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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얼굴을 보다니 /창46:28-30/ 김기석목사 2015-07-13 10:22:42 read : 17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스라엘이 유다를 자기보다 앞세워서 요셉에게로 보내어, 야곱 일행이 고센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게 하였다. 일행이 고센 땅에 이르렀을 때에, 요셉이
내가 너의 얼굴을 보다니 /창46:28-30/ 김기석목사 2015-07-13 10:22:42 read : 173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스라엘이 유다를 자기보다 앞세워서 요셉에게로 보내어, 야곱 일행이 고센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게 하였다. 일행이 고센 땅에 이르렀을 때에, 요셉이 자기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려고, 병거를 갖추어서 고센으로 갔다. 요셉이 아버지 이스라엘을 보고서, 목을 껴안고 한참 울다가는, 다시 꼭 껴안았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내가 너의 얼굴을 보다니, 네가 여태까지 살아 있구나!"] • 누구에게나 있는 옷궤 하나 어버이 주일입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느라 애쓴 이 땅의 모든 어버이들과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오게 된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어버이주일을 앞두고 이청준 선생의 단편 <눈길>을 읽었습니다. 소설은 자수성가하여 도시에서 살고 있던 화자 '나'가 다 쓰러져가는 시골집에 살고 있던 어머니를 찾아가면서 시작됩니다. 늙은 어머니는 단칸방에서 큰 며느리와 세 조카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옷궤 때문에 발조차 뻗기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는 어머니를 '노인'이라고 지칭합니다. 의도적인 거리 두기입니다. 그는 혼잣소리인양 여러 차례 그 노인과 자기 사이에 갚아야 할 빚은 없다고 말합니다. 남편과 큰 아들을 일찍이 떠나보내고 근근히 삶을 이어가야 했던 어머니는 객지에서 공부하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미안함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며느리는 좁은 방에서 옷궤를 치우는 게 어떠냐는 말해보지만 노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 낡은 옷궤는 '나'를 옛 기억으로 인도합니다.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술버릇 때문에 가산을 탕진한 형이 전답과 선산을 팔고, 마침내는 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집까지 팔아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옛 마을을 찾아갑니다. 어스름을 기다려 살던 집 골목에 들어서니 집은 괴괴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문간에서 한참 어정거리고 있는 데 친척 누나의 기별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가 아들을 나무라며 집안으로 잡아 끌었습니다. 살림살이를 다 드러낸 집에서 어머니는 옛날과 똑같이 저녁을 지어 내왔습니다. 언젠가 아들이 돌아오면 저녁밥 한 끼를 지어 먹이고 마지막 밤을 지내게 해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새 주인의 양해를 얻어 혼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매일같이 그 빈집을 드나들며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했고, 안방 한쪽에 이불 한 채와 옷궤 하나를 예대로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옷궤는 옛 집의 분위기를 되살려내 아들의 괴로운 잠자리를 위로하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이었습니다. 또한 아들과 어머니를 이어주는 끈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마다 그런 '옷궤'가 하나쯤은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구질구질해 보여도 어머니 혹은 아버지는 결코 버릴 수 없는 물건 말입니다. 그것은 또한 자식들에게는 부모님의 은은한 사랑을 드러내주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몇 주 전 교우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자들의 영정을 모신 안산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희생자 295명의 영정과 9명의 실종자들의 영정을 일람하면서 가슴이 시렸습니다. 저 푸릇푸릇한 젊은이들의 생명과 꿈이 소멸되기까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와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영정 앞에는 가족들이 가져다 놓은 여러 가지 유품들과 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사진도 있고, 과자도 있고, 편지도 있고, 운동기구도 있고, 애장품도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똑같은 사물도 배치된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남들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그 물건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기억의 통로였습니다. 소설 <눈길>에 나오는 어머니의 옷궤와 같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 아름다운 화해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에는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 나옵니다. 첫째는 부모가 살아 계시고, 형제가 두루 잘 지내는 것입니다(父母俱存 兄弟無故).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셋째는 뛰어난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입니다(得天下英才 而敎育之). 맹자는 그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하는 앞뒤에 천하를 통일하여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데 첫번째 즐거움이 '부모구존, 형제무고'라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토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십계명도 부모공경을 인간관계를 가르치는 교훈의 첫 자리에 놓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병통이 아닌가 싶습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라지거나 스러지고 난 후에야 우리가 누리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꼭 톨스토이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을 귀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한 비결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성경은 온통 잃어버린 것들을 찾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과 연관시켜 설명하시곤 했습니다.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이야기,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이야기, 집을 떠났던 아들을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이야기 등이 떠오릅니다.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을 때 누구나 다 기뻐합니다. 기쁨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기본 정조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야곱과 에서의 상봉 장면을 들겠습니다(창32-33장). 감정이 상한 채 헤어졌던 형제가 20년 만에 만나는 장면은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어엿이 일가를 이룬 야곱이었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야곱을 죽이겠다'고 이를 갈던 형 에서의 노기 띤 음성이 평생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형과의 대면을 앞둔 그는 귀향의 설렘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얍복강 나루에 엎드렸습니다. 엎드림은 가장 수동적인 자세입니다. 어느 순간 그는 자기 허리춤을 붙잡는 어떤 존재와 씨름을 했습니다. 그 깊은 밤 그가 붙들고 씨름했던 것은 어쩌면 자기 안의 두려움이 아니었을까요? 다친 엉덩이뼈는 속이는 자로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으로 인해 무너진 그의 중심이었을 겁니다. 그밤에 옛 사람 야곱은 죽었고, 자기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을 붙들고 살아갈 새 사람 이스라엘이 태어났습니다. 날이 밝았을 때 그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형 에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형은 옛날의 악감정을 다 잊고 동생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은 그곳이 브니엘이었다고 말합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의 브니엘은 어디입니까? 형제자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는 곳, 즉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곳입니다. 형제는 두 팔을 벌려 서로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형님을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하다고 말합니다. 이보다 아름다운 화해의 장면을 저는 떠올리기 어렵습니다. • 한 노인 이야기 창세기는 온통 형제간의 갈등과 다툼, 그리고 화해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요셉과 다른 형제들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들이 화목하게 지내기 참 어렵다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 사이좋은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때문일 겁니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으면 관대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도 기독교인들이 먼 세상 사람들은 사랑하면서도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비웃듯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아름다움은 갈등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화해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가인과 아벨 이야기는 예외입니다. 관계의 어그러짐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 그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실존적 과제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이야기는 형제간의 갈등의 여파로 인해 살맛을 잃어버린 채 살던 한 노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노인은 야곱입니다. 고향에 가까운 곳으로 이주하여 일가를 이루어 살던 그의 가정은 여전히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외동딸이었던 디나가 히위 사람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겁탈을 당한 일이 벌어졌고 분기탱천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남자들을 죽이고 그 성읍을 약탈하는 일이 벌어졌고, 야곱은 부득이 그곳을 떠나 베델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야곱이 사랑하던 아내 라헬은 베냐민을 출산하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쓸쓸해진 야곱은 라헬을 통해 낳은 아들 요셉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요셉을 향한 아버지 야곱의 편애는 다른 아들들의 마음에 그림자를 만들었고,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았습니다. 형제를 종으로 파는 참람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은 요셉이 입고 있던 화려한 옷에 염소피를 묻혀서 아버지에게 가지고 가서는 들에서 우연히 그 옷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이 들짐승에게 잡아 먹힌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 슬픈 나머지 옷을 찢고, 베옷을 걸치고 아들을 생각하며 여러 날을 울었습니다. 그는 위로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때 야곱의 심정이 어때 했을까요? 가슴 가득 회한이 차올랐을 겁니다. 자기가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자책의 심정에 사로잡혔겠지요. 형을 두 번씩이나 속였던 일이 떠올랐을 것이고, 밧단아람에서 보냈던 20년의 쓰라린 나날이 떠올랐을 것이고, 자식들을 얻었을 때의 기쁨, 특히 라헬을 통해 요셉을 얻었을 때의 기쁨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과의 갈등 때문에 가족들을 솔가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던 여정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고향이라고 찾아온 땅에서 딸이 겁탈을 당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던 그 느낌, 라헬이 속절없이 세상을 등졌을 때 느꼈던 아득한 절망, 그리고 요셉의 죽음. 그에게 삶은 너무 가혹했습니다. 그는 어쩌면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세요?' 하고 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나이든 분들이 야곱 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가 겪었던 신산스런 삶의 이야기가 자신들의 경험과 오롯이 겹쳐지기 때문일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주름이 깊게 패인 분들은 야곱의 그 마음을 넉넉히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등지기도 하고, 아득바득 애써 일궈놓은 삶의 터전을 한 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고, 설상가상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잃기도 하면서 살아온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 평범한 행복의 꿈 하지만 야곱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망쳐놓은 것을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오랜 가뭄으로 먹을 것을 구할 길이 없었던 야곱의 아들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드나들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천만 뜻밖에도 그곳에서 형제들은 자기들이 팔아버렸던 요셉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화해를 하게 됩니다. 요셉과 다른 형제들의 화해 장면도 성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화해를 이루게 되자 비로소 요셉은 자기가 겪어야 했던 그 모진 고통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창45:5) 이런 인식은 계시적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요셉 뿐입니다. 그 형들은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형제를 팔아버렸던 자기들의 무정한 처사에 대한 회개와 참회입니다. 가해자들이 이런 말을 전유해서 피해자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라고 부탁합니다. 아버지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야곱 일행이 애굽 땅의 북동부 지역인 고센에 이르렀다는 전갈을 받은 요셉은 아버지 야곱을 맞으려고 그곳으로 갑니다. 성경은 부자 상봉 대목을 이렇게 그려 보여줍니다. "요셉이 아버지 이스라엘을 보고서, 목을 껴안고 한참 울다가는, 다시 꼭 껴안았다"(29) 아버지 야곱도 말합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내가 너의 얼굴을 보다니, 네가 여태까지 살아 있구나!"(30) 여러분, 아십니까?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말입니다. 가족들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가장 평범한 것 속에 가장 비범한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모든 가족들이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는 우리가 가족이 되고 품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저마다 자기가 존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세상,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온전히 누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은 우리들의 꿈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꿈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꿈이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되어야 합니다. 혈연에 바탕을 둔 가족주의를 넘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이들이 한 가족 되어 정겹게 살아갈 때 새로운 세상은 움터올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사람을 끄는 사람 /행20:7-12/ 강문호목사 2015-03-11 12:27:51 read : 11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베를린에서 2시간 반 내지 3시간을 가면 비텐베르그 성이 있습니다. 바로 루터가 농촌 목회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평민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걸어서 5분 정도
사람을 끄는 사람 /행20:7-12/ 강문호목사 2015-03-11 12:27:51 read : 117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베를린에서 2시간 반 내지 3시간을 가면 비텐베르그 성이 있습니다. 바로 루터가 농촌 목회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평민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귀족들만 다니는 귀족 교회가 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그 귀족교회 정문에 종교 개혁을 위하여 95개 조항을 붙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그 동안 이 성은 공산권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이 통일되면서 이 곳은 온 세계인들의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일년에 680만명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만도 70만명이 찾아 오는 곳이 되었습니다. 교회 강대상 우편에 루터 묘까지 있습니다. 한 명이 이 곳에 와서 루터 책을 사고, 차를 마십니다. 10만원씩만 쓴다고 하여도 일년에 이 곳에서 사용하는 돈은 6,800억원이 됩니다. 이 곳은 루터 거리, 루터 대학, 루터 까페, 루터 레스토랑등 모두 루터이름뿐입니다. 이 곳 주민 3만명은 대대로 루터 때문에 먹고 사는 이들입니다. 나는 루터 묘를 붙들고 기도할 때에 <사람을 끄는 사람>이라는 말이 영감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람을 끌 수가 있을 가요? 본문을 보면 바울은 분명히 사람을 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던 중에 드로아에서 7일을 머믈렀습니다. 그 곳에 있는 성도들과 정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내일은 바울이 떠나는 날입니다.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모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바울은 수많은 사람을 끌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모였는 지를 암시하는 말씀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8절에 등불을 많이 켰는 데.....등불을 많이 켰다는 것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9절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라는 말씀속에도 사람이 많았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가에 걸터 앉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0절을 보면 바울의 설교가 길었습니다. 졸음을 이기지 못 하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가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떠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떠들었다는 말을 보니 스데반을 죽일 때 수많은 군중이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행22;23)라고 하였는 데 그 군중들의 떠드는 것과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떠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12절에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받았다고 하였는 데 그 사람들도 무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바울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느 곳을 가든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목사는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성도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교회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사람을 끌어야 합니다. 영화도 사람을 끄는 영화가 성행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사회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사람을 끄는 사람일까요? 바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사람을 끄는 사람인 지 그 비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귀로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바울은 귀로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끈 것은 무엇인가 할 말이 있고 온 사람들은 바울로부터 무엇인가 들을 것이 있어서 모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나는 칼기를 폭파시켰던 김 현희와 같이 논산지방 감리교 연합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월요일 밤부터 목요일 밤까지 집회인 데 수요일 오후 2시에 김 현희가 오게 되어 있고 나머지는 내가 인도하는 집회입니다. 내가 집회를 인도하는 시간에는 600석 교회가 보기 좋게 찼을 뿐입니다. 가득 차지 못 하였습니다. 그런데 김 현희 오는 시간에는 온통 그 주변에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경찰이 동원되고 난리였습니다. 나는 집회 앞자리에 앉아서 “나는 무엇인가?”라고 허탈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들려 줄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끕니다. 귀에 줄 것이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몰려 듭니다. 따뜻한 말을 하여 주는 사람을 사람들은 찾아 갑니다. 용기있는 말을 하여 주는 사람을 사람들은 찾고 있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흠모하고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1517년 95개 조항을 걸어 놓은 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었다면 1520년 <독일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출판한 것은 종교 개혁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지금까지 제도를 완전히 뒤집어 엎어 놓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만인 제사장론>을 선언한 것은 종교개혁의 원자폭탄이었습니다. 루터는 그 책에서 4가지를 주장하였습니다. 1. 모든 성도는 세례받는 순간 제사장이 된다. 2. 성직자와 성도는 같은 제사장이기에 계급이 있을 수 없다 3. 성도는 이제부터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할 필요가 없다.직접 하나님께 비밀 회개가 가능하다 4. 성직자와 성도는 기능면에서 구분될 뿐이다.성직자는 말씀 선포의 직능을,성도는 세속직분을 감당하여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줄 때 온 유럽은 루터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몰려 들었습니다. 유럽의 시선은 루터가 움직이는 곳을 따라갔습니다.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말을 들려주는 바울과 같은 사람에게 사람들은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일본 최고 제약회사 가네보 회사 회장 미타니야스토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핍박을 많이 받았기에 그는 제약회사 사장이면서도 일본 전역에서 강사로 그를 부르고 있습니다. 들을 것이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난리들입니다. 그는 그 회사의 인사 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출근하기만 하면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상에 성경을 펴놓고 읽었습니다. 회사에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하였습니다. 얼마 후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회사 내에서는 종교 활동을 하지 말아라.” 그는 회사에서 쫓겨 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선언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나를 배반하는구나!” 그리고 성경을 읽는 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한 말씀이 나왔습니다. 그는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회사를 쫓겨 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 마음에 평강이 찾아 왔습니다. 그 후 그는 직장에서 더 열심히 전도하고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오히려 성실성을 인정받아서 승진을 거듭하였습니다. 드디어 그 회사의 경영을 총 책임지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지나온 이야기를 알고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강의 요청이 쇄도하였습니다. 그는 회사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인생을 멋지게 살고 감동있게 산 사람들에게는 사람들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2.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바울이 사람을 그렇게 많이 끈 이유가 또 있습니다. 바울을 따라 다니면 언제나 눈으로 볼 것이 많았습니다. 바울에게는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따랐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 데 바울에게는 언제나 표적이 따랐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창가에 걸터 앉았다가 죽은 유두고를 살렸습니다. 19장 바로 앞장에서는 가는 곳마다 바울이 희안한 기적이 따르고 있음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1-12) 이렇게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끌게 됩니다. 루터가 500년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끌고 있는 이유는 그에게도 기적이 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따랐습니다. 몇 년전에 하이델베르그에서 유럽 연합 집회를 인도할 때 루터가 재판을 받은 웜스 국회에 가본적이 있습니다.그런데 그 국회로 들어가는 길을 <루터 바움 스트라세>라고 부릅니다. 루터가 재판을 받을 때 한 할머니와 천주교인이 길거리에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천주교인은 루터는 배반자라고 못박으며 열을 내며 말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루터가 맞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논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길가운데 꽂으면서 말했습니다. “만일 루터가 올바르면 이 지팡이에서 싹이 날 것이다.” 며칠이 지났습니다.길가운데 꽂아둔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그 나무는 세 명의 어른이 팔을 벌려야 잡힐 정도로 굵고 큰 나무가 되어 길 가운데 있습니다. 그 나무를 루터나무라고 말하고 그 거리를 루터 거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따르는 사람은 사람을 끌 수 있습니다. 덴마크에 갔더니 덴마크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국부 영웅은 그룬드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신성한 직업인 농업을 강조하면서 온 국토에 농산물을 심기를 권하였습니다. 전 국민이 온 농토에 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가물어서 모든 땅이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룬드비 목사님은 기도를 선포하고 온 국민이 기도하는 데 1842년 4월 16일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덴마크에는 해마다 4월 16일을 기도의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나는 기도의 날이 있는 나라를 처음 보았습니다. 덴마크가 35,000불 국민소득을 올리고 있는 일등국가가 되었습니다.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끌게 됩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 큰 교회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있는 ICM교회입니다. 지금 주일낮 45,000명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그렇게 많이 모이는 이유도 기적이 늘 따르는 눈으로 볼 것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카스텔라노스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고 있는 데 중풍병자 12명이 나란히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났는 데 안수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아직 신유의 역사가 한번도 없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카스텔라노스 목사님은 중얼거리며 기도하였습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나는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겠나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중에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는 중풍병자가 간절하게 사모하는 눈빛이 닥아 왔습니다. 그는 영감적으로 그 사람을 하나님이 지목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앞으로 갔습니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그 곳으로 쏠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 주기를 원합니까?” “걸어서 가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그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 왔는 데 그가 휠체어를 밀고 나갔습니다. 그 후부터 이 교회가 엄청난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눈으로 볼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3. 손에 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본문에 사람들이 바울 주변에 모인 이유를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7절에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떡을 떼러 모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송별파티하러 모인 것입니다. 그러나 송별파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내일 떠날 것이니까 일찍 쉬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부흥회를 인도하고 마지막 날이니까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였습니다.그러나 바울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밤중까지 설교가 계속 되었습니다. 밤중이 몇 시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유두고 청년이 졸은 것을 보니 상당히 오래 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서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진심의 사랑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끌었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이 신는 구두는 앨런 에드먼드입니다. 이 구두 회사의 경영자 존 스톨렌워크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가지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1.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파악한다. 2. 고급 구두가 아니라 최고 구두를 만든다. 3.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기업이 된다. 이런 철학으로 미국 최고의 구두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고 구두 회사가 되기까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1984년 불이 나서 공장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빈 터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구두를 만들던 직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허탈함속에 말했습니다. “다 두 손을 드세요.” 모두가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 때 그가 말했습니다. “구두 만들어 놓은 제품이 다 타버렸습니다. 구두를 만들 가죽도 다 탔습니다. 공장도 탔습니다. 그러나 구두를 만들 두 손은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박수를 쳤습니다. 그는 사원들에게 분명한 철학을 주었습니다. 용기를 주었습니다. 희망을 주었습니다. 힘을 주었습니다. 그 회사가 최고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그 회사 구두를 사신으려고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마다 몰리고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끌어 당겼습니다. 줄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줄 것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돈이 아쉬울 때에는 그에게 가서 빌려 쓰고 갚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면 누구나 머리를 숙이고 공손히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의 집은 항상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으로 북적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서 한 사람만은 그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화가 났습니다. 그를 만나 물었습니다. “왜 당신만은 나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까?”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을 빌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 당신에게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그러면 내 재산을 반을 주면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당신 재산의 반을 주면 당신과 내가 재산이 같은 데 무엇 때문에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그러면 다 주면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당신 재산 다 주면 내가 당신보다 부자이고 당신은 빈 털털이인 데 무엇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당당한 그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온 동네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신유의 은사로 병든 사람을 살렸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죽은 유드고에게 생명을 주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사람들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두 여자가 출연하였습니다. 사실은 원수지간입니다. 한 여자가 알콜 중독자로 운전을 하다가 마주 앉아 있는 다른 여인의 딸을 치어 죽게 하였습니다. 가해자 여자는 딸을 셋 두었습니다. 그러나 알콜 중독되어 세상을 멋대로 살아가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딸을 죽였지만 그를 용서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오히려 술을 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요?” 그 여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일찍이 주님이 나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용서받았으니 용서하여야 합니다. 나는 내 딸을 치어 죽인 저 여자를 용서함으로 주님의 용서가 어떤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나는 주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눌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용서하고 사랑을 주는 사람은 사람을 끄는 사람이 됩니다. 고양이는 따뜻한 곳에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고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뜻한 사람, 무엇인가 주는 사람에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끄는 사람, 사람을 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고 어떤 교회가 사람을 끌 수 있을 가요? 1. 귀에 들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2. 눈에 볼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3. 손에 줄 것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끕니다.
생각지 않은 날에 /마24:45-51/ 김기석목사 2015-07-05 17:40:44 read : 9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그에게 자기 집 하인들을 통솔하게 하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맡겼으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주인이
생각지 않은 날에 /마24:45-51/ 김기석목사 2015-07-05 17:40:44 read : 93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그에게 자기 집 하인들을 통솔하게 하고, 제 때에 양식을 내주라고 맡겼으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하고 있는 그 종은 복이 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나쁜 종이어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주인이 늦게 오시는구나’ 하면서,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 생각하지도 않은 날에, 뜻밖의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 종을 처벌하고, 위선자들이 받을 벌을 내릴 것이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있을 것이다.] • 허무를 넘어서는 소망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이 물음 앞에 서면 우리는 객관적인 해답을 찾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게 마련입니다. “나는 어떤가? 내게 맡겨진 일을 기뻐하며 감당하고 있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지만 대개는 시간 속에서 멀미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 좀 더 충실하게 살지 못한데 대한 자책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12월이 되면 더욱 그런 생각이 절실해집니다. 저는 삶이란 점묘법(點描法, pointillism)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점묘법이란 화면에 다양한 색의 점을 찍음으로써 어떤 형상을 드러내는 기법입니다. 그 하나하나의 점은 늘 전체의 형태와 관련되어 있어야 하겠지요? 점묘법 그림을 볼 때마다 화가들이 들인 공력이 만만치 않음을 느낍니다. 인생도 그런 것이겠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라는 시간에 방점을 찍듯 살아야 충실한 삶이 가능할 겁니다. 물론 삶의 궁극적인 지향과 일치되는 방향이어야 하겠지요. 우리는 시간을 하나의 연속체로 경험합니다. 오늘을 살고 있으니 내일도 당연히 다가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아닙니다. 하룻밤 무서리가 내리면 화단의 꽃들은 속절없이 시들고 맙니다. 하나님의 기운인 숨이 우리 속에 머물 때 우리는 살지만, 그 숨을 거두어가시면 우리는 정든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코헬렛(전도서의 기자)은 세상의 모든 것 위에 붙여진 ‘헛됨’이라는 찌지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애착하는 것들도 한 순간에 안개처럼 흩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은 허무하니까 대충대충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인생이 허무한 듯 싶지만, 허무를 넘어서는 소망이 있기에 인생은 존엄합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롬8:20-21)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이 ‘썩어짐의 종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최후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에 있습니다.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시간 속에서 멀미를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삶은 힘겹고, 고독과 고통도 여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걷는 사람은 비틀거리지 않습니다. 임사 체험자들, 즉 죽음을 체험했던 사람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고 합니다. 인생의 최고의 스승인 죽음과의 대면을 통해서 그들은 죽음이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땅의 길이 하늘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았기에 그들은 지금까지 집착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지푸라기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 흥해라 우리는 다시 한번 예수님의 질문 앞에 서있습니다. “누가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예수님은 여기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염두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스스로 ‘큰 자’로 여기는 지도자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종’이라 하십니다. 청지기oikonomos가 아니라 종dulos입니다. 이것은 매우 의도적인 표현입니다. 자칫하면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기 일쑤입니다. 겸손하고 소박해 보이던 사람이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서 태도가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권력은 쾌락보다 달콤한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단소를 연주할 때 제일 높은 소리인 ‘태㳲’ 음을 낼 때는 마음을 가장 낮은 곳에 두어야 소리가 제대로 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원해서든 마지 못해서든 드러나는 자리에 서게 될수록 마음을 자꾸 끌어내리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욕됨의 자리가 되고 맙니다. 시인 정현종은 그래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權座는 저주의 수렴이요 權座는 치욕의 원천이며 權座는 강력한 汚點이다 주인이 집을 지운 사이, 주인의 일을 대행해야 할 종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실함과 슬기로움입니다. 그 자리를 사욕을 채우는 자리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거들먹거려서도 안 됩니다. 그는 늘 주인의 눈으로 집안일을 살피고, 주인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소홀한 일은 없는지, 아픈 사람은 없는지, 배고픈 사람은 없는지, 억울한 사람은 없는지…. 지난 월요일에 몇몇 분들과 함께 강원도 간성에 다녀왔습니다. 복음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희망을 싹을 틔우려고 애를 쓰고 계신 목사님 내외분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년 결산이 채 800만원도 안 되는 교회였지만, 그 교회는 지역 사회의 아픔을 끌어안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모님은 깨진 가정에서 자라나 거의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지역아동센터를 열었습니다. 방과 후 교실을 열어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피아노를 무료로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가슴에 따뜻함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지역아동센터의 이름은 ‘흥해라’였습니다. 저는 그걸 ‘일어날 興, 흥겨울 興’의 ‘흥해라’라고 생각하면서 아동센터 이름으로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는 무릎을 쳤습니다. 그것은 앞치맛자락을 들어 아이의 코를 닦아주며 ‘흥 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정깊은 돌봄을 나타내는 말이었습니다. 가슴이 찡 해왔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마음이 바로 이런 것일 겁니다. 인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마더 테레사랍니다. 힌두교인도 무슬림도 시크교도도 자이나교도도 아닌 사람, 인도인도 아니고 루마니아 출신의 수녀, 배우들처럼 멋진 외모도 아니고 오척 단구의 보잘것 없는 여인에게 인도인들이 마음을 빼앗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것 없습니다. 종교와 인종과 문화와 피부색을 넘어 사람들을 보듬어 안는 그의 넓은 가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기 앞에 있는 가련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었을 뿐입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신실하고 슬기로운 종이란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종이 이렇게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주인은 그에게 더 귀한 역할을 맡길 것입니다. • 주인의 부재를 즐기다가 신실한 종이 있는가 하면 악한 종도 있습니다. 사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 악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다 선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그들이 이루는 집단의 삶은 그렇지 못합니다. 무한 경쟁 시대라느니,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살벌한 구호가 우리 삶을 초토화시킨지 오래입니다. 지지 않기 위해서는 달려야 하고, 달리다 보니 전망이 협소해지고, 이웃들과 소통할 여백을 마련할 수도 없습니다. 의식주의 형편은 나아진 것 같은데, 정신적인 위축감은 더욱 커져갑니다. 지난 시절을 풍미했던 어떤 분의 어조로 말해볼까요? “이게 뭡니까?”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길을 잘못 들은 것이지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게 문제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악한 종’이라 지칭된 사람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악한 종은 봉사를 위해 맡겨진 직무를 당장 권력관계로 바꾸어버립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것이지요. 호가호위狐假虎威인 셈입니다. 호랑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여우가 호랑이 행세를 한다지요? 그는 주인의 부재를 틈 타 권력자 행세를 합니다. 돌보라고 맡겨진 사람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서 호기를 부립니다. 가련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 순간을 연장하고 싶어서 스스로 신화를 만듭니다. ‘주인은 금방 오시지 않을 거야.’ 이것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원망 사고'(wishful thinking)에 불과합니다. 주인은 ‘생각하지도 않는 날에, 뜻밖의 시간에’ 돌아옵니다. 악한 종의 또 다른 문제는 ‘감사의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주인은 할 수만 있다면 벗어던지고 싶은 굴레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거두어 살게 해주고, 신뢰해주는 주인의 마음을 그는 조금도 헤아리지 못합니다. 이사야의 말이 떠오릅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사1:3) 악한 종에게 주어지는 형벌은 가혹합니다. 우리 말 성경은 주인의 징계를 뜻하는 ‘dixotomesei'를 ‘처벌하다’ 혹은 ‘엄히 때리다’로 번역하고 있지만 그 본래의 뜻은 ‘두 동강내다’(dismember)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 단어는 ‘요절난다’라든가,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린다’는 말처럼 당사자의 분노를 좀 격하게 표현한 단어입니다. 악한 종은 결국 위선자들이 받을 몫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마태가 즐겨 사용하는 이미지대로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잘려 나가게 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새벽의 사람 우리는 지금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생각하지도 않는 날’에, ‘뜻밖의 시간’에 우리에게 오십니다. 화창한 날일 수도 있고, 흐린 날일 수도 있습니다. 고독한 날일 수도 있고 즐거운 날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형편을 핑계삼아 적당히 살면 안 됩니다. 우리의 삶은 늘 주님 앞에서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이 참 많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교회들은 물론이고, 이주 노동자들, 실직자들, 노숙자들, 도시 빈민들…. 주님은 우리가 그들을 돌보기를 원하십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일부는 지방에 있는 여러 교회들과 협력하여 쪽방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겨울나기 지원을 위해 사용하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을 공급하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미 새벽의 사람입니다. 참 길을 걷는 사람은 이미 참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맡기신 돌봄과 나눔의 사역을 위해 땀 흘리는 시간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충만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온 세상이 허무한 데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주님 안에서 누릴 자유와 영광을 내다보며 살아갑니다. 이 소망이 우리 삶에 밝혀진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여호와를 인하여-/합3:17-19/ 김광일목사 2015-02-27 13:49:53 read : 103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삼중고(三重苦)의 헬런 켈러(Helen A. Keller)는 생후 19개월만에 열병을 앓은 후 시각장애에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7세 때부터 가정교사 설리
여호와를 인하여-/합3:17-19/ 김광일목사 2015-02-27 13:49:53 read : 103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삼중고(三重苦)의 헬런 켈러(Helen A. Keller)는 생후 19개월만에 열병을 앓은 후 시각장애에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7세 때부터 가정교사 설리반(A. M. Sulivan)에게 교육을 받고 하버드 앤드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최초로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자로서 1904년 우등으로 졸업을 합니다. 그 후 그녀는 미국이 자랑하는 여류작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낸 사람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본받아야할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 상황 자체에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과 나의 하나님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B.C 7세기 바벨론 제국이 위세를 떨치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신앙도, 도덕도 타락한 유다를 징계하리라 작정하고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려 합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고통에 빠집니다. 16절에 그 모습이 나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전쟁의 위협에 처해있는 유다의 상황은 처참할 정도였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모든 게 다 없습니다. 부정적 단어인 "못하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가 여섯 차례나 반복됩니다. 인간의 조건으로 보면 절망이며 끝입니다. 이 상황에서 감사는 불가능합니다. 감사의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16절, 17절의 암담한 분위기가 18절에서 반전됩니다. 원문상으로 "그러나 나는 (Yet I wil)" 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컴컴한 터널을 통과할 때 찬란한 빛이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그러기에 하박국은 절망의 상황에서 감사로 노래합니다. 아무 것도 없지만 남아 있는 소중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무엇 때문에 감사합니까? 우리도 감사의 이유가 다 사라져도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여호와를 인하여' 라며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감사합니다. 오로지 '여호와를 인하여 감사'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구원을 베푸시니 티초미로프(Tichomirov)는 살인을 일삼던 도둑이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을 죽이고 빼앗은 짐에서 성경이 나왔습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성경책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우다 심심해 읽어봅니다. 한참 읽어 내려가던 그에게 알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곧 바로 자수를 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자신을 구원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얼마가지 않아 감방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후 모범수로 석방된 티초미로프는 소스노카의 전도자가 되어 복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은 실패 속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고 외쳤습니다. 바벨론의 침입을 내다보며 두려움을 갖게 되었지만 그 모든 사건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만이 도움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해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구원해 주시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박국처럼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 때 하박국 선지자가 체험했던 것처럼 영적 평안을 얻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참된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는 성숙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육신의 복이나 물질적 복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은총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구원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궁핍과 실패가운데서도 넘치는 감사가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기뻐하게 하시니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선교사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을 할 때 한 말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선교사 직분을 맡기셨다는 사실에 대해 기쁨이 그치질 않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희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지고 있는 엄청난 빚을 생각한다면 그것을 어찌 희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그 빚을 갚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수고한 것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해 볼 때,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결코 희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치시려고 아버지의 높은 보좌를 떠나신 그분의 위대한 희생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그것을 희생이라 말해서는 안 됩니다." 리빙스턴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기쁨으로 하였습니다. 그 무엇도 그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기쁨으로 일하면 사탄이 물러갑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절망할지라도 나는 기뻐한다는 강한 뜻입니다. 이 기쁨은 공동의 기쁨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필히 나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남들이 얻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만이 누리는 기쁨, 나는 기뻐한다는 하박국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은 비참한 현실 중에도 절망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의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양과 소가 없는 비참한 형국일지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음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확신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생존권이 박탈될 정도의 위기에 빠져도 확고한 신앙을 보일 수 있음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조건, 물질, 지위, 인간적인 것으로 인한 기쁨이 아닙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로 인하여 예배, 찬송, 헌금, 봉사,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쪼록 신앙의 초점을 여호와의 기쁨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인간적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높이에서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때 나에게 기쁨이 있으며 그 기쁨만이 진정한 기쁨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 안에 우리의 기쁨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기쁨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힘이 되어주시니 미국에 챨스(Charles Robinson)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고아이자 소경이었습니다. 음악에 소질이 있던 그는 술집에 나가 노래를 부르며 손님들이 주는 팁으로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소년을 측은히 여긴 사람이 점자성경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소년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와 점자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소경이며 고아이고 가난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빛으로 바라보니 하나님의 자녀이고 좋은 음성을 주셔서 노래하며 살 수 있게 된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노래하였습니다. 전에는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며 한탄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으니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며 모든 일에 감사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에서 유명한 가수가 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 앞에 '레이(Ray)' 를 붙여 레이 챨스(Ray Charles Robinson)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레이(Ray)는 빛이라는 의미인데 보통사람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빛으로서 자신은 그 힘으로 살아간다는 고백의 표현이었습니다. 후에 레이는 수만 명에게 열렬히 환영받는 세계적인 팝가수가 되었습니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cis A. Sinatra)의 80회 생일에는 75세의 노구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던 모습이 세계에 방영되어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강력한 힘을 얻습니다. 무한한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축복을 발견하였습니다. 여기의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는 하나님께서 사슴처럼 자유롭게 하시리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혼돈과 고통의 늪에 빠지지 않고 높은 곳, 즉 하늘의 영광에 거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영혼은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힘이 되어 도우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어떠한 문제도 다 해결됩니다. 하박국은 답답하고 힘든 환경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이 힘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루터(Martin Luther)는 일찍이 종교개혁을 추진하면서 수 없는 위험과 박해에 직면했습니다. 그때마다 루터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으로 "Vivid! Vivid!"(그는 살아 계시다! 그는 살아 계시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썼다고 합니다. 비록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나약한 존재이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힘이 되신다는 사실에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환란을 당하고, 경제적 손실을 입고, 실패를 당해도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박국의 믿음이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의 감사가 여러분의 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를 인하여' 베푸신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며 기뻐하는 가운데 힘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다에게 길을 묻다. /창49:8-12/ 김기석목사 2017-05-10 08:36:15 read : 1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유다야, 너의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너는 원수의 멱살을 잡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유다야, 너는 사자 새끼
