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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일본을 380회 왕복하며 선교활동/2007-09-23
20년 동안 일본을 380회 왕복하며 선교활동 세계속의 순복음-할수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순복음 사람들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라는 표어 아래 일본에서 말씀을 증거하는 조용기 목사 (5) 20년 동안 일본을 380회 왕복하며 선교활동 조용기 목사의 주일 설교는 일본지역 13개 교회에 위성으로 생중계 된다. 현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일본에 파송한 선교사는 87명이며, 일본 전역에 개척한 교회는 65개에 이른다. 이와함께 일본 선교를 위해 도쿄에 일본 풀 가스펠 신학대학을 설립하여 신학생을 배출하고 있다. 이런 결실은 1976년에 조용기 목사가 기도하는 가운데 ‘일본 일천만 구령운동’의 사명을 받고 지금까지 일본선교에 매진한 결과이다. 1976년, 조용기 목사는 김락형, 고상권, 임시한 장로 등과 함께 경주에 가서 일본선교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김락형 장로는 “목사님이 일본 선교를 계획하고 계시다며 함께 기도하자고 하시더군요. 물가에 가서 하자고 하셔서 보문호수 가에서 다같이 뜨겁게 기도했습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1976년 8월 4일 일본 오사카에 순복음세계선교회 일본지구연합회를 조직하고, 1977년 8월 조용기 목사는 최자실 목사와 함께 일본 도쿄에서 부흥성회를 인도하였다. 1978년에는 일본 고베에 극동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일본 일천만 구령을 위한 행보가 힘차게 시작되었다. 조용기 목사가 일본 성회에 갈 때면 김락형, 고상권, 임시한 장로를 비롯한 여러 장로들이 번갈아 가면서 동행했다. 그러던 중 도쿄 신주쿠에 있던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여 교역자 없이 예배를 드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락형 장로는 장로들이 생업을 팽개치고 번갈아 가며 일본을 드나들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해주었다. “운영하고 있던 성신치과를 비우고 수시로 일본에 갔어요. 한번 가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머물면서 교인들 가정을 심방하고, 예배 시간에 설교를 했지요. 일단 일본에 가면 한국 생각이 나지 않아요. 하루 종일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호프만 피아노 공장을 운영했던 고상권 장로도 사업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부지런히 일본을 드나들었다. “사업은 뒷전이고 교회 일이 우선이었지요. 그때만 해도 일본에 파송할만한 교역자가 없었어요. 그래서 장로들이 일본에 가서 열심히 뛰었지요. 이상하게도 열흘씩 사업체를 돌보지 않고 일본에 다녀와도 사업이 잘 되었어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으니까요” 사업을 밀쳐두고 자비(自費)를 들여 달려갈 수 있었던 동인이 뭐냐는 질문에 두 장로는 “그냥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다니, 달려가서 일해야겠다는 일념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선교 초창기에 여러 장로들이 조용기 목사의 선교현장에 동행하여 선교활동을 펼치다가 1977년에 정식으로 일본선교회가 발족하였다. 초대회장은 일본어를 잘하는 임시한 장로가 맡게 되었다. 무역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임시한 장로가 사업차 일본 출장 중에 조용기 목사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임 장로는 서울의 집으로 전화를 했을 때 아내가 “조 목사님과 최자실 목사님이 오사카에서 집회를 하고 계시니 가서 만나보라”고 일러주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사카에 가서 목사님을 뵙게 되었지요. 마침 거래처에 전화할 일이 있어 조 목사님 앞에서 전화를 걸어 일본어로 대화를 하게 되었어요. 전화가 끝나자 조 목사님께서 일본어를 잘한다며 일본선교회를 조직하자고 말씀하시더군요. 목사님 말씀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해 보겠다고만 했지요” 임시한 장로는 귀국 후 일본선교회 문제를 놓고 3개월 간 기도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이 이미 해외선교에 관한 기도를 한 일이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어느 날 조 목사님이 심방을 오셔서 해외선교 나가는데 돈이 없어 미숫가루를 갖고 가서 타먹는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주님께 저를 쓰시려거든 해외선교사업에 써달라고 기도했었어요” 임시한 장로는 자신이 해외에 자주 드나들어도 사업에 지장이 없도록 업무를 부사장과 전무에게 분담시키고 당좌수표 거래를 모두 끊었다. 현금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한 후 3개월만에 조용기 목사에게 “일본선교회를 맡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임시한 장로는 선교회를 맡을 때 “하나님, 선교하면서 교회 돈을 쓰거나 선교회 돈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선교 못합니다. 제가 벌어서 선교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임시한 장로는 1977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선교회 회장과 고문을 지내면서 20년 동안 일본을 무려 380회나 오갔다. 조용기 목사 성회 때마다 동행한 것은 물론 집회 준비와 일본 현지 선교회 방문을 위해 일본을 자주 오간 것이다. “한번도 교회 돈 안 쓰고 다 내 돈 내고 다녔어요. 일본에 수없이 드나들었지만 지금까지 사업이 잘되고 있어요. 우리 일본선교회 회원들이 40여 명이었는데, 회원들도 모두 자비를 들여서 선교에 동참했지요. 돈이 없어서 선교사업을 못한 일은 없습니다” 임시한 장로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일본 일천만 구령운동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 일본 기독교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개신교를 먼저 받아들였지만 교세는 아주 미미했습니다. 일본 개신교는 태평양전쟁 이후에 교파가 없이 일본그리스도교단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천황 휘하에 있었어요. 말만 기독교였지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상황이었지요. 그런 가운데 조 목사님이 일본 선교를 시작하셨으니 어려움이 많았지요” 최자실 목사는 1972년 일본 하나님의 성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일본 목사들은 최자실 목사와는 친밀하면서도 조용기 목사는 은근히 경계했다. 임시한 장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원로목사들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이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우월감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를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지요. 한마디로 한국에서 온 젊고 유능한 목사를 인정하기 싫었던 거죠”
300명 돌파의 원리와 전략/명성훈 목사
300명 돌파의 원리와 전략 명성훈 학력 : 서강대 - 순신대 감리교신대원 - 미국 플러신대원 경력 : 국민일보 부설 교회성장연구소 소장 순신대학교 교수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교회성장이 뭐길래 수많은 목회자들이 교회성장이라는 올무와 족쇄에 매여 좌절 혹은 냉소 속에 자신을 괴롭게 해야합니까? 수적인 성장이 안되어 기가 죽어 있는 목회자를 볼 때, 또 목사의 괴로움과 무기력 때문에 성도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교회를 떠나가는 악순환을 바라볼 때 교회성장 전문가라고 하는 필자도 개교회 목회자 못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교회가 생명이라면 자라야 하고, 또 건강한 생명은 당연히 성장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의 사역자로 부르실 떼에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고, 또 할 만하기에 시키신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교회성장은 우리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건강한 교회에는 건강한 목회자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교회성장보다 목사성장이 더 우선입니다. 목사가 건강하면 교회가 건강하고 목사가 성장하면 교회가 성장합니다. 개척한 목회든, 부임한 목회든 성장의 열매를 맛보는 목회자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비전과 믿음이 분명합니다.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뜻이요 일이며 교회성장을 진실로 원한다면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뛰어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나중은 창대할 것이 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둘째로 열정과 헌신이 분명합니다. 셋째로 은사와 지식이 탁월합니다. 넷째로 인격과 사랑이 확실합니다. 1부 300명 돌파의 원리 비전과 목표를 분명히 하라 장년출석 300명은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출석 500명, 재적 1천명의 중형교회 규모를 의미합니다. 우리 나라의 교회가 4만여 개 있지만 장년출석 300명 이상은 10퍼센트 미만입니다. 일부 표본조사에 의하면 장년출석 성도 300명 이상 되는 교회는 우리 나라 전체 교회의 6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장년출석 300명의 목표는 대단히 의미 있는 목표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성공합니다. 교회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목적을 이르기 위한 목표를 설정한 후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세워 최선을 다하면 교회는 건강해지고 그 결과 성장하게 됩니다.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연구한 결과 비전과 헌신이 있는 교회는 성장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도자가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추종자는 그 비전을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집단이나 조직은 반드시 성장합니다. 사고방식의 중요성 창조적 생각을 소유하라 교회성장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교회성장형 사고방식(church growth thinking) 혹은 교회성장형 안목(church growth eyes)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교회성장은 목회자의 마음 혹은 생각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가 성장하여 가시적으로 나타났다면 반드시 그 전에 목회자와 성도들이 마음속에 바라고 추구한 교회의 이미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 이것이 금세기 인류 최대의 발견이다.\" 라고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말했습니다. 철학자 에머슨은 \"하루종일 생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교회건강과 교회성장을 생각하는 사람이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를 경험합니다. 창조적 생각을 훈련하라 항상 태도가 사실보다 중요합니다. 공부를 못한다는 사실보다 공부를 안하려는 태도가 더 문제입니다. 문제보다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더 문제일 수 있습니다. 실패보다 더 큰 실패의식이며, 패배보다 더 큰 비극은 패배주의입니다. 교회의 현실보다 더 큰 문제는 그 교회를 바라보는 생각과 태도입니다. 내 마음속에 큰 교회가 작고 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입니다. 내 마음속에 큰 교회가 있으면 큰 교회의 주인공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작은 교회가 있으면 큰 교회에 부임하였더라도 성장하는 교회로 발전시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생각을 심으면 말을 거두고, 말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 교회의 운명이 우리자신의 생각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좋은 생각, 건강한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품고 있는지 성찰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생각이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자기고백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는 교회성장을 원합니다\", \"나는 교회성장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교회성장형 비전의 확립 교회성장형 비전의 정의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그릇 비전이란 무엇일까요? 첫째로 비전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그룻\'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지만 인간은 유한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유한한 분량으로 다가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무한성을 우리 인간의 유한성에 스스로 제한하십니다. 즉 우리가 체험하는 하나님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품는 한계가 바로 비전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엡 3:20-21)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구하는 것\'(asking) 즉 기도와 우리의 \'생각하는 것\'(thinking), 즉 비전의 그릇 이상으로 역사 하십니다. 다시 말해 기도와 비전이 작으면 작은 능력이 나타나고, 기도와 비전이 크면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 둘째로 비전이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아람 군대를 물리치는 엘리사의 믿음을 만나게 됩니다. 엘리사의 종에게는 수많은 아람 군대만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는 보이는 아람군대보다 더 엄청나게 많은 보이지 않는 천군 천사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그의 종도 볼 수 있도록 \"주여,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소서\"(왕하 6:17)라고 중보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전이란 인간에게는 미래지만 하나님에게는 현실인 것을 현재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비전이 있는 사람은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하나님의 현재로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허락하신 목표 셋째로 비전이란 \'성령께서 허락하신 구체적인 목표\'입니다. 목표를 세우되 좋은 목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실현 가능한 목표는 구체적이고, 측정가능하며, 성취가능하고, 결과 중심적이며, 시간적인 한계가 분명한 목표입니다. 사명을 위한 청사진 넷째로 비전이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한 청사진(blueprint)입니다. 사명이 강하고 분명할수록 비전의 그림도 선명해 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교회성장형 비전의 특징 비전의 유익 우선 비전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살펴볼까요? 비전이 있으면 일곱 가지의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 비전은 방향을 제시합니다. 비전은 정북방을 가리키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인생에 성공하려면 시계만 들여다보지 말고(효율적인 시간관리). 나침반을 살펴보아야 합니다(효과적인 인생관리). 둘째, 비전은 조직전체를 하나되게 합니다. 교회도 조직입니다. 조직이 성공하려면 분열되지 말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셋째, 비전은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다 줍니다. 넷째 비전은 동기를 부여합니다. 사람을 진실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비전입니다. 비전은 신바람나게 하는 분위기 그 자체입니다. 분위기가 바뀌어야 조직이 바뀔 수 있습니다. 다섯째, 비전은 헌신과 후원을 가져옵니다. 여섯째, 비전은 정확한 평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3년 안에 300명 되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 개척목회의 비전이라고 할 때 3년 안에 얼마나 많은 회심자를 얻었는가를 살펴본 후 300명이 넘었으면 성공한 것이요, 그렇지 못했을 때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는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째, 비전은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로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미래를 꿈꾸는 비전이 확실하면 현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마음속은 이미 풍요와 성공이 가득하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전을 이루는 요소 첫째,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목적을 알고 사명을 알고 목표를 알아야 훌륭한 비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둘째,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비전이란 나 혼자 마음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비전이란 내가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넷째, 올바른 정보와 적절한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상적인 비전이 되기 위해 미래를 예측하는 정보가 필요하고, 현실적인 비전이 되기 위해서 성취 가능한 방법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비전을 방해하는 요소 첫째, 전통입니다. 전통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좋은 전통은 새로운 비전을 환영하지만 나쁜 전통은 비전을 방해합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바꿀 수 없다면 그 전통은 비전의 적이 될 것입니다. 둘째, 두려움입니다. 비전을 가진 자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기대와 흥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무사안일입니다. 무사안일이란 현재만 잘 넘어가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소극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넷째, 자기만족입니다. 다섯째, 만성적 피곤입니다. 항상 피곤한 사람은 비전을 가질 수 없습니다. 건강하고 여유가 있어야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추구하고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항상 피곤하다는 것은 자기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비전이란 끊임없이 자기개발과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의 자화상입니다. 여섯째,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300명 돌파를 위한 비전의 성취 왜 300명인가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300명 돌파를 위한 비전의 성취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00명 돌파의 비전을 확립하고 성취하기 전에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왜 300명인가?\' 하는 점입니다. 굳이 300명 장년출석의 목표를 세우는 데는 열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교회가 300명 미만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4만여 교회 중에 장년 출석300명 이상이 되는 교회는 10퍼센트 미만입니다. 목회자가 도달하기 원하는 1차적 목표입니다. 300명은 영적전쟁에서 효과적으로 승리하기 위한 기드온의 숫자입니다. 가장 깨뜨리기 어려운 교회성장의 장벽입니다. 300명은 개척교회가 깨기 가장 어려운 장벽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이 장벽만 넘으면 그 다음 장벽은 훨씬 쉬워집니다. 중대형 교회로의 도약이 가능한 숫자입니다. 300명을 3년 이내에 넘지 않으면 그이상의 중대형 교회가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집니다. 대다수의 대형교회는 개척 3년 이내에 300명 이상을 훨씬 더 넘긴 교회입니다. 재정적, 인적 자립이 가능합니다. 장년 출석 300명이 넘으면 최소 연간 예산이 한국 도시 교회의 경우 3억원 이상이 됩니다. 이러한 인력과 재력은 교회의 목적을 이루는 자원으로 효과적입니다. 선교 및 지역사회의 봉사가 가능합니다. 300명 출석교인이 확보되면 교회의 건물을 신축할 수 있는 저력이 생기고, 전임선교사 1명 이상을 파송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를 위한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충분히 운영할 수 있습니다. 지교회 개척 및 후원이 가능합니다.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의 인적, 재정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300명 장년출석이면 어느 지역에도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민족복음화의 지름길입니다. 대다수의 교회가 300명 미만이라는 사실은 그들 교회가 300명 이상으로 성장할 경우 지금보다 2배 내지 3배 이상의 신자를 확보할 수 있으며, 그것은 민족복음화율 25퍼센트의 벽을 깨뜨리는 사건이 됩니다. 전문화된 다양성의 목회가 가능합니다. 현대목회는 다양성과 전문성을 그 특징으로 합니다. 다양하게, 그러면서도 전문적으로 목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대교회가 다양화된 전문성을 가진다면 300명 정도의 중소형 교회는 특성화된 전문성을 살려야 합니다. 목회자에게는 즐겁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됩니다. 300명이 출석한 회중 앞에서 설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300명의 장벽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입니다. 300 비전의 실현과정 300명 돌파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전을 확보하고 성취하는 실현과정이 정확해야 합니다. 비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300명 돌파를 위해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300 비전의 성취단계 풀어헤치는 기도 우리가 풀면 하나님도 풀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하셨습니다(마 16:19). 우리의 소경된 눈이 믿음의 눈이 되어 하늘 나라의 실재가 보일 때까지 일사각오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사람들의 필요이해 비전은 목회자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한 비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상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사랑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비전을 이루는 최고의 방법은 사랑입니다. 실제적 지침들 300 비전 성취의 세 번째 단계는 비전의 확산과 후원을 위한 팀을 가동시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도자 혼자의 비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성장을 위한 특공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중보특공대, 전도특공대, 양육특공대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큰 비전입니다. 이른바 사람 비전(people vision)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도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실용주의자가 되어야 300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300비전은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십시오. 300 비전은 반드시 가능한 것임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교회성장의 원리를 이해하라 300명 돌파를 위한 교회성장의 전략 300명 돌파가 거의 불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10년 가까이 거의 성장하지 못했거나 감소하는 교회, 같은 목회자가 10년 이상 목회했는데 성장이 없는 교회, 가족 중심의 연대감이 지나치게 강한 단세포적 교회, 50대 이상의 고령성도가 대다수인 교회, 교회시설이 형편없이 열악한 교회,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 그룹에게 성장 비전과 목표가 없는 교회는 300돌파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반면에 300명 돌파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교회도 있습니다. 목회자가 새로 부임한 교회, 장기간 목회하기로 계약이 되어있는 교회, 교회 최종 결정권이 목회자에게 있는 교회, 성장목표가 뚜렷하고 열정과 인내와 지혜가 확실한 목회자를 가진 교회, 작지만 항상 큰 교회처럼 생각하는 교회, 성령의 새로운 역사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교회 등은 300명 돌파가 쉽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300명 돌파를 위한 실제적인 실천전략에는 다음 열 가지가 있습니다. 거룩한 동기를 가지라 첫째로 거룩한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마음 속의 동기를 보십니다. 왜 내가 교호성장을 원하는지, 왜 우리교회가 장년출석 300명 돌파를 원하는지 그 근본동기가 성서적이고 거룩해야 합니다. 사업적인 동기를 가지고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혹시 성공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실패로 끝장납니다. 교회성장의 동기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끈질긴 기도를 드리라 300명 돌파를 위한 두 번째 전략은 \'끈질긴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기 전에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도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진실된 의미에서 기도하는 교회는 성장합니다. 교회성장을 위한 기도는 기도에 대하여 말하고 가르치는 수사학적 기도가 아니라 실제로 시간을 들여 기도하는 행동의 기도(action prayer)입니다. 잠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역사가 일어날 때까지 사생결단으로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기도할 깨 두 가지 목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둘째,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라, 그리고 순종하라\"(Pray and obey!) - 세계 최대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의 교회성장 비결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300명 돌파를 위해 비장한 각오로 목회자부터 기도하고 또 기도의 사명과 은사를 받은 평신도들로 기도특공대를 만드십시오. 교회성장만을 위해 기도하는 기도특공대는 교회를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 것입니다. 미국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성장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Please Pray for Church Growth)라는 영어 문장의 첫글자를 따서 \'PPCG 클럽\'이라는 기도특공대를 결성하여 1년간 집중적으로 기도운동을 전개한 결과 큰 성장의 역사를 경험하였다고 합니다. 목회자를 위한 중보기도 특공대도 함께 만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절대믿음으로 나아가라 300명 돌파를 위한 세 번째 전략은 \'절대믿음으로 나아가라\'입니다. 목회자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쓰십니다. 믿음의 은사와 리더십의 은사는 교회성장형 목회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은사입니다. 교회성장은 노력의 결과라기 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결과입니다. 남다르게 성장하는 모든 교회의 공통점은 믿음이 크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일지라도 크게 생각하는 교회는 그 믿음대로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 개념 이상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자세와 태도 즉 믿음입니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라 300명 돌파를 위한 네 번째 전략은 \'명확한 목표를 세우라\'입니다. 목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람이 목표를 정하지만 그 후부터는 목표가 사람을 이끌고 갑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목표가 좋은 목표, 살아있는 목표입니다. 목표가 있으면 순례자이지만 목표가 없으면 방랑자입니다. 목표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나침반입니다. 단 목표는 성취가능한 것이어야 합니다. 실행계획을 세우라 300명 돌파를 위한 다섯 번째 전략은 \'실행계획을 세우라\'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를 대비하는 계획과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인본주의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는 것은 매우 성서적입니다. 성경에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계획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계획은 사람이 하되 그 계획을 이루시고 완성시키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계획은 곧 미래에 대한 믿음의 증거입니다. 중요한 소수에 집중하라 300명 돌파를 위한 여섯 번째 전략은 \'중요한 소수에 집중하라\'입니다. 어떤 사역이 중요한 소수이냐는 목회자마다 교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WEST로 표현되는 네 가지 사역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Worship, 즉 예배사역입니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예배가 역동적이며 은혜로우며 실제적이면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Evangelism, 즉 전도입니다. 전도하는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전도를 강조하지 않고는 절대로 교회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는 집적 전도하든지 아니면 전도하도록 시키든지 둘 중의 하나를 반드시 실행하고 교회의 모든 에너지를 전도사역에 투입해야 합니다. 특히 불신자를 전도하여 교회성장을 이루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전도는 교회 존재의 목적이요 밖으로 뻗어 나가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셋째는 System. 즉 조직화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도 조직화되지 못하면 오합지졸이요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인원이라도 조직화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300명 장벽을 돌파하고 중대형 교회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교회구조를 성장형 구조로 조직화하고 목회자가 단순한 목양자와 설교자를 넘어서서 지도자 및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장형 구조로 조직화된 메타교회(meta church)만이 전문화, 다양화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특히 구역과 같은 소그룹의 조직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넷째는 Training, 즉 훈련입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사람을 키우고 훈련하는 일에 모든 자원과 노력을 쏟아 붓는 교회입니다. 신바람나는 분위기를 만들라 300명 돌파를 위한 일곱 번째 전략은 \'신바람나는 분위기를 만들라\'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신바람이 나야 잘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신바람을 좋아합니다. 신바람이란 결국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의 열정과 기쁨이 있는 교회는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로 먼저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한 후에 성령충만의 사건을 경험하게 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신바람나게 자발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시키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증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목회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예배와 모임에서는 분위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교회가 갱신되려면 분위기가 달라져야 하고 구조가 혁신되어야 합니다. 신바람나는 분위기를 위해서 성령충만을 강조하는 것과 함께 즐거움을 주는 목회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사입장에서 목회가 취미가 되고, 성도 입장에서 예수 믿는 것이 레저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와 성경공부와 기도와 전도가 영적 놀이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배울 때 즐겁고 놀 때 즐거워합니다. 