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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요2:1-11/ 피종진 목사/ 2001-02-25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 요2:1-11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기적을 행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는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이적을 행하신 곳입니다. 잔치 집에 가보면 좋은 음식을 먼저 내놓고 나중에는 맛이 좀 덜 한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가나 혼인잔치 집에는 처음보다도 나중이 더 좋아지는 이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참예한 사람들이 다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기독교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값이 없는 것 같고 미약한 것 같고, 어리석은 것 같고, 별 볼일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주님의 세계는 점점 더 좋아지는 세계입니다. 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가치없는 것, 또 안되는 것이 되게 되고, 하나님의 기적이 함께 수반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없는 세계는 인간의 생각과 육성에 의해서 모든 일이 결정되어집니다. 또 그 결정된 사건 자체가 그것으로 마무리되어지고, 결론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의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없는 것도 있게 되고, 안되는 것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기적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손으로 나타내시는 능력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현실을 보고 좌절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잘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안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가 계셔서 기다리고 인내하고 간구하면 잘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집에 어떻게 해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님을 초청하여 모셨기 때문입니다.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1,2절) 가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모자라 잔치를 준비한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예수님을 초청하여 모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한 이적을 행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내가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가, 내가 사업을 하는데 이 사업장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가, 예수님을 모시되 저 한쪽에 어떤 불청객처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 주인으로 모시고, 내 생명 자체로 모시고 계신다면 그곳에는 가나 혼인잔치처럼 기적이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주님께서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는 이적을 행하셨을까요? ①예수님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스스로 나타내시고, 우리가 그 사실을 믿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②주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절)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주님을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 주님이 나와 어떤 관계이냐? 주님이 나와 어떤 관계로 역사해주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심을, 주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생명은 믿음입니다. 전통과 의식, 찬반 논리, 흑백 논리도 중요하지만 믿음 자체가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구주되심과 주의 능력과 기도의 응답을 믿는 것은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③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우리 인간에게 가장 긴급하고 귀중한 일들이 많이 있겠지만, 영생을 얻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천하를 얻었다고 해도 생명을 잃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영생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총명하던 지혜도, 가졌던 지위와 명예도, 그리고 자기의 모든 인품이나 인격도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게 되지만, 영생을 얻은 자는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서 천군 천사와 화답하면서 영원토록 영광의 생활이 이어지고, 지속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땅에 살지만 죽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멸망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대적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를 주시는 주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7절)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 곳에는 생명이 역사하고, 축복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사탄이 두려워 도망가고, 풍랑이 잔잔하게 되며, 파도도 고요하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2∼4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 곳에는 혼돈이 물러가고, 공허가 없어지고, 흑암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흑암\\\\\\\'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절망과 좌절, 어두움\\\\\\\'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어떤 좌절과 절망과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 임하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세계로 바꿔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좋다고 하는 가치 평가와 주님이 좋다고 한 그 가치 평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고 했으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는 바로 이와 같은 평가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를 10년, 20년 믿어도 성경 한 번 못 읽고 구약 찾으라고 하면 신약을 들추고, 신약을 말했는데 창세기부터 목록을 찾아보고 있다면 안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시험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달변이나 철학, 윤리, 도덕으로 마귀를 물리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시고, 공생애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 마귀가 제일 먼저 나타나서 \\\\\\\'돌로 떡이 되어서 먹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신명기 8:3의 말씀을 읽어 주면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둘째 시험과 셋째 시험도 신명기 6:16과 신명기 6:13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 때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신명기 28:1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뒤에 보면 온갖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어서 간직하고, 눈으로 읽고 우리 머리와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받고 체험해야 됩니다. 말씀이 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축복을 주시고, 사탄 마귀에게서 이김을 주시며, 또 하나님의 성령이 말씀과 함께 역사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10:44에 보면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신 곳에는 성령이 함께 역사해주십니다. 인간의 이론이 전개될 때는 사탄이 역사해서 싸움과 분열,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생명입니다.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말씀이 계신 곳에 주님이 계시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어야 됩니다. 한 말씀을 심어주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셔요\\\\\\\" \\\\\\\"예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죽으셨어요. 이 십자가는 우리의 저주를 담당해주신 십자가예요\\\\\\\" 이것을 심어 주어야 됩니다. 저는 어릴 때 주일학교 선생님을 참 잘 만났습니다. 그 분이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는데, 참 기도를 많이 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주일학생들에게 \\\\\\\'절대 절간에 가거든 부처를 무서워하지마라. 코를 비틀어도 괜찮아. 머리를 잡고 흔들어도 괜찮아. 그것은 말도 못하고 복도 못줘. 그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 생명도 없어.\\\\\\\' 늘 이런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심어지는 것이 천마디 그 어떤 듣기 좋은 말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정치,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사업,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국가는 승리가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5,7,8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하인들은 모든 말씀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이 있을 때 나타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얼마나 큰 축복이 임하는지 아십니까? 신명기 15:4에 보면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날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얼마나 고심합니까? 오늘도 생활 전선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니면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물질에 궁핍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하며 애쓰고 사는데, 이 물질도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궁핍하지 않고 넉넉하게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잘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백성들이 살도록 백성들과 정치인들이 함께 경성하는데 있습니다. 민족통일도 어떤 사상과 이론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명기 28:2에 보면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에 보면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누릴 온갖 영육간의 복이 다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데도 가난하고 헐벗는 나라가 있습니까? 오늘날 세계의 강대국을 보면 모두 다 하나님을 잘 믿는 나라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시편 113:4에 보면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고 말씀했고, 고린도전서 10:31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계에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날마다 나타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항상 마음 속에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냄으로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집에 일어났던 기적을 체험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 막1:21-28/ 피종진 목사/ 2005-10-29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 막1:21-28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다섯 가지 사역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은 바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행하여야 될 교훈과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줍니다. 주님의 발자취는 모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고, 또 우리에게 큰 신앙의 교훈을 남겨주신 그런 발자취입니다.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은 첫째, 주의 날을 성수(聖守)하셨습니다.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막 1:21)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주의 날에 하나님 앞에 안식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11에 보면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은 복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을 지킬 때 ①기억을 해야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어떤 분은 주일을 맞이했는데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 가는 사람들을 보고 ‘오늘이 무슨 날이냐?’라고 자기 딸에게 물었답니다. 그 딸이 ‘엄마, 오늘 주일이잖아’라고 대답하자 ‘벌써 돌아왔니?’하고 신경질을 내더랍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을 기억하고 월요일부터 손꼽아 기다리면서 그 날이 가까울수록 기뻐 찬송하면서 그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②거룩히 지켜야 합니다(출 20:8). ③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해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④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주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며,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둘째,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막 1:21) 예수님은 주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1:18에 보면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에베소서 1:22에 보면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셨습니다. 교회는 만물의 지배를 받는 곳이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UN본부나 백악관, 청와대 등 세계 왕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곱 촛대 사이에 운행하신다고 했습니다(계 2:1). 여기에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처소이고, 성도 간에 아름다운 신앙의 교제를 하는 곳이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본부가 되고, 성령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사명자를 양성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신부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단장시켜 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등불을 예비시켜 주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시 89:7). 그래서 교회의 권위는 이 땅의 어떤 왕의 권세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막 1:21) 여기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은 헬라어나 히브리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힘써야 합니다(딤후 4:2). 우리의 가방 속에는 항상 전도지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지를 전해줄 때 “이 전도지를 읽을 때 반드시 당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형통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읽고 받아들인다면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항상 상대방에게 소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파한다’는 말은 헬라어에 보면 ‘널리 알린다’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를 알게 해주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해주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게 하고,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 문을 열도록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열심히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듯이 우리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 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넷째, 귀신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막 1:23,25) 이 말을 듣고 귀신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습니다. 그 당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때는 마술사들이 독특한 도구를 사용하여 주술적 행위를 함으로써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자신의 말씀의 권위만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나타내신 예수님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습니다(막 16:17). 다섯째, 가르치는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 1:22)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저명한 랍비들의 말을 인용하기 바빴던 유대 지도자들의 능력없는 교훈과 달리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큼 가르치는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며,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본받아 주일 성수를 잘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 막1:21-28/ 피종진 목사/ 2005-10-29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 막1:21-28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다섯 가지 사역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역은 바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행하여야 될 교훈과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해줍니다. 주님의 발자취는 모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고, 또 우리에게 큰 신앙의 교훈을 남겨주신 그런 발자취입니다. 가버나움에 임하신 예수님은 첫째, 주의 날을 성수(聖守)하셨습니다.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막 1:21)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주의 날에 하나님 앞에 안식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20:11에 보면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은 복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을 지킬 때 ①기억을 해야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어떤 분은 주일을 맞이했는데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 가는 사람들을 보고 ‘오늘이 무슨 날이냐?’라고 자기 딸에게 물었답니다. 그 딸이 ‘엄마, 오늘 주일이잖아’라고 대답하자 ‘벌써 돌아왔니?’하고 신경질을 내더랍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을 기억하고 월요일부터 손꼽아 기다리면서 그 날이 가까울수록 기뻐 찬송하면서 그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②거룩히 지켜야 합니다(출 20:8). ③엿새 동안은 힘써 일을 해야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출 20:9) ④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주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찬송하며, 기도하고, 전도하며, 성도 간에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둘째,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막 1:21) 예수님은 주일에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1:18에 보면 주님은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에베소서 1:22에 보면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셨습니다. 교회는 만물의 지배를 받는 곳이 아니라 만물을 지배하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이 세상을 통치하실 때 UN본부나 백악관, 청와대 등 세계 왕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곱 촛대 사이에 운행하신다고 했습니다(계 2:1). 여기에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처소이고, 성도 간에 아름다운 신앙의 교제를 하는 곳이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본부가 되고, 성령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사명자를 양성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신부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단장시켜 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등불을 예비시켜 주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들을 모아 놓은 곳입니다(시 89:7). 그래서 교회의 권위는 이 땅의 어떤 왕의 권세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막 1:21) 여기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은 헬라어나 히브리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를 힘써야 합니다(딤후 4:2). 우리의 가방 속에는 항상 전도지가 들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지를 전해줄 때 “이 전도지를 읽을 때 반드시 당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형통한 길이 열릴 것입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읽고 받아들인다면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항상 상대방에게 소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지옥에 갈 사람이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전파한다’는 말은 헬라어에 보면 ‘널리 알린다’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의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예수를 알게 해주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해주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게 하고, 마음 문을 열지 않는 사람에게 마음 문을 열도록 기도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열심히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듯이 우리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 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넷째, 귀신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막 1:23,25) 이 말을 듣고 귀신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습니다. 그 당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때는 마술사들이 독특한 도구를 사용하여 주술적 행위를 함으로써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자신의 말씀의 권위만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나타내신 예수님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습니다(막 16:17). 다섯째, 가르치는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 1:22)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저명한 랍비들의 말을 인용하기 바빴던 유대 지도자들의 능력없는 교훈과 달리 회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큼 가르치는 권세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러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주의 날을 거룩히 지키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며,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신 예수님을 본받아 주일 성수를 잘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가장 무서운 것은 마음 속의 두려움/ 눅12:35-40/ 피종진 목사/ 2009-08-23