유다에게 길을 묻다. /창49:8-12/ 김기석목사 2017-05-10 08:36:15 read : 1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유다야, 너의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너는 원수의 멱살을 잡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유다야, 너는 사자 새끼 같을 것이다. 나의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어 먹고, 굴로 되돌아갈 것이다. 엎드리고 웅크리는 모양이 수사자 같기도 하고, 암사자 같기도 하니, 누가 감히 범할 수 있으랴! 임금의 지휘봉이 유다를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휘봉이 자손 만대에까지 이를 것이다.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 만민이 그에게 순종할 것이다. 그는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가장 좋은 포도나무 가지에 맬 것이다. 그는 옷을 포도주에다 빨며, 그 겉옷은 포도의 붉은 즙으로 빨 것이다. 그의 눈은 포도주 빛보다 진하고, 그의 이는 우유 빛보다 흴 것이다.] •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마음 주님의 은총과 평강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남북평화통일기도주일입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난지 71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과 같습니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함으로 한반도를 긴장으로 몰아가고 있고, 남한은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사드 배치를 공론화하면서 동아시아의 긴장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저명한 진보적 사회학자인 장 지글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을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장 지글러, <인간의 길을 가다>, 모명숙 옮김, 갈라파고스, 2016년 4월 29일, p.184). 강경한 남북의 지도자들은 조금의 양보도 없이 마치 치킨 게임을 하듯이 상대에게 항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길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1990년대 말 오사카에서 열린 남북기독자협의회 개회예배 장면이 생각납니다. 참가자들은 지난 시절에 전쟁과 분열로 인해 흘렸던 피의 기억을 씻는다는 의미에서 예배당 밖 복도에 준비된 대야 물에 손을 닦고 예배당에 입장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입장할 때 반주자는 '고향의 봄'을 연주했습니다.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남북의 대표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입장했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조선기독교도연맹의 강영섭 위원장은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전도서 5장 12절을 본문으로 하여, 주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남북의 기독교인과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동포들이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자는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습니다. 통일이 머지 않은 장래에 가능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통일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막대한 통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는 현실적 계산도 있지만, 71년의 세월이 만들어놓은 문화적, 정치적 이질성이 민족적 동질성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북의 기독교인들이 함께 마련한 2016년 평화통일 남북공동 기도문에는 이런 간구가 담겨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해방의 감격도 잠시, 우리 민족의 뜻과 배치되게 강대국에 의한 민족분열의 고통을 당하며 험하디 험한 길을 거쳐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만남과 대화로 화해의 물꼬를 트기도 했고, 경제협력을 통해 공동번영의 꿈을 잉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전보다 더 높은 마음의 담을 쌓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깊은 불신의 강을 건너고, 분노의 아골 골짜기를 지나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여,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은 교회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셨지만 이 민족을 바르게 섬기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평화의 사도로 부르셨지만 화해를 도모하기보다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둘로 나뉜 서로를 같은 동포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아예 사랑할 마음조차 품지 않았습니다. 주여, 우리의 허물과 죄를 고백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러한 고백의 바탕 위에서 아름다운 나라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 살던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보이신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것처럼 우리 또한 이러한 평화의 꿈에 사로잡혀 살아야 합니다. • 떠돌이로 산 세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이 혼란의 시대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요구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던 야곱이 세상 떠날 날이 가까워 온 것을 알고 자기 열 두 아들에게 들려준 유언의 일부입니다. 야곱의 생은 참 파란만장했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에게 "어른께서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하고 물었을 때 했던 대답이 그의 삶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떠돌아다닌 햇수가 백 년 하고도 삼십 년입니다. 저의 조상들이 세상을 떠돌던 햇수에 비하면, 제가 누린 햇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47:9) '떠돌다'라는 단어와 '험악한 세월'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그는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길 위에서의 삶은 늘 고단한 법입니다. 쌍둥이 가운데 동생으로 태어났기에 그는 일단 약자였습니다. 장자가 아니라면 모두 약자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악조건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붉은 콩죽 한 사발로 형 에서의 장자권을 얻기도 하고,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에게 돌아갈 축복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외가가 있는 밧단아람에 가서 외삼촌 밑에서 머슴살이 하듯 20년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는 자기 재산을 불렸고, 많은 자식을 얻기도 했습니다. 기존질서의 눈으로 보면 그는 질서 파괴자요 혼란을 부추기는 자였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한 곳에 머물러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인생을 가장 크게 뒤흔들어놓은 사건은 총애하던 아들 요셉의 실종이었을 겁니다. 요셉에 대한 편애로 인한 빚어진 형제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형들은 요셉을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아들들로부터 요셉의 피묻은 옷을 전해받은 야곱은 위로받기를 거절하며 마치 스올에 갇힌 것처럼 우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창37:35). 그리고 기근으로 인해 애굽에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곳에 묻힐 수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기 삶을 계승할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네 명의 아내에게서 태어난 열 두 명의 자식들은 저마다 성정이 달랐습니다. 야곱은 창세기 49장에서 그들의 성정에 따라 다르게 전개될 자식들 각자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요셉의 리더십 최근에 유대교 학자인 요람 하조니(Yoram Hazony)의 책을 읽다가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레아와 라헬에게서 태어난 다섯 아들의 리더십 유형을 분석하는 대목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요람 하조니, <구약성서로 철학하기>, 김구원 옮김, 홍성사, 2016년 7월 11일, p.96-99 참조). 그의 인물평을 조금 소개하겠습니다. "르우벤은 보수성, 감상벽 그리고 장남 특유의 순진함을 대표한다." 맏아들인 르우벤은 다른 형제들이 들에서 요셉을 죽이려 할 때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창37:21)며 동생들을 설득합니다. 동기간의 불화를 해결해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단호해야 할 때 그는 어중간한 타협책을 찾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한 사람입니다. 다음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평가입니다. "시므온은 폭력을 통해 리더십을 주장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레위는 모든 문제에서 정의로움과 순결함을 집요하게 주장한다." 시므온과 레위는 누이동생 디나가 히위 사람 세겜에게 강간당했을 때(창34장) 그 치욕을 씻기 위해 아버지 야곱과 상의도 없이 히위 사람들을 대량학살합니다. 레위의 후손들은 출애굽 당시에도 야훼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황금 송아지 사건 때에도 모세를 도와 우상 숭배한 사람들 3,000명을 죽였고,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 여인과 음행을 했다 하여 시므온 지파 지도자의 아들인 시므리를 죽이기도 했습니다(민25:14). 그들은 비타협적 대립주의자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사람들을 지혜롭게 다스리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요람 하조니는 요셉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요셉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권력을 활용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애굽의 경제 주무 장관으로서 그는 자기에게 위임된 권력을 이용하여 7년 동안 계속되는 기근에 잘 대처했습니다. 그는 늘 자기가 섬기는 이들이 원하는 일을 탁월하게 잘 해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그는 충실한 청지기였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바로의 관원들을 세심하게 보살폈습니다. 참 좋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태도는 '무엇이 옳은가' 보다 '무엇이 정치적인가'에 의해 결정되곤 했습니다. 참모로서는 괜찮지만 역사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 정의를 위해 수모를 택하다 이제 유다가 남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 가문이 가장 위대한 지도자를 배출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다야, 너의 형제들이 너를 찬양할 것이다. 너는 원수의 멱살을 잡을 것이다. 너의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임금의 지휘봉이 유다를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휘봉이 자손 만대에까지 이를 것이다.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 만민이 그에게 순종할 것이다."(창49:8, 10) 우리는 다윗이 유다 지파 출신임을 압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도 유다의 계보를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과연 영광을 누렸습니다. 유다의 어떤 요소가 그를 지도자답게 만든 것일까요? 다시 요람 하조니의 평가를 들어보십시오. "유다는 개인적 약점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고쳐 도덕적 원리를 재확립하는 능력을 보여준다"(앞의 책, p.96). 요람 하조니는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특질은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능력"(앞의 책, p.99)이라고 말합니다. 유다 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무엇인가요? 며느리 다말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유다는 아들 엘과 다말을 맺어주었지만 엘이 후손 없이 죽자, 둘째 아들 오난이 형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둘 사이에 태어나는 아들은 맞이인 엘의 자식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난도 하나님의 눈밖에 나서 죽었습니다. 유다는 다말을 셋째인 셀라와 맺어주지 않고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시간이 흘러도 자기를 부르지 않자 다말은 신전 창녀로 분장을 한 후 양털깍이 축제를 위해 길을 나선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어느 날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고 생각한 유다는 다말을 이끌어내 화형에 처하려 합니다. 그때 다말은 유다가 맡겼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보이며 이 물건 주인의 아이를 잉태했다고 말합니다. 사태를 알아차린 유다는 즉시 자기 잘못을 시인하며 말합니다. "그 아이가 나보다 옳다."(창38:26) 오늘의 윤리 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후손을 잇는다는 것이 목숨처럼 소중하던 그 당시의 상황 가운데서 다말의 행위는 의로운 행위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유다는 자기의 부끄러운 행동을 숨기기 위해 다말을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의를 위해 공개적 수모를 택했"습니다. 요람 하조니의 말은 강력합니다. "역사서 저자는 겸손히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고칠 수 있는 지도자의 능력이 국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국가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임을 말하고 있다"(앞의 책, p.99). 자기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지도자야말로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는 법입니다. 유다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 대목이 또 하나 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기 정체를 드러내기 전에 형들의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 베냐민을 도둑으로 몰아 그를 종으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그때 유다가 나서서 "저 아이 대신에 소인을 주인 어른의 종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게 해주시고, 저 아이는 그의 형들과 함께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창44:33) 하고 청합니다. 사랑하던 아들 요셉을 잃은 후 실의의 날을 보내는 아버지가 그나마 위로를 삼는 것이 베냐민인데, 그 아이마저 종으로 팔린다면 아버지가 겪을 고통을 차마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에 자기 형제들에게 요셉을 종으로 팔아버리자고 제안했던 사람이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이렇게 변했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각 정당마다 대표자를 뽑는 일로 분주합니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지도자를 뽑고 그를 통해 자기 이익을 확보하려는 데만 집중한다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도 유다가 보여준 리더십을 보여야 합니다. 물론 시므온과 레위처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도 있고, 요셉처럼 세상을 안정되게 만드는 이들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유다 유형의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또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이들을 통해 나라는 든든히 설 것입니다. 해방의 완결은 분단체제가 극복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단호하게 평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국정의 지도자들만이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자리에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답게 살아갈 용기를 내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이 나라가 평화로운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인간에게 가장 귀한 믿음 /히11:1-6 /김홍도목사 2014-12-17 14:38:09 read : 12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① 믿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라디오나 T.V의 스위치를 내려놓고 있으면 소리도 안 들리고 화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
인간에게 가장 귀한 믿음 /히11:1-6 /김홍도목사 2014-12-17 14:38:09 read : 12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① 믿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라디오나 T.V의 스위치를 내려놓고 있으면 소리도 안 들리고 화면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싶으면 ‘믿습니다’ 하고 믿음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믿으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하나님이 계신 것을 전제하고 믿으려고 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믿지 않으려고 하면 비참한 운명에 떨어지고 맙니다. ② 믿어야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착한일 많이 하거나 죄가 하나도 없어야 천국에 가는 줄 아는데 큰 오해입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요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인강도이든 도적놈이든 창녀든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죄가 많든, 적든, 누구나 용서받고 영생을 얻었다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63빌딩에 가면 누런 황금 빛나는 엘리베이터(elevator)를 돈 한 푼 안내고 올라타고 10층이든, 20층이든, 30층이든, 데려다 주는 것 같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면 오늘부터라도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천국 가는 것은 거지의 누더기 옷을 빨아 입고 기워 입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의의 옷을 입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고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으면 존재하지 않을까요? 지금 이 안에 공기가 가득합니다. 그러나 공기가 눈에 보입니까? 손으로 만질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숨 쉬고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라디오(radio)나 T.V의 전파가 이 안에 가득하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라디오나 T.V의 채널(ch‐annel)을 맞추고, 전원(power)을 올리면 화면이 나오고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마음에 믿음의 스위치를 올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다이얼(dial)에 맞추면,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도리어 성경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 만물이 저절로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쇳조각을 담아서 수십 년 흔들었더니 컴퓨터가 되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1. 믿음의 중요성 천국의 비유 가운데 소경, 거지, 절뚝발이, 도적놈, 별사람 다 초청해서 들어가게 했는데, 단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았다고 했습니다. 죄가 많아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아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다 쏟아 우리 죗값을 치러주시고,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승천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는데, 피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레 17:11, 히 9:22, 히 9:14). 예수님께서 피 흘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착한일 많이 하면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 종교나 믿으면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믿기로 결심하느냐, 의지를 굽히지 않고 안 믿는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③ 안 믿으면 영원한 불못, 지옥에 갑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0~11절에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하였고, 요한복음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을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장 40절에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주님이 탄식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느냐, 믿기를 거절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고통의 장소, 지옥 불못에 들어가느냐, 천국에 들어가느냐가 결정됩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영원한 천국과 영원지옥으로 결정됩니다(It's your choice Heaven or Hell). ④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11장 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제일 기뻐하시고 칭찬한 사람은 학식 많은 사람도 아니고, 돈 많은 사람도 아니고, 외모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며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적은자여!” 하시며 근심하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귀신들린 자를 내어 쫓으려고 고생하다 내쫓지 못한 것을 보시고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하셨습니다. 믿음도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도 있습니다. ⑤ 믿음이 있어야 마귀와 세상을 이깁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있어야 환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고 마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사탄의 공격이나 무서운 시험도 믿음을 활용하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은 성도를 공격해서 고통을 주더라도 치명타를 입히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붙은 우리도 사탄을 이겼습니다. 믿음으로 대적하며 나아가면 반드시 이깁니다. ⑥ 예수를 믿는 나라는 복을 받습니다. 금년에 태풍이 하나도 없이 대풍년이 들었습니다. 일본, 대만 등 이웃나라는 태풍이 강타해서 어마어마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북한은 계속해서 흉년이 드는데 우리나라는 곡식 쌓아둘 창고가 모자라서 걱정할 정도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요, 우리가 기도해서 당선시킨 이명박 대통령에게 내린 축복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영국이 예수님을 잘 믿고 온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할 때에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 되었고, 미국이 청교도들을 중심으로 나라를 세우고 세계선교에 앞장섰기 때문에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시편 33편 12절에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다 파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인 공산국가들은 종주국이었던 소련을 비롯하여 북한까지 다 비참하게 못사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개인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 가문은 3대가 가기 전에 다 복을 받은 통계가 나옵니다. ⑦ 믿음으로 병 고침도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그 영혼이 구원받고 천국에 갈 뿐 아니라 오늘날도 병 고침 받는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믿으면 육신의 병도 고침 받습니다. 야고보서 5장 15절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16절에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마가복음 16장 16~18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병 고쳐 주심을 믿고 기도하면 병을 고쳐 주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많은 사람이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오늘날도 병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영혼만 구원받는 것을 믿고 육신의 병 고쳐주심을 안 믿으면 병은 낫지 않습니다. 2. 믿음을 활용하는 방법 믿음으로 영혼이 구원받고 개인과 가정과 나라가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이 세상 생활하는 데에도 믿음을 활용하면 불가능을 가능하게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기도 하고, 가난한 자가 부요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불치의 병을 고침 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믿음을 활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① 바라는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뜨거운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런 꿈도 없고 목표도 없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믿음을 활용할 수도 없고 발전도 없고 성공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을 주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게 하십니다. 독일의 과학자 에코노모(Ekonom‐o)란 사람은, 사람의 뇌 세포가 316억 5천3백만 개쯤 된다고 했습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0.6% 활용했고, 시성 괴테가 0.4% 활용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어떤 목표와 꿈을 가지고 1% 이상만 활용하면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닷가에서 낚시하는데 큰 고기를 잡으면 놔주고, 10cm 미만짜리만 그릇에 넣더랍니다. 왜 큰 것을 놔주느냐고 했더니, 자기 집 프라이팬의 지름이 10cm밖에 안 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꿈과 소원이 작으면 많은 아이디어(idea)가 지나가도 붙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금란교회에 처음 왔을 때 학고방 같은 교회에 교인은 100명 미만이었지만, 1,000명을 목표로 세웠고, 당시에도 한국 감리교회 중에 제일 큰 예배당을 짓기로 목표를 세웠는데, 다 달성되고 몇 번이나 다시 짓고, 지금은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가 되었습니다. 잠언 28장 18절에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② 마음에 실상을 그려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는데, 나의 목표와 꿈이 다 이루어진 것 같이 영상을 그리고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성공하는 자기의 모습을 그리고 사업이 번창하는 모습을 그리고 교회가 부흥하는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부정적인 영상, 즉 망하는 생각, 비참하게 사고당하는 모습, 병들어 죽게 된 모습을 생각하거나 영상을 그리지 마십시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받을 줄로 믿으라”가 아니고 “받을는지 모른다”도 아니고, “받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아직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 이루어진 것같이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꼭 기억할 것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능치 못하심이 없는 줄 믿고 “응답받은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노먼 빈센트 필(Norman V. Peale) 박사는 목표를 달성하는 비결을 세 단어로 말씀했습니다. ⓐ 그림을 그리라(picturize) ⓑ 뜨겁게 기도하라(prayerize) ⓒ 시작하라(realize) 꿈만 꾸지 말고 확신이 생기면 착수하고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렐 로버트(Oral Roberts) 목사님의 인사법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Something good is going to happen to you.)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라고 하셨고, 후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③ 복된 말을 하십시오. 사람의 사지백체 중에 제일 큰 힘을 가진 곳은 ‘입’입니다. 그 입의 말 때문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성공할 수도 있고,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 천국 갈 수도 있고 불신앙의 말을 하면 지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잠언 18장 20~21절에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라고 했습니다. ④ 불타는 소원으로 기도하고 부르짖으라. 마태복음 7장 7~8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도가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yes, wait, no)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고후5:1-7/ 고신일목사 2015-04-30 17:28:17 read : 4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할렐루야! 은혜로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우리는 은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 보내셨지요? 옆의 분들과 "좋은 날 보내셨는지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고후5:1-7/ 고신일목사 2015-04-30 17:28:17 read : 4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할렐루야! 은혜로운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우리는 은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 보내셨지요? 옆의 분들과 "좋은 날 보내셨는지요?"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힘들 게 보내셨더라도 좋은 것만 생각하시고 얼굴을 펴시기 바랍니다. 현대를 가리켜서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현대는 예측 불허의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예측해야 하는 기상대조차 정확한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이 많이 발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지 않습니다. 현재나 미래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만나면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번 추석에도 모여서 옛날 이야기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피난가던 시절에 고생했던 일, 시어머니에게 혼났던 일들… 남자들은 정치 얘기와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영원한 고향 - 천국 고향을 좋아하는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늘 말해야 하고… 꼭 가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天國)입니다. 찬송가 220장부터 233장까지는 천국에 대한 찬송입니다. 그 찬송들을 보면 한결같이 힘차고, 은혜롭고, 멋있습니다. 천국이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천국은 아주 멋있는 곳입니다. 여러분 모두 천국의 주인공인 줄로 믿습니다.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면, 지금도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어 가는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보셨습니까? 만약 진화된 것을 믿는다면, 조상을 모시는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제사지내는 사람들 대부분은 원숭이한테 제사를 지낸 것입니다. 인간은 돌고 도는 윤회의 존재도 아닙니다. 지금은 사람인데 죽어서 다음에는 돼지로 태어나고, 벌레로 태어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시대에는 누구든지 성경에 계시된 진리에 온전히 착념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악해질수록 점점 영분별이 어려워지고 미혹하는 영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도(살후2:9~12) 분명히 이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마지막때가 다가옴을 볼수록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가르침들이 많이 나타나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로 미혹을 당하게 할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마24:24). 최초의 사탄의 장난이 무엇입니까! 에덴 동산을 거닐고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거야"(창3:4) 하며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 보라는 유혹을 했습니다. 죽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과 같아질 거라고 유혹했습니다. 죽음의 문제를 극복해 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인간에게 죽음의 문제로 유혹했습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은 사람들의 생각은 "환생론"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데이브 헌트(미국의 기독교 저술가)는 [기독교 속의 미혹]이라는 책에서 "환생론이야말로 현대의 과학주의와 동방(동양)의 신비주의의 결합이 탄생시킨 마지막 때 최대의 종교적 미혹" 이라고 했습니다.(빛과 소금 1996년 10월호) 환생론은 인간이 죽더라도 사람이나 다른 생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최초에 유혹했던 방법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사람이 죽으면 다시 환생할 것이므로 지금 마음대로 살아도 또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제게 "목사님, 처음 뵙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저 세상에서 만났던 것 같습니다. 혹시 목사님 그때 제 첫사랑이 아니었습니까?"라고 합니다. 이거 왜 이러세요. 여러분, 환생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종교가 성립되려면 <현세관, 윤리관, 구원관, 내세관>이 잘 조화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는 "인생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 예수 믿으면 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고(요3:16) -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요1:12) - 예수 믿으면 천국 백성이 된다(빌3:20)고 분명히 선언해 주셨습니다. 나그네 인생 여러분 가운데 대부분은 고향에 다녀 오셨을 것입니다. 못 가셨던 분, 갈 수 없었던 분도 있을 것입니다. 못 가셨던 분, 갈 수 없었던 분들도 서운해하지 마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사람은 유난히 고향 타령을 많이 합니다. 언제 도움을 받은 적도 없고, 사랑을 주고 받은 적도 없었는데도 같은 고향 사람이라면 좋아합니다. 못된 사람이라고 말하다가도 자기와 고향이 같다고 하면 금방 괜찮은 사람으로 바뀝니다. 사람이 확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고향 얘기만 하면 신나서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고향 사람이 아니면 거래도 하지 않고, 고향 사람이 아니면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우리는 모두 같은 나라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국(天: 하늘 천, 國: 나라 국), 하늘나라의 같은 백성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유행가 가사를 들추지 않아도… [인생은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들추지 않아도…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에 불과합니다. 진시왕이 불노초를 찾았고, 죽지 않으려 애를 썼으나 그 역시 죽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 백성들 중에 '보약'을 제일 많이 먹고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떤 유명한 의사가 "바퀴벌레를 먹으면 몸에 좋다. 특히 남자들에게 좋다."라고 말한다면... 아마 바퀴벌레를 없애려고 약을 뿌리지 않아도 박멸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몸에 좋은 것을 많이 먹고 좋아해도 한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는 시편의 말씀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100세를 넘게 살기도 하지만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 9절에 보면 바울은 몸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을 하든지 생명을 걸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천막(텐트, 장막)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행18:1-3). 우리의 세상에서 밥 먹고 일하며 사는 몸을 "장막"에 비유했습니다. 현세는 '땅에 있는 장막집'의 생활이요 '하늘에 있는 내세는 영원한 집'의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장막집(사람의 육체)은 세월이 흐르면 망가지는 천막과 같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젠가 무너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늙지 않으려고 좋은 음식을 많이 먹고, 잡힌 주름을 펴기 위해 수술을 하고, 목에 주름이 생길까봐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답니다. 여러분, <구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구기시는데 누가 막을 수 있으며 어떻게 막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무너지지 아니할 육체, 죽지 않을 육체는 없습니다. 영웅 호걸도, 성인군자도 육체는 낡아지고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들은 없어질 것들이기에 영원한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질 것이며 건질 것이 없게 됩니다. 인간의 육신이 무너지면 육체는 땅으로 갑니다. "흙은 땅으로 돌아가고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참조, 전12:7). 땅에 묻히든지, 화장하여 재로 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영혼은 하나님 나라로, 예수님 계신 곳으로 갑니다(빌1:20~25). 인간의 몸은 살아 있을 동안만 거주하는 집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게 되면 그 몸은 세상에 남지만 영혼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쉽게 "사람은 죽어서 그 혼이 공중에 떠돌아 다닌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우편에 있던 강도는 "오늘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날 영혼이 구원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은 영원히 사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망함이 없는 영원한 삶의 복이 보장된 사람입니다(요3:16).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의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내가 들어가야… 천국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도 없고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천국을 "신비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하늘나라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 된 곳입니다(요14:2). 하늘 나라는 - 거룩한 곳입니다(시20:6). - 행복한 곳입니다(계7:17). 눈물이 없고, 애통하며 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 죽음과 눈물, 슬픔과 고통이 없는 곳입니다(계21:4). - 밤과 어두움이 없는 곳입니다(계22:3~5). -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는 곳입니다(계7:16). - 변함이 없는 곳입니다. 사라지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천국에 누가 갈 수 있습니까?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가야 합니다. 세상에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어리다고 들어가지 못하고, 나이 많다고 안되고, 망작다고, 크다고 안되고 남자라고 안되고, 여자라고 안되는 곳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들어가고 싶은 곳에 들어갈 수 없었던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많아서 들어갈 수 없다고 쫓겨났던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들어가려다 쫓겨나면 황당해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가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이며 이미 천국 백성이 된 사람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나는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천국 갑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분명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믿고,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회개하면 모두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기만 한다면 그 자리에 주인공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히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믿고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요일4:7~21)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런데 사람들은 왜 천국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천국 백성답게 살지 않을까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심판대 앞에 선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이 닮고 싶어하며 존경하는 미국의 필립 브룩스 목사님(Phillip Brooks)이라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1835년에 태어나서 189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필립 브룩스 목사님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일가친척 뿐 아니라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꼭 만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만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잉거솔이라는 법률가였습니다. 잉거솔은 그 소식을 듣고 기뻐했습니다. 훌륭한 목사님이 아무도 만나지 않는데 자신을 만나자는 말에 좋아했습니다. 브룩스 목사님 앞에 선 잉거솔은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브룩스 목사님은 잉거솔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다른 사람과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 같아 특별히 따로 만나지 않았지만… 잉거솔, 당신과는 아무래도 천국에서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만나자고 했소. 이제라도 믿음을 가지시오." 본향을 향하여… 기독교인은 미래지향적인 사람이고, 영원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긍정적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을 어둡게만 보지 않습니다.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다가올 미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장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하여 염세적인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여러분, 언제는 평안하고 만족스럽게 풍족하게 사셨습니까? 한 두해 편안하게 살았을 지는 몰라도 모든 인생은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 사는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았습니까?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눈물 흘렸고, 최선을 다하여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힘들고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 지금이 예전보다 낫지 않습니까?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아무리 멋진 말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과 천국을 말하지 않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천국을 향한 순례자, 여행자는 아쉬움이 없는 순간 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 야 합니다. 우리는 본향을 향하여 여행하는 이 땅의 순례자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완전한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 있고 멋있고 즐거운 곳이 있더라도 우리가 정착하여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나쳐 가는 인인생일 뿐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만약 이 세상으로 끝난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만일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하늘나라는 인간이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되면 이루어지는 유토피아(Utopia)가 아닙니다. 과학이 발달되고 사람들이 점점 편안하게 살 수록 세상은 점점더 포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풍요와 안식이 있는 평화로운 낙원과 같은 산이 있고 강이 있는 아케디아(Arcadia)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꾸는 하늘나라는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 믿는다고 핍박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짐승의 밥이 되어가면서조차 찬양하며 하나님께로 갔을까요? 그들은 이 세상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고 해서 그냥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망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갑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믿는 우리는 승리와 영광의 자리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비록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나아가는 것은 저 높은 곳, 본향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가면 "잘 했다. 참 잘 했어. 너 잘 왔다"하시며 우리를 맞아 주실 분이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찬양하며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복된 자리에 여러분 모두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를 더욱 찬송하리라-/시71:1-14/ 김광일목사 2015-03-09 15:32:34 read : 16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악가 배재철은 2003년 더 타임스로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동양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던 독일 자르브뤼켄 극장
주를 더욱 찬송하리라-/시71:1-14/ 김광일목사 2015-03-09 15:32:34 read : 167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성악가 배재철은 2003년 더 타임스로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동양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던 독일 자르브뤼켄 극장과 전속계약을 맺으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러다가 2005년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고 일본의 성대 복원 전문의 이시키 박사의 집도로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를 찬송하며 수많은 일본인들을 울렸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을 그린 영화가 현재 상영 중인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입니다. 서정적인 섬세함과 심장을 관통하는 듯 힘있는 목소리를 지닌 테너에게 주어지는 찬사가 리리코 스핀토입니다. 배재철은 갑상선 암으로 더 이상 노래 부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를 회상하며 말했습니다. “성악가에게 목소리는 정체성이나 다름없는데, 제가 한순간에 없어진 거죠. 처음에는 말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겪은 절망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러나 그가 당한 시련은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재점검하게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가대를 하면서 성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 노래를 하나님보다 더 우선시했던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놀랍게 평안함을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가운데 소망을 가졌고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웠습니다. “제 목소리에 이상이 없었다면 볼 수 없었던 것들을 계속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가장 소중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건드리셨기 때문에 알게 된 것입니다. 질병을 통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해요. 음악하는 사람들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고난에 대해 나누게 되었어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가 노래로 위로해주고, 저 또한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배재철 교수는 전성기 당시에 가졌던 목소리의 50% 정도를 회복한 상태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과정에 그저 감사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고음을 요구하는 오페라 가수로 무대에 설 수 없지만, 영산 콘서바토리에서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와지마 도타로(輪嶋東太郞)는 그가 목소리를 되찾고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과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목소리를 잃었던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재활할 수 있도록 도전을 주었습니다. 2006년 이시키 노부히코 박사의 성대복원 수술을 권했습니다. 수많은 팬들의 사랑과 헌신 가운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와지마는 본래 크리스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분이에요. 그럼에도 저에겐 전혀 내색하지 않았어요. 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에게 평안함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종종 말하곤 했습니다. 영화가 한·일 합작이었는데, 공동제작자인 그가 재정적으로 너무 힘들었나 봐요. 나중에 말하기를 극단적인 것까지 생각했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서 신앙을 가졌고 저의 평안함을 그도 맛보았답니다. 지금은 저보다 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배교수와 와지마의 목표는 음악을 통해 한일관계를 뛰어넘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배교수는 말합니다. “음악이란 코드가 정치적으로 풀지 못하는 것들도 풀 수 있어요. 특히 일본의 크리스천 인구가 현격하게 적은데 음악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는 남은 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며 살리라고 다짐하였습니다. 시편 71편은 고난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앙을 보여주는 시입니다. 저자인 다윗은 자신의 간구를 들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인들이 행하는 악행을 고소하면서 이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어려서부터 신뢰할 만한 분임을 드러내면서 노년에도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요청하면서 구원을 이루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다윗은 신체의 일부분을 통해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찬양합니다. 자신의 손을 통해 음악을 연주하여 기쁨을 표합니다. 입술을 통해 기쁨을 표현하고, 자신의 혀를 통해서 주의 의를 찬양할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너무나 기뻐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고난으로 인하여 좌절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어려운 환경을 변화시킬 것을 확신합니까? 다윗은 아들 압살롬에게 쿠데타를 당하여 왕궁에서 비록 쫓겨났지만 고난 가운데서 더욱 주님을 찬송하리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더욱 찬송하여야 할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나의 구원이시니 외과 전문의 이병욱 박사는 암 수술을 3천번 이상 하였는데 재발율이 낮다고 평가받는 권위 있는 의사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외과 의사인 사실에 불만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비위가 상할 정도로 피를 보아야 하고, 수술도중 실수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 따르며,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밤낮 뛰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그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행복은 돈을 벌어 큰 집에서 살거나, 외제차를 운전하면서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패러다임이 바뀌자 일하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자신의 일이 새로운 3D업종이 되었습니다. 외과의사야말로 드림(Dream)이 있고, 다이나믹(Dynamic)하며, 드라마틱(Dramatic)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꿈이 있는 직업이요, 역동적인 직업이요, 죽었던 사람을 수술해서 살리는 극적인 직업이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구원을 받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니 삶이 즐겁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저처럼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틈만 나면 전도하는 전도에 미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놀라운 구원을 찬송하였습니다. 구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이시라 믿는다면 더욱 찬송해야함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시인은 구원을 행하실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구속의 사건을 묵상하면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로 믿고 그로 말미암는 구원을 바라보며 찬송하리라고 다짐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행하시는데 고난과 재앙을 통해서 연단시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 있다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여함을 시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열매가 구원임을 믿고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구원을 더욱 찬송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의 소망이시니 남편을 잃은 부인이 용기를 잃지 않고 타이피스트가 되어 비서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근무를 하는 가운데 무서운 병으로 손가락 끝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 마디를 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손가락을 자르고 절망하며 누워있는 부인에게 담임목사가 찾아가 예배를 드린 후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혀질 때마다 하나님은 다른 문을 열고 계십니다.” 퇴원을 하자 부인은 회사의 임원으로 발탁이 되어졌고 경비분석가가 되어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봉투에 감사의 내용을 이렇게 써서 강단에 올렸습니다. “손가락이 잘려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내 곁에서 모든 일거리가 떠났구나. 내 아이들을 어떡하나 염려했는데 하나님께서 문제를 정지표시가 아니라 방향표시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인생이 끝장났다는 뜻이 아니고 다른 방향으로 턴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어야 합니다.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5절입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시인은 어린 시절의 회상을 통해 자신을 보호하셨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없었음을 고백하며 찬송하였습니다. 고난을 받는 상황을 멸망의 시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축복의 상황으로 보며 찬송하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악인들에게 조롱을 받지만 조롱의 결과가 악인들에게 내려질 것을 믿고 소망이신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렵습니까? 소망을 통해 인내하며 더욱 찬송하리라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의 의지이시니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 장군이 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교묘한 작전으로 영국군을 괴롭히는 사막의 여우(the Desert Fox)라고 불리는 독일의 롬멜 장군의 기갑부대를 물리침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몽고메리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참여하는 연합군 병사들을 모아놓고 격려하는 연설을 이렇게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 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연합군 병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면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될 뿐 아니라 누구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을 역설한 것입니다. 몽고메리 장군의 신앙 고백대로 대승을 거두었으며 2차대전을 승리로 종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다윗역시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를 얻는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한 번도 패한 적 없었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강력한 의지가 되는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여야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인은 성장과정뿐만 아니라 심지어 수태, 발육 그리고 출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가 함께 하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살아야만 하는 존재임을 믿고 찬송하였습니다. 자의식이 없었던 때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다면, 하물며 하나님께 대한 의식을 가진다면 그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의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송한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할 것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할 것입니까?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의지한다면 고통이 변하여 찬송이 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심을 믿습니까? 고통을 하나님이 알고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엄청난 기쁨과 축복을 준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모르는 찬송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9.11테러로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붕괴된 후 잔해더미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생존자를 찾을 때 제일 먼저 소리를 듣는다고 합니다. 생존자가 있다면, 의식이 있다면 비록 다리가 부러졌을지라도, 몸이 상했을지라도 뭔가 소리를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무엇인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누군가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구조를 시작합니다. 우리의 환경이 무너져 잔해 사이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소리를 낼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상황이 된다 해도 더욱 찬송해야 합니다. 