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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스승의 주일과 찬양예배 콘티/ 2011-05-15
5월 15일 스승의 주일 과 찬양예배 콘티 싱어팀 인도자: 김경석t 여길원t (더블인도) 자매싱어: 오은총, 성정선, 황나린, 주귀은 김지연, 김연지, 유희준, 이다울 형제싱어: 이하영, 서태현, 정래성, 박주원 Pleae note as the followings. 1.예배의 부름(성경말씀) 2.엘샤다이 찬양대 첫송 3.사도신경 4.찬양 1. 새노래 G (마커스) - 여길원t - 인도자와 같이 들어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너무 센소리 부르지 마시고 힘있고, 부드럽게 찬양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브릿지 잘 모를 수 있을니 꼭! 들어 보고 오세요!!! 브릿지 끝나고 박수로 후렴 하고 마지막 후렴 때 G->A로 2. 감사함으로 E(마커스) - 김경석t -바로 인트로, 인트로때 인도자 말씀 선포 멘트 있습니다 이곡은 박자감 있게 찬양을 해야 합니다. 잘 모르겠음 역시나 많이 듣는 수 밖에 (노력하지 않고, 커다란 결과를 바라는것은...ㅋ) 3. 주님 계신곳에 나아가리 E - 김경석t - 세컨이 처음에 깔아주면 인도자가 기타를 치고(C#m7) 처음에 치고 나갑니다. 너무 처음에 강하게 들어 가지 않는 주위 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꽤 있을것 같으니 이것도 반드시 들어 보시길~ 4.완전하신 나의주 E 여길원t - 후렴으로 바로 들어 감( 저번주와 비슷) 후렴만 할 생각임 (반복 위주로) 대신 상승과 하강의 조화를 이루어서 중간에 기도 할거고, 기도할때 싱어 같이 기도 해주세요. 5.대표기도(기도시 조용히 자리로 이동) 6.엘샤다이 찬양대 기도송 7.말씀봉독 8.엘샤다이 찬양대의 찬양 9.목사님 설교 10.봉헌 -찬송가 71장 (새 찬송가 50장) 11.봉헌기도 *특별 찬양 - 12. 하늘에 계신 아버지 A 여길원t - 처음 첫 부분은 인도자가 치고 들어 갑니다. 다시 처음 부분 반복할 때 싱어 모두 같이 들어 와주시고, 자매 싱어의 대부분은 엘토 후렴과 브릿지를 해주길 바랍니다. 자신 있음 그냥 멜로디 해도 됩니다. 13. 예수는 내 삶의 모든것 A 여길원t - 12번 끝내면서 마지막에 후렴 어쿠스틱으로만 치겠습니다(저와 경석샘이) 처음에 인도자가 들어 가면 자연 스럽게 같이 들어 와주시면 되고, 밝은 찬양이니 같이 마음을 내려놓고 기쁘게 선포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가사 묵상 필수! 14. 산과 시내와 붉은 노을과 C 김경석t - 어노인팅 앨범에 잘 나와 있습니다. 잘 모르실수 있으니 싱어팀 숙제 해오시고 준비 된 사람은 토요일 연습이 즐겁습니다. ^^ 15. 그대를 만난것 G (학생이 교사를 축복) 김경석t - 스승의 주일을 맞아 학생이 교사를 축복하겠습니다. 16. 주님 말씀 앞에선 G (교사가 학생에게 답) 여길원t - 스승의 주일을 맞아 축복 받은 교사 학생에게 화답함 17. 결단 그리스도의 계절 A - 인도자가 번갈아 가면서 찬양 하겠습니다. 싱어팀은 그래도 그것과 상관이 같이 따라만 오시면 됩니다. 마지막 후렴에 셀라가 있을니 잘들 기억 해주시고 역시나 가사의 묵상이 중요합니다. 18. 목사님 축도 --------------예배 끝-------------
Christmas의 참 의미
christ-mas의 참 의미 2004-01-28 13:04:06 read : 76 12월 25일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다. 로마의 태양신(Nativity of the Sun)의 축제일이다. 안티옥교회 성경을 믿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없었다. 그들은 매일 성전에 모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며 재림의 주님을 기다렸다. 1642년 영국에서 청교도들이 권력을 장악하자 영국의회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을 금지시켰다. 정부의 포교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맙시다'(No Christmas)를 외치면서 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그 날도 평일처럼 열심히 일하였다. 심지어 그날에 먹던 건포도 과자나, 다진 고기를 넣은 파이 등도 이교도들의 풍습이라고 금지시켰다. 1620년 최초의 '미국 청교도 이민'에 관한 기록을 보면, 메사추세츠 법원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법까지 공포되었던 것이다. 1.사람의 유전으로 이교의 풍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12월25일에 탄생하지 않았다. 성경에는 전혀 그런 기록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양신의 생일인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최초의 언급과 망상은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Clement)의 '조직'(Stromata)에서 나타난다. 이 사람은 아프리카 학과를 오리겐과 유세비우스에게 인계했는데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틴 시대에 '바티칸 사본'을 완성했으며 이 사본에서 새 성서들(ASV과 RSV)이 만들어졌다. 사도행전이나 요한, 폴리캅, 이그나티우스의 사역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어떤 곳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어느 환경에서나 어떤 그리스도인이 지켰다는 지적이 전혀 없다. '생일'을 지키는 것은 페니키아인들의 유명한 이교적 바알 숭배 관습의 하나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토대와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 말씀 어디에서도, 어떤 성도들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의 생일을 기념했다는 기록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부정하게'태어나며 아담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에 거듭나야 한다(전7:1, 8, 요3:3-6)고 강조하였지 생일을 축하하라고 하시지 않았다. 욥의 재난의 동기도 자녀들과 해마다 그의 생일 잔치를 베푼 데에 있었다(욥1:4-5).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서 동방박사의 내방(마2:1-11), 아우구스토의 호적령(눅2:1-7),들의 목자들의 찬양(눅2:8-18)등은 12월 25일과는 모두 무관하다. * 사람의 계명들을 교리로 가르치니 그들이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막7:7) 2.성체 예식, 미사는 예배가 아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12월 24일 밤 12시에 크리스마스 전야(Christmas Eve) 미사를 드린다.신부의 축사로 부패한 물질적인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는 소위 화체설(Transubstantiation)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모독하는 참람된 행위인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정확한 영어 발음은 '크리스머스'인데 그 뜻은 크라이스트(Christ)의 미사(Missa)이다. 이 매스(Mass)라는 말은 라틴어의 미사(Missa)에서 왔으며,한자로 미사(彌사)는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요4:24)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III)에서 말하기를 "카톨릭 교회의 미사는 성만찬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말살하는 모독적인 행위로, 그런 행위는 곧 미신이며 우상이다"(p.524)라고 하였다.로마 카톨릭교회에서 30년 가까이 교황청의 제수이트(예수회) 신부로 있었던 알베르터 리베라(Alberto R. Rivera)박사는 중생한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미사란 단지 신성을 모독하는 것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참람된 저주의 행위라는 것을 깨닫고 즉시 거절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또 말하기를 "로마 카톨릭교회가 일 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168,000번의 미사를 드리는 행위는 예수님을 168,000번 죽이는 아주 참람하고 가증된 것이라"고 하였다(서달석역, 큰 바빌론II,p.86).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개신교가 지금까지 예수님의 성육신으로 전해 내려오는 '크리스마스'(Christ+mas)날을 그들과 함께 기념하고 있는 것은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정신에 위배된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말조차 사용해도 안된다. 3.예수님은 메키세덱의 계열을 좇아 오셨다. 메키세덱은 셀렘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여러 왕들을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축복해 준 자이다(히7:1). 예수님은 멜키세덱의 계열을 좇아 이 세상에 오신 영원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그런데 이 멜키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으며, 계보도 없다, 시작한 날과 생의 끝날도 없으나 하나님의 아들과 다름없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자이다(히7:3-4). 그는 육체와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좇아 된 것이다. 육체와 상관된 날을 좇아 출생한 자에게는 출생한 날이 소중할지 모르나, 육체와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그 날짜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한 번 출생하였다가 죽은 자에게는 출생과 사망의 날이 기념하지 않고 출생한 날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탄생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속죄로부터 시작된다(마20:28). 그리고 예수님께서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성령 강림으로부터 교회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사망의 종교는 교주의 출생일을 경축하지만 생명의 주를 믿고 영생이 있는 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날도 없으신 영존하신 하나님이시다(사9:6). 하나님은 사람처럼 생일이 있고 죽는 날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인 참된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도성인신(道成人身, Incarnation)하신 단회적(單回的) 사건(事件)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날짜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그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생일 축하와 같은 인간적인 행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진리되신 예수님은(요14:6), 2그분이 탄생하시지도 않은 가짜 날을 정해 놓고 이교도들의 세속적인 풍습을 따르는 행사를 결코 기뻐하실 히가 없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이교적 행사를 즉각 중단하고 초대교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안티옥교회 성경을 믿은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없었다. 12월 25일은 태양신의 생일을 경축하는 날이요, 결코 예수님이 탄생한 날이 아니다. 사람들이 정한 가짜날을 경축하는 자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진정한 가짜 날을 경축하는 자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진리의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할 뿐이다. *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쉬 버리고 너희 자신의 전통은 잘 지키는도다(막7:9) 너희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폐기하느니라. 또 이와 같은 많은 일을 자행하고 있도다(막7:13) ●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4세기경 네델란드의 대주교 신부로 본래 이름은 '성 니콜라스'(Saint Nikolas)였으며 그 이름을 미국식으로 부른 것이 '산타클로스'인데 그는 결혼을 못한 가난한 세 여인에게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여 준 것이 전설이 되어 신발, 또는 양말에 선물을 넣어 주는 풍습이 생겨났으며, 이교도 사랑의 신인 '베스'(Bes)가 겨울 북극에서 썰매를 타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전설과 혼합되어 오늘의 썰매를 타고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로 전래된 것이다(대영백과사전 19권, pp648-649). 부모들은 자신의 어린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 벌을 준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오면 그들은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에 얽힌 거짓말을 서슴없이 들려준다. 아이들 중의 많은 이가 자라나서 진실을 알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일이 단지 신화에 지나지 않음을 의아해 하지 않겠는가? 한 어린 아이가 '산타클로스'에 크게 실망하고는 친구에게 말하였다. "그래, 나는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업을 관찰해 볼 꺼야!". 기독교인이 아이들에게 허무맹랑한 신화와 거짓말을 가르치는 교사란 말인가?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계 21:8). ...우상 숭배자들과 누구든지 거짓말을 즐겨 행하는 자는 모두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계 22:15). ● 크리스마스 트리 스칸디나비아의 신(神) 오딘(Odin)이 크리스마스 계절에 성스러운 나무에 접근하면 선물을 준다고 믿어져 왔는데 이러한 풍습들이 로마의 농신제에 들어와서 성탄절 트리가 된 것이다. 13세기 프랑스에서 방랑하는 기사가 첩첩산중을 매이면서 큰 소나무를 발견했고 그 소나무 옆에 불타는 양초들을 발견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 양초들 위의 나무 위로 후광을 쓴 아이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교황에게 전해졌고, 교황은 그 나무는 인류를 대표하며 그 아이는 예수님이고 그 옆에 누워 있는 영혼들은 악한 사람들이며 서 있는 양초들은 선한 사람들이라고 해석하였다. 그것들이 오늘날 성탄절의 나무 옆에 세우는 양초 촛불들의 근원이었고 부활절이나 성탄절 새벽에 드리는 촛불 예배인 것이다(바이블뉴스, 1991. 12월호, p.23). *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렘 10:1-5). ● 선물교환 크리스마스 때 행하는 선물 교환은 성경에 없는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드린 '예물'( , 도론)은 희생제물(a sacrifice)의 뜻이 있다.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다. 성탄절 때에 선물 교환 때문에 시험받는 서오들이 많이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크리스마스와 농신제(農神祭, Saturnalia)의 성격이 흡사하다.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이교도에게서 받아들인 일임에 틀림없다"(대영백과사전 12권, pp.153-155). ● 베들레헴의 별 많은 학자들은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루살렘을 방문한 시기에 맞추어 예수님이 탄생한 날을 알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근래 영국 셰필드대학의 천문학자 데이비드 휴즈박사는 동방의 별은 840년마다 함께 오는 목성과 토성으로 B.C.1세기 9월 15일에 이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것을 근거로 예수님의 탄생일이 9월15일이라고 발표했다(스포츠 서울, 1993. 9. 17). 이것은 많은 성경학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초가을, 초막절(9월-10월)로 보는 견해와 과학적으로 일치한다. ● 참된 성탄의 의미 새벽송이 사라지고 크리스마스 트리의 촛불이 꺼지는 고요한 새벽,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이 어두운 심령을 밝혀 줄 때 참된 성육신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이교도들의 풍습을 좇지 말고 바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기 탄생일을 축하한 자는 애굽의 바로 왕이나, 예수님을 죽이려 한 헤롯왕 외에 없다. 헤롯왕이 예수님을 경배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마2:8). 예수님이 오신 날을 경축한다는 미명의 거짓에 속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왜 화려한 예루살렘의 호텔에 나시지 아니하고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탄생하셨는가? 이 비밀을 모르는 자에게는 참된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비가 풀리지 않는다. 오늘 울들의 심령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시도록 탐욕으로 가득찬 더러운 마음의 구유를 깨끗이 비우자(마2:6). 마라나다! 주님이 곧 오신다.