배움과 놀이를 거룩한 방법으로 제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장형 행사를 개최하라 300명 돌파를 위한 여덟 번째 전략은 \'성장형 행사를 개최하라\'입니다. 300명 돌파를 위해서는 그 목표가 이루어질 때까지 공격적인 공습을 감행해야 합니다. 한두 번 하다가 그만두면 안됩니다. 어떤 일이 가치가 있고 효과적이라면 집중적으로 지속적으로 감행하여 즉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무기력과 무력감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성장형 이벤트로서 많이 활용되는 것이 총동원 행사입니다. 전도집회나 기도사역 등은 전 성도가 일정기간 동안에 최대의 효과를 올리는 집중행사를 통하여 강화될 수 있습니다. 총동원 주일에 교회성도 수의 10배 수를 동원한다든지, 특별 40일 새벽기도 시간에 전성도가 참여하게 한다든지 하여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이러한 성장공습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지금은 앉아서 기다리는 새대가 아니라 찾아가서 끌어오는 시대입니다. 교회와 교회의 행사를 홍보할 때는 여러 번 나누어서 조금씩 투자하는 것보다 일시에 엄청나게 투자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이 더 효과적입니다. 목회적 기능을 적절히 분배하라 300명 돌파를 위한 아홉 번째 전략은 \'목회적 기능을 적절히 분배하라\'입니다. 바람직한 목회가 되기 위해서 목회자는 세 가지 목회기능에 능해야 합니다. 첫째가 전도 기능입니다. 300명이 될 때까지 목회자는 앞장서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가 교회의 체질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전도에 비전이 없으면 300명 돌파는 불가능합니다. 성도들을 전도하는 교인이 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사가 직접 앞장서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둘째가 설교기능입니다. 300명이 될 때까지는 전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지만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는 설교가 은혜로워야 합니다. 성도들이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왔을 때 목사의 설교로 은혜 받고 변화되어야 계속해서 전도하는 \'인도자\'(bringer)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가 관리기능입니다. 전도해서 데리고 오고, 설교로 은혜받게한 후에는 교회에 정착되도록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목사 혼자서 수백 명을 사랑하며 돌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평신도 지도자들을 통하여 관리해야 합니다. 지도자란 자기가 직접 일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는 자입니다. 목회의 분량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사역하느냐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변화를 주도하라 300명 돌파를 위한 마지막 열 번째 전략은 \'변화를 주도하라\'입니다. 성장형 목회자가 되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경우 300돌파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현상유지의 자세(maintenanc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기 위햬서는 목회자의 변화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을 적절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입니다. 리더십은 모든 것입니다(Leadership is everything). 리더십이 확실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교회성장은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만 동시에 목회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교회와 목회를 진단하라 \'300명 돌파\'라는 비전과 목표가 분명하고 그 비전과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교회성장의 원리와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것은 교회와 목회 어느 곳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해결하지 않고서는 교회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많은 목회자가 여러 교회를 탐방하고 수많은 세미나에 참석해서 강의를 듣고 오지만 들을 때만 좋을 뿐 자신의 목회와 교회에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솔직한 진단 없이 남의 것을 무조건 복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도 알아야 백전백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의 것만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나의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정확히 알고 나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목회를 선택해야 성장과 보람의 결실을 거둘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의 자화상 교회는 건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교회가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하면 성장한다\', 이 명제를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계적인 교회성장학자이며, 필자의 은사이신 피터 와그너 박사는 <당신의 교회도 성장할 수 있다>라는 책에서 \'건강한 교회의 7대 표적\'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첫째로 건강한 교회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가 있습니다. 믿음이 강한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는 성도들을 자신있게 인도합니다. 둘째로 건강한 교회는 열정적인 평신도가 있습니다. 열정과 헌신이 충만하면서도 목회자의 리더십에 순종하는 성도가 많을수록 교회는 건강해지고 그 결과 성장합니다. 셋째로 건강한 교회는 서비스가 좋은 교회입니다. 위치나 시설이나 교회 환경이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모든 활동이 철저히 찾아오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로 건강한 교회는 효과적인 구조와 능률적인 조직을 가진 교회입니다. 특히 대예배와 같은 전체구조와 구역과 같은 소그룹 조직이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건강한 교회는 동질성이 강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생각과 마음과 문화를 가진 동질의 사람들이 연합하고 하나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섯째로 건강한 교회는 전도와 양육이 강력한 교회입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을 제자로 키우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건강한 교회는 교회의 목적이 분명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과 목적이 교회의 모든 활동의 최우선이 되며 목회 전반을 이끌어 가는 교회입니다. 릭 와렌이 애용하는 \'the Purposedriven church\', 즉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입니다. 목회자, 평신도, 시설, 조직, 분위기, 프로그램, 목적의식 이 일곱 가지 표적이 얼마나 여러분의 교회에 분명한지 자가진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병든 교회의 자화상 건강의 표적이 있는 것처럼 질병의 표적도 있습니다. 데일 겔로웨이 목사는 병든 교회에는 12가지 굴레가 있다고 했습니다. 무지의 굴레, 불신앙의 굴레, 지도력 결핍의 굴레, 인기 위주의 굴레, 죽은 교리의 굴레, 나쁜 전통과 관습의 굴레, 배타적 태도와 유아독존의 굴레, 고립과 외로움의 굴레, 부정적 사고의 굴레, 쓸데없이 바쁜 분주함의 굴레, 무목적성의 굴레, 그리고 교만의 굴레가 그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굴레를 성령의 능력으로 벗어 던져야 합니다. 교회건강을 위한 자가진단 이상의 일곱 가지 건강의 표적과 아홉 가지 질병의 표적을 자신의 목회에 개괄적으로나마 적용해보면 여러분이 교회에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밑그림이 떠오를 것입니다. 목회자 자신에 대해 진단하라 첫째, 목회자 자신에 대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만사는 리더십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목회자로서의 소명이 분명한지, 성령의 은사는 무엇인지, 하나님이 시키신 일에 대한 확신은 있는지 존재론적 질문을 해보아야 합니다. 대개 목회에 성공하시는 분들의 특징은 목회 자체를 즐기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설교와 심방과 상담과 전도와 양육을 일과 사명과 부담으로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취미와 즐거움과 놀이로 여깁니다. 목회를 일로 하면 한없이 힘들고 죽을 일이지만 목회가 취미가 되면 오히려 스트레스도 변하여 힘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목회가 즐거운 취미가 되려면 성도와 교회가 목회자에게 적합해야 합니다. 수준과 성격과 스타일이 목회자에게 맞아야 합니다. 이점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하십시오. 교회조직에 대해 진단하라 둘째로 교회조직에 대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생명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조직입니다. 그러므로 영성과 함께 조직을 잘 운영하는 전문성이 따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는 설교자일 뿐만 아니라 경영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회와 제직회라는 평신도 조직이 목회자의 리더십과 얼마나 조화가 되고 있습니까? 교구와 구역조직은 교회성장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습니까? 각종 봉사조직과 선교조직은 전체적인 교회부흥에 얼마나 실제적으로 연결이 되고 있습니까? 조직과 성도들의 은사가 얼마나 적절하게 조화되고 있습니까? 이와같은 질문에 솔직하고 객관적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목회환경에 대해 진단하라 교회건강 진단의 세 번째 분야는 목회환경에 대한 진단입니다. 목회란 마치 농사와 같습니다. 좋은 농사를 위해서는 토양, 씨앗, 기후, 기술, 그리고 사람의 다섯 가지 요소가 필수적입니다. 300명 돌파가 안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보이지 않는 갈등 구조 때문입니다. 교인들, 특히 새신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사항이 무엇인지 늘 예민하게 주시해야 합니다. 교회재정에 대해 진단하라 네 번째 진단항목은 교회재정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성장은 헌금과 같은 재정상태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헌금이 늘어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요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헌금은 교인들의 영적상태를 파악하는 중요한 바로미터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한국 교회에서는 도시 교회의 경우 장년출석 성도 1인당 연평균 1백만원의 헌금 수입이 예상됩니다. 300명 장년출석의 교회라면 적어도 연간 헌금 수입이 3억원 이상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치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단하십시오. 사역자에 대해 진단하라 다섯 번째 교회건강 진단은 사역자에 대한 진단입니다.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는 리더십은 목회자에게, 사역은 성도들에게 위임된 교회입니다. 목사의 최대사명은 성도들을 사역자로 키우고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키우고, 맡기는 것, 이것이 지도자인 목사의 역할입니다. 프로그램에 대해 진단하라 여섯 번째 건강진단은 프로그램에 대한 진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 몇가지에 모든 것을 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배와 전도와 양육, 세 가지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본질적 사역입니다. 다른 것은 300명이 될 때까지 유보하거나 무시하십시오. 그 세 가지를 위해서 목회자는 기도하고 연구하고 가장 중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십시오. 목회는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장애물 경주와 마라톤 경기입니다. 장애물을 지혜롭게 극복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인내로 최선을 다할 때 반드시 주님의 성공이 다가올 것입니다. 예배와 설교를 개발하라 비전과 원리를 분명히 하고 자신과 목회 전반에 걸친 진단을 끝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300명 돌파를 위한 새로운 사역에 들어가야 합니다. 예배는 교회의 최대 사명입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예배는 교회의 앞문입니다. 앞문을 넓게 열고 뒷문을 꽉 막아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예배가 살면 교회도 살고, 예배가 죽으면 교회도 죽습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예배는 항상 역동적입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으면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들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그 결과 교회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300명 돌파를 위해서는 모든 예배가 \'교회성장형 예배\'(church growth worship)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란 과연 무엇입니까? 예배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모든 예배자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예배란 인간이 만유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대상 29:11-13). 이 정의에서 우리는 300명 장년출석을 가능하게 하는 예배의 2대 특징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배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많으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의 접촉, 이것이 예배의 최대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예배란 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살아 있는 예배는 응답 자체입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예배가 역동적이고 시끄럽고 지루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적극적으로 소리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아멘으로 화답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생명이요 그 생명에 대한 응답입니다. 교회성장형 예배의 개발 적극적인 예배철학을 정립하라 첫째로 적극적인 예배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예배철학. 혹은 예배신학이 분명해야 역동적인 예배가 가능합니다. 주일예배는 새신자를 얻는 예배, 저녁예배는 기존신자가 즐기는 예배, 삼일예배는 사람을 훈련하는 예배, 금요예배는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예배, 새벽예배는 기도의 사역자를 키우는 예배 등으로 각 예배의 목적을 정립하고 그 목적과 철학에 따라 차별화, 특성화해야 합니다. 예배 계획(worship plan)을 철저하게 세우라 둘째로 예배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합니다. 역동적인 예배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있는 이른바 전략적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목적과 동기가 훌륭해도 전략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사탄이 강한 이유는 전략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강하신 이유는 가장 탁월한 전략을 가지고 계시가 때문입니다. 예배를 평가하는 기준이나 설문의 예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배 참석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가 아니면 감소하는가? 예배 체험이 참석자들의 영적 필요를 얼마나 채우고 있는가? 예배시간에 성도들끼리 특히 기존신자가 새신자에게 얼마나 우호적인가? 음향이나 의자, 냉난방 등의 시설이 참석자에게 불편하지 않은가? 음악과 찬양이 예배의 흐름에 효과적으로 기여하고 있는가? 안내와 관리 등이 예배의 분위기를 얼마나 돕고 있는가? 목사의 설교와 예배 진행이 얼마나 은혜로운가? 창조적 긴장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하라 창조적 긴장이란 첫째,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인 경험입니다. 둘째, 축제와 참회가 함께 어우러지는 예배입니다. 찬양과 기쁨이 있으면서도 회개와 슬픔이 어우러지는 예배에 창조적 긴장이 있습니다. 셋째, 열정과 고요가 공존하는 예배입니다. 넷째,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변화에 열린 예배입니다. 예배가 곧 사역의 자리가 되게 하라 넷째로 교회성장형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예배가 곧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예배가 하나의 의식과 순서와 프로그램으로만 끝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성도들은 예배만 가까스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예배가 부실하면 성도들 모두가 부실해집니다. 주일예배만 참석하는 사람은 훈련받을 시간도, 자신의 삶이 변화될 시간도, 영적 성장을 체험할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주일예배에 구경꾼처럼 참석하고 30분 설교를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여 자신의 영적 생명을 방치하듯이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배가 바로 사역의 현장이 되어야 합니다. 불신자와 새신자에게도 매력적인 예배가 되게 하라 300명 돌파를 위한 예배가 되기 위한 다섯째 전략은 열린 예배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신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불신자도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만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온 족속들이여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명하십니다. 예배를 통해 불신자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교회의 문에 들어오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불신자나 새신자를 위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예배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부담이 없으면서도 인상적이어야 합니다. 문화적 충격과 거부감이 적을수록 새신자의 마음에 와 닿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새신자들만을 위한 전용예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즉 복음을 위하여 문화를 파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화의 장벽을 넘을 필요없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 기독교 사역의 요체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동성을 해치는 방해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하라 여섯째로 예배의 역동성을 해치는 방해요소를 과감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역동성을 해치는 가장 큰 요소는 목사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목사는 예배의 가장 큰 희생물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은헤를 주기 위해서 너무 노력하는 나머지 목사 자신은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목사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를 생활화시키라 예배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의 최대 문제는 예배와 생활이 일치되지 못하는 이원론적 갈등에 있습니다. 은혜는 거룩한 전염성이 있습니다. 한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다른 사람까지 예배의 은혜에 동참시킬 수 있습니다. 좋은 예배가 좋은 예배자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 좋은 예배자가 좋은 예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성장형 설교의 개발 300명 돌파를 위해서는 예배와 함께 설교가 개발되어야 합니다. 설교는 예배의 꽃입니다. 모든 묵회자가 설교를 잘하기 원하고 모든 성도들이 좋은 설교를 듣기 원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에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곧 설교를 듣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설교가 곧 예배가 아닌 것은 사실이나 좋은 예배는 반드시 좋은 설교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물어보면 90퍼센트 이상이 목사의 설교 때문에 교회를 선택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300명 돌파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설교를 잘하도록 모든 힘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는 설교에 관련된 은사를 받아야 하지만 설교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를 성장시키는 이른바 교회성장형 설교는 어떤 설교일까요? 성경에 기초한 설교이다 성령충만한 설교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이다 생활적이고 실제적인 설교이다 긍정적인 사고의 설교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을 원한다면, 장년출석 300명을 돌파하기 원한다면 목숨을 걸고 긍적적인 설교자가 되십시오. 절대로 부정적인 사고와 태도와 언어와 표현과 제스처는 버리십시오. 사람을 죽이는 설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설교를 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어두운 얼굴을 밝게 하고, 지친 몸을 활기 있게 하며, 포기하는 심령이 새로운 용기를 가지게 하는 설교자가 되면 반드시 300명 돌파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기도가 뒷받침된 설교이다 전도 및 선교지향적 설교이다 이러한 설교 자체도 중요하지만 설교를 전달하는 방법론, 즉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합니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10가지 실제적 지침을 소개합니다. 대중 연설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의사 전달자가 돼라 자신이 말하는 것을 굳게 믿으라 설교하는 대상 즉 청중을 믿으라 타이밍을 잘 맞추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알라 왜 설교를 하는지 이유와 목적을 알라 설교를 즐기라 눈으로 보는 설교를 하라 사람들이 소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설교를 하라 10) 설교한 대로 살라 지금까지 300명 돌파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예배와 설교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예배는 건물보다 중요하고, 설교는 프로그램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건물과 프로그램을 탓하지 말고 예배와 설교가 은혜스러운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조직과 사역자를 개발하라 교회성장형 조직의 개발 효과적인 교회조직이 되게 하라 첫째로 현재의 조직을 효과적인 조직으로 재구성하십시오. 건강한 교회, 성장하는 교회는 목회자가 지도하는 일에 전념하고, 평신도는 사역하는 일에 전념하는 교회입니다. 생명을 위한 조직이 되게 하라 둘째로 생명을 위한 조직으로 만드십시오. 생명을 위한 조직은 성령운동, 기도운동, 말씀운동, 전도 및 선교운동을 하도록 조직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동자가 되지 말고 지도자가 돼라 셋째로 노동자가 되지 말고 지도자가 되십시오. 목회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마치 노동자처럼 모든 일을 다하려고 애쓰는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 즉 지도자는 일을 잘하는 자가 아니라 일을 잘하게 하는 자입니다. 이른바 구비 리더십(equipping leadership)을 잘 행사해야 합니다. 조직이 필요한 이유는 목회자가 성도들을 키우고 훈련시켜 일을 위임하는 데에 있습니다. 교회성장형 목회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노동자형 목회가 아니라 성도들을 통하여 일하도록 하는 지도자형 목회입니다. 노동자형 목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일을 혼자 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애씁니다.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상황까지 일합니다. 미래 전망보다는 현재 관리에 더 바쁩니다. 성령의 영적 은사와 관계없이 일합니다. 이러한 목회는 몇십명 정도의 소규모 교회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300명 이상 출석하는 중대형 교회로 발전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반면에 지도자형 목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 자체보다도 고도의 목회자질에 관심을 가집니다. (2) 성도의 필요를 직접 채워주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채워줍니다. (3) 교회를 은사를 활용하는 조직체, 즉 바디 라이프(body life)로 봅니다. (4) 교회와 목회의 일을 평신도에게 과감하게 맡깁니다. (5) 영성과 관리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1520법칙을 활용하라 넷째로 1520법칙을 활용하십시오. 한 사람, 즉 목사 자신이 바뀌면 조직 전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사가 신실한 신자 다섯을 변화시키면 이십 명이 달라지고, 한 조직체의 20명 혹은 20퍼센트가 변화되면 조직 전체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어떤 조직체이든지 상위 20퍼센트가 나머지 80퍼센트를 책임진다는 것이 바로 이태리 경제학자 파레토의 법칙입니다. 여러분교회 교인의 20퍼센트를 책임지는 목사가 되십시오. 나머지 80퍼센트는 그 20퍼센트는 20퍼센트에게 맡기십시오. 목사가 최선을 다해 키운 그 20퍼센트의 성도들이 나머지 80퍼센트 성도들을 책임질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 다섯째로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솥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미지근한 물을 솥안에 넣고 그 물 속에 개구리를 넣습니다. 온도의 감지를 느끼지 못하도록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물이 100도가 되어 펄펄 끓을 때까지 개구리는 솥 안에서 나오지 않고 결국 죽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점진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죽고 맙니다. 목회자란 변화를 주도하는 개척자(the change agent)입니다. 성도는 목회자의 변화만큼 성장하고, 교회는 성도의 변화만큼 성장합니다. 그런데 가장 변화하기 어려운 자가 바로 목회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의 안전지대(the comfort zone), 즉 자기에게 편한 상태를 과감하게 벗어나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자입니다. 지속적인 점검, 조정, 수정을 하라 여섯째로 끊임없는 평가를 하십시오. 교회성장형 지도자는 늘 자신에 대해 냉철한 평가를 할 줄 아는 자입니다. 자신을 평가하는 자가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는 자입니다. 반면에 추종자는 지도자의 체크를 받아야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알아서 잘하는 성도는 절대로 없습니다. 목사가 수시로 점검하고 조정하며 수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추종자 혹은 성도들의 영적 성숙도에 따라 리더십의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성숙도에 따라 지시형, 판매형, 설득형, 그리고 위임형 등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리더십을 \'상황적 리더십\'(situational leadership)이라고 합니다. 성도의 상황에 따라 그에 맞는 지도력을 행사하는 전천후 지도자가 21세기 성장형 지도자입니다. 모달리티보다 소달리티 조직을 활용하라 마지막 일곱 번째로 모달리티(modality)보다 소달리티(sodality)구조를 조직하십시오. 선교학에서 말하는 선교구조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달리티와 소달리티가 그것입니다. 모달리티는 일반부대 구조이고 소달리티는 특수부대 구조입니다. 즉 특공대 구조가 소달리티입니다. 가급적 많은 사람을 특공대 구조로 편입시키십시오. 교회재적보다는 출석을, 출석보다는 십일조나 헌신의 정도를 더 신경 쓰는 멤버십의 강화가 오히려 교회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시켜 줄 것입니다. 교회성장형 사역자의 개발 비활동교인을 활동교인으로 만들라 첫째로 비활동교인을 활동교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목사의 손발이 바쁘지 않고 머리와 가슴이 바빠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목사가 있는 교회는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구경꾼이 아니라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비 활동교인을 활동교인으로 만드는 \'액티브(ACTIVE)전략\'을 소개합니다. Accept ‥‥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Categorize ‥‥ 어떤 유형인가 파악하라 Train ‥‥ 훈련시키라 Identify ‥‥ 구체적으로 구별하라 Visit ‥‥ 심방하라 Eval!uate ‥‥ 사역의 결과를 평가하라 사역의 목적과 성격을 규정하라 대다수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교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교육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무엇인가 할 일이 분명하게 규정되는 교회는 목사 혼자서 일하는 교회보다 수백 배 더 큰 저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사역자를 선발하여 훈련시키라 구원은 아무나 와도 좋소이지만 사역은 아무나 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역자를 선발하는 데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목사와 생각이 같아야 합니다. 둘째, 은사가 확실해야합니다. 셋째, 충성심이 있어야 합니다. 선발된 사역자는 반드시 훈련해야 합니다. 영성과 함께 기술이 있어야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사역자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는 태도입니다. 사역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까요? Aspiration ‥‥ 성장을 향한 열망의 태도 Talent ‥‥ 은사 활용의 태도 Target ‥‥ 목표설정의 태도 Integrity ‥‥ 성실한 태도 Trouble-shooting ‥‥ 문제해결의 태도 Unity ‥‥ 연합하는 태도 Delegation ‥‥ 사역 분담의 태도 Encouragement ‥‥ 격려와 권면의 태도 은사와 취향에 따라 사역을 맡기라 가장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은 확신 없이 교회 다니는 것이요, 은사 없이 교회 일하는 것입니다. Explore ‥‥ 가능성을 탐색하라 Experiment ‥‥ 봉사를 통해 실험하라 Examine ‥‥ 영적인 반응을 검토하라 Eval!uate ‥‥ 효과적인가 평가하라 Expect ‥‥ 교회의 인정을 기대하라 전도 사역자와 기도 사역자를 집중 개발하라 다섯째로 전도와 기도를 위한 사역자를 집중 개발하십시오. 교회에는 과거형 교회, 현재형 교회, 미래형 교회가 있습니다. 과거형 교회는 전통을, 현재형 교회는 안정을, 미래형 교회는 성장을 추구합니다. 과거형 교회는 일꾼이 거의 없고, 현재형 교회는 내부사역자가 많고 미래형 교회는 외부사역자가 많습니다. 양육과 교회봉사를 위해 일하는 내부사역자보다 전도와 사회봉사를 위해 일하는 외부사역자에 관심을 가져야 교회가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도 사역자와 중보기도 사역자를 강력한 특공대로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도특공대, 기도특공대, 양육특공대 이 세 특공대가 없으면 300명 돌파가 거의 불가능 합니다. 강력한 지원세력을 확보하라 여섯째로 강력한 지원세력을 확보하십시오. 목회자의 성장형 리더십은 지원세력이 많을수록 성공합니다 특히 기도와 재정을 지원하는 절대충성파의 층이 두터워야 합니다. 당회와 독립된 실업인선교회 같은 조직이 있으면 대단히 유익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목회자와 함께 할 사람이 최소한 20퍼센트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화목을 극대화하고 갈등을 극소화하라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갈등이 교회의 주체세력이 되면 성장과 부흥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 면류관 없다\"(No cross, no crown)는 말과 같이 \"갈등 없이 교회없다\"(No conflict, no church)는 말이 있습니다. 창조적 갈등의 해결은 교회성장의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작은 교회가 가지는 장점 중의 하나는 사랑지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지수, 즉 LQ(Love Quotient)는 지능지수 IQ나 감성지수 EQ보다도 더 중요한 지수입니다. 