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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지 감사/ 출23:14-17
세가지 감사 출23:14-1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년 삼차 감사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 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라 하시는 교훈입니다. 기독자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무디는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고,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맥추감사절기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감사해야하는지, 또 무엇을 감사해야하고,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이 시 간 살펴보므로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이 왜 감사해야합니까? (1)감사는 은혜를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진정 은혜를 아는 자라면, 은혜 속에 사는 자라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 로 감사는 은혜 가운데 사는 증거이며, 은혜 속에서 사는 자의 생활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억지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불평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불평, 불만이 무엇인가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 같습니까? 아닙니 다. 받은 은혜, 이미 자기에게 와 있는 은혜를 모르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옛날이야기입니다만, 멕시코의 어느 시골 동네에 가면 찬물과 더운 물이 나오는 샘이 있어서 아낙네들이 빨래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 있었습니다. 한 전도자가 그곳을 지나면서 \"참 좋군요, 감사한 일인군요. 하나님께 감사해야겠네요?\" 했더니, 한 부인이 말하기를 \"무엇을 감사합니 까? 이왕이면 비누 나오는 샘까지 주어야지요\" 하더랍니다. 그녀에게 비누 나오는 물을 주면 감사할 것 같습니까? 이번에는 또 어떤 불평을 할런지 모릅 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어떤 불행하고, 부족한 현실에서도 감사하고, 불만의 사람은 어떤 현실을 주어도 불만, 불평합니다. 받은 은혜가 너무 큽니다. 감사하는 자는 더 감사할 은혜가 발견될 것입니다. (2) 감사는 더 큰 축복을 받게하는 비결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별빛 주신 데 대해 감사하면, 달빛 주시고, 달빛 주심을 감사하면, 햇빛 주 시고,햇빛 주심에 감사하면, 밤도 낮도 없는 영원한 빛이 있는 세계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음의 은혜를 입은 열 문둥이 가운데 예수님게 돌아와서 감사한 문둥이는 한 사람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홉은 어디가고, 너 혼자만 돌아왔느냐?\" 하시면서 인간의 은혜를 배신하는 행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한 그 한 문둥이에게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하셨습니다. 받은 은혜를 감사한 문둥이가 더 큰 은혜, 더 영원하고, 신령한 구원의 은혜를 입게됩니다. 감사로 더 크고 영원한 복을 받게 됩니다.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러면 더 큰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3) 감사하는 생활, 그 자체가 복이 되기 때문에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감사하게 하심을 다시 하나님께 감사드려야합니다. 감사할 수 있음을 참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그 심령은 천국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이미 와 있는 그 은혜를 누립니다. 죄악 많은 이 땅위에 어떤 사람이 천국을 누립니까? 만족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 니까? 어떤 세상의 것으로 채워져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된 구속을 입은 자로 서 감사하는 성도입니다. 이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한 것 아닙니다. 제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주신 줄 알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적은 것이나, 많은 것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줄 안다면,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이 은혜를 누립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가지고는 있으나, 누리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 는 그 사람은 나중에는 뺏기게됩니다. 감사하는 삶, 감사하는 그 사람 자체가 복받은 사람입니 다. 그러므로 은혜를 아는 사람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은혜 주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그 은혜를 뺏기지 않고, 누리게 됩니다. 감사 자체가 복입니다. 감사하는 은 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합니까? 우리가 받은 은헤가 무엇입니까?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습니까? 실로 우리가 받은 복을 헤아려보지 않아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하지만, 너무도 다양한 은혜, 많은 복을 받은 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하는 절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감사는 항상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감사를 잊고 살고/ 또 무엇을 감사해야하는지/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 몰라서 -감사하지 않아서- 더 큰 복을 받지 못할까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 를 주시고 싶으신데, 감사하지 않는 자에게 주실 수 없기 때문에, 이 감사절기를 정해주셔서 매년 삼차 이 절기를 지켜라고 했습니다. 이는 날마다 기억하고 지켜야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절기를 왜 우리들이 지켜야하는가...