고난 주간 묵상 자료
고난 주간 묵상 자료 3.27 주일 1) 사건 : 예루살렘 성전의 입성(누가 19:28-44) 2) 묵상할 말씀 :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3) 기도 :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 주님 앞에 모든 죄 된것을 회개하게 하시고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됨의 권세를 지니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모든 옛옷을 벗어서 주님의 가시는 길바닥에 펴게 하시고 새옷으로 입히셔서 정결한 삶으로 인도하소서. 4) 기도제목 : 고난주간의 경건한 삶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함께 하지 못하는 가족을 위하여 94. 3. 28 월요일 1) 사건 : 무화과 나무의 저주(마가 11:12-14) 성전청결(마가 11:15-29) 2) 묵상할 말씀 : 고후 4:6-18(고후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고후4:9)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고후4:13) 기록한바 내가 믿는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고후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고후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함이라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3) 기도 : 세상이 주는 행복은 유한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행복은 영원함을 믿습니다.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나의 질그릇 안에 보물이신 주님을 품게 하시여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게 하소서 4)기도제목 : 나로인한 십자가임을 자복 자신의 성결하지 못한 부분 십자가위에 세워진 가정이 되기 위해 94. 3. 29 화요일 1) 사건 : 예루살렘을 보고 한탄함(마태 23:37-39) 가롯유다의 흥정(마가 14:10-11) 2) 묵상할 말씀 : 창 18:25(창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3) 기도 : 사람의 도덕은 땅에 떨어져 살인, 마약, 인신매매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면서 살아 갑니다. 의인 10명이 없었기 때문에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를 생각하면서 이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4) 기도제목 :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의 회개 무너진 가치관들의 회복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서 94. 3. 30 수요일 1) 사건 : 예수님에 대한 음모(누가 22:1-6) 한 여자의 준비 (마가 14:1-11) 2) 묵상할 말씀 : 요한 21:3-8(요21: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21: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요2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요21: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요21: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요21: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3) 기도 : 하나님의 교회에서 참된 복음이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가 가난한 자들에게 말씀과 몸으로 위로하게 하소서.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교회에서 체험하게 하소서 4) 기도제목 :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회개 옥합을 깨뜨리는 헌신의 용기를 간구 바른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교회를 위하여 94. 3. 31 목요일 1) 사건 : 성만찬과 기도(누가 22:7-53) 겟세마네의 기도(마가 14:32-46) 2) 묵상할 말씀 : 마 7:7-8(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7: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3) 기도 : 내 이웃의 외침이 내귀에 생생합니다. 나태함과 게으른 모습에서 일어나 이웃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게 하소서. 중보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소서. 4) 기도제목: 순종하지 못했던 삶을 회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살기위하여 나누는 우리의 삶을 위하여 94. 4. 1 금요일 1) 사건 : 빌라도의 심문(누가 23:1-5) 십자가의 죽음(마가 15:16-41) 2) 묵상할 말씀 : 이사야 53:2-12(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 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사53: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사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사53: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3) 기도 :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믿나니 새롭게 거듭나는 영혼들을 하늘나라의 생명록에 기록하소서. 구원의 구조선이 되어 영혼들에게 찾아가는 뜨거운 심령을 주옵소서. 4) 기도제목 : 부인하는 나의 죄를 회개 믿지 아니하는 영혼(구원의 대상)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감사 94. 4. 2 토요일 1) 사건 : 무덤에 계심(마가 15:42-47) 2) 묵상할 말씀 : 베드로 전서 2:19-24(벧전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3) 기도 : 아무죄도 없으신 주님은 억울하게 운명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구원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믿음을 실족한 영혼들은 주님의 고통이 헛되이지 않도록 기다리는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4) 기도제목 : 남아 있는 나의 욕심을 회개 낙심하여 실족한 영혼 죽음의 상태에서 부활의 소망으로 살기 위해 예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한주간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마지막한 주 간은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한 수난의 한 주간이었으며 부활하여 죄와 사망을 이기신 승리의 시간이었다. 그 하루하루를 살펴보자. 주일 : 예수는 아직 아무도 태워본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야로 믿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송하며 그를 영접한다. 그러나 예수는 장차 심판으로 무너질 성전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마21:1-11, 요12:12-19) 월요일 : 예수님은 성전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아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 과 서기관들,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 모의하기 시작한다. (마21:12-13.눅19:45-46) 화,수요일 :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서기관과 대제사장,바리새인들의 간교 한 질문들에 답변하시며 성전의 파괴와 대환란,종말의 징조들,제자들의 박해받을 일 과 재림등을 예언하시며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으라"고 당부하신다. 가룟유다가 유 대인에게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한다. (마26:1-5, 막14:1-11) 목요일 : 유월절 저녁이다. 예수는 어느 가정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다. 서로 누가 터 크냐는 논쟁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서로 섬겨야 할 것을 친 히 보여주셨고 배반자 유다를 지적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다. 그리 고 베드로가 세번 예수를 부인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 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 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모든 인류의 죄의 잔을 받으신다. 유다가 무리와 함께 올라와 예수를 체포, 대제사장에게 넘긴다. (마26:47-56, 요18:3-13) 금요일 :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유대인들의 요구로 바라바는 놓임을 받고 대신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아 그날로 십자가에 달려 장사되신다. (마27:1-2, 요18:28-38) 주일 : 새벽, 부활하시다!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 게, 또 갈릴리 바다 등에서 여러 제자에게 나타나 예언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이시고 증인의 사명을 주신후 승천하신다. (마28:1-7, 요22:11-17)
고난주간의 의미
고난주간의 의미 ● 고 난 주 간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 또는 수난주간이라 하며, 이 주간은 수난절의 절정기로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주간임을 뜻한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로 부터 시작된다. ● 종 려 주 일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마21:1-11,막11:1-10,눅19:28-40, 요12:12-19)이며, 고난 주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 주간에는 더욱 뜻있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한다.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여섯번째 주일이 된다. 한때 이 주일은 “호산나 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또한 이 주일이 종려주일과 관련되기 이전에 고대 교회에서는 “세례 지원자 주일” 이라고 불리웠는데 이 명칭은 부활절에 세례를 받기 위하여 행하는 지원자들의 준비와 관련 되어 있는 것이다. 세례 지원자들은 이 주일에 처음으로 기독교 신조와 주님의 기도를 배웠고 그것을 비밀로서 간직 하였다. 이날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며 또한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 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정결하게 일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 수난주간의 예수님의 행적 󰠆󰠏󰠏󰠏󰠏󰠏󰠏󰠇󰠏󰠏󰠏󰠏󰠏󰠏󰠏󰠏󰠏󰠏󰠏󰠏󰠏󰠏󰠏󰠏󰠏󰠏󰠏󰠏󰠏󰠏󰠏󰠏󰠏󰠏󰠏󰠏󰠏󰠏󰠏󰠏󰠏󰠏󰠏󰠏󰠏󰠇󰠏󰠏󰠏󰠏󰠏󰠏󰠏󰠏󰠏󰠏󰠏󰠏󰠏󰠏󰠏󰠏󰠏󰠏󰠏󰠏󰠏󰠏󰠏󰠏󰠏󰠏󰠏󰠏󰠏󰠏󰠏󰠏󰠏󰠏󰠏󰠏󰠏󰠏󰠈 󰠐요 일󰠐 사 건 󰠐 성 경 본 문 󰠐 󰠉󰠏󰠏󰠏󰠏󰠏󰠏󰠊󰠏󰠏󰠏󰠏󰠏󰠏󰠏󰠏󰠏󰠏󰠏󰠏󰠏󰠏󰠏󰠏󰠏󰠏󰠏󰠏󰠏󰠏󰠏󰠏󰠏󰠏󰠏󰠏󰠏󰠏󰠏󰠏󰠏󰠏󰠏󰠏󰠏󰠊󰠏󰠏󰠏󰠏󰠏󰠏󰠏󰠏󰠏󰠏󰠏󰠏󰠏󰠏󰠏󰠏󰠏󰠏󰠏󰠏󰠏󰠏󰠏󰠏󰠏󰠏󰠏󰠏󰠏󰠏󰠏󰠏󰠏󰠏󰠏󰠏󰠏󰠏󰠋 󰠐일요일󰠐▶개선의 날 󰠐 󰠐 󰠐 󰠐 1. 예루살렘에 입성하심 󰠐 눅19:28-40 󰠐 󰠐 󰠐 2. 무리의 반응과 예수님의 우심 󰠐 눅19:41-44 󰠐 󰠉󰠏󰠏󰠏󰠏󰠏󰠏󰠊󰠏󰠏󰠏󰠏󰠏󰠏󰠏󰠏󰠏󰠏󰠏󰠏󰠏󰠏󰠏󰠏󰠏󰠏󰠏󰠏󰠏󰠏󰠏󰠏󰠏󰠏󰠏󰠏󰠏󰠏󰠏󰠏󰠏󰠏󰠏󰠏󰠏󰠊󰠏󰠏󰠏󰠏󰠏󰠏󰠏󰠏󰠏󰠏󰠏󰠏󰠏󰠏󰠏󰠏󰠏󰠏󰠏󰠏󰠏󰠏󰠏󰠏󰠏󰠏󰠏󰠏󰠏󰠏󰠏󰠏󰠏󰠏󰠏󰠏󰠏󰠏󰠋 󰠐월요일󰠐▶권위의 날 󰠐 󰠐 󰠐 󰠐 1.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 마21:18-19, 막11:12-14 󰠐 󰠐 󰠐 2. 두번째 성전을 께끗케 하심 󰠐 마21:12-17, 눅19:45-48 󰠐 󰠉󰠏󰠏󰠏󰠏󰠏󰠏󰠊󰠏󰠏󰠏󰠏󰠏󰠏󰠏󰠏󰠏󰠏󰠏󰠏󰠏󰠏󰠏󰠏󰠏󰠏󰠏󰠏󰠏󰠏󰠏󰠏󰠏󰠏󰠏󰠏󰠏󰠏󰠏󰠏󰠏󰠏󰠏󰠏󰠏󰠊󰠏󰠏󰠏󰠏󰠏󰠏󰠏󰠏󰠏󰠏󰠏󰠏󰠏󰠏󰠏󰠏󰠏󰠏󰠏󰠏󰠏󰠏󰠏󰠏󰠏󰠏󰠏󰠏󰠏󰠏󰠏󰠏󰠏󰠏󰠏󰠏󰠏󰠏󰠋 󰠐화요일󰠐▶변론의 날 󰠐 󰠐 󰠐 󰠐 1.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 󰠐 마21:23-27, 눅20:1-8 󰠐 󰠐 󰠐 2. 경고의 세가지 비유 󰠐 마21:28-32, 마21:33-46, 마22:1-14 󰠐 󰠐 󰠐 (두아들,악한농부,혼인잔치) 󰠐 󰠐 󰠐 󰠐 3. 지도자들과의 논쟁 󰠐 마22:41, 눅20:41-44 󰠐 󰠐 󰠐 4.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경고 󰠐 마24:25, 막13장, 눅21:5-38 󰠐 󰠐 󰠐 5. 유다의 반역 󰠐 마26:14-16, 막14:10-11 󰠐 󰠉󰠏󰠏󰠏󰠏󰠏󰠏󰠊󰠏󰠏󰠏󰠏󰠏󰠏󰠏󰠏󰠏󰠏󰠏󰠏󰠏󰠏󰠏󰠏󰠏󰠏󰠏󰠏󰠏󰠏󰠏󰠏󰠏󰠏󰠏󰠏󰠏󰠏󰠏󰠏󰠏󰠏󰠏󰠏󰠏󰠊󰠏󰠏󰠏󰠏󰠏󰠏󰠏󰠏󰠏󰠏󰠏󰠏󰠏󰠏󰠏󰠏󰠏󰠏󰠏󰠏󰠏󰠏󰠏󰠏󰠏󰠏󰠏󰠏󰠏󰠏󰠏󰠏󰠏󰠏󰠏󰠏󰠏󰠏󰠋 󰠐수요일󰠐▶음모의 날 󰠐 󰠐 󰠐 󰠐 1. 예수를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밈 󰠐 마26:3-5, 막14:1-2, 눅22:1-2 󰠐 󰠉󰠏󰠏󰠏󰠏󰠏󰠏󰠊󰠏󰠏󰠏󰠏󰠏󰠏󰠏󰠏󰠏󰠏󰠏󰠏󰠏󰠏󰠏󰠏󰠏󰠏󰠏󰠏󰠏󰠏󰠏󰠏󰠏󰠏󰠏󰠏󰠏󰠏󰠏󰠏󰠏󰠏󰠏󰠏󰠏󰠊󰠏󰠏󰠏󰠏󰠏󰠏󰠏󰠏󰠏󰠏󰠏󰠏󰠏󰠏󰠏󰠏󰠏󰠏󰠏󰠏󰠏󰠏󰠏󰠏󰠏󰠏󰠏󰠏󰠏󰠏󰠏󰠏󰠏󰠏󰠏󰠏󰠏󰠏󰠋 󰠐목요일󰠐▶준비의 날 󰠐 󰠐 󰠐 󰠐 1. 유월절 식사 󰠐 마26:17-25, 요13:1-7 󰠐 󰠐 󰠐 2. 최후의 성만찬 󰠐 마26:26-29, 막14:22-25 󰠐 󰠐 󰠐 3. 예수의 고별설교와 중보기도 󰠐 요17장, 요13:31-35, 14:1-31, 15:1-27 󰠐 󰠐 󰠐 󰠐 16:1-33 󰠐 󰠉󰠏󰠏󰠏󰠏󰠏󰠏󰠊󰠏󰠏󰠏󰠏󰠏󰠏󰠏󰠏󰠏󰠏󰠏󰠏󰠏󰠏󰠏󰠏󰠏󰠏󰠏󰠏󰠏󰠏󰠏󰠏󰠏󰠏󰠏󰠏󰠏󰠏󰠏󰠏󰠏󰠏󰠏󰠏󰠏󰠊󰠏󰠏󰠏󰠏󰠏󰠏󰠏󰠏󰠏󰠏󰠏󰠏󰠏󰠏󰠏󰠏󰠏󰠏󰠏󰠏󰠏󰠏󰠏󰠏󰠏󰠏󰠏󰠏󰠏󰠏󰠏󰠏󰠏󰠏󰠏󰠏󰠏󰠏󰠋 󰠐금요일󰠐▶수난의 날 󰠐 󰠐 󰠐 󰠐 1. 배반당하고 잡히신 예수 󰠐 마26:30,36-56, 막14:26,32-52 󰠐 󰠐 󰠐 2. 공회앞에 서신 예수 󰠐 마26:57-58, 눅22:54-55 󰠐 󰠐 󰠐 3. 빌라도의 심문 󰠐 마27:21-31, 눅23:1-25 󰠐 󰠐 󰠐 4. 십자가의 죽으심 󰠐 마27:31-50, 막15:20-46, 눅23:26-54 󰠐 󰠉󰠏󰠏󰠏󰠏󰠏󰠏󰠊󰠏󰠏󰠏󰠏󰠏󰠏󰠏󰠏󰠏󰠏󰠏󰠏󰠏󰠏󰠏󰠏󰠏󰠏󰠏󰠏󰠏󰠏󰠏󰠏󰠏󰠏󰠏󰠏󰠏󰠏󰠏󰠏󰠏󰠏󰠏󰠏󰠏󰠊󰠏󰠏󰠏󰠏󰠏󰠏󰠏󰠏󰠏󰠏󰠏󰠏󰠏󰠏󰠏󰠏󰠏󰠏󰠏󰠏󰠏󰠏󰠏󰠏󰠏󰠏󰠏󰠏󰠏󰠏󰠏󰠏󰠏󰠏󰠏󰠏󰠏󰠏󰠋 󰠐토요일󰠐▶예비의 날 󰠐 󰠐 󰠐 󰠐 1. 예수의 무덤을 굳게 지킴 󰠐 마27:62-66 󰠐 󰠌󰠏󰠏󰠏󰠏󰠏󰠏󰠍󰠏󰠏󰠏󰠏󰠏󰠏󰠏󰠏󰠏󰠏󰠏󰠏󰠏󰠏󰠏󰠏󰠏󰠏󰠏󰠏󰠏󰠏󰠏󰠏󰠏󰠏󰠏󰠏󰠏󰠏󰠏󰠏󰠏󰠏󰠏󰠏󰠏󰠍󰠏󰠏󰠏󰠏󰠏󰠏󰠏󰠏󰠏󰠏󰠏󰠏󰠏󰠏󰠏󰠏󰠏󰠏󰠏󰠏󰠏󰠏󰠏󰠏󰠏󰠏󰠏󰠏󰠏󰠏󰠏󰠏󰠏󰠏󰠏󰠏󰠏󰠏󰠎
교회력의 중요성 및 각 절기의 기원과 의미
교회력의 중요성 및 각 절기의 기원과 의미 2008-06-19 11:46:53 read : 122 I. 교회력의 중요성 “기독교는 시간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독교에서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시간을 벗어나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하늘에서 떨어진 어떤 특별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이 살아가는 그 시간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시간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는 일반적인 구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났던 하나님의 특별한 행동에 의해 성취된 구원을 증거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체적인 시간에,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바로 그 시간 안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중시하는 기독교의 태도는 예배에도 반영된다. 예배의 구조는 하루, 한 주, 혹은 한 해 동안의 리듬을 갖는다. 기독교 예배는 시간으로부터의 회피가 아니라 시간을 자신의 기본 구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과거에 일어났던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하나님의 행위와 만남의 장이 된다. 우리가 예배에서 경험하는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시간적 사건들에 근거된 실재이다. 시간을 구성하는 방식은 구원의 근거가 되는 행위들을 상기하고 다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한마디로 기독교 예배는 시간 위에서 설립된다. 교회력은 이처럼 시간을 중시하는 기독교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즉 교회력은 특정한 시간 안에서 발생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일정한 주기에 따라 반복함으로써 그 구원사건을 회상1)할 뿐 아니라 다시금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력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영위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확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회력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II. 각 절기의 기원과 의미 절기는 교회력을 구성하는 핵심이다.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동안 일어난 사건들을 회상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 졌다. 그러므로 각 절기들이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또한 그것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한다면, 교회력의 중요성을 더욱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1. 주의 날 교회력은 주의 날(the Lord's day; 계 1:10)부터 시작된다.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이 6일간 창조하시고 7 일째 날 안식하셨다는 것에 근거하여 율법이 제시하는 안식일을 지킨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한 주의 첫 째 날을 예배를 위한 특별한 날로 제시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한 주의 첫날을 연보를 위한 날로 성별 시키라고 말했다 (고전 16:2). 바울은 또한 트로아에서 토요일 자정까지 설교한 뒤에 일요일 새벽까지 기독교인들과 대화하였다(행 20:7, 11). 계시록의 저자도 자신이 성령에 의해서 사로잡힌 날이 “주의 날”이라고 말한다(계 1:10). “주의 날”은 1세기 말엽 한 주의 첫째 날로 이미 기독교인들에게 친숙해 져 있었다. “주의 날”을 지키는 것은 초대교회가 자신의 신앙을 증거 하는 방식이었다. 복음서는 모두 빈 무덤이 발견된 날이 안식 후 첫날 아침이라고 증언한다(마 28:1-6, 막 16:2-6, 눅 24:1-3, 요 20:1-8). 안식 후 첫날은 창조의 첫째 날로써 하나님이 어두움과 빛을 갈랐던 바로 바로 그 날이다.2) 복음서는 또한 부활한 그리스도가 한 주가 시작되는 첫째 날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 증언한다(마 28:9이하, 눅 24:13이하, 요 20:14이하). AD 115년경 익냐시우스(Ignatius)는 매그네시아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식일을 금하고 주의 날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에 관하여 언급한다. 2세기 초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디다케(the Didache) 역시 기독교인들에게 “주의 날에 함께 모여서 떡을 떼며 성만찬을 행하라”고 권고한다. 심지어 이교도들도 “기독교인들은 특별한 날(주의 날) 동트기 전에 성만찬을 위해 모이는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또 주의 날의 다른 용어인 “Sunday"(태양의 날)는 2세기 중엽 등장했다. 순교자 저스틴은 155년 경 이교도 청중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Sunday에 함께 모인다. 그 날은 하나님이 어두움을 물리치고 우주를 창조한 첫 날이며,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일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곧 이교도 용어이지만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로 해석하여 Sunday를 받아들였다. 바나바 서신은 Sunday를 “제 8일, 즉 그리스도가 죽은 자 들에게서 부활한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 날”이라고 불렀다. 초대 교인들은 Sunday를 창조의 제 8일로 생각했다. 제 8일은 하나님이 안식하신 뒤 새로운 창조를 시작한 날이란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의미가 여기에 들어 있다 (고후 5:17). Sunday는 휴식의 날이 아니라 예배의 날이었다. Sunday는 다른 날들보다 상위의 개념을 지녔다. 그 날은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에서 Sunday는 주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회상하는 날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구세주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터툴리안은 기독교인들은 Sunday, “주께서 부활한 날”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매 Sunday는 부활의 신앙을 입증한다. 따라서 Sunday는 매주 지키는 부활절이라고 볼 수 있으며, 부활절은 한해의 가장 큰 Sunday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부활절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게는 그가 유월절에 십자가형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유대인들에게 유월절은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을 에집트에서 구하여 안전하게 홍해를 건너게 하고 자유로운 백성으로 만들어 준 사실을 기억(historical anamnesis)하는 절기였기 때문이다. 초대 교인들은 자신들 역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며, 따라서 더 이상 죄와 죽음의 노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자유로운 백성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유월절에 잡는 어린양을 가리키면서, 바울은 다음과 말한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으로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전 5:7-8). 이 말씀은 옛날 유대인의 구원 사건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노예와 구원의 도식은 같지만,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사역에 의해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대 교인들이 매 주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기념했지만, 연중 최고의 주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유월절3) 때가 적절했다. 한 주의 초점이 주의 날에 맞추어진 것처럼, 한해의 초점은 파스카(유월절)에 맞추어 졌다. 기독교인들은 적어도 2세기까지 이 파스카를 지켰다. 2-3세기 교회 역시 이 파스카를 준수했는데, 이때 세례와 안수 그리고 첫 성찬을 통해서 새롭게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예배를 드렸다. 파스카가 홍해를 건넘으로써 노예로부터 해방된 것을 회상하는 절기였던 것처럼, 교회 역시 세례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4-5). 처음 3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은 파스카때 함께 회상되었다. 터툴리안은 “유월절은 세례예식이 행해지는 날 보다 훨씬 더 엄숙하다. 왜냐하면 유월절은 우리의 세례의 근거가 되는 주의 수난이 이루어진 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초대 교인들 사이에서는 기독교의 파스카가 유월절에 대한 유대력을 좇아야 하는가에 대한 긴 토론이 있었다.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은 유대력으로 닛산월 14일에 일어났는데, 유대력은 음력이기 때문에, 유월절은 보름날 시작되었다.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교회는 결국 유대의 유월절과 달리 교회의 파스카는 항상 Sunday에 지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는 Sunday의 상징적 의미를 인식한 결정이었다. 나중에 서 유럽에서는 파스카가 보름 이후 혹은 춘분인 3월 21일 이후의 Sunday로 고착되었고, 로만 캐톨릭과 개신교회는 부활절을 이 방식으로 설정하였다.4) 이것이 부활절이 매년 다른 날(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로 된 이유이다.5) 4세기 무렵, 예루살렘에서 지낸 예수의 마지막 사건들 전체를 회상했던 파스카는 몇 개로 구분되었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각각의 거룩한 장소들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분리해서 예배할 필요 때문이었다. 