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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의 세가지 기도 /눅18:1-5,13-14,35-39/ 노창영 목사 2019-06-12 02:55:27 read : 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기도의 목적은 응답입니다. 축구 선수가 드리블을 잘하고 기술이 좋아도 골을 넣지 못하면 바보 같은 선수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자는 응답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가 다 응답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기도 응답은 반드시 됩니다. 인
18장의 세가지 기도 /눅18:1-5,13-14,35-39/ 노창영 목사 2019-06-12 02:55:27 read : 2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기도의 목적은 응답입니다. 축구 선수가 드리블을 잘하고 기술이 좋아도 골을 넣지 못하면 바보 같은 선수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자는 응답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가 다 응답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기도 응답은 반드시 됩니다. 인자의 복음인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과부, 세리, 소경의 기도를 통해 응답받는 기도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Ⅰ. 먼저, 과부의 기도입니다(18:1-5) A. 끈질긴 사람의 성공 먼저, 응답받는 기도는 끈질긴 기도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공하려면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머리 좋은 사람보다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학자가 됩니다. 세일즈도 마찬가지로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제 친구 중에 자동차 판매 왕을 여러 번 받은 친구가 있습니다. 한번은 이 친구가 자동차 판매를 위해 삼천리그룹의 회장 비서실을 찾아갔습니다. 6개월 넘게 계속 퇴짜를 맞은 끝에 마침내 회장을 만났습니다. 회장은 이 친구의 인내에 감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그해에 150대의 차를 팔고 자동차 판매왕이 되었습니다. 인내의 힘, 끈질김의 힘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다가 한번 말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열 번 이상 두드려봐야 합니다. 전도왕들을 보면 모두 끈기의 사람들입니다. 전도하면서 수모를 받아도 인내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녹아져서 결국에는 교회에 옵니다. 인내가 열매를 가져오는 겁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응답이 안 된다고 빨리 포기해버리면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테스트 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과부의 비유입니다. B. 과부의 비유와 끈질긴 기도의 응답 어떤 마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살았습니다. 같은 마을에 한 맺힘이 많은 과부가 살았는데 이 여인이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었지만 과부가 매일 찾아와 괴롭게 하자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원한이 풀어주었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며 예수님은 끈질김이 없는 기도의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눅18:1-8). 어떤 엄마가 아들을 낳았는데 안타깝게도 아이의 머리가 태어날 때부터 대머리였습니다. 어머니는 놀림 받는 아이가 걱정되어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목사님께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들어갔는데도 머리털이 여전히 나지 않습니다. 엄마는 속이 썩어갔지만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가 중3이 되었을 때 놀랍게도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해 1년 안에 정상 아이처럼 수북하게 머리털이 자랐습니다. 주님이 과부의 비유를 통해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듯이 기도는 응답될 때까지 끈질긴 자세가 필요합니다. Ⅱ. 둘째, 세리의 기도입니다(18:13-14) A. 죄인을 받으시는 하나님 둘째로 응답받는 기도는 통회하는 기도임을 보여줍니다. 기도응답은 우리의 능력에 반비례합니다. 약할수록 죄인일수록 부족할수록 기도응답이 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살고 있는 삭개오를 만나러 집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듯 인자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구원의 은혜는 통회하는 죄인들에게 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의 응답이 오려면 우리는 무력함을 인정하는 죄인의 자세인 통회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세리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Broken Spirit)이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않으십니다(시편51:17). 죄 때문에 깨지고 무너지고 상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이며 상한 심령의 기도가 응답을 가져옵니다. B.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 예수님은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죄인의 모습으로 나아가 기도를 한 세리가 금식과 십일조를 자랑하며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파 사람보다 더 의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9-14). 응답되는 기도는 심령이 깨어진 상한 마음의 통회의 기도입니다. 이때 주님께서 역사하십니다. 50년 전에 한 제조업자가 부도가 났습니다. 사업을 정리한 후 기도원에서 기도할 때 성령님의 감동으로 마음이 녹아져 내리자 주일성수 안하고, 십일조 떼어먹고, 새벽기도 안 나간 일에 대하여 통회의 기도가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이분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성경을 읽었는데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는 사건이 기록된 요한복음 21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순간 이분의 마음속에 볼펜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해서 1960년 5월 1일에 나온 것이 모나미153볼펜입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모나미153볼펜을 쓸 수 있도록 이분이 기도를 했는데 얼마 전 모나미153볼펜이 50억 자루가 팔렸습니다. 통회할 때 사람이 살고 가정이 살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죄를 통회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을 때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Ⅲ. 셋째, 소경의 기도입니다(18:35-39) A. 전인격적 기도의 필요성 끝으로 전심을 다하는 전인격적 기도가 응답을 받습니다. 기도는 립서비스가 아닙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목숨 걸고 전인격적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려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응답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될 때가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신의 힘을 다한 기도를 드림으로 확신을 가지고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엘리야도 3년 6개월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아 갈멜산에 올라가 머리를 무릎 사이에 집어넣는 괴이한 형태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전인격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하늘의 문이 열리고 소낙비를 내리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다니엘도 사자굴에 들어가는 위험을 무릎 쓰고 목숨을 건 기도를 했을 때 다니엘의 대적들이 대신 사자굴에 들어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건 전인격적 기도가 응답을 가져옵니다. B. 소경의 전인격적인 기도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향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이 꾸짖고 잠잠하라고 말했지만 바디매오는 더 크게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성을 지나가면 다신 만날 수 없다는 최후의 긴박한 기도를 통해 바디매오는 구원을 받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전인격적 기도, 생명을 다하는 기도, SOS의 기도, 119의 기도가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떤 독실한 기독교인 한 분이 과수원 농사를 지었는데 수확 때가 되어서 아주 탐스런 과일들이 나무마다 맺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벌레들이 몰려와 과일에 달라붙어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벌레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온 가족이 모여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온가족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전심으로 기도한 결과 그 다음날 아침에 이상한 새 떼들이 날아와 벌레를 다 잡아먹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심장 깊은 데서부터 하나님 앞에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부르짖을 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결론// 기도의 목적은 응답입니다. 과부의 비유를 통해 배운 끈질긴 기도, 세리의 교훈을 통해 배우는 통회하는 기도, 소경 거지 바디매오의 전인격적 기도가 여러분의 것이 되어 하늘의 문을 열어 나갈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의 사람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가을의 풍요를 누립시다/ 갈6:6-10/ 노환영 목사/ 2019-01-23
가을의 풍요를 누립시다 갈6:6-10 본문말씀 \"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 ( 갈라디아서 6장 6절 -10절) 설교요약 지금 우리는 결실과 풍요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였습니다. 넓은 들에 온갖 곡식과 과일들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은 보기만 해도 절로 배가 부릅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우리 민족은 중추절이라는 명절을 지켰습니다. 추석에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그간의 삶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통신수단이 발달되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껏 대화도 나눌 수 있어 다행입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고향으로 달려 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풍요로운 가을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가을의 풍요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계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시편 19편 1절-2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식을 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오묘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나타냅니다. 정말 자연은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지식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예수를 안믿는 사람도 이 자연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는 자연계시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연계시 말고 특별계시를 주셨습니다. 그 특별계시는 성경 66권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봄, 여름,가을, 겨울을 지으셨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열심히 가꾸어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오묘합니까? 그런데 4계절 중에 가을이 가장 풍성합니다. 겨울에는 거두어 들인 곡식을 먹으면서 쉼을 갖습니다. 이 자연의 법칙은 우주가 존재하는 한 쉬지 않고 계속 반복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주신 무한한 축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는 자전과 공전을 하게 하셨습니다. 자전은 낮과 밤을 이루어 자고 깨게 하셨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하나님께서 쉬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하신 것입니다. 공전은 봄,여름,가을,겨울을 이루게 합니다. 봄에 농부들이 밭을 갈아 씨를 뿌리게 하시고, 여름에는 그 씨를 자라게 뜨거운 태양과 소낙비를 내려 무성하게 하셨습니다. 가을에는 무성히 자란 식물이 열매를 맺게 하시고 추수하게 하십니다. 겨울에는 흰 눈을 내려 만물을 덮어 아름답게 합니다. 창세기 8장 22절에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하셨던 이 말씀대로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일하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계절이 변함없이 찾아 오듯이 밤과 낮도 어김없이 계속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도 변함없이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가을에 기쁘고 즐겁고 풍성한 언약을 자연속에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복을 주셨습니다. 시편 126편 5절-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 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아멘. 땀을 흘리고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수고의 땀과 눈물을 흘리면 반드시 그 결실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열매만 맺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예수 믿는 성도들에게 또 다른 신령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어떤 열매가 있을까요? 마태복음 3장 10절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맺어야 할 열매는 어떤 열매일까요? 마태복음 3장 6절에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아멘.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의 첫 메시지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말씀 후에 사람들이 회개하며 세례를 받았다는 설명입니다. 예수님도 첫 메시지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좋은 열매는 바로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고 결단하는 회개의 열매입니다. 다음은 생명열매입니다. 요한복음 4장 41절에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생명을 얻은 자가 많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나 어떤 방법으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찬송으로 맺는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기뻐받으십니다. 찬양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간을 내서 찬양하십시오. 찬송가 1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전체 불러보는 도전을 해 보십시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찬양할 때 귀신이 떠나갑니다. 문제가 해결됩니다. 질병이 치료 받습니다. 구약에서는 전쟁에서도 이기게 하셨습니다. 생활속에 찬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가장 풍성한 열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 이 아홉가지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선행의 열매입니다. 기도와 찬송과 충성과 봉사와 복음 전도의 선한 열매입니다. 영적으로도 추수 때인 지금 우리들에게 모든 열매를 맺게 하시니 얼마나 풍요롭습니까? 그런데 이런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어떻게 합니까? 누가복음 13장 6절- 9절에 \"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는 곧 거짓 선지자요, 외식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시대는 믿는 자라도 넘어 뜨리려는 악한 영들과 사람들이 억세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 사람들을 지적합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결실의 계절에 회개, 생명, 찬송, 성령,선행의 열매를 많이 맺어 우리 영혼이 풍성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일할 일꾼이 필요합니다. 가을은 바쁜 계절입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추수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3장 30절에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추수는 곧 심판을 하는 때입니다. 본문에 사람들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내 고집과 방법과 생각을 내려 놓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어떤 환경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씁니다. 선과 충성, 믿음과 봉사 그리고 생명을 심으면 영생과 상급과 하늘의 기업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죄와 불의, 나태와 거짓을 심으면 멸망과 형벌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육체와 세상의 것을 심지 말고 신령한 것을 심어 알곡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영적 추수기에 일꾼들이 너무 많이 필요합니다. 열심있는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추수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도 풍요로운 가을이 됩니다. 그 곳에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노환영 목사
가이샤라 빌립보 소풍/ 눅9:18-27/ 노환영 목사/ 2019-01-23
가이샤라 빌립보 소풍 눅9:18-27 본문말씀 \"18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9 대답하여 이르되 1)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라, 더러는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 하나이다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 (누가복음 9장 18절 27절) 설교요약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베풀었던 기적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바로 야외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예수님의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그들이 원하는 빵을 계속 만들어 주시면 배고플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도 치료해 주시고 심지어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금 가고 있는 장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길 떠날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제자들이 기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을 떠나 떠돌아 다닌 날이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려나 보다 제자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길을 가는데 예루살렘과 정반대 쪽인 북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주님 이 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몇 시간 걸어 간 후에 예수님의 일행은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 이 가이사랴 빌립보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땅은 비가 적게 오고, 물이 귀한 곳입니다. 그러나 이 가이사랴 빌립보는 물이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나무가 많고, 각종 열매와 채소 그리고 물고기가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정말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 곳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소풍을 간 것입니다. 우리들이 야외예배를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이사랴 빌립보에 데리고 갔을까요? 그 이유를 우리는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갑자기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어떤 사람들은 세례요한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대답을 했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듣고 있던 예수님이 다시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성질 급한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만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와 베드로의 이야기가 다를까요? 세상 사람들은 당시에 떠돌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제자들은 직접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먹고, 자고, 예수님이 사시는 모습을 모두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문과 사실은 이처럼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대단히 칭찬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네가 안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사람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서 예배 드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러분도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하실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고백을 통해 언제나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아멘. 마태복음에 의하면 주님께서 왜 제자들을 가이사랴 빌립보로 데리고 왔습니까? 신앙고백을 시키시기 위해서.... 그러면 왜 신앙고백을 시키려고 했습니까? 마태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베드로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이 말씀은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요 사명을 말씀입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배반당하고 죽임을 당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는 교회를 세우신다는 말씀은 빠지고 바로 주님께서 죽임을 당할 것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는 교회를 하늘나라와 연결하였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거나 대답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교회는 누가 세웁니까? 그리고 교회는 누구의 것입니까? 이 세상 어느 곳에 교회가 세워져도 그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예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함부르크.뤼벡 소망교회를 누가 세웠습니까? 우리 교회도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계셔야 하고 주님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스리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친교모임이 아닙니다. 사람 중심으로 모여지는 교회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분들은 언제든지 주님이라면 무엇을 하실까?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며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그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누구 위에 세웁니까? 반석 위에 세웠습니다. 이 반석은 베드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바로 믿고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회는 바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 위에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고백하고 그 신앙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이면 가난하건 부자든, 배웠든지 배우지 못했던지 상관없이 교회의 반석들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십니까? 여러분을 위해 오시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교회의 반석들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세우시고 진리의 반석에 세워지는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해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이후 교회를 해하고 무너뜨리려고 하는 세력들이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음부의 권세가 절대로 교회를 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죠? 진리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거짓으로는 교회는 결코 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음은 교회를 세우신 목적입니다.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천국열쇠는 무엇입니까? 복음을 통하여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그 사람이 받으면 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도 그 영혼을 풀어 주셔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마음을 닫고 복음을 받지 않으면 하늘의 문도 닫혀서 풀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 열쇠는 하나님의 축복의 열쇠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구원할 뿐만아니라 교회를 통해 세상을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온 세상에 나누어 주도록 만드신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26절 말씀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힘써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영광 중에 다시 오시면서 우리를 기쁘시게 영접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성도들이 교회를 아름답게 섬겨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복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축복을 누리기 때문에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나 사회를 돕고 선교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갑니다. 여러분 교회를 잘 섬깁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람다운 교회로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교회를 통해 먼저 하나님의 예비하신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세상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교회를 섬기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축복에 여러분의 삶과 신앙 가운데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입니다. 지난 주에 뤼벡에서 지수와 지우가 땅따먹기를 했습니다. 어릴 때 한번쯤은 여러분도 해 보았을 것입니다. 땅에 일정한 구역을 만듭니다. 돌을 주어 정해진 지역을 통과하여 마지막에 뒤로 돌을 던집니다. 돌이 떨어진 땅은 내 땅이 됩니다. 땅을 많이 빼앗으면 기뻐하고 땅을 빼앗기면 울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싸움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싸우며 놀다가 해가 지면 자기가 빼앗은 많은 땅도 또 작은 땅도 그대로 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돌을 던져 빼앗은 땅이 아닙니다. 해가 져서 돌아가 살아야 하는 집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에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이 곳이 아무리 좋아도 여러분은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내가 쉴 수 있는 곳은 이 곳이 아니라 작지만 내 집이 편하기 때문에 여기 있지 않고 집으로 갑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바로 땅뺏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하루살이 같은 땅뺏기도 인생을 살아갈 때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이 어떠한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는 잠깐이지만 우리가 돌아가서 살 집은 영원한 집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회는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서로 사랑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 날이 올 때를 기다리는 제2의 고향이 바로 우리들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려는 사람은 나를 부인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도 살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영원히 살게 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시고 함께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믿음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가 유지되게 하옵소서! 내가 갈 영원한 집을 사모하며 열심히 이 땅에서 살게 하옵소서!교회를 통해 복을 주시고 그 복으로 세상에 빛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멘. 