로 불필요한 고부 사이의 갈등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심각한 불행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공적인 가정이란 부모를 떠나 독립하므로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권사님이 말하기를 \'목사님, 우리 아이가 결혼하면 정들기 위해서 신혼생활 때 3년정도 데리고 있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허 큰일날 소리하네. 권사님도 살아봤잖아요. 신혼생활 3년이 가장 좋은 때인데 그 좋은 때를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다 빼앗아 버리려고?, 안될 일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다.>고 합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간입니다. 부모나 형제, 친척이나 그 누구라도 부부 사이에 끼여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특히 신혼 3년은 부부가 한 몸이 되는 아주 중요한 기간입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하나로 짝지어지는 것입니다. \'짝짓다\'의 헬라어는 \'쉬네죽센\'인데 그 뜻은 \'함께 멍에를 진다.\'는 말입니다. 두 소가 함께 멍에를 지려면 보조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려면 거의 비슷해져야 합니다. 식성, 취향, 잠자는 것 등 삶의 방식이 비슷해져야 보조가 맞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가정, 다른 환경, 다른 취미,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던 두 사람이 한 몸으로 짝지어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한 몸이 되는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 기간은 적어도 3년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결혼하면 한 3년 동안은 사랑이 식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지가 「부부 냉각의 7단계」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것은 결혼 후 처음 7년 동안에 아내가 감기에 걸렸을 때 남편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기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결혼한 지 1년째는 \'달콤한 솜사탕 같은 사람, 나는 내 소중한 여인의 건강을 진심으로 걱정한다오. 당신은 악성 코감기에 걸린 것 같소. 나는 오늘 오후에 당신을 입원시켜서 종합건강 진단을 받기도 하고 휴식도 취하도록 하겠소. 나는 벌써 병원 담당 관리자에게 말을 해 놓았소.\' 2년째 \'이봐요. 나는 그 기침 소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밀러 박사에게 전화 걸어서 이곳으로 급히 오도록 부탁했소. 자, 착한 소녀처럼 어서 자요.\' 3년째 \'여보, 눕는 게 좋겠소. 불편할 때는 잠시 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어요. 뭘 좀 들겠소. 통조림 국물은 어떻소?\' 4년째 \'여보, 분별이 있어야지. 애들에게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마루를 정리한 후에 눕는 게 좋겠소.\' 5년째 \'왜 당신은 아스피린 두어 알을 먹지 않는 거야?\' 6년째 \'당신은 저녁 내내 물개처럼 기침을 하느니보다 양치질을 하든가 어떻게 좀 하라구!\' 7년째 \'제발 재채기 좀 그쳐! 내게 폐렴을 옮겨줄 셈이야?\' 다시 말하면 3년까지는 사랑의 열기가 식어지지 않지만 그 이후부터는 사랑의 열기가 급격히 식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3년 동안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지지고 볶고 싸우면서 살다보면 결국 포기할 것 포기하고 양보할 것 양보하면서 하나로 비슷하게 되는 날이 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그것을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우리가 한동대학교 이기복 교수님의 강좌를 스크린을 통해서 배웠는데 그 10편에서는 나오는 내용을 보면, 유교의 문화는 자녀를 안 떠나보내는 문화요, 기독교는 떠나보내는 문화인데,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문화가 더 강해서인지. 시댁이나 친정 부모가 신혼 부부에게 너무 간섭이 심하여 방문할 때마다 너무 간섭이 심하다고 합니다. 오늘은 시댁 어머니가 와서 \'우리 아이는 국을 좋아하는 데 아침마다 빵만 먹이다니, 그래서인지 핏기가 없어 보인다.\'라고 잔소리합니다. 그 다음날은 친정 어머니가 와서 \'얘, 네 남편은 살림도 안 도와주니? 직장 다니랴, 살림하랴 네 얼굴이 반쪽이 되었구나?\'라고 간섭합니다. 공연히 서로 분열만 일으켜 놓습니다. 그래서 부부끼리 사는 것이 아니라 양부모까지 6명이 사는 형태라고 합니다. 아니 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결혼한 후에 과감히 떠나보내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 부부가 잉꼬부부처럼 살면 그것을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저놈을 갖은 고생을 다해 키워 놓았더니 제 여편네 편만 든다.\'고 푸념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청년 여러분들이여, 결혼한 후에 3년 안에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독립하고 부부가 하나가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자녀들을 결혼시킨 후에 그들 스스로 부부와 가정의 삶을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성경이 요구하는 부부생활을 무엇입니까? 주님중심한 부부생활입니다. 엡5:22-6:4까지는 가정에 대한 말씀인데, 이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구절이 무엇입니까? \'주안에서\'입니다. 남편과 아내 관계에서도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순복할 것을 강조했고, 부모 공경도 \'주안에서\' 공경할 것이며, 자녀 양육도 \'주안에서\' 말씀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될 때만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부부관계도 주님 중심이 되어야만 성숙한 부부, 복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중심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I) 주님만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남편과 아내에 대한 말씀을 보면 중간에 계속 그리스도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느 부부는 고백합니다. 자기들은 같은 대학을 다닌 동급생이었는데, 자기들이 대단히 존경하는 교수님이 중매를 서서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서 몇 번이나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교수님 때문에 감히 헤어지지 못하고 살다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면서 오늘까지 살게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볼 때에 그리스도 통해서, 아내는 남편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아야 합니다. 흔히 많은 남편들은 아내가 자기만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아내들도 자기만 보아야지 왜 한 눈을 파느냐고 원망합니다. 한 마디로 남편이나 아내나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합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연속극을 보니까 부부의 행복은 서로만 바라보는데 있지 않고 함께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 데 있다고 합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부부가 서로만 쳐다보고만 산다면 어느 날인가 서로에게서 싫증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목표, 같은 미래를 바라볼 때 하나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바라볼 곳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볼 때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 그 부부에게는 주님의 화목이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주님을 통해서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자녀도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2) 주님 중심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섬기려 오셨습니다. 다른 이의 허물을 대신 지려고 희생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섬김만 받으려 하지, 섬김의 희생을 나타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지지 않고 주님의 축복만 받으려는 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편과 아내에게 하신 말씀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처럼 되라는 말씀입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해서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교회가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는 하나님이 자기 머리로 남편을 주신 줄 알고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신체 중에 머리가 제일 소중하고 존경을 받습니다. 비가 오면 머리부터 가리웁니다. 위기가 오면 머리부터 감쌉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관을 씌울 때는 머리에 씌웁니다. 반대로 몸이 주장질하고 머리가 순종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파멸이 올 것입니다. 몸이 술과 마약을 먹자고 한다고 머리가 순종하고, 음란한 일, 도박하는 일을 하자고 몸이 주장한다고 머리가 거기에 순종한다면 머리도 몸도 다 파멸을 만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순종하는 것처럼, 아내가 하나님이 세우신 자기의 머리가 되는 남편을 그리스도의 마음, 십자가의 마음을 품고 경외하고 순종할 때 그 몸도 존귀함을 받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글입니다. \"딸아, 만일 네가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할 것이고, 네가 계집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루고, 만일 네가 너무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하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다. 만일 남편이 친구 집을 방문하러 갈 때는 목욕도 하게 하여 몸치장을 잘해서 보내도록 할 것이고, 남편의 친구가 놀러 올 때는 극진히 대접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귀여움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나 가정에 마음을 쓰고 그의 소지품을 귀중히 여겨라. 남편은 기꺼이 네 머리 위에 관을 씌울 것이다.\" 또한 남편도 아내에 대한 태도가 그리스도가 자기의 몸된 교회를 향해 희생을 나타내신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미워하는 자는 없습니다. 제 몸은 젊으나 늙으나,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사랑하듯이 자기의 몸인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한다면 사랑의 역할은 아내가 아니고 남편입니다. 왜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까? 벧전3:7에 보면 아내는 연약한 그릇,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기 때문에 귀히 보살피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아내의 연약함, 허물을 덮어줄 때 어느 아내가 감동을 안 받겠습니까?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부부를 하나님은 얼마나 아름답게 보실까요? 황명환 목사님이란 분이 자기 교회 어느 남자 성도의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남자 성도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요즘 직장 생활이 얼마나 힘들어서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데, 너무 걱정도 되어 아내에게 말하기를 \"여보, 나 퇴직하면 어떻게 하지?\" 그럼 대부분의 여인들이 뭐라고 합니까? \"안 돼, 안 돼, 안 돼! 우리 뭐 먹고살아? 아이들은 무엇으로 교육시켜 아직은 퇴직할 때가 아니야.\"라고 할 터인데, 자기 아내는 그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괜찮아, 여보. 그만 두라면 그만 두지. 어떻하면 못살겠수? 집 한 채 있는 거 팔아서 시골로 가고, 구멍가게라도 같이 하며 살지. 걱정하지마. 내가 어딜 가든지 당신 따라갈게. 염려하지 말아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당신을 따라 가겠습니다.\'라는 그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이 부인이 믿음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더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요? \'여보, 장래 문제 때문에 너무 근심하지 말아요. 지금까지 우리 가정을 하나님이 인도 하셨으니 앞길도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할 줄로 저는 믿고 있어요. 이런 때 당신은 공연히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세요. 그러면 반드시 더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했더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사랑하시는 부부 여러분들이여, 여러분 사이에 예수님을 모시십시오. 예수님을 통해서 아내를 보고 예수님을 통해서 남편을 보실 때 하나님이 기뻐하사 참으로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성경이 바라는 부부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사실, 오늘 본문 5:22-6:4의 말씀인 주안에서의 부부생활, 주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삶, 주안에서 자녀들을 양육하는 삶에 대해서는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억지로 안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음으로는 천사처럼 살아야지 하면서 이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모든 말씀 앞에 아주 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술에 취하면 술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술이 시키는 대로 길거리에서 고성방가도 할 수 있고, 술이 시키는 대로 몸파는 여자와 음란도 저지를 수 있고, 술이 시키는 대로 살인도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의 능력을 받을 때만이 이 모든 삶을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아 성령님에 취하면 19절의 말씀대로 항상 찬송하는 삶, 20절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 21절에 있는 피차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주안에서 부부의 삶, 주안에서 효도의 삶, 주안에서 자녀양육의 삶도 능히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내로서의 순종의 삶, 남편으로서 희생적인 삶이 잘되지 않을 때마다 성령님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능력이 임하게 되는 줄 믿어야 합니다. 「예화뱅크」에는 이런 간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믿음이 좋고 기도를 많이 하는 여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집사님이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그 남편은 점점 못된 짓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었습니다. 도박을 하고, 쩍하면 싸우므로 상처를 입고 돌아오고, 술집여자와 외박하고 들어온 주제에 집에 들어오면 살림을 부수며 아내를 구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을 위해 밤을 새워 기도하던 아내가 하루는 \"여보 당신과 나는 일심동체인데 당신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니 나는 당신의 고통에 참여하고 싶어요. 당신이 자제력을 잃었을 때는 내가 몇 배의 자제력을 키워야겠어요. 그래서 기도하며 견딜 수 있는 한 금식하겠으니 우리 같이 노력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바가지를 긁으면 난폭해지던 남편이, 이상하게 그 때부터 어진 어머니 앞에서 처럼 유순해지고 미안해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날 만큼 자주 금식을 해서 빼빼 말라 가는 아내 옆에서 울면서 남편은 용서를 빌며 주님께 돌아오게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사랑하시는 청년 여러분들이여, 결혼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십시오. 사랑하시는 부부 여러분들이여, 남편과 아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성령님께 구하심으로 복된 부부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혼은 부부가 동역자가 되는 출발입니다 /창2:18-25
결혼은 부부가 동역자가 되는 출발입니다 /창2:18-25 2008-11-10 16:45:14 read : 523 휴가시즌입니다. 휴가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잘 쉬시고 재충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창조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창2:2에 보면 하나님도 휴가를 가지셨습니다. 휴가 기간에 청년, 청소년 수련회, 초등부 캠프에서 섬기시는 모든 셀 리더, 밥해 주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창세기 두 번째 설교입니다. 창1장에 여섯째 날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창2장에는 인간 창조의 구체적 설명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 공중의 새를 지으십니다(창2:19절). 그리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십니다. 공통점은 짐승도 사람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둘 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차이점은 각종 생물은 죽으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고 끝납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영혼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사람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영원한 세계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이 동물을 암컷과 수컷으로 지으셨습니다. 창6장에 보면 동물이 암컷 수컷입니다. 창1:20, 22절에 보면 하나님이 동물들을 지으시고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려면 암컷 수컷이 있어야 합니다. 동물은 암컷과 수컷이 자기 종족을 번성시키기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인 아담을 지으시고 좋지 않게 생각하셨습니다. 2:18절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잘 못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미완성이라는 겁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남자 혼자는 아무리 잘난 체 해도 미완성입니다. 큰소리 쳐도 부족합니다. 곁에 돕는 배필인 여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여자를 아담에게로 데려와서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어 결혼을 하게 하셨습니다. 부부가 되게 하신 겁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사람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부 현실은 심히 좋지 못한 집들이 많습니다. 반대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많은 아픔들이 있습니다. 견디다 못해 깨어지는 가정도 너무 많습니다. 자녀 때문에, 체면 때문에, 신앙 때문에 그냥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부부도 적지 않습니다. 결혼의 기쁨보다 더 큰 결혼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겁니다. 러시아 속담입니다. <싸움터에 나갈 때에는 한 번 기도하라, 바다에 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리고 결혼을 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 그 나라도 결혼생활이 힘든 가 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결혼생활은 삼 주 동안 서로 관찰하고, 석 달 동안 서로 사랑하고, 삼 년 동안 서로 싸우고, 30년 동안 서로 참는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처음 남편 아담도 결혼의 행복이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부를 배우자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배우자는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했어요. 배우자가 무얼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1. 결혼은 부부가 동역자가 되는 출발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모든 생물들을 아담에게로 이끌어다 주셨습니다(2:19절). 아담이 그 생물들을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특성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코끼리는 코끼리라고, 다람쥐는 다람쥐라고, 독수리는 독수리라고... 아담이 관찰력, 창의력, 기억력 모두가 아주 뛰어 났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니까요! 청소년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잠재력을 하나님은 충분하게 주셨습니다. 그러니 기도하면서 계발하세요. 아담이 이름을 지으면서 보니 다 암컷과 수컷이 쌍쌍이 어울리고 있습니다. 자기만 홀로 외로이 있습니다. ‘아! 나만 외롭구나! 나만 혼자구나! 나도 함께 있고 싶구나!’ 드디어 결혼 적령기가 된 것입니다. 필요를 절실히 느낄수록 귀하게 소중하게 여깁니다. 하나님도 그런 아담을 보고 계십니다. 남자 친구 열 명을 지으시지 않으십니다. 여자를 지으십니다. 두 명의 여자가 아닙니다. 꼭 한 명의 여자를 지으십니다. 그 한 명의 여자와 부부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동물은 암컷과 수컷으로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암수가 결합하여 새끼 낳고 종족 번식만 하면 됩니다. 힘 쎈 수컷이 암컷을 힘으로 다스립니다. 새끼 나면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나 가 버립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냥 암컷과 수컷이 아닙니다. 남자가 힘으로 여자를 학대하면 그건 사람 노릇이 아니라 수컷 노릇을 하는 겁니다.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기면 수컷 노릇만 하는 겁니다. 아직도 수많은 나라에서, 세상 종교들이 남자를 수컷 노릇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남자도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똑 같이 존귀하게 지으셨습니다. 동일하게 귀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창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 창조의 목적은 혼자서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남자 둘이서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남자와 여자가 부부되어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인 아담을 남편으로, 여자인 하와를 아내로 부부가 되게 창조하셨습니다. 부부의 목적은 부부가 의논해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하나님이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부부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함께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부부가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부부가 동역자가 되는 출발인 것입니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떽쥐베리는 “사랑은 서로를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주신 방향을 함께 바라보고 나가는 동역자입니다. 2. 부부가 돕는 배필이 되어 동역자가 된다. 하나님이 하와를 지으실 때 이런 생각을 하셨습니다. 18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와를 돕는 배필을 지으셨습니다. 