유게리아(Eugeria, 스페인여성으로 384년 순례자중 한 명)의 노트가 한 예로 제시될 수 있다. 그녀의 순례 노트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수난/종려 주일, 혹은 수난 주간(Holy Week, Great Week으로 불려지기도 함)의 시작은 부활절의 시작이었다. 이 주일에 모든 사람들은 시편과 교창 성가집(antiphone)을 들고 감독 앞에 가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에게 축복 있으라’ 라는 말을 계속 반복했다.” 다음 3일 간은 작은 예배들이 있었는데, 수요일은 예외적으로 장로(평신도가 아닌 목회자를 가리킴)가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음모에 관해서 읽을 때, 사람들은 신음하며 한탄했다. 목요일은 성만찬을 행한 후 모두가 감독을 겟세마네로 이끌어 갔다. 금요일에는 골고다에서 예배가 이루어 졌는데, 거기서 모든 이들이 행진하면서 나무 십자가에 입 맞추었다. 그러나 4세기 말에 와서 이런 방식의 수난주간 행사는 중단되었다. 어거스틴은 “예수가 어느 날 십자가에 달렸고 어느 날 묻혔는지 그리고 어느 날 부활했는지 복음서에 분명하게 나온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날들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했고, 이때부터 고대의 파스카는 다음과 같이 분리되어 지키게 되었다: 성 목요일(Holy Thursday), 성 금요일(Good Friday), 성 토요일(Holy Saturday), 그리고 부활주일(Easter eve and Day), 또한 수난주간에 앞선 수난/종려 주일과 수난주간의 작은 날들. 3. 성령강림절(오순절) 파스카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절기는 오순절이다. 오순절은 레위기 23:15-16에 나오는 유대교의 추수 절기였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 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러나 1세기에는 때때로 오순절이 시내 산에서 토라를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되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에게 오순절은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탄생된 기념일로 여겨졌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성령이 유대절기인 오순절날 강림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토라를 받은 것과 성령 받은 것이 대비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시내 산에서 완성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순절날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계약을 맺었다고 그들은 믿었다. 적어도 2세기까지는 오순절이 세례를 위해 적절한 날로 여겨졌다. 미쳐 준비를 못해 부활절날 세례 받지 못한 자들은 오순절날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교회의 탄생 기념일인 오순절날 새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4세기까지는 오순절이 성령의 강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가 오순절날 승천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4세기 말에 이르러 성령강림과 그리스도의 승천은 분리되어 기념되었다. “사도헌장”(Apostolic Constitution)에는 “그리스도의 승천 기념일”이 부활절 후 40일째 되는 날이 적절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을 40일간 가르쳤다는 사도행전 1:3에 근거한 것이다. 파스카(수난절/부활절)와 오순절(성령강림절)은 교회력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로 중요한 절기의 시작이며 마지막이다. 오순절은 부활주일부터 50번째 날을 지칭할 뿐 아니라 부활주일부터 시작하는 50일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유대력에서는 오순절, 즉 “첫 열매의 날”(the Day of First Fruits)을 유월절부터 시작된 한 주기의 결론으로 여겼다. 이 주기 동안 출애굽 자체와 그것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이 기념되었다. 오순절은 추수의 성별에서 시작되는 추수시즌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순절”이란 용어는 50일 주기의 마지막날과 50일 주기 전체를 지칭했다. 기독교인들 역시 “오순절”을 오순절의 날 하루 뿐 아니라 부활절에서 시작된 50일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했다. 즉 오순절은 예수의 부활에서 시작하여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교회가 탄생된 때까지의 50일을 가리켰다. 어거스틴은 “주의 부활후 이 날들은 평화와 기쁨의 기간이다. 그러므로 금식해서는 안되고 부활을 상징하여 서서 기도해야한다. 이는 매 주일 지켜져야 하고, 알렐루야 송을 불러야 한다. 알렐루야 송은 장차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의 위치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즉 오순절은 부활절기의 일환으로 지켜졌고, 성령강림과 교회의 탄생은 부활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니케아 공의회(AD 325)는 Lent(사순절)를 “40일”로 정했다. “40일”은 금식하고 사역을 준비했던 예수의 광야 40일과 비교될 수 있다. 어거스틴의 시대에 사순절은 세례를 위한 준비 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주의 수난에 동참할 준비를 하는 기간이었다. 사순절은 회개의 기간이었고, 영적인 훈련의 수단인 금식은 사순절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에도 매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했다. 주의 날은 사순절 기간보다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순절 기간 중 6번의 주일은 40일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순절은 따라서 재의 수요일(부활주일 전 7번째 수요일)에서 시작되어 부활절 바로 전날까지 총 46일이 되었다.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 사순절,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일러서 “부활절 기간”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교회력의 중심이다. 이 기간은 교인들이 재로부터 정화에 이르는 순례의 행진을 하는 동안 도전 받고 갱신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4. 성탄절과 주현절 또 하나의 중요한 절기는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부활절보다 오래되지 않았고, 또한 구약의 절기에서 유래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현절(epiphany, 1월 6일)은 오늘날 성탄절만큼 중요하게 취급되지는 않지만, 성탄절보다 오래되었고, 초대 교회력에서는 주현절이 부활절과 오순절 다음으로 중요한 절기였다. 주현절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2세기 후반 에집트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piphany"는 “현현”(manifestation)을 의미하는데,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현현한 것을 지칭한다. 주현절은 예수의 탄생, 그의 세례, 그리고 갈릴리의 가나에서 행한 첫 기적 등을 기념하는데, 이 모든 사건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종종 이날을 “The Theophany"(하나님의 현현)라고 명명했는데, 이 명칭은 지금도 동방 정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다. 부활절과 마찬가지로, 주현절은 4세기에 몇 개로 나뉘어 졌다. AD 354년부터 그리스도가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날이 12월 25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 날짜가 인정된 것은 아프리카에서는 312년 보다 앞서고, 로마에서는 336년 무렵으로 추정된다. 점진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주현절의 일부로 지켜지게 되었다. 386년 크리소스톰은 안디옥에서 성탄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날은 최근 빠른 시간 내에 발전되어 절기로 지켜지게 되었다.” 뒤에 오는 주현절에 관하여 그는 “왜 이날을 주현절이라고 부르는가? 예수가 모두에게 알려진 것은 탄생된 때가 아니라 세례 받은 때이기 때문이다. 세례 받기 전까지 그는 알려지지 않았다” 라고 말했다. 1월 6일 지켜지는 주현절이 동방전통에서는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서 유럽에서는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각각 지켜지고 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현현 하셨다는 사실을 이방에 알렸기 때문이다. 주현절과 성탄절을 분리해서 기념하게 된 이유는 예수의 생애 동안 발생한 사건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기념하려는 초대교인들의 열망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예수가 언제 태어났고, 어느 날 세례 받았는지, 또 동방박사들이 어느 날 방문했는지 등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1월 6일과 12월 25일은 고대 이집트와 줄리안(로마) 달력에 따라 동지를 기념하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됨에 따라, 성탄절은 동지를 표시했던 이교도의 “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축제”를 대신하게 되었다. 어두움을 정복하는 빛이라는 주제는 항상 주현절과 성탄절의 주된 개념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날들은 예수가 죽은 날과 그가 잉태된 날을 일치시키는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부활절 준비를 위해서 사순절이 필요 했던 것처럼, 성탄절과 주현절 역시 준비기간을 필요로 했다. 스페인의 한 공의회는 12월 17일부터 주현절(1월 6일)까지 교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치 않았는데, 이는 대강절(Advent)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5세기에 가울(Gaul) 에서는 주현절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40일을 두었는데, 이것은 Lent 기간이 40일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었고, 그 시작은 지금의 대강절 즈음이었다. 결국 로마는 12월 25일 보다 4주 앞선 주일부터 대강절로 정했다. 대부분의 중요한 기독교 절기들은 4세기에 마무리되었다. 존 크리소스톰은 386년 행한 설교에서 예배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그리스도가 육체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세례를 받지 않았을 것이고 (주현절), 그는 십자가에서 죽고 또한 부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파스카), 성령을 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오순절).” 4세기에 세 개의 중요한 초대 절기들-주현절, 부활절, 오순절-은 다시 다음과 같이 나뉘어 졌다: 성탄절, 성금요일, 승천일, 그리고 대강절, 사순절 같은 절기들. 4세기 이후 생긴 중요한 절기 가운데 하나는 삼위일체 주일(Trinity Sunday)이다. 삼위일체 주일은 오순절 후의 주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약 1000년 경 도입되었다. 여타의 절기들과 달리, 이 절기는 역사적 사건과는 무관한 신학적인 교리를 나타낸다. III. 성서일과 (Lectionary) 성서일과는 교회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lectionary” 란 말은 넓은 의미에서 “교회력에 있는 특별한 절기의 예배를 위해 선택된 본문들의 체계”를 지칭한다. 이러한 성서일과에는 lectio continua와 lectio selecta의 두 원리가 있다. 전자는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 까지 읽든지, 성서의 어느 특정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가는 방법을 가리키고, 후자는 절기에 따라 선택해서 읽는 것을 말한다. 유대교의 회당에서는 각 절기에 해당하는 성서의 본문들을 규정해 놓고 일상적인 안식일에 lectio continua의 원리에 따라 선택된 성서 본문을 읽는다. 이 원리는 개인적으로 성서를 꾸준히 읽을 때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성경의 각 구절들의 맥을 찾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더욱이 교회력에 따라 성서의 본문을 찾을 때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에 반하여 lectio selecta는 성서의 본문을 선택하여 읽는 방법이므로 교회력과 관련해 볼 때 유용한 원리라고 할 수 있겠다. 기독교의 성서일과에 대한 기원은 분명치 않지만, 유대교의 유월절에 읽었던 출애굽기 12장은 로마에서 200년 경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325년 이전에 이미 기독교의 주요 절기들을 위해 특별히 지정된 성서 본문이 있었고, 일반적인 주일에는 lectio continua의 원리에 의해 성서의 본문을 읽었다. 서 유럽에서는 다양한 성서일과들이 발달되었다. 9세기 초 성서일과들이 표준화되어 최근까지도 로만 캐톨릭, 성공회, 루터 교회 등에서 사용되었다. 성서일과는 3년 주기로 되어 있으며 그 본문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강절 예1) 첫주: 시 122 (1, 4, 7), 시 80:1-7 (2, 5, 8), 시 25:1-10 (3, 6, 9) 둘째주: 시 72:1-8 (1, 4, 7), 시 85:8-13(2, 5, 8), 시 126 (3, 6, 9) 셋째주: 시 146:5-6 (1, 4, 7), 눅 1:46b-55 (2, 5, 8), 사 12:2-6 (3, 6, 9) 넷째주: 시 24 (1, 4, 7), 시편 89:1-4, 19-24 (2, 5, 8), 시 80:1-7 (3, 6, 9) 예2) 첫주: 마 24:36-44 (1, 4, 7), 막 13:32-37 (2, 5, 8), 눅 21:25-36 (3, 6, 9) 둘째주: 마 3:1-12 (1, 4, 7), 막 1:1-8 (2, 5, 8), 눅 3:1-6 (3, 6, 9) 셋째주: 마 11:2-22 (1, 4, 7), 요 1:6-8, 19-28 (2, 5, 8), 눅 3:7-18 (3, 6, 9) 넷째주: 마 1:18-25 (1, 4, 7), 눅 1:26-38 (2, 5, 8), 눅 1:39-55 (3, 6, 9) 2. 성탄절 예1) 사 9:2-7 (매년), 시편 96 (매년), 디도서 2:11-14 (매년), 눅 2:1-10 (매년) 예2) 사 62:6-7 (매년), 시편 97 (매년), 디도서 3:4-7 (매년), 눅 2:8-20 (매년) 예3) 사 52:7-10 (매년), 시편 98 (매년), 히 1:1-12 (매년), 요 1:1-14 (매년) 3. 주현절 구약: 사 42:1-9 (1, 4, 7), 창 1:1-5 (2, 5, 8), 사 61:1-4(3, 6, 9) 복음서: 마 3:13-17 (1, 4, 7), 막 1:4-11 (2, 5, 8), 눅 3:15-17 (3, 6, 9) 4. 재의 수요일 시편 51:1-12, 고후 5:20b-6:2, 마 6:1-6, 16-21 (매년) 5. 사순절 1) 첫 번 주일: 창 2:4b-9, 15-17, 3:1-7; 롬 5:12-19; 마 4:1-11 (1, 4, 7) 창 9:8-17, 시 25:1-10, 벧전 3:18-22, 막 1:9-15 (2, 5, 8) 신 26:1-11, 시 91:9-16, 롬 10:8b-13, 눅 4:1-13 (3, 6, 9) 2) 두 번째 주일: 창 12:1-4b(4b-8), 시 33:18-22, 롬 4:1-5(6-12), 13-17, 요 3:1-17 혹은 마 17:1-9 (1, 4, 7) 창 17:1-10, 15-19, 시 105:1-11, 롬 4:16-25, 막 8:31-38 혹은 막 9:1-9 (2, 5, 8) 창 15:1-12, 17-18, 시 127, 빌립보서 3:17-4:1, 눅 13-31-35 혹은 9:28-36 (3, 6, 9) 3) 세 번째 주일: 출 17:3-7, 시 95, 롬 5:1-11, 요 4:5-26[27-42] (1, 4, 7) 출 20:1-17, 시 19:7-14, 고전 1:22-25, 요 2:13-22 (2, 5, 8) 출 3:1-15, 시 103:1-13, 고전 10:1-13, 눅 13:1-9 (3, 6, 9) 4) 네 번째 주일: 삼상 16:1-13, 시 23, 엡 5:8-14, 요 9:1-41 (1, 4, 7) 역대하 36:14-23, 시 137:1-6, 엡 2:4-10, 요 3:14-21 (2, 5, 8) 수 5:9-12, 시 34:1-8, 역대하 5:16-21, 눅 15:1-3, 11-32 (3, 6, 9) 6. 종려주일 사 50:4-9b, 시 31:9-16, 빌립보 2:5-11 (매년) 수난 이야기: 마 26:14-27:66 (1, 4, 7); 막 14:1-15:47 (2, 5, 8); 눅 22:14-23:56 (3, 6, 9) 7. 성금요일 사 52:13-53:12 (매년), 히 4:14-16, 5:7-9 (매년) 8. 부활절 마 28:1-10 (매년), 막 16:1-8 (매년), 눅 24:1-12 (매년) 9. 성령강림절 행 2:1-21 (매년), 고전 12:3b-13 (1, 4, 7), 롬 8:22-27 (2, 5, 8), 롬 8:14-17 (3, 6, 9) 요 20:19-23 혹은 7:37-39 (1, 4, 7), 요 15:26-27, 16:4b-15(2, 5, 8), 요 14:8-17, 25-27 (3, 6, 9) 10. 삼위일체 주일 신 4:32-40 (1, 4, 7), 사 6:1-8 (2, 5, 8), 잠 8:22-31 (3, 6, 9) 시 33:1-12 (1, 4, 7), 시 29 (2, 5, 8), 시 8 (3, 6, 9) 고후 13:5-14 (1, 4, 7), 롬 8:12-17 (2, 5 8), 롬 5:1-5 (3, 6 9) 마 28:16-20 (1, 4, 7), 요 3:1-17 (2, 5, 8), 요 16:12-15 (3, 6, 9) 이상과 같이 살펴본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는 무엇보다도 설교와 예배를 준비하고 주관해야하는 목회자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교회력에 따르는 성서일과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일정한 기준 없이 설교자의 주관에 따라 본문이 선택되므로, 설교자 자신의 편견과 선입관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이런 경우 일관된 말씀의 진수를 맛보고 싶어하는 교인들의 불만을 살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예배의 경우에도 찬송가, 교독문 등을 임의로 선택하지 않고 교회력에 맞추어서 선택함으로써, 교인들이 미리 준비하여 생동감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성서일과에 따라서 설교하고 예배할 경우, 정장복 교수는 그 장점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첫째, 설교자의 개인적인 의도보다는 말씀 중심의 사역이 가능해 진다. 설교자 개인의 편견과 선입관을 배제하고, 일관된 말씀의 사역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인들이 말씀의 맥을 짚을 수 있게 된다. 둘째, 교회력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의 구속의 은총을 실감하는 효과를 경험할 수 있다. 신앙생활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바, 교회력에 따라 설교할 경우, 그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갖는 깊은 의미를 새기게 되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재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셋째, 모든 교회가 성서일과를 사용할 경우, 동일한 말씀을 들을 수 있음으로써 교회 일치에 많은 도움이 된다. “모든 교회는 하나이다”라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모토인데, 어디서나 같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교인들 스스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넷째, 설교자들이 일정한 주기로 말씀을 연구할 수 있어서 말씀에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 사실 설교자들의 최대의 고민은 “이번 주에는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는 가”라는 것이다.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서 성서의 여기저기를 살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교회력에 따라 설교하게 되면, 이런 고민이 해소될 수 있다. 다섯째, 설교 뿐 아니라 목회의 전반적인 계획 수립에 도움이 된다. 교회력이란 일정한 기준이 주어지기 때문에, 임의로 목회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섯째, 교인들이 설교의 방향을 미리 알 수 있게 되어 준비할 수 있다. 교회력에 따라 목회계획을 세우고 설교하게 되면, 현장성이 약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할 수도 있다. 이는 목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따라서 말씀을 준비하기가 어렵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탄절, 수난절, 부활절, 오순절 등 중요한 절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목회자가 현장에 맞게 설교의 주제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력은 결코 교회가 서 있는 자리, 즉 문화, 사회, 환경을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력은 목회자가 목회 환경에 맞게 자유로이 목회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점에서 성서일과와 목회현장의 갈등은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력에 따라 예배하고 목회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목회와 설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학교연합 추수감사예배 시행지침
