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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족한 전심/ 렘29:13, 마18:19/ 2011-08-11
1% 부족한 전심 렘29:13, 마18:19 백지연 MBC 전 앵커가 국내외의 많은 유명인을 인터뷰하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알마·2011)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책의 핵심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생을 자신이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능력의 유무, 가능과 불가능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크리티컬 매스’를 만들어내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였다.” 도대체 크리티컬 매스가 무엇이기에 그것을 만들어내느냐 못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는 것일까요? 크리티컬 매스란 물리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임계질량’이라고도 합니다. 한마디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충분한 수나 양’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물을 끓이기 위해 필요한 100도의 온도가 크리티컬 매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리티컬 매스는 단지 세상의 성공과 실패만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도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기도 응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의 크리티컬 매스’를 만들지 못한 상태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크게 두 가지로 기도의 크리티컬 매스를 만드는 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경우의 크리티컬 매스는 ‘전심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가 전심으로 구하지 않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고 말한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에 걸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사 20:1)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통곡하며 전심으로 기도해 15년 수명을 연장받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1% 부족한 전심’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두 사람 이상이 함께 기도하는 경우의 크리티컬 매스는 ‘한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한마음을 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심으로 신약교회가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은 120명의 성도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합심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기 위해서 ‘기도의 크리티컬 매스’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합심으로 기도하면 구하는 것마다 모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의 크리티컬 매스를 만들어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가 구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안창천 목사(서울 우리가하나되는교회)
1% 부족할 때/ 롬8:26-28/ 2005-12-07
1% 부족할 때 롬8:26-28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우리가 도와줘서 계시는 분이 아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다. 그러나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반드시 도움이 꼭 필요하다. 먹는 문제를 봐도 누군가 쌀농사를 지었기에, 그 도움으로 내가 살아간다. 이렇게 모든 일에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은, 사람이 만물 중에 가장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잘못 이해해서,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기에,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해도 되는 줄 안다. 이런 오만한 생각이, 오늘날 여러 가지 환경과 자연문제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인간은 뛰어난 영적 존재이지만, 만물의 주인이 아니라, 피조물이요 나그네에 불과하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에 살도록 마련해 주신,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의 공기와 햇빛을 거둬 가시면, 우리 인간은 살 수 없다. 어떤 목사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예배당에 돌멩이를 집어던지고,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죽었다고 했다. 그는 공부를 잘했고, 유학 갈 준비를 모두 다 끝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 지식과 능력을 믿었다. 그렇지만 앞이 보이지 않자 절망하고, 인생을 끝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으려고 끈으로 목을 매었는데, 끈이 풀려서 겨우 살았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요한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서 팍삭 깨졌다. 회개하고 변화되었다.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안요한 목사님이다. 1. 인간은 약한 존재이다. 연약함( )은 나약함, \\\\\\\\\\\\\\\'육체적으로 쇠약하고, 건강이 나쁜 상태, 질병에 걸린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성경은 사람을 가리켜,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등불이라고 했다(사42:3, 마12:20). 조금만 과로해도 쓰러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와도, 몸져누워야 할 정도로 연약하다. 힘든 상황에 처하면 몸져눕게 된다. 아무리 자기 건강을 자랑할지도, 질그릇 같은 존재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상대방의 말에 따라, 너무 쉽게 상처를 받아서, 삐치고 토라지는 연약한 존재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피곤해지고 지치면, 마음이 상하게 만드는 소리를 잘해서, 다른 사람을 상하게 만든다. 따라서 노인들과 병약자들은, 언제나 입을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 주는 이야기를 하기 쉽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해석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만 가득하게 된다. 마음이 상하면, 사람이 보기 싫어지고, 오해하여서 분별력이 떨어진다. 마음이 상하면, 밥도 안 먹고, 돌아누워서 말도 안하고, 어떤 사람은 상대방을 죽이고 싶은 감정을 갖게 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떠나기도 한다. 우리는 조변석개라는 말과 같이, 아침에 결심하고 저녁에 변한다. 이렇게 연약한 존재들이다. 다윗 같은 성군도 성적인 범죄를 범하게 되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애굽에 내려가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이렇게 영적으로도, 쉽게 죄를 범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죽을 때에 함께 죽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 예수님께서 고문 받으시는 모습을 그만 마음이 약해졌다. 예수님께선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기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니라\\\\\\\\\\\\\\\"(마26:41)고 하셨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통로이자, 능력의 통로이다. 인간에게 가장 약한 부분이 기도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직설적으로 말해서 기도는 만능이다. 기도를 통해 부족한 능력을 공급받고, 기도는 약함을 강함으로 바꾸는 능력으로 작용한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하셨다. 부르짖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 주시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능력을 주신다. 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11:24)고 했다. 기도는 좋은 일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힘든 노동은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도를 10시간 동안 시키면 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잘 다녔다. 어디든지 예수님과 함께 했다. 바다로 가자면 바다로, 죽으러 가자면 죽으러 갔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지만, 다 자고 말았다. 왜냐하면 기도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영적인 일이며, 전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에 성공하는 사람은, 나머지 모든 부분에서도 성공한다. 기도하는 자들은 능력을 힘입고, 마지막에 가서 승리한다. 모든 질병이 감기에서 시작되듯이, 모든 신앙의 문제는 기도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기도의 부재에서 영적 침체가 오고, 나중에는 영적 패배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우리의 삶을 보면, 사업이 될 듯 될 듯하면서, 안 되는 분들이 있다. 또한 어떤 문제도 해결될 듯 될 듯하면서, 안 될 때 정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무엇이 약간 부족한데,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어떤 도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된다. 2.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은, \\\\\\\\\\\\\\\"Genius is one percent inspiration and 99 percent perspiration.\\\\\\\\\\\\\\\"이라고 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이 말을, \\\\\\\\\\\\\\\'노력의 중요성\\\\\\\\\\\\\\\'으로 해석했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해석 하지만, 에디슨은 \\\\\\\\\\\\\\\"99%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1%의 영감이 더 중요하다. 1%의 영감 없는 99%의 노력은,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영이 아무리 많아도, 앞에 숫자가 없으면 영이다. 발명을 하려면, 발상이 중요하다. 좋은 발상을 가지고 실험을 반복할 때, 성공할 수 있다. 발상이 없으면, 발명은 이룰 수 없다. 1%에서 성공과 실패가 나타나는데, 성경은 이를 \\\\\\\\\\\\\\\'하나님의 은혜요, 또한 비전\\\\\\\\\\\\\\\'이라고 한다. 삶을 결정하는 1%가 중요한데, 1%가 부족하다. 이 1%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필요하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그때 진정으로, 강한 자가 될 수 있다. 기독교의 생명력은 성령에 있다. 믿음으로 인도함도 성령이며, 성경을 깨닫게 됨도 성령이다.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심도 성령이다.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주심도 성령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우리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간구 하신다. 우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이끌어 주시고, 기도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우리의 부족한 모든 부분을 채우시고,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며, 약한 부분을 치유하신다. 성도는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실 때, 약함을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바란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시나?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내용을 살펴보시고, 구할 바를 구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해 주신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기도할 때는, 항상 엉뚱한 것을 구하게 된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였던 살로메는,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구했다.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20:21).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마20:22)라고 하셨다. 우리는 제대로 구해야 한다. 잘못 구할 때는 헛된 기도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금에 눈이 뒤집혀, 자기가 손을 대는 것마다, 전부 금으로 변화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는 정말 그런 능력을 얻어서, 만지는 것마다 금이 되었다. 그가 금방 부자가 되었지만, 문제가 생겼다.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음식에 손을 대면, 음식도 금으로 변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져도 금으로 변했다. 자녀들을 만져도 금으로 변했다. 나중에는 그만 굶어 죽고 말았다. 이처럼 우리가 구한 것이, 나중에는 굉장히 헛된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제대로 모르고 구한다.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바쁘다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정반대 방향으로 갔기에, 우리 인생이 부패하게 되었다. 우리가 구하는 것들이, 우리가 볼 때에는 좋은 것 같지만, 그렇게 구한대로 될 때, 오히려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어떤 사업가가 미국에서 일을 보고 귀국하는데, 공항까지 가는 길이 너무 막혀서, \\\\\\\\\\\\\\\"하나님, 비행기 놓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그만 비행기를 놓쳤다. 이 사람의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타려는 비행기가 그만 납치되어, 공중에서 폭파되었다. 그러니 이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심이 복이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구하지 못한다. 내일 일은커녕 오늘 일도 알지 못하기에, 구하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질 때, 재앙인지 축복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모른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성령님은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큰 교회를 목회하시는, 어떤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했다. \\\\\\\\\\\\\\\"성도들을 가만히 놔두면, 나태해지고 말썽부리는 존재가 되니까, 교인들에게 시간을 빼앗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한가하면 죄에 빠지기에, 시간을 빼앗는다는 말은 일리는 있지만, 진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이끌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셔서, 무엇을 위해 열심히 뛰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신다. 그 방향이 비전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비전을 보여 주시고, 비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움직이도록 만드신다. 비전 없이 일하면, 곧 지치게 마련이다.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목회는 성도들과 꿈을 나눠야 한다. 기독교는 \\\\\\\\\\\\\\\'강요하는 종교\\\\\\\\\\\\\\\'가 아니라 \\\\\\\\\\\\\\\'매혹시키는 종교\\\\\\\\\\\\\\\'다. 참 생명이 있고, 참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꿈이 사라지면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어 썩기에, 하나님의 사람은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꿈을 포기할 때, 이 세상은 암흑시대가 오게 된다. 엘리 제사장 시대가 암흑시대였음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3:1)했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어서 침묵하실 때, 하나님의 재앙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하는데, 저는 이런 꿈꾼다. 먼저 우리 성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다른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물질을 지배하는 관계를 회복하기 원한다. 이런 복된 교회를 꿈꾼다. 우리 다운교회가 복의 근원이 되어서, 우리를 통해 구원받는 무리들이 많아져서, 많은 지교회를 세우고, 선교에 힘쓰는 교회가 되기 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러한 아름다운 꿈을, 다같이 꿉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위대한 꿈을 꾸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꿈의 이야기요 비전의 보고다. 말씀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임하시어 꿈꾸는 자가 된다. 성령은 비전의 영이시다. 그래서 행2:17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성령의 역사로, 미래를 우리의 땅으로 만드는 능력이 나타나기 바란다. 3.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28).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신다는 확신을 붙들고, 결코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존재다.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어려움과 환난들도, 다 지나고 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롬8:28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은, 결코 두려움이나 걱정에 빠질 수 없다.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는 성도들은, 결코 두려움이나 걱정에 빠질 수 없다. 성도만의 여유를 갖는다. 성도는 눈앞의 질병이나 실패가 닥쳐오고, 어려움이 밀려와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확신한다. 성도들의 모든 삶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임을 믿기 때문이다. 가끔 예수님을 믿는다는 성도들 가운데 맨 날 \\\\\\\\\\\\\\\"큰일 났다\\\\\\\\\\\\\\\"면서 호들갑을 떠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별로 큰 일이 아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큰일처럼 보일 뿐이다. 큰일 났다고 떠들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 우리의 주님이신데, 무슨 큰 일이 있나?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이 어디 있나?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던 베드로가 풍랑이 일어나자 호들갑을 떨었다. \\\\\\\\\\\\\\\"주여 일어나세요? 우리가 다 죽게 되었나이다.\\\\\\\\\\\\\\\" 하면서 난리를 피웠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에는,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 당장 사형에 처할 위기에 놓였다. 바로 며칠 전에 야고보가 처형당했기에, 아주 긴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감옥 안에서 잠을 잔다. 얼마나 깊이 자는지, 천사가 와서 그를 깨우는데, 일어나지 않자, 옆구리를 걷어참으로 일어났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여유다. 우리 삶에 어려움이 닥치거나 실패가 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한 계획이다. 이렇게 바라보고 자신만만하게 서 있는 모습이, 바로 성도들의 모습이다. 한 어촌 마을에 고기잡이를 나간 배가 있는데, 밤이 늦도록 돌아오질 않았다. 폭풍우가 몰아쳐서 가족들과 온 동네가 다 걱정을 했다. \\\\\\\\\\\\\\\"우리 남편이 언제 돌아오나, 우리 아버지가 돌아오나?\\\\\\\\\\\\\\\"하며,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형편에 설상가상으로, 어느 집 아이가 촛불을 넘어뜨려서 한 집에 불이 났다. 동네 사람들은 불끄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큰 재앙입니까? 남편은 풍랑 속에 돌아오지 않고, 집은 불이 나서 가재도구가 다 타버렸으니, 얼마나 가혹한 시련입니까? 그러다가 아침을 맞았다. 아침이 되니,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렸던 배가 돌아왔다. 뱃사람들이 이렇게 얘길 한다. \\\\\\\\\\\\\\\"어잿밤 풍랑 속에 배가 방향을 잡지 못해서 방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육지에서 큰 불길이 올라와, 그 불길을 보고 항로를 바로잡아 돌아오게 되었다. 이 집에 난 불이 재앙입니까 구원의 등불입니까? 집에 불이 나지 않았으면, 가장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한 가지 사실만 보고,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다고 생각지 말라. 성도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믿는 사람들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시23: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시34:9). 젊은 사자는 주릴 지라도,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시34:10). 내 삶에 어떤 도움이 정말 필요하다면,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100% 복 받을 짓(1)/ 마18:1-10/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3
100% 복 받을 짓(1) 마18:1-10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18장입니다 제가 중요한 부분 절을 말할 때 우리 같이 읽습니다. 우리 5절부터 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아멘 여러분 우리 5월 1일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황금연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도 많이 아이들 데리고 출타를 한 것 같습니다. 출타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이날 황금연휴에도 교회 와서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여러분들에게는 그분들보다 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아멘 한 사람에게는 만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ㅎ ㅎ ㅎ 자 우리 주일 학생들 목사님 먼저보고 퀴즈 하나 낼 테니까 맞추는 사람에게는 목사님 안에는 언제나 용돈이 있어요. 마치고 줄 거예요.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 모르겠어? 누구야?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ㅎ ㅎ ㅎ 내가 너무 수준 높은 개그 했나? 하나 더 마칠 때 가만히 생각했다가 답하는 사람 또 줍니다. 여러분 타이타닉 모르지요? 알아 아우 타이타닉에게 구명보트가 있는데 구명보트에는 몇 명의 사람이 탈수 있을까? 설교 마치고 할 거예요.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 주일인데 오늘 제가 설교 제목을“100% 복 받을 짓”해 놨어요. 조금은 거친 표현이지만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먼저 여러분 오늘 읽은 5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대접하고, 예수님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은, 남들이 없인 여기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정말 어린아이들을 잘 대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생애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놀라운 은혜의 복이 임하는 출발이 되는 어린이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좋은 말씀만 한 것이 아니고요, 오늘 이 본문하고 마태복음 23장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계세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1. 네 손발과 눈이 범죄하면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어린아이와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면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면 화가 있다. 데이빗 콜먼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 대한민국.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 마지막 출산 아이 울음소리. 그리고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되면 빼어 버리라, 두 눈 가지고 사는 것보다 한눈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서도 10절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그것이 신화화 되다 보니까 천사론이 좀 약한데 유대교에는 사람들마다 수호천사 가 있다 이런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그 어린아이의 수호신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 보좌 앞에 가서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 뵈옵고 있기 때문에 그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게 되면 화를 당한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서도 여러분 7절에 보면 뭔가 하면 7절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실족 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세상에 화가 있다. 왜 세상에 화가 있는가 하면은 어린아이들이나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기 때문에 화가 있는데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은 화가 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이 그래 중요하냐 하면은 옥스퍼드대학에 인구 학자로서 아주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분이 데이빗 콜먼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하기를 뭐라 했는가 하면은, 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랬습니다. 지금과 같은 출산율 지금과 같은 상태로 가면은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사라지는데 2100년쯤 되면 지금 인구의 절반으로 줄어들고요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는 마지막 아이의 태어나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그 이후가 되면 서울과 수도권 인근에 여러분 굉장히 기뻐하세요, 이제는 2400년만 되면요 동백에 여러분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하나가 한 사람씩 사는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참 우리가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은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말씀을 제가 마음에 담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에 왜 대한민국이 출산율이 낮고,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되는 나라가 되는가 하면은,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날 좀 반성해야 됩니다. 자기 자녀만을 보배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자녀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한다고 할 때에 자기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과 유사한 본문이 누가복음 18장인데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올 때에 머리에 안수해 주기를 바라면서 데려 오는데 제자들이 꾸짖으면서 내쫓은 거예요. 예수님 당시에도 자기 배에서 난 자식들은 예수님에게 안수 받아서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본능적인 마음이에요.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내쫓았고 꾸짖었다고요. 그럴 때 예수님이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용납하라 이렇게 말씀한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고 거듭나게 되면 제가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떻게 변화되는가 하면은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거듭난 자의 마음이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의 마음입니다. 왜 우리가 요즘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사회적인 비용이 드는가 하면은 자기 자녀만 귀하게 여기다 보니까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같이 경쟁이 심한 사회가 없는 겁니다. 2.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깨우쳐야 되는데 하나님 잘 믿으면 내 아들만 잘 된다고 하기 때문에 더 실족 하는 일로 화가 미치게 되는 겁니다. 우리 어린이 주일 맞이하면서 정말 우리 교회는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은요 사람들이 또 나가면서 잊어버려요, 그래서 제가 우리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우리 교역자들에게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다 달도록 해라. 자기 이름 달고 고 뒤에 부모 이름을 적도록 해라. 왜 그랬는가 하면은요, 저도요 이제 30대 제가 부목사일 때에는 면목동 동부 교회는요 한 천명 모이는데 얘들까지 2천명 되는 이름을요 전부 외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버려. 얼마나 아이들에 미안한지 모르겠어요. 만날 때마다. 그래서 이름표를 붙이면 여러분 이런 것 한번 상상해 보세요. 교회 이렇게 와서 아이들이 복도에서나 아니면 마당에서나 지나갈 때에 목사님이나 교회 어른들이 우리 월삭 예배 때 했는데 한번 따라 합시다. 애들 말고 어른들 ㅎ ㅎ 다 크게 따라 하세요. 와, 네가 함상희 집사 딸이구나. 와,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이구나. 왜 목사님 함상희, 최정화만 이야기 합니까? 함상희, 최정화 집사 아들 보민이, 지환이가 우리 교회에 젓먹이 때 와서 나이가 같아요. 우리 교회가 10살인데 그 아이들이 10살이라고요. 정말 여러분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들을 그렇게 대할 때에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정말 설교 마치고 부를 건데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하지 않겠습니까? 큰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그나마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주일학교가 제일 많은 축에 들어가요, 어른 대비.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목회의 방향이 그래서 그렀습니다. 우리 교회의 초창기에 저 모아미래도 상가에 있을 때 그때에도 저는 어떤 마음으로 목회를 했는가 하면 부잣집 아이들은 외국에 갔다가 어디에 갔다 왔다, 뭐 스키캠프 갔다 왔다, 이런 것 자랑할 때 기죽지 않도록 주일 학생들 어릴 때 다 데리고 대명 콘도 가 가지고 스키캠프 열고요, 오색그린호텔 가서 수련회 한 것은 내 아이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가장 가난한 집의 아이도 고급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어요. 오늘도 여러분 이제는 여러분들이 아이들 볼 때에 이것 돈 드는 것 아니잖아요. 여러분 이것 힘 드는 것 아니잖아요. 선생님들이 명찰 붙여 주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가장 간단한 것은 내가 명찰 달린 아이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용돈을 줄려고 그래 ㅎ ㅎ.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야!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 지환이구나. 옛날에는 요만했는데 이만큼 컸구나.”라고 이야기를 해 줄 때 아이들이 신나잖아요. 또 아이들만이 아니고 따라 합시다. “와,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아느냐?” 하얀 거짓말.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인정받는 공동체가 마음 든든하거든요. 우리 어린이주일 날 오늘 여기 있는 대로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내 아이만 알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극렬한 한국의 엄마들 때문에 화가 있는 겁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우리 교회에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소중하게 여겨지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아이들 만날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정말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지 아니? 내가 네 이름은 알았는데 네가 동현인 줄 몰랐구나.’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해 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생업 위에 또 우리 교회에 또 이 나라에 100% 복을 주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헌금을 드리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헌금 내 자녀 학원 하나 보내면 더 훌륭하고 더 성공적인 생애를 살 것 같은 마음을 주님 앞에 묻은 자가 드리는 예물입니다. 내 자녀만 성공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이기주의가 오늘 우리 대한민국을 극도의 경쟁의 사회로 만들어 버렸고,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당하는 화를 우리가 당해서 세계적인 권위 데이비드 콜먼조차도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 대한민국을 건질 유일한 방법은 복음밖에 없고 교회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이제는 헌금을 내 아이 학원 하나 보내면 더 잘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그런 나라 내 자녀가 잘 되는 만큼, 남의 자녀도 잘 되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교육만 해도 얼마든지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오늘도 이 예물을 드릴 때에 우리 안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다음 세대에는 남을 이기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복된 생애를 살아가도록 성령의 역사는 혈연과 연고를 넘어서는 영원한 가족 공동체임을 교회들마다 선포되게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회를 물려주는 지혜로운 어른들이 될 수 있도록 순종의 마음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저 어린이주일이라는 명칭 한 번 예배 때 떠들다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후에 정말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네가 어느 집사님 아들이구나, 네가 어느 집사님 딸이구나 하고 아이들 머리 쓰다듬어 주고 기도해 줌으로 이 아이들이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 근심 없어요.’라는 찬양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줄 아느냐?’ 우리 어른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옴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초라한 어머니 때문에 아이들이 기죽지 않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성령님 오늘 말씀이 그저 귓전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심비에 새겨지도록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함이다.’라는 말씀에 따라 내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이 여기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이 예물이 정말 주님 몸 된 교회를 세워서 사회에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때문에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생수가 흘러넘치는 교회의 초석이 되도록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되도록 지금도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어린 아이를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사 품에 안고 축복하시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내 배 아파 난 자식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도 사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사회 속에 화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로 그 믿음을 허락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겨서 자녀들 때문에 쓸데없는 사회적인 비용이 낭비되지 않으므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 김종웅 목사(쉼과회복이있는교회)
100% 복 받을 짓(1)/ 마18:1-10/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3
