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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번째 대접 재앙/ 계16:1-9/ 2001-12-03
1-4번째 대접 재앙 계16:1-9 계시록 16장에는 계시록의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4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앙들은 이미 우리 사회 속에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임을 우리가 알수 있는데 주님의 재림의 날(정확히는 재림 직전에)에 이 모든 재앙들이 다 이루어 질 것입니다. 아무튼 이 7대접 재앙은 우리가 사는 땅 위에와, 물 위에와, 바다 위에와 태양 위에 부어지는 그런 내용입니다. 또 이 재앙은 곡식 추수가 끝난 다음에 거기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을 심판하는 재앙입니다. 마치 농부가 알곡을 추수해서 곡간에 저장하듯이 예수님께서 직접 추수하시는데 여기 끼지 못하는 사람들, 가라지 같고 쭉정이 같은 인생 염소 같은 인생에게 내리는 아주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재앙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절을 보면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왜 이와 같이 큰 음성으로 말했을까요? 그것은 너무도 큰 심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명령이 아니라 큰 명령이기 때문에 이처럼 큰 음성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계시록 16장에는 \\\\\\\\\\\\\\\'크다\\\\\\\\\\\\\\\'나 \\\\\\\\\\\\\\\'큰\\\\\\\\\\\\\\\'이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어 나옵니다. 9절에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지금 우리가 살펴본 1절에도 \\\\\\\\\\\\\\\"큰 음성\\\\\\\\\\\\\\\"이 나오고, 12절에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14절에는 \\\\\\\\\\\\\\\"큰 날의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8절에도 \\\\\\\\\\\\\\\"어찌 큰지\\\\\\\\\\\\\\\", 19절에는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21절에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21절에는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크다는 단어가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일곱 대접 재앙이 너무나 크고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그 규모와 범위가 다른 것과 비교 할 수 없어서 \\\\\\\\\\\\\\\"큰 음성으로\\\\\\\\\\\\\\\" 외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큰 음성이 \\\\\\\\\\\\\\\"성전에서\\\\\\\\\\\\\\\"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바로 이 성전을 통해서 전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마지막 경고의 말씀도 성전을 통해서 들을 수 있고, 마지막 재앙 때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도 성전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 계시록의 재앙들 가운데서도 특히 일곱 대접 재앙은 너무도 큰 재앙입니다. 첫번째 대접 재앙 2절을 보면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며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대접 재앙의 대상은 바로 땅입니다. 땅은 어떤 곳입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집이 있고 직장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땅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땅에 대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2절은 아주 구체적으로 재앙을 묘사해 놓고 있습니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고 했습니다. 이 첫 번째 재앙이 짐승의 표 받은 사람과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666이라는 짐승의 표를 오른손이나 그 이마에 받은 자들에게 이런 독종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종기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독종\\\\\\\\\\\\\\\'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못살던 때라 아이들이 머리나 몸에 헌데가 많고 피부병으로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독하고 굉장히 악한 종기라는 것입니다.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뱃지를 달아야 살아 갈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종말의 날에는 김정일 뱃지가 아니라 666이라는 인을 맞아야 상거래도 할 수 있고 살아 남을 수 있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육신이 살아 남기 위해 믿음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하고, 점치고, 이마와 오른손에 우상인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절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시는 재앙이 바로 악하고 독한 종기라는 것입니다. 출 9:9에도 이와 비슷한 독종이 있습니다. 출애굽 시에 하나님이 애굽에 내린 재앙 중에 여섯 번째 재앙이 바로 독종의 재앙입니다. 또 욥기 2:7에도 욥이 독종으로 인해 고통을 당했습니다. 열왕기하 20:7에도 보면 히스기야 왕이 독종으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때때로 이 독종을 통해 심판을 하시고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알수 있는데 심판 때에는 한두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이 독종이 666표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대접 재앙 3절에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재앙이 땅에 임하는 재앙인데 반해 두 번째 재앙은 바다에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 대접을 든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을 때 바다가 피같이 변하여 모든 생물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출7:20에도 보면 이와 비슷한 재앙이 있는데 거기에는 나일강만 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대접 재앙은 제한적이고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임하게 되는 재앙인 것입니다. 요즘 물 공해가 얼마나 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조차도 수돗물을 믿을 수 없어 정수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않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남해바다는 일찍이 우리나라에서 청정해역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는데 이젠 오염되서 물이 썩고 먹물 같이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 있는 고기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머지 않아 온 세계의 바다가 본문의 바다같이 오염되어 피처럼 먹을 수 없는 물로 변할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로 임할 대접 재앙의 내용인 것입니다. 세 번째 대접 재앙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땅, 두 번째는 바다, 셋째는 강으로 이렇게 차츰 재앙의 범위가 점전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강뿐 아닙니다. 4절을 자세히 보면 물 근원, 지하수까지 재앙이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인류 문명도 다 강을 중신으로 발달했습니다. 인류는 물을 떠나서는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근원되는 강과 샘물에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므로 그 물이 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물을 피로 만드는 재앙을 내리실까요? 그것은 6절에 보면 해답이 나옵니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많은 주님의 종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시는 분입니다. 그 다음에 제단에서 음성이 들려 옵니다.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7절) 고 했는데 이 제단은 어떤 제단입니까? 바로 순교자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순교자들이 외치는 소리의 응답하는 것이고 동시에 그들이 흘린 피에 대한 보복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이 심판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 심판은 너무도 당연하고 공의로운 심판인 것입니다. 네번째 재앙 8-9절을 보면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고 합니다. 이제 재앙의 범위가 천체입니다.그 중에서도 특별히 태양이 재앙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태양은 단순히 빛만 비춰 주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자라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4번째 재앙에서 천사가 그 대접을 태양에 부으매 그 태양의 빛이 강렬해져서 사람을 태워 죽일 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태양의 빛이 강렬해져서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오늘날 사람들이 레이져나 무기 등 태양열을 이용한 각종 장비들을 일컫는 것들도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태양을 잘 선용하지 않고 살상 목적으로 악용하여 죄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어느 것이든지 간에 이 태양이 우리 인간들에게 임하는 재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무서운 재앙을 당하고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9절)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재앙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뉘우치면 좋겠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고 영광을 가리우는 일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1.1 전도 운동/ 고전9:16-23/ 2003-03-20
1.1.1 전도 운동 고전9:16-23 (행1:8) 오직 聖靈이 너희에게 臨하시면 너희가 權能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證人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주의 백성들은 주님의 명령을 항 상 준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1년 365일 살면서 52주일을 지키면서 꼭 해야 할 일 바로 전도 입니다. 삼라만상은 1년을 지나면서 열매를 내어 우리에게 공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짐승들도 새끼를 내어 창조의 질서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그 1년을 보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1.1.1 전도 운동 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주일 12월 8일 주일에 1.1.1 전도 운동 결산 주일을 지키려고 합니다. 아직은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무엇을 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라도 해야 전도 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범적인 전도자 바울을 배우게 됩니다. 바울이 전도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모범 답안이 될 것입니다. 1.1.1 전도 운동에 승리가 있기를 축원 합니다. 첫째 전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福音을 傳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不得不 할 일임이라 萬一 福音을 傳하지 아니하면 내게 禍가 있을 것임이로라(16) 본문에서 전도는 \\\"부득불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부득불이란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당연히’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가 전도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은혜의 삶입니다.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를 베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전도는 빚을 갚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세계적인 팝 가수 셀린 디온이 있습니다. 이 가수는 폭팔적인 가창력과 맑은 음색을 지진 세계 최고의 가수이며 당연히 부와 명예를 한 몸에 지닌 가수라 할 것입니다. 이 가수가 단연 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인기정상을 달리던 그녀가 돌연 부와 명예를 거절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캐나다 출신인 셀린 디온이 가수가 된 것은 열두 살 때였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노래가 담긴 테이프를 들고 한 음반회사를 찾았을 때 그때 지금의 남편인 안젤린을 만났는데 이 남편이 빚을 얻어 음반을 만들어 주었고 이후 셀린 디온의 매니저로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임으로 그녀는 세계적 가수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병들게 되었습니다. 셀린 디온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편이 지금 후두암에 걸려 투병중이다. 지금은 남편에게 내가 가장 필요한 시간이다. 남편 곁에서 병간호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쇼 비즈니스가 결코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이제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내가 갚을 차례다”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자는 그 순간부터 전도자입니다. 아직 복음을 받지 못한 자들은 다 전도의 대상자입니다. 전도에는 특별한 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전해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한 사람이 한 영혼씩 전도 합시다. 둘째 전도는 사명감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내가 내 임의로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17) 여기 \\\"임의로\\\"라고 했습니다. 임의로란 말은 「자발적」이란 말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억지로 하면 마음에 평강도 없고, 상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할 일을 알아서 자원하여 행하면 심령에 기쁨도 넘치고, 예비 된 상급도 받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를 위해 우리가 \\\'직분을 맡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직분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구약의 제사장과 선지자도 영혼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신약의 사도와 전도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주신 모든 직분은 선교와 전도를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그릇입니다(행 9:15).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고백에 걸맞게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복음 때문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많이 넘겼습니다(고후 11:23-27). 그래서 그는 최후에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고 했습니다. 한 세기의 복음 선교를 빛냈던 리빙스턴(David Levingstone)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확실히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한평생 아프리카 영혼을 위해 살다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숨진 그의 시신은 아프리카에서 그의 조국인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때 영국의 수많은 군중들은 그의 빛난 생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자원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파를 이루어 무언의 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혼자서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누구였을까요? 그 노인은 리빙스턴의 죽음에 지나친 애도를 표한 것일까요? 그 노인은 리빙스턴이 영국에 있을 때 가장 절친했던 친구였습니다. 그는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섰을 때, 리빙스턴에게 미쳤다고 말한 그의 친구였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로 그의 친구는 그 후 영국에 남아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의 구령운동에 결실이 많아 영의 부자가 되고 모든 영국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높이 널리 알려지고, 또 그의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부자로 평안하게 살면서도 아무런 영향력이나 이름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두 사람 중에서 리빙스턴이 먼저 죽은 시체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오던 그날에, 영국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행렬 앞으로 운집하는 장면을 보고 그 친구는 크게 슬퍼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그 울음의 내용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아! 나는 소망 없는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자책감과 좌절감과 허탈감 때문이었습니다. 자신과 세상의 안일만을 위해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낭비적이며 내용 없는 삶이었던가? 무의미의 삶이었던 가를 자책하는 울음이었던 것입니다. 셋째 전도는 값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18) 여기 \\\"값없이 전하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음은 값없이 받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베풀어야 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복음의 원리를 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했습니다. 여기 하신 말씀은 모순이 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우리가 마셔야 할 영원한 생수를 ‘사서 마셔라’고 합니다. 그런데 ‘돈 없이 값없이 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수를 얻기 위해서 지불할 돈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서 먹을 수 있는가? 우리의 부족함을 아시고 주님이 대신해서 갈보리에서 자신의 몸을 팔아서 단번에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 땅 위에 목마른 인생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그 갈증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 땅 위에는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생수가 없습니다. 여리고의 삭개오는 돈이 자신과 직장에 평강을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영접한 순간에 참 평안을 얻었습니다(눅 19:9). 바리새인중에 한 사람인 니고데모는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서 밤중에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요 3:5). 수가성의 한 여인은 다섯 남편을 갈아 치우는 팔자가 거센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옛 과거를 청산하고 주님을 증거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요 4:28-29). 우리도 전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교회의 1998년 전도 1등상 수상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교회학교 교사, 속장을 맡아 수고하는 분인데 1년 52주 동안에 사람들을 인도하여 매주일 한 명씩 교회에 등록시키게 해달라고 서원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도전략을 세웠습니다. 첫째, 어린이는 왕이다. 집안의 우상(?)인 어린이를 공략하자. 둘째, 이웃과 화목하자. 내가 먼저 인사하고 좋은 것을 나누자. 셋째, 물건값을 깎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베풀자. 그리고 몇 가지 전략과 함께 마지막 일곱 번째 주일에는 등록을 시키자.’라는 전략을 세우고 기도하며 실천하였습니다. 그 결과 1998년을 마감하면서 어린이 132명, 장년 70명이라고 하는 전도의 열매를 맺어 ’98년도 전도의 왕이 되었습니다. 지금 그의 전도를 받고 많은 사람이 교회학교 교사와 각 기관에서 임원들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하며 전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전도는 섬기는 종의 자세로 해야 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19-23) 본문에서 \\\"얻고자 함이라\\\"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영혼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값비싼 대가라도 치러야 합니다. 성질과 감정을 죽여야 합니다. 위신과 체면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종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종과 같이 섬기는 자세로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삶입니다. 이것이‘제자도-弟子道’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복음전파의 최후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바울은 무엇까지 포기했습니까?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빌 3:7-9) 그는 자신을 유익하게 하던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 뿐 아니라 배설물 같이 버렸습니다. 다시 말해 미련 없이 버렸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도 고상한 지식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포기해야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를 신뢰할만한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 가정도 가문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도 버리고 결혼도 포기했습니다. 지위와 학문도 포기했습니다. 가말리엘에서 배운 율법과 바리새 사상도 다 버렸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만 바라보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독일에 한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독일 바바리아라는 성에 루드빅(Ludwig)이라는 공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아주 포악한 공작이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멸시하고 자녀들을 학대하고 부하들을 괴롭히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산에 사냥을 갔다가 우연히 숲 속에 있는 한 작은 예배당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는 제단 앞에서 오랜만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배당 벽에 무슨 글씨가 보였습니다. 아주 순식간에 보였다가 사라졌기에 앞에 부분만 기억이났습니다. \\\'In three....\\\' 삼일인지, 세 달인지... 하여튼 \\\'In three\\\'로 시작하는 문장을 보았습니다. 그 동안 죄를 많이 지었던 공작은 자기 나름대로 \\\'삼일 만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라는 문장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3일 동안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부하들에게 전과는 다르게 아주 잘해줍니다. 하나님 심판대에서 그래도 할 말은 있어야하기 때문입니다. 3일째 밤에 그는 높은 탑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제 곧 죽어서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자신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루드빅 공작은 다시 생각합니다. \\\"아아, 그러면 그것이 삼일이 아니라 석 달이었구나. 석 달 만에 내가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는구나. \\\" 그래서 그 남은 석 달 동안을 열심히 삽니다. 가족을 위해서, 부하들을 위해서 삽니다. 그 동안 상처 받았던 가족과 부하들이 점점 내적 치유를 맛봅니다. 이제 석 달이 되는 마지막 밤에 또다시 탑 위에 올라갔습니다. 잠시 후 자신은 죽어서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또 죽지 않았습니다. 석 달 동안에 백성들은 공작이 회개한 것이 너무 기뻐서 늘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습니다. 루드빅 공작은 이제는 분명히 3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다시 3년 동안 열심히 착하게 살았습니다. 3년 후 또다시 탑 위에 올라갔습니다. 갑자기 나팔소리가 요란하게 어디선가 들려옵니다. 독일 왕실에서 사절단들이 내려온 것입니다. 루드빅 공작을 독일의 황제로 모시기 위해서 내려온 것입니다. 3일, 3개월, 3년을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착하게 살았던 공작은 독일 전 시민에게 그의 소문이 퍼져서 드디어 3년 만에 독일의 황제가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째 전도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전도는 사명감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셋째 전도는 값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넷째 전도는 섬기는 종의 자세로 해야 합니다. 1.1.1 전도 운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오늘의 설교를 듣고 대답하기 1. 1.1.1 전도 운동의 뜻이 무엇입니까? 2. 구원 받은 자가 꼭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3. 전도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4.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값으로 계산 할 수 있습니까? 5. 전도하는 사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1)/ 눅8:4-8, 마13:1-9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1) 눅8:4-8, 마13:1-9 오늘「백 배의 결실은 주님 뜻이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게 됩니다. 이 설교는 오늘도 들으시고 또 이어서 이어지는 다음 편 설교도 꼭 들으셔야 전체적인 정리가 될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다음 설교는 주일 밤에 드리도록 하겠고 오늘 그 첫 시간으로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그 여러 이적들 뭐 병 고치시는 일 또 떡 다섯 개로써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 여러 가지 이런 이적들 또 포도주를 물로써 만들어내신 일 이런 큰 이적들의 소문이 온 지방에 퍼져감으로써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 있는 곳으로 몰려들어서 이 본문의 현장에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큰 무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말씀을 하시게 되는데 이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13장 1절 이하에도 나타나 있습니다만 두 군데를 다 합쳐서 생각해보면 이 현장이 갈릴리 바닷가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그리고 수많은 각 처에서 온 무리들은 이제 그 바닷가 그 야산 언덕에 쭉 앉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비유로서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비유의 내용을 오늘 본문에 소개된 것을 보면 씨뿌리는 내용인데 이 경우 저 경우 결실이 어떻게 된다 안 된다 이런 내용으로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조그마한 마이크만 있어도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그저 조용 조용히 얘기해도 다 빨려 들어가서 여러분의 귓가에는 확성되어 가지고서 그 스피커를 통해서 아주 적당하게 들려집니다. 얼마나 좋은 시대를 지금 살고 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스피커 무슨 전기시설 이런 것이 없을 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확성기가 없는 그때에 큰 무리가 모였으니, 이 무리가 수십명이 아닙니다. 수백명이 아닙니다. 수천명입니다 대체로. 그렇게 모였으니까 굉장히 넓은 지역으로 퍼져서 앉았고 또 실내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같은 실내도 이 마이크가 없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이 앞에만 들리지 뒤에는 들릴 수가 없어요. 이런 형편에서 예수님께서 배에 앉으시고 수많은 무리들은 이제 언덕에 이렇게 걸터앉았는데 그때에 큰 무리가 모였으니 예수님께서 마이크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말씀했겠는가? 조용 조용히 말씀했겠는가? 외쳐서 참 목이 쉬도록 이렇게 말씀했겠는가?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거 실내도 아니고 바깥이고 그리고 또 큰 무리가 모였고 확성기도 없으니 예수님이 크게 외쳐서, 어딘가에 보면 또 본문에 보면 외쳤다는 말이 나오니까요. 외쳤단 말이 나오니까 \\\'외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테니 그때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목이 쉬셨겠지…\\\' 이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이날 설교하실 때에는 말씀하실 때에는 외쳐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용 조용히 얘기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조용 조용히 얘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 조용 조용한 얘기를 핵심적인 내용을 직설법으로 설교하지도 않고 아주 비유로써 엇 삐딱한 비유로써 설교를 했기 때문에 다시 듣지 않고서는 씨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돌작밭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가시덤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도무지 다시 설명듣기 전에는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짐작해서 알 수 없는 그런 아주 말씀으로 말씀한 것을 보게 되는데, 제가 그 큰 무리 앞에 예수님이 마이크도 없는데 확성기도 없는데 외치지 않고 조용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고 하니까 여러분께서 아주 의아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본문이 그렇기 때문에 본문을 한번 더 살피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러니까 4절부터 나타난 전체의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외치시려면 이 중요한 핵심적인 말씀 시작할 때부터 외쳐야지 중요한 정말 깨달아야 될 말씀은 혼자서 중얼중얼 하듯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중얼중얼 그 앞에 앉아 있는 몇 사람들만 좀 들을 정도지 전체는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얘기하고 나서 그래서 이제 뭐 설교를 좀 하려는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가 싶은데 큰 소리 친 부분은 어느 것이냐 하면 마칠 때 \\\"들을 귀 있는 사람을 들을지어다\\\" 그래 버린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고 소리를 치니까 저 뒤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무슨 말하려는가 보다 했더니 \\\"마쳤습니다.\\\" 그것 참 배에서 내려와 가지고 숙소로 들어가신다 그겁니다. 그것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시 듣기 전에는 그 비유가 그래도 비슷해야 더 알아듣기 쉬워야 될텐데 아주 이해할 수 없는 비유를 얘기 한데다가 그것도 무리로 모였으면 막 외쳐서 그 내용을 다 알아듣도록 해야 될텐데 정작 중요한 내용 얘기할 때에는 뭐 혼자 중얼중얼 하듯이 앞에 몇 사람만 겨우 들을 정도로 얘기를 하더니 발딱 고개를 드시고서 이제 시작하는가 했더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래서 \\\"아 지금부터 뭐 하는가보다. 이제 들으라고 하는 것 보니 뭐 하는가보다.\\\" 했더니 누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사회자 제자가 하나 나와 가지고서 \\\"끝났습니다.\\\" 이게 이 본문을 보면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무리가 들을 수 있었던 말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외친 소리는 그것 뿐입니다. 그 앞에 정말 듣도록 해 주어야 될 말씀은 들리지 않게 했으니 혹 예수님께서 이 무리들로 하여금 들리지 않게 해 가지고서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듭니다. 아, 요즘 누가 설교하면서 누가 가르치면서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서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이런식으로 해서 전도가 안되지요. 예수님이니까 이런식으로도 하고 살았지만 오늘날 목사가 이런식으로 하다가는 당장 쫓겨나지요. 이게 될 말이 아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이 방법을 보면 \\\'도무지 못 들으라고 하신 것 아닌가? 깨달으면 무슨 탈이라도 난단 말인가? 그것 이상하네…\\\' 이렇게 우리가 의심이 갈 정도인데 아니나 다를까 과연 그랬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많은 무리가 모였으되 그 많은 무리가 다 알아 들을까봐 아주 걱정했어요. 이 많은 무리가 설교를 못 듣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하는 내용이 그 뒤에 나옵니다. 9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그러니까 제자들은 주로 앞에 앉았겠지요. 우리 교회는 목사님과 장로님들 이렇게 중직 되시는 분들이 예배에 따라서 앞좌석에 앉아서 또 영적 권위와 질서 그리고 강단에 힘을 실어주는 예배도 있지만 또 가끔은 맨 뒤에 혹은 중간 중간에 이렇게 앉아 주십니다. 오늘 수요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울타리가 되어 주시기도 합니다만 아마 이때 제자들의 경우는 예수님 근처에 항상 따라 다니는 제자들 열두 명 쫙 둘러앉고 그 다음에 무리는 아마 오든지 말든지 하도 인산인해로 몰려오니까 오는 대로 붙어 앉았던 것 같은데 제자들이 제일 가까이에서는 그래도 열심히 들으니까 좀 듣기는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예수님 따라다니는 제자일지라도 예수님이 오늘 비유를 든 이 내용 가지고는 도무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겁니다. 원래 비유면 더 잘 알아들으라고 예를 들어주는데 이건 더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9절에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제자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참 또 이상한 일 다 보지요. \\\"이미 허락된 너희에게는 아까 비유만 가지고서는 너희가 깨닫지 못했으니까 내가 다시 그 비유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 씨는 무엇이며 돌작밭은 무엇이며 길가는 무엇이며 다 이게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제자들이 다시 듣고 보니까 \\\"이것을 어느 천재인들 이 비유만 듣고 그게 그 말인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우리는 하도 들으니까 \\\"아 씨는 말씀이지\\\" 이러지만 씨가 말씀이라는 무슨 등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처음 하시는 말씀인데,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허락이 되었기 때문에 아까 비유만 가지고 안되니까 내가 또 다시 일러주지만 다른 사람들 너희 말고 저 다른 사람들은 허락되지 아니하였으니 허락되지 아니한 저들이 혹 듣고 깨달을까 내가 두려워서 엇 삐딱한 비유로 했을 뿐만 아니라 뒤에 안 들리게 하느라고 내가 조용 조용히 하고 그래서 뭐 끝말 한마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말은 듣고 나면 이 말만 듣고 나면 딴 소리를 못 들으면 골만 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고서 그만 책 덮어 가지고 나가버린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참 왜인가 했더니 의도적으로 그리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날 모였던 이 많은 무리가 얼마나 뭔가 주님의 감정을 상하게 했길래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다 생명이 있는데 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 사람들이 몰려와도 멀리서부터 몰려왔는데 이 사람들이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마지막에 한마디 겨우 들었다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아마 주님께서 그렇게 못해서 못했을 겁니다만 마음속으로는 \\\'들을 귀 있는 놈은 들으라\\\' 이랬는지 모르겠어요. 하여간에 마음은 그런 심정에서 말씀하신 것같이 되어 버렸다 그겁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이상한 일인데 그러나 주님께서 그날에 모였던 그 많은 무리가 미워서 특별히 그 사람들만 미워서, 아니면 주님께서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어디서 잠깐 들으니까 스트레스라는 말을 요즘 많이 쓰는데 어른들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라 가지고 \\\"스테인레스 받았느냐\\\"고 한다고 하더니 하여간에 스테인레스인지 되든지 스트레스가 되든지 주님께서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그 날따라 열 받아 가지고 \\\"이 좋은 복음을 내가 왜 전해?\\\" 기분 나쁘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그것만 소리치고 말으셨는가 했더니 그 주님이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하셔서 그날 유별나게 그리 하셨던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뜻도 그러했던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사야 6장에 보면 이런 일이 있어야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사야 6장 9절부터 10절까지 보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이전에 구약 때에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이미 예언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지시한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벌써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서 예수님도 그대로 수행하고 계신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이 다 복음을 받아서 백 배의 결실을 맺어야만 된다. 또 교회 한번 인도된 사람은 전부 다 교회 문으로 들어왔으면 나중에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고 다 남아야 된다.\\\" 이렇게 강조하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뭐 많이 인도되어 왔지만 남지 않고 자꾸 떨어져 나가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 오늘날 역사가 없는가? 하나님 이제 주무시는가?\\\" 이런식으로 얘기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구약 때부터 예수님 당시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로 흐르고 있는데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여서 천국 시민이 되는 이것은 아무나 헤프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예수 믿게 하려고 가서 일도 해주고 거들어주고, 이삿짐도 옮겨주고, 아이도 봐주고 온갖 노력을 다해가면서 사랑을 베풀어서 오게 하니까 그렇게 해서 오는 사람들은 나중에 안 오다가 안 오다가 한번 올 때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한번 가줄게!\\\" 이런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뭐 자기가 안 와주면 교회가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 복음은 부끄러운 복음이 아닙니다.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이 이 복음 인하여 천국까지 가게 된다는 것은 이것은 보통 복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복을 얻는 겁니다. 이 귀한 것을 그저 아무에게나 헤프게 그렇게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정하시고 허락한 자에게는 또 다시 또 다시 깨닫게 해서 알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저가 혹 깨닫고 고침을 받을까 두렵다 그말입니다. 회개하고 나와서 달라 붙을까 두렵다 그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구약 때부터 주님의 현장에 이를 때까지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복음은 모두에게 전하지만 모두에게 전한다고 모두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겁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성령이 역사해야 되는 것이고 들려지는 것도 성령의 인도함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우리 탓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천국 백성 되도록 이 교회 성도 되도록 허락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그 몇 명의 제자들만이 깨달을 수 있는 이런 깨달음을 함께 깨닫게 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깨닫게 되면 작품이 나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너희 귀는 복이 있도다 그랬어요. 그래서 많이 모였다고 해서 먼데로부터 많이 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겁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것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허락함이 없었다면 미리 예정하신 바가 없었다며 부르심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여기에 우리 영혼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이 신분 말이지요, 이것은 천국과 연결된 것인데 이 세상에 하나님 말고도 악한 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성경 외에 한번 말씀하시고는 달리 말씀 별로 안 하시지만 악한 신들은 온갖 점을 다치고 온갖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예수 믿어도 천당 못 간다.\\\" 하는 점은 어느 신도 못합니다. 온갖 거짓말 다해도 그것 하나는 부정 못합니다. 그것 들어봤습니까? 예수 믿어 가지고 천당 못 간다는 점쟁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엉터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엄청난 이 복은 그저 아무에게나 우리에게나 구걸하듯이 \\\"좀 받아주세요. 좀 예수 이름 가져주세요. 천국 좀 제발 좀 들어와 주세요.\\\" 천국의 위력은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그런데 제자들에게 밝혀 주신 바 이 비유의 설명을 들어보면 11절 이하에서 볼수 있는데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1-15) 이렇게 하면서 이제 앞서 그 무리들에게 들리지도 않도록 말씀하셨던, 그러나 제자들은 앞에 앉았기 때문에 겨우 겨우 주어 들었던 그 비유에 대하여 주님께서 다시 설명을 해 주신 것을 보게 되면 \\\"길가에 떨어진 씨, 그 말씀이 마음에 박혔지만 누가 빼앗아 가버린다. 새들이 와서 먹듯이 쪼아 가 버린다.\\\" 이것은 길 가이기 때문에 길가는 사람들이 항상 지나쳐 갑니다. 내가 꼭 만날 사람만 길가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기로 작정된 사람은 길가에서 만나지 않습니다. 어느 장소에서 만나지요. 그래서 이 길을 지나다가 보면 사람들이 항상 스쳐갑니다. 아이도 가기도 하고 짐승도 가기도 하고, 이렇게 생긴 사람 저렇게 생긴 사람 삭삭 스쳐갑니다. 이 스쳐가는 이 존재가 누구라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는가하면 길가에 새들도 오고 짐승도 오고 막 스쳐갑니다. 이거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길가에 나가면 스쳐갑니다. 맞지요? 사람이 많이 스쳐갑니다. 이 스쳐가는 사람이나 짐승을 무엇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했느냐 하면 마귀다 그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길가는 사람처럼 천국길 가고 있는 이길 동안에도 마귀가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스치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 마귀가 항상 우리에게 스칩니다. 우리가 오라고 해서 만나자고 해서 오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이 모양으로 스치고 저 모양으로 스칩니다. 이 스쳐가면서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우리가 주일날 말씀을 받습니다. 또 심방을 통해서 말씀을 받습니다. 그 말씀을 받을 때 \\\"할렐루야. 기쁘다. 이 말씀 되어지기를 바라나이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소서. 말씀이 육신이 되소서.\\\"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 근처에로 마귀가 수시로 지나칩니다. 이 지나치는 길에 스치듯 계속 스치는 이 마귀는 무엇을 목적으로 스치느냐? 우리에게 병을 주고 우리에게 발을 걸어가지고 넘어뜨리고, 그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생명의 말씀을 빼어내겠다 그겁니다. 생명의 말씀만 저 속에서 결실하지 못하면 천국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옥으로 간다 그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었으나 마귀가 밤낮을 스치면서 기회만 있으면 가져가 버린다 그겁니다. 빼내어버린다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설교를 주의 말씀을 이렇게 잘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마귀가 스치고 스치면서 의심을 줄 때도 있고 화를 내게 할 수도 있고 남으로부터 억울한 형편도 당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하고, 차 타고 가다가도 여러 형편 생기게 되고, 여기에 결실하는 자는 어떤 자라고 그랬어요? 착한 마음, 좋은 마음을 가지고 평안한 성령의 마음이 유지가 되어야 될텐데 이 세상 살다보면 그 유지가 잘 안됩니다. 이것은 전부 스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지혜있는 분들은 영적인 분들은 그런 일이 올 때마다 \\\"사단아, 물러가라. 내가 여기에 말려들지 않아야지. 사단에게 속지 않아야지.\\\" 그렇게 하면서 물러가라 하면서 기쁨을 곧 회복해서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 그리 하기가 전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만 스칠 때 기분이 나쁘면 저놈이 하도 험한 짓을 하면 그만 속에서 옛날에 하던 소리가 나온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크락션을 팍 눌리고 저놈이 나를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나도 차를 그 앞에 가서 확 집어넣어 가지고 그렇게 막 이렇게 하고 옛날에 쓰던 욕설 한번 해 뱉어버리면 뭐가 나와 버리느냐? 욕설과 함께 뭐가 나가버리느냐? 들어왔던 말씀이 싹 나가 버립니다. 왜? 그렇게 한바탕하고 집에 가서 무슨 설교 들었느냐고 물으면 몰라요. 한 주일도 못 가니 무슨 뿌리가 생겨 가지고 열매 맺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경우는 결실치 못하는 자요. 그것이 이제 마귀가 스치면서 결실치 못하는 자요. \\\"바위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위 위에 떨어졌기 때문에 결실치 못하는 이유는 뿌리가 없어서 바위에 습기가 없으므로 미리 뿌리 내려놓지 않았으면 결실치 못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아브라함의 자손들 저 유대인들은 뿌리로 치면 수천 년 믿음의 뿌리를 가졌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뿌리 해 봐야 제일 처음 기독교 들어온게 이제 100년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여러분 당대에 우리 교회 처음으로 나와서 구원받은 분도 많고, 부모님들 믿어보았자 길어서 삼대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뿌리가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믿은지 오래된 사람, 믿음의 집안으로서 계속 되어진 사람들을 보면 또 신기해요. 처음에 말씀을 받고 이럴 때 얼마 되지 아니한 사람들 은혜를 받아가지고 막 \\\"할렐루야! 아멘!\\\" 혼자 이 세상을 다 잡아먹을 것처럼 막 이러는데 오래 믿음의 집안에서 내려오고 장로의 집안 권사의 집안에서 쭉 내려오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보면 은혜를 받는지 안 받는지, 그래서 항상 쳐다보면 목사의 입장에서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구, 장로님들 저 집의 자녀들은 믿은지 오래 된다하지만 통 은혜도 못 받아.\\\" 이렇게 싶을 정도로 별로 감흥이 없어요. 그런데 시험이 들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이 왔거나, 뭔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기거나 했을 때에도 뿌리가 깊은 집은 그런 집안에서 오래 믿은 사람은 그냥 교회 지키고 버티고 있어요. 그러나 뿌리가 없이 갓 믿어 가지고 금방 좋다 온 세상을 다 잡아먹을 듯 은혜 충만하던 사람은 그만 한번 누가 딱 찌르면 마음의 충격을 한번 주거나 뭔가 오해가 생겼거나 기분 나쁜 일이 하나 생겼으면 그만 배반하는 자요. 그러면 그 이유는 어디 있느냐?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겁니다. 이건 나무랄 것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배반하고 쓰러지고 \\\"나 교회 안갑니다. 구역장 당신이나 잘 믿으시오. 나 안 갈래요.\\\" 이렇게 하면서 열을 올려도 그것으로써 끝내지 말아야 되요. 믿은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좋은 말씀 받고 그렇게 기쁘지만 믿은 기간이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저렇게 쓰러지는구나 생각하고 다시 일으켜주고 다시 일으켜주고, 북을 돋아주고 습기가 있도록 해 주고 그렇게 해서 뿌리를 깊이 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 믿은 자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 뿌리가 없기 때문에 넘어지는 자요. 그 다음에 가시덤불에 뿌려졌다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 그리고 일락에 기운이 막힌 탓으로 쑥 올라오지만 빛보지 못한, 물 제대로 먹지 못한 콩나물처럼 삐적 말라가지고 홀라당 엎어질 정도로 기운 없이 올라오는 것, 그러니까 햇빛 못 보면 풀이 자라나다가 쏙 올라오다가 그렇게 되지요. 이제 그와같이 되어버린다 그것이지요. 그러니까 뭐 이런 염려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 중에서 이 세상에 염려 없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염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재리 \\\"지금 집을 사면 돈벌까? 주식 투자를 하면 돈벌까? 은행 이자는 어찌 되는가? IMF지나면 어찌 되는가? 어디가면 나은가? 보험금을 어쩌면 타는가?\\\" 하여간에 집집마다. 제가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에 신문 한부씩 주잖아요. 앞에다가 쭉 그 신문을 제공하는 판에 놓아놓습니다. 무슨 신문 무슨 신문 쭉 놓았는데 가면서 자기 원하는 대로 빼어갑니다. 저는 보통 일간지 이런 신문 가져옵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을 가져오는데 사방을 둘러보면 전부 무슨 신문을 주로 가져가느냐? 경제지를 가져갑니다. 경제. 그리고 여성들은 주로 뭘 가져가느냐? 스포츠, 재미난 것 연예계 소식 있는 이런 것을 가져가는데 대부분의 남성들은 전부 경제 신문 가져갑니다. 확 넘기는 것을 보니까 주식, 환율 전부 그런 것들을 봅니다. 우리 성도님들 얼마나 하시는지 모르지만 하여간에 주식이 깡통되느냐 올라가느냐 그것에 아주 총 집중인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그것이 돈벌이가 되겠느냐 안되겠는가, 내가 올라가겠는가 내려가겠는가, 무슨 뭐 보너스가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 이 생각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그리고 일락에, 뭡니까? 즐기고 노는 것, \\\"아 이번 주말이 어디를 갈까?\\\" 그리고 요즘 \\\"추석 연휴가 계속 오는데 이 연휴 지금 어디를 갈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이다.\\\" 지금 계획 세운다고 바쁠 겁니다. 이런 데에 전부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받아서 씨가 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염려와 재리와 또는 노는 재미 이런 것 연구하다가 보면 말씀이 살아나기는 살아났는데 영 죽지는 않았는데 비실비실 노랗게 볕 보지 못한 그 풀만 쑥 길어나는 것 있잖아요. 습한 어두운 데에서 그렇게 자랐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실 이 세상 어떤 사람의 경우라도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무슨 뿌리가 있으며 길가에 스치는 사람처럼 마귀가 아무 비자도 받지 않고 초인종도 울리지 않고 항상 스치는 놈이 마귀인데 저녁에 음식 잘 먹고 즐겁게 다 각방으로 자녀들 들어가고 부부가 한방에 탁 들어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는데도 거기까지는 안 들어와야 할텐데 마귀가 거기까지 들어와 가지고서 한참 좋아 가지고서 침대에 올라왔는데 그만 무슨 얘기를 하다가 팍 심장 상하는 소리를 하면 그만 밀고 차버려 가지고 배게 들고서 쇼파에 가서 잠자고, 하여간에 전부 이런 짓거리를 하는데 이런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런 경우 안 당하는 경우 정말 좋은 말씀 위에 한번 자라나려면 확 그냥 무슨 전기 바짝 하듯이 탁 받자마자 확 올라와서 꽃피고 그런 것 없습니다. 이루어지려면 몇 달이 걸리고 하는데 이것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구약 때나 지금이나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당시에 불과 몇 명 되지 아니하는 제자들, \\\"너희는 허락되었기 때문에 이 비유에 대해서 다시 들으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돌작밭이란 이런 것이요, 가시덤불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요.\\\" 전부 설명해 주시면서 그러니까 제자들이 \\\"아 그렇습니까? 그 말씀입니까?\\\" 듣고 깨달아 버리니까 깨달아버린 것은 안나간다 그것입니다. 그냥 듣고 귀에만 있을 때에는 또 다른 소리를 하면 아닌가 하고 거기에 기울지만 확실한 진리구나 하는 것을 영적 체질로 깨달아 버리면 아니랄 수가 없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랄 수가 없게 되는 것, 그렇습니다. 자기 체질이 되면 이게 체험적 신앙입니다. 깨달아 확실히 믿는데 누가 아니라고 한다고 아닙니까? 아닐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남자이고, 남자분 많이 계시고 여자분 계신데 여러분이 여자인줄을 여자들이 잘 안다 그겁니다. 그런데 남이 \\\"아, 당신 남자네?\\\" \\\"어, 내가 남자인가?\\\" 그런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았으면 자기가 어릴 때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다가 어느 순간에 남자인 것을 깨달았다 그겁니다. 깨달아 알고 나면 내가 남성이다 라는 것을 내가 체질적으로 깨닫게 있는데 \\\"하, 당신은 여성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아 내가 여성입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여성인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뭡니까? 이 깨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깨달아 버렸는데 어떻게 바꿉니까? 맞는 것을.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 앞으로 인터넷 주소를 갈렙3927(caleb3927)로 홈페이지 주소로 하려고 신청을 해 놓았는데 3927 구약 39권 신약 27권 그래서 또 구구단으로도 3×9=27 그래서 3927 그러니까 아주 특수한 성경 66권을 말하는 3927을 홈페이지 주소로서 앞으로 띄우게 될텐데 우리가 학교에 가면 배우지 않습니까? 3×8=24, 3×9=27 이제 그것 외우기 전까지는 3×9=28이라 하면 28인줄 알아요 깨닫기 전에는 그러나 확실히 알고 난 다음에는 3×9=27인데 3×9=29라고 누가 말한다고 믿으라 한다고 믿어집니까? 안됩니다. 이건 도무지 안되지요. 그러니까 듣고 깨닫는다는 것, 이 말씀이 이것이로구나 라고 깨닫는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그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당시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 몇 명만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오늘 제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깨닫고 우리 마음이 기쁘게 되었으니 이게 보통 사건이 아니다 그겁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던들 이런 큰복이 있었겠느냐 그겁니다. 우린들 지나치는 마귀가 없습니까? 우린들 재리와 염려와 근심으로 그 기운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뿌리가 어디 깊습니까? 불과 믿은지 몇 년 되지 아니하고 한국에서 믿었다 해봤자 최고 오래 가봤자 백년인데 그것은 뿌리라고도 할 수도 없어요. 이런 우린데 오늘 예수님 옆에서 제자들이 누리던 그 기쁨을 누리고 \\\"너희는 복이 있도다. 무릇 있는 너희에게는 더 있게될지라.\\\" 해서 날마다 날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고 하더니 말씀도 듣고 보니 더 깨달아지고 더 깨달아진다 그겁니다. 이 엄청난 깨달음의 축복이 우리에게 와 있으니 이것이 나의 나된 탓이냐? 하나님으로부터 허락 받은 탓이냐?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많은 사람들이 저 먼 곳으로부터 몰려왔다고 다 듣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자만이 이것을 듣고 깨닫게 해 주시려고 한 것을 볼 때 오늘 그 깨달음을 받았던 불과 그때 당시의 많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 몇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이처럼 큰복을 받았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탓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예정하셨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5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랬어요. 아론이 아론 된 것 대단하지 않습니까? 큰 나라의 종으로 가 가지고서 큰 고생을 하고 있는 중에 모세를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에게로 보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아론을 먼저 불렀습니다. \\\"내 종 모세가 올텐데 그는 입이 둔하니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너의 말 잘하는 말로써 모세를 도우라\\\"고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아론이 모세 올 때에 무슨 통역사 원서를 내었습니까?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 말 잘하니까 우리 모세 말 듣고는 도대체 가나안인지 카나다인지 못 알아들을 것 같으니까 저 모세 말 좀 대변할 수 있는 아론을 우리 대변자로 세웁니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아론은 아론 될 수 있었고 그의 후손들은 영원한 제사장족이 되었다 그겁니다. 하나님이 한번 뽑아서 이 존귀한 직분을 준 것이지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 누가 제멋대로 되려고 스스로 취할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이 엄청난 신분,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그 수많은 무리들 멀리서부터 왔으나 마지막 소리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소리만 듣고 파해버렸는데 이 제자들처럼 이 말씀을 그대로 제자의 깨달음과 같은 수준으로 어쩌면 더 깊은 수준으로 오늘 우리가 듣게 되고 깨닫게 된 것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된 줄로 믿으시고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오늘 따라 왜 이처럼 이 많은 사람들, 바리새인도 물론 섞여 있었습니다만 이 사람들에게 비유로서 말씀드리느냐 하면 그러니까 무슨 그냥 말씀이라 하면 될 것을 씨라고 그러고, 마귀라고 하면 될텐데 길가에 뭐 새들이 어쩌고저쩌고, 이런 말씀들을 빙빙 돌려 가지고 말씀을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예수님이 누가복음 8장 이전에 얼마 전에 직설법으로 바로 말 하다가 예수님이 하마터면 맞아 죽으실 뻔했어요. 큰 사고 날 뻔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겨우 살아났기 때문에 그 뒤에부터는 그냥 화법을 바꾸셨는데 참고적으로 한번 그때 일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누가복음 4장 25절로,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나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를 찾으시고 아무에게 복 다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겁니다. 그런 것을 이제 그때 4장에서는 처음 예수님이 이제 이 누가복음 4장이라면 1장 2장 3장 4장 태어나시고 이제 세례받고 성령 받으시고 이제 4장에서 사역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바로 직설로 했어요. 25절로 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눅4:25-30) 이랬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냐 하면 회당에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웃기지 마소. 여러분들이 회당에 왔다고 바깥에서 바리새인이요 뭐 대단하다고 해서 천국 다 가는 줄 아시오? 천만에. 엘리야 시대에 과부가 얼마나 많았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렙다 한 사람 과부에게만 보냈으며 또 엘리사 시대에 문둥이가 얼마나 많았소? 그러나 나아만 장군 하나만 고쳐준 것이요. 너희가 뭐 많이 있다고 하나님이 모두 통채로 다 불러 가는 줄 아는가? 아니라.\\\" 하면서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해대니까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아멘 감사하겠지만 \\\'나머지는 다 소용없다. 쭉정이 취급한다\\\' 이런식으로 주님이 설교를 그냥 경험이 작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바로 하니까 그 따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그만 열 받아 가지고서 \\\"끌어내라. 끌어내라. 죽여라.\\\" 해 가지고서 예수님을 끌고 어디로 갔느냐 하면 건설하는데 산 낭떠러지 건설하는 것을 보니까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골프장을 만들었는지 그 당시 골프장은 없었겠습니다만 하여간에 댐을 막았는지 아주 절벽으로 끌고 갔어요. 예수님이 끌려갔어요 이렇게. 끌려가서 거기서 탁 밀치려고 하는데 그 마지막 탁 밀치려는 순간에 주님께서 쓱 지나서 빠져 나왔는데 아마 주님의 오금이 저렸을 겁니다. 그래서 천사의 도우심으로 쓱 지나서 왔는데 바로 죽을 뻔했어요. 그러니까 그 뒤에는 지금 말씀하시기를 뱅뱅 돌려서 비유로 말씀하니까 그 뒤에부터는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저 말은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가?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인가?\\\" 이렇게 했어요. 