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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휴거 소동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2007-11-12
1992년 휴거 소동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 boolingoo 2007.11.12 03:06 조회 7,034 1. 휴거 소동의 기원 지구 종말급의 대재앙이 찾아오는데, 그 전에 어떤 것을 익히거나 무엇을 믿는 일부 사람들은 구출되어 안락하게 살아남는 다는 이야기는 무척 자극적입니다. 그래서 고래로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신화와 전설의 소재였으며, 현대에도 환상물과 SF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도 광포전설 같은 이야기가 예부터 내려오고, 기독교 문화권 내에서도 사실 예수 이전 구약시대 때부터 돌던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국내 기독교계에도 1920년대에 이미 기록이 꽤 많이 남아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휴거"라는 것은 그러한 재앙이 찾아오기 전에 선택된 사람들이 순간이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간이동한 사람들은 안락하게 살고 남은 사람들은 재앙의 고통속에 허덕인다는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1992년, 한국에서는 1992년 10월 28일 예수가 다시 등장하는 사건과 함께 휴거가 일어난다는 소문 때문에, 꽤 큰 소동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하늘로 순간이동) "휴거"라는 생각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20세기초 일제시대 무렵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이런 휴거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돌며 정리되기 시작했고, 책도 나오고 선전물도 왕왕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9세기말엽 20세기초에, 미국의 기독교 계열의 인물들 중에서 "휴거"라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로 상상하거나 어떤 사건을 믿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습니다. 이것이 하와이에 이민간 한국 교포들이 매개가 되어 한국에 들어온 것이 예부터 휴거류의 이야기가 한국에 돌아다니기 편하게 된 배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1992년 한국 휴거 소동은 한 명의 중년 남자가 선명한 중심이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다미선교회라는 단체의 대표였던 이장림이라는 인물입니다. 이장림은 본래 감리교에서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된 사람으로, 나름대로 성실하고 학식도 적당히 갖춘 사람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장림은 미국에서 출간된 기독교 관련 서적을 연구하고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는 일을 다소간 해왔습니다. 이 때의 성과들은 상당히 반응이 좋아서 나름대로의 명망과 얼마간의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도널드 퍼킨스의 책)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장림은 "휴거"라는 말의 창시자입니다. 영어표현 "rapture"를 한자어 휴거로 쓴 사람이 바로 이장림이라는 것입니다. 이원규의 논문에 따르면, 이장림이 본격적으로 휴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6년 퍼시 콜레 목사의 저서 "내가 본 천국"을 보게 된 후로부터라고 합니다. 이 책은 퍼시 콜레가 천국을 보았다는 내용을 무슨 단테의 신곡처럼 알리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미국의 휴거 이야기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입장을 가져서 후에 "휴거"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하는 홍의봉이라는 사람이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하였습니다. 내용은 퍼시 콜레가 천국에서 솔로몬, 다윗은 물론이요 JFK까지 보았다는 둥 하는 것인데, 퍼시 콜레는 한국을 방문하여 독특한 외모와 설교로 상당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장림은 바로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여러가지 신비한 이야기, 예언 등에 심취하게 된 듯 보입니다. 이장림은 이후에, 미국의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 다양한 내용들을 소개하며, 휴거, 말세, 요한계시록의 해석 등에 관한 책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와 그 속편인 "하늘 문이 열린다" 였습니다. 이상의 책들은 내용이 이후의 것들에 비하면, 심하게 과격한 것이 아니었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서 상당한 관심을 얻었습니다. (최후의 심판) 이처럼 이장림이 처음으로 휴거에 관한 내용들을 국내에 소개할 때는 미국의 휴거 이야기들을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흥행작 "The Late, Great Planet Earth"라는 책과 그 아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은 1970년에 나온 것입니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당시 미국에는, 비틀즈에서 롤링스톤즈를 걸치며, 히피 문화에서 소위 "68혁명"까지 이어지는 사회 변화와 약물 문제의 만연, 냉전과 냉전을 해소하기 위해 생기는 정치적인 변화등등이 "말세"라는 탄식이 일부에서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에 대한 저항으로, 몇몇 종교, 유사 종교 조직에서 여러가지 유언비어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핼 린지(Hal Lindsey)라는 작가가 집대성한 뒤, 성경이나 기독교 신화와 결부시켜 흥미를 끄는 이야기거리로 완성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은 유럽의 경제적 협력이 결국 유럽 연합, 유럽 제국으로 발전하고, 이것을 어떤 한 사람의 독재자가 철권 통치한다는 예언입니다. 그 사람은 적그리스도, 곧 악의 화신으로 이 사람이 이끄는 유럽 제국이 "신 로마제국"이 되어 전 세계를 제패하고 미국 따위는 가소롭게 여기게 되고, 곧 온 세계에 학살, 탄압을 저지르며 공포정치를 실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미국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훗날 1979년에 무려 오손 웰즈가 나래이션을 맡게 한 영상물 판이 제작되는 등, 그 위세가 상당히 거창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용괴물) 이러한 상황에서 1973년 중저예산 공포영화 "엑소시스트"가 사상초유의 어마어마한 흥행을 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미국에서는 엄숙한 기독교 신화를 공포와 직결시키는 아이디어가 유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 1976년 요한계시록 계열 공포영화의 최걸작 "오멘"이 대대적인 흥행을 하면서, 요한계시록, 적그리스도, 666, 지구 종말 등등의 이야기는 공포를 자극하고, 호기심을 자아내는 문화요소로 굳건히 완성되게 됩니다. 당연히 아류작과 영향을 받은 더 이상한 유언비어가 더욱더 떠돌게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이장림은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들을 1980년대에 대량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즉 미국에서 1970년대에 솟아나서 1980년대에 정립되어 있던 이야기들을 1980년대 중반이후 이장림이 본격적으로 들여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계열 공포물의 최대 흥행작) 또한가지 매우 중요한 1992년 한국 휴거 소동의 근간이 되는 것은 1950년이라는 상당히 오래전에 나온 "Raptured"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조용기 목사 만큼이나 화려한 활약을 한 어니스트 앵글리의 초기작입니다. 어니스트 앵글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설교와 종교활동을 하는 것으로 대단한 명망을 떨친 사람이기에, 이 사람의 초기작인 "Raptured"는 여러번 재발매되어 어느정도 널리 읽혔습니다. 이 책은 허무하게도 그냥 "소설" 입니다. 성경에 적혀 있는 재앙이나, 기적이 현대 미국 사회에 벌어지면 어떤 일이 있을까를 상상해서 쓴 환상물 내지는 SF물 비슷한 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포물로 조금 각색을 한다면, "오멘"과 아무 다를 바 없는 것이고, 다만 그 규모가 "딥 입팩트"나 "아마겟돈" 급으로 강하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가의 영향력과 흥미로운 내용 때문에, 이 단순한 소설이 휴거에 대한 예언 자체를 극화한 것으로 생각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이장림이 "휴거"라는 신조어를 자체를 처음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책은 최초의 휴거 선전물 중 하나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대기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결국 1992년 한국 휴거 소동때는 이 책의 번역판이 휴거 관련 서적중에는 무척 많이 나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종교적인 광경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지어진 소설이 1992년 10월 28일 휴거 이후의 미래상에 대한 권위있는 명망가의 예언으로 선전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장림은 그리하여, 계속해서 미국에서 배운 휴거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 일환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라" 시리즈 3편과 4편을 출간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책의 내용을 실행하는, 종교조직을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다가올 미래"의 약자인 "다미"를 이름으로 삼은, "다미선교회"인 것입니다. 다미선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1992년 10월 28일을 휴거의 날로 굳게 믿고, 휴거의 시간은 밤 12시 자정이라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거 이후에는, 적그리스도나 다름없는 독재자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온갖 재앙이 다 닥치는 지구 종말이 찾아온다는 것을 선전했습니다. (재앙이 쌍쌍이 몰려오면 어떻게 될까?) 이 1992년 10월 28일이라는 시기는 다음과 같이 지목되었습니다. 예수 탄생후 2천년이 성경상의 수치를 종합할 때 중요한 시점인데, "7년간 재앙이 닥쳐온다"는 소위 "7년환란"의 예언이 있으므로, 1999년에서 7년을 뺀 1992년이 재앙직전의 순간이라는 계산입니다. 이 역시, 미국에서 떠돌던 이야기이며, 10월 28일이라는 날짜도, 나팔절 9월 28일에, 성경의 여러 문구를 짜집기해서 1개월 연기된다는 설을 덧붙여 10월 28일이 된다는 것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이 역시 핼 린지를 잇는 미국계열 이야기였습니다. 세기말 휴거 임박설 내지는 세기말 재앙설은 SF물에 심심하면 한 번씩 나오는 것인 고로, 사실 이장림외에도 비슷비슷하게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고 퍼뜨리는 사람은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1990년에 홍의봉이 미국에서 만든 한국영화 "휴거"는 이장림 계열이 퍼뜨린 설과는 굳이 직통하는 관계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홍의봉은 이장림이 휴거에 심취하는 계기가 된 "내가 본 천국"을 번역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감독에 이름을 올린 '휴거"에는 요즘도 TV에 자주 나오시는 정영숙 아주머니와 이종만 아저씨가 출연합니다. 이 영화는 그 내용을 보면, 이장림의 가장 중요한 주장인, "1992년 10월 28일이 휴거의 날이다"라는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충격적인 이 영화의 스포일러를 밝히게 됩니다만, 무엇인고하니,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휴거가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휴거는 "그런게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 후에는 이렇게 된다더라"하는 소재로만 언급 됩니다. 이 영화는 그냥 사이비 종교에 물들었던 딸이 탈출하고 기독교에 귀의한다는 줄거리일 뿐인 약간은 심심하고 소박한 영화입니다. (불공격과 세기말 재앙)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가 이장림의 다미선교회가 일약 1992년 휴거 소동의 독보적인 중심이 되었는고 하는 점은 사실 궁금합니다. 여기에 여러가지 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바로 이장림이 "꿈"을 중시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요소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장림은 시한부 종말론계의 프로이트 였던 것입니다. 이장림은 꿈에 예수가 나타나서 무슨 말을 했다, 꿈에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꿈속의 사건을 신이 사람에게 바로 직접 내려주는 초강력 계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에는 두 가지 큰 이점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환상) 첫번째로, 쉽게 최측근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꿈에 예수가 나타나고, 지구가 불에 타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게되면, 꿈꾼 사람 자신의 충격과 감정은 엄청날 것입니다. 공포영화를 예로 든다 하더라도, 공포영화 보는 것은 별로 안 무섭지만, 그 영화를 보고 무서운 꿈을 꾸는게 더 두려워 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러니, 바로 이렇게 신과 종말이 난무하는 꿈 이야기를 중시하고, 그 꿈의 의미가 신의 계시라고 하며 중시한다면, 적어도 꿈을 꾼 당사자는 놀라운 신비감과 강렬한 경외심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장림으로서는 열성적인 신도 한 명이 포섭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성적인 신도의 자발적인 감격과 헌신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저 사람이 정말 뭔가 굳게 믿나보다"하는 설득력을 이끌어 내기도 좋습니다. 때문에, 이장림이 주장한 이야기들을 보면, 주로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을 잘 꾸며, 꿈에서 받은 충격에 흔들리기 쉬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꾼 꿈 이야기가 매우 많습니다. 특히, 한 소년이 "1992년에 북한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는 도중 죽음을 맞는다"라는 꿈을 꾼 이야기를 중시한 것은 다미선교회가 꿈을 이용한 활동의 일대 전환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빌론 몰락의 환상) 두번째로, 꿈 이야기는 쉽게 전파시킬 수 있습니다. 태몽이니, 복권꿈이니 하는 것 때문에 우리에게 꿈이 뭔가 신비한 것이라는 생각은 전통적으로 생활에 밀착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요즘에도 네이버 지식인에는 끊임없이 "제가 이런 꿈을 꾸었는 데 무슨 신비한 의미가 있는 해석, 해몽해 달라"라는 글이 올라옵니다. 그만큼, 꿈에 대한 미묘한 믿음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또, 꿈은 누구나 어떤 꿈이든 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의 계시에 대한 증거가 이교도들을 향해서 장풍을 쓰는 것이라든지, 둔갑술을 체득하는 것이라든지 하게 되면, 증명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꿈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신의 계시에 대한 증거라면, 하루 종일 모여서 휴거와 종말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런 꿈을 꿀 가능성이 생깁니다. 신의 계시에 대한 증거를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환상) 다미선교회의 계시-예언 문화는 이렇게 꿈을 중시하는 바탕에 그치지 않고 한 단계 더 발전합니다. 꿈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경지로 뻗어나간 것입니다. 다미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 자정이 휴거의 순간이고, 그 밤에 일어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낮보다 밤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정을 중심으로 항상 자정에 주요 모임을 열었고, 밤잠을 적게 잘 것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수면부족자들이 속출했고, 자정을 중심으로한 야간 종교 모임 도중에 졸면서 꿈을 꾸고, 따라서 종교에 관련된 꿈을 꾸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더우기, 수면부족이 계속 되면, 멀쩡한 사람도 반쯤 꿈을 꾸게 되어, 환청, 환각을 보거나 헛소리를 하기 마련인데, 이 덕분에 다미선교회의 심야 모임에서는 별별 멋진 환상을 보며 놀라운 계시를 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렸습니다. 다미선교회는 이러한 현상을 당시에 열렬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불렀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이어지는 환상들) 점점 유행을 끌게 되면서, 다미선교회는 흥행을 위해 또다른 혁신을 감행합니다. 그것은 기독교 외부의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것입니다. 소위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지구 종말설" 등을 적극 내세운 것 입니다. 다미선교회 및 그 아류작 단체들은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가 케이시 등등 왠갖 다양한 예언, 신비, 괴기 등등에서 재미있고 그럴싸한 이야기들은 적극적으로 뽑아다가 사용했습니다. 일본에서 도는 괴담과 행성 십자가 배치 그랜드 크로스 따위의 이야기들을 응용하는가하면, 후기에는 미국의 "믿거나 말거나" 황색 언론들을 잡다하게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서울 상공에 사탄의 얼굴이 나타나다!) 무려, "링컨은 여자였다" "엘비스는 살아있다" "동굴속에 박쥐소년이 있다" 류의 어이없는 괴기 기사가 난무하기로 악명 높은 절반 코메디 신문 "Weekly World News" 의 기사들까지 마구잡이로 갖다쓰는 극한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천국의 모습이 허블 우주 망원경에 찍혔다거나, 지옥으로 통하는 구멍을 석유를 파다가 뚫어버렸다거나 하는 이야기따위를 인용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헛소문, 유언비어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다미선교회가 더 조잡해 보이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1992년 휴거 소동이 그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주요 대형 기독교 인물, 단체들이 거의 휩쓸리지 않은 것은 이렇게 조잡한 괴자료를 마구 조립한데서 일단 의구심을 샀던 데에도 원인이 컸습니다. 하지만, 반대방향에서보면, 기독교 계열 학설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 매우 풍부한 신비로운 자료와 신기한 선전물들을 대량으로 포함할 수 있었으므로, 이는 선전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텍사스 상공에서 예수와 사탄이 대결하는 모습이 나타나다!) 이와 같은 인용들 중에 비교적 기독교 계열 도시전설과 관계가 깊은 것이 소위 "바코드 666" 이야기 입니다. 기본 바탕을 보면, 바코드 666 이야기는 휴거 소동의 주변 사항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다미선교회 일파의 이러한 전략 때문에 갈수록 중심소재로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이 바코드 이야기 역시 미국에서 유행한 이야기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바코드 666 이야기를 완성시키는데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미국의 매리 스튜어트 렐페(Mary Stewart Relfe) 여사 입니다. 이 사람이 쓴 1982년에 쓴 책 "The New Money System: 666"가 화제가 되면서, 이 책이 바코드 666 이야기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가장 혹독한 겨울이 온다!) 기본적으로 바코드 666 이야기는 현대 조직문화와 대기업의 자동화, 물량화와 관료제 통제에 반대하는 사회 비판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바코드를 이용해서 물건의 유통을 간소화하여 통제력을 높이고, 기계화 한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인간의 개입여지를 줄이고, 중앙통제를 높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SF물에 자주 나오는 기계와 개인정보로 모든 것을 통제하며 개인을 휘두르는 독재 정부가 탄생하기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바코드가 널리 퍼져서 정말로 유통망이 간소화되면, 재고조사하고 계산대에서 물건 계산해야하는 근로자들은 실업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바코드 기술에 반대할 여지는 있습니다. 이런 바코드가, 1974년 미국 오하이오의 마쉬 슈퍼마켓에서 바코드를 실제로 유통에 활용하여 삽시간에 실생활에 퍼지게 됩니다. 따라서 중앙통제력 과잉 문제, 개인정보보호 문제와 엮여 논란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몇몇 헛소문, 낭설까지 모아 정리한 것이 1982년, 매리 스튜어트 렐페의 책인 것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유통과 금전활용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바코드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악마들이 권하는 화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코드에 적힌 숫자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 666이 되므로, 바로 바코드가 지구 종말의 상징인 666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저떻게 하면 666) 그렇게해서 나온 발상이, 앞으로 말세 가 찾아오면, 더이상 상거래에서 지폐나 동전을 쓰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바코드를 사람의 손등이나 이마에 문신으로 새겨서 식별표로 하고, 그것을 바코드 스캐너로 읽어들여서 신용카드 긁듯이 모든 거래를 전산화해서 처리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를 통해서, 사람의 모든 생활을 중앙정부에서 관리감독할 수 있게 되므로, 중앙정부를 장악한 악마 같은 독재자에게 매우 유용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몸에 새기는 바코드를 소위 "666표" 라고 부르게 됩니다. (666표를 받은 사람들의 상상도 - 옷은 벗고 있는 편이 더 불쌍해 보임) 2. 휴거 소동의 확산 이상과 같은 바탕 아래, 휴거 소동은 전국적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 종국에는 문제의 1992년 10월 28일 당일에 교회에 운집한 신자들만 전국적으로 8천명에 이르렀으며, 신봉자 숫자는 2만명에 달하는 정도가 된 것입니다. 또 이 휴거 소동은 LA에서 한인 종교 조직과 연계되어 미국의 휴거 소동과 긴밀히 연결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뉴 오리지널 원더 랩처) 그러나, 꿈과 괴기보도를 중시하는 다미선교회의 방향은 이장림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해 버리고 맙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이고, 괴기보도 역시 누구나 입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그러자니, 꿈을 꾼 사람들은 꿈 내용에 따라서, 자기 스스로가 이장림보다 더욱 휴거의 진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역으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심지어 정감록등에 심취한 사람이 중심을 요한계시록이 아닌 노스트라다무스등의 예언에 두는 반대방향으로 선전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장림 일파의 조직은 계속 파벌이 나뉘고, 이장림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아류 조직이면서도, 이장림보다 더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 버리게 됩니다. 어느새, 휴거 - 종말론 자체가 이장림 일파의 손을 떠나 스스로 마구 덩치가 불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한센씨 병 환자들이 치료약으로 쓴답시고 간을 빼먹는다는 낭설의 양상과 흡사합니다. 원래 이 낭설은 근거없는 헛소문이었지만, 헛소문이 워낙 널리퍼지다보니, 일부 정신나간 한센씨 병환자들이 역으로 그 헛소문을 믿고 어린이를 습격해 살해한 사건이 조선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 수 건 발생해버렸던 것입니다. 단지 도시전설에 지나지 않았던 이야기가 너무나 힘을 얻은 나머지 현실로 튀어나와버리는 것입니다. 다미 선교회에서는 꿈속에서 신의 말을 듣고 종말의 광경을 보는 것을 "직통계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미선교회에서 이런 꿈을 꾸는 어린이, 청소년들을 "어린 종'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어린 종들 중에서 명망높았던 소년선지자 고교생 하모군, 소녀선지자 고교생 권모양등이 자신이 이장림 보다 더 높다는 생각에 스스로 독립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신봉자들을 이끄는 다른 종말론 조직을 설립해 버립니다. 1990년대 초에 이런 자들의 조직도 우후죽순 상당히 크게 세력을 넓히게 됩니다. 특히 이중에서 하모군의 경우에는 사람을 보면, 휴거되고 천국갈 사람인지 보인다고 하면서, 천국을 가는 증표를 부적처럼 그려주어서,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부적은 알파벳과 아라비아 숫자가 조합된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휩쓸리는 재앙) 기존 기독교 신자들과 기독교단은 이들의 맹활약 탓에 기독교 전체가 광신집단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게 됩니다. 그럴만한것이, 대부분 기독교 계열 종파의 성경해석에서도 언젠가 세상에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은 상당부분 받아들여지는 내용입니다. 종파나 신학자에 따라서는 다미선교회 부류가 주장하는 휴거에서 지구종말까지의 모든 내용을 거의 동일하게 믿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1992년 10월 28일이 그 날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차이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렇게 배경이 비슷한 점은 기존 기독교 신자들이 다미선교회 일파의 휴거 소동에 빠져들게 되는 단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1990년 무렵에 다미선교회와 그 아류작등 소위 "휴거 일파"들을 사이비, 이단, 사기꾼, 변태 등등으로 최대한 몰아 붙였습니다. 특히 이들은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종말의 날은 아무도 모르고 신만 아신다"라는 말을 강조하여, 휴거의 날과 종말의 순간을 지목하는 이들을 배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뿌리같은 속성 때문에 잊혀질만하면 다시 강해지면서 계속 휴거 신봉자들은 세력을 키워 왔습니다. 그리하여, 1991년이 되자, 전국 도시의 지하철역과 기차역 등지에서 휴거 관련 유인물 배포가 활발히 이루어졌고, 이들이 이동하는 차량에 "예수 공중 강림 임박" 등의 문구를 써넣고 다니며 홍보를 하기도 했습니다. 스피커를 단 차량으로 도로를 지나가며 홍보 방송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습니다. 또, 조를 짜서 버스터미널 등을 돌아다니며, 구역을 나누어 홍보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한 시대의 상징) 휴거와 종말론은 그 내용이 신봉자들은 1992년 10월 28일에는 순간이동으로 지상에서 떠난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1992년 10월 28일 이후를 대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학업, 가정, 직장등의 일상 생활을 포기하고 완전히 종교활동에만 귀의하는 열성 신도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게 중에는 돈도 필요 없으니 재산을 모두 종교 활동에 투자하거나 헌납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홍보활동은 매우 활발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휴거 관련 홍보물을 접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 되었으며, 그 선정적이고도 괴기스러운 내용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판본별로 차이는 무척 많지만, 당시 떠돌았던 예언의 대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92년 10월 28일 자정, 예수가 공중에 나타난다. - 1992년 10월 28일 자정, 휴거가 일어나, 전세계에서 믿음이 깊은 신도들만 천국으로 순간이동 한다. 그 숫자는 국내에서는 11만 6천명 - 대체로 10만명 내외 - 이다. - 1992년 10월 28일의 대규모 순간이동으로, 사상초유의 행방불명, 실종사태가 보고되고 사회는 혼란해 진다. 비행기 조종사가 갑자기 순간이동하거나, 버스 기사가 갑자기 순간이동하는 바람에 교통사고등의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 이후 부터 7년 동안, 전세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지진, 해일, 화산, 소행성충돌 등이 빈번하여 자연 재해로 세상이 뒤흔들린다. - 적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한 독재자가 출연하여 유럽 연합의 총두목이 된다. 이 독재자는 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지만, 반대파에게는 무자비하여 집권과정에서 잔혹하게 사람들이 죽는다. - 유럽 제국의 지배자인 독재자는 전세계를 손아귀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세계제3차대전이 발발하여, 매우 많은 사람들이 대량살상무기로 고통스럽게 죽는다. - 독재자는 집권후,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돈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거래는 전산화하도록 지시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ID를 바코드로 발급받으며, 편의를 위해 이 바코드를 이마나 손등에 레이저로 문신으로 새긴다. 이것을 666표라고 한다. - 전 세계인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은 이 666표를 통해 유럽 제국 본부에 있는 슈퍼 컴퓨터에 기록되어 관리된다. 따라서 독재자는 이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 - 666표에 반대하는 사람은, 666표를 받을 때까지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살한다. - 기독교에 대한 가혹한 종교 탄압이 이루어진다. - 666표를 받은 사람들은 영원히 악마의 노예가 되며, 666표를 받지 않고 죽은사람들은 살아서 고통은 받았을지언정,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 하나는 갖추게 된다. - 여러 난리 때문에, 1992년에서 1999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인류의 9할, 50억명 이상이 죽는다. - 1999년이 되면, 예수가 지상에 나타난다. 예수의 지상재림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저마다 설이 다르나, 대체로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내용이 널리 선전되다 보니, 전국 각처에 휴거와 관련된 홍보물, 낙서는 무척 이목을 끌었습니다. 재앙의 참혹한 광경 묘사나, 독재정부가 사람들에게 가하는 잔혹한 탄압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라서 괴기스러운 읽을 거리로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특히, 괴기물이나 공포물을 별로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단순히 건전하고 평화스러운 종교 홍보물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홍보내용을 접할 때는 꽤 강렬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휴거 소동에 관한 예언과 홍보물은 두어번쯤 읽히며 인상을 남기기에 좋았습니다. 나중에는 휴거 신봉자가 아닌 사람들도, 재미로 휴거 관련 낙서를 하거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장난 삼아 "적그리스도"나 "666"같은 것을 벽면에 스프레이로 그리는 등, 유행의 열기는 한층 더해졌습니다. 특히나,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성경과 기독교는 보통 주술성과 괴력난신의 상징인 무속, 민간신앙의 대척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다보니, 반대급부로, 지탄받아왔던 점쟁이와 무당의 예언과 전혀 다른 배경의 성경과 기독교에 근거한 이러한 예언과 계시가 뭔가 더 거창하고 진지한 느낌을 풍겼다는 효과도 상당했습니다. (A Thief in the Night 시리즈의 혹독한 탄압 장면) 홍보 영화 중에는 훗날에 유행하는 "The Left Behind" 는 당시의 소동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소설판은 영향관계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다 퍼진 것은 "A Thief in the Night"라는 영화 시리즈인데, 이것은 1972년에 첫편이 나와서, 1977년, 1980년, 1983년에 각각 4편까지 속편이 나온 휴거 및 종말론 종교영화입니다. 이것은 중저예산 영화입니다만, 자막판이 비디오 테입으로 국내에도 소개되어, 휴거 소동 당시에 홍보용으로 일부에서 상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내용은 패티라는 여자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많은 사람들이 순간이동 당해 없어진 상태이고, 세계는 유나이트(UNITE)라는 조직에 의해 고통스러운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유행의 결과로, 1991년 여름이 되면서, 휴거 소동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가출한 청소년들이 잇다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이들의 부모들은 공포심과 함께 격한 반감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어느 부모가 그 자식으로부터 휴거 종교조직을 떼어 놓기 위해, 자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교조직의 다른 신봉자가 학생을 도와 정신병원에서 학생을 탈출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경찰이 납치나 미성년자 유인 혐의으로 나서서 수사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휴거를 주목하게 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91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한국 정부가 다미선교회와 그 아류작들을 조사하고 감시하기에 이릅니다. (A Thief in the Night 시리즈의 666표를 받은 사람 모습) 곧 조사결과들이 보도 됩니다. 남자 택시기사가 택시에 휴거 선전물을 부착하고 다니는 경우, 신봉자인 철도 기관사 남자가 통근 열차에서 휴거에 대한 설교 카세트 테입을 틀어 방송한 경우, 32세의 중학교 여자 교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휴거와 종말에 대한 설득에 나선 경우, 28세의 국민학교 여자 교사가 휴거에 심취해 학교를 그만둔 경우. 해군 상사가 부대내에서 장병들에게 유인물을 배포한 경우, 육군부대의 군목 중령이 종교활동 시간에 휴거와 종말론을 설교한 경우, 육군부대의 군목 대위가 휴거와 종말론을 장병들에게 퍼뜨린 경우 등등, 공공 영역을 침해하는 사례들이 속속 발견되었습니다. 자연히, 검찰, 경찰의 수사 강도는 더 강해졌습니다. 한국의 휴거 소동은 1991년 11월 서울 올림픽 역도 경기장에서 다미선교회와 그와 비슷한 믿음을 가진 다른 단체들이 회합하면서 본격적으로 절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후로 드디어 문제의 1992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출, 전재산 헌납, 사직, 학업 중퇴 등등의 일이 좀 더 자주 나타나게 됩니다. 당시의 유인물 제목들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급한 소식!예수공중재림과 휴거를 준비하라! - 1992년10월28일 지상최대의 인간증발사건발생 - 휴거 1992. 10. 28 - 10월28일 휴거에 대한 질문과 그 대답들 - 7년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휴거, 진짜? 가짜?) 1992년, 여름에는 전라남도 나주, 전라북도 완주 등의 시골 산에서 집단 출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발견되어 보도 되게 됩니다. 이들은 100명 안쪽의 1992년 10월 28일 휴거 신봉자들로, 목사의 지도아래, 외부 세계와 인연을 끊고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막이나 비닐하우스 형식으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살면서 하루종일 기도만 하면서 지내는데, 신문, 방송 등 일체의 외부 접촉없이 다만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기만 합니다. 다른 활동은 하지 않고 오직 1992년 10월 28일의 휴거만을 대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주로 가족 몇명, 혹은 일가족이 통째로 출가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의 비중도 꽤 되었고, 남녀 비율도 고른 편이었습니다. 이들의 비닐하우스 가건물에는 휴거를 대비하라는 안내물과 선전물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고, 내부에는 휴거 관련 책자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중에는, 길게는 1년 이상 출가생활을 하는 무리들도 있었는데, 시내에 있던 종교단체를 매각하고 남은 돈과 속세의 재산을 조금씩 깎아 먹으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특히 전라북도 완주의 시골 산 모임에 경우에는 모든 재산을 처분한 사람들이 비닐하우스, 폐차 등에서 걸인처럼 숙식하며 살고 있어서, 그야말로 종말론 분위기가 물씬 풍겼습니다. (휴거 되면서 여기로 갈테니) 1992년 10월 28일 휴거론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다미선교회 본부는 서울 마포구에 있었습니다. 5층 건물에서 3층, 4층, 5층을 전세낸 곳이었는데, 1백 98평 전세 2억원 규모의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전세계약을 1992년 10월 28일까지만 했다는 소문도 돌았으며, 뒤쪽 벽에 커다란 글씨로 "휴거 카운트다운 몇십몇 일" 같은 말을 써놓았고, 오른쪽 벽면에는 가로 5미터 크기로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대형 휴거 상상도를 그려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다미선교회 부류 특유의 심야 기도 모임은 열정적이고 강렬해져서, 소리를 내어 부르짖고 흐느끼며 기도하고, 크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야밤에 동네 가까운 곳에 다미선교회 일파 들의 집결소가 있다는 것을 소란한 소음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이 다가와서 신봉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유인물과 토론이 많아지면서, 휴거의 모습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묘사가 나오게 됩니다. 우선 휴거의 형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서로 다른 묘사들이 생깁니다. - 소지품과 함께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진다. - 작은 소지품들과 함께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진다. 예를 들면, 가방을 들고 왔다고 해서, 가방까지 순간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반지, 틀니, 안경 정도만 함께 없어진다. - 몸만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진다. 따라서 휴거가 끝나고나면, 사람이 없는 빈 옷가지만 남아서 뒹굴게 된다. 따라서 틀니, 금니, 다친곳에 수술해 끼워넣은 보형물등등은 남게 된다. - 소지품과 함께 순간이동하면서 갑자기 없어지되, 신발은 남겨두고 없어진다. - 공중부양으로 점점 떠오르게 되며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간다. 따라서 창문을 통해 하늘로 날아가게 되거나, 야외에서 떠오르게 된다. - 공중부양으로 점점 떠오르게 되며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간다. 이때, 지붕, 벽 등은 마법적으로 투과하여 부딛히지 않고 높이 떠오를 수 있다. - 공중부양으로 점점 떠오르게 되며 하늘 높이 멀리 날아간다. 다만 신발은 남기고 날아간다. 조직에 따라서는, 이때, 휴거가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난다는 묘사를 추가하기도 했고, SF물의 영향으로 휴거의 순간이동은 "빛보다 빠른 속도"라는 것을 강조하는 조직도 있었습니다. 