우울하든지 괴로워도 더욱 찬송해야 합니다. 슬픔에 처하더라도 더욱 큰 소리로 찬송해야 합니다. 무너진 삶이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들으실 수 있도록 찬송해야 합니다. 소리를 내는 자에게 하나님이 관심을 기울이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돌림이 종일토록 입에 가득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인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더울 때나 추울 때나, 건강하거나 병중이거나,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찬송이 항상 입에 가득하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더욱 찬송합니까? 더욱 불평합니까? 부디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원한 의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찬송하며 살아가는 임명받는 찬양대와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년주일 /하나님은 내가 받을 몫의 전부 /시73:21-28/ 김기석목사 2015-07-11 16:42:15 read : 10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송년주일 /하나님은 내가 받을 몫의 전부 /시73:21-28/ 김기석목사 2015-07-11 16:42:15 read : 10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나의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찔린 듯이 아파도, 나는 우둔하여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나는 다만, 주님 앞에 있는 한 마리 짐승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주님과 함께 있으므로, 주님께서 내 오른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 주시고, 마침내 나를 주님의 영광에 참여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하니, 하늘로 가더라도, 내가 주님 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라도, 내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오,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은 망할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정절을 버리는 사람은, 주님께서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참 좋으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상념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면 어쩌면 붉은 색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금 산 자의 땅에 서 있습니다. 비틀걸음일망정 조금씩이나마 앞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택했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초나라의 충신인 굴원이 지은 ‘어부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거지꼴이 되어 강가를 거닐며 시를 읊고 있는 그를 보고 어부가 왜 그런 행색으로 다니느냐고 묻자 그는 “온 세상이 흐린데 나만 맑고, 사람들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났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고 말합니다. 거세개탁의 대구는 중인개취입니다.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탁하고 취해 버린 세상이라니 참 답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고단한 일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며칠 전 이른 아침, 병원에 가느라 전철을 탔습니다. 시청역을 지나면서 자리가 나길래 앉아 책을 펼쳐들었는데,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의 몸에서 나는 찌든 담뱃내 때문이었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피할까 생각도 했지만 괜히 유난을 떠는 것 같아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 내 몸과 영혼은 어떤 향기를 발하고 있는가?’를 묻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을 가리켜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사람들을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인가?’ 그 젊은이는 내게 그 질문에 답하도록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젊은이가 어디서 밤을 지새웠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피로에 찌든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래서 화살기도를 날렸습니다. ‘하나님, 이 젊은이에게 오늘 하루를 살아갈 생의 보람과 명랑함과 기쁨과 삶에 대한 복된 전망을 허락해 주십시오.’ 기도를 드린 후에도 여전히 어질어질하여 책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책을 접자 한 해 동안 내 인생의 동행이 되어 주었던 이들의 고마운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둡고 탁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모되어 버렸던 신앙의 칼날을 예리하게 벼리도록 도와주었던 사람들, 응달진 마음에 마치 한 줌 햇살처럼 다가왔던 사람들, 생의 열매가 부실한 데도 ‘애썼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말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 삶의 현실을 돌아보며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합니다. 시편 73편은 우리 삶을 비춰볼 좋은 거울입니다. • 어처구니없는 현실 시인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믿음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사뭇 다릅니다. 정직하게 사는 이들이 번번이 손해를 보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조롱거리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악스러운 사람들, 자기 이익에 발밭은 사람들, 공교로운 말로 사람들을 호리는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합니다. 착하고 어수룩한 사람들은 그들의 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눅16:8)고 탄식하듯 말씀하셨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어놓습니다. 악인들이 평안을 누리고 교만한 자들이 거들먹거리며 거리를 휩쓸고 다닙니다. 그들은 죽을 때도 고통을 겪지 않고, 사람들이 흔히 당하는 고통도 재앙도 그들을 비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이 많으니 좋은 음식, 멋진 옷, 안락한 집을 누리고, 마음 내키면 여행도 잘 다닙니다. 세상에 거리낄 것, 무서울 것 하나 없다는 듯이 그들은 거만한 눈을 치켜뜨고,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 이들을 비웃고, 악의에 찬 말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자기 잇속을 차리는 데는 기민하고,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절망에 빠진 노동자들이 여럿 세상을 버렸습니다.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던 생의 터전이 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누구를 지지했든 그런 자리에 선 이들의 절망과 고통에 눈 감으면 안 됩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시고 전지전능하신데 어째서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는가?” 고통이 깊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회의도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이 물음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은 없습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답 없는 물음을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그러하다 보니 하나님의 백성마저도 그들에게 홀려서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가장 높으신 분이라고 무엇이든 다 알 수가 있으랴?”(11)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면서 그들은 양심에 화인 맞은 자가 됩니다. 서서히 세상과 타협할 준비를 갖추는 겁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인습적 신앙이 무너진 자리에 남는 것은 당혹감 혹은 허무함입니다. • 회의를 넘어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묻게 됩니다.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13)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고 매사에 조심하고, 더 많이 갖고 더 편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애써 절제해 온 것이 다 허사란 말인가? 자기에게 부여된 몫 이상의 것을 누리는 이들이 우리를 보고 ‘왜 그렇게 살아?’ 하고 비웃던 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얽히고설킨 생의 문제를 풀어보려고 깊이 생각해 보지만 역시 답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전3:11)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이어지던 시가 17절에 와서 갑작스럽게 전환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악인들이 행복해 보이지만 그 삶에는 지속성이 없다는 사실을 문득 자각합니다. 지금은 행복해 보여도 제삿날을 위해 준비된 짐승처럼 최후의 날이 급작스럽게 그들을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인간의 시간에 입각해 바라보면 암담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에 입각해 바라보면 오히려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우리의 시간을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지금 부요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 지금 사람들에게 높은 평판을 듣는 사람은 화가 있다고 말합니다(눅6:24-26). 모진 말입니다. 조금 불편하게 들리는 말씀인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말 앞에 감히 사족을 달아보면 뜻이 명확해집니다. “지금 굶주리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도 홀로 ‘배부른 사람’, 지금 고통과 슬픔에 잠겨 울고 있는 이들 곁에서 홀로 ‘웃고 있는 사람’, 지금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끝에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에 있지만 정의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사람은 화가 있다.” 인생은 유한합니다. 당장은 실패자처럼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인은 땅의 현실에 사로잡혔던 눈길을 거두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도래합니다. 시인은 성소에서 하나님만 만난 게 아닙니다. 자기처럼 선한 뜻을 가지고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자기 홀로 세상의 모순을 다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 삶이 암담했는데, 세상에는 자기 못지않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요? ‘이제 남은 것은 나 하나뿐’이라고 투덜거리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 칠천을 땅에 남겨 놓았다(왕상19:18)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 공동체야말로 우리 믿음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버팀목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들은 우리를 든든히 붙잡아주는 하나님의 손과 발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자꾸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절망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 홀로, 인생이라는 광야에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관점이 새로워지니 오히려 지금 행복한 자, 지금 거들먹거리는 자들이 딱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고,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시리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보입니다. 그들은 한낱 꿈처럼 자취도 없이 사라질 운명인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탄식하고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우둔한 한 마리 짐승과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 신앙의 재정위 현실에 대한 속상함, 원망, 탄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하나님의 현존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 눈이 밝아지면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됩니다. 신명기 말미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는 “주님께서 광야에서 야곱을 찾으셨고, 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황야에서 그를 만나, 감싸 주고, 보호하고, 당신의 눈동자처럼 지켜 주셨다”(신32:10)고 노래합니다. 놀라운 돌보심입니다. 노래는 이어집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뒤흔들고 새끼들 위에서 퍼덕이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아 그 날개 위에 업어 나르듯이, 주님께서만 홀로 그 백성을 인도하셨다. 다른 신은 옆에 있지도 않았다”(신32:11-12). 모세의 이런 깨달음은 고스란히 시인의 고백이 됩니다. 시련과 탄식과 영혼의 어둔 밤이 물러가고 은총의 아침이 밝아오자 삶이 든든해졌습니다. 붙잡아 주시고, 교훈으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실 하나님이 바로 곁에 계셨던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몸과 마음이 다 시들어가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에 든든한 반석이시요, 내가 받을 몫의 전부이십니다.”(26) 송년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마음에 떠올라야 하는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정치는 혼잡하고, 문화는 음란해지고, 교육은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인심은 사나워지고, 연약한 이들의 절망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요즘은 고형원 님이 만든 <오직 믿음으로>라는 곡을 자꾸 되뇌게 됩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나는 주를 신뢰해/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우리가 세상에서 누릴 진짜 복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28)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을 뻔했던 시인은 영혼의 어둔 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루신 일을 전파하는 것을 자기 생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힘겨웠지만 주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온 한 해였습니다. 후회스러운 일이 많지만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지금은 다만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받을 몫의 전부’라는 시인의 고백을 자꾸만 떠올리십시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금년의 마지막 시간을 혼돈 속에 헛되이 보내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보내십시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현실의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오늘을 기쁘게 사십시오. 아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시30:1-12/ (추수감사절) 김광일목사 2018-08-07 01:19:47 read : 4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음을 여는 감사의 발견, Thanks!’라는 책의 저자 로버트 이먼스 (Robert A. Emmons)는 마이클 맥컬러프(Michael McCullough) 교수와 함께 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시30:1-12/ (추수감사절) 김광일목사 2018-08-07 01:19:47 read : 4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마음을 여는 감사의 발견, Thanks!’라는 책의 저자 로버트 이먼스 (Robert A. Emmons)는 마이클 맥컬러프(Michael McCullough) 교수와 함께 감사에 대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실험 대상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일주일 동안 세 가지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기분 나쁜 말과 행동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불평하는 그룹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 감사를 드러내는데 집중하도록 만든 감사하는 그룹입니다. 세 번째 그룹은 일상적인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을 관찰한 결과 감사 그룹이 다른 그룹에 비해 25퍼센트나 더 행복을 느꼈습니다. 감사 그룹은 일상적인 말을 하는 그룹에 비해 건강했으며, 불평 그룹에 속한 사람들보다 일에 더 흥미를 가졌고 집중력도 높았습니다. 두 교수는 두 사람을 택해 1년간 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매일 감사하는 태도를 연습하면 더 효과적이다’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즉 매일 무엇이든 감사하는 사람들이 남을 더 배려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넘치고, 감사하면 생기가 있고, 감사하면 우울증이 치유되며 건강해집니다. 감사하면 걱정 근심이 없어지고 고통과 분노가 사라지며, 감사하면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 있고, 공허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면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게 되어 평범한 일상도 은총이 됩니다. 감사는 감정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삶에도 실제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9년까지 늘어났고, 감사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대학생들을 추적한 결과 16년 뒤에 연평균 수입이 2만 5천 달러가 되었습니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 119명을 대상으로 수술 1년 뒤를 조사했더니 감사하는 태도를 가진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였습니다. 감사는 단순한 느낌의 차원이 아니라 삶에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 시는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지은 찬양시입니다. 표제에 ‘성전 낙성가’로 되어 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성전 건축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하였던 유대인들의 심정이 잘 반영되어 있기에 감사시로 선택되어 낙성식에서 봉독되었습니다. 다윗은 본 시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에게 베풀어 주셨던 여호와의 은혜를 노래하였습니다. 특히 여호와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또 그 은혜가 얼마나 자신을 성숙케 하고 삶을 풍성하게 하였는지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감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였습니다.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마무리된 본시는 다윗의 인생 자체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마지막 부분에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로 끝을 맺었습니다. 특히 ‘감사하리이다’를 미완료형 시제로 표현하면서 평생토록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죽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살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변모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평생토록 감사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다윗은 어떠한 이유로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첫째로 나를 살리셨으니 어느 교회 사모님이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개복을 하였는데 너무 암이 커서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크리스천이었던 주치의는 노트와 펜을 주면서 “사모님! 특별한 일이 없으시니까 일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했던 일을 여기에 적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감사를 적어 보려고 했으나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의사의 지시니까 생각하고 생각나는 대로 감사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두 번째, 목사 사모가 되어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 번째,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며칠 만에 137개를 적었습니다. 의사는 병원에서 해줄 일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모님, 복수에 물이 차면 한 번씩 오셔서 빼면 되시고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겠다”며 그녀를 퇴원시켰습니다. 집에 돌아온 사모님은 매일 매일 감사 일기를 썼습니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감사한 내용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다 보니 은혜가 충만해졌습니다. 그 동안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는가에 감격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은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교인들을 심방하고 불신자에게 전도하고 또 기도 해주는 일들을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걱정합니다. “사모님이 곧 돌아가신다는데 저러고 돌아다니시면 어쩌나?”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미음이나 죽을 먹어도 소화를 시키지 못했는데 밥을 먹어도 소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검진을 마친 의사는 “사모님! 암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하며 놀랍니다. 감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여기의 ‘나를 살리사’에 해당되는 원어는 ‘하이타니’인데 ‘살게 하다, 소생하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본래 없는 상태에서 새로이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라 거의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는 것을 뜻합니다. 질병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생사의 기로에 있던 다윗이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어 소생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고쳐주시고 살려주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간증한 것입니다. 자신을 살려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안타깝게도 입술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감사하기는커녕 자기만을 위하여 살려고 노력합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에 자기를 높이려 합니다. 하나님으로 살리심 받은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영원토록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를 세우셨으니 손양원(孫良源) 목사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감동을 받게 됩니다.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습니다. 손목사는 일제 때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6년의 옥고를 치루었습니다. 1년 반 밖에 안되는 형기를 마쳤는데도 전향하지 않는다고 계속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1945년 8월 20일 죽이기로 작정했는데, 닷새를 앞둔 8월 15일 해방이 되어 손목사는 기적처럼 살아났습니다. 풀려난 손 목사는 여러 교회들의 초청을 뿌리치고 “내 형제들에게 가야 됩니다”라면서 나환자촌으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아버지 답사 차례가 되었습니다. 젊디 젊은 두 아들의 장례식입니다. 오열을 하며 억울해 할 법도 합니다. 그런데 흰 두루마기에 누런 두건을 쓴 손양원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내 어찌 긴 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아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 답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맡겨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인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한데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을 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 간의 눈물로 된 기도의 결실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큰 고통의 순간에 감사로 나타낸 것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다윗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형통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호와께서 은혜로 자신을 굳게 세워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단어를 앞에 위치시켜 은혜의 주체이신 여호와를 강조한 것입니다. 형통하며 안정된 삶이십니까? 위기가 있었지만 위기를 통과하여 풍성한 삶을 사십니까? 그렇다면 즉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들임을 기억하고 자기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가 잘 났다는 교만함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존재가 그저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은 아닙니까?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태도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내게 기쁨주시니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서른 두 살에 ‘잠시 후면 나의 생은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 불온한 존재여!’라고 비관하는 마음으로 유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절망 중인 인생이라도 하나님을 찾으면 희망이 생깁니다. 베토벤은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서 새 생명을 얻었고 잃어버렸던 기쁨을 회복하였습니다. 그 때 작곡한 곡이 ‘심포니 교향곡 9번’입니다. 베토벤은 세상에서 인기와 명예와 돈과 기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허무함만 밀려왔습니다. 자신을 넘어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품에 안기고 난 후에 인류역사에 가장 훌륭한 유산인 작품을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심포니 9번 4악장 '합창'은 장엄하고 감동적인 교향곡입니다. 가사도 극히 감동적입니다. 찬송가 64장에 나옵니다.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땅과 하늘 만물들이 주의 솜씨 빛내고 별과 천사 노래 소리 끊임없이 드높아 물과 숲과 산과 골짝 들판이나 바다나 모든 만물 주의 사랑 기뻐 찬양하여라.” 왜 하나님께 경배하여야 합니까? 기쁨이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에게 기쁨이 내려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베토벤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하였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여기의 ‘띠 띠우셨나이다’ 라는 표현은 의복을 입는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행동입니다. 슬픔의 베옷이 벗겨지고 기쁨의 축제에 참여하기 위한 기쁨의 옷이 입혀지는 단계입니다. 여기의 옷과 관련된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에 얼마나 분명하게, 또한 얼마나 풍성하게 응답해 주셨는지를 부각시켜 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내면을 채우고 있던 슬픔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로 기쁨이 충만하게 채워졌음을 노래하였습니다.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다 해도 베옷을 입고 엎드려 회개한다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죄를 심각하게 여기고 죄를 범하였을 경우에 신속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호소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슬픔을 바꾸어 기쁨이 되게 하십니다. 울음의 밤을 기쁨의 아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슬픔의 밤을 짧게 만들고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감사로 해석하고 영원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날 구원하신 주 감사’를 부릅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신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 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한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 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 (George Herbert)가 아름다운 기도시를 남겼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더욱 더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고통가운데도 나를 살리셨으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로 흔들리지 않도록 강하게 세워주셨으니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영원히 감사하며 살리라고 다짐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력을 다하라 /수8:1-9/ 고신일목사 2015-04-27 11:12:12 read : 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
전력을 다하라 /수8:1-9/ 고신일목사 2015-04-27 11:12:12 read : 3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1)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것 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찌니라 (2)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3)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4)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 올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5)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따르며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것이라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하거든 (6)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7)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 하고 (8)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9) <여호수아 8장 1~9절> <목회기도>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세상에 살게 하신 하나님! 죄인 된 저희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게 하심 감사 드립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수고하고 무거운 세상의 삶의 짐을 지고 왔습니다. 감당할 만한 능력 주시고, 능히 이기게 하여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 예배드리며 주님 만나게 하시고 이 한 주간 힘있게 살아갈 힘을 주시옵소서. 경제가 어렵다고 물가는 오른다고, 일터가 불안하다고 하소연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붙들어 주옵소서. 일으켜 주옵소서. 걷고 뛰게 하여 주옵소서. 승리를 간증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에도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음으로 또한 특별한 사정이 있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병상에 누운 환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교회에 처음 온 이들로부터 목회자에 이르기까지, 태중의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준비된 말씀에 은혜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실 줄로 믿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날입니다. 서로 "좋은 날입니다."라고 인사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얼굴 찡그리고, 불평하고, 투덜대지 말고 감사로 시작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성경 높이 들고 우리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고백한 대로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손목시계를 차고 계신 분들, 그 시계 얼마짜리인가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차고 있기 때문에 궁금하면 물어 보면 됩니다. 어떤 시계가 좋은 시계입니까? 다이아몬드가 박히고 금으로 장식되면 좋은 시계입니까? 비싸고 시간도 잘 맞는 시계가 좋은 시계입니다. 지난 6월 2일(금) 신문에 6억 5000만원짜리 시계가 소개되었습니다. 여러분, 6억 5000만원짜리 시계 갖고 싶으세요? 누가 사주면 받으세요. 그런데 그런 비싼 시계 차고 다니면 도둑맞기 쉽습니다. 팔이 잘릴 지도 모릅니다. 6억 5000만원짜리 시계는 어떻게 생겼는 지 화면 보시겠습니다. 여러분, 6억 5000만원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면 잃어버릴까봐 풀어놓고 편안히 세수나 하겠어요. 인생이 피곤해 집니다. 여러분 주어진 환경에서 만나는 사람, 먹는 것, 입는 것에 감사하고 귀히 여기면 그것이 최고입니다. 다함께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승리요, 감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손떼시면 실패요, 탄식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며 주어진 환경에서 만족할 줄 알고 즐길 줄 아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성의 패배와 낙심한 이스라엘 우리는 여호수아 7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여세를 몰아 아이 성(城)을 공격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람들은 아이 성 전투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남자만도 60만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만하게 봤던 아이 성의 전투에서 패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습니까? 사실 아이 성 사람들이 숫자가 많거나, 무기가 뛰어나거나 전투를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패한 이유는, 그들이 여리고의 승리에 도취되어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경험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정탐꾼을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정탐꾼의 보고에만 의존하여 상대를 얕보고 삼천 명의 군사들만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간이라는 사람이 비싼 물건, 좋은 물건에 탐내어 하나님 앞에 범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수치와 아픔을 당하는 실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한 아간을 찾아내 처단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습니다(수7:26)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크게 낙담한 상태였고 '앞으로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까' 걱정과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여호수아 8장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수8:1 ) "Then the LORD said to Joshua, "Do not be afraid; do not be discouraged. Take the whole army with you, and go up and attack Ai. For I have delivered into your hands the king of Ai, his people, his city and his land." (NIV) 영어 성경에서 보면 '주었다'라는 표현을 have delivered 라고 완료형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이 성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넘겨주시고자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마음속에 있는 낙담을 제거하시고, 두려워 말고 용기를 갖고 다시 올라가서 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낙담도 용기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때로 일이 잘 되지 않아…, 실패하여…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크게 과장하여 염려하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걱정과 분을 오래 품으면 우리의 영혼과 믿음까지 약해질 뿐입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사단의 무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귀가 수많은 성도들을 실족시키고 믿음이 떨어지게 만든 여러 가지 무기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마귀의 무기들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무기 앞에는 'Not For Sale(팔지 않음)'이라는 푯말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마귀에게 "왜 이것은 팔지 않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마귀는 "예, 이 물건만큼은 절대로 팔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능이 효과만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 무기만 사용하기만 하면 금방 시험에 들어버리고 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 무기의 이름은 무엇이오?"라고 물었습니다. 마귀는 "예, 이 무기의 이름은 낙심(낙담)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개인도 낙심은 더 큰 위기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낙심(낙망)치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낙망치 않게 배려하고, 격려하고 살아야 합니다. 부부, 부모자식, 형제 칭찬하고 기도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마음에 상처 주고 긁는 다면 더 잘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자녀에게도 잘못된 것, 틀린 것으로 책망하기보다 잘한 것, 맞은 것에 대해 칭찬하고 용기를 주시기 바랍니다. 잘하는 것을 보고 귀히 여기고 칭찬해야지 못하는 것만 따지면 이 세상에 칭찬 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낙담(낙심)치도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낙담(낙심) 케도 말아야 합니다. 사실 낙심(낙담)이 생긴 사람은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등졌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고개를 숙여야 할 만한 부끄러움이, 죄송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 하늘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 조건으로 낙담하지 않습니다. 실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합니다.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후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2.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 문제는 하나님을 등지고(외면하고)…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게 살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며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그 염려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여호수아 8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수8:1) 입니다. "Then the Lord said to Joshua, … " (NIV) 이 말은 두 번째 다시 공격하게 되는 아이 성 전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전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전투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말입니다. 본문 8절에서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오늘 강단에 선 고신일목사는 여러분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라고 선언합니다. 말씀대로 사시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7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긴 이유는 간단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아(삼상17:47) 싸움과 같은 삶의 전쟁… 선한 싸움의 영적 전쟁… 아이성과의 전쟁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고 하나님께 맡기고 싸웠을 때 이겼습니다. 시편 118편 6절에 보면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 "(시118:6) 라고 했습니다. 이 시편 기자의 고백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낙심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에 대하여 너무 호들갑을 떨고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사는 사람은 사실 성공도 실패도 없습니다.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사람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인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 영원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했는데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하나님이 함께 계셨고,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룬 승리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래서 성공과 실패는 우리가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실패가 있다면,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믿음으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실패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우리 인생은 이미 승리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낙담했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재도전을 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에 있는 사람들을 성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작전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여호수아 8장 16~17절을 보면, 아이성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유인작전에 말려들었습니다. "그 성 모든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따랐더라" (수 8:16~17) 한번 전쟁에 이긴 경험이 있는 아이 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좇아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최소한의 경비병들도 세워 놓지 않고 모든 병사들이 성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유인하는 도망가는 척 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잡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이 성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아이 성 가까이 숨어 있던 이스라엘 군사들이 아이성을 점령하고 도망치는 척 하던 이스라엘 군대가 방향을 바꿔 달려오던 아이성 사람들을 아이 성 사람들을 진멸하였습니다. 여호수아 8장 26절을 보면,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수8:26) 라고 했습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다 수행할 때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고 들어 올린 손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이스라엘의 병사들이 볼 수 있는 높은 자리에 올라서서 단창을 손에 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한, 이스라엘 병사들은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싸웠을 것입니다. 이 모습은 무엇을 기억하게 합니까? 4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아말렉과 전쟁했을 때, 산 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든 모세의 기도가 끊이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겼고 모세의 팔에 기운이 빠져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을 본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양옆에서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때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여호수아가 단창을 높이 들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상황에,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전쟁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함께 계시고, 어떤 때는 버려두십니다. 처음 전쟁은 버려 두셨고, 두 번째 전쟁은 함께 하셨습니다. 처음 전쟁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전쟁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의 삶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실만한 삶을 살았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지혜, 경험, 힘과 능력으로… 여러분 마음대로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삶이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삶에 간섭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과 영적인 싸움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승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성을 무너뜨린 것은 능력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백성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전쟁 무기가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작전이 치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의지하는 믿음과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승리한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면… 태산도 옮기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홍해도 건넜고 여리고 성도 무너뜨렸고, 아이 성도 무너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사람들은 환경과 조건, 학력, 경력, 능력, 인물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일을 맡깁니다. 사람을 쓸 때 독일인들은 먼저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은 "이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일본인들은 "어느 대학 출신이냐?"고 묻습니다. 한국사람들은 "고향이 어디냐?"를 묻는다고 합니다. 일하는데 고향이 어디인지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나라가 크면 얼마나 큽니까. 여러분, 토고라는 나라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외국 사람들에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만큼 작은 나라에서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왜 따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할 수 있느냐, 해 본 적이 있느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고향이 어디냐?'를 묻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인물도, 배경도, 학력도, 가진 것도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다윗을 보세요. 그가 그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왕으로 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을 그를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는 목동으로 이름 없이 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모세를 보세요. 하나님을 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는 살인자로, 도망자로 살다가 끝날 사람입니다. 요셉을 보세요.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는 노예로 인생을 끝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세우시지 않았다면 그는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사기꾼으로 인생을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귀한 존재도, 아무리 귀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붙들려야 귀하게 쓰임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귀해도 누구에게 쓰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피아노, 오르간도 누구든지 다 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소리를 내느냐가 문제입니다. 누가 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손에 붙잡힌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시고 이 민족이 살기를 원시고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으로 인하여 화목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뭐가 안 된다고, 한번 실패했다고 낙심하지 마세요! 고개 숙이지 마세요! 포기하지 말고 다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고 최고를 지향해야 합니다. 전력을 다하라 아이성을 공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 째 아이 성 공격 때 2~3천명이면 된다는 기고만장한 정탐꾼들의 말만 듣고 3천 명의 군인만 보냈습니다. 그런데 8장 1절에 보면, 두 번째 아이 성 공격 때 하나님은 " …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 " (수8:1) 했습니다. 모든 병력을 다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이 성이 작다고, 아이 성에 사람이 적다고 우습게 보지말고 총력을 기울이라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3절 이후에 보면 여호수아가 아이 성 재공격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만 명의 군사를 뽑아 밤에 아이 성까지 이동시켰습니다(수 8:3). 길갈에서 아이성 까지는 약 24km입니다. 요즘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닌데 3만 명의 군사들이 밤중에 24km를 이동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뿐 아니라 아이 성에서 가까운 곳에 벧엘 성이 있었습니다. 아이성과 벧엘성과의 거리는 약3km입니다. 여호수아는 두 성의 군사들이 연합 작전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이 성과 벧엘 성 사이에 오천 명 가량을 매복 시켰습니다(수 8:12).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아이 성을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셨지만… 모든 지혜와 병력을 총동원하여 철저히/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얻게 하십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게으름이나 피우고 남이 땀 흘린 결과를 자기 것으로 취하려는 나태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만 많이 한다고 공부하지 않는 학생의 성적을 올려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답을 콕콕 찍어 가르쳐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장사하는 분들, 적당히 아무 물건이나 불량품을 갖다 놓고 팔면서 하나님께 아무리 기도하고 장사해도 그 장사는 잘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식당을 하십니까?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누가 먹어도 맛있고, 또 가서 먹고 싶을 만큼 최고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고 노력해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되 최고를 지향해야 합니다.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것,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저는 참으로 성실한 사람이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성, 12,000명밖에 살지 않는 그 작은 성을 공격하는 데도 하나님은 모든 군사를 데리고 가라고 여호수아에게 명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사십니까? 살다 보면 실수 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욕심이 생겨 요나처럼 곁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수집한 정보와 자신의 지혜와 경험과 가진 힘만 의지하여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그러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셨으면 다시 한번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아이 성의 실패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여호수아처럼 우리 역시 실패 속에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분명히 승리의 삶을 살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담대한 믿음만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그런 승리의 간증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아이 성을 공격한 두 번의 전쟁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삶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지 우리가 어떻게 영적 전쟁에 임해야 하는 지 가르쳐 주신 하나님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심전력하여 최선을 다해 살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삶의 현장에서 땀흘리게 하신 하나님, 이 복된 자리에서 예배드리며 우리들의 정성을 드리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받으시고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신앙인의 애국 /롬9:1-5/ 김기석목사 2018-11-06 02:00:58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