노환영 목사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전하자/ 눅4:14-21/ 노환영 목사/ 2019-01-31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전하자 눅4:14-21 본문말씀 “ 14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 누가복음 4장 14절 - 21절) 설교요약 기도: 오늘도 가장 복된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지난 한 주간도 함께 하시고 역사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 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주님 내 영과 마음과 눈을 열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께만 영광되는 예배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천차만별입니다. 나라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예수 믿는 사람은 차원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바라는 간절하게 바라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는 눈깔 사탕하나면 최고였습니다. 청소년 때는 자전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환경과 나이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 사람들의 기준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이 땅에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경험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따라 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성경에서 말하는 이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 18절-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선포하신 말씀으로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형제들과 30년 동안 사적인 삶을 사시다가 이제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신 공적인 생애를 출발하시는 시간입니다. 이를 위해 3장에 보면 세례요한에게 물로 침례를 먼저 받으셨습니다. 물 침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려 왔습니다. 4장 1절에 예수님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에로 이끄셔서 사십일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기도로 준비를 하십니다. 40일 동안의 금식기도가 끝났을 때 가장 먼저 찾아 온 존재가 있었습니다. 누구였습니까? 사탄 마귀였습니다. 사탄 마귀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시작할 때 방해하기 위해 찾아 온 것입니다. 가장 가치가 있는 세 가지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기도로 준비하신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11절에 보면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사탄 마귀는 저와 여러분을 유혹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고 방해합니다. 그런 유혹과 방해를 분별하고 물리치려면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014년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기 위해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오시자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 여러 회당에서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니 듣는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 올라 가셔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서셨습니다. 6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셨던 본문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기록된 성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예언이 너희 귀에 다시 임하고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여기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작은 부분이라도 삶속에서 실천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려고 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필립 얀시는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고 교회만 줄 수 있는 한 가지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면서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가장 소중한 한 가지가 교회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받아 주신 가장 가치 있는 것이고 축복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자녀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일이 가능한 것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죄와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셨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지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해결해 주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저와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우리는 교회가 아닌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은혜를 경험하거나 누릴 수도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종교나 다른 신이 우리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어떤 노력이나 수고로도 불가능합니다. 너무 크고 귀하고 값이 비싸서 돈을 지불하고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받은 것입니다. 그 은혜를 여러분 이 땅에 사는 동안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꼭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베푸시기를 원하셨던 은혜는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고 전해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구체적인 하나님의 은혜는 본문 18절-19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는 가난한 자가 부요하게 되는 은혜입니다. 포로된 자가 자유롭게 되는 은혜입니다. 눈먼 사람이 볼 수 있게 된 은혜입니다. 눌려 있는 사람을 풀려 자유롭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온 천하 만민에게 전파하는 은혜입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사람들은 철창살이 없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감옥, 빚이라는 감옥, 질병이라는 감옥, 두려움이라는 감옥, 상처라는 감옥, 미움과 고통이라는 감옥, 실패라는 감옥, 열등의식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서 만들어진 감옥이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감옥은 자기 스스로 만든 감옥입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감옥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그 안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감옥으로부터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복음으로만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셨고 복음의 전파되고 모든 것들로 부터 자유롭게 하심을 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에서 “예수님께서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 17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자유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진짜 즐거움을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풀어 주셔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모든 편견을 버리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마음껏 발휘해서 자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께 인정 받는 일은 딱 한 가지입니다. 죄와 죽음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건져내는 일을 했을 때입니다. 칭찬하시고 상급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지 않는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십시오. 전도하고 선교하는 일에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십시오. 결코 헛된 투자가 아닙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됩니다. 이 보람된 일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부름 받고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다음은 바울이 깨닫고 경험하고 전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뭐라고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10절-11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은 율법에 갇혀 있었습니다. 율법에 갇힌 사울은 복음과 은혜를 가로막고 가두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사람들을 잡아다 감옥에 가두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 사울이 다메섹으로 율법의 열심을 가지고 가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 율법을 뛰어 넘어 사랑과 은혜의 사도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은 그 전에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알기로 작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무엇이 핍박자 사울을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 바꾸었습니까? 이에 대해 바울은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려고 더 노력하고 힘쓰고 애썼지만 그것도 모두 그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상관이 없으시고 알지도 못하신 예수님을 자신을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고 그 일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고난 당하셨고 채찍에 맞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끝나지 않았고 예수님은 죽은지 삼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신 모든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복음으로 자유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 복음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힘이 들지만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여 감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그 은혜를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2014년 여러분이 예수님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간청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는 세대를 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불화하고 멀어져 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신뢰하고 따라갑니다. 참으로 불행한 삶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사람이 가장 안전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사람은 영원한 부요 속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영원한 생명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우리가 받은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께 맡기고 정말 가치 있는 일, 의미 있는 일을 위해 결단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사람들을 세우고 돕는 일로 즐거움을 찾는 삶을 살아 봅시다.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고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함부르크 소망교회에 있습니다. 2014년 한해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장 가치 있을 위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를 택하시고 불러 주심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그 자리에서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내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제자들처럼 이유를 찾지 말고 무조건 순종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나의 필요한 것을 찾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내가 되게 하소서. 교회의 필요를 찾고 채울 수 있는 눈과 마음과 발과 입이 되게 하소서. 그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한 주간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시고 함께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환영 목사
가장 강력한 기도응답의 요소/예33:1-3/노창영목사 2019-07-22 23:46:19 read : 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우리 인생살이에는 각기 다른 목적들이 있습니다. 축구의 목적은 골인이고, 사격과 양궁의 목적은 타겟을 정타하는 것입니다. 수능시험이나 각종 국가고시의 목적은 합격입니다. 전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클라우드 비츠(Karl Clausewitz, 1780-1831)라고 하는 프로이센의 장군은 「전쟁론」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응답의 요소/예33:1-3/노창영목사 2019-07-22 23:46:19 read : 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우리 인생살이에는 각기 다른 목적들이 있습니다. 축구의 목적은 골인이고, 사격과 양궁의 목적은 타겟을 정타하는 것입니다. 수능시험이나 각종 국가고시의 목적은 합격입니다. 전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클라우드 비츠(Karl Clausewitz, 1780-1831)라고 하는 프로이센의 장군은 「전쟁론」에서 “전쟁은 적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영생을 취하는 것입니다(딤전6장).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목적은 응답입니다. 방언으로, 뜨겁게, 열정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태도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인격과 살아계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격의 하나님께서 현현하시고, 말씀하시고, 응답주실 그때, 기도의 기쁨과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3:1-3을 통해 우리를 향한 2가지 가장 강력한 기도응답의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Ⅰ. 먼저, 철저한 무력함의 인정과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적의뢰함입니다(1-2절). 기도의 첫번째 조건은 무력함(powerless)입니다. 무력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A. 본문 1-2절의 메시지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여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던 때의 인물입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가 하나님의 뜻이니 바벨론에게 저항하지 말고 복종해야하며, 만일 그렇지 않을 시에는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예언을 거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에워쌌을 때 끝까지 버텼던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그의 아들들은 죽고, 백성들은 비참하게 포로로 끌려가거나 죽습니다. 예레미야가 가슴 아픈 심정을 품고 앞으로 나가 백성들에게 외치는 내용이 예레미야서 5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예레미야의 애끓는 아픔들이 기도로 승화된 내용입니다. 그는 그렇게 외치다가 결국 왕의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됩니다(1a절). 시위대 뜰은 정치범을 가두는 곳이었는데 사방은 막혀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또한 예레미야는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전능자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경험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게 됩니다(1b-2절). 기도는 무력해 질수록, 깨어질수록, 힘이 없을수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B. 자신의 무력함 인정하고, 전능의 하나님 의뢰하는 기도의 능력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팥죽 한 그릇으로 교묘하게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거짓으로 장자의 모든 축복을 받은 후 하란 땅으로 몸을 피합니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재산을 다 잃고 빈털터리로 가는 인생 즉, 인생의 바닥을 칩니다. 벧엘에서 돌을 베고 잠을 잡니다.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와 천사가 야곱에게 “내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야곱은 이곳이 하늘의 문, 하나님의 집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이 베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The house of God,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짓습니다(창28장). 다 막혀있을 때 거기에 하늘의 문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무력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히스기야는 왕은 우상을 다 깨뜨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고, 절기를 회복시킵니다. 그러나 위기를 만납니다.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군대장관을 앞세우고 20만 대군을 이끌어 예루살렘을 에워쌉니다.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모욕합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고난과 모멸과 수치가운데 있습니다. 마치 우리는 여인이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하지만 애를 낳을 힘이 없음같이 무력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즉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어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대를 하루아침에 송장이 되게 하십니다. 산헤립 왕은 고향땅으로 도망하여 자기 조상의 묘에 들어가 절하고 제사를 지낼 때,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 죽입니다(왕하19장,대하33장,사37장). 그때부터 앗수르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무력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하늘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삼층천(하나님의 세계)을 올라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큰 은혜를 받아서 내가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몸에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몸에 어떤 육체의 가시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추정하기로는 간질, 안질, 까칠한 성격 등의 약점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이것을 없애달라고 기도했지만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네가 약할 때 머물게 되고 온전하게 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고후12장). 바울의 신학은 약할 때 강한 자기모순의 신학, 역설적 신학입니다. 기도는 자기 공로와 자랑, 자기 확신과 목소리가 있으면 안 됩니다. 할 수 없다는 무력함과 깨어짐을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돕는 자로 다가오십니다. C.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응답받는 기도들 어느 교회에 김씨 성을 가진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건축사무소를 냈지만 불경기를 만나 문 닫을 위기를 맞습니다. 인근에 한 학교를 건축한다는 공모전이 있어 지원하려고 했으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의 권유로 새벽기도회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학교 건축을 1억9천만 원에 입찰하여 받았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물량의 사업을 주셔서 하청을 주었다고 합니다. 무력함으로 전능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가장 강력한 기도응답의 원리입니다. 송상석이라는 사람은 60년 전에 제조회사를 경영하다가 부도를 냈습니다. 그는 너무 힘들어 산에 올라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그에게 큰 죄 3가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주일성수를 하지 않은 것, 하나님께서 주신 것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 기도생활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평강 중에 성경을 읽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고기잡이를 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여 그물을 깁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고, 그물을 내렸더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요21장). 그래서 그는 153볼펜을 제조하고, 볼펜은 대박이 납니다. 그는 하나님께 세계 50억 인구가 153볼펜을 쓰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셨습니다. 가장 힘들 때, 하나님께 회개하고 엎드렸을 때, 전능의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으로 큰 힘을 얻어 승리하게 된 역사입니다. 가장 강력한 기도응답의 첫째 조건은 무력함입니다. 전능의 하나님을 믿고, 무력함을 인정하고, 엎드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Ⅱ. 둘째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입니다(3절). 두 번째는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A. 본문 3절의 메시지 부르짖으라는 말이 어떤 영어성경에는 “Call unto me” 다른 영어성경에는 “Call to Me” 또 다른 영어성경에는 Cry out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라”, “하나님의 이름을 찾으라”,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히 부르짖으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3절에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말씀은 부르짖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B. 부르짖음 속에 담긴 2가지 의미 부르짖으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① 간절하게 기도하라(마7:7-12). 기도는 간절하게 해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도가 이뤄지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엎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 삼아 테스트하는 것이 아닌 전 인격과 몸 그리고 영혼으로 드리는 기도에 응답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아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고 기도를 격려해주십니다(마7:7-11).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것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마음속에서부터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경상남도에 거창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전영창 교장이 60년 전에 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기독교교육의 꿈을 품고 거창고등학교장이 됩니다. 그러나 거창고등학교는 빚으로 인해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는 일주일간 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거창고등학교를 살려주시지 않으면 동아일보에 하나님은 죽었다고 광고를 내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합니다. 평강이 찾아옵니다. 그 후 학교에서 우편물 한 통을 받아 열어보니 그 안에는 미국에서 조우복이라는 사람이 보내온 2천 50달러와 돈을 보낸 이유가 적힌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감동을 받고 그 돈으로 모든 빚을 갚았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부르짖으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하는 것입니다. ②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눅18:1-8). 둘째는 끈질긴 기도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응답입니다. 기도 중에 낙심하여 포기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 과부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사람들을 멸시하는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 간청을 합니다. 재판관은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다가 계속되는 간청이 듣기 싫고 번거로워 결국 간청을 들어줍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시겠느냐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십니다(눅18:1-8).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귀찮게 하는 성도를 정말 좋아하십니다. 부모는 자녀가 달라는 것을 줄 때에 부모라는 정체성이 생기고 기쁜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때에 기쁘십니다. 조지 워싱턴(1732년-1799년, 미국) 대통령은 필라델피아 벨리포지에서 영국군과 독립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군인들이 지쳐있고 식량이 소진된 상황에서 하나님께 하루에 네 번씩 기도를 합니다. 사람들은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승리를 거둡니다. 끈질긴 기도는 역사를 만듭니다. 요한 웨슬레(1703년-1791년, 영국)는 감리교창시자입니다. 런던에 가면 그가 생전에 살던 집이 있습니다. 집에는 기도실이 있는데, 기도실 바닥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이 구멍은 그가 무릎을 꿇고 하루에 2시간 기도하면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장 깔뱅은 하루에 4시간, 마틴루터는 3시간을 기도했습니다.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러시아가 공산권 아래 있을 때 기독교 핍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의 성경을 밀수하여 러시아 모스크바로 들어갑니다. 호텔에서 하나님께 성경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호텔방에 벨이 울리고, 성경을 감추기도 전에 한 여직원이 들어옵니다. 여직원은 30년 전부터 하나님께 성경을 주시기를 간구한 숨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여직원에게 성경을 주었고, 여직원은 30년 동안 이어온 기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엎드리는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예레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메시지를 통해 강력한 기도응답의 조건 두 가지를 보았습니다. 무력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 가을에 기도를 통해 응답을 체험하는 기도의 용사,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2:8-14/ 노환영 목사/ 2019-01-23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2:8-14 본문말씀 \"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장 8절-14절) 설교요약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소식들이 오고 갑니다. 삶의 질과 문화와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 많은 소식들이 생겨 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한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크고 작은, 좋고 나쁜 전 세계의 수많은 소식들의 홍수처럼 밀려든 삶고 살고 있습니다. 지나 온 인류 역사가운데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은 무엇일까요? 인류 역사를 보면 많은 소식들이 있었음을 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소식들 중에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이었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이 탄생하심을 기념하는 성탄 이브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9절에 보면 한 밤중에 목자들이 들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이 목자들 곁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목자들을 비추자 목자들은 무서워 합니다. 10절-11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날 다윗의 동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아멘. 