또, 휴거 때 예수가 공중재림 한다는데 대해서도 여러가지 다른 묘사들이 생깁니다. 이것은 처음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에 생긴것입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무엇인가가 왠만큼 높이 떠 있어도, 다른 지역에서는 지평선, 수평선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는, 예수가 같은 자정 시각에 뉴질랜드 쯤에서 아무리 높이 하늘에 떠 있는다해도, 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러가지 다른 의견이 나오게 됩니다. - 예수는 엄청나게 거대한 모습으로 신비스럽게 온 하늘을 뒤덮으며 기상현상처럼 나타난다. - 예수는 엄청나게 거대한 모습으로 신비스럽게 온 하늘을 뒤덮으며 기상현상처럼 나타나는데, 구름에 대부분 가려 있고 언뜻언뜻 구름이 없는 사이로만 보인다. - 예수는 지구의 대기권 어딘가 높은 곳에 떠 있다. 따라서 못보는 사람도 많이 생기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조그마한 형체를 볼 수도 있다. - 예수는 지구의 대기권 어딘가 높은 곳에 떠 있고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다만, 헬리콥터를 타고 접근하거나, 휴거를 해서 공중부양을 해서 올라가서 예수 곁으로 가면 볼 수 있다. - 예수는 사람들이 볼 수 있을만한 높이의 하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명이 세상에 각지에 나타난다. - 예수는 사람들 바로 눈앞에 1, 2 미터 정도 허공에 떠 있는 무습으로 여러 명이 세상에 각지에 나타난다. - 예수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예수가 공중에 있다는 그 영상을 모두가 마음으로 강하게 느끼게 된다. 또한, 예수의 공중재림과 휴거에 대해서는 "그렘린2"에 나오는 유명한 시차문제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즉 한국에서 휴거와 공중재림의 시점은 한국표준시이자 도쿄 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자정입니다. 그런데, 이 시각은 미국에서는 낮이고, 중국에서는 아직 자정이 되기 전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시각을 중심으로 휴거가 일어나는 것인지 불분명해집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다른 묘사들이 나타납니다. 다만, 이 휴거의 시간문제는 그다지 인상적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위의 예수가 나타나는 형태나 휴거의 형태에 비해 활발히 묘사되지는 않고, 다만 잠깐씩 논의가 될 뿐이었습니다. - 휴거의 순간은 한국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24시이다. - 휴거의 순간은 1992년 10월 28일 밤, 대한민국 서울이 태양과 완전히 반대에 위치하는 시각으로, 서울의 표준시는 도쿄의 표준시에 맞춘 것이므로, 실제 자정과는 30분정도 차이가 나는 시각이다. - 휴거의 순간은 각국이 정해 놓은 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24시가 되는 순간이다. 따라서, 통가왕국, 호주, 뉴기니 등에서 가장 먼저 휴거가 일어나고, 뒤이어 일본과 한국은 동시에 휴거가 일어나며, 미국은 동부표준시를 따르는 지역에서 동부표준시 자정에 휴거가 일어나고, 이후 서부표준시를 따르는 지역은 서부표준시 자정에 휴거가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총 24시간에 걸쳐 휴거가 일어난다. - 휴거의 순간은 1992년 10월 28일 각 지역이 태양과 반대편에 놓이는 순간이다. 따라서, 시간의 차이가 적을 지언정, 동에서 서의 순서대로 휴거가 일어난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독도 지역에서 가장 먼저 휴거가 일어나고, 연평도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휴거가 일어나며, 전세계적으로 총 24시간에 걸쳐 휴거가 일어나게 된다. - 휴거의 순간은 대략 한국 표준시로 1992년 10월 28일 24시 전후로, 이날 밤 동안, 예수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휴거 시킨다. 예수는 허공을 떠다니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구름과 함께 날아다닌다. 그러므로 예수는 약 24시간동안 대략 동에서 서로 이동하게 된다. 의외로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표준 시각으로 1992년 10월 28일 24시라는 의견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 휴거의 날짜가 27일이냐, 28일이냐, 10일이냐, 9월 28일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파가 나뉠정도로 심각한 대립을 했던데에 비해서, 24시간 이내의 시간차이에 대해서는 큰 관심없이 대강 넘어가고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신봉자들이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심정적으로 감동하여 받아들인 것이지, 정확한 예언이나 구체적인 이론에 대해서 정리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했다는 근거가 됩니다. 즉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은 종말의 고통을 피하고, 신비로운 기적을 체험한다는 기괴함을 좇았으며 공포심과 군중심리에 휩쓸린 것이 중심이지, 사실 정말로 심각하게 삶과 지구의 운명에 대해 고민한 사람은 소수 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휴거는 미국에서는 낮에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가지 휴거 소동이 구체화 되는 과정에서 짚고 넘어갈 점은, 휴거 소동이 기존 기독교의 종말론을 받아 들인 바탕이 강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인 숙명론에 따라, 신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휴거 되지 못한다고 해도, 꿋꿋이 살아야 한다는 점이 초기부터 강조되었습니다. 특히, 휴거 이후 지구종말 수순에 따른 대규모 재앙과 잔혹한 고문, 학살 과정을 버티다가 죽으면, 순교자가 되어 비록 육신은 고통을 받을 지언정, 천국에서 휴거된 사람들과 함께 다시 만나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대체로 득세 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휴거 소동이 한두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의존적으로 주도되었다기보다는, 기독교 문화의 바탕위에서 한국 사회 각지의 온갖 계층에서 폭넓게 나타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기독교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즉, 상당히 자생적인 성격으로 휴거 소동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기존 기독교의 합리적인 부분이 계승된 면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휴거 소동 이후에도 휴거가 없었다고 해서 심하게 충격을 받는다든가, 절망해서 폭주하며 자결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1992년의 휴거 소동 이후에도, 이 수법을 거의 흡사하게 활용하여 또다른 기괴한 종교조직을 만드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생겨났다는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사태가 이처럼 크게 확대되고 상황이 공포, 공황 분위기를 이끄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자, 휴거라는 말의 창시자인 이장림 본인도 상당히 당황하게 됩니다. 이장림이 "어린종", "소년선지자"로 불렀던, 꿈속에서 소위 "직통계시"를 받았다던 어린이들이 자신이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활동을 하게 되고, 이장림의 생각에는 이들의 활동이 성경해석과 너무 큰 차이가 나는 이상한 짓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꿈속에서 받았던 계시라는 것들이 하나 둘 어긋나는 것을 보게 되자, 이장림은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애초에, 이장림은 휴거를 열성적으로 대비한다고 해서 휴거 되지 않을 사람이 휴거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듯 보입니다. 때문에, 휴거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그냥 평화롭게 세상을 살던대로 살면서, 1992년 10월 28일 휴거라는 때에도 사람들이 사라지는 기적을 주변에서 몇 건 구경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휴거 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재산을 헌납하고 도를 닦듯이 기도 생활에 들어가고 일상생활을 접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꿈 속에서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사람이 개꿈 돼지꿈 꾼 사람들만큼 난무하게 되면서, 이장림은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장림 뿐만아니라, 그에게서 갈라져 나간 계파인 허모군 등의 조직까지도 일각에서 비슷한 회의감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들은 1992년 5월에 북한과 관련된 중대한 변화, 사건이 일어난다는 꿈 속에서 들은 예언을 믿고 있었는데 이것이 아무 사건 없이 허무맹랑하게 지나가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훗날의 보도를 보면 이것이 전환점이었다고 합니다. 이후로, 상당수의 조직 창시자들은 정식 기독교의 원래 이론대로, 휴거나 심판의 날은 함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1992년 10월 28일이 휴거의 날이 아닐수도 있다는 쪽으로 생각을 어느 정도 바꾸게 됩니다. 당연히 꿈 속에서 들은 신의 목소리, 예언 등 역시, 상당부분 그냥 개꿈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광경) 그러나, 예전부터 휴거 소동은 이장림이나 몇몇 우두머리들의 손을 떠나 있었습니다. 이들 중 몇몇은 극단적인 입장을 철회하려고 했습니다.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안되는 사람이 많을 수도 있고, 돈 바치며 난리친다고 휴거 안 될 사람이 휴거 되는 것도 아니고, 나아가 1992년 10월 28일이 휴거의 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에 대해서, 대부분의 측근들이 만류했다고 합니다. 기왕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밀고나가자는 주장에 결국 이들은 스스로도 굴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의 10월 28일을 목전에둔, 1992년 9월 11일. 부산에 거주하는 32세 여자가 경상남도 마산의 고압선 철탑에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죽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자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유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인즉, "10월 28일 휴거를 앞두고 세상이 싫다"라는 글을 남겼고, 남편에게는 "666 바코드가 시행되면, 다른 가족들이 신의 뜻에 따를 수 있도록 해달라" 라는 당부를 남겼습니다. 이는 휴거 소동과 관련된 최초의 자살사건이었기 때문에, 경찰당국이 전격 개입하는 상징적인 빌미가 되었습니다. (악마 마물 대잔치) 결국 1992년 9월 24일, 경찰은 다미선교회의 우두머리이자, 이 모든 소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이장림을 체포하게 됩니다. 경찰은 애초에 사기 혐의로 이장림을 가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기가 입증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체포 과정에서 이장림이 보유하고 있는 수만달러어치의 미국돈이 발견되면서, 일단 외환관리 관계 법령 위반으로 감옥에 가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체포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이장림이 수십억원치의 재산을 다미선교회 운영과정에서 쌓아두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알렸고, 그 재산 중에 휴거 이후 1993년이 되어서야 현금화 할 수 있는 채권이 있다는 점을 널리 홍보했습니다. 휴거 소동의 근원지였던 이장림을 돈을 울궈먹기 위해 신봉자들을 속인 사기꾼으로 보이게 하려고 했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장림은 스스로도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과, 최근 회의감을 느껴왔다는 사실을 토로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장림은 1992년 10월 28일에 임박해서는 신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는데, 휴거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해서 난동을 부리지 말고 차분히 생활에 정진하는 삶을 살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 활동 이후의 이러한 움직임은 휴거 소동이 겉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로 확대되는 것을 막았고, 나아가, 휴거 소동 이후에도 신봉자들이 난동을 부리지 않게 하는데도 일조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장림의 이러한 행동은 소동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수준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1992년 10월에 들어서면서, 상당수 신봉자들이 편지를 남겼습니다. 내용은 대체로 1992년 10월 28일 후에, 자신이 순간이동해서 사라지고 나면, 재산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정해두고, 남은 사람들에게 666 바코드를 받지 말고 항거하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편지가 발견되면서, 경찰은 이것이 "세상을 하직하려는 사람들이 남기는 편지" 이므로, 일종의 유서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근거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수순과 같이, 모든 신봉자와 관련 종교단체에 대해서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에 경찰이 대거 개입하기로 결심합니다. (마지막 대결) 시시각각, 문제의 1992년 10월 28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부산 경찰은 홍보전단을 뿌리는 종교 선전 행위만한다하더라도, 그 내용이 휴거 소동에 관한 것이면, 공포심과 불쾌감을 조장하는 풍기문란 행위로 보고 경범죄로 입건하는 강경책을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역시나 최후의 기승이 있는지라, 신비롭고 무서운 사건들에 대한 유인물과 유언비어는 마지막으로 난무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휴거를 믿어 어차피 지상을 떠나니 부질없다고 생각해서 중간고사에 백지를 낸 경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돌았고,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재고관리나 고객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바코드를 괜히 꺼림칙하게 여기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의 심판의 날을 믿는 사람들은 직접 휴거 소동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혹시 그 성경책에 나오는 일이 1992년 10월 28일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혹시나 하는 관심을 갖는 사람은 굉장히 광범위하게 많아졌습니다. 이 무렵,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주영 사퇴설이 잠시 나돈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정주영 후보측은 "정주영이 사퇴할 가능성은 휴거가 일어날 가능성과 같다"라는 흥미진진한 답을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워낙에 요란하게 유인물 살포가 심했던 터라, 민심마저 꽤 흉흉해져가는 듯한 묘한 분위기가 살짝 감도는 가운데, 1992년 10월 28일이 마침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휴거를 맛볼 수 있을 것인가) 3. 1992년 10월 28일 1992년 10월 27일은 양자역학의 이해하기 어려운 면을 신비주의로 포장하는데 가장 자주 들먹이게 되는 인물인, 미국의 데이비드 봄이 사망한 날이었습니다. 한편으로, 한국에서는 휴거 소동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습니다. 충청북도 제천의 한 종교 집단에서는 출입구에 "우리 먼저 갑니다. 장렬히 순교하세요. 천국에서 만납시다" 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고, 집단으로 출가 생활을 하고 있던 전라남도 완주의 산골에서는 신봉자들이 간편한 옷차림외에 모든 소지품을 불태우며 지상 생활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로 결심하는 행사를 치렀습니다. 다미선교회 본부는 휴거 순간에 흥분한 신자들의 난동으로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거울 등의 깨지기 쉬운 물건을 치우고, 의자와 책상을 치우는가하면, 소화기를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다미선교회 본부는 26일, 신봉자 1천5백명에게 10월 28일 당일, 경찰과 구경꾼들의 혼란을 통제하기 위해 출입증을 발급했습니다. 그래서 신봉자들은 삼삼오오 이 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미선교회 본부에 나타났는데, 기자나 구경꾼들은 이 출입증을 일컬어 천국행 티켓이라고 불렀습니다. (죽음의 등장) 1992년 10월 27일 24시. 대부분의 유인물에 "10월 28일 자정"이라고 되어 있기에, 이것을 1992년 10월 28일 0시라고 착각한 구경꾼들이 다미선교회 본부에 몰려들었습니다. 이 때 무려 1백여명의 사람들이 몰렸고, 이 중 상당수는 신봉자로 세상사를 등진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중에 가장 이목을 끌었던 사람은 서울 마포구의 39세 허모씨였습니다. 이 사람은 25년 지기인 자기 친구가 친구의 아내와 함께 휴거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10월 26일 저녁에 문득 자신을 찾아와, 집문서와 7백만원이 든 통장을 자기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동생 결혼자금을 주라고 했다고 합니다. 허모씨는 휴거가 일어나지 않으면 친구에게 집문서와 7백만원이 든 통장을 돌려주려고 왔다고 했는데, 그 의리가 인구에 회자되었습니다. 다미선교회측은 이러한 구경꾼, 반대자 들의 소동을 우려하여, 자진해서 경찰에 병력배치를 요청했고, 실제로 당일에는 경찰 4개 중대, 구급차 3대, 소방차 3대, 조명차 2대가 배치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1992년 10월 28일 각종 종교단체에 배치된 경찰병력은 전국적으로 1만 5천명에 이르렀고, 당일에 한해 철야 비상경계에 돌입했습니다. 또 상당수 단체들은 휴거가 되고나면, 자신의 재산은 모두 교회에 주어서 휴거 이후의 재앙을 헤쳐나가며 버틸 자금으로 쓴다는 계약을 맺기도 했고, 단체에 따라서는, 재산과 남은 가족 관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당부하라고 지시하여, 형이나 동생, 친한 친구들에게 가족과 재산을 당부하는 휴거를 기대하는 신봉자들도 많았습니다. (몰려든 악마 천사) 1992년 10월 28일 당일. 다미선교회는 출입구에 꽃으로 된 3미터 크기의 커다란 아치를 만들어 장식하고, 주차장에 구경꾼들과 사람이 너무 많아 건물안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중계용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하였습니다. 밤이 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1992년 10월 28일 휴거에 대한 신봉자들이 종교 단체에 모여 들었고, 특히, 경기도 의정부, 전라북도 완주 등지의 종교단체에는 모든 신봉자들이 모두 경건해 보이는 하얀색 옷을 입고 모였습니다. 다미선교회 본부에도 "천국행 티켓"이라는 별명의 출입증을 저마다 목에 걸고 신봉자들이 집결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이들은 스스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예배" 라고 주장하는 휴거를 기다리는 종교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구경꾼과 경찰은 물론이요, 국내 TV방송사, 나아가 CNN과 아사히TV등의 외국TV 방송사들까지 모여들어, 굉장한 관심꺼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전국적으로 1백 55개 교회 8천 2백명의 신봉자들을 파악한 규모로 사건을 집계했습니다. 이날 가장 먼저 기이한 소식을 전한 곳은 경기도 수원의 한 조직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약 2백명 가량의 신봉자들이 모여서 행사를 치르고 있었는데, 8시에 한 사람이 "평택에서 예수님이 공중재림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9시경, 목사는 신도들에게, "평택에서 예수가 꽃으로 장식된 마차를 타고 공중에서 재림했으며, 공중들림이 일어났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에 신봉자들은 열광하여 환호했고,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신봉자들은 서로 감격에 차 악수하면서,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내, "하나님 아버지 어서 오세요"라고 부르짖으며 온몸을 흔들며 격렬히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후에, 경찰에서 조사에 본 결과, 이날 같은 평택에는 아무 일도 없었고, 행사 시작시간이 늦어져서 신봉자 세 사람이 모여 있었을 뿐, 예배가 시작조차되지 않은 헛소동이었다고 합니다. (재림 예수) 서울 마포구의 다미선교회 본부에서는 9시 부터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장림이 구속된 상태였으므로, 미국 담당인 장만호 목사가 행사를 이끌었고, 운집한 신봉자들은 미국, 일본,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 5백명을 포함해 1천 5백여명정도였다고 합니다. 건물을 20, 30대 청년 신봉자 50여명이 둘러치고 경비하여, 7백명 이상의 구경꾼과 취재진들을 막아선 상태로 행사는 시작되었습니다. 청년신도들은 출입증을 일일히 확인하여 신봉자들만 건물로 올라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배가 막 시작되던 무렵, 건물 불빛 속에서 나방 한마리가 날아올랐습니다. 그러자, 한 신봉자가 "나방이 휴거되고 있다" 고 외쳤고, 주위의 신봉자들은 감격하여 나방을 보며 "할렐루야"를 외쳤다고 합니다. 곧이어 10시 5분쯤 예배 광경을 야외 TV로 지켜보던 구경꾼들 중에서 고교 2년생 이모군이 소리지르며 나와서 "형이 휴거에 미쳐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며 울분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난동을 부리며 야외 TV를 공격, TV를 떨어뜨려 부수어 버렸습니다. 이모군은 곧 경찰에 연행되었고, TV가 부서져 TV중계가 불가능해진 다미선교회측은 야외 스피커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예배"를 중계하였습니다. 잠시후, CCTV화면에 붉은 조명등이 한 번 잡혔는데, 이것을 누가 보고 "성경에서 말하는 불기둥이다!" 라고 소리쳐서, 사방에서 함성이 일고 술렁이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당시 1992년 10월 28일 휴거 신봉자들의 기도광경) 신봉자들은 바닥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기도했고, 출가하여 속세를 떠나 살면서 휴거를 기다리고 흰옷을 입고 모였던 사람들도 일어나서 노래와 기도문구를 부르짖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본론과는 별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만, 서울 마포구 다미선교회 본부에서는, 11시 20분 경이 되자, 애인을 돌려달라고 주장하는 정모씨가 주변에서 관심을 가져 주지 않자, 옷을 벗고 나체로 시위하면서 인근 도로 30미터를 행진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사건은 아닙니다만, 해괴한 모습을 더하며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는데는 일조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정을 10분 앞둔 11시 50분. 다미선교회 본부의 신봉자들은 모두 일어나 울부짖고 온몸을 흔들며 가장 열정적인 기도에 돌입했습니다. 한편, 부산의 한 조직에서는 "신봉자들의 3분의 1이상이 휴거 직전에 들리는 신비로운 '나팔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을 들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 10월 28일 자정이 찾아왔습니다. (휴거다!) 대한민국의 전지역에는 이 때,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한국표준시로 자정이 지나자, 언론의 보도에서 흔히 쓰는 표현대로, 신봉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곧 이어, 신봉자들은 하나둘 주저 앉아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신도들은 "믿음이 부족한 저희들을 용서하소서"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한 여학생은 끝없이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으며 뚫어지도록 시계를 바라 보았는데, 자정을 한참 넘어선 시각을 가리키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는 묘사도 보도되었습니다. 혹시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여 TV를 보던 전국의 괴기물 애호가들 역시, "그러면 그렇지"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게중에는 한편으로는 너무 싱거워서 좀 아쉽다는 묘한 느낌을 받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경찰은 이 때, 실망한 신봉자들이 집단자살하거나 난동을 부릴 것을 우려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당혹) 신도들이 통곡하며 실망
NEW AGE 운동의 연구 및 대응
NEW AGE 운동의 연구 및 대응 2004-02-18 13:32:22 read : 30 1. 오늘 이 시대의 영적 위기 오늘의 서구세계는 그들의 정신세계가 탈(탈) 기독교화 되어감에 따라 기독교적 절대정신을 잃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긴박한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 특히 그 들의 정신세계는 피곤을 느끼고 물질문명에서 오는 여러가지 모순과 부조리로 인 하여 사회적으로, 사상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 실이다. 기독교계에서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현상 중의 하나가 과거 식민지역에서 의 선교활동 격감이다. 1967 1974년 사이에 프랑스에서는 9,000명의 천주교 신부 가 사제직을 사직했고, 1970 1974년의 4년 사이에 카톨릭 신학생의 수효가 68%나 격감했으며, 미국에서는 1973년 한 해에 200명의 신부가 사임했다. 지난 7년간에 걸쳐 신학생 수효가 49,000명에서 17,000명으로 줄었고, 동일한 추세가 서 구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데 대한 책임은 기독교교회의 세속화를 부채질 해 온 현대신학, 교회일치 운동 및 세속화주의에 그 화살이 돌려져야 할 것이다. 현재 서구사회는 위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 보고자 다음과 같은 해결방안을 모 색하고 있다. 첫째는, 낙관론적 휴머니즘을 통한 낙관적 미래를 구상함으로서. 둘째는, 동양의 종교와의 만남으로 인한 인격성의 신적 능력 회복과 깨달음을 통해서. 세째는, 약물과 환각재를 이용하여 무한과 직관적인 의식을 찾는 방법을 통해서. 네째는, 신비주의의 과학을 통해 인간의 잠재의식을 일개워 신적 초자아를 경험케 함으로. 그런데 위의 4가지 해결방안은 재미있게도 뉴-에이지 운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 는 주된 내용들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서양세계는 이미 기독교 정신세계의 몰 락으로 뉴-에이지 운동의 모든 사상들이 그대로 침투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 으로 예증하며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감사한 것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를 사랑하시어 이제 한국교회가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도록 축복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뻐 하기만 할 수 없는 것은, 이미 우리 한국교회 안에도 뉴-에이지의 물결이 흘러 들어와 벌써 사회는 물론이거니와 교회 구석에까지 이러한 반기독교요소(문화)들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이다. page 2.New Age 운동이란? :New Age란 단어 그대로 [새로운 시대] [새 시대] 혹은 [새 세대]라는 뜻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뉴-에이지 운동이라고 할 때에는 `새 시대`라는 의미의 한가지 뜻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그 용어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용어들이 혼합되어 사용된다. -미래학적으로는 신세계주의(New Globalism), 신세대,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제3의 세력(The Third Force/Energy), 수병좌(물병자리)시대(The Age of Aquarius), 그리고 종교적 또는 정신적으로는 새정신, 새로운 의식(New consciousness), 신초월주의, 인간 잠재력개발, 새로운 영성(New Spirituality), 신동방주의(New Orientalism), 우주 인문학(Cosmic Humanism), 등의 용어들이다. 이 용어들은 기본적으로 약간의 차이점은 있지만 어떤 동일한 전제들을 지니고 있다. 사실 뉴-에이지 운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 운동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에 그 성격이 매우 혼합적 이고, 그 현상이 다양하고, 그 범위가 수용의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운동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그 내용이 강렬하고 다양해서 그 정의의 정립에 대해 뉴-에이져들도 그 주장이 서로 다르고, 심지어는 이 운동을 `뉴-에이지 운동`이라고 명칭하는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운동이 내포하고 있는 성격과 현상들을 살펴 봄으로서 그 진상을 밝혀 낼 수 있다는 것뿐이다. 뉴-에이지 운동은 영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혼합체이며, 사회학, 신학, 순수과학을 다 포함하는 운동이고, 심지어는 의학이나 인류학까지도 포괄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인간잠재력을 중요시하는 운동으로서 스포츠, 공상 과학소설 그리고 영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운동이다. -G.Colloins 이와 같은 뉴-에이지의 다양성은 현대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그리고 문학, 음악, 영화 등의 문화 속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현대의 다양한 문화와 사상적 흐름을 잘 파악해 보면 그 안에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운동으로 일치점이 모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M.Basilea Schlink는 이와 같은 뉴-에이지의 특수성을 새로운 세계질서 체계를 위한 `다양성 안의 일치`(Unity in Diversity)운동이라고 간략하게 표현하였다. 즉 뉴-에이지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이(Without Jesus) 평화로운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겠다는 신비주의적, 세속 주의적 휴머니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과학적 합리주의에 따른 세속적 인본주의와 동양의 신비사상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대]의 이론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현대에 나타나고 있는 `사탄의 고차원적 전술전략`이다. 이 운동에는 혼합적이고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page 인간의 의식세계를 조종하려는 의도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등 심지어는 종 교까지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여 지배하려는 전략이 숨겨져 있는 일종의 운동 (movement)이다. 이 운동은 동양의 종교(특히 힌두교)에서 출발하여 서양의 과학적인 사고방식 으로 우리의 의식세계와 생활에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있는데 `모든것은 하나다`, `모든것은 신이다.`, `모든것은 선하다`라는 기본원리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을 무한한 비인격적 실체인 우주의 한 부분으로서 고차원적인 의식수행을 통하여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근본적으로 `모든 종교는 하나`라고 주장하고, 선과 악이란 없고 다만 인간에게 있어서는 모든것이 선(선)이라고 강조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이 운동에는 동양의 종교들과 심령과학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특히 대체종교(대체종교)로서의 명상, 요가, 선(선), 단(단), 기(기),등이 주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출판(서적), 음악, 영화 그리고 매스 미디어를 이용한 다양한 문화현상을 통해서 우리의 생활 깊숙히 침투해 들어오고 있 으며, 더 나아가 세계적인 정치현상을 통하여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데(프리 메이슨, 록펠러 재단, 환경보존운동, 여성운동 등), 놀라운 것은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 많은 영향력있는 개인지도자들이나 또는 지도그룹(UN등)들이 이 운동에 깊 히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New Age운동은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인 목표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종교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체의 경건(Q/T) 및 예배의식을 위한 기도문과 주문(주문) 혹은 주술(주술)단어, 명상단어들을 같고 있는 적그리스도 중심의 반기독교 운동이다. 3. New Age 운동의 역사적 배경 :1875년 뉴욕에서 러시아 여인 Helena Petrovna Blavatsky에 의해 창설된 `신지학협회(신지학협회)`에 근원을 두고 있다. 기본명제는 `모든 종교는 그들 사 이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것이다. 이 협회의 3대째 회장인 영국출신의 여자 Alice Bailey(1880 1949)는 소위 `지혜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악령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영매(영매)로서, 이 운동에 실질 적인 기초를 놓았고 그들의 대제사장으로 간주된다. 그녀가 악령으로부터 직접 받 은 내용들이 비밀원리로 작성되어 오늘날까지도 [계획(Plan)]이라는 이름으로 이 운 동의 지침이 되고 있다. 1975년까지 비밀지령에 의해 완전히 지하에 숨어 있었으나, 1975년부터 전세계 적으로 사용가능한 모든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새로운 시대]이론을 공개선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운동의 주장들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게 된 것은 Marilyn Ferguson이 쓴 [The Aquarian Conspiracy(물병자리의 음모)]에 의해서인데, 이 page 책에서는 그 동안에 숨겨져 오던 뉴-에이지의 [계획]들을 전 세계에 선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나타나 있다. 물병자리 : 하늘의 징조를 보고 예언하는 점성술에서의 12궁도(궁도)중 별자리의 하나. (산양 인마 전갈 천징 처녀 사자 큰게 쌍둥이 황소 백양 물고기 물병자리) 예수시대(물고기자리) 2000년 새시대(물병자리) 2012년 2012년 지구의 종말 : 1987. 8. 16-17(대합창-7분간 [아]하고 소리지름) 87. 8. 14.경향신문 1992. 1. 11 일11시 ([11:11]새문의 열림) -92. 1. 10. 국민일보 - 아틀란티스, 피라밋, 잉카(마야)문화 등의 고대유적들을 근거로. (1) 일반적으로, 고대 동방의 종교와 동양의 신비주의(Babylon & Mysticism), 현대 철학과 심리학(Feuerbach & Freud), 과학과 공상과학(UFO), 50년대와 60년대 의 반항문화(hippy & Punk)가 복합되어 현대적인 형태(Modern Religion)로 부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영지주의(Gnosticism):인간은 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이 신이 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 능력은 무한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더 나아가서 죽음 자체는 환생(환생)이라고 주장. 1세기 말부터 2세기경에 일어난 종교적 혼합주의 운동으로서,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지식에 근거한 보다 광범위한 사상. (3) Satan = Lucifer - Nazism(Hitler) - Jim Jones(Rajneesh) - Dr. Moon 4. New Age 운동의 철학적 배경 (세계관을 중심으로) :신 관 - 진정으로 참된 최고의 실재는 무엇인가? 인간관 -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내세관 - 인간이 죽은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윤리관 - 도덕의 기초는 무엇인가? 역사관 -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신관(신관) : 범신론(범신론 Pantheism) : 우주 자체와 그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신이 모든것안에 존재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신이며, 우리가 신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영적인 명상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 신과 하나가 됨으로서 완전하고 진정한 신이 되고 또한 신이 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한 존재가 신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이 되고, 존재하는 것 중 신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page (Everyone and everything is God. Their goal is to awaken our `higher self` through a mystical experience which is beyond the rational mind. So we have unlimited potential.) [Out on a Limb] by Shirley Maclaine - `I am the God` John Denver of NewsWeek`s interview - `Someday I`ll be a God` (2) 인간관(인간관) : 일원론(일원론, Monism) : `인간은 신이다`라는 신관의 기본원리에서 출발. 인간이라는 각각 개체들 은 특별한 가치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이며, 응 축된 힘의 집합체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신의 합일을 위한 `새시대 질서(New World Order)`를 위해서 인간과 신이 이원화 되는 기존의 질 서는 재거되어야 한다고 주장. (All is one. We are not separate beings, distinct from nature, god, or each other, but part of a great mystical Oneness.) (3) 내세관(래세관) : 윤회설(윤회설, Reincarnation) : 자아의 본질 자체에서 죽음이란 변함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육신을 바꾸는 것과 같다. 이생에서 축적한 인간의 지혜는 다음 생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의 순환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심판받아야 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자신이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We have lived before and will live again. There is no death, only birth and rebirth. Again & again.) (4) 윤리관(륜리관) : 상황윤리(상황륜리, Situation Ethics) : 모든 것은 선하다(All is good)라는 전제 아래 출발. 죄가 지적되지 않는다. 궁극적인 실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절대적인 선도, 악도, 진실도, 거짓도 구분되지 않고 초월한다라고 주장. 성윤리에 절대적 규범을 가하지 않으므로 아울러 성도덕이 문란. 많은 그루(Guru)들과 뉴-에이지 기수들. (5) 역사관(력사관) : 인간의 신격화(신격화) : 역사의 주체(주인)가 인간이라는 인간중심의 역사관. 동, 서양의 두가지 역사관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데, 서양에서의 이데올로기를 목표로 한 진보주의적 혹은 진화론적 사관과 동양의 종교에 나타난 윤회사상에 기인한 순환 사관(순환사관)이다. 이 두 유형의 역사관에는 어떤 하나의 기본적인 전제와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신격화이다. 그리고 그 신격화를 통한 지상낙원 즉 세계정부를 통해 지상의 천국을 이루어 나가려는 과정으로 이해. 