100% 복 받을 짓(1) 마18:1-10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18장입니다 제가 중요한 부분 절을 말할 때 우리 같이 읽습니다. 우리 5절부터 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아멘 여러분 우리 5월 1일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황금연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도 많이 아이들 데리고 출타를 한 것 같습니다. 출타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이날 황금연휴에도 교회 와서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여러분들에게는 그분들보다 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아멘 한 사람에게는 만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ㅎ ㅎ ㅎ 자 우리 주일 학생들 목사님 먼저보고 퀴즈 하나 낼 테니까 맞추는 사람에게는 목사님 안에는 언제나 용돈이 있어요. 마치고 줄 거예요.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 모르겠어? 누구야?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ㅎ ㅎ ㅎ 내가 너무 수준 높은 개그 했나? 하나 더 마칠 때 가만히 생각했다가 답하는 사람 또 줍니다. 여러분 타이타닉 모르지요? 알아 아우 타이타닉에게 구명보트가 있는데 구명보트에는 몇 명의 사람이 탈수 있을까? 설교 마치고 할 거예요.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 주일인데 오늘 제가 설교 제목을“100% 복 받을 짓”해 놨어요. 조금은 거친 표현이지만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먼저 여러분 오늘 읽은 5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대접하고, 예수님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은, 남들이 없인 여기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정말 어린아이들을 잘 대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생애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놀라운 은혜의 복이 임하는 출발이 되는 어린이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좋은 말씀만 한 것이 아니고요, 오늘 이 본문하고 마태복음 23장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계세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1. 네 손발과 눈이 범죄하면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어린아이와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면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면 화가 있다. 데이빗 콜먼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 대한민국.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 마지막 출산 아이 울음소리. 그리고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되면 빼어 버리라, 두 눈 가지고 사는 것보다 한눈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서도 10절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그것이 신화화 되다 보니까 천사론이 좀 약한데 유대교에는 사람들마다 수호천사 가 있다 이런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그 어린아이의 수호신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 보좌 앞에 가서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 뵈옵고 있기 때문에 그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게 되면 화를 당한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서도 여러분 7절에 보면 뭔가 하면 7절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실족 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세상에 화가 있다. 왜 세상에 화가 있는가 하면은 어린아이들이나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기 때문에 화가 있는데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은 화가 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이 그래 중요하냐 하면은 옥스퍼드대학에 인구 학자로서 아주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분이 데이빗 콜먼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하기를 뭐라 했는가 하면은, 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랬습니다. 지금과 같은 출산율 지금과 같은 상태로 가면은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사라지는데 2100년쯤 되면 지금 인구의 절반으로 줄어들고요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는 마지막 아이의 태어나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그 이후가 되면 서울과 수도권 인근에 여러분 굉장히 기뻐하세요, 이제는 2400년만 되면요 동백에 여러분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하나가 한 사람씩 사는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참 우리가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은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말씀을 제가 마음에 담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에 왜 대한민국이 출산율이 낮고,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되는 나라가 되는가 하면은,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날 좀 반성해야 됩니다. 자기 자녀만을 보배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자녀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한다고 할 때에 자기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과 유사한 본문이 누가복음 18장인데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올 때에 머리에 안수해 주기를 바라면서 데려 오는데 제자들이 꾸짖으면서 내쫓은 거예요. 예수님 당시에도 자기 배에서 난 자식들은 예수님에게 안수 받아서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본능적인 마음이에요.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내쫓았고 꾸짖었다고요. 그럴 때 예수님이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용납하라 이렇게 말씀한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고 거듭나게 되면 제가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떻게 변화되는가 하면은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거듭난 자의 마음이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의 마음입니다. 왜 우리가 요즘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사회적인 비용이 드는가 하면은 자기 자녀만 귀하게 여기다 보니까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같이 경쟁이 심한 사회가 없는 겁니다. 2.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깨우쳐야 되는데 하나님 잘 믿으면 내 아들만 잘 된다고 하기 때문에 더 실족 하는 일로 화가 미치게 되는 겁니다. 우리 어린이 주일 맞이하면서 정말 우리 교회는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은요 사람들이 또 나가면서 잊어버려요, 그래서 제가 우리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우리 교역자들에게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다 달도록 해라. 자기 이름 달고 고 뒤에 부모 이름을 적도록 해라. 왜 그랬는가 하면은요, 저도요 이제 30대 제가 부목사일 때에는 면목동 동부 교회는요 한 천명 모이는데 얘들까지 2천명 되는 이름을요 전부 외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버려. 얼마나 아이들에 미안한지 모르겠어요. 만날 때마다. 그래서 이름표를 붙이면 여러분 이런 것 한번 상상해 보세요. 교회 이렇게 와서 아이들이 복도에서나 아니면 마당에서나 지나갈 때에 목사님이나 교회 어른들이 우리 월삭 예배 때 했는데 한번 따라 합시다. 애들 말고 어른들 ㅎ ㅎ 다 크게 따라 하세요. 와, 네가 함상희 집사 딸이구나. 와,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이구나. 왜 목사님 함상희, 최정화만 이야기 합니까? 함상희, 최정화 집사 아들 보민이, 지환이가 우리 교회에 젓먹이 때 와서 나이가 같아요. 우리 교회가 10살인데 그 아이들이 10살이라고요. 정말 여러분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들을 그렇게 대할 때에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정말 설교 마치고 부를 건데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하지 않겠습니까? 큰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그나마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주일학교가 제일 많은 축에 들어가요, 어른 대비.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목회의 방향이 그래서 그렀습니다. 우리 교회의 초창기에 저 모아미래도 상가에 있을 때 그때에도 저는 어떤 마음으로 목회를 했는가 하면 부잣집 아이들은 외국에 갔다가 어디에 갔다 왔다, 뭐 스키캠프 갔다 왔다, 이런 것 자랑할 때 기죽지 않도록 주일 학생들 어릴 때 다 데리고 대명 콘도 가 가지고 스키캠프 열고요, 오색그린호텔 가서 수련회 한 것은 내 아이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가장 가난한 집의 아이도 고급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어요. 오늘도 여러분 이제는 여러분들이 아이들 볼 때에 이것 돈 드는 것 아니잖아요. 여러분 이것 힘 드는 것 아니잖아요. 선생님들이 명찰 붙여 주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가장 간단한 것은 내가 명찰 달린 아이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용돈을 줄려고 그래 ㅎ ㅎ.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야!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 지환이구나. 옛날에는 요만했는데 이만큼 컸구나.”라고 이야기를 해 줄 때 아이들이 신나잖아요. 또 아이들만이 아니고 따라 합시다. “와,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아느냐?” 하얀 거짓말.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인정받는 공동체가 마음 든든하거든요. 우리 어린이주일 날 오늘 여기 있는 대로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내 아이만 알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극렬한 한국의 엄마들 때문에 화가 있는 겁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우리 교회에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소중하게 여겨지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아이들 만날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정말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지 아니? 내가 네 이름은 알았는데 네가 동현인 줄 몰랐구나.’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해 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생업 위에 또 우리 교회에 또 이 나라에 100% 복을 주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헌금을 드리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헌금 내 자녀 학원 하나 보내면 더 훌륭하고 더 성공적인 생애를 살 것 같은 마음을 주님 앞에 묻은 자가 드리는 예물입니다. 내 자녀만 성공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이기주의가 오늘 우리 대한민국을 극도의 경쟁의 사회로 만들어 버렸고,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당하는 화를 우리가 당해서 세계적인 권위 데이비드 콜먼조차도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 대한민국을 건질 유일한 방법은 복음밖에 없고 교회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이제는 헌금을 내 아이 학원 하나 보내면 더 잘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그런 나라 내 자녀가 잘 되는 만큼, 남의 자녀도 잘 되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교육만 해도 얼마든지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오늘도 이 예물을 드릴 때에 우리 안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다음 세대에는 남을 이기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복된 생애를 살아가도록 성령의 역사는 혈연과 연고를 넘어서는 영원한 가족 공동체임을 교회들마다 선포되게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회를 물려주는 지혜로운 어른들이 될 수 있도록 순종의 마음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저 어린이주일이라는 명칭 한 번 예배 때 떠들다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후에 정말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네가 어느 집사님 아들이구나, 네가 어느 집사님 딸이구나 하고 아이들 머리 쓰다듬어 주고 기도해 줌으로 이 아이들이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 근심 없어요.’라는 찬양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줄 아느냐?’ 우리 어른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옴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초라한 어머니 때문에 아이들이 기죽지 않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성령님 오늘 말씀이 그저 귓전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심비에 새겨지도록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함이다.’라는 말씀에 따라 내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이 여기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이 예물이 정말 주님 몸 된 교회를 세워서 사회에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때문에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생수가 흘러넘치는 교회의 초석이 되도록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되도록 지금도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어린 아이를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사 품에 안고 축복하시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내 배 아파 난 자식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도 사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사회 속에 화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로 그 믿음을 허락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겨서 자녀들 때문에 쓸데없는 사회적인 비용이 낭비되지 않으므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 김종웅 목사(쉼과회복이있는교회)
100% 복 받을 짓(2)/ 엡6:1-3/ 어버이주일설교/ 2015-05-10
100% 복 받을 짓(2) 엡6:1-3 하나님의 말씀 에베소서 6장입니다 신약 성경으로 316면이 되겠습니다. 우리 1절부터 3절 그냥 읽지 마시고, 마음에 새기시고 이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이 저와 여러분들 우리 사회에 가득 차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읽습니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 성경의 부모님: 경외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만 쓰는 단어인데 부모에게도 동일하게 씁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반열에 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기독교를 근본도 없는 불효자식이라고 말을 하지만은,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레위기 19장 3절에 보면 부모님을 경외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만 쓰는 단어인데 부모에게도 동일하게 씁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님을 하나님의 반열에 둔다고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있는 두 계명이 있는데요, ‘천대까지 잘 된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라고 하는 주석이 붙어 있는 여러분 계명은 2계명하고 5계명입니다. 2계명은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땅에서 잘 될 거다. 천 대까지 복을 누린다.’ 그러고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 이렇게 말한다고요. 1. 성경은 노부모도 공경을 중요시 여긴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백성은 아멘 하라. 하나님은 연세 들고 힘없고 병든 부모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만큼 성경은 부모 공경을 중요시 여기고, 또 우리 하나님은 살아 있는 부모님에게 잘 하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또 한 가지 우리가 아셔야 되는 것이 부모님은 돈이 많고 힘 있고 건강한 부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연세가 드시고 돈이 없고 건강이 여의치 못한 부모를 공경하라, 주안에서 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저 우리가 예수 믿는 것만 부모에게만 공경을 하라는데 주안에서 in Christ 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져 있어요. 부모님이 연세가 들고, 돈이 없고 나에게 짐이 될 때에도 그 부모님을 공경하라. 그러면서도 모세오경에 보면 출애굽기 21장 15절에 보면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를 치는 자는 반듯이 죽일지니라. 그리고 17절에 보면 ‘ 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듯이 죽일지니라.’ 그래요. 신명기에는 자식이 술을 먹고 방탕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그 부모는 자식을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데리고 와서 타이르고 그 말을 듣지 아니하면 성읍 사람들이 전부 돌로 쳐 죽여라. 옛날 우리나라도 그랬지요, 마을에서 말 안 듣는 자식은 멍석에 말아서 멍석말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하면 모든 백성이 아멘으로 화답을 하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루트도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이야기 했다고요. 오늘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어버이날인데 그저 하루 엄마 아버지 잠깐 생각하고, 눈물 흘리고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고, 우리나라가 지금 굉장히 어렵고 힘들고 여러분들의 삶이 팍팍한데 나라 경제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여러분들의 가정의 삶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지난주 이번 주 이야기 했지요.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길 때 하나님이 복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섬기는 것이 아이를 영접하는 거다 이랬다고요. 오늘 성경 말씀도 우리 하나님은 연세 들고 힘없고, 병든 부모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믿어서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경제적으로 일으키는 귀한 교회가 되고, 여러분들 자신이 복 받는 삶의 출발점이 되시는 귀한 주일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쉬워요. 여러분 정말 좀 그러세요. 무역 잘하고 제도 잘하고 이런다고 해서 나라 사는 것 아닙니다. 2.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요. 어린이와 어른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복 받는 비결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복을 하나님에게 비는 것이 대제사장이 중요한 직임.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은 구약의 모든 의식이 예수님에서 완성된 것.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요. 어떻게 복을 주는가? 두 가지입니다. 어린아이 무시하지 않고, 연세 드신 어른과 부모님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이것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 설교 했지만 여러분들이 한 번 더 가슴에 좀 담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수기 6장을 한번 펴 보세요. 204면입니다. 22절부터 204면 다 펴세요, 오늘 설교 핵심만 간단하게 할 텐데 22절에 보세요.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그러면서 27절에 보세요, 그들은 여기에 그들은 누구지요? 그 앞에 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아론은 대제사장이고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이같이 23절에서부터 26절의 내용과 같이 “내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어 줘라.” 곧,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복을 하나님에게 비는 것이 대제사장의 중요한 직임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뭐 여러분들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하나님이니까 “하나님 축복하소서.” 이러는데, 그 말은 참 잘못된 거지요. 하나님보다 더 높은 분에게 “복을 빌어 주소서.” 이런 말로 하는데,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보다 “예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이 말이 가장 정확한 말입니다. 그럼 왜 그런가 하면, 제 이야기가 아니고, 구약신학의 가장 권위자라 하면 칼델리치 주석을 말합니다. 그분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신약에서도 그러거든요.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그래요. 그래서 앞에서 죽인다 이런 말은 이야기했던 대로 시민법이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은 구약의 모든 의식이 예수님에서 완성된 것을 말하거든요. 그러면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의미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주문이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보좌 앞에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은혜의 보좌 우편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계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 축복을 해 주시는 거예요. 요즘 좀 쉬운 말로 하면, 여러분들이 “우리 아들 서울 대학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를 하면, 무엇이든지 기도 되요. 성경에 그래 놨어요. 무엇이든지 기도해도 되는데, 그 기도를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받아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하나님에게 빌어서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빈 대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고요. 3. 칼델리치가 말하기를 “예수님이 이 땅의 대제사장의 직임의 축복권을 삼직에게 위임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부모가 자녀를 향하여 축복을 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두 번째 로 교사, 세 번째 담임 목사님에게 축복권을 위임하셨다.”라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흔히들 말할 때, 기도 응답은 4가지라 하지요. 하나는 yes라는 응답, no라는 응답, wait라는 응답, 그 다음에 change라는 응답이 있지요. “하나님, 우리 아들 서울대학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이 가만히 보니까 “부모님, 죄송합니다. 얘는 보니까 서울대학보다 백석대학 가는 게 훨씬 낫겠습니다.” 싶을 때, 예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저 사람이 서울대학 보내기를 원하는데, 하나님 쟤는 백석대학 가는 것이 자기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좋겠습니다.”라고 간구해 주기 때문에 기도가 뭐로 들어와요? 체인지, 바꾸어서 돌어온다고요. 그것도 응답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은 기도할 때마다 No로 응답 받는 것이 좋습니까, Wait로 응답 받는 것이 좋습니까, Change로 응답 받는 것이 좋습니까? 예스로 응답 받는 것이 좋아요? 물론 예스로 받아야지요. 그러려면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바꾸지 아니하도록 우리가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거거든요.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동기까지 아신다고요. 자 그런데 칼델리치가 이야기하기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대제사장의 직임 축복권을 삼직에게 위임해 놨다는 거예요.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 삼직의 첫 번째가 누구냐 하면 부모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이 여러분들 자녀를 향하여 축복을 할 때에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부모님을 거역하거나 무시하면 안 돼요. 아무리 연세가 많아도. 그런데 우리 부모들끼리 비밀 하나 이야기 합시다. 입으로는 자식에게 복을 빌지만 어떤 자식에게는 내가 부모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빕니다. 하나님 이 마음 알아요. ㅎ ㅎ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 여러분, 또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부모님이 진심으로 복을 빌 수 있는 그런 자녀로 변화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잖아요, 부모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잖아요. 왜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 되는가? 진심으로 부모가 하나님께 복을 빌 수 있도록 그래야 돼요. 또 두 번째로 교사에게 있다는 겁니다. 다음 주에 우리 스승의 주일이지만, 우리나라가 지금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엄마들 회개해야 돼요.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정말 여러분 선생님이 자기의 제자들을 향하여 진심으로 복을 빌어 줄 때, 예수님에게서 위임 받은 권세로 복을 빌어 줄 때, 그 자녀가 복 받는 줄 아셔야 됩니다. 선생님이 못난 선생님일수록 잘 해 줘 보세요. 아무리 악하고 못난 선생님이라도, 한 아이 정도는 좋아하고 복 빌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요. 선생님 비판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 흔히 뭐 그런 것 있잖아요. 연예인들이 대부분 보니까 학교 다닐 때에 좀 문제 아이였더라고요. 그 애들이 제대로 그 길 들어간 것이 뭡니까?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이런 데 보면 그 말썽쟁이, 정말 우리 반에 이 아이만 없으면 하는 그 아이를 어떤 선생님이 축복해 주고 쓰다듬어 준 그 아이는 잘 된다고요. 우리가 지금 이것 회복해 내야 됩니다. 세 번째로 담임 목사님에게 했다는 겁니다. 저도 여러분 참 교수 생활도 10년 하고, 목회도 하고 아버지도 되고 했는데 정말 목사는 여러분들이 선생님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여러분들의 시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부모의 마음을 주세요.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복을 빌기를 원하지만 그래도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목사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복 빌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4. 공경은 카베드라는 말인데 무겁게 여긴다는 말, 부모님의 말씀을 경홀히 가볍게 듣지 말고 무겁게 들으세요. 선생님의 말씀을 무겁게 듣도록 하세요.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사회의 통념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겁게 들을 때, 하나님께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 복 빌어 주고 싶은가? 오늘 보면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공경은 뭐냐 하면은요 공경은 카베드라는 말인데 무겁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부모님의 말씀을 경홀히 가볍게 듣지 마세요. 무겁게 들으세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돌아가셨습니까, 교회에 어른들의 말을 무겁게 들으세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은 선생님의 말을 흩은 말씀도 무겁게 듣도록 하세요. 교회에 와서 여러분들이 설교를 여러분들의 가치관이나 사회의 통념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겁게 들으세요. 그런 사람을 복 주지만, 여러분 우리 부모들 솔직히 이야기 해 봅시다, 어떤 자녀에게 진정으로 마음이 갑니까? 내가 흘려 가는 이야기도 마음에 새기고 무겁게 듣는 사람 아닙니까? 오늘 이 마음 회복해 내야 되요. 선생님도 마음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성질이 더럽고 나쁜 선생님도 자기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 학생이 아주 귀하게 여겨지거든요. 목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들이 목사님에게 뭐 잘 하는 것, 설교 말씀을 무겁게 듣고, 교회의 광고를 무겁게 들을 때, 하나님께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런 겁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마는 제가 한달 전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우리 이태경 집사님이 오산에 병원을 하는데 이층이 늘 비어 있었는데 건강검진센터를 만들었잖아요. 내가 물어 보니까 거기엔 아직 적자가 많이 납니다. 이래서 제가 아 우리 교인들 가운데 국가에서 주는 건강 검진 받으러 가라고 교회에서 차까지 대절하고, 또 다 가면은 디시도 해 준다고 했는데, 그 말을 무겁게 들은 사람 한 사람 있습니다. 딱 한 명 갔어요, 누가 간줄 아세요? 우재만 장로님이 갔어요. 그런데 장로님이 가서 건강 검진 받았는데 대장에 용정이 여러 개 있는데 하나는 너무나 커서 여기서 안 된다고, 강동경희대 가라고, 갔는데 암이었어요. 그래서 조직 검사 결과 암으로 나왔는데 이틀 전에 저에게 와서 목사님 내일 결과 나오는데 하고, 자신이 무릎을 꿇고 안수 해 달라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연세도 저보다 많잖아요. 내일 모래 70이잖아요. 기도했는데 그 다음날 참 할렐루야 목사님 전이도 안 되고 깨끗하고 수술 잘 되었답니다. 여러분 저를 주목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부모의 말을 중하게 듣고,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을 중하게 듣고, 교회의 설교나 광고를 중하게 들으세요. 그것 어렵지 않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요 쉬운 것은 잘 안 들으려 하고 어려운 것만 주면은 그것 뭐 권위 있는 줄 안다고요,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 맡기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보시면서 제가 참 우리 유치부 얘들이 복 받을게 제가 그랬잖아요. 아이들에게 명찰 달으라고, 왜 저도 이름 다 못 외우겠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난 주일도 그런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아이들 명찰 달면 뭐 해주라고요? 또 다 잊어버렸나? 한 번 따라 합시다. “와 네가 박지훈 집사 아들이냐?” 왜 안 따라하나?ㅎ ㅎ 여러분 복도에서 그래 보세요. 우리 교회 정말 좋아집니다. 교회 뭐 여러분들이 전 재산 팔아 가지고 이러는 것은 이단이고요. 이것 작은 것 하나 못합니까? 그러면 정말 우리 교회 차고 넘쳐요. 오늘 그래서 제가 엘리베이터 내리는 데 박은세 해 놨더라고. 그 동안에 이름은 알았지만 얼굴은 몰랐거든요. 박지훈 해 놔서 내가 “아, 네가 박지훈 집사 딸이구나.” 하고 내가 손 여기로 줬잖아. 스마일. 5.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며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다. 고려장 하려고 어머니 지고 갈 때 나뭇잎 따서 버리는 어머니 마음(아들이 돌아갈 길 잃어버릴까 봐). 고려장 시대 원나라 사신의 숙제, 통나무 밑동과 새끼 말? 어머니의 지식으로 나라의 큰일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 작은 것 한번 해 보자고요. 그리고 제가 한 대로 그대로 했어요? 내가, “야, 박지훈 집사님, 우리 교회 최고다. 얼마나 좋은데. 너 아빠 좋은 분 두어서 좋겠다.”고. 여러분, 이것이 우리나라 살리는 길이고, 자신이 사는 길임을 아셔야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 보세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다른 것은 몰라도 제가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이 참 편하게 하잖아요. 우리 김종대 목사님도 뭐 축도하겠지만, 이성근 장로님, 다른 교회에 일생 동안 해 왔지만 우리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잖아요. 이성근 장로님 여기에서 다른 데 가보세요. 은퇴하고 가보면 출석할 교인이 없어 눈물 흘린다고. 사람은 돈으로 경제적인 가치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부모들은 자식에게요 신앙의 유산 물려주려고 해야 돼요. 그 신앙의 유산이라는 게 주일날 교회 가고 십일조 하라는 것만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심어 주세요. 왜 경외함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해요. 그것 아세요? 또 하나님을 경외하면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겨요. 정말 그렇게 될 때, 우리나라 살아나는 겁니다. 어떠한 경제정책 쓸모없습니다. 이젠 여러분 수출 대한민국 아닙니다. 건설 대한민국 아닙니다. 이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때 우리나라 경제 살아나요. 누가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까? 하나님 무서운 줄 아는 사람이지요. 뭐 타 종교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이야기 할게요, 여러분 우리 저도 뭐 요즘 등산 자주 가니까 절에 가보면 뭐 위패들 49제 지낸다고 쫙 해 놓은 것들 이래 보는데요, 여러분 우리나라 고려장이 어느 시대에 생긴 겁니까? 고려 시대입니다. 그 고려 시대는 불교의 가장 중흥 기였어요. 아시지요, 그 고려장 시절에 엄마 지게 지고 산에 어머니 버리러 가는데 엄마는 지게에서 나뭇잎 따서 뚝뚝 버립니다. 엄마 왜 그래요 하니까 너 돌아갈 길 잃어버릴까 봐, 그게 부모에요. 그것이 스승이고 목사의 마음이에요. 여러분 또 고려장 이야기 있잖아요, 중국 원나라에서 우리나라 고려장 힘들게 하려고, 사신이 와서 숙제 낸 것, 아시지요? 나무 한 통을 내놔 놓으면서 똑 같은 나무를 어느 것이 밑동이고 어느 것이 위냐? 사법 고시 수석 한 대신들이 모여서 그 문제 못 풀고 끙끙거릴 때, 어머니 고려장 하는 것 하지 못해서 다락방에 숨겨 놓은 대신이 근심 어린 눈빛 있으니까 엄마는 애들 눈빛만 봐도 알잖아요. “무슨 일이 있냐?” “예, 오늘 원나라 사신이 와서 이 숙제 냈는데 이것 풀지 못하면 나라 큰일 납니다.” 하니까 “뭔데?” “어머니, 보세요. 이 통나무가 어디가 밑이고 어디가 위인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어허, 뭐 그런 것 걱정하냐? 그 통나무 물에 넣어 봐라. 가라앉는 쪽이 밑동이니라.” 이것은 스마트폰의 지식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요즘은 참 세상이 거꾸로 돼 가지고 오래 산 사람이 짧게 산 사람에게 묻고 사니까 권위가 사라지는 것 같은데, 그 지식은 사용법은 없더라도, 삶의 지혜는 어른들에게 있어요. 그러고 나니까 또 원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가지고 왔는데 똑 같이 생긴 말보고 어느 것이 어미고 어느 것이 새끼냐? 사법 고시 수석 한 사람도 모른 거예요. 전전긍긍하니까 또 어머니에게 와 가지고 그렇다고 하니까 “뭐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느냐? 두 마리 앞에 말 여물을 갖다 놔 봐라. 먼저 먹는 말이 새끼니라.” 할렐루야. ㅎ ㅎ ㅎ 여러분, 옛날에 누가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이런 말해서. 똥은 먼저 누는 게 깔리지만, 사람은 먼저 나는 게 결코 깔리는 법이 없대요. 요즘은 수세식이라 그렇지도 않겠지만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금 어려운 것은 정말 모든 사람을 경제적인 논리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러분 참 젊은 사람들 어린 아이들도 존귀히 여김을 받는 교회, 또 이제 정말 내 한 자리 지키는 것도 힘든 연세 드신 분들 존귀히 여김으로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이 여러분들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넘쳐 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특별히 어머니들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 아이들에게 귀찮다고 스마트폰 주고, 텔레비 보게 하지 말고요, 성경을 읽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젊은 어머니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이 언제부터 머리 좋은 사람들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이 예물 속에 있는 헌금의 정신이 잘 실천이 되어져서 머리는 좋지 못해도 몸 좋은 사람, 손재주 있는 사람 아니면 정말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장애우들까지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 땅이 되도록 드리는 헌금의 정신이 모든 사람들 속에 살아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가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내게 비치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주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그들을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버이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중하게 여겨서 순종함으로 자자손손 복을 받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땅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김종웅 목사(쉼과회복이있는교회)
100% 복 받을 짓(2)/ 엡6:1-3/ 어버이주일설교/ 2015-05-10