어떻게 하와를 지으셨나요? 21-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기에 중요한 원리가 나옵니다. .여자는 남자와 원재료가 아주 다릅니다. 여자를 훨씬 고급재료로 만드셨습니다. 남자는 흙으로 만드셨지만, 여자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원자재가 월등하게 좋습니다. 동물들은 수컷이 멋집니다. 그러나 사람만큼은 여자가 훨씬 아름답습니다. 원자재가 달라서 그럽니다. 그러니 남편 여러분! 아내를 자기 몸보다 귀하게 여기십시다. .하나님이 남자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무얼 말씀할까요? 아내가 남편의 머리위로 올라가지 말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아내를 밟지도 말라는 겁니다. 부부는 갈빗대처럼 서로 붙어 있으라는 겁니다. 남편은 아내를 가슴으로 안아주고 품어 주라는 겁니다. 물론 아내도 남편을 존중히 여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품어줍니다. 보호해 줍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마취시켰습니다. 죽음을 경험하게 하신 겁니다. 아담의 죽음을 통해서 하와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아내는 사랑의 대상이지 폭력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내를 때리면 자기를 때리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상처를 주면 자기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것입니다. 왜 남자와 여자를 이렇게 세심하게 지으셨을까요? ‘돕는 배필’이 되라는 겁니다. ‘바라는 배필’이 아닙니다. ‘돕는 배필’입니다. 배우자를 찾을 때 아마도 99%는 ‘돕는 배필’을 찾는 게 아니라, ‘바라는 배필’을 찾습니다. 나를 도와줄 배필을 찾습니다. 결혼생활하면서 왜 싸우죠? 바라는 마음 때문에 싸웁니다. “왜 당신은 그것도 못해 줘? 그러는 당신은 왜 그따위야?” 이것은 돕는 배필이 되라는 하나님의 뜻과는 완전 반대입니다. 그러니까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살수록 불평이 많아져요. 그럴수록 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은 결혼제도를 만드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 돕는 배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보고 함께 달려가며 서로를 돕는 배필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도 아내도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완성으로 남겨 놓으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그 부족한 부분을 왜 남겨 놓으셨을까요?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돕는 배필이 되라고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당신이 그걸 제일 잘 돕는 배필이라서 그 남편을, 그 아내를 당신에게 주신 것입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면서 서로 원망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남겨 놓으신 부분임을 인정하고 돕는 배필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돕는 배필인 아내입니다. 돕는 배필인 남편입니다. 그렇게 할수록 부부는 믿음의 동역자로 더욱 행복하고 풍성한 부부가 될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완성품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완성품이구요. 아내가 남편에게 꽃이 되면 남편의 향기 속에서 사는 행복을 누리며 살 겁니다. 엄마가 아빠가 자녀에게 꽃이 되면 자녀의 인생이 활짝 꽃피게 될 것입니다. 맺는 말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결혼준비를 잘 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청년, 청소년들은 미리미리 결혼 준비를 잘 두어야 합니다. 결혼 준비는 동역자가 되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먼저 결혼의 목적을 잘 아시고 자녀들을 가르쳐 주세요. 청년 청소년들은 결혼의 목적을 잘 아시고 결혼을 준비하세요. 결혼은 부부가 돕는 배필이 되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위해 동역자가 되는 출발입니다. 내가 먼저 돕는 배필인 동역자 될 준비를 잘하세요. 그런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가지세요. 그리고 동역자를 만나기를 기도하세요. 22절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결혼은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사람과 하는 것입니다. 예식장, 웨딩 드레스, 혼수품 이런 것들은 맨 나중에 준비해야 할 것들입니다.
그 세대를 본받지 않은 부부/ 눅1:1-
그 세대를 본받지 않은 부부 눅1:1- 침례 요한과 그의 부모의 이야기는 구약의 계시와 신약의 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말라기서 3장과 4장에서는 메시야가 임하기에 앞서 그분의 사자가 와서 길을 예비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바로 그 사자이고 엘리야 선지자의 심령과 능력으로 나타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이며 어머니는 엘리사벳입니다. 침례 요한도 \\\"주 앞에 큰 자\\\"였지만 그의 부모 역시 주 앞에 큰 자였습니다. 첫째, 그들은 지극히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5-6절).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경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경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1)그들은 믿음과 사랑에 의거하여 결혼했습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으며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혈통이 경건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하나님께 대한 경건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각각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경건을 어릴 적부터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년기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핑게로 경건을 곧잘 희생하는 세태를 좇지 않고 경건에 근거한 사랑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같은 제사장 가문에 속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2)그들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다고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지만 이와 같은 표현이 사용된 예는 노아와 욥 외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 표현은 이들이 완전무결한 사람들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육체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칭찬을 해주실 정도로 이들의 순종은 돋보였던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시련 중에도 하나님을 극진하게 섬겼습니다(7-9절). 이 부부는 나이가 많도록 자식을 두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한 여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로까지 간주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하나님의 외형적인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이들이어야 할텐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주위의 곱지 못한 시선을 의식하며 이들이 얼마나 큰 시련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변함 없는 정성으로 행하는 사가랴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셋째, 그들은 낙망치 않고 기도했습니다(10-13절). 사가랴가 성소 안에서 금향로 위에 분향하고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기쁜 소식을 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 름을 요한이라 하라\\\"(13절) 사가랴와 같은 사람이 성소 안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고 사사로운 기도를 드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그의 기도를 언급하면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말한 것으로 판단해 볼 때 평상시 자식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서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개인적인 기도와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중보기도를 태어나게 될 아이를 통해서 동시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당대에 신앙으로 우뚝 선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를 통해서 \\\"주 앞에 큰 자가 될 자\\\"를 양육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경건을 실천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면 우리 자녀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세대를 본받지 않은 부부/ 눅1:1-
그 세대를 본받지 않은 부부 눅1:1- 침례 요한과 그의 부모의 이야기는 구약의 계시와 신약의 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말라기서 3장과 4장에서는 메시야가 임하기에 앞서 그분의 사자가 와서 길을 예비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바로 그 사자이고 엘리야 선지자의 심령과 능력으로 나타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이며 어머니는 엘리사벳입니다. 침례 요한도 “주 앞에 큰 자”였지만 그의 부모 역시 주 앞에 큰 자였습니다. 첫째, 그들은 지극히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5-6절).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경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경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1)그들은 믿음과 사랑에 의거하여 결혼했습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으며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혈통이 경건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하나님께 대한 경건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각각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경건을 어릴 적부터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년기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핑게로 경건을 곧잘 희생하는 세태를 좇지 않고 경건에 근거한 사랑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같은 제사장 가문에 속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2)그들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다고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지만 이와 같은 표현이 사용된 예는 노아와 욥 외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 표현은 이들이 완전무결한 사람들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육체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칭찬을 해주실 정도로 이들의 순종은 돋보였던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시련 중에도 하나님을 극진하게 섬겼습니다(7-9절). 이 부부는 나이가 많도록 자식을 두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한 여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로까지 간주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하나님의 외형적인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이들이어야 할텐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주위의 곱지 못한 시선을 의식하며 이들이 얼마나 큰 시련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변함 없는 정성으로 행하는 사가랴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셋째, 그들은 낙망치 않고 기도했습니다(10-13절). 사가랴가 성소 안에서 금향로 위에 분향하고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기쁜 소식을 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 름을 요한이라 하라”(13절) 사가랴와 같은 사람이 성소 안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고 사사로운 기도를 드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그의 기도를 언급하면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말한 것으로 판단해 볼 때 평상시 자식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서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개인적인 기도와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중보기도를 태어나게 될 아이를 통해서 동시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당대에 신앙으로 우뚝 선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를 통해서 “주 앞에 큰 자가 될 자”를 양육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경건을 실천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면 우리 자녀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세대를 본받지 않은 부부/ 눅1:1-25
그 세대를 본받지 않은 부부 눅1:1-25 침례 요한과 그의 부모의 이야기는 구약의 계시와 신약의 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말라기서 3장과 4장에서는 메시야가 임하기에 앞서 그분의 사자가 와서 길을 예비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바로 그 사자이고 엘리야 선지자의 심령과 능력으로 나타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이며 어머니는 엘리사벳입니다. 침례 요한도 \"주 앞에 큰 자\"였지만 그의 부모 역시 주 앞에 큰 자였습니다. 첫째, 그들은 지극히 경건한 사람들이었습니다(5-6절). 그들이 살던 시대에는 경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경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1)그들은 믿음과 사랑에 의거하여 결혼했습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이었으며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혈통이 경건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하여 하나님께 대한 경건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각각 이 기회를 잘 이용하여 경건을 어릴 적부터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년기에 이르러서도 사랑을 핑게로 경건을 곧잘 희생하는 세태를 좇지 않고 경건에 근거한 사랑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같은 제사장 가문에 속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2)그들은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다고 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지만 이와 같은 표현이 사용된 예는 노아와 욥 외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이 표현은 이들이 완전무결한 사람들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육체가 하나도 없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칭찬을 해주실 정도로 이들의 순종은 돋보였던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시련 중에도 하나님을 극진하게 섬겼습니다(7-9절). 이 부부는 나이가 많도록 자식을 두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결혼한 여인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으며 그것을 하나님의 징계로까지 간주했습니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 하나님의 외형적인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이들이어야 할텐데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주위의 곱지 못한 시선을 의식하며 이들이 얼마나 큰 시련을 받았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변함 없는 정성으로 행하는 사가랴의 모습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셋째, 그들은 낙망치 않고 기도했습니다(10-13절). 사가랴가 성소 안에서 금향로 위에 분향하고 기도할 때 천사가 나타나서 기쁜 소식을 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 름을 요한이라 하라\"(13절) 사가랴와 같은 사람이 성소 안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때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고 사사로운 기도를 드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그의 기도를 언급하면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을 말한 것으로 판단해 볼 때 평상시 자식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서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개인적인 기도와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중보기도를 태어나게 될 아이를 통해서 동시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당대에 신앙으로 우뚝 선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를 통해서 \"주 앞에 큰 자가 될 자\"를 양육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가 경건을 실천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면 우리 자녀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부러운 가정/ 창24:61-67/ 2004-05-15
그래도 부러운 가정 창24:61-67 오늘은 창세기 24장 61절에서 67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그래도 부러운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복을 주실 때 절대로 100%의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들어가 보면 어딘가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삭의 가정은 참으로 좋아 보입니다. 사실 좋습니다. 그런데 들어가 보면 문제가 있었습니다. 쌍둥이 아들 중에 큰 아들 에서가 가나안 족속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큰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 가정은 제가 볼 때 참으로 부러운 가정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오늘을 가정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5월만 되면 첫째 주일과 둘째 주일에 어린이 주일 혹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그런데 가정에는 어버이도 있고, 어린이도 있기에 두 주일을 합해서 가정 주일이라 하여 우리 교회에서는 오늘을 가정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오래 전부터 5월 첫 주일을 가정 주일로 지켜 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따라 이삭의 가정을 생각하면서 이삭의 가정이 어찌하여 \"그래도 부러운 가정\"인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믿음의 가정 (61-) 처녀와 총각이 만나서 결혼을 하면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가정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 부부 생활에 결정적인 치명상을 주는 증상이 하나 있습니다. 의부증 혹은 의처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심만 하는 정신적인 질환입니다. 의부증에 걸린 여자는 자기 남편을 사사건건 의심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 전혀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의심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남편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속이 터지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며 의처증이 있는 남자는 아내를 얼마나 의심하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함께 다니면서도 아내가 여자끼리 인사하는 경우에는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데 혹시 남자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게 되면 집에 돌아가서 반쯤 죽습니다. \'너 그 남자 좋아하지\'라고 하면서 닥달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자가 버티어 낼 수가 없습니다. 서로 의심을 하고 의심을 받는 일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부부는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런 증세가 깊어지면 부부생활은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서로가 믿어주는 부부가 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예를 들어서 동네 사람들이 저 집 아내가 어떻다고 하면서 별 소리를 다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이야기가 남편의 귀에까지 들어갑니다. 그 때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남편이 \'나는 당신을 믿소\'라고 하면 이야기를 끝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고마울 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가하면 남편에 대해서 저 집의 남편은 아무와 바람이 났다고 소문이 돌아갈 지라도 아내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는 내 남편을 믿는다고 하면 그 사건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믿고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이렇게 서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를 믿는다, 너를 사랑한다, 너를 미워한다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 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와 늙었을 때가 다릅니다. 하루에도 조석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감정이 믿기는 믿되 성령이 우리들에게 임하사 성령으로 믿는 믿음이기 까닭에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너를 믿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너를 믿는 바탕은 내 감정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듯이 남편을 믿고, 남편은 또 하나님을 믿듯이 아내를 믿어야 합니다. 이런 가정은 참으로 복되고 부러워할 만한 가정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1절을 보면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아내와 함께 떠납니다. 아들이나 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 생활을 잘 하겠노라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25년 동안 애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나이 100살, 그 아내 사라의 나이 90살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내가 127세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아들만 남았습니다. 며느리를 골라 맞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때 가나안 족속의 딸들 중에서는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을 고향 땅에 보냅니다. 