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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더운 여름 어느 날/ 2006-12-06
1990년 더운 여름 어느 날 1990년 더운 여름 어느 날 “사막의 폭풍”이라는 작전명의 전쟁이 cnn을 통하여 전 세계에 중계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에 대항하여 유엔의 결의에 의하여 반격을 개시한 것이다. 소위 걸프전(戰) 이 시작 된 것이다. 그때 소련은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전 세계를 향하여 달러를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서독이 동, 서독 통일에 방해하지 말라고 수십 억 달러를 내 놓았다. 노태우 정부도 북방외교의 대가로 삼 십 억 달러를 약속했다. 그러나 소련은 더 많은 달러가 필요했다. 미국을 향한 구걸이 계속 되었으나 미국 입장에서도 줄 수 있는 달러는 없었다. 그렇다면 소련이 달러를 벌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소련은 세계최대 원유 생산국이다. 중동전쟁으로 인하여 유가가 인상되면 가만히 앉아서 때 돈을 벌게 된다. 결국 그 전쟁으로 인하여 미국은 다량의 무기를 소비 및 실험하는 효과와 군수 산업의 활성화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얻었고 전쟁 후에 복구 사업에 뛰어들어 때 돈을 벌게 되었다. 소련은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하여 중동의 유가는 인상되자 덩달아 자국의 원유가 인상으로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되었다. 계산된 전쟁이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은 자기 나라 곳곳에 과거 바벨론의 영광을 꿈꾸기 위하여 제2의 느브가넷살왕을 사칭하면서 대형 사진을 걸었다. 과거 바벨론의 후예로서 전 세계를 지배한 느브가넷살을 닮고자 했던 후세인의 콧수염은 히틀러와 닮았을 뿐 아니라 스탈린과도 흡사하다. 그는 창세 이후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사탄의 모형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600만 명이나 학살 한 히틀러와 냉전체제를 만들어 놓고 전 세계를 공포로 몰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스탈린의 뒤를 이어 또 한 번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사담 후세인. 그들의 뒤를 조정하는 것은 사탄이다. 사탄은 언제가 자기가 이 땅에 주인임을 선포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고유번호를 이마나 손목에 새겨 넣고 다스리려고 한다. 세계가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어떤 하나의 힘에 의하여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 힘은 먼저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일을 시행한다. 아마 그 전초전이 화폐의 통일이 아닐까 한다. 모든 나라의 지폐에는 빈 공간이 있다. 위조지폐를 방지하기 위하여 나라마다 빈 공간을 만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은 그 공간에 세계 공통화폐 단위를 새겨 넣으면 된다. 굳이 막대한 돈을 투자 할 필요가 없다. 뿐 만 아니라 벌써 전 세계는 하나의 컴퓨터에 의하여 지배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각 나라마다 제나라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컴퓨터에다가 개개인을 고유번호로 관리하고 있다. 이 모든 컴퓨터를 통합하여 하나의 컴퓨터가 관리하게 된다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힘에 의하여 지배 될 수가 있다. 그 힘은 상당한 파괴력을 가진다. 이제 온 인류는 그 보이지 않는 힘을 곧 만나게 될 것이다. 말세 중에도 마지막 때라고 한다. 깨어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자신이 구세주라고 한다. 속지 말아야 한다. 그는 분명히 구세주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는 오늘도 가까이 와서 속삭인다. \"네가 최고야\" 라고...
何時耶蘇來 吾道無油之燈也<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언젠가 '예수'가 오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름없는 등(헛된 것)'과 같다>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燈也<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언젠가 '예수'가 오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름없는 등(헛된 것)'과 같다> 석가 모니가 기다리던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는 언젠가 \'예수\'가 오면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다.(동방 현자(박사,구루)들에 대한 이야기 포함) \'석가모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何時耶蘇來 吾道無油之燈也 (나다마경 38-8)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 「언젠가 \'예수\'가 오면 내가 깨달은 도는 \'기름없는 등(헛된 것)\'과 같다」 논평> 이방인들을 위한 \'메시야 사상\'에 대한 전파는 이미 최소한 B.C. 750년 이전에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아니 그 보다 더 소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이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왕래하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시에 동방박사들이 괜히 심심해서 온 것은 아닌 것이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 \'요나\'는 B.C 785-760년경 쯤의 사람으로 짐작되고 있다. 위치적으로도 그는 바벨론과 가까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니네베(니느웨) 의 외모로 볼 때 포악한 사람들에게 메시야 사상과 하나님을 숭배하는 참된 종교을 전파 하였다. 석가모니가 이 메시야 사상을 들었을 가능성은 이미 석가모니 자신의 말에서 드러난다. 석가모니는 최소한 요나에 의해서 전도된 큰 성읍 도시(메트로 폴리스?) 니네베(니느웨) 에 전도된 자들에 중에서 인도로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솔로몬의 지혜를 직간접적으로 들은 인도 지방의 사람들에 의해 브라만 들에 의해 기록의 도구로 보존되었거나 하여 석가모니에게 가르침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석가모니는 많은 구루(도사)들(브라만의 구루들 포함) 을 찾아 다녔다. 그러던 중에 \'메시야\' 사상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다. \'예수\'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만약 구약전서의 \'토라(두루마리)\'가 이방인들에게도 구전이나 필사로 보존되었다면 그들이 그것을 보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그 당시는 하나님의 영이 마음 가운데 정주하지 않으시고 들락날락하던 시대임을 주지하자!) 나름대로 듣거나 학습으로 익힌 메시야 사상을 통해 \'예표적 신앙\'을 익혔을 것이다. \'여호수아\'와 \'호세아\'는 \'예수아(예수)\'와 같은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의 예표이다. (예표 신앙!)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예수의 어린 시절에 메시야 사상을 전파하여 듣고 (아마 이러한 메시야 사상에 대한 전파는 요나를 비롯해서 알려지지 않은 소선지자 들에 의해 구전되거나 조작 문서 등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다.) 먼 곳에서 와서 예수를 영접하였던 동방 현자(박사,구루)들은 미리 예물을 준비하였다. 이 예물의 의미가 매우 놀랍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멍청하고 강팍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메시야를 가까이서도 몰라봤지만 이상하게 멀리있던 이방인들은 잘 알아 봤던 이유가 무엇일까?) 자~! 먼저 그들(동방의 현자들)의 말을 들어 보자! 이제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니, 보라, 동방으로 부터 현자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신가?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 분께 경배드리러 왔노라.\"고 하니라. 마태복음서2:1,2의 내용이다. 다음은 마태복음서2:11의 내용이다. \'그들이 그 집에 들어가서 모친 마리아와 함께 있는 어린 아이를 보고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보물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메시야(기름 부음 받은 자)\'의 부류에는 세가지가 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이다. 성경에서는 그외의 부류는 없다. \'황금\'은 \'왕\'을 위한 것이었고(왕상10:16-21) \'유향\'은 \'제사장\'을 위한 것이었고(출 30:34-48) \'몰약\'은 \'선지자\'을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이것은 지상 생애의 마지막때 곧 \'죽음\'을 위한 예물로 종종 사용되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사역중의 선지자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들(동방의 현자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았을까? 헤롯이나 다른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이나 장로들이나 그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왜 그들이 찾아왔을까? 그들은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메시야 사상을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의 \'예물\'을 보고 그들의 행한 바를 보면 잘 알 수 있으며 마태복음2:12을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그들은 박해자요 사탄 마귀의 예표인 헤롯를 피하라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더 재미있는 추측은 그들이 고향에 돌아가서 가만히 있었을까라는 가정이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헤롯, 헤롯의 부하들, 이스라엘의 서기관들과 관료들, 이스라엘 사람들 그리고 육신적으로는 아직 어린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요셉 등등) 글로 적었든지 아니면 구전으로 알렸을 것이다. 