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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함에 관한 설교(2) 찬미에 관한 설교(12) 찬송에 관한 설교(225) 찬양에 관한 설교(286)
참에 관한 설교(109) 참말에 관한 설교(1) 참여에 관한 설교(12) 창대에 관한 설교(12)
창세(창세전)에 관한 설교(2) 창의(창의성)에 관한 설교(1) 창조에 관한 설교(505) 찾아감(찾아가다)에 관한 설교(3)
찾음(찾다)에 관한 설교(11) 채움(채우다)에 관한 설교(1) 책망에 관한 설교(51) 책임에 관한 설교(223)
처녀에 관한 설교(1) 처럼에 관한 설교(2) 처방에 관한 설교(2) 처세에 관한 설교(1)
처음에 관한 설교(3) 천국에 관한 설교(757) 천막에 관한 설교(1) 천사에 관한 설교(154)
천상에 관한 설교(1) 천지에 관한 설교(1) 철학에 관한 설교(6) 첫에 관한 설교(4)
청년(청년부)에 관한 설교(92) 청사진에 관한 설교(1) 청종에 관한 설교(5) 청지기에 관한 설교(176)
청춘에 관한 설교(1) 체면에 관한 설교(1) 체험에 관한 설교(3) 초대에 관한 설교(19)
초막(초막절)에 관한 설교(20) 초상에 관한 설교(1) 초월에 관한 설교(1) 초점에 관한 설교(1)
초청에 관한 설교(30) 총체(총체적)에 관한 설교(1) 최고에 관한 설교(2) 최대에 관한 설교(10)
최상에 관한 설교(1) 최선에 관한 설교(44) 최초에 관한 설교(1) 추구에 관한 설교(1)
추도에 관한 설교(26) 추모에 관한 설교(98) 추석에 관한 설교(46) 추수에 관한 설교(7)
추수감사(추수감사절)에 관한 설교(44) 추억에 관한 설교(1) 축복에 관한 설교(1993) 축제에 관한 설교(21)
축하에 관한 설교(1) 출근에 관한 설교(1) 출발에 관한 설교(137) 출생에 관한 설교(22)
출애굽에 관한 설교(83) 충만에 관한 설교(318) 충성에 대한 설교(452) 충실에 관한 설교(1)
치료에 관한 설교(153) 치유에 관한 설교(346) 친구에 관한 설교(82) 친밀함에 관한 설교(3)
친함(친하다)에 관한 설교(1) 칠(7)에 관한 설교(2) 침노에 관한 설교(16) 침묵에 관한 설교(30)
칭의에 관한 설교(5) 칭찬에 관한 설교(49)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김성광 목사/ 신년축복주일설교/ 2009-01-03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막4:24-25 설교 개요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2. 본문 배경 설명(막4:24-25)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음 -기도 1분→10분, 10분→100분/ 응답(마7:7-8)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 원→100만 원, 100만 원→1,000만 원/ 풍성한 축복(고후9:6-7)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10명, 10명 →100명/ 건강(딤후4:2)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는 믿음 - 봉사, 충성 3분→30분, 5분→50분, 10분→100분/ 기쁨(벧전4:10)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A. 믿음과 축복에 대하여 1. 믿음과 축복 오늘은 마가복음 4장 24-25절의 말씀으로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습니다. 제목이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여러분이 설교를 듣고 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축복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축복의 근원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작은 믿음도 있고, 큰 믿음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큰 믿음을 통해서 크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어떤 가난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예배도 잘 드리고, 또한 새벽 기도까지 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나도 뭔가 좀 하게 하옵소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거지처럼 살지 말고, 나도 정착해서 보람된, 안정된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를 하다가 마음속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지. 나도 뭔가 해야 돼!’ 그래서 콩나물을 도매로 싸게 받아서 아파트 입구에 앉아서 콩나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받아와서 콩나물 장사를 했는데 조금씩, 조금씩 돈이 모여서 몇 년이 되자 조그만 가게를 하나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 가게를 얻어서 열심히 장사하니까 나중에는 두부 공장까지 차리게 됐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두부 공장을 차려서 사장이 됐으니 이제는 인생이 살맛 나고 신났습니다. 그런데 두부 공장을 운영하니까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콩나물 장사할 때는 시간이 남아서 예배에 참석하고, 새벽 기도까지 나갔는데, 이제는 두부 공장 사장이 되니까 바빠서 새벽 기도도 못 나옵니다. 수요일도 못 가고, 금요일도 못 가고, 겨우겨우 주일만 한 번씩 교회에 가는 신앙이 됐습니다. 그는 사업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두부 공장, 두부 공장, 돈을 벌어야 돼. 사업 해야 돼.’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사기꾼에게 걸리고, 운영이 잘 안 되자 사업에만 정신이 빼앗겨서 결국 신앙도 잃어버리고, 두부 공장도 부도로 날아가고, 장만했던 집도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는 알거지가 됐습니다. 또 다시 거지가 됐습니다. 그는 자기 과거를 생각했습니다. ‘아! 그때 새벽 기도 다니면서 콩나물 장사 할 때가 행복했구나. 나는 이것저것 다 잃어버렸구나.’ 여러분, 돈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돈, 돈 하면서 돈 따라갔다가 돈도 잃어버리고, 신앙도 잃어버리고, 인생도 헛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돈 버는 것도 좋고, 출세하는 것도 좋고,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나 우선적으로 이 모든 것은 믿음에 뿌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바탕이 있어야 물질도, 돈도, 명예도, 세상의 좋은 조건도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큰 자산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산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자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안 보이는 자산 중에서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크면 큰일을 할 수 있고, 믿음이 작으면 작은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창조적인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믿음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을 가져서,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막4:24-25)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 마가복음 4장 24-25절에는 예수께서 그릇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헤아린다’는 것은 ‘그릇’을 말합니다. 큰 그릇에는 크게, 많이 담을 수 있지만, 작은 그릇으로는 적게 담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그릇으로 표현했습니다. 믿음은 바로 그릇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나 사랑이나 축복을 받는 그릇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크기의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큰 사람은 크게 역사하지만 작은 사람은 작게 역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아멘’이 많습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아멘’도 적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가져야 되는데 어떤 믿음을 가져야 됩니까? 오늘 봉독한 말씀의 제목처럼 ‘0’을 하나 더 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1이라면 1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2라면 20개의 믿음을 갖고, 믿음이 3이라면 거기다 ‘0’을 붙여서 30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0’을 덧붙여서 10배의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따른 축복도, 은총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많이 해야 되고, 나쁜 일은 안 해야 됩니다. 공부하는 학생의 공부하는 시간, 사업하는 사람의 사업에 대한 열정, 신앙을 가진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앙, 이것은 많을수록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 하나님 앞에 예물 드리는 것, 또한 전도하는 것, 충성, 봉사하는 것, 여기에도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을 저는 넷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라. 둘째,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예물 드리는 믿음에 ‘0’을 하나 더 더하라. 셋째, 전도할 때 전도하는 사람 숫자에 ‘0’을 하나 더 더하라. 넷째, 봉사와 충성에도 ‘0’을 더 더하라. ‘0’을 더할 것이냐, ‘0’을 뺄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0’을 더하는 사람에게는 축복도 더해지지만, ‘0’을 빼는 사람에게는 축복도, 은총도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B. ‘0’을 더하는 믿음의 축복 1. 기도 시간에 ‘0’을 더하는 믿음 - 기도 1분→10분, 10분→100분/ 응답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기도는 조건적입니다. 아무에게나 주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찾게 되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나 문이 열리는 것도 아닙니다. 구하는 사람, 찾는 사람, 문을 두드리는 그 사람에게 찾아지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고, 얻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 말씀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여러분, 조건적으로, 구하는 자에게만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끈기 있게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 기도로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한밤중에 주님 앞에 철야 하면서 기도합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응답 주실 때까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의 그 기도를 통해서 응답하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사무엘상 1장 말씀을 보면,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상 1장 12절 말씀을 보면, ‘그가 여호와 앞에서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깐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도 시간에 따라 다릅니다. 잠깐 기도하는 것하고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 그 기도의 차이는 다릅니다. 기도 시간이 중요합니다. 기도의 정성,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삶의 질과 삶의 양이 달라지게 됩니다. 1분 기도하는 사람과 10분 기도하는 사람, 3분 기도하는 사람과 30분 기도하는 사람, 5분 기도하는 사람과 50분 기도하는 사람, 6분 기도하는 사람과 60분 기도하는 사람은 삶의 질과 양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기도 시간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관심했더라도 이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기도 시간의 연관성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에 몇 시간, 몇 분을 하나님께 기도를 했는가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뭔가 다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능력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시50:15). 기도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진리 가운데 삽니다(시119:18). 생활의 변화가 나타납니다(시121:1-2; 34:4).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사40:31).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요16:24, 빌4:6-7). 기도하는 사람은 순종을 잘합니다(행4:29). 기도를 하면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가 있고(엡6:12, 벧전5:8), 기도하는 사람은 그 기도를 통해서 기적이 나타납니다(약5:16, 행12:5-10, 행16:25).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얼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걱정과 근심과 불안, 두려움, 공포에 사로잡혀 있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벌써 자신감이 넘치고, 그 얼굴에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립니다. 언니 되는 사람이 갑자기 동생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데 오후에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심각한 수술을 받게 됐는데 살아날 가능성은 10%도 아니고,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선택이기 때문에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언니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이제 동생이 세상을 떠나는가 보다. 동생을 잃는가 보다.’ 그는 그 전화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30분을 기도했습니다. 60분을 기도했습니다. 2시간, 3시간, 3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동생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내 동생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3시간 기도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기도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하고, 기도는 응답이 왔다는 믿음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합니다. 3시간 동안 기도하자 그는 마음에 평강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가슴이 덜컹했습니다. ‘아, 내 동생이 떠나는구나. 내 동생이 결국 수술 받고 잘못 돼서 세상을 떠나는구나. 아니야,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내 동생을 살려줬을 거다.’ 하는 생각이 번득 떠오르면서 ‘내 동생을 살려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그 전화는 사망 전보가 아니라 여동생의 상태가 호전되어서 언니를 만나고 싶으니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즉시로 3시간 동안 동생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2시간, 3시간, 몇 시간씩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이 어려움을 당할 때, 병들었을 때, 또는 고통을 당할 때,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교회와 기도원, 내가 속한 모든 곳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도는 응답받을 때까지, 확신이 생길 때까지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시간에 ‘0’을 하나 더 더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아멘’ 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 겁니다. 그러나 ‘아멘’ 못하는 사람은 둘째 단계로 넘어갑시다. 2. 헌금에 ‘0’을 더하는 믿음 - 헌금 10만원→100만원, 100만원→1,000만원/ 풍성한 축복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할 것이요 인색(吝嗇)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9:6-7) 하나님은 기쁘게, 자원해서, 감사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A.D. 55년경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고린도 교회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에는 고통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은 기근과 핍박으로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에게 “너희가 여유가 있으니까 예루살렘 성도들을 좀 도와주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하고 구제를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면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성경을 통해서 기록한 말씀입니다.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은 목사님들이 만든 말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말입니다. 이 말씀에 대한 근거와 배경을 보면,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물질 드리고, 예물 드리는 것이 마치 농사짓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지을 때 씨를 심는 것과 비유했습니다. 농부가 종자 씨를 심을 때 그것을 다 먹어 치우지 아니하고, 밭에 심으면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수확을 얻습니다. 옥수수를 심고, 벼를 심어서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 종자 씨를 다 먹어 버리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자기가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열심히, 많이 심으면 종자 씨도 살아남을 것이요, 또한 그 다음에 심을 많은 씨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농사의 법칙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연법칙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물질적인 관계는 농사를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농부의 마음으로, 농부가 농사짓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시편 126편 5절 말씀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릴 때는 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울어가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는 기쁨으로 열매를 거둡니다. 울 일 있다고 해서, 눈물 흘린다고 해서 씨 뿌리는 것을 포기하면 영원히 포기입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나중에 기쁨과 즐거움과 축복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크게 경영하는 교포가 있었습니다. 대개 교포들이 음식점, 식당 사업을 하면서 세금들을 제대로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로부터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이 먹으면 정부 돈(social security)을 받습니다. 이런 불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미국 비자 얻기가 참 힘듭니다. 이 사람도 시카고에서 음식점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세금을 정당하게 내지 않고 조금 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돈을 버는 대로 전부 다 가게 벽에다가 금고를 만들어서 그 속에다 숨겼습니다. 돈을 벌면 저녁에 벽 속에 감추고, 감추고 한 것이 한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3년쯤 지나서 ‘아, 이제는 몇 십만 달러쯤 됐겠구나.’하고 그가 돈을 계산하려고 그 벽을 뜯었더니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질 않았습니다. 전부 종이조각, 전부 조각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 알고 보니 음식 장사가 음식 하면서 돈을 만지니까 그 돈에 음식 냄새가 배어서 쥐들이 전부 갉아먹고 수십만 달러가 전부 먼지 조각, 종이 조각이 된 것입니다. 세금도 내지 않고, 은행 갖다 주면 적발되니까 은행도 갖다 주지 않고, 숨겨 둔 돈, 몇 년 동안 고생해서 모은 돈이 먼지가 되고 조각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오늘날도 어리석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6장 19-20절 말씀을 정신 바짝 차리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들은 은행에 놓아 두든, 적금을 들든 여러분이 어떠한 방법으로 돈을 쌓았든지 간에 도둑질 당합니다. 이 사람이 가져가고, 저 사람이 가져가고, 가족, 형제, 친척들이 가져가고, 사업해서 망하고, 돈 꿔 주었다 망하고, 이리저리 다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다 쌓지 말고 하늘나라에다가 재물을 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쓸 것을 넘치게 채워 주십니다. 여러분, 돈과 물질은 쓰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쌓아 놓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써야 됩니다. 들어올 때는 들어오고 나갈 때는 나가야 되는데, 욕심과 탐욕으로 말세에 돈을 세상에 쌓아 놓은 사람들은 교만해집니다. 불신앙에 빠집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어갑니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들어온 것만큼 다 없어집니다. 재물이 독수리의 날개 치며 나는 것 같이 날아갈 것입니다(잠23:5). 재벌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회사 사장, 회장들의 돈도 없어집니다. 이 세상의 돈은 왔다 가고, 없어지고, 사라지고, 돌고 도는 것이 돈입니다. 여러분, 돈에 너무 미련 갖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물질로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에 장로님 한 분이 계시는데, 이 장로님은 조그마한 개인 병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장로님은 개인 병원의 의사였지만, 자기 병원보다 교회를 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화가 없다고 하면 자기 병원에 있는 전화기를 떼어 주고, 선풍기가 없다고 하면 교회에 선풍기를 달아 주었습니다. 하여튼 교회에서 뭐가 조금만 필요하다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교회를 위해서 아주 충성하는 그런 장로님이었습니다. 얼마 후 병원이 잘 돼서 이제 그 병원을 확장하려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도 더 크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장로님은 ‘하나님의 집이 먼저지, 병원이 먼저냐?’ 하며 주저하지 않고 병원을 확장하려던 돈을 교회에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러고도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리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그 부산 온 지역에 장티푸스,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장티푸스, 전염병이 도니까 사람들이 전부 병원에 왔습니다. 너무너무 환자들이 많아서 옆에 있는 학교 강당을 빌려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들을 다 수용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돈이 쌓이고 물질이 쌓였습니다. 이 장로님은 엄청난 돈을 저축하게 되어, 이제는 병원을 확장하려던 계획을 아예 취소하고 종합 병원을 지었습니다. 크게 종합 병원을 지어서 그 종합 병원 원장이 됐습니다. 조그만 개인 병원 원장에서 종합 병원 원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더 풍족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작은 부자는 사람의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큰 부자는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심을 통해서, 은총 베풀어주심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을 생각할 때,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어 퍼내는 것과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부어 주시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말3:10).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 ‘0’을 뺄 것인가, ‘0’을 더할 것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10만 원 드릴 사람이 100만 원 드리고, 20만 원 드릴 사람이 200만 원 드리고, 하나님 앞에 물질을 더 드려서 하늘나라 은행에 적금하고, 하나님 앞에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10%, 20%, 30% 이자가 아니라 30배, 60배, 100배로 채워 주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풍족하게 하시고, 사업을 크게 번창시키시고, 여러분을 통해서 물질 축복의 영광을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중에서 크게 재물의 축복을 받는 분이 많이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3. 전도한 사람의 숫자에 ‘0’을 더하는 믿음 - 전도 1명 →10명, 10명 →100명/ 건강 “너는 말씀을 전파(傳播)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警責)하며 경계(警戒)하며 권(勸)하라”(딤후4:2)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전도하지 못한 것이 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전도를 해야 됩니다. 본문에서 전도에 대한 단어는 무엇입니까? ‘전파하라’입니다. 이 ‘전파하라’는 본래 헬라어 성경에 ‘케륏손,’ ‘공포를 하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말씀을 공포를 하라.’는 명령적인 단어로 씌어 있습니다. 또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기회를 보지 말고 항상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칩니다. 안 믿는 사람을 믿게 하고, 잘못 믿는 사람을 올바로 믿게 하는 그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1명 전도하던 사람에게 ‘0’이 붙으면 10명 전도하고, 1명을 가르치던 사람이 10명을 가르치고, 10명을 가르치던 사람이 100명을 가르치고, 5명을 전도할 사람이 50명을 전도하고, 50명 가르칠 사람 500명 가르치고, 전도의 숫자에도 ‘0’을 하나 더 더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할 때 도와주시고 역사하십니다. 고린도전서 9장 16절 말씀에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복음(福音)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니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禍)가 있을 것임이로라.” 전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이다. 화가 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대개 보면, 전도하지 않아서 화 당한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몸이 늘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 가보면 특별한 병명도 아니고, 병원 가서 낫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전도하지 않아서 건강을 잃어버리고, 지위를 잃어버리고, 전도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빼앗기고 떠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전도를 해야 전도하지 않는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7절 말씀에도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康健)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傳道)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신 것은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육체를 건강하게 하십니다. 정신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시험과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기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은 왜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보람도 없습니다. 의미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는 자는 멸망치 않습니다. 저는 풍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씨를 뿌려야 거두는 재미도 있지, 심는 것도 없고 거두는 것도 없고 매일 남 뿌리고 거두는 것만 구경하면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여러분, 전도에 구경꾼이 되지 마시고, 전도하는, 씨 뿌리는, 전도의 일꾼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도 보면 전도 열심히 하는 교회가 크게 부흥합니다. 회사도 전도하는 회사가 크게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타락합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게을러집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동대문에서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교회는 왔다 갔다 하나 별로 남에 대한 관심도 없고 전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돈 버는 재미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30년 동안 돈을 벌어서, 젊은 나이에 시작했으나 이제는 머리가 허옇게 되고 60이 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출근하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예수님 믿으세요.” 하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 전도하는 사람을 만나자 그는 마음에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나는 돈만 벌려고 한평생, 젊었을 때부터 이렇게 백발이 되도록 ‘돈, 돈’하고 살았는데, 저 젊은이는 전도를 하다니…. 전도를 하는구나. 나한테 전도를 했어.’ 그러면서 그는 자기 인생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쓰지도 못하고 죽을 돈을 왜 이렇게 계속해서 벌고 또 버는 건가? 내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 벌고 써야지 쓰지도 못할 돈 자꾸 쌓아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아들, 딸한테 물려준다고 해서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돈 때문에 방탕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그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합니까?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얼마든지 쓸 곳이 많은데, 오늘날은 돈 벌어서 자꾸 쌓아 두는 것만이, 그것만이 좋은 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도 이제는 좋은 일 좀 해야지. 삶에 대한 보람을 느껴야 해.” 그렇게 생각한 후부터 그는 물건을 팔면서 물건 속에다 전도지를 한 장씩, 한 장씩 넣어 줍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제는 전도가 삶의 목적이고, 장사는 부업입니다.” 그 전에는 돈 버는 것이 전문이고 교회 나가는 것이 부업이었는데, 그가 인생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나서는 이제 전도하는 것이 목적이고 장사하는 것은 부업이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사람은 삶에 의미가 있습니다. 보람도 있고 기쁨도 있고 삶의 목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고 돈, 돈, 돈 하면서 세상 쾌락, 세상 죄악, 세상으로 흘러가는 사람은 결국 그 세상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지 못하고,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지 않으면 죄를 범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전도하는 사람에게 상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 사장님이 교회에 10년 동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목사님이 전도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그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내가 교회 나오는 것이 좋고 하나님 믿는 것이 좋다면, 왜 좋은 것을 나 혼자만 믿는가? 진정으로 내게 도움이 되고 좋으면 남에게도 권해야지. 음식 먹고 맛있으면 그 음식 먹어보라고 하고, 내가 좋은 건 좋다고, 다른 것은 다 말하면서 왜 교회 나오는 것, 예수 믿는 것, 하나님 믿는 것은 왜 남에게 전하지 못하는가? 나도 전도해야 되겠다.’ 그래서 교회 나온 지 10년 만에 그는 전도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는 사무실에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나도 이제는 전도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내 사무실에 먼저 들어오는 사람에게 전도하겠습니다.’하고 기도하고 결정을 했는데, 마침 직원이 결재 서류를 가지고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왔습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이리 오게. 잠깐 할말이 있네. 자네 교회 다니나?” 직원이 깜짝 놀랐습니다. “사장님, 웬일로 교회 다니냐고 물어보십니까? 결재해 주십시오.” “아니야, 결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네. 내가 10년 동안 교회 다니고 예수 믿어도 한 번도 자네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지? 내가 이제부터 자네에게 전도를 해야겠어. 교회 나가세.” 그랬더니 이 직원이 “사장님 고맙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10년 동안 교회 나가는 것 알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좋아서 나가는지 나빠서 나가는지 그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데 가면 나보고 한 번도 같이 가자는 소리를 안 하는가? 아마 사장님은 나 같은 사람은 상대도 안 하는가 봐. 아마 교회는 나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나 봐.’하고 생각했는데 이제 사장님이 나보고 교회 가자고 그러니까 같이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사장님과 꼭 같이 가겠습니다.”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여러분, 의외로 전도하고자 하면 쉽게 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좀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부인이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데, 부모가 좀 같이 가자고 했으면 좋겠는데, 전도하지 않으니까 옆에서 구경만 하고 방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가족 중에서, 또는 형제, 이웃, 친척, 친구 중에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말씀을 증거 할 때, 전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전도하는 자에게 물질을 주시고, 전도하는 자에게 기쁨을 주시고, 전도하는 자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전도하시는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봉사와 충성에 ‘0’을 더하는 믿음 - 봉사, 충성 3분→30분, 5분→50분, 10분→100분/ 기쁨 “각각 은사(恩賜)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恩惠)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은사를 받은 대로, 은혜를 받은 대로, 하나님 앞에 사랑과 축복을 받은 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청지기’라는 말 많이 들으셨지요? ‘청지기’라는 말은 헬라어로 ‘오이코노모스’인데, 그 뜻은 ‘가정 관리자, 가정의 살림을 맡은 종’을 말합니다. 청지기는 가정 살림을 맡은 종입니다. 주인이 바쁘고 할 일이 많으니까 집안 살림을 다 맡아 하는 종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재산을 관리하도록 위임된 사람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사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회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것에 종으로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종은 자기의 소유가 없습니다. 다 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잘만 하면 주인이 상도, 보상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직분도 주시고 은사도 주십니다. 예언의 은사, 섬기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구제하는 것, 다스리는 것, 긍휼을 베푸는 은사를 직분을 위해 주셨고, 또한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영 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분도 주시고 이 모든 은사도 주셨습니다. 이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입니다. 집사, 장로, 권사, 구역장, 조장 이것도 다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직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청지기 직분입니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청지기 직분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이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 직분이란 사실을 아십니까? 판사, 검사도 다 청지기입니다. 회사 사장들도 다 하나님 앞에 청지기입니다.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늘과 땅을 다 창조하신 하나님께 속하였고, 이 모든 직분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인생을 깨달아야, 겸손한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은총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축복받고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 28장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은총과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예수께서 달란트 비유를 설명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맡은 종이 있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감췄다가 가져와서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 받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네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열 달란트를 만들어가지고 주인에게 왔을 때 주인이 칭찬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3절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주인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 어디 있습니까? 하늘도 땅도 세상 만물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창조된 모든 것의 주인은 바로 하나님이란 사실을 인정 해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에도 “…죽도록 충성(忠誠)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충성하는 사람은 어떻게 충성해야 합니까? 목숨 걸고 충성하는 겁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놀아 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눈치 봐 가면서, 한눈팔면서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죽도록, 목숨 걸어 놓고 충성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봉사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봉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집니다. 보람과 기쁨이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보람과 기쁨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3분 봉사하는 사람은 30분 봉사하고, 5분 봉사, 충성하는 사람은 50분 봉사하고, 10분 봉사하는 사람은 100분 봉사하여 봉사하는 시간을 늘리고 봉사하는 질을 높여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 조장, 구역장, 선교회, 성가대, 교회학교로 봉사해야 합니다. 예배만 보고 훌쩍 가는 것은 진정한 봉사·충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초신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도 봉사하게 하옵소서. 충성하게 하옵소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교인 되지 말게 하시고, 무언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봉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채문경 교수라는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그분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나가서 풍금으로 반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훌륭한 반주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피아노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반주하기 시작하여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 반주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반주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그는 학교 공부보다 교회 반주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음대 피아노과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과에 입학하고 나서도 성가대 반주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독일 베를린 음대 성악과 교수가 내한했다가 반주자가 필요해서 누가 반주를 잘하는지 수소문했는데, 이 채문경 학생이 반주자로 채택이 됐습니다. 반주를 하고 나니까 그 독일 대학 교수가 유학을 제안했습니다. “반주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데, 독일로 유학 가고 싶으냐?” “네, 가고 싶어요.”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갔습니다. 독일로 유학 가서 오르간을 공부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 초대 오르간 연주자로 초빙 받아서 상임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국제 초청 오르간 연주를 하였고, 국제 콩쿠르 심사 위원이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가 되고 그는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릴 때 교회에서 풍금, 피아노 만지면서 ‘하나님, 이 반주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반주, 반주, 반주’하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국가의 행사에도, 또 국제적인 콩쿠르에도 관여하게 하시고, 대학 교수가 되기까지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봉사를 할 것인가? 무엇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할 것인가? 비록 적은 일이라 할지라도 충성하면 큰 것 주시고, 큰 것까지 충성하면 더 큰 것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C. ‘0’을 더하는 믿음으로 축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자 믿음에 ‘0’을 더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 설교 제목에 은혜가 됩니까? 믿음이 생깁니까? 올 한 해 그렇게 살아 보시겠습니까? 가난과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적은 믿음으로 겨우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큰 믿음을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왕 가지고 나오려면 큰 것, 큰 그릇을 가지고 나와야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도 많이 담지, 매일 손바닥만 가지고 나오니 뭐 담길 게 있습니까? 손바닥 내밀어봐야 비가 요리 떨어지고 조리 떨어지고 남는 게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받으려면 그릇이 커야 되는 것처럼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못을 파면 연못 물이 출렁거리고, 댐을 파면 댐 물이 출렁거립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는데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마시고 믿음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0’을 더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부자 되고 물질 축복 받으십시오. 기도해서 응답 받으시기 바랍니다. 전도 많이 해서 많은 사람 앞에 존경과 칭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 앞에 봉사·충성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만 봉사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도, 동창회에서도, 사회에서도, 또한 교회에서도 봉사·충성 많이 할 때, 충성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은총과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전라북도 어느 교회에 열심 있는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늘 하나님께 충성하고, 더 많은 것으로 헌금할 수 있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형편이 매우 가난하였습니다. 한번은 교회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목표액을 정하고, 전 교인이 작정 헌금을 하기로 하고, 먼저 제직들부터 모범을 보이려고, 모두 모여서 한 사람, 한사람 돌아가면서 자신의 작정 헌금 액수를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자기는 맨 나중에 작정하겠노라고 지켜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형편이 어려우니까 그러려니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작정 순서가 끝나고, 이 집사님이 작정할 순서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집사님은 다른 사람들의 작정 헌금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에다가 '0'을 하나 더해서 자기의 작정액으로 정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집사님은 날마다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작정 헌금을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집사님을 서울로 옮기게 해 주시더니, 장사를 시작하게 해 주셨습니다. 집사님은 얼마나 장사가 잘되던지, 작정한 건축헌금을 모두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서 큰 부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은 서울 어느 교회의 장로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0'을 더하는 믿음으로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참석한 여러분, '0'을 더하는 큰 믿음을 가져서, 차고 넘치는 큰 축복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성광 목사(서울 강남교회)
100배의 결실을 맺는 해/ 마13:1-9/ 신년축복주일설교/ 2010-01-03