고향에서 며느리를 골라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종을 보내면서도 아들은 절대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오고 가는 길에 해를 당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의 아들을 데리고 가지 못하고 혼자서 주인의 고향에 가서 며느리를 맞이해 오는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주인의 고향에 가기까지 순적한 길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계속하면서 주인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길을 가다 보니 메소보다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렀습니다. 동네 밖에 우물이 있는지라 \'하나님 제가 여기에 지켜 서 있다가 아가씨가 물을 길으러 나오는 경우 내게 물을 좀 달라 했을 때 나에게 물을 떠주는 아가씨라면 하나님이 내 주인의 며느리로 택한 줄로 믿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리브가라고 하는 아가씨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물을 좀 주어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을 떠서 마시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약대들에게 물을 길어다 먹였습니다. 약대가 물을 한 사발 두 사발을 마십니까? 리브가는 시키지 않은 일까지 넉넉하게 하는 여자입니다. 너무도 후덕한 아가씨였습니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종은 벌써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무 고마운지라 손 목걸이를 끼워주고 코걸이를 달아주면서 \"아가씨의 집에 내가 좀 쉴만한 곳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리브가가 \"그럼은요, 우리 집은 넓고 낙타에게 줄 먹이감도 많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달려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라반이 달려 나와서 그 종을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저녁 대접을 잘 하려고 만반진수를 차려 놓았습니다. 그 때 그 종이 \"내가 한 마디 하고 대답을 듣기 전에는 절대로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나는 아브라함이 종입니다. 그래서 지금 며느리감을 골라 데리고 오라는 사명을 받고 왔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기도하면서 왔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물가에서 기도했더니 리브가가 기도한대로 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사연을 모두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부두엘과 또 그의 아들 라반이 \"이것은 우리가 가부를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다 짝지어 놓으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아가씨에게 한번 물어는 봅시다\"라고 한 다음 리브가를 불렀습니다. 리브가가 남편 될 남자의 얼굴을 한번이나 봤습니까? 음성을 한 번이나 들어봤습니까? 편지 한번을 받아 보았습니까? 전혀 그런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리브가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확답을 했습니다. 종을 따라갔다는 것이 본문입니다. 순전히 믿음으로 따라 갔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삭은 자기가 직접 가서 보고 데리고 오는 것도 아니고 종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는 종이 데리고 오는 여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시는 것으로 알고 내가 맞이하겠다 하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믿음이 만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시작된 가정입니다. 이삭의 가정은 이렇듯 철저한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서 신학을 한 목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목사가 된 사람을 어느 교회에서 모시겠습니까? 그래서 개척할 수밖에 없다 하여 교회를 개척을 하는데 어려움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자기 보다 젊고 겨우 안면이 있는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젊은 목사의 사모가 차를 준비해서 대접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개척교회 목사님이 젊은 목사님에게 \"목사님은 참 행복해 보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젊은 목사님이 \"제가 그렇게 행복해 보입니까? 뭐가 그렇게 행복해 보이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사모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세상에 목사 중에 사모가 없는 목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모가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거의가 재혼하여 사모가 있지 않습니까?\" \"예, 저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와 어린 세 자녀가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그 자리가 그렇게 큰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보니 아내의 자리가 너무 컸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사님, 사모님 살아 계시니 얼마나 복됩니까?\" 그 젊은 목사가 그 다음 주일에 무엇을 했겠습니까? 감사 헌금을 했습니다. 감사 헌금도 봉투에 두둑이 넣어 가지고 드렸습니다. 큰 교회라면 헌금 내역을 다 부를 수가 없지만 그리 큰 교회가 아니기에 그 내역을 다 읽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내역에 \"아내가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사연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저녁 시간에 남자 교인들이 전부 \"아내가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감사헌금을 들고 왔습니다. 아내들도 \"남편이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전부 감사헌금을 들고 왔습니다. 지금 여러분들 옆에 있는 남편이 곁을 떠나면 그 때 비로소 남편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 실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내가 믿고 사랑하는 아내, 정말로 내가 믿고 사랑하는 남편과 믿음으로 맺어지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얼마나 복됩니까? 여러분들은 믿는 아내가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남편이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의 가정이 바로 아내와 함께 믿음으로 이루어졌고, 믿음으로 살아온 가정입니다. 정말로 부러운 가정입니다. 둘째, 기도의 가정 (62-63) 예수님이 이 땅위에 오셔서 나이 30이 될 때까지는 가정 일을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나이 30이 되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 하겠다하여 공생애에 나서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광야로 가셔서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서 키워야 되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부를 때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르셨습니까? 누가복음 6장 12절에서 16절을 보면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세우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키우는 일 전에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는 엄청난 일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을 가리키는 말씀입니까? 이상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아무리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 앞서 먼저 기도가 우선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기도를 하시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일을 하시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제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기도는 생활의 일부요, 즐거움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가정은 참으로 부러운 사람이요, 부러운 가정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62절에서 63절을 보면 \'때에 이삭이 브엘 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남방에 거하였었음이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들에 나가 묵상을 하다가\'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묵상 기도를 하다가\'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감을 골라 데리고 오는데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고 종을 보냈습니다. 종을 보낸 날로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묵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물가에서 종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삭의 가정은 기도로 이루어 진 가정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 20년이 되었는데도 아들도 딸도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20년 동안 애기가 없다면 이처럼 다급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걱정과 근심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부부는 \'기도할 문제다\'라고 생각되어 열심히 합심기도를 했습니다. 20년 동안을 내외가 합심하여 기도한 결과 어느 날 아내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남편 이삭은 그 날부터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기도할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내는 혼자서라도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태중에서 쌍둥이가 싸우기 때문에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고통스러울 때는 기도해야 하는 때입니다. \"하나님 이쯤 되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작은 아들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도를 중단했기 까닭에 하나님의 그런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도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아버지가 큰 아들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다가 쉬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기어이 작은 아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그것을 응답으로 받고 있었습니다. 이삭의 가정은 이처럼 기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리브가는 계속 기도로 살아왔습니다. 합심기도는 끝까지 못했을지라도 개인 기도가 끊어지지 않는 가정이었습니다. 얼마나 부럽고 복된 가정입니까? 여러분들 가정에 기도 소리가 계속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도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극상 한다는 것은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잠깐 하는 식사기도뿐이 아니십니까? 그 것도 형식적으로 말입니다. 기도가 없는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이삭의 가정은 기도의 가정이었습니다. 한번은 젊은이가 벌목장에 가서 취직을 하려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주인님, 저를 좀 써 주십시오.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네에게 달렸어,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고, 일을 잘 못하면 안 되는 것이지\" 그래서 도끼를 받아들고 월요일에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화요일에도 열심히 하고, 수요일에도 열심히 하고, 목요일에도 한 나절을 했는데 주인이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일한 품삯을 계산해 주면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주인님, 제가 이렇게 열심히 했고 다른 일꾼들이 놀고 또 쉬는 시간에도 저는 일을 했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때 주인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왜 그런 결과가 나오지?\" \"무슨 말씀이신데요?\" \"자네가 월요일에는 일등으로 제일 많은 성과를 올렸지. 둘째 날은 중 가운데쯤이었고, 셋째 날은 제일 꼴지야, 오늘은 지켜보니 영 형편이 없어. 왜 그렇지? 점점 능률이 떨어지고 있으니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어.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젊은 청년은 이상했습니다. 그 때 주인이 \"자네 혹시 도끼를 갈아서 날을 세운 일이 있나? 없나?\"라고 물었습니다.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도끼는 열심히 나무를 찍어서 하루를 일한 다음에는 반드시 갈고 갈아서 날을 세워야 하는데 도끼 날을 세우기 위해서 가는 시간이 헛되게 보내는 시간인가? 그 시간이 노는 시간인가?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아닌가?라는 주인의 말에 결국 대답을 못했습니다. 도끼의 날을 세워 놓고 한번 찍는 것은 무딘 도끼로 열 번을 찍는 것보다 능률이 더 좋습니다. 반드시 갈고 날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젊은이는 모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살이에서, 또는 믿음 생활에서 날을 세우는 일이 무엇입니까? 준비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기도 생활이 아닙니까?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가 놀고 먹는 시간입니까? 헛되이 보내는 시간입니까? 내일을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믿음의 날을 세우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안 하는 사람보다 열 배나 낫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열 사람이 기도하는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도 당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의 가정은 기도로 시작했고, 계속 기도로 살아가는 가정이었습니다. 에서의 문제가 있었다고 해도 부러운 가정이라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사랑의 가정 (64-67) 본문으로 돌아가서 64절에서 67절을 보면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고하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지 25년이 지난 후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의 나이 3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137살이고 이삭은 37살입니다. 남자만 둘이 살았습니다. 홀아비만 둘이 산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홀아비 3년이면 뭐가 서말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홀아비끼리 산다는 것은 그렇게 재미가 없고 구차하다는 뜻입니다. 남자 둘만의 삶은 삭막할 뿐이었습니다. 웃을 일도, 재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의 세월을 홀아비끼리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이삭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 본문에 등장하는 리브가라고 하는 아가씨를 맞이하여 장막에 들이고 사랑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사랑합니까? 시아버지가 사랑합니까? 시아버지가 사랑합니다. 시아버지 아브라함이 그 며느리를 얼마나 사랑했겠는지 상상을 해 보십시오. 어쩌면 시어머니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사랑을 받는 즉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하지만 내가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오히려 큰 복입니다.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이삭도 나이 40에 장가를 들었으니 이삭이 정신 없이 사랑을 했을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한번 돌이켜 보십시오. 자녀를 이기는 부모가 없지 않습니까? 저도 제 아들 딸을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항상 져주니까 평안합니다. 우리들도 며느리를 맞이하거든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십시오. 이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정 어머니가 딸한테는 져 줄줄 알면서 왜 며느리한테는 꼭 이겨야 하는 줄로 여깁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며느리에게 이기려고 했겠습니까? 사랑을 주고 위로를 받고 모든 것을 서로 나누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부러운 가정입니다. 나중에 에서의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부러운 가정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부러운 이삭의 가정은 첫째 믿음의 가정입니다. 믿음으로 출발을 했고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의 가정입니다. 기도로 시작을 했고, 기도가 생활의 한 부분이었고, 평생을 기도로 마친 가정입니다. 셋째 사랑의 가정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기에 천국과 같은 가정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평생 아내 한 사람으로 만족했고 아내는 이삭 한 사람 밖에 모르는 가정이요, 진정 부러운 가정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도 이렇게 부러운 가정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온전한 부부생활/ 엡5:22-24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온전한 부부생활 엡5:22-24 --- 즐거워야 할 추석연휴를 인간에 대한 절망과 공포로 몰아넣은 20대 조직범죄자들 [지존파]의 엽기적인 살인 행위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차거운 냉소와 거침없이 터져나오는 그들의 저주의 밑바탕에는 어떤 불행한 경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두목 김기환을 비롯하여 문상록,강문섭,백병옥,김현양 이들의 공통적인 불행한 경험은 양친부모의 따듯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이들은 대개 홀어머니 밑에서 극심한 가난을 겪으며, 일찍부터 노동판에서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는 것이 이토록 인간을 저주스럽 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온전한 부부관계]는 온전한 자녀를 키우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안정된 사회의 기틀 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무서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전쟁터의 피난민 같 은 심정입니다. 이 무질서하고 불안한 사회가 잘 정돈되고 안정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 대통령이 제 2의 개혁의 칼을 들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의 기반은 그 사회요, 그 사회의 기반은 가정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주역은 남편과 아내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가 잘돼야 자식이 잘되고 사회와 나라가 잘 되는 것입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이혼이 4배 가까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조만간 선진국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혼자 사는 가구가 15년간 3.6배나 증가,1백만 가구를 넘어서고 소년 소녀가장도 지난해 7천3백22명으로 8년 전보다 50%나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부의 이혼율의 급증하고 독신주의자가 많아지고 결손가정의 늘어나는 오늘날의 세태 를 보면, 우리 사회의 앞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벧엘동산교회 성도 여러분, 부부사이가 잘 되고 있습니까? 사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는 원 만한 부부관계를 이루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분들은 부부관계에 상처와 아픔을 겪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에게 이 설교가 오히려 상처를 크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노 파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님께서 이 말씀을 통하여 오히려 치료와 격려의 축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우리 교회의 모든 부부관계가 이 말씀으로 해결되고 치료되고 보 완되어 가정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게 되게 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온전한 부부,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그리스도와 교회를 모방하는 부부]가 되십시오. 그래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부부관계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결혼하셨습니다. 성도인 우 리들과 부부관계의 인연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부요, 예수님은 신랑입 니다(마25장,사54:5,렘3:8). 먼저 아내된 여러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Ⅰ.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22절)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우리 나라 여성들은 지금까지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의하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죽기까 지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복종은 유교적인 맹목적인 것이었으므로 부조리와 상처가 많았 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 남녀평등시대가 되었으므로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은 전근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제는 [여성 상위시대],[여성 인권시대]가 되었 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으로부터 되찾자는 목소리가 큽니다. 부부싸움에서도 부 인에게 매맞는 남편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여자들만이 가는 술집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혼도 여성쪽에서 먼저 요구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여성이 얼마나 많이 진출해 있습니까? 여성장관,사장,국회의원,목사,국 가원수 등.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똑똑한 여성일지라도 일단 결혼하면 남편에게 복종하 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엡 5:22-24)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 3: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벧전 3: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추호도 모순이 없습니다. 