천사가 목자들을 안심시키고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2010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여러분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각자가 바라는 기쁜 소식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밤에 저와 여러분에게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먼저,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신 기쁨의 좋은 소식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심으로 모든 틀을 깨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위해 제일 먼저 하셔야 했던 일이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 낮고 낮은 죄악 세상으로 내려 오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들이 있는 세상으로 내려 오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 다른 종교는 모두 신을 향해 사람들이 찾아 가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신이 사람들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틀린 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만나면 구원 받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죄로 죽을 사람들에게 소망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안에 참 소망과 평안과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기쁨과 평안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들도 예수님이 나를 찾아 오신 것처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하고 나를 부인해야 합니다. 목회자로서 저는 많이 내려 놓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많음을 고백합니다. 소망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대로 교회가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벌써 교회가 세워진지 9년이 지나고 10년이 됩니다. 그러나 너무 자기 생각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내 생각과 방법들을 하나님 말씀앞에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소망교회는 투명한 교회,복음의 원리를 좇아가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가로막는 일이 아니라면 모든 일을 하는 방법도 성도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추진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교회가 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교회지만 일을 하는 방법은 민주적이고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들의 고정관념들을 내려 놓고 겸손해 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틀을 깰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합시다. 내가 손해보지만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지는 삶을 삽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소망교회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2010년 전 말씀이 육신이 되신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한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사건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0년 까지의 역사가 새롭게 펼쳐진 것입니다. 이 역사를 B.C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역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전의 역사를 A.D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역사입니다. 인류 역사속에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왔다 갔지만 그렇게 큰 역사의 분기점을 만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신 의미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아주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역사를 구약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계시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교회의 시작과 일들을 신약 성경을 통해서도 계시하셨습니다. 이 기쁨의 성탄절에 우리 모두에게 참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귀한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절은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때입니다. 지나 온 한 해를 말씀안에서 결산하십시오. 어떤 모습으로 살았던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펼쳐 놓은 새해를 향해 결단하는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를 보면 서로 전쟁을 하다가도 성탄절이 다가오면 전쟁을 멈추고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예수님께 내려 놓읍시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모든 것이 풀어지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어두움과 진리가 아닌 것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을 물리치고 이기신 빛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신 새로운 시작이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믿음의 사람들보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더 요란합니다. 파티를 하고 여행을 가고 즐깁니다. 그리고 세상의 기업들의 상술이 날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말 깨어 있지 않으면 그런 세상의 풍습과 사람들을 좋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 하지만 지혜로운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성탄절은 즐기고 파티를 하는 그런 시간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그 예수님을 따라가는 결단의 시간임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들은 그 예수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모든 일을 멈추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날씨가 춥고 거리도 먼데 이곳까지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찬양을 태어나신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박사 세 사람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리기 위해 먼길을 찾아 왔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여 기쁨으로 달려 왔습니다. 들에서 천사들로부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들었던 목동들처럼 우리들 모두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화려한 왕궁의 아름다운 방에서 태어 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굿간에서 태어 나시고 12절에 보면 말 구유를 침대로 사용하셨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예수님을 우리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들이 경험했던 모든 일들을 다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십니다. 그리고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평화가 임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천국 복음을 전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소외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평화를 전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소망교회와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저와 여러분이 모두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기쁨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노환영 목사
가지치기(전지)의 원리(4)/ 눅8:14, 요15:2-6/ 노환영 목사/ 2019-01-31
가지치기(전지)의 원리(4) 눅8:14, 요15:2-6 본문말씀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요한복음 15장 2절, 6절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눅 8장 14절/요 15:2,6) 설교요약 예수의 사역을 기록했던 복음서인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을 읽으면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중요한 하늘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실 때마다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자연과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0절에 천국 비밀을 감추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감추고 꼭 알려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만 알리시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5절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예수님이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시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이루기 위해서였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누가복음 8장은 예수님의 씨뿌리는 비유이고 요한복음 15장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 안에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갈 구원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원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번째 원리는 가지치기(전지)입니다. 다른 말로는 집중의 원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씨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입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어떻게 될까요? 씨앗이 싹이 나서 자라려고 해도 엑센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자랄 수 없고 원하는 열매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마음 밭에 상태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 밭에 아무리 좋은 말씀의 씨가 떨어져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말씀을 들었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욕심 그리고 세상의 쾌락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마음의 눈을 가려서 복음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복음 15장 2절에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빨리 내 마음에서 잘라내야 합니다. 저는 농촌에 태어나서 봄이 되면 농부들은 과수원에 있는 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농부들이 아무 가지나 자르지 않습니다. 열매를 맺을 가지는 두고 열매를 맺지 못할 가지는 잘라냅니다.그래야 그 가지에서 새로운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원하는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속에 불필한 것들을 잘라내지 않으면 영원히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유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를 가져 옵니다. 요한복음 15장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열매를 맺지 못할 쓸모없는 가지를 모두 잘라 불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전지의 원리입니다. 우리들이 영적으로 성숙해야 하는데 그것을 막고 있는 나쁜 습관들이 있습니다. 그 습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 게으른 습관입니다. 예배를 참석하지 않는 불성실이 있습니다. 어제는 아헨 예향 열방교회 김익진목사님 은퇴와 아프리카 선교사 파송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아헨 예향 열방교회 감익진목사님이 지난 34년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마지막 금요예배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교회에 함께 모여 기도하기를 힘쓰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제직 여러분은 직분을 받을 때 하나남 앞에 서약을 했습니다. 교회 예배와 기도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그 서약을 하나님 앞에 지키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헌금하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매주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를 물질로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십일조를 자꾸 내 맘대로 사용하고 떼어 먹습니다. 십일조를 내 맘대로 하는 것은 아직 내가 내 삶의 주인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말라기3장 8절에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을 하는 죄를 짓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일들이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시덤블 입니다.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 치명적인 일들입니다. 계속 방치하면 하는 일도 안 되고 수고하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만 좋은 일 시킵니다. 나는 죽도록 고생만 하고 누리는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원리를 따르고 잘라내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가지치기는 다른 말로는 내 잘못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버티게 되면 하나님이 손을 보십니다. 그러면 회개가 아닌 징계가 됩니다.그나마 징계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않을 때에 가지치기를 하십니다. 이것도 자르고 저것도 자르십니다. 그러나 가능성도 없으면 그냥 방치하십니다. 회개하지 않고 버티면 징계를 하시는데 징계도 안 들으면 방치를 하십니다. 방치하다가 마지막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심판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손을 보시기 전에 내가 먼저 영적 성장을 가로 막고 있는 요인을 찾아서 손을 써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회개기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환란을 겪게 하시며 광야를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쓸데 없는 것은 버리고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당할 때 우리가 불필요한 것들, 쓸데 없는 것에 내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찾아내야 합니다.그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말씀을 읽고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귀를 기울여 깨닫고 결단함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합니다. 예배에 나와 설교를 들으면서 이것은 내가 내려 놔야 되겠다. 내가 포기해야 겠구나.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결단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배 참석하여 설교를 들을 때 좋은 것만, 축복만 받으려고 들어서는 안됩니다. 나를 비추어 보고 한 가지라도 깨닫고 반응하고 결단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면 물리적인 힘을 가하시게 됩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면 부모가 말로 하는데도 고집을 부리면서 듣지 않으면 그 아이는 꼭 매를 맞고 손해를 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와 싸워 봐야 내가 부모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말을 들으면 매를 맞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말로 하자고 부모를 설득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은 니가 말로 할 때 들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그 때 부모님이 기회를 주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철이 들어 말로 할 때 듣고 부모님 말에 순종하면 매를 맞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와 신앙생활에서도 같은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고 광야와 같은 삶으로 거칠게 나를 몰아 가실 때에 하나님 말로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네가 말로 할 때 들었냐? 그때하나님 삼세판입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회개하면 해결됩니다.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옆 사람과 인사할까요? “말로 할 때 들읍시다.” 찬송가 528장 가사에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부를 때 들으면 좋습니다. 안 들으면 음성이 거칠어지게 됩니다. 광야로 몰아내고 환난과 풍랑에 몇 바퀴 돌리고 나면 그 때서야 제 정신이 듭니다. 아이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다 잃어 버리고 풍비박산 나면 그 때 손들고 오겠습니까? 말로 할 때 듣겠습니까?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렵고 힘들 때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을 힘쓰고 열심을 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기도원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기도와 예배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와 성도들이 경제적으로 살만하니까 그런 열심히 점점 사라졌습니다. 교회마다 예배에 모이는 숫자가 줄어 듭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겨도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금식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어 졌습니다. 옛날의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영성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성도들이 먹고 마시고 놀러가는 것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함께 모여서 기도는 2-3분 하고 노는 것은 몇 시간씩 놉니다. 이상해 졌습니다. 교회마다 예배의 회수가 줄고 참여하는 숫자도 줄고 헌신하는 정도가 낮아지고 있습니다. 봉사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이대로라면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지금 우리가 결단을 하고 돌이켜서 하나님 안에서 열매를 맺어야 할 때입니다. 에스겔 15장 2-8절에 하나님의 탄식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3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4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7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8 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여러분! 포도나무는 관상용도 아니고 꽃을 보기 위해 심는 나무도 아닙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얻기 위해 심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말입니다. 땔감으로만 쓰이게 된다고 합니다. 본문의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나라였지만 열매를 맺지 않고 품만 잡고 있으니까 내가 베어 땔감으로 밖에 쓸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이방인인 우리들을 세상에서 하나님의 포도나무에 가지로 접을 붙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은혜와 축복을 받으면 세상을 변화시키고 열매를 하나님께 내어 놓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되고 하나님의 대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의 향락을 위해 살고, 자기 야망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면 하나님께서 쓸 수 없습니다. 내가 너를 통해 열매를 얻기를 원했는데 열매를 맺지 않으니 쓸 수가 없구나! 나는 너희를 버리고 땔감으로 밖에 쓸수 없다고 탄식하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미국이나 카나다는 워낙 토지가 기름지고 기온이 좋아 아름드리 나무들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하늘을 찌를듯이 자라고 그런 살림을 구경하기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여름철에 그런 나무들이 너무 많이 쓰러져 도로를 막고 불편을 줍니다. 그렇게 큰 나무들이 쓰러진 이유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너무 비옥한 땅에 자란 나무들은 뿌리를 밑으로 안 내려도 수분도 충분하고 날씨도 좋아 나무들이 위로만 자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싸이판 같은 나라에 있는 나무들은 키가 겨우 2미터밖에 안되지만 수령은 수 백년이 넘는 나무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 나무들은 뿌리를 땅속으로 20미터를 내려 갑니다. 물을 얻기 위해서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또한 강한 바닷바람에 살아남기 위해 비바람에 칠 때 뽑히지 않고 지탱하기 위해 계속 뿌리를 밑으로 내리는 것입니다. 위로는 별로 자라지 않지만 밑으로 뿌리가 20미터를 뻗었기 때문에 왠만한 바람에는 끄덕 없습니다. 우리가 축복을 좋아하고 형통을 좋아 합니다. 그러나 약점은 뿌리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넘어 집니다. 그런데 헝그리 정신으로 산 사람, 험난하고 고난 속에 자란 사람의 특징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예수안에 뿌리가 아주 깊이 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데도 말귀를 못 알아 듣고 헷갈리면 자꾸 풍랑을 보내시고 훈련을 강하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뿌리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대로 두면 큰 일이 날텐데 적절하게 어려움을 주시고 나라를 걱정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평안할 때는 나라가 소중한 지 모릅니다. 위기가 올 때는 우리가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다니엘처럼, 에스더처럼 우리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로마서 11장 20절 -21절에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던 이스라엘도 열매를 못 내놓고 엉뚱한 짓을 하니까 잘라 버렸습니다. 교회들 선교를 잘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신자들이 말씀과 신앙으로 살려고 애를 쓸 때는 하나님이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교회 안과 밖의 죄악이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 있는 죄악이 세상보다 더 악랄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습니까? 심각한 위기입니다. 내가 원 가지도 아끼지 않았다. 너도 열매 맺지 않으면 내가 찍어 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 때문에 시대가 바뀌어 지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지고 역사가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정화의 능력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와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예배 때마다 모여야 합니다. 목장예배로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하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으시고 역사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들을 가감하게 잘라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속에 부정적인 것들을 잘라내는 결단을 합시다. 내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강제로 하시게 됩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를 통해서라도 돌아오게 하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심판 받기 전에 스스로 잘라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염려, 걱정,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쾌락을 좋아하는 마음, 시간 관리의 문제, 우선순위 문제를 여러분 스스로 잘라내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가지치기를 하면 집중력이 생깁니다. 쓸데없는 것들을 내려 놓으면 중요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다. 2014년 여름 휴가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하여 가지치기를 하고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포도나무 가지로 열매 맺을 기회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내 마음속에 장애요소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잘라내게 도와 주소서. 내 마음이 옥토가 되어 어떤 말씀도 아멘으로 답하고 순종하여 열매를 맺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환영 목사
감당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I): 에녹.아브라함.모세/창12:1-3/노창영목사 2019-07-18 22:44:22 read : 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당 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Ⅰ): 에녹, 아브라함, 모세 본문: 창세기 5:21-24, 12:1-3, 출애굽기 2:1-3 노창영목사 서론// 미국의 기독교 매거진 ‘크리스천투데이’에서 미국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애창 찬송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Amazi
감당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I): 에녹.아브라함.모세/창12:1-3/노창영목사 2019-07-18 22:44:22 read : 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당 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Ⅰ): 에녹, 아브라함, 모세 본문: 창세기 5:21-24, 12:1-3, 출애굽기 2:1-3 노창영목사 서론// 미국의 기독교 매거진 ‘크리스천투데이’에서 미국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애창 찬송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은 'Amazing grace'(나 같은 죄인 살리신)였습니다. 이 노래는 존 뉴턴(1725-1807)이라는 하는 노예선의 선장 출신의 목사가 만든 노래입니다. 그는 11살에 아버지와 배를 타기 시작했고, 방탕하게 살다가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갑니다. 반역죄로 그는 졸병으로 강등되고 결국 노예선을 타고 2년 동안 고통스런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때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는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보며 회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노예선을 탈출했고, 나중에 노예를 실어 나르는 배의 선장이 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신학을 배우고 목회자가 됩니다. 그는 특별히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찬송가 4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외에도 「지난 이레 동안에」, 「귀하신 주님 계신 곳」, 오스트리아 국가인 「시온 성 같은 교회」를 작시하였습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개인적인 삶의 체험에서 나온 감동의 노래로 죄많은 인생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작사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받아야 섬기고, 봉사하고, 예배하고, 감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은혜 받고 살아야 됩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감당하지 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세 사람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Ⅰ. 먼저, 그렇고 그런 삶을 살던 에녹입니다(창세기 5:21-24) A. 그렇고 그런 삶을 살았던 에녹 에녹은 65세까지 그렇고 그런 인생 적당주의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록될 것이 없는 그럭저럭 인생이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회 역사를 편찬하게 되어 실력이 좋은 문필가인 장로님께서 교회 역사를 서술했습니다. 역대 담임 목사 프로파일, 교회 일꾼들, 교회 어떤 시대들, 봉사, 섬김, 역사 일련의 사건을 자세히 빠짐없이 기록을 잘 해나아갑니다. 멋지게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장로님께 교인들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왜 자신의 이름을 빼뜨렸냐며, 사건을 잘못 기록했다고 말입니다. 장로님은 그때 곤욕을 겪었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록되는 것이 아닌 이 땅에 기록되는 데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기록될만한 사건들을 써내려가야 됩니다. 에녹이란 사람은 아담의 7대 손입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에 올라간 창세기 가운데 가장 특별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도 한 때는 적당주의적인 인생이다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변화되는 결정적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B. 은혜 받아 예언자가 된 에녹 창세기 5장 21-23절 말씀을 보면, 므두셀라를 낳던 때 결정적인 삶의 전환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일단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When He is gone, it will come(그가 죽을 때, 그것이 오리라)'입니다. 에녹은 네 아들이 죽는 해에 심판이 올 것이기 때문에 종말의 마음을 가지고 살라는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홍수의 심판이 왔습니다. 에녹의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에녹은 아이를 낳을 때 하나님의 심판메세지를 들었고 아들의 이름을 이같이 부른 것입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종말과 심판을 자각했을 것입니다. 유다서 1장 14-16절 말씀처럼 에녹은 심판, 종말, 경건한 삶을 얘기하며 백성들을 도전하는 예언자적인 삶을 살면서 365세에 하늘에 올라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예언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어떤 목사 딸이 있었습니다. 