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예화
  • 자료
  • 성경
4.19 그 때 그 정신/ 신32:7, 마6:33/ 최성규 목사/ 4.19혁명제51주년기념국가조찬기도회설교/ 2011-04-18
4.19 그 때 그 정신 신32:7, 마6:33 성경은 마음과 정신을 중요시합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23:4)고 명령합니다. 대한민국 애국가 1절은 신앙 정신을, 4절은 애국 정신을 나타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1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4절).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후렴). 국방경비대 충성가 가사도 애국 정신입니다. 이씨 조선 오백 년 양양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아, 이슬같이 죽겠노라 정신이 나라를 살렸습니다. 바른 정신이 대한민국 5천년 역사를 지탱해온 힘입니다. 제가 효운동을 하면서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가족제도와 효정신이 대한민국 5천년 역사를 이어온 힘이다.” “효는 가장 한국적이자, 세계적이며, 성경적인 정신이다.” “효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효를 행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정신이 바로 서야 합니다. 정신이 바로 선 나라가 21세기를 주도합니다. 우리나라는 위대한 나라입니다. 3.1운동 정신과 4.19혁명 정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3.1운동 정신과 4.19혁명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합니다. 성경은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라고 말씀합니다. 3.1운동 정신과 4.19혁명 그때 그 정신이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 4.19 그때 그 정신에 대해 알아봄으로, 역사의 십자가를 지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 애국자가 되고, 애국 신앙이 됩시다. 첫째, 그때 그 희생 역사는 숭고한 희생 위에 바로 섭니다. 3.1운동과 4.19혁명은 희생이었습니다. 3.1운동 때는 대표적으로 유관순 누나가 희생했습니다. 3.1운동 할 때가 겨우 17살이었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할 때가 18살이었습니다. 그런 어린 소녀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습니다.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유관순 누나는 그것도 부족하다고 외쳤습니다.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코와 귀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4.19혁명도 희생이었습니다. 1960년 4월 19일, 4.19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4.19혁명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필연이었습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 중에 자유당 정권은 발췌개헌을 했습니다(1952년). 정권 연장을 위한 헌법 개정이었습니다.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을 했습니다. 종신집권을 하겠다는 욕심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 땅은 독재와 가난과 부정부패로 얼룩졌습니다. 우리 국민은 깨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서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해 일어났습니다. 주요 사건만 날짜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했습니다.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마산에서는 3.15부정선거 규탄 데모가 일어났습니다. 4월 11일에는 시위 중 행방불명된 16살 김주열 학생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4월 18일에는 고대 학생들이 시위를 마치고 귀가 도중에 테러를 당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도화선이 되어 4월 19일, 전국적으로 4.19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가져왔습니다. 4.19 당시 우리 국민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지역, 계층, 세대를 초월하여 항거했습니다.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 속에서도 항거했습니다. 서울에서만 사망자가 130명, 부상자가 1천 여 명이었습니다. 공식 사망자만 272명이었습니다. 정신적, 물적 희생은 더 컸습니다. 그때 그 희생은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 희생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고 말씀하십니다. 그 숭고한 희생에 온 국민은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오늘의 민주주의와 국가 번영은 4.19희생의 터 위에 세워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그때 그 정신 4.19 그때 그 정신은 ‘자유’입니다. 51년 전, 이 땅은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 결사와 언론 출판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4.19는 자유를 찾기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4.19의 외침은 하늘의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자유를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할 것입니다. 4.19 그때 그 정신을 이어받아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4.19 그때 그 정신은 ‘민주’입니다. 당시 정권은 불의, 불공정, 불법의 3불이었습니다. 국가의 근간인 헌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유린했습니다. 민주주의 기본인 국민 투표까지 조작했습니다. 4.19는 피를 흘렸습니다. 그 피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피였습니다. 고등학생까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쳤습니다. 4.19 노래에 나오듯이 그때 그 피가 나라를 건졌습니다. 눈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 나라 건졌네 분노가 폭발되던 사월십구일 우렁찬 아우성은 메아리 되어 민주대한 역사 위에 길이 남으리 이루자 민주통일 그 정신으로 눈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 나라 건졌네 우리는 이 노래를 계속 불러야 합니다. 우리 모두 4.19정신을 이어 받아 민주주의를 지켜나갑시다. 4.19 그때 그 정신은 ‘정의’입니다. 51년 전,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암 5:24)명령하십니다. 저 북녘 땅과 한국 교계에 정의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정의가 필요합니다. 나부터, 우리부터 말과 행실에서 정직하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셋째, 그때 그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51년 전, 역사는 우리를 거리로 불렀습니다.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해 깃발을 들라고 우리를 불렀습니다. 서로 하나되어 이 나라를 새롭게 하라고 우리를 불렀습니다. 4.19혁명 세대는 역사의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사명자로 우뚝 서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했습니다. 그 부름에 응답한 4.19세대는 현재 대통령이 되고, 대법원장이 되고,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4.19 그때 그 정신은 지금도 우리의 사명입니다. 4.19 그때 그 희생은 영원히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책임지는 시대의 사명자입니다. 이 땅에 불의가 있다면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이 나라가 불법으로 어둡다면, 우리가 일어나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성경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고 선포합니다. “지도자의 책임이지”, “누군가 하겠지”라는 태도를 버립시다. 우리가 주인이요, 우리가 책임자요, 우리가 사명자입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을 우리들 손에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 나라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대한민국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명령하시고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나보다 나라가 먼저입니다. “하나님 먼저, 나라 먼저, 너 먼저 그리고 나”의 정신으로 삽시다. 애국하는 대통령, 목사, 정치가, 사업가, 국민이 됩시다. 동시에 4.19 그때 그 정신과 희생을 후대에 계승합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역사는 반복됩니다. 좋은 것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도 반복됩니다. 우리의 후대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대를 바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4.19 그때 그 정신과 희생을 물려줍시다. 우리의 후손들이 바르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세울 것입니다. 정신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나라가 살아야 나도 삽니다. 나라가 살아야 우리 모두가 행복합니다. 우리 모두 4.19 그때 그 정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계승합시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과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 임합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총장, 제11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2002~2003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5중 복음/ 행2:37-41/ 최성규 목사/ 2015-10-18
5중 복음 행2:37-41 본문에 나오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성경 66권 속에 있는 복음의 핵심을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성령의 충만함 을 입고 담대한 능력을 얻어서 대 중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는 먼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 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성령의 선 물, 즉 성령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로 수많은 사람 들이 세례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중생’과 ‘성령 충만’의 결과로써 하늘의 ‘축복’도 임하고, 육신의 질병이 치료되는 ‘신유’의 역사가 나타나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 때 결국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되며, 천국에 들 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5중복음을 듣고, 믿어야 하며, 또한 이웃에게도 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5중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을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중생의 복음 중생의 복음은 선하신 창조주 하 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분의 사랑 으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 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근원이요, 역사의 창조주 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눈에 보이 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 계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 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모든 필요한 환경을 만드신 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 님의 은혜 아래서 살다가 그 질서 의 법을 어기고 스스로 교만하게 됨으로써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지 게 되었고, 축복 대신에 죄와 저주 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못 하고, 예배를 드릴 수도 없으며, 더 군다나 교제할 수도 없게 된 것입 니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 리의 실존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어 중생을 얻는 길밖에 없습니다(요 3:3). 하 나님께서는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사랑과 은혜로 독생자 예수를 우리 의 구원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완 전한 순종의 삶과 십자가에서 인류 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가 져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든지, 무슨 죄를 지었 든지간에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 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 게 된 것입니다. 둘째, 성령충만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은 우리의 힘으 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되는 일을 성령께서 행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이요, 중생을 통해서 내주하신 성 령께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통해서 능력있게, 체험적으로 임하 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행 1:8). 성령님은 예수님과 구별되는 ‘다른 보혜사’로서 중생한 성도들 속 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하 여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 를 드릴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새로운 능력을 받는 체험이며, 권능있는 삶을 살게 합 니다. 성령충만을 통해서 우리는 보다 거룩하고 성숙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도의 성화는 오직 성 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사람은 마음 을 지킬 수 있으며, 날마다 신앙을 회복하면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 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통 해서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성 령충만한 성도는 성경적인 사람으 로 변화되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 게 칭찬받을 수 있어야 하며, 봉사 하고, 전도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 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축복의 복음 축복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의 영혼뿐 아니라 육적인 이 세상 에서의 삶에도 관여하시고, 그 모 든 일에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갈 3:13-14).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잘 먹 고, 잘 입고, 잘 살기를 원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며, 우리 삶의 전반에 걸쳐서 주인이 되기를 원하 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현실적으 로 우리에게 가난과 저주가 임하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 바로 형성되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 수님께서는 우리의 저주를 짊어지 시고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 다. 예수님의 희생과 순종으로 말 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이 우리에게 까지 미치게 된 것입니다. 축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 현실적으로 복을 누리기 위해서 는 먼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들을 믿어야 하고, 그 말씀을 좇아서 기 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신유의 복음 신유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영적 으로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도 우리 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마8:16-17). 질병은 끊임없이 우리를 도적질하 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마 귀로부터 올 수 있습니다. 또한 우 리가 범죄함으로 질병이 올 수 있 고, 사망의 저주로부터도 질병은 올 수 있습니다. 질병이 자연적인 게으름이나 나 쁜 습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귀 와 죄로 인한 것이라면 예수님의 대속에 근거해서 병고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 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 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 었도다}(사53:5). 그러므로 신유라 는 말은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능 력,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나타나는 성령의 치료사역을 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유의 복음을 믿고 병낫기를 기도해야 합니다(약 5:14). 믿음의 기도는 신유의 역사 를 일으킵니다. 다섯째, 재림의 복음 재림의 복음은 이 세상을 하나님 께서 다스리시며 종말에 가서 모든 사람을 정의로써 심판하시며, 성도 들에게 천국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 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 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 나고 그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우 리는 오늘만을 위해서 살지 않고, 내일의 영원한 가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시 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역 사를 처음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 시고, 역사를 종결지으실 분도 하 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주 권에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평화롭게 살 아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줍니 다. 이처럼 역사의 완성자와 인류의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성실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고후 5:9-10). 선한 일을 행한 자 에게 상주실 하나님을 믿으며 착한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5중복음을 우리의 신앙의 근거로 믿습니다. 중생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축복의 복음, 신유의 복음, 재림의 복음을 더 잘 듣고, 더 확실히 믿으며, 더 열심히 전할 때 우리에게는 틀림없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가족을 사랑하라/ 딤전5:8/ 최성규 목사/ 가정의달설교/ 2015-05-21
가족을 사랑하라 딤전5:8 I. 서론 오늘 이 시간에는 “가족을 사랑하라.”,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족을 사랑하라.” “가족을 사랑하라.” 신앙실천 여섯 가지 중 첫째는 “하나님을 섬겨라”, 두 번째는 “부모를 공경하라”, 세 번째는 “가족을 사랑하라”입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 또 가족이 없다는 것,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족이 있는 사람 얼마나 든든합니까? 얼마나 힘이 됩니까?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얼마나 평안이 있습니까? 얼마나 행복합니까? 가족이 있는 것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가족 사랑과 가족 이기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또 가족 사랑하는 것이 다른 가정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가족 사랑이 사회에 악을 끼쳐서도 안 됩니다. 가족 사랑이 가족 우월주의가 되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가정이란 어떤 곳이며, 왜 가족을 사랑해야 하는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가족 사랑의 결과가 무엇인지 함께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개인에게 임하시고 여러분 가정마다 행복하시고, 그래서 이 사회가 맑고 밟고 환한 사회,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본론 1. 첫째, 가정은 이 땅에서 천국 첫째로, 가정은 이 땅에서 천국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가정은 이 땅에서 천국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장차 올 천국을 위함이요, 가정을 세우심은 천국을 미리 맛보고 누리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가정이 있기 때문에 천국을 미리 맛보고 산다. 그 말인 것입니다. 천국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러므로 가정 천국은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아닙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그것이 넉넉하다고 그래서 그것만 가지고 가정이 천국이다, 그건 전혀 아닙니다. 아버지는 더 벌고, 어머니는 더 모으고, 자녀는 더 공부한다고 그것이 가정 천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습니다. 또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습니다. 탐하지 말아야 할 것을 탐한 결과 저주와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영이 죽었습니다. 생활이 저주받았습니다. 육체가 죽었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가족 간의 사랑과 하나 됨을 막기 위해서 아버지에게는 일과 술을, 어머니는 연속극과 각종 계모임이 각종 모임에 빠지게 합니다. 또 자녀는 잘못된 인터넷과 연예인에 빠지게 만든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성령 안에 있을 때 천국을 맛보며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이 성령 안에서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에 하나님의 의, 곧 성경이 명한 그 질서와 말씀이 있을 때,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있고, 그 가정은 천국을 맛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권위와 책임의 자리에, 어머니는 사랑과 믿음의 자리에, 자녀는 순종과 축복의 자리에 올바로 서 있을 때, 그 가정은 천국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권위가 있어야 되요. 그러나 권위만 있으면 안 됩니다. 책임을 동반한 권위가 그것이 가치 있는 권위인 것입니다. 권위는 주장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것은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사랑과 믿음의 자리에, 자녀는 순종과 축복의 자리에 올바로 서 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요, 그 가정은 천국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가정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이 그 가정의 주인으로 오시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와 형제간에 막혔던 담이 사라지고 대화의 천국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 위에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한다면, 그 가정은 어떤 형편과 사정에 있든지 간에 기쁨의 열매가 충만한 천국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환경이 어려워서 가정이 불행하다. 천만에 만만에.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 가정에 주님이 계시면, 그 가정에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그 가정에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고, 그 가정은 기쁨이 있는 가정이고, 그 가정은 정말로 천국다운 가정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며 복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이 천국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둘째, 가정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최초의 공동체 두 번째,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사람이 나눌 수 없다. 성경은 분명히 확실하게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 형성의 주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정 형성의 주체는 남편도 아니고, 또 아내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것입니다. 누굽니까?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이 가정 형성의 주체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특별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가정을 직접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야 되고, 또 인간이 보기에 기쁨이 있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가정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뿐 아니라, 가정 구성원뿐만 아니라 사람이 보기에 인간이 보기에 기쁨이 날마다 넘치는 가정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은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가정이 되고, 인간이 보기에 기쁨이 있는 가정이 되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고, 모든 것을 관리하는 권한을 가졌다 하더라도 아담이 독처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했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서 여인 하와를 만들었습니다. 아담에게 데려갔습니다. 아담이 눈을 뜨고 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그 여인 하와를 보니까, 아담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이는 내 살 중의 살이라.” 그랬습니다. 물론 “허”는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것만은 틀림없거든요.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랬습니다. 아담이 혼자 에덴동산에서 먹고 입고 사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혼자 아내 없이, 가족이 없이, 가정이 없이, 에덴동산에서 아담 혼자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게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인 가족을 주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얼마나 좋은지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혜의 왕 되는 솔로몬 왕은 전도서 4장 9절로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며, 또 인간에게 “기쁨”이 있는 곳, 그것이 가정이다 그런 것입니다. 또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이 땅의 모든 것을 돌보고 관리하라는 축복과 명령은 개인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와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남편과 아내에게, 가족 모두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8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복을 주시며, 이러지 않았습니다. 하와에게 복을 주시며,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아담과 하와 복수인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아담과 하와 복수인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왜 가족을 사랑해야 합니까? 왜 가족과 화목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면, 우리 가족과 화목하면, 가족과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뭐냐?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이요, 하나님 명령을 성취해 드리는 것이다. 거기에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언제 받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고 지키고 행하면 복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족을 정말로 사랑하고, 가족을 화목하게 하고, 가족끼리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 다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 사회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서양문화가 들어왔다. 그것이 기독교 문화가 아닌가?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서양문화가 기독교 문화가 아닌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한국도 서양문화가 잘못된 문화가 들어와서, 어떤 문화가 들어왔냐? 이혼 문화가 들어왔어요. 이혼하는 율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년 통계 나온 것을 보니까, 남편이 아내 보고 이혼하자 그런 것은 35%, 여자가 남편 보고 이혼하자 한 것은 65%. 세상에 이럴 줄 몰랐어요. 안타까운 건 이 땅에 4만 5천 교회가 있습니다. 십만 목회자가 있습니다. 천 이 백만 신자가 있습니다. 인구 백 명 중에 25명 이상이 기독교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증가율이 막 올라갑니다. 하나님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준 부부 사람이 나눌 수가 없다.”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이 깨지는 거예요.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화목하지 않는 거예요. 그뿐이 아닙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이 꽉 찬 사람들, 이기주의에 꽉 찬 사람들 독신주의가 막 생기는 거예요. 하나님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아담이 혼자 독처 하는 것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게 여겼다고 그랬습니다. 아담은 일할 필요가 없어요. 범죄 하기 전에 아담은 일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담은 무엇이든지 먹고 입고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싫으셨습니다. 아담이 결혼하지 않고 아담 혼자 사는 것이 싫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결혼시켰어요. 한 가정을 이루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좀 지식이 있고, 지능이 있고, 힘 있다고 생각하는 자칭 유능하다고 하는 남자 여자들이 결혼하지 아니하고 독신주의로 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책임을 전제로 하지 아니 한 동거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아니하고, 책임지지 아니하고 그냥 함께 살아보자, 함께 그냥 생활해 보자는 이 동거주의자들 있다. 이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뭐냐? 인간이 스스로 인간 자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3. 셋째, 서로 돌보아 주라 세 번째입니다. “서로 돌보아 주라.” “가족을 사랑하라.”, 그 말은 뭡니까? 서로 돌보아 주라.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서로 돌보아 주라.” 정말로 마음에 평안함이 있는지? 외롭지는 않는지? 슬퍼하지는 않는지? 고민하고 있지는 않는지? 어디가 아픈 데는 없는지? 외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돌보아 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장 8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추석 명절/ 신16:10-12/ 최성규 목사/ 추석주일설교/ 2002-09-23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추석 명절 신16:10-12 오늘 이 시간에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추석 명절”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추석 명절.” 네, 오늘 설교 제목이 참 길어요. 다시 한 번요.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하는 추석 명절.” 네, 이번 주 토요일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입니다. 안타깝게도 올 추석은 여느 때와 달리 참 어렵습니다. 수해와 태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아니면 수용소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조상들의 묘역이 산사태로 말미암아 온데 간데없어요. 그 뼈도 찾을 수 없어요. 그것이 텔레비전에 나온 모습을 보면서 참 얼마나 슬픈지 몰라요. 남의 일 같지가 않더라고요. 그 뿐이 아닙니다. 가족의 사망과 실종으로 슬퍼하는 수재민들도 있습니다. 한숨짓고 있는 수재민들도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제 생계 수단을 잃고 자포자기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수재민들도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도시도 치솟은 물가에, 너무 물가가 올라가서, “추석 명절, 시장에 가기가 너무 겁난다. 부담스럽다.”, 이런 주부들도 많이 있습니다. 정말 누가 말하더라도, 정말 어려운 때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무관심해야 할까? 또 수재민 돕기 성금을 좀 냈다고 그것만 가지고 만족해야 할까? 아니면,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원망해야 할까? 그런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전도서 7장 14절 상반절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 왕이 기록한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시간, 추석을 앞두고 어떻게 보내는 것이 하나님도 기쁘고 사람도 기쁜 추석 명절이 될 수 있을까? 함께 알아보면서, 이 어려운 중에서 우리 생각을 바꾸고, 희망을 가지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즐거워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1. 첫째,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자. 첫째로,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자.”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자.” 여러분, 잃어버린 것만 보지 말고, 있는 것 보자는 것입니다. 불평거리를 찾지 말고, 감사거리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자.”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50편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잃어버린 것 같지만, 다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셨습니다. 새로운 내일과 희망찬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나눌 수 있는 물질도 있습니다.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IMF 경제체제 들어오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어서 금을 내놓고 외국돈을 내놔서 함께 어려움을 나누었습니다. 이번에도 어렵지만,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역사 이래로 수재의연금이, 모금액이 제일 많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하나님 은혜가 감사한지 몰라요. 얼마나, 얼마나 국민들이 감사한지 몰라요. 얼마나, 얼마나 이웃들이 감사한지 몰라요. 얼마나, 얼마나 성도들이 감사한지 몰라요. 그 뿐이 아닙니다. 힘써 도울 수 있는 사랑이, 사랑이, 있습니다. 다 잃어버린 것 같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사랑이 있어요. 성도들에게 사랑이 있어요. 이웃에게 사랑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이런 아픔을 당하면서 어려움 중에도 또 햇빛은 여전히 비춰서, 살아남아 있는 곡식이라도, 과일이라도 잘 자라고 영글게 하는 것을 보면서, 또 얼마나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한지 몰라요. 함께 모여 감사할 수 있는 부모가 계신 것, 형제가 있는 것, 이웃이 있는 것, 또 성도가 있는 것, 이것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번 수해와 태풍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더 많이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 정신적, 영적 축복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한 번 더 감사해보자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신명기 16장 10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말했습니다. 2. 둘째, 잘못 산 것 회개하자. 두 번째입니다. “잘못 산 것 회개하자.” 그렇습니다. 금번 수해와 태풍은 하나님의 회초리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여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시면, 징계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꾸짖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6절에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이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채찍질도 하시고, 징계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께 오히려 회개하고, 주님을 떠났던 삶을 돌이키고, 주께로 돌아오는 삶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다 속히 죄에서 돌이켜야 됩니다. 잘못된 습관을 버려야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4장 17절 말씀이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것, 의로운 자를 떠났던 것, 말씀으로 살지 아니했던 것들, 회개해야 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선을 행하지 않은 것, 회개해야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가 흔히 알기는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는 것을 하면 죄인 줄 압니다. 물론 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그것을 범하면 죄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지 말라” 한 것을 하는 것만 죄가 아니라, “해야 할 것, 선을 알면서도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도 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꼭 해야 할 것이 뭡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섬겨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어른을 공경하라”, “너희 가족을 너희가 사랑하라”, “너희 조국, 너희 나라를 사랑하라”, “애국자가 되라.” 그 뿐이 아닙니다. “자연을 보호하고, 자연을 아껴라.” 그 뿐이 아닙니다. “네 가족과 네 이웃과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라.” 이 모든 것은 다 선한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선한 것 중에 선한 것이 뭡니까?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겁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선한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딤후4:2). 그 뿐이 아닙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전도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선한 명령입니다. 전도는 선한 겁니다. 영혼 구원, 선한 겁니다. 그것을 행치 않는 것도 성경은 뭐라 말합니까? 죄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 이것도 죄인 것을 알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 선한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선한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 선한 것입니다. 선한 것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주시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인생의 길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7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 고난 때문에, 고난으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말씀 실천의 복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 67절에 말씀합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자행자지(自行自知)했지만 고난을 당하고 나니까, 깨닫고 나니까, 회개하면서 이제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열매 맺는 인생이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보니까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3. 셋째,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하자. 세 번째입니다. “고난을 당한 자와, 고난당하는 자와 함께 하자.”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고난당하다 자와 함께 하자.”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로 우리가 신앙이 있다면,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님의 신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우리가 성도라면 어떻게 살아가느냐? 고난당하다 자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하는 자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기 때, 명절 때, 반드시 약자와 함께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6장 11절입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언제? 절기 때. 언제? 추석 명절 때. 고아와 객과 과부와, 이번 폭우와 또 태풍으로 수재를 만난 수재민들과 함께 추석 명절을 즐기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명예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은사를 많이 받았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건강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예쁩니까? 하나님이 주신 겁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사람들과 나누어 쓰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욥기서 1장 21절 하반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말씀했습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깝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이 많은 사명을 맡기셨다. 