가장 무서운 것은 마음 속의 두려움 눅12:35-40 현대를 무한경쟁의 시대,상처의 시대라고 합니다.그러므로 지금은 자기 희생의 결단과 발상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됩니다.현실은 아직도 IMF체제 아래 갖가지 구조조정이 이어져가고 있으며 그 때문에 빚어지는 후유증으로 국민 모두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예수님은 누가복음 12:35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씀은 주인을 올바로 섬기는 참된 종의 겸손한 자세와 일하는 일꾼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통령 취임식전에서 상원의 한사람인 목사님이 “예수를 본받아 백성들의 발을 씻는 종이 되라”고 권면했습니다.이 말을 새겨들은 그는 곧바로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뉴딜정책을 세웠고,이 정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허리에 띠를 든든히 띠고 정신을 차려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누가복음 12:35∼40). 깨어 기도하는 자만이 죄악의 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해 절망과 좌절의 깊은 늪을 헤쳐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무서운 병은 절망입니다.절망은 완전한 패배를 뜻합니다.루스벨트대통령 취임전 미국은 최고의 불황이 덮쳐 실직자가 1천만명 이상에 달했습니다.그때 그는 “이 경제난 속에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두려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마음의 빈곤은 모든 패배의 원인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역경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그리고 그 역경의 때에 인간은 세가지 유형중 한가지를 취하게 됩니다.첫째는 체념형,둘째는 도피형,셋째는 돌파형입니다.여기서 우리는 체념형이나 도피형이 되지 말고 돌파형이 되어야 합니다.용기있게 전진하는 사람만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자기 새끼를 강하게 키우려고 둥지에서 일부러 돌과 나무가지를 깔아 놓습니다.그것은 새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입니다.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키워주시기 위해 때로는 연단과 시련의 험하고 힘겨운 고난의 돌밭과 가시밭길을 지나게 하십니다.고난이란 말은 헬라어의 ‘파스코’라는 말로 ‘경험을 가진다’는 말입니다.많은 고난은 많은 경험을 쌓는 일이 되므로 더욱 큰 인물이 될 수 있는 준비의 과정이 됩니다. 로마의 철인 세네카는 “불은 쇠를 단련시키고 고난은 인생을 단련시킨다”고 말했습니다.인생이 겪는 이 모든 고통들은 마치 식탁 위 음식의 조미료와 같은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이 극에 달한 육체의 고통 속에 괴로운 나날들을 잊어보려고 마약과 알코올,환각제 등으로 멸망의 길을 자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만사에는 때가 있습니다.지치고 피곤하다고 좌절하지 말고 절망과 불신앙의 벽을 믿음으로 과감히 뚫고 나아갑시다.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평화와 구원의 품에 늘 안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평강이 함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감사의 신앙/ 눅17:13-17/ 피종진 목사/ 2010-02-21
감사의 신앙 눅17:13-17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자는 하나님께 나오는 자이며, 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이고, 그 하나님께 모든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성도입니다. 감사가 있는 신앙은 그 신앙이 살았다는 증거이고, 신앙의 열매라고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생활을 하는데 어려울 때 감사하는 일이 있고, 좋을 때 감사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좋을 때 감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방 사람도 할 수 있고, 심지어 도둑들도 방탕한 사람들도 좋은 일이 있으면 감사를 합니다. 도둑이 한 탕 해서 자기들끼리 축배를 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참 감사는 어려울 때에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평생토록 감사의 신앙이 지속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W. 브레이크는 말하기를 \\\\\\\'감사할 줄 아는 자는 풍성한 수확이 뒤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마치 기관차가 앞에 서면 객차가 뒤에 따르듯이 감사가 앞에 서면 뒤에 계속해서 풍성한 수확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의 생활을 계속하면 수확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감사할 일들이 넘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 열 문둥병자를 만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열 문둥병자를 만났는데, 이 분들은 그 당시에 완전히 자주권이 박탈되어 거주지에서 추방되고 정다운 가족과 함께 정을 나눌 수도 없는 그런 불쌍한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그 열 문둥병자를 다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사람들 중에 육신의 문둥병을 가졌어도 영적으로 천사같이 사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건강하고 외모는 천사같고 귀빈같이 예쁘게 분장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오히려 더 무서운 죄악으로 가득차서 흉악한 문둥병같이 썩어가는 인생들도 이 땅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열 문둥병자 중에 한 사람이 가다가 \\\\\\\'아, 내가 고침 받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 때문이었는데, 그분께 감사도 드리지 아니하고 그냥 가다니\\\\\\\' 하고 이 사실을 깨닫고 돌아와서 예수님 앞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홉 사람은 감사할 줄을 몰랐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저의 모습이 너무 하나님 앞에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나라에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나라에 복을 주심으로 매년 풍년이 들어 이제는 쌀이 많아서 쌀값이 내리고 쌀을 소비하는 방법으로 과자로 만들어 먹을 정도로 풍년이 들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함께 해주시고, 감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평생에 먹고 마시고 살면서도 주님께 똑같이 고침 받았지만 감사할 줄 모르고 그냥 자기 갈 곳을 가버린 아홉 문둥병자와 같이 감사할 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환난 풍파와 위험과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은 세상이지만 주님의 보호와 은총 가운데 추수감사절을 맞이하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문둥병자는 무엇에 대해서 감사했습니까? 첫째, 예수님을 만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12절) 우리가 가장 감사할 일 중에 하나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문둥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멸시 천대를 받으며 자기 자주권마저 박탈당한 이런 소외된 열 문둥병자를 주님이 찾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 영적으로 문둥병자와 같은 죄인들인데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과 저를 만나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자는 주님이 무관심하게 지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해서 불렀을 뿐만 아니라 우리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시고, 앉고 서는 것도 기억하시며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 기쁩니까? 환자가 의사를 만나는 것도 기쁘고, 깡패들이 우글거리고 도전해오는데 강력계 형사들만 만나도 기쁘고, 여행자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안내자만 만나도 기쁘고, 어려울 때 도와줄 자를 만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모스 4:12에 보면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까?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일을 책임져주십니다. 우리 인간은 역부족인데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함이 없으십니다. 여러분, 평생토록 우리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부르짖은 것을 응답해주신 일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13,14절) 여기에서 \\\\\\\'긍휼\\\\\\\'이란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불쌍히 여겨 달라\\\\\\\'는 뜻입니다. 주님께 찾아온 한 문둥병자는 인생의 처참한 상황에서 긍휼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었을 때 그 부르짖음을 응답해주신 일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지극히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여주시고 얼굴을 향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크고 작은 일을 불문하고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여러분과 저는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까지 어떤 일에도 절망하지 아니했고, 어떤 위험에서도 두려워하지 아니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외로워하거나 고독한 삶을 살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을 바라보면서 \\\\\\\'할렐루야\\\\\\\' 찬송하면서 귀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여정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 주님께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103:13에 보면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어려운 일들을 다 해결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사야 49:13에 보면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겨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될 때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만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를 더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함께 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주님만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응답해주셨습니다. 사람을 의지했을 때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 기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 열 문둥병자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호소해보았겠습니까? 그러나 한 사람도 해결해줄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열 사람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는 반드시 다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기 위해서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땅을 보고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위로를 받아야 됩니다. 자기 실력을 보고 열등의식을 가지지 말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함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인생을 저주하면서 스스로 생명을 끊는 사람도 갈수록 늘어갑니다.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시는데, 시편 50:15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시편 119:153에 보면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건져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시편 기자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오늘 여러분의 간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문둥병을 깨끗하게 치료해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14, 16절) 여기에서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은 썩은 문둥병자의 살이 다시 돋고, 문드러진 손가락, 발가락 등이 다시 나며, 피부가 온전해지고, 머리카락, 눈썹 등의 털이 다시 남으로써 정상인의 상태로 돌아온 것으로 온전히 고쳐주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 인생을 깨끗하게 치유해주시는 그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은혜를 여러분과 저에게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C. 쿨리지는 말하기를 \\\\\\\'축복 받기 원하거든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감사하는 생활 속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좋을 때도 감사해야 되지만 어려울 때도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가 감사생활을 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감사가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감사할 일이 있어서 지나갔어도 현재에 감사생활을 하면 현재의 그 감사생활 속에 과거의 감사가 이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감사를 계속 이어주실 뿐만 아니라 오늘 어려움이 있어도 감사생활을 하면 미래의 감사를 보장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한 번 주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현재로부터 미래까지 연결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생활 속에 감사함이 있는 사람은 늘 자기 생활에 만족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 원망 불평이 있을 때 얼굴을 한 번 쳐다보십시오. 천사같이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이 있나요? 감사가 있는 사람은 말로도 감사가 나오지만 또 감사의 노래를 하게 되고, 감사할 마음이 넘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감사함을 자꾸 베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 부르짖은 것마다 응답 받으며, 우리를 깨끗하게 치유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항상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고침을 받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 주님께 감사를 표했던 사마리아의 한 문둥병자에게 구원의 축복까지 더 임했듯이 평생토록 모든 일에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함으로 모든 것에 승리하며 넘치는 복이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 요일2:3-5/ 피종진 목사/ 2003-10-01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 요일2:3-5 요즘 상대방에게 말을 할 때 ‘정말입니까?’라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 말을 하면서도 ‘나, 정말이야’ 하고 자신을 확인시키려고 애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 이 시대는 거짓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요소요소에 여러 가지로 어두움들이 역사하여 진실성을 상실해가고 진실을 잃으니까 양심이 화인 맞고 마비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천사처럼 살지는 못해도 진실하게 살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으로 진실을 말하고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며, 정직한 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거짓된 삶은 하나님의 계명에서 이탈된 삶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며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바로 진실하고 정직한 생활입니다. 거짓말은 지어내는 것은 첫째, 악한 사탄의 행위입니다. 거짓말은 악한 사탄의 행위입니다. 창세기 2:17에 보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3:4에 보면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정녕 쥭으리라고 했는데, 사탄은 이와 반대로 ‘결코 죽지 않는다’고 강조해서 말했습니다. 사탄은 인간에게 온갖 거짓을 행하게 합니다. 열왕기상 22:22에 보면 거짓말하는 영이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영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두 영의 지배를 받고 삽니다. 하나는 성령이요, 하나는 악령입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와 악령을 좇아 행하는 자 모두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도 힘이 대단합니다. 무당이 밤새도록 펄쩍펄쩍 뛰며 굿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신들린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도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은 더 위대합니다. 성령은 악한 마귀의 권세를 소멸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나타내줍니다. 아무리 혼자 결심하고 맹세하고 다짐을 해도 사람의 힘은 언제나 역부족이고 한계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할 때만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어느 포도원에 어떤 여인이 포도 한송이를 따서 치마 속에 숨겼는데 주인이 마침 그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이 여인은 끝까지 포도를 숨기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송이에 실뱀이 있어서 그 실뱀에게 물려 그 여인의 온 몸에 독이 퍼져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합니다. 거짓말은 이 실뱀의 독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절대 품고 있으면 안됩니다. 죄는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 용서와 긍휼을 입게 됩니다. 죄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회개하지 않는 것을 무섭게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복음은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생각 속에 거짓말하는 영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항상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둘째, 진리를 떠난 자의 타락한 행위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진리가 없음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거짓의 아비가 된다고 했습니다. 거짓은 거짓을 자꾸 낳게 합니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드는 ‘한마디 거짓말을 표한 사람이 그것을 유지하기 하기 위해서 다시 스무 마디 거짓말을 생각해낸다’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12:35에 보면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선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악을 생각하고 악을 도모하면 마귀가 악을 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또 악을 행하도록 점점 악하게 만들어줍니다. 진리를 위해서 살면 생활에도 아름답고 선한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호화판으로 사는 사람보다도 땀 흘리고 수고하며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플라톤은 ‘거짓말은 그 자체로서 죄악일 뿐 아니라 영혼을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거짓 자체는 영혼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깨끗한 영혼 속에서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양이 나올 수 있고, 순금의 기도가 나올 수 있고, 순금의 믿음이 무장되어서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할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진리 안에서 정직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13:19에 보면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이고 살지 못할 영혼을 살리는도다”라고 말씀했고, 예레미야 17:9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이 부패하면 진리를 떠나게 되고 타락하여 생각과 행동도 부패해집니다. 셋째, 하나님의 반열에 서지 못하게 합니다.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시 101:7)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반열에 서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을 말하는 자를 하나님의 반열에 서게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역사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부모는 자기를 닮은 자녀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마귀를 닮으면 안됩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우리가 행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랑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을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집어던진다고 했습니다. 잠언 19:9에도 보면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패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착취해서 소유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착취한 것은 보장이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오히려 화의 재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과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자손의 복, 지위 명예의 복은 영원히 지속될 수가 있습니다. 원수마귀가 손 못대고, 환난 풍파가 엄습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아무도 주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도록 역사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어를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영혼과 언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①성령에게 사로잡힌 혀가 되어야 합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을 해야 됩니다. 농담도 진담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농담도 함부로 저주하는 말이나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말은 씨앗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한 말을 해야 됩니다. ②지혜로운 말을 해야 됩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사 50:4) 지혜롭고 아름다운 말은 어려운 자를 도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③좋은 말만 듣기를 좋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말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입니다. 원망하는 자는 멸망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악한 사탄의 행위이고 진리를 떠난 타락한 행위로서 하나님의 반열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에 사로잡힌 혀가 되어 항상 진실하고 정직한 말, 지혜로운 말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골로새 성도의 모범/ 골1:1-5/ 피종진 목사/ 2009-08-12