예수님의 이 설교 방법도 저를 비롯한 우리 목사님들도 잘 알아 두셔야 될 것은 이 장례식 때에나 결혼식 때에 가 가지고서 특히 장례식 때에 가서 순진하게 지금 이 관속에 들어가 있는 이 사람은 믿었기 때문에 천당이지만 이 가죽들 서서 울고 하지만 안 믿는 것은 전부 지옥이라고 또 관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믿고 죽었는지 안 믿고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면, 그 가족이 전부 믿는 사람이라서 \\\"가족들이 믿어서 내가 할 수 없이 기독교장으로 해주기는 해 주지만 들어 있는 이 사람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뭐 안 받았으면 소용없는 겁니다. 이건 뭐 지옥이요.\\\" 앞에 그 조상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건 지옥\\\" 이렇게 바로 암만 맞는 말이라도 그런 형편에 가서 바로 직설적으로 그랬다가는 맞아 죽는 수가 있어요. 우리 목사님들 주의 하셔야 합니다. 결혼식 같은데 가 가지고서도 거기 가서 둘이 짝 붙여주면 되는 것인데 거기 가서 무슨 은혜를 끼치려고 \\\'믿으면 천당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요\\\' 그런식으로 해보면, 결혼식에 가보면 참 믿는 집안끼리 양가가 다 잘 믿기는 어려워요. 일부는 믿고 안 믿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데 가 가지고서는 예수님의 4장처럼 하지 말고 8장처럼 해야 살아남는 것이지요. 어찌되었건 이 내용이나 저 내용이나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는 헤프게 내어 놓은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나라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 하고자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되는 것이니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만 그 중에 천에 하나 만의 하나 골라내듯 하나님이 찾아 부르시니 모두가 다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세상에 있는 염려도 마귀도 모두 우리말씀을 믿는 자라도 쓰러뜨리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어려운 때에 이 문화 생활하는 이때에 이 믿음을 지키고 삼일 예배 이 수요일까지도 이 힘든데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주의 말씀을 들으면 그때 제자들처럼 기쁨으로 깨달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여러분의 이 축복된 신분은 우리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천의 하나 만의 하나 고르시고 부르시고 택하셨음을 믿으시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1)/ 눅8:4-8, 마13:1-9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1) 눅8:4-8, 마13:1-9 오늘「백 배의 결실은 주님 뜻이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게 됩니다. 이 설교는 오늘도 들으시고 또 이어서 이어지는 다음 편 설교도 꼭 들으셔야 전체적인 정리가 될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다음 설교는 주일 밤에 드리도록 하겠고 오늘 그 첫 시간으로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그 여러 이적들 뭐 병 고치시는 일 또 떡 다섯 개로써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 여러 가지 이런 이적들 또 포도주를 물로써 만들어내신 일 이런 큰 이적들의 소문이 온 지방에 퍼져감으로써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 있는 곳으로 몰려들어서 이 본문의 현장에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큰 무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말씀을 하시게 되는데 이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13장 1절 이하에도 나타나 있습니다만 두 군데를 다 합쳐서 생각해보면 이 현장이 갈릴리 바닷가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그리고 수많은 각 처에서 온 무리들은 이제 그 바닷가 그 야산 언덕에 쭉 앉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비유로서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비유의 내용을 오늘 본문에 소개된 것을 보면 씨뿌리는 내용인데 이 경우 저 경우 결실이 어떻게 된다 안 된다 이런 내용으로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조그마한 마이크만 있어도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그저 조용 조용히 얘기해도 다 빨려 들어가서 여러분의 귓가에는 확성되어 가지고서 그 스피커를 통해서 아주 적당하게 들려집니다. 얼마나 좋은 시대를 지금 살고 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스피커 무슨 전기시설 이런 것이 없을 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확성기가 없는 그때에 큰 무리가 모였으니, 이 무리가 수십명이 아닙니다. 수백명이 아닙니다. 수천명입니다 대체로. 그렇게 모였으니까 굉장히 넓은 지역으로 퍼져서 앉았고 또 실내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같은 실내도 이 마이크가 없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이 앞에만 들리지 뒤에는 들릴 수가 없어요. 이런 형편에서 예수님께서 배에 앉으시고 수많은 무리들은 이제 언덕에 이렇게 걸터앉았는데 그때에 큰 무리가 모였으니 예수님께서 마이크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말씀했겠는가? 조용 조용히 말씀했겠는가? 외쳐서 참 목이 쉬도록 이렇게 말씀했겠는가?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거 실내도 아니고 바깥이고 그리고 또 큰 무리가 모였고 확성기도 없으니 예수님이 크게 외쳐서, 어딘가에 보면 또 본문에 보면 외쳤다는 말이 나오니까요. 외쳤단 말이 나오니까 \\\\\\\\\\\\\\\'외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테니 그때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목이 쉬셨겠지…\\\\\\\\\\\\\\\' 이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이날 설교하실 때에는 말씀하실 때에는 외쳐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용 조용히 얘기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조용 조용히 얘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 조용 조용한 얘기를 핵심적인 내용을 직설법으로 설교하지도 않고 아주 비유로써 엇 삐딱한 비유로써 설교를 했기 때문에 다시 듣지 않고서는 씨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돌작밭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가시덤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도무지 다시 설명듣기 전에는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짐작해서 알 수 없는 그런 아주 말씀으로 말씀한 것을 보게 되는데, 제가 그 큰 무리 앞에 예수님이 마이크도 없는데 확성기도 없는데 외치지 않고 조용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고 하니까 여러분께서 아주 의아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본문이 그렇기 때문에 본문을 한번 더 살피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러니까 4절부터 나타난 전체의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외치시려면 이 중요한 핵심적인 말씀 시작할 때부터 외쳐야지 중요한 정말 깨달아야 될 말씀은 혼자서 중얼중얼 하듯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중얼중얼 그 앞에 앉아 있는 몇 사람들만 좀 들을 정도지 전체는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얘기하고 나서 그래서 이제 뭐 설교를 좀 하려는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가 싶은데 큰 소리 친 부분은 어느 것이냐 하면 마칠 때 \\\\\\\\\\\\\\\"들을 귀 있는 사람을 들을지어다\\\\\\\\\\\\\\\" 그래 버린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고 소리를 치니까 저 뒤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무슨 말하려는가 보다 했더니 \\\\\\\\\\\\\\\"마쳤습니다.\\\\\\\\\\\\\\\" 그것 참 배에서 내려와 가지고 숙소로 들어가신다 그겁니다. 그것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시 듣기 전에는 그 비유가 그래도 비슷해야 더 알아듣기 쉬워야 될텐데 아주 이해할 수 없는 비유를 얘기 한데다가 그것도 무리로 모였으면 막 외쳐서 그 내용을 다 알아듣도록 해야 될텐데 정작 중요한 내용 얘기할 때에는 뭐 혼자 중얼중얼 하듯이 앞에 몇 사람만 겨우 들을 정도로 얘기를 하더니 발딱 고개를 드시고서 이제 시작하는가 했더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래서 \\\\\\\\\\\\\\\"아 지금부터 뭐 하는가보다. 이제 들으라고 하는 것 보니 뭐 하는가보다.\\\\\\\\\\\\\\\" 했더니 누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사회자 제자가 하나 나와 가지고서 \\\\\\\\\\\\\\\"끝났습니다.\\\\\\\\\\\\\\\" 이게 이 본문을 보면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무리가 들을 수 있었던 말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외친 소리는 그것 뿐입니다. 그 앞에 정말 듣도록 해 주어야 될 말씀은 들리지 않게 했으니 혹 예수님께서 이 무리들로 하여금 들리지 않게 해 가지고서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듭니다. 아, 요즘 누가 설교하면서 누가 가르치면서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서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이런식으로 해서 전도가 안되지요. 예수님이니까 이런식으로도 하고 살았지만 오늘날 목사가 이런식으로 하다가는 당장 쫓겨나지요. 이게 될 말이 아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이 방법을 보면 \\\\\\\\\\\\\\\'도무지 못 들으라고 하신 것 아닌가? 깨달으면 무슨 탈이라도 난단 말인가? 그것 이상하네…\\\\\\\\\\\\\\\' 이렇게 우리가 의심이 갈 정도인데 아니나 다를까 과연 그랬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많은 무리가 모였으되 그 많은 무리가 다 알아 들을까봐 아주 걱정했어요. 이 많은 무리가 설교를 못 듣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하는 내용이 그 뒤에 나옵니다. 9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그러니까 제자들은 주로 앞에 앉았겠지요. 우리 교회는 목사님과 장로님들 이렇게 중직 되시는 분들이 예배에 따라서 앞좌석에 앉아서 또 영적 권위와 질서 그리고 강단에 힘을 실어주는 예배도 있지만 또 가끔은 맨 뒤에 혹은 중간 중간에 이렇게 앉아 주십니다. 오늘 수요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울타리가 되어 주시기도 합니다만 아마 이때 제자들의 경우는 예수님 근처에 항상 따라 다니는 제자들 열두 명 쫙 둘러앉고 그 다음에 무리는 아마 오든지 말든지 하도 인산인해로 몰려오니까 오는 대로 붙어 앉았던 것 같은데 제자들이 제일 가까이에서는 그래도 열심히 들으니까 좀 듣기는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예수님 따라다니는 제자일지라도 예수님이 오늘 비유를 든 이 내용 가지고는 도무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겁니다. 원래 비유면 더 잘 알아들으라고 예를 들어주는데 이건 더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9절에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제자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참 또 이상한 일 다 보지요. \\\\\\\\\\\\\\\"이미 허락된 너희에게는 아까 비유만 가지고서는 너희가 깨닫지 못했으니까 내가 다시 그 비유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 씨는 무엇이며 돌작밭은 무엇이며 길가는 무엇이며 다 이게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제자들이 다시 듣고 보니까 \\\\\\\\\\\\\\\"이것을 어느 천재인들 이 비유만 듣고 그게 그 말인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우리는 하도 들으니까 \\\\\\\\\\\\\\\"아 씨는 말씀이지\\\\\\\\\\\\\\\" 이러지만 씨가 말씀이라는 무슨 등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처음 하시는 말씀인데,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허락이 되었기 때문에 아까 비유만 가지고 안되니까 내가 또 다시 일러주지만 다른 사람들 너희 말고 저 다른 사람들은 허락되지 아니하였으니 허락되지 아니한 저들이 혹 듣고 깨달을까 내가 두려워서 엇 삐딱한 비유로 했을 뿐만 아니라 뒤에 안 들리게 하느라고 내가 조용 조용히 하고 그래서 뭐 끝말 한마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말은 듣고 나면 이 말만 듣고 나면 딴 소리를 못 들으면 골만 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고서 그만 책 덮어 가지고 나가버린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참 왜인가 했더니 의도적으로 그리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날 모였던 이 많은 무리가 얼마나 뭔가 주님의 감정을 상하게 했길래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다 생명이 있는데 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 사람들이 몰려와도 멀리서부터 몰려왔는데 이 사람들이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마지막에 한마디 겨우 들었다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아마 주님께서 그렇게 못해서 못했을 겁니다만 마음속으로는 \\\\\\\\\\\\\\\'들을 귀 있는 놈은 들으라\\\\\\\\\\\\\\\' 이랬는지 모르겠어요. 하여간에 마음은 그런 심정에서 말씀하신 것같이 되어 버렸다 그겁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이상한 일인데 그러나 주님께서 그날에 모였던 그 많은 무리가 미워서 특별히 그 사람들만 미워서, 아니면 주님께서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어디서 잠깐 들으니까 스트레스라는 말을 요즘 많이 쓰는데 어른들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라 가지고 \\\\\\\\\\\\\\\"스테인레스 받았느냐\\\\\\\\\\\\\\\"고 한다고 하더니 하여간에 스테인레스인지 되든지 스트레스가 되든지 주님께서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그 날따라 열 받아 가지고 \\\\\\\\\\\\\\\"이 좋은 복음을 내가 왜 전해?\\\\\\\\\\\\\\\" 기분 나쁘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그것만 소리치고 말으셨는가 했더니 그 주님이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하셔서 그날 유별나게 그리 하셨던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뜻도 그러했던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사야 6장에 보면 이런 일이 있어야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사야 6장 9절부터 10절까지 보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이전에 구약 때에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이미 예언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지시한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벌써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서 예수님도 그대로 수행하고 계신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이 다 복음을 받아서 백 배의 결실을 맺어야만 된다. 또 교회 한번 인도된 사람은 전부 다 교회 문으로 들어왔으면 나중에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고 다 남아야 된다.\\\\\\\\\\\\\\\" 이렇게 강조하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뭐 많이 인도되어 왔지만 남지 않고 자꾸 떨어져 나가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 오늘날 역사가 없는가? 하나님 이제 주무시는가?\\\\\\\\\\\\\\\" 이런식으로 얘기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구약 때부터 예수님 당시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로 흐르고 있는데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여서 천국 시민이 되는 이것은 아무나 헤프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예수 믿게 하려고 가서 일도 해주고 거들어주고, 이삿짐도 옮겨주고, 아이도 봐주고 온갖 노력을 다해가면서 사랑을 베풀어서 오게 하니까 그렇게 해서 오는 사람들은 나중에 안 오다가 안 오다가 한번 올 때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한번 가줄게!\\\\\\\\\\\\\\\" 이런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뭐 자기가 안 와주면 교회가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 복음은 부끄러운 복음이 아닙니다.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이 이 복음 인하여 천국까지 가게 된다는 것은 이것은 보통 복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복을 얻는 겁니다. 이 귀한 것을 그저 아무에게나 헤프게 그렇게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정하시고 허락한 자에게는 또 다시 또 다시 깨닫게 해서 알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저가 혹 깨닫고 고침을 받을까 두렵다 그말입니다. 회개하고 나와서 달라 붙을까 두렵다 그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구약 때부터 주님의 현장에 이를 때까지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복음은 모두에게 전하지만 모두에게 전한다고 모두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겁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성령이 역사해야 되는 것이고 들려지는 것도 성령의 인도함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우리 탓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천국 백성 되도록 이 교회 성도 되도록 허락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그 몇 명의 제자들만이 깨달을 수 있는 이런 깨달음을 함께 깨닫게 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깨닫게 되면 작품이 나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너희 귀는 복이 있도다 그랬어요. 그래서 많이 모였다고 해서 먼데로부터 많이 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겁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것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허락함이 없었다면 미리 예정하신 바가 없었다며 부르심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여기에 우리 영혼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이 신분 말이지요, 이것은 천국과 연결된 것인데 이 세상에 하나님 말고도 악한 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성경 외에 한번 말씀하시고는 달리 말씀 별로 안 하시지만 악한 신들은 온갖 점을 다치고 온갖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예수 믿어도 천당 못 간다.\\\\\\\\\\\\\\\" 하는 점은 어느 신도 못합니다. 온갖 거짓말 다해도 그것 하나는 부정 못합니다. 그것 들어봤습니까? 예수 믿어 가지고 천당 못 간다는 점쟁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엉터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엄청난 이 복은 그저 아무에게나 우리에게나 구걸하듯이 \\\\\\\\\\\\\\\"좀 받아주세요. 좀 예수 이름 가져주세요. 천국 좀 제발 좀 들어와 주세요.\\\\\\\\\\\\\\\" 천국의 위력은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그런데 제자들에게 밝혀 주신 바 이 비유의 설명을 들어보면 11절 이하에서 볼수 있는데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1-15) 이렇게 하면서 이제 앞서 그 무리들에게 들리지도 않도록 말씀하셨던, 그러나 제자들은 앞에 앉았기 때문에 겨우 겨우 주어 들었던 그 비유에 대하여 주님께서 다시 설명을 해 주신 것을 보게 되면 \\\\\\\\\\\\\\\"길가에 떨어진 씨, 그 말씀이 마음에 박혔지만 누가 빼앗아 가버린다. 새들이 와서 먹듯이 쪼아 가 버린다.\\\\\\\\\\\\\\\" 이것은 길 가이기 때문에 길가는 사람들이 항상 지나쳐 갑니다. 내가 꼭 만날 사람만 길가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기로 작정된 사람은 길가에서 만나지 않습니다. 어느 장소에서 만나지요. 그래서 이 길을 지나다가 보면 사람들이 항상 스쳐갑니다. 아이도 가기도 하고 짐승도 가기도 하고, 이렇게 생긴 사람 저렇게 생긴 사람 삭삭 스쳐갑니다. 이 스쳐가는 이 존재가 누구라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는가하면 길가에 새들도 오고 짐승도 오고 막 스쳐갑니다. 이거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길가에 나가면 스쳐갑니다. 맞지요? 사람이 많이 스쳐갑니다. 이 스쳐가는 사람이나 짐승을 무엇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했느냐 하면 마귀다 그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길가는 사람처럼 천국길 가고 있는 이길 동안에도 마귀가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스치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 마귀가 항상 우리에게 스칩니다. 우리가 오라고 해서 만나자고 해서 오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이 모양으로 스치고 저 모양으로 스칩니다. 이 스쳐가면서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우리가 주일날 말씀을 받습니다. 또 심방을 통해서 말씀을 받습니다. 그 말씀을 받을 때 \\\\\\\\\\\\\\\"할렐루야. 기쁘다. 이 말씀 되어지기를 바라나이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소서. 말씀이 육신이 되소서.\\\\\\\\\\\\\\\"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 근처에로 마귀가 수시로 지나칩니다. 이 지나치는 길에 스치듯 계속 스치는 이 마귀는 무엇을 목적으로 스치느냐? 우리에게 병을 주고 우리에게 발을 걸어가지고 넘어뜨리고, 그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생명의 말씀을 빼어내겠다 그겁니다. 생명의 말씀만 저 속에서 결실하지 못하면 천국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옥으로 간다 그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었으나 마귀가 밤낮을 스치면서 기회만 있으면 가져가 버린다 그겁니다. 빼내어버린다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설교를 주의 말씀을 이렇게 잘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마귀가 스치고 스치면서 의심을 줄 때도 있고 화를 내게 할 수도 있고 남으로부터 억울한 형편도 당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하고, 차 타고 가다가도 여러 형편 생기게 되고, 여기에 결실하는 자는 어떤 자라고 그랬어요? 착한 마음, 좋은 마음을 가지고 평안한 성령의 마음이 유지가 되어야 될텐데 이 세상 살다보면 그 유지가 잘 안됩니다. 이것은 전부 스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지혜있는 분들은 영적인 분들은 그런 일이 올 때마다 \\\\\\\\\\\\\\\"사단아, 물러가라. 내가 여기에 말려들지 않아야지. 사단에게 속지 않아야지.\\\\\\\\\\\\\\\" 그렇게 하면서 물러가라 하면서 기쁨을 곧 회복해서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 그리 하기가 전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만 스칠 때 기분이 나쁘면 저놈이 하도 험한 짓을 하면 그만 속에서 옛날에 하던 소리가 나온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크락션을 팍 눌리고 저놈이 나를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나도 차를 그 앞에 가서 확 집어넣어 가지고 그렇게 막 이렇게 하고 옛날에 쓰던 욕설 한번 해 뱉어버리면 뭐가 나와 버리느냐? 욕설과 함께 뭐가 나가버리느냐? 들어왔던 말씀이 싹 나가 버립니다. 왜? 그렇게 한바탕하고 집에 가서 무슨 설교 들었느냐고 물으면 몰라요. 한 주일도 못 가니 무슨 뿌리가 생겨 가지고 열매 맺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경우는 결실치 못하는 자요. 그것이 이제 마귀가 스치면서 결실치 못하는 자요. \\\\\\\\\\\\\\\"바위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위 위에 떨어졌기 때문에 결실치 못하는 이유는 뿌리가 없어서 바위에 습기가 없으므로 미리 뿌리 내려놓지 않았으면 결실치 못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아브라함의 자손들 저 유대인들은 뿌리로 치면 수천 년 믿음의 뿌리를 가졌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뿌리 해 봐야 제일 처음 기독교 들어온게 이제 100년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여러분 당대에 우리 교회 처음으로 나와서 구원받은 분도 많고, 부모님들 믿어보았자 길어서 삼대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뿌리가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믿은지 오래된 사람, 믿음의 집안으로서 계속 되어진 사람들을 보면 또 신기해요. 처음에 말씀을 받고 이럴 때 얼마 되지 아니한 사람들 은혜를 받아가지고 막 \\\\\\\\\\\\\\\"할렐루야! 아멘!\\\\\\\\\\\\\\\" 혼자 이 세상을 다 잡아먹을 것처럼 막 이러는데 오래 믿음의 집안에서 내려오고 장로의 집안 권사의 집안에서 쭉 내려오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보면 은혜를 받는지 안 받는지, 그래서 항상 쳐다보면 목사의 입장에서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구, 장로님들 저 집의 자녀들은 믿은지 오래 된다하지만 통 은혜도 못 받아.\\\\\\\\\\\\\\\" 이렇게 싶을 정도로 별로 감흥이 없어요. 그런데 시험이 들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이 왔거나, 뭔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기거나 했을 때에도 뿌리가 깊은 집은 그런 집안에서 오래 믿은 사람은 그냥 교회 지키고 버티고 있어요. 그러나 뿌리가 없이 갓 믿어 가지고 금방 좋다 온 세상을 다 잡아먹을 듯 은혜 충만하던 사람은 그만 한번 누가 딱 찌르면 마음의 충격을 한번 주거나 뭔가 오해가 생겼거나 기분 나쁜 일이 하나 생겼으면 그만 배반하는 자요. 그러면 그 이유는 어디 있느냐?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겁니다. 이건 나무랄 것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배반하고 쓰러지고 \\\\\\\\\\\\\\\"나 교회 안갑니다. 구역장 당신이나 잘 믿으시오. 나 안 갈래요.\\\\\\\\\\\\\\\" 이렇게 하면서 열을 올려도 그것으로써 끝내지 말아야 되요. 믿은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좋은 말씀 받고 그렇게 기쁘지만 믿은 기간이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저렇게 쓰러지는구나 생각하고 다시 일으켜주고 다시 일으켜주고, 북을 돋아주고 습기가 있도록 해 주고 그렇게 해서 뿌리를 깊이 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 믿은 자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 뿌리가 없기 때문에 넘어지는 자요. 그 다음에 가시덤불에 뿌려졌다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 그리고 일락에 기운이 막힌 탓으로 쑥 올라오지만 빛보지 못한, 물 제대로 먹지 못한 콩나물처럼 삐적 말라가지고 홀라당 엎어질 정도로 기운 없이 올라오는 것, 그러니까 햇빛 못 보면 풀이 자라나다가 쏙 올라오다가 그렇게 되지요. 이제 그와같이 되어버린다 그것이지요. 그러니까 뭐 이런 염려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 중에서 이 세상에 염려 없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염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재리 \\\\\\\\\\\\\\\"지금 집을 사면 돈벌까? 주식 투자를 하면 돈벌까? 은행 이자는 어찌 되는가? IMF지나면 어찌 되는가? 어디가면 나은가? 보험금을 어쩌면 타는가?\\\\\\\\\\\\\\\" 하여간에 집집마다. 제가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에 신문 한부씩 주잖아요. 앞에다가 쭉 그 신문을 제공하는 판에 놓아놓습니다. 무슨 신문 무슨 신문 쭉 놓았는데 가면서 자기 원하는 대로 빼어갑니다. 저는 보통 일간지 이런 신문 가져옵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을 가져오는데 사방을 둘러보면 전부 무슨 신문을 주로 가져가느냐? 경제지를 가져갑니다. 경제. 그리고 여성들은 주로 뭘 가져가느냐? 스포츠, 재미난 것 연예계 소식 있는 이런 것을 가져가는데 대부분의 남성들은 전부 경제 신문 가져갑니다. 확 넘기는 것을 보니까 주식, 환율 전부 그런 것들을 봅니다. 우리 성도님들 얼마나 하시는지 모르지만 하여간에 주식이 깡통되느냐 올라가느냐 그것에 아주 총 집중인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그것이 돈벌이가 되겠느냐 안되겠는가, 내가 올라가겠는가 내려가겠는가, 무슨 뭐 보너스가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 이 생각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그리고 일락에, 뭡니까? 즐기고 노는 것, \\\\\\\\\\\\\\\"아 이번 주말이 어디를 갈까?\\\\\\\\\\\\\\\" 그리고 요즘 \\\\\\\\\\\\\\\"추석 연휴가 계속 오는데 이 연휴 지금 어디를 갈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이다.\\\\\\\\\\\\\\\" 지금 계획 세운다고 바쁠 겁니다. 이런 데에 전부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받아서 씨가 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염려와 재리와 또는 노는 재미 이런 것 연구하다가 보면 말씀이 살아나기는 살아났는데 영 죽지는 않았는데 비실비실 노랗게 볕 보지 못한 그 풀만 쑥 길어나는 것 있잖아요. 습한 어두운 데에서 그렇게 자랐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실 이 세상 어떤 사람의 경우라도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무슨 뿌리가 있으며 길가에 스치는 사람처럼 마귀가 아무 비자도 받지 않고 초인종도 울리지 않고 항상 스치는 놈이 마귀인데 저녁에 음식 잘 먹고 즐겁게 다 각방으로 자녀들 들어가고 부부가 한방에 탁 들어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는데도 거기까지는 안 들어와야 할텐데 마귀가 거기까지 들어와 가지고서 한참 좋아 가지고서 침대에 올라왔는데 그만 무슨 얘기를 하다가 팍 심장 상하는 소리를 하면 그만 밀고 차버려 가지고 배게 들고서 쇼파에 가서 잠자고, 하여간에 전부 이런 짓거리를 하는데 이런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런 경우 안 당하는 경우 정말 좋은 말씀 위에 한번 자라나려면 확 그냥 무슨 전기 바짝 하듯이 탁 받자마자 확 올라와서 꽃피고 그런 것 없습니다. 이루어지려면 몇 달이 걸리고 하는데 이것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구약 때나 지금이나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당시에 불과 몇 명 되지 아니하는 제자들, \\\\\\\\\\\\\\\"너희는 허락되었기 때문에 이 비유에 대해서 다시 들으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돌작밭이란 이런 것이요, 가시덤불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요.\\\\\\\\\\\\\\\" 전부 설명해 주시면서 그러니까 제자들이 \\\\\\\\\\\\\\\"아 그렇습니까? 그 말씀입니까?\\\\\\\\\\\\\\\" 듣고 깨달아 버리니까 깨달아버린 것은 안나간다 그것입니다. 그냥 듣고 귀에만 있을 때에는 또 다른 소리를 하면 아닌가 하고 거기에 기울지만 확실한 진리구나 하는 것을 영적 체질로 깨달아 버리면 아니랄 수가 없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랄 수가 없게 되는 것, 그렇습니다. 자기 체질이 되면 이게 체험적 신앙입니다. 깨달아 확실히 믿는데 누가 아니라고 한다고 아닙니까? 아닐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남자이고, 남자분 많이 계시고 여자분 계신데 여러분이 여자인줄을 여자들이 잘 안다 그겁니다. 그런데 남이 \\\\\\\\\\\\\\\"아, 당신 남자네?\\\\\\\\\\\\\\\" \\\\\\\\\\\\\\\"어, 내가 남자인가?\\\\\\\\\\\\\\\" 그런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았으면 자기가 어릴 때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다가 어느 순간에 남자인 것을 깨달았다 그겁니다. 깨달아 알고 나면 내가 남성이다 라는 것을 내가 체질적으로 깨닫게 있는데 \\\\\\\\\\\\\\\"하, 당신은 여성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아 내가 여성입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여성인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뭡니까? 이 깨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깨달아 버렸는데 어떻게 바꿉니까? 맞는 것을.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 앞으로 인터넷 주소를 갈렙3927(caleb3927)로 홈페이지 주소로 하려고 신청을 해 놓았는데 3927 구약 39권 신약 27권 그래서 또 구구단으로도 3×9=27 그래서 3927 그러니까 아주 특수한 성경 66권을 말하는 3927을 홈페이지 주소로서 앞으로 띄우게 될텐데 우리가 학교에 가면 배우지 않습니까? 3×8=24, 3×9=27 이제 그것 외우기 전까지는 3×9=28이라 하면 28인줄 알아요 깨닫기 전에는 그러나 확실히 알고 난 다음에는 3×9=27인데 3×9=29라고 누가 말한다고 믿으라 한다고 믿어집니까? 안됩니다. 이건 도무지 안되지요. 그러니까 듣고 깨닫는다는 것, 이 말씀이 이것이로구나 라고 깨닫는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그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당시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 몇 명만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오늘 제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깨닫고 우리 마음이 기쁘게 되었으니 이게 보통 사건이 아니다 그겁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던들 이런 큰복이 있었겠느냐 그겁니다. 우린들 지나치는 마귀가 없습니까? 우린들 재리와 염려와 근심으로 그 기운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뿌리가 어디 깊습니까? 불과 믿은지 몇 년 되지 아니하고 한국에서 믿었다 해봤자 최고 오래 가봤자 백년인데 그것은 뿌리라고도 할 수도 없어요. 이런 우린데 오늘 예수님 옆에서 제자들이 누리던 그 기쁨을 누리고 \\\\\\\\\\\\\\\"너희는 복이 있도다. 무릇 있는 너희에게는 더 있게될지라.\\\\\\\\\\\\\\\" 해서 날마다 날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고 하더니 말씀도 듣고 보니 더 깨달아지고 더 깨달아진다 그겁니다. 이 엄청난 깨달음의 축복이 우리에게 와 있으니 이것이 나의 나된 탓이냐? 하나님으로부터 허락 받은 탓이냐?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많은 사람들이 저 먼 곳으로부터 몰려왔다고 다 듣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자만이 이것을 듣고 깨닫게 해 주시려고 한 것을 볼 때 오늘 그 깨달음을 받았던 불과 그때 당시의 많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 몇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이처럼 큰복을 받았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탓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예정하셨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5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랬어요. 아론이 아론 된 것 대단하지 않습니까? 큰 나라의 종으로 가 가지고서 큰 고생을 하고 있는 중에 모세를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에게로 보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아론을 먼저 불렀습니다. \\\\\\\\\\\\\\\"내 종 모세가 올텐데 그는 입이 둔하니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너의 말 잘하는 말로써 모세를 도우라\\\\\\\\\\\\\\\"고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아론이 모세 올 때에 무슨 통역사 원서를 내었습니까?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 말 잘하니까 우리 모세 말 듣고는 도대체 가나안인지 카나다인지 못 알아들을 것 같으니까 저 모세 말 좀 대변할 수 있는 아론을 우리 대변자로 세웁니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아론은 아론 될 수 있었고 그의 후손들은 영원한 제사장족이 되었다 그겁니다. 하나님이 한번 뽑아서 이 존귀한 직분을 준 것이지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 누가 제멋대로 되려고 스스로 취할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이 엄청난 신분,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그 수많은 무리들 멀리서부터 왔으나 마지막 소리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소리만 듣고 파해버렸는데 이 제자들처럼 이 말씀을 그대로 제자의 깨달음과 같은 수준으로 어쩌면 더 깊은 수준으로 오늘 우리가 듣게 되고 깨닫게 된 것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된 줄로 믿으시고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오늘 따라 왜 이처럼 이 많은 사람들, 바리새인도 물론 섞여 있었습니다만 이 사람들에게 비유로서 말씀드리느냐 하면 그러니까 무슨 그냥 말씀이라 하면 될 것을 씨라고 그러고, 마귀라고 하면 될텐데 길가에 뭐 새들이 어쩌고저쩌고, 이런 말씀들을 빙빙 돌려 가지고 말씀을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예수님이 누가복음 8장 이전에 얼마 전에 직설법으로 바로 말 하다가 예수님이 하마터면 맞아 죽으실 뻔했어요. 큰 사고 날 뻔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겨우 살아났기 때문에 그 뒤에부터는 그냥 화법을 바꾸셨는데 참고적으로 한번 그때 일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누가복음 4장 25절로,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나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를 찾으시고 아무에게 복 다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겁니다. 그런 것을 이제 그때 4장에서는 처음 예수님이 이제 이 누가복음 4장이라면 1장 2장 3장 4장 태어나시고 이제 세례받고 성령 받으시고 이제 4장에서 사역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바로 직설로 했어요. 25절로 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눅4:25-30) 이랬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냐 하면 회당에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웃기지 마소. 여러분들이 회당에 왔다고 바깥에서 바리새인이요 뭐 대단하다고 해서 천국 다 가는 줄 아시오? 천만에. 엘리야 시대에 과부가 얼마나 많았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렙다 한 사람 과부에게만 보냈으며 또 엘리사 시대에 문둥이가 얼마나 많았소? 그러나 나아만 장군 하나만 고쳐준 것이요. 너희가 뭐 많이 있다고 하나님이 모두 통채로 다 불러 가는 줄 아는가? 아니라.\\\\\\\\\\\\\\\" 하면서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해대니까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아멘 감사하겠지만 \\\\\\\\\\\\\\\'나머지는 다 소용없다. 쭉정이 취급한다\\\\\\\\\\\\\\\' 이런식으로 주님이 설교를 그냥 경험이 작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바로 하니까 그 따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그만 열 받아 가지고서 \\\\\\\\\\\\\\\"끌어내라. 끌어내라. 죽여라.\\\\\\\\\\\\\\\" 해 가지고서 예수님을 끌고 어디로 갔느냐 하면 건설하는데 산 낭떠러지 건설하는 것을 보니까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골프장을 만들었는지 그 당시 골프장은 없었겠습니다만 하여간에 댐을 막았는지 아주 절벽으로 끌고 갔어요. 예수님이 끌려갔어요 이렇게. 끌려가서 거기서 탁 밀치려고 하는데 그 마지막 탁 밀치려는 순간에 주님께서 쓱 지나서 빠져 나왔는데 아마 주님의 오금이 저렸을 겁니다. 그래서 천사의 도우심으로 쓱 지나서 왔는데 바로 죽을 뻔했어요. 그러니까 그 뒤에는 지금 말씀하시기를 뱅뱅 돌려서 비유로 말씀하니까 그 뒤에부터는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저 말은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가?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인가?\\\\\\\\\\\\\\\" 이렇게 했어요. 예수님의 이 설교 방법도 저를 비롯한 우리 목사님들도 잘 알아 두셔야 될 것은 이 장례식 때에나 결혼식 때에 가 가지고서 특히 장례식 때에 가서 순진하게 지금 이 관속에 들어가 있는 이 사람은 믿었기 때문에 천당이지만 이 가죽들 서서 울고 하지만 안 믿는 것은 전부 지옥이라고 또 관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믿고 죽었는지 안 믿고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면, 그 가족이 전부 믿는 사람이라서 \\\\\\\\\\\\\\\"가족들이 믿어서 내가 할 수 없이 기독교장으로 해주기는 해 주지만 들어 있는 이 사람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뭐 안 받았으면 소용없는 겁니다. 이건 뭐 지옥이요.\\\\\\\\\\\\\\\" 앞에 그 조상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건 지옥\\\\\\\\\\\\\\\" 이렇게 바로 암만 맞는 말이라도 그런 형편에 가서 바로 직설적으로 그랬다가는 맞아 죽는 수가 있어요. 우리 목사님들 주의 하셔야 합니다. 결혼식 같은데 가 가지고서도 거기 가서 둘이 짝 붙여주면 되는 것인데 거기 가서 무슨 은혜를 끼치려고 \\\\\\\\\\\\\\\'믿으면 천당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요\\\\\\\\\\\\\\\' 그런식으로 해보면, 결혼식에 가보면 참 믿는 집안끼리 양가가 다 잘 믿기는 어려워요. 일부는 믿고 안 믿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데 가 가지고서는 예수님의 4장처럼 하지 말고 8장처럼 해야 살아남는 것이지요. 어찌되었건 이 내용이나 저 내용이나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는 헤프게 내어 놓은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나라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 하고자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되는 것이니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만 그 중에 천에 하나 만의 하나 골라내듯 하나님이 찾아 부르시니 모두가 다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세상에 있는 염려도 마귀도 모두 우리말씀을 믿는 자라도 쓰러뜨리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어려운 때에 이 문화 생활하는 이때에 이 믿음을 지키고 삼일 예배 이 수요일까지도 이 힘든데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주의 말씀을 들으면 그때 제자들처럼 기쁨으로 깨달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여러분의 이 축복된 신분은 우리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천의 하나 만의 하나 고르시고 부르시고 택하셨음을 믿으시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2)/ 눅8:9-15, 마13:1-9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2) 눅8:9-15, 마13:1-9 지난주 기상 악화로 공항에서 출발하다가 다시 비행이 취소되어서 여러분을 이 시간에 뵙지 못했고 수요일 날 대신 설교하였습니다. 그래서 혹 수요일 날 부득이 해서 못 참석하신 분들은 아마 테잎을 준비하라고 부탁 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주제가 같기 때문에 지난번에 1번이고 오늘 2번 주제로 말씀드리기 때문에 이어서 참고하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여전히「백배의 결실은 주님의 뜻인가」라는 주제로서 두 번째 시간 말씀을 드리고 또 다음 시간까지로 해서 이 주제를 마칠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확보한 자만이 천국인이 된다 라고 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다 듣고 깨닫고 확보해서 천국인이 되려면 선택된 사람 허락 받은 민족이어야 가능하다 라는 관점에서 지난 시간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성경 많이 보고 또 신학 공부하신 분들이 말하기를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방인이요, 하나님의 택한 민족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대인이라고 말씀들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면 괜찮은 건가?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확실하게 믿고 있지 않는가? 이 믿는 것은 허락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한번 허락 받은 사람이 지옥 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안심이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본 주제 시리즈 1번과 또 오늘 말씀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특색 한가지가 있다 라고 한다면 주께서 정작 그 백성들에게 알려주시고 싶어하셨던 내용 설교하시고 싶었던 그 내용은 바로 말씀해 주시지 아니하시고 엇 삐딱한 비유로써 말씀했거나 아니면 들을 수 없도록 작은 소리로 했다는 겁니다. 모든 무리가 주님의 말씀 전체 속에서 또 가르치신 시간 전체 속에서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씀은 다만 끝마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그 한마디는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앞의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비유로 말씀했고 듣지 못하게 하셨다 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느냐 라고 밝혔는데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알려주지 아니하려고 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허락된 사람들, 허락된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또 어떻게 하셨는가 하면 허락되었으면 대강 하셔도 될 것 같은데 하늘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몇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아까 비유도 들었고 한데도 또한 해석을 덧붙여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재차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가 발견해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그 본문의 사건들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서 그저 쉽게 간단히 편하게 읽어버리면 지금 전까지 말씀드린 이런 내용 \\\"허락된 자는 하늘의 비밀을 알게되고 허락 받지 못한 사람은 들을 기회도 없다\\\" 이렇게 이제 정리가 되겠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사건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많은 사람이 아는 것처럼 \\\"예정된 사람 허락 받은 사람은 어김없이 천국 간다. 어김없이 구원받는다. 예정된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하나님이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예정해 두었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고야 만다.\\\" 이런 주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허락된 자 곧 예정된 자라도 어김없이 천국 다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본문이 말하여주고 있습니다. 좀 충격적인 내용이 되겠습니다만 본문 누가복음 8장 15절에 나타난 대로 천국의 결실을 맺으려면 듣고 깨닫고 그리고 인내로 지켜야 결실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다 나다가 말고 기운이 없어 꺾이고 결실이 안 된다는 겁니다. 천국의 알곡이 되려고 하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믿고 인내로 지켜야 된다 라고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기본입니다. 이것이 기본인데 또 아까 읽었습니다만 길에 떨어졌다는 말씀이 어디에 나오지요? 12절 한번 보실까요. \\\"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그랬어요. 그러니까 마귀가 와서 우리들더러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들어간 말씀을 빼앗아 낸다는 겁니다. 물론 뿌려졌는데 심기어졌는데 말씀을 하여간 속에까지 들어가서 마음속에 들어가서 막 일을 일으켜 가지고서 잊어버리게 만들고 쪼아 내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자마자 곧 구원이 아니라 들어가서 깨달아지고 믿어지면, 그러니까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고 깨달아지면 구원이 된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래서 이 마귀가 구원을 못 받게 하려고 뽑아내는 것이 무엇이냐? 들어간 말씀이 씨앗 되기 전에 뽑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씨앗 된 말씀이 열매되기 전에 뽑어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마귀가 길가에 스치듯 항상 우리에게 들어온 말씀을 빼앗기 때문에 아주 감명 깊게 들은 것을 한 삼일도 못 가서 아주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마귀가 쏙 뽑아내어 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우리가 재미있게 들은 얘기를 열흘 한 달 가도 그 얘기를 누가 다시 하면 다 기억하거나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게 깡그리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참으로 기쁨으로 받았는데 어떤 경우는 삼일 지나고 나니까 무슨 말들었는지 도무지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어요. 확실하게 뽑아내어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말씀 그렇게 쉽게 뽑혀나갈 수 있는, 그 다른 얘기들은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상당히 기억이 오래갑니다. 그러니까 이 다른 얘기와 주의 말씀이 그렇게 다른 겁니다. 철학적인 설교를 들었다면 인격적인 교양설교를 들었다면 그것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항상 나이 많은 부모님들도 자식들보고 \\\"목사님 뭐라 하더냐?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아니하더냐.\\\" 그런 것은 잘 기억합니다. 그것은 세상에도 가르쳐주는 얘기이니까요. 그러나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하늘 양식 이 씨앗은 쏙 뽑아버리면 하나도 모르게 잊어버린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뭡니까?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리고 그 말씀대로 지켜야 천국의 열매가 되는 것인데 왜 제가 허락 받은 자라도 예정된 자라도 천국에 못 갈 수 있다 라는 이 본문에서 알 수 있느냐 라고 말씀드렸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미 허락된 자에게도 비유의 말씀만 해주신 것이 아니라 비유를 잘 깨닫지 못하니까 기어이 깨닫게까지 해주시려고 불러들여 가지고서 씨는 무엇이며, 바위라는 것은 무엇이며,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이며, 전부 깨닫게 해주니까 그때 제자들이 \\\"아멘 아멘, 아이고 이제 알겠습니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믿느냐?\\\" 바로 이렇게 해준 겁니다. 만약에 이미 허락된 자라면 이 허락은 지금 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허락된 자입니다. 이미 허락된 자 예정된 자가 저절로 어김없이 전부 천국 간다면 무엇을 이렇게 애써서 두 번 세 번 가르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천국 가고 못 가는 믿음은 허락에 달려있다 라고 했습니까? 말씀에 있다고 했습니까? 이 말씀에 있다 그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뽑아내는 것은 허락된 증서를 불태우거나 거기에다 먹물을 부어 가지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구원시킬 말씀을 뽑아낸다 그랬지요.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니까 이미 허락된 자라도 예정된 자라도 혹 천국 못 갈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에 못 가느냐?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못 간다는 겁니다. 믿지 못하면 못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된 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재차 재차 말씀을 하시면서 깨닫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보니까 허락되었다 라고 천국 알곡이 되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자에게는 뭐가 간다고요? 말씀이 간다 그겁니다, 그래서 허락된 자가 말씀을 받아들여서 주 예수를 믿을 때 비로소 천국시민이 되는 것이지 이미 허락되었다 라고 자동적으로 천국,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본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던 생각들과 좀 달라서 우리 성도님들께서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다음에 또 두 번째 내용은 \\\"허락되지 아니한 자, 예정에 없던 사람 이 사람들은 지옥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예정하지 않았으면 제아무리 뛰고 제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안되고, 막판에 가서 타락해버리는 것이고 예정된 사람은 아무리 죄짓고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마지막 죽기 전에 하나님이 반드시 불러낸다.\\\" 이제 이런 얘기를 하면서 믿는 가정에서 잘못된 자식들이 있을 때 \\\"걱정 마십시오. 하나님이 택해둔 자녀인데 어디 가겠습니까? 죽기 전에 반드시 구원받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죽지도 않습니다.\\\" 이런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이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허락된 자라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지 않으면 천국의 알곡은 될 수 없다 라는 사실과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은 세상없어도 못 간다 이런 논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만 아니한 자라도 만일 이 사람이 허락된 자들이 듣고 있는 말씀을 주섬주섬 주어 듣고 \\\"그게 진리구나. 천국이 거기에 있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를 사신거구나.\\\" 여러분, 죄를 사하신 것은 믿는 자의 죄만 사했습니까? 모든 자의 죄를 사했습니까?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는 그 능력을 힘입는다 그겁니다. 그러면 이미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만약에 들을 기회가 있어서 귀를 내밀어 가지고서 듣고 허락된 자들이 믿는 것처럼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도 믿기는 매일반이다 그겁니다. 그래서 만일 믿게된다면 믿게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락되지 아니했던 이유로 \\\"너는 안돼. 너는 암만 잘 믿어도 너는 본래 허락이 안되었기 때문에 너는 지옥이야.\\\" 하면서 천국문턱에서 차 밀어내겠느냐?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왜 알 수 있느냐 하면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 갈까봐 예수님께서 조심한 조심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듣고 아무리 깨달아도 천국 못 가게 되어있다면 그것이 고정적인 흔들 수 없는 사항이라면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에게 엇 삐딱한 비유로 말씀하겠습니까? 그리고 안 들리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그 수많은 사람 모아놓고서 상당한 시간동안 말씀을 전하고서 뭐하노 뭐하노 했더니 들리지도 않게 중얼중얼 하길래 \\\"무엇을 하고 계신가? 앞에 제자들하고 상의하고 계신가? 우리 이렇게 모아놓고 뭐 회의하는가?\\\" 이러고 있었는데 이제 설교 시작하는가 싶었더니 고개를 바짝 드시고서 하시는 말씀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하니까 사람들이 \\\"암 그럼요. 이제 들어야지요.\\\" 귀를 세우는데 끝났다 라고 하니, 그러니 주님께서 이렇게 조심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허락 안된 사람은 자동적으로 지옥이라면 그냥 똑같이 설교해도 되지 않습니까. 오해 살 것도 없고 끌려나가 가지고서 뭐 낭떠러지에 떨어질 이유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이 천국 들어올까봐 깨닫지 못하게 노력을 한 것을 보면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가 있습니까?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도 혹 그놈이 끼어 들어와 가지고서 허락 된 사람들이 듣는 설교 다 듣고 허락된 사람보다 먼저 아멘해 버리면 주의 말씀 듣고서 믿어서 아멘 했는데 지옥 보낼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간단히 읽어버리면 맨 위의 \\\'허락된 사람은 천국이요 허락 안된 사람은 세상없어도 지옥\\\' 이런 논리가 되어버립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의 행하신 이 일을 한 꺼풀 열어 가지고서 왜 허락 안된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못 듣게 노력했고 허락된 사람에게는 두 번 세 번 가르쳐서 깨닫게 했느냐 그겁니다. 그러니까 허락된 자라도 말씀 깨닫고 믿지 못하면 불가하고 천국이 불가하고 허락 안 된 자라도 혹 끼어 들어와 가지고서 목숨걸고 말씀을 듣고 허락된 사람이 믿는 것처럼 믿어버리면 천국에 들어오는 일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본래 선민이라고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닐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천국이 어떤 데인 줄 알았으면 끼어 드는데 믿고 들어가는데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너희는 이방인으로서 이미 허락 안되었기 때문에 믿어도 소용없다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 하나님의 이미 허락된 민족이라도 좋고 아니었을지라도 지금 믿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제가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조금 염려스러워 하실 분들이 게실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면 이 본문 사건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전체가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 하십니다. 조금 불편하시지만 성경을 몇 군데 찾겠습니다. 마태복음 15장을 열어보십시다. 마태복음 15장 21절부터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1-28) 했어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내용은 마가복음 7장 24절로 30절에도 있습니다만 마가복음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표현되어있습니다. 가나안 여인 더 구체적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 계신 곳에 왔습니다. 자기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려서 고통 중에 있으므로 주께 구원을 요청하러 왔던 것입니다. 왔더니 예수님께서는 이미 허락된 유대인들과 한 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이제 복음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 여인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면서 주님의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그 허락된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하는 말이 \\\"예수여, 저 여자를 보내소서. 저 여자는 상관할 수 없는 여자 아닙니까? 해당되지 않는 여자 아닙니까? 보내소서.\\\"라고 했더니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말에 동조했습니다. \\\"그래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했노라. 저 이방 여인에게 내가 보냄을 받지 아니했노라. 나는 관심 없어. 내가 온 것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노라.\\\" 이스라엘은 원래 허락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이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에 아직 들어오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왔으므로 내가 이스라엘과는 대화를 하지만 저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노라.\\\"라고 주님이 말씀합니다. 여자가 이 소리를 듣고 주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어떻게 드렸느냐 하면 자존심 상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어떻게 사람을 차별대우합니까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가 하는 말이, 이제 주님께서 그 여자에게 아주 강한 표현을 한 것이 바로 이 말이지요. \\\"아들의 떡을 취하여…\\\" 여기는 자녀의 떡이라고 했습니다만 마가복음에는 \\\"아들의 떡을 취하여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여자가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가 자존심 상해서 시험 들어서 가지 아니하고 \\\"주여 옳소이다. 떡을 취하여 자기 자식에게 주지 어찌 우리에게 어떻게 주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볼 때 우리는 사람도 아니고 개 아닙니까? 개?\\\" 상종도 안 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상종을 안 했는데 하물며 수로보니게 가나안 사람이야 더욱 상종을 안 했습니다. 바로 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나안 여인이 주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옳소이다만 상 아래 개들도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제발 그저 그 둘러앉아서 하시는 그 말씀 나타내는 그 예수 이름의 능력을 내가 이 대청 마루 밑에 이 판 아래에 기다릴 테니까 내 귀에 들리도록 하는 것까지는 막지 말아주소서. 상아래 개들도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개 취급당할 민족이지만 나는 다른 개밥을 먹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내 밥으로 삼겠습니다. 그것이 쌀밥이 되었던지 부스러기가 되었던지 뼉다귀가 되었든지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먹는 그 양식을 주소서.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능력을 주소서.\\\" 그때야 주님께서 태도를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주님이 바라신 것이 무엇입니까? 아주 정색을 하시면서 \\\"여자여 안심하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뭡니까? 이미 허락되지 아니한 자 개 취급을 받아야 될 사람이라도 주님에게 달려와서 허락된 사람들이 받는 것에 귀를 귀울여 같이 듣고 같이 주의 말씀을 같이 깨닫는 것은 허락된 사람이나 안된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깨달아 그 양식으로써 살겠다고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가 믿었기 때문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했더니 그 시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바로 나았으니 그 수로보니게 여인이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겠다 하시니 바로 주님의 이름이 그에게서 구원으로 나타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뭐 허락된 사람 허락 안된 사람 해서 지금도 저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허락된 사람이고 저 이방인들은 모두 지옥 갈 사람이라고 하고들 있습니다만 정작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허락 안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아와서 사모하고 매달려 믿는 자의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깊이 알지 못하면 관심 있게 보지 못하면 허락된 사람은 따로 있고 허락 안 된 사람은 전부 지옥 가는 것처럼 간단히 생각할 수 있으나 아니요, 주님의 행하신 모든 일에서 듣고 믿으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많은 예를 성경에서 들을 수가 있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한군데 성경에서 더 봅니다. 