\"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그 은혜는 바로 우리에게도 베푸신 은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신령한 이스라엘이요, 우리가 받은 것이 더 영원하고, 확실한 것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절기를 이스라엘은 형식적으로 지키다가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 모든 은혜를 종목, 종목 다 열거하면서 감사하면 더 좋습니다. 그 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 세 가지 절기를 주시면서 이 세가지 은혜를 감사하라고 가 르쳤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서 감사하면 모든 감사종목이 이 안에 다 들 었습니다. 이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의 은혜입니다. 그 첫째가 유월절 은혜인데, 이 은혜는 출 12;1-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동안 학대 받고, 종 노릇하는 것을 보시고, 그 부르짖는 것을 들으셔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 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말로만 해방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애굽과 바로가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려고 강퍅을 부리고, 교만히 행했습니다.그래서 바로 왕과 애굽이 10가지 재앙을 받았는데, 이 재앙에서 이스라엘은 멸망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 재앙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를 감사하 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인 장자 재앙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난 것을 전멸시키는 재앙인데,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게 하여,천사들이 장자들을 치실 때, 양의 피를 바른 집에는 뛰어 넘 어 죽음을 당하지 않았고,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장자들을 다 쳤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왜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지 않고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도 역시 이 장자 재앙을 받아야 하는 죄악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악을 인해 죽어야 하는 그 대신에 죽으신 유월절 어린 양이 있음을 알리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양은 유월절 한 가운데 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보여 줍니다. 이 유월절에 관해서는 눅 2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것을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는 이단이 있습니다. 형곡동 성계주유소 앞의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지금 구약의 이스라엘 같이 안식일, 유월절을 지켜야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구약의 형식적으로 지키던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이 되었습 니다. 구약시대의 유월절이 신약시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전해지고 나타났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유월절에 나누던 무교병의 떡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신령한 양식으로 삼아서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기념할 유월절입니다. 주님이 주신 대속의 은혜, 사죄와 칭의와 영생을 주신 것을 기 념하는 것이다. \'기념\'은 이 은혜를 헤아려 아는 것이요/ 깨달아 가는 것이요/ 감사를 드리는 것이요/ 이 은혜를 전하며/ 이 은혜를 배반하지 않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야합니다. 감사를 드려야합니다. 또 이 은혜를 전해야합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무서운 죄의 종된 데에서, 마귀의 노예된 데에서 건져 주 심을 항상 감사해야 한다. 또 우리를 의와 영생과 복락으로 옮겨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 다. 이제는 주신 구속의 은혜를 벗지 말고 유월절을 지키면서 무교병을 먹듯이 죄와는 상관 없는 사람 으로, 의로운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야합니 다. 오순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50일 되던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율법과 십계 명을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며,애굽사람같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인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지켜야 할 율법과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또 가나안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낮과 밤을 인도했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이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오순절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은 이 오순절을 말하는데, 그들이 출애굽 하여 50일 되던 때가 보리 추수하던 때가 되어서 그 추수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했는데, 이래 서 오순절을 맥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시대, 행2;1-4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 방에서 모여 기도하였는데,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이 성령 강림의 역사로 교 회가 서게 되고, 복음이 힘있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경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 성 령 하나님이 우리를 구 원하시고, 우리 삶에서 인도자가 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바른 인생 길을 갈 것인가 알지 못했고,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도 알지 못하여 방황했습니다. 어두운 밤 중에 한 개의 등불이 가치를 나타냅니다. 