항의할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엡 6:1)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obey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submit ∼아래에 두다. 예속시키다.규율에 따르다.(사병이 장교의 관계) 하나님의 명령인 아내의 복종은 성령충만한 결과입니다. 에베소서 5:18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고 명령하신 다음 그 다음 구절에서 개인생활의 변화가 나옵니다. <\"찬송하는 마음\"→19절 \"감사하는 마음\"→20절 \"복종하는 마음\"→21절> 그 다음이 바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내용입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고 기도,헌신을 많이 해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면 결코 성령충만한 삶을 지속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계속 바랍니까? 가정에서 남편의 졸병이 되어 복종을 하십시오.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를 예속시키고 낮추어 따르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2.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주석가 매튜 헨리는 하나님이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에서 취해 만드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을 남성의 머리뼈로 만듦으로써 남성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셨고, 여성을 남성의 발 근처의 뼈에서 만듦으로써 남성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여성을 남성의 갈비뼈에서 만듦으로써 남성의 사랑을 받도록 만드셨다] 갈비뼈는 품안에 있는 뼈입니다. 우리가 소중한 것을 품을 때에는 가슴으로 품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안을 때에도 가슴으로 꼭 안아 줍니다. 아이들이 좋은 선물을 받으면 가슴 에 품고 좋아하고, 연인들도 가슴으로 포옹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여성이 남성의 갈 비뼈에서 취해서 만들어진 데에는 여성이 남성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즈음은 여자들이 가정과 남편의 굴레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결혼을 회피한다고 합니 다. 자유를 누리므로 잠시 홀가분 할 수는 있어도 참된 여성의 행복을 누릴 수는 없습니 다. ex)얼마전 미국에 있는 잘아는 여집사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형제를 위하여 60평생 독신으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이제 멋진 남자를 만났는데 결혼에 이르도록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두분이 결혼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도록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사랑 받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의 복종이란 말은 남존여비 사상과 얼마나 거리가 먼것입니까? 여성의 지위를 회복 하려면 남성의 사랑을 듬뿍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 받기를 버리고 복종하 기를 거절할 때 그 가정은 불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보호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남편이 아무리 아내를 사랑하고 싶어도 아내가 복종하지 않으면 그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만일에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 종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이시요\"(요일 4: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지옥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 일까요? 하나님께 복 종하지 않아서 그 사랑을 내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불순종의 죄는 결코 용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시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 습니다. 남편에게 복종치 않는 아내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사랑해도 남편에게 복종 하지 않을 때 아내는 외롭고 비참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행복할 때는 아내가 자기에게 복종할 때입니다. 적어도 집에 들어오면 [내가 왕 이다]라는 만족감이 있을 때, 남자들은 가정을 좋아하게 됩니다. 아내를 사랑하게 됩니다. 아내는 사랑을 받음으로 행복하지만 남편은 섬김을 받음으로 행복을 누립니다. 여성은 사랑에 목숨을 걸지만 남성은 명예에 목숨을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로 [남편을 왕으로 섬기면 아내는 왕비가 되고, 자녀는 왕자와 공주 가되고 가정은 궁전이 된다] 고 하지 않습니까? 남편을 전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남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벧전 3:1-2)아내 된 자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 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남편을 조종하려면 바가지로 안됩니다. 복종하십시오. 복종하므로 남편을 마음대로 주 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 것 같이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모방합시다. 흉내내 봅시다. 엡 5: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함입니다. Ⅱ.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듯이(25절) (남편에게 주시는 권면) 사실 남편이 아내의 복종을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듬뿍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주님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몸 을 내어 주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생명을 바친 사랑을 주셨습니다. 25절을 읽어보십시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 라 사랑→\"아가페\"<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결혼을 하면 아내는 남편만을 바라보며 가정에만 온 주의를 집중시키는데 비해 남편들 은 좀 다릅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아내에게도 더 이상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고 사업이 나,직장,친구관계 등 바깥 활동에만 신경을 쓰고, 그래야만 남자다운 남자인양 착각하고 살게 됩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는 가정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사내 대장부라고 생각했고, 호걸은 적어도 첩을 몇명 쯤 거느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남자는 참 불쌍한 남자입니다. 현명한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듯이 아내 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아낌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죄인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받쳐 보혈 의 피를 흘려 속죄하셨습니다. 아낌없이 다 주신 사랑 때문에 오순절 초대교회는 태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전부가 교회를 위하여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오늘도 교회를 지키고 보존하십니다. 바로 우리들을 아끼고 보존하신다는 말입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이 이와같으라고 하십니다(25절). 사랑은 관심과 보호입니다. 아내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내의 몸과 마음을 읽고 있습니 까? 아내의 행복이란 남편이 생활비를 많이 벌어다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남편의 사랑 이 언제나 확인 될 때, 행복한 것입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수님은 교회를 말씀으로 사랑하십니다. 오늘 남편들의 아내 사랑도 말로써 표현되기를 바랍니다. 1.말로 나타내는 사랑(26-27)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요, 그 말씀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키 고 믿음을 주시고 험한 세상에 나가 성도를 지키고 거룩하게 보존 하십니다. 1)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보존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에서 더럽혀진 성도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구별된 하나님 의 자녀로 보존하십니다. 대개 우리 남편들의 사랑은 마음에 숨겨져 있습니다. 말로 표현합시다. 매일 한번씩 사 랑을 고백합시다. [여보,사랑해요] 이 한마디에 아내의 마음은 온갖 일에 시달려 힘들다가 도 깨끗하게 씻겨져 거룩하게 보존될 것입니다. 무뚝뚝한 남편들의 언사는 아내의 마음에 외로움을 주고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버릇이 되어버린 남편들의 언사를 고쳐야 합니다. 고함치는 말, 무시하는 말, 그래서 아내들이 TV연속극에 빠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자상하고 부드러운 남자 가 출연하면 거기에 홀딱 빠집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는데 남편들이여! 말로써 아내의 마음을 씻어 남편만 바라보는 거룩하게 구별된 여자가 되게 합시다. 2)말씀으로 티나 주름잡힌 것 없이 거룩하게 보존하십니다(27). 티→점,얼룩(죄악의 더러움) 주름→구겨짐(슬픔,불안,두려움)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의 모든 죄악의 더러움과 슬픔과 불안과 두려 움으로 부터 해방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내의 마음을 읽어보십니까? 어떤 걱정이 있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대화를 가집 시다. 아내와의 다정스러운 대화, [차 한잔과 다정한 대화] 더구나 분위기까지 만들어놓으 면 금상첨화이지요. 아내의 마음이 밝아야 가정이 밝습니다. 마음의 티,마음의 주름은 얼굴에 티과 주름이 됩니다. 요즈음 진흙으로 팩을 하는것이 유행이라는데…, 아내의 얼굴의 주름은 남편 탓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아내,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주님앞에 서도록 남편이 보존해주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교회를 보존하듯이 말입니다. 2.몸으로 나타내는 사랑(28-31) 대개 남편들은 이기주의자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이기주의자는 아이입니다. 왜, 남자를 \'사나이\'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살아있는 아이\'라는 뜻입니다. 남자는 여자보다 이기주 의에 빠진 어린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벧엘동산교회의 남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페\'를 모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먼저 사랑하 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1)제몸 같이 아끼는 사랑(28절). 이웃 사랑의 출발은 \'제몸 같이\'입니다. 하물며 아내 사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의 몸을 아끼셨기에 친히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쳐 그 모진 고통 감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내의 몸을 아낍니까? 여자는 몸이 연약합니다. 자주 아픔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귀중한 과업을 맡기셨 습니다. \"잉태와 출산\"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여성의 몸을 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 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여성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심 을 맨 처음 보고 증거한 것도 여성입니다(요20:11-18). 수많은 여성들이 하나님에 의해 놀 라운 일을 수행하는 성령의 도구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와 같이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존재를 감히 누가 함부로 취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받는 갖은 폭력을 보십시오. 우리 남편들이 아내의 몸에 대하여 얼마나 무심한지요.얼마나 귀찮아 하는지요. 그러나 자기 몸이 아프면 얼마나 엄살이 심한지요. 오히려 가끔 아내에게 폭력을 행하지는 않습니 까? 부엌에서 그릇을 다룰 때 연약한 그릇일 수록 더 조심히 다룹니다. 아내는 조심히 다루 어야 할 그릇입니다. 연약한 그릇일 수록 잘 깨집니다. 그릇이 깨지면 소리가 요란합니 다. 집에서 아내의 바가지 긁는 소리는 사실 \'내 그룻이 깨졌다는 신호\'입니다. 쉬는 날엔 빨래도 좀 해주고 집안 청소도 같이 좀하고 수고를 아끼지 마십시오. 남자의 몸이 여자보다 힘이 센 것은 아내를 두드려 패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보호하고 아끼라고 주신 것입니다. 2)한몸 같이 합한 사랑. 부부는 두 사람이 합하여 한 몸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맞이하여 지른 첫 환호성은 [내 뼈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창 2:23)입니다. 둘이 합하여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도를 사랑하시되 완전한 연합을 이루어 \'한 몸\'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요15:5) 성령충만한 상태, 주님과 합하여 한 몸을 이룬 상태입니다. 부부는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살을 섞어야 행복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부부의 성생활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입니다. 서로 각방을 쓰거나 등돌리고 주무시지 말고, 한 이불 덮고 주무셔야 합니다. 가운데 누구도 끼지 못하 도록 해야 합니다. 한 몸이 잘되는가 아닌가, 테스트 방법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서로의 칫솔을 사용할 수있는가] → \"위생상 운운…\", 문제있는 부부입니다. 한 몸을 잘 이루려면 (31절)을 보십시오. 먼저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마미보이 남편} ,{친정 중독 아내} 그 아내와 연합해야 합니다.→마음의 연합, 신앙의 연합 그래야 그 둘이 한 육체가 잘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한몸이듯이 남편과 아내는 한몸입니다. 서로 부족한 약점을 감 싸주는 배우자입니다. 갈라서서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Ⅲ.부부생활의 비밀이 크도다(32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본 받는 부부의 생활의 말씀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비밀을 발 견하고 감탄을 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부부생활의 신성함에 놀랐습니다. 부부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성도의 만남입니다. 부부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연장인 것입니다. 부부 생활은 교회 생활의 연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부부는 행복할 수 없 고, 부부를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 힘쓰는 만큼 부부생활에 힘써야 하고 부부생활이 중요한 만큼 신앙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보이는 예수님은 내 남편입니다. 보이는 교회가 내 아내입니다. 믿음없는 배우자를 위하여, 끝까지 기도하고 사랑합시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 편은 아내를 보호합시다. \"연애는 사람이 해도 결혼은 하나님이 시키신다\" 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 난 남편이라도 감사하며 섬기며 복종하며 삽시다. 부족한 아내라도 내 짝이거나 감사하며 사랑합시다. 우리 학생들은 장래에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야 합니다. 은밀히 기도하십시오. 이성교제 는 반드시 결혼을 목적으로 신성하게 해야 합니다. 부부는 신성한 것입니다. 결혼식은 반드시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해야 합 니다. 결언: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각각 능력을 주셨습니다.(33)을 보십시오. 못난 남편을 만나서 고생하는 아내여! 용기를 내십시오. 미련한 아내 때문에 한숨짓는 남편이여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을 보십시오. 교회를 보십시오. 그리고 실행해 보십시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 다. 연습삼아 하십시오. 실패해도 또 해 보십시오. 흉내내는 것입니다. 닮아가려고 반복해 보는 것입니다. 또 해보고, 또 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것 처럼 아내를 내몸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남편을 하나님같이 그리스도같이 경외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는 부부가 서로 행복합니다. 목석 같은 남편이 연애시절의 남자로 돌아갑 니다. 무심한 아내가 세심한 연인으로 변합니다. 돌아섰던 부부가 다시 만나 화기애애할 것입니다. 자녀들이 무한한 안정을 누립니다. 다시는 지존파와 같은 살인마의 자식들이 이 땅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벧엘동산 성도의 모든 부부에 이러한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 부부의 원리/ 전도서전9:7-10, 벧전3:1-7/ 부부주일설교/ 2013-05-21
그리스도인 부부의 원리 전9:7-10, 벧전3:1-7 역기능적인 가정에 대한 기사가 연일 언론을 통하여 보도되고 있다. 이런 가정의 제일 원인은 부부관계이다. 건강한 부부관계가 좋은 가정을 만들고 좋은 사회 만든다. 교회는 처음부터 여신도들이 있었고 사도들의 전도여행을 통하여 부인들이 믿게 되었고 남편이 믿지 않는 부인들 사이에 가정과 신앙생활의 조화가 문제되었다. 한편으로는 남녀불평등이 문제가 되었는데 교회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가정이 살기 위해서는 성경적 부부관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1. 순복하라 아내에게 순복하라는 말씀은 주종관계가 아니라 남편의 사랑에 대한 보상 관계를 의미한다. 사랑이 없는 순복은 무의미하다. 순복은 자기 남편에게 해야 할 도리이다. 이 말은 가정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다른 남자에게 순복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로마는 가정윤리의 파괴로 귀부인들이 자진해서 기생의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아내의 순복은 불신 남편이 구원을 얻게 하고 순종할 때에 돕는 배필이 된다. 성경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주안에서 마땅하다고 한다(골 3:18). 2. 단장하라 단장하라는 헬라어 단어는 ’코스모스’로서 질서를 가진 세상을 의미한다. 마음이 질서가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당시에 머리를 땋고 금장식을 한 사치가 유행되었다. 단장은 해야 하지만 지나친 단장이나 자신의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단장은 피해야 한다. 마음에 숨은 사람을 단장해야 하고,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단장해야 한다. 3. 동거하라 동거하라는 말은 부부관계를 의미하나 여자의 육체적인 연약함을 돌보는 전체적인 관계까지 의미한다. 바울은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한 일 외에는 분방하지 말라고 한다(고전 7:5). 나아가서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고 한다(히 13:4). 4. 귀히 여기라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므로 귀히 여겨야 한다. 귀히 여기다는 존경하라는 의미로서 부부 사이의 사랑은 피차 존경에서 나는 법이다. 남편은 아내를 괴롭히지 말고 자기 같이 사랑해야 한다. 아내를 사랑해야 기도가 막히지 않고, 남편에게 순종해야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 다 헛되지만 부부가 함께 즐겁게 사는 것만이 남는 것이고 의미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부부관계/ 고전7:1-16
그리스도인과 부부 관계 고전7:1-16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정에서 어떤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부부관계입니다. 물론 한 가정에 있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관계가 가정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신 다음에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의 가정들이 자녀를 중심에 둠으로 강조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좋은 부부관계가 건강한 가정을 형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팀 라헤이와 비벌리 라헤이 부부가 쓴 「성령충만한 삶은 가정에서부터」라는 책에서 많은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먼저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신 다음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 자녀들 때문에 결혼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면 그렇게 하는 동안에 두 사람의 관계는 파괴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들은 가정 상담자로서 가정에서 자녀의 위상을 분석해 놓았는데 자녀들은 불과 5년만 부모의 품에서 지내다가 다음 15년간은 점차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떠날 준비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50년 이상을 함께 지내며 평생을 함께 걸어갑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녀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은 분명 각 가정의 미래요 꿈입니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자신을 매력있는 남성으로 가꾸기 위해 늘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며, 아내 역시 매력있는 여성으로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건강한 부부관계의 울타리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부관계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부부관계에 대하여 성경적인 원리를 확인하고, 이 원리를 적용하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1. 