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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하나님을 두어야 한다/ 롬1:24-32/ 2012-11-24
마음에 하나님을 두어야 한다 롬1:24-32 성도가 삶이나 신앙에서 실패하는 것은 신앙인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실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습관적인 신앙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에게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 16:14). 주님은 제자들이 음식을 먹는 생활의 현장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음과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마음이 완악한 것은 마음이 굳어버린 것을 말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변함없이 믿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날마다 역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문제점은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대부분 삶 속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합니다. 하나님이 상실한 마음을 버려 합당치 못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줄 끊어진 연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음을 붙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조절해주셔야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이 떠나면 고장 난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조절해서 바른 길로 가게 하십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한 생각을 막아 세상이란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하십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면 세상에 빠지지 않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을 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면 우상이 침투합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우상이 침투하면 영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됩니다. 돈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서게 되면 우상이 됩니다. 사단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가진 것은 축복이지만 하나님보다 자식이 앞설 때 우상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야 우상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때 좋은 것이 복이 됩니다. 반대로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좋은 것이 우상이 됩니다. 우상이 들어오면 마음이 썩어버리게 됩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면 교만이 판을 칩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 1:29-31).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면 미움이 들어와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와야 이기주의나 교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내가 평안해집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면 육신이 정욕의 포로가 됩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며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 1:26-27). 현대에는 성경이 말하는 순리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동성애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대부분 상식을 벗어나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부부의 성을 떠나면 병이 듭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만 타락하는 이유는 실생활에서 하나님을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집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8). 하나님께서 붙잡지 않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없어집니다. 내버려 두기 때문에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므로 미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 되며 강건해집니다. And... 성도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짜증나고, 일의 효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에 집중하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야 그 일이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을 하는 목적이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어야 잘 되어도 축복으로 남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이 자신의 아들이 일류 대학에 들어가야 친척들에게 예수 믿는 본이 된다고 기도해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기복주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영광 받는 형태가 다릅니다. 물론 하는 일이 잘 되어 영광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사람이 믿음으로 일어서는 것을 통해 영광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영광은 환경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유교적 관습으로 권선징악적인 사고가 남아 있습니다. 그 사고는 옛 사람의 사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옛 사람의 사고를 버리고 새 사람의 사고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선이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이 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 선과 악의 구분이 분명해야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가장 선한 일은 우리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고, 나는 그분의 종이라는 위치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산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짐을 지고 사는 것입니다. 내 인생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은 주인이 하는 일에 도구가 되면 되기 때문에 그 인생이 늘 평안합니다. 창조주이신 주인이 모든 일을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릇은 주인이 담는 것에 불만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담든 그것은 주인의 몫이고, 그릇은 깨끗하게 준비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게 준비된다는 것은 자신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릇에 오물이 묻어 있다면 주인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우고, 주님으로 채워지도록 준비된 그릇이 하나님이 가장 사용하기 편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십자가 원리입니다. 내가 죽고 나를 통해 예수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인 사람은 자유하며, 늘 감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환경도 하나님이 주장하시기 때문에 늘 감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때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늘 그 삶이 형통해집니다. 감사의 능력은 환경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어 삶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마7:7-12/ 2010-01-19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마7:7-12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이후의 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10년 후에 여러분들은 어디에 있을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누구와 있을 것 같고, 10년 후에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여러분의 자녀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리가 생명같이 아끼며 존경하며 따르는 우리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고, 우리가 함께 모인 하나님의 성전인 언양 영신 교회는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기도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오늘의 내 기도가 10년 후의 내 모습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흐트러졌던 꿈을 다시 꾸십시오. 다시 그 속에 사랑이 철철 넘치게 하십시오. 다시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붙드십시오.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나는 새벽기도를 못하지만 어느 새벽엔가 주의 종의 입에서, 어느 집사님의 입에서, 어느 교우의 입에서 내 아이들과 내 자신을 위해서 내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고 하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큰 위안과 지원이 되겠습니까? 기도 이상 더 큰 지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리는 기도이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의 장례식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주철 목사의 장례가 났다. 아무개 집사, 아무개 성도의 장례가 났다. 그 장례식 앞에서 누가 제일 슬퍼하겠습니까? 누가 제일 안타까워하겠습니까? 누가 제일 허둥지둥 달려오겠습니까? 여러분의 장례에 어느 목사님이 집례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남겨 놓을 수 있는 유산의 목록은 어떤 것입니까? 또 그 유산이 과연 어떻게 정리가 되고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십니까? 제주도에는 돌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면 무덤이 있는데 이들 무덤이 육지의 무덤과는 형태가 다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진입하다 보면, 곳곳에 무덤들이 있습니다 . 무덤 주위에는 돌들이 무덤 주위를 둘러서 경계선 내지는 담장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무덤에는 주위에 돌들이 3줄, 4줄,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이 쌓여져 있는가 하면, 어떤 무덤에는 돌들이 1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적게 쌓여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살았을 때 평소에 이웃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덕을 많이 베풀면서 살았느냐에 따라서 돌들이 많고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인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 왔던 사람들이 그 사람을 아주 좋게 평가를 하면 그들이 그 고인을 생각하면서 돌을 무덤 주위에 하나씩 놓고 간다는 것입니다. 무덤 주위에 돌들이 많고 적음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이 대목에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만약에 지금 내가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렇다면 장례식에 몰려온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를 할 것 같습니까? 뭐라고 말 할 것 같습니까? 제주도식으로 말하자면, 여러분의 무덤에는 어느 정도의 돌들이 놓여져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한 토막을 섬겼던 이 교회, 나와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나와 함께 하나님 앞에 수긍하는 그런 고백과 기도를 했던 그 분들이 교회에서 나를 향해 뭐라고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까? 교회는 내 장례식을 어떻게 지내줄 것 같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한 번씩 어떤 충격요법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몸 안에 있는 것을 더 좋은 것이라고 하는 그런 감격 속에서 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 그것은 보람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 밖에 있는 물건들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몸 밖에 있는 물건들은 내 몸 안에 있는 것들과 비교될 때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서로 인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내 몸 안에는 더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내 겉사람은 날로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날마다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축복하십시오. 서로를 축복하십시오. \\\\\\\\\\\\\\\"하나님이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짧은 목회의 경험 속에서 정말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마십시오. 우리는 너무 사소한 말, 사소한 일에 목숨을 겁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는지 후회가 됩니다. 자신의 그런 모습이 한 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했으면 어떻고, 이야기를 안 했으면 또 어떻습니까? 다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감사하며 사십시오. 고마워하며 사십시오. 찬양하며 사십시오. 기도하며 사십시오. 웃으며 사십시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너무 심각하면 안됩니다. 여기 이곳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된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거룩이라는 이름 하에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그렇게 외식하는 자들의 삶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놀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예배란 아버지와 즐겁게 노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에 오신 여러분, 웃으십시오. 어느 젊은 장학사가 어떻게 하면 지역 내의 학교를 한 번 새롭게 하고 아이들에게 꿈과 믿음을 줄 수 있을까 해서 그냥 정신없이 좇아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이 장학사로 부임하자마자 지난 주간에 영화초등학교로 달려갔습니다. 간다는 말도 안 하고 가니까 학교에서는 장학사가 온 지도 모릅니다. 어느 4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보니까 손지호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더랍니다. 그 옆에는 선생님도 있고, 교실 안에 화초도 있고, 또 거기에는 지구본이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장학사가 손지호를 붙들고 물었다고 합니다. \\\\\\\\\\\\\\\"얘야, 이 지구본이 보이니?\\\\\\\\\\\\\\\" \\\\\\\\\\\\\\\"예\\\\\\\\\\\\\\\" \\\\\\\\\\\\\\\"이 지구본이 왜 이렇게 옆으로 기울어져 있는 지 아니?\\\\\\\\\\\\\\\" 그랬더니 손지호가 얼굴이 굳어지더니 정색을 하면서 \\\\\\\\\\\\\\\"아저씨, 그거 제가 고장낸 거 아니에요. 제가 안 했어요\\\\\\\\\\\\\\\"라면서 울먹거리더랍니다. 그래서 당황한 장학사는 옆에 있는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지호 담임 선생님이 지구본을 보더니, \\\\\\\\\\\\\\\"아저씨, 그것은 제가 확실히 아는데, 이 학교에 부임하기 전에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학교에 장학사가 온 것이 알려져서 교장 선생님이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달려오더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 장학사님. 말씀을 하고 오셔야지. 그리고 오면 제 방부터 오셔야지. 거기에 다 준비해 놓았는데 여길 오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어이가 없어진 장학사님은 교장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 지구본 이야기가 웬일입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장학사님도 잘 아시면서 뭘 그럽니까? 그게 국산품이라서 그렇습니다.\\\\\\\\\\\\\\\" 웃어보자고 한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Made in korea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교회에 대한 콤플렉스, 자기 삶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하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또 인간이 젊은 나이에 실수들을 다 딛고 일어서서 성숙해지면 성숙해질수록 깨닫게 되는 하나의 사실은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보는 내 방식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것 하나만 제대로 붙들어도 예수를 바로 믿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창조적이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내가 붙잡아야할 하나님의 약속이요, 사명이 됩니다. 반면에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내가 회피해야 할 무거운 짐이 되고, 고통이 되고, 아픔이 되고 맙니다. 기억하십시오. 똑 같은 문제이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부흥 2000을 작곡한 고형원 전도사님이 있습니다. 하루는 이 전도사님이 아들과 함께 놀이터에 놀러 갔습니다. 그 놀이터에서 전도사님이 아들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릅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이 전도사님은 아들에게 동요를 불러준다는 것이 그만 찬송가를 부르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고형원 전도사님은 입만 열었다고 하면 찬송가를 부른다고 합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습관이 미래를 결정하듯 지금의 간절한 기도가 우리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하십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믿으십니까? 그래도 기도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립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힘드십니까? 곤고하십니까? 여러 상황이 나로 하여금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게 하고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구하십시오. 찾으십시오. 문을 두드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셔야 됩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깨달은 것은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입니다. 같은 환경에 살면서도 불평과 원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환경에 살면서도 마음의 상태가 바뀌니까 갑자기 행복해져서 \\\\\\\\\\\\\\\'여보, 고마워!\\\\\\\\\\\\\\\' \\\\\\\\\\\\\\\'얘들아, 고마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에 얽매여 현재의 삶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한없이 되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기억일 뿐입니다.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삶의 어리석은 낭비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의 제일 첫 번째 특징은 과거로부터 해방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래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바라보면서 중단 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공격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사탄은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끝없이 이용하고 또 이용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의 과거를 끝없이 물고 늘어지고 이용하는 모습을 보신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속에 영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기억일 뿐입니다. 과거가 뭐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기억에만 남아 있는 것을 왜 붙들고 있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과거의 회상력에서 일어나는 힘보다는, 미래의 환상에서 일어나는 힘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미래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하나님도 과거를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향한 꿈을 꾸는 자를 쓰십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만을 줄기차게 믿고 따라갔던 사도 바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만을 줄기차게 따라갔기에 거센 풍랑 가운데서 살아났습니다. 독사에게 물려도 줄기차게 하나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하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는 복음을 증거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가 착고에 차여 죄수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죄수의 신세로 로마라고 하는 재판의 광장을 향하여 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캄캄한 밤에 폭풍우가 그냥 끝없이 14일 동안이나 진행됩니다. 그 배 안에는 276명이라고 하는 백부장을 비롯한 많은 군사들과 주민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조그마한 배에 14일 동안 거센 풍랑이 휘몰아치는 데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른 것은 하나입니다. 믿는 사람은 속수무책인 가운데서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불평합니다. 내가 참 믿음인가 아닌가는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시기합니다. 투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이곳 언양 영신교회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유일한 곳은 공동묘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엎드려 기도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그 문제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붙잡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짜증을 냅니다. 결국에는 그 문제가 짐이 되고 부담이 되어서 떠나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가 보이십니까? 그러면 엎드려 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절망에 싸여 두려워하고 있는 그 풍랑 가운데서도 바울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응답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기도하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했습니다. 이 배는 풍랑에 다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276명인 우리의 생명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구원해 주신다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 줄을 아십니까? 놀라운 것은 죄수로 끌려가던 사람이 그 풍랑과 함께 지도자가 되고, 죄수로 끝없는 탄압과 견디기 힘든 고생을 시키던 로마 군인들은 오히려 죄수를 의지해야 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주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진실한 믿음의 역사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돌변적인 사건들을 얼마든지 증거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간증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만 일어나면, 하나님의 개입만 일어나면 인간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웃지 못할 그런 놀라운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보십시오. 끌려가던 자가 지도자가 되고, 잡혀가던 자가 지도자가 됩니다. 죄수를 감시하던 자가 그 죄수를 의지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말카라고 하는 섬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고 나니까 얼마나 춥습니까? 옷은 다 젖었습니다. 14일을 거의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마침 섬에 있던 토인들이 몰려왔습니다. 불을 피우고 먹을 것을 갖다 주면서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옷을 말리면서 추위를 견뎌냅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모읍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에 있던 뱀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더니 사도 바울의 손을 덥석 물었습니다. 토인들은 소리를 치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 사람이 살인자다. 이 사람이 무서운 죄인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 뱀이 물었으니 틀림없이 하나님이 징계를 했다. 바다에서는 어쩌다 살아났는지 모르지만 뱀에 물렸으니 이제 곧 죽으리라.\\\\\\\\\\\\\\\'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 손을 물었던 뱀을 툭툭 털어 가지고 집어서 불 속에 집어넣어 뱀이 터져 죽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모습은 태연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광경을 본 토인들이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신이 이 섬에 왔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만히 보면 우리가 당한 불행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기와 감정과 자기 재주로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한 불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 계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마다 살아 역사하는 것을 알고 믿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믿는 자를 통하여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사건이든지 어떤 불행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 입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어떤 풍랑 가운데 내 몰렸다고 할지라도 믿음 없는 자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믿음 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무릇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에 취한 사람은 어떠한 사건이든지 어떤 불행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 입에서 하나님의 예언을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면 사람을 만날 때에도 제일 먼저 한 일이 예언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성격은 몹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천방지축이었습니다. 그의 외모에 무슨 희망이 있었고, 그 속에 무슨 기대할 만한 게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처음 본 순간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여기에서 게바는 바위 또는 반석을 아람어로는 게바라고 하고, 그리스어로는 베드로라고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3년 후의 베드로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3년 후에 너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반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너는 세상에 복음을 싣고 갈 수 있는 반석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격이나 외모에서 어떠한 기대와 희망을 찾아 볼 수 없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서 3년 후에 \\\\\\\\\\\\\\\'너는 게바가 되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은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라는 기대를 가지십시오. 내 아이들에게도 \\\\\\\\\\\\\\\'너는 장차 하나님과 이 나라를 위해서 큰 일을 할 것이다\\\\\\\\\\\\\\\'는 기대를 심어 주십시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예언입니다. 3년 후에 나는 이 성전에서 반석이 되리라는 예언을 하십시오. 3년 후에 나는 이 성전에서 하늘의 천사도 흠모할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자기 예언을 하십시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너절너절하게 종교놀이를 하지 마십시오. 편협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수용성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신앙과 신념은 다릅니다. 자기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조직 속에 자기 방식, 자기 생각을 강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반석 같은 인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부정적인 자기 파괴의 습성들을 뱀을 떼어내듯이 이 시간 하나님의 전에서 다 털어 버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그래서 10년 후에 내 삶의 이야기를 내 놓았을 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보다 더 많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내 삶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 것은 내 힘만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최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나 한 조직에게 절대로 모든 것을 주지 않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도움을 요청하며 사는 것, 그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어설픈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나약한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부끄러운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신뢰할 수 없는 관계를 거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데 지나가는 학생이 좇아오더니 \\\\\\\\\\\\\\\'돈 만원만 주세요\\\\\\\\\\\\\\\' 라고 요청을 합니다. 주실 겁니까? 안 줍니다. 그런데 집 앞에 거의 가까이 왔는데 어느 아이가 좇아오더니 \\\\\\\\\\\\\\\'돈 만원!\\\\\\\\\\\\\\\' 하니까 묻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줍니다. 누굽니까? 내 아들입니다. 왜? 관계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주세요, 주세요\\\\\\\\\\\\\\\' 하면 줄 것 같습니까? 주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어디를 가던지, 지금 내가 어느 상황에 처해 있든지, 설령 아무리 불행의 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끈질기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럴수록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꿈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가 재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환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 땅에는 두 가지 창조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적 창조이고 또 하나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창조입니다. 정신적 창조는 언제나 물질적 창조에 우선 합니다. 가령, 우리가 집을 짓는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집을 짓는데 무조건 자재부터 사옵니까? 땅부터 들고파고 봅니까? 시멘트 블록부터 만들어 옵니까?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의 그림을 그립니다. 안방은 어디에다 놓을까. 아이들 방은 어디에다 놓을까. 부엌은 어디에다 놓을까. 창은 어디로 내며, 대문은 어디에다 낼까. 정신의 지도가 물질의 집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오느냐? 습관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감과 은혜를 받으며 정신적인 지도를 만드는 겁니다. 정신적 창조의 힘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지도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지도를 그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떠나지 마십시오. 10년 후, 10년 후에 여러분 자신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 10년 전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0년 전에 저는 집사람과 어린 아이들이랑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이곳에 교회를 개척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몇 날, 몇 일을 밤 새워도 지칠 줄 모르는 때였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머리도 이만큼은 안 빠졌습니다. 지금은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을 뒤덮고 있지만 그때는 흰 머리카락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 어쩌면 앞으로 10년 후에 우리 중에는 다시 볼 수 없는 인생 길을 떠나서 하나님의 품에 안긴 분도 계실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10년 후,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는 대학에 진학한 아이도 있을 것이고, 또 진학을 놓고 고민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10년 전부터 하루 1시간씩만 계속해서 어떤 일을 했더라고 하면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 것 같습니까? 지금 내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 같습니까? 뭔가는 모르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달라졌을 겁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혹여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목사님, 제가 10년 전에 이 말씀을 들었더라면 좀 더 확실하게 살아왔을 텐데 말입니다. 10년 전에 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루 한 시간씩만 어떤 일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에게는 앞으로 10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10년을 주셨습니다. 10년 안에 자신의 모습을 설계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10년 후 사람들이 나를 아름답게 다시 평가해 줄 것을 그려보십시오. 정신적 창조는 물질적 창조에 언제나 선행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꿈을 꿉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예언을 합니다. 입이 열려 예언을 합니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들을 예언하십시오. 여러분 자녀들의 모습을 예언하십시오. 회사의 모습을 예언하십시오. 내 사업의 모습을 예언하십시오. 내가 섬기는 영신 제단의 모습도 예언하십시오. 환상을 보십시오. 꿈을 꾸십시오. 만일 지속적으로 1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실행한다고 하면 자신의 삶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그 한 가지 일에 이제부터 목표를 정하십시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신앙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적인 신앙생활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체적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신앙을 하고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을 때는 신앙도 좋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쌓이고 기분이 나쁠 때는 신앙도 내리막길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금실이 좋을 때는 교회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다가 사이가 나빠지면 싸늘하게 돌아서 버립니다. 그렇게 꿈이 없는 신앙의 모습으로 살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7가지 역할이 무엇입니까? 그 7가지 역할과 관계된 중요한 인물과 그 이름과 그 관계를 머리 속에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어느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나약한가? 지금 어디와의 관계가 제일 든든하지 못한가?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습니까? 아들 딸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까? 천국에 가서 우리 주님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내가 섬기는 내 교회의 형제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다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지 않고 그 꿈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도하지 않고 그 꿈을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키지 않고 그 꿈을 지킵니다. 꿈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꿈이 없으면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으면 결국 폐기처분 되고 맙니다. 하나님, 이 영혼에 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환상을 보십시오. 예언을 하십시오. 10년 후의 당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꿈을 꾸십시오.
