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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히12:5-13/ 조용기 목사/ 성찬주일설교/ 2007-12-02
징계 히12:5-13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징계’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할 때 대개 출세와 성공을 삶의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훌륭한 인성과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 됩니다. 그 때문에 학교교육도 상업적이 되어 선생님은 제자들의 인품성장보다는 지식을 파는 직업인으로 전락하고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고 지식이란 상품을 사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때문에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인격자가 되라고 교훈하거나 징계하는 것이 사라진지 오래됩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우리 자녀들은 교육 많이 받고 머리 좋은 행실 없는 윤리와 도덕 부재의 사람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가르치시는 목표는 장차 천국에 가서 모자람이 없는 천국시민이 되기를 원하셔서 세상에서 부지런히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령님의 은혜뿐만 아니라 꾸짖음과 징계를 아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공과 복은 일시적인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관되게 우리의 삶의 목표가 천국에 합당한 인생이 되도록 교육하시는 것입니다. 2003년 말 오스트리아의 빈 의대에서는 50개국 국민의 IQ를 비교한 후 한국이 2위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경제협력 개발기구’ OECD에서 실시한 ‘학업 성취도 국제비교’에서 한국의 고등학교 1학년생들이 선진국 40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하여 한국 학생들의 실력이 세계 최상위임을 입증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교육열은 단연코 세계 1위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은 세계적인 위인을 배출하는 데에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까지 ‘수재’ 였던 학생들이 대학에 가면 ‘둔재’가 되는 한국의 교육의 현실인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우리의 교육 현실은 훌륭한 인성과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시키기 보다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지식 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은 교육을 많이 받고 머리가 좋으나 장기적인 인생의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행실 없는 윤리와 도덕부재의 사람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나라 보십시오. 경제대국입니다. 굉장히 강력한 나라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원조에도 미국 뒤따라 가장 많은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세계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고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윤리가 없고 도덕이 없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징병과 또한 많은 악행을 한 것을 진실로 회개하고 보상하고 돌이키는 그러한 행위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도덕성이 없고 윤리성이 없으므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세계적인 인도로 할 수 있는 나라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었습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너무 얽매어 못하게 하는 게 많아. 술도 먹지 말라. 담배도 피지 말라.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고 하면서 하라는 것은 왜 그리 많고 너무 간섭이 심하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마침 곁에 있던 기독교인이 이 말을 듣고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1천만 원짜리 피아노를 요리하는 요리대로 사용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럼, 최고급 양복으로 신발을 닦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럴 수 없지요.” “그럼 비싼 도자기를 강아지 밥그릇으로 사용하면 어떨까요?” “그건 바보 같은 일을 누가합니까? 왜 그런 것을 질문하지요?” 기독교인은 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몸은 온 세상보다 값지고 귀한 보배인 것인 것입니다. 그 귀한 몸에 술을 부어서 술독으로 만들고 담배를 때서 굴뚝으로 만드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이 귀한대로 대접하기 위해서 술독을 만들지 마라. 담배 굴뚝을 만들지 마라. 수렁 창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장차 천국에서 모자람이 없는 천국시민이 되도록 이 세상에서 교육시킵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과 성령님의 은혜를 부어주시기도 하지만 징계를 아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본론>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과 징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우리가 늘 칭찬하고 위대한 인물로 존경합니다만 아브라함은 신앙이 탁월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징계와 채찍도 엄청나게 맞았습니다. 믿음으로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으나 불순종하고 불신앙한 일이 함께 섞였으니까 하나님이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2장 1절로 2절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찌라” 일흔 다섯 살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고향 산천을 떠나라 했습니다. 네 전토 친척도 떠나고, 아비집도 떠나고, 혈연단신으로 아내 사래만 데리고 출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란에서 모은 재산을 다 수레에 싣고 수많은 종들을 거느리고 아비집인 조카를 거느리고 가나안 땅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아, 나는 당당하게 하나님이 떠나라 해서 순종하고 떠났습니다.” 말을 했지만 그 순종은 불순한 순종이요, 진실한 순종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서 모은 재산을 다 수레에 실었습니다. 종들도 다 거느렸습니다. 조카도 데리고 갔습니다. 땅도 버리지 않고 전토도 버리지 않고 친척도 아비집도 버리지 않고 다 가지고 떠났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 하나님께서 엄청난 기근을 가난에 땅에 두었습니다. 우물이 다 마르고 풀이 다 마르고 데리고 온 짐승들은 다 배고파 굶어죽고 종들은 뿔뿔이 헤어지고 친척들도 다 떠나갔습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에 와서 결국 빈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가나안 땅에 가면 큰 민족을 이루고 창대케 하겠다고 하셨는데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나를 쳐서 빈 손 들게 만듭니까?” 원망과 탄식이 그 마음속에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기 위해서 아내를 데리고 조카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창세기 12장 10절에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더라. 