교회도 잘 나갔지만, 안 믿는 남자랑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한 두 해 지나다 보니 자기도 믿음을 다 팔아먹어버리고 십 몇 년을 하나님 없이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그런데 외아들이 불치병에 걸려 얼마 뒤 죽고 엉엉 울면서 근처 교회 목사를 만나 상담하게 됐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데려가시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녀에게 당신이 하나님께 오지 돌아오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처방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65세까지의 에녹처럼 적당주의적 인생을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말씀의 계시로 거듭나서 인생의 전환점이 갖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적당주의의 인생이 예언자로 거듭나게 됨을 믿으시고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Ⅱ. 다음으로, 풍요로운 기득권자로 살던 우상숭배자 아브라함입니다(창세기 12:1-3) A. 풍요로운 기득권자로 살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고향은 창세기에는 갈대아 우르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그 중의 한 곳이 바벨론제국의 갈대아 땅인데, 그곳의 남쪽에 우르라는 성이 있었습니다. 1920년대 아브라함이 살았던 갈대아 우르지역을 미국의 고고학적 발굴 탐사단이 연구했더니 점토판에 수학, 기하학등의 고등교육을 했다는 기록들이 나왔습니다. 그곳은 또한 무역이 발달된 지역입니다. 페르시아만에서부터 수로가 들어와 신상재료, 금, 은, 동, 향유를 수입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서, 많은 신전이 있었고, 달의 여신을 숭배하였습니다. 여기서 풍요로운 기득권자요, 우상숭배자가 바로 아브라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다른 곳을 보면, 이 사람이 자기 조카 롯이 전쟁 때문에 잡혀갔을 때 318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적들을 부수고 그들을 데리고 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사병을 거느릴 정도의 큰 부족의 장, 엄청난 거상, 소와 양이 큰 떼를 이루었던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창세기 12장 1-3절에 보면, 본토, 자기 삶과 기업의 근거지 그리고 친척, 얽혀진 혈연관계 속 가족들과 수많은 후손, 그리고 아버지였습니다. 그대로 살았다면 그 시대에는 이름을 떨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러한 모든 풍요로운 기득권을 버렸습니다. B. 은혜 받아 믿음의 조상 된 아브라함 영광의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고 사도행전 7장 1-3절에 기록합니다. 로마서 4장 9-25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후사가 되었다고 말씀해줍니다. 은혜가 내려오니까 그의 교만함, 갖고 있던 모든 지위, 풍요로움들, 친척의 그 어떤 모든 관계를 다 끊어버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새로운 시작을 이룬 것입니다. 1950-70년대 미국과 세계의 복음성가계를 흔들었던 존 피터슨(John W. Peterson)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캔자스 출신으로 ‘Singspiration'이라고 하는 복음성가 회사의 대표가 되어, 수많은 음반과 책을 판매하였고, 수많은 집회를 하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복음성가의 별이었습니다. 그가 부르고 만든 노래들이 전 세계 많은 사람을 감화시켜 주님께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성공한 음악가이자 기업가로 부유한 기득권자가 되어 행복함에 젖어 사는 동안 젊은 음악가들이 등장합니다. 카마이클(Ralph Carmichael, 주 네 맘에 들어 가시려하네), 커트 케이저(Kurt Kaiser,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스킬링즈(Ostis Skilljing, 하늘 문이 열리면 노래 할 이유 있네) 마지막으로 빌 게이더(William J. Gaither,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와 같은 복음성가 가수들이 뜨게 됩니다. 존 피터슨은 질투심과 시기심 때문에 기도도 안 되고 경건이 없어져 하나님과 교통이 안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자 교만이 다 녹아져 내리고 기득권을 포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풍요로운 기득권자, 우상 숭배자였던 아브라함 같은 인간도 믿음의 조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은혜받아 살기 바랍니다. Ⅲ. 셋째로,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모세입니다(출애굽기 2:1-3) A.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 모세 바로 임금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집단 대학살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대학살 명령의 희생자로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아므람, 어머니 요게벳은 모세가 너무 준수하고 아름다워 살려두기로 작정을 하고 석 달 동안 아이를 감춥니다. 더 이상 숨길 수 없자 결국 물이 들어오지 않게 역청을 바른 갈대상자에 아이를 담아 강물에 띄워 보냅니다. 마침 바로의 공주가 목욕하러 왔다가 아이를 보고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로 삼습니다. 그때부터 모세는 40년 동안 이집트 왕자로 모든 최고의 학문과 문물을 익힙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지도자 될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B. 은혜 받아 민족의 지도자가 된 모세 결국 그의 나이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을 받고 리더가 됩니다. 시대적으로 잘못 태어난 아이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내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기구한 운명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받아서 구원자가 됩니다. 미국에 어떤 청년 한 명이 있었습니다. 건강하고 감사가 넘치는 형제인데 교통사고로 다리 하나가 절단되었습니다. 불행한 인생을 살며 신앙도 다 잃어버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시련을 극복하게 하셨고, 고무로 만든 의족을 달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고자 선교훈련을 받고 파송을 받아 한 부족 가운데 들어가 복음을 증거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식인종이었습니다. 이 젊은 청년 선교사에게 다가와 공격하려고 할 때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혜를 발휘해서 의족 다리를 떼서 그들에게 던져줍니다. 그 의족을 뜯어먹어보니 피도 안 나오고 딱딱하였습니다. 이런 다리가 어디 있냐며 그들이 다 무릎을 꿇고 그를 신으로 숭배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선교사가 그 지역을 복음화 시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바닥을 치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도 은혜를 베풀어 우리의 삶을 바꾸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사형판결을 받은 기구한 시대의 희생양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속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은혜 아니면 설 수 없고 은혜가 와서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결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그럭저럭 살아갔던 에녹도 예언자가 되고, 기득권자도, 우상숭배자인 아브라함도 믿음의 조상이 되고, 가장 기구한 운명으로 태어난 모세도 구원자, 지도자가 됩니다. 우리도 은혜 받아야 살고 은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 기억하며 은혜 받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당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Ⅲ):에스더·강도· 바울/눅23:42-43/노창영목사 2019-07-18 22:46:31 read : 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당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Ⅲ): 에스더·강도·바울 본문 : 에스더 2:7, 누가복음 23:42-43, 디모데전서 1:12-13 노창영 목사 서론// 기독교의 핵심이자, 신앙생활의 기본은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두
감당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Ⅲ):에스더·강도· 바울/눅23:42-43/노창영목사 2019-07-18 22:46:31 read : 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당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Ⅲ): 에스더·강도·바울 본문 : 에스더 2:7, 누가복음 23:42-43, 디모데전서 1:12-13 노창영 목사 서론// 기독교의 핵심이자, 신앙생활의 기본은 은혜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두 주간 동안 성경에 나오는 감당못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던 에녹,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나오미와 룻, 애굽소년, 므비보셋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오늘 세 번째로 감당하지 못할 은혜를 받은 세 사람을 설교함으로 은혜설교 시리즈를 마감하려고 합니다. Ⅰ. 먼저 에스더입니다(에스더 2:7) A. 바벨론 포로 출신의 유다 소녀 에스더 에스더는 히브리 베냐민 지파 여자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부모를 여의고 그의 사촌오빠,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아 성장하였습니다. 본명은 ‘하닷사’(사철나무라는 뜻)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오면서 ‘에스더’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에스더는 여신의 이름입니다. 바벨론 여신의 중 하나가 ‘이쉬타르’(Ishtar)라는 별의 여신인데 헬라시대 때는 ‘아스테르’(Aster), 로마시대 때는 ‘비너스’ 혹은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비너스의 뜻은 금성, 즉 별을 뜻하는 것으로 에스더란 ‘별처럼 빛나는 여인으로 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스더는 포로요, 고아요, 히브리 사람이었습니다. B. 왕후가 된 에스더의 사건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임금이 즉위한지 3년쯤 되었을 때 127도 모든 방백들과 장관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풉니다. 수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는데, 일곱째 날, 왕이 주흥이 일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왕비 와스디를 불렀지만, 왕후가 이를 거절합니다. 이에 임금이 화가나서 결국 왕후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두 번째 왕비를 맞이하기 위해 아름다운 여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에스더 역시 기회를 얻어 왕 앞에 나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서 왕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였던 여인이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유대민족이 아말렉 사람들에 의해 집단학살을 당하게 될 위기 속에서 목숨을 걸고 민족을 건져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포로 같은 인생이 지도자가 되고 민족을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 이란 책의 주인공은 맹의순(1926-1952) 집사로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났고, 숭덕소학교, 평양공립제2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양 장대현 교회 맹관호장로입니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하여 모친과 형님, 누님, 여동생이 죽습니다. 아버지는 6.25때 납북되고 맙니다. 광복 이후 남하해서 1946년도에 연희전문학교를 입학하였고, 1947년 조선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웠고 남대문교회에서 사역하여 중등부를 300명으로 부흥시키면서 전도에 힘씁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터졌고, 그는 피난을 위하여 남쪽으로 가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대구 근처에서 인민군으로 오인되어 미군에게 붙들려 9월 16일 부산의 거제리포로수용소에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1950년 12월, 광야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다음 해에 배명준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맹의순집사를 석방하려 하였으나 맹의순은 중공군과 포로들을 돌보고자 포로수용소에 남습니다. 그는 특별히 중공군 포로를 많이 사랑했는데 모든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떠나고 가장 고통스러운 새벽 1-3시에 그들을 정성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렇게 헌신하며 정성껏 그들을 돌보다가 1952년 8월 11일 뇌막염으로 스물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맹의순은 오해로 포로가 되었지만 2년 동안 고통받는 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포로가 된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의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에스더는 포로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왕비가 되고, 민족을 구원합니다. 가정, 직장, 교회에서 기쁘게 자기를 낮추며 섬기고, 은혜받아 변화되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즐거운 포로, 믿음의 포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두 번째 인물은 강도입니다(누가복음 23:42-43) A. 십자가에 죽게 된 강도의 상황 예수님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강도 둘이 같이 죽습니다. 예수님 좌편의 강도는 주님을 비방하고, 우편의 강도는 주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신을 생각해달라고 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답하시면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로마시대 십자가형은 중죄인에게만 가하는 극단적 사형법이었습니다. 페니키아인들이 개발했고,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를 거쳐 로마시대 때, 중범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베푸는 가장 무서운 사형법으로 정착됐습니다. 십자가형은 양손과 발목에다가 대못을 박아 피가 다 빠져 죽게 만드는 형벌입니다. 밤중에 늑대나 승냥이들이 와서 내장을 뽑아먹고 살점을 뜯어먹고 독수리가 와서 귀를 파먹고 눈을 파먹는 것이 십자가형입니다. B. 죽기 직전에 강도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주님께서 신앙을 고백하고 구원을 갈망하는 이 강도를 향하여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신칭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강도는 인간의 행위, 공로, 종교적인 업적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강도 둘이 모두 주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람이 회개하여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죽기 직전에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한국기독교 역사에서 최초의 부흥사는 김익두 목사(1874-1950, 76세)입니다. 이북에 신천교회, 평양의 장대현교회, 서울의 남대문교회에서 목회하신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776번 부흥회를 했고, 28,000여회 설교를 했고, 20,000명 이상의 병자들이 고침받고, 150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의 설교로 감동받아 목회자가 된 분도 300명이 넘습니다. 김익두목사님은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과거급제를 못하고 장사도 망하고 술독에 빠져 살았고, 폭력배, 싸움꾼으로 살다가 소안련선교사의 부인에게 전도지 하나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그것으로 코를 풀어버렸는데, 그때 선교사의 부인에게 그러다가 코가 썩어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 날, 소안련선교사의 전도집회에 참석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크게 회개하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때부터 성경을 백독하고 세례받고, 신천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여 1910년에는 평양신학교(3회)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면서 신유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1919년도에 경상북도 현풍에서 집회할 때 10년 동안 아래턱이 빠져서 고통당했던 박수진의 턱이 고침을 받았고, 1920년 부산진교회 집회에서 8년 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곱사등이와 문둥병자와 폐결핵환자가 고침 받습니다. 그렇게 사역하시다가 1950년 10월 인민군 총에 맞아 76세에 순교하셨습니다. 강퍅한 깡패도, 강도같은 악한 존재도 은혜가 임하면 순한양,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 구원 받게 됩니다.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Ⅲ. 셋째, 사도 바울입니다(디모데전서 1:12-13) A. 기독교의 핍박자 옛사람 사울 사도 바울은 금수저 출신으로 베냐민지파 사람,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순수 토종 유대인, 난지 8일 만에 할례 받았고, 바리새파 사람, 율법을 배웠고, 경건과 의의 사람, 율법주의자입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철학을 배웠고, 당대최고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던 수제자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보게 됩니다. 바울이 갖고 있던 기존의 믿음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때리고, 훼방하고, 고통을 주고, 핍박합니다. 교회의 핍박자, 성도의 저격수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는 스데반 집사가 죽을 때 같이 동참했던 살인자가 사도바울입니다. B. 새 사람 된 바울 하루는 바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에 잡아다가 옥에 가두기 위해 대제사장이 준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갑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은혜받아 주님께 굴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기독교의 변호자, 대변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기독교를 공격한 최고의 저격수가 있습니다. 울산대학교 법학과 이정훈(43세)교수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불교에 심취했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전액장학생으로 공부하고 군승으로 군에 들어가 절을 세우고 포교합니다. 군제대후에는 세상에서 포교하기 위해 서울대법학대학원에 들어갑니다. 법을 공부하면서 종교개혁자에 대하여 배웠고, 그들의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보면서 문제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문제점의 배후에는 기독교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좌익법철학자로 기독교의 핍박자가 됩니다. 종교 인권편향적인 모습을 비판하면서 법을 제정시키고, 2005년도에 종자연(종교자유정책연구원)이라는 기독교를 부수기 위한 단체를 발족시킵니다. 사립기독교학교에서 기독교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법안을 냈습니다. ‘Jesus loves you.’라는 고려은단의 간판을 내리게 만들고, 교회에서 투표소를 철수시키고, 동성연애, 성소수자 관련된 법안, 종교인과세까지 모두 그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기독교를 공격하려고 TV를 틀었습니다. 한기채 목사님의 죄에 대한 설교를 들으면서, 평소처럼 그는 비웃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위로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면서 혀가 말리고 온 몸이 마비되고 꼼짝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이때부터 이정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변화되어 기독교의 대변자가 됩니다. 이정훈같은 기독교의 공격자, 저격수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은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은혜를 못 받으면 가짜기독교인이 됩니다. 기독교인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 되어야 됩니다. 은혜가 임해야 변화됩니다. 결론//어떤 종류의 사람도 은혜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저항하지 말고 거부하지 말고 은혜 앞에 무릎 꿇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내려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아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임을 기억하시고, 은혜받아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 신앙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8)/ 완벽주의와 무감각/ 전도서전7:15-28, 롬1:28-31/ 노창영 목사/ 2019-06-11
감사대로의 장애물들(8)/ 완벽주의와 무감각 전7:15-28, 롬1:28-31 서론: 신앙생활은 감사대로입니다. 가로막힌 것들을 다 치워야 하나님 앞에 나가 감사로 찬양하고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고 삶에 평강과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오늘은 감사대로의 장애물 마지막 시간으로 깊이 묵상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I. 먼저, 완벽주의(完壁主義, Perfectionism)입니다(전7:15-18) A. 완벽주의자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제품에 결함이 있으면 회사는 리콜(recall)을 통해 무상수리를 합니다. 제품에 흠이 있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감사는 흠집 있는 약한 존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기도, 물질, 찬양, 마음 등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기의 의(義)로 가득 차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감사할 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새 차를 구입했습니다. 목사님의 관심은 온통 새 차였습니다. ‘긁히면 어쩌지?’ 늘 불안하고 평안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차를 끌고 골목길을 도는데 반대편 오는 차하고 부딪치면서 차가 찌그러졌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평안을 되찾았습니다. 완벽주의자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약간의 허점, 부족함이 있어야 긍휼을 받고 감사하게 됩니다. B. 완벽주의자의 두 가지 문제 첫째로 완벽주의자는 자기를 괴롭게 합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까 자기를 학대하고 자신을 죽입니다.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지휘자가 ‘신의 목소리’라고 칭찬했던 조수미 씨의 이야기입니다. 조수미 씨의 약점은 자기학대였습니다. 공연을 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새벽 3시 반까지 그날 불렀던 곡을 반복재생하며 후회하며 완벽주의 관점으로 자기를 학대합니다. 두 번째는 남들을 피곤하게 합니다.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이 한 여자환자를 맡았습니다. 이 환자는 귀족출신 부자이고 완벽주의며 분노가 많고 도도하여 때때로 의사에게 손찌검까지 하는 환자였습니다. 하루는 융과 상담 중 이 환자가 손을 들어 융에게 손찌검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융이 도리어 여자의 뺨을 때렸고 충격을 받은 환자는 그때 정신을 차리면서 마음을 열고 치유되기 시작했습니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마틴’ 이라는 남자는 ‘로라’ 라는 여자를 좋아했고 공주처럼 떠받들었습니다. 결혼을 하자 마틴의 극도의 완벽주의와 의처증이 드러났습니다. 늘 아내를 감시하고 지시하고 폭행했습니다. 로라는 남편의 완벽주의를 견디지 못해 도망을 치려고 수영을 배웁니다. 그리고 폭풍우 치던 어느 날 물에 뛰어 들어가 헤엄쳐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이름으로 삽니다. 완벽주의 때문에 부부관계, 자녀관계, 교회관계, 직장관계가 깨집니다. C. 교회 안의 완벽주의의 문제 교회는 의인, 경건한 자, 천사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죄인과 악인, 병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있을 때 주님은 “가라지를 내버려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도 뽑힐까 두려우니라”(마13:29)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알면서도 내버려 두십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함께 공존하는 태도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그의 적인 사울왕, 요압, 아브넬, 시므이를 수용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도망할 때 아둘람에 찾아온 원통하고 빚지고 환난 당한 자들을 받아 주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움’이라는 시를 소개해드립니다. ‘기대한 만큼 채워지지 않는다고 초조해지지 마십시오. 믿음과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몫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사랑하지 못한다고 애태우지 마십시오. 마음을 다해서 사랑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분량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지금 슬픔에 젖어있다면 더 많은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흘린 눈물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누군가를 완전히 용서하지 못한다고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아파하면서 용서를 생각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분량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마음을 비우면서 괴로워한 거기까지가 우리의 분량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빨리 달리지 못한다고 내 걸음을 아쉬워하지 마십시오. 내 모습 그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과 잎은 더 아름답게 피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피어난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이고 그것이 우리의 아름다움입니다.’ 전도서 7장 16절 말씀입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스스로 지나치게 의롭고 지혜롭게 사는 것은 완벽주의의 병을 만듭니다. 완벽주의는 감사생활의 장애물입니다. II. 무감각(無感覺)입니다(롬1:28-31) A. 영적감각을 상실한 어리석은 사람들 제가 2008년 성지순례 중에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밑 둔덕에서 실족하여 다리부상을 당했습니다. 아테네국립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하고 한국에 와서 6개월을 치료받았지만 지금도 엄지발가락에 감각이 좀 없습니다. 감각이 무딘 것은 생활에 매우 불편합니다. 문둥병의 특색은 무감각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아람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장군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엘리사선지자의 말을 따라 요단강에 몸을 7번 씻어 문둥병이 낫고 감각이 살아났습니다. 나아만이 예물을 드리려했지만 엘리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욕심이 생겨 주인을 사칭해 예물을 취하고 감춰둡니다. 이 일로 게하시는 저주를 받아 문둥병에 걸립니다. 육체감각이 없는 문둥병보다 무서운 것은 영적감각이 상실된 영적 문둥병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고 마음이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살아간다”(엡4:17-19)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 갖고 있는 첫 번째 표식은 영적무감각입니다. B. 무감각의 파괴적 발전들(무정, 무책임, 무감동, 무자비)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죄책감 때문에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는 게 편하겠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큰 고통가운데 살았습니다. 후손인 라멕은 전쟁터에서 창상을 입고 보복으로 사람들과 소년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죄책감 때문에 “가인을 위하여 벌이 7배인데 나를 위하여는 77배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바로 왕은 히브리아이를 집단학살했고, 신약에서 헤롯왕은 베들레헴의 두 살 아이들을 집단학살했는데 죄에 대해 무감각했습니다. 무감각이 발전하면 무정과 무책임, 무감동, 무자비가 나타납니다. 작년 10월 한 계모가 8살 아이를 때려서 갈빗대가 16개가 부러지고 한 갈빗대가 폐를 찔러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히틀러, 차우체스크, 폴포츠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전쟁을 일으켰어도 무감각했습니다. C. 감사는 살아있는 영적 감각의 증명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31) 이런 자의 심령은 화석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과 은혜가 들어갈 때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감각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을 아는 감각, 죄에 대한 감각, 영적 감각이 살아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무감각은 우리의 장애물입니다. 결론: 완벽주의과 무감각을 내려놓고,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을 입어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완벽주의와 무감각은 감사대로로 나가는 장애물들입니다. 감사대로로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노창영 목사
감사대로의 장애물들(V):교만과 부요함 /잠18:12/계3:17/ 노창영 목사 2019-06-11 02:39:23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감사대로를 막는 장애물을 불평과 부정적사고, 염려와 낙심, 비교의식과 불만족, 원한과 분노로 두 개씩 묶어서 설교했습니다. 오늘 말씀할 두 가지는 장애물이라기보다 감사를 막는 큰 대적(大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감사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I.