지능지수나 감성지수가 개인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사랑지수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합니다. 사랑은 영원한 가치입니다. 오직 교회만이 이 영원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전도와 새신자목회를 개발하라 비전이 분명하고 성장의 원리를 따라가고 현재의 목회상태를 진단하여 건강한 교회를 지향하고 예배와 설교를 역동적으로 바꾸고 조직과 사역자를 재정비하면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여기에 밖으로 뻗어 나가는 전도를 활성화하고 안으로 다지는 새신자 양육에 성공한 다면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한 교회성장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목사부터 모든 성도에 이르기까지 전도하는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전도는 단지 사람을 데리고 오는 것 이상입니다. 교회의 모든 구조와 활동이 전도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교회를 찾아온 사람을 철저하게 정착시키고 양육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교회성장 = 전도 + 새신자정착\'이라는 등식이 상식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300명 돌파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300명 돌파를 위한 전도목회 개발 전도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라 전도의 가치가 절대가치가 되면 사람들은 전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사부터 전도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성도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전도에 대한 분명한 목회철학과 열정이 있으면 전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자화상을 전도하는 교회로 바꾸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교회가 전도하는 선교구조, 즉 소달리티(sodality)로 바뀌어야 합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 같은 곳에서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6개월 이내에 반드시 전도하게 합니다.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평생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85퍼센트나 된다는 믿지 못할 통계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전도하는 것이라는 의식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목사가 먼저 전도하라 전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둘째로 담임 목사 자신이 먼저 전도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목사가 전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성장을 진실로 원한다면 장년출석 300명이 될 때까지 목사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전도해야 합니다. 안산동산교회의 김인중 목사는 1천명이 출석할 때까지도 매일 10여명씩 전도했다고 합니다. 목회란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구원입니다. 전도전략을 수립하라 셋째로 효과적인 전도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무조건 닥치는 대로 전도한다고 해서 전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목회자 자신과 교회에 가장 적합한 전도전략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목회의 전 과정으로서 전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구조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전도의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이해도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에 대한 조사와 영적 도해가 필수적입니다. 전도를 위한 특별집회를 교회에서보다 공회당이나 극장 같은 공공시설에서 가져 간접적으로 교회를 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도훈련을 실시하라 전도개발을 위한 네 번째 원리는 전도훈련을 실시하라는 것입니다. 전도훈련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목사가 성도들을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건상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성도들을 전도훈련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담임목사가 전도의 은사와 경험이 미천하더라도 계속 전도를 강조하고 전도에 대해 이론적으로 가르치며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전도하는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도특공대를 신설하라 전도개발을 위한 다섯 번째 원리는 전도특공대를 신설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선발하려고 하지 말고 열정과 헌신이 확실한 소수정예로 선발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특공대는 말 그대로 특별임무를 한시적으로 맡아야 하므로 몇 년이고 계속 시키지 말고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순환시키는 것이 지치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갈수록 노방전도나 축호전도가 힘들어지고 또 효과도 크지 않으므로 전도특공대는 이슬비편지나 인간관계를 통한 접촉점이 확실한 사람들에게 파송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도특공대, 양육특공대, 기도특공대가 있는 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성장하는 것이 오늘의 추세입니다. 전도의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하라 전도개발의 여섯 번째 원리는 전도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최대한의 지원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홍보의 시대입니다. 홍보와 광고가 유명인을 만들고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킵니다. 교회도 좋은 소문이 나고 매력적인 이미지가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광고와 효과적인 프로그램과 적극적인 초정이 있어야 합니다. 연구조사에 의하면 새신자가 교회에 찾아오는 확률 중 가장 높은 것은 개인에 의한 초청이고 그 다음이 광고입니다. 인간적인 홍보전략고 함께 신적인 능력의 도움을 받기 위해 중보기도 특공대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지역을 지배하는 영들을 묶기 위한 특별기도
4차원의 영성과 교회성장/조용기 목사
4차원의 영성과 교회성장 조용기 목사 ‘4차원 영성 목회자 리더십 아카데미’가 지난 13일부터 베들레헴성전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회성장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번 아카데미는 조용기 목사의 리더십 핵심원리로 작용한 4차원 영성의 원리를 분석해 목회자와 신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했다. 본 내용은 참석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던 지난달 21일 조용기 목사의 강의를 정리했다. 4차원의 영성으로 3차원의 축복을 받자 좋으신 하나님 시인할 때 창조적 목회 가능 긍정적 사고는 환경이 변하는 기적 일으켜 ‘4차원의 영성’이라는 것은 어떤 신학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신학적인 학문방법을 통해 연구해서 얻어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48년 동안 목회하면서 목회현장에서 깨닫고 알게 된 경험적인 사실을 발표하는 것입니다. 제가 48년 동안 목회하면서 체험한 교회라는 우리 가슴속에서 채워지는 것이지, 환경에서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나’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속에 이루어진 교회가 바로 교회입니다. 1. 생각은 교회성장의 방향키이다. 우선 첫째로 교회를 이루는데 필요한 것은 ‘생각’입니다. 지도자의 생각이 나라를 움직입니다. 대통령의 생각에 따라 나라가 움직입니다. 그 국가의 행정적인 조직은 대통령의 생각을 실천하는 기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실제 눈에 보이는 3차원적인 모든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생각 속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현재 상황은 다 제 생각 속에 있던 교회였습니다. 48년 전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얹고서 목회를 시작할 때부터 벌써 제 생각이 마음속에 태동되고 있었습니다. “내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신 말씀대로 내 생각 속에 이미 “한국 최대의 교회, 세계 최대의 교회를 이룩하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현실과는 너무 떨어져 있지만 그 생각이 오늘날 현실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1) 생각에서 피어난 희망목회와 교회성장 제 생각 속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개척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전통적인 하나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섭고 심판하고 두려운 하나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하나님에 대한 모습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전혀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었습니다.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다정하게 기도를 들어주실 분도 아니고 하나님은 언제나 꾸짖으시고 채찍으로 때리시고 지옥으로 벌하시는 그러한 상념이 있었기 때문에 저의 설교는 상당히 율법적인 설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척을 한 그 당시에 강북 상황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렵고 제가 개척한 불광동은 서울로 상경한 외지인들 중에서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못 살아서 쫓겨난 빈민들이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분들 앞에 서서 율법적이고 엄하고 무서운 하나님에 대한 설교를 아무리 외쳐도 아무도 제 설교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생각 속에서 굉장한 하나의 변화의 동기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나쁜 하나님이 아니라 좋은 하나님이시라는 상념이 제 가슴속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을 정도가 되면 굉장히 좋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제 생각이 바꾸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저의 일생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이 무서운 분이었기 때문에 저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습니다. 긍정적이고 창조적이고 적극적이지 못했는데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오자마자 삶이 희망차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하나님에 대한 상념을 갖기 시작하자마자 기도가 적극적이 되고 좋은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생각하니까 기도도 적극적으로 나오게 되고 신앙도 뜨겁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희망을 주는 목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희망을 가지게 되니까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리며 부르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병든 자도 고침을 받기 시작하고 하나님께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나오는 기적도 일어나고 좋은 일이 굉장히 많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저의 메시지 속에는 언제나 희망이 깔려있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절망적 존재인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희망입니다. 이번에 저는 최전방 GP에서 8명을 죽인 사병에 대한 기사를 읽고 정말 밤잠을 자지 못하고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합니까? 그 마음속에 절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절망을 한 후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리분별을 하지 않고 총을 쏜 것입니다. 2) 희망을 잉태하는 생각의 혁명은 십자가에서 그러면 소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절망에 처한 인생들에게 재앙에 대한 생각을 소망으로 바꾸는 데는 십자가 예수님의 대속을 바라보는 것 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서 죄악의 절망을 해소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해서 보면 엄청난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생을 볼 때 3대 재앙의 절망에 처한 사람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삼중축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개척교회시절 깨닫고서 제 생각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이 절망적인 사람들을 다 변화 시킬 수 있다. 십자가로 이끌면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생각구조를 바꿀 수 있다. 그것은 절망에서 소망으로, 소극적에서 적극적으로,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의 혁명이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운명이 바꾸어집니다. 생각은 눈에 안 보이지 않습니까? 눈에 안 보이는 세계는 4차원에 속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3차원입니다. 3차원은 4차원 세계가 바꿀 수 있는데 생각을 바꾸는 길은 십자가 밑에 나와야 가능합니다. 3) 생각이 교회성장을 결정한다. 옥한흠 목사님이 한번은 저를 두고 그러더랍니다. “조용기 목사가 60년대 폭발적으로 부흥을 한 것은 우리 장로교회가 그 당시에 절망적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신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왜 순복음은 조용히 하지 않는가? 하나님 앞에서 울지 않으면 다른 곳에서 울 곳이 없느냐” 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너무나 답답하니까 울어야 합니다. 울고 통곡해야 하는데 통곡할 집도 없으니 하나님 앞이 아니면 울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교회 전체에 통곡을 하며 우는 소리가 천지에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소망을 얻기 시작하고 한번 헐벗고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이 소망의 불길을 얻으면 친구들을 우루루 끌고 오는 것입니다. 자신이 체험했으니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친구들을 막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불길같이 일어나는데 1961년도에 개척할 때 그 당시 영락교회가 6천명이었는데 1964년도에 교인이 3천명이고 1970년도에 교인이 1만명이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통해서 절망에 처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꽃이 피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에 든 사람이 생명에 이르는 소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늘 말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꾸어 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메시지를 전할 때 궁극적으로는 교인들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해서 생각을 바꾸어 주어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좌절하고 절망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면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꿈은 교회성장의 모판이다. 둘째로 여러분,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 생애에 설교하는데 굉장히 큰 영향을 준 분이 계신데 옛날 미국 샤먼교회의 Dr. 마샬이란 목사님입니다. 그 분의 말은 제 평생의 설교에 기초를 닦아 주었습니다. 이 분이 워싱턴에서 목회할 때 설교를 듣기 위해서는 줄을 서고 티켓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명설교가로 유명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는 말이 설교를 할 때는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만들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은 눈으로 사물을 보고 판단하게 되어 있지만, 설교만큼은 귀로 듣는 것이기 때문에 귀로 들을 때 듣는 이의 마음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도록 만들어 주고, 그림을 그려주어 꿈을 꾸게 만들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말이 제 생애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날 이후에 설교할 때마다 눈으로 봅니다. 모든 환경을 제가 그릴 수 있는 최대의 기술을 다해서 그려서 제가 설교를 할 때에 그 그림을 성도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 뚜렷하게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인간은 모든 것을 이해할 때 비전을 통해서 합니다. 마음속의 그림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철학이나 논리학 책이 왜 이해가 안되느냐 하면 그것들은 그림을 그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방과 이야기 할 때도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서 이해를 합니다. 그것은 본능적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모든 것이 일단 다 그림으로 이해되면 그것이 4차원의 예입니다. 3차원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1) 긍정적인 자화상을 심어라 저는 저의 새로운 이미지에 대해서 굉장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주 못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의식 행동이 다 부정적입니다. 우리 교회 자매님중에 항상 우울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우울한지 사람들하고도 섞이지 아니하고 친구들에게 오해도 많이 받고 신앙상담도 와서 부모들이 와서 기도도 해주는데 집에 가도 거울만 보고 나오지도 않고 항상 울고 있고 가족들과 합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자매님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마음이 우울하냐? 시련이 있느냐?” 시련도 아니랍니다. “애인이 있느냐? 애인도 없다”고 합니다. 그럼 왜 그러냐고 했더니. “제 코가 이상하게 생겼잖아요!” 그러더니 코가 이상하고 웃기게 생겨서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 마다 우습고 이상하고 괴물같이 본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거구나! 맞았어! 코를 바꿔야 한다. 제가 당신에게 몇 번 안수기도를 하여도 당신의 자화상이 그러니 코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서는 제가 잘 아는 코 성형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을 소개시켜줬습니다. 그 후에 제가 보기에는 수술 전이나 후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도 그 아이가 코 수술을 하고 왔길래, 저는 아주 깜짝 놀랜 표정으로 너무 이쁘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얼굴 전체가 달라졌다며 칭찬하여 주었더니 어찌나 함박웃음꽃을 피우며 환하게 웃던지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나 달라졌다고 하면서 생긋생긋 웃는 것이었습니다. 2) 꿈을 생산하는 교회가 되게 하라 국민을 잘 이끌어 나가려면 국민에게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국민이 마음속에 꿈을 품게 하면 국민들은 나라를 위해서 일을 잘합니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습니까. 성도들의 마음속에 자꾸 꿈을 심어줘야지 절망을 주어선 안 됩니다. 교회만 오면 마음에 꿈이 부풀어 오르게 해 주어야 합니다. 꿈을 품은 사람은 꿈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4차원의 영성 속에서 생각이 달라져야하고 꿈이 달라져야 합니다. 꿈을 품은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슴에 꿈을 품고 뛰면 그 꿈대로 되지만 텅빈 가슴으로 뛰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꿈을 품고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꿈을 품으면 꿈이 믿음을 산출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기도를 하게 되고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선 언제나 아브라함에게도 꿈을 먼저 주시고 그 다음에 믿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교회성장도 가슴 속에서 이뤄집니다. 교회성장이 밖으로부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꿈꾸는가가 자연적으로 외연됩니다.
7개의 교회를 개척한 뒤 모스크바 성회 준비/2008-06-04
7개의 교회를 개척한 뒤 모스크바 성회 준비 소련선교회 회원들은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 교회를 세운데 이어 1991년 7월에 카자흐스탄 알마타에도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그 소식을 알고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던 박승규 선교사가 알마타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박선교사가 소련선교회원들에게 “알마타에 아는 분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회원들은 “아뇨, 없습니다. 무조건 예수님 이름으로 갑니다”라고 답했다. 소련선교회원들은 소련선교 초기에 그야말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순복음 정신으로 나섰다. 소련선교회원들과 박승규 선교사는 각각 서울과 독일에서 출발해 알마타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종근 장로와 변종선 장로 등 소련선교회원들은 일본에서 하루 자고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탔다. 소련선교회원들이 모스크바에 내려 알마타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동양사람이 눈에 띄었다. 너무 반가워서 “혹시 한국사람이냐?”고 물었는데 그가 바로 알마타에서 만나기로 한 박승규 선교사였다. 소련선교회원들과 박승규 선교사는 반갑게 인사하고 거기서부터 선교전략을 짰다. 알마타에 도착할 즈음 박 선교사가 “누가 마중 나오기로 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종근 장로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겁니다”라고 답했다. 모두들 그야말로 아무 준비도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알마타에 내렸다. 알마타 공항을 나와 일행은 한국사람처럼 생긴 분에게 무조건 다가가서 “고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한국말을 겨우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일행이 서울에서 왔고, 묵을 곳을 찾는다고 하자 그 사람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 사람 집에서 구워주는 민속빵을 얻어먹고 세수를 한 뒤 교회를 세울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다. 카자흐스탄도 돈이 있어도 물건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곳에서도 타쉬켄트와 마찬가지로 고려인협회 간부를 만나 공회당에다 교회를 세웠다. 이후 침켄트, 사할린, 빨치산스크, 하바로브스크에도 순복음교회를 세웠는데, 침켄트에서는 특별히 모슬렘 사원을 사서 교회와 신학교로 사용했다. 여섯 개의 교회를 세운 비결을 이종근 장로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사전 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비결도 없었어요. 그냥 무작정 하나님만 믿고 갔어요. 가서 예수 믿으라고 전하면 순복음의 성령운동이 불붙고 표적과 기사가 마구 일어났어요” 소련은 워낙 땅이 넓어서 개척한 교회들을 돌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바로브스크에서 빨치산스크까지 가려면 무려 18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 했다. 그럴 때면 회원들은 기차 안에서 전기밥솥으로 밥을 해먹었다. 기차 안에 다행히 전기를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있었다. 1994년 경, 순복음 선교사들이 각 지역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서야 비로소 회원들은 잠자리와 음식 걱정을 덜었다고 한다. 구 소련 선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선교정책에 중요한 변화를 주었다. 구 소련 선교를 기점으로 원주민선교에 총력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1990년에 부임해서 1년간 선교국장으로 재직한 김홍원 목사는 “조용기 목사님의 선교정책은 평신도와 함께 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가는 선교사와 보내는 선교사가 힘을 합쳐 선교활동을 하는 거지요. 선교사님들이 현지에 가서 선교를 하고, 평신도들은 기도와 물질로 뒤에서 후원하는 겁니다” 교회에서는 파송한 선교사들의 사례비를 지급하고, 해외에서 교회나 신학교, 기도원을 지을 때는 해당 선교회 회원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김홍원 목사는 “평신도들의 헌신이 없다면 6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1년 11월, 공산당의 심장부가 자리잡고 있었던 모스크바에 순복음교회를 세우기로하고 소련선교회원들은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최사무엘·박승규·양병초 선교사와 이종근 장로를 비롯한 소련선교회원들이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를 발간하는 신문사 앞에서 사람들에게 순복음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이튿날 사무실 하나 빌려서 모스크바순복음교회 창립예배를 드리고, 알마타순복음교회를 맡고 있던 박승규 선교사를 그곳에 파송했다. 조용기 목사의 해외 성회는 현지에서 초청하는 경우와 선교회원들이 성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소련선교회원들은 소련에 7개의 교회를 세운 뒤 조용기 목사에게 성회를 개최해달라고 요청했다. 조용기 목사는 소련선교회 회원 현황과 현지 사정을 물었다. 1991년 12월, 당시 소련선교회원은 모두 15명이었고 장로는 이종근 장로와 변종선 장로 두 명뿐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성회 개최를 잘 할 수 있겠는가”를 물었고 이종근 장로는 “죽기 살기로 준비하겠습니다. 성회를 개최해 주세요”라고 간청했다. 조용기 목사는 여러 가지로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성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회원들은 1992년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성회를 열기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종근 장로는 4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모스크바 체육관을 1만 달러에 빌리기로 하고 우선 선금 3000달러를 지불했다. 성회 준비 차 자주 모스크바를 방문하던 이종근 장로는 어느 날 크레믈린궁 앞을 지나가다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같이 간 사람에게 저기가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공산당 전당대회 하는 덴데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요즘 공산당 전당대회는 안하고 볼쇼이 발레단이나 음악회를 할 때 빌려준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크레믈린궁에서 성회를 개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육관에 준 선금 3000달러를 포기하고 크레믈린궁을 빌리기로 했지요” 당시 크레믈린궁은 정부와 러시아정교회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개신교에서 성회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빌려주지 않을 것 같아 볼쇼이발레단 공연을 기획하는 연예기획사를 찾아갔다. “담당자에게 당신들 이름으로 빌리라고 얘기했죠. 크레믈린궁을 빌리는데 5000달러면 되지만 그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3만 달러를 줬어요”
`꿈` - 사람은 꿈을 꾸고 꿈은 사람을 만든다/조용기 목사
`꿈` - 사람은 꿈을 꾸고 꿈은 사람을 만든다 조용기 목사 인생의 성공자 모두 ‘꿈’을 가진 사람 엘림직업학생 지난해 5개 자격증 획득 세계최고, 최대의 모자 브랜드 ‘영안모자’ 창립자 김성학 사장. 그의 시작은 모자가게 점원이었다. 김광석 참존 화장품사장은 한 때 부도로 경찰을 피해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국내 1위 국수업체 사장인 성호정 송학식품 사장은 24살까지 뻥튀기 장사를 했다. 이랜드는 2평짜리 옷가게에서 시작됐다. 우리교회 정문식 이레전자 사장은 고교시절 61명중 57등이었다. 장애인대교구 시각교구 성도인 최민석 군은 두 눈을 전혀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서울대 법대에 정시합격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콘서트의 황제로 불리우는 가수 김장훈. 1992년도 대학로 소극장에서 가진 그의 첫 콘서트에는 다섯 명의 관객이 있었는데 그 중 3명이 초대 관객이었다. ‘난타’ 공연으로 해외를 떠들썩하게 했던 송승환은 6개국을 돌며 ‘난타’홍보활동을 벌일 때 외국인들로부터 “한국에서도 연극이란 걸 하느냐?”는 조롱을 들었다. 그리고 5명의 성도를 시작으로 단일교회로는 세계 최대인원인 75만명의 성도를 목양하게 된 조용기 목사. 이들에게서 발견된 공통점은 모두 ‘꿈’이다. 고통과 시련의 터널을 지나며 자기와의 지리한 싸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들은 ‘꿈’을 바라보았고, ‘꿈’은 이들의 삶을 지배하고 완성시켰다. ‘꿈’의 일반적인 사전?의미는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련의 시각적 심상을 뜻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이상, 세운 비전(Vision)을 대개 꿈으로 표현한다. 꿈은 아이디어를 낳고, 아이디어는 개인이나 기업에 있어 생명선인 혁신을 낳는다. 지미니 크라켓은 “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망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엘림직업전문학교 조리과 김혜선 학생(18기)은 지난해 한식,중식, 양식, 일식, 복어요리 등 5개의 자격증을 따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동기생 중 최대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것은 바로 ‘꿈’ 때문이었다. 지난해 입학할 당시 담당 교사로부터 1기생을 한 명을 제외하곤 자격증 4개 이상을 딴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결심했다. ‘내가 자격증 5개의 신화를 낳겠다’ 그러나 3번의 낙방끝에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연이어 양식과 복어조리사 자격증을 따게 되자 그녀는 자만심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입학식때 세운 결심이 무너졌다. 그런데 그녀의 흐트러진 ‘꿈’ 을 추스리게 하는 사람이 생겼다. 조리과 안에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조리과 동생을 보면서 그녀는 ‘꿈’을 기억하게 됐고, 마침내 일식과 중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꿈’은 사람에게 인생의 목표와 자신감을 가져다 준다. 자! 이제 우리가 도전할 차례다. ‘꿈’을 이루기 위한 작심 365일 프로젝트 - “꿈 공장을 가동시켜라” 올 한해 성공적인 삶을 계획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의 꿈 공장을 가동시켜라. 1,올 한해 목표하는 자신의 꿈을 세워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뤄질 꿈을 바라보라. 2.세운 꿈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꿈을 글로 표현해보고 이야기로 만들어보라.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해보라. 생각속에 머물러 있는 꿈을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면 세부적인 실천 방안들이 생각난다. 3.작은 일부터 실천하라. 세계적인 사업가가 꿈이라도 처음부터 빌 게이츠를 만날 수는 없다. 언어가 문제라면 언어부터 차근히 정복하라. 4.실패를 두려워말라. 창조성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가끔은 실패해도 괜찮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놀라운 씨앗을 잉태할 아이디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할 것이다. 5.자신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희망의 꿈을 간직하고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꿈의 실현을 위해 창조성과 다양성의 지혜를 주실 것이다.