100배의 결실을 맺는 해 마13:1-9 “올해는 명성과 칭찬을 얻읍시다.” 2010년 영신예배로 새해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첫 번째 주일을 맞아 하나님 앞에 감사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올해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는 원단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에 따라 언약 잡은 우리의 발걸음마다 하나님께서는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올 한 해 가정·직장·사업장·학업·지역·세계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제목과 같이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백배의 결실을 맺는 사실적인 응답의 한 해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분명히 인도하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사단 권세 아래 놓인 창세기 3장 현장에서, 구원받은 천국 백성이 어떻게 해야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 비유를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밭’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마음밭을 이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절대 불변, 절대 진리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사 40: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 말씀은 완벽한 성취가 보장된 언약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씀을 받는 마음밭입니다. 마음밭이 어떤 성태인가에 따라 언약 성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들러리가 되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언약 성취의 주인공이 되어 백배의 결실을 맺는 응답을 맛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결실의 걸림돌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해 네 가지 종류의 밭을 말씀하셨는데 그 중 세 가지는 결실을 맺지 못하는 밭이었습니다. 과연 어떤 상태의 밭이 결실의 걸림돌이 되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 13:3~4) 당시의 농지는 지금처럼 잘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 길과 밭이 정확하게 구분된 것이 아니어서 씨를 뿌리면 바람에 날려 길가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길 가에 떨어진 씨들은 지나는 사람에게 밟히기도 하고 새들이 주워 먹기도 해서 결실을 맺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19절에서 이러한 길가와 같은 마음밭이 어떤 영적 상태인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굳은 상태라고 밝히시며, 이렇게 말씀을 마음에 심지 못하고 있으면 악한 자가 와서 다 빼앗아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사단이 모든 것을 다 채간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큰 공격을 하는 시간이 바로 예배시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사단은 여러 가지 가라지를 뿌립니다. 잡생각이 나게 하고 의심과 부정적 생각을 심어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마음 중심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크리스천이 되고 맙니다. 은혜도 못 받고 응답도 받지 못하니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2010년에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는 응답을 받기 위해 가장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이 바로 예배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배에 참석하는 수준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돌리며 강단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영적 소통이 회복되어야 사실적인 응답을 받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말씀을 들을 때 내 경험, 내 선입견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길가와 같이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은 자기 경험, 자기 생각, 자기 기준으로 가득 찼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 교만이라 합니다. 영적으로 교만하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기 위해 무너뜨려야 할 첫째 걸림돌이 바로 교만입니다. 새해에는 자신의 기준이 아닌 말씀으로 기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결실을 맺는 데 방해가 되는 둘째 걸림돌은 돌밭과 같은 마음밭입니다.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마 13:5~6) 돌밭에 뿌려진 씨는 밭에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합니다. 싹은 곧 나오지만 해가 돋은 후에 뿌리가 곧 타서 말라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 상태를 20~21절에서 해석하여 주십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 13:20~21) 돌밭과 같은 마음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문제와 사건이 발생하면 너무나 쉬이 시험에 들고 넘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완벽한 복음의 참 진리가 여러분 마음밭에 100%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문제와 사건이 올 때 쉽게 좌절하고 맙니다. 2010년 다락방 원단 메시지로 세 가지 치유에 대한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과거 치유·오늘 치유·미래 치유가 되어야 RUTC시대의 새로운 시작에 걸맞은 응답을 맛볼 수 있습니다. 과거가 치유되지 않으면 그것이 결국 재앙의 통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이 치유되지 않으면 그것이 미래 재앙의 발판이 됩니다. 미래 치유가 되지 않으면 후대에 임하는 재앙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과거의 모든 상처를 오늘 깨끗이 치유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오늘 하루를 가장 아름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이 치유되면 됩니다. 오늘 하루를 후회 없는 기쁨의 날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는 삶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 남은 삶이 후대를 위한 발판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에게 인생의 과거·현재·미래 모든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벽히 해결되었다는 복음의 참 축복이 온전히 뿌리내려지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결실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가시떨기밭과 같은 마음밭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마 13:7) 이는 말씀을 듣고 어느 정도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의 영향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이릅니다.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가시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 말씀하십니다. 서론 때문에 본론을 놓치는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의 눈을 열기를 바라십니다. 눈앞에 있는 모든 서론적 가시덤불은 성령의 불로 불살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를 한다고 하여 그 상황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고 권면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다 맡기시기 바랍니다. 모두 맡기고 여러분 마음과 눈을 사람 살리는 현장으로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전도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왜 여러분에게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는 언약을 주셨을까요? 여러분으로 하여금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일으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 속에서 증거를 보여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모두가 생명 살리는 문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사업 현장에서, 직장 현장에서, 학업 현장에서 인정을 받으면 그것이 전도의 문이 됩니다. 여러분의 삶 자체를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으로 삼고 계신 것입니다. 영적인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실속 있는 힘찬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해 여러분이 참되고 실속 있는 본론에 집중하는 삶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결실의 걸림돌을 모두 기경하고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는 참된 언약 성취의 주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결실의 디딤돌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마 13:8) 백배로 결실을 맺는 마음밭은 바로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마 13:23) 누가복음의 내용을 보면 이와 같은 내용이 더욱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눅 8:15) 좋은 땅, 옥토와 같은 마음밭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것을 실제 삶 속에 적용하여 백배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성취될 언약의 말씀, 하나님의 시간표로 알고 받는 사람은 말씀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 자세가 백배 결실을 맺는 디딤돌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영적 자세를 가지고 백배 결실 맺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막하면 떠오르는 동물은 낙타입니다. 낙타는 몸 구조가 사막의 극한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낙타의 여러 가지 특징 중 하나가 되새김질입니다. 낙타는 하루 종일 되새김질을 하는데 그것이 뜨거운 사막에서 지치지 않고 견디는 비결입니다. 사막 한복판에는 먹이와 물이 없습니다. 때문에 낙타는 먹이를 몸속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되새김질을 하여 에너지를 얻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낙타는 사막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창세기 3장 세상은 사막과 같은 메마른 현장입니다. 이런 현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백배의 결실을 맺고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될까요? 강단에서 선포되는 메시지에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풍성히 받아야 합니다. 더함도 뺌도 없이 말씀을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삶의 현장에서 그 말씀을 되새김질하여 문제와 사건이 닥칠 때 적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검을 가지고 싸워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방패로 사단의 공격을 막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때 비로소 백배의 결실을 맺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맡겨진 직분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언약 잡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으며 생명 살리는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한 해 동안 건강이 회복되고, 경제가 회복되는 축복을 누리면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언약의 말씀을 통해 ‘백배로 결실 맺는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의 걸림돌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좋은 밭이 되어 말씀을 그대로 받음으로 백배로 결실을 맺게 하옵시며,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도록 축복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100배의 축복/ 창26:12-15/ 신년축복주일설교/ 2012-01-03
100배의 축복 창26:12-15 창세기 26장에는 복(福)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창26:3, 4, 12, 24, 29).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6:3, 4). "이삭이 그 땅에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창 26:12).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 지라"(창 26:24). 확실히 히브리 민족과 우리 한민족은 '복(福)'을 좋아하고 '복'을 사랑하는 복의 민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복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 천지창조의 역사 중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최초로 하신 말씀은 복(福)을 받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福)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인간에게 복(福)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류 역사는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고 복을 빌어주면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우리 민족은 복을 사랑하고 복을 빌어주는 복의 민족입니다. 그러면 복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복은 어디에서 옵니까? 1. 하나님은 복(福)의 근원이십니다. 꼭 올해에는 평소보다 백배의 복을 받도록 노력합시다. 인간에게 받은 복은 속히 빠져나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은 속히 떠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제가 성경학교 졸업 설교를 마치고 기차 안에서 수요일 설교 준비를 하면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한 중년 신사가 내 곁에 와서 말하기를, "선생님은 교인인 모양인데 세상에는 복이란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꺼칠한 손을 내게 내어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이 손으로 많은 돈을 벌었소. 그래서 좋은 집도 사고 가게도 확장하고 많은 종업원도 두고 많은 재산을 모았소." 이 신사는 5.16 당시에 금은방을 경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화폐개혁 바람에 금값이 몇 배나 뛰는 바람에 갑자기 거부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으로 자기의 외딸이 병석에 누웠습니다. 뒤를 이어 아내가 건강을 잃고 눕고 마침내는 자신마저도 건강을 잃고 불과 2-3년 만에 전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이제 건강을 회복했으나 한 칸의 전세방도 얻지 못할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절로 들어온 복이 저절로 나가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절로 들어온 복은 저절로 다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결코 하나님의 허락 없이 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한번은 어느 여집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목사님 방에 내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나 봐 주세요! 내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서 난데없는 반지 때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자는 아이들을 깨고 베개를 털고 이불을 뒤지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반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오쯤이 되어서 그 집사님이 잃었던 반지를 찾아서, 기쁘게 돌아오면서 몇 번이고 "목사님, 죄송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자기가 오던 길을 자세히 살펴보고 가는데 시장통 큰길에 떨어진 반지를 누가 흙 위에서 발로 밟고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시장통에 던져 놔도 가져가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 주님이 축복의 문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계3:7).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그러므로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올해에는 우리도 이삭처럼 백배의 복을 받읍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 누가 감히 하나님의 허락 없이 그 복을 가져갈 수 있습니까?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이 백배의 복(福)을 주십니까? 창세기를 보면, 가나안 땅에 큰 흉년이 세 번 들었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러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이삭 때에 두 번째 흉년이 들었으며(창 26:1), 야곱 때에도 가나안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창42:1, 2). 사람에게 있어서 뭐니 뭐니해도 배고픈 설움만큼 큰 설움은 없습니다. 이삭은 흉년의 굶주림을 면하려고 당시 세계의 곡창지대로 유명한 애굽 땅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떠나는 이삭을 하나님께서 부르셨던 것입니다. 이삭아! 이삭아!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경우, 나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고민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내친걸음에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더 이상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가던 발걸음을 중지하고 그랄 땅에 머무르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백배의 복을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백배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모리아산으로 향하던 이삭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은 나무를 지고 모리아산을 오르면서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창 22:6, 7). 아브라함은 말하기를,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한 손에 불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바칠 때도 이삭은 반항 없이 순종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 117세요, 이삭의 나이는 17세입니다. 하나님은 확실하게 순종하는 자에게 백배의 복을 주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왜 애굽에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애굽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나라입니다. 우상숭배의 나라입니다. 죄와 불신으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범죄와 타락의 장소입니다. 특히 도덕적으로 문란한 곳입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에 가서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겼던 곳입니다. 우리 속담에,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白鷺)야 가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나안은 교회요 애굽은 이방 세상입니다. 성도는 비록 흉년이 들어도 하나님의 교회를 떠나 애굽과 같은 세상에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3. 하나님은 약속을 굳게 믿는 자에게 백배의 복(福)을 주십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두 번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1)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3) 2)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어 천하만민이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게 하리라"(4)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두 개의 언약입니다. 구약(舊約)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입니다. 신약(新約)은 메시야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는 언약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믿는 것입니다. 이삭이 약속된 언약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해에 백배의 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손입니다. 믿음은 축복을 받는 손입니다. 믿음이란 손이 없으면 은혜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비처럼 내려주시는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랄 땅에 내려가 첫해에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소출을 내었습니다. 그가 평소에 십 배의 수확을 올렸다면 그 해는 천 배의 소출을 냈다는 말입니다. 그가 너무도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자 블레셋 사람들이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이삭이 그 땅에 농사하여 그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창 26:12-14).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받되 이방인이 시기하리만큼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어느 나라나 일인당 국민소득이 오천 불 이상이 되면 사람들이 점차 교회를 떠나게 된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제가 풍요로워지자 한국교회도 이런 의미에서 적신호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건강한 믿음으로 무장해서 경제적 풍요 가운데서도 주님을 더 의지하고 더 열심히 전도하고 더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하며 모이기를 힘쓰겠다고 다짐하며 결심합시다. 이삭은 하나님의 복(福)으로 이방에 와서 이방인이 시기하리만큼 거부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삭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는 우물도 파서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샘의 근원이란 복의 근원이란 의미입니다. 사막에서 샘 근원을 얻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샘 근원을 가지고 있으면 성주가 될 수 있고, 추장이 될 수 있고, 지주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시에 사막의 샘 근원은 현대의 유전보다 더 큰 재산이었습니다. 이삭은 이와 같은 백배의 복(福)을,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그리고 언약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우리도 올해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을 믿음으로 백배의 복을 받아서 지난날의 부족과 손실을 모두 채우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0배의 축복을 받는 생활/ 창26:12
100배의 축복을 받는 생활 창26:12 할렐루야!! 1998년 들어서 세 번째 맞는 주일입니다.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크신 은혜 와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사랑하는 창정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우리 창정교회 창립34주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여기에 초라하게 교회가 세워지고 거기서 찬송이 울려퍼지며 이 땅의 복음 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시작이 되어서 오늘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은 우 리를 도와주셨고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대한 기념식은 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이곳에 하나님의 교 회를 세워주신 것을 감사하고, 또 오늘까지 역사속에 함께 해 주신 것을 감사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교회에 나와 여러분을 세워 주셔서, 하나님의 지상 최대의 사명을 감당케 하도록 세워 주신것도 감사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 다.<아 멘> 사람들은 1년중 년초가 되면 대개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됩니다. 금년에는 작년보다 생활도 나아지고 사업도 나아지고 모든 것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 감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만이 간직하는 소박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1년의 신수길흉을 미리 알고 싶어서 점쟁이도 찾아가고, 무당도 찾 아가고, 토정비결도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보면 오르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 스리시는 하나님뿐이시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30:15-16)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 며9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 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시간 내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금년 한해도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 오직 하나님 뜻대로만 산다면 금년 한 해도 복된 한 해 가 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과, 신상의 건강의 축복, 천대까지 이르는 자손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그래서 오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독자 이삭에 대하여 생 각하면서 이삭이 받은 축복을 나도 금년에 받아야 되겠다는 그런 믿음을 가지 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를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12지파의 조상 야곱의 중간에 끼어서 별로 두드러진 활동도 없는 평범한 이삭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니까 이삭은 너무도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나, 물질적으로나, 자손으로나, 그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이 골고루 축복을 받 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자손적으로, 들어가도, 나가도, 외 양간의 송아지도, 떡반죽 광주리도, 쌀뒤주도, 밀가루 항아리도, 기름병도, 들에 서나 성읍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축복을 골고루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삭이 무슨 축복을 어떻게 얼마나 받았는가를 알 아보겠습니다. 1. 이삭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복중에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축복입니다. 임마누엘, 즉 \\\\\\\"하 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는 이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시기 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너희와 영원 토록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 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또 승천하시기 직전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 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순간도 하나님은 보혜사 성령으로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예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아주시고 계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26:2절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행동을 한 사람입니다. 흉년이 들어서 먹고 살기가 어려 워서 애굽으로 이사를 가는 도중 불레셋나라 그랄이라는곳에 도착하였을 때 하 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이 어디입니까? 이방나라 우상의 나라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백성입니다. 곧 마귀의 세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애굽과 같은 세상 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말씀이고 믿음과 신앙이 내려가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갔다가 큰 고생과 망신만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모압으로 갔다가 남편죽고 아들 형제도 죽고 돌아왔 습니다. 애급으로 가려는 이삭에게 하나님은 그리로 가지 말라고 알려 주셨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신앙과 믿음이 내려갈 때 책망과 경종을 울려주는 것 은 큰 축복입니다. 이삭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삭과 같이 가서는 안될곳 가지 못하게, 그리고 인도하시고 보호 하시는 보혜사 성령의 축복을 받는 금년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아 멘> 2. 이삭은 가정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9다시 말해서 아내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아름답 고(예쁘고) 근면하며 성실한 여인입니다.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웠든지 이삭이 그만 불레셋나라 사람들에게 아내라고 말하면 죽이고 뺏어갈까봐 누이라고 할 정도로 예뻣습니다. (여자는 예쁘고 봐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창세기 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구하려고 그 의 충복 엘리에셀을 메소보다미아에 보냈을 때에 엘리에셀이 우물가에서 쉬고 있을 때에 리브가 처녀는 양떼를 몰고와서 물을 먹이고 엘리에셀이 물을 달라 고 하니 친절하게 대접도 하고 열마리의 나귀에게도 물을 길어 먹였습니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마음씨 곱고 얼굴이 어여뿐 처녀를 아내로 맞이한 이삭은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많이 배우고 혼수 많이 해온 처녀보다 신앙 좋고 순종할 줄 알고 근면한 여인이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시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 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잠31:10-12)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 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아니하느니라\\\\\\\" 남자는 아내를 잘 만나야 그 가정이 행복합니다. 여자는 남편을 잘 만나야 그 가정이 행복합니다. 그것은 신앙안에서만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의 자녀는 행복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의 가정에 이삭의 가정과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이삭이 그의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이고 살다가 그만 들키고 말았습니 다. 그런데도 불레셋 나라의 아비멜렉은 오히려 백성들에게 리브가에게 손끝하 나 대지 못하게 하고 그런자가 있으면 죽일것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 어떤 형편속에서도 누구의 손길을 통하시든지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3. 이삭은 농사를 지어 백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원래 이삭은 농사군이 아니고 목축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레셋 나 라에 와서보니 광활한 땅과 기름진 옥토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불레셋 사람들 은 목축업을 천히 여기기 때문에 농사로 전업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첫 해 에 100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28:2-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 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 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 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무엇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농사를 짖든지, 목축업을 하든지, 복을 받는 다는 말씀입니다. (창26:12-14)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이삭은 불레셋 사람들이 시기할 만큼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창정교회의 성도들도 금년에는 남들이 시기할만큼 큰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4. 이삭은 생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삭이 번성하고 창대하여 거부가 되니까 불레셋왕 아비멜렉이 이 삭을 떠나라고 쫏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모든 식솔들을 이끌고 골짜기에 가서 메웠던 우물으르 다시 팟습니다. 그랫더니 생수가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 다. 다른 사람들이 우물을 파다가 물이 나지 않아서 메워버린 곳인데 이삭이 다 시 파니까 물이 솟아났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 이루지 못하는 것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아 멘> 우물에서 물이 많이 솟아나니까 그랄 사람들이 시기를 해서 싸움을 걸어옵니 다. 이삭은 다른 곳으로 가서 또 우물을 팝니다. 물이 솟아납니다. 그랄 사람들 이 또 생떼를 씁니다. 이삭은 다툴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툼 을 피합니다. (잠18: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잠20:3)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오늘날의 사람들은 양보를 모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극도의 이기심으로 자신의 욕심만을 채울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양보할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힘이 없어서 그랄 사람들을 피한 것이 아닙니다. 다툼 을 피하고 우물을 팟드니 파는데 마다 생수가 솟아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유대나라는 지하수가 부족한 나라입니다. 또 수질도 나빠서 우물을 갖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고 재산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가는데마다, 우물을 파는데 마다, 생수가 펑펑 쏟아져 나왔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이와 같은 생수의 축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가는곳 마다, 하는일마다, 형통하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에서 한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14) 여러분의 심령에 은혜의 생수 가 마르지 않는 축복이 금년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5. 이삭은 르호봇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르호봇이란 말은 \\\\\\\"장소가 넓다\\\\\\\" 라는 뜻입니다. 불레셋 원주민들과의 마찰을 피하여 여기 저기로 쫏겨다니다가 마침내 넓은 장소를 찾아내고 우물을 팟더니 그곳도 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했습 니다. 이삭은 양보하고 또 양보하고 다툼을 피하면서 몇차례 옮겨다닌 끝에 넓은 곳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삭이 불레셋 사람들에게 밀려다니듯이 지난 한 해동안에는 무엇인가 쫏기고 밀리고 뜻대로 잘 안되고 고통과 고난도 당하고 어려움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은 넓고 넓은 평야와 같은 르호봇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이 넓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99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이 넓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여러분의 농사도 넓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냥 넘어 갈 수 없는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왜 이삭에게 그와 같은 엄청난 축복을 주셨을까 하는 문제입 니다. 이삭이 무엇을 잘 했기에 그랬을까? 이것을 알아서 우리도 실행할 때 이 삭이 받은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 이삭은 순종을 잘 하였습니다. 하마터면 모리아산에서 산채로 제물이 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 브라함의 말씀에 잘 순종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도 순종을 잘 하였습니다. (창22: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 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사실 아브라함은 이 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릴 마음의 준비를 다 하였던 것입니다. (창22: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을 하였습니다. 기꺼이 자신이 제물이 되기를 순 종하였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순종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애급으로 가지 마라\\\\\\\" 하니까 가지 않았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복을 받는 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2) 이삭은 가는곳 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야 말로 우리가 하 나님을 향하여 최고의 영광을 드리는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이며,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이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순간입 니다. 이삭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가는곳마다 이삿짐도 풀기전에 먼저 하나님 께 제단을 쌓고 정성껏 번제를 드리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이삭도 그런 생활 을 하였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닮습니다. 부모가 신앙생활을 잘 하면 자녀도 잘 합니다. 대개 의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자식도 머리 크니까 부모말 잘 안듣는 다\\\\\\\" 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가 자식들에게 신앙적으로 본을 보여 주지 못 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자식이 주일날 교회 안가고 친구만나러 간다면 바로 부모가 주일성수를 잘 안했기 때문에 자식이 배운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 말씀 \\\\\\\"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 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삭이 가는곳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하나님 우선으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이삭과 같이 금년부터는 여러분들의 생활이 바 꿔져야 합니다. 하나님 우선을 바꿔져야 합니다. 생활의 형태(Paradigm)가 바꿔 져야 합니다. 나보다는 하나님 먼저, 그리고 내일보다는 교회일먼저, 모든 것을 하나님 우 선으로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 멘.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고, 항상 하나님께 제단쌓 는 생활을 하고, 하나님 우선의 생활을 한다면 분명히 여러분들도 이삭이 받은 이 모든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1998년은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고 화끈하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뜨겁 게 화끈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①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의 축복을 받고, ② 가정이 화목한 축복을 받으며, ③ 무엇을 하든지 100배의 축복을 받고, ④ 가는곳마다 하는일마다 생수가 터져서, ⑤ 모든 것이 넓어지는 축복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축원합니다.<아 멘>
100배의 축복의 비결/막4:20
100배의 축복의 비결 막4:20 성경에는 100배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 있습니다. 30,60,100배의 축복이란 하나님께서 주시는 크고 놀라운 신령하고 온전한 축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휼륭한 영적 지도자중에 한 분이신 Bob Rodgers목사님은 9.11테러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조국과 지난 10월 잠실운동장에서 있었던 10만명이 모이는 구국기도회 강사로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21일간 금식을 하면서 그 비결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Pray), 금식(Fast), 선교(구제,Give)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역사하는 세 가지 통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 능력과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비결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스가랴4:6). 1. 기도(Pray) :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크고 놀라운 것을 주시기 위해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우리는 그 소원을 붙잡고 입술로 간구하여 응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시편21:2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고난을 많이 받았고 고난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기도를 많이 하여 누구보다도 많은 신령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30배의 축복을 받는 가장 기본적인 통로는 \\\\\\\"기도\\\\\\\"입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기도에 감사함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성경은 전능하심, 인자하심, 선하심, 성실하심, 의로우심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기도의 책, 기도간증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기 위해 25년을 기도했고, 아들 이삭 역시 리브가와 결혼했는데 40년을 기도하여 쌍둥이를 얻었습니다. 기도의 교육과 훈련이 제일 기본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므로 응답을 얻을 때까지 인내하는 \\\\\\\"규칙성과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명성교회 김삼환목사님은 좋은 설교는 설교를 듣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기도하게 만든 설교\\\\\\\"라고 했습니다. 2. 금식(Fasting) :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이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와 영감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했습니다. 금식은 통해 몸과 마음의 성결함을 이루어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비결입니다.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한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이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덧입었습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묵상하면서 40년을 광야에서 영적 훈련받은 모세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나 430년의 노예근성에 뿌리 박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새로운 나라 그것도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신정국가를 세우는 일은 더욱 크고 힘든 일입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까지 인도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새로운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법을 제정하기 위해 호렙산에서 40일을 금식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은 새 이스라엘 국가의 헌법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국사책와 세계사책과 헌법과 국어교과서가 똑같습니다. 모두 구약성경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헌법이며 자신들의 역사책이며 세계사책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경귀절(신명기6:)을 통해서 히브리어 글자를 배웁니다. Bob Rodgers목사님은 미국의 헌법을 만든 건국의 조상들도 금식을 하면서 성경을 기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엘리야는 3년6개월 가뭄에 기도하여 소낙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머리를 양 무릎속에 넣고 기도를 했는데, 이는 장기간 금식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자세입니다. 엘리야는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한 계시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과 열방의 왕과 선지자를 세웠습니다. 다니엘은 청소년 때부터 채식금식을 하여 10배의 지혜를 받았고, 총리대신이 되어서도 21일간 금식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의 500년의 역사에 대해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금식하여 성령과 능력으로 충만하여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금식을 자주했던 바울은 신약성경의 1/3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강일석군은 Ivy리그 역사상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Cornell대학 총학생회장이 되었는데 7일 동안 금식하며 선거운동을 한 열매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금식을 통해 심령의 가난함을 체험하여 60배의 신령한 복을 얻게 됩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목사는 평생 매주 금요일에 금식하면서 사역을 했다고 합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에게 60배의 축복을 주십니다. 육체를 의지하지 않고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영성이 뛰어난 자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됩니다. 한민족 크리스쳔이 영성에 뛰어나야 합니다. 곰이 금식하여 한민족이 되었다는 금식의 설화를 가지고 있는 금식의 민족입니다. 금식은 뗑깡 기도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바꾸는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3. 선교와 구제(희생적 사랑, 베품과 나눔, Giving) :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어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58:6). 성령님은 사랑의 영이시며, 사랑하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할 때에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라 그리하여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누가복음6:38)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은 가는 곳마다 샘을 파고 필요한 자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축복하사 \\\\\\\"지경을 심히 넓혀 번성하게(르호봇)\\\\\\\" 하였습니다(창세기26:22). 이삭은 남의 땅, 이방 땅에서 비전공업인 농사를 하여 그 해에 가뭄의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창세기26:12-14). 주님의 이름으로 나누고 베푸는 것이 \\\\\\\"선교\\\\\\\"입니다. 말(복음)과 함께 사랑(복)이 함께 증거되어야 합니다. 선교하는 개인, 가문, 나라가 100배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선교의 영이며 사랑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복음을 전파하라, 선교하라\\\\\\\"는 것입니다. 선교는 \\\\\\\"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10만명의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고 있습니다. 국제 구호단체들도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힘은 기독교정신에 기초한 자선문화에서 나옵니다. 나눔의 정신이 사회화한 대표적인 행위가 기부입니다. 이웃을 위해 피땀 흘려 모은 자기 것의 일부를 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표현은 \\\\\\\"수표가 들어있어요(check enclosed)\\\\\\\"라고 미국의 시인 도로시 파커가 말했습니다. 미국인들이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보낼 때 가계수표를 넣은 편지봉투 위에 이 표현을 쓰는데, 어려운 사람과 나누는 그 따뜻한 마음이 가장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99년 미국의 자선 기부금 총액은 1901억6000만달러(약 250조원)으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두 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며, 미국인 중 어떤 형태로든 기부금을 내는 비율이 98%이고, 1인당 평균 기부액수는 70만원입니다. 영국의 경우도 연간 기부 총액이 200억파운드(약 40조원), 전 국민의 3분의 2가 기부금을 내며 1인당 기부금은 약 24만원 정도입니다. 반면 우리의 기부문화는 99년의 경우 기부 총액은 2600억원이며, 그나마 연말의 반짝 후원금이 70%를 차지하고 1인당 연평균 기부금은 5,800원입니다. 미국인의 1%에도 못 미치고, 영국인의 2.5% 정도입니다. 인구의 몇 퍼센트나 기부를 하는지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4분의 1 정도일 것이라는 추정합니다. 선교재벌 석유왕 록펠러의 최초 자선은 16세 때인 1855년이었으며 그 이후로 십일조 외에 62년간 기부금 총액은 531,326,842$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신앙의 소유자인 강철왕 카네기도 십일조외에 선교사업으로 도서관, 각종 연구 프로젝트, 세계 평화기여금으로 330,000,000$ 기부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최소한의 교회 유지 경비 외에는 선교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도 사랑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빚 진자가 되어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통해서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사랑의 대사,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과 복을 함께 전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다음과 같이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하늘을 가르키며 \\\\\\\"기도하라(Pray), 기도하라(Pray), 기도하라(Pray)!\\\\\\\" 배를 가르키면서 \\\\\\\"금식하라(Fast), 금식하라(Fast), 금식하라(Fast)!\\\\\\\"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이웃을 향해 \\\\\\\"주라(Give), 주라(Give), 주라(Give)!\\\\\\\" ★ 기도제목 1.규칙적이고 지속적인 기도생활 2.민족과 열방을 구원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 \\\\\\\"금식\\\\\\\"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훈련 3.선교, 구제를 통해서 주님의 이름으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 4.새롭게 맡은 역할과 책임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도록, 새 속회의 부흥을 위하여 5.하나님이 택하신 새 신자, 새 가족, 새 일꾼이 전도, 등록, 인도되어 믿음이 성장 성숙하도록 6.폭동을 만나 아르헨티나, 산불을 만만 호주, 홍수를 만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부 메단지역을 위해