감사대로의 장애물들(V):교만과 부요함 /잠18:12/계3:17/ 노창영 목사 2019-06-11 02:39:23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감사대로를 막는 장애물을 불평과 부정적사고, 염려와 낙심, 비교의식과 불만족, 원한과 분노로 두 개씩 묶어서 설교했습니다. 오늘 말씀할 두 가지는 장애물이라기보다 감사를 막는 큰 대적(大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감사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I. 먼저 교만(驕慢)입니다(잠18:12) A. 은혜를 대적하는 교만의 본질 한 마을에 사이좋은 검은수탉과 붉은수탉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쁜 암탉이 이사를 왔고 그 암탉을 차지하려고 두 수탉이 결전을 벌였습니다. 결과 붉은수탉이 패배했고 검은수탉은 지붕에 올라가 “내가 승리자다”라고 자축했습니다. 그 때 숲에 있던 독수리가 날아와서 검은수탉을 낚아채갔습니다. 교만은 은혜를 가로막는 감사의 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만을 세가지 종류로 말했는데, 첫 번째는 지적(知的)교만입니다. 사람은 많이 배우면 교만하기 쉽습니다. 두 번째는 물적(物的)교만입니다. 많이 소유하면 우월함을 갖게 되고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세 번째 미적(美的)교만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생겼다는 생각 때문에 뽐내거나 자고하기 쉬운 것이 미적교만입니다. 저는 좀 더 깊은 차원의 교만을 네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기질적, 성품적, 인격적교만입니다. 이는 타고나면서부터 사람 안에 갖고 있는 교만지향적인 성향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성취의 교만입니다. 남보다 위로 올라가면 갖게 되는 외부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교만입니다. 세 번째 교만은 도덕적, 윤리적교만입니다. 자기 의로 도덕적 공을 쌓으면 율법적 교만에 빠집니다. 네 번째는 영적, 종교적교만입니다. 많은 도를 쌓고 경건의 힘을 쓴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영적교만에 빠지지 쉽습니다. 한 동네 유지(有志)가 교회를 다니는 그리스도인을 보고 교회에 등록을 하고 믿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동네유지라는 교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부자인 동네유지는 추수감사주일에 쌀 두가마니를 헌물했습니다. 그 후 성찬식 때 자기가 쌀 두가마니를 바쳤는데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떡을 주지 않아서 시험에 들었습니다. 지적교만, 물적교만, 미적교만, 기질적교만, 사회적교만, 도덕적교만, 영적교만 등의 모든 뿌리는 ‘나 중심적 사상’입니다. 자기성취, 자기노력, 자기행위, 자기 의(義) 같은 자기중심의 태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가 들어설 자리가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지배할 때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B. 성경에 나타난 교만한 사람들 다니엘서에 교만했던 부자(父子)가 나옵니다. 느부갓네살 왕과 벨사살 왕입니다. 느부갓넷살 왕이 세계정복 후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바라보며 자축하고 교만을 떨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께서 그를 폐위시키십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일곱 때 동안 비참한 삶을 삽니다. 그 후 자기 자신을 알고 하나님이 모든 왕권과 주권의 책임자임을 알고 하늘을 우러러 봤더니 총명이 돌아오고 왕권을 회복했습니다(단4장). 벨사살 왕은 이미 아버지를 통해 교만할 때 하나님께서 왕위를 폐위시키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교만을 부립니다. 하루는 벨사살 왕이 왕족과 귀족을 불러 술파티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술자리에 쓰는 그릇이 하나님 성전의 제사용 그릇이었습니다. 파티 중 벨사살 왕 앞 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고 씁니다. 벨사살 왕은 두려움에 휩싸여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다니엘은 “메네 메네는 왕의 나라가 끝이났다”, “데겔은 왕의 부족함이 저울에 달렸다”, “우바르신은 나라가 갈라졌다”라는 뜻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날 밤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고, 메데와 바사 왕조가 등장하게 되면서 역사의 변화를 가져옵니다(단5장). C. 교만의 위험성과 겸손한 삶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인간의 무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국의 부흥사 D. L. 무디(D. L. Moody)가 작은 도시에서 전도집회를 했습니다. 전날 미리 가서 전도 집회를 준비했는데, 다음날 지역신문에 무디에 대한 기사가 대서특필되었습니다. 기사 제목은 “교만한 전도자 무디”였습니다. 그 지역 신문기자가 무디 목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되자 악심을 품고 쓴 기사였습니다. 무디 목사는 웃으며 “이 사람 나의 대해 잘 모르고 있고만 나는 여기 써있는 것보다 훨씬 교만한 사람일세. 이렇게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겸손히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싸인으로 알고 열심히 기도합시다”라고 말했으며, 그날 전도집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고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교만을 떨쳐버리는 승리생활, 감사생활의 비결입니다. 교만을 던져버리고 겸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아가는 감사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두 번째는 부요(富饒)함입니다(계3:17) A. 감사를 망각하게 하는 부요함 인간은 물질적, 문화적으로 배부르면 하나님을 버리기 쉽습니다. 지난 1월에 고등부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숙소를 둘러보던 중 복도에 단팥빵 3개가 방치되어 있던 것을 봤습니다. 그것을 먹으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시대가 감사를 모르는구나. 귀한 게 뭔지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구나.’ 물질과 문화가 풍요하면 사람은 배부르고 하나님을 망각합니다. 감사의 시작은 마음의 가난입니다. 미국 텍사스의 조지 W. 트루엣(George W. Truett)목사가 그 지역의 석유왕에게 초대를 받았습니다. 석유왕은 목사님과 옥상에 올라가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석유탑과 유전(油田) 등 자기의 소유를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하늘을 가리키며 “그렇다면 당신은 이 방향을 위해서는 무엇을 쌓아놓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석유왕은 아무 대답을 못했습니다. 한 부자(富者)가 죽게 되었을 때 침상에서 딸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딸이 “아빠 멀리가시네요 하지만 그곳에는 멋진 집들과 친구들이 있겠지요”라고 하자, 부자는 “아빠가 이 세상에서는 성공하여 많은 사업을 크게 이뤘지만 저 세상에서는 빈털터리 같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명기 32장 13~15절에 하나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높여주시고, 밭의 소산을 주시고, 소와 양의 고기와 젖을 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주시고, 포도즙을 풍족히 주셨으나, 여수룬(이스라엘)이 배가 부르자 하나님을 버리고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경홀히 여겼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배부르면 하나님을 버립니다. 은혜를 망각합니다. B. 성경에 나타난 배부른 사람들 솔로몬은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입니다. 그의 그릇은 모두 금이었고, 보좌는 상아였으며, 시위대는 금방패를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7년간 건축했고, 자신의 궁은 13년 동안 건축한 건축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큰 풍요를 누린 솔로몬이 배부르자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솔로몬은 은혜에 감사할 줄 몰랐습니다. 웃시야 왕은 성군이었고, 정직한 사람이었으며, 농사와 목축에서 성과를 거두었으며, 정예군으로 국가를 방어하고, 예배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웃시야는 나라가 강성해지자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 성소에 들어가 제사장들 해야 될 분향을 자기가 하려고 하다가 남은 생애를 문둥병자로 살았습니다. 강성해지고 부요해지면 사람은 마음에 살이 쪄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C. 가난한 마음으로 감사하는 삶(계3:17, 마5:3) 요한계시록 3장 17절에 주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너희들이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팔복 중,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평생에 마음의 가난함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한 떠낸 반석, 우묵한 구덩이, 욥의 벌거숭이 적신(赤身)의 신학(神學), 므비보셋의 죽은 개의 신학, 다윗의 벌레의 신학, 즉 가난함의 신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결론: 교만과 부요함은 감사대로로 가는 큰 적입니다. 교만을 겸손으로 바꾸고 부요함을 가난으로 바꾸어 감사생활로 나아가 승리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Ⅰ):불평과 부정적사고 /시78:38-41/고후1:17-20/ 노창영 목사 2019-06-11 00:53:51 read : 1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구약성경에 나오는 큰 도로는 사막의 상인들(Caravan)이 물건을 운송했고 군사적으로도 사용한 왕의대로(King's Highway)가 있었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순례자들을 위한 도로인 시온의 대로(Zion‘s Highway)가 있었습니다(시83:5).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Ⅰ):불평과 부정적사고 /시78:38-41/고후1:17-20/ 노창영 목사 2019-06-11 00:53:51 read : 1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구약성경에 나오는 큰 도로는 사막의 상인들(Caravan)이 물건을 운송했고 군사적으로도 사용한 왕의대로(King's Highway)가 있었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순례자들을 위한 도로인 시온의 대로(Zion‘s Highway)가 있었습니다(시83:5). 또한 오살자(誤殺者)들이 6개의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는(6개의) 도로가 있었습니다. 이 도로들은 장애물이 없이 잘 뚫린 대로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생활에도 하나님과 소통하는 대로(大路)가 있는데 그것이 감사의 대로입니다. 감사생활은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살전5:18). 감사와 기쁨, 승리를 빼앗아가는 감사대로(感謝大路)의 장애물이 있는데, 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오늘은 감사대로의 장애물 중 불평과 부정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Ⅰ. 불평(不平)입니다 A. 불평이 주는 파괴력 미국의 심리학자요, 인기 강사인 할 어반(Hal Urban)은 대학에서 35년 동안 70만 명에게 24시간동안 불평하지 않기를 과제로 주었습니다. 결과는 대부분 평균 6~12번 불평하였고 한 번도 불평하지 않은 사람은 70만명 중에 4명뿐이었다고 합니다. 불평은 마음의 상태이지만, 입으로 표출이 되면서 파괴력을 갖게 되는 것이며, 전염성을 가지고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물 연구학자인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실험으로 물에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헤비메탈의 굉음에는 물의 결정체가 파괴되었고, 베토벤과 모차르트와 쇼팽의 클래식 음악을 들은 물은 육각수의 아름다운 결정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유리잔에 물을 넣고 하나는 ‘고맙습니다’, 다른 하나는 ‘멍청한 자식’ 그리고 다른 잔에 ‘그렇게 하세요’ 와 또 다른 잔에는 강한 명령의 ‘그렇게 해!’라는 라벨을 붙여 놓은 후에 관찰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고맙습니다’와 ‘그렇게 하세요’의 물은 아름다운 결정체로 변했지만, ‘멍청한 자식’과 ‘그렇게 해!’의 물은 결정체가 파괴되고 일그러졌다고 합니다. 이 연구로 물은 살아있으며, 사람의 말이 물에도 큰 영향력을 준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사람은 물보다 더 섬세한 영적 존재이므로 불평의 파괴력은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그우먼 이성미씨는 반항적인 아들에게 험악한 말을 자주 했는데, 아들이 학교에 무단결석하였을 때에 아들에게 “넌, 이제 끝났어!”라고 화를 내고 돌아섰습니다. 그 때 “네 아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느냐?”라는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17년만에 처음으로 아들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하므로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아들도 변화를 받아 신학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불평은 감사를 빼앗아가는 큰 장애물이며, 이것을 치워야 감사대로로 갈 수 있습니다. B. 광야생활의 불평(시78:38-41)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을 했고, 그 핵심은 불평의 연속이었습니다. 홍해 바다 앞에서, 마라의 쓴 물을 보면서, 르비딤의 물이 없을 때도, 다베라 광야에서는 고기가 없다고, 가데스바네아에서는 거인 아낙자손을 보면서, 에돔에서는 왕의대로의 통과가 안되었을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복하여 불평했습니다(시78:40-41). 감사생활의 큰 장애물은 불평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키는 것입니다. 불평의 장애물을 치우고 감사로 나아가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Ⅱ. 부정적인 사고(否定的인 思考)입니다 A.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 감사생활의 또 하나의 장애물은 부정적 사고(Negative Thinking)입니다. 우리나라에도 60-70년대에 적극적 사고(Positive Thinking)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의 [적극적 사고방식, Positive Thinking]과 지그 지글러(Zig Ziglar),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목사 등이 큰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이들의 이론적 기초는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시작하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약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생활의 본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빌4:1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때문에 삶에서 긍정적 사고를 가져야 합니다. 불신자들도 긍정적 마인드로 사업을 성공하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못할 것은 없습니다. 복음성가 작곡자인 주숙일장로는 어느 날 KBS 교향악단 지휘자가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젊은 나이에 출세한 그를 부러워하는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어머니에게 “잠깐 없어질 영광과 명예를 위하여 사람 앞에서 지휘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는 성가대의 지휘자라는 것이 더 자랑스럽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직분과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고품격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B. 부정적 사고의 위험성 어떤 동양의 왕이 이빨이 다 빠지는 꿈을 꾸고 박사들에게 해석을 요구했는데, 한 박사는 왕의 친척이 모두 죽고 제일 나중에 왕도 죽을 것이라는 해석을 하여 왕의 진노를 사서 죽음을 당합니다. 다른 박사는 왕의 친척들이 모두 오래 잘 살다가 죽고, 왕도 마지막까지 잘 살다가 죽게 된다고 해석을 해서 왕에게서 많은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같은 꿈을 다른 말로 해석하여 다른 결과를 가지고 왔는데, 이것은 관점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파마다 열두 정탐꾼을 세워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하고 보고를 듣는데, 10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지만, 장대한 아낙자손이 살고 있어서 메뚜기 같은 우리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다수의견(Majority Report)을 말했습니다(민13).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을 안돈(安頓)시키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기리라는 긍정적인 소수의견(Minority Report)을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돌로 쳐 죽이려했지만, 결국 열사람은 재앙으로 죽고, 이를 따른 모든 백성은 다 광야에서 죽었지만, 이 두 명만 그들이 말한 대로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인생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아름다운 긍정적인 마음이 꼭 필요합니다. 불신자도 역경이 올 때 자아의 힘으로 이겨내는데, 그리스도인은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능히 이기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정적인 사고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C. 감사가 주는 긍정적 사고의 힘 박시호의 [행복편지]에 항상 행복하고 감사하는 80세의 할머니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는 질문을 하자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말기 위암인거 빼고는”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에게는 남편과 5명의 자녀, 집 등 가지고 있는 많은 것에 비하면 말기 위암은 별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검사결과에 따르면 암을 ‘고질병’으로 생각하면 38%의 치유가 있지만 ‘고칠병’으로 생각하면 70%의 치유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손(Andrew Johnson)은 부통령으로 아브라함 링컨을 돕다가 링컨 서거 후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했습니다. 앤드류 존슨이 초등학교도 못 다녔다는 약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한번도 예수님께서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은 우리의 인생을 바꿉니다. 발명가 에디슨이 필라멘트(Filament)를 발견할 때, 90번을 실패하자 조수가 포기하자고 했지만 에디슨은 90회의 실패가 아니라 90회의 성공을 위한 실패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3일 동안 2399회 실패를 하고 2400번째 성공을 거두어 백열등을 발명했습니다. 조수의 관점은 실패를, 에디슨의 관점은 성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선교와 삶의 핵심낱말은 예와 아멘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인생중반에 회심하고 나머지 삶을 예수님을 전하는 선교에 바쳤는데, 그의 신학과 철학은 예와 아멘으로 이를 그리스도에게 배웠다고 했습니다(고후1:18-20). 주님은 예와 아멘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부정적 사고를 버리고 예와 아멘으로 감사함으로 승리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불평을 감사로,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 사고로 만들어 감사의 대로를 걸어가는 신앙인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Ⅱ):염려와 낙심 /빌4:6-7/고후4:7-11/ 노창영 목사 2019-06-11 02:07:47 read : 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감사생활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교통의 통로입니다. 감사생활을 막는 장애물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지난주는 불평과 부정적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장애물 2가지를 말씀드리면서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Ⅰ.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Ⅱ):염려와 낙심 /빌4:6-7/고후4:7-11/ 노창영 목사 2019-06-11 02:07:47 read : 8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감사생활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교통의 통로입니다. 감사생활을 막는 장애물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지난주는 불평과 부정적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장애물 2가지를 말씀드리면서 우리의 감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승리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Ⅰ. 먼저, 염려(念慮)입니다. A. 염려의 본질에 대하여 염려는 실상이 아닌 허상(虛想)으로,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흐트러진 상태입니다. 염려란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염려는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Ernie J. Zelinski)는 인간의 삶에 다가오는 염려를 분석했더니, 100%중에서 40%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일을, 30%는 이미 벌어진 과거의 일을, 22%는 안 해도 되는 사소한 것을,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을, 4%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을 염려한다고 합니다. 이 분석에 의하면 90%의 염려는 할 필요가 없는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실업가 아더 랭크(Arthur Rank)는 사업을 하면서 늘 걱정하고 고민하다가 일주일 중에 수요일 하루만을 염려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염려상자를 만들어 염려가 될 때마다 종이에 적어서 상자에 넣고, 염려의 날에 꺼내서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염려상자에서 나온 많은 것들을 보았을 때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휴지라는 것을 깨닫고 염려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山上垂訓)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30cm)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시면서(마6:27),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친구 둘이 밤에 연못가에 갔습니다. 연못에 달빛이 청아하게 비취는데 짓궂은 친구가 돌멩이를 연못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연못에 비친 달그림자가 일그러지고 조각이 났습니다. 그것을 본 친구가 “달이 산산조각이 났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친구가 “하늘의 달은 그대로 있고 연못에 비친 달그림자만 조각이 난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염려는 연못에 비친 달그림자 같이 실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염려의 장애물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B. 염려를 주께 맡기는 삶(빌4:6-7) 염려의 장애물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는 유일한 방법으로 치워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서 염려가 없어지고 평강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빌4:6-7). 사도 베드로는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고 하였습니다(벧전5:7). 그것은 염려를 주님 손에 맡겨버리고 더 이상 가져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체적으로 염려하는 것은 의식주(衣食住)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핵심 메시지는 염려하지 말라는 것인데,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 것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6:25-34). 공중의 새를 통해서, 들의 백합화를 통해서,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더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죽음과 그 이후의 삶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과 천국, 삶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습니다(요14:1-6).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처소를 소유하고 천국을 바라보는 순례자(巡禮者)이기 때문에 이 땅에 애착을 갖지 말고 위에 것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여호나답의 후손인 레갑족속의 결심이 나옵니다. 이들은 영성과 믿음이 뛰어난 이스라엘 족속으로 술을 마시지 않으며, 농사와 집을 짓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켰습니다(렘35). 그들은 농사짓거나 집을 짓는 삶이 아니라, 정착하지 않는 순례자의 삶을 살고, 오직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나그네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대한 집착은 우리를 염려하게 합니다. 염려는 실체가 아닌 허상으로 마귀의 장난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염려의 허상을 깨닫고 염려 없이 승리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Ⅱ. 낙심(落心)입니다. A. 낙심의 본질에 대하여 마귀가 전 세계의 귀신졸개들을 모아서 경매시장을 열었습니다. 파는 물건은 근심, 걱정, 교만, 유혹 등의 죄였습니다. 그런데 절대 세일이 되지 않는 물건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은 ‘낙심’이었습니다. 마귀는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낙심 속에 있는 것을 알고 낙심을 전염시킵니다. 어느 군대의 사병이 군사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죄목은 ‘낙심하게 한 죄’였습니다. 이 군인은 부대마다 돌아다니며 “적은 강하고 우리는 약하다. 우리는 지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군사들이 사기를 잃고 전쟁에서 승리를 못하게 될 상황이 된 것입니다. 감사대로의 또 다른 장애물은 낙심입니다. 낙심은 파괴성과 전염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신이 아닌 깨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며, 무력한 존재입니다. 성경에는 가나안의 강한 족속들 앞에 연약해진 여호수아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수1:1-18). 이사야서에는 혼란기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굳세게 하시고 붙들어주실 것이라 위로하십니다(사41:10). 시편 42, 43편은 고라자손의 교훈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안과 낙망은 인간의 실체이며,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 낙심을 이기는 힘은 부활의 생명과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B. 낙심을 이기는 힘 1. 부활하신 예수님(고후4:7-11, 고전15:57) 질그릇 같은 우리의 육체 속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인 보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거꾸러져도 쓰러지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으로 능히 이길 힘이 얻기 때문입니다(고후4:7-11).