하나님이 귀한 것을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럴 때는 아깝지 않습니다. 기쁘고 즐겁게 나눠주고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뭐가 다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나누어 썼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3절로 5절입니다.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우리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처럼, “힘에 지나도록” 도와주자는 겁니다. 자원하여 나눠주자는 겁니다. 내가 돕겠다고 간절히 요청하자는 거예요. 교회가 우리에게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각자 성도가 먼저, 내가 돕겠다고 요청하자는 겁니다. 교회에서 하자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헌신하자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 교회는 천국, 이럴 때 그 구역은 천국, 그럴 때 그 가정은 천국, 그 공동체가 천국. 여러분, 천국의 특징이 뭐냐? 행복한 사람이 많아서 천국이 아니라, 불행한 사람이 없어서 천국. 즐거운 사람이 많아서 천국이 아니라, 슬픈 사람이 없어서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나눠주고 베풀어줄 때,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며 누리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다 자를 돕는 것이, 곧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 4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자들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당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가운데 예수님은 성령말씀으로 와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긴다면, 예수님 계신 곳에 우리도 있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2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고난당하는 자들을 돕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이 되어서 수해지역을 찾아가서 청소도 함께 하고, 일도 함께 하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입술이 되어서 우리는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위로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 주님의 손이 되어서 고아와 과부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나눠주어야 될 것입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주님의 발이 되어서 소년, 소녀 가장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장애자, 낙심하는 자 찾아가서 돌봐주면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줘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2002년 이번 추석은 어느 때보다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게 뭘까? 우리 가족이 먹고 입고 마셔서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뭘까? 가족들이 힘을 모아서 어려운 이웃 찾아가고, 방문하고, 나눠주고, 베풀어줌으로 말미암아, 그래서 그 속에서 보람을 나누는, 그 현장에서 자녀들에게 과연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삶의 현장이 되도록 한번 만들어봅시다.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4. 넷째,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믿자. 네 번째, 하나만 더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믿자.” 따라합시다.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믿자.”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나누어주고 베풀어주고 선한 행위를 다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믿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믿어야 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심을 믿고, 하나님이 나를 치료해주심을 믿고, 하나님이 복 주심을 믿고, 하나님이 나에게 능력주심을 믿고. 그 뿐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 말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행하는 것 때문에 우리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 때문에 우리가 잘 사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누가 믿을 수 있습니까? 열심히 신앙생활한 사람, 열심히 기도한 사람, 열심히 전도한 사람, 열심히 나눠주고 베풀어 준 사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긴 사람, 열심히 부모공경하고, 가족사랑 하고, 또 나라사랑하고, 자연보호하고, 이웃과 인류 위해 봉사한 사람, 열심히 전도한 사람, 영혼을 사랑한 사람,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한 사람, 그런 사람들은 믿음이 있어요.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마귀가 아무리 유혹한다 하더라도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야고보서 2장 22절 하반절에 보니까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우리가 행함 때문에 복 받는 게 아닙니다. 행하면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자가 행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그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 1절로 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보통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예수 안 믿는 불신자는 “내가 잘 아는 국회의원일까? 장관일까? 아니면 대통령일까? 물질일까? 기술일까? 권력일까? 아니면 점치러 가는 걸까? 만신 집 가는 걸까?”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어디서 올꼬. 불안하다. 염려가 된다. 점쟁이 집 가보자. 만신 집 가보자.”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뭐예요? 믿음이 없는 거지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천지를 지으실 여호와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것을 믿어야 돼요. 그래서 애가서 3장 33절에 보니까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이걸 믿어야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또 뭘 믿으면? 할 수만 있다면 인생에게 복 주시는 것을 원하시는 것, 이거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장 14절에 보니까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이 말씀을 제가 설교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에 히브리서 6장 14절에 정확하게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기록해 놓으신 말씀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이 믿어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상시에 주일성수 잘 하고, 가정예배 잘 드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하나님 잘 섬기고, 또 부모공경 잘 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또 나 자연 보호하고,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산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 확실히 믿어지는 것입니다. “야, 하나님이 나를 복 주시고 복 주신대. 하나님이 나를 번성케 하시고 번성케 하신대.” 이게 딱 믿어지면 “아, 나는 복 받고, 복 받고, 번성하고, 번성한다.”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걸 믿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9:29).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겁니다. 우리기 행한 것 때문에 복 받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한 것 때문에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 때문에 내가 잘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행하는 것 때문에 복 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있으니까, 약속을 있으니까, 그 믿음대로 우리가 복 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하여집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니까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하는 것 때문에 복 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면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합시다. “나는 복 받고 복 받는다. 나는 번성케 되고 번성케 된다.” 잘 안 믿어지세요? 믿어지세요? 이것이 믿어질 만큼 신앙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고난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는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고난이 오면 “아이고, 죽었다.” 고난이 오면 “아이고, 망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 어디를 봐도 믿음 있는 사람은 고난 때문에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히려 고난 때문에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난 때문에 더 빛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걸 믿어야 됩니다. 보세요. 고린도후서 4장 8절로 9절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누구의 고백입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을 누가 가졌어요? 사도 바울이 가졌어요. 이런 믿음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언제 어디서나 도우십니다. 내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 기록된 말씀을 제가 읽어드립니다. 이사야서 43장 2절입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렇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창 22:14).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출 17:5).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여호와 샬롬”, 평화와 평강의 하나님(삿 6:24).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은 “여호와 로이”,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시 23:1). “여호와 라파”, 우리를 치료하신 하나님(사 53:5). 이 하나님을 모시고 삽니다. 언제나 그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문제를 보지 말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날마다 당당하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대하고 살아가는 자는 어떤 고난이 와도 오히려 그것이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치료가 되고, 능력이 되고 축복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결론입니다. 이번 추석은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합시다. 마음을 나누고 물질도 나눠주며 도우면서 삽니다. 고난당하는 이웃들이 하나님으로 인해 산 소망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할 때, 어떤 어려움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틀림없이 도와주십니다. 함께 해주십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면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 추석은 세상 사람들이 다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셔서 더 좋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의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게 하여 주시고 어려운 이웃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우리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고난은(2)/ 벧전2:19-21/ 최성규 목사/ 사순절설교/ 2014-02-12
고난은(2) 벧전2:19-21 고난은 천국 수업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시키십니다. 고난을 통한 배움은 최고의 영양제입니다. 고난학교의 수업은 크게 4과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을 통해서 다양한 고난을 살펴보고 그 대처방법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고난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는 우등생이 됩시다. 1. 첫째, 욥의 고난 고난하면,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욥입니다. 욥은 고난당할 이유가 없었습니다(욥1:1). 하나님도 그의 신앙과 삶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욥의 삶에 느닷없이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순식간에 자녀를 모두 잃었습니다. 온 몸에 악창이 났습니다. 얼마나 심했던지 기와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어야 할 정도로 중증이었습니다. 욥의 고난이 얼마나 컸던지 아내까지 그를 저주했습니다(욥2:9). 욥의 고난은 애매한 고난이었습니다. 왜 고난을 당하는지 욥은 몰랐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이런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라고 말씀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묵상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유가 있으십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나에게 복 주시는 것입니다. 욥은 인내함으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갑절의 건강, 갑절의 물질, 자녀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도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욥42:5). 고난 중에 인내함으로, 욥이 받은 복을 우리도 받읍시다(약1:12). 2. 둘째, 요셉의 고난 요셉은 가까운 사람으로 인하여 고난당한 경우입니다(창 37:4).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심지어 요셉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팔았습니다. 요셉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가정에 종으로 팔려갔지만 주인을 위해 열심과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억울한 누명을 써서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서도 술 맡은 관원장을 도와주지만 요셉에게 돌아온 것은 여전히 옥살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항상 가까운 사람에게 고난당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고난을 당한다면 아픔도 더 크고 상처도 더 깊을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버림받은 상처, 배신당한 상처, 거절당한 상처, 학대받은 상처, 비교와 편애를 겪은 상처가 있습니다. 이런 상처들은 대부분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씻을 수 없는 큰 고통이 됩니다. 부모에게 버림받으면, 적대감이 꿈틀댑니다. 친구로부터 배신당하면, 불신이 살아 움직입니다. 미움과 원망과 증오에 묶여 살게 됩니다. 이러한 상처는 요셉처럼 풀어야 합니다. 풀지 않으면, 자신에게 독이 되고, 병이 되고, 아픔이 됩니다. 요셉은 과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형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잊어버렸습니다(창41:51). 요셉은 과거 대신 현재를 중요시 했습니다(창45:5).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가족들을 위한 자신의 사명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8:28). 나에게 상처 준 부모, 형제, 친척, 친구를 용서하고 화해합시다. 지금은 고난같이 보여도 훗날 돌아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셋째, 다니엘의 고난 다니엘의 고난은 신앙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다니엘은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탁월했는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으면서도 바벨론 왕국의 총리가 됩니다(단6:3).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시샘했습니다. 다니엘을 죽이기 위해 계략을 꾸몄습니다. 한 달간 왕만을 신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굴복하지 않고 신앙을 지킵니다(단6:10). 결국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단6:16), 사자의 밥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살아 나와서 더욱 신임을 받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우리도 신앙 때문에 고난당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일터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친척들로부터 핍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불의한 방법을 쓰는 사람들 때문에 손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예수쟁이라는 증거이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산다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대로 산다는 증거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산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또한 악한 마귀가 우리 때문에 두려워 떠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능히 감당하게 하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성경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고 말씀합니다. 고난의 위험이 클수록, 하나님의 위로는 더 큽니다(고후1:5). 우리 모두 고난을 피하지 말고, 고난 앞에 비겁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섭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8). 4. 넷째, 바울의 고난 바울의 고난은 사명으로 인한 고난입니다. 바울은 출세가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파 회원이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신임이 두터웠고,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당시 바울은, 모든 것을 고루 갖춘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사명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따라 가기 때문에 수없이 옥에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합니다.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강에서, 바다에서, 광야에서 숱한 위험을 만납니다.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습니다. 결국은 바울은 사명을 위해 순교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고난을 다 당한 이유는 단 하나, 복음증거의 사명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명 때문에 고난당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다가 모욕당할 수 있습니다. 선한 일 하다가 오해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사명 감당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을 소모하고, 육신의 피곤함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의 사명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 길이 예수님이 가신 길이고, 바울이 간 길이며, 우리의 선조들이 간 길입니다. 그들이 사명의 가시밭길을 갔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사명의 길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사명 가운데 만나는 고난을 겁내지 맙시다. 예수님은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마5:11,12). 베드로 사도는 고난당하는 것이 복이라고 했습니다(벧전4:14). 고난 중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사43:2). 어떠한 고난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고후4:8,9). 사명으로 인한 고난은 하늘의 상이 있습니다(마5:1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당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바울도 고난을 당했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우리가 사는 지역과 대한민국을 위하여, 아시아와 세계를 위하여 고난의 길을 갑시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앙입니다(벧전2:20).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 올 때, 인내하고 용서하며 성령의 힘으로 아름답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교회사랑/ 엡4:7-16/ 최성규 목사/ 2015-09-13
교회사랑 엡4:7-16 요즘 우리나라에는 안타깝게도 사는 일보다는 죽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제, 기업, 심지어는 은행까지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과 나라의 지도자들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라가 죽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살기 위해서도 교회 안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나 타종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도들에게서도 크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십계명의 정신도 사랑이요, 예수님의 2대 계명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전해지는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을 보면, 끝까지 사랑의 실천을 부르짖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랑을 말하지 않고, 교회가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교회란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교회사랑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 교회에는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도록 돌보아 주지 못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사람이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한 성도에 게도 문제가 있고, 교회 즉 기존의 다른 성도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므로 사랑으로 뭉쳐야 합니다(엡1:23).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모신 그분의 몸이며, 모든 성도들은 그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들어온 성도는 이제 영원한 운명공동체인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는 좋아도 사랑하고 싫어도 사랑해야 하듯이, 영적인 한 가족인 모든 성도들도 밉든 곱든 서로 사랑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성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들이며, 서로 간에 영적인 형제요, 자매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형제간에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드려지는 예배와 봉사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성경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고 했습니다. 2. 둘째, 사랑은 약한 자를 먼저 돌보아 줍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과 돌봄을 의미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우리는 자신보다 더 약한 자들을 사 랑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 전에 먼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내리사랑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 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고 했습니다. 즉, 나보다 믿음이 약하고,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위해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가장 신앙적으로 연약한 자들인 새 신자들을 잘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단히 이들과 공감하고, 이들을 믿음의 삶으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약한 자를 먼저 돌보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한 작은 지체가 병들면 그 몸인 온 교회가 아픈 것이 당연 합니다. 시험과 환난 중에서 괴로워하는 성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죽은 교회와 방불한 것입니다. 불타는 사랑과 정열의 사도 바울은 그가 돌보는 교회의 성도들과 온전히 하나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고후11:28-29)고 했던 것입니다. 3. 셋째, 사랑은 화평케 합니다. 교회 안에는 화평과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교회 안에서 평등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직분과 달란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타인에 대해 시기나 월권을 행하는 대신에,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때 교회는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 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심판하고 정죄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눈의 티끌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 속의 들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서로 간에 존경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는 목회자를 존경하고, 목회자는 성도를 존중해야 합니다. 서로가 겸손하게 상대방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4. 넷째, 사랑의 힘은 교회를 변화 시켜 갑니다. 웰스는 “완전한 교회를 찾지 마라.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찾아낸다 해도 당신이 그 교회의 교인이 될 자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완전한 곳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과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중생의 복음, 성령 충만의 복음, 신유의 복음, 축복의 복음, 재림(천국)의 복음”을 들어야 하고,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 섬김, 부모공경, 이웃사랑, 나라사랑, 자연보호, 인류봉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변화되고, 우리에게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3중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실현과 완성을 믿습니다. 성령 충만함으로써 사랑을 체험하고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사랑은 날마다 성숙되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할 때 다시금 교회가 부흥하고, 우리 경제도 다시 성장할 수 있으며, 지금의 IMF를 이기고, 이 나라가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를 사랑함으로써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게 하시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 개인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기독교의 3대 운동/ 요3:16-17/ 최성규 목사/ 2001-01-28
기독교의 3대 운동 요3:16-17 오늘 이 시간에는 기독교의 3대 운동, 이런 제목으로 다같이 은혜를 나누시겠습니다. 한 번 따라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독교의 3대 운동.\\\\\\\\\\\\\\\" 다시요. \\\\\\\\\\\\\\\"기독교인의 3대 운동.\\\\\\\\\\\\\\\" 네, 여러분들에게 한 번 질문해 볼께요. 현대인들, 특히 성인들이 만나면 제일 많이 묻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그런 말 아닙니까? 서로 성인들이 만나면 제일 많이 묻는 말, \\\\\\\\\\\\\\\"자네 운동 하나? 운동 하니? 무슨 운동 하니? 운동은 꼭 해야 돼.\\\\\\\\\\\\\\\" 제가 바쁘잖아요. 그래도 성도님들이 만나면, 또 많은 또 동료 목사들 만나면 그래요. \\\\\\\\\\\\\\\"운동해야 됩니다. 목사님, 아무리 바쁘셔도 운동해야 됩니다.\\\\\\\\\\\\\\\" 또 같은 동료들끼리 만나도 그래요. \\\\\\\\\\\\\\\"참, 운동이 필요해. 운동해야 돼.\\\\\\\\\\\\\\\"그렇습니다. 현대인들, 특히 성인들이 만나면 제일 많이 묻는 인사하는 말이 뭐냐? \\\\\\\\\\\\\\\"운동하냐? 운동하냐?\\\\\\\\\\\\\\\" 이 말이죠. 그런데 운동의 특징은 뭐냐? 계속 하는 겁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삼일은 해야 그것을 운동이라고 말합니다. 하루에 아무리 땀흘리고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에 \\\\\\\\\\\\\\\"아, 피곤하다. 힘들다.\\\\\\\\\\\\\\\" 그래서 한 일주일 안 하다가 또 하면 그것은 운동이 아닙니다. 적어도 매일 해야 합니다. 적어도 하루에 20분씩, 아니면 30분씩, 아니면 1시간씩 매일 해야 합니다. 아무리 못해도 일주일 동안에, 7일 동안에 3일 내지 4일은 해야 그것이 운동이지요. 그렇습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육신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영적 건강입니다. 신앙의 건강인 것입니다. 정신 건강인 것입니다. 설날에 어른들께 세배 드리면 꼭 주시는 덕담이 있습니다. 그 말이 뭡니까? \\\\\\\\\\\\\\\"건강하라. 건강하라.\\\\\\\\\\\\\\\" 건강하게 사는 것만큼 복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육체의 건강은 돌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영적인 건강은 살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운동을 합니다. 해외 원정까지 가서 몸에 좋은 거라면, 돈이 없다 그러면서도 막 사먹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영혼을 위해서, 영혼을 위해서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위해서 시간도 투자하지 아니하고, 영혼을 위해서 물질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신앙의 기본을 튼튼히 하는 데에 게을렀습니다. 기본이 약한 운동 선수가 오래 가지 못하는 것처럼, 신앙의 기본이 약하면 문제를 만났을 때 쉽게 넘어집니다. 유혹에 쓰러집니다. 핍박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와 건강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무슨 운동? \\\\\\\\\\\\\\\"새 생명 운동\\\\\\\\\\\\\\\", \\\\\\\\\\\\\\\"새 마음 운동\\\\\\\\\\\\\\\", \\\\\\\\\\\\\\\"새 생활 운동\\\\\\\\\\\\\\\"을 날마다, 날마다 반복적으로 해야 기본 신앙이 튼튼해집니다. 이 시간, 신앙의 기본이자 완성인 기독교인의 3대 운동을 반복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온전한 성도로서 날마다, 날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고, 사랑받고, 복받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새 생명 운동 자, 그러기 위해서 첫째가 뭡니까? \\\\\\\\\\\\\\\"새 생명 운동.\\\\\\\\\\\\\\\"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3대 운동 중의 첫째는 \\\\\\\\\\\\\\\'새 생명 운동\\\\\\\\\\\\\\\'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새 생명 운동.\\\\\\\\\\\\\\\" \\\\\\\\\\\\\\\'새 생명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 \\\\\\\\\\\\\\\'전도 운동\\\\\\\\\\\\\\\'입니다. \\\\\\\\\\\\\\\'전도 운동.\\\\\\\\\\\\\\\'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하고, 계속 하고, 계속 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새 생명 운동은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이세요, 새 생명 운동, 이 전도 운동은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이신 것입니다. 또 그뿐이 아닙니다. 새 생명 운동, 전도 운동은 가장 큰 기쁨이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관심사,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단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죄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아니 하시고,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로 17절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교회 안에 있는 구원받은 성도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죽어 가는 영혼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초신자일 때는, 은혜를 깊이 받지 못했을 때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교인된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구원받은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이처럼\\\\\\\\\\\\\\\'을 나는 구원받은 성도, 교회 안에 있는 성도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은 두 번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이에요.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요한 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에서 \\\\\\\\\\\\\\\'세상\\\\\\\\\\\\\\\'은 누구냐? 교회 안에 있는 성도가 아닌 것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아니한 불신자들을 말합니다. 죄인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죄인을 이처럼 사랑하사, 불신자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죄인을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병든 사람에게 의원이 쓸 데 있는 것처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눅 5:31-32). 우리 주위에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여야 할 대상자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도, 친척 중에도, 이웃 중에도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거리에 있습니다. 유흥가에도 있습니다. 빈민가에도 있습니다. 병원에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죄인 한 명이 돌아오는 것을 가장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 말씀이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99명보다 교회 밖의 아직 구원받지 아니한 죄인 한 사람이 우리 예수님에게 더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셔서, 이 거룩한 사명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8절 말씀이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신자를 위해서,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죄인들을 위해서, 우리 하나님이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독생자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구원받은 우리들을, 예수님은 우리를, 다시 우리를 그 세상 사람,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을 구원받게 하고 전도하기 위해서 우리를 보내신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새 생명 운동의 최대의 적은 뭐냐? 죽어 가는 영혼에 대한 무관심인 것입니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에게 무관심한 것이 새 생명 운동의 최대의 적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에게 구령의 열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도의 열정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강도를 만나 죽어 가는데도, 이웃이, 이웃이 영적으로 강도를 만나 죽어 가는데도, 가족, 친척, 이웃들이 강도를 만나서 죽어 가는데도, 율법사와 같이, 레위인처럼 그냥 지나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가족, 친척, 친구, 이웃이 우리 이웃에 수도 없이 많아요. 영적으로 강도 만난 자가 수도 없이 많아요. 즐비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율법사처럼, 레위인처럼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가 싫어하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두어서 전도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영혼구원과 복음전도는 은사이기 전에 우리의 소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이렇게 말합니다. 영혼에 대한 무관심을 버려야 됩니다. 이 시대의 가장 긴급한 사명인 예수의 생명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최선을 다 하는, 열심을 품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성경에 말을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둘째, 새 마음 운동 두 번째는 \\\\\\\\\\\\\\\"새 마음 운동\\\\\\\\\\\\\\\"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새 마음 운동.\\\\\\\\\\\\\\\" 이 \\\\\\\\\\\\\\\'새 마음 운동\\\\\\\\\\\\\\\'은 성령충만 운동입니다. \\\\\\\\\\\\\\\'새 마음 운동\\\\\\\\\\\\\\\'은 \\\\\\\\\\\\\\\'새 정신 운동\\\\\\\\\\\\\\\'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실 분은 오직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구원받은 성도에게 그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새롭게 하실 분은 오직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오직 성령님.\\\\\\\\\\\\\\\" 그렇습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내가 성령세례를 받고, 내가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내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디도서 3장 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중생한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충만하면 우리는 새 마음 운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새 정신 운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성령 운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경건 운동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통해 일하게 하신다, 이 말씀입니다. 따라하시겠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일하신다. 아멘.\\\\\\\\\\\\\\\" 이것이 기독교의 특징입니다. 성도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것이 이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윤리와 도덕을 구하지만, 그러나 기독교는 과연 성령에 속했는가, 성령에 속하지 아니했는가, 영에 속했는가, 영에 속하지 아니했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종교는 고행과 수련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인정하시고,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나를 인정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나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아멘\\\\\\\\\\\\\\\", \\\\\\\\\\\\\\\"아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날마다, 날마다 성령충만하면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얼마나, 얼마나 귀한 겁니까? 얼마나, 얼마나 감사한 겁니까? 얼마나, 얼마나 감격한 겁니까? 성경에 말을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예수님의 성품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 은혜를 다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성령이 오셔서 마음을, 새 마음을 품게 되면 거룩한 성화의 길을 가게 된다, 그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이 내주하시고, 성령세례 받고, 우리가 성령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새 마음을 품게 하면 우리 모두가 다 날마다, 날마다 성화 되어져 갑니다.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고, 날마다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예수를 영접했다고 해서 갑자기 우리의 삶이 완벽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께서 서서히 우리를 바꾸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더디더라도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셔서, 우리의 마음이 자원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까지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날마다 주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오래 되고, 기도를 많이 하는데 여전히 죄를 짓는다고 실족하지 마세요. 분명히 지금도 변화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어요. 성령의 오셔서 날마다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해 주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17절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에게 내주하시면,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주시면, 날마다 예수님을 닮아가요. 거룩하게 되어져 가요. 성화 되어져 가요.