10가지 재앙과 출애굽/출12:29-36
10가지 재앙과 출애굽/출12:29-36 2003-12-26 12:58:46 read : 4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나는 여호와로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대로 이루실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이런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다시 바로 앞에 섭니다. 그리 고 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 내 군대"라고 선언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바로 앞에 이 사실을 선언했습니다. 7:8"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곧 그대로 행하였더라" 이것은 바로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바로는 그들을 자신의 노예, 자기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와 아론이 나타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군대 로 말을 합니다. 바로는 마음이 더욱 더 강팍해 졌습니다. 누가 감히 내 재산을 빼앗을 수 있겠는가 하는 교만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이런 강팍 한 마음 때문에 자기 눈 앞에 보이는 기적들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 가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보였지만 그는 단지 애굽의 술사들이 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밖에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강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바로와 애굽 사람 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서운 것들이었습니다. 10번의 재난이 임하였는 데 그 종류들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 번째 재앙은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애굽인들의 부요 는 바로 이 나일강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의 부요를 보장하여 줌으로 신으로 숭배를 받던 나일강이 피가 되 었습니다. 이것은 나일강이 죽어 버렸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들은 나일강의 물줄기를 끌어들여 못도 만들고 호수도 만들어 생을 편 리하게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무서운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거두어지기 시작하자 그 땅은 풍요의 땅에서 죽음의 땅으로 변하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두 번재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온 나라 안에 개구리 때가 날뛰는 것입니다. 강변에나 있어야 할 개구리들이 온 도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바로의 궁 안에 까지 개구리로 인한 고통이 있었습니다. 개구리는 무슨 공 격할 무기를 가진 짐승도 아니었지만 바로의 군대로도 이것들을 어찌할 수 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로 그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보개 하셨지만 바로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강팍한 마음을 가질 뿐 이었습니다. 세 번재 재앙은 "이"가 득실대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마 음이 변하지 않자 하나님은 아무 경고도 없이 이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이"라고 말해지는 것은 아주 작은 것으로 한 번 파고들면 살갗까지 파고들는 무서운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전 한 마을에 소위 "노내기"라고 하는 발 많이 달린 곤충들이 많이 생겨서 방송에까지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온 마을의 담벼락에 덕지덕지 이 벌레들이 붙어 있는 장면은 충격적이었고 너무나도 징그러운 모습이었습니 다.그런데 하물며 사람의 몸에 자신의 살갗을 파먹는 벌레가 들어왔으니 이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이런 것들은 그저 가난한 자들이나 당하는 일이라고 그들은 여겨왔었습 니다. 이런 일들은 노예들의 일이지 주인된 자신들이 당할 일이라고 생각하 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무서운 재앙으로 인하여 온 나라 사람들이 마치 걸인과 같이 옷을 벗고 이 벌레를 잡아야 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 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것인양 차지하고 부를 누리던 자들을 한 순간에 낮추어 버리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모세와 아론의 흉내를 내던 사단의 사자들, 곧 바로의 술사들은 이 재앙 앞에서 완전히 손을 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것으로 도 모든 것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시는 전능자 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강팍함을 버리지 않습니다. 네 번째 재앙은 파리재앙이었습니다. 수 많은 파리떼의 공격을 받은 애 굽은 그야말로 사람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수 많은 파 리 떼가 온 나라 안을 가득히 채운 모습들을 말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가축에게 전염병이 돌게 하시는 재앙이었습니다. 가축들 은 애굽인들의 귀중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 위에 전염병 이 돎으로 모두 죽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에 있는 것만 칠 것이 니 그 모든 것들을 피하게 하라고 미리 경고해 주셨지만 바로와 그 백성은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토록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 치 않았던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는 직접 애굽 사람들과 가축의 몸을 독종으로 치시는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재앙은 세 번째 것과 마찬가지로 경고가 없이 행하여진 재앙 입니다. 그리고 이 재앙부터는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훨씬 더 고통스러운 재앙들이 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점차로 더 무 서운 재앙으로 심판하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애굽의 술사들도 이 재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온 백성이 얼 굴과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은 너무나 고통스런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일곱 번째로 주께서는 애굽 온 지역을 우박으로 치십니다. 밭에 남아 있는 채소와 곡식들을 치시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로는 메뚜기 떼를 보내셔서 최소한의 남은 것 조차 다 먹어 치 우게 하심으로 재난을 더욱 더 심화시키십니다. 애굽인들은 이제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그들을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욱 더 마음을 강팍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아홉번째로 하나님께서는 흑암을 보내 온 애굽 땅을 어둡게 하셨습니다. 빛이 없는 깜깜한 세상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 심으로 모든 빛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누리는 최소한의 은혜라도 다 감사의 조건이 되지 않을 수 없 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재앙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문제가 해결되는 즉시로 다시 마음을 강 팍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이제 모세와 아론이 다시금 자기 앞에 나타난다면 그들을 죽이겠노라고 협박하기까지 할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마침내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마지막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사람의 장자뿐 아니라 짐승의 첫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죽임을 당하는 대 재난이 애굽 온 땅에 임하게 됩니다. 결국 바로는 이 재앙 앞에서야 비 로소 이스라엘 온 백성을 놓아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10가지 재앙이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중요한 진리들이 있습니다. 1.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애굽인들은 수 많은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신들을 살펴 보 면 이렇습니다. 하피/나일강의 신 이시스/나일강의 여신 헤겟/개구리 머리를 한 출산의 여신 셑/광야의 신 레/태양신 우아치트/곤충의 신(파리가 대표) 하솔/소머리를 한 여신 아피스/풍요의 신(숫소의 신) 셋크메트/질병을 이기는 여신 이시스/치료의 신 눗/하늘의 여신 오시리스/풍요와 곡식의 신 세스/곡식의 보호자 민/재생의 신 10가지 재앙들은 자세히 살펴 보면 바로 애굽인들이 섬기던 이 신들 위 에 내린 것들이었음을 봅니다. 애굽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이 신들이 자신 들을 보호하여 주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을 결코 그들을 지 켜 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을 통해 그들의 신앙이 얼 마나 허구에 불과한 것인가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주께서는 다시 한 번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온 땅에 드러내게 되실 것입니다. 2.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며 통치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이로부터 사람과 태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마음 대로 주장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 음을 선언하신 사건입니다. 모세와 아론 그리고 온 이스라엘은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실을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3.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참으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 처럼 소유하고 있던 바로에게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 내렸습니다. 자 신들의 노예가 아니었던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탄압하던 바로에게 마침내 무서운 심판의 채찍이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모세를 통하여 계속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강팍하게 하고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자신 뿐 아니라 자기 온 백성을 불행에 빠지게 하는 지도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모든 애굽 사람과 짐승의 첫 새끼가 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늘 겸손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고 생 명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별하여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에서 처음의 피재앙과 개구리 재앙 이 재앙은 애굽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도 고통을 당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특별히 파리 재앙에서 부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별하시는 것을 봅니다. 8:23"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 역시도 애굽 사람들의 고통을 같이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당하는 고난을 무한정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구별하여 주신 것입 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은 이런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 셔서 자신들을 특별하게 다루고 계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모든 고통을 무한정 버려 둔체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니십니다. 똑 같은 고난을 겪는 것 같이 보이지만 마침내 하나 님께서 나타나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로부터 우리를 건져 주 실 것입니다. 재앙이 임하자 바로는 타협을 하자고 모세에게 요청을 합니다. 그의 타 협안은 매우 교묘한 것이었습니다. 1.그는 애굽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것은 좋다고 동의를 하는 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 단서를 붙입니다. 그것은 애굽 땅에서 제 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는 믿되 세상에서 분리되려고 하지는 말라"는 제안과 같은 것입니다. 주일은 지켜라 하지만 생활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식인 것 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을 때 우리는 생활이 변화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애굽 땅을 떠나는 아품 없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광야로 나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는 믿되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는 말과 같은 제안입니다. 이 세상의 세력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예배는 드리되 빨리 다시 이 벽돌을 찍 는 노예생활로 돌아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떠나지 않고는 참 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옛 질서로부터 완전히 떠나는 결단이 있어야 참 믿음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남자들만 가라고 합니다.(10:11) 여기서는 특별히 자녀들을 데리고 가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 것은 "너는 예수를 믿어도 좋다 그러나 너의 자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길 이 있는 데 강요할 것이 무엇이냐? 너나 잘 믿어라"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 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세대에 대한 관심을 상실한다고 생각해 보 십시오, 이것은 교회의 미래를 잃어 버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 세상 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렇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4.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가라고 합니다.(10:24) 이것은 그래 이제 예수를 믿어라! 온 가족이 믿어도 좋다! "그러나 헌신 은 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은 전혀 동원되지 않고 정신적인 평안만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 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예수님 다음으로 돈이 좋아요!"라는 재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솔직해서 좋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돈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이 물질로 인한 시험들이 그토록 많을 수 밖 에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그곳에 마음도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 을 어디에 드리는가가 우리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물질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구제와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바로의 타협안을 과감히 거절해야 합니다. 그럴 때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드러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53의 축복/ 요15:1-19/ 2002-09-02
153의 축복 요15:1-19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 성만찬 자리에서 베드로는 [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계집종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실의에 차서 옛 직업 어부로 돌아와 다른 여섯 제자와 함께 디베랴 바다에 그물을 내리고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옛 어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어떤 변화의 삶이 주어졌는가를 살펴봄으로 우리도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의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예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디바랴 바다에 어부로 돌아섰습니까? 한마디로 예수님 십자가에 죽음만 알았지 예수 부활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눅24:에도 글로바와 다른 한 제자, 역시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낙심하여 고향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 [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알지 못하느뇨? ] [ 무슨 일이 일어났느뇨? ] [나사렛 예수의 일인데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째요 ]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만 알았지 부활하셔서 지금도 내 곁에 계시는 살아 계신 주님을 모르니깐 낙심할 수밖에 없고 옛사람으로 삑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 부인하고 옛 어부로 돌아간 제자들의 초라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제자라고 하면서 예수를 부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제자들을 이끌고 옛날로 돌아간 베드로를 책망하고자 찾아오신 주님을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비록 제자들은 부인하고 실망하고 낙심하지만 <2> 허물 많은 베드로를 용서해 주시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확신 시켜 주시기 위하여 부활의 주님은 저들의 삶의 현장에 찾아오신 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왜 실망하고 낙심하고 좌절하며 살아갑니까? 도대체 예수를 믿되 어떤 예수를 믿길래 낙심하고 좌절하고 옛사람 수준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까? 영국 성경학자 마쉬라는 신학자가 제자훈련을 하다가 야 실망된다, 왜? 예수님은 3년 동안 먹고 자고 데리고 다니면서 제자훈련 시킨대도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 부인하고 다 도망가고 흩어져 버렸는데 내가 무슨 제주로 사람들을 제자훈련 시킨다 말인가? 고민하다가 눅24:25-26절 말씀에서 눈이 뜨여 졌습니다. 그렇다 한 가지 몰라서 그랬구나. 부활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다는 것 먼저 고난이 있으면 나중에 영광이 있다는 것 제자들은 십자가를 통해 선 고난 후 영광을 몰라서 낙심하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서서 언제나 하시는 일 나 같은 죄인 부르사 참 소망 주시도다 주 앞에 내가 엎드려 그 이름 찬송함은 내 귀에 들린 말씀 중 귀하신 이름 예수 혹 우리 가운데는 목사님 지금 내 문제는 신앙 문제가 아니고 경제 문제입니다. 목사님은 경제 문제 잘 모르잖아요? 그러나 분명히 아셔야 할 것은 <로리 베리 존스>의 베스트 셀러 책제목 같이 C.E.O 예수, 예수님은 최고 경영자 예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패의 삶을 살고 있다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최고 경영자 예수를 사장으로 모시고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옛어부로 돌아간 제자들 갈릴리 바닷가에서 잔뼈가 굵은 고기 잡는데는 다 베테랑들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3> 3절에 보니[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라 ] < 영감 없이는 어떠한 위대한 일도 이루어 질 수 없다 >는 말과 같이 낙심하고 좌절하는 마음가지고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마음에 예수 잃어버리고 세상 나가서 성공할 것 같습니까?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교에서 당부하십다. 요15:5절 [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 예수 떠나 될 것 될 것 같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헛방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없는 사업은 성공같애 실패요 예수 있는 사업은 만사 유익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업과 직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우리 가정에 주인이 되시고 우리 사업장에 사장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이 찾아 오셨지마는 예수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까요? 예수님 십자가 사건 후 주위에 따르던 제자들의 행동 가운데 공통된 특징 한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실의에 가득찬 저들의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의 크라이막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인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십자가의 사건은 헤어나지 못하는 늪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부활하신 주님이 저들 곁에 와 있는데도 저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무덤 가에 먼저 달려갔던 막달라 마리아도 그러했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글로바와 한 제자도 그러했고 오늘 본문말씀 속에 베드로와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결국 저들 삶에 잃어버린 예수는 실망, 낙심 그자체였습니다.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신 것에 눈이 뜨여진다면 우리의 삶은 회복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셨는데 예수신 줄 알지 못했을까요? 저들의 삶에 집착하다 보니 예수님이 찾아 오셨는데도 눈이 뜨여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 언제 눈이 뜨여집니까? <4> [ 미련하고 선지자의 말을 더디 믿는 자들이여 ] 라고 책망했듯이 삶에 집착하고 말씀에 눈이 뜨여지지 아니하면 예수님이 찾아오셔도 알지 못하는 미련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엠마오로 행하던 제자에게 주님이 말씀하실 때 눅24;32절에 [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지면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이 믿기워 지는 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바닷가에 서셨어 말씀하십니다. [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 없나이다 ] [ 그 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합니다. 이 때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 주시라 ] 하니 베드로가 벗고 있다고 겉옷을 두르고는 배에서 뛰어 내려 예수님께 달려 왔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이 생선과 떡과 함께 숯불을 피워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 오라 ] 하니 베드로가 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큰 고기가 153마리나 잡혔는데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153마리의 생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일찍이 제자로서의 부름을 받기 전 베드로는 눅5:에 보면 그 날도 밤이 맞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허탕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더 깊은 대로 그물을 내리라 할 때 [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인생 경험보다 예수님의 말씀의 역사를 경험했던 베드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믿음이 살아나며 눈이 뜨여졌던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하나님 말씀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인생경험을 통하여 일을 하다가 실패를 경험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 입각하여 그물을 던지며 153의 놀라운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60년대에 한 믿는 청년이 미국에 가보니 볼펜이 있더랍니다. <5> 저것 만들면 돈 벌겠다 싶어서 돌아와서 있는 재산 다 모아 볼펜을 만들었는데 볼펜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품질이 좋지 않아 팔리지를 않습니다. 소위 쫄딱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철야기도를 하면서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153이란 숫자가 보입니다. 이게 무얼까? 싶어 목사님에게 물어 보니 잘 모르겠다 합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성경을 읽다가 본문말씀을 대하는 중에 청년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청년을 불러서 하는 말이 [ 내가 응답 받았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한다 지금까지는 내 잘 되려고 그물을 내 편에 던졌으나 이제부터는 오른편 - 바로 하나님 편에 서서 그물을 던지면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그때 청년이 아멘~! 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다시 빚을 내어서 사업을 시작하며 성수주일 십일조를 철저히 하며 하나님 사업을 위해 볼펜을 만들었는데 이 볼펜이 바로 최초에 나온 볼펜 <모나미 153>입니다. 문구 메이커 가운데 K.S 마크는 다 모나미 제품인 것 있지요. 지금까지 베드로의 삶, 신앙도 인생도 다 실패의 삶이었습니다. 자신의 욕망과 경험에 의지한 삶은 바로 실패를 안겨다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질 때 인생도 신앙도 153의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일 교우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153의 축복에 눈이 뜨여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도 153의 축복 아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153의 축복 모른다면 말도 안되죠 김성일이란 사람이 충청도에서 국민학교 졸업하고 상경하여 중국집, 신문팔이, 구두닦이 생활 28살까지 별 볼일 없이 살아가다가 어느 날 길거리에서 아브라함 링컨의 전기 책을 사서 읽고는 눈이 뜨여 졌습니다. 링컨은 국민학교 4학년 중퇴해도 대통령이 되었는데 나는 국민학교 졸업했는데 왜 이렇게 살아가나? 위인들 전기를 읽기 시작 이 사람이 성격개조, 스피치 훈련에 권위자가 되어 4박 5일 훈련에 50만원씩 받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이 신념 153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153의 축복을 아는데 믿는 사람이 이것 모른다면 말도 안되죠? 여러분 인생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일한다면 153의 축복이 주어질 줄 믿습니다. 153마리의 물고기를 끌어올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6>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이신 줄 알았지마는 아무도 감히 묻는 자가 없습니다. 왜 아무도 묻는 자가 없습니까? 예수님이 떡과 생선을 저희에게 주셨지마는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왜 말이 없습니까? 제자들은 지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왜? 모두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예수님을 포기하고 옛사람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나무라지 아니하시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떡과 생선을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의 허물과 잘못을 따지고자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주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사랑의 손길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일 보다 중요한 것이 관계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를 저버렸지마는 예수님은 찾아 오셔서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묻는 것입니다. 15절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 이때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기죽은 소리로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합니다. [ 네 어린양을 먹이라 ] 고 하시며 주님은 두 번 세 번이나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고 묻습니다. 왜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두 번 세 번이나 묻습니까? 예수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실망하고 좌절된 차가운 가슴에 불을 부쳐주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왜 밤새도록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까? 가슴에 불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매사에 의욕이 없습니다. 이런 차가운 가슴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의 말씀을 통해 가슴이 뜨거워지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153마리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게 어디 물고기뿐이겠습니까? 하루 3000명 5000명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하여 가슴에 불이 붙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서울 일산에 한 목사님이 <7> 돈 없이 교인 한 명 없이, 건물 없이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들이는데 교인은 교인은 두 명밖에 없습니다. 나이드신 어머님과 사모 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설교는 간단히 하고 마치는데 하루는 마칠 때쯤 되어 할머니 한 분이 새벽기도회에 나왔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할머니 들으라고 다시 설교를 했습니다. 그 다음날은 잔뜩 기대를 하고 설교준비를 했는데 할머니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공원에 전도를 나갔는데 바로 그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 할머님 왜 새벽기도회에 안나오세요? ] 하고 물으니 목사인줄 몰라보고 [ 응, 그 교회 젊은 목사가 새벽에 설교를 너무 오래 해서 못쓰겠어 ]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너무 힘이 떨어져 교회로 돌아와서 강대 상 앞에 풀썩 주저앉아 들어 누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살짝 잠이 들었는데 < 불이야 >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이 깼습니다. 그때 생각나는 것이 있더랍니다. 시골 살 때 불이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불 구경하던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부르짖었습니다. [ 하나님 불나게 해 주세요, 우리 교회에 불나게 해 주세요 목사인 제 가슴속에 불나게 해주세요 사모 가슴속에 불나게 해 주세요 ] 그랬더니 교회가 갑자기 부흥되기 시작하는데 개척 10년 만에 출석 2000명 교회로 성장한 일산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 간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도 불만 붙으면 됩니다. 목사 가슴에, 장로님 가슴에, 권사님 가슴에, 순장님들 가슴에 불만 붙으면 됩니다. 주님과 사람의 관계 회복으로 가슴에 불이 붙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설교자는 네 어린양을 먹이라는 말을 [ 내 대신 내 일 좀 해다오 ] 라고 의역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요청의 관계, 헌신의 관계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요청의 통로는 축복의 통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아무에게나 요청하지 않습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에 놓여있는 자에게만 요청의 관계가 이뤄지는 줄 믿습니다. 이차 대전 후 독일 어느 마을에 교회 앞에 예수님 동상이 서 있었는데 폭격을 맞아 팔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보기가 흉해서 철거를 하려다가 어느 조각가가 그 밑에 비문을 새겨놓았습니다. [ 예수님은 손이 없으시다 대신 우리의 손을 갖고 계신다 <8>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주님의 손을 대신하여 주의 일 하기를 원하신다.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 손과 발에 못 박혀 돌아갔습니다. 주님은 손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손을 갖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거든 [ 내 대신 나의 손이 되어 네가 일 좀 해다오 ] 라고 하십니다.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어 요청의 관계가 회복되고 주님과 요청의 관계가 회복되어 축복의 통로가 열려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동길 교수의 < 사랑이 어떻더냐? >라는 수필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사팔뜨기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국민학교 담임 선생님이 목사님에게 한 번 찾아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 찾아갔더니 선생님이 하는 말이 [ 모든 일에 모범생인데 친구들이 사팔뜨기, 사팔뜨기라고 놀리며 왕따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가 너무 기가 죽어있는데 어떻게 해서면 좋겠습니까? ]라고 합니다. [ 선생님 사팔뜨기 사팔뜨기라 하는데 뭐 그리 잘못되었습니까? 하나도 기가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잘 말하겠습니다 ] 하고는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목사님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들이 사팔뜨기 놀림 받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날 밤에 텅 빈 교회당 마루 바닥에 꿇어앉아 [ 하나님 제 아들녀석 눈과 내 눈과 바꾸어 주이소...바꾸어 주이소 ]하고는 밤새도록 아들 눈과 자기 눈과 바꿔 달라고 하며 울더랍니다. 이렇게 나 대신 내 일 할 수 있는 성도는 사랑의 관계에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면 주님의 목마름이 나의 목마름이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한 손이 되어 주의 일 하는 일군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헌신된 일군이 되는데는 매우 제약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베드로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18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유대인들은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겉옷에 띠를 띠었습니다. <9> 이 말은 지금까지는 베드로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였지마는 주님과 사랑의 관계 하에 사랑의 포로가 된 주의 일군들은 행동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전통해석으로는 19절과 함께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사역의 길이요 사명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제는 네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봉사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신앙으로 싫든 좋든 십자가를 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가만히 보면 교회 봉사나 아니면, 로이모스 전도대, 새벽기도회, 철야기도회 같은데 자신의 사명인 줄 알고 헌신된 일군이 있는가 하면 형편 되면 하고 안되면 나오지 않는 일군이 있습니다. 목사님, 교회 일은 형편 따라 해야지 어떻게 한번도 안 빠질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나도 그렇게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편에 서서 153의 축복에 눈이 뜨여지고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매일 자녀들에게 새벽밥을 해 줍니까? 어떻게 매일 출근하고 돈 벌려 나갑니까? 내 가족이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사랑의 관계 하에 놓이면 십자가를 지고 따라 가듯이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 결론 > 4월은 사역의 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자면 먼저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축복을 받아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153의 축복에 눈이 뜨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153의 축복은 물고기 이야기 사업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하루 3000명 5000명 끌어올리는 사람 낚는 어부 주의 사업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실망과 좌절의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어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라가는 주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907년이여, 다시 한번!(Again 1907!)/ 히12:1/ 김승욱 목사/ 신년축복주일설교/ 부흥설교/ 2007-01-03
1907년이여, 다시 한번!(Again 1907!) 히12:1 새해 첫예배를 비젼예배로 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Again1907. 한국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선교사의 기록을 보더라도 한국에는 하나님의 크신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교사들도 한국에서의 피나는 사역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1907의 부흥을 통해 한국을 기도의 나라로 바꾸시고 상상과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나라로 바꾸셨습니다. 한국은 이제 세계선교에서 2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1907의 부흥을 통해 한국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셨습니다. 핍박의 바람을 맞이 할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1909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침략하고 그들의 제국주의를 한국에 심으려고 하였으며 이에 저항하고 반대하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지만 이 모든것을 이겨낼 힘을 주시고 이겨내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60년대와 70년대를 지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순결한 신부로 드림으로 담대하게 서는 한국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였습니다. 우리 교회안에도 당시의 핍박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해의 옥고 가운데에서도 굴하지 않고 70일간의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신 분들의 노고가 바로 Again1907의 정신입니다. 이처럼 확고한 정신과 믿을 가지고 나아가신 분들의 정신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 주는 것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사명인지 깨달기를 원합니다. History is His story. 역사는 주님의 이야기 입니다 역사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주님게서 주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이해해야 1907년의 일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화가 주라가 만든 그림을 보시면 작은 점들을 이용하여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가 찍은 점 하나 하나에는 분명한 목적과 이해를 가지고 점을 찍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것들과 인물에는 분명한 목적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분한분은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하에 창조된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요한계시록1장18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맺게되는 것입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루신 1907년의 부흥은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이것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때의 부흥의 물결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물결과 지금의 여러분 한분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We have a legacy to carry on.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유산이 있습니다. 계주 경기를 할때 바통을 이어주고 받으며 경주가 계속되게 됩니다. 이 바통을 계속 이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부터 받은 이 위대한 영적유산을 가지고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끊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받은 바통을 들고 뛰어야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2장1절 말씀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중인들이 있으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에서 이미 경주를 마친 사람들이 이어준 바통을 이어받아 뛰어야 합니다. 1907은 그저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끊나서는 안됩니다. 허다한 증인들이 환호와 응원으로 화답하며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부흥의 유산을 들고 뛰어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We are called to serve our generation. 우리의 세대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나의 시대를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100년전의 빛은 186개국에 펼쳐져 있습니다. 한 나라를 비취던 빛은 이제 전세계를 비취고 있습니다. 이 빛을 높이 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져 하나님의 비젼을 받을때 하나님의 빛을 온세상에 비췰 수 있는 것입니다. 1907년의 불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흥의 역사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 가운데 다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김승욱 목사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최대 과제/ 마28:16-20/ 교회창립기념주일설교/ 2009-06-07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최대 과제 마28:16-20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기관 중에 가장 고귀하고 오래된 두 기관이 있다면 가정과 교회입니다. 국가는 세워지고 또 망하고 역사의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지만, 두 기관만은 끝없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류창조와 함께 가정을 세우시고 인간을 가정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역사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역사 속에 그대로 존재해 온 것입니다. 교회 또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 값을 주고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비록 멸망해도 주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는 왕성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의 교회는 쇠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줄기차게 성장을 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우셨기에 가정과 함께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우이제일교회가 우이동 골짜기에 세워진지가 37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마다 도와주셔서 많은 부흥을 하여 왔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이따금씩 나 혼자 우이제일교회에 대한 미래상을 생각해 볼때가 있습니다. 3년 후에 역사할 하나님의 비전을 생각하며 3년후에는 우이제일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여 있고 5년과 10년 후에는 우이제일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여 있을 것인가 하고 새벽마다 새벽기도 가운데 그림을 그려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 가운데에는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있는가 하면 인간들이 모여서 인간의 생각으로 이끌어가는 잘못된 교회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우리주님에 마음에 합한 교회로 그리고 21c를 준비하며 이끌어가는 미래형 교회로 어두운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될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가 되고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준비하고 대처하지 못하고 옛날식 그대로 안주하고 그대로 전통만 붙들고 있다면 앞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교회가 그 시대에 효율적인 복음사역을 위하여 빠른 속도로 변화 되고 있는 사회에 통찰력을 가지고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그 지역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21c를 맞이하는 우이제일교회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와 같이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힘이 있어야 초대교회와 같이 능력있는 교회가 될 수 있고 성령이 임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찬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칼빈의 말과같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인데 예배가 살아있는 제단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될 뿐만 아니라 예배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며 임재하시며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로 드려져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병든 가정들이 치유가 되고 잘못된 신앙들이 다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의 틀에 박혀있는 예전적 예배에서 모든 교인들이 예배를 사랑하고 모두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축제적 예배로 바꾸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이제일교회는 영혼을 사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96개의 목장이 예비신자를 작정하고 마태 파티를 통해서 불신자들을 초대하고 관계를 맺어 새생명을 추수하기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롬15:16절을보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받으시는 제사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니까 예비신자들을 전도하여 함께 나와 하나님께 생명의 열매를 전도하여 드리는 제사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일 저녁부터 화광교회 시무하시는 윤호균목사님을 모시고 천국잔치가 시작됩니다. 