위의 두 유형의 사관은 차이가 있는 듯이 보이나 그 중심에는 휴머니즘이라고 하는 인간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사실 역사인식의 출발이 인간이고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책임지며 인간의 종교적 노력과 이성과 기술의 능력으로 역사를 변화 시키겠다는 인간중심의 역사관이 공통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page LUCIS TRUST(Lucifer Publishing Company - World Goodwill, Arcane School, Triangle), PACIFIC INSTITUTE(New Age Thinking), PEOPLE FOR THE AMERICAN WAY(Anti-Fundamentalist Organization from norman lear), NEW GROUP OF WORLD SERVERS(From Alice Bailey), PLANETARY CITIZENS(David Spangler, U Thant, Mark Satin), PLANETARY INITIATIVE FOR THE WORLD WE CHOOSE(initiator), UNITY-IN-DIVERSITY COUNCLI(Spectrum), THE SUTPHEN CORPORATION(Self-Help Update & Reincarnation Report), P & G Co. 7. New Age 운동의 활동상황 (침투방법) 1단계 : 평화, 반전, 군축, 영성운동 (feminism) 전개. 2단계 : 지상천국 주장 (Without Jesus!) 3단계 : 건간생활 프로그램 사용(대체로 동양의 심령기술을 변형한 명상, 마인드 콘트롤, 자기암시, 요가, 최면술, 초능력, 이완요법, 적극적 사고의 활용)..... 신앙과 신념과의 혼돈 (I can do! in Christ) 4단계 : 심령서적 (정신세계사, 고려원) 개발, 심리정신센터-Sigmund Freud 5단계 : 사회 각계 각층에 침투-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종교 전분야. 6단계 : 단일세계정부의 실현 단일세계경제체제의 건설 단일세계종교의 통합 적그리스도의 출현. 8. 오늘의 현상들 (실례) <미국을 중심으로> (1) : 3천4백만 - 신비주의와 관련 / 성인의 42%가 죽은 자와의 접촉가능성 믿음. (2) Rev. Andrew Greely : ESP(Extrasensory Perception) - 성인의 67%인 7천만명이 경험 / 25% 해당하는 3천만명이 윤회설 믿으며, 14%가 영매 (영매)의 역할 인정. (3) Gallup Poll : 9백만명이 심령치료 경험 / `72-`84 국교생들 점성술 신뢰도 - 40%에서 59%로 증가. (4) 주요기업 : Super Learning(초원학습-창조력 개발훈련)프로그램, 경영훈련 세미나 - 정치단체, 지식인 그룹, 기업이나 정부 두뇌집단. (5) 군사훈련 : Army War College(미육군전투대학) - Marilyn Ferguson. [Army`s Organizational Effectiveness School] (6) 상품 : 피라미드, 수정, 조각품, 방향제, 축하카드, 목걸이, 컴퓨터점, 마사지 기구. (7) 출판 : Road less Traveled(by scott peck), Urantia Book, A Course in Miracles (8) 영화 :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Jesus`(Thorsen) (9) 어린이 : [걸스카우트]뱃지 - `The world in My-community`, `Bridge to Adult`, He-man, She-Ra, Mighty Mouse(CBS) page (10) UFO, Postmodernism, Syncretism, Avant Garde(performance), 초능력, 기... (11) New Ager, Marilyn Ferguson says; `많은 사람들이 뉴-에이지에 빠져들므로서 교회가 더 이상 그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게 되고, 그로써 기독교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을 갈망한다.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동경하는 것이다.` (12) Christian Author, Robert Burrow says; `현실적이고 침투력이 강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신조와 활동은 일반문 화에 동화되어 현대문화 조류와 혼합되므로써 점점 몰락해가는 인간의 정신을 강하 게 끌어 당기면서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 <국내를 중심으로> (1) 의식을 통한 침투현상 철학 : 초현실주의라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삶의 전 영역에 확대. - 부조화의 조화가 특징 / 절대진리에 대한 부정 / 다원화 주장 `새로운 시대`이론 등장 (머릴린 퍼거슨) `종래의 낡고 규제된 가치관이나 사회규범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룩하자`는 논리. - 낡은 사고방식에서의 해방 주장. - 새로운 시대의 이데올로기 주장. 종교 : 포스트모더니즘 신학 등장 (종교보편주의, 종교다원주의) - W.C.C.의 `종교간의 대화` (기독교의 독단성에 대한 모든 종교와 사회전반에 흐르는 비난) / 세계종교회의를 통한 종교통합운동의 움직임 활발. (1986년 세계종교회의) 대체종교(대체종교) 형성 : 대학마다 단, 선, 명상 모임 등 써클활동 활발 - 현재가지 큰 관심과 인기 중. 신비명상 유행 (심령술) : 한국 TM센터 (창조지성학회), 실바 마인드 콘트롤 한국본부(한국정신조절 연구회), HCP(Cosmic Power)연구소, 스핑크스 체질 개선 연구회, ESP과학연구소, 라즈니쉬 명상모임 센타들이 형성, 활동 중. 사주 명리학(한국역술인협회 통계 - 역술인 수 약 10만명으로 추산), 한국주역학회 결성 (40명으로 구성), 구통도가 구도회, 수신명가 써클. (2) 문화를 통한 침투현상 영화 : 사랑과 영혼, 사랑의 기쁨, 사랑의 목걸이, 꿈의 구장, 천년유혼 등의 신비주의 및 공포 드릴영화 / 미국스타들 - 헐리우드에 영매(영매) 바람유행 (접신, 초혼, 강신술 인기유행) TV : 어린이 만화영화를 비롯한 E.T, 드래곤볼, 히멘 등 / 늑대와 미녀, 미녀 와 야수, 그것이 알고 싶다. / 미국 각 방송사 접신, 초혼 등 인기프로에 방영. page 출판 : 정신세계사, 고려원, 세계사, 김영사, 서림문화사 - 주로 영혼의 스승 들 소개, 명상수행 깨달음, 삶의 지혜, 새로운 세계의 열정, 영혼과 초자연의 세계, 토양의 재발견 등. 예술 : 포스트모더니즘, 전위 및 행위예술, 현대무용. 음악 : 뉴-에이지음악 (김수철의 `불림소리`, 김도향의 `태교음악`) 상품 : 각종 모든 상품 및 어린이 장난감, 화장품, 신종 건강식품 (약초 등) 만화 및 비디오 : 어린이 프로에서 성인 포로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3) 체제를 통한 침투 정치조직 : UN, 삼각위원회, 외교관계위원회, 아스펜인류학연구회, 프리메이 슨, 장미기사회, 로마클럽, 세계미래사회 등 / 미국방성 안에 영상실 운영. FBI, CIA 등에 뉴-에이지 의식침투. 경제조직 : 록펠러재단, 핀드혼제단, 포드재단, 빌더버그그룹 공동체 : 스텐리 공동체, 오레곤주에서 이미 추방된 바 있는 라즈니쉬 공동체 (4) 상징물 : 별지 사진자료 참조. 9. New Age에 대한 기독교 관점 (M. Basilea Schlink) 이 세계는 평화와 행복과 빛으로 가득한 `새로운 시대`로 발전해 온것이 아니라, 오직 대심판을 받기에 합당하도록 죄악이 가득하여 하늘까지 차서 결국 심판을 불러 올 수 밖에 없다. 뉴-에이지 운동에서는 결코 말해지지 않는 죄 - 바로 이 죄가 오늘날 전 세계에 가득하다. 죄악을 회개함 없이 이 지구 위에 천국을, `새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사탄의 거짓 유혹이다. 이들은 결코 죄, 회개, 십자가를 말하지 않으며 사람 들로 하여금 `편안하다, 안전하다`라고 말하게 한다. `새로운 시대(New Age)`는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서만 시작될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생명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은 바로 회개와 용서를 통한 예수님의 구속하시는 보혈의 권능으로만 가능하다. 10. New Age 운동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대응 (1) 영적 실재(Spiritual Reality)를 인정할 것 :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 속에 함게 계시는 성령의 존재와 역사를 인정하고 믿듯이, 악령의 존재와 그 역사도 아울러 인정해야 한다. (2) 우리의 씨름은 `영적 싸움`임을 항상 기억할 것. (엡 6:12) (3) 마지막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영분별의 은사`를 사모하여 깨어 있도록 한다 (요일 4:1, 고전 2:13). 우리가 그들과 대항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의 본질과 실체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page (4) 가능한 한 뉴-에이지 운동의 정체와 그 비밀을 세상에 밝히고,보다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대처할 수 있도록 개인이나 단체들끼리 서로가 긴밀한 협력 으로 정보교화을 하며 유대활동을 펴가도록 한다. (5) 올바른 기독교문화관을 정립하도록 한다. : 뉴-에이지에 앞서 모든 정보매체들을 활용하여 뉴-에이지의 의도와 목표가 기독교의 말살에 있다는 해악성을 교회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런 이유로 `기독교 TV`의 설립은 시급하다. (6) 신권운동의 회복 / 주존심위주의 삶 / 실제적 무신론 배격. (7) New Age에 대한 실제적 대응방법 (Douglas Groothuis) - 분리 (Separation) : `예`와 `아니오` / 천국과 지옥 / 흑백론리 / Syncretism. - 변형 (Transformation) : 적극적, 능동적 대체 - 대학가, 기독교 TV. - 보존 (Conservation) : 영적 실제와 능력 인정 / 유물론 반대 / 인간의 잠재력(가능성) 공감 - 피조물 신격화.
'신종 이단·사이비에 관하여'
'신종 이단·사이비에 관하여' 2003-06-16 02:46:29 read : 2322 한장연, 이단·사이비대책 세미나 개최 지난 6월 5일 한국백주년기념관에서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전병금)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위원장 황호관) 주최로 '신종 이단·사이비에 관하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단·사이비대책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1부 예배는 황호관 위원장의 인도로 진행되었으며, 이어 2부 순서에서 먼저 박광현 목사(부천성암교회)가 '최근에 활동하는 이단·사이비'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의 약 1/5이 이단 추종세력이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단 역시 복음으로 전도해서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이단에 대해 비판은 하되 공격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박 목사는 먼저 "이단은 '자력으로 취하다'는 의미의 '하이레티코스'라는 성경용어에서 유래했으며, 분리론자나 이단적인, 분리나 분열을 일으키고 당파심을 조장하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그는 "이단은 전통도 없으면서 오히려 전통을 앞세우기도 한다"며 "이단자들은 그들의 잘못에 대해 한두번 훈계한 후 멀리해야 한다(딛3:10)"고 주장했다. 또 그는 "기독교 2000년사에 나타난 이단들의 특징은 전통적 성경교리의 변조와 분쟁, 살인, 인권탄압, 재산탈취, 가정파괴, 정치세력 규합확장, 교회재산 사유화, 교회의 부패, 교역자의 타락, 국가의 재앙, 사회여론 악화, 교회기능방해, 교단 기득권 세력 포섭 교권주의로 타락시킴, 양심의 마비, 각종 음행을 행하는 것 등으로, 미혹된 자들로 성화가 중단되게 하며 마귀의 열매를 맺게 하고(마 7:22-23)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망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박광현 목사는 사이비에 대해 "이단이 아닌 경우의 비 성경적 주장을 하면서 기존 건전 교단의 교리보다는 이단의 속임수를 오히려 즐겨 추종하여 이단에 가까운 개인이나 집단으로, 성경 진리 싸움에서는 비 진리편에 서는 것이 특징이며 자신들의 명성을 이용하여 이단들을 홍보하고 건전한 교계를 미혹시키는 악령의 역사로 이단을 키우는 온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단과 사이비의 차이점에 대해 박광현 목사는 "이단은 같은 이름의 종교로 같은 교리를 표방하면서도 정통 교리의 전통과 권위에 반항하여 어긋난 사상과 이설을 주장하는 것을 말하나, 사이비는 어떤 특정한 종교를 표방하지 않고 나름대로 만들어 낸 교리나 여러 종교를 혼합한 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이비자들은 이단자들을 키우고 이단자들은 사이비들을 토대로 성장하며 서로 상부상조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 목사는 "이단과 사이비의 특성과 공통점으로는 성경을 부정하고 교주를 하나님과 직접 계시를 주고 받는다고 주장한다"고 말하고, "그리스도를 격하하고 종말을 강조하며, 외부와의 관계를 될 수 있으면 끊고 부정과 범죄를 숨기려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광현 목사는 "이단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도록 가르치(벧후 2:1)는 등 성경에도 이미 예언되어 있으며, 이단과 악령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성경구절을 들어 설명했다. 특히 "그리스도와 바른 교훈을 부인하고 다른 복음을 쫓는 이단과 사이비는 신도들을 이익의 대상으로 삼으며, 헛된 마로 변론하고 허탄한 말과 음란으로 유혹한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다음과 같은 이단 식별의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1) 사도신경과 신앙고백여부를 가지고 이단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2) 정통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도리를 믿는데 반하여 이단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3) 정통교회가 신구약 66권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데 반해 이단들은 신구약성경의 권위보다 그들의 다른 복음에 권위를 부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계속성을 주장하고 있다. 4) 이단들의 대부분은 기성교회 교인들을 대상으로 삼아 미혹하고 있다. 5) 이단들은 그들의 지도자들을 반드시 숭배의 대상으로 삼거나 신격화한다. 6) 이단들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의 온상에서 독버섯처럼 발생한다. 7) 성경해석에 있어서 이단들은 오류를 범한다. 또 "사이비는 사전적으로 '겉으로는 제법 비슷하나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름'이라는 의미다"고 정의하고, 사이비 확인법을 제시했다. [성경으로 판별] 1) 사이비는 이단이 아닌 경우의 비 성경적 주장을 개인이나 집단이다. 2) 사이비는 기존 건전 교단의 교리보다는 이단의 속임수를 오히려 즐겨 추종하여 이단에 가까운 개인이나 집단이다. 3) 사이비는 성경 진리 싸움에서는 비 진리 편에서는 특징이 있다. 4) 사이비는 자신들의 명성을 이용하여 이단들을 홍보하고 건전한 교계를 미혹시킨다. 5) 사이비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 악령의 역사에 편승한다. 6) 사이비는 이단으로 규정할만한 근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글을 쓰거나 설교집을 내지 않기 때문에 연구자료가 빈약하지만 추종자들의 비 성경적인 주장을 통해 발견된다. 7) 사이비는 노출된 이단자와는 달리 비 노출된 형태로 광범위하게 산재하여 미혹케 하는 행위이다. 8) 사이비는 정부의 권력기관이나 언론기관, 교계의 조직들에 침투한다. 9) 사이비는 부흥사 협회나 기도원 집회에 적극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다. 10) 사이비는 기독교회를 미혹하여 부패케 하는 이단을 추종하거나 선전하는 비 인격자로 이단을 비호하여 키우는 자들이다. 11) 사이비는 이단자들의 금품 공세에 미혹되어 이단을 키우는 꼭두각시들이다. 12) 사이비는 이단자들과 공동보조를 취하고 그들과 공생하고 있음으로 결국 이단자들의 공동세력이다. 13) 사이비는 결국 이단으로 들어가는 입문과정이다. [행위로 판별] 1) 사이비는 이단과 결탁하여 행동하거나 독립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2) 사이비는 이단자들과 결탁하여 이단자들을 비호하거나 홍보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3) 사이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신앙인 같으나 불순한 이단자들과 교제하거나 그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이단자들이 유리하도록 행동한다. 4) 사이비는 건전 교회의 명의로 이단과 관계를 맺고 추종하여 이단의 선전하거나 이단의 방패 역할을 한다. 5) 사이비는 2중 인격적 행동으로 이단자들의 술수에 빠져 불법을 행한다. 6) 사이비는 정통교회를 부패케 하고 이단자들에게 유리하도록 행동한다. 7) 사이비는 이단자들에게 맹종하여 추종하지는 않지만 표리부동한 행동으로 건전한 교회를 기만하는 행동을 한다. 8) 사이비는 이단자들의 계획에 따라 그들의 확장진로의 개척자로 행동한다. 9) 사이비는 이단자들의 하인배노릇을 한다. 10) 사이비는 이단자들의 속임수를 즐겨 실천하는 행위자들이다. 11) 사이비는 외형상 건전한 신앙인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악령의 추종자들로 행동한다. 박광현 목사는 이단과 사이비의 발생원인을 국가·사회적 혼란과 영적인 무지, 교회 지도자의 신학 부재 등에서 찾았다. 또 "성경 교리를 알지 못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좀 깨달은 것을 최고이며 유일하다고 믿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단자들이 자기가 이단인 줄도 모르고 이단자들이 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단을 감싸 키워주는 집단과 맹목적인 신앙으로 이단에 미혹되는 신자들도 한 원인"이라고 박 목사는 설명했다. 박 목사는 "이단과 사이비는 교회가 부패하고 멸망, 세속화 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특히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박광현 목사는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시급한 대책으로는 기존 성도들이 그곳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단 사이비에 대한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신세대 청년들을 잘 보호해야 하며, 특히 문제있는 청년이나 신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등 예방에 철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발제를 마무리 지었다. '주요 이단단체의 활동현황' 심우영 국장, '이단 연구는 복음이 전제 되어야' 심우영 편집국장(월간 현대종교)은 이단 단체로 규정된 집단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4개 단체를 선정, 이들의 발생역사와 포교 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눈물로 피해를 호소하는 많은 피해자를 접해보면서 필자가 항상 느끼는 것은 성도들과 교회가 이단 단체의 실상과 특성에 대해 평소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고 말하며 '주요 기독교계 이단단체의 활동현황'에 대해 발제를 시작했다. 심우영 국장은 "최근 기독교 이단들의 활동을 살펴보면 급변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문화에 적극적으로 편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통 기독교가 복음의 기치를 앞세우고 부수적이 방편으로 문화를 도구로 사용하는데 반해 이단 단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실체는 물론 종교성을 배제한 채 사람들에게 접근한다"며 "해당 단체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일단 사람들에게 친숙해지고 단체에 대한 소속감을 부여하고 나면 교리 주입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증언한다"고 말했다. 심우영 국장은 결론에서 "이단에 대한 대응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예방을 위한 교육이며 이를 위해서는 심층적인 조사에 의한 해당단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이고도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의 현실은 이 두 가지가 모두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심 국장은 "최근의 이단 연구에 있어서 시대에 뒤쳐지고 이단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또 심 국장은 "이단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도 저들이 다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식하에 복음 앞에서 바른 신앙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권면하고 계도해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힘을 과시하듯 성급하고도 섣부른 이단판정은 진정한 연구가의 자세가 아니며, 대안 없는 비판은 비방일 뿐이며 논의 없는 일방통행은 이단연구의 소중한 사명을 빛바라게 할 뿐"이라고 밝히고 "이단에 대한 연구는 복음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발제를 마무리 지었다. 심우영 편집국장이 밝힌 이단 단체 1. 기독교복음선교회 (舊 JMS) - 대표자 정명석 2.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무료성경신학원) - 대표자 이만희 3. 하나님의교회안상홍증인회(세계복음화선교협의회) - 설립자 안상홍, 대표자 김주철 장길자 4. 대한예수교침례회한밭중앙교회(구원파) - 대표자 박옥수 5. 대한예수교장로회 녹산교회(구 혜성교회) - 대표자 유복종(현재 유자현으로 개명) 6. 임마누엘교회(구 세계복음화다락방전도협회) - 대표자 유광수 크리스천투데이/ 김규진 기자
개신교 소종파, 성상납·혼음 ‘피갈이’ 정말?/ 2013-02-21
개신교 소종파, 성상납·혼음 ‘피갈이’ 정말? 한국에 하느님 20명, 재림예수 50명 있다 극단적 보수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의 주류 개신교는 극단적 소종파와 ‘안티 기독교’라는 안팎의 저항에 직면해 있다. 서울 명동에서 한 개신교인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란 펼침막을 들고 전도하고 있다. 한국 소종파의 역사… 기독교 안에서 활동하다 주류 교회 배척 시작되면 경계 넘어서, 선지자 자처하다 말년엔 신의 반열에 올라 1927년 함경도 원산에 예수가 자기 몸에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났다. 원산 감리교회를 다니는 유명화라는 신도였다. 그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부흥집회를 인도했는데, 부흥회의 하이라이트는 예수의 영이 몸에 내린다는 ‘강신극’이었다. 전통 무속신앙의 신내림굿과 유사했다. 주위로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백남주, 감리교 목사 이호빈·이용도 등이 모여들었다. ‘원산파’로 불리는, 한국 신비주의 소종파의 원류다. 주요 특징, 신비주의적 ‘신과의 합일’ 이들과 별개로 ‘새주파’로 불리는 또 다른 신비주의 집단도 있었다. 1923년 입신 체험을 통해 예수와 대화했다는 여신도 김성도가 구심이었다. 새주파란 이름은 김성도의 추종자들이 그를 ‘새주’로 부른 것에서 유래했는데, 김성도가 죽은 뒤 ‘복중교’란 이름으로 1940년대까지 연명했다. 원산파와 새주파 모두 기성 교회들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됐다. 하지만 이들의 신비주의는 ‘이스라엘 수도원’을 세운 김백문을 거쳐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선구가 되는 통일교(문선명)와 전도관(박태선)의 교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았다. 신과의 합일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적 신앙 행태는 지금까지도 한국 개신교계 소종파의 주요 특징이다. 2000년 문화관광부의 의뢰로 국제종교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한국의 종교단체 실태조사연구’는 개신교 계통 소종파를 크게 △신비주의 △종말론 △외국계 신흥종파 3가지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우세한 것은 신비주의 계열이다. 신비주의 계열은 다시 △베뢰아아카데미(귀신론) 분파 △신비주의 기도원 분파 △직통 계시파 △전도관 분파 △장막성전 분파 △통일교 분파로 나뉘는데, 최근 개신교계가 대대적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은 장막성전 분파에 속한다. 장막성전은 1960년대 경기도 과천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서울대공원이 들어선 막계동 일대가 이들의 ‘성지’다. 신천지 교회의 본부가 과천에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장막성전은 1966년 한국 소종파 운동 사상 가장 나이가 어린 유재열(당시 17살)이 세워 화제를 뿌렸다. 장막성전이란 이름은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15장 5절 “또 내가 이일 후에 보니 하늘에서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장막성전의 등장과 분열, 신천지의 등장 과정) 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실현됐다. 기독교복음선교회(JMS)나 안상홍증인회 같은 교회도 나가봤지만, 가장 성경의 계시에 부합하는 곳은 신천지라고 확신한다.” -신천지의 청년신도 임아무개 유재열은 1960년대 초부터 부모와 함께 서울 상도동의 호생기도원을 다니며 신비주의 신앙에 몰입했다. 1965년 예수의 계시를 받았다며 이듬해 ‘종말 심판의 피난처’라는 장막성전을 설립했다. 전성기에는 막계동의 청계산 저수지 일대에 신도 2천 명이 모여들어 집단생활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은 내부자의 투서 때문에 사기죄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나온 뒤 교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1980년 기성 교단에 교회를 헌납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해 사업가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막성전 기본 골격 그대로 신천지로 그가 떠난 뒤 장막성전은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무지개증거장막 등 여러 갈래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재열은 자신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가 있으며 14만4천 명에게 구원의 징표를 주는 사명이 주어졌다고 했는데, 성서 해석과 교리의 기본 골격은 핵심 추종자이던 이만희(현 신천지 총회장)를 통해 지금의 신천지에 고스란히 전승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월18일 만난 신천지의 청년신도 임아무개(31)씨는 장막성전의 등장과 분열, 신천지의 등장 과정을 “모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실현된 것”이라며 “기독교복음선교회(JMS)나 안상홍증인회 같은 교회도 나가봤지만, 성경의 계시에 부합하는 유일한 곳은 신천지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신천지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의 소종파들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존재와 함께 신비주의와 종말론적 흐름이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진구 연구실장은 “예언서·계시록의 종말론과 민족주의적 선민사상이 결합해 재림예수가 한국에 온(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소종파에서 보이는 보편적 흐름”이라고 했다. 이런 흐름이 형성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한국교회사 연구자인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교권화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와 극심한 빈곤의 경험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발문2: “교권화된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영적 체험에 대한 열망에서 싹튼 해방 전 신비주의 그룹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종말론적 계기와 만나고, 때맞춰 등장한 카리스마적 개인들이 이 흐름을 주도하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 이렇게 등장한 소종파들은 처음엔 기독교의 카테고리 안에 머무르며 활동하지만, 교세가 늘고 주류 교회의 배척이 시작되면 점차 그 경계를 벗어나게 된다. 선지자나 성령, 재림예수를 자처하다 말년엔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박태선(천부교)·안상홍(하나님의 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탁지원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에 따르면 국내 소종파 지도자 중에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20여 명, 재림예수를 자처하는 경우가 50명이 넘는다. 이 밖에 하느님의 부인이나 보혜사 성령, 혹은 성서 속 인물인 엘리야나 다윗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소종파 집단 안에서 지도자 개인의 카리스마가 절대화하다보니, 공교회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횡령이나 폭력, 추행 같은 문제가 외부로 노출되고 결국 사법권력의 개입을 부르는 경우도 빈번하다. ‘영체교환’ 교리에서 성상납·혼음 나타나 일부 소종파는 교주에 대한 성상납, 혼음 등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1950년대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가 그랬고, 최근에는 JMS 여신도들의 나체 예배 동영상이 공개돼 물의를 빚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초기 신비주의 소종파에서 나타났던 ‘영체교환’(일명 ‘피가름’) 교리의 유산으로 보는데, 신령한 존재의 성혈(聖血)을 나눠가짐으로써 죄와 타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술적 믿음이다. 하지만 문제가 된 소종파들은 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거나 일부 열성 신도들이 벌인 해프닝이라 부인하고 있어, 그 실체에 대해선 추측이 구구하다. 이세영 기자
거짓말 시스템 신천지 추수꾼의 모략/ 김필곤 목사/ 열린교회/ 2008-05-25
거짓말 시스템 신천지 추수꾼의 모략 교회를 통째로 삼키는 신 천 지의 포교 전략인 “산 옮기기” 동영상이 신앙인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산이란 신 천 지에서 ‘교회’를 뜻하며 정통 교회를 신 천 지화 시킨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그들은 산 옮기기 대상으로 50명 이하의 소형교회, 목회자가 청빙되어 온 교회를 선정합니다. 위장하여 먼저 들어간 추수꾼이 일꾼이나 재정이 부족한 소형교회의 약점을 노려 철저히 위장하여 신 천 지 심방 전도사를 끌어들이고 전도를 위장하여 신 천 지측 신도를 끌어들여 세를 확장한 후 목회자를 쫓아내고 교회를 접수하라는 것입니다. 강사는 강조하여 “확실하게 이리 옷을 입어라”“전도사들 쫓아내고, 마지막에 목사를 쫓아내라”“성도들 마음 다 잡아 버려라”“꼬리가 아닌 머리가 되면 빨리 먹기가 쉽다”는 등 노골적인 용어를 통하여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들으면 비이성적이고 불법적 행위를 강요하는데도 그 말을 듣는 신 천 지 사람들은 “아멘”하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도와 섭외방법 교재를 보면 이렇게 하는 것을 “모략”이라고 말을 합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볼 때는 “거짓말”, “사기”인데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양심을 작동하지 못하도록 “모략”이라는 단어로 포장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리를 잡으려면 이리옷을 입어라. 귀신도 속여라.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 모르도록 헷갈리게 하라. 카멜레온 앵무새가 되어라.”라고 말하며 속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20 여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길가에 사람 만나면 “새벽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오늘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했다라고 속이라는 것입니다. 상가에서 가장 믿음 좋으신 분을 물어 “저는 선교사 후보생으로 현장 실습 중에 도움을 구하고자 찾아왔습니다.”라고 속여 접근하라는 것입니다. 추수밭에 갈 때는 “이사 오려고 하는데 목사님 말씀이 제일 좋은 교회가 어디 인가요?”라고 물어 섭외자의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뒤 접선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과 너무 닮았어요” “기도하는데 집사님이 자꾸 생각나서 전화 했습니다.” “꿈에 보았어요.” 등의 거짓말을 하며 위장하고 접선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모략”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그것을 성경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개역 성경에 “모략”이 들어간 성경구절을 아전인수 격으로 인용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가나안 정복시 모략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셨고, 여호수아도 아이성 공격시 하나님의 모략으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의 특성이 “지혜와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사11:2)”이라고 가르쳤고, 잠 20:18에서는 “모략을 베풀고 전쟁하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에 대한 양심의 심음을 잠재우기 위해 롬3:7을 인용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지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구절의 인용은 성경의 문맥적 의미와 언어의 “내포와 외연”을 모르는 무지에서 온 잘못된 인용입니다. 개역성경의 번역에 “모략”으로 번역된 단어는 원어에서 동일하지 않고 뜻이 다르게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사야11장 2절에 나오는 모략은 “에짜”라는 말로 “충고, 계획” 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KJV 버전에서는 “the spirit of counsel”로 번역을 하였고 공동번역에서는 “경륜”으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잠언 20장 18절에 나오는 “모략”은 원어에서는 “타흐부라”로 “좋은 충고, 권고, 지도, 조언”의 의미를 가집니다. 원문은 똑같은 단어이지만 개역성경 자체에서도 문맥의 의미에 따라 “인도”(욥37:12), “도략”(잠11:14), “도모”(잠12:5) 등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롬3:7은 거짓말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가령 우리가 거짓말을 해야만 반대로 하나님의 진실성이 더 크게 드러나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다고 칩시다...만일 여러분이 이런 논리를 편다면 결국에 가서는 우리가 악하면 악할수록 하나님께는 더 좋은 일이 된다는 말이 되고 맙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파멸을 당해 마땅합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략은 “충고, 지도, 계획, 경륜” 등의 의미를 내포하지만 국어 사전에 보면 모략(謀略)이란 “계책이나 책략.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 남을 해롭게 함. 또는 그런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모략”은 하나님의 경륜과 계획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매우 교활한 방법과 불법으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책략 ·음모 ·종교적 공작, 거짓 시스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모략은 거짓이나 위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8:44)”입니다. 그들이 하는 거짓말은 의식적으로 남을 속이기 위해 곡해하는 거짓말입니다. 의도성이 개입한 적극적인 거짓말이며 계획된 거짓말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않고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목적으로 이끌려는 사악한 거짓말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거짓말이 옳다는 강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때 불안과 초조함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설득력 있는 언변에 자기애적 우월감과 자신감이 넘쳐 있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나타나 거짓말이 삶의 시스템이 됩니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진리”(요14:6)라고 말씀하셨고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거짓 선지자(벧후2:1; 유18; 행20:29)는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교훈으로 접근합니다. 진리와 거짓을 혼합하여 순진한 신앙인들을 미혹합니다. 이단들은 교주를 신격화하고, 계시 지향적인 체험신앙을 강조하며, 거짓 예언, 특수한 집단체제, 지나친 종말론, 기독교의 기존 권위와 정통성을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외에 자신들의 정경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만이 절대적인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정욕적이고 호색적, 반사회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며, 금전을 강조하고, 대부분의 사상은 이원론입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거짓을 밥 먹듯 합니다. 성경은 이런 자들에 대하여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 2:1)”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하여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도 말지니라(신5:20)”라고 말씀하십니다.♥
공연 도중에 인육을 먹는 퍼포먼스 레이디가가 토나올것 같네요/ 2012-04-24
공연 도중에 인육을 먹는 퍼포먼스 레이디가가 토나올것 같네요 공연 도중에 인육을 먹는 퍼포먼스 레이디가가 토나올것 같네요 맨 마지막 동영상 강추 입니다 - 레이디가가의 실체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콘서트 반대 - 그 이유 레이디가가는 동성애자로 공연도중에 동성애자 엘런과 키스하다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콘서트 - 절대반대 ] 엽기 가수 레이디가가가 미국 유명 토크쇼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출연해 진행자인 엘렌 드레저러스(53)와 키스를 하는 장면이다. 엘런은 레즈비언 동성애자로 이를 본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콘서트 반대 - 레이디가가 주다스의 포스터] 레이디 가가의 새노래 \\\\\\\'주다스\\\\\\\'는 막달라 마리아의 관점에서 본 내용을 가사에 담고 있다. \\\\\\\"난 구제불능, 유명한 창녀, 매춘부, 창녀들의 말을 내뱉지.\\\\\\\" (I am beyond repentance, Fame hooker, prostitute wench, vomits her mind) 라는 가사로 성녀 마리아를 모독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반대 - 공연도중 자살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나중에는 죽는 장면 연출] 위의 사진은 레이디가가 공연도중에 자살하는 퍼포먼스이다. 온몸에 피를 묻히고 절규하듯 노래를 하다가 죽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중 한 장면이다.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반대 - 공연도중에 피로 온몸에 뿌리고 자살 하는 퍼포먼스] 레이디가가의 엽기팬 고양이 살해뒤 \\\\\\\" 고양이 피로 온몸에 발라\\\\\\\" 영국 음악 잡지 엔엠이에 따르면 가가의 한 팬은 그의 무대의상을 따라 하기 위해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무참히 죽인 뒤 그 피를 온몸에 묻히는 끔찍한 행각을 벌였다. 이 팬은 지난 \\\\\\\'2009년 MTV 뮤직 비디오 어워드\\\\\\\' 당시 가가의 의상을 흉내 내기 위해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당시 가가는 가짜 피를 몸에 묻힌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선 바 있다. 레이디가가 공연도중 인육 먹는 퍼포먼스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반대 - 공연도중 인육 먹는 레이디가가 퍼포먼스]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콘서트 절대반대 - 공연도중 인육 먹는 레이디가가 퍼포먼스2]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반대 - 인육 먹는 레이디가가 쇼킹] [레이디가가 내한 반대 - 이런 변태적인 공연을 보고싶으세요?] 정말 레이디가가 공연 토나올 것 같습니다. 공연도중 자살, 성행위, 동성애성행위 ,인육까지 어떻게 돈이 좋다기로서니 저런 변태녀를 초청해 공연한다는 건지?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 반대 - 남성의 성기 모양의 구두를 신고다니는 레이디가가] 레이디가가 내한 공연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 청소년과 청년들을 다 자살하고 , 변태 성행위를 하며 , 인육먹는 인간으로 만들고 싶은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보고 듣고 함으로서 학습이 된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가뜩이나 엊그제 카이스트 대학생이 자살하고 영주에서 중학생이 자살하는 판국에 자살을 조장할 일 있나? 레이디가가의 공연을 보면 자살에 대해서 찬양하는 듯 자살을 독려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저런 정신나간 레이디가가 내한공연은 절대 있어서는 안됀다. 현대카드는 레이디가가 내한공연을 취소하라~!!