신앙인의 애국 /롬9:1-5/ 김기석목사 2018-11-06 02:00:58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을 힘입어서 이것을 증언하여 줍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내 동족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 족장들은 그들의 조상이요, 그리스도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만물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 머물지 않는 사람의 아름다움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벌써 사 십년이 지났습니다만, 민중신학자인 안병무 박사의 수상록([時代와 證言], 한길사, 1978)을 읽다가 功成而不居라는 구절과 만났습니다. 공을 이룬 후에는 머물지 않는다는 뜻으로 노자 제2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때 이후 그 구절은 제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살면서 제일 힘든 때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입니다. 젊은 날 꽤 열심히 살던 이들이 노년에 이르러 변질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보았습니다. 변화가 아닌 변질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다른 것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통해 이루어진 일을 자기의 공적으로 삼았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내심에는 내가 했다는 강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려놓을 줄 모릅니다. 놓아야 할 때 놓지 못하면 추해집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느 판화가는 바닥에 떨어진 땅콩꼬투리와 줄기에 매달린 것을 위 아래에 배치하고는 제목을 '덜 떨어진 놈'이라고 적었습니다. 말장난이지만 뭔가 후련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어떤 일의 결과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아야 홀가분한 자유가 깃듭니다. 잡으려고 하면 놓치게 마련입니다. 노자 2장은 부유불거 시이불거(夫惟不居 是以不去)라는 말로 끝납니다. 머물고자 하지 않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붙들고자 하면 오히려 사라지고, 머물 생각을 버리면 오히려 남습니다. 대개 짐작하셨겠습니다만 지난 8월 7일 장로교 통합의 총회 재판국 위원들은 명성교회의 목회직 세습이 적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8:7이었다고 합니다. 교단이 정한 교회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라고 요구했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 신학생들과 한국교회 일반의 요구는 보기 좋게 거부되었습니다. 재판국 위원장은 양심과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자기들을 더 비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것일까요? 그들이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한 취지가 무엇인지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명성교회라고 하는 거대 권력 앞에 납작 엎드렸을 뿐입니다. 이 일로 한국교회는 또 다시 신뢰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자정 능력을 잃었다는 세간의 비판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법은 엄정하게 집행되어야 합니다. 친소관계 혹은 권력관계에 따라 법을 자의적으로 해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롬8:37) '이기고도 남습니다'라는 표현이 강력합니다.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넉넉히 이기는 겁니다. 바울 사도는 마치 자기가 한 말을 곱씹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8-39) 이런 절대적 확신이 있다면 삶이 아무리 가시밭길이라 해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 불을 피우지 못하면 하지만 9장으로 넘어오면서 바울의 어조가 크게 달라집니다. 자유의 찬가를 부르던 그의 입에서 돌연 비가(悲歌, 엘레지)가 흘러나오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기 속에 큰 슬픔이 있고, 마음에는 끊임없는 고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을 괴롭히는 슬픔과 고통은 자기 동족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열성이 있지만, 그 열성이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울의 판단입니다(롬10:2).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릇된 확신은 회의보다 위험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저주했고, 박해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용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나 태도에 동조하거나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할 때가 많습니다. 모든 근본주의와 배타주의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로부터 비롯됩니다. 전통은 소중하지만, 그것은 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철학자 카알 야스퍼스는 "전통의 샘은 현재에서 새롭게 실현되기 위해 포착될 때에만 샘솟는 것"(카알 야스퍼스, 哲學的 信仰, 신옥희 역,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79년 9월 15일, p.31)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참 길이 눈앞에 있건만 그들은 그 길을 걸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거룩'이라는 척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가르는 일에 익숙했기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덥석 품는 '자비'의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선민 혹은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자의식은 충만했지만 구원받은 사람다운 삶은 드러내 보이지 못했습니다. 이게 바울을 아프게 했습니다. 물론 신앙은 민족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하늘을 가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신앙인에게도 조국은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정체성의 뿌리이기도 한 동족들도 예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바울이 큰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롬9:3) 바울의 말은 매우 비장합니다. 마치 출애굽 공동체를 이끌던 모세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진 백성들은 아론을 찾아가 자기들을 이끌 신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금으로 송아지 상을 만들고는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며 뛰놀았습니다. 하나님은 우상 없이 기다리지 못하는 그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진노의 팔을 붙들고 제발 재앙을 거두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주님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 주십시오."(출32:32) 바울의 심정이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동족을 향한 이 사랑이 참으로 뜨겁습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다"(롬9:4). 그러나 정작 그들은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자기들에게 있는 것을 누리지 못합니다. 마치 요리를 위한 모든 재료를 다 갖추었으나 불을 피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바울은 이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불꽃이 그들 속에 옮겨 붙기를 바랍니다. 이 뜨거운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 복을 심는 나라 미국의 평화주의자 윌리엄 슬론 코핀 목사는 세상에는 세 부류의 애국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두 부류의 나쁜 애국자와 한 부류의 좋은 애국자다. 나쁜 애국자들은 무비판적 연인이자, 애정 없는 비평가다. 좋은 애국자들은 그들의 국가와 사랑싸움을 계속한다. 이들의 싸움은 연인이 세계와 싸우는 방식을 반영한다."(파커 J.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김찬호·정하린 옮김, 글항아리, 2018년 7월 27일, p.174에서 재인용) 나쁜 애국자는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 곧 국수주의자들과,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사건건 비평만 해대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아름다운 사회 혹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땀 흘리려 하지 않습니다. 좋은 애국자들은 국가와 사랑싸움을 계속합니다. 비평할 것은 비평하되 애정을 가지고 매사를 바라봅니다. 당파적인 이익이나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곧 광복절 73주년이 다가옵니다. 정인보 선생이 작사한 광복절 노래를 몇 번씩 불러보았습니다. 1.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춘다/기어이 보시려던 어른 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2.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날을 잊을 건가/다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길러 하늘 닿게 세계에 보람을 거룩한 빛 예서나리니/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1절은 광복을 기다리던 이들의 절절한 마음과 광복을 경험한 이들의 감격을 노래합니다. 2절은 광복을 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염원이 절절하게 담겨 있습니다. "다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길러 하늘 닿게/세계에 보람을 거룩한 빛 예서나리니". 이것은 촉구인 동시에 염원입니다. 복을 심는 나라, 그것으로 세계에 거룩한 빛을 비추는 나라의 꿈이 자못 장엄합니다. 평화 통일은 그 꿈의 주춧돌입니다. 경제성장만이 우리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 다른 이들을 복 되게 하는 나라, 생명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나라의 꿈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되어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 정신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 굳게 세워져야 합니다. 성시화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나를 희생해 남을 살리는 마음이 우리 삶의 원리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더불어 이런 세상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 있는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런 생명과 평화 세상의 향도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김성광 목사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김성광 목사 2014-12-30 15:28:02 설 교 개 요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2. 본문 배경 설명(막 4:24∼25)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음 - 기도 1분→10분→100분 / 응 답(마 7:7∼8)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고후 9:6∼7)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 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0명 / 건강(딤후 4:2)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 는 믿음 - 봉사, 충성 1시간→2시간 →3∼4시간 / 기쁨(벧전 4:10)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 가 되자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오늘은 마가복음 4장 24∼25절의 말 씀으로 “‘0’을 더하는 믿음의 축 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 니다. 제목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 이 루어집니다. 축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의 근원은 바로 ‘믿 음’입니다. 믿음은 작은 믿음도 있 고, 큰 믿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믿음을 통해서 크게 역사해 주시 는 것입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어떤 가 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열 심히 나와서 예배도 잘 드리고, 또 한 새벽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도 뭔가 좀 하게 하옵소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거지처럼 살지 말고, 나도 정착해서 보람된, 안정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하다가 마 음속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 지. 나도 뭔가 해야 돼!’ 그래서 콩나물을 도매로 싸게 받아 서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콩나물 장 사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물 건을 받아와서 콩나물 장사를 했는 데 조금씩, 조금씩 돈이 모여서 몇 년이 되자 조그만 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 가게를 얻어서 열심히 장사하니까 나중에는 두부 공장까지 차리게 됐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두부 공장을 차려서 사장이 됐으니 이제는 인생이 살맛 나고 신 났습니다. 그런데 두부 공장을 운영하니까 얼 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콩나물 장사 할 때는 시간이 남아서 예배에 참석 하고, 새벽 기도까지 나갔는데, 이제 는 두부 공장 사장이 되니까 바빠서 새벽 기도도 못 나옵니다. 수요일도 못 가고, 금요일도 못 가고, 겨우겨 우 주일만 한번씩 교회에 가는 신앙 이 됐습니다. 그는 사업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두부 공장, 두부 공장, 돈을 벌어야 돼. 사업해야 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기꾼에게 걸리고, 운 영이 잘 안 되자 사업에만 정신이 빼앗겨서 결국 신앙도 잃어버리고, 두부 공장도 부도로 날라 가고, 장 만했던 집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 는 알거지가 됐습니다. 또 다시 거 지가 됐습니다. 그는 자기 과거를 생각했습니다. ‘아! 그때 새벽 기도 다니면서 콩 나물 장사할 때가 행복했구나. 나는 이것저것 다 잃어버렸구나.’ 여러분,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 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돈, 돈 하면서 돈 따라 갔다가 돈도 잃어버리고, 신앙도 잃어버리고, 인 생도 헛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 습니까? 우리가 돈 버는 것도 좋고, 출세하는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우선적으로 이 모든 것은 믿음에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바탕이 있어야 물질도, 돈도, 명예도, 세상의 좋은 조건도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산 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자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자산 중에서 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믿음’입 니다. 믿음이 크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창조적인 일도 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믿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서,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 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 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 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막 4:24∼25)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마가복음 4장 2 4∼25절에는 예수께서 그릇의 비유 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헤아린다’는 것은 ‘그릇’을 말 합니다. 큰 그릇에는 크게, 많이 담 을 수 있지만 작은 그릇으로는 적게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그릇 으로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 릇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나 사랑 이나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크기의 믿음의 그릇 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큰 사람은 크게 역사하지만 작은 사람은 작게 역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 씀을 들어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아멘’이 많습니다. 믿음 이 작은 사람은 ‘아멘’도 적습니 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 데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됩니까? 오 늘 봉독한 말씀의 제목처럼 ‘0’을 하나 더 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 다. 믿음이 1이라면 1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2라면 2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3이라면 거기다 ‘0’ 을 붙여서 30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 니다. ‘0’을 덧붙여서 10배의 믿 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따 른 축복도, 은총도 베풀어주시는 것 입니다. 좋은 일은 많이 해야 되고, 나쁜 일 은 안 해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 의 공부하는 시간, 사업하는 사람의 사업에 대한 열정, 신앙을 가진 사 람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 이것은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 는 것, 또한 전도하는 것, 충성·봉 사하는 것, 여기에도 큰 믿음이 필 요합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저는 넷으 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라. 둘째,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예물 드리는 믿음에 ‘0’을 하나 더 더 하라. 셋째, 전도할 때 전도하는 사 람 숫자에 ‘0’을 하나 더 더하라. 넷째, 봉사와 충성에도 ‘0’을 더 더하라. ‘0’을 더할 것이냐, ‘0’을 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 까? ‘0’을 더하는 사람에게는 축 복도 더해지지만, ‘0’을 빼는 사 람에게는 축복도, 은총도 빠지게 되 어 있습니다.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 음 - 기도 1분→10분→100분 / 응답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 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 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 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기도는 조건적입니다.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찾게 되 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문이 열리는 것도 아닙니다. 구하는 사람, 찾는 사람, 문을 두드리는 그 사람 에게 찾아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 고, 얻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 말씀에 “너 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 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 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 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 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조건적으로, 구하는 자에게 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끈기 있게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로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한밤 중에 주님 앞에 철야하면서 기도합 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응답 주실 때까지, 문제 가 해결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나와 서 기도하는 사람의 그 기도를 통해 서 응답하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사무엘상 1장 말씀을 보면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 럽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장 12절 말씀을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 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 답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도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도 시간에 따라 다릅니 다. 잠깐 기도하는 것하고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 그 기도의 차이는 다 릅니다.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기 도의 정성,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 면 많이 할수록 삶의 질과 삶의 양 이 달라지게 됩니다. 1분 기도하는 사람과 10분 기도하는 사람, 3분 기 도하는 사람과 30분 기도하는 사람, 5분 기도하는 사람과 50분 기도하는 사람, 6분 기도하는 사람과 60분 기 도하는 사람은 삶의 질과 양이 다릅 니다. 과거에는 기도 시간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관심했더라도 이제 이 말씀 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기도 시간의 연관성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서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에 몇 시 간, 몇 분을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 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지시기 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 람과는 뭔가 다릅니다. 기도하면 하 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능력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 50:15). 기도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진리 가운데 삽니다 (시 119:18). 생활의 변화가 나타납 니다(시 121:1∼2; 34:4). 기도를 통 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 다(사 40:31).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 에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요 16:24; 빌 4:6∼7). 기도하는 사람은 순종을 잘합니다(행 4:29). 기도를 하면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가 있고 (엡 6:12; 벧전 5:8), 기도하는 사람 은 그 기도를 통해서 기적이 나타납 니다(약 5:16; 행 12:5∼10; 16:25).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얼른 봐도 알 수 있습 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걱정과 근심과 불안, 두려움, 공포에 사로잡 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벌써 자신감이 넘치고, 그 얼굴에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언니 되는 사람이 갑자기 동생으로 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 오후에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심각 한 수술을 받게 됐는데 살아날 가능 성은 10%도 아니고, 1%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이 기 때문에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 었습니다. 이 언니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가슴 이 철렁했습니다. ‘아! 이제 동생 이 세상을 떠나는가 보다. 동생을 잃는가 보다.’ 그는 그 전화를 받 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하나 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0 분을 기도했습니다. 60분을 기도했 습니다. 2시간, 3시간, 3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 님, 내 동생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 옵소서. 내 동생을 살게 해 주시옵 소서.’ 3시간 기도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 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기도는 확신 이 생길 때까지 하고, 기도는 응답 이 왔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합니다. 3시간 동안 기도하자 그는 마음에 평강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아, 내 동생이 떠나는구나. 내 동생이 결국 수술 받고 잘못 돼서 세상을 떠나는구나. 아니야, 내가 하나님 앞 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동생 을 살려줬을 꺼다.’하는 생각이 번 득 떠오르면서 ‘내 동생을 살려 주 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그 전화는 사망 전보가 아니라 여동 생의 상태가 호전되어서 언니를 만 나고 싶으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즉시로 3시간 동안 동생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2시 간, 3시간, 몇 시간씩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병들었을 때, 또 는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이웃 을 위해서,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 을 위해서, 교회와 기도원, 내가 속 한 모든 곳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는 응답 받을 때까지, 확신이 생길 때 까지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을 허락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시간에 ‘0’을 하나 더 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이제 ‘아멘’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겁니다. 그러나 ‘아멘’ 못하 는 사람은 둘째 단계로 넘어갑시다.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吝嗇)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하나님은 기쁘게, 자원해서, 감사함 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 습니다. 이 말씀은 A.D. 55년경 사 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고린도 교회 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고통과 고 난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기근과 핍박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게 “너희가 여유가 있으니까 예루 살렘 성도들을 좀 도와 주라. 그리 고 하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헌금 을 하고 구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 서 많이 주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 을 받고 성경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 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 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 다.”는 말은 목사님들이 만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말입니 다. 이 말씀에 대한 근거와 배경을 보 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 드리 고, 예물 드리는 것이 마치 농사 짓 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 다. 농부가 농사 지을 때 씨를 심는 것과 비유했습니다. 농부가 종자 씨를 심을 때 그것을 다 먹어 치우지 아니하고, 밭에 심 으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수 확을 얻습니다. 옥수수를 심고, 쌀을 심어서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종자 씨를 다 먹어 버리면 그 것으로 끝나지만, 자기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열심히, 많이 심으면 종 자 씨도 살아남을 것이요, 또한 그 다음에 심을 많은 씨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농사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물질적인 관계는 농사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농 부의 마음으로, 농부가 농사 짓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시편 126편 5절 말씀에 “눈물을 흘 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 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 릴 때는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울어가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는 기쁨으로 열매를 거둡니다. 울 일 있다고 해서, 눈물 흘린다고 해 서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하면 영원히 포기입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 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기쁨과 즐거움과 축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 다. 미국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크게 경 영하는 교포가 있었습니다. 대개 교 포들이 음식점, 식당 사업을 하면서 세금들을 제대로 내지 않습니다. 그 래서 미국 정부로부터 우리 한국 사 람들이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 면서도 나이 먹으면 정부 돈(social security)을 받습니다. 이런 불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 이 미국 비자 얻기가 참 힘듭니다. 이 사람도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해 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금을 정당 하게 내지 않고 조금 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돈을 버는 대로 전부 다 가게 벽에다가 금고를 만들어서 그 속에다 숨겼습니다. 돈을 벌면 저녁에 벽 속에 감추고, 감추고 한 것이 한 3년이 지났습니 다. 이제 3년쯤 지나서 ‘아, 이제는 몇 십만 달러쯤 됐겠구나.’하고 그 가 돈을 계산하려고 그 벽을 뜯었더 니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습니 다. 전부 종이 조각, 조각, 조각, 전 부 조각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 다. 나중 알고 보니 음식 장사가 음식 하면서 돈을 만지니까 그 돈에 음식 냄새가 배어서 쥐들이 전부 갉아먹 고 수십만 달러가 전부 먼지 조각, 조각이 된 것입니다. 세금도 내지 않고, 은행 같다 주면 적발되니까 은행도 갖다 주지 않고, 숨겨 둔 돈,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이 먼 지가 되고 조각, 조각이 나버렸습니 다. 오늘날도 어리석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6장 19∼20절 말 씀을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해 보시 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 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 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 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 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 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 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들은 은행에 놓아 두 든, 적금을 들든 여러분이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쌓았든지간에 도둑질 당합니다. 이 사람이 가져가고, 저 사람이 가져가고, 가족, 형제, 친척 들이 가져가고, 사업해서 망하고, 돈 꿔 주었다 망하고, 이리저리 다 없 어집니다. 이 세상에다 쌓지 말고 하늘 나라에다가 재물을 쌓으십시 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쓸 것을 넘 치게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 돈과 물질은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쌓아 놓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써야 됩 니다. 들어올 때는 들어오고 나갈 때는 나가야 되는데, 욕심과 탐욕으 로 말세에 돈을 세상에 쌓아 놓은 사람들은 교만해집니다. 불신앙에 빠집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어갑니 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들어온 것 만큼 다 없어집니다. 재물이 독수리 의 날개 치며 나는 것 같이 날아갈 것입니다(잠 23:5). 재벌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회사 사 장, 회장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이 세상의 돈은 왔다 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여러분, 돈에 너무 미련 갖지 마시 고 하나님 앞에 물질로 영광 돌리시 기 바랍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에 장로님 한분이 계시는데, 이 장로님은 조그마한 개 인 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장로님은 개 인 병원의 의사였지만 자기 병원보 다 교회를 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화가 없다고 하 면 자기 병원에 있는 전화기를 떼어 주고, 선풍기가 없다고 하면 교회에 선풍기를 달아 주었습니다. 하여튼 교회에서 뭐가 조금만 필요하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교회를 위해 서 아주 충성하는 그런 장로님이었 습니다. 얼마 후 병원이 잘 돼서 이제 그 병 원을 확장하려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더 크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장로님은 ‘하나님의 집이 먼저지, 병원이 먼 저냐?’하며 주저하지 않고 병원을 확장하려던 돈을 교회에 건축 헌금 으로 드렸습니다. 그러고도 기뻤습 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그 부산 온 지역에 장티푸스, 전염 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장티푸스, 전염병이 도니까 사람들이 전부 병 원에 왔습니다. 너무너무 환자들이 많아서 옆에 있는 학교 강당을 빌려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들을 다 수용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돈이 쌓이고 물질이 쌓였습니다. 이 장로님은 엄 청난 돈을 저축하게 되어, 이제는 병원을 확장하려던 계획을 아예 취 소하고 종합 병원을 지었습니다. 크 게 종합 병원을 지어서 그 종합 병 원 원장이 됐습니다. 조그만 개인 병원 원장에서 종합 병원 원장이 되 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더 풍족 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 적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부자 는 사람의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큰 부자는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 심을 통해서, 은총 베풀어 주심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을 생각할 때, 땅 을 파서 우물을 만들어 퍼내는 것과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는 것은 근 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축복 은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 록 넘치게 부어 주시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말 3:10). 성도 여러 분, 오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시 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 ‘0’ 을 뺄 것인가, ‘0’을 더할 것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0만 원 드릴 사람이 100만 원 드리고, 20만 원 드릴 사람이 200만 원 드리고, 하나 님 앞에 물질을 더 드려서 하늘 나 라 은행에 적금하고,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10%, 20%, 30% 이자가 아니라 30배, 60배, 100 배로 채워주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풍족하게 하시고, 사업을 크게 번창 시키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물질 축 복의 영광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중에서 크게 재물의 축복을 받는 분이 많이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0명 / 건강 “너는 말씀을 전파(傳播)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 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 責)하며 경계(警戒)하며 권(勸)하 라”(딤후 4:2)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아니하 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전도하지 못 한 것이 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전도를 해야 됩니다. 본문에서 전도 에 대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전파 하라’입니다. 이 ‘전파하라’는 본래 헬라어 성경에 ‘케륏손,’ ‘공포를 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 님 말씀을 공포를 하라.’는 명령적 인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보지 말고 항상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고, 잘못 믿 는 사람을 올바로 믿게 하는 그 전 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 다. 1명 전도하던 사람에게 ‘0’이 붙 으면 10명 전도하고, 1명을 가르치 던 사람이 10명을 가르치고, 10명을 가르치던 사람이 100명을 가르치고, 5명을 전도할 사람이 50명을 전도하 고, 50명 가르칠 사람 500명 가르치 고, 전도의 숫자에도 ‘0’을 하나 더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도할 때 도와주시고 역사하십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말씀에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福 音)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 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 (禍)가 있을 것임이로라.”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 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다. 화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개 보면은 전도하지 않아서 화 당 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몸이 늘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병 원에 가보면 특별한 병명도 아니고, 병원 가서 낫지도 않습니다. 왜 그 렇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 니다. 전도하지 않아서 건강을 잃어 버리고, 지위를 잃어버리고, 전도하 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빼앗기고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 니까? 전도를 해야 전도하지 않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 말씀에도 “주 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康健) 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傳 道)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 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 강을 주신 것은 전도하게 하기 위해 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하 나님께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십니 다. 육체를 건강하게 하십니다. 정신 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시험과 올무 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기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왜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족 이 없습니다. 보람도 없습니다. 의미 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는 멸망치 않 습니다. 저는 풍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를 뿌려야 거두는 재미도 있지, 심는 것도 없고 거두는 것도 없고 매일 남 뿌리고 거두는 것만 구경하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여 러분, 전도에 구경꾼이 되지 마시고, 전도하는, 씨뿌리는, 전도의 일꾼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도 보면 전도 열심히 하는 교회 가 크게 부흥합니다. 회사도 전도하 는 회사가 크게 부흥하고 발전합니 다. 전도하지 않으면 타락합니다. 전 도하지 않으면 게을러집니다. 전도 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전도하 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허 우적거립니다. 동대문에서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교회는 왔 다 갔다 하나 별로 남에 대한 관심 도 없고 전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재미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30년 동안 돈을 벌어서, 젊은 나이 에 시작했으나 이제는 머리가 허예 지고 60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출근하는데 어떤 젊 은 여자가 “예수님 믿으세요.”하 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 전도하 는 사람을 만나자 그는 마음에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나는 돈만 벌려고 한평생,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백발이 되도록 ‘돈, 돈’하고 살았는데, 저 젊은이는 전 도를 하다니…. 전도를 하는 구나. 나한테 전도를 했어.’ 그러면서 그는 자기 인생을 생각했 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 을 왜 이렇게 계속해서 벌고 또 버 는 건가? 내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 가?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 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 벌고 써야지 쓰지도 못할 돈 자꾸 쌓아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들, 딸한테 물 려준다고 해서 고마워하는 것이 아 니라,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방탕하 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죄악에 빠 지게 됩니다. 그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합니까? 이웃 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얼마든지 쓸 곳이 많은데, 오늘날은 돈 벌어서 자꾸 쌓아 두는 것만이, 그것만이 좋은 줄 알고 있 습니다. 그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제는 좋은 일 좀 해야지. 삶에 대한 보람을 느껴야 해.” 그렇게 생각한 후부터 그는 물건을 팔면서 물건 속에다 전도지를 한 장 씩, 한 장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 합니다. “이제는 전도가 삶의 목적이고, 장 사는 부업입니다.” 그 전에는 돈버는 것이 전문이고 교 회 나가는 것이 부업이었는데, 그가 인생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 고 나서는 이제 전도하는 것이 목적 이고 장사하는 것은 부업이라는 고 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사람은 삶에 의미 가 있습니다.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고 삶의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고 돈, 돈, 돈 하면서 세 상 쾌락, 세상 죄악, 세상으로 흘러 가는 사람은 결국 그 세상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지 못하고,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하 나님께서는 전도하는 사람에게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님이 교회에 10년 동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목사 님이 전도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가책을 느꼈습니 다. ‘그렇지, 내가 교회 나오는 것이 좋고 하나님 믿는 것이 좋다면, 왜 좋은 것을 나 혼자만 믿는가? 진정 으로 내게 도움이 되고 좋으면 남에 게도 권해야지. 음식 먹고 맛있으면 그 음식 먹어보라고 하고, 내가 좋 은 건 좋다고, 다른 것은 다 말하면 서 왜 교회 나오는 것, 예수 믿는 것, 하나님 믿는 것은 왜 남에게 전 하지 못하는가? 나도 전도해야 되겠 다.’ 그래서 교회 나온 지 10년 만에 그 는 전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 는 사무실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 를 합니다. ‘하나님, 나도 이제는 전도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사 무실에 먼저 들어오는 사람에게 전 도하겠습니다.’하고 기도하고 결정 을 했는데, 마침 직원이 결재 서류 를 가지고 “똑똑” 노크를 하고 들 어왔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리 오게. 잠깐 할말이 있네.” “자네 교회 다니나?” 직원이 깜짝 놀랐습니다. “사장님, 웬일로 교회 다니냐고 물 어보십니까? 결재해 주십시오.” “아니야, 결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네. 내가 10년 동안 교회 다니고 예수 믿어도 한번도 자네에게 전도 를 하지 않았지? 내가 이제부터 자 네에게 전도를 해야 겠어. 교회 나 가세.” 그랬더니 이 직원이 “사장님 고맙 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10년 동안 교회 나가는 것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좋아서 나가는지 나 빠서 나가는지 그걸 몰랐습니다. 그 리고 ‘그렇게 좋은데 가면 나보고 한번도 같이 가자는 소리를 안 하는 가? 아마 사장님은 나같은 사람은 상대도 안 하는가봐. 아마 교회는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나 봐.’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사장님 이 나보고 교회 가자고 그러니까 같 이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장님과 꼭 같이 가겠습 니다.”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여러분, 의외로 전도하고자 하면 쉽 게 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좀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부인이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데, 부모 가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 데, 전도하지 않으니까 옆에서 구경 만 하고 방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 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족 중에서, 또는 형제, 이웃, 친척, 친구 중에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 님 말씀을 증거 할 때, 전도하는 자 에게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전 도하는 자에게 물질을 주시고, 전도 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전도하 는 자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만들 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전도하시는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는 믿음 - 봉사, 충성 1시간→2시간→ 3∼4 시간 / 기쁨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 나님의 각양 은혜(恩惠)를 맡은 선 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 전 4:10) 은사를 받은 대로, 은혜를 받은 대 로, 하나님 앞에 사랑과 축복을 받 은 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청지기’라 는 말 많이 들으셨지요? ‘청지기’ 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코노모 스’인데, 그 뜻은 ‘가정 관리자, 가정의 살림을 맡은 종’을 말합니 다. 청지기는 가정 살림을 맡은 종 입니다. 주인이 바쁘고 할 일이 많 으니까 집안 살림을 다 맡아 하는 종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재산 을 관리하도록 위임된 사람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사를 맡기셨습니다.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맡기셨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것에 종으로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종은 자기의 소유가 없습니다. 다 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잘 만 하면 주인이 상도, 보상도 허락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직 분도 주시고 은사도 주십니다.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 휼을 베푸는 은사를 직분을 위해 주 셨고, 또한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 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를 주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도 주시 고 이 모든 은사도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 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집사, 장로, 권사, 구역장, 조장 이것 도 다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직분입 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청지기 직분입니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청 지기 직분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 직분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판사, 검사도 다 청지기입니다. 회사 사장 들도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늘과 땅을 다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하였고, 이 모든 직분도 하나님께 서 우리 인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인생을 깨달아야, 겸 손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은총 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 28장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은 총과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께서 달란트 비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이 나옵니 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 란트 맡은 종이 있었습니다. 한 달 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감췄 다가 가져 와서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네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 달란트를 만들어 가지고 주인에 게 왔을 때 주인이 칭찬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 “…잘 하였 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 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 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이 주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도 땅도 세상 만물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 고, 창조된 모든 것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되겠습 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에도 “… 죽도록 충성(忠誠)하라 그리하면 내 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고 했습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어떻 게 충성해야 합니까? 목숨 걸고 충 성하는 겁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 이 충성입니다. 놀아 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눈치봐 가 면서, 한눈 팔면서 하는 것은 충성 이 아닙니다. 죽도록, 목숨 걸어 놓 고 충성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봉 사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봉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집니 다. 보람과 기쁨이 있는 사람은 누 굽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 과 기쁨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시간 을 늘려야 합니다. 1분 봉사하는 사 람은 10분 봉사하고, 10분 봉사·충 성하는 사람은 100분 봉사하고, 봉 사하는 시간을 늘리고 봉사하는 질 을 높여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합니 다. 장로, 권사, 집사, 조장, 구역장, 선 교회, 성가대, 교회학교, 예배만 보 고 훌쩍 가는 것은 진정한 봉사·충 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초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도 봉 사하게 하옵소서. 충성하게 하옵소 서. 왔다 갔다하는 그런 교인 되지 말게 하시고. 무언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봉사하게 하여 주시옵소 서.’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채문경 교수라 는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 부터 교회에 나가서 풍금으 로 반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님, 훌륭한 반주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피아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하기 시작하여 중학교, 고등학 교 때까지 반주하면서 계속해서 하 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반 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 옵소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 교회 반주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피아 노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피아 노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성가대 반 주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독일 베를린 음대 성 악과 교수가 내한했다가 반주자가 필요해서 누가 반주를 잘 하는지 수 소문했는데, 이 채문경 학생이 반주 자로 채택이 됐습니다. 반주를 하고 나니까 그 독일 대학 교수가 유학을 제안했습니다. “반주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독 일로 유학 가고 싶으냐?” “네, 가고 싶어요.”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다. 독 일로 유학 가서 오르간을 공부했습 니다. 세종문화회관에 초대 오르간 연주자로 초빙 받아서 상임 연주자 가 되었습니다. 국제 초청 오르간 연주를 하였고, 국제 콩쿠르 심사 위원이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가 되 고 그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 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풍금, 피아노 만 지면서 ‘하나님, 이 반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반주, 반주, 반 주’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국가의 행사에도, 또 국제적인 콩쿠르에도 관여하게 하시고, 대학 교수가 되기 까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 다.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봉사를 할 것인가?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할 것인가? 비록 적은 일이 라 할지라도 충성하면 큰 것 주시 고, 큰 것까지 충성하면 더 큰 것으 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 니다.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믿음에 ‘0’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설교 제목에 은혜가 됩니 까? 믿음이 생깁니까? 올 한해 그 렇게 살아 보시겠습니까? 가난과 저 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이제 는 적은 믿음으로 겨우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큰 믿음을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왕 가지고 나오려면 큰 것, 큰 그 릇을 가지고 나와야 하늘에서 떨어 지는 비도 많이 담지, 매일 손바닥 만 가지고 나오니 뭐 담길게 있습니 까? 손바닥 내밀어 봐야 비가 요리 떨어지고 조리 떨어지고 남는 게 없 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받으 려면 그릇이 커야 되는 것처럼 믿음 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못을 파면 연 못이 철렁거리고, 댐을 파면 댐이 철렁거립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 해 역사하시는데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마시고 믿음 있는 여러분이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0’을 더하는 믿음을 가져 야 합니다. 여러분, 부자 되고 물질 축복 받으십시오. 기도해서 응답 받 으시기 바랍니다. 전도 많이 해서 많은 사람 앞에 존경과 칭찬을 받으 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앞에 봉 사·충성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 정에서만 봉사 충성하는 것이 아니 라 학교에서도, 동창회에서도, 사회 에서도, 또한 교회에서도 봉사·충 성 많이 할 때, 충성하는 것만큼 하 나님께서 은총과 축복을 더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약학과를 졸업하고 종로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데 이 사람은 약국을 운영하면서 피 부에 관한 약, 피부가 좋아지는 약 만 만들었습니다. 조제를 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그것을 바르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광고를 해서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피부 좋아지는 약을 조제하는 약사 라고 소문이 나 여기 저기서 사람들 이 몰려와 돈을 많이 버니까 돈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는 도봉산 기 슭에다 절을 하나 지었습니다. 신도 회 회장도 맡고, 승복을 입고 돌아 다녔습니다. ‘이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전국적으로 절을 다 지어야 지.’하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 약이 많이 팔리자 전국적인 조직 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국에 있 는 약사들이 와서 피부 좋아지는 약 을 사겠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데 이렇게 이름이 나고, 소문이 나 고, 유명해 지니까 이 사실이 당국 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무허가 제약 으로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려서 그는 그만 범죄인이 되었습니다. 단속법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망을 쳤습니다. 전국 절을 돌아다 니다가 그는 결국 양산의 통도사라 는 절에 숨었습니다. 무허가 약을 조제해서 허가도 받지 않고 돈벌이 를 했기 때문에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붙잡히기 싫어서 냄새 나 는 쾨쾨한 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데 마침 방 한쪽 구석에 오래된 낡 은 신문이 있었습니다. 그 신문을 딱 펼쳐 보니까 6개월 전 에 자기가 무허가 조제로 범죄 한 사건 기사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 진과 기사를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에, 그 돈 벌어서 내가 썼나? 다 절간 만들었지. 부처도 무심하지. 나같은 사람을 왜 이렇게 만드는 가?’ 부처에 대해서 원망과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숨 을 푹 쉽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절간 가서 부처한테 원망하면서 하 나님을 찾았습니다. 자기도 깜짝 놀 라면서 ‘내 입에서 하나님이 나오 다니…. 하나님을 부르려면 하나님 앞에 가야지 내가 왜 절간에 와있는 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당장 그 절에서 나왔습니다. ‘자수하고 나서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다. 내가 이렇게 한평생 절을 많이 짓고 돈을 많이 갖다 바쳤는데 부처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인생 을 결국 비참하게 만들었어.’ 그는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그 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위 해서 살겠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하 나님, 이제는 합법적인 좋은 일을 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하고 기 도하다가 그는 ‘차라리 화장품 회 사를 만들자. 약도 좋지만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기도하면서 성경 보면서 열심히 해 서 ‘참존’이라는 화장품을 만들었 는데, 화장품이 어찌나 잘 팔리는지 화장품계에 신화를 만들게 되었습니 다. 성경 말씀 보고, 새벽 기도 하 고, 십일조 드리고, 전도하고, 충성 하고 그래서 화장품 회사가 얼마나 커진지 모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신기하게 매번 두 배로 경제적 축복 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충성하십시 오. 하나님 말씀대로 사십시오. 하나 님께서 당신을 축복해 주십니다.” 또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자 가 되고 싶으면 하나님 앞에 적금을 들라. 이 세상에다 저금하지 말고 하늘 나라 은행에다 저금하라. 그러 면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채워준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전 도합니다.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 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축복 받고 은혜 받고 구원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데, 믿음은 바로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 가지고 한평생 살겠습니까, 아 니면 큰 그릇 갖고 하나님 앞에 크 게 축복 받고 크게 영광 돌리겠습니 까? 오늘 참석한 여러분, 다 큰 믿 음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김성광 목사 2014-12-30 15:28:02 read : 13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 교 개 요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2. 본문 배경 설명(막 4:24∼25)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김성광 목사 2014-12-30 15:28:02 read : 139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설 교 개 요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2. 본문 배경 설명(막 4:24∼25)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음 - 기도 1분→10분→100분 / 응 답(마 7:7∼8)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고후 9:6∼7)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 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0명 / 건강(딤후 4:2)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 는 믿음 - 봉사, 충성 1시간→2시간 →3∼4시간 / 기쁨(벧전 4:10)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 가 되자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오늘은 마가복음 4장 24∼25절의 말 씀으로 “‘0’을 더하는 믿음의 축 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 니다. 제목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 이 루어집니다. 축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의 근원은 바로 ‘믿 음’입니다. 믿음은 작은 믿음도 있 고, 큰 믿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믿음을 통해서 크게 역사해 주시 는 것입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어떤 가 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열 심히 나와서 예배도 잘 드리고, 또 한 새벽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도 뭔가 좀 하게 하옵소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거지처럼 살지 말고, 나도 정착해서 보람된, 안정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하다가 마 음속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 지. 나도 뭔가 해야 돼!’ 그래서 콩나물을 도매로 싸게 받아 서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콩나물 장 사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물 건을 받아와서 콩나물 장사를 했는 데 조금씩, 조금씩 돈이 모여서 몇 년이 되자 조그만 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 가게를 얻어서 열심히 장사하니까 나중에는 두부 공장까지 차리게 됐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두부 공장을 차려서 사장이 됐으니 이제는 인생이 살맛 나고 신 났습니다. 그런데 두부 공장을 운영하니까 얼 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콩나물 장사 할 때는 시간이 남아서 예배에 참석 하고, 새벽 기도까지 나갔는데, 이제 는 두부 공장 사장이 되니까 바빠서 새벽 기도도 못 나옵니다. 수요일도 못 가고, 금요일도 못 가고, 겨우겨 우 주일만 한번씩 교회에 가는 신앙 이 됐습니다. 그는 사업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두부 공장, 두부 공장, 돈을 벌어야 돼. 사업해야 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기꾼에게 걸리고, 운 영이 잘 안 되자 사업에만 정신이 빼앗겨서 결국 신앙도 잃어버리고, 두부 공장도 부도로 날라 가고, 장 만했던 집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 는 알거지가 됐습니다. 또 다시 거 지가 됐습니다. 그는 자기 과거를 생각했습니다. ‘아! 그때 새벽 기도 다니면서 콩 나물 장사할 때가 행복했구나. 나는 이것저것 다 잃어버렸구나.’ 여러분,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 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돈, 돈 하면서 돈 따라 갔다가 돈도 잃어버리고, 신앙도 잃어버리고, 인 생도 헛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 습니까? 우리가 돈 버는 것도 좋고, 출세하는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우선적으로 이 모든 것은 믿음에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바탕이 있어야 물질도, 돈도, 명예도, 세상의 좋은 조건도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산 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자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자산 중에서 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믿음’입 니다. 믿음이 크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창조적인 일도 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믿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서,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 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 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 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막 4:24∼25)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마가복음 4장 2 4∼25절에는 예수께서 그릇의 비유 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헤아린다’는 것은 ‘그릇’을 말 합니다. 