1992년 휴거의 거짓 열풍과 올바른 말세 신앙/ 마24:32-36/ 2016-02-28
1992년 휴거의 거짓 열풍과 올바른 말세 신앙 마24:32-36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여 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 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없 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 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 인류의 종말시기가 궁금한 문제이긴 하나 종말의 시기를 아는 것은 구 원의 조건도, 휴거의 조건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 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 라고 말씀하 시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1992년 10월에 주님이 재림하고 환란이 시작된 다고 떠들어 교게를 어지럽히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자들이 있습니 다. 이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 드 리고자 합니다. 먼저 잘못된 그들의 주장들을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1992년 주님이 재 림한다는 주장은 대체로 세 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 근거는 하나님께서 6일동안 일하시고 7일째를 안식일로 정하셨 으므로 인류역사를 6천년으로 보면 그다음 1천년이 안식천년(천년왕국 ) 인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예수님까지의 기간을 4천년으로 보면 올해가 1991년이므로 인류의 역시 5991년이 지난셈이고 인류역사는 9년이 남았다는 계산을 하 여 7년 공중혼인잔체를 빼고 계산하며 1992년 지상재림이 있고, 1999 년 지상재림과 함께 지구의 종말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로부터 역사적 기간 계산에 정확성을 기할 수 없기에 종말 시기를 확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탄생 시기 조차도 정 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또 마태복음 24장 22절 하반절에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 시리라] 하셨으므로 재림시기를 더더구나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큰 오류 를 범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또 하나의 근거는 노스트라 다무스의 예언과 일치성을 가지려는 것이빈다. 노스트라 다무스가 1999년에 인류가 멸망한다고 예언한 것은 하등에 하 나님의 말씀과는 관계가 없는 예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속임수를 쓰 는 귀신의 예언과 연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근거는 1992년 12월 31일 유럽 공동체가 단일 정치체계로 시동되기 때문에, 이 때를 적그리스도의 등장 과 예수님의 공중재림 시기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1992년도는 과거 로마 판도의 유럽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가능 성이 있는 시기로만 보아야지, 확실한 시기로 단정해서도안됩니다. 통합 유럽의 몇대 통치자가 적 그리스도인지 알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 다. 그러나 성경에 근거하여 볼 때 지금부터 앞으로 이스라엘이 소련(고 벧)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어지고 적 그리스도와 7년 평화조약을 맺 게되는 분위기가 고조될 때를 주목하여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기 까지 20년 내지 3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단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어 주장하는 무리들입니다. 이단들은 예 수님 조차도 모른다는 재림시기를 빛의 자녀들은 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들이 깨닫게 된다는 것은 재림이 가까와오는 절박한상 황을 알게 된다는 것이지, 재림의 때를 알게 된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지난번 이라크와 다국적군의 전쟁은 아마겟돈 전쟁이 있으리라고 경고하 는 전쟁인 것입니다. 이러한 때일 수록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벧전 4:7) 둘째, 더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셋째,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1서 3:3) 넷째, 사랑을 베풀며 살아야 합니다. (고전 13:13) 다섯째, 맡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딤후4:6,7) 이와같이 기도와 전도에 힘쓰며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며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말세의 올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0마리 돼지 대 1명의 사람/ 막5:1-20/ 이단사이비예방주일설교/ 2003-05-27
2000마리 돼지 대 1명의 사람 막5:1-20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우리를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 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막5:1-20)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을 살게 하시고, 거룩한 주일 기둥교회에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빛 되고 소금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예수님과 성경을 들먹이며 떠들어대는 사이비들 때문에 움츠려드는 요즈음, 하나님, 우리가 있음에, 기둥교회가 있음에, 소망이 있고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더 바르게 더 잘 믿고, 빛 되고 소금 되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주일을 귀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환자, 군대, 객지, 외국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기둥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기 원하면서도 형편과 사정이 달라 설교 테이프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 복된 가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을 주님이 세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가정을 위하여 비옵나니 -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찬양과 기도, 말씀이 가득한 가정이 되게 하소서. - 감사가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날마다 웃음꽃이 피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서로가 지지하고 세워 주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예의를 가르치고 예의가 지켜지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사랑할 줄 알고 사랑 받을 줄 아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쉼이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부모와 자녀 간에 마음이 통하는 대화가 끊이지 않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이웃에게 열려 있는 가정, 세계로 열려진 가정되게 하소서. - 꿈이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며 함께 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여러분 가정과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입술이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즘 며칠 동안 예수 안 믿거나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분들에게 아마 시달림을 많이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서울에 어떤 교회, 그 교회의 목사, 사실 그 사람은 자기가 속해 있던 교단에서 이미 몇 년 전에 목사직을 파직 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을 제재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 홀로 활동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서 선량한 목회자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평범한 성도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 믿어야 하고, 바르게 가르칠 뿐 아니라, 바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1990년 3월 31일자 LA타임지와 교포 신문에 특별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캐나다와 접경하고 있는 미국의 와이오밍 주 북쪽에 있는 몬태나 주에 있는 ‘만민승리교회(Church Universal and Triumphant)’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Universal’이라는 단어를 ‘만민’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만민’이라는 이름이 문제인지 그 교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원래 그 교회는 캘리포니아에 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몬태나 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것이 부천에서 인천, 서울로 옮기는 정도의 거리가 아닙니다. LA에서 몬태나 주로 가려면, 자동차로 화장실을 잠깐 들르는 것 외에 자지도 않고 계속해서 이틀을 가야 몬태나 주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부산까지 가는데 4시간 30분이면 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먼 거리인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사했느냐 하면, 2,500명이 몬태나 주로 이사했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목사는 ‘엘리자벳 클레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이상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계시를 내려 주셨다. 곧 지구에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1990년 3월 말까지 늦어도 4월 23일까지는 핵전쟁이 일어나서 온 지구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와 만민승리교회 교인들은 살려주기로 약속하셨다. 그래서 핵전쟁에도 견딜 만한 땅굴을 파야 되니까 몬태나로 이사 가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만민승리교회 교인들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도 팔고 아이들의 학교도 자퇴를 시키고 몬태나로 2,500명이 이사를 갔습니다. 미국에서 한 주에 살다가 다른 주로 옮겨간다는 것은 나라를 옮겨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래서 운전면허도 다시 취득해야 합니다. 2,500여 명의 성도들이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다 퇴학시켜서 몬태나로 이사 갔습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고신일 목사를 신뢰하십니까? 그러면 몬태나까지는 아니더라도 강원도로 이사 가자고 한다면 집도 내놓고 직장도 다 그만두고 아이들도 자퇴시켜서 가실 분이 계십니까? 웃지 마시고, 그래도 제가 ‘갈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누구라도 손을 들어야 하지 아무도 안 들다니요. 아무튼 2,500명이 직장도 다 내놓고 이사 가서 핵전쟁을 피하기 위한 땅굴을 팠습니다. 큰 땅굴은 756명이, 짧게는 7개월부터 7년까지 견딜 수 있는 땅굴을 팠습니다. 핵전쟁이 나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땅굴을 팠습니다. 물과 음식도 충분히 준비해 놓고, 소·대변을 봐도 정화될 수 있도록 좋은 시설을 갖춰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땅굴에 들어간 그 입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때 저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지 벌써 8년이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7년분의 식량만 땅굴에 비치해 두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에 나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결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이 핵전쟁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살려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왜 고신일 목사에게는 알려 주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멸망하시려고 작정하셨다면, 왜 그 사람들에게만 땅굴을 파라고 하셨을까요? 이 세상에는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1. 종교의 종류 종교는 크게 4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이방종교: 이방종교는 기독교가 아닌 종교를 말합니다. 힌두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교도 이방종교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실 유교는 종교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① 신론: 신이 있어야 합니다. ② 인간론: 사람이 어떻게 존재했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③ 윤리론: 신과 인간과의 윤리, 인간과 인간과의 윤리에 대한 것입니다. ④ 구원과 내세론: 제한된 인생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으며 영원히 살 수 있는가 하는 내세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교도 굳이 종교에 넣어야 한다면 이방종교에 속할 것입니다. 2) 세속종교: 세속종교라 함은 종교의 틀을 갖지는 않았으나 종교와 같은 그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 무신론: 신이 없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 불가지론: 알 수 없다, 어떻게 사람이 알 수 있느냐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 회의론: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한 것’을 말합니다. - 막시즘(Marxism): 지나친 공산주의를 말합니다. 3) 유사종교(오컬트-occult): 종교와 비슷하면서 종교가 아닌 것이 종교처럼 존재하는 것을 유사종교라고 합니다. 점성술, 무당, 유령, 최면술, 마술, 미신 등을 말합니다. 4) 이단종파(기독교이단): 기독교와 같은 색깔을 띠었으나 정통 기독교가 아닌 이단 종파를 말합니다. 그것을 ‘이단’(異端-다를 이, 끝 단)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성경으로 시작해서 비슷한 것 같지만 끝이, 결말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몰몬교, 통일교, 전도관, 영생교 등 집단을 말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이재록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 가운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별히 한국에 이런 일들이 많은 것은, 제가 보기에는 쉽게 목사가 될 수 있고, 아무렇게나 집단들이 ‘목사’라고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제까지 이웃집 아저씨였는데, 오늘 갑자기 목사가 되고, 어제까지 옆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나 목사야.’라고 말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제가 속한 우리 감리교 교단은 목사가 되려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신학대학 4년을 졸업하고,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되려면 반드시 대학원에 진학해야 합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신학대학원을 2년 해야 하고,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대학원을 3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석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냥 받는 것도 아니고 목회를 시작해서 1년쯤 지난 후에 “성경, 신학, 논문, 자격심사, 품행통과” 이 다섯 가지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3년이 지나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그냥 다 목사는 아닙니다. 그때까지는 준회원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도 다시 2년 동안 똑같은 다섯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한 번도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고 진급해야 10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중간에 한 번 떨어진 사람은 12년도 걸리고 13년도 걸립니다. 이렇게 어렵게 목사가 되는데, 어제까지 이웃집 아저씨였던 사람이 오늘 ‘목사’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고, 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목사직을 파직했다고 해도 법으로 그 사람을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단이라는 것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말하며, 그릇된 주장을 말하기 때문에 경고하고, 파직을 당해도 계속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가감하는 사람, 성경에 있는 말을 빼고 어떤 말은 첨가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가 계속해서 계시를 받는다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해 주신다고 ‘엘리자벳 클레어’처럼 말하는 사람입니다. 2. 이단의 정의 1) 어원적 정의 이단이란 말은 영어로 “heresy(헤러시)”라고 하는데 이는 헬라어의 “하이레시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말은 본래 “선택받은 자, 뽑힌 자”라는 뜻입니다. 2) 성경적 정의 ① 다른 예수, 다른 영(악령),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고후11:4) ② 그릇된 주장에 대해 거듭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이키지 않는 자(딛3:10) ③ 성경을 가감하는 자(계22:18-19) ④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제한하고 부인하는 자(요일2:22-23) ⑤ 지금도 계속적 계시를 주장하는 자(히1:1-2, 엡3:3-4) 성경 아닌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는 자입니다. 3. 이단 종파들의 공통점 1) 발생모체(發生母體)는 기독교입니다. 성경에서 모방하고, 기독교적인 여러 조건들을 모방하여 적용합니다. 2) 기성교회(현실교회)를 비판합니다. 기성교회, 현실교회들을 모두 타락했다고 말하고 부정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에만 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3) 열광주의적인 신비체험을 강조합니다. 영적인 특수체험, 곧 입신, 방언, 접신, 환상, 신유, 진동, 도통 등의 신비하고 격렬한 체험을 과도하게 자랑합니다. 기둥교회 방송실 직원들이 저를 보고 ‘목사님 우리도 뒤에 이상한 현상을 만들 수 있는데 한번 해볼까요?’라고 묻습니다. 여러분 기둥 교회도 그런 현상을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합니다. 4) 교주를 신격화하여 숭배합니다. 사이비 이단들은 교주를 신격화합니다. 여러분, 목사를 귀히 여기고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그래야 하지만 그러나 신은 아닙니다. 고신일 목사도 참 겉만 멀쩡하지 별 볼일 없습니다. 검버섯이 안 생겼나, 또 매일 아파서 비실거립니다. 나는 아픈데 아프다고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해서 기도해 주면 그 사람은 낫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똑같은 증세로 왔는데 기도해도 낫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얘기하다가 토라집니다. 누구는 낫게 해 주고 누구는 안 낫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제가 합니까? 사도 바울도 자신이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나았는데 자신은 병든 환자였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5) 독선적 구원관을 주장합니다. 이 이단 종파들은 자기들만이 특별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와야만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5. 이단 종파들에 대한 종합 1) 비성서적 비신학적입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비성서적이고 비신학적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 위배된다는 말입니다. 신학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 비윤리적 반사회적입니다. 도덕성이 없습니다. 3) 현실도피자 주의자들입니다. 4)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빛 된 삶을 사는 것을 거절합니다. 역사 세상 사회와 담을 쌓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지향하는 경우입니다. 성경에 ‘너희가 세상에 살면서 빛 되고 소금 되어서 다른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희가 착한 행실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기둥교회 장로님들에게, 또 다른 교회에서 임원교육을 할 때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 건전한 믿음을 가졌다면 이단이 이곳 강단에 와서 설교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제가 이상한 소리를 해도 믿을 사람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런 교회가 건전한 교회, 든든한 교회입니다. 저는 장로님들에게 “장로는 권위나 세우고 대접이나 받으며, 목사를 견제하는 직분이 아닙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분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가르쳐지는지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장로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장로는 교회를 지키는 분입니다. 교회의 건물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교회 같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기 위해 기도하며 직분을 감당하는 분들이 장로님들입니다. 장로는 목회자를 지키는 분입니다. 무슨 경호원을 세워서 목회자를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바르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건을 살피고 돌봐주는 분들이 장로님들입니다. 교회에서 바르게 배운 평신도들이 성경 말씀에 굳게 서 있고 교회를 바르게 지키려 하고 목회자가 바르게 목회하도록 돕는다면 잘못된 이단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제가 믿기는 기둥교회 장로님들이나 성도들은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 계신 분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가지 ‘기사’와 ‘이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틀림없이 기사와 이적은 있습니다. 저 자신도 병 고침의 경험이 있습니다. 신유의 체험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해 줄 때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모든 궁극적인 권위의 원천, 교회 안에서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하는 일에 최고의 권위를 둔 것은 “성경”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어도 성경에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은 “모든 것의 권위의 원천은 성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웨슬리(Wesley)는 그의 1766년 6월 5일 일기에서 “나의 근거는 성경이다. 그렇다. 나는 성경고집쟁이(Bible-bigot)이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것이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성경을 따른다.”라고 했습니다. (“My ground is the Bible. Yea, I am a Bible-bigot. I follow it in 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 전통적으로 신학의 자료는 - 권위적인 자료(authoritative source), 1차적 자료: 성경(Scripture)와 - 보조적인 자료(subsidiary source), 2차적 자료: 전통(Tradition)과 이성(Reason)과 체험(경험, Experience)입니다. 성경(Scripture): 성경이 제일 위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오신 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고 여기에 나오신 줄 믿습니다. 전통(Tradition): 그 다음에 전통이 중요합니다. 전통도 교회 역사 흐름의 그런 전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기독교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잡혀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에 밀라노(Milano) 칙명을 발표하고 기독교를 해방시켰고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 박해받던 예수 믿던 사람들이 땅굴 속에서 숨어서 믿다가 밖으로 나와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차츰 차츰 이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325년에 니케아(Nicaea)종교회의를 거쳐서야 잘못된 이단을 단죄하고 기독교의 교리가 성립되었습니다.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325년 이전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사도들과의 연대가 가깝고 또 그때까지는 교회가 분리되지 않은 한 목소리를 내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과 기독교의 전통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성(Reason):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습니다.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경험하게 하는 그런 이성을 주셨습니다. 판단을 주셨습니다. ‘아,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니까 이렇구나. 교회 전통에 비추어 보니까 이렇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렇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체험(경험, Experience): 신앙생활은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내가 믿어보니까, 내가 말씀을 들어 보니까, 내가 응답받으니까.’라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그런 성도들인 것을 믿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보에 나온 설교 제목은 “2000마리 돼지 대 1명의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의 설교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도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돼지 2000마리를 물속에 처박아 죽게 하고 한 영혼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하자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런데 세상에 이상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면서 우리가 전도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자 마음먹었던 사람들의 마음 문을 닫게 만듭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예수님 당시에 돼지 2000마리는 엄청난 재산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2000마리의 돼지를 물에 집어넣었습니다. 죽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복음 전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전도하는 일에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마음 아파할 것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의인 10사람만 있으면 멸망당하지 않았을 텐데 의인 10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믿기는 우리 기둥교회가, 기둥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찾지 못했던 ‘의인 10사람’과 같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들인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바르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뿌리며 가을의 추수를 위해서 씨 뿌리는 농부들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전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에이 이것 틀렸어. 그것들 다 똑같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지역에서 나오는 생선에서 병균이 발생했다고 해서 평생 동안 생선을 안 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지요. 사과상자에서 썩은 사과 하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사과를 평생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 아닙니까? 부천도 공기가 나쁩니다. 공기가 나쁘다고 해서 코를 막고 숨을 안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단자도 있고,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졌다고 해서 여러분의 신앙을 접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도를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도를 금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 기도하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살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심야기도회 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기도하는 자리에 많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야단을 쳤습니다. 왜냐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오히려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울지언정 슬프고 안타깝고 답답한 일을 만나서 울면 되겠습니까? 물에 처넣어 죽여 버린 돼지 2000마리보다 한 생명이 그렇게도 귀했다면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 인사가 이때에 가장 중요한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에서, 주일성수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에서, 사람들이 비난하고 손가락질해도 여러분, “주 안에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말씀으로 승리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데에 우리를 쓰시고, 우리 기둥교회를 써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 안에서 범사에 말씀으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돼지 2000마리 보다 한 생명을 귀히 여기셨던 하나님, 한 생명을 위하여 돼지 2000마리를 물에 처넣으신 주여! 오늘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여기 모여 예배드립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시고, 빛 되고 소금된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심령 심령들마다 힘 주시고 능력을 주시옵소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신일 목사(부천 기둥교회)
2000마리 돼지 대 1명의 사람/ 막5:1-20/ 이단사이비예방주일설교/ 2003-05-27
2000마리 돼지 대 1명의 사람 막5:1-20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다.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저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가로되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우리를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 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촌에 고하니 사람들이 그 어떻게 된 것을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의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고하매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막5:1-20)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오늘을 살게 하시고, 거룩한 주일 기둥교회에서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빛 되고 소금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예수님과 성경을 들먹이며 떠들어대는 사이비들 때문에 움츠려드는 요즈음, 하나님, 우리가 있음에, 기둥교회가 있음에, 소망이 있고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더 바르게 더 잘 믿고, 빛 되고 소금 되는 삶이 되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주일을 귀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환자, 군대, 객지, 외국에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기둥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기 원하면서도 형편과 사정이 달라 설교 테이프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 복된 가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을 주님이 세워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가정을 위하여 비옵나니 -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찬양과 기도, 말씀이 가득한 가정이 되게 하소서. - 감사가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날마다 웃음꽃이 피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서로가 지지하고 세워 주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예의를 가르치고 예의가 지켜지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사랑할 줄 알고 사랑 받을 줄 아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쉼이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부모와 자녀 간에 마음이 통하는 대화가 끊이지 않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이웃에게 열려 있는 가정, 세계로 열려진 가정되게 하소서. - 꿈이 있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서로 격려하며 위로하며 함께 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여러분 가정과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입술이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즘 며칠 동안 예수 안 믿거나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분들에게 아마 시달림을 많이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서울에 어떤 교회, 그 교회의 목사, 사실 그 사람은 자기가 속해 있던 교단에서 이미 몇 년 전에 목사직을 파직 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을 제재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 홀로 활동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서 선량한 목회자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평범한 성도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르게 믿어야 하고, 바르게 가르칠 뿐 아니라, 바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1990년 3월 31일자 LA타임지와 교포 신문에 특별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캐나다와 접경하고 있는 미국의 와이오밍 주 북쪽에 있는 몬태나 주에 있는 ‘만민승리교회(Church Universal and Triumphant)’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Universal’이라는 단어를 ‘만민’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만민’이라는 이름이 문제인지 그 교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원래 그 교회는 캘리포니아에 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몬태나 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것이 부천에서 인천, 서울로 옮기는 정도의 거리가 아닙니다. LA에서 몬태나 주로 가려면, 자동차로 화장실을 잠깐 들르는 것 외에 자지도 않고 계속해서 이틀을 가야 몬태나 주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부산까지 가는데 4시간 30분이면 간다고 하는데, 얼마나 먼 거리인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사했느냐 하면, 2,500명이 몬태나 주로 이사했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목사는 ‘엘리자벳 클레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이상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계시를 내려 주셨다. 곧 지구에 핵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1990년 3월 말까지 늦어도 4월 23일까지는 핵전쟁이 일어나서 온 지구가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와 만민승리교회 교인들은 살려주기로 약속하셨다. 그래서 핵전쟁에도 견딜 만한 땅굴을 파야 되니까 몬태나로 이사 가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만민승리교회 교인들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도 팔고 아이들의 학교도 자퇴를 시키고 몬태나로 2,500명이 이사를 갔습니다. 미국에서 한 주에 살다가 다른 주로 옮겨간다는 것은 나라를 옮겨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마다 법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그래서 운전면허도 다시 취득해야 합니다. 2,500여 명의 성도들이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도 다 퇴학시켜서 몬태나로 이사 갔습니다.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고신일 목사를 신뢰하십니까? 그러면 몬태나까지는 아니더라도 강원도로 이사 가자고 한다면 집도 내놓고 직장도 다 그만두고 아이들도 자퇴시켜서 가실 분이 계십니까? 웃지 마시고, 그래도 제가 ‘갈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면, 누구라도 손을 들어야 하지 아무도 안 들다니요. 아무튼 2,500명이 직장도 다 내놓고 이사 가서 핵전쟁을 피하기 위한 땅굴을 팠습니다. 큰 땅굴은 756명이, 짧게는 7개월부터 7년까지 견딜 수 있는 땅굴을 팠습니다. 핵전쟁이 나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한 땅굴을 팠습니다. 물과 음식도 충분히 준비해 놓고, 소·대변을 봐도 정화될 수 있도록 좋은 시설을 갖춰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땅굴에 들어간 그 입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 때 저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지 벌써 8년이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7년분의 식량만 땅굴에 비치해 두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에 나왔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결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이 핵전쟁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살려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왜 고신일 목사에게는 알려 주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멸망하시려고 작정하셨다면, 왜 그 사람들에게만 땅굴을 파라고 하셨을까요? 이 세상에는 이런 이상한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1. 종교의 종류 종교는 크게 4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이방종교: 이방종교는 기독교가 아닌 종교를 말합니다. 힌두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유교도 이방종교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사실 유교는 종교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① 신론: 신이 있어야 합니다. ② 인간론: 사람이 어떻게 존재했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③ 윤리론: 신과 인간과의 윤리, 인간과 인간과의 윤리에 대한 것입니다. ④ 구원과 내세론: 제한된 인생을 사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으며 영원히 살 수 있는가 하는 내세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교도 굳이 종교에 넣어야 한다면 이방종교에 속할 것입니다. 2) 세속종교: 세속종교라 함은 종교의 틀을 갖지는 않았으나 종교와 같은 그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 무신론: 신이 없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 불가지론: 알 수 없다, 어떻게 사람이 알 수 있느냐고 단정 짓는 것입니다. - 회의론: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한 것’을 말합니다. - 막시즘(Marxism): 지나친 공산주의를 말합니다. 3) 유사종교(오컬트-occult): 종교와 비슷하면서 종교가 아닌 것이 종교처럼 존재하는 것을 유사종교라고 합니다. 점성술, 무당, 유령, 최면술, 마술, 미신 등을 말합니다. 4) 이단종파(기독교이단): 기독교와 같은 색깔을 띠었으나 정통 기독교가 아닌 이단 종파를 말합니다. 그것을 ‘이단’(異端-다를 이, 끝 단)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성경으로 시작해서 비슷한 것 같지만 끝이, 결말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몰몬교, 통일교, 전도관, 영생교 등 집단을 말합니다. 또 개인적으로 이재록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 가운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특별히 한국에 이런 일들이 많은 것은, 제가 보기에는 쉽게 목사가 될 수 있고, 아무렇게나 집단들이 ‘목사’라고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제까지 이웃집 아저씨였는데, 오늘 갑자기 목사가 되고, 어제까지 옆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나 목사야.’라고 말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제가 속한 우리 감리교 교단은 목사가 되려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신학대학 4년을 졸업하고,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면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되려면 반드시 대학원에 진학해야 합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신학대학원을 2년 해야 하고,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대학원을 3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석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냥 받는 것도 아니고 목회를 시작해서 1년쯤 지난 후에 “성경, 신학, 논문, 자격심사, 품행통과” 이 다섯 가지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3년이 지나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그냥 다 목사는 아닙니다. 그때까지는 준회원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도 다시 2년 동안 똑같은 다섯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한 번도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고 진급해야 10년이 걸립니다. 그런데 중간에 한 번 떨어진 사람은 12년도 걸리고 13년도 걸립니다. 