괴한 구리 이단상담소 침입해 시설물 파손/ 2013-06-14
괴한 구리 이단상담소 침입해 시설물 파손 2009년 상담소 개설 후 첫 습격...목격자들 신천지 관련성 의혹 제기 이단 신천지에 맞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현욱 전도사가 상담소장으로 있는 구리이단상담소가 괴한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괴한은 한 시간 넘게 상담소와 예배실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뒤 경찰의 출동으로 가까스로 난동을 그쳤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에 위치한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 구리상담소가 6일 오후 3시쯤 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상담소는 여느 때처럼 신천지 탈퇴자에 대한 상담활동을 벌이던 중이었는데 오후 2시 40분 쯤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한 남자가 상담소를 찾았다. 상담원들은 상담소와 예배당을 왔다갔다 하는 등 남자의 행동이 수상쩍어 주시를 하면서도 상담업무는 계속 진행했다. 그러던 중 이 남자는 상담소에 들어온 지 30분만인 오후 3시 10분 경 갑자기 돌변하더니 강대상 등 집기를 집어 던지며 예배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이 장면은 건물 내에 설치된 CCTV에 적나라하게 찍혔다. 이 남자는 10분 도 채 안 돼 예배당 안의 TV와 의자, 커피자판기, 헌금함 등 집기를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고, 예배 단상까지 훼손했다. 강대상은 두 동강이 났고, 예배 음향시설과 강단 옆에 놓인 화분들까지 깨트려 버렸다. 상담원들과 출동한 경찰들이 이 남자를 막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깨진 유리 파편을 던지며 위협을 가해사건이 발생한지 1시간이 넘어서야 난동이 마무리 됐다. 주유미 행정간사(구리이단상담소)는 당시 상황에 대해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 이러다가 사람이 죽을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단 상담을 진행하던 상담원 A씨는 \"경찰이 20명 넘게 왔었다\"며, \"나중에는 방패를 든 기동타격대가 등장했는데도 20분 이상 소요됐을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상담소 옆에 위치한 \'ㅁ\' 산후조리원은 난동이 계속되자 산모와 아기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까 걱정하며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야했다. B원장 (\'ㅁ\'산후조리원)은 \"주변에서 쿵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철문을 닫고 들어가서 겨우 산모들을 안정시켰다\"고 말했다. 이단 신천지와 관련해 상담활동을 펼친 구리이단상담소가 괴한에 의해 습격을 당한 것은 지난 2009년 상담소 개설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신천지대책전국연합 대표 신현욱 전도사는 \"이번 사건은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으로 처리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들이 많다\"며, \"괴한 난동이 계획 된 것인지, 우발적인 사고였는지에 대해 경찰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요청할 것이다\"고 말했다. 신현욱 전도사는 또,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단 신천지 집단으로부터 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며, 신천지와 관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상담원들은 정신병 전력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 이 남자가 갑작스럽게 난동을 부린 것이 납득이 되지않는다며, 상담소의 위치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교주 신격화 교리 규정 필요하다/ 2009-11-21
'교주 신격화 교리' 규정 필요하다 ▲ 한국의 신격화된 대표적인 교주들 진용식 목사 등 이단문제 전문가들은 교주 신격화 단체들에 인간을 하나님, 또는 재림주로 만드는 동일한 공식이 존재한다고 문제제기를 해왔다. 소위 ‘하나님 만드는 교리’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방의인론’이다. 성경(사 41:2, 46:11)에 나오는 동방을 대한민국이라고 주장하는 교리다. 이는 한국 땅에 태어난 교주를 성경이 말씀하는 ‘동방의 의인’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생긴 주장이다. 둘째, ‘삼시대론’이다. 삼시대론은 성경의 시대를 구약·신약·종말시대로 나누거나 구약·신약·계시록 시대로 나누는 등 세 시대로 나눠서 신·구약 시대 이후에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복음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대는 지나갔고 새로운 시대가 됐음을 얘기해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주장이다. ▲ 재림주가 한국에서 태어난다는 교주 신격화 단체의 교리 셋째, ‘시대별 구원자론’이다. 시대별 구원자론은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구원자를 세우셨다는 주장이다. 즉 노아 시대에는 노아, 모세 시대에는 모세, 예수님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았듯이 말세에는 예수님의 사명을 대신하는 이 시대의 목자, 구원자가 따로 있다는 교리이다. 이 교리를 통해 교주신격화 단체는 현재 몸을 입고 있는 인간 교주를 구원자, 나아가 재림주나 하나님으로 믿게 된다. 넷째, 초림 예수와 동일한 방법으로 재림예수가 온다는 ‘재림론’이다. 즉 초림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왔듯이 재림 예수도 그와 동일한 방법으로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난다는 교리이다. 여기에는 ‘초림예수 실패론’도 포함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데 서기관·바리새인들의 모함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사명을 끝마치기 위하여 인간의 몸으로 다시 예수가 온다는 교리다. 다섯째, ‘또다른 보혜사론’이다. 재림론과 유사한 교리로서 보혜사이신 예수께서 인간이셨듯이 예수님이 보낸다고 하신 또다른 보혜사(요 14:16)도 인간이다는 교리이다. 위와 같은 주장들은 교주 신격화 단체에서 많이 애용된다. 교주 신격화 단체에 대해 오랜 동안 상담과 연구를 병행해온 진용식 목사(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의회장)는 “자칭 하나님 또는 재림주라는 이단 단체의 교주들이 서로 다른 명칭의 단체명을 갖고 서로 다른 추종자를 이끌면서도 교리에서만큼은 거의 동일하다”며 “어찌나 비슷한지 가짜 하나님들이 같은 교리에 자신들의 이름만 따로 넣어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고 말한다. 따라서 위에 예를 든, 하나님 만드는 교리들이 등장하면 그 단체가 어떤 단체이고를 막론하고 일단은 주의해야 한다. 교주 신격화 단체의 교리가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은 <교회와신앙>(www.amennews.com)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왔던 한농복구회 박명호 교주의 교리를 분석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박 교주도 위의 주요 사상 중 몇 가지를 보여 줬다. 동방 의인론과 재림론(초림예수 실패론 포함) 등이다. ▲ 자신을 하나님이라 주장하는 박명호 교주, 교주 신격화 단체들과 교리가 상당부분 일치한다. 대표적인 박 교주의 ‘하나님 만드는 교리’는 다음과 같다. “성경은 두 번째 그리스도께서 오실 장소를 ‘동방’, ‘땅끝’, ‘땅모퉁이’, ‘해돋는 곳’, ‘해뜨는 동방’, ‘동북 아시아 지역’일 것이라고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 모든 예언의 말씀들을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그곳이 어느 지역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틀림없이 우리 한반도, 그것도 북한이 아니라 땅 모퉁이에 해당되는 남한을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에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새벽이슬>, 80호, 50페이지, ‘기획특집 인류의 소망 石仙 그리스도를 당당히 증거하라!’, 돌나라출판사). “첫번째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 ‘여자’의 몸을 통해 완전한 사람으로 오실 것이며, 첫 번째 구세주께서 완성시키지 못하신 구속사업을 완전하게 완성시키실 분으로서 다시 두 번째로 성육신되어 오시는 것입니다”(<새벽이슬>, 80호, 50페이지, ‘기획특집 인류의 소망 石仙 그리스도를 당당히 증거하라!’, 돌나라출판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첫 번째 그리스도께서 틀림없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만약 그렇게 믿으신다면 두 번째 그리스도 역시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위의 책, 48페이지) 한국교회는 이단대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국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문제 있는 단체와 인물들에 대해 ‘이단’, ‘이단성’, ‘문제단체’ 등의 기준을 여러해 전에 정해 놓고 규정을 해왔다. 이런 규정은 결국 정통교회와 문제 있는 교회를 구분하며 성도들이 올바른 분별을 하고 판단을 하는데 큰 도움을 줬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시한부종말론의 경우와 같이 특정 교리가 이단 교리임을 구분해 주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는 단체에서 탈퇴한 A씨는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단 교리인 줄도 모르고 모 씨와 관련된 음성 테이프를 4~5차례 반복해서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몇 번 반복해서 듣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그가 재림주로 믿어졌다.” 그가 들었던 테이프에는 위에 언급된 ‘교주 신격화 교리’들이 상당부분 내포돼 있었다. 그러나 A 씨는 ‘사람을 하나님으로 만드는 교리’가 담긴 테이프를 들으면서도 이것이 이단 교리인지 아닌지 분간을 못했던 것이다. 지금 이렇게 교주를 신격화하는 단체에 수많은 성도들이 미혹되는 게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교주신격화 단체 중 어떤 단체는 2002년도에 5천여명에 불과했는데 현재 5만여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그중 90% 이상이 정통교회 성도였던 사람이고 그 중 70, 80%가 20~30대의 젊은 층이다. 인간을 하나님으로 믿는 단체라고 해서 소수의 어리석은 성도들만이 빠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같은 이단이라고 해도 교주가 하나님처럼 숭배되는 이단단체에 빠지면 개인의 인생은 물론 그 가족들과 나아가 사회와 국가까지도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한국교회는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단단체를 분별해서 정통교회로부터 분리 시키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특히 듣기만 해도 교주가 저절로 하나님으로 믿어지게 만드는 교리는 ‘교주 신격화 교리’로 특별히 규정해 이단 단체와 동일선상에서 놓고 대처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교황이 파문한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음모/ 2009-07-18
교황이 파문한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음모 1. 프리메이슨의 기원 서기 1175년 영국에서 가톨릭 건축가들이 모여 건축 기술 연구 및 제자 양성 그리고 신앙과 도덕, 사회 지식 등의 공부를 목적으로 세례자 성 요한을 수호자로 모시고 [자유의 석공조합] 즉 프리메이슨을 설립했다. 이것이 그 시기에 적절한 운동이었으므로 점점 발전하여 4백년간이나 계속 큰 성과를 거두어왔다. 그러나 1535년 영국 왕 헨리 8세가 로마교황에게 반기를 들어 영국 성공회를 창립하면서부터 가톨릭교회의 탄압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프리메이슨도 박해를 받아 에드워드 6세(1547~1553)에 의하여 해산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성공회로 개종한 신자들이 신앙을 이유로 해산당한 것을 통탄하여 특정의 종교를 떠나서 사회인으로서의 교양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합의 재건을 도모하고 프로테스탄트가 주장하는 인문주의를 기초로 하여 \'솔로몬 신전 건립\'이라는 상징주의를 내걸고 새로운 모양의 프리메이슨을 설립하기에 이르렀으며 1717년 6월 24일 세례자 성 요한의 축일에 결성식을 가졌고 그 본부를 런던에 두게 되었다. 이 계획은 프로테스탄트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고 또 그 이후 건축에 관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취지에 찬성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회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정치가, 실업가, 학자 등이 뒤를 이어 입회 신청을 하였고, 1721년 이래 자유사상을 가진 귀족이나 왕족들까지 참가하게 되어 영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건축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으므로 갖가지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한 예를 들면 그들은 여권이나 비자 등의 절차 없이도 각 나라를 출입할 수가 있었으므로 외국 여행이 금지되어 있던 유태인들이 이 특권을 이용하기 위해 입회하는 숫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우수한 재능을 갖고 있었으므로 각 집회(롯찌:Lodge)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그 특권을 이용해서 그들의 염원인 시온 운동, 즉 유태민족의 독립과 세계제패를 노리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프리메이슨은 유태인들의 시온 운동과 결합하여 세계지배란 목적을 위해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2. 프리메이슨의 발전 프리메이슨이 전 세계를 향해 급격히 퍼져 나간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그 운동을 시대적 요구에 따라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맞도록 다양화한데에 있다고 생각된다. 즉 인종, 국가, 종교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한 점과 자유, 평등, 박애를 내걸고 사회의 행복의 달성을 약속한 점, 그리고 상류 사회인과의 교제를 통해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꾀한 점, 회원들의 엘리트 정신이 허영심을 만족시킨 점, 메이슨의 신화, 상징, 의식, 선서 등이 매력적인 점, 상류계급에는 비밀이 있어도 과격한 행동이 없었다는 점 등등일 것이다. 영국 본토에 있어서는 1725년 64개 롯찌가 생겨났고 1733년에는 126개의 롯찌를 갖게 되었다. 그 후 1737년에서 1907년까지 약 200년 동안에 12명의 왕족이 입단했고 그 중에는 죠지 4세 등 8명이 왕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리하여 반세기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에 유럽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 아세아에 이르기까지 급격히 번져 나갔다. 현재(1988년) 프리메이슨의 세력은 3대 그랜드 롯찌(Grand Lodge)만도 세계 각지에 걸쳐 9천 개가 되고 그 외 종주권을 가진 그랜드 롯찌도 상당수에 달한다. 3. 프리메이슨의 사상 1717년에 재건된 프리메이슨의 사상은 인문주의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인문주의란 신중심주의(神中心主義)에 대하여 인간중심주의로 살려는 인생관인데 문예부흥이나 프로테스탄트 발생의 원인이 된 사상인 것이다. 신중심주의는 만물은 신의 영광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각각의 본성에 따라 주어진 천품을 발휘하여 자기완성을 도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성을 갖지 않은 동식물은 본능이나 본성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을 가진 고귀한 존재이므로 이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인류의 원조가 범죄 하여 초자연의 은혜를 잃어 버린 후부터 이성이 흐려지고 의지가 약해져서 신의 뜻에 따라 바르게 생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릇된 욕망이나 이기심에 끌려 신의 뜻을 어기는 행동을 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리메이슨과 같이 신의 뜻을 경시하고 인간 중심의 행동을 하게 되면 문화발전이나 생활향상이 된다 하더라도 반면에 자유주의(방종의 잘못된 의미), 쾌락주의, 권력주의에 빠질 위험이 크고 질서를 혼란시키고, 자연을 파괴하고, 도덕이 퇴폐하여 투쟁 등을 일삼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 등 아름다운 표어를 가지고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으나 그들의 그릇된 해석으로 인해서 크나큰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점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출처: <성모의 기사>1988년 6월호 부록- 4. 프리메이슨의 조직 프리메이슨은 하나의 통일된 결사는 아니다. 크게 나누어 영국계와 프랑스계의 두 흐름이 있고 그 안에서도 각각 독립된 그랜드 롯찌(대본부)가 있어서 목적은 같아도 활동이 달라 모든 면에서 다 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한 나라 안에 다수의 그랜드 롯찌와 거기에서 파생된 지부가 있고 그것을 통치하는 것이 최고 고문이다. 전 세계에는 대략 150개가 넘는 그랜드 롯찌가 있고 사상과 원칙을 하나로 하는 쥬네브 동맹(1876년 설립)에 연결되어 상호 연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회원에는 33계급이 있고, 최고 고문이 그 임명권을 가졌다. 그리고 프리메이슨에는 특수한 제례 의식이 있다. 집회소에는 제단이 있는 예배소처럼 설비가 되어 있고 결의, 서약, 입회, 진급 등의 의식이 거행된다. 제례의 형식은 기독교적이지만 1717년의 개혁 이후 종교적 의미는 없어지고 \'신(神)\'이란 낱말 대신에 \'우주의 건축사\'라고 바꿔 쓰며 유신론인지 무신론인지 알 수 없는 상징적 표현을 하고 있다. 따라서 유태인이나 크리스찬들처 럼 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생각하며 제례의식에 참례하지만 무신론자나 유물론자들은 사교적인 의식으로써 참여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5. 미국의 프리메이슨 1730년 프리메이슨이 뉴욕에 처음으로 상륙한 후부터 독립전쟁 이후까지 급격히 발전하여 미국은 프리메이슨의 나라라고까지 일컬어지게 되었다. 1965년 조사에 의하면 미국 내에만도 49개의 그랜드 롯찌가 있었고 400만명의 회원을 갖고 있어 정치계, 사법계, 외교계, 재계, 실업계, 학계, 종교계 등 모든 면에 걸쳐 저명인사들이 회원이 되어 각계를 리드하고 있었다. 우선 정치계만 살펴보아도 초대 대통령부터 카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37명 중 21명이 프리메이슨이고 27명은 그들과 인척 관계였다고 한다. 또 재계에서는 재벌인 록펠러가 중심이 되어 세계의 재벌들인 몰간, 메론, 로스차일드 등이 손을 잡고 재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1974년 11월에 발표된 \'록펠러가(家)의 부(富)에 관한 미국 의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내의 록펠러 일족이 관리하고 있는 재산만도 당시의 추정으로 6400억 달러라고 하며 미국의 10대 산업체 중 6개사, 10대 은행 중 6개 은행, 10대 보험회사 중 6개 회사를 포함해서 200개 이상의 다국적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혁명가인 라코프스키는 \'록펠러 제국의 음모\'라는 책에서 프리메이슨도 공산당도 다 유태인들의 세계정부 수립을 노리는 억만장자의 도구들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2차대전 후 부터 현재까지의 세계 역사에 록펠러 일족이 미치는 영향력의 크기는 위에서 말한 거대한 부(富) 뿐만은 아니다. 아이젠하워로부터 카터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대통령과 국무장관이 다 록펠러 일족이 주관하는 CFR외교문제 평의회의 멤버이며 재무장관, 국방장관, CIA국장, 국가안전보장담당 특별보좌관 등 요직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록펠러 일가의 \'사용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슐츠, 맥나마라, 부시, 키신저, 브레진스키 등의 CFR멤버들에 의해 점거당하고 있다. 6. 유태인의 세계 제패 프리메이슨의 수뇌인 유태인 학자들은 \'지구의 두뇌\'로서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시에 실천면에서는 상인(국제 유태자본)이 \'지구의 수족(手足)\'을 거의 장악하고 세계 통일의 프로그램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그들의 세계 제패 계획은 현재 거의 완성에 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요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세계 최대의 정치력, 군사력을 가진 미국을 완전히 통제하며, 그 힘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는 점. (2) 세계의 에너지를 지배하기 위해 석유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점. (3) 세계의 식량을 지배하기 위해 곡물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점. (4) 세계의 정보를 지배하기 위해 통신사, 전기통신망을 잡고 있는 점. (5) 세계의 금융을 지배하기 위해 거대한 자본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힘을 쥐고 있는 점. 이 다섯 가지만 눌러 버리면 세계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음은 명백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상 국제 유태 자본이 그것을 거의 완성시키고 있다고 하는 것은 만약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갖고 세계를 움직이려고 생각만 한다면 그것은 아주 쉽게 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宇野正美 著 \'유태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에서) 7. 프리메이슨과 가톨릭 프리메이슨과 가톨릭은 사상이 상반되는 것뿐만 아니라 프리메이슨의 세계 제패에는 가톨릭이 가장 큰 장애가 되므로 악마가 프리메이슨을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간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를 표어로 내걸고 인권 옹호의 미명 아래 국가의 압제에 극력 반항해 왔다. 그리하여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하여 유럽에서도 혁명기운이 드높아져 1789년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으로 시작된 인민전선이 프랑스 왕권을 무너트리고 1861년에는 가리발디가 이탈리아 통일을 단행했고, 1917년에는 레닌이 로마노프 왕조를 넘어뜨리고 소비에트 공화국을 세웠다. 이러한 일련의 혁명은 모두 프리메이슨의 책동이었고 그동안 가톨릭은 항상 탄압을 받아왔다.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일찍부터 프리메이슨의 위험을 꿰뚫어 보고 1738년 [프리메이슨에 입회하는 자는 모두 파문에 처한다]라는 법령을 내렸다. 그 후로도 베네딕도 14세, 레오 13세, 비오 9세 등 여러 교황은 그 법령을 재확인해 왔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어 교회가 세계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 제친다는 방침에 따라 타종파와의 대화, 즉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가하게 되면서 바오로 6세 교황은 프리메이슨에게 대하는 태도를 완화하여 신자들이나 성직자들이 여기에 입회하는 것을 묵인했었다. 에큐메니칼 운동(WCC)는 동방교회와 프로테스탄트가 시작한 운동이며 참가단체는 약 200여 개나 되며 그 지도자는 대부분 프리메이슨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치는 교회에 크나큰 악영향을 미쳤고 현대와 같은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바티칸에서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신상에 일어난 불상사는 프리메이슨의 음모에 의한 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1년 3월 재차 법령을 내어 \"프리메이슨과 그에 유사한 비밀결사에 입회하는 자는 파문한다\"라고 엄명했다. 사제의 마리아 운동의 주창자인 곱비 신부는 1979년 1월의 계시에서 그 불상사를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악마는 교회의 기초인 반석을 위태롭게 하기 위해 그 가운데 끼어들었다. 그러나 나(성모 마리아를 가르킴)는 그것을 막았다. 하느님이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1세의 희생을 받아들인 후 그들은 이번만은 자기들의 승리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나 내가 키워서 준비해 온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수가 있었다.\" 현재 전 세계의 프리메이슨은 인구의 과반수를 그들의 지배하에 잡고 있다. 프리메이슨과 가톨릭교회와의 싸움은 여러 방면에서 점점 치열해 질 것이다. -출처: <성모의 기사> 1988년 6월호 부록- 프리메이슨단의 계획 포루투갈에 있는 성모님의 파티마 성지에서 거행된 신성 모독적 힌두교 예배 의식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 장소는 성모님께서 정확히 여섯 번 발현하셨던 곳이며, 그리고 그 신성한 제대에서는 거룩한 희생의 미사가 봉헌되는 곳이다. 이 짧은 기사는 여러분들에게 그런 일이 왜 발생했으며, 그리고 그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밝힌다. 여러분들이 느낄 수 있듯이, 그것은 잘 계획되어져 왔다. 그리고 역사적인 이 시점에서 그 계획의 성패는 여러분들과 나에게 달려 있다. 파티마 쿠루세이더 임원 피에르 비리옹은, 그의 저서 곧 다가올 세계정부와 초대형 반그리스도 교회에서, 비밀결사들이 전 지구상에서 외관상으로 민주적인 세계 정부와 단일세계종교를 세우려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약간의 프리메이슨 서류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세계정부와 세계적인 종교는 프리메이슨단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프리메이슨단은 모든 종교들을 지배하기 원한다 프리메이슨단의 잡지 상징주의(Le Symbolisme)는 1962년에 발행되었다: \"사람들이 나의 형제들에게 프리메이슨단은 반 그리스도 교회다. 라고 말하지 않게 하여라. 이 말은 특별한 경우에 적합한 어구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프리메이슨단은 모든 교회들을 그 품안으로 이끄는 초대형 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프리메이슨단은 여러 종교들 사이에 있는 모든 차이를 파괴하기를 원하지 않고, 단지 모든 종교들이 서로 \"존중하기\"를 원하며; 그들의 서로 다른 신앙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이 많은 가족처럼 결합하기를 원하며; 그 가족에 대한 소속감이 다른 어느 이상이나, 교의 혹은 신에 대한 충성심보다 더 크게 여겨지기를 원한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가 프리메이슨단의 슬로건이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인 이브 마르소동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기간 중에 그의 저서 전통적 프리메이슨에 의해 고찰된 에큐메니즘에 기록했던 내용으로부터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의 시대에, 우리의 형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원리나 그들의 신념에 따라서 하느님을 찬양할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것은 관용이며, 그것은 또한 에큐메니즘이다. 우리 전통적 프리메이슨들은 그 축복받은 정치가의 말을 의역하거나 번역하고, 여러 환경들에 적용시킨다: 가톨릭인, 정교회인, 개신교인, 유대교인, 이슬람교인, 힌두교인, 불교인, 자유사상가, 무종교자들, 우리에게 이것들은 이름에 불과하며; 프리메이슨단이 그들 가족의 성이다.\" 프리메이슨단의 계획 : \"종교적 체험\"을 교의적 진실보다 우선시한다. 프리메이슨들은 모든 종교들이 교의보다 더 중요시 여길 공통적인 무언가를 소지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공통적인 \"무언가\"는 - 어떤 \"신\"과의 직접적인 접촉 - 즉, 체험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적 체험이 더 \"종교적\"이며 교의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프리메이슨들이 모든 종교들의 공통 합일점으로 원하는 종교적 체험은 심령술(Spiritism)이다. 수없이 많은 프리메이슨 서류들이, 매우 높은 계급의 프리메이슨들에게 미래의 최고의 과학과 종교는 심령술의 한 형태인 강령(Theurgy)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에 그 사실이 공공연하게 표명되기도 한다. 미국대학사전에 따르면, 강령이란 \"유익한 신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교통하기 위해 주문을 외우는 이집트 신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해 행해진 마법의 일종이다\". 프리메이슨의 에큐메니즘(교회일치주의)은 심령술을 서로 다른 종교간 종교적 체험의 한 공통적 형태로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프리메이슨은 하나 혹은 몇몇 종교들에게 특별한 교의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이도록 힘써서,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환상에 적합한 임의의 교리에 따라 살도록 격려할 것이다. 프리메이슨들에 의하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개최 이전까지, 즉, 에큐메니즘 형태의 프리메이슨 목표들이 설정되기 전에,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고유 형태의 심령술을 갖추지 못한 외톨이 교회였다고 말한다. 33급 프리메이슨인 이브 마르소동은 다음과 같이 명백히 서술하고 있다: \"개신교에는 해결되기를 원하는 문제가 없다, 즉, 프리메이슨단과 개신교 사이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 그 어려움은 오직 로마 가톨릭 교회에만 존재한다.\" 자신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진실한 가톨릭 신자들이 해야 할 일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히 머물고 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오류가 없는 가톨릭 교의에 의지해야 한다. 프리메이슨의 세계적인 초대형 반그리스도 교회로 변형되거나 혹은 삼켜지지 않도록,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불변의 교의를 지켜야 한다. 프리메이슨단의 계획이 지속적인 수행됨으로 인해, 진실한 가톨릭교회의 충실한 전통주의적 신자들은 근대주의적-신-가톨릭 신자들과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싸움을 당할 것이다. 에큐메니즘(프리메이슨단의 어린이)과 그 추종자(에큐메니즘 가톨릭신자들)은 - 진실한 가톨릭교회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가톨릭교회로 변형시키거나 흡수하려는 시도에 있어서 - 충실한 전통적 가톨릭 신자들을 공개 처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전통적 가톨릭 신자들은 이미 소외되고 있으며 그리고 비난받고 있다. 파티마 성지에 우호적인 파티마 지방 신문인 파티마의 뉴스지는 충실한 가톨릭 신자들을 \"탈레반\"으로 비유하고 있다. (See \"Fatima Newspaper Defends Guerra’s Betrayal\" in this issue.) 제3의 비밀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경고되었다 이것은 사실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초래된 결과이다. 그 공의회가 \"새로운 신학\"을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진보주의자 신학자들과 주교들에 의해 강탈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 결과 지금 가톨릭교회의 영원불멸한 교의와 전례가 \"구식\"으로 잘못 여겨지고 있다. 그것은 적의 침투에 취약한 교회를 남겼다. 그것은 또한 저명도나 세계적인 영향력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 한스 큉이나 월터 카스퍼 추기경 같은 - 무가치하고 유행적인 주교나 신학자들을 만들어 내었다. 그 공의회와 가르침은 가톨릭 권위의 위엄과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단을 조장하는 주교들과 추기경들을 허용하였다. 이것은 바티칸의 최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이것이 바로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제3의 비밀에서 신자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오셨던 이유이다. 성모님께서는 1960년 이후에 나타날 신공의회에 대해 경고하셨다. 성모님께서는 또한, 이단에게 취약한 성교회로 남게 하는, 미사의 변질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 오셨다. 프리메이슨의 장기적인 목표는 - 공의회의 \"새로운 신학\"을 통해서 - 가톨릭 신자들을 유혹하여 성교회를 정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 가족의 일치를 위해 종교적 차이를 무시하는 초교파적 사상의 다른 종교들과 결합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불쌍하고 잘못 인도된 가톨릭 신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신앙을 부정하고 그 신공의회 종교를 포용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신자들은 자신들이 가톨릭 신자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신공의회 사고방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사람들은 실제로는 신세계 질서의 프리메이슨 종교에 가입되고 있는 셈이다. 프리메이슨단은 이교 예식을 지닌 하나의 이교적 종교이다 프리메이슨단은 이교적 종교이다. 교회일치운동의 배후 세력은 바로 프리메이슨단이다. 프랑스인 프리메이슨인 이브 마르소동은, \"에큐메니즘은 프리메이슨단의 영적인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으시댓다. 그는 프리메이슨단의 이상의 승리로써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래로 양육된 에큐메니즘을 계속해서 자랑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모든 길이 하느님께로 인도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유사상적인 이 용기 있는 관념을 받아들여만 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혁명이라 부를 수 있으며, 프리메이슨단 롯지로 부터 흘러내려, 베드로 대성당의 지붕 위에 장엄하게 퍼뜨렸다\"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이종교간 협력\" 및 \"다양성 안의 일치\"라는 빌미를 통해서 다른 모든 종교들을 이끌어 들이려 유혹하고 있는, 프리메이슨단의 이교적 종교, 즉, 반그리스도 종교가 반그리스도 적인 단일세계종교로 유도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2004년 5월 5일에 파티마에서 거행되었던 이교도 예식과, 이에 대한 파티마 교구의 주교와 성지주임신부의 공영 TV방송에서의 그 인정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것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우리를 이끌고 있는 곳이다. 이것이 에큐메니즘(교회일치주의)의 목표이다. 이것이 바티칸 관리들이 오늘날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를 지닌 단일세계종교는 모든 종교들이 한 형태의 이교사상을 포용하도록 유도한다. 힌두교가 바로 그것이다. 힌두교는 모순적인 관념과 기교를 포용하며 거짓 신들을 숭배한다. 개개의 종교는, 그것이 힌두교, 이슬람교, 가톨릭 혹은 아프리카의 뱀 숭배집단이던 간에, 신을 향한 자신들만의 \"주어진 길\"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같은 이교적 신앙무차별주의는 프리메이슨단의 핵심 사상이다. 프리메이슨단의 이 이교적 사고방식은 궁극적으로, 많은 정부들 속에 포진한 프리메이슨단의 막강한 영향력을 통해서, 전 세계 국가들을 이교도로 유도한다. 프리메이슨단 자체가 이교적 종교이다. 그것은 가나안 신들을 숭배한다. 레오 12세의 말처럼, 프리메이슨단의 최고지위자들은 궁극적으로 공공연한 사탄숭배로 유도한다. 오늘날의 위험 2004년 2월, 불교 신자들이 미시간주, 그랜드 래피드즈에 있는 성 앨더버트 성당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았다. 2003년 10월, 인도에 있는 바일란카니 성모님 성지의 주임 사제인 아룰 이루다얌 신부는 힌두교인들이 성지 성당 내에서 그들의 이교도 예식을 현재 행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점점 더, 이교도 종교들이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종교간 대화\"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이교도적 의식을 상연하도록 초청되고 있다. 이 파괴적인 암은 지금 포루투칼, 파티마에 있는 성모님의 파티마 성지를 현재 감염시켰다. 그 성지의 주임사제와 파티마 주교,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고위층의 구성원들조차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가톨릭 신자들을 프리메이슨의 단일세계정부와 단일세계교회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프리메이슨들은 아마도 그들의 최후의 장애물인 가톨릭교회를 성공적으로 돌파해 왔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초교파적 신종교를 촉진시키는 마귀와 그 하수인인 프리메이슨단, 그리고 가톨릭 고위층 구성원들은 그들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성모님께서 프리메이슨단을 포함한 모든 이단들의 정복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나, 혹은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그러면,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파티마 성모님께서는, \"결국에는, 나의 티 없는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교황은 러시아를 나에게 봉헌할 것이다.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고 일정기간의 평화가 인류에게 주어질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진실한 가톨릭 종교를 파괴하려는 프리메이슨단과 그 계획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교회의 승리를 보기 전에, 아마도 이번 호의 \"제3의 비밀과 대징벌\" 기사에서 폴 크래머 신부에 의해 언급된 하느님으로부터의 대징벌이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영적으로 변화시키고; 비슷한 생각을 지닌 다른 가톨릭 신자들을 찾고; 기도하고 단식하고 보속하는 일은 충실한 가톨릭 신자 각자에게 달려 있다. 우리들은 자신을 영적으로, 지적으로, 마음으로 무장해야 하며, 다가올 문제에 대비하여 필요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 반그리스도 세력의 한시적 승리에 대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 우리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여러 방면에서 이 세력들은 이미 승리를 거두어 왔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그리고 기도, 희생, 인내 및 충실을 통해서 파티마 성모님, 지상에서의 그리스도 왕권, 그리고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부터 이어오는 성교회를 지탱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수호할 \"예수와 마리아의 대사\"(see \"Fatima, Faith and Fidelity in Action\" and \"The Supreme Privilege of Being an Ambassador of Jesus and Mary\")에 가입하기를 적극 권유한다. 원문 보기: \"The Masonic Plan\", by The Fatima Crusader Staff,(THE FATIMA CRUSADER Issue 77, Summer 2004)