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삶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몰랐으나 이제는 죄가 눈에 보이고, 그 죄로 인해서 탄식할 정도로 마음이 아파요. 그전 같으면 \\\\\\\\\\\\\\\'이까짓 것 남도 다 하는 일인데, 내가 뭐 하면 좀 어때?\\\\\\\\\\\\\\\' 그랬어요. 그러나 성령이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사로잡아 주시면,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면 \\\\\\\\\\\\\\\'아니야.\\\\\\\\\\\\\\\' 혹시 어쩔 수 없어서 마음이 약하고, 힘이 약해서 죄를 지을 때가 있어요. 그러나 \\\\\\\\\\\\\\\'이건 아닌데\\\\\\\\\\\\\\\',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살지?\\\\\\\\\\\\\\\'하고 가슴을 쳐요. 가슴을 쳐요. 무릎을 꿇어요. \\\\\\\\\\\\\\\'나는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두 손을 들어요. 회개해요. 이것이 성령이 내주한 사람, 성령세례 받은 사람,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 성령이 오셔서 마음을 새롭게 만들어 준 사람의 삶인 것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구원받았을 때의 감격과 감동을 넘어서서, 이제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랑의 열매, 희락의 열매, 화평의 열매, 오래 참음의 열매, 자비의 열매, 양선의 열매, 충성의 열매, 온유의 열매, 절제의 열매를 맺는 성숙한 삶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분명히 \\\\\\\\\\\\\\\'새 마음 운동\\\\\\\\\\\\\\\'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성령충만 운동\\\\\\\\\\\\\\\'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 모두가 다 예수를 믿었으니 모두가 다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의지하고, 회개하고, 기도해서 성령세례 받고,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아직도 예수를 믿었으나, 구원받았으나, 구역 성도 중에, 가족 중에, 친척 중에, 이웃 중에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성령충만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도와줘야 합니다. 어찌 하든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해서,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서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먼저 구원받은 성도가, 먼저 성령을 받은 성도가 해야 할 일이고, 해야 할 운동인 것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새 생활 운동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새 생활 운동\\\\\\\\\\\\\\\"입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새 생활 운동.\\\\\\\\\\\\\\\" 그렇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3대 운동이 뭐냐? 세 번째는 \\\\\\\\\\\\\\\"새 생활 운동\\\\\\\\\\\\\\\"입니다. \\\\\\\\\\\\\\\'새 생활 운동\\\\\\\\\\\\\\\'이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씀실천 운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실천 운동이 \\\\\\\\\\\\\\\"새 생활 운동\\\\\\\\\\\\\\\"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이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실천함으로 체험하라고 주신 말씀이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왜 주셨냐고요? 듣고 이해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체험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뭡니까? 듣기는 많이 들었으나, 이해는 많이 이해했으나, 연구는 많이 연구했으나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모래 위에 지은 집 같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듣고 행하면 반석 위에 지은 집 같다고 그랬습니다. 똑같이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짐이 심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아무리 비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마 7:24-27). 여러분, 잘 아시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모세가 지팡이를 들 때 홍해수가 \\\\\\\\\\\\\\\'쫙\\\\\\\\\\\\\\\' 갈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치니 반석이 터져서 생수가 흘러 넘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의 \\\\\\\\\\\\\\\'그리하면\\\\\\\\\\\\\\\'은 우리를 괴롭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을 맛보면서 살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라\\\\\\\\\\\\\\\", 이 말씀이신 것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잉태치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출 23:25-26). {그리하면}, 어떻게 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하더라도,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하더라도, \\\\\\\\\\\\\\\'그리하면\\\\\\\\\\\\\\\'을 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복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 능력으로 나타나느냐? 명령에 순종할 때, 명령을 실천할 때, \\\\\\\\\\\\\\\'그리하면\\\\\\\\\\\\\\\'을 행할 때에 기적은 일어납니다. 운동은 할수록 뭐가 생기죠? 운동은 하면 할수록 뭐가 생기죠? 힘이 생기고. 참 잘 아시네요. 기술은 연마할수록, 할수록 기술이 늘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거예요. 잘 아시잖아요? 운동은 하면 할수록 힘이 생기고, 기술은 연마하면 연마할수록 기술이 늘어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기적이 많이 일어납니다. 잘 알잖아요. 운동을 하면 할수록 힘이 생기고, 기술은 연마하면 할수록 기술이 느는 거예요. 왜?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면 할수록,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복이 임합니다.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기적을 체험하는 거예요. 왜 그걸 안 하려고 합니까? 왜 안 해요? 그렇지요? 몸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은 할 줄 알면서, 기술을 가져서 더 많은 수입과 더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가지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실천하면 실천할수록 기적이 일어나고, 능력을 받고, 복을 받는데, 왜 이것을 등한히 하냐, 그 말인 것입니다. 말씀을 실천하면 아무 감동과 은혜가 없는 무기력한 삶일지라도, 기드온의 삼백 용사처럼 승리하고, 승리하고, 승리하고, 성공하고, 성공하고, 성공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말씀을 실천하는 새 생활을 살아가면 이 사회도 새로워진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두 다 구원받고,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살아가면 개인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우리는 인천에 살고 있으니까 인천의 260만의 삶이 변화된다, 그 말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남한의 4600만의 삶이 바뀐다, 그 말입니다. 국가가 변화되고, 국가가 번영할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19세기의 영국은 어떤 나라였습니까? 술집, 창녀, 폭력, 가난이 난무했던 그런 나라였어요. 그런데 그 영국은 변화되었습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국은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영국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나라의 법일까? 정치일까? 일반 사회운동일까? 아닙니다. 변화된 한 사람, 성령충만한 한 사람, 성경대로 사는 사람, 성령에 사로잡히고 성경에 사로잡힌 사람,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 성령운동의 결과였습니다. 그분이 누구냐? 요한 웨슬레입니다. 요한 웨슬레 한 사람이 기도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충만했습니다.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홀리클럽(Holy club)이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씀실천운동이, 그의 성령운동이, 거룩한 생활운동이 영국을 바꿔 놓은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요한 웨슬레의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요한 웨슬레처럼 성령충만한 사람,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 성경에 사로잡힌 사람이 됩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다, 순복음인천교회 재적 성도인 6만 성도 모두가 다, 전국의 1200만 신자 모두가 다 구원의 확신을 갖고, 성령충만하고, 말씀실천운동을 일으키자, 그 말인 것입니다. \\\\\\\\\\\\\\\'새 생명 운동\\\\\\\\\\\\\\\'을 일으키고, \\\\\\\\\\\\\\\'새 마음 운동\\\\\\\\\\\\\\\'을 일으키고, \\\\\\\\\\\\\\\'새 생활 운동\\\\\\\\\\\\\\\'을 일으킵시다. 분명히 이 땅은 변화될 것입니다. IMF 이후에 어렵다고 말합니다. 힘들다고 말합니다. 절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기적을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19세기의 영국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훨씬 낫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성경이 말씀하시는대로 6대 실천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성경적 효가 넘쳐나도록 합시다. 그게 뭐라고요? 첫째, 하나님 섬김, 둘째, 부모 공경, 셋째, 가족, 이웃 사랑, 넷째, 나라 사랑, 다섯째, 자연 보호, 여섯째, 인류봉사,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사회에는 범죄가 없게 될 겁니다. 화목하게 될 겁니다. 나눠주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입니다. 부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20세기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C. S. Lewis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국은 날마다 만나도 가슴 설레이는 첫사랑의 향연이다.\\\\\\\\\\\\\\\" 천국은 어떤 곳이냐? \\\\\\\\\\\\\\\"날마다 만나도 가슴 설레이는 첫사랑의 향연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귀한 천국에 우리는 가야 합니다. 혼자 가면 안됩니다. 이 귀한 잔치에 가족도 가야합니다. 친척도 가야합니다. 이웃도 가야합니다. 조국도 가야합니다. 세계인이 함께 가야합니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날마다 \\\\\\\\\\\\\\\"새 생명 운동\\\\\\\\\\\\\\\"으로 전도하고, \\\\\\\\\\\\\\\"새 마음 운동\\\\\\\\\\\\\\\"으로 성령충만하고, \\\\\\\\\\\\\\\"새 생활 운동\\\\\\\\\\\\\\\"으로 말씀실천 운동을 겸비함으로 말미암아, 단 한 영혼도 잃어버리지 말고 천국에 함께 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천국에서 상급 받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 땅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주인공들이 됩시다. 어떻게? 오직 예수로! 어떻게? 오직 성령으로! 어떻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날마다 사랑하시는 주님,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주님, 우리에게 귀한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힘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용기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영혼구원운동은 일어나야 됩니다. 성령충만한 운동이 일어나야 됩니다. 말씀실천 운동이 일어나야 됩니다. 주님, 도와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나의 각오, 나의 결심/ 행1:4-9/ 최성규 목사/ 2015-01-05
나의 각오, 나의 결심 행1:4-9 오늘 이 시간에는 \\\\\\\\\\\\\\\\\\\\\\\\\\\\\\\"나의 각오, 나의 결심\\\\\\\\\\\\\\\\\\\\\\\\\\\\\\\" 이런 제목으로 다 같이 은혜를 나누시겠습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나의 각오, 나의 결심.\\\\\\\\\\\\\\\\\\\\\\\\\\\\\\\" 21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첫해가 금년입니다. 2001년입니다. 지금 1월 달입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두 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 정말로 새해를 맞이해서, 21세기를 맞이해서, 1월 달을 맞이해서 여러분 각오가 있습니까? 각오가 없어요? 결심이 있습니까? 각오가 있습니까? 새 각오가 있습니까? 새 결심이 있습니까? 따라하시겠습니다. \\\\\\\\\\\\\\\\\\\\\\\\\\\\\\\"새 각오, 새 결심.\\\\\\\\\\\\\\\\\\\\\\\\\\\\\\\" 있어요, 없어요? 없으면 살았어도 죽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아무리 나이가 많이 잡수셨어도, 새해가 되면, 더더군다나 21세기가 시작되었는데, 보다 큰 각오, 더 큰 결심, 새 각오, 새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각오, 나의 결심은 뭡니까? 각자 자기의 꿈입니다. 나의 꿈, 나의 희망, 하나님이 도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또 각자 어떻게 살겠다고 각오하는 사람, 결심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성령님이 도와주시는 것 믿으시면 아멘하시겠습니다. 또 주님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을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 고백할 때 주님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 8:13) 또 \\\\\\\\\\\\\\\\\\\\\\\\\\\\\\\"주님 안에서 난 할 일이 많습니다. 난 할 일이 많습니다.\\\\\\\\\\\\\\\\\\\\\\\\\\\\\\\"하는 사람에게 더 건강을 주시고, 삶을 윤택하게 하시고, 그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 뭐라 말씀하십니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막 9:23)말씀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마 8:13), \\\\\\\\\\\\\\\\\\\\\\\\\\\\\\\"네 말 한대로 될지어다.\\\\\\\\\\\\\\\\\\\\\\\\\\\\\\\", \\\\\\\\\\\\\\\\\\\\\\\\\\\\\\\"네 결심한대로 될지어다.\\\\\\\\\\\\\\\\\\\\\\\\\\\\\\\" 그런 은혜 그런 사랑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한 해의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각오와 목표를 새롭게 합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새해 목표를 세웠다 하더라도,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 주님의 뜻과 부합되는가, 주님의 말씀에 합당한가,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세웠을 때, 하나님이 복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서 21세기의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와 반대되는 목표를 가진다면, 그것은 모두가 다 허사인 것입니다.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먼 길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데 지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교회와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인 것입니다. 성도는 그 몸의 각 지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의 목표는, 예수님의 목표는, 예수님의 목표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하시겠습니다. \\\\\\\\\\\\\\\\\\\\\\\\\\\\\\\"교회 일이 곧 내 일이다.\\\\\\\\\\\\\\\\\\\\\\\\\\\\\\\", \\\\\\\\\\\\\\\\\\\\\\\\\\\\\\\"교회 일이 곧 내 일이다.\\\\\\\\\\\\\\\\\\\\\\\\\\\\\\\", \\\\\\\\\\\\\\\\\\\\\\\\\\\\\\\"교회 목표가 내 목표다.\\\\\\\\\\\\\\\\\\\\\\\\\\\\\\\" 아멘.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내 목표가 곧 예수님의 목표다.\\\\\\\\\\\\\\\\\\\\\\\\\\\\\\\", \\\\\\\\\\\\\\\\\\\\\\\\\\\\\\\"내 일이 곧 예수님의 일이다.\\\\\\\\\\\\\\\\\\\\\\\\\\\\\\\" 21세기를 시작하는 첫 해에 예수님은 우리 순복음인천교회에 4가지 목표를 주셨습니다. 첫째가 뭡니까? 성령충만하자. 둘째가 뭡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자. 셋째가 뭡니까? 제자를 삼자. 넷째가 뭡니까? 강화기도원을 완공하자인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주신 교회목표를 살펴봄으로, 한 해의 꿈과 계획을 다 이루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성령충만하자 첫째로 성령충만하자입니다. 따라하시겠습니다. \\\\\\\\\\\\\\\\\\\\\\\\\\\\\\\"성령충만하자.\\\\\\\\\\\\\\\\\\\\\\\\\\\\\\\", \\\\\\\\\\\\\\\\\\\\\\\\\\\\\\\"성령충만하자.\\\\\\\\\\\\\\\\\\\\\\\\\\\\\\\"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입니다. 마지막 유언으로 명령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성령충만해야 되느냐? 예수님의 명령이니까. 왜 성령충만해야 되느냐? 그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이니까. 또 왜 성령충만함 받아야 되느냐? 구원받은 성도에게 유익이 있으니까.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누가 섭섭해 하시느냐? 우리 예수님이 답답해하십니다. 누가복음 12장 49절로 50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명령하신대로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서 열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하고 전혀 마음을 같이 하고 기도할 때, 모두가 다 성령세례 받았습니다. 모두가 다 방언할 수 있었습니다. 능력과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 예루살렘이 변화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로 가니까, 로마를 뒤집어 엎어버렸습니다. 로마의 복음이 구라파로 가니까, 구라파를 완전히 변화시켜버렸습니다. 구라파의 복음이 해적의 나라 영국으로 가니까, 영국을 최고의 신사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복음이 인디안만 우글대는 미국 땅으로 가니까, 세계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116년 전에 무지한 나라, 가난한 나라, 멸시받고 천대받는 나라, 지하자원도 없는 나라, 보릿고개가 그렇게 힘들었던 나라, 한국땅에 복음이 들어오니까 이만큼 우리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성령의 역사가 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강하게 역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 시대가 시작되는 첫 날, 1901년 1월 1일 날 미국에서 \\\\\\\\\\\\\\\\\\\\\\\\\\\\\\\'늦은 비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또 감사하게도 1907년 1월 14일 날 평양 장대현 교회에 성령강림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성령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동안 성령의 역사가 또 잠잠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1953년 5월 14일 날, 성령충만한 목사들이 모여서 미국 하나님의 성회 한국 총회를, 한국에서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가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1958년 5월 18일날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저 대조동에서 천막을 치고, 가마니 깔고 순복음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운동하는 교회가, 성령에 앞장서는 교단으로 놀랍게 부흥하고 성장했습니다. 장로교 목사인 찰스 피니, 유명한 분입니다. 그분이 뭐라 했는지 아세요?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처럼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도 죄이다\\\\\\\\\\\\\\\\\\\\\\\\\\\\\\\",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도 죄이다.\\\\\\\\\\\\\\\\\\\\\\\\\\\\\\\" 장로교 목사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구원받았습니까? 구원받았습니까? 성령세례 받아야 됩니다. 성령세례 받아야 됩니다. 날마다 성령충만해야 됩니다. 찰스 피니의 말을 빌리면 \\\\\\\\\\\\\\\\\\\\\\\\\\\\\\\"구원받은 성도가 성령충만하지 아니하면, 죄를 회개하지 않은 자가 죄인인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인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은 것도 죄이다.\\\\\\\\\\\\\\\\\\\\\\\\\\\\\\\" 그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불을 품은 불덩어리가 되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시고, 성령의 불을 품은 불덩어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은, 성령충만함은, 뜨거운 것으로만은 안 돼요. 불은 어두운 곳을 비췰 수 있습니다. 더러운 것을 태울 수 있습니다. 불에는 힘, 파워가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불은 다른 사람에게 붙여나갈 수 있습니다. 뜨거운 것은 불이 아닙니다. 자기 자체가 식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불은 다른 사람을 붙여주는 것입니다. 순복음인천교회의 불이 다른 교회에 막 붙게 하고, 여러분의 불이 여러분 가족, 친척, 이웃들에게, 많은 구역들에게 막 불이 임하여 계속 확산되어 나가고, 나가고, 퍼져 나가게 하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대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탄을 굴복시킨 것은 성령의 불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좀 신학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지식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경험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성령세례 받아서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의 불이 붙어있으면 얼마든지 파워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빛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죄를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태워줄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 그런 능력이 다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성령의 불로 충만했던지 새 술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한 초대 교회 성도들보고 뭐라고 말했습니까? \\\\\\\\\\\\\\\\\\\\\\\\\\\\\\\"새 술에 취했다.\\\\\\\\\\\\\\\\\\\\\\\\\\\\\\\", \\\\\\\\\\\\\\\\\\\\\\\\\\\\\\\"새 술에 취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 모두가 다 예수 안 믿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예수님 믿었어도 성령세례 받지 않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여러분들 다 술 취했다는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성령의 불이 막 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요. 안타까운건요.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이 아닌가?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차든지 덥든지 하라. 미지근하면 토해내리라.}(계3:16) 안타까운 것은, Q.T와 묵상기도를 배워가면서 뜨거운 통성기도와 방언기도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배우면서 말씀에 대한 경외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다시 초대 교회의 뜨거운 신앙과 오순절 성령충만의 능력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성령충만은 곧 뭡니까? 은혜충만, 기적충만, 능력충만입니다. 은혜가 충만하기 원하시면 아멘하시겠습니다. 능력이 충만하기 원하시면 아멘하시겠습니다. 기적이 충만하기 원하시면 아멘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은혜가 충만하고, 능력이 충만하고, 기적이 충만하면 어떤 사람이 되느냐? 성령이 충만하게 된다. 성령의 불로 탈 때 거기에 은혜가 있고, 거기에 능력이 있고, 거기에 기적이 있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패배가 아닙니다. 두려움도 아닙니다. 절망도 아닙니다. 좌절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9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는 것입니까?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평안과 소망을 누구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 성령으로 충만할 때 마음의 평화가 강물처럼 넘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할 때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내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히고, 내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워도, 항상 꿈을 꾸면서 희망을 가지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뭐라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 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이시여, 예언하시기 바랍니다. 젊은이들이시여, 환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시여, 꿈을 꾸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절망 속에서 소망을, 슬픔 속에서 기쁨을, 죽음 속에서 생명을 맛보며, 누리면서, 베풀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 문제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는 능력과 역사가 우리 안에서, 성령 안에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이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예수님보다도 큰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용하려고 꿈도 꾸지 않습니다. 성경은 뭐라 말씀하십니까? 요한복음 14장 12절 말씀이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입을 열어 승리를 선포합니다. 손과 발로 믿음의 역사를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반드시 성령의 불같은 역사가 여러분에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신앙의 덕을 끼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면서, 성공시키면서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다 성령충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많은 지체/ 고전12:12-13/ 최성규 목사/ 2001-07-15
많은 지체 고전12:12-13 오늘 이 시간에는 \\\\\\\\\\\\\\\"많은 지체\\\\\\\\\\\\\\\",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많은 지체\\\\\\\\\\\\\\\", \\\\\\\\\\\\\\\"많은 지체.\\\\\\\\\\\\\\\" 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성도들이 그의 몸의 지체인, 살아있는 몸과 같은 곳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모든 지체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서로 사랑할 때, 참된 교회가 됩니다. 서로서로 사랑할 때,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사랑할 때, 그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다양성 안에 일체성, 일체성 안에 다양성을 가지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2절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이렇게 말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교회도 그러하니라.\\\\\\\\\\\\\\\" 모든 지체들이 살아있고 그 역할을 다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마다 다 은사를 받았습니다. 성도 한사람 한사람 모두가 다 지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인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다 살아있을 때, 그 역할을 잘 감당할 때,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할 때, 그 안에 속한 지체들도 성숙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성도들은 축복을 받아서 영혼이 잘 될 수 있으며, 범사가 형통할 수 있으며, 강건할 수 있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으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건강하기를 원하시면 아멘하겠습니다. 순복음인천교회가 건강하기를 원하시면 아멘하겠습니다. 한국의 모든 교회가 건강하기를 원하시면 아멘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의 교회, 세계의 모든 교회가 이처럼 건강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지체들에 대하여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지체들 간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 살리고, 그래서 모두가 다 성숙한 신자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은사별 지체 첫째는, \\\\\\\\\\\\\\\"은사별 지체\\\\\\\\\\\\\\\"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은사별 지체.\\\\\\\\\\\\\\\" 네, 많은 지체가 있는데 은사로도 구분할 수가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많은 은사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교회에 두셨으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라고 하는 몸에 손도, 발도,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주셔서, 은사자를 주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그 은사가 뭐냐? 바로 몸된 교회에 속한 우리들인 것입니다. 따라합시다. \\\\\\\\\\\\\\\"나도 은사자다.\\\\\\\\\\\\\\\", \\\\\\\\\\\\\\\"나도 지체다.\\\\\\\\\\\\\\\" 아멘.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다 주님의 손이요, 주님의 발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교회의 손이요, 교회의 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하지 아니하면 교회가 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하지 아니하면 주님이 일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보지 않고, 내가 봉사하지 아니하고, 내가 걷지 아니하면, 나뿐만이 아니라 온 교회가 활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가진 것 중에서 버려야 할 습관이 있습니다. \\\\\\\\\\\\\\\"나 하나쯤이야\\\\\\\\\\\\\\\", \\\\\\\\\\\\\\\"나 하나쯤이야\\\\\\\\\\\\\\\", \\\\\\\\\\\\\\\"아, 우리 교회에 성도가 많은데 나 하나쯤이야\\\\\\\\\\\\\\\", \\\\\\\\\\\\\\\"한국에 많은 신자가 있는데 나 하나쯤이야\\\\\\\\\\\\\\\",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마귀가 갖다주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돼\\\\\\\\\\\\\\\", \\\\\\\\\\\\\\\"나도 해야 돼\\\\\\\\\\\\\\\", 이것은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지 마시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때문에 교회가 왕성할 수 있다\\\\\\\\\\\\\\\", \\\\\\\\\\\\\\\"나 때문에 구역이 부흥할 수 있다\\\\\\\\\\\\\\\", \\\\\\\\\\\\\\\"나 때문에 교회가 건강할 수가 있다\\\\\\\\\\\\\\\", \\\\\\\\\\\\\\\"나 때문에 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다\\\\\\\\\\\\\\\", \\\\\\\\\\\\\\\"나 때문에 교회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믿음으로, 이런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따라합시다. \\\\\\\\\\\\\\\"나 때문에 교회가 왕성해진다. 나 때문에 교회가 부흥한다.\\\\\\\\\\\\\\\" 아멘.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또 우리는 서로 간의 은사의 \\\\\\\\\\\\\\\"차이\\\\\\\\\\\\\\\"를 \\\\\\\\\\\\\\\"차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는 다 달라요. 그러나 은사가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어떤 은사는 높고, 어떤 은사는 낮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고린도교회에서는 서로 은사가 다르다고 차별했습니다. 은사를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차등을 두어서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랬던 것입니다. 사랑도 많았고 은사도 많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은사에 기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가치와 중요성의 차이는 절대로 없습니다. 내가 예언의 은사가 있다고 섬김의 은사자보다 높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21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은사로 생각하지 않는 섬김, 서로 돕는 것, 긍휼이 더 귀한 것으로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은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 하나가 될 때 큰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4장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우리 손에는 손가락이 몇 개입니까? 다섯 개가 있습니다. 엄지도 중요하고, 검지도 중요하고, 장지도 중요하고, 무명도 중요하고, 새끼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그런 말이 있잖아요. 모두가 다 엄지, 검지, 장지, 무명지, 서로가 자기 손가락이 잘났다고 한 마디씩 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에 새끼가 말합니다. 막내 새끼손가락이 말합니다. \\\\\\\\\\\\\\\"형들 말이 참 맞아요. 큰 형도 중요하고 둘째, 셋째형도 다 중요해요. 누구 한 사람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다 중요해요. 제일 막내 새끼손가락인 나도 중요해요. 내가 힘이 없는 것 같지만, 네 형들도 내가 없어봐요. 주먹을 쥐어 봐요. 힘이 있나요?\\\\\\\\\\\\\\\" 그렇잖아요. 새끼손가락 없이 주먹을 쥐어 봐요. 힘이 있는가. 어찌 권투 선수가 되겠어요? 어떻게 힘을 써 일할 수가 있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새끼손가락 하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발가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발가락 중에 제일 새끼발가락, 힘이 없는 것 같지요? 어떻게 보면 딱 끼었지요? 형들에게 끼어 가지고 숨도 잘 못 쉬어요. 그러나 그 새끼발가락이 없으면 사람이 정자세로 설 수가 없다는 거예요. 다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직분별 지체 자, 두 번째는 \\\\\\\\\\\\\\\"직분별 지체\\\\\\\\\\\\\\\"가 있습니다. 한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직분별 지체.\\\\\\\\\\\\\\\" 이 많은 지체들을 직분별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직분을 세우심은 화평과 질서와 그리고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신도 사역이라고 말해요. 그래서 교회 직분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평신도 사역이 더 많은 역할을 할수록, 하면 할수록 교회에 필요한 것이 뭐냐? \\\\\\\\\\\\\\\"직분\\\\\\\\\\\\\\\"인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도 은사를 내세우면서 질서를 파괴했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신 것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입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직분을 두시는 것은, 목사를 두고, 전도사를 두고, 장로를 두고, 권사를 두고, 안수집사를 두고, 서리집사를 두고, 이 모든 직분을 두는 것은 그 교회의 평화와 질서와 교회성장을 위해서 둔 것으로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세워주신 직분에 순종할 때, 성도는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교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교회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11절로 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교회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도를 세우셨느냐? 왜 하나님이 선지자를 세우셨느냐? 왜 하나님이 복음 전하는 자를 세우셨느냐? 왜 하나님이 목사를 세우시고, 교사를 세우셨느냐? 각 직분자를, 각 제직을 왜 세우셨느냐?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임이라\\\\\\\\\\\\\\\"고 그랬습니다. 또 \\\\\\\\\\\\\\\"봉사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그랬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세우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서로 간에 직분자를 존경하고, 인정하고, 사랑해 주고, 순종해 주며,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또 교회는 성장시키는 것이요. 뿐만 아니라 성도의 신앙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하나 중요한 것은 뭐냐? 조심할 것은 뭐냐? 모든 직분은 직분을 위한 직분이 아니라, 영혼 구원을 위한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직분은 더 이상 직분이 아닙니다.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뭐냐? 영혼 구원입니다. 전도사가 해야 할 일이 뭐냐? 영혼 구원입니다.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가 할 일이 뭐냐? 영혼 구원인 것입니다. 모든 직분을 영혼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허락하시고,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충성하는 사람을 직분자로 부르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한 말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 충성되이 여기실 때 직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직분을 받은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여러분을 충성되이 여기셔서 직분을 또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직분을 주셨다.\\\\\\\\\\\\\\\" 아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이나 학력이나 인물이 아니라 충성스러운 사람이 주님의 일꾼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2절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렇습니다. 그 직분이 크면 클수록 주님이 물으시는 책임과 열매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2장 48절 하반절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는 더 충성하고, 사람 앞에는 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직분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더 많이 충성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이 봉사하고, 사람 앞에 더 많이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당한 직분이요, 상 받을 직분이요, 축복 받을 직분인 것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마서 12장 15절로 16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말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사업별 지체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사업별 지체\\\\\\\\\\\\\\\"가 있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사업별 지체.\\\\\\\\\\\\\\\" 네, 지체를 사업별로 구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도 사업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은 크게 보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거룩한 사업입니다. 교회의 사업은 성(聖)사업인 것입니다. 현대 교인들의 문제 중의 하나가 뭐냐? 떠돌이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떠돌이 신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의무적으로 예배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몸된 교회의 지체로 하나되지 않으려고 하고, 봉사하지 않으려고 하고, 헌신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거나 열매 맺기를 싫어하면, 모두가 다 잘못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을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 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몸된 교회에 하나가 되어서, 민족 복음화를 위해서, 지역 복음화를 위해서, 세계 선교를 위해서 사명을 잘 감당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인천교회를 보더라도요. 많은 지체를 두었습니다. 많은 성(聖)사업을 주셔서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2대 교구를 주시고 산하 35 소교구를 주셨습니다. 13개 사역위원회를 주셨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청년부, 중고등학생 중심으로 청소년부, 초등학생 중심으로 예꿈, 유치부, 유아부가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가 있습니다. 성산효마을 봉사단이 있습니다. 성산청소년 육성재단 한국 효행봉사단이 있습니다. 