교회학교연합 추수감사예배 시행지침 2004-02-10 14:46:31 read : 32 예배 9시 10분에 예배 시작 / 9시 40분에 예배 끝 / 설교 5분(이상환 목사) 성가대- 연합성가대(책임자/지휘: 김애경 선생) : 전체연습 11. 15.(토) 오후 5시 소년부실 각 부서 성가대 담당자는 인원소집에 최선을 다할 것 예배순서는 일괄적으로 당일 배부함(각 부서별 광고사항은 부서별로 개별적으로 유인물을 준비하거나 예배 전에 황인영 총무에게 미리 메모하여 전달할 것) 자리 배치 [ 강 단 ] 헌금 일괄적으로 하고 계수금액을 부서별로 균등 배분 헌금위원: 성가대원 중에서 강단장식 ⑴바구니 장식- 부서별로 미리 준비하여 예배 순서(앞부분)에서 바침 ⑵가져온 것들- 예배전에 갖다 놓는다 ⑶공동체 식탁 자리 배치- 소년부 기타 사항 ※모든 교사는 8:30까지 교회에 올 것. 음식을 준비하신 분들도 미리 와서 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최소인원(부서별 1명, 책임자)을 제외하고 모든 교사들은 반드시 예배에 참석하도록 할 것. 각 부장들과 전도사, 교사들은 각 부문별 책임자에게 최대한 협조할 것. 기타 궁금한 사항은 교육위원회에 문의할 것 예배를 드리기 전에 : 부서별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가지고 온 과일과 채소 등은 앞으로 가지고 나와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하나님께 바치세요 추수감사예배 인도 : 이준삼 장로님(교육위원장) / 밑줄(_)은 일어섭니다 예배의 선포 인도자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오르간 연주) 성내동교회 교회학교 공동체에 속한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초대합니다.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잘못과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 다 내어 놓고, 자비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부름의 찬양 (송영) 성가대 예배의 부름 인도자 온 땅은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라. 노래부르며 그 앞으로 나아오라. 그는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으로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예배의 기원 인도자 하나님, 저희들의 심령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셔서 이시간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주신 오곡백과를 바침 각 부서 (오르간 연주하는 중에 각 부서에서 준비한 오곡백과바구니를 강단에 바친다) 경배의 찬양 좋으신 하나님 (일어서서) 다같이 좋으신 하나님 / 좋으신 하나님 /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신앙고백 (사도신경) (일어서서) 다같이 성시교독 시편136편 (일어서서) 다같이 인도자: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어린이/학생: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인도자: 모든 주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어린이/학생: 홀로 큰 기적을 일으키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인도자: 지혜로 하늘을 만드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어린이/학생: 물 위에 땅을 펴 놓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인도자: 큰 빛들을 지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어린이/학생: 이스라엘을 강한 손과 편 팔로 이끌어 내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인도자: 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어린이/학생: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다같이: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감사의 찬송 어린이찬송가387장/찬송가308장(넓은 들에 익은 곡식) 다같이 감사의 기도 맡은이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감사하며 남궁진우 중등부회장(학생대표) -한 해 동안 우리 교회와 교회학교에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한명숙 유년부장님(교사대표) 성경봉독 시편100편 1-5절 김종은 소년부장님 찬양 (지휘.; 김애경 선생님) 교회학교 연합성가대 말씀선포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이상환 목사님 결단의 찬송 어린이찬송가188장/찬송가453장(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다같이 봉헌 (추수감사헌금, 주일헌금, 감사헌금, 건축헌금, 십일조) 다같이 헌금위원 : 성가대원중에서 드린 예물을 위한 기도 장소연 유치부장님 보내는 말씀 (모두 일어서고) 인도자 "사랑하는 성내동교회학교 학생여러분!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밖에 있는 온갖 유혹의 장벽을 뛰어 넘어, 안에 있는 교만과 불평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 오직 하나님의 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꿈을 위하여,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승리의 발걸음을 내딛읍시다!" 찬송 어린이찬송가181장/찬송가411장(예수 사랑 하심은) 1절만 다같이 축도 이상환 목사님 광고 황인영 고등부장님(교육위원회 총무)
구정(설날)의 전례
구정(설날)의 전례 1.전통적(傳統的)인 설 명절(名節)의 의의 설은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 머리가 되는 첫 날입니다. 그리하여 한자어로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歲初)라 하고 년두(年頭), 년수(年首), 년시(年始), 라고 하며, 새로운 해의 첫 날이 열리는 아침이라는 뜻으로 원단(元旦), 원조(元朝), 정조(正朝),라고도 합니다. 우리 나라의 전래 풍습에 의하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 나면서 한 살을 먹습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첫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을 더 먹는 다고 합니다. 이를 기리고 기념하는 뜻에서 새날 새벽에 쌀로 떡을 빚고 고기를 익혀 떡국을 끊여 먹습니다. 조선조의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나이도 설을 단위로 헤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설을 단위로 헤아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은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되어 오늘날 설로 바뀌어 쓰게 되었습니다. 원시 농경생활의 문화에서부터 우리의 선인들은 한 해의 농사가 풍작을 이루고 가정에 평안과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신과 조상신에게 비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한 해를 맞이하는 설은 이런 의미에서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해 곱고 깨끗한 새 옷으로 설빔을 지어 입고, 매사를 삼가며, 경건하게 지내야 하는 날로 여러 가지 다양한 민속과 함께 아름답게 지켜왔습니다. 신(神)께 제사(祭祀)를 올리고 나서 집안 어른과 동네 어른들에게 새배를 드리며, 어른들은 덕담으로 새해를 축복(祝福)합니다. 그리고 설날에는 어른 아이 구별없이 떡국을 비롯한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매사에 시작을 그 일의 전과정이 잘 되도록 복을 비는 덕스러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우리 선인들의 지혜롭고 아름다움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습니다. 2.설 명절 준비(準備) 1)음식준비 : 떡국은 빼 놓을 수 없고 또한 세주(歲酒) 그리고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여 먹었습니다. 2)의복준비 : 하늘의 복을 받기 위하여 곱고 깨끗한 옷으로 설빔(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3)마음준비 : 빌려온 물건 돌려주며, 빚진 돈을 갚고,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그리고 흩어진 가족이 한 곳으로 모여서 즐겁게 보냅니다. 4)새 배 : 새벽에는 조상 산소를 찾아 큰 절을 하고 아침 일찍이는 집안 어른에게 새배하고 오후에는 마을 어른들을 찾아 새배합니다. 5)윷놀이 : 정초에 가족과 친척 그리고 정든 이웃 남녀노소 구분없이 한데 어울려 즐기는 놀이입니다. 이 놀이는 우리나라에만 전해지고 있는 아름답고 흥겨운 민속입니다. 3.복잡한 제례를 "가정의례준칙에"에서 수정하고 있는 내용, 조상신께 드리는 제례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규범대로 하면 사당에서 월2회의 삭망제, 3월의 중삼절, 5월의 단오절, 6월의 유두절, 7월의 칠석, 백중절, 9월의 중양절, 동짓날과 납일에 속절제, 춘하추동의 중월에는 사시제, 4대까지의 절사, 정초에는 연시제등 이를 종합하면 년간 총47회의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이런 복잡한 제례의 범위도 2대까지로 제한하고 있으므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기제 네 번과 추석날과 설날 아침 각 한차례씩 도합 6회의 제사로 한정되는 셉입니다. 그리고 "가정의례준칙"에는 종가의 범위를 "8촌 이내의 친족 단위별 장손"으로 규정하고 제사 음식의 간소화를 규정했고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접어서 한자로 꼭 썼던 지방(紙榜) 도 사진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정월 초하룻날이나 추석날 조상께 드리는 제사를 다례(茶禮 혹 차례)라고 합니다. 다례란 다(茶)를 조상께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약식(略式) 제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일에 드리는 제사는 밤중에 드리지만 다례는 아침이나 낮에 드리는 것입니다. 정월 초하룻날만 아니라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 또는 추석절같은 명절에 드리는 제사를 다례라고 합니다. 4.설명절에 대한 기독교(基督敎)인의 자세(姿勢).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조상이 물려준 이 강토에 살고 있으면서 영원한 천국을 물려 받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의 피와 정신을 이 땅위에서 이어받고 살아온 그리스도인들도 더 불어 살아야 합니다. 세상 풍속은 무조건 나쁘다고 버려야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것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전통적인 것이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이 될 수 없습니다. 고쳐서 이로우면 고쳐야 합니다. 고치되 그 정신은 성경과 그 신앙의 전통에 입각하여 고치고 이어가야 합니다. 전통적인 풍속이 그리스도인들과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상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위에 같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와 관혼상제"의 편자 박근원 박사는 정월 초하루를 연시제(年始祭), 추석날의 감사제(혹은 중추절), 그리고 부모와 조부모의 돌아가신 날 저녁에 드리는 추도식을 "추모제"라고 써봤으면 어떨지 하고 조심스럽게 제시한바 있습니다. 설 명절 때는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드는 풍습이 있으니 이 모임을 통하여 진정 한 제사가 무엇인가를 알려 하나님께 예배하고 부모님께 감사하는 선교의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의 예배는 세상에 남아있는 자손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의 약속 안에서 진실하게 살 것을 다짐하고 앞서 가신 조상들의 생명을 이어 받은 후손들의 삶을 통해 더 풍성하게 이어 가겠다는 윤리적 다짐의 행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설날 예배(禮拜) 순서(順序) -개 회 식 / 오늘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민속명절입니다. 이 즐거운 아침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한 해를 우리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가문을 잇게 하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가문을 빛내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신앙고백 / 다같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찬 송 / 28장, 248장, 305장, 505장 중에서 한 장을 골라서 드립니다. -대표기도 / 사회자가 가족중 아무게나 시킵니다. -성경봉독 / (1)대상4:9-10, (2)엡4:22-24, (3)시1;1-6절, -찬 양 / 어린 자녀들 중에 찬양을 시킵니다. -설 교 / (1)복에 복을 받자 (2)새 사람을 입으라 (3)복있는 사람이 되자. -기 도 / 설교자가 설교 후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찬 송 / 493장 1절을 부른 후 주님 가르쳐주신 기도로 모든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폐 회 / 폐회 후 새배를 하도록 하고 가문의 전통을 자녀들에게 들려 준 후 축하 파티와 기념촬영 으로 주 안에서 즐겁게 지냅니다. 6.설날 설교(說敎) 예문(例文 ㅡ 복(福)에 복(福)을 받자 ㅡ 대상 4:9-10절, 28장.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복에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복에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야베스는 하나님게 기도했습니다. 1)복은 하나님만이 주시는 분이십니다. 조상 신이나 어떤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2)야베스는 그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믿음입니다. 2.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은 10절 상반절입니다. 1)지경을 넓혀 달라고 했습니다.............사업확장의 복입니다. 2)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형통의 복입니다. 3.하나님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1)그 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야베스는 복에 복을 받았습니다. 2)최고의 복은 기도의 응답을 받는 복입니다......우리들도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 최고의 행복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지구상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나라가 복을 받고 사는 것을 봅니다. 우상의 나라들은 다 못 먹고 못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야베스 가정처럼 하나님 잘 믿어 복에 복을 받는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ㅡ 새 사람을 입으라ㅡ 엡 4:22-24절, 248장, 복된 "설"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져 합니다. 1.옛 사람을 벗어 버리자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유혹의 욕심을 따르는 사람은, 가롯 유다 같은 사람입니다.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2)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사람은, 세상의 풍습을 좇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습관을 광야에서도 버리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2.새 사람을 입자. 1)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이는 마음의 변화를 뜻합니다......아무리 새 옷을 입고 설날 이 몇백번 돌아와도 마음이 옛 사람이 그대로 있으면 옛 사람인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을 내 마음 속에 모시면 예수의 사람, 천국의 삶,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새 사람은 하나님은 따라 살아야 합니다....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배드리는 삶은 하나님 마음에 속ㅡ드는 삶입니다. ㅡ 복 있는 사람이 되자ㅡ 시 1:1-6절, 305장,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받을 일을 해야 복을 받습니다. 1.소극적으로 1)악인의 꾀를 쫓지 말 것, 2)죄인의 길에 서지 말 것, 3)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 것 입니다. 2.적극적으로 1)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할 것, 2)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할 것입니다. 3.이런 삶의 결과 1)열매 맺는 복을 받고, 2)형통의 복을 받고, 3)의인으로 여호와께 인정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림절(The Advent) 달력/ 2011-11-27
대림절(The Advent) 달력 대강절을 영어로는 advent (라틴어로는 adventus로 영어의 \\\"coming\\\")로 \\\"온다\\\"란 뜻이다. 대강절은 특히 동방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지켜서, 이 때 부터 마리아의 수태 고지에 대한 주제로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동방교회의 전통은 이태리의 Ravenna라고하는 지방으로부터 서방교회로 흘러 들어 왔다. 대강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대강절 기간은 12월 25일 성탄절 4주전에 시작된다. 11월 30일에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 되는데 이 날은 11월 27일보다 빠를 수 없고 또 12월 3일보다 늦을 수도 없다. 대강절로 부터 교회력이 시작된다. 4세기에서 7세기까지는 이 대강절의 기간은 다양하게 지켜졌다. 즉 3주간에서 7주간까지 여러 가지로 지켰다. 고올 지방에서는 11월 11일에 시작되었다. 이 절기는 6세기 중엽까지도 로마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6세기 후반에야 성탄절 전 4주를 지키기 시작하였다. 그레고리 대제 하에 비로소 오늘날에 잘 알려진 대강절 예전이 확고하게 되어졌다. 처음에 대강절은 참회의 절기로는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또한 수난절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근래에 와서 대강절을 엄격히 지키지 않는데 한때는 교회에서 사순절을 엄격히 지키듯 대강절을 아주 엄격하게 지킨 적이 있었다. 로마 천주교회에서는 대강절 기간에 결혼식도 금지 했었고, 금식을 하도록 하였다. 대강절 주일 예배에서는 대강절 촛불 점화식을 갖게 된다. 촛대는 모두 네개가 준비 되어 있고, 가운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왕 촛대가 있다. 매 주일 하나씩 점화하고, 왕 촛불은 크리스마스 날 점화 한다. 주일마다 촛불을 증가하는 것은 \\\"빛\\\"되신 그리스도가 오고 있다는 상징적 표시이다. 그곳에 성 크리쏠로구스 (St. Peter Chrysologus; c. 450 사망)라는 신부가 수태고지에 대한 주제로 설교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대강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페르페투스라고하는 투어스 교구 주교(Bishop Perpetuus of Trours; 461-490)가 대강절을 선포하여 11월 11일부터 크리스마스 전 까지 금식을 선언한 것이 처음이다. 11월 11일이 성 마틴(St. Martin)의 축일이기 때문에 이를 성 마틴의 사순절이라고 했다. 그후 메이콘 공의회(Council of Macon, 581)에서 공인되어 유럽 전역에 퍼졌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강절에는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중 의미가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 탄생함을 기다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대단히 반갑고 기쁜 날을 고대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대강절은 마지막 날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림절/ 딛2:13/ 2005-12-02
대림절 딛2:13 대강절을 영어로는 advent (라틴어로는 adventus로 영어의 \"coming\")로 \"온다\"란 뜻이다. 대강절은 특히 동방교회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지켜서, 이 때 부터 마리아의 수태 고지에 대한 주제로 설교를 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동방교회의 전통은 이태리의 Ravenna라고하는 지방으로부터 서방교회로 흘러 들어 왔다. 대강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대강절 기간은 12월 25일 성탄절 4주전에 시작된다. 11월 30일에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 되는데 이 날은 11월 27일보다 빠를 수 없고 또 12월 3일보다 늦을 수도 없다. 대강절로 부터 교회력이 시작된다. 4세기에서 7세기까지는 이 대강절의 기간은 다양하게 지켜졌다. 즉 3주간에서 7주간까지 여러 가지로 지켰다. 고올 지방에서는 11월 11일에 시작되었다. 이 절기는 6세기 중엽까지도 로마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6세기 후반에야 성탄절 전 4주를 지키기 시작하였다. 그레고리 대제 하에 비로소 오늘날에 잘 알려진 대강절 예전이 확고하게 되어졌다. 처음에 대강절은 참회의 절기로는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또한 수난절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근래에 와서 대강절을 엄격히 지키지 않는데 한때는 교회에서 사순절을 엄격히 지키듯 대강절을 아주 엄격하게 지킨 적이 있었다. 로마 천주교회에서는 대강절 기간에 결혼식도 금지 했었고, 금식을 하도록 하였다. 대강절 주일 예배에서는 대강절 촛불 점화식을 갖게 된다. 촛대는 모두 네개가 준비 되어 있고, 가운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왕 촛대가 있다. 매 주일 하나씩 점화하고, 왕 촛불은 크리스마스 날 점화 한다. 주일마다 촛불을 증가하는 것은 \"빛\"되신 그리스도가 오고 있다는 상징적 표시이다. 그곳에 성 크리쏠로구스 (St. Peter Chrysologus; c. 450 사망)라는 신부가 수태고지에 대한 주제로 설교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대강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페르페투스라고하는 투어스 교구 주교(Bishop Perpetuus of Trours; 461-490)가 대강절을 선포하여 11월 11일부터 크리스마스 전 까지 금식을 선언한 것이 처음이다. 11월 11일이 성 마틴(St. Martin)의 축일이기 때문에 이를 성 마틴의 사순절이라고 했다. 그후 메이콘 공의회(Council of Macon, 581)에서 공인되어 유럽 전역에 퍼졌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강절에는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중 의미가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가 이 땅위에 탄생함을 기다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대단히 반갑고 기쁜 날을 고대함을 의미한다. 동시에 대강절은 마지막 날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림절의 설교