이렇게 어렵게 목사가 되는데, 어제까지 이웃집 아저씨였던 사람이 오늘 ‘목사’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고, 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 목사직을 파직했다고 해도 법으로 그 사람을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단이라는 것은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말하며, 그릇된 주장을 말하기 때문에 경고하고, 파직을 당해도 계속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가감하는 사람, 성경에 있는 말을 빼고 어떤 말은 첨가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가 계속해서 계시를 받는다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해 주신다고 ‘엘리자벳 클레어’처럼 말하는 사람입니다. 2. 이단의 정의 1) 어원적 정의 이단이란 말은 영어로 “heresy(헤러시)”라고 하는데 이는 헬라어의 “하이레시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말은 본래 “선택받은 자, 뽑힌 자”라는 뜻입니다. 2) 성경적 정의 ① 다른 예수, 다른 영(악령),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고후11:4) ② 그릇된 주장에 대해 거듭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이키지 않는 자(딛3:10) ③ 성경을 가감하는 자(계22:18-19) ④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제한하고 부인하는 자(요일2:22-23) ⑤ 지금도 계속적 계시를 주장하는 자(히1:1-2, 엡3:3-4) 성경 아닌 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하는 자입니다. 3. 이단 종파들의 공통점 1) 발생모체(發生母體)는 기독교입니다. 성경에서 모방하고, 기독교적인 여러 조건들을 모방하여 적용합니다. 2) 기성교회(현실교회)를 비판합니다. 기성교회, 현실교회들을 모두 타락했다고 말하고 부정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종교에만 와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3) 열광주의적인 신비체험을 강조합니다. 영적인 특수체험, 곧 입신, 방언, 접신, 환상, 신유, 진동, 도통 등의 신비하고 격렬한 체험을 과도하게 자랑합니다. 기둥교회 방송실 직원들이 저를 보고 ‘목사님 우리도 뒤에 이상한 현상을 만들 수 있는데 한번 해볼까요?’라고 묻습니다. 여러분 기둥 교회도 그런 현상을 나타낼 수가 있다고 합니다. 4) 교주를 신격화하여 숭배합니다. 사이비 이단들은 교주를 신격화합니다. 여러분, 목사를 귀히 여기고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고 그래야 하지만 그러나 신은 아닙니다. 고신일 목사도 참 겉만 멀쩡하지 별 볼일 없습니다. 검버섯이 안 생겼나, 또 매일 아파서 비실거립니다. 나는 아픈데 아프다고 와서 기도해 달라고 해서 기도해 주면 그 사람은 낫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똑같은 증세로 왔는데 기도해도 낫지 않습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얘기하다가 토라집니다. 누구는 낫게 해 주고 누구는 안 낫게 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제가 합니까? 사도 바울도 자신이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나았는데 자신은 병든 환자였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하면서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5) 독선적 구원관을 주장합니다. 이 이단 종파들은 자기들만이 특별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와야만 된다는 주장을 합니다. 5. 이단 종파들에 대한 종합 1) 비성서적 비신학적입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비성서적이고 비신학적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 위배된다는 말입니다. 신학적으로도 맞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 비윤리적 반사회적입니다. 도덕성이 없습니다. 3) 현실도피자 주의자들입니다. 4)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빛 된 삶을 사는 것을 거절합니다. 역사 세상 사회와 담을 쌓고 자기들만의 세계를 지향하는 경우입니다. 성경에 ‘너희가 세상에 살면서 빛 되고 소금 되어서 다른 사람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희가 착한 행실 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기둥교회 장로님들에게, 또 다른 교회에서 임원교육을 할 때도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성경말씀을 많이 읽고 건전한 믿음을 가졌다면 이단이 이곳 강단에 와서 설교한다고 해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제가 이상한 소리를 해도 믿을 사람이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런 교회가 건전한 교회, 든든한 교회입니다. 저는 장로님들에게 “장로는 권위나 세우고 대접이나 받으며, 목사를 견제하는 직분이 아닙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분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가르쳐지는지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장로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장로는 교회를 지키는 분입니다. 교회의 건물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교회 같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가 되기 위해 기도하며 직분을 감당하는 분들이 장로님들입니다. 장로는 목회자를 지키는 분입니다. 무슨 경호원을 세워서 목회자를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기도하고, 말씀을 준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바르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건을 살피고 돌봐주는 분들이 장로님들입니다. 교회에서 바르게 배운 평신도들이 성경 말씀에 굳게 서 있고 교회를 바르게 지키려 하고 목회자가 바르게 목회하도록 돕는다면 잘못된 이단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제가 믿기는 기둥교회 장로님들이나 성도들은 말씀의 터 위에 굳게 서 계신 분들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러 가지 ‘기사’와 ‘이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틀림없이 기사와 이적은 있습니다. 저 자신도 병 고침의 경험이 있습니다. 신유의 체험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해 줄 때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모든 궁극적인 권위의 원천, 교회 안에서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이 하는 일에 최고의 권위를 둔 것은 “성경”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어도 성경에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은 “모든 것의 권위의 원천은 성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웨슬리(Wesley)는 그의 1766년 6월 5일 일기에서 “나의 근거는 성경이다. 그렇다. 나는 성경고집쟁이(Bible-bigot)이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것이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성경을 따른다.”라고 했습니다. (“My ground is the Bible. Yea, I am a Bible-bigot. I follow it in 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 전통적으로 신학의 자료는 - 권위적인 자료(authoritative source), 1차적 자료: 성경(Scripture)와 - 보조적인 자료(subsidiary source), 2차적 자료: 전통(Tradition)과 이성(Reason)과 체험(경험, Experience)입니다. 성경(Scripture): 성경이 제일 위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나오신 줄 믿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고 여기에 나오신 줄 믿습니다. 전통(Tradition): 그 다음에 전통이 중요합니다. 전통도 교회 역사 흐름의 그런 전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기독교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잡혀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에 밀라노(Milano) 칙명을 발표하고 기독교를 해방시켰고 기독교를 공인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 박해받던 예수 믿던 사람들이 땅굴 속에서 숨어서 믿다가 밖으로 나와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차츰 차츰 이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325년에 니케아(Nicaea)종교회의를 거쳐서야 잘못된 이단을 단죄하고 기독교의 교리가 성립되었습니다.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325년 이전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사도들과의 연대가 가깝고 또 그때까지는 교회가 분리되지 않은 한 목소리를 내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과 기독교의 전통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성(Reason):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습니다. 진리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경험하게 하는 그런 이성을 주셨습니다. 판단을 주셨습니다. ‘아, 성경말씀에 비추어 보니까 이렇구나. 교회 전통에 비추어 보니까 이렇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렇구나.’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체험(경험, Experience): 신앙생활은 체험적인 신앙입니다. ‘내가 믿어보니까, 내가 말씀을 들어 보니까, 내가 응답받으니까.’라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그런 성도들인 것을 믿습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보에 나온 설교 제목은 “2000마리 돼지 대 1명의 사람”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의 설교를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도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돼지 2000마리를 물속에 처박아 죽게 하고 한 영혼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하자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런데 세상에 이상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면서 우리가 전도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자 마음먹었던 사람들의 마음 문을 닫게 만듭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예수님 당시에 돼지 2000마리는 엄청난 재산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2000마리의 돼지를 물에 집어넣었습니다. 죽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힘들고 어려워도 복음 전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전도하는 일에 여러분이 최선을 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마음 아파할 것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의인 10사람만 있으면 멸망당하지 않았을 텐데 의인 10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제가 분명히 믿기는 우리 기둥교회가, 기둥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찾지 못했던 ‘의인 10사람’과 같은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들인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바르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눈물을 뿌리며 가을의 추수를 위해서 씨 뿌리는 농부들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전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에이 이것 틀렸어. 그것들 다 똑같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지역에서 나오는 생선에서 병균이 발생했다고 해서 평생 동안 생선을 안 먹겠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지요. 사과상자에서 썩은 사과 하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사과를 평생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바보 아닙니까? 부천도 공기가 나쁩니다. 공기가 나쁘다고 해서 코를 막고 숨을 안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단자도 있고,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장면들이 펼쳐졌다고 해서 여러분의 신앙을 접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도를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도를 금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 기도하고, 바르게 믿고,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살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지난 심야기도회 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이 기도하는 자리에 많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고 야단을 쳤습니다. 왜냐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오히려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울지언정 슬프고 안타깝고 답답한 일을 만나서 울면 되겠습니까? 물에 처넣어 죽여 버린 돼지 2000마리보다 한 생명이 그렇게도 귀했다면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 기둥교회 인사가 이때에 가장 중요한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예배에서, 주일성수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에서, 사람들이 비난하고 손가락질해도 여러분, “주 안에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말씀으로 승리자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큰 역사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데에 우리를 쓰시고, 우리 기둥교회를 써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 안에서 범사에 말씀으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돼지 2000마리 보다 한 생명을 귀히 여기셨던 하나님, 한 생명을 위하여 돼지 2000마리를 물에 처넣으신 주여! 오늘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여기 모여 예배드립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시옵시고, 빛 되고 소금된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심령 심령들마다 힘 주시고 능력을 주시옵소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신일 목사(부천 기둥교회)
2001년 성탄 목자는 접니다/눅2:8-20
2001년 성탄 목자는 접니다/눅2:8-20 2003-10-02 21:21:34 read : 2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도 여러 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중에 예수님의 탄생을 경험한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그 아기 예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예! 목자들입니다.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주님을 목격한 사람들입 니다. 성경은 목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단순하게 목자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조심스럽게 이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난 이유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게 목자들의 세가지 행동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목자들은 성실하였습니다. 본문 8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목자들이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실성을 의미합니다. 밤은 보이지 않습니다. 허술해도 괜찮습니다. 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경에서 밤은 영적인 어둠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요나는 어두운 뱃속에서 고통을 겪었습니다. 목자들은 이런 영적인 고난 속에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목자들의 성실성입니다. 사실 성실성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실한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제일 먼저 교회 나가면 동네 청소를 합니다. 주변 청소를 아무도 하 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쓰레기 봉투가 수원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심재덕 수원시장님에게 멜을 보내서 쓰레기 봉투를 달라고 하니까 안주더군요. 여하튼 청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맨 처음 동네분들이 못 믿는 것입니다. "쇼하는 구나!" 그런데 계속했습니다. 그러니 요사이는 달라지는 것이예요. 눈에 신뢰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사무엘이 왕을 세우기 위해 이새에게 갑니다. 이새의 아들을 부르지 않습니까? 아들들이 소식을 듣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엉뚱 한 질문을 합니다. "여기에 당신의 아들들이 다 모였습니까?" 그러니 "아! 막내는 지금 양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데려오게 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다윗은 양을 지키는데 성실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쓰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우리를 찾으십니까?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합니다. 믿음 생활 열심히 할 때 만 좋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실하게 사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할 때도 언제 부른 줄 아십니까? 막1장 16절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있을 때 그들을 부르셨고, 19절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배 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성실하게 행할 때 주님께서 부르신다는 것을 기억 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 시간이 빈둥빈둥 나서 그런 줄 압니다. 아니에요. 시간이 남으면 인간은 다른 쪽으로 머리가 돌아갑니다. 믿음생활 열심히 하는 분들은 세상일도 바쁩니다. 그러면서 봉사하는 것이에요. 부부 생활 중에 진짜 거짓말은 은퇴하구 나서 세계여행이나 하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공감합니다. 교회를 섬길 때 시간이 많이 나서 아닙니다. 어떤 분은 시간이 나면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아니에요. 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입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은 바쁜 분들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입니다. 뒤에 간판을 보세요.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하신다" 이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믿음의 세계를 모르면 혼자 허우적대다가 지쳐 쓰러집니다. 성실하게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실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제가 교육 전도사님으로 봉사할 때였습니다. 한 선생님이 찾아 왔습니다. "전도사님! 내년에 교사를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그러는거에요. 그래서 "왜요?" 여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자 그러면 바쁠 때 제일 먼저 내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까?" 그러면 내려놓으세요. 자격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1년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여러분 저희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맡은 직분은 목숨을 걸고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성실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목자들은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주의 사자가 나 타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크게 무서워합니다. 목자들은 평범하였는데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다고요? 성실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킬 정도로 책임감이 있고, 희생의 의미를 알고, 땀을 흘릴 줄 아 는 목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실한 목자들에게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둘째는 목자들이 예상외로 결단성이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주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갔을 때 목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신기한 체험했네."라고 하면서 그냥 앉아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 "베들레헴에 가서 보자"라고 말하며 그곳으로 출발합니다. 성실함이 있으면 반면에 결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 때를 놓치면 안됩니다. 양떼를 지켜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큰 결단이 필요한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본문 16-17절 말씀을 보십시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물론 양떼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더 중요한 일을 놓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양떼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믿음의 진보가 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신앙의 결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현장은 자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기예수를 만나는 것은 평생 한번입니다. 기회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급히 부르시는데 주저 한다면 우리는 변화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제 개인적으로 볼 때 목회를 하면서 가장 필요한 부분중의 하나가 결단성인 것 같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도 결단을 해야 합니다. 수많은 부분에서 결단이 필요합니다. 농담 삼아 신학교를 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신학생들은 다 미쳤다고.. 그래서 저 혼자 항상 광나루 정신병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과감한 결단을 한 젊은이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쓴 것이라는 확 신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막1장 16-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지나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 물 던지는 것을 봅니다. 그때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하니까 그들이 어떻게 합니 까?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습니다. 과감한 결단력입니다. 막1장20절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는 장면은 더욱 극적입니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삯군과 함께 누구를 버립니까? 아버지를 버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강조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결단성을 보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분명한 결단 성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우유부단한 사람이 있습니까? 기질은 달라도 과감한 결단력만은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평소에 사랑을 나누며 사는 것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을 위해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결국 믿음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위해 결단하는 것이 믿음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과연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것이라도 버릴 결단이 있 어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삶은 단순해져야 합니다. 단순해져야 힘이 생깁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은 내일을 하신다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목자들은 성실했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를 만나기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의 탄 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번 성탄절을 맞이하여 분명한 결단성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셋째로 목자들은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렸습니다. 목자들이 천사의 음성을 듣고 급히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가서 모든 상황을 듣고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목자들이 무엇을 보았습니까? 멋있는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초라합니다." 메시야인 그리스도가 겨우 마굿간 신세라니..". 아마 겉모습을 보면 실망했을 것입니다. "양떼를 버리고 달려온 분이 이 정도라니..". 그러나 이들이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오늘 말씀처럼 듣고 본 바대로 인정한 것입니다. 천사들이 찬송은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입니다. 말씀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헤롯은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곳을 찾으려고 애를 쓴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말씀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감사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생각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 하셨습니까?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 쉽지 않아요.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순교를 당하고 고난을 다합니다. 왜 믿음 생활이 어려운 줄 아십니까? 항상 늘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시적인 감사와 찬양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꾸준히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든지 말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고민이 되서 한번은 목회를 잘하시는 목사님에게 여쭈어 본적이 있습니다. 공식이 있습니다." 대개 교인들이 병이 들면 반쯤 천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한 고난 을 당하면 천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고난이 없어지면 감사의 마음이 없어집니다. 어떻게 해야하지요" 그랬더니 그러시는 것입니다. "그냥! 한달 정도라고 생각해! 하나님께서 살려주어도 한 달이 지나면 잊어버려!" 그러는 것입니다. 결국 영적 싸움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체질을 매일 감사하는 체질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 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말씀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척박한 마굿간에서 탄생하시기로 말씀되어 있습니다. 말씀대로 믿으십시오, 그래야 본대로 들은 대로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성탄절을 앞에 두고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이라도 오늘 목자들처럼 감사 와 찬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교회는 내가 원할 때 나오고 안나오고 그런 곳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감사를 하는 노력하는 장소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목자는 아주 평범한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만이 아기예수를 보 았습니다. 우리도 이제 2001년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무엇이든지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일도 ,하나님의 일도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양떼를 지키는 목자처럼 말입니다. 둘째, 결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결단성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어떠한 형편이던지 내게 아기예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따라 해보십시오, "2001년 성탄 목자는 접니다"
21세기 한민족을 끌고 갈 지도자/ 렘17:5-11
21세기 한민족을 끌고 갈 지도자 렘17:5-11 나는 오늘 여기에 위대한 자유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오늘 여기에 위대한 평화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오늘 여기에 위대한 소망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온 나라에 세계가 50년간의 독재자 김일성의 사망소식에 온통 경악하고 있습니다. <참 지긋지긋하게 오래도 살았군><그렇게 가는 거 정상회담이나 해서 이산가족의 문제나 해결해 놓고 가지>... 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튼 밤 새면서 세계의 언론과 여론이 뒤끓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에 전미국대통령 지미카터씨를 만나 10년을 더 살겠다고 호언장담하더니 결국 사막의 떨기나무같이 이 인생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그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리라> 33살의 나이에 절대권좌에 앉아 49년을 장기집권을 하며 6.25 동족상잔의 비극의 주인공인 그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이산가족의 아픔을 주고 죽음과 고통을 주고 숙청과 처형을 한 절대 부패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죽음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 소유니 권력이니 권좌니 주석이니 수령이니 원수니... 이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강반석 믿음의 어머니의 아들이었던 그가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20세기의 바로, 20세기의 탕자로 끝났을까. 그래서 그분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뭔가 감을 잡긴 잡았는지 이곳 저곳에 화해와 회담을 열심히 시도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기회마저도 그분에게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는 돌고 가는 바람처럼(전 1:6) 흐르는 강물처럼(전 1:7) 날아간 겨 같이(시 1:4) 끝나 버렸습니다. 김일성이 이 민족에게 준 교훈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적으로 지배자가 아닌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배자 홍수의 시대에 지도자 빈곤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지도자, 하나님 지도자, 하나님의 복을 민족속에 불러올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사는 사람을 기다리고 사회는 지도자를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지도자의 손에서 일어납니다. 그 민족이나 그 집단의 앞날과 삶의 질은 바로 지도자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멸망하는 사회는 저주받은 지배자들이 만들고 혼탁한 세상은 혼탁한 지도자들이 만듭니다. 그 기업의 질은 그 기업사장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도 그 지도자의 질만큼 되는 것입니다. 왜 북한이 저렇게 돼습니까? 지도자의 질이 저질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 그 사회의 정신을 누가 형성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만이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 사회를 도덕적으로 단결시키는 상징적인 구심점의 역할도 누가 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지도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 사회를 생명력있게 하나로 묶는 응집력의 가치관 제시를 누가 합니까?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지도자만이 가능합니다. 국민의 편협한 선입관이나 분열과 갈등에서 헤어날 수 있는 이정표를 누가 제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받은 지도자를 가진 민족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한 가정이든, 한 집단이든, 한 민족이든 수십년간 세계를 이끌고 가는 주도해 나간 민족의 배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들이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환멸과 고통으로 가득찬 이 세상속에서 오직 천국 지향형의 인생관을 가지고 육신의 안락과 이생의 안목을 떠나서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 붙들고 그 시대의 백성에게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도록 용기를 주었고, 죽음의 정글에서도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인류를 감동케 했습니다. 이 시대 모든 사람의 본이 되는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에 취한 지도자들이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의 사랑받는 지도자들이 다 들 어디에 있는가? 다 들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타임지가 내 걸었던 주제입니다. 지구상에서 멸종의 위기에 처한 생명체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눈을 떠야 합니다. 21세기가 오기 전에 인류의 기본적인 위험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학자들은 대개 3가지로 집약된다고 합니다. 첫째, 핵 전쟁 전에 우둔한 기술자의 실수로 핵사고가 나서 인류가 전부 파멸할 것이다. 둘째, 세계적인 질병이 일어날 것이다. AIDS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전염병의 형태로 오는지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의 형태로 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더 큰 셋째 문제는 지도자의 질이 문제다. 그 시대 백성의 삶의 질은 우리 지도자들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지도자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질의 지도자들이 모든 국가에서 판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가슴 아픈 얘기고 충격으로 들어야 할 얘기인데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큰 일입니다. 세상 어디를 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폐수처럼 흘러넘친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 인간은 지도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른 지도자들이 다 어디에 갔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 지도자의 축복이 하나님의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복을 받은 지도자나 왕이나 선지자를 가진 나라는 일어났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은 지도자를 가진 시대는 고난과 역경이었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이 큰일을 바라 보면서 정말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임을 실감합니다. 나라의 지도자들, 기업의 지도자들,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들, 가정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흔히 자신의 진영에 있는 장군의 장막 안에서 결정된다고 합니다. 강이 오염되면 물고기는 자기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다 떼죽음을 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지도자는 보이지 않고 타락한 지도자들만 우글거리는 사회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타락한 지도자들이 폐수처럼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환겨오염으로 사라져 가는 생태계 처럼 어지러운 사회환경 타락한 사회 환경을 누가 만듭니까? 타락한 지도자의 책임입니다. 백성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지도자, 자식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아버지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주여! 이 민족과 이 백성에게 두번 다시 탕자 같은 지배자의 출현이 없게 하옵소서!>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넘어가지도 마십시오. 바른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을 얻기 전에, 자신의 저질화 현상을 막는 작업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어떻게 저질화되는 것은 알지 못하고 그저 많이 소유하고 많이 얻기만 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복을 받기를 좋아하지 십자가니 고난이니 고통이니 이런 것은 싫어하는데 그러면 안됩니다. 성령은 사람의 감정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앞에 왜 나왔습니까? 복 받으려는 것은 두번째 문제고 그릇되려고 나와야 합니다.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사업가로서 성도로서 경건해지려고 나온 것입니다. 깨끗해지려고 나온 것입니다. 달라지려고 하나님앞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받은 미국이 독립헌법을 만들기 위해 200여년을 필라델피아에 모였습니다. 그때 미국인구는 300만명 밖에 안됐습니다. 그러나 6명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하늘의 능력을 탐내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6명이 있었습니다. 조지워싱톤, 토마스제퍼슨, 해밀튼, 메디슨, 아담스, 프랭크린 저들은 유럽의 타락한 지도자들 보다 그 수준이 월등히 높았스비다. 결국 역사의 축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왔습니다. 21세기 한민족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끌고 갈 지도자의 출현 이것은 모든 믿는 이가 깨달아야 할 비밀입니다. 지구촌이 한 마당이 되어 날로 좁혀지며 변화되고 개혁되고 있습니다. 우선 지도자의 저질화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기업가의 저질화, 종교 지도자의 저질화, 부모의 저질화, 자신의 저질화 현상을 막아야 합니다. 성서가 주는 진리는 백성의 고통과 고난은 지도자의 실수와 미숙함과 욕심과 전망의 부족과 폐쇠성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릇되게 하는 것은 아주 모르는 것보다 더 해로울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유럽의 세기가 가고 미국의 세기도 지나고 지금 일본의 세기가 시작되었다. 곧 이어 한국의 세기가 오리라. 여러분! 과연 이렇게 될까요? 쉬운 승리는 없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힘입고 모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무리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지도자를 가지면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란 누구입니까? 미래가 형성되고 있는 최전선에서 역사의 정찰병같이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렘 17:5-11)은 이번 주 성전터를 닦는 곳에서 주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나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 리라. 만물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말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렘 17:5-11)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러오신 여러분!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을 들으세요. 1. 사람과 혈육과 권력을 믿지 말라 2. 나 여호와를 떠나 이런 헛된 것들을 믿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3. 하나님을 떠난 자는 다른 새가 알을 품어 부활시켰던 자고새처럼 결국 버림을 받는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받는 복은 1.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2. 뿌리가 강변에 뻗치고 3. 어떤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고 4. 잎이 청정하고 5.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6. 그 결실이 그치지 않는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강물보다, 바다보다, 쓰레기 더미보다 인간의 심령이 더 더럽다는 것입니다. <주여!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게 하옵소서> 보라 새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나리라
21세기를 큰 믿음으로/ 삼상17:41-50