골로새 성도의 모범 골1:1-5 오늘 본문에 보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이 극진히 칭찬하고 그들로 인해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골로새 성도들이 복음에 근거하여 믿음과 사랑과 하늘의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들은 바울은 이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욱 바로 깨닫고 주께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했습니다. 골로새 성도의 모범된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골로새 교회 성도의 모범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 안에서 사는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4절) 참 신앙이란 예수 안에 사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은 바로 예수 안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4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안\\\\\\\\\\\\\\\\\\\\\\\\\\\\\\\'에 있다는 말과 \\\\\\\\\\\\\\\\\\\\\\\\\\\\\\\'밖\\\\\\\\\\\\\\\\\\\\\\\\\\\\\\\'에 있다는 말은 삶과 죽음의 차이요, 축복과 저주의 차이요, 하나님의 선민과 이방인의 차이로서 여러 가지로 교훈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안마당에 있는 위치에 있었고, 이방사람은 성전 바깥마당에 있었습니다. 이 안마당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은총이 있지만 바깥마당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아무런 주의 긍휼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5:7에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다는 이 말은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이 귀한 사실을 깨닫고 평생토록 예수 안에서 사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생이 사노라면 위기도 옵니다.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대적들도 있습니다. 실패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가 실패로 끝나는 것은 이방사람들의 결론이지만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실패도 성공으로 될 수 있습니다. 위험도 안전으로 하나님의 보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모든 사경을 헤매는 데서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의 약동을 부여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이 대적이 쳐들어오는 그 순간에도 \\\\\\\\\\\\\\\\\\\\\\\\\\\\\\\'저들을 이길 수 있는 병력이나 무기와 요새지가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예수 안에 있는가\\\\\\\\\\\\\\\\\\\\\\\\\\\\\\\'를 생각했다는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신학은 항상 \\\\\\\\\\\\\\\\\\\\\\\\\\\\\\\'예수 안에\\\\\\\\\\\\\\\\\\\\\\\\\\\\\\\' 이것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4:13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를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10에도 보면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우리가 예수 안에 있으면 강건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일 약자는 예수를 떠나는 사람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입니다. 제일 강한 자는 바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 안에 있을 때 나라도 잘되고 가정도 잘되고 기업도 잘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모습이 언제나 예수 안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누가 여러분을 보더라도 \\\\\\\\\\\\\\\\\\\\\\\\\\\\\\\'저 분은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보여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믿음 위에 세워진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4절) 골로새 성도들은 그들의 믿음에 대한 소문이 났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의 결과(마 7:24∼27)를 예수님이 비유로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마는 믿음 위에 세워진 성도는 하나님이 보장해주십니다. 믿음을 통하여 온갖 하나님의 기적과 역사가 함께 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강한 믿음은 강한 사람을 만듭니다. 세계를 움직인 위대한 사람은 주먹의 힘이 아니고, 머리의 지혜가 아니며, 가슴의 정열도 아니었습니다. 육체의 뼈와 살의 튼튼한 체력이 아니라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세계를 다스리고 통치할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달려가도 곤비함이 없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샘솟듯 솟아나는 새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사 40:31). 영국의 대선교사 리빙스톤은 아프리카 대륙의 위험속에 다니면서도 그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주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에 어떠한 일에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낙심을 잘하는 사람은 신앙의 병이 들었든지 성격상으로 병이 든 사람입니다. 비록 성격상으로 약점과 단점이 있어도 신앙이 강건하면 어떤 절망에서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안전이나 완전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믿음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보장이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4:20에 보면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은혜와 복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①믿음은 구원을 가져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믿음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안되는 것이 되는 것, 없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 보이는 것이 보여지고, 귀에 들려지고 만져질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불가능이 가능하도록 믿음을 통한 이런 기적을 우리에게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③믿음은 소망을 가져다 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바로 이 믿음이 있을 때 소망이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히딩크 감독이 대화하는 것을 제가 유심히 봅니다. 이 분은 대화 속에 부정된 말이 없습니다. 상대방을 낮추거나 욕하고 저주하는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의 실력을 평가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믿음을 통한 역사가 바로 이와 같은 좋은 역사를 나타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말은 헬라어에 보면 \\\\\\\\\\\\\\\\\\\\\\\\\\\\\\\'받아들이고, 맡기고, 기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문이나 족보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학력을 가지고 평가했습니다. 요즘에는 가문이나 족보, 학벌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 그분 좋은 사람입니다\\\\\\\\\\\\\\\\\\\\\\\\\\\\\\\'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좋은 여건을 가지고도 나쁜 사람이 있고, 여건이 나빠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귀한 말은 \\\\\\\\\\\\\\\\\\\\\\\\\\\\\\\'아, 그분 참 믿음이 좋은 분이십니다\\\\\\\\\\\\\\\\\\\\\\\\\\\\\\\'라는 말입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좋지만 믿음이 좋은 분이라는 말은 더 귀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 앞에 \\\\\\\\\\\\\\\\\\\\\\\\\\\\\\\'아, 저 분 같으면, 저렇게 예수 믿는 사람이 본이 된다면 나도 예수 믿을 마음이 생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방 사람들에게까지도 그러한 반응이 되어지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사랑이 넘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4절) 골로새 성도들은 사랑이 넘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인간 공동체 속에서 참 생명처럼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은 향기없는 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사랑이 없으면 삶의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은 지옥이요 감옥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사랑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지 않고 받으려고만 하면 언제나 고독합니다. 받는 것은 관심없고 주기를 좋아하면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 사랑은 주는데 있습니다. 아마추어 사랑은 받는데 있지만 프로의 사랑은 주는데 있습니다. 이 \\\\\\\\\\\\\\\\\\\\\\\\\\\\\\\'사랑\\\\\\\\\\\\\\\\\\\\\\\\\\\\\\\'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서로 함께 결합시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연합을 가져옵니다. 사랑이 식어지면 분열을 가져옵니다. 사랑이 없으면 멀어지지만, 사랑이 있으면 가까워집니다. 쇠가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아서 한데 엉켜지듯이 우리는 사랑의 불로 함께 녹여져서 \\\\\\\\\\\\\\\\\\\\\\\\\\\\\\\'너와 나\\\\\\\\\\\\\\\\\\\\\\\\\\\\\\\'라는 것이 없어지고, 다 내 몸같이 사랑하고 아끼고, 내 몸같이 존경스럽고 귀히 여겨지는 이런 사랑이 오늘 이 땅에 필요합니다. 인간은 점점 번창해짐에 따라서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과학 문명과 지식을 통해서 생활에 편리한 모든 것들이 다 발명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치열한 경쟁시대입니다. \\\\\\\\\\\\\\\\\\\\\\\\\\\\\\\'산업 경쟁\\\\\\\\\\\\\\\\\\\\\\\\\\\\\\\' \\\\\\\\\\\\\\\\\\\\\\\\\\\\\\\'생존경쟁\\\\\\\\\\\\\\\\\\\\\\\\\\\\\\\'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이런 경쟁을 하다가 보니까 경쟁구조가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함께 파생되는 것은 사랑의 구조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 시대일수록 경쟁구조는 파괴되어도 사랑의 구조가 파괴되어서는 안됩니다. 사랑을 잃으면 그 자신에게도 삶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이 말이 참 귀합니다. TV를 보다가 소름이 끼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주 어린 소녀가 철망 안에 들어가 호랑이를 끌고 와서 손도 들게 하고 발도 들게 하면서 나중에는 자기 다리를 호랑이 입에 물리는 것이었습니다. 호랑이로 말하면 자기 밥인데 먹지 않고 입만 벌리고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무슨 절제의 은사가 있습니까, 분별의 은사가 있습니까? 배고프니까 그냥 먹으면 그만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사회자가 질문하기를 \\\\\\\\\\\\\\\\\\\\\\\\\\\\\\\'맹수를 훈련시켰는가 아니면 새끼를 길러서 훈련시켰는가?\\\\\\\\\\\\\\\\\\\\\\\\\\\\\\\' 하고 물었더니 맹수를 훈련시켰다는 것입니다. 일반 호랑이를 데려다가 훈련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묻기를 그 다리를 입에 넣었을 때 무섭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내가 호랑이를 사랑하는 줄을 호랑이가 알고, 호랑이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내가 알기 때문에 무섭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소녀의 말은 순간적으로 대답한 것인데도 이것이 곧 진리입니다. 자기 현실 생활 속에 체험하고 있는 것을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가 호랑이를 사랑하는 것을 호랑이가 안다는 것입니다. 사랑 관계 속에 얼마나 행복이 있습니까? 만일 옆의 사람이나 뒤의 사람 중에 미운 사람이 있다면 사랑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입니다. 다 서로 이해가 되고, 존경스럽고, 사랑하고, 가까이하고 싶고, 곁에 있고 싶고, 대화하고 싶고, 마음을 서로 주고 받고 있다면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바로 이런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저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이 소문이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랑을 보통 친구간의 사랑, 이성간의 사랑, 가족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누게 됩니다. 가족간의 사랑은 \\\\\\\\\\\\\\\\\\\\\\\\\\\\\\\'스톨게\\\\\\\\\\\\\\\\\\\\\\\\\\\\\\\'라고 말하고, 이성간의 사랑은 \\\\\\\\\\\\\\\\\\\\\\\\\\\\\\\'에로스\\\\\\\\\\\\\\\\\\\\\\\\\\\\\\\'라고 말하며, 친구간의 사랑은 \\\\\\\\\\\\\\\\\\\\\\\\\\\\\\\'필리아\\\\\\\\\\\\\\\\\\\\\\\\\\\\\\\'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랑은 누구나 다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아가페\\\\\\\\\\\\\\\\\\\\\\\\\\\\\\\' 즉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조건이 없는 사랑입니다. 국경이 없는 사랑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차별이 없습니다. 넷째, 소망이 넘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5절) 얼마나 골로새 성도들은 소망을 많이 쌓아놓았으면 하늘에 소망을 쌓아두었다고 했을까요? 일본의 미끼 기오시가 \\\\\\\\\\\\\\\\\\\\\\\\\\\\\\\'저무는 해 뒤에는 떠오르는 별이 있다. 소망 중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젊다.\\\\\\\\\\\\\\\\\\\\\\\\\\\\\\\'라고 한 이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안되는 일도 언젠가 되는 주의 약속이 되어져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상실했다는 증거입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땅위에 있는 것을 보고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고 찬송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소망의 불이 꺼지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기적과 축복을 안겨주실 줄 믿습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그리스도인의 영성/ 롬7:5-6/ 피종진 목사/ 2010-02-15
그리스도인의 영성 롬7:5-6 우리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될 영성이 있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라고 육신에 따라 사는 사람의 생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체를 가지고 있는데, 이 지체가 만약에 죄의 정욕에 의한 지체로서 쓰임을 받으면 사망의 열매가 맺혀진다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교회에 나와도 아직도 육신에 치우쳐서 생활하기 때문에 감정, 혈기, 분노, 이기심, 복수심 이런 것들이 우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육신에 치우쳐서 살게 되면 신령한 것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또 그 일에 대해서 사모하지도 않고, 또 그 일을 따르지도 않습니다. 6절에 보면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라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사람의 생활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에 지배를 받을 때에 취미가 달라지고, 사모하는 대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의 보람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만 좋아질 수 있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린도전서 6:19,20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고, 또 성령이 우리 가운데 모든 에너지가 되어질 뿐 아니라 성령이 우리의 지혜도 되어주시고, 우리의 모든 일에 보혜사로서 보호해주시고 위로해주시며 인도해주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세계보다 영적인 세계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영성은 첫째, 사랑의 영성입니다. 성령님을 모신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성 중에 가장 큰 영성은 사랑의 영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예수님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말씀이 거하시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고,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셔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제일 큰 은사가 사랑의 은사이고, 반드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영성을 소유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용서가 있게 되고,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 자신도 이 사랑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해주시고, 인류를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이 사랑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게 하여주셨습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전쟁과 싸움, 죽음과 멸망뿐이며, 사랑이 없는 곳에는 자멸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7∼40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참 힘드는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참 쉬운데,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특히 원수를 사랑한다(마 5:44)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정말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는 것이 곧 참 그리스도인의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4∼7에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스펄젼의 좋은 사람이 되는 5대 비결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①꿈을 가져야 된다. ②영혼을 사랑해야 한다. ③중생을 체험해야 된다. ④항상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 ⑤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성품을 가져야 한다.」 이 다섯 가지 중에 \\\\\\\\\\\\\\\'영혼을 사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을 사랑하는 자에게 많은 영혼을 맡겨주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감사의 영성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합니다. 짐승도 자기 주인에게는 감사할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 감사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헤칠 수도 있고, 자신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오늘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7에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믿음 위에 서있을 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믿음 위에 서 있지 아니하면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괴롭고 어려울 때는 불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 위에 서 있는 감사가 아닙니다. 믿음 위에 서 있는 감사란 \\\\\\\\\\\\\\\'앞으로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좋은 일이 있을 줄 믿습니다.\\\\\\\\\\\\\\\'하고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가 믿음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됩니다. 미래지향적인 미래의 축복을 소망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을 줄 믿을 때 그런 감사함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요나 2:9에 보면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소리를 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목소리로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해야 됩니다.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많이 할수록 말대로 더 좋은 일이 많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말을 많이 해야 됩니다. 찬송의 소리를 높여야 됩니다. 셋째, 기쁨의 영성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 자기가 기쁠 때 남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기쁠 때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엘 프라이어는 말하기를 \\\\\\\\\\\\\\\'네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즐거워하기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이 멋있는 생활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항상 불평 속에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는 웃는 은사다\\\\\\\\\\\\\\\'라고 말했습니다.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축복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즐겁게 사는 사람,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도 찬송하면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욥기 8:21에 보면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126:2에도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주신 기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기쁨의 영성을 가지고 있으면 양약(良藥)이 되어집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또한 얼굴을 빛나게 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넷째, 인내의 영성입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통해서라도 인내의 영성을 가지게 합니다. 믿음의 시련을 겪고 나면 인내의 영성이 만들어집니다. 인내는 ①영혼을 살립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②온전케 하고 부족함이 없게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4) ③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게 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④환난과 핍박 중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살후 1:4) ⑤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게 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영성 즉 사랑의 영성, 감사의 영성, 기쁨의 영성, 인내의 영성을 소유하여 육신의 세계보다 영적인 세계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사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그발강 가에 선 에스겔/ 겔1:1/ 피종진 목사/ 2009-02-12