청소년봉사단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성산효교육문화원이 있습니다. 성산시민봉사단이 있습니다. 성산어린이집이 있습니다. 성산사랑의집이 있습니다. 순복음유치원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성산 베데스다 자폐아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강화전원교회, 강화금식기도원이 있습니다. 성산수련원이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순복음신문이 있습니다. 성산음악연구원이 있습니다. 그 외에 교회 밖의 활동으로 교단을 통합하고 교단을 성장시키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인천성시화 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앞장서고 있습니다. 순복음신학원의 운영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또 한세대의 발전을 위해서 동참하고 있습니다. 국민일보의 확장을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고, 우리가 구독하고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聖)사업인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들은 누구 하나만의 사랑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누구 하나만의 은사로 될 일이 아닙니다. 어느 한 지체로 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모두가 다, 순복음인천교회의 적어도 6만 명 이상의 재적성도가 모두 다 은사를 받고, 모두가 다 각 지체로서 서로 협력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 힘을 합칠 때, 많은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이 뭐라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랑 안에서 내 일처럼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룰 때, 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조심할 것이 뭐냐? 부서간의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서로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교회는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2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순복음인천교회에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사업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각자 그 사업분야별로 종사하는 곳이 있고, 봉사하는 곳이 있고, 헌신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업별 모든 지체가 서로 연합되어야 합니다. 서로 칭찬해 주고, 서로 인정해 주고, 서로 사랑해 주고, 서로 격려해 주고, 힘을 모아서 함께 일할 때 모든 부서가 다 발전할 수 있으며,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구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교회학교를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교구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성가대를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가대도 중요하고, 교회학교도 중요하고, 교사도 중요하고, 모두가 중요한 것입니다. 모두가 다 은사대로 각 지체가 되어서 함께 연합하고, 땀흘리고, 사랑으로 화목하고, 힘을 모아 충성할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어서 이 사회를 맑고 밝고 환한 사회, 범죄 없는 사회로 만드는 데 앞장서게 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서로를 배척하거나 미워한다면 서로를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은사를 받고 직분을 맡았으면, 성사업을 위해서 서로서로 섬겨야 될 것입니다. 서로서로 인정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3절로 4절에서 사도 바울이 너무나 좋은 말을 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예수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그렇습니다. 성사업이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또 성사업이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시고, 면류관으로 주시고, 건강으로 주시고, 형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 세대별 지체 네 번째, \\\\\\\\\\\\\\\"세대별 지체\\\\\\\\\\\\\\\"가 있습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세대별 지체\\\\\\\\\\\\\\\", \\\\\\\\\\\\\\\"세대별 지체.\\\\\\\\\\\\\\\" 네, 하나님은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영원하게 하기 위하여 세대별 지체를 주셨습니다. 교회에는 연령별로 많은 세대가 있습니다. 어린 아기, 또 유치원, 그 다음에 초등부 학생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청년, 장년, 노인. 그러므로 교회는 세대별로 나이가 다 있어요. 이것이 뭐냐? 세대별 지체입니다. 다 필요해요. 장년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노인도 필요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어린아기도 필요해요. 또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청년, 대학생, 다 필요해요. 다 필요한 것입니다. 유년, 청년, 장년 사이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끼리도 지체라는 의식이 없는 것, 이것이 참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 주, 한 성령, 한 하나님을 모신 한 몸이고, 한 가족입니다. 세상이 중요시하는 혈연이나 학연이나 지연이 같아서, 그것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우리가 하나이냐? 아버지가 하나, 한 분이신 하나님 아버지. 주가 한 분, 성령이 한 분. 모두가 주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인 것을 믿으시면 아멘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깊고 친밀한 관계로서 한 주, 한 믿음, 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5절로 6절입니다.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라고 그랬습니다. 또 그뿐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 말씀이십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다 교회 안에서 나이가 많든, 적든, 어리든 상관없이 모두가 다 주 안에서 하나인 것을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서 세대를 갈라요. 젊은 세대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세대나, 할머니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를 가리켜 말하기를 \\\\\\\\\\\\\\\"구세대\\\\\\\\\\\\\\\"라고 합니다. 저희들은 신세대래요. 저희들은 X세대래요. N세대래요.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고 그래요. 누가 젊은이입니까? 꿈이 있으면 젊은이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젊은이죠. 비전이 있으면 젊은이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세대를 가르면 안됩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 한사람, 한사람은 귀해요. 그들의 의기는 중요합니다. 인정해 줘야 해요. 그들을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고, 칭찬해 줘야 해요. 그런데 유교 문화권에서 어른들은, 노인들은 어린아이들을 너무 무시해버렸어요. 말도 듣지 않으려고 했어요. 참견도 못하게 했어요. \\\\\\\\\\\\\\\"나가 놀아. 네까짓 게 뭘 아냐? 이 놈아. 나가버려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다 세대차이가 없이 서로 서로의 세대를 인정하면서, 우리가 화목하면서 살아가야 될 것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우리는 한 몸이기에 영광도, 기쁨도, 슬픔도, 문제도 함께 나누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세대차이가 없는 한 몸이기에 영광도, 기쁨도, 슬픔도, 문제도, 함께 나누어야 된다, 그 말이에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커지고, 문제와 슬픔은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진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내 자녀는 죽도록 사랑하면서 더 깊고 친근한 관계인 교회의 어린아이들은,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이게 문제입니다. 또 내 부모는 잘 모시려고 하면서도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참 잘못된 것입니다. 또 마찬가지입니다. 내 부서나 교구 식구만 챙기고 다른 부서나 다른 교구 식구는 무관심 하는 것, 이것도 큰 잘못인 것입니다. 손가락이 아프면 온 몸이 다 아픈 것처럼, 약한 성도가 있으면 그것도 곧 우리 교회의 약함인 것을 서로 알아야 될 것입니다. 교회는 영웅이나 뛰어난 지도자의 집단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 기대면서 함께 살아갈 천국의 가족인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천국에 갈 때까지 사랑으로 화목하고 힘모아 충성해야 할 예수 공동체인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성도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몸된 교회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룰 때,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모든 은사자가 모든 지체자들이 모두가 다 한 몸이 되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힘을 모아, 서로 연합하여서 살아갈 때, 그 교회는, 우리 교회는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열매를 맺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 맺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건강한 교회 안에서 각 지체가 된 사람, 모두가 다 영혼이 잘 될 수 있으며, 범사가 형통할 수 있으며, 강건할 수 있으며,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을 수 있으며, 그 뿐이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살맛 나는 사회로, 신나는 사회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건강할 때 사회가 건강하고, 교회가 건강할 때 국가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할 때, 온 국민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은사를 받고, 각 지체자들로서 서로 인정하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기도해 줌으로 말미암아 건강한 교회의 지체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날마다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몸은 하나이나 지체는 많습니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인 것입니다. 믿게 해 주시옵소서. 서로를 지체로 인정하고, 사명을 감당하고, 충성하는 우리가 되게 해 주옵소서. 힘으로 안 됩니다. 능으로 안 됩니다. 성령으로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법은 사랑이다/ 신10:12-13/ 최성규 목사/ 2016-07-10
법은 사랑이다 신10:12-13 [설교본문]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법하면, 사람들이 무섭게 느낍니다. 법 없이도 사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지 법의 테두리 속에 있고, 법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법은 밥과 같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밥 없이 살 수 없듯이,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법은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일례로 쓰레기 종량제를 생각해봅시다. 쓰레기 종량제는 폐기물 관리법 제13조에 의거한 정책입니다.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한 결과, 지난 10년간 8조 4백억 원의 경제적 편리함과 유익이 발생했습니다. 법을 최초로 만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과 함께 법을 주셨습니다(창 2:17).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처럼, 법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법을 주셨습니다(왕상 2:3).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대표적인 법을 살펴봄으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삽시다. 첫째, 선악과 인류 최초의 법은 선악과 법입니다. 선악과 법은 아주 단순한 법으로, 단 두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자유롭게 먹으라는 긍정 명령과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는 부정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부정 명령만 봅니다. 앞의 긍정 명령을 통해 주신 복은 생각지 않습니다. 긍정 명령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주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곳에도 이런 법은 없습니다. 선악과 법은 어떠한 법보다 자유롭고, 지키기 쉬운 법입니다. 또한, 선악과에 대한 금지 명령도 규제하거나 인간을 속박하기 위해 주신 명령이 아닙니다. 선악과 법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명령입니다(창 2:17). 선악과 법은 인간을 살리기 위해서, 인간이 마음껏 자유를 누리도록 주신 법입니다. 인간을 보호는 안전장치입니다. 우리 모두 법을 지키고 사랑합시다. 자기 멋대로 법을 어기는 것은 교만입니다. 법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인 동시에, 가정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입니다(레 18:5). 둘째, 십계명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주신 법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폐기된 법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셨기에 더욱더 힘써 지키고, 마지막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지켜야 할 법입니다(마5:17,18; 계14:12)).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은 사랑입니다. 법인 동시에 언약입니다. 구원의 언약이고, 왕의 자녀로 삼겠다는 언약입니다. 이 때문에 십계명을 담은 법궤를 언약궤라고 합니다. 십계명은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힘없는 자도 보호하고, 힘있는 자도 보호합니다. 힘있는 자는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함으로 죄에서 보호하는 것입니다(레 19:13,14). 힘없는 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게 해주는 것입니다(사 1:17). 또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안전을 주시는 것입니다(레 24:22). 우리 모두 십계명을 지켜 행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가장 큰 계명 에덴동산의 법은 십계명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십계명은 613개의 율법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법을 두 계명으로 정리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0). 이 말씀은 사자성어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으로 공경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법은 ‘사랑하라’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법입니다. 오늘날, 사회가 혼탁한 것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법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사랑의 희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 조항을 잘 몰라도 사랑하면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롬 13:10). 우리 모두 사랑합시다. 징계가 무서워서 지키는 법은 무거운 사슬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지키는 법은 고역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하는 법은 행복입니다(신 10:13). 우리가 사랑의 법을 행하면, 예수님의 품 안에 거하게 되고(요 15:10),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받고(요 14:21), 행하는 일마다 복이 넘칩니다(약 1:25). 넷째, 대한민국의 법 1948년 5월 31일은 대한민국 제헌국회의 개원일입니다. 최초로 실시된 총선거로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이때 임시의장은 이승만 박사입니다. 이날 대한민국 국회는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목사인 이윤영 의원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제헌국회에는 전체 의원 198명 중, 목사 4명과 50명이 기독교인이 있었습니다. 의원들이 모두 일어선 가운데 이윤영 의원은 기도했습니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제일 먼저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해, 국민이 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세계 평화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과 섭리가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만들어졌습니다. 기도로 만든 법은 기도로 지켜가야 합니다. 우리가 무관심하면, 사단은 박수를 칩니다. 대한민국의 법에 하나님의 법 정신이 심겨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누구보다도 대한민국의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여름만 되면 대한민국은 ‘인재’로 피해를 입습니다. ‘인재’는 법대로 살지 않은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 법이 있는 나라를 만듭시다. 법을 지키는 나라를 만듭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신바람 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다섯째, 효행장려법 효행장려법은 2007년 7월 2일 오후 4시 42분, 대한민국 국회에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힘을 모아 효행장려법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옳은 법도, 가장 좋은 법도 하나님의 법입니다. 인간의 법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허점투성이어서 영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만이 온전하고, 영원합니다(시 19:7,8). 하나님의 법을 이 땅에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효행장려법은 하나님의 법에서 나왔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이 법은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라, 살리는 법입니다. 사람을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 더 잘 살게 하는 법입니다. 또한 옳은 길을 가르쳐 주고, 옳은 것을 장려하는 법입니다. 모를수록 좋은 법이 아니라, 알수록 좋은 법입니다. 효행장려법은 총 4장 15조와 부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장은 총칙입니다. 효행장려법의 목적과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제2장은 효행장려입니다. 효행을 장려하기 방법들이 나옵니다. 제3장은 효행지원입니다. 효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습니다. 제4장은 보칙입니다. 효의 이단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시행 부칙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법을 잘 숙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법을 통해 가정이 살리고, 학교 교육과 세상 문화를 올바로 세우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사람들에게는 행복이 넘쳐나게 됩니다. 법도, 사랑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지식이 많아도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작은 법 하나라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법이 지켜질 때, 우리 사회는 안전지대가 되고, 행복한 세상이 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법을 만드는 자유와 법을 지키는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그 법을 실천하며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복 받은 가정/ 시128:1-6/ 최성규 목사/ 2016-03-23
복 받은 가정 시128:1-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현대의 많은 가정들이 사랑과 행복은커녕, 상처받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있습니다. 이렇 게 가정이 위기를 만나는 것은 돈이나, 집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하나 님께서 아담에게 아름답고 부족함이 없는 에덴을 다 주셨을 때, 아담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와 더불어서 가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 했습니다(창 2:23).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직접 만드신 최초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가정을 통해서 인간에게 복 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을 누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헛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날마다 구하고, 그 복을 누 리는 가정이 되어야 참으로 복 받은 가정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특별히 가정에서 날마 다 예배드리고 있는 가정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가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어떤 복을 주셨는지, 어떤 가정이 복 받은 가정인지 구체 적으로 살펴봄으로 받은 복을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가정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보호하고, 인도하고, 복 주기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 와의 가정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 있었을 때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혹 은 “물질”이나 “자녀”가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지 켜주시고, 세워주셔야 복된 가정이 됩니다(시 127:1). 그 증거로 롯의 가정은 아브라함보다 더 풍요로운 땅으로 이주했음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떠나자, 패가망신했습니다. 반대 로 하나님이 지키시면, 모두가 가난과 굶주림 속에 있어도 사르밧 과부처럼 안전하고 부족 함이 없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왕상 17:14-16). 가족을 부양할 남편과 시아버지가 없는 이방 여인 룻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를 가 정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마 1:5). 그러면, 어떤 가정이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가정입니까? 예배가 그 가정의 중심이고, 삶 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정입니다. 가족이 매일 함께 모여 예배드 리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예배가 있는 가정은 고넬료의 가정처럼 하 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구제하며, 가족을 위해서 항상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복 주시 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1)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 가정에 예배를 회복하므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 도하시며, 복 주기 위해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둘째, 정당한 수고의 열매를 식물로 삼는 가정 우리는 “축복”하면, 나의 노력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 나라에서 “축복”이란 아무공로 없이 받은 은혜인 “구원”과는 달리, 뿌린 대로 거두고, 심 은 대로 열매 맺으며, 내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땀 흘려 서 모은 재산을 속아서 한 순간에 날리거나 또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모으고 있습 니까? 이렇게 노동의 신성함을 거부하고, 수고하고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께 서 가장 싫어하시는 사람입니다(살후 3:10하). 하나님조차도 6일 동안 일하시고, 수고하셨 기에 창조의 기쁨을 맛보셨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수고의 보람, 노력의 기쁨, 성실의 열매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내가 수고하 고 애쓴 열매가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 셔들이면, 죄로 인해서 깨어진 이 행복이 다시 회복됩니다(시 128:2).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 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고, 그 수입의 일부를 이웃을 위해서 쓰는 가정이 복 받은 가정 인 것입니다(시 37:3). 따라서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명목 하에 과보호하고, 노동의 신성함 과 땀의 대가를 가르치지 않아서 범죄자나 사회의 낙오자로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 시다. 셋째, 기도하는 아내,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학력이나, 외모, 집안 배경이 좋지 않아도 기도하는 아내가 있는 가정, 공부는 좀 못해도 부 모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있는 가정, 이 가정은 행복한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네 집 내실 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 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 128:3-4)라고 말씀합니다. 가정에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여성이 좋은 아내입니다. 혼수를 많이 해 오고,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아내요, 어머니가 아닙니다. 물을 구하기 힘든 유대 땅에 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포도나무와 같이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들에게 “생명수” 를 공급하고, 그들이 힘써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여성이 좋은 아내인 것입 니다. 이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여인은 진주보다 귀하고, 그 남편은 아내를 믿고 사업을 번 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 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잠 31:10-11)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 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슬기로운 아내만이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잠 19:14). 또한 하나님이 복 주시는 가정은 그 자녀들이 어린 감람나무와 같습니다. 포도나무처럼, 감 람나무도 유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될 나무입니다. 유대인들은 감람나무에서 올리브유라 는 기름을 짜서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밝히는 등불로도 사용하였습니 다. 더욱이 감람나무는 한 번 베면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베어진 그루터기에서 새로운 싹이 힘차게 자라나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감람나무처럼 우리의 자녀들은 실패에 굴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이 사회를 밝히는 하나님의 등불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 다. 넷째, 대(代)를 이어서 성전에 오르는 가정 복 중의 복은 우리 가정이 평생토록 성전에서 흘러 넘치는 복을 누리고, 나아가 자식의 자 식들을 성전에서 보는 것입니다(시 128:5-6). 성전, 곧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주님과의 만남의 장소요, 축복이 흘러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남향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면, 우리의 가정은 교회를 향해서 집을 짓고 살아야 합 니다. 세계대전에서 참패를 당한 뒤 교회를 향해 집을 지은 독일 가정은 빠른 속도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축복받는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곧 우리의 가정이요, 우리의 가 정이 곧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등지고 살면, 내 대에서는 믿음 생활 잘 한다고 해 도, 자식 대에 가면 성전을 등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교회 중 심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을 떠나지 않는 삶을 통해 모세의 후계자, 이스라 엘의 지도자가 되는 축복을 받은 여호수아처럼 키워야 합니다. 그렇게 키운 자녀와 부모가 함께 손을 잡고 교회를 향하는 모습이 바로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 가정은 “이미” 복 받은 가정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 복의 기준으 로 삼는 물질, 명예, 권력은 우리의 가정을 결코 행복하게 하지 못합 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하나님의 가정이 되므로, 이미 받은 복을 날마다 누리며 살아갑시다. 기 도 우리에게 복된 가정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가정을 통해 이미 받은 복을 찾고, 누리며, 베풀며 살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봄, 여름, 가을, 겨울/ 요15:1-8/ 최성규 목사/ 2014-09-23
봄, 여름, 가을, 겨울 요15:1-8 오늘 이 시간에는 \\\\\\\"봄, 여름, 가 을, 겨울\\\\\\\",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 번 따라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지금 계절은 가을입니다. 이제 가을이 그치고 이제 겨울로 접어드는 문턱입니다. 한 번 따라 해 보실래요? \\\\\\\"아, 가을이다!\\\\\\\" 왜 이리 힘이 없어요? \\\\\\\"아! 가을이다!\\\\\\\" 그래요. \\\\\\\"할렐루야\\\\\\\" 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아이고, 큰일났구나!\\\\\\\" 하는 분도, 그런 분도 계실 거예요. 봄과 여름을 잘 살아서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은 분은\\\\\\\"아, 겨울은 참 신 나는 겨울이다\\\\\\\" 그럴 것입니다.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을 정확하게 구분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8장 22절에 보면,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어느 나라보다도 제일 우리나라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계절을 따라 옷을 바꿔 입습니다. 봄에는 봄옷이 있어요. 여름에는 여름옷이 있어요. 가을에는 가을 옷이 있어요. 또 겨울은 옷은 없는 것 같지요? 아닙니다. 대신 눈이 옷을 입혀줍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에도 단계가 있다, 그 말입니다. 싹을 내는 단계가 있고, 꽃을 피우는 단계가 있고, 열매를 맺는 단계가 있고, 수확을 거두고 쉬는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잘 타서 그 때를 잘 선용해서, 때를 잘 잡아서 좋은 결과를 거두어야 될 것입니다. 항상 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항상 여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는 것입니다. 이 네 계절이 조화를 어떻게 잘 이루면서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가, 계절이 네 계절이 잘 조화를 이루어서 정말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이 각 단계에 충실함으로써 아름다운 결실을 거둘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오늘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단계 신앙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싹을 내는 봄의 신앙 그렇습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합니다. 싹이 납니다. 또 꽃이 핍니다. 그렇습니다. 봄은 겨울동안 숨어 있던 새싹이 움트는 계절인 것입니다. 파릇한 새싹이 돋고 봄꽃이 만발해 서 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마치 농부가 과수를 재배하듯이 인간을 가꾸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우리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농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뿌린 말씀의 씨앗이 우리 가운데 심기워져서 싹을 낼 때 우리는 비로소 신앙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봄에는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봄은 어느 계절이냐고요? 씨를 심는 계절입니다. 밭을 갈고 그 흙을 곱게 만들어서 씨를 심는 계절, 봄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종자씨앗을 좋은 밭에 심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아무리 종자 씨앗이 좋아도 그 밭이 나쁘면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자기 밭이 아무리 좋아도 나쁜 씨앗을 심으면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 씨앗인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말씀은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 3-8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좋은 씨앗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말씀 속에는 생명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심으면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야 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에 얼었던 땅이 녹아지는 것처럼, 녹아지고 부서지는 부드러운 마음, 온유한 마음이 되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봄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봄의 땅은 어떤 씨를 심더라도 싹이 납니다. 봄의 땅은 어떤 나무를 옮겨 심더라도 잘 살 수 있습니다. 봄의 땅은 심지어 가지를 잘라서 꺾어서 심어도 뿌리가 나고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봄 같은 마음, 잘 갈아진 마음, 옥토 같은 그런 마음. 그래서 마태복음 13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 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렇게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봄에는 구원의 확신을 얻고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봄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시작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거저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아무 공로 없이 우리는 구원받아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의 봄을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이 확신을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체험은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인 것입니다. 좋은 땅에 씨앗이 심겨지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수분이 있어야 합니다. 물이 있어야 합니다. 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씨앗이 말씀이라면, 씨앗이 예수님이라면, 물은 예수님의 영이 되시고 하나님의 영이 되시는 성령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봄 신앙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야 되고, 또 성령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또 의지해서 성령세례 받으면, 씨앗을 심은 땅에 비가 오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이 잘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신앙도 따뜻한 봄볕에 잘 가꾸어진 옥토에 씨앗을 심은 것처럼, 또 단 비가 와서 그 나무가 잘 자라고 씨앗이 싹이 나서 잘 자라는 것처럼, 여러분의 신앙도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은혜로 잘 자라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봄에는 아름다운 봄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봄에는 우리가 직접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단지 겨울을 헤치고 다가오는 봄의 따사로운 햇빛을 그저 받기만, 그저 햇빛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입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겨우내 잠자던 식물이 봄기운을 얻으면 싹을 내고, 그 뿐이 아닙니다. 예쁜 꽃을 피우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받아서 그 생명력으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꽃은, 봄의 신앙은 어떻게 무엇을 잘 하면 됩니까? 신앙고백을 정확하게 하면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신앙고백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얻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구원을 공짜로 주셨으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아멘\\\\\\\" 잘 하면 되는 거예요. 이 봄 신앙은 모두가 다 주님으로부터 그냥 받은 것이니까, \\\\\\\"아멘.\\\\\\\" 구원의 확신을 얻고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의 빛의 비춰 주십니다\\\\\\\", \\\\\\\"아멘.\\\\\\\"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 엄마 젖을 빨아먹는 것처럼 우리는 뭐만 잘하면 돼요? \\\\\\\"아멘.\\\\\\\" \\\\\\\"아멘.\\\\\\\" \\\\\\\"아멘.\\\\\\\" 둘째,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의 신앙 그렇습니다. 식물들은 여름에 적절한 비를 맞아야 될 것입니다. 또 무성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봄에 는 봄비를 맞아야 되지만, 여름에는 여름 장맛비를 먹어야 됩니다. 여름 에 충분히 자라지 못하면 가을에 결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름에는 나무가 막 자라야 돼요. 잎이 막 무성해야 돼요. 아주 힘이 왕성해야 됩니다. 여기에는 농부의 수고가 있어야 됩니다. 또 자연의 좋은 조건이 있어야 됩니다. 비가 필요할 때는 비가 와야 되고, 햇빛이 필요할 때는 햇빛이 있어야 되고, 바람이 필요할 때는 바람이 또 있어야 됩니다. 또 식물의 원활한 신진대사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농부의 수고, 자연의 좋은 조건, 그 식물의 원활한 신진대사와 같은 삼 요소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삼 요소가 잘 갖추어지면 나무가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왕성하게 힘있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농부가 부지런히 땀을 흘려야, 또 일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식물이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에는 이 때 에 부지런히 일해야 된다는 것을 \\\\\\\'\\\\\\\'개미\\\\\\\'\\\\\\\'의 비유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잠언서 6장 6-11절에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살후 3:10)고 그랬습니다. 농부가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가 에 따라서 나중에, 가을에 수확의 많고 적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여름이 부지런히 일 해야 됩니다. 땀 흘려 수고해야 됩니다. 그래서 욥기서 8장 5-7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주님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름에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적당한 햇빛과 적당한 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름에는 비가 많이 와야 돼요. 또 여름에는 햇빛이 정말로 뜨거워야 돼요. 또 여름에는 바람도 때로는 세게 불어와야 됩니다. 햇빛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햇빛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햇빛이 무엇입니까? 성경 66권의 말씀인 것입니다. 또 비가 무엇입니까? 성령인 것입니다. 곡식을 잘 자라게 하고, 곡식을 수확하게 하는 비인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우리의 봄 신앙이 성령세례라면 여름 신앙은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봄 신앙이 말씀을 그냥 받는 것이라면, 이제 여름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것입니다. 봄 신앙이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라면, 여름 신앙은 성령이 충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말씀 충만하시고, 성령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말씀의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또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바쁠 때 더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슬픈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더 자라기 위해서 더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 하나님의 말씀이요, 또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또 우리는 그 뿐이 아닙니다. 원활한 신진대사를 이루어야 우리가 더 건강하게 왕성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진대사가 무엇입니까? 필요한 양분을 취하고, 필요 없는 찌꺼기를 배설하는 운동인 것입니다. 나무도 산소는 배출하고 탄산가스는 들이마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은 탄산가스는 내보내고 산소는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시편 1편 1-3절까지 보니까, 복 있는 사람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먹고 듣고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하는 일마다 다 형통하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신앙에도 신진대사가 있어야 돼요. 