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위로를 통해 힘을 얻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백성에게 부활의 주님을 선포했습니다(눅24).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낙심을 없애는 힘을 갖고 계신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장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3일 만에 부활하게 하셨으며,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5:57). 2. 성령님(요14: 16-27) 또 다른 힘은 성령님의 능력인데, 예수님께서 승천하고 보내주신 보혜사(保惠師, 파라클레토스)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선물로,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며 진리로 이끄시고 가르치시며,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과 함께하므로 낙심을 이기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능력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능력으로 낙심을 떨궈버리고 감사의 대로를 걷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에 열심이던 순회전도자 와이글(C. F. Weigele)목사는 가정생활을 소홀히 하여 결국 상처받은 아내와 이혼하게 됐습니다. 와이글목사는 이 일로 회의(懷疑)와 낙망에 빠져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예수가 함께 계시니” 찬송시를 짓게 되었습니다(찬송가359장). 믿음생활은 낙심을 버리고 찬송을 향해 나아가는 승리의 삶입니다. 낙심한 영혼에게 부활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소생하는 힘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장애물은 없어지고, 감사대로의 길이 뚫리고 찬송과 승리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2014년 우리의 교회의 신앙의 방향은 감사입니다. 감사생활의 많은 적들이 있는데, 염려는 주님께 맡겨버리십시오. 낙담은 부활의 힘으로 치워버리십시오. 그리고 감사를 통해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Ⅲ):비교의식과 불만족 /창4:1-5/ 빌4:11-13/ 노창영 목사 2019-06-11 02:11:50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올해는 믿음생활의 초점을 감사에 두고 있습니다. 감사생활에는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은 불평과 부정적 사고, 염려와 낙심입니다. 오늘은 감사대로의 또 다른 장애물인 비교의식과 불만족을 말씀을 통해 상고해 보면서 은혜받기를 바랍니다. Ⅰ. 먼저, 비교의식(比較意識)입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Ⅲ):비교의식과 불만족 /창4:1-5/ 빌4:11-13/ 노창영 목사 2019-06-11 02:11:50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올해는 믿음생활의 초점을 감사에 두고 있습니다. 감사생활에는 장애물이 있는데, 그것은 불평과 부정적 사고, 염려와 낙심입니다. 오늘은 감사대로의 또 다른 장애물인 비교의식과 불만족을 말씀을 통해 상고해 보면서 은혜받기를 바랍니다. Ⅰ. 먼저, 비교의식(比較意識)입니다(창4:1-5) A. 비교의식의 본질에 대하여 비교의식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비교의식들이 죄악의 성향에 따라 나올 때, 파괴적인 병을 만들며 감사생활의 큰 장애물이 됩니다. 독일은 유럽공동체 총 생산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대국입니다. 1990년 10월 30일 통일될 때, 동독은 1인당 GDP 1만불 미만으로 서독의 1인당 GDP 2만불 이상과 비교하여 42%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서독이 지속적인 통일비용을 후원하여(24년 동안 약 3500조), 동독은 1인당 GDP 2만불 이상이 되어 서독의 1인당 GDP 3만불 이상과 비교하여 70%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현재 동독은 우리나라 수준정도로 잘 살게 되었지만, 서독보다는 못산다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비교의식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나의 모습(외모, 재산, 학벌, 환경, 재능 등)을 타인과 비교하는 비교의식이 양성적으로 나타나면 우월감을 갖게 하여 자기자랑, 교만, 자고함, 남을 폄하(貶下)하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 반대로 비교의식이 음성적으로 나타나면 열등감을 갖게 하여 자기비하(自己卑下)와 좌절, 피해의식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비교의식은 자기다움을 찾지 못하게 하고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B. 성경속의 비교의식 1. 가인(창4:1-5)은 농사짓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지 않는 것을 보면서 종교적 비교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분노하여 동생 아벨을 살인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이와 같은 종교적 비교의식이 있습니다. 교회의 크기, 직분, 헌금의 양 그리고 경건 생활 등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영적교만이나 우월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종교적 비교의식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자기비하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비교의식에서 치료받아 인격과 정신세계가 건강해져야 합니다. 2. 사울왕(삼상18:6-9)은 이스라엘 초대 임금입니다. 그는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물맷돌 하나로 대승(大勝)을 하고 돌아오는 소년 다윗을 무리가 칭송하는 소리를 듣고 정치적 비교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사울왕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비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어 자기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정치인들도 여론이나 지지도를 비교하여 우월감, 열등감으로 자기의 인생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교회나 직장,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비교의식을 좇아 인기와 높은 자리를 추구하다가 실패하면 조직이나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3. 이스라엘 백성(민13:31)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는데,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2명의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 때, 부정적 보고를 한 10명은 육체적 비교의식을 갖고 가나안 족속들의 육체적 우월함에 비해 이스라엘 족속은 열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메뚜기 콤플렉스(Grasshopper Complex)로 신체나 외모를 비교하는 건강하지 못한 생각입니다. 비교의식은 자신을 무너트리고 감사생활의 방해꾼이 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의식을 조심해야 합니다.『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서 노력하는 작곡가인 살리에리는 천재적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자신을 비교하여 열등감으로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이러한 비교의식이 주는 장애물들을 옆으로 밀어버리고 감사의 대로로 나아가는 기쁨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둘째로, 불만족(不滿足)입니다(빌4:11-13) A.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 비교의식과 쌍둥이 같은 존재는 불만족(discontentment)입니다. 체형교정업체인 마리 프랑스에서 조사한 설문에 의하면 한국여성들은 자신의 외모에 80%가 불만족하고 있으며,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82%가 성형수술을 원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술을 만드셨기 때문에 성형을 통해 외모를 바꾸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먼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외모를 수용하고 감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만족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심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불만족 할 경우에는 절대로 감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마이더스(Midas)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디오니소스 신의 스승인 살레노스를 극진히 대접한 마이더스 왕은 디오니소스 신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마이더스 왕은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는 손을 선물로 요구하여 받게 되는데, 나무도 사과도 마시는 물도 황금이 되고 소중한 친구도 황금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딸, 공주마저도 황금으로 변하자 절규하며 후회하였습니다. 그제야 황금보다 물 한잔, 생명, 가족, 친구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욕심이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어떤 임금이 가난한 농부에게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어보자, 농부는 자기 땅을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하루 동안 그 농부가 밟는 모든 땅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농부는 새벽부터 먹는 것도 거르며, 자신의 갖고 싶은 땅을 열심히 걷고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황혼녘에 지칠 대로 지친 농부는 왕 앞에 와서 죽었다고 합니다. 쉬고 즐기면서 걸었어도 충분한 땅을 소유할 수도 있었지만 욕심 때문에 지쳐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시편 131:1의 말씀처럼 교만하거나 눈을 높이 두지 말고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에 힘쓰지 않겠다는 자기 겸비의 고백이 꼭 필요합니다. 불만족에서 나오는 욕망의 병인 과대망상, 뜬 구름, 안 되는 것들을 잡지 마십시오. “나다워 지라(Be myself)”는 말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 성품, IQ. 환경 등을 수용하며 만족하는 것이 감사의 비결입니다. 19세기 사상가인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결코 가난해 질 수 없고 불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부요해질 수 없다(The contented man is never poor, the discontented man never rich)”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작은 일에 만족하는 사람이 가장 부요한 사람이다(He is the richest who is content with the least)”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만족이 풍요로운 삶의 비결입니다. B. 만족하는 삶과 감사 어떤 임금님이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어 예쁜 정원을 만들었는데, 어느 날 식물들이 죽어가고 있어서 나무와 꽃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참나무는 전나무처럼 키가 크지 않아서, 전나무는 포도나무처럼 열매가 없어서, 포도나무는 장미꽃처럼 꽃이 없어서 죽어간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한쪽 옆에 환하게 웃고 있는 제비꽃을 보고서 임금님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제비꽃은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이곳에서 향기를 풍기며 임금님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만족이야 말로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흑인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목사는 “너의 너 됨은 하나님이 네게 준 선물이며, 네가 너를 만들어가는 것은 네가 하나님께 드리는 너의 선물이다(What you are is God's gift to you. What you make yourself is your gift to God)"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선물을 감사함으로 수용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선물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비천에도,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족할 수 있는 자기만족의 신앙인이었습니다(빌4:11-13).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을 수용하고, 자족하며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강하고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감사는 주님과 만나고 교통하는 대로입니다. 감사대로로 가는 장애물인 비교의식이 낳는 우월감과 열등감은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며, 불만족은 인격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인 비교의식과 불만족을 밀쳐내고 감사생활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Ⅳ):원한과 분노 /롬12:18-20/ 마5:21-22/ 노창영 목사 2019-06-11 02:18:13 read : 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지금까지 감사생활의 장애물들을 세 주간 설교했습니다. 불평과 부정적사고, 염려와 낙심, 비교의식과 불만족입니다. 오늘도 감사대로의 장애물들 두 가지를 함께 상고하면서 은혜 받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I. 첫 번째는 원한(怨恨)입니다(롬12:18-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Ⅳ):원한과 분노 /롬12:18-20/ 마5:21-22/ 노창영 목사 2019-06-11 02:18:13 read : 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지금까지 감사생활의 장애물들을 세 주간 설교했습니다. 불평과 부정적사고, 염려와 낙심, 비교의식과 불만족입니다. 오늘도 감사대로의 장애물들 두 가지를 함께 상고하면서 은혜 받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I. 첫 번째는 원한(怨恨)입니다(롬12:18-20) A. 원한과 그 위험성 원한은 국어사전에 ‘원통하고 한스러운 생각’으로 정의되어있습니다. 원한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맺고 살아가는 관계 가운데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입니다. 원한이 발전되면 적개심, 보복심 등으로 나타납니다. 더 발전하면 폭력과 싸움, 다툼과 욕설 그리고 살인까지 가는 것이 원한입니다. 원한은 싹을 자르고 풀어버려야 자유함을 받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생활에 큰 장애가 됩니다. B. 성경에 나타난 원한 맺힌 사람들 사무엘하 13장에는 다윗의 셋째 아들이 첫째 아들을 살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나옵니다. 다윗임금의 첫째 아들인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을 연모했습니다. 암논은 다말을 얻기 위해서 꾀를 내어 아픈 척을 합니다. 그리고 암논은 자신의 부탁으로 궁으로 와서 간병하던 다말을 성폭행합니다. 그리고는 그녀를 쫓아냅니다. 다말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그 소식을 들은 친오빠 압살롬은 누이 다말에게 지금은 침묵하자며 덮어두었습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2년 동안 복수와 원한의 칼날을 갑니다. 그 사건 후에 압살롬은 양털 깎는 날 바알하솔로 형제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암논을 칼로 찔러 죽여 버리고 도망쳐버립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압살롬이 품고 있던 마음의 원한이 풀어지지 않아서 비롯된 것입니다. C. 사랑과 용서로 맺힌 원한 풀기 1948년 10월 19일에 여순반란사건이 벌어지고 손양원목사님의 두 아들이 공산당에 의해서 무참히 살해를 당합니다. 그런데 손양원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안재선을 양자로 삼고 키웁니다. 손양원목사님의 딸인 손동희권사는 아버지의 원수의 사랑의 메시지를 받긴 했지만 안재선을 향한 응어리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1979년, 후두암 말기로 죽음을 앞둔 안재선씨가 손동희권사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이제 하늘나라에 곧 간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제일 먼저 내가 죽인 네 두 오빠 손동신, 손동인 앞에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할 거야.” 안재선씨는 이 말을 하면서 통곡을 했고, 손동희권사도 함께 울면서 그 마음에 있었던 원한들이 다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일 후에 손동희권사가 조카인 안경선목사와 함께 어떤 모임에서 간증을 했는데, 한 50대 중년의 신사가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아들이 헬리콥터 조종사였는데 산업현장에서 추락사했습니다. 산업재해 보상과정에서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 사장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기독교인인데 용서가 안됐습니다. 그러나 이제 용서하려 합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원수를 축복하며 너를 핍박한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8-20절을 보면 네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네 원수가 목마르거든 마시우고 주리거든 먹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랑과 용서를 통해 원한이 풀어지는 방법은 주님 앞에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천부께서도 그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하늘의 아버지가 저의 과실을 용서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마6:14-15). 주기도문의 키(Key)는 용서입니다. 우리가 용서하는 근거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감사대로의 가장 큰 장애물은 원한입니다. 우리의 심각한 과실을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원한을 풀어버리고 감사의 대로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두 번째는 분노(忿怒)입니다 A. 분노와 그 위험성 분노의 사전적 정의는 ‘분하고 몹시 성내는 마음’입니다. 분노는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터져 나오는 인간 안의 화(火)와 분(忿)입니다. 어떤 사람은 언어유희로 Danger(위험)에서 ‘D’를 빼면 Anger(분노)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분노는 위험한 것입니다. 원한이 발전하면 분노가 되고 이것이 죄로 펼쳐나갑니다. 레이 버위크(Ray Burwick)는 분노를 우리 안에 갖고 다니는 감추어진 폭발물이라고 했습니다. 분노는 두 가지 큰 해악(害惡)이 있습니다. 첫 번째 해악은 자기파괴(自己破壞)입니다. 분노하면 자기를 괴롭히고 죽입니다. 방울뱀은 약올림을 당할 때 분노합니다. 방울뱀에게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때리며 약을 올리면 화가 나서 스스로 자기 몸을 찢어먹으며 죽습니다. 전통적으로 곰을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곰이 자주 다니는 길가 나무에 밧줄로 큰 돌멩이 하나를 메달아 놓습니다. 그 길로 다니던 곰이 어느 날 지나가다가 돌멩이를 머리로 때립니다. 그럼 머리가 아프고 열이 받아서 곰이 돌멩이를 한 번 더 때립니다. 그러면 반사작용으로 돌멩이가 저쪽으로 갔다가 오면서 곰의 이마를 또 때립니다. 결국 곰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 행동을 반복하여 이마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습니다. 분노는 자기를 죽입니다. 두 번째 해악은 다른 사람에게 엄청난 비극(悲劇)을 주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이 세계를 정복할 때 한번은 전쟁터에서 장군들과 술을 마시는데, 죽마고우(竹馬故友)인 클레토스가 알렉산더 대왕을 모욕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 순간 알렉산더 대왕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창을 던져 친구를 죽였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도 자기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잠4:23). 어떤 목사님이 분노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후에 한 여자 성도가 찾아와 “저는 작은 일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인데, 뒤끝이 없는 성격이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엽총을 쏘면 모든 걸 박살내버리죠. 남는 건 다 상처밖에 없습니다”라고 정중히 말을 했습니다. 어떤 부부가 한번은 크게 다투었습니다. 남편이 분노해서 부인에게 “당장 입 닥쳐”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이 충격을 받아 그 후로 30년 동안 벙어리로 지냈습니다. 이것이 분노가 사람에게 주는 충격파입니다. B. 성경에 나타난 분노하는 사람들 다윗은 겸손과 온유의 사람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때, 힘든 처지에도 불구하고 갈멜족속의 나발이라는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삼상25장). 그 후에 다윗이 나발에게 은혜를 구하려고 사자(使者)를 보냅니다. 하지만 나발이 다윗을 모욕을 하며 사자를 돌려보냈습니다. 다윗은 분노하여 나발을 죽이고 그 집안을 살육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분노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입니다. 그런 베드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고의 귀를 칼로 베어버렸습니다(요18:10-11). 하나님의 종, 사도 베드로도 칼을 뽑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자들도 분노합니다. C. 자기절제(自己節制)로 분노 다스리기 사람이 분(忿)을 내는 자체는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분을 절제하지 못하면 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처럼 분을 절제해야 합니다(엡4:26-27).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주시는 절제의 의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 하라”고 말씀합니다(잠15:18, 16:32, 19:11). 그리고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시37:8)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전7:9)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4년은 감사의 해입니다. 원한의 장애물은 사랑과 용서로 다 털어내고, 분노의 장애물은 성령의 절제로 털어내고, 감사의 대로로 나아가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Ⅵ):게으름과 비판 /잠24:30-34/ 마7:1-5/ 노창영 목사 2019-06-11 02:51:48 read : 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우리의 믿음생활은 감사대로로 나아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입니다. 다섯 주간동안 두 가지씩 감사대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서 우리의 감사의 삶이 승리로 이끌어져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I. 먼저 게으름(Laziness)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Ⅵ):게으름과 비판 /잠24:30-34/ 마7:1-5/ 노창영 목사 2019-06-11 02:51:48 read : 7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우리의 믿음생활은 감사대로로 나아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입니다. 다섯 주간동안 두 가지씩 감사대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서 우리의 감사의 삶이 승리로 이끌어져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I. 먼저 게으름(Laziness)입니다(잠24:30-34) A. 게으름에 대한 예화들 한 주인의 황소와 나귀가 열심히 일하며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황소의 마음에 주인이 나귀보다 자신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킨다고 느껴서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황소는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고, 주인의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황소가 주인이 자신에 대해서 뭐라는지 궁금해서 나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나귀는 “너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주인이 백정(白丁)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봤다”고 했습니다. 일반적인 윤리에서도 게으름을 나쁜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신앙을 가진 사람 중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믿음으로만 넘겨버리고 노력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신학생이 신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도우실 줄 믿고 공부는 안 했습니다. 중간고사기간이 되어 이 학생이 시험문제를 보니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답안지에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라고 썼습니다. 이것을 본 교수님은 “하나님은 백점, 너는 빵점”이라고 평가를 해서 돌려줬습니다. 믿음이 부지런한 삶의 도리를 거부하고 게을러도 된다는 자기합리화의 방법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B. 게으름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과 감사 우리의 구원, 몸, 시간, 재물, 나의 나됨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받은 많은 것들에 대해서 열심히 수고함으로 주님께 되돌려 드리는 선물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주인이 종 셋을 불러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줍니다. 5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5달란트를 남겼고, 2달란트 받은 종도 2달란트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1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땅 속에 묻어놓았다가 주인 앞에 내놓았습니다. 주인은 5달란트, 2달란트를 받은 종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였지만, 1달란트를 받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주님이 주신 선물을 부지런히 활용하여 감사드려야합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잠언 10장 4절에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게을러서 가난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기본적인 법칙입니다. 잠언 12장 24절에 보면 “부지런한 사람은 남들을 다스리지만 게으른 자는 남들에게 부림을 당한다”고 말씀합니다. 식민지 근성, 사무적 근성, 노예근성을 가지면 부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19절에 보면 “게으른 자는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말씀합니다. 부지런해야 만사형통합니다. C. 게으름을 이기고 감사로 승리하는 삶 히말라야 설산에 야명조(夜鳴鳥)라는 새는 밤마다 웁니다. 야명조는 낮에는 따뜻하기 때문에 집을 짓지 않고 있다가 밤이 되면 집이 없으니 추워서 웁니다. 울며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다가 해가 뜨면 또 다시 집을 짓지 않고, 밤에는 추워서 우는 것을 반복합니다. 게으름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반하는 덕목입니다. 잠언 24장 30-34절에 보면 잠언기자가 게으른 자의 밭과 포도원에 잡초가 우거지고 돌담이 무너진 것을 보니 생각이 깊어지고 교훈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십계명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안식일에 쉬기 위해서 엿새 동안 노동하는 기쁨을 누리라는 상대적인 면도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노는 사람에게는 안식이 의미가 없습니다. 