아니면 그들의 협회에 통보하였을 것이다. 사탄 마귀가 그들의 글을 보존할 리가 없다. 어떻게 하든지 소멸시켰을 것이다. 그들(동방의 현자들) 중에 부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록되거나 구전된 부처의 말(위의 기록)에 예의주시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여러가지를 종합하여서 드디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을 보셨을 것이며(시53:2) 그래서 인도하셨을 것이다.(물론 시편53:2후반,3절의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찾지 않는 상황 B.C.1000년경 당시의 상황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동방의 현자들)은 불편한 교통수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메시야를 만날 수 있도록 간구하였을 것이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무엇보다도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그들이 입수하여 읽고 공부하였음으로 메시야를 기다리고 그분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였다는 것은 그들의 행위로 이미 증명되었다는 것이다. 예물을 준비하였다는 것은 이미 그들이 메시야가 그들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보같은 이스라엘의 근본주의자들(서기관들, 제사장들, 왕과 관료들 등등) 은 냉랭할 뿐 어떠한 미리 준비하는 실천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들(동방의 현자들)은 자신들의 스승들로부터 전수받아온 메시야 사상을 예의주시하고 입수한 필사 자료(토라)등을 통해 열심히 공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측하신 때를 준비하였을 것이다. \'별\'을 통해서 그들은 인도함으로 받았는데 이것은 점성술이라기 보다는 성경에서는 \'별\'을 \'천사\'로 이야기 하는 경우가 있다.(요한계시록1:20; 12:4; 12:9; 9:1) 그들(동방의 현자)은 \'천사\'의 인도함으로 인해 구약성경(토라)대로 그러한 메시야 사상을 확증받고 성경에 예언된 대로 메시야를 찾아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심지어는 제4의 동방 현자 \'알타반\'의 설화까지 생길 정도였다. 어리석은 자들은 이것을 간과하고 넘어갔었다. (특히 변개된 성경을 즐겨 보는 계약주의 신학자들과 근본주의자들 등등) 그들(동방의 현자들)은 이미 전파된 메시야 사상을 들었었고 찾아갔고 만났다. 그리고 고향에서 전파하였을 것이다. 아마 그 이후에 그들(현자들)이 생존하였거나 아니면 동방의 현자들의 제자들이 생존하였다면 12사도 중 \'누구(도마(?))\'에 의해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자신도 하나님이신 메시야라는 사실이 확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 끝까지 믿고 기다렸던 누구누구들은 구원 영접하였을 것이다. \'예표\'의 신앙을 연구하였다면 그 시기가 B.C.500(부처가 활동하던 시절) 일지라도 \'호세아\'와 \'여호수아\'의 예표를 알았을 것이다. 특히 호세아(B.C.715)를 통한 이방인(고멜) 의 사랑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것이고 \'호세아(예수아)\'가 단순한 소선지자가 아닌 3가지 메시야 유형을 성취하실 참된 메시야의 예표이었다는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방인)은 \'예수\'를 알고 있었다는 것은 자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마 그들(예수를 만났던 동방 현자들) 중에는 \'부처의 도(불교)\'에 대해 들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탄은 거짓 기록을 남겨둠으로 인해 \'예수가 오히려 부처의 제자\'였다고 헛소리하게 만들었다. 사탄은 항상 거짓말을 즐겨한다. 더많은 사람들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고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 이것이 사람에게 대한 사탄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더 이상 세상종교의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 오직 참길이신 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여(믿고)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영생을 지금 바로 얻으라!
개처럼 벌어서..../2006-12-15
개처럼 벌어서....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사용하라’ 고 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게 일하면서 돈을 버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어느 일부분에 속하는 무리들은 땀 흘리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지만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번 돈으로 편하게 살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작년대비 수입차 판매가 2배나 증가했고, 서울시내 모 백화점의 양주코너에 한 병에 수 백만 원씩 하는 양주가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라고 기사화 되었다. 올해 들면서 가진 자들의 골프 관광이 끊임없이 사회 문제화가 되어가고 있고, 교회는 담임목사 세습화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한국교회 전체로 퍼져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다. 한국 교회 집사들은 닮아야 하는 스데반을 닮지 못하고 오히려 가롯유다를 닮아서 돈을 좋아하게 되었고, 교회에도 사회에서 즐겨하는 계급문화가 들어와서 평신도 위에 집사요, 그 이상은 권사요, 그 이상은 장로요, 그 이상은 목사가 되어 가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사용해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요한 웨슬레는 열심히 벌고 열심히 저축하여 주를 위해 열심히 사용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열심히 벌어야 하느냐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이다. 이제껏 이 사회에서 벌었다는 사람 치고 정당하게 벌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권력과의 유착을 통하여 부를 이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에게 정치자금을 주고 그 정치적 권력을 이용하여 정부공사를 따내고, 그 공사의 공사비를 부풀려 자신들의 부를 축적한 기업주가 허다했다. 이러한 기업주 무리에는 어김없이 집사나 장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 교회에 헌금을 하고 그 돈으로 성전을 짓고 구제하고 선교하면서 한국의 대형교회는 더 크게 발전되어왔다. 나라의 경제 성장과 같은 속도로 교회와 성도수가 늘어나고 교회의 대형화는 계속 되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소금이 되지 못하였기에 부패 된 사회는 더욱 더 부패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성도들이 돈 버는 일에 대한가르침을 받지 못함에 따른다. 우리의 사고 깊숙하게 뿌리하고 있는 사상 가운데에는 ‘개처럼 벌고 정승처럼 사용하면 된다’라고 했다. 아무리 기독교인이 되더라도 보고 듣고 자라면서 잠재의식 가운데 박혀 있는 이 사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예수 믿고 성도가 되고 집사와 장로가 되어도 돈 버는 일에 대하여는 개처럼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앉고 있다. 정승처럼 품위 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부가 아니고 하나님의 복으로 얻은 것이기에 그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하는 것이다. 멋지게 쓸 줄 아는 우리가 이제는 멋지게 벌 줄도 알아야 한다. 근로자를 내 가족처럼 여길 줄 알고 고객을 내 형제처럼 생각해 제품을 만들고 음식을 제조하며 농사를 지어야 한다. 피조물인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는데 그러한 피조물이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것들이 농약에 찌들고 불량품이며 A/S도 되지 않는 그러한 것들을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 수 없진 않는가? 이제까지는 그렇게 돈을 번 많은 기업이 있다. 남의 것을 토색 한 것이 있으며 4배나 갚겠나이다 라고 하는 삭개오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직하게 벌고 청지기처럼 관리하여 하나님의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결혼기념일/2009-05-23
결혼기념일 22년전인 1987년 5월 23일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경주시내 위치한 아름다운 예배당에서 나와 아내의 결혼식이 아름답게 진행되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5월의 신부를 맞이하는 기쁨으로 벅차오르던 그때가 22년이 지났건만 어제일처럼 아직도 아내의 이름 석자를 떠올리면 울렁증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지금. 딸과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고, 우리부부는 어느해보다도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 아침 서울에서 대학다니는 딸에게로 부터 아내와 나의 휴대폰으로 축하문자가 날라왔다. 행복한 아침이었다. 오전에 바쁜일들을 끝내놓고 아내의 손을 잡고 보문호숫가를 산책했다. 물론 오랜만에 하는 산책이 아니라 자주하는 산책이었지만 깨끗한 날씨와 맛물려 보문호숫가를 걷는 기분이 이루 말할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여보! 이제 22년 흘렀는데 앞으로 22년 후에도 이렇게 걸으면 그때도 아름답겠지?" 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고마운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치고 나오는 길, 자동차 운전하면서 라디오 스위치를 누르자 오늘 아침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재통령의 서거소식이 들린다. 참으로 안타까운일이다. 저녁에 아내가 가게로 김치전을 가져왔다. 그래도 우리부부 참으로 재미있게 산다. 그런 결혼기념일이 저물어 간다.