버릴 것은 딱딱 잘라 버리고, 할 것은 그저 왕성하게 먹고 실천하고 하는 거예요. 이런 사람이 되면 복이 있는 사람이 되고, 이런 사람들은 하는 일마다 형통한다 그랬습니다. 기도마다 응답 받는 것입니다. 또 우리 가운데 있는 독초와 쓴 뿌리를 모두 제거하고, 병충해가 없는가를 살펴보아야 될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름이 필요할 때는 거름을 막 주는 거예요. 거름만 주면 됩니까? 벌레도 막 잡아주어야지요. 거름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15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 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실의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고 더욱 겸손하게 행동하며, 부지런히 성장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3장 28-29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을 알라\\\\\\\" 말씀했습니다. 분명히 여름 뒤에는 가을이 옵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 결실의 가을이 오기 전에 땀 흘릴 때 열심히 땀 흘리고, 수고할 때 열심히 수고하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해서 땀 흘릴 때 땀 흘리고, 수고할 때 수고해서, 전도할 때 전도하고, 심방할 때 심방하고, 봉사할 때 봉사하고, 충성할 때 충성해서, 인생의 결실도 많이 맺으시고, 또 뿐 아니라, 신앙의 결실도 많이 맺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풍성하게 결실하는 가을의 신앙 그렇습니다. 가을은 드디어 우리가 수고한 결실을 맛보는 시기인 것입니다. 여름에 일하지 않은 사람은 충분한 수확을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20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같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야 우리에게 각자 자기에게 유익이 있고,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고,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어야 다른 사람에게 사랑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정한 이치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주님 말씀했습니다. 여름동안 많이 땀 흘리고, 많이 기도하고, 많이 수고하고, 날마다 말씀 충만하고 성령 충만해서 주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살아가는 사람, 또 농부로서는 땀을 많이 흘리고, 수고를 많이 하고, 애를 많이 쓰고, 헌신하고, 투자를 많이 한 사람, 가을에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많은 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도 기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면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을에는 알찬 과실을 될수록 많이 수확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을 때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충실하게 성장시켜서 수확을 거두어야 할 신앙의 여러 덕목들이 있습니다. 그것 이 무엇입니까? 베드로후서 1장 5-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말씀했습니다. 결실하지 못하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가을에 수확이 없으면, 특별한 병충해가 아닌 다음에야 봄과 여름에 수고하지 않은 것입니다. 봄에 가서 밭을 갈고, 봄에 가서 씨앗을 심고, 여름에 애쓰고 수고하고 땀 흘리고 일했다면, 가을에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을의 그 사람의 수확을 보고 봄과 여름을 얼마나 부지런히 살았는가, 게으르게 살았는가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의 열매를 많이 맺은 사람은 분명히 봄과 여름의 신앙을 충실하게 산 사람인 것입니다. 믿음 자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보고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짤라 버리시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이를 깨끗케 하신다. 마귀도 물리쳐주시고, 병도 치료해주시고, 문제도 해결해주시고, 우리 모든 삶 속에 좋은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실을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 나무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봄에도 붙어 있고, 여름에도 붙어 있고, 가을에도 붙어 있고, 겨울에도 붙어 있고. 혹시 1999년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1999년 가을이 왔는데 열매가 없다, \\\\\\\"어떡해야 하나?\\\\\\\" 낙심하지 마세요. 다음 해를 기대하세요. 소망을 가지세요.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살게 만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신앙의 발전은 하나님과의 관계 증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갖 생명과 아름다움이 창출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는 성령의 열매를 거둘 수도 없고, 하나님 없이는 생명력을 창출할 수도 없고, 하나님 없이는 신앙의 진전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주님 말씀했습니다. 좋은 결실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자식이 잘 되면 누가 명예를 얻습니까? 부모가 명예를 얻습니다. 성도들이 또 이웃에게 사랑의 빛을 발하면 교회가 칭찬을 받습니다. 교회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집인 것입니다. 천국의 출장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칭찬 받는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8절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주 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을의 수확은 여름에 수고한 대가요, 가을의 수확은 땀흘린 보람이요, 가을이 수확은 인생 최고의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신앙 열매도 많이 맺으시고, 인생의 열매도 많이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안식하는 겨울의 신앙 그렇습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나면 조용한 겨울이 다가옵니다. 겨울은 평온의 계절이요, 수확을 맛보고 누리는 계절이요, 또 봄, 여름동안 수고한 사람들이 많은 결실을 가지고 만족하게, 기쁘게, 즐겁게, 행복하게, 화목하게, 누리면서 사는 그런 계절인 것입니다. 농부들은 겨울에 일손을 늦추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신앙의 단계에 있어서도 겨울은 주님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리며 천국의 상급을 받는 시기를 의미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겨울에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결산합니다. 날씨가 추울 때는 씨를 뿌릴 수도 없습니다. 또 밭을 갈 수도 없습니다. 열매가 맺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단지 앞서 수확한 결실을 가지고 평화롭게 즐길 따름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또 겨울은 한 해의 종료와 마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감하고 결산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22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겨울은 평화의 낙원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의 겨울은 또 다른 봄을 기대하며 잠시 쉬는 시기이지만, 그러나 인생의 겨울은, 신앙의 겨울은 모든 일을 마감하고 최종의 목적지에 들어가 평화를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곧 무엇입니까? 천국인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잘한 자는 천국이 기다리고, 그에게 줄 상급, 면류관이 기다리고,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고, 예수님이 기다리시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환영할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지옥만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을 했으나, 봄이 와서 씨를 심기 는 심었는데, 구원은 받았는데, 여름 동안 일하지 아니한 사람은 천국은 가긴 가데, 천국을 가니 무엇이 기다립니까? 부끄러움이 기다립니다. 천국에 갔어요. 은혜로 갔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갔어요. 그러나 여름 동안 일하지 아니하고, 땀 흘리지 아니하고, 수고하지 아니하고, 성령 충만하지 아니하고, 말씀 충만하지 아니하고, 전도하지 아니하고 봉사하지 아니하고, 나눠주지 아니하고, 실천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천국은 가긴 가지만 부끄러움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옵니다. 신앙적으로 지금 우리는 가을입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겨울이 옵니다. 인생의 겨울이 아니라, 신앙의 겨울. 주님이 재림하신다, 그 말입니다. 그 주님과 영원한 천국에 갈 것입니다. 이 겨울이 오기 전에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인생은 한 번 왔다 가는 것은 정한 이치. 인생은 두 번 오지 않습니다. 불교처럼 인생이 윤회설이 아닌 것입니다. 한 번 왔다가, 한 번 살다가, 한 번 가는 것은 정한 이치. 이것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한 번 믿을 때에 잘 믿어야 합니다. 좋은 씨를 심어야 합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 할 때 부지런히 힘써 일해서 좋은 밭이 되어야 되고, 우리가 정말로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해서 힘써서 수고의 땀을 흘려야 가을에 가서 많은 수확을 거두고 천국의 상이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주님과 함께 천국 갈 것입니다. 영원한 휴양지, 영원한 안식처, 영원한 천국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그곳에서 영원히 누리며 살 것입니다. 이 땅에서 정말로 봄 신앙에서 구원의 확신,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 여름 신앙에서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만해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분명히 가을에 많은 열매를 맺어서 마지막 영원한 안식에 가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될 것입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부모를 공경하라/ 출20:12/ 최성규 목사/ 2014-05-08
부모를 공경하라 출20:12 오늘 이 시간에는 \\\\\\\"부모를 공경하라.\\\\\\\", 그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 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요즘 효를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 섬김 없는 효는 효가 아니고, 부모공경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섬김 없는 효는 효가 아니고, 부모공경 없 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그렇게 아시기를 바랍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효자가 되시기 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에는 삼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불신자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단계, 두 번째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성령세례 받고 성령충만한 단계, 또 세 번 째는 성령세례 받고 성령충만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또 묵상하고 실천하고 행 하는 단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되고, 구원 받 은 성도는 기도해서 성령세례 성령충만함 받아야 되고,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고 살아야 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그 실천 사항은 크게 여섯 가지입니다. 하나님 섬김, 부모공경, 또 그 다음에 세 번째는 가 족·이웃사랑, 네 번째는 나라사랑, 다섯 번째는 자연보호, 여섯 번째는 인류봉사인 것입니 다. 그러므로 자녀된 우리들이 실천해야 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실천할 때, 개인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또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으며, 또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성도가 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가 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영향력을 끼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성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주간에는 하나님 섬김에 이어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부모공경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 겠습니다. 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 왜 교회와 성도들은 효를 실천해야 될까요? 몇 개로 나눠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명령 첫째로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부모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성경은 그 어떤 종교나 철학에서 강조하는 것보다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더 많이 강조하고 있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말씀이십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경에서 \\\\\\\"공경하라\\\\\\\"는 이 말은 명령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공경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과 부모님에게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라.\\\\\\\" 이렇게 말씀했고, \\\\\\\"부모를 공경하라.\\\\\\\" 이 렇게 말씀했습니다. 불효자와 하나님께 범죄한 자에게 내려지는 징벌이 동일하다는 것입니 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내려지는 징벌이나, 불효자에게 내려지는 징벌이나 그 징벌이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부모공경을 강조하시는 것은 제5계명이 대신계명과 대인계명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대신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라. 형상을 만들고 절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라. 주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래서 대신계명에서 네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대인 계명 중에서 첫 계명이 뭡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증거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증거는 살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적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거짓 증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 의 것을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뭐냐? 이웃을 사랑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 그 중간 고리역할 을 제5계명이 하고 있습니다. 제5계명이 뭡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합 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절대로 살인하지 않습니다. 간음하지 않습니다. 도적질하지 않습니다. 거짓 증거하지 않습니다. 또 절대로 남의 것 탐하지 않습니다. 이런 죄를 범하면 분명히 교도소 가야 됩니다. 경찰서에 끌려가야 됩니다. 유치장에 가야됩니다. 불효가 누가 불효입니까? 부모가 살아 계신 데, 자기가 살인해서 간음해서 도적질해서 거짓 증거해서 남의 것 탐해서 유치장에 간다면, 이건 분명히 불효 중의 불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면 더더군다나 부모를 공경해야 됩니다. 왜 그렇습 니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또 부모공경은 부모님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부 모를 공경하면 부모만 기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고 살아갈 때, 누가 기뻐하시냐?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 성경 골로새서 3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해 놓았습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 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찬송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 것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 말 씀에 순종하면, 부모님을 잘 공경하면, 부모에게 효도하면, 이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것을 보 고, 주님이 기뻐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부모를 공경함으로 말미암아, 부모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 암아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가 다 정말로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 다. 불효는 무서운 겁니다. 불효는 부정 부패의 근원입니다.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언제 부정 부 패합니까? 불효자가 많을 때, 이 사회와 정부가 부정 부패가 일어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불효는 불순종과 부도덕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효가 많은 자의 세상은 불순종과 부도덕이 판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불효는 무신론과 죄악의 밑거름입니 다. 그러므로 인류의 죄와 죽음은 어디서 오느냐? 불효자 가정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징조는 부모를 거역하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우리 말 속에 그 런 말이 있잖아요.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 집에서 불효자 사회 가서도 범죄자. 집에서 불효자 스승 앞에도 불효자. 집에서 불효자 이 사회에서 범죄를 일으키고, 이 사회를 어둡고 캄캄하게 만드는 잘못된 자가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모 릅니다. 또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는 별로 순종하려고 하지 않아요. 또 하나님의 명령은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순종한다 하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더디게 더디게 더디게 더디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네 아들 사랑 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나가서 번제로 드려라.\\\\\\\" 그럴 때, 아브라함은 새벽 일찍, 그 밤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명령을 들은 아브라함은 새벽 일찍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을 향해서 삼일 낮밤을 갔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세상 사람들은 죄의 유혹이라면 얼마나 빨려 들어가듯이 속히 갑니 다. 죄가 유혹하면, 세상이 부르면 언제 그렇게 부지런했는지 속히 달려갑니다. 그런 반응이 옵니다. 이것들도 우리가 버려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경솔히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하시든지 \\\\\\\"아멘, 아멘.\\\\\\\" 그런데 그 하나님 명령 속에 하나가 뭡니까? 그 실천 계명 중에 첫째 계명이 뭡니 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 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됩니까? 왜 우리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해야 됩니까? 왜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해야 됩니까? 첫째가 뭐냐구요?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둘째, 생명의 전수자 두 번째는 생명의 전수자이시니까. 부모님 누구냐구요? \\\\\\\"생명의 전수자.\\\\\\\" \\\\\\\"생명의 전수자.\\\\\\\" 저는 부흥회 가서 물어봅니다. \\\\\\\"여러분 천국 가는 것 믿습니까?\\\\\\\" 그러면 \\\\\\\"아멘\\\\\\\" 그래요. 또 묻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까?\\\\\\\" 물어요. 그러면 말합니다. \\\\\\\"믿어서 요.\\\\\\\" 그러면 \\\\\\\"아무나 믿으면 됩니까?\\\\\\\" 그러면 그러지요. \\\\\\\"예수를 믿어서요.\\\\\\\" \\\\\\\"참 잘 알고 있 습니다.\\\\\\\" \\\\\\\" \\\\\\\"잘 믿고 있습니다.\\\\\\\" \\\\\\\"또 하나 물을게요.\\\\\\\" 두 번째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 가게 되었습니까?\\\\\\\" 그러면 또 대답합니다. \\\\\\\"예수를 믿어서요.\\\\\\\" 세 번째 또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천국 가게 되었습니까?\\\\\\\" \\\\\\\"예수를 믿어서요.\\\\\\\" 한 가지 밖에 몰라요. 나는 그러지 요. \\\\\\\"부모가 여러분 나아 주지 않았어도 예수를 믿을 수가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부모가 나를 낳아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되었고, 사람이 되었으니까 예수를 믿었고, 예수를 믿었으니까 하나님 아들 되었고, 하나님 아들 되었으니까 천국을 가는 거지 요. \\\\\\\"아멘 입니까?\\\\\\\" \\\\\\\"아멘 입니까?\\\\\\\" 왜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서 하나님 아들이 된 것 이, 왜 예수 믿은 것만 생각합니까? 부모가 나를 낳아 주셨잖아요. 그러므로 난 누구입니까? 부모로부터 생명을 이어 받은 자 아닙니까? 그러므로 부모는 나에게 생명을 전해 준 생명의 전수자가 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은 많고 많은 인간관계, 부부관계, 형제관계, 친척관계, 이웃관계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만을 따로 떼어서 십계명에 언급하셨냐 그 말입니다. 그 계명도 대신계명이 끝나고 첫 번째, 대인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냐 그 말인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는 하나님께 속한 생명 창조의 연속인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 씀의 왕성인 것입니다. 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통 해서 우리가 받은 생명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 것입니다. 이 생명이 누구를 통해서 왔습니 까? 부모를 통해서 왔습니다. 부모가 아니면,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잘 났 던 못 났던 나 같은 생명 이 땅에 태어나지 못했다 그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 양대로 지음 받은 거룩한 생명,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는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요. 또 때로 는 말합니다. 우리 부모는 나에게 상처밖에 준 것이 없습니다. 우리 부모는 나를 낳아서 고 아원에 갔다가 버렸습니다. 나를 낳아서 그냥 다리 밑에 버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 도 안 죽어서, 그럴지라도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의 아들 되었다면, 그렇게 버린 부모라도 그 부모가 나를 안 낳아 주었으면, 생명체가 안 되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지금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 부모가 얼마나 얼마나 고맙 습니까? 그 부모가 나를 낳아 주셨기 때문에 사람이 되었고, 사람 되었기에 예수를 믿었고,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 아들 되었고, 하나님 아들 되었기 때문에 천국 가게 되었고, 영생을 얻게 된 것 아닙니까? 감사하시면 \\\\\\\"아멘\\\\\\\" 하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부모가 나를 많이 해 주었다, 안 해 주었다 그것 때문에가 아닌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낳아 주셨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에게 생명의 전수자이시기 때 문에, 우리는 그 부모님 앞에 우리는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또 부모님을 우리가 공경해야 될 것이고, 그 부모님에게 효를 하는 삶으로 살아가야, 이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 것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모가 낳아 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얼마나 얼마나 감사합니 까? 그 뿐 아닙니다. 또 믿음의 부모는 영생을 얻는 믿음을 물려주고, 또 영생의 길에서 벗 어나지 않도록 보이는 행실뿐 아니라, 그 생각과 마음까지 살펴 주시는 분 아닙니까? 그래 서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 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셋째, 부모님의 은혜 때문에 자 그 다음에 세 번째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됩니까?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은 혜를 받았기 때문에.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피로 낳으셨습니다. 눈물로 기르셨습니다. 땀흘려 교육시키셨습니다. 진 자리는 당신이 누우시고, 마른 자리 골라서 우 리를 뉘어주셨습니다. 먹을 만한 것 자식 주시고, 물만 마시고, 부모님이 허리띠 졸라매시면 서 배가 출렁 출렁 고생하시면서 사신 것 아닙니까? 부모님을 우리를 피로 낳아주시고, 눈 물로 가르치시고, 땀흘려 교육시켜 주셨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런 말합니다. \\\\\\\"가정은 최초의 학교요, 부모는 최초의 교사다.\\\\\\\" 이렇게 말했 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자녀에게 좋은 기억, 좋은 습관, 좋은 이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애쓰시고, 얼마나 애타시는지 몰라요. 얼마나 노력하시는지 몰라요. 할 수만 있다면 축복의 유산을 남겨 주려고, 할 수만 있다면 경건의 유산을 남겨 주려고, 할 수만 있다면 영 생의 유산을 남겨 주려고 울고 있는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알아요. 그러므로 우리 부 모님은 우리를 피로 낳은 것만이 아닙니다. 기른 것만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살 게 할까? 어떻게 하면 경건하게 살게 할까? 어떻게 하면 자식들에게 지식을 더 많이 심어 줄까? 어떻게 하면,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면 유산도 좀 줄까? 애쓰고 고생하시는 분이 우리의 부모님 아닙니까? 우리는 그 부모님의 은혜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받았지 않습니 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나를 포함해서 다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 하지 마시고, 살아 계실 때 관심 가지시고, 살아 계실 때 자주 뵈시고, 살아 계실 때 용돈이 라도 더 드리시고, 살아 계실 때 말씀이라도 더 들어드리고, 살아 계실 때 말씀이라도 들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부모 돌아가시고 난 후에, \\\\\\\"그 때 좀 더 효도할 걸\\\\\\\", \\\\\\\"좀 더 공 경할 걸\\\\\\\", \\\\\\\"걸, 걸\\\\\\\" 후회하지 마시고, 오늘 하나님 명령하십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우리가 생명을 전수 받았으니까. 우리가 부모로부터 은혜를 받았으니까.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목회서신입니다. 디모데전 서 5장 4절입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노아의 세 아들을 압니다. 셈, 함, 야벳. 함은 자기 아버지가 너무 포도주를 마시시고 실수해서 바지가 내려갔을 때, 형 셈과 동생 야벳에게 아버지 흉을 봤습니다. 그러나 형 셈 과 동생 야벳은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 돼.\\\\\\\" 뒷걸음질 쳐서 아버지 부끄러운 것을 다 가려 주었습니다. 왜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해야 되냐구요?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되냐구요? 부모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에. 넷째,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 네 번째입니다. 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될까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 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 서 장수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잘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서 장수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공경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그랬습니 다. 그러므로 어떤 축복을 약속했습니까? 생명의 축복입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형통의 축복인 것입니다. 형통의 축복이 없는 장수는 오히려 그건 아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효자에게 장수의 복과 형통의 복을 함께 준다 그 말인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됩니다. 범사가 형통합니 다. 그 뿐이 아닙니다. 장수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형통합니다. 사업이 형통합니 다. 또 친척과 형제가 다 형통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장수의 복을 겸하여 준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은혜, 이런 사랑, 이런 복을 다 받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삶의 원칙을 갖고 산 요셉은 개인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와 민족까지 형통케 하는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47장 30절에 보면 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 다.\\\\\\\" 아멘? 아멘? 아멘.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영혼의 복을 주십 니다. 건강의 복을 주십니다. 가정의 복을 주십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 사회와 그 나라와 민족에게도 복을 주신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가 됩니다. 그 사회가 형통한 사회가 됩니다. 그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자가 많은 나라, 가정마다 행복하고, 학 교 교육이 잘 되고, 그 뿐이 아닙니다. 경제가 삽니다. 나라가 삽니다. 또 이 사회 위계 질서 가 바르게 되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 그런 사랑 다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조상들이 주신 삶의 규례를 수 백년 동안 철저하게 지킨 레갑 족속은 거룩한 자손이 번창하 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35장 19절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 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 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 부모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 자자손손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영구한 복을 준다 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이 진실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부모 공경하므로 말미암아 여러분만이 아니라, 여러분 천대 만대 복받는 여러분 다 되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가정에서 칭찬 받습니다. 또 학교에서도 인정받습니다. 사회 에서 존경받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효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인생의 본분입니다. 또 약속있는 첫 계명으로 말미암아 축복 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전달자이고, 양육의 책임자이시며, 신앙생활의 전수자인 부모님에게 효를 행하는, 그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그 부모를 공경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 다. 이것이 개인이 잘 되고, 가정이 잘 되고, 학교가 잘 되고, 사회가 잘 되고,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인 것 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말씀으로 오신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하시니 감사합 니다.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만이 신앙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신앙입니다. 진실로 우리 모두가 다 산 신앙 되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바르게 살므로 말미암아 가정이 행복하고, 사회가 안정되 고, 나라가 부강하게 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 멘. 최성규 목사
부활/ 요20:19-22/ 최성규 목사/ 2007-04-02
부활 요20:19-22 2007년도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의 계절은 봄입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입니다. 봄이 되면, 모든 생명이 기지개를 폅니다. 여기저기서 생명 있는 것들이 약동을 합니다. 겨우 내 죽어있던 땅에서 생명의 새싹이 솟아납니다. 메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나무도, 짐승도 생명 있음을 자랑합니다. 시냇물도, 산도, 하늘도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부활절을 맞아 새롭게 변화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잠자는 것이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 죽어있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것도 있습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부활해야 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죽었다 다시 사는 것만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것도,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것을 다시 깨우는 것도, 우리 삶에 죽어있는 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도 부활입니다. 2007년도 부활절을 맞아 우리 안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봄으로, 예수 부활의 영광을 지금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신앙의 부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첫 번째 하신 일은 제자들의 잠자는 신앙을 부활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실 때, 제자들은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에도 여인들만 무덤에 찾아왔습니다. 제자 중 누구도 부활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도 않았습니다(막 16:10,11). 제자들의 신앙은 두려움으로 죽어 있었습니다(요 20:19).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그들을 찾아오신 이유는 제자들의 신앙을 부활시키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산 신앙되기를 원하십니다(요 20:27). 우리의 신앙에 죽어있는 부분을 부활시킵시다. 신앙이 부활하면, 모든 것은 다 부활합니다. 둘째, 전도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전도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전도하셨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신 후 전도가 멈추었습니다. 누구도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전도의 부활을 명령하셨습니다. 성경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합니다. 또한 전도할 수 있도록 성령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2).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까지 전도의 부활을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행 1:8). 내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어떠한 위협이 와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마 28:8). 또한 생명을 걸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행 20:24). 우리 모두 성령충만함으로 부활의 증인들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전합시다. 셋째, 나눔의 부활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땅에서 40일간 머물러 계셨습니다. 40일 동안 가장 많이 하신 일은 ‘나눔’입니다. 예수님은 슬피 우는 여인들과 마음을 나누셨습니다. 그러자 여인들은 큰 기쁨으로 충만해졌습니다.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과 말씀을 나눔으로 제자의 삶이 다시 회복되었습니다(눅 24:32,33). 또한 예수님은 실패에 아파하는 제자들과 희망을 나누셨습니다. 베드로와 일곱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디베랴 바닷가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날이 샐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빈 배로 돌아오는 제자들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주셨습니다(요 21:5,6). 그들의 배고픔을 아시고 채워주셨습니다. 또한 손수 음식을 만들어 나누셨습니다(요 21:12).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나눔의 부활이 절실한 때입니다. 양극화로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고 있습니다. 지역, 계층, 세대 분열로 소외된 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병든 자와 장애우들의 인권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실수로 가정이 해체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실패 만난 자를 찾아가셨듯이 우리도 찾아갑시다. 예수님이 위로 하셨듯이 우리도 위로합시다. 예수님이 먹이셨듯이 우리도 먹입시다. 서로 함께 나눌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모두 나눔의 부활을 체험합시다. 성경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요 21:11)고 말씀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하시면 빈 배가 차고 넘칩니다. 넷째, 봉사의 부활 부활하시기 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봉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을 위해서 봉사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요 20:20). 현장에 없었던 도마에게는 옆구리에 손을 넣어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해 음식 준비 봉사까지 하셨습니다(요 21:9). 내 몸의 상처를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밤새 기다리면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지극정성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몸으로 제자들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봉사는 어떻습니까? 교회를 세우는 봉사, 성도들을 세워주는 봉사, 새가족을 높여주는 봉사,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까? 봉사가 봉사를 위한 봉사, 내 만족을 위한 봉사,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봉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무슨 봉사를 하든지 주께 하듯 하여 상 받는 봉사자가 됩시다(벧전 4:11).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3,24). 다섯째, 축복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축복의 부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축복하셨습니다. 여인들을 만났을 때도, 제자들을 만났을 때도 축복하셨습니다(마 28:9; 요 20:19). 그 예수님께서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복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고전 15:55) 이미 우리는 부활의 영광에 속한 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하는 것이고, 예수님이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승리하는 것입니다(고전 15:57). 그러므로 죄와 죽음, 가난과 질병은 우리와 더 이상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부활로 인해 복 받은 자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사실을 당당하게 외치며 살아갑시다. 우리 모두 부활의 축복을 함께 나눕시다. 서로를 축복하며 나보다 더 잘 되기를 기도합시다. 우리가 서로 축복을 빌어주는 그 자리가 부활의 주님이 함께하시는 자리가 됩니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롬 5:14).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예수 없이 사망 아래 있다면 헛수고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 믿는 것조차도 헛것입니다(고전 15:14).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부활의 영광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영생복락 면류관을 받고, 생명 안에서 왕노릇할 수 있습니다(롬 5:17).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부활하신 예수님(1)/ 요20:10-23/ 최성규 목사/ 순복음인천교회/ 2000-04-30