큰 그릇에는 크게, 많이 담 을 수 있지만 작은 그릇으로는 적게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그릇 으로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 릇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나 사랑 이나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크기의 믿음의 그릇 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큰 사람은 크게 역사하지만 작은 사람은 작게 역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 씀을 들어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아멘’이 많습니다. 믿음 이 작은 사람은 ‘아멘’도 적습니 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 데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됩니까? 오 늘 봉독한 말씀의 제목처럼 ‘0’을 하나 더 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 다. 믿음이 1이라면 1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2라면 2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3이라면 거기다 ‘0’ 을 붙여서 30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 니다. ‘0’을 덧붙여서 10배의 믿 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따 른 축복도, 은총도 베풀어주시는 것 입니다. 좋은 일은 많이 해야 되고, 나쁜 일 은 안 해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 의 공부하는 시간, 사업하는 사람의 사업에 대한 열정, 신앙을 가진 사 람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 이것은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 는 것, 또한 전도하는 것, 충성·봉 사하는 것, 여기에도 큰 믿음이 필 요합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저는 넷으 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라. 둘째,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예물 드리는 믿음에 ‘0’을 하나 더 더 하라. 셋째, 전도할 때 전도하는 사 람 숫자에 ‘0’을 하나 더 더하라. 넷째, 봉사와 충성에도 ‘0’을 더 더하라. ‘0’을 더할 것이냐, ‘0’을 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 까? ‘0’을 더하는 사람에게는 축 복도 더해지지만, ‘0’을 빼는 사 람에게는 축복도, 은총도 빠지게 되 어 있습니다.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 음 - 기도 1분→10분→100분 / 응답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 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 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 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기도는 조건적입니다.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찾게 되 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문이 열리는 것도 아닙니다. 구하는 사람, 찾는 사람, 문을 두드리는 그 사람 에게 찾아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 고, 얻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 말씀에 “너 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 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 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 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 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조건적으로, 구하는 자에게 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끈기 있게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로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한밤 중에 주님 앞에 철야하면서 기도합 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응답 주실 때까지, 문제 가 해결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나와 서 기도하는 사람의 그 기도를 통해 서 응답하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사무엘상 1장 말씀을 보면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 럽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장 12절 말씀을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 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 답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도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도 시간에 따라 다릅니 다. 잠깐 기도하는 것하고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 그 기도의 차이는 다 릅니다.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기 도의 정성,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 면 많이 할수록 삶의 질과 삶의 양 이 달라지게 됩니다. 1분 기도하는 사람과 10분 기도하는 사람, 3분 기 도하는 사람과 30분 기도하는 사람, 5분 기도하는 사람과 50분 기도하는 사람, 6분 기도하는 사람과 60분 기 도하는 사람은 삶의 질과 양이 다릅 니다. 과거에는 기도 시간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관심했더라도 이제 이 말씀 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기도 시간의 연관성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서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에 몇 시 간, 몇 분을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 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지시기 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 람과는 뭔가 다릅니다. 기도하면 하 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능력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 50:15). 기도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진리 가운데 삽니다 (시 119:18). 생활의 변화가 나타납 니다(시 121:1∼2; 34:4). 기도를 통 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 다(사 40:31).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 에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요 16:24; 빌 4:6∼7). 기도하는 사람은 순종을 잘합니다(행 4:29). 기도를 하면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가 있고 (엡 6:12; 벧전 5:8), 기도하는 사람 은 그 기도를 통해서 기적이 나타납 니다(약 5:16; 행 12:5∼10; 16:25).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얼른 봐도 알 수 있습 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걱정과 근심과 불안, 두려움, 공포에 사로잡 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벌써 자신감이 넘치고, 그 얼굴에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언니 되는 사람이 갑자기 동생으로 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 오후에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심각 한 수술을 받게 됐는데 살아날 가능 성은 10%도 아니고, 1%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이 기 때문에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 었습니다. 이 언니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가슴 이 철렁했습니다. ‘아! 이제 동생 이 세상을 떠나는가 보다. 동생을 잃는가 보다.’ 그는 그 전화를 받 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하나 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0 분을 기도했습니다. 60분을 기도했 습니다. 2시간, 3시간, 3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 님, 내 동생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 옵소서. 내 동생을 살게 해 주시옵 소서.’ 3시간 기도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 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기도는 확신 이 생길 때까지 하고, 기도는 응답 이 왔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합니다. 3시간 동안 기도하자 그는 마음에 평강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아, 내 동생이 떠나는구나. 내 동생이 결국 수술 받고 잘못 돼서 세상을 떠나는구나. 아니야, 내가 하나님 앞 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동생 을 살려줬을 꺼다.’하는 생각이 번 득 떠오르면서 ‘내 동생을 살려 주 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그 전화는 사망 전보가 아니라 여동 생의 상태가 호전되어서 언니를 만 나고 싶으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즉시로 3시간 동안 동생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2시 간, 3시간, 몇 시간씩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병들었을 때, 또 는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이웃 을 위해서,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 을 위해서, 교회와 기도원, 내가 속 한 모든 곳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는 응답 받을 때까지, 확신이 생길 때 까지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을 허락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시간에 ‘0’을 하나 더 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이제 ‘아멘’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겁니다. 그러나 ‘아멘’ 못하 는 사람은 둘째 단계로 넘어갑시다.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吝嗇)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하나님은 기쁘게, 자원해서, 감사함 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 습니다. 이 말씀은 A.D. 55년경 사 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고린도 교회 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고통과 고 난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기근과 핍박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게 “너희가 여유가 있으니까 예루 살렘 성도들을 좀 도와 주라. 그리 고 하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헌금 을 하고 구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 서 많이 주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 을 받고 성경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 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 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 다.”는 말은 목사님들이 만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말입니 다. 이 말씀에 대한 근거와 배경을 보 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 드리 고, 예물 드리는 것이 마치 농사 짓 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 다. 농부가 농사 지을 때 씨를 심는 것과 비유했습니다. 농부가 종자 씨를 심을 때 그것을 다 먹어 치우지 아니하고, 밭에 심 으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수 확을 얻습니다. 옥수수를 심고, 쌀을 심어서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종자 씨를 다 먹어 버리면 그 것으로 끝나지만, 자기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열심히, 많이 심으면 종 자 씨도 살아남을 것이요, 또한 그 다음에 심을 많은 씨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농사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물질적인 관계는 농사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농 부의 마음으로, 농부가 농사 짓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시편 126편 5절 말씀에 “눈물을 흘 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 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 릴 때는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울어가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는 기쁨으로 열매를 거둡니다. 울 일 있다고 해서, 눈물 흘린다고 해 서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하면 영원히 포기입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 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기쁨과 즐거움과 축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 다. 미국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크게 경 영하는 교포가 있었습니다. 대개 교 포들이 음식점, 식당 사업을 하면서 세금들을 제대로 내지 않습니다. 그 래서 미국 정부로부터 우리 한국 사 람들이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 면서도 나이 먹으면 정부 돈(social security)을 받습니다. 이런 불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 이 미국 비자 얻기가 참 힘듭니다. 이 사람도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해 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금을 정당 하게 내지 않고 조금 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돈을 버는 대로 전부 다 가게 벽에다가 금고를 만들어서 그 속에다 숨겼습니다. 돈을 벌면 저녁에 벽 속에 감추고, 감추고 한 것이 한 3년이 지났습니 다. 이제 3년쯤 지나서 ‘아, 이제는 몇 십만 달러쯤 됐겠구나.’하고 그 가 돈을 계산하려고 그 벽을 뜯었더 니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습니 다. 전부 종이 조각, 조각, 조각, 전 부 조각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 다. 나중 알고 보니 음식 장사가 음식 하면서 돈을 만지니까 그 돈에 음식 냄새가 배어서 쥐들이 전부 갉아먹 고 수십만 달러가 전부 먼지 조각, 조각이 된 것입니다. 세금도 내지 않고, 은행 같다 주면 적발되니까 은행도 갖다 주지 않고, 숨겨 둔 돈,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이 먼 지가 되고 조각, 조각이 나버렸습니 다. 오늘날도 어리석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6장 19∼20절 말 씀을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해 보시 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 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 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 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 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 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 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들은 은행에 놓아 두 든, 적금을 들든 여러분이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쌓았든지간에 도둑질 당합니다. 이 사람이 가져가고, 저 사람이 가져가고, 가족, 형제, 친척 들이 가져가고, 사업해서 망하고, 돈 꿔 주었다 망하고, 이리저리 다 없 어집니다. 이 세상에다 쌓지 말고 하늘 나라에다가 재물을 쌓으십시 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쓸 것을 넘 치게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 돈과 물질은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쌓아 놓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써야 됩 니다. 들어올 때는 들어오고 나갈 때는 나가야 되는데, 욕심과 탐욕으 로 말세에 돈을 세상에 쌓아 놓은 사람들은 교만해집니다. 불신앙에 빠집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어갑니 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들어온 것 만큼 다 없어집니다. 재물이 독수리 의 날개 치며 나는 것 같이 날아갈 것입니다(잠 23:5). 재벌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회사 사 장, 회장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이 세상의 돈은 왔다 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여러분, 돈에 너무 미련 갖지 마시 고 하나님 앞에 물질로 영광 돌리시 기 바랍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에 장로님 한분이 계시는데, 이 장로님은 조그마한 개 인 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장로님은 개 인 병원의 의사였지만 자기 병원보 다 교회를 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화가 없다고 하 면 자기 병원에 있는 전화기를 떼어 주고, 선풍기가 없다고 하면 교회에 선풍기를 달아 주었습니다. 하여튼 교회에서 뭐가 조금만 필요하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교회를 위해 서 아주 충성하는 그런 장로님이었 습니다. 얼마 후 병원이 잘 돼서 이제 그 병 원을 확장하려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더 크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장로님은 ‘하나님의 집이 먼저지, 병원이 먼 저냐?’하며 주저하지 않고 병원을 확장하려던 돈을 교회에 건축 헌금 으로 드렸습니다. 그러고도 기뻤습 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그 부산 온 지역에 장티푸스, 전염 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장티푸스, 전염병이 도니까 사람들이 전부 병 원에 왔습니다. 너무너무 환자들이 많아서 옆에 있는 학교 강당을 빌려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들을 다 수용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돈이 쌓이고 물질이 쌓였습니다. 이 장로님은 엄 청난 돈을 저축하게 되어, 이제는 병원을 확장하려던 계획을 아예 취 소하고 종합 병원을 지었습니다. 크 게 종합 병원을 지어서 그 종합 병 원 원장이 됐습니다. 조그만 개인 병원 원장에서 종합 병원 원장이 되 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더 풍족 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 적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부자 는 사람의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큰 부자는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 심을 통해서, 은총 베풀어 주심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을 생각할 때, 땅 을 파서 우물을 만들어 퍼내는 것과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는 것은 근 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축복 은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 록 넘치게 부어 주시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말 3:10). 성도 여러 분, 오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시 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 ‘0’ 을 뺄 것인가, ‘0’을 더할 것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0만 원 드릴 사람이 100만 원 드리고, 20만 원 드릴 사람이 200만 원 드리고, 하나 님 앞에 물질을 더 드려서 하늘 나 라 은행에 적금하고,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10%, 20%, 30% 이자가 아니라 30배, 60배, 100 배로 채워주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풍족하게 하시고, 사업을 크게 번창 시키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물질 축 복의 영광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중에서 크게 재물의 축복을 받는 분이 많이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0명 / 건강 “너는 말씀을 전파(傳播)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 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 責)하며 경계(警戒)하며 권(勸)하 라”(딤후 4:2)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아니하 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전도하지 못 한 것이 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전도를 해야 됩니다. 본문에서 전도 에 대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전파 하라’입니다. 이 ‘전파하라’는 본래 헬라어 성경에 ‘케륏손,’ ‘공포를 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 님 말씀을 공포를 하라.’는 명령적 인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보지 말고 항상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고, 잘못 믿 는 사람을 올바로 믿게 하는 그 전 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 다. 1명 전도하던 사람에게 ‘0’이 붙 으면 10명 전도하고, 1명을 가르치 던 사람이 10명을 가르치고, 10명을 가르치던 사람이 100명을 가르치고, 5명을 전도할 사람이 50명을 전도하 고, 50명 가르칠 사람 500명 가르치 고, 전도의 숫자에도 ‘0’을 하나 더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도할 때 도와주시고 역사하십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말씀에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福 音)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 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 (禍)가 있을 것임이로라.”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 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다. 화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개 보면은 전도하지 않아서 화 당 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몸이 늘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병 원에 가보면 특별한 병명도 아니고, 병원 가서 낫지도 않습니다. 왜 그 렇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 니다. 전도하지 않아서 건강을 잃어 버리고, 지위를 잃어버리고, 전도하 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빼앗기고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 니까? 전도를 해야 전도하지 않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 말씀에도 “주 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康健) 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傳 道)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 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 강을 주신 것은 전도하게 하기 위해 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하 나님께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십니 다. 육체를 건강하게 하십니다. 정신 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시험과 올무 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기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왜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족 이 없습니다. 보람도 없습니다. 의미 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는 멸망치 않 습니다. 저는 풍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를 뿌려야 거두는 재미도 있지, 심는 것도 없고 거두는 것도 없고 매일 남 뿌리고 거두는 것만 구경하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여 러분, 전도에 구경꾼이 되지 마시고, 전도하는, 씨뿌리는, 전도의 일꾼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도 보면 전도 열심히 하는 교회 가 크게 부흥합니다. 회사도 전도하 는 회사가 크게 부흥하고 발전합니 다. 전도하지 않으면 타락합니다. 전 도하지 않으면 게을러집니다. 전도 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전도하 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허 우적거립니다. 동대문에서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교회는 왔 다 갔다 하나 별로 남에 대한 관심 도 없고 전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재미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30년 동안 돈을 벌어서, 젊은 나이 에 시작했으나 이제는 머리가 허예 지고 60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출근하는데 어떤 젊 은 여자가 “예수님 믿으세요.”하 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 전도하 는 사람을 만나자 그는 마음에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나는 돈만 벌려고 한평생,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백발이 되도록 ‘돈, 돈’하고 살았는데, 저 젊은이는 전 도를 하다니…. 전도를 하는 구나. 나한테 전도를 했어.’ 그러면서 그는 자기 인생을 생각했 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 을 왜 이렇게 계속해서 벌고 또 버 는 건가? 내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 가?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 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 벌고 써야지 쓰지도 못할 돈 자꾸 쌓아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들, 딸한테 물 려준다고 해서 고마워하는 것이 아 니라,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방탕하 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죄악에 빠 지게 됩니다. 그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합니까? 이웃 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얼마든지 쓸 곳이 많은데, 오늘날은 돈 벌어서 자꾸 쌓아 두는 것만이, 그것만이 좋은 줄 알고 있 습니다. 그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제는 좋은 일 좀 해야지. 삶에 대한 보람을 느껴야 해.” 그렇게 생각한 후부터 그는 물건을 팔면서 물건 속에다 전도지를 한 장 씩, 한 장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 합니다. “이제는 전도가 삶의 목적이고, 장 사는 부업입니다.” 그 전에는 돈버는 것이 전문이고 교 회 나가는 것이 부업이었는데, 그가 인생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 고 나서는 이제 전도하는 것이 목적 이고 장사하는 것은 부업이라는 고 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사람은 삶에 의미 가 있습니다.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고 삶의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고 돈, 돈, 돈 하면서 세 상 쾌락, 세상 죄악, 세상으로 흘러 가는 사람은 결국 그 세상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지 못하고,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하 나님께서는 전도하는 사람에게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님이 교회에 10년 동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목사 님이 전도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가책을 느꼈습니 다. ‘그렇지, 내가 교회 나오는 것이 좋고 하나님 믿는 것이 좋다면, 왜 좋은 것을 나 혼자만 믿는가? 진정 으로 내게 도움이 되고 좋으면 남에 게도 권해야지. 음식 먹고 맛있으면 그 음식 먹어보라고 하고, 내가 좋 은 건 좋다고, 다른 것은 다 말하면 서 왜 교회 나오는 것, 예수 믿는 것, 하나님 믿는 것은 왜 남에게 전 하지 못하는가? 나도 전도해야 되겠 다.’ 그래서 교회 나온 지 10년 만에 그 는 전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 는 사무실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 를 합니다. ‘하나님, 나도 이제는 전도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사 무실에 먼저 들어오는 사람에게 전 도하겠습니다.’하고 기도하고 결정 을 했는데, 마침 직원이 결재 서류 를 가지고 “똑똑” 노크를 하고 들 어왔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리 오게. 잠깐 할말이 있네.” “자네 교회 다니나?” 직원이 깜짝 놀랐습니다. “사장님, 웬일로 교회 다니냐고 물 어보십니까? 결재해 주십시오.” “아니야, 결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네. 내가 10년 동안 교회 다니고 예수 믿어도 한번도 자네에게 전도 를 하지 않았지? 내가 이제부터 자 네에게 전도를 해야 겠어. 교회 나 가세.” 그랬더니 이 직원이 “사장님 고맙 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10년 동안 교회 나가는 것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좋아서 나가는지 나 빠서 나가는지 그걸 몰랐습니다. 그 리고 ‘그렇게 좋은데 가면 나보고 한번도 같이 가자는 소리를 안 하는 가? 아마 사장님은 나같은 사람은 상대도 안 하는가봐. 아마 교회는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나 봐.’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사장님 이 나보고 교회 가자고 그러니까 같 이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장님과 꼭 같이 가겠습 니다.”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여러분, 의외로 전도하고자 하면 쉽 게 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좀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부인이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데, 부모 가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 데, 전도하지 않으니까 옆에서 구경 만 하고 방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 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족 중에서, 또는 형제, 이웃, 친척, 친구 중에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 님 말씀을 증거 할 때, 전도하는 자 에게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전 도하는 자에게 물질을 주시고, 전도 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전도하 는 자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만들 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전도하시는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는 믿음 - 봉사, 충성 1시간→2시간→ 3∼4 시간 / 기쁨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 나님의 각양 은혜(恩惠)를 맡은 선 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 전 4:10) 은사를 받은 대로, 은혜를 받은 대 로, 하나님 앞에 사랑과 축복을 받 은 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청지기’라 는 말 많이 들으셨지요? ‘청지기’ 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코노모 스’인데, 그 뜻은 ‘가정 관리자, 가정의 살림을 맡은 종’을 말합니 다. 청지기는 가정 살림을 맡은 종 입니다. 주인이 바쁘고 할 일이 많 으니까 집안 살림을 다 맡아 하는 종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재산 을 관리하도록 위임된 사람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사를 맡기셨습니다.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맡기셨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것에 종으로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종은 자기의 소유가 없습니다. 다 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잘 만 하면 주인이 상도, 보상도 허락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직 분도 주시고 은사도 주십니다.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 휼을 베푸는 은사를 직분을 위해 주 셨고, 또한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 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를 주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도 주시 고 이 모든 은사도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 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집사, 장로, 권사, 구역장, 조장 이것 도 다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직분입 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청지기 직분입니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청 지기 직분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 직분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판사, 검사도 다 청지기입니다. 회사 사장 들도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늘과 땅을 다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하였고, 이 모든 직분도 하나님께 서 우리 인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인생을 깨달아야, 겸 손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은총 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 28장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은 총과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께서 달란트 비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이 나옵니 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 란트 맡은 종이 있었습니다. 한 달 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감췄 다가 가져 와서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네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 달란트를 만들어 가지고 주인에 게 왔을 때 주인이 칭찬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 “…잘 하였 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 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 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이 주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도 땅도 세상 만물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 고, 창조된 모든 것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되겠습 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에도 “… 죽도록 충성(忠誠)하라 그리하면 내 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고 했습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어떻 게 충성해야 합니까? 목숨 걸고 충 성하는 겁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 이 충성입니다. 놀아 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눈치봐 가 면서, 한눈 팔면서 하는 것은 충성 이 아닙니다. 죽도록, 목숨 걸어 놓 고 충성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봉 사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봉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집니 다. 보람과 기쁨이 있는 사람은 누 굽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 과 기쁨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시간 을 늘려야 합니다. 1분 봉사하는 사 람은 10분 봉사하고, 10분 봉사·충 성하는 사람은 100분 봉사하고, 봉 사하는 시간을 늘리고 봉사하는 질 을 높여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합니 다. 장로, 권사, 집사, 조장, 구역장, 선 교회, 성가대, 교회학교, 예배만 보 고 훌쩍 가는 것은 진정한 봉사·충 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초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도 봉 사하게 하옵소서. 충성하게 하옵소 서. 왔다 갔다하는 그런 교인 되지 말게 하시고. 무언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봉사하게 하여 주시옵소 서.’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채문경 교수라 는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 부터 교회에 나가서 풍금으 로 반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님, 훌륭한 반주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피아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하기 시작하여 중학교, 고등학 교 때까지 반주하면서 계속해서 하 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반 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 옵소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 교회 반주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피아 노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피아 노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성가대 반 주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독일 베를린 음대 성 악과 교수가 내한했다가 반주자가 필요해서 누가 반주를 잘 하는지 수 소문했는데, 이 채문경 학생이 반주 자로 채택이 됐습니다. 반주를 하고 나니까 그 독일 대학 교수가 유학을 제안했습니다. “반주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독 일로 유학 가고 싶으냐?” “네, 가고 싶어요.”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다. 독 일로 유학 가서 오르간을 공부했습 니다. 세종문화회관에 초대 오르간 연주자로 초빙 받아서 상임 연주자 가 되었습니다. 국제 초청 오르간 연주를 하였고, 국제 콩쿠르 심사 위원이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가 되 고 그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 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풍금, 피아노 만 지면서 ‘하나님, 이 반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반주, 반주, 반 주’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국가의 행사에도, 또 국제적인 콩쿠르에도 관여하게 하시고, 대학 교수가 되기 까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 다.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봉사를 할 것인가?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할 것인가? 비록 적은 일이 라 할지라도 충성하면 큰 것 주시 고, 큰 것까지 충성하면 더 큰 것으 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 니다.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믿음에 ‘0’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설교 제목에 은혜가 됩니 까? 믿음이 생깁니까? 올 한해 그 렇게 살아 보시겠습니까? 가난과 저 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이제 는 적은 믿음으로 겨우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큰 믿음을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왕 가지고 나오려면 큰 것, 큰 그 릇을 가지고 나와야 하늘에서 떨어 지는 비도 많이 담지, 매일 손바닥 만 가지고 나오니 뭐 담길게 있습니 까? 손바닥 내밀어 봐야 비가 요리 떨어지고 조리 떨어지고 남는 게 없 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받으 려면 그릇이 커야 되는 것처럼 믿음 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못을 파면 연 못이 철렁거리고, 댐을 파면 댐이 철렁거립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 해 역사하시는데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마시고 믿음 있는 여러분이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0’을 더하는 믿음을 가져 야 합니다. 여러분, 부자 되고 물질 축복 받으십시오. 기도해서 응답 받 으시기 바랍니다. 전도 많이 해서 많은 사람 앞에 존경과 칭찬을 받으 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앞에 봉 사·충성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 정에서만 봉사 충성하는 것이 아니 라 학교에서도, 동창회에서도, 사회 에서도, 또한 교회에서도 봉사·충 성 많이 할 때, 충성하는 것만큼 하 나님께서 은총과 축복을 더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약학과를 졸업하고 종로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데 이 사람은 약국을 운영하면서 피 부에 관한 약, 피부가 좋아지는 약 만 만들었습니다. 조제를 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그것을 바르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광고를 해서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피부 좋아지는 약을 조제하는 약사 라고 소문이 나 여기 저기서 사람들 이 몰려와 돈을 많이 버니까 돈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는 도봉산 기 슭에다 절을 하나 지었습니다. 신도 회 회장도 맡고, 승복을 입고 돌아 다녔습니다. ‘이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전국적으로 절을 다 지어야 지.’하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 약이 많이 팔리자 전국적인 조직 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국에 있 는 약사들이 와서 피부 좋아지는 약 을 사겠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데 이렇게 이름이 나고, 소문이 나 고, 유명해 지니까 이 사실이 당국 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무허가 제약 으로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려서 그는 그만 범죄인이 되었습니다. 단속법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망을 쳤습니다. 전국 절을 돌아다 니다가 그는 결국 양산의 통도사라 는 절에 숨었습니다. 무허가 약을 조제해서 허가도 받지 않고 돈벌이 를 했기 때문에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붙잡히기 싫어서 냄새 나 는 쾨쾨한 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데 마침 방 한쪽 구석에 오래된 낡 은 신문이 있었습니다. 그 신문을 딱 펼쳐 보니까 6개월 전 에 자기가 무허가 조제로 범죄 한 사건 기사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 진과 기사를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에, 그 돈 벌어서 내가 썼나? 다 절간 만들었지. 부처도 무심하지. 나같은 사람을 왜 이렇게 만드는 가?’ 부처에 대해서 원망과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숨 을 푹 쉽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절간 가서 부처한테 원망하면서 하 나님을 찾았습니다. 자기도 깜짝 놀 라면서 ‘내 입에서 하나님이 나오 다니…. 하나님을 부르려면 하나님 앞에 가야지 내가 왜 절간에 와있는 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당장 그 절에서 나왔습니다. ‘자수하고 나서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다. 내가 이렇게 한평생 절을 많이 짓고 돈을 많이 갖다 바쳤는데 부처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인생 을 결국 비참하게 만들었어.’ 그는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그 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위 해서 살겠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하 나님, 이제는 합법적인 좋은 일을 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하고 기 도하다가 그는 ‘차라리 화장품 회 사를 만들자. 약도 좋지만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기도하면서 성경 보면서 열심히 해 서 ‘참존’이라는 화장품을 만들었 는데, 화장품이 어찌나 잘 팔리는지 화장품계에 신화를 만들게 되었습니 다. 성경 말씀 보고, 새벽 기도 하 고, 십일조 드리고, 전도하고, 충성 하고 그래서 화장품 회사가 얼마나 커진지 모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신기하게 매번 두 배로 경제적 축복 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충성하십시 오. 하나님 말씀대로 사십시오. 하나 님께서 당신을 축복해 주십니다.” 또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자 가 되고 싶으면 하나님 앞에 적금을 들라. 이 세상에다 저금하지 말고 하늘 나라 은행에다 저금하라. 그러 면 하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채워준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전 도합니다.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 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축복 받고 은혜 받고 구원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데, 믿음은 바로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 가지고 한평생 살겠습니까, 아 니면 큰 그릇 갖고 하나님 앞에 크 게 축복 받고 크게 영광 돌리겠습니 까? 오늘 참석한 여러분, 다 큰 믿 음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김성광 목사/ 2009-02-23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 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 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 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가복음 4장 24∼25절) 설 교 개 요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2. 본문 배경 설명(막 4:24∼25)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음 - 기도 1분→10분→100분 / 응 답(마 7:7∼8)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고후 9:6∼7)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 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0명 / 건강(딤후 4:2)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 는 믿음 - 봉사, 충성 1시간→2시간 →3∼4시간 / 기쁨(벧전 4:10) C. ‘0’을 더 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 가 되자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오늘은 마가복음 4장 24∼25절의 말 씀으로 “‘0’을 더하는 믿음의 축 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 니다. 제목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 이 루 어집니다. 축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의 근원은 바로 ‘믿 음’입니다. 믿음은 작은 믿음도 있 고, 큰 믿 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믿음을 통해서 크게 역사해 주시 는 것입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어떤 가 난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열 심히 나와서 예배도 잘 드리고, 또 한 새벽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앞 에 ‘하나님, 나도 뭔가 좀 하게 하옵소서.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면서 거지처럼 살지 말고, 나도 정착해서 보람된, 안정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하다가 마 음속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 지. 나도 뭔가 해야 돼!’ 그래서 콩나물을 도매로 싸게 받아 서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콩나물 장 사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물 건을 받 아와서 콩나물 장사를 했는 데 조금씩, 조금씩 돈이 모여서 몇 년이 되자 조그만 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 가게를 얻어서 열심히 장사하니까 나중에는 두부 공장까지 차리게 됐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두부 공장을 차려서 사장이 됐으니 이제는 인생이 살맛 나고 신 났습니다. 그런데 두부 공장을 운영하니까 얼 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콩 나물 장사 할 때는 시간이 남아서 예배에 참석 하고, 새벽 기도까지 나갔는데, 이제 는 두부 공장 사장이 되니까 바 빠서 새벽 기도도 못 나옵니다. 수요일도 못 가고, 금요일도 못 가고, 겨우겨 우 주일만 한번씩 교회에 가는 신앙 이 됐습니다. 그는 사업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두부 공장, 두부 공장, 돈을 벌어야 돼. 사업해야 돼.’하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기꾼에게 걸리고, 운 영이 잘 안 되자 사업에만 정신이 빼앗겨서 결국 신앙도 잃어버리고, 두부 공장도 부도로 날라 가고, 장 만했던 집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 는 알거 지가 됐습니다. 또 다시 거 지가 됐습니다. 그는 자기 과거를 생각했습니다. ‘아! 그때 새벽 기도 다니면서 콩 나 물 장사할 때가 행복했구나. 나는 이것저것 다 잃어버렸구나.’ 여러분,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돈보다 더 중요 한 것은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 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돈, 돈 하면서 돈 따라 갔다가 돈도 잃어버리고, 신앙도 잃어버리고, 인 생도 헛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 습니까? 우리가 돈 버는 것도 좋고, 출세하는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우선적으로 이 모든 것은 믿음에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바탕이 있어야 물질도, 돈도, 명예도, 세상의 좋은 조건도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에게 큰 자산 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자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자산 중 에서 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믿음’입 니다. 믿음이 크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일을 할 수밖 에 없습니다.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창조적인 일도 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믿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서,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 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 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 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 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막 4:24∼25)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마가복음 4장 2 4∼25절에 는 예수께서 그릇의 비유 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헤아린다’는 것은 ‘그릇’ 을 말 합니다. 큰 그릇에는 크게, 많이 담 을 수 있지만 작은 그릇으로는 적게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그릇 으로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 릇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나 사랑 이나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은 어 떤 크기의 믿음의 그릇 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큰 사람은 크게 역사하지만 작은 사람은 작게 역사할 수밖에 없습니 다. 하나님 말 씀을 들어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아멘’이 많습니다. 믿음 이 작은 사람은 ‘아멘’도 적습니 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 데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됩니까? 오 늘 봉독한 말씀의 제목처럼 ‘0’ 을 하나 더 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 다. 믿음이 1이라면 1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2라면 2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3이라면 거기다 ‘0’ 을 붙여서 30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 니다. ‘0’을 덧붙여서 10배의 믿 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따 른 축복도, 은총도 베풀어주시는 것 입니다. 좋은 일은 많이 해야 되고, 나쁜 일 은 안 해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 의 공부하는 시간, 사업하는 사람의 사업에 대한 열정, 신앙을 가진 사 람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 이것은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 하나님 앞에 예물 드 리 는 것, 또한 전도하는 것, 충성·봉 사하는 것, 여기에도 큰 믿음이 필 요합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저는 넷으 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라. 둘째,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예물 드 리는 믿음에 ‘0’을 하나 더 더 하라. 셋째, 전도할 때 전도하는 사 람 숫자에 ‘0’을 하나 더 더하라. 넷째, 봉 사와 충성에도 ‘0’을 더 더하라. ‘0’을 더할 것이냐, ‘0’을 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 까? ‘0’을 더하는 사람에게는 축 복도 더해지지만, ‘0’을 빼는 사 람에게는 축복도, 은 총도 빠지게 되 어 있습니다.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 음 - 기도 1분→10분→100분 / 응답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 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 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 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기도는 조건적입니다.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찾게 되 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문이 열리는 것도 아닙니다. 구하는 사람, 찾는 사람, 문을 두드리는 그 사람 에게 찾아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 고, 얻어지기도 하 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 말씀에 “너 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 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 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 버지 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 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조건적으로, 구하는 자에게 만 하나님께 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끈기 있게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 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로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한밤 중에 주님 앞에 철야하면서 기도합 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응답 주실 때까지, 문제 가 해결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나와 서 기도하는 사람의 그 기도를 통해 서 응답하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사무엘상 1장 말씀을 보면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 럽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장 12절 말씀을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 는 동안에’ 하나 님께서 그에게 응 답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도 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 에 응답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도 시간에 따라 다릅니 다. 잠깐 기도하는 것하고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 그 기도의 차이는 다 릅니다.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기 도의 정성,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 도를 많이 하 면 많이 할수록 삶의 질과 삶의 양 이 달라지게 됩니다. 1분 기도하는 사람과 10분 기도하는 사람, 3 분 기 도하는 사람과 30분 기도하는 사람, 5분 기도하는 사람과 50분 기도하는 사람, 6분 기도하는 사람과 60분 기 도하는 사람은 삶의 질과 양이 다릅 니다. 과거에는 기도 시간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관심했더라도 이제 이 말씀 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기도 시간의 연관성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서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에 몇 시 간, 몇 분을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 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지시기 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 람과는 뭔가 다릅니다. 기도하면 하 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능력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시 50:15). 기도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진리 가운데 삽니다 (시 119:18). 생활의 변화 가 나타납 니다(시 121:1∼2; 34:4). 기도를 통 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 다(사 40:31).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 에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요 16:24; 빌 4:6∼7). 기도하는 사람은 순종을 잘합니다(행 4:29). 기도를 하면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가 있고 (엡 6:12; 벧전 5:8), 기도하는 사람 은 그 기도를 통해서 기적이 나타납 니다(약 5:16; 행 12:5∼10; 16:25).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얼른 봐도 알 수 있습 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걱정과 근심과 불안, 두려움, 공포에 사로잡 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벌써 자신감이 넘치고, 그 얼 굴에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언니 되는 사람이 갑자기 동생으로 부터 전 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 오후에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심각 한 수술을 받게 됐는데 살아날 가능 성은 10%도 아니고, 1%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이 기 때문에 수술을 한다 는 소식을 들 었습니다. 이 언니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가슴 이 철렁했습니다. ‘아! 이제 동생 이 세상을 떠나는가 보다. 동생을 잃는가 보다.’ 그는 그 전화를 받 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하나 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 다. 30 분을 기도했습니다. 60분을 기도했 습니다. 2시간, 3시간, 3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 님, 내 동생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 옵소서. 내 동생을 살게 해 주시옵 소서.’ 3시간 기도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 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기도는 확신 이 생길 때까지 하고, 기도는 응답 이 왔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합니다. 3시간 동안 기도하자 그는 마음에 평강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전화가 왔습 니다. 그는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아, 내 동생이 떠나는구나. 내 동생이 결국 수술 받고 잘못 돼서 세상을 떠나 는구나. 아니야, 내가 하나님 앞 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동생 을 살려줬을 꺼다.’