계속되는 흉악 범죄 원인과 처방] 성경이 말하는 분노
계속되는 흉악 범죄 원인과 처방] 성경이 말하는 분노 [국민일보] 2008년 10월 21일 성경에는 분노나 노여움이라는 단어가 200여개 나오는데 신약보다 구약에 많다. 인간의 부정함과 불경건함에 대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분노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주님의 분노는 우상숭배나 배교, 제사 무시 등 불순종의 죄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거룩한 분노다. 하나님의 분노는 거룩함과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비롯된다(레 11:44, 요일 4:8). 반면 인간의 분노는 파멸적이고 어리석은 분노가 대부분이다. 인간의 대표적인 분노는 가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고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에 대해 화가 나서 아우를 죽인다(창 4:5∼7). 가인은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그릇된 선택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에 대한 파멸적 결과를 초래했다. 시므온과 레위도 누이를 추행한 세겜에게 분노하고 파멸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이들은 세겜 성읍을 몰래 기습해 모든 남자를 죽이고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안 물건을 노략하는 등 극단적인 복수를 감행했다(창 34:7∼29). 인간의 분노에 대해 성경은 어떤 입장을 보일까. 성경은 분노를 다 드러내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지적하고(잠 29:11), 분노를 참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있다(잠 14:17). 신약에서 바울은 분노를 '새로운 피조물 된 믿는 이들이 버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엡 4:31, 골 3:8, 고후 12:20). 또 원수에 대해서도 분노하며 보복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롬 12:19). 성경은 분노 그 자체의 감정을 죄악시하진 않지만 잘 다스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엡 4:26)고 말해 분노 대신 용서와 사랑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교회 표지인 [권징과 치리]/딤전5:20/차성도 교수
교회 표지인 [권징과 치리] 딤전 5:20 차성도 교수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딤전 5:20) 무엇이든 그것이 그것답게 하는 특징이 있으며, 이것을 표지라고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표지로 하나님 말씀의 순수한 선포와 순종, 세례와 성찬의 바른 집행, 그리고 권징과 치리의 바른 행사를 제시하였다. 표지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징 또는 기준을 의미하므로, 종교개혁자들은 세 가지 표지가 없다면 교회가 아니라고까지 생각하였다. 과연 지금 우리의 교회에는 이와 같은 표지가 드러나고 있는가? 먼저 교회에 권징과 치리가 바로 행사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요사이 공공장소에서 버릇없고 예의없는 아이들을 너무도 많이 보게 된다. 그 이유는 아이가 버릇없이 굴어도 바로잡아주지 않았으며, 아이가 예의없이 행동해도 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버릇없고 신앙적으로 예의없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활개 치는 것은 바로 권징과 치리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처럼 권징과 치리를 분명하게 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고의적인 범죄를 계속해서 저지르는 사람들을 반드시 교회가 다루되, 모든 사람 앞에서 공적으로 꾸짖어야하며, 이를 통해 나머지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어 같은 범죄를 두려워하도록 경계하는 것이 권징과 치리의 원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가 양적 성장이라는 강력한 동기에 매이게 되면서, 그래서 다른 교회들과 경쟁적 관계가 되면서 권징과 치리가 더욱 사라지고 있다. 교인 한사람이라도 더 늘리는데 집착하면 옳지 못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도 바로잡는 것에 인색하게 된다. 이 교회에서 치리를 받더라도 이웃 교회에서 대환영하며 경쟁적으로 받아드리기에 치리가 더더욱 무력화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들이 더불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교회의 표지인 권징과 치리가 바로 행사되어야만 한다. 권징과 치리가 바로 행사되기 위해서는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의 원리를 따라야한다. 즉, 분명하게 드러난 범죄라야 하며, 성령 안에 깨어있는 자가 온유한 심령으로 다루어야하고, 바로 잡는 것이 목적이며, 자신도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권징과 치리는 교회의 핵심적인 표지이다. 따라서 이 표지가 훼손 되었다면 교회는 옳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만일 이 표지를 상실했다면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권징과 치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제시한 교회의 중요한 표지일 뿐 아니라 성경이 분명하게 명령한 바이다. 이제 교회가 잃어버렸던 권징과 치리를 되찾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교회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교회가 변해야 나라가 산다/2006-12-20
교회가 변해야 나라가 산다 교회 주인과 교회 대표자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우리는 그 답을 잊고 있다. 무어라 대꾸 할 가치가 없지만 굳이 답을 하자면 교회의 주인은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차 적으로는 주인은 교인들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대표는 누구인가? 물론 담임목사이다. 장로는 교인들의 대표이다. 대표와 주인은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표를 주인으로 착각하고 있다. 회사의 대표이사가 회사의 주인이 아니듯이 교회의 대표도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만약에 교인들이 대표를 주인으로 착각해서 왕처럼 받들고, 대표는 자기가 주인으로 착각하여 왕처럼 행동을 한다면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목회세습이 사회문제화 되어 신문과 방송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큰 교회의 교인들이 카리스마적인 담임목사의 목회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 분이 목회를 하지 않으면 교회의 전체적인 틀이 깨어진다고 생각하며 일부 장로들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바뀌면 교회의 방향이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제까지 성장해온 교회가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은퇴는 하지만 계속해서 영향력을 강력하게 행사 해 주길 바라는 교인과 내가 아니면 이렇게 키운 교회가 무너질 수 있다는 떠나는 담임목사의 속단이 합쳐서 생각해낸 방법이 목회세습이다. 교회의 주인과 대표는 다르다. 대표가 바뀌어도 주인이 바뀌지 않는 한 교회는 한결같이 유지된다. 교회의 주인은 교회가 무너지길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주인은 담임목사가 세습되어도 무너지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분이시다. 주인의 뜻과 관계없이 대표자 뜻으로 목회세습이 이어진다면 주인 되신 하나님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표인 목사는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책임과 의무는 어디 갔단 말인가? 이제 교회의 역사와 규모를 자랑할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고 우리교회는 변해야만 한다. 교인의 대표들이 모여서 대표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주인이 대표자를 선택하도록 하여야 하며 이 방법이 성서적이어야 한다. 가롯유다를 대신 할 제자를 뽑을 때처럼, 해당자를 여럿이 있으면 장로들이 기도하고, 대표자 후보들 또한 기도한 후에 제비뽑기라도 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선택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방법을 우리 교회가 먼저 해야 한다.