100% 복 받을 짓(2) 엡6:1-3 하나님의 말씀 에베소서 6장입니다 신약 성경으로 316면이 되겠습니다. 우리 1절부터 3절 그냥 읽지 마시고, 마음에 새기시고 이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이 저와 여러분들 우리 사회에 가득 차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 다 같이 읽습니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멘 성경의 부모님: 경외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만 쓰는 단어인데 부모에게도 동일하게 씁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반열에 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기독교를 근본도 없는 불효자식이라고 말을 하지만은, 그건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레위기 19장 3절에 보면 부모님을 경외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만 쓰는 단어인데 부모에게도 동일하게 씁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님을 하나님의 반열에 둔다고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십계명 가운데 약속이 있는 두 계명이 있는데요, ‘천대까지 잘 된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라고 하는 주석이 붙어 있는 여러분 계명은 2계명하고 5계명입니다. 2계명은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땅에서 잘 될 거다. 천 대까지 복을 누린다.’ 그러고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 이렇게 말한다고요. 1. 성경은 노부모도 공경을 중요시 여긴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백성은 아멘 하라. 하나님은 연세 들고 힘없고 병든 부모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만큼 성경은 부모 공경을 중요시 여기고, 또 우리 하나님은 살아 있는 부모님에게 잘 하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또 한 가지 우리가 아셔야 되는 것이 부모님은 돈이 많고 힘 있고 건강한 부모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연세가 드시고 돈이 없고 건강이 여의치 못한 부모를 공경하라, 주안에서 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저 우리가 예수 믿는 것만 부모에게만 공경을 하라는데 주안에서 in Christ 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져 있어요. 부모님이 연세가 들고, 돈이 없고 나에게 짐이 될 때에도 그 부모님을 공경하라. 그러면서도 모세오경에 보면 출애굽기 21장 15절에 보면 자기 어머니나 아버지를 치는 자는 반듯이 죽일지니라. 그리고 17절에 보면 ‘ 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듯이 죽일지니라.’ 그래요. 신명기에는 자식이 술을 먹고 방탕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그 부모는 자식을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데리고 와서 타이르고 그 말을 듣지 아니하면 성읍 사람들이 전부 돌로 쳐 죽여라. 옛날 우리나라도 그랬지요, 마을에서 말 안 듣는 자식은 멍석에 말아서 멍석말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하면 모든 백성이 아멘으로 화답을 하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루트도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부모를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이야기 했다고요. 오늘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어버이날인데 그저 하루 엄마 아버지 잠깐 생각하고, 눈물 흘리고 돌아가는 시간이 아니고, 우리나라가 지금 굉장히 어렵고 힘들고 여러분들의 삶이 팍팍한데 나라 경제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여러분들의 가정의 삶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지난주 이번 주 이야기 했지요.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길 때 하나님이 복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섬기는 것이 아이를 영접하는 거다 이랬다고요. 오늘 성경 말씀도 우리 하나님은 연세 들고 힘없고, 병든 부모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믿어서 여러분들이 그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경제적으로 일으키는 귀한 교회가 되고, 여러분들 자신이 복 받는 삶의 출발점이 되시는 귀한 주일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쉬워요. 여러분 정말 좀 그러세요. 무역 잘하고 제도 잘하고 이런다고 해서 나라 사는 것 아닙니다. 2.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요. 어린이와 어른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복 받는 비결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복을 하나님에게 비는 것이 대제사장이 중요한 직임.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은 구약의 모든 의식이 예수님에서 완성된 것.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되요. 어떻게 복을 주는가? 두 가지입니다. 어린아이 무시하지 않고, 연세 드신 어른과 부모님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복 받는 비결입니다. 이것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오늘 이 말씀은 여러분 설교 했지만 여러분들이 한 번 더 가슴에 좀 담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수기 6장을 한번 펴 보세요. 204면입니다. 22절부터 204면 다 펴세요, 오늘 설교 핵심만 간단하게 할 텐데 22절에 보세요.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그러면서 27절에 보세요, 그들은 여기에 그들은 누구지요? 그 앞에 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아론은 대제사장이고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이같이 23절에서부터 26절의 내용과 같이 “내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어 줘라.” 곧, 대제사장이 하는 일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복을 하나님에게 비는 것이 대제사장의 중요한 직임입니다. 그러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뭐 여러분들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하나님이니까 “하나님 축복하소서.” 이러는데, 그 말은 참 잘못된 거지요. 하나님보다 더 높은 분에게 “복을 빌어 주소서.” 이런 말로 하는데,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보다 “예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이 말이 가장 정확한 말입니다. 그럼 왜 그런가 하면, 제 이야기가 아니고, 구약신학의 가장 권위자라 하면 칼델리치 주석을 말합니다. 그분이 하는 이야기가 우리 신약에서도 그러거든요.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다.” 그래요. 그래서 앞에서 죽인다 이런 말은 이야기했던 대로 시민법이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은 구약의 모든 의식이 예수님에서 완성된 것을 말하거든요. 그러면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의미는 무슨 말이냐 하면은 주문이 아니에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보좌 앞에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은혜의 보좌 우편에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계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 축복을 해 주시는 거예요. 요즘 좀 쉬운 말로 하면, 여러분들이 “우리 아들 서울 대학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를 하면, 무엇이든지 기도 되요. 성경에 그래 놨어요. 무엇이든지 기도해도 되는데, 그 기도를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받아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하나님에게 빌어서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이 빈 대로 우리에게 응답하신다고요. 3. 칼델리치가 말하기를 “예수님이 이 땅의 대제사장의 직임의 축복권을 삼직에게 위임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부모가 자녀를 향하여 축복을 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두 번째 로 교사, 세 번째 담임 목사님에게 축복권을 위임하셨다.”라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흔히들 말할 때, 기도 응답은 4가지라 하지요. 하나는 yes라는 응답, no라는 응답, wait라는 응답, 그 다음에 change라는 응답이 있지요. “하나님, 우리 아들 서울대학 가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이 가만히 보니까 “부모님, 죄송합니다. 얘는 보니까 서울대학보다 백석대학 가는 게 훨씬 낫겠습니다.” 싶을 때, 예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저 사람이 서울대학 보내기를 원하는데, 하나님 쟤는 백석대학 가는 것이 자기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좋겠습니다.”라고 간구해 주기 때문에 기도가 뭐로 들어와요? 체인지, 바꾸어서 돌어온다고요. 그것도 응답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은 기도할 때마다 No로 응답 받는 것이 좋습니까, Wait로 응답 받는 것이 좋습니까, Change로 응답 받는 것이 좋습니까? 예스로 응답 받는 것이 좋아요? 물론 예스로 받아야지요. 그러려면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바꾸지 아니하도록 우리가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거거든요.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의 동기까지 아신다고요. 자 그런데 칼델리치가 이야기하기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대제사장의 직임 축복권을 삼직에게 위임해 놨다는 거예요.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그 삼직의 첫 번째가 누구냐 하면 부모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이 여러분들 자녀를 향하여 축복을 할 때에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부모님을 거역하거나 무시하면 안 돼요. 아무리 연세가 많아도. 그런데 우리 부모들끼리 비밀 하나 이야기 합시다. 입으로는 자식에게 복을 빌지만 어떤 자식에게는 내가 부모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빕니다. 하나님 이 마음 알아요. ㅎ ㅎ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성도 여러분, 또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부모님이 진심으로 복을 빌 수 있는 그런 자녀로 변화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이잖아요, 부모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잖아요. 왜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해야 되는가? 진심으로 부모가 하나님께 복을 빌 수 있도록 그래야 돼요. 또 두 번째로 교사에게 있다는 겁니다. 다음 주에 우리 스승의 주일이지만, 우리나라가 지금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엄마들 회개해야 돼요.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경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정말 여러분 선생님이 자기의 제자들을 향하여 진심으로 복을 빌어 줄 때, 예수님에게서 위임 받은 권세로 복을 빌어 줄 때, 그 자녀가 복 받는 줄 아셔야 됩니다. 선생님이 못난 선생님일수록 잘 해 줘 보세요. 아무리 악하고 못난 선생님이라도, 한 아이 정도는 좋아하고 복 빌어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요. 선생님 비판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 흔히 뭐 그런 것 있잖아요. 연예인들이 대부분 보니까 학교 다닐 때에 좀 문제 아이였더라고요. 그 애들이 제대로 그 길 들어간 것이 뭡니까? “그 사람이 보고 싶다” 이런 데 보면 그 말썽쟁이, 정말 우리 반에 이 아이만 없으면 하는 그 아이를 어떤 선생님이 축복해 주고 쓰다듬어 준 그 아이는 잘 된다고요. 우리가 지금 이것 회복해 내야 됩니다. 세 번째로 담임 목사님에게 했다는 겁니다. 저도 여러분 참 교수 생활도 10년 하고, 목회도 하고 아버지도 되고 했는데 정말 목사는 여러분들이 선생님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여러분들의 시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부모의 마음을 주세요.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복을 빌기를 원하지만 그래도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목사님도 인간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복 빌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4. 공경은 카베드라는 말인데 무겁게 여긴다는 말, 부모님의 말씀을 경홀히 가볍게 듣지 말고 무겁게 들으세요. 선생님의 말씀을 무겁게 듣도록 하세요.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사회의 통념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겁게 들을 때, 하나님께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 복 빌어 주고 싶은가? 오늘 보면 공경하는 사람입니다. 공경은 뭐냐 하면은요 공경은 카베드라는 말인데 무겁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부모님의 말씀을 경홀히 가볍게 듣지 마세요. 무겁게 들으세요.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돌아가셨습니까, 교회에 어른들의 말을 무겁게 들으세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은 선생님의 말을 흩은 말씀도 무겁게 듣도록 하세요. 교회에 와서 여러분들이 설교를 여러분들의 가치관이나 사회의 통념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겁게 들으세요. 그런 사람을 복 주지만, 여러분 우리 부모들 솔직히 이야기 해 봅시다, 어떤 자녀에게 진정으로 마음이 갑니까? 내가 흘려 가는 이야기도 마음에 새기고 무겁게 듣는 사람 아닙니까? 오늘 이 마음 회복해 내야 되요. 선생님도 마음 마찬가지 입니다. 아무리 성질이 더럽고 나쁜 선생님도 자기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 학생이 아주 귀하게 여겨지거든요. 목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들이 목사님에게 뭐 잘 하는 것, 설교 말씀을 무겁게 듣고, 교회의 광고를 무겁게 들을 때, 하나님께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런 겁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마는 제가 한달 전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우리 이태경 집사님이 오산에 병원을 하는데 이층이 늘 비어 있었는데 건강검진센터를 만들었잖아요. 내가 물어 보니까 거기엔 아직 적자가 많이 납니다. 이래서 제가 아 우리 교인들 가운데 국가에서 주는 건강 검진 받으러 가라고 교회에서 차까지 대절하고, 또 다 가면은 디시도 해 준다고 했는데, 그 말을 무겁게 들은 사람 한 사람 있습니다. 딱 한 명 갔어요, 누가 간줄 아세요? 우재만 장로님이 갔어요. 그런데 장로님이 가서 건강 검진 받았는데 대장에 용정이 여러 개 있는데 하나는 너무나 커서 여기서 안 된다고, 강동경희대 가라고, 갔는데 암이었어요. 그래서 조직 검사 결과 암으로 나왔는데 이틀 전에 저에게 와서 목사님 내일 결과 나오는데 하고, 자신이 무릎을 꿇고 안수 해 달라 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연세도 저보다 많잖아요. 내일 모래 70이잖아요. 기도했는데 그 다음날 참 할렐루야 목사님 전이도 안 되고 깨끗하고 수술 잘 되었답니다. 여러분 저를 주목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부모의 말을 중하게 듣고,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을 중하게 듣고, 교회의 설교나 광고를 중하게 들으세요. 그것 어렵지 않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요 쉬운 것은 잘 안 들으려 하고 어려운 것만 주면은 그것 뭐 권위 있는 줄 안다고요, 예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일 맡기는 거예요. 오늘도 여러분 보시면서 제가 참 우리 유치부 얘들이 복 받을게 제가 그랬잖아요. 아이들에게 명찰 달으라고, 왜 저도 이름 다 못 외우겠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난 주일도 그런 이야기 했지 않습니까? 아이들 명찰 달면 뭐 해주라고요? 또 다 잊어버렸나? 한 번 따라 합시다. “와 네가 박지훈 집사 아들이냐?” 왜 안 따라하나?ㅎ ㅎ 여러분 복도에서 그래 보세요. 우리 교회 정말 좋아집니다. 교회 뭐 여러분들이 전 재산 팔아 가지고 이러는 것은 이단이고요. 이것 작은 것 하나 못합니까? 그러면 정말 우리 교회 차고 넘쳐요. 오늘 그래서 제가 엘리베이터 내리는 데 박은세 해 놨더라고. 그 동안에 이름은 알았지만 얼굴은 몰랐거든요. 박지훈 해 놔서 내가 “아, 네가 박지훈 집사 딸이구나.” 하고 내가 손 여기로 줬잖아. 스마일. 5.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며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다. 고려장 하려고 어머니 지고 갈 때 나뭇잎 따서 버리는 어머니 마음(아들이 돌아갈 길 잃어버릴까 봐). 고려장 시대 원나라 사신의 숙제, 통나무 밑동과 새끼 말? 어머니의 지식으로 나라의 큰일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 작은 것 한번 해 보자고요. 그리고 제가 한 대로 그대로 했어요? 내가, “야, 박지훈 집사님, 우리 교회 최고다. 얼마나 좋은데. 너 아빠 좋은 분 두어서 좋겠다.”고. 여러분, 이것이 우리나라 살리는 길이고, 자신이 사는 길임을 아셔야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 보세요. 여러분 우리 교회에 다른 것은 몰라도 제가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이 참 편하게 하잖아요. 우리 김종대 목사님도 뭐 축도하겠지만, 이성근 장로님, 다른 교회에 일생 동안 해 왔지만 우리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잖아요. 이성근 장로님 여기에서 다른 데 가보세요. 은퇴하고 가보면 출석할 교인이 없어 눈물 흘린다고. 사람은 돈으로 경제적인 가치로 보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부모들은 자식에게요 신앙의 유산 물려주려고 해야 돼요. 그 신앙의 유산이라는 게 주일날 교회 가고 십일조 하라는 것만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심어 주세요. 왜 경외함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자기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해요. 그것 아세요? 또 하나님을 경외하면 돈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겨요. 정말 그렇게 될 때, 우리나라 살아나는 겁니다. 어떠한 경제정책 쓸모없습니다. 이젠 여러분 수출 대한민국 아닙니다. 건설 대한민국 아닙니다. 이제는 사람을 귀하게 여길 때 우리나라 경제 살아나요. 누가 사람을 귀하게 여깁니까? 하나님 무서운 줄 아는 사람이지요. 뭐 타 종교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이야기 할게요, 여러분 우리 저도 뭐 요즘 등산 자주 가니까 절에 가보면 뭐 위패들 49제 지낸다고 쫙 해 놓은 것들 이래 보는데요, 여러분 우리나라 고려장이 어느 시대에 생긴 겁니까? 고려 시대입니다. 그 고려 시대는 불교의 가장 중흥 기였어요. 아시지요, 그 고려장 시절에 엄마 지게 지고 산에 어머니 버리러 가는데 엄마는 지게에서 나뭇잎 따서 뚝뚝 버립니다. 엄마 왜 그래요 하니까 너 돌아갈 길 잃어버릴까 봐, 그게 부모에요. 그것이 스승이고 목사의 마음이에요. 여러분 또 고려장 이야기 있잖아요, 중국 원나라에서 우리나라 고려장 힘들게 하려고, 사신이 와서 숙제 낸 것, 아시지요? 나무 한 통을 내놔 놓으면서 똑 같은 나무를 어느 것이 밑동이고 어느 것이 위냐? 사법 고시 수석 한 대신들이 모여서 그 문제 못 풀고 끙끙거릴 때, 어머니 고려장 하는 것 하지 못해서 다락방에 숨겨 놓은 대신이 근심 어린 눈빛 있으니까 엄마는 애들 눈빛만 봐도 알잖아요. “무슨 일이 있냐?” “예, 오늘 원나라 사신이 와서 이 숙제 냈는데 이것 풀지 못하면 나라 큰일 납니다.” 하니까 “뭔데?” “어머니, 보세요. 이 통나무가 어디가 밑이고 어디가 위인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어허, 뭐 그런 것 걱정하냐? 그 통나무 물에 넣어 봐라. 가라앉는 쪽이 밑동이니라.” 이것은 스마트폰의 지식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요즘은 참 세상이 거꾸로 돼 가지고 오래 산 사람이 짧게 산 사람에게 묻고 사니까 권위가 사라지는 것 같은데, 그 지식은 사용법은 없더라도, 삶의 지혜는 어른들에게 있어요. 그러고 나니까 또 원나라 사신이 말 두 마리를 가지고 왔는데 똑 같이 생긴 말보고 어느 것이 어미고 어느 것이 새끼냐? 사법 고시 수석 한 사람도 모른 거예요. 전전긍긍하니까 또 어머니에게 와 가지고 그렇다고 하니까 “뭐 그런 것 가지고 고민하느냐? 두 마리 앞에 말 여물을 갖다 놔 봐라. 먼저 먹는 말이 새끼니라.” 할렐루야. ㅎ ㅎ ㅎ 여러분, 옛날에 누가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이런 말해서. 똥은 먼저 누는 게 깔리지만, 사람은 먼저 나는 게 결코 깔리는 법이 없대요. 요즘은 수세식이라 그렇지도 않겠지만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금 어려운 것은 정말 모든 사람을 경제적인 논리로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서, 여러분 참 젊은 사람들 어린 아이들도 존귀히 여김을 받는 교회, 또 이제 정말 내 한 자리 지키는 것도 힘든 연세 드신 분들 존귀히 여김으로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이 여러분들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넘쳐 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특별히 어머니들에게 부탁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들 아이들에게 귀찮다고 스마트폰 주고, 텔레비 보게 하지 말고요, 성경을 읽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는 젊은 어머니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이 땅이 언제부터 머리 좋은 사람들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까? 이 예물 속에 있는 헌금의 정신이 잘 실천이 되어져서 머리는 좋지 못해도 몸 좋은 사람, 손재주 있는 사람 아니면 정말 아무런 능력이 없는 장애우들까지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 땅이 되도록 드리는 헌금의 정신이 모든 사람들 속에 살아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가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내게 비치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주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그들을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버이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중하게 여겨서 순종함으로 자자손손 복을 받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땅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김종웅 목사(쉼과회복이있는교회)
100배로 보상하리라/ 막10:28-31
100배로 보상하리라 막10:28-31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너희들이 지금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집착돼서 믿는다고는 하는데 잘못 믿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잘못 믿는다는 말은 어쩌면 믿지 않는 불신보다도 더 나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한양 가는 길을 모르면 출발을 하지 않습니다. 모르면서도 안다고 가다가 길을 잘못 가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제가 집사람하고 워싱톤에서 뉴욕을 갔다가 돌아오는데 차가 좀 이상이 있어서 중간에 잠깐 내렸다가 다시 출발했는데 한참 가는데 아무래도 뭐가 이상해요. 그 Feeling이 있잖아요? 그래서 중간 통행료 받는 곳에서 물어봤습니다. 내가 지금 워싱톤 쪽으로 가고 있는 것 맞느냐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아니 당신은 지금 뉴욕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요. 아까 중간에서 내렸다가 다시 고속도로를 탔을 때 이정표를 잘 봤어야 하는데 안다고 하다가 시간은 시간대로, 기름은 기름대로 허비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생각을 바꿔라’. 생각이 바뀌어야 근본이 바뀝니다. 근본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안 됩니다. 여러분, 천국은 변화된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힘은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교회에 이 힘이 없으면 교회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려면 교회가 자꾸 새로워져야 합니다. 구태의연해 가지고서는 교인들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더구나 없습니다. 교회가 새로워지려면 목사 한 사람의 생각으로 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다 함께 그 생각이 자꾸 새로워져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생각을 바꾸어라!’ 지금 여러분과 내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참으로 우리 주일 예배를 온통 바꾸고 싶어요. 바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매달려 기도합니다. 때를 달라고 말씀입니다. 여러분, 주일 예배는 이게 천국 잔치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교회 주일 예배가 어디 잔치 집 같습니까? 아니 좀 심한 말씀 같습니다만 초상 집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잔치 집은 흥이 나야합니다. 먹을 것이 풍성하고 노래와 춤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는 말씀이 풍성한 가운데 신바람이 불어야 해요. 신랑신부를 중심으로 해서 흥겨운 가락과 함께 어깨춤을 둥실둥실 추면서 신나는 한 마당을 벌려야 합니다. 그래야 신이 납니다. 신나는 게 뭡니까? 성령 충만 아닙니까? 염려 근심 싹 달아납니다. 신나는 데-----, 세상 일 다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신날 때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이 이 심령 속에서 쾅하고 폭발하면서 내가 깨지는 겁니다. 그래서 변화되는 거죠. 한국 교회는 이게 안 되고 있어요. 저는 우리 코아 교회가 꼭 이런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매달려 기도합니다. 이제 때가 되면 성령께서 신바람을 불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다립니다. 성령께서 신바람을 불어주실 때까지 열심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되는 순간 성령께서 ‘지금이다’ 하시면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긴 이 생각이 바뀐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생각이 바뀐다는 말은 근본이 변한다는 말입니다. 저의 집사람이 잘하는 말이 있습니다. 걸핏하면 ‘사람의 성질은 안 고쳐져요’ 그럽니다. 그러다가 저한테 혼납니다. ‘무슨 소리, 사모가 그런 소리를 하면 못써요. 하나님이 고치시면 고쳐지는 것이지------’그만큼 근본이 바꿔지기 힘들다는 말이겠죠? 지금이야 덜 합니다만 제가 결혼할 때만 해도 그 집 근본을 많이 따졌습니다. 특히 며느리를 맞을 때에는 며느리의 어머니를 봤습니다. 딸은 거의 어머니 성질을 닮는다면서 말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생각은 매일 새로워져야 합니다. 생각이 매일 매일 새롭게 변화돼서 삶 자체가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변하면 가정이 새롭게 변할 줄 믿습니다. 교회가 새롭게 변하면 사회가 새로워질 줄 믿습니다! II. 본문 강해 21절에서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근심하면서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재산이 소용없다는 것이 아니라 재산은 선하게 사용될 때 재산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청년이 소유가 많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하고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이 그렇게 영생의 길을 사모하지만 그 재물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재물 그 자체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그 재물을 관리하는 것은 받은 자가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을 풍성하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담에게는 삼라만상을 다 주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다 주시면서 그것을 ‘다스리라’(창1:28)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다스리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스림이 돼야 하고 관리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이 재물의 복을 주신 것은 그 재물을 잘 관리하고 잘 다스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 재물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그 재물이 영생의 길을 가로 막는다면------, 차라리 재물이 없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21절 말씀은 바로 그 말씀입니다. 여기 본문의 그 청년은 하나님을 믿기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생활은 믿음생활이 되지 못했습니다. 재물이 믿음생활에 걸림돌이 됐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믿음은 생활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믿음이 아닙니다. 재물이 축날까봐 불쌍한 이웃을 돌보지 못하면 그것은 신앙생활이 못됩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그 청년은 재물을 잘 다스려 선하게만 사용했더라면 참 좋은 믿음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 자 오늘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1. 28절입니다.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마태복음 19장 27절에서는 이 뒤에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맞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과 심지어는 아내까지도 남겨두고 주님을 좇았습니다. 요한 형제는 부친마저도 남겨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는 세관장의 자리를 버렸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버린 소유라야 뭐 별 것이 되겠습니까 부자 청년하고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의 희생은 그 희생의 양이 많으냐 적으냐는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께 나 전부를 마치는 전적인 희생이냐 아니면 적당히 사람들 눈에나 띄게 하는 희생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에서 상부상조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네 것 내 것 없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에 따라 나눠줬습니다. ‘바라바’라는 사람은 소유하고 있던 밭을 팔아서 교회에 내 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도 거기에 감동돼서 밭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밭을 팔고 그 판돈을 교회에 내 놓으려고 하니까 아까웠습니다. 다 내놓기가 아까 웠습니다. 그래서 좀 떼어놓고 교회에 내 놨습니다. 그냥 내 놨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칭찬을 받았을 것인데, 내 놓으면서 내가 소유하고 있는 밭을 팔아서 다 가져왔습니다.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면서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속으실 분입니까?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정말 다 내놓는 겁니까? 그럼요. 한 푼도 쓰지 않고 다 가져왔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또 한 번 물었을 것입니다. ‘정말 다 입니까?’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돈이 적어서 묻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깨닫게 해 주는 물음입니다. 이때라도 ‘사실은 좀 쓸데가 있어서 떼어 놨습니다’ 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네, 이것이 전부 다 입니다’ 계속 하나님을 속였고 주의 종을 속였습니다. 그래서 죽었습니다. 그런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쁨으로 소유를 버렸고 그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소유가 영생을 얻는데 걸림돌이 될 것 같아서 버렸습니다. 예수님만이 영생의 길인 줄 믿고 오직 예수님만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31절 말씀입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있느니라’ 여러분,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내가 뭘 버렸다는 것조차도 버려야 진짜로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잊어야 진짜 희생이 됩니다. 생각까지도 버리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잊어버리지 못하면 어느 때 불쑥 교만으로 나타나고 자기 자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2. 이것이 29절 30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루노니 ------ .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종종 ‘진실로 말하노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 말씀 ‘진실로 진실로’가 나오면 정신 바싹 차려야 합니다. 정신 차리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는 아멘 아멘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아멘 아멘 레고 후민). 예수님이 역동적인 진리를 말씀하실 때 이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선포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루노니’ 하시면 ‘아, 진리가 선포되는 구나’ 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우리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요한복음 3:3에서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진리를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다시 태어납니까? 이해가 안 됩니다. 니고데모도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아담의 피로 태어난 죄인들을 하나님의 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잖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요한복음 13:21에서도 주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말씀이 되는 소리입니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님을 팔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멘, 아멘 하셨습니다. ‘내 말이 맞다 맞다’ 이겁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하나만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나는 하늘에서 왔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 고 선포하시면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바리새인들이 펄떡 뒵니다. ‘아니 당신의 나이가 50도 안 됐는데 아브라함이 당신의 때를 보다니 ----미쳤구나 미쳤어!’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을 수 없죠? 30대의 예수님이 3000년 전의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곧 하나님이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시니까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계신 것이 문제가 아니죠?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의 아멘, 아멘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아멘 속에 천국 비밀이 있습니다. 지금 29절 30절에서 예수님은 먼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로 입을 여시고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서 그 버린 것의 100배를 받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받고 내세에서 영생을 받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① 집이나 ② 형제나 ③ 자매나 ④ 어미나 ⑤ 아비나 ⑥ 자식이나 ⑦ 전토입니다. 이것을 크게 나면 혈연관계와 소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복을 받기 위해서 형제 자매 부모 자식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가르침이 반인륜적입니까? 패륜아가 되라고 가르친 것입니까 기독교가 반인륜적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하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 아닙니까?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굽니까? 바로 자식과 부모, 형제 자매 아닙니까? 그런데 버려요? 여기서 우리말로 ‘버린다’는 말은 헬라말 ‘압히에미’로 ‘헤어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하니까 헤어질 수밖에 없잖습니까? 잠시 헤어지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잠시 헤어집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6:33절 말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헤어짐의 아픔이 왜 없겠습니까? 얼마나 보고 싶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아픔을 100배나 보상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헤어짐의 아픔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심으로 보상하시고, 전토의 버림은 이 세상에서의 형통함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더 풍성히 해 주실 줄 믿습니다! III. 맺는 말 16세기 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 사업가에게 대영제국을 위해 외국에 대사로 나가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때 그 사업가는 ‘아롭옵기 황송하오나 나라와 여왕 폐하를 위하여 대사로 나가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지만 제가 대사로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 제 사업을 누가 맡아 줍니까? 폐하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그때 여왕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염려마시오. 당신이 외국에 있는 동안 당신의 사업은 나와 영국 정부가 책임지고 돌봐 주겠소’ 여러분, 대영제국과 여왕이 그 사업을 책임지고 돌보면 그 사업은 더욱 더 발전할 것이 뻔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면 백 배로 더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자녀와 재산과 사업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100배의 수익을 거두는 비결(16)/ 막4:20/ 2010-07-12