전교인들이 이웃에 있는 예비신자들과 목장 식구들을 모시고 나와서 은혜받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부흥회는 나를 위하여 열리는 부흥회로 아시고 은혜받는일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고 하나님의 제단앞에 나와서 우리의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능력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목장이나 우리 이웃에 주저 앉아 있는자나 장기 결석자 그리고 잃은 영혼들을 찾아서 이번 부흥회때에 생명을 살려내는 부흥회가 되면 아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잃은 영혼들을 다시 찾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가장 기뻐하시며 죽었던 내아들을 다시 찾았노라고 잔치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이제일교회는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꿈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사람을 양육하고 키우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잠언29:18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며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희망과 비전이 없는 인물로써 미래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가 없기 때문에 방자하게 행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아브라함과 같은 눈을 가지고 멀리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시야 즉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심장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생각하고 본다는 것은 미래 지향성을 가르키는 것으로 단순히 현재만 보고 내 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내일을 내다 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래 지향적이고 꿈이 있는 교회가 될 때에 우이제일교회는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젊은이들과 현대인들을 보면 그 가슴에서 꿈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현실에만 급급해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않타갑고 슬픈 일입니다. 우리 우이제일교회 교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가슴에 미래에 대한 꿈을 품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이제일교회와 여러분들의 가정이 21세기를 맞이하여서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전진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교인들 생각과 마음속에 동일한 꿈을 꾸어야 하겠습니다. 고전 1:10절을보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은혜로운 교회는 고린도 교회같이 분열하고 분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은 말을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한목표를 향하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럼 21세기를 향한 우이제일교회는 전교인이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요? (1) 앞서 가는 교회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이 우이제일교회입니다. 이 지역 이름을 따서 우이제일교회라고 하였는데 이 지역사람들은 흔히들 보면 그냥 제일교회 제일 어린이집 이라고 부릅니다. 제일이란 말은 첫째요,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면에서 다른 교회보다 앞서 갈 때 제일이란 이름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는 서울 큰교회, 서울 대교회 하고 이름은 붙었는데 서울에서 가장 작은 교회이고, 또 어떤 교회는 참예수교회, 참진리교회 라고 이름은 붙었는데 가짜 예수고 비진리적인 교회가 있고, 또 어떤 교회는 창대교회이고 충만교회인데 교회가 창대해 지는 것이 아니라 쭈그러들고 충만한 교회가 아니라 매말라가고 있는 교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이제일교회는 이름 그대로 우이동에서 제일가고 우리 수도노회에서 제일가는 교회인 것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강북구 뿐만이 아니라 서울 장안에서 제일가고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께서 보실때에 가장 마음에 들고 기뻐하시는 제일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전9:24을 보면“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을 얻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인데 그가 바로 일등이요 제일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이름 그대로 제일교회가 되려면 모든 면에서 앞서가며 꿈과 희망을 가지고 항상 선두에서 달려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 성장하는 교회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는 끊임없이 자라나고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세포가 튼튼하면 세포분열을 통하여서 자라나듯이 건강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성령 충만한 교회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여 진다고 하였고, 하루에도 3000명씩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믿는자가 더 많아진다고 하였습니다.(행4:4) 행5:14에도보면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라 했고, 행6:7에도 제자의수가 심히 더 많아지고 허다한 무리들이 이 도를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행5:42을 보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가 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와 같이 교육과 전도가 끊임이 없이 계속 될 때 지속적으로 성장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육과 전도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전도사역팀과 교육을하는 새가족 양육팀이 끊임없이 활동할 때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와 교육은 수레의 두바귀와 같은 것입니다. 전도 사역팀에서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로 데려오면 새가족 양육팀에서 이들을 교육하고 양육하여 정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일에 우이제일교인들은 모두 협력하고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우이제일교회는 모두가 성령충만하여서 초대교회와 같이 능력있는 교회가 되고 각가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은혜가 충만하여 날마다 구원받는 숫자가 더해가는 능력있는 교회가 될것입니다. (3)모든 족속을 제자삼아 가르쳐 지키게하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지들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모든 족속이란 이방인을 비롯하여 이교도 국경을 뛰어넘어 타국인 까지를 가르키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이 심하였고 종파관념도 철저했습니다. 그런데다가 유대인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없었고 너무나 좁은 테두리 안에서 자기들만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은 선민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분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인종차별이나 지역적인 편견을 갖지 말고 모든 족속들을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으며 인종이나 직위나 사상이나 체계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어느것 한가지도 방해 요소나 장벽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땅끝까지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인 것이요 오늘의 교회들의 최대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오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셔서 이 땅을 다스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가는데 마다 제자를 삼아 복음으로 한 형제를 만들고 복음으로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통당하는 자를 해방시켜주며 가난한 자들을 부요케 해주며 병든 자들을 치료해주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 할 것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한 주님의 말씀에 유의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분석해 보면 배우지 못해서 그리고 또 몰라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실천하지를 못하고 지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어 제자를 삼을 뿐만 아니라 가르쳐 지키게 하여 행동화 시키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많이 배운자라도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지키게 해야 하고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이란 원래 이론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전달된 이론을 실천에 옮길 때까지 반복하고 훈련시키는 것이 진정한 교육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교육이 머리로 알게 하고 말로만 하는 이론 교육에 그치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삼아서 가르치고 행동으로 지키게 하도록 살아있는 산교육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이 밥먹고 제 밥그릇하나 치울 줄 모르고 자고 일어나서 이부자리 하나 정돈할 줄을 모르고 신발하나 챙겨신고 정돈을 할 줄 모르는 말로만 하는 교육이었는데 이제 제자를 삼아서 배우고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그대로 지키는 실천하는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말썽이 많은 오래된 교회에 새로 부임을 하게 되었는데 부임한 주일부터 연속 3주간을 똑같은 설교로 반복을 하시더랍니다. 두 번 까지는 저 목사가 혹시 지난주일 설교했던 것을 잃어버리고 또 하는가 보다 생각을 했는데 3번 연속 똑같은 설교를 하니까 교인들이 수군거리다가 성질 급한 집사 하나가 목사님께 항의조로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왜 똑같은 설교를 3번씩이나 반복하십니까? 하고 말하니까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새로운 설교를 할 때는 당신들이 내 설교를 듣고 그대로 다 순종하며 실천하며 살 때 새로운 설교가 나올것이라고 하였답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수백번 설교를 듣고 그 중에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산다면 주님의 책망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우이제일교회는 21c를 앞서가기 위하여 333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3명의 불신자를 전도해서 3명을 양육하고 하루에 성경 3장을 읽고 묵상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9년도에 사람이 먼저 성장하고 2010년도에는 사역이 성장되고 2011년도에는 교회가 성장되어서 세계로 도약해 뻗어나가는 성장하는 교회가 될것입니다. 이일에 모두 동참하시고 기도하시는 우이제일교회 성도들이 되시어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 마음에 가장 합당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가는 우이제일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무웅 목사(서울 강북구 우이동 우이제일교회)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최대 과제/ 마28:16-20/ 교회창립기념주일설교/ 2009-06-07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최대 과제 마28:16-20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세우신 기관 중에 가장 고귀하고 오래된 두 기관이 있다면 가정과 교회입니다. 국가는 세워지고 또 망하고 역사의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지만, 두 기관만은 끝없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있으라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류창조와 함께 가정을 세우시고 인간을 가정에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역사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어도 역사 속에 그대로 존재해 온 것입니다. 교회 또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 값을 주고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비록 멸망해도 주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는 왕성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지구상의 교회는 쇠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줄기차게 성장을 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우셨기에 가정과 함께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우이제일교회가 우이동 골짜기에 세워진지가 37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그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마다 도와주셔서 많은 부흥을 하여 왔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이따금씩 나 혼자 우이제일교회에 대한 미래상을 생각해 볼때가 있습니다. 3년 후에 역사할 하나님의 비전을 생각하며 3년후에는 우이제일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여 있고 5년과 10년 후에는 우이제일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여 있을 것인가 하고 새벽마다 새벽기도 가운데 그림을 그려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 가운데에는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교회가 있는가 하면 인간들이 모여서 인간의 생각으로 이끌어가는 잘못된 교회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우리주님에 마음에 합한 교회로 그리고 21c를 준비하며 이끌어가는 미래형 교회로 어두운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될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가 되고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준비하고 대처하지 못하고 옛날식 그대로 안주하고 그대로 전통만 붙들고 있다면 앞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진리는 변하지 않지만 교회가 그 시대에 효율적인 복음사역을 위하여 빠른 속도로 변화 되고 있는 사회에 통찰력을 가지고 적응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그 지역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21c를 맞이하는 우이제일교회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와 같이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힘이 있어야 초대교회와 같이 능력있는 교회가 될 수 있고 성령이 임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찬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칼빈의 말과같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인데 예배가 살아있는 제단이 되기 위해서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선포되고 성례가 바르게 집행될 뿐만 아니라 예배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며 임재하시며 하나님이 열납하시는 예배로 드려져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병든 가정들이 치유가 되고 잘못된 신앙들이 다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의 틀에 박혀있는 예전적 예배에서 모든 교인들이 예배를 사랑하고 모두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축제적 예배로 바꾸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이제일교회는 영혼을 사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96개의 목장이 예비신자를 작정하고 마태 파티를 통해서 불신자들을 초대하고 관계를 맺어 새생명을 추수하기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롬15:16절을보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성령안에서 거룩하게 받으시는 제사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니까 예비신자들을 전도하여 함께 나와 하나님께 생명의 열매를 전도하여 드리는 제사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일 저녁부터 화광교회 시무하시는 윤호균목사님을 모시고 천국잔치가 시작됩니다. 전교인들이 이웃에 있는 예비신자들과 목장 식구들을 모시고 나와서 은혜받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부흥회는 나를 위하여 열리는 부흥회로 아시고 은혜받는일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고 하나님의 제단앞에 나와서 우리의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능력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우리 목장이나 우리 이웃에 주저 앉아 있는자나 장기 결석자 그리고 잃은 영혼들을 찾아서 이번 부흥회때에 생명을 살려내는 부흥회가 되면 아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잃은 영혼들을 다시 찾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가장 기뻐하시며 죽었던 내아들을 다시 찾았노라고 잔치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이제일교회는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꿈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사람을 양육하고 키우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잠언29:18을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며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희망과 비전이 없는 인물로써 미래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가 없기 때문에 방자하게 행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없기 때문에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는 아브라함과 같은 눈을 가지고 멀리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비전입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시야 즉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심장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 생각하고 본다는 것은 미래 지향성을 가르키는 것으로 단순히 현재만 보고 내 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내일을 내다 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미래 지향적이고 꿈이 있는 교회가 될 때에 우이제일교회는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젊은이들과 현대인들을 보면 그 가슴에서 꿈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현실에만 급급해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않타갑고 슬픈 일입니다. 우리 우이제일교회 교인들은 믿음을 가지고 가슴에 미래에 대한 꿈을 품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이제일교회와 여러분들의 가정이 21세기를 맞이하여서 계속적으로 성장하고 전진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교인들 생각과 마음속에 동일한 꿈을 꾸어야 하겠습니다. 고전 1:10절을보면 형제들아 내가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했습니다. 은혜로운 교회는 고린도 교회같이 분열하고 분쟁하는 교회가 아니라 모두가 다 같은 말을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한목표를 향하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럼 21세기를 향한 우이제일교회는 전교인이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요? (1) 앞서 가는 교회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이 우이제일교회입니다. 이 지역 이름을 따서 우이제일교회라고 하였는데 이 지역사람들은 흔히들 보면 그냥 제일교회 제일 어린이집 이라고 부릅니다. 제일이란 말은 첫째요,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면에서 다른 교회보다 앞서 갈 때 제일이란 이름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는 서울 큰교회, 서울 대교회 하고 이름은 붙었는데 서울에서 가장 작은 교회이고, 또 어떤 교회는 참예수교회, 참진리교회 라고 이름은 붙었는데 가짜 예수고 비진리적인 교회가 있고, 또 어떤 교회는 창대교회이고 충만교회인데 교회가 창대해 지는 것이 아니라 쭈그러들고 충만한 교회가 아니라 매말라가고 있는 교회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이제일교회는 이름 그대로 우이동에서 제일가고 우리 수도노회에서 제일가는 교회인 것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강북구 뿐만이 아니라 서울 장안에서 제일가고 무엇보다 우리 하나님께서 보실때에 가장 마음에 들고 기뻐하시는 제일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고전9:24을 보면“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을 얻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인데 그가 바로 일등이요 제일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이름 그대로 제일교회가 되려면 모든 면에서 앞서가며 꿈과 희망을 가지고 항상 선두에서 달려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 성장하는 교회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는 끊임없이 자라나고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세포가 튼튼하면 세포분열을 통하여서 자라나듯이 건강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성령 충만한 교회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여 진다고 하였고, 하루에도 3000명씩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믿는자가 더 많아진다고 하였습니다.(행4:4) 행5:14에도보면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라 했고, 행6:7에도 제자의수가 심히 더 많아지고 허다한 무리들이 이 도를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행5:42을 보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가 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기록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와 같이 교육과 전도가 끊임이 없이 계속 될 때 지속적으로 성장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육과 전도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는 전도사역팀과 교육을하는 새가족 양육팀이 끊임없이 활동할 때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와 교육은 수레의 두바귀와 같은 것입니다. 전도 사역팀에서 열심히 전도해서 교회로 데려오면 새가족 양육팀에서 이들을 교육하고 양육하여 정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일에 우이제일교인들은 모두 협력하고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우이제일교회는 모두가 성령충만하여서 초대교회와 같이 능력있는 교회가 되고 각가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은혜가 충만하여 날마다 구원받는 숫자가 더해가는 능력있는 교회가 될것입니다. (3)모든 족속을 제자삼아 가르쳐 지키게하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제지들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모든 족속이란 이방인을 비롯하여 이교도 국경을 뛰어넘어 타국인 까지를 가르키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이 심하였고 종파관념도 철저했습니다. 그런데다가 유대인들은 세계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가 없었고 너무나 좁은 테두리 안에서 자기들만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은 선민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분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인종차별이나 지역적인 편견을 갖지 말고 모든 족속들을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으며 인종이나 직위나 사상이나 체계나 남성이나 여성이나 어느것 한가지도 방해 요소나 장벽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땅끝까지 가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소식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인 것이요 오늘의 교회들의 최대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면 그제야 끝이 오고 이 땅에 다시 재림하셔서 이 땅을 다스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은 가는데 마다 제자를 삼아 복음으로 한 형제를 만들고 복음으로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통당하는 자를 해방시켜주며 가난한 자들을 부요케 해주며 병든 자들을 치료해주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 할 것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한 주님의 말씀에 유의해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분석해 보면 배우지 못해서 그리고 또 몰라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실천하지를 못하고 지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어 제자를 삼을 뿐만 아니라 가르쳐 지키게 하여 행동화 시키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많이 배운자라도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지키게 해야 하고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이란 원래 이론 전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 전달된 이론을 실천에 옮길 때까지 반복하고 훈련시키는 것이 진정한 교육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교육이 머리로 알게 하고 말로만 하는 이론 교육에 그치는 경향이 많았는데 이제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삼아서 가르치고 행동으로 지키게 하도록 살아있는 산교육을 시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이 밥먹고 제 밥그릇하나 치울 줄 모르고 자고 일어나서 이부자리 하나 정돈할 줄을 모르고 신발하나 챙겨신고 정돈을 할 줄 모르는 말로만 하는 교육이었는데 이제 제자를 삼아서 배우고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그대로 지키는 실천하는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말썽이 많은 오래된 교회에 새로 부임을 하게 되었는데 부임한 주일부터 연속 3주간을 똑같은 설교로 반복을 하시더랍니다. 두 번 까지는 저 목사가 혹시 지난주일 설교했던 것을 잃어버리고 또 하는가 보다 생각을 했는데 3번 연속 똑같은 설교를 하니까 교인들이 수군거리다가 성질 급한 집사 하나가 목사님께 항의조로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왜 똑같은 설교를 3번씩이나 반복하십니까? 하고 말하니까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새로운 설교를 할 때는 당신들이 내 설교를 듣고 그대로 다 순종하며 실천하며 살 때 새로운 설교가 나올것이라고 하였답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수백번 설교를 듣고 그 중에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산다면 주님의 책망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우이제일교회는 21c를 앞서가기 위하여 333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3명의 불신자를 전도해서 3명을 양육하고 하루에 성경 3장을 읽고 묵상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09년도에 사람이 먼저 성장하고 2010년도에는 사역이 성장되고 2011년도에는 교회가 성장되어서 세계로 도약해 뻗어나가는 성장하는 교회가 될것입니다. 이일에 모두 동참하시고 기도하시는 우이제일교회 성도들이 되시어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 마음에 가장 합당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어가는 우이제일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무웅 목사(서울 강북구 우이동 우이제일교회)
3가지 사랑과 축복의 길/ 삼하23:13-17
3가지 사랑과 축복의 길/사무엘하 23장 13-17절 2003-12-25 14:10:12 read : 64 <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는 사람 > 요새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을 때 나이에 따라 미혼 여성들의 반응이 다르다고 합니다. 10대 후반에는 자기에 제일인 줄 알고 해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와줍니다. 20대 초반에는 아직도 환상에 빠져 외모와 키를 따지다가 못 이기는 척 나옵니다. 20대 후반에는 현실에 눈을 떠서 직장과 집안과 사람됨을 묻지만 결론은 항상 \"예스!\"입니다. 그러다가 30대 이상이 되면 너무 반가워서 울면서 메모지를 들고 만날 장소를 받아 적는다고 합니다. 드디어 소개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때 반응도 다릅니다. 10대 후반에는 애프터를 신청해주기만을 기다립니다. 20대 초반에는 은근슬쩍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고 애교를 떱니다. 20대 후반에는 강제로 집에 데려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시킵니다. 그러다가 30대 이상이 되면 그 동안 시집가려고 모아둔 통장을 꺼내 보여준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이 유머를 보고 저는 \"세월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금방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세월입니다. 우리의 미모, 우리의 재산, 우리의 힘도 세월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살자!\"고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사람은 대개 힘이 있으면 과시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본능을 억제하고 주어진 힘을 겸손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무슨 수단을 쓰시더라도 그 마음을 꺾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 장인 사무엘하 24장에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인구조사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구조사에는 \"내가 이런 나라를 이뤘다!\"는 과시욕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잘못으로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돌고 백성 7만 명이 죽습니다. 그때 다윗은 철저히 회개를 합니다. \"주님!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대신 저와 저의 가문을 치소서!\" 그때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가서 \"회개의 제단을 쌓으려고 하니 네 타작 마당을 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라우나는 다윗에게 기쁘게 타작 마당을 내어놓습니다. 그곳에서 회개의 제단을 쌓자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되었고, 훗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아라우나는 온 나라에 화를 끼친 다윗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썼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타작 마당을 기쁘게 내어드리는 헌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라우나처럼 남을 비판하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나를 드리는 시간은 최대한 늘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축복하실까요?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가진 것이 있어도 신앙이 변치 않고 가진 것이 없어도 신앙이 변치 않는 한결같은 사람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드릴 줄 아는 사람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이름 없는 들풀과 같은 존재일지라도 아라우나처럼 소중한 일에 자기의 것을 내어드릴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행복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변화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세워질 것입니다. <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오늘 본문에는 아라우나처럼 자기를 드려 헌신했던 세 명의 용사가 나옵니다. 그들은 요셉밧세벳(8절), 엘르아살(9절), 그리고 삼마(11절)로서, 그들은 다윗 진영을 이끌었던 으뜸 가는 세 명의 용사였습니다. 그들의 헌신적인 행위를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저는 본문을 통해서 사랑을 3가지로 정의해 보았습니다. 1. 첫째,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다윗이 참 철이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군대가 산성에 있고, 블레셋 군대가 베들레헴 성에 있어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데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먹고 싶다. 누가 나로 저 물을 마시게 할까?\"고 하니 얼마나 철이 없는 행동입니까? 전시에 어렸을 때의 향수에 젖어서 리더가 그렇게 마음이 약해지면 어떻게 큰 인물이 되겠습니까? 그런 말은 부하들의 가십거리가 될만한 말입니다. 그러나 세 용사들은 \"주군이 이상해졌어!\"라고 가십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바로 사랑의 기초입니다. 여러분! 리더의 허물을 보고 가십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허물을 덮으라고 나를 목자 곁에 두셨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목회자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예배 후에 가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성도님! 말씀 잘 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요새는 말씀을 잘 전하는 목사님보다 말씀을 잘 듣는 성도님들이 더 훌륭해 보입니다. 그만큼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분들은 교회 일 부탁하기가 참 편합니다. \"집사님! 이것 좀 해주실래요?\" 그러면 다른 말없이 \"네!\" 하고 대답합니다. 천사표 교인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첫째 이유는 기본적인 교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유는 공동체 생활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잘 듣는 것은 소중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장 무서운 일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경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병입니다. 성경을 볼 때 \"내가 이만한 존재다!\"라고 생각하면 성경은 침묵해버립니다. 더 이상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 그때부터 침묵하던 성경은 말합니다. 그때부터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고, 다른 사람의 말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남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모르는 교만이 문제입니다. 대개 보면 교만할 내용이 별로 없는 사람이 교만해지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 남보고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가장 결함이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이 남을 비판한다고 말합니다. 또 보면 교만한 사람이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결국 말을 안 듣는 사람, 교만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환영해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고, 기댈 곳도 없게 됩니다. 멀리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해도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듣지 않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우리는 더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해력이 커집니다. 이해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지만 오해는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왜 부부관계가 깨집니까? 대개 오해 때문입니다. 남편은 대개 아내의 가사 돌보는 일이 쉽다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은근히 \"나는 이 고생을 하는데 낮잠만 자면서 웬 불평이냐?\"고 생각합니다. 큰 오해입니다. 사실 가사처럼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생색이 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몇 배 힘듭니다. 그런 점을 몰라주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고, 사랑이 없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보면서 항상 속으로 \"여보! 이렇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속으로만 생각하십시오. 겉으로 그렇게 말하고 여전히 짜증을 잘 내면 인격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아내를 긍휼히 여기며 이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말로 구구절절이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세상인데 마음까지 알아달라고 요구하고 불평하니 그것도 너무 이해가 없는 태도입니다. 남편이 신도 아닌데 어떻게 아내의 마음을 구석구석 다 알아줍니까? 그러므로 아내가 할 일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서 가장 교만한 태도는 바로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 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별로 문제가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은 \"나만 옳다! 나는 당신 말을 안 듣겠다! 당신은 나만 이해하라! 나는 당신을 이해해주지 못하겠다!\"는 무언의 폭력입니다. 그것은 진짜 가정폭력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는 사단적인 생각은 철저히 버리고 \"내가 좀더 들어주자! 내가 좀더 이해해주자!\"라고 하는 성령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처럼 서로가 들어줄 줄 아는 삶이 부부관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조금 더 들어주십시오. 들어줄 줄 모르면 평생 가도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얻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도 힘듭니다.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의 마음을 얻겠습니까? 자기 의견만 주장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맨날 오해만 하고, 맨날 불평만 하다가 어려운 지경에 처합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보십시오. 맨날 이해만 하고 맨날 감사만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No\'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성숙한 사람은 \'Yes\'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자세히 보면 \'No\'라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No\'라는 말을 받을 줄 아는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오냐 오냐\' 하고 키우면 \'Yes\'를 받을 줄만 알고 \'Yes\'를 할 줄은 몰라 커서도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Yes\'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스맨\'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예스!\" 하면서 남을 격려할 줄 아는 \'예수맨\'이 되라는 말입니다. 남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양보하면서 보다 큰 것을 얻는 삶이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2. 둘째, 사랑은 조용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 명의 용사는 다윗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희생을 작정했습니다. 결국 이 세 명의 용사는 물을 구하러 사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있는 아둘람 굴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50리 정도 됩니다. 왕복 100리 길을 오직 물을 얻기 위해서 적진으로 들어가는 이 세 명의 용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진정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어리석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전혀 논리가 맞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조용히 실천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헌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명이라고 하면 이사야가 생각이 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드셨을까요? 가끔 보면 어려운 일에 앞서 헌신을 다짐하며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해보죠.\" 그런 분들 보면 흥분이 됩니다. 너무 기쁘고 감동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말없이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저의 필요와 기도제목을 알아차리고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이 아닌데도 멀리서 우리 교인보다 더 신경을 써주는 분도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분의 헌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 어느새 그분의 환한 얼굴이 기도 중에 영상으로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푸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온갖 목회의 시름과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처럼 조용한 헌신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세 용사도 \"왕이여! 제가 한번 갖다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아무리 다윗이 그 우물물을 먹고 싶어도 갖다오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물을 얻으러 갑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합니다. 그처럼 사랑은 조용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이처럼 조용히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영성이라는 말만 하고 영적이지 못하고 책임적이지 못한 성도가 아니라 조용히 행동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여자의 길이고, 또 하나는 방관자의 길입니다. 참여자의 길이 행복을 얻는 길이고,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들러리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지 \'신부의 들러리\'가 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교회생활에서 주인공이 되지는 못해도 중심 인물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조용히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셋째, 사랑은 나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 우물물을 길어와서 다윗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드린 것은 우물물이 아니라 자기들의 목숨이었습니다. 그처럼 자기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도 줄 수는 있지만 주는 것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진실한 관계는 드리는 삶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무엇인가 소중한 일에 내 마음을 드리면 이상하게도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내가 죽으면 내 육신이 살아나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거목이 쓰러지면 산이 망할 것 같지만 그 쓰러진 것이 거름이 되어 작은 나무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됩니다. 교회도 부흥하려면 자신을 드릴 줄 아는 거목들이 많아야 합니다. 취하는 삶은 갈증을 더하지만 바치는 삶은 영혼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취하는 삶은 내가 주인인 줄 아는 삶입니다. 그러나 바치는 삶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아는 삶입니다. 취하는 삶에는 눈물이 나오게 되지만 바치는 삶에는 노래가 나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삶은 \'취할 기회\'만 있고 \'바칠 기회\'는 없는 삶입니다. 가끔 부부간에 서로 더 달라고, 서로 더 취하려고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류 중에서 그 사람이 내 남편이 되어주고, 내 아내가 되어준 것을 생각하면 몸 전체를 다 준 것인데 더 달라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서로 줄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가 구원받은 것만 해도 우리는 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받으려고만 하고 취하려고만 하면 그것이 불행의 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더 드릴 일만 있을 뿐입니다. 목회하면서 제일 감동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사람이 물질적 헌신을 할 때입니다. 그때는 온 몸과 마음이 떨리면서 기도가 나옵니다. 그것은 피눈물입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그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 분들에게 저는 갚을 길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분들에게 영혼의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좀더 덜 누리고, 좀더 덜 쓰고 살기로 작정하면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시성 타고르는 \"바람이 불어 배 안의 등불이 꺼지니 뱃전에 달빛이 차더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릴 때 행복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자기에게 자그만 힘이라도 주어질 때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주눅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영혼의 만족의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 중에는 예배와 기도에는 강한데 나누는 일에는 국물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는 사람은 절대로 인색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이 되면 안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은 세상을 너무 몰라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몰라도 주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축복 받을 생각도 안 해도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제 나누는 일을 더 많이 하십시오. 우리가 소중한 일을 위해 호주머니를 비울 때 그 빈 호주머니에 하나님은 더욱 풍성한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도 많이 나누십시오. 우리 주위에 어려운 분들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드리고는 싶은데 여건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방법과 길은 반드시 하나님이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 위대한 이해력을 가진 분들이 되십시오 > 세 명이 용사가 가져다 준 우물물을 받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그 엄청난 헌신을 보고 다윗은 이기적인 감성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것, 그처럼 소중한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물은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입니다. 제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부하들이 보면서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그 순간 그들의 사기는 더욱 충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그들은 더욱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게 되었고 결국 나라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이 성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정책 결정을 하는데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원하는 것은 사심 없이 국민들을 위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잘못을 시인하고 근신하는 모습입니다. 한 가지 잘못을 시인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다 물어뜯는 사람들 때문에 시인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잘못에 대해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용서에 인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사실 우리 자신이 다 그런 존재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을 때 다윗의 갈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깨끗이 해소되었을 것입니다. 헌신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촉매제입니다. 다윗도 위대한 사람이지만 세 용사도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하였더라.\" 이 세 용사는 헌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누군가의 필요에 반응할 수 있는 위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위대한 이해력이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화요일 교회 이전 장소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금을 치르고 나니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부부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설움이 설렘으로 변화된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생각할 때 남모르는 부담감이 저의 영혼에 저며옵니다. 4월 30일까지 중도금을 치러야 하고, 인테리어 비용과 여러 교회 물품 등 상세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교회 이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분들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통해 작은 은혜가 주어져서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이번에 주님의 몸된 전을 위해 저와 함께 조금이라도 부담을 나누어지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서로 더욱 격려해야 할 때입니다. 모두 일체감을 가지고 함께 이 일에 심취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소리 없는 헌신을 기대합니다. 다윗의 세 용사처럼 목자의 필요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위대한 이해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처음으로 맞이하는 헌신의 장을 지나면서 여러분들의 신앙의 차원이 한 차원 높아지고, 잃었던 활력을 다시 한번 찾고, 다시 한번 헌신을 통해 주어지는 영혼의 새로움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을 세우는 하늘 나라의 거룩한 기초석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3가지 사랑과 축복의 길/삼하23:13-17