오히려 기근을 당했으면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으면 될 것인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했지 애굽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잃어버리고 순종도 포기하고 자기 살길을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애굽을 택해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내가 이쁜 연고로 애굽에 가서 바로왕의 눈에 들었으므로 아내도 빼앗기고 처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아내를 빼앗기고 그 덕분에 많은 물질을 얻어서 살았지만은 비참하기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크게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했습니다. 정말 깨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내를 도로 돌려주시고 많은 금은보화를 주시고 짐승을 보상으로 받아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그 인생이 변화 되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이후에 그는 조카 롯과 땅 분쟁에서 인간적인 탐욕을 버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카 롯도 많은 짐승을 거느리고 자기도 짐승을 거느리니 좁은 땅에 우물과 들풀로 말미암아 싸움이 붙었습니다. 목장들의 싸움이 삼촌과 조카간의 싸움이 된 것 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3장 8절로 9절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당연히 삼촌으로써 “내가 좋은 땅을 차지할 터이니 그 다음 네가 차지하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 할 터이니 네가 먼저 선택하라. 하나님께서 내 친척을 떠나라 했는데 이제야 너와 나와 결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조카가 요단 뜰에 물이 넉넉하고 풀이 많은 것을 보고 그리로 택해서 떠나서 비로소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내 전토 친척 아비 집을 완전히 떠나서 완전히 순종할 때까지 그는 가나안의 기근과 애굽에서 아내를 잃어버리고 당한 수모의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야 변화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로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넘치는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완전한 순종을 하지 못하고 세상과 섞여서 있을 때는 주님께서 징계를 내리시고 우리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으로 알려진 것이 ‘스트라디바리’라는 바이올린인 것입니다. 이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가 10대부터 93세가 될 때까지 만든 것으로 1천 100대 밖에 없습니다. 그가 바이올린을 만들 때 엄격히 지키는 원칙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낌없이 다 부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바이올린에는 절대로 내 이름을 적어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조선 백자나 고려청자를 만드는 장인들도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아름다우나 그들의 눈에 조그마한 흠이 보이면 도자기를 가차 없이 내리쳐 부쉈다고 합니다. 이런 장인 정신은 작은 흠집이라도 결코 용납하지 않고 최상의 것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지만 기근이 들자 자신의 생각대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러한 부실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 놓지 않고 그를 쳐서 깨어지게 하고 변화 받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순종은 성공의 어머니요 안전의 아내입니다. 순종은 모든 문의 열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순종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 공짜로 은혜를 받고 복만 받는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은혜와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각가가 돌 안에서 자기의 형상을 보고 난 다음 돌을 찌어서 그 형상을 찾아내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과 환난을 통할 뿐 아니라 징계를 통해서 찌어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결국 목적은 우리를 천국 시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만 좋다고 철야하고 금식하고 주여, 주여 하면서도 윤리와 도덕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고 불의하고 부정하고 부패하면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신앙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징계에 회부할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가 정의롭고 정직하고 거룩하고 충성스러운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두고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징계 받을 때 요한일서 2장 15절로 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버리지 못할 때 옛사람을 그대로 입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징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를 통하여 보혈을 통하여 죄와 용서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옛사람 그대로 술 취하고 방탕하고 허랑하고 음란하고 세속에 취해서 살면은 하나님이 그대로 내버려 놓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고 채찍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하나님의 명령이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불순종할 때 하나님은 징계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이 니느웨성에 가서 외쳐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만에 니느웨성이 망할 것이라고 하라고 하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알고도 불순종하여 배를 타고 욥바에서 다시스로 도망치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나중에는 물에 빠져 물고기 뱃속에서 들어가서 3주야를 고난 당한 것을 우리가 잘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순종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2절로 5절에 야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야훼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고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패역하고 거역하는 사람을 매를 때리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가 게으르고 열심을 버렸을 때 첫사랑을 버렸을 때 새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채찍을 때려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잠언 13장 24절에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 하느니라” 자식을 사랑하면 근실히 채찍을 때리고 징계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식이 원하는 데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정크 푸드를 먹어 몸이 이렇게 뚱뚱하게 만들고 시간 늦게 텔레비보고 게임하고 나쁜 친구들하고 사귀어도 부모들이 징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점점 폭력사회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근실하게 잘했을 때는 칭찬하고 못했을 때는 징계해야 참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징계의 채찍의 아끼는 자는 자녀의 영혼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욥기 5장 17절로 18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징계를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부모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혼돈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 할 것 나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가정이 왜 파괴되는지 압니까? 