그발강 가에 선 에스겔 겔1:1 본문에 보면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 사로잡힌 자 중에 있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디에 서 있느냐, 어디에 앉아 있느냐,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어디를 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선택은 어마어마한 차이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선을 선택하고 악을 선택하는 차이는 축복과 저주가 좌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마귀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종착에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서야 될 곳에 서야 되고, 앉아야 될 곳에 앉는 것은 복된 인생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사람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있을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있는 자리를 하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있는 곳은 있을 곳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깨닫게 하시고 그에게 엄한 음성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겔은 왜 그발강 가에 서 있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였습니다.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1절) 민족이 포로가 되어서 잡혀가는데, 하나님이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그에게 사명을 부여해주기 위해서 그곳에 서 있게 하신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서 사는 것은 그의 생애에 최고의 아름다움이요 후회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여 주의 백성 삼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학개 2:23에 보면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택하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택하시되 예수님은 요한복음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세웠을까요?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셔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시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명이 부여되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공급해주십니다. 건강이 필요할 때는 건강을, 물질이 필요할 때는 물질을, 영력이 필요할 때는 영력을, 도울 자가 필요할 때는 도울 자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외교관으로 임명을 받고 외국에 나가 일하는 대사들이 있습니다. 대사의 임명장은 하나의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임명장과 함께 누구든지 만날 수 있는 외교관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그에게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 청교도세계대회를 하는데, 아침에 주일대사와 만나 식사를 하면서 그의 명함을 저에게 주어서 자세히 보니 \\\\\\\\\\\\\\\'대한민국 전권대사 주일(駐日)대사\\\\\\\\\\\\\\\'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권을 맡아서 일본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부여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대사의 사명이 부여될 때는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경비와 자녀교육, 신변의 보호 등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사명을 주실 때에 사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다 부여해주시고, 하나님께서 함께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가복음 16:15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했고, 또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사명이 있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사명이 없이 예배만 드리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는 신앙 성장의 속도가 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 성도들이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그 사명에서 충성을 다하는 여러분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 일을 감당하려고 노력만 해도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긍휼의 팔로 여러분을 붙잡아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제각기 맡겨주신 사명이 다 있습니다. 헌신 충성하고 그 일을 위하여 죽도록 목숨 바쳐서 충성하는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언제나 주인의식을 갖게 되고, 말소리가 달라지며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사명이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주인의식을 갖게 되면 사명이 자랑스럽고 긍지가 생깁니다. 둘째, 말씀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 3:17)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게 했습니다. 이 말씀을 증거하게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깨우쳐주게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전파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만백성 앞에 선포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그 증거하는 그 사람을 얼마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성경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5,16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전도란 죽을 사람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마귀의 결박에서 포로된 자를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죄악의 사슬에서 풀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영광의 세계로 그들을 건져주는 것입니다. 복음이 심어질 때 그 영혼이 살게 될 뿐 아니라 구원받은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많은 영혼을 살려내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평생동안 한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것처럼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영혼을 구원한 사람은 그 영혼이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에스겔에게 말씀을 담아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을 담아주셨습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가 함께 해주십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죽을 자가 살게 되고, 멸망 받을 자가 구원을 얻게 되며, 저주받을 자가 축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말씀 가운데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말씀은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은 죄악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도가 밥을 먹지 않았을 때 힘이 없듯이 말씀이 없으면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순교자의 피를 흘리게 하여 복음의 바톤을 우리 손에 들려주셨는데, 우리는 이 바톤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가며 충성할 뿐 아니라 후대에 누구에겐가 이 복음의 바톤을 안겨주어야 됩니다. 믿음의 경주자가 복음의 바톤을 넘겨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심어놓은 모든 것을 스스로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3:7에 보면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일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10:19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이러한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실천해보세요.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셋째, 능력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3절) 에스겔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그발 강가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멸하는 곳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능력을 받는데 있어야 됩니다. 운동선수가 체력을 잃으면 챔피언에서 탈락됩니다. 우리는 한번 받은 것 가지고 울겨먹으면 안됩니다. 어제보다 더 큰 능력이 오늘 있어야 됩니다. 오늘보다 더 큰 능력이 내일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불같은 시험이 점점 더 강도가 높아지게 도전해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 속에 집어넣고 불을 더 강하게 했듯이 오늘 이 세상의 악의 세력은 점점 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강하게 도전해옵니다.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종들에게도 도전해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을 갑절에서 7배로, 7배에서 70배로 날마다 더 사모하며 받을 때만이 큰 승리가 날마다 있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능력이 임합니다. 말씀을 열심히 상고해도 능력이 임합니다. 열심히 전도해도 능력이 임합니다. 찬송만 조금 더 불러도 능력이 임합니다. 어떤 분은 \\\\\\\\\\\\\\\'아멘\\\\\\\\\\\\\\\' 소리를 조금만 더 크게 해도 능력이 임한다고 하고, 어떤 분은 \\\\\\\\\\\\\\\'성령, 성령, 성령\\\\\\\\\\\\\\\'만 부르짖어도 능력이 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무진장하게 우리에게 부어주실 능력을 예비해놓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은 넓고 깊고 크고 영원해서 그 무엇으로도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러한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기도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능력을 활용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세상의 권세는 언제 아침 안개같이 바다의 물거품처럼 사라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살 때만이 참 기쁨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살 때만이 찬송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일에 여러분이 충성하면 한없는 기쁨을 주께서 부어주시고 날마다 날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을 위해서 서 있어야 됩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서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받기 위해서 서 있어야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요, 여러분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바다에 고기가 많이 있지만 베드로는 \\\\\\\\\\\\\\\'한 마리도 못 잡았나이다, 고기가 없나이다\\\\\\\\\\\\\\\'라고 주님께 말했습니다. 고기가 왜 없습니까? 바다에 수많은 고기가 있지만 자기 분깃을 차지할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한 마리도 못잡은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실패자가 따로 없습니다. 없어서 실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예비해두셨습니다. 그릇을 준비하십시오. 믿음을 준비하십시오. 기도로서 응답 받으세요.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하세요. 여러분 몫이 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무진장하게 예비되어 있습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기도와 성령/ 눅11:10-13/ 피종진 목사/ 2009-08-23
기도와 성령 눅11:10-13 사람이 바쁘게 살다가 휴가철이나 방학, 주말을 맞이해서 한국과 세계에 여러 나라의 문화권에 따라서 쉬는 시간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래서 산과 바다, 유원지로 제각기 휴양지를 찾아 떠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각자의 많은 계획을 세워 휴가를 즐깁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 중에 가장 귀하게 가져야 될 시간이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 찾아가서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를 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이 얼마나 귀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기도의 시간을 가질 때에 그 삶이 하나님 앞에 새롭게 변화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과의 대화보다도, 어떤 좋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도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질수록 그의 영성과 인격이 역력하게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혼자 아무리 애쓰고 몸부림치며 발버둥치던 모든 것이 무의미했던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드리는 한마디 기도로 인하여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기도 속에 나타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구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하는 자 곧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와 ‘성령’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고, 성령이 함께 하는 자는 항상 기도하는 자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 성령이 역사한 일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더 큰 기도의 은사와 간구의 영이 임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기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기도한 사람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사도들에게 기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모인 무리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직 기도에 힘썼습니다(행 1:14). 그 결과 오순절 날에 그들에게 성령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강하게 임하여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행 2:1~4). 우리나라도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을 비롯해서 큰 성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성회가 새벽 2시까지 이어졌습니다. 새벽 2시에 성회가 끝나고 통성기도가 시작되면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했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은 한국교회의 초기에 내려진 너무도 아름다운 부흥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7 한국기독교성령100주년대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4:31에 보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빌기를 다했다’라는 말은 기도에 힘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도 이와 같이 기도에 힘쓸 때에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가 됩니다. 모여서 의논만 하다보면 서로 감정의 대립과 다툼만 있을 뿐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없는 것도 있게 해주시고, 안 되는 것도 되게 해주시며, 홍해도 갈라지게 해주시고, 요단강도 갈라지게 해주시며, 여리고성도 무너지게 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선교사로도 실패했고, 교수로도 실패했으며, 목회자로도 실패했고 올드스케이트에서 개최된 부흥회에 참석하여 뒷전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기도하다가 1738년 5월 24일 밤 9시 15분에 성령의 불을 받고 능력을 받아 ‘전 세계를 나의 교구로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전 영국을 영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감리교 교단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던컨 제임스도 하루에 13시간씩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던 찰스 피니도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산속에 들어가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체험하고 대부흥사가 되어 미국 전역에 외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장로, 기도하는 안수집사, 기도하는 권사, 기도하는 교사, 기도하는 찬양대,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사랑하고, 기도하는 자를 들어 쓰십니다.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하나님께 성령의 능력을 달라고 부르짖고 금식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중단하면 안됩니다. 교회도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막 11:17)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성령 충만을 받게 됩니다. 둘째, 기도는 성령의 능력을 폭발시킵니다. 성령의 능력은 기도할 때 폭발적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도 기도할 때 강하게 나타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해서 그 다음 날 기도를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도해야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7에 보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항상 기도할 때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합니다. 항상 기도할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숨질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의 폭발적인 역사를 체험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을 때 ‘주여! 나는 평생 피곤하다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매일 매일 생활속에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끊임없는 기도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숨지는 날까지 기도하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기도할 때 지혜가 옵니다. 기도할 때 은사가 임하고, 기도할 때 축복이 임하며, 기도할 때 주의 사랑이 임합니다. 기도 이전의 모습과 기도 이후의 모습은 180도로 다릅니다. 사도행전 4:31에 보면 기도 이후에 모인 곳이 진동했고,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무엘상 12:23에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말고, 끊임없이 계속해서 기도하는 용사가 되어 성령의 폭발적인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찌할 바를 몰라도 기도하면 성령께서 매일 매순간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평생토록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내일 일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내가 계획했던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해주시지만, 기도 안하면 내가 완벽하게 계획한 것 같아도 그것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아무 걱정 안해도 하나님께서 다 예비해놓으시고 역사해주십니다. 사도행전 16:4,5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지키고 난 이후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에서 ‘작정한 규례’란 기도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나면 성령께서 우리의 혀를 주장해주시고,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주장해주십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저들이 말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는 말은 남을 축복하는 말이요, 평안하게 하는 말이요, 남의 인격을 존중히 여기는 말이요, 남은 유익하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로 가려고 했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마게도니아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기도처를 찾아 강가로 가다가 기도하는 여인들 중에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 빌립보성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감옥에 갇혀 간수를 회개시켜 예수 믿게 하여 빌립보교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곳에는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기도는 성령이 충만한 일꾼으로 세워줍니다. 무능한 사람도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한 일꾼이 되게 해주십니다. 사사기 3:9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어 기도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을 한 구원자로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옷니엘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성령이 충만한 일꾼으로 세워줍니다. 오늘날도 성령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하고, 또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능력의 사람이 되어집니다. 여러분도 능력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리빙스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때에 ‘내게 사명이 있는 한,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휴가철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폭발적인 능력의 역사를 체험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된 말을 하고, 성령이 충만한 일꾼으로 세움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기독교의 본질/ 요2:1-11/ 피종진 목사/ 1999-03-21