결혼에 대한 관점 우선적으로 우리는 결혼에 대한 올바른 관점 또는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이 본문이 기록된 문맥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를 가진 교회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특히 이 교회는 잘못된 방법으로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음행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5장과 6장에서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부부관계에 금이 가고 이혼하게 되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음행문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음행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아주 중요한 원리를 6:19-20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거하게 된 모든 성도들은 우리의 몸을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개념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많이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편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표현은 우리의 말이나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일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통치하신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혼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에 대한 이러한 원리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면 결혼하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결혼은 분명 하나님을 영광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더 잘 돌릴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각 사람마다 주신 성욕을 절제할 수 없으면 혼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상을 고린도전서 7:7-9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래서 바울이 이 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더 좋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정욕이 불타서 그것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혼하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우신 가정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방편으로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획일적으로 결혼하거나, 또는 독신으로 지낼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7:7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사람들마다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결혼하지 않고 평생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냥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결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성의 사용문제 그러면 결혼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부부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부부관계라 함은 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부부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사실 이 본문에서 두 가지를 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성적인 욕구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의 사용문제에 대하여 2절에서 아주 중요한 규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서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그러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의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긴 하지만, 사람들마다 성욕을 느끼고 있고, 이 일 때문에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결혼하여 한 남편과 한 아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여러 사람의 아내와 남편을 둘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 단수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나 남편을 수식하는 말은 ”자신의 아내,” ”자신의 남편”이라고 하는 수식어를 사용함으로 강력하게 일부일처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 관계는 결혼이라고 하는 관계에서, 그리고 일부일처제라고 하는 테두리 내에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에 대한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요즘 현대사회의 부부생활이나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이 규칙, 결혼의 관계에서 성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일부일처제의 범위 안에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규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는 자기 아내와, 그리고 한 여자는 자기의 남편과만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남편들이 다른 여자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여자, 특히 주부들도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이혼하는 경우들이 드라마나 신문지상을 통하여 얼마나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 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이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의 삶의 모습이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혼전 성 관계도 신자에게 잘못되었다고 하는 점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성에 대한 의식구조가 많이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남녀의 성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나와 있었습니다. 남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려 17%가 성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남녀 대학생들은 무려 25% 이상이 성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별로 죄악시하지 않는다고 하는 응답은 남자의 경우 무려 70%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성 관계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결혼한 사람들만이 성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도 이 중요성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녀인 여자가 약혼한 후에 다른 남자와 관계하면 두 사람 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22:22-23).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관계를 가져서도 안됩니다. 특히 성경은 결혼하여 얻은 아내가 첫 날밤에 관계하여 그가 처녀의 표적이 없으면 정당한 재판절차를 받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22:20-21).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들은 결혼 전의 성 관계를 하나님께서 가증한 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렌즈를 좁혀서 서로의 봉사와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건강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부부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7:3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의무는 일반적인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맥 속에서 볼 때 성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이 있고, 서로를 위하여 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의 차이가 없습니다. 완전히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7:4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해야한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상대방의 권위 아래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 아내는 남편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아내는 남편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삶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단장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적인 존재입니다. 악한 사탄은 항상 이 문제로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서 기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분방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생활 가운데 기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서로 분방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성경말씀대로 기도하는 일 외에는 절대로 분방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남편이 외국에 출장을 가서 에이즈에 감염되어 오는 사례들을 간혹 신문을 통해 보지 않습니까? 외국이라고 하는 곳에는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륜의 관계를 맺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있습니다. 바울이 이 본문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본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이 이를 이용해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속함을 받아 성령의 지배를 받는 우리 성도들의 부부생활의 제일 중요한 수칙은 다른 방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이혼 문제 앞서 저는 부부관계를 다루면서 성을 사용하는 부분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부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의 문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요즘 이혼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지난 5월 23일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아동복지정책의 발전방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1년 동안 현재 국내 이혼가정의 미성년자는 11만 5,637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 1993년 6만 5,967명에 비해 6년만에 무려 40%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래서 지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이혼가정의 미성년자의 수는 51만5,728명으로 연평균 8만 6,000여명이 새로 발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혼건수도 1997년에는 8만 3,318건, 1998년 9만 8,498건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가정의 기본관계가 흔들리고 있고, 점차적으로 결손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많아짐으로 사회문제가 될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결혼과 이혼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성경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10-11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이혼문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이 말씀의 요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득불 이혼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맞는다든지, 반대로 남편이 아내에게 맞아 생명의 위협이 있을 경우나, 음행한 경우에는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양쪽이 다 그리스도인인 경우도 있지만 아내나 남편 중에 한쪽만이 그리스도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부부관계를 정립하는지의 문제는 참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7:12-16까지의 말씀이 이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 말씀을 연구하기 전에 잠시 한가지 오해해서는 안될 부분을 지적하고 가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해도 된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결혼하고 난 뒤에 남편이 먼저 믿었다든지, 또는 아내가 먼저 믿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한쪽은 믿고 한쪽은 믿지 않는 경우의 가정에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7:12-13에 바울은 믿지 않는 아내가 믿는 남편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아내를 버리지 말고, 반대로 믿는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과 생활할 때에 그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한가지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그것은 15절의 말씀인데, 남편이나 아내나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기를 원하면 이혼해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혼하지 말라”고 한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혼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화평 중에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불신 남편이나 아내가 갈라서기를 원한다면 가정의 화평을 위하여 갈라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 결론의 말씀으로 16절의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믿는 남편이나 믿는 아내로 인하여,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여 그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남편이나, 믿지 않는 아내를 둔 신자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 부분은 참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믿지 않은 남편을 둔 경우나, 믿지 않는 아내를 둔 이 두 경우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힘들겠습니까?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남편이 불신자인 경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신자이고 아내가 불신자인 경우가 훨씬 힘이 듭니다. 아내에게 구박받는 남편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목회생활 하는 가운데 이 사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의 삶은 생의 가치관과 추구하는 목적이 달라지게 됩니다. 기쁨의 대상도 달라지고, 취미도 달라지고, 생활방식도 달라집니다. 여기에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린도전서 7:14을 보십시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신자 아내나, 믿지 않는 아내를 둔 신자 남편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삶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다고 하는 말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참 중요합니다. 믿는 아내나 남편의 삶으로 인하여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룩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3:1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생활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님을 더 잘 공경하고, 아이들을 더 잘 돌보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모범을 보이게 될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한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떤 여자 성도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의 생활의 대부분을 교회에서 보내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집은 엉망이고, 자녀들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아내에 대하여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남편이라면 책망하고 교회생활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남편을 향하여 마귀가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교회생활에 매달렸습니다. 사실 교회에 주부들이 그렇게 할 일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여호와의 증인 교회이긴 합니다만 원주에서 그러한 아내 때문에 화가 나서 교회당 입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에 한 주간에 공적인 예배를 제외하고 한번 이상 모이면 가지 마십시오. 가정에 충실하십시오. 이것은 믿는 신자 부부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인과 부부관계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부분을 충분히 검토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중요한 원리는 다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부생활에 있어서 성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인 규칙을 꼭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의 가정의 문제들, 심지어는 이혼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대개가 성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반드시 결혼하여 남자는 자기 아내와, 여자는 자기 남편과만 성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결혼 전에 성 관계를 가지거나 남편이나 아내 외의 다른 남자나 여자와의 관계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부부가 늘 함께 다니십시오. 쇼핑도 함께 가시고, 운동도 같이 즐기십시오. 기도하는 일 외에는 분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선한 행실을 보이십시오. 그 일을 통하여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된 교제를 사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시는 신자의 모습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서로의 사랑과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특히 좋은 아내와 남편을 만나 건강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든 한샘교회 가족들이 성경적인 부부관계와 성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특히 아직 결혼하지 않은 우리 믿음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성경적인 관계를 가지게 하시고, 건강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그리스도인과 부부관계/고전7:1-16
그리스도인과 부부관계/고전7:1-16 2001-09-22 18:48:26 read : 209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요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정에서 어떤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부부관계입니다. 물론 한 가정에 있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관계가 가정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신 다음에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의 가정들이 자녀를 중심에 둠으로 강조점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좋은 부부관계가 건강한 가정을 형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팀 라헤이와 비벌리 라헤이 부부가 쓴 「성령충만한 삶은 가정에서부터」라는 책에서 많은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먼저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신 다음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 자녀들 때문에 결혼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면 그렇게 하는 동안에 두 사람의 관계는 파괴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들은 가정 상담자로서 가정에서 자녀의 위상을 분석해 놓았는데 자녀들은 불과 5년만 부모의 품에서 지내다가 다음 15년간은 점차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떠날 준비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50년 이상을 함께 지내며 평생을 함께 걸어갑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녀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은 분명 각 가정의 미래요 꿈입니다. 하지만 부부관계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자신을 매력있는 남성으로 가꾸기 위해 늘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며, 아내 역시 매력있는 여성으로 가꾸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건강한 부부관계의 울타리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부관계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부부관계에 대하여 성경적인 원리를 확인하고, 이 원리를 적용하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1. 