칠흙 같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길, 빛의 길을 비추어서 우리 앞 길을 환히 알게한 것이 성경의 말씀을 주신 것이요,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셔서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진리 와 영감의 인도의 은혜가 큰 것을 깨닫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주신데 대해 감사하면서 읽고 배워서 우리의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능력을 이 말씀에서 구해야합니다. 이 성경은 우리의 구원의 도리를 계시로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를 열심히 읽고,듣고,배우면,우리 의 인생의 모든 문제거리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인도의 은혜를 감사 기념하는 것이다. 또, 장막절은 어떤 절기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에서 40년동안 살았는데,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 쌈도 않고, 농사도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입히시고,먹여 주셨고,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살 때에 주위의 많은 대적이 있었으나 보호해 주셨다. 한서의 차이의 어려움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를 감사하는 장막절이다. 장막절은 눅19:28-40에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호산나 찬송을 부르 는 무리들이 따랐는데,이것은 영원한 천국을 모형하는 것이다.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만주의 주 로 오실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장막절에는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좋은 집을 떠나서 광야에나,성전 안에나 초막을 짓고,일 주간 을 거하면서 옛날 자기 조상들을 광야에서 보호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이 현실은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메마르고 아무도 살 수 없는 것 같은 광야입니다. 짐승의 위험, 추위와 더위의 위험, 이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 우리를 두신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우리의 보호와 도움이 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보호하시고,먹이시고,입히신 것,모든 위험에서 건지신 것,또한 우리에게 도 사리고 있는 신앙의 위험과 미혹에서 대적들에게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예수님이 왕으로 임하실 영원한 처소, 천국을 우리에게 예비하시고, 약속하셨습니 다. 또 이 세상은 장막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의 피로써 재앙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요, 오순절은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요, 장막절은 하나님의 보호하신 은혜를 감사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감사 해야 하는 지 조차 잊어버리고, 오히려 원망이나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무턱대고 감사합니다고 말만 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감사일 것입니다. 우리를 큰 기사로 구원하시고,,강한 손과 펴신 팔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 광야 길을 말씀과 성령 충만으로 인도하셔서 목적하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구원의 은혜, 인도의 은혜, 보호하신 은혜, 이 세 가지 은혜 안에 우리가 받은 은혜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우리같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같이 하나님의 보호하신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과거로 부터 받은 은혜, 현재 받고 있는 은혜, 또 앞으로 우리 앞에 영원히펼쳐질 은혜. 우리들은 전체가 은혜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은혜 받은 우리지만, 감사 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 이 감사 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껏 느끼면서 이 은혜를 중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또 한 하나님께 감사로 드릴 예물을 준비해야합니다. \"이 몸을 바칩니다\"하는 마음으로 사례할 때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그 사람에게 더 임할 것 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다. 은혜를 생각하면 좋아서 감사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사를 외칠 것이요,원망, 불평하면 그 입 이 튀어 나올 것이다. 세가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감사하는 절기가 오늘입니다. 희생의 구속으로 구원하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갈길을 인도하신 하나님, 강한 오른 손 으로 우리를 지켜 보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면 다 아닙니까? 이미 받은 은혜가 족한 줄 아십니까? 감사합시다.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46년 은총에 넘치는 감사/ 골3:15-17