하는 생각이 번 득 떠오르 면서 ‘내 동생을 살려 주 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그 전화는 사망 전보가 아니라 여동 생의 상태가 호 전되어서 언니를 만 나고 싶으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즉시로 3시간 동안 동생을 위해서 기도했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2시 간, 3시간, 몇 시간씩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병들었을 때, 또 는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이웃 을 위해서, 더 나아가 나 라와 민족 을 위해서, 교회와 기도원, 내가 속 한 모든 곳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는 응답 받을 때까지, 확신이 생길 때 까지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을 허락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시간에 ‘0’을 하나 더 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이제 ‘아멘’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 광을 돌릴 겁니다. 그러나 ‘아멘’ 못하 는 사람은 둘째 단계로 넘어갑시다.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吝嗇)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하나님은 기쁘게, 자원해서, 감사함 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 습니다. 이 말씀은 A.D. 55년경 사 도 바울 이 빌립보에서 고린도 교회 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고통과 고 난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기근과 핍박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 게 “너희가 여유가 있으니까 예루 살 렘 성도들을 좀 도와 주라. 그리 고 하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헌금 을 하고 구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 서 많이 주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 을 받고 성경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 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 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 다.”는 말은 목사님들이 만 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말입니 다. 이 말씀에 대한 근거와 배경을 보 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 드 리 고, 예물 드리는 것이 마치 농사 짓 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 다. 농부가 농사 지을 때 씨를 심는 것 과 비유했습니다. 농부가 종자 씨를 심을 때 그것을 다 먹어 치우지 아니하고, 밭에 심 으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수 확을 얻습니다. 옥수수를 심고, 쌀을 심어서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종자 씨를 다 먹어 버리면 그 것으로 끝나지만, 자기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열심히, 많이 심으면 종 자 씨도 살아남을 것이요, 또한 그 다음 에 심을 많은 씨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농사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하나 님과 우리의 물질적인 관계는 농사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농 부의 마음으로, 농부가 농사 짓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시편 126편 5절 말씀에 “눈물을 흘 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 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 릴 때는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울어가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는 기쁨 으로 열매를 거둡니다. 울 일 있다고 해서, 눈물 흘린다고 해 서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하면 영원히 포기입니다. 그러 나 눈물을 흘리면 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기쁨과 즐거움과 축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 다. 미국 시카고에서 음식 점을 크게 경 영하는 교포가 있었습니다. 대개 교 포들이 음식점, 식당 사업을 하면서 세금들을 제대로 내지 않습니 다. 그 래서 미국 정부로부터 우리 한국 사 람들이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 면서도 나이 먹으면 정부 돈(social security)을 받습니다. 이런 불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 이 미국 비자 얻기가 참 힘듭니다. 이 사람 도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해 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금을 정당 하게 내지 않고 조금 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돈을 버는 대로 전부 다 가게 벽에다가 금고를 만들어서 그 속에다 숨겼습니다. 돈을 벌면 저녁에 벽 속에 감추고, 감추고 한 것이 한 3년이 지났습니 다. 이제 3년쯤 지나서 ‘아, 이제는 몇 십만 달러쯤 됐겠구나.’하고 그 가 돈을 계산하 려고 그 벽을 뜯었더 니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습니 다. 전부 종이 조각, 조각, 조각, 전 부 조각이었습니다. 깜 짝 놀랐습니 다. 나중 알고 보니 음식 장사가 음식 하면서 돈을 만지니까 그 돈에 음식 냄새가 배어서 쥐들이 전부 갉아먹 고 수십만 달러가 전부 먼지 조각, 조각이 된 것입니다. 세금도 내지 않고, 은행 같다 주면 적발되니까 은행 도 갖다 주지 않고, 숨겨 둔 돈,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이 먼 지가 되고 조각, 조각이 나버렸습니 다. 오늘날도 어리석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6장 19∼20절 말 씀을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해 보시 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 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 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 멍을 뚫고 도적질하느 니라 오직 너 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 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 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 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들은 은행에 놓아 두 든, 적금을 들든 여러분이 어떠한 방 법으로 돈을 쌓았든지간에 도둑질 당합니다. 이 사람이 가져가고, 저 사람이 가져가고, 가족, 형제, 친척 들이 가져가 고, 사업해서 망하고, 돈 꿔 주었다 망하고, 이리저리 다 없 어집니다. 이 세상에다 쌓지 말고 하늘 나라에다가 재물 을 쌓으십시 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쓸 것을 넘 치게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 돈과 물질은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쌓아 놓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써야 됩 니다. 들어올 때는 들어오고 나갈 때는 나가야 되는데, 욕 심과 탐욕으 로 말세에 돈을 세상에 쌓아 놓은 사람들은 교만해집니다. 불신앙에 빠집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어갑니 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들어온 것 만큼 다 없어집니다. 재물이 독수리 의 날개 치며 나는 것 같이 날아갈 것입니다 (잠 23:5). 재벌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회사 사 장, 회장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이 세상의 돈은 왔다 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여러분, 돈에 너무 미련 갖지 마시 고 하나님 앞에 물질로 영광 돌리시 기 바랍 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에 장로님 한분이 계시는데, 이 장로님은 조그마한 개 인 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대 에 있었던 일입니다. 장로님은 개 인 병원의 의사였지만 자기 병원보 다 교회를 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화가 없다고 하 면 자기 병원에 있는 전화기를 떼어 주고, 선풍기가 없다고 하면 교회에 선풍기를 달아 주었습니 다. 하여튼 교회에서 뭐가 조금만 필요하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교회를 위해 서 아주 충성하는 그런 장로님이었 습니다. 얼마 후 병원이 잘 돼서 이제 그 병 원을 확장하려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더 크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장로님은 ‘하나님의 집이 먼저지, 병원이 먼 저냐?’하며 주저하지 않고 병원을 확장하려던 돈을 교회에 건축 헌금 으로 드렸습니다. 그러고도 기뻤습 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그 부산 온 지 역에 장티푸스, 전염 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장티푸스, 전염병이 도니까 사람들이 전부 병 원에 왔습니다. 너무너무 환자들이 많아서 옆에 있는 학교 강당을 빌려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들을 다 수용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돈이 쌓이고 물질이 쌓였습니다. 이 장로님은 엄 청난 돈을 저축하게 되어, 이제는 병원을 확장하려던 계획을 아예 취 소하고 종합 병원을 지었습니다. 크 게 종합 병원을 지어서 그 종합 병 원 원장이 됐습니다. 조그만 개인 병원 원 장에서 종합 병원 원장이 되 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더 풍족 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 적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 입니다. 작은 부자 는 사람의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큰 부자는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 심을 통해서, 은총 베풀어 주심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을 생각할 때, 땅 을 파서 우물을 만들어 퍼내는 것과 하늘에서 소 나기가 내리는 것은 근 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축복 은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 록 넘치게 부어 주시 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말 3:10). 성도 여러 분, 오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 으시 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 ‘0’ 을 뺄 것 인가, ‘0’을 더할 것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0만 원 드릴 사람이 100만 원 드리고, 20만 원 드릴 사람이 200만 원 드리고, 하나 님 앞에 물질을 더 드려서 하늘 나 라 은행에 적금하고,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10%, 20%, 30% 이자가 아니라 30배, 60배, 100 배로 채워주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풍족하게 하시고, 사업을 크게 번창 시 키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물질 축 복의 영광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중에서 크게 재물의 축복을 받 는 분이 많이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0명 / 건강 “너는 말씀을 전파(傳播)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 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 責)하 며 경계(警戒)하며 권(勸)하 라”(딤후 4:2)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아니하 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전도하지 못 한 것이 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전도를 해야 됩니다. 본문에서 전도 에 대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전파 하라’입니다. 이 ‘전파하라’는 본래 헬라어 성 경에 ‘케륏손,’ ‘공포를 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 님 말씀을 공포를 하라.’는 명령적 인 단어로 쓰여져 있습 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보지 말고 항상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 합 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고, 잘못 믿 는 사람을 올바로 믿게 하는 그 전 도의 사명 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 다. 1명 전도하던 사람에게 ‘0’이 붙 으면 10명 전도하고, 1명을 가르치 던 사람이 10명 을 가르치고, 10명을 가르치던 사람이 100명을 가르치고, 5명을 전도할 사람이 50명을 전도하 고, 50명 가르칠 사람 500명 가르치 고, 전도의 숫자에도 ‘0’을 하나 더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 도할 때 도와주시고 역사하십 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말씀에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福 音)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 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 (禍)가 있을 것임이로라.”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 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 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다. 화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개 보면은 전도하지 않 아서 화 당 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몸이 늘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병 원에 가보면 특별한 병명도 아니 고, 병원 가서 낫지도 않습니다. 왜 그 렇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 니다. 전도하지 않아서 건강을 잃어 버리 고, 지위를 잃어버리고, 전도하 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빼앗기고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 니까? 전도를 해야 전도하지 않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 말씀에도 “주 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 건(康健) 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傳 道)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 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 강을 주신 것은 전도하게 하기 위해 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하 나님께 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십니 다. 육체를 건강하게 하십니다. 정신 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시험과 올무 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기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왜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족 이 없습니다. 보람도 없습니다. 의미 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는 멸망치 않 습니다. 저는 풍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를 뿌려야 거두는 재미도 있지, 심는 것도 없고 거두는 것도 없고 매일 남 뿌리고 거두는 것만 구경하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여 러분, 전도에 구경꾼이 되지 마 시고, 전도하는, 씨뿌리는, 전도의 일꾼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도 보면 전도 열심히 하는 교회 가 크게 부흥합니다. 회사도 전도하 는 회사가 크게 부흥하고 발전합니 다. 전도하지 않으면 타락합니다. 전 도하지 않으면 게을러집니다. 전도 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전도하 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허 우적거립니다. 동대문에서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교회는 왔 다 갔다 하나 별로 남에 대한 관심 도 없고 전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재미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30년 동안 돈을 벌어서, 젊은 나이 에 시작했으나 이제 는 머리가 허예 지고 60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출근하는데 어떤 젊 은 여자가 “예수님 믿으세요.”하 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 전도하 는 사람을 만나자 그는 마음에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나는 돈만 벌려고 한평 생,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백발이 되도록 ‘돈, 돈’하고 살았는데, 저 젊은이는 전 도를 하다니…. 전도를 하는 구나. 나한테 전도를 했어.’ 그러면서 그는 자기 인생을 생각했 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쓰지도 못하 고 죽을 돈 을 왜 이렇게 계속해서 벌고 또 버 는 건가? 내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 가?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 니 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 벌고 써야지 쓰지도 못할 돈 자꾸 쌓아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들, 딸한테 물 려준다고 해서 고마워하는 것이 아 니라,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방탕하 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죄악에 빠 지게 됩니 다. 그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합니까? 이웃 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얼마든지 쓸 곳이 많은데, 오늘날은 돈 벌어서 자꾸 쌓아 두는 것만이, 그것만이 좋은 줄 알고 있 습니다. 그는 그때 생각했습니 다. “나도 이제는 좋은 일 좀 해야지. 삶에 대한 보람을 느껴야 해.” 그렇게 생각한 후부터 그는 물건을 팔면서 물 건 속에다 전도지를 한 장 씩, 한 장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 합니다. “이제는 전도가 삶의 목적이고, 장 사는 부 업입니다.” 그 전에는 돈버는 것이 전문이고 교 회 나가는 것이 부업이었는데, 그가 인생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 를 받 고 나서는 이제 전도하는 것이 목적 이고 장사하는 것은 부업이라는 고 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 하는 사람은 삶에 의미 가 있습니다.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고 삶의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고 돈, 돈, 돈 하면서 세 상 쾌락, 세상 죄악, 세상으로 흘러 가는 사람은 결국 그 세상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지 못하고,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 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하 나님께서 는 전도하는 사람에게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님이 교회에 10년 동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번 은 목사 님이 전도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가책을 느꼈습니 다. ‘그렇지, 내가 교회 나오는 것이 좋고 하나님 믿는 것이 좋다면, 왜 좋은 것을 나 혼자만 믿는가? 진정 으로 내게 도움이 되고 좋으면 남에 게도 권해야지. 음식 먹고 맛있으면 그 음식 먹어보라고 하고, 내가 좋 은 건 좋다고, 다른 것은 다 말하면 서 왜 교회 나오는 것, 예수 믿는 것, 하나님 믿는 것은 왜 남에게 전 하지 못하는가? 나도 전도해야 되겠 다.’ 그래서 교회 나온 지 10년 만에 그 는 전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 는 사무실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 도 를 합니다. ‘하나님, 나도 이제는 전도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사 무실에 먼저 들어오는 사람에게 전 도하겠 습니다.’하고 기도하고 결정 을 했는데, 마침 직원이 결재 서류 를 가지고 “똑똑” 노크를 하고 들 어왔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리 오게. 잠깐 할말이 있네.” “자네 교회 다니나?” 직원이 깜짝 놀랐습니다. “사 장님, 웬일로 교회 다니냐고 물 어보십니까? 결재해 주십시오.” “아니야, 결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네. 내가 10년 동안 교회 다니고 예수 믿어도 한번도 자네에게 전도 를 하지 않았지? 내가 이제부터 자 네에게 전도를 해야 겠어. 교회 나 가세.” 그랬더니 이 직원이 “사장님 고맙 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10년 동안 교회 나가는 것 알고 있었습니 다. 그런데 교회를 좋아서 나가는지 나 빠서 나가는지 그걸 몰랐습니다. 그 리고 ‘그렇게 좋은데 가면 나보고 한번 도 같이 가자는 소리를 안 하는 가? 아마 사장님은 나같은 사람은 상대도 안 하는가봐. 아마 교회는 나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나 봐.’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사장님 이 나보고 교회 가자고 그러니까 같 이 가겠습니다. 고맙습니 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장님과 꼭 같이 가겠습 니다.”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여러분, 의외로 전도하고자 하면 쉽 게 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좀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부인이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데, 부모 가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 데, 전도하지 않으니까 옆에서 구경 만 하고 방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 은지 모릅니다. 우리 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족 중에서, 또는 형제, 이웃, 친척, 친구 중에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 님 말씀을 증거 할 때, 전도하는 자 에게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전 도하는 자에게 물질을 주시고, 전도 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전도하 는 자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만들 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전도하 시는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는 믿음 - 봉사, 충성 1시간→2시간→ 3∼4 시간 / 기쁨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 나님의 각양 은혜(恩惠)를 맡은 선 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 전 4:10) 은사를 받은 대로, 은혜를 받은 대 로, 하나님 앞에 사랑과 축복을 받 은 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 고 했습 니다. 여러분, ‘청지기’라 는 말 많이 들으셨지요? ‘청지기’ 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코노모 스’인데, 그 뜻 은 ‘가정 관리자, 가정의 살림을 맡은 종’을 말합니 다. 청지기는 가정 살림을 맡은 종 입니다. 주인이 바쁘고 할 일이 많 으니까 집안 살림을 다 맡아 하는 종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재산 을 관리하 도록 위임된 사람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셨습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사를 맡기셨습니다. 하 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맡기셨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 기신 그 것에 종으로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종은 자기의 소유가 없습니다. 다 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잘 만 하면 주인이 상도, 보상도 허락 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직 분도 주시고 은사도 주십니다.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 휼을 베푸는 은사를 직분을 위해 주 셨 고, 또한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 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를 주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도 주시 고 이 모든 은사도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가지고 하나 님 앞에 충성해 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집사, 장로, 권사, 구역장, 조장 이것 도 다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직분입 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청지기 직분입니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청 지기 직분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 직분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판사, 검사도 다 청지기입니다. 회사 사장 들도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늘과 땅을 다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하였고, 이 모든 직분도 하 나님께 서 우리 인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인생을 깨달아야, 겸 손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은총 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 28장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 나님 앞에 충성 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은 총과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께서 달 란트 비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이 나옵니 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 란트 맡은 종이 있었습니다. 한 달 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감췄 다가 가져 와서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두 달란 트 받은 사람이 네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 달란트를 만들어 가지고 주인에 게 왔을 때 주인이 칭찬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 “…잘 하였 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 으 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 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인간 이 주 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도 땅도 세상 만물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 고, 창조된 모든 것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되겠습 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에도 “… 죽도록 충성(忠誠) 하라 그리하면 내 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고 했습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어떻 게 충성해야 합니까? 목 숨 걸고 충 성하는 겁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 이 충성입니다. 놀아 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눈치 봐 가 면서, 한눈 팔면서 하는 것은 충성 이 아닙니다. 죽도록, 목숨 걸어 놓 고 충성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 떤 사람입니까? 봉 사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봉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집니 다. 보람과 기쁨이 있는 사 람은 누 굽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 과 기쁨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시간 을 늘 려야 합니다. 1분 봉사하는 사 람은 10분 봉사하고, 10분 봉사·충 성하는 사람은 100분 봉사하고, 봉 사하는 시간을 늘리고 봉사하는 질 을 높여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합니 다. 장로, 권사, 집사, 조장, 구역장, 선 교회, 성가대, 교회학 교, 예배만 보 고 훌쩍 가는 것은 진정한 봉사·충 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초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도 봉 사하게 하옵소서. 충성하게 하옵소 서. 왔다 갔다하는 그런 교인 되지 말게 하시고. 무언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봉사하게 하여 주시옵소 서.’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채문경 교수라 는 분이 간 증을 했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 부터 교회에 나가서 풍금으 로 반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님, 훌륭한 반주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피아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 에서 반주하기 시작하여 중학교, 고등학 교 때까지 반주하면서 계속해서 하 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반 주 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 옵소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 교회 반주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피아 노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피아 노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성가대 반 주를 열심 히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독일 베를린 음대 성 악과 교수가 내한했다가 반주자가 필요해서 누가 반주를 잘 하는 지 수 소문했는데, 이 채문경 학생이 반주 자로 채택이 됐습니다. 반주를 하고 나니까 그 독일 대학 교수가 유학을 제안했습니다. “반주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독 일로 유학 가고 싶으냐?” “네, 가고 싶어요.” 그래서 독일로 유 학을 갔습니다. 독 일로 유학 가서 오르간을 공부했습 니다. 세종문화회관에 초대 오르간 연주자로 초빙 받아서 상임 연주자 가 되었습니다. 국제 초청 오르간 연주를 하였고, 국제 콩쿠르 심사 위원이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가 되 고 그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 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풍금, 피아노 만 지면서 ‘하나님, 이 반주를 통해서 하나 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반주, 반주, 반 주’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국가의 행사에도, 또 국 제적인 콩쿠르에도 관여하게 하시고, 대학 교수가 되기 까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 다.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봉사를 할 것인가?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할 것인가? 비록 적은 일이 라 할지라도 충성하면 큰 것 주시 고, 큰 것까지 충성하면 더 큰 것으 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 니다.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 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는 성도가 되자 믿음에 ‘0’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설교 제목에 은혜 가 됩니 까? 믿음이 생깁니까? 올 한해 그 렇게 살아 보시겠습니까? 가난과 저 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이제 는 적은 믿음으로 겨우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큰 믿음을 가 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왕 가지고 나오려면 큰 것, 큰 그 릇을 가지고 나와야 하늘에서 떨어 지는 비도 많이 담 지, 매일 손바닥 만 가지고 나오니 뭐 담길게 있습니 까? 손바닥 내밀어 봐야 비가 요리 떨어지고 조리 떨어지고 남 는 게 없 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받으 려면 그릇이 커야 되는 것처럼 믿음 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못을 파면 연 못이 철렁거리고, 댐을 파면 댐이 철렁거립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 해 역사하시는데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마 시고 믿음 있는 여러분이 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0’을 더하는 믿음을 가져 야 합니다. 여 러분, 부자 되고 물질 축복 받으십시오. 기도해서 응답 받 으시기 바랍니다. 전도 많이 해서 많은 사람 앞에 존경과 칭찬을 받으 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앞에 봉 사·충성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 정에서만 봉사 충성하는 것이 아니 라 학교에서도, 동창회에서도, 사회 에서도, 또한 교회에서도 봉사·충 성 많이 할 때, 충성하는 것만큼 하 나 님께서 은총과 축복을 더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약학과를 졸업하고 종로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약사가 있었습니다. 그런 데 이 사람은 약국을 운영하면서 피 부에 관한 약, 피부가 좋아지는 약 만 만들었습니다. 조제를 했습니다. 자 기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그것을 바르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광고를 해서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피부 좋아지는 약을 조제하는 약사 라고 소문이 나 여기 저기서 사람들 이 몰려와 돈을 많이 버니까 돈을 주체할 수 없어서, 그는 도봉 산 기 슭에다 절을 하나 지었습니다. 신도 회 회장도 맡고, 승복을 입고 돌아 다녔습니다. ‘이제 내가 돈을 많이 벌어서 전국적으로 절을 다 지어야 지.’하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 약이 많이 팔리자 전국적인 조직 망을 가지게 되 었습니다. 전국에 있 는 약사들이 와서 피부 좋아지는 약 을 사겠다고 몰려들었습니다. 그런 데 이렇게 이름이 나 고, 소문이 나 고, 유명해 지니까 이 사실이 당국 에도 알려지게 되었고, 무허가 제약 으로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려 서 그는 그만 범죄인이 되었습니다. 단속법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망을 쳤습니다. 전국 절을 돌아다 니다가 그는 결국 양산의 통도사라 는 절에 숨었습니다. 무허가 약을 조제해서 허가도 받지 않고 돈벌이 를 했기 때문에 도 망자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붙잡히기 싫어서 냄새 나 는 쾨쾨한 방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데 마침 방 한쪽 구석에 오래된 낡 은 신문이 있었습니다. 그 신문을 딱 펼쳐 보니까 6개월 전 에 자기가 무허가 조제로 범죄 한 사건 기사 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 진과 기사를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세상에, 그 돈 벌어서 내가 썼나? 다 절간 만들었 지. 부처도 무심하지. 나같은 사람을 왜 이렇게 만드는 가?’ 부처에 대해서 원망과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러면서 한숨 을 푹 쉽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절간 가서 부처한테 원망하면서 하 나님을 찾았습니 다. 자기도 깜짝 놀 라면서 ‘내 입에서 하나님이 나오 다니…. 하나님을 부르려면 하나님 앞에 가야지 내가 왜 절 간에 와있는 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당장 그 절에서 나왔습니다. ‘자수하고 나서 하나님을 믿어야 되 겠다. 내가 이렇게 한평생 절을 많이 짓고 돈을 많이 갖다 바쳤는데 부처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어. 인생 을 결국 비 참하게 만들었어.’ 그는 경찰서에 가서 자수를 했습니다. 그 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내 가 하나님을 위 해서 살겠습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하 나님, 이 제는 합법적인 좋은 일을 하게 만들어 주시옵소서.’하고 기 도하다가 그는 ‘차라리 화장품 회 사를 만들자. 약도 좋지만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기도하면서 성경 보면서 열심히 해 서 ‘참존’이라는 화 장품을 만들었 는데, 화장품이 어찌나 잘 팔리는지 화장품계에 신화를 만들게 되었습니 다. 성경 말씀 보고, 새벽 기도 하 고, 십일조 드리고, 전도하고, 충성 하고 그래서 화장품 회사가 얼마나 커진지 모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신기하게 매번 두 배로 경제적 축복 이 쏟아졌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충 성하십시 오. 하나님 말씀대로 사십시오. 하나 님께서 당신을 축복해 주십니다.” 또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 자 가 되고 싶으면 하나님 앞에 적금을 들라. 이 세상에다 저금하지 말고 하늘 나라 은행에다 저금하라. 그러 면 하 나님께서 30배 60배 100배로 채워준다.’고 말하고 다니면서 전 도합니다.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 의 간증입니 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축복 받고 은혜 받고 구원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데, 믿음은 바로 그릇입니다. 작은 그릇 가지고 한평생 살겠습니까, 아 니면 큰 그릇 갖고 하나님 앞에 크 게 축복 받고 크게 영광 돌리겠습니까? 오늘 참석한 여러분, 다 큰 믿음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김성광 목사(서울 강남교회)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김성광 목사/ 2009-02-23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설 교 개 요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2. 본문 배경 설명(막 4:24∼25)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음 -기도 1분→10분, 10분→100분 / 응답(마 7:7∼8)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 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고후 9:6∼7)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명 →100명 / 건강(딤후 4:2)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는 믿음 - 봉사, 충성 3분→30분, 5분→50분, 10분→100분/ 기쁨(벧전 4:10)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오늘은 마가복음 4장 24∼25절의 말씀으로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제목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축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의 근원은 바로 ‘믿음’입니 다. 믿음은 작은 믿음도 있고, 큰 믿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믿음을 통해서 크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어떤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예배도 잘 드리고, 또한 새벽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도 뭔가 좀 하게 하옵소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거지처럼 살지 말고, 나도 정착해서 보람된, 안정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하다가 마음속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지. 나도 뭔가 해야 돼!’ 그래서 콩나물을 도매로 싸게 받아서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콩나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받 아와서 콩나물 장사를 했는데 조금씩, 조금씩 돈이 모여서 몇 년이 되자 조그만 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 가게를 얻어서 열심히 장사하니까 나중에는 두부 공장까지 차리게 됐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두부 공장을 차려서 사장이 됐으니 이제는 인생이 살맛 나고 신났습니다. 그런데 두부 공장을 운영하니까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콩나물 장사할 때는 시간이 남아서 예배에 참석하고, 새 벽 기도까지 나갔는데, 이제는 두부 공장 사장이 되니까 바빠서 새벽 기도도 못 나옵니다. 수요일도 못 가고, 금요 일도 못 가고, 겨우겨우 주일만 한번씩 교회에 가는 신앙이 됐습니다. 그는 사업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두부 공 장, 두부 공장, 돈을 벌어야 돼. 사업해야 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기꾼에게 걸리고, 운영이 잘 안 되자 사업에만 정신이 빼앗겨서 결국 신앙도 잃어버리고, 두부 공장도 부도로 날라 가고, 장만했던 집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는 알거지가 됐습니 다. 또 다시 거지가 됐습니다. 그는 자기 과거를 생각했습니다. ‘아! 그때 새벽 기도 다니면서 콩나물 장사할 때가 행복했구나. 나는 이것저것 다 잃어 버렸구나.’ 여러분,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축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돈, 돈 하면서 돈 따라 갔다가 돈도 잃어버리고, 신앙도 잃어버리고, 인생도 헛되게 사 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돈 버는 것도 좋고, 출세하는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우선적 으로 이 모든 것은 믿음에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바탕이 있어야 물질도, 돈도, 명예도, 세상의 좋은 조건도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산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자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 에 안 보이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크면 큰 일을 할 수 있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창조적인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믿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서,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막 4:24∼25)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마가복음 4장 24∼25절 에는 예수께서 그릇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헤아린다’는 것은 ‘그릇’을 말합니다. 큰 그릇에는 크게, 많이 담을 수 있 지만 작은 그릇으로는 적게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릇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나 사랑이나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크기의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큰 사람은 크게 역사하지만 작은 사람은 작게 역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아멘’이 많습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아멘’도 적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됩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의 제목처럼 ‘0’을 하나 더 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1이라면 1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2라면 2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3이 라면 거기다 ‘0’을 붙여서 30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0’을 덧붙여서 10배의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거 기에 따른 축복도, 은총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많이 해야 되고, 나쁜 일은 안 해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공부하는 시간, 사업하는 사람의 사업에 대한 열정, 신앙을 가진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 이것은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 입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것, 또한 전도하는 것, 충성, 봉사하는 것, 여기에도 큰 믿음 이 필요합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저는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라. 둘째, 하나 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예물 드리는 믿음에 ‘0’을 하나 더 더하라. 셋째, 전도할 때 전도하는 사람 숫자에 ‘0’ 을 하나 더 더하라. 넷째, 봉사와 충성에도 ‘0’을 더 더하라. ‘0’을 더할 것이냐, ‘0’을 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0’ 을 더하는 사람에게는 축복도 더해지지만, ‘0’을 빼는 사람에게는 축복도, 은총도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음 - 기도 1분→10분, 10분→100분 / 응답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기도는 조건적입니다.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찾게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문이 열리는 것 도 아닙니다. 구하는 사람, 찾는 사람, 문을 두드리는 그 사람에게 찾아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고, 얻어지기도 하 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 말씀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 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 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조건적으로, 구하는 자에게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끈기 있게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로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한밤중에 주님 앞 에 철야하면서 기도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응답 주실 때까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하나 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의 그 기도를 통해서 응답하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사무엘상 1장 말씀을 보면 한나 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장 12절 말씀을 보면 ‘그가 여 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 랫동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도 시간에 따라 다릅니다. 잠깐 기도하는 것하고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 그 기도의 차이는 다릅니다.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기도의 정성,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삶의 질과 삶의 양이 달라지게 됩니다. 1분 기도하는 사람과 10분 기도하는 사람, 3분 기도하는 사람과 30분 기도하 는 사람, 5분 기도하는 사람과 50분 기도하는 사람, 6분 기도하는 사람과 60분 기도하는 사람은 삶의 질과 양이 다 릅니다. 과거에는 기도 시간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관심했더라도 이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기도 시간의 연관성 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에 몇 시간, 몇 분을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뭔가 다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 다. 어떤 능력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시 50:15). 기도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진리 가운데 삽니다(시 119:18). 생활의 변화가 나타납니다(시 121:1∼2; 34:4).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사 40:31).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요 16:24; 빌 4:6∼7). 기도하는 사람은 순종을 잘합니다 (행 4:29). 기도를 하면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가 있고(엡 6:12; 벧전 5:8), 기도하는 사람은 그 기도를 통해서 기 적이 나타납니다(약 5:16; 행 12:5∼10; 16:25).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얼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걱정과 근심과 불안, 두려움, 공포에 사로잡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벌써 자신감이 넘치고, 그 얼굴에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 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언니 되는 사람이 갑자기 동생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 오후에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심각한 수술을 받게 됐는데 살아날 가능성은 10%도 아니고, 1%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러나 마지막 선택이기 때문에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언니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이제 동생이 세상을 떠나는가 보다. 동생을 잃는가 보 다.’ 그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0분을 기도했습니다. 60분을 기도했습니다. 2시간, 3시간, 3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동생의 생명을 구원해 주 시옵소서. 내 동생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3시간 기도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기도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하고, 기도는 응답이 왔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합니다. 3시간 동안 기도하자 그는 마음에 평강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 다. 그 다음날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아, 내 동생이 떠나는구나. 내 동생이 결국 수 술 받고 잘못 돼서 세상을 떠나는구나. 아니야,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동생을 살려줬을 꺼 다.’하는 생각이 번득 떠오르면서 ‘내 동생을 살려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그 전화는 사망 전보가 아니라 여동생의 상태가 호전되어서 언니를 만나고 싶으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즉시로 3시간 동안 동생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2시간, 3시간, 몇 시간씩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병들었을 때, 또는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교회와 기도원, 내가 속한 모든 곳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는 응답 받을 때까지, 확신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을 허락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시간에 ‘0’을 하나 더 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아멘’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겁니다. 그러나 ‘아멘’ 못하는 사람은 둘째 단계로 넘어갑시다.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 100만원→1000만원 / 풍성한 축복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할 것 이요 인색(吝嗇)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6∼7) 하나님은 기쁘게, 자원해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A.D. 55년경 사도 바울 이 빌립보에서 고린도 교회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고통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기근과 핍박으로 어려움을 당했습 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가 여유가 있으니까 예루살렘 성도들을 좀 도와 주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 쁜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구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다고 하는 내 용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성경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은 목사님들이 만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근거와 배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 드리고, 예물 드리는 것이 마치 농사 짓는 것과 마 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 지을 때 씨를 심는 것과 비유했습니다. 농부가 종자 씨를 심을 때 그것을 다 먹어 치우지 아니하고, 밭에 심으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수확을 얻 습니다. 옥수수를 심고, 쌀을 심어서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종자 씨를 다 먹어 버리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자기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열심히, 많이 심으면 종자 씨도 살아남을 것이요, 또한 그 다음에 심을 많은 씨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농사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물질적인 관계는 농사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농부의 마음으로, 농부가 농사 짓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야 합 니다. 시편 126편 5절 말씀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릴 때는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울어가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는 기쁨으로 열매를 거둡니다. 울 일 있다고 해서, 눈 물 흘린다고 해서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하면 영원히 포기입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기 쁨과 즐거움과 축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크게 경영하는 교포가 있었습니다. 대개 교포들이 음식점, 식당 사업을 하면서 세금들 을 제대로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로부터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이 먹 으면 정부 돈(social security)을 받습니다. 이런 불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미국 비자 얻기가 참 힘듭니다. 이 사람도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금을 정당하게 내지 않고 조금 내는 둥 마는 둥 하고 는, 돈을 버는 대로 전부 다 가게 벽에다가 금고를 만들어서 그 속에다 숨겼습니다. 돈을 벌면 저녁에 벽 속에 감추고, 감추고 한 것이 한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3년쯤 지나서 ‘아, 이제는 몇 십 만 달러쯤 됐겠구나.’하고 그가 돈을 계산하려고 그 벽을 뜯었더니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습니다. 전부 종이 조각, 조각, 조각, 전부 조각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 알고 보니 음식 장사가 음식하면서 돈을 만지니까 그 돈에 음식 냄새가 배어서 쥐들이 전부 갉아먹고 수십만 달러가 전부 먼지 조각, 조각이 된 것입니다. 세금도 내지 않고, 은행 갖다 주면 적발되니까 은행도 갖다 주지 않 고, 숨겨 둔 돈,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이 먼지가 되고 조각, 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오늘날도 어리석은 사람 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6장 19∼20절 말씀을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 니다. 이 세상의 재물들은 은행에 놓아 두든, 적금을 들든 여러분이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쌓았든지 간에 도둑질 당합니 다. 이 사람이 가져가고, 저 사람이 가져가고, 가족, 형제, 친척들이 가져가고, 사업해서 망하고, 돈 꿔 주었다 망 하고, 이리저리 다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다 쌓지 말고 하늘 나라에다가 재물을 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쓸 것을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 돈과 물질은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쌓아 놓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써야 됩니다. 들 어올 때는 들어오고 나갈 때는 나가야 되는데, 욕심과 탐욕으로 말세에 돈을 세상에 쌓아 놓은 사람들은 교만해집니 다. 불신앙에 빠집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어갑니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들어온 것만큼 다 없어집니다. 재물이 독수 리의 날개 치며 나는 것 같이 날아갈 것입니다(잠 23:5). 재벌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회사 사장, 회장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이 세상의 돈은 왔다 가고, 없어지고, 사라지 고,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여러분, 돈에 너무 미련 갖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물질로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계시는데, 이 장로님은 조그마한 개인 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장로님은 개인 병원의 의사였지만 자기 병원보다 교회를 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화가 없다고 하면 자기 병원에 있는 전화기를 떼어 주고, 선풍기가 없다고 하면 교회에 선풍기 를 달아 주었습니다. 하여튼 교회에서 뭐가 조금만 필요하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교회를 위해서 아주 충성하는 그런 장로님이었습니다. 얼마 후 병원이 잘 돼서 이제 그 병원을 확장하려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더 크게 건축을 하게 되었습 니다. 그러자 이 장로님은 ‘하나님의 집이 먼저지, 병원이 먼저냐?’하며 주저하지 않고 병원을 확장하려던 돈을 교회에 건축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러고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그 부산 온 지역에 장티푸스,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장티푸스, 전염병 이 도니까 사람들이 전부 병원에 왔습니다. 너무너무 환자들이 많아서 옆에 있는 학교 강당을 빌려 이 사람, 저 사 람, 사람들을 다 수용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돈이 쌓이고 물질이 쌓였습니다. 이 장로님은 엄청난 돈을 저축하게 되어, 이제는 병원을 확장하려던 계획을 아예 취소하고 종합 병원을 지었습니다. 크게 종합 병원을 지어서 그 종합 병원 원장이 됐습니 다. 조그만 개인 병원 원장에서 종합 병원 원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더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 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부자는 사람의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큰 부자는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심을 통해서, 은총 베풀어 주심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을 생각할 때,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어 퍼내는 것과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는 것은 근본적으 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부어 주시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말 3:10).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 ‘0’을 뺄 것인가, ‘0’을 더할 것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0만 원 드릴 사람이 100만 원 드리고, 20만 원 드릴 사람이 200만 원 드리고, 하나님 앞에 물질을 더 드려서 하늘 나라 은행에 적금하 고,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10%, 20%, 30% 이자가 아니라 30배, 60배, 100배로 채워주시고, 여러분 의 가정을 풍족하게 하시고, 사업을 크게 번창시키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물질 축복의 영광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 다. 앞으로 여러분 중에서 크게 재물의 축복을 받는 분이 많이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 →10명, 10명 →100명 / 건강 “너는 말씀을 전파(傳播)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責)하 며 경계(警戒)하며 권(勸)하라”(딤후 4:2)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전도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전도를 해야 됩니다. 본문에서 전도에 대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전파하라’입니다. 이 ‘전파하라’는 본래 헬라어 성경 에 ‘케륏손,’ ‘공포를 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말씀을 공포를 하라.’는 명령적인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보지 말고 항상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고, 잘못 믿는 사람을 올바로 믿게 하는 그 전도의 사명을 감당 해야 하는 것입니다. 1명 전도하던 사람에게 ‘0’이 붙으면 10명 전도하고, 1명을 가르치던 사람이 10명을 가르치고, 10명을 가르치던 사람이 100명을 가르치고, 5명을 전도할 사람이 50명을 전도하고, 50명 가르칠 사람 500명 가르치고, 전도의 숫자에 도 ‘0’을 하나 더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할 때 도와주시고 역사하십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말씀에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福音)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禍)가 있을 것임이로라.”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다. 