개척교회벗어나기 구체적 방법 7가지
개척교회벗어나기 구체적 방법 7가지 제1부 개척교회를 벗어나기 위한 일곱 가지 방법 방법 하나 : 목회는 목을 거는 일, 목회에 목을 걸어라 개척 후 3년 안에 승부가 나야 한다(?) 명성훈 박사는 "개척한 지 3년 동안 성장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문을 닫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개척교회 목사님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누구든지 열심을 내어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기도하고 전도, 심방 등 개척교회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열심이 식어지고 좌절하고 용기를 잃게 됩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보다 더 악화되는 상황입니다. 그분은 이런 한계에 맞닥치는 기간을 3년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척교회가 어느 정도의 기반을 다지는 데 3년이라는 한계를 설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경우를 사례로하여 다른 목사님들도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을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반드시 돌파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개척교회를 시작할 때가 1986년인데 저는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라면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허송세월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1년 동안 열심히 했는데 아무 열매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열심히 했지만 안되는 것,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1988년 10월에 상가를 얻어서 교회를 옮겼습니다. 이사갈 때 출석 교인이 43명이었습니다. 86년과 87년 동안에 열심히 했지만, 2년이 지나가도 별반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금도 어른 43명이라는 숫자가 기억나는 것을 보면 40명을 벗어나려고 한이 맺힐 정도로 몸부림치던 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신장(腎臟)을 팔아서 교회를 지어라 제가 부임한 지 7년이 지난 1993년 말이 되자 상가교회는 꽉차게 되었습니다. 출석교인이 200명을 넘어섰습니다. 여기저기서 성전건축을 해야 되지 않느냐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상가건물을 처분해도 3,4억, 그 동안 적립한 돈이 1억이 전부인데, 이 정도로 1평에 700-800만 원 하는 땅을 사서 건축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이기에 결국은 땅 144평에 약 480평 교회를 1994년에 신축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16억이나 들여서 말입니다. 출석교인 200명으로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성전건축을 하다 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목회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 바로 성전건축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임경애라는 청년은 자신의 적금통장을 들고왔고, 33살의 젊은 최영철 집사는 집을 팔아 아파트로 이사하면서의 차익 천만원을 헌금하였고, 다른 교회에 출석하시는 어느 집사님은 자신의 연립주택을 하나님께 드리는 등 어렵게 땅값을 준비하던 차에 1억이 모자랐습니다. 고민하다가 한미은행을 찾아가 소장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고 담보없이 1억을 대출받을 수 있는 기쁨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건축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들어가는 돈이 있습니다. 그런데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나올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고민하던 중에 잡지에서 신장을 산다고 하는 기사가 눈에 띄어 전화를 했더니 2천만원을 준다고 합니다. 저는 신장을 팔려고 했습니다. 그 돈이면 당장 어려운 고비는 넘길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왜 팔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을 했고, 천오백만원까지 보장을 받게되었는데 이에 관련된 신문기사가 몇칠 계속나더니 아무래도 잡혀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아마 그 사람이 구속되지만 않았다면 저는 신장을 팔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지나가다가 교회는 위기를 넘겼습니다. 신장을 판다고 하니까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섭섭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명이 넘어선 사건: 하나님께 꽃 드리기 운동 우리 교회가 1992년 6월, 130명에서 140명 가량이 되었을 때입니다. 1991년 통계를 보니 새신자 가운데 집사들이 전도한 사람은 2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집사가 56명 정도 되는데, 그때는 30명 가량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집사들이 전도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2년 6월 직원회의 때, 집사가 전도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11월 셋째 주까지 전도하지 않으면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집사의 자격이 없다고 선포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날까지 전도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고 말하고는 200명 목표를 위해 필사의 각오로 전도하자고 했습니다. 11월말까지 200명을 돌파하자고 한 것입니다. 당시 프로그램의 이름은 '하나님께 꽃 드리기 운동'이었는데 아이디어를 선거 때 얻었습니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꽃을 달아 주는 점에 착안하여 게시판에 교역자 이름과 직분자들 이름을 적은 표를 붙여 놓고 각각의 이름에 꽃을 다는 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도를 하면 꽃을 달아 주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6월 직원회의 때 발표한 것입니다. 목표 200명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집사들이 전도하는 것입니다. 집사의 수만큼 전도한다면 엄청날 것인데 지금까지 2명밖에 전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집사들이 분발하면 평신도보다 훨씬 전도를 잘합니다. 그래서 집사들에게 전도할 것을 말했고, 저도 전도하지 못하면 사표를 내겠다고 공포한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는 전도사들 3명이 있었는데 직원회의를 하는 도중에 전도사들을 일어나게 해서 전도하겠는지 물었습니다. 장로님에게도 물었습니다. 전도하지 못하면 그날부터 교회에 나오지말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집사들을 전부 일어나게 한 다음에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일어선 채로 있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앉으라고 했더니 한 사람도 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날까지 전도하지 않으면 집사직분에서 떨어지는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는 서약식을 했습니다. 이 발표를 6월 첫째 주에 했는데, 7월이 되어도 꽃이 붙지 않는 것입니다. 적어도 1명 등록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희 교회는 등록을 하려면 적어도 연속으로 2회는 나와야 합니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등록교인을 만들어서 교인의 수를 늘리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6월과 7월, 2개월 동안 요동함이 없자 직원회의를 할 때마다, 설교할 때마다 꽃 드리기 운동을 강조했습니다. 8월쯤 되니까 1-2명이 꽃을 붙였습니다. 9월과 10월이 되자 전도에 불이 붙어 이제는 전도 못하는 사람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1월 둘째주가 되자 2명만 제외하고는 다 꽃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인이 약속한 11월 셋째주가 되니까 202명이 나왔습니다. 총동원주일이 아니라 주일 낮예배를 드리는 인원이 이렇게 증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용서선언'을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200명을 달성하는 것이지 집사직분을 박탈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200명이 되지 않았다면 직분을 박탈했겠지만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봐드리겠다고 선언했더니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형성된 저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목회했습니다. 교인들과 제가 신뢰가 형성되어 그것을 전제로 일이 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과정을 통해서 볼 때 이 일이 어느 정도 수용될 것이라 생각하고 진행한 것입니다. 교인들은 편안하게 신앙 생활하고 싶은데 목사님이 하는 일에 마지못해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목사님이 자신들을 강력하게 몰아붙여서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만들어 가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은 자신들을 마냥 풀어 주는 것보다 프로그램을 통하여 자신들이 구속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적거리며 따라가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강력한 힘에 의해서 따라가다 보면 힘도나고 그런 것입니다. 개척교회의 교단 활동 개척교회 목회자들의 경우, 저는 기본적인 모임에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우려하는 것은 정치적인면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성이 농후한 사람입니다. 정치감각도 있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나가면 금방 물이 들 것 같습니다. 목회가 좌절을 안겨 주고, 교인들이 잘 모이지 않고, 개척교회 상황이 자꾸 압박을 가하면, 정치적인 모임에 가서 관심을 돌려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신을 더욱더 목회에 투자하는 편이 좋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평생 교회정치는 안할려고 합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정치라는 영역에 들어가서 정치판이라는 데가 목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목사님들이 교회정치, 교단정치에 개입하셔서 일은 잘 하시는데 실제로 목회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목회에 전적으로 관심을 갖는 그런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목회와 정치가 단순히 상반된다고는 보지 않지만, 목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치가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목회는 목을 거는 일 목회는 목을 거는 것입니다. 1995년 3월에 황성주 박사님(사랑의 클리닉 원장)에게 종합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데, 건강진단은 ABCDEF순서대로 나갑니다. 그런데 제 점수가 G가 나왔습니다. 건강상태가 최악이라는 말입니다. 황성주 박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죽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최소한 3개월 동안 산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말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쉴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숨돌릴 틈없이 이어지는 행사가 6월 중순까지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당의 어느 목사님은 스스로 고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교회가 부흥하게 된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이유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히 부부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을 끊었다는 자신의 결단의 표현인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생각하겠다는 것입니다. 목회는 목을 걸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보통 결심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 금식을 잘해 본 경험은 없습니다만, 위급한 상황이 되니까 금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래서 저도 금식할 계획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결국 그분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제 고향인 제천의 어느 장로교회는 장년들이 150명 가량, 주일학교 학생들이 3천명이 됩니다. 학생들의 수가 어마어마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그 학생들을 1,500명까지 세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어서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목사님은 부축을 받고 올라오셨고, 이분이 설교를 하다가 피를 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네사람들이 하는 말을 귀동냥해 들으니 이분이 심한 페결핵을 앓고 계셨는데 설교를 할 수 없는 지경이랍니다. 그런데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서 후임자가 올 때까지 강단을 지켜야 한다고 해서 설교를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찬성과 반대의견이 나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목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를 하면 강단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라는 것은 "목을 걸고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목을 걸고 목회합니다. 방법 둘: 개척교회에서는 반드시 일을 벌려야 한다 개척교회의 시작 제가 몸담고 있는 서광교회는 제가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전임 목사님이 개척하신 지 6년 정도 된 교회였는데 아주 어려웠습니다. 전체 교인이 23명 정도였는데 제가 교육전도사로 있던 대광교회에 담임으로 제 전임자가 가시는 바람에 제가 서광교회 후임자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1986년 2월 17일에 이곳에 왔습니다. 대조동 46-37번지에 있는 지상 3층의 옛날 건물로 지하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안의 계단으로 들어가면 교회가 있고, 강대상이 있고, 강대상 뒤를 판자로 막아 방을 하나 만든 곳이 사택입니다. 한마디로 엉망이었습니다. 평소에 내가 목회하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제가 처음 교회가 있는 지하로 내려갈 때에는 도둑 소굴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캄캄하고 환경정리도 안된 엉망인 곳이었습니다. 교인들이 지쳐 있고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는 엉터리였습니다. 개척 6년이 지났는데 성도가 20명이랍니다. 교회성장학 이론에 따르면 가정교회가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끼리끼리 혈맹공동체 비슷하게 뭉쳐서 외부사람에게 반발하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6년 동안 같이 살았으니까 혈맹관계나 다름없이 결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6년 동안 20명이 모이면서 그중 14명이 집사직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세 가정이 남아 있는데, 처음에 제가 그들을 만났을 때 교회를 끌고 나가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험도 없었고 무슨 얘기를 해도 어렵기만 했습니다. 고집불통인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갖고 있던 교만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 5년 안에 대교회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공부를 잘했고, 총학생장 출신이고, 행정을 좋아하고, 설교에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로 봤을 때 목회를 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목회를 했습니다. 처음에 침울한 교회 분위기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고, 게시판도 멋있게, 벽도 2개월에 한 번씩 변화를 주어 칠하고, 교회가 있다는 걸 표시하려고 자전거를 구입하여 동네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자 오히려 교인이 줄어들어서 15명이 남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좌절했는지 상상이 갑니까? 별짓을 다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이렇게 목회가 안될까?'하는 고민에 휩싸여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저는 목회를 쉽게 생각하고 단순히 머리로만 문제를 풀어 가려고 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987년부터는 기도하기로 다짐하고, 옛날 학교 때의 버릇대로 다시 제일 늦게까지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나를 괴롭힌(?)분이 있었는데 수색 장로교회 오필홍 권사님입니다. 그분은 연세 많은 할머니였는데 타교회 분이면서도 우리 교회에 와서 새벽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번 교회에 오시면 가지 않는 분입니다. 제가 그분 때문에 잠을 못자고 고생을 했지만 그 덕분에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고마우신 분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성장한다 교회성장에 대해서 제 개인적인 견해는 "교회가 안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는 안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안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가 아니라는 겁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상한 교회다." 그 교회는 병든 교회라는 얘기입니다. 그 말씀에 저는 오래 전부터 공감하는 바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으면 성장을 해야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병들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교회는 성장이 안될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 나쁘다는 것은 하나의 구실일 뿐이지 교회는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가 올바르면 교회는 무조건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교회는 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병이 안들었는데 성장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성장이 느린 대부분의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고 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이 목사에게 달렸다는 것도 당연한 말입니다. 절대적이고 거의 100%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주위환경이나 교인들이나 교단관계 등의 영향이 있지만 제일 많은 부분을 목사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정, 즉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감동은 주는 일이 10% 정도입니다. 일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생각이나 이론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들을 하시지만 그러나 이 교회가 제 교회입니까? 실패하면 하나님이 실패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저의 개척교회 목회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입니다. 개척교회를 벗어나는목회 개척교회는 특별히 표어를 잘 선정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몇 년째 '신바람 나는 교회, 즐거운 교회, 할 수 있는 교회'등 이런 표어를 사용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에 등록한 교인 중 몇 명은 '즐거운 교회'라는 표어 때문에 등록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다니던 교회의 표어는 '내 짐을 져라', '전도배가운동', '총력전도'등이었습니다. 이런 표어들은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데 방해거리가 된다고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지식수준도 향상되었고 경제적인 여유도 있기 때문에 부담을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특별히 도시목회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람들이 편안하게 접촉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목회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개척교회는 사람들 관계에서 시작되고 사람들 관계에서 끝이 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이 방법은 개척교회를 벗어나 빠른 성장을 가져오는 목회의 좋은 방법입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은 여건상 주눅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있나, 있다고 해도 모여 주기를 하나, 도대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싸여서 자기도 모르게 주눅든 사고방식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면 안됩니다.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목회자와 그대로 머물러 있는 목회자의 차이는 여기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나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자꾸 일을 하다 보면 잘되는 경우보다 안되는 경우가 더 많이 있지만 그래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교회가 성장을 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개척교회의 여건은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하는 일들이 안된다 해도, 또 일하고, 또 일을 해야 합니다. 그치지 않고 뭔가 자꾸 해보려는 열심에 교인들이 감동받게 됩니다. 주저앉으려는 마음은 개척교회 목회자의 적입니다. 뭔가 해 보려고 해도 잘 안되니까 포기하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가장 두려운 적입니다. 이 적을 이겨 내면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일에 가까이 다가섭니다. 개척교회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우리 전도사님, 혹은 우리 목사님은 참으로 따르고 신뢰할 만한 분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실력 있고, 능력있는 분이라는 믿음이 그들에게 있으면 교인들이 목회자와 함께 개척교회 목회에 동역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교인들이 느끼는 것만큼 외부에서 우리 교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벤트 회사에서 행사를 기획할 때 커다랗게 만들어서 분위기를 띄우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하는데 '이벤트 목회'라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교회에 경영 마인드를 도입한다는 말들을 하는데, 저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도 서점에 가서 경영학에 관련된 책을 보기도 합니다.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면 곤란하겠지만 말입니다. 개척교회 탈피방법은 일을 믿음으로 저질러 버리는 것입니다.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 너무 신중하게 일하려고 하면 변화가 없으므로 교회가 정지하는 느낌을 주고 침체에 빠져듭니다. 교회의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고, 현재 부딪힌 어려운 상황이 믿음의 시험대라는 의식으로,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입니다. 일을 과감하게 저질러 버리는 믿음의 용기가 없이는 개척교회라는 특수한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주고 새롭게 나아가는 모습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에게 가능성을 보여주고, 가능성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20명 개척교회를 하시는 목회자들에게 20명 정도의 교인이라면 아주 작은 교회일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에 이런 교회가 부지기수라는 것입니다. 20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너무 많다는 것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20명 정도 모이는 교회라도 그 상황이 다릅니다. 여기에는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척해서 20명이 된 경우와 몇 년이 되었는데도 20명에 머물고 있는 경우입니다.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20명이 된 사람에게는 우선 자신감을 가지라고 하고 싶습니다. 부흥이 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년에 20명을 만들었다고 하면 성공입니다. 그리고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비전이 보이고 자신감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20명 모이는 교회가 오히려 더 문제입니다. 이 사람들이 제일 어려운 상황입니다. 개척교회 사람들보다 정체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활력소를 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사람에게는 교회장소를 옮기는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또 외적 조건으로 교회이름을 바꾼다든가하여 일을 저지르라는 것입니다. 정체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황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중 가장 좋은 것이 교회장소를 옮기는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님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일을 벌리는 교회 건강한 사람이 성장하듯이 건강한 교회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일을 벌리면 되는데 자꾸만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생각하고, 교인 수만 헤아리면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때이고 시도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도하지 않고 머무르면 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척교회의 3-4년은 금방 지나갑니다. 저는 지금이라도 일을 시도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성장이라는 건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뿌리가 박혀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무너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터무니없는 건 안되지만, 일은 저질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3년마다 한 번씩은 꼭 변화를 주어야 됩니다. 2-3년 만에 한 번씩 말입니다. 2-3년 만에 한 번씩 변화를 준다는 것은 기존의 틀, 안정되어 간다 싶은 틀을 확 깨트려 버리고 교인들로 하여금 다시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갈 기회와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의 존립의 원리는 '일을 믿음으로 시작하고 벌리라'입니다. 그분들이 일을 벌리지 않는 것은 안되리라고 미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안될 것 같으니까 아예 한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고서 '내 일이 아니니까'하고 벌려 버리면 되기도 하고, 어쨌든 안되기도 하겠지만, 대충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라는 계획은 세워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인간적인 숫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플러스 알파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만, 플러스 알파는 그분이 하시는 겁니다. 열심 있는 목회 아파트나 상가는 교회나 목회자를 알릴수 있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위치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근처에서 목회하시는 은광교회 목사님을 굉장히 의식했는데 그분은 목회경력이 오래되신 분이고 저는 햇병아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그분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의식을 많이 하면서 노력했고 또 실제로 그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에서 특색 있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매월 둘째 주에 선교예배를 드렸고, 셋째 주는 평신도를 불러서 간증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다른 교회의 교인들에게 부탁해서 강단에서 간증하도록 시켰습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목회자들보다 평신도들이 순수한 면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주로 평신도들을 많이 세워서 간증집회를 열었습니다. 또한 저는 우리 교인들이 교회에 대한 자부심과 저에 대한 신뢰감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인데 교회에 대한 자부심은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속한 교회에 대한 자부심, 자기가 섬기는 목회자에 대한 자랑스러움 없이는 교회가 절대로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개척교회를 벗어나는 데 상승작용을 합니다. 목사가 조금만 생각하면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뭔가 일을 저질러 보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아이디어가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해 보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저절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도 저질러 보고, 그러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일을 하려고 할 때 두려움이 앞서면 먼저 기도해서 그 두려움을 없애고, 어쨌든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짓고 해야 합니다. 일을 해 보려는 가운데서 아이디어도 생기고, 도움을 줄 사람들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먼저 도움을 주어야 일을 할 텐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평생 일할 수 없습니다. 일을 먼저 저질러야 돈도 생기고, 그 일을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생기고, 사람들도 그 일을 중심으로 해서 모이는 법입니다. 