46년 은총에 넘치는 감사 골3:15-17 어느 일곱 살난 어린아이가 자기 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도움을 준 의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 보내게 됐습니다. 그 어린이는 이렇게 썼습 니다. \\\'나는 칠년 동안 매 순간마다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 어린이는 놀 라운 감사의 표현을 편지를 써 보내 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감사할 줄 아 는 사람은 최고의 덕을 가지고 살아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 게 됩니다. 특별히 올해의 감사예배 는 옛날과는 다른 뜻이 있습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은 금세기 마지막 감사절이요, 1천년 시대에 마지막으 로 드리는 감사예배입니다. 앞으로 새 천년은 50여일밖에 남지 않았는 데 새 천년시대의 문이 열리고 거기 에 새로운 약속과 희망과 은총이 넘 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올리는 금세 기 마지막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 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6년 동안 하나님께 서 세워주신 이 광림교회는 여러 가 지 역사적인 시간 속에서도 특별히 은혜를 받은 복된 교회입니다. 온 세계의 교회가 우리교회를 주목하고 있고 또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 축복 받은 교회에서 여러분이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감사일 것입니다. 어떤 소년이 예배당에 들어와서 제단 위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바라 보고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 다. \\\"저 제단 위에 플러스 표는 무 슨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 어린 이는 초등학교에서 산수시간에 플러 스에 대해 익히고 있다가 십자가를 보고 저 제단 위에 플러스 표는 우 리에게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저 십자가는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 에게 덧셈표가 된단다.\\\"라고 얘기했 습니다. 이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고통과 질병과 실패와 좌절과 비극 과 폐허 속에서 헤매게 될 때 이 교 회에 나와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 람마다 삶의 플러스 사인으로 우리 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 이 바로 이 교회인 것을 생각할 때 한 세기를 보내면서 오늘 이 제단에 나와서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숭 고한 우리인간에게 주신 큰 은총이 요, 축복이라고 할 것입니다. 46년간 이 교회를 통해서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심에 우리는 감사합 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구원 의 진리가 선포되고 예수 그리스도 의 생명을 얻는 구원의 역사가 이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 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다 구 원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든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에서 경제적으로 구원받기 위해 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우리는 무 지에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서 열 심히 학교에 가서 공부합니다. 우리 는 질병에서 구원받기 위해서 병원 에 찾아가서 고침을 받습니다. 지난 주간에도 뇌수술을 받기 위해서 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애 쓰시는 분을 제가 도와 드렸습니다. 더 나아가서 절망과 좌절과 삶의 무 의미성과 죄악과 죽음으로부터 누가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인가 이 문제가 구원의 문제에 해결되지 아니하면 다른 문제는 별의미가 없는 것입니 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 명으로 궁극적인 구원을 얻도록 우 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의 좌절과 실 망과 죄악과 죽음에서부터 예수 그 리스도의 구원으로 생명을 얻게 하 시는 이 거룩한 제단이 우리에게 주 어진 것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내 게 주는 생명, 건강, 가정, 자녀들, 시간, 능력, 사랑, 경건한 마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능력이 미 치지 못하는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살려주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가서 이 땅이 오늘 추 수감사절을 맞아 감사하게 하는 것 입니다. 여러분 삼중고의 인생 헬런 켈러 가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말한 적 이 있습니다. \\\"그들은 내게서 눈을 빼앗아 갔다. 그러나 나는 밀턴의 실낙원을 기억한다. 그는 내게서 귀 를 빼앗아 갔다. 그러나 내게 베토 벤이 다가와 있다. 그는 내게서 혀 를 빼앗아 갔다. 그러나 나는 어렸 을 때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내 영 혼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영혼을 소유했으니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삼중고 의 일생, 헬런 켈러의 감사는 내 영 혼이 구원 받은 데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교회를 통해서 내 생명이 구원 을 받은 데 대해서 주의 이름으로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을 이 교회에 서 예배드리게 됨을 감사합니다. 아 직도 이 땅에는 예배드릴 자유도 없 고 예배당을 지을 수도 없고 예배를 드릴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게 하는 그런 나라와 사회가 수 없이 많지만 오늘 이 광림교회,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최선을 다해서 아름답게 장식을 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큰 축복이요, 감사일 것입니다. 오늘 본 문에 있는 말씀, 우리 골로새서 사 도 바울의 편지 가운데 그 교회는 어떤 교회야 되느냐. 평강의 교회입 니다. 우리교회는 평화로운 교회입 니다. 잡음이 없습니다. 어떤 갈등도 없습니다. 평강의 교회, 한몸 된 교 회, 일치된 순종으로 저 지교회까지 저 모스크바나 뉴질랜드나 오사카에 있는 교회 전 교회들이 한 몸으로 뭉쳐져 있는 몸된 교회입니다. 말씀 으로 풍성한 교회입니다.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피차 경영하며 섬기는 교회입니다. 찬양하는 교회입니다.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입니 다. 때를 따라서 세례를 받고 성찬 을 받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제 단, 우리에게 있는 것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는 하루 종일 찬양이 그치지 않았다 고 합니다. 하루 종일 찬양했다는 것은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 니다. 스코틀랜드의 식사기도문 가운데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평범한 식사는 없습니다. 