21세기를 큰 믿음으로 삼상17:41-50 온 세계는 21세기를 앞두고 긴장 과 두려움과 흥분과 기대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 기 업, 학문, 예술 등 모든 분야가 21세 기는 분명히 새로운 천년, 새로운 시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한 세대가 오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20세기도 엄청난 변화의 세기였 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 늘의 모든 것들은 그 전에 볼 수 없 었던 것들이 최근 백년 사이에 아니 한 오십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들입 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반도체 나 휴대폰이나 컴퓨터나 인터넷이나 광통신이나 인공위성이나 비행기나 이런 것들은 그전에는 전혀 볼 수 없는 것들이 몇 년 안에 우리 삶의 전체를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 안에 있는 TV나 냉장고, 세탁기나 오디오 제품들, CD나 음식을 넣으 면 당장 덥혀지는 전자렌지 등 이런 것들은 그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입니다. 21세기는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고 또한 그에 적응해 야 되고 어떠한 시대가 될지 알 수 없는 심히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 기도 한 시대입니다. 대학도 2005년 이 되면 경계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지금의 대학이라는 개념이 없어진다 고 합니다. 여기서 어느 대학에 간 다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다 한 대학으로 지식과 학문과 정보를 공 유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21세기는 교통수단도 엄청난 변 화가 와서 여기서 미국까지 아침에 갔다가 오후에 오는 것이 10년 이내 로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도 지상으 로 갈지, 바다 속으로 갈지,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신비한 시대!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1세기에 여러 분은 어떤 직업, 어떤 가정, 어떤 사 업을 꿈꾸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 이 운영하는 그런 사업들은 다 없어 지고 새로운 사업들로 꽉 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어떤 기업에서도 \\\\\\\'오늘을 이야기하지 말 라\\\\\\\'고 한답니다. 오늘은 이미 무식 한 거예요. 오늘은 이미 지나간 거 예요. 그전에는 한 번 배우면 평생 지성인이지만 지금은 오늘의 것을 내일 쓸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을 이 야기하라는 거예요. 우리는 21세기를 어떻게 살아가 고 무엇을 해야 하고 우리 할 일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 으라.\\\\\\\"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그의 보내신 아들이 나의 구주가 되셔서 그의 피로 구속 함을 받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 음으로 살아가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요, 성공하는 길이요, 승리의 길 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마치 릴레이를 하는 경주 자와 같습니다. 100m, 200m를 달릴 때에 경주자는 자기 코스, 자기 라 인을 벗어나면 안되듯이 신앙도 그 렇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으면 아버지로 믿지 않았을 때와 는 길이 다릅니다. 믿음 안에서 움 직여야 합니다. 사업을 하든지, 결혼 을 하든지, 가정이든, 기업이든, 생 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 보는 것 까지 항상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 다. 그 전에 살아온 것은 믿음을 떠 난 삶이요.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 로 믿고 살아가는 길은 새로운 길입 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 다. 이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믿음 을 떠난 생명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영생의 길이 아닙니다. 이 제 믿음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 나님은 믿는 자를 쓰시고 사랑하시 고 믿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네 믿 음대로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 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 들이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지 않습니까? 12명의 정탐꾼을 모세는 가나안에 들여보냅니다. 열 명이 돌 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불신 앙의 이야기를 합니다. 불신앙이라 고 해서 인간적으로 무식하다는 뜻 도 아니고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보고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내셨다고 하는 믿 음으로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보지 않고 믿음으로 듣지 않았다는 것입 니다. 믿음을 떠나서 인간의 눈으로 보 니까, \\\\\\\"아, 우리는 갈 수 없습니다. 그 나라는 굉장히 광대한 나라입니 다. 성은 굉장히 견고하고 그들의 군대는 강합니다. 우리는 메뚜기만 도 못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섭 섭하시겠어요? 그러나 두 사람 여호 수아와 갈럽은 그렇게 안 보았어요. 믿음의 눈으로 보았어요. 우리를 여 기까지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이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믿음 으로 보니까 아름다운 땅이에요. 믿 고 보니까 너무너무 소망이 넘치는 거예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에요. 믿음으로 보니까. 우리가 가느냐 안가느냐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 어집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은 그 땅을 어떻게 보았어요? 그 땅 은 우리밥이라고 보았어요. \\\\\\\"우리 밥이라\\\\\\\"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밥이다. 밥상이다. 하나님이 좋은 땅을 우리를 위해 차 려 주셨다. 준비해 주셨다. 우리는 갈 수 있다. 이렇게 보았어요.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렇게 말합 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중 눈의 아 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 이 옷을 찢고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 다\\\\\\\" 아름답다라는 거예요. 좋게 보 는 거예요. 신앙의 눈은 이렇게 아 름답게 보이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 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 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소망을 가지고 좋게 보았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셨다고 보았어요. 믿음은 하나님을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으로 보고 하나님의 선물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으 로 보는 자는 하나 하나를 다 다르 게 봅니다.\\\\\\\"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이방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 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 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 려워 말라\\\\\\\"이렇게 말합니다. 불신앙은 항상 모든 것을 육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 평가를 인간의 기준으로 보는 것입 니다. 질량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보 고 과학적으로 봅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앞에 것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캄캄할지라도 하나님이 축복하 시면 빛이 비칠 것을 믿고, 내가 오 늘 어떤 불치의 병이 있을지라도 하 나님이 고쳐주시면 넉넉히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크 게 보고 문제를 작게 보는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눈으로 보 는 것입니다. 신앙은 밥으로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멀리 보는 것입니 다. 어떤 것이든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도 좋게 보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험도 이 시험이 나로 정금같이 쓰임 받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는 시 련으로 보기 때문에 모든 시련과 환 난과 재난에 대해서 낙심하지 않습 니다. 우리 나라도 보면 21세기에 걱정 이 태산 같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나라 위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나라는 세계 최강대국 네 나라 가운데 세 나라가 우리를 둘러 싸고 있습니다. 아마 그런 나라가 이 지상에 없습니다. 중국의 12억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우리를 대 적하는 나라로 살아 움직이고 있습 니다. 몇 십년 동안 공산주의에 잠 들어 있던 나라인 중국이 지금 일어 나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려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21세 기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지배한 다고 하는데 중국은 미국을 앞선다 는 학자들의 발표가 더 많습니다. 이런 나라가 우리 이웃에 바로 붙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계 경제 대국인 일 본이 있습니다. 일본은 여러 면에서 우리 나라와 경쟁이 되지 않는 나라 입니다. 또 세계 최고 군사강대국인 소련이 바로 인접해서 붙어 있습니 다. 여러분, 남미나 아프리카나 유럽 을 보세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 는 작은 나라가 많이 있지요. 그러 나 이처럼 세계에서 제일 강한 세 나라를 앞에 두고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섬도 없습니다. 우리 나라와 같은 나라는 한나라도 없어요. 강대국의 한쪽 귀퉁이 같이 이 작은 나라가 우리 한국입니다. 인구도 비교가 안되고, 지하자원도 없고, 군사적으로도 비교가 안되고, 경제적으로도 전혀 게임이 되지 않 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나라가 나누어져 있 습니다. 우리가 다 합쳐도 7000천만 인데 지금 중국의 한 성도 못 따라 가고 그것마저도 나누어져 있습니 다. 정치적으로도 불안합니다. 이렇 게 보면 우리는 정말 절망 할 수밖 에 없습니다. 그 전에 중국이 가난 했을 때는 모르지만 지금 중국이 경 제적으로 움직이면서 우리가 수출하 던 나라에 수출하고 우리와 같은 제 품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 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 세 나라가 과거에 적어도 1000년 동안 우리를 괴롭힌 나라들입니다. 한 나 라가 우리를 한 번 삼키고 나면 또 저 나라가 삼키고. 저 나라가 삼키 고 나면 중국이 삼키고 중국이 삼키 고 나면 일본이 삼키고 소련이 삼키 면서 온갖 고통과 환난과 재난을 이 민족에게 안겨준 이 세 나라입니다. 정말 우리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하셨습니 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고 어떤 것 으로도 경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서 그 나라들을 이상하게 자기들끼 리 어떤 대치를 하게 하고, 또 이 나라를 여러 면으로 자기들이 쉽게 점령할 수 없게 만들어서 이 나라를 지금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문제는 복잡한 것입니다. 누구도 풀 수 없게 하셨 습니다. 어느 강대국 한 나라도 풀 수 없고 세 나라도 풀 수 없고 네 나라도 풀 수 없는 아주 이해관계를 요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가지고 지 금 보존시키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릅 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이 민족을 버리지 아니하시면 우리 는 승리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극 장에 가서 제일 감동을 받는 것은 애국가를 부를 때 \\\\\\\"하나님이 보호하 사 우리나라 만세!\\\\\\\"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안 날 때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극장엘 안가니까 잘 모르지만 옛날에 <벤 허>를 보러가니 시작하기 전에 하 나님이 보호하신다고 나오는 것이예 요. 이 애국가가 나온지도 얼마 안 됐지요. 그래서 지금 다른 종교에서 는 애국가 바꾸자고 한대요. 동해물 과 백두산이 하다가 그만 그 후렴할 때는 안 부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호하는 민족. 하나님 이 함께 하는 민족. 이것이 이 민족 의 소망이요 힘이요 축복인 줄로 믿 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길이 있고 좋게 보이고 오히려 그런 사이에서 이 민족을 들어쓰시 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이 민족을 들어쓰시는 하나 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 으로 보면 더 좋은 조건이 될 수 있 습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신 모든 성도 여러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중국이 나 소련이나 일본을 오히려 하나의 큰 시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의 대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 이 우리를 축복해 주셔서 경제가 성 장하고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 내 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국사람에게 마약을 복용하게 하시고, 술이나 많 이 먹고 담배나 피워 머리가 둔해져 서 좋은 제품을 못만드는 대신에 이 민족에게는 예수 잘 믿어서 지혜를 주시어 우리가 만들어 가지고 시장 으로 만들면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 하는 것보다 바로 자동차에 실고 옮 기니까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것 입니다. 일본이나 소련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말 이 민족이 하나님만 잘 경외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지혜있는 민족이 되어서 제품을 잘 만들고 하나가 되면 우리는 얼마든 지 그들을 시장으로 삼고 그 민족을 통해서 우리 나라는 더욱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신앙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보아야 됩 니다. 믿지 아니하면 이 나라의 존 재는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이 민족과 함께 하 시면 오히려 이스라엘을 강대국 사 이에서 더 귀하게 하듯이 이 민족을 하나님이 높여 주실 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이스 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시에 일 어났던 일입니다. 블레셋이라고 하 는 나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 어가기 전부터 이스라엘 서해안 지 역에 수 백년 동안 자리잡고 있는 강력한 민족입니다. 이 블레셋이라 고 하는 민족은 아주 문화가 발달한 민족이고 군사력으로도 대단한 민족 입니다. 이스라엘이 항상 블레셋에 백전 백패했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자녀들을 잃었 고 사울왕도 아들들과 함께 블레셋 과의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구약의 여러 사람이 블레셋 사람에게 죽었 습니다. 삼손이라 하는 자도 블레셋 에 가서 두 눈이 빠져서 죽습니다. 항상 이스라엘과 수 백년 동안 전쟁 을 해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 이 블레셋입니다. 이 블레셋에 오늘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군이 소고라고 하는 성에 나 와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을 치고 큰 소리를 지릅니다. 골리앗은 키가 6규빗 하고 한 뼘이에요. 한 규빗이 45cm이니까 얼마나 됩니까? 거의 3m에 가까운 거인입니다. 그리고 갑옷을 입었는데 갑옷의 중수가 5000세겔이에요. 3000세겔이 35kg이 니까 5000세겔이면 57kg정도 되니 갑옷무게가 얼마나 큰 장군입니까? 골리앗이 가지고 있는 창날만 해도 철이 600세겔이에요. 우리는 신라시 대에 토기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신라보다 1200년, 1300년 전인데도 이러한 갑옷을 입고 철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하고는 비교 가 안되는 민족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서 블레셋에 서 만든 도자기를 보니까 얼마나 머 리가 좋은지요. 지금부터 3500년 전 에 만든 도자기가 아주 무늬가 선명 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이 처럼 세계를 향하여 무역하는 강대 한 나라의 장군인 골리앗이 거기에 나와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을 쳤 어요. 에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이 스라엘을 향하여 소리지르니 전부 두려워합니다. 작전회의도 안되고 구사회의도 안되고 나라가 안보회의 를 아무리 해도 이 골리앗과 블레셋 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그때 누가 나왔습니까? 다윗이라고 하는 어린 목동이 전쟁 중에 있는 형들에게 먹 을 것을 가져다주러 면회하러 갔다 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사울왕은 모든 방법이 없기 때문 에 나중에 제시한 것이 누구든지 이 골리앗을 이기면 내 딸이라도 주겠 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소중한 딸을 내어놓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이 전 시에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때에 다 윗이 나아가서 보니까 이스라엘은 모두 전쟁을 포기하고 기가 죽어 있 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그러니까 골 리앗 때문이라고 합니다. 골리앗이 누구냐고 하니 블레셋의 큰 장군이 라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다윗 은 아니 할례 받지 아니하는 이방사 람을 왜 두려워하느냐고 소리를 질 렀습니다. 형들은 얘가 무슨 소리하 는 거야, 넌 집에 가있어 하고 소리 지릅니다. 네가 전쟁도 모르면서 양 을 치다가 와 가지고 무슨 소리냐고 집에나 가라고 양이나 먹이라고 너 먹이든 양은 어디있느냐고 형들은 다윗을 책망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달려듭니다. 아닙니다. 하나 님이 나를 사자의 발톱에서도 건져 주셨습니다. 양을 칠 때에 사자가 와서 양을 잡아가면 내가 끝가지 따 라가서 사자의 입안에 있는 양을 빼 앗아 왔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하 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사람을 왜 두려워해요? 허락을 받아서 전쟁 터에 1:1로 골리앗과 대치합니다. 골 리앗은 다윗을 보고 비웃습니다. 네 가 나를 개로 알고 막대기를 가지고 왔냐? 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다윗 은 너는 믿는 것이 너의 창이고 너 의 갑옷이고 너의 힘이고 너의 능력 이다. 너는 네가 전부다. 그러나 나 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나의 믿는 하나님은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 라. 나는 너의 목을 베어서 들짐승 에게 주고 새들에게 먹이로 만들겠 다. 골리앗을 향하여 물맷돌을 가지 고 던져서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 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 니다. 이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 다. 위대한 이스라엘 역사의 최고의 인물이 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목동 다윗입니다. 아무것도 전쟁에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없지만 하나님 을 믿는 그 믿음이 나라를 건져내고 자기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주었 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앙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을 오늘도 찾고 있는 것입니다. 1809년 2월 12일 캔터키 산골에 링컨이라는 어린아이가 가난하게 태어났지 않았 습니까? 이 아이가 전 미국을 향하 여 세계를 향하여 큰 인물이 되리라 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 었습니다. 이 믿음이 미국의 남북전 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전 미국을 하 나로 만들어 오늘날 미국을 건질 뿐 만 아니라 온 세계의 민주주의에 횃 불을 들어준 분이고 온 세계에 존경 받는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 니다. 그는 목동 다윗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떠나서 가난 하여 배운 것 하나 없었지만 믿음이 놀라운 일을 하게 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도 이 나라의 앞 날도 학자가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 다. 정치인이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 다. 지금도 어느 산골엔가 어머니 밑에서 신앙 교육 잘 받은 분이 한 분 나오면 이 민족의 앞날은 해결되 고 세계를 향하여 쓰임받는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큰 것입 니다.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자기 가족을 건졌고 믿음으로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그로 말미암아 온 가족 의 저주를 벗어나서 축복을 받게 되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100 세에 아들을 얻었지 않습니까? 믿 음은 큰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능 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중요해도 믿음보다 더 중 요한 것은 없습니다. 행복의 조건도 믿음입니다. 축복의 조건도 우리의 미래도 믿음 하나로 족한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정말 없어서 불 행한 것입니까? 이렇게 우울하고 침 울하고 부정적으로 절망적으로 살아 가는 현대인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 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긴 긴 밤 을 잠 한숨 자지 못하고 고통을 당 하는 많은 분들이 무엇 때문입니까? 걱정과 근심을 무엇으로 몰아내려고 하십니까? 우리 인간에게 닥치는 그 많고 많은 정신적인 갈등과 고민을 무엇으로 해결하려고 하시렵니까? 믿음이 있으면 잠도 잘 오고 믿음이 있으면 평안도 능력도 힘도 주어지 는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선교사로 양대 산 맥이 되는 허드슨 테일러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선교에 큰 역할을 해서 존경을 받는 선교사입니다. 그가 위대한 일을 한 비결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 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가장 약한 사람을 찾고 계셨는데 나에게는 주님이 그 조건 을 찾으셔서 내가 쓰임을 받게 되었 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주님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사람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쓰임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에 거 역하고 믿지 아니하고 내 멋대로 하 는 것 때문에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부족하고 너무 못나서 나는 너무 약해서 주님 앞에 다 맡겼는데 이런 놀라운 일을 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역사의 최고의 부흥사는 디엘 무디입니다. 그도 쓰임받는 것 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 리가 너무 뛰어나고 너무 똑똑하고 너무 지혜로워서 우리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 다고 말했습니다. 38년된 병자도 믿 음으로 치료함을 받고 베드로도 믿 음으로 배가 넘치게 고기를 거둘 수 가 있었습니다. 믿음은 큰 것입니다. 믿음은 나라를 세계적인 최고의 나 라로, 정치인을 세계적인 정치인으 로, 과학자를 세계적인 과학자로, 여 러분의 인생을 최고의 인생으로 만 들어 주는 힘과 능력이 믿음 안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미국 국회의사당 안에 는 다른 것은 하나도 없고 회의하는 그 안에다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 는다>라는 글을 위에다가 딱 걸어 놓고 그 아래서 회의를 하고 있습니 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귀합니다. 믿 음이 최고인 것입니다. 골리앗을 물 리치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 믿음입 니다. 우리는 문제를 크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크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문제를 믿음이라는 키 하나로 족한 줄 알아야 하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돈이 있어야 되고 지위가 있어야 되고 건강이 있 어야 되고 지식이 있어야 되고 사람 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현대인들 은 너무 좋아하고 필요로 하고 귀하 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 습니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존경하는 장로님 가정 이 있는데 집을 팔려고 해보니까 그 집 출입구에 다섯 평정도가 남의 것 으로 되어있는 거예요. 윈래 시유지 인데 누가 사가지고 자기 소유로 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못파는 거예요 그 집에 가서 사정하니 안된다는 것 예요. 그 곳은 내 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그 집에다 반값으로 팔 았어요. 이분은 어떤 은사가 있느냐 하면 이런 시유지나 공유지, 요런 땅만 사서 자기 소유로 만들어 가지 고 그 집을 못팔게 하는 거예요. 그 래서 결국 빌딩을 뺏고 집을 뺏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돈을 수백억을 벌어 병원도 크게 짓고 뭐 큰 시에 시장으로도 나오고 그랬는데 시장도 떨어지고, 여러 형제가 작년에 병원 을 지었는데 IMF를 만나 일순간에 그 집이 다 망했어요. 자기 앞날도 모르면서 남의 약점을 잡아서 남에 게 피해를 주고 자기가 살려고 하는 이런 악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 교인이 지하에 살고 있는데 그 이층 주인이 애를 먹인데요. 빌딩도 많고 돈이 많은데 이 사람은 얼마나 돈 밖에 모르는지 조금만 늦게 내면 내어 쫓아 버리고 해마다 돈을 올리 고 고리대금업자 노릇을 하면서 돈 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몇 년전에 치매에 걸려서 어디에 돈을 빌려줬는지 하나도 모 른대요. 사람이 앞에 있는 것만 생 각하고 남을 못살게 굴고 한치 앞도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돈이 최고가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광 야 같은 길일지라도 승리하고 무사 히 지나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십니 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에 보면 \\\\\\\"두 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 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 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 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43장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한 여호와께서 이 제 말씀하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 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 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하 느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 면 아무런 걱정도 염려할 것도 없습 니다.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 니다. 어떤 미국에 있는 분이 프랑 스에 관광을 갔다가 돌아올 때 호박 을 선물로 사왔어요. 이 호박이란 못생긴 것을 상징하는 호박이 아니 고 보석 중에 호박이란 것이 있습니 다. 세관을 지나가는 데 세금을 먹 이는 것이예요. 보석 값은 불과 몇 백불 안 되는데 세금을 내라 하니까 세금을 내고 감정가한데 가서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25000불 줄테니 자 기에게 팔라는 거예요. 거기서 안 팔고 또 다른데 가 물어보니 거기서 는 35000불 준다 하고, 가면 갈수록 값이 비싼 거예요. 나중에 잘 아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니까 이건 10만불 도 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여기 보라고, 여기에 싸인이 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죠세핀에게\\\\\\\'라는 싸 인이 있는 거예요. 이는 나폴레옹이 죠세핀에게 선물한 거예요. 똑같은 호박, 별거 아니라도 그 안에 싸인 하나가 있는 것이 그렇게 귀한 거예 요.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내가 하 나님을 믿는다는 것, 별 것 아닌 싸 인 하나가 믿음이에요. 믿음은 내 안에나 겉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예 요. 내 마음에 싸인이 있어야 합니 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 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 는 거예요. 믿는다는 것, 별 것 아닌 믿음이 우리로 모든 일에 백가지, 천가지, 하루하루 보는 것이 달라지고 듣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같은 걸 들어도 전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왜요? 내 안에 있는 핵이 다르게 처 리하는 거예요. 모든 걸 다르게 나 에게 재해석 해주는 거예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일을 만나든지 다르게 해석을 해 줍니다. 하박국서 1장과 2장에 보면 하박 국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하나님 앞 에 말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하나님이 다스린다면 왜 제 멋대로 살아가는 악한 사람들 은 이렇게 잘 됩니까? 주께서 눈이 정결하셔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 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 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 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나님 정말 못 보시는 것 아닙니까? 이 세상이 무슨 세상인지 하나님 아십니까? 주 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 족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같 게 하시나이까?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여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 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앞에 분향하오 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 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그 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육하니 옳으니이까? 제 멋대로 우 상숭배하고 제 멋대로 재산 모아가 지고 별 짓 다해도 하나님 못 보시 나이까? 그때 하나님이 대답하는 말씀이 뭔지 아세요? \\\\\\\"야, 너는 그 길이 다 른 거야. 너는 믿음으로 가는 길이 야. 너는 믿음으로 사는 길이고, 그 사람은 죄로 사는 길이야.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되고 악인은 악으 로 사는거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 나님은 다 아십니다. 전능하신 분이 십니다. 악인은 악인으로의 길이 있 고, 결국은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이 고, 의인은 의인으로써의 길이 있고 결국은 영생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너는 그런 사람과 비교 하지 말라고 하박국서에서 말씀하셨 어요. 사랑의 여러분! 믿으면서 악인의 길을 엿보지 마세요. 하나님을 경외 하면서 하나님! 이런것도 못 보십니 까? 하나님! 어떻게 전혀 무관심하 십니까? 그러지 말라고요. 여러분은 잘 믿는 일에 초점을 맞춰서 어떻게 하면 더 잘 믿을까를 생각하세요. 21세기에도 엄청나게 변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은 마 찬가지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경주 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세기를 큰 믿음으로/ 삼상17:41-50/ 2003-02-09
21세기를 큰 믿음으로 삼상17:41-50 온 세계는 21세기를 앞두고 긴장 과 두려움과 흥분과 기대를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 기 업, 학문, 예술 등 모든 분야가 21세 기는 분명히 새로운 천년, 새로운 시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한 세대가 오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20세기도 엄청난 변화의 세기였 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오 늘의 모든 것들은 그 전에 볼 수 없 었던 것들이 최근 백년 사이에 아니 한 오십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들입 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반도체 나 휴대폰이나 컴퓨터나 인터넷이나 광통신이나 인공위성이나 비행기나 이런 것들은 그전에는 전혀 볼 수 없는 것들이 몇 년 안에 우리 삶의 전체를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 안에 있는 TV나 냉장고, 세탁기나 오디오 제품들, CD나 음식을 넣으 면 당장 덥혀지는 전자렌지 등 이런 것들은 그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입니다. 21세기는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고 또한 그에 적응해 야 되고 어떠한 시대가 될지 알 수 없는 심히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 기도 한 시대입니다. 대학도 2005년 이 되면 경계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지금의 대학이라는 개념이 없어진다 고 합니다. 여기서 어느 대학에 간 다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다 한 대학으로 지식과 학문과 정보를 공 유하는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21세기는 교통수단도 엄청난 변 화가 와서 여기서 미국까지 아침에 갔다가 오후에 오는 것이 10년 이내 로 가능할 것입니다. 그것도 지상으 로 갈지, 바다 속으로 갈지,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신비한 시대! 우리는 이러한 시대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1세기에 여러 분은 어떤 직업, 어떤 가정, 어떤 사 업을 꿈꾸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 이 운영하는 그런 사업들은 다 없어 지고 새로운 사업들로 꽉 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어떤 기업에서도 \\\'오늘을 이야기하지 말 라\\\'고 한답니다. 오늘은 이미 무식 한 거예요. 오늘은 이미 지나간 거 예요. 그전에는 한 번 배우면 평생 지성인이지만 지금은 오늘의 것을 내일 쓸 수 없기 때문에 내일을 이 야기하라는 거예요. 우리는 21세기를 어떻게 살아가 고 무엇을 해야 하고 우리 할 일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 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 으라.\\\"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만물을 창조 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그의 보내신 아들이 나의 구주가 되셔서 그의 피로 구속 함을 받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 음으로 살아가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요, 성공하는 길이요, 승리의 길 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마치 릴레이를 하는 경주 자와 같습니다. 100m, 200m를 달릴 때에 경주자는 자기 코스, 자기 라 인을 벗어나면 안되듯이 신앙도 그 렇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으면 아버지로 믿지 않았을 때와 는 길이 다릅니다. 믿음 안에서 움 직여야 합니다. 사업을 하든지, 결혼 을 하든지, 가정이든, 기업이든, 생 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 보는 것 까지 항상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 다. 그 전에 살아온 것은 믿음을 떠 난 삶이요.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을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 로 믿고 살아가는 길은 새로운 길입 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 다. 이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믿음 을 떠난 생명은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영생의 길이 아닙니다. 이 제 믿음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길입니다. 하 나님은 믿는 자를 쓰시고 사랑하시 고 믿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네 믿 음대로 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 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 들이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지 않습니까? 12명의 정탐꾼을 모세는 가나안에 들여보냅니다. 열 명이 돌 아와서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불신 앙의 이야기를 합니다. 불신앙이라 고 해서 인간적으로 무식하다는 뜻 도 아니고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보고 신앙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내셨다고 하는 믿 음으로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보지 않고 믿음으로 듣지 않았다는 것입 니다. 믿음을 떠나서 인간의 눈으로 보 니까, \\\"아, 우리는 갈 수 없습니다. 그 나라는 굉장히 광대한 나라입니 다. 성은 굉장히 견고하고 그들의 군대는 강합니다. 우리는 메뚜기만 도 못 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섭 섭하시겠어요? 그러나 두 사람 여호 수아와 갈럽은 그렇게 안 보았어요. 믿음의 눈으로 보았어요. 우리를 여 기까지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이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믿음 으로 보니까 아름다운 땅이에요. 믿 고 보니까 너무너무 소망이 넘치는 거예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에요. 믿음으로 보니까. 우리가 가느냐 안가느냐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 어집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은 그 땅을 어떻게 보았어요? 그 땅 은 우리밥이라고 보았어요. \\\"우리 밥이라\\\" 이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밥이다. 밥상이다. 하나님이 좋은 땅을 우리를 위해 차 려 주셨다. 준비해 주셨다. 우리는 갈 수 있다. 이렇게 보았어요.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렇게 말합 니다. 그 땅을 탐지한 자중 눈의 아 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 이 옷을 찢고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 다\\\" 아름답다라는 거예요. 좋게 보 는 거예요. 신앙의 눈은 이렇게 아 름답게 보이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 로 인도해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 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소망을 가지고 좋게 보았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셨다고 보았어요. 믿음은 하나님을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으로 보고 하나님의 선물을 좋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으 로 보는 자는 하나 하나를 다 다르 게 봅니다.\\\"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이방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 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 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 려워 말라\\\"이렇게 말합니다. 불신앙은 항상 모든 것을 육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모든 가치 평가를 인간의 기준으로 보는 것입 니다. 질량으로 보고 현실적으로 보 고 과학적으로 봅니다. 보이는 것만 보고 앞에 것만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캄캄할지라도 하나님이 축복하 시면 빛이 비칠 것을 믿고, 내가 오 늘 어떤 불치의 병이 있을지라도 하 나님이 고쳐주시면 넉넉히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크 게 보고 문제를 작게 보는 것입니 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눈으로 보 는 것입니다. 신앙은 밥으로 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멀리 보는 것입니 다. 어떤 것이든지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도 좋게 보는 것입니다. 어려운 시험도 이 시험이 나로 정금같이 쓰임 받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는 시 련으로 보기 때문에 모든 시련과 환 난과 재난에 대해서 낙심하지 않습 니다. 우리 나라도 보면 21세기에 걱정 이 태산 같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나라 위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나라는 세계 최강대국 네 나라 가운데 세 나라가 우리를 둘러 싸고 있습니다. 아마 그런 나라가 이 지상에 없습니다. 중국의 12억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우리를 대 적하는 나라로 살아 움직이고 있습 니다. 몇 십년 동안 공산주의에 잠 들어 있던 나라인 중국이 지금 일어 나서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으려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21세 기는 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지배한 다고 하는데 중국은 미국을 앞선다 는 학자들의 발표가 더 많습니다. 이런 나라가 우리 이웃에 바로 붙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계 경제 대국인 일 본이 있습니다. 일본은 여러 면에서 우리 나라와 경쟁이 되지 않는 나라 입니다. 또 세계 최고 군사강대국인 소련이 바로 인접해서 붙어 있습니 다. 여러분, 남미나 아프리카나 유럽 을 보세요.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 는 작은 나라가 많이 있지요. 그러 나 이처럼 세계에서 제일 강한 세 나라를 앞에 두고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섬도 없습니다. 우리 나라와 같은 나라는 한나라도 없어요. 강대국의 한쪽 귀퉁이 같이 이 작은 나라가 우리 한국입니다. 인구도 비교가 안되고, 지하자원도 없고, 군사적으로도 비교가 안되고, 경제적으로도 전혀 게임이 되지 않 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나라가 나누어져 있 습니다. 우리가 다 합쳐도 7000천만 인데 지금 중국의 한 성도 못 따라 가고 그것마저도 나누어져 있습니 다. 정치적으로도 불안합니다. 이렇 게 보면 우리는 정말 절망 할 수밖 에 없습니다. 그 전에 중국이 가난 했을 때는 모르지만 지금 중국이 경 제적으로 움직이면서 우리가 수출하 던 나라에 수출하고 우리와 같은 제 품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 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 세 나라가 과거에 적어도 1000년 동안 우리를 괴롭힌 나라들입니다. 한 나 라가 우리를 한 번 삼키고 나면 또 저 나라가 삼키고. 저 나라가 삼키 고 나면 중국이 삼키고 중국이 삼키 고 나면 일본이 삼키고 소련이 삼키 면서 온갖 고통과 환난과 재난을 이 민족에게 안겨준 이 세 나라입니다. 정말 우리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함께 하셨습니 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고 어떤 것 으로도 경쟁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 서 그 나라들을 이상하게 자기들끼 리 어떤 대치를 하게 하고, 또 이 나라를 여러 면으로 자기들이 쉽게 점령할 수 없게 만들어서 이 나라를 지금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문제는 복잡한 것입니다. 누구도 풀 수 없게 하셨 습니다. 어느 강대국 한 나라도 풀 수 없고 세 나라도 풀 수 없고 네 나라도 풀 수 없는 아주 이해관계를 요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가지고 지 금 보존시키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릅 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이 민족을 버리지 아니하시면 우리 는 승리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극 장에 가서 제일 감동을 받는 것은 애국가를 부를 때 \\\"하나님이 보호하 사 우리나라 만세!\\\"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안 날 때가 없습니다. 요즘에는 극장엘 안가니까 잘 모르지만 옛날에 <벤 허>를 보러가니 시작하기 전에 하 나님이 보호하신다고 나오는 것이예 요. 이 애국가가 나온지도 얼마 안 됐지요. 그래서 지금 다른 종교에서 는 애국가 바꾸자고 한대요. 동해물 과 백두산이 하다가 그만 그 후렴할 때는 안 부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호하는 민족. 하나님 이 함께 하는 민족. 