교회 완전접수한다는 추수꾼 이야기/ 신천지/ 2008-08-20
교회 완전접수한다는 추수꾼 이야기 한국교회가 ‘추수꾼’에 의해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추수꾼이란 이단들이 정통교회에 깊숙히 침투해 교회의 중요한 인재들을 빼돌리는 ‘작업반’을 통칭하는 말이다. 정통교회가 오랜 시간 양육한 믿음 좋은 신자들을 교묘한 교리로 현혹시켜 결국 자신들의 교회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이같은 활동을 하는 자들에게 ‘추수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 교회는 추수꾼의 활동을 아예 모르고 있거나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망신이 두려워’ 쉬쉬하고 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본지는 교회들에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때 신천지교회(무료성경신학원, 이만희 파)에서 추수꾼으로 활동했으나 이제는 다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온 추수꾼 개종자들의 증언을 연재한다. 20대 후반의 A씨는 모태신앙이다. A씨는 2002년 말 신천지교회에 입교해 대전지역에서 추수꾼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안산상록교회에서 진용식 목사를 만난 A씨는 진 목사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결국 회심했다. 진 목사는 안식교 모태신앙이었지만 안식교 안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구원의 문제에 갈급해 하다 결국 안식교를 떠나 정통교회로 찾아온 사람이기에 누구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격이었다. ◇우선 교회 중직 맡고 완전 접수 = A씨는 2002년 6월부터 한 지인을 통해 신천지교회가 운영하는 무료성경신학원을 소개받아 교육을 받았고, 10월부터는 아예 신천지교회에 출석했다. 본격적인 추수꾼 활동은 2002년 12월에 시작했는데, 대부분의 신천지교회 교인들은 한번쯤 추수꾼 활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A씨는 대전지역의 대형교회인 D교회와 개척교회인 S교회 두 곳에서 추수꾼으로 활동했다. A씨에 따르면, 신천지교회는 추수꾼을 기성교회로 파송할 때 그룹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투입시키는 등 자연스럽게 다수의 추수꾼을 교회로 유입시켜 영향력을 확대해 간다. 가령, 추수꾼이 기성교회에서 열심히 신앙활동을 하고 교회 내 중직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어 자리를 잡으면 그가 또 다른 추수꾼을 교회에 소개해 함께 활동한다. 이같은 과정으로 유입된 추수꾼이 결국 청년회장, 임원 등 교회 내 한 조직을 아예 접수해 버린다. A씨가 추수꾼으로 파송됐을 당시 그 교회의 청년부 회장과 부회장 모두 추수꾼이었다. A씨가 말하는 추수꾼의 첫째 목표는 담임목회자의 신용을 얻는 것으로, 추수꾼들은 이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고, 주말마다 교회행사에 참석하는 등 열심을 보인다. 교회 내에서 자리를 잡으면 추수꾼들은 상황을 봐서 소그룹성경공부 모임을 이끈다. 이곳에서 특별히 성경공부에 열의가 있는 사람들에게 신천지교회 강사를 소개시켜 주고 이후에 무료성경신학원과 연결시킨다. 무료성경신학원에서 교육을 받는 이들도 신천지교회에 정식 입교하기까지는 일정한 검증과정을 거치는데 신천지교회를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입교시기가 달라지며, 이중 신천지교회에 확신이 없는 이들은 다시 기성교회로 돌려 보내고 있다. ◇추수꾼 실력은 목회자도 현혹될 지경= 신천지교회는 정통교회를 ‘추수밭’이라고 통칭하고 목회자나 장로의 자녀를 ‘큰 물고기’라고 부르는 등 정통교회를 항상 공략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일부 추수꾼들은 아예 정통교회를 가장한 교회를 세워 새신자를 전도하는 특이한 방법도 택한다. 한번은 정통교회 목회자가 신천지교회에 미혹돼, 신천지교회 추수꾼들이 대거 그 교회로 몰려가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을 포섭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교육과 상담 통해 회심, 변화= 현재 많은 신천지교회 피해자들이 안산상록교회에서 복음을 다시 배우고 있다. A씨도 안산상록교회에서 진용식 목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3일간 이어지는 안산상록교회의 이단 상담은 이단교리의 문제점과 함께 정통 기독교의 구원, 타락, 종말 등의 기본 가르침을 교육하는데 A씨는 특히 구원에 대한 교육을 받고 변화됐다. 신천지교회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얻어지는 구원을 ‘전도를 많이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조건적 구원으로 가르친다. 때문에 A씨는 신천지교회에 있으면서 늘 구원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A씨는 “하나님이 곧 치실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신천지교회는 추수꾼들에게 “신천지교회를 나가면(탈퇴하면) 3대가 저주를 받는다”며 협박 한다. A씨도 이같은 협박에 두려운 마음으로 상담을 받았으나 계속 발견되는 신천지교회 교리의 오류들을 깨닫고 정통교회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A씨는 “끝까지 저를 붙들었던 가족과 진용식 목사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크리스천투데이] 김대원 기자
교회와 이단/ 통일교 원리를 소련서 중.고등학교 교재로 채택/ 2001-09-19
교회와 이단/ 통일교 원리를 소련서 중.고등학교 교재로 채택 이미 소련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위해 통일교가 교재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교재는 `나의 세계와 나\'라는 제목의 문선명과 통일원리를 포교하기 위한 전술지로 소련 정부와 손잡고 실시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는 전 러시아 공화국들이 채택해서 교육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현지에서는 한국 교단이 경쟁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교파분열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중에 한국에서 발생한 사이비 종교인 통일교 문집단이 침투하여 소련정부와 손을 잡고 있으니 그 누구보다 한국교회는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하며 소련에 파견되어 있는 선교사를 위해서라도 강력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하겠다. 그뿐이 아니다. 통일교의 소망은 어떻게 하면 한국의 중.고등학교에서 `원리교육\'을 시킬 것인가이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그 교재를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통일교 원리를 중심삼아 종교 과목의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여 중학교의 1,2,3권, 고등학교의 1,2권으로 5권의 시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94년에 중등과정의 종교교육과정에 통일원리 1권이 제출되어 1차 심사에서 좋은 결과를 받았고, 95년에는 고등학교 과정의 심사를 신청한 상태이다. 통일교 문집단 원리가 중.고등학교 교재로 채택되는 것을 강력히 저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더 이상 통일교가 한국 땅에서 활개칠 수 없도록 실효를 거둘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세워야 함을 `국제 기독교 통일교 집단 대책위원회\'는 한국교회에 간절히 호소한다.
구원파
구원파 2004-02-18 13:34:49 read : 112 1. 구원파의 현재 상태 구원파는 크게 권신찬 계열, 이요한(본명 이복칠) 계열, 박옥수 계열 등 3개파로 크게 분류 할 수 있고, 유사한 교리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그 외에도 있다. 1.1 권신찬 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 오대양사건과 (주)세모와 관련설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본부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 1 가 231-23 서울교회로서 통상 삼각지 교회로 불린다. 1.2 이요한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교회의 헌금을 사업에 전용하는 것을 문제삼아서 권신찬 계열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본 부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239-1 삼원빌딩 4층 서울교회이다. 1.3 박옥수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박옥수는 중학교 3학년 중퇴생으로서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 을 주제로 전국순회집회를 하고 있는데 본부는 대전 한밭중앙교회이다. 2. 구원파의 주장과 해설 최근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10단계 질문서 가 있는데 이는 그들이 기성교회 신자들을 어떤 점에서 공격하는지 잘 보여준다. ① 선생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실히 알고 믿습니까? ② 선생님은 거듭나셨습니까? ③ 성령님이 마음 속에 계심을 믿습니까? ④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확신하십니까? ⑤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⑥ 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까? ⑦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은 아닙니까? ⑧ 구원받는 것이 확신되어집니까? ⑨ 재림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⑩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2.1 이미 구원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다 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회개란 돌이킨다 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 킬 필요가 없다.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했으므로 회개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기도 문도 외우지 않는다.( 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시고 라는 부분 때문에 외우지 않는데, 이 부분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다 는 내용으로 바꾸어서 외우기도 한다.) 사죄를 간구하 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논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회개하는 고통이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 매력적이다. 영적 투쟁을 할려고 하는데 잘 하지 못할 때 이 말을 듣게 되면 그 논리와 확신에 넘어가기 쉽다. ▲ 해설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히6:1 이하)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 고 있다.(시 51편, 삼하 24:10, 요13:8-10, 요일1:8-10) 또한 죄에 대한 참된 통회와 회개 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구원파의 주장은 결국 회개하는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합리화하며 자유롭게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2.2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죄인이냐 의인이냐 를 물어서 죄인이라고 하면 천국은 의인만 가는 곳이요, 지옥은 죄 인이 가는 곳이니 지옥에 간다.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해야만 구원받았다. ▲ 해설 산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성 화되어 간다. 이땅에서 사는 동안 완전히 성화되지 못했기에 죄악과 허물과 실수 가운 데서 살게 된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 울도 자신의 죄인됨을 과거 시제로 고백했을 뿐 아니라(딤전1:13), 현재 시제로 고백하 고 있다(딤전1:15). 현재 시제에서는 죄인 이라고 고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 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이면 어느 누가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구원파는 이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1:15절 원문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되 었다고 하지만, 현재 번역이 원문과 일치함이 확인되었다. 2.3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교회의 제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주일성수, 새벽기도, 십일조 는 율법의 소산이다 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왜 주일 성수, 새벽기도, 십일조와 같은 율법의 소산들을 행해 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믿음 안에서 자유를 얻었는데, 다시 율법적인 생활로 되돌아 가서는 안 된다. ▲ 해설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얻는 은총이므로 구원얻는 조건으로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교회의 제도가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다. 구원 받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의 질서를 지켜야 하며, 인간의 행복을 위 해서 마련해 주신 교회의 제도와 법을 더욱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교회의 모델이 되는 초대교회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행2:46). 교회는 신앙성장과 교제를 위한 것이다. 주 일 성수, 새벽 기도, 십일조 등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땅한 의무이며 은혜받는 통로이다(눅11:42). 그러므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 서 이것들을 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더욱 이를 힘써 행해야 한다. 2.4 이미 구원받았으니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 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예수님께서 힘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모두 하셨다. 우리는 이제 그 은혜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어리석고 교만한 행동이다. 설령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죄를 지어도 죄로 정죄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가? ▲ 해설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없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롬1: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위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지만,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분명히 존재 한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서 고난과 희생, 섬김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섬기는 길이요,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다(히13:12,13).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은 죄를 범해도 죄로 정죄되지 않으므로 죄를 범치 않기 위해서 애써 십자가 를 지는 것 같은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유혹에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이러 한 자들을 엄히 경고하고 있다(빌2:12, 갈5:13). 구원파의 주장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 고 육신의 편안함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이다. 2.5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 는 주장에 대해서 ▼ 구원파의 주장 권신찬씨가 죄사함을 깨닫고 , 이요한씨가 복음을 깨닫고 , 박옥수씨가 거듭난 체험 을 했다는 것은 다 같은 뜻으로서 깨닫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 는 것이다. 깨닫고 거듭난 시각, 곧 구원받은 시각(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하다. ▲ 해설 구원파의 주장에 따르면 육적 생일은 부모나 타인에 의해서 알 수밖에 없는데 영적 생일도 타인이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다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구원파가 유치하게 나오니 해설도 유치한 수준으로 낮아진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말 미암은 것이며 그 깨달음은 믿음에서 오는 것으로 깨달음 자체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 처럼 주장하여 영지주의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 입하여 구원에 이르고 그 믿음이 성령으로 인쳐질 때 구원받는다고 하였다.(롬8:11,롬 10:10) 3. 구원파에 대한 결론 믿음의 한 가지 기능인 깨달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영지주의적 사고임에 틀 림이 없다. 또한 구원의 확신이 곧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인 동시에 성령으로 인쳐진 자가 구원을 받았다는 로마서 진리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나,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하면 지옥에 간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명백한 이단인 것이다. 4. 사람들은 왜 구원파에 빠지며 우리의 대처방안은 무엇인가? 구원파와 같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 것은 처음에 받은 예수님의 은혜와 평안과 기쁨이 사라 지고, 죄의식이 찾아올 때 그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며 고민하는 경우이다. 특히 반복해서 죄를 짓고, 회개해도 현재 상태가 별로 달라지지 않을 때 내가 구원받았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때 우리는 이성의 논리에 맞다고 해서 구원파와 같은 사상에 빠질 것이 아니라 성 경을 깊이 연구하며 성경이 말하는 구원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볼 때 구원은 즉각성과 점진성 2가지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구원의 즉각성(혹은 일회성, 영원성)은 말 그대로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요한복음 3장에서 말씀하신 하 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듭남이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은혜가 있고, 체험이 있 다. 반면 구원의 점진성은 천국에 가서 우리가 완전히 성화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보는 것이 다(빌1:19, 빌2:12). 그렇기에 천국에 가서 완전히 성화될 때까지 이땅에서는 죄악과 허물을 회개하면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번민과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 런 번민과 갈등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당연한 과정이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여서 나의 구원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연약해서 죄에 넘어질 때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하고 이렇게 연약하고 허물진 자신을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하면 된다. 이때 은혜의 세계를 깊이 체험케 되며 구원을 더욱 확신케 된다. 그리고 그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고자 죄를 회개하고 멀리하며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배우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을 적 극적으로 배울 때 사탄이 어떤 논리를 가지고 유혹하며 공격해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구원 파에 빠진 모든 사람들의 구원과 더 이상 사람들이 구원파에 빠지지 않길 빌면서....... 참고 성경 구절 (가나다 순) ■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누가복음 11:42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 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 지니라. ■ 디모데전서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 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 라. ■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 빌립보서 1:19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 로 ■ 빌립보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사무엘하 24:10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 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 시편 51:9, 11, 17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지은 시편)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 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 다윗은 성신(성령)을 받고 분명히 구원받은 자였지만, 죄사함을 간구하고 있다. ■ 요한복음 13:8-10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 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 요한일서 1:8-10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 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 로 음식을 먹고 ■ 히브리서 6: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 히브리서 13:12,13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구원파 교리비판/ 이단사이비자료/ 2013-04-09
구원파 교리비판 구원파, 기쁜소식선교회(박옥수) 1987년 8월 29일 용인의 오대양이라는 회사의 공장 다락방에서 32명이 집단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소위 오대양사건으로 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그들의 정체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박순자라는 여인이 일종의 공동체적인 종교집단을 이끌고 있었던 지도자였으며, 이 박순자라는 여인이 구원파(유병언, 권신찬)라는 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매스컴을 통하여 잠깐 보도되었다. 그러나 정작 경찰과 검찰의 조사는 많은 의혹을 해결하지 못한 채 종결되고 말았다. 그후 구원파에 대한 교리와 신학에 대한 이단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정동섭교수에 의하여 알려졌다. 정동섭교수는 1982년 서울 침례신학대학원과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공부하여 현재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정동섭교수는 자신이 대학 3학년때에 구원파교회에 빠졌으며, 그 후 8년 동안을 구원파교회에 추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방교회의 워치만 니의 책을 번역하면서 약 3년간을 지방교회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80년에 비로소 지방교회와 구원파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정교수는 구원파의 교리와 신학을 비판하다가 구원파(유병언)에게 고소를 당하였고, 한때는 패소하여 법정구속을 당하는 등, 오랫동안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였으나 결국 대법원까지 가는 항소에서 결국 승소하게 되었다. 최근에 들어서서 박옥수목사라는 사람이 대규모 체육관 집회를 하면서부터, 다시 구원파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박목사의 저서인 \"거듭남의 비밀\" 혹은 \"죄사함의 비밀\"이라는 책을 통하여, 또 일년에 몇번씩 체육관의 대형집회를 갖으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그 세력이 확장되고 있게 되자, 각 교단에서는 구원파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굿모닝증권의 회장이 기쁜소식선교회를 적극후원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홀트아동복지회의 회장(미국인)이 기쁜소식선교회임이 밝혀져 많은 문제점을 불러오고 있다. 한때 구원파의 대표적인 실세였던 유병언은 교인들의 헌금으로 주식회사 삼우 트레이딩, 주식회사 세모, 세모 스쿠알렌등의 회사를 운영하다가, 1991년 50명의 고소인에 의해 사기죄로 8년간을 구속되는데, 그 기업체의 사장은 유병언이며 그의 장인인 권신찬(장로교 목사)이 그 교회의 지도자로 있으며, 권신찬은 예장통합 소속의 목사였으나 1964년에 이미 목사면직의 조치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 구원파의 한 계열을 이루는 이요한(본명: 이복칠)은 권신찬에게 안수를 받았다고 전해지며, 유병언의 독선적인 기업운영에 대해 반대하다가, 집단폭행을 당하고 교인들과 함께 빠져나와 새로운 교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들의 교리와 신학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유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외에도 몇몇 알려져 있지 않은 작은 군소교회의 계열과 분파도 다수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2003년에 일명 한국녹색회라고 불리는 단체에서 경북 보현산 일대의 270만평을 구입하였는데, 이 한국녹색회가 구원파 단체와 연관이 있다고 전해지면서 주민들이 이 단체의 지역유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몇몇 신문에 보도되었는데, 이와 같이 외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구원파의 분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고 한다. 주로 알려진 구원파의 계열은 다음과 같다. 박옥수(기쁜소식선교회, IYF)..... 대전 중앙한밭교회 권신찬, 유병언(기독교복음침례회)..... 일명 삼각지교회, 세모(스쿠알렌, 세모유람선) 이요한(권신찬에서 분열, 대한예수교침례회)..... 인덕원 서울중앙교회 이들은 정규적인 신학과정이 아니라, 소규모적인 성경공부모임을 통하여 주관적인 성령체험을 하면 목사안수를 하여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러한 논리라면 성령체험이란 목사안수를 주는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 되어지는데, 이들은 기존교회의 신학체계를 비난하고 있다. 특히 박옥수와 권신찬, 이요한등의 주장이 거의 유사한 것은 모두 딕욕이라고 하는 미국의 독립적인 침례교회의 한 선교사와 길기수(한국명)라고 하는 네델란드 선교사로부터 함께 성경모임을 통하여 배웠기 때문인데, 또 많은 사람들이 구원파가 지방교회의 워치만 니에게서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존 교회를 모두 일컬어 비복음적이며 구원받을 수 없는 잘못된 교회로 간주하고, 기존 신학대학의 신학체계를 부정하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박옥수측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는 기존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목사의 자격과 요건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독립침례교회 중 형제교회(brethen church)라는 곳 중에서 구원파와 아주 유사한 주장을 하는 곳이 있다. (다만 현재의 형제교회는 그 분파가 다양하므로 그 교리나 사상에 대해서 한마디로 규정하여 언급하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지방교회 워치만 니가 형제교회의 존다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을 추론할 수 있다.) 또 박옥수목사의 학력에 대한 이야기가 문제가 되어지는데, 그가 중학교 중퇴라는 것이다. 유병언, 이요한등의 학력도 비슷한 저학력이라고 한다. 물론 저학력이라는 것이 다른 것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외국어, 문법, 문장구조, 해석학, 철학, 역사등 다양한 방면에 대해 공부를 함에 있어서, 최소한의 학문적인 배경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들의 특징적인 교리중 가장 중요한 것은 대략적으로 알아본다. 1.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므로 회개를 하지 말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소위 그가 말하는 이것이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며, 이 비밀을 깨달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일상적인 죄를 뉘우치는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대단히 위험한 주장이 되어지며, 어떤 죄를 저질러도 무방하다는 도덕폐기론이 되어질 수도 있으며, 믿음이 아니고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이 되고만다. 2. 천국에는 죄인이 갈 수 없으며 의인만이 들어가며, 예수를 믿는 자는 이미 과거, 현재, 장래의 모든 죄를 사함을 받고 이미 온전한 의인이 되었으므로 죄가 없으며,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죄인이므로 구원을 못받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거듭남의 단회적인 회개(믿음)와 성화라는 과정을 통한 반복적인 회개에 대해 정확한 구별을 못하기 때문이다. 3. 이러한 단회성 회개(믿음과 깨달음)가 곧 구원이므로, 성도는 자신이 몇월몇일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궁극적으로 구원의 주는 누구이며 누가 심판을 하는가? 또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받은 구원의 현재적인 의미만을 유일하게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성경적 구원관이 아니다. 이것 역시 구원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잘 모르기 때문이 빚어진 결과이다. 4. 일반교회를 강하게 부정하고 비난하며, 비성경적인 교회로서 구원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반교회는 율법적인 구원관을 갖고 있으므로 그것을 벗어나는 것이 곧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일반교회가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키는가? 대한민국의 정통교회는 모두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이들은 새벽예배, 십일조, 주일성수등이 율법주의라고 주장하는데, 어느 교회도 정상적인 정통교회라면 새벽예배나 십일조나 주일성수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새벽에 예배를 드리지 않아야만 종교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주일성수를 하지 않아야만 하며, 십일조를 내지 말아야만 율법주의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곳이 박옥수의 구원파라면 오히려 그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러웁다. 구원파의 주장이 왜 옳지 않는가에 대해서 세가지의 관점에서 비판하여 보며, 또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1) 회개와 믿음이란 무엇인가? (2) 죄인과 의인이란 무엇인가? (3) 죄란 무엇인가? (4) 구원의 확신이란 무엇인가? 1) 회개와 믿음이란 무엇인가? 회개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두 개의 단어가 있다. 첫째 나함이란 단어로 그 뜻은 \"후회하다\"는 말이다. 과거 자기가 행한 죄에 대해서 부끄러워 하는 것을 말한다(창6:7, 렘8:6) 두 번째, \"슈브\"란 단어로 \"뒤로 돌아서다\"는 뜻이다. 헬라어로서 중요한 단어는 \"메타노이아\"인데 메타란 말은 \"후에(after)\"이고 누스란 단어는 \"마음\"(mind)이다. 