매일 우리 식탁에 마련된 식사는 우리의 성만찬입니 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식량을 마련 하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에서 목숨 을 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수고는 우리가 안전하게 생 활하고 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 다. 오늘 우리가 살고 먹고 입고 지 내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목숨을 걸 고 그들이 희생한 대가로 우리가 먹 고살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에 식 탁이 성찬식과 같이 받아야 한다.\\\" 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름다운 전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인간이야말로 숭고한 인간이요, 아름다운 인간이요, 인간 의 본문을 다하는 우리의 성도인 것 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에 어느 광산지역에 교회는 나오지 못한 사람이 추수감사 때만 되면 하나님 앞에 감사제물을 싸들 고 와서 한해 동안 이 광산 지대에 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예물을 바치고 돌아가는 광산 주인 이 있었다고 합니다. 감사할 줄 아 는 사람,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드릴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형 상을 입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제단에서 서원기도 드릴 때 하나님은 응답해 주셨습니 다. 호렙산 기도회때 새벽 4시부터 모여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 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이 하나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과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의 뜻을 이루도록 헌신하게 함을 감 사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내 일생에 내 생을 바쳐서 내 전체 를 헌신하고서 살아가야 할 헌신의 대상을 찾지 못한 사람은 가장 불행 한 사람입니다. 일생동안을 내가 누 구를 위해서 살고 내 마음과 몸과 전체를 누구에게 바칠 것인가. 헌신 의 대상을 찾지 못하고 사는 사람, 일생동안 방황하다가 흙에 묻혀버리 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사람 입니다. 우리 광림교회 성도들은 이 46년 동안 광림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 을 펴기 위해서 예배보는 헌신을 다 해 왔습니다. 선교의 사명을 다했습 니다. 우리는 중국의 교회를 세우고 일본과 뉴질랜드 사방에 교회를 세 웠습니다. 드디어 안디옥에 까지 교 회를 세우는 것 세계가 깜짝 놀랐습 니다.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 사도 바울이 그처럼 사랑했던 안디옥 교회를 한국의 광림교회가 거룩한 말뚝을 거기에 박고 안디옥 교회를 부활시키는 놀라운 일은 이 광림교회가 가지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는 주권을 생각할 때 우리 는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서울대학 국립대학에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서 그 성전을 봉헌한 다음에 많은 환자 가 늘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가서 암환자, 자신의 부모나 자식이 나 남편이나 아내가 암수술을 받을 때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할 수 있다 는 이 사실 광림교회에서 마련한 이 성전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이 사실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으로 충성을 다하는 놀라운 일 들이 이로 인하여 감사해야 할 것입 니다. 우리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했 습니다. 우리는 농어촌 목회자의 자 녀들을 위해서 20억을 들여서 인우 학사 기숙사를 지었습니다. 신학교 에 백주년 기념관을 짓도록 돈을 주 었습니다. 아프리카 대학교에 채플 을 우리가 지었습니다. 에스토니아 에 신학교를 지었습니다. 세미나 하 우스 필리핀에 선교관, 백운 수양관 각 가지 시설을 세계에 지어 놓은 것은 하나님의 뜻을 펴기 위한 우리 에게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이 제 단을 통해서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집을 통해 서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 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집을 지어서 노인들을 모십니다.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을 부모처럼 모시기를 원합니 다. 서초 복지관을 우리가 도왔습니 다. 강동복지관 모잠비크, 짐바브웨 에 구호물자를 보내는 것도 하나님 께서 우리를 통해서 헌신하는 기회 를 주신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최근 대학에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교수의 말이 교회 가운데 사회봉사 사업에 제일 앞장서는 교회가 어떤 교회 인가하면 두말 할 것 없이 광 림교회라고 합니다. 모 일간지의 사 회사업부문의 제 1회상을 탄 교회가 광림교회입니다. 그 사회복지과 교 수가 광림교회에서 서초 복지관에 수억을 들여서 그 곳을 수리해서 그 지역의 사회사업에 동참하고 강동 복지관을 수리해서 그 곳에 소외당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광림 교회야말로 새 천년시대에 가장 모 범적인 교회가 되었다고 그 교수님 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헌신의 대상을 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찾고 헌신 할 수 있다는 사실자체가 감사한 일 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앨버트 몰티라는 사람이 \\\'땅 위 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글에 서 이 사람은 오랫동안 직업이 없이 실직자가 되어서 지내온 적이 있습 니다. 매우 절망적이었습니다. 내 인 간의 삶이 위축을 당하고 열등감 가 운데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직장을 하나 찾았습니다. 그 직장은 다름이 아니라 폭발물을 싣은 마차를 끌고 다니는 직업을 얻었습니다. 그 직업 을 알선한 사람이 이 분에게 얘기를 하기를 당신은 이 폭발물을 싣고 다 니다가 이 폭발물이 폭파 될 때 당 신은 죽을런지 모릅니다. 그 얘기를 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분은 \\\"나는 폭발물을 싣고 다니는 마차를 끌고 다니는 자체가 나에게는 이 땅위에 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했습니 다.