이것이 이 민족 의 소망이요 힘이요 축복인 줄로 믿 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길이 있고 좋게 보이고 오히려 그런 사이에서 이 민족을 들어쓰시 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 나라로 이 민족을 들어쓰시는 하나 님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 으로 보면 더 좋은 조건이 될 수 있 습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오늘 교회에 나오신 모든 성도 여러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중국이 나 소련이나 일본을 오히려 하나의 큰 시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의 대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 이 우리를 축복해 주셔서 경제가 성 장하고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 내 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국사람에게 마약을 복용하게 하시고, 술이나 많 이 먹고 담배나 피워 머리가 둔해져 서 좋은 제품을 못만드는 대신에 이 민족에게는 예수 잘 믿어서 지혜를 주시어 우리가 만들어 가지고 시장 으로 만들면 미국이나 유럽에 수출 하는 것보다 바로 자동차에 실고 옮 기니까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것 입니다. 일본이나 소련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말 이 민족이 하나님만 잘 경외해서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지혜있는 민족이 되어서 제품을 잘 만들고 하나가 되면 우리는 얼마든 지 그들을 시장으로 삼고 그 민족을 통해서 우리 나라는 더욱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신앙으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보아야 됩 니다. 믿지 아니하면 이 나라의 존 재는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이 민족과 함께 하 시면 오히려 이스라엘을 강대국 사 이에서 더 귀하게 하듯이 이 민족을 하나님이 높여 주실 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은 이스 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시에 일 어났던 일입니다. 블레셋이라고 하 는 나라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 어가기 전부터 이스라엘 서해안 지 역에 수 백년 동안 자리잡고 있는 강력한 민족입니다. 이 블레셋이라 고 하는 민족은 아주 문화가 발달한 민족이고 군사력으로도 대단한 민족 입니다. 이스라엘이 항상 블레셋에 백전 백패했습니다. 엘리 제사장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자녀들을 잃었 고 사울왕도 아들들과 함께 블레셋 과의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구약의 여러 사람이 블레셋 사람에게 죽었 습니다. 삼손이라 하는 자도 블레셋 에 가서 두 눈이 빠져서 죽습니다. 항상 이스라엘과 수 백년 동안 전쟁 을 해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 이 블레셋입니다. 이 블레셋에 오늘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군이 소고라고 하는 성에 나 와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을 치고 큰 소리를 지릅니다. 골리앗은 키가 6규빗 하고 한 뼘이에요. 한 규빗이 45cm이니까 얼마나 됩니까? 거의 3m에 가까운 거인입니다. 그리고 갑옷을 입었는데 갑옷의 중수가 5000세겔이에요. 3000세겔이 35kg이 니까 5000세겔이면 57kg정도 되니 갑옷무게가 얼마나 큰 장군입니까? 골리앗이 가지고 있는 창날만 해도 철이 600세겔이에요. 우리는 신라시 대에 토기를 사용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신라보다 1200년, 1300년 전인데도 이러한 갑옷을 입고 철을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하고는 비교 가 안되는 민족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서 블레셋에 서 만든 도자기를 보니까 얼마나 머 리가 좋은지요. 지금부터 3500년 전 에 만든 도자기가 아주 무늬가 선명 하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이 처럼 세계를 향하여 무역하는 강대 한 나라의 장군인 골리앗이 거기에 나와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을 쳤 어요. 에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이 스라엘을 향하여 소리지르니 전부 두려워합니다. 작전회의도 안되고 구사회의도 안되고 나라가 안보회의 를 아무리 해도 이 골리앗과 블레셋 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그때 누가 나왔습니까? 다윗이라고 하는 어린 목동이 전쟁 중에 있는 형들에게 먹 을 것을 가져다주러 면회하러 갔다 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사울왕은 모든 방법이 없기 때문 에 나중에 제시한 것이 누구든지 이 골리앗을 이기면 내 딸이라도 주겠 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소중한 딸을 내어놓을 정도로 이스라엘은 이 전 시에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때에 다 윗이 나아가서 보니까 이스라엘은 모두 전쟁을 포기하고 기가 죽어 있 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그러니까 골 리앗 때문이라고 합니다. 골리앗이 누구냐고 하니 블레셋의 큰 장군이 라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다윗 은 아니 할례 받지 아니하는 이방사 람을 왜 두려워하느냐고 소리를 질 렀습니다. 형들은 얘가 무슨 소리하 는 거야, 넌 집에 가있어 하고 소리 지릅니다. 네가 전쟁도 모르면서 양 을 치다가 와 가지고 무슨 소리냐고 집에나 가라고 양이나 먹이라고 너 먹이든 양은 어디있느냐고 형들은 다윗을 책망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달려듭니다. 아닙니다. 하나 님이 나를 사자의 발톱에서도 건져 주셨습니다. 양을 칠 때에 사자가 와서 양을 잡아가면 내가 끝가지 따 라가서 사자의 입안에 있는 양을 빼 앗아 왔습니다. 무슨 소립니까? 하 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사람을 왜 두려워해요? 허락을 받아서 전쟁 터에 1:1로 골리앗과 대치합니다. 골 리앗은 다윗을 보고 비웃습니다. 네 가 나를 개로 알고 막대기를 가지고 왔냐? 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다윗 은 너는 믿는 것이 너의 창이고 너 의 갑옷이고 너의 힘이고 너의 능력 이다. 너는 네가 전부다. 그러나 나 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나의 믿는 하나님은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 라. 나는 너의 목을 베어서 들짐승 에게 주고 새들에게 먹이로 만들겠 다. 골리앗을 향하여 물맷돌을 가지 고 던져서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 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 니다. 이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 다. 위대한 이스라엘 역사의 최고의 인물이 됩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목동 다윗입니다. 아무것도 전쟁에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없지만 하나님 을 믿는 그 믿음이 나라를 건져내고 자기를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 주었 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신앙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을 오늘도 찾고 있는 것입니다. 1809년 2월 12일 캔터키 산골에 링컨이라는 어린아이가 가난하게 태어났지 않았 습니까? 이 아이가 전 미국을 향하 여 세계를 향하여 큰 인물이 되리라 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 었습니다. 이 믿음이 미국의 남북전 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전 미국을 하 나로 만들어 오늘날 미국을 건질 뿐 만 아니라 온 세계의 민주주의에 횃 불을 들어준 분이고 온 세계에 존경 받는 최고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 니다. 그는 목동 다윗과 다를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떠나서 가난 하여 배운 것 하나 없었지만 믿음이 놀라운 일을 하게 했습니다. 이 나라의 운명도 이 나라의 앞 날도 학자가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 다. 정치인이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 다. 지금도 어느 산골엔가 어머니 밑에서 신앙 교육 잘 받은 분이 한 분 나오면 이 민족의 앞날은 해결되 고 세계를 향하여 쓰임받는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큰 것입 니다.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자기 가족을 건졌고 믿음으로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그로 말미암아 온 가족 의 저주를 벗어나서 축복을 받게 되 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100 세에 아들을 얻었지 않습니까? 믿 음은 큰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능 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앞세우지 아니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중요해도 믿음보다 더 중 요한 것은 없습니다. 행복의 조건도 믿음입니다. 축복의 조건도 우리의 미래도 믿음 하나로 족한 것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이 정말 없어서 불 행한 것입니까? 이렇게 우울하고 침 울하고 부정적으로 절망적으로 살아 가는 현대인들의 문제가 어디에 있 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긴 긴 밤 을 잠 한숨 자지 못하고 고통을 당 하는 많은 분들이 무엇 때문입니까? 걱정과 근심을 무엇으로 몰아내려고 하십니까? 우리 인간에게 닥치는 그 많고 많은 정신적인 갈등과 고민을 무엇으로 해결하려고 하시렵니까? 믿음이 있으면 잠도 잘 오고 믿음이 있으면 평안도 능력도 힘도 주어지 는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선교사로 양대 산 맥이 되는 허드슨 테일러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그는 기독교 선교에 큰 역할을 해서 존경을 받는 선교사입니다. 그가 위대한 일을 한 비결을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 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가장 약한 사람을 찾고 계셨는데 나에게는 주님이 그 조건 을 찾으셔서 내가 쓰임을 받게 되었 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주님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데 사람이 교만해서 하나님의 쓰임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에 거 역하고 믿지 아니하고 내 멋대로 하 는 것 때문에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무 부족하고 너무 못나서 나는 너무 약해서 주님 앞에 다 맡겼는데 이런 놀라운 일을 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기독교 역사의 최고의 부흥사는 디엘 무디입니다. 그도 쓰임받는 것 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 리가 너무 뛰어나고 너무 똑똑하고 너무 지혜로워서 우리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 다고 말했습니다. 38년된 병자도 믿 음으로 치료함을 받고 베드로도 믿 음으로 배가 넘치게 고기를 거둘 수 가 있었습니다. 믿음은 큰 것입니다. 믿음은 나라를 세계적인 최고의 나 라로, 정치인을 세계적인 정치인으 로, 과학자를 세계적인 과학자로, 여 러분의 인생을 최고의 인생으로 만 들어 주는 힘과 능력이 믿음 안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미국 국회의사당 안에 는 다른 것은 하나도 없고 회의하는 그 안에다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 는다>라는 글을 위에다가 딱 걸어 놓고 그 아래서 회의를 하고 있습니 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귀합니다. 믿 음이 최고인 것입니다. 골리앗을 물 리치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 믿음입 니다. 우리는 문제를 크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크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문제를 믿음이라는 키 하나로 족한 줄 알아야 하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돈이 있어야 되고 지위가 있어야 되고 건강이 있 어야 되고 지식이 있어야 되고 사람 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현대인들 은 너무 좋아하고 필요로 하고 귀하 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그렇게 많 습니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존경하는 장로님 가정 이 있는데 집을 팔려고 해보니까 그 집 출입구에 다섯 평정도가 남의 것 으로 되어있는 거예요. 윈래 시유지 인데 누가 사가지고 자기 소유로 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못파는 거예요 그 집에 가서 사정하니 안된다는 것 예요. 그 곳은 내 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그 집에다 반값으로 팔 았어요. 이분은 어떤 은사가 있느냐 하면 이런 시유지나 공유지, 요런 땅만 사서 자기 소유로 만들어 가지 고 그 집을 못팔게 하는 거예요. 그 래서 결국 빌딩을 뺏고 집을 뺏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돈을 수백억을 벌어 병원도 크게 짓고 뭐 큰 시에 시장으로도 나오고 그랬는데 시장도 떨어지고, 여러 형제가 작년에 병원 을 지었는데 IMF를 만나 일순간에 그 집이 다 망했어요. 자기 앞날도 모르면서 남의 약점을 잡아서 남에 게 피해를 주고 자기가 살려고 하는 이런 악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 교인이 지하에 살고 있는데 그 이층 주인이 애를 먹인데요. 빌딩도 많고 돈이 많은데 이 사람은 얼마나 돈 밖에 모르는지 조금만 늦게 내면 내어 쫓아 버리고 해마다 돈을 올리 고 고리대금업자 노릇을 하면서 돈 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몇 년전에 치매에 걸려서 어디에 돈을 빌려줬는지 하나도 모 른대요. 사람이 앞에 있는 것만 생 각하고 남을 못살게 굴고 한치 앞도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돈이 최고가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만 함께 하시면 광 야 같은 길일지라도 승리하고 무사 히 지나갈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십니 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에 보면 \\\"두 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 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 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 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43장에는 \\\"야곱아 너를 창조한 여호와께서 이 제 말씀하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 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 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와 함께 하 느니라\\\"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 면 아무런 걱정도 염려할 것도 없습 니다.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 니다. 어떤 미국에 있는 분이 프랑 스에 관광을 갔다가 돌아올 때 호박 을 선물로 사왔어요. 이 호박이란 못생긴 것을 상징하는 호박이 아니 고 보석 중에 호박이란 것이 있습니 다. 세관을 지나가는 데 세금을 먹 이는 것이예요. 보석 값은 불과 몇 백불 안 되는데 세금을 내라 하니까 세금을 내고 감정가한데 가서 물어 봤어요. 그랬더니25000불 줄테니 자 기에게 팔라는 거예요. 거기서 안 팔고 또 다른데 가 물어보니 거기서 는 35000불 준다 하고, 가면 갈수록 값이 비싼 거예요. 나중에 잘 아는 전문가에게 물어보니까 이건 10만불 도 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여기 보라고, 여기에 싸인이 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죠세핀에게\\\'라는 싸 인이 있는 거예요. 이는 나폴레옹이 죠세핀에게 선물한 거예요. 똑같은 호박, 별거 아니라도 그 안에 싸인 하나가 있는 것이 그렇게 귀한 거예 요.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내가 하 나님을 믿는다는 것, 별 것 아닌 싸 인 하나가 믿음이에요. 믿음은 내 안에나 겉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예 요. 내 마음에 싸인이 있어야 합니 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 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 는 거예요. 믿는다는 것, 별 것 아닌 믿음이 우리로 모든 일에 백가지, 천가지, 하루하루 보는 것이 달라지고 듣는 것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같은 걸 들어도 전혀 다르게 들리는 거예요. 왜요? 내 안에 있는 핵이 다르게 처 리하는 거예요. 모든 걸 다르게 나 에게 재해석 해주는 거예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일을 만나든지 다르게 해석을 해 줍니다. 하박국서 1장과 2장에 보면 하박 국이라고 하는 선지자가 하나님 앞 에 말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하나님이 다스린다면 왜 제 멋대로 살아가는 악한 사람들 은 이렇게 잘 됩니까? 주께서 눈이 정결하셔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 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 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 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나님 정말 못 보시는 것 아닙니까? 이 세상이 무슨 세상인지 하나님 아십니까? 주 께서 어찌하여 사람으로 바다의 어 족같게 하시며 주권자 없는 곤충같 게 하시나이까?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여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 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앞에 분향하오 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 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그 가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육하니 옳으니이까? 제 멋대로 우 상숭배하고 제 멋대로 재산 모아가 지고 별 짓 다해도 하나님 못 보시 나이까? 그때 하나님이 대답하는 말씀이 뭔지 아세요? \\\"야, 너는 그 길이 다 른 거야. 너는 믿음으로 가는 길이 야. 너는 믿음으로 사는 길이고, 그 사람은 죄로 사는 길이야.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되고 악인은 악으 로 사는거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 나님은 다 아십니다. 전능하신 분이 십니다. 악인은 악인으로의 길이 있 고, 결국은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이 고, 의인은 의인으로써의 길이 있고 결국은 영생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너는 그런 사람과 비교 하지 말라고 하박국서에서 말씀하셨 어요. 사랑의 여러분! 믿으면서 악인의 길을 엿보지 마세요. 하나님을 경외 하면서 하나님! 이런것도 못 보십니 까? 하나님! 어떻게 전혀 무관심하 십니까? 그러지 말라고요. 여러분은 잘 믿는 일에 초점을 맞춰서 어떻게 하면 더 잘 믿을까를 생각하세요. 21세기에도 엄청나게 변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것은 마 찬가지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경주 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와 35를 세는 마음/ 눅17:11-19
2와 35를 세는 마음 눅17:11-19 어떤 공원에 노인 한 분이 매일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뭐든지 수를 세는 것 을 좋아했습니다. 노인은 그 날도 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세었습니다. 공원에는 부모와 함께 놀러 나온 아이들과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서른 일곱 명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10개월이 좀 넘었을 듯한 어린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30대 초반의 한 남자 가 왔습니다. 이 사내는,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간신히 일어 서는 아이의 옷깃을 잡고, 아이를 걷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한 발짝을 떼고 는 곧 넘어지곤 하였습니다.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다시 걸음마를 시키지만, 아이는 두 발짝도 못 떼고 계속 넘어지곤 하였습니다. 이러기를 한 시간 가까이 했을까요? 아이가 지 쳤는지 잠시 칭얼대더니, 사내의 무릎에 누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30여분쯤 지났을까, 사내는 잠에서 깨어난 아이에게 또다시 걸음마를 시켰습니다. 그러 다 해질 무렵이 되자, 사내는 공원을 휘둘러보며 일어섰습니다. 마침 옆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노인을 의식한 사내는, 노인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보셨어요? 도와주지 않았는데 도 오늘 제 아이가 세 걸음이나 걸었다고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오, 그런데 내가 보니, 그 애는 오늘 서른 다섯 번이나 넘어졌더군!” 사내는 약간 놀란 눈치였습니다. ” 네!?. 저는 넘어지는 것은 몰랐는데.” 이렇게 대꾸한 사내는 팔에 안은 아가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더니, 노인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는데 서른 다섯 번쯤 넘어진 게 뭐 대숩니까? 걷는 게 중요하지요.” 그때 노인은 숙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저 사내와 같으신 게야. 그분은 우리의 도덕적 과오의 횟수보다는, 영원한 사람의 길로 가려는 우리의 발걸음 수에 더 관심이 많으시지.” 노인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벤치에서 일어서면서, 하나님의 가슴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본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가는 길에 가로수 등을 헤아 리는 것도 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눈은 보는 것이 정말 다릅니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보수 집단에서 인공기를 태우는 것에 대해서 보는 것으로 다르게 해석 합니다. 이곳이 자유나라 인데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어떻게 해괴한 일을 할 수 있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같은 민족이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 슬퍼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보는 것에 따라 다르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것은 우리 모두가 행복한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늘에 서 행복이 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 행복이라는 상품이 팔리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과 불행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공부 잘하는 것이 행복입니까? 아닙니다. 이번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연대 교수님이 과로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공부 잘한 것이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행복! 불행! 이것을 내가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행복인지 아닌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내 자신입니다. 어떤 일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일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낄 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만약 저희교인들이 천명이 되면 행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또 욕심을 내겠죠. 집을 큰집으로 이사가면 행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사실 현재 사랑하는 교인들과 요한계시 록 학교를 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 옆에 분들을 쳐다보세요. 볼 수 없는 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이고, 다 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곧 기쁨과 감사가 행복에 이르는 징검다리입니다. 그런데 기쁨과 감사를 비교해 보면, 감사가 훨씬 차원이 높습니다. 기쁨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일어났 을 때 나타납니다. 혹은 자신이 기대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감사는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일어나고 기대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일이 일어나고 기대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가능한 감정입니다. 고난이 오는데 기뻐할 수 없습니다. 애가 맨 날 꼴찌 하는데 기쁨이 나오지 않습니다. 돈이 없는데 기쁨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가능합니까? 감사는 가능합니다. ”그래도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누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 그래요. 기쁨은 조건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다릅니다. 그래서 기쁨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보다 감사를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쉽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 고 애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병도 아니고 나병이 나았습니다.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니 열 사람 모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서 그 기쁨과 더불어 감사를 느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사람만 예수님께 되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아홉 명은 나병은 나았지만, 구원을 얻지는 못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감사가 기쁨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홉 명에게 기 쁨이 그대로 감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기쁨에서 한 차원 더 올라가야 감사가 가능했 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을 넘어서서, 감사를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 다. 둘째 감사는 꼭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표현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그가 만약 마음으로만 감사를 느끼고 예수님께 되돌아와 감사를 표현하지 않 았다면, 그에게 구원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를 꼭 표현해야 합니 다. 우리가 헌금을 내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헌금을 내는 사람이 기쁜 것입니다. 표현하는 큰 방법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강제로 시키면 기쁘지 않죠? 그러나 헌금 내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도 35를 세는 마음 으로 보면 은혜를 받을 수 없지요. 2로 세는 마음으로 보아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사의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감사는 기쁨과는 달리 어떤 조건 속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기쁨에서 한 차원 더 올라갑 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우리 주님께 표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표시하 는 것이 내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감사라는 감정, 이 감정의 세계 속으로 우리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나병을 낫고서도 감사를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 의식의 차이입니다. 한 사람은 영 혼 의식 수준이 낮은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영혼 의식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그 한 사람은, 나머지 아홉 사람보다 의식 수준이 훨 씬 높았습니다. 우리의 영혼 의식의 수준을 세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나병이 나았는데도 감사를 못 느끼는 의식 수준입니다. 둘째 단계는 나병이 나았을 때 감 사를 느끼는 의식 수준입니다. 셋째 단계는 나병 상태 속에서도 감사를 느끼는 의식 수준 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헬렌 켈러 같은 사람입니다. 그이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 고 말도 못하는 상태이면서도, 삼천 가지나 감사거리를 찾아낸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의식 수준은 지금 어느 단계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감사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영혼의 의식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 식의 폭만큼 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식이 클수록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더 행복감을 누리게 됩니다. 낮은 의식 수준에서는, 아무리 좋은 조 건이라 하더라도 불만과 원망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모든 문제 를 감사로 보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일체유심조(一 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다 는 뜻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마음의 소산이라는 것입니다. 원망도 감사도 모두 마음의 소산입니다. 그러니까 영혼 의식의 성장하려면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저는 이번 요한계시록 학교를 하면서 많은 회개를 하였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 엉뚱한 것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 참여하신 분들은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옛날 사람들은 번개와 천둥이 치면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화가 나셨다고 생각하며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건 하나님이 화가 나서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압니다. 그건 차가운 구름이 부딪치며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지요. 하지만 그걸 알아도 번개와 천둥 이 치며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때로는 지은 죄가 생각나며 두려운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번개는 식물의 생존에 꼭 필요합니다. 식물이 살려면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흡 수해야 하는데, 잎으로는 흡수하지 못하고 뿌리로 흡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뿌리는 땅속에 있으니, 공기중의 질소를 흡수할 수 없지요. 이 때 식물은 번개의 도움을 받습니다. 번개가 치면 공중방전에 의해 공기중의 질소가 간단한 질소화합물이 되는데, 그것이 빗물에 녹아 땅에 떨어짐으로써 식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식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으니, 결국 번개가 우리를 살리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조화가 이렇듯 신비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우리는 번개와 천둥이 칠 때 두려워하는 대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무지로부터 벗어 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공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음 공부는 평생 해야 합니다. 저희교회는 제자훈련이 있습니다. 코스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혼의 의식이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설교를 열심히 들어야 영혼의식이 높아 질 수 있습니다. 교회의 프로그램 속에 참여해야 넓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제가 이번에 학생들에게 리포터를 내라고 할 숙제입니다. 여기에 오아시스에서 멋진 연기를 했던 주연 여배우 문소리 씨가 그런 인터 뷰를 했습니다. ”인터뷰가 지긋지긋하다고.. 온 방송이 얼마나 벗었느냐고 ?” 그것에 관심 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보니까 정말 아픈 영화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요. 외로움의 이야기입니다. 깊은 영화 입니다.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물론 야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좀 깊게 사십시오. 영혼의 의식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제가 볼 때는 마음을 공부해야 합니다.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닙 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도전을 받습니다. 어떤 일을 당하면서 내 마음을 살펴봅니다. 자기 마음을 모르고는 행복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공부란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 내가 하나님과 맺는 관 계는 어떤 것인지, 우주는 무엇인지, 인생과 운명이란 무엇인지, 내 마음은 무엇인지, 마음 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등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큐티를 통해서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합니다. 읽으면서 지키면서 합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서른 다섯 번 넘어지는 것을 보는 마음이 있고, 두 걸음을 걷는 것을 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병이 치유되자 다만 기뻐하는 마음이 있고, 기쁨을 넘어서서 감사를 느끼고 또한 표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서로 그만큼 영혼 의식의 수준이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 것이 아닙 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은총이 와도 은총임을 모릅니다. 마음을 느끼십시오. 그러고 예수님을 마음으로 초대하십시오. 찬송가 336장을 보시면 그렇 습니다. 왜 우리가 헤매고 있습니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받아들이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와 35를 세는 마음/눅17:11-19
2와 35를 세는 마음/눅17:11-19 2004-04-07 21:27:03 read : 144 어떤 공원에 노인 한 분이 매일 나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노인은 뭐든지 수를 세는 것 을 좋아했습니다. 노인은 그 날도 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세었습니다. 공원에는 부모와 함께 놀러 나온 아이들과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서른 일곱 명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10개월이 좀 넘었을 듯한 어린아이를 팔에 안고 있는 30대 초반의 한 남자 가 왔습니다. 이 사내는,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간신히 일어 서는 아이의 옷깃을 잡고, 아이를 걷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한 발짝을 떼고 는 곧 넘어지곤 하였습니다.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다시 걸음마를 시키지만, 아이는 두 발짝도 못 떼고 계속 넘어지곤 하였습니다. 이러기를 한 시간 가까이 했을까요? 아이가 지 쳤는지 잠시 칭얼대더니, 사내의 무릎에 누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30여분쯤 지났을까, 사내는 잠에서 깨어난 아이에게 또다시 걸음마를 시켰습니다. 그러 다 해질 무렵이 되자, 사내는 공원을 휘둘러보며 일어섰습니다. 마침 옆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노인을 의식한 사내는, 노인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보셨어요? 도와주지 않았는데 도 오늘 제 아이가 세 걸음이나 걸었다고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오, 그런데 내가 보니, 그 애는 오늘 서른 다섯 번이나 넘어졌더군!\\\" 사내는 약간 놀란 눈치였습니다. \\\" 네!?. 저는 넘어지는 것은 몰랐는데.\\\" 이렇게 대꾸한 사내는 팔에 안은 아가의 볼에 \\\"쪽!\\\" 하 고 입을 맞추더니, 노인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는데 서른 다섯 번쯤 넘어진 게 뭐 대숩니까? 걷는 게 중요하지요.\\\" 그때 노인은 숙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저 사내와 같으신 게야. 그분은 우리의 도덕적 과오의 횟수보다는, 영원한 사람의 길로 가려는 우리의 발걸음 수에 더 관심이 많으시지.\\\" 노인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벤치에서 일어서면서, 하나님의 가슴 깊숙한 곳을 들여다 본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가는 길에 가로수 등을 헤아 리는 것도 잊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눈은 보는 것이 정말 다릅니다.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보수 집단에서 인공기를 태우는 것에 대해서 보는 것으로 다르게 해석 합니다. 이곳이 자유나라 인데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어떻게 해괴한 일을 할 수 있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같은 민족이 이렇게 다를 수 있냐고 슬퍼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보는 것에 따라 다르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것은 우리 모두가 행복한 것을 원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늘에 서 행복이 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세상에 행복이라는 상품이 팔리고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과 불행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공부 잘하는 것이 행복입니까? 아닙니다. 이번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연대 교수님이 과로로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공부 잘한 것이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행복! 불행! 이것을 내가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행복인지 아닌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내 자신입니다. 어떤 일이 되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일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낄 때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만약 저희교인들이 천명이 되면 행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또 욕심을 내겠죠. 집을 큰집으로 이사가면 행복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사실 현재 사랑하는 교인들과 요한계시 록 학교를 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 옆에 분들을 쳐다보세요. 볼 수 없는 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는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이고, 다 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곧 기쁨과 감사가 행복에 이르는 징검다리입니다. 그런데 기쁨과 감사를 비교해 보면, 감사가 훨씬 차원이 높습니다. 기쁨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일어났 을 때 나타납니다. 혹은 자신이 기대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감사는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일어나고 기대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일이 일어나고 기대하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도 가능한 감정입니다. 고난이 오는데 기뻐할 수 없습니다. 애가 맨 날 꼴찌 하는데 기쁨이 나오지 않습니다. 돈이 없는데 기쁨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가능합니까? 감사는 가능합니다. \\\"그래도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누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 그래요. 기쁨은 조건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다릅니다. 그래서 기쁨을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보다 감사를 통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쉽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 고 애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장에게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병도 아니고 나병이 나았습니다.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니 열 사람 모두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서 그 기쁨과 더불어 감사를 느낀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사람만 예수님께 되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아홉 명은 나병은 나았지만, 구원을 얻지는 못 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 감사가 기쁨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홉 명에게 기 쁨이 그대로 감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기쁨에서 한 차원 더 올라가야 감사가 가능했 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을 넘어서서, 감사를 추구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 다. 둘째 감사는 꼭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표현한 사람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그가 만약 마음으로만 감사를 느끼고 예수님께 되돌아와 감사를 표현하지 않 았다면, 그에게 구원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를 꼭 표현해야 합니 다. 우리가 헌금을 내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헌금을 내는 사람이 기쁜 것입니다. 표현하는 큰 방법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강제로 시키면 기쁘지 않죠? 그러나 헌금 내는 것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감사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도 35를 세는 마음 으로 보면 은혜를 받을 수 없지요. 2로 세는 마음으로 보아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사의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감사는 기쁨과는 달리 어떤 조건 속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기쁨에서 한 차원 더 올라갑 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우리 주님께 표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표시하 는 것이 내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감사라는 감정, 이 감정의 세계 속으로 우리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나병을 낫고서도 감사를 못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감사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 의식의 차이입니다. 한 사람은 영 혼 의식 수준이 낮은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영혼 의식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그 한 사람은, 나머지 아홉 사람보다 의식 수준이 훨 씬 높았습니다. 우리의 영혼 의식의 수준을 세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나병이 나았는데도 감사를 못 느끼는 의식 수준입니다. 둘째 단계는 나병이 나았을 때 감 사를 느끼는 의식 수준입니다. 셋째 단계는 나병 상태 속에서도 감사를 느끼는 의식 수준 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는 헬렌 켈러 같은 사람입니다. 그이는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 고 말도 못하는 상태이면서도, 삼천 가지나 감사거리를 찾아낸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의식 수준은 지금 어느 단계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감사의 세계에 들어가려면 영혼의 의식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 식의 폭만큼 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의식이 클수록 더 많은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더 행복감을 누리게 됩니다. 낮은 의식 수준에서는, 아무리 좋은 조 건이라 하더라도 불만과 원망이 끊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모든 문제 를 감사로 보는 눈이 뜨이게 됩니다. 일체유심조(一 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다 는 뜻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마음의 소산이라는 것입니다. 원망도 감사도 모두 마음의 소산입니다. 그러니까 영혼 의식의 성장하려면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저는 이번 요한계시록 학교를 하면서 많은 회개를 하였습니다.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 엉뚱한 것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 참여하신 분들은 이해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옛날 사람들은 번개와 천둥이 치면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화가 나셨다고 생각하며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건 하나님이 화가 나서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압니다. 그건 차가운 구름이 부딪치며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지요. 하지만 그걸 알아도 번개와 천둥 이 치며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때로는 지은 죄가 생각나며 두려운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번개는 식물의 생존에 꼭 필요합니다. 식물이 살려면 공기 중에 있는 질소를 흡 수해야 하는데, 잎으로는 흡수하지 못하고 뿌리로 흡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뿌리는 땅속에 있으니, 공기중의 질소를 흡수할 수 없지요. 이 때 식물은 번개의 도움을 받습니다. 번개가 치면 공중방전에 의해 공기중의 질소가 간단한 질소화합물이 되는데, 그것이 빗물에 녹아 땅에 떨어짐으로써 식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식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으니, 결국 번개가 우리를 살리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조화가 이렇듯 신비합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우리는 번개와 천둥이 칠 때 두려워하는 대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무지로부터 벗어 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공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마음 공부는 평생 해야 합니다. 저희교회는 제자훈련이 있습니다. 코스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혼의 의식이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설교를 열심히 들어야 영혼의식이 높아 질 수 있습니다. 교회의 프로그램 속에 참여해야 넓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제가 이번에 학생들에게 리포터를 내라고 할 숙제입니다. 여기에 오아시스에서 멋진 연기를 했던 주연 여배우 문소리 씨가 그런 인터 뷰를 했습니다. \\\"인터뷰가 지긋지긋하다고.. 온 방송이 얼마나 벗었느냐고 ?\\\" 그것에 관심 만을 가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제가 보니까 정말 아픈 영화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요. 외로움의 이야기입니다. 깊은 영화 입니다.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물론 야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좀 깊게 사십시오. 영혼의 의식을 높이시길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가? 제가 볼 때는 마음을 공부해야 합니다.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닙 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도전을 받습니다. 어떤 일을 당하면서 내 마음을 살펴봅니다. 자기 마음을 모르고는 행복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공부란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 내가 하나님과 맺는 관 계는 어떤 것인지, 우주는 무엇인지, 인생과 운명이란 무엇인지, 내 마음은 무엇인지, 마음 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등을 아는 것입니다. 세상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큐티를 통해서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합니다. 읽으면서 지키면서 합니다.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모습을 보며 서른 다섯 번 넘어지는 것을 보는 마음이 있고, 두 걸음을 걷는 것을 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병이 치유되자 다만 기뻐하는 마음이 있고, 기쁨을 넘어서서 감사를 느끼고 또한 표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서로 그만큼 영혼 의식의 수준이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는 것이 아닙 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은총이 와도 은총임을 모릅니다. 마음을 느끼십시오. 그러고 예수님을 마음으로 초대하십시오. 찬송가 336장을 보시면 그렇 습니다. 왜 우리가 헤매고 있습니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받아들이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차 마귀 미혹과 대 심판/ 계20:7-