대림절의 설교 1. 대림절 설교 대림절로 시작되는 크리스마스 절기는 근본적으로 부활절 신비의 잔치와 연결된다.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는 구속과 신성의 사건의 초석이 된다. 이 기간 행해지는 많은 예배들은 탄생을 통해 부활을 통한 구속의 관계 대한 언급을 간과할 수 없다. 대림절 신학과 맥을 같이하는 대림절 기간의 설교들의 주제들은 첫째,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종말적 신앙 둘째,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한 예언의 성취 및 구속사의 실현, 셋째, 온 인류를 구원의 대상으로 삼은 선교적 대선언, 넷째, 과거에도 오셨고, 또 지금도 현존하시며,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하실 임마누엘 신앙이다. 대림절 기간의 설교에 대해 정장복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 제시한다. 현대인들이 성탄절을 앞두고 들뜬 감정으로 그리스도가 인간의 축하 행사와 상업주의 현장에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다음과 같이 메시지의 방향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구속에 관한 뜨거운 사랑을 맞아들일 수 있는 우리 자신들의 마음과 몸가짐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교회를 새롭게 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 주님의 영접함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이러한 준비의 터전은 아기 예수님의 영접보다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영적인 준비를 촉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방향성은 재림신앙을 새롭게 일구는데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대림절기 설교는 대림절 기간이 각각의 4개의 주로 나누어서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Carl은 'Breaking the Word'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대림절 첫째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씀을 준비한다. 대림절 둘째 주는 심판 날에 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며, 이와 맞추어 세례요한의 출현과 그의 핵심 사역인 회개의 요청에 초점을 맞추어서 종말적 신앙안에서의 속죄와 회개에 대하여 말씀의 초점을 맞춘다. 셋째 주는 세례요한의 사역과 그의 사역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데 초점을 두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오심에 대한 참된 준비에 대한 말씀을 선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림절 둘째와 셋째 주는 세례요한의 메시아의 나심과 성육신에 대한 준비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한 축하와 다시 오실 심판의 재림의 주에 대한 회개에 중심을 두도록 한다. 넷째 주는 대림절의 마지막 주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참여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한 마리아와 그의 헌신을 구속사의 관점에서 초점을 맞추어서 설교할 수 있다. 대림절의 성경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림절 첫째주 구약의 예언서 : 이사야 2장 1절-5절, 이사야 64장 1절-9절, 예레미야 2장 14절-16절 신약의 서신서 : 로마서 13장 11절-14절, 고린도전서 1장 3절-9절, 데살로니가전서 3장 9절-13절 신약의 복음서 : 마태복음 24장 36절-44절, 마가복음 13장 24절-37절, 누가복음 21장 25절-36절 대림절 둘째주 구약의 예언서 : 이사야 11장 1절-10절, 이사야 40장 1절-11절, 말라기 3장 1절-4절 신약의 서신서 : 로마서 15장 4절-13절, 베드로후서 3장 8절-15a절, 빌립보서 1장 3절-11절 신약의 복음서 : 마태복음 3장 1절-12절, 마가복음 1장 1절-8절, 누가복음 3장 1절-6절 대림절 셋째주 구약의 예언서 : 이사야 35장 1절-10절, 이사야 61장 1절-4절,8절-14절, 스바냐 3장 14절-20절 신약의 서신서 : 야고보서 5장 7절-10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24절, 빌립보서 4장 4절-7절 신약의 복음서 : 마태복음 11장 2절-11절, 요한복음 1장 6절-8절, 19절-28절, 누가복음 3장 7절-18절 대림절 넷째주 구약의 예언서 : 이사야 7장 10절-16절, 사무엘하 7장 1절-11,16절, 미가 5장 2절-5a절 신약의 서신서 : 로마서 1장 1절-7절, 로마서 16장 25절-27절, 히브리서 10장 5절-10절 신약의 복음서 : 마태복음 1장 18절-25절,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누가복음 1장 39절-55절 2. 대림절과 크리스마스 기독교인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공동체이다. 이 말씀은 인류 구원의 위대한 사명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하심에 대한 명백한 선언이다. 그리고 또한 이 말씀은 먼저 듣고, 보고, 믿은 자들이 지구상의 남은 자들을 향하여 받들고 선포하며 전해야 할 말씀이다. 아직까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사건은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매년 기억하고 회상하지만 이 진리는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한다. 인류를 구원하실 위대한 구세주가 연약한 아기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셨다는 성탄절 이야기는 회복과 구원이 필요한 인간들의 두려움을 제거해주고 미래를 향한 무한한 소망과 기쁨을 제공해 준다. 매년 12월 초가 되면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된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형성된 교회력은 대강절로 부터 시작된다. 대강절은 성안드레의 날인 11월 30일에서 가장 가까운 주일부터 시작하여 4주간 계속된다. 과거 이 기간은 4주부터 7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나 6세기 로마주교가 4주로 확정하였다. 고대 기독교인들은 대강절을 엄격히 지켰으며 모든 신자들은 날마다 금식하고 교회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성탄절은 부활절(Pascha) 날짜의 결정과는 대조적으로 많은 차이와 상황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또 부활절은 날짜가 주일에 확정되어 해마다 날짜가 변하는데 비하여, 성탄절은 날짜가 고정되어 있고 해마다 요일이 변한다. 특히 전통적으로 성탄절은 교회가 아닌 가정 중심으로 모여 축일을 보내는 잔치 날로 인식되어 왔다. 교회력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있어서 성탄절의 중요성은 대단하다. 성탄절은 부활절과 더불어 교회력을 이루는 두 축이라 할 수 있다. 성탄절 절기는 교회력에서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며, 본 소고는 성탄절의 기원 및 제정의 유래와 역사를 중점적으로 고찰하면서, 주현절, 대강절의 관계를 살피고 성탄절의 신학적 의의를 집어보며, 현대교회가 지켜야 할 성탄절 예배 그리고 말씀 선포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성탄절기는 부활절기와 함께 교회력의 두 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주기이다. 대림절은 교회력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이 초대교회와 같이 이미 오신 그 분을 맞이하고, 다시 오실 그 분을 기다리는 영적성장의 기간이다. 대림절에 우리들은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비 속에 사로잡힌다. 예수의 오심은 인간에게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새로운 생명에로의 연합이며,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평화의 소식이며, 온 천하를 향한 기쁨과 화해의 선포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전 우주적으로 그 분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종말적 사건을 기대하고 선포하는 기간이 바로 대림절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약속된 정의를 예견한다. 평화의 주 임마누엘의 하나님, 그리고 구원의 메시아로 오신 그리스도를 감사하고 예배하려는 수고가 이 기간에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다시 오심을 재현하고 준비하는 대림절을 통하여 과거 베들레헴에 나셨던, 현재 나와 우리 삶에 살아 계시는,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 재림의 심판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대림절의 의미와 교회교육/ 1995-11-01
대림절의 의미와 교회교육 교육은 형식적 장소에서 짜여진 교과과정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비형식적 장에서 자연스러운 삶의 형태와 같은 비형식적 교과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특별히 종교교육은 많은 부분이 비형식적 교과과정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가장 크게 차지한 비형식적 교과과정이 바로 절기를 통한, 교회력을 통한 교육이다. 온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지키는 절기 명절은 가장 자연스러운 교육 환경 속에서 신앙공동체의 일체감을 가져오고 가치와 전통을 심을 수 있는 삶을 통한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기독교의 명절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보편화되고 교회공동체에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쳐온 명절은 바로 성탄절이다. 매해 한해의 마지막인 12월이 되면 이땅위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자들이나 신앙하지 않는 자들이거나에 상관없이 한해의 마지막을 정리하려는 생각과 함께 성탄절,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고 마음이 설레게 된다. 특별히 근래의 성탄절은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에서보다는 백화점이나 상가를 증심으로 상업적인 전략과 함께 의미보다는 서구적인 화려한 상흔으로 오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아직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추수감사절도 지키지 않았는데, 세속도시에서는 장사하는 크리스마스로 바쁘게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함께 편승하여 사고 파는데 바쁜, 장사하는데 바쁜 성탄 준비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이 기간 마저도 내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의 관심 속에서 나의 탐욕을 채우는데 바쁘다. 이러한 사회현상 속에서 어떻게 성탄의 본래적 의미를 회복해 갈 수 있을까가 교회의 교육의 과제이다. 교회교육 속에서 단지 하나의 행사를 치루는 것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신 정말 놀라운 비밀이 담긴 기독교의 본래적 의미를 부여하는 교육이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성탄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성탄으로 이어지는 대강절을 어떻게 지키느냐가 중요하게 되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대강절의 의미를 찾아보자. 대강절(ADVENT)은 대림절 또는 강림절이라고 불리는 성탄일 전 4주일로 \\\'오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절기에는 2000년전 베들레헴 구유에 성육신하신 아기 예수에 대한 기억 속에서 그 의미를 되살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소망가운데 구체적인 성육신의 삶을 사는 기간이다. 그럼 오늘 우리는 베들레헴 구유에 성육신 하신 아기 예수님의 의미를 어디서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 글에서는 단지 누가복음 2장에 나타난 탄생 이야기에 기초해서 구유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 아기예수가 주는 의미 속에서 대강절의 현대적 의미를 찾고자 한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 2:7)\\\' 본문에서 보여 주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 구유에 뉘었다는 데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물론 본문은 사관에 있을 곳이 없는 합리적인 이유를 호적하러 온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인 것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이해되어질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오늘날도 이러한 당연한 것 같은 사실 때문에 인간의 악한 본성이 정당화 되어지는 경우는 허다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즉 \\\'나\\\'편리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에 \\\'너\\\'의 형편과 처지가 전혀 무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산모가 헛간에 있는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세상에서 첫 울음을 터뜨린 사람의 아들이 구유에 뉘어졌는데도 자신의 방으로 옮겨 줄 너그러움이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구유에 누워 있는 사람의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 너그러움이 없었기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뜻의 실현은 구유에 누인 사람의 아들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너\\\'에 무관심한 결과는, \\\'너\\\'에 장님이 된 결과는 큰 기쁨의 소식을 듣지 못하는 복음에 귀머거리를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그 기쁨의 소식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들에게 보여졌고, 들을 귀 있는 자들,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들려졌다. 그래서 그 기쁨의 소식을 받은 그들이 또한 평화의 소유자들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구유의 사람의 아들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기뜸을 간직한 자들이 된 것이다. 나는 가끔 성탄절 전야에 또는 대강절기간에 어수선한 마음으로 성탄절 준비를 하구 행사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우리끼리 모여서 별 성탄의 의미가 없는 커다란 츄리를 세우고 아름다운 전구로 환한 아름다운 불을 밝히고 우리끼리 모여 산타의 선물을 주고 받고 우리끼리 모여 구유의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재현하고 우리끼리 모여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춤추고 찬양하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을 때 아기 예수는 여전히 구유에 누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다. 아기 예수는 여전히 오늘도 구유에 누어 있는데 예수 없는 예수 생일 축하 잔치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성탄절은 축제로 즐거운 명절로 지켜져야 한다. 물론 베들레헴의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재현하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며 축하하는 성탄의 전통도 경시되어져서는 안된다. 이러한 성탄 축하의 형식들마져 사라져 버리면 우리는 그 의미를 찾을 기회 조차 잃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성탄 축하의 경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사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형식을 갖추는데만 너두 바빠서 진정한 의미를 놓쳐서도 안된다. 하나님은 아기예수를 세상 속에 세상을 사랑하셔서 보내셨다. 하나님은 구유에 누이신 아기예수를 통해 세상과 화해를 이루신 것이다. 그 당시 삶의 여건에서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자들, 목자들을 먼저 부르셔서 그들 중에 평화가 임하도록 하셨다. 이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는 가운데 오늘도 구유에 누인 사람의 아기를 찾는 것은 또 그 아기를 위해 무엇을 할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세상을 하나님께로 화해하게 하고 평화를 가져오는 성육신의 뜻의 성취인 것이다. 그럼 대강절에 성육신하신 뜻의 성취를 위한 교회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첫째는 오늘 우리 주변에 구유에 누어 있는 사람의 딸이나 아들을 찾는 것이다. 올해는 유달리 우리를 놀라게 한 사건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대형참사이다. 국내적으로는 대구 가스폭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그치고 남과 북에 같이 찾아온 너무나도 큰 대형홍수이다. 물론 북에서 당한 피해는 더할 수 없이 처참한 듯하다. 밖으로도 가까운 일본의 독가스사고 대지진, 미국의 주정부 건물의 폭발사건, 극심한 살인 폭염. 세계 여러나라의 대형 홍수들, 여러 종류의 전염병, 여러나라에서 발생한 대지진 참사... 참으로 세기도 어려울 만큼의 사고 참사들, 천재지변들이 발생했다. 이 모든 참사들이나 천재지변들은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인명을 빼앗아 갔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안겨 주었다. 혹 이들 중에 구유에 누인 자들은 없는가? 또 이러한 참사의 피해자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 철저하게 소외되어진 자들로 병들고 아픈 고통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은 자로 즉 구유에 누인자로 일생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은 없는가? 혹 교회밖에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는 이러한 자가 없는가? 둘째는 대강절 의미를 찾도록 하는 교육과정의 구성이다. 여기서는 이를 5단계로 구상해 본다. 첫째, 주님의 재림과 그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다림과 소망의 단계, 둘째, \\\'나\\\'에 사로잡혀 \\\'너\\\'를 보지 못하므로 성육신의 실현을 방해해 온 자신에 대한 회개의 단계, 셋째는 성육신의 사랑을 나누는 사랑과 나눔의 단계, 넷째는 성육신의 은혜로 말미암은 너와 나의 만남과 하나님과 화해의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너\\\'와 \\\'나\\\'가 하나님과 세상이 하나되도록 이끈 구유의 사람이된 아기 예수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축제이다. 세째는 오늘 구유에 누인 사람의 아들 딸과 함께 하는 교회교육을 구체적으로 실시해 가는 것이다. 여기서는 위에서 말한 대강절 교육과정을 대강절 예배의식에 맞춰 제시해 본다. 먼저 교회교육의 대상이 어린이에 극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대강절 교육 프로그램은 전 신앙의 공동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비록 한시간대에 같은 자리에 모일 수는 없어도 같은 프로그랠을 추진함이 바람직하다. 먼저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대강적에 사용하는 대강절 푸른 나무로 둥글게 엮어 만든 화환과 5개의 초를 사용하여 현대적 의미에서 대강절을 지켜보자. 대강적 화관은 시작도 끝도 없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기억하게 한다. 원래 초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낸다. 이는 대강절 기간 동안 전 세대가 함께 하는 전체예배를 통해서도 되어질 수 있고 또 교회의 각 기관의 예배에서도 실시할 수 있다. 예배에서 시작하여 공과공부를 통해 더 구체화하여 가도록 하자. 대강절 첫째 주일 :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 임마누엘의 메시아 오심을 대망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함을 나타내는 첫 번째 촛불을 켠다. 그리고 오늘의 성경말씀을 낭독한다. 이는 이 세상에서 지치고 곤고한 자들에게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 빛이 소망이 되는 것이다. 활동을 통해 그분이 오시므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그려본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이야기 해 본다. (참고 성경본문 이사아 11:1-10) 대강절 둘째 주일: 회개와 빛의 촛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한 나의 모습을 회개하고 잘못된 제도를 비판하고 구유에 누인 사람을 찾아 나서는 의미로 회개와 빛의 촛불을 켠다. 그리고 오늘의 성경말씀을 읽는다. 교회 전 신앙의 공동체가 하나로 또는 각 기관별로 또는 개인별로 구체적인 대상을 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자녀에게 무엇으로 화해를 이를 것인지 생각한다. 예를 들어 구체적인 섬김의 봉사, 물질의 공급, 병든자의 치유, 필요로 하는 물건 제공, 사랑의 선물 등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다음 주일 크리스마스 츄리 밑에 \\\'아기예수께 선물\\\' 이란 이름으로 드리도록 한다. (참고 성경본문 마태 25:41-45, 마태 5:13, 요한 8:12) 대강절 셋째 주일: 사랑과 나눔의 촛불 구유에 누인 사람을 찾아가(찾아갈 수 있는 대상일 때) 같이 사랑을 나누고 나의 몫을 나누는 실천의 의미의 촛불을 켠다. 그리고 오늘의 성경 말씀을 읽는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상처 입은 자들, 굶주린 자들, 외롭고 쓸쓸한 자들과 같은 우리를 필요고 하는 자들을 외면해 온 것을, 또 그러한 이기적인 나를 방어해 온 것을, 약한 자들에게 불리하게 된 잘못된 제도나 관습을 정당화 해 온 것을 회개하는 회개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다음 우리 주변의 구유의 사람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 요청되어지는 것은 나는 하나님 나라 궁궐의 왕자나 공주로서가 아니라 나도 철저하게 구유의 아기가 되어서 아니면 철저하게 한 밤중 들밖의 목자가 되어서 찾아가야 한다. 어떤면으로도 나의 우월의식은 배제되어야 하고 진정한 의미로 구유의 아기를 섬기는 자세의 중요함이다. 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먹다 남은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동정을 베풀고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주어진 몫을 형제자매와 나누는 것이다. (참고 성경본문 마태 25:34-40, 누가 1:46-56) 대강절 넷째 주일: 만남과 화해의 촛불 먼저는 \\\'너\\\'와 \\\'나\\\'의 사람으로 오신 아기 예수와의 만남과 화해를, 그리고 \\\'너\\\' 꼭 \\\'나\\\'의 만남과 화해를 의미하는 촛불을 켠다. 그리고 오늘의 성경말씀을 읽는다. 이 주일에는 만약 우리가 찾은 구유의 \\\'너\\\'가 같이 교회에 참석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같이 참여하도록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강제적으로 보다는 자원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교회에 데려 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므로 그가 하나님과 화해를, 그리고 세상과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참고 성경말씀 이사야 7:14, 누가 2:1-20,엡 2:13-14) 성탄절 : 감사와 환희의 축제의 촛불 구유께 누어 있던 \\\'너\\\',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었던 \\\'너\\\' 가 화해를 이루고 사람의 아들 딸의 인격이 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 구유의 아기를 통해 세상과 화해를 이를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환희와 축제의 촛불을 켠다. 그리고 오늘의 성경말씀을 읽는다. 이 촛불은 구유가 변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을 축하하는 촛불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아들이 되신 사건은 소외되어진 목자와 같은 인간들에게 또 이 세상에 가장 큰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 점에서 성탄절은 구유의 잔치, 축제가 되어야 한다. 적은 곳에서이지만 사람이 된아기 예수의 사랑으로 본질적인 정의가 실현된 기쁨을 나누는 잔치이다. (참고 성경말씀 누가 2:14, 요한 3:16) (구체적으로 예배에 이 교육과정을 사용할 때는 개강절 예배\\\' 자료집 안에 나와 있는 전반적인 진행을 참고하여 개개인 교회의 형편에 맞게 다시 작성 한다. 참고:대강절에서 성탄절까지, 장로회신학대학기독교교육연구원편 pp. 54-57) 구유의 진정한 의미가 찾아질 때 대강절과 성탄은 일년을 마무리 하는 교회의 절기라기 보다는 교회력을 새로이 시작하는 절기가 될 것이다. 이는 교회 안의 절기로 교회에 갇혀 있는 절기라기 보다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하는 기쁘고 의미있는 절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고 고대하는 하나님의 나라, 이리와 어린양이 같이 살 수 있는 나라, 독사굴에 어린이가 장난칠 수 있는 나라,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있는 나라가 임할 것이다. 월간「교육교회」95.11월호(기독교교육연구원) 송남순 교수(한일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메리 크리스마스 폴카(Merry Christmas Folka: 미국)
메리 크리스마스 폴카(Merry Christmas Folka: 미국) 개요 포크댄스는 각 나라나 지방의 독특한 풍습, 역사, 문화등을 지닌 향토무용이다. 포크댄스는 서민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세계 공통어로서 서로 다른 나라의 춤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피로하고 긴장된 생활에서 벗어나 기분을 전환시킬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활동으로 적당하다. 장소 및 준비물 준비물 : 편한 복장과 신발, 음악 대 상 : 다양한 스텝을 소화할 수 있는 성인 남녀 인 원 : 16명 이상 4배수 인원 소요시간 : 40분 정도 활동장소 : 여러명이 움직일 수 있는 실내외 공간 활동유형 율동형 실시방법 ◈ 미국의 포크댄스를 하면서 복합적인 동작을 익힌다. 1. 2열원으로 파트너를 이룬 2쌍(4명)이 서로 마주보고 선다. 2. 4소절 전주. 3. 1∼4소절 : 2쌍이 서로 마주보고, 손뼉을 8번 친다. 4. 5∼8소절 : 2쌍이 원으로 손을 잡고 오른발 옆으로 스텝 후 왼발을 붙인다(클로우즈 스텝 : ciose step). 4번 반복한다. 5. 9∼12소절 : 5-8소절을 반대로 반복한다. 6. 13∼16소절 : 각자 양손을 어깨높이에서 자신의 반대쪽 팔꿈치에 얹은 자세로 코너(파트너가 아닌 마주보고 있는 상대)와 오른쪽 어깨를 먼저 스치며 앞으로 전진한다. 등을 스치듯 오른쪽으로 빠져 뒷걸을으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도시도 : do-si-do). 7. 17∼20소절 : 10-16소절을 파트너와 마주보고 반복한다. 8. 21∼28소절 : 각 팀의 오른쪽 사람끼리 오른쪽 손을 잡고 앞으로 가서 상대편의 왼쪽사람과 스케이터스 포지션을 돈다(레이디스 체인 : lady's chain). 이 동작을 2번 반복한다. 9. 29∼32소절 : 파트너와 오픈 포지션(open position)으로 앞으로 4번, 뒤로 4번 걷는다. 스포츠 상해 스포츠 상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파트너와 코너를 구분한다. -클로즈 스텝(ciose step)시 발을 나란히 붙인다. -도시도(do-si-do)동작은 서로 마주보고 시작하여 정면을 주시하고 뒷걸음으로 돌아온다. -음악에 맞춰 발걸음을 계속 유지한다. 효과 바르고 곧은 자세의 유지와 전신의 운동기는 향상에 도움을 준다.