부활하신 예수님(1) 요20:10-23 오늘 이 시간에는 \\\\\\\\\\\\\\\'부활하신 예수님 \\\\\\\\\\\\\\\',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 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부활하 신 예수님. 지난 주가 새천년 맞아 서 첫 번째 부활주일이었습니다. 예 수님의 부활은 부활주일만 예배드리 고, 부활주일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 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날마다 생각 하고, 날마다 말하고, 날마다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부활은 성도에 게 기쁨과 소망이자, 동시에 하나님 의 부르심이며 성령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성령의 능력이신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성령의 능 력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 이 땅에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낸 사건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은 사명을 다 마친 예수님을 하 나님께서 천국으로 부르시기 위해서 부활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 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 스도는 3년 반의 공생애 동안 가는 곳마다 천국 복음을 증거하셨습니 다. 또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 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 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 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 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 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 이, 허물도 없으신 예수님이, 그렇게 매 맞으시고, 그렇게 가시관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히시고 죽으 셨습니다. 그 예수님 스스로 한 알 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2장 23절 로 24절 말씀이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 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 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서 부활하셨습니다. 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또 뿐 아니라 승천 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지금도 우리 위해서 기도하고 계 신 것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죄인된 인류를 위해 서 일하셨고, 또 지금도 일하고 계 긴 것입니다. 이 땅에 인간의 모습 으로 오신 것도 우리를 위해 일하러 오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 병자 고 쳐주신 것도, 배고픈 사람 먹게 하 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 것입 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우리 를 위해 일하신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 것입니다. 지 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 것도 지금도 우리 위해 일하고 계신 것입 니다. 이 시간에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깨진 꿈이 회복되고, 지친 몸이 치유되며, 상한 마음이 위로 받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 심 첫째로 부활의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부활은 생명이며, 희망이며, 능력입니다. 부 활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 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 는 무덤 앞에서 절망하고 세상을 두 려워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그랬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 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것처 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당신 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 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31절 말씀이십니다. [이는 제자 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 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 씀하시는 연고더라] 이렇게 말씀하 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은혜 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분의 이적과 기사 도 깨닫고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 다. 이러한 자들은 위기가 닥쳐 올 때, 선택의 순간에 주님을 저버리고 세상을 따라 갑니다. 교회 와서 신 앙생활 했다고 하지만, 예배를 드렸 다고 하지만, 기도를 드렸다고 하지 만,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들었다 고 하지만,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로 중요한 결단 의 시간에, 위기의 시간에 주께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떠나서 세상을 갑니다. 자기 욕심으로 갑니 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그런 제자 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주 님이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주일성수하는 우리 예배 드 리는 이 자리에 이 성전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치고, 또 고통 당하고, 병들고, 외롭고, 가난 하고,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는 그 자리에도 주님이 찾아오 시는 것입니다. 실패 만난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두려워하는 제자 들을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 주님이 지금도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 리 이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 이 아니라, 벌써 주님이 먼저 오셔 서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만날 준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께서 이 자리에 찾아오신 것 정말로 믿으시면 \\\\\\\\\\\\\\\'아멘 \\\\\\\\\\\\\\\' 하겠습니다. 감사하시면 \\\\\\\\\\\\\\\'아멘\\\\\\\\\\\\\\\' 하 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을 주고, 소망을 주 고, 꿈과 비전을 주시기 위해서, 비 록 문이 닫혀 있더라도 그 가운데 오셨잖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 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는 인류에게 찾아오 셔서 못자국 난 손과 발, 그리고 창 에 찔린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십니 다. 요한복음 20장 27절 말씀이십니 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 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 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사랑하는 여러분들 이여. 이 말씀을 듣는 성도 여러분 들이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시 고, 믿음 있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은 지금도 세상의 염려와 근심 과 걱정으로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십니다. 요한일서 4장 4절 말씀이십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 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 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 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우리는 담대하게 세상에 나가서, 죽음을 생 명으로, 저주를 축복으로, 불순종을 순종으로 변화시키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 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으로 말 미암아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함을 받 았기 때문에.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 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갖고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 에, 내가 받은 이 구원의 기쁨, 내가 가진 이 소망의 기쁨을 나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전해 야 할 것입니다. 지금 죽어가는 영 혼이, 죽은 생명이 수없이 많습니다. 나가 복음을 전해서 분명히 죽음을 생명으로, 또 저주를 축복으로, 불순 종을 순종으로 사람들을 바꾸는 데 앞장서 나갈 때, 주님이 기뻐해 주 실 것입니다. 둘째, 평강을 주심 두 번째로 부활의 주님은 평강을 주 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가장 먼저 평강을 얻 을 수 있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은 제자들에 게 평강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 말씀 이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오 늘 이 시간에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 로 말미암아 여러분 마음에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에 평강이, 일터에 평 강이, 날마다 강물처럼 넘치게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강은 히브리 말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 념입니다. 이것은 힘에 기초한 평화 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평 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힘이 강하니 까 평화를 만드는게 아닙니다. 무기 가 있고, 권세가 있고, 또 건강이 있 고, 물질이 있어서 그런 힘으로 말 미암아 얻어지는 평강, 그것은 온전 한 평강이 아닙니다. 그것은 샬롬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진정한 평, 샬롬은 무엇이냐? 하나 님 은총에 의해서 오는 평화. 하나 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평 화. 이것이 참 평안이요, 참 샬롬인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조 건적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 다. \\\\\\\\\\\\\\\'샬롬\\\\\\\\\\\\\\\'은 어떠한 부분도 결여되 거나 부족하거나 손상되지 않은, 모 든 부분들이 완전한 조화와 질서와 그리고 통일을 이룬 상태, 이것은 \\\\\\\\\\\\\\\' 샬롬\\\\\\\\\\\\\\\', \\\\\\\\\\\\\\\'평강\\\\\\\\\\\\\\\' 이렇게 말합니다. 육 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 로나, 환경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것, 이것이 \\\\\\\\\\\\\\\'샬롬\\\\\\\\\\\\\\\'인 것입니 다.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나라간 에 반목과 전쟁이 사라지고, 하나님 의 사랑과 평화가 넘쳐나는 것, 이 것이 \\\\\\\\\\\\\\\'평강\\\\\\\\\\\\\\\', 이것이 \\\\\\\\\\\\\\\'샬롬\\\\\\\\\\\\\\\'인 것입 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너무 계층 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이 많습니 다. 이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이건 평강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 시는 샬롬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나라간 모든 반목과 전쟁이 사라져 버리고, 하나님의 은 혜로 말미암아 모두가 다 느낄 수 있고, 모두가 다 누릴 수 있고, 모두 가 다 줄 수 있는 이런 평강, 이런 샬롬. 이런, 예수님의 부활은 이와 같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 입니다. 제자들을 찾아가서 말씀하 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 다.\\\\\\\\\\\\\\\" \\\\\\\\\\\\\\\"너희에게 샬롬이 있을지어다.\\\\\\\\\\\\\\\" 하나님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말 미암아 은총으로 우리 모두가 다 하 나님 주시는 평강,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이 다 있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우주만물 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 속에서 \\\\\\\\\\\\\\\"첫 창조의 좋음\\\\\\\\\\\\\\\"을 온전이 유지하는 것, 회복하는 것, 이것이 샬롬, 평강 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Shalom)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 이 땅 에 오시기 600년 전에 이사야 선지 자가 이렇게 예언했지 않습니까? 이 사야 9장 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 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 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 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샬롬\\\\\\\\\\\\\\\'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요한복 음 14장 27절 말씀이십니다. [평안 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 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 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 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부활의 주를 만난 성도 는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통 하여 우리가 샬롬을 가졌다면, 우리 가 평화를 얻었다면, 정말로 이 평 화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된 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님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9절 말씀이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말 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우 리들이라면, 우리가 성령세례 받고, 성령충만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 고, 정말 아들답게 살고, 예수님의 신부답게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 리가 정마로 평강을 얻었다면, 우리 가 자기 가정이나, 자기 일터나, 자 기가 사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평 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 평강을 위해서 우리가 일하는 우리 모두가 되야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 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부활 의 주님만 함께 한다면, 부활의 주 님만 함께 하신다면 환경과 고난을 초월하여 우리 속에 주님의 평강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환경 때문 에 염려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근심 하지 마시고, 예수님 안에서 부활의 주님 안에서 여러분 마음에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에 평강이 넘치는 삶 을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요21:1-15/ 최성규 목사/ 2014-04-12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요21:1-15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믿으십니까? 저는 오늘 새벽에 묵상기도하면서, 저는 뭐 가사를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동요 생각이 나서 한 번 바꿔봤어요. 제목은 “꽃들과 아이들”, “꽃들과 아이들.” 먼저 아이들이 꽃을 보고 질문합니다. “꽃님아, 꽃님아 너희는 무얼 먹고사느냐?” 꽃님이 대답합니다. “나는, 나는 새벽에 내리는 이슬 먹고산단다.” 그랬더니 또 꽃들이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얘들아, 얘들아, 너희는 무얼 먹고사느냐?”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나는,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먹고산단다.” 아멘. 내가 다시 읽어볼까요? “꽃님아, 꽃님아 너희는 무얼 먹고사느냐?” “나는, 나는 새벽에 내리는 이슬 먹고산단다.” “얘들아, 얘들아, 너희는 무얼 먹고사느냐?” “나는,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먹고산단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부활이고,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고 살고, 믿고 살고, 전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결정적 차이가 뭐냐? 빈 무덤입니다. 다른 종교들도 천국을 말합니다. 지옥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오직 기독교만이 부활을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부활하셨습니다. 공자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었습니다. 다시 살지 못했습니다. 석가도 훌륭한 사람입니다. 죽었습니다. 다시 살지 못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메시아, 하나님 아들 되시는 오직 예수님만이 죽은 지 삼일만에 사망, 권세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보세요. 고린도전서 15장 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에 천국이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전,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성령으로 오셔서, 말씀으로 오셔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은혜 주시고, 힘 주시고, 복 주시는 것입니다. 이 시간,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아봄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주님이 주시는 큰 은혜, 큰사랑, 큰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첫째, 떠난 자를 찾아오시는 예수님 첫째로, “떠난 자를 찾아오시는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 중에 첫째가 뭐냐? “떠난 자를 찾아오시는 예수님.” 여러분, 사람이 떠난다는 것은 당해본 사람만 압니다. 여러분, 자기와 함께 있던 자가 떠났을 때, 얼마나 얼마나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예수님을 떠난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떠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다시 사랑해주시고, 다시 잃어버린 신앙 회복해주시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예수님.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이라고 오늘 제가 설교제목을 정한 것입니다. 보세요. 누가복음 24장 13절에 보니까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찾아가셔서 그들의 신앙을 다시 회복시켜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6절에 보니까 의심 많은 도마에게 찾아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도마는 말합니다. 도마가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정말로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찾아가셔서 못 박히신 예수님의 손 보이셨습니다. 창에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그러나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요 20:29) 그랬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요한복음 21장 1절 이하에 보니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씩이나 만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합니다. 베드로가 먼저 선동을 합니다. “나는 고기 잡으러 간다.” 다른 제자들도 “나도 간다.” 보세요. 이건 내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로 이하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떠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한 나머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났어도,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찾아오시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아리랑” 노래 안 부른다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 십 리도 못 가 발병 난다”, 그런 말 안 한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떠났어도,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회복해주시고, 필요마다 채워주시는 예수님, 그 사랑을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한복음 14장 1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처소를 예비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리라”(요 14:2-3) 말씀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찾아오셔서 이전보다 더 친밀한 관계로 더 많은 은혜를, 더 많은 사랑을 부어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5절 상반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 그랬습니다. 『얘들아』, 그 말은 뭡니까? 아주 “친구들아”, 그 말입니다. “친구들아”, “사랑하는 자들아”, “아주 친밀한 자들아”, 그 말인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찾아오시고, 말씀으로 찾아오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위로하십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넉넉하게 이기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경건하게도 살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실패자도 사랑하시는 예수님 두 번째입니다. “실패자도 사랑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떠난 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성가 가사에 그런 가사가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는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인생은 살 수 없다” 그랬습니다. “아멘”입니까? 물을 떠난 물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물을 떠난 물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인생은 살 수 없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떠난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고기잡이 실패합니다. 요한복음 21장 3절 하반절에 보니까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예수님이 물어봤습니다. “얘들아, 고기가 있느냐?” 그랬습니다. 그들이 대답합니다.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나이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의 가장 큰 실패는 뭐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4절에 보니까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이 만남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자들이 첫 번 만나는 게 아니라, 벌써 한 번 만났고, 두 번 만났고, 세 번째 만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누구이신 지 몰라요. 여러분, 마음으로 예수님을 떠나면, 마음에서 예수님을 떠나면 예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참, 정말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보고 “너는 실패했다”, 그런 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 냥에 팔았습니다. 그 때도 예수님은 뭐라고 말합니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라고 아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자는 꾸짖으시면서도, 실패 만난 인생은 도와주셨습니다. 실패를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부활의 주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으면 분명히 다시 회복하고, 다시 성공하고, 다시 건강하고, 다시 사랑하며 살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여러분, 모두가 다 믿음 있는 자가 되어서 세상을 넉넉하게 이기며 살아가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신 예수님 세 번째입니다.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신 예수님.”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떠난 자를 찾아오셨습니다. 실패자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랑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성공으로 살 수 있을까, 방법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셨다, 그 말인 것입니다. 보세요. 요한복음 21장 6절에 보니까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실패 만난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고기를 못 잡은 것을 확인하신 예수님이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얘들아,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성경에서 “오른편”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패 만난 제자들에게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시기 위하여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그랬습니다. 아마 그 동안 제자들은 계속 왼편에만 던졌는가봐요. 왼편에만 던졌나봐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아니다. 오른편에 던져라. 오른편에 던져라.”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인 두 강도, 왼편 강도는 지옥 갔습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는 구원받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 예수님, 어디 계시느냐? 하나님 우편에 계십니다. 우리가 종말을 말할 때,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있다,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오른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른편에 있다는 것은 곧 뭐냐?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6편 8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본주의로 사는 것이 인생 성공의 방법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10장 2절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편에 있느니라』. 이 세상 사람들도 뭐, “좌다. 우다.”, “좌익이다. 우익이다.”, 이런 말들 많이 합니다. 성경대로 산다면, 성도들은 어느 환경이나, 아무리 어떤 고통의 다리나, 환경이 어려울 때라도 우리는 어느 위치에 서야 할까? 분명히 우리는 좌편에 서지 아니하고 우편에 서야 될 줄 믿습니다. 좌익이 되지 아니하고 우익이 되어야 성경대로 살아가는 거예요. 성경대로 인생을 성공으로 살 수 있는 길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패 만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정말로 성공하는 법칙을 알려주셨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넷째, 떡과 생선을 구워주신 예수님 네 번째입니다. “떡과 생선을 구워주신 예수님”, “떡과 생선 구워주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만 주지 아니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병든 자를 치료하십니다. 절망하는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 복음을 전할 때, 배고픈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헐벗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먹을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예수님. 오늘 본문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6장 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 살아 계실 때, 디베랴 광야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까지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황혼까지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다. 천국이 어떤 곳인지 그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그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용서받았습니다. 병든 자가 치료받았습니다. 저녁 황혼 때, 많은 사람들이 이제 집에까지 돌아가려면 먹어야 됩니다. 허기가 졌습니다. 예수님이 그냥 보내지 아니하시고, “저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가 주라” 명령하셨습니다. 어린 소년이 가지고 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덩어리를 예수님이 축사하사 떼셨더니 거기에 모인 남자만 오천 명, 부녀자까지 수만 명이 원대로 다 먹었다, 그랬습니다.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제자들, 실패 만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예수님은 고기 잡는 방법만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은 제자들은 배가 매우 고팠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모닥불을 피워주셨습니다. 추우니까 따뜻하게 해주고, 배고픈 그들에게 떡과 생선을 구워 예비해놓으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9절입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그렇습니다. 배고픈 그들에게, 추운 그들은 그 숯불도, 그저 숯불에 구워있는 떡도, 숯불에 구워있는 그 생선도 누가 준비하십니까? 예수님이 준비해주셨기 때문에, 그것도 복음이다. 배고픈 제자들에게 떡과 생선을 직접 또 집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냥 “먹어라”, 그게 아니라, 직접 주어서 “먹으라.” 요한복음 21장 13절입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배고픔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의 그 추운 것도 아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제자들의 예수님만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예수님,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메시아, 그 부활하신 예수님. 나나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성도들의 배고픔을 아신다, 헐벗음을 아신다, 그 문제까지 해결해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신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구하기도 전에 아시는 분이십니다. “아시지요”보다는 아십니다. 우리 주님은 다 아세요. “아시지요”, 그 얘기는 “혹시 모를 수도 있지요”이지만, “아십니다”는 100%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좋은 것 주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분을 바라보며, 그 분을 믿으며, 그 분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다섯째, 사명을 주신 예수님 다섯 번째, “사명을 주신 예수님.”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앞의 것 4가지 다 주셨다 하더라도, 우리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떠난 제자들, 실패 만난 제자들, 다시 회복시킴을 받은 제자들에게 다시 사명을 주지 아니하셨다면, 예수님의 사랑은 더 큰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근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 실패 만난 제자, 예수님을 떠난 제자 베드로에게 우리 예수님은, 부활의 예수님은 사명을 다시 회복해주셨어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뭘까요? 사명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명이 있으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명이 없으면 짐승처럼 살아간다는 거예요. 아무리 잘 먹고 좋은 집에 산다 하더라도, 사명이 없다면 살았다 하나 죽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주하며 부인한 베드로에게조차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는 예수를 피했습니다. 피했다가 어린 비자 앞에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또 그가 만났습니다.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세 번째 만났습니다. 실패 만난 베드로에게 이제 필요한 것 다 채워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귀한 것은 뭐냐? 귀한 것은 뭐냐? 정말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하신 최고의 사랑이 뭐냐? 사명을 잃어버린 베드로에게 사명을 다시 회복해주신 것입니다. 보세요.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보니까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제자들이 아침 먹은 후에, 베드로가 아침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여러분, 사명, 사명은 아무에게나 주시나요? 여러분, 구역장, 아무에게나 주시나요? 오십부장, 아무에게나 주시나요? 성가대원, 아무에게나 하라 그러나요? 설교자, 아무에게나 하라고 하나요? 아무에게나 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또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정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확인했습니다. 잔뜩 먹고, 잔뜩 마시게 하고, 함께 고기 잡으러 간 동료 친구들 다 있는 그 자리에서 너는 이 떡보다, 이 생선보다, 네가 고기 잡으러 갈 때 함께 따라온 저 친구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참, 베드로가 얼마나 고민했겠어요? 베드로의 고백은 뭡니까? “주님이 아시나이다. 염체가 없나이다.” 그 고백을 확인한 후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내 어린양을 먹이라』. 우리가 사명을 잘 감당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때, 하늘의 상이 있고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이 땅의 복이 있고, 자손이 잘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26절입니다.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말이 뭡니까? “종일토록 사명을 감당하니.” 누가 복 받느냐? “네 자손이 복을 받는 도다.” 그렇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성화 되어져 갑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도 사명을 주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나 여러분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뭘까요? 교회를 섬기는 사명, 기도하는 사명, 전도하는 사명, 양육하는 사명,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사명, 또 하나가 뭐가 있을까요? “헌금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헌금하는 사명”은 십일조 한다, 그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무입니다. 주일헌금, 그것도 의무입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헌금 하는 것, 그것도 의무입니다. 그러나 헌금하는 사명이 뭐냐? 나는 다른 건 좀 못해도 하나님이 나에게 많은 물질을 주셨다. 하나님은 나에게 물질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이 물질을 주셨다. 깨닫고 감사함으로 헌금하는 사명에 동참하고, 감사로 참여하면 우리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무슨 복을 주실까? 물질을 더 주실 거예요. 적어도 30배, 60배, 100배 더 많이 주시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돌보고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오셔서 지금 만나주시고, 지켜보고 계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지금도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믿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틀림없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 땅에 평화가 옵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부흥케 하옵소서/ 합3:2-4/ 최성규 목사/ 교회창립기념주일설교/ 2014-03-23