2차 마귀 미혹과 대 심판 계20:7- 서 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들어 쓰던 뱀이 용이 되고 마귀가 되어 온 세계를 꾀이는 기간은 1차 미혹이라고 본다. 이것은 왕권 받을 종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2차 미혹은 천년왕국에 들어간 자 중에 곡과 마곡을 미혹해 보기 위하여 마귀를 다시 들어 쓰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천년 왕국이라는 것은 마귀 미혹을 이기고 왕권 받은 자들이 통치하는 지상왕국인데 이 왕권을 받을 자는 두 가지로 되어 있다. 첫째: 자기 맡은 일에 충실을 다하기 위하여 원수에게 순교를 당한 자이며 둘째: 마지막 붉은 짐승과 거짓 선지의 세력과 싸워 승리한 자들이 주님 올 때까지 남은 자가 되어 천년왕국을 이루는 왕권 가진 종들에 대하여도 부활성도 반열과 변화성도 반열이 있고 백성 중에도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곡과 마곡은 마지막 증인들이 재앙으로 땅을 치고 나갈 때에 원수의 나라에서 굴복하고 들어와 남은 자가 된 자요, 또는 변화성도의 육적 혈통으로 남은 자가 되어 새 시대의 백성이 된 자도 있다 그러므로 곡과 마곡은 큰 확장을 이루었고 변화성도들의 혈통은 한 성을 이루었는데 그 성을 왕궁 도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한 때에 변화성도의 왕족을 세세 영광을 누릴 것을 약속했으므로 미혹을 시켜 보지 않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44:3-5, 59:21, 66:22를 보면 변화성도의 자손의 축복을 말했다. 그러나 곡과 마곡은 사60:10과 같이되는 것인데 이 이방 족의 그 자손들은 그냥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마귀로 미혹을 시켜 보는 것이다. 이제 그 진리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곡과 마곡을 미혹함 (7-8) 이때는 천년이 찼으므로 곡과 마곡은 바다의 모래같이 대 확장을 보게 되었다. 이 무리는 계7:9과 같이 헤아릴 수 없는 무리가 새 시대에 들어간 것인데 큰 환난에서 나온 무리들이다. 성신을 받은 자가 아니고 변화성도의 마지막 경고를 듣고 회개하고 따라온 무리인데 영적 이스라엘이 아니요, 환난에서 나오므로 그 무리들은 왕국 반열에 들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성신의 역사가 있으므로 종들의 수가 찬 다음에 일어나는 역사에서 회개했기 때문에 이들은 천년시대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아무런 주권이 없고 성도의 통치 아래서 순종하며 받드는 일에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왕족은 그들에게 섬김을 받는 데서 번창을 했고 그들은 섬기는 생활에서 번창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구약 때 제사장족인 레위 족속을 모든 백성들이 섬긴 것과 같이 새 시대에도 왕족을 섬기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상급이 되는 봉사가 아니고 그 권세 아래서 통치를 받게 되는 것뿐이다. 이 무리들은 많은 봉사를 해내려 왔지만 아무런 영광의 주권이 없으므로 미혹이 올 때 성도의 왕권을 대항하게 될 것이다. 2. 성도들의 진과 거룩한 성 (9) 이것은 변화성도의 혈손으로 이루어진 도성을 말한다. 이 때에 왕궁 도성에는 변화성도의 혈손이 아니고는 거하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다 사랑하는 성을 받들어 섬겨 왔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예물을 바치는 일을 해 왔던 것이다(사18:7). 성도의 통치라는 것은 신정 통치니 거룩한 도성에서 통치하되 영광을 누리는 것뿐이요, 아무런 피해도 없고 전쟁도 없고, 미혹이 없는 동산에서 영광스러운 도성을 이루어 세계적인 평화왕국을 보존하고 내려왔다. 그러나 미혹 받은 백성들이 그 성을 둘러싸고 해치려고 할 그 때에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미혹 받은 자는 멸망을 당하고, 미혹 받지 않은 자들이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때 미혹이라는 것은 어떤 말씀을 중심 해서가 아니고 성도의 왕권을 끝까지 순종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으로 갈라지게 된다. 3. 대 심판 (11-15) 이 심판은 복음 심판이 아니요, 행위 심판인데 죽은 자 중에도 두 가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지옥 갈 사람도 있고 천국 갈 사람도 그 심판에서 갈라지게 된다. 구원받을 종이라도 왕권에 가입하지 못한 자는 행위 심판을 거치게 된다. 왜냐 하면 왕권을 받은 자는 행함대로 왕권을 받았으니 그 밖의 사람들도 행함 따라 상급을 받되 왕권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시민권으로 받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행함 따라서 심판을 받되 책에 기록된 대로 받는 것이니 유황불에 고통을 받는 것도 행함 따라 고통을 받게 되고 천국의 영광을 누려도 행함 따라 누리되 왕권의 영광이 아니요, 시민권의 영광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죄사함을 받은 자는 심판록에 있지 않고 생명록에 있으므로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상급을 받고 정죄함을 받는 자는 그 이름이 심판록에 있으므로 행한 대로 형벌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심판이 된다. 왜냐 하면 전부 그 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결 론 천하에 제일 복있는 자는 천년왕국에서 왕노릇 하는 자요 제일로 영광을 길이 길이 누릴 자도 왕권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시민권이라는 것은 이미 구원받은 자도 있고 환난에서 영육이 아울러 구원받은 자도 있는 것이니 가장 복있는 자는 변화성도이며 그의 자손일 것이다.
40일간의 말씀여행/ 마4:1-11/ 최일환 목사/ 장안중앙교회/ 2006-03-05
40일간의 말씀여행 마4:1-11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설교: 한국 사람들은 4자를 싫어합니다. 4字가 “죽을 死” 字와 같은 발음이 난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어떤 병원에서는 4층이 없는 병원이 많고 있습니다. 3층 다음 5층입니다. 혹 4층이 있어도 4층이라 하지 않고 영어로 Four층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8입니다. 그 이유는 八이라는 중국어 발음이 pa(빠)인데 “일으킬 發”字의 fa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發”자에는 ‘發財’. 즉 ‘돈을 벌다, 재산을 모으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인은 8자로 계속되는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 자동차 번호 등이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습니다. 시장의 물건 가격도888元 등 8元으로 끝나는 가격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격을 이렇게 붙여놓으면 깎기 좋아하는 중국인이라도 흥정을 않고 그냥 물건을 사는 예가 많기 때문입니다. 1988년 8월 8일, 중국에서는 길일(吉日)에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로 합동결혼식에 버금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상해 유명 호텔 전화번호들을 보면 대부분 뒷자리가 8888입니다. 또 시내 웬만큼 큰 빌딩에 가보면 흔히 888號(혹은 88號)라고 커다란 간판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번지수에 맞추어 부지를 구한 것인지, 우선은 빌딩을 지어놓고 그 번지를 사온 것인지는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일설에 의하면 8이라는 숫자에 맞는 호수를 구하기 위해 부지 일대의 땅을 모두 사들인 후 건물을 짓는다고 합니다. 한국인 좋아하는 숫자는 3과 5, 7, 9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의 완전수를 의미하는 3과 동서남북, 지상의 완전수인 4를 좋아하고 이 둘이 합하여진 7을 행운의 숫자라고 하여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두 숫자를 곱한 12를 좋아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특정한 숫자가 많이 기록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 말씀을 살펴보면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앞서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40이라는 숫자가 성경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 것을 살펴보게 됩니다. 특히 날자 수로 40일이 성경에 수없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1)노아 홍수가 40일간 밤낮으로 내렸고 2)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간 기도하여 십계명을 받았으며 3)이스라엘 백성의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땅을 40일간 정탐했으며 4)골리앗군대가 40일간의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 다윗이 그 전쟁에서 승리하여 그의 명성이 높아졌으며 5)엘리야는 하나님이 주신 음식을 먹고 40일간 호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6)요나가 니느웨성에 가서 심판을 선포할 때 40일간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7)예수님이 부활하시여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며 제자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오늘 주님이 기도하신 40일 금식기도 기간 중의 3가지 시험을 받으신 사건, 이 말씀을 깊이 살펴보면 이 40일 기간이 단순히 기도만하는 기간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주님은 40일 동안의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 주님이 하셔야 할 사역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작년 말에 2006년도 목회계획을 세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얻은 계획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하면 1월은 ‘말씀 축복 대심방’입니다. 2월은 ‘목회비전축제’이고 3월과 4월은 40일 말씀여행이었습니다. 특히 이 40일 말씀 여행은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가 되기 위한 영적 훈련과정으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축복입니다. 비록 40일이란 기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으나 하나님의 특별 은혜가 풍성하게 임할 기회임을 믿고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40일 말씀 여행을 시작하면서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의 여정에 동참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2절을 보세요.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하나 해야 합니다. 왜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내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을까요? 왜 다른 분도 아닌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내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셨는가? 여기에 흡족한 대답을 할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우리와 다른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하기 위함일 것이고 사단의 세력이 예수님을 이길 수 없는 분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수님은 기도하셨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고 당신의 공생애를 영적 전쟁으로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도 성령의 인도하심과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야만 승리 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순간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마태복음3:16~17절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고 그때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왜 성령은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자 임재 했으며 왜 사역의 첫 시간에 임했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구속사역에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하셔야 했다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입니다. 요한복음3:5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중생해야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고 하늘나라도 못들어 갑니다. 또 요한복음 14장 26절에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임재하시면 그 성령이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요한복음16:13절에 보면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신 성령이 여러분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이 여러분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느껴야 하고 그 인도하심에 철저하리 만큼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셔서 금식 기도하셨고 또한 사단과의 역적 전쟁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이번 40일 말씀 여행에도 성령의 인도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성령의 임재하심과 인도하심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금식기도하며 참여해야 합니다. 주님은 40일간 광야에서 기도하시며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아닙니까? 육신을 입으셨으나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 된 분으로 성자 하나님으로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철저하게 기도생활을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주님이 금식을 하며 기도하셨을까요? 금식은 자신을 쳐 복종 시키는 자세입니다. 금식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내 혈기, 내 정욕, 내 모든 교만, 아집, 죄 됨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혈기나 정욕 교만과 아집을 꺾을 것도 없으셨을 텐데 왜 금식하셨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구속 사역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 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40일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사실 현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주님의 금식과 오늘 우리의 40일 금식은 다릅니다. 우리 금식은 물을 섭취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금식은 완전 단식입니다. 그러기에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40일을 금식하며 기도에 승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40일 말씀 여행 중 적어도 몇 끼, 또는 하루 한 끼 금식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금식은 왜 하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행하는 우리의 금식은 이사야 58:6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1)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2)우리가 지고 있는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3)죄악 억압으로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4)우리 위에 지워진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힘입니까? 그러나 먹기 싫어하는 금식은 아닙니다. 늦잠자고 나서의 금식은 금식이 아니라 굶식입니다. 금식은 우리의 마음을 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재미삼아 하는 것이 아니고 심심해서 하거나 살빼기 위해서 하는 것을 금식이라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요엘2:12~13을 보세요. “12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를 보세요.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영적인 모습을 보세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저 북녘의 동포들을 보세요. 우리가 이 시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바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실까요? 요엘2:13을 다시보세요.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아멘? 저와 여러분! 이번 40일 말씀여행이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 나를 변화시키는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믿음으로 금식기도도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말씀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하시면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단순히 기도만 하셨을까요? 성경에는 나오지 않았으나 성경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철저하게 완벽하게 물리치신 것을 보면 성경 말씀으로 무장하신 기간이라고 믿습니다. 마귀가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갖고 대답하십니다. 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을 인용하여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하십니다. 마귀는 먹는 문제를 가지고 제일 먼저 우리를 건드려 봅니다. 그러기에 분명하게 믿음으로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자 마귀는 두 번째로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을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성경 구절을 인용합니다. 시편91편11~12절 말씀을 인용합니다. 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이 구절을 가지고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6절 중간을 보세요.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이 말씀으로 대적하니 마귀도 말씀을 대응합니다. 이런것을 보면 마귀도 말씀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주님은 성경을 인용하여 대답하십니다. 신명기6:16절을 인용해“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이구절을 인용해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십니다. 이 두 번째 것은 명예를 통한 유혹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기 가장 쉬운 것은 명예욕입니다. 이것으로 많은 사람이 펑펑 넘어집니다. 이것도 믿음의 말씀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세 번째 시험도 지극히 높은 산에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시험합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합니다. 마치 제 것인냥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호하게 명령하며 말씀으로 대적하십니다. 이것은 신명기6:13절을 인용합니다.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여기서도 “기록되었으되” 하며 성경을 인용하여 물리치십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권세를 통한 유혹입니다. 사람들은 권세를 참 좋아합니다. 요 작은 대한민국 시장, 군수, 도지사 되려고 난리를 치는 모습을 보세요. 그러니 천하만국의 권세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권세는 마귀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마치 자기가 가진 것처럼 속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과는 마귀가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와 수종드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말씀 여행 40일은 성경을 전체적으로 개괄하는 은혜의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매일 매일이 새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이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의 시험이 떠나 갈 것입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나를 떠나갈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철저하게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내게 말씀이 없으면 마귀는 우리를 농락합니다. 내게 말씀이 없거나 긴가민가하면 마귀가 우숩게 봅니다. 바라기는 주님처럼 이번 40일이 영적 전쟁을 치루는 자세를 갖기를 축원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달 열흘을 싸워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여러분이 모르는 사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정탐한 기간이 40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열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을 실망시켜 40년의 광야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40일 말씀 여행을 합니다. 이 일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영적 보약 먹는 기간이라고 믿고 믿음으로 동참하고 믿음으로 헌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놀랍고도 엄청난 넘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40일간의 말씀여행으로 여러분의 40년의 생애가 복된 생애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4명의 믿음의 태도/ 창24:32-53
4명의 믿음의 태도 창24:32-53 라반과 브드엘이 오늘 등장하는 인물인데 라반은 리브가의 오라비이며 브두엘은 리브가의 어미입니다. 라반과 브두엘 그리고 엘리에셀의 믿음의 태도에 대해서 잠간 생각해 봅시다. 1. 오라비 라반과 그 어미 브두엘의 믿음의 태도는 어떤 것인가를 봅시다. 50절을 한번 읽어 봅시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고 말하였습니다. 때로는 어떤 일의 가부를 결정하는 일에 있어서 상당히 어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만이 서로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1)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하나님의 섭리 인줄을 깨닫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니 아브라함의 늙은 종인 엘리에셀을 통하여 리브가를 만난 일에 대하여 리브가의 부모는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2) 라반과 브두엘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 위하여 모든 인정을 끊어 버렸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갑작스럽게 헤어진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보고 싶으면 가 볼 수 있는 그런 상황도 아닙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정이 든 리브가를 신랑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채 믿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보냈습니다. 2. 엘리에셀의 신앙적 태도는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1) 주인에게 충성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라반의 안내를 받아 집에 들어가 음식을 대접받게 되었을 때 그가 이곳에 오게 된 연유를 말하지 않고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엘리에셀이 주인 아브라함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온 목적을 달성하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주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축복받은 것을 나타낸 것은 역시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는 영적으로 우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교역자만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2) 먹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나타내는 것은 훌륭한 태도라고 봅니다. 먼 여행길에 얼마나 피곤하겠으며 배도 고팠겠습니까? 그러나 자기의 욕심을 채울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증거할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 않고는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일임을 엘리에셀은 증거했습니다.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우물에서 만나는 여자 중에서 자기에게와 약대에게 물을 주는 여자를 이삭의 아내로 정하겠다”고 간구할 때 하나님이 리브가를 만나게 해 주셨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전도는 교회나오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다 보면 교회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중매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일임을 리브가의 부모에게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3. 엘리에셀의 중매는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부된 우리들을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분은 성령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중매한다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우리들은 다만 순종외에는 없습니다. 마틴 루터는 기독교의 덕은 첫째도 순종, 둘째도 순종, 셋째도 순종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 들인 4사람 엘리에셀, 리브가, 라반, 그리고 브두엘처럼 모두 한 뜻이 되어 순종한 것처럼 여러분들도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원합니다. 4. 리브가의 믿음의 태도는 길게 말씀을 안드려도 여러분들이 잘 이해하시는 줄 압니다. 신랑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그는 엘리에셀을 따라 나섰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실제로 보지는 못하였지만 마음에 예수 신랑으로 모시고 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이 바로 리브가와 같은 믿음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4월의 말씀/ 요14:4-11
4월의 말씀/요14:4-11 2003-04-14 13:05:41 read : 46 그리스도께서는 어느 날 그의 제자들에게 이 땅이 아닌 하늘나라의 행복을 제시하시면서 자신이 바로 그 길, 즉 방법이 되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알리라(4절)는 말씀은 \\\"네가 알 수 있다. 그것은 네게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란 뜻입니다. 오늘 이 축복의 말씀이 더 이상 여러분에게 감추어진 비밀이 아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길에 관한 도마의 질문(5)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5절)”제자들은 모두 위풍당당하고 권세가 있는 일시적인 세상의 왕국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환상의 모래성을 동서남북에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은 그들이 생각한 길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주님의 생각과 다르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도마가 생각한 길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십자가의 공로로 생명의 삶을 살지만 주님의 길과 너무 떨어진 세상이 목적인 삶은 지양해야 합니다. 혹시 오늘 우리도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5절)”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2.그들의 무지에 대한 그리스도의 답변(6,7) 도마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답해 주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으니라(6절)” ☛여기서 “나, I”는 에고(ejgwv), 즉 1인칭 기본대명사로서 이 단어는 오직 강조할 때만 사용됩니다.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370회 사용되었습니다.(이것은 강력한 메시지이다) (1)먼저 그리스도는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oJdov\\\"(호도스) : 길 way, road, 대도 highway, 생활 방식 way of life. ☛호도스는 어떤 것에 도달하거나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 방책, 절차, 무엇을 행하거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삶(인생)은 때때로 길에 비유됩니다. 그래서 그 일차적 요소는 동작(action)입니다. 즉 행동으로서 \\\'도보\\\', 육지에서의 \\\'여행\\\'이나 바다에서의 \\\'항해\\\', 군대의 \\\'행진\\\', 즉 그 출발을 뜻하는 것입니다. ☛헬라 문헌에는 두 길에 대한 묘사가 자주 발견됩니다. 악으로 가는 길과 선으로 가는 길, 경건한 자를 위한 오른편 길과 불의한 자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로 이끄는 길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러한 호도스가 종교적인 관점에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의가 깊은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행위와 구원 사역을 뜻하는 말로, 또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호도스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호도스는 “예수님의 인격”에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1)이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본질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길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만나고 있으며, 두 본성이 함께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죄가 없다고 해도 스스로 생명나무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만 계속 따른다면 생명에 이르는 길에서 결코 이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진리이십니다. 진리는 허위나 오류에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진리는 거짓이나 기만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다른 길들은 옳은 길처럼 보이지만 그 길들의 마지막에는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ajlhvqeia, 알레데이아)는 어원적으로 \\\'가리워져 있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보여지거나, 지적되거나 표현된 상태를 뜻합니다. 물론 그것은 숨겨지거나 위조되거나 왜곡되거나 생략되거나 은폐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레데이아는 사법에서 사건의 진상(full or real stale of affairs)을 의미합니다. @.성육신,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진상,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9] ☎역사에서는 신화와 완전히 구별되는 실재적 사건을 뜻합니다. 철학에서는 절대적 의미의 참된 것 등을 의미합니다(R. Bultmann). 그러므로 알레데이아는 일반적으로 거짓이나 거짓말에 반대되는 \\\'진실\\\'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구약성경 학자들은, 즉 히브리 저술가들이 말하는 \\\'진리\\\'란 의미상 \\\'불변성\\\'(stability), \\\'확고함\\\'(firmness) 혹은 \\\'확실성\\\'(reliability)이란 개념을 시사해주는 \\\'신실성\\\'(faithfulness)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자꾸 뒤집어지는 학설과는 다르다. 과학과도 다르다. 창 24:48에 \\\"바른 길\\\"이 데레크 에메트(알레데이아), 즉 제시되는 많은 길들 중에 확실히 성공하는 길을 뜻하고 있습니다. ☛알레데이아는 드러난 \\\'사건의 실상이나 진상\\\'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믿거나 의지할 수 있는 것\\\' \\\'참된 가르침 또는 믿음\\\', \\\"진짜임\\\", \\\"하나님의 실체\\\", \\\"계시\\\"를 의미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은 생명(life)입니다. zwhv(조에) 조에는 헬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유기적 존재들, 동물, 사람, 식물의 물리적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생명은 물건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특징 지우는 생명성(vitality)입니다. 각 개 개인뿐만 아니라 전 우주까지도 살아있는 유기체로 생각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은 다음 세 가지의 성분, 곧 이성(Reason), 정신(mind), 이해력(understanding)이 인간의 생명을 특징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초자연적 생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생명은 신자들이 미래에 받을 것이지만, 이 땅에서 지금 향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신자들의 생명을 나타냅니다. 조에는 종말의 복된 시대에서 누릴 생명(영생)으로 사용되었다. 2)중보자의 필요성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타락한 인간들은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최종 목표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절).” 여기서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인식하지 못한 그 우둔함에 대한 책망이 그들에게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 말을 다른 유대인들에게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 8:19).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앞으로는 너희들이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인데, 너희는 그를 이미 보았다.\\\" 이것은 주님의 대부분의 제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은혜를 지니고 있었던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그분을 알게 될 때 한꺼번에 즉시 모든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유를 먹고 어떤 사람은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 속에서 살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아버지에 대한 빌립의 질문과 그에 대한 주님의 답변(8-11) (1)빌립의 요구는 아버지를 분명히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보다 확실한 빛에 대한 열렬한 소원 때문에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 빌립은 \\\'아버지를 우리에게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사실 우리가 원하던 것이오, 우리가 요구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이 말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열렬한 갈망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서만이 우리 영혼이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father.pathvr, 파테르) 아버지는 고전 헬라어에서 실제적인 아버지나(Homer), 가계의 족장(Josephus) 또는 일반적으로 조상들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비유적 의미로 이 단어는 \\\'선구자, 창시자, 존경받는 사람, 노인, 선생\\\'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지적이나 영적인 부권에 대해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명사 파테르는 구약에서 거의 전적으로(1,180회)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종교적 의미로는 아주 드물게(15회) 사용되었습니다. ☛명사 파테르는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인 의미로 157회, 종교적 의미로 245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한 아버지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 나라의 개념입니다. (2)그리스도의 대답(9-11절). 1)주님은 빌립에게 그가 본 것에 관해 말씀하신다(9절).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주님은 빌립에게 두 가지 책망을 하고 계십니다. ①빌립이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도 그에 대한 분명하고도 뚜렷한 지식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알고 있으나 그분에 대하여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보아야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그리스도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머물수록 점점 성장하기를 바라시지, 우리가 어린아이로 남아 있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②주님은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라고 부르짖는 빌립의 나약한 기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 기도의 실제가 바로 앞에 있는데......., “너희가 기도를 시작할 때에 내가 이미 응답하였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의 근심, 그러나 주님은 옆에 계셨다. 2)그러나 주님은 빌립에게 그가 믿을 만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므로. 나를 보는 네가 아버지를 본 것임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10,11절). 그러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그것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나?\\\'라는 한 회의론자의 물음에 베두인이 대답했다. \\\'난 지난밤 내 천막 옆으로 낙타가 지나갔는지, 또는 사람이 지나갔는지 정확히 알 수 있지! 어떻게 아는 줄 짐작하겠나? 바로 모래 위에 남은 발자취를 보고 아는 것이라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사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본질적인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4월의 말씀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일차적인 것이고, 이차적인 것은 우리들의 삶의 회복을 뜻합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회복의 원천임을 다시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복된 한 달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000명을 먹이는 사람(A Person Who Feeds the 5000)/ 막6:35-47(Mark 6:35-47), 요6:5-13(John 6:5-13)/ 한영대역설교/ 어린이주일학교설교/ 2007-02-27