100배의 수익을 거두는 비결(16) 막4:20 지난 한 주간 동안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경남지역 한 건설업체 대표가 20일 MBC \\\'PD수첩\\\'을 통해 현재 검사장으로 재직 중인 2명 등 부산ㆍ경남지역 검찰청에서 근무했던 검사 100여명에게 25년 동안 돈봉투ㆍ향응은 물론 성접대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 파문으로 스폰서 의혹에 연루된 전ㆍ현직 검사 57명 가운데 박기준 부산지검장이 처음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떡만 먹고 살 수 없는 검사인가? 이젠 스폰서 검사라니? 이런 법앞에 우리가 어떻게 재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기도해야 한다. 또 농민들을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 있었다. 강화와 김포에 발생한 구제역으로 인해 지금까지 소 돼지 등 4만 8천여 마리가 매몰 처분됐다. 이에 따른 보상금액만 625억 원으로 역대 최고액수이다. 자식같은 가축을 산 채로 파 묻어야 했던 한 농민이 자살하는 일도 일어났다. 그런데 충주에 소보다 전염이 3,000배 빠르다는 돼지 구제역이 발생했다. 내가 살던 고향 바로 옆 지역이라 더 안타깝다. 구제역 발생 농가외에도 반경 3km안에 있는 소와 돼지 등 만 3,000여 마리가 모두 매몰 처리되게 되며 3년 동안 가축을 기를 수 없다 하니 그 피해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늘 철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내가 수고한 일들이 헛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인 황장엽씨를 살해하려다 정보당국에 붙잡힌 2인조 간첩단은 6년 동안이나 공들여 남파 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장엽은 42세의 나이로 북한 최고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그 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을 11년간 역임하는 등 북한에서 그야말로 최고위급 간부의 자리를 도맡아왔다. 하지만 그는 사회적 명예와 부를 마다하고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 황장엽은 북한 내 서열 13위까지 올라간 적도 있으며, 탈북 당시 서열 21위였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주에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황장엽 망명사건을 해결한 분이 바로 이 책의 저자였다. 1994년 딸의 협박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아버지가 예수 믿을 때까지 금식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큰 은혜를 받았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해 12월에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중국에서 형님에게 아무리 서둘러도 임종을 못 볼거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어머니 제가 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니 눈물을 흘리시더니 몇 시간후 소천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평생을 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전도하지 않았다 한다. 너는 언젠가 다시 예수 믿으면 누구보다 크게 믿을 것을 기도하며 아셨기 때문이었다. 그 해에 예수를 믿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6월에 외무부에서 아태국장으로 내정되었으니 8월말까지 서울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후 베이징교회의 권사님이 기도응답을 받았다면서 다음 해 1월에 들어갈 거라 했다는 것이다. 보통 외무부의 인사발령은 12월에 나서 2월말에 이동하게 되어 있는데 1월에 이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0일후 외무부에서 다시 연락이 왔는데 연말에 들어오라 했다. 이런 일이 있는 동안에 그는 30년만에 교회를 다시 나가게 되었고 어머니도 소천하셨다. 그런데 정말 기도하신 권사님의 말대로 1월중에 들어가게 되며 예수믿고 처음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 이후 그는 매일 울면서 다녔다고 한다. 내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눈물밖에 안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은혜의 시간에도 그에게 한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술문제였다. “하나님, 어떻게 술 좀 안 마실 수 없겠습니까?” 고민하며 기도했는데 1997년 외무부장관 보좌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로 옮기면서 술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1997년 2월, 그가 외무부장관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10일후 일어난 사건이 바로 황장엽 망명사건이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를 파견해 교섭을 벌이게 했다. 교섭을 하던 그에게 외무부장관, 안기부장이 언제 쯤 해결할 수 있겠냐 물었을 때 그는 “4주에서 6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확신있게 대답했다고 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런 확신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분들은 그렇게 빨리 해결할 수 있게느냐며 반신반의 했다. 정말 황장엽 망명사건은 사건 발생한지 35일 만에 해결되었고 그는 나라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하나님께서 김하중 전 장관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그래서 우리나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는지 하나님께서 밝히기 원하셨기 때문이라 했다. 김하중 장로님은 이 책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대사라고! 하나님의 대사는 자아실현과 자신의 정욕을 위해 기도하고 일하지도 않는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대사의 사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그 분 안에 행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시고, 수 많은 기적을 경험하기를 원하심을 알고 큰 감명을 받았다. 말씀에 순종하여 얻은 승리의 기록을 우리도 경험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에 순종하여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누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고 싶으신데 그렇게 안 하니까 못주신다고 하신다. 세상에서는 2배만 불려도 큰 축복이지만 하나님의 복은 최소 30배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내 방식으로 믿을 것인가?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그 비결을 확인하고 그 복을 누리는 자로 살아가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그동안 축복을 받을 수 없는 3가지의 마음 밭에 대해 살펴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복받고 성공하는 길이 쉽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음을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복받기 어려운 길은 4가지 중 3개(75%)인 반면에 복받을 수 있는 길은 4개 중 1개(25%)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들이 쉬운 길, 편한 길을 선택하는데 그 결과는 불보듯이 뻔함을 알아야 한다. (1)우리가 복을 받을 수 없는 첫 번째는 길가와 같은 마음밭이다.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 결과 사단이 배불리 먹는다. 주일 날 교회에 왔는데, 하나님 말씀을 읽으려고 성경을 폈는데 그 말씀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신앙적으로 무척 위험한 상황이다. 하나님과 무척 멀어져 있다는 증거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릴 때 딱딱한 땅은 곡괭이로 찍어 땅을 파 엎었다. 엄청난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말씀이 들려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배시간에 맞추어 교회오지 말고 20~30분전에 와서 여유있게 마음을 준비하면 좋다. 개척하면서 내가 다짐한 것 중에 하나가 한달 분량의 설교본문을 미리 주보에 올려놓는 것이다. 왜? 나도 기도로 준비하고, 성도들도 미리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실 말씀을 기대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교를 듣는 자세도 중요하다. 절대 고개를 숙이지 말라. 설교자를 쳐다보라. 때론 적어라. 특히 마음에 닫는 것을 적어야 그 감동이 계속 남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하는 분들은 집에 돌아가서 꼭 한번 이상 지난 주의 설교말씀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래도 말씀이 안 들어오면 설교자에게 문제가 있으니까 많이 기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리게 설교하고, 은혜받게 전하는 훌륭한 목사님 되게 해 주세요.” 저 보고 말하지도 말고, 하나님께 일러바치는 기도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해라.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길 것이다.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온다. (2)복받기 힘든 두 번째 마음의 밭은 돌짝밭 같은 마음이라 했다. 돌은 예수 믿어서 힘든 환난이나 핍박, 어려움, 고난을 말한다. 그런데 기억하자. 예수 제대로 믿는데, 아무도 나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제대로 믿지 않은 것이다. 예수 믿으면 세상 사람들은 괜히 시비를 건다. 그러니까 환난, 핍박이 몰려오면 좌절하고 낙심하여 쓰러지면 안된다. “내가 잘 믿고 있는 게 맞구나!” “이 과정만 잘 이기면 놀라운 일이 생길거야!” 믿으면 된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고난은 우리를 돌짝밭이 되게 할 수도 있지만 축복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믿는대로 된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덩어리로 바뀐다. (3)복받기 힘든 세 번째 마음의 밭은 가시떨기 밭이다. 생각나는가? 가시떨기밭의 3가지 장애물이? 염려, 돈, 욕심. 왜 염려하고 돈의 노예가 되고 욕심부리며 사는가? 결국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우린 알아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99도에서 절대 물이 끓지 않는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겉은 대단해 보이는데, 속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 이런 신앙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 어떻게? 시편 115편 11절은 이렇게 간단히 말씀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게 무엇일까? 그게 바로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을 가리킨다. 20절 말씀 다시 한번 읽어보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세상 소리를 차단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쉽다. 그런데 왜? 순종이 어려운가? 내 생각과 상식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물이 포도주되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물을 떠다 물동이를 가득 채우고, 그 물을 연회장에게 떠다주는 일은 쉽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는 일은 어렵다. 오병이어를 주님께 가져다 드리고, 주님이 주시는대로 나눠주는 일은 쉽다. 물위를 걷는 일은 어렵다. 물위를 걸어가라는 말에 순종하는 것은 쉽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어렵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날 것을 믿는 것은 쉽다. 여기서 쉽다는 말은 내 생각, 상식,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주님 말씀대로 그냥 해 보는 것을 말한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라. 이래도 후회하고, 저래도 후회할거면 하는 편이 낫다고! 어차피 나는 못하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는대로 해보는 것이 믿음이다. 이게 말씀을 듣고 받는 것이다. 말씀대로 해보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받는다는 말은 성경을 줄줄 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대사처럼 내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는 것이다. 내 생각, 계획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게 말씀을 듣고 받은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교회안에도 똑똑하고 아는 것 많은 사람은 넘친다. 하지만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 교인들을 보통 2가지로 빗대어 표현한다. 머리는 크고 팔, 다리는 작은 사람의 모습이다. 많이 들어서 머리는 커졌는데 실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결과이다. 또 하나는 교인들이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뜬다고 한다. 왜? 입만 살았기 때문에! 요즘은 물에 들어가면 아예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물속에서 서로 이야기 하느라... 말 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을 찾으신다. 말씀대로 순종하려면 야성이 필요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 흐리멍텅한 사람은 말씀대로 실천할 수 없다.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참 평범하게 살아왔다.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하지도 않는 중간지대의 삶을 살았다.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그런데 대학시절에 예수님을 깊이 만난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대충 이럭저럭 살지 않겠다.” 하나님은 그 이후로 나를 부르셨고 목회의 길을 가게 하셨고, 교회 개척이라는 사명도 감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내가 너무 성도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흐리멍텅한 목회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지난 주간에 <목사님! 전도가 너무 쉬워요>라는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도전을 받았다. 부산 송정동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님은 1993년 20여명이던 교회에 부임하였고 현재 재적 2000여명에 이른다. 거기에 감동적인 이야기 중 하나가 “고추밭을 뽑힌 권사님”이라는 글이었다. 권사 임직을 하면서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권사의 직분은 너무 중요한 사명입니다. 세상에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주신 이 직분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새벽기도에 나오셔서 저와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또 새신자들을 심방하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권사님이 새벽기도에 반은 나오고 반은 나오지 않았다. 연로하시고, 교통편이 좋지 않지만 직분이 소중함 것을 알고 반드시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반만 참석했다. 안되겠다 싶어 한번 더 얘기를 했더니 바쁘시단다. 뭐가요? 아들이 부산법원 앞에서 주차장을 하는데 그 일을 도와주기 때문이란다. 그건 아들에게 맡기고 권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라 해도 늘 똑같았다. 그래서 주변 성도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의 대답은 달랐다. “목사님.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가 보시면 알겠지만 권사님이 고추 농사를 지으십니다.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고추농사를 지으시는지 아마그 근방에서 제일일 겁니다. 아침, 저녁으로 고추밭에 가서 벌레도 잡고, 물도 주고, 약도 쳐준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권사님을 다시 불러 물었다. “권사의 직분도 제대로 못하면서 고추밭은 날마다 가신다면서요. 고추농사 때문에 바쁘시다면서요?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이들에게 고추도 주고, 고춧가루 주는데는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설득해도 권사님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목사님은 날마다 그 권사님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하던 9월중순 토요일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주셨다. ‘니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그 권사를 그대로 두면 안된다. 고추밭을 다 뽑아버려라.’ 그런데 기도해도, 설교준비를 하는데도 그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목사님이 하도 답답해서 물어물어 권사님의 고추밭을 찾아갔더니, 정말 소문대로 고추농사가 잘 되었다. 목사님은 그 고추밭을 없애야겠다고 마음멋었다. 농사짓는 장로님에게 잡초약을 달라고 하니 분무기가 없다고 거절하셨다. 하는 수 없이 집사님에게 낫을 빌려 베는데 너무 힘들었다. 목사님은 웃통을 벗고 손으로 뽑기 시작했다. 두세시간을 뽑으니 손에 물집도 잡히고 너무 더워 더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목사님은 1/3 정도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난리가 났다. 처음에 권사님이 그 고추밭을 보고는 남의 밭인 줄 알고 돌아갔단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이상해 다시 가 보니 자기 고추밭이 맞았다. ‘내가 누구하고 원수를 지었길래 이런 일이 있나?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권사님으 오후 내내 실성한 사람처럼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권사님 딸의 전화를 받고 목사님이 들어갔는데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목사님이 부르니 그제야 대답한다. “목사님. 제가 평생 원수맺은 사람이 없는데 어떤 죽일 놈이 우리 고추밭을 다 뽑아놓았습니다. 혹시 그 놈이 우리 집에 불이라도 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권사님. 사실은 제가 오후에 고추밭을 뽑았습니다. 여기 손을 보십시오.” “왜 목사님이..?”목사님이 물었다. “권사님은 지금까지 수십년을 예수 믿고 권사까지 되셨는데,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신 것 때문에 감격한 적이 있습니까?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지키셨나요? 권사님은 지금 고추밭 때문에 심장이 떨리고 치가 떨린다고 하셨는데 예수믿고 이렇게 심장이 떨린 적이 있으셨나요? 옆 사람이 지옥가는 것이 안타까워 오늘처럼 가슴이 떨린 적이 있습니까?” 권사님이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사이에 7분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권사님이 젊은 목사앞에 무릎을 꿇었다. “목사님.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이 고추가 뭐라고” 다음날부터 권사님이 새벽기도를 오셨다. 그런데 교회 나온 지 3달 밖에 안 되는 성도가 함께 새벽기도를 나온 것이다. 이상해 물어보니 “목사님. 저도 권사님 밭 옆에 고추를 심어놓았습니다.” 권사님댁 고추밭이 모두 뽑힌 이유가 새벽기도 나오지 않아서 인 것을 알고는 그 분도 새벽기도를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후 권사님은 열심히 전도하였고, 그 해 12월에 이 권사님이 전도해 세례받은 사람만 11명이나 되었다. 손현보 목사님과 고추밭 권사님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너무 성도들을 이래도, 저래도 괜챦은 듯 내버려두어 성도들을 죽게 만들고, 복받지 못하게 만드는 목회자는 아닌가 하는 책망이 온다. 뿐만아니라 개척교회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생각 때문에 내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갇혀 하나님의 부흥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권사님이 교회를 나름대로 섬기면서도 고추밭에 정신이 팔려 주님의 일을 등한시하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교회만 나오라는 말고, 교회 일만 하라는 말도 아니다. 주님이 정말 좋아하시는 일은 등한시 한 채, 어느 정도 종교적인 삶을 사는 것에 대해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하신다. 농사를 지어 본 분들은 잘 안다. 그냥 씨뿌리고 내버려 두었는데 잘 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거름을 뿌리고, 충분히 딱딱한 땅을 갈아업고, 돌을 골라내고, 땅을 부드럽게 한 후에 씨를 뿌려야 제대로 자란다. 뿐만아니라 씨가 자라면 적당히 쏟아주어 자라게 하다가 열매를 맫도록 거름을 주어야 한다. 땅 힘이 없으면 겉만 무성한 나무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충 신앙생활하면 대충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안 주신다. 말씀 들은대로 살아보려고 애쓸 때 하나님은 도와주신다. 특히 말씀대로 사는 삶에 필수적인 것이 기도생활이다.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이 기도 안하는 것 봤냐?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지혜도 주시고, 믿음도 주신다. 1주일에 한번 들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말씀을 듣고 살게 된다. 날씨도 풀리고 새벽5시가 넘으면 환해진다. 말씀대로 살 수 있는 힘은 기도를 통해 공급된다. 패트릭 존스톤의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신다. When we work, we work. When we pray, God works. (Patrick Johnstone) 말씀을 정리하자.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얻는 비결은 무엇인가? 말씀을 잘 듣고 받는 것이다. 이 말은 내 일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니까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이 오는 것이다. 내가 하면 많아야 두배 남는 인생이다. 그렇게 살 것인가? 새벽을 깨우며 성경을 읽고 추천도서도 읽으며 결단하기 바란다. 하나님이 내 삶과 가정에 일하시고 역사하시고, 축복하시는 인생될 줄 믿는다.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 단1:17-21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단1:17-21 2003-02-26 15:46:53 read : 130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로, 또 내일을 맞이할 때는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크던 작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적은 것을 보게 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도전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남자는 그냥 집 안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래리 월터즈(Larry Walters) 라는 사람은 트럭 운전수라고 하는데 그의 평생 꿈은 비행기를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하였지만, 시력이 나빠서 조종사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는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헬륨가스 통과 기상관측에 사용하는 대형 풍선 45개를 사왔습니다. 그는 헬륨 가스를 그 풍선에 넣고, 풍선의 줄을 의자에 매달아 하늘을 날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 50-60미터를 날아갈 때에 엽총으로 풍선 한 두 개를 떨어뜨리면 지상으로 내려올 줄 알았습니다. 그는 지프차에 고정시킨 줄을 끊고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입니까? 공중으로 날아오른 풍선은 순식간에 3,300m 상공으로 올라가서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공군에서는 국제선 여객기로부터 어떤 이상한 비행선이 국제 항공들이 날아가는 항로에 떠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밤이 되니 월터즈의 비행선은 바다 쪽으로 움직여 갔습니다. 공군에서는 헬리콥터를 보내 구출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구출하는 긴 이야기는 드리지 않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를 구출하여 땅으로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는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당국에 불법 비행이라는 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수갑을 찬 채로 끌려갈 때에 방송국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월터즈씨 왜 그런 일을 저질렀나요?\\\" 래리 월터즈는 가던 길을 멈추고서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남자가 그냥 집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자가 그냥 집에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물며, 신앙 생활하신다는 분들이 그냥 집에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고통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속에는 강한 철판에 240 가닥의 철사들이 팽팽하게 걸려 있습니다. 철사들이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란 여간 긴장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강렬한 고통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고통은 마침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아서 새로운 도전과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다는 것은 그의 신앙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일생 수동적인 신앙, 일생 그냥 앉았다고 돌아가는 신앙이라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정말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을 들어보라고 하면 다니엘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전 제가 목회칼럼에서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00년도에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동환 씨가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이 장안의 화제가 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4년 간 평균 99.26점을 획득하여 전교 수석을 차지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독한 신앙의 어머니로부터 어찌 들으면 황당한 말 같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말아라. 성경 읽지 않으면 공부하지 말아라\\\"는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다. 너는 너를 위하여 살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어떤 일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김동환이라는 분은 구약 잠언 1:7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이 말씀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이란 분은 뜻을 정하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유다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었을 때에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가고 성전에서 사용하던 금은 그릇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그 때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 중에 다니엘이라는 청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세계국가를 꿈꾸고 있던 사람으로 그가 세계를 통일하여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민족을 통합하고 등용하는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환관장 아스브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출신에서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세울 만한 소년들을 데려다가 갈대아 즉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선발되면 왕이 지정한 음식과 포도주를 공급하면서 완전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후에는 전원 공무원으로 임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 가운데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란 청년은 벨드사살이라고 하였고,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새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는 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이는 주인이고, 이름을 받는 사람은 종이라는 관계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소년들을 바벨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의 신에 관계된 이름으로 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게 될 때는 이름을 바꾸어주었던 것을 봅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재판관이시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뜻인데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눈동자 아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판단에 합격하도록 살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국립 왕정학교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따라 뜻을 정하였습니다. 저들은 바벨론 왕정 학교에 들어오는 영예를 누렸지만 혼을 빼앗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종교로 개종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이라는 청년을 참으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한참 배고프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을 때에 왕이 내려주는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환관장에게 채식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면 왕이 내려주는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는 나쁜 음식이냐 하면 다 같은 음식이요, 왕 앞에 갔다왔다는 것뿐이지 음식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도 있고, 자기가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바벨론 왕은 바벨론의 가장 높은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왕이었지만, 그들 종교의 가장 높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이 내려주는 음식은 대부분이 그들의 신전에 올려졌다고 내려오는 제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이기에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내려주는 진미를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면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환관장은 이들 유다의 소년들 때문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유다에서 잡아왔지만 왕족들이요 귀족 출신이었고, 세계 대제국인 바벨론에서 양성하는 공무원들인데 얼굴이 초췌해지고 다른 소년들보다 못해 보이면 왕 앞에 자기의 자리가 위태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년들이 원하는 10일 간 시험해본 것입니다. 유다 소년들에게는 채식을 위주로 하였고, 포도주 대신에 그냥 물을 공급해준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채식이라고 함은 주로 콩과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콩이라는 식물이 몸에 좋은 것 같습니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소년들보다 채식을 위주로 하는 유다의 소년들이 얼굴이 더욱 아름다웠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좋아 보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채식이 육식보다 더 좋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들에게 학문을 주셨습니다. 모든 서적을 읽으면 깨닫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외에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아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20절 말씀에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들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고 했습니다.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한 학교를 다녔고 같은 교수님들에게 배웠는데 누구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떤 이는 10배나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그에게 주어진 모습대로 살아야 하고 그에게 주어진 기능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무를 예로 들면 사과나무가 배나무가 될 수 없고, 배나무가 감나무로 바뀔 수 없습니다. 돈을 예로 들면 돈이란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데, 같은 규격의 같은 재질이지만 어떤 종이는 1000원짜리가 됩니다. 어떤 종이는 5000원짜리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10000원짜리가 됩니다. 그러니 10,000원짜리는 1,000 원짜리의 10배가 되는 가치를 지닙니다. 종이는 아무런 힘도 없고, 소원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위에 그려지는 것으로 유통될 뿐입니다. 어떤 그림이 새겨지느냐에 따라 돈의 가치, 자신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와 열정에 따라서 1000원짜리의 인생을 사는 분들도 있고, 10,000원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인데도 다 다르게 살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들이 다른 것을 보게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렇게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까? 그 사람의 품은 생각이 그의 위인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이 생각하는 것으로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고상하면 그의 인생도 고상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32:8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구역에 따르면 \\\"고상한 자는 고상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상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 분의 일생에 10배나 나은 인생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현재보다 10배는 나은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까? 뜻을 굽히지 말고 뜻을 정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약소국가의 포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정학교를 나왔고, 공무원에 임용되어 지내다가 그는 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왕을 거치면서 세계대제국 바벨론의 총리를 지냈습니다. 다니엘은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4)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이방나라인 바벨론 사람들이 보기에도 흠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흠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율법과 종교를 가지고 흠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도입되면서 흠을 들춰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흠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면 좀 나을 것 같아 추천하였지만, 더 많은 흠이 발견될 뿐입니다. 좀 배우고 앞장서 있다는 이들마다 도덕적으로 흠이 얼마나 많고 돈에 깨끗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인사청문회는 그 사람의 잘한 점은 다 덮어두고 그의 가능성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흠만 들춰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도 사람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 흠만 들춰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벨론 정부가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으로 넘어갔을 때에도 다니엘이란 분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으면 그를 총리로 앉히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한 일이 아니며,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인품이 훌륭하고 청렴하였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까? 그러니 얼마나 정적들이 뒷조사를 하고 그의 흠을 들춰내고 캐고 다녔을 것입니까? 약80년 동안 그는 두 나라와 여러 왕들을 거치면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는데, 오직 흠 없이 살려는 그의 일관된 삶의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정적들은 다니엘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다니엘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어음발행과 신용관계, 영주증 처리하는데 혹 뇌물이라도 받은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흠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의 청탁도 들어준 적이 없었고, 오직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비전을 말하지만, 비전과 인격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저는 인격을 선택할 것입니다. 정직하고 곧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의 삶은 일정한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잠언 11:3에는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머리를 치켜들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과의 교제에 충실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 생활은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까? 여러분의 직장에서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아보셨습니까? 돈이라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생각을 건전하게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 분이 가장 요긴한 자리로 몰아넣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어주시는데 누가 말할 것입니까? 다니엘은 열심히 배운 사람입니다. 공부하였다는 말입니다. 왕궁에서는 유다 소년들을 선발하여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당시 갈대아의 학문이란 세계 정상의 학문이었습니다. 공부하지 않고 훈련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교육도 필요 없고, 훈련을 받지 않아도 저절로 잘 믿을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역점을 두신 것이 교육이요, 훈련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이었습니다. 자녀는 태어나지만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열심히 배우는 사람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는 믿음의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거하면서 함께 공부하였고,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밀고 나가는데도 함께 힘을 합하였습니다. 일생 좋은 인간관계를 가졌고,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인데,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세로 친구관계를 떼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다가 친구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이에게 도움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함께 가려고 해야 합니다. 잠언27:17에 보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시대에 친구들이 잘 되는 것으로 함께 빛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위협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를 무시하고 기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 것 같지만,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외국에 있었지만, 결코 외국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척 콜슨이라는 분이 대학에서 연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 하나가 화가 나서 콜슨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봐요, 콜슨, 세상에는 죽을 가치가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콜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자네가 무언가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내 생각에는 자네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일도 아무 것도 없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것이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일이 없다고 하면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사업 모두를 총동원하여 사용하다가 마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디오피아라는 나라에 1936년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전도한 결과 48명의 신자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이탈리아 군대에 의하여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48명의 신자들은 고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체포되고 매를 맞아야 했으며, 교회는 불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행정부 관리인 도게사라는 사람은 기독교 지도자인 완다로라는 사람을 체포하였습니다. 밧줄로 묶고 숫한 고문을 가하였습니다. 완다로는 외쳤습니다. \\\"이 밧줄은 마지막 심판이 아니요, 이것은 사람이 나를 묶은 것에 불과하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죄에 해방될 것입니다.\\\" 도게사라는 사람은 완다로를 채찍질하였습니다. \\\"외국인들은 떠났다. 그들은 더 이상 너를 돕지 않을 것이야. 신앙을 포기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협도 완다로의 신앙을 흔들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선교사를 섬기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소. 그분이 나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5명의 남자들이 완다로를 때렸습니다.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니 대나무 감옥에 1년 간 가두어 놓았습니다. 드디어 외국의 여론 때문에 완다로가 석방되었습니다. 완다로가 석방되자마자 먼저 한 일은 여러 성도들을 모아 가지고 전날에 그렇게 핍박하던 정부 관리 도게사라는 사람의 밭에 가서 추수를 도와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사랑입니까? 그 큰 사랑과 헌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42년에 다시 선교사들이 다시 입국하였을 때에 48명이었던 성도들은 1만 명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확신과 헌신과 사랑의 열정은 48명 성도들을 1만명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을 영접하는 완다로는 환한 얼굴로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다시 이곳에 보내신 것은 새신자들을 양육하라는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초기 성도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뜻을 정하고, 흠이 없고 훈련에 정진한 사람에게 주시는 은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결심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일에는 일원 한푼도 쓰지 않겠다고 하는 결심이 있어야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 세 사람은 모든 학생들 위에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학문을 주셨고, 모든 책을 읽으면 깨닫는 지혜를 주셨고, 다니엘은 한 단계 뛰어넘어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앞에 섰을 때에 왕이 묻는 말에 거침없이 대답하였고, 바벨론의 모든 학자들이나 술객들보다 10배는 나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은 세상의그 어더한 사람들보다 10배나 나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 단1:17-21/ 2003-02-26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 단1:17-21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로, 또 내일을 맞이할 때는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크던 작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적은 것을 보게 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도전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남자는 그냥 집 안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래리 월터즈(Larry Walters) 라는 사람은 트럭 운전수라고 하는데 그의 평생 꿈은 비행기를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하였지만, 시력이 나빠서 조종사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는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헬륨가스 통과 기상관측에 사용하는 대형 풍선 45개를 사왔습니다. 