기독교의 본질 요2:1-11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의 사역 기간 중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사건입 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에서 물 로 포도주를 만드심으로써 혼인 잔 치 참석자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이 표적은 신 랑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신부된 성도들이 장차 천국 혼인 잔치에서 누리게 될 구속의 은혜의 풍성함과 기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에서 기독교의 본질 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 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 누고자 합니다. 첫째,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 다. 잔칫집은 서로 만나는 곳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이 마 냥 행복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복 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미혹 에 의해서 죄를 범하자 하나님과 점 점 멀어지게 되었고, 마침내는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게 되었습니다. 멀 리했던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 안에서 하 나되어 서로 사랑과 의와 화평으로 만나고, 서로 감사와 축복으로 만나 는 곳이 바로 우리 기독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 을 가까이 만날 수 있습니다(신 4:7). 신명기 4:29에도 마음을 다하 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난 다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 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어졌을 때 귀빈들과 모든 축하객들의 상에 올 라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용도로 변 화되고, 위치가 변화되고, 가치가 달 라졌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 들은 멸망받을 자들이었지만 하나님 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된 것입니다 (요 1:12,13). 기독교는 악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교만한 사람을 겸손 한 사람으로, 근심 걱정에 사로잡힌 자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사람 으로, 미워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마 음으로, 게으른 사람을 충성된 사람 으로,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던 사 람을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종교입니다. 셋째, 기독교는 응답의 종교입니 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모자란 것을 알고 예수의 어머니가 그 사실을 예 수님께 고했을 때 물이 변하여 포도 주가 되는 이적으로 응답을 받았습 니다. 여러분의 모자란 것을 하나님 께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레미 야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 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에게 필 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응 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 나님 앞에 늘 부족한 상태로 사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태 복음 7:7에 보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116:2에 보면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 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한 것을 세밀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넷째,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 다.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었다는 것 은 곧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①처음 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축복입니 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 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 주를 두었도다 하니라.\\\\\\\"(10절) ②즐 거움이 넘치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통하여 감사와 즐거움이 있게 된 것은 곧 축복입니다. ③주 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는 축복입니 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 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 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 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요, 변화의 종교이며, 응 답의 종교요, 축복의 종교입니다.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 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새 롭게 변화되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 받으며,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 고, 즐거움이 넘치며, 주의 영광으로 충만해주지는 축복이 함께 하는 성 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깨어 있으라/ 마24:42-46/ 피종진 목사/ 2010-02-12
깨어 있으라 마24:42-46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사람은 주변의 사리 판단과 전개되는 모든 일들을 질서 있게 처리하면서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신앙이 깨어 있지 않은 상태라면 자기에게 어떤 불행이 오는지, 또 어떤 사탄 마귀가 시험하는지, 천군 천사가 곁에서 축복해주고 보호해주고 있는지, 또 자기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그것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11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할까요? 첫째,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순간은 깨어있는 순간입니다. 만일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의 잠을 자고 있는 순간입니다. 마치 마취를 하면 아무 감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내게서 어떠한 보화가 상실되는지도 모릅니다. 황금같은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나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는 항상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4:17에 보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극심한 환난이 임했을 때 도망가기 위해서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갈 생각보다도 지붕 위에 있으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도를 주로 많이 하는 곳은 산입니다. 산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은 바다에서 합니다. 또 바다도 없는 곳에 사는 사람은 지붕 위에 올라가서 합니다. 기도하는 순간을 중단하지 말고, 기도하는 처소를 떠나지 말고, 기도하는 일을 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해야 할 시간에 영육간에 깊이 잠이 들면 주님의 제자들처럼 시험에 빠져 주님을 부인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도할 때에 그 기도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역사해주고 축복해주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순간은 우리의 인성, 육성, 자신의 모든 경험과 여건, 환경, 조건도 다 포기하는 순간입니다. 기도할 때는 오직 하나님만 역사하는 순간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명에 충성을 다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신 사명에 대해서 반드시 청산할 때를 약속했습니다. 마태복음 25:14~30에 보면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 등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충성한 사람에게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고 칭찬해주셨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26,30)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자기 일에 충성을 다하고, 자기 사명에 충성하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목표를 세운대로 이루어졌으면 주님의 뜻이라고 하고, 자기의 목적이 안 이루어졌을 땐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렇게 판단하면 안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주님이 생각하시는대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이룰 때 이것이 바로 충성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하는대로 반드시 생명의 면류관 상을 주시고, 더 많은 것을 맡겨주시는 축복(마 25:21)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12:11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했고, 베드로전서 4:7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주신 사명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묻어두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활용할 줄 알아야 됩니다. 누가복음 9:62에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 26:41) 마귀는 시험하는 자(마 4:3)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할 때 사탄 마귀가 물러갑니다. 베드로전서 5:8,9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에베소서 4:27에 보면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조금만 틈을 주면 홍수처럼 밀려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시험을 주는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게 하기 위해서 항상 깨어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는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넷째,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1~13에 보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불과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반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을 준비했지만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더디 오는 신랑을 맞이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져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문이 닫힘으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6:15에 보면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땅에 재림의 주가 오실 때도 깨어 있는 자가 맞이할 수 있지만, 평소에도 깨어 있는 자가 늘 주님과 동행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이 때에 무관심과 나태, 영적 깊은 잠에 빠져서 그 날을 갑작스럽게 당황해하며 맞이하지 말고,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고, 사명에 충성하며,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난국을 극복한 히스기야의 기도/ 왕하19:1-4, 약5:13-18/ 피종진 목사/ 제36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설교문/ 2004-05-19(수) 오전 7:30/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랜드볼륨/ 2004-05-19
난국을 극복한 히스기야의 기도 왕하19:1-4, 약5:13-18 오늘 우리는 민족과 세계 역사 앞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받들어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하여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번 제36회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에 임하신 국가와 교계 지도자 여러분과 각국 외교 사절단 그리고 이곳에 임하신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본문에 등장되는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 남북조시대의 남 유다 제12대 왕으로서 이스라엘 역대 왕 중 가장 뛰어난 지도자였습니다. 종교, 교육, 정치, 경제, 군사적인 면에서 그의 탁월한 지도력은 그로 하여금 명성을 얻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충성된 히스기야 왕에게도 어려움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근동 지방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로 등장한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이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은 국내 정세는 극도로 악화되었고, 위기에 처하였을 때 그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고하기를 “오늘은 곤란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가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왕하 19:3)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 Georg Friedrich Wilhelm)은 말하기를 ‘이 시대는 어두운 세대요, 텅 비어 있는 세대’라고 하였습니다. 퇴폐적이고 폭력적이며 극단적 허무주의가 태동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지구촌 곳곳마다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거짓이 진리로 위장되고 기본적인 양심조차도 상실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 깊은 밑바닥 속에는 원한과 복수심, 노여움과 분노, 불평과 불만들이 잡초처럼 우거져가고 있고, 분배 불균형의 피해의식, 정치 분열의 불신감, 노동 대가의 불이익으로 인한 생존의 위협 등으로 이 지구촌은 끊임없는 소용돌이 속에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에게는 결코 절망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 속담에 흐르는 물에서 돌을 치워버리면 그 시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그 수많은 역경과 고난의 돌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위대한 해결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는 일입니다. 종교개혁자 죤 낙스(Knox, John)는 「주여, 스코틀랜드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 이 기도는 사단 병력보다 더 위대한 역사가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 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고 한 이 말은 바로 기도한 자의 체험적인 간증이며,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아니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기도가 살아 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왕을 위하여 기도하라 하신 말씀대로 온 국민이 대통령과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대통령 내외분께서도 절대 전능자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대통령이 되심으로 국정을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 링컨보다 더 위대하신 지도력으로 재임기간 이 나라를 치리하시어 세계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하신 대통령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 받들어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드린 기도의 자세와 내용 히스기야 왕은 즉시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하게 된 것은 땅의 방법으로는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의 무능을 깨닫는 것만큼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Christ first, our country next!” 이를 건국이념으로 출발하여 가장 짧은 기간 안에 세계 초강대국이 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와싱톤(George Washington)은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기도를 매일 드렸습니다. ∘국민을 지켜 주옵소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정부에 대한 순종의 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국민 모두가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정의를 행하며 주님의 사랑과 평화 앞에 행복해지게 하옵소서. 아멘. 이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손길은 그와 온 국민에게 그대로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이 기도의 약속은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의 흐름 속에 대하드라마와 같은 격동의 세월들이 수없이 스쳐갔지만 이처럼 건재(健在)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하나님의 종들과 모두의 기도 소리가 이 땅에 메아리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죄를 자복(自服)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인간의 비극은 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비극입니다. 죄란 히브리어의 ‘하말티아’라는 말로서 ‘과녁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죄는 양심을 마비시키며 의의 길을 굽게 합니다. 「사람이 보는데서 악을 행하면 사람이 벌을 내리고, 사람이 없는데서 악을 행하면 하늘이 벌을 내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의 죄가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 5:25)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겸손하게 무릎 꿇고 회개하는 민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슈-브’라는 말로서 ‘뉘우치고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참된 회개의 기도가 있는 곳에 긍휼과 용서를 베풀어주시며 위대한 승리를 안겨 주시게 됩니다. 히기스야 왕은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회개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장로들에게도 굵은 베옷을 입혔습니다(왕하 19:1~3). 이는 자신과 민족의 죄악을 함께 회개하며 애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돔 고모라는 회개가 없었음으로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받았으나, 니느웨성은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받았습니다. 회개는 결코 수치가 아닙니다. 아름답고 고귀한 인격입니다. 세계 경제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이스라엘 민족의 우수성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자세’라고 합니다. 죄는 부끄러워하여도 회개는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뉘우칠 줄 아는 사람은 큰 발전을 가져올 사람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의 서시 한구절이 생각납니다. 옛날 우리나라 선비들의 머리에 쓴 관모(官帽) 양쪽에 매미 날개를 달고 근무한 것을 보게 됩니다. 매미는 7년은 지하에서 살고, 1년은 지상에서 사는데 깨끗한 이슬만 먹고 산다고 합니다. 즉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줍니다. 히스기야 왕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산헤립의 수많은 위협과 협박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였으며,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도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심히 통곡하고 기도하였을 때(왕하 20:2~3),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시사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3일 만에 여호와께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15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리라」(왕하 20:5~6)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은 4300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 970번이나 외세의 침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였거나 약탈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가 막힌 고난이 닥쳐왔을 때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여 승리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종교성이 뛰어나고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이웃과 갈등이 생겼다가도 자고 나면 잊어버리고 인사할 줄 아는 따스한 민족입니다. 함께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해내는 민족입니다. 이제 우리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갈등과 대립에서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가야 하겠으며, 생산 없는 논쟁도 청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진 자는 없는 자를 위하여 베푸는 온정도 있어져야 하겠습니다. “공용이 너무 크면 퇴화하고 만다.”는 말을 교훈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지난 4월 22일 북한의 용천역 폭발 사고 소식을 듣고 온 국민이 함께 마음을 아파하며 앞 다투어 돕고 있는 일들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이념을 초월한 민족애와 복음적인 아름다운 행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독의 성 니콜라이 교회는 1982년부터 동․서독으로 분단된 독일 통일을 위해 8년 동안 어려웠던 동독을 도우며 기도하는 중 하나님의 역사로 1990년 10월 통일의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도 민족애와 하나님의 역사 아래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특히 우리는 이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건국 이래 가장 깨끗한 선거를 치르게 되어 299명이 당선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저는 성직자로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제 전 국회의원이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국회에 등원하게 되는 날 이 땅 위에 놀라우신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게 되며, 그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해주십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남북전쟁을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당신의 도움 없이는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인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약하고 미천하오며 죄가 많습니다. 주님, 우리나라를 구하여 주옵소서. 이 나라를 일으키시고 붙들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만을 의지할 뿐입니다.」라고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고, 드디어 가련한 노예를 해방시켜 주었으며, 인류 역사의 큰 수레바퀴를 돌린 승리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지혜의 원천입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응답입니다. 기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모두가 불안하다고 하는 정치,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경제, 모두가 염려하는 사회 풍조, 이 모두는 기도만이 해결의 길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이 다함께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죄를 자복하며 기도하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하여 민족이 번영하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21:15-17/ 피종진 목사/ 2000-05-07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요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 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 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 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 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 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 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 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 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 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 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 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 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우리 육신의 눈이 세월의 흐름 과 함께 어두워져가고 있습니다. 