단지 믿음이 필요할 뿐입니다. 내가 하는 이 일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 말입니다. 일을 먼저 하고, 사람들을 모이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먼저 모인 다음에 일할 생각을 하면 개척교회는 영원히 개척교회로 있을 뿐입니다. 계속적으로 성장되어 가는 교회 교회를 지은 다음에는 성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지어서 들어오니까 저를 알고 있던 동네사람들은 제가 성공할 줄 알았다는 등, 살아 남은 교회가 서광교회밖에 없다는 등 합니다. 그리고 대전에 지교회를 세우고 중국에 단독으로 선교사도 파송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성장을 하니까 지역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것이 주부교실, 주차장 오픈, 본당과 2층 오픈 등입니다. 저는 동사무소에서 사용한다고 하면 아무때나 교회 본당을 빌려 줍니다. 그리고 동장 추천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역 노인분들 효도관광과 노인정에 가서 식사를 대접해 드리기도 했습니다. 또 1996년 8월경에 왜그너 교회개척성장연구원도 세웠습니다. 조그만 수양관도 경기도 파주에 계약을 하고 중도금을 치렀습니다. 성도들의 영·혼·육의 쉼터로 사용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회개척성장연구원도 작년에 처음으로 세미나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130명이 모였는데, 최고로 많이 모이는 교회가 80명이 모이는 교회였고, 평균 5-6년이 되었는데 20명에서 30명 정도였습니다. 아주 좌절되어 있던 사람들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회 세미나에서는 276명이 왔습니다. 훨씬 관심이 높아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교인이 천명이 넘어섰습니다. 자그마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겁니다. 계속해서 기쁨으로 모든 일을 추진해 나가려 합니다. 방법 셋: 개척교회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성장 1987년에 우리 교회의 성도가 15명에서 3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선 기도를 시작했고 그런 이유로 스스로의 부족한 모습을 잘 알게 된 것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프로그램의 다양화를 시도했고, 교수님들이 오셔서 담임 목회자를 돕도록 좋은 말씀을 통해 교인들을 지도해 주신 것도 큰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5명에서 30명으로 성도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기존성도인 15명만큼은 튼튼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1987년에 15-20명 되는 교인으로 제일 먼저 시도한 일은 그들을 제자훈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984년 신학교 3학년 때 제가 직접 만든 제자훈련에 관한 교재를 다시 사용하기로 하고 타자를 쳐서 편집했습니다. 당시 우리 교인들 14명이 거의 다 집사였는데 제 생각에는 잡사(?)라고 해야 할 만큼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 훈련을 하면서 원칙을 정했습니다. 제가 목회를 평생 할 텐데 몇 가지 목회원칙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한 원칙을 지금까지 고수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집사가 잡사가 되면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개척한 목회자라면 막 밀고 나가겠지만 그럴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그들을 완곡하게 설득하고 달래서 제자훈련을 받도록 했습니다. 이 공부를 하는 동안 2번 결석하면 퇴학입니다. 1회 결석과 지각은 용납해 주는 대신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고, 또 점수제도를 도입해서 80점 이하는 졸업을 안시킵니다. 80점 이상은 졸업, 70점 이상은 수료, 70점 이하는 준수료로 구분했습니다. 100점을 기준으로 하고 출결상황, 숙제검사가 20점, 성경을 한 번 읽어야 20점, 기도를 100시간 해야 20점, 20점은 성도간의 교제를 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전도점수가 20점입니다. 그때 15명 정도로 시작했는데, 퇴학당하는 사람이 60%, 남는 사람이 40%인데, 그중에서도 제자훈련과정을 끝까지 마치는 사람은 10% 정도입니다. 처음부터 졸업과 수료를 구별하고 어려움을 참고 끝까지 인내해서 과정을 마치는 사람에게는 제자훈련 졸업예배를 성대하게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동안 공부한 사람들의 졸업식 사진이 목회실에 다 있습니다. 시작은 많았지만 중간에 도중하차한 사람이 많아서 사실상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성경공부를 말할 때 교인들의 성경지식을 쌓는다든가, 교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데, 저는 이 시간을 이용해서 목회자로서의 제 자신을 성도들에게 알리는 통로로 사용했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시간으로 활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몇 명 안되는 개척교회의 프로그램 사실 개척교회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우선 저는 부흥회를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여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친구 중 4년 동안 한 번도 부흥회를 하지 않는 친구가 있습니다. 모일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흥회를 하려면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없어서 부흥회를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해야 합니다. 부흥회가 참으로 도움이 됩니다. 또한 예를 들어, 산에 기도하러 가자고 합니다. 그리고 산에 갈 사람은 언제 어디로 나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3명만 나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산에 기도하러 가자고 광고했기 때문에 3명이 모인 것 아닙니까? 이 3명이라도 가면 이 사람들은 친해집니다. 그런데 '10명 중에서 3명만 모일 텐데…'라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아예 어떤 프로그램도 진행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친해질 기회는 1명에게도 없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득이라도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목회서신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백지에다 컴퓨터로 입력해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1992년에는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적어서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반응이 대단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그것을 자신에게 특별한 말씀으로 주신 것이라고 문이나 TV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그것을 가지고 기도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8년 동안 임신하지 못하던 성도가 임신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을 가지고 펑펑 울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기적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하다보니 계속 아이디어가 개발되어집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좋은데 우리 교회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일을 주십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써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다른 일을 주십니다. 하지 않으니까 일이 없는 것이지 일은 많습니다. 40명 정도의 개척교회 프로그램 진행 40명이 되면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20명에서는 어떤 프로그램을 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에 의하면 40명만 되어도 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합니다. 보통 40명이라고 하면 남전도회 5-6명, 청년회 5-6명 그리고 여전도회가 약 30명 정도로 구성될 것입니다. 일이라는 것은 2명이 하는 것이지, 여러명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전도회도 2명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전도회도 20명만 넘으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네 그룹만 되어도 찬양대회가 가능하고 프로그램 진행이 이루어집니다. 요즘은 그런 말을 잘하지 않습니다만 예전에는 선배 목사님들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가 43명이었을 때 상가로 이사를 갔습니다. 40명일 때 1억 3,430만원짜리 세금까지 1억 5,000만 원짜리를 구입한 것입니다. 당시 이 돈이면 지금 약 10억 정도 됩니다. 큰돈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 무모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못산다고 해도 교회가 내 것인 것과 남의 소유에 있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작은 상가라도 하나 잡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시도하면 자산이 늘어나게 됩니다. 40명일 때 이러한 일을 시도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선 뭔가 1차 시도를 하십시오. 도저히 살 형편이 되지 않으면 공간이라고 넓혀서 이사를 가십시오. 그런데 교인들은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교회도 미성아파트 상가 2층에 있으면서도 1992년 말에 교인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바로 지하를 월세로 얻었습니다. 학생들과 주일학생들을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가 늘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차를 한 대 더 샀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가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모습을 교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80-100명 교인에 이르는 길 사실 40명에서 60명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80명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우선 80명만 되면 1년 예산이 8,000만원이 됩니다. 이렇게 예산이 세워지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립한 교회로서 선교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립교회로서 당당하게 일을 찾아가는 것이 교회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 80명이 되었을 때 '나눔 그리고 감사의 축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당당히 자립교회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혼자서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다 진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80명 정도 모였을 때 18개 교회에 선교를 했습니다. 저는 이 정도의 규모만 되어도 원래 교회로서의 모습을 다 갖추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저는 북한교회를 돕기 위한 적금을 따로 들었고, 선교를 했으며, 우리 교회에서 개척해 나갈 교회를 위한 헌금을 따로 모았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지교회를 위한 자금을 모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80명만 되면 자립교회로 보고 프로그램이 다양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100명이 넘어서는 단계부터는 목회자의 능력대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라 같은 프로그램을 두 번 해서는 안됩니다. 같은 것이라도 타이틀도 계속 다른 것으로 바꾸고 방법도 조금씩 다른 것을 시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의 행사가 끝나면 허전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쉬운데 그때 분위기를 유지시키는 후속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일하는 교회, 신바람 나게 일하는 교회, 이것이 제가 꿈꾸는 교회상입니다. 방법 넷 : 교인들에게 비전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1년 동안 개척교회에서 열심히 목회를 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인들이 줄었다는 사실은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닌 다른 이유들도 있습니다. 저는 개척교회 상황을 고려한 목회 방법과 전략이 부재했다는 것을 반성하고 싶습니다. 대책없는 열심만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계획이 없다는 것인데 미래를 바라보며 꿈꾸는 청사진, 즉 마스터 플랜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무조건 열심히 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너무 건방지고 철없던 생각이었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하나님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좋은 훈련을 시키셨는데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개척교회의 홍보전략 1987년 당시 우리 교회의 1년 예산이 700만원이었는데, 저는 교회의 본질과 존재목적이 영혼을 모으는 일이고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우리 그리스도인인데, 선교하지 않으려는 교회는 차라리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교회가 선교하는 것은 주님의 당연한 뜻이라고 교인들을 설득했습니다. 교인들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제대로 말도 못하고 선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런것은 우리와 전혀 관계없다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그래도 한달에 만원씩 한 교회를 돕자고 설득하고, 결국 제 의견대로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보 1면에 '선교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썼더니 교인들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했지만, 작아도 선교하는 교회라는 의식에 보람되고 기분좋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도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교하는 교회를 두 교회로 늘려서 각각 만원씩 후원하고 기관에서 한 교회를 돕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기관이랄 것도 없지만 어쨌든 유·초등부, 학생회, 청년회, 남전도회, 여전도회 등 5개 기관에서 한 교회를 돕는 것입니다. 돈 많이 드는 후원이 아니라 작은 돈이지만 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우리의 정성 어린 마음을 보내자고 강조했습니다. 그 때 '월간목회'가 3,000원일 때인데 각 기관에서 한권씩을 한 교회에 보내도록 했습니다. 저도 3,000원이 없어서 중단한 적이 있는데, 개척교회에서는 3,000원도 귀하게 쓰여지므로 그것을 보내 주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선교후원하는 교회가 갑자기 많아져서 무려 7교회로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장학금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홍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부흥회를 열어 저녁집회에 날마다 다른 목사님들을 모셔서 설교를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속성으로 부흥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주변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교회이지만 밖에서 볼 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교회라는 느낌을 주고자 한 것입니다. 결국 개척교회가 살아 남는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 이전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상가로 이사 가기 전의 과정을 잠깐 이야기하겠습니다. 1988년 10월, 상가로 이전할 때 43명이었으니, 1987년 5월은 출석교인이 30명쯤이었습니다. 1987년 8월에 환상을 봤는데, 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후에 어떤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속한 성결교단에는 "직선거리 500미터 안에는 교회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교단인 모 교회가 개척한 지 1년도 채 안되어 2층 건물을 2억 3,000만 원에 사서 우리 교회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 교회보다 역사도 오래되었는데 교인도 적을 뿐 아니라 전셋돈 200만 원도 못 올려 주어 끙끙 앓으니 비교가 되어 얼마나 낙심이 되겠습니까? 며칠 후에는 도저히 여기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 좌절에 빠졌기 때문에 뭔가 변화가 없으면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변화를 주기 위해 이전하려는 것입니다. 상처받은 교인들과 함께 계속 목회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해 보려는 의지를 이미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있기보다는 변화를 시도하고자 믿음을 발휘한 것입니다. 변화를 향한 간절한 믿음, 이것이 결국 일을 해내고야마는 것입니다. 상처를 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며 지내고 있는데, 1988년 5월 말쯤 새벽기도를 끝내고 강대상 뒤에 마련한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조선일보를 보다가 광고를 보게되었는데 '미성아파트 상가 분양' 옆에, '교회, 학원, 유치원 임대'라는 광고가 개재되어있었습니다. 가격을 알아보니 나누어 임대하는데 3층은 학원, 2층 84평을 교회건물로 임대하면 1억 3,440만원에 준다는 것입니다. 평당 160만원인 셈입니다. 그래 무조건 전화를 걸어 그 다음날 계약하자고 했더니 계약금으로 3천만원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알았다고 전화를 끊고는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교회 신미섭이라는 여자 청년이 있는데 이대를 졸업하고 국민투자신탁에 들어간지 얼마 안됐을 때인데, 그 친구가 은행에 있으니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마음에 전화를 해서 돈이 필요하다했더니 500만원은 빌려드릴 수 있다하여 송금을 부탁했습니다. 은행에 가보니 100만원은 현금으로, 나머지는 수표로 입금되어 100만원만 찾아가지고 계약을 하러 분양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가보니 제가 구두계약만 하고 시간 내에 나타나지 않자 다른 계약자들이 줄을 서서 흥정을 하고 있었기에 가격이 많이 올라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제일 먼저 계약하기로 한 사람이니까 나와 계약해야 한다고 우기고 우겨 결국은 일주일 후에 2,500만원을 주기로 하고 가계약을 맺고 나왔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자 새벽기도 끝나는 대로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모두들 뜻은 좋지만 도와 줄 만한 여건이 못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길고 긴 하루였고 어렵게 어렵게 은행 마감 5분전에 장모님이 3,000만원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 주셔서 그것으로 계약금을 지불했습니다. 그후 중도금 5,000만원은 한 분이 3,000만원, 한 분이 2,000만원을 융자해 주셨는데, 자기 땅을 담보해서 돈을 빌렸습니다. 그리고 한 성도가 500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 주셨습니다. 돈 구하러 다닐 때의 서러움은 정말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서러움을 무지무지 당했습니다. 아는 분들을 찾아갔는데 99%가 다 안된다고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기 그지 없는 우리 교인들이 건축헌금으로 1,950만원 헌금을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무척이나 어려운 가운데 분이 넘치게 했습니다. 새벽기도/철야기도 저는 새벽예배 설교를 7분 정도 합니다. 새벽기도는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새벽기도회에 오는 사람들은 개교회에서 주로 중진들입니다.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저희 교인들보다는 외부 교인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저는 새벽기도 설교는 일련의 강해설교를 했습니다. 저도 그분들의 수준에 맞는 설교하려고 했습니다. 교회를 짓고 이사올 때도 그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굉장히 아쉬워하기도 하고 같이 일할 수 없겠는가 묻기도 했습니다. 또 헌금들도 많이 주셨습니다. 1990년 이후에 우리 교회의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철야기도가 활성화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매주 철야예배를 드렸습니다. 사실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에서는 사람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매주 철야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멤버가 생기고 함께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2년에 우리 교회에서 '예수꾼 운동'을 했습니다. 예수에 미친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원서 가입도 받았습니다. '예수꾼 가입 70명 운동'을 했는데 50명 남짓 받고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철야기도에 100% 참석한다는 조건하에 말입니다. 예수꾼 70명만 있으면 다른 교인들은 이들에 의해서 양성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열심 멤버들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방법 다섯 : 들어오는 교인이 나가는 교인보다 많게하라 : 한명을 위해 전력을 쏟아라 한 명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목회 10명으로 시작한 개척교회는 10명이 그대로 있으면서 1명, 2명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사나 가정사정 등으로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그렇다면 나가는 사람보다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나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들어오는 사람들을 정착시켜야 할 텐데 새신자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1987년까지는 이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집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회를 찾아 소개해 주어 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유도해 주었는데 1988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교인이 이사 가면 바로 심방을 갑니다. 한 명 교인의 소중함을 깨달은 목회자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명 교인들에게도 마지막까지 관심을 가지는 목회자의 열심은 기존교인들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개척교회의 좋은 동역자들 대개 개척교회에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므로 담임 목회자 혼자서 목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전도사를 모실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부터 교육전도사 2-3명은 항상 두고 팀목회를 했는데 제가 전도사 시절에 개척했을 당시부터 그래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적어도 전도사 3명은 늘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사례금을 조금밖에 드릴 수 없었지만, 지금 나를 도와 주면 나중에 내가 여러분을 도와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나를 열심히 도와 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 주변에는 저와 함께 동역해 주는 분들이 많았는데 한결같이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수원 성가교회의 양민식 목사, 대전 서광교회의 김민호 목사, 태안 원북교회의 마형갑 전도사와 특별히 만 5년 동안을 제게 큰 힘을 주고 의지할 수 있었던 화곡교회 조범식 목사, 어려운 개척교회 전도사 시절 작은 사례비도 마다않고 운전까지 도맡아 해주던 황철중 전도사 등 정말 생각만 해도 고마운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새 교인의 등록 새신자가 오면 평신도나 전도사들이 그들에게 먼저 접근해서 등록하도록 권면하는 방법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에게 부담 주지 말고 대신 인사는 공손히 하라고 했습니다. 또 안내위원도 고정인원을 두었습니다. 식당에 가면 흔히 느끼는 것이지만 음식이 아무리 뛰어나게 맛있다 해도 종업원이 친절하지 않으면 다시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내위원도 인상 좋고 친절한 사람을 고정멤버로 둔 것입니다. 그 대신 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3번만 나오면 무조건 달려들어 다른 말 하지 말고 담임목사님께 인사 한 번 하고 가시라고 권하도록 교육을 시켰습니다. 제게 데리고 온 사람은 그때부터는 제 책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교회에서 오신 분들에게는 먼저 직분을 묻고 언제 직분을 받았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확신 등 몇 가지를 물어서 체크하면 어떤 사람은 집사가 아닌 '잡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저희 교회는 집사 되기가 참으로 어려운데 집사님이 집사로 오시기를 원하면 그렇게 해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대부분 자신이 집사자격이 없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좋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새로 출발하는 것이 훨씬 더 좋아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긍정하고 새신자로 등록을 합니다. 간혹 본인이 집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으면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 집사로 등록을 시키지만 1년 동안의 한시적으로 임명하고 협동집사로 직분을 감당하게 하면서 그 동안에 제자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 지금도 우리 교회가 작지만 그래도 이만큼 성장한 것은 교인들의 의식구조 저변에 깔린 우리 교회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교회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합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교회 성장에서 필수적 요소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교인들이 사람들을 전도하고 교회로 데려와야 성도가 늘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사람을 인도하거나 전도하지 않으면 교회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교인들이 교회와 목사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고, 목사를 그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야 합니다. 프라이드가 없는 교회는 성장하기 힘듭니다. 교인들이 1,000명 가량 되는 우리 교회는 집사님이 50여분 있습니다. 50명이면 소수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는 집사가 굉장히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직분입니다. 우리 교회의 또 하나 장점은 목사인 제가 나이가 많은 세대라고 해야 할 만큼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젊다는 말도 됩니다. 그리고 실상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성교인들이 우리 교회에 많이 오지 않았다는 얘기도 됩니다. 또 한가지는 다른 곳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실력을 우리 교회에서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 만큼 그러한 사람들까지도 적재적소에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특징들을 굳이 몇가지로 꼽으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특별히 성령충만합니다. 또 우리 교회는 교인층이 젊습니다. 예배가 역동성이 있습니다. 기존교인과 새로운 교인과의 갈등 해결 40명에서 80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교인들과 아파트에 사는 교인들 이 잘 어울리지 않아서 교인들끼리 분리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목회의 한 방법으로 처음 나오기 시작한 고학력 교인들을 기존교인들보다 특별관리를 했습니다. 특히 새로 온 교인들과 함께 새신자 성경공부를 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까지 나오는 기존교인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배운 것을 뽐내거나 있는 것을 자랑하면 이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즉 돌봄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기존교인들이 새로 들어온 교인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온 교인들이 기존교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만큼 되기까지 이들의 십자가가 있었음을 시간이 날 때마다 말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이분들이 기존교인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고 크게 마찰이 일지 않았습니다. 목회자가 미리 갈등을 예상하고 예방차원에서 잘 가르치면 갈등이 발생해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가라앉기도 합니다. 방법 여섯: 개척교회에서는 특히 교인들과 눈높이를 맞춰라 목회자의 인간관계 어떤 의미에서 목회는 결국 인간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회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호흡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교도 결국 이런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부부관계, 스승과 제자의 관계 등입니다. 그러니 관계가 제대로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대부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문제되지 않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문제됩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목회는 사람과의 관계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과 맺어지는 관계는 개척교회에서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목회를 말하면 교인들이 목회자의 삶과 설교에 매료되고, 그분의 삶에 반하고 좋아하고 흡입되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교인들은 목사를 좋아하고 그 주변으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중시하면서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러나 대개 목사님들은 권위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척교회 시에는 권위보다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교회로 오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개척교회는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 목사의 권위만을 내세우지 않고 소박하게 그들과 함께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교인들 의식 속에 자신들이 목사님과 동일한 수준에 있고 목사님도 우리들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일체감이 있으면 목회가 훨씬 편안하게 진행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처음 교회를 담임하면서 어려움을 겪던 몇 년 동안에 제가 목회자로서 그들에게 심어 준 것은 인간적인 면모이고, 이를 통한 일체감 형성이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끌어들인 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설교 때문에 교인들이 마음을 연 것이 아니라 인간성이 털털하고, 수수해서 그들이 살아 가는 모습을 이해하고 말이 통해서 마음을 열었던 것입니다. 교인들 가정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도 어렵게 살았지만 우리 교인들이 참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척교회는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그들 가까이 가서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게 개척교회의 시작입니다. 개척교회의 설교 개척교회는 일련의 강해설교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개척교회 상황에 따라서 교인들의 갈증을 채워 주는 제목설교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용기를 주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개척교회는 주된 교인들이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강해설교가 맞지 않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삼박자 구원을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설교가 필요합니다. 개척교회 사람들에게는 원리만을 강조하는 설교 혹은 인본주의로 포장된 지성적인 설교가 아니라 용기를 주는 단순한 메시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경직 목사님께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 목사님께서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맞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될 수 있으면 쉽게 설교하려고 애썼습니다. 용어선택도 쉬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똑똑하고 베드로는 무식했습니다. 저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놀라운 복음의 확장을 이루고 그를 사용하셨다"라고 설교하고, 소득이나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비록 베드로가 배우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엄청나게 역사하셨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저의 설교의 대부분이 하나님께서 결국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비전을 강하게 심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설교 중에 예화를 많이 사용했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책에 나온 예화는 도움이