그는 헬륨 가스를 그 풍선에 넣고, 풍선의 줄을 의자에 매달아 하늘을 날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 50-60미터를 날아갈 때에 엽총으로 풍선 한 두 개를 떨어뜨리면 지상으로 내려올 줄 알았습니다. 그는 지프차에 고정시킨 줄을 끊고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입니까? 공중으로 날아오른 풍선은 순식간에 3,300m 상공으로 올라가서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공군에서는 국제선 여객기로부터 어떤 이상한 비행선이 국제 항공들이 날아가는 항로에 떠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밤이 되니 월터즈의 비행선은 바다 쪽으로 움직여 갔습니다. 공군에서는 헬리콥터를 보내 구출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구출하는 긴 이야기는 드리지 않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를 구출하여 땅으로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는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당국에 불법 비행이라는 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수갑을 찬 채로 끌려갈 때에 방송국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월터즈씨 왜 그런 일을 저질렀나요?\\\" 래리 월터즈는 가던 길을 멈추고서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남자가 그냥 집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자가 그냥 집에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물며, 신앙 생활하신다는 분들이 그냥 집에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고통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속에는 강한 철판에 240 가닥의 철사들이 팽팽하게 걸려 있습니다. 철사들이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란 여간 긴장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강렬한 고통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고통은 마침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아서 새로운 도전과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다는 것은 그의 신앙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일생 수동적인 신앙, 일생 그냥 앉았다고 돌아가는 신앙이라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정말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을 들어보라고 하면 다니엘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전 제가 목회칼럼에서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00년도에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동환 씨가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이 장안의 화제가 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4년 간 평균 99.26점을 획득하여 전교 수석을 차지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독한 신앙의 어머니로부터 어찌 들으면 황당한 말 같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말아라. 성경 읽지 않으면 공부하지 말아라\\\"는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다. 너는 너를 위하여 살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어떤 일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김동환이라는 분은 구약 잠언 1:7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이 말씀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이란 분은 뜻을 정하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유다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었을 때에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가고 성전에서 사용하던 금은 그릇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그 때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 중에 다니엘이라는 청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세계국가를 꿈꾸고 있던 사람으로 그가 세계를 통일하여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민족을 통합하고 등용하는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환관장 아스브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출신에서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세울 만한 소년들을 데려다가 갈대아 즉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선발되면 왕이 지정한 음식과 포도주를 공급하면서 완전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후에는 전원 공무원으로 임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 가운데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란 청년은 벨드사살이라고 하였고,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새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는 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이는 주인이고, 이름을 받는 사람은 종이라는 관계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소년들을 바벨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의 신에 관계된 이름으로 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게 될 때는 이름을 바꾸어주었던 것을 봅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재판관이시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뜻인데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눈동자 아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판단에 합격하도록 살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국립 왕정학교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따라 뜻을 정하였습니다. 저들은 바벨론 왕정 학교에 들어오는 영예를 누렸지만 혼을 빼앗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종교로 개종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이라는 청년을 참으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한참 배고프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을 때에 왕이 내려주는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환관장에게 채식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면 왕이 내려주는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는 나쁜 음식이냐 하면 다 같은 음식이요, 왕 앞에 갔다왔다는 것뿐이지 음식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도 있고, 자기가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바벨론 왕은 바벨론의 가장 높은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왕이었지만, 그들 종교의 가장 높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이 내려주는 음식은 대부분이 그들의 신전에 올려졌다고 내려오는 제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이기에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내려주는 진미를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면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환관장은 이들 유다의 소년들 때문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유다에서 잡아왔지만 왕족들이요 귀족 출신이었고, 세계 대제국인 바벨론에서 양성하는 공무원들인데 얼굴이 초췌해지고 다른 소년들보다 못해 보이면 왕 앞에 자기의 자리가 위태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년들이 원하는 10일 간 시험해본 것입니다. 유다 소년들에게는 채식을 위주로 하였고, 포도주 대신에 그냥 물을 공급해준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채식이라고 함은 주로 콩과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콩이라는 식물이 몸에 좋은 것 같습니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소년들보다 채식을 위주로 하는 유다의 소년들이 얼굴이 더욱 아름다웠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좋아 보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채식이 육식보다 더 좋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들에게 학문을 주셨습니다. 모든 서적을 읽으면 깨닫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외에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아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20절 말씀에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들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고 했습니다.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한 학교를 다녔고 같은 교수님들에게 배웠는데 누구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떤 이는 10배나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그에게 주어진 모습대로 살아야 하고 그에게 주어진 기능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무를 예로 들면 사과나무가 배나무가 될 수 없고, 배나무가 감나무로 바뀔 수 없습니다. 돈을 예로 들면 돈이란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데, 같은 규격의 같은 재질이지만 어떤 종이는 1000원짜리가 됩니다. 어떤 종이는 5000원짜리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10000원짜리가 됩니다. 그러니 10,000원짜리는 1,000 원짜리의 10배가 되는 가치를 지닙니다. 종이는 아무런 힘도 없고, 소원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위에 그려지는 것으로 유통될 뿐입니다. 어떤 그림이 새겨지느냐에 따라 돈의 가치, 자신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와 열정에 따라서 1000원짜리의 인생을 사는 분들도 있고, 10,000원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인데도 다 다르게 살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들이 다른 것을 보게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렇게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까? 그 사람의 품은 생각이 그의 위인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이 생각하는 것으로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고상하면 그의 인생도 고상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32:8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구역에 따르면 \\\"고상한 자는 고상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상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 분의 일생에 10배나 나은 인생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현재보다 10배는 나은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까? 뜻을 굽히지 말고 뜻을 정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약소국가의 포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정학교를 나왔고, 공무원에 임용되어 지내다가 그는 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왕을 거치면서 세계대제국 바벨론의 총리를 지냈습니다. 다니엘은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4)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이방나라인 바벨론 사람들이 보기에도 흠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흠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율법과 종교를 가지고 흠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도입되면서 흠을 들춰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흠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면 좀 나을 것 같아 추천하였지만, 더 많은 흠이 발견될 뿐입니다. 좀 배우고 앞장서 있다는 이들마다 도덕적으로 흠이 얼마나 많고 돈에 깨끗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인사청문회는 그 사람의 잘한 점은 다 덮어두고 그의 가능성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흠만 들춰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도 사람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 흠만 들춰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벨론 정부가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으로 넘어갔을 때에도 다니엘이란 분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으면 그를 총리로 앉히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한 일이 아니며,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인품이 훌륭하고 청렴하였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까? 그러니 얼마나 정적들이 뒷조사를 하고 그의 흠을 들춰내고 캐고 다녔을 것입니까? 약80년 동안 그는 두 나라와 여러 왕들을 거치면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는데, 오직 흠 없이 살려는 그의 일관된 삶의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정적들은 다니엘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다니엘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어음발행과 신용관계, 영주증 처리하는데 혹 뇌물이라도 받은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흠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의 청탁도 들어준 적이 없었고, 오직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비전을 말하지만, 비전과 인격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저는 인격을 선택할 것입니다. 정직하고 곧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의 삶은 일정한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잠언 11:3에는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머리를 치켜들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과의 교제에 충실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 생활은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까? 여러분의 직장에서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아보셨습니까? 돈이라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생각을 건전하게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 분이 가장 요긴한 자리로 몰아넣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어주시는데 누가 말할 것입니까? 다니엘은 열심히 배운 사람입니다. 공부하였다는 말입니다. 왕궁에서는 유다 소년들을 선발하여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당시 갈대아의 학문이란 세계 정상의 학문이었습니다. 공부하지 않고 훈련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교육도 필요 없고, 훈련을 받지 않아도 저절로 잘 믿을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역점을 두신 것이 교육이요, 훈련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이었습니다. 자녀는 태어나지만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열심히 배우는 사람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는 믿음의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거하면서 함께 공부하였고,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밀고 나가는데도 함께 힘을 합하였습니다. 일생 좋은 인간관계를 가졌고,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인데,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세로 친구관계를 떼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다가 친구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이에게 도움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함께 가려고 해야 합니다. 잠언27:17에 보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시대에 친구들이 잘 되는 것으로 함께 빛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위협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를 무시하고 기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 것 같지만,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외국에 있었지만, 결코 외국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척 콜슨이라는 분이 대학에서 연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 하나가 화가 나서 콜슨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봐요, 콜슨, 세상에는 죽을 가치가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콜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자네가 무언가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내 생각에는 자네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일도 아무 것도 없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것이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일이 없다고 하면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사업 모두를 총동원하여 사용하다가 마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디오피아라는 나라에 1936년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전도한 결과 48명의 신자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이탈리아 군대에 의하여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48명의 신자들은 고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체포되고 매를 맞아야 했으며, 교회는 불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행정부 관리인 도게사라는 사람은 기독교 지도자인 완다로라는 사람을 체포하였습니다. 밧줄로 묶고 숫한 고문을 가하였습니다. 완다로는 외쳤습니다. \\\"이 밧줄은 마지막 심판이 아니요, 이것은 사람이 나를 묶은 것에 불과하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죄에 해방될 것입니다.\\\" 도게사라는 사람은 완다로를 채찍질하였습니다. \\\"외국인들은 떠났다. 그들은 더 이상 너를 돕지 않을 것이야. 신앙을 포기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협도 완다로의 신앙을 흔들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선교사를 섬기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소. 그분이 나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5명의 남자들이 완다로를 때렸습니다.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니 대나무 감옥에 1년 간 가두어 놓았습니다. 드디어 외국의 여론 때문에 완다로가 석방되었습니다. 완다로가 석방되자마자 먼저 한 일은 여러 성도들을 모아 가지고 전날에 그렇게 핍박하던 정부 관리 도게사라는 사람의 밭에 가서 추수를 도와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사랑입니까? 그 큰 사랑과 헌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42년에 다시 선교사들이 다시 입국하였을 때에 48명이었던 성도들은 1만 명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확신과 헌신과 사랑의 열정은 48명 성도들을 1만명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을 영접하는 완다로는 환한 얼굴로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다시 이곳에 보내신 것은 새신자들을 양육하라는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초기 성도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뜻을 정하고, 흠이 없고 훈련에 정진한 사람에게 주시는 은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결심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일에는 일원 한푼도 쓰지 않겠다고 하는 결심이 있어야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 세 사람은 모든 학생들 위에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학문을 주셨고, 모든 책을 읽으면 깨닫는 지혜를 주셨고, 다니엘은 한 단계 뛰어넘어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앞에 섰을 때에 왕이 묻는 말에 거침없이 대답하였고, 바벨론의 모든 학자들이나 술객들보다 10배는 나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은 세상의그 어더한 사람들보다 10배나 나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단1:17-21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단1:17-21 2003-11-17 19:33:33 read : 31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로, 또 내일을 맞이할 때는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하지만, 우리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크던 작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실현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적은 것을 보게 됩니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도전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남자는 그냥 집 안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래리 월터즈(Larry Walters) 라는 사람은 트럭 운전수라고 하는데 그의 평생 꿈은 비행기를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하였지만, 시력이 나빠서 조종사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는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그는 헬륨가스 통과 기상관측에 사용하는 대형 풍선 45개를 사왔습니다. 그는 헬륨 가스를 그 풍선에 넣고, 풍선의 줄을 의자에 매달아 하늘을 날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한 50-60미터를 날아갈 때에 엽총으로 풍선 한 두 개를 떨어뜨리면 지상으로 내려올 줄 알았습니다. 그는 지프차에 고정시킨 줄을 끊고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 일입니까? 공중으로 날아오른 풍선은 순식간에 3,300m 상공으로 올라가서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공군에서는 국제선 여객기로부터 어떤 이상한 비행선이 국제 항공들이 날아가는 항로에 떠다니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밤이 되니 월터즈의 비행선은 바다 쪽으로 움직여 갔습니다. 공군에서는 헬리콥터를 보내 구출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구출하는 긴 이야기는 드리지 않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를 구출하여 땅으로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그는 땅으로 내려오자마자 당국에 불법 비행이라는 죄로 체포되었습니다. 수갑을 찬 채로 끌려갈 때에 방송국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월터즈씨 왜 그런 일을 저질렀나요?" 래리 월터즈는 가던 길을 멈추고서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남자가 그냥 집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자가 그냥 집에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물며, 신앙 생활하신다는 분들이 그냥 집에 앉아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고통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피아노의 속에는 강한 철판에 240 가닥의 철사들이 팽팽하게 걸려 있습니다. 철사들이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란 여간 긴장관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강렬한 고통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고통은 마침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아서 새로운 도전과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있다는 것은 그의 신앙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일생 수동적인 신앙, 일생 그냥 앉았다고 돌아가는 신앙이라면 너무나 부족합니다.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정말 하나님을 잘 믿은 사람을 들어보라고 하면 다니엘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전 제가 목회칼럼에서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2000년도에 서울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김동환 씨가 다니엘 학습법이라는 책이 장안의 화제가 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4년 간 평균 99.26점을 획득하여 전교 수석을 차지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지독한 신앙의 어머니로부터 어찌 들으면 황당한 말 같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말아라. 성경 읽지 않으면 공부하지 말아라"는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다. 너는 너를 위하여 살려고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 어떤 일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김동환이라는 분은 구약 잠언 1:7의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이 말씀 하나를 붙잡았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이란 분은 뜻을 정하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유다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었을 때에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가고 성전에서 사용하던 금은 그릇들을 빼앗아갔습니다. 그 때에 포로로 잡혀온 사람 중에 다니엘이라는 청년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세계국가를 꿈꾸고 있던 사람으로 그가 세계를 통일하여 지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민족을 통합하고 등용하는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환관장 아스브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출신에서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세울 만한 소년들을 데려다가 갈대아 즉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선발되면 왕이 지정한 음식과 포도주를 공급하면서 완전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후에는 전원 공무원으로 임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 가운데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란 청년은 벨드사살이라고 하였고,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새 이름으로 부른다고 하는 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름을 지어주는 이는 주인이고, 이름을 받는 사람은 종이라는 관계에 놓인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소년들을 바벨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의 신에 관계된 이름으로 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게 될 때는 이름을 바꾸어주었던 것을 봅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의 뜻이 "하나님은 재판관이시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뜻인데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눈동자 아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판단에 합격하도록 살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국립 왕정학교에 들어가서 기숙사 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따라 뜻을 정하였습니다. 저들은 바벨론 왕정 학교에 들어오는 영예를 누렸지만 혼을 빼앗기지는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의 종교로 개종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이라는 청년을 참으로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한참 배고프고 먹고 싶은 것들이 많을 때에 왕이 내려주는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환관장에게 채식을 주문하였습니다. 그러면 왕이 내려주는 음식과 왕이 마시는 포도주는 나쁜 음식이냐 하면 다 같은 음식이요, 왕 앞에 갔다왔다는 것뿐이지 음식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도 있고, 자기가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 바벨론 왕은 바벨론의 가장 높은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왕이었지만, 그들 종교의 가장 높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이 내려주는 음식은 대부분이 그들의 신전에 올려졌다고 내려오는 제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이기에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이 내려주는 진미를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면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없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환관장은 이들 유다의 소년들 때문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유다에서 잡아왔지만 왕족들이요 귀족 출신이었고, 세계 대제국인 바벨론에서 양성하는 공무원들인데 얼굴이 초췌해지고 다른 소년들보다 못해 보이면 왕 앞에 자기의 자리가 위태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년들이 원하는 10일 간 시험해본 것입니다. 유다 소년들에게는 채식을 위주로 하였고, 포도주 대신에 그냥 물을 공급해준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채식이라고 함은 주로 콩과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콩이라는 식물이 몸에 좋은 것 같습니다. 육식을 위주로 하는 소년들보다 채식을 위주로 하는 유다의 소년들이 얼굴이 더욱 아름다웠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좋아 보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채식이 육식보다 더 좋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들에게 학문을 주셨습니다. 모든 서적을 읽으면 깨닫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외에 다니엘에게는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아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20절 말씀에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들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고 했습니다. 10배나 나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한 학교를 다녔고 같은 교수님들에게 배웠는데 누구는 평범한 사람이었고, 어떤 이는 10배나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그에게 주어진 모습대로 살아야 하고 그에게 주어진 기능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나무를 예로 들면 사과나무가 배나무가 될 수 없고, 배나무가 감나무로 바뀔 수 없습니다. 돈을 예로 들면 돈이란 조폐공사에서 찍어내는데, 같은 규격의 같은 재질이지만 어떤 종이는 1000원짜리가 됩니다. 어떤 종이는 5000원짜리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10000원짜리가 됩니다. 그러니 10,000원짜리는 1,000 원짜리의 10배가 되는 가치를 지닙니다. 종이는 아무런 힘도 없고, 소원도 없습니다. 다만 자기 위에 그려지는 것으로 유통될 뿐입니다. 어떤 그림이 새겨지느냐에 따라 돈의 가치, 자신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으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의 자세와 열정에 따라서 1000원짜리의 인생을 사는 분들도 있고, 10,000원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인데도 다 다르게 살고,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관들이 다른 것을 보게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렇게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까? 그 사람의 품은 생각이 그의 위인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이 생각하는 것으로 그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생각이 고상하면 그의 인생도 고상해지는 것입니다. 이사야32:8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구역에 따르면 "고상한 자는 고상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상한 일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 분의 일생에 10배나 나은 인생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현재보다 10배는 나은 사람으로 살기를 바랍니까? 뜻을 굽히지 말고 뜻을 정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약소국가의 포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왕정학교를 나왔고, 공무원에 임용되어 지내다가 그는 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왕을 거치면서 세계대제국 바벨론의 총리를 지냈습니다. 다니엘은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4)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이방나라인 바벨론 사람들이 보기에도 흠이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흠이 없으면 이스라엘의 율법과 종교를 가지고 흠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인사청문회라는 것이 도입되면서 흠을 들춰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흠 없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면 좀 나을 것 같아 추천하였지만, 더 많은 흠이 발견될 뿐입니다. 좀 배우고 앞장서 있다는 이들마다 도덕적으로 흠이 얼마나 많고 돈에 깨끗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질병이라는 것입니다. 인사청문회는 그 사람의 잘한 점은 다 덮어두고 그의 가능성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흠만 들춰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도 사람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 흠만 들춰내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벨론 정부가 망하고 페르시아제국으로 넘어갔을 때에도 다니엘이란 분은 얼마나 훌륭한 분이었으면 그를 총리로 앉히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한 일이 아니며,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가 얼마나 인품이 훌륭하고 청렴하였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까? 그러니 얼마나 정적들이 뒷조사를 하고 그의 흠을 들춰내고 캐고 다녔을 것입니까? 약80년 동안 그는 두 나라와 여러 왕들을 거치면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였는데, 오직 흠 없이 살려는 그의 일관된 삶의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정적들은 다니엘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다니엘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어음발행과 신용관계, 영주증 처리하는데 혹 뇌물이라도 받은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흠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의 청탁도 들어준 적이 없었고, 오직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비전을 말하지만, 비전과 인격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저는 인격을 선택할 것입니다. 정직하고 곧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지만, 그의 삶은 일정한 방향이 있는 것입니다. 잠언 11:3에는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인격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머리를 치켜들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과의 교제에 충실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 생활은 하나도 부끄러움이 없습니까? 여러분의 직장에서 타협하고 싶은 유혹을 받아보셨습니까? 돈이라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생각을 건전하게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그 분이 가장 요긴한 자리로 몰아넣고 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어주시는데 누가 말할 것입니까? 다니엘은 열심히 배운 사람입니다. 공부하였다는 말입니다. 왕궁에서는 유다 소년들을 선발하여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습니다. 당시 갈대아의 학문이란 세계 정상의 학문이었습니다. 공부하지 않고 훈련받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교육도 필요 없고, 훈련을 받지 않아도 저절로 잘 믿을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역점을 두신 것이 교육이요, 훈련이었습니다. 