그 때는 그렇게 살았다/2006-12-16
그 때는 그렇게 살았다. 노아의 아들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방주 속에서 370일을 살고 나온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처음 닥친 문제는 먹는 것이었다. 홍수가 있기 전까지 농사를 짓고 살았으나, 홍수가 끝나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만한 시간이 없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채소만 먹도록 하시다가 마침내 육식까지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9:3) 방주가 아라랏 산꼭대기에 머물자 노아의 가족들은 배에서 나와 처음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식구가 늘어나자 모든 가족들이 그곳에만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첫째 아들 셈과 그의 가족들은 아버지 노아가 그러했듯이 자기들은 제사를 드려야할 의무 때문에 산꼭대기와 가까운 산 중턱쯤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러자 둘째 함과 그의 가족들은 형들의 가족과 함께 살수가 없었기에 형제들이 함께 머물든 산에서 내려와 넓은 평지에서 성을 쌓고 살았다. 그리고 막내 야벳과 그의 가족들은 큰형이 사는 산과 둘째형이 사는 평지에서도 살수 없기에 바닷가까지 나가서 살았다. 산에서만 살던 셈의 후손들은 육축을 통해 옷감을 얻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동생이 살던 평지로 내려가 그곳에서 가축을 기르고 좀더 발달된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함의 가족들에게 가서 산에서 얻은 것들과 바꾸어 가곤 했다. 특히 함의 손자인 니므롯은 특이한 사냥꾼으로 불리었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동물을 잡아 그것으로 장사를 하고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그러고 바닷가에까지 가서 막내 가족들과는 물물교환을 통하여 생선도 먹을 수가 있었다. 이렇듯 온 가족이 밖으로 보기에 오붓하게 사는 것 같이 보여도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각 형제가 나름대로 터전을 잡고 살았지만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장자인 셈은 항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이유로 동생들을 산으로 올라오게 하였건만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들은 빠지기 일쑤였다. 그러자 형제간의 불화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신에 대한 반감으로 함 집안에서는 새로운 신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침내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자 그들의 이름을 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자기들의 이름이 높아지길 바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과 사탄의 계략이 같았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유혹한 그 순간부터 사탄은 인간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부각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모여서 하나님을 향하여 도전장을 던진 것이 홍수가 와도 높이 탑을 지어 놓으면 우리가 다시는 흩어지지 않고 한 가족처럼 살수 있다고 생각하고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 “또 말하되 자, 성(城)과 대(臺)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1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홍수 속에서 구원한 노아의 후손들을 다시 멸망시킬 수는 없었고, 그 일만은 중지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그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언어가 같은 사람들끼리 뭉쳐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창11:8) 그때 그들은 그렇게 살았다.
극동방송 방송선교헌금 모금 방송 원고/2008-07-22
극동방송 방송선교헌금 모금 방송 원고 아이들의 외할아버지, 그러니깐 아내의 친정아버지께서는 월남하신 분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쌀집아저씨 윤영욱집사입니다. 의주가 고향이신 나의 장인께서는 생전에 그곳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시다가 10여 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북에 계실 때 예수을 믿으셨지만 월남하시고 난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하여 교회와 담을 쌓으셨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처가 식구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아내는 대구 어느 교회에서 만나 결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혼 후 본격적으로 장인어른께서 교회 출석을 하실 수 있도록 장기전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장모님 돌아가시고, 그 후 고혈압으로 쓰러지신지 10년, 왼쪽 손과 다리를 불편하신 장인께서 주일에 교회 가시기 위해 바깥나들이 하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황소고집이신 장인어른께 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구 기독교 방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 이거야.” 나와 아내는 최신형 라디오 한 대를 사들고 처가로 갔습니다. 주파수를 기독교 방송에 맞추어 놓고 장인어른을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아버님! 몸이 불편 하셔서 교회 가실 수 없다면 매일 이 방송을 들으시면서 저희들을 위해서 기도 해 주세요.” 신신당부하고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자 장인어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윤서방! 다음 주부터 교회가기로 했네. 방송만 듣고 있으려니 몸이 건질건질 한걸.. 그래서 말이야 옆집노인이 다니는 교회 가기로 했어. 아파트 바로 앞에 있으니 멀지도 않고 좋아!!” 정말 할렐루야 였습니다. 교회로 찾아와서 복음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 계셨던 장인어른께서 방송을 통하여 복음을 접하고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주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예배 참석이 어려운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극동방송의 사명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두신 것의 일부을 기쁜 마음으로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054)256-3000번으로 전화주세요. 방송선교사가 될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장인어른께선 잘계십니까? 감사합니다.
기도
기도 기도에 관한 책을 여덟 권이나 쓴 E. M. 바운즈는 “하나님과 싸우는 씨름꾼의 마음을 가질 때만 가장 고상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이 힘껏 화를 낸다고 해도 창조주께 위협이 될 리가 없다. 그런데 가끔 그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하다. 야곱이 강가에서 하나님과 싸우던 날 밤, 하나님은 야곱에게 붙잡히고 싶어 안달이라도 나신 듯 날이 밝도록 그 자리에 계셨다. 로이 로렌스는 씨름하는 기도의 대척점(對蹠點)은 무관심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한번은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목회자의 간증을 들었다. 어느 날 한 환자가 상담을 요청했다. 그 환자는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퍼진 상태였는데, 전날 밤에 고래고래 소리치며 하나님께 욕설을 퍼부었다며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영생을 얻는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그분을 저주하고 욕한 인간을 용서하실 리가 있겠는가? 목사가 그 환자에게 물었다. “사랑의 반대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환자가 대답했다. “미움이겠죠.” 매우 지혜로운 목사가 대답했다. “아니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형제님은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밤새도록 정직하게 말씀드린 겁니다. 어젯밤에 한 일을 기독교에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바로 ‘기도’입니다. 형제님은 밤을 꼬박 새워 가며 기도를 드린 겁니다.” 「하나님께 가는 가장 쉽고도 가장 어려운 길, 기도」/ 필립 얀시
꿈속에서....../2007-01-02
꿈속에서...... 사람들은 어릴 때 잠을 자다가 꿈을 많이 꾼다. 그 많은 꿈을 전부 기억 할 순 없지만 그 중에서도 기분 나빴던 꿈들은 한 두 가지 기억한다. 어릴 때 꾼 꿈 중에 공통적으로 나빴던 꿈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이나 아니면 높은 곳에서 무엇인가 무너져 내리는데 그곳을 피해 도망하는 꿈이다. 소리를 지르며 새벽에 꿈에서 깨노라면 할머니는 “이놈이 높은데서 떨어진 꿈을 꾼 게로구나” 라고 하시면서 이제 키가 커지겠다고 하신다. 왜 모든 아이들이 그러한 꿈을 꾸게 되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무엇인가가 꿈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리라.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 중에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높은 곳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떨어진 사건이 무엇인가? 성경에 그것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았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높은 바벨탑이 무너진 사건이다. 또 하나의 꿈은 뱀과의 만남이다. 징그러운 뱀이 꿈에 나타나서 아이들로 하여금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리게 한다. 뱀에게 물리는 꿈과 아니면 뱀을 피해 도망하는 꿈 등이다. 뱀의 유혹으로 최초의 인간들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이 무서워서 나무 뒤에 피하여 숨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결과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이후에 그 뱀은 또 다른 모양으로 인간을 유혹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모양으로 인간을 유혹할지라도 그 내면의 모습은 뱀이고 그 뱀은 곧 사탄이다. 뱀의 유혹으로 에덴동산을 잃어버린 인간은 끊임없이 본향을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사탄은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가만두지 않고 계속적으로 꿈과 현실 속에서 괴롭히고 있다. 이것은 사탄이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회복을 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끊으려고 하는 사탄의 계획은 인간을 통하여 실현되는데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역사에 대한 왜곡이다. 가깝게는 조선500년의 역사가 원래의 역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왕위쟁탈에서 이긴 자들의 역사날조임은 누구 나가 아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세종은 자기 위로 6대조 조상까지 성인군자로 기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유일신 사상으로 살아오던 인간에게 접근한 사탄은 하나님을 하늘의 신(神)으로 만들어 놓고 인간에게 땅의 신(神)을 새롭게 만들게 하여 인간에게 남녀가 있듯이 신(神)도 남녀가 있어야 된다고, 그래서 하늘의 신은 남자고 땅의 신을 여자라고, 그렇게 결혼해서 2세신(神)이 태어난다고 인간의 부추기기 시작하자 급기야 어리석은 인간들은 사탄의 꾀임에 빠져 그들 나라의 역사를 출발점부터 고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바탕에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있게 마련이고 이 욕망에 박자 맞추어준 사람이 삼국유사를 쓴 일연과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다. 그들의 하나님을 믿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흰옷을 즐겨 입고 장자제도에 충실한 한민족을 곰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한심한 민족으로 격하시켰다.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의 방법을 폐지시키고 인간의 방법을 만들어 놓았다.