마태복음 22장 2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이미 허락되어 오도록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여기서 알 것은 바로 청해서 지금 오십시오가 아닙니다. 이미 예약해 놓았습니다. 이미 청했고 때가 되면 오겠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잔치를 베풀어놓고 오라 한 겁니다. 이게 두 번째입니다. 이미 청한 사람들을 이미 청해서 오라 했던 사람들을 이제 오라 이렇게 되었던 겁니다. 그 내용이 그런 겁니다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3下-14) 천국은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미 청한 사람들, 이미 청한 사람들은 이 내용으로 볼 때 오늘 결혼식이 있으니 지금 오십시오가 아닙니다. 결혼 날짜는 아직 안 잡았습니다. 이 임금의 아들 결혼 날짜가 있는데 결혼을 할텐데 결혼 날짜가 잡히면 음식이 다 장만되면 그때 다시 연락을 하겠습니다 라고 되어있던 사람들입니다. 여기의 아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임금은 누구이겠습니까? 임금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요 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청한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예수 이후에 사는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은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그리스도가 올 것을 그 날 잔칫날이 올 것을 모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듣고 있었습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청하였고 잔칫날은 언제냐?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려야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아나는 겁니다. 무덤에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일어나는 잔치가 일어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미 청함을 받았던 사람들은 이 날을 기다렸던 겁니다. 주님이 오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이미 청하였던 사람들에게 가서 \\\"오소서. 지금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의 피를 마시시오. 그의 살을 먹으시오. 그리고 그의 부활을 믿으시오.\\\" 잔치 참 훌륭한 잔치 천국 가는 잔치가 베풀어졌다 라고 하여 전부 오라고 했더니 이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오는 사람 몇 명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헤 그게 무슨 메시아야? 그게 무슨 그리스도야? 차라리 세례 요한에게 갔으면 갔지 나는 안가. 안가.\\\" 하면서 전부 다 자기의 볼일을 다 보았습니다. 다 보았습니다. 이미 허락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천국의 잔치에 들어오도록 되어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성경 그대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막상 잔칫날 잔치를 베풀어놓고 오라고 하니까 \\\"밭에 간다. 상업차로 간다. 어디 간다. 바쁘다 바쁘다. 나 관심 없다. 다른 사람이나 먹여.\\\" 하면서 오지 않았습니다. 오지 않았지만 먹지 않았지만 이미 청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허락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천국에 들어갔습니까? 임금이 노하여 종들을 시켜서 그들을 전부 죽이고 그들이 사는 땅을 불사르라 했다 그겁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허락되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자이면 허락된 대로 예수 믿어야 할 줄 믿습니다. 천국은 예수 이름을 초월해서는 들어갈 수 없으니 허락되었다면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허락 다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을 때에 천국은 확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허락된 사람들이 오지 아니하니 잔치는 벌렸고 천국의 홀은 큰데 천국 식구들만 앉아 가지고서 잔치를 넘기려니 너무나 허술하고 분위기가 맞지 아니하니까 \\\"그러면 할 수 없다. 사거리 길로 가서 선한 사람이든지 악한 사람이든지 당장 데리고 와라.\\\" 그랬어요.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께로 가면 바로 받아들이면 믿을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께로 갔는데 내가 믿음이 확정되는 것은 내 몇 대 후에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믿어집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잔치 베푼 후에 갔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정되었던 사람들은 잔치가 베풀어질 것을 대를 이어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잔치 베풀었다 오라 하니 오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 아닙니까. 저 유대인들은 예정된 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지금도 택한 민족이라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습니다. 말씀 듣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천국이 되겠느냐 그겁니다. 이 성경은 그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거리 길에서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다 들어오라 해서 바로, 이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날 바로 들어갑니다. 바로 잔칫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가득 손이 찼는데 들어와서 임금이 들어와 착 훌터보니까 모두 예복을 입었는데 한 사람만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이 다 예복을 입었는데 하나 예복을 안 입었으면 그냥 봐줘도 될 것인데 하나님 나라 천국 안 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예복을 입지 아니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로 말미암아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형제여, 그대는 왜 예복을 입지 아니하였소?\\\" 그가 유구무언이거늘,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잔치에 나아간다 할지라도 아무리 교회에 나온다 할지라도 주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받지 아니하면 예복을 입지 아니하면 쫓겨나간다는 겁니다. 청함을 받은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지극히 작구나 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혹 우리가 이미 허락을 받았으니 천국 가기로 되어있으니 잘 믿어도 천국 가고 못 믿어도 천국 간다 이런 생각 마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니 혹은 택한 민족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는가? 허락 받지 못한 민족일수도 있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걱정도 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받은 사람이든지 안 받은 사람이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이시라는 겁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행동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가진 자가 없도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는 것입니까? 불쌍해서 봐주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택한 민족이요 아무리 선택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천국은 자기 것이 되지 아니하며, 아무리 이미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뛰어들어서 믿겠다고 하면 믿으면 천국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로 그 앞서에도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미 선택받았다 라고 하는 사람 대단한 자기의 그 신분과 위치를 가지고서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초대는 했지만 가히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도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선지자라면 지금 향유를 붓고 있는 이 여자가 죄인인줄을 알았을텐데…\\\" 이런 정도로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여인은 죄인이라는 이름이 걸려있는 그런 죄인인데 주님께 와가 지고서 눈물을 발을 씻기고 머리털로 발을 닦고 비싼 향유를 그 발에 붓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발씻을 물도 주지 아니했던 택함 받았다 라고 하는 바리새인들 천국인으로 선정했습니까? 아니면 죄인이었던 이 여자를 천국여인으로 삼았습니까? 죄인이었던 이 여자를 천국여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성경전체는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리 갈 사람 따로 되어있고 안 갈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혼인집에 정작 오게 되어있었던 사람들은 오지 아니하고 대신 들어온 이방인들이 오히려 주객이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이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이냐? 믿어야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고 이렇게 행하시니 과연 우리들을 위하고 계신가? 우리라도 그 허락 받았던 사람과 똑같이 주님께서는 여기시고 믿기만 하면 되는가? 과연 주님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그 당시의 바래새인들은 주님의 이런 일들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마태복음 22장 14절로 15절을 한번 더 살펴보도록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라고 말씀을 맺었습니다. 맺었더니 15절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나오는가 봅시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예수님을 구슬려 가지고서 예수님을 책잡아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기분이 나빴습니까?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이 청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었습니다.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했어요. 막상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에 온 사람은 적었다 그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는 실제로 무엇입니까? 말씀의 잔치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이 일어나는 것인데 마귀가 구원을 못 받게 하려고 무엇을 뽑아낸다고 했습니까? 말씀을 뽑아낸다 했다 그것입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세상 말씀 같으면 세상 얘기 같으면 적어도 들으면 몇 달은 기억이 갑니다. 그렇게 하루만에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세상 얘기는 뽑아내지 않아요. 그러나 구원을 못 받으려면 무엇을 뽑아냅니까? 천국말씀을 뽑아낸다 그겁니다. 바로 하나님 말씀을 뽑아내어 버린다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듣고 믿고 지키는 것 좋지만 혹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려서 \\\"아, 내가 그저께 설교를 그렇게 은혜롭게 들었는데 그때 아멘 아멘 하고 굉장히 기뻤는데 무엇을 들었는가?\\\" 전혀 잊어버렸거든 \\\"아하, 마귀가 다 된 구원을 빼어갔구나. 내 속에 들어왔던 것을 빼어갔구나. 이 다음에는 마귀를 접근 못하게 하고 성령과 그 능력으로 내 안에 충만케 하셔서 말씀에 싹이 나게 하리라. 나는 정말 귀한 말씀을 또 들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우리가 가져봐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택함받은 이 적은 사람들 이 적은 사람들 이 내 사람들이 내 사람들이라 하는데, 자기들은 허락된 줄로 알고 무조건 천국시민이 될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합당치 않다 라고 말해버리니 얼마나 골이 났던지 이 15절에 바리새인들이 그냥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해 가지고서 예수를 사형에 처하게 하려고 자기 종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보내 가지고서 \\\"옳으시고 옳으신 주님이시여\\\" 하면서 접근을 해 가지고서 그 뒤에 보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안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이렇게 걸고 넘어져 가지고 예수를 걸고넘어지려고 이렇게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한 것을 보니까 뭡니까? 자기들은 허락되었으니 저절로 갈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보니까 허락되었다 라고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이 골이 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말씀들 뒤에 마태복음 11장 12절 뒤에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침노는 이미 허락된 사람 들어오도록 되어있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침노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들어올 수 없는 사람, 외국인, 비자 없이는 못 들어올 사람이 들어왔을 때 불법 입국했다고 그러고 침노해 들어왔다고 하지, 아니 내 가족 내 백성이 우리 시민이 우리나라 들락날락 침노했다고 합니까? 출국했다가 들어왔다고 그러지요. 침노는 자기 민족이 들어온 것이 침노입니까? 외국 적이 들어온 것이 침노입니까? 적이 들어온 것을 침노다 그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까 소개한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천국은 이미 들어오게 되어있는 사람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들어오게 되어있지 않던 사람들이 믿어서 들어오면 천국은 먹힌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이것이 언제로부터 가능했느냐? 세례 요한의 때 이후 예수로부터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후에 천국을 침노할 수 있었으니 천국에서는 우리가 침노해 들어가면 \\\"저 적이 들어왔다. 간첩이 들어왔다. 죽여라. 쫓아내라.\\\" 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스스로 침노를 당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느냐? 이미 허락된 자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기준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택한 민족이었던지 아니었던지 혹 이스라엘이 아니라도 혹 내가 허락을 받았던지 안 받았던지 그런 것 상관없이 허락 받았다 할지라도 믿지 아니하면 탈락하는 것이요, 허락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예수의 소식 들었을 때 같이 끼어 들어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하고 달라 붙으면 천국의 방식은 절대 끊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허락 안 되었고가 천국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기준이 아니라 믿고 안 믿고 그것이 기준이라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니 나의 신분이 허락된 자에 속하던지 안 허락된 자에 속하던지 상관하지 마시고 오늘날 믿고 있음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밤 시간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일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번 붙잡았던 것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 본문 마지막 절에 말씀하기를 한번 붙잡았으면 듣고 깨닫고 믿어서 인내로 계속 기다려서 결실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믿으면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실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듣고 깨닫고 즐거워서 아멘 했다고 바로 결실이 아니라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곳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마을 구원이 나타날 마을 베들레헴, 이 베들레헴을 버리고 세상 임금이 주장하는 잘 산다고 하는 모압 땅으로 갔던 엘리멜렉 나오미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 이들은 이 지구촌에서 단 한곳 적은 마을, 구원이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을, 그 마을에 본래 살던 사람들인데 그곳에 들어가서 살았다는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데 흉년이 좀 들고 먹고살기 좀 힘들다고 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그 하나님의 성지 이미 예정된 땅을 벗어나서 세상 임금이 지배하는 문화적으로 잘 살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모압 땅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다가 거기에서 묻히고 맙니다. 그들의 뼈를 베들레헴에 묻지 못하고 베들레헴으로부터 조금 견디지 못해 가지고서 모압 땅으로 가서 묻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베들레헴에 그냥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텐데 그 할아버지 엘리멜렉이 거기에 가서 뼈를 묻어버렸습니다.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거기에 가서 뼈를 묻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이름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는 가히 들어갈 수도 없었던 사람 세상 임금이 주장하는 저 모압 땅의 풍요와 함께 살던 여자 룻이라는 여자는 이게 왠일입니까? 한 가정이 이주를 해왔다 라고 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두 아들이 있는데 생긴 것도 자기들 남자들보다 좋았던 것 같지요. 아무래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은혜 받고 살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으니 교양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니까 자기 모압 사람 청년들보다 나아서 그만 거기에 기웃 기웃 데이트를 좀 했던 모양인데 듣고 듣고 하다보니까 \\\"어야 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야. 하나님의 사람들이구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구나. 천국이 걸려있는 사람들이구나.\\\" 이 지혜로운 이 여자가 발견했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의 자식을 낳고 이 사람들과 함께 이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리라. 베들레헴 성지로 가리라.\\\" 하고 있는데 웬걸 그 좋은 베들레헴 성지를 버리고 조금 배고프다고 견딜 수 없다고 해 가지고 도망 나와 가지고서 모압 땅에 시아버지가 꼴깍해서 뼈를 묻어버리네요. 남편이 꼴깍해서 죽어 뼈를 묻어버리네요. 시동생도 또 죽어버리네요. 나중에 과부만 남아서 시어머니 과부 자기도 과부, 과부만 둘 남아가지고서 가만히 시어머니가 \\\"아이고 아이들아, 룻이여 오르바여, 너희 곳으로 가라. 너희는 젊었으니 새 남자를 만나라. 나는 이름이 나오미라 희락이라 지었지만 희락이 웬말인고? 내 이름을 마라라 해라. 나는 쓴 고민이다.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가노라. 너희는 너희의 곳으로 가라.\\\" 오르바는 \\\"어머니 안녕히 가십시오.\\\" 남편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혼자 있는 시어머니를 받들 겁니까? 엘리멜렉도 죽고 아들 둘 다 죽어도 살아 버티는 나오미라면 쉽게 죽을 할머니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살 사람을 자기가 어떻게 그 시어머니로 받들 겁니까? 어미니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친정으로 가버렸고 딱 룻은 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이 늙은 시어머니 아마 오래 살 것 같은데 아들이 죽어도 안 죽고 버티는 이 시어머니가 오래 살 것 같지만 내가 시어머니 받드는 고생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이 사람들에게는 베들레헴이 있고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있으니…\\\"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갑니다. 어머니의 고향이 내 고향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친족이 내 친족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다. 떠나가라. 나를 슬프게 마라. 나오미가 아니고 마라라. 제발 날 떠나라.\\\" \\\"아니올시다. 죽어도 나는 갑니다.\\\" 그 여인이 모압에 살던 여인으로 그저 실패하고 실패한 할머니 따라서 이 모압 여인 룻이 따라오기에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겠습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자존심 상할 겁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무엇을 보고 왔습니까? 모압 땅으로 이사왔던 엘리멜렉 나오미의 집안가운데에서 흐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겁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내가 붙으리라. 나는 목숨을 걸고 나아가리라.\\\" 베들레헴을 버리고 갔던 이 가정에 비하면 베들레헴을 버리고 가서 모압 땅에 묻힌 사람들에 비하면 이 여자는 도무지 자격 없었던 태초로부터 허락 받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이 여자가 믿는 사람들의 눈치를 채고서 따라 붙었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와서 자리를 잡았더니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이 여자의 이름이 들어간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에게서 솔로몬이 나고 그에게서 다윗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장식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붙어있는 자는 천국시민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그 세계에 붙어있어야 할 엘리멜렉 가족들은 모압 땅에 가서 묻혀버리고 모압 땅에서 도무지 기회가 없었던 이 여자는 어쩌다가 주어들은 것 이 예수를 끝내 내가 가지리라 해서 출발할 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와서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가 있었으니 중요한 것은 천국 가는 길에 올라서신 여러분, 실족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혹 시험들거나 마귀가 역사해서 실족하여 떨어질지라도 마지막에 손이라도 붙잡고서 물에 빠지던 베드로가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듯이 마지막 손을 놓치지 마시고 살려달라고 한다면 살려달라는 사람을 한 사람도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구원이 여러분의 손을 붙잡아 다시 끌어올릴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빠지더라도 어느 정도만 빠져야지 물론 빠지지 말아야 하지만, 물론 여러분 나쁜데로 빠지지 말아야 되지만 혹 어쩔 수 없어 빠지고 싶으면 죽어도 한번 이번 추석에 내가 한번 빠지련다 이런 생각 있는 사람 있으면 빠지더라도 반쯤만 빠지지 엘리멜렉과 말론 기룐처럼 온통 그 땅에 가서 뼈를 묻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차라리 빠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좋은 길에 들어서서 무엇이 더 좋다고 딴 데로 가겠습니까. 한 몸이 다 되도고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십사대 십사대 아브라함부터 십사대 다윗부터 십사대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나오는데 제일 중앙에 들어있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다윗 아닙니까. 이 다윗은 가운데입니다. 쫙 뽑아 올리면 이 다윗을 잡고 올리면 예수 그리스도와 아브라함까지 쭉 달려 올라가는데 이 다윗이 중앙에 있었는데 다윗과 한 몸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앙에 있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은 흔들 수 없는 다윗입니다. 거기에 한 몸이 되었던 미갈이 있었습니다. 이 미갈은 다윗이 법괘가 들어올 때 기뻐함으로 춤을 좀 추었더니 좀 교양 없게 춤을 춘다 해 가지고서 딴에는 자기가 임금 딸이라고 잘 배웠다고 교양 좀 있다 해 가지고서 교양 없는 다윗을 향하여 교양 없다고 불평을 하다가 그만 다윗하고 떨어져버렸다 그겁니다. 교양 없는 당신하고 못살아 이렇게 해서 나갔다 그겁니다. 여러분 교양도 물론 있어야 되지만 교양가지고 천당 가는 것 아닙니다. 교양가지고 부부되는 것 아닙니다. 그저 다윗에게 끝까지 붙어있었으면 될텐데 그저 교양 내세워 가지고 춤 좀 함부로 춘다고 해 가지고서 그냥 틀어져 가지고서 돌아누워 있다가 그냥 갈라져 버리고 태도 닫혀 버렸으니까 정말 다윗과 함께 있었으면 예수 그리스도 세계의 한 복판에서 예수 그리스도 세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미갈이 탈락되어 버리고 누가 대신 다윗의 한 몸이 되어 솔로몬을 낳아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이었습니까? 참 옷기는 여자입니다. 이 사람은 허락되기는커녕 택한 민족도 아니요, 헷 족속 우리아 다윗의 군대 신복 아내였습니다. 자기 남편은 장군이요 다윗 왕의 신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족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허락에서는 벗어나 있는 저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런 여자가 다윗의 세계를 가만 보니 \\\"이것 이기고 지고 우리의 높은 사람이고 낮은 사람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다윗의 세계에는 예수가 흐르구나. 다윗의 세계에는 천국이 흐르구나.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이요 끝으로 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의 날이 흐르구나.\\\" 그래서 다윗이 항상 말한 것이 \\\"오 내 주여!\\\" 뒤에 오실 예수님을 \\\'내 주여\\\' 했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만 다윗의 회의에 들어가 보면 장관이나 장군들은 같이 부인들도 가지 않습니까?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 다윗은 우리의 왕으로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의 핵심이구나. 중심에 있는 사람 마디구나.\\\" 그래서 관심이 상당히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은 저 군대 현장에 나가 있고 다윗은 높은 사람이니까 왕궁에 있다가 자기가 탁 뒤로 나가서 항상 \\\"다윗은 중간 마디 중간 마디, 천국세계 천국세계 중간마디\\\" 하면서 쳐다보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또 홀라당 벗고 여성이 목욕하는 장면을 다윗의 눈에 다윗의 눈에 들도록 했는지, 다윗이 담 넘어가서 본 것도 아닙니다. 왕궁 옥상에 올라가서 돌아다니는데 볼 수 있는 자리인데 뭐 하려고 그렇게 그 목욕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여자가 노출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인데, 그래서 다윗이 탁 보고 하도 아름다우니 \\\"저 여인을 데려와 봐라.\\\" 그랬더니 다른 여자 같으면 목숨걸고 못 가겠다 해야될텐데 다윗이 부르는데 가 가지고서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이 동침하자고 할 때 안됩니다 한 적이 없습니다. \\\"내 몸을 정하게 하고 들겠나이다.\\\" 바로 이리 됐습니다. 이 사람 참 한편으로 따질 것 같으면 말이 안되지요. 말이 안 되는 여자이지요. 그렇지만 말이 안 되는 짓을 해 가지고서 솔로몬을 낳더라고요. 여러분, 여러분이 말 안되는 짓 하라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뭐나 하면 다윗 한 몸이 되었어도 끝까지 그 마디를 붙들지 못했으면 미갈처럼 탈락하는 것이고, 도무지 붙들 수 없는 사람이라도 자기를 부인하고 가족을 부인하고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운데 마디 다윗 마디를 붙잡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이 밧세바가 올라가더라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으면 천국이라고 하는데 이 천국은 곧 믿음이라고 하는데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천국은 곧 믿음은 예정된 자 허락 받은 자에게서 난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무엇에서 난다고요?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누구로 말미암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 그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국은 주 예수로 말미암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고 지키면 막을 수 없는 열린 문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주의 말씀을 받고 믿고 이 밤도 나와서 지키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다는 이 사실은 내가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엿듣다가 찾아 들어온 것인지, 밧세바처럼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오늘 나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 되어 있다는 사실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붙들었던 것 이미 한번 믿었으니까 \\\'저절로 천국\\\' 하지 마시고 천국 문 이르는 그날까지 더 강하게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집에 오늘도 마치고 들어가면 집 대문 열고 들어갈 겁니다. 드르륵 하는 여닫이인지 철커덕하는 대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의 대문은 아침에도 열고 저녁에도 닫고 자주 대문소리 듣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시는데 그것은 많이 해봤으니까 그것은 상식적이지만 꼭 한번 열어야될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한번 들어가봐야 될 곳이 있습니다. 어느 문입니까? 천국 문입니다. 천국 문 한번 열어야지요. 우리가 거기 가까이까지 갔는데 천국 문이 척 닫혀버리고 안에서 목소리가 나오기를 \\\"나는 너를 모른다.\\\" 이 소리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갈 때 한번에 열려야지요. 오늘 저녁에 예배보고 갔다고 해 가지고 안 믿는 가족이 오늘 문 잠궈놓고 너 들어오지 마라 해서 그 문은 안 열려도 좋을지 몰라도 여러분, 천국 문 앞에 갔을 때 문 반드시 한번 열려져야 됩니다. 그 열리는 소리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문턱을 넘어야 됩니다. 반드시 한번 넘어갑시다. 찬송 부릅시다. 104장입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이 찬송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있을 때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불렀습니다. 여러분 성지순례 가서 온 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듣다보면 몇가지 나오는 곡 중에서 이 곡이 항상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오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이 독립되었는데 왜 이 노래는 계속 부르느냐? 이제 만민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겁니다. 다시 오실 주님이 오셔서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는 그 임마누엘은 천국일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다같이 찬송합시다.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2)/ 눅8:9-15, 마13:1-9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2) 눅8:9-15, 마13:1-9 지난주 기상 악화로 공항에서 출발하다가 다시 비행이 취소되어서 여러분을 이 시간에 뵙지 못했고 수요일 날 대신 설교하였습니다. 그래서 혹 수요일 날 부득이 해서 못 참석하신 분들은 아마 테잎을 준비하라고 부탁 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주제가 같기 때문에 지난번에 1번이고 오늘 2번 주제로 말씀드리기 때문에 이어서 참고하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여전히「백배의 결실은 주님의 뜻인가」라는 주제로서 두 번째 시간 말씀을 드리고 또 다음 시간까지로 해서 이 주제를 마칠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확보한 자만이 천국인이 된다 라고 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다 듣고 깨닫고 확보해서 천국인이 되려면 선택된 사람 허락 받은 민족이어야 가능하다 라는 관점에서 지난 시간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성경 많이 보고 또 신학 공부하신 분들이 말하기를 \\\\\\\"따지고 보면 우리는 이방인이요, 하나님의 택한 민족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대인이라고 말씀들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러면 괜찮은 건가?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확실하게 믿고 있지 않는가? 이 믿는 것은 허락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한번 허락 받은 사람이 지옥 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안심이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본 주제 시리즈 1번과 또 오늘 말씀 본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특색 한가지가 있다 라고 한다면 주께서 정작 그 백성들에게 알려주시고 싶어하셨던 내용 설교하시고 싶었던 그 내용은 바로 말씀해 주시지 아니하시고 엇 삐딱한 비유로써 말씀했거나 아니면 들을 수 없도록 작은 소리로 했다는 겁니다. 모든 무리가 주님의 말씀 전체 속에서 또 가르치신 시간 전체 속에서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씀은 다만 끝마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그 한마디는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앞의 정작 핵심적인 내용은 비유로 말씀했고 듣지 못하게 하셨다 라는 겁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느냐 라고 밝혔는데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알려주지 아니하려고 했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허락된 사람들, 허락된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또 어떻게 하셨는가 하면 허락되었으면 대강 하셔도 될 것 같은데 하늘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몇 사람들에게 대하여는 아까 비유도 들었고 한데도 또한 해석을 덧붙여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재차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는 사실도 우리가 발견해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그 본문의 사건들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성경을 보면서 그저 쉽게 간단히 편하게 읽어버리면 지금 전까지 말씀드린 이런 내용 \\\\\\\"허락된 자는 하늘의 비밀을 알게되고 허락 받지 못한 사람은 들을 기회도 없다\\\\\\\" 이렇게 이제 정리가 되겠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사건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많은 사람이 아는 것처럼 \\\\\\\"예정된 사람 허락 받은 사람은 어김없이 천국 간다. 어김없이 구원받는다. 예정된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하나님이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예정해 두었으면 그 사람은 구원받고야 만다.\\\\\\\" 이런 주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본문의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허락된 자 곧 예정된 자라도 어김없이 천국 다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본문이 말하여주고 있습니다. 좀 충격적인 내용이 되겠습니다만 본문 누가복음 8장 15절에 나타난 대로 천국의 결실을 맺으려면 듣고 깨닫고 그리고 인내로 지켜야 결실할 수 있다 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다 나다가 말고 기운이 없어 꺾이고 결실이 안 된다는 겁니다. 천국의 알곡이 되려고 하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믿고 인내로 지켜야 된다 라고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기본입니다. 이것이 기본인데 또 아까 읽었습니다만 길에 떨어졌다는 말씀이 어디에 나오지요? 12절 한번 보실까요. \\\\\\\"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그랬어요. 그러니까 마귀가 와서 우리들더러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들어간 말씀을 빼앗아 낸다는 겁니다. 물론 뿌려졌는데 심기어졌는데 말씀을 하여간 속에까지 들어가서 마음속에 들어가서 막 일을 일으켜 가지고서 잊어버리게 만들고 쪼아 내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자마자 곧 구원이 아니라 들어가서 깨달아지고 믿어지면, 그러니까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고 깨달아지면 구원이 된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래서 이 마귀가 구원을 못 받게 하려고 뽑아내는 것이 무엇이냐? 들어간 말씀이 씨앗 되기 전에 뽑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이 씨앗 된 말씀이 열매되기 전에 뽑어버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마귀가 길가에 스치듯 항상 우리에게 들어온 말씀을 빼앗기 때문에 아주 감명 깊게 들은 것을 한 삼일도 못 가서 아주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그 마귀가 쏙 뽑아내어 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우리가 재미있게 들은 얘기를 열흘 한 달 가도 그 얘기를 누가 다시 하면 다 기억하거나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게 깡그리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이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참으로 기쁨으로 받았는데 어떤 경우는 삼일 지나고 나니까 무슨 말들었는지 도무지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어요. 확실하게 뽑아내어 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말씀 그렇게 쉽게 뽑혀나갈 수 있는, 그 다른 얘기들은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상당히 기억이 오래갑니다. 그러니까 이 다른 얘기와 주의 말씀이 그렇게 다른 겁니다. 철학적인 설교를 들었다면 인격적인 교양설교를 들었다면 그것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항상 나이 많은 부모님들도 자식들보고 \\\\\\\"목사님 뭐라 하더냐? 이렇게 하라고 하지 아니하더냐.\\\\\\\" 그런 것은 잘 기억합니다. 그것은 세상에도 가르쳐주는 얘기이니까요. 그러나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하늘 양식 이 씨앗은 쏙 뽑아버리면 하나도 모르게 잊어버린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뭡니까?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리고 그 말씀대로 지켜야 천국의 열매가 되는 것인데 왜 제가 허락 받은 자라도 예정된 자라도 천국에 못 갈 수 있다 라는 이 본문에서 알 수 있느냐 라고 말씀드렸는가 하면 주님께서 이미 허락된 자에게도 비유의 말씀만 해주신 것이 아니라 비유를 잘 깨닫지 못하니까 기어이 깨닫게까지 해주시려고 불러들여 가지고서 씨는 무엇이며, 바위라는 것은 무엇이며,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무엇이며, 전부 깨닫게 해주니까 그때 제자들이 \\\\\\\"아멘 아멘, 아이고 이제 알겠습니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믿느냐?\\\\\\\" 바로 이렇게 해준 겁니다. 만약에 이미 허락된 자라면 이 허락은 지금 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허락된 자입니다. 이미 허락된 자 예정된 자가 저절로 어김없이 전부 천국 간다면 무엇을 이렇게 애써서 두 번 세 번 가르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천국 가고 못 가는 믿음은 허락에 달려있다 라고 했습니까? 말씀에 있다고 했습니까? 이 말씀에 있다 그겁니다. 그래서 마귀가 뽑아내는 것은 허락된 증서를 불태우거나 거기에다 먹물을 부어 가지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서 구원시킬 말씀을 뽑아낸다 그랬지요.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니까 이미 허락된 자라도 예정된 자라도 혹 천국 못 갈 수도 있는데 어떤 경우에 못 가느냐?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못 간다는 겁니다. 믿지 못하면 못 간다는 겁니다. 그래서 허락된 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재차 재차 말씀을 하시면서 깨닫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보니까 허락되었다 라고 천국 알곡이 되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자에게는 뭐가 간다고요? 말씀이 간다 그겁니다, 그래서 허락된 자가 말씀을 받아들여서 주 예수를 믿을 때 비로소 천국시민이 되는 것이지 이미 허락되었다 라고 자동적으로 천국,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본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던 생각들과 좀 달라서 우리 성도님들께서 갸우뚱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 다음에 또 두 번째 내용은 \\\\\\\"허락되지 아니한 자, 예정에 없던 사람 이 사람들은 지옥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았으면 하나님께서 예정하지 않았으면 제아무리 뛰고 제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안되고, 막판에 가서 타락해버리는 것이고 예정된 사람은 아무리 죄짓고 제멋대로 돌아다녀도 마지막 죽기 전에 하나님이 반드시 불러낸다.\\\\\\\" 이제 이런 얘기를 하면서 믿는 가정에서 잘못된 자식들이 있을 때 \\\\\\\"걱정 마십시오. 하나님이 택해둔 자녀인데 어디 가겠습니까? 죽기 전에 반드시 구원받습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죽지도 않습니다.\\\\\\\" 이런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이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허락된 자라도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지 않으면 천국의 알곡은 될 수 없다 라는 사실과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은 세상없어도 못 간다 이런 논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만 아니한 자라도 만일 이 사람이 허락된 자들이 듣고 있는 말씀을 주섬주섬 주어 듣고 \\\\\\\"그게 진리구나. 천국이 거기에 있구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죄를 사신거구나.\\\\\\\" 여러분, 죄를 사하신 것은 믿는 자의 죄만 사했습니까? 모든 자의 죄를 사했습니까?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는 그 능력을 힘입는다 그겁니다. 그러면 이미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만약에 들을 기회가 있어서 귀를 내밀어 가지고서 듣고 허락된 자들이 믿는 것처럼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도 믿기는 매일반이다 그겁니다. 그래서 만일 믿게된다면 믿게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락되지 아니했던 이유로 \\\\\\\"너는 안돼. 너는 암만 잘 믿어도 너는 본래 허락이 안되었기 때문에 너는 지옥이야.\\\\\\\" 하면서 천국문턱에서 차 밀어내겠느냐?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왜 알 수 있느냐 하면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 갈까봐 예수님께서 조심한 조심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듣고 아무리 깨달아도 천국 못 가게 되어있다면 그것이 고정적인 흔들 수 없는 사항이라면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에게 엇 삐딱한 비유로 말씀하겠습니까? 그리고 안 들리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그 수많은 사람 모아놓고서 상당한 시간동안 말씀을 전하고서 뭐하노 뭐하노 했더니 들리지도 않게 중얼중얼 하길래 \\\\\\\"무엇을 하고 계신가? 앞에 제자들하고 상의하고 계신가? 우리 이렇게 모아놓고 뭐 회의하는가?\\\\\\\" 이러고 있었는데 이제 설교 시작하는가 싶었더니 고개를 바짝 드시고서 하시는 말씀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하니까 사람들이 \\\\\\\"암 그럼요. 이제 들어야지요.\\\\\\\" 귀를 세우는데 끝났다 라고 하니, 그러니 주님께서 이렇게 조심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허락 안된 사람은 자동적으로 지옥이라면 그냥 똑같이 설교해도 되지 않습니까. 오해 살 것도 없고 끌려나가 가지고서 뭐 낭떠러지에 떨어질 이유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되지 아니한 사람이 천국 들어올까봐 깨닫지 못하게 노력을 한 것을 보면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가 있습니까?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도 혹 그놈이 끼어 들어와 가지고서 허락 된 사람들이 듣는 설교 다 듣고 허락된 사람보다 먼저 아멘해 버리면 주의 말씀 듣고서 믿어서 아멘 했는데 지옥 보낼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간단히 읽어버리면 맨 위의 \\\\\\\'허락된 사람은 천국이요 허락 안된 사람은 세상없어도 지옥\\\\\\\' 이런 논리가 되어버립니다만 그러나 예수님의 행하신 이 일을 한 꺼풀 열어 가지고서 왜 허락 안된 사람들에게는 말씀을 못 듣게 노력했고 허락된 사람에게는 두 번 세 번 가르쳐서 깨닫게 했느냐 그겁니다. 그러니까 허락된 자라도 말씀 깨닫고 믿지 못하면 불가하고 천국이 불가하고 허락 안 된 자라도 혹 끼어 들어와 가지고서 목숨걸고 말씀을 듣고 허락된 사람이 믿는 것처럼 믿어버리면 천국에 들어오는 일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본래 선민이라고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닐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천국이 어떤 데인 줄 알았으면 끼어 드는데 믿고 들어가는데 막을 수 없다는 겁니다. 너희는 이방인으로서 이미 허락 안되었기 때문에 믿어도 소용없다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혹 하나님의 이미 허락된 민족이라도 좋고 아니었을지라도 지금 믿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제가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겠구나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조금 염려스러워 하실 분들이 게실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면 이 본문 사건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전체가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 하십니다. 조금 불편하시지만 성경을 몇 군데 찾겠습니다. 마태복음 15장을 열어보십시다. 마태복음 15장 21절부터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1-28) 했어요.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내용은 마가복음 7장 24절로 30절에도 있습니다만 마가복음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표현되어있습니다. 가나안 여인 더 구체적으로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 계신 곳에 왔습니다. 자기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려서 고통 중에 있으므로 주께 구원을 요청하러 왔던 것입니다. 왔더니 예수님께서는 이미 허락된 유대인들과 한 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이제 복음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 여인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면서 주님의 구원을 요청합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그 허락된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하는 말이 \\\\\\\"예수여, 저 여자를 보내소서. 저 여자는 상관할 수 없는 여자 아닙니까? 해당되지 않는 여자 아닙니까? 보내소서.\\\\\\\"라고 했더니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말에 동조했습니다. \\\\\\\"그래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했노라. 저 이방 여인에게 내가 보냄을 받지 아니했노라. 나는 관심 없어. 내가 온 것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노라.\\\\\\\" 이스라엘은 원래 허락된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이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에 아직 들어오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왔으므로 내가 이스라엘과는 대화를 하지만 저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노라.\\\\\\\"라고 주님이 말씀합니다. 여자가 이 소리를 듣고 주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어떻게 드렸느냐 하면 자존심 상한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어떻게 사람을 차별대우합니까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가 하는 말이, 이제 주님께서 그 여자에게 아주 강한 표현을 한 것이 바로 이 말이지요. \\\\\\\"아들의 떡을 취하여…\\\\\\\" 여기는 자녀의 떡이라고 했습니다만 마가복음에는 \\\\\\\"아들의 떡을 취하여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여자가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가 자존심 상해서 시험 들어서 가지 아니하고 \\\\\\\"주여 옳소이다. 떡을 취하여 자기 자식에게 주지 어찌 우리에게 어떻게 주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볼 때 우리는 사람도 아니고 개 아닙니까? 개?\\\\\\\" 상종도 안 했습니다. 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상종을 안 했는데 하물며 수로보니게 가나안 사람이야 더욱 상종을 안 했습니다. 바로 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나안 여인이 주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옳소이다만 상 아래 개들도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제발 그저 그 둘러앉아서 하시는 그 말씀 나타내는 그 예수 이름의 능력을 내가 이 대청 마루 밑에 이 판 아래에 기다릴 테니까 내 귀에 들리도록 하는 것까지는 막지 말아주소서. 상아래 개들도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지 않습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개 취급당할 민족이지만 나는 다른 개밥을 먹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내 밥으로 삼겠습니다. 그것이 쌀밥이 되었던지 부스러기가 되었던지 뼉다귀가 되었든지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먹는 그 양식을 주소서.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능력을 주소서.\\\\\\\" 그때야 주님께서 태도를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주님이 바라신 것이 무엇입니까? 아주 정색을 하시면서 \\\\\\\"여자여 안심하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뭡니까? 이미 허락되지 아니한 자 개 취급을 받아야 될 사람이라도 주님에게 달려와서 허락된 사람들이 받는 것에 귀를 귀울여 같이 듣고 같이 주의 말씀을 같이 깨닫는 것은 허락된 사람이나 안된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이 깨달아 그 양식으로써 살겠다고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주님이 그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가 믿었기 때문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했더니 그 시로 그 아이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고 바로 나았으니 그 수로보니게 여인이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따르겠다 하시니 바로 주님의 이름이 그에게서 구원으로 나타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겁니다. 뭐 허락된 사람 허락 안된 사람 해서 지금도 저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허락된 사람이고 저 이방인들은 모두 지옥 갈 사람이라고 하고들 있습니다만 정작 성경이 가르쳐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허락 안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아와서 사모하고 매달려 믿는 자의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깊이 알지 못하면 관심 있게 보지 못하면 허락된 사람은 따로 있고 허락 안 된 사람은 전부 지옥 가는 것처럼 간단히 생각할 수 있으나 아니요, 주님의 행하신 모든 일에서 듣고 믿으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많은 예를 성경에서 들을 수가 있습니다만 시간 관계상 한군데 성경에서 더 봅니다. 마태복음 22장 2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이미 허락되어 오도록 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여기서 알 것은 바로 청해서 지금 오십시오가 아닙니다. 이미 예약해 놓았습니다. 이미 청했고 때가 되면 오겠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잔치를 베풀어놓고 오라 한 겁니다. 이게 두 번째입니다. 이미 청한 사람들을 이미 청해서 오라 했던 사람들을 이제 오라 이렇게 되었던 겁니다. 그 내용이 그런 겁니다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 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3下-14) 천국은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미 청한 사람들, 이미 청한 사람들은 이 내용으로 볼 때 오늘 결혼식이 있으니 지금 오십시오가 아닙니다. 결혼 날짜는 아직 안 잡았습니다. 이 임금의 아들 결혼 날짜가 있는데 결혼을 할텐데 결혼 날짜가 잡히면 음식이 다 장만되면 그때 다시 연락을 하겠습니다 라고 되어있던 사람들입니다. 여기의 아들은 누구이겠습니까? 임금은 누구이겠습니까? 임금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요 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 청한 사람들은 우리들처럼 예수 이후에 사는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은 예수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는 그리스도가 올 것을 그 날 잔칫날이 올 것을 모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듣고 있었습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청하였고 잔칫날은 언제냐?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려야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아나는 겁니다. 무덤에서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일어나는 잔치가 일어나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미 청함을 받았던 사람들은 이 날을 기다렸던 겁니다. 주님이 오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이미 청하였던 사람들에게 가서 \\\\\\\"오소서. 지금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의 피를 마시시오. 그의 살을 먹으시오. 그리고 그의 부활을 믿으시오.\\\\\\\" 잔치 참 훌륭한 잔치 천국 가는 잔치가 베풀어졌다 라고 하여 전부 오라고 했더니 이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오는 사람 몇 명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헤 그게 무슨 메시아야? 그게 무슨 그리스도야? 차라리 세례 요한에게 갔으면 갔지 나는 안가. 안가.\\\\\\\" 하면서 전부 다 자기의 볼일을 다 보았습니다. 다 보았습니다. 이미 허락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천국의 잔치에 들어오도록 되어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성경 그대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막상 잔칫날 잔치를 베풀어놓고 오라고 하니까 \\\\\\\"밭에 간다. 상업차로 간다. 어디 간다. 바쁘다 바쁘다. 나 관심 없다. 다른 사람이나 먹여.\\\\\\\" 하면서 오지 않았습니다. 오지 않았지만 먹지 않았지만 이미 청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허락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예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두 천국에 들어갔습니까? 임금이 노하여 종들을 시켜서 그들을 전부 죽이고 그들이 사는 땅을 불사르라 했다 그겁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허락되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자이면 허락된 대로 예수 믿어야 할 줄 믿습니다. 천국은 예수 이름을 초월해서는 들어갈 수 없으니 허락되었다면 예수 믿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허락 다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을 때에 천국은 확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허락된 사람들이 오지 아니하니 잔치는 벌렸고 천국의 홀은 큰데 천국 식구들만 앉아 가지고서 잔치를 넘기려니 너무나 허술하고 분위기가 맞지 아니하니까 \\\\\\\"그러면 할 수 없다. 사거리 길로 가서 선한 사람이든지 악한 사람이든지 당장 데리고 와라.\\\\\\\" 그랬어요. 예수님 이후에는 예수께로 가면 바로 받아들이면 믿을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께로 갔는데 내가 믿음이 확정되는 것은 내 몇 대 후에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믿어집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잔치 베푼 후에 갔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정되었던 사람들은 잔치가 베풀어질 것을 대를 이어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잔치 베풀었다 오라 하니 오지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 아닙니까. 저 유대인들은 예정된 자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지금도 택한 민족이라고 야단들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습니다. 말씀 듣지 않습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러고도 천국이 되겠느냐 그겁니다. 이 성경은 그것을 분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거리 길에서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두 다 들어오라 해서 바로, 이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날 바로 들어갑니다. 바로 잔칫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가득 손이 찼는데 들어와서 임금이 들어와 착 훌터보니까 모두 예복을 입었는데 한 사람만 예복을 안 입은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이 다 예복을 입었는데 하나 예복을 안 입었으면 그냥 봐줘도 될 것인데 하나님 나라 천국 안 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예복을 입지 아니한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로 말미암아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라는 사실입니다. \\\\\\\"형제여, 그대는 왜 예복을 입지 아니하였소?\\\\\\\" 그가 유구무언이거늘,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주님의 잔치에 나아간다 할지라도 아무리 교회에 나온다 할지라도 주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받지 아니하면 예복을 입지 아니하면 쫓겨나간다는 겁니다. 청함을 받은자는 많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지극히 작구나 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혹 우리가 이미 허락을 받았으니 천국 가기로 되어있으니 잘 믿어도 천국 가고 못 믿어도 천국 간다 이런 생각 마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니 혹은 택한 민족이 아닐 수도 있지 않는가? 허락 받지 못한 민족일수도 있지 않느냐.\\\\\\\" 그것 때문에 걱정도 하시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진정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받은 사람이든지 안 받은 사람이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이시라는 겁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행동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도 이만한 믿음을 가진 자가 없도다.\\\\\\\" 그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려는 것입니까? 불쌍해서 봐주었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택한 민족이요 아무리 선택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천국은 자기 것이 되지 아니하며, 아무리 이미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뛰어들어서 믿겠다고 하면 믿으면 천국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로 그 앞서에도 설교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미 선택받았다 라고 하는 사람 대단한 자기의 그 신분과 위치를 가지고서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초대는 했지만 가히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도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선지자라면 지금 향유를 붓고 있는 이 여자가 죄인인줄을 알았을텐데…\\\\\\\" 이런 정도로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여인은 죄인이라는 이름이 걸려있는 그런 죄인인데 주님께 와가 지고서 눈물을 발을 씻기고 머리털로 발을 닦고 비싼 향유를 그 발에 붓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발씻을 물도 주지 아니했던 택함 받았다 라고 하는 바리새인들 천국인으로 선정했습니까? 아니면 죄인이었던 이 여자를 천국여인으로 삼았습니까? 죄인이었던 이 여자를 천국여인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성경전체는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리 갈 사람 따로 되어있고 안 갈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혼인집에 정작 오게 되어있었던 사람들은 오지 아니하고 대신 들어온 이방인들이 오히려 주객이 되었던 것을 여러분은 이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 성경 전체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이냐? 믿어야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들을 하시고 이렇게 행하시니 과연 우리들을 위하고 계신가? 우리라도 그 허락 받았던 사람과 똑같이 주님께서는 여기시고 믿기만 하면 되는가? 과연 주님의 생각은 어떠했는가? 그 당시의 바래새인들은 주님의 이런 일들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마태복음 22장 14절로 15절을 한번 더 살펴보도록 합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라고 말씀을 맺었습니다. 