3가지 사랑과 축복의 길 삼하23:13-17 <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는 사람 > 요새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을 때 나이에 따라 미혼 여성들의 반응이 다르다고 합니다. 10대 후반에는 자기에 제일인 줄 알고 해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와줍니다. 20대 초반에는 아직도 환상에 빠져 외모와 키를 따지다가 못 이기는 척 나옵니다. 20대 후반에는 현실에 눈을 떠서 직장과 집안과 사람됨을 묻지만 결론은 항상 \\\\\\\"예스!\\\\\\\"입니다. 그러다가 30대 이상이 되면 너무 반가워서 울면서 메모지를 들고 만날 장소를 받아 적는다고 합니다. 드디어 소개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때 반응도 다릅니다. 10대 후반에는 애프터를 신청해주기만을 기다립니다. 20대 초반에는 은근슬쩍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고 애교를 떱니다. 20대 후반에는 강제로 집에 데려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시킵니다. 그러다가 30대 이상이 되면 그 동안 시집가려고 모아둔 통장을 꺼내 보여준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이 유머를 보고 저는 \\\\\\\"세월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금방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세월입니다. 우리의 미모, 우리의 재산, 우리의 힘도 세월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살자!\\\\\\\"고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사람은 대개 힘이 있으면 과시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본능을 억제하고 주어진 힘을 겸손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무슨 수단을 쓰시더라도 그 마음을 꺾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 장인 사무엘하 24장에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인구조사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구조사에는 \\\\\\\"내가 이런 나라를 이뤘다!\\\\\\\"는 과시욕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잘못으로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돌고 백성 7만 명이 죽습니다. 그때 다윗은 철저히 회개를 합니다. \\\\\\\"주님!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대신 저와 저의 가문을 치소서!\\\\\\\" 그때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가서 \\\\\\\"회개의 제단을 쌓으려고 하니 네 타작 마당을 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라우나는 다윗에게 기쁘게 타작 마당을 내어놓습니다. 그곳에서 회개의 제단을 쌓자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되었고, 훗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아라우나는 온 나라에 화를 끼친 다윗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썼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타작 마당을 기쁘게 내어드리는 헌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라우나처럼 남을 비판하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나를 드리는 시간은 최대한 늘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축복하실까요?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가진 것이 있어도 신앙이 변치 않고 가진 것이 없어도 신앙이 변치 않는 한결같은 사람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드릴 줄 아는 사람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이름 없는 들풀과 같은 존재일지라도 아라우나처럼 소중한 일에 자기의 것을 내어드릴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행복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변화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세워질 것입니다. <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오늘 본문에는 아라우나처럼 자기를 드려 헌신했던 세 명의 용사가 나옵니다. 그들은 요셉밧세벳(8절), 엘르아살(9절), 그리고 삼마(11절)로서, 그들은 다윗 진영을 이끌었던 으뜸 가는 세 명의 용사였습니다. 그들의 헌신적인 행위를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저는 본문을 통해서 사랑을 3가지로 정의해 보았습니다. 1. 첫째,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다윗이 참 철이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군대가 산성에 있고, 블레셋 군대가 베들레헴 성에 있어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데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먹고 싶다. 누가 나로 저 물을 마시게 할까?\\\\\\\"고 하니 얼마나 철이 없는 행동입니까? 전시에 어렸을 때의 향수에 젖어서 리더가 그렇게 마음이 약해지면 어떻게 큰 인물이 되겠습니까? 그런 말은 부하들의 가십거리가 될만한 말입니다. 그러나 세 용사들은 \\\\\\\"주군이 이상해졌어!\\\\\\\"라고 가십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바로 사랑의 기초입니다. 여러분! 리더의 허물을 보고 가십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허물을 덮으라고 나를 목자 곁에 두셨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목회자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예배 후에 가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성도님! 말씀 잘 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요새는 말씀을 잘 전하는 목사님보다 말씀을 잘 듣는 성도님들이 더 훌륭해 보입니다. 그만큼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분들은 교회 일 부탁하기가 참 편합니다. \\\\\\\"집사님! 이것 좀 해주실래요?\\\\\\\" 그러면 다른 말없이 \\\\\\\"네!\\\\\\\" 하고 대답합니다. 천사표 교인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첫째 이유는 기본적인 교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유는 공동체 생활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잘 듣는 것은 소중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장 무서운 일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경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병입니다. 성경을 볼 때 \\\\\\\"내가 이만한 존재다!\\\\\\\"라고 생각하면 성경은 침묵해버립니다. 더 이상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 그때부터 침묵하던 성경은 말합니다. 그때부터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고, 다른 사람의 말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남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모르는 교만이 문제입니다. 대개 보면 교만할 내용이 별로 없는 사람이 교만해지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 남보고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가장 결함이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이 남을 비판한다고 말합니다. 또 보면 교만한 사람이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결국 말을 안 듣는 사람, 교만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환영해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고, 기댈 곳도 없게 됩니다. 멀리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해도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듣지 않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우리는 더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해력이 커집니다. 이해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지만 오해는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왜 부부관계가 깨집니까? 대개 오해 때문입니다. 남편은 대개 아내의 가사 돌보는 일이 쉽다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은근히 \\\\\\\"나는 이 고생을 하는데 낮잠만 자면서 웬 불평이냐?\\\\\\\"고 생각합니다. 큰 오해입니다. 사실 가사처럼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생색이 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몇 배 힘듭니다. 그런 점을 몰라주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고, 사랑이 없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보면서 항상 속으로 \\\\\\\"여보! 이렇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속으로만 생각하십시오. 겉으로 그렇게 말하고 여전히 짜증을 잘 내면 인격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아내를 긍휼히 여기며 이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말로 구구절절이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세상인데 마음까지 알아달라고 요구하고 불평하니 그것도 너무 이해가 없는 태도입니다. 남편이 신도 아닌데 어떻게 아내의 마음을 구석구석 다 알아줍니까? 그러므로 아내가 할 일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서 가장 교만한 태도는 바로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 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별로 문제가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은 \\\\\\\"나만 옳다! 나는 당신 말을 안 듣겠다! 당신은 나만 이해하라! 나는 당신을 이해해주지 못하겠다!\\\\\\\"는 무언의 폭력입니다. 그것은 진짜 가정폭력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는 사단적인 생각은 철저히 버리고 \\\\\\\"내가 좀더 들어주자! 내가 좀더 이해해주자!\\\\\\\"라고 하는 성령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처럼 서로가 들어줄 줄 아는 삶이 부부관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조금 더 들어주십시오. 들어줄 줄 모르면 평생 가도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얻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도 힘듭니다.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의 마음을 얻겠습니까? 자기 의견만 주장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맨날 오해만 하고, 맨날 불평만 하다가 어려운 지경에 처합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보십시오. 맨날 이해만 하고 맨날 감사만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No\\\\\\\'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성숙한 사람은 \\\\\\\'Yes\\\\\\\'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자세히 보면 \\\\\\\'No\\\\\\\'라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No\\\\\\\'라는 말을 받을 줄 아는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오냐 오냐\\\\\\\' 하고 키우면 \\\\\\\'Yes\\\\\\\'를 받을 줄만 알고 \\\\\\\'Yes\\\\\\\'를 할 줄은 몰라 커서도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Yes\\\\\\\'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스맨\\\\\\\'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예스!\\\\\\\" 하면서 남을 격려할 줄 아는 \\\\\\\'예수맨\\\\\\\'이 되라는 말입니다. 남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양보하면서 보다 큰 것을 얻는 삶이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2. 둘째, 사랑은 조용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 명의 용사는 다윗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희생을 작정했습니다. 결국 이 세 명의 용사는 물을 구하러 사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있는 아둘람 굴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50리 정도 됩니다. 왕복 100리 길을 오직 물을 얻기 위해서 적진으로 들어가는 이 세 명의 용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진정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어리석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전혀 논리가 맞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조용히 실천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헌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명이라고 하면 이사야가 생각이 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드셨을까요? 가끔 보면 어려운 일에 앞서 헌신을 다짐하며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해보죠.\\\\\\\" 그런 분들 보면 흥분이 됩니다. 너무 기쁘고 감동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말없이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저의 필요와 기도제목을 알아차리고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이 아닌데도 멀리서 우리 교인보다 더 신경을 써주는 분도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분의 헌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 어느새 그분의 환한 얼굴이 기도 중에 영상으로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푸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온갖 목회의 시름과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처럼 조용한 헌신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세 용사도 \\\\\\\"왕이여! 제가 한번 갖다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아무리 다윗이 그 우물물을 먹고 싶어도 갖다오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물을 얻으러 갑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합니다. 그처럼 사랑은 조용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이처럼 조용히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영성이라는 말만 하고 영적이지 못하고 책임적이지 못한 성도가 아니라 조용히 행동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여자의 길이고, 또 하나는 방관자의 길입니다. 참여자의 길이 행복을 얻는 길이고,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들러리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지 \\\\\\\'신부의 들러리\\\\\\\'가 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교회생활에서 주인공이 되지는 못해도 중심 인물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조용히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셋째, 사랑은 나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 우물물을 길어와서 다윗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드린 것은 우물물이 아니라 자기들의 목숨이었습니다. 그처럼 자기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도 줄 수는 있지만 주는 것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진실한 관계는 드리는 삶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무엇인가 소중한 일에 내 마음을 드리면 이상하게도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내가 죽으면 내 육신이 살아나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거목이 쓰러지면 산이 망할 것 같지만 그 쓰러진 것이 거름이 되어 작은 나무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됩니다. 교회도 부흥하려면 자신을 드릴 줄 아는 거목들이 많아야 합니다. 취하는 삶은 갈증을 더하지만 바치는 삶은 영혼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취하는 삶은 내가 주인인 줄 아는 삶입니다. 그러나 바치는 삶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아는 삶입니다. 취하는 삶에는 눈물이 나오게 되지만 바치는 삶에는 노래가 나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삶은 \\\\\\\'취할 기회\\\\\\\'만 있고 \\\\\\\'바칠 기회\\\\\\\'는 없는 삶입니다. 가끔 부부간에 서로 더 달라고, 서로 더 취하려고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류 중에서 그 사람이 내 남편이 되어주고, 내 아내가 되어준 것을 생각하면 몸 전체를 다 준 것인데 더 달라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서로 줄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가 구원받은 것만 해도 우리는 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받으려고만 하고 취하려고만 하면 그것이 불행의 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더 드릴 일만 있을 뿐입니다. 목회하면서 제일 감동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사람이 물질적 헌신을 할 때입니다. 그때는 온 몸과 마음이 떨리면서 기도가 나옵니다. 그것은 피눈물입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그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 분들에게 저는 갚을 길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분들에게 영혼의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좀더 덜 누리고, 좀더 덜 쓰고 살기로 작정하면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시성 타고르는 \\\\\\\"바람이 불어 배 안의 등불이 꺼지니 뱃전에 달빛이 차더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릴 때 행복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자기에게 자그만 힘이라도 주어질 때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주눅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영혼의 만족의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 중에는 예배와 기도에는 강한데 나누는 일에는 국물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는 사람은 절대로 인색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이 되면 안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은 세상을 너무 몰라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몰라도 주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축복 받을 생각도 안 해도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제 나누는 일을 더 많이 하십시오. 우리가 소중한 일을 위해 호주머니를 비울 때 그 빈 호주머니에 하나님은 더욱 풍성한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도 많이 나누십시오. 우리 주위에 어려운 분들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드리고는 싶은데 여건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방법과 길은 반드시 하나님이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 위대한 이해력을 가진 분들이 되십시오 > 세 명이 용사가 가져다 준 우물물을 받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그 엄청난 헌신을 보고 다윗은 이기적인 감성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것, 그처럼 소중한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물은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입니다. 제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부하들이 보면서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그 순간 그들의 사기는 더욱 충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그들은 더욱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게 되었고 결국 나라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이 성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정책 결정을 하는데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원하는 것은 사심 없이 국민들을 위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잘못을 시인하고 근신하는 모습입니다. 한 가지 잘못을 시인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다 물어뜯는 사람들 때문에 시인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잘못에 대해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용서에 인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사실 우리 자신이 다 그런 존재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을 때 다윗의 갈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깨끗이 해소되었을 것입니다. 헌신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촉매제입니다. 다윗도 위대한 사람이지만 세 용사도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하였더라.\\\\\\\" 이 세 용사는 헌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누군가의 필요에 반응할 수 있는 위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위대한 이해력이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화요일 교회 이전 장소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금을 치르고 나니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부부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설움이 설렘으로 변화된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생각할 때 남모르는 부담감이 저의 영혼에 저며옵니다. 4월 30일까지 중도금을 치러야 하고, 인테리어 비용과 여러 교회 물품 등 상세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교회 이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분들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통해 작은 은혜가 주어져서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이번에 주님의 몸된 전을 위해 저와 함께 조금이라도 부담을 나누어지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서로 더욱 격려해야 할 때입니다. 모두 일체감을 가지고 함께 이 일에 심취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소리 없는 헌신을 기대합니다. 다윗의 세 용사처럼 목자의 필요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위대한 이해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처음으로 맞이하는 헌신의 장을 지나면서 여러분들의 신앙의 차원이 한 차원 높아지고, 잃었던 활력을 다시 한번 찾고, 다시 한번 헌신을 통해 주어지는 영혼의 새로움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을 세우는 하늘 나라의 거룩한 기초석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3가지 사랑과 축복의 길/삼하23:13-17/2003-06-09
3가지 사랑과 축복의 길 삼하23:13-17 <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는 사람 > 요새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을 때 나이에 따라 미혼 여성들의 반응이 다르다고 합니다. 10대 후반에는 자기에 제일인 줄 알고 해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와줍니다. 20대 초반에는 아직도 환상에 빠져 외모와 키를 따지다가 못 이기는 척 나옵니다. 20대 후반에는 현실에 눈을 떠서 직장과 집안과 사람됨을 묻지만 결론은 항상 \\\"예스!\\\"입니다. 그러다가 30대 이상이 되면 너무 반가워서 울면서 메모지를 들고 만날 장소를 받아 적는다고 합니다. 드디어 소개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때 반응도 다릅니다. 10대 후반에는 애프터를 신청해주기만을 기다립니다. 20대 초반에는 은근슬쩍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고 애교를 떱니다. 20대 후반에는 강제로 집에 데려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시킵니다. 그러다가 30대 이상이 되면 그 동안 시집가려고 모아둔 통장을 꺼내 보여준다고 합니다. 지난주에 이 유머를 보고 저는 \\\"세월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어도 금방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세월입니다. 우리의 미모, 우리의 재산, 우리의 힘도 세월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항상 \\\"겸손하게 살자!\\\"고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사람은 대개 힘이 있으면 과시하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본능을 억제하고 주어진 힘을 겸손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무슨 수단을 쓰시더라도 그 마음을 꺾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다음 장인 사무엘하 24장에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인구조사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인구조사에는 \\\"내가 이런 나라를 이뤘다!\\\"는 과시욕이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잘못으로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돌고 백성 7만 명이 죽습니다. 그때 다윗은 철저히 회개를 합니다. \\\"주님! 백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대신 저와 저의 가문을 치소서!\\\" 그때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라우나에게 가서 \\\"회개의 제단을 쌓으려고 하니 네 타작 마당을 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라우나는 다윗에게 기쁘게 타작 마당을 내어놓습니다. 그곳에서 회개의 제단을 쌓자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게 되었고, 훗날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게 됩니다. 아라우나는 온 나라에 화를 끼친 다윗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원망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썼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타작 마당을 기쁘게 내어드리는 헌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라우나처럼 남을 비판하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나를 드리는 시간은 최대한 늘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축복하실까요?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축복하시고, 가진 것이 있어도 신앙이 변치 않고 가진 것이 없어도 신앙이 변치 않는 한결같은 사람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드릴 줄 아는 사람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이름 없는 들풀과 같은 존재일지라도 아라우나처럼 소중한 일에 자기의 것을 내어드릴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행복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변화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은 세워질 것입니다. <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 오늘 본문에는 아라우나처럼 자기를 드려 헌신했던 세 명의 용사가 나옵니다. 그들은 요셉밧세벳(8절), 엘르아살(9절), 그리고 삼마(11절)로서, 그들은 다윗 진영을 이끌었던 으뜸 가는 세 명의 용사였습니다. 그들의 헌신적인 행위를 보면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저는 본문을 통해서 사랑을 3가지로 정의해 보았습니다. 1. 첫째,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다윗이 참 철이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군대가 산성에 있고, 블레셋 군대가 베들레헴 성에 있어 서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데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먹고 싶다. 누가 나로 저 물을 마시게 할까?\\\"고 하니 얼마나 철이 없는 행동입니까? 전시에 어렸을 때의 향수에 젖어서 리더가 그렇게 마음이 약해지면 어떻게 큰 인물이 되겠습니까? 그런 말은 부하들의 가십거리가 될만한 말입니다. 그러나 세 용사들은 \\\"주군이 이상해졌어!\\\"라고 가십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말을 마음속 깊이 들었습니다. 그처럼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바로 사랑의 기초입니다. 여러분! 리더의 허물을 보고 가십거리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허물을 덮으라고 나를 목자 곁에 두셨구나!\\\"라고 생각하십시오. 목회자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예배 후에 가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성도님! 말씀 잘 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요새는 말씀을 잘 전하는 목사님보다 말씀을 잘 듣는 성도님들이 더 훌륭해 보입니다. 그만큼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말씀을 잘 듣는 분들은 교회 일 부탁하기가 참 편합니다. \\\"집사님! 이것 좀 해주실래요?\\\" 그러면 다른 말없이 \\\"네!\\\" 하고 대답합니다. 천사표 교인입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첫째 이유는 기본적인 교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유는 공동체 생활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잘 듣는 것은 소중한 사랑의 행위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가장 무서운 일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존경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병입니다. 성경을 볼 때 \\\"내가 이만한 존재다!\\\"라고 생각하면 성경은 침묵해버립니다. 더 이상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면 그때부터 침묵하던 성경은 말합니다. 그때부터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고, 다른 사람의 말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남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자기의 부족함을 모르는 교만이 문제입니다. 대개 보면 교만할 내용이 별로 없는 사람이 교만해지고,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 남보고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자들은 가장 결함이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이 남을 비판한다고 말합니다. 또 보면 교만한 사람이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결국 말을 안 듣는 사람, 교만한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환영해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고, 기댈 곳도 없게 됩니다. 멀리 미국으로 이민 간다고 해도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듣지 않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 삶입니까? 우리는 더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해력이 커집니다. 이해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지만 오해는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오늘날 왜 부부관계가 깨집니까? 대개 오해 때문입니다. 남편은 대개 아내의 가사 돌보는 일이 쉽다는 오해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은근히 \\\"나는 이 고생을 하는데 낮잠만 자면서 웬 불평이냐?\\\"고 생각합니다. 큰 오해입니다. 사실 가사처럼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생색이 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몇 배 힘듭니다. 그런 점을 몰라주는 것도 일종의 교만이고, 사랑이 없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보면서 항상 속으로 \\\"여보! 이렇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속으로만 생각하십시오. 겉으로 그렇게 말하고 여전히 짜증을 잘 내면 인격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한 대로 아내를 긍휼히 여기며 이해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말로 구구절절이 설명을 해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세상인데 마음까지 알아달라고 요구하고 불평하니 그것도 너무 이해가 없는 태도입니다. 남편이 신도 아닌데 어떻게 아내의 마음을 구석구석 다 알아줍니까? 그러므로 아내가 할 일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남편의 마음을 알아주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에서 가장 교만한 태도는 바로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 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별로 문제가 없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은 \\\"나만 옳다! 나는 당신 말을 안 듣겠다! 당신은 나만 이해하라! 나는 당신을 이해해주지 못하겠다!\\\"는 무언의 폭력입니다. 그것은 진짜 가정폭력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 마음을 너무 몰라줘!\\\"라는 사단적인 생각은 철저히 버리고 \\\"내가 좀더 들어주자! 내가 좀더 이해해주자!\\\"라고 하는 성령의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처럼 서로가 들어줄 줄 아는 삶이 부부관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랑은 듣는 것입니다. 조금 더 들어주십시오. 들어줄 줄 모르면 평생 가도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얻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도 힘듭니다.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의 마음을 얻겠습니까? 자기 의견만 주장하는 사람을 보십시오. 맨날 오해만 하고, 맨날 불평만 하다가 어려운 지경에 처합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보십시오. 맨날 이해만 하고 맨날 감사만 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No\\\'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그렇지만 성숙한 사람은 \\\'Yes\\\'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자세히 보면 \\\'No\\\'라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No\\\'라는 말을 받을 줄 아는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오냐 오냐\\\' 하고 키우면 \\\'Yes\\\'를 받을 줄만 알고 \\\'Yes\\\'를 할 줄은 몰라 커서도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Yes\\\'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스맨\\\'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예스!\\\" 하면서 남을 격려할 줄 아는 \\\'예수맨\\\'이 되라는 말입니다. 남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들어주고, 양보하면서 보다 큰 것을 얻는 삶이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2. 둘째, 사랑은 조용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 명의 용사는 다윗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희생을 작정했습니다. 결국 이 세 명의 용사는 물을 구하러 사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있는 아둘람 굴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50리 정도 됩니다. 왕복 100리 길을 오직 물을 얻기 위해서 적진으로 들어가는 이 세 명의 용사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진정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어리석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전혀 논리가 맞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조용히 실천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헌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명이라고 하면 이사야가 생각이 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뜻을 알았을 때 \\\"제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드셨을까요? 가끔 보면 어려운 일에 앞서 헌신을 다짐하며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해보죠.\\\" 그런 분들 보면 흥분이 됩니다. 너무 기쁘고 감동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말없이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데 인터넷을 통해서 저의 필요와 기도제목을 알아차리고 헌신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인이 아닌데도 멀리서 우리 교인보다 더 신경을 써주는 분도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분의 헌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 어느새 그분의 환한 얼굴이 기도 중에 영상으로 떠오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푸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온갖 목회의 시름과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처럼 조용한 헌신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세 용사도 \\\"왕이여! 제가 한번 갖다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아무리 다윗이 그 우물물을 먹고 싶어도 갖다오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물을 얻으러 갑니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합니다. 그처럼 사랑은 조용히 행동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이처럼 조용히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영성이라는 말만 하고 영적이지 못하고 책임적이지 못한 성도가 아니라 조용히 행동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참여자의 길이고, 또 하나는 방관자의 길입니다. 참여자의 길이 행복을 얻는 길이고,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들러리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지 \\\'신부의 들러리\\\'가 되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교회생활에서 주인공이 되지는 못해도 중심 인물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조용히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셋째, 사랑은 나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적진으로 들어가 우물물을 길어와서 다윗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이 드린 것은 우물물이 아니라 자기들의 목숨이었습니다. 그처럼 자기의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도 줄 수는 있지만 주는 것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어도 진실한 관계는 드리는 삶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무엇인가 소중한 일에 내 마음을 드리면 이상하게도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내가 죽으면 내 육신이 살아나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거목이 쓰러지면 산이 망할 것 같지만 그 쓰러진 것이 거름이 되어 작은 나무들이 더 많이 생기게 됩니다. 교회도 부흥하려면 자신을 드릴 줄 아는 거목들이 많아야 합니다. 취하는 삶은 갈증을 더하지만 바치는 삶은 영혼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취하는 삶은 내가 주인인 줄 아는 삶입니다. 그러나 바치는 삶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아는 삶입니다. 취하는 삶에는 눈물이 나오게 되지만 바치는 삶에는 노래가 나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삶은 \\\'취할 기회\\\'만 있고 \\\'바칠 기회\\\'는 없는 삶입니다. 가끔 부부간에 서로 더 달라고, 서로 더 취하려고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인류 중에서 그 사람이 내 남편이 되어주고, 내 아내가 되어준 것을 생각하면 몸 전체를 다 준 것인데 더 달라고 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서로 줄 것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가 구원받은 것만 해도 우리는 다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더 받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받으려고만 하고 취하려고만 하면 그것이 불행의 길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더 드릴 일만 있을 뿐입니다. 목회하면서 제일 감동될 때가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사람이 물질적 헌신을 할 때입니다. 그때는 온 몸과 마음이 떨리면서 기도가 나옵니다. 그것은 피눈물입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그것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 분들에게 저는 갚을 길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분들에게 영혼의 자유를 주실 것입니다. 그처럼 좀더 덜 누리고, 좀더 덜 쓰고 살기로 작정하면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시성 타고르는 \\\"바람이 불어 배 안의 등불이 꺼지니 뱃전에 달빛이 차더라!\\\"고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릴 때 행복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자기에게 자그만 힘이라도 주어질 때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주눅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영혼의 만족의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 중에는 예배와 기도에는 강한데 나누는 일에는 국물도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는 사람은 절대로 인색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이 되면 안됩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은 세상을 너무 몰라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몰라도 주님의 뜻은 알고 있습니다. 그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 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축복 받을 생각도 안 해도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제 나누는 일을 더 많이 하십시오. 우리가 소중한 일을 위해 호주머니를 비울 때 그 빈 호주머니에 하나님은 더욱 풍성한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웃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도 많이 나누십시오. 우리 주위에 어려운 분들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너그럽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드리고는 싶은데 여건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방법과 길은 반드시 하나님이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 위대한 이해력을 가진 분들이 되십시오 > 세 명이 용사가 가져다 준 우물물을 받고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그 엄청난 헌신을 보고 다윗은 이기적인 감성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은 욕망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것, 그처럼 소중한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 물은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갔던 사람들의 피입니다. 제가 도저히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 점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부하들이 보면서 얼마나 감동이 되겠습니까? 그 순간 그들의 사기는 더욱 충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그들은 더욱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게 되었고 결국 나라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치인들이나 지도자들에게 있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이 성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정책 결정을 하는데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원하는 것은 사심 없이 국민들을 위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그 잘못을 시인하고 근신하는 모습입니다. 한 가지 잘못을 시인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다 물어뜯는 사람들 때문에 시인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잘못에 대해 진지하게 용서를 구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용서에 인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고, 사실 우리 자신이 다 그런 존재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을 때 다윗의 갈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깨끗이 해소되었을 것입니다. 헌신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촉매제입니다. 다윗도 위대한 사람이지만 세 용사도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하였더라.\\\" 이 세 용사는 헌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누군가의 필요에 반응할 수 있는 위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위대한 이해력이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화요일 교회 이전 장소 계약을 했습니다. 계약금을 치르고 나니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부부처럼 마음이 설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설움이 설렘으로 변화된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생각할 때 남모르는 부담감이 저의 영혼에 저며옵니다. 4월 30일까지 중도금을 치러야 하고, 인테리어 비용과 여러 교회 물품 등 상세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교회 이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분들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통해 작은 은혜가 주어져서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이번에 주님의 몸된 전을 위해 저와 함께 조금이라도 부담을 나누어지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서로 더욱 격려해야 할 때입니다. 모두 일체감을 가지고 함께 이 일에 심취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소리 없는 헌신을 기대합니다. 다윗의 세 용사처럼 목자의 필요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위대한 이해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세워진지 처음으로 맞이하는 헌신의 장을 지나면서 여러분들의 신앙의 차원이 한 차원 높아지고, 잃었던 활력을 다시 한번 찾고, 다시 한번 헌신을 통해 주어지는 영혼의 새로움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을 세우는 하늘 나라의 거룩한 기초석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3대 축복의 3대 통로/ 요삼1:1-8/ 2001-07-08