나만의 달란트를 찾는 지혜
나만의 달란트를 찾는 지혜 달란트란 탤런트(talent)라는 말의 어원으로 각자의 타고난 재능, 소질, 수완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습니다. 누구에게나 값진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연마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깊이와 크기가 정해집니다. 내가 성공의 달란트를 갖고 있음을 의심치 말라 재능이없다고 말하며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은 아직 당신 자신의 달란트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성공의 달란트를 발견하십시오. 마음의 눈으로 특별한 가치를 발견하라. 좀더 많은 연봉, 좀 더 높은 지위, 좀 더 큰 집, 이것이 당신이 꿈꾸는 성공의 풍경이라면 당신은 굳이 달란트를 찾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착실히 밞아나가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좀 더 특별한 성공을 꿈꾼다면 반드시 마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라. 위대한승리는 적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경쟁자에서 얻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의 승리를 질투하거나 시샘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당신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는 사람을 만드십시오. 세상 모든 풍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라. 한잔의 물과 한 모금의 국과 한 조각의 빵을 나누세요. 남루할 때는 남루함을, 가난할 때는 가난을 나누세요. 사랑할 때는 사랑을 나누고, 슬플때는 아픔을 나누세요. 힘뜰 때는 짐을 나누고, 어려울 때는 위안을 나누세요. 그래야만 성공을 꿈끌때는 꿈을 나누고, 성공을 이루었을 때는 성공을 나눌 줄 아니까요. 사랑으로 위대한 기회를 만들어가라. 사랑,그자체를 사랑하세요. 그러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의 폭 이넓어질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지면 사랑할 수잇는 기회를 그만큼 더 많이 얻게 될 것입니다. 기꺼이 불편한 길로 가라. 너무익숙하고 편안한 길을 가고 있다고 느껴지면 한번쯤 돌아보세요. 익숙하고 편안한 길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져놓은 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는 오직 성공의 한 면만을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의 성공 속에는 수많은 길들이 깃들여져 있습니다. 불편하고 낯선 길을 가고 있다고 해서 두려워 할 것 없습니다. 그 길 위에서는 오직 당신 자신만이 성공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욕망으로 나만의 성공을 이끌어가라. 욕심많은 사람이 성공합니다. 선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 특별한 성공을 이룹니다. 욕심을 늘려가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욕심을 정화시켜 나가는 사람이 특별한 성공을 이룹니다. 선한 욕망은 특별한 성공의 달란트입니다.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차이를 인정하라. 차이를인정하면 긍정의 힘이 생깁니다. 차이를 부정하면 부정의 힘이 생깁니다. 어떤 성공은 누가 봐도 아름답고 어떤 성공은 누가 봐도 가혹합니다. 긍정의 힘이 아름다운 성공을 이끌고 부정의 힘이 가혹한 성공을 이끌어갑니다. 모든성공의 근원은 나 자신임을 잊지 말라. 나로부터길을 가고 나로부터 성공을 이루세요. 제 아무리 빛나는 승리도, 제 아무리 위대한 성공도 나로부터 빚은 것이 아니면 한낱 물거품에 불과합니다. 내가 있어 사람이 있고 길이 있고 세상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달란트는 바로 나 자신임을 한시도 잊지 마십시오. (이종선의달란트 이야기 中에서)
나의 길거리 예배/ 목동제자교회/ 2011-02-21
나의 길거리 예배 목동제자교회 유머의 힘 언제나 마음은 있었지만 계속되는 지방 강의에 참석치 못한 길거리 예배... 어제 처음으로 합류했습니다. 날이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음지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많이 추웠습니다. 하지만, 얼마전 엄청난 혹한 속에서도...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싶을 정도로 평펑 내린 눈보라 속에서도 길거리 예배를 드린 분 들 생각하자니 차마 \'춥다~\' 라는 말을 내뱉지도 못했습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최고의 난코스인 유인물 배포시간... 당당하게 혹은 활기차고 친절하게 배포하시는 집사님들 사이에 꼽싸리에 껴서 그냥 서성이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무대 위에선 몇 백명이고 몇 천명이고 청중을 휘어잡는데 어려움을 크게 느끼지 않는 저였는데... 그냥 멍 때리고 추워서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 별로 도움이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 뿐... 무거운 마음을 안고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10분간 레크리에이션을 진행 해 달라는 부탁... 앗싸!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 실로, 오랜만에 제자교인(?) 앞에서 짧았지만... 장소도 다소 어려움이 있는 공간이였지만... 함께 큰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 어떤 진행보다도 강한 전율이 느껴지더라구요~. 많은 무대에서 기업체와 관공서, 각종모임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강의도 하지만... 역시, 가장 보람있는 건 어제와 같이 뜻깊은 자리... 우리의 싸움이 다 끝나고 아픈 상처를 감싸주고 회복되어 갈 때... 우리 뿐 아니라 저 본당에서부터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날을 진심으로 기약하며... 하나님~ 우리 좀 웃겨 주세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시리로다 (창21장 6절)
난관을 뚫는 기도
난관을 뚫는 기도 자기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부모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자식 만큼은 성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자녀에게 해가 되는 행위를 일삼는 부모가 많이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어떤 부모는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마다 여지없이 비난의 목소리를 냅니다. 그러면서 하는 레파토리가 있지요. “우리가 너 하나 믿고 이 고생하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말입니다. 이 같은 부모의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훈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자녀로 하여금 빗나간 행동을 일삼는 문제아로 만들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들이 건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 축복의 손을 펴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 자녀들을 소개하고 중보하면서 자녀에게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자녀들의 장래는 부모의 무릎에 달려있다는 말처럼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를 쓰면서 기도를 통해 자녀를 축복하는 겁니다. 자녀의 진정한 성공은 무엇보다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는 겁니다. 그 밖의 다른 문제들은 다 2차적인 것들이지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매일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겁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랑하는 자녀의 장래를 위해 진지하게 무릎을 꿇게 될 때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모와 자녀들을 놀랍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축복하는 부모의 무릎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당신의 갈릴리는 어디인가?/2007-01-25
당신의 갈릴리는 어디인가? 우리의 갈릴리는 어디란 말인가? 부활하신 예수가 여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네 형제에게 가서 갈릴리에서 보자고 해라” 허구 많은 장소 가운데 왜 주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고자 하셨을까? 그곳은 제자들이었던 어부들이 자리잡고 살던 홈그라운드이다.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그들은 그곳에서 생활했다. 예수는 그들을 만나는 장소를 예루살렘성 안에 정하여 부활하신 모습을 성안에 사는 모든 자들에게 보여주어 본인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확인하여 성안을 온통 뒤집을 수도 있었겠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서 만나자고 해서 부활하신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줌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로 하여금 심한 모멸감도 줄 수도 있었고, 빌라도의 뜰에서 만나자고 하여 로마의 질서를 파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갈릴리일까? 이는 아마도 처음 제자들을 만났던 장소, 그 바닷가가 그리웠을 것이고 뿐만 아니라 처음의 다짐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예수는 떡과 고기를 준비해 놓고 제자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세 번씩이나 똑 같은 질문을 베드로를 향해 던졌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우리가 주님과의 첫 번째 만났던 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시간이 있을 것이며, 그때 그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보기 원하셨던 곳은 그들을 처음 만났던 곳이다. 지금도 주님은 처음 장소에서 우릴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주님을 만난다면 무어라고 해야하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밖에 할 말이 없지 않는가. 지금도 주님을 우리를 만나길 원하시고 계신다. 우리의 갈릴리는 어디란 말인가? 올 겨울 그곳 갈릴리로 가자.