결혼에 대한 관점 우선적으로 우리는 결혼에 대한 올바른 관점 또는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는 이 본문이 기록된 문맥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를 가진 교회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특히 이 교회는 잘못된 방법으로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음행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5장과 6장에서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부부관계에 금이 가고 이혼하게 되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음행문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음행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아주 중요한 원리를 6:19-20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거하게 된 모든 성도들은 우리의 몸을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개념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많이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편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표현은 우리의 말이나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일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통치하신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혼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결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혼에 대한 이러한 원리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면 결혼하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결혼은 분명 하나님을 영광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더 잘 돌릴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각 사람마다 주신 성욕을 절제할 수 없으면 혼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더 좋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상을 고린도전서 7:7-9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래서 바울이 이 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더 좋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정욕이 불타서 그것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혼하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우신 가정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방편으로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획일적으로 결혼하거나, 또는 독신으로 지낼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7:7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사람들마다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결혼하지 않고 평생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냥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결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성의 사용문제 그러면 결혼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부부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부부관계라 함은 성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일 수도 있고, 부부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사실 이 본문에서 두 가지를 다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성적인 욕구들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의 사용문제에 대하여 2절에서 아주 중요한 규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서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그러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의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긴 하지만, 사람들마다 성욕을 느끼고 있고, 이 일 때문에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결혼하여 한 남편과 한 아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여러 사람의 아내와 남편을 둘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 단수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나 남편을 수식하는 말은 \"자신의 아내,\" \"자신의 남편\"이라고 하는 수식어를 사용함으로 강력하게 일부일처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 관계는 결혼이라고 하는 관계에서, 그리고 일부일처제라고 하는 테두리 내에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에 대한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요즘 현대사회의 부부생활이나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이 규칙, 결혼의 관계에서 성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일부일처제의 범위 안에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규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는 자기 아내와, 그리고 한 여자는 자기의 남편과만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남편들이 다른 여자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여자, 특히 주부들도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이혼하는 경우들이 드라마나 신문지상을 통하여 얼마나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 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이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의 삶의 모습이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혼전 성 관계도 신자에게 잘못되었다고 하는 점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성에 대한 의식구조가 많이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남녀의 성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나와 있었습니다. 남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려 17%가 성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남녀 대학생들은 무려 25% 이상이 성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별로 죄악시하지 않는다고 하는 응답은 남자의 경우 무려 70%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성 관계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결혼한 사람들만이 성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도 이 중요성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녀인 여자가 약혼한 후에 다른 남자와 관계하면 두 사람 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22:22-23).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관계를 가져서도 안됩니다. 특히 성경은 결혼하여 얻은 아내가 첫 날밤에 관계하여 그가 처녀의 표적이 없으면 정당한 재판절차를 받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22:20-21).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들은 결혼 전의 성 관계를 하나님께서 가증한 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렌즈를 좁혀서 서로의 봉사와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건강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부부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7:3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의무는 일반적인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맥 속에서 볼 때 성 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이 있고, 서로를 위하여 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의 차이가 없습니다. 완전히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7:4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해야한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상대방의 권위 아래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 아내는 남편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아내는 남편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삶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단장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성적인 존재입니다. 악한 사탄은 항상 이 문제로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서 기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분방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생활 가운데 기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서로 분방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성경말씀대로 기도하는 일 외에는 절대로 분방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남편이 외국에 출장을 가서 에이즈에 감염되어 오는 사례들을 간혹 신문을 통해 보지 않습니까? 외국이라고 하는 곳에는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륜의 관계를 맺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있습니다. 바울이 이 본문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본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이 이를 이용해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속함을 받아 성령의 지배를 받는 우리 성도들의 부부생활의 제일 중요한 수칙은 다른 방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이혼 문제 앞서 저는 부부관계를 다루면서 성을 사용하는 부분에 대하여 먼저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부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의 문제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요즘 이혼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지난 5월 23일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아동복지정책의 발전방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1년 동안 현재 국내 이혼가정의 미성년자는 11만 5,637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지난 1993년 6만 5,967명에 비해 6년만에 무려 40%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그래서 지난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이혼가정의 미성년자의 수는 51만5,728명으로 연평균 8만 6,000여명이 새로 발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혼건수도 1997년에는 8만 3,318건, 1998년 9만 8,498건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계는 가정의 기본관계가 흔들리고 있고, 점차적으로 결손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많아짐으로 사회문제가 될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결혼과 이혼문제에 대하여 올바른 성경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10-11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이혼문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이 말씀의 요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득불 이혼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맞는다든지, 반대로 남편이 아내에게 맞아 생명의 위협이 있을 경우나, 음행한 경우에는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혼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양쪽이 다 그리스도인인 경우도 있지만 아내나 남편 중에 한쪽만이 그리스도인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부부관계를 정립하는지의 문제는 참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7:12-16까지의 말씀이 이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 말씀을 연구하기 전에 잠시 한가지 오해해서는 안될 부분을 지적하고 가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해도 된다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불신자와 결혼해서는 안됩니다.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은 결혼하고 난 뒤에 남편이 먼저 믿었다든지, 또는 아내가 먼저 믿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한쪽은 믿고 한쪽은 믿지 않는 경우의 가정에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7:12-13에 바울은 믿지 않는 아내가 믿는 남편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아내를 버리지 말고, 반대로 믿는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과 생활할 때에 그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한가지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그것은 15절의 말씀인데, 남편이나 아내나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기를 원하면 이혼해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혼하지 말라\"고 한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도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혼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화평 중에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불신 남편이나 아내가 갈라서기를 원한다면 가정의 화평을 위하여 갈라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 결론의 말씀으로 16절의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믿는 남편이나 믿는 아내로 인하여, 믿지 않는 아내나 남편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인도하여 그로 하여금 구원을 얻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지 않는 남편이나, 믿지 않는 아내를 둔 신자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 부분은 참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믿지 않은 남편을 둔 경우나, 믿지 않는 아내를 둔 이 두 경우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힘들겠습니까?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남편이 불신자인 경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신자이고 아내가 불신자인 경우가 훨씬 힘이 듭니다. 아내에게 구박받는 남편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저는 지금까지 목회생활 하는 가운데 이 사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의 삶은 생의 가치관과 추구하는 목적이 달라지게 됩니다. 기쁨의 대상도 달라지고, 취미도 달라지고, 생활방식도 달라집니다. 여기에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린도전서 7:14을 보십시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신자 아내나, 믿지 않는 아내를 둔 신자 남편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삶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하다고 하는 말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참 중요합니다. 믿는 아내나 남편의 삶으로 인하여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거룩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베드로전서 3:1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생활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님을 더 잘 공경하고, 아이들을 더 잘 돌보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모범을 보이게 될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한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떤 여자 성도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의 생활의 대부분을 교회에서 보내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집은 엉망이고, 자녀들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아내에 대하여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남편이라면 책망하고 교회생활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남편을 향하여 마귀가 들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교회생활에 매달렸습니다. 사실 교회에 주부들이 그렇게 할 일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여호와의 증인 교회이긴 합니다만 원주에서 그러한 아내 때문에 화가 나서 교회당 입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에 한 주간에 공적인 예배를 제외하고 한번 이상 모이면 가지 마십시오. 가정에 충실하십시오. 이것은 믿는 신자 부부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인과 부부관계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부분을 충분히 검토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중요한 원리는 다 살펴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부생활에 있어서 성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인 규칙을 꼭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의 가정의 문제들, 심지어는 이혼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대개가 성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반드시 결혼하여 남자는 자기 아내와, 여자는 자기 남편과만 성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결혼 전에 성 관계를 가지거나 남편이나 아내 외의 다른 남자나 여자와의 관계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부부가 늘 함께 다니십시오. 쇼핑도 함께 가시고, 운동도 같이 즐기십시오. 기도하는 일 외에는 분방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많이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선한 행실을 보이십시오. 그 일을 통하여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가 믿음을 가지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된 교제를 사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시는 신자의 모습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서로의 사랑과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특히 좋은 아내와 남편을 만나 건강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든 한샘교회 가족들이 성경적인 부부관계와 성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특히 아직 결혼하지 않은 우리 믿음의 가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성경적인 관계를 가지게 하시고, 건강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부부/ 아2:9-17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부부 아2:9-17 이 시간은 부부간에 있어서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은혜를 나 누고자 한다. 성경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교회와 성도와의 관계로 말씀 하고 있다. 에베소서 5:22-25절에 \\\"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 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 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 을 주심 같이 하라\\\" 했다. 교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님의 피흘림과 거기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있어야한다. 이것이 교회의 구성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부부이다. 남편과 아들이 가장의 중심이 아니고, 어머니와 아들이 가정의 중심이 아니고, 아들과 시아버지가 가정의 중심이 아니다. 부부가 그 가정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모든것이 중심이 중요하듯이 이 가정의 중심인 부부의 관계가 흐트러지게 되면그 가정의 모든것이 흐트러지게 된다. 재산도, 자녀도 다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가정의 중심이 핵으로서 더욱 견고해지기 위해서는 두 부부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서 있어야 한 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부부의 사이를 더욱 튼튼하게 연결시키는 고리가 될 때에 그 가정은 더욱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된다. 거의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가보면 가정에 대한 성구 액자가 하나 쯤 걸려 있지 않은 집이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걸려 있다고 해서 그 가정이 그리스도의 가정이 되 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서로의 섬김이 있을 때 그 가정은 진정한 그 리스도의 가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부부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하는가? 첫째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의 복종은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부장적인 제도 안에서의 유교적이고, 맹목적 이고 억눌림으로서의 복종이 아니다.이런 복종은 반드시 때가 되면 문제가 발생하고, 폭발하게 되어 있 다. 성경에서 아내에게 명령하고 있는 복종은 절대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인격적이고,자발적인 복종을 말 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똑똑하다고 자처하면서 개성이 강한 여성일수록 남편에게 복종 하는것이 어려 울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성이 강하고 배운것이 많다고 할찌라도 남편에게만은 복종을 해야 한다. 회사에 나가서는 여사장이고, 여장관이고, 여회장이라고 할찌라도 가정에 들어와서는 남편에게 복종 하는 아내가 될 때, 가정의 질서가 잡히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의 가장을 남편으로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에베소서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했다. ●골로세서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벧전 3:1-2 \\\"아내된 자들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했다. 현대의 여성들에게는 특히 여성상위 시대를 부르짖고 있는 이 시대에는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말 같 지만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보면, 자녀들을 보고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순종이라는 말을 영어로 obey(오우 버이)로 썼다. 이 말은 말을 잘 듣는 것,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내들이 남편 에게 복종하라는 단어는 submit(서브미트)를 쓰고 있다. 이것은 {항복}이라는 말이다. 더 강한 의미로는 {신의 뜻에 굴복하는 항복}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내들에게 주신 최고의 사역은 뭐라 해도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으로 지정을 해 놓으셨다. 아내의 가장 큰 임무는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다. 성경에서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으므로 최고의 낭패를 당한 사람이 있는데 그 여자가 바로 와스디라는 여자다. 그는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였다. 그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여자였다. 그래서 남편 아 하수에로 왕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아내를 소개하고 이런 아내를 두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랑을 하 고 싶어서 아내를 나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말을 거절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남편의 권위를 많은 대신들과 사신들 앞에서 실추 시키고 만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아하수에로 왕의 말을 듣는데 그 왕비가 그것을 사람들이보는 앞에서 거절을 한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녀는 왕궁에서 좇겨나는 불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바로 아내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다. 아내와 남편간의 모습을 교회와 성도간의 모습과 같다고 했는데, 성 도가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주님을 섬기게 될 때에 그 섬김과 복종으로 인하여 그 은혜는 바로 내가 받게 되는 것이고 주님께는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아내가 남편을 복종으로 섬기게 될 때에 결국 은 나에게 행복이 오게 되는 것이다. EX> 남편 A씨는 신혼여행을 가서 이튿날 결혼 반지를 빼서 집어던지며 결혼을 잘못 했다고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었다. 