3대 축복의 3대 통로 요삼1:1-8 서론 진정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돈이 많은 사 람일까요? 권세가 높은 사람일까요? 학문지식이 무장된 사람일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 그래도 이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기억하십시요? 행복한 사람이란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아내,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녀, 자녀의 사랑을 받는 부모, 스승의 사랑을 받는 제자, 제자의 사랑을 받는 스승 등등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성경 속에서 반복하여 고아와 과부들을 돌아보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부모의 사랑, 남편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는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이기에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랑을 나누어주어 그들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차리고 들어야 할 것은 사람에게 받는 사랑은 언젠가는 변할 수도 있고 필히 그 어느 날엔 그 사랑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혼, 불효, 자녀를 내어버림, 등등 얼마나 많은 배신과 저버림과 배은의 인생이 많습니까? 그리고 주검이란 것이 닥치면 나를 사랑해주던 그 사람과 함께 사랑도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랑으로만 행복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절망과 허무와 단절의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 인생은 영원한 행복자가 될 수 없을까요? 다시 말하면 영원히 계속하여 사랑 받는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가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에 대한 대답이 성경이요, 예수 복음입니다. 오늘 성경본문 요한 3서를 한 번 봅시다. 사도 요한 선생님이 가이오라는 성도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사도께서 가이오를 부를 때에 본문 전체를 보면 다섯 번이나 사랑하는 자여라고 부릅니다. 1절에서 두 번, 2절에서 한번 5절에서 한 번, 11절에서 한 번 이렇게 다섯 번이나 부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12사도 중에 다 순교를 당하시고 이제 마지막 남은 사도 요한님입니다. 그분으로부터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라고 반복하여 불려진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고 감격적인 호칭입니다. 가이오의 행복은 사도 요한님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사도 요한이라는 인간에게 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음적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의 주님이시요, 가이오의 주님이신 주 예수님께서 사도요한을 통해 가이오를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확신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주 예수님을 구주와 임금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있는 가이오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랑 안에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주님은 사도요한을 통하여 가이오를 재차 사랑하는 자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주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가이오는 정말 행복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사랑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계속하여 사랑하시되 세상 끝까지 자기 사람을 사랑하십니다.(요13:1) 바로 이렇게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시는 중생의 사랑, 현재적으로 계속하여 교제하는 교제적 사랑,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사랑의 찬양을 부르며 살아가게 되는 내세적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늦은 가을 강원도 깊은 산골에 아버지와 함께 사심 없이 살아가는 19세난 산골 소녀의 모습을 "그 산 속에 영자가 살고있다"라는 주제로 텔레비젼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소녀의 삶은 산채를 뜯고 벌통에 꿀이 모아지기를 기다리는 등 순백의 깨끗한 자연 그대로의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산골 생활의 그림은 시청자들을 감동에 감동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 후 이 양은 CF에 출연하면서 그의 인생항로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열전기가 들어오고 전화가 들어오고 서울구경도 하게 되고 결국 삼척 신기면 인적 없는 그 산골을 떠나 후견인을 자처한 金모(59)씨 집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산골에 홀로 남아있는 아버지는 지난 2월 9일 CF 출연료를 노린 강도에게 살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 가슴아픈 슬픈 충격을 받은 이 양은 번거롭고 속된 세상에 질려버려 아버지의 상을 치른 뒤 삼척경찰서 한 여형사 집에서 머물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갔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수시로 `절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니 결국 지난 4월 10일 머리를 깍고 깊은 산 속 절간으로 들어가 중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세요, 인간에게 받는 사랑으로만 만족하며 행복으로 여기다가 갑자기 그 사랑이 끊어지자 허무와 절망에 빠져 견디지 못하고 절간으로 들어가버리는 불행한 산골소녀의 모습 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CF모델이 되어 돈을 벌고 인기를 얻지만 그러한 것은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산골소녀가 머리를 깍고 중이 된 것은 절망과 허무의 늪에 빠져 버린 것이지 결단코 참된 인간의 길, 행복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산골소녀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딸이라면 머리를 깎고 절간으로 들어갔을까요?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의 비극입니다. 일전에 독일의 살인강도 지슬로 카돌로스키와 농장주 하멜만씨의 간증을 말씀해 드린 것을 기억하십니까? 지슬로 카돌로스키는 하멜만씨의 아홉 가족을 다 살해한 무자비한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다가 20년 만에 풀려나오는데 그를 책임져줄 가족이나 후견인이 없어 석방이 허락이 안된다는 소식을 듣자 하멜만씨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가 자기가족 9명을 살해한 원수의 후견인이 되고 그가 석방되자 자기 농장으로 초대하여 자기와 함께 살아가도록 사랑을 베풀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산골소녀와 하멜만씨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멜만씨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하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고 또한 계속하여 받고 있는 자이기에 그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산골소녀는 자기 아버지 한 명이 억울하게 주검을 당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절망과 허무에 빠져 머리를 깎고 절간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멜만씨는 아내를 비롯하여 자녀들까지 며느리까지 합하여 아홉 명을 억울하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절망도 허무도 증오도 복수도 품지 않고 하지도 않습니다. 더 무섭게 절망하고 더 깊고 깊은 허무에 빠져야 할 터인데 전혀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고 대접하며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무엇이 이같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까?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하여 받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1. 3대 축복의 사람.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이오에게 놀랍게도 3대 축복을 받도록 간구기도를 해줍니다. 성도 여러분과 제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구체적으로 복을 주려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해야 만이 그 행복을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거나 나누어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아야할 3대 축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2절 말씀에 나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간단한 한 절이지만 축복은 세 가지입니다. (1) 첫째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란 것이 무엇이 필요합니까? 정말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면 구원받았으니 영혼 축복은 받은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 자녀 권세를 얻은 것으로만 영혼축복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구원받은 영혼은 이제 하나님 자녀로 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의 성품과 정신사상을 닮아 성장해야합니다. 이것이 영혼축복의 성화단계,(롬6:2-11) 성령의 열매단계,(갈5:22-23)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게 되는 단계(마5:43-48)입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정신사상,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인격사상, 맡겨진 물질과 재능, 시간과 육신생명 등을 하나님절대주권으로 다스려나가는 정신사상, 이러한 정신사상이 무장되어 가는 것이 곧 영혼이 잘되어 가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진정 예수님의 성품과 정신사상으로 무장되어가며 이러한 성품과 전인사상으로 사람을 대하며 범사를 분별하며 살아갑니까? (2) 둘째로 범사가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것은 물질적 번영, 사업의 창대, 소위 성공과 형통의 삶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아버지는 가이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범사가 잘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 창세기 24장 1절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았으나 범사가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사람은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였고 그리고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함이니라`, 곧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모든 일이 다 합동하여 유익한 결과, 좋은 결과에 이르게 하시는 축복이 말씀되어 있습니다. (3) 셋째로 몸의 건강의 축복입니다.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는 영적인 건강이 아니라 몸의 건강입니다. 영적인 건강은 이미 영혼이 잘됨같이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고 있습니까? 범사가 잘 되어가는 축복을 받고 있습니까? 건강의 복을 받고 있습니까? 그러면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에게 이 같은 3대 축복, 3중 축복을 주십니까? 2. 3중 축복의 3대 통로 오늘본문에는 가이오성도가 3대 축복을 받게 되는 3대 통로가 나타나있습니다. 이 축복의 통로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함께 찾아봅시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성도는 이 3대 통로를 가지고 3대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가이오의 3대 축복의 통로는 어떤 것입니까? (1) 첫째통로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3절과 4절을 봅니다.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보세요, 가이오는 어떠한 행동을 전개해 나갈 때에 항상 진리 안에서 행해나갑니다. 그것을 모든 형제들이 증거해 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3대 축복의 첫번째 통로는 바로 진리 안에서 모든 삶과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란 어떤 의미입니까? 사도 요한의 복음을 통하여 보면 진리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14:6) 둘째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요17:17) 그리고 성령님이 진리라고 전했습니다.(요일5:7)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란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 속에서 예수님을 제일로 하여 행동하며 살아간다입니다. 또한 진리의 성경말씀을 벗어남이 없이 그 말씀 진리를 잣대로, 중심으로 하여 모든 일을 행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과 행동의 통로를 통하여 영혼이 잘되어 가며 범사가 잘되어 가며 건강의 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님은 진정 모든 일과 행동을 예수님 제일주의, 성경말씀을 절대잣대로 절대푯대로 하여 살아가도록 감동과 감화를 주시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3대축복의 통로가 건전하게 준비되어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예수님을 무시하고 성경말씀을 제쳐놓고 주변의 사람들이나 세파 따라 환경 따라 처지 따라 행하고 살아간다면 3대 축복의 통로가 막혀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일전에 `목마르거든`이라는 신앙지에 조덕제 변호사가 쓴 간증을 읽으며 진리 안에서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달은바 있어 그 간증을 여기 소개합니다. 원씨 성을 가진 형제가 회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옵니다. 바쁘게 검토하던 서류에서 그제야 눈을 떼고 그는 아내에게 채근하여 물었습니다. "뭐라고?" "우리 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의식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의사는 환자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했습니다. 뇌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아들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공호흡장치를 부착한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 업무도 중단하고 아들의 병상을 지켰습니다. 아들이 금새라도 깨어나 `아빠`하고 부르며 그의 품에 안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식물인간인 상태로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저 세상으로 영원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중이었습니다. 참 똑똑하고 잘 생긴 아이였습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만 했습니다. 표정 하나 하나도 귀엽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도 유분수지 그 어린 것이 죽다니…. 아들의 시신 앞에서 그는 망연자실했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다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참 오랜만에 찾게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했다고 느껴진 순간 그의 눈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뒤늦게 얻은 외아들인 그를 애지중지 키워왔습니다. 조상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며 그에게 절대로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몰래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모태신앙을 가진 자매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아들과 함께 어머니 몰래 교회에 다녀오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들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펄펄 뛰면서 그가 교회에 다닌다면 당신이 목숨을 끊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와 아내는 두려움에 빠져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어머니 앞에서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때 다시 교회에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어린 아들은 그의 팔을 잡아끌곤 했습니다. 교회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그것은 벌써 수년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칠순인 그의 어머니가 가족들 중에서 당연히 가장 먼저 돌아가실 줄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다시 즐겁게 교회에 다닐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나이 어린 그의 아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냥 돌아가시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으면서도, 그 동안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전도를 포기한 채 그냥 돌아가실 날만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어머니 앞에서 담대하게 진리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전도를 하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위한다면서도 진정으로 어머니의 영혼은 사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아들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에게 생각이 미치면서 그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참회의 고백이 흘러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죽은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그는 담대한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실 것을 용감하게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교회에 모시고 나갔습니다. 그 후 원형제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간증입니까? 여기서 원 형제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진리 안에서 행동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제일주의, 성경 말씀을 절대표준으로 하여 행동해야하는데 어머니를 무서워하였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제일주의로 살아왔으며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잣대로 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정지하며 뒤로 미루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영혼의 축복도 없고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어 가는 불행한 범사와 건강은 고사하고 아들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리 안에서 행하여 복을 받은 성경의 인물 중에 누가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합니까? 구약에서는 욥이요, 신약에서는 바울사도라고 생각합니다. 욥을 잠시 고찰하여 보십시요. 먼저 욥이 당한 재난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1) 스바의 도적들이 와서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다 빼앗아 갔습니다. 2) 하늘에서 불벼락이 쏟아져 내려와 양들이 몽땅 죽어버렸습니다. 3) 갈대아 도적들이 몰려와 약대를 몽땅 훔쳐 갔습니다. 그런데 이 때 도적질 당하고 불벼락을 맞아 죽어간 가축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욥1: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이 같은 재산과 명성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4) 이러한 재난보다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은 7남 3녀의 자녀들이 대풍에 의하여 무너져 내린 집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5) 그것보다 더욱 더 기가 막힌 고통은 그의 몸이 악창 질병에 휩쌓여 기와조각으로 온몸을 긁어대야 하는 절망적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6) 거기다가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은 함께 하나님을 신앙하고 섬기며 살던 아내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원망 한마디 안하고 오히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십니다. 적신으로 나온 인생 적신으로 떠나감이 마땅합니다하며 진리를 잣대로 하여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의 아내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 "아니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순수하게 가지신단 말이예요?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내의 원망과 저주 앞에서도 욥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 절대신앙으로 얼마나 바로 되고 잘되어있는지를 나타냅니다. 욥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신구약성경 속의 인물 중에 욥처럼 커다란 재앙을 격은 사람은 그리 많치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욥이 가지고 있는 진리 안에서의 신앙 고백의 삶입니다. 욥은 어떠한 재난 속에서도 진리 안에서 그 모든 재난을 해석하며 감사해 나가는 신앙으로서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욥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욥에게 있던 범사의 복 곧 물질적인 복, 지역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던 복, 건강의 복, 이러한 것들이 다 사라졌을 때에 욥의 영혼상태가 어떠하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께서 찬송을 받으소서하며 그동안이라도 자녀들과 물질을 맡겨주셔서 관계하며 사용관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모든 것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계셔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는데 의로우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이렇게 일을 전개하심에 무슨 뜻이 계실 것이니 이해가 안되어도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영혼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욥의 영혼이 바로 되고 잘 되어가는 복을 받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감동하시고 칭찬하시면서 나중에는 모든 것에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욥이 모든 재난을 극복하고 범사와 건강과 자녀 모든 것에 갑절의 축복을 받으며 영혼이 이렇게 바로 되고 잘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절대주권주의 신앙사상과 이 신앙사상을 잣대로 하여 범사를 분별하여 언행심사를 전개해 나가는 진리 안에서의 삶의 통로를 통하여서입니다. (2) 두 번째의 축복의 통로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통로입니다. 본문 5절로 7절을 봅니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6 저희가 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가이오는 어떤 사랑을 실천하였습니까? 초대교회 때나 현시대에서나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하여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순회선교사, 자비량 전도자들을 물심 양면으로 후원하는 사랑실천입니다. 성도 여러분, 3대 축복의 두 번째 통로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각종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실천이 곧 축복의 통로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와 선교, 환난과 고독과 빈곤 속에서 고통 당하는 이웃들을 구제하며 위로하며 봉사하기, 각종 선한 사업을 전개하여 행복과 소망과 진리와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 이것이 곧 사랑실천의 통로입니다. 이 통로를 통하여 3대 축복이 쏟아져 들어오게 됩니다. (3) 세번째 축복의 통로는 바로 기도라는 통로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세 가지 축복을 가이오가 받게 하려고 사도 요한은 간구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로 간구 기도가 축복의 세번째 통로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통로로만 3대 축복이 풍성하게 공급된다고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필히 간구 기도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야고보서 4장 2절에서는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시행해주신다고 요한 14장 13절과 14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하여 약속하셨습니다. 일본인이 잘 알고 있는 빛을 발하는 살인자 도모 다까심오즈 살인을 저질러 사형수가 된 무자비한 죄인 한 사람이 일본 역사 속에 빛을 발하며 적혀있습니다. 당시에 북해도에 탄광개발이 시작이 될 때,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려하지 않자 일본 정부에서는 사형수들을 선택하여 북해도에 가서 탄광사업에 종사하는 조건으로 살려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도모다까심오즈도 북해도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방문을 오는데 심오즈에게는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오즈를 찾아온 면회자가 나타났습니다. 나가보니 백발의 할머니였습니다. 그 노인은 심오즈의 어머니였습니다. 심오즈는 "소리를 지르며 왜 오셨나요? 가세요, 가세요, 하며 악을 썼습니다. 이같이 성격이 더럽고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백발의 어머니는 가야지 가고 말고 하며 가져온 보따리를 내어밉니다, 그래도 이건 받으려무나"하며 보따리를 손에 얹어 놓으시고 북해도를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곳에 왜 오셨을까요? 어머니는 일본 남쪽 해안 가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을 더 내려가야 하는 섬에서 오셨는데 거리가 북해도에서 3천리가 되는 곳이였습니다. 아들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는 예수님을 몰랐는데 아들이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 들어간 사이에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딸이 되셨습니다. 이제 북해도에서 절망과 고통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아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기도를 드리다가 3천리를 멀다않고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도 아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따리를 풀어보니 선물들이 있고 그 속에 성경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심오즈는 성경을 감방 구석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죄수들이 그 성경책을 한 장 한 장 찢어 담배를 말아 피웁니다. 그것을 보자 아무리 예수를 안 믿어도 3천리 밖에서 어머니가 가져다 준 선물인 책이었는데 담배를 말아 피우니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동료들을 야단을 치고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이 있는가 하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에 성령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쇠덩어리가 지남철에 달라붙듯이 그의 마음과 눈길이 성경에 찰싹 달라붙게 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심오즈는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성경만을 읽습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나자 모두가 떠듭니다. 심오즈는 시끄러워 그 동료들이 있는 갱을 나와 다른 갱으로 들어가 성경을 펼쳐들고 또 읽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심오즈 일행이 일하던 갱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입니다. 그 날 갱 속에 깔려 죽은 사람은 37명 심오즈와 같이 일하던 동료 모두가 죽었습니다. 심오즈는 성경을 읽으려는 열정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그제서야 심오즈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며 도와주심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느끼며 감격해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이 잘되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옥중범사도 잘되어 갑니다. 15년의 징역이 10년으로 다시 7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의 신앙에 의한 모범적인 감옥생활이 이렇게 놀라운 축복과 강력한 역사를 펼쳐냈던 것입니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자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죄를 회개하며 돈을 벌어 먼저 양로원을 하나 세우기를 결심하고 기도하며 전개해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소원과 기도대로 양로원을 세우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을 하며 그는 학교를 세우게 해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과 기도는 놀랍게 응답되어 시모즈 성도님은 중고등 학교를 6개를 세웠습니다. 일본 정부는 도모다까 심오즈에게 "교육자 대상과 사회사업가 대상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는 77세에 천국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도모다까 시모즈 성도에게 어떤 삶이 펼쳐졌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진리 안에서 행동하여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양로원과 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사랑의 실천 정신과 소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과 기도는 다 응답이 되었고 양로원 하나와 중고등학교 6개를 세웠습니다. 시모즈가 이렇게 놀라운 사람으로 변한 것은 그의 어머니의 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3천리 밖에서 부터 찾아오신 사랑실천의 삶과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오! 은평의 성도 여러분! 이제 3대 축복을 사모하십시요, 그리고 3대 축복의 통로대로 살아가십시요. 그 통로로 축복이 콸콸 흘러 들어와 조국과 아시아 나아가 온 세계를 향하여 그 축복을 나누어주게 합시다. 여러분은 성전건축과 교회부흥에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살인자요, 불효자로 살아온 시모즈가 새사람이 되자 노인들을 위하여 양로원을 세우고 십대를 위하여 중고등학교를 여섯개나 세웠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불행한 노인들과 저 세상 속의 어린이들, 십대들을 위하여 어떠한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까? 고아원 양로원, 학교들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선한 사업, 사랑의 실천 사업을 위하여 진정 풍성하게 밀어주고 기도해주고 후원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머리를 깎고 절간으로 들어간 산골소녀의 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내용의 전 과정을 접하는 이랜드의 아름다운 삶의 편집장인 채성태씨는 산골소녀의 소식을 접하면서 세 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첫째 저 산골소녀가 산골을 떠나 도시로 나오고 CF모델로 나오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절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는 마음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해졌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산골소녀가 절간에 들어간 일로 인하여 자꾸만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고 하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왜 그럴까요하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아! 허무와 절망에 빠져있던 산골소녀의 주변에는 그리스도인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말인가? 아! 산골소녀가 갈 사찰이 있었다면 산골소녀가 찾아갈 사랑의 안식처 같은 교회는 없었단 말인가? 오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성도여, 믿으면 구원받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주 예수님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시다. 천국이 있음을 알려줍시다. 예수님을 영접만 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알려주시고 그 예수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계시며 위로하시고 힘주심을 알려줍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우리교회에 나오셔서 부탁하세요.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여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진실한 사랑과 소망을 나누어줍시다. 오! 성도여, 혼자의 힘으로는 큰사랑을 못펼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합력하면 큰사랑을 한사람에게 베풀 수는 있답니다. 다함께 3대 축복의 3대 통로의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므로 끝마칩니다. 김택수 목사(은평침례교회)
3대 축복의 3대 통로/요삼1:1-8
3대 축복의 3대 통로 요삼1:1-8 서론 진정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돈이 많은 사 람일까요? 권세가 높은 사람일까요? 학문지식이 무장된 사람일까요? 그런데 이 사람들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 그래도 이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일까요? 기억하십시요? 행복한 사람이란 사랑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는 아내, 아내의 사랑을 받는 남편,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자녀, 자녀의 사랑을 받는 부모, 스승의 사랑을 받는 제자, 제자의 사랑을 받는 스승 등등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곧 행복입니다. 성경 속에서 반복하여 고아와 과부들을 돌아보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부모의 사랑, 남편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하는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이기에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사랑을 나누어주어 그들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차리고 들어야 할 것은 사람에게 받는 사랑은 언젠가는 변할 수도 있고 필히 그 어느 날엔 그 사랑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혼, 불효, 자녀를 내어버림, 등등 얼마나 많은 배신과 저버림과 배은의 인생이 많습니까? 그리고 주검이란 것이 닥치면 나를 사랑해주던 그 사람과 함께 사랑도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랑으로만 행복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절망과 허무와 단절의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 인생은 영원한 행복자가 될 수 없을까요? 다시 말하면 영원히 계속하여 사랑 받는 존재로 살아갈 수 없는 가입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에 대한 대답이 성경이요, 예수 복음입니다. 오늘 성경본문 요한 3서를 한 번 봅시다. 사도 요한 선생님이 가이오라는 성도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사도께서 가이오를 부를 때에 본문 전체를 보면 다섯 번이나 사랑하는 자여라고 부릅니다. 1절에서 두 번, 2절에서 한번 5절에서 한 번, 11절에서 한 번 이렇게 다섯 번이나 부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12사도 중에 다 순교를 당하시고 이제 마지막 남은 사도 요한님입니다. 그분으로부터 `사랑하는 자여! 사랑하는 자여`라고 반복하여 불려진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고 감격적인 호칭입니다. 가이오의 행복은 사도 요한님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사도 요한이라는 인간에게 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음적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의 주님이시요, 가이오의 주님이신 주 예수님께서 사도요한을 통해 가이오를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며 확신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주 예수님을 구주와 임금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있는 가이오입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랑 안에서 만족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주님은 사도요한을 통하여 가이오를 재차 사랑하는 자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주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사랑을 받은 가이오는 정말 행복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는 사랑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계속하여 사랑하시되 세상 끝까지 자기 사람을 사랑하십니다.(요13:1) 바로 이렇게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 주시는 중생의 사랑, 현재적으로 계속하여 교제하는 교제적 사랑,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 앞에서 영원토록 사랑의 찬양을 부르며 살아가게 되는 내세적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늦은 가을 강원도 깊은 산골에 아버지와 함께 사심 없이 살아가는 19세난 산골 소녀의 모습을 \\\\\\\\\\\\\\\"그 산 속에 영자가 살고있다\\\\\\\\\\\\\\\"라는 주제로 텔레비젼에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소녀의 삶은 산채를 뜯고 벌통에 꿀이 모아지기를 기다리는 등 순백의 깨끗한 자연 그대로의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산골 생활의 그림은 시청자들을 감동에 감동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 후 이 양은 CF에 출연하면서 그의 인생항로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열전기가 들어오고 전화가 들어오고 서울구경도 하게 되고 결국 삼척 신기면 인적 없는 그 산골을 떠나 후견인을 자처한 金모(59)씨 집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산골에 홀로 남아있는 아버지는 지난 2월 9일 CF 출연료를 노린 강도에게 살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 가슴아픈 슬픈 충격을 받은 이 양은 번거롭고 속된 세상에 질려버려 아버지의 상을 치른 뒤 삼척경찰서 한 여형사 집에서 머물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갔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수시로 `절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더니 결국 지난 4월 10일 머리를 깍고 깊은 산 속 절간으로 들어가 중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세요, 인간에게 받는 사랑으로만 만족하며 행복으로 여기다가 갑자기 그 사랑이 끊어지자 허무와 절망에 빠져 견디지 못하고 절간으로 들어가버리는 불행한 산골소녀의 모습 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CF모델이 되어 돈을 벌고 인기를 얻지만 그러한 것은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산골소녀가 머리를 깍고 중이 된 것은 절망과 허무의 늪에 빠져 버린 것이지 결단코 참된 인간의 길, 행복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산골소녀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딸이라면 머리를 깎고 절간으로 들어갔을까요? 예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의 비극입니다. 일전에 독일의 살인강도 지슬로 카돌로스키와 농장주 하멜만씨의 간증을 말씀해 드린 것을 기억하십니까? 지슬로 카돌로스키는 하멜만씨의 아홉 가족을 다 살해한 무자비한 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다가 20년 만에 풀려나오는데 그를 책임져줄 가족이나 후견인이 없어 석방이 허락이 안된다는 소식을 듣자 하멜만씨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가 자기가족 9명을 살해한 원수의 후견인이 되고 그가 석방되자 자기 농장으로 초대하여 자기와 함께 살아가도록 사랑을 베풀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산골소녀와 하멜만씨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하멜만씨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하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고 또한 계속하여 받고 있는 자이기에 그 사랑으로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산골소녀는 자기 아버지 한 명이 억울하게 주검을 당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절망과 허무에 빠져 머리를 깎고 절간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멜만씨는 아내를 비롯하여 자녀들까지 며느리까지 합하여 아홉 명을 억울하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절망도 허무도 증오도 복수도 품지 않고 하지도 않습니다. 더 무섭게 절망하고 더 깊고 깊은 허무에 빠져야 할 터인데 전혀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용서하고 대접하며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무엇이 이같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까?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하여 받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1. 3대 축복의 사람. 여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이오에게 놀랍게도 3대 축복을 받도록 간구기도를 해줍니다. 