또 하루의 시작/2007-02-03
또 하루의 시작 2007년 2월 3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를 태워주고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가게 문을 연다. 그런데 오늘따라 셔트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온다. 힘차게 다시 위로 올려본다. 쓰르륵!! 시꺼러운 소리를 내며 셔터통에 부딫히는 소리가 나고서야 더 이상 내려오질 않는다. 어릴때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것을 기억한다. \'국산품은 두들겨 맞아야 해\' 안방에 자리잡은 텔레비젼의 화면이 지직찍 하면서 잘 나오질 않을때면 어김없이 막내삼촌은 텔레비젼에 다가가서 손바닥으로 텔레비젼의 몸체를 몇번 툭툭친다. 그러면 텔레베젼은 요술하는것 마냥 신기하게도 멀쩡하다. 그때 들은말이다. 키로 현관문을 열고 가게안으로 들어간다. 보온용 히트를 켜고 형광등 스위치를 올리고 책상앞에 앉아 성경책을 편다. 하루에 3장씩 읽기로 스스로 약속을 해두었기에 오늘도 어제읽었던 곳 다음장을 편다. 레위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나와서 사막에서 생활할때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여러가지 규칙에 대한 설명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내용들이다. 그때 그 말씀이 오늘 하나님은 나에게 뭐라고 말슴하시는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지그시 두 눈을 감는다. 지난밤 잠 잘자고 아침에 무사히 기상하게됨을 감사한다. 가족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되길 간청한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세계를 위해 기도로 마무리한다. 기도중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대학원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 하는 예쁜이가 아침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또 하루의 시작이다.
멜 깁슨이 제작한 'The Passion of The Christ'
멜 깁슨이 제작한 '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03-06 01:09:56 read : 14473 .. 멜깁슨이 호텔에서 자살하려고 하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슈퍼스타인 그가 돈을 소유하고, 모든 것을 누린 그였지만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을 알고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났고.. 멜깁슨은 그후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영화를 자비를 들여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종교인들의 공격과 사단의 공격이 있으며, 그래서 전세계 목사님들이 멜 깁슨과 이 영화의 상영을 위하여 기도하며 중보기도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멜깁슨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며 성경적인 영화를 만들어 수많은 사람을 복음화 할 것 이라고 합니다. 80년대의 예수 영화 가 많은 사람에게 복음전도한 것 처럼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도하게 될것이라고 합니다. 봄개봉 예정입니다. <멜깁슨의 인터뷰에서> '영화 촬영 중에 신기한 일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장님이었던 사람 한명이 눈을 떴고, 귀머거리였던 사람 한명이 듣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씬을 찍을 때, 갑자기 번개가 쳐서 한 사람이 번개를 맞았는데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서 걸어갔습니다.'라고 합니다. 7월 28일자 타임지 기사에 예수님 역을 맡은 짐 카비에젤(캐톨릭신자)이 교황님을 만나 강복을 받았다는 얘기와 함께 촬영중 왼쪽 어깨뼈가 탈구 됐었다고 나와있네요. 그렇지만 그는 '다행히 하느님께서 절 도와주고 계십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답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 공식 포스터 <참고 사이트> .. 공식 홈 : http://www.thepassionofthechrist.com/ 예고편 : http://www.thepassionofthechrist.com/trailers/index.html http://www.hollywoodjesus.com/passion.htm 관련기사 (출저) - 굿데이 멜 깁슨 '기적체험'…폭우속 '예수영화' 촬영장만 햇빛 [속보, 연예] 2003년 08월 29일 (금) 18:21 "이 영화는 신의 원대한 계획 중 일부다." 멜 깁슨이 영화 <예수 수난(The Passion)>을 감독하면서 한 말이다.   <브레이브 하트>에 이은 두번째 감독 작품은 깁슨이 찾아낸 것이 아니라 '찾아왔다.' 캘리포니아 말리부의 집에 있던 깁슨에게 갑자기 선반 위의 책 한권이 툭 떨어졌다. 18세기 독일 신비주의 작가 앤 캐서린 엠머리히가 쓴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스러운 수난>이었다. 엠머리히는 나무 십자가 위에서 잠을 잤으며 손과 발에 피가 흐르는 체험을 했던 작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깁슨의 영감이 가득한 이 프로젝트는 그러나 투자자를 찾지 못했다. 라틴어와 아라믹어로만 영화를 찍을 계획이며, 영어 자막도 넣지 않을 것이라는 깁슨의 고집 때문이었다. 결국 깁슨은 사재 2,500만달러를 들여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예수 손발에 못을 박을 때 튀는 살점과 손톱 밑에 흐르는 검붉은 피가 클로즈업되는 등 예수가 처형되기까지 12시간 동안의 일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할 이 영화는 시작부터 난항에 부딪쳤다. 유대인협의회의 학자들은 이 영화가 유대인을 "피에 굶주리고 돈에 혈안이 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는 반유대주의 영화"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깁슨은 "이 영화는 믿음과 사랑, 용서와 희망에 관한 영화"라고 맞섰다. 유대인 학자들은 영화가 완성된 다음에 판단하기로 하고 일단 관망하는 쪽으로 한걸음 물러나 있다.   촬영장에서 깁슨은 예수 역을 맡은 짐 캐비즐, 마리아 역의 모니카 벨루치 등과 함께 라틴어로 기도를 드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얼마전 로마 촬영 때에는 '기적'까지 일어났다고 한다. 캐비즐에 따르면 비가 계속 오고 있는데 촬영장 주위의 30야드 정도 원형 안에만 비가 내리지 않은 현상을 직접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캐비즐은 "관객 동원에까지 기적이 일어날지는 의문"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이 영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많을 것이고 상영 도중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멜 깁슨의 열정이 담긴 영화 <예수 수난>은 내년 봄 개봉될 예정이다. (출저) - 연합뉴스 <美유대교.기독교인, 멜 깁슨 영화 충격 약화운동> [속보, 세계] 2004년 02월 02일 (월) 11:51 (뉴욕 =연합뉴스) 예수의 수난을 그린 멜 깁슨 영화가 반(反) 유대주의를 부추길까봐 염려하고 있는 미국의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은 강좌와 초교파 좌담 및 기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이 영화가 몰고 올 충격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깁슨은 오는 25일 '재의 수요일'에 개봉될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이 유대인들을 비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주 이 영화를 미리 본 반명예연맹(ADL)과 미국유대인위원회(AJC) 대표들은 이 영화엔 그리스도의 죽음에서의 유대인의 역할에 대해 파멸적 내용이 일관되게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 영화 비판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의 극화가 어떻게 해서 중세 시대에 반유대인 폭력을 선동하는 데 이용됐는지를 설명하고 이제는 많은 기독교 종파들이 예수 살해엔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사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하고 있다. AJC 초교파국장 랍비 데이비드 엘콧은 "이 영화 상영의 결과로 학살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이는 종교적 대화를 어렵게 하는 절대주의자의 영화로 우리들이 이 나라에서 상호존중과 종교적 다원주의를 