맺었더니 15절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나오는가 봅시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예수님을 구슬려 가지고서 예수님을 책잡아 죽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기분이 나빴습니까?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이 청함을 받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었습니다. 유대인들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으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했어요. 막상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에 온 사람은 적었다 그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는 실제로 무엇입니까? 말씀의 잔치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듣고 믿으면 구원이 일어나는 것인데 마귀가 구원을 못 받게 하려고 무엇을 뽑아낸다고 했습니까? 말씀을 뽑아낸다 했다 그것입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세상 말씀 같으면 세상 얘기 같으면 적어도 들으면 몇 달은 기억이 갑니다. 그렇게 하루만에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세상 얘기는 뽑아내지 않아요. 그러나 구원을 못 받으려면 무엇을 뽑아냅니까? 천국말씀을 뽑아낸다 그겁니다. 바로 하나님 말씀을 뽑아내어 버린다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듣고 믿고 지키는 것 좋지만 혹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쉽게 잊어버려서 \\\\\\\"아, 내가 그저께 설교를 그렇게 은혜롭게 들었는데 그때 아멘 아멘 하고 굉장히 기뻤는데 무엇을 들었는가?\\\\\\\" 전혀 잊어버렸거든 \\\\\\\"아하, 마귀가 다 된 구원을 빼어갔구나. 내 속에 들어왔던 것을 빼어갔구나. 이 다음에는 마귀를 접근 못하게 하고 성령과 그 능력으로 내 안에 충만케 하셔서 말씀에 싹이 나게 하리라. 나는 정말 귀한 말씀을 또 들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우리가 가져봐야 될 줄로 믿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많았으나 그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택함받은 이 적은 사람들 이 적은 사람들 이 내 사람들이 내 사람들이라 하는데, 자기들은 허락된 줄로 알고 무조건 천국시민이 될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합당치 않다 라고 말해버리니 얼마나 골이 났던지 이 15절에 바리새인들이 그냥 예수를 올무에 걸리게 해 가지고서 예수를 사형에 처하게 하려고 자기 종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보내 가지고서 \\\\\\\"옳으시고 옳으신 주님이시여\\\\\\\" 하면서 접근을 해 가지고서 그 뒤에 보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안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이렇게 걸고 넘어져 가지고 예수를 걸고넘어지려고 이렇게 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한 것을 보니까 뭡니까? 자기들은 허락되었으니 저절로 갈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보니까 허락되었다 라고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이 골이 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말씀들 뒤에 마태복음 11장 12절 뒤에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침노는 이미 허락된 사람 들어오도록 되어있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침노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들어올 수 없는 사람, 외국인, 비자 없이는 못 들어올 사람이 들어왔을 때 불법 입국했다고 그러고 침노해 들어왔다고 하지, 아니 내 가족 내 백성이 우리 시민이 우리나라 들락날락 침노했다고 합니까? 출국했다가 들어왔다고 그러지요. 침노는 자기 민족이 들어온 것이 침노입니까? 외국 적이 들어온 것이 침노입니까? 적이 들어온 것을 침노다 그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까 소개한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천국은 이미 들어오게 되어있는 사람이 저절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들어오게 되어있지 않던 사람들이 믿어서 들어오면 천국은 먹힌다는 겁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이것이 언제로부터 가능했느냐? 세례 요한의 때 이후 예수로부터 가능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이후에 천국을 침노할 수 있었으니 천국에서는 우리가 침노해 들어가면 \\\\\\\"저 적이 들어왔다. 간첩이 들어왔다. 죽여라. 쫓아내라.\\\\\\\" 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스스로 침노를 당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가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느냐? 이미 허락된 자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기준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택한 민족이었던지 아니었던지 혹 이스라엘이 아니라도 혹 내가 허락을 받았던지 안 받았던지 그런 것 상관없이 허락 받았다 할지라도 믿지 아니하면 탈락하는 것이요, 허락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예수의 소식 들었을 때 같이 끼어 들어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하고 달라 붙으면 천국의 방식은 절대 끊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허락 안 되었고가 천국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기준이 아니라 믿고 안 믿고 그것이 기준이라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니 나의 신분이 허락된 자에 속하던지 안 허락된 자에 속하던지 상관하지 마시고 오늘날 믿고 있음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밤 시간까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일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번 붙잡았던 것을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 본문 마지막 절에 말씀하기를 한번 붙잡았으면 듣고 깨닫고 믿어서 인내로 계속 기다려서 결실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믿으면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실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듣고 깨닫고 즐거워서 아멘 했다고 바로 결실이 아니라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곳 하나님의 땅 하나님의 마을 구원이 나타날 마을 베들레헴, 이 베들레헴을 버리고 세상 임금이 주장하는 잘 산다고 하는 모압 땅으로 갔던 엘리멜렉 나오미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 이들은 이 지구촌에서 단 한곳 적은 마을, 구원이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을, 그 마을에 본래 살던 사람들인데 그곳에 들어가서 살았다는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데 흉년이 좀 들고 먹고살기 좀 힘들다고 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그 하나님의 성지 이미 예정된 땅을 벗어나서 세상 임금이 지배하는 문화적으로 잘 살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모압 땅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다가 거기에서 묻히고 맙니다. 그들의 뼈를 베들레헴에 묻지 못하고 베들레헴으로부터 조금 견디지 못해 가지고서 모압 땅으로 가서 묻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베들레헴에 그냥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텐데 그 할아버지 엘리멜렉이 거기에 가서 뼈를 묻어버렸습니다.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거기에 가서 뼈를 묻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이름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는 가히 들어갈 수도 없었던 사람 세상 임금이 주장하는 저 모압 땅의 풍요와 함께 살던 여자 룻이라는 여자는 이게 왠일입니까? 한 가정이 이주를 해왔다 라고 하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두 아들이 있는데 생긴 것도 자기들 남자들보다 좋았던 것 같지요. 아무래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은혜 받고 살았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았으니 교양도 있었을 것이고, 그러니까 자기 모압 사람 청년들보다 나아서 그만 거기에 기웃 기웃 데이트를 좀 했던 모양인데 듣고 듣고 하다보니까 \\\\\\\"어야 이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야. 하나님의 사람들이구나.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구나. 천국이 걸려있는 사람들이구나.\\\\\\\" 이 지혜로운 이 여자가 발견했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의 자식을 낳고 이 사람들과 함께 이 사람들의 고향으로 가리라. 베들레헴 성지로 가리라.\\\\\\\" 하고 있는데 웬걸 그 좋은 베들레헴 성지를 버리고 조금 배고프다고 견딜 수 없다고 해 가지고 도망 나와 가지고서 모압 땅에 시아버지가 꼴깍해서 뼈를 묻어버리네요. 남편이 꼴깍해서 죽어 뼈를 묻어버리네요. 시동생도 또 죽어버리네요. 나중에 과부만 남아서 시어머니 과부 자기도 과부, 과부만 둘 남아가지고서 가만히 시어머니가 \\\\\\\"아이고 아이들아, 룻이여 오르바여, 너희 곳으로 가라. 너희는 젊었으니 새 남자를 만나라. 나는 이름이 나오미라 희락이라 지었지만 희락이 웬말인고? 내 이름을 마라라 해라. 나는 쓴 고민이다. 나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가노라. 너희는 너희의 곳으로 가라.\\\\\\\" 오르바는 \\\\\\\"어머니 안녕히 가십시오.\\\\\\\" 남편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혼자 있는 시어머니를 받들 겁니까? 엘리멜렉도 죽고 아들 둘 다 죽어도 살아 버티는 나오미라면 쉽게 죽을 할머니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살 사람을 자기가 어떻게 그 시어머니로 받들 겁니까? 어미니 안녕히 가십시오 하고 친정으로 가버렸고 딱 룻은 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이 늙은 시어머니 아마 오래 살 것 같은데 아들이 죽어도 안 죽고 버티는 이 시어머니가 오래 살 것 같지만 내가 시어머니 받드는 고생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이 사람들에게는 베들레헴이 있고 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있으니…\\\\\\\" 그래서 그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갑니다. 어머니의 고향이 내 고향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친족이 내 친족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다. 떠나가라. 나를 슬프게 마라. 나오미가 아니고 마라라. 제발 날 떠나라.\\\\\\\" \\\\\\\"아니올시다. 죽어도 나는 갑니다.\\\\\\\" 그 여인이 모압에 살던 여인으로 그저 실패하고 실패한 할머니 따라서 이 모압 여인 룻이 따라오기에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겠습니다. 참으로 불행하고 자존심 상할 겁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무엇을 보고 왔습니까? 모압 땅으로 이사왔던 엘리멜렉 나오미의 집안가운데에서 흐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겁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내가 붙으리라. 나는 목숨을 걸고 나아가리라.\\\\\\\" 베들레헴을 버리고 갔던 이 가정에 비하면 베들레헴을 버리고 가서 모압 땅에 묻힌 사람들에 비하면 이 여자는 도무지 자격 없었던 태초로부터 허락 받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이 여자가 믿는 사람들의 눈치를 채고서 따라 붙었습니다. 그가 베들레헴에 와서 자리를 잡았더니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이 여자의 이름이 들어간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에게서 솔로몬이 나고 그에게서 다윗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장식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붙어있는 자는 천국시민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그 세계에 붙어있어야 할 엘리멜렉 가족들은 모압 땅에 가서 묻혀버리고 모압 땅에서 도무지 기회가 없었던 이 여자는 어쩌다가 주어들은 것 이 예수를 끝내 내가 가지리라 해서 출발할 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와서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가 있었으니 중요한 것은 천국 가는 길에 올라서신 여러분, 실족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혹 시험들거나 마귀가 역사해서 실족하여 떨어질지라도 마지막에 손이라도 붙잡고서 물에 빠지던 베드로가 주님께 구원을 요청하듯이 마지막 손을 놓치지 마시고 살려달라고 한다면 살려달라는 사람을 한 사람도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구원이 여러분의 손을 붙잡아 다시 끌어올릴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빠지더라도 어느 정도만 빠져야지 물론 빠지지 말아야 하지만, 물론 여러분 나쁜데로 빠지지 말아야 되지만 혹 어쩔 수 없어 빠지고 싶으면 죽어도 한번 이번 추석에 내가 한번 빠지련다 이런 생각 있는 사람 있으면 빠지더라도 반쯤만 빠지지 엘리멜렉과 말론 기룐처럼 온통 그 땅에 가서 뼈를 묻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차라리 빠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좋은 길에 들어서서 무엇이 더 좋다고 딴 데로 가겠습니까. 한 몸이 다 되도고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십사대 십사대 아브라함부터 십사대 다윗부터 십사대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나오는데 제일 중앙에 들어있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다윗 아닙니까. 이 다윗은 가운데입니다. 쫙 뽑아 올리면 이 다윗을 잡고 올리면 예수 그리스도와 아브라함까지 쭉 달려 올라가는데 이 다윗이 중앙에 있었는데 다윗과 한 몸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앙에 있는 사람이니까 이 사람은 흔들 수 없는 다윗입니다. 거기에 한 몸이 되었던 미갈이 있었습니다. 이 미갈은 다윗이 법괘가 들어올 때 기뻐함으로 춤을 좀 추었더니 좀 교양 없게 춤을 춘다 해 가지고서 딴에는 자기가 임금 딸이라고 잘 배웠다고 교양 좀 있다 해 가지고서 교양 없는 다윗을 향하여 교양 없다고 불평을 하다가 그만 다윗하고 떨어져버렸다 그겁니다. 교양 없는 당신하고 못살아 이렇게 해서 나갔다 그겁니다. 여러분 교양도 물론 있어야 되지만 교양가지고 천당 가는 것 아닙니다. 교양가지고 부부되는 것 아닙니다. 그저 다윗에게 끝까지 붙어있었으면 될텐데 그저 교양 내세워 가지고 춤 좀 함부로 춘다고 해 가지고서 그냥 틀어져 가지고서 돌아누워 있다가 그냥 갈라져 버리고 태도 닫혀 버렸으니까 정말 다윗과 함께 있었으면 예수 그리스도 세계의 한 복판에서 예수 그리스도 세계의 어머니가 될 수 있었던 미갈이 탈락되어 버리고 누가 대신 다윗의 한 몸이 되어 솔로몬을 낳아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이었습니까? 참 옷기는 여자입니다. 이 사람은 허락되기는커녕 택한 민족도 아니요, 헷 족속 우리아 다윗의 군대 신복 아내였습니다. 자기 남편은 장군이요 다윗 왕의 신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족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허락에서는 벗어나 있는 저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런 여자가 다윗의 세계를 가만 보니 \\\\\\\"이것 이기고 지고 우리의 높은 사람이고 낮은 사람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다윗의 세계에는 예수가 흐르구나. 다윗의 세계에는 천국이 흐르구나.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이요 끝으로 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의 날이 흐르구나.\\\\\\\" 그래서 다윗이 항상 말한 것이 \\\\\\\"오 내 주여!\\\\\\\" 뒤에 오실 예수님을 \\\\\\\'내 주여\\\\\\\' 했다 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가만 다윗의 회의에 들어가 보면 장관이나 장군들은 같이 부인들도 가지 않습니까? 가만히 들어보니까 \\\\\\\"이 다윗은 우리의 왕으로서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의 핵심이구나. 중심에 있는 사람 마디구나.\\\\\\\" 그래서 관심이 상당히 있었는데 어느날 남편은 저 군대 현장에 나가 있고 다윗은 높은 사람이니까 왕궁에 있다가 자기가 탁 뒤로 나가서 항상 \\\\\\\"다윗은 중간 마디 중간 마디, 천국세계 천국세계 중간마디\\\\\\\" 하면서 쳐다보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또 홀라당 벗고 여성이 목욕하는 장면을 다윗의 눈에 다윗의 눈에 들도록 했는지, 다윗이 담 넘어가서 본 것도 아닙니다. 왕궁 옥상에 올라가서 돌아다니는데 볼 수 있는 자리인데 뭐 하려고 그렇게 그 목욕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여자가 노출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인데, 그래서 다윗이 탁 보고 하도 아름다우니 \\\\\\\"저 여인을 데려와 봐라.\\\\\\\" 그랬더니 다른 여자 같으면 목숨걸고 못 가겠다 해야될텐데 다윗이 부르는데 가 가지고서 거절한 적이 없습니다. 다윗이 동침하자고 할 때 안됩니다 한 적이 없습니다. \\\\\\\"내 몸을 정하게 하고 들겠나이다.\\\\\\\" 바로 이리 됐습니다. 이 사람 참 한편으로 따질 것 같으면 말이 안되지요. 말이 안 되는 여자이지요. 그렇지만 말이 안 되는 짓을 해 가지고서 솔로몬을 낳더라고요. 여러분, 여러분이 말 안되는 짓 하라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뭐나 하면 다윗 한 몸이 되었어도 끝까지 그 마디를 붙들지 못했으면 미갈처럼 탈락하는 것이고, 도무지 붙들 수 없는 사람이라도 자기를 부인하고 가족을 부인하고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운데 마디 다윗 마디를 붙잡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에 이 밧세바가 올라가더라 그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으면 천국이라고 하는데 이 천국은 곧 믿음이라고 하는데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천국은 곧 믿음은 예정된 자 허락 받은 자에게서 난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무엇에서 난다고요?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누구로 말미암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 그겁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국은 주 예수로 말미암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고 지키면 막을 수 없는 열린 문이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 주의 말씀을 받고 믿고 이 밤도 나와서 지키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다는 이 사실은 내가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엿듣다가 찾아 들어온 것인지, 밧세바처럼 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오늘 나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 되어 있다는 사실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붙들었던 것 이미 한번 믿었으니까 \\\\\\\'저절로 천국\\\\\\\' 하지 마시고 천국 문 이르는 그날까지 더 강하게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집에 오늘도 마치고 들어가면 집 대문 열고 들어갈 겁니다. 드르륵 하는 여닫이인지 철커덕하는 대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의 대문은 아침에도 열고 저녁에도 닫고 자주 대문소리 듣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시는데 그것은 많이 해봤으니까 그것은 상식적이지만 꼭 한번 열어야될 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한번 들어가봐야 될 곳이 있습니다. 어느 문입니까? 천국 문입니다. 천국 문 한번 열어야지요. 우리가 거기 가까이까지 갔는데 천국 문이 척 닫혀버리고 안에서 목소리가 나오기를 \\\\\\\"나는 너를 모른다.\\\\\\\" 이 소리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갈 때 한번에 열려야지요. 오늘 저녁에 예배보고 갔다고 해 가지고 안 믿는 가족이 오늘 문 잠궈놓고 너 들어오지 마라 해서 그 문은 안 열려도 좋을지 몰라도 여러분, 천국 문 앞에 갔을 때 문 반드시 한번 열려져야 됩니다. 그 열리는 소리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문턱을 넘어야 됩니다. 반드시 한번 넘어갑시다. 찬송 부릅시다. 104장입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이 찬송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있을 때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불렀습니다. 여러분 성지순례 가서 온 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듣다보면 몇가지 나오는 곡 중에서 이 곡이 항상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오시고 그리고 이스라엘이 독립되었는데 왜 이 노래는 계속 부르느냐? 이제 만민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겁니다. 다시 오실 주님이 오셔서 우리와 임마누엘 하시는 그 임마누엘은 천국일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다같이 찬송합시다. 축도 \\\\\\\"속히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인도하기 위하여 생명의 말씀 듣게 하시며 또 풀이하여 주셔서 깨닫게 하시며 믿게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지금도 여전히 증거하시고 보호하시고 실족할 때에 일으켜주시는 그 역사하심이 천국 길에 올라선 우리 산해원 모든 가족들 도무지 이 길에서 실족하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혹 넘어지더라도 주께 붙들림 받아 기어이 일어나서 받아서 천국 문 열리는 소리 한번 듣고 천국 문 열리는 것 한번 보고 천국 문 문턱을 넘어서 주님에게로 가고자 하는 모든 성도께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3)/ 눅8:16-18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3) 눅8:16-18 「백배의 결심은 주님 뜻인가」라는 주제로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있는 누가복음만 보면 그 글에 조직상 아마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던 그때와는 다른 때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대상에게 오늘 본문을 말씀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 누가복음입니다. 왜냐하면 15절에 보면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하고서 꼭 문장이 끊어진 것처럼 가운데 소절을 나누는 동그라미 표시를 넣어 두었기 때문에 아마 오늘 본문은 앞서 말씀드린 씨 뿌리는 비유와는 상관이 없는 다른 장소 다른 날 다른 대상에게 말씀한 게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혹 해 보실 수도 있습니다. 이 문체 구조상 그렇습니다만 이같은 내용을 마태가 기록한 것이 마태복음 13장에 있어서 계속해서 인용 구절로 해서 여러분이 보셨습니다마는 마태복음 13장 10절 이하에 보면 꼭 씨뿌리는 비유에 계속적으로 이렇게 문장 나누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말씀하는 가운데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10절 이하에 나타나고 있는데 오늘 본문으로 읽었던 18절의 말씀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고 쓴 것이 같은 내용입니다. 물론 단어가 조금 다르고 문자 배열이 조금 다르기는 해도 누가와 마태가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록한 같은 내용인 것으로 이해가 되기에 오늘 이 말씀도 그 지난번 주제와 연결해서 이해를 하셔야 바른 풀이를 할 수 있겠다 라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앞서 2회에 걸쳐서 허락된 자와 허락되지 아니한 자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허락된 자일지라도 허락되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자동적으로 예외 없이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허락된 자일지라도 예수 믿어야 가능하지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천국은 비록 허락은 되었던 자라도 불가하다 라는 것을 함께 생각했습니다. 또 허락되지 아니한 자, 당초에 예정되어 있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무조건 또 아무리 노력해도 천국에 갈 수 없다 라는 논리가 더러 있었으나 사실상은 그렇지 아니하고, 허락되지 아니한 자일찌라도 허락받은 사람들이 전하여 듣는 주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얻어 가지고서 그 허락받은 사람이 열심히 믿으려고 하는 것처럼 허락받지 아니한 경우에도 그 말씀을 들으려고 하면, 예를 들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박대한다 하더라도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하면서 꼭 듣기를 원하고 깨달아 믿게 된다면 천국 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과 예수님의 때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을 그 민족들만 붙들고서 예수가 나타날 때까지 하나님이 혹 역사하셨겠지만 요한과 예수의 때로부터는 이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라는 시대에 접어들었던 겁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로서 지금은 이스라엘인이든지 비이스라엘인이든지 또 미리 허락된 자라든지 아니 된 자라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사모하고 예수를 영접하고 그의 말씀을 믿으면 천국인인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는 시대인 것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 이 예수의 시대에 있어서 지금 주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지난번에 생각한 누가복음 8장 10절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라고 말씀하면서 출발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모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너희\\\\\\\'와 \\\\\\\'저희\\\\\\\'로 갈랐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비밀을 알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되겠지요. 깊숙히 들어가야 되겠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비밀한 깊은 하나님의 그 심정을 우리가 헤아릴 수가 있고 또 천국을 확보하게 되겠는데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때에 \\\\\\\'너희\\\\\\\'와 \\\\\\\'저희\\\\\\\'는 이때에 말씀한 \\\\\\\'저희\\\\\\\'와 \\\\\\\'너희\\\\\\\'는 이스라엘인과 비이스라엘인 이스라엘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때는 이미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누구든지 매달리고 들어오는 자는 다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라고 말씀했으니 과연 주님이 말씀하시던 이 \\\\\\\'너희\\\\\\\'와 \\\\\\\'저희\\\\\\\' 가운데 오늘 여러분께서 \\\\\\\'저희\\\\\\\'에 속하는지 \\\\\\\'너희\\\\\\\'에 속하는지를 잘 헤아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모두 \\\\\\\'너희\\\\\\\' 그룹에 속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혹 내가 \\\\\\\'저희\\\\\\\' 그룹에 있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염려도 오늘 같이 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데요. 이 \\\\\\\'너희\\\\\\\'라고 하는 소위 허락되었다 라고 하는 사람들중에도 제자중에 세리도 있었고, 물론 열두 제자 외에 또 막달라 마리아 등 은혜받은 여인들 정말 주님의 무덤에까지 따라가는, 십자가 밑에까지 따라가는, 부활한 현장에까지 제일 먼저 가는 이런 계속적으로 주님을 지킨 믿음의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너희\\\\\\\'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미 유대인으로부터 출회당한 자도 많았고 그리고 또 죄인이라 일컬음 받는 세리도 있었고 여러 종류의 세상에서 알아주지 않는 유대교에 그냥 남아 있을 수 없는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씀한 이 \\\\\\\'너희\\\\\\\' 속에 여러 사람이 있었고 또 \\\\\\\'저희\\\\\\\'라고 하는 허락받지 못했다고 하는 이 \\\\\\\'저희\\\\\\\'라는 그룹에도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방인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저희\\\\\\\'라고 하는 그룹 속에도 유대인이 많았고 유대인 중에서도 유대인 바리새인들이 많았고 서기관들도 많아서 예수님을 따지고 예수님의 말을 책잡아서 올무에 걸어 넘어지게 하려는 사람들도 이 \\\\\\\'저희\\\\\\\' 그룹 속에 있었던 것을 보면서 지금 이 누가복음 8장에 나타난 금번 주제에 \\\\\\\'너희\\\\\\\'와 \\\\\\\'저희\\\\\\\'는 이스라엘 택한 민족과 택하지 아니한 이방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시대 이후이기 때문에 이 \\\\\\\'너희\\\\\\\'와 \\\\\\\'저희\\\\\\\'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저희\\\\\\\'는 누구며 또 \\\\\\\'너희\\\\\\\'는 누구냐 라는 것을 이제 더 깊이 생각해보고자 하는데 한가지 특색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우리가 살펴보면서 몇몇 소수의 \\\\\\\'너희\\\\\\\'라는 가까운 사람들, 주님이 기뻐한 사람들을 제외한 많은 무리 큰 무리 이 큰 사람들에게서 무엇인가를 느낀 것이 없습니까? 오늘 제가 세 번째 설교를 하는데 이 많은 무리들, 예수님께서 \\\\\\\'저희\\\\\\\'라고 하시면서 저희들이 혹시 듣고 깨달아 은혜 받을까 염려가 된다 라고 할만큼 주님의 관심밖에 있고 주님이 아주 싫어했던 이 \\\\\\\'저희\\\\\\\' 그룹에서 느낀 것이 없느냐 그것입니다. 저는 이 내용을 보면서 \\\\\\\'참 신기한 사람들이다. 정말 사람들이 그리 좋은 사람들인가? 그렇게 착한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로 이 \\\\\\\'저희\\\\\\\'라고 하는 많은 무리들, 주님이 가장 싫어하셨던 혹 은혜 받을까봐 염려했던 그 사람들 \\\\\\\'저희\\\\\\\'라는 사람들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면 이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한 동네에 이렇게 오글오글 이렇게 살다가 예수님이 오셨다니까 그저 대문 열고 나와서 이렇게 모여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행하시는 능력들을 소문 듣고 또 보고 사방에서 왔습니다. 여러 고을과 각처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뭐 하루 이틀 걸려 온 사람도 있고 그저 한 끼 두 끼 굶어가면서도 몰려 왔습니다. 주님에게로 몰려왔어요. 이 수많은 수 천명이 모여든 이 큰 무리인데 참 재미난 사실 하나 저는 이 성경 보면서 발견했습니다. 이 많은 무리가 이렇게 사람이 좋단 말인가 싶은 생각인데 어떤 것이냐 하면 많은 사람 모여 놓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시작하시는데 말씀의 내용도 전혀 다시 듣지 아니하면 해석해 주는 것을 듣지 아니하면 전혀 알 수 없는 무슨 \\\\\\\"돌짝밭이니, 길가니…\\\\\\\"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만 그 얘기도 모두가 들리도록 외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앞에 한 줄 정도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소곤소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렇게 말씀을 계속하신다 그겁니다. 그런데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들리지도 않고 도무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일어서면서 큰 소리 한 번 치시는데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기에 그 뒤에 이제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했겠지만 말씀 끝내버렸어요. 그리고 그 제자들과 함께 방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제가 이쯤 말씀드려도 제가 신기하게 느낀 것을 여러분 무엇인지 모르겠습니까? 도무지 들리지도 않는데 그리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데 그 긴 시간 말씀을 하고 계셔도 아무도 안 들린다 한 사람이 없었다 그겁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못 알아듣겠다고 말한 사람도 없다 그겁니다. 다만 아까 하신 말씀을 겨우 듣고도 내용을 알 수 없어서 그 뜻이 무슨 뜻이오니까 하고 물으려 들어왔던 사람들은 \\\\\\\'너희\\\\\\\'였어요. 그러니까 뭔가 알고자 한 사람은 \\\\\\\'너희\\\\\\\'였어요. 그러나 \\\\\\\'저희\\\\\\\'라고 구분되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은 안 들려도 상관없고 무슨 말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그겁니다. 오늘 여러분께서 이렇게 설교를 듣고 계신데 참 이 마이크 시설이 잘되어 있고 스피커가 곳곳에 여러분 아주 피곤치 않게 잘 들리도록 최선을 다해서 우리 전문가들이 이렇게 시설을 해서 여러분이 듣고 계신데 저 뒤에 계신 분이나 2층에 계신 분이나 저 위에 실(room) 안에 계신 분이나 어느 분이든지 지금 설교하는 것 도무지 못 알아들을 만큼 마이크 선이 끊어졌다든지 할 때는 가만 앉아서 한 시간을 그냥 가만히 여기에 왔던 무리처럼 있을 분이 없습니다. 뒤에로 나가든지 목회실에 연락을 해 가지고서 소리가 안 들린다든지 이렇게 하고 또 여러분께서 설교를 들으시고도 알듯하지만 잘 모른다 하면 구역회에 가서 또 묻기도 하고 또 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그 뜻이 이 뜻입니까?\\\\\\\" 또 다음 주일에 주보를 놓고서 \\\\\\\"정말 그것이더냐?\\\\\\\" 요약을 다시 확인하고 지금 전부 그러실 분들이지, 오늘 이 누가복음 8장에 나타났던 이 무리처럼 무슨말을 하든지 말든지 손톱 소지나 하고, 그 말을 깨달았든지 못 깨달았든지 관심도 없고 다만 듣고도 잘 몰라서 물으려 왔던 사람은 \\\\\\\'너희\\\\\\\'가 되었고 그저 들리든지 말든지 비유로 하든지 직접을 하든지 까짓껏 시간만 가면 된다 하고서 버틴 사람들 신기한 사람들입니다. 아무 불평도 없었고 아무 다른 조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이 왜 이랬느냐? 왜 그랬겠습니까? 이 모여 온 사람들은 예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빨리 안 끝나나?\\\\\\\" 그러고 있고 \\\\\\\"언제 능력 행하나?\\\\\\\" 그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에 관심이 있어서 모여든 사람들입니다. \\\\\\\"말씀이 좋더라. 말씀을 들으니 내가 회개가 일어나고 말씀을 듣더니 내가 거듭났도다.\\\\\\\" 이런 것 때문에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 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에만 관심이 있어 가지고 왔던 것이지요. 충분히 이 본문만을 통해서도 말씀은 씨라 했습니다. 결실도 말씀의 씨에서 맺는 것이라 했으니 표적이 아니라 주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말씀입니다. 이 본문 누가복음만 통해서도 그렇지만 그동안 인용하였던 마태복음 13장에 가서 보시면 이 표적과 말씀을 어떻게 그 사람들이 원했는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앞으로 갑시다. 마태복음 13장 3절 이하에 보면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하면서 이 오늘 본문이 있는 누가복음 8장 내용의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고 10절 이하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우리에게 알려주소서.\\\\\\\"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뒤에 자세히 가르쳐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13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이렇게 나가지요. 그러면 이 13장 \\\\\\\'그날\\\\\\\'입니다. 어떤 날입니까? 그날입니다. 그러니까 이 그날이 어떤 날인지 그날이 무슨 날입니까? 추석날입니까? 주일입니까? 월요일입니까? 이 그날을 알려면 13장 뒤에 있겠습니까? 앞에 있겠습니까? 앞에 있겠지요. 그러니까 \\\\\\\'그날이 어떤 날이었기에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겠는가?\\\\\\\' 이렇게 연결해야 이 해석을 정확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13장 앞에 있는 12장이 그날의 분위기를 설명해 주고 있는데 오늘 시간 관계상 다 말씀 못 드리고 38절부터 그 후반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때에\\\\\\\" 이 그날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앞에 말씀을 하고 있으면 그것 때려치우고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제 그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그러니까 앞으로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표적을 보여 주실 생각을 안 합니다. 41절에 이 말을 잘 봐야 합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 그러니까 모여든 마태복음 13장에 모여든 누가복음 8장에 모여든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표적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까? 요나의 입으로 나온 전도를 받고 구원받았습니까? 전도를 받고 회개했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니느웨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구원의 표적은 무엇이냐? 말씀 듣고 구원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참 신기하지요. 기적같은 일이지요. 우리는 거기에 관심이 있습니다만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을 보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요나의 전도를 듣고 표적을 본 것이 아니라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이 큰 이는 누구십니까? 예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을 보이겠다는 뜻에서 큰이라고 하는 겁니까? 아니면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 더 크다는 겁니까? 말씀이 더 크다는 겁니다. 그의 종 목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설교의 말씀과 예수님이 직접 하는 말씀이 어찌 똑 같겠습니까? 대단한 것이지요. 우리는 주의 말씀을 카피해서 해석해 드립니다만 주님께서 직접 생으로 말씀하시면 어찌 크지 않겠습니까?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42절 더 구체적입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지금 이 세대 사람입니다. 어떤 무엇을 구하는 사람들입니까? \\\\\\\'표적 표적, 능력 능력, 이적 이적\\\\\\\'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대 사람을 남방 여왕이 심판날 되면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남방으로부터 고생고생 하면서 물도 많이 싣고 양식도 많이 싣고 그저 말 몇 마리 몰고서 많은 군사와 함께 이 남방 여왕이 예루살렘 솔로몬 왕궁에까지 왔다 그겁니다. 그런데 이 솔로몬에게서 나타나는 표적을 보러 왔습니까? 솔로몬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의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까? 지혜의 말씀을 들으러 왔다 그겁니다. 그런데 이 남방 여왕은 심판 때에 어디 있느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다가 이 세대의 표적을 구하는 너희를 바라보면 정죄할 것이다 그겁니다. 너희는 들어올 자격이 없다 할 것이다 그겁니다. 아주 심각한 얘기지요. 지금 주님께서 표현하시고자 하는 진정한 내용이 무엇이냐? 나는 솔로몬 보다 크며 나는 요나보다 크다는 것이 이 사람들이 구하는 표적을 더 강하게 더 멋지게 행할 수 있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표적보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느냐 그겁니다. 표적을 먹고 영원히 산 사람이 있느냐 그겁니다. 표적으로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만에 살아났지만 그 사람 여전히 또 관속에 들어가고 표적으로 사십 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한끼도 거르지 않고 먹었지만 성경에 말한 대로 그들 가운데 만나를 먹었다고 해서 구원받은 사람 있느냐 그겁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표적, 표적\\\\\\\'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솔로몬 보다 크며 나는 요나보다 크다 라고 한 것은 생명의 말씀이 내 입에서 나오는데 있다 그겁니다. \\\\\\\"진정한 생명 거듭나게 하는 것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씀인 것이지 내 손으로 행하여 죽은 자를 일으키고 떡 다섯 개로 오 천명을 먹인 것은 먹었던들 그때 배부를 뿐인지 그것이 영생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너희에게 병이나 고쳐주고 신기한 이적이나 보여주고 만나와 메추라기나 주며 떡 다섯 개로써 오 천명 먹여주는 그런 이 세상에 먹을 것 입을 것 잠시 보태주는 그일 하려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 너희를 영생케 하려고 왔느니라.\\\\\\\" 이것이 주님의 뜻인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표적을 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내용은 요한 제자께서도 기록을 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6장에 가보면 확실하게 구분되어 설명이 되어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을 여러분이 찾으셔도 좋고 그냥 있으셔도 되는데 요한복음 6장 66절 이하를 읽을까 합니다. 읽기 전에 그 앞에 있는 내용을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 빈들에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써 오 천명을 먹이시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떡은 먹여주었지만 그 사람들은 기분에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기분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속히 집으로 돌려보내라 했습니다. 그러나 먹여 주었던 이유는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날 따라다닌다고 시장하여 쓰러지겠으니 먹여주라 했습니다. \\\\\\\"어디 구해다가 줄 수 있느냐? 살수 있느냐?\\\\\\\" 하니까 \\\\\\\"돈도 없고 이백 데나리온이나 있어야 되겠고 떡집도 이 많은 사람들 먹일 떡집도 없다.\\\\\\\" 하니까 \\\\\\\"그러면 너희 중에 가진 것이 있느냐?\\\\\\\" 하니까 한 사람이 도시락 하나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서 그냥 이적으로 부풀려 가지고서 다 먹여서 \\\\\\\"빨리 돌려보내라.\\\\\\\"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더 이상 대화를 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볼 때 그들은 천국 시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떡만 먹여주고 말았던 겁니다. 고기만 주고 말았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으로 들어가시고 제자들 더러 \\\\\\\"배타고 저 건너편 바다로 가라.\\\\\\\" 그곳은 멉니다. 상당히 멉니다. 여기서 가려면 뭐 어디쯤 가야 될까요? 저 고성 당항포 쯤 배타고 가야될 거리가 되겠습니다. 저 갈릴리 바다가 그렇습니다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가라했지요. 거라사에서 가버나움 가려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제자들이 배타고 가는데 떡 얻어먹고 돌아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그 좁은 강가 같은 그런 바다이기 때문에 배타고 가는 사람들 머리 수를 딱 세어보니까 열세 명이 아니라 열둘이거든요. \\\\\\\"어, 예수님은 안 탔다. 예수님은 안 탔다. 어디에 있지? 아,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갔어. 산으로 올라갔어.\\\\\\\" 이제 그래서 \\\\\\\"알았어. 알았어. 그러면 되었다.\\\\\\\" 해서 \\\\\\\"제자들은 왜 보내지?\\\\\\\" 그러고서 이제 하룻밤 자고 나서 다음날 제 집에 그냥 밥 해 먹으면 될텐데 또 우르르 나왔어요. \\\\\\\"얻어먹으니까 편하다. 설거지 할 것도 없고 불땔 것도 없고 참 편하다. 먹을만 하더라.\\\\\\\" 해서 전부다 거라사 지방으로 또 왔지 않습니까? 그 이튿날. 그런데 예수님은 벌써 그 사람들 성질 알고 또 올 줄 알고 밤 사경에 물위로 걸어 가지고서 제자들과 한배 타고 가버렸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 예수님\\\\\\\' 하고 부르니 예수님 안 계시거든요. \\\\\\\"아, 이상하네. 어제 분명히 머리가 열둘인데 예수님 그사이 어디 갔지? 안 계신 것 보면 갔어. 밤에 갔어. 우리 그리로 가자.\\\\\\\" 해서 짐작해서 전부 가버나움으로 갔으니까 배가 얼마나 고프겠습니까? 왔다가 그곳으로 갔으니까 상당히 배고픈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다 가 가지고서 밥 나올 것을 기다렸는데 주님이 오늘과 같이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관심이 없어. 빨리 표적 먹여주기를 원하고 있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너희에게 그런 떡이나 먹여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영생하는 떡을 주려고 왔노라. 내가 주고자 하는 참 양식은 한번 먹으면 주리지도 아니하고 한번 내가 주는 음료를 마시면 목마르지도 아니하느니라.\\\\\\\" 하니까 아 그 사람들이 전부 귀가 쫑긋 해 가지고서 \\\\\\\"아하, 어제는 하루만에 먹고 싸 버리는 음식을 주었지만 야 이제 귀찮으니까 주님께서 아주 농축된 핵 음식을 주실 모양이다. 한 번 먹으면 배도 계속 고프지 아니하고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것 준다네. 야 옛날에 들어보니까 뭐 엘리야는 숯불에 그 떡 하나 먹고서 사십 주야를 달렸다 하더니 야 이것은 아주 농축된 아주 캅셀 하나만한 것만 탁 집어넣으면 이것은 뭐 평생 가는가보다. 주시옵소서!\\\\\\\" 그랬다 그겁니다. 전부 다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지금 내가 주노라.\\\\\\\" \\\\\\\"빨리 주시옵소서.\\\\\\\" \\\\\\\"내 살은 너희를 위하는 것이요 내 피를 마셔라. 내 살을 먹으라.\\\\\\\" 그리고 하늘에 대한 복음을 전하니까 \\\\\\\"아니 그것 말고 양식을 달라는 말입니다. 어제 양식보다 다른 양식을 달라는 겁니다.\\\\\\\" \\\\\\\"내가 입으로 말하는 이게 양식이야.\\\\\\\" 이랬어요. 그러니까 이제 서로 서로 두리번두리번 하다가 \\\\\\\"이상하네. 계속 저러고 말 모양이야. 다른 게 안 나올 모양이야. 심각하잖아.\\\\\\\" 입에서 말만 하면서 천국 얘기하면서 이게 양식이라고 하니까 \\\\\\\"별수 없어. 이제 소용이 없어. 저 사람 우리한테 손떼었어. 안 되겠어.\\\\\\\" 해서 줄줄 전부 다 이제 떠나갑니다. 떠나가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 뭡니까? 표적으로써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육신의 배만 채우기를 원했다 그겁니다. 그것이 안나오고 진리가 나오니까 \\\\\\\"필요없어. 어렵다.\\\\\\\" 이러면서 하나 둘 가기 시작하니까 우루루 다 몰려가는데 66절에 이제 그 얘기입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에 \\\\\\\"이러므로\\\\\\\" 그렇게 이제 말씀하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러니까 이적 안 행하는 사람 이제 되어 버렸다 하니까 전혀 안 와요. 안 와 버렸어요. \\\\\\\"다시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여기의 이 \\\\\\\'너희\\\\\\\'는 누가복음 8장에 나타난 \\\\\\\'너희\\\\\\\' 그룹입니다. 남아 있는 열두 제자 보고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저희\\\\\\\'와 \\\\\\\'너희\\\\\\\'는 완전히 구분되는 겁니다. 이 너희 속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이스라엘인이다, 아니다\\\\\\\' 이것이 예수님 이후 시대에 해당되었던 것이 아니고 이 예수님이 천국이 허락된 \\\\\\\'너희\\\\\\\'라고 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주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떤 사람들이냐? 말씀에는 관심 없고 \\\\\\\"참 빨리 끝내지 왜 그래? 빨리 끝내고 왜 안수 안해? 안수 안해?\\\\\\\" 그러니까 그 안수하는 그 시간 그 포인트만 기다리는 것이지요. 능력 행하는 집회에 가보면 저도 가 보았습니다만 아마 상당한 무리가 능력에 관심이 있지 설교나 다른 순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헌금하는 것도 어느날 안수한다는 하는날 헌금을 봉투 두껍게 해요. 저도 집회에 여러 차례 가 보았는데 집회 나오는 강사님이 하도 시간마다 헌금하라고 헌금하라고 그렇게 강하게 강조를 하는 바람에 안 하고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집회 시간마다 하다보니까 한 삼일 지내니까 다 떨어져버리고 제가 그때 강원도까지 갔는데 마산까지 내려올 차비밖에 없어요. 그래서 차비 따로 다 준비 해 놓았어요. 그런데 그 나흘째 되는 날 금요일인가 그때에 사람들이 다 머리가 좋아 가지고서 아무리 그 앞 시간에 많이 해라 해라 해도 조금씩만 내고 있다가 그날 봉투 두껍게 해 가지고서 내고, 그러면 별미를 내어야 능력을 받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단하더라고요. 그때는 이 강대상에 큰 봉투가 수북해요. 그리고 안수를 받으려고 몰려와 뭉게뭉게 넘어드는데 야 대단합디다. 그저 다른 시간 몇일 동안은 이것은 연습게임이었어요. 그저 말씀을 하든지 설교를 하든지 뭐 찬송을 하든지 시간 빨리 가서 \\\\\\\"언제냐? 언제냐?\\\\\\\" 그때만 기다렸어요. 그래서 오직 그 능력 행하는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을 기점으로 헌금하고 그 순간에 어떤 표적을 받았을 때 감사하고 그런 무리들을 볼 수 있었어요. 볼 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들이 그러니까 그때 저도 그랬다니까요. \\\\\\\"몇 일이라더냐? 누가 안수한다더냐?\\\\\\\" 그게 제일 관심이었어요. 그런데 요즘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더 딱했던 것은 그 인도하는 사람들이 집회를 인도해가면서 찬송도 기도도 설교 내용도 모두 다 그 어느날 지정한 절기 마지막 날이라 하면서 그 제일 포인트 되는 그 절기 속에 가장 핵심적인 것을 말씀으로 역사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안수하고 쓰러뜨리고 병든자를 낫게 하고 허리를 펴게 하고 귀신을 떠나게 하는 그 순간에 포인트를 두고 설교를 거기에다가 맞추어 했다 그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무엇이냐? 따르는 표적이었지 표적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겁니다. 주님이 진정 주려는 것은 생명이었다 그겁니다. 생명의 말씀을 주시려니까 이 사람들이 귀를 열고 마음 문을 열어야 되겠기 때문에 이적을 곁들였던 것인데 말씀을 가지고 이적을 맛보려 했다 그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더라 그겁니다. 이런 인도자가 있더라 그겁니다. 기도도 찬송도 설교도 전부 능력, 심지어 금보다 귀하다는 믿음까지도 \\\\\\\"믿으면 됩니다.\\\\\\\" 합니다. 믿으면 영생이 아니라 \\\\\\\"믿으면 됩니다.\\\\\\\"에요. 전부 그런 식으로 이끌고 가는 것을 요즘 이 말씀 앞에서 헤아려볼 때 \\\\\\\'아,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겠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말씀은 들리든지 말든지 이해가 되든지 말든지 깨달으려고도 하지 않고 안 들려도 아무 불평도 하지 않고 지금 이적 시간인가? 지금 능력 행하는 시간인가? 안수시간인가?\\\\\\\' 거기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겁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이 표적은 세상 사는 동안에만 필요한 것이요, 내가 저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천국을 영원히 사는 영생의 말씀인 것이다.\\\\\\\"라는 겁니다. 과연, 우리가 \\\\\\\'저희\\\\\\\' 그룹에 속했는지 \\\\\\\'너희\\\\\\\' 그룹에 속했는지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이기에 우리는 안전하다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성경에 보니 열두 제자가 나아와서 말씀을 다시 깨닫고 또 열두 제자가 주님의 주시는 살과 피까지 먹었지만 그 중에 한 사람 마음을 다르게 먹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마귀니라. 가룟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고 있었으니 그는 돈을 좋아했고 그는 들어오는 돈을 가지고서 어떤 세상적인 어떤 사업에 쓰려고 했다 그겁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을 예수님에게 부어버리느냐?\\\\\\\" 이런 순전히 이 세상에 관한 것에 관심이 있는 열둘 중에도 있었다 그겁니다. 오늘 우리는 허락된 자로 이 같이 큰복을 받아 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에 사로잡히는 성도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본문 속에 예수님은 말씀이야 들리든 말든 그 내용이야 어떻든지 말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고 그 순서는 빨리 끝나고 \\\\\\\"능력 행하는 시간이 언제냐? 표적을 언제 나타내느냐? 저 사람이 얼마나 큰 능력을 가졌는가?\\\\\\\" 이렇게 표적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저희\\\\\\\'의 그룹에 속하면서 \\\\\\\"저런 사람들 중에 어쩌다가 내 입에서 나타나는 이 말씀으로 영생하는 자가 생길까 두렵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 아무나 은혜 받고 천국가는 것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사람들이 천국 들어오게 될까 두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했고 안 들리게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의 관심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 잘 아시지요. 믿음은 봄에서 납니까? 들음에서 납니까? 들으면서 납니다. 들음은 어디에서 누구의 말씀입니까?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말씀입니다. 재미난 얘기도 아닙니다. 그저 어떤 집회에 참석해 보면 큰 능력있는 그것 하나 과시하기 위해서 능력 중심으로 모든 순서를 이끌어 가면서 그저 진리의 말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말씀은 말하지 않고 만담같이 웃기고 물론 마음 문을 열기 위해서 잠깐 웃기도하고 이런 것은 좋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주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될텐데 온통 웃기고 간증을 통해서 그냥 바라보게 만들고 갑자기 벼락부자 될 것처럼 이렇게 사모하게 만들어 가지고서 그저 막판에 가서 이렇게 안수를 하고 할 때에는 그냥 사람이 기절할 정도로 그렇게까지 만들어간다 그겁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그러한 경우의 사람들을 오늘 이 자리에 그 마태복음 13장이나 누가복음 8장에 나타난 이 오직 표적에만 관심이 있는 이 사람들을 보면서는 저런 사람들은 행여나 듣고 그것 괜찮네 하고 천국에 들어갈까봐 두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과연 신앙생활 해야 되겠는가? 이제 다시 누가복음 8장 16절 이하에 본문으로 돌아가서 한 절 한 절 살펴보도록 합니다. 누가복음 8장 16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표적에서 영생의 빛이 납니까? 말씀에서 빛이 납니까?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것은 희한한 표적입니까? 능력입니까? 말씀입니까? 말씀입니다. 세상에 빛이 왔는데 이 빛은 말씀입니까? 능력입니까? 말씀입니다. 그러면 등에 불빛을 비취는 것이라면 말씀입니까? 표적입니까? 말씀입니다. 등불을 켠 사람은 항상 등경 위에 두지 이 등불을 그릇으로 덮어두거나 말 아래 두지 않는다 그겁니다. 등경 위에 두는데 그 불빛을 보고 불빛을 머금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불을 등경 위에 두었으니 만 사람이 다 본다는 것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들어오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의 빛 가운데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에게 더 있게 하는 것이지 등불이 켜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 말씀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빨리 안수 안 하나 하면서 그저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는 들려도 그만 안 들려도 그만, 자기 멋대로 옆 사람하고 장난도 치고, 요즘으로 칠 것 같으면 고스톱도 하고 이런 것 저런 것하고 앉았다가 어 뭐 한다 하면 \\\\\\\'어 지금 시작하는가?\\\\\\\' 우르르 왔다 가는 이러한 수준의 사람들은 말씀의 등불 아래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 그겁니다. 등경 위에 있는 등불 빛을 계속 머금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들어오는 자다 그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받은 것이지 사모하지 않고 표적만 구하는 사람은 이 등경의 등불에 무슨 효력을 보겠느냐?\\\\\\\" 또 듣고자 하는 사람,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17절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숨고 감추어서 나타날 것이 이 성경에 있는 것이 주님 오실 때까지 나타난다는 겁니까? 다른 어떤 이적에서 나타난다는 겁니까? 성경에서 나타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오늘날 우리가 많이 안다고들 하는데 아직도 이 성경 속에 숨어 있어서 더 깨달아야 될 것이 있는 줄로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리고 이 성경은 이 세상 끝날까지 이 성경 속에 담겨진 깊은 진리의 생명이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다는 것도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저는 어떤 분들 가운데 이 말 하는 사람이 제일 무식한 사람 같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성경을 다 꿰뚫었다. 나는 성경을 완전히 꿰뚫었다.\\\\\\\" 완전히 내 시대에서 꿰뚫을 수가 있었다면 하나님이 닫으면 그 누구도 열지 못하고, 성령께서 열면 닫을 수 없는 말씀 주 오실 때까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늘 똑 한 권의 책뿐인데 미리 깨달아지지 아니하고 감추어 두었다가 그 비밀이 점 점 드러난다고 성경이 말씀했는데 이 세상 어느 성경을 많이 본 사람이라 할지라도 태초부터 살았지 않았고 지금 살고 있을 뿐이지 영원토록 살수가 없는데, 또 영원토록 산다할지라도 지금 이 세대에 열어준 것은 주께서 뚜껑을 열어주신 것에 한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이지 주께서 열지도 않았는데 어느 똑똑한 사람이 기도 많이 했다고 가서 뽑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은 \\\\\\\"나는 성경 속에 있는 깊이를 파내었습니다. 캐내었습니다.\\\\\\\" 하면서, 스스로 캐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알게 해 주실 때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자에게 알게 해 주시느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이 책 속에 아직도 얼마든지 덮여 차여 있는데 신기한 것은 이 두께의 이 글자 수만큼 세상 누가 지은 책이라도 한 번 읽고 두 번 읽으면 더 이상 나올 게 없습니다. 그만입니다. 한 번 알고 일러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신기합니다. 제가 우리 가족들과 식사를 하면서 \\\\\\\"신기한 게 성경책일세. 이 정도 두께에 이 정도 글자 수를 다른 사람이 써 놓은 책이나 읽어보면 한 번 내지 두 번 보면 그냥 외워버리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거기에 큰 진리를 또 찾아낼 것은 없는데 이 성경은 매우 쉬운 얘기인데 어떻게 또 작년에 본 것과 또 다르고 금년에 보면 또 비밀이 나오고, 왜 이럴까? 신기하다.\\\\\\\" 우리가 식사하면서 늘 감사를 합니다. 음식이 맛이 있어도 \\\\\\\"꼭 꼭 더 씹어라. 한두 번 더 씹어봐. 그 특색 있는 맛을 더 씹어봐. 어찌 벌래 같은 인생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수백 수천 가지의 맛을 이렇게 혀 바닥에다가 이렇게 오돌오돌 맛보는 그 융털 돌기를 수천 개 수만 개 만들어서 이렇게 맛보게 만들었는가? 더 씹어. 더 씹어.\\\\\\\" 얼마나 감사한가? 참 감사합니다. 주께서 주신 은혜를 늘 감사하면 주께서 더 그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의 제목을 주시지요. 그러면서 \\\\\\\'신기하다, 신기하다\\\\\\\' 했더니 저희 딸 중의 하나가 하는 말이 \\\\\\\"그러기 때문에 아빠가 성경책 한 권 가지고 재미보지 않습니까?\\\\\\\" 이래요. \\\\\\\"정말 그렇다네. 정말 그렇다네.\\\\\\\" 이 성경책 한 권 가지고 수천 년을 흘러 내려와도 갈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고, 우리 시대에는 요만큼 열어 주셨지만 다음 시대에는 또 새로운 것이 주 오실 때까지 확실하게 열려질 줄 믿습니다. 주 오시는 그 마지막 날까지는 감추인 것이 하나도 나타나지 아니할 것이 없다 했는데 이 감추이고 숨기운 것은 능력이나 표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부록이 또 나오지 않습니다. 새로운 성경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한 권의 책 신기한 생명의 책입니다. 참 진리의 말씀. 그런데 이러한 것을 누구에게 나타내어 주느냐? 들어가면서 보기를 원하는 자 사모하는 자 그에게 드러내어준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 속에 있는 생명을 더 얻으려고 하면 그에게는 더욱 하나님께서 열어주시지만 하늘 나라 비밀을 알도록 허락받지 아니한 사람들, 표적이나 구하고 세상에 육신적인 것이나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부러 막으니 참석을 해도 같이 깨달을 수가 없다 라는 것이지요. 18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보는가 스스로 삼가라\\\\\\\" 맞습니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표적을 대상으로 한다면 보는 겁니까? 듣는 겁니까? 보는 겁니다. 표적은 만지는 것이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말씀은 만지는 겁니까? 보는 겁니까? 듣는 겁니까? 듣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비유 드시던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여기에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아 더 넉넉하게 된다는데 여기 있다는 것은 표적의 숫자를 많이 가진 겁니까? 말씀을 많이 가진 겁니까? 많이 삼가 들어서 말씀을 많이 가진 자는 말씀이 말씀의 꼬리를 물고서 연결해서 더욱 더욱 깨닫게 된다 그겁니다. 그러나 기존의 신앙을 가지고 들어왔으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똑같은 성도 같지만 \\\\\\\"표적 여는 시간인가? 표적 행하는 것이면 누가 능력이 있는가?\\\\\\\" 표적만에 관심을 더 둔 사람은 본래에 가졌던 믿을 때에 있었던 신앙마저도 점점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없어진다 그겁니다. 여러분, 이제 이쯤까지 말씀을 드렸으면 주님께서 말씀한 \\\\\\\'저희\\\\\\\' 그룹은 누구이며 \\\\\\\'너희\\\\\\\' 그룹은 누구인지 잘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가히 \\\\\\\'저희\\\\\\\' 그룹입니까? 아니면 \\\\\\\'너희\\\\\\\' 그룹입니까? 여러분은 \\\\\\\'너희\\\\\\\' 그룹에 속한 줄로 믿습니다. 왜 제가 믿는다 라는 말씀을 이렇게 하게 되느냐 하면 우리 교회는 능력을 행하는 분들이 저를 포함해서 목사님들 모두 능력있지요. 전도사님들 다 능력있지요. 장로님들, 권사님들, 구역장님들, 집사님들 능력 있는 분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능력도 보통 능력이 아닙니다. 그냥 손을 얹어서 신유의 기도나 하는 그 정도가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나올 때 이 때 예수님이 처음 나타나셔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제자들에게 그 처음 능력을 주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귀신마저 쫓아낸다면 하늘로서 온 자가 아니겠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전에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신을 제어할 수 있는 권세는 아무나 나타났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그후에 제자들에게 주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주의 종들을 비롯한 많은 성도님들이 신유의 능력 수준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귀신을 간단하게 쫓아내는 그런 권세를 가진 자가 가득 차 있습니다. 