5000명을 먹이는 사람(A Person Who Feeds the 5000) 막6:35-47(Mark 6:35-47), 요6:5-13(John 6:5-13) 한 기업인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a businessman came to a pastor. “목사님 저는 성공하지 못한 사업가입니다.” He said “ I am a failed businessman.” “왜요? 요즘 불황이라 회사가 힘드신가 봐요?” “why? is there a depression in your company?” “직원들 봉급주고 나니까 남는 게 없어요.” “I don’t have anything left when I give the wages to my workers” “그럼 사장님 가족들의 생활비도 집으로 못 가져가십니까?” “So, can’t you take the money and use it for your family?” “그런 게 아니라 남들처럼 돈도 못 모으는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No, It that I can’t save any money like the other companies do.” “직원들이 몇 분이나 되세요?” “how many people work for you?” “20명입니다.” “20 people” “20명이나 먹여살려요? 사장님은 성공하신 기업인입니다!!” “20 people? your are a successful businessman.” “성공이라뇨?” “successful?” “20명분을 깔고 앉아서는 혼자 먹겠다고 20명 굶기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20명을 먹여 살리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you are not a person who doesn’t give the wages to survive by yourself, but gives 20people money for them to survive. 앞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20명만 아니라 200명, 아니 2000명을 먹이는 기업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싶시오.” Pray form now on and ask God to make a you successful person who feeds 200 no, 2000 more people.” 세계적인 기업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말한 인재에 관한 철학입니다. This is the philosophy that the talented man, Lee Ken Hee President of world-wide enterprise Samsung talks about. ◎ 천재급 인재를 확보하라. Secure the natural genius-talented man. 창조적인 천재 한 명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 One creatively talented person feeds ten thousand people. 여러분 오늘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What is today’s title?” “5000명을 먹이는 사람”입니다. “It is A Person Who Feeds the 5000” 함께 보실 성경은 요한복음 6장 1절 -13절의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6장 35-47 35.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And when it was already quite late, His disciples came up to Him and [began] saying, “The place is desolate and it is already quite late;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send them away so that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countryside and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thing to eat. ” 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But He answered and said to them,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And they *said to Him, “Shall we go and spend two hundred denarii on bread and give them [something] to eat?”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And He *said to them, “How many loaves do you have? Go look!” And when they found out, they *said, “Five and two fish.” 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And He commanded them all to recline by groups on the green grass. 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And they reclined in companies of hundreds and of fifties.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And He took the five loaves and the two fish, and looking up toward heaven, He blessed [the food] and broke the loaves and He kept giving [them] to the disciples to set before them; and He divided up the two fish among them all. 42. 다 배불리 먹고 And they all ate and were satisfied.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And they picked up twelve full baskets of the broken pieces, and also of the fish. 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And there were five thousand men who ate the loaves. 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And immediately He made His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ahead of [Him] to the other side to Bethsaida, while He Himself was sending the multitude away. 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And after bidding them farewell, He departed to the mountain to pray.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And when it was evening, the boat was in the midst of the sea, and He [was] alone on the land. John 6장 5-13 [NASB]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Jesus therefore lifting up His eyes, and seeing that a great multitude was coming to Him, *said to Philip, “Where are we to buy bread, that these may eat?”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And this He was saying to test him; for He Himself knew what He was intending to do.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Philip answered Him, “Two hundred denarii worth of bread is not sufficient for them, for everyone to receive a little.”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One of His disciples, Andrew, Simon Peter’s brother, *said to Him,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There is a lad here who has five barley loaves and two fish, but what are these for so many people?”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Jesus said, “Have the people sit down.” Now there was much grass in the place. So the men sat down, in number about five thousand.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Jesus therefore took the loaves; and having given thanks, He distributed to those who were seated; likewise also of the fish as much as they wanted. 12.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And when they were filled, He *said to His disciples, “Gather up the leftover fragments that nothing may be lost.”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And so they gathered them up, and filled twelve baskets with fragments from the five barley loaves, which were left over by those who had eaten. Question 1. 이 사건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이 났습니까? when did this event happen and when did it finish? Question 2. 누가 예수님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찌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라고 했나요? who said “200 denarius worth of bread is not sufficient for them, for everyone to receive a little. ” Who did answer Jesus, “Two hundred denarii worth of bread is not sufficient for them, for everyone to receive a little?” Question 3.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who was it that prepared the 5 barley loaves and 2fish? Question 4. 예수님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가정먼저 하신 일은? what did Jesus do first with the 5 loaves and 2fish? Question 5. 제자들이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라고 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신 내용은? What was Jesus’ answer when his disciples asked if “they may go into the surrounding countryside and villages and buy themselves something to eat.” Question 6. 예수께서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셨는데 사람들은 몇 명씩 앉았는가? How many people did He command them all to recline by groups on the green grass?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And they reclined in companies of hundreds and of fifties.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5000명을 먹여 살리는 인물이 될 것인지를 알고 이런 인재가 되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Today we’ll talk about how to be a person who feeds 5000 people. I hope that we’ll become these kind of people in Jesus Name” 지금도 예수님은 명하십니다. Jesus still demands.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You give them [something] to eat!” 그리고 그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And he tells us how to do so. 먹이는 사람이 됩시다. Let’s become people who feed. 5000명을 먹이는 사람이 됩시다. People who feed 5000 people. 1. 내 것을 기꺼이 주는 손 1. A hand willingly giving mine to someone else. 은별이 어릴 때 보던 책이 있습니다. “수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란 곰돌이가 주인공인 책입니다. There is a book that Grace liked to read when she was a baby. It was called “how to eat a watermelon more deliciously” with a baby bear being the main character.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 하나쯤은 여러분도 가지고 계시겠죠? everyone would have their own way of eating something deliciously. 곰돌이는 수박을 혼자서 먹기 위해 친구들 몰래 차가운 냇물 속에 수박을 담궈 둡니다. The baby cub put the watermelon in a water of steam to eat the watermelon by himself. 그러나 친구들이 곰돌이를 찾아와서 물속에 담궈 둔 수박을 보게 됩니다. But his friends come and see the watermelon in the stream water. 곰돌이는 수박을 혼자 먹기 위해 꾀를 냅니다. The baby cub plans a trick to eat it by himself. “수박을 어떻게 먹으면 맛있을까?” he asked to others “how should we eat it to make it more delicious?” “수박은 칼로 잘 잘라서 먹어야해!!” 그러고는 한 친구에게 칼을 가져오라고 집으로 보냅니다. “a watermelon has to be cut perfectly with a knife in order to have it nicely!” and so the baby cub send him to get the knife. “수박화채를 해서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다른 친구에게는 오목한 그릇을 가져오라고 집으로 보냅니다. “It will be more delicious if we make it into a watermelon salad!” so, he sent him to get a bowl for it. 설탕을 가져오라고 또 다른 친구를 보냅니다. And he sent the other friend to get some sugar. 친구들을 다 집으로 보낸 곰돌이는 그 수박을 꺼내 들고는 혼자 먹기 위해 언덕으로 도망갑니다. when he sent all of his friends to get something he ran away up the hill with the watermelon. 그러다가 개구리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그만 언덕에서 수박을 떨어트리고 맙니다. 수박은 굴러가다가 그만 깨어져 버립니다. But he got a fright by a frog and dropped the watermelon a d it rooled down the hill and smashed.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온 친구들은 울고 있는 곰돌이를 위로합니다. the friends who didn’t know anything come and cheer the crying cub. 그리고는 모두 함께 깨어진 수박을 맛있게 먹습니다. And they all deliciously, ate the smashed watermelon together. 한참을 먹다가 곰돌이가 말합니다. and then later the cub said. “아! 수박은 함께 먹어야 가장 맛있다.” “watermelon’s are most delicious when we all share.” 오늘 본문에 나타난 소년은 그가 먹을 변변치 않은 도시락인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어놓습니다. In today’s scripture, the young boy ,without hesitation gave his only 5 barley bread and 2 fish. 그러나 기적은 여기에서 출발되었습니다. But that was the miracle started. 혼자 먹으려고 감춰 두지 않고 내놓게 되었을 때, when he didn’t hide it to eat it by himself. 자기뿐 만 아니라 5000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He , not only fed himself but another 5000 people. 사랑하는 여러분 everyone. 5000명을 먹이는 인재가 되기 위해 to be a person who feeds 5000 people, 첫째: 곰돌이가 발견한 수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1st: always remember how the baby cub found how to eat the watermelon most deliciously. 2. 예수님께 드리는 손 빌립이라는 제자는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Phillip said “200 denarius worth of bread is not sufficient for them, for everyone to receive a little.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품삯이니까 80 x 200 = $16,000NZD라도 부족하다는 말을 합니다. If we exchange 200 denarius into NZD, it will be. 1 denarius is one person’s wage for a day. So $80 x 200 would be $16,000 and that would be not enough to feed 5000 people. 즉 한 끼 겨우 $3.20 NZD, 맥도널드에서 치즈버거 겨우 사면 5000명 먹긴 하겠지만 5000명분 주문하려면 뉴질랜드 전역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서 사온다 해도 반나절은 족히 걸릴걸요? 라며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We can only eat 1 meal at the cost of only $3.20 NZD, which is only enough to buy 2 cheese burgers at Mcdonald’s. It will feed them. but it will take half a day to go to all the Mcdonald’s in the country to get it. 그러나 안드레는 소년의 떡을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But Andrew gave Jesus the bread and fish the little boy had given him. 모두 것은 예수님의 손에 들려져야 합니다. 거기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Everything must go into the hands of Jesus. because that is where miracles happen. 삶이 너무 어려워 예수님께 기도드리려고 손을 모으려면 When you pray because you are holding a heavy burden, 내가 쥐고 있던 것을 다 내려놓습니다. You out down all the things that you had in your hands. 그러나 But... 기도 후에 내려놓은 것을 다시 가져간다면 If you take back the things you had after you had prayed 내 손은 나는 다시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your hand will have to be heavy again. 예수님의 손에 올려드리세요. Put your hand on Jesus’ 나는 가벼워지고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실 것입니다. you will become lighter and Jesus will make many people beneficial. 예수님께 드리세요. Give it to Jesus 이것은 예수님께 받기만 해온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의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도전적이 말입니다. This is a challenging word which is different to what general Christians do. Only receive from Jesus. 예수님께 드리면 무언가를 이루시리란 믿음은 창조적인 믿음입니다. A Creative faith is when you have a faith which believes that if you give something to Jesus, he will make something out of it. 받기 위해 드리는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It is not giving just to receive in a selfish way. 예수님 이것을 드립니다. Jesus I give this you. 당신의 필요를 위해 써주세요!! Use it for what you need!! 다시 한번 더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 I’ll emphasize it more. 계산하지 마시고 여러분이 가진 것 그것을 예수님이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 쓰시라고 내어 놓으십시오!! Don’t calculate, and give everything you have to Jesus and give it to Him for only He to use. 이 창조적인 믿음이 5000명을 먹이는 위대한 사람을 만들 것입니다. This creative faith will make a person who feeds 5000 people. 3. 감사드리는 손 3. A hand that gives thanks. 우리는 지난 4주간 감사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감사는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씀을 기억 하실 것입니다. For the last 4weeks we have been talking about thanks giving and you would remember that thanks giving is not a result but a start. 5000명을 먹인 기적은 예수님의 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The miracle that feed the 5000 started in Jesus’ hand. 예수님은 어떤 절차에 의해서 5000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Jesus used an order to make the miracle of feeding the 5000 to happen. 예수님이 5000명을 먹이시기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What did Jesus first do to feed the 5000? 그것은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That was to give thanks. 떡덩이는 다섯 개, 물고기는 겨우 두 마리인데 어떻게 5000명이나 먹는단 말입니까? He had only 5 barley bread and 2 fish but how did he feed the 5000? 어떤 손이기에 나누기만 하면 생겨난단 말입니까? What kind of hand does he have to make bread when he halves it? 그건 바로 감사의 마음으로 나누는 손입니다. It was a hand sharing with a thanking heart. 한번 그때의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Let’s imagine that situation. 예수님이 일인분의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만드시려면 짧게 잡아서 10초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Let’s say that Jesus took about 10 seconds to make the amount of food for 1 person. 그러면 5000번째 사람이 그것을 먹으려면 50000초 즉 13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Then the 5,000th person would have to wait 50,000seconds which is 13 hours to get his meal. 뿐만 아니라 13시간의 예수님의 손노동도 문제가 됩니다. Not only that, 13 hours of labour would be problem for Jesus. 성경은 그 시간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This is how the bible say that time. 마가 6장 35절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By this time it was late in the day, so his disciples came to him. “This is a remote place,” they said, “and it’s already very late. 마가 6장 44-47의 말씀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The number of the men who had eaten was five thousand.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Immediately Jesus made his disciples get into the boat and go on ahead of him to Bethsaida, while he dismissed the crowd.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After leaving them,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to pray. When evening came, the boat was in the middle of the lake, and he was alone on land. 이 말씀으로 미루어보면 “저물어갈 때부터 저녁때 까지니까” 길어야 2시간입니다. 거기에다 나누는 시간, 거두는 시간, 무리들을 보낸 시간이 거기에 포함되니까 정말 길게 잡아야 1시간 30분입니다. If we think about it, from late in the day to evening it would take less than 2hours and if we take out the time in which they distributed and gathered the food and sending everyone home, it would’ve taken less thank 1hour and a half. 그럼 어떻게 1시간 30분 만에 5000명을 먹일 수 있을까요? then how did Jesus feed 5000 people in 1and a half hours? 예수님은 먼저 first, Jesus 이렇게 미리 명하셨습니다. had already demanded. 5000명을 50명 100명씩 나누어 앉히라고 하셨습니다. He told the 5000 people to sit in groups of 50’s and 100’s 마가 6장 39-40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And He commanded them all to recline by groups on the green grass. And they reclined in companies of hundreds and of fifties. 그러면 대충 계산해보겠습니다. If we estimate. 50명 무리=> 50팀, 50groups => 50 people 100명 무리=> 25팀 25 groups => 100 people 이렇게 가정해 봐도 최소 팀만 75개 팀이 됩니다. if we guess it like this there will be at least 75 groups. 즉 50명 혹은 100명이 들어가는 식당 75개 업소가 동시에 1시간 30분 동안 식사를 다 마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So, how do 75 restaurants which contain 50 or a hundred people, finish eating in 1 and a half hours? 개개의 식당에서 미리 준비한 식사를 10명 내지는 20명의 직원이 빠르게 나눠줘야 가능할 수 있습니다. It will be possible if each restaurant serves with 10~20 people, the food they had already prepared. 그러므로 5000명을 한시간 30분만에 먹이려면 50명 식당의 직원 500명과, 100명 식당의 직원 500명 총 1000명이 동시에 서비스해야 가능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답이 나왔습니다. so in order to feed 5000 people in 1 and a half hours you will need 500 people in the restaurant of 50 and 500 in the restaurant of 100, So, 1000 people have to serve at the same time. 예수님으로 비롯되어 나누어진 떡과 물고기는 12제자들에게 나누어졌고 제자들은 적어도 75개 무리들에게 또 나눕니다. The food that was shared from Jesus was distributed to the 12 disciples. And the disciples distributed it to the 75 groups 그리고 거기에 앉은 사람들도 서로 나눕니다. And the people in the groups also distributed among themselves.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do you understand now? 감사함으로 나누는 손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 이외에는 이 기적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everyone that has the hands that give thanks will make the same miracle that happens. And there is no way to explain it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떡과 물고기가 하늘에서 각사람 앞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서만이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Because the bible doesn’t tell that the food fell from the sky but feed them through sharing. 여러분 감사의 손 everyone’s thanking hands. 나눔의 손은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킴을 잊지 마십시오. Don’t forget that sharing hands can feed 5000 people. 과연 감사는 아무리 나누어도 부족함 없이 생겨나는 신비한 것입니다. Thanks giving is a mysterious way that never runs out even if you share. 떡을 가지사 He took the loaves; 감사하신 후 having given thanks, 나누셨습니다. He distributed 세상에서 기적을 만드는 손은 따로 없습니다. 바로 감사드리는 손입니다. 감사드릴 때 나눌 수 있습니다. There is no other hand that produces a miracle than a thanking hand. When you give thanks you will share. 결론 입니다. this is the conclusion. 5000명을 먹이는 인재가 되려면 “남을 잘되게 하리라”는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If you want to become a person who feeds 5000 people we need to have a philosophy to make others succeed. 다른 말로는 “나먹고 나 잘 살겠다”는 철학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another words, it does not possible philosophy that is I’ll eat to survive will not work 여러분 모두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I hope everyone will become rich. 그러나 부자 돼서 남 주시기 바랍니다 But become rich and give to others. 5000명뿐만 아니라 5만명 먹이시는 사장님이 나오시길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 hope that there will become a person who feeds not only 5000 but 50,000 people. 기도드리겠습니다. let’s pray 오천명을 보시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하나님. Go who told us to give others something to eat 오늘도 그 말씀 여전히 저희에게 명하시면서 그 어떻게 하면 되는지를 말씀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still telling us to do so and teaching us the way. 내 것을 기꺼이 주는 손 예수님께 드리는 손 감사로 나누는 손이 되게 하옵소서 Let us share with a hand that gives, that give to Jesus and that shares.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We prayed in Jesus’s name. Amen. 박성열 목사(뉴질랜드 예수찬양교회)
5대 믿음/ 히11:1-12/ 2002-08-26
5대 믿음 히1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에 관하여 정의 내린 것을 보면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assurance, 보증, 보험, 확신)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conviction, 유죄판결, 설득, 신념, 확신)라고 합니다(히11:1). * 저는 어릴 때 만화를 무지하게 좋아했습니다. 공부는 싫었지만 만화는 얼마나 좋은지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만화하고 산 사람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버스통학을 하였는데, 우리 집 옆에 버스 종점이 있었습니다. 그때 5원을 내면 동생하고 둘이서 삼양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고 오기도 합니다. 때론 어느 친구하고 그 종점의 불에 그을린 쓰레기드럼통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차장들이 회사버스표를 뭉치씩 찢어서 불에 태워 없애버려야 하는데 간혹 중간에 안 찢어진 아직 불에 타지 않은 버스표를 발견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다가 직원에게 걸려서 그 친구는 이마에 \\\"도둑놈\\\"이라고 매직으로 써지기도 했답니다. 매일 아침에 그렇게 저는 학교 가기 위해 영등포 대림동에서 신길동까지 버스를 타고 갑니다. 그리고는 학교 앞 만화가게로 등교를 합니다. 그것도 문을 두들겨서 주인을 깨워서 만화를 봅니다. 오후에 집에 가는 버스 값을 가지고 학교 수업 시작 전에 만화를 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오후에 하교 길에는 집에까지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너무 만화가 좋아서 일주일 동안 학교도 안 가고 만화를 보다가 벌거벗기우고 쫓겨나갈 뻔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만화! 그 만화에는 온갖 상상되는 세계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미 만화 속에서 달나라, 금성, 화성에 가고 또 우리 몸 속으로 소형 로봇을 보내 암세포들, 세균들과 싸우는 내용, 복제인간 등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놀라운 것은 어릴 때, 당대에는 꿈과 같고 헛소리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만화가가 그렇게 되리라고 그렸던 것대로, 또 만화를 읽은 사람들의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과 노력으로 오늘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만화책에서 보고 읽은 내용들이 지금 거의 다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지리라고 보여집니다. 그러므로 만화를 봅시다! 성경만화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믿음은 만화같은 꿈입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믿음은 도전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보증보험assurance\\\", \\\"보이지 않는 것들의 확실한 판결conviction\\\"이라고 정의를 내린 하나님은 최초로 다섯 가지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믿음이 있다는 이 다섯 사람들의 특징은 일찍 죽어버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짐, 보지 못하는 일을 경고 받음, 갈 바를 알지 못함, 늙어서 단산함. 이렇게 한결같이 도대체 무엇을 바라지도 못하고 보이지도 않은 환경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랐고, 얻었고 그리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최초의 다섯 명의 믿음의 사람들을 보면서 믿음의 다섯 가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초대 아벨의 믿음: 더 나은 제사를 드리는 믿음 (히 11:4). 그렇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겠다고 하는 믿음이 제일 첫째요, 큰 것입니다. 주일 성수하는 믿음이 제일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일 처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이란 더 나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27:4)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오직 한가지를 청한다면,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성전에서 사모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구약성서는 이 예배를 잘 드리나 안 드리나로, 즉 하나님에게 예배하는 것인지, 자기를 위하여 우상에게 제사하는지에 따라 선악을 판가름하게 됩니다. 아벨은 어떻게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했나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히 11:4) 믿음입니다. 예배 잘 드리는 일에 믿음이 있습니다. 확실한 보증보험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크레딧 카드에 비교합니다. 믿음을 잘 쌓으면 하나님께 신용을 잘 쌓는 일이 되어, 점점 더 크게 쓸 수 있는 하나님나라의 크레딧 카드를 얻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 카드는 마음껏 쓸 수 있고 안 갚아도 되는 카드입니다. * 지그 지글러는 그의 책 \\\"Thank God\\\"에서 말합니다. 보험회사의 말에 따르면, 주일을 지키며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안 다니는 사람보다 7년은 더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계속 교회에 나간다면 심장마비의 위험은 60%가 줄고, 교통사고의 위험은 55%나 준다고 합니다. 바로 얼마 전 신문에 보니. \\\"예배드리는 사람들은 장수한다\\\"는 2000년 통계가 나왔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는데 첫 번째 두 요소가 있는데 예배가 그리워서 안달이 난 교회, 또 하나는 소그룹이 활성화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이란 간단히 말하면, 예배를 잘 드리겠다는 마음이지요. 2. 2대 에녹의 믿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히 11:5), \\\"믿음으로 에눅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 11:5)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1) 첫째,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요, (히11:6) 라고 합니다. * 파스칼이 내기를 걸었습니다. 철학자 파스칼이 동료철학자들에게 내기를 걸었습니다. \\\" \\\'우리가 예수를 믿고 죽는 것과 예수를 안믿고 죽는 것의 차이를 논해보자!\\\' \\\'우리가 예수를 믿다가 죽었는데 영생천국이 없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 사람은 세상 살 동안에 재물이 조금 손실이 나고, 시간이 손실이 났겠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을 얻으며 살았으니 손해가 없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예수를 안 믿다가 죽었는데 영생천국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그는 재물과 시간을 손해보지 않으려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천국을 손실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어느 사람이 내기에서 이긴 사람이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강변하였습니다. 2) 둘째,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히 11:6) 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죽도록 세상 재미를 보다가 막판에 예수 믿어 구원받는데, 저는 매일 주를 위해 삽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너희의 상이 큼이라. 금생에 백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마가 10:29-30)고 확실하게 보증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 3:13-14)라고 했습니다. 3. 3대 노아의 믿음: 경고하심을 받아 예비하는 믿음(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히 11:7) 종말에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되어야 합니다. 교인은 누구냐? 자기의 모든 환경에서 경고함을 받아 그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비 잘 하십시다. 그럼 어떻게 준비하겠습니까?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창세기 6:8-9) 1)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더라합니다. 2) 의인이요(칭의) -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아야 합니다. 3)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성화) -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당세에 완전한 자라(완전) -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우리 모두는 완전을 향해 가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방주(가족, 교회, 사회)를 예비하는 믿음입니다. 노아처럼 예비하십시다.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를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 당신이 목회하면 나는 이혼하겠어요! <예수꾼 만들기>를 쓴 최남수목사님이 중3 여학생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심방을 갔습니다. 조그만 부엌이 달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은 좁고 어두웠습니다. 이 여학생은 관절염으로 인해 다리 한쪽을 절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서 화장품 행상을 하며 생활해 가고 있었는데 딸이 다섯이고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도 온전하지가 못했습니다. 참으로 그 집안 환경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돌아가신 아버지가 신학대학을 나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왜 목사가 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그 어머니가 아버지께서 목사가 되는 것을 싫어해 반대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목회를 하면 이혼하겠다!\\\"는 아내의 말에 무릎을 꿇고 세상 일 하다가 젊어서 죽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일 보다도 아내의 말을 더 무서워했던 결과가 무엇입니까? 즉 남편에게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했던 지난 20여 년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남편은 죽었고, 온전치 못한 자녀들, 좁은 방, 주일까지 일을 해도 꾸러나가기 어려운 살림, 지칠대로 지친 육신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그가 남편에게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도록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풍족하게 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 잃고 찌들대로 찌들어 어렵게 되자, 두손들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찾을 것을 \\\'왜 진.작.에. 하지 못했을까?\\\' \\\"당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나는 이혼하겠어요!\\\" 라며 노아의 방주를 예비하려는 남편의 길을 막았을 때 그 가족의 길은 참으로 고달프고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관절염을 앓는 그 딸은 기도의 학생이었습니다. \\\"다리를 고쳐주시면 아버지가 못다 한 일을 하도록 평생 선교사가 되겠습니다!\\\"라며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이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어느 수요일 예배에 그 학생은 부축도 받지 않고 교회계단을 혼자서 뛰어서 올라왔습니다. 완전히 다 나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목사로서, 장로는 장로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하나의 교인으로서, 자기의 직업을 통해서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써 구원의 길을 만들어가고 예비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아벨처럼 더 나은 제사를 드리고, 에녹처럼 사람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노아처럼 경고하심을 받아 예비하는 믿음 간직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험한 세상> 2절을 부르시겠습니다. 2. 내 작은 손에 불 밝혀들고서 이 세상 다시 오-시는 내 주님을 맞으리 내 무거운 짐 다 벗겨주시고 그 아름다운 금 면류관 날 위해 예비하시리 나 호흡있는 동안에 나 생명있는 동안에 나 주를 찬양하리라 내게 생명 주신 주님을.