안식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땀 흘리는 노동의 삶에 주시는 축복입니다. 한 주간 동안 노동하고, 주님의 날에 주님의 집에 올라가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합니다. 게으름의 장애물을 버리고 감사로 나아가는 근면한 하나님의 사람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II. 다음은 비판(Criticism)입니다(마7:1-5) A. 비판에 대한 예화 비판은 사람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고 감사가 사라지게 합니다. 외국의 대학졸업식에서 한 학생이 손을 주머니에 넣고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본 축하객들이 “이 학교는 4년 동안 교육을 잘못시켰구먼, 어떻게 저렇게 학생이 건방질 수 있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학생이 “저분의 한 쪽 팔은 의수입니다. 4년 동안 한 팔로 필기하고 고생하며 졸업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을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한 교회 목사님이 교인들을 다 심방하지 못해서 사모님을 대신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사모님에게 성도들의 가정에 가면 꼭 칭찬의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사모님은 가난한 과부의 집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의 책상 위에 과부가 직접 짠 아름다운 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참 아름답고 예쁜 보를 손으로 직접 짜서 만드셨네요”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사모님이 가난한 과부의 집에 가서 책상의 보까지 탐낸데”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비판은 마음을 강퍅하게 합니다. 마음이 딱딱해지면 감사가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B. 비판의 힘과 성경의 가르침 모간 블레이즈(M. Blades)가 쓴 글입니다. “나는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이 있습니다. 나는 상대방을 죽이지 않고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가정과 국가 어떤 조직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바람의 날개를 타고 여행을 합니다. 어떤 순결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깨끗한 사람이라도 내게는 더러운 존재입니다. 나는 바다보다 더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있으며 나는 결코 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나의 이름은 비판입니다.” 이는 비판이 주는 파괴력을 나타냅니다. 마태복음 7장 1~5절은 비판이 자기가 의롭다는 생각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자기가 옳고 의롭다고 높이고, 남을 멸시, 폄하하는 것이 비판의 시작입니다. 비판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비판은 성품이나 성향이 아니라 죄입니다. 비판은 남을 보지만, 신앙은 나를 봅니다. 깊은 신앙의 사람은 자기 속의 있는 티끌, 들보, 문제들을 봅니다. 하나님 앞에 작아지는 나를 보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C. 감사를 가로막는 비판이 가진 장애물 실험실에서 두 종류의 쥐를 실험집단으로 만들었습니다. 한쪽 실험용 쥐들에게는 좋은 말을 하고, 먹을 것 규칙적으로 주었더니 오래 살았습니다. 다른 쪽 실험용 쥐들에게는 욕을 하고 음식도 불규칙적으로 주었더니 털이 빳빳해지고 근육이 경직되어 오래 못살고 죽었습니다. 영국의 한 학자가 큰 나무 12개를 골라 베드로부터 가룟유다까지 열두제자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몇 달이 흐르자 다른 나무는 다 잘 자라는데 가룟유다나무만 죽어갔습니다. 가룟유다나무를 본 사람들이 욕을 하고 발로 찼기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한 것입니다. 일본의 한 학자가 『물이 전해주는 소리』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있는 한 실험 내용은 한쪽 물통에는 “천사”라고 붙이고, 다른 쪽 물통에는 “악마”라고 붙인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천사”가 붙은 통의 물은 아름다운 육각수 결정체로 변했고, “악마”가 붙은 통의 물은 썩고 냄새가 났습니다. 피조물도 비판적 사고와 말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비판은 사람의 마음을 굳어지고, 딱딱하게 만듭니다. 영적인 경직성을 만듭니다. 굳은 마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결론: 감사는 은혜 받은 사람이 겸손과 기쁨과 사랑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선물입니다. 게으름과 비판을 버리고 감사로 나아가 승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Ⅶ):다툼과 인색함 /창13:5-7/ 잠11:24-26/ 노창영 목사 2019-06-11 03:00:16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믿음생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감사대로는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장애물들이 감사대로를 막고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대로의 장애물 두 가지를 설교하고자 합니다. I. 먼저 다툼입니다(창13:5-7) A. 교회 내(內)의 다툼들 아침 출근길 만차(滿車)
감사대로의 장애물들(Ⅶ):다툼과 인색함 /창13:5-7/ 잠11:24-26/ 노창영 목사 2019-06-11 03:00:16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믿음생활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감사대로는 활짝 열려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장애물들이 감사대로를 막고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대로의 장애물 두 가지를 설교하고자 합니다. I. 먼저 다툼입니다(창13:5-7) A. 교회 내(內)의 다툼들 아침 출근길 만차(滿車)인 버스 안에서 승객 둘이 멱살을 잡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러자 승객 한 사람이 내리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왜들 싸우고 그래? 여기가 교회인 줄 알아?”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싸우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아군(我軍)입니다. 우리의 적(敵)은 죄와 마귀와 세상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가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씀했습니다(갈5:15). 우리는 서로 싸우는 관계가 아니고 합력할 관계입니다. 영국군대와 프랑스군대가 전쟁 중이었습니다. 숲 속에 프랑스군이 있는 것 같아 영국 포병대위가 집중포화를 명령했습니다. 정확하게 명중했고 포병사령관이 대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위, 정말 잘 명중시켰네. 그런데 자네가 쏜 것은 적이 아니라 우리 영국군 99사단일세.” 6.25 전쟁 참전용사의 말에 의하면 많은 한국군이 대포에 죽었는데, 그 중의 절반은 아군의 대포에 죽었다고 합니다. 다툼과 갈등, 분쟁은 교회에 있어서는 안 되고, 화평과 사랑, 화해가 교회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B. 다툼의 원인들 다툼의 원인 첫번째는 물질의 욕심입니다. CJ그룹의 이맹희회장이 동생인 삼성그룹의 이건희회장을 고소했습니다. 내용은 아버지 이병철회장의 유산 중 차명재산(借名財産)을 동생 이건희씨가 가로챘다는 것이었습니다. 2심까지 진행하다가 포기한 이 재판은 300억의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형제간에도 물질의 욕심이 개입되면 원수가 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에 들어갈 때 조카 롯도 함께 갔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아브람의 소유와 롯의 소유가 늘어나고 소와 양이 떼를 이뤘습니다. 한 장소에서 두 부자가 살게 되면서,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창13:5-7). 이방사람들인 브리스사람, 가나안사람들에게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인들이 덕이 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아브람과 롯은 갈라섰습니다. 어떤 동네에 두 닭갈비집이 장사를 잘하고 있었습니다. 한쪽 닭갈비집에 좀 더 잘 해보려고 ‘원조 닭갈비’라고 간판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맞은편 집도 ‘진짜 원조 닭갈비’라고 붙였습니다. 서로 ‘진짜 진짜 원조 닭갈비’, ‘특허받은 진짜 원조 닭갈비’라고 이름을 붙이며 다툼을 벌이다가 두 식당 모두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물질의 욕심은 다툼을 일으키고 원수를 만듭니다. 둘째는 자리다툼입니다. 모든 사람은 1등이 되고 싶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 33명의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때 기독교, 천도교, 불교도 사이에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로 누구를 세울 것인지로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길선주목사님이 나와서 외쳤습니다. “이 사람들아! 이것은 죽는 순서야, 죽는데 순서가 어디 있어!” 의롭고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자리다툼의 욕심이 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주님의 우편과 좌편자리 구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 자리는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이 갖게 될 것이니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크고자 하는 자는 낮아져야겠고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0:35-45). 그리스도인은 자리다툼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자기욕심을 죽이는 자아죽음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막에 경건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마귀가 핍박과 돈, 여자 등으로 공격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한 영리한 마귀가 가서 그 성자 귀에 대고 ‘이 사람아! 자네 동생이 조금전 알렉산드리아 주교가 되었네’라고 말하자 이 성자의 얼굴이 질투와 분노로 변했다고 합니다. 자리에 대한 욕망은 다툼의 원인입니다. 세 번째는 고집과 자존심입니다. 어느날 목욕탕에서 옆 사람에게 전도하려했는데 알고 보니 그리스도신학대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악기파입니까? 무악기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교회의 ‘무악기파’는 악기를 세속적으로 여겨 예배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악기파’는 예배에 악기를 사용합니다. 사람은 작은 것에 자존심을 세우고 고집을 세웁니다. 형제교단(Brethren Church)의 한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세족식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교인의 왼발을 먼저 씻겼는데, 교인 중에 한 사람이 오른발을 먼저 씻겨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여전히 왼발부터 먼저 씻겨주자 이 교인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따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 이름이 ‘오른발교회’입니다. 물질의 욕심, 자리다툼의 욕심,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공동체들이 분열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다투면 마음이 강퍅해지고, 경직됩니다. 감사와 기쁨이 나오지 않고 예배가 진정으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다툼을 버리고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다음으로 인색함(吝嗇)입니다(잠11:24-26) A. 하나님 앞에 인색하면 안 됩니다 인색함은 베풀 줄 모르는 구두쇠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인색하면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인색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고후9:7). 그리고 사도바울은 극한 환난과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인들을 칭찬했습니다. 마게도냐 교인은 먼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림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바울을 도왔습니다(고후8:1-5). 먼저 하나님께 드려지는 마음이 있을 때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이 따라옵니다. 영락교회를 세우신 한경직 목사님께서 6.25전쟁 때 남한에 내려와 베다니교회(영락교회 전신)를 세웠습니다. 천막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교인들이 많아지다보니 예배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다음 주 월요일 기공예배를 드릴 때 생활비 3개월 치만 남기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다 바치십시오”라고 선포했습니다. 기공예배 때 86명의 집사들이 왔는데, 총애했던 한 집사님이 안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 집사님이 축복받을 기회를 놓칠까봐 수소문해서 데리고 왔습니다. 87명의 집사님들이 헌신했고, 20년 후 이 87명이 한국 재계 100위 안에 다 들어갔습니다. 주님께 인색하면 안 됩니다.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께 드린 마게도냐 성도처럼 온전히 바치는 마음이 감사입니다. B. 사람 앞에 인색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돈을 아낀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사람이 윤택해집니다(잠11:24-26). 가지고 있지 말고 흐르는 물처럼 나눠주는 것에 풍성한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38년을 목회한 감리교 목사님이 죽어가는 노인의 집을 심방했습니다. 처음에 노인은 마음을 닫고서 목사님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가난한 노인의 집에 고기를 보내며 심방을 갔습니다. 세 번째 심방할 때는 이분이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목사님과 교제하게 되었습니다. 이 노인이 돌아가시면서 유언을 남겼습니다. “목사님 저는 천국에 갑니다. 제가 이렇게 마음이 변한 것은 목사님의 설교 때문이 아니라 고기 때문입니다.” 베푸는 삶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성애성구사의 사장인 임선재 장로님이 젊었을 때 심장병에 걸렸습니다. 가난했던 장로님에게 수술비 40만원은 큰 돈이었습니다. 이분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한 지인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이 너무 감사해서 나중에 40만원을 그 병원의 의사에게 갖다 주면서 또 다른 사람의 심장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매년 한 사람씩 심장병을 고쳐줄 수 있도록 수술비용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감사의 삶은 베품과 드림으로 표현됩니다. 인색함은 마음을 강팍하게 만드는 감사의 적입니다. 결론: 다툼과 인색함은 감사대로의 장애물입니다. 다툼과 인색함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마음으로 나가 승리할 수 있는 감사대로의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생활(I):기초편/예수님의 감사 나의 감사/살전5:18/노창영목사 2019-07-19 23:53:53 read : 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사생활(Ⅰ):기초편/예수님의 감사 나의 감사 본문:고후1:19-20, 살전5:18, 롬5:3-4 설교자:노창영 목사 서론// 노르웨이에 이런 야사가 있습니다. 한번은 마귀가 노르웨이의 한 지역에 창고 하나를 짓고 그 안에 불평, 불만, 분열, 저주, 질투 등의 씨앗들을 많이 넣고 마귀의
감사생활(I):기초편/예수님의 감사 나의 감사/살전5:18/노창영목사 2019-07-19 23:53:53 read : 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사생활(Ⅰ):기초편/예수님의 감사 나의 감사 본문:고후1:19-20, 살전5:18, 롬5:3-4 설교자:노창영 목사 서론// 노르웨이에 이런 야사가 있습니다. 한번은 마귀가 노르웨이의 한 지역에 창고 하나를 짓고 그 안에 불평, 불만, 분열, 저주, 질투 등의 씨앗들을 많이 넣고 마귀의 종들을 시켜 이곳저곳 뿌렸더니 열매가 잘 나타나 사람들이 싸우고 분열하는 일들을 보고 마귀가 쾌재를 불렀는데 그 씨앗들이 안 통하는 유일한 동네가 바로 ‘감사’라는 마을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마귀가 씨앗을 심을 수 없다’는 속담이 나왔습니다. 우리 감사의 마음은 우리 외부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종류의 유혹과 죄악들 이겨내는 그 면역력을 갖게 만들어 줍니다. 패혈증(Sepsis)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몸 안의 면역체계가 깨지면 외부의 세균들이 들어오고 그것이 혈액에 침투해 전신에 염증, 고열을 일으키고 혈압이 떨어지고 몸에 수많은 문제를 일으켜 사람이 죽게 되는 병입니다. 치사율이 40%정도 됩니다. 이 패혈증으로 죽은 대표적 인물이 저희 교회에도 네 번 정도 다녀가신 ‘신바람 건강법’ 황수관박사, 연극배우 겸 탤런트 윤소정씨입니다. 그리고 케나다에서 목회 했던 제 동기 목사님한분도 이 패혈증으로 죽었습니다. 사람 몸 안에 면역기능과 면역체계, 저항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영적으로 마찬가집니다. 우리 안에 영적인 힘과 에너지가 준비되어있지 못해서 면역체계,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죄악, 어둠, 마귀의 공격이 올 때, 넘어지고 말지만 우리 안에 있는 영적 면역체계가 형성이 되면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 강력한 영적인 면역체계의 힘을 공급 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는 감사의 마음입니다. 다음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한 주간 앞에 두고 여러분들께 감사생활의 기초적인 면들을 설교하려고 합니다. Ⅰ. 먼저, 우리의 감사의 모델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고후 1:19-20). A.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Smith) 목사의 「영혼구원(Soul Winning)」에 나타난 선교사의 자격 조건 백여 년 전에 선교사를 지망했지만 선교사가 되지 못한 대신에 캐나다 토론토에 선교를 위한 교회를 세운 오스왈드 스미스라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오래 전에 「영혼구원(Soul Winning)」이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선교사의 특별한 자격 조건이 나옵니다. \'NO ATTACK NO DEFENSE\'(무공무방), 공격도 방어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공無攻’: 남을 괴롭게 하고 미워하고 비난하고 평강을 깨트리고 가서 고통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방無妨’:방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변명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선교사의 자격조건입니다. B.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감사의 모델이 되십니다. 우리 주님의 평생을 보면 감사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아니오’가 없으셨습니다. ‘아멘’, ‘예’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고후 1:19-20). 성육신, 피난, 세례, 시험, 배신, 조롱, 채찍, 재판, 사형, 판결, 십자가의 죽음 등 모든 것을 예와 아멘으로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감사의 그리스도를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비슷하게 닮은 구약의 인물 둘이 있습니다. ①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17살에 미디안 상고들에 의해 애굽 땅에 종으로 팔려가고 13년간의 종살이, 옥살이를 하고 다 받아들입니다. 30세에 국무총리가 되고 국가를 위해 7년간 곡식을 저장하고 흉년이 들었을 때 다 풀어줍니다.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아멘 함으로 영광을 돌리는 그의 삶은 감사의 삶이었습니다. ② 다윗 임금은 그를 미워한 사울왕의 공격을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미친 체 하고, 망명하고, 들에서 자고, 광야에서 살면서 죽음의 위험에 처하는 것들을 다 받아들입니다. 자기를 죽이고자하는 사울도 용서하며 하나님의 모든 것들을 다 수용합니다. 결국 남북조를 아우르는 통일 왕으로 등극합니다. 그의 인생 전체는 감사와 아멘의 삶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아멘하고 아니오가 없는 삶, 이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주님의 감사는 우리의 모범입니다. 삶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예와 아멘과 감사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둘째, 내 삶에 적용할 나의 두 가지 감사를 살펴봅시다. A.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살전 5:18). ①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인간의 마음 모든 일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병은 당연함이라는 병입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평이 아니라 당연함입니다. 삼십여 년 전 강남의 어떤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에서 3박4일간 말씀을 전했지만 그곳 학생들과 눈높이가 맞지 않아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삶은 가난, 고난, 죄, 감사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삶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당연한 삶입니다. 감사가 뭔지 모릅니다. 감사에 대한 무감각한 삶의 태도, 여기에 질병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제2의 본능이 되어야 합니다. 눅17:11-12에 보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문둥병자 열명이 나음을 받습니다. 아홉명은 당연하게 생각했고, 한사람만 감사합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이며 선택조건이 아닌 반드시 해야 된다는 필수적인 명령으로 본문은 말씀합니다(살전 5:18). 본문의 킹제임스 버전(KJV) 영어성경에 보면 ‘in everything give thanks\'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NIV 영어성경에는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즉, 모든 환경과 여건 중에 하나님께 감사라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제2의 천성이 되어 우리 몸에 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②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 동대문 이문동에 동안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 기초와 틀을 놓으셨던 송치헌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한창 목회하실 때 청와대에 가시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와서 버스를 타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목사님의 깨끗한 구두를 밟아버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아주머니는 목사님이 특이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그 목사님이 예배당에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교회목사님인 줄 알았고 예배당에 따라 들어갔다가 은혜받고 믿음을 가지고 세례받고 권사님이 됐습니다. 우리가 감사를 기도로, 물질로, 찬양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가장 강력한 힘은 말의 힘입니다. 아름다운 말로, 사랑의 말로, 감사의 말로 살아갈 때 생기는 말의 힘이 우리한테 에너지를 주는 것입니다. 감사는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줍니다, 아름다운 전염성 있는 것이 사람의 감사입니다. 미국의 변호사 한 분이 세인트루이스라는 도시에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주일을 맞이해 예배당을 가려고 차를 끌고 나왔지만 근처 지리를 잘 몰랐습니다. 그 때 마침 교통경찰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근처에 갈만한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했는데 이 경찰이 소개해 준 교회가 여러 교회를 지나서 있는 조금 먼 거리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경찰이보여 교회를 소개시켜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평소 자기를 지나치는 여러 사람들 중에 꼭 멈춰서 기분 좋은 말을 하는 분들이 그 교회 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바로 ‘감사합니다(Thanks)’였습니다. 그래서 감동을 받고 그 교회를 소개해 줬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몸에 배어야 합니다. 어떤 대학 총장 한분이 심리학적 이론을 테스트하기 위해 유리병 두 개에다가 밥을 집어넣고 한쪽 유리병에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예쁘네요, 사랑스러워요’라고 써 붙이고, 다른 유리병에는 ‘짜증나, 재수 없어, 더러워, 저주받아라, 기분 나빠’이런 글을 써 붙였습니다. 며칠 후 둘 다 곰팡이가 폈지만 감사와 사랑의 말이 적혀있던 유리병의 밥에서는 노랗고 예쁜 곰팡이가 폈으나 반대로 부정적인 글이 써져있는 밥에는 물이 썩고 시커먼 색깔이 나고 냄새나는 곰팡이가 폈다는 것입니다. 과학으로 알 수 없는 어떤 신비 이지만 과학실험의 결과입니다. 에모토 마사루 라는 분이 ‘물은 알고 있다’라는 책을 썼는데 그분의 실험에 따르면 두 비커에 물을 담고 한쪽에는 천사, 감사, 하나님의 말, 아름다운 말을 계속 해주고 다른 쪽 물에는 악마, 귀신, 더러움, 죄, 욕설을 합니다. 며칠 지나고 확인해 보니 아름다운 말을 들은 물은 육각수가 되었으나, 저주와 나쁜 말을 퍼부은 비커속의 물은 결정체가 깨지면서 사람 몸에 나쁜 물이 돼버렸습니다. 즉 사람의 말 속에는 심리학적, 영적 파동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응용해서 일본주식 상장 100개의 대기업의 주주인 사업가 다케다라는 분이 계란과자를 만들었는데 과자 이름이 ‘다마고 보로’라는 계란과자입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밑에 있는 직공들에게 과자를 만들 때 마다 과자를 향해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해 보라고 했습니다. 하루에 감사를 3000번 이상 외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놀랍게도 이 과자가 크게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말의 힘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본능이 돼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 우리 주님께서 주신 마음입니다. B. 역경 중에 감사하는 삶입니다(롬 5:3-4). 무등산 수박은 날이 덥고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당도가 오릅니다. 고통스럽고 힘든 역경 다음에 나오는 열매는 가장 당도가 좋은 무등산 수박이 돼서 하나에 몇십만원씩 팔려나갑니다. 고난이 주는 기쁨인 것입니다. 바울은 환난 중에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에 감사한다고 말씀 합니다.(롬 5:3-4)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역경 중에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태도입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에게 프랭크 벤드 마틴이라는 조카가 있었습니다. 그는 18살에 미국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의 하나로 성장한 유명한 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을 돕다가 실수로 손가락 네 개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합니다. 왼쪽 손 엄지만 남았습니다. 좌절하고 낙심한 조카에게 삼촌 로버트 슐러 목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너의 몸은 불구가 됐지만, 영혼과 인생의 불구, 마음의 불구 그것이 진짜 불구가 되는 거란다. 용기를 내렴. 너한테 남아있는 엄지손가락이 있잖아!”라고 격려하였습니다. 조카는 용기를 내었고 10년간 바이올린을 배워 결국 LA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린 주자가 됩니다. 잃어버린 네 개의 손가락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사라져 버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불구가 진짜 불구자들입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열 명의 자녀가 죽고 모든 재산, 사업이 망하고 종들도 부인도 떠나고 자신은 악창이 나 병들었습니다. 보통 배우자가 죽으면 스트레스 지수가 100이 나오는데 욥의 심리학적 스트레스지수를 계산해보면 980정도가 됩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도 욥은 내가 벌거숭이 같은 적신(赤身)으로 나왔으니 그대로 돌아감이 마땅하고 주신이도 주님이시니 거두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고백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합니다(욥1:21).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난 중에도 너도 승리할 수 있다는 용기와 위로를 주시기 위해 욥을 들어 쓰셨습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 중에 아무것도 없는 역경의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하며 즐거워한다는 고백을 드립니다(합 3:17-18). 역경중의 감사가 참된 감사입니다. 결론// 다음주일은 맥추감사주일은 사무적으로 드리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날, 축복의 날, 감사의 날입니다. 감사하세요. 감사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영적 면역체계가 강해져 어떤 외부의 적과 위협에도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우리 감사의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와 ‘아멘’하시고 한 번도 ‘아니오’ 한 적 없이 다 받아주시고 길을 걸어가셨던 우리주님의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 감사를 배워 범사에 감사하시고 역경 중에 승리하시는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생활(Ⅱ):성숙편/빌4:11-14/노창영목사 2019-07-19 23:55:45 read : 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사생활(Ⅰ):성숙편 / 사도바울의 감사 본문:빌 4:11-14, 고후12:7-10, 골1:3-5 설교자:노창영 목사 서론// 오늘은 보리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로서 이스라엘 3대절기 중 하나인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 날은 보리추수의 첫 번 이삭 첫 단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또한