가정에 남편이 사업한다고 집안을 종종 비우고 처자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좋은 집을 짖고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만 가족은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혼돈한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먼저 섬기지 아니하고 친구들과 사귀고 놀러 다니고 운동하러 다닌다고 바뻐서 남편 밥상도 다 차리지 아니하고 남편의 출입도 잘 돌보지 못하면 선후가 바뀐 것입니다. 먼저 할 것 먼저하고 나중할 것 나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을 나중으로 하고 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먼저 취하면 하나님이 소외되고 버림받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자식들을 사랑하고 품에 품고 복을 주시겠습니까? 징계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7절로 8절에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라” “나는 마음대로 살아도 하나님이 꾸짖지 아니하신다. 나는 허랑하고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해도 교회에 나오면 할렐루야 은혜만 주시니 감사하지 않느냐. 왜 너는 그렇게 얻어맞고 고생하느냐.”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그는 종교는 가졌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관심 가지지 않습니다. 남의 자식이 길 앞에서 흙탕물에 뒹군다고 간섭합니까? 누가 길렀는지 잘못 길렀다고 혀만 찰뿐이지 내버려 두고 갑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이 옷 입은 대로 흙탕물에 뒹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끌어내어 엉덩짝을 때리고 꾸짖고 집에 들어와서 씻길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징계하지 않는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징계를 받지 아니하면 사생자인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믿고 참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반드시 채찍을 들어 때리는 것입니다. 때릴 때 여러분 간지러우라고 때리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라고 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아픕니다. 뼈 속까지 쓰립니다. 고통의 눈물을 흘리도록 때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징계를 당할 때 여러분 편안하게 징계 당하기를 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3. 징계를 받는 태도 우리는 징계를 받을 때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진실하게 징계를 받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리면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꾸 도망치면 점점 얻어맞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잘못하면 어머님이 부지깽이로 저를 때렸는데 여러분 맞다가 보니까 점점 체험으로 지혜가 생겼습니다. 도망을 치니까 부지깽이 끝에 맞으니까 몹시 아프더라구요. 때릴 때 어머니를 안고 뒹구니까 부지깽이 안으로 맞으니까 아픈척 하지만 실제로 안 아파요. 그래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아이고 나죽네.”고 고함을 치면 실제로 안 아픈데도 어머니는 심히 아픈 줄 알고 때리는 것을 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때릴 때는 멀리 달아나지 말고 어머니를 끌어 안아야 돼요. 하나님이 때릴 때는 하나님을 끌어 안아야 돼요. 하나님을 떠나서 자꾸 도망치면 무지무지하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3장 11절로 12절에 “내 아들아 야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야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고 말했었으며 요한계시록 3장 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부모가 꾸짖으면 낙심해서 집안에 들어앉아 밥도 먹지 않고 문을 채워 놓고 울기만 하고 있으면 징계의 목적이 달성하지 않지 않습니까? 징계하면 깨어지고 회개하고 털털 털어버리고 일어나서 방실방실하게 긍정적으로 징계를 받아들이고 변화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태도로 원망과 불평을 하면 징계가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로 6절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징계를 받거들랑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을 감사합니다. 잘못된 길을 걸어가는 나를 바로 잡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징계해 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오히려 감사해야지 낙심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공경해야 될 것입니다. 징계 받기 전보다 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고 사랑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므로 징계하시니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난 다음에 방에 와서 우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때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에 좋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채찍을 많이 때려놓고 난 다음에 방에 가서 부모님이 울고 그 다음 세수하고 손수건으로 닦고 밖으로 나옵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때린 만큼 부모의 마음도 아픈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때리고 기뻐하신 줄 압니까? 여러분을 때린 만큼 하나님 마음이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이 괴롭습니다. 징계를 때릴 때 여러분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괴롭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괴롭게 한 죄를 회개하고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9절로 10절에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은 천당에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영혼을 잃어버릴까 싶어서 천당에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부귀나 영화를 주시더라도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등따스고 배부르면 게을러지고 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될 때가 쉽기 때문에 하나님은 항상 축복을 주시면서 채찍을 손에 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가다가 돌이켜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되고 하나님을 불순종 하다가 공경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징계 받았을 때 우리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변화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대로 그 생활 그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간증하기를 자기가 거의 병들어 죽게 되었다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났는데 살아나고 난 다음에도 옛날과 여전히 술 망탱이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아직은 안 때린다. 내가 말하기를 “안 때리면 이제는 앞으로 죽도록 만들 것이다.” 과거에 술 망탱이가 되어서 가정을 돌보지 아니하고 생활을 절도 없이 살다가 하나님께 맞았는데 부르짖고 기도하여 고침 받았으면 생활에 변화가 와야지요. 