위해 이룩해온 진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반대자들은 영화관 밖에서 거부나 항의를 계획하지는 않고 있다. AJC의 초교파 고문 랍비 제임스 루딘은 "예술가들에겐 나름대로 어떤 종류의 영화든 자기네가 원하는 대로 만들 권리가 있지만 관중 또한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절대적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 운동은 영화개봉에 맞춰 많은 미국 기독교 교회들이 복음주의적 차원에서 대대적인 관람권장 노력을 펴고 있는 데 맞서 펼쳐지고 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비롯한 여러 저명 보수파 기독교인들은 이 작품이 여태껏 보아온 영화 중 그리스도의 최후순간을 가장 강렬하게 그린 영화였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 대한 복음주의 지지자들은 이 영화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죽은 것은 개개인의 죄 때문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라는 깁슨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AJC는 이 영화에 대한 유대인들의 우려를 설명하는 방법을 담은 40쪽 짜리 지침을 전국 지부들에 내려보내고 있다. 루딘은 또 기독교인 동료들에게도 이 영화를 교육도구로 사용치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보스턴대학 기독교-유대교학습센터(CCJ)는 십자가 수난에 대한 복음서의 기사들과 기독교 교회들이 어떻게 유대인들이 신을 죽였다는 주장을 거부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은 관람지침을 우송했다. 개혁파 유대교(RJ) 지도자들은 교인들에게 나눠줄 교육자료들을 준비하고 그들에게 공동체 내에서 좌담을 통해 이 영화를 논할 것을 장려하고 있다고 RJ 종교간문제위원회 위원장 마크 펠러빈이 말했다. 미국복음주의루터교회는 목사들에게 개신교 주류는 복음서 설교를 할 때 유대인들을 비하하거나 비방하거나 또는 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대담하게 가르치라"고 촉구하고 있다. 한편 루터교 커뮤니케이션국장인 에릭 섀퍼 목사는 이영화를 시사한 뒤 이 영화가 반유대적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 영화는 '일부는 복음서 이야기고 일부는 신화'라며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성경에 전적으로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할까봐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Mr. 멜 깁슨이 제작, 감독한 영화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12시간 동안의 상황을 복음서에 기초하여 그대로 만든 영화라고 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보시고는 "예수님께서 당한 고난을 성경으로 봐서는 그 아픔이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눈물로 고백한 영화라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평보다 정말 내 마음을 움직인 말은 멜 깁슨의 고백이었다. .. "내가 지금까지 (영화배우로) 성공한 것은 바로 이 영화를 만들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목회자, 시무장로, 안수집사 워크샵/ 2008-08-21
목회자, 시무장로, 안수집사 워크샵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08년도 하계 올림픽이 정점을 향하던 지난 8월15-16일 경주중부교회 중직자 워크샾이 울산 간월산자연휴양림에서 제1회로 열렸다. 신뢰회복 이라는 다소 황당한 주제를 갖고 1박2일간 열린 워크샵에선 황광석,김형덕,한영준,임지한,박길환,손정명,박홍준,김상주 등 8명의 집사들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장로와 안수집사간의 신뢰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당면한 여러가지에 대한 자유토론이 밤 11시가 훨씬 넘도록 끝날줄 몰랐으나 토론이라는 단순한 단어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되지않아 토론이 제대로 성사되질 못한것이 아쉬웠다. 신뢰를 회복하려고 했으나 한번으로는 어렵다고 느끼기만 했다. 안식년을 맞았지만 모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함께 참석한 윤영만장로의 지난 2년간 바깥교회 나들이을 통해 우리교회를 진단한 나름대로 진단은 우물안에만 지내던 우리에게 신선한 숙제를 남겨두기에 충분했다. 족구하다가 다친 송형경집사와 폭우로인하여 족구 결승전을 하지 못하여 상당히 아쉬워한 임종기목사와 김진성,한광하장로와 신기대, 이인우,최삼준,엄장덕 집사들이 아쉬워 하는 탄식이 들리는 듯하다. 자유토론의 사회를 맡은 신봉희장로와 열변을 토하다 오버한 김상규장로, 전체 준비에 정성을 다한 임상혁목사와 아픈몸을 이끌고 올라온 김진택집사가 고마웠다. 족구공 관리에 전문인이었던 김만식집사, 2조 방 열쇠를 찾지못해 늦게까지 휴양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백용주장로, 마치고 내려오는길 함께 바쁘다고 먼저 감으로서 온천하지못한 서배근장로, 이렇게 모였건만 산을 내려오면서 뭔가 뒤에서 당기는 듯한 느낌을 느낀것은 나뿐만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공동체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아니함으로써, 또한 그러한시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수습하는데는 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다. 넉넉한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각자 시간을 쪼개어 참석한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 *참고* 워크샵 (Work Shop) n 워크샵의 의미 1. 본디 ‘일터’나 ‘작업장’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협의회’나 ‘공개교육’, ‘상호교육’을 뜻하는 교육용어로 사용. 집단사고나 집단 작업을 통하여 성장을 꾀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2. 1960년대 무렵부터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창조하는 모체로서 관심을 끌기 시작. 고정된 이론이나 방법론을 가진 학교 방식 수업의 장(場)이 아니고, 참가자 전원이 새로운 이념과 기술을 함께 모색하면서 훈련을 쌓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 모두의 의견을 공유하고 수렴하는 것이 워크샵의 본질. 의견의 나눔을 통해서 재사회화의 교육 효과와 공동의 정체성 정립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n 워크샵의 진행 방법 워크샵의 몇 가지의 전제, 1. 참가자의 적극적 참여의식이 필요하다. 2. 타인의 의견을 결코 비판하면 안 된다. 3. 조급하게 답을 내려 애쓰면 안 된다. 4. 진행부터 정리요약, 발표까지 참가자가 스스로 한다. n 워크샵의 구성 1. 도입 사회자는 행해지는 워크샵의 의미나 가치, 필요성을 주지시키고 진행방법과 주제, 진행요령 및 당부사항 2. 문제 제기 스스로가 문제를 생각하고 바라볼 수 있는 기초 지식을 제공, 참여자들이 가슴을 열고 사고하고 고민할 수 있도록 문제를 제기해 준다. 3. 토의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참가자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며 토의를 진행한다. 그룹별 토론 (5~8명 정도가 가장 효과적)을 통해 한 팀을 구성하고 팀장, 진행자, 정리자, 발표자 등을 스스로 선정. 4. 정리 토의를 통한 모든 내용을 수렴하여 정리, 내용별로 분류. 5. 발표 브리핑 방법이나 자세, 태도 등을 사회자가 미리 제시하여 효과적이고 정중한 프레젠테이션을 교육하는 자연스런 효과를 기대한다. n 워크샵의 기대효과 워크샵은 20%의 교육과 80%의 상호토론으로 구성되어진다. 20%의 교육을 통해 참가자의 마음을 열어야 하며 80%의 토론을 통해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미래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러한 훈련을 통하여 자신에겐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미래를 그리고 계획함으로써 주인의식이 고취되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포용력이 길러지며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려 고민함으로써 합리적 사고와 기획, 계획의 의미를 인지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소집단을 주도하거나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리더십이 고취되고 참가자 스스로가 처음부터 끝까지를 훌륭히 해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도 가질 수 있다.