감사생활(Ⅱ):성숙편/빌4:11-14/노창영목사 2019-07-19 23:55:45 read : 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제목: 감사생활(Ⅰ):성숙편 / 사도바울의 감사 본문:빌 4:11-14, 고후12:7-10, 골1:3-5 설교자:노창영 목사 서론// 오늘은 보리추수를 감사하는 절기로서 이스라엘 3대절기 중 하나인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이 날은 보리추수의 첫 번 이삭 첫 단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초실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또한 초실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7x7=49)을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칠칠절이 끝나고 50일째 되는 날, 수확한 곡식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데 이 날을 ‘오순절’이라고도 말합니다. 이처럼 50일간 계속되는 감사의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이 때는 곡식을 다 베지 않고 떨어진 이삭들은 줍지 않고 가난한 자, 과부, 고아, 나그네들을 접대합니다. 이것이 맥추절의 신학사상과 정신입니다. 지난 반 년 동안의 은혜를 기억하며 드리는 감사의 예배가 바로 오늘의 예배입니다. 이 시대는 감사불감증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말세에 사람들이 갖게 될 잘못된 삶의 형태중 하나가 감사치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딤후3:2). 오래전 토레이(R. A .Torrey)목사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교회에서 설교예화로 옛날 미시간호에서 유람선이 침몰 했을 때 홀로 23명을 건져낸 노스웨스트대학의 학생이자 수영선수를 칭찬했습니다. 설교후에 토레이목사를 찾아온 한 노인이 있었는데 바로 그 수영선수였습니다. 토레이목사가 그 일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는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생명을 구한 23명 중 아무도 자신에게 감사표현을 하지 않아서 가슴이 아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감사불감증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강퍅하게 되고, 믿음이 옥토 같은 마음을 떠나게 되면, 감사가 사라지게 되고 감사불감증이 생기게 됩니다. 지난 주일에 여러분들에게 감사생활의 기초적인 면을 예수님의 감사를 중심으로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사도바울의 서신에 나타난 감사를 통해서 성숙한 감사에 대하여 설교하겠습니다. Ⅰ. 사도바울은 모든 형편에서 자족(自足)하는 감사를 하였습니다(빌4:11-14) A. 모든 형편에서 자족하기를 배웠던 바울(빌4:11-14) 바울은 기본적으로 자족하는 마음으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형편, 처지, 환경,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족의 마음. 자기 만족의 기쁨으로부터 감사가 시작됩니다. 사도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 하는 법을 배움으로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말합니다(빌4:11-14). 전천후 신앙의 주인공, 자족하는 믿음의 사람, 감사의 종이 바울이었습니다. B. 자족을 배우는 사람들 ① 네덜란드에는 지난 2013년까지 33년 동안 베아트릭스라는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독일출신인 암스베르크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왕이 공주였을 때부터 두 사람은 만났고 15년간 행복한 부부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여왕이 되고 난 후부터 남편은 자존감이 떨어지고 불만이 생겼고, 또한 여론으로부터는 나치소년단 출신이라는 공격을 받고 결국 죽을때까지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정신병원에서 고생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여왕이 된 것, 자신의 자기됨에 대하여 자족하지 못함으로 그러한 병이 생긴 것입니다. ② J.C. 페니(James Cash Penney)라고 하는 미국의 백화점왕이 있습니다. 침례교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고등학교 졸업 후에 정육점에 취직해서 유통사업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후 친구 두 명과 백화점에 취직했는데 배정된 일이 엘리베이터보이였습니다. 친구는 이 일에 불만을 가지고 그만두었지만 페니는 끝까지 자신의 일에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일하다가 결국 점장이 되고 나중에는 백화점 전체의 CEO가 됩니다. 그런데 58세가 되던 1929년 미국 대공황과 증시파동으로 인해 모든 재산을 날리게 되면서 깊은 허탈감에 시달리다가 공황장애에 빠지게 되면서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서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찬송을 듣고 다시 일어나 일을 하게 됩니다. 그 후 96세까지 감사의 마음으로 승리하여 다시 재기하여 백화점왕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2000개 정도의 프랜차이즈 백화점이 있는 JCP백화점입니다. ③ 개봉사거리에 주로 영등포 구치소, 교도소 사역을 하시는 윤인수 목사님이 사역했던 무진교회라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앞을 보지 못하셨는데 이북에서 어릴 때 병든 어머니와 함께 내려와 힘들게 살았습니다. 앞도 못 보는 어린 나이에 구두를 닦고 신문을 판매한 돈을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가장 먼저 십일조를 드렸는데, 그는 그것을 보고 아버지, 재산, 어머니건강, 나의 시력을 다 빼앗아 가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십일조를 왜 하냐고 따졌습니다. 그때에 어머니는 예수 믿는 믿음을 강조하면서 아들을 다독거리며 믿음으로 잘 인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는 결국 나중에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어 그의 인생전체를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를 위한 섬김의 사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Ⅱ.사도바울의 감사는 응답 안 된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고후12:7-10) A. 사도바울은 몸에 가시가 있었습니다(고후12:7-10). 바울에게는 두 가지 병이 있었다고 추정을 합니다. 먼저 ‘안질’입니다. 눈이 좋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밝은 빛 가운데 만났을 때에 눈에 병이 생겼고 이 후 그의 평생 30여 년 동안 앞을 못 보았을 거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간질’입니다. 주기적으로 발작이 오는 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것이 성도들에게 거침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 앞에 이것이 자기를 떠나가도록 세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가 약할 때에 나의 능력이 네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울로 하여금 교만하거나 자고하지 못하도록 몸에 가시를 두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고후12:7-10). B.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시는 하나님의 뜻 바울이 몸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하며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응답 되지 않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칼을 잡으면 어떤 부모나 그냥 칼을 쥐어주지 않습니다. 유리병이나 가시가 있는 생선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몸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유익을 위해서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No’ 라고 대답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유익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든 것들이 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응답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여섯 살 난 어린이의 간증입니다. 이 아이의 엄마의 눈동자색이 바다 빛 같은 푸른색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눈동자색은 갈색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엄마처럼 푸른색 눈동자를 갖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의 눈동자색은 갈색이었습니다. 아이는 이내 실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 음성을 통해서 ‘아니야’도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을 이 아이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No'라고 응답하십니다. 어떤 신학생 한 명은 찢어지게 가난해서 막판에 빈 봉투를 들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돈을 채워주시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돈은 채워지지 않았고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도로 잘못된 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공부하고 휴학하면서 학업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개봉교회 초기 제자훈련을 할 때 믿음이 좋았던 남매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서 하나님께서 1억을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1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둘 다 이십대이고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돈을 벌면 집 한 채를 갖고 선교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겠다는 아름다운 꿈이었지만 하나님이 바로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목적을 정해놓고 주님을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에, 기도제목들이 우리를 위험하게 하거나 문제를 만들 수 있을 때, 받을 준비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다를 때 ‘No’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응답하시더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 주님의 뜻을 발견하게 깨닫게 됩니다. 거절하신 기도에도 감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Ⅲ. 사도바울의 감사는 믿음의 지체들 때문에 드린 감사였습니다(골1:3-5) A. 믿음의 이기주의적인 모습들 우리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들은 상당히 이기적(Selfish)입니다. 교회의 한 전도팀이 훈련을 마치고 사역지로 출발하기 전에 면담을 하면서 왜 전도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한 명이 자신의 삶의 경험과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도는 누가복음 15장 말씀처럼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선 목자의 심정,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는 여인의 심정, 집나간 아들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영혼을 살피고 생명을 나누는 것이라고 교정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헌금, 봉사, 기도를 보면 나의 유익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로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장례식 때 우리는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릴까요? 제가 청년 때 후배 하나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었습니다. 그 애인이 있었는데 저에게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울고 있는 이유가 그 후배가 죽은 것에 대한 슬픔 때문이기도 했지만 남겨진 자신에 대한 걱정, 곧 나를 위한 눈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이기성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합니다. B. 바울은 믿음의 지체들때문에 감사했습니다(골1:3-5) 바울은 자기의 유익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복음을 전하여 세운 믿음의 지체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 열매가 그 교회뿐만 아니라 온 천하에 퍼질 정도로 자라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감격했던 이타적인 감사였습니다(골1:3-5).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감사합니다(롬1:8).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이 견고하여 환란 중에도 승리하고 있기 때문에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고전1:5-6). 또 빌립보교회에게 그들이 복음 안에서 교제하는 것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빌1:3-5).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의 풍성함 때문에 감사한다고 말합니다(엡1:15-16).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는 그들의 믿음의 소문이 점점 퍼져나감으로 감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1:7). 이처럼 바울의 감사는 자기의 감사가 아니라 교회성도들이 사랑의 교제 속에서 성장하면서 복음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이타적인 감사였다는 것입니다. 내가아니라 믿음의 지체들 때문에 드리는 감사를 해야 합니다. 결론//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우리의 믿음도 한 단계 성장하여 주님께 성숙한 감사의 고백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에 대하여 자족하는 감사, 때때로 우리의 기도에 거절하신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나를 위한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들이 흥왕하고 전도의 열매를 맺는 것에 대하여 감사합시다. 맥추감사주일 맞이하여 이러한 감사가 우리의 감사가 되어서 감사가 충만하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와 찬미와 나눔의 제사 /시50:5-15/노창영목사 2019-07-12 23:43:07 read : 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구약성경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은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는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였습니다. 제사는 성전이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목적은 크게 3가지입니다. ⓵ 하나님 앞에 기쁨을 드리기 위한 목적 ⓶ 속죄를 위한 목적 ⓷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목적
감사와 찬미와 나눔의 제사 /시50:5-15/노창영목사 2019-07-12 23:43:07 read : 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서론// 구약성경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은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는 일들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였습니다. 제사는 성전이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하는 목적은 크게 3가지입니다. ⓵ 하나님 앞에 기쁨을 드리기 위한 목적 ⓶ 속죄를 위한 목적 ⓷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는 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그만큼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 시대의 제사는 죽은 제물의 제사에 불과했습니다. 어떤 제물이라도 산채로 하나님께 바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산 제사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께서는 죽은 제물보다 산 제물을 기뻐하십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주감사주일 중심은 ‘우리의 삶 전체로 드리는 산 제사’입니다. 오늘은 주어진 두 본문을 통해 산제사로서의 맥추감사주일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I. 먼저, 시편 50:5-15,23을 통한 감사의 제사입니다. A. 제물보다 더 중요한 감사의 제사(시50:7-15) 첫 번째 본문인 시편 50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때 흠과 점이 없는 깨끗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 제물에 흠집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원래 흠이 있는 제물은 바치면 안 되는 것이지만,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제물에 개의치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제물로 바치는 모든 짐승들은 본래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원하시는 제물은 짐승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가진 감사의 마음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이 빠진 제물은 기뻐하시지 않는 제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1-14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많은 번제의 제물을 드리고 살진 짐승의 기름을 갖다 바치고 수양과 수소의 피를 바친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악을 행하면서 제사 바치는 것이 바른 행동이냐? 너희가 예배당에 나오지만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너희의 모든 제사 때문에 지치고 곤비하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제물 그 자체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입니다. B.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삶 성경의 모든 인물은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감사의 사람들입니다. 모세, 여호수아도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 요한과 같은 주님의 제자들도 모두 감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런 감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골 농촌교회에 젖소농장을 하는 집사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많았는데 점심때마다 부인 집사님은 매일 정성을 다해 일꾼들에게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일꾼들은 날마다 이 부인이 고생하면서 음식을 차려줘도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어느 날은 그릇에 소여물을 담아서 내놓았습니다. 일꾼은 그릇에 담긴 여물을 보자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짐승이나 먹는 여물을 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짐승입니까?” 그러자 그 집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음식을 대접받으면서 감사의 기도도 안하고, 대접한 사람에게 감사의 말 한마디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지요.” 그 말은 들은 일꾼들은 부끄러워하며 그때부터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도 감사표현 하는 것이 도리이나 하물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감사의 표현을 왜 우리가 못하겠습니까? 미국 한 가정에 딸 하나가 엄마에게 청구서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우등생 된 값 20달러, 심부름 값 10달러, 피아노 연습값 5달러, 집안청소 10달러, 동생 돌본 값 10달러, 총 55달러’ 이에 엄마는 그 청구서에 편지 한 장을 덧 붙여서 돌려줬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써져 있었습니다. ‘매일 밥 지워준 값 30달러, 매일 옷 세탁값 30달러, 잠재워준 값 40달러, 기타 바느질 및 돌봐준 값 30달러, 합계 130달러. 그러나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무료’ 부모님뿐 아니라 고마운 분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됩니다. 넬슨 만델라는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습니다. 그가 흑인인권운동에 애를 쓰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27년을 보냈는데 모든 사람들은 이 분이 감옥에서 나올 때 초췌하고 약한 몸으로 출소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넬슨만델라는 건강한 모습으로 출소했습니다. 이 모습에 많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건강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넬슨 만델라는 대답했습니다. “감사입니다. 하늘을 봐도 감사, 땅을 봐도 감사, 음식먹을 때도 감사, 강제노역시킬때도 감사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히브리서 13:14-16을 통한 찬미와 나눔의 제사입니다. A. 찬미의 제사(14-15절)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는 첫 번째 살아있는 제사가 바로 찬미의 제사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의 구속하신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하자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을 주셨음을 감사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찬양의 동력은 하나님의 구속은 은총입니다. 찬미는 구속하신 주님에 대한 우리의 보답입니다. 선교사 한분이 아프리카로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노예 시장에 나온 엄마 노예와 아들 노예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예 주인이 아들 노예만 어떤 사람에게 팔고 있던 것입니다. 그 때 엄마 노예는 아들과 떨어지기 싫어서 자기를 함께 팔아달라고 주인에게 울부짖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선교사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서 엄마와 아들 노예를 함께 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 선교사님이 선교를 하려고 다니다가 독사에 물려 쓰러졌습니다. 선교사님은 정신을 잃었고 얼마 후 의식을 찾았는데 그 선교사님 옆에는 엄마노예가 입술과 얼굴이 퉁퉁 부은 체로 죽어 있었습니다. 그 엄마노예가 선교사님께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선교사님을 살린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우리의 보답입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찬미의 제사인 것입니다. B. 나눔의 제사(16절) 또 하나의 산제사는 나눔의 제사입니다. 나눔의 삶, 사랑과 봉사의 삶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말씀합니다.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맥추감사절의 정신은 2가지입니다. ⓵ 하나님 우선 사상 ⓶ 나눔의 사상입니다. 하나님 우선의 사상은 수확한 첫 단과 첫 이삭을 하나님께 우선 드리는 것이요, 드리기 전에는 입에 곡식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나눔의 사상은 나그네, 고아, 과부, 가난한 자를 위하여 밀 모퉁이까지 베지 않고, 떨어진 이삭은 다시 줍지 않았는 것입니다. 영어로 감사절을 표현하는 단어가 Thanksgiving입니다. 어떤 분이 Thanksgiving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Thanksgiving, to be truly thanksgiving, is first thanks, then giving.”(감사절이 진정한 감사절이 되기 위해서는 Thanks(감사하고) Giving(나눠주는 것)이다) 즉 맥추감사는 나눔의 제사입니다. 미국의 프리첼 시장 점유율의 1/3을 차지하는 회사는 ‘프리토’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신문, 잡지, 매스컴, 등 에 제품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연 매출은 20억달러(2조5천억원)정도 됩니다. 이 회사홍보의 99.5%는 일만명 사원들의 봉사정신입니다. 이 회사는 한 박스의 주문이라도 무료로 보내주면서 신뢰를 쌓습니다. 배달 간 지역이 재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돕고 섬겨줍니다. 이 회사는 물건만 파는 것이 아니라 봉사로 사람을 사고 신뢰를 쌓는 회사인 것입니다. 성경은 나눔을 제사라고 말씀합니다. 남을 섬기고 나누어 주는 삶을 제사로 똑같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맥추절의 사상이요, 신학이자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제물보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찬미의 제사, 나눔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맥추감사절입니다. 이 말씀 기억하시면서 감사와 찬미와 나눔의 산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믿음의 성도, 신앙의 사람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