또다시 술을 먹고 정신없이 생활하면 하나님이 그 다음에는 영혼을 데려 가실수가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활 습관을 고쳐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서 20장 30절에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 가느니라” 상하게 때리는 것은 악을 없애기 위해서 때리는 것이기 때문에 악을 내가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얻어 맞고도 악을 제거하지 아니하면 징계는 점점 심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난 다음에는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룩하고 충성스럽고 탐욕을 버리고 깨어지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3절로 24절에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징계는 우리를 새 사람이 되게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환골탈태하여 완전히 생각도 행동도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사업을 잃어버리고 돈을 다 잃어버리고 가족도 다 잃어 버리고 빈 손들고 낭패가 되었으나 깨어지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을 보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시 변화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세상을 떠나라는 말은 안했습니다. 세상과 같이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열심히 경쟁하고 일하고 살아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머리가 되고 꼬리 되지 않고 위에 있고 아래 내려가지 않고 남에게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남에게 얻어먹는 것보다도 주어야 전도가 되지 예수 믿는 사람이 남에게 얻어먹으면 전도가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이 지위가 높아져서 낮은 사람을 잘 돌보고 훈계하면 그 훈계를 들을 것인데 거지가 여러분에게서 훈계하면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네 팔자나 고쳐라.”고 말할 것입니다. 높은 사람이 와서 우리 발을 씻으면 우리가 감동을 하는데 거지가 와서 발을 씻어 주겠다 하면은 거부하고 감동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 되어서 이웃 사람을 돌보아 주면 감화와 감동을 줄 수가 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잘 살아서 남을 도와주고 남에게 은혜를 끼치면서 복음을 전해야지 남에게 도움을 받고 손을 늘 내밀고 구걸하면서 전도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거지가 각설이 춤을 추면서 예수 믿으라 하면은 믿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작년에 왔던 각설이 올해도 안 죽고 또 왔네 하고 칭가 칭가 하면서 예수 믿으시오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입니까? 미쳤다고 할 것이 아닌 것입니까?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축복 받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되 삶의 목표를 바꾸지 마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이 땅에서 축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할 때 하나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지요. 모든 것을 더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차후로 미루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는 인생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로 13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여러분 징계를 잘 받으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의로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삶의 목표를 분명하고 변화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 철도회사에서 두 사람이 도랑 파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고 또 한 사람은 수십 년 동안 도랑만 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전날 밤에 수십 년 동안 도랑 파는 일만 하던 선배가 리무진을 타고 온 회장과 저녁식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제 회장님 리무진에서 내린 사람이 선배 맞습니까?” “맞네, 내가 어제 회장님과 저녁을 먹었다네.” 이 말에 젊은 사람은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회장님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으셨어요?” 나이 든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과 나는 오랜 친구일세. 우리는 똑같이 오래 전에 도랑 파는 일을 같이 시작했다네. 회장은 도랑을 파면서도 꿈이 분명해서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애를 썼으나 나는 돈버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도랑 파는데 열심을 했어. 세월이 지나가자 기회가 오는데 회장은 시험을 쳐서 승진 하고 승진 하고 승진해서 회장이 되고 나는 지금까지 도랑 파는 팔자가 되고 말았네.” 여러분 인생을 어찌 살 것인지 꿈과 희망을 갖고 삶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 발전하지 삶의 희망도 목표도 없이 그냥 떠돌이 인생을 사는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하나님 앞에서 주어진 인생에 분명한 목표와 꿈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목표와 꿈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늘 불평, 원망만 하는 떠돌이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론> 징계는 슬프고 괴로운 체험입니다. 매를 즐거워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징계는 우리를 자라게 하고 변화 받게 하는 것입니다. 징계를 잘 받아들이고 나면 더 정의롭고 마음에 깊은 평안을 갖게 되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사이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놀라운 은총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수는 발칸 산맥의 장미에서 나오는 향수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에도 가장 춥고 어두운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딴 장미에서 최고급 향수가 생산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장미가 바로 그런 환경 속에서 가장 강한 생명력을 발산하면서 가장 향기로운 향을 뿜어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징계는 슬프고 괴로운 체험입니다. 그러나 징계를 잘 받아들이고 나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이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되고 아름다운 하늘나라 시민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징계가 없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크고 작은 징계가 오거든 항상 감사하고 깨어지고 회개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하신 일을 따라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 은혜를 받을 뿐 아니라 많은 징계와 채찍도 받습니다. 징계는 슬프고 괴로운 체험입니다. 매를 즐거워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징계를 받아야 우리가 자라고 징계를 받아야 회개하고 깨어지고 변화 받게 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징계를 겸손하게 잘 받아들이고 우리는 더 회개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깊은 평안을 얻게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이 다 제거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어 함께 하나님과 생활하는 우리가 되게 만들어 주시 옵시고 이 세상을 떠날 때 당당하게 천국 시민으로 들어갈 수 있는 변화 받은 사람이 되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조용기 목사(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