부흥케 하옵소서 합3:2-4 오늘 이 시간에는 \\\\\\\\\\\\\\\\\\\\\\\\\\\\\\\"주여! 부흥케 하옵소서.\\\\\\\\\\\\\\\\\\\\\\\\\\\\\\\"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 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하시 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여! 부흥케 하옵소서.\\\\\\\\\\\\\\\\\\\\\\\\\\\\\\\" 여러분의 심령이 날마다 날마다 부흥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로 창립 15주년 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 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또 여러분의 덕분인 줄 알고 감사하게 생각합니 다. 또 그 동안 우리 교회를 위해서 후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여러 교 단과 교계의 모든 사람들, 특히 선 배님들, 또 동역자들, 또 많은 성도 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 히 여의도순복음교회 70만 성도와 당회장되시는 조용기 목사님께, 영 원한 스승이신 조용기 목사님께 더 많이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서 하나님 나라 사업을 위해서 지금 까지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 고 앞으로 도 커다란 비전을 가지고 21세기를 향해 더욱 정진해 나갈 것 입니다. 그래서 21세기에는 전도 사 업과 사랑실천 사 업을 비롯한 여러 가지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앞장서 서 더욱 많이 일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인천을 복음화 하고, 인천을 성시화해서 살기 좋은 인천을 만드는데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다 맡아서 하길 원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 조국을 복음 화하기 위해서, 또 세계 선교를 향 해서 더 많은 일들을 하기를 바랍니 다. 또 많은 교회에 때로는 도전을 주고, 때로는 방향제시를 해주고, 또 많은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 을 배우면서 열심히, 정말로 하나님 이 원하시는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하는 교회, 또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이 세상이 칭찬하는 교회, 또 하나님이 정말로 기뻐하시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어 야 할 것입 니다. 자, 그렇게 되어지 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까? 저는 한마디로 말하면 \\\\\\\\\\\\\\\\\\\\\\\\\\\\\\\'부흥해 야 된다.\\\\\\\\\\\\\\\\\\\\\\\\\\\\\\\' 그 말입니 다. 이 부흥이 1 년에 몇 번 부흥회할 때만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 1년 365일 매일 매일 마다 부흥해야 됩니다. 매 일 시간, 매 때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되고, 부흥하는 심령이 되어야 할 것입니 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 부 흥되어야 할까,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개인 신앙 부흥이 일어 나야 합니다. 자기 부흥이 일어나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나부 터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다. \\\\\\\\\\\\\\\\\\\\\\\\\\\\\\\" 부흥은 나부터이다.\\\\\\\\\\\\\\\\\\\\\\\\\\\\\\\" 그렇습니다. 여 러분 모두가 다 신앙이 부흥되시고, 날마다 성령 충만하시고, 날마다 말 씀 충만하시고, 날마다 믿 음 충만하 셔서 여러분이 가는 길마다 주님이 동행해 주셔서 원수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쫓기는 역사가 일 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의 출발은 \\\\\\\\\\\\\\\\\\\\\\\\\\\\\\\'나\\\\\\\\\\\\\\\\\\\\\\\\\\\\\\\' 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 앙이 부흥되어서 교회와 나라의 부 흥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 게 살아가야 할까? 말씀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듣고, 더 많 이 묵상하고, 더 많이 전하는, 실천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 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 어 오신 분이라고 그랬습니다. 예수 를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 나님의 말 씀이 나를 통하여 부흥이 일어나요. 내 속에 항상 말씀이 있 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우리 에게 생명과, 위로 와, 능력을 가져다 줍니다. 말씀이 충만하면 우리는 구 원의 확신을 갖습니다. 우리 예수님 이 말씀하십니다. 요한 일서 5장 12 절에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 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 게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아들이 누구 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있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또 말씀 이 있으면 위로 받 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능력이요 권능입니다. \\\\\\\\\\\\\\\\\\\\\\\\\\\\\\\"하나 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 다 예리해서 우리의 영과 혼과 골수 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충만하면 그 말 씀 속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고 또 위로를 받고 능력을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주야로 말씀 을 묵상할 때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 지는 것입니다. 시편 1편 2절에 보 니까 복 있 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 고 말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 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랬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 니다. 시편 1편 3절입니다. {저는 시 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 절을 좇아 과 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 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 로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 이 자기 심령 속에서 부흥이 일어나 면 말씀이 즐거워지고, 주야로 묵상 되고, 말씀을 증거하고, 말씀대로 살 아가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행사가 다 형통하게 하신다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신앙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야 할 것입니 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신앙 부흥이 일어 납니다. 기도를 조금 하 는 사람은 신앙 부흥도 조금밖에 안 일어납니다. 기도를 하니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리 성경 말씀을 많이 읽 었다고 하더라도 신앙 부흥이 일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 정에서도, 이 교회에서도, 아니면 새 벽에도, 아니면 일할 때도, 저녁 밤 에 잠을 자기 전이라도 우리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능하 신 하나님 앞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 도하면, 기도를 많이 하면 많이 할 수록 우리의 신앙이 부흥되는 것입 니다. 교회의 부흥도 기도를 많이 하면 부흥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기 도의 힘으로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닌 것 입니다. 우리 많은 성도 들이 기도를 많이 할 때 한국은 성 장했습니다. 경제도 성장했어요. 이 나라도 튼튼한 나라 가 되었던 것입 니다. 우리가 기도의 능력과 응답을 믿 고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알라\\\\\\\\\\\\\\\\\\\\\\\\\\\\\\\"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 분들이여! 기도를 많이 함으로 말미 암아 여러분의 신앙이 부흥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의 신앙이 부흥되기 위해 서는 전도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 다.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그 은혜가 정말로 감사하다면, 천국 이 그렇게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 고, 애통도 없고, 고통도 없고, 죽음 도 없는 곳이라고 알았다면, 그 천 국에 우리의 구세주가 계시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거기 계시다면, 우 리는 함께 가야 합니다. 그 러기 위 해서는 전도해야 돼요. 우리가 전도 할 때 우리의 신앙이 부흥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었 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전도하지 아니하 면, 그 부흥은 꺼져버리고 마는 것 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우리가 전 도할 때 우리는 신앙이 불이 붙어 요. 신앙이 부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며 성숙하게 만듭니다. 그러 므로 전도할 때 자기의 신앙이 부흥 이 일어나고 자기가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 니다. 또 전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상급을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다니 엘서 12장 3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렇 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하고 말씀 충 만해서 열심히 전도하면 하나님의 나라가서 면류관 상급 받습니 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 하면 우리의 개인의 신앙이 부흥될 뿐만 아니라 자녀가 잘 될 수 있습 니다. 시편 37편 26절입니다. { 종일 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말씀했습니 다.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신앙이 부흥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교회 성장 부흥이 일 어나야 합니다. 개인의 부흥이 일어나면 교회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 교회가 성 장하면 개인의 신앙도, 우리가 하나 님의 은혜 안에서 또 부흥할 수 있 습니다.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입 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정체 상태에 빠져있습니 다. 모든 교회가 부흥하게 될 때 이 나라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성장과 경제 성장은 정비례합 니다. 우리 나라가 70년대 교회 성 장이 많이 됐었어요. 그때는 경제 성장도 놀랍게 올라갔습니다. 교회 성장이 둔화되면서 경 제 성장이 둔 화되고, 교회 성장이 혹이라도 마이 너스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한국이 지금 경제로 어려움을 당합니 다. IMF 경제체제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성장 이 개인의 신앙에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 니라, 이 교회 성장이 나라 살림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는가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성장 부흥되기 위하여 우 리가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것이 뭡니까?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 고 아껴야 합니다. 더 자주 교회에 모여야 될 것입니다. 예배 드릴 때 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배를 드 리지 않는 평일날에 도 할 수만 있다 면 교회에 한 번 들려보는 거예요. 할 일이 없어도 한 번 들려보는 거 예요. 왜 들려봐야 합니까? 우리가 예배드리는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 님의 집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이 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그뿐이 아닙니다. 늘 교회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교회에 오면 제 일 먼저 예 배드릴 때 먼저 묵상으로 기도하는 거예요. 한 5분 묵상으로 기도하고 그 다음에 제일 먼저 주보 를 펴는 거예요. \\\\\\\\\\\\\\\\\\\\\\\\\\\\\\\' 우리 교회 오늘 예배 순서가 어떤가. 또 지난주간에 우리 교회에서 한 일이 무엇이 있는 가. 이번 한 주 동안에 우 리 교회가 할 일이 뭐가 있는가. 또 내가 참여 할 일이 뭔가. 내가 가서 봉사하고, 내가 애써 일할 일이 무엇인가.\\\\\\\\\\\\\\\\\\\\\\\\\\\\\\\' 관 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주보를 읽고 그것을 가지고 내가 할 일을 찾는 사람, 이런 사람은 교회에 관 심을 갖 는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또 교회를 나의 집처럼 아껴야 할 것입니다. 또 교회 안에는 사랑 과 기쁨의 교제가 있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 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렇 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각 구역마다, 또 교구 마다, 기관마다, 또 부서마다 사랑이 넘쳐나고, 위로와 칭찬과 격려와 기 쁨이 가득 한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부서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미움과 시기와 질투를 일 으키는 마귀의 세 력을 다 묶어 버려 야 될 것입니다. 또 서로 서로 수근 수근하고, 지역으로 모이고, 고향으 로 모이고, 학벌로 모이 고, 이런 것 들도 다 없어져야 될 것입니다. 우 리는 교회에 오면 한 형제예요. 예 수님을 한 구주로 모신 한 형제 예 요. 지역이 어디서 태어났던지, 어느 학교를 나왔던지, 직장이 어디든지 교회에 오면 모두가 한 형제예요. 구역 끼리 모이는 것은 좋아요. 각 부서들끼리 모이는 것은 좋아요. 전 도팀 만들어서 함께 전도로 모이는 것도 좋습니 다. 그러나 그 외에 다 른 개인집단은 교회에서 절대로 있 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가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새로 들어오는 새 가족을, 새 신자들에게 관심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기 존 성도들끼리 만나면 \\\\\\\\\\\\\\\\\\\\\\\\\\\\\\\'할렐루야\\\\\\\\\\\\\\\\\\\\\\\\\\\\\\\' 해야 돼요. 웃어줘야 돼요. 그러나 처음 보는 성도를 보았다면 좇아가 야 돼요. 그래서 손을 덥석 잡고, \\\\\\\\\\\\\\\\\\\\\\\\\\\\\\\" 우리 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참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래야 돼요. 그렇다고 그래서 남자 성도가 젊은 여자 성도 손을 딱 잡으면 그 건 안돼요. 또 여자 성도가 남자 성 도 손을 잡아도 안돼요. 그러나 남 자 성도끼리, 여자 성도들끼리 관심 을 갖는 겁니다. 그리고 교회에 알 지 못하 는 새신자를 환영할 뿐만 아 니라,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환영 할 뿐만 아니라, 또 모시고 좋은 자 리에 함께 앉 아서 성경도 찾아주고, 찬송도 찾아주고, 그리고 함께 평안 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아주 좋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는 꾸준히 전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교 세가 확장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너 무나 안타 까워요. 왜 그렇습니까? 들어오는 성도는 많은데 그 성도들 은 잘 붙들고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 다. 그러기 위해서 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는 기존 성도들끼리만 놀지 말고, 기존성도들끼리만 교제 하지 말고, 새로 나온 성도들 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정말로 따 뜻한 마음을 주고 대화해 주고 그들 이 편하게 부담없이 신앙생활 할 수 있 도록 잘 돌봐줘야 될 것입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사랑으로 대접해 주고 봉사해 줘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표어가 \\\\\\\\\\\\\\\\\\\\\\\\\\\\\\\"봉사하는 교 회\\\\\\\\\\\\\\\\\\\\\\\\\\\\\\\"인 것처럼, 어떻게 하면 새신자 들에게 봉사해줄까. 제가 그런 말을 수차례 하잖아요. 우리 교회 주차장 이 많아요. 그러나 다 전성도가 차 를 대기에는 역부족인 것입니다. 모 든 제직은, 또 오래 교회에 나온 신 앙인들은, 우리 성도들은 교회 주차 장에 차를 대지 말자는 거예요. 누 구에게? 새신자들에게, 처음 교회에 나오는 분들에게, 장애자들에게 주 차할 자리를 다 양보하는 거예요. 그것도 아니면 안내하는 집사님들은 처음 보는 성도는 보면 알잖아요. 그러면 교회 마당에 차가 올 때 서 게 해 주는 거예요. 그리고 \\\\\\\\\\\\\\\\\\\\\\\\\\\\\\\"예배 드리고 나오세요. 제가 키를 잘 보 관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왔을 때는 차를 찾아다가 바로 타고 나갈 수 있도록 봉사해 주는 것, 얼마나 아 름답겠어요. 성경은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4 장 9절로 10절입니다. {서로 대접하 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 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 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교회가 될 때 교회 성장 부흥 이 일어납니다. 세 번째로, 성도 생활 부흥이 일 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 러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는 여 러분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우리는 신앙이 부흥됨으로 인하 여 생활 중에도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 시는 게 뭡 니까? 하나님의 소원이 뭡니까? 우리 모두가 다 잘 살게 되 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잘 되 고, 우리의 직장이 잘 되고, 우리의 사업이 잘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 다. 우리가 건강하기를 원하시는 것 입니다. 요한삼서 2절에 이 렇게 말 씀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 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렇 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잘 믿고 신앙이 부흥되었다 면, 성도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의 가정이 행 복해야 되고, 부유한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 러분들은 모두가 다 건강한 복을 받 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건강해야 돼 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건강하 시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몰라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 속에는 \\\\\\\\\\\\\\\\\\\\\\\\\\\\\\\'여 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구약성경 에도 우리 하나님 이 치료하시는 하 나님으로 임재하셨어요. 그 뿐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다니시면서 많은 각색 병자를 다 고쳐주시고 치료하 셨습니다. 부 활 승천하시면서 예수 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 름으로 기도하면 귀신이 쫓겨나가 고,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 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님이 말씀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부흥한 사람은 가정이 행복해야 돼요. 진실로 성도 의 생활이 항상 풍성한 열매, 부흥 의 삶의 역 사가 일어나야 될 것입니 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 어버린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근심, 걱정은 다 주께 맡겨버리고, 주어진 일에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두가 다 건강하게 사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진실로 신앙 이 부흥한 사람들은 우리의 생활이 축복도 받아야 돼요. 물질의 축복을 받아야 됩니 다. 왜 그렇습니까? 우 리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이신 것 과 마찬가지로 이 물질의 세계를 지 으신 분이 누구시냐? 하나님이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축복을 받 아야 됩니다. 범사가 다 형통하기를 주님은 간구한다고 말씀했습 니다. 우리는 물질을 많이 벌어서, 예 수를 안믿는 사람보다 예수를 믿고 신앙 부흥이 잘 일어나는 사람들이 사업도 더 잘 해야 되고, 직장생활도 더 잘 해야 되고, 돈도 더 많이 벌 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업 에 많이 드리고, 구 제하는 일에 많 이 쓰고, 여러분 가족들, 자녀들과 함께 행복하고, 남에게 꾸러가지 아 니하고 꾸어주면서, 베풀어 주면서 넉넉하게 잘 살아야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물질을 몽땅 다 드리고, 구제하고, 나누어주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그건 영광스러운 가난인 것입니 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하고는 많이 벌어야 돼요. 왜 그렇습니까? 물질 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주 님이 원하시는 것이 뭐냐? 범사가 잘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잘 살까요? 우리가 물질을 많이 벌어야 된다고 해서 물질에 집착하면 안됩 니다. 물질을 사랑하면 안됩니다. 누 굴 사랑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사랑 해야 됩니다. 물질의 주인되시는, 복 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사랑해 야 되고, 그 뿐이 아닙니다. 물질의 집착하지 말고 일에 집착할 때, 일 에 집착할 때 우리는 물질을 얻고, 우리가 부요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 다. 물질에 집착하지 말고 일에 집 착하라 그 말인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 하십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 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 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부지런한 사람 에게는 언제나 물질이 뒤따른다고 그랬습니다. 잠언서 10장 4절입니다. {손을 게으 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 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 하나 님은 우리에게 부 요하길 원하시고 부자되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우 리 하나님은 게으르면 싫어하십니 다. 일하기를 싫어하면 싫어 하십니 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배우라고 말씀하시고, 일하기 싫은 자여 먹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 기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처럼, 우리가 일에 집착하고 열심히 땀흘리고 열심히 수고하고 열심히 일해서 모두 다 부자되시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안믿 는 재벌들보다 예수 믿는 여러분들 이 더 재벌되시고, 부자 되시고, 축 복받으시고,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번째로, 나라 경제 부흥이 일 어나야 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부흥되었다고 하 더라도 나라가 기울어 간다면 그때 는 자기도 함께 기울어질 수밖에 없 는 것입니 다. 결국 나라가 살아야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습니다. 이 나라의 경제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이 나라가 다시 부흥할 수 있습니 다. 지금 우리는 IMF 경제체제에서 아주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래도 지금 하나하나 희망의 소식이 있어요. 얼 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분 명합니다. IMF 당시나 직전보다 한 국의 교회가 더 많이 기도하잖아요. 그렇지요? 뿐 아 니라 더 많이 전도 하잖아요. 우리가 그 동안 잘못 살 아온 것 회개하고 있잖아요. 하나님 께서 하나하나 들으시고, 보시고, 다 풀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 을 열고 계신 증거인 줄 믿습니다. 나라가 경제 부흥되기 위하여 우 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 모 두가 다 한 마음이 되어야 해요. 유 무상통(有 無相通)하며 가난한 자를 돌보던 초대 교회를 본받아서 쓰러 지고 넘어지는 사람들을 붙들어 주 어야 될 것입니다. 또 최대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서는 단결해야 됩니다. 합심해야 됩 니다. 모두가 다 합심, 가족들도 합 심, 회사 도 모든 임원들과 직원들이 합심, 군인도 합심, 경찰도 합심, 공 무원도 합심, 모든 국민도 합심, 합 심해야 한국 경제가 부흥할 수 있습 니다. 전도서 4장 12절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 지지 아니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했 습니다. 또 그뿐이 아닙니다. 이 나라의 경제가 부흥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활부터 구조조정을 해야 됩니다. 남을 보고, 다 른 사람의 기업을 보 고 \\\\\\\\\\\\\\\\\\\\\\\\\\\\\\\'구조조정을 해야 된다\\\\\\\\\\\\\\\\\\\\\\\\\\\\\\\', 사회 단 체를 보고 \\\\\\\\\\\\\\\\\\\\\\\\\\\\\\\'구조조정을 해야 된다\\\\\\\\\\\\\\\\\\\\\\\\\\\\\\\' 이 말만 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 생활 속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게으르면 안됩니다. 부 지런해야 됩니다. 규모없이 살면 안 됩니다. 규모있게 살아야 됩니다. 방 탕하면 안됩니다. 호랑방탕하면 안 됩니다. 분명히 절제하면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말합 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4절입니 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 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 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 하여 오래 참으 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것이 다 나의 것이 아니고, 이건 나라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절약하고 절제 해야 될 것 입니다. 우리가 지금 IMF를 만나서 오히려 더 잘되는 사 람이 있대요. 돈이 많이 사람은 이 자가 많이 느니까 더 잘된대요. 그 래서 신문에도 보니까 요새 신조어 가 나왔대요. \\\\\\\\\\\\\\\\\\\\\\\\\\\\\\\'위하여\\\\\\\\\\\\\\\\\\\\\\\\\\\\\\\'가 아니라 \\\\\\\\\\\\\\\\\\\\\\\\\\\\\\\'이 대로\\\\\\\\\\\\\\\\\\\\\\\\\\\\\\\' 그래요. 깊이 생각해야 됩니 다. 자기가 지금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 이것이 내 돈이라고 생각하 지 말고, \\\\\\\\\\\\\\\\\\\\\\\\\\\\\\\'나라 돈이다. 이건 나라 돈 이다. 그리고 내가 쓸 수 있지만 나는 나라경제 부흥을 위해서 내가 절약한다. 호랑방탕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금강산 관광을 가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난 말하고 싶어요. 가고 싶겠지요. 보고 싶겠지요. 그러 나 그게 먼저인가? 우리 주위에 실 직자가 많습니다. 노숙자가 많습니 다. 추운 겨울이 옵니다. 어떻게 살 지 막막합니다. 그런데 불과 며칠을 다녀오려고 몇 백만원씩 주고, 또 북한 공산당들에게 수많은 돈을 갖 다 주면서 금강산 관광 웬 말인가! IMF시대에 금강산 관광이 웬 말인 가! 우리 깊이 생각해봐야 됩니다. 한국 경제 부흥을 위해서! 또 직장과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조금 더 양보하는 자세를 가져야 됩 니다. 이 기 업이 살기 위해서, 직장 이 살기 위해서는 기업가도 양보하 고, 근로자도 양보하고, 서로서로 양 보해야 살 것입니 다. 모두가 다 자 기 몫만 챙기다보면 몽땅 함께 죽습 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 도해서 신앙부흥이 일어 나서 하나님 께로부터 지혜를 얻어서 경영의 합 리화, 일의 능률화, 또 작업 공정성 을 개선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경영의 합리화가 이루어져야 돼요. 일의 능률화를 이루어야 되고, 또 작업 공정의 개선 등을 이루어서 분명히 자금원가 가지고 고능률을 일으켜서 더 좋은 제품을, 정말로 더 값싼 제품을, 또 소비자들에게 환영받는 제 품을 내 놓아야 할 것입 니다. 그래야 나라 경제가 부흥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한국의 위상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지구촌\\\\\\\\\\\\\\\\\\\\\\\\\\\\\\\'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정보통신 의 교류로 인해서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 영 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계인\\\\\\\\\\\\\\\\\\\\\\\\\\\\\\\' 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이 세계 속에 한국의 위상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의 위상을 높이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 한국은 세계로 세계는 한국으로\\\\\\\\\\\\\\\\\\\\\\\\\\\\\\\", \\\\\\\\\\\\\\\\\\\\\\\\\\\\\\\" 인천은 세계로 세계는 인천으로\\\\\\\\\\\\\\\\\\\\\\\\\\\\\\\" 이 제 세계 속에 우리인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세계인이 되어야 됩 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나라가 온 세계 많은 나라 중에 우리의 위 상이 높아져서 우리가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식이 달라져야 되고, 우 리가 나라 사랑하 는 마음이 뜨겁게 불타야,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야 진실로 우리는 다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 이기주의 와 또 가족주의적인 사고를 극복해 야 할 것입니다. 자신 때문에 나라 를 망치는 일 들을 삼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라가 망해도 나만 흥 하면 된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 람이 있습니다. 얼마 나 슬픈 일인지 모릅니다. 각종 언론 기관은 시청자 나 독자들을 끌려는 목적만 가지고 나라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당리 당략보다 국익을 우선에 두어야 합 니다. 나라가 있어야 언론도 있고, 나 라가 있어야 자기 당도 있는 것입 니다. 나라를 위하는 일, 나라를 위 해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그 말입니 다. 또 우리는 우리 나라를 세계에 자랑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나 나라를 사랑하지 않았 어요. 너무 나 라를 흉봤어요. 조상을 흉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가 이만큼 잘못 사는 거예요. 우리는 나라를 더 자랑해야 돼 요. 나라를 더 많이 사랑해야 됩니다. 이 나라 를 높이고, 자랑하며, 이 나라가 잘 되는 일에 헌신할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나라의 충성하 고 나라에 희생할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면 이 나라가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26장 15 절입니다. {여 호와여 주께서 이 나 라를 더 크게 하셨고 이 나라를 더 크게 하셨나이다 스스로 영광을 얻 으시고 이 땅의 모든 경 계를 확장하 셨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됩니다. 나라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까 기다리 지 말고, 정말로 내가 할 일을,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 가를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 다. 우리 가정의 화목과 질서도 이 나라를 든든히 하는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그 자리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 도 나라 를 든든하게 할 수 있으며 나라를 부흥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뿐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먼저 합 심 해서 뜻을 모으고, 전 기독교가 뭉칠 수만 있다면 이 나라가 더 튼 튼한 나라, 정말로 우리의 조국 한 국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합니다. {여 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 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 순복음인천교회 창립 15년을 맞 이해서 나는 성도들에게 함께 기도 하자고 제안합니다. 한국 교회들에 게, 모든 믿 는 자들에게 정말 하박 국 선지자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부 르짖자고 나는 제안하고 싶습니다. \\\\\\\\\\\\\\\\\\\\\\\\\\\\\\\"각자 개인의 신앙이 부흥케 하소 서. 주여! 교회의 성장이 부흥케 하 소서. 주여! 성도의 생활이 부흥케 하소서. 주여! 이 나라 경제가 부흥 케 하소서. 주여! 한국의 위상이 부흥케 하소서.\\\\\\\\\\\\\\\\\\\\\\\\\\\\\\\"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분열 없는 통합/ 겔37:16-17/ 최성규 목사/ 2015-02-12
분열 없는 통합 겔37:16-17 오늘 이 시간에는 “분열 없는 통합”,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분열 없는 통합.” 우리 순복음인천교회는 금년에 교회목표를 정하는 것보다는 공동기도제목 여섯 가지를 정했습니다. 공동기도제목 여섯 가지 중에 맨 마지막 기도제목이 “분열 없는 통합”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담을 사랑하셔서, 사람을 사랑하셔서, 에덴동산을 6일 동안 지으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매일 그 날을 지으시고는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런데 맨 마지막 날 여섯째 날은 다 지으시고, 다 지으시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1장 31절 상반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나, 하나를 지으시고는 하나, 하나가 따로따로 있을 때는 “하나님이 좋았더라” 그러셨는데, 그 하나, 하나가 모두가 다 연합될 때, 모두가 함께 있을 때, 함께 조화를 이룰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렇습니다. 무엇이 아름다울까? 서로 조화를 이루면 아름답습니다. 누가 행복할까? 서로서로가 하나 되면 행복합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부모님이 마음이 딱 하나 되면 그 가정은 행복합니다. 소유가 좀 부족할지라도 모두가 다 마음으로 하나 되면 그 가정은 행복합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건강합니까? 목회자와 제직, 제직과 성도, 모두가 다 하나로 다 마음이 하나가 되면, 그런 교회는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업이 더 발전할까? 성장할까? 노사가, 사와 노가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그 기업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부강할까? 어느 나라가 건강한 나라일까? 정부와 국민이, 국민과 지도자가 마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통합되었을 때, 그 나라는 건강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조하시고 뭐라 하셨습니까? “좋다”고 하셨습니다. 아름답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동산이, 그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그 좋음과 아름다움이 있는데 왜 아름다움과 그 좋음이 깨어졌을까? 무엇 때문에 그럴까? ‘분열’ 때문에. 죄로 인한 분열은 가시와 엉겅퀴를 가져 왔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기보다는 서로를 찌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서로서로 행복을 위해서, 화합을 위해서 “다리”를 놓기보다는 “벽”을 쌓습니다. 인종의 장벽, 경제의 장벽, 세대간의 장벽을 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열의 담을 허무신 분은 누구냐? 바로 우리의 구세주, 우리의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인류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습니다. 죄악의 담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죄악의 담을 허시기 위하여 나의 죄, 너의 죄, 우리의 죄를 다 감당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그렇게 매 맞으시고, 그렇게 가시관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얼마나 고통을 당하셨던지 예수님이 절규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은 우리가 분열 없이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하신 기도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 하반절에 보니까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저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저 성도들도, 저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간, 통합해야 할 이유가 뭘까? 통합의 유익이 뭔가? 함께 생각해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모두가 다 하나가 되어서, 연합을 해서, 통합해서 행복한 가정 되시고, 또 성장하는 교회가 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분열하지 말자 첫째로, “분열하지 말자.” 따라하시겠습니다. “분열하지 말자”, 분열은 마귀가 가져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신다, 그랬습니다. 우리 교회에 몇 년 전에 하버드 대학교의 유명한 신학 박사 하비 코프 박사가 오셨습니다. 그 때,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성령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 세계에서 성령의 역사가 제일 강하게 역사하는 나라가 한국교회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너무 신나서 “아멘” 그랬습니다. 전 세계에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제일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가 한국교회다. “아멘”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깜짝 놀랄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전 세계에서 마귀의 역사가 제일 강하게 역사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더라고요. 너무 깜짝 놀랬습니다. 그리고 설명했잖아요. 전 세계에서 같은 나라가, 조국이 분단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또 분단은 남한의 작은 지역 안에서도 지역 간 갈등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가 없다. 전라도가 어떻고, 경상도가 어떻고, 충청도가 어떻고, 강원도가 어떻고, 그것만이 아니다. 계층 간 갈등이 있다.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갈등이 있다. 또 말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어느 나라보다 세대간의 갈등이 많다. 노인 세대, 또 젊은 세대, N 세대, X 세대. 한국 교회에 와 처음 설교하면서 너무나 정확하게 한국을 압니다. 분열하지 맙시다. 따라하세요. “분열하지 말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자기 자신이 분열시키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착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분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돈 좀 있다고 부자끼리 노는 것, 이것은 분열하는 것입니다. 좋은 집 좀 있다고 “좋은 집 구경하러 와라”, 그래서 좋은 집 있는 사람끼리 끼리끼리 노는 것도 분열하는 것입니다. 좋은 학교 출신이라고 좋은 학교 출신끼리 만나자, 끼리끼리 만나는 것도 분열하는 것입니다. 또 지역으로 나눠서 “나는 충청도야”, “나는 전라도야”, “나는 뭐 경상도야.” 끼리끼리 만나는 것도 이것이 분열하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공부 잘 하는 아이들하고만 놀아라.” 가끔 엄마들이 그러잖아요. “공부 못 하는 아이들하고 놀지 말고, 공부 잘 하는 아이들하고 놀아라.” 그것도 끼리끼리. 또 말할까요? 예수 안 믿는 사람하고 놀지 말고, 예수 믿는 사람하고 놀아라. 그것도 끼리끼리입니다. 끼리끼리. 예수 안 믿는 사람하고도 만나야 그 사람들에게 전도해서 예수를 믿도록 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 뿐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잘 해주는 사람만 만난다, 그것도 끼리끼리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46절로 47절 말씀이십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그지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형제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겠냐, 그 말인 것입니다. 참소와 분열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쓰는 방법인 것입니다. 보세요. 에덴동산에서 원수 사단이 뱀을 앞장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에 하와가 거역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욥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가룟 유다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분열하는 공동체는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노년과 신세대의 분열 때문에 나라가 깨졌지 않습니까? 보세요. 열왕기상 12장 13절로 14절 상반절까지 보니까, 그 때 당시의 왕, 누구입니까? 르호보암 왕. 『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 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소년의 가르침을 좇았다.』 노인 세대와 소년 세대를 딱 갈라놓았습니다. 노인 세대의 좋은 말도 들어야 되고, 소년 세대의 좋은 말도 들어야 되는데, 노인 세대의 좋은 말은 무조건 다 버려버리고, 소년 세대의 말만 들었기 때문에 세대가 탁 갈라졌습니다. 나라가 분열돼버리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상 12장 19절에 보니까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둘째, 통합하자 자, 두 번째, 두 번째, 따라하시겠습니다. “통합하자”, “통합하자”, “통합하자.” 네. 왜 통합해야 합니까? 주님이 원하시니까. 왜 통합해야 합니까? 주님이 뜻하시니까. 왜 통합해야 합니까? 주님이 명령이니까. 오늘 본문에 보세요. 에스겔서 37장 16절로 17절에 보니까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따라하시겠습니다.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주님의 명령입니다. 또 에베소서 4장 3절에 보니까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랬습니다. 예수 십자가는 하나가 됩니다. 보혜사 성령님도 하나가 되게 하시는 영이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가 되야 합니다. 통합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지역 간 통합’을 위해서 ‘연합과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됩니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네가 있어야 내가 행복해”, “네가 있어야 내가 살맛이 나”, “네가 있어야 보람이 있지”, “네가 있어야 내가 하늘나라 가서 상급 받고 살지.” “아멘”입니까? 500년 넘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땅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간 것입니다. 왜요? 남편을 다섯 번이나 갈아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그 여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뿐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과의 막힌 담을 허물어버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간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으면, 우리가 정말로 구원을 받았으면,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신 것처럼, 우리도 분열의 장소로 통합하러 가야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과 북을, 또 동과 서를 통합하는데 주인공 역할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또 우리가 먼저 ‘계층간 통합’을 위해서 ‘겸손과 섬김의 손’을 내밀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지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통합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말합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입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수였던 우리들을 하나되게 만드셨습니다. 상대가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변화되면 하나가 됩니다. 상대가 바뀔 때만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변화되면, 상대가 손 내밀 때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손 내밀면, 상대가 “잘못했어”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말하면, 상대가 “용서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용서한다”고 말하면, 상대가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면, 우리 모두가 다 계층 간 통합되고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가 먼저 ‘세대간 통합’을 위해서 ‘존경과 사랑의 손’을 내밀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어린 아이는 사람 취급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여러분,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또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경할 때, 세대차이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또 ‘선한 일’을 하는데, ‘선한 일’을 하는데, 서로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야 합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8절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그지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것은 보고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식으로 아는 게 아닙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선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 선한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 선한 것입니다. 애국자 되는 것, 선한 것입니다. 자연보호 하는 것, 선한 것입니다. 이웃에 봉사하는 것, 선한 것입니다. 이 선한 것은 행하고, 또 선한 사업에 부하고, 돈 버는 영리사업에만 부하지 말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앞으로 보세요. 돈만 벌려고 하는 기업은 망합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많이 하려고 하는 기업은 흥합니다. 앞으로 광고할 때, 상품광고만 하는 회사는 망합니다. 기업 이미지 광고하는 회사는 삽니다. 기업이 돈 번다 그래서 돈 버는 데만 가지말고, 성경에 말합니다. 『선한 사업에 부하고』(딤전 6:18), 『선한 사업에 부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또 뭐라고 말합니까? 각자 개인에게 말합니다.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메마른 자가, 매몰찬 사람되지 말고, 슬픈 사람을 보고 울 줄 알고, 아픈 사람을 보고 아파할 줄 알고, 즐거워하는 사람을 보고 즐거워 줄 알고, 불쌍한 사람을 보고 동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안타깝게도 인간은 나쁜 일을 하는 데는 쉽게 뭉쳐요. 옛날에 “싸우러 가자”, 그러면 잘 뭉쳐요. 그런데 “화해하러 가자”, 그러면 잘 안 뭉쳐요. 성경도 바벨탑을 쌓을 때는 다 뭉쳤어요. 우리는, 우리는 교회일치에, 구제와 봉사에, 전도하는 일에, 도와주는 일에 연합하는 우리 교회가 됩시다. 아멘. 셋째, 통합하면 세 번째, 자, 그럼 “통합하면”, “통합하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 통합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제일 먼저 우리가 통합하면, 교회가 통합하면, 가정이 통합하면, 구역이 통합하면,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주님 앞에 돌아온다, 그 말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 말씀이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면, 구역이 하나 되면, 성도의 가정이 하나가 되면,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이 예수를 알게 됩니다. 예수를 안 믿었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게 됩니다. 또 교회가 하나 될 때, 하나 될 때, 전도사업도 잘 됩니다. 교회가 하나 되고, 구역이 하나가 되면, 구원받는 수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합심하면, 합심하면, 우리가 합심하면, 우리의 수고가, 우리의 수고가, 좋은 것으로, 좋은 상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전도서 4장 9절에 보니까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여러분, 남북 통일과 북한 동포 구원도 우리가 먼저, 교회가 먼저 연합하면, 통합하면, 속히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통일 독일도 무엇보다 교회가 힘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먼저 합침으로서, 교회가 먼저 나눠주고 도와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통합하면, 우리가 교회가 통합하면, 전쟁의 소문으로 국제적인 어려움을 당한다 하더라도 분명히 어려운 역경을 이기고, 전쟁 없는 평화가 이 땅에 오게 될 줄 믿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전도서 4장 12절입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어렵다고,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면 안 됩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면 안 됩니다. 내가 양보하고, 모두가 연합하고, 모두가 먼저 통합하면, 어려움을 갖다주는 원수 마귀는 물러가고, 개인도, 가정도, 분명히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8절로 9절입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느냐?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다 따라하시겠습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도리어 복을 빌라,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왜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통합하고, 연합하고, 양보하고, 복을 빌어 주는 우리가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받는, 하나님으로 복 받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결론입니다. 사람들은 함께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그렇지요? 또 사람들은 서로서로 껴안을 때, 껴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서로서로 껴안을 때, 좀 부족하더라도, 좀 힘들어도, 서로서로 껴안을 때, 껴안을 때,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온 가족이 서로서로 껴안을 때 행복합니다. 서로 합심할 때, 합심할 때, 구역도 부흥하고, 교회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역 간, 계층 간, 세대간 벽을 허물 때, 나라와 민족이 번영합니다. 지역 간, 계층 간, 세대간 벽을 허물 때, 벽을 허물 때, 나라와 민족이 번영합니다. 교회와 교회, 교단과 교단이 하나 될 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분열 없는 통합을 이룰 때, 분열 없는 통합을 이룰 때, 평화도 오고, 화해도 오고, 정직도 오고, 나눔도 오고, 기쁨도 오고, 건강도 오고, 아름다움도 오고, 모든 것이 성령으로 됩니다. 성령으로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마음을 먹으면 성령이 도와주십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성령의 역사하심/ 행2:1-4/ 최성규 목사/ 2014-03-23