교회와 목회자/대조 순복음교회 박정근 목사
교회와 목회자 대조 순복음교회 박정근 목사 자료원 : 국민일보 25면 발행일 : 94년 07월 02일 ◉ 푸른목장 일군 "양치기 32년"/조다윗.최자실목사 개척한 천막교회가 모태/지역주민과 호흡 함께하며 "열정목회" 올해로 교회창립 36주년을 맞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67의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 순복음교회(담임 박정근목사)는 교단의 역사와 거의 맥 을 같이 하는 가운데 총회를 대표하는 교회중의 하나로 꼽힌다.지난 58 년 은평구 대조동 산24에서 천막교회로 창립됐던 이 교회는 창립자가 조다윗목사와 최자실목사란 점이 이채롭다.신학교 졸업후 조목사와 최 목사가 함께 세운 첫번째 개척교회였던 것. 이후 교회가 성장하고 교인 들이 조목사와 함께 서대문교회로 이전함으로 선교사였던 스테츠목사가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이어 62년 당시 30세였던 박정근목사가 3대 담임목사로 초빙됐다. 이후 박목사가 32년간을 맡아 목회해 와 현재 재 적성도 4천여명 출석성도 2천여명에 이르는 대교회로 성장,발전했으며 다양한 교회 프로그램과 선교를 통해 많은 교회들에 도전과 모범이 되 고 있다. 『한 교회를 30년 넘게 맡는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여러번 느꼈고 어 려운 고비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장기목회가 가능할 수있었습니 다.저희 교회는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을 기차의 두 레일에 견주어 강조하며 달려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대조동은 초가집이 드 문드문한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교회당옆은 공동묘지였고 주변은 논밭 이었다.그러나 천막교회에서 시작한 순복음교회는 계속적인 성장을 기 록,61년 1백평짜리 시멘트블록 예배당으로 옮겼고 77년 다시 3백여평의 지상건물로 이전했다.현재의 순복음교회는 지난 80년과 89년에 각각 준 공한 것으로 대지 1천여평 건평 1천2백50평의 교회건물과 교육관을 갖 추고 있다. 박목사의 목회는 크게 네가지로 요약된다.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교회, 지역사회와 함께 움직이는 교회,선교에 적극적인 교회,문서선교에 앞장 서는 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원고설교를 꾸준히 지향해 오고 있는 박목 사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바탕으로 한 능력과 행동하는 신앙을 강단에서 언제나 강조한다.월요일 아침 기도를 통해 다음주 설교제목과 주제를 결정짓고 설교를 준비하기 시작,설교가 완성되는 것은 금요일이나 토요 일이다. 『제 설교가 성도들의 한주일 영적양식이 된다고 생각하면 결코 소홀 할 수 없기에 설교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원고설교는 충 분히 연구하고 검토한 말씀을 정리해 전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순복 음교회는 현 대조동이 형성된 초창기 이전부터 설립된 만큼 그 어느 교 회보다도 지역주민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그것은 이 교회가 오래전부터 주민들을 위한 지원과 봉사,이웃돕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기 때문이다. 교회가 정기적인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은 인근의 대조동 녹번동 불광동 갈현동 등에 살고 있는 극빈자들에 대한 후원이 다.각 동사무소에서 추천을 받은 극빈자들에게 생필품과 생활비를 지원 해 주는한편 장학사업,노인잔치,자활원 방문등의 프로그램을 진행시키 고 있다. 교회성장과 함께 국내외 선교지개척과 선교에 주력해온 순복음교회는 현재 25개의 지교회를 세웠는가 하면 15명의 선교사를 파송,지원하고 있다.특히 이 교회가 주축이 되고 교단내 10여 교회가 협력해 창립한 세계선교회(회장 박정근목사)는 2년마다 각국 선교사들을 초청,선교대 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선교사명고취의 큰 몫을 감당하고있다. 교회 자체로 QT 월간지를 정기적으로 발간,성도들의 영적성숙에 도움 을 주고 있으며 교회소식과 선교보고도 자세히 담고 있다.교회에서는 [생명의 양식]을 매달 3천부이상 발간해 교단내 교역자들과 군부대장 병,재소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또 박목사의 주일설교와 신자 의 간증을 실어 매주 발행하는 4.6배판 [순복음의 메시지]는 전도지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주민들의 결혼식이나 행사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사회교 육관을 건립하고 기도원을 세우는데 진력할 것입니다.아울러 세계선교 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교회가 되도록 제3세계선교에 교회의 힘을모을 것입니다』 능력과 은혜의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 박정근목사.32년을 한 교회에 몸담으며 실천해온 그의 열정적인 목회가 이제 소담스런 열매를 맺고 있다.<김무정기자>
기독교 역사를 바꾸는 시기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분/2008-06-04
기독교 역사를 바꾸는 시기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분 일본 요네자와 성회 당시 북부지역의 일본 목사 700여 명이 모였다. 일본 선교 초창기에는 일본 교회 단체에서 성회 때 신유기도를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종일 식사도 못하고 저녁 성회에 선 조용기 목사가 “오늘 내가 힘들어서 안되겠다. 신유기도를 하겠다”며 뜨겁게 신유기도를 했다. 성회에 동행했던 서천식 장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그 순간 불이 붙었죠. 막상 기도를 시작하자 일본 목사님들도 뜨겁게 호응했어요. 그후 조용기 목사님은 어디를 가든 신유기도를 강하게 하셨어요. 종일 식사를 못하신 목사님은 신유기도로 힘을 얻으셨고, 성회를 마친 뒤 아주 기뻐하셨지요” 서천식 장로는 조용기 목사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지만 인간적으로만 볼 때는 고독하고 힘든 자리지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언제나 웃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로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목사님을 위로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외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일본선교회원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20여 년 동안 조용기 목사의 일본선교를 뒤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 1997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개최되는 성회를 일본선교회원들이 직접 주관했으나, 1998년경부터 일본 내의 순복음교회가 이 일을 대신했다. 일본에 개척한 교회는 모두 65개인데, 이 교회들이 성장해 교회마다 선교회가 생기자 한국에서 지원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일본에 파송한 선교사는 모두 87명으로, 이 선교사들이 일본 성회를 주관한다. 일본은 교인이 100명만 되어도 큰 교회로 인정받는다. 그러니 일본에서 1000명이 모이는 교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1980년대 후반 동경순복음교회가 출석교인 1000명을 돌파했을 때 일본 교계가 깜짝 놀랐다. 일본 목사들이 동경순복음교회에 견학와서 교세를 확인하고, 각종 예배에 참관하는 일이 많았다. 순복음의 부흥비결을 배워 일본에서 목회에 성공한 분들도 많다는데, 요네자와의 다나카 목사나 오가와 목사 같은 분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다나카 목사는 마술을 배워 성도들 앞에서 공연하면서 전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동경순복음교회의 교인은 총1700명에 이른다. 일본 성도들의 방한(訪韓)대성회는 1982년부터 실시되었다. 한번에 1000여명씩 왔는데, 그 기간이 되면 일본선교회 회원들은 생업을 잠시 제쳐두고 일본성도 돕기에 나섰다. 주일에 3부 예배가 끝나면 30∼40명씩 데리고 다니면서 교회를 구경시키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몇 년 후부터 중국 성도들도 방한대성회에 참가했는데, 선진국인 일본의 국민들이 중국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일본 사람들의 참여가 점차 줄어들었다. 방한대성회에 중국성도들이 주로 참가한다. 요즘 일본성도들은 자신들만의 방한대성회를 개최해 달라는 요청을 하는 중이다. 그동안 일본 성도들은 몇 명씩 짝을 지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방문했다. 일년 내내 일본선교회에 일본 성도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는데 2004년 2월 마지막 주에도 8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우리 교회 교인이 80명인데도 일본에서는 많은 축에 속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규모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일본 성도들은 반드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한 뒤에 일본으로 돌아간다. 일본선교회는 요즘 동북아선교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현재 사할린, 블라디보스토크, 빨치산스크, 하바로브스크 선교를 후원하면서 조용기 목사의 일본 성회에 동행하는 일과 일본 내의 4군데 교회 후원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인 1천만 구령운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선교사 파견과 일본 내 순복음교회 개척이 계속되고 있다. 조용기 목사의 저서와 설교 테이프가 일본 내에서 판매되고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일본전파를 타고 방송된다. 조용기 목사의 일본 성회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일본선교회 회원들은 일본선교의 숨은 주역으로 임시한 장로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임시한 장로는 조용기 목사를 ‘기독교 역사를 바꾸는 시기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분’이라고 평가하면서, 선교사역에 조금이나마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며 겸손해했다. “이스라엘에서 유럽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동양으로 기독교가 퍼져나가는 기독교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양을 들어 쓸 때 하나님이 조용기 목사님을 사용하고 계신 겁니다. 조 목사님은 믿음, 성령, 기도만 강조하시고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는 분이지요. 성회에 가면 하나님께서 조 목사님을 들어 쓴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말씀에 은혜받고 신유의 기적이 일어나 성령의 도가니가 되지요. 체험이 없으면 선교는 못합니다” 선교지에 동행한 회원들이 본 조용기 목사의 모습은 어떠할까. 임시한 장로는 “조 목사님은 선교지에 가시면 호텔에서 기도만 하십니다. 다른 건 일체 안 하시지요. 호텔과 집회 장소만 오갑니다. 성회를 하고 나서 사례금을 주면 선교방송에 쓰라며 바로 담당자에게 전달합니다. 사례금을 10원도 만지지 않으시죠”라고 전했다. 서천식 장로는 시간이 좀 나면 가끔 회원들끼리 관광을 할 때도 있지만 조용기 목사는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젠가 로코산에 관광을 가게 되었어요. 조 목사님이 우리들에게 ‘관광하니까 좋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성회를 앞두고 긴장되어서 아예 어디에 가시지를 않습니다. 호텔에서 기도하고, 말씀 준비한 뒤 1시간 30분 전에 성회 장소에 가십니다. 보통 성회를 6시나 7시에 시작하는데, 1시간 30분 전에 성회장소에 가니, 저녁을 드시지 않고 가는 거죠. 성회를 다 마친 뒤에야 간단하게 요기를 하시죠. 해외 나가면 조 목사님은 모든 시간을 성회 준비를 하는 데 다 소비합니다. 준비를 철저히 하시니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많은 은혜 받는다/2008-06-04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많은 은혜 받는다 해외성회에 동행하려면 너무도 행동이 빠른 조용기 목사를 바짝 긴장하며 따라 다녀야 한다. 함께 해외에 가본 사람들은 조 목사가 비행기에 가장 먼저 타고 가장 먼저 내리며,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동행인들은 가능한 짐을 단출하게 꾸려 기내로 갖고 들어가야 한다. 도착지에서 짐을 찾고 있다가는 행동이 빠른 조 목사를 따라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성회 주최측에서 공항에 마중나와 조용기 목사만 승용차로 모셔가는 경우가 많아 일행들은 재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앞차를 뒤따라가야 한다. 1982년에 싱가포르에 갔던 한 성도는 지나가던 트럭을 얻어타고 뒤따른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핸드폰도 없고 싱가포르 지리도 모르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성회 때 장로들은 강단에 앉아 조용기 목사가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며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본다. 특히 더운 나라에 가면 땀이 발뒤꿈치로 줄줄 흘러내려 신발에 흥건히 고일 정도라고 한다. 온통 땀에 젖어 호텔에 돌아온 조용기 목사는 단 5분만에 샤워를 끝내고 식당으로 내려온다. 그래서 아예 자기 방에 안가고 바로 식당에서 조 목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다. 조용기 목사의 성회에 자주 동행한 한 일본선교회 회원은 조 목사를 대단한 아이디어맨이라고 평가했다. “아이디어 창고예요. 누구를 만나라, 어디서 무슨 집회를 열자고 얘기하면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놓으시죠. 머리가 비상해요. 처음에 일본어를 못하셨는데, 일본을 오가면서 1년 만에 독학으로 일본어를 독파했어요. 일본 성경을 보고 공부해 아주 고급일본어를 구사하시자 일본 목사님이 놀라더군요” 조용기 목사는 틈만 나면 공부하기 때문에 동행한 사람들도 가만히 있기가 무안하다고 전한다. “비행기를 탔을 때 승무원에게 ‘펄펄 끓는 죽’을 일본말로 어떻게 표현하느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스페인, 영어, 일본어 단어를 적어 갖고 다니면서 늘상 외우셨어요. 언어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노력을 많이 하십니다. 학교 다닐 때 영어책을 200번 읽어서 아예 외웠다고 하더군요. 설교할 내용을 요약해서 40번씩 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요약한 것이 한꺼번에 10줄씩 보인답니다. 노력하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죠” 일본선교회 한 장로는 해외 성회에 동행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무슨 효과를 얻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선교하시는 데 조금이나마 헌신하려는 마음 때문이죠. 기적이 일어날 때 엄청난 은혜를 받지만, 목사님을 따라 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은혜가 되거든요. 목사님의 언행심사를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조용기 목사의 해외 성회에 자기 돈을 들여 동행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많은 은혜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들 ‘체험이 없이는 선교 못 한다’고 말한다. 일본선교를 하는 와중에 1980년부터 대만과 동남아시아에서도 대규모 성회를 자주 개최했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성회를 할 때면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 소속 회원들이 많이 동행했다. 1980년 1월 26일 대만에서 조용기 목사 초청 성회가 열렸다. 장개석 총통의 개인 목사이며 따로 목회를 하고 있는 주영화(周英華) 목사가 대회장이었다. 주 목사의 교회에 나가는 오 장로와 이 장로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들이 조용기 목사 일행을 만나서 처음 한 얘기가 “대만집회에서 성령, 기적, 신유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당시 대만에 각국에서 파송된 선교사가 2400명이나 되었다. 대만성회에 동행한 임시한 장로가 들려준 얘기이다. “대만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님들이 조 목사님께 ‘병자 위한 기도하지 마세요. 그런 기도해도 안 믿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만약에 낫는다고 해도 의심이 많아서 일주일 뒤에나 얘기합니다’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돈 받고 온 것도 아니고, 무슨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들 얘기를 들을 필요가 뭐 있어요. 조 목사님은 그런 얘기에 신경안쓰시고 집회 때 성령 충만과 기적과 신유를 얘기했지요” 설교가 끝난 뒤 조용기 목사는 병자를 위한 기도를 했고, 기도를 마친 후 병이 나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조 목사님이 기도를 또 한번 하신 뒤 병이 나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지만 역시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어요. 목사님이 세 번째 기도를 하신 뒤 또 손을 들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한 청년이 지팡이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왔어요. 그 청년은 어려서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이제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며 지팡이를 놓고 내려갔어요. 단상에 있던 대만 목사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지요” 그날 밤에 조 목사가 묵고 있는 호텔로 대회장 주영화 목사가 찾아왔다. “그날 지팡이를 버리고 간 청년이 마침 주영화 목사님 교회 교인이었답니다. 그분이 신학교 이사장이라고 하더군요. 자신이 신학생들을 집회에 못 오게 하려고 일부러 시험을 쳤답니다. 그러니 신학생들이 시험공부 하느라 성회에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지요. 그 목사님이 회개했다면서 내일부터 신학생들을 나오게 하겠다고 약속했었지요” 1980년대 초반, 말레이시아 성회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낮에 교회성장 세미나를 마친 뒤 조용기 목사가 500명의 청년들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었다. 그 중에서 350명이 기도를 받다가 쓰러졌다. 동행한 장로들은 쓰러지는 청년들을 끌어내느라 몹시 힘들었다고 한다. 해외 성회에 가면 해외 성도들이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들만 봐도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한다. 조용기 목사를 직접 만날 수 없으니, 서울에서 온 장로들에게라도 기도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장로들이 그들의 손을 잡고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일본선교회원들은 “기적을 많이 체험했다. 선교는 체험을 주시지 않으면 못한다. 선교현장에 동참하게 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입을 모았다.
나고야의 복음화 위해 빛과 소금되겠습니다/2008-06-04
나고야의 복음화 위해 빛과 소금되겠습니다 김유동 목사(나고야순복음교회) ‘1천만 구령’ 위해 1987년 일본으로 파송 선교는 ‘마라톤’…성령 횃불들고 뛰겠다 나고야는 일본 주부지방에 위치한 산업도시로 우리나라에서는 비행기로 약 1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나고야에 세워진 나고야순복음교회는 우리교회가 ‘1천만 구령’을 목표로 1989년에 세운 교회다. 당시 오사카순복음교회에서 사역하던 김유동 목사는 조용기 목사의 명에 의해 나고야로 임지를 옮겨 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른다. “1987년 일본 선교사로 부름받아 동경순복음교회가 세운 우추노미야순복음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6개월 뒤 오사카순복음교회로 옮기게 됐죠. 오사카순복음교회는 이미 개척됐지만 교회 건물이 없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가장 번화가인 난바 쪽 니혼바시의 한 건물 2층을 얻어 교회를 만들게 됐죠. 2년 가까이 사역을 하다 신성남 목사에게 위임하고 저는 나고야로 옮겨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김유동 목사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광야라도 가겠다는 심정으로 나고야에 왔고, 츠르마이 지역의 한 건물에 세를 얻어 교회를 시작했다. 당시 창립예배 참석자는 김 목사와 사모 그리고 성도 한 명이 전부였다. “그 당시 나고야 아이치TV를 통해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방송인 ‘행복으로의 초대’가 방영되고 있었어요. 방송을 통해 나고야에 순복음교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인 성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죠” 이민 생활에 지친 성도들에게 김유동 목사는 친구와 같은 존재다. 김유동 목사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나고야순복음교회의 첫 시작은 그렇게 일본인을 중심으로 사역이 진행됐다. 그러다 나고야에 상주하는 한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인들의 비율이 현지인을 앞서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인들이 모여들면서 주일이면 중국인 성도 2,30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나고야순복음교회는 주일에 네 번 예배를 드린다. 1부는 오전 7시 예배로 여의도성전 예배를 위성으로 받는다. 2부 예배는 9시에 드리는데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역시 위성으로 받고 있다. 그리고 3부는 11시 한국어 예배로 김유동 목사가 설교를 맡고, 오후 2시에 드리는 4부 일본어 예배는 부교역자가 돌아가며 말씀을 전한다. 3부 예배와 4부 예배를 명목상 한인, 일본인 대상 예배로 구분지어 놓긴했지만 성도들이 원하는 예배 시간이 있어 지금은 모든 예배 때 통역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나고야순복음교회는 나고야 치쿠사쿠 이마이케 한 주택단지 안에 자리잡고 있다. JR 중앙선과 지하철 히가시야마선이 교차하는 치쿠사 역에서 그리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찾는데 어렵지 않다. 또 교회가 동네 어귀에 자리잡고 있어 누구나 교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더군다나 아담하고 예쁘게 지어진 교회 앞에 여의도성전과 똑같이 생긴 십자가탑이 있어 이 곳이 순복음교회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작은 화단을 지나 교회안에 들어서면 대성전, 중성전, 아동부 예배실, 청년부 실 등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교회를 짓기까지 김유동 목사와 성도들이 겪어야했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교회가 세워진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때를 놓쳤다면 지금까지 교회를 세울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교회를 보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조용기 목사님도 헌당예배 때 와 보시고 참으로 기뻐하셨습니다” 나고야순복음교회의 지금 성전은 2000년에 완공됐다. 건축의 시작은 성도들이 세 차례 작정하여 정성껏 심은 건축헌금을 기반으로 이뤄졌다.돈이 없어 교회 대지 552.0686㎡ 필지를 두차례에 걸쳐 나눠 구입했고, 건축에 필요한 모자란 경비는 은행에서 대출받기로 했다. “그런데 기공식을 일주일 앞두고 은행에서 대출이 어렵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기독교계라 융자를 내 줄 수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 때부터 성도들이 40일 작정 금식 릴레이 기도를 하기 시작했죠” 김유동 목사는 일단 땅을 사고 남은 1억원으로 공사를 진행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건물 뼈대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건축헌금 중에는 사고로 죽은 성도의 보상금 일부도 포함될 만큼 성전건축을 바라는 성도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김유동 목사는 어렵지만 다시 한 번 은행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성도들의 40일 작정 금식 릴레이 기도를 시작한 지 2주 후 다른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결국 아름다운 성전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건축이 ‘기적’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교회가 단독 건물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군다가 종교법인을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고야순복음교회는 일본에 있는 순복음교단 중 제일 먼저 종교법인을 받았고, 덕분에 선교사들이 어려움 없이 일본에서 사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김유동 목사는 지난 18년의 세월이 나고야순복음교회의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교회부흥을 위해 주력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젊은 부교역자를 중심으로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을 구상중인 김 목사는 “나에게는 늘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성령과 동행함으로 일본 복음화를 위해 더욱 전진할 계획”이라며 몇 가지 안을 설명했다. 김유동 목사가 강조하는 첫째는 말씀강화다. 말씀이 성도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이미 11월부터 주보에 ‘오늘의 만나’를 게재하고 성도들과 함께 한 주간 동안 묵상하고 있다. 둘째는 지역별로 나뉘 교역자를 지정했던 기존방식을 탈피, 성도들이 원하는 교역자를 담당 교역자로 선택해 교구를 구성하는 구역체제 변화다. 교역자들에게 짐이 되는 사역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교역자들은 물론 성도들도 자신들이 선택한 교역자인 만큼 열심을 다해 사역을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고 김유동 목사는 답변했다. 셋째는 성도들 양육 강화다. 일대일 양육을 통해 성도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삶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양육된 리더를 통해 다른 성도들이 양육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넷째는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자칭 처치 빌더의 모임)이라고 해서 성도들이 교회 성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봉사처를 만들어 줄 방침이다. 다섯째는 교회간의 네트위크 강화다. 김유동 목사는 2000년 나고야에서 열린 ‘지저스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지역 교회와 네트워크를 시도했다. 나고야에서 열린 집회로 당시 3000명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고야에는 현재 한인교회를 포함해 100여 개의 교회가 존재한다. 김 목사는 나고야가 복음화되기 위해서는 교회간의 교류가 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효과적인 교회성장을 위해 지성전 설립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유동 목사는 일본에서의 선교 사역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일본 선교는 빠른 시일안에 열매 맺기가 힘들어요. 기독교 문화가 활발한 한국과는 달리 일본인은 기독교의 ‘기’자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정서상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도 교회가 빨리 부흥되지 않는 한가지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역자들이 환경을 보고 쉽게 지칩니다. 일본에서의 선교는 ‘나’보다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늘 성령으로 충만하고 교회부흥을 위해 기도하면 언젠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일본은 지금 교역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젊은 교역자들이 교회 성장에 눈을 뜨면서 부흥을 위해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고야순복음교회 역시 일본 복음화를 위해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겠습니다.성령의 횃불이 계속 타올라 ‘1천만 구령’이 이뤄지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이를 위해 성도님들의 기도의 후원이 지속되길 바라겠습니다”
나눔 사랑/음지 목회 33년/조병호 목사