육 신의 눈이 어두워지는 것이 참 불편 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늘 활자 를 읽어야되고 책을 봐야하는 제게 는 참 고통스럽습니다. 대개 비행기 타고 태평양을 건널 때는 서너 권의 책을 독파합니다. 그런데 시력이 약 해지니까 안경을 쓰고 책을 보는 것 이 쉽게 피로가 와서 고통스러울 때 가 많아졌습니다. 이처럼 고통스럽 고 힘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 편으로는 시력이 약해지는 것이 복 됨을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며 칠 전에 어느 선교단체에서 인터뷰 하러 와서 비디오 촬영을 하느라 저 를 찍어대는데 TV의 큰 화면으로 클로즈업해서 제 얼굴을 보게 되었 습니다. 큰 화면을 통해서 보니 저 는 제가 얼굴이 시커먼 줄만 알았지 그렇게 얼룩이 많은 사나이인지 몰 랐습니다. 제 시력이 약해서 그 얼 룩을 잘 못보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살았나 싶어 좋은 시력으로 얼굴을 봤다가는 평 생 열등감을 느끼며 살 뻔했습니다. 적당하게 눈이 나쁘니까 잘 지나가 는 것 같습니다. 40-50대 아줌마들이 자기들끼 리 모여서 한참 떠들며 서로 이야기 하기를 \\\\\\\\\\\\\\\"너는 어쩌면 그렇게 20대 같니?\\\\\\\\\\\\\\\"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등학 고 다니는 딸이 엄마 친구들이 모두 간 다음에 하는 말이 \\\\\\\\\\\\\\\"엄마 친구들 은 옛날에도 그렇게 늙었었어?\\\\\\\\\\\\\\\" 그 러더라나요. 적당하게 우리의 시력 이 소모되어 가면서 주름살을 보지 못하고 예쁜 모습을 가슴에 담고 살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 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도, 남편 의 얼굴도 세월의 흔적 속에 늙어 가는데 눈도 적당하게 같이 따라 늙 어가서 우리로 하여금 추한 것도 추 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축복을 하나 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더 큰 축복이 있습 니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때 인 생의 진정한 모습이 더 확실하게 보 이는 것입니다. 장렬한 태양 빛 아 래 있다가 방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시 간이 지나면 그 어둠에 눈이 익숙해 지면서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처럼 육신의 눈이 어두워지면 처음 에 보이지 않던 내 인생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믿음의 각 인생들에게 저마다 큰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깨 닫습니다. 저 집에는 아픔이 없고, 저 인생에게는 고통이 없을 것 같은 데, 인생의 눈이 열려서 바라보면 부자는 부자대로 고통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 한국에서 가장 곤혹스러 운 사람이 있다면 정주영씨일 것입 니다. 이제까지 평생 이루어놓은 사 업이 대우처럼 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우리가 갖는 고통의 강도 보 다 10배, 100배 더 클 것입니다. 그 런가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대로 고통을 받습니다. 번민이 있습니다. 높으면 높은 대로 고통이 있고 낮으면 낮은 대로 고통이 있습 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욥기 5장 7절에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불티가 반드시 위로 나는 것처럼 모 든 인생, 모든 삶에 고난이 있는 것 을 보게됩니다. 그래서 어떤 인생도 자고할 수 없고 어떤 인생도 멸시받 을 수 없도록 고난의 현장을 열어서 보여주십니다. 또 인생의 눈이 밝아지면 인간 이 얼마나 약한가를 보게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한가도 보여집니 다. 내 실수와 연약을 볼 때 사람은 충격을 받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처 럼 시커먼 악이 내 인생을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내가 한없 이 유약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 직면 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모든 것 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무서 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눈이 밝아지면 무서운 것 천 지입니다. 불가능한 것 천지입니다. 안 되는 것이 얼마나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무서 운 악 속에 휘말려 사는 존재인가를 보게 됩니다. 인생의 타락의 깊이까 지 보여줍니다. 이 사실을 발견했던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고백했 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이로다. 이 죄악의 몸에서 누가 나 를 건져내랴?\\\\\\\\\\\\\\\"(롬 7:2 4)인생의 눈이 밝아져서 내 연약과 내 부족과 내 타락을 볼 때 사탄은 옆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야, 너 같은 것을 거룩 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해줄 것 같으 냐? 너는 쓸모 없는 인생이야. 네 본질을 보아라. 지금까지 살았던 네 삶의 모든 모습을 보아라. 너도 만 족하지 않는 인생, 네가 무슨 힘으 로 인생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너 야말로 가치 없는 인생이니까 물결 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네 충동 대로 인생을 살아라\\\\\\\\\\\\\\\"고 우리에게 속 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랬던 사람 중에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베 드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주께서 가르치 신 가르침을 가장 먼저 깨달았는지 도 모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할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 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내가 믿습 니다.\\\\\\\\\\\\\\\" 가장 먼저 신앙고백을 합니 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서 떡을 주실 때 구름처럼 모였다가 흩어집 니다. 예수께서 진리를 말씀하자 사 람들이 예수님을 외면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겠느냐?\\\\\\\\\\\\\\\"고 묻습니 다. 이 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 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그는 항상 주님을 향해서 정확한 신 앙고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 다. 주께서 어느 날 말합니다. \\\\\\\\\\\\\\\"내가 로마 관원들에게 붙잡혀 서 심한 고생을 받고 무지무지한 형 틀에서 인생 최후를 맞이할 것이 다.\\\\\\\\\\\\\\\" 처음에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했 습니다. 주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그 때, 너희들이 나를 다 떠나 흩어진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여,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럴지 라도 나는 결단코 그러하지 않을 것 입니다. 주님 곁에 있겠습니다.\\\\\\\\\\\\\\\" 선 언했습니다. 무서운 밤이었습니다. 몇 명의 병졸 들이 예수님을 에워싸자 그는 자기 가 한 말이 있었기 때문에 허리에 칼을 뽑아 내리쳤습니다. 그랬더니 말고라는 한 하인의 귀가 잘라졌습 니다. 주께서 그 귀를 붙이면서 말씀하시 기를 \\\\\\\\\\\\\\\"칼을 쓴 자는 칼로 망한다.\\\\\\\\\\\\\\\" 칼을 쓰지 못하게 하자 그는 계속 몰려드는 무서운 군대의 세력 앞에 도망을 갑니다. 도망가다 보니까 자 기가 예수님께 약속했던 말씀이 생 각났습니다. 가까이 가면 죽을 것 같아서 멀찌감치 달아납니다. 그런 데 멀찌감치 서서 주님 모습을 보고 있는 그에게 한 계집종이 말합니다. \\\\\\\\\\\\\\\"당신 저 나사렛당과 같은 족속 아니냐? 내가 저번에 당신 보았다\\\\\\\\\\\\\\\" 그랬더니 \\\\\\\\\\\\\\\"맹세코 그 때 내가 거기 없었 다.\\\\\\\\\\\\\\\"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합니다. \\\\\\\\\\\\\\\"아니,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모르지만 당신이 분명하다.\\\\\\\\\\\\\\\" 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 며 맹세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 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절망 하고 있을 그 때였습니다. 사건이 있었던 이틀 후, 막달라 마리아와 한 여인이 쫓아와서 예수님 무덤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그는 아마 제일 먼저 잽싸게 뛰어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 더 빠른 젊은 요한이 앞섭니다. 먼저 도착한 요한이 열려 있는 무덤 주위를 빙빙 돌고 두려워 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다짜고짜 그 안에 들어가서 살핍니다. 예수 뉘었 던 머리맡에 세마포가 잘 개켜서 놓 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보이 지 않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왔습 니다. 조금 있다가 막달라 마리아가 와서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 습니다. 자기들이 모여있는 곳에 주 님께서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 수님은 그들에게 평강을 선언했습니 다. 그 축복을 누렸는데, 제자 중 도 마가 \\\\\\\\\\\\\\\"다른 사람은 다 믿어도 내 눈 으로 확인해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 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 때 주 께서 도마 앞에서 나타나서 말씀하 시기를 \\\\\\\\\\\\\\\"네 손으로 내 못자국을 확 인해 보아라. 내 손을 만져보고 내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자 도마는 \\\\\\\\\\\\\\\"나의 주 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 니다. 예수 부활하심을 그들은 못 믿었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귀한 사 랑으로 불러주시고 약속대로 십자가 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이미 들었지만 그 주님의 부활 의 권능과 자신은 상관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나는 주님을 배반한 사람 이다. 내가 곤란에 처하니까 주님을 맹세하면서까지 부인했던 사람이다. 아니 예수님을 저주하지 않았던가?\\\\\\\\\\\\\\\' 베드로는 실패의 골짜기에서 얼 굴을 들지 못한 채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갑갑해서 다시 고기를 잡으 러 가겠다며 나갑니다. 다른 제자들 도 같이 따라가 함께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 았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새벽녘이 되어서 물고기를 잡는 것 을 중단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 때 해변가에서 한 사람의 소리가 우렁 차게 들립니다. \\\\\\\\\\\\\\\"너희들, 잡은 고기 가 있느냐?\\\\\\\\\\\\\\\" 그들은 \\\\\\\\\\\\\\\"없나이다.\\\\\\\\\\\\\\\" 그 때 그 분이 말씀하십니다. \\\\\\\\\\\\\\\"오른쪽 으로 그물을 내려라.\\\\\\\\\\\\\\\" 그들은 조건 반사적으로 그물을 내렸습니다. 내 려서 끌어당기기 시작하자 고기가 잡힙니다. 정신없이 그것을 들어올 리던 예수의 제자 요한이 외칩니다. \\\\\\\\\\\\\\\"주님이시다.\\\\\\\\\\\\\\\" 3년 전에 고기잡이 하다 처음 만났던 그 주님입니다. 이 말을 듣자 베드로는 그대로 뛰어 나갑니다. 그는 주님 앞으로 나갔습 니다. 육지에 가니까 예수께서 숯불 을 피워놓고 떡을 굽고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너라.\\\\\\\\\\\\\\\" 그리고 구 워주십니다. 베드로는 할 말이 없었 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와서 \\\\\\\\\\\\\\\"아침 을 같이 먹자.\\\\\\\\\\\\\\\"고 하십니다. 피곤하 고 지친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이 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 님을 찾아가는 것 아닙니다. 주께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를 찾아가신 주님은 실패와 낙심과 좌 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 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시는 주님입니다. 모두 식사를 마친 다음, \\\\\\\\\\\\\\\"요한의 아들 시몬아, 이 사람들 보 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묻 습니다. 우리 주님의 질문입니다. \\\\\\\\\\\\\\\"나를 믿느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 다. 만약 \\\\\\\\\\\\\\\"믿음이 있느냐?\\\\\\\\\\\\\\\"고 물었 더라면 그는 대답할 수가 없었을 것 입니다. \\\\\\\\\\\\\\\"내 은혜를 기억하느냐?\\\\\\\\\\\\\\\"고 물었으면 얼굴을 들 수 없었을 것입 니다. \\\\\\\\\\\\\\\"내가 부활한 다음, 건강해졌 느냐? 거룩해졌느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떨어진 다음에도 숨을 쉬고 있는 그 사랑을 주께서 불러내십니다. \\\\\\\\\\\\\\\"요한 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 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세 번을 반복해서 질문하십니다. 이 반복의 질문은 그가 세 번 부인했던 그 부 인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저주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 속에 가 까이 찾아가신 주님입니다. 우리 주 님은 육체적으로만 가까운 것이 아 니라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찾아오 십니다. 내 실패의 골짜기, 다른 사 람이 이곳에 오면 창피해서 보여드 릴 수 없는 곳까지 찾아오셔서 내 마음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십 니다. 그 주님께서는 \\\\\\\\\\\\\\\"네가 나를 사 랑하느냐?\\\\\\\\\\\\\\\"고 묻습니다. 주께서 나와 정기적인 예배를 통 해서만 기계적으로 만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 남서울은헤교회 교인들은 천국 가면 프리미엄이 조 금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당 도 아닌 복잡한 학교에서, 소리는 마주쳐 울리는 이 장소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차 세울 때가 없 어서 대왕중학교나 삼성병원에서 차 를 세우고 10분 동안 올라오는 수고 를 더 해야되니까 천국가면 그 프리 미엄을 상당히 누릴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를 해도 기계적으로 주님과 만나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 습니다. \\\\\\\\\\\\\\\"네가 기계적으로 나를 만 나러 왔느냐?\\\\\\\\\\\\\\\"고 묻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습니 다. \\\\\\\\\\\\\\\"네가 멋진 프로그램을 가지고 열심히 헌신했느냐?\\\\\\\\\\\\\\\"고 묻고 있지 않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했느냐?\\\\\\\\\\\\\\\" 고 묻고 계십니다. \\\\\\\\\\\\\\\"네가 엄청난 사 업을 벌여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할 의지를 가졌느냐?\\\\\\\\\\\\\\\"고 묻지 않고, \\\\\\\\\\\\\\\"네가 나를 사랑했느냐?\\\\\\\\\\\\\\\"고 묻고 있 습니다. 이 말은 \\\\\\\\\\\\\\\"네가 참으로 나와 바른 관계를 원하는가?\\\\\\\\\\\\\\\"를 묻는 말 씀입니다. 인격과 인격의 최대의 관 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 보다 더 깊은 관계는 없습니다. 사랑의 관계, 나를 만나기를 원하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는 대답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는 서두 에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라고 했 습니다.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심으로 베드로가 근심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근 심했던지 즐거워했던지 간에 그 대 답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입니다. 사랑하 는 성도 여러분, 과거에 베드로는 자신만만했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 람 다 버릴지라도 나는 안 버립니 다.\\\\\\\\\\\\\\\" \\\\\\\\\\\\\\\'나는\\\\\\\\\\\\\\\' 입니다. \\\\\\\\\\\\\\\"주는 그리스도 시요.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내가\\\\\\\\\\\\\\\' 믿는다 고 합니다. 나 중심이었던 그 생애 가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바뀌었습 니까? 진정한 바른 삶은 주인이 바 뀐 삶입니다. 항상 나였습니다. 내 성공, 내 열심, 내 능력, 내 지혜, 과 거에 베드로는 \\\\\\\\\\\\\\\"내가 주님 사랑한 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 께서 모든 것을 아심으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어가 바뀌었습니다. 진정한 그리 스도인의 삶은 주어가 바뀐 삶입니 다. 그 전에는 나 혼자였습니다. 고 통 당해도 나 혼자였고 염려해도 나 혼자였고 좌절해도 나 혼자였습니 다. 이제는 아닙니다. \\\\\\\\\\\\\\\'주께서\\\\\\\\\\\\\\\' 입니 다. 내 좌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십 니다. 고통의 심연에 몸부림치고 있 던 그 때 주께서 함께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에 \\\\\\\\\\\\\\\'주께서\\\\\\\\\\\\\\\'로 주어가 바뀌지 않은 부분이 어디인가를 살펴보십시 오. 그리고 바꾸십시오. \\\\\\\\\\\\\\\'주께서\\\\\\\\\\\\\\\'로 바꾸었더니 내 깊은 슬픔이 나 혼자 당하는 슬픔이 아니라 주께서 함께 하시는 슬픔으로 바뀌었습니다. 내 가 고통 당하고 있을 때, 나 혼자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주께서 함께 당하시는 고통인줄 믿으시기 바랍니 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 답했습니다. 이 때 주께서 명령하십 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세 번 말씀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네가 만약 나를 중심으로 사랑한다 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삶으로 증거하라고 하지 않 습니다. 멋진 현란한 프로그램으로 주님께 나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증거를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가 그런 뜻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님, 우리 주일학교 교사들이 그렇게 해 야됩니다. 어린양을 믿음으로 잘 세 워야 됩니다. 그렇지만 목사님, 그거 야 사도들에게 한 말이고 목사들에 게 주신 말이지 어떻게 평신도들인 우리가 사랑을 다른 사람을 보살피 고 돕는데 써야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우리의 가장 첫 번째 관심은 주님이 됩니 다. 주님과 인격적인 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사랑이 내 속에서 꽃필 때는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사 랑한다고 하면서 내 이웃을 사랑하 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성 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 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자들은 목장 의 믿음의 식구들을 섬겨야 됩니다. 조장들은 목자들을 섬겨야 됩니다. 조장들은 목사들이 섬겨야 됩니다. 그것이 다입니까? 그래서 나는 섬길 사람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린양이 있습니다. 누 구입니까? 우리의 자녀입니다. 주께 서 말씀하십니다. \\\\\\\\\\\\\\\" 아비들아, 네 자 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주의 교양 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를 양육 하고 키울 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아비들에게 말합니다. 특별히 어린이주일을 맞이해서 모든 아빠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자녀 교육은 남자에게는 책임 없고 아내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십 니다. \\\\\\\\\\\\\\\"아비들아, 아비들아!\\\\\\\\\\\\\\\"입니다. 아이들이 바로 자라지 못하면 부모 를 향하여 노여움이 있을 수 있습니 다. 그 노여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 한 비결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아빠 들은 주의 교양과 훈계를 알아야 됩 니다. 그것 없이 자녀들을 바로 키 울 수 없습니다. 그것 뿐 아닙니다. \\\\\\\\\\\\\\\"목사님 어린 양은 알겠는데 내 양을 치라고 했는 데, 다 큰 양 아닙니까?\\\\\\\\\\\\\\\" 아닙니다. 모든 남편들에게 에베소서 5장 25절 은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들아 아 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아내를 사랑하라고 말하면서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 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 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 라\\\\\\\\\\\\\\\"고 하십니다. 주께서 교회의 많 은 흠과 티를 없애고 모든 죽음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해서 우리 하나 님 앞에 드리게 하는 것처럼 모든 남편은 아내의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게 하여 영광스러운 그 날에 주님 앞에 드리는 새로운 축복을 누리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반드시 서는 날 있습니다. 그 때 남편들에게는 이런 영광이 있습 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짝 지어 주신 당신의 딸, 이처럼 영광스럽게 주님의 날에 드립니다.\\\\\\\\\\\\\\\" 그 영광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남 편들에게 옆에 주신 사랑하는 아내 를 영적으로 잘 치고 먹여야될 명령 을 주시면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제 남편은 교회 다니 지 않는데요. 신앙과 상관이 없는데 요.\\\\\\\\\\\\\\\" 면제되었으면 좋겠는데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3 장 1절~6절까지입니다. \\\\\\\\\\\\\\\"아내 된 자 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 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 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 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 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 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 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 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 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여기 놀라운 약속 을 해주고 있습니다.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 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 려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인생을 단 장하되 겉모습으로만 끝내지 말고 숨은 사랑으로 온유하고 안정한 심 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단장하라 고 하십니다. 늘 선행이 삶 속에 풍 성히 임해서 남편이 영광스러운 구 원에 임할 수 있도록 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은 부모로서 자식을 양육해야됩니 다. 영적인 양육을 해야됩니다. 우리 는 남편으로서 아내를 영적으로 잘 인도해주어야 합니다. 아내로서 남 편을 잘 섬겨주어야 됩니다. 그러면 서 우리의 시선을 떼지 말아야할 곳 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입니 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의 시선 앞에서 우리의 눈이 떨어지 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신다는 고백이 내 심령에 마르지 않는 한, 주께서는 역사하실 줄로 믿습니다. 내 자녀를 영적으로 키우 되 내 야망의 목표를 따라 키우지 않습니다. 내 자식이 아닙니다. 주님 의 어린양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십 니다. \\\\\\\\\\\\\\\"자식은 여호와께서 네게 주 신 기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정기 간 맡아서 섬겨주고 인도해주고 먹 여 주어야될 기업이라고 말했습니 다. 이것은 고단한 일입니다. 아내의 모습 보는 것이 어떤 때는 지겨울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남편 모습이 싫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우 리가 주님 앞에 서야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그 시선 앞에 섰을 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는 이 고백만 있으면 다시 사랑이 충전이 되어서 내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과 자녀를 다시 사랑으로 섬길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생겨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 가까이 있 는 사람을 사랑하는데서 부터 시작 됩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그 비밀을 알았던 헨리 나우웬 은 예일대학 교수직으로 있다가 어 느 날 정신지체를 가진 몇 아이들을 보고 \\\\\\\\\\\\\\\'내가 교수시절에 가르쳤던 그 멋진 이야기가 이 고통받는 장애인 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회의를 갖고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 아이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로 들어 갔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내가 주님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신다\\\\\\\\\\\\\\\"는 고 백과 함께 나아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 니까? 창피하고 부끄러워도 그 분 앞에 나아가십시오. 내게 사랑을 물 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분입니다. 내가 아 직 죄인되었을 때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사랑을 확증해주 신 그 분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 냐?\\\\\\\\\\\\\\\"고 묻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 간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 서 아신다는 진실된 고백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들은 주의 사랑 으로 충일되는 놀라운 감격을 경험 할 것입니다. 주님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 사랑으로 내 이웃을 향해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 다. 이 시간 특별히 가정의 달에, 피 곤하고 지치고 삶의 의미 없이 기계 적으로 살아지려는 내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께서 묻고 계십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너는 내 것이라/ 사43:1/ 피종진 목사/ 2009-08-12