성도 여러분과 제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구체적으로 복을 주려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해야 만이 그 행복을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거나 나누어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아야할 3대 축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2절 말씀에 나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간단한 한 절이지만 축복은 세 가지입니다. (1) 첫째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성도에게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란 것이 무엇이 필요합니까? 정말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면 구원받았으니 영혼 축복은 받은 것이 아니냐?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 자녀 권세를 얻은 것으로만 영혼축복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구원받은 영혼은 이제 하나님 자녀로 출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의 성품과 정신사상을 닮아 성장해야합니다. 이것이 영혼축복의 성화단계,(롬6:2-11) 성령의 열매단계,(갈5:22-23)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게 되는 단계(마5:43-48)입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정신사상,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인격사상, 맡겨진 물질과 재능, 시간과 육신생명 등을 하나님절대주권으로 다스려나가는 정신사상, 이러한 정신사상이 무장되어 가는 것이 곧 영혼이 잘되어 가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진정 예수님의 성품과 정신사상으로 무장되어가며 이러한 성품과 전인사상으로 사람을 대하며 범사를 분별하며 살아갑니까? (2) 둘째로 범사가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것은 물질적 번영, 사업의 창대, 소위 성공과 형통의 삶입니다. 성경과 하나님아버지는 가이오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이렇게 범사가 잘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저 창세기 24장 1절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았으나 범사가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시편 1편에서도 `복 있는 사람은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였고 그리고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함이니라`, 곧 괴로운 일이나 즐거운 일이나 모든 일이 다 합동하여 유익한 결과, 좋은 결과에 이르게 하시는 축복이 말씀되어 있습니다. (3) 셋째로 몸의 건강의 축복입니다.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는 영적인 건강이 아니라 몸의 건강입니다. 영적인 건강은 이미 영혼이 잘됨같이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고 있습니까? 범사가 잘 되어가는 축복을 받고 있습니까? 건강의 복을 받고 있습니까? 그러면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에게 이 같은 3대 축복, 3중 축복을 주십니까? 2. 3중 축복의 3대 통로 오늘본문에는 가이오성도가 3대 축복을 받게 되는 3대 통로가 나타나있습니다. 이 축복의 통로는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함께 찾아봅시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성도는 이 3대 통로를 가지고 3대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가이오의 3대 축복의 통로는 어떤 것입니까? (1) 첫째통로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 3절과 4절을 봅니다.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보세요, 가이오는 어떠한 행동을 전개해 나갈 때에 항상 진리 안에서 행해나갑니다. 그것을 모든 형제들이 증거해 줄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3대 축복의 첫번째 통로는 바로 진리 안에서 모든 삶과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란 어떤 의미입니까? 사도 요한의 복음을 통하여 보면 진리는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14:6) 둘째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셨습니다.(요17:17) 그리고 성령님이 진리라고 전했습니다.(요일5:7)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란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 속에서 예수님을 제일로 하여 행동하며 살아간다입니다. 또한 진리의 성경말씀을 벗어남이 없이 그 말씀 진리를 잣대로, 중심으로 하여 모든 일을 행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과 행동의 통로를 통하여 영혼이 잘되어 가며 범사가 잘되어 가며 건강의 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도님은 진정 모든 일과 행동을 예수님 제일주의, 성경말씀을 절대잣대로 절대푯대로 하여 살아가도록 감동과 감화를 주시는 성령님을 따라 살아갑니까? 그렇다면 3대축복의 통로가 건전하게 준비되어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예수님을 무시하고 성경말씀을 제쳐놓고 주변의 사람들이나 세파 따라 환경 따라 처지 따라 행하고 살아간다면 3대 축복의 통로가 막혀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일전에 `목마르거든`이라는 신앙지에 조덕제 변호사가 쓴 간증을 읽으며 진리 안에서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달은바 있어 그 간증을 여기 소개합니다. 원씨 성을 가진 형제가 회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데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옵니다. 바쁘게 검토하던 서류에서 그제야 눈을 떼고 그는 아내에게 채근하여 물었습니다. \\\\\\\\\\\\\\\"뭐라고?\\\\\\\\\\\\\\\" \\\\\\\\\\\\\\\"우리 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의식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의사는 환자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고 했습니다. 뇌수술을 받았지만, 그의 아들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인공호흡장치를 부착한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 업무도 중단하고 아들의 병상을 지켰습니다. 아들이 금새라도 깨어나 `아빠`하고 부르며 그의 품에 안길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식물인간인 상태로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저 세상으로 영원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중이었습니다. 참 똑똑하고 잘 생긴 아이였습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만 했습니다. 표정 하나 하나도 귀엽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도 유분수지 그 어린 것이 죽다니…. 아들의 시신 앞에서 그는 망연자실했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인가.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다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참 오랜만에 찾게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했다고 느껴진 순간 그의 눈에서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뒤늦게 얻은 외아들인 그를 애지중지 키워왔습니다. 조상제사를 잘 모셔야 한다며 그에게 절대로 교회에 다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 몰래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모태신앙을 가진 자매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아들과 함께 어머니 몰래 교회에 다녀오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 들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펄펄 뛰면서 그가 교회에 다닌다면 당신이 목숨을 끊어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그와 아내는 두려움에 빠져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어머니 앞에서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때 다시 교회에 다니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어린 아들은 그의 팔을 잡아끌곤 했습니다. 교회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들의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그것은 벌써 수년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칠순인 그의 어머니가 가족들 중에서 당연히 가장 먼저 돌아가실 줄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다시 즐겁게 교회에 다닐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장 나이 어린 그의 아들이 먼저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냥 돌아가시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으면서도, 그 동안 그는 어머니에 대해서는 전도를 포기한 채 그냥 돌아가실 날만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어머니 앞에서 담대하게 진리대로 살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전도를 하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위한다면서도 진정으로 어머니의 영혼은 사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의 아들의 죽음 앞에서 어머니에게 생각이 미치면서 그의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참회의 고백이 흘러 나왔습니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죽은 아들의 장례를 치른 후 그는 담대한 마음으로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실 것을 용감하게 권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교회에 모시고 나갔습니다. 그 후 원형제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간증입니까? 여기서 원 형제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진리 안에서 행동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 제일주의, 성경 말씀을 절대표준으로 하여 행동해야하는데 어머니를 무서워하였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제일주의로 살아왔으며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잣대로 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며 신앙생활을 정지하며 뒤로 미루어버렸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영혼의 축복도 없고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어 가는 불행한 범사와 건강은 고사하고 아들의 생명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리 안에서 행하여 복을 받은 성경의 인물 중에 누가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합니까? 구약에서는 욥이요, 신약에서는 바울사도라고 생각합니다. 욥을 잠시 고찰하여 보십시요. 먼저 욥이 당한 재난은 어떤 것들이었습니까? 1) 스바의 도적들이 와서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다 빼앗아 갔습니다. 2) 하늘에서 불벼락이 쏟아져 내려와 양들이 몽땅 죽어버렸습니다. 3) 갈대아 도적들이 몰려와 약대를 몽땅 훔쳐 갔습니다. 그런데 이 때 도적질 당하고 불벼락을 맞아 죽어간 가축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욥1: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이 같은 재산과 명성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4) 이러한 재난보다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은 7남 3녀의 자녀들이 대풍에 의하여 무너져 내린 집에 깔려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5) 그것보다 더욱 더 기가 막힌 고통은 그의 몸이 악창 질병에 휩쌓여 기와조각으로 온몸을 긁어대야 하는 절망적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6) 거기다가 더욱 더 충격적인 것은 함께 하나님을 신앙하고 섬기며 살던 아내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원망 한마디 안하고 오히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십니다. 적신으로 나온 인생 적신으로 떠나감이 마땅합니다하며 진리를 잣대로 하여 감사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의 아내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 \\\\\\\\\\\\\\\"아니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순수하게 가지신단 말이예요?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내의 원망과 저주 앞에서도 욥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 절대신앙으로 얼마나 바로 되고 잘되어있는지를 나타냅니다. 욥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신구약성경 속의 인물 중에 욥처럼 커다란 재앙을 격은 사람은 그리 많치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욥이 가지고 있는 진리 안에서의 신앙 고백의 삶입니다. 욥은 어떠한 재난 속에서도 진리 안에서 그 모든 재난을 해석하며 감사해 나가는 신앙으로서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욥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욥에게 있던 범사의 복 곧 물질적인 복, 지역사회로부터 존경을 받던 복, 건강의 복, 이러한 것들이 다 사라졌을 때에 욥의 영혼상태가 어떠하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께서 찬송을 받으소서하며 그동안이라도 자녀들과 물질을 맡겨주셔서 관계하며 사용관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모든 것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계셔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는데 의로우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이렇게 일을 전개하심에 무슨 뜻이 계실 것이니 이해가 안되어도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영혼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욥의 영혼이 바로 되고 잘 되어가는 복을 받게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감동하시고 칭찬하시면서 나중에는 모든 것에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욥이 모든 재난을 극복하고 범사와 건강과 자녀 모든 것에 갑절의 축복을 받으며 영혼이 이렇게 바로 되고 잘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 절대주권주의 신앙사상과 이 신앙사상을 잣대로 하여 범사를 분별하여 언행심사를 전개해 나가는 진리 안에서의 삶의 통로를 통하여서입니다. (2) 두 번째의 축복의 통로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통로입니다. 본문 5절로 7절을 봅니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6 저희가 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7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가이오는 어떤 사랑을 실천하였습니까? 초대교회 때나 현시대에서나 영혼 구원을 목적으로 하여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순회선교사, 자비량 전도자들을 물심 양면으로 후원하는 사랑실천입니다. 성도 여러분, 3대 축복의 두 번째 통로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각종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랑실천이 곧 축복의 통로입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와 선교, 환난과 고독과 빈곤 속에서 고통 당하는 이웃들을 구제하며 위로하며 봉사하기, 각종 선한 사업을 전개하여 행복과 소망과 진리와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 이것이 곧 사랑실천의 통로입니다. 이 통로를 통하여 3대 축복이 쏟아져 들어오게 됩니다. (3) 세번째 축복의 통로는 바로 기도라는 통로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세 가지 축복을 가이오가 받게 하려고 사도 요한은 간구기도를 드렸습니다. 바로 간구 기도가 축복의 세번째 통로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통로로만 3대 축복이 풍성하게 공급된다고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필히 간구 기도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야고보서 4장 2절에서는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시행해주신다고 요한 14장 13절과 14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하여 약속하셨습니다. 일본인이 잘 알고 있는 빛을 발하는 살인자 도모 다까심오즈 살인을 저질러 사형수가 된 무자비한 죄인 한 사람이 일본 역사 속에 빛을 발하며 적혀있습니다. 당시에 북해도에 탄광개발이 시작이 될 때, 사람들이 그곳으로 가려하지 않자 일본 정부에서는 사형수들을 선택하여 북해도에 가서 탄광사업에 종사하는 조건으로 살려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도모다까심오즈도 북해도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방문을 오는데 심오즈에게는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심오즈를 찾아온 면회자가 나타났습니다. 나가보니 백발의 할머니였습니다. 그 노인은 심오즈의 어머니였습니다. 심오즈는 \\\\\\\\\\\\\\\"소리를 지르며 왜 오셨나요? 가세요, 가세요, 하며 악을 썼습니다. 이같이 성격이 더럽고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백발의 어머니는 가야지 가고 말고 하며 가져온 보따리를 내어밉니다, 그래도 이건 받으려무나\\\\\\\\\\\\\\\"하며 보따리를 손에 얹어 놓으시고 북해도를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곳에 왜 오셨을까요? 어머니는 일본 남쪽 해안 가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을 더 내려가야 하는 섬에서 오셨는데 거리가 북해도에서 3천리가 되는 곳이였습니다. 아들이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는 예수님을 몰랐는데 아들이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 들어간 사이에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딸이 되셨습니다. 이제 북해도에서 절망과 고통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아들에게 전도를 하려고 기도를 드리다가 3천리를 멀다않고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냉정하게도 아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따리를 풀어보니 선물들이 있고 그 속에 성경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심오즈는 성경을 감방 구석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죄수들이 그 성경책을 한 장 한 장 찢어 담배를 말아 피웁니다. 그것을 보자 아무리 예수를 안 믿어도 3천리 밖에서 어머니가 가져다 준 선물인 책이었는데 담배를 말아 피우니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동료들을 야단을 치고 성경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내용이 있는가 하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에 성령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쇠덩어리가 지남철에 달라붙듯이 그의 마음과 눈길이 성경에 찰싹 달라붙게 하였습니다. 그 날부터 심오즈는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성경만을 읽습니다. 하루는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나자 모두가 떠듭니다. 심오즈는 시끄러워 그 동료들이 있는 갱을 나와 다른 갱으로 들어가 성경을 펼쳐들고 또 읽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심오즈 일행이 일하던 갱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입니다. 그 날 갱 속에 깔려 죽은 사람은 37명 심오즈와 같이 일하던 동료 모두가 죽었습니다. 심오즈는 성경을 읽으려는 열정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그제서야 심오즈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며 도와주심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느끼며 감격해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영혼이 잘되어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옥중범사도 잘되어 갑니다. 15년의 징역이 10년으로 다시 7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의 신앙에 의한 모범적인 감옥생활이 이렇게 놀라운 축복과 강력한 역사를 펼쳐냈던 것입니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자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죄를 회개하며 돈을 벌어 먼저 양로원을 하나 세우기를 결심하고 기도하며 전개해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소원과 기도대로 양로원을 세우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을 하며 그는 학교를 세우게 해달라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원과 기도는 놀랍게 응답되어 시모즈 성도님은 중고등 학교를 6개를 세웠습니다. 일본 정부는 도모다까 심오즈에게 \\\\\\\\\\\\\\\"교육자 대상과 사회사업가 대상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는 77세에 천국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도모다까 시모즈 성도에게 어떤 삶이 펼쳐졌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진리 안에서 행동하여 모범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양로원과 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사랑의 실천 정신과 소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과 기도는 다 응답이 되었고 양로원 하나와 중고등학교 6개를 세웠습니다. 시모즈가 이렇게 놀라운 사람으로 변한 것은 그의 어머니의 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3천리 밖에서 부터 찾아오신 사랑실천의 삶과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오! 은평의 성도 여러분! 이제 3대 축복을 사모하십시요, 그리고 3대 축복의 통로대로 살아가십시요. 그 통로로 축복이 콸콸 흘러 들어와 조국과 아시아 나아가 온 세계를 향하여 그 축복을 나누어주게 합시다. 여러분은 성전건축과 교회부흥에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살인자요, 불효자로 살아온 시모즈가 새사람이 되자 노인들을 위하여 양로원을 세우고 십대를 위하여 중고등학교를 여섯개나 세웠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불행한 노인들과 저 세상 속의 어린이들, 십대들을 위하여 어떠한 사랑을 실천하고 싶습니까? 고아원 양로원, 학교들을 세우지 못하더라도 이러한 선한 사업, 사랑의 실천 사업을 위하여 진정 풍성하게 밀어주고 기도해주고 후원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머리를 깎고 절간으로 들어간 산골소녀의 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내용의 전 과정을 접하는 이랜드의 아름다운 삶의 편집장인 채성태씨는 산골소녀의 소식을 접하면서 세 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첫째 저 산골소녀가 산골을 떠나 도시로 나오고 CF모델로 나오는 것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절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는 마음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해졌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산골소녀가 절간에 들어간 일로 인하여 자꾸만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고 하며 그리스도인 독자들에게 왜 그럴까요하는 질문을 남겼습니다. 아! 허무와 절망에 빠져있던 산골소녀의 주변에는 그리스도인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말인가? 아! 산골소녀가 갈 사찰이 있었다면 산골소녀가 찾아갈 사랑의 안식처 같은 교회는 없었단 말인가? 오호!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성도여, 믿으면 구원받고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주 예수님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아픔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시다. 천국이 있음을 알려줍시다. 예수님을 영접만 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알려주시고 그 예수님이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계시며 위로하시고 힘주심을 알려줍시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우리교회에 나오셔서 부탁하세요.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여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진실한 사랑과 소망을 나누어줍시다. 오! 성도여, 혼자의 힘으로는 큰사랑을 못펼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합력하면 큰사랑을 한사람에게 베풀 수는 있답니다. 다함께 3대 축복의 3대 통로의 삶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므로 끝마칩니다. 은평침례교회 2001년 7월 8일 주일 낮 말씀 김택수 목사
3박자의 축복/요삼1:2
3박자의 축복/요삼1:2 2003-12-26 10:53:24 read : 89 여름철이면 냉면 먹는 재미가 참 좋습니다. 지난 주간 어떤 집사님이 냉면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냉면집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고박사 냉면집입니다. 이 집은 전국에서 이름나 타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갑니다. 나도 냉면을 즐기는 터라 고박사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어보았는데, 냉면의 3박자가 잘 맛아떨어집디다. 첫째, 육수입니다. 뒷맛이 짜릿한게 어느 식당도 흉내낼 수가 없어요. 둘째, 면입니다. 모밀로 만든 면은 무조건 질긴 것이라 여기는데 어떤 집 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처럼 질겨 가위로 잘라도 안끊어집니다. 그런데 이 집은 아주 적당합니다. 세째, 양념(김치,식초,겨자)입니다. 집에서 고박사 냉면이 생각나면 냉면의 3박자를 잘 맞추어 만들어 먹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첫째, 면은 송학표 물냉면 사리가 제일 고박사 냉면 사리를 닮았어요. 둘째, 육수는 포장된 냉면 스프를 쓰지 않고 미원표인가 다시다를 쓰고 셋째 양념은 김치를 밖에서 시게 익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그 김치와 국물을 넣어 먹으면 그 맛이 고박사 냉면 못지않은 일품이지요. 생각있는 분은 말씀하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테니까? ※냉면의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맛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3박자가 있어요. 이 3박자가 맞아야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에 이 3박자의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3박자 축복으로 잘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첫째,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 부분입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날 때 뿌리부터 생깁니다. 인간 존재는 영혼부터 생깁니다. 그 영혼은 이 세상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합니다. [엡1:4]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벧전1: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아심을 따라 사람이란 엄마 뱃속에 수태하면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 영혼을 창조 하셨다는 말입니다. 만일에 유전공학으로 사람의 체세포를 떼내어 복제 인간을 만들어낸다면 그 인간은 하나님 허락 없는 무허가 인간이라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두려운 일입니다. 육신은 복제할지 몰라도 영혼은 절대로 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통하는 나(자아)입니다. 불신자일 땐, 그 영혼이 귀신과 통하고 우상과 통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그 영혼이 죄씻음을 받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 드리고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교훈을 받고 마음에 깨닫고 지혜를 얻게 됩니다. 교회 처음 나오면 기도의 입이 열리지 않고 찬송이 재미 없고 헌금하는 것이 아깝고 예배드리는 것이 지루한 이유는 아직 그 영혼이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무럭 무럭 자라야 합니다. 건강한 영혼은 하나님과 교제가 잘 이루어져 예배를 드리기를 좋아합니다. 영혼은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영혼은 기도로 호흡을 합니다 영혼은 찬송으로 생기를 얻습니다. 영혼은 말씀대로 순종할 때 기쁨을 누립니다. 병든 영혼은 하나님과 통로가 막힌 것입니다. 말씀 먹기가 싫어지고 기도하기가 어렵고, 찬송이 시큰중해지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영혼이 먼저 잘되기를 바랍니다. 영혼은 인생의 뿌리입니다. 욥14:7-9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그러므로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다시 일어납니다. 소망을 갖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언제나 그 영혼부터 먼저 관리합니다. 둘째, 육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본문엔 세번째로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고했는데 이는 육신의 건강을 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아라면 육신은 세상과 통하는 자아입니다. 이 육신은 내 영혼이 세상에 살 때먄 내가 사는 임시 거처입니다. 다 쓰러져 가는 비 새는 집에서 사는 것보다 잘지은 튼튼한 집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해야지요. 이 육신은 자동차와 꼭같습니다. 같은 연도에 출고된 차라도 그 주인이 어떻게 관리했느냐에 따라 10년도 20년도 새것같이 굴러가는 차가 있는가하면 3년만에 폐차되는 차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남자 40대 사망율이 세계에서 최고랍니다. 그만큼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혹사시키고 술담배에 찌들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몸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아무리 태어날 때 건강한 몸일지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폐차 당하는 차와 같아지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새벽기도를 습관으로 하면 저절로 되지요.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밭에 나가서 일하고 노동했는데, 지금은 운동이라도 해야지요. 하루 세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세요. 밤참을 먹지마세요. 안이숙 사모님은 86세까지 정정하게 세계를 간증다니시다가 천국 가셨는데, 그분의 말에의하면 저녁 7시 이후 물도 안마신다고 합니다. 많이 움직여 일하고 식사 규칙적으로 하고 저녁에 위대해지 않고 위를 비워두니 체중 걱정 할일이 없습니다. 다이어트하느니 약을 먹느니 지방흡입 수술을 했느니 않했느니 한번에 3-40kg씩 줄이고 난리 피울 일이 없어요. 술 담배를 끊어버리세요. 과로하지 마세요. 주일은 쉬세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세요. 이 부문은 영혼 관리를 잘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늙어가는 것을 비관하지 마세요. 인생 40고개만 넘으면 세월이 내리막 차길과 같아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육신이 여기저기 기능이 저하합니다. 육신은 소모품입니다. 낡아집니다. 죽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그 영혼은 천국에 가고 육신은 예수 재림하시면 다시 부활하여 영원이 죽지 않는 삶을 삽니다. 세째, 범사가 잘되어야 합니다. 범사란 우리가 사는 동안에 접촉하는 모든 인간 관계, 사회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이런 모든 일들이 잘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약점은 균형있는 축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학생회를 보면 교회 학생회에 잘나오고 하나님께 열심인데 학교에 가면 늘 성적이 뒤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수한 학생은 교회 생활을 등하시합니다. 장년들도 보면 교회에 열심인 분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이거나 사회에서 우등생인데 교회에서는 열등생이거나 한단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관계만 잘 된 것이 아니라 범사가 잘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살면서도 존경받는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모든 그 사회에서 지도자요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요셉을 보세요. 아버지 집에서나, 종으로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서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나 그의 범사는 잘되었습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그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당대의 최고 강국의 수석총리였습니다. 역대 왕들이 다니엘을 총애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는 매일 세번씩 조국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세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들은 바벨론의 국비장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불에 던져질지라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 역사도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문화가 세상에 접목이 되고 기독교 인물들이 사회 각계 각층을 움직이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할텐데, 교회는 많은데 기독교 문화가 없고 기독교인 인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일제 시대 조국 독립과 계몽을 위해 몸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 김구 선생 같은 이들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이 하는 가게, 기업, 직장이 잘되어 서정리에서 최고, 평택에서 최고, 전국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지역에 복음의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영혼 관리를 잘하면 되니 「이웃 사랑」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내년에 월드컵대회가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열립니다. 요즘 한국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경주 목회자 성장대회에 갔다가 불국사를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일본 고등학생들의 관람태도는 숙연하고 질서정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학생들은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낄낄대며 이리 저리 뛰어다녀 정신이 없었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은 전혀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들입니다. 한국의 교통 문화를 보면 살벌합니다. 조금만 출발을 늦게하면 빵빵거리고 난리납니다. 그래서 초보라란 쪽지를 달지 않는 운전자들이 많습니다. 남이야 죽던 말던 나만 잘살면 되다는 식으로 살면 하나님이 축복하지않습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 요즘 대형병원 응급실엔 전문의가 자리를 지키지 않아 위급환자들이 많이 죽는다고 합니다. 경찰이 돈을 받고 도박꾼을 지켜줍니다. 너도나도 나만 잘살면 남이야 죽던 말던 식입니다. 이것은 범사에 망하는 일입니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미국은 자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나 국가는 앞 날이 어둡습니다. 식당을 해도 손님을 배려하고, 가게를 해도 손님을 생각하고 학교를 다녀도 친구 관계를 잘 갖고 돕고 자기를 희생하는 삶에 범사가 잘 될 것입니다. 결언: 저는 서론에서 냉면의 3박자가 잘 맞아야 맛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도 3박자가 잘 되어야 복있는 사람이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관계가 잘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둘째 육신이 잘되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 몸과의 관계이지요. 몸을 물질이지요. 관리를 잘하세요. 세째 범사가 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이웃에게 배려하고 존중히 여기면 그가하는 모든 일에 사람들이 인정하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육신만 잘되면 복이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다이어트, 몸매 관리, 미용에만 힘을 쏟습니다. 남이야 죽건말건, 영혼이야 죽건말건 영혼의 3박자, 영혼이 잘되고 육신이 건강하고 범사가 잘되기를 축원합니다.
3박자의 축복/요삼1:2-/2001-12-11
3박자의 축복 요삼1:2- 여름철이면 냉면 먹는 재미가 참 좋습니다. 지난 주간 어떤 집사님이 냉면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냉면집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고박사 냉면집입니다. 이 집은 전국에서 이름나 타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갑니다. 나도 냉면을 즐기는 터라 고박사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어보았는데, 냉면의 3박자가 잘 맛아떨어집디다. 첫째, 육수입니다. 뒷맛이 짜릿한게 어느 식당도 흉내낼 수가 없어요. 둘째, 면입니다. 모밀로 만든 면은 무조건 질긴 것이라 여기는데 어떤 집 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처럼 질겨 가위로 잘라도 안끊어집니다. 그런데 이 집은 아주 적당합니다. 세째, 양념(김치,식초,겨자)입니다. 집에서 고박사 냉면이 생각나면 냉면의 3박자를 잘 맞추어 만들어 먹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첫째, 면은 송학표 물냉면 사리가 제일 고박사 냉면 사리를 닮았어요. 둘째, 육수는 포장된 냉면 스프를 쓰지 않고 미원표인가 다시다를 쓰고 셋째 양념은 김치를 밖에서 시게 익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그 김치와 국물을 넣어 먹으면 그 맛이 고박사 냉면 못지않은 일품이지요. 생각있는 분은 말씀하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테니까? ※냉면의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맛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3박자가 있어요. 이 3박자가 맞아야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에 이 3박자의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3박자 축복으로 잘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첫째,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 부분입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날 때 뿌리부터 생깁니다. 인간 존재는 영혼부터 생깁니다. 그 영혼은 이 세상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합니다. [엡1:4]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벧전1: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아심을 따라 사람이란 엄마 뱃속에 수태하면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 영혼을 창조 하셨다는 말입니다. 만일에 유전공학으로 사람의 체세포를 떼내어 복제 인간을 만들어낸다면 그 인간은 하나님 허락 없는 무허가 인간이라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두려운 일입니다. 육신은 복제할지 몰라도 영혼은 절대로 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통하는 나(자아)입니다. 불신자일 땐, 그 영혼이 귀신과 통하고 우상과 통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그 영혼이 죄씻음을 받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 드리고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교훈을 받고 마음에 깨닫고 지혜를 얻게 됩니다. 교회 처음 나오면 기도의 입이 열리지 않고 찬송이 재미 없고 헌금하는 것이 아깝고 예배드리는 것이 지루한 이유는 아직 그 영혼이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무럭 무럭 자라야 합니다. 건강한 영혼은 하나님과 교제가 잘 이루어져 예배를 드리기를 좋아합니다. 영혼은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영혼은 기도로 호흡을 합니다 영혼은 찬송으로 생기를 얻습니다. 영혼은 말씀대로 순종할 때 기쁨을 누립니다. 병든 영혼은 하나님과 통로가 막힌 것입니다. 말씀 먹기가 싫어지고 기도하기가 어렵고, 찬송이 시큰중해지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영혼이 먼저 잘되기를 바랍니다. 영혼은 인생의 뿌리입니다. 욥14:7-9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그러므로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다시 일어납니다. 소망을 갖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언제나 그 영혼부터 먼저 관리합니다. 둘째, 육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본문엔 세번째로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고했는데 이는 육신의 건강을 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아라면 육신은 세상과 통하는 자아입니다. 이 육신은 내 영혼이 세상에 살 때먄 내가 사는 임시 거처입니다. 다 쓰러져 가는 비 새는 집에서 사는 것보다 잘지은 튼튼한 집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해야지요. 이 육신은 자동차와 꼭같습니다. 같은 연도에 출고된 차라도 그 주인이 어떻게 관리했느냐에 따라 10년도 20년도 새것같이 굴러가는 차가 있는가하면 3년만에 폐차되는 차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남자 40대 사망율이 세계에서 최고랍니다. 그만큼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혹사시키고 술담배에 찌들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몸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아무리 태어날 때 건강한 몸일지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폐차 당하는 차와 같아지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새벽기도를 습관으로 하면 저절로 되지요.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밭에 나가서 일하고 노동했는데, 지금은 운동이라도 해야지요. 하루 세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세요. 밤참을 먹지마세요. 안이숙 사모님은 86세까지 정정하게 세계를 간증다니시다가 천국 가셨는데, 그분의 말에의하면 저녁 7시 이후 물도 안마신다고 합니다. 많이 움직여 일하고 식사 규칙적으로 하고 저녁에 위대해지 않고 위를 비워두니 체중 걱정 할일이 없습니다. 다이어트하느니 약을 먹느니 지방흡입 수술을 했느니 않했느니 한번에 3-40kg씩 줄이고 난리 피울 일이 없어요. 술 담배를 끊어버리세요. 과로하지 마세요. 주일은 쉬세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세요. 이 부문은 영혼 관리를 잘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늙어가는 것을 비관하지 마세요. 인생 40고개만 넘으면 세월이 내리막 차길과 같아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육신이 여기저기 기능이 저하합니다. 육신은 소모품입니다. 낡아집니다. 죽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그 영혼은 천국에 가고 육신은 예수 재림하시면 다시 부활하여 영원이 죽지 않는 삶을 삽니다. 세째, 범사가 잘되어야 합니다. 범사란 우리가 사는 동안에 접촉하는 모든 인간 관계, 사회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이런 모든 일들이 잘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약점은 균형있는 축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학생회를 보면 교회 학생회에 잘나오고 하나님께 열심인데 학교에 가면 늘 성적이 뒤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수한 학생은 교회 생활을 등하시합니다. 장년들도 보면 교회에 열심인 분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이거나 사회에서 우등생인데 교회에서는 열등생이거나 한단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관계만 잘 된 것이 아니라 범사가 잘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살면서도 존경받는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모든 그 사회에서 지도자요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요셉을 보세요. 아버지 집에서나, 종으로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서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나 그의 범사는 잘되었습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그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당대의 최고 강국의 수석총리였습니다. 역대 왕들이 다니엘을 총애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는 매일 세번씩 조국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세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들은 바벨론의 국비장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불에 던져질지라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 역사도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문화가 세상에 접목이 되고 기독교 인물들이 사회 각계 각층을 움직이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할텐데, 교회는 많은데 기독교 문화가 없고 기독교인 인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일제 시대 조국 독립과 계몽을 위해 몸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 김구 선생 같은 이들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이 하는 가게, 기업, 직장이 잘되어 서정리에서 최고, 평택에서 최고, 전국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지역에 복음의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영혼 관리를 잘하면 되니 「이웃 사랑」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내년에 월드컵대회가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열립니다. 요즘 한국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경주 목회자 성장대회에 갔다가 불국사를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일본 고등학생들의 관람태도는 숙연하고 질서정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학생들은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낄낄대며 이리 저리 뛰어다녀 정신이 없었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은 전혀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들입니다. 한국의 교통 문화를 보면 살벌합니다. 조금만 출발을 늦게하면 빵빵거리고 난리납니다. 그래서 초보라란 쪽지를 달지 않는 운전자들이 많습니다. 남이야 죽던 말던 나만 잘살면 되다는 식으로 살면 하나님이 축복하지않습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 요즘 대형병원 응급실엔 전문의가 자리를 지키지 않아 위급환자들이 많이 죽는다고 합니다. 경찰이 돈을 받고 도박꾼을 지켜줍니다. 너도나도 나만 잘살면 남이야 죽던 말던 식입니다. 이것은 범사에 망하는 일입니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미국은 자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나 국가는 앞 날이 어둡습니다. 식당을 해도 손님을 배려하고, 가게를 해도 손님을 생각하고 학교를 다녀도 친구 관계를 잘 갖고 돕고 자기를 희생하는 삶에 범사가 잘 될 것입니다. 결언: 저는 서론에서 냉면의 3박자가 잘 맞아야 맛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도 3박자가 잘 되어야 복있는 사람이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관계가 잘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둘째 육신이 잘되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 몸과의 관계이지요. 몸을 물질이지요. 관리를 잘하세요. 세째 범사가 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이웃에게 배려하고 존중히 여기면 그가하는 모든 일에 사람들이 인정하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육신만 잘되면 복이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다이어트, 몸매 관리, 미용에만 힘을 쏟습니다. 남이야 죽건말건, 영혼이야 죽건말건 영혼의 3박자, 영혼이 잘되고 육신이 건강하고 범사가 잘되기를 축원합니다.