미니올림픽 행사자료/ 2015-03-19
미니올림픽 행사자료 * 경기종목 올림픽 경기는 규격화된 많은 운동경기들이 있지만, 올해의 미니 올림픽은 성경학습에 연결될 수 있는 변형된 경기를 제시하여 교회의 상황에 맞추어 알맞게 종목을 선택하여 경 기를 운영하면 된다. 근대 5종에는 사격, 수영, 펜싱, 승마, 400m달리기 다섯 종목의 경기가 있으며 그 외의 여러 경기가 올림픽을 통하여 열린다 어린이들이 하기에는 힘든 경기이기 때문에 종목은 살 리되 내용을 변형시켜서 운영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 근대 5종을 할 경우는 아 래와 같은 종목 중에서 택하여 운영할 수 있다. 사격 : 베데스다 못에 빨리 들어가요! * 준비물 오재미 여러 개(또는 작은 공이나 신문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뭉친 것), 훌라후 프 2개(또는 다른 색상의 세숫대야나 같은 크기의 빈 상자) *진행방법 1-팀 전체가 한꺼번에 참여할 경우 ① 서로 다른 색 훌라후프를 놓고 5m(어린이들 나이에 맞게 조정) 정도 되는 둘레에 등굴 게 원을 그리고 2팀씩 나가서 오재미를 던져 자기 팀의 훌라후프 안에 던져 넣는다. ② 어린이가 원 안으로 들어오면 들어온 수만큼 오재미 수를 밖으로 빼낸다. ③ 일정 시간이 지나면 오재미의 수를 세서 많이 들어간 팀에게 점수를 준다. *진행방법 2 -팀별로 한 명씩 돌아가며 할 경우 ① 서로 다른 색 훌라후프를 놓고 5m정도의 거리에 선을 긋고, 오재미를 2∼5씩 나누어 주고, 차례대로 던지게 한다. ② 훌라후프 안에 많이 들어간 순서대로 등수를 매긴다. ③ 오재미가 가장 많이 들어간 팀이 승리한다 *관련말씀(요 5: 2-8) 베데스다 못에 빨리 들어가지 못한 38년된 병자 이야기를 들려주며, 38년 된 병자는 베데스 다 못에 빨리 들어가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했으나, 그 병자를 고쳐 주신 분은 예수님이셨 음을 어린이들에게 알려 주고,우리도 병을 고치려고 많은 시도와 열심을 내지만, 결국 우리 를 고치시는 능력은 예수님 께로부터 옴을 알게 한다. 수영 : 중풍병자의 좋은 친구들 * 준비물 반환점(교사가 대신할 수 있음), 들것(들것을 이용하면 더 실감나게 할 수 있다. ) * 인원 팀 경기로 2팀씩 *진행장소 실내, 실외 *진행방법 1 ① 출발선을 그리고, 출발선에서 10∼90m 정도에 반환점을 만든다. ② 팀별로 어린이 한 명을 정하고, 나머지 어린이 모두가 서로 손을 잡고 지정한 어린이 를 그 위에 태우고 반환점을 돌아온다. 이때 위에 올라간 어린이는 사회자가 요구하는 모션 을 취해야 한다. 예)배영, 자유형, 접영, 개헤엄, 수중발레 등 ③ 위에 탄 어린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빨리 돌아온 팀이 승리한다. *진행방법 2 ① 두 어린이를 나란히 세우고 둘 사이의 다리 한 쪽씩을 묶는다. ② 20m정도에 반환점을 만들고, 두 사람씩 출발해 빨리 들어오는 팀이 승리한다. *관련말씀(마 9:1-8,막 2:1-12)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예수님께 중풍병자 친구를 데려와 고침을 받은 일을 들려주며, 친구들 의 도움으로 중풍병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치유함을 얻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친구를 자기처 럼 사랑하고 도울 수 있는 어린이들이 되어야 함을 설명한다. 펜싱 : 선한 사마리아인 *준비물 풍선(인원수에 맞게), 바인더 끈 *인원 팀 경기로 2팀씩 또는 전체 경기나 대표자 경기 모두 가능 *진행방법 1 ① 둘씩 짝을 짓게 하고 풍선을 불어서 한 어린이의 다리에 단단히 묶게 한다. ② 풍선을 묶은 어린이는 풍선이 없는 어린이 양쪽허리를 잡는다. ③ 앞에 있는 어린이는 상대팀 풍선을 터트리고, 뒤에 있는 어린이는 풍선이 터지지 않 도록 피한다. ④ 빨리 터트린 팀이 승리한다. *진행방법 2 ① 한 사람씩 풍선을 불어서 끈으로 풍선을 다리에 묶는다. ② 한 사람씩 나와 상대방 팀의 풍선을 먼저 터트린 팀이 승리한다. *공간이 넓으면 게임이 추격전으로 바뀔 수 있으므로 한정된 공간을 정해두고 하는 것이 좋다. 또한 두 팀 가운데 바닥이나 의자 위에 풍선을 놓아 두고 먼저 와서 터트린 팀이 이 기는 것으로 게임을 응용할 수도 있다. *관련말씀(눅10: 25-37)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상경학습 시간에 배웠으면 상기시켜 주고, 아직 배우지 않았다 면 강도를 만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 준 것처럼, 선한 이웃이 란 약한 친구를 도와주고 지켜주는 사람임을 알게 한다. 릴레이 :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요! *준비물 슬리퍼, 반환점 *인원 팀 경기로 모든 팀이 참가 가능 *진행장소 실내, 실외 *진행방법 1 ① 커다란 원을 그리고 슬리퍼 한짝씩을 준비한다. ② 슬리퍼를 한 짝씩 신고 달리다가 다음 주자에게 벗어 주되 손을 쓰지 않도록 한다. ③ 릴레이식으로 진행하며 빨리 들어오는 팀이 승리한다. *진행방법 2 - 조심조심 옮겨요! *준비물 숟가락 2개, 탁구공 2개 ① 숟가락 위에 탁구공을 놓고 달린다. ② 거리를 가깝게 하거나 반환점을 돌아오는 경기로 진행한다. * 관련말씀(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알게 하고, 서로가 힘써 도와야만 되는 일들이 많음을 알게 한다.
부활절 달걀의 유래
부활절 달걀의 유래 부활절 달걀의 유래 부활절 계란을 주고 받는 풍습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된 것일까? 부활절 이전, 즉 이스터 축제일의 상징은 계란이 아니라 토끼였다. 이스터 여신의 상징이 토끼였기 때문이다. 이 부활절 토끼 풍습은 독일인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함께 들여갔다. 그러나 18세기 당시 미국의 기독교는 청교도를 위시해서 엄격한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부활절 토끼는 전혀 발붙일 수 없었다. 부활절 역시 미국에서 자리잡게 된 것은 남북전쟁 이후였다. 부활절을 축하하기 위해서 계란을 사용하게 된 것은 "모든 생명은 알에서부터 나온다."라는 로마의 속담은 차치하더라도 어느 정도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까지 갈 때 잠시 십자가를 대신 져준 구레네 시몬의 작업이 계란장수였다고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뒤에 그가 집으로 돌아가 보니 암탉들이 낳은 계란이 모두 무지개 빛으로 변해 있었다. 이후로 교회에서는자연스럽게 계란을 부활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부활절 행사
부활절 행사 2002-03-29 15:53:34 read : 331 주요 행사 (1) 부활절 철야제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기 위한 부활절 주요 의식으로 성 토요일과 부활 주일 사이에 거행되었다. 히폴리투스가 지은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의하면 이때 교회에서는 세례식이 베풀어지고 성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 이후에는 교회력의 발달로 그리스도께서 수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성 금요일을 이날과 명확히 분리시켜 준수하게 되어, 성찬 등의 의식은 주로 그 이전에 행하고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중점을 두어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철야 예배가 토요일 오후, 토요일 아침 등으로 그 시간대가 변경되면서 사실상 철야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51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부활절 철야제가 부활되어 다시 지켜지고 있다. (2) 부활절 연합 예배 우리 나라의 교회들은 새벽에 연합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제 1회 부활절 예배는 1947년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터에서 거행됐는데, 이때 모인 신도는 1만 5천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부활절 연합 예배가 드려졌던 남산의 조선 신궁터는 과거 일제시대 때 신사 참배가 행해졌던 곳으로 해방 후 이곳에서 드린 부활절 연합 예배는 종교의 자유를 되찾았다는 실로 감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설교는 자로 교회의 한경직 목사가 맡았었다. 4회까지는 계속 남산에서 예배가 개최되었으나 6.25사변으로 인해 제 5회 연합 예배는 부산의 보수 공원에서, 제 7회 부활절 연합 예배는 부산 사범학교 뜰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1960년 이후에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분열로, 또다시 예방측 합동 교단이 별도로 예배를 드리게 되어 부활절 예배가 같은 날 세 장소에서 드려지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78년에 와서야 재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서울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별로 부활절 연합 예배가 거행되고 있다. 한편 서울에서는 1975년부터 연합 예배의 장소가 여의도 광장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계속적으로 그곳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 평소 교파를 달리하던 각 교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지체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함께 모여 화목 제물이 되셨던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뜻있는 부활절 예배가 될 것이다. (3) 촛불 행진 부활절 새벽 예배가 끝난 다음 행해지는 부활절 행사로 촛불 행진이 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새 희망과 세상에 빛으로 이땅에 오사 이를 완성하시기 위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행사에 참가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주변을 돌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린다. 촛불 행진시에는 전도지 등을 미리 준비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거나 근처에 있는 집의 대문 안에 넣어 준다. 이때 주의할 것은 우리의 작은 행동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임을 인식하여 경건하게 행동하도록 한다. 또한 주위의 많은 가정이 잠들어 있을 때이므로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4) 부활절 달걀 나누기 부활절 달걀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 껍질은 무덤을, 달걀 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죄인의 대속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부활절에 부활절 달걀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때 이러한 행사가 우리 교회만의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주위의 이웃에게도 부활절 달걀을 나누어 주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 출석을 게을리 했던 성도를 직접 찾아가 부활절 달걀을 선물하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부활절 달걀과 관계된 부활절 놀이로는 날계란 찾기, 달걀 굴리기 등이 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달걀이 상징하는 바를 알려주고 달걀과 관계되 동화나 이야기를 해주며 부활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한다(3. 풍습 참조) (5) 음악 예배 부활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음악 예배가 드려진다. 부활절 음악 예배는 주로 부활절 저녁에 드려지며 부활절에 행해지는 음악예배로는 뮤지컬, 오페레타, 칸타타가 있다(성탄절,5. 주요행사 참조). 그중 부활절 칸타타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 예배 프로그램이다. 이밖에도 부활에 관계된 찬송들을 모아서 발표하거나 예배 순서에 부활절과 관계된 찬송을 많이 넣어서 진해할 수도 있다. 다른 행사 프로그램과 같이 부활절 음악 예배도 능숙한 운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을 돈독히 갖는 것이다. 부활절 예배를 통해 다시 한번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6) 성극 예배 성극 예배는 연극 형식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보통 예배와 같이 찬송과 기도, 묵도 등이 예배 순서에 포함되며 단지 설교 대신에 부활에 관계된 성극이 공연되는 예배이다. 성극 예배에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사신들이 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인식하여 진지한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극 예배에서는 부활절 설교 메시지가 성극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대사와 몸짓에 의해 전달되어지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예배가 아닌 다순한 '극'으로 격하되기 쉽다. (7) 낭송극 예배 낭송극 예배는 성극 예배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예배는 성극 예배처럼 대사에 따른 행동이 없이 부활에 관계된 성경 본문이나 글을 낭독자들이 읽음으로써 예배가 진행되어진다. 낭송극 예배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드리는 예배임을 기억하여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극을 통해 낭송자 자신도 예배드리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8) 묵상 예배 묵상 예배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계된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묵상 예배 전에 예배실 조명을 어둡게 조절하여 고요한 가운데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불을 끄고 각자가 촛불을 들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묵상 예배는 찬양과 성경 낭독, 간단한 설교 말씀으로 꾸며지며 묵상할 내용을 그린 그림을 이용할 수도 있다. 묵상 예배시 선포되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련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베드로의 부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외치는 이스라엘 백성들,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가상 칠언 등과 관련된 말씀이다.