너는 내 것이라 사43:1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도 보시지만 우리 심령을 살펴주십니다. 사람은 앞의 분이, 혹은 뒤엣 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본문에 보면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사람이 누구의 소유가 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분과 행불행이 좌우됩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의 생각 안에 함께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눈동자같이 보호해주시고(신 32:10),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시겠다(사 41:10)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구속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절) 여기에 보면 내가 너를 구속하였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구속\\\\\\\\\\\\\\\'이란 말은 \\\\\\\\\\\\\\\'노예 시장에서 노예나 종으로 얽매여 있는 사람을 위해 그들의 주인에게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치루고 산 후, 그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애굽의 장자들을 속량물로 삼으사 바벨론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그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의 택한 성도들의 구속을 위하여 그의 독생자를 속량물로 삼으사 죄의 대가를 치루게 하시고 죄의 만신창이요, 유전죄, 자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을 받아야 될 이러한 죄인들인데 하나님께서 이런 죄에서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모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속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하나님은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쌓은 공적으로 구속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은혜로 구속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항상 복음을 전할 때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 15:10)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속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속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자랑은 십자가 밖에 없다(갈 6:14)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도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찬송 214장)라는 가사가 있지요? 우리는 늘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됩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됩니다. 그 구속의 피를 감사하고 찬송해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 피를 믿는 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당할 이 형벌과 고통을 주님이 십자가에 옮겨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남을 용서해주기를 좋아해야 됩니다. 이해해주기를 좋아해야 됩니다. 덮어주고 감싸주기를 좋아해야 됩니다. 둘째, 지명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절)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우리를 지명했습니다. 여기에서 \\\\\\\\\\\\\\\'지명했다\\\\\\\\\\\\\\\'는 말은 \\\\\\\\\\\\\\\'촛점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45:3에 보면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을 어떤 면에서는 \\\\\\\\\\\\\\\'선택\\\\\\\\\\\\\\\'이라고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한 분 한 분 선택해서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지명했다는 것은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 부르신 것을 의미합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특별한 사랑에 의해 부르심을 입은 것과 같이, 우리들도 특별한 사랑과 목적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사랑과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찬송가 가사에 보면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 못들은 체하려나\\\\\\\\\\\\\\\'(찬송 318장) 이렇게 부르시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못들은 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하고 주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은 축복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불러도 대답 없고, 하나님이 오라고 해도 무관심하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신령한 귀가 막히고 신령한 눈이 감겨 어느 것이 축복이고 어느 것이 저주인지 천국과 지옥의 분별을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신 것은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 여기에서 \\\\\\\\\\\\\\\'너희\\\\\\\\\\\\\\\'라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바로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천국을 예비해놓으셨는데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곧 우리의 천국 가는 길이요,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마태복음 6:33에 보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명하여 부름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늘 우리가 찾아야 될 곳은 천국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면 부요함도, 건강도, 기쁨도 다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순서를 바꾸어서 찾으니까 하나님이 예비한 것을 우리가 못 받고 사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하나님의 보화가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항상 태양을 보면서 그림자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봅니다. 태양을 바라보고 가면 그림자가 따라옵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위나 세상의 모든 것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성경에도 교훈을 많이 했습니다. 그림자는 방향 감각도 없고 위험에 대해서 안전수칙도 없으며 시도 때도 없이 낭떠러지에도 불가운데도 가고 교통이 위험한데도 그림자는 지나갑니다. 그림자 보고 따라다니면 한 시간도 생명을 지탱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태양을 바라보고 가면 그림자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돈 그림자, 명예 그림자, 권세 그림자가 따라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만족하니까 예수님 바라보고 \\\\\\\\\\\\\\\'예수님, 내 주여 내 중심에 오소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옵니다.\\\\\\\\\\\\\\\' 이렇게 노래하면서 주님만 바라보고 \\\\\\\\\\\\\\\'돈 그림자, 명예 그림자 따라오지마. 나는 너희들이 필요없다. 나는 예수님으로 만족한다.\\\\\\\\\\\\\\\' 오지 말라고 소리치고 갑니다. 그러면 그림자가 따라옵니까? 안 따라옵니까? 빛되신 예수님을 똑바로 따라가면 부귀도 명예도 권세도 돈도 따라오지 말라고 소리쳐도 귀찮도록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태양 즉 빛되신 예수님을 등지고 예수님 나 돈 왕창 벌어가지고 주님 앞에 올께요. 저는요 내 평생 목회하면서 돈 벌어가지고 예수님 앞에 오겠다고 떠난 사람 치고 돈 보따리 안고 지고 오는 사람 한 사람도 못봤습니다. 전부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서 나옵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여\\\\\\\\\\\\\\\' 이렇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분은 봤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회개하고 돌아오는 분은 회복됩니다. 예수 안에 생명도 있고 축복도 있습니다. 예수 안에 영광도 있고 부귀도 있습니다. 셋째,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4)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속량물로 주고 이스라엘을 구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본래는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가 아니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본래는 죄 많은 인간으로 죽어 마땅한 존재이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주심으로써 죄에서 구속하시고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 낮고 천하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배롭고 존귀하게 해주십니다. 영원토록 지켜주고 높여주고 그리고 영광스럽게 해주십니다. 넷째, 새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9) 여기에서 \\\\\\\\\\\\\\\'새 일\\\\\\\\\\\\\\\'이란 여호와께서 바사왕 고레스를 통하여 B.C.539년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선민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시키시는 구원 사건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될 희망이 전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죄와 사망의 압제에서 신음하며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실 것과 또한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하나님께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어 그의 백성들을 그리로 돌아가게 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큰 일을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크게 쓰실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도 쓰셨지만 여러분과 저를 더 크게 쓰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시며 죄악에서 구속하여주시고, 지명하여 하나님의 소유를 삼아주시며,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새 일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게 쓰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네가 다시 흥하리라/ 창1:28/ 피종진 목사/ 2004-04-17
네가 다시 흥하리라 창1:28 사람은 누구나 흥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흥하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1:28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극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승리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은 자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는 고난 중에 있는 욥에게 찾아와 다시 흥하게 되는 비결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다시 흥하게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상고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21절) 여기에서 ‘화목’이란 말은 히브리어에 보면 ‘밀착시킨다, 아주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사람이 지위가 높은 사람과 자리를 같이해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히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이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야고보서 4:8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게 되면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폐인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탕자가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혹시 하나님을 멀리하다가 사업에 실패하여 절망과 좌절 속에 있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만 하면 반드시 다시 흥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5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하나님과 화목하면 흥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①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채널이요, 믿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복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②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13에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라고 말씀했고, 에베소서 2:16에 보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22절) 어떤 분은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귀에만 혹은 머리에만 두었다가 흘려버리거나 곧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9:20에 보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15~17에도 보면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자는 축복이 있습니다. 시편 1:1~3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시 119:11).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둔 자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어린이가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엄마 집사를 보고 ‘엄마, 뭘 걱정해? 성경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셋째, 불의를 멀리해야 합니다.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23절) 불의한 재물은 천만금이 자기 손에 들어왔다 할지라도 그것은 축복의 조건이 못됩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화가 임할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은 언젠가는 다 밝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역사가 베어드는 ‘인류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공의의 맷돌이 돌고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직하게 살다가 좀 손해를 보고, 또 정직하게 산다고 ‘바보’라는 말을 들어도 정직하게 살면 나중에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직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잠언 14:11에 보면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정직한 자는 망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반드시 흥하게 됩니다. 욥기 8:5,6에도 보면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에 두며, 불의를 멀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흥하게 해주십니다. ①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분의 보배가 되어주십니다.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25절) ②경영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게 해주십니다. “네가 무엇을 경영하면 이루어질 것이요”(28절) ③그의 길이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네 길에 빛이 비취리라”(28절)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불의를 멀리하고 정직하게 살아 다시 흥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 받는 모든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 출33:1-5/ 피종진 목사/ 2005-10-29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 출33:1-5 ‘모세’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이스라엘의 대지도자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이 그 어려운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능히 사명을 잘 감당해낸 지도자의 모델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은 모세 한 사람에게만 나타난 축복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요, 축복이요, 은총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은 첫째,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모세가 태어난 시대는 참으로 살벌한 시대였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히브리 노예들의 숫자가 늘어가자 국가적인 위협을 느끼고 이들을 약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쳐 그 가운데서 가장 잔인한 조치가 이스라엘 여인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바로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살벌한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으나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모세를 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시 107:20). 그런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렵게 태어나 애굽인들의 눈을 피하여 3개월 동안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갈대상자를 만들어 하숫가에 띄우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왔다가 물에 떠있는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에게 명하여 그것을 건져서 가져오게 하여 상자를 열어 보니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가 불쌍히 여겨 ‘히브리 사람의 아이’라고 말할 때 모세의 누이가 곁에 섰다가 그의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의 궁중에서 모세가 자라 바로의 문학을 배우면서 오히려 죽음과 고난이 축복이 되고, 화가 복이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해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고난이 고난이 아닙니다. 역경이 역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고,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더 좋은 일이 생기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실패하여 마지막까지 내려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이 할 수 있게 하시고, 나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둔하고 할 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호해주셨습니다. 둘째, 좋은 사람과 만남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만남의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사람을 잘못 만나서 생명을 잃게 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사람을 잘 만나서 성공하여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게 되었는데,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동족이 애굽인에게 맞는 것을 본 모세는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파묻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나갔는데, 이제는 자기 동족 히브리 사람끼리 서로 싸우고 있어 그 그른 자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고 하자,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애굽인을 죽인 사실이 탄로된 것을 알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 그곳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 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았습니다. 이 때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무리에게 먹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무리에게 먹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딸들에게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아내로 주어 결혼을 시켜서 ‘게르솜’이라고 하는 아들까지 낳아 좋은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사실 모세가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미디안 광야에서 어떤 역경과 고난이 연속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세는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남의 축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좋은 만남을 기대하기 이전에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만남의 대상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것은 주지 않으면서 항상 남에게 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만남은 먼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평화를 베풀고, 축복을 베풀 때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대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축복이 임했습니다. 