즉 나중의 생각과 감정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메타노이아\"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방향수정>을 의미한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진로에서 이탈되었을 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향수정을 \"메타노이아\"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즉 회개란 용어가 단회적으로 사용되어질 때에, 그 \"회개\"란 용어는 \"믿음\"과 같은 의미가 된다. 예를 들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은 믿음을 말한다. 그래서 예수를 믿을 때의 회개를 우리는 신학적인 용어로 \"회심\"이라고 하며 \"회개와 신앙\"이라고 한다. 즉 그 \"회개\"는 \"불신으로부터의 돌이킴. 방향수정\"을 말한다. 이러한 회개와 믿음은 분명 단회적이다.... 그러나 \"범죄로부터의 돌이킴\", 즉 그러한 방향수정도 \"회개\"이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이러한 것은 지속적이며 반복적이다. 이러한 범죄로부터의 방향수정, 즉 회개도 성경에 분명히 언급되어있다는 것을 뒤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기쁜소식 선교회라고 하는 박옥수(구원파)는 믿음을 의미하는 \"회개\"와 성화적이고 일상적이며 반복적인 \"회개\"와 착각을 하고 있다. 성경은 분명히 이러한 단회적 회개(믿음)와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회개(성화)를 모두 언급하고 있으며, 일반 교회의 정통신학에서도 단회적인 회개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키고 있다. 즉 박옥수는 일반 교회에서 단회적인 회개에 대해서 전혀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박옥수목사는 \"거듭남의 비밀\" 혹은 \"죄사함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그가 주장하듯이 결코 \"비밀\"이 아니다. 박옥수목사는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자로서, 정통신학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정통신학책이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자.... - 새 생명을 심어주는 것으로 해석되는 중생은 결코 반복될 수 없다. 엄밀한 의미에 있어서의 회심도 또한 반복될 수 없다. 이것은 중생의 변화가 인간의 의식생활에서 처음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반복되는 회심에 대하여도 말할 수 있다.(루이스 벌콥, 기독교 신학개론 256쪽) - 따라서 최초의 믿음과 회개는 생애 중 단 한번 있는 일이고, 그 일이 일어날 때 참된 회심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믿음과 회개의 마음의 자세는 회심때 단지 시작될 뿐이다. 그 때의 그 자세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지속되어야 한다.(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345쪽) 루이스 벌콥과 웨인그루뎀은 장로교의 조직신학 학자로서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장로교의 신학은 단회적인 회개(믿음, 거듭남)에 대해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성화적인 회개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로교와 더불어 양대산맥이라고 하는 감리교의 요한웨슬레의 견해를 들어보자.... - 이 회개(중생후의 반복적인 회개)는 칭의에 선행하는 회개와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책이라든가 정죄라든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의식이라든가 하는 것들과 연관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깨달음이니 곧 우리 마음 속에 아직 남아있는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곧 육에 속한 마음입니다. 중생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것이 남아있으나 지배하지는 못합니다.(웨슬레 조직신학 199-200쪽) 즉 박옥수목사의 가장 중요한 이단성은, 성화적인 개념의 반복적인 회개에 대한 정확한 뜻을 잘 모르면서, 회개하면 구원을 잃는다고 가르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정통신학에서 모두 평범하게 가르치는 것을 오직 자신들만이 깨달은 비밀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치우치는 편견이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구원파의 주장이 왜 틀린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회개한다\"는 말은 같은 것이다. 회개는 곧 하나님을 향한 궤도이탈에서 방향수정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거스틴은 믿음과 회개는 동전 양면과 같다고 하였다.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행2:37) 위의 구절에서 \"회개하라\"는 말은 곧 \"믿으라\"는 말과 같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에게로의 방향수정을 촉구하는 말이다.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 회개하였을 때에 삭개오가 과연 믿음이 없는 회개만을 하였을까? 삭개오의 회개는 믿음이 병행된 회개였으며, 당연히 믿음이 배제된 회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회개케 하는 믿음\"이며 \"믿게하는 회개\"일 것이다. 회개하다는 헬라어의 단어는 \"메타노이아\"(명사), 메타노에오(동사)\"가 주로 사용되었다. 구원파의 주장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를 믿을 때에 한번만 회개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장래의 죄까지 모두 사함을 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예수를 믿으면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으므로 자신을 죄인이라고 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믿음의 시작만을 강조함으로 말미암아 성화의 개념을 전혀 부정하는 것이며, 인간에게 믿음을 유지할 필요성과 일상적인 회개를 할 필요성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 바로 구원파의 주장인 것이다. 마치 한번만 믿으면, 두 번 다시 지속하고 반복하여 믿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성화적인 과정에서의 회개가 필요없다고 말하는지 살펴보자. 계시록 2-3장을 보자. 일곱교회에 대해서 성령께서는 \"회개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 단어는 모두 \"메타노에오\"이다. 그 교회들은 이미 예수를 믿는 교인들로 처음 믿음의 회개와는 구별되어지며, 다시 믿으라는 경고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메타노에오(회개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계시록에서 볼 때에 회개(메타노에오)라는 단어가 오직 단회성에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에베소교회: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2:4) 그래서 회개하고 처음 행위(사랑)을 가지라고 권한다. 성령께서 교회에게 이르는 말인데, 만일 회개치 않으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긴다는 것이다.(2:5) 그런데 박옥수 구원파는 회개할 필요없다고 한다. 버가모교회: 버가모에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다(2:14) 즉 타종교의 우상사상이다. 성령께서는 회개하라고 하신다.(2:16) 그런데 구원파는 회개하면 안된다고 한다. 두아디라교회: 두아디라교회는 음행과 우상숭배를 한다.(2:20-21) 물론 성령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그러나 회개치 않으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움을 받는다(2:22) 두아디라교회의 교인들이 박옥수의 주장을 따르면 그들은 구원을 잃게 된다. 사태교회: 살았다하나 죽은 교회이며 온전하지 못하다.(3:1-2) 더러운 옷을 입은 자가 몇명이 있다(3:4) 성령께서 회개하지 않으면 도적같이 임하신다고 책망하신다(3:3) 회개치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운다고 하신다(3:5) 계시록의 말씀대로 회개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남게 되지만, 구원파의 주장을 따르므로 회개치 않으면 이름이 지워진다.... 라오디게아교회: 찹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을 갖었고, 부자이기에 구제사업을 전혀 하지 않는다.(3:15-17) 그래서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권한다.(3:19) 회개하는 자는 보좌에 앉게해 주신다고 하신다(3:21) 그냥 회개가 아니라, 열심을 내어 회개를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박옥수는 죄사함의 비밀이 회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분은 보좌에 앉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박옥수 옆자리에 앉기를 원하는가? 살펴 본대로, 계시록에서 회개(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단회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믿는 교회의 교인들에게 방향수정을 촉구하는 회개를 가르킨다. 즉 이미 예수를 믿는 자는 회개하면 안된다는 박옥수의 주장은 비성경적이 되어진다. 더 명백한 성경적인 증거를 보자. 주기도문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일상적인 기도문이다.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즉 우리가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죄를 사하여준 것과 같이, 예수님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 형제들이 회개하면 하루에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 역시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 죄를 하루에 일곱번이라도 반복하여 용서하여 주실 것이 분명하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눅17:3-4) 윗 구절에서 회개는 \"메타노에오\"이며, 그 단어는 결코 단회적인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 본문의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범죄에 대한 반복적인 방향수정을 뜻하는 것이 명백하다. 만일 \"메타노에오\"가 단회적인 믿음을 말한다면 일곱 번을 믿으라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가? 우리가 우리에게 일상적인 죄를 지은 자에게 일곱 번을 용서하듯이, 주기도문의 용서도 그렇게 하여주신다는 것이다..... 박옥수계열의 구원파는 주기도문을 회중기도문으로 외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주기도문은 암송하라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 때문이 아니라 주기도문이 그들의 교리와 다르다는 것이 그들이 주기도문을 암송하지 않는 그 이유일 것이다. 이미 목욕한 자도 발은 씻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성경본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를 믿는 죄씻음의 믿음은 단회적이지만, 그러나 지속적, 반복적으로 죄를 회개하고 정결케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을 상징한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13:10) 또 바울은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도바울은 사도가 된 후에도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지 않는가? 박옥수는 이 동사의 시제가 과거라고 주장하는데, 이 동사(헬라어, 에이미: am)는 과거가 아니라 분명한 현재동사 일인칭 단수이다.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보면, 바울이 과거에만 죄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로마서 7장17-25절에서 바울은 자신에게 아직도 죄가 남아있음을 고백하는데, 그렇다면 바울은 구원을 잃었단 말인가? 구원파의 주장을 인정하자면 성경의 인물들이 모두 구원을 잃는다.... 사도요한과 그의 서신을 받았던 소아시아교회의 성도들도 모두 구원을 잃는다.... -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요한은 영지주의자라고 불리는 거짓교사들과 이단들을 조심하고 경계하라는 목적으로 이 서신을 쓰게 된다. 우리가 죄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이다. 구원파는 이러한 것을 회개가 아니라 \"자백\"이라고 궤변을 늘어 놓는다. 또한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미쁘고 의롭다고 말하였는데..... 죄가 있으니 죄를 자백하는 것이 아닌가? 박옥수목사의 주장에 의하면, 이미 예수를 영접한 자들에게는 더 이상 죄가 없다고 하였는데, 왜 자백을 하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죄가 없는데도 자백을 하여야 한다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죄가 없는데도 죄를 자백하여야 하며, 없는 죄를 자백하는 사람에게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에게 이미 없는 죄를 사하여 주시는가? 구원파의 주장을 따르자면 하나님을 거짓말을 하는 자로 만들며 그야말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또 자백은 해도 좋고, 회개는 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말장난이 아닌가? 박옥수의 주장을 보면, 일반교회가 새벽에 눈물 콧물 흘리며 울고 불고 하는 회개에 대해서 조롱하듯이 비난하는데, 박옥수목사는 \"회개\"란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반교회는 새벽에 눈물과 콧물을 흘려야만 회개를 하는 것이라고 결코 가르키지 않는다. 울어도 좋고 울지 않아도 좋으며, 새벽에 회개하여도 좋고 저녁에 회개하여도 좋다. 박옥수목사는 자신의 궤변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일반교회의 회개의 개념을 왜곡, 과장하여 희극화시키며 비난하고 있다. 어느 일반교회가 회개의 정의에 대해서 \"새벽에 울고 불면서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것\"이라고 가르치는가? 게다가 구원파는 새벽예배를 부정하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벽예배를 드리지 않아야만 구원을 받는가? 박옥수는 새벽에 기도를 하신(막1:35) 예수님도 비난하는가? 또 시몬의 경우를 보자. 성령의 능력을 돈을 주고 팔라고 하다가 사도들에게 큰 핀잔을 받는 장면이 사도행전에서 언급된다. -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행8:13) 이 구절에서 혹 사람들은 시몬이 과연 예수를 진정으로 믿었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본문에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시몬이 참신자였는가가 아니라, 베드로가 시몬에게 충고한 내용에 있다. 베드로는 시몬에게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고 충고하였으며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하였다. 박옥수목사의 경우에는, 더 이상 죄를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지만, 베드로는 \"악함을 회개하면 사하여 주시리라\"고 말하고 있다. 베드로사도와 박옥수목사 중에서 누구의 견해가 옳은가? 물론 시몬이 진정 베드로의 충고를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성경에서 더이상 기록하고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메타노에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메타노에오)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8:22) 베드로가 시몬에게 \"회개하라\"는 말은 시몬이 그 악함을 뉘우치고 다시 고하여 기도하고 사함을 받으라는 의미가 분명하며, \"메타노에오\"라는 단어는 죄로부터의 돌이킴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앞에서 엄급하였듯이, 일반교회는 거듭남(중생)의 단회적인 회개와 성화과정의 반복적인 회개의 두가지 개념에 대해서 분명히 가르키고 있다. 즉 거듭남은 단회적이라는 것도 분명히 가르친다. 더욱이 예수의 십자가 희생은 단 한번의 제사라는 것은 주일학교 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한 것을 비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코메디가 아닌가? 구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욥은 의인이었으나, 욥이 하나님을 뵈었을 때에 이렇게 말하였다.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42:5-6) 욥의 회개는 하나님을 믿고 다시 믿음을 갖겠다고 해석을 할 수는 없다. 즉 구원파의 주장대로라면 의인이었던 욥은 자기 죄를 회개하였으니, 구원을 잃어야만 한다. 그런데 욥은 구원을 잃지 않았다.... 구원파에서는 욥이 구원을 잃었다고 가르키는가? -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삼하24:10, 대상21:8) 다윗은 분명히 \"자신이 죄를 범하였으며 자신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구조사를 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다윗은 구원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인가? 또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범죄를 저지른 후에,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자신이 죄를 범하였다고 회개하는데, 다윗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였으므로 구원을 잃었는가? -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삼하12:13) 이 사건에 대해서 다윗은 시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1-5) 다윗은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하였으나 구원을 잃었는가? 다윗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으니 구원을 받지 못하였는가? 박옥수목사의 주장대로라면, 구원을 받은 다윗은 죄가 없어야만 하며, 온전한 의인이므로 회개하지 말아야만 한다. 그런데 왜 다윗은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라고 고백하였으며, 자신의 죄를 말갛게 씻겨달라고 하였으며, 깨끗이 제하여달라고 하였는가? 다윗은 분명히 자신이 주께 범죄하고 주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인구조사 후에 또 우리아를 범하고 난 후 두 번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였는데, 박옥수목사의 주장대로라면 분명히 구원을 잃게 된다. 이와 같이 성경본문에서 \"회개\"라는 용어가 예수를 처음 믿는 단회적인 신앙의 거듭남만을 반드시 의미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어진다. 다음 성경구절은 \"돌이켜 회개하라\"고 하였는데, 왜 \"모든 죄\"에서 떠나라고 말하고 있으며,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한다고 하였는가? -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 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 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겔18:30) 박옥수목사는 죄를 회개하면 죄인이 되어서 구원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다음 성경본문은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고 죄악을 숨기지 않고 죄를 아뢰면 주께서 죄의 악을 사하여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32:5) 박옥수계열의 구원파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 회개하면 죄인이 되므로 구원을 못받는다. # 한번 예수 믿고 죄사함을 받으면 죄가 실제로 전혀 없어지므로 온전한 의인이 되어진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박옥수가 주장하는 거듭남의 비밀이란, 겨우 성경에 기록된 것과 반대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박옥수는 \"비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그 비밀을 깨달아야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케 하였다할 자가 누구뇨?(잠20:9) - 하나님 한 분 외에 선한 이가 없느니라(눅18:19) 죄가 있다고 하였던 아래 성경구절을 기록한 기자들은 모두 구원을 잃어버렸는가? 성경의 기자들은 과거에만 죄인이었다고 말한 것인가? -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전7:20) -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왕상8:36) -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14:3) -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롬3:8-9) -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 2) 의인과 죄인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알 듯이, 예수를 믿으면 죄인이 의인으로 바뀐다. 그것을 칭의라고 부르며, \"의롭다함을 얻음\" 혹은 \"의롭다함을 받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칭의란 실제로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우리는 죄사함, 속죄라는 용어를 잘 파악하기 위하여 구약의 제사에 대해 살펴보자.... 어린 양을 희생양으로 삼아 그 양에게 죄를 전가시킨다. 과연 구약의 유대인들이 짐승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하여 그 죄가 실제로 없어지며 온전한 의인이 되어질까? 그들은 결코 온전한 의인이 되지 못하였으며, 그들은 계속 죄를 범하였던 것이다. 즉 하나님은 그들에게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에 대한 면책을 주시는 것이다. 즉 죄를 가리워 주시는 것이며 심판을 면제해 주시는 것이다. \"속죄\"를 가르키는 대표적인 구약의 히브리 단어는 \"카파르\"인데 그 단어는 \"덮다, 가리우다\"를 의미한다. 구약에서의 궁극적인 죄의 속죄는 희생제사였으며, 신약에 있어서도 궁극적인 죄의 속죄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과연 구약에서 짐승으로 제사를 지내면 그 당사자의 죄가 모두 없어지며 실제로 의인이 되었을까? 바울은 그리스도를 \"그의 피로 인한 화목제물\"(롬3:25)이라고 말하였는데 \"화목제물\"이란 단어는 헬라어 \"힐라스테리온\"으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희생제물\"을 가르킨다.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마1:21) 이것이 바로 대속이다..... 우리 죄인들이 의인으로 정말로 바뀐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임을 잊지말자. 그의 피흘림으로 인하여 우리 죄가 덮어진 것이며, 사함을 받은 것이며,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다. 성경을 잘 정독하여 보자..... 죄가 정말로 없어져서 실제로 온전한 의인이 된 것인지, 아니면 죄가 가리워지고, 의롭다하심을 얻고, 사하심을 받은 것인지 말이다. -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4:6-8) 우리들이 정말로 의인이 되었기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 인하여 \"대신\" 화목제로 희생하였기에 우리 죄가 가리우심, 덮으심을 받은 것이다. 다음 성경구절을 보자....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이다. -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3:7) -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4:4)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4)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주시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롬3:4) 이 \"디카이오마\"(의롭다하심을 얻음: 칭의)에서 파생된 \"디카이오시스\"라는 단어는 원래 법적인 용어이다. 즉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법적신분의 무죄선언을 말한다. 예를 들어보면, 내가 교통사고로 어떤 사람을 다치게 하였는데 재판에서 무죄선언이 되었다고 하자. 실제로 나에게는 죄가 있지만, 무죄선언이 되므로 나는 정죄되지 않고 석방되었다. 다시 말하면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면책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 그것이 바로 구원인 것이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마암아 살리라.....\"라고 말하고 있다. 의인이 되었으므로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의인이라고 칭하여 주시는 믿음으로 인하여 살게 되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죄가 완전히 없어져서 완전한 의인이 되었으므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지만 무죄선언을 하여주셔서 그 죄를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값없는 은혜가 되는 것이다. 3) 죄란 무엇인가? 죄는 원죄(sin)와 자범죄(crime)로 분류하며 원죄는 죄책과 죄성(부패와 오염)으로 나눈다. 죄란 물질병사가 아니며, 그러므로 죄가 우리 몸 안에 없어지거나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관계\"를 말한다. 우리가 A라는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면 그것은 나와 A와의 관계를 말하며, 내가 B에게 죄를 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인이라는 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한다. 즉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는 \"죄\"란 첫째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다. 요한일서 3:4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죄\"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죄책\"(죄에 대한 책임, 罪責)과 그 죄로 인한 \"오염된 죄성\"을 말한다. 다시 말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는 것은 죄책(죄에 대한 책임)에 대한 사함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이신칭의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노라.\" (롬8:1) 예수를 믿고 거듭나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는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을 면책하여준다는 의미이다.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정죄함\"이 없게하여 준다는 것이다.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6-19)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과 같이 실제로 완전한 의인이 되어 장래 죄도 짓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심판이 면제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죄책은 없어지지만, 원죄로 인하여 오염된 죄성은 우리에게 남으며, 그 오염된 죄성은 전가되어지므로 우리는 죄를 짓게 된다. 원죄의 쓴 뿌리가 자범죄의 원인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단 거듭난 신자 안에 남아있는 것은 원죄의 결과로 인한 죄성(오염)이다. 아담으로 인한 죄로부터 전가된 죄책은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지만, 죄성은 거듭남과 동시에 이제 변화가 시작되었더라고 할지라도 아직 완전하게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거듭난 자도 자범죄를 짓게 된다. 거듭난 자에게도 죄악된 옛본성과 정욕이 아직 남아있어 성령의 소욕과 싸우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화라는 과정이다.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도, 육신의 소욕을 따르지 말라고 도처에서 경고하며 권면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실제로 완전한 의인이 된다면, 성령의 인도는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성경을 보면, 바울같은 사도도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 자신에게 육신의 법, 즉 죄의 법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1-23) 아래 성경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속에 죄가 있으며, 그 죄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7-20) 그래서 인간은 누구든지 의인은 없다..... 만일 하나님이 온전한 의인만을 구원하신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 예수를 믿었다 하더라도 그가 실제적으로 온전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의인이라고 불려 주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이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임을 감사하는 것이다. 그 죄와 허물을 덮고 가리기 위하여 다른 대안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는 것이다..... 바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히9:22) 속죄의 원칙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벧전4:18) 4) 구원의 확신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이시다. 또 심판이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몇월몇일에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구원파의 주장에 의하면 단 한번만 회개하면 두 번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즉 그들의 구원받은 날짜는 그들이 처음 믿고 회개한 날이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원파의 교리를 깨닫고 알게된 날이 될 것이다. 박옥수구원파들이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9시30분경에 웨슬레목사가 회심한 시간과 날짜를 알고 있었다고 변명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 웨슬레목사의 회심은 그가 시간과 날짜를 고의적으로 기억하였던 것이 아니라, 웨슬레목사의 그 사건이 일기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넷상에서 이렇게 그들에게 질문하였고, 그들은 물론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1) 웨슬레목사의 회심의 날짜와 시간이 구원파의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은 시간인가? (2) 웨슬레목사가 반드시 그 시간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가? (3) 웨슬레목사가 한번만 회개하라고 하였는가? 회개하면 죄인이므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했는가? 구원의 확신이란 무엇인가? 어떤 비밀적인 것을 깨닫는 날짜와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후13:5)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에 대한 확증이 없이 무조건 나는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곧 일반교회는 구원이 없으며, 자신들의 거듭남의 비밀을 아는 구원파만이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즉 박옥수목사가 주장하는 거듭남은 더 이상 회개치 않는다는 것이며, 그 비밀을 아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되어진다. 박옥수목사의 주장대로라면, 일반교회는 반복적인 회개를 하여야 한다고 하니 구원파가 말하는 거듭남과 깨달음이 없으며, 그러므로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 구원의 조건이 \"회개를 안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회개를 하면 구원을 잃고 회개를 안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들이 말하는 거듭남과 죄사함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 일반교회의 그것과 동일하다면, 그들은 \"비밀\"이란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을 다음과 같이 넷으로 구분할 수가 있을 것이다. 1. 나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실제로 구원받을 사람. 2. 나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실제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 3. 나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원을 받을 사람. 4. 나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 구원의 확신이란 1번과 3번의 경우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구원의 확신이란 개인적, 주관적인 것이 아니며, 믿음의 확증이 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하여 \"구원\"이란 하나의 과정이며 길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미 구원의 길에 들어섰지만, 우리는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믿음의 지속성과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주의하여야만 하며, 궁극적인 구원은 최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즉 구원이란 \"믿음의 현재적인 과정의 연속\"이어야만 한다. 어떤 비밀이나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히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고....\"(엡3:17) 즉 현재 자신의 믿음을 전혀 확증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과거의 어떤 행위만으로, 혹은 내가 어떤 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어떤 비밀을 알아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전혀 비성경적이다. 구원이란 오직 하나님의 주권사역이며 인간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즉 현재 자신의 믿음을 전혀 확증하지 않고 무시하면서, 과거의 믿음만으로, 혹은 내가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과거적인 사실이나 어떤 깨달음으로 내가 이미 구원을 얻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구원의 확증이 아니다. 즉 구원의 확신이란, 내가 지난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믿었기 때문에 나는 구원을 이미 얻었고, 이 믿음으로 인하여 현재 구원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믿음을 계속 유지할 것으므로 장래에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확증이 되어져야만 한다. 물론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그 믿음의 주체는 언제나 인간의 몫이며 인간 스스로의 책임의 한계라는 것을 잊지말자. 너무나 당연히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지만, 예수를 안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구원의 확신이란 맹목적이며 주관적인 확신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믿음의 확신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을 자기자신이 스스로 결정하여서는 곤란하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 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후13:5) 나는 몇월몇일에 구원 받았다....!! 그것이 기껏 박옥수가 주장하는 비밀인가? 그렇다면 나는 2000년 전에 구원을 받았다.
구원파, 왜 이단인가?