부활절(復活節)
부활절(復活節) 성 고난 주간(Holy passion week)의 금요일에 죽어 장사되신 주님은 삼일만인 일요일 곧 주일날에 스스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바 부활절은 이를 기념하는 주일날을 가리킨다.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절을 \'파스카\'(Psacha)로 불렀다. 이는 구약의 유월절(Passover)을 뜻하는 히브리어 \'페사흐\'( j s p )에서 나온 말이다. 이는 구약의 초대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유월절 양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구속 희생을 당한 사실에 근거하여 구약의 유월절을 예수의 부활 기념일로 변용시켜 기념한데서 유래한 말이다. 한편 부활절을 의미하는 영어 \'이스터\'(Easter)는 고대 앵글로 색슨어인 Eastre와 Ostara가 합성된 말로, 유럽의 튜튼족이 숭배한 새벽과 봄의 여신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새벽은 어둠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봄은 새 생명이 겨울을 이기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각각 부활절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바 두 단어를 합성하여 부활절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던 것이다. 1. 시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이 살아나심으로 인해 그를 믿는 자들 역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복음의 핵심을 이루는 사건이다. 이에 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함께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기키고 있다. 소아시아를 중심한 동로마 교회들은 일찍이 구약시대부터 유대인들이 지키던 큰 절기였던 유월절을 주님의 부활절로 변용하여 니념해 왔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셨음을 기념하기 위한 날로, 유월절은 유대의 종교력으로 니산월 14일에 지켜졌다. 그래서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주일과는 상관없이 유대력 니산월 14일이 되었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의 부활절은 동로마 교회의 부활절 시기와는 달랐다. 왜냐하면 동로마 교회가 유대의 종교력을 중요시한 반면 서로마 교회는 주일, 즉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요일을 주요시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금요일에 일어났고 부활 사건은 안식일 다음날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막 16:9; 눅 24:1-7). 이러한 성경의 근거에 의해 서로마 교회는 부활절을 주일로 지킬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동,서로마 교회의 주장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 2-3세기까지도 부활절 시기에 대한 의견의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교회의 논쟁의 불씨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A.D.325년 이러한 교회의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니케아 회의(the council of Nicea)가 열리게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기간이어야 한다는 동로마 교회의 주장과 반드시 주일이어야 한다는 서로마 교회의 주장을 다 수용시킨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 부활절은 춘분(春分)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지키되 특정 일요일일 필요는 없다고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해결점이 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동,서로마 교회가 사용하는 월력의 차이로 인해 그 계산에 있어 심할 경우 5주씩이나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계산상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다시 수정인이 나오게 되었는데, 결국 부활절은 유월절기와 연계시키지 않고 3월 21일로 고정되어 있는 춘분 이후에 오는 그 해의 14번째 일요일에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당시 동,서로마 교회의 호응 부복으로 7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받아들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유래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록들이 비교적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에 관련된 것이며 부활절의 기념과 그 행사에 대한 것은 유월절과 관련되어 잠깐 언급될 뿐이다(고전 5:7).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종교력으로 1월인 니산월 14일, 즉 유월절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였다. 이렇게 유월절이 부활절로 변용되어 기념된 것은, 예수의 부활이 유월절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출애굽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속과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역이 그 의미에 있어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출 12:13). 전통적으로 소아시아 지역의 동로마 교회들의 성도들은 부활절에 양고기를 먹으면서 승리의 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기도 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일부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다. 또한 부활 주일 이전의 월요일로부터 토요일까지 고난 주간의 행사로서 금식이 행해졌으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절에는 빈부를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 애찬과 성찬을 나누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는 동로마 교회 뿐 아니라 서로마 교회에서도 행해진 것이었다. 한편 서로마 교회들이 어떻게 부활절을 기념했는지, 또 그 시기는 언제였는지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러나 서로마 교회에서는 유월절에 기초해서 부활절을 기념하는 동로마 교회와는 달리 유대 전승에 근거한 부활절을 거부하며 보다 성경의 기록에 근거한, 로마 전승을 반영한 부활절을 기념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이유로 동,서로마 교회는 시기 문제에서부터도 합의를 보지는 못했으나, 이날을 성대하게 기념한 것은 일치하였다. A.D.325년 니케아 회의 이후 오랜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부활절 시기의 문제가 동,서로마 교회에 합의가 이루어지자 이들 교회들은 부활절과 관련한 보다 다양한 해사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교회들은 부활절 전날 촛불을 밝히며 부활절 전야제 등을 거행하였다. 또한 이날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모세 오경과 주님의 수난 설화등을 낭독하였으며, 성유를 바르는 의식 ? 성찬을 행하였다. 하편 중세 기록에 의하면, 부활절을 기념하는 기독교인들의 즐거운 축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수 부활을 믿지 않던 유대인들의 문밖 외출을 금했다고도 한다. 이런한 부활절은 개신교 모든 교단에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자신들 역시 영생의 부활에 동참하기를 기원하는 중요한 절기로 지켜지고 있다. 또한 이날 세례와 입교식, 그리고 성찬을 행하여 더욱 의미 깊은 날로 삼기도 한다. 3. 풍습 (1) 부활절 새벽 예배(일출 예배) 부활절에 행해지는 대표적인 풍습으로 부활절 새벽 예배가 있다. 이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행해진 것으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위로 세 번 뛰어 오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비치는 태양 광선은 기쁨의 춤을 추는 천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며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해가 솟아 오르는 순간을 보기 위해 새벽에 넓은 들이나 언덕 꼭대기에 모여 기도와 노래, 부활 축하 타종 등으로 해돋이 순간을 맞이하였다. 오늘날도 이러한 풍습은 유럽 등지에서 행해지며 미국에서는 새벽 예배 형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활절 연합 예배로 새벽에 곳곳에서 새벽 예배를 드린다. (2) 부활절 행진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행해지는 풍습으로 부활절 행진이 있다. 이는 부활절 아침에 예배를 마친 사람들이 꽃과 부활절 촛불로 장식된 십자가를 선두로 행렬을 지어 기도를 음송하고 부활절 찬양을 부르며 마을을 행진하는 풍습이다. 때로는 들판이나 국토를 횡단하기도 한다. 이때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흰 예복을 입었으며,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음을 축하하는 뜻으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이 행렬에 참가하였다. 이러한 부활절 풍습은 원래 콘스탄틴 대제 때 의회에서 명령한 것으로, 이는 부활절에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종교 개혁 이후로 이러한 부활절 행진은 부활의 참뜻을 기리기보다는 의상에 너무 치중하는 부활절 패션 행진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거부되었다. (3) 부활절 달걀 나누기 부활절에 달걀을 나누어주는 풍습은 많은 부활절 풍습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이다. 달걀은 봄과 풍요의 상징으로, 달걀을 주고받는 것은 원래 새해에 행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유대의 종교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때는 주님이 고난받으심을 기억하며 경건히 보내야 하는 사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님의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부활절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붉은 색 또는 그 밖의 여러 색의 물감으로 색칠한 달걀을 선물로 주는 풍습은 어느 불우했던 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 부인이 남편을 잃고, 살던 집조차 빼앗겨 살길이 막막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그 부인을 도와 주었다. 마을 사람들의 친절을 늘 감사하게 생각했던 부인은 그 마음에 보답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부인은 그 방법으로 친절한 마을 사람들을 축복하는 글과 성경 구절을 달걀에 써서 동네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이것이 점점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한편 부활절 달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으로 그 껍질은 예수님이 사흘 동한 머무르셨던 바위 무덤을, 달걀 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리신 피를 상징한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에 채색한 부활절 달걀을 이웃이나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날 다양하게 장식한 부활절 달걀을 성도들에게 나누어준다. (4) 부활절 타종 부활절에 종을 치는 풍습은 러시아, 폴란드 등지에서 행해졌던 고대 풍습이다. 우크라이나 지방 같은 경우 부활절을 연중 가장 중요한 날로 여겼기 때문에 이를 축하하며 부활의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의 종을 울렸다고 한다. 부활절 종소리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실어다 주며, 엄숙하고 경건한 가운데 주님의 부활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소음 등을 이유로 종을 울리지 않아 부활절 종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부활의 종소리가 갖는 의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항상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5) 부활절 촛불 밝히기 부활절 전야에 촛불을 밝히는 풍습은 이미 3세기 중엽 로마 교회 등에서 행해진 것이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부활절 전야에 밝힌 촛불로 인해 도시 전체가 환하여 졌다고 한다. 이때 사람들은 각자 밝힌 촛불을 들고 교회에 와서 철야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 풍습은 새해 아침에 제단에서 행해지던 예식, 즉 부싯돌로 새로운 불을 붙여 그 불을 다른 양초들에 옮겨 붙이던 예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촛불을 밝히는 것은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우리 성도 역시 빛으로 살기를 다짐하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서 중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사랑받는 풍습이다. (6) 부활절 음식 부활절을 기념하는 음식으로는 양고기 이외에도 햄 종류와 과자가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요리된 햄, 훈제된 햄 등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을 먹는데, 이는 돼지가 행운과 성공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에서는 부활절 음식으로 paska라고 불리는 부활절 빵과 과자를 먹는다. 4. 상징물 (1) 어린양 인간들을 대신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흔히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된다. 이는 구약 시대의 절기인 유월절에 어린양이 백성들을 위한 희생 제물로 쓰였듯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인간들을 위한 희생양이 되셔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였기 때문이다(출 12:3; 요 1:29). 이러한 이유로 인해 중세 기독교인들은 어린양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으며 승리의 어린양이 되신 그리스도를 기념했다. 이 풍습은 지금도 유럽 등지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혹은 양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음식이나 그 밖의 부활절 장식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양고기를 잘 먹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습이다. (2) 부활절 백합 성경에서 백합은 미(美)와 완전한 선(善)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백합을 부활절 상징으로 처음 사용한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인들이 부활절과 관련하여 주로 사용하는 백합은 일명 버뮤다 백합이다. 이 백합은 원래 일본에서 버뮤다로 전해졌다가 1882년에 미국에 전래되어진 꽃이다. 이 백합이 부활절의 이미지를 잘 표현할 뿐 아니라, 그 피는 시기도 부활절에 즈음해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백합은 미국 뿐 아나라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주요한 부활절 장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3) 부활절 토끼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부활절 상징으로 부활절 토끼가 있다. 토끼는 봄의 충만함과 새 생명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특히 부활절 토끼는 부활절 달걀을 어린 아이들에게 가져다 준다는 민담을 가지고 있다. 토끼와 관련된 부활절 풍습은 15-16세기경 독일에서 유래되었으며, 1572년경의 어느 독일 문헌에 토끼를 부활절 상징으로 삼았다는 최초의 기록이 실려 있다. 이런 연유로 인해 독일인들은 부활절에 토끼 모양을 만들어 장식으로 사용하거나 그 모양을 새긴 과자나 파이 등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4) 부활절 초 부활절 전야를 밝히는 부활절 초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축하하는 것으로 축복을 상징한다. 그리고 부활절 초에 장식된 다섯 개의 낱알(향조각)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생긴 다섯 군데의 상처를 의미한다. 한편 중세 시대에는 부활절에 각 교회마다 커다란 초를 세우는 것이 경쟁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큰 부활절 초는 1517년 영국의 Salisbury의 제단에 세워진 것으로 그 길이는 무려 9미터가 넘었다고 한다. 부활절 초와 관련된 행사로는 촛불 예배와 촛불 행진이 있다. (5) 부활절 동산(묘지) 부활절 묘지는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셨던 모덤을 상징하는 것으로 고난 주간 예배에서도 사용되는 성묘(聖墓) 모형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후미진 곳, 무덤, 둥근 천장의 경내 또는 부속 예배당 등에 만들어졌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에는 이 묘지의 가운데에 십자가와 촛불이 놓이게 되는데, 부활절 아침에 그리스도가 살아나셨음을 의미하기 위해 십자가를 치웠다. 13세기 영국과 노르망디에서는 성 목요일에 축성(祝聖)된 성체(聖體)를 십자가와 함께 놓기도 했다. 5. 주요 행사 (1) 부활절 철야제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하기 위한 부활절 주요 의식으로 성 토요일과 부활 주일 사이에 거행되었다. 히폴리투스가 지은 \'사도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의하면 이때 교회에서는 세례식이 베풀어지고 성찬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4세기 이후에는 교회력의 발달로 그리스도께서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성 금요일을 이날과 명확히 분리시켜 준수하게 되어, 성찬 등의 의식은 주로 그 이전에 행하고 부활절 철야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중점을 두어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철야 예배가 토요일 오후, 토요일 아침 등으로 그 시간대가 변경되면서 사실상 철야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1951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부활절 철야제가 부활되어 다시 지켜지고 있다. (2) 부활절 연합 예배 우리나라의 교회들은 새벽에 연합 예배를 드리고 있다. 제 1회 부활절 예배는 1947년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터에서 거행됐는데, 이때 모인 신도는 1만 5천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부활절 연합 예배가 드려졌던 남산의 조선 신궁터는 과거 일제시대 때 신사 참배가 행해졌던 곳으로 해방 후 이곳에서 드린 부활절 연합 예배는 종교의 자유를 되찾았다는 실로 감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때 설교는 자로 교회의 한경직 목사가 맡았었다. 4회까지는 계속 남산에서 예배가 개최되었으나 6.25사변으로 인해 제 5회 연합 예배는 부산의 보수 공원에서, 제 7회 부활절 연합 예배는 부산 사범학교 뜰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1960년 이후에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분열로, 또다시 예방측 합동 교단이 별도로 예배를 드리게 되어 부활절 예배가 같은 날 세 장소에서 드려지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1978년에 와서야 재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서울 뿐 아니라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별로 부활절 연합 예배가 거행되고 있다. 한편 서울에서는 1975년부터 연합 예배의 장소가 여의도 광장으로 옮겨지게 되었고 계속적으로 그곳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다. 평소 교파를 달리하던 각 교파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지체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함께 모여 화목 제물이 되셨던 그리스도의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뜻 있는 부활절 예배가 될 것이다. (3) 촛불 행진 부활절 새벽 예배가 끝난 다음 행해지는 부활절 행사로 촛불 행진이 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새 희망과 세상에 빛으로 이 땅에 오사 이를 완성하시기 위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이 행사에 참가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주변을 돌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알린다. 촛불 행진시에는 전도지 등을 미리 준비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근처에 있는 집의 대문 안에 넣어 준다. 이때 주의할 것은 우리의 작은 행동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임을 인식하여 경건하게 행동하도록 한다. 또한 주위의 많은 가정이 잠들어 있을 때이므로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한다. (4) 부활절 달걀 나누기 부활절 달걀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 껍질은 무덤을, 달걀 껍질에 칠하는 붉은 색은 죄인의 대속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부활절에 부활절 달걀을 교인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때 이러한 행사가 우리 교회만의 행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주위의 이웃에게도 부활절 달걀을 나누어주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동안 교회 출석을 게을리 했던 성도를 직접 찾아가 부활절 달걀을 선물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부활절 달걀과 관계된 부활절 놀이로는 날계란 찾기, 달걀 굴리기 등이 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달걀이 상징하는 바를 알려주고 달걀과 관계되 동화나 이야기를 해주며 부활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한다(3. 풍습 참조) (5) 음악 예배 부활절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음악 예배가 드려진다. 부활절 음악 예배는 주로 부활절 저녁에 드려지며 부활절에 행해지는 음악예배로는 뮤지컬, 오페레타, 칸타타가 있다(성탄절,5. 주요행사 참조). 그중 부활절 칸타타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 예배 프로그램이다. 이밖에도 부활에 관계된 찬송들을 모아서 발표하거나 예배 순서에 부활절과 관계된 찬송을 많이 넣어서 진해할 수도 있다. 다른 행사 프로그램과 같이 부활절 음악 예배도 능숙한 운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우리의 마음을 돈독히 갖는 것이다. 부활절 예배를 통해 다시 한번 주님의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6) 성극 예배 성극 예배는 연극 형식으로 드려지는 예배로, 보통 예배와 같이 찬송과 기도, 묵도 등이 예배 순서에 포함되며 단지 설교 대신에 부활에 관계된 성극이 공연되는 예배이다. 성극 예배에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은 사신들이 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음을 인식하여 진지한 태도로 예배에 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극 예배에서는 부활절 설교 메시지가 성극에 출연하는 사람들의 대사와 몸짓에 의해 전달되어지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예배가 아닌 단순한 \'극\'으로 격하되기 쉽다. (7) 낭송극 예배 낭송극 예배는 성극 예배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예배는 성극 예배처럼 대사에 따른 행동이 없이 부활에 관계된 성경 본문이나 글을 낭독자들이 읽음으로써 예배가 진행되어진다. 낭송극 예배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드리는 예배임을 기억하여 단순히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극을 통해 낭송자 자신도 예배드리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8) 묵상 예배 묵상 예배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계된 말씀을 조용히 묵상하는 형식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묵상 예배 전에 예배실 조명을 어둡게 조절하여 고요한 가운데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때 불을 끄고 각자가 촛불을 들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묵상 예배는 찬양과 성경 낭독, 간단한 설교 말씀으로 꾸며지며 묵상할 내용을 그린 그림을 이용할 수도 있다. 묵상 예배시 선포되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련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베드로의 부인,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외치는 이스라엘 백성들,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 가상 칠언 등과 관련된 말씀이다.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차이 죽음을 앞두고 사람은 가장 진실 되고 착한 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임종어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의 임종어와 믿음을 거부하며 불신의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임종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대한 확신과 불안, 죄에 대한 자신감과 염려 그리고 삶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어리석은 삶을 산 자에게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는 혼자가 아니며, 그의 종착지가 어두운 무덤이 아니라 새로운 아침을 기다리는 곳임을 분명하게 확신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자들의 마지막 말을 살펴봅시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1769-1821)은 \"프랑스 군대! 조세핀!\"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1749-1832)는 \"어둡다! 어둡다! 나에게 빛을 달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1694-1778)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다. 나는 지옥에 떨어진다. 오! 그리스도시여, 예수 그리스도시여!\"라고 말했으며, 프랑스의 혁명가로 많은 사람을 죽인 미라보는(1749-1791) \"영원에 대한 생각을 잊을 수 있도록 나에게 아편을 다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의 고백은 다릅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1732-1799) \"좋다! 저 세상은 참 아름답군\"이라는 말로서 믿는 자에게 죽음은 불행이 아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1628-1688)은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이제 당신께로 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 중에 순교하면서 \"주의 손에 내 영혼을 돌려드리나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임종어는 이미 얻은 자들의 당당한 메시지였습니다. 천국을 소유한 자들의 넉넉함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집사였던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말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 문제를 해결 받았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부활절 그 기쁨의 날 -Sandra Simpson LeSourd 이제 난 알콜중독에서 벗어나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 최근엔 결혼도 했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역도 하면서 나는 무슨 일에서나 항상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예수님의 수난일인 부활절 전의 성 금요일은 여전히 눈물을 닦아주는 날이었으며 토요일은 기다림과 인내를 배우는 날이었다. 그러나 내겐 기쁨이 없었다. 특히 부활절의 그 기쁨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여러 해 동안 난 그 기쁨을 얻고자 갈망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부활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는 내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아주 엉뚱한 시간에, 뜻밖의 사람들을 통해 찾아들곤 한다. 내겐 그 기쁨이 10일간의 멋진 이스라엘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찾아왔다. 정원 무덤(영국의 개신교도 고던 장군이 발굴한 장소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고고학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곳은 아니지만 기도할 수 있도록 꾸며진 아담한 장소로 기독교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편집자 주)에 이르러 돌산을 깎아 들어가 만든 작은 방안으로 들어섰을 때 나는 가슴속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기엔 좁고 긴 의자 같은 선반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이었다. 아무 것도 놓이지 않은 이 돌 선반을 바라보면서, 난 그 양쪽에 앉아 마리아를 맞이했던 두 천사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자그마한 전자 하프를 가지고 있던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조심스레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무덤 안에 감미로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자 우리들은 조용히 그 곡조를 따라 흥얼거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부활하셨네. 할렐루야!\' 우리 일행 중 나머지 사람들도 우리의 노랫소리를 듣고는 무덤 앞뜰에서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쁨을 나누었다. 새 노래를 이어 부를 때마다 우리들의 영혼도 함께 소생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바로 그 방안으로 옮겨진 듯 느끼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파도처럼 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예수님은 살아 계셨다!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예수님은 정말 무덤에서 일어나셨다! 우리들은 계속 노래하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차분한 성격의 영국인 안내인까지 우리들의 환희에 압도되어 흥겨운 춤을 추었다. 그때 친구 마가렛이 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오늘, 나는 1984년, 성지 순례 여행의 기록이 담긴 사진첩을 죽 훑어보면서 내 모습이 담긴 그 사진을 바라본다. 두 손을 높이 든 채 내 얼굴은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로 그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던 것이다!