601,730명/ 믿음의 자손들/ 민26:51, 민26:62-65/ 강문호 목사/ 2008-09-02
601,730명/ 믿음의 자손들 민26:51,62-65 70명이 애급으로 들어간 야곱의 가족은 애급에서 40년간 살면서 200만명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광야로 나왔습니다. 광야 생활은 40년이었습니다. 자주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민수기는 인구조사를 하는 책입니다. 애급에서 나오자 말자 인구가 얼마인가 조사한 것이 민수기 2장입니다. 20세 이상된 남자가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지파라 따로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일개월 이상된 남자를 세어 보았습니다. 22,373명이었습니다. 그 후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한 지파에 한 명씩 정탐군을 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정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을 조사하여 나오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정탐군을 파송할 때에 이런 뒷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탐군을 보내어 모든 정보를 알아 보자고 하였습니다. 이런 여론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팽배하였습니다. 이런 여론에 모세는 놀랐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말했습니다. <왜 정탐군을 보내려고 하느냐?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은 분명히 저 땅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시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무가내로 정탐군을 꼭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최종 결정은 하나님께 물어 보고 하겠다고 성막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모세야! 백성들이 정탐군을 보내자고 하는 데 너도 동의하느냐?> 모세가 <하나님! 나는 하나님께서 저 땅을 주신다고 하셨기에 주실 줄로 믿습니다.그래서 나는 정탐군을 보내지 않아도 하나님은 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원한다면 보내라> 그래서 12 지파에서 한 명씩을 선택하였습니다. 레위 지파만은 정탐군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지파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탐군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40일간 정탐한 정탐군들은 2449년 아브월 8일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왔습니다. 12명이 정탐하고 돌아와서 10 명은 가면 큰 일나겠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성도 크고 사람도 크고, 무기도 많아서 우리가 저들을 쳐들어 갔다가는 메뚜기가 잡히는 것처럼 잡힐 것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보고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괜히 나왔다고 아우성쳤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려 질 것이라.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하는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 하리라>(민14;27-30) 어느 덧 세월이 약 40년 정확하게는 38년이 흘렀습니다. 인구를 다시 조사하였습니다. 그 장이 바로 오늘 봉독한 민수기 26장입니다. 수를 세어 보니 이상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총수가 601,730명이었습니다. 1,820명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레위인은 23,000명이었습니다. 727명이 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1. 징계하시는 하나님 본문에서 우리는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한 명도 들어 가지 못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줄었습니다. 38년 지나서 인구가 줄었다면 얼마나 비극입니까? 약 200만명이 38년간 죽었다면 계산하여 보니 매일 150명 가량이 죽은 셈입니다. 한 가족을 5명 씩만 잡아도 매일 750명이 가족이 죽는 아픔을 가진 셈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중요한 영적 법칙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용서하셔도 벌은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무서운 사실입니다. 다윗이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알려 줍니다. 다윗이 궁중을 한가하게 거닐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궁중 산책 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성밖에 한 집안에서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여인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을 데려다가 간음을 하였습니다. 그 여인이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았습니다. 나단이란 선지자가 가서 다윗의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다윗은 회개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12;13) 나단이 다윗의 이 말을 듣고 한 말씀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삼하12;13-15) 하나님은 다윗의 죄는 용서하셨어도 벌은 용서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이 금식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은 결국은 그 아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없이 용서하셨지만 믿지 못 하고 애급으로 돌아가자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모조리 데리고 가셨습니다. 죄는 용서하셔도 벌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본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 심리학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목사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고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목회하는 것을 보고 목회가 싫었습니다. 가장 싫은 것은 이사 많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심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매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상담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악몽에 시달리는 이들이었습니다. 매일 죽은 남편이 칼을 입에 물고 들어와 괴롭히기에 잠을 잘 수 없는 여인 상담, 꿈에 피를 토하고 죽는 귀신을 만난 사람 상담, 무덤을 파헤치며 송장을 먹는 귀신을 만나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 하는 사람들의 상담이 연일 계속 되었습니다. 그도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다른 상담학 교수를 찾아 가서 상담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반드시 죄에는 징계가 있음을 본문은 확실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씨앗만 심으며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죄는 용서받아도 징계는 피할 수 없습니다. 2. 회복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본문에서 회복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0만명을 광야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1,820명밖에 줄지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하루에 150명 가량이 죽었다는 것도 놀라운 것이지만 40년 동안 하루에 거의 150명 정도씩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대단한 역사입니다. 성경에 조사된 수는 다 군사수입니다. 하나님은 군사수를 비슷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는 하나님이라고 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전쟁 때에 칼 권세에서 너를 구속하실 터인 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가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욥5;18-21)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43;3-4) 하나님의 성격은 회복입니다. 크게는 잃어 버린 에덴 동산을 회복하는 것이 성경의 역사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실낙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복락원하시고 요한 계시록의 역사를 끝내시는 것이 성경역사입니다. 하나님은 200만명을 멸하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그 분을 지금 영접하시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혈루증은 여자들이 앓는 병중에 부정한 병입니다. 피가 흐르는 병입니다. 그래서 그런 병이 있는 동안에는 성전을 출입하지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여자가 앉은 자리가 부정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몸이 닿으면 닿은 사람도 부정하여 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손을 댄 물건을 대기만 하여도 부정하여 집니다. 하나님은 부정을 방지하기 위하여 집에 감금시켜 놓고 치료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12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12 년을 예배를 드리지 못 하고 12년을 사람들과 접하지 못 하고 산 고독한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 몰래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옷 자락을 몰래 붙들었습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이제 예수님은 부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정하여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흘러 들어오더니 그 여자의 혈루병을 회복시키시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와의 차이점입니다. 예수님은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지금 병든 몸을 건강한 몸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영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이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그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한나도 마찬가지입니다. 18년동안 아이를 낳지 못 하여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 가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술마시고 취하여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엘리 제사장이 말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삼상1;17) 이 말을 듣고 한나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삼상1;18) 그리고 집에 돌아가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못 낳는다는 열등감이나 아픔이 다 살아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회복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을 지금 회복시켜 주시고 계심을 믿으십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돌아 가십시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거대한 조각이 <모세>를 만들 때에 이야기입니다. 큰 바위덩어리를 집으로 날랐습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바위를 깨끗이 닦고 쪼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위에서 떨어진 돌과 먼지가 주변을 더럽히자 사람들은 이사가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각이 쌓일 수록 멋 진 모습이 들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바위가 보였고 먼지가 보였고 조각들이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바위속에 <모세>가 들어 있었습니다. 먼지와 돌조각은 조각을 만드는 데 필수품입니다. 오늘 여러분 옆에 먼지가 일어도 미래에는 놀랍게 회복될 것을 믿고 나가십시오. 승리가 올 것입니다. 3. 축복하시는 하나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이 두 지파의 인구증가입니다. 레위 지파와 유다지파가 인구가 늘었습니다. 레위지파는 38년전에 인구조사할 때 22,273명이었었는 데 지금은 23,000명으로 727명이 늘었습니다. 그릭호 유다지파는 74,600명이었었는 데 지금은 76,500명으로 1,900명이 늘었습니다. 레위 지파가 늘어 난 것은 광야 생활을 하면서 레위지파는 늘 성막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가면 늘 성전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지킬 지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공로로 레위 지파를 늘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지파 수를 늘려 주셨습니다. 왜 유다지파 군사수를 늘려 주신 것일까요? 다른 지파는 줄어도 유다지파수는 늘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광야 생활을 하면서 늘 앞장 서서 행진하며 일하였던 지파가 유다지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땅에는 일곱 족속이 살고 있습니다. 일곱 족속을 다 죽이거나 내쫓거나 종으로 삼아야 그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됩니다. 그러기 위하여 전쟁을 하여야 합니다. 100여년을 전쟁을 하여 그 땅을 통일 왕국으로 만든이가 바로 다윗왕입니다. 그런데 100여년간 전쟁할 때 언제나 앞장 선 지파가 바로 유다지파였습니다. 앞장 섰고 앞장 서려고 하니까 하나님은 유다지파 수를 늘려 주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다른 지파는 줄어도 유다지파는 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잡고 나서야 합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기드온은 농사짓는 무명의 농사꾼이었습니다. 기드온이 밀타작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6;12) 기드온이 농삿군이 자기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갑자기 큰 용사라고 부르니까 당황하여 물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5)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6;16)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가 미디안과 싸워 이스라엘을 미디안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지난 주간 169기 성막 쎄미나를 마쳤습니다 미국에서 29명, 태국에서, 일본에서도 오셨습니다. 국제적인 쎄미나였습니다. 지난 주간으로 이제 28,000명이 넘었습니다. 나는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나는 성막 공부를 하면서 매일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영어 책읽는 것이나 한국책 읽는 것이나 같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12345 꿈을 이루고 말 것입니다. 1- 한국 유일의 교회, 2-2천 교회 개착하는 교회, 3-3천 성도 교회, 4, 4만명 방문 교회, 5. 5억을 선교비로 주는 교회가 우리의 꿈입니다. 이 중표 목사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는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면서 교문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교문을 나선 사람중에 가장 큰 교회를 이루는 목회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한 지 35년만에 기장에서는 가장 큰 교회를 이루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려고 하는 자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을 확실히 믿고 교회문을 나서기를 바랍니다. 레위 지파는 인구가 늘고, 유다지파도 늘게 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나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1. 징계의 하나님이십니다. 2.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3.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강문호 목사(서울 갈보리교회)
6과/ 전도의 모범/ 예수님의 전도 전략/ 눅6:13-17/ 2003-10-01
6과/ 전도의 모범/ 예수님의 전도 전략 눅6:13-17 1)선택 - 먼저 제자들을 선택했다 (소수의 무리선택) ◇ 눅 6 : 13 - 17 ◇▶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 로라고 이름주신 시몬과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및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가 될 가롯 유다라" 예수님은 어떤자를 선택했나? 가)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선택했다(가능성을 보고) 현재 상태로 택하지 않고 가능성을 보고 택했다. ◇ 요 1 : 40 - 42 ◇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 베드로를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 고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 이니 장차 게바라 하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장점을 살려서 단점을 제거하라 나)적은 수효에 집중하셨다 집중의 원리 - 12을 택함 ◇ 사 60 : 22 ◇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되면 나 여호 와가 속히 이루리라." 작은 자 - 천을 대신, 약 자 - 강국을 대신 예수님(12제자) - 3제자, 9제자, 70제자, 120명, 3000명, 허다한 제자들, ※눅10:1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근처로 둘씩 앞서 보 내시며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 소수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 했다. 오늘날 교히 실패 원인은 대중에 만 치우치기 때문이다. 2)함께 지내셨다 ◇ 약 3:14 ◇ "그러나 너희 마음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 짓하지 말라" ◇눅 5 : 13 ◇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가)예수님을 바로 알게 하기 위해서 참다운 교육을 전달 나)친교체로의 결합 생활의 교육 3)헌신의 강조 했다. 가)순종을 요구하심 ◇ 눅 16 : 13 ◇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희 여길 것임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수 없 느니라." 나)고난이 따름을 인식 다)댓가를 치뤄야 한다. (요 6 : 25-59) ◇ 마 8 : 19, 20 ◇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든지 저는 좇으리이 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 는 머리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1 ◇ 눅 9 : 57-58 ◇ "길 가실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예수께서 가라사대 여루도 굴이 있고 공중의 해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 눅 9 : 62 ◇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재익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 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눅 14 : 28 ◇ "너희 중에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라)순종은 사랑의 표현이라고 확증하셨다 ◇ 요 5 : 30 ◇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아의 원대로 하 려 하지 않고 나르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 요 6 : 38 ◇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 요 15 : 10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 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 ◇ 요 17 : 4 ◇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 눅 22 : 42 ◇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우리는 지도자를 따를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결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4)분여 (나눠 주셨다) ■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모두 나눠주셨다 ◇ 요 15 : 15 ◇ "이제부터는 너히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 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 음이니라" ■ 평안 ◇ 요 17 : 4, 8, 14 ◇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 게 하였사오니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 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 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 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 기쁨, 권능 생명까지 ◇ 요 15 : 13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습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면.." ◇ 요 20 : 22 ◇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 성령도 보내 주셨으며 성령님은 오셔서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고 ◇ 요 16 : 13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 라" ◇ 요 16 : 3 ◇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 요 14 : 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 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성령이 오신 목적 ※ ◇ 요 16 : 14-15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진고 너희에게 알리 겠음이니라 무릇 아버 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 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전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령이 내속에서 차고 넘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전도 다. 5)확증하셨다 (사는 방법을 보여주다 ) ◇ 요 13 : 15 ◇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가)기도의 실천 ◇ 눅 11 : 1 - 11 ◇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 지라 그 모든 일을 근 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 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 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 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 마 6 : 9 - 13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 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림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 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 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 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 이다. 아멘 )" - 기도를 하시므로 배우고 싶어했다. 나)성경의 사용 신약 성서의 복음서에 90회 이상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구약 66회 이상 인용 (성경에 대하여 잘 알아야 되겠다는 마음을 제자들에게 줌 ) 다)전도의 우선권 - 우리를 본 받아 행하는 자를 보라 ◇ 빌 3 : 17 ◇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 는 자들을 보이라" ◇ 딤후 1 : 13 ◇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 아 지키고." ◇ 빌 4 : 9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7층 짜리 믿음의 집/ 벧후1:5-11/ 2008-06-03
7층 짜리 믿음의 집 벧후1:5-11 옛날 미국의 어떤 믿음의 부부가 아들과 함께 서커스 구경을 갔습니다. 아주 어려운 시절인지라 큰 맘 먹지 않고는 갈수 없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줄을 서서 표를 사려하는데 마침 줄 앞에 8명의 자녀를 데리고 와서 줄을 선 어느 흑인 가정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가정도 모처럼 온가족이 서커스 구경을 왔는지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 당당히 서 있었고 자식들은 서커스 구경에 흥분해 있었습니다. 이제 순서가 되어 앞에 있는 그 가정의 남편이 표를 사려는데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돈이 모자란 것입니다. 남편은 입장권이 그렇게 비싼 줄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그때 뒤에 서있던 믿음의 부부 남편이 눈치를 채고는 얼른 호주머니에서 20달러짜리를 꺼내 그 당황해 하는 아버지 앞에 가서 땅에서 줍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돈이 여기 떨어져 있군요. 선생님 돈을 이렇게 흘리시면 어쩝니까?” 하면서 그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때 앞에 선 흑인 아빠는 눈치를 챘습니다. 그러면서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하면서 손을 잡고는 아이들과 함께 표를 사가지고 그 서커스 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그 뒤에 섰던 믿음의 부부는 서커스 구경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서커스를 본 것 보다는 더 기뻤습니다. 여러분, 이 모습이 참 믿음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사람을 향해 베푸는 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고 그 서커스를 보고 싶으나 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는 믿음을 볼수 있고 형제우애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 사람과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주님이 들어와 있기에 그렇습니다. 주님이 들어와 계시다는 말은 주의 성령이 내속에 계신다는 것이고 결국은 하나님이 네게 들어와 계시다는 것입니다. 내속에 하나님이 거하고 예수님이 함께 하는데 어떻게 세상 사람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는 생각도 달라야 하고 삶의 방식도 달라야 하고 삶의 가치관도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하면서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살고 있다면 심각하게 구원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저는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우리의 믿는 성도의 삶이 마치 건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집을 지어 보셨나요? 저는 교회를 건축할 때 자세히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이죠? 제일 먼저는 설계도를 그립니다. 그리고 관할기관에 허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공사를 시작하는데 제일 먼저 하는 과정은 기초를 닦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집을 지어갑니다. 골조를 세워 기둥을 만들고 벽돌을 쌓으면서 한 층 한 층 쌓아갑니다. 우리 성도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신앙 생활하는 것도 일종의 믿음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집을 지어야 할까요? 저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 성도는 7층짜리 믿음의 집을 짓는 사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7층짜리 믿음의 집, 이것이 무엇일까요?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지어야 할 집은 어떤 집일까요? 1.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집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다 같이 읽습니다.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긴 성경구절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는데 이 약속은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닮아 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날마다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그 것, 그 성화의 구원을 세워가야만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성화를 이루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의 집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집은 어떤 과정과 단계로 지어가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여기에 단계가 있고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단계가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 아주 심오하고 깊은 차원의 단계가 있습니다. 5절~7절을 보세요.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여기 잘 보세요. 먼저는 예수를 구주로 믿기에 우리 모두는 믿음이라는 기초위에 집을 세워 가는데 그 위에 어떤 단계의 집을 지어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칠층입니다. 8가지이지만 믿음은 기초라 할 수 있으니 그 위에 7층집을 짓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기초에다가 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이라는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집이 지붕부터 짓는 집이 있나요? 어떤 집이 기초 없이 지는 경우가 있나요? 믿음 위에 덕이 올려 져야 하고, 덕 위에 지식이 올려 져야 하고, 지식 위에 절제가 올려 져야 합니다. 이런 순서와 단계가 반드시 지켜질 수는 없으나 어떻든 이런 단계가 무시되면 공사가 힘들어집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단계 중 한 단계에서만 부실공사가 이루어져도 어느 날 환난과 핍박이라는 지진이 닥치면 맥을 못 추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는 믿음의 단계와 수준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만 이해하면 모든 성도를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고 다 같은 성도 아닙니다. 성도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 사람은 몇 단계, 이 사람은 몇 단계 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분별력이 없는 초보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래 나왔으나 아직도 일층에서 헤매는 성도도 있습니다. 반면에 몇 년 안 되었는데 몇 계단 확 올라가는 성도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앙은 부단히 성장을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머니 모태에서 태어날 때는 우리가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태어났으면 부지런히 먹고 운동하고 해야 성장합니다. 배고프면 울어대야 합니다. 그래야 한번이라도 더 얻어먹고 크게 됩니다. 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주세요 하면 성장이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힘쓰듯이 영적 성장과 건강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여 믿음의 집을 지어가기를 축원합니다. 2. 신앙의 집은 어떤 층으로 지어져야 하나요? 오늘 우리는 내 신앙의 단계를 알아야 내 믿음의 집을 바로 세워 갈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7층의 믿음의 집은 이렇게 세워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층은 믿음위에 세워진 “덕(德)층”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믿음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직 성도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또 믿음으로 축복 받고, 믿음으로 성결을 얻고 영생을 얻어 천국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만큼 ‘믿음’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일 때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살아있는 믿음’ ‘움직이는 믿음\\\' 즉 ‘행동하는 믿음’은 뭘 말할까요? 바로 이것이 “믿음위에 덕이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덕은 다른 사람의 약점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마치 보자기로 모든 것을 싸고 덮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게 부족하니 우리 신앙이 부실공사가 됩니다. 이게 부족하니 우리 기독교인의 믿음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삼국지에 의하면 유비가 관우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그런데도 형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그가 갖고 있던 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덕은 지략과 용맹을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에 덕을 더하여 원숙한 믿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층은 덕위에 세운 지식(知識)층 입니다. 이 지식은 믿음의 기초와 덕의 터전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지식은 아무 쓸모 짝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을 가진 사람이 덕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깨달아 알아야 제대로 된 순서라는 것이다. 여기 지식이라는 단어는 knowledge 라는 단어를 쓴 영어성경도 있고 또 다른 성경에서는 understanding 이란 단어로 쓰인 성경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지식은 이해되는 지식을 말합니다. 말씀이 이해되는 지식, 성경을 보다 더 잘 아는 지식을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덕이 없는 지식으로 그것을 신앙생활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을 아는 지식은 있는데 덕이 없다면 그 지식은 마귀가 잘 이용하는 지식입니다. 결국 믿음이 없이, 덕이 없이 지식만 있으면 마귀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눈먼 소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잘 배워 덕위에 지식을 갖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지식이 없으면 성숙한 믿음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단의 유혹에 빠지기 쉬습니다. 작은 어려움이 찾아와도 쉽게 흔들려 신앙의 삶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층은 지식위에 세운 절제(節制)층입니다. 절제가 뭡니까? 이것은 “통제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지나침이나 부족함이 없이 적절히 조절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self-control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사람이 누굽니까? 남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 절제는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이것 고장 나면 심각해집니다. 이게 고장 난 사람들이 누굽니까? 중독자들입니다. 알코올 중독, 담배, 마약중독, 절도와 강도들입니다. 자기가 통제가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결국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이정도 되면 이제 능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절제를 갖춘 능력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층은 절제위에 세워진 인내(忍耐)층입니다. 이 정도 되면 신앙이 高手에 접어 든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인내의 생활이 없이는 참된 절제의 생활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내가 무너지면 절제도 무너집니다. 그러기에 절제와 인내는 서로 돕는 동지와 친구입니다. 이 둘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내를 상당히 중요한 덕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에게서 이 두 가지 모습이 보이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예로부터 위대한 인물들은 인내로서 성공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 이삭은 온유와 인내의 모범자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요셉은 인내로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욥은 인내로서 승리한 대표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인내함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층은 인내위에 세워진 경건(敬虔)층 입니다. 이 전도되면 이제 신앙의 성숙자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여러분! 경건이 뭡니까? “예의”를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할 태도요 도리라고 하면 ‘경건’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태도요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경건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래서 딤전 4:7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했습니다. 이 말은 ‘경건’이라는 것은 단시간에 저절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땀 흘려 연습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생활훈련입니다. 참경건의 모델은 예수님이고 그것의 극치의 모습은 예배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순종입니다. 이 경건은 사람은 잘 알아주지 않습니다. 별로 표가 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딤전 4:8에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경건의 모양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6층은 경건위에 세워진 형제우애(兄弟友愛)층입니다. 이정도 되면 성인에 속합니다. 왜요? 7절에 보면 경건에 형제우애를 더하라고 하셨는데 이 형제우애는 구역성경에는 \\\"화목\\\"이라고 번역되었던 말씀입니다.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어지간한 사람과는 다 하나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왜요? 편합니다. 즐겁습니다. 왠지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을 하나님이 세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 간에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화목입니다. 화음이 뭐지요? 악기가 연주될 때 한 가지 음만으로는 결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음들이 함께 어울릴 때, 그 음들이 조화를 이룰 때 정말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형제 우애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해주며, 어울리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넘칠 때 교회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7층은 형제우애 위에 세워진 사랑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며, 성령의 열매 중에서도 가장 먼저가 사랑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예수님 같다고 하고 ‘성자’라 불릴 정도입니다. 왜요? 사랑은 신앙의 결정체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출발하여 사랑으로 결말을 짓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사랑 이상의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에 사랑을 더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여지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조금 부족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풍성하여 이를 덮어준다면 이를 충분히 메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4:8에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했고 골3:14에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히 매는 띠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이 풍성하여지면 누구든지 이 사랑의 날개아래 평안을 누릴 수 있고 이 사랑을 힘입어 이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모든 단계는 노력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의 집이 몇 층까지 세워진 상태입니까? 너무 낮은 단계라고 한숨 쉬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성장이란 계단을 오르듯이 하나씩 더하여 성장하는 생활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7절 마지막 단어 문제입니다. “공급하라” 그러면 누가 공급해야 합니까? 5절 초반에 보면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뭡니까?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입니다. 이 정도는 외워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더욱 힘쓰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시지만 우리의 노력과 힘씀이 없으면 결코 이런 것은 우리 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신앙의 성장은 우리의 힘씀이 필요합니다. 노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왜 부르셨는지, 그리고 왜 택하셨는지를 알고 그 사명과 은혜를 확고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력하고 힘쓰지 않으면 성장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야 우리가 실족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집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집이 건축되길 원합니다. 내 믿음의 집을 돌아보세요. 어느 분야가 부실합니까? 그 분야에 대한 긴급 수리작업이 이루어지길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수고가 없다면 우리의 믿음의 집은 중국에서 지진으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집들처럼 우리 신앙도 무너질 것을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