바울의 간절한 기도제목 / 차성도 교수
바울의 간절한 기도제목 차성도 교수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엡 3:14-15) 우리들이 가장 많이 드리는 기도제목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주로 중보 하는가? 대부분 가족들의 건강, 자녀의 성적, 그리고 교회의 부흥 등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드려야할 제목들이 많지만,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드렸던 기도를 통해 우리가 진정 드려야할 기도에 대해 배우려한다. 우리들이 강건하길 바라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건강, 재정, 직장 등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강건하길 바라는 것들이 많지만, 사도 바울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처럼 속사람이 강건하길 가장 우선적으로 기도드렸다. 왜냐하면 속사람이 약하고 흔들이면 겉사람도 여지없이 불안정하고 방황하기 때문이다. 속사람이 약해지면 흔히 심리치유나 정신치료를 의지하지만 단지 임시적으로 무디게 느끼게 하거나 잠시 잊게 할 뿐이다. 우리의 속사람은 바울의 기도처럼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강건해진다. 속사람이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강건해야만하기에 바울은 첫 번째로 속사람이 강건해지도록 기도했다. 매일 우리가 의지할 분은 성령님이며, 매일 속사람이 강건하길 기도해야한다. 우리들은 무엇이 있기를 바라는가? 아마도 좋은 집, 평안, 기쁨 등일 수 있겠다. 우리들에게 있어야할 것들이 많지만,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엡 3:17a)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기를 기도드렸다. 만일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진정한 평안이나 기쁨은 기대할 수 없다. 사탄은 조금이라도 틈만 보이면 “네가 한 짓을 다 알고 있지. 네 꼬락서니 좀 보라고. 어떻게 네 마음에 그리스도가 있을 수 있겠어?”라며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없다고 여기도록 최대의 공격을 퍼붓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신 것을 의심하는 순간부터 사탄은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모든 문제는 내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인정해야만 해결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계신다. 그래서 매일 우리는 믿음을 주장해야하며, 매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시도록 기도해야한다. 우리들은 무엇이 그득하기를 원하는가? 아마도 돈, 행복, 교인 등일 것이다. 우리들이 그득하기를 원하는 것들이 많지만, 사도 바울은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b)면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가득하기를 기도드렸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충만을 진정으로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시시한 대용품들만을 구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기대하며 기도하였다. 바울의 기도처럼 하나님의 충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때 임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을 분명히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매일 우리는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도록 그래서 매일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기도해야한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강건하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넘치도록 기도드렸듯이 우리들의 개인기도와 교회의 중보가 더욱 성숙해지기를 기도드린다.
반란을 잠재울 그 무엇이 필요하다/2006-12-19
반란을 잠재울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들의 반란 십대, 그들은 학교를 벗어나 자기대로의 삶을 개척하길 원하다. 때로는 무모한 짓 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반란은 기성세대의 허를 찌른다.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그들을 보면 단지 장발과 통기타를 동경하던 우리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고 기분 나쁘다고 결석하기도 하며 수업시간 중에라도 언제든지 일어나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배짱이 있다. 좋아하는 가수가 공연을 한다면 수업이고 과외고 무시하고 그곳에 가서 죽어라 고함치며 스트레스를 푼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가 하면 돈이 필요할 땐 아저씨들을 상대로 몸과 돈을 바꾼다. 그들에게 죄의식이란 사전 속의 단어이다.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감추어진 진부한 것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토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세대이다. 옷을 입어도 남녀의 구분이 없고, 머리 모양이나 머리카락 색깔 역시 구분하기 어렵다. 귀걸이나 반지의 숫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메일을 보낼 땐 사전에도 없는 단어를 만들어 그들끼리 주고받고 한다.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다고 해서 한때 X-세대라고 했으나 이제 그들을 N-세대(no) 라고 부른다. 모든 것에 대해 부정하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아 가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은 기성세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십대, 그들은 군(軍)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면제 판정을 받아 남보다 일찍 사회로 진출하려고 한다. 그래서 부모를 졸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빠질 궁리에 몰두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어는 기본이고 세계는 한 지붕이다. 열심히 공부한 후 졸업하고 취직해서 월급 받고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적당하게 꾸려가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과외도 해서 돈이 모이면 비행기 타고 배낭여행을 떠난다. 여러 과목에 대해 박식하기보다 한 우물만 파는 세대이다. 십대 때 가출 해본 경험도 있고 학교 다니는 것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으며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모범생의 F.M에 불과하다. 한두 학기 휴학해서 사회 경험도 해보고 외국에 가서 생활도 해보고, 방송국에 기웃거리면서 스타가 될 기회를 얻길 희망해보기도 하며 그런 일 때문에 성형외과에 가서 견적 뽑기를 즐긴다. 연상의 남자와 연하의 여자라는 등식을 과감하게 뿌리치는 그들의 반란은 엄숙하기까지 하다. 사십대, 그들은 산전수전과 공중전까지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재자의 그늘에서 어린 시절을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눈과 귀가 열릴 무렵 민주화를 위해 최루탄을 마셔가며 거리를 헤매어야 했고 경찰봉과 물고문에 친구가 죽어 가는 것을 보며 울부짖어야만 했던 시대이다. 콩을 팥이라고 가르칠 때 묵묵히 따라가야 했고, 경제성장과 독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보며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에 미쳐야만 했던 그들이다. 정직과 성실만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가는 기준으로 알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건만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과 느끼는 것이 모두가 불의와 부정과 독선과 아집뿐임을 몸소 체험하며 스스로 몸부림치며 막걸리 한잔에 통기타로 개똥철학을 이야기하며 끓는 가슴을 달래야만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건만 입사 초기에는 선배들에게 눌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십 여 년이 지나자 컴퓨터에 눌려 제대로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하고 사회에서 후배들에게 추월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우리는 그들을 낀 세대라고 부른다. 그들은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여도 가정과 직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 또한 그들만이 할 수 있는 그들의 반란이다. 이들 모두에게 교회는 반란을 잠재울 그 무엇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