만약에 이렇지 않은 사람이 \\\\\\\"말씀을 중심하라. 표적은 그 말씀을 위하여 표적이 필요한 것이지 표적을 나타내려고 말씀이고 찬송이고 기도고 해서 되겠느냐?\\\\\\\" 이런 설교를 한다면 \\\\\\\"하하 자기가 능력이 없으니까 그러지\\\\\\\"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할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잘 이해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말씀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 말하기를 오늘 같은 설교를 하게 되면 \\\\\\\"자기가 능력이 없으니까 저런 설교를 하지. 자기 교회에 능력이 없으니까 저런 설교하지.\\\\\\\" 이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 이런 설교를 힘있게 할 수 있는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나타나는 능력이야말로 아주 보편적으로 되어 있다 그겁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일주일 동안에 능력을 행하는 시간 따로 있습니다. 꼭 필요합니다. 능력이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생명 얻어서 천국까지 가려는 분이 능력도 안 따라서야 되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표적을 입으려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이적을 얻으려고 주려고 하면서 \\\\\\\"믿으라. 믿으라. 믿으면 얻습니다.\\\\\\\" 여러분 믿으면 적어도 천국 정도를 얻어야지. 성경을 통해서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믿음이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얻어먹고 다 탈락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광야 사십 년 동안에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 물을 먹었던 사람들 그 사람들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입니까? 광야로 들어갈 때부터 어떤 신분의 사람들입니까? 한꺼번에 전염병으로 죽이려고 했으나 모세가 기도하여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한꺼번에 죽이지 말고 단번에 죽일 것을 옛날처럼 천천히 수명대로 죽게 하소서. 가나안 맛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하소서.\\\\\\\" 그렇게 죽기로 사형선고 내린 사람들, 한 사람도 살아서는 못 나올 것이라고 한 벌받은 사람들에게 계속적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었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가지고 만나나 얻으려고 하고 말씀가지고 표적이나 행하는데 사용한다면 어떻게 주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하지 않겠습니까?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합시다. 말씀으로 영생에까지 가고자 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사람이 있다면 표적은 간단히 필요하면 따라다녀야지요.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우리 교회에 표적을 행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귀중한 시간이지요. 귀신을 쫓는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귀중한 시간이지요. 많은 병자들이 낫는 그런 역사하는 그런 집회의 시간 은사 집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님들을 보면 병들면 가서 은사 집회에 가서 병 고침 받습니다. 귀신 들려서 나를 괴롭히면 가서 귀신을 쫓고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회집하는 숫자를 보면 오늘 저녁에는 안수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은사를 행하는 시간으로 약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주께 찬양을 드리고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밤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 성도들 은사 시간의 배 숫자로 큰 무리가 은사의 시간에 몰려드는 것이 아니라 은사의 시간에는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가시고 말씀만 있는 시간에 밤이든지 낮이든지, 멀든지 가깝든지 이렇게 모여들어서 이 말씀을 깨달으려고 앞자리나 저 뒷자리나 2층이나 저 홀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다 귀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담을 했습니까 우스게를 했습니까? 순전히 주의 말씀만을 말씀하는데 이처럼 들으려고 야단이고 눈망울 한 사람 한사람 보면 깨달아 보려고 아주 대단한 눈망울을 굴리고 있다 이겁니다. 이 얼마나 귀한 모습인지 이 얼마나 주님이 보시면 사랑스러운 \\\\\\\'너희\\\\\\\' 그룹이신지, 할렐루야! 이처럼 사랑스러운 생명 가진 성도들에게 감추인 것이 없이 숨기운 것이 없이 날이 갈수록 더 깨닫게 해 줄 줄을 믿습니다. 제가 말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사명을 가지고 이 강단을 떠날 수 없는 것 중에 제일 큰 이유 하나는 여기에 모여들은 사람들은 표적보다는 말씀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표적도 귀한 줄 알지만 그보다 더 말씀을 귀하게 여겨서 말씀이 있는 시간에 표적을 행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모여드는 소유욕이 있다. 그리고 그 눈망울들 깨달아 보려고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그 성도들을 위하여 어느 종이 서든지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 있는 비밀한 것을 열어주실 것이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진실로 그러한 우리 교회가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저도 부흥회를 가끔 가봅니다만 부흥회 광고마다 보면 말씀을 통하여 생명을 전하여주는 종이라고 쓰지 않습니다. \\\\\\\"능력의 종 능력의 종\\\\\\\" 오나 가나 그저 제 이름 포스터에도 보면 \\\\\\\"능력의 종\\\\\\\" 어떤 데는 가니까 빨갛게 해 놓고서 \\\\\\\"사단 박멸\\\\\\\" 이렇게, 전부 그렇게 해서 우르르 우르르 모입니다만 그러나 주께서 귀하게 여기신 것은 하늘을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이 나오는 말씀이 가장 성도의 귀하고 잡아야 되고 끝까지 붙들어야 될 것이지 이적은 필요할 때마다 채워주신다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을 이해 하셨으면 아멘 합시다. 주님께서도 말씀을 전해 놓고서 \\\\\\\"너희가 깨달았느냐?\\\\\\\"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으십니다만 오늘 여러분께서 \\\\\\\'주께서 너희와 저희를 어떻게 구분하셨는가?이 저희를 왜 이처럼 싫어하셨는가?\\\\\\\' 그 이유를 충분히 아신 것처럼 하는 얼굴들을 제게 보여주심으로 저도 만족스럽게 오늘 설교를 마치려 하고 이제 추석을 잘 보내고 돌아오십시오. 다음 주일 저녁에는 이 주제의 마지막 편 그야말로 마지막 편을 다음 주일에 여러분과 함께 이 시간에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4)/ 눅8:9-15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4) 눅8:9-15 시리즈 1편부터 지금까지의 말씀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달아서 믿게 되고 천국 시민 되는 것이 이미 허락되었기 때문만도 아니요, 허락되지 아니한 자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스스로 천국이 침노당하기를 자청하셔서 침노하는 자를 더 기뻐하시니 허락 여부와 상관없이 저 하기 나름으로 저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라는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그 마지막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15절 말씀 \\\\\\\"혹 백 배 혹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누구든지 백 배의 결실을 하든지, 육십 배의 결실을 하든지, 혹 삼십 배 아니면 전혀 결실을 못하든지 하던 것도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는 미리부터 백 배 되도록 삼십 배 되도록 정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저 하기 나름이다 라는 것입니다. 구약 때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천국은 침노를 당함으로써 미리 정하여져 있는 사람들 청함 받은 자격자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믿고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천국을 향하여 온다면 막지 않고 그를 환영한다 하였으므로 예수 그리스도 이후부터는 천국은 저 하기 나름으로 이제 들어갈 수 있다 라는 말씀들을 이 앞 내용에서 생각했고, 오늘 백 배되고, 육십 배 되고 혹은 삼십 배 아니면 전혀 결실 없는 그런 사람의 경우도 천국에서 정하여 주거나 특별히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저 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생각해 볼까 합니다. 좋은 밭에 있어야 그나마 삼십 배라도 가능하다 라고 말씀하시니 좋은 밭은 좋은 땅은 어떤 땅의 어떤 밭이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우선 간단히 답을 생각해본다면 \\\\\\\'좋은 땅이라고 할 수 있다면 안 좋은 땅과는 반대되겠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 그동안 안 좋은 땅은 어떤 땅이었느냐? 길가의 땅 그래서 스쳐가는 마귀들이 언제든지 그 말씀을 빼앗아 낼 수 있는 새들이 그 곡식을 쪼아내듯 마음속에 심기워지는 말씀을 마귀들이 뽑아내어 버릴 수 있는 그런 길가가 아닌 밭이면 좋은 밭이겠지요. 또 바위 같은 밭이 아니면 좋겠지요. 뿌리를 많이 내리지 못해서 한참 말씀을 받고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으나 곧 자기에게 유익이 없든지 자기에게 시험이 든다든지 할 때에는 뿌리가 없음으로서 그저 통채로 빠져 버리는, 넘어져 버리는 그래서 배반하는 그런 바위 밭이 아니면 좋은 밭이겠지요. 또 세 번째 모든 염려와 걱정과 그리고 재리와 그리고 일락의 생각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지 못할만한 그런 가시떨기 밭이 아니면 일단 좋은 땅이요 좋은 밭이겠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비록 길 가가 아니고 또 바위 밭이 아니고 또 가시덤불이 없는 그런 객관적으로 볼 때에는 좋은 밭이라 할지라도 더욱 더 중요한 선행조건이 있음을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15절에 나타난 말씀이 되겠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함으로 결실하는 자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인내로 결실하는 것, 이것이라면 마귀로부터 지키고 그리고 시험으로부터 인내하고 그리고 염려와 걱정들로부터 이겨서 결실까지 하는 길 가가 아니며 또 바위도 아니며, 가시덤불 밭도 아닌 그런 좋은 땅이어야 되겠지만 거기에 선행되는 기본 조건이 있는데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좋은 땅에 심기워져야 된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착하고 좋은 마음의 뜻을 좀 아는 것은 참 중요할 것 같습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이 성경을 통해서 보면 이 말씀을 하신 주님께서는 이 착하다 라는 것을 어떤 뜻으로 어떤 의미로 하셨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착하다, 좋은 마음이다\\\\\\\'라고 하니까 그저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고, 그저 남 시키는 대로 잘 하고, 소위 우리가 말하는 대로 법없어도 살 사람, 남에게 피해를 당했으면 당했지 남에게 피해 끼칠지 모르는 사람, 그저 열 번 만나봐도 착하고, 거짓 없는 사람, 진실한 사람 이러한 사람 그리고 남 잘 잘되기를 바라는 이런 마음이 좋은 마음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착하고 좋은 마음\\\\\\\' 그렇게 해석을 지금 우리는 객관적인 뜻으로 그리 할수 있겠습니다만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주님께서도 착하다 라는 말씀도 지금과 같은 뜻이었는가? 오늘날에 번역을 했어도 그렇게 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성경이 말하는 착함의 뜻은 다릅니다. 참 신기하게도 다릅니다. 요즘도 젊은 세대들이 부부간에 서로 호칭하는 것을 어른들은 잘 못 알아들을 때가 많습니다. 저도 벌써 몇가지를 듣고 있는데 전에는 뭐 \\\\\\\"임자, 어이, 여보\\\\\\\" 이렇게 내려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자기야, 자기야\\\\\\\" 그래요. 자기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데 상대를 보고 \\\\\\\'자기\\\\\\\'라고 하는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아빠가, 아빠가\\\\\\\" 그래요. 아빠는 아버지라는 말의 애칭스럽게 어린아이들의 표현 같은 표현인가 보다 했더니 자기를 낳아주신 그런 부모님을 아빠라 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아빠라 그래요. 그래도 그게 통한 때는 통합니다. 또 요즘에는 신혼여행 가는 부부들이, 제가 이제 주일날 주로 비행기를 많이 이용하니까 참 많은데 신혼 여행가는데 분명히 신혼 여행하는 하나는 신랑이고 하나는 신부이고 졸졸 따라가면서 그러면서 처음 만났으니까 \\\\\\\'여보\\\\\\\' 하기도 좀 곤란하고 \\\\\\\'유(you)\\\\\\\' 한다든지 이럴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빠, 오빠\\\\\\\" 그래요. 그래서 신혼여행을 왜 부부간에 가지 않고 저렇게 오누이끼리 가는가? 그래도 오빠도 그저 역시 남편의 의미이다 그겁니다. 그 같은 단어를 놓고서 그렇게 해석이 시대를 따라 좀 달라지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착하다 라고 하신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찾아보려고 아무리 길 가도 아니요, 바위 밭도 아니요, 가시덤불 밭이 아닌 좋은 토지일지라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그런 땅에 심기워져야 된다 라고 하는 조건이 있어서 이 착하다 라는 단어를 성경 속에서 한번 찾아보려고 어떤 경우에 쓰셨는지 찾아보려고 하니까 신기하게도 구약 39권 분량이 그렇게 많아도 착하다 라는 단어를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 이후에만 착하다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구약에는 제일 많이 나오는 말씀이 \\\\\\\'지켜라\\\\\\\'입니다. 어떻게 지켜라고 하느냐 하면 \\\\\\\"메시야가 오신다는 이 말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진리를 다른 이방에 알려주지 말고 나누어 갖지 말고 선민 이스라엘 민족 너희만 지켜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키고 지키었더니 그 지키는 민족을 통해서 그 지킨 만큼 결과로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신 이후에는 이제 지켜라는 단어는 거의 없어지고 \\\\\\\"전하라, 전하라. 나누라, 나누라.\\\\\\\" 이렇게 변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날 때까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지킴으로 보수하므로 예수님이 하나도 다른 어떤 성품이 보태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육신이 되어서 나타나시기까지는 그렇게 사용하셨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세례 요한부터 나의 때 이후에는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택한 민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방인이든지 믿으면 된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래서 그때 이후에는 \\\\\\\'이것을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보수하라. 확보하고 지켜라. 남에게 보이지도 말아라\\\\\\\' 이런 내용은 없고, 그저 \\\\\\\"나누어 주라. 나누어 주라. 네가 가졌으면 네가 가진 것만큼 나누어 주라.\\\\\\\" 하면서 나누어준 사람들에게 착하다는 표현을 했더라 그겁니다. 그 나누어준 사람들의 마음이 온유하거나 정직하거나 그것은 상관없이 잘 나누어준 사람보고 착하다 했더라 그겁니다. 그러면 이 신약에만 나타나는 주로 나타나는 이 착하다의 사건을 한 번 살펴볼까 합니다. 마태복음 5장으로 가셔서 한번 같이 참고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5절 이하를 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5-16)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한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 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소리도 크게 지르지 아니하고, 곱게 져주고 그런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등을 가졌는데 등의 불빛을 나타낸다면 빛은 표적에서 온다 라고 했습니까? 말씀에서 있다 라고 했습니까? 말씀을 받아서 깨닫고 은혜가 되게되면 얼굴 꺼풀이 달라질 정도로, 모세가 능력을 받아 내려와서 얼굴 꺼풀에 빛이 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 내려올 때 빛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등불을 가진 자가 말씀을 받아서 깨닫고 이 말씀 속에 있는 생명이 드러나게 될 때 빛을 비취게 되는데 이 빛을 받아가지고서 자기 혼자 기뻐하고 \\\\\\\"아멘 할렐루야. 나는 굉장한 것을 깨달았다.\\\\\\\" 하면서 혼자만 갖고 있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라는 겁니다. 할 수 있는 한, 이 나라 저 나라 이 골목 저 골목 사람 다니는 모든 곳의 등불을 등경 위에 두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라는 겁니다. 물론 그 사람이 빛을 받아들이거나 안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할 일이지만 일단은 우리가 은혜 받는 현장이 여기 산해원교회 이 현장이라면 \\\\\\\"들을 사람 다 와서 들으라. 미국에서도 오고, 아프리카에서도 오고, 마산에서도 오고, 진해에서도 오고, 창원에서도 와서 들으라.\\\\\\\"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받고 안 받고는 저들이 할 일이지만 그들이 있는 곳에 가서 일단 비춰지게 해 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착한 행실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받은바 빛을 혼자만 소유하지 아니하고 아직 빛을 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보이도록 해 주는 이 행실을 착한 행실이라 했다 그것입니다. 받은 바 은혜를 남도 똑같이 나누기 원하는 사람, 이러한 행위를 착한 행실이라 그랬다 그겁니다. 또 마태복음 25장으로 갑니다. 착하다 라는 단어 나온 곳을 거의 다 살펴서 지금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몇 군데 성경을 함께 보시겠는데요. 마태복음 25장 20절부터 봅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찌어다\\\\\\\"(마25:20-21) 했습니다. 여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 착하고 충성되다 라고 표현하신 하나님의 그 착하다 라는 뜻은 이 장사한 사람이 마음이 정직하고 목소리도 소곤소곤하고 그저 성도 내지 않고 그런 행위를 보고서 성격 좋다고 착하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주었더니 다섯 달란트를 남길 정도가 되었으니 받았던 그 달란트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굴렸다 그겁니다. 남길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통을 시키지 아니하면 남길 수가 없습니다. 이 주인의 뜻은 무엇입니까? 내가 준 것을 달란트의 가치를 안 사람이 혼자 자기의 것으로만 확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이많이 돌렸으면 착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네가 받았던 그 달란트를 남들도 똑같이 만져 볼 수 있도록 이 사람에게도 저 사람에게도 많이 돌렸으면 착하다는 겁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에게도 \\\\\\\'착한 종아\\\\\\\' 똑같이 말씀했습니다. \\\\\\\"네가 지극히 적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주인의 즐거움에 많은 것으로 네게 주노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받은 바 이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 기쁜 소식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을 남긴 것이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둘을 남겼습니다. 평생 살면서 이토록 전도하는 것이 어떻게 작은 일이겠습니까? 참 힘든 일입니다만 주께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많은 것으로 준다는 겁니다. 우리 일생 사는 동안에 전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아서 우리 이 세상에서는 가장 큰일 같이 여겨지지만 주께서는 지극히 작다 라고 표현하신 것은 그 일을 무시해서 별로 힘든 일이 아니라서 작다하신 것이 아니라 그일 때문에 받을 위로와 즐거움이 너무나 크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 충성했으니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네게 줄 터이니 주인과 함께 즐거움에 참여하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24절 이하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25장 24절 이하를 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25:24-30) 이 달란트의 비유도 이번 시리즈 내용과 꼭 같은 한 맥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했어요. 이 한 달란트 가진 사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이 마음이 악해서가 아닙니다. 남에게 공격적이어서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사람의 밭의 성분을 따져본다면 이 사람은 진실로 길가의 밭이 아니었습니다. 왜입니까? 주인이 떠나기 전에 주었던 한 달란트를 하나도 변색되지 않고 손색없이 그대로 묻어 두었다가 마지막 날 주인이 와서 계산하려는 그 순간에 전에 주셨던 그 달란트를 주인께서는 보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길가 밭이면 마귀들이 와서 벌써 쪼아 먹었으므로 이렇게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은 길가 밭이 아닙니다. 돌밭은 더욱 아닙니다. 그대로를 쌓아 두었습니다. 그 한 달란트의 효력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녹도 슬지 않도록 잘 보관했습니다. 땅을 깊이 파서 그대로 보관했습니다. 잊어 버렸다가 나중에 주어와서 들은 게 아닙니다. 처음 한번 들은 것을 끝까지 지킨 자입니다. 염려가 왜 없겠으며 재리와 열락에 대한 유혹이 왜 없었겠습니까만 이 사람은 그것을 전부 물리치고 \\\\\\\"당신 엄한 사람이라 내가 두려워하여 그대로 보존하였습니다. 내가 이것 보존하느라고, 이것 믿느라고, 이것 지키느라고, 이것 지키며 이 믿음 지키느라고 마귀의 유혹도 받지 않았습니다. 내가 뿌리가 없었지만 결코 목숨걸고 이것을 지켰습니다. 내 기분 나쁘다고 내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나의 모든 생활과 염려로 인해서 이것을 빼앗긴 적이 없습니다. 보소서, 당신이 주셨던 바로 그 번호의 그 달란트입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믿음 좋기로 한다면 이렇게 한번 받아들인 말씀을 이렇게 한번 받아들인 생명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주 오시는 그날에 그대로 보여낼 수 있다면 이것은 큰 믿음입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주 좋은 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이렇게 하고도, 그러니까 이 사람은 절대 마음이 악한게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거짓말하거나 가증된 사람은 더욱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은 말씀을, 갈 때에 주고 간 말씀을 주님이 마지막 날에 계산하러 올 때에도 그것을 그대로 내어놓을 수 있었으니 우리 중에 그런 자가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싶습니다만 이 사람이 그러고도 악하다는 말을 들은 것은 마음이 강팍하거나, 거짓말하거나, 믿음이 없거나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이 악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은 저만 위하여 확보하고 있었지 받은 것을 남들도 같이 누릴 수 있도록 나누어주지 않은 다만 그 한가지입니다. 여기에 착하고 악한 것의 차이는 우리들이 말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왜 그래?\\\\\\\' 그런 세상 사람의 기준으로 말하는 그 착함이 아닙니다. 받은 바 복음을 내 이웃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같이 전한 사람은 착한 종이요, 한번 받은 것을 그저 잊어버리지도 아니하고 길가도 돌짝밭도 가시떨기 밭도 아니라서 아주 좋은 밭처럼 한번 받은 것을 주 오시는 그날까지 그대로 믿고 가지고 있었던 그 사람,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더라 그겁니다. 이것을 잘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착하다 말씀해주셔야 우리가 위로되는 것이지, 이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 18절에도 나오고 그 뒤에도 나옵니다만 땅을 파고 감추어 두었다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아무런 결실한 열매가 없으니 그는 큰 책망을 받게 됩니다. 그 있는 것 마저 마지막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리고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만큼 바깥으로 쫓겨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자기가 주님 오실 때까지는 누구보다 잘 믿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깨달은 말씀, 자기가 받은 말씀, 혼자 발견하고 혼자 깨닫고 기뻐서 넘쳤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은 수십년이 지날 때까지 주님 앞에 설 그때까지 변함없이 그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판단을 듣고 보니 \\\\\\\"과연 네 말대로 내가 엄한 사람인줄로 알았느냐? 내가 두려워할 존재인줄 알았느냐? 해친 가운데서도 모으고 해치지 아니한 데서도 얻어내는 그런 사람인줄로 알았더냐? 그렇다면 돌렸어야 되지 않느냐? 정말 돌리기 싫었으면 치리하는 자에게 주어서 본전과 변리라도 찾아 드려야 되지 않느냐? 너는 나를 엄한 사람인 것까지 안 것까지는 바로 보았다. 해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사람인 주인이신 것까지도 네가 잘 알았다. 그랬으면 돌렸어야 되지 않느냐?\\\\\\\" 거기서 틀렸던 겁니다. 이 마지막에 이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내 판단이 틀렸구나. 내가 하나님을 믿었고 엄하게 생각했고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 그저 모으시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갖고 있었다 라고 하니 네가 아는 대로였다면 돌렸어야지?\\\\\\\" 우리는 주님의 계산을 따라야 합니다. 이 사람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차라리 이 사람보다야 \\\\\\\"주여, 저는 결실한 것이 적습니다.\\\\\\\" \\\\\\\"왜 적으냐?\\\\\\\" \\\\\\\"주님이 좀 능력을 보내셔서 길가와 같은 내가 말씀 받았을 때에 마귀가 쪼아먹지 못하도록 새들이 와서 쪼아먹지 못하도록 천사로 미가엘로 좀 막아 주었으면 내가 싹을 내고 열매를 맺었을 텐데 마귀를 내가 눈에 뵙니까? 밤이고 낮이고 설쳐 들어오는 마귀를 내가 무슨 재주로 이깁니까? 주님이 좀 도와주셨으면 될텐데 그놈의 마귀 때문에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무슨 뿌리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디 아브라함 자손입니까? 내 성이 아씨도 아닌데? 무슨 뿌리가 깁니까? 어쩌다가 지금 믿었는데 뿌리 없는 바위짝 같은데 그 말씀을 받아보려고, 말씀을 받고 그냥 열매를 피우는데 그냥 나가 떨어지는데, 주님 말씀하시기를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안 주신다했는데, 좀 그런 것 좀 생각해 주셨으면 내가 그래도 열매 하나라도 얻을텐데, 그만 내 형편이 이래가지고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라고 차라리 밭이 좋지 않았던 사람은 마지막 주님께 그래도 하소연이라도 할 말이 있습니다만 이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좋은 밭을 가지고서도 그 믿음을 자기만 지켰기 때문에 그 생명을 자기가 지켰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이 같은 판정을 받게 될 때 유구무언이었다 그것입니다. 또 한 군데 우리가 깊이 생각하면서 이 남은 때를 살아야 될 부분이 있는데 고린도후서로 한번 가보시겠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 이하를 봅니다. 여기도 착한 행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9:8-13)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바를 가지고서 나만 만족하고 나만 행복하는 데에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여 후한 연보를 했을 때 헌금을 했을 때 이것이 착한 행실이다 그것입니다. 연보 많이 하는 사람이 착한 행실이다 그겁니다. 그런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런 착한 행실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주신다는 겁니다. 여기에 연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만 8절 이하에 보면 \\\\\\\"모든 은혜\\\\\\\"라 했습니다. 능력도 자기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쓰는 사람이 아니고 남을 위하여 능력을 구한다면 충분히 넘치게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채워주시는 이가, 능력도 남을 위해 쓰겠다면 하나님이 넘치게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재물도 남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쓰겠다 라고 하면 그러한 자에게 아낌없이 하나님께서 넘치게 주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넘치게 주시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8절 하반절에 \\\\\\\"이는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착한 일을, \\\\\\\"기록한 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에 진리를 남보다 많이 받는 것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능력을 받는 것 복된 일입니다. 많은 물질을 받는 것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권세의 자리에 앉아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을 가지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하여 일평생 쓰다가 갔다면 과연 주께서 \\\\\\\"착하고 신실한 종이여\\\\\\\" 하겠느냐 그겁니다. 그러나 9절에 \\\\\\\"남을 위하여 많은 연보를 하고 남을 위하여 능력을 소비하고 남을 위하여 자기 있는 권세를 권세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많이 하였을 때에는 그것이 영원토록 있느니라.\\\\\\\" 남을 위하여 있었던 열매가 영원토록 있는 것이지 많이 받아 가지고 \\\\\\\'주여, 나는 풍족합니다. 나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지 영원히 있는 것과는 상관없다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연보를 하되 많이 하는데, 많이 하되 남을 위하여 연보를 많이 한다면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주신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물질뿐만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재능과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좋은 조건을 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이렇게 모아주신 것은 전부 노래하는 사람만 모으지 않았습니다. 전부 기술자만 모은 것이 아닙니다. 전부 선생님들만 모은 것이 아닙니다. 각종 위치에서 각각의 재능을 가진 분들을 모아주셔서 한 교회로 삼으시고 한 지체로 삼았습니다. 뭡니까? 각 지체들이 서로 도우라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돈 많이 가진 분들 있으면 아주 어려운 자 있으면 도와주도록 부탁합니다. 높은 권세 자리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제 권세 없어서 헤매고 방황하는 자들에게 연결을 시켜서 그 권세를 나누어 주라 합니다. 많이 협조하는 것을 감사합니다. 분야마다 전문 지식을 가진 분들, 또 세상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 몰라 가지고서 실패할까 돈 떼일까봐 해볼까 말아볼까, 이 장사 말까 할까 망설이는 분들이 있으면 목사는 설교하는 외에 그런 전문적인 것 다 잘 모르고 목사가 다 상담해서 답을 줄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가 서로 협력하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이시니 그 전문가와 상담을 해줍니다. 전문가의 말을 들으십시오 그럽니다. 그러면 전문가는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의 전문지식은 나의 갖고 있는 이 권세와 힘을 나를 위하여 평생 쓰다가 주님 앞에 가서 \\\\\\\"주여 주님께서 주신 이것 하나를 가지고 평생 내가 나만을 위하여 사용하였나이다.\\\\\\\" 이러한 사람은 책망을 받을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물질이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도와주라 하여 내게 주신 줄로 알고 내가 후히 연보하였나이다.\\\\\\\" \\\\\\\"착하고 신실한 종이여,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주인의 큰 즐거움에 참여할찌어다.\\\\\\\" 할렐루야! 그러나 연보를 하든지 말씀을 전하든지 이제 오늘 본문의 본론으로 들어갑니다만 다 좋습니다만 착한 뜻으로 하는 분들이 있고 시기와 분쟁으로 전도하고 연보하는 분들도 있다 그겁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성경은 우리가 신앙생활 할 모든 것을 자세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5절 말씀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라는 겁니다. 이제 또 바울 선생께서 이 빌립보에 있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셨는데 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간쯤 가서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게 어떻게 해서 나온 말씀인가? 이게 이겁니다. 바울이 너무 말씀이 좋고 능력을 행하고 대단하니까 바울과 같이 주의 일에 나섰던 사람들이 그만 바울만 나타났다 하면 항상 2등 되고 3등 되니까 바울이 별로 기분 좋지 않았다 그겁니다. 성도들은 바울이 좋았어요. 깊은 말씀을 잘 깨닫게 해주고 진리를 전해주고 말씀도 잘하시고 하니까 바울이 좋았어요. 좋았는데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바울만 나타나면 그만 자기 이름이 없어지니까 바울에 대해서 기분이 안 좋았다 그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도하시오. 전도하시오.\\\\\\\" 해도 \\\\\\\"당신이나 열심히 하시오.\\\\\\\" 하면서 전도도 안 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또 바울이 열심히 전도하면서 \\\\\\\"여러분도 같이 하십시오. 이것 혼자 하는 것 아닙니다.\\\\\\\" 하면서 일하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따르는 분들이 있었는데, 열심히 전하다가 두려움 없이 담대함으로 전하다가 그만 바울이 옥에 갇혔다 그겁니다. 옥에 갇히고 나니까 전에 바울을 싫어하던 사람, 바울 때문에 빛을 못 보던 사람들이 \\\\\\\"얼시구 잘되었다. 까불더니 얼마 못 가는구나.\\\\\\\" 하면서 \\\\\\\"이제는 주의 복음을 위하여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라고 하면서 바울을 욕보이려고 시기와 분쟁으로 \\\\\\\"바울이 끝났으니 이제는 바울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자.\\\\\\\" 하면서 이제 설치고 나와가지고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전하는 복음은 복음이었어요. 또 그런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우리 바울께서 감옥에 갇혔으니 바울이 안 계신 동안에 우리가 매꾸어 드려야지. 우리가 대신해 드려야지.\\\\\\\" 하면서 착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전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 전파 받은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다 그겁니다. 시기와 분쟁하는 뜻에서 열심히 한 사람을 통해서도 전도는 되었고, 착한 뜻으로 열심히 한 사람들 통해서도 전파되는 뜻은 그리스도였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감옥에서 하는 말이 \\\\\\\"나는 상관없다. 어쩌면 잘된 것 아니냐? 날 미워가지고 주님이 재미보고, 어떤 사람은 날 위해서 열심히 한다.\\\\\\\" 그런 내용인데 12절부터 그 내용입니다. 한번 볼까요.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참 바울이 대단한 분입니다. 예수의 세계만 잘 되면 나는 상관없다 그런 것이지요.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빌1:12-14) 이제 착한 쪽의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1:15-18) 그랬어요. 그러니까 바울은 자신을 포기한 겁니다. 주님만 잘되면 잘된다 라는 겁니다. 문제는 오늘 착하고 좋은 마음을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가운데서 이 바울이 옥에 갇히고 난 다음에 두 갈래의 사람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바울을 욕되고 하려고 바울의 선교현장을 망치려는 마음으로 자기가 바울 자리를 다 뚫고 들어가서 \\\\\\\"바울 들어갔으니 전부 내게로 오라.\\\\\\\" 하는 쪽으로 옳지 못한 방도로 전하고, 또 한쪽은 \\\\\\\"바울 선생님 나올 때까지 우리가 대신하는 것이지 나는 절대 앞에 선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 오실 때까지 우리 기도하면서 기다립시다.\\\\\\\" 하면서 착한 마음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두 갈래의 길이 나왔는데 \\\\\\\"받았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았으므로 그 전하는 사람이 악한 마음으로 했던지, 시기로 했던지, 착한 마음으로 했던지 간에 받았던 사람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받았으니 나는 더 이상 여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 나는 만족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악한 마음에서 내는 사람과 착한 마음에서 내는 사람의 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가가 이제 관심입니다. 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참 중요한 일이다 생각이 되는데, 제가 이 말씀을 읽을 때에 한 20년전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제가 장로로 시무하면서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축복도 많이 받고 이렇게 살았는데 주께서 저를 부르셔서 그저 기도하고 부름을 따라서 이제 주의 종으로서 나서게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주께서 능력을 주시니 손에서 능력이 나타나고 똑같이 말씀을 전하는데 말씀에 은혜받는 분이 많았습니다. 말씀에 생명이 넘친다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제가 있는 교회만 하더라도 여전도회 남전도회 헌신 예배를 자꾸 만들어 가지고 저더러 설교를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를 하니 목사님께서 잘 이끌어 가시는 교회에 목사님이 이루어놓은 강단에 올라가서 설교를 하니 성도들이 목사님에게 은혜 받는 것보다 실제로 더 은혜를 받는 것 같더라 그겁니다. 저의 이 얘기는 아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저도 한편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바깥에 나가서 집회도 늘 하고 막 능력을 행하고 이렇게 되니까 우리 교인들이 제가 소속해 있던 성도들이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계시던 목사님이 정말 저를 어렵게 했습니다. 이제 가만히 생각해보니 목사님이 어려움 당하니 저를 기분 좋게 생각할 수가 없겠지요. 장로가 목사에게 도움이 되어야 될텐데 목사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니까 여러가지 어려움을 가해왔습니다. 그것은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참 굉장한 어려움을 가해 왔습니다. 그때 제 주변에 있었던 같은 교회 성도님들 중에 유력한 여러분들이 제가 찾아와서 \\\\\\\"장로님 이제 신학교 들어가고 했으니까 목사님 되실텐데 개척을 합시다. 먼데 갈 것 뭐 있습니까? 장로님을 따르는 사람이 굉장히 많으니 내가 땅을 주겠습니다. 나는 건물을 지어 바치겠습니다. 그저 우리 교인이 이만큼 많으니 하십시다.\\\\\\\" 바로 가까운 데에서요. 제가 소속해 있는 교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같은 시내에서 하자는 겁니다. 땅 제공하지요. 교회 건물 지어주겠다 하지요. 신학교 다니니 이제 목사될테지요. 제가 생각해보아도 하게 되면 많은 성도들이 저를 따라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많아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기도를 할 때 욕심을 따라 기도되지 않게 하면서 객관적인 응답을 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어디에서 장로가 되었는고? 이 교회에서 장로가 되지 않았는가. 내가 이 교회 한 지체였지 않느냐. 내가 이 목사님 밑에서 안수를 받았지 않느냐. 그러면서 내가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요 한 한몸 이루었던 우리가 여기서 상당한 부분이 잘려 나온다고 해서 내가 속해 있던 내 몸체를 짤라 나온다면 나는 그 몸에 누구냐?\\\\\\\"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지도해주시고 나를 장로 되게까지 해 주신 안수하도록 지도해주신 목사님의 양을 반이라도 잘라가지고 나오면 그 잘라진 그 남아 있는 몸은 누구의 몸이냐? 그게 내 반쪽 잘라진 영적인 몸이 아니냐? 그래서 그 시를 벗어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든 호의를 뿌리치고 아예 그때 당시에 이 마산, 진해, 창원은 이 시경을 넘어서 교인이 오고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때입니다. 교통도 그때 통하지 않던 때이고 그래서 그 시를 넘고 넘어서서 이제 아브라함과 같은 심정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이 마산은 아주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그때 와서 형제와 더불어 기도를 하면서 교회 이름을 구했습니다. 그때 주신 이름이 산해원이었습니다. 어찌 산해원이 가능하겠습니까? 몇번 이것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으나 성령께서 강하게 말씀하심으로 산해원 교회라는 이름을 짓고 그때부터 시작했는데, 우리 한국 역사상에 마산과 진해 창원의 시 경계가 무너지고 전체가 교구가 된 것은 그때 처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 몸을 내가 헐지 아니하고 시기와 분쟁으로 다툼으로 누구를 욕보이고 내가 잘되는 쪽을 택하지 아니했던 것을 기뻐 여기사 차라리 산해원 3개 도시를 교구로 삼게 해 주시더니 과연 그렇게 되시더니 오늘날 산과 바다와 들이라는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종의 입으로 삼지 않으셨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와 제 가족이 늘 보호를 받을 때마다 그때 일을 생각합니다. 그때 인격을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이 말씀들을 보면서 바울을 향하여 그를 욕되게 하려고 \\\\\\\"네가 잘하는가 내가 잘하는가 보자. 네가 그동안 내 위에서만 있었는데 네가 얼마만큼 큰소리 치겠느냐? 내가 네 만큼 못할게 뭐냐?\\\\\\\" 하면서 나갔던 경우 또 착한 마음으로 착한 뜻으로 했던 경우, 이렇게 우리가 구분할 수 있는데, 비록 말씀을 받도록 허락되지 않았던 \\\\\\\'저희\\\\\\\' 아니고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허락된 \\\\\\\'너희\\\\\\\'에 속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저희\\\\\\\' 그룹입니까? \\\\\\\'너희\\\\\\\' 그룹입니까? 허락된 너희입니까? 허락되지 아니했던 저희입니까? 너희 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깨닫고 우리는 깊은 뜻 속에 들어가게 되는데 비록 말씀을 듣고 또 듣고 깨닫게 해줌으로서 이제 확실한 믿음을 가진 너희 그룹에 속한 우리일지라도 착한 마음으로 아니고서 주의 진리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착한 마음 아니고서 주의 진리를 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을 살피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70절로 7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했느냐 그러나 한 사람은 마귀니라\\\\\\\" 이랬어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요한복음 6장은 무엇입니까? 거라사 지방에 오병이어를 얻어먹고 다음날 또 떡을 먹겠다고 가버나움에 왔던 사람들입니다. 계속 표적만 구하니까 주님께서는 표적을 주지 않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으라. 생명의 음료를 마시라고 하니까 그것을 달라고 했더니 그것은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갔습니다. 그때 \\\\\\\"너희들도 가려느냐? 시몬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하면서 말씀을 듣겠다고 남았던 사람이 열 둘이었습니다. \\\\\\\"말씀이 좋습니다. 표적보다는 말씀이 정말 핵심입니다.\\\\\\\" 하면서 남았던 사람이 열둘입니다. 5천명 중에 다 가고 열둘 남았던 그겁니다. 이 열둘 남았는데 예수님께서 너희 열둘은 다 택한다 그랬어요. \\\\\\\"그러나 열둘 택하지만 열둘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 그랬어요. 누구를 가리켰습니까? 가룟 유다를 가리켰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주님이나 오늘 우리 교회에 머리되신 주님이나 같은 주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교회 가운데 말씀을 듣고 착한 사람만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가룟 유다도 택하여 한 그룹 속에 둔다는 겁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요한복음 13장 2절에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오늘날 교회를 팔아먹으려는 사람을 넣었다 그겁니다. 여기에 예수 하면 오늘날 그의 몸 된 교회입니다. 오늘날 그 교회를 욕되게 하려고 그 교회를 명예를 손상시키고 그 교회를 깨뜨리려고 하는 생각을 마귀가 넣었다 그겁니다. 그런데 마귀가 넣은 그 마귀의 생각을 떠나 보내지 아니하고 물리치지 아니하고 그대로 품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으니 우리가 뉘게로 가리이까\\\\\\\" 하는 그 그룹에 있었다 그겁니다. 있었더니 주님께서 \\\\\\\"야야, 네 열둘 남았지만 내가 보니까 한 놈은 마귀야 안돼. 너는 악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안돼.\\\\\\\" \\\\\\\'마음이 마음 밑바닥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시기와 다툼과 갈라내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너는 안돼\\\\\\\' 해서 쫓아내었다면 남아 있는 열 한 제자는 온전한 사람만 남아있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겠다는 사람을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말씀 듣고 생명 얻을까봐 두려워해서 못 듣게 했던 것이지요. 누구든지 듣겠다 하면 쫓아내지 않아요. 그냥 두었다 그겁니다. \\\\\\\"너희 열둘 중에 하나는 마귀니라\\\\\\\"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2절에 \\\\\\\"마귀가 벌써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그 다음 27절의 말씀이 무엇인고 하면 \\\\\\\"조각을 받은 후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그랬어요. 조각은 무슨 조각입니까? 나무 조각입니까? 예수님의 살조각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수입고기가 아닙니다. 수입품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바로 진(眞)살입니다. 예수님의 바로 피입니다. 그것을 그에게도 주었다 그겁니다. 그에게도 주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참다운 진리의 말씀을 받으면 그에게서 진리의 살이 찌고 진리의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그에게 진리의 떡이 들어가는데 뭐가 들어가서 자리잡고 뭐가 나타났다고요? 사단이 들어갔다 그겁니다. 이것은 어떤 경우입니까? 주님이 사단을 주지 않습니다. 주님은 진리만을 주는 겁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착하고 좋은 마음이 아니면 주님의 말씀이 말씀대로 육신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악을 깔고 있으면서 진리를 받으면, 차라리 안 받으면 좋은데, 마음에 시기와 분쟁을 그리고 명예와 자기의 자랑과 교만을 가진 상태에서 남보다 더 내세우고 남보다 더 명예로워지려고 하는 이런 생각을 마음에 깔고서 진리와 능력을 받게되면 들어가는 것은 진리인데 안에서 소화되는 것은 뭡니까? 사단이더라 그겁니다.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한 20년대 전에 성령운동이 한참 일어나던 한국 이 교계에 그저 주의 종들만 능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집사님들도 우리 청년들도 큰 능력 받아 온 분들이 많았습니다. 방언도 하고, 통역도 하고, 예언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치는 이런 능력들을 저 산에 그 기도원에 가서 많이 받아와서 굉장한 성령운동이 일어났을 때 교회 중에 한 두 명씩 은혜를 받아옵니다. 돈도 많이 들여가지고 가서 열심히 해서 받아옵니다. 와서 설치니까 우르르 몰려듭니다. \\\\\\\"기도좀 해봐주세요? 아들 낳겠습니까? 딸 낳겠습니까? 사업이 되겠습니까? 말겠습니까?\\\\\\\" 우르르 몰려가게 되니까 못 받고 그냥 있었던 집사님들 중에서 \\\\\\\"아하, 웃기네. 저것 내가 전도했는데 믿은지 몇 년 되었다고 아니 저게 능력 받아가지고 까불고 있네. 어떻게 저럴 수 있어?\\\\\\\" 하면서 \\\\\\\'나고 갑니다. 너도 갑니다\\\\\\\' 해가지고서 빚 얻어 가지고서 줄서서 올라간 사람 많아요. 처음부터 올라갈 때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좋은 밭에다가 말씀과 능력을 받으려고 간 것이 아니라 \\\\\\\'누가 나보다 늦게 된 저가 까부는 것은 보기 싫다. 눈뜨고 못 봐 주겠다\\\\\\\' 해가지고 처음부터 마음에 악심을 깔고, 욕심을 깔고, 교만을 깔고 갔던 사람 많습니다. 틀림없이 받았습니다. 진리가 쏟아질 때 그 욕심을 갖고 더 설쳐대었으니까 더 받아 내려왔다 그겁니다. 처음 받아 내려와서 볼때는 참으로 더 큰 능력자가 왔다고 야단들인데 얼마 지나다보니까 그가 미치거나 그가 엄청난 일을 저질러서 교회를 깨뜨리는 큰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무슨 일입니까? 자기가 속해 있던 교회에 흠을 주고 자기가 속해있던 교회의 벽에다 쇠스랑을 괭이를 가지고 파낸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볼 때 그를 뭐라고 여기겠습니까? 바로 마귀의 일 아닙니까. 그가 받은 능력은 참으로 성령 충만한 데에서 받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예수님의 살점을 그냥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이 깨끗하지 못하니 들어갈 때 떡이 들어가서 떡이 소화되고 떡의 잎사귀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들어갔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유다야, 네 할 일을 속히 하라.\\\\\\\" 그러니까 한 일이 뭡니까? 예수 팔아먹는 배반을 속히 하더라 그겁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큰 진리를 받는 것 좋습니다. 집회를 통해서 큰 능력을 받는 것 좋지만 능력이 임하기 전에 귀한 생명의 진리의 말씀이 내게 깨달아지기 전에 해야 될 일이 무엇이냐? 예배에 들어가시기 전에 그런 것을 받으시기 전에 미움을 버려야 될 줄 믿습니다. 시기와 분쟁으로 받아서는 안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희는 예배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시간을 갖고서 예배 시간이 정시라면 그 시간 되기 전 30분전부터 교우교제를 통해서 서로 용서하라고 그럽니다. 미워하는 미움을 전부 없애라고 그럽니다. 주의 종들과 성도간에 미움이 있었더라도 없애고, 성도간에 미움이 있었더라도 없애고, 부부간에 미움이 있었더라도 없애고, 다 없애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 회개하고 맑고 깨끗한 좋은 땅 될 뿐만 아니라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주의 말씀 그대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게 되는데, 미워하는 상태로 \\\\\\\'내가 누구보다 은혜 더 받아야 될텐데, 아이구, 저 말씀은 저 사람한테 은혜가 안 되야 되는데, 은혜 못 받을 사람이 더 아멘 하네\\\\\\\' 이런 식으로 악한 마음을 가지고 은혜를 받게되면 진리가 들어가서 그 나쁜 마음을 고쳐야 될텐데 나쁜 마음을 가진 상태에 진리가 들어가니 사단이 들어가 버리더라 그겁니다. 이것을 이해 잘 하셔야 합니다. 우리 영적 생활하는 사람들인데 이것 잘못하면 안되지요. 그래서 저는 항상 부탁하기를 예배 전에 말씀 받기 전에 \\\\\\\"사랑을 충만히 하십시오. 성령 충만하십시오. 그리고 회개하십시오. 깨끗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서로 미운 사람 있으면 지금 풀었다가 예배를 마치고 다시 감으십시오.\\\\\\\"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철저히 하라합니다. 나중에 예배를 마치고 나서 다시 반납하더라도 회개했던 것 다시 회수하더라도 말씀 받을 때에는 주님의 살점이 사단 살점이 되어지지 않도록 해야 되는 겁니다. 이 영의 세계 명령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그런 겁니다. 진실하십시오. 경건하십시오. 거룩하십시오. 마태복음 13장 27절에 이 본 주제와 같은 주제로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여, 주께서 당신의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어찌하여 가라지가 났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원수가 그리하였구나. 그러면 우리가 뽑을까요?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저 가느다랗게 비비꼬여 가라지 사이에서 알곡 곡식 하나 비틀어져 가지고 있는 저것마저도 같이 꺾인다. 가라지하고 얼마나 얼켜 설켜 있던지 떨어질 수가 없는 형편되었다.\\\\\\\" 그러니까 처음에 알곡이 하나 났어요. 진리를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진리를 계속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착하고 좋지 아니한 악한 심령으로 진리를 계속 받게 되니까 계속 들어가서 커 나오는 것이 사단이 나와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얽히고 설켰던 것인데 주님이 가만 쳐다보니까 그 사이에 원래 알곡은 노랗게 비틀어져 가지고 가느다란 라면 줄기같이 그렇게 되어 버리고, 사단 가라지는 튼튼해 얽혀 있다는 겁니다. 가만 보니까 어이 없어. \\\\\\\"주여, 주님의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어떻게 가라지가 났지요?\\\\\\\" \\\\\\\"사단이 들어있어 그리하였구나.\\\\\\\" \\\\\\\"우리가 당장 뽑을까요?\\\\\\\" \\\\\\\"뽑아 봐라. 홀랑 당장 다 뽑혀 올라오는데 가라지는 뽑아서 불에 던질텐데 그러면 저 비틀어져 다 죽어가는 저 알곡도 불에 던지지 않겠는가? 이것은 지금 할 수가 없다. 심판 때에 가를 수밖에 없다. 마지막 심판 때에 확 잘라 가지고서 가라지를 확 모아 가지고서 불에 던져놓고 그 비틀어지게 그래도 한가닥 남아 있는 것 그것은 찾아내자. 그래서 집어넣자.\\\\\\\" 이어지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미리 빼어 버려라. 네 팔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미리 짤라 버려라. 네 다리가 너를 실족케 하거든 미리 짤라 버려라. 그것 없고 차라리 건강한 남은 육체만 들고 들어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 끝까지 있으면 마지막 심판 때에나 가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처음에 한 가닥이 튼튼한 싹이 나더니 가라지가 자꾸 자꾸 살이 찌니 있는 것도 다 빼앗겨서 자세히 보지 아니하면 알곡은 전혀 없는 것처럼 되었구나.\\\\\\\" 그래서 마지막 때에 다 잘라 내어버리고 비틀어진 알곡 하나라도 골라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천국에 이끌어 들이기는 하지만 그 형편 그 꼴 되어 가지고서야 들어가서 되겠습니까? 미리 마음 밭을 선하게 기경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 중에는 목사님들 중에는 자기 교회에 아주 문제가 있는 직분자들이 있는데 참으로 악한 마음으로 교회를 어렵게 하고 목사가 어렵게 하니까 그 사람에게 책망을 해야되겠다고, 아주 바로 고쳐 주어야 되겠다고 강한 책망을 하게 됩니다. 강한 책망을 하게 되는데 저는 우리 교회를 통해서 나간 목사님들에게 그런 사람에게 책망을 하지 말라 합니다. 사랑의 책망을 한다 할지라도 그의 마음 바닥이 미리 기경되지 아니하면 진리와 사랑이 갈수록 사단의 놀라운 가라지가 튼튼하게 살이 쪄서 올라오니 책망한다고 되더냐? 더 시험 들고 더 시험 들고 더 어렵게 한다 그겁니다. 그 형편까지 되는 일이 없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고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주의 말씀 앞에 이 진리 앞에 나아갈 때에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은 어떤 것이냐? 귀한 것을 깨달아 나만 복을 누리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하는 교회, 지구촌 곳곳에 사람들이 있는 곳마다 우리의 말씀이 귀하다 생명이다 깊은 것을 깨달았다하면 그 깨달은 만큼 세계 곳곳에 가서 등경위에 올려놓고 \\\\\\\"너희가 믿고 안 믿고는 네가 할 일이지만 보라. 네게 들려지게 하노라. 보여지게 하노라.\\\\\\\" 비춰주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착한 겁니다. 이 착한 사람 중에는 혹시 성질이 급하고 혹시 말씨가 좀 강하고 강퍅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열심히 받은 바를 전하여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람은 착하다 말 듣지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한번 들은 말씀 끝까지 빼앗기지 아니하고 주님 오신 날까지 붙들었지만 자기만을 위하여 붙들었던 이 사람은 차라리 길가 밭 사람은 할말이 있어도 이 한 달란트 믿었던 사람은 할말도 없더라 그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남은 때에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되지 않기 위하여 선교하는 교회 됩시다. 전도하는 교인 됩시다. 남을 위하여 연보 많이 합시다. 연보 많이 하면 더 많은 영광이 영원토록 가도록 그에게 열매로 채워주기 위해서 더 넉넉하게 주시겠다는 주의 말씀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있는 것마저 빼앗기는 자 되지 마시고 남을 위하여 후히 연보 하는 착한 사람, 전도를 위하여 선교하는 착한 교회, 그리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착한 성도 되신다면 착한 사람에게 더 착함을 받으시기 위하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서 있는 자에게 더 있게 하시는 주님의 역사가 그렇지 못한 교회와 그렇지 못한 성도에게서 빼앗아다 주는 그 달란트가 우리의 교회의 것이 되고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고합니다. 축원합니다. 주님도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이처럼 되기 위하여 우선 참으로 신자 됩시다.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 눅8:4-8