3박자의 축복/요삼1:2/2003-02-15
3박자의 축복 요삼1:2 여름철이면 냉면 먹는 재미가 참 좋습니다. 지난 주간 어떤 집사님이 냉면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전국에서 이름난 냉면집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고박사 냉면집입니다. 이 집은 전국에서 이름나 타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갑니다. 나도 냉면을 즐기는 터라 고박사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어보았는데, 냉면의 3박자가 잘 맛아떨어집디다. 첫째, 육수입니다. 뒷맛이 짜릿한게 어느 식당도 흉내낼 수가 없어요. 둘째, 면입니다. 모밀로 만든 면은 무조건 질긴 것이라 여기는데 어떤 집 것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처럼 질겨 가위로 잘라도 안끊어집니다. 그런데 이 집은 아주 적당합니다. 세째, 양념(김치,식초,겨자)입니다. 집에서 고박사 냉면이 생각나면 냉면의 3박자를 잘 맞추어 만들어 먹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첫째, 면은 송학표 물냉면 사리가 제일 고박사 냉면 사리를 닮았어요. 둘째, 육수는 포장된 냉면 스프를 쓰지 않고 미원표인가 다시다를 쓰고 셋째 양념은 김치를 밖에서 시게 익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그 김치와 국물을 넣어 먹으면 그 맛이 고박사 냉면 못지않은 일품이지요. 생각있는 분은 말씀하세요. 제가 만들어 드릴테니까? ※냉면의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맛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3박자가 있어요. 이 3박자가 맞아야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을 통해 주신 말씀에 이 3박자의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3박자 축복으로 잘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첫째,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 부분입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날 때 뿌리부터 생깁니다. 인간 존재는 영혼부터 생깁니다. 그 영혼은 이 세상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합니다. [엡1:4]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벧전1:2]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아심을 따라 사람이란 엄마 뱃속에 수태하면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그 영혼을 창조 하셨다는 말입니다. 만일에 유전공학으로 사람의 체세포를 떼내어 복제 인간을 만들어낸다면 그 인간은 하나님 허락 없는 무허가 인간이라 어떤 재앙이 일어날지 두려운 일입니다. 육신은 복제할지 몰라도 영혼은 절대로 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혼이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과 통하는 나(자아)입니다. 불신자일 땐, 그 영혼이 귀신과 통하고 우상과 통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그 영혼이 죄씻음을 받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하나님과 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 드리고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교훈을 받고 마음에 깨닫고 지혜를 얻게 됩니다. 교회 처음 나오면 기도의 입이 열리지 않고 찬송이 재미 없고 헌금하는 것이 아깝고 예배드리는 것이 지루한 이유는 아직 그 영혼이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무럭 무럭 자라야 합니다. 건강한 영혼은 하나님과 교제가 잘 이루어져 예배를 드리기를 좋아합니다. 영혼은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영혼은 기도로 호흡을 합니다 영혼은 찬송으로 생기를 얻습니다. 영혼은 말씀대로 순종할 때 기쁨을 누립니다. 병든 영혼은 하나님과 통로가 막힌 것입니다. 말씀 먹기가 싫어지고 기도하기가 어렵고, 찬송이 시큰중해지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영혼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영혼이 먼저 잘되기를 바랍니다. 영혼은 인생의 뿌리입니다. 욥14:7-9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9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그러므로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다시 일어납니다. 소망을 갖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언제나 그 영혼부터 먼저 관리합니다. 둘째, 육신이 건강해야 합니다. 본문엔 세번째로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고했는데 이는 육신의 건강을 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과 통하는 자아라면 육신은 세상과 통하는 자아입니다. 이 육신은 내 영혼이 세상에 살 때먄 내가 사는 임시 거처입니다. 다 쓰러져 가는 비 새는 집에서 사는 것보다 잘지은 튼튼한 집에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해야지요. 이 육신은 자동차와 꼭같습니다. 같은 연도에 출고된 차라도 그 주인이 어떻게 관리했느냐에 따라 10년도 20년도 새것같이 굴러가는 차가 있는가하면 3년만에 폐차되는 차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남자 40대 사망율이 세계에서 최고랍니다. 그만큼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혹사시키고 술담배에 찌들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몸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아무리 태어날 때 건강한 몸일지라도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폐차 당하는 차와 같아지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새벽기도를 습관으로 하면 저절로 되지요.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밭에 나가서 일하고 노동했는데, 지금은 운동이라도 해야지요. 하루 세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세요. 밤참을 먹지마세요. 안이숙 사모님은 86세까지 정정하게 세계를 간증다니시다가 천국 가셨는데, 그분의 말에의하면 저녁 7시 이후 물도 안마신다고 합니다. 많이 움직여 일하고 식사 규칙적으로 하고 저녁에 위대해지 않고 위를 비워두니 체중 걱정 할일이 없습니다. 다이어트하느니 약을 먹느니 지방흡입 수술을 했느니 않했느니 한번에 3-40kg씩 줄이고 난리 피울 일이 없어요. 술 담배를 끊어버리세요. 과로하지 마세요. 주일은 쉬세요.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세요. 이 부문은 영혼 관리를 잘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늙어가는 것을 비관하지 마세요. 인생 40고개만 넘으면 세월이 내리막 차길과 같아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육신이 여기저기 기능이 저하합니다. 육신은 소모품입니다. 낡아집니다. 죽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죽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그 영혼은 천국에 가고 육신은 예수 재림하시면 다시 부활하여 영원이 죽지 않는 삶을 삽니다. 세째, 범사가 잘되어야 합니다. 범사란 우리가 사는 동안에 접촉하는 모든 인간 관계, 사회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사업을 하고 장사를 하고, 학교를 다니고 이런 모든 일들이 잘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약점은 균형있는 축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학생회를 보면 교회 학생회에 잘나오고 하나님께 열심인데 학교에 가면 늘 성적이 뒤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수한 학생은 교회 생활을 등하시합니다. 장년들도 보면 교회에 열심인 분이 사회에서는 열등생이거나 사회에서 우등생인데 교회에서는 열등생이거나 한단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관계만 잘 된 것이 아니라 범사가 잘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살면서도 존경받는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야곱도 모든 그 사회에서 지도자요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요셉을 보세요. 아버지 집에서나, 종으로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서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을 때나 그의 범사는 잘되었습니다. 다니엘을 보세요. 그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당대의 최고 강국의 수석총리였습니다. 역대 왕들이 다니엘을 총애하였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는 매일 세번씩 조국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세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들은 바벨론의 국비장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불에 던져질지라고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 역사도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면 기독교 문화가 세상에 접목이 되고 기독교 인물들이 사회 각계 각층을 움직이는 인물들이 많이 나와야 할텐데, 교회는 많은데 기독교 문화가 없고 기독교인 인물이 없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일제 시대 조국 독립과 계몽을 위해 몸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 김구 선생 같은 이들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이 하는 가게, 기업, 직장이 잘되어 서정리에서 최고, 평택에서 최고, 전국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가 지역에 복음의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영혼 관리를 잘하면 되니 「이웃 사랑」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내년에 월드컵대회가 일본과 우리 나라에서 열립니다. 요즘 한국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들은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경주 목회자 성장대회에 갔다가 불국사를 들렀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수학여행 온 일본 고등학생들의 관람태도는 숙연하고 질서정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학생들은 남학생이고 여학생이고 낄낄대며 이리 저리 뛰어다녀 정신이 없었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람은 전혀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들입니다. 한국의 교통 문화를 보면 살벌합니다. 조금만 출발을 늦게하면 빵빵거리고 난리납니다. 그래서 초보라란 쪽지를 달지 않는 운전자들이 많습니다. 남이야 죽던 말던 나만 잘살면 되다는 식으로 살면 하나님이 축복하지않습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 요즘 대형병원 응급실엔 전문의가 자리를 지키지 않아 위급환자들이 많이 죽는다고 합니다. 경찰이 돈을 받고 도박꾼을 지켜줍니다. 너도나도 나만 잘살면 남이야 죽던 말던 식입니다. 이것은 범사에 망하는 일입니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미국은 자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합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나 단체나 국가는 앞 날이 어둡습니다. 식당을 해도 손님을 배려하고, 가게를 해도 손님을 생각하고 학교를 다녀도 친구 관계를 잘 갖고 돕고 자기를 희생하는 삶에 범사가 잘 될 것입니다. 결언: 저는 서론에서 냉면의 3박자가 잘 맞아야 맛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생에도 3박자가 잘 되어야 복있는 사람이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 관계가 잘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둘째 육신이 잘되어야 합니다. 이는 자기 몸과의 관계이지요. 몸을 물질이지요. 관리를 잘하세요. 세째 범사가 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먼저 이웃에게 배려하고 존중히 여기면 그가하는 모든 일에 사람들이 인정하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육신만 잘되면 복이있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다이어트, 몸매 관리, 미용에만 힘을 쏟습니다. 남이야 죽건말건, 영혼이야 죽건말건 영혼의 3박자, 영혼이 잘되고 육신이 건강하고 범사가 잘되기를 축원합니다.
3중 축복/ 요삼1:2
3중 축복 요삼1:2 종교는 단순한 마음의 위로가 아 니라,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 주고,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 생활전반에 걸쳐서 의미와 축복을 가져다주는 살아있는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내세의 축복만 약속하고 현실의 삶 속에서 아무런 힘도 줄 수 없는 종 교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동안 우리의 생명을 돌보시 고, 인도해 주시고, 복 주시는, 유 일하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하나 님의 은혜가 한데 어우러져서 우리 의 삶의 바탕을 이룰 때, 우리는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 고, 강건한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삼중축복이요, 전인구원이요, 참 신학이요, 참 믿 음인 것입니다. 첫째, 영혼이 잘 되는 축복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여전히 엄하고 무서운 하나님으 로만 여깁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우리를 협박하시며, 현재의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 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 로 바라보면,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장 좋으신 분이심을 알게 됩니 다. 이것을 우리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 라}(요삼 1:2)고 하신 말씀을 통해 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 으로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우주만 물을 아름답게 창조해 주셨고, 독 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대 신해서 십자가 위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셨 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누구나 친자녀로 맞아주십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영은 하나님을 모시는 그릇이기에 영을 통하지 않 고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영 안에는 양심이 자리잡고 있어서 인간의 살아갈 도리와 방향 을 제시해 주고,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 혼이 범죄하면 잘못된 길에 빠지게 되고 범사에 저주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 혼, 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살전 5:23). 혼은 그 속에 인격을 담고 있으며, 육은 오관,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 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영, 혼, 육이 질서를 잘 이룰 때, 즉 우리의 영이 하나 님의 뜻을 따라 혼을 지배하고, 혼 은 육을 지배하며, 육은 모든 정욕 을 버리고 영과 혼의 지시대로 순 종할 때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습 니다. 그러므로 이 질서를 항상 유 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범사가 잘되는 축복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 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이 땅의 삶과는 직접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 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물질적 축복을 구하는 것 은 기복신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 나 이것은 오히려 우리의 편협된 생각에서 비롯되었거나, 혹은 믿음 이 부족한 데서 기인하는 것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요 10:10).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완전하지 않 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완전하 게 창조하신 이 세계는 아담과 하 와가 타락한 이후로 저주를 받았으 며, 인생은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창 3:17). 인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중심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인 간이 그 자리를 대신하자 범사에 저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 나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제 자리를 찾을 때 비로소 우리의 모 든 환경은 새롭게 변화될 것입니다 (고후 5:17). 우리는 물질과 환경에 대한 인식 을 바꿔야 합니다. 이 세상의 물질 은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가 착취하 여 다른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라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 의 물질남용과 돈에 대한 탐욕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행위와도 같습 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 한 만큼의 물질을 허락하시며, 믿 음의 분량대로 채워주십니다. 불신 자들에게는 부요한 것이 끊임없는 욕망의 수단이 되지만, 신자들은 부요한 것을 책임있게 사용함으로 써 신앙의 성숙을 이루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될수록 많은 성 도들이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서 부 하게 되며, 물질의 청지기가 되어 서 이 사회를 살기좋은 사회로 만 들어야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 함을 인하여 너희로부요케 하려 하 심이니라}(고후 8:9). 우리가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서 는 나의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 님이신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그 리고 아브라함과 같이 온전한 십일 조를 드려야 하며, 땀과 수고로 심 은 만큼 거두게 된다는 사실을 깨 달아야 합니다(고후 9:6). 특히 하 나님께 특별한 목적을 두고 물질을 심을 때 주님은 풍성하게 채워주십 니다. 또한 우리는 남을 유익하게 하고, 나눠줄 때(눅 6:38), 그리고 삶의 분명한 목표와 마음의 불타는 소원을 가지고 늘 기도할 때 물질 의 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 강건하게 되는 축복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 신이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죽음 은 처음부터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실 때 죽 지않도록 지으셨으나, 인간이 타락 함으로 죽음을 자초하고 사망의 도 구인 질병의 노예가 되어서 썩어질 육신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러므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 님의 우주적인 계획에는 질병으로 부터의 구원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책임을 예수님께서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 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 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온 병고침의 은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표현인 것입니다(행 10:38). 그리고 우리는 회개와 용서 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께서는 때로는 질병을 징계의 수단 으로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이것 은 신약성경에서 신유의 역사가 나 타날 때마다 죄의 용서와 회개가 선행된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습 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병고치는 은사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러므 로 우리는 죄를 회개하며 병낫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약 5:15). 우리는 새로운 마음의 청사진을 가져야 합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하며, 혹시 병들었다면 낫 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기도하 고, 기억나는 죄가 있으면 회개해 야 합니다. 미움, 시기, 질투, 정욕, 악독, 불의의 마음을 날마다 깨끗 이 씻어 버리고, 서로 용서받고 용 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 리에게 좋은 것으로 넘치게 채워주 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전인구원입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하게 되 는 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으 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영, 혼, 육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 님께 구하여 복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0일의 축복/신9:9-10, 마4:1-2
40일의 축복 신9:9-10, 마4:1-2 하루라는 시간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 24시간 드라마라고 합니다. 오늘이라는 하루의 삶의 가치란 어떤 다른 날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오늘이란 하루는 내일의 이틀 분의 가치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이라는 노랫말도 있습니다만 가치 있는 하루를 살면 어느 날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루의 가치도 이렇게 큰 것입니다. 그런데 40일을 가장 좋은 사람과 아무런 방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잠시만 봐도 재미있는데, 헤어져 돌아서도 한번만 더 봤으면 하는데 40일을 본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삶이겠습니까? 40일을 하루같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 수 있다면 이런 감격이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삼중고의 장애를 가지고 있던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글을 잘 아실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첫째 날에는 자신의 스승인 설리번 선생님과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저녁노을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의 해돋이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밤에 별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에 시내를 밝히는 네온사인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다시 암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루가 이렇게 귀하고, 사흘만 눈을 떠도 이렇게 행복할 텐데 하물며 40일은 은총이며 축복의 날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는 성수 즉 거룩한 숫자가 있습니다. 3이 거룩한 숫자입니다. 3은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는 하늘의 숫자입니다. 4는 땅의 숫자입니다.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것으로 3이 하늘의 숫자인데 반해 4는 땅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7 혹은 12를 거룩한 숫자라고 합니다. 7은 3과 4를 더한 숫자이고, 12는 3과 4를 곱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더하고 곱했기 때문에 빈틈이 없는 만수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4의 10배인 40도 꽉 찬 숫자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40일의 7가지 기적이 있습니다. 첫째,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40일간 홍수를 만납니다. 홍수 후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둘째, 모세는 40일간 금식하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난 모세는 얼굴빛이 변화하였습니다. 셋째, 여호수아와 갈렙의 40일의 가나안 정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전을 주었습니다. 넷째, 다윗은 40일간 골리앗과 전쟁하여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섯째,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를 이기고도 낙담하여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자청하였지만 다시 일어나 40일간 걸어가서 다시 삶의 회복을 맛봅니다. 여섯째, 요나의 40일의 회개기도는 니느웨가 변화하였습니다. 일곱째, 예수님은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역을 준비하였습니다. 그 후에 40일간 부활 후의 증거는 교회 설립의 중요한 사역이 되었습니다. 이런 40일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40일은 기적의 날입니다. 내일부터 4월 10일까지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집니다. 우리도 40일 동안 기적을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40일은 은총의 날입니다. 40일은 더 할 수없는 만수입니다. 우리의 최선, 최고, 최상을 주님께 드리고 받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40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40일이 하루같이 은혜와 축복의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하는 40일이 축복입니다. 신명기 9:9에는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머물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라고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40일을 준비하며 금식하였습니다. 성경에 자세히 보니 금식이 아니라 단식이었습니다.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식음을 전폐한 40일이었습니다. 모세의 40일은 초인적 기다림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한 이런 간절함과 열정이 축복입니다. 축복은 준비에서 이미 주어집니다. 잔치를 준비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예배를 준비하며 이미 은혜를 받습니다. 예배는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은혜를 받고 시작합니다. 하늘나라는 가기 전에 준비하면 이미 축복과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일이 준비하며 기다리는 그 자체가 의미이며,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양병십년 용병일일’(養兵十年 用兵一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군사를 양육하는 데는 10년이 걸리지만 군사를 쓰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루 사용하기 위하여 10년을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낭비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준비는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의 차이를 말해줍니다. 전투에 준비된 자는 이미 반을 싸운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학생이 준비되면 선생은 자연히 나타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 기회가 오지 않지만 준비하고 있는 자에게는 시기가 문제일 뿐 기회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준비는 그 자체가 소중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런 준비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인간 사회에서도 신분이 높은 인물일수록 만나기가 힘이 듭니다.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이런 간절함과 기다림이 없이 만날 수 없습니다. 모세가 40일을 준비하며 만난 하나님은 그 이상의 가치를 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인셀은 “기다리게 하는 것은 종속의 효과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보다 가치가 높다고 간주하게 됩니다. 기다리게 하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을 좌우하는 권한을 갖는 우위의 입장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의 가치는 우리의 시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습니다. 각색 병자들이 한번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무리들이 둘러싸고 예수님을 보려고 몰려왔습니다. 여리고의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까지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오래 기다린다고 해도 만남의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는 무한의 가치가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만난지 30일이 되면 축하하고, 100일이 되면 장미꽃 100송이를 보내곤 합디다. 이성 친구를 만난 지 100일도 이렇게 중요한데 하나님을 만난 40일이 얼마나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평생에 소중한 경험입니다. 현대는 만남이 소중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헤어지기도 잘 합니다. 11절에는 “사십 주 사십 야를 지난 후에”라고 합니다. 왜 40일입니까? 이 40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에 필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야 은총을 주십니다. 구약성경에는 ‘하 욤 아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어야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이 40일은 완전한 시간이며 충분한 시간입니다. 계란이 부화하기 위한 기간은 21일입니다. 오리는 28일입니다. 거위는 30일입니다. 칠면조는 28일입니다. 동물도 임신기간이 다 다릅니다. 부화기간과 임시기간이 오랜 것 같고, 힘들어도 채워야 완전하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준비와 기다림은 자체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시간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하루에 모든 세상을 못 만드셔서 6일이 걸렸을까요? 하나님은 순식간에 다 만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6일은 하나님께 필요하신 시간입니다.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닙니다. 모세의 40일은 하나님을 만나고 마음을 준비하기에 필요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아니면 참 만남도 없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의 광야 생활도 같은 의미입니다. 일주일 혹은 천천히 걸어도 열흘이면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40년의 광야생활을 요구하십니다. 만일에 일주일 만에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40년이 긴 세월이지만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육체적인 만남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참 만남(encounter)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완벽한 준비를 요합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의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눈동자가 45%까지 확장되고,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점점 더 눈동자는 작아집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눈동자는 무한히 커질 것입니다. 우리가 찬송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정말 하나님을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40일이 축복입니다. 신명기 9:10에는 “여호와께서 두 돌 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 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으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의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모세는 40일의 공과 정성을 드립니다. 꾸준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받을 가치가 있고, 받으려고 기다릴 가치가 있고,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온 사람들을 보세요. 산상보훈을 말씀하실 때 그 언덕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처음 만나시던 날은 새벽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호숫가에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 명을 먹이실 때도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무리들이었습니다. 산상보훈을 마치실 때에 그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놀라서 말합니다. “이는 그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러라”(마 7:29).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와 가치가 무리들이 운집한 이유입니다. 말씀을 받는 것이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구체적으로 모세는 십계명을 받으려고 40일이 걸렸습니다. 한 계명에 나흘을 투자한 것입니다. 계명 하나에 나흘의 가치가 있습니다. 계명 하나의 가치가 나흘이 문제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계명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이라도 아깝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 삶을 다 투자해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이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포시스라는 수도사는 “사도들의 참된 계승자는 감독이 아니라 신약성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던 말씀을 이제는 성경이 들려줍니다. 그리스도인의 귀에 말씀이 들려진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감동이 없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저주받은 것입니다. 성경이라는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진다는 자체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아무리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앞을 보지 못할뿐더러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불행한 일이다. 나는 듣지 못하는 것이 보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 깨달았다”. 듣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신앙의 장애입니다. 말씀을 받고, 말씀이 들려지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이 귀하던 시절에 성경을 반포한 얘기를 들으면 감동이 됩니다. 성경 한 권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애타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말씀을 듣기 위하여 갈급한 사람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영국의 메리 존스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사고 싶은 것이 있어 돈을 저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기 봐주기, 이웃 정원 가꾸기 그리고 집에 기른 닭이 나은 달걀 팔기 등으로 돈을 모아 16살 때 그것을 사기에 충분한 돈이 모아졌습니다. 이 아이가 무엇을 사고 싶어 했는지 아십니까? 자동차이겠습니까? 새 옷이겠습니까? 그 때가 1800년도입니다. 이 아이는 성경 한 권을 사고 싶었습니다. 자기 마을에는 파는 성경이 없어 모은 돈을 가지고 25마일을 걸어서 이웃 마을에 갔습니다. 그 이웃 마을의 토머스 찰스 목사님은 팔기 위한 성경 한 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메리는 이 마을에 와서 목사님께로부터 성경을 샀습니다. 이 성경을 손에 쥐고 얼마나 기뻐하였겠습니까? 이 사실을 알고 찰스목사님과 몇몇 사람이 성경책을 쉽게 보급할 방법을 논의하였습니다. 이것이 영국성서공회 창립의 효시였습니다. 한권의 성경을 얻는 것이 감격이며 은혜며 축복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팔린 책이 ‘공책’인 것은 아시지요? 실제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지만 흔한 책은 아닙니다. 아무리 많아도 가장 귀한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 한 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40일을 머물며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모세가 말씀을 받기 위하여 기다렸던 40일이 우리의 기다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세가 40일을 기다려 말씀을 받았던 그 감격과 그 가치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처음 북한에 갔을 때가 10여 년 전입니다. 그 때 안내원이 저에게 “우리 공화국에도 지하교회가 250개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방세계에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 저에게 한번 넌지시 말을 던져 본 것 같습니다. 북한의 지하교회에 대한 사실 확인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북한에서 지하교인을 만났답니다. 그 지하교인은 그 분에게 “성경책을 보고,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예배 한번 드리는 것이 소원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사실 유무와 관계없이 말씀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공감이 됩니다. 이런 말에도 아무런 공감이 안 된다면 문제입니다. 말씀에 대한 감격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가 예전에 느끼기 못하던 감동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늘 읽던 성경이지만 새로운 깨달음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은 성경을 읽다가 너무 감격해서 새벽에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가만있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할 때가 있습니다. 자는 사람을 깨워 얘기하고픈 때도 있습니다. 이런 감격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언제나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합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결론 40일은 말씀 축복의 날입니다. 모세는 첫 번째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40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십계명을 받을 때 다시 40일을 기다렸습니다. 40일은 기도 축복의 날입니다. 엘리야는 다시 힘을 얻기 위하여 40일을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멸하시겠다고 했을 때에 40일 동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모세가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신 9:25)라고 합니다. 40일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총의 날이며 말씀과 기도를 응답하시는 날입니다. 내일부터 40일 동안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집니다. 길어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성취하기에 필요한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축제의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40일의 영광을 재현하고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잔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 함께 새벽마다 기쁨과 감격의 열기로 교회를 가득 채우는 40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경험의 40일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