나눔 사랑 [음지목회] 33년/조병호 목사 자료원 : 국민일보 24면 발행일 : 94년 01월 21일 ◉ 몸에 밴 공동체생활... 사생활도 개방/구역모임 [교구장제] 자랑... 권위 "남말" 올해로 목회사역 33년째를 맞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순복음새서울 교회 조병호목사(63)는 자신의 목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인물로 여 의도순복음교회 조다윗목사와 예수원원장 대천덕신부를 서슴없이 꼽는 다. 『58년 군제대후 병고에 시달리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저는 최자 실 조용기전도사가 개척한 천막교회에서 제1호로 변화를 받아 순복음신 학교에 입학했습니다.또 61년 교회개척후 당시 성미가엘신학교장이던 대천덕신부를 만나 예수원건립에 참여했고 10년동안 함께 일했 습니다 』 조목사는 조다윗목사에게는 성령충만한 은사적복음과 역동적인 설교의 비결을,대천덕신부에게는 공동체목회의 중요성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인 만남을 배웠고 이것은 그의 목회에 가장 큰 영향력으로 작용해 왔다 고 설명한다. 따라서 조목사의 목회는 강함과 부드러움이 적절히 조화 돼 성공적인 목회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목사의 목회철학은 [전성도의 거듭남과 가족화]로 요약할 수 있다. 조목사는 크리스천은 분명한 영적회심과 깨달음의 과정을 거쳐야하며 삶 속에서 복음이 용해되고 실천돼야 한다고 믿는다.그래서 그의 설교에는 믿음생 활에 따른 구체적인 지침과 방법이 제시된다. 또 공동체생활 10여년의 경험 속에서 영적성장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세밀히 체험한 조목사는 교인들에게 사도행전2장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닮으려는 노 력을 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임을 확 인하고 사랑을 나눌때 평안과 기쁨,은혜가 샘솟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목사가 목회좌우명으로 삼는 성경구절은 에베소서 5장26절이다.『이 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앞에 영광 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많은 목회자들이 공감하지만 목회는 스 스로의 부족에 대한 실망과 연약함,부끄러움의 연속 속에서 낮아짐을 배우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말씀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 이라 생각합니다』 소외된 곳,남이 돌보지 않는 곳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조목사의 목회 방침은 그의 사역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강원도 산골목회와 예수원 을 거쳐 1978년 무허가 판잣집이 즐비한 철거민촌에 세워진 순복음새서 울교회에 부임했다.당시 성도수는 40여명이었으며 그나마 내부적인 갈 등도 많았다. 조목사는 부임 즉시 성도들을 구역단위로 단단히 묶어준 뒤 상호간의 베품과 나눔,사랑을 실천하도록 강조했다. 아울러 교회내 부서들의 선교활동을 격려,일체감 속에서 선교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목회자는 방향표시와 신호등의 역할을 잘해줌으로 교인들을 마음껏 편안히 달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조목사의 지론이다. 또 주일설교를 직접 녹음해 원하는 성도들에 게 카세트테이프를 무료로 나눠주었다.조목사가 설교제목까지 직접 쓴 테이프를 받아쥔 성도들은 그것으로 친지와 이웃전도에 앞장섰다. 그리고 조목사는 자신의 집을 모든 성도들에게 오픈했다.누구나 와서 자고 음식을 나누고 신앙상담을 할 수 있었다.이것은 예수원의 공동체 생활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성도들은 조목사의 설교가 그의 삶속에서 가장 먼저 실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까이서 목격하며 훌륭한 목회자를 모시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현재 성도수가 1천여명을 넘어서는 큰 교회로 성장했지만 조목사의 사역은 초창기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 다. 아직도 주일설교를 녹음해 성도들에게 나눠주며 그의 집은 성도들 로 늘 붐빈다. 『성도들끼리,또 교역자와 교인들끼리 마음의 문을 열고 격의없이 지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기를 낮추는 훈련을 계속 시키는 과 정에서 아집이 깨뜨려지고 섬기는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을 봅니다. 저는 교회내에서 권위주의나 특권의식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항상 강 조합니다.직분자일수록 더욱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역설하지요』 따라 서 조목사가 성도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있다.[교회는 가정이 되고 가정은 교회가 되라]는 것이다.교회에서는 가정처럼 포근하고 간 격없이 사랑을 나누어야 하며 가정에서는 온 가족이 매일 가정예배를 통해 제단을 쌓고 기도함으로 경건생활에 이르자는 주장이다. 새서울교회가 길지않은 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것은 조목사가 교회내에 [교구회]란 모임을 만들고 각 구역을 관장하는 70명의 교구장을 임명,강도 높은 신앙훈련과 교육을 받게해 일선에 투 입시키는 데 있다고 많은 목회자들이 분석한다. 교구장은 준교역자라는 사명감을 갖게 만들며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가지도록 교육시키 는 것이다. 새서울교회의 여선교회는 나이별로 모이거나 계층별로 구분되지 않는 다.모임은 많지만 모두가 고루고루 섞여서 일체감을 이룬다.겉으로만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 받는 교제가 이뤄지도록 유도함으로 교인들의 결집력이 대단할 수 밖에 없다. 조목사는 2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 성준씨(31)가 대기업에 근무하다 목회자의 길로 나설 것을 서원, 현재 대만에서 대만순복음교회 전도사로 봉직하며 신학수업을 하고 있 는 것이 마음든든하다. 새서울교회는 이미 재개발지구로 선정돼 있어 조목사는 교회를 더욱 크고 훌륭하게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교회에서 마련한 18평짜리 작 은 사택에서 10년째 살며 복음전파와 영혼사랑,공동체실천에 매진하고 있는 조병호목사.그가 추구해온 성령충만하고 역동적인 은혜와 사랑과 화목을 중시하는 공동체목회가 이제 소담스런 열매로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순복음 새서울교회><김무정기자> ◉ 내가 본 조병호 목사/대천덕 신부 예수원 원장/약자 편 손들어준 용 기있는 목회자 나의 오랜 친구요 동역자인 조병호목사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1961년 이었다.당시 조목사는 내가 살던 집 근처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는데 나와 아내가 그 교회를 방문해 새로운 힘을 공급받곤 했던것이다. 조목사는 그후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에서의 목회를 포기하고 강원도외 딴 비복음전도지역에 가서 아무것도 없이 새로운 교회를 시작했다. 이 곳에서 조목사는 모든 종류의 시련과 위험을 감내하면서 열심히 일했고 많은 교회들이 그에 의해 세워졌다. 조목사의 이런 경험은 내가 예수원 을 세웠을 때 많은 도움을 주었고 결국 나의 동역자가 되어 10년간이나 함께 일했다.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주위 무례한들의 마음을 변화시 키게 했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만들었다. 조목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용어와 그 특유의 직설적인 논조,그리고 소탈한 유머가 곁들여진 설교로 사람들이 그리스 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 다. 도시빈민과 노동자선교에 관심을 가졌던 조목사는 도시로 이주,철 거민들이 밀집해 있는 순복음새서울교회를 맡았고 이내 그의 교회는 부 흥되었다. 언젠가 외국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돌아온 자연과학자 몇몇이 정말 진솔한 설교를 어디서 들을 수 있는지 교회순례를 하다가 조목사의 교 회에 머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조목 사를 통해 나의 사역을 돕게 해 주신 것에 언제나 감사한다.조목사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의분을 낼 수있는 심정의 소유자이며 또 반 목하는 형제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가졌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조목사에게 승리의 왕관을 주실 때까지 그를 계속 사용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교회연혁/개척 23년만에 교인 1천여명 우뚝 ▲ 1971년 3월1일=서울도봉구미아5동310에서 신동수전도사가 개척예배 드림 ▲ 1974년=미아동776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성전헌당(성전45평 기도실 5.5평) ▲ 1975년=신동수목사 캐나다 선교사로 출국,2대 담임으로 안병관 목 사 부임 ▲ 1978년=3대 조병호목사 부임 ▲ 1980년=새성전구입(대지 3백13평) 입당및 봉헌예배 ▲ 1981년=초대장로 장립(최치열 임영식) ▲ 1982년=창립13주년 기념예배및 권사취임 ▲ 1984년=교회사택구입및 식당건물구입 ▲ 1986년=교회대지 추가매입(미아동852의50) ▲ 1987년=창립 16주년 기념예배및 권사취임 ▲ 1988년=장로 피택(김근배)및 권사피택(조완순 최영희) ▲ 1989년=창립 18주년 기념예배및 제3대 장로장립(유춘성 주용무 강 요식),조병호 목사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부총회장 피선 ▲ 1991년=집사안수식(고웅장 최정주) ▲ 1993년=창립 22주년 기념예배및 명예권사추대 ▲ 1994년 현재=출석성도 1천여명의 교회로 성장
많이 심어서인지 가난했던 회원들이 다 부자됐어요/2007-10-28
많이 심어서인지 가난했던 회원들이 다 부자됐어요 1983년 1차 동경무도관 집회를 준비하는데 든 경비가 총 4360만엔(4억3600만원)이었다. 하지만 헌금액은 2100엔(2억1000만원)에 불과했고, 나머지 2360만엔(2억3600만원)을 일본선교회 회원들이 채워 넣었다. 임시한 장로는 이듬해 2차 동경무도관 집회를 결정했을 때의 비화를 들려주었다. “조 목사님이 ‘일본선교회원들의 희생이 너무 크니 집회를 하지 말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무슨 희생입니까? 헌금은 이미 다 준비됐으니 목사님은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목사님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사업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라고 했더니 아무 말씀도 안하시더군요” 2차 동경무도관 집회를 준비할 때 총 4800만엔(4억8000만원)이 들었는데 역시 헌금이 절반밖에 안 들어왔다. 나머지도 역시 선교회원들이 채워 넣었다. 임시한 장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선교사업을 못한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선교회원은 20쌍의 부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선교회원들은 선교자금이 떨어지면 작정헌금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조 목사님을 초청하여 조선호텔에서 작정 기도회를 했습니다. 조선호텔에 가면 제일 비싼 음식을 시켜요. 자장면 앞에 놓고는 작정헌금을 못합니다. 회원들은 작정한 헌금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렸어요. 단 한푼도 안 들어온 헌금이 없습니다” 임시한 장로는 일본선교회원을 선발할 때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한다. “돈 많은 사람을 가입시킨 게 아니에요.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있으며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을 받아들였지요. 기도를 많이 하지 않으면 선교를 할 수가 없어요. 한 달에 한번은 꼭 기도원에 가고, 매주일 교회에서 기도회를 했지요. 회원들의 집을 돌며 정기기도회도 가졌어요. 성회를 앞두고는 기도를 더 많이 했지요. 열심히 기도하고 많이 심어서인지 가난했던 회원들이 다 부자됐어요” 일본선교회 총무와 부회장을 지낸 서천식 장로는 회원들 가운데 은행에서 대출 받아 작정헌금을 낸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작정헌금만 한 게 아니라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성회에도 동행했어요. 회장인 임시한 장로님은 조 목사님 성회 때 언제나 동행했고, 그 외에도 성회 준비 차 일본을 수없이 드나들었지요. 선교현장에 동행할 때는 헌금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성회에 가는 사람들이 필요한 경비를 나누어서 다 부담했지요. 자기 것만 낸 게 아니라 조 목사님 모시는 비용, 일본 목사님 초청 비용을 동행한 회원들이 다 냈어요” 서천식 장로는 임시한 장로가 일본선교회를 운영할 때 나름대로 세운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평소 모아둔 회비가 있었어요. 개인 경비 외에 일본에서 쓰는 공식적인 경비는 회비에서 충당하자고 해도 임시한 장로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어요. 같이 못 온 회원들에게 미안해서 회비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조 목사님을 일본 최고급 호텔에 모셨어요. 싼 호텔에 묵으면 일본사람들이 얕잡아 보기 때문이었죠. 일본사람들은 강자에게 꼼짝 못하거든요. 경비가 많이 드니 조 목사님과 임 장로님만 비싼 호텔에 묵고, 우리는 싼 데서 묵겠다고 했지만 임 장로님은 우리 목사님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도 일본에 가면 꼼짝없이 최고급 호텔에 묵었지요. 호텔식당에서 파는 스시 한 쪽에 우리 돈으로 2500원이나 할 정도로 일본 물가가 비쌌죠” 임시한 장로는 조용기 목사를 최고급 호텔에 모신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조 목사님이 초창기에 최자실 목사님과 선교하실 때 경비가 부족해 미숫가루를 드시면서 다녔지만, 실업인들이 동행하는 이상 3류 호텔에 모실 수는 없지요. 3류 호텔에 묵으면 일본사람들이 3류 목사로 취급합니다. 선교하시는데 우리가 최고로 모셔야지요” 조용기 목사와 선교회원들이 언제나 일류호텔에 묵고 좋은 식사를 한 것은 아니다. 서천식 장로는 일본 지방 성회를 다닐 때 고생을 많이 했다며, 특히 후쿠오카 성회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후쿠오카 성회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 7시 조찬기도회장에 나가보니, 차가운 다다미방 위에 일본인 단 7명이 앉아 있더군요. 차린 음식이라고는 접시에 담긴 귤 하나와 바나나 하나 작은 빵 하나가 전부였죠. 그나마 조 목사님은 기도회를 주재하시느라 음식을 드실 수가 없었어요” 조찬기도회를 끝낸 뒤 조 목사와 임시한, 차일석, 서천식 장로를 비롯한 일행들은 바로 공항으로 갔다. 일본 동북부 센타이 근처 요네자와에서 성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경유지인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은 겨우 어묵 하나씩을 먹고 비행기에 올랐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요네자와에 도착했는데, 국내선이어서 기내 식사도 제공받지 못했다. “공항에 일본 젊은이 10여 명이 나와 목사님을 열렬히 환영했어요. 그중 한 사람이 조 목사님 설교테이프를 하루에 8시간씩 듣는다고 하더군요. 거기서도 식사 할 시간이 없어 바로 차를 타고 두시간 동안 달렸어요. 당시 눈이 펄펄 내렸는데 정말 춥고 배고팠죠. 저녁 6시 성회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조 목사님은 교회성장 세미나를 인도하셨어요. 세미나 때 경양식이 나와 우리는 식사를 했지만, 목사님은 말씀을 전하느라 식사를 하실 수가 없었죠. 세미나를 마치고 바로 성회 장소로 이동할 때 목사님께서 ‘누가 성회스케줄을 이렇게 짰느냐’며 약간 언짢아하시더군요. 성회 마치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목사님은 우동 한 그릇을 드셨어요”
못자리교회의 보내는 선교사들/2007-08-23
못자리교회의 보내는 선교사들 2002년 5월 26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 44주년 기념 예배에서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비결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우리에게는 환경을 뛰어넘는 꿈이 있었다.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겠다는 분명한 목표와 불타는 열정이 있었다. 모든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와 믿음으로 해결했다. 보혜사 성령님과 교제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했다. 선교와 기독문화·교육·구제에 힘썼다” 조용기 목사는 그간의 실적으로 “180여 국내 교회 개척, 1300여 농어촌 교회 지원, 55개국 600여 선교사, 라디오·TV·인터넷·위성을 통한 방송 선교, 1964년부터 시작한 세계선교와 금식기도원 설립에 따른 기도운동 확산, 심장병 어린이 돕기·엘림복지타운·실업인선교연합회·선한사람들(NGO)을 통한 사랑실천, 순복음신학원·한세대학교·베데스다대학교·국민일보·순복음가족신문·신앙계를 통한 교육과 기독문화운동”을 들었다. 조용기 목사는 “이 많은 일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도 여러분들이 해냈다”며 설교를 마무리지었다. 그동안 국내교회 개척은 243개로 늘었고, 지금까지 2250 군데 농촌미자립교회를 지원했다. 현재 매달 지원을 받고 있는 농촌미자립교회는 420곳이며 해외에 파송된 순복음선교사는 56개국에 총 600명이다. 순복음 사람들이 스스로를 즐겨 칭하는 용어는 ‘보내는 선교사’이다. 그와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못자리교회’라고 얘기한다. 자신들은 조용기 목사의 세계 선교와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돕는 ‘보내는 선교사’이며,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훈련받은 교인을 다른 교회로 보내는 ‘못자리교회’라는 것이다. 못자리교회의 보내는 선교사들, 세계가 이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참관하러 몇 백, 몇 천 명 단위로 몰려오는 단체 순례객이 있는가 하면, 매년 60여 개국 1000여 명의 목회자들이 100달러의 회비를 내고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제교회성장(CGI)대회에 참가한다. 20회에 걸쳐 개최된 CGI 대회에 연인원 2만 여명의 해외 목회자가 다녀갔다. 한국 여행을 와서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관광하고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까지 다녀가는 외국인들도 많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돈 쓰고 한국 와서, 밥 굶고 간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한국관광공사의 요청에 따라 인천공항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안내책자가 비치되어 있다. 외국인들의 편리를 위해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 정차하는 공항리무진버스도 생겼다. 교회 홍보국에서는 외국인이 오면 홍보비디오를 보여준 뒤 교회를 구경시키고 기념품을 증정한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는 영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불어 아랍어 러시아어 등 7개 국어로 동시통역되며 대성전에서만 매주 500여 명의 외국인들이 예배를 드린다. 처음 오는 외국인들은 대성전에서 2만명이 한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예배시간에 플래시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거나 비디오카메라로 예배광경을 촬영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세계 오지를 여행하다가 “용기 조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다. 용기 조를 아는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에 직접 가서 그 교회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덧붙인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외치는 순복음 사람들, 그들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조용기 목사의 국내외 선교를 지원하는 보내는 선교사들, 여의도순복음교회 성장비결을 실천하여 놀라운 성공을 거둔 해외 교회들, 원주민 선교를 하면서 순복음을 전파하는 해외선교사들의 진솔한 얘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세계가 궁금해하는 교회 성장비결은 다름아닌 ‘순복음 사람들의 열정’이다.
무도관 성회 성공에 감격의 눈물 흘리다/막16:15-18/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2007-10-21
무도관 성회 성공에 감격의 눈물 흘리다 막16:15-18 조용기 목사 동경무도관 임대 계약을 한 뒤 임시한 장로는 계약서를 들고 일본 그리스도 교단 안도 나카이치 총회장을 찾아갔다. 성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일본의 유명 목사를 대회장으로 영입할 필요가 있었다. 임시한 장로는 일본의 한경직 목사라고 불리는 안도 나카이치 목사를 여러 차례 찾아가 대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안도 나카이치 목사님 교회에 갈 때마다 센베이 과자와 헌금 2만엔을 갖고 갔어요. 교회 입구에서 안도 나카이치 목사의 사모님이 교인들에게 인사를 하셨는데 나를 보면 ‘또 오셨어요’라고 하셨죠. 설교가 끝나면 누가 헌금을 냈는지 이름을 공개하는데, 내 헌금 봉투를 보면 목사님이 가만있다가 ‘서울에서 온 임 장로가 헌금했습니다’라고만 말해요. 내가 온 걸 알면 예배 끝난 뒤 바로 뒷문으로 도망가버려요” 여덟번만에 만난 안도 나카이치 목사는 대회장직을 거절하면서 “조용기 목사가 싫다”고 말했다. 안도 나카이치 목사는 교토에서 열린 총회에서 일본 목사들에게 “순복음중앙교회 선교를 도와주지 말라. 자기네 교회를 일본에 심어서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임시한 장로는 부총회장 모리야마 목사도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동경 후지미 교회의 시마무라 목사를 찾아갔을 때 드디어 무도관 성회 대회장을 맡아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임 장로가 서울로 돌아오면 “맡지 못하겠다”고 번복했다. 일본에 가서 설득하면 다시 하겠다고 했다가 서울로 돌아오면 못하겠다고 하길 무려 여덟번이나 반복했다. 대회장이 결정되지 않아 조용기 목사와 오쿠보 목사, 일본선교회원들이 당시 기도를 많이 했다. “결국 포기하고 와세다 대학 이사장인 무도 목사님을 찾아갔어요. 무도 목사님은 2차 대전 때 일본 헌병이었기 때문에 별로 기대를 안했어요. 일제 시대에 일본 헌병이 얼마나 한국을 무시했습니까. 무도 목사님께 성회를 설명하고 대회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더니 기도해보겠다며 일주일 후에 만나자더군요. 일주일 후 대회장직을 수락했습니다. 무도 목사님이 무도관 성회 대회장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교계의 모든 목사님들이 깜짝 놀라며 기적이라고 하더군요” 1983년 8월 15일 일본의 추석인 오봉 날, 동경 무도관이 차고 넘쳤다. 무도관 한쪽에 무대를 설치하였고, 좌석은 모두 8000석이었다. 무도관은 성령의 열기로 뜨거웠고 놀라운 신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성회를 준비했던 일본선교회 회원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성회가 끝난 뒤 집행위원장 요시야마 목사가 성회 광경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미국 가든 그로브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에게 보냈을 때 미국 목사들은 모두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도관이 꽉찬 것은 조용기 목사가 일본 전역을 돌며 성회를 할 때마다 동경무도관 성회를 알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선교회가 일본 기독교 신문과 기타 다른 신문에 성회 광고를 내고, 많은 교회를 돌며 “목사님은 안 나오시더라도 교인들이 집회에 가는 것을 막지는 말라”고 당부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1982년부터 1993년까지 9년 동안 해마다 5∼10번씩 일본을 오가며 선교활동에 동참했던 서천식 장로는 당시 활동을 이렇게 전했다. “임시한 장로님은 고집도 세고 지구력도 대단해요. 일본사람들은 거절을 할 때도 화를 안내고 사근사근하거든요. 임 장로님이 일본 목사님 댁에 찾아가서 여덟시간이고 아홉시간이고 앉아서 설득을 하는 겁니다. 아침에 갔다가 오후 너덧 시까지 앉아 있곤 했어요. 그러면 일본어를 모르는 우리도 지루하게 그냥 같이 앉아 있는 거지요. 설득이 안되면 선물만 놓고 왔다가 다음에 또 가고 그랬지요” 임시한 장로는 점심때 일본 목사님 댁에서 식사를 해결한 적도 있다고 전한다. “밥 좀 나눠먹자고 하면 일본 목사님이 밥이 어디 있냐고 해요. 그러면 ‘점심은 드실 거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도 밥 좀 주세요’라고 말하면 우리에게도 상을 차려줬어요” 1984년 10월 16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 2차 동경무도관 성회도 저녁마다 8000명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1차 무도관 성회 비디오를 본 미국의 로버트 슐러 목사가 아들과 함께 직접 무도관에 와서 성회를 참관했다. 난공불락인 일본에서 수천명이 모인 동경무도관 성회는 일본 내에 널리 알려졌다. 성공적인 집회를 마친 이후 일본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조용기 목사의 위상이 더욱 올라갔다. 그런데 1984년에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이단 시비가 일어났다. 장로교 통합측에서 일본에 파송한 오윤태 목사가 일본선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당시 오윤태 목사는 일본 그리스도교단 이사로 일본교단 소속이었다. 나이가 많아 일본에서 원로급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임시한 장로가 선물을 들고 오 목사를 찾아가자 선물을 발로 차면서 “이단은 물러가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임 장로가 “교회를 구경하러 왔다”고 정중하게 말했지만 오 목사는 “남의 교인 다 빼앗아 가는 교회에서 어디 구경하러 오느냐”고 호통을 쳤다. “오 목사님, 교인이 어디 물건입니까? 은혜 받으러 오는 거지, 물건처럼 실어 나른다고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오 목사님, 우리 조 목사님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세요. 만약 우리 교회가 이단이라면 10만 성도는 어떡합니까? 우리 교회가 정말 이단이면 목사님들이 건져주셔야죠. 그냥 두면 목사님께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말했더니 정말 교인이 10만명이나 되느냐며 깜짝 놀라더군요. 그래서 설득을 했더니 당시 일본 침례교 총회장이었던 마츠무라 목사님과 오윤태 목사님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조 목사님과 얘기를 나눈 끝에 이단시비는 종적을 감추게 되었지요” 그 후 일본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 원로 목사는 여전히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한국의 ‘젊고 유능한 목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미국에서 리무진 타고 국빈대접 받다/2007-09-16
미국에서 리무진 타고 국빈대접 받다 세계속의 순복음-할수있다 하면된다 해보자 순복음 사람들 (4) 미국에서 리무진 타고 국빈대접 받다 정두현 장로와 이광웅 장로는 조용기 목사의 해외성회에 동행할 때면 자신들의 경비뿐만 아니라 조 목사의 항공료와 호텔비용까지 다 부담했다. 정두현 장로는 “조 목사님은 당시 해외 나가실 때 교회에서 경비를 받아가지 않았어요. 경비를 마련해서 해외에 갔다가 주최측에서 사례비를 주면 해외에서 쓴 경비를 제하고 나머지를 모두 경리국에 갖다 넣었지요. 그걸 알고 우리가 경비를 다 대기로 했습니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초청하는 쪽에서 비행기표도 안 보내줬어요”라고 설명했다. 그전에도 몇 차례 해외성회에 동행한 적이 있었던 정두현 장로는 1980년부터 해외에 나가면 대우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1979년에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 숫자가 10만 명을 돌파하자 세계 유수의 언론에서 이 사실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던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금식기도하는 교회, 성령운동하는 교회’로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 “세계적인 목사님과 다니다 보니 우리도 덩달아서 대우를 잘 받았지요. 1980년 4월, 덴버공항에 내렸더니 미국 각 기독교 단체의 높은 분들이 다 영접을 나왔더군요. ‘WELCOME DR. CHO’라는 플래카드를 흔들고, 정말 대단했습니다. 루이지애나에 갔을 때는 대통령을 영접하듯 주 정부에서 리무진을 보내줬어요. 우리가 탄 리무진을 오토바이로 양옆에서 호위해줬죠. 당시 뒷자리 중간에 제가 앉고 오른편에 목사님, 왼편에 차일석 장로님이 앉았는데 조목사님이 ‘우리가 경호원이네’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해외성회 기간에 일반성도를 위한 집회와 함께 교역자를 위한 교회성장세미나가 열린다. 조용기 목사의 교회성장세미나는 미국 전역에서 교역자들이 모여들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정두현 장로는 “벌써 1980년도에 미국 목사님들이 조 목사님을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라고 불렀어요. 교회성장세미나를 하면 미국전역에서 온 1000여 명의 목사님들이 강당을 꽉 메웠어요. 선진국 목사님들이 우리 목사님의 강연을 경청할 때면 우리 가슴이 뿌듯해졌지요”라고 회상했다. 세미나에서 조용기 목사는 ‘폐결핵에 걸려 누워있을 때 여학생에게 전도받아 예수 믿게 된 사연, 대조동 천막교회에서 사과궤짝을 놓고 다섯 명 앞에서 설교하면서도 2000명 앞에서 하는 것처럼 꿈을 가진 점,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긍정적 목회, 구역제도를 통한 평신도들과의 동역, 장모인 최자실 목사님의 금식기도 운동’등을 생생하게 전했다. “세미나는 감동의 도가니였지요. 어떤 분들은 감동해서 울기도 했어요. 미국 목사님들은 금식기도, 성령운동, 방언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조 목사님을 존경했지요. 미국 목사님들이 아예 현장에 가서 교육받고 싶다며 비행기를 거의 전세내다시피 하여 한국에 왔었죠. 지금도 매년 많은 분들이 우리 교회 CGI 대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당시 윌로우크릭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도 여의도순복음교회 CGI(국제교회성장)대회에 참석했고, 그후 교회가 급성장했다.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가 함께 해외성회를 가는 일도 많았다. 조 목사는 외국인을 위한 집회를 하고, 최자실 목사는 한인을 위한 집회를 주로 했다. 최자실 목사가 외국인들에게 설교할 때면 조용기 목사가 통역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 정두현 장로가 그 일을 하게 되었다. “조 목사님이 저에게 미국서 공부했으니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용기를 냈지요. 최자실 목사님의 설교는 논리적이기보다 구수한 이야기식이에요. 얘기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지요. 산에서 여우는 컹컹 울고, 뭐 이런 식이죠. 최자실 목사님 몸짓을 그대로 흉내내면서 통역하면 모두들 배꼽 잡고 웃었지요”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는 장모와 사위라기 보다는 어머니와 아들처럼 다정했다고 한다. “조 목사님이 큰 집회에서 설교를 하고 내려오면 최자실 목사님이 등을 두드리면서 ‘어유, 정말 설교 잘했어. 참 고생했어’하면서 얼마나 사기를 북돋아주는지 몰라요.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지만 그렇게 다독이면서 칭찬해주면 힘이 나지요. 그러면 조 목사님의 피곤한 얼굴이 환해졌어요. 최자실 목사님이 돌아가신 뒤에 해외성회에 따라가 보니 그렇게 해줄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그걸 대신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정두현 장로는 조용기 목사의 등을 두드릴 수 없어서 손을 잡고 “목사님 정말 은혜스러웠어요. 정말 잘하셨어요”하면서 최자실 목사의 흉내를 냈다. 그러면 이광웅 장로도 옆에서 “목사님 정말 설교 좋았어요”하면서 ‘장단’을 맞추었다. 정두현 장로는 두 분이 정말 훌륭한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최 목사님 돌아가시고 조 목사님께서 참 쓸쓸해 하셨지요. 두 분이 신학교 시절부터 30년을 함께 목회하셨잖아요. 우리 교회가 부흥한 것은 두 분이 함께 노력하셨기 때문이죠. 최자실 목사님이 금식기도의 본을 보인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합니다. 최 목사님 돌아가시고 혹시 교회 성장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리 교회는 계속 성장했지요” 두 사람은 1980년부터 3년 동안 조 목사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 다녔다. 요즘도 조용기 목사의 해외성회에 종종 동행한다. 그렇게 열심히 다니다가 요즘 좀 뜸한 이유를 묻자 정두현 장로는 “그전에는 목사님을 따라 갈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열심히 다녔던 거지요. 1983년 하반기쯤에 조 목사님 해외성회에 동행하겠다고 자원하는 선교회원들이 100명도 넘는 겁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바톤을 넘겼죠”라고 설명했다. 이광웅 장로는 “막내 여동생 결혼식에도 못 가고 해외성회에 동행했지요. 그때 정말 열정적이었어요”라고 회상했고, 정두현 장로는 “그때 정말 행복했어요”라며 미소지었다.