100배의 결실은 주님 뜻인가? 눅8:4-8 오늘「백 배의 결실은 주님 뜻이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게 됩니다. 이 설교는 오늘도 들으시고 또 이어서 이어지는 다음 편 설교도 꼭 들으셔야 전체적인 정리가 될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다음 설교는 주일 밤에 드리도록 하겠고 오늘 그 첫 시간으로 본문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그 여러 이적들 뭐 병 고치시는 일 또 떡 다섯 개로써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일, 여러 가지 이런 이적들 또 포도주를 물로써 만들어내신 일 이런 큰 이적들의 소문이 온 지방에 퍼져감으로써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 있는 곳으로 몰려들어서 이 본문의 현장에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큰 무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말씀을 하시게 되는데 이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13장 1절 이하에도 나타나 있습니다만 두 군데를 다 합쳐서 생각해보면 이 현장이 갈릴리 바닷가였는데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그리고 수많은 각 처에서 온 무리들은 이제 그 바닷가 그 야산 언덕에 쭉 앉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비유로서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비유의 내용을 오늘 본문에 소개된 것을 보면 씨뿌리는 내용인데 이 경우 저 경우 결실이 어떻게 된다 안 된다 이런 내용으로서 말씀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조그마한 마이크만 있어도 얼마나 성능이 좋은지 그저 조용 조용히 얘기해도 다 빨려 들어가서 여러분의 귓가에는 확성되어 가지고서 그 스피커를 통해서 아주 적당하게 들려집니다. 얼마나 좋은 시대를 지금 살고 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스피커 무슨 전기시설 이런 것이 없을 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확성기가 없는 그때에 큰 무리가 모였으니, 이 무리가 수십명이 아닙니다. 수백명이 아닙니다. 수천명입니다 대체로. 그렇게 모였으니까 굉장히 넓은 지역으로 퍼져서 앉았고 또 실내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같은 실내도 이 마이크가 없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이 앞에만 들리지 뒤에는 들릴 수가 없어요. 이런 형편에서 예수님께서 배에 앉으시고 수많은 무리들은 이제 언덕에 이렇게 걸터앉았는데 그때에 큰 무리가 모였으니 예수님께서 마이크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말씀했겠는가? 조용 조용히 말씀했겠는가? 외쳐서 참 목이 쉬도록 이렇게 말씀했겠는가? 여러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거 실내도 아니고 바깥이고 그리고 또 큰 무리가 모였고 확성기도 없으니 예수님이 크게 외쳐서, 어딘가에 보면 또 본문에 보면 외쳤다는 말이 나오니까요. 외쳤단 말이 나오니까 \\\\\\\'외쳐서 이렇게 말씀하셨을테니 그때마다 예수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목이 쉬셨겠지…\\\\\\\' 이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이날 설교하실 때에는 말씀하실 때에는 외쳐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조용 조용히 얘기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조용 조용히 얘기했을 뿐만 아니라 그 조용 조용한 얘기를 핵심적인 내용을 직설법으로 설교하지도 않고 아주 비유로써 엇 삐딱한 비유로써 설교를 했기 때문에 다시 듣지 않고서는 씨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돌작밭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가시덤불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도무지 다시 설명듣기 전에는 아무리 머리 좋은 사람도 짐작해서 알 수 없는 그런 아주 말씀으로 말씀한 것을 보게 되는데, 제가 그 큰 무리 앞에 예수님이 마이크도 없는데 확성기도 없는데 외치지 않고 조용 조용히 말씀을 드렸다고 하니까 여러분께서 아주 의아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본문이 그렇기 때문에 본문을 한번 더 살피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러니까 4절부터 나타난 전체의 비유의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외치시려면 이 중요한 핵심적인 말씀 시작할 때부터 외쳐야지 중요한 정말 깨달아야 될 말씀은 혼자서 중얼중얼 하듯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중얼중얼 그 앞에 앉아 있는 몇 사람들만 좀 들을 정도지 전체는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얘기하고 나서 그래서 이제 뭐 설교를 좀 하려는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가 싶은데 큰 소리 친 부분은 어느 것이냐 하면 마칠 때 \\\\\\\"들을 귀 있는 사람을 들을지어다\\\\\\\" 그래 버린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고 소리를 치니까 저 뒤에 있던 사람들이 이제 무슨 말하려는가 보다 했더니 \\\\\\\"마쳤습니다.\\\\\\\" 그것 참 배에서 내려와 가지고 숙소로 들어가신다 그겁니다. 그것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시 듣기 전에는 그 비유가 그래도 비슷해야 더 알아듣기 쉬워야 될텐데 아주 이해할 수 없는 비유를 얘기 한데다가 그것도 무리로 모였으면 막 외쳐서 그 내용을 다 알아듣도록 해야 될텐데 정작 중요한 내용 얘기할 때에는 뭐 혼자 중얼중얼 하듯이 앞에 몇 사람만 겨우 들을 정도로 얘기를 하더니 발딱 고개를 드시고서 이제 시작하는가 했더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래서 \\\\\\\"아 지금부터 뭐 하는가보다. 이제 들으라고 하는 것 보니 뭐 하는가보다.\\\\\\\" 했더니 누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사회자 제자가 하나 나와 가지고서 \\\\\\\"끝났습니다.\\\\\\\" 이게 이 본문을 보면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살펴보면 전체 무리가 들을 수 있었던 말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외친 소리는 그것 뿐입니다. 그 앞에 정말 듣도록 해 주어야 될 말씀은 들리지 않게 했으니 혹 예수님께서 이 무리들로 하여금 들리지 않게 해 가지고서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듭니다. 아, 요즘 누가 설교하면서 누가 가르치면서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서 무슨 전도가 되겠습니까? 이런식으로 해서 전도가 안되지요. 예수님이니까 이런식으로도 하고 살았지만 오늘날 목사가 이런식으로 하다가는 당장 쫓겨나지요. 이게 될 말이 아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이 방법을 보면 \\\\\\\'도무지 못 들으라고 하신 것 아닌가? 깨달으면 무슨 탈이라도 난단 말인가? 그것 이상하네…\\\\\\\' 이렇게 우리가 의심이 갈 정도인데 아니나 다를까 과연 그랬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많은 무리가 모였으되 그 많은 무리가 다 알아 들을까봐 아주 걱정했어요. 이 많은 무리가 설교를 못 듣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하는 내용이 그 뒤에 나옵니다. 9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그러니까 제자들은 주로 앞에 앉았겠지요. 우리 교회는 목사님과 장로님들 이렇게 중직 되시는 분들이 예배에 따라서 앞좌석에 앉아서 또 영적 권위와 질서 그리고 강단에 힘을 실어주는 예배도 있지만 또 가끔은 맨 뒤에 혹은 중간 중간에 이렇게 앉아 주십니다. 오늘 수요일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울타리가 되어 주시기도 합니다만 아마 이때 제자들의 경우는 예수님 근처에 항상 따라 다니는 제자들 열두 명 쫙 둘러앉고 그 다음에 무리는 아마 오든지 말든지 하도 인산인해로 몰려오니까 오는 대로 붙어 앉았던 것 같은데 제자들이 제일 가까이에서는 그래도 열심히 들으니까 좀 듣기는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도 예수님 따라다니는 제자일지라도 예수님이 오늘 비유를 든 이 내용 가지고는 도무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겁니다. 원래 비유면 더 잘 알아들으라고 예를 들어주는데 이건 더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9절에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제자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참 또 이상한 일 다 보지요. \\\\\\\"이미 허락된 너희에게는 아까 비유만 가지고서는 너희가 깨닫지 못했으니까 내가 다시 그 비유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 씨는 무엇이며 돌작밭은 무엇이며 길가는 무엇이며 다 이게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제자들이 다시 듣고 보니까 \\\\\\\"이것을 어느 천재인들 이 비유만 듣고 그게 그 말인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었어요. 우리는 하도 들으니까 \\\\\\\"아 씨는 말씀이지\\\\\\\" 이러지만 씨가 말씀이라는 무슨 등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처음 하시는 말씀인데,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허락이 되었기 때문에 아까 비유만 가지고 안되니까 내가 또 다시 일러주지만 다른 사람들 너희 말고 저 다른 사람들은 허락되지 아니하였으니 허락되지 아니한 저들이 혹 듣고 깨달을까 내가 두려워서 엇 삐딱한 비유로 했을 뿐만 아니라 뒤에 안 들리게 하느라고 내가 조용 조용히 하고 그래서 뭐 끝말 한마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말은 듣고 나면 이 말만 듣고 나면 딴 소리를 못 들으면 골만 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고서 그만 책 덮어 가지고 나가버린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참 왜인가 했더니 의도적으로 그리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날 모였던 이 많은 무리가 얼마나 뭔가 주님의 감정을 상하게 했길래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다 생명이 있는데 이 말씀을 듣지 못하게 이렇게까지 했을까? 이 사람들이 몰려와도 멀리서부터 몰려왔는데 이 사람들이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마지막에 한마디 겨우 들었다면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아마 주님께서 그렇게 못해서 못했을 겁니다만 마음속으로는 \\\\\\\'들을 귀 있는 놈은 들으라\\\\\\\' 이랬는지 모르겠어요. 하여간에 마음은 그런 심정에서 말씀하신 것같이 되어 버렸다 그겁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이상한 일인데 그러나 주님께서 그날에 모였던 그 많은 무리가 미워서 특별히 그 사람들만 미워서, 아니면 주님께서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어디서 잠깐 들으니까 스트레스라는 말을 요즘 많이 쓰는데 어른들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라 가지고 \\\\\\\"스테인레스 받았느냐\\\\\\\"고 한다고 하더니 하여간에 스테인레스인지 되든지 스트레스가 되든지 주님께서 뭔가 스트레스를 받으셔서 그 날따라 열 받아 가지고 \\\\\\\"이 좋은 복음을 내가 왜 전해?\\\\\\\" 기분 나쁘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그것만 소리치고 말으셨는가 했더니 그 주님이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하셔서 그날 유별나게 그리 하셨던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이 뜻도 그러했던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사야 6장에 보면 이런 일이 있어야 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사야 6장 9절부터 10절까지 보겠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이전에 구약 때에 이사야 선지를 통해서 이미 예언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지시한 하나님의 말씀을 봅니다. 9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그랬어요. 그러니까 벌써 이것은 하나님의 뜻으로서 예수님도 그대로 수행하고 계신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이 다 복음을 받아서 백 배의 결실을 맺어야만 된다. 또 교회 한번 인도된 사람은 전부 다 교회 문으로 들어왔으면 나중에 빠져나가는 사람이 없고 다 남아야 된다.\\\\\\\" 이렇게 강조하기도 합니다만 그래서 뭐 많이 인도되어 왔지만 남지 않고 자꾸 떨어져 나가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 오늘날 역사가 없는가? 하나님 이제 주무시는가?\\\\\\\" 이런식으로 얘기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구약 때부터 예수님 당시 오늘날까지도 마찬가지로 흐르고 있는데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여서 천국 시민이 되는 이것은 아무나 헤프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예수 믿게 하려고 가서 일도 해주고 거들어주고, 이삿짐도 옮겨주고, 아이도 봐주고 온갖 노력을 다해가면서 사랑을 베풀어서 오게 하니까 그렇게 해서 오는 사람들은 나중에 안 오다가 안 오다가 한번 올 때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한번 가줄게!\\\\\\\" 이런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뭐 자기가 안 와주면 교회가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할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 복음은 부끄러운 복음이 아닙니다.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이 이 복음 인하여 천국까지 가게 된다는 것은 이것은 보통 복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복을 얻는 겁니다. 이 귀한 것을 그저 아무에게나 헤프게 그렇게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정하시고 허락한 자에게는 또 다시 또 다시 깨닫게 해서 알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저가 혹 깨닫고 고침을 받을까 두렵다 그말입니다. 회개하고 나와서 달라 붙을까 두렵다 그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구약 때부터 주님의 현장에 이를 때까지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복음은 모두에게 전하지만 모두에게 전한다고 모두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겁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성령이 역사해야 되는 것이고 들려지는 것도 성령의 인도함이 있어야 되는 겁니다.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우리 탓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천국 백성 되도록 이 교회 성도 되도록 허락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그 몇 명의 제자들만이 깨달을 수 있는 이런 깨달음을 함께 깨닫게 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깨닫게 되면 작품이 나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너희 귀는 복이 있도다 그랬어요. 그래서 많이 모였다고 해서 먼데로부터 많이 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그겁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것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허락함이 없었다면 미리 예정하신 바가 없었다며 부르심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여기에 우리 영혼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성도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이 신분 말이지요, 이것은 천국과 연결된 것인데 이 세상에 하나님 말고도 악한 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성경 외에 한번 말씀하시고는 달리 말씀 별로 안 하시지만 악한 신들은 온갖 점을 다치고 온갖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지옥 간다. 예수 믿어도 천당 못 간다.\\\\\\\" 하는 점은 어느 신도 못합니다. 온갖 거짓말 다해도 그것 하나는 부정 못합니다. 그것 들어봤습니까? 예수 믿어 가지고 천당 못 간다는 점쟁이가 있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엉터리입니다. 그러니까 이 엄청난 이 복은 그저 아무에게나 우리에게나 구걸하듯이 \\\\\\\"좀 받아주세요. 좀 예수 이름 가져주세요. 천국 좀 제발 좀 들어와 주세요.\\\\\\\" 천국의 위력은 그런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 그런데 제자들에게 밝혀 주신 바 이 비유의 설명을 들어보면 11절 이하에서 볼수 있는데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1-15) 이렇게 하면서 이제 앞서 그 무리들에게 들리지도 않도록 말씀하셨던, 그러나 제자들은 앞에 앉았기 때문에 겨우 겨우 주어 들었던 그 비유에 대하여 주님께서 다시 설명을 해 주신 것을 보게 되면 \\\\\\\"길가에 떨어진 씨, 그 말씀이 마음에 박혔지만 누가 빼앗아 가버린다. 새들이 와서 먹듯이 쪼아 가 버린다.\\\\\\\" 이것은 길 가이기 때문에 길가는 사람들이 항상 지나쳐 갑니다. 내가 꼭 만날 사람만 길가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기로 작정된 사람은 길가에서 만나지 않습니다. 어느 장소에서 만나지요. 그래서 이 길을 지나다가 보면 사람들이 항상 스쳐갑니다. 아이도 가기도 하고 짐승도 가기도 하고, 이렇게 생긴 사람 저렇게 생긴 사람 삭삭 스쳐갑니다. 이 스쳐가는 이 존재가 누구라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는가하면 길가에 새들도 오고 짐승도 오고 막 스쳐갑니다. 이거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길가에 나가면 스쳐갑니다. 맞지요? 사람이 많이 스쳐갑니다. 이 스쳐가는 사람이나 짐승을 무엇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했느냐 하면 마귀다 그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길가는 사람처럼 천국길 가고 있는 이길 동안에도 마귀가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스치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합니다. 이 마귀가 항상 우리에게 스칩니다. 우리가 오라고 해서 만나자고 해서 오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이 모양으로 스치고 저 모양으로 스칩니다. 이 스쳐가면서 힐끔 힐끔 쳐다보다가 우리가 주일날 말씀을 받습니다. 또 심방을 통해서 말씀을 받습니다. 그 말씀을 받을 때 \\\\\\\"할렐루야. 기쁘다. 이 말씀 되어지기를 바라나이다. 이 말씀이 이루어지소서. 말씀이 육신이 되소서.\\\\\\\"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 근처에로 마귀가 수시로 지나칩니다. 이 지나치는 길에 스치듯 계속 스치는 이 마귀는 무엇을 목적으로 스치느냐? 우리에게 병을 주고 우리에게 발을 걸어가지고 넘어뜨리고, 그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생명의 말씀을 빼어내겠다 그겁니다. 생명의 말씀만 저 속에서 결실하지 못하면 천국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옥으로 간다 그겁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었으나 마귀가 밤낮을 스치면서 기회만 있으면 가져가 버린다 그겁니다. 빼내어버린다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설교를 주의 말씀을 이렇게 잘 듣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마귀가 스치고 스치면서 의심을 줄 때도 있고 화를 내게 할 수도 있고 남으로부터 억울한 형편도 당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하고, 차 타고 가다가도 여러 형편 생기게 되고, 여기에 결실하는 자는 어떤 자라고 그랬어요? 착한 마음, 좋은 마음을 가지고 평안한 성령의 마음이 유지가 되어야 될텐데 이 세상 살다보면 그 유지가 잘 안됩니다. 이것은 전부 스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지혜있는 분들은 영적인 분들은 그런 일이 올 때마다 \\\\\\\"사단아, 물러가라. 내가 여기에 말려들지 않아야지. 사단에게 속지 않아야지.\\\\\\\" 그렇게 하면서 물러가라 하면서 기쁨을 곧 회복해서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 그리 하기가 전쟁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지만 스칠 때 기분이 나쁘면 저놈이 하도 험한 짓을 하면 그만 속에서 옛날에 하던 소리가 나온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기분이 나빠서 크락션을 팍 눌리고 저놈이 나를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고 나도 차를 그 앞에 가서 확 집어넣어 가지고 그렇게 막 이렇게 하고 옛날에 쓰던 욕설 한번 해 뱉어버리면 뭐가 나와 버리느냐? 욕설과 함께 뭐가 나가버리느냐? 들어왔던 말씀이 싹 나가 버립니다. 왜? 그렇게 한바탕하고 집에 가서 무슨 설교 들었느냐고 물으면 몰라요. 한 주일도 못 가니 무슨 뿌리가 생겨 가지고 열매 맺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경우는 결실치 못하는 자요. 그것이 이제 마귀가 스치면서 결실치 못하는 자요. \\\\\\\"바위 위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위 위에 떨어졌기 때문에 결실치 못하는 이유는 뿌리가 없어서 바위에 습기가 없으므로 미리 뿌리 내려놓지 않았으면 결실치 못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아브라함의 자손들 저 유대인들은 뿌리로 치면 수천 년 믿음의 뿌리를 가졌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뿌리 해 봐야 제일 처음 기독교 들어온게 이제 100년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여러분 당대에 우리 교회 처음으로 나와서 구원받은 분도 많고, 부모님들 믿어보았자 길어서 삼대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뿌리가 얼마 되지 않아요.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믿은지 오래된 사람, 믿음의 집안으로서 계속 되어진 사람들을 보면 또 신기해요. 처음에 말씀을 받고 이럴 때 얼마 되지 아니한 사람들 은혜를 받아가지고 막 \\\\\\\"할렐루야! 아멘!\\\\\\\" 혼자 이 세상을 다 잡아먹을 것처럼 막 이러는데 오래 믿음의 집안에서 내려오고 장로의 집안 권사의 집안에서 쭉 내려오는 사람들의 자녀들을 보면 은혜를 받는지 안 받는지, 그래서 항상 쳐다보면 목사의 입장에서 우리 성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구, 장로님들 저 집의 자녀들은 믿은지 오래 된다하지만 통 은혜도 못 받아.\\\\\\\" 이렇게 싶을 정도로 별로 감흥이 없어요. 그런데 시험이 들거나, 자기가 억울한 일이 왔거나, 뭔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생기거나 했을 때에도 뿌리가 깊은 집은 그런 집안에서 오래 믿은 사람은 그냥 교회 지키고 버티고 있어요. 그러나 뿌리가 없이 갓 믿어 가지고 금방 좋다 온 세상을 다 잡아먹을 듯 은혜 충만하던 사람은 그만 한번 누가 딱 찌르면 마음의 충격을 한번 주거나 뭔가 오해가 생겼거나 기분 나쁜 일이 하나 생겼으면 그만 배반하는 자요. 그러면 그 이유는 어디 있느냐?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겁니다. 이건 나무랄 것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배반하고 쓰러지고 \\\\\\\"나 교회 안갑니다. 구역장 당신이나 잘 믿으시오. 나 안 갈래요.\\\\\\\" 이렇게 하면서 열을 올려도 그것으로써 끝내지 말아야 되요. 믿은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좋은 말씀 받고 그렇게 기쁘지만 믿은 기간이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저렇게 쓰러지는구나 생각하고 다시 일으켜주고 다시 일으켜주고, 북을 돋아주고 습기가 있도록 해 주고 그렇게 해서 뿌리를 깊이 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먼저 믿은 자의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이 뿌리가 없기 때문에 넘어지는 자요. 그 다음에 가시덤불에 뿌려졌다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 그리고 일락에 기운이 막힌 탓으로 쑥 올라오지만 빛보지 못한, 물 제대로 먹지 못한 콩나물처럼 삐적 말라가지고 홀라당 엎어질 정도로 기운 없이 올라오는 것, 그러니까 햇빛 못 보면 풀이 자라나다가 쏙 올라오다가 그렇게 되지요. 이제 그와같이 되어버린다 그것이지요. 그러니까 뭐 이런 염려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 중에서 이 세상에 염려 없는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염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재리 \\\\\\\"지금 집을 사면 돈벌까? 주식 투자를 하면 돈벌까? 은행 이자는 어찌 되는가? IMF지나면 어찌 되는가? 어디가면 나은가? 보험금을 어쩌면 타는가?\\\\\\\" 하여간에 집집마다. 제가 비행기를 타면 비행기에 신문 한부씩 주잖아요. 앞에다가 쭉 그 신문을 제공하는 판에 놓아놓습니다. 무슨 신문 무슨 신문 쭉 놓았는데 가면서 자기 원하는 대로 빼어갑니다. 저는 보통 일간지 이런 신문 가져옵니다. 그래서 저는 신문을 가져오는데 사방을 둘러보면 전부 무슨 신문을 주로 가져가느냐? 경제지를 가져갑니다. 경제. 그리고 여성들은 주로 뭘 가져가느냐? 스포츠, 재미난 것 연예계 소식 있는 이런 것을 가져가는데 대부분의 남성들은 전부 경제 신문 가져갑니다. 확 넘기는 것을 보니까 주식, 환율 전부 그런 것들을 봅니다. 우리 성도님들 얼마나 하시는지 모르지만 하여간에 주식이 깡통되느냐 올라가느냐 그것에 아주 총 집중인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그것이 돈벌이가 되겠느냐 안되겠는가, 내가 올라가겠는가 내려가겠는가, 무슨 뭐 보너스가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 이 생각 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그리고 일락에, 뭡니까? 즐기고 노는 것, \\\\\\\"아 이번 주말이 어디를 갈까?\\\\\\\" 그리고 요즘 \\\\\\\"추석 연휴가 계속 오는데 이 연휴 지금 어디를 갈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이다.\\\\\\\" 지금 계획 세운다고 바쁠 겁니다. 이런 데에 전부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을 받아서 씨가 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염려와 재리와 또는 노는 재미 이런 것 연구하다가 보면 말씀이 살아나기는 살아났는데 영 죽지는 않았는데 비실비실 노랗게 볕 보지 못한 그 풀만 쑥 길어나는 것 있잖아요. 습한 어두운 데에서 그렇게 자랐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실 이 세상 어떤 사람의 경우라도 여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처음부터 무슨 뿌리가 있으며 길가에 스치는 사람처럼 마귀가 아무 비자도 받지 않고 초인종도 울리지 않고 항상 스치는 놈이 마귀인데 저녁에 음식 잘 먹고 즐겁게 다 각방으로 자녀들 들어가고 부부가 한방에 탁 들어가서 침대에 드러누웠는데도 거기까지는 안 들어와야 할텐데 마귀가 거기까지 들어와 가지고서 한참 좋아 가지고서 침대에 올라왔는데 그만 무슨 얘기를 하다가 팍 심장 상하는 소리를 하면 그만 밀고 차버려 가지고 배게 들고서 쇼파에 가서 잠자고, 하여간에 전부 이런 짓거리를 하는데 이런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는데 이런 경우 안 당하는 경우 정말 좋은 말씀 위에 한번 자라나려면 확 그냥 무슨 전기 바짝 하듯이 탁 받자마자 확 올라와서 꽃피고 그런 것 없습니다. 이루어지려면 몇 달이 걸리고 하는데 이것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구약 때나 지금이나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당시에 불과 몇 명 되지 아니하는 제자들, \\\\\\\"너희는 허락되었기 때문에 이 비유에 대해서 다시 들으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돌작밭이란 이런 것이요, 가시덤불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요.\\\\\\\" 전부 설명해 주시면서 그러니까 제자들이 \\\\\\\"아 그렇습니까? 그 말씀입니까?\\\\\\\" 듣고 깨달아 버리니까 깨달아버린 것은 안나간다 그것입니다. 그냥 듣고 귀에만 있을 때에는 또 다른 소리를 하면 아닌가 하고 거기에 기울지만 확실한 진리구나 하는 것을 영적 체질로 깨달아 버리면 아니랄 수가 없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니랄 수가 없게 되는 것, 그렇습니다. 자기 체질이 되면 이게 체험적 신앙입니다. 깨달아 확실히 믿는데 누가 아니라고 한다고 아닙니까? 아닐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것은 남자이고, 남자분 많이 계시고 여자분 계신데 여러분이 여자인줄을 여자들이 잘 안다 그겁니다. 그런데 남이 \\\\\\\"아, 당신 남자네?\\\\\\\" \\\\\\\"어, 내가 남자인가?\\\\\\\" 그런 여자가 어디 있습니까? 남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았으면 자기가 어릴 때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다가 어느 순간에 남자인 것을 깨달았다 그겁니다. 깨달아 알고 나면 내가 남성이다 라는 것을 내가 체질적으로 깨닫게 있는데 \\\\\\\"하, 당신은 여성입니다.\\\\\\\" 그렇게 한다고 \\\\\\\"아 내가 여성입니까? 그러면 오늘부터 여성인줄로 믿습니다.\\\\\\\" 그것은 안됩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뭡니까? 이 깨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깨달아 버렸는데 어떻게 바꿉니까? 맞는 것을.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합시다. 우리 앞으로 인터넷 주소를 갈렙3927(caleb3927)로 홈페이지 주소로 하려고 신청을 해 놓았는데 3927 구약 39권 신약 27권 그래서 또 구구단으로도 3×9=27 그래서 3927 그러니까 아주 특수한 성경 66권을 말하는 3927을 홈페이지 주소로서 앞으로 띄우게 될텐데 우리가 학교에 가면 배우지 않습니까? 3×8=24, 3×9=27 이제 그것 외우기 전까지는 3×9=28이라 하면 28인줄 알아요 깨닫기 전에는 그러나 확실히 알고 난 다음에는 3×9=27인데 3×9=29라고 누가 말한다고 믿으라 한다고 믿어집니까? 안됩니다. 이건 도무지 안되지요. 그러니까 듣고 깨닫는다는 것, 이 말씀이 이것이로구나 라고 깨닫는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그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당시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 몇 명만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을 오늘 제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깨닫고 우리 마음이 기쁘게 되었으니 이게 보통 사건이 아니다 그겁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던들 이런 큰복이 있었겠느냐 그겁니다. 우린들 지나치는 마귀가 없습니까? 우린들 재리와 염려와 근심으로 그 기운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뿌리가 어디 깊습니까? 불과 믿은지 몇 년 되지 아니하고 한국에서 믿었다 해봤자 최고 오래 가봤자 백년인데 그것은 뿌리라고도 할 수도 없어요. 이런 우린데 오늘 예수님 옆에서 제자들이 누리던 그 기쁨을 누리고 \\\\\\\"너희는 복이 있도다. 무릇 있는 너희에게는 더 있게될지라.\\\\\\\" 해서 날마다 날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고 하더니 말씀도 듣고 보니 더 깨달아지고 더 깨달아진다 그겁니다. 이 엄청난 깨달음의 축복이 우리에게 와 있으니 이것이 나의 나된 탓이냐? 하나님으로부터 허락 받은 탓이냐?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많은 사람들이 저 먼 곳으로부터 몰려왔다고 다 듣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한 자만이 이것을 듣고 깨닫게 해 주시려고 한 것을 볼 때 오늘 그 깨달음을 받았던 불과 그때 당시의 많은 무리가 아니라 제자들 몇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이처럼 큰복을 받았다는 것, 이것은 우리의 탓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예정하셨던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5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그랬어요. 아론이 아론 된 것 대단하지 않습니까? 큰 나라의 종으로 가 가지고서 큰 고생을 하고 있는 중에 모세를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에게로 보내려고 할 때 하나님은 아론을 먼저 불렀습니다. \\\\\\\"내 종 모세가 올텐데 그는 입이 둔하니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너의 말 잘하는 말로써 모세를 도우라\\\\\\\"고 미리 정해두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아론이 모세 올 때에 무슨 통역사 원서를 내었습니까?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 말 잘하니까 우리 모세 말 듣고는 도대체 가나안인지 카나다인지 못 알아들을 것 같으니까 저 모세 말 좀 대변할 수 있는 아론을 우리 대변자로 세웁니다.\\\\\\\" 이렇게 해서 선출된 겁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아론은 아론 될 수 있었고 그의 후손들은 영원한 제사장족이 되었다 그겁니다. 하나님이 한번 뽑아서 이 존귀한 직분을 준 것이지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 누가 제멋대로 되려고 스스로 취할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다 이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이 엄청난 신분,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그 수많은 무리들 멀리서부터 왔으나 마지막 소리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그 소리만 듣고 파해버렸는데 이 제자들처럼 이 말씀을 그대로 제자의 깨달음과 같은 수준으로 어쩌면 더 깊은 수준으로 오늘 우리가 듣게 되고 깨닫게 된 것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된 줄로 믿으시고 오늘 우리가 우리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오늘 따라 왜 이처럼 이 많은 사람들, 바리새인도 물론 섞여 있었습니다만 이 사람들에게 비유로서 말씀드리느냐 하면 그러니까 무슨 그냥 말씀이라 하면 될 것을 씨라고 그러고, 마귀라고 하면 될텐데 길가에 뭐 새들이 어쩌고저쩌고, 이런 말씀들을 빙빙 돌려 가지고 말씀을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예수님이 누가복음 8장 이전에 얼마 전에 직설법으로 바로 말 하다가 예수님이 하마터면 맞아 죽으실 뻔했어요. 큰 사고 날 뻔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겨우 살아났기 때문에 그 뒤에부터는 그냥 화법을 바꾸셨는데 참고적으로 한번 그때 일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누가복음 4장 25절로,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무나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를 찾으시고 아무에게 복 다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겁니다. 그런 것을 이제 그때 4장에서는 처음 예수님이 이제 이 누가복음 4장이라면 1장 2장 3장 4장 태어나시고 이제 세례받고 성령 받으시고 이제 4장에서 사역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 경험이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바로 직설로 했어요. 25절로 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눅4:25-30) 이랬어요.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냐 하면 회당에 내놓으라 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웃기지 마소. 여러분들이 회당에 왔다고 바깥에서 바리새인이요 뭐 대단하다고 해서 천국 다 가는 줄 아시오? 천만에. 엘리야 시대에 과부가 얼마나 많았소? 그러나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사렙다 한 사람 과부에게만 보냈으며 또 엘리사 시대에 문둥이가 얼마나 많았소? 그러나 나아만 장군 하나만 고쳐준 것이요. 너희가 뭐 많이 있다고 하나님이 모두 통채로 다 불러 가는 줄 아는가? 아니라.\\\\\\\" 하면서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해대니까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아멘 감사하겠지만 \\\\\\\'나머지는 다 소용없다. 쭉정이 취급한다\\\\\\\' 이런식으로 주님이 설교를 그냥 경험이 작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바로 하니까 그 따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그만 열 받아 가지고서 \\\\\\\"끌어내라. 끌어내라. 죽여라.\\\\\\\" 해 가지고서 예수님을 끌고 어디로 갔느냐 하면 건설하는데 산 낭떠러지 건설하는 것을 보니까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골프장을 만들었는지 그 당시 골프장은 없었겠습니다만 하여간에 댐을 막았는지 아주 절벽으로 끌고 갔어요. 예수님이 끌려갔어요 이렇게. 끌려가서 거기서 탁 밀치려고 하는데 그 마지막 탁 밀치려는 순간에 주님께서 쓱 지나서 빠져 나왔는데 아마 주님의 오금이 저렸을 겁니다. 그래서 천사의 도우심으로 쓱 지나서 왔는데 바로 죽을 뻔했어요. 그러니까 그 뒤에는 지금 말씀하시기를 뱅뱅 돌려서 비유로 말씀하니까 그 뒤에부터는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저 말은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인가? 누구를 보고 하는 말인가?\\\\\\\" 이렇게 했어요. 예수님의 이 설교 방법도 저를 비롯한 우리 목사님들도 잘 알아 두셔야 될 것은 이 장례식 때에나 결혼식 때에 가 가지고서 특히 장례식 때에 가서 순진하게 지금 이 관속에 들어가 있는 이 사람은 믿었기 때문에 천당이지만 이 가죽들 서서 울고 하지만 안 믿는 것은 전부 지옥이라고 또 관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믿고 죽었는지 안 믿고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면, 그 가족이 전부 믿는 사람이라서 \\\\\\\"가족들이 믿어서 내가 할 수 없이 기독교장으로 해주기는 해 주지만 들어 있는 이 사람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뭐 안 받았으면 소용없는 겁니다. 이건 뭐 지옥이요.\\\\\\\" 앞에 그 조상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건 지옥\\\\\\\" 이렇게 바로 암만 맞는 말이라도 그런 형편에 가서 바로 직설적으로 그랬다가는 맞아 죽는 수가 있어요. 우리 목사님들 주의 하셔야 합니다. 결혼식 같은데 가 가지고서도 거기 가서 둘이 짝 붙여주면 되는 것인데 거기 가서 무슨 은혜를 끼치려고 \\\\\\\'믿으면 천당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요\\\\\\\' 그런식으로 해보면, 결혼식에 가보면 참 믿는 집안끼리 양가가 다 잘 믿기는 어려워요. 일부는 믿고 안 믿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데 가 가지고서는 예수님의 4장처럼 하지 말고 8장처럼 해야 살아남는 것이지요. 어찌되었건 이 내용이나 저 내용이나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는 헤프게 내어 놓은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고 그 나라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 하고자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되는 것이니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던 것으로 알고 또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만 그 중에 천에 하나 만의 하나 골라내듯 하나님이 찾아 부르시니 모두가 다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 이 세상에 있는 염려도 마귀도 모두 우리말씀을 믿는 자라도 쓰러뜨리려고 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어려운 때에 이 문화 생활하는 이때에 이 믿음을 지키고 삼일 예배 이 수요일까지도 이 힘든데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감사예배를 드리고 주의 말씀을 들으면 그때 제자들처럼 기쁨으로 깨달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여러분의 이 축복된 신분은 우리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천의 하나 만의 하나 고르시고 부르시고 택하셨음을 믿으시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가지 재앙/ 출11:1-3/ 2009-08-12
10가지 재앙 출11:1-3 출애굽기를 읽다보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 장대한 스케일, 수많은 등장인물들, 반전을 거듭하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 그리고 상상을 초월한 통쾌한 장면들... 하나님께서 시나리오를 쓰시고, 하나님께서 감독하시고, 하나님께서 제작하신 하나의 우주적인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우주적 드라마 출애굽기는 내용적으로 볼 때 크게 세 편의 연속된 사건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째는 출애굽을 위한 준비 사건입니다.(1-6장)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지도자 모세를 부르시는 사건입니다. 이 부분은 모세라는 한 개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둘째는 출애굽 사건입니다.(7-18장)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시는 사건입니다. 이 부분은 이스라엘을 구출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셋째는 출애굽 이후 사건입니다.(19-40)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저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는 사건입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고자 하는 본문 말씀은 두 번째 사건의 한 부분입니다. 출 7:14-11:10까지 이어지는 소위 “열 재앙 사건”입니다. 그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셔서 바로 왕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8:1) 물론 바로가 보낼 리 만무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저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리 없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면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장정만 60만입니다. 남녀노소 전체를 합하면 200만 정도의 인구입니다. 저들이 노예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 막대한 노동력을 잃어버린다면 애굽이라는 나라는 더 이상 지탱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필사적으로 버팁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맛보기로 이적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이 지팡이가 뱀이 된 사건입니다. 이쯤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고 선선히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요술사들도 같은 이적을 보입니다. 그것을 본 바로가 거절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매를 드셨습니다. 바로 애굽 땅에 재앙을 퍼부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려 10차례나 계속됩니다. 바로 왕이 버티다 버티다 결국 두 손을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냅니다. 10차례 재앙은 이런 것들입니다. 첫째, 피 재앙입니다. 애굽의 모든 강과 하수가 피로 변했습니다. 둘째, 개구리 재앙입니다. 개구리가 애굽의 온 땅을 덮었습니다. 셋째, 이 재앙입니다. 땅의 티끌들이 이로 변했습니다. 넷째, 파리 재앙입니다. 애굽의 온 천지가 파리로 뒤덮였습니다. 다섯째, 악질 재앙입니다. 애굽의 가축들이 악질로 죽었습니다. 여섯째, 악성 종기 재앙입니다 . 애굽 사람들과 짐승들이 지독한 피부병인 악성 종기에 고통을 겪습니다. 일곱째, 우박 재앙입니다. 애굽 전국에 우박이 내렸습니다. 여덟째, 메뚜기 재앙입니다. 애굽 전역에 메뚜기 떼가 창궐했습니다. 아홉째, 흑암 재앙입니다. 흑암으로 애굽 전체가 어둠에 뒤덮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자 재앙입니다. 애굽의 장자들이 다 죽었습니다. 그 하나하나가 다 끔찍한 재앙들입니다.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재앙들입니다. 이 재앙들 10가지가 쏟아짐으로써 바로가 항복을 선언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 보냈습니다. 이 10가지 재앙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됩니다. 1. 하나님을 나타내심 출애굽기의 10 재앙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목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7:5를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7:17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8:22를 보면 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그리고 9:14, 9:16, 8:10 등을 보면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하리라”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이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참 신이심을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우주만물을 친히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고, 역사를 섭리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해야 함을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실제로 10가지 재앙은 당시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을 심판하시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즉 그것들은 참신이 아님을 만천하에 공포하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피 재앙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나일 강은 생명의 젖줄입니다. 나일 강은 사막 한 가운데를 흐르는 강입니다. 애굽은 땅 대부분이 사막입니다. 이 사막인 애굽 땅에 사람들이 살고 대제국이 세워졌습니다. 전적으로 나일 강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 애굽인들은 나일 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 신의 이름이 ‘닐루스’(Nilus)입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 신을 지극정성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신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생명을 주는 나일 강이 피로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생명의 근원이 죽음의 자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더 이상 나일 강이 신이 아니라는 선포입니다. 애굽 사람들의 생사는 나일 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선포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관하신다는 엄숙한 선포입니다. 다음으로 흑암 재앙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애굽은 사막입니다. 사막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태양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1년 365일 대낮에는 태양이 저 하늘에 떠서 온 천하를 호령합니다. 당연히 고대 애굽 사람들은 저 태양을 신 중에 최고의 신으로 추앙하게 되었습니다. 그 신이 바로 태양신 ‘라’(Ra)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신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대낮에도 3일 간이나 애굽 온 천지가 흑암으로 뒤덮혔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평생 처음 보는 광경입니다. 태양 신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태양이 신이 아니라는 선포입니다. 태양이 사람들의 생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는 선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는 선포입니다. 그렇습니다. 10 가지 재앙이 모두가 다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던 것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는 선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라는 선포입니다. 이 사건으로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호 4:1, 6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망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6을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나는 것을 원하노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6:3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시는가?” 이점을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힘써서 여호와를 알려고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확인시키심 이 10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시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를 부르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시키신 바가 있습니다. 6: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 앞에 세우시고 이 점을 다시 확인시키셨습니다. 7:1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백성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바로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일방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은 이 일방적인 선택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 10가지 재앙 사건을 조금 세심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 가지 재앙 중에 치명적인 재앙들은 애굽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파리 재앙, 악질 재앙, 우박 재앙, 흑암 재앙, 그리고 장자 재앙입니다. 이 재앙들은 애굽 땅에서도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 땅에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가지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시는구나!” 그리고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사실을 재미있는 관점으로 설명했습니다. 렘 31:31-3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셔서 시내산으로 인도하셔서 언약을 맺으셨는데 이 언약은 혼인 서약과 같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신부로 택하셔서 결혼 예식을 올리기 위해 애굽에서 데리고 나가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결혼 예식장은 저 시내산인데 지금 그곳으로 데리고 나가시려고 바로에게 이 재앙을 내리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신부로 아주 특별히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당신의 신부로 아주 특별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당신의 신부로 아주 특별히 사랑하고 계신 것입니다. 맥스 루케이도가 쓴 [아주 특별한 사랑]이란 책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난 정말 많이 공부했어. 하나님에 대해 말야.“ 자신 있게 말하지만, 누군가를 인정할 수 없어서 누군가 부럽다 못해 미워져서 혹은 자신이 못마땅해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는 당신. 부드러운 미소와 섬김으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 누군가를 간절히 바라는 당신은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친 손에 반지를 끼우고 더러워진 얼굴을 닦아주시고 고운 옷을 당신에게 입히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 속에 잠겨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주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십시오. 그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잠겨보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심 이 10 가지 재앙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재앙이 임하자 처음에 바로는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그러다 재앙의 강도가 심해지자 한 발 물러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보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다시 말을 뒤집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바꾸셔서 보낼 마음을 바꾸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재앙에서 이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9:12, 10:20, 10:27에 반복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바로가 악성 종기 재앙이 임했을 때, 메뚜기 재앙이 임했을 때, 그리고 흑암 재앙이 임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보낼 생각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셔서 바로가 보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이 10가지 재앙의 최종 목표가 따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장자 재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장자 재앙까지 이미 계획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장자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드러내 보이시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장자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는 구원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출 12:21-23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지나가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의 피를 보시면 여호와께서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에게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한 마디로 유월절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자 죽음의 재앙을 피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 인방과 문설주에 뿌리고 그 집 안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피를 보고 그 집은 유월 곧 넘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살았습니다. 장자 죽음의 재앙을 면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이 땅에서도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으로 장자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 받고 심판에서 구원받고 이 땅의 저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10 재앙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심을 깊이 느끼고 그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도 새 이스라엘인 우리를 위해 놀랍게 역사하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0가지 재앙과 출애굽/ 출12:29-36/ 2001-09-11
10가지 재앙과 출애굽 출12:29-36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나는 여호와로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실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런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다시 바로 앞에 섭니다. 그리 고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 내 군대\\\\\\\"라고 선언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 이 사실을 선언했습니다. 7:8\\\\\\\"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이것은 바로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바로는 그들을 자신의 노예, 자기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나타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대 로 말을 합니다. 바로는 마음이 더욱 더 강팍해 졌습니다. 누가 감히 내 재산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하는 교만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이런 강팍 한 마음 때문에 자기 눈 앞에 보이는 기적들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 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보였지만 그는 단지 애굽의 술사들이 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밖에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강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바로와 애굽 사람 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서운 것들이었습니다. 10번의 재난이 임하였는 데 그 종류들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 번째 재앙은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인들의 부요 는 바로 이 나일강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의 부요를 보장하여 줌으로 신으로 숭배를 받던 나일강이 피가 되 었습니다. 이것은 나일강이 죽어 버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들은 나일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못도 만들고 호수도 만들어 생을 편 리하게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무서운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거두어지기 시작하자 그 땅은 풍요의 땅에서 죽음의 땅으로 변하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재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온 나라 안에 개구리 때가 날뛰는 것입니다. 강변에나 있어야 할 개구리들이 온 도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로의 궁 안에 까지 개구리로 인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개구리는 무슨 공 격할 무기를 가진 짐승도 아니었지만 바로의 군대로도 이것들을 어찌할 수 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로 그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보개 하셨지만 바로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강팍한 마음을 가질 뿐 이었습니다. 세 번재 재앙은 \\\\\\\"이\\\\\\\"가 득실대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마 음이 변하지 않자 하나님은 아무 경고도 없이 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아주 작은 것으로 한 번 파고들면 살갗까지 파고들는 무서운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전 한 마을에 소위 \\\\\\\"노내기\\\\\\\"라고 하는 발 많이 달린 곤충들이 많이 생겨서 방송에까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온 마을의 담벼락에 덕지덕지 이 벌레들이 붙어 있는 장면은 충격적이었고 너무나도 징그러운 모습이었습니 다.그런데 하물며 사람의 몸에 자신의 살갗을 파먹는 벌레가 들어왔으니 이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이런 것들은 그저 가난한 자들이나 당하는 일이라고 그들은 여겨왔었습 니다. 이런 일들은 노예들의 일이지 주인된 자신들이 당할 일이라고 생각하 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무서운 재앙으로 인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마치 걸인과 같이 옷을 벗고 이 벌레를 잡아야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 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것인양 차지하고 부를 누리던 자들을 한 순간에 낮추어 버리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모세와 아론의 흉내를 내던 사단의 사자들, 곧 바로의 술사들은 이 재앙 앞에서 완전히 손을 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으로 도 모든 것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시는 전능자 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강팍함을 버리지 않습니다. 네 번째 재앙은 파리재앙이었습니다. 수 많은 파리떼의 공격을 받은 애 굽은 그야말로 사람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수 많은 파 리 떼가 온 나라 안을 가득히 채운 모습들을 말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가축에게 전염병이 돌게 하시는 재앙이었습니다. 가축들 은 애굽인들의 귀중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 위에 전염병 이 돎으로 모두 죽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에 있는 것만 칠 것이 니 그 모든 것들을 피하게 하라고 미리 경고해 주셨지만 바로와 그 백성은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토록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 치 않았던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는 직접 애굽 사람들과 가축의 몸을 독종으로 치시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재앙은 세 번째 것과 마찬가지로 경고가 없이 행하여진 재앙 입니다. 그리고 이 재앙부터는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훨씬 더 고통스러운 재앙들이 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점차로 더 무 서운 재앙으로 심판하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술사들도 이 재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온 백성이 얼 굴과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일곱 번째로 주께서는 애굽 온 지역을 우박으로 치십니다. 밭에 남아 있는 채소와 곡식들을 치시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로는 메뚜기 떼를 보내셔서 최소한의 남은 것 조차 다 먹어 치 우게 하심으로 재난을 더욱 더 심화시키십니다. 애굽인들은 이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그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욱 더 마음을 강팍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아홉번째로 하나님께서는 흑암을 보내 온 애굽 땅을 어둡게 하셨습니다. 빛이 없는 깜깜한 세상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 심으로 모든 빛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누리는 최소한의 은혜라도 다 감사의 조건이 되지 않을 수 없 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즉시로 다시 마음을 강 팍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이제 모세와 아론이 다시금 자기 앞에 나타난다면 그들을 죽이겠노라고 협박하기까지 할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마침내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마지막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사람의 장자뿐 아니라 짐승의 첫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죽임을 당하는 대 재난이 애굽 온 땅에 임하게 됩니다. 결국 바로는 이 재앙 앞에서야 비 로소 이스라엘 온 백성을 놓아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10가지 재앙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중요한 진리들이 있습니다. 1.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애굽인들은 수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신들을 살펴 보 면 이렇습니다. 하피/나일강의 신 이시스/나일강의 여신 헤겟/개구리 머리를 한 출산의 여신 셑/광야의 신 레/태양신 우아치트/곤충의 신(파리가 대표) 하솔/소머리를 한 여신 아피스/풍요의 신(숫소의 신) 셋크메트/질병을 이기는 여신 이시스/치료의 신 눗/하늘의 여신 오시리스/풍요와 곡식의 신 세스/곡식의 보호자 민/재생의 신 10가지 재앙들은 자세히 살펴 보면 바로 애굽인들이 섬기던 이 신들 위 에 내린 것들이었음을 봅니다. 애굽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이 신들이 자신 들을 보호하여 주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을 결코 그들을 지 켜 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얼 마나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께서는 다시 한 번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온 땅에 드러내게 되실 것입니다. 2.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이로부터 사람과 태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마음 대로 주장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 음을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온 이스라엘은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실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참으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 처럼 소유하고 있던 바로에게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 내렸습니다. 자 신들의 노예가 아니었던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탄압하던 바로에게 마침내 무서운 심판의 채찍이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모세를 통하여 계속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자기 온 백성을 불행에 빠지게 하는 지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모든 애굽 사람과 짐승의 첫 새끼가 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늘 겸손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고 생 명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별하여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에서 처음의 피재앙과 개구리 재앙 이 재앙은 애굽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도 고통을 당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특별히 파리 재앙에서 부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시는 것을 봅니다. 8:23\\\\\\\"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 역시도 애굽 사람들의 고통을 같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당하는 고난을 무한정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구별하여 주신 것입 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이런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 셔서 자신들을 특별하게 다루고 계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모든 고통을 무한정 버려 둔체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똑 같은 고난을 겪는 것 같이 보이지만 마침내 하나 님께서 나타나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 실 것입니다. 재앙이 임하자 바로는 타협을 하자고 모세에게 요청을 합니다. 그의 타 협안은 매우 교묘한 것이었습니다. 1.그는 애굽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좋다고 동의를 하는 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단서를 붙입니다. 그것은 애굽 땅에서 제 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는 믿되 세상에서 분리되려고 하지는 말라\\\\\\\"는 제안과 같은 것입니다. 주일은 지켜라 하지만 생활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식인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생활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애굽 땅을 떠나는 아품 없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광야로 나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는 믿되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는 말과 같은 제안입니다. 이 세상의 세력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예배는 드리되 빨리 다시 이 벽돌을 찍 는 노예생활로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지 않고는 참 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옛 질서로부터 완전히 떠나는 결단이 있어야 참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남자들만 가라고 합니다.(10:11) 여기서는 특별히 자녀들을 데리고 가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너는 예수를 믿어도 좋다 그러나 너의 자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길 이 있는 데 강요할 것이 무엇이냐? 너나 잘 믿어라\\\\\\\"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 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을 상실한다고 생각해 보 십시오, 이것은 교회의 미래를 잃어 버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세상 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4.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가라고 합니다.(10:24) 이것은 그래 이제 예수를 믿어라! 온 가족이 믿어도 좋다! \\\\\\\"그러나 헌신 은 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전혀 동원되지 않고 정신적인 평안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 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예수님 다음으로 돈이 좋아요!\\\\\\\"라는 재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돈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이 물질로 인한 시험들이 그토록 많을 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그곳에 마음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 을 어디에 드리는가가 우리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물질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제와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바로의 타협안을 과감히 거절해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0가지 재앙과 출애굽/ 출12:29-36/ 2001-09-11