구원파, 왜 이단인가? Ⅰ. 같은 교리에 다른 세 개의 구원파 (권신찬, 이요한, 박옥수) 구원파란 이름이 증명하듯이 구원을 강조하는 집단이라는 점과, 더욱이 기성교단의 이름을 가진 6개의 이단 중의 하나라는 점을 볼 때 이단 중의 이단이 이 구원파이다. 권신찬, 유병언 씨가 이끄는 구원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란 이름으로, 이요한, 일명 이복칠 씨가 이끄는 구원파는 '대한예수교침례회'란 이름으로, 박옥수 씨가 이끄는 구원파는 '예수교복음침례회'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통 침례교가 많은 피해를 입고있는데, 한국교회는 이 점을 유의하여 정통교단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1981년에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 편집위원회 이름으로 편저한 신아문화사 발행(발행인 송일동), 「세칭 구원파란?」 제목의 구원파를 옹호하는 책이 나온 일이 있었다. 그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들의 주장이 장로교나 감리교의 기본적인 교리와 전혀 차이가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도 잘 알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론적으로만 교리를 알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뿐이다."(p41) 이 말에 의하면 구원파들의 교리와 기성교회 교리가 아무 차이가 없는데, 교리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로 자신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는 말이 된다. 즉 이단이 아닌 자를 이단으로 규정했다는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이단된 자보다, 이단을 규정한 자가 더 나쁠 것이다. 또한 같은 책 머리말에서는, "교리적인 것이라면 얼마든지 우리를 비판해도 상관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과연 저들의 말대로 구원파 교리는 정통 기독교의 것과 같은가? 필자는 지금부터 정통 기독교와 너무나 유사하나, 다른 종교요 다른 복음이요 또한 반 하나님적이요, 반 성경적인 구원파의 이단성을 교리적인 면에서 분석 비판하려고 한다. 본인은 수 차례 권신찬, 박옥수 씨에게 공개질의를 한 일이 있다. 물론 대답은 없었다. 이 책은 이요한 씨를 포함하여 권신찬, 박옥수 씨에게 공동으로 드리는 공개질의서라고 볼 수 있다. 권신찬, 이요한, 박옥수, 이 세 사람이 이끄는 같은 교리의 다른 교단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 점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단지 그들의 교리가 정통교회와 무엇이 다른가 하는 점이다. 이요한 씨는 권신찬 씨와 윤리적인 면에서는 물론, 교리적인 부분에서 다르다고 했다 한다. 필자는 다 같은 입장에서 비판하려 하는데, 이요한 씨나, 박옥수 씨는 권신찬 씨의 이론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밝혀 응답해 주기 바란다. 자신들의 교리가 기성 정통교회와 다르지 않다고 하든(권씨처럼), 아니면 정직하게 다르다고 하든, 정통교회의 교리와 분명히 다른 교리들을 밝히려 한다. 다르다고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면 고치고 회개하여 돌아올 것이요, 그렇지 않는다면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 단지 성도를 미혹하기 위한 위장전술에 불과한 것이었음이 판명될 것이다. Ⅱ. 구원파 교리, 무엇이 다른가 1. 구원관에 나타난 이단성 최근 들어서는 구원파 교인들 중에 10단계 질문서라는 것을 사용하는 자들을 본 일이 없다. 이 10단계 질문서를 비록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질문 속에 구원 문제에 대해 저들이 주장하고 싶은 모든 내용과 기성교인들을 미혹할 수 있는 함정의 핵심이 다 숨어 있다. 그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첫 번째 질문: 선생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실히 알고 믿습니까? 두 번째 질문: 선생님은 거듭나셨습니까? 세 번째 질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확신하십니까? 다섯 번째 질문: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여섯 번째 질문: 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까? 일곱 번째 질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이 아닙니까? 여덟 번째 질문: 구원받은 것이 확신되어집니까? 아홉 번째 질문: 재림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열번째 질문: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점에 대한 구원파의 어떤 주장이 성경과 다른가? (1) 회개의 개념이 다르다. 모든 이단들이 정통교회의 약점을 찾아 공격하고, 기성교인들의 체계나 확신을 뒤흔들어 자기들만의 구원을 주장하는 것처럼 구원파는 이 회개문제를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즉 기성교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공격하기 위하여 새벽마다 울고불고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요, 또한 회개란 단어를 구원받은 후에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는 적용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 논리적 근거는 이 것이다.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설명하면 이런 말이다. 회개란 오직 구원을 위해 돌이키는 행위로써 우리의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현재, 미래, 과거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셨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만 가능한데 이미 사해준 죄를 또 다시 사해 달라고 울고불고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그런 점에서 회개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요, 결국 울고불고 회개하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백 날을 울고불고 회개해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정죄해버리는 것이 구원파이다. *비판해 보자. ① 구원을 위해 필요한 회개라 구체적 죄의 고백이 없어도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그리스도께 돌이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그 실례가 누가복음 23장 강도의 구원이다. 물론 죄인이 되었기에 죄를 짓게된 것이요, 죄는 보고, 죄는 깨달으며, 죄는 고백하나 죄인임을 깨닫고 죄인임을 고백하지 못하면 안 된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를 짓는다. 그러나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것은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 된 것이다. 더욱이 구체적인 죄에 대한 참회하는 마음과 통회자복하는 마음없이 어떻게 죄인임을 알게 되는가? 죄에 대한 의식이 없이는 죄인에 대한 의식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다. 죄를 범하지 않는 죄인도 있는가? 없다. 구원파의 주장은 죄와 죄인의 관계를 잘 모르고 행하는 오직 기성교인을 미혹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 ② 회개에는 지, 정, 의의 인격적인 요소가 다 포함된다. 죄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있을 때 통회자복하게 되고, 눈물을 흘리게 되고,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이키게 되는 것이 아닌가? 구원파의 사람들은 회개란, "돌이키는 것이다."라는 말만 할 뿐이며, 구체적인 회개의 행위가 무엇인지 대답하는 경우를 본 일이 없으며, 오직 기성교회의 회개의 자세를 부정하려는 데에만 일치점이 있었다. 물론 통회자복하고 눈물을 흘린 그 행위가 죄를 씻는 것은 결코 아니다. 회개를 하면 회개의 행위가 죄를 씻는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긍휼과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죄를 씻고, 죄를 사하고,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시는 것이다. 단지 회개란 죄 때문에 죽어버린 인간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사랑의 법칙일 뿐이다. 그러니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행위를 공격할 것이 아니라, 회개에 대한 성경적인 바른 깨달음이 없는 자기 연민의식의 눈물과 슬픔을 회개로 착각하는 교인들을 동정하고 바르게 가르쳐야 할뿐이다. ③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으로 회개를 거듭하는 것은 구원이 없는 증거로 보는 점이 비성경적이다. 구원을 위한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에 대하여는 별개로 취급하겠다. 일단 구원을 위한 단회적 회개의 면만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는 불신자가 예수를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만큼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의 터에 머무르지 않고 성장하기를 똑같이 바라고 계신다. 그런 점에서 성장을 촉구하며 회개의 터(구원을 위한)를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가라고 촉구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히 6:1-2). 원리적으로 볼 때 틀림없이 구원의 터를 두 번 닦을 수 없고, 구원을 위한 회개를 두 번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구원파의 잘못은 구원을 위한 회개를 두 번 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이 여러 번 할 수 있다는 성도의 약점을 혼돈하고 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의미로 믿음이 약한 자들을 정죄한 곳이 있는가? 심지어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예수는 믿고 구원은 받았으나 아직 젖밖에 못먹는 어리아이를 가르쳐 육신에 속한 자(σαρκικοs)라고 했는데 구원파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도 지옥의 자녀가 되지 않겠는가? (고전 3:1) ④ 구원파는 구원을 위한 회개와 성화를 위한 회개를 혼돈하고 있다. 그들은 구원을 위한 회개가 단회적임을 밝혔다. 그러나 성화를 위한 회개는 반복적이다. 이 말은 성화를 위한 회개와 구원을 위한 회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회개 자체는 둘다 단회적이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사건 자체는 단회적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회개하라는 말을 제 1 단순과거형태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같은 죄를 계속 범한다는 점에서 성화를 위한 회개는 반복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만일 성경이 구원파의 말처럼 한 번 사죄 받은 후에는 미래의 죄까지 사함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필자도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그것이 상식적으로 보아도 무서운 종교가 될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후에는 어떤 죄도 죄가 아니라는 논리가 가능해지고 결국 살인, 간음 등 어떤 죄도 지을 수 있다는 말이요, 실질적으로 그렇게 적용시키는 구원파 교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즉 구원받은 후에도 죄를 지으나 그저 그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참으로 성경의 가르침과는 하늘과 땅처럼 멀지 않은가? 다음의 성구 다섯 개는 분명히 같은 회개란 단어의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임이 입증되는 결정적 성구들이다. <다섯 개의 핵심 성구를 중심으로> 1. 시편 51편 박씨는 본 51편의 회개 또한 구원을 위한 회개로 보지 않는지 5절의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는 말을 가지고 다윗이 원죄를 말하고 있지 않느냐고 했으며 더 나아가서는 어디에 다윗이 그 입으로 직접 자신의 죄를 열거하며 사해주기를 바랬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 물음에 저의는 오늘과 교회가 하나 하나의 죄를 들어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이고 회개는 한번으로 족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잘못된 하나의 전제로부터 스스로 다음과 같은 모순을 낳게 합니다. 우선 다윗이 회개를 여러 번 했다는 말이 됩니다(본문, 삼하 24:10, 시편 32:5 등). 그러니 다윗은 구원의 확신이 없었다는 말이요 고로 다윗은 지옥에 갔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다윗이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한 내용이 없다고 하니 이 얼마나 성경을 모르는 소리인가. 그가 "죄과" "죄악" "죄"라고 한 말은 무슨 죄인가? 그리고 14절에서 "피흘린 죄"에서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또한 17절에 그가 "통회하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2. 사무엘하 24:10 이곳에 나타난 다윗은 회개는 더욱 결정적입니다. 그가 직접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며 사해주기를 구했습니다. "(인구조사 후에)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구원파의 말대로라면 이미 사함을 받았는데 무엇을 또 사해 달라는 말입니까? 다윗을 또 다시 지옥으로 보내시렵니까? 3. 주기도문(마태복음 6장) 우리가 늘 암송하는 주기도문 중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구원파들은 이 회개도 단회적인 회개로 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가지 문제에 봉착되어 버립니다. ① 이 기도문 전체가 모두 반복되어야 할 기도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한번만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없으며, 일용할 양식이 한번만 필요한 것도 아니며,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한번만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죄사함이 기도만은 한번으로 족할 수 있겠습니까? ② 만일 이 회개가 성화를 위한 회개가 아니라면 구원 또한 유동적일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후에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우리의 죄도 사함받지 못함이니 구원파의 말로하면 지옥에 가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③ 본문은 원어에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 죄는 복수로서 자범죄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주어가 복수일 때나, 구체적인 죄에 의해 나타내는 원죄를 말할 때를 제외하고 원죄를 나타낼 때 복수로 사용된 경우가 있는가 제시해 보십시오. 주기도문의 이 회개는 우리가 매일 해야 할 성화를 위한 기도임이 분명합니다. 4. 요한일서 1:8-9 먼저 본문을 살펴봅시다.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여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얼핏 보면 구원에 대한 회개를 말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렇게 볼 때 3가지 문제에 봉착됩니다. ① 이 편지의 수신자는 불신자가 아니고 성도들이었습니다. 이 서신에서 요한은 이 편지를 받은 자들에게 "자녀들아" 또는 "아이들아" "형제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지칭하는 호칭들입니다. 성도들에게 또 다시 구원을 위한 회개를 가르친다는 것은 모순된 일입니다. ② 본문에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했는데 이 우리란 주어는 1인칭 복수로서 저자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도요한이 한번에 족한 회개기도를 또 하려 했고 또 성도들에게 가르쳤다면 사도요한은 지옥으로 보내야 할 것입니다. ③ 여기에서 사용된 "죄"란 단어 또한 복수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성화를 위한 회개로서 구체적인 죄에 대한 회개를 가르치는 말입니다. 5. 끝으로 요한계시록의 교회들에 보낸 사도요한의 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회개하라는 말이 12번 나오는데 대부분 구체적인 죄를 하나씩 지적하여 열거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들은 바로는 이들 구원파는 구체적인 죄의 고백은 구원을 위한 회개도 아닌 것으로 그것을 부정하였습니다. 물론 본인도 한두 가지 죄를 고백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구원을 위한 회개가 다 되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자는 한가지 구체적인 죄의 뉘우침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전인이 죄인임을 알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죄에 대해 죄의식이 없이 전인적인 의미에서 죄인이란 의식은 불가능할 것이 아닙니까? (2) 죄인과 의인의 개념이 다르다. 구원받은 후에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물어서 죄인이라고 하면 천국은 의인만 가는 곳이요, 지옥은 죄인이 가는 곳이니 지옥에 간다고 말한다. 물론 우리는 신분적으로 의인임에 틀림이 없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죄인을 의인으로 여겨주시는 것이다. 더욱이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가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고 해도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감사 외에 뽐낼 것도 예수님의 공로 외의 자랑할 것도 없다. 그런데 구원파의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의인이냐, 죄인이냐를 물어서 "죄인이다"라고 하면 지옥의 자식으로 정죄해 버린다는 점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거스리는 사탄적 궤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욥의 세 친구는 하나님 편에서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형벌을 받는다고 말하여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다가 오히려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다.(욥 42:7-9) 사실 참된 의미의 의인이 아니면 참된 의미의 죄인이란 고백이 불가능한 것이며, 또한 참된 의미의 죄인이란 고백이 없이 참된 의미의 의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성경적 증거가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음을 강조하던 바울은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다는 사실이다(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셨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딤전 1:15). 13절에서는 자신이 훼방자요, 행악자였음을 과거시제로 밝히고 나서 죄인임을 고백할 때는 현재시제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단자들에게 어떤 성구를 말한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겠는가? 특히 박옥수 씨와 그 수하의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과거시제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웃어야 할 것인가, 울어야 할 것인가? (3)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사상이 다르다. 구원파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묻는다. 아니 그렇게 묻는 것을 즐겨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최대 무기로 사용하는 것 같다. 10년만에 시아버지 장로님을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첫 인사가, "아버님, 구원받으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한다. 필자가 아는 어떤 목사님에게, "목사님 구원받으셨습니까? 이제 보니 구원을 못 받으셨군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으세요."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대답을 못하거나 화를 내면 구원받은 자에게 구원 받았느냐고 묻는 데 대답을 못할 것이 무엇이며, 더욱이 구원받은 성도라면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이들이 구원파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 같은데 그들 편에서 보면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여겨야 할텐데 왜 교단이름을 아예 구원파라고 하지 않고, 역사적 정통성도 없이 침례교 이름을 도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그들은 구원의 점진성 같은 것은 아예 부정한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확신이 없는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심지어 몇 년, 몇 월, 몇 시, 몇 분에 구원 받았느냐고 다그치는 것이 상례이다. 이 점을 하나님의 주권과 관계시켜 비판해 보자. ① 구원을 확증하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고 하는 점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다.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이 있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 구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성경이 구원을 확증하라고 할 때(고후 13:5), 구원의 확신이 구원을 좌우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성경은 구원의 확신을 요구하나 예수를 믿고 있으면서도 확신이 없는 자들을 구원파처럼 구원받지 못했다고 말한 일이 없다. 그 경우가 위에서 언급한 히브리서 6:1-2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주신 말씀으로 보게 되면 모순이 생기게 된다. ② 구원의 문제를 인간의 믿음의 측면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믿음을 동시에 말한다. 즉 하나님의 전지성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동시에 균형있게 나타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을 촉구하지만 구원이 인간의 믿음의 대가라거나 인간의 공로라고 말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인 예정을 말한다고 해서(엡 1:4, 2:1) 인간의 의무인 전도나 믿음을 의심하지도 경시하지도 않는다. 분명 믿음으로 얻는 것이 구원이나 하나님의 주권을 잊어버리면 그것도 인간주의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즉(우리의 구원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고 하였다. 필자는 구원파의 교리를 구원관과, 교회관과 종말론의 측면에서 정통교회의 교리와 다르다는 점을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그 핵심이 이 구원관에 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기독교복음침례회', '예수교복음침례회', 또는 '대한예수교침례회'란 공식적인 명칭 외에 구원파란 이름이 저들에게 붙여진 것은 그들이 구원에 대한 질문을 핵심으로 정통교인들을 유혹하고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마치 구원에 대한 비밀을 자기들만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의 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 구원을 받은 것처럼, 또는 좁은 의미의 구원 즉, 중생이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심지어 자신들만 구원받은 무리인 것처럼 겸손으로 위장된 영적 교만과 오만을 떨기에 정통교회는 그들을 일명 구원파 이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글쓴이 소개 * - 최삼경 목사 - 現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상담소 소장 겸 이단사이비대책위원 現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경기도 퇴계원 '빛과소금' 교회에서 목회
구원파/ 2002-11-30
구원파 1. 구원파의 현재 상태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단 집단 중 하나가 구원파이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만큼이나 구원파에 의한 피해 호소도 급증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파는 이단'이라는 인지도가 다른 이단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 이유로는 구원파 신도들이 자신을 '구원파'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집회소 명칭도 '한밭중앙교회' '삼각교회' '서울교회' 등으로 정통 교회의 교회명과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구원파"가 표면에 부상하여 한국교회에 물의를 야기한 것은 1968년 10월 포항중앙교회사건이다. 교인들의 미혹과 혼란, 반교회적 적대감 조성, 제도적 유형교회의 부정 등으로 기성교회가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이들이 '침례회' 간판을 걸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한국침례회'라는 기성교단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1982년 하반기부터 서울 영동지역 일각에서 주로 여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각기 자기 재산을 모두 바치지 아니하면 들림을 받을 수 없다"라는 등의 구원을 물질과 결부시키는 다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1) 발생과정 1961년 미국인 선교사 Dick York의 영향을 받은 유병헌과 네덜란드 선교사 Case Glass의 영향을 받은 권신찬에 의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초기부터 점점 성경과 다른 주장들을 하기 시작했으나 이단으로 정죄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1972년에는 극동방송의 한 프로를 담당하여 진행하기도 했고 그 방송을 통해 '기존교회의 새벽기도, 예배의식, 주일성수, 십일조, 장로제 등은 율법적' 이라고 비난하는 설교를 했다. 또 극동방송의 일부 직원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해서 1974년에 11명이 해고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2) 주요교리 [성서관] 새벽기도, 합심기도, 금식기도 등 개인적인 기도는 필요없고 구원파 교인들끼리 사업과 교회일을 논의하는 교제가 기도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요한복음 14:6절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구절에서 '나'란 구원파 교회를 뜻한다고 본다. 그리고 구원파 지도자들의 설교집 등을 읽게 하면서 기존의 신앙서적들을 읽지 못하게 한다. 율법과 은혜 구원받은 자는 매일매일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끗해지고 거룩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 자체가 정상적인 예배라고 한다.(유형교회 부정) 금식, 기도, 희생, 봉사는 필요 없고 오직 말씀과 교제를 통해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구원관] 구원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이론으로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의지적인 회개와 결단은 배제된 채 말씀을 읽다가 깨달아지면 인간의 영 즉 양심에 해방과 자유가 온다고 주장한다. 죄인과 의인의 개념을 기성교회와 달리해서 구원 받은 후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교인들에게는 세계각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재림이 가까웠음을 암시하고 과거의 죄에 대해 죄의식을 부추킨다. 이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구원 받으셨습니까?'이다. 죄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에 선듯 대답할 수 가 없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 받았다고 하면 '구원 받은 날짜를 이야기 해보라'고 해서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 놓는다. 2. 각 계열별 특징 +- 권신찬 계열 +- 이요한(본명 이복철) 계열 +- 박옥수 계열 +- 기타 유사한 교리와 사상을 가진 계열 1) 권신찬 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 오대양 사건과 (주)세모와의 관련설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권신찬의 '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61년 11월 네덜란드 선교사 길기수(Case Glass)의 영향으로 '죄사함을 깨달았다'는 권신찬씨와 미국인 독립선교사 딕욕(Dick York)의 영향으로 '복음을 깨달았다'는 유병언씨에 의해 시작되었다. (권씨와 유씨는 장인과 사위 관계이다.) 1963년부터는 선교사들과의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구축, 1969년부터 1981년 말까지는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로 1981년 11월 21일부터는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부의 소재지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231-23 서울교회로서 통상 삼각지교회로 불린다. [주장] 첫째, 하나님은 인격이 아닌 영이라고 한다. 권신찬은 "(사람들이)영을 자기의 인격적 활동화 혼돈하여 인격의 일부인 이지(理智)나 감정이나 의지로서 영이신 하나님과 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권신찬, 양심의 해방, p.9)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권씨 외에도 위치만 니, 위트니스 리(지방교회, 회복교회), 김기동(귀신론), 이명범(레마선교회) 등이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성경이 말하는 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여 철학적이고 세속적인 삼분법적 인간 이해에 따라 영과 인격(혼)을 분리하는데서 기인한 것으로서 결국 이에 상응하여 영이신 하나님 조차도 인격이 아닌 존재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둘째, 급박한 시한부적 종말론을 주장한다. '잠시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위험한 지구', '임박한 대환난', '세계정부와 666', '인류파멸의 징조' 등의 책을 통하여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전파하면서 금세기 내에 종말이 올 것 같은 공포감을 조성하고 구원파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중재림 때 휴거될 수 없고, 소위 7년 대환난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믿게 하고 있다. 또 구원의 수가 차야 신부인 교회가 완성되어 휴거된다고 한다.(권신찬, 위험한 지구, p, 27~31) 2) 이요한 계열 (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의 본명은 이복칠이다. 구원파의 초창기부터 목포에서 권신찬을 추종했던 인물로서 1962년에 '중생을 경험했다.'라고 하며, 구너씨에게서 안수를 받았다. 유병언이 교회의 헌금을 사업에 전용하는 것을 문제삼아 기업이 곧 교회의 일이라는 유병언파를 비난하면서 교회와 기업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복음수호파'로 분파되었었다. 현재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간판 아래 활동하고 있다. [주장] 권신찬계에서 분파되었기 때문에 신조마저 권씨계의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라는 12개 항을 약간 수정하여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라는 10개 항을 만들 정도로 거의 유사하며 종말론에 있어서 권신찬과 다른 요소가 있으나 구원관에 있어서 권씨와 그 근본의 차이가 없다는 점은 그가 비록 권씨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하나의 구원파에 불과할 뿐이다. 3) 박옥수 계열 박옥수는 중학교3학년 중퇴생으로서 체계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으며, Dick York이라는 자와 권신찬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1962년 10월7일 '거듭난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죄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주제로 전국 순회집회를 하고 있는데, 한 때 대구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 '예수교복음침례회'라고 했다가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재 서울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다가 현재는 대전 소재 한밭중앙교회를 본거지로 삼고 있다 [주장] 풍유적 성경해석을 오용, 남용하고 있다.(박옥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p59~70) 박옥수는 죄와 범죄, 회개와 자백을 구분하여 반복적 회개는 부인하고 삶에서 나타나는 범죄는 하나하나를 일일이 고백하여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으며 죄 자체를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회개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사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죄가 해결되어 구원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죄가 용서되어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주장한다.(기쁜소식, 1989년 2월호, p7~9, 1989년 3월호, p14~15). 또 죄인이라고 말하면 지옥 간다면서 딤전 1:15에서 사도 바울이 '죄인의 괴수'라고 했던 것은 원문이 '과거형'으로 되어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실제 성경 원문에는 13절에서 죄에 대하여는 과거로 고백하고 15절의 '죄인의 괴수'라고 할 때는 현재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성화가 배제된 중생의 구원만을 강조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2. 구원파의 주장과 해설 1) 언제부터인지 구원파 신도들이 정통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접근하는 방법이 다소 변형되었다. 기존의 '10가지 질문서'라는 형식적인 면을 탈피하고, '기도 생활'도 어느 정도 '형식 갖추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단적 교리는 변함이 없다. 지금도 역시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는 내용의 질문을 가지고 기존 성도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들의 집회 중 기도의 모습(대표기도, 합심기도, 중보기도 등)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그들이 즐겨쓰던 '10단계 질문서'는 그들이 기성교회 신자들을 어떤 점에서 공격하는지 잘 보여준다. ① 선생님의 이름이 생명 책에 기록된 것을 확실히 알고 믿습니까? ② 선생님은 거듭나셨습니까? ③ 성령님이 마음속에 계심을 믿습니까? ④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확신하십니까? ⑤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⑥ 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까? ⑦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은 아닙니까? ⑧ 구원받는 것이 확신되어집니까? ⑨ 재림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⑩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2) "이미 구원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다"라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필요가 없다.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했으므로 회개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외우지 않는다.('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시고'라는 부분 때문에 외우지 않는데, 이 부분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다'는 내용으로 바꾸어서 외우기도 한다.) 사죄를 간구하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논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회개하는 고통이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 매력적이다. 영적 투쟁을 하려고 하는데 잘 하지 못할 때 이 말을 듣게 되면 그 논리와 확신에 넘어가기 쉽다. 비판-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히6:1-8)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시51편, 삼하 24:10, 요13:8-10, 요일 1:8-10) 또한 죄에 대한 참된 통회와 회개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구원파의 주장은 결국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합리화하며 자유롭게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3)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물어서 죄인이라고 하면 천국은 의인만 가는 곳이요, 지옥은 죄인이 가는 곳이니 지옥에 간다.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해야만 구원받았다. 비판- 산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성화 되어 간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완전히 성화 되지 못했기에 죄악과 허물과 실수 가운데서 살게 된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도 자신의 죄인 됨을 과거 시제로 고백했을 뿐아니라(딤전1:13), 현재 시제로 고백하고 있다(딤전1:15). 현재 시제에서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이면 어느 누가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구원파는 이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1:15절 원문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현재 번역이 원문과 일치함이 확인되었다. 4)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교회의 제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주일성수, 새벽기도, 십일조는 율법의 소산이다"라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왜 주일 성수, 새벽기도, 십일조와 같은 율법의 소산들을 행해야 하는가 ? 우리는 이제 믿음 안에서 자유를 얻었는데, 다시 율법적인 생활로 되돌아가서는 안된다. 비판-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얻는 은총이므로 구원 얻는 조건으로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교회의 제도가 필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구원받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의 질서를 지켜야 하며,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마련해 주신 교회의 제도와 법을 더욱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교회의 모델이 되는 초대교회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행2:46). 교회는 신앙성장과 교제를 위한 것이다. 주일 성수, 새벽 기도, 십일조 등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땅한 의무이며 은혜 받는 통로이다(눅11:42). 그러므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이것들을 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더욱 이를 힘써 행해야 한다. 5) "이미 구원받았으니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예수님께서 힘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모두 하셨다. 우리는 이제 그 은혜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어리석고 교만한 행동이다. 설령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죄를 지어도 죄로 정죄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가? 비판-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없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롬1: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위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지만,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서 고난과 희생, 섬김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섬기는 길이요,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다.(히13:12,13)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은 죄를 범해도 죄로 정죄되지 않으므로 죄를 범치 않기 위해서 애써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유혹에 동요되어서는 안된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엄히 경고하고 있다.(빌2:12,갈5:13) 구원파의 주장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육신의 편안함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이다. 6)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권신찬 씨가 「죄사함을 깨닫고」, 이요한 씨가 「복음을 깨닫고」, 박옥수 씨가 「거듭난 체험」을 했다는 것은 다 같은 뜻으로서 「깨닫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깨닫고 거듭난 시각, 곧 구원받은 시각(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하다. 비판- 구원파의 주장에 따르면 육적 생일은 부모나 타인에 의해서 알 수밖에 없는데 영적 생일도 타인이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다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구원파가 유치하게 나오니 해설도 유치한 수준으로 낮아진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 깨달음은 믿음에서 오는 것으로 깨달음 자체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처럼 주장하여 영지주의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 그 믿음이 성령으로 인쳐질 때 구원받는다고 하였다(롬8:11,롬10:10) 3. 구원파에 대한 결론 믿음의 한 가지 기능인 깨달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영지주의적 사고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구원의 확신이 곧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인 동시에 성령으로 인쳐진 자가 구원을 받았다는 로마서 진리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나,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하면 지옥에 간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명백한 이단인 것이다.
구원파/ 거짓말/ 2008-03-25
구원파/ 거짓말 1. 구원파의 현재 상태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단 집단 중 하나가 구원파이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만큼이나 구원파에 의한 피해 호소도 급증하고 있다. 그것은 ‘구원파는 이단’이라는 인지도가 다른 이단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 이유로는 구원파 신도들이 자신을 ‘구원파’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으며, 그들의 집회소 명칭도 ‘한밭중앙교회’ ‘삼각교회’ ‘서울교회’ 등으로 정통 교회의 교회명과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구원파”가 표면에 부상하여 한국교회에 물의를 야기한 것은 1968년 10월 포항중앙교회사건이다. 교인들의 미혹과 혼란, 반교회적 적대감 조성, 제도적 유형교회의 부정 등으로 기성교회가 많은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이들이 ‘침례회’ 간판을 걸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한국침례회’라는 기성교단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1982년 하반기부터 서울 영동지역 일각에서 주로 여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각기 자기 재산을 모두 바치지 아니하면 들림을 받을 수 없다”라는 등의 구원을 물질과 결부시키는 다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1) 발생과정 1961년 미국인 선교사 Dick York의 영향을 받은 유병언과 네덜란드 선교사 Case Glass의 영향을 받은 권신찬에 의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초기부터 점점 성경과 다른 주장들을 하기 시작했으나 이단으로 정죄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1972년에는 극동방송의 한 프로를 담당하여 진행하기도 했고, 그 방송을 통해 ‘기존교회의 새벽기도, 예배의식, 주일성수, 십일조, 장로제 등은 율법적’이라고 비난하는 설교를 했다. 또 극동방송의 일부 직원들이 이들의 주장에 동조해서 1974년에 11명이 해고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2) 주요교리 [성서관] 새벽기도, 합심기도, 금식기도 등 개인적인 기도는 필요 없고 구원파 교인들끼리 사업과 교회 일을 논의하는 교제가 기도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요한복음 14:6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구절에서 ‘나’란 구원파 교회를 뜻한다고 본다. 그리고 구원파 지도자들의 설교집 등을 읽게 하면서 기존의 신앙서적들을 읽지 못하게 한다. 율법과 은혜 구원받은 자는 매일매일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끗해지고 거룩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도의 교제 자체가 정상적인 예배라고 한다(유형교회 부정). 금식, 기도, 희생, 봉사는 필요 없고, 오직 말씀과 교제를 통해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구원관] 구원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이론으로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의지적인 회개와 결단은 배제된 채 말씀을 읽다가 깨달아지면 인간의 영 즉 양심에 해방과 자유가 온다고 주장한다. 죄인과 의인의 개념을 기성교회와 달리해서 구원 받은 후에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교인들에게는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야기하면서 재림이 가까웠음을 암시하고 과거의 죄에 대해 죄의식을 부추긴다. 이들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구원 받으셨습니까?’이다. 죄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 받았다고 하면 ‘구원 받은 날짜를 이야기해 보라.’고 해서 구원의 확신을 흔들어 놓는다. 2. 각 계열별 특징 +- 권신찬 계열 +- 이요한(본명 이복칠) 계열 +- 박옥수 계열 +- 기타 유사한 교리와 사상을 가진 계열 1) 권신찬 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 오대양 사건과 (주)세모와의 관련설로 큰 물의를 일으켰던 권신찬의 ‘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61년 11월 네덜란드 선교사 길기수(Case Glass)의 영향으로 ‘죄 사함을 깨달았다’는 권신찬 씨와 미국인 독립선교사 딕 욕(Dick York)의 영향으로 ‘복음을 깨달았다’는 유병언 씨에 의해 시작되었다. (권 씨와 유 씨는 장인과 사위 관계이다.) 1963년부터는 선교사들과의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구축, 1969년부터 1981년 말까지는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로 1981년 11월 21일부터는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부의 소재지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231-23 서울교회로서 통상 삼각지교회로 불린다. [주장] 첫째, 하나님은 인격이 아닌 영이라고 한다. 권신찬은 “(사람들이) 영을 자기의 인격적 활동과 혼돈하여 인격의 일부인 이지(理智)나 감정이나 의지로서 영이신 하나님과 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권신찬, 양심의 해방, p.9)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권 씨 외에도 위치만 니, 위트니스 리(지방교회, 회복교회), 김기동(귀신론), 이명범(레마선교회) 등이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성경이 말하는 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여 철학적이고 세속적인 삼분법적 인간 이해에 따라 영과 인격(혼)을 분리하는데서 기인한 것으로서 결국 이에 상응하여 영이신 하나님조차도 인격이 아닌 존재로 만들고 마는 것이다. 둘째, 급박한 시한부적 종말론을 주장한다. ‘잠시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위험한 지구’, ‘임박한 대환난’, ‘세계정부와 666’, ‘인류파멸의 징조’ 등의 책을 통하여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을 전파하면서 금세기 내에 종말이 올 것 같은 공포감을 조성하고 구원파 교회에 들어오지 않으면 공중 재림 때 휴거될 수 없고, 소위 7년 대환난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믿게 하고 있다. 또 구원의 수가 차야 신부인 교회가 완성되어 휴거된다고 한다(권신찬, 위험한 지구, p. 27~31). 2) 이요한 계열 (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의 본명은 이복칠이다. 구원파의 초창기부터 목포에서 권신찬을 추종했던 인물로서 1962년에 ‘중생을 경험했다.’라고 하며, 권 씨에게서 안수를 받았다. 유병언이 교회의 헌금을 사업에 전용하는 것을 문제 삼아 기업이 곧 교회의 일이라는 유병언파를 비난하면서 교회와 기업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복음수호파’로 분파되었다. 현재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간판 아래 활동하고 있다. [주장] 권신찬계에서 분파되었기 때문에 신조마저 권씨계의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라는 12개 항을 약간 수정하여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라는 10개 항을 만들 정도로 거의 유사하며 종말론에 있어서 권신찬과 다른 요소가 있으나 구원관에 있어서 권 씨와 그 근본의 차이가 없다는 점은 그가 비록 권 씨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하나의 구원파에 불과할 뿐이다. 3) 박옥수 계열 박옥수는 중학교 3학년 중퇴생으로서 체계적으로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으며, Dick York이라는 자와 권신찬의 영향을 받았으며,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1962년 10월7일 ‘거듭난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을 주제로 전국 순회 집회를 하고 있는데, 한 때 대구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 ‘예수교복음침례회’라고 했다가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재 서울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다가 현재는 대전 소재 한밭중앙교회를 본거지로 삼고 있다 [주장] 풍유적 성경해석을 오용, 남용하고 있다(박옥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pp.59-70). 박옥수는 죄와 범죄, 회개와 자백을 구분하여 반복적 회개는 부인하고 삶에서 나타나는 범죄는 하나하나를 일일이 고백하여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으며 죄 자체를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회개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사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죄가 해결되어 구원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죄가 용서되어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주장한다.(기쁜소식, 1989년 2월호, pp.7-9, 1989년 3월호, pp.14-15). 또 죄인이라고 말하면 지옥 간다면서 딤전 1:15에서 사도 바울이 ‘죄인의 괴수’라고 했던 것은 원문이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나, 실제 성경 원문에는 13절에서 죄에 대하여는 과거로 고백하고 15절의 ‘죄인의 괴수’라고 할 때는 현재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성화가 배제된 중생의 구원만을 강조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2. 구원파의 주장과 해설 1) 언제부터인지 구원파 신도들이 정통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접근하는 방법이 다소 변형되었다. 기존의 ‘10가지 질문서’라는 형식적인 면을 탈피하고, ‘기도 생활’도 어느 정도 ‘형식 갖추기’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단적 교리는 변함이 없다. 지금도 역시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는 내용의 질문을 가지고 기존 성도들에게 접근하고 있으며, 그들의 집회 중 기도의 모습(대표기도, 합심기도, 중보기도 등)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그들이 즐겨 쓰던 ‘10단계 질문서’는 그들이 기성교회 신자들을 어떤 점에서 공격하는지 잘 보여준다. ① 선생님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확실히 알고 믿습니까? ② 선생님은 거듭나셨습니까? ③ 성령님이 마음 속에 계심을 믿습니까? ④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확신하십니까? ⑤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⑥ 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까? ⑦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활은 아닙니까? ⑧ 구원받는 것이 확신되어집니까? ⑨ 재림주를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⑩ 구원의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2) “이미 구원받았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다”라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회개란 ‘돌이킨다’는 말로써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한 번 돌이켰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필요가 없다. 이미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다 사했으므로 회개를 계속한다는 것은 사죄의 확신이 없는 증거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기도문도 외우지 않는다.(‘우리의 죄를 사해 주옵시고’라는 부분 때문에 외우지 않는데, 이 부분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다’는 내용으로 바꾸어서 외우기도 한다.) 사죄를 간구하는 기도도 하지 않는다. 이 말들은 논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회개하는 고통이 없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기에 매력적이다. 영적 투쟁을 하려고 하는데 잘 하지 못할 때 이 말을 듣게 되면 그 논리와 확신에 넘어가기 쉽다. 비판-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히6:1-8)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인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시51편, 삼하24:10, 요13:8-10, 요일1:8-10). 또한 죄에 대한 참된 통회와 회개는 믿음에서 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구원파의 주장은 결국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을 합리화하며 자유롭게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3)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물어서 죄인이라고 하면 천국은 의인만 가는 곳이요, 지옥은 죄인이 가는 곳이니 지옥에 간다.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해야만 구원받았다. 비판- 산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고 성령의 역사 속에서 성화 되어 간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완전히 성화 되지 못했기에 죄악과 허물과 실수 가운데서 살게 된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도 자신의 죄인 됨을 과거 시제로 고백했을 뿐 아니라(딤전1:13), 현재 시제로 고백하고 있다(딤전1:15). 현재 시제에서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다. 바울이 죄인 중의 괴수이면 어느 누가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구원파는 이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1:15절 원문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현재 번역이 원문과 일치함이 확인되었다. 4)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교회의 제도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주일성수, 새벽기도, 십일조는 율법의 소산이다”라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믿음으로 구원받았는데, 왜 주일 성수, 새벽기도, 십일조와 같은 율법의 소산들을 행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제 믿음 안에서 자유를 얻었는데, 다시 율법적인 생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비판- 구원은 믿음으로 값없이 얻는 은총이므로 구원 얻는 조건으로 다른 무엇을 첨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 교회의 제도가 필요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구원받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의 질서를 지켜야 하며,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마련해 주신 교회의 제도와 법을 더욱 존중해야 한다. 이는 교회의 모델이 되는 초대교회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행2:46). 교회는 신앙성장과 교제를 위한 것이다. 주일 성수, 새벽 기도, 십일조 등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땅한 의무이며 은혜 받는 통로이다(눅11:42). 그러므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이것들을 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서 더욱 이를 힘써 행해야 한다. 5) “이미 구원받았으니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예수님께서 힘든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모두 하셨다. 우리는 이제 그 은혜를 누리기만 하면 된다.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어리석고 교만한 행동이다. 설령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죄를 지어도 죄로 정죄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가? 비판-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없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롬1: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위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완성하셨지만, 선교를 위해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서 고난과 희생, 섬김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을 섬기는 길이요, 그의 명령에 복종하는 길이다.(히13:12,13)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은 죄를 범해도 죄로 정죄되지 않으므로 죄를 범치 않기 위해서 애써 십자가를 지는 것 같은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유혹에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이러한 자들을 엄히 경고하고 있다(빌2:12, 갈5:13). 구원파의 주장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육신의 편안함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이다. 6)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주장 ☞ 구원파의 주장 - 권신찬 씨가 「죄사함을 깨닫고」, 이요한 씨가 「복음을 깨닫고」, 박옥수 씨가 「거듭난 체험」을 했다는 것은 다 같은 뜻으로서 「깨닫고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깨닫고 거듭난 시각, 곧 구원받은 시각(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 육적 생일을 기억하는 것과 같이 영적 생일을 기억해야 구원받은 증거가 확실하다. 비판- 구원파의 주장에 따르면 육적 생일은 부모나 타인에 의해서 알 수밖에 없는데 영적 생일도 타인이 가르쳐 주어야 알 수 있다는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구원파가 유치하게 나오니 해설도 유치한 수준으로 낮아진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 깨달음은 믿음에서 오는 것으로 깨달음 자체가 구원을 얻게 하는 것처럼 주장하여 영지주의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성경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고 그 믿음이 성령으로 인쳐질 때 구원받는다고 하였다(롬8:11,롬10:10) 3. 구원파에 대한 결론 믿음의 한 가지 기능인 깨달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들의 주장은 영지주의적 사고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구원의 확신이 곧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구원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처사인 동시에 성령으로 인 쳐진 자가 구원을 받았다는 로마서 진리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구원을 위한 단 1회적 회개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나,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하면 지옥에 간다는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명백한 이단인 것이다.