남편 A씨가 이렇게한 이유는 간단했다. 신부가 도대체 말을 안듣고 자기만 주장하 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아주 사소한 데서 발생했다. 신부는 제주도로 신혼 여행가기 전에 이런 얘기를 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제주도에 가면 로얄제리는 절대로 사지 말라고 그러더라. 비싸기만 하고 순 엉터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거기 가면 절대 로얄제리는 사지 맙시다!\\\'고 했다. 남편 A씨는 별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제주도에 가서 보 니 감언이설을 늘어놓는 로얄제리 판매원의 입담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몇개씩 사는데 자기도 하나만이라도 샀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 진것이다. 신부는 계속 남편 A씨를 쿡쿡 찌르며 절대 넘어가지 말라고 했으나 A씨는드디어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A씨는 신 부에게 사정했다, 딱 한 개만 사자고... 아무래도 집안식구들에게 선물은 사가야 하니 아버지 선물로 딱 하나만 사자고 했다. 그러나 신부는 눈물까지 글썽여 가면서 반대했다. A씨는 드디어 격분했다. 설 사그것이 가짜라 하더라도 돈이 얼마나 된다고 반대를 하느냐? 필경 이 여자는 남편보다는 친구들의 얘 기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나를 무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한 남편 A씨는 호텔로 들어오자 마자 신부는 팽개쳐 두고 혼자 빠찡꼬에 들어가 2, 30만 원을 홧김에 날려버렸다. 그러다 보니 분통은 더욱 치밀었고, 한복으로 곱게 갈아 입고 찾으러 온 신 부를 째려보고 방으로 들어가 소리를 지른 것이다. 나중에 신부가 잘못 했다고 빌자 그제서야 남편 A씨 는 겨우 화를 추스리고, 던진 반지를 찾기 위해서 방바닥을 기어다녔다는 얘기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처음의 남자 아담이 하와의 말에 넘어 갔듯이 본질적으로 남자는 여자의 말이라면 다 들어준다. 이 것 저것 깊이 따지지 않고 기분만 맞추어 주면 그 모든 것을 다가져도 좋다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분은 바로 권위이다.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고, 비위만 맞추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그 나머 지를 모두 가져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하는 여자씨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내의 복종은 첫째는 남편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아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전 세계를 지배할 만큼 능력이 있는 위대한 남자라고 할찌라도 가정에서 자기의 아내로부터 진정한 복종을 받지 못하면 그는 정말 외롭고 비참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밖에서는 가장 낮은 위치에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할 입장에 있는 남성일찌라도 일단 가정 안에 들어오면 그를 알아주고 복종하는 아내가 있을 때 그는 왕같은 존재가 될 수가 있다. 남편이 왕이 될 때 아내는 왕비가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남편을 왕으로 모시면 자기는 시녀가 된 다는 생각을 한다. 아내를 통하여 남편이 존귀하게 되지 못한다면, 그 남편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존귀 하게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내들은 다른 남편과 비교하면서 자기 남편의 무능함을 탓하기 전에 자 기 자신이 먼저 가장 존귀한 자로 인정해야 한다.그러면,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서 그 어떤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정열적으로 임하게 될것이다. 둘째로,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하되,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이 성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모습이 남편들에게 있어야 한다. 복종만을 요구하고 사랑을 보내지 않는 남편은 왕이 아니라 폭군이다. 어떤 사람은 부부를 서로 등을 기댈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그러나 부부는 등을 기댈수 있는 의지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가슴을 안는 존재 이다. ●에베소서 5:25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 이 하라\\\" ●골로새서 3:16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했다. 이 말씀들은 너무나 평범한 말인것 같지만 꼭 남편된 자들이 명심해야 될 말씀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대부분의 아내들은 모든 삶의 중심을 남편에게다 맞춘다. 밥먹는 시간도, 반찬도,. 자는 시간도, 머리 스타일도, 옷 매무시도..... 심지어 TV보는 프로그램까지도 그렇다. 그러나 남편 들은 그렇지 않다. 결혼을 하게 되면 오히려 사업이나 직장, 그런데에만 더 신경을 쓰고 가장과 아내 에 대해서는 오히려 자기의 이런 일을 하는데 보수 안주는 보조자가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을 한다. 그 러나 성경은 말씀하기를, \\\"남편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 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헤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 게 하려함이라.\\\"(벧전3:7)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남편들은 아내를 귀히 여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만큼 귀히 여겨야 하는 것 인가? 그것은 내 몸의 갈비뼈 만큼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하와를 만들때 아담의 갈비뼈로 서 만들었다. 그래서 아담은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로다\\\"고 했다. 몸의 뼈 중에 갈비뼈 만 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 갈비뼈는 심장을 비롯한 몸의 가장 중요한 것을 보호해 준다. 그래서 어떤 뼈 보다도 갈비뼈는 중요한 역활을 한다. 남편들의 삶에 갈비뼈 만큼 중요한 역활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내들이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그 것만큼 사랑하고 귀히 여겨야 한다. 아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바로 남편된 나의 갈비뼈가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고 결국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세째로, 대화이다. 대화는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릴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멀어지게 되는 가장 처음의 모습이 대화의 단 절에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가까운 사이도 멀어지게 된다. 특히 부부사이의 대화는 더욱 중요하다. 그 러나 화가 났을 때는 가급적 말을 않는 것이 좋다. 화가 나면, 홧김에 험한 말을 마구 쏟아 붓기 때문 이다. 화가 진정되고 나서 대화를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부부를 촌수가 없다고 말을 한다. 무촌이라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말도 되지만 가장 먼 사이가 될 수가 있다는 말이다. 부부는 서로를 인정하는 대화를 주고 받을 때 가장 가까운 무촌이 된다. {사랑과 행복의 초대}의 작가 양은순씨는 부부의 천국방언 7가지를 말했는데,①미안해요 ②괜찮아요 ③좋아요 해요 ④잘했어요 ⑤휼륭해요 ⑥고마와요 ⑦사랑해요 ... 부부간에 이런 말 들이 오고 갈때 가정에는 행복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으며 폭군으로 군림하는 남편이 있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복종치 않는 못된 아내가 있다. 이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다투거나 폭력을 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강요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누구에게도 말못할 마음속의 상처가 깊어만 갈 수밖에 없는데, 성도 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남편이나 아내를 돌이키게 하실 날이 꼭 오고야 만다. 그러나 설령 그렇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편에 섰는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하시 고, 잘못된 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아주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에서 싸움이 되고 마음이 상하게 된다. 남편은 생각하기를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가슴을 열고 서 로를 이해하고 먼저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관 계를 이루어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고 했다. 여기서 포도원은 가정이다. 부부간의 사랑이 넘실거리는 가정이다.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포도원이라 고 표현을 했다. 또한 여기서 여우란 놈은, 이 행복의 포도원에 들어와서 행복과 질서를 깨뜨릴려고 하 는 사탄을 의미한다.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게 되었는데\\\" 이들이 돌아 다니면서 망칠려고 하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나의 사랑하는자 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다\\\"는 말씀은, 누구에게 일방적으 로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남편에게 속하였고, 남편은 아내에게 속하여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전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때, 사회생활에 활력이 있고, 신앙생활에서도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포도원, 가정을 헐려고 하는 여우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의가정을 이룰려 고 하면, 반드시 사탄은 이를 미혹하며 넘어뜨리려 할 것이다. 이에 넘어간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더욱 아름답 가꾸어가는 귀한 부부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부부 생활/ 고전7:1-10
그리스도인의 부부 생활 고전7:1-10 우리 한국교회에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라는 특별한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 다가오는 새 시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최근에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교회와 사회가 어떤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학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한국개신교인의 교회활동과 신앙의식」이라는 자료집을 내어놓았습니다. 여기에 보면 현대사회의 문제인 이혼, 흡연, 인공유산, 음주, 혼전성관계, 혼외성관계, 뇌물 제공 등의 문제가 조사되었습니다. 이 자료에 보면 1000명을 표본으로 조사한 전체 기독교인 가운데 이혼 문제에 대하여 64.1%가 해서는 안되고, 34.2%가 상황에 따라 할 수 있으며, 1.7%가 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혼전성관계에 대하여 기독교인 가운데 70.5%가 반대하고, 27.3%가 상황에 따라 할 수 있고, 해도 무방하다는 견해가 2.1%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치는 비기독교인과 대조해 보면 약 7% 정도의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물론 질문자체가 애매하고 구체적이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혼이나 혼전성관계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성경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조사에는 가정생활의 만족도도 조사되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만족한다는 입장이 65.7%이고, 비기독교인들은 65.5%가 조사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데이터를 보면서 건전한 가정생활과 성도덕 확립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 우리는 가정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부생활에 대하여 성경적인 원리가 무엇이며, 이 원리를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부부생활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가 성경에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에 비교적 자세하게 실제적인 지침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연구한 본문의 주제는 부부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는 결혼에 대한 관점, 두 번째로는 성의 사용문제, 세 번째로는 부부생활의 의무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결혼에 대한 관점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은사를 가진 교회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은사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특히 이 교회는 잘못된 방법으로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음행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5장과 6장에서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음행문제에 대하여 길게 논의한 것은 불건전한 남녀관계가 신앙생활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음행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아주 중요한 원리를 6:19-20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거하게 된 모든 성도들은 우리의 몸을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개념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많이 생각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편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표현은 우리의 말이나 행실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대원리에 기초하여 성과 부부생활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구체적인 방법을 고린도전서 7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부생활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으로 먼저 결혼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7:1에서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헬라어 원어적인 의미는 ”남자가 여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뜻인데, 새국제영어번역성경(NIV)에서 이 절을 난하주에서 이 원어적인 의미를 그대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좋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법칙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권장사항이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이 말씀이 하나님의 법이라고 한다면 결혼하여 부부관계를 가지는 것은 죄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부부 사이에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점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 부부생활에서 성관계를 가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2절에서 ”(그러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음행의 연고로” 결혼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음행의 사건들이 발생하므로”라는 의미도 되고, ”음행의 죄들을 피하기 위하여”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는 목적이 음행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사상은 음행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옳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가 여러 차례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만 결혼의 목적은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또한 서로 도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9:1-12에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어떤 바리새인이 ”이혼을 하는 것이 율법에 타당한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혼을 허락하셨으나 본래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화에서 결혼의 기본적인 관점을 ”본래” 즉, 창조시에 하나님께서 창조질서로 주신 결혼제도에서 찾았습니다. 창조질서라는 말은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방법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의 결론으로 결혼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결혼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 역시 명령으로 하신 것이 아니고 권장사항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본문에서 결혼은 서로 협력과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에 근거하여 리차드 포스터는 결혼의 원칙을 구체화시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이바지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복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러한 성경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면 결혼에 대한 이러한 원리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면 결혼하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어 드릴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본문에서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루고 싶지만 음행하는 죄로 인하여 이 일이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고 결혼하여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한 바울의 입장을 더 잘 알 수 있는 본문이 고린도전서 7:8-9입니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래서 바울이 이 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더 좋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정욕이 불타서 그것 때문에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혼하십시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태초에 세우신 가정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방편으로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은사를 받은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획일적으로 결혼하거나, 또는 독신으로 지낼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7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사람들마다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결혼하지 않고 평생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냥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바실레아 슐링크 여사나 존 스토트 목사님 같은 분이 있습니다. 천주교의 사제나 수녀도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러한 목적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 은사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우리는 먼저 결혼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성의 사용문제 그리고 이 본문에서 알아할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대개의 사람들은 성욕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인 성욕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의 사용문제에 대하여 2절에서 아주 중요한 규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의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사람들마다 성욕을 느끼고 있고, 이 일 때문에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결혼하여 한 남편과 한 아내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여러 사람의 아내와 남편을 둘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 단수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나 남편을 수식하는 말은 ”자신의 아내,” ”자신의 남편”이라고 하는 수식어를 사용함으로 강력하게 일부일처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관계는 결혼이라고 하는 관계에서, 그리고 일부일처제라고 하는 테두리 내에서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에 대한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요즘 현대사회의 부부생활이나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이 규칙, 결혼의 관계에서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일부일처제의 범위 안에서 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규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남자는 자기 아내와, 그리고 한 여자는 자기의 남편과만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남편들이 다른 여자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여자, 특히 주부들도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이혼하는 경우들이 드라마나 신문지상을 통하여 얼마나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이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의 삶의 모습이고, 또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혼전 성관계도 신자에게 잘못되었다고 하는 점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성에 대한 의식구조가 많이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얼마전 신문에 남녀의 성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의 결과가 나와 있었습니다. 남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무려 17%가 성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하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남녀 대학생들은 무려 25% 이상이 성 관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별로 죄악시하지 않는다고 하는 응답은 남자의 경우 무려 70% 이상이나 되었습니다. 더욱 우리를 놀라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성 관계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성경은 결혼한 사람들만이 성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도 이 중요성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녀인 여자가 약혼한 후에 다른 남자와 관계하면 두 사람 다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22:22-23).