10가지 재앙과 출애굽 출12:29-36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나는 여호와로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실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런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다시 바로 앞에 섭니다. 그리 고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 내 군대\\\\\\\"라고 선언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 이 사실을 선언했습니다. 7:8\\\\\\\"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이것은 바로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바로는 그들을 자신의 노예, 자기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나타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대 로 말을 합니다. 바로는 마음이 더욱 더 강팍해 졌습니다. 누가 감히 내 재산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하는 교만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이런 강팍 한 마음 때문에 자기 눈 앞에 보이는 기적들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 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보였지만 그는 단지 애굽의 술사들이 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밖에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강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바로와 애굽 사람 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서운 것들이었습니다. 10번의 재난이 임하였는 데 그 종류들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 번째 재앙은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인들의 부요 는 바로 이 나일강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의 부요를 보장하여 줌으로 신으로 숭배를 받던 나일강이 피가 되 었습니다. 이것은 나일강이 죽어 버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들은 나일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못도 만들고 호수도 만들어 생을 편 리하게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무서운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거두어지기 시작하자 그 땅은 풍요의 땅에서 죽음의 땅으로 변하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재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온 나라 안에 개구리 때가 날뛰는 것입니다. 강변에나 있어야 할 개구리들이 온 도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로의 궁 안에 까지 개구리로 인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개구리는 무슨 공 격할 무기를 가진 짐승도 아니었지만 바로의 군대로도 이것들을 어찌할 수 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로 그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보개 하셨지만 바로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강팍한 마음을 가질 뿐 이었습니다. 세 번재 재앙은 \\\\\\\"이\\\\\\\"가 득실대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마 음이 변하지 않자 하나님은 아무 경고도 없이 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아주 작은 것으로 한 번 파고들면 살갗까지 파고들는 무서운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전 한 마을에 소위 \\\\\\\"노내기\\\\\\\"라고 하는 발 많이 달린 곤충들이 많이 생겨서 방송에까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온 마을의 담벼락에 덕지덕지 이 벌레들이 붙어 있는 장면은 충격적이었고 너무나도 징그러운 모습이었습니 다.그런데 하물며 사람의 몸에 자신의 살갗을 파먹는 벌레가 들어왔으니 이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이런 것들은 그저 가난한 자들이나 당하는 일이라고 그들은 여겨왔었습 니다. 이런 일들은 노예들의 일이지 주인된 자신들이 당할 일이라고 생각하 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무서운 재앙으로 인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마치 걸인과 같이 옷을 벗고 이 벌레를 잡아야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 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것인양 차지하고 부를 누리던 자들을 한 순간에 낮추어 버리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모세와 아론의 흉내를 내던 사단의 사자들, 곧 바로의 술사들은 이 재앙 앞에서 완전히 손을 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으로 도 모든 것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시는 전능자 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강팍함을 버리지 않습니다. 네 번째 재앙은 파리재앙이었습니다. 수 많은 파리떼의 공격을 받은 애 굽은 그야말로 사람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수 많은 파 리 떼가 온 나라 안을 가득히 채운 모습들을 말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가축에게 전염병이 돌게 하시는 재앙이었습니다. 가축들 은 애굽인들의 귀중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 위에 전염병 이 돎으로 모두 죽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에 있는 것만 칠 것이 니 그 모든 것들을 피하게 하라고 미리 경고해 주셨지만 바로와 그 백성은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토록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 치 않았던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는 직접 애굽 사람들과 가축의 몸을 독종으로 치시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재앙은 세 번째 것과 마찬가지로 경고가 없이 행하여진 재앙 입니다. 그리고 이 재앙부터는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훨씬 더 고통스러운 재앙들이 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점차로 더 무 서운 재앙으로 심판하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술사들도 이 재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온 백성이 얼 굴과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일곱 번째로 주께서는 애굽 온 지역을 우박으로 치십니다. 밭에 남아 있는 채소와 곡식들을 치시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로는 메뚜기 떼를 보내셔서 최소한의 남은 것 조차 다 먹어 치 우게 하심으로 재난을 더욱 더 심화시키십니다. 애굽인들은 이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그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욱 더 마음을 강팍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아홉번째로 하나님께서는 흑암을 보내 온 애굽 땅을 어둡게 하셨습니다. 빛이 없는 깜깜한 세상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 심으로 모든 빛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누리는 최소한의 은혜라도 다 감사의 조건이 되지 않을 수 없 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즉시로 다시 마음을 강 팍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이제 모세와 아론이 다시금 자기 앞에 나타난다면 그들을 죽이겠노라고 협박하기까지 할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마침내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마지막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사람의 장자뿐 아니라 짐승의 첫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죽임을 당하는 대 재난이 애굽 온 땅에 임하게 됩니다. 결국 바로는 이 재앙 앞에서야 비 로소 이스라엘 온 백성을 놓아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10가지 재앙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중요한 진리들이 있습니다. 1.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애굽인들은 수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신들을 살펴 보 면 이렇습니다. 하피/나일강의 신 이시스/나일강의 여신 헤겟/개구리 머리를 한 출산의 여신 셑/광야의 신 레/태양신 우아치트/곤충의 신(파리가 대표) 하솔/소머리를 한 여신 아피스/풍요의 신(숫소의 신) 셋크메트/질병을 이기는 여신 이시스/치료의 신 눗/하늘의 여신 오시리스/풍요와 곡식의 신 세스/곡식의 보호자 민/재생의 신 10가지 재앙들은 자세히 살펴 보면 바로 애굽인들이 섬기던 이 신들 위 에 내린 것들이었음을 봅니다. 애굽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이 신들이 자신 들을 보호하여 주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을 결코 그들을 지 켜 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얼 마나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께서는 다시 한 번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온 땅에 드러내게 되실 것입니다. 2.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이로부터 사람과 태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마음 대로 주장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 음을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온 이스라엘은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실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참으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 처럼 소유하고 있던 바로에게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 내렸습니다. 자 신들의 노예가 아니었던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탄압하던 바로에게 마침내 무서운 심판의 채찍이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모세를 통하여 계속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자기 온 백성을 불행에 빠지게 하는 지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모든 애굽 사람과 짐승의 첫 새끼가 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늘 겸손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고 생 명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별하여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에서 처음의 피재앙과 개구리 재앙 이 재앙은 애굽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도 고통을 당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특별히 파리 재앙에서 부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시는 것을 봅니다. 8:23\\\\\\\"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 역시도 애굽 사람들의 고통을 같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당하는 고난을 무한정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구별하여 주신 것입 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이런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 셔서 자신들을 특별하게 다루고 계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모든 고통을 무한정 버려 둔체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똑 같은 고난을 겪는 것 같이 보이지만 마침내 하나 님께서 나타나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 실 것입니다. 재앙이 임하자 바로는 타협을 하자고 모세에게 요청을 합니다. 그의 타 협안은 매우 교묘한 것이었습니다. 1.그는 애굽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좋다고 동의를 하는 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단서를 붙입니다. 그것은 애굽 땅에서 제 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는 믿되 세상에서 분리되려고 하지는 말라\\\\\\\"는 제안과 같은 것입니다. 주일은 지켜라 하지만 생활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식인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생활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애굽 땅을 떠나는 아품 없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광야로 나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는 믿되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는 말과 같은 제안입니다. 이 세상의 세력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예배는 드리되 빨리 다시 이 벽돌을 찍 는 노예생활로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지 않고는 참 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옛 질서로부터 완전히 떠나는 결단이 있어야 참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남자들만 가라고 합니다.(10:11) 여기서는 특별히 자녀들을 데리고 가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너는 예수를 믿어도 좋다 그러나 너의 자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길 이 있는 데 강요할 것이 무엇이냐? 너나 잘 믿어라\\\\\\\"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 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을 상실한다고 생각해 보 십시오, 이것은 교회의 미래를 잃어 버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세상 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4.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가라고 합니다.(10:24) 이것은 그래 이제 예수를 믿어라! 온 가족이 믿어도 좋다! \\\\\\\"그러나 헌신 은 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전혀 동원되지 않고 정신적인 평안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 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예수님 다음으로 돈이 좋아요!\\\\\\\"라는 재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돈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이 물질로 인한 시험들이 그토록 많을 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그곳에 마음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 을 어디에 드리는가가 우리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물질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제와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바로의 타협안을 과감히 거절해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19 새생명 전도운동/ 마18:12-14/ 2015-03-22
119 새생명 전도운동 마18:12-14 할렐루야! 때아닌 폭설로 계절을 잊어버리겠습니다. 주님의 장중에 우리를 붙드시고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3월의 첫 번째 주일이면서 사순절 기간중 둘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이 사순절 기간동안 성도들은 주님의 크신 은혜를 잊지않도록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므로 이 기간을 은혜롭게 보내시기를 축원합니다! 전 세계 교회가 이 사순절 기간에는 경건한 생활에 힘쓰고자 기도하는 일, 전도하는 일, 말씀듣는 일,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그런 경건된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부활주일을 앞에 두고, 40일동안 주님의 그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며 고난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사순절 기간을 맞이해서 119새생명 전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119새생명 전도운동은 한 성도가 한 가정을 구원하는 운동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을 살리는 운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모든 죄 값을 지불하고 죽으셨다가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고 살아 살 수 있는 영생의 축복을 받은 이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이 새생명 전도운동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사순절기간인 지난주간에 필리핀의 영혼구원을 위해 우리 교회에서 세운 선교지의 3개 교회 헌당식을 했는데 참으로 은혜롭고 감격스러웠습니다. 비록 우리교회는 아직 헌당을 하지 못했지만 선교지의 미 전도 종족교회를 세 교회나 헌당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렵더라도 선교는 중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선교지에서는 이방인의 영혼구원이 이루어 지고, 바로 우리가 있는 이 곳에서는 민족 구원의 전도현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해서 ‘119 새생명 전도운동’는 제목으로 왜 우리가 이 새 생명을 살리는 전도운동을 해야 될 것인가를 성경속에서 찾아 보고자 합니다. 첫째, 그것은 새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딤전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주님을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또한 구약성경 민6:24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은혜 받기를 원하시고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고 평강 주시기를 원하시고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세상에서도 잘되어야겠지만 영혼이 잘되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18:14에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어린 아이 하나라도 지옥가는 것은 하나님은 원치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벧후3:8-9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아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 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 같으면 못된 일 하는 사람은 망하기를 원하고 나쁜 일하는 사람은 벌 받기를 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든지 하나님을 핍박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했던 자라고 해도 하나님은 회개하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지금도 연장 시키시고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 사람도 멸망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한 사람도 지옥 가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모두 다 구원받아서 천국 가기를 원하시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처럼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얻게 하기 위해서 이 119 새생명 전도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왜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는가 의문을 갖습니다. 주께서 지옥을 만드신 이유는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 하고 마귀를 쫓아가면 결국 마귀가 가는 지옥에까지 함께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입니다.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지옥은 영원히 고통받는 곳입니다. 감옥에 죄를 짓고 들어갔더라도 출옥할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갑니다. 심지어 사형수로 확정되었어도 대통령의 사면장을 받으면 풀려납니다. 그러나 이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그곳에 살 수 밖에 없는 절망의 곳이라고 성경은 말씀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무서운 지옥에 한 사람이라도 가는 것을 원치않으십니다. 하나님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영혼구원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119 새생명 전도운동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에 새생명 전도운동에 힘써야 합니다. 마9:12-13-“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는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긍휼을 제사보다 더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영혼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병원이 왜 생깁니까? 병들고 약한 자들을 위해서 병원이 생기는 것이고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왜 필요합니까? 주님의 뜻을 따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죄가 많아서 예배당에 못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배당은 죄인이 오는 것입니다. 죄인이 와서 병 고침 받고 건강하게 의인이 되는 것이 예배당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구원해서 의인을 만드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막1:38-39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영광받아 마땅하신 주님이 그 영광의 길을 버리고 주님은 힘들고 어려운 전도자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셔서 힘들고 어려운 일지만 식사 할 겨를도 없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셔서 전도훈련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10장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70명의 전도대를 둘씩 짝을 지어 파송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들을 훈련시키시고 마지막 영혼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주님은 벧전2:24-25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 바로 우리가 믿는 구주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고, 바로 전도하러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은 마땅히 새생명을 구원하는 이 전도운동에 우리가 힘써 참여 해야 복이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목적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15:1에 “하나님은 포도원의 농부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 나무라고 했습니다. 우리 구원 받은 성도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라고 했습니다. 포도나무를 심어 놓은 이유는 열매를 얻기위함입니다. 그래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는 잘라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매 맺는 가지는 더 열매 맺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은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내가 너희를 불렀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바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이 사실에 대해 벧전2:9에 “오직 너희는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왜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특별 대우 하십니까? 왜 택한 족속이고 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고 왜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어두운 곳에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 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하늘 나라의 선전 요원,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자로 삼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라는 말속에 ‘디아페미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어에 보면 전도라는 용어에는 성경에 ‘디아페미조’ 헬라말로 이 말은 ‘선전한다, 피알하다, 홍보하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광고시대입니다. 홍보시대입니다. 거기서 보고 듣고 한 것 중에서 우리가 사고 고르게 됩니다. 어디에 가서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습니다. 그러나 많이 알려지고 많이 들은 것은 좋은 줄 알고 자꾸 삽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작업중이야”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습니까? 최신 카메라 폰을 선전하는 내용인데요. 이번에 필리핀에 같이간 정목사님이 정석한 전도사님이 현지여인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휴대폰으로 찍고는 ‘정전도사님 작업중이라’고 문구까지 써놓고 보여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두 많은 선전을 듣다보니 흘려듣게 됩니다. 그래서 선전하는 내용들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도록 광고하는 사람들은 연구하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을 선전하는 전도의 내용도 사람들에게 쏙쏙 입력되도록 많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라는 말은 바로 우리 예수님을 잘 선전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선전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어느 회사에서 외판원을 모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선전은 커녕 입을 꼭 다물고 있다든지 악평하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해고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심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선전하고 자랑하게 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게 하기위해 선전요원으로 삼으시려고 먼저 구원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행하신 그 놀라운 구원의 사실을 말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만나는 불신자들에게 예수믿은 후에 달라진 모든 것들을 간증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일을 하려고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교회선전 역시 주님선전인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뭐라고 했습니까? “나를 따라 오너라 이제 내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사람 낚는 어부를 만들려고 부르셨습니다. 고기 잡는 어부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내가 이 교회의 성도가 되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목적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일을 선전하게 하기 위해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이 분명한 목적을 기억하십시요. 전도는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다면 전도는 반드시 해야 됩니다. 안하면 내게 화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넷째, 구원받은 성도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인자 지혜 있는 자에게나 지혜 없는 자에게나 나는 복음의 빚진자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말했습니다. 전도는 은혜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남에게 빚지고 빚을 못 갚으면 노예로 끌려 갑니다. 마귀에게 빚을 지면 우리는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평생토록 죄의 종 노릇하는 것입니다.얼마나 불행합니까? 생각해 보세요. 죄에 종 노릇 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입니까? 마귀 사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빚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빚을 못 갚으니까 마귀에게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자기는 원치 아니하나 끌려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지옥까지 끌려가는 것입니다. 이 빚을 못 갚으면 마지막에 지옥가서 끝나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불못에서 살아 가는 고통스러운 곳이 지옥이라고 성경은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귀에게 종 노릇 하고 지옥 가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마귀에게 갚아야 될 죄의 값을 단번에 십자가에서 다 갚아 주셨습니다. 요19장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 ‘테 텔레스 타이’는 ‘다 이루었다. 다 지불했다. 다 갚았다’ 라는 뜻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갚아야 될 마귀에게 진 죄의 빚을 죄의 값은 사망인데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심으로 다 갚아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말고 우리의 몸은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마귀의 종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빚진자의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죄의 종으로 마지막 지옥가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어서 나를 구원 하셨으니 나는 이제 예수님께 빚진 자로다” 그래서 바울은 이 마음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은혜를 보답할까 하는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모습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마28:19-20에 “그러므로 가서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이 전도의 명령 앞에 그 누구도 항명할 수가 없습니다. 처한 형편대로, 처해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직장을 다 그만두고 뛰쳐나와 전도하라는 것 아닙니다. 직장이면 직장 어떤 모임에 나갔으면 그 곳이나의 전도지가 되어야 합니다. 나와 하루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전도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9:16에서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내가 복음을 전할 때 자랑할 것이 없음을 내가 부득불 할 일이나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행20:24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으므로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그리스도 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그렇습니다. 우리의 전도운동은 이와 같은 동기에서 시작되고 진행되어야 될 것입니다. 바울처럼 루터처럼 이러한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먼 훗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향해서 너는 명일성결교회에서 새생명전도운동을 하던 그때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신다면 주님 저는 그때 제 발이 부르트도록 복음을 전하면서 새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주님 저는 그 때 새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울면서 목을 메이면서 눈물뿌려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그때 금식하면서 주님 앞에 몸부림쳐보았습니다. 나는 그 새생명 전도운동을 위해서 내 힘껏 주 앞에 물질을 드려 헌신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고백을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이 119새생명 전도운동에 모두가 다 함께 힘을 모아서 주의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참참참 부르시고 기도합시다!
12(열두) 제자를 택하신 예수님/ 막3:7-19/ 2016-04-24
12제자를 택하신 예수님 막3:7-19 오래 전에 영국에 괴짜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희귀하고 비싼 바이올린을 많이 모으고 소장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느날 이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바이올린 주에서 가장 비싼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겠다.\\\\\\\" 많은 사람들 모였고 그것으로 훌륭한 연주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하고 환호성을 올리는데 이 바이올린이스트가 갑자기 그 바이올린을 던지고 발로 밟고 부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자 그 사람이 또 다른 바이올린을 가지고 나와서 연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자 사회자가 멘트하기를 \\\\\\\"지금 이 분이 연주한 바이올린은 최 고가품이 아니라 20파운드 짜리 싸구려 바이올린이었습니다. 이제 지금 가장 본격적인 고가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겠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는 훌륭하게 바이올린을 연주하였습니다. 열광적인 박수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20파운드짜리 바이올린 연주나 고가품의 바이올린 연주가 별로 차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이 기행을 통해서 우리는 한가지의 멧시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음악은 악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위대한 결과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제자는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사람이라는 전략을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열두 제자를 선택하는 일이었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어볼까요?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어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 제자를 삼는 사역은 예수님께서는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축복을 주신 일이었습니다. 삼년 동안 예수님은 열두 사람을 택하여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드시고, 그들과 함께 주무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고생하셨고 그들과 함께 전도하셨습니다. 이론을 가르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자기 생애 전체를 다 쏟아 불어넣으시고, 그의 인격, 그의 능력, 거의 가르침, 그리고 그의 삶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제자란 세움을 받은 자들, 즉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제자란 우리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요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한 서기관이 \\\\\\\"주여 당신이 어디로 가든지 나는 당신을 따르겠나이다\\\\\\\"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을 거절하셨습니다. 거절이 있어야 선택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나 제자로 받아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는 직분을 다 내려놓고 \\\\\\\"나는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나?\\\\\\\"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자\\\\\\\"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요 뜻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라는 형태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되었습니다. 내가 교회에 와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가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부름심 때문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우리에게는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바쳐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부탁입니까? 체면 때문에 하려는 것입니까? 습관적으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았기 때문입니까? 이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부름이라고 믿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름과 선택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원망과 불평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해를 하든지 못하든지,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에게 댓가를 바라고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체면 때문에 봉사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면 이해를 시켜 가며 일합니다. 사람들이 화를 내면 화를 견디어 가면서 일합니다. 못하게 하여도 계속 일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를 부르셨을까요? 1.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14절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하였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와 함께 있으시기 원함이셨습니다. 왜 주님은 우리와 같은 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을까요? 그것은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주님은 같이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같이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기대를 전달하시고 주님의 삶을 보여 주시고 그래서 우리를 주님처럼 살아가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의 삶을 볼 수가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을 따라갈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훈련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무엇을 가지고 훈련을 시키나요? 두 가지를 가지고 훈련시키십니다. 바로 말씀 훈련과 기도 훈련입니다. 내가 성경말씀을 펼칠 때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 하면서 말씀에 대한 애정이 없다. 성경공부에 관심이 없다하면 이것은 병든자입니다. 교회에 드나들면서 무릎꿇고 싶은 심정이 없다.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없다 이것 역시 병든자입니다. 우리의 말씀 훈련 기도 훈련을 통해서 주님이 나에게 기대하는 일체의 모습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의 훈련에는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어떤 성도들은 말씀은 보는데 기도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성도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성경공부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례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한다고 하면 자기의 남의 말도 들어야 하지만 자기의 마음도 오픈 하여서 말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의 말을 듣는데 자기의 마음은 열어 놓지 않습니다. 답답하지요. 이런 사람과 친해지기 어려습니다. 주님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지만 나의 말도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떠나있는 기도, 그것은 잘못하면 이기적인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가 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도하느냐 말씀을 읽어가면서 기도해야 그 기도가 좋은 기도가 됩니다. 기도가 다 좋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는 말했습니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거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한다.\\\\\\\" 왜 우리의 기도 내용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욕심만을위해서 드리는 기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정욕적인 기도 이런 기도는 응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앵무새를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왜 길렀느냐 자기 교회 목사님이 앵무새를 기르니까 나도 앵무새를 기를까해서 기르겠다고 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가 꼭 한마디만 할 줄 아는데 그 말이 주인을 얼마나 당황하게 만드는 줄 모릅니다. 꼭 한 마디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키스해 주세요\\\\\\\" 시도 때도 없이 키스해 주세요 하니까 찾아오는 손님들한테 얼마나 미안합니까? 잘못하면 오해를 받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목사님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앵무새는 경건한 말을 한다는데 제 앵무새를 보낼 테니까 트레이닝을 좀 시켜주세요. 훈련을 좀 시켜주세요\\\\\\\" 목사님이 거 문제 없다고 보내라고 그래서 목사님 댁에 이 앵무새를 보냅니다. 목사님 앵무새가 주인이니까 먼저 인사를 합니다. 사실 목사님댁 앵무새도 꼭 한마디만 하는데 그게 무어냐면 \\\\\\\"다같이 기도합시다.\\\\\\\" 목사님 앵무새가 주인이니까 먼저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같이 기도하십시다.\\\\\\\" 그러니 새로 들어온 앵무새가 한 마디 말을 하드래요. \\\\\\\"키스해주세요.\\\\\\\" 그랬던 목사님 앵무새가 전에 없던 말을 한마디 하더래요. \\\\\\\"주님 드디어 내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밤낮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기도하느냐 성경을 보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느냐를 알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균형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과 친해 질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주님의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성경을 펴십시오.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까?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회 생활의 연륜이 흘러가는데 아직도 성경을 몰라요. 아직도 성경을 닫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덮어놓고 믿자. 정말 덮어놓고 믿어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주님의 제자가 된다. 2. 주님이 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4절을 다시 한번 읽어봅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친교와 훈련을 넘어서서 그 다음에 행할 모습은 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여기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목사나 선교사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게 해당되는 문제입니다. 내가 좋은 위치, 좋은 자리에서 행복하게 안일하게 살고 있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가야 합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이는 곳이 동시에 흩어지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에 의하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마가복음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입니다. 누가복음 20:48절에 나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요한복음의 결론은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 들어가자 마자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부입니다. 제자와 교회의 최대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통하여 변화를 시킵니까? 전도만이 인간을 바꿀수 있습니다. 전도만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전도만이 세상을 바꾸고 온 역사를 바꿀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살려야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살릴 수 있습니까? 전도만이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최대의 비극이 무엇일까요? 그 교회 안에 전도하는 교인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최대의 비극입니다. 전도하기를 원 하는데 도무지 전도할 줄을 모릅니다. 이것은 이런 이런 이야기입니다. 한 군인이 총쏠 줄 모릅니다. 군인들이 싸울 줄 모릅니다. 이 얼마나 비극입니까? 전쟁할 줄 모른다. 총을 쏠 줄 모른다. 전도할 줄 모른다 이것은 큰 비극입니다. 전도란 간단한 것입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전하는 순간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마음 문을 열기만 하면 그가 예수를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전도자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3. 능력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제자의 요건은 지식이나 재력, 세상의 권력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특별히 귀신을 제압하는 영적 능력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제자로 부르셨다면 우리에게 반드시 이 능력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받고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안 받은 것 같이 생각을 합니다. 우리에게는 사탄을 물리칠 능력이 있습니다. 보혈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귀신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이 능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 속에 있는 귀신부터 쫓아내야 합니다. 이것이 보혈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들이 특권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데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귀신을 꾸짖어야 합니다. 그러면 저들은 피해나갈 것입니다. 귀신을 좇고 제압하는 능력이 생기면 다음에 하나님은 더 놀라운 능력을 주십니다. 그것을 병 고치는 능력입니다.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능력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치유이기 때문입니다. 치유는 육신의 병만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한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치유될 것입니다. 그것도 치유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남을 믿습니다. 마귀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에게 전도와 사명을 주셨다면 그들에게 귀신들을 제압하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귀신을 제압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심방 가서 기도해주십시오. 치유하는 기도를 해 주십시오. 그 영혼이 치유 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육신의 치료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능력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이 소유한 초자연적인 영적인 권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의 권위나 세상의 권위나 재력의 권위나 사회적인 권위를 가지고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이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명을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부자가 별로 없습니다. 학력도 높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도덕적인 종교적인 인물도 아니었습니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 갈릴리 어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인지 몰라도 그들은 아주 사나왔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교만했습니다. 믿음도 부족했습니다. 한번은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와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제 아들을 고쳐 주십시오.\\\\\\\" 이런 자들이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능력도 헌신도 부족했습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던 베드로, 말고의 귀를 잘랐던 베드로 그러나 예수의 죽음 앞에서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변덕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런 자들이 예수님께 훈련을 받고 보냄을 받고 능력을 받으니까 점점 변화가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능력을 행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변화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마다 회심을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한 번 설교를 하니 삼천명이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은 줄 아십니까?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로마를 피해 나가려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로마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똑바로 못박혀 돌아가셨으니 자기는 거꾸로 죽어야 한다고 거꾸로 십자가 형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서 참수형을 당하셨습니다. 요한게시록을 쓴 요한은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아서 밧모 섬으로 귀양을 갑니다. 거기서 계시록을 씁니다. 안드레는 그리스의 마드라에서 X형 십자가에서 순교를 하였습니다. 빌립은 소아시아에서 교수형을 당했다고 하기도 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고도 합니다. 바돌로매는 알메니아에서 피부가 벗겨져 참수를 당했습니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서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다대오는 메소포다미아에서 활에 맞아 죽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돌과 몽둥이로 맞았으나 다시 살아 톱으로 잘려 순교하였습니다. 시몬은 페르시아만에서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죽었습니다. 단지 가롯 유다만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자살하였습니다. 이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이처럼 영웅적으로 죽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찮은 인물들이 예수님의 손에 잡히니 이처럼 순교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부여 받으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기만 하면 순교자와 같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에 붙들리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영웅적인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통해서 이 교회가 능력있는 교회가 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가는 영웅적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2명의 정탐군/ 옛 세대의 죽음/ 민13:1-민26:1-
12명의 정탐군/ 옛 세대의 죽음 민13:1-민26:1- 민수기를 읽다가 가장 흥미있는 곳이 있다면 13장에서 12정탐군을 파 송하는 사건일 것이다. 그 12정탐군은 각 지파에서 1명씩 선출되었다. 그러므로 이 12명은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은 즉시 모세의 명을 받고(13:17-20) 가나안을 정탐한 후 돌아와 보고 하였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으로서 과연 젖과 꿀이 그땅에 흐르고 심히 기름진 땅이었다. 그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분은 곧 우 주의 주관자이셨다. 그러나 10명의 보고자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 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13:31)고 보고했다. 그 땅의 주인이 누구 이시며 누가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해 왔는지를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도 않은 불신앙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은 그땅을 악평할 뿐만 아니라(13:32) 자신들을 너무도 초라하게 보고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라는 말속에는 자기들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것인가를 단적으 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회중들은 밤새도록 통곡을 하 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차라리 애굽땅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 이 낫지 아니하랴 (14:3)고 하면서 그들 자신을 위해 새 지도자를 세 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을 했다. 이런 그들의 처사는 곧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하는 행위가 아닐수 없다.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경지에 도 달한 그들의 모습속에서 인간의 미약한 의지를 우리는 찾아 볼 수 있 을 것이다. 그때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은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여호와는 우리 와 함께 하시느니라 (14:9)고 외쳤으나 이미 불신과 불평에 찌든 이스 라엘은 오히려 돌로 그들을 치려 하였다. 바로 그 순간 여호와의 영광 이 회막 가운데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은 이 백 성이 어느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때까지 나를 밍지 않겠느냐 (14:11)고 하 시면서 이스라엘을 멸절시키시고 모세를 통해 더 크고 강한 나라를 이 루시겠다고 진노하셨다. 이것을 보아 하나님은 새로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실 수도 있음을 보여 주시고 있다. 그러나 모세는 간절히 기도한다. 만일 그렇 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명성이 이방중에 가리워지게 될것을 말하면서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14:9)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 여 줄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비록 모세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 엘 백성들의 멸절이 위기를 넘기기는 했으나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 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도 그것을 보 지 못하리라(14:22-23)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말았다. 그 결과 너 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 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 라 (14:34)는 심판을 받게 되었다. 이것을 보아 이제부터의 광야생활은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었다. 앞 으로 사십년간의 광야생활은 옛세대의 사람들을 철저히 심판하시고 완 전히 궤멸시켜 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 다 옛모습을 가지고는 도저히 새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볼 수도 없는 것이다(13). 그러나 이 옛세대의 죽음이 단순히 하나님의 심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옛세대는 죽어 그 시체는 광야에 묻히게 되지 만(32) 그들의 후손인 새 세대는 그 약속의 땅에 들어 갈 것이기 때문 이다(31). 이것을 본다면 앞으로의 광야생활은 옛세대에 대한 심판이 지만 새 세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이것은 곧 옛세 대를 광야에서 철저히 죽이고 새세대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가 있다면 바로 이점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출 15:22-17:에 서 광야생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 의미는 ⑴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되기 위한 과정이며 ⑵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훈련이며 ⑶하 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체험하는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가 한가지 더 첨가한다면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새 사람을 입는 관점이 곧 광야생활이 갖는 또 다른 의미인 것이다. 이런 의미를 알았다면 16장에서 고라당들의 반역에 대한 형벌로써 왜 그들이 산채로 땅속에 떨어지게 되는가를 이해하게 될것이다. 즉 하나 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엣세대에 속하는 모든 행위는 즉각적으로 단절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20장에서 당시 대단한 여선지자인 마리암이 죽고 이어서 아론까지도 죽게되며 마침내 모세까지도 왜 가 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가를 해답해 주고 있다. 물론 모세와 아론이 반석에서 물을 내어줄때 분을 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코 그 한번의 분냄으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옛세대에 속한 옛사람은 철저하게 광 야생활도중 멸절되어야 한다. 오직 새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19장에서 재삼 정결예식을 명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어떤 불결한 것도 용납되지 않기 때 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자마자 불뱀을 보 내어 이스라엘을 죽이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 앞 에서의 옛사람은 철저하게 심판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22장의 발람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사랑 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발락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 도록 하였으나 발람은 끝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은 그 어떠한 방법과 계획으로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일에 대해선 결코 방해할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광야 생활의 최종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는 26장에 와서야 비로소 분명해진다. 그러나 25장에서 먼저 하나님은 부패한 이스라엘을 완전 히 심판하여 끊어내고 계심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패역할 때 하나님은 즉시 그를 철저하게 심판하고 계시는 것이 다. 마침내 정화의 사역이 다 끝났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계수 하도록 명령하신다. 26장에서 갑자기 족보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지금 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기록은 63절 이하의 기 록이다. 처음 계수된 이스라엘 회중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한 사람 도 새 이스라엘의 게수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선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이나 성품은 조금이라도 새사람의 품성에 남아 있어선 안되는 것이다. 이제 옛세대는 죽었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그들을 향하신 하나 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 그 해답은 27:-36장에 있다.