구원파/ 교리를 분석
구원파] 교리를 분석 2004-02-18 13:35:08 read : 100 구원파는 그들이 제시한 12신조 (성경,삼위,하나님, 죄,구원, 교회, 재림, 천년왕국, 지옥, 천국 등 주제에 대한 신조)와 내부교육용 교 리를 함께 가르치고 있다. 12신조의 내용은 복음주의적 기존교단의 신앙내용과 별 차이가 없 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구원파의 지도자인 권신찬씨와 유병언씨가 성 경이 아닌 본인의 경험에 근거해 가르치는 주장과 가르침이 전통적 인 신앙에서 이탈되어 있다는 점이다. 권씨는 자파교인들에게 `우리 의 신앙생활은 일반교회 생활과는 아주 틀리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 성서관 = 구원파는 정통교단에서 준수하고 있는 역사적, 문법적, 신학적 해 석을 하지 않고 체계적 신학교육을 무시한채 우화적 해석을 하고 있 다. 예를들어 권씨는 말라기 3:16을 문맥과 관계없이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일을 의논하는 성도의 교제는 참으로 중요한 기도이다.`고 해 석하고 있다. 개인적인 기도는 필요없고 구원파교인들끼리 사업과 교 회일을 논하는 교제가 기도를 대신한다는 해석이다. 유병언씨는 요한 복음 14:6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에 서 `나는 교회 즉 구원파 교회를 나타낸다고 영해하고 있다. 구원파 는 신국약 성경을 주로 예언서로 취급한다. 권씨와 유씨의 설교내용 대부분을 구원과 교회와 종말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임박한 대환 란], [세계 독재자와 666], [위험한 지구] 등 종말에 관한 책과 말세 의 징조를 수록한 스크랩북으로 전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성경에 버금가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 삼위일체론 = 권씨는 삼위일체를 부인하면 이단이라면서 그들의 신조에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성부하 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구별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여 겨지지 않는다. 유씨는 교회를 `성령의 몸` 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요 10:6이나 15:5 을 강해할 때 예수님을 교회와 성령을 동일시 하기도 한다. 구원파는 하나님의 인격성(Personality) 대신 영성만을 부각시키고, 예수님의 인성보다 신성이나 초월성만을 강조하고, 성령의 보편적인 역사를 부인하고 제한하는 것이 특징이다. = 구원관 = 구원파의 구원관은 두 지도자의 경험에 두고 있다. 이들은 성경에 서 자신의 죄가 용서된 것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현세의 규범과 교회 사에 나타난 선배 성도들의 회심경험에서 이탈되어 있다. 구원파의 구원에는 의지적인 회개와 결단이 빠져있고 예수 그리스도 의 인격적 만남이 결여되어 있다. 구원파 소속교인들은 전도대상자에 게 `구원 받으셨습니까?` 라는 질문함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으로유 명하다. 그들은 기존 교인들을 만나면 (1)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2) 당신은 완전히 중생했습니까? (3) 당신은 지금 죄가 있습니까? 없습 니까? 등 질문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기존교회의 약점을 들추어 기성 교회를 부정하게 한다음 재림의 임박성을 강조해 불안감을 더한 후그 들의 구원공식에 따라 해방감을 준다. 구원파의 두 지도자가 율법적인 종교생활에도 불구하고 확신과 안식 이 있는 교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해 기존교회에 서 공통적으로 행하고 있는 예배, 십일조, 장로. 집사제도, 주일성수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등을 모두 종교라고 규정해 율법과 종교에서 해 방받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구원파의 구원에서는 의지적인 회개와 위탁으로의 믿음이 빠져있다. 구원파에서는 하나님이 영이 되시기 때문에 복음의 진리를 듣다가 깨 달아지면 인간의 영 즉, 양심에 해방과 자유가 온다고 가르친다. 즉 그들은 두 지도자의 회심경험을 따라 똑같은 깨달음의 관문을 통과 해야만 구원받은 것으로 인정한다. 특히 구원파는 신자는 반드시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하며 거듭난 날 자와 시간, 장소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씨는 `당신이 거 듭난 그 날자를 잊어 버린다 해도 그날은 꼭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 장한다. 구원파의 구원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영원한 속죄를 받았으니 다 시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권씨는 `구원 이후의 죄가 영혼의 구원 이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 는다`고 주장한다. 권씨의 이 말에 성경적으로 틀린 것이 없다. 최삼 경 목사는 이에대해 `자신이 이단의 정죄받지 않기 위해서는 기존교 회와의 동질성을 강조하며 구원파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기성교인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는 이질성을 강조하여 정통교회를 정죄하는 두개의얼 굴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구원관과 관련해 구원파는 율법의 무용론을 주장한다. 최근 권씨는 구원파의 가르침의 타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쓴 글에서 예수님이 십 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전히 성취시켜 끝내신 것이다. 만일 율 법이 끝나지 않았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받고 그 앞에 의롭다 함 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 -박옥수의 대한예수교침례회(기쁜소식선교회)를 중심으로- 정 동 섭 전 침신대 교수 현재 전국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단은 안상홍증인회(하나님의 교회), 무료성경신학원(신천지 교회), 그리고 구원파(대한예수교침례회와 기독교복음침례회)이다. 이단은 지도자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는 추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단은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여 가르침으로 영혼을 멸망시키고 하나님의 교회를 분열시키며, 가정을 파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유병언과 이요한, 박옥수라는 세 인물이 이끌고 있는 구원파는 사이비기독교로서 초대교회를 어지럽히던 이단사상 도덕률(율법)폐기론과 영지주의가 2000년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침례교를 빙자해서 세계 도처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구원파의 세력은 본래 외국에서 들어온 이단이라 할 수 있다. [유병언/권신찬의 기독교복음침례회, 이요한(이복칠)의 대한예수교침례회; 박옥수의 대한예수교침례회 중앙교회파, 서달석의 서울중앙침례교회]는 모두 미국의 헬리콥터 조종사 Dick York과 화란인 독립선교사 Kaas Glas의 사상을 물려받은 자들이다. 현재 구원파는 크게 5계열로 나뉘어서 활동하고 있다. 유병언씨는 서울 삼각지에, 이요한씨는 안양시 인덕원에, 박옥수씨는 대전시 변동에, 서달석씨는 광명시 철산동에, 윤방무는 미국 L.A.에 본부를 두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구원파는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단이 아니라, 정통기독교를 부정하는 미국의 돌팔이 선교사에 의해서 수입된 이단이다. 국내적으로는 유병언과 그의 장인 권신찬이 모두 장로교(통합측) 출신이기 때문에, 장로교회에서 파생된 사이비침례교 또는 사이비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분파현황 ⑴ 권신찬, 유병언 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 한국의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는 1962년 경북 대구에서 고 권신찬과 그의 사위 유병언에 의해 시작되었다. 권신찬은 대구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1951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후 10년간 경북지방에서 장로교목사로 목회를 하였으나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1961년 11월 8일 설교준비를 하던 중 로마서 3장 2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의가 되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ꡒ십수년간 내 양심을 칭칭 동여 매었던 죄의 사슬이 한꺼번에 풀어졌다ꡓ고 밝히고 있다. 얼마 후 그는 네델란드 선교사 Kas Glaas(길기수)에게 침례를 받음으로 경북노회로부터 제명처분을 받았다. 구원파의 실세인 유병언은 같은 시기에 대구서문교회에 다니다가 1962년 4월 7일 미국인 독립선교사 Dick York의 설교를 듣다가 ꡒ복음을 깨달았다.ꡓ 유병언은 1961년 외국인독립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대구성경학교에서 박옥수, 이종섭, 유강식, 심남섭, 김성준 등과 함께 공부하다가 그 무리에서 이탈하여 권신찬과 손을 잡고 그들 나름대로 포교활동을 펴기 시작했다. 서울의 극동방송에서 한국어방송을 담당하던 권신찬과 유병언은 1977년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를 결성하여 전국적으로 활동하다가, 그들의 이단성이 탄로나면서 1973년 방송국에서 밀려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 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이 회사는 후에 (주)세모로 발전하게 되어, 오대양사건으로 일으키는 토양을 마련하게 된다. 1981년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교단이름을 사용하여 기존교회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오대양사건 이후 사업에만 주로 전념하고 있는데 그 교세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길]이라는 정기간행물을 내고 있다. 본부의 소재지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 1가 231-23 서울교회로서 통상 삼각지교회로 불린다. ⑵ 이요한(이복칠)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본명 이복칠)은 목포출신으로 권신찬의 수제자이며, 그에게서 목사안수를 받은 거짓목사이다. 이요한 계열은 유병언이 교회의 헌금을 사업에 전용하는 것을 문제삼아 기업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유병언 파를 비난하면서 교회와 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1983년 분파되었다. 공주에 기도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안양 인덕원과 광주를 중심으로 3만명의 교세를 확보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ꡒ대한예수교침례회ꡓ라는 간판 아래 활동하고 있으며, 본부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239-1 삼원빌딩 4층 서울교회이다(안양시 인덕원에 교회당을 새로 지어서 이전했다). [생명의 빛]이라는 월간지가 나오고 있다. 이요한 계열은 권신찬, 유병언 계열에서 분파되었기 때문에 신조마저 유병언계의 ꡒ우리는 무엇을 믿는가?ꡓ라는 12개항을 약간 수정하여 ꡒ우리는 이렇게 믿는다ꡓ라는 10개항을 만들 정도로 거의 유사하다. 종말론에 있어서 약간 다른 요소가 있으나 구원관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없음으로 이 글에서는 권신찬, 박옥수를 중심으로 구원파의 이단성을 파혜치기로 한다. 이요한 계열은 전국적으로 교회건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⑶ 박옥수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박옥수는 중학교 3학년 중퇴생으로서 체계적인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고 Dick York과 권신찬의 영향을 받았으며, Dick York에게 개인적으로 목사안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옥수씨는 경북 낙동강 유역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를 중퇴하고 1962년에 대구에서 죄사함을 ꡒ깨달음ꡓ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대구 계명대학교 앞에서 1983년까지 단독 목회를 하다가, ꡒ서울제일교회ꡓ를 담임하기도 했고, 1984년부터 대전 변동에 한밭중앙교회(기쁜소식선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대도시의 체육관을 빌려 성경세미나를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년 4박5일의 일정으로 경북 김천에 기쁜소식선교회 수양관에서 여름수양회를 주관하고 있다. 기쁜소식선교회의 이름으로 [죄사함, 거듭납의 비밀]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무료로 배포하며 전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군부대와 교도소에까지 침투하면서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기쁜 소식]이라는 월간지를 내고 있다.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재 서울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대전 변동에 있는 한밭중앙교회(기쁜소식선교회)를 본거지로 삼고 있다. 부흥회 대신 성경강연회 또는 성경세미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세 계파의 공통점이다. 성경을 이지적으로 이해하고 깨달아야 할 책으로 보는 것이다. 이들은 5-7일 집회를 통해 기존정통교회를 의심하거나 부정하게 만든 후에 참석자들의 세계관과 교회관을 바꾸어 놓는다. 권신찬(유병언), 이요한, 박옥수는 회개를 부인하는 깨달음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적 사상으로 인하여 199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77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구원파 지도자들은 성경을 억지로, 풍유적으로 해석한다. 대부분이 체계적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즉 성경해석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구원관을 강조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억지로 해석하기를 서슴치 않는다(예: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 등). 성경은 무식한 자들이 성경의 역사, 문화, 문법, 신학을 무시하고 말씀을 억지해석하여 이단을 만든다고 경고하고 있다(벧후 3:16). 성경은 우리의 칭의와 성화 그리고 영화를 위해 죄인들을 변화시킬 목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구원파는 성경을 지식적으로 깨달아야 할 책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이들은 성경부흥회나 심령부흥회, 사경회라는 표현을 거부하고 성경강연회 또는 성경세미나라는 표현으로 현대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이단이 있다. 첫째는 성경외의 자기 계시, 즉 자기 성경을 가지고 있는 이단이 있다.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몰몬교와 같은 이단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성경만이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로 인정하는 이단이 있다. 둘째 이단이 첫째 보다 훨씬 더 무섭고 해악이 크다. 드러난 질병 보다 숨은 질병이 더 무섭다. 이단은 그 본성이 미혹하는 자요, 속이는 자요, 노략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 이단성을 효과적으로 숨기려 한다. 구원파는 성경을 믿는다고 강조하기 때문에 그 미혹성이 더 크다고 할 것이다. 신학적으로 구원파의 이단성은 어디에 있는가?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등 구원파의 여러 계파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종합 사이비이단연구보고집, 2001): ① 구원관이 잘못되었다. 회개와 믿음이 빠진 ꡒ깨달음ꡓ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② 회개관이 잘못되었다.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한다. ③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④ 정통교회의 제도(장로, 집사)와 예배형식,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철야기도, 축도를 무시한다. 종교와 복음, 기독교인과 그리스도인,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을 구분하여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1. 신관이 잘못되었다. 하나님은 인격이 아닌 영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믿지 않고, 이신론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사실만을 강조하여, 하나님을 주로 인류역사, 특히 중동정세를 주관하는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인 힘으로 부각시킨다. 구원파에서 전하는 하나님은 기계적으로 그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이신론적인 존재일 뿐, 우리를 사랑하셔서 개인적으로 인도하시고 섭리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성을 강조하고 인격성을 부인하거나 격하시킨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백성의 반응에 따라 뜻을 돌이키시기도 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보여준다. 구원파의 대부격이 권신찬은 ꡒ영을 자기의 인격적인 활동과 혼돈하여 인격의 일부인 지성이나 감정이나 의지로서 영이신 하나님과 접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ꡓ(양심의 해방, p.9)고 말하고 있다. 구원파는 ꡒ하나님은 영이시다ꡓ(요 4:24)라는 전제하에 복음을 깨달아 구원받는 것, 예배하는 것, 기도하는 것 등 모두를 ꡒ영, 즉 양심의 활동ꡓ으로 제한 시키고 있다. 영의 세 가지 기능, 직관, 영교, 양심 가운데서도 특히 양심의 기능만을 강조하여 죄책감에서의 해방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기도, 찬양, 예배를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행태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권신찬은 말한다. ꡒ예배는 형식을 갖춘 의식이 아니라 영의 동작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데 있어서 어떤 형식을 갖추느냐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예배의 형식은 이교도의 제사의식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짙다ꡓ(세칭 구원파란, p.23). 한편 구원파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그의 인성을 무시하거나 극히 경시하는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구원파의 이단성은 역시 그들의 구원관에 있다. 2. 구원관이 잘못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였다. 그러므로 구원문제는 기독교의 최초의 문제이면서 최후의 문제이기도 하다. 구원파에서도 죄사함과 구원을 강조하나 이들은 다른 의미의 구원을 전하고 있다. 구원파는 특히 구원론에서 곁길로 빠지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이단이다. 이런 점에서 구원파는 이단 중의 이단이다. 대개 이단은 구원론, 종말론, 그리고 신비주의를 중심으로 생겨난다. (1) 구원파의 세 계파는 사람을 ꡒ죄덩어리ꡓ로 규정하여 죄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씨는 죄(원죄)와 범죄(자범죄: 도둑질, 거짓말, 살인, 간음 등)를 구별한다. 박옥수가 말하는 죄는 아담의 원죄(original sin)를 가리키고, 범죄는 우리의 자범죄(present sins)를 일컫는 것이다. 죄와 죄의 증상을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문제는 그가 죄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단의 특징은 성경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되 자기들의 목적에 맞추어서 그 의미를 바꾸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박씨는 인간을 죄의 종, 사탄의 종으로 표현하면서, ꡒ죄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인간,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죄악 덩어리, 죄 투성이ꡓ라고 설명한다([내 죄벌이 중하여], 2003, p.160). 원죄란 아담이 범죄한 후 인류의 삶을 옭아매며 인간으로 하여금 계속 범죄하도록 만드는 힘있는 그 무엇이다. 자범죄란 이 힘에 의해 범한 악행을 의미한다. 박옥수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죄에 대한 회개는 한 번 하는 것인데, 기성 교인들이 죄를 회개하거나 고백하지 못하고 계속 범죄만 회개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죄인이냐 의인이냐를 물었을 때 의인이라고 고백하지 못하고 죄인이라고 하면 역시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자식으로 정죄해 버리는 것이다. 이점을 직접 그의 글 속에서 살펴보자. "요한 1서 1장 9절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지은 죄를 하나하나 모두 고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달랐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이라고 되어 있지요?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도둑질하고 거짓말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는 것이 죄입니까? 천만에요.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여러분, 문둥병이 무엇입니까? 손가락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코가 일그러지면 문둥병입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은 문둥병의 증상이고 문둥병의 결과이지, 문둥병 자체는 아닙니다. 여러분, 장티푸스가 무엇입니까? 열이 나고 머리카락이 바지는 것입니까? 그것이 장티푸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장티푸스 균이 들어 갔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요. 그것처럼 죄와 범죄도 근복적으로 다릅니다."(박옥수,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기쁜소식사, 1993. p.33) "성경에는 '죄'와 '범죄'에 대해 명백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 말씀에서 '내가 도둑질 했습니다'하고 범죄한 것을 자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자백하라는 뜻입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 p.36) "시편 51편 5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그렇게 고백하지 않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자신이 무슨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는 근본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고백한 것입니다. 나는 죄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의 결과를 고백하는 것과 죄의 근본을 고백하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p.37). 박씨는 심지어 성경에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여러분, 아무리 유명한 부흥 목사의 이야기라 해도 성경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닙니다. 회개하면 죄가 씻어진다는 말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회개해서 죄를 씻는 것도 성경적인 방법이 아닙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2」 기쁜소식사, 1993. p.50). 박씨에 의하면 죄를 해결해야 범죄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마치 감기를 고쳐야 열이 내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박옥수 씨에게 묻고 싶은 것은, 예수를 영접하고 회개한 후에는 죄가 해결되어서 죄인이 아닌 의인이 되었으니 그 다음부터는 범죄가 없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시면 더 이상 여러분 자신이 죄와 싸울 필요가 없는 줄 압니다. 여러분이 더 이상 술을 끊으려고, 담배를 끊으려고,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고, 방탕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됩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 마음 속에서 그 모든 죄악을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1」 p.16) 물론 구원받은 후에 죄를 안 짓느냐고 하면 안 짓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둘 중에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다. 구원 얻은 자는 죄가 해결되었으니 어떤 죄(범죄)도 안 짓는다고 하든지 아니면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고 해야 될 것이다. 성경적으로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 증거를 세 군데만 살펴보자. 시편 51편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이다. 그는 자기 필요에 의해 여러 번 말했건만 스스로 자기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안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말대로 하면 14절에서,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라고 했는데, 이 '피 흘린 죄'는 '피 흘린 범죄'에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 구별하지 않는 것을 왜 구별 하는가? 사무엘하 24장 10절 다윗이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인구계수를 하여 하나님께 교만의 죄를 범하였다. 그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범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 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했다. 박씨의 말과는 정반대다. 죄가 있어서 인구 계수의 범죄를 했다고 해야 할 터인데,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다"고 하였고, 그 죄를 "큰 범죄를 하였다"고 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종의 범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지도 않았다. 마태복음 6장 12절 주기도문의 일부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했다. 박씨 말대로 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었다"는 말이 불가능하다. 또한 박씨의 말을 인정한다면 우리 인간이 인간에게 범죄할 수는 있어도 죄를 지었다는 말이 불가능할 것이다. 더욱이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범죄가 아닌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가? 죄인임을 시인하고 죄를 해결하면 구원을 받게 되며, 그 후부터는 의인이 되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죄인이라 하며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아담의 죄가 아닌 각자의 죄 때문에 멸망한다(신 24:16; 역대하 25:4; 겔 18:4, 19, 20, 30; 행 3:19; 5:31) 회개무용론은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죄를 지어도 죄가 아니라는 율법폐기론에 빠지게 한다. 바울은 구원을 받은지 3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다(딤전 1:15). (2) 구원파는 구원받았습니까? 라는 질문으로 구원의 확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킴으로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한다. 구원의 확신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이지 어느 집단이나 깨달음이 아니다. 마치 자신들이 구원여부를 시험할 수 있는 시험관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아야 구원의 확신이 있는 것이다. ꡒ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ꡓ(고후 13:5). (회개와 신뢰로서의 믿음이 없이) 복음을 깨닫고 시인하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구원파는 18세기에 나타났던 Sandemanianism이 부활된 것으로 피동적인 깨달음에 의한 구원은 거짓된 평안과 안심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이지 죄사함을 깨달는 것이 아니다. 박옥수는 구원받는데 어떤 의지나 결단도 요구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p.15). 총신대 김정우 교수의 지적처럼, 성경은 깨달음을 의지적인 결단이나 순종과 분리시키지 않는다. 유병언과 이요한, 박옥수의 구원관에 빠져있는 것은 의지적인 회개와 결단으로서의 믿음(신뢰)이다. 구원파는 수동적으로 죄사함을 깨닫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지만 구원과 용서는 조건적인 것이다. 회개하고 믿는 죄인들만 용서함을 받는다.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하는 회개가 전파되었다(눅 24:47; 행 17:30; 20: 21). 구원에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필수조건이다(행 20:21). 회개(metanoia)란 무엇인가?: 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이켜 그를 섬기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자신과 하나님과 죄에 대하여 생각을 바꾸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구원파의 구원에는 깨달음 즉, 이해와 지적 동의만이 있을 뿐이다. 성경의 가르침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사이비기독교이다. 회개의 중요성 : 회개는 생각과 느낌과 의지의 변화를 의미한다. 죄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에는 ⑴하나님의 거룩함과 자신의 죄와 죄책을 인식하는 이지적인 측면과 ⑵ 죄를 슬퍼하는 정서적인 측면과 ⑶죄에서 돌이켜 용서를 구하는, 그리고 목적과 동기를 바꾸는 의지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신약성경은 회개하라(마 3:2)는 명령으로 시작하여 회개하라(계 3:19)는 명령으로 끝난다. 회개(metanoeo)는 신약의 가장 보편적 개념이다. 그것은 심지어 부활보다 더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기독교 복음의 설교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특기할 만 하다. 회개는 기독교설교에 하나의 목적을 부여하였다(William Chamberlain, The Meaning of Repentance, Westminster, 1943). 회개를 설교하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목적이었다(눅 24:46-47: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전파될 것). 바울의 사역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행 26:17-18; 행 17:30-31; 롬 2:4; 계 3:19 (벧후 3:9)는 계속해서 회개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각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으라(행 2:38)고 설교하고 있다. 바울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후 7:10). 회개와 믿음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둘은 중생에 따라 일어나는 것으로 회심의 두 가지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구원받게 하는 믿음은 회개로 침식되어 있고, 회개는 믿음으로 가득차 있다(John Murray). 죄인이 회개하여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회개하게 해야 회개는 가능한 것이다(행 20:21). 구원파는 단회적 회개(히 6:1)와 성화를 위한 반복적 회개(마 6:12; 요일 1:8-9)를 구별하지 못하며, 죄에 대한 참된 통회와 회개는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래서 권신찬은 ꡒ회개는 죄인이 하나님께로 인도되는 것ꡓ이라며, ꡒ죄사함이 회개에 앞선다ꡓ고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중동문화사, [임박한 대환란], p.145). 회개는 생활설계(life design)를 바꾸는 것이다: 전체 생활패턴이 바뀌고, 삶의 목표가 바뀌고, 열망이 달라지는 것이다(Chamberlain).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강권하는 것은 설교자의 엄숙한 의무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주권적으로 회개의 선물을 선사해 그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다(Hoekema). 마틴 루터의 95개조문의 첫 조문을 다음과 같다. "우리의 주요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신자의 삶 전체가 회개이기를 의도하셨다." 믿음의 중요성 : 믿음의 명사형pistis과 동사형 pisteuein은 신약에 약 240번 나온다. 믿음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롬 10:9). 믿음은 어떤 진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모든 것의 창조자가 되시며,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구원하시는 분이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메시야가 되신다고 믿을 수 있다(행 11:24; 롬 3:28; 엡 2:8). 동사로서 pisteuein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 그를 의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⑴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을 수용하는 것과 ⑵구원을 위해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의미했다. 영지주의는 단순한 믿음보다 지식을 우월하게 생각하였다. 믿음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의 보증이다(Faith is the title-deed of the things hoped for: 히 11:1). 신약에서 믿음은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스도께 오는 것(요 6:37); 그리스도를 먹는 것(요 6:51); 그리스도를 마시는 것(요 4:14);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요 15:5). 믿음은 우리 자신 대신에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을 신뢰하고 그 안에 쉬는 것이다. 구원하는 믿음에는 지식(knowledge)과 동의(assent)와 신뢰(trust)가 포함되어야 한다. 무엇을 얼마나 알아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구속을 필요로 하는 죄인이며,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속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성경이 죄와 그리스도, 구원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진리로 동의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구속을 신뢰하고 나를 떠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다. 믿음은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이시다. 구원파에서는 믿음을 하나님께 매달리는 상태로 보기 보다는 확신하는 마음의 신념으로 본다. 그리고 믿음을 존재론적으로 설명한다. 인격적 신뢰하기 보다는 어떤 진리를 깨닫는 상태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권호덕, [박옥수 목사의 ꡐ죄사함ꡑ이해에 대한 비판], 2004, p.17). 구원의 확신 : 요한일서 5:13; 로마서 8:16을 보면,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누가복음 17:5; 마가복음 9:24과 같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확신에서 흔들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ꡒ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이 적은 자여ꡓ(눅 12:28; 마 8:26; 14:31)은 우리가 잠시 의심할 수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믿음의 강함에 좌우되지 않는다. 구원의 근거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사역에 있는 것이다 (Gresham Machen). (3) 박옥수의 구원파는 구원받은 언제, 어디서 구원을 받았는지 시간과 장소를 묻는다. 성경은 바울이나 삭개오, 간수장과 같이 즉각적인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디모데, 빌리 그래함 목사 사모님, 옥한흠 목사와 같이 회심(回心)한 년월일시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박옥수는 점진적 회심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떻게 구원받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누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회심에는 또한 점진적(gradual)인 회심과 급진적(sudden)이고 위기적(crisis)인 회심이 있다. 바울이나 빌립보 간수는 위기적 회심을 경험하였으나(행 9:1-19; 22:3-14; 26:9-18; 행 16:25-34)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점진적인 회심을 경험한 사람이다(딤후 1:5; 3:15). 우리는 같은 주님을 믿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ꡒ우리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렀음을 인정할 수 있다. 우리가 섬길 주님은 오직 한분이나 우리는 다양한 회심의 경험을 통하여 그에게 나아오게 된다ꡓ(Samuel Southard). 어떻게 구원받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불리우는 로이드 죤스(Lloyd-Jones)목사님은 구원받은 날자와 장소를 고집하는 이들의 주장에 이렇게 논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왔느냐 하는 것이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이 그 나라에 들어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당신의 출생 거듭남이 극적이고 흥분된 것이었느냐, 아니면 조용히 거의 알아 차리지 못할 성질의 것이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당신이 정확한 순간을 대고 사용된 성구를 정확하게 인용하고, 설교자의 성명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은 발견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 단 한 가지는 당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께 회심했다는 것을 그들의 신앙과 생활로 증거하고 있는 크리스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구원받은 정확한 시간을 잘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법칙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예외라고 생각된다. 그들이 그 정확한 시간을 기억하든 못하든 그들에게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너 뛴 순간이 있었다 우리는 언제 밤이 변해 낮이 되는지 정확한 시간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낮이 되면 낮이 되었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빌리 그래함, 불타는 세계, 225). 또한 언제 구원을 받았는지 그 날짜와 시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회개하는 신앙 생활을 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것은 참으로 비성경적인 행위이다. 저들은 "어떻게 육신의 생일을 알면서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영적 생일은 모르느냐."고 묻는다. 의미가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 말에 속에도 허점이 있다. 육적 생일과 영적 생일은 유사성 내지는 유비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육적 생일을 알 듯이 영적 생일을 알아야 한다면, 영적 생일도 자기 스스로 알 수 없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적으로 태어난 사람 스스로 자기 생일을 감지하거나 아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박옥수 씨에게 너는 네 생일을 스스로 알았느냐 네 부모가 가르쳐 주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박씨가 자기 생일을 스스로 알았다면 몰라도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질문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구원파에 속한 자가 어떤 집사님에게 구원받은 날짜를 모르는 것을 보니 구원받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다그치니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나는 언제부터 구원받았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구원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내 속에 성령님이 계시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언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나보고 자전거를 못 탄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언제 구원받았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 얼마나 통쾌한 대답인가? 박옥수씨는 구원을 확증하는 목적과 방법이 잘못되었다.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했다고 말하고 있다(롬 9:16). 그러나 또한 구원은 스스로 확증하라고 요구하고도 있다(고후 13:5). 종합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셨을 때 구원을 확증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주권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확신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 더욱이 자신들의 집단에 속한 자들만이 구원받은 것처럼 생각하여 구원을 확증하거나, 자신들의 구원 확증 방법만이 구원을 좌우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요, 사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박옥수 구원파들은 구원받은 자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방법으로 구원이 확인되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로 정죄해 버린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주권 앞에서 겸손하지 못한 것은 마치 구원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기보다 자기들이 준 것처럼 하는 것이요, 구원이 자기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씨의 책에 보면 자기 교회에 와서 구원받았다는 말이 많은 것은 정통교회 교인에 대한 미혹자로 활동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박옥수는 마치 하나님이 구원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집단이 구원을 나누어주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파에서 죄사함을 깨달았다고 하면 그들은 교만한 자세를 취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 은혜 앞에 겸손하고 온유해진다. 이것이 참된 구원과 거짓된 구원의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