제자훈련이었습니다. 자녀는 태어나지만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열심히 배우는 사람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는 믿음의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함께 거하면서 함께 공부하였고,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밀고 나가는데도 함께 힘을 합하였습니다. 일생 좋은 인간관계를 가졌고, 좋은 친구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인데, 경쟁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만한 자세로 친구관계를 떼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다가 친구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이에게 도움 받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함께 가려고 해야 합니다. 잠언27:17에 보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시대에 친구들이 잘 되는 것으로 함께 빛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위협과 박해에도 굴하지 않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를 무시하고 기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신앙인 것 같지만,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외국에 있었지만, 결코 외국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척 콜슨이라는 분이 대학에서 연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면 목숨을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 하나가 화가 나서 콜슨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습니다. "이봐요, 콜슨, 세상에는 죽을 가치가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콜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자네가 무언가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면 내 생각에는 자네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일도 아무 것도 없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것이냐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것이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죽을 일이 없다고 하면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 사업 모두를 총동원하여 사용하다가 마칠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디오피아라는 나라에 1936년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들어가서 전도한 결과 48명의 신자를 얻었습니다. 그리고는 이탈리아 군대에 의하여 선교사들이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48명의 신자들은 고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체포되고 매를 맞아야 했으며, 교회는 불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행정부 관리인 도게사라는 사람은 기독교 지도자인 완다로라는 사람을 체포하였습니다. 밧줄로 묶고 숫한 고문을 가하였습니다. 완다로는 외쳤습니다. "이 밧줄은 마지막 심판이 아니요, 이것은 사람이 나를 묶은 것에 불과하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죄에 해방될 것입니다." 도게사라는 사람은 완다로를 채찍질하였습니다. "외국인들은 떠났다. 그들은 더 이상 너를 돕지 않을 것이야. 신앙을 포기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협도 완다로의 신앙을 흔들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선교사를 섬기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그들을 보내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소. 그분이 나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5명의 남자들이 완다로를 때렸습니다. 끝까지 굴복하지 않으니 대나무 감옥에 1년 간 가두어 놓았습니다. 드디어 외국의 여론 때문에 완다로가 석방되었습니다. 완다로가 석방되자마자 먼저 한 일은 여러 성도들을 모아 가지고 전날에 그렇게 핍박하던 정부 관리 도게사라는 사람의 밭에 가서 추수를 도와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사랑입니까? 그 큰 사랑과 헌신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42년에 다시 선교사들이 다시 입국하였을 때에 48명이었던 성도들은 1만 명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확신과 헌신과 사랑의 열정은 48명 성도들을 1만명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을 영접하는 완다로는 환한 얼굴로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다시 이곳에 보내신 것은 새신자들을 양육하라는 것입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초기 성도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뜻을 정하고, 흠이 없고 훈련에 정진한 사람에게 주시는 은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결심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일에는 일원 한푼도 쓰지 않겠다고 하는 결심이 있어야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 세 사람은 모든 학생들 위에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학문을 주셨고, 모든 책을 읽으면 깨닫는 지혜를 주셨고, 다니엘은 한 단계 뛰어넘어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 앞에 섰을 때에 왕이 묻는 말에 거침없이 대답하였고, 바벨론의 모든 학자들이나 술객들보다 10배는 나은 사람이라고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은 세상의그 어더한 사람들보다 10배나 나은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8년간 귀신들린 여자를 고치심/ 눅13:10-17
18년간 귀신들린 여자를 고치심 눅13:10-17 예수님이 이 땅에서 20번째로 일으키신 기적은 18년간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를 고치신 기적입니다.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18년간 허리가 꾸부러져서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여자여!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수하셨습니다. 곧 허리를 펴고 그 여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때 회당장은 화가 치밀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회당장은 화를 내며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어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 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이런 말씀을 하시니 모든 반대자들이 부끄러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영광스럽게 생각하였고 기뻐하였습니다. 이 기적에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두 가지를 보시는 분 우리 주님은 두가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1)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반드시 보십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12) 예수님은 말씀을 증거하시다가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는 여인을 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보고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피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따라 오셔서 보고 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시는 삭개오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말없는 말을 표정에서 알고 보고 계신 분이십니다. (2) 예수님은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을 반드시 보십니다. 귀신은 짐승 속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거라사에서 예수님이 귀신에게 나가라고 외치시니까 돼지속으로 들어가게 하여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허락하셨습니다. 돼지 2천마리가 순식간에 죽고 말았습니다. 귀신은 불멸의 존재이기에 돼지속에서 나와 다른 영체를 찾았을 것입니다. 귀신은 어느 속엔가는 들어가야 합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귀신은 18년이나 이 여자의 몸을 빌려 가지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허리가 구부러진 것만 피상적으로 알았지 귀신이 들어 있는 것을 알지 못 하였습니다. 의사도 같습니다. 병자와 병만 보았지 배후에 있는 귀신의 세력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18년동안 앓게 한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같은 영안이 없이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보시고 귀신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2. 두 가지를 아시는 분 예수님은 두 가지를 보시는 분이시자 두 가지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가장 중요한 존재임을 아시고, 마귀는 가장 못된 존재임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진멸(요일 3:8), 인간 구원(요 3:16)입니다. 같은 요한이 요한 복음에서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였고 요한 일서에서는 마귀를 진멸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특별히 인간 창조만은 히브리어로 \\\\\\\'야탈\\\\\\\'의 개념으로 창조 하셨습니다. 세상은 \\\\\\\"바라\\\\\\\"라(창 1:1)하셨고, 세상은 \\\\\\\"아솨\\\\\\\"라(창 1:21)하셨고 인간은 \\\\\\\"야탈\\\\\\\" 하셨습니다(창 1:27). 바라는 무에서 유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아솨는 개조창조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야탈\\\\\\\"은 모방창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 하셨습니다. 인간은 너무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야탈\\\\\\\"창조라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 인간에게는 무한 가능성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습니다. 독일의 에코노모 뇌학자가 인간의 머리를 자세히 연구하였습니다. 인간의 뇌의 무게는 1,500g 밖에 안 되는 적은 것이지만 마치 국수를 만들려고 밀가루를 반죽하여 넓게 펼친 것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펴니까 1, 240평방 cm 였습니다. 이는 신문지 한 장을 편 것만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안에는 136억 5,300만개의 뇌세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괴테는 일생동안에 0.4% 사용하였습니다. 그런세 세계에서 가장 뇌를 많이 사용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인데 그는 0.6%를 사용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 중에는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의 1%를 사용하고 죽은 사람이 이 땅에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엄청난 가능성을 주시며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나가 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지글러는 이런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을 파묻어 두고 사는 사람을 \\\\\\\'거룩한 도둑놈\\\\\\\'이라고 하였는데 90%의 사람들이 거룩한 도둑놈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가 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2) 인간에게는 엄청난 가치성을 주셨다. 하나님이 인간을 \\\\\\\"야탈\\\\\\\"창조하셨다는 두번째 의미는 엄청난 가치성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몸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비싼 몸입니다. 아마 한 부분 한 부분을 가격으로 따지면 엄청날 것입니다. 온 천하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몸입니다. (3) 인간에게는 유일한 독특성을 주셨다.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유일한 독특성을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다가 죽은 사람이 540억명쯤 된다고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53억명입니다. 그 중에서 나는 나 하나입니다. 나 이전에 내가 없었습니다. 나 이후에 내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유일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잘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참 모습니다. (4) 인간에게는 지우개만은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두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우개 하나만은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은 일생입니다. 이생(二生)이 아닙니다. 한번 지나가면 끝입니다. 한번 살고 나면 마지막입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이 한번씩 밖에 없는 순간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울 지우개가 필요없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인간을 귀하게 창조하시고 마귀에게 눌려 사는 것을 아프게 여기시며 건지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3. 두 가지를 외치시는 분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라고 예수님이 외치셨습니다. 이 말씀속에는 두가지를 향한 외치심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여자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는 귀신을 향하여 외치신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귀신에게는 묶음을 놓고 떠나라는 말씀이고 여자에게는 묶음에 풀렸다는 말씀입니다. 귀신이 여자를 18년 동안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귀신과 여자를 분리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나라 방정환 선생님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어느날 새벽에 방정환 선생님의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잠자던 식구들을 칼로 위협하며 돈을 내놓라고 하였습니다. 방선생님은 390 환을 주었습니다. 그 도둑은 도망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방선생님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고맙다고 하고 가야지 무례하게 그만한 돈을 가지고 가면서 그냥 가는 사람이 어디 있소?\\\\\\\" 그 도둑은 마지 못하여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도망하였습니다. 그 후 조금 있다가 경관에 의하여 수갑을 찬 채로 끌려 왔습니다. 방 선생님은 경관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강도가 나니라 내가 돈을 주었더니 고맙다고 인사하고 정정당당하게 가지고 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도둑과 함께 평생을 같이 살았습니다. 인간을 살리시고 새로운 인간으로 자유케 하시고 이 땅에 오셨기에 언제나 귀신을 향하여 떠나가라고 외치시고 묶인자를 풀어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4. 두 가지를 만지시는 분 13절을 보면 예수님은 여자에게 안수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의 허리가 펴졌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안수로 마귀가 도망갔습니다. 손을 대니 한 편은 나았고 한 편은 도망하였습니다. 불을 켜면 밝음이 오고 어둠은 도망가는 것입니다. 해가 나타나면 빛은 오고 어둠은 도망가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하나님이 오신 것이요, 귀신은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청하면 귀신은 도망하게 됩니다. 고양이와 쥐가 같이 지낼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과 귀신을 같이 지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세상 두 주인을 우리는 동시에 섬길 수가 없습니다. 5. 두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 예수님은 우리들을 두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1) 영생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18년된 병자인 이 여자를 향하여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셨습니다(16). 유대인들은 구원받은 것을 아브라함의 품안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눅 16:22). 또 구원받은 여자를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삭개오를 향하여 구원 받은 사람을 아브라함의 자손(눅 19:9)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조상은 아브라함이기에 이렇게 모든 구원의 역사를 아브라함과 연결시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딸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최종적인 목적은 아브라함의 딸,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신 최고의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어느 노목사님이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50년간을 목회하시며 많은 일을 하셨고 많은 사람들에게 성자라고 존경을 받으시던 분이었습니다. 그의 아들도 목사가 되어 임종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옆에서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50년간 설교를 해오셨고 수많은 일들을 해오셨지요.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하셨어요.\\\\\\\" 이 때 아버지는 말을 막으면서 말했습니다. \\\\\\\"애야!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혈 이야기나 하여다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생명이야기외에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핵심은 죽으심시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었습니다(사 43:7). 그런데 귀신에게 눌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 하였습니다. 쓰리꾼은 남의 돈을 노리는 사람들입니다. 땅꾼은 뱀을 노리는 사람입니다. 귀신은 영광을 노리는 존재입니다. 영광을 도적질하는 존재입니다. 현대 선교의 장을 연 선교의 아버지는 윌리암 케리입니다. 그는 18세까지 구두 수선공으로 구두나 만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18세에 그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구두를 수선하면서 헬라어 히브리어 화란어 불어 라틴어들을 철저히 배웠습니다. 물론 독학이었습니다. 793년 침례교 목사가 되어 그는 영국을 떠났습니다. 인도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벵갈어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원주민들에게 그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위대한 것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것을 시도하라\\\\\\\" 이같이 예수님은, ① 두 가지를 보시는 분이십니다. ② 두 가지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③ 두 가지를 외치시는 분이십니다. ④ 두 가지를 만지시는 분이십니다. ⑤ 두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1907년 처럼 다시 부흥하는 교회/ 합3:2/ 2007-02-15
1907년 처럼 다시 부흥하는 교회 합3:2 부흥을 말할 때 18세기의 신앙 부흥을 일으킨 운동 3가지를 말합습니다. 그 하나는 퀘이커고 운동이고, 또 하나는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옥스퍼드 운동, 다른 하나는 모라비아 형제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부흥은 소래 부흥 원산 부흥 평양 부흥을 말하기도 합니다. 일제의 침탈과 함께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매섭던 1907년1월. \\\'한국의 예루살렘\\\' 평양의 장대현 교회에서는 새해인사가 막 끝난 6일 밤부터 연례행사인 열흘간의 부흥사경회 가 이 해에도 어김없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의 사경회는 시작 전부터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이날 설교를 맡은 평양신학교 졸업반 39세의 길선주 장로의 얼굴은 위엄과 성결로 불붙은 얼굴이었습니다. 부흥집회 마지막 날에 길선주 장로는 회중 앞에 나서더니 저는 아간과 같은 놈이외다. 저 때문에 여러분이 은혜받지 못했습네다. 언젠가 제 친구 한 사람이 임종하면서 제게 부탁하기를 \\\'나는 이제 죽지만 내 재산을 잘 처리해주게. 내 아내는 무식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꼭 부탁하네\\\' 라며 세상을 떠났습네다. 저는 그의 재산을 정리하면서 1백원을 잘라 먹었습네다. 저는 하나님을 속였습네다. 저는 내일 아침 일찍 그 돈을 그 부인에게 돌려주겠습네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말은 모든 회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순식간에 온회중의 통회가 불일 듯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밤 집회에 참석했던 정익호 장로님은 \\\"그는 눈이 멀어 나를 보지 못했을 터이나 나는 그의 앞에서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놓은 것으로만 생각되었습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두려워 예배당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그러나 곧 되돌아와서 \\\'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라고 후일 증언했다 합니다.(김양선 \\\'한국기독교사 연구\\\') 회개하는 교인들의 열기는 곧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 몰아쳤던 성령의 불길 바로 그것 이었습니다. 이날 밤 집회는 초기 한국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1907년 대부흥운동의 도화선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흥운동의 맥락은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의 한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역사입니다. 모라비아 형제단의 지도자로서 훌륭한 역사를 발휘한 진젠돌프 같은 이는 우리가 무심코 생각지 못할 훌륭한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생후 6주 만에 부친이 병사했고, 어머니는 개가하므로 할머니 손에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시, 음악, 그림 등에 재능을 가진 분이었고 조직신학과 히브리어, 헬라어에 능통한 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이 할머니의 영향으로 좋은 신앙을 얻었습니다. 그는 나이 어린 6살 때부터 혼자 조용히 기도할 줄 알았고 소년기에 기도 그룹을 만들어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봉독하는 생활에 힘썼습니다. 청년기에 그는 신학, 법률학, 철학, 과학 등 다방면에 공부했고 수재적인 두뇌로서 뛰어난 성적을 가진 학도였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번은 정한 시간에 기도했고 자주 철야 기도를 했고 금요일에는 안식일로 정하고 오직 기도에 힘썼다. 자기뿐 아니라 겨자씨 단이라고 하는 그룹을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교훈과 진리를 지키며 행동한다. 타인의 행복을 추구한다. 세속적인 안일을 배제하고 버린다.” 라는 목표로 신앙 운동에 부단히 힘썼습니다. 후에 이 멤버 중에서는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진젠돌프가 아직 약관인, 젊었을 때에 모라비아 교단의 대표가 됐지만 그가 전 세계에 끼친 영적인 위대한 생명 운동은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는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1970년 2월 3일 화요일 오전 10시 미국 아즈베리 대학 약 천 여명의 학생들이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던 설교자가 자기가 받은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간증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졸업반 중 악명 높은 학생 한 명이 나왔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하여 주었는가를 말하기 위해서 여기 서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와는 딴판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제게 임하여 제 생명의 충만함을 체험하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비로소 회개와 구원, 사죄의 은총,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깊은 감격으로 가득 차게 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제까지의 잘못된 나의 생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는 간단히 고백했는데 그 시간에 모였던 전 학생들에게 이상한 감동이 뜨겁게 달아올라 예배 시간이 끝나고 다음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도 계속 학생들은 기도를 그치지 않고 감격에 벅차서 기도하며 신앙을 고백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이런 일이 185시간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2월 10일 그러니까 한 주간이 계속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오는 모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비신자까지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문, 라디오, TV, 주간지, 월간지 등 모두 이 일을 전 미국에다가 보도를 했었는데 5월 말까지 그 대학과 신학생들이 팀을 만들어 2천명에 달하는 이 불붙은 학생들이 전 미국 각처에 다니면서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변화를 일으키는 놀라운 일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그룹들이 각처에 생기게 되고 성경연구 모임이 아주 활발하게 운영되어 각 매스컴에서 이를 계속 보도했고 130대학과 신학교가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도운동은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운동입니다. 우리 모든 신앙의 선배들은 어떤 업적이나 사업에 성공하기 전 먼저 기도에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03년 원산 부흥운동은 20세기초 한국 교회 부흥의 씨앗이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1907년 대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원산은 오랜 기간 동북 아시아의 요충으로 일본 러시아 중국 등이 근거지로 삼으려고 한 곳입니다. 결국 1876년 한일수호조약으로 체결로 1880년 5월에 부산에 이어 두번째로 개항되었습니다. 원산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1년입니다. 서울보다는 늦었지만 평양과는 거의 동시에 들어왔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하디는 1882년 처음 이곳에 와서 사역했습니다. 그러다가 1901년에 다시 와 사역하게 됐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원산 지역의 교회를 순회하면서 느낀 것은 영적 폐허였습니다. 신자들은 주일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았고 성적으로 방종했습니다. 또한 공금을 횡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디 선교사는 이들에게 성찬을 금했고 심한 경우에는 교회에서 제명하기도 하였습니다 . 하디가 원산에서 30㎞쯤 떨어진 어떤 집회소를 방문하였을 때 놀랍게도 사람들이 모여서 무당굿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디가 강원도 산간 내륙지방에 들어갔을 때 상황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게 종교적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9세기말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교회는 이들의 피난처였습니다. 1894년 동학혁명 이후 교회 건물에는 깃대가 세워졌는데 이것은 교회라는 표시였을 뿐만 아니라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곳이라는 표시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교회는 외국 선교사들의 소유이기 때문에 치외법권 지대로 인정했습니다. 관리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원산에서 일하던 여선교사 캐럴이 강원도의 어떤 교회를 방문했을 때 한 사람이 관헌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교회에 와서 교인으로 등록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의 집에 숨었습니다. 다음날 관리들이 이 사람을 잡으러 왔으나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디는 교회는 신앙공동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회 건물에서 깃대를 제거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여기에 순종했으나 어떤 교회는 이것을 거부하였습니다. 하디는 이런 현실을 보며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1903년 8월 24일 원산의 미 남 감리교 선교지부가 있던 원산교회에서 중국에서 선교하던 하이트 선교사가 한국에 온 것을 기념해 기도회가 열린 자리에서 하디 선교사가 갑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날 그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이 기도회의 성령체험을 원산교회 주일예배 때 설명하며 한국인 교인들 앞에서 다시 자신의 죄를 고백했습니다. 이후 기도회와 모임이 있을 때마다 죄를 고백하고 자복하는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원산부흥운동입니다.(<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 회개와 고백의 역사입니다. 평양의 부흥운동 보다 약 10년 전에 황해도 소래교회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운동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소래교회는 만주에서 복음을 들은 한국인들이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세운 교회입니다. 1889년 한국에 도착한 캐나다인 선교사 말콤 펜윅은 복음주의 운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종종 소래를 방문해서 한국어도 배우고, 그들의 신앙도 살펴보았다. 청일전쟁의 상처가 짙게 배어있던 1896년 말,펜윅은 소래를 다시 방문하여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약 300명의 신자들이 모여서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렸으나 무엇인가 빠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집회 12일째 되는 날, 펜윅은 한 사람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에 역사하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제 눈에는 감격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서로 미워하는 신자 두 사람만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될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이곳 신자들 중에서 누가 서로 미워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펜윅의 말이 끝나자 그 사람은 엎드려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다른 두 사람이 서로 미워하며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된 배경을 이야기했습니다. 펜윅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미워했던 그 사람에게 가서 사과하지 않겠느냐\\\"고 권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펜윅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회개하는 동안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그 사람은 그 길로 미워하던 두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고 서로 화해했습니다. 다음 날은 주일이었습니다. \\\'죄 씻음\\\'을 받은 그 신자가 회중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자 모든 신자들이 함께 회개하였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는 이 이야기를 듣고,\\\"수 천리를 걸어서라도 죄 때문에 그렇게 운 한국인을 만나보고 싶군요. 난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참된 부흥의 시작입니다.<서울신대 신학대학원장-소래교회의 부흥운동> 영국 웨일즈의 한 작은 교회의 한 부인이 주기도문을 하다가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이 대목에 이르러 더 계속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미워하고 있는 한 형제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기도를 중단했습니다. 그는 부질없는 봉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는 예배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갔습니다. 오랫동안 찾아보지 않았던 형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를 회개한 것입니다. 우리의 갈등은 당신의 책임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라고 그 여자는 자백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못했던 내 죄를 회개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웨일즈라는 도시에 부흥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위대한 부흥의 불길로 타올랐습니다. 위대한 부흥은 한 부인의 회개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의 원인이 되었던 1904년 영국 웨일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교회마다 사람들이 새로워지고 있고 교회에 큰 부흥이 임했다는 소문이 요란했습니다. 교회 안나가던 보석가게를 경영하던 한 상인이 이런 부흥의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들려온 소식과 달리 교인들이 예배시간에 좀 격한 감정으로 기도하고 울고 있다는 것외에 크게 그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요란하게 알려진 \\\'부흥\\\'이라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부흥이라는 것은 기독교인들만의 \\\'요란한 감정의 잔치\\\'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교회에 발을 안 들여놓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 후 자기 가게에 한 젊은이가 오더니 자기가 이 보석가게에서 보석을 훔친 일이 있다고 보석을 내놓으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마음이 성령이 임하고 부흥이 일어나서 자기가 회개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다음 주일 교회에 나가 자신도 영적 부흥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당시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평양 대 부흥운동을 목격하고 증언한 스왈른 선교사는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교회에서 부흥을 체험한 성도들은 단순한 통회로만 끝내지 않았다. 다음날 사람들이 거리에서 마을에서 교회에서 죄를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둑맞은 물건들이 되돌아 왔다. 잃어버린 지갑도 돌아왔고 오래동안 갚지 않았던 빚도 청산되었으며 부정한 방법들도 시정되었다.\\\" 진정한 부흥은 인생을 바로 잡습니다.(진정한 부흥) 성령의 역사와 전도입니다. 장대현교회의 사경회의 소식을 전해들은 성도들은 부흥집회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는데 이로 말미암아 평양 사경회에서 성령의 종 역할을 감당했던 자들이 전국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서울로 떠나게 되는데 이때가 2월 16일이었습니다. 서울의 중앙교회(지금의 승동교회)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그 다음날에 성령이 능력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성령의 역사는 날로 발전되었습니다. 둘째 날 이후 부터는, 회중은 죄에 대한 혐오가 폭발되고 미친듯이 죄를 회개하여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려고 몸부림쳤다. 그들의 심령은 불타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의주로 가 11월 27일부터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여기에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였고 특기할 것은 최 재형이라는 열세살 난 소학생(지금의 국민학생)이 죄를 통회하고 주님께 몸 바치기로 한 사실이 있었고 부흥의 물결이 몰아쳐 숭덕학교의 김찬성의 인도로 300여 학생들이 죄를 뉘우치는 부흥의 열기가 타올라 이들에 의한 전도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또한 숭실대학에도 부흥의 물결이 타올랐습니다. 숭실대학의 A.L.Becker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학교 개학은 2월이었는데 그 직전에 집회 중이던 장로교 사경회에 성신 강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같은 은혜가 학교에도 내리기를 원하였습니다..... 학교가 개학되고 학생들이 등교한 다음 우리들은 평상시의 수업시간표를 일시 중지하고 오전, 오후, 저녁을 통하여 성경공부 및 기도회의 특별시간표를 마련하여 실행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저 학생들의 감정을 흥분시키려 하지 않았고 또 너무 이래라 저래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만 예수의 십자가에 마음 모으기만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크게 나타나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학생까지..... 죄를 회개하고 애통하였습니다. 한때 내가 세어보니 30명 이상의 학생들이 여러시간 서있으면서 죄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는 기회를 얻으려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학생들의 약 10분의 9가 이때에 깊은 감화를 얻어 중생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십자가의 도리를 전하는 열정적 전도인이 되어서 이 부흥의 불길은 온 성내와 인근 촌락에 전파되었을 뿐 아니라 멀리 제물포와 공주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부흥이라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도 부흥케 해 달라고 기도하고 복음성가를 부를 때도 \\\'부흥\\\'이라는 찬송을 자주 부릅니다. \\\'부흥\\\'이란 무엇인가요? 쉽게 말해서 우리의 심령과 공동체가 새로워지고 변화되며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부흥은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셔서 만나 주심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게 임할 때 거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임할 때 나의 실존을 정확히 바라보게 됩니다. 그 때 나의 더럽고 때묻은 심령이 치유되고 새로워지며 침체된 심령이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새로운 삶의 비전과 환상을 바라보게 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이 달라지게 됩니다. 자기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회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치유되고 사랑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이것이 변화와 부흥의 역사입니다. 1907년 부흥을 다시 일으키되 말씀과 기도로 회개와 고백으로 성령으로 전도하는 모두가 됩시다.