12명의 정탐꾼과 옛 세대의 죽음/ 민12:1-민26:1-
12명의 정탐꾼과 옛 세대의 죽음 민12:1-민26:1- 민수기를 읽다가 가장 흥미있는 곳이 있다면 13장에서 12정탐군을 파송하는 사건일 것이다. 그 12정탐군은 각 지파에서 1명씩 선출되었 다. 그러므로 이 12명은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즉시 모세의 명을 받고(13:17-20) 가나안을 정탐한 후 돌아와 보고하였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으로서 \\\"과연 젖과 꿀이 그땅에 흐르고\\\"심히 기름진 땅이었다. 그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분은 곧 우 주의 주관자이셨다. 그러나 10명의 보고자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 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13:31)고 보고했다. 그 땅의 주인이 누구 이시며 누가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해 왔는지를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도 않은 불신앙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은 그땅을 악평할 뿐만 아니라(13:32) 자신들을 너무도 초라하게 보고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라는 말속에는 자기들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것인가를 단적으 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회중들은 밤새도록 통곡을 하 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차라리 애굽땅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14:3)고 하면서 그들 자신을 위해 새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 가자고 선동을 했다. 이런 그들의 처사는 곧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하나님의 약속 을 불신하는 행위가 아닐수 없다.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 족속들 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경지에 도달한 그들의 모습속에서 인간의 미약한 의지를 우리는 채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은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 시느니라\\\"(14:9)고 외쳤으나 이미 불신과 불평에 찌든 이스라엘은 오 히려 돌로 그들을 치려 하였다. 바로 그 순간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 가운데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어느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때까지 나를 및지 않겠 느냐\\\"(14:11)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멸절시키시고 모세를 통해 더 크 고 강한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진노하셨다. 이것을 보아 하나님은 새로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실 수 도 있음을 보여 주시고 있다. 그러나 모세는 간절히 기도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명성이 이방중에 가리워지게 될 것을 말하면서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14:9)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여 줄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비록 모세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절이 위기를 넘기기는 했으나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 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14:22-23)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말았다. 그 결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 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14:34)는 심판을 받게 되 었다. 이것을 보아 이제부터의 광야생활은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었다. 앞 으로 사십년간의 광야생활은 옛세대의 사람들을 철저히 심판하시고 완 전히 궤멸시켜 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 다 옛모습을 가지고는 도저히 새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볼 수도 없는 것이다(13). 그러나 이 옛세대의 죽음이 단순히 하나님의 심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옛세대는 죽어 그 시체는 광야에 묻히게 되지 만(32) 그들의 후손인 새 세대는 그 약속의 땅에 들어 갈 것이기 때문 이다(31). 이것을 본다면 앞으로의 광야생활은 옛세대에 대한 심판이지만 새 세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이것은 곧 옛세대를 광 야에서 철저히 죽이고 새세대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 의 놀라운 계획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또 다른 이유중의 하 나가 있다면 바로 이점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출 15:22-17:에서 광야 생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되기 위한 과정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훈련이며 하 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체험하는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가 한가지 더 첨가한다면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새 사람을 입는 관점이 곧 광야생활이 갖는 또 다른 의미인 것이다. 이런 의미를 알았다면 16장에서 고라당들의 반역에 대한 형벌로써 왜 그들이 산채로 땅속에 떨어지게 되는가를 이해하게 될것이다. 즉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엣세대에 속하는 모든 행위는 즉각적으로 단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20장에서 당시 대단한 여선지 자인 마리암이 죽고 이어서 아론까지도 죽게되며 마침내 모세까지도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가를 해답해 주고 있다. 물론 모세와 아론이 반석에서 물을 내어줄때 분을 품었기 때문이기 도 하지만 결코 그 한번의 분냄으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옛세대에 속한 옛사람은 철저하게 광야생활도중 멸절되어야 한다. 오직 새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19장에서 재삼 정결예식을 명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어떤 불결한 것도 용납되지 않기 때 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자마자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죽이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 앞에서의 옛사람은 철저하게 심판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22장의 발람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사랑 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발락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 도록 하였으나 발람은 끝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은 그 어떠한 방법과 계획으로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일에 대해선 결코 방해할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광야 생활의 최종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는 26장에 와서야 비로소 분명해진다. 그러나 25장에서 먼저 하나님은 부패한 이스라엘을 완전 히 심판하여 끊어내고 계심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패역할 때 하나님은 즉시 그를 철저하게 심판하고 계시는 것이 다. 마침내 정화의 사역이 다 끝났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계수 하도록 명령하신다. 26장에서 갑자기 족보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지금 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기록은 63절 이하의 기 록이다. 처음 계수된 이스라엘 회중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한 사 람도 새 이스라엘의 게수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 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선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 이나 성품은 조금이라도 새사람의 품성에 남아 있어선 안되는 것이다. 이제 옛세대는 죽었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그들을 향하신 하나 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 그 해답은 27:-36장에 있다.
12정탐꾼/ 옛 세대의 죽음/ 민12:-민26:
12정탐꾼/ 옛 세대의 죽음 민12:-민26: 민수기를 읽다가 가장 흥미있는 곳이 있다면 13장에서 12정탐군을 파송하는 사건일 것이다. 그 12정탐군은 각 지파에서 1명씩 선출되었 다. 그러므로 이 12명은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즉시 모세의 명을 받고(13:17-20) 가나안을 정탐한 후 돌아와 보고하였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으로서 \\\"과연 젖과 꿀이 그땅에 흐르고\\\"심히 기름진 땅이었다. 그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분은 곧 우 주의 주관자이셨다. 그러나 10명의 보고자들은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 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13:31)고 보고했다. 그 땅의 주인이 누구 이시며 누가 지금까지 그들을 인도해 왔는지를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도 않은 불신앙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은 그땅을 악평할 뿐만 아니라(13:32) 자신들을 너무도 초라하게 보고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라는 말속에는 자기들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 것인가를 단적으 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회중들은 밤새도록 통곡을 하 며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차라리 애굽땅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14:3)고 하면서 그들 자신을 위해 새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 가자고 선동을 했다. 이런 그들의 처사는 곧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하나님의 약속 을 불신하는 행위가 아닐수 없다.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 족속들 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경지에 도달한 그들의 모습속에서 인간의 미약한 의지를 우리는 채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은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 시느니라\\\"(14:9)고 외쳤으나 이미 불신과 불평에 찌든 이스라엘은 오 히려 돌로 그들을 치려 하였다. 바로 그 순간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 가운데서 모든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났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어느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때까지 나를 및지 않겠 느냐\\\"(14:11)고 하시면서 이스라엘을 멸절시키시고 모세를 통해 더 크 고 강한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진노하셨다. 이것을 보아 하나님은 새로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실 수 도 있음을 보여 주시고 있다. 그러나 모세는 간절히 기도한다. 만일 그렇게 되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명성이 이방중에 가리워지게 될 것을 말하면서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14:9)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여 줄것을 간절히 기도했다. 비록 모세의 중보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멸절이 위기를 넘기기는 했으나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 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14:22-23)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말았다. 그 결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 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14:34)는 심판을 받게 되 었다. 이것을 보아 이제부터의 광야생활은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되었다. 앞 으로 사십년간의 광야생활은 옛세대의 사람들을 철저히 심판하시고 완 전히 궤멸시켜 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 다 옛모습을 가지고는 도저히 새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볼 수도 없는 것이다(13). 그러나 이 옛세대의 죽음이 단순히 하나님의 심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옛세대는 죽어 그 시체는 광야에 묻히게 되지 만(32) 그들의 후손인 새 세대는 그 약속의 땅에 들어 갈 것이기 때문 이다(31). 이것을 본다면 앞으로의 광야생활은 옛세대에 대한 심판이지만 새 세대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이것은 곧 옛세대를 광 야에서 철저히 죽이고 새세대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 의 놀라운 계획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또 다른 이유중의 하 나가 있다면 바로 이점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출 15:22-17:에서 광야 생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숙되기 위한 과정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훈련이며 하 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체험하는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가 한가지 더 첨가한다면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새 사람을 입는 관점이 곧 광야생활이 갖는 또 다른 의미인 것이다. 이런 의미를 알았다면 16장에서 고라당들의 반역에 대한 형벌로써 왜 그들이 산채로 땅속에 떨어지게 되는가를 이해하게 될것이다. 즉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엣세대에 속하는 모든 행위는 즉각적으로 단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20장에서 당시 대단한 여선지 자인 마리암이 죽고 이어서 아론까지도 죽게되며 마침내 모세까지도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가를 해답해 주고 있다. 물론 모세와 아론이 반석에서 물을 내어줄때 분을 품었기 때문이기 도 하지만 결코 그 한번의 분냄으로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 그러나 옛세대에 속한 옛사람은 철저하게 광야생활도중 멸절되어야 한다. 오직 새사람만이 가나안에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19장에서 재삼 정결예식을 명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선 어떤 불결한 것도 용납되지 않기 때 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1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자마자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죽이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 앞에서의 옛사람은 철저하게 심판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22장의 발람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사랑 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된다. 발락이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저주하 도록 하였으나 발람은 끝내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 은 그 어떠한 방법과 계획으로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일에 대해선 결코 방해할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광야 생활의 최종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가는 26장에 와서야 비로소 분명해진다. 그러나 25장에서 먼저 하나님은 부패한 이스라엘을 완전 히 심판하여 끊어내고 계심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패역할 때 하나님은 즉시 그를 철저하게 심판하고 계시는 것이 다. 마침내 정화의 사역이 다 끝났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계수 하도록 명령하신다. 26장에서 갑자기 족보가 언급되고 있는 것은 지금 까지의 역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기록은 63절 이하의 기 록이다. 처음 계수된 이스라엘 회중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한 사 람도 새 이스라엘의 게수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 다.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선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 이나 성품은 조금이라도 새사람의 품성에 남아 있어선 안되는 것이다. 이제 옛세대는 죽었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그들을 향하신 하나 님의 계획은 무엇일까 ? 그 해답은 27:-36장에 있다.
12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심/ 막3:3-19/ 2016-04-24
12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심 막3:3-19 어떤 사업가가 기도하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에게는 천년이나 일초나 똑같죠..?\\\"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그럼..나에게 천년이나 일초나 똑같지..\\\" 이 사업가가 또 묻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에게는 백 억이나 1원이나 똑같죠?\\\" 예수님이 또 대답하십니다. \\\"그래 나에게 백 억이나 1원이나 똑같지..\\\" 이 사업가가 예수님께 재차 확인합니다. 예수님 분명하죠? 분명히 그렇죠....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의심하지 말아..그렇구 말구...\\\" 그랬더니 그 사업가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그럼 저 100억만 주세요?\\\"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그래 1초만 기다려.....!!\\\" 아직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분들은 성령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십자가 사역 외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람이라는 전략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것을 위해 열두 명의 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열두 명 이었을까요? 열 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대표 수의 개념을 갖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파들로 나누셨을 때 몇 지파를 세우셨습니까? 열두 지파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12지파 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갈 사람들을 세우시는데 몇 명을 세우시죠? 12명입니다. 이것은 이제 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혈통과 인종과 국적과 학식을 초월해서 세워지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 교회의 초석을 세우실 것이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에서 주님이 완성된 천국,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의 비전을 보여주셨을 때 그 영광스러운 천국의 12개의 문 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고 12개의 성곽 기초석에는 12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주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12명의 제자는 바로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백성 혹은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제자로 세우실 때 그들을 통해 주님이 기대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그 주님의 기대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천년 전에 제자들을 부르셨던 주님이 지금도 여전히 그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고 있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주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불러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과의 교제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보냄 받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전도입니다. 영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가장 먼저 그들과의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해 신적인 영광을 경험한 제자들이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 변화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위로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복음에 헌신하는 그런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13절에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고 할 때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그들을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 그 첫 번째가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자기와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당신과 교제하며 당신과 함께 하는 사랑의 대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무슨 일꾼이나 종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인격적 교제의 대상. 사귐의 대상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감동되지 않으세요? 나 같은 사람. 내가 생각해도 더럽고 추한 사람, 이 허물 많은 사람. 이 약점 많은 사람. 그런데 그처럼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존귀하신 주님이 나와 더불어 함께 있고 싶어하신다. 나와 더불어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세요? 그분은 인생이 아니십니다. 무엇이 있어야 의미가 있고 무엇이 없으면 부족함을 느끼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그 신성의 충만함이 무엇으로도 손상 받을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나같이 연약하고 무능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우리가 없으면, 우리와 교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분의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늘 제가 말씀을 준비하며 받은 그 감격과 감동을 여러분에게 다 전달 못하는 이 안타까움을 아셨으면 합니다. 말에 어눌한 저의 말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이 감격적인 말을 도저히 다 표현 못하는 안타까움을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주님과 함께 하게 되면, 그 영광스러운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과 함께 그분의 말씀을 듣고 함께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비로소 나를 부르시고 나를 세우시고 나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깨달아 알게됩니다. 나를 불러 주님과 함께 하기를 기뻐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그분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그 분을 닮아가게 됩니다. 내 안에 그분의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 분의 비전이 맺히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주님이 꾸는 꿈을 나도 꾸게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놀라운 권세도 은혜로 받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15절을 보니까 주님은 부르신 열두 제자들을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까지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그분과 함께 하며 신적인 교제가운데 있는 제자들의 축복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이렇게 놀라운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있는 방법이 뭡니까? 어떻게 우리가 주님과 같이 하면서 그분과의 그 풍성하고 신적인 교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편밖에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 주께서 성령으로 기록하게 하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을 펼치고 묵상하면서 우리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며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우리는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그분께 나아가며 주님이 허락하신 그 놀랍고도 신적인 교제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느끼며 말씀 속에 계시된 그분의 삶을 배우고 그 분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놀라운 신적교제를 갖게 되면 내 삶을 향한 그분의 기대를 알고 그 기대에 내가 믿음으로 헌신하면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사람이 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담대한 사람이 됩니다. 환경을 뛰어 넘은 강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때는 바로 이런 모습을 기대하면서 부르신 것입니다. 고후4:7-9절과 6:9-10절을 보십시오. 특별히 고후6:10절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이 말은 \\\"슬픔으로 짓눌려 있으나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강한 이미지의 제자상입니까? 환경을 뛰어넘은 강한 존재의 모습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실패할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좌절스러운 환경을 경험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실패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낙심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도 슬픈 일이 있을 수 있고 예수 믿는데도 근심거리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혹 아직도 예수 믿으면 무조건 하는 일이 잘되고 고통이 없고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을 기대하거나 바라는 분이 있다면 빨리 그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누가 사업에 실패했다....누구자식이 대학에 떨어졌다..그러면 그 집사님 요즘 기도 안 하더니........이런 말과 생각들을 이제는 고쳐야 합니다. 슬픔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예수를 잘 믿어도 올 수 있습니다. 근심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예수를 믿어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근심이 우리를 사방으로 우겨 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은혜와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됩니까? 그 슬픔과 좌절과 낙심으로 짓눌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슬픔과 낙심과 좌절을 넘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와 함께 하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주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삶을 살면서 나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깨닫게 되면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귀신을 쫒는 권세를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보내어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를 부를 때 사명을 위해 불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고후6:10절의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도 동일한 모습을 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 그저 내 한 몸 편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인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런 소망 없이 저주 아래 살아가던 우리들이 십자가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어 주님의 자녀가 되고 제자가 된 것은 더 이상 우리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사명적인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이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자됨의 의미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목적과 기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면서 그 신적인 교제의 영광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내가 지금 위기를 만나고 내가 지금 비록 가난해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내 삶의 존재 이유는 나보다도 더 어렵고 더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도우고 그들을 세워주고 그들을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위로하고 축복하고 부요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존재 이유이요 내 속에 주님이 함께 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를 따라가고 예수를 믿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을 향한 이런 주님의 기대 속에서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며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기대대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기대대로 산다면 이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내가 독차지 않고 타인들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학생들도 사업자들도 직장인들도 그런 의식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공부해서 남주고 돈벌어서 남주고 은혜받아 남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은혜로 불러주신 그 기대를 알고 이런 의식을 갖고 살면 내 삶의 만족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한,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한 비록 내가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확신하며 삽니다. 행복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많이 가지고 많이 누려야 행복한 삶이라는 사단의 말에 속지 않게 됩니다. 가난해서 나는 불행하다고 남들보다 건강하지 않아서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우리를 세상에 나가 전도하는 사람으로 부르실 때는 바로 이런 기대를 가지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이런 가치관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담대하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주의 제자들로 사는 모습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12제자들의 명단을 보십시오. 변변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분과 함께 하면서 그분과 교제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권세와 성령의 능력을 받기만 한다면 우리도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서 영혼을 건지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면서 그 영광스러운 교제를 맛보고 그 기쁨과 평안으로 나를 살리신 그 복음의 감격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의 상처, 그 아픔을 느끼며 그들의 아픔을 짊어지고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전해줄 복음을 가지고 찾아가는 손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런 기대를 가지고 그들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목적으로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영광스러운 교제의 축복을 통해 우리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복된 부르심에 응답할 자 누구입니까?
12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심/막3:3-19
12제자를 따로 불러 세우심/막3:3-19 2003-11-26 10:38:39 read : 4 어떤 사업가가 기도하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에게는 천년이나 일초나 똑같죠..?"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그럼..나에게 천년이나 일초나 똑같지.." 이 사업가가 또 묻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에게는 백 억이나 1원이나 똑같죠?" 예수님이 또 대답하십니다. "그래 나에게 백 억이나 1원이나 똑같지.." 이 사업가가 예수님께 재차 확인합니다. 예수님 분명하죠? 분명히 그렇죠....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래...의심하지 말아..그렇구 말구..." 그랬더니 그 사업가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그럼 저 100억만 주세요?"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그래 1초만 기다려.....!!" 아직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분들은 성령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하....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십자가 사역 외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람이라는 전략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것을 위해 열두 명의 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그럼 왜 하필이면 열두 명 이었을까요? 열 둘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대표 수의 개념을 갖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파들로 나누셨을 때 몇 지파를 세우셨습니까? 열두 지파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12지파 하면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갈 사람들을 세우시는데 몇 명을 세우시죠? 12명입니다. 이것은 이제 이들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혈통과 인종과 국적과 학식을 초월해서 세워지는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 교회의 초석을 세우실 것이고 이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21장에서 주님이 완성된 천국,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의 비전을 보여주셨을 때 그 영광스러운 천국의 12개의 문 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고 12개의 성곽 기초석에는 12사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주님이 부르시고 세우신 12명의 제자는 바로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님의 백성 혹은 모든 시대를 대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주님께서 당신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제자로 세우실 때 그들을 통해 주님이 기대하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그 주님의 기대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2천년 전에 제자들을 부르셨던 주님이 지금도 여전히 그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부르고 있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주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선은 불러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과의 교제를 통해 다시 세상으로 보냄 받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전도입니다. 영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가장 먼저 그들과의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해 신적인 영광을 경험한 제자들이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 변화된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위로하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복음에 헌신하는 그런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13절에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고 할 때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불렀다는 것이 바로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그들을 불렀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 제자들을 세우신 이유. 그 첫 번째가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자기와 함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당신과 교제하며 당신과 함께 하는 사랑의 대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무슨 일꾼이나 종으로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인격적 교제의 대상. 사귐의 대상으로 불렀다는 것입니다. 감동되지 않으세요? 나 같은 사람. 내가 생각해도 더럽고 추한 사람, 이 허물 많은 사람. 이 약점 많은 사람. 그런데 그처럼 영광스럽고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존귀하신 주님이 나와 더불어 함께 있고 싶어하신다. 나와 더불어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분이세요? 그분은 인생이 아니십니다. 무엇이 있어야 의미가 있고 무엇이 없으면 부족함을 느끼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그 신성의 충만함이 무엇으로도 손상 받을 분이 아니십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모자람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나같이 연약하고 무능하고 가치 없어 보이는 우리가 없으면, 우리와 교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분의 제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늘 제가 말씀을 준비하며 받은 그 감격과 감동을 여러분에게 다 전달 못하는 이 안타까움을 아셨으면 합니다. 말에 어눌한 저의 말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는 이 감격적인 말을 도저히 다 표현 못하는 안타까움을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주님과 함께 하게 되면, 그 영광스러운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주님과 함께 그분의 말씀을 듣고 함께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비로소 나를 부르시고 나를 세우시고 나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깨달아 알게됩니다. 나를 불러 주님과 함께 하기를 기뻐하시는 그분을 보면서 그분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나도 모르게 그 분을 닮아가게 됩니다. 내 안에 그분의 마음이 생기게 되고 그 분의 비전이 맺히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주님이 꾸는 꿈을 나도 꾸게됩니다. 그리고 그 분의 놀라운 권세도 은혜로 받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15절을 보니까 주님은 부르신 열두 제자들을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그들에게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까지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그분과 함께 하며 신적인 교제가운데 있는 제자들의 축복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서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이렇게 놀라운 축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시대.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주님과 함께 있는 방법이 뭡니까? 어떻게 우리가 주님과 같이 하면서 그분과의 그 풍성하고 신적인 교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편밖에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 주께서 성령으로 기록하게 하신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을 펼치고 묵상하면서 우리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며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우리는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그분께 나아가며 주님이 허락하신 그 놀랍고도 신적인 교제의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느끼며 말씀 속에 계시된 그분의 삶을 배우고 그 분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서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놀라운 신적교제를 갖게 되면 내 삶을 향한 그분의 기대를 알고 그 기대에 내가 믿음으로 헌신하면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사람이 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담대한 사람이 됩니다. 환경을 뛰어 넘은 강한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실 때는 바로 이런 모습을 기대하면서 부르신 것입니다. 고후4:7-9절과 6:9-10절을 보십시오. 특별히 고후6:10절을 다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이 말은 "슬픔으로 짓눌려 있으나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강한 이미지의 제자상입니까? 환경을 뛰어넘은 강한 존재의 모습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실패할 수 있고, 예수 믿는 사람도 좌절스러운 환경을 경험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실패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낙심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도 슬픈 일이 있을 수 있고 예수 믿는데도 근심거리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혹 아직도 예수 믿으면 무조건 하는 일이 잘되고 고통이 없고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을 기대하거나 바라는 분이 있다면 빨리 그 잘못된 신앙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누가 사업에 실패했다....누구자식이 대학에 떨어졌다..그러면 그 집사님 요즘 기도 안 하더니........이런 말과 생각들을 이제는 고쳐야 합니다. 슬픔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예수를 잘 믿어도 올 수 있습니다. 근심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예수를 믿어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슬픔과 근심이 우리를 사방으로 우겨 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하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제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은혜와 어떤 축복을 누리게 됩니까? 그 슬픔과 좌절과 낙심으로 짓눌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슬픔과 낙심과 좌절을 넘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와 함께 하는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주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삶을 살면서 나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깨닫게 되면 사명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있게 하시고 귀신을 쫒는 권세를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보내어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를 부를 때 사명을 위해 불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고후6:10절의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도 동일한 모습을 봅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 그저 내 한 몸 편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전부인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무런 소망 없이 저주 아래 살아가던 우리들이 십자가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되어 주님의 자녀가 되고 제자가 된 것은 더 이상 우리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사명적인 삶이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이지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자됨의 의미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목적과 기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당신과 함께 있게 하시면서 그 신적인 교제의 영광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고.....내가 지금 위기를 만나고 내가 지금 비록 가난해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내 삶의 존재 이유는 나보다도 더 어렵고 더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도우고 그들을 세워주고 그들을 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위로하고 축복하고 부요하게 하는 것이 내 삶의 존재 이유이요 내 속에 주님이 함께 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를 따라가고 예수를 믿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을 향한 이런 주님의 기대 속에서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며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기대대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기대대로 산다면 이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내가 독차지 않고 타인들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학생들도 사업자들도 직장인들도 그런 의식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공부해서 남주고 돈벌어서 남주고 은혜받아 남주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은혜로 불러주신 그 기대를 알고 이런 의식을 갖고 살면 내 삶의 만족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한,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한 비록 내가 아무 것도 없을지라도 나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확신하며 삽니다. 행복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많이 가지고 많이 누려야 행복한 삶이라는 사단의 말에 속지 않게 됩니다. 가난해서 나는 불행하다고 남들보다 건강하지 않아서 나는 불행한 사람이라고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우리를 세상에 나가 전도하는 사람으로 부르실 때는 바로 이런 기대를 가지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이런 가치관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담대하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주의 제자들로 사는 모습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오늘 12제자들의 명단을 보십시오. 변변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분과 함께 하면서 그분과 교제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권세와 성령의 능력을 받기만 한다면 우리도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서 영혼을 건지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면서 그 영광스러운 교제를 맛보고 그 기쁨과 평안으로 나를 살리신 그 복음의 감격으로 고통받는 이웃들의 상처, 그 아픔을 느끼며 그들의 아픔을 짊어지고 기도하면서 그들에게 전해줄 복음을 가지고 찾아가는 손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런 기대를 가지고 그들을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목적으로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영광스러운 교제의 축복을 통해 우리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복된 부르심에 응답할 자 누구입니까?
12제자를 세우신 예수님(1)/ 막3:1-19/ 2016-04-24
12제자를 세우신 예수님(1) 막3:1-19 지난 주일에는 저희들이 우리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인 것을 공부했습니다. 저희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인지 형용할 수가 없어요. 저희들은 죄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도저히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병든 자에게, 병들어도 보통 병이 아니라, 문둥병과 같은 아무도 고칠 수 없는 골수 병들은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을 고치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네 사람이 말할 수 없는 장애물을 승리해서 소망 없는 중풍 병자를 예수님 앞에 데려 온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시고, 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세리 마태를 부르시어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미움받고 업신여김을 받는 이 약한 세리들, 이 세리들과 죄인들과 한 자리에서 같이 음식을 드시며 기뻐하셨어요. 그들과 같이 음식을 드시며 기뻐하시는 예수님, 그런 예수님을 상상해 보세요.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고 쳐다보기만 하면 벌써 얼굴이 굳어지고 얼굴에 미움이 도는 이런 매국노들과 같이 식사하시면서 기뻐하시는 예수님. 진실로 우리 주님은 죄인의 친구시오,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인 것을 분명히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는 12 제자를 세우신 예수님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왜 12 제자를 세우셨는가? 예수님이 계시던 그 시대의 배경을 우리가 먼저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세우신 그 때가 어떠한 때며, 왜 세우셨는지, 또 어떤 사람들을 세우셨는지, 거기에 깊은 뜻이 있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은 어떠했는가? 결론적으로 그 당시의 지도자들, 종교적인 지도자와 정치적인 지도자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악했습니다. 한 나라가 잘 되려면, 한 가정이 잘 되려면, 한 교회가 잘 되려면, 지도자가 옳아야 됩니다. 지도자가 악하니 어떻게 그 시대에 소망이 있었겠어요? 또 그 당시의 백성들은 어떠했는가? 그 당시의 백성들을 보면 모두 목자 잃은 양들과 같습니다. 이 미련하고 연약한 양들, 방향을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는 양들. 모두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어요. 마음을 보면 모두 답답하고 슬프고 운명적이고 팔자 타령이고 한숨만 짖고, 모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장 30절에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워져서 어두우리라. 진실로 어두운 세상이라고 했는데, 흑암과 고난뿐이고 빛은 구름에 가리어져서 소망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절망적인 이런 시대에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들은 절망하거나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는가?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 시대에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가슴 깊이 깨닫고, 머뭇거리지 말고 이런 일을 시작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통해서 오늘은 두 가지를 공부하겠어요. 그 시대에 지도자들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또 그 시대에 백성들의, 양들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시작하셨는가? 1절과 6절을 보면, 그 시대의 지도자 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 종교적 지도자들, 종교적 지도자는 민족의 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지도자는 민생을 돌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종교적 지도자는 영적인 양심의 문제, 정치적 지도자는 육신의 문제를 관할하는데, 정치적 지도자가 양심이 올바르지 아니 하면, 거듭나지 아니 하면, 육신의 문제를 돌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지도자가, 그 나라의 종교가 썩으면 양심도 없고, 지도자도 썩으니까 나라가 썩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의 모습이 어떠했는가?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 가셨어요. 회당에 들어가니까, 1절, 한 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병신이올시다. 여러분들은 병신이 되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에 손 OO 이라는 오른손이 없는 친구가 있었어요. 오른손에 손가락이 다 없고 조그마한 손가락이 두 개만 이렇게 있었어요. 이름이 OO 인데 참 친했어요. 그 아이는 언제나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닙니다. 왼손으로 그림도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르는데, 오른손은 꼭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누가 손을 좀 보자고 하면 막 악을 부립니다. 나하고는 친하니까, \\\\\\\"동명아!\\\\\\\" \\\\\\\"왜?\\\\\\\" \\\\\\\"내가 왜 오른손을 이렇게 넣고 다니는지 알아?\\\\\\\" \\\\\\\"몰라.\\\\\\\" \\\\\\\"너는 내 친구니까 내가 보여줄게\\\\\\\" 하고 보여 주는데, 아! 얼마나 불쌍한지. 이 청년도 손이 말려서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열등의식 속에 \\\\\\\'나는 무슨 팔자로 이렇게 병신이 되었을까?\\\\\\\' 하고 얼마나 운명을 저주했을 것이며, 사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습니까? 그는 그래도 안식일에 하나님을 찾아서 회당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2절에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6절에 보면 이들은 바리새인들이에요. 이 바리새인들은 이 불쌍한 청년을 불쌍히 보기는 커녕, 자기들의 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용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명성이 자꾸 올라가니까 이 불쌍한 사람을 미끼로 해서 예수님을 제거하는 도구로 쓰려고 했다는 말씀입니다. 양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모든 지도자의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런 영적 지도자들이 방황하는 양 무리의 길잡이가 되어서 앞서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터인데, 신음하는 양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지는 못하고 불쌍한 양 무리를 이용해 먹으려는 이 일을 볼 때에, 이는 정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어요.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으나 이들이 믿는 것은 종교입니다. 이건 종교예요. 이건 의식입니다. 설교하는 것도 의식이에요. 기도하는 것도, 금식하는 것도, 의식이요 형식입니다. 형식으로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져요. 칼 막스(Karl Marx)는 \\\\\\\'종교는 아편이다\\\\\\\' 라고 했어요. 염불을 외우고, 미사를 올리고, 주기도문을 따르륵 욉니다. 주기도문을 따르륵 외우면 무얼 합니까? 주기도문을 따르륵 외우면 축복을 받는 줄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의식, 자기들의 형식, 자기들의 종교, 그런 것들을 자꾸 범하시니까, 예수님이 나쁜 줄 알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3절을 보니까, 이 지도자들의 마음을 보시는, 더구나 이 한 손 마른 사람을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막 아파 죽겠어요.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서라.\\\\\\\"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 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노라.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질문하십니다, 4절,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줄 아느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들에게 \\\\\\\'안식일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안식일을 세우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분명한 분별력을 깨우쳐 주고 싶으셨습니다. 종교는 무엇인가? 참 종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종교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이들은 하나님을 몰랐어요.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걸 몰라요.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십계명을 지킨다고 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냥 회당에 가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그렇게 하는 것인 줄만 알아요. 그건 형식입니다. 금식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은 양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줄 아세요? 옛날에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죽은 걸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뭡니까? 살아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사랑과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을 행하시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것은 거짓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것도 우리가 안식일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사랑을 듣고 사랑을 행하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해야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선과 악의 분별력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분별력을 잃고 악한 일만 하고 있는, 그러면서도 자기를 모르는 이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고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잘 하는데, 기도하고 금식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선한 일을, 전도를, 정말 선한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엉터리 기도예요. 그건 고쳐야 됩니다. 성경 열심히 공부하고 지식만 많고 선한 일을 행하지 않으면 그건 엉터리 공부한 겁니다. 그건 종교예요, 종교. 행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내려 오셨어요?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답을 못 합니다.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해요. 왜? 선악의 분별력이 없으니까. 선입관에 꽉 차서 그저 금식을 안 하면 악한 사람인 줄 알고 말이죠. 금식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말이죠, 금식을 더 많이 해요. 왜냐 하면,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내가 선한 일을 하여야 할텐데, 너무나 부족하거든. 내가 선한 일을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정말 사랑을, 원수까지 다 사랑을 하여야 할텐데, 그걸 못 하니까 금식을 더 한단 말이죠. 이거 금식을 해야지, 어떻게 하겠어? 그러니까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은 금식 잘 합니다. 새벽 기도도 더 많이 나오고요.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는데, 그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 잘 안되니까 기도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금식 기도도 하고, 철야 기도도 해야 하는 거예요. 아멘! 그런데 그것이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이에요. 기도 안 하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어요? 인간이 어떻게 되겠어요?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집에서 불쌍한 사람을 짓밟고 불쌍한 자들을 이용하는 이들을 보시고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시고 노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좀처럼 노하시지 않습니다. 이들은 엉터리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보니까 예수님은 자유 주의자 같아요, 엉터리 같아. 이상한 여자들이나 세리들하고 음식을 함께 하신단 말이에요. 에수님께서는 이들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십니다. 이들의 마음이 왜 이렇게 딱딱했어요? 이들의 마음이 왜 이렇게 완악했습니까? 그것은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어요.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한다고 하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경배를 드리는 것인데, 똑바로 경배를 드려야죠. 하나님 말씀을 공부하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몰랐습니다. 십계명이 뭡니까? 처음 네 계명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켜야 되는 계명인데 그 목적이 뭡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제 오 계명부터 제 십 계명은 인간에게 지켜야 될 법인데 그건 뭡니까? 그건 지키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부모도 공경하고, 정말 사랑하면 살인이 뭡니까? 미워도 못 하고, 정말 사랑하면 간음도 못 하고, 정말 사랑하면 도적질도 못하게 되잖아요? 정말 사랑하는 것이 문제야.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만 믿고, 우상도 못 만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고,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말씀 공부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킨다고 해서 안식일에 일하면 안되고, 병 고치는 것도 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몰랐어요.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이들은 안식일도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인 줄 모르고 있었어요. 이들은 한 손이 오그라져서 슬픔과 열등의식에서 헤매고 있는 이 사람의 심정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불쌍히 보시고 이를 구원하시길 원하시는지, 탕자를 그렇게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잃어버린 양을 찾도록 찾으시는 아버지의 심정, 이 불쌍한 이 병신의 그 찌든 마음에서부터 이를 구원하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 종교 지도자들이 모르고 있었어요. 양 무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이들을 보셨을 때 심히 근심하시고 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쌍한 사람을 한 가운데 세우시고 원수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당당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그를 고치셨습니다. 말씀으로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이신 고로, 그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정말 그래요, 이건 그냥 말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을 정말로 공부한 사람들은 능력을 만나서 거듭나요, 달라져요. 말씀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엉터리 말씀을 배우니까 거듭 나지 않지. 말씀에게 기회를 안 주니까 말씀의 능력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원수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기를 책잡아 송사 하려는 것인 줄 아시면서도 고쳐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웁니까? 불쌍한, 무시 받고 있는, 소외당하고 있는, 마음에 막 진통을 하고 있는 한 영혼을 불쌍히 보십니다.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시고 관심을 두실 뿐 아니라 사랑하셔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 원수들이 무어라고 하든지 이 불쌍한 영혼을 도우시고 구원하시는 분이신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단적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오기만 하면 목숨을 걸고 우리를 고쳐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니까,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합하여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본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이 헤롯당과 결탁을 해요. 왜? 예수님이 이 두 당의 공통된 원수니까.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지도자인데, 헤롯당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헤롯당은 당시 유대인의 분봉왕 헤롯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세력이었습니다. 헤롯은 악한 왕이었습니다. 백성들을 착취했습니다. 침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이 헤롯은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지배하고 양들을 무력으로 막 잡아먹는, 사정없는 정치 지도자였습니다. 정치 지도자들은 목자입니다. 정치를 잘 해서 힘이 없는 양들을 잘 다스리고 백성들의 복지 생활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들의 일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든 백성들의 영혼의 목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는 영혼의 문제, 정치 지도자는 육신의 문제를 다루지만, 정치가들도 영혼이 있으니까 모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모두가 잘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당시의 지도자들은 결론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첫째, 선악의 분별력이 없었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생명의 존엄성이 없었습니다. 약자를 이용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자기의 유익만을 구해요. 왜 이런가? 사랑이 없기 때문에. 참 사랑이 있어야지, 왜 사랑이 없는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거짓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원수까지 사랑한다고 그랬는데. 초대 교인들은 죽으면서도 사자를 풀어서 운동장에서 자기를 잡아죽이는 그 원수들을 축복해 주고 그들을 용서해 주었잖아요? 스데반도 그랬잖아요?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이왕 죽을 바엔 \\\\\\\"악 악\\\\\\\" 하면서 죽으나 \\\\\\\"죽여라!\\\\\\\" 하면서 죽는 것보다는 할렐루야!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이왕 죽을 것, 100살에 죽으나 50살에 죽으나 20살에 죽으나 다 마찬가집니다. 쌀 몇 가마니 더 먹고 죽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예수님은 정말로 죄인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죄인을 구하는 분이다. 정말로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을 정말로 깨달은 사람은 죄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다가도 \\\\\\\'어이쿠, 정신 차려야지\\\\\\\' 하면서 또 회개해요. 아내와 마구 싸우다가도 \\\\\\\'어이쿠, 차렷! 어이쿠, 목사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돼요? 싸우다가도 뚝 끊고 \\\\\\\"잘못했어. 잘못했어.\\\\\\\" \\\\\\\"전에도 그러더니 뭐!\\\\\\\" \\\\\\\"잘못했어. 그때도 잘못했어. 다 잘못했어.\\\\\\\" \\\\\\\"앞으로 또 그럴 거야?\\\\\\\" \\\\\\\"잘못했어.\\\\\\\" 잘못했다는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 속으로는 \\\\\\\'야, 내 남편이 달라졌다. 내가 못 됐지. 난 뭐 잘 났나? 나도 못 된 것이 괜히 내 남편을 말이야, 잘못했다고 하는 것을 자꾸만 구박하지.\\\\\\\' 예, 할렐루야! 싸움은 이렇게 이기는 것입니다. 그럼요. 예수님을 보세요. 얼굴에 침을 받고도 \\\\\\\'저들의 죄를 용서 해 주시옵소서.\\\\\\\' 사도 바울 보세요.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십니까? 세 가지 일을 하셨어요. 7절과 8절을 보니까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좇았어요.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메와 요단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허다한 무리가 그의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 오는지라. 예수께서 무리의 에워싸 미는 것을 면키 위하여 작은 배를 등대 하도록 제자들에게 명하셨으니 이는 많은 사람을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자들이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함이더라.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시니라. 무엇을 하셨어요? 첫째, 예수님은 한 생명을 목숨을 걸고 사랑하시고 도우시고 관심을 두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회당 안에서 한 편 손 마른 사람을 원수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다 아시면서, 종교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이 결탁해서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내 사는 목적이 뭔데? 나만 실컷 먹다가 죽는 건가? 나는 이 일을 위해 왔노라.\\\\\\\' 지난 번에 배웠지요? 분명합니다. \\\\\\\'내가 이일을 위해 왔노라!\\\\\\\' 무슨 일인가? 이들을 구원하는 것, 이들을 가르치는 것, \\\\\\\'이 일을 위해 왔노라.\\\\\\\' 그 악한 지도자들에게도 가르쳐 주려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구원하는 것과 망하게 하는 것, 어느 것이 좋으냐?\\\\\\\' 가르칩니다. 뿐 만 아니라 불쌍한 한 영혼, 무시 받는 한 영혼을 도우십니다. 여러분, 우리 가운데에도 외롭고 답답하고 마음에 멍들은 심령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수님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어요. 세리들도 돈은 많이 벌었지만 마음은 공허해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나아 오는 거예요. 한 영혼에 관심을 두시니까, 결사적으로 도우시니까 많은 무리가 옵니다. 7절 이하를 보니까, 예수님은 많은 무리를 품으셨어요. 많은 무리들이 모여듭니다. 많은 무리들이 따라 다니는데 예수님은 귀찮아하지 않아요, 피곤해 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보니까 모두 질병에 허덕이고 귀신들렸어요. 심령에 병들었다는 뜻이에요. 신음합니다. 모두 보기 흉합니다. 이들은 모두 병들고 모두 냄새나는 꼴불견들인데, 이들은 그 냄새나는 손을 내밀어서 예수님을 만지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피하시지 않으세요. 이들을 모두 영접해 주십니다. 모두 불쌍히 여기십니다. 도와주시고 고쳐 주십니다. 병들은 심령들, 병들은 육신들을 모두 품어 주시는 참 목자이십니다. 큰 무리가 모여들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얼마나 예수님과 같은 목자가 필요한지를 여기에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모여들어요. 예수님과 같은 참 목자가 얼마나 필요한가? 연약한 한 영혼을 존중히 여기고 크고 깊은 관심을 가진 목자, 고생하는 한 사람 뿐 아니라 고생하는 많은 무리를 귀찮게 여기지 않고 품에 안고 어루만져 주는 사람, 또 원수들의 위험과 미움과 죽음과 수단, 모든 모략을 무릅쓰고 이 불쌍한 자들을 마음에 품는 참 목자, 선악을 바로 판단하는 사람,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이 불쌍한 병신, 불구자, 영혼의 병신을 인도할 참 목자가 필요해요. 참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 사셨는가? 원수들이 그런다고 \\\\\\\'종교 지도자도 모두 엉터리이고 악함에 꽉 매인, 정치 지도자도 악함에 꼭 붙잡힌 이런 악하고 깜깜한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해? 나만 적당히 살다 가야지,\\\\\\\' 그게 아니란 말씀이죠.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니까,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시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인 것을 믿으니까 잠자코 계시지 않아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어떤 사람이 주의 일을 하는지 아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주의 일을 할 수 있어요. 첫째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이것이 진짜\\\\\\\'라는 체험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둘째는 \\\\\\\'내가 남을 가르치고 증거하고 사랑해 보니까 되더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에요. 변화를 받아요. 할렐루야! 사도 바울이 왜 로마에 가겠다고 그랬는지 아세요? 사도 바울이 뭐 맨 처음부터 성령이 충만해서 로마에 가겠다고 그런지 아세요? 물론 사도 바울이 성령 충만했지만, 그게 아니에요. 사도행전을 잘 읽어보면 참 재미있어요. 사도행전을 잘 읽어보니까, 사도 바울이 맨 처음에는 유대 사람에게만 복음을 전했어요. 그런데 에베소 같은 데에서 이방인에게도 전도해 보니까 우상을 섬기고 만들던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도시가 뒤집혀요. \\\\\\\'야! 이것 봐라. 난 유대 사람들만이 구약의 배경(background)이 있어서 예수를 전하면 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로구나. 이방인들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전하니까 다 거듭나는데!\\\\\\\' 사람들이 우상을 집어 내 버리고, 또 우상을 안 사니까 그 우상 만드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켰어요. 노동자들이 나와서 스트라이크(strike) 일으켰던 것 기억하세요, 에베소서? 참 재미있어요. 사도 바울이 전도해 보니까 되거든. \\\\\\\'야!\\\\\\\' 그래서 빌립보에도 가고 구라파에도 가고 그런 거예요. 뭐 괜히 마구 간 줄 아세요? 말씀이 올바르고 정말 내가 용서받은 탕자의 심정이 되어서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야, 정말로 복음이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능력이로구나\\\\\\\'하고 그 복음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는 약자의 귀한 한 심령을 존중히 여기는, 크고 깊은 관심을 가지는 그런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고생하는 한 심령 뿐 아니라 고생하는 많은 무리, 우리 사천만, 이북의 이천만, 전세계의 60억을 품에 안고, 이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고 내 마음이 이들을 안타까워하고 이들을 품고 기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위험과 미움과 죽음, 희생을 무릅쓰고 선악의 분별, 판단을 바로 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 참 목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옛날 유대인들이 헌 가죽 부대에 새 술을 담으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 새 술은 새 가죽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새 술이시고 새 생명이시며 참 생명이신 예수님을 저희들이 알고, 우리가 정말로 새 가죽부대에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하는 저희들이 되어서, 이 시대에 정말로 알차게 주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바로 이루어 드리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하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들인들 완전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심정을 바로 깨닫는 것이 심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오니, 오늘 주님의 심정,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 어떻게 한 영혼을 주님이 섬기시며 또한 많은 무리를 섬기시고,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시고 혼자 일을 하다가 그만 두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참 목자들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저희들이 배워서, 본 교회가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아서, 예수님 같이 이 일을 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시고, 이 일에 축복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