사명자로 선택을 받는 일과 그 사명을 능히 잘 감당할 수 있게 된 이 양면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7~10)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맡길 때에 어떤 사람에게 맡깁니까? 신임할 수 있는 사람, 거짓이 없는 정직한 사람, 맡은 일에 대해서 책임감이 있는 사람, 그 일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쓰실만하고, 하나님이 맡길만하고, 하나님이 기대할만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만한 그러한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 대지도자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지팡이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지팡이는 사명의 지팡이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지팡이입니다. 또한 대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을 좌우하며 그들을 인도하는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명의 지팡이를 절대 버리지 말고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계 2:10). 모세는 그 사명의 결과를 잘 이루어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 땅에 가장 존귀한 자는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모세가 한번도 지팡이를 놓지 않았던 것은 한번도 사명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미 교훈을 주셨습니다. 무슨 교훈입니까?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했을 때 뱀이 된 것입니다. 사명을 저버리면 사탄이 역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사명의 지팡이를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처럼 사명 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장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 모세는 120세까지 장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나이 많아 늙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기력도 떨어져서 거동하기조차 불편한 법인데, 모세는 120세인데도 건강한 몸으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수의 축복을 주실 때는 건강도 보장해주시고, 생활의 안정도 지켜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에게 임했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의 축복, 좋은 사람과 만남의 축복, 이스라엘의 대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축복, 장수의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여러분에게도 임하여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 속에 좋은 사람을 만나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장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 출33:1-5/ 피종진 목사/ 2005-10-29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 출33:1-5 ‘모세’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이스라엘의 대지도자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이 그 어려운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능히 사명을 잘 감당해낸 지도자의 모델로 인식을 하게 됩니다.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은 모세 한 사람에게만 나타난 축복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요, 축복이요, 은총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은 첫째,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모세가 태어난 시대는 참으로 살벌한 시대였습니다. 애굽왕 바로가 히브리 노예들의 숫자가 늘어가자 국가적인 위협을 느끼고 이들을 약화시키려는 정책을 펼쳐 그 가운데서 가장 잔인한 조치가 이스라엘 여인들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바로 죽이라고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살벌한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으나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모세를 살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시 107:20). 그런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렵게 태어나 애굽인들의 눈을 피하여 3개월 동안 숨겨 키우다가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서 갈대상자를 만들어 하숫가에 띄우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왔다가 물에 떠있는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에게 명하여 그것을 건져서 가져오게 하여 상자를 열어 보니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가 불쌍히 여겨 ‘히브리 사람의 아이’라고 말할 때 모세의 누이가 곁에 섰다가 그의 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의 궁중에서 모세가 자라 바로의 문학을 배우면서 오히려 죽음과 고난이 축복이 되고, 화가 복이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해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고난이 고난이 아닙니다. 역경이 역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고,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더 좋은 일이 생기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실패하여 마지막까지 내려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할 수 없다고 할 때 하나님이 할 수 있게 하시고, 나는 어리석고 미련하고 둔하고 할 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호해주셨습니다. 둘째, 좋은 사람과 만남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만남의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떤 분은 사람을 잘못 만나서 생명을 잃게 되는 사람도 있고, 어떤 분은 사람을 잘 만나서 성공하여 평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게 되었는데,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동족이 애굽인에게 맞는 것을 본 모세는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에 파묻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나갔는데, 이제는 자기 동족 히브리 사람끼리 서로 싸우고 있어 그 그른 자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고 하자,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애굽인을 죽인 사실이 탄로된 것을 알고 두려워하고 있는데,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으로 도망하여 그곳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 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았습니다. 이 때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무리에게 먹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무리에게 먹였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딸들에게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아내로 주어 결혼을 시켜서 ‘게르솜’이라고 하는 아들까지 낳아 좋은 가정을 이루게 했습니다. 사실 모세가 이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미디안 광야에서 어떤 역경과 고난이 연속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모세는 좋은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남의 축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좋은 만남을 기대하기 이전에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만남의 대상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것은 주지 않으면서 항상 남에게 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좋은 만남은 먼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평화를 베풀고, 축복을 베풀 때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대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축복이 임했습니다. 사명자로 선택을 받는 일과 그 사명을 능히 잘 감당할 수 있게 된 이 양면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7~10)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맡길 때에 어떤 사람에게 맡깁니까? 신임할 수 있는 사람, 거짓이 없는 정직한 사람, 맡은 일에 대해서 책임감이 있는 사람, 그 일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쓰실만하고, 하나님이 맡길만하고, 하나님이 기대할만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만한 그러한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 대지도자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능력의 지팡이를 들려주셨습니다. 모세는 이 지팡이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 지팡이는 사명의 지팡이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지팡이입니다. 또한 대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을 좌우하며 그들을 인도하는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명의 지팡이를 절대 버리지 말고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계 2:10). 모세는 그 사명의 결과를 잘 이루어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 땅에 가장 존귀한 자는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모세가 한번도 지팡이를 놓지 않았던 것은 한번도 사명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미 교훈을 주셨습니다. 무슨 교훈입니까?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했을 때 뱀이 된 것입니다. 사명을 저버리면 사탄이 역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우리는 사명의 지팡이를 놓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세처럼 사명 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장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 모세는 120세까지 장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나이 많아 늙으면 눈이 침침해지고 기력도 떨어져서 거동하기조차 불편한 법인데, 모세는 120세인데도 건강한 몸으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수의 축복을 주실 때는 건강도 보장해주시고, 생활의 안정도 지켜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세에게 임했던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의 축복, 좋은 사람과 만남의 축복, 이스라엘의 대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축복, 장수의 축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여러분에게도 임하여 절대적인 하나님의 보호 속에 좋은 사람을 만나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장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
믿는 자의 받을 성령/ 요7:37-39/ 피종진 목사/ 2015-05-22
믿는 자의 받을 성령 요7:37-39 본문 37절에 보면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초청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목마르다’는 말은 인생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38절)고 하신 말씀은 예수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39절)을 의미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인간은 누구나 고통과 고난 속에 태어났지만 예수를 믿는 자는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그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강 같은 기쁨이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은 첫째, 육체의 고통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욥 33:19) 인간은 이런 저런 많은 질병으로 인하여 육체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할 때는 육체의 고통이 물러가고 병도 낫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의 원동력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도도 하게 되고, 찬송도 부르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인간의 의술로 고치지 못하는 병도 고침 받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많은 병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나았습니다. 성령은 육체의 고통을 치유해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육체에 희망을 줍니다(행 2:26). 그리고 영광의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벧전 4:14). 또한 우리 몸을 성령의 전이 되게 해주십니다. 고린도전서 6:19,20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둘째, 심적인 고통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육체의 고통도 힘들지만 심적인 고통은 더 힘듭니다. 육체의 상처는 약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낫지 않습니다. 욥기 7:11에 보면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는 항상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소망과 위로와 기쁨을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마음의 평강을 유지하려고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4:18에 보면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악하게 사는 사람은 그 마음에까지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육체의 고통을 주는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은 마음의 고통을 주는 사람입니다. 에스겔 36:26에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은 우리 속의 굳은 마음을 다 제거해주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의 근심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해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셋째, 영적인 고통을 치유하여 주십니다. 인간의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영적인 고통입니다. 영적인 고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될 때 오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성령의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욥기 7:11에 보면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면 감사한 마음이 생기고, 감사한 말을 하게 되지만, 영혼의 고통이 있으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원망한다는 것은 벌써 마음에 평안함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누가복음 16:23,24에 보면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영혼의 고통은 바로 지옥의 고통과 같습니다. 우리는 주위에 영적인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찾아 주께로 인도하여 치유 받게 해주어야 합니다. 시편 118:5에 보면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혹 영적인 고통이 있습니까?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영적인 고통을 치유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넷째, 우리 인생의 모든 연약함을 다 책임져 주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 인생은 연약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할 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승리할 수 없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실력이나 경험을 앞세우지 말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 성령께서 모든 일에 승리하게 해주시고 돌봐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섯째, 항상 소망이 넘치도록 축복해주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소망이 넘치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시기 바랍니다. 달려가도 걸어가도 곤비함이 없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는 것도 성령은 되게 하십니다(슥 4:6).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소망이 넘치는 축복이 있을 때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충만히 받아 육체의 고통과 심적인 고통, 영적인 고통을 치유 받고, 연약함에서 벗어나 항상 샘솟는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
바디매오의 모범된 부르짖음/ 막10:46-48/ 피종진 목사/ 2010-09-02
바디매오의 모범된 부르짖음 막10:46-48 오늘 본문에 보면 소경 한사람이 등장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 사회에서 소경들은 대개 거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육체적 노동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대부분이던 당시의 상황으로는 신체가 온전치 못한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소경을 정죄하는 풍조마저 있었기 때문에(요 9:1,2) 그들이 정상인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소경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지나가실 때에 그 예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은 첫째, 올바른 신앙고백이 있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47절) 그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한 이 말은 정통성이 있는 신앙고백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호칭은 \\\\\\\\\\\\\\\\\\\\\\\\\\\\\\\'메시야\\\\\\\\\\\\\\\\\\\\\\\\\\\\\\\'와 서로 동의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디매오의 이런 호칭 속에는 예수가 왕으로 이 땅에 임하신 메시야란 신앙 고백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올바른 신앙고백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을 따르고 또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 여기에 보면 한사람도 올바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이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지체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구주이시고,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통치하시는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참된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바른 신앙의 고백이 있을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둘째, 때를 놓치지 않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46절) 여기에 보면 예수님이 들어오실 때가 아니라 나가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이었습니다. 이 때 소경 바디매오는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성공자는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자가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회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은혜 베풀 때 은혜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구원의 날에 구원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주실 때 기도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심어야 할 때 심는 사람에게 거두는 축복이 있습니다. 충성할 때 충성을 하면 하나님의 상이 있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5:16에 보면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했고, 골로새서 4:5에 보면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했습니다. 세월을 아껴 선한 일을 하고, 영혼 구원을 위하여 전도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4:2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일은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셋째, 겸손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47절)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이 말은 소경 바디매오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이 겸손한 부르짖음은 주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주님의 인자하신 마음이 그에게 쏟아지게 했으며, 그의 눈이 떠지는 체험을 하게 했습니다. 욥기 22:29에 보면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느니라\\\\\\\\\\\\\\\\\\\\\\\\\\\\\\\"고 말씀했고, 시편 147:6에 보면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잠언 22:4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겸손하게 살면 마음이 참 평안합니다. 이사야 57:15에도 보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겸손한 자가 되어 믿음도 일어나고 사업도 일어나고 건강도 회복되고 좋은 일만 있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환경을 초월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48절) 이것은 바로 환경을 초월한 기도입니다. 바디매오가 주위 사람들의 책망과 제지에 굴복했더라면, 결코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두 번 다시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절대로 후퇴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인은 타협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신앙인은 굴곡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반드시 신앙인은 전진만 있을 뿐입니다. 실낙원을 저술한 밀턴은 시각장애자였습니다. 나중에는 복낙원까지 저술했습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음악가 베토벤은 청각장애자였습니다. 천하를 정복한 알렉산더는 곱추였습니다. 바다를 휩쓴 넬슨제독과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 세계적인 문호 세익스피어도 모두 다리 지체장애자였습니다. 이들은 저들의 생애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초월하여 더욱 적극적이고 간절한 태도로 예수님께 부르짖었던 바디매오처럼 응답받을 때까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께 끝까지 부르짖는 자가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바른 신앙고백으로 때를 놓치지 않고 겸손하게 환경을 초월하여 부르짖은 바디매오의 모범된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머물러주셨고, 그에게 안심된 마음을 주셨으며, 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의 이 모범된 부르짖음이 바로 여러분의 부르짖음이 되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종진 목사(서울 남서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