화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개 보면은 전도하지 않아서 화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몸이 늘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 가 보면 특별한 병명도 아니고, 병원 가서 낫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전도하지 않 아서 건강을 잃어버리고, 지위를 잃어버리고, 전도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빼앗기고 떠난 사람이 얼마 나 많습니까? 전도를 해야 전도하지 않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 말씀에도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康健)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傳道)의 말 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신 것은 전 도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육체를 건강하게 하십니 다. 정신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시험과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기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왜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족이 없 습니다. 보람도 없습니다. 의미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는 멸망치 않습니다. 저는 풍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를 뿌려야 거두는 재미도 있지, 심는 것도 없고 거두는 것도 없고 매일 남 뿌리고 거두는 것만 구경하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여러분, 전도에 구 경꾼이 되지 마시고, 전도하는, 씨뿌리는, 전도의 일꾼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도 보면 전도 열심히 하는 교회가 크게 부흥합니다. 회사도 전도하는 회사가 크게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전도 하지 않으면 타락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게을러집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동대문에서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교회는 왔다 갔다 하나 별로 남에 대한 관심도 없고 전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재미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30년 동안 돈을 벌어서, 젊은 나이에 시작했으나 이제 는 머리가 허예지고 60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출근하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예수님 믿으세요.”하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 전도하는 사람을 만나자 그는 마음에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나는 돈만 벌려고 한평생,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백발이 되도록 ‘돈, 돈’하고 살았는데, 저 젊은이는 전도를 하다니…. 전도를 하는 구나. 나한테 전도를 했어.’ 그러면서 그는 자기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을 왜 이렇 게 계속해서 벌고 또 버는 건가? 내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 벌고 써야지 쓰지도 못할 돈 자꾸 쌓아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들, 딸한테 물려준 다고 해서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방탕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합니까?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얼마든지 쓸 곳이 많은데, 오늘날은 돈 벌어서 자꾸 쌓아 두는 것만이, 그것만이 좋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제는 좋은 일 좀 해야지. 삶에 대한 보람을 느껴야 해.” 그렇게 생각한 후부터 그는 물건을 팔면서 물건 속에다 전도지를 한 장씩, 한 장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 다. “이제는 전도가 삶의 목적이고, 장사는 부업입니다.” 그 전에는 돈버는 것이 전문이고 교회 나가는 것이 부업이었는데, 그가 인생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 서는 이제 전도하는 것이 목적이고 장사하는 것은 부업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사람은 삶에 의미가 있습니다.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고 삶의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고 돈, 돈, 돈 하면서 세상 쾌락, 세상 죄악, 세상으로 흘러가는 사람은 결국 그 세상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광 돌 리지 못하고,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전도하는 사람에게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님이 교회에 10년 동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목사님이 전도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내가 교회 나오는 것이 좋고 하나님 믿는 것이 좋다면, 왜 좋은 것을 나 혼자만 믿는가? 진정으로 내게 도움이 되고 좋으면 남에게도 권해야지. 음식 먹고 맛있으면 그 음식 먹어보라고 하고, 내가 좋은 건 좋다고, 다른 것은 다 말하면서 왜 교회 나오는 것, 예수 믿는 것, 하나님 믿는 것은 왜 남에게 전하지 못하는가? 나도 전도해야 되겠다.’ 그래서 교회 나온 지 10년 만에 그는 전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는 사무실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 를 합니다. ‘하나님, 나도 이제는 전도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사무실에 먼저 들어오는 사람에게 전도하겠습니 다.’하고 기도하고 결정을 했는데, 마침 직원이 결재 서류를 가지고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리 오게. 잠깐 할말이 있네.” “자네 교회 다니나?” 직원이 깜짝 놀랐습니다. “사장님, 웬일로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십니까? 결재해 주십시오.”“아니야, 결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네. 내가 10년 동안 교회 다니고 예수 믿어도 한번도 자네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지? 내가 이제부터 자네에게 전도를 해야 겠 어. 교회 나가세.” 그랬더니 이 직원이 “사장님 고맙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10년 동안 교회 나가는 것 알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좋아서 나가는지 나빠서 나가는지 그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데 가면 나보고 한 번도 같이 가자는 소리를 안 하는가? 아마 사장님은 나같은 사람은 상대도 안 하는가 봐. 아마 교회는 나같은 사람 을 필요로 하지 않나 봐.’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사장님이 나보고 교회 가자고 그러니까 같이 가겠습니다. 고맙습니 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장님과 꼭 같이 가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여러분, 의외로 전도하고자 하면 쉽게 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좀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부인이 좀 같이 가 자고 했으면 좋겠는데, 부모가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데, 전도하지 않으니까 옆에서 구경만 하고 방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족 중에서, 또는 형제, 이웃, 친척, 친구 중에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전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전도하는 자에게 물질을 주시고, 전도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전도하는 자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전도하시는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는 믿음 - 봉사, 충성 3분→30분, 5분→50분, 10분→100분 / 기쁨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恩惠)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은사를 받은 대로, 은혜를 받은 대로, 하나님 앞에 사랑과 축복을 받은 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고 했습니 다. 여러분, ‘청지기’라는 말 많이 들으셨지요? ‘청지기’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인데, 그 뜻은 ‘가정 관리자, 가정의 살림을 맡은 종’을 말합니다. 청지기는 가정 살림을 맡은 종입니다. 주인이 바쁘고 할 일이 많으니까 집안 살림을 다 맡아 하는 종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재산을 관리하도록 위임된 사람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청지기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사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것에 종으로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종은 자기의 소유가 없습니다. 다 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잘만 하면 주인이 상도, 보상도 허락하여 주십 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직분도 주시고 은사도 주십니다.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직분을 위해 주셨 고, 또한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도 주시고 이 모든 은사도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 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집사, 장로, 권사, 구역장, 조장 이것도 다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직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청지기 직분 입니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청지기 직분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 직분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판사, 검사도 다 청지기입니다. 회사 사장들도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늘과 땅을 다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하였고, 이 모든 직분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맡기신 것입 니다. 우리는 청지기 인생을 깨달아야, 겸손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축복 받고 사랑 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 28장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은총과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께서 달란트 비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맡 은 종이 있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감췄다가 가져 와서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네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 달란트를 만들어 가지고 주 인에게 왔을 때 주인이 칭찬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주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도 땅도 세상 만물 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창조된 모든 것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에도 “…죽도록 충성(忠誠)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 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어떻게 충성해야 합니까? 목숨 걸고 충성하는 겁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놀 아 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눈치 봐 가면서, 한눈 팔면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죽도록, 목 숨 걸어 놓고 충성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봉사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봉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집니다. 보람 과 기쁨이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과 기쁨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3분 봉사하는 사람은 30분 봉사하고, 5분 봉사, 충성하는 사 람은 50분 봉사하고, 10분 봉사하는 사람은 100분 봉사하여 봉사하는 시간을 늘리고 봉사하는 질을 높여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 조장, 구역장, 선교회, 성가대, 교회학교, 예배만 보고 훌쩍 가는 것은 진정한 봉사·충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초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도 봉사하게 하옵 소서. 충성하게 하옵소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교인되지 말게 하시고. 무언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봉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채문경 교수라는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가서 풍금으로 반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훌륭한 반주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피아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하 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하기 시작하여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반주하면서 계속해 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반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 교회 반주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피아노 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성가대 반주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독일 베를린 음대 성악과 교수가 내한했다가 반주자가 필요해서 누가 반주를 잘 하는지 수소문했는 데, 이 채문경 학생이 반주자로 채택이 됐습니다. 반주를 하고 나니까 그 독일 대학 교수가 유학을 제안했습니다. “반주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독일로 유학 가고 싶으냐?”“네, 가고 싶어요.”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다. 독일로 유학 가서 오르간을 공부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 초대 오르간 연주자로 초빙 받아서 상임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국제 초청 오르간 연주를 하였고, 국제 콩쿠르 심사 위원이 되었습니다. 대 학 교수가 되고 그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풍금, 피아노 만지면서 ‘하나님, 이 반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하고 기 도하며, ‘반주, 반주, 반주’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국가의 행사에도, 또 국제적인 콩쿠르에도 관여하게 하시고, 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봉사를 할 것인가?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할 것인가? 비록 적은 일이라 할지라 도 충성하면 큰 것 주시고, 큰 것까지 충성하면 더 큰 것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믿음에 ‘0’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설교 제목에 은혜가 됩니까? 믿음 이 생깁니까? 올 한해 그렇게 살아 보시겠습니까? 가난과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믿음을 가져야 됩니 다. 그러나 이제는 적은 믿음으로 겨우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큰 믿음을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 니다. 이왕 가지고 나오려면 큰 것, 큰 그릇을 가지고 나와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도 많이 담지, 매일 손바닥만 가지고 나오니 뭐 담길게 있습니까? 손바닥 내밀어 봐야 비가 요리 떨어지고 조리 떨어지고 남는 게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 리는 비도 받으려면 그릇이 커야 되는 것처럼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못을 파면 연못이 철렁거리고, 댐을 파면 댐이 철렁거립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는데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마시고 믿음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0’을 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부자되고 물질 축복 받으십시오. 기도해서 응답 받으시기 바랍니다. 전도 많이 해서 많은 사람 앞에 존경과 칭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앞에 봉사·충성 많이 하시 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만 봉사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동창회에서도, 사회에서도, 또한 교회에서도 봉 사·충성 많이 할 때, 충성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은총과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전라북도 어느 교회에 열심있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늘 하나님께 충성하고, 더 많은 것으로 헌금할 수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매우 가난하 였습니다. 한번은 교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목표액을 정하고, 전 교인이 작정헌금을 하기로 하고, 먼저 제직들부터 모범을 보이려고, 모두 모여서 한 사람, 한사람 돌아가면서 자신의 작정헌금 액수를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자기는 맨 나중에 작정하겠노라고 지켜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우니까 그러려 니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작정 순서가 끝나고, 이 집사님이 작정할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집사님은 다른 사람들의 작 정헌금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에다가 \\\\\\\\\\\\\\\'0\\\\\\\\\\\\\\\'을 하나 더해서 자기의 작정액으로 정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 습니다. 그때부터 집사님은 날마다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작정헌금을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집사님을 서울로 옮기게 해 주시더니, 장사를 시작하게 해 주셨습니다. 집사님은 얼마나 장사가 잘되던지, 작정한 건축헌금을 모두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서 큰 부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서울 어느 교회의 장로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0\\\\\\\\\\\\\\\'을 더하는 믿음으로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여러분, \\\\\\\\\\\\\\\'0\\\\\\\\\\\\\\\'을 더하는 큰 믿음을 가져서, 차고 넘치는 큰 축복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성광 목사(서울 강남교회)
100-1=0 /삼하16:1-23/ 강문호목사 2015-03-18 11:51:17 read : 110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두부 장사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10에서 5을 빼면 얼마니?> 두부 장사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둘이요.> 왜 그랬을 가요? 대답은 이것입니다.s <계산을 잘못해서
100-1=0 /삼하16:1-23/ 강문호목사 2015-03-18 11:51:17 read : 110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두부 장사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10에서 5을 빼면 얼마니?> 두부 장사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둘이요.> 왜 그랬을 가요? 대답은 이것입니다.s <계산을 잘못해서입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수학적으로는 99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전혀 아닙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100가지 잘 했는 데 하나를 실수하면 모두가 무효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초등학교에서 릴레이 대회가 있었습니다. 한 조가 10명씩입니다. 릴레이를 할 때 법칙이 있습니다. 1번과 마지막 번에 제일 잘 뛰는 사람을 배치하는 법입니다. 9번까지 뛰었습니다. 한 조 선수들이 잘 뛰어 단연 일등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조에 마지막 주자는 마라톤 선수였습니다. 보나 마나 그 조가 일등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의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주자가 엄청난 착각을 하였습니다. 바톤을 쥐고 역주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자기가 잘못 돌았음을 알았습니다. 꼴찌였습니다. 다 잘했어도 마지막 하나를 잘못 하고 나니 모두가 무효였습니다. 100-1은 무효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모시고 들어갑니다. 웃시야 왕 이야기입니다. 웃시야 왕은 성경에 등장하는 왕중에서 가장 장점임 많은 왕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장점은 100가지였으나 단점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친 왕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웃시야 왕의 장점 16세에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26;3) 52년 동안 왕노릇하였습니다(대하 26;3) 하나님보시기에 정직하게 정치를 잘 하였습니다(대하 26;4) 하나님의 선지자 스가랴와 침숙하게 지내며 신정 정치를 하였습니다(대하 26;5)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대하 26;5)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대하 26;7) 암몬 나라가 조공을 바쳤습니다(대하 26;8) 나라가 강성하여졌습니다(대하 26;8) 이름이 널리 퍼져 유명한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26;8) 광야에 망대를 세워 국방을 든든하게 하였습니다(대하 26;10) 물 웅덩이를 많이 발견하여 농사도 잘 되었습니다(대하 26;10) 군대 큰 용사 장군이 2,600명이나 되었습니다(대하 26;12) 건장한 군대가 307,500명이었습니다(대하 26;13) 무기도 많아 강한 군대가 되었습니다(대하 26;14) 신무기를 많이 개발하였습니다(대하 26;15)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있었습니다(대하 26;15) 나라가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대하 26;15) 이같이 웃시야 왕에게는 좋은 일만 있었습니다. 역대하 26장 1절부터 읽으면서 웃시야 왕에게 안 좋은 부정적인 것은 단 한마디도, 단 한 단어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좋은 것이었습니다. 웃시야왕의 약점 그러나 16절에 웃시야 왕의 한 가지 잘못 한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시야왕은 모든 것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100-1은 0였습니다. 16절은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52년 동안 그렇게 좋았던 웃시야 왕은 한 단어로 악을 행하였습니다. 악 한 가지가 모두를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니까 모두가 끝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는 데 구체적으로 무슨 악입니까? 웃시야왕은 성전에 성소로 들어 갔습니다. 그 곳은 왕은 들어가지 못 하고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서 자기가 분향하려고 향로를 잡았습니다. 그 때 가장 용기있는 아사랴 제사장이 자기처럼 용기가 있는 제사장 80명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왕에게 정면 도전하였습니다.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 하리이다>(18) 웃시야 왕은 분향하려고 하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화을 냈습니다. 그 때 이마에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모두 달려 들어 웃시야 왕을 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별궁에 가두었습니다.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다 좋았는 데 하나가 안 좋았습니다. 시작은 좋았는 데 끝이 안 좋았습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무효입니다. 내가 독일 집회에 갔을 때였습니다. 엄청나게 큰 온천 수영장에 수영을 하러 갔습니다. 온천 목욕탕이 아니라 온천 수영장입니다. 그 많은 물을 다 퍼내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큰 수영장에 똥 덩어리가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 푸고 보니 낙엽이었습니다. 하나가 문제입니다.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습니다. 다 잘 했어도 악을 행하면 모든 것이 망쳐집니다. 교만은 3가지 죄악을 잉태합니다. 교만 때문에 웃시야 왕은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가다가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습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무효입니다. 무슨 악입니까? 1. 교만은 위치 파악의 혼돈을 가져옵니다. 웃시야 왕은 52년 동안 왕노릇하다 보니 착각에 빠졌습니다. 자기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못 하는 곳이 없고, 못 들어 갈 곳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만 들어가는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제사장만 할 수 있는 향을 피웠습니다. 자기 위치 파악에 혼돈이 왔습니다.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옆에 모시고 살면서 선지자가 말하는 대로 잘 하였습니다. 특별히 스가랴 선지자를 옆에 두고 정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가 세상을 떠나자 그 후부터 경거망동하게 된 것같습니다. 5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자기 위치를 찾지 못 하고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우주 역사상 가장 먼저 일어난 죄는 루시퍼의 반란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루시퍼가 위치 파악에 혼돈이 생겨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구 역사상 최초의 죄는 아담과 하와가 자기 위치 파악에 혼돈을 일으켜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한 사건입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8-19)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교만한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합니다. 인격은 입이 아니라 귀입니다. 말하지 않고 듣는 것이 겸손이요, 듣지 않고 말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웃시야 왕은 선지자가 성소에서 나가라고 하는 데 듣지 않고 자기 말만하였습니다.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이야기입니다. 위나라 문후가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어떤 왕으로 생각하는고?> 신하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입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책황이라는 신하가 왕앞에 설 차례였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아니 옵니다. 언젠가 중상국을 토벌하신 후에 그 곳에는 소신을 봉하셔야 마땅한 데 황 태자를 영주로 세우셨습니다. 도리에 어긋난 처신을 하신 왕이시기에 어지신 왕이라 할 수 없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발 대발하였습니다. 문후 왕은 이 신하를 쫓아내 버리셨습니다. 임좌 신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임좌가 무슨 말을 할 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임좌가 대답하였습니다. <자고로 어진 임금밑에서는 직언하는 신하가 난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책황은 확실히 맞는 직언을 하였습니다. 이런 신하가 왕밑에 있다는 것은 왕이 어진 왕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이 말했습니다. <허허.... 참 옳은 말이로고. 내가 책황에게 큰 잘못을 할 뻔 하였구나.> 그리고 책황을 다시 불러 드렸습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이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웃시야왕은 교만함으로 자기 위치 파악에 혼돈을 일으켜서 결국 100가지 좋은 것을 무효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2. 교만은 매너리즘의 죄를 짓게 합니다. 매너리즘이 무엇입니까? 만성이 된 나태한 상황을 매너리즙이라고 합니다. 웃시야 왕은 52년 동안 왕노릇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습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자기 돌봄이 없고 긴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52년 왕노릇은 긴장을 완화시켰습니다. 청개구리같습니다. 청개구리를 뜨거운 물속에 집어 넣으면 놀라서 1초만에 뛰어 나옵니다. 그러나 따뜻한 물에 청개구리를 넣으면 따뜻한 것이 기분 좋아서 가만히 있습니다. 아주 살그머니 온도를 조금씩 천천히 높여 줍니다. 그러면 조금 후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죽고 맙니다. 이것이 긴장이 완화된 매너리즘입니다. 바이올린은 안 쓸 때에는 풀러 둡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려면 바짝 조여 주어야 합니다. 키타도 그렇고 활도 그렇습니다. 바로 사용하려면 긴장을 주어야 합니다. 팽팽하게 당겨 주어야 합니다. 피아노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팽팽한 줄이 느슨하여 집니다. 다시 조율하여 주어야 합니다. 자동차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며 보링하여 주어야 합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가끔 자극이 필요합니다.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명재상이었던 안영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재상 안영을 모시고 길거리에 나가면 국민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며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절하였습니다. 안영에게 절하는 것인 데 오래 오래 마부 노릇을 하다 보니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안 영보다 마부가 체격도 좋고 더 잘 생겼습니다. 국민들이 절할 때마다 앞 서 가는 그가 손을 흔들며 자기가 인사를 받았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그들이 인사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겁니다. 그럴수록 그 마부의 어깨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그 마부의 교만함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습니다. 사실 그는 뒤에 앉아 있는 안영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훨씬 잘생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부의 부인은 문틈으로 의기양양하게 말을 모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슬픔에 빠져 버렸습니다. <저것이 아닌데...> 저녁 때 마부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당신이 모시는 그 분은 제나라 재상입니다. 그런데 그 분의 태도를 보면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며 겸손해 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낮 마부이면서 그렇게 교만하게 처신하니 이것이 제가 당신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은 마부는 자기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교만함을 보이지 않겠다고 부인에게 다짐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마부는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평소와 달라진 마부의 모습을 본 재상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마부는 집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대답하였습니다. 재상은 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교만함을 접은 마부를 기특하게 여겨 대부라는 벼슬을 천거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역은 사가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위대한 사람 세 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마부가 위대한 사람입니다. 현명한 아내의 올바른 충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며 고치는 마부의 용기가 돋보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위대한 사람은 마부의 상사입니다. 그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의 변화를 인정해 줄줄 알았습니다. 자기 위치를 모르던 그를 눈감고 있다가 변화되는 것을 보고 승진시킨 그가 큰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마부의 아내입니다. 현명한 아내가 위대한 남편을 만들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남편을 바르게 만든 여인입니다. 절대 정권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52년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교만하여 매너리즘에 빠졌습니다. 그 메너리즘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비참한 생을 마쳤습니다. 이집트 무바라크도 30년 집권하면서 78조 개인 재산을 모았습니다.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었습니다. 매너리즘을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무인도 하나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잘 심고 꽃도 여기저기 심어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좋아 하는 토끼를 풀어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끼들은 눈빛이 흐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털에 윤기가 사라지면서 병난 토끼같이 보였습니다. 드디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자는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병이 나다니.....> 수의사를 불렀습니다. 고개를 저으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고 돌아 갔습니다.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 갔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현자가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리를 같이 기르십시오.> 부자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토끼를 다 잡아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랍비가 말했습니다. <토끼의 병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긴 병입니다. 이리와 함께 기르면 이리에 안 잡혀 먹히려고 힘차게 도망다닐 것입니다. 눈빛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다리에 힘이 생길 것입니다. 털에 윤기가 흐를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토끼들은 몇 마리 몇 마리 잡혀 먹히기는 하였지만 모두가 건강하였습니다. 긴장이 있어야 합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웃시야는 환경을 바꾸는 데 실패하여 100-1는 0로 만들었습니다. 3. 교만은 분노라는 죄를 짓게 합니다.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하였습니다. 용기있는 아사랴 제사장이 80명과 함께 가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웃시야 왕은 화를 냈습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생긴지라>(19) 겸손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화를 냅니다. 화를 낸다는 자체가 교만입니다. 화가 극치에 달할 때 병이 생겼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29;8-11) 이스라엘 힐렐 랍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자기를 잘 다스리는 랍비의 모델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자기 친구와 내기를 걸었습니다. <네가 힐렐 랍비를 화나게 만들면 은 400개를 주겠다.> 그 친구는 어떻게 하든지 힐렐 랍비를 화나게 만들어서 은 400개를 받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전 날 힐렐 랍비를 만나러 갔습니다. 힐렐 랍비는 안식일을 잘 맞기 위하여 몸을 깨끗이 닦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앞에서부터 무례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힐렐 랍비를 화나게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힐렐! 어디 있소? 힐렐! 어디 있소?> 쌍스럽게 이름을 부르면 반말을 하였습니다. 힐렐 랍비는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듣고 목욕을 하다 말고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내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는가?> 그 친구는 천덕스럽게 물었습니다. <당신께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말해 보게나.> <왜 바벨론 사람은 머리가 둥글지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힐렐 랍비는 태연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자네는 아주 좋은 질문을 하네. 바벨론 사람들이 머리가 둥근 이유가 있지. 그들의 산파가 아이 받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네.> 그 친구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힐렐 랍비는 다시 옷을 벗고 목욕을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후 다시 가서 소리를 지르며 힐렐 랍비를 불렀습니다. 힐렐 랍비는 또 목욕하다 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중히 물었습니다. <왜 왔지?> <질문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무엇인가?> <왜 아프리카 사람들은 발이 넓지요?> <그들은 습지에 살기 때문이라네.> 그 친구는 이 대답을 듣자 말자 힐렐 랍비에게 말했습니다. <질문을 하나 더 하려고 하는 데 화내지 말아 주십시오.> 힐렐 랍비은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게나> <당신 탈무드 학교 교장 힐렐이요?> <그렇다네.> <그렇다면 유대인 가운데 당신같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요.> <무슨 말인가?> <당신 때문에 내가 은 400개를 잃게 되었습니다.> 힐렐 랍비은 정중히 말했습니다. <내가 이성을 잃는 것보다 자네가 은 400개를 잃는 편이 더 낫겠네.> 이같이 힐렐은 일생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분노와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분노에 대하여 설교하고 났을 때 한 부인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끔 분노를 폭팔합니다. 그런데 그 때 뿐이거든요. 일분도 안 되어 그 사람과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 방이면 끝나지요. 그런데 한방만 쏘아도 박살나고 말지요.> 웃시야 왕의 한번의 화가 결정적이었습니다. 100-1=0입니다. 웃시야 왕이 우리에게 그런 진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00가지 잘 해도 하나가 부족하면 모두를 무효화시킵니다. 온 몸의 100군데가 다 건강하여도 위에 암이 들어가면 위암으로 100가지 건강이 무효입니다. 자동차 부속 2만개가 다 좋아도 핸들 하나가 없으면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삼손도 100가지가 다 좋아도 이성에게 약하니까 다 무효가 되어 눈이 빠져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다 좋아도 돈에 약하니까 다 무효가 되었습니다. 100-1=0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을 만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킨 모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부자였기에 돈이 많아 그 한 가지 부족을 채우지 못 하고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청년을 천국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다 좋아도 한 가지 부족으로 가장 귀중한 구원을 얻지 못 하였습니다. 영원을 위하여 영원하지 아니한 것을 포기하지 못 하였습니다. 묻습니다. <당신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요?> 100-1=0입니다.
100-1=0/ 삼하16:1-23/ 강문호 목사/ 2015-03-18
100-1=0 삼하16:1-23 두부 장사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10에서 5을 빼면 얼마니?> 두부 장사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둘이요.> 왜 그랬을 가요? 대답은 이것입니다. <계산을 잘못해서입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수학적으로는 99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전혀 아닙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100가지 잘 했는 데 하나를 실수하면 모두가 무효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초등학교에서 릴레이 대회가 있었습니다. 한 조가 10명씩입니다. 릴레이를 할 때 법칙이 있습니다. 1번과 마지막 번에 제일 잘 뛰는 사람을 배치하는 법입니다. 9번까지 뛰었습니다. 한 조 선수들이 잘 뛰어 단연 일등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조에 마지막 주자는 마라톤 선수였습니다. 보나 마나 그 조가 일등이라고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의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주자가 엄청난 착각을 하였습니다. 바톤을 쥐고 역주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자기가 잘못 돌았음을 알았습니다. 꼴찌였습니다. 다 잘했어도 마지막 하나를 잘못 하고 나니 모두가 무효였습니다. 100-1은 무효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모시고 들어갑니다. 웃시야 왕 이야기입니다. 웃시야 왕은 성경에 등장하는 왕중에서 가장 장점임 많은 왕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장점은 100가지였으나 단점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망친 왕이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웃시야 왕의 장점 16세에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26;3) 52년 동안 왕노릇하였습니다(대하 26;3) 하나님보시기에 정직하게 정치를 잘 하였습니다(대하 26;4) 하나님의 선지자 스가랴와 침숙하게 지내며 신정 정치를 하였습니다(대하 26;5)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대하 26;5)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대하 26;7) 암몬 나라가 조공을 바쳤습니다(대하 26;8) 나라가 강성하여졌습니다(대하 26;8) 이름이 널리 퍼져 유명한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26;8) 광야에 망대를 세워 국방을 든든하게 하였습니다(대하 26;10) 물 웅덩이를 많이 발견하여 농사도 잘 되었습니다(대하 26;10) 군대 큰 용사 장군이 2,600명이나 되었습니다(대하 26;12) 건장한 군대가 307,500명이었습니다(대하 26;13) 무기도 많아 강한 군대가 되었습니다(대하 26;14) 신무기를 많이 개발하였습니다(대하 26;15)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있었습니다(대하 26;15) 나라가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대하 26;15) 이같이 웃시야 왕에게는 좋은 일만 있었습니다. 역대하 26장 1절부터 읽으면서 웃시야 왕에게 안 좋은 부정적인 것은 단 한마디도, 단 한 단어도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좋은 것이었습니다. 웃시야왕의 약점 그러나 16절에 웃시야 왕의 한 가지 잘못 한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웃시야왕은 모든 것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100-1은 0였습니다. 16절은 이렇게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52년 동안 그렇게 좋았던 웃시야 왕은 한 단어로 악을 행하였습니다. 악 한 가지가 모두를 무효로 만들었습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니까 모두가 끝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는 데 구체적으로 무슨 악입니까? 웃시야왕은 성전에 성소로 들어 갔습니다. 그 곳은 왕은 들어가지 못 하고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서 자기가 분향하려고 향로를 잡았습니다. 그 때 가장 용기있는 아사랴 제사장이 자기처럼 용기가 있는 제사장 80명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왕에게 정면 도전하였습니다.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 하리이다>(18) 웃시야 왕은 분향하려고 하다가 부들부들 떨면서 화을 냈습니다. 그 때 이마에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모두 달려 들어 웃시야 왕을 끌어 냈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별궁에 가두었습니다.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다 좋았는 데 하나가 안 좋았습니다. 시작은 좋았는 데 끝이 안 좋았습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무효입니다. 내가 독일 집회에 갔을 때였습니다. 엄청나게 큰 온천 수영장에 수영을 하러 갔습니다. 온천 목욕탕이 아니라 온천 수영장입니다. 그 많은 물을 다 퍼내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 큰 수영장에 똥 덩어리가 가라앉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 푸고 보니 낙엽이었습니다. 하나가 문제입니다.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였습니다. 다 잘 했어도 악을 행하면 모든 것이 망쳐집니다. 교만은 3가지 죄악을 잉태합니다. 교만 때문에 웃시야 왕은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가다가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거하다가 죽었습니다. 100에서 하나를 빼면 무효입니다. 무슨 악입니까? 1. 교만은 위치 파악의 혼돈을 가져옵니다. 웃시야 왕은 52년 동안 왕노릇하다 보니 착각에 빠졌습니다. 자기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못 하는 곳이 없고, 못 들어 갈 곳에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만 들어가는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제사장만 할 수 있는 향을 피웠습니다. 자기 위치 파악에 혼돈이 왔습니다.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 선지자를 옆에 모시고 살면서 선지자가 말하는 대로 잘 하였습니다. 특별히 스가랴 선지자를 옆에 두고 정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가 세상을 떠나자 그 후부터 경거망동하게 된 것같습니다. 5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자기 위치를 찾지 못 하고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우주 역사상 가장 먼저 일어난 죄는 루시퍼의 반란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 루시퍼가 위치 파악에 혼돈이 생겨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구 역사상 최초의 죄는 아담과 하와가 자기 위치 파악에 혼돈을 일으켜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겠다고 한 사건입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6;18-19)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교만한 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합니다. 인격은 입이 아니라 귀입니다. 말하지 않고 듣는 것이 겸손이요, 듣지 않고 말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웃시야 왕은 선지자가 성소에서 나가라고 하는 데 듣지 않고 자기 말만하였습니다.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이야기입니다. 위나라 문후가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어떤 왕으로 생각하는고?> 신하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입을 맞춘 것처럼 똑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책황이라는 신하가 왕앞에 설 차례였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아니 옵니다. 언젠가 중상국을 토벌하신 후에 그 곳에는 소신을 봉하셔야 마땅한 데 황 태자를 영주로 세우셨습니다. 도리에 어긋난 처신을 하신 왕이시기에 어지신 왕이라 할 수 없나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노발 대발하였습니다. 문후 왕은 이 신하를 쫓아내 버리셨습니다. 임좌 신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신하들은 임좌가 무슨 말을 할 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숨을 죽이고 보고 있었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은 참으로 어지신 왕이 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임좌가 대답하였습니다. <자고로 어진 임금밑에서는 직언하는 신하가 난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책황은 확실히 맞는 직언을 하였습니다. 이런 신하가 왕밑에 있다는 것은 왕이 어진 왕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이 말했습니다. <허허.... 참 옳은 말이로고. 내가 책황에게 큰 잘못을 할 뻔 하였구나.> 그리고 책황을 다시 불러 드렸습니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이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웃시야왕은 교만함으로 자기 위치 파악에 혼돈을 일으켜서 결국 100가지 좋은 것을 무효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2. 교만은 매너리즘의 죄를 짓게 합니다. 매너리즘이 무엇입니까? 만성이 된 나태한 상황을 매너리즙이라고 합니다. 웃시야 왕은 52년 동안 왕노릇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습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자기 돌봄이 없고 긴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52년 왕노릇은 긴장을 완화시켰습니다. 청개구리같습니다. 청개구리를 뜨거운 물속에 집어 넣으면 놀라서 1초만에 뛰어 나옵니다. 그러나 따뜻한 물에 청개구리를 넣으면 따뜻한 것이 기분 좋아서 가만히 있습니다. 아주 살그머니 온도를 조금씩 천천히 높여 줍니다. 그러면 조금 후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죽고 맙니다. 이것이 긴장이 완화된 매너리즘입니다. 바이올린은 안 쓸 때에는 풀러 둡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려면 바짝 조여 주어야 합니다. 키타도 그렇고 활도 그렇습니다. 바로 사용하려면 긴장을 주어야 합니다. 팽팽하게 당겨 주어야 합니다. 피아노도 오래 사용하다 보면 팽팽한 줄이 느슨하여 집니다. 다시 조율하여 주어야 합니다. 자동차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며 보링하여 주어야 합니다. 사람도 같습니다. 가끔 자극이 필요합니다. 춘추시대 말기 제나라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명재상이었던 안영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재상 안영을 모시고 길거리에 나가면 국민들이 모두 그를 존경하며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절하였습니다. 안영에게 절하는 것인 데 오래 오래 마부 노릇을 하다 보니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안 영보다 마부가 체격도 좋고 더 잘 생겼습니다. 국민들이 절할 때마다 앞 서 가는 그가 손을 흔들며 자기가 인사를 받았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그들이 인사하는 것이라고 착각한 겁니다. 그럴수록 그 마부의 어깨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그 마부의 교만함은 더욱 거세어져만 갔습니다. 사실 그는 뒤에 앉아 있는 안영보다 키도 크고 얼굴도 훨씬 잘생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부의 부인은 문틈으로 의기양양하게 말을 모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슬픔에 빠져 버렸습니다. <저것이 아닌데...> 저녁 때 마부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부인은 남편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당신이 모시는 그 분은 제나라 재상입니다. 그런데 그 분의 태도를 보면 언제나 스스로를 낮추며 겸손해 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한낮 마부이면서 그렇게 교만하게 처신하니 이것이 제가 당신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은 마부는 자기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교만함을 보이지 않겠다고 부인에게 다짐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마부는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평소와 달라진 마부의 모습을 본 재상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마부는 집에서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대답하였습니다. 재상은 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교만함을 접은 마부를 기특하게 여겨 대부라는 벼슬을 천거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의 역사를 간략하게 역은 사가에 나오고 있습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위대한 사람 세 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마부가 위대한 사람입니다. 현명한 아내의 올바른 충고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며 고치는 마부의 용기가 돋보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위대한 사람은 마부의 상사입니다. 그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의 변화를 인정해 줄줄 알았습니다. 자기 위치를 모르던 그를 눈감고 있다가 변화되는 것을 보고 승진시킨 그가 큰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마부의 아내입니다. 현명한 아내가 위대한 남편을 만들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남편을 바르게 만든 여인입니다. 절대 정권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은 52년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교만하여 매너리즘에 빠졌습니다. 그 메너리즘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비참한 생을 마쳤습니다. 이집트 무바라크도 30년 집권하면서 78조 개인 재산을 모았습니다. 나라를 가난하게 만들었습니다. 매너리즘을 국민들은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무인도 하나를 구입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무를 잘 심고 꽃도 여기저기 심어 아름다운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좋아 하는 토끼를 풀어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끼들은 눈빛이 흐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털에 윤기가 사라지면서 병난 토끼같이 보였습니다. 드디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자는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병이 나다니.....> 수의사를 불렀습니다. 고개를 저으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고 돌아 갔습니다.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 갔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현자가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리를 같이 기르십시오.> 부자는 놀라서 물었습니다. <토끼를 다 잡아 먹으면 어떻게 합니까?> 랍비가 말했습니다. <토끼의 병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긴 병입니다. 이리와 함께 기르면 이리에 안 잡혀 먹히려고 힘차게 도망다닐 것입니다. 눈빛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다리에 힘이 생길 것입니다. 털에 윤기가 흐를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토끼들은 몇 마리 몇 마리 잡혀 먹히기는 하였지만 모두가 건강하였습니다. 긴장이 있어야 합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환경을 바꾸어야 합니다. 웃시야는 환경을 바꾸는 데 실패하여 100-1는 0로 만들었습니다. 3. 교만은 분노라는 죄를 짓게 합니다. 웃시야 왕이 교만하여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려고 하였습니다. 용기있는 아사랴 제사장이 80명과 함께 가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웃시야 왕은 화를 냈습니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다가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내니 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낼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생긴지라>(19) 겸손한 사람은 화를 내지 않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화를 냅니다. 화를 낸다는 자체가 교만입니다. 화가 극치에 달할 때 병이 생겼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만한 자는 성읍을 요란케 하여도 슬기로운 자는 노를 그치게 하느니라.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다투면 지혜로운 자가 노하든지 웃든지 그 다툼이 그침이 없느니라.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29;8-11) 이스라엘 힐렐 랍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자기를 잘 다스리는 랍비의 모델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자기 친구와 내기를 걸었습니다. <네가 힐렐 랍비를 화나게 만들면 은 400개를 주겠다.> 그 친구는 어떻게 하든지 힐렐 랍비를 화나게 만들어서 은 400개를 받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전 날 힐렐 랍비를 만나러 갔습니다. 힐렐 랍비는 안식일을 잘 맞기 위하여 몸을 깨끗이 닦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앞에서부터 무례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힐렐 랍비를 화나게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힐렐! 어디 있소? 힐렐! 어디 있소?> 쌍스럽게 이름을 부르면 반말을 하였습니다. 힐렐 랍비는 자기를 부르는 음성을 듣고 목욕을 하다 말고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내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는가?> 그 친구는 천덕스럽게 물었습니다. <당신께 질문 한 가지 하겠습니다.> <말해 보게나.> <왜 바벨론 사람은 머리가 둥글지요?>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힐렐 랍비는 태연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자네는 아주 좋은 질문을 하네. 바벨론 사람들이 머리가 둥근 이유가 있지. 그들의 산파가 아이 받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네.> 그 친구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힐렐 랍비는 다시 옷을 벗고 목욕을 시작하였습니다. 조금 후 다시 가서 소리를 지르며 힐렐 랍비를 불렀습니다. 힐렐 랍비는 또 목욕하다 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정중히 물었습니다. <왜 왔지?> <질문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무엇인가?> <왜 아프리카 사람들은 발이 넓지요?> <그들은 습지에 살기 때문이라네.> 그 친구는 이 대답을 듣자 말자 힐렐 랍비에게 말했습니다. <질문을 하나 더 하려고 하는 데 화내지 말아 주십시오.> 힐렐 랍비은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하게나> <당신 탈무드 학교 교장 힐렐이요?> <그렇다네.> <그렇다면 유대인 가운데 당신같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요.> <무슨 말인가?> <당신 때문에 내가 은 400개를 잃게 되었습니다.> 힐렐 랍비은 정중히 말했습니다. <내가 이성을 잃는 것보다 자네가 은 400개를 잃는 편이 더 낫겠네.> 이같이 힐렐은 일생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분노와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분노에 대하여 설교하고 났을 때 한 부인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성질이 급해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끔 분노를 폭팔합니다. 그런데 그 때 뿐이거든요. 일분도 안 되어 그 사람과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엽총도 그렇습니다. 한 방이면 끝나지요. 그런데 한방만 쏘아도 박살나고 말지요.> 웃시야 왕의 한번의 화가 결정적이었습니다. 100-1=0입니다. 웃시야 왕이 우리에게 그런 진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00가지 잘 해도 하나가 부족하면 모두를 무효화시킵니다. 온 몸의 100군데가 다 건강하여도 위에 암이 들어가면 위암으로 100가지 건강이 무효입니다. 자동차 부속 2만개가 다 좋아도 핸들 하나가 없으면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삼손도 100가지가 다 좋아도 이성에게 약하니까 다 무효가 되어 눈이 빠져 죽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다 좋아도 돈에 약하니까 다 무효가 되었습니다. 100-1=0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을 만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킨 모범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부자였기에 돈이 많아 그 한 가지 부족을 채우지 못 하고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청년을 천국에서 만날 수 없습니다. 다 좋아도 한 가지 부족으로 가장 귀중한 구원을 얻지 못 하였습니다. 영원을 위하여 영원하지 아니한 것을 포기하지 못 하였습니다. 묻습니다. <당신들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요?> 100-1=0입니다.