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관계를 가져서도 안됩니다. 특히 성경은 결혼하여 얻은 아내가 첫 날밤에 관계하여 그가 처녀의 표적이 없으면 정당한 재판절차를 받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22:20-21).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들은 혼전성관계를 하나님께서 가증한 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제 3 물결」(1980)이라는 책을 보면 미래 사회에 있게 될 많은 일들 가운데 가정문제를 비중있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되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강조하는 시대적인 분위기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점차적으로 우리 사회에 전통적인 성도덕이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 가운데 이 본문의 음행문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시대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변화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성경적인 윈리가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하고, 그 원리를 생할에 적용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성관계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규칙, 즉 결혼하여 남자는 자기 아내 한 사람, 여자는 자기 남편 한 사람과만 관계해야 합니다. 3. 건전한 부부생활 그러면 이제 좀 더 렌즈를 좁혀서 서로의 봉사와 협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건강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부부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7:3에서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의 의무는 일반적인 의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맥 속에서 볼 때 성관계에 있어서 서로의 의무를 다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책임이 있고, 서로를 위하여 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의 차이가 없습니다. 완전히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고린도전서 7:4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해야한다.”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바울이 이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상대방의 권위 아래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 아내는 남편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아내는 남편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의 삶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단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자가, 또는 남편이 잘못을 범하면 면죄부를 받고 여자가 범하면 더 죄를 지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 하등의 차이가 없고 동일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아내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면서 남편우위사상에 젖어 있습니다. 옛부터 남편이 불러야 아내는 남편과 같이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TV 드라마를 볼 때 여자가 불러야 남편이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 부분들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 남편이 외도하는 현상이나, 아내가 외도하는 현상은 이 성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데 가장 많은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겉으로는 점잖은 체 하면서 뒤에서는 온갖 이상한 짓을 다하는 유교문화에 젖어 있어서 성문제를 이야기하면 점잖치 못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서는 김경일 교수가 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나, 조선일보 기자인 조성관 씨가 쓴 「아!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참고하시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부부생활에 있어서 성생활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서로에게 만족할 수 있도록 봉사하십시오. 사람들은 성적인 존재입니다. 악한 사탄은 항상 이 문제로 시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알고서 기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분방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생활 가운데 기도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서로 분방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성경말씀대로 기도하는 일 외에는 절대로 분방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남편이 외국에 출장을 가서 에이즈에 감염되어 오는 사례들을 간혹 신문을 통해 보지 않습니까? 외국이라고 하는 곳에는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륜의 관계를 맺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있습니다. 바울이 이 본문에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절제하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본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탄이 이를 이용해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구속함을 받아 성령의 지배를 받는 우리 성도들의 부부생활의 제일 중요한 수칙은 다른 방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부부생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최근 우리 사회에 드러난 문제들을 예를 들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천 남부경찰서 강력3반장 김영환 경사가 구속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96년6월에 우연히 알게된 유부녀 김 아무개씨와 정을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 경사는 경찰의 신분을 이용해 ”남편에게 알리겠다. 깡패들을 동원하여 처리하겠다”고 협박하여 아홉 차례에 걸쳐 1억1400여만원을 뜯어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구속되었습니다(한겨레신문 1997년 2월 16일자). 이 기사에서 강간하고 돈을 갈취한 김영환 경사도 문제가 되지만, 남편과 자녀가 있는 부인이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정도의 돈을 줄 정도라면 사회 부유층에 있는 부임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이 두 사람이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결과는 한 사람은 구속되어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렸고, 또 한 사람은 재물을 잃을 뿐만 아니라 가정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요즘 심심찮게 들리는 소문입니다만 어떤 사람이 얼마 전에 외국에 여행을 갔다고 한 호텔에서 외국의 여자와 관계를 가진 후에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기사가 최근에 보도되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외국 유학 중에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져 에이즈가 감염된 사실을 알고 크게 후회하면서 이제 에이즈 퇴치운동에 앞장서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한겨레신문 1997년 2월 16일자)에 실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에이즈는 동성 연애하는 사람들에게 발병율이 높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동성연애보다 에이즈에 감염된 자들과 관계를 가짐으로 병을 얻게 된다는 것이 통계청의 보고입니다. 이러한 사회병리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건강한 부분생활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부부관계에 있어서 성을 통하여 서로에게 의무를 다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인의 부부생활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오늘 결혼에 대한 관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뜻을 잘 이룰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욕으로 인하여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면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성을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결혼관계에서 그리고 일부일처제의 테두리 내에서 가져야 합니다. 오늘날의 가정의 문제들, 심지어는 이혼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대개가 성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반드시 결혼하여 남자는 자기 아내와, 여자는 자기 남편과만 성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혼전 성관계나 다른 남자나 여자와의 관계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허용될 수 없습니다. 특히 음행의 죄를 피하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결혼했다면 하나님의 정해주신 규칙에 따라 건강한 부부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부부간에 서로 대화가 되고, 건강한 성생활을 통하여 화목하고 재미있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부부가 늘 함께 다니는 것을 생활화하십시오. 간혹 지금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남편은 앞에 가고 아내는 뒤에 부지런히 쫓아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같이 손을 잡고 정답게 이야기하면서 가십시오. 취미생활도 가능하면 같이 하십시오. 집안에서 남편은 화초 가꾸기나 그림에 관심이 있는데 아내가 관심이 없거나, 반대로 아내가 영화보는 일이나 책을 읽는 일, 화초를 가꾸는 일에 관심이 있는데 남편이 관심이 없으면 서로의 대화가 단절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둘 중에 한 사람이 밖으로 돌게 됩니다. 우리는 같은 취미를 가질 수는 없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관심을 기울여주는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이러한 건강한 부부생활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성령이 내주하시는 신자의 모습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셔서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가정을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서로 협력하고 봉사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히 결혼과 성의 사용문제에 있어서 성경적인 규칙을 꼭 기억하게 하옵소서. 오늘날 많은 범죄가 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결혼과 성생활에 대한 성경적인 규칙을 이해하고 부부생활에 적용하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하옵소서. 특히 저희 교회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잘못된 풍조를 따르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순결하게 잘 가꿀 수 있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건강한 가정생활과 부부생활 그리고 성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리스도인의 부부 윤리/ 신24:1-7/ 2003-10-01
그리스도인의 부부 윤리 신24:1-7 성경은 세상에 어떤 경전들보다도 윤리와 도덕에 관하여 많이 말하고 있으며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미국의 교육계에서도 동양 사람들과 같이 학교에서 윤리와 도덕을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주 뉴스에 의하면 근래 미국의 각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을 폭행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으며 지난주 동부의 어는 학교에서는 학생이 선생을 때려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면서 엄벌에 처할 방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한 가정을 이루는 부부의 윤리는 부부의 일만이 아닙니다. 부부에게 윤리적 문제가 생기면 그 자녀들이 빗나가고, 자녀가 빗나가면 사회가 혼란해지며 사회가 혼란에 지면 나라가 혼란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씩 사회적 무리를 일으키거나 사람들을 경악케하는 사건들의 주인공들을 보면 모두가 가정 윤리에 문제가 있는 자녀들로 하여금 저질러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 저는 혼기가 찬 저의 집 세 자녀들에게 신랑감이나 신부감을 찾을 때에 세 가지를 보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예수 믿는 사람인가를 보라 ! 둘째는 너희들이 대학을 나왔으니 대학을 나왔는가를 보라 ! 셋째는 그 가정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가정인지를 보라 ! 그리고 옵션으로 하나 더 볼 것은 한국 사람인가를 보라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 저는 요즈음 가끔씩 우리 집 자녀들이 내가 묻는 말에 공손하지 못하고 퉁명스럽거나 버릇이 나쁠 때 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것들이 저런 나쁜 버릇을 어디서 배웠나 하고 생각을 했더니 그게 모두 나한테서 배운 것이였습니다. 즉 내가 우리 집 사람에게 하던 버릇을 그대로 닮은 것입니다. 여러분 ! 오늘 본문 말씀은 부부가 살다가 문제가 있어서 이혼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은 원칙적으로 부부의 이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막10:9)에 보면 <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 >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부부가 어떤 경우에 이혼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혹시 이 말씀이 이혼을 부추기는 말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이혼을 했는데 바로 본문의 성경 구절을 적어서 자기 사무실 책상 앞 붙여 놓은 이상한 사람도 보았습니다. 아마 자기의 이혼이 합법적이고 성서적이라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함이 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이혼하는 합법적 방법이 아니라 어떻게 하여야 이혼 안하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 오늘본문은 부부가 이혼하지 않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말라 ! 본문(1절)에 보면 남편이 합법적으로 아내를 버려야 할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이 발견 되거든 ....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 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만일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이 발견되면 이혼증서를 주어 내어 보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바꾸어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아내나 남편들은 가정을 파괴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각각 자기에게 생기지 않도록 부부가 함께 자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말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은 그 수치스러운 일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자기 남편만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성적으로 그 몸을 더럽힌 것을 의미하며, 그 외에 율법이 정한 일에 대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 유교사상에 여자의 칠거지악 이 있듯이 율법에도 여자가 지키지 않거나 부족하면 수치가 되는 율법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 중에는 여자가 음식 맛을 잘 내지 못하면 수치스러운 일이요 이혼의 사유가 된다는 율법이 있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맛없는 음식을 먹고산다는 것도 큰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 대로라면 우리 교회에도 이혼증서를 써서 내 보내야할 여자 분들이 아마 더러 계시지 않겠나 생각이 됩니다. 한 가정의 행복은 부부가 각각 자기를 수치스러운 일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에게 가장 아름답게 보여지기를 노력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가장 멋진 남자로 보여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내들은 남편에게 더벅머리에 화장도 안 한 환자 같은 얼굴만 날마다 보이지 말고 멋지고 예쁘게 화장한 얼굴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편으로 하여금 수치스러운 일에 빠지지 않게 하는 약이 될는지도 모르게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부부 윤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2. 남편을 기쁘게 하라 ! 본문 (1절)후반 절에 보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남편이 그 데려온 아내를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들이 자주외유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이유가 그 아내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더벅머리에 환자 같은 얼굴을 한 아내가 고양이 소리만 내니까 집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이 기쁘겠습니까? 아내들은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지친 남편의 상처를 싸매어 주며 용기를 불어 넣어주며 새 힘을 주므로 남편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에서 항상 자신감이 없고 가장 바보스럽게 보이는 남자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자기 남편에게 항상 비하하는 말을 하고, 무능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아내를 둔 남편들입니다. 훌륭한 아내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저녁에 패잔병이 되어 돌아온 남편을 다음날 아침에는 용기 백배한 나폴레옹으로 만들어 내어 보내는 아내가 훌륭한 아내인 것입니다. 남편을 기쁘게하라는 또 다른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25:1)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비유했고, 믿는 성도를 그의 신부로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또 (엡5:10)에서 바울은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성도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성경대로 우리는 신랑되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를 날마다 생각하며 행동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면 그 기쁨과 행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과 같이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되면 그 기쁨과 축복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딸아 ! 네가 만일 남편을 왕처럼 존경한다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우대 할 것이고, 네가 만일 계집의 종처럼 처신한다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루게 될 것이며, 네가 만일 자존심을 내세워 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한다면 그는 힘으로 너를 하녀같이 부릴 것이니라. )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정에서 아내가 그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남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부부윤리를 모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3. 아내를 즐겁게 하라 ! 지금가지는 남편들이 듣기 좋은 말을 했는데 우리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면에서 대여성 운동가이십니다. 본문(5절하)에 보면 <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 > 고 했습니다. 본문은 예를 들어 말하기를 <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취하였거든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것이며 그는 일년동안 집에 한가히 거하여 그 취한 아내를 즐겁게 할찌니라 > 고 했습니다. 한 가정의 행복이나 기쁨은 아내 혼자서 만들거나 남편 혼자서 만드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아내와 남편이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고, 남편들은 그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하라고 했고, 남편들은 그 아내를 즐겁게 하라고 했습니다. 지난 14일(월요일)이 였습니다. 제가 나갔다가 저녁에 집을 들어오는데 우리집 사람이 TV를 보면서 들어오는 사람을 힐끔이 보더니 도무지 반가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성격에 배가 틀려서 가만히 있습니까? 여봐! 사람이 들어오는데 왜 본체 만체하는거야! 하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한번 처다 봤으면 됐지 어떻게 반가워하라는 것이냐면서 아주 불쾌하게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뭐 기분 나쁜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그런것 없다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은 서로 말도 안하고 등 돌리고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무슨 말끝에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어제는 발렌타인데이인데 무슨 남자가 꽃도 하나 사다주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얼른 하는 말이 내가 언제 꽃사들고 다니는 것 봤어? 하고 소리를 쳐놓고 속으로 미안해서 혼났습니다. 저는 우리 집 사람이 꽃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내년에는 꼭 기억했다가 호박꽃이라고 사다가 줘야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미꽃은 너무 비싸니까요!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한 평생을 기쁘고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많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한 송이의 꽃이 있으면 가정은 행복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 꽃 한 송이 살 돈이 없어서 불행해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마음이 없어서 불행해 진 것입니다. 여러분 !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한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부부윤리가 무엇입니까 ? 첫째는 부가가 서로를 위하여 수치스러운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남편들은 그 아내를 즐겁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할 부부의 윤리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부부 윤리인줄 믿으시기 바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