바라봄의 법칙과 긍정의 힘/조용기 목사
바라봄의 법칙과 긍정의 힘 조용기 목사 네 소원대로 되리라 긍정의 생각… 인생변화 동력 최근 미국에서는 ‘긍정의 힘’이란 책이 200만 부가 팔리면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 조엘 오스틴(목사)은 이 책에서 긍정적인 생각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인데 마음에 품지 않는 복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패배와 실패의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은 실패의 인생을 살고 승리, 풍요로움, 성공을 꿈꾸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런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은 믿는 대로 된다. 비전을 가져라’ 그가 던진 이 말한 마디가 지금 지구촌의 영혼을 울리고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새롭게 다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말이지만, 우리에게 이 말은 낯설지 않다. 왜 그럴까. 이해하기 쉽게 우리식으로 바꿔보면 해답은 곧 나온다. 조용기 목사가 강단에서 설파하고 있는 바라봄의 법칙이 곧 긍정의 힘이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강건하고 범사에 잘 된 모습을 우리 마음에 그려 넣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루신다는 우리교회의 신앙원리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으니 자긍심이 크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긍정적인 생각은 불치병도 고칠 만큼 위력적이다. 암 환자이면서 프랑스 도로 일주(투르드 프랑스)에서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랜스 암스트롱(34·미국)은 자신이 암을 이겨낸 것은 마법의 약이 아니라 ‘나을 수 있다.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 때문이었다고 술회했다. 긍정적인 생각을 기업 경영에 접목시킨 경영인은 일본 교세라 그룹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이다. 그가 은퇴한 후 펴낸 ‘카르마 경영’이란 자서전에서 그는 ‘인생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인생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지며 강렬하게 생각하는 게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고 했다. 따라서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결과가,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는 희망을 낳고 열정을 낳는다. 적극성을 띠고 생산적이 되며 창의성을 갖게 된다. 국민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기질을 가질수록 그 사회가 더욱 발전한다는 게 역사의 증언이다. 강철 왕 카네기, 자동차 왕 헨리 포드,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 등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창의성을 발휘해 미국을 빛냈다. 결국 이들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는가. 긍정적인 생각이 건강에도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느냐하겠지만, 기자는 그걸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지난해 순복음가족신문과 자매지인 행복으로의 초대에 간증을 전한 성도 52명은 서로 사는 곳도 다르고 지내온 내력도 다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을 둘러싸며 다가온 질병들 대부분은 의학적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바라봄의 법칙을 적용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자화상을 그리고 그것이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했다. 병은 의학적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씻은 듯 사라졌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긍정적 사고와 적극적인 삶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증명된 얘기다. 이런 까닭에 한 정신과에서는 가벼운 우울증 환자에게 코미디 한편을 보도록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영국의 명 총리 윈스턴 처칠은 “사람들이 웃지 않는 것은 은행에 100만 달러의 거액을 저축하고 찾아 쓰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유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신앙은 신앙이요, 삶은 삶이라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긍정보다 부정을, 기쁨보다 걱정을 앞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보자. 상황이 좋지 않다고 우는소리만 해서야 오는 복도 달아나지 않겠는가. 이제 긍정의 힘을 삶에 옮겨오자. 인터뷰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눈에는 안보여도 믿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 번제 명령까지 순종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도대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그와 인터뷰를 갖기로 했다. 물론 그와의 실제 만남은 성경을 통해 이뤄졌다. 며칠간 성경을 정독하고 그에 관한 여러 서적을 탐독하며 그와 대화를 시도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다음과 같은 답을 그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첫째로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로마서 4장 17절에 보면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아브라함은 그의 독자 이삭을 하나님이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 기꺼이 드리고자 했다. 이것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믿음이 충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셨던 것처럼 우리 자녀를 번제로 드리라고 한다면, 내가 그 상황이 된다면 어찌하겠는가. 아브라함처럼 자녀를 드릴 수 있을까. 결단이 쉽지 않을뿐더러 생각하기 힘든 게 솔직한 우리네 심정 아닐까. 자녀를 키우고 있는 기자도 고민해봤지만, 이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다시 로마서 4장 17절을 보면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맞는 말이고 우리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문제는 눈앞에 문제를 두고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이 마음이 바뀐다는 데 있다. 머리로는 이 말에 동조하지만 전문가의 말, 의사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우리 마음이 흔들림은 어찌된 일인지.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굳게 믿었다. 그래서 아직 그에게 아들이 없을 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리라 하신 것을 믿었다. 바다의 모래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후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셋째로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 로마서 4장 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라고 적고 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정말 자녀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소망이 없었다. 100세나 되어 자녀를 생산할 능력도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셨기에 그는 그 말씀을 믿었다. 그는 결코 환경과 상식, 경험 때문에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 때문에 약해지지 않았다. 말이 쉬워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이를 적용할 수 있을까. 아직은 신앙내공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와 인터뷰를 마치며 마음 한 쪽이 답을 찾은 듯 기뻤지만 한 쪽으로 과연 그가 전한 믿음의 고백들이 내게 지식의 한 부분으로 남지 않고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기는 올 한해 한 줌의 겸손과 감사를 더 챙기고,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방송료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니까 걱정 마세요/2008-06-04
방송료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니까 걱정 마세요 썩세스클럽에서 세계방송선교회로 이어지면서 해외선교에 힘쓴 과정은 한마디로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순복음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세계방송선교회 120명의 회원들 가운데는 큰 액수를 헌금하는 이들도 있지만, 적금을 부어 헌금을 마련하거나 기도로 후원만 하는 이들도 있다. 초창기 LA 지역 방송에 이어 1983년부터 1989년까지는 극동방송과 아세아방송을 통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로 설교를 방송했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설교를 번역하고, 한국어 방송은 설교를 요약하여 아나운서가 대신 읽는 형식이었다. 한국어 방송은 북한과 한국말을 알아듣는 조선족들을 겨냥하여 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하와이, 괌, 사이판 지역 한인 TV방송을 통해서도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방송했다. 미국령이지만 섬지역의 복음화율이 낮아 방송하게 된 것이다. 1989년부터 1997년까지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TV와 라디오로 동시에 방송되었다. 볼리비아의 전용태 선교사에게 설교 테이프를 보내면 스페인어로 더빙해서 내보냈다. 볼리비아에서 방송을 하면 인근 국가들도 청취가 가능해 남미 선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볼리비아에서 방송을 하기 위해서는 매월 2000달러 정도가 필요했다. 1990년부터 1997년까지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국영방송에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방영했다. 1990년 5월, 순복음세계선교대회 기간에 이창열 장로는 케냐 정운교 선교사를 만나 조 목사의 설교를 방영할 수 있도록 케냐 방송국과 접촉해달라고 부탁했다. “TV와 라디오 방송국의 골든타임을 잡아달라고 하자 정운교 선교사님이 ‘며칠 할 겁니까’라고 물어요. 며칠이 아니라 몇 년 동안 할 거라고 했죠. 돈이 엄청나게 들 거라며 걱정하시는 정 선교사님께 ‘방송료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거니까 걱정마세요’라고 말씀드렸죠. 회원들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6개월 만에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연락이 왔어요” 아프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인 케냐는 유명한 휴양지가 많아 사철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케냐의 방송사에서 재미있는 TV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하기 때문에 인근의 잠비아, 탄자니아 등 15개국이 이 방송을 시청한다. 케냐는 영어권이어서 조용기 목사의 영어 설교를 그대로 방송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일반 방송사의 골든타임 대이니 방송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케냐에서 처음에 요구한 액수는 4000달러였다. 세계방송선교회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서 방송하는 게 아니다. 당신들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방송하는 거다. 그러니 조정해달라”고 요청하여 월 1500달러로 낮출 수 있었다. 아프리카는 방송료에 관한 정확한 규정이 없이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어서 협상력이 필요했다. 방송이 나갈 때 아프리카 시청자들이 방송사로 편지를 보내는 등 열띤 호응을 보였다. 케냐 국영방송으로 편지가 오면 방송사에서 다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세계방송선교회로 편지를 보내주었다. 세계방송선교회 2대 회장인 주수일 장로는 편지를 받았을 때 회원들이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조용기 목사님 설교를 듣고 병고침을 받았다,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가족들이 구원받도록 기도해달라는 내용도 있었고 성경이나 책을 보내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었다는 생각에 기뻤지요”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인도네시아 라디오를 통해서도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방송되었다. 한치완 선교사가 인도네시아에서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밟았으며 매달 경비가 1000달러씩 들었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해외에 방송하기 위해서는 일단 영어로 번역을 해야 한다. 영어 번역본을 보내면 그 지역 선교사가 현지에서 그 지역에 맞는 언어로 또다시 번역을 한다. 조 목사의 설교 번역도 세계방송선교회원들이 맡았다. 미국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은 김태천 장로와 문공부에서 오래 근무한 한철모 안수집사가 번역을 한 뒤 한세대학교에 근무하는 외국인 교수들에게 감수를 받았다. 1997년에 케냐와 볼리비아, 1999년에 인도네시아 방송을 그만 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IMF의 영향이 컸다. 1달러에 800원대이던 환율이 거의 2000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리긴 했으나 큰 타격을 받았다. 회원들이 예산에 맞게 운영해오던 해외설교방송에 차질이 생겼고, 급기야 해외 방송사에 몇천만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위기 상황에서 회원들이 합심기도를 하고 특별헌금을 하여 밀린 방송료를 모두 갚을 수 있었다. 세계방송선교회 현 회장인 이한용 장로는 방송을 중단하는 것은 선교사들의 이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의 선교사님들은 다른 직업인으로 위장하고 선교를 해야 합니다. 그 지역에서 오래 활동을 해야 방송사와 접촉을 할 수 있는데, 새로 부임하는 선교사님들은 그 일을 하기가 힘들지요. 다른 선교사님들이 그 지역에 배치되면서 방송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어요” IMF를 경험한 이후 세계방송선교회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해외설교방송의 기준을 더욱 철저히 세웠다. 제3세계, 그 중에서도 복음이 안 들어간 지역을 집중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그와함께 조용기 목사의 성회가 예정되어 있으면 미리 그 지역에 설교 방송을 내보내기도 한다. 아프리카 케냐 대성회와 남미지역 여러 나라 대성회 때마다 연인원 100만명 이상이 모였다. 이는 세계방송선교회가 성회 열리기 수년전부터 그 지역 TV와 라디오로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방송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5월에 열리는 알마타 성회를 대비하여 이미 1년 전부터 러시아 지역과 북유럽 등 74개국을 대상으로 TV방송을 하고 있다.
복음이 닿지 않은 곳이면 어디든 간다/2008-06-04
복음이 닿지 않은 곳이면 어디든 간다 캄보디아 민영방송에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방송된 뒤 세계방송선교회원들은 불교국가가 변화하게 해달라고 뜨겁게 기도했다. 얼마 후 방송사 직원을 통해 “훈센 총리의 큰아들이 설교를 열심히 듣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회원들은 모두 기뻐했다. 특히 방송사 직원들 가운데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회원들은 한 국가의 중상류층이 하나님을 믿으면, 복음이 확산될 수 있다는 확신아래 더욱 캄보디아 설교방송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인도차이나 반도에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메아리쳤지만 여전히 진입하기 힘든 곳은 공산국가인 베트남. 다행히 베트남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많이 살고 있어, 회원들은 캄보디아 방송을 지속적으로 하면 장차 베트남에도 복음이 들어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세계방송선교회원들은 요즘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캄보디아 프놈펜 축구장에서 조용기 목사 대성회 개최를 희망하며 기도하고 있다. 해외 설교방송은 어떻게 보면 참 외로운 선교방식이다. 세계 여러 지역 선교를 지원하는 각 선교회의 회원들은 해당 지역에서 성회가 열릴 때, 함께 가서 성과를 눈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방송선교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설교 방송이 성과를 거둔 얘기를 들으면 세계방송선교회원들이 모두 기뻐한다. 지난 1994년 12월 스웨덴 성회 때, 아프리카 잠비아의 프레드릭 칠루바 대통령이 각료들과 함께 조용기 목사를 찾아왔다. 칠루바 대통령은 조 목사를 만나 반갑게 포옹하면서 “목사님을 일주일에 한번씩 뵙는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내가 잠비아에 간 일도 없는데 어떻게 나를 만난다는 거냐”며 의아해 했다. 그러자 칠루바 대통령은 “TV를 통해 매주 조 목사님 설교를 듣습니다. 저와 우리 각료들이 모두 목사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을 영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1994년 당시에는 썩세스클럽에서 해외 방송을 주관하고 있었다. 1년 후 이창열 장로, 주수일 장로, 이한용 장로 등이 썩세스클럽에서 나와 세계방송선교회를 창립했다. 요즘 세계방송선교회에서는 중국 소수민족들을 위한 방송선교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에는 다른 문자를 쓰는 소수민족들이 많은데,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각각의 언어로 번역한 뒤 골판지에 녹음하여 소수민족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소수민족들이 사는 중국 오지에 방송사도 없고, 녹음기도 없어 골판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골판지의 골에 녹음을 하면 수동식 녹음기가 된다는데, 골판지 녹음기는 몇 번이고 다시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들을 수도 있다. 전기나 전지가 없어 되풀이하여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수동적인 형태의 녹음기가 중국 소수민족들에게 적당하다고 한다. 회원들은 요즘 중국에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방송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방송선교회원들은 복음이 닿기 힘든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내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들려주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은 어디든 가는 순복음사람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아래 소련 내 각 공화국의 독립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던 1990년, 러시아 선교에 뛰어들었다. 1990년 스웨덴 선교사였던 김홍원 목사 부부는 조용기 목사에게 보고를 하고 무작정 타쉬켄트에 들어갔다. 당시 소련에 아무나 가기 힘들 때였으나 김 목사 부부에게 스웨덴 시민권이 있어서 가능했다.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타쉬켄트의 꾸일룩 시장에 도착한 김홍원 목사 부부는 시장통에 서서 기도를 했다. 그러자 이들을 본 고려인 강영자라는 분이 와서 말을 걸었고, 자신의 집으로 인도했다. 강영자 씨의 오빠 집에서 일주일간 모여서 예배를 드릴 때 신유의 역사가 마구 일어났다. 당시 고려인들은 목사라는 말을 몰라 김홍원 목사를 ‘도사’라고 불렀고, 교회라는 말도 몰라 ‘절간’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강영자 씨 오빠 집에서 일주일간 예배를 드린 뒤 김홍원 목사는 그 집에 ‘타쉬켄트순복음교회’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귀국했다. 김 목사는 조용기 목사에게 러시아의 상황을 보고했고, 조용기 목사는 바로 김홍원 목사를 선교국장으로 임명한 뒤 소련선교를 계획했다. 조 목사가 당시 썩세스클럽 부회장이던 이종근 장로에게 “내년에 소련 선교를 위해 소련에 갈 예정”임을 밝혔다. 당시만 해도 소련은 공산주의 사회였고 북한의 비밀기관원들이 많이 움직일 때였다. 이종근 장로는 조 목사에게 “위험한 곳이니 우리가 먼저 가서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1991년 2월, 김홍원 목사와 조남월 장로, 이창열 장로, 이종근 장로, 박상옥 장로, 김영준 장로 등이 소련 답사에 나섰다. 당시만해도 타쉬켄트에 가려면 일본에 가서 하루 자고, 모스크바에서 다시 하루 자야했다. 그랬으니 오가는 데만 6일이 소요되었다. 일행은 타쉬켄트에 내려 동포들이 많이 사는 꾸일룩 시장에 가서 무조건 전도를 했다. 나이 많은 분들은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면 “예수가 뉘기요”라고 반문했다. 고려인들은 서울에서 사람들이 왔다고 하니 호기심을 보였고, 첫날 강영자 씨 오빠집에 30여 명이 모였다. 김홍원 목사의 설교가 끝난 뒤 김 목사와 장로들은 모인 사람들을 잡고 뜨겁게 기도했다. 첫날부터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소문이 퍼지자 다음날 70명이나 모여들었다. 둘째 날 예배가 끝난 뒤 한 고려인이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당시 소련은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물자가 부족했다. 동포가 차린 식탁에는 빵과 쌀밥, 고깃국, 카라멜, 각설탕 등 집안에 있는 음식이란 음식은 다 올라와 있었다. 먹을 게 없어 있는 대로 올린 것이다. 식사에 초대한 고려인은 “예수가 누군지 몰랐는데 알게 되어 고맙다”며 “안수받을 때 불면증이 다 나았다”며 기뻐했다. 당시 일행이 기도를 할 때 기적이 많이 일어났고, 동네에 예수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오랫동안 기독교를 접하지 못한 그곳은 황금어장이나 다름없었다. 일행은 귀국한 뒤 조 목사에게 타쉬켄트 상황을 보고했고, 조 목사는 바로 최사무엘 선교사를 타쉬켄트로 파송했다.
불교국가 캄보디아 TV에서 조용기 목사 설교 방송/2008-06-04
불교국가 캄보디아 TV에서 조용기 목사 설교 방송 1997년 5월 세계방송선교회원들은 캄보디아 방송선교를 위해 순복음세계선교대회에 참석한 황 신, 유요셉, 김야고보 선교사를 만났다. 세 선교사는 비즈니스 여권으로 불교국가인 캄보디아 등지에서 비밀리에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선교사들에게 “캄보디아 TV와 라디오로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방송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니 가능하도록 추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불교국가여서 절대 방송할 수 없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선교사들은 그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선교활동 사실이 드러나면 추방당한다고 걱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세계방송선교회 회원들은 캄보디아 선교를 위해 합심기도에 들어갔다. 선교사들은 캄보디아로 돌아가 민영방송사와 국영방송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세계방송선교회에서 방송사 사장님들과 만나길 원한다”는 말을 전했다. 국영방송사 사장은 거절했지만 다행히 민영방송사 사장이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창열 장로와 이한용 장로는 1998년 초에 캄보디아로 날아가 프놈펜의 최고급 호텔 하야트로 민영방송사 사장을 초대했다. 동석한 선교사들은 “복음 전파를 하면 안 된다. 혹시 우리가 선교사라는 걸 눈치채면 쫓겨나니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었다. 이창열 장로가 당시 상황을 들려주었다. “최고급 프랑스 요리를 시켰어요. 우리는 요리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설교방송을 성사시킬 수 있을까 그것만 궁리했죠. 성령님께 도움을 청하고 용기를 내서 말했죠. ‘우리나라도 40년 전에는 가난하게 살았다. 훈센 총리가 우리나라를 다녀갔으니 알 거 아니냐.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 비로소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 역사를 보라.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는 모두 선진국이 되었다. 캄보디아와 당신과 당신 가족이 하나님의 은총아래 잘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온 거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님 설교방송을 하고 싶다고 요청했죠. 선교사님은 행여 제가 전도를 할까봐 걱정이 되어 탁자 밑으로 제 다리를 꼬집으면서 주의를 주더군요. 하지만 성령님께서 방송사 사장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장이 너무 선선히 계약을 하자고 해 오히려 일행들이 놀랐다고 한다. 식사 후 방송사에 답사를 갔는데 기자재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기념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온 선교사들과 두 장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선교사들은 “법당 속에서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몹시 기뻐했다. 내친김에 국영방송사 사장에게 만나자고 요청했더니 다행히 나오겠다는 답변이 왔다. 역시 최고급 요리를 대접하면서 설교방송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그는 “국영방송이어서 설교방송을 했다가는 내 목이 달아난다. 그 외 다른 일은 도와주겠다”며 난색을 표했다. 일행은 국영방송사 사장의 주선으로 유력 국회의원을 부부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와 문공부에 힘을 점 써달라는 의미에서 선물까지 했다. 민영방송에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가 나가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캄보디아 불교계와 정치권에서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캄보디아 종교국장이 당장 방송을 그만 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선교사들이 황급히 세계방송선교회에 이 소식을 알려왔고, 이창열 장로와 김락제 장로가 곧바로 캄보디아로 갔다. 종교국장은 50대 여성이었는데 선교사와 장로들에게 “누구 마음대로 방송을 하느냐”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높였다. 일행은 “우리는 사람의 생각으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에게 복 주시기 위해 우리를 보낸 겁니다”라고 간곡히 말했다. 종교국장은 일행의 얘기를 귀담아 듣더니 방송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다음날 종교국장 집에 들어설 때 일행은 절에 온 걸로 착각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거실에 역대 캄보디아 불교계 거장들의 사진이 죽 걸려있고, 불상까지 모셔놓았던 것이다. 이창열 장로는 이런 사람이 설교 방송을 허락했다니,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종교국장이 우리들에게 ‘당신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라는 걸 믿는다. 현재 나는 공직자여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지만, 내 마음에 하나님이 있다는 건 확신한다’고 얘기하더군요” 캄보디아는 교통 수단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 상태이다. 종교국장은 기자재가 부족해 종교업무를 수행하기가 힘들다며 컴퓨터 2대와 오토바이 2대를 기증해달라고 부탁했다. 세계방송선교회에서 곧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돈을 보냈다. 두 번째 갔을 때 일행은 국영방송사 사장을 다시 한번 만났다. 혹시 국영방송에서 설교방송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국영방송사 사장은 “국영방송에서 설교방송을 할 수는 없지만, 만약 세계방송선교회에서 캄보디아에 방송국을 세운다면 허가가 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1998년 2월 25일 캄보디아 라디오(FM99)로 설교방송을 하던 중, 1999년 9월 캄보디아 공영 TV로도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방송하게 되었다. 극동방송 사장 김장환 목사는 1999년 하반기에 FEBC 지사 설립과 세미나 관계로 캄보디아에 갔다가 그곳 사람들로부터 “조용기 목사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김 목사가 “다음 주 목요일에 우리교회에서 설교한다.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는다. 우리는 친형제처럼 지낸다”고 했더니 모두들 부러워했다고 한다. 김 목사는 호텔에서 TV로 조용기 목사 설교가 나오는 걸 보고 그 사실을 조용기 목사에게 전했다. 그제서야 조 목사는 캄보디아 TV에서 자신의 설교가 방송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계방송선교회는 2000년 5월 19일, 제24회 순복음실업인의 날에 ‘최우수 선교회’로 표창 받았다.
생각이 삶을 이끈다(fgtv)
생각이 삶을 이끈다 생각하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상상 통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지금 당신이 하는 생각이 미래를 만들어 낸다. 많은 사람들은 미래를 창조하는 상상의 힘을 믿지 않고 있다.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상상력은 초자연 현상, 기적을 만드는 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쉽게 이해 못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4차원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에게 첫째로 생각(Thinking)을 주셨다. 4차원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생각은 두께도, 넓이도, 보이지도 않고 영원하고 무궁하다. 조용기 목사는 “인간의 상상력은 4차원에 소속되어 3차원인 현실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상상의 힘으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탄생됐다. 마이크 반스는 월트 디즈니와 함께 디즈니 월드를 창조해 낸 인물이다. 어느날 누군가 그에게 이같은 질문을 했다. “월트 디즈니는 본인의 상상이 실현된 것도 못보고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슬플까요?” 그러자 반스는 이같이 대답했다. “그분은 이미 상상 속에서 월트 디즈니의 완성된 모습을 보셨습니다” 월트 디스니는 디즈니 월드를 상상하고, 결국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오늘날 디즈니 월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 리처드 바흐는 “상상은 항상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힘도 동시에 가지고 태어난다” 말했다. 셰익스피어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당신 생각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말했다. 조용기 목사는 “긍정적인 생각은 언제나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게 한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기로 작정하고 생각 속에서 미워하는 프로그램을 작동하면 내가 먼저 상처를 받게된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원수를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남을 해치기 전에 본인에게 명령이 전달되어 스스로를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생각은 감정과 행동 신체반응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암 선고를 받은 환자는 본인의 생각의 태도가 남은 생존기간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생각은 실제로 사용 가능한 도구다. 생각은 다른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사용법을 익혀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연필, 컴퓨터 등의 사용법을 처음 배울 때처럼, 미래를 상상하는 생각에도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