부활절기의 바른이해
부활절기의 바른이해 부활절기의 바른이해 부활절은 성도에게 믿음의 생동력과 승리를 맛보게 하며, 환희의 절기 이다. 그러나 준비와 과정없이 부활절을 맞는 것은 아무런 준비없이 결혼날을 맞는 신랑.신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부활절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하겠는데, '한날'에 치중하기보다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녀야 한다. * 사순절 사순절, 또는 수난절이라 하는 절기는 부활절이전 46일간(주일을 제외한 40일) 기간을 의미한다. 이 때에는, (1)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는기간으로 삼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을 묵상하며, (2) 믿음을 살피는 기간으로 삼아,내 믿음이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 점검하는 기간이며, (3) 결단의 계절로 삼아, 이웃과 교회를 위한 좋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기간으로 삼는다. ◈ 사순절에 대하여 사순절이란? 기독교 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중요한 절기중의 하나로서, 회개를 통해서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 입니다. 따라서 이 절기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성도들이 자신들의 신앙자세를 다시 점검하는 시기인 것 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성도는 내적인 정화와 성화 과거의 죄에 대한 참회, 죄된 습성을 끊는 일, 덕을 행하는 일, 특히 자신과 화해, 그리고 적개심과 증오심을 버리는 일 등에 힘써야 합니다. 이 절기는? 특별한 속죄일(Ash Wednesday)에서 시작되어 성 금요일(Good Friday) 다음 토요일, 즉 부활주일 전일에 끝나게 되는데, 금년(2002년)의 사순절 기간은 2월13일(수)부터 3월30일(토)까지 40일 동안이다.(주일 제외) ◈ 사순절의 역사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시작되는 사순절이 40일의 기간으로 확립된 것은 오랜 기간의 변천의 결과 였습니다. 원래 1세기에는 사순절이 40시간이었는데 이것은 예수의 시체가 무덤 속에 40시간 동안 있었던 것과 일치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4세기에 이르러서 이 40시간이 늘어 6일간이 되었고, 나중에 이 6일간이 1년 365일의 11조로서 36일간으로 늘어 났습니다. 731년경 샤를마뉴(Chalemagne) 대제 시대에 이 36일간에 나흘이 첨가되어 지금처럼 40일간의 절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주님께서 금식하신 40일로 만들기 위해서 였을 것 입니다. 사순절은 40일간의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부활절로부터 46일전에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주일이 사순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 입니다(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의미하기 때문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사순절 안에 있는 주일(Sunday in Lent) 이라는 말은 하지만 사순절의 주일(Lent Sunday)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짜는 부활절의 날짜에 따라 정해지는데, 325년 교회는 3월21일 또는 그 이후에 생기는 만월 이후의 첫 주일을 부활절로 정 했습니다.(금년은 3월31일) ◈ 재의 수요일 사순절의 첫 날을 속죄일 또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하는데, 속죄일이라는 명칭은 1099년 교황 우르반 2세가 명명한 것 입니다. 그전에는 사순절의 첫날이 "금식 시작일(Beginning of Fast)"로 알려졌습니다. 이 명칭은 회개자가 자신의 머리에 회개를 상징하는 재(Ash)를 뿌려 자신의 회개를 공적으로 알리고, 이 날을 특별한 회개일 및 회개절기의 시작일로 삼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재는? 전 해 종려주일의 종려가지 들을 태워 가루로 만들어 준비되었습니다. * 종려주일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예수께서 입성하실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펴고 한편, 손에들고 흔들어 축하하였듯 고난을 향한 예수님의 결단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절기이다. 종려나무는 그리스도의 승리와 사탄을 대적하는 상징이 되며, 번영과 (시92:12), 아름다움 (아7:78)의 상징이기도 하다. * 고난주간 종려주일로부터 시작하는 고난주간에는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한주간에 일어난 성경기사를 중심으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데 전념한다. 특히 성경봉독과 기도에 힘쓰는 일을 주력하면 좋겠다. 이 고난주간동안은 한끼씩, 또는 금요일 하루 온전히 금식하는 것이 좋겠고, 이때 모여진 성미로 구제하거나 고아원 양로원 등에 보냄이 좋겠다. 수요일 밤이나, 목요일밤에는 교회에 모여 세족식을 가지면 좋겠고, 고난주간동안 교회를 완전히 개방하고 성가를 연주하거나 틀어 놓아 인근 주민들이 들려 기도하게 함이 좋겠다. 토요일 밤에는 주일학교 교사들이 학생,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이웃들에게 나눠줄 부활계란들을 채색하는 것 역시 부활절에 가는 추억이 된다. * 부활주일 유대인의 날 개념으로 금요일, 토요일과 주일 사흘을 무덤에서 지나신 주일 아침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축하하는 절기이다. 부활절은 기독교에 있어서 성탄절과 함께 양대절기인데, 주후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현재와 같이 춘분후 만월 다음에 오는 첫번째 주일을 부활주일로 정하고 시행하게 되어 금년의 경우에는 3월 31일이 된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새벽에는 연합새벽예배를 드려왔고, 부활절 아침예배는 기쁘고 환희에찬 가운데 드리도록 준비함이 좋겠다.
부활절의 의미
부활절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우리의 구원 또한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피흘려 죽으신 주님은 그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은 것처럼 보이거나 기절한 것 같은 가사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머리는 가시면류관에, 손과 발은 대못에, 허리는 로마 군병의 창에 찔려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더 이상 생명력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다른 사람과 조금도 다름없이 운명하셨습니다. 그리고 해가 져서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덤 속에서 그의 생애를 끝마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전 15 : 17-18)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이 예언하고 그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실 때 인생들을 위해 대신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에 대해 거듭거듭 말씀하셨습니다(마 16 : 21).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까? 첫째로,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더라면 그는 평범한 종교가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병 고침도 요술로 취급되었을 것이고, 그의 죽음도 하나의 비극적인 순교로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의 가르침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고, 예수님의 병 고침이 하나님의 자비의 손길이 되었으며, 그의 죽으심이 인류를 구속하는 대속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죄를 속함. 즉, 구원의 보증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은 인류의 죄값인 사망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함인데,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다면 죄값을 치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살아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모든 죄 값이 다 청산되고 우리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가 얻을 부활에 대한 확증이 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 라" (고전 15 : 13). 넷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역경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죄와, 죽음과, 마귀를 멸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장차 다가올 부활은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소망이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증해 주는 것이요, 우리 죄속함의 보증이 되며, 우리도 장차 부활할 것이라는 확증이 되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절망을 소망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Lent, 四旬節)/ 2012-03-21
사순절(Lent, 四旬節) 1. 어 원 사순절을 뜻하는 Lent는 앵글로 색슨 족의 언어의 \'봄\'을 의미하는 Lang에서 유래했으며 독일어 Lenz와 같은 명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40일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의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를 따라 사순절로 번역했다. 이 절기는 부활절을 위한 신앙의 성장과 참회를 통한 영적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이다. 이 절기는 AD 325년 니케아 총회(council of Nicea) 부터 시작되었는데 특별한 참회일인 속죄일(Ash Wednesday)에서 시작되어 주일을 제외한 40일간의 제기(劑期) 즉 부활절 전 6주간으로 거룩한 금요일의 슬픔과 비극 가운데 끝난다. 그러나 교회 역사 속에는 40일이 아닌 기간 동안 사순절의 의미를 갖는 절기가 지켜지는 경우도 많았다. 과거 동로마 교회에서는 부활절 준비 기간으로 7주를 지키되 토요일은 제외하고 일요일도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왕으로 입성하신 \'성 주일\'만을 포함해 36일을 이 기간으로 지켰었다. 서로마 교회도 6주간을 지키되 주일을 제외한 36일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정했다. 이런 관습은 니케아 회의 후에도 계속되어 얼마 동안은 오늘날과 같은 40일간의 절기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후 7세기 무렵 서로마 교회가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의 첫 주일까지의 4일을 포함하면서부터 오늘날과 동일한 40일간의 사순절을 철저히 지키게 되었다. 2. 시 기 올해의 사순절의 시작은 2월 13일 수요일부터이다. 사순절은 언제나 수요일부터 시작되는데 이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즉 \'속죄일\' \'성회 수요일\'이라고 부른다. 성경에서는 재(Ash)를 슬픔과 죄에 대한 회개를 상징한다. 전년도 종려 주일에 사용한 종려 가지를 태워서 재로 만들어 두었다가 이 재(Ash)를 수요일에 신자들의 이마에 감람나무의 재나 숯덩이로 십자가를 그었다. 이 날부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부활절까지 참회가 계속된다. 이 기간 동안 금식하며 자기 성찰의 기회로 삼으며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다. 40년 간의 광야 교회의 생활, 예수님의 공생애를 위한 광야의 40일간의 금식, 시내산의 모세의 40일 금식과 십계명, 무덤 속에서 40시간을 계신 예수님, 부활에서 승천까지 주님의 사역기간, 등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금식으로 준비했다. 3. 유 래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을 준비하면서 주님이 겪은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를 가진 금식을 행하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유월절 전에 금식을 행했는데, 초대 교회 성도들도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라는 차원에서 구약의 유월절 만찬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님께서 제공하신 성찬식에 앞서 금식을 행했던 것이다. 40일 동안 금식하였으며 사순절 기간 하루 한 끼, 또는 저녁 식사만 허락하되 육식은 물론 생선 정도의 육식까지도 금하였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새 생명의 탄생을 연상케 하는 달걀이나 우유 등의 음식까지도 규제할 정도로 매우 엄격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9세기 이후 금식 규정이 완화되기 시작하여 15세기에 와서는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 되었으나 의식적인 금식보다는 성령의 열매인 절제와 경건의 훈련을 통한 내적인 자기 정화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접근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맛보며 주님을 본받는데 부적합한 집착들을 제거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성도라면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외형적인 형식만을 닮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이면에 숨겨진 내면적인 의미를 맛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절에는 새로 영접한 성도들의 성례식이 있게 되는데, 세례 예비자들이 이 때 세례와 입교(入敎)를 받기 위하여 이들을 추천한 보증인들과 함께 두 주간의 준비 기간을 두고 금식과 기도로 죄의 회개와 신령한 훈련에 참여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이때 부활절에 있을 세례식을 준비하는 세례 예비자들은 물론 이미 성도로 영접된 사람들 모두 금식과 기도 생활에 힘썼다. 사순절 행사로서의 금식은 수세기 동안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다. 사순절의 식사로는 저녁 전에 한 끼 식사만이 허용되었으며, 물고기와 고기 등의 육류는 물론 우유와 달걀로 만든 음식까지도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8세기 이후로 가면서 이 규정은 많이 완화되기 시작해 14세기에는 금식 기도 대신에 절식 기도가 행해졌으며 , 15세기에 와서는 정오에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 관습이 되었고, 저녁 시간에도 간단한 식사인 콜레이션(collation)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사순절 기간 동안에 연극, 무용, 연애 소설 읽는 것과 같은 오락 행위는 여전히 금지되었으며, 화려한 옷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 호화 생활 등도 자제되었다. 대신 자선과 예배 참석, 기도 등이 권장되었다. 4. 관 습 1. 금식 기도 요즘 와서는 우리 개신 교회가 사순절을 지키는 것이 마치 로마 카톨릭의 의식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도 있는데 물론 역사적으로 동방교회는 7주 동안 금식하게 하였으며 서방교회는 6주 동안 금식하게 하여 의식화되어 내면의 깊은 뜻이 퇴색한 것은 인정하나 금식은 사순절의 가장 중요한 관습이었다. 시기와 장소에 따라 금식의 기간과 그 엄격성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구속 사역을 기리고 하늘 나라의 백성 됨을 감사하며 그 백성 된 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돌이키게 하는 금식 기도는 초대 교회 시대부터 행해졌었다. 오늘날 행해지는 금식 기도는 엄격했던 초기의 형태에서 많이 변형되어 절식(節食) 기도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작금 은혜를 사모하는 교회들이 신앙의 대 선배들이신 모세(출 24:18; 신 9:9; 10:10) 엘리야(왕상 19:8), 그리고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마 4:2; 눅 4:1-2)의 40일 금식에 대한 믿음의 자세로 이 기간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그의 고난의 의미를 살피며 남은 고난을 우리의 육체에 채워 가며 그의 죽으심을 선포하고 성도들의 신앙적인 자세를 가다듬고 절제와 단식을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죄악을 발견하여 자백하고 사함 받는 기회로 삼아 은혜가 더욱 넘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2. 이마에 십자가 그리기 종려나무를 태운 재 혹은 숯으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는 풍습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Ash Wendnesday)에 행해지던 풍습이다. 이때 사용되는 재는 지난해 종려 주일에 사용했던 종려나무를 태워 만든 것으로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대속의 죽음으로 이끌었던 인간의 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 이마에 십자가를 그렸다. 이는 또한 아름다운 풀과 꽃이 잠깐 후면 마르고 시들 듯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도 잠시 잠깐 후면 사라지고, 한 줌의 흙에서 왔던 우리도 또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엄숙한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다. 또한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우리의 삶의 자세를 정비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구제와 자선 사순절에는 범죄한 인류를 위해 고난받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불우한 이웃을 위한 구제와 자선이 행해졌다. 특히 사순절에 행해지는 금식 기도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의 동참, 불의한 자신에 대한 회개뿐만 아니라 불우한 이웃의 배고픔과 가난을 생각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실천에 있음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랑을 본받아 이를 실천함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라 할 것이다. 한편 어떤 곳에서는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3일 정도의 \'사육제\'(canival)가 거행되었었는데 이 사육제는 원래 \'육이여\'(carni), \'안녕\'(vale)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교적인 영향을 받은 이 축제의 기간 동안에는 금식하는 사순절과는 대조적으로 술과 고기를 먹었으며, 가장 행렬 등의 인간의 쾌락 본능을 자극하는 행사들이 행해졌으며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오히려 더 확산되어 수개월 동안 행해지는 유럽 국가들도 있다. 그러나 1517년 종교 개혁 이후 종교 개혁자들은 형식적이며 지나치게 많은 교회의 의식 절차들을 폐지했는데, 이때 사순절에 관계된 많은 의식들도 간소화 내지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회개의 시기로 지켰던 중세 교회의 사상은 받아들여 공동기도문 중 사순절 기도문의 주제를 회개로 삼는 등, 계속해서 이 절기를 기념하고 있다. 4. 사순절 행사 그러면 교회들은 사순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첫째, 예배를 경건하게 드릴 수 있도록 성결하게 몸과 마음을 준비를 해야 한다. 주일을 범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회개와 헌신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순절은 자기 근신과 금식의 기간, 즉 영적 훈련의 기간으로 죄 자백에 주력하여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과 죽음으로 향해 가는 순례의 기간이며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 죽는 것을 배우는 기간이다. 매일 시간을 정하여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여야 한다. 특별한 기간을 정해서 금식함으로서 자신을 절제하고,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한다. 오락을 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금식과 절제를 통하여 모아진 금액을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한다. 셋째, 원래 사순절이 부활절 세례를 받기 위하여 자원자를 준비시키는 기간인 것을 감안하여 이 기간 동안 성경공부에 빠지지 말고 세례와 학습자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이 기간 동안에는 전도를 함으로 십자가의 구속의 의미를 친구들에게 전해야 한다.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가정 예배를 드리고 이웃을 초청하여 음식을 나누는 일도 바람직하다. 1. 새벽기도회 2. 금식 기도회 3. 주일 시리즈 예배 사순절 절기 안에는 6번의 주일이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사순절의 각 주일에는 단계와 특색이 있다. 첫째 주일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들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신 후 사단에게 시험받으셨음을 생각하며 지낸다(마 4:1-10). 둘째 주일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마 4:11). 셋째 주일은 빛과 어둠의 대립 즉, 빛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어둠의 세력인 사단과의 대립을 중심으로 한 말씀(요 1:1-18)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 넷째 주일은 사순절 중간에 끼어 있어 \'사순절 중절\' 또는 \'휴양 주일\'(休養週日)이라고 불린다. 이 주일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위한 고난과 사단과의 싸움 등을 다루는 사순절의 다른 주일과는 달리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신 것으로 말씀을 삼는다(마 14:13-21). 다섯째 주일은 고난 주일이라고도 하는데, 이 주일의 명칭은 주님이 자신에게 임할 고난을 제자들에게 예언하셨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때는 가룟 유다에게 팔리어 고난받으셨던 주님에 대해 생각하며 예배를 드린다(마 20:18,19). 여섯째 주일, 즉 종려 주일(Palm Sunday)에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과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군중들에 관계된 말씀을 본다(마 21:1-11).
설날의 어원
설날의 어원 2008-02-01 01:41:13 read : 237 '설' 또는 '설날'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무척 많다. "정초(正初),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歲初), 신정, 연두(年頭), 연수(年首), 연시(年始)"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흔히 느끼던 설날의 정취는 그 많은 한자어보다 '설'이란 토박이말에서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자어와 설날 아침을 뜻하는 한자어 '원단(元旦), 원조(元朝), 정조(正朝), 정단(正旦)"등의 말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어려운 한자어는 굳이 쓸 필요 없이 '설날 아침'이란 말을 쓰는 것이 좋다. '설'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하나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에서의 '살'에서 왔다고 한다. 곧 '살'이 '설'로 된 것인데 그 근거로 '머리(豆)'가 '마리'에서 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유추할 수 있음을 든다. 다음으로는 "장이 선다."와 같이 쓰이는 '선다'의 '선'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설다(제대로 익지 않다)', '낯설다' '설어둠(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때)'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또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어원에 따르면 '설'의 의미는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세 번째 견해에서는 설날을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의 '신일(愼日)'이란 어휘를 챙기게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무렵을 흔히 '세밑, 세모(歲暮)'라고 부른다. 특히 설날의 전날인 섣달 그믐을 가리킨다. 아이들은 '까치 설날'이라 부른다. 옛말로는 " 셜"이라 하는데 ''은 '작은'이란 뜻이다. 그러나 동지(24절기의 하나, 태양력으로 12월 22일쯤)를 가리키는 '작은설'과 혼동하면 안 된다. 동지는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해(태양)의 힘이 가장 약화된 날이다. 그 다음 날부터 낮이 시나브로 길어지므로 아마도 1년의 출발 기준으로 생각하여 '작은 설'로 삼았던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