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예화
  • 자료
  • 성경
병든 세상, 상처입은 남자들/사1:2-20/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2010-02-02
병든 세상, 상처입은 남자들 사1:2-20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눈이 하나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눈이 두개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처음에는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눈이 두 개인 사람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기가 정상이라는 생각을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모두가 눈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사는 남성들은 눈이 모두가 하나였다. 범죄한 나라에 사는 허물진 백성이었고 행동유형은 \'행악과 부패\'였다. 타락한 세상에서 성회와 악을 아울러 행하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은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1:13)고 말씀하신다. 더 이상 제사를 받고 싶지 않으신 것이다. 이제는 손을 펴서 구원을 요청하여도 보지도 않고 눈을 가리우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뜰에 들어오는 것(12절), 예물과 분향, 엄숙한 집회(13절) 그리고 월삭과 정한 절기(14절), 신앙적인 요청까지도(15절) 거절하신다. 그들은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에 일체를 다 거절하신 것이다.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들에게 성공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성장하였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나는 꼭 성공해야한다는 자기강박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많다. 누구나 뇌물을 받을 수 있고,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누구나 타락한 행동을 할 수도 있는 병든 세상이 있다. 지금까지 앞 만 보고 달려온 남성들의 모습들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다. 병든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병든 마음으로 무디어진 나의 양심과 생각들이 저질렀던 행동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마다 남자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병든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크리스천 남성들은 종종 “주님, 세상 속에서 살다가\"라고 기도한다. 세상 속에서 크리스천들은 다르게 살다가 주님 앞에 올 때만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자신이 크리스천으로서 크리스천답게 사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오늘 이사야가 말하는 많은 죄악들은 남성들의 일터와 많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세상의 일터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일터가 된다면 우리는 기도 때마다 “주님, 세상 속에서 살다가”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남자들이여, 자기 생각과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눈이 하나인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는 두 개의 눈을 가진 사람은 때로 외로울 것이다. 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외로워져라. 외로워진 시간들을 의로워지는 시간과 기회들로 만들어가자. 병든 세상 속에서 상처받지 않도록 찬송의 입술과 말씀으로 만들어진 믿음의 방패를 준비하자. 자신을 보는 한 눈 밖에 없는 이들에게 자신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두 눈이 필요함을 보여주자. 그러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많이 건강해질 것이다.
생각의 차이/사2:17-22/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2010-02-09
생각의 차이 사2:17-22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삶, 자신의 뜻을 따라달라는 삶 어느 것이 바람직한 인생인가 1800년 5월 2일 나폴레옹은 알프스 계곡을 넘으면서 “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을 하였으나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인생의 끝을 예측하고 있었다면 그래도 거침없는 인생을 살았을까. 아님 더 심한 폭군이 되었을까. 남자들은 세상을 나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오즈월드 체임버스(Oswald Chambers)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 나름대로의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도덕적 삶을 이끄는 데 있어 문제는, 우리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리 자신을 기만하는데 있다. 나 또한 단지 그 생각이 선하며 악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선한’ 생각과 ‘하나님의’ 뜻과는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다. 선한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한 남성은 부동산 투자자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사업 상 거래를 성사시킬 때면, 나는 우선 그 거래를 할 것인지 아닌지 내가 원하는 바를 이미 결정한 후에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단다. “하나님, 이 거래가 성사되게 되면, 하나님께 그 이익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저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이것은 “계획 후에, 기도하기”이다. 그 남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이끄실 기회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생각을 따르기를 요구했다. 남성들은 자신의 인생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움직여주기를 기대할 때가 많다. 그리고 실패한 뒤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으셨다고 원망하는 모습들을 보게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것이 결정적인 실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것이다. 남성들이 빠지기 쉬운 영혼의 함정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세운 철저한 자기계획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사2:22)고 경고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 곳을 찾아서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인생을 의지하는 인생은 “하나님, 내가 여기 있어요. 이곳에서 저와 함께 하지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남자들이여, 인생을 의지하는가.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일에 처음부터 하나님을 의뢰하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다가 어려우면 하나님께 구조요청을 하는가. 그렇다면 그대에게 하나님은 119구조대원인가. 염려를 짊어지고 사는 인생은 내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움직이려하는 인생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려하니 그보다 더 큰 염려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소명이 이끄는 삶/사6:8/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2010-02-16
소명이 이끄는 삶 이의수 목사 소명에 뿌리 두고 커가는 꿈 믿음·소망·사랑이 충만할 때 성취할 수 있는 열정 샘 솟아 '선교적 부르심에 대한 단상'이란 글에서 빌 테일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선교로 인도하시는 방법에는 크게 네 가지 경로가 있다고 소개했다. 첫째, 개인적인 부르심이다. 선교사 개인이 환상, 강한 성령의 역사, 주님의 음성을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룻과 나오미 모델’이다. 룻이 나오미를 따라가듯 순종을 택하는 것이다. 셋째,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연민의 마음에서 헌신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 넷째, 타인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과 은사를 선교에 투자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경로를 통해 선교사로 부름받는다.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성가 '평화의 기도'의 노랫말을 지은 성 프란치스코는 기독교 역사상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으로 알려진다. 프란치스코는 1181년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기사가 되길 꿈꾸던 그는 22세때 이웃 도시 페루자와의 전쟁에 출정했다가 포로로 잡혀 1년 동안 병으로 시달렸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날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된다. 다가오는 나환자를 보고 피해 가던 그가 저도 모르게 나환자를 부둥켜 안아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며 외투를 벗어 준 것이다. 23세때는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상 앞에서 기도하다가 “가서 무너지려고 하는 나의 집을 돌보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다. 프란치스코는 변해가는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 앞에서 옷을 모두 벗은 뒤, “나는 이제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나는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수행의 길을 나섰다. 우리의 소명과 꿈이 갈등관계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 남성들의 꿈은 곧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소명이 분명한 사람은 명확한 인생의 꿈을 갖고 있다. 이사야처럼 분명한 소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꿈과 소명을 다르게 갖고 있지 않는다. 월트 캘러스태드 목사는 '당신의 꿈을 키우라'에서 역동적인 꿈의 방정식은 재능, 하나님의 소명, 준비, 기회라는 네 가지의 요소가 더해질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굳건한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유일하고 진정한 힘의 원천이시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과 접속시켜 주는 '플러그'이다. 우리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소명충전지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 믿음은 우리의 꿈을 새롭게 하고 강화시켜 주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믿음이 있을 때 정열적인 열정을 가지고 꿈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소망은 성취할 수 있다는 기대가 포함된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은 최고의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이루도록 격려한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을 때 우리의 소명(꿈)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남자들을 이끌어간다. 남성들이여, 당신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어떠한 일들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지 발견하였는가. 소명을 발견하지 못한 남성은 인생을 두려움없이 열정적으로 살 수 없다. 소명을 발견한 남성은 하나님이 부탁하신 일이기에 소명을 순종하는 삶이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이 되어진다. 소명을 붙들고 소명을 따라 사는가. 승진과 물질과 더 나은 삶이라는 나의 소망을 따라사는가. 소명인가, 소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