1907년이여, 다시 한번!(Again 1907!)/ 히12:1/ 김승욱 목사/ 신년축복주일설교/ 부흥설교/ 2007-01-03
1907년이여, 다시 한번!(Again 1907!) 히12:1 새해 첫예배를 비젼예배로 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Again1907. 한국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선교사의 기록을 보더라도 한국에는 하나님의 크신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교사들도 한국에서의 피나는 사역에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1907의 부흥을 통해 한국을 기도의 나라로 바꾸시고 상상과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나라로 바꾸셨습니다. 한국은 이제 세계선교에서 2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1907의 부흥을 통해 한국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셨습니다. 핍박의 바람을 맞이 할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1909년을 기점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이 한국을 침략하고 그들의 제국주의를 한국에 심으려고 하였으며 이에 저항하고 반대하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지만 이 모든것을 이겨낼 힘을 주시고 이겨내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60년대와 70년대를 지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순결한 신부로 드림으로 담대하게 서는 한국교회가 세워지는 것이였습니다. 우리 교회안에도 당시의 핍박으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해의 옥고 가운데에서도 굴하지 않고 70일간의 금식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신 분들의 노고가 바로 Again1907의 정신입니다. 이처럼 확고한 정신과 믿을 가지고 나아가신 분들의 정신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 주는 것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 사명인지 깨달기를 원합니다. History is His story. 역사는 주님의 이야기 입니다 역사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주님게서 주관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이해해야 1907년의 일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화가 주라가 만든 그림을 보시면 작은 점들을 이용하여 사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가 찍은 점 하나 하나에는 분명한 목적과 이해를 가지고 점을 찍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것들과 인물에는 분명한 목적들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분한분은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하에 창조된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요한계시록1장18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역사는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맺게되는 것입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루신 1907년의 부흥은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이것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때의 부흥의 물결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물결과 지금의 여러분 한분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We have a legacy to carry on.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유산이 있습니다. 계주 경기를 할때 바통을 이어주고 받으며 경주가 계속되게 됩니다. 이 바통을 계속 이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부터 받은 이 위대한 영적유산을 가지고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끊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받은 바통을 들고 뛰어야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2장1절 말씀에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중인들이 있으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에서 이미 경주를 마친 사람들이 이어준 바통을 이어받아 뛰어야 합니다. 1907은 그저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끊나서는 안됩니다. 허다한 증인들이 환호와 응원으로 화답하며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부흥의 유산을 들고 뛰어야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We are called to serve our generation. 우리의 세대를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나의 시대를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부흥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100년전의 빛은 186개국에 펼쳐져 있습니다. 한 나라를 비취던 빛은 이제 전세계를 비취고 있습니다. 이 빛을 높이 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져 하나님의 비젼을 받을때 하나님의 빛을 온세상에 비췰 수 있는 것입니다. 1907년의 불이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흥의 역사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 가운데 다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김승욱 목사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 마18:21-35/ 2016-04-24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 마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베드로가 주님께 나아와 물었습니다. “형제가 자기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여러분 같으면 얼마나 용서할 수 있습니까? 자기에게 죄를 범했다는 것은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불의한 일을 하거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우리들이라면 한 번도 참지 못할 것입니다. 운전하다가 누가 자기 차 앞으로 끼어들거나 위험한 행동을 했을 때는 바로 크랙션을 누르거나 욕이 나오는 우리로서는 한 번 참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490번이라도 용서하라 당시 유대 랍비들은 세 번까지는 참으라고 교훈했습니다. 랍비 요세 벤 예후다는 “사람이 한 번 과실을 범하면 용서된다. 사람이 두 번 과실을 범하면 용서 된다. 사람이 세 번 과실을 범하면 용서된다. 그러나 네 번째는 용서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여기에 두 배를 곱하고 하나를 더해 일곱 번까지 참으리이까 하고 말한 것은 대단한 고백이라 할 것입니다. 이 정도 인내와 용서라면 그 사람은 가히 성인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베드로를 향하여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즉 70×7=490번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3-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주님은 하루에 일곱 번씩 자기에게 불의한 일을 할지라도 회개하면 용서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하루 일곱 번씩이나 참을 수 있는 인내가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도무지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서 가장 어려운 명령이 용서의 명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각만해도 분노가 솟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듣거나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속에서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보며 당황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설사 양보해서 자기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녀들에 대해서 잘못을 행한 사람을 용서하기란 더 힘이 들 것입니다. 지난 1988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듀카키스 라는 민주당 후보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사형제폐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는 전국을 누비며 사형제도는 없애야 된다며 유세를 했는데 어느날 CNN의 토크쇼에 초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토크쇼의 앵커가 듀카키스를 앞에 놓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신다죠?” “네, 그렇습니다.” “참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선생님, 만약에 선생님의 아름다운 부인이 괴한에게 끌려가서 강간을 당한 후 살해당했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범인이 잡혔을 때 선생님은 여전히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서 듀카키스는 당황했습니다. 머뭇머뭇하다 말을 더듬기까지 했습니다. 수천 만 명의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지켜보았습니다. 사형제 폐지가 정작 자기 일로 닥치니 선뜻 대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토크쇼 때문에 듀카키스는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용서는 이처럼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도대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나 이런 명령을 내리시는 것일까요? 차라리 현실적으로 세 번까지만 참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490번까지라니요? 이것은 단지 더 많은 인내와 용서를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자세를 바꿀 것을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하여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이처럼 용서하라고 명령하시는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용서를 행할 수 있는지 나누어 보았으면 합니다. 1만 달란트의 빚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 무엇보다 용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빚진 자들입니다. 그것도 1만 달란트라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비유 말씀에 보면 어떤 종이 1만 달란트의 빚을 졌습니다. 이 1만 달란트라는 것은 엄청난 액수의 돈입니다. 한 달란트가 6000 데나리온입니다. 또는 1만 데나리온이라는 분(예레미야스)도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옛날 노동력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지만 대충 1만원으로 계산해도 한 달란트는 6천만 원, 1만 달란트는 6천억 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입니다. 당시 헤롯 대왕의 한 해 세수입이 9백 달란트였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한 나라의 예산을 상회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빚입니다. 주인이 25절에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고 명령하지만 이렇게 자기 몸을 팔아도 도무지 갚을 수 없는 그런 빚입니다. 당시 노예 대금이 5백에서 2천 데나리온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추궁 앞에 그 종이 26절에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고 주인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이 바로 엄청난 빚을 진 채무자임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빚을 졌습니다. 성경은 빚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갚아야 할 엄청난 빚, 곧 죄를 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도대체 내가 왜 죄인이냐? 설사 죄인이라 할지라도 1만 달란트라 빚질 정도로 죄인은 아니라고 항변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간 생명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빚입니다. 우주에 수많은 생명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시고 자연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무상으로 땅을 공급받았고, 모든 능력과 함께 아름다움 인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에 대해서 전혀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불평불만합니다. 왜 자기를 더 반듯하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차라리 태어나지 말게 할 것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위해서 이기적으로 다 탕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죄를 범하는 것이 곧 빚입니다. 일례로 거짓말을 한 번 들어봅시다. 여러분은 하루에 얼마나 거짓말을 하고 사나요? 워싱턴 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영국의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하루 동안 얼마나 거짓말하는지 조사해보니 평균 4번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를 1년으로 계산하면 1460번, 6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면 8만8천 번의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중에는 사소한 거짓말도 있을 것이지만 정말 심각한 거짓말도 있을 것입니다. 이만큼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는 존재로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에 살인죄, 도둑질, 음란과 탐욕,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 죄까지 합하면 우리의 빚은 엄청나게 증가할 것입니다. 우리가 더 죄인인 것은 이 같은 죄들에 대해서 “인간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며 합리화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인구의 7분의1인 8억5천만 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있습니다. 2005년 기준으로 하루 10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갑니다.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한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은 3분에 1명꼴입니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 생산량은 인구 120억 인구가 먹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세계 인구는 65억 정도됩니다. 우리는 먹고도 남아돌아 버리기까지 하며 다이어트 한다고 살빼기 경쟁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죄인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오래 사는 만큼 우리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입니다. 불쌍히 여겨 그런데 1만 달란트나 되는 엄청난 빚을 그 주인이 탕감해줍니다. 27절입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주인이 자비를 베푼 이유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 앞에 엎드려 애걸하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서 입니다. 아무리 해도 갚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신용불량자의 악순환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항상 빚에 쪼들려 인간노릇 못하고 조바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인데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신용불량자와 같은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다 이루었다’는 말이 헬라 어로 ‘테텔레스타이’인데 이 뜻에는 ‘빚을 갚다. 지불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들인 예수의 피로 우리 모든 빚을 다 갚아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우리 모든 빚이 탕감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시103:12)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용서의 체험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이 하나님께 지은 빚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양심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의 한 단면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해 주심으로 죄의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죄를 지은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고 있는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무위로 돌리는 행위입니다. 어떤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는 젊었을 때 자신이 생각하기에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지만 그 죄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자유하질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는 자신의 교인 중에 환상을 잘 보는 나이든 부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환상 중에 그 부인은 가끔 주님과 대화도 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는 용기를 내어 부인을 찾아갔습니다. “부인께서 때때로 환상을 보신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렇답니다.”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환상 중에 가끔은 주님과 대화한다는 것도 사실입니까?” “그렇답니다.” 부인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번 환상 중에 주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저를 대신해서 한 가지 질문을 해주시겠습니까?” 부인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목사를 바라보았습니다. 한 번도 그런 부탁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뭘 여쭈어 드릴까요?” “부인의 교구 목사가 젊었을 때 저질렀던 죄가 무엇이었는지 한 번 물어봐 주시겠습니까?” 호기심에 가득 차서 부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선뜻 약속했습니다. 몇 주 후 목사는 다시금 부인을 방문했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신 후 목사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최근에 환상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럼요.”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주님과 대화도 나누셨나요?” “예.” “그럼 제가 젊었을 때 저지른 죄에 대해 주님께 여쭈어 보셨습니까?” “예, 물론이죠.”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는 긴장과 두려움에 가득 찬 채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부인은 목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부드럽게 대답했다. “주님께서는 기억이 안 난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은 우리 죄를 다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용서하라는 말은 자기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 변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존재임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났건 못났건, 살아온 환경이야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십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 인생에 대해서 아주 가혹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외모나 학벌 때문에 자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우한 환경이나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의 실수에 대해서, 어떤 일로 상처받은 것에 대해서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 아픔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묵상합니다. 어떤 분은 가슴 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놓았다가도 그 밑바닥에 있는 상처가 어쩌다 올라오면 주체를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과거 자신의 실수, 불우했던 환경, 상처들, 가혹했던 운명에 대해 용서를 선언하십시오. 과거는 흘러갔습니다. 흘러간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흘러간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여러분의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면, 그 과거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정하셨던 섭리들로 가득찬 아름다운 시간들로 바뀔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렇게 빚기 위하여, 아, 하나님께서 주님을 만나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아픈 상처들을 허락하셨구나!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의 과거를 용서하지 않는다며, 그 과거는 두고두고 여러분을 괴롭힐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도 싫은 데 이제 그 과거가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마저도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자기를 미워할 권리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과거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는데 감히 누가 정죄한단 말입니까? 우리의 판단보다 전능하시고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판단이 더 올바르고,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니 자학하지 마십시오. 자학은 교만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자기가 주인이라 주장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드리지 않겠다는 자기중심적 태도입니다.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를 한 번 이렇게 바꾸어 보십시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제가 과거에 많은 실수를 하였고, 아픈 상처들을 안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1백 데나리온의 빚 우리들의 모습이 어떤지 말씀을 통해서 계속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8절입니다. 이 종이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고 밖으로 나가다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곧 동료를 만났습니다. 1백 데나리온은 1만 달란트와 비교하면 60만분의 1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데 이 종이 동료의 멱살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요구합니다. 그 동료는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29) 하고 탄원을 하지만 듣지 않습니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고 맙니다. 이를 본 동료들이 민망히 여겨 주인에게 모든 사실을 다 알립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 무자비한 종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32,33) 그리고는 그 무자비한 종을 옥에 가두고 1만 달란트 빚을 다 갚으라고 명령합니다. 이 1만 달란트 받은 종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가 주인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인이 자기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다른 사람을 향하여 자비의 눈을 갖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다른 표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을 향한 표준은 매우 관대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용서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엄격한 표준을 갖다 댑니다. 그의 의도는 악하고 그가 나에게 빚진 것은 남김없이 다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지금의 용서의 마라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의 바통을 받았습니다. 이 바통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만약 그 일을 포기한다면 경기는 그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지 않는다면 나에게 발부되었던 하나님의 사면장은 이제 기소장으로 바뀌고 말 것입니다. 35절에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용서해야 될 이웃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를 용서함으로써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기 위하여 굉장한 의지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눈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데 예수님이 나에게 어떠한 사랑을 부어주셨는지 기억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의지는 스스로 작동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용서는 결코 윤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런 엄청난 은혜를 입고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심히 가슴 아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답답하신 것은 네가 1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실을 기억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있다면 어찌하여 네 형제의 작은 잘못 하나 용서해 주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용서하라는 새로운 윤리를 여러분에게 가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슴 속에 십자가의 은혜가 살아 있느냐, 그리스도의 사죄의 피가 너희 심장 속에 흐르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성숙된 인격이 나, 너그러운 인품에 기초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인격으로는 용서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용서는 십자가 앞에 설 때만 가능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모질게 하고, 때리고,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그 십자가 앞에 설 때만, 동일하게 나에게 그런 상처를 가하는 형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썼던 코리텐붐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코리텐붐 여사는 네덜란드인입니다. 그녀와 그의 가족들은 유태인은 아니었지만 유태인들을 숨겨 주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독일에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라벤스브룩’이라는 참혹한 수용소에 갇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가족들은 다 죽고 코리텐붐 여사만 기적적으로 생존해서 독일이 패전하면서 그 곳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가혹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자기를 그렇게 잔혹하게 핍박했던 독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이었습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원수들에게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따라 독일의 마을과 도시를 찾아다니면서 간증 집회를 했습니다. 그녀의 간증을 통하여 수많은 독일인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한 번은 코리텐붐 여사가 독일의 시골 도시에서 말씀을 전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코리텐붐 여사와 악수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코리텐붐 여사를 얼어붙게 했습니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원수였던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간수가 거기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 언니를 죽음으로 몰아갔으며 자신에게는 엄청난 모욕과 고통을 주었던 간수였습니다. 그 순간 코리 여사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코리텐붐 여사는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 저 사람은 안돼요. 저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 가운데 계속 사랑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자 코리텐붐 여사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저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용기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이라면 해보겠습니다.” 어느새 자기 눈앞에 다가온 그 사람을 향해서, 비록 자기 마음속에는 사랑의 느낌, 사랑의 감정은 하나도 없었지만,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늘의 사랑이 자기의 영혼 속으로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 그녀는 미움을 사랑으로 승화 시키는 위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절실히 깨달았다고 후에 고백을 하였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는 살 수 없습니다. 분노는 날카로운 칼과 같습니다. 내가 미워하는 상대방을 찌르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을 찌르고 맙니다. 우리가 그를 미워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십자가입니다. 나 또한 하나님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는 존재였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용서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490번 넘게 잘못을 범했는데 하나님께서 다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용서의 은혜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용서는 윤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보답일 뿐입니다.
2003년을 부흥케 하옵소서/합3:1-3
2003년을 부흥케 하옵소서/합3:1-3 2003-10-27 22:53:41 read : 6 한 여객선이 심한 폭풍우로 항로를 잃고 헤매다가 어느 무인도에서 난파되었습니다. 승객들이 머리를 모아 아무리 의논을 해도 무인도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난파된 배 주위를 살펴보니 다행히 몇 달 먹을 식량과 씨앗이 있었습니다. 갈멜산의 엘리야 그들은 사는 날까지 살아야 했기에 씨앗을 심기로 결정, 땅을 팠습니다. 한데 황금덩어리가 나왔습니다. 그들은 씨앗 뿌리는 것도 잊고 황금을 캐느라 온 무인도를 동분서주했습니다. 몇 달 후, 황금은 산더미같이 쌓였고 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지쳤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을 식량까지 바닥났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이 씨앗을 뿌리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습니다. 훗날 그들 모두 황금더미 옆에서 굶어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누런 황금 덩어리를 쌓음이 사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미래를 심어야 했습니다. 믿음의 씨앗, 회개의 씨앗, 기도의 씨앗, 사랑의 씨앗, 나눔의 씨앗을 먼저 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내일, 또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흥"이라는 말은 교회생활을 하신 분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라는 부흥은 문 앞에 오는 듯 하다가 이내 바람처럼 사라지고, 바라지 않는 환난과 고난은 사라지는 듯 하다가 느닷없이 문 앞에 와서 엎드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박국 선지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3:2)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부흥을 목마르게 소망했습니다. 하박국이 말한 히브리어 "하야 chayah"라는 말은 "생생하게 살아가다. 활기차게 살아가다. 되살아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는 그 일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1. 개인의 심령이 부흥해야 합니다. 젊은 시절에 하나님께 드리던 나의 기도는 "주여, 나에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중년에 이르러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고쳐 주지 못한 나는 "주여, 나의 가족과 친지들만 개심 시켜도 만족하겠나이다."... 이제 노인이 되어 죽을 날도 오늘내일하게 되어 보니, 이제야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은총을 주소서." 처음부터 이렇게 빌었던들 일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련만, 저마다 인류를 변화시킬 생각은 제법들 합니다. 남을 변화시킬 생각은 자주 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를 변화시킬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자기 심령의 변화는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는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합3:16)라고 그의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개인의 부흥은 흔들리는 창자가 안정이 되고, 떨리는 목소리와 입술이 가라앉고, 썩는 뼈가 다시 윤택해지고, 떨리는 몸이 안정이 되고 ,잃었던 힘과 용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개인의 부흥은 심령의 안정, 정신의 평안, 마음의 안정, 육신의 건강, 은혜의 풍성, 소원의 성취 이 모든 것이 바로 개인의 부흥입니다. 2. 가정의 영혼들이 부흥해야 합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으로 좋은 침대는 살지언정 깊은 잠은 못 살 것입니다. 비싼 책은 얼마든지 사되 명석한 두뇌는 돈으로 못 살 것입니다. 음식은 마음대로 사겠으나 입맛은 못삽니다. 아름다운 옷과 장식은 사서 걸치겠으나 참된 미는 못 삽니다. 좋은 집은 사겠으나 행복한 가정은 못 삽니다. 약은 살 수 있으나 건강은 못 삽니다. 사치는 마련되겠으나 교양은 돈으로 못 삽니다.향락은 사겠으나 행복은 못 삽니다. 돈주고 종교를 구해 인정받겠으나 돈주고 천국의영생은 못삽니다. 주님을 믿는 신앙보다 돈을 더 높이 평가하고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가정의 부흥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박국 선지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고 라말했습니다. 가정이란 가족들이 모여 사는 집안, 울안을 말합니다. 혹은 가족들이 모여 사는 집단을 말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엘리 제사장이나 사울 왕의 가정, 그리고 아합 왕이나 시드기아 왕의 가정은 걷잡을 수 없이 몰락했습니다. 반면에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의 가정, 히스기야 왕이나 모르드개의 가정은 몰락 직전까지 갔지만 다시 부흥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나사로의 가정이나 나인성 과부의 가정은 거의 진짜 초상난 집이었지만 예수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죽었던 오라버니가 살아나고, 상여에 실려가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실로 부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3. 교회의 지체들이 부흥해야합니다. 교회의 젊은 목사가 어느 날 그의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 이제 교회를 사임하고 세속 직업을 가지려고 하오. 나는 더 이상 목회를 하지 않겠소."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좋아요. 하지만 한 가지 요청이 있어요. 얼마 동안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기도해 보지 않겠어요." 그 젊은 목회자는 그의 아내의 제안에 반발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매일 아침 그는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한 장소에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5분 동안 기도하면 길게 하는 것이고 10분 동안 하면 그것은 최고로 오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기도하는 것을 못 참고 튀어나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날이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그는 아침마다 집사들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그는 주일 학교 교사들과 부장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님 앞에 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나아가서 병자들을 위하여,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위하여 기도하기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는 그 지역에 잃어버린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부흥은그 젊은 목회자와 그 부인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교회로 퍼져 나갔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기도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며,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금식기도를 하신 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 왔느니라"(마4:17)고 전하신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3일 동안은 완전히 교회가 초상난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교회는 잔칫집이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후 교회는 비로소 그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사도들이 회개의 복음을 선포할 때에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라고 울부짖었습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고 말했습니다. 교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날마다 더 하게 하시니라"(행2:47)고 말했습니다.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두로와 시돈, 소아시아와 유럽, 로마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복음이 뻗어 나갔습니다. 4. 국가와 사회가 부흥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연약궤를 찾은지 20년만에 비로소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았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삼상7:6)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새로워 졌습니다. 불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거기서 이스라엘이 승리했습니다. 사무엘이 그곳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불레셋 사람을 막아 주셨습니다. 국가의 부흥은 사무엘 같은 지도자가 나와서 온 백성을 하나님께로 모으고, 하나님께엎드릴 때에 국가가 발전하고 부흥하게 됩니다. 끝맺는 말 성도 여러분 !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3:2)라는 하박국의 기도가 현실적으로 개인 생활에서, 가정 생활에서, 교회 생활에서, 사회 생활에서 이루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세기 보스톤의 선교 비전/ 행2:1-14
21세기 보스톤의 선교 비전/행2:1-14 2003-11-17 18:45:34 read : 2 <바벨탑의 저주가 풀린 오순절> 두 주 전에 연합 예배를 드릴 때에, 바벨탑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교만과 불순종과 불신앙 가운데 일치단결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바벨탑 사건은 신약의 오순절과 연결이 됩니다. 오순절에 바벨탑의 저주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안 통하면 대화가 끊어지고,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가 끊어집니다. 말이 통하지 아니하면, 이질감이 생깁니다. 단절과 소외와 불화가 싹트게 됩니다. 바벨탑 이후에 인간들은 흩어졌고, 불신의 벽을 쌓으며, 분쟁과 다툼과 전쟁의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에,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던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벨탑의 저주가 풀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대화로 통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주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이처럼 하나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하나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순절에 교회가 생기다> 오순절은 교회의 출발이었습니다.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르매” 라고 하였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은 오순절에 오셨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장막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오순이란 50이란 뜻으로,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일주일이 일곱번 지나야 한다는 뜻으로 칠칠절이라고도 하였고, 처음 수확한 밀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이므로 맥추절 혹은 초실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바로 이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때에, 이렇게 멋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신 때도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날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교회가 탄생하는 교회의 생일을 첫 열매를 거두던 오순절로 정하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첫 열매로 생겨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때를 정하시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방언> 오늘 본문에 보면,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실 때에 세가지 현상이 일어 났습니다. 첫째는 바람이고, 둘째는 불, 그리고 셋째는 방언이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있던 120 문도는 귀로 바람 소리를 들었고, 눈으로 불을 보았으며, 입으로 방언을 말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두가지 방언이 나오는데, 먼저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은 하나님과 내가 대화하는 비밀스러운 방언입니다. 이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고, 통역자를 세워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혹은 방언하는 사람이 통역의 은사를 겸하여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통역의 은사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말씀하기를, 나도 너희들보다 더 많은 방언을 말하지만, 교회에서 다른 사람이 듣는 데에서는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방언에 익숙지 않은 초신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절제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8절에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서 오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입니다. 열방으로부터 온 각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방언을 알아 들었습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외국어로 방언을 하였습니다.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은 자기가 사는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갈릴리 사람들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로마와 그레데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땅끝에서 몰려오는 사람들> 예루살렘에 세계 각국에 살던 유대인들이 모였던 것처럼, 오늘날 세계 각국의 다양한 민족들이 땅끝으로부터 미국으로 오고 있습니다. 저는 단 장로님으로부터 이 교회 건물이 1950년에 세워졌다고 들었습니다. 1950년이면 한국에 육이오 사변이 나던 해입니다. 당시에 이 웨슬리 땅은 물론 보스톤 지역을 통털어서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 고모님이 1953년에 보스톤에 유학을 오셨는데, 당시에 이곳의 한국 사람이 손 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Wellesley Baptist Church 의 주일 예배에 한국 목사가 설교를 하고, 그 한국말 설교를 화란 장로님이 영어로 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M.I.T.는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가 아니라, Made In Taiwan을 뜻한다고 합니다. M.I.T.에 중국 학생이 그렇게 많다는 뜻입니다. 세계 모든 족속들이 공부하기 위하여 보스톤으로 옵니다. 미국은 원래 자연의 축복을 받은 나라인데, 이제는 인적 자원의 축복까지 받고 있습니다. 또 보스톤의 집 값이 자꾸 올라가기 때문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물질의 축복까지 받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 보십시오. 땅끝에서 온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 똑똑한 사람들이요, 다시 땅끝으로 돌아가서 각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선교의 비젼> 세계화 시대, 21세기의 보스톤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새로운 선교의 비젼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들이 이슬람권에 들어가서 몇년동안 몰래 몰래 선교해서 개종자를 한 명 얻기도 힘듭니다. 제 친구 선교사는 리비아로 들어가서 6년 동안 1차 사역을 마쳤습니다. 몇 명의 개종자를 얻으신지 아십니까? 한 명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요르단으로 들어 갔습니다. 또 다른 저의 친구 선교사는 터어키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겨우 몇 명의 개종자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장면이 텔레비젼에 방송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1년 전에 탈출하였습니다.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땅 끝으로 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땅 끝으로 가서 개종자를 얻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땅 끝에서 온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그 중에 한 사람을 전도하면, 선교사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역사상 첫 번째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물론 유대인의 말로 설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청중들은 모두 베드로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공영어는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설교는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의 세계 공영어는 헬라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영어는 점점 더 세계의 공영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영어권에 자녀들을 보내서 공부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독일어나 불어 학술지들이 영어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와 대화를 하려면, 영어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보스톤에 오는 유학생들은 다 영어를 할 줄 압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영어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영어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영어로 설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전한 말씀은 그 사람들을 통하여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베드로의 설교는 세계 공영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로 태어난 오순절 교회의 선교 비젼입니다. 