성령의 역사하심 행2:1-4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의 역 사 하심\\\\\\\\\\\\\\\", 이런 제목으로 같이 은혜 를 나누겠습니다. 한 번 따라 하시 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령의 역사 하심\\\\\\\\\\\\\\\". 기독교의 3대 명절은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입니다. 오늘은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입니다. 1천년 대의 맨 마지막 1999년, 또 2000년 을 한해 앞둔 1999년 오순절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은 유대인의 가장 큰 명 절인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것입니다. 또 예 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는 날 인 것입니다. 이 날은 처음 수확한 밀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초실절임과 동시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명절이기도 한 것입 니다. 이 날에 약속한 성령이 강림 하심으로 기독교인들은 이 날을 성 령강림절이요 교회가 새로 탄생한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성 령강림절을 맞이해서 이때부터 성령 은 모든 신자들을 통해서 활발하게 역사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또 선교사를 파송하 게 하시고, 또 제자들로 하여금 능 력 있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습니 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으 로 인하여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또 복음을 믿게 되고, 또 천국을 맛 보며 살아가고 있게 된 것입니다. 실로 지금은 성령의 시대인 것입니 다. 오늘은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 심의 단계에 관해서 함께 알아봄으 로 말미암아 여러분 은혜 받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신앙이 성숙되고 성장해서 열매맺는 신앙이 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칭찬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받는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성령의 내주 하시는 단계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와 내주 하심으로 구원의 역사, 또 돌봄의 역사, 능력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 입니다. 성령은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우리의 영원한 동 반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 한 일서 4장 13절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성 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 는 줄을 아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 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성령과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 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 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 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 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 니라} 이렇게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성 도 여러분 각자 각자 마음속에 하나 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 안에 거하시 는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번 따라 하시겠습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 성령님이 내 안에 내주하셨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산다는 것은 우리 가 새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하나님 의 법을 따라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산다는 것은 성결함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을 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전 것은 지 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 그랬 어요. 우리 모두가 다 새 사람이 되 었어요. 우리가 중생한 하나님의 아 들이 되었어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지 아니하시 면 예수를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 다. 또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 녀인 것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래서 로마서 8장 16절에서 사도 바 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친 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 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이 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우리의 구 원과 미래의 부활을 보증하시는 것 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주님이 재림하 실때 우리 모두가 먼저 죽은 자는 무덤에서 부활되고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가 다 변화되어서 공중 혼인잔 치에 참여할 수 있는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의 단계입니 다. 성령이 내주하면 구원의 보증 이 되지만, 이 세상에서 능력 있게 살아가는 삶을 공급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만 가지고는 이 세상에 유혹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핍박이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신앙을 방해하는 원수 마귀의 세력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 라요. 그래서 유혹을 뿌리치고 핍박 을 견디고 원수 마귀를 이기고 능력 과 권능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느냐? 성령 충만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열 심히 나가서 전도도 할 수 있어요. 봉사도 있어요. 그런 능력을 받고 찬양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우리 가 정말로 열매를 맺는 복된 삶으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 로 예수님이 승리자이신 것처럼 우 리 모두가 성령 충만한 성도들, 마 귀를 이기고 질병을 이기고, 가난을 이기고, 저주를 이기고, 슬픔을 이기 고, 좌절과 낙심을 이기고, 모두가 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다 성령충만함 받으셔서 예수님의 승리하신 것처럼 여러분 모두가 다 승리하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입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 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 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 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 기를 시작하니라} 말씀했습니다. 사 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성령이 내주 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 러분들도 성령세례받으시고 성령 충 만하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겠습니 다. 누가 성령세례 받을 수 있습니 까? 누가 성령 충만 받을 수 있습니 까?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 사모하 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세 례, 성령충만은 임하는 것입니다. 성 령이 내주 하시고 계신대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성령이 내주 하시는 것 만 가져도 나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 에, 나도 부활 될 것이기 때문에 나 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으로 만족 한다. 더 충만함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성령세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 충만할 수 없 습니다. 성령세례받고 성령 충만함 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 그것을 두고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에게 성령세례주시고 성령충 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시고 난 후에 40 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다니셨습니 다.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말씀하십 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오 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 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 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 은 사람들이 자그만지 500명이었습 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모 습을 바라본 사람이 500명이었습니 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말로 예수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말씀을 믿 고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을 기다리 고 성령 받기를 간절히 기도한 사람 은 120명밖에 없습니다. 380명은 다 각기 제 길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380명도 성령은 내주 하셨어요. 그 러나 그들은 성령을 받지는 못했습 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주 님 하신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성 령세례받기를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 한 120문도가 몽땅 성령 세례를 받 았습니다. 다른 방언으로 말했습니 다. 능력과 권능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최초의 한국 교회의 성령 강림 사건 은 1907년 1월 16일입니다. 이 땅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온 것은 지금 으로부터 꼬박 114년전입니다. 1885 년 4월 5일 부활주일이었습니다. 그 런데 이 땅의 최초의 성령강림사건 은 1907년 1월 16일 평양에 있는 장 대현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때 평안 남도 노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 가 길 선주 장로였습니다. 전 목회 자가, 전 장로들이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사경회를 했습니다. 한국교 회도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나기 위 해서, 목사와 장로가 그때까지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함 받지 못했습니 다. 사모했습니다. 성령세례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때 그 길 선 주 장로가 그런 말했습니다. \\\\\\\\\\\\\\\"여러 분 성령세례받기 위하여, 성령충만 하기 위하여 얼마만큼 사모해보았습 니까?\\\\\\\\\\\\\\\" 그러면서 그분이 이런 말했 습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오랫 동안 병상 위에서 고생을 하신 것입 니다. 우리 아버지가 병 치료받기를 내가 얼마나 사모했든지 나는 병이 걸렸습니다. 여러분! 성려세례받고 성령충만하기를 얼마나 사모했는지 병날 만큼 성령세례받고 성령 충만 함 받기를 사모해보았습니까?\\\\\\\\\\\\\\\" 그때 그 말을 듣기 위해서 온 한 목사님 이 회개합니다. \\\\\\\\\\\\\\\"저분은 평신도이면 서도, 저분은 장로이면서도 저렇게 효자가 되어서 아버지가 아플 때 병 이 날만큼 사모했는데 나는 목사가 되어 가지고 목회 한다는 핑계로 부 모 모시지 못하고, 부모에게 관심도 가져주지 못했고 나는 불효자입니 다. 불효 목사를 용서해주시옵소서. 불효자식 목사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는 가슴을 치면서, 땅을 치면 서 회개했습니다. 그 회개 소리가 그 사경희 장소의 모든 사람에게 다 들렸어요. 부모에게 불효하지 아니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 목사만 회개한 것이 아니라, 다 른 목사들도 회개하고 다른 장로들 도 회개하고 모두가 다 회개했습니 다. 갑자기 강한 바람 같은 힘이 임 했습니다. 최초의 한국교회의 성령 강림사건이 1907년 1월 16일 평양에 있는 장대현교회에 임했던 것입니 다. 모두가 다 성령세례 받았어요. 모두가 다 방언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성령 충만함 받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한국교회가 놀랍게 부흥하 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에 평 양에서만 구원받은 사람이 자그마치 40,000명, 그 해에 세례 받은 사람이 자그마치 30,000명, 그 성령의 바람 이 이제 전국으로 확산되어서 이처 럼 부흥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 다는 것입니다. 그후에 또 성령운동 이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 했습 니다. 또 감사한 것은 미국 하나님 의 성회에서 약 48년전쯤 되어서 한 국에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를 세웠습니다. 성령 운동하는 교단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힘있게 복음을 증거하고, 성령을 인정하고, 성령을 환영하고, 성령을 모셔들이고, 성령 세례받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해 가지고 이만큼 성령운동의 역사가 전국을, 또 전세계를 변화시키고 있 는 것입니다. 이처럼 최초의 성령충 만을 가리켜서 성령세례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성령이 내주하 시는 여러분들이여! 다 성령세례받 으시고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성령충만은 역동적인 신앙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것입 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임재를 깨 닫게 되고, 믿음이 솟아나게 되고, 삶의 활력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습 니다. 신앙은 마치 노를 저어서 배 가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데 성령이 임재만 하는 사람은 그냥 노를 저어서 배가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받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그 배의 모터를 달은 것과 같습니다. 힘있게 어떤 파도도 넘어 가면서, 아무리 센 물살도 해쳐가면 서, 어떤 방해도 무릅쓰면서 항해하 고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 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성령충만함 으로 말미암아 그 배의 모터를 달은 것처럼 힘있게, 능력의 권능있게, 이 바다와 같은 세상, 풍랑 많은 세상 을 능히 이기며 승리하고 살아가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성령 충만하다 전도와 봉사 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 님이 성령충만을 주신 목적이 뭐냐? 전도를 잘 하라고, 봉사 잘 하라고, 찬양 잘 하라고, 잘 가르치라고 이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필요한 힘과 용기와 능력을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과 함께 은사 를 체험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많이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은사가 어떤 은사가 있습니까? 말씀의 지식 의 은사, 말씀의 지혜의 은사, 믿음 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 는 은사, 예언의 은사, 영분별의 은 사,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섬기는 은사, 권면의 은사, 많은 은 사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처럼 여러분들 모 두가 다 성령 충만함 받아서 능력있 게 신앙생활하고 은사를 받아서 많 은 사람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성령의 활동하시는 단 계입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능력을 받았 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만히 잠자면 안돼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어 떤 사람은 성령이 내주 하셨어요. 그 다음에 성령 충만한 사람을 보니 까 부러웁거든요. 그 다음에 성령을 환영합니다. 인정합니다. 모셔들입니 다. 그래서 성령 받기를 얼마나 애 타 하는지 몰라요. 금식도 합니다. 새벽기도도 합니다. 철야 기도합니 다. 그런데 성령세례받고 방언하고 능력을 받고 난 후에는 그것을 잠재 우는 사람들이 많아요. 활동하지 아 니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것은 절 대로 안돼는 것입니다. 성령은 일하 시는 영이십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이 밖으로 뛰쳐나가서 능력 있는 활동을 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제자들 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 도행전 2장 14절입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소리지릅니다. 베드로는 성 령이 내주하실 때는 그것만 가지고 는 비겁했어요. 예수님게서 잡히시 고 예수님께서 위험을 당하실 때 그 는 피했어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 했어요. 어린 비자 앞에서는 예수님 을 저주하면서까지 모른다고 한 비 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받았을 때, 성령충만함받을 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힘차게 나 가서 부활의 예수님을 증거했던 것 입니다. 생명을 무릅쓰고 힘차게 복 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받았다면 일 해야 돼요. 성령은 일하는 영입니다. 활동해야 됩니다. 우리가 나가서 열 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 심히 찬양하고, 열심히 가르치는 일 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희미하게 믿었던 것이 확실해지고 두려움이 물러가는 역사가 나타나서 그리스도 를 언제 어디서나 힘있게, 용기 있 게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 님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 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 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 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 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성령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 로 하여금 회개하게 만드는 것입니 다. 전하는 것은 우리가 전해요. 그 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깨닫고 주께 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성령이 하시 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입 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 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 꼬 하거늘}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렇게 전도자를 통해서 성령이 역사 하시면 복음대상자의 마음을 감동하 게 하시고, 마음을 또 믿음 없는 자 가 믿음을 갖게 하시고, 깨닫게 하 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자복하게 하 시고, 이런 놀라운 역사를 하게 하 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역사 는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또 성령은 교회를 세우시는 것 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을 베푸시고 각 은사를 주시는 이유가 뭐냐? 천 국 백성을 일으키시고, 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하시는 일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시 는 일이 뭐냐? 교회를 세우시는 성 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 장 41절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 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렇게 말 씀하십니다. 이러므로 교회의 주인 은 성령이신 것입니다. 추수꾼의 주 인은 성령이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가 다 이 성령의 역사 하심에 순종 하면 분명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 받고 성령 충만함 받은 것으로 멈추 지 말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 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을 따라 살겠다고 우리가 작정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지금 도 우리를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통하여 일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 리를 통하여 일하실 것입니다. 일하 시는 성령, 활동하시는 성령님을 보 시기에 여러분 정말로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하는 일을 많이 하는, 그래 서 상급 받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성령의 열매 단계입니 다. 성령이 내주 하시고 충만하신 결과로 나타나는 최상의 결실은 성 령의 열매의 단계인 것입니다. 성령 이 내주 하시고 충만하시는 결과로 나타나는 최상의 결실은 성령의 열 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 희락의 열매, 화평의 열매, 오래 참 음의 열매, 자비의 열매, 양선의 열 매, 충성의 열매, 온유의 열매, 절제 의 열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누가 보아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보 시면 더 좋고, 주의 종들이 보고 같 은 성도가 볼 때도 좋고, 심지어 예 수 안 믿는 사람들이 보아도 좋아 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누가 보아도 좋습니다. 한국의 45,000교회가, 10만 주 의 종이, 1,300만 신자가 성령이 내 주 하시는 것으로만 끝나지 말고 성 령세례, 성령충만 받은 것으로만 끝 나지 아니하고, 성령을 통하여 일하 는 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우리의 삶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누가 감히 교회를 핍박하겠습니까? 누가 감히 성도를 조롱하겠습니까? 누가 감히 성도에게 손가락질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내주 하시는 성령 의 단계에만 머무르면 안됩니다. 성 령세례, 성령 받은 것만으로 만족해 도 안됩니다. 우리가 일하는 것만으 로 안됩니다. 우리의 삶이 남에게 덕을 끼쳐야 돼요. 그것뿐이 아닙니 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습 니다. 성령세례받고 성령 충만함 받 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 갈 때 우리는 얼마든지 이 사회를 맑고 밝고 환한 사회, 깨끗한 사회,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습니 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다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가 되어져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 것이 자기의 교회만 위해서 기도하 는 것이 아니라, 이제 다른 교회, 다 른 교단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또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 위해서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만이 아닙니다. 남의 가족도 위해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지역만이 아닙 니다. 다른 지역도 기도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국민이 모두가 다 하 나가 되고 화합되어지기 위해서, 민 족이 복음화 되고 세계선교가 이루 어지기 위해서 다함께 교회가 기도 하는 것, 이것이 뭐냐? 성령의 열매 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입 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 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 기를 전혀 힘쓰니라} 이렇게 말씀했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사 도행전 2장 1-4절까지 성령세례 받 는 것으로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성령세례, 성령충만함 받아서 우리 의 삶으로 현장에 나타나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이미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이라도 계속 기도에 힘쓰 지 아니하면 그 감격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메마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할 때 기적이 나타납니다. 기도할 때 병고 치는 은혜도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 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말씀하십니 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 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 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 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 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 로 우리가 성령세례받고 성령 충만 하다면, 나만을 위해서 살지 말고 내가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며 살아갈 때 이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 아시기 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교제하며 나누는 교회가 되 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순복음인천 교회도 네 가지 표어가 있어요. 첫 째는 전도하는 교회, 둘째는 교육하 는 교회, 셋째는 봉사하는 교회, 넷 째는 교제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우 리 교회 표어가 어디에서 나왔습니 까? 사도행전 2장에서 나왔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 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 를 따라 나눠 주고} 이렇게 말씀했 습니다. 그러므로 정말 성령충만한 결과가 뭐냐? 교제하는 것입니다.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어주고 베풀 어주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박쥐를 아실거에요. 박 쥐, 박쥐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 니다. 박쥐는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산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박쥐가 이틀만 굶으면 그 체중이 20%가 줄 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0시간 만 지나가면 그 박쥐는 죽어 버린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박쥐들은 서로서로 살기 위해서, 먹이 사냥을 위해서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박쥐 가 있습니다. 그때는 배고픈 박쥐에 게 더 먹여 주기 위해서 먹을 수 있 는 박쥐는 자기의 모이 주머니에다 가 많이 먹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 래서 먹지 못해서 배고픈 박쥐에게 그것을 토해주어가지고 먹게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서로서로 못 먹을 때 먹여주는 것입니다. 또 못 먹을 때 찾아서 각지 나누어서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쥐의 세계가 그렇게 캄캄한데서, 어두운 데서 힘들게 죽을 것 같지만 그들이 산다는 것입니다. 왜요? 서로서로 나누어주기 때문에, 서로서로 봉사 하기 때문에, 서로서로 베풀기 때문 에… 또 칭찬 받는 교회가 되는 것, 이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 래서 사도행전 2장 46-47절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 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 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말 씀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어느 개 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공동체와 교회 전체를 위해서 유익 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나만 받는 것이 아니에요. 성령 충 만함이 내가 받은 것이라면, 성령의 열매는 함께 잘되는 것입니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공동체, 가정 공동 체, 구역 공동체, 교회 공동체, 직장, 사업 공동체, 이 사회 공동체, 나라 공동체, 이 공동체가 잘 되는 삶이 뭐냐? 이것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 가 풍성한 성도와 교회는 칭찬을 받 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 성들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 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 시니라.\\\\\\\\\\\\\\\" 말씀했습니다. 결론입니다. 아직 구원받지 못 한 불신자는 내주 하시는 성령을 모 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고 부르고 구원받아야 됩니다;. 이 제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 해야 됩니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성 령의 활동하심을 따라 봉사하고 나 누어주고 베풀어주고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성령의 충만하고 일하 는 성도들은 분명히 자기가 남에게 덕을 끼치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 게 성도가 살아갈 때, 곧 이것이 성 령의 역사 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이 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의 진정한 목 적이요 참된 뜻인 것입니다. 사랑하 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나무에도 싹 이 있고, 열매가 있고 꽃이 있고, 분 명히 나무는 먼저 싹이 있어요. 또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어야 돼요. 꽃이 핀 후에는 열매가 맺어야 돼 요. 과일 나무는 꽃 보려고 심는 게 아니에요. 잎을 보려고 심는 게 아 닙니다. 열매를 보려고 심는 것입니 다. 꽃은 왜 있습니까?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잎은 왜 있 습니까? 열매를 잘 익고 마지막 잘 익을 때까지 보호하기 위해서 잎이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뭐냐? 성령의 열매, 그 나루의 열매인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여! 여러분의 신앙이 열매맺는 단계 에까지 올라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 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날 마다 은혜를 주시는 주님, 날마다 사랑하시는 주님, 오늘도 1999년도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해서 오늘 하나 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다 성령의 열매 맺는 단계까지 우리 의 신앙이 성숙되도록 축복해주시옵 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 나이다. 아멘.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
성전건축/ 학1:8/ 최성규 목사/ 2016-07-10
성전건축 학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이 감동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한 흥분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는 “흥분”이라는 단어가 딱 한번 나옵니다. 학개 1장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학 1:14). 표준새번역개정판에서는 “흥분”이 “감동”이란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흥분, 즉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면, 성전건축에 흥분합니다. 제자들도 성령에 감동되자, 각 처로 나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성전건축은 감동입니다. 성전건축은 거룩한 흥분이고, 하나님의 역사이며, 성령의 운행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위대한 역사에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성전건축의 영광과 방법에 대해 알아봄으로, 우리 모두 성전건축의 주인공이 됩시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성전건축은 기회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기회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할 기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아, 그 복을 누릴 기회입니다. 아무나 이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건축의 기회를 잡으려고 해도 못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창세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성전건축은 단 3번뿐입니다. 그것은 모세 때의 성막 건축, 솔로몬 왕 때의 성전 건축, 포로 귀환 이후 학개 선지자 때의 성전 재건축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누리지 못한 영광이 성전건축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도 잡지 못했던 기회가 성전건축입니다. 이사야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에게도 성전건축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성전건축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할 사람을 특별히 따로 택하십니다. 성막을 지을 때도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지명해서 부르셨습니다. 성전을 지을 때도 하나님은 솔로몬을 택하여 부르셨습니다(대상 28:10).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십니다(학 1:8). 하나님의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듭시다. 성전건축의 주인공이 됩시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주십니다. 둘째, 땀 흘려 참여하자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입니다(출 25:8).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역사입니다(대하 2:4). 하나님을 위한 일을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땀을 원하십니다(학 1:8). 하나님은 우리가 산에 올라가는 수고를 원하시고, 나무를 가져오는 헌신과 조심스럽게 나무를 다듬는 정성을 원하십니다. 또한 가장 좋은 것을 드리길 원하십니다(출 35:5). 하나님께서 힘이 없으시거나 가난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금도 하나님의 것이요, 은도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학 2:8).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는 분임을 믿습니까? 우리의 땀과 기도와 물질을 드립시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니 아깝지 않습니다. 성경은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책임지시니 걱정하지 맙시다. 우리 모두 내 모든 것을 드려 성전건축에 참여합시다. 셋째, 합심하여 건축하자 하나님은 학개 1장 8절에서 “너희는”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성전건축에 참여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학 1:14). 하나님으로 인해 총독의 마음도, 대제사장의 마음도, 남자의 마음도, 여자의 마음도, 어른의 마음도, 어린이의 마음도 흥분되었습니다. 그 결과, 16년 동안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이 재개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한지 4년 만에 성전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성전건축의 주인공이 되기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합심해야 합니다. 마음으로만 합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로도 합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성막을 건축할 때 금과 은만 드린 것이 아닙니다. 실, 염소털, 가죽, 조각목, 등불, 관유도 드렸습니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얼마나 많이 참여했는지, 나중에는 차고 넘칠 정도였습니다. 성경은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 36:7)고 말씀합니다. 합심이 힘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안에서 합심합시다. 성전건축으로 합심합시다. 우리가 하나 되면, 무엇이든지 가능합니다. 넷째,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사 43:21; 골 1:16). 우리가 하나님 위해 살 때, 우리의 인생은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때, 우리 인생은 복된 인생이 됩니다.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성경은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학 1:8)고 말씀합니다. 성전을 세운다는 것은 그냥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생의 본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한 번뿐입니다.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것들은 안개처럼 다 사라집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을 위해 행한 것만은 영원합니다. 우리 모두 가장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시다. 하나님의 영광을 세계 만방에 드러냅시다. 다섯째, 하나님의 상을 받는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존귀케 되었고, 대적으로부터 평안하게 되었고, 가문을 세울 수 있었고, 하나님과 자손대대로 부자 관계를 맺었고, 집과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뭔가 큰 업적을 세워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 성전건축을 소원했을 뿐입니다. 성전을 지은 것도 아니고, 소원만 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는 상을 주셨습니다. 성전건축은 하나님께 상 받는 지름길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특권을 누립니다(학 2:7). 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때, 우리는 영광스러운 존재로 변하고, 평강이 넘칩니다(학 2:9; 고후 3:17,18). 또한 물질의 상을 넘치게 받습니다. 학개 당시, 성전건축을 한 시기는 가장 바쁜 농번기였습니다. 추수와 파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달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성전건축을 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합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 2:19)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계산을 뛰어넘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손의 자손에게 복이 임하는 상을 받습니다. 솔로몬과 유다 가문이 복을 받은 이유는 다윗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전건축을 소원한 다윗에게 자손에게 임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2-14). 다윗의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모두 성전건축에 동참하여 자손과 가문에 하나님의 복을 유산으로 물려줍시다. 우리 모두 성전건축의 주인공이 됩시다. 성전건축의 주인공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입니다. 성전을 세울 때, 우리 인생이 세워집니다. 성전이 올라갈 때, 우리 신앙이 올라갑니다. 최성규 목사(인천순복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