11강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계1:12-16/ 김성수목사 2015-07-21 14:49:35 read : 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소리 소문 없는 환란이 더 무섭다. 구원은 바로 죄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인식하지
11강 /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계1:12-16/ 김성수목사 2015-07-21 14:49:35 read : 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소리 소문 없는 환란이 더 무섭다. 구원은 바로 죄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십자가가 감사하게 느껴지겠습니까? 그러나 진짜 무서운 마귀의 핍박과 공격은 예수를 믿고도 전혀 변함없이 자기 욕심을 위해, 자기의 쾌락을 위해 옛 습관과 옛 경향대로 막 사는 것입니다. 인간을 죄로 물들여 망가트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사단이 주는 환난과 핍박이라는 것을 이해 하셔야 합니다. 제가 너무 강하게 죄에 대해서 지적을 했지요? 왜 다소 지나치리만큼 인간과 죄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하게 다루었는가 하면 구원은 바로 죄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 십자가가 감사하게 느껴지겠습니까? 복음은 바로 우리가 떨어졌어야 할 지옥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이 분명 복음을 전하러 나갔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전했을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은 ‘너희들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자각하고 도우심을 구하라’ 는 말입니다. 죄인임에 대한 자각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죄에 대한 지적이 있을 때 여러분이 부담을 느끼시면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하고 감격 하셔야지요. 그리고 주일에는 요한 계시록을 설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환난에 대해서 많이 설교를 합니다. 지난주에는 어떤 분이 저에게 ‘목사님, 저는 예수님을 믿는데 제 삶에는 그런 환난이 없는데요, 저는 가짜인가요?’ 그러시더라고요. 여러분, 환난에 대해서 잘 정리를 하고 계셔야 합니다. 환난과 핍박은 물론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아픔과 통증으로도 우리에게 옵니다. 견디기 힘들죠. 그러나 진짜 무서운 마귀의 핍박과 공격은 예수를 믿고도 전혀 변함없이 자기 욕심을 위해, 자기의 쾌락을 위해 옛 습관과 옛 경향대로 막 사는 것입니다. 인간을 죄로 물들여 망가트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쉽게 감지하지 못하는 사단이 주는 환난과 핍박이라는 것을 이해 하셔야 합니다. 물론 당시는 즐겁습니다. 아무런 고통이 없지요. 그러나 신앙이 점점 성숙해 지게 되면 그렇게 살았던 삶이 엄청나게 괴로운 기억으로 남습니다. 여러분, 환난과 핍박 하니까 무조건 사업이 망하고 병이 걸리고 그런 것만 떠 올리시는가 본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환난은, 보이지 않게 우리 삶을 타락시키는 폭풍 속의 고요입니다. 평안을 가장한 핍박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환난과 핍박의 내용입니다. 아무 일 없다고 해서 ‘왜 나에게는 환난이 없고 핍박이 없지?’ 하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가장 무서운, 사탄의 교묘한 핍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 사람은 부자라서, 저 사람은 얼굴이 잘 생겨서, 저 사람은 건강해서 아무 환난도 경험하고 있지 않을 거야’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환난과 핍박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신 장로님께서도 성경을 가르치시면서 환난과 핍박의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를 하시니까 어떤 분이 ‘장로님은 부자라서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르고 그렇게 말씀 하신다’ 고 하시더라고요. 여러분 돈이 많으면 환난과 핍박을 모릅니까? 여러분, 45일 동안 잠 못 자 보셨어요? 여러분 2년 동안 악성 관절염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을 면도칼로 긁는 듯한 고통을 느껴보셨나요? 여러분 걸핏하면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아서, 911에 실려 가는 고통을 당해 보셨습니까? 환난과 핍박과 고통이 뭔지 몰라서 그렇다고요? 사람들은 철저한 인본주의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 고통이 제일 큰지 알아요.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시험만 주신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쓰인 ‘람바노’라는 헬라어는, 누구나 흔히 겪는 고통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도 다 그만큼의 아픔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다고 나만 제일 불행하다고, 내가 제일 큰 환난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습니다. 그게 환난의 당위성과 필연성 설교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그게 부담스럽기만 하시다면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은 아직 ‘땅에 눈을 두고 계신 분’ 들일 겁니다. <본론> 계1:12-16 “그래서 나는 내게 들려오는 그 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아섰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일곱 금 촛대가 있는데, 13 그 촛대 한가운데 '인자와 같은 이'가 계셨습니다. 그는 발에 끌리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14 머리와 머리털은 흰 양털과 같이, 또 눈과 같이 희고, 눈은 불꽃과 같고, 15 발은 화덕에 달구어 낸 놋쇠와 같고,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았습니다. 16 또 오른손에는 일곱별을 쥐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뻗어 나오고, 얼굴은 해가 세차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수수께끼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다 나오는 표현입니다. 인용된 구약의 말씀을 찾아서, 이 계시록 본문의 말씀을 풀어나가면, 쉽게 풀립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밧모 섬에서 성령에 감동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 요한을 공부했습니다. 성령에 감동한 요한이 그 환난과 핍박의 장소인 밧모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처럼 성령 안에 있는 우리도 역시 이 객관적인 현실 속에서 예수를 볼 수 있는 자라는 것을 함께 확인했지요. 12절부터는 요한이 자기가 본 예수님을 자기가 알고 있는 구약의 표현을 인용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바라봐야 할 그 예수님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요한은 아홉 가지로 그 분을 묘사합니다. ◑1. 맨 먼저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13 당시에는 사람들이 입는 옷이 그 사람의 신분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지금 요한이 예수님의 옷을 묘사하면서 그 분의 신분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제사장의 옷을 말합니다. ‘발에 끌리는’ ‘포데레스’는 신약 성경에서는 여기에 한번밖에 안 나오지만 70인 역 LXX에서는 일곱 번이 나옵니다. 거기서 이 ‘포데레스’는 전부 제사장의 의복과 연관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에 발 뿐 만이 아니라 신체의 어떤 부분의 살도 겉으로 나오면 안 되었습니다. 얼굴과 손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철저하게 가려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이후 인간의 몸은 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가렸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사장들은 머리에 관을 쓰고, 발을 덮는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출애굽기 28장에 그 제사장의 옷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제사장의 옷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28:4,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5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레16:4 “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제사장의 옷은 속옷과 겉옷과 에봇과 흉패로 나누어집니다. 흉패는 12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보석이 박혀있습니다. 12지파는 교회 즉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전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그 흉패는 정사각형입니다. 그리고 옷감은 성막을 짓는 천과 같은 것입니다. 사용하는 실의 색상도 유사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제사장이 입고 있는 옷은 성막을, 성전을,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막의 지성소는 정사각형이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이 없고 모자란 것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흉패도 정사각형입니다. 지성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성막을 입고 있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스케노오’는 ‘장막을 치다, 텐트를 치다’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우리를 장막으로 덮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계7:15-16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21:2-3,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자세히 보시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쳐주시는 장막 아래 보호를 받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이 정도의 연관성은 이해하셔야 합니다. 제사장의 옷은 성막입니다. 성막은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전입니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사장이 성막을 입고 있다는 것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 제사장이신 그 분의 수난과 죽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옷을 입게 되는 것을 우리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그 제사장의 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촛대 사이에 서 계십니다. 촛대는 교회라고 했지요? 교회는 또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가 있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교회를 성전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오해는 마세요. 제가 말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지 붉은 벽돌로 지은 예배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건물은, 예배당이지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참 교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성도인 여러분을 성전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계15: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2. 가슴에 금띠 :13b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예수님이 어디로부터 나오십니까? (왜 일곱 천사가 예수님을 상징하는지는, 나중에 그 부분에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성전으로부터 나오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계신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과 같은 모습입니다. 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십니다. 허리가 아닌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던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고대 시대 왕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대제사장은 하늘 성전으로부터 나옵니다. 그 대제사장은 왕이면서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끌리는 옷을 입으시고, 가슴에 금띠를 띤 분은 왕이시면서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왕이요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나팔 같은 소리로 말씀을 하십니다. 나팔 같은 소리로 하늘의 이야기를 하는 자들이 누굽니까? 선지자들. 바로 그 분이 선지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요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시라는 것입니다. ▲초림 때는 누더기 옷에 흠모할 것도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다면 이제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그 영광을 회복하시고 영광의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 모습으로 영광스러운 재림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읽어내야 합니다. 초림 때는 구원을 이루시려 오셨지만, 이제 그 분은 심판자로 오실 것입니다. 바로 다음 구절을 보세요. 14절을 보시면, ◑3. 백발 계1: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이 구절은 다니엘서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단7:9-10,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다니엘서는 분명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 하나님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바로 예수님이, 그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 우리를 구원해 내신 제사장,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영광과 위엄을 가지신 심판자이시라는 것을 요한은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백발’은 영광과 위엄, 영광의 면류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백발이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레19:32,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잠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요한은 그러한 구약의 상징을 이용하여 이제 하늘 영광을 회복하신 영광과 위엄을 소유하신 예수님께서 심판자로 오실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 불꽃 같은 눈 :14b 그리고 그 분은 불꽃같은 눈을 갖고 계십니다. 14절 ‘그의 눈은 불꽃같고’ 불꽃같은 눈도 역시 상징이지요. 공중기도 하시는 분들이 가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그게 무슨 뜻일까요? 단10:5-6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6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계19:11-12,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불꽃같은 눈’도 보시다시피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 분 앞에서는 감추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시며,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삶을 관찰하시고 우리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마10: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큰일 났지요? 하나도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고 합니다. 심판만을 이야기하시는 것일까요? 그럼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은 ‘주님 우리에게 심판을 내려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이 되나요? 이 말씀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말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심판의 말씀들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축복의 말씀인지 함께 보자고요. ▲요한 계시록 19장에 보면 ↑ 그 불꽃같은 눈을 하신 심판의 예수님께서 발에 끌리는 제사장 옷을 입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옷에 피가 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무리는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왜 그런 모습일까요? 이 모습을 머리에 잘 그려 보세요. 이 부분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49장11절로 먼저 가야 합니다. 창49:8-11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야곱이 열 두 아들에게 유언을 합니다. 그 중 유다에게 유언을 하는데 유다의 후손에서 ‘실로’ 곧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그런데 그 메시아는 암 나귀 새끼를 타고 그 옷을 포도주에 빨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바로 ‘suffering of christ’,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나귀 새끼를 타는 모습으로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른 자들의 저주를 몸에 받고 죽으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면 그 옷을 포도즙(원어로는 포도의 피입니다) 틀에 빤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사63:1-6 “에돔에서 오며 홍의를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자가 누구뇨 그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자가 누구뇨 그는 내니 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기에 능한 자니라. 2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3 만민 중에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5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죄인들을 포도즙 틀에 놓인 포도들처럼 밟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의 발에 밟혀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밟히셨습니다. 그 분의 옷에 피가 튀었습니다. 죄의 대가로 흘려야 할 이스라엘의 모든 피가, 그 분께 튀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고, 예수가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제사장이 아무리 금실 은실로 짠 좋은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제사를 드리면 그 제물의 피가 옷에 낭자하게 묻게 됩니다. 제사장이 제물을 잡고 제단에 바치면서, 그 옷에 피가 묻게 되는 것은 바로 대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계시록19장 15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으십니다. 그런데 그 포도에게 돌아가야 할 피가 전부 튀어서, 예수님의 옷에 묻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있다고 나오는 것입니다. 원래 그 피는 그 뒤에 좇아오는 사람들 것이었는데 예수님의 옷에 그 저주의 피가 다 튄 것입니다. ▲이렇게 불꽃같은 눈은, 포도주 틀을 밟는 것과 연결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심판과 함께 구원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달라는 기도를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고 마지막 때에 그들에게 무시무시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진노의 포도즙 틀을 밟듯 밟으실 것입니다. 피의 저주가 그 포도주 틀에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무리의 저주는 예수님께서 친히 담당하셔서 건져 주실 것이라는 것을 구약에 능통했던 당시 초대 교회들은 감격 속에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불꽃같은 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아시겠지요?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두 눈으로 세상을 심판하시고 그 중에서 교회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우리를 건져내실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 속에서 교회답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래서 잘 못 가고 있는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그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해 내실 그 불꽃같은 눈이 우리의 이 엉터리 같은 삶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계2:18-20,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우리는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시고 교회를 구원하실 것이며 혹 우리가 잘 못 갈 때, 그 분이 지금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면서 우리를 책망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시139:7-10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아무 데도 도망 못 갑니다. ◑5. 빛난 주석 같은 발 :15 15 ‘발은 화덕에 달구어 낸 놋쇠와 같고..’ 그리고 예수님의 발은‘빛난 주석’같았다고 요한은 묘사합니다. 주석은 헬라어로 ‘칼콜리바논’입니다. 이 단어는 놋쇠‘칼코스’와 유향, 향나무‘리바노스’라는 단어가 복합되어 생긴 단어입니다. 놋쇠는 능력 권위 주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 발이 주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계10:1-2,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오른발로 바다를 왼발로 땅을 밟고 계신 그 발, 그 분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라는 말입니다. 그 분의 발은 원수인 마귀의 세력 또한 밟아 뭉개실 것입니다. 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 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예수님의 발이 주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기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주석은 놋쇠와 유향의 합성어라고 했지요? 유향은 제사 때 드려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이 있지요? 바로 제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능력의 왕으로서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가지신 그 권위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 진 것이냐? 바로 자신을 제사로 드린 영단번의 제사, 십자가로 그 권위가 주어진 것입니다. 수난과 죽음으로 주어진 고난입니다. 그게 주석이라는 단어가 가진 뜻입니다. 그 주석이 어떤 주석입니까? 풀무에 달구어낸 주석입니다. 풀무에 달구어냈다는 것은 고난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발이 주석’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고난을 통과해서 얻어진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여러분 정말 부요하고 싶으세요? 성경의 부요를 맛보고 싶으십니까? 성경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참 부요 함이라는 것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는 것이, 부요함으로 이끄는 길이라는 것을 놓치지 마세요. ◑6.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15b 그리고 그 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다고 합니다. 이 구절은 에스겔서에서 인용을 한 것입니다. 겔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에스겔서에서는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고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음성을, 그 하나님의 음성을 묘사하는 단어를 가져다가 표현을 했습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구약에서 하나님을 묘사하는 단어들을 택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물소리’라는 단어는 절대적이며 쉬지 않고 힘차게 나타나는 권위의 음성을 상징합니다. 그러한 목소리로 예수님은 교회에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일곱 교회에 보내지는 편지 서두에 모두 ‘타데 레게이’‘가라사대’하고 시작이 됩니다. 성령을 통해서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늘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기적으로 일하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몇 초만 나타나셔서 ‘나 있다’ 그러고 가시면 전도가 잘 될 텐데 왜 안 그러십니까? 이 패역한 인간들은, 그렇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셔도 못 믿는다는 말입니다. 방법은 성령을 통해서 뿐입니다. 기적을 원하는 것은 아직 믿음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부어주셨다면 기적 같은 것 없어도 얼마든지 기쁘고 행복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을 실체로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자꾸 기적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실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아직 선물로 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자꾸 신기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말씀 안에 완전한 하늘나라와 복음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 좇아다니지 마세요. 여러분, 지금까지 제가 설교한 내용이 여러분에게 기쁨이 됩니까? 아니면 불편하십니까? 저는 애써 기쁜 소식, 복음을 전했는데,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쁘세요?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시면서, 정말 예수로만 만족하십니까? 심판과 저주의 재림 때 그 저주에서 건져내어졌다는 그 사실만으로 정말 기쁘신가요?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내는 어떤 것으로 기뻐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으로 기뻐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 내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듣고 있기 때문에 몇 번이고 확인하고 확인한 후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설교를 합니다. 저 때문에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가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저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뭔가 잘못 된 것 아닙니까? 저는 복음,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여러분이 다른 더 좋은 이야기를 해달라고 제게 원하신다면 뭔가 잘 못 되도, 한참 잘 못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제발 복음을 이해하세요. 정말 복음이 뭔지 바르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매일 매일 확인하세요.
13강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고 나중이라 /계1:17-20/ 김성수목사 2015-07-21 14:46:17 read : 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맞으시다면 지금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함께 계십니다. 바라만 봐도 눈이 멀고 죄인은, 그 앞에서면 그
13강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고 나중이라 /계1:17-20/ 김성수목사 2015-07-21 14:46:17 read : 2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맞으시다면 지금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함께 계십니다. 바라만 봐도 눈이 멀고 죄인은, 그 앞에서면 그냥 죽어 버리게 되는 그 천지의 주인이시며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구요. 그 사실을 정말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와 계신데 도저히 그 사실 만으로도 감격스러워 감당을 못할 텐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이제 노예처럼 부리고 있습니다. ‘소원 들어줘요, 병 고쳐 줘요, 부자 만들어 줘요’ 하면서 열심히 알라딘의 마술램프를 문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행동들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나?’를 두려워 하셔야지요. ◑1. 하나님을 뵈면, 죽은 자 같이 됩니다. ‘계1:17, 그를 뵐 때에, 내가 그의 발 앞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니..’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구절들을 공부하면서 능력과 권세와 위엄의 주님께서, 지금도 교회를 오른 손에 꼭 붙들어 보호하고 계시며 주석 같은 두 발로,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도 요한이 그 발 앞에 엎드려서 죽은 자같이 됩니다. 여러분, 이 구절을 읽으시면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삼년 반 동안 함께 숙식을 같이 하던 스승입니다. 그 중에서 유독 사랑을 많이 받았던 ‘주의 사랑하는 자’ 요한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예수님을 보자 그 발 앞에 엎드려서 죽은 자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요한은 그렇게 사랑해 주던 스승을 만났음에도 반가움과 기쁨이 아닌 두려움에 떨었을까요? ▲그런 모습은, 선지자들이나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동일하게 나타났던 현상입니다. 삼손의 아비 마노아와 그 아내가 하나님을 보고 지른 비명을 보십시오. (삿 13:22) “마노아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우리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오." 다니엘은, 하나님을 보자마자 온 몸에 힘이 빠졌고, 죽은 것처럼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개역 성경에서 깊이 ‘잠들었다’고 번역된 히브리어 ‘라담’은 마치 죽은 것처럼 정신을 잃은 모습을 묘사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단 10:5-9)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6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7 이 이상은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이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었느니라. 8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이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9 내가 그 말소리를 들었는데 그 말소리를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 이사야도 하나님을 뵈었을 때,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그는 하나님을 보자마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고 외칩니다. ‘나는 이제 파멸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지옥 앞에서 심판을 받을 자가, 마지막 단말마로 지르는 비명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도,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직접 보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작고 추하고 더러운 인간인지 일순간에 드러나게 되어 나는 도저히 저 빛을 감당할 수 없는 자로 파멸할 수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의 임재 체험을 살펴봅시다. (겔 1: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여기서도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엎드렸다고 나오지요? 여기서 ‘엎드리다’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 ‘나팔’도, ‘죽은 것 같이 되다’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에서 빛을 본 후 눈이 멉니다. 영광의 빛이 너무 밝았다는 뜻이지요. (행 9:3-4)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모세의 체험을 보십시다. (출 33:18-20)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나님은 그토록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 죄인들은 그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면 ‘난 이제 죽게 되는구나.’ 하고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펴 본 바대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도 그 하나님 앞에 서면.. 죽은 듯이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그 새 언약을 성취하시고 약속대로 하나님의 백성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2. 두려워 말아라 “계1:17 그를 뵐 때에, 내가 그의 발 앞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니, 그가 내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극적 반전이 나타납니다. 사도요한은.. 주님의 임재 앞에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는데, 오히려 주님은.. 그런 사도요한을 따뜻이 위로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맞으시다 면 지금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함께 계십니다. 바라만 봐도 눈이 멀고, 죄인은 그 앞에서면 그냥 죽어 버리게 되는 그 천지의 주인이시며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구요.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 사실을 정말 믿으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은 이렇게 눈도 안 멀고 죽지도 않게 되신 것입니까? 그게 바로 여러분의 신분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존귀하신 분들이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 분과 대화를 하면서 그 분의 이끄심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친구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이십니다. 여러분, 박쥐나 올빼미는 빛에 노출이 되면 죽습니다. 쥐나 바퀴벌레도 빛을 비추면 감당을 못하고 어디로 숨기 바쁩니다. 그렇게 죄인들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두려움과 경악의 심판의 빛입니다. 똑같은 죄인들이었던 우리에게, 그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빛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이렇게 기쁘고 안도하고 평안하게 되었습니다. 햇빛이 식물을 키우고 열매를 맺히게 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 영광의 빛 속에서 평안을 얻습니다. 그 것이 복음입니다. ▲본문을 보시면 예수께서 죽은 것처럼 두려워 떨고 있는 요한에게 ‘두려워 말라’ 라고 하시면서, 주님은 요한에게, 오른 손을 얹어 안심을 시켜 주십니다. 여러분은 이제 그 심판의 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하나님의 백성이십니다. 안 좋으세요? (사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그 사실이 정말 믿겨지신다면 그 사실보다 더 여러분을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사람, 물건, 사건이 있겠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와 계신데 도저히 그 사실 만으로도 감격스러워 감당을 못할 텐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이제 노예처럼 부리고 있습니다. ‘소원 들어줘, 병 고쳐 줘, 부자 만들어 줘’ 하면서 열심히 알라딘의 마술램프를 문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행동들입니다. ◑3. 나는 살아있다. 계1:18 “(나는) 살아 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본문 18절에 보시면 그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여기서 ‘산 자’라고 번역이 된 ‘호 존’은 관사가 붙은 현재분사 능동태입니다. 그것은 시작을 알 수 없는 시점으로부터 계속 살아 계신 분이심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구약과 신약에서 공히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수3:10)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시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이렇게 ‘산 자’ 라는 용어는 신구약에서 공히 하나님께 적용된 신적 칭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그 단어로 자신을 묘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전에 죽었었다’ 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죽었었다’라는 단어 ‘에게노멘 was 네크로스 dead’는 부정과거 시제입니다. 그 분의 죽음은 영 단번에 일어났지만 그 영향력은 이제 세세토록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구절을 읽으시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 죽음의 영향력이 오늘 나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정말 이 땅에 죽을 수 있는 인간으로 오셔서 실제로 죽으셨고 이제 살아나셔서 세세토록,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자리로 복귀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확실하게 알아두셔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세세토록 살아계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입니다. 죽었었지만 이제 산자의 자리에 복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정말 허무한 것입니다. (롬 4:25)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가된 의’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심으로써,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완전한 의가, 완제품이 되어서, 우리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주1) 구원은 완전한 항복입니다. 살아 나셔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전가 받은 의의 옷’ 그 이외에 우리가 보낼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나셔서 세세토록 영원히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합니다... ◑4. 나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계1:18)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사 22:22)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예수께서 바로 이 열쇠를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열쇠는 고대 시대를 비롯해서 예수께서 사시던 시대에도 통치권, 권세 등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왕이나 황제들이 도시를 방문할 때 그 도시의 성주나 분봉 왕들이 입구에서 왕에게 상징적인 ‘금 열쇠나 은 열쇠‘를 만들어 바쳤다고 합니다. ‘여기는 당신의 통치 아래 있는 당신의 땅입니다’라는 고백이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여기서 음부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하데스’라는 말입니다. 하데스는 부정접두사 ‘알파’와, ‘보다’를 의미하는 ‘에이도’의 합성어로 그 끝을 볼 수 없는 아득히 멀고 깊은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데스는 저주받은 자들이 가는 곳이라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그냥 막연히 죽은 영들이 가는 곳이라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저주받을 자들이 가는 지옥의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 (계 6: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사망과 음부를 의인화해서 마귀의 세력을 표현합니다.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바로 그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께서 쥐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망과 지옥의 열쇠 뿐 아니라 천국의 열쇠도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열쇠를 쥐고 계시다는 것은 통치권이 그 분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국 뿐 아니라 음부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십니다. 음부에 묶여있는 사탄과 마귀의 세력도, 예수께서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안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실패하실 수 없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예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자입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사탄은 완전히 무장해제(disarmed)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는 사탄에게, 넘어가지 못할 선을 그어 주셨지요? (욥 38:11)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바다의 경계를 그으시고 ‘넘어가지 말아라’라고 명령하시는 그 예수님의 명령에 사탄도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거룩을 가르치시기 위해 필요한 만큼 사탄을 이용하실 뿐입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땅 아래 그 어느 곳도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벗어난 무정부 상태의 공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잡혀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굳게 잠긴 사망의 자물통을 여십니다. 사망이 자기가 포로로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조리 끌어내십니다. 사망을 상징하는 애굽에 단 한 사람의 이스라엘 백성이 남겨지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창세전에 구원하시기로 한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다 그 사망의 나라에서 나오게 됩니다. 열쇠를 우리 예수께서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의 한 구절을 표준 새 번역으로 읽어보지요. (사 26:19) “그러나 주의 백성들 가운데서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시체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무덤 속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즐겁게 소리 칠 것입니다. 주님의 이슬은 생기를 불어넣는 이슬이므로, 이슬을 머금은 땅이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땅이 죽은 자들을 다시 내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열쇠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천국의 문을 여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가면, 예수님은 천국 문을 잠가 버리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방주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회복될 피조물들을 넣고 밖에서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 거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창7:15-16 하나님의 택한 백성 외에는 절대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자물통은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리치고 두들겨도 절대 열리지 않습니다. 주님,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종교행위를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문 좀 열어주세요. 주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여기는 너희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너희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지옥 불에 들어가 이를 갈고 슬피 울어라’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그 열쇠를 누가 가지고 계시다구요? ‘예수님’ ▲네, 예수님만이 양의 문이십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십니다. (요 10: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 당시 양의 우리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산에서 풀을 뜯기다가 동네까지 내려오지 못 할 때 일정한 장소에 양을 모아두는 임시 우리들이 여기 저기 있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우리에는 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입구에는 목자가 서서 양을 통과 시켰다고 합니다. 바로 예수께서 그 양의 문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양의 문으로는 이리나 늑대는 못 들어갑니다. 또 다른 양의 우리는 동네 아래에 있는 공동 우리입니다. 목자들이 양을 먹이고 마을로 데리고 들어와서 공동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에 모두 집어넣습니다. ‘다른 집 양하고 섞이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양은 정확하게 자기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아침에 나갈 때 주인이 양을 부르면 그 양들은 자기 주인의 목소리를 따라 목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 갑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부르셨을 때,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셨을 때, 예수님이 빌립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희한하게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좇아갔습니다. 심지어 죽었던 나사로조차도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 메시야가 쥐신 다윗을 열쇠를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기에 나오셨습니까? 그 열쇠를 쥐신 분이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씀을 이해하고 믿겠노라고 분연히 일어선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 때문입니다. 그 분을 통해서만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보태질 수 없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요한복음9장에 보면 소경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예수님이 안식일 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유대인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그 소경은 출교를 당합니다. 쫓겨납니다. 쫓겨나서 누구의 품으로 갑니까?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볼 때는 출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유대교라는 우리에서 불려나온 (부름 받아 나온)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요10장에서, 양의 우리에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불려 나오는 양들의 이야기로 연결시키시는 것입니다. 네, 여러분이 계신 우리가 아무리 매력적이고 강한 울타리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참 양들은 그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기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문이시며 예수만이 참 목자이십니다. ◑5.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계1:17 그리고 그 분은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는 우리가 전에 8절 공부할 때 배웠지요?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하나님을 묘사하는 이 동일한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묘사하는데 쓰십니다. 우리를 위해 인간으로 오셔서 죽으신 그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것이지요.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나시고 촌구석 나사렛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부터 출발하셔서, 말을 배우셔야 했고 가구 수리하는 법을 배우셔야 했고, 등짐을 지고 가구를 고치러 다니셨던, 그리고 사람들에게 멸시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하릴없이 죽으셨던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셨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처음이시며 나중이십니다. 그분은 전부이십니다. (잠 8:23-26) “23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요 1:1-3, 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8: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하시니" (고전 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여기에서 ‘주를 시험하다가’가 헬라어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다가’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을 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불 뱀을 풀어서 많은 자들을 죽이셨습니다. 그 사건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고전10:9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우리의 구원 사건의 전체를 이끌고 가신 분이십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그 분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속사역을 시작하시고 수행하시고 완성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 이십니다. 그 분이 여러분을 가리켜 내 형제요 내 자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신분이 확인된 여러분이 왜 두렵고 왜 염려를 하십니까? 과거의 상처가 여러분을 괴롭히십니까? 예수님은 처음이십니다. 아직 여러분에게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들이 두려우십니까? 우리 예수님은 나중이시기도 합니다. 그분은 전부이십니다. 두려워 마세요. 힘을 내십시오. 정말 여러분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가 진짜 그리스도인이 맞나?’를 두려워 하셔야지요. ▲여러분의 신분이 확인되신 분들은 이제 두려움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두려움은 죄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가 자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죄 속에 머물러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거예요.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해결이 안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이면 그렇게 해결하실 것이고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일이 해결되게도 하실 것이고요.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세요. 두려움을 떨쳐 버리세요.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오른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 주1) 로만 가톨릭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교리대로 하면 예수님이 굳이 살아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로만 가톨릭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원죄가 해결되어 그들에게 의가 ’주입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의‘가 영세를 받을 때 주입이 됩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영세를 안 받으면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 세례 안 받아도 천국 갑니까? 못 갑니까? 부득이하게 세례를 받지 못했으나,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한 사람은 천국에 갑니다. 세례라는 것은 세례를 받는 사람의 인간적인 긍정이 아니라 그를 향한 하나님의 긍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세례 행위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단지 세례는 우리 성도의 신앙의 고백이며 구원 이해의 표출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영세 때 주입된 ‘의’로, 우리는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었고, 선한 행위를 함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되기 때문에 열심히 선행을 보태야 한다고 합니다. 영세를 받은 이후에 짓는 죄는 고해성사를 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된 것은 연옥에서 해결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로는 원죄가 해결된 것이고, 나머지는 인간이 열심히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십자가에는 죽으신 예수님이 아직도 걸려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자기들이 완성해야 하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수난 받으시고 죽으셔서, 우리의 원죄를 해결해 주셨으니 우리 열심히 선행을 하고 종교행위를 해서 ‘거기에 보태자’라고 합니다. 굉장히 기특한 발상인 것 같지만 그건 아주 위험한 주장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에 조금도 보탤 수 없는 그러한 존재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그 안에서 부활을 할 수 있는 자가 된 것이지 주님이 죽어주셨고 이제 부활의 몫은 우리에게도 나누어져 있는 것이라면 저는 정말 자신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면 할수록 관록이 붙어 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자신이 없어집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시퍼런 칼날 같은 말씀 앞에서 저 자신이 점점 더 밝히 드러나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도 죽기 얼마 전에 쓴 그의 일기에서 ‘하나님 저 정말 잘하는 겁니까? 아니 저 정말 구원받은 사람 맞습니까?’ 라고 질문을 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