또한 세계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모이는 보스톤에 위치한 우리 두 교회의 선교 비젼이기도 합니다.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비전/ 잠29:18/ 2003-11-18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비전 잠29:18 세계는 지금 밀레니엄 축제로 분주합니다. 영국은 테임스강변에 세계 최대의 지붕을 자랑하는 밀레니엄 돔의 완성 단계에 있고, 불란서는 300개 도시를 관통하는 녹색 자오선을 만들고 있고, 독일은 175개국이 참가하는 하노보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고, 이태리는 높이 40m의 기독교 역사 상징탑을 건설하고 있고, 미국은 6대륙 54개국을 통과하는 자전거 일주를 준비하고 있고, 한국은 판문점에서 보기도 싫은 씻김굿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날짜에 울고 웃고 할 것도 없고, 날짜에 무슨 신비한 비밀이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날을 선용하는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람은 불고 냇물은 흘러갑니다. 이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만 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바람부는 언덕에 풍차를 만들어 세운 사람은 풍차방아를 만들었고, 물을 막고 수차를 돌린 사람은 물래방아를 반들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풍력 발전소와 수력 발전소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팜스프링에는 풍력 발전기가 수 백개 서서 바람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전기로 전철이 움직이고,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컴퓨터를 작동시키고, 빔 프로잭트를 작동시키고 마이크를 소리나게 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무심히 바라다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사의 낙오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꿈을 꾸어야 합니다. 본론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but he that keepeth the law, happy is he.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한 자다 vision,{khaw-zone\\\'} 1a) vision (in ecstatic state) 환상 1b) vision (in night) 꿈 1c) vision, oracle, prophecy 계시 (divine communication)하나님과 교통 비젼은 없이 돈 좀 벌고, 배 좀 부르고, 등 따뜻하면 방자해 집니다. 삼감 없고, 거리낌없이 죄 짖고 못되게 삽니다. 이런 사람은 망합니다. 1. 21세기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래가 어떻게 된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래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것은 미래는{{{{ }} }}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럭비공 같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것이 미래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대에 쓴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이란 책에서 지금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의 물결을 지나서 기술 혁명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했습니다. 1990년대에 쓴 \\\'힘의 이동\\\'(Power Shift) 이란 책에서 지금은 지식의 힘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후기 산업사회, 탈 근대화시대, 컴퓨터와 인터넽으로 연결되는 정보화시대라고도 했습니다. 21세기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3P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Pollution, 개발도상국들의 계속되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질 것입니다. Population, 인구 폭발, 21세기 중반에 세계인구는 100억이 될 것입니다. Poverty, 빈곤, 인구폭발로 인한 식량문제가 심각할 것입니다. 긍정적 현상으로는 3T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Transportation, 교통운송이 발달 할 것입니다. 항공, 우주선 발전--우주여행을 상업화 할 것입니다. Telecommunication, 장거리 이동 통신, 핸드폰의 발전으로 핸드폰 TV, 핸드폰 e-mail, 해드폰 컴퓨터, 인터넽을 사용할 것입니다, Trvel(여행), 교통의 발달로 여행을 많이 하여 세계인류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서로 이해하여 세계화가 촉진될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18세기를 지성혁명 합리주의 이성주의 시대라고 하고, 19세기를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산업혁명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2000간 발전한 것보다 더욱 기술이 발달한 기술혁명시대라고 합니다. 미래 21세기는 총체적 혁명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이원설) 따라서 교회도 새로운 지혜와 목회기술을 요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교회가 역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다면 역사의 미아가 될 것입니다. 20세기 성공자가 반드시 21세기에도 성공한다는 보증이 없습니다. 이제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지난날의 전통적인 유형만으로는 경쟁에서 낙오합니다. 교회성장을 연구하는 George Barna 는 21세기에는 3가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1.인간의 행동과 행동양식의 변화 소유의 양에서 질로 바뀌고, 사람을 채용할 때도 믿을 만한 사람에서 행동과 행동양식으로 입증된 사람을 뽑습니다. 2.정보화 자동화 시대로 변화 신속히 자동화로 정보를 획득하여 자료화하고 실전에 사용합니다. 정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정보는 곧 돈이며 정보는 부의 축적이며 정보를 가진자가 경쟁에서 이기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3.사람의 의식구조 변화 새로운 과학기술로 기존의 제도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집니다. 의식이 바꾸어집니다. 그리고 빈부의 차이, 지식의 차이, 세대의 차이, 직업의 차이가 극심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변화의 시대\\\'입니다. 변화는 신속하게 일어납니다.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는 낙오됩니다. 교회도 변합니다. 그래서 21세기는 대형교회를 의미하는 mega church가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주도하는 meta church로 바뀔 것입니다. 21세기에는 변하는 교회가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마음, 사고,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이 바꾸어 져야 합니다. 21세기 교회는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열망하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있는 새로운 세대에 부응하는 자기변화, 발상의 대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치 못하면 다음 세대를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교회는 유럽교회 같이 문을 닫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새 시대의 새 교회 1. 개혁교회 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인 동시에 개혁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새 시대에도 가장 장로교답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개혁교회는 말씀에 따라 개혁하는 교회요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을 따라 개혁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칼빈주의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교인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마이나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는 허수 - 정확지 않은 1200만의 교인을 세계에 자랑하였습니다. 허세 - 한국교회는 세계사적 기적의 교회-115년 역사에 놀랍게 부흥한 교회-라고 허세를 부리며 자화자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계로부터 칭송도 받았습니다. 허실 - 그 결과 허실이 나타났습니다. 급격하게 늘어난 교인들은 신앙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직분을 받았고, 교인들은 세상에 나가서 교인답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인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온갖 비리와 부정 부패를 저질러 구속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이런 결과 전도의 길이 막혔습니다. 더우기 교인들은 경제성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세계 10대 교역국이라고 들떠서 돈을 물쓰듯 쓰며 해외로 돌아다니며 흥청 망청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경제위기가 왔고 IMF를 맞은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을 해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개혁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2.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1) 사회환경의 변화입니다. 빠른 경제성장을 맞아 고 소득자가 된 한국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돈을 많이 만지고 쓰게되었습니다. 승용차의 보편화, 휴양지 개발, 여가생활, 유흥 서비스업의 성행, 해외관광, 보신관광, 금강산 광관... 사회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미가엘 거버는 \\\"지난 2000년 역사보다 최근의 한 세기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2) 사회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세상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준다고 하는데 교회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채워주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는 사회를 이끄는 리더쉽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빛이 되지도 못하였고 사표가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오브리 말퍼스는 \\\"교회가 과거에 했던 방식은 더 이상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불변하나 상황은 변합니다. 복음이 씨앗이라면 상황은 밭입니다. 복음은 상황에 도전해야 하고 상황은 복음을 요청합니다. 교회가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뒷걸음질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라는 상황의 밭에 어떻게 복음의 씨를 심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3. 구체적 대안 새 시대에 맞는 교회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1)고정관념을 깨고 발상의 대 전환을 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전통에 익숙하고 그것이 편안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그것을 노리개 감으로 즐기며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신세대는 그것을 싫어합니다. 여기에서 신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배려가 없으면 신세대는 교회는 떠납니다. 교회의 전통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성경보다 더 위에 올라가서는 안됩니다. 물을 사발에 담아서 마셔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입니다. 물은 손, 나뭇잎, 나무 그릇, 놋 그릇, 플라스틱 컵, 유리 컵, 병에 담아 마실 수 있습니다. 물은 그대로이나 그릇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그릇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발상의 전환이고 창조적 대안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밝아오는 2000년대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로 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이는 새 시대를 이끄는 변화의 주체자로서의 교회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2)새로운 꿈을 꾸어야 합니다.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꾸는 자는 지도자입니다. 지도력이란 꿈을 제시하는 자입니다. 꿈은 우리의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꿈을 꾸는 교회의 지도자는 깊은 통찰력, 풍부한 상상력, 그 시대를 감지하는 예리한 감각, 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도력은 합리적 힘입니다. 합리적 힘은 믿음, 이성, 이해에 호소함으로서 동의를 얻어냅니다. 참된 지도력은 진실성입니다. 지도력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지식이며 경험입니다. 3)윤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죤 스타트는 \\\"21세기는 영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와 향락에 더욱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혼 없는 성, 결혼 밖의 성으로 윤리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질 것입니다. 이런 환경이 될수록 사람들은 영적으로 더 큰 갈증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건함과 윤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칼빈은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경건을 다른 말로 영성이라고 합니다. 4)전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있습니다. 전도는 생활속에서 해야 합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 정성, 재정을 바쳐야 합니다. 칼빈은 카도릭에게 빼앗긴 전 유럽을 되찾기 위해 개혁의지를 가진 젊은 청년들을 각국에서 뽑아 제네바에 모아서 전도 훈련을 시켜 자기나라로 보내 전도하게 했습니다. 다음 세기를 위해 우리들도 젊은 세대을 뽑아 전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5)교육해야 합니다 오늘날을 교육의 위기시대라고 합니다. 학교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안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한 주일에 학교 교육을 위해 30 시간을 사용하지만, 교회는 1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세속주의 무신론주의 교육에 교회 교육은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럽교회 같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6)구조를 조정해야 합니다. 교회 구조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자라면 신을 갈아 신고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이 교회도 규모가 커지면 교회 조직을 적절히 규모에 맞게 바꾸어야 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홍성교회의 몸집이 조금 커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새 시대를 내다보면서 조직을 새롭게 바꾸어 성도들의 참여도를 한층 높이는 열린 체제로 조직을 바꾸려고 합니다. 7)사회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는 영혼 구원을 중시하다가 세상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 왔는데 이것은 책임있는 개혁주의자들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구원받은 개혁자들은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와 맞서 부정부패를 막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썪어가는데 나 혼자 독야청청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새 시대에 새 비전을 가지고 새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조직도 검토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을 바라보며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장기 발전계획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새 시대를 위한 새 교회입니다.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비전/ 잠29:18/ 이근수 목사/ 2003-11-17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비전 잠29:18 세계는 지금 밀레니엄 축제로 분주합니다. 영국은 테임스강변에 세계 최대의 지붕을 자랑하는 밀레니엄 돔의 완성 단계에 있고, 불란서는 300개 도시를 관통하는 녹색 자오선을 만들고 있고, 독일은 175개국이 참가하는 하노보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고, 이태리는 높이 40m의 기독교 역사 상징탑을 건설하고 있고, 미국은 6대륙 54개국을 통과하는 자전거 일주를 준비하고 있고, 한국은 판문점에서 보기도 싫은 씻김굿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날짜에 울고 웃고 할 것도 없고, 날짜에 무슨 신비한 비밀이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날을 선용하는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람은 불고 냇물은 흘러갑니다. 이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만 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바람부는 언덕에 풍차를 만들어 세운 사람은 풍차방아를 만들었고, 물을 막고 수차를 돌린 사람은 물래방아를 반들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풍력 발전소와 수력 발전소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팜스프링에는 풍력 발전기가 수 백개 서서 바람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전기로 전철이 움직이고,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컴퓨터를 작동시키고, 빔 프로잭트를 작동시키고 마이크를 소리나게 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무심히 바라다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사의 낙오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꿈을 꾸어야 합니다. 본론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but he that keepeth the law, happy is he.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한 자다 vision,{khaw-zone\'} 1a) vision (in ecstatic state) 환상 1b) vision (in night) 꿈 1c) vision, oracle, prophecy 계시 (divine communication)하나님과 교통 비젼은 없이 돈 좀 벌고, 배 좀 부르고, 등 따뜻하면 방자해 집니다. 삼감 없고, 거리낌없이 죄 짖고 못되게 삽니다. 이런 사람은 망합니다. 1. 21세기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래가 어떻게 된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래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것은 미래는{{{{ }} }}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럭비공 같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것이 미래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대에 쓴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이란 책에서 지금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의 물결을 지나서 기술 혁명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했습니다. 1990년대에 쓴 \'힘의 이동\'(Power Shift) 이란 책에서 지금은 지식의 힘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후기 산업사회, 탈 근대화시대, 컴퓨터와 인터넽으로 연결되는 정보화시대라고도 했습니다. 21세기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3P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Pollution, 개발도상국들의 계속되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질 것입니다. Population, 인구 폭발, 21세기 중반에 세계인구는 100억이 될 것입니다. Poverty, 빈곤, 인구폭발로 인한 식량문제가 심각할 것입니다. 긍정적 현상으로는 3T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Transportation, 교통운송이 발달 할 것입니다. 항공, 우주선 발전--우주여행을 상업화 할 것입니다. Telecommunication, 장거리 이동 통신, 핸드폰의 발전으로 핸드폰 TV, 핸드폰 e-mail, 해드폰 컴퓨터, 인터넽을 사용할 것입니다, Trvel(여행), 교통의 발달로 여행을 많이 하여 세계인류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서로 이해하여 세계화가 촉진될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18세기를 지성혁명 합리주의 이성주의 시대라고 하고, 19세기를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산업혁명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2000간 발전한 것보다 더욱 기술이 발달한 기술혁명시대라고 합니다. 미래 21세기는 총체적 혁명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이원설) 따라서 교회도 새로운 지혜와 목회기술을 요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교회가 역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다면 역사의 미아가 될 것입니다. 20세기 성공자가 반드시 21세기에도 성공한다는 보증이 없습니다. 이제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지난날의 전통적인 유형만으로는 경쟁에서 낙오합니다. 교회성장을 연구하는 George Barna 는 21세기에는 3가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1.인간의 행동과 행동양식의 변화 소유의 양에서 질로 바뀌고, 사람을 채용할 때도 믿을 만한 사람에서 행동과 행동양식으로 입증된 사람을 뽑습니다. 2.정보화 자동화 시대로 변화 신속히 자동화로 정보를 획득하여 자료화하고 실전에 사용합니다. 정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정보는 곧 돈이며 정보는 부의 축적이며 정보를 가진자가 경쟁에서 이기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3.사람의 의식구조 변화 새로운 과학기술로 기존의 제도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집니다. 의식이 바꾸어집니다. 그리고 빈부의 차이, 지식의 차이, 세대의 차이, 직업의 차이가 극심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변화의 시대\'입니다. 변화는 신속하게 일어납니다.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는 낙오됩니다. 교회도 변합니다. 그래서 21세기는 대형교회를 의미하는 mega church가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주도하는 meta church로 바뀔 것입니다. 21세기에는 변하는 교회가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마음, 사고,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이 바꾸어 져야 합니다. 21세기 교회는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열망하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있는 새로운 세대에 부응하는 자기변화, 발상의 대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치 못하면 다음 세대를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교회는 유럽교회 같이 문을 닫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새 시대의 새 교회 1. 개혁교회 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인 동시에 개혁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새 시대에도 가장 장로교답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개혁교회는 말씀에 따라 개혁하는 교회요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을 따라 개혁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칼빈주의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교인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마이나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는 허수 - 정확지 않은 1200만의 교인을 세계에 자랑하였습니다. 허세 - 한국교회는 세계사적 기적의 교회-115년 역사에 놀랍게 부흥한 교회-라고 허세를 부리며 자화자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계로부터 칭송도 받았습니다. 허실 - 그 결과 허실이 나타났습니다. 급격하게 늘어난 교인들은 신앙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직분을 받았고, 교인들은 세상에 나가서 교인답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인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온갖 비리와 부정 부패를 저질러 구속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이런 결과 전도의 길이 막혔습니다. 더우기 교인들은 경제성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세계 10대 교역국이라고 들떠서 돈을 물쓰듯 쓰며 해외로 돌아다니며 흥청 망청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경제위기가 왔고 IMF를 맞은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을 해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개혁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2.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1) 사회환경의 변화입니다. 빠른 경제성장을 맞아 고 소득자가 된 한국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돈을 많이 만지고 쓰게되었습니다. 승용차의 보편화, 휴양지 개발, 여가생활, 유흥 서비스업의 성행, 해외관광, 보신관광, 금강산 광관... 사회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미가엘 거버는 \"지난 2000년 역사보다 최근의 한 세기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2) 사회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세상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준다고 하는데 교회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채워주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는 사회를 이끄는 리더쉽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빛이 되지도 못하였고 사표가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오브리 말퍼스는 \"교회가 과거에 했던 방식은 더 이상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불변하나 상황은 변합니다. 복음이 씨앗이라면 상황은 밭입니다. 복음은 상황에 도전해야 하고 상황은 복음을 요청합니다. 교회가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뒷걸음질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라는 상황의 밭에 어떻게 복음의 씨를 심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3. 구체적 대안 새 시대에 맞는 교회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1)고정관념을 깨고 발상의 대 전환을 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전통에 익숙하고 그것이 편안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그것을 노리개 감으로 즐기며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신세대는 그것을 싫어합니다. 여기에서 신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배려가 없으면 신세대는 교회는 떠납니다. 교회의 전통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성경보다 더 위에 올라가서는 안됩니다. 물을 사발에 담아서 마셔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입니다. 물은 손, 나뭇잎, 나무 그릇, 놋 그릇, 플라스틱 컵, 유리 컵, 병에 담아 마실 수 있습니다. 물은 그대로이나 그릇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그릇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발상의 전환이고 창조적 대안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밝아오는 2000년대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로 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이는 새 시대를 이끄는 변화의 주체자로서의 교회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2)새로운 꿈을 꾸어야 합니다.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꾸는 자는 지도자입니다. 지도력이란 꿈을 제시하는 자입니다. 꿈은 우리의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꿈을 꾸는 교회의 지도자는 깊은 통찰력, 풍부한 상상력, 그 시대를 감지하는 예리한 감각, 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도력은 합리적 힘입니다. 합리적 힘은 믿음, 이성, 이해에 호소함으로서 동의를 얻어냅니다. 참된 지도력은 진실성입니다. 지도력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지식이며 경험입니다. 3)윤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죤 스타트는 \"21세기는 영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와 향락에 더욱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혼 없는 성, 결혼 밖의 성으로 윤리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질 것입니다. 이런 환경이 될수록 사람들은 영적으로 더 큰 갈증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건함과 윤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칼빈은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경건을 다른 말로 영성이라고 합니다. 4)전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있습니다. 전도는 생활속에서 해야 합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 정성, 재정을 바쳐야 합니다. 칼빈은 카도릭에게 빼앗긴 전 유럽을 되찾기 위해 개혁의지를 가진 젊은 청년들을 각국에서 뽑아 제네바에 모아서 전도 훈련을 시켜 자기나라로 보내 전도하게 했습니다. 다음 세기를 위해 우리들도 젊은 세대을 뽑아 전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5)교육해야 합니다 오늘날을 교육의 위기시대라고 합니다. 학교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안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한 주일에 학교 교육을 위해 30 시간을 사용하지만, 교회는 1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세속주의 무신론주의 교육에 교회 교육은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럽교회 같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6)구조를 조정해야 합니다. 교회 구조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자라면 신을 갈아 신고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이 교회도 규모가 커지면 교회 조직을 적절히 규모에 맞게 바꾸어야 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홍성교회의 몸집이 조금 커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새 시대를 내다보면서 조직을 새롭게 바꾸어 성도들의 참여도를 한층 높이는 열린 체제로 조직을 바꾸려고 합니다. 7)사회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는 영혼 구원을 중시하다가 세상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 왔는데 이것은 책임있는 개혁주의자들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구원받은 개혁자들은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와 맞서 부정부패를 막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썪어가는데 나 혼자 독야청청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 시대에 새 비전을 가지고 새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조직도 검토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을 바라보며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장기 발전계획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새 시대를 위한 새 교회입니다. *** 이근수 목사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비전/잠29:18/이근수 목사
21세기를 향한 교회의 비젼/잠29:18/이근수 목사 2003-11-17 18:15:08 read : 12 서론 세계는 지금 밀레니엄 축제로 분주합니다. 영국은 테임스강변에 세계 최대의 지붕을 자랑하는 밀레니엄 돔의 완성 단계에 있고, 불란서는 300개 도시를 관통하는 녹색 자오선을 만들고 있고, 독일은 175개국이 참가하는 하노보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고, 이태리는 높이 40m의 기독교 역사 상징탑을 건설하고 있고, 미국은 6대륙 54개국을 통과하는 자전거 일주를 준비하고 있고, 한국은 판문점에서 보기도 싫은 씻김굿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날짜에 울고 웃고 할 것도 없고, 날짜에 무슨 신비한 비밀이 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날을 선용하는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 왔다고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바람은 불고 냇물은 흘러갑니다. 이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다만 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지만 바람부는 언덕에 풍차를 만들어 세운 사람은 풍차방아를 만들었고, 물을 막고 수차를 돌린 사람은 물래방아를 반들었습니다. 이것이 발전하여 풍력 발전소와 수력 발전소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팜스프링에는 풍력 발전기가 수 백개 서서 바람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전기로 전철이 움직이고, 공장의 기계를 돌리고, 컴퓨터를 작동시키고, 빔 프로잭트를 작동시키고 마이크를 소리나게 합니다. 흘러가는 세월을 무심히 바라다만 보고 있는 사람은 역사의 낙오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꿈을 꾸어야 합니다. 본론 잠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 but he that keepeth the law, happy is he.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행복한 자다 vision,{khaw-zone'} 1a) vision (in ecstatic state) 환상 1b) vision (in night) 꿈 1c) vision, oracle, prophecy 계시 (divine communication)하나님과 교통 비젼은 없이 돈 좀 벌고, 배 좀 부르고, 등 따뜻하면 방자해 집니다. 삼감 없고, 거리낌없이 죄 짖고 못되게 삽니다. 이런 사람은 망합니다. 1. 21세기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래가 어떻게 된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래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것은 미래는{{{{ }} }}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럭비공 같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것이 미래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1980년대에 쓴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이란 책에서 지금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의 물결을 지나서 기술 혁명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했습니다. 1990년대에 쓴 '힘의 이동'(Power Shift) 이란 책에서 지금은 지식의 힘에 의해 지배되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를 후기 산업사회, 탈 근대화시대, 컴퓨터와 인터넽으로 연결되는 정보화시대라고도 했습니다. 21세기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3P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Pollution, 개발도상국들의 계속되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질 것입니다. Population, 인구 폭발, 21세기 중반에 세계인구는 100억이 될 것입니다. Poverty, 빈곤, 인구폭발로 인한 식량문제가 심각할 것입니다. 긍정적 현상으로는 3T 현상이 일어날 것입니다. Transportation, 교통운송이 발달 할 것입니다. 항공, 우주선 발전--우주여행을 상업화 할 것입니다. Telecommunication, 장거리 이동 통신, 핸드폰의 발전으로 핸드폰 TV, 핸드폰 e-mail, 해드폰 컴퓨터, 인터넽을 사용할 것입니다, Trvel(여행), 교통의 발달로 여행을 많이 하여 세계인류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서로 이해하여 세계화가 촉진될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18세기를 지성혁명 합리주의 이성주의 시대라고 하고, 19세기를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산업혁명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2000간 발전한 것보다 더욱 기술이 발달한 기술혁명시대라고 합니다. 미래 21세기는 총체적 혁명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이원설) 따라서 교회도 새로운 지혜와 목회기술을 요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교회가 역동적이며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다면 역사의 미아가 될 것입니다. 20세기 성공자가 반드시 21세기에도 성공한다는 보증이 없습니다. 이제 20세기 방식으로 21세기에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지난날의 전통적인 유형만으로는 경쟁에서 낙오합니다. 교회성장을 연구하는 George Barna 는 21세기에는 3가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1.인간의 행동과 행동양식의 변화 소유의 양에서 질로 바뀌고, 사람을 채용할 때도 믿을 만한 사람에서 행동과 행동양식으로 입증된 사람을 뽑습니다. 2.정보화 자동화 시대로 변화 신속히 자동화로 정보를 획득하여 자료화하고 실전에 사용합니다. 정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정보는 곧 돈이며 정보는 부의 축적이며 정보를 가진자가 경쟁에서 이기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3.사람의 의식구조 변화 새로운 과학기술로 기존의 제도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집니다. 의식이 바꾸어집니다. 그리고 빈부의 차이, 지식의 차이, 세대의 차이, 직업의 차이가 극심하게 될 것입니다. 현대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변화의 시대'입니다. 변화는 신속하게 일어납니다.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자는 낙오됩니다. 교회도 변합니다. 그래서 21세기는 대형교회를 의미하는 mega church가 스스로 변화하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주도하는 meta church로 바뀔 것입니다. 21세기에는 변하는 교회가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마음, 사고, 의식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이 바꾸어 져야 합니다. 21세기 교회는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열망하면서 변화하는 시대를 살고있는 새로운 세대에 부응하는 자기변화, 발상의 대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치 못하면 다음 세대를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 교회는 유럽교회 같이 문을 닫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새 시대의 새 교회 1. 개혁교회 다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인 동시에 개혁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새 시대에도 가장 장로교답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되어야 합니다. 개혁교회는 말씀에 따라 개혁하는 교회요 끊임없이 말씀과 성령을 따라 개혁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칼빈주의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위기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교인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마이나스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 교회는 허수 - 정확지 않은 1200만의 교인을 세계에 자랑하였습니다. 허세 - 한국교회는 세계사적 기적의 교회-115년 역사에 놀랍게 부흥한 교회-라고 허세를 부리며 자화자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계로부터 칭송도 받았습니다. 허실 - 그 결과 허실이 나타났습니다. 급격하게 늘어난 교인들은 신앙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직분을 받았고, 교인들은 세상에 나가서 교인답게 살지 못하였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인들은 욕심에 사로잡혀 온갖 비리와 부정 부패를 저질러 구속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이런 결과 전도의 길이 막혔습니다. 더우기 교인들은 경제성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세계 10대 교역국이라고 들떠서 돈을 물쓰듯 쓰며 해외로 돌아다니며 흥청 망청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은 경제위기가 왔고 IMF를 맞은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개혁을 해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개혁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2.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 1) 사회환경의 변화입니다. 빠른 경제성장을 맞아 고 소득자가 된 한국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돈을 많이 만지고 쓰게되었습니다. 승용차의 보편화, 휴양지 개발, 여가생활, 유흥 서비스업의 성행, 해외관광, 보신관광, 금강산 광관... 사회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미가엘 거버는 "지난 2000년 역사보다 최근의 한 세기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2) 사회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은 세상 사람들의 요구를 채워준다고 하는데 교회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채워주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는 사회를 이끄는 리더쉽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빛이 되지도 못하였고 사표가 되지도 못하였습니다. 오브리 말퍼스는 "교회가 과거에 했던 방식은 더 이상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복음은 불변하나 상황은 변합니다. 복음이 씨앗이라면 상황은 밭입니다. 복음은 상황에 도전해야 하고 상황은 복음을 요청합니다. 교회가 여기에 잘 적응하지 못하여 뒷걸음질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라는 상황의 밭에 어떻게 복음의 씨를 심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3. 구체적 대안 새 시대에 맞는 교회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1)고정관념을 깨고 발상의 대 전환을 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전통에 익숙하고 그것이 편안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그것을 노리개 감으로 즐기며 놓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신세대는 그것을 싫어합니다. 여기에서 신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배려가 없으면 신세대는 교회는 떠납니다. 교회의 전통이 중요하지만 이것이 성경보다 더 위에 올라가서는 안됩니다. 물을 사발에 담아서 마셔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입니다. 물은 손, 나뭇잎, 나무 그릇, 놋 그릇, 플라스틱 컵, 유리 컵, 병에 담아 마실 수 있습니다. 물은 그대로이나 그릇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그릇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발상의 전환이고 창조적 대안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밝아오는 2000년대는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로 가려는 진지한 노력이 없이는 새 시대를 이끄는 변화의 주체자로서의 교회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2)새로운 꿈을 꾸어야 합니다.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꾸는 자는 지도자입니다. 지도력이란 꿈을 제시하는 자입니다. 꿈은 우리의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꿈을 꾸는 교회의 지도자는 깊은 통찰력, 풍부한 상상력, 그 시대를 감지하는 예리한 감각, 바른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도력은 합리적 힘입니다. 합리적 힘은 믿음, 이성, 이해에 호소함으로서 동의를 얻어냅니다. 참된 지도력은 진실성입니다. 지도력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지식이며 경험입니다. 3)윤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죤 스타트는 "21세기는 영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와 향락에 더욱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혼 없는 성, 결혼 밖의 성으로 윤리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질 것입니다. 이런 환경이 될수록 사람들은 영적으로 더 큰 갈증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경건함과 윤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칼빈은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습니다. 경건을 다른 말로 영성이라고 합니다. 4)전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있습니다. 전도는 생활속에서 해야 합니다.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시간, 정성, 재정을 바쳐야 합니다. 칼빈은 카도릭에게 빼앗긴 전 유럽을 되찾기 위해 개혁의지를 가진 젊은 청년들을 각국에서 뽑아 제네바에 모아서 전도 훈련을 시켜 자기나라로 보내 전도하게 했습니다. 다음 세기를 위해 우리들도 젊은 세대을 뽑아 전도 훈련을 해야 합니다. 5)교육해야 합니다 오늘날을 교육의 위기시대라고 합니다. 학교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안되고 있습니다. 학교는 한 주일에 학교 교육을 위해 30 시간을 사용하지만, 교회는 1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인본주의, 세속주의 무신론주의 교육에 교회 교육은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유럽교회 같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6)구조를 조정해야 합니다. 교회 구조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자라면 신을 갈아 신고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이 교회도 규모가 커지면 교회 조직을 적절히 규모에 맞게 바꾸어야 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홍성교회의 몸집이 조금 커졌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새 시대를 내다보면서 조직을 새롭게 바꾸어 성도들의 참여도를 한층 높이는 열린 체제로 조직을 바꾸려고 합니다. 7)사회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는 영혼 구원을 중시하다가 세상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와 상관없다는 식으로 살아 왔는데 이것은 책임있는 개혁주의자들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구원받은 개혁자들은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와 맞서 부정부패를 막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썪어가는데 나 혼자 독야청청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새 시대에 새 비전을 가지고 새 일을 해야 합니다. 교회 조직도 검토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을 바라보며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장기 발전계획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새 시대를 위한 새 교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