\\\"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는 말 하기를 \\\"나는 인생에 대한 사랑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나는 개인적인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 를 주셨습니다. 내 인간성을 회복하 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 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이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손과 발과 지혜와 능력과 우리의 재물을 바쳐서 헌신할 수 있 다는 사실자체가 우리는 감사한 일 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저는 지난주간에 두 개의 대학교 를 방문했습니다. 하나는 이화여자 대학교에서 채플을 인도하게 되었습 니다. 3천5백 여명의 학생들이 조용 히 앉아서 제 설교를 듣고 있다가 끝난 후 일제히 박수를 보냈습니다. 나중에 조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학생들이 좀처럼 예배시간에 박 수치는 법이 없는데 목사님께서 말 씀을 끝내시니까 그렇게 박수를 쳤 다고 말했습니다. 장상 총장님과 차 를 마시면서 얘기하는 가운데 \\\"목사 님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만 명 의 학생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시고 예배를 드리고 그들의 인간성을 변 화시키는 이 사실을 내가 이일을 책 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화여대 앞에 대 학성전을 크게 짓고 있는데 이것도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단입니다.\\\" 총장님 입에서 계속 감사합니다. 감 사의 정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대학은 성환에 있는 남 서울 대학교로 우리교회 이재식 장 로님께서 세운 대학입니다. 저는 많 은 대학교 캠퍼스를 다녀 보았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캠퍼스는 처음 보 았습니다. 그 대학이 시작된 지 5-6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호숫가에 얼 마나 아름다운 캠퍼스인지 놀라운 기적을 거기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 다. 이재식 장로님의 호를 따서 성 암중앙 도서관 봉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서관은 5천평의 건축물 에 1백만 권의 장서를 보관할 수 있 는 큰 도서관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큰 비석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쓰여진 비석이 서 있습 니다. 저는 예배를 드리고 이 장로 님의 안내를 따라서 돌아보면서 그 장로님의 얘기는 \\\"저는 광림교회 때 문에 이 큰 꿈을 실현하게 되었습니 다.\\\"그 분은 일생동안 가르치기를 서원하고 자신이 어렵게 공부한 그 경험을 살려서 천막을 치고 구두닦 이 소년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 다. 그것이 발전되어서 청량리에 수 도학원을 세웠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학생들에게 초등학교를 가르치고 중학교를 다니지 못한 학 생들에게 중학교과정을 가르치고 고 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이들에게 고 등학교 과정을 가르쳐 대학에 입학 을 시키며 일생동안을 가르치기를 원했던 그가 광림교회에서 시간 주 시는 설교를 다 메모해서 한 주일동 안 되새김질하면서 거기에 있는 꿈 과 비전을 가지고 남서울 대학교를 세웠고 이곳이 기독교 대학이 되고 광림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진 꿈, 그 저 감사할 뿐입니다. 시간을 광림교 회에서 내게 교훈을 주신 것에 대해 서 감사합니다. 광림교회 제단에서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합니다. 광림교회에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주간에 한 분은 대학의 설립자요, 하나는 113년이 된 대학 의 총장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광림 교회에 감사합니다.\\\" 라는 감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46주년의 창립기념을 맞이 하면서 금세기 말에 추수감사 예배 를 드리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9 대 1(9:1)/ 눅17:11-19/ 추수감사절설교
9 대 1(9:1) 눅17:11-19 오늘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날입니다. 성탄절과 같이 세계 온 교회가 다같이 12월 25일을 성탄절을 지키고 지정한 날짜를 택하여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서울에 어떤 교회에서는 추석전 주일에 추수 감사절을 지내는 교회도 있고 지난 주에 추수 감사 주일에 지내는 교회도 있고 다음주일 추수 감사 주일을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 나 대체로 이번 주일을 추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추수 감사 주일은 어디에 유래하는가? 대체로 두 가지의 유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절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일년의 농사를 짓고 이제 초 막을 짓고 초막에서 지내는 초막절.수장 절에 따르는 일년 결실을 감사 하는 절기올시다. 다음에는 1620년대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지 못 하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신대륙을 찾아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인디안 들이 건네준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을 거두었습니 다.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까지 그 좋은 전통이 전해 오고 있습니 다. 우리 나라에도 옛날에 영고 동맹이라는 10월과 12월에 추수 감사하 는 감사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하여 성도들이 필수적으로 소요해야 할 감사의 모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기쁨과 찬송과 기도와 감사는 떼놓을 래야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감사와 예수 가 말하는 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음페이지(리턴키) 연속출력(NS) 기타(Z) >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한번은 사마리아와 갈리리 사잇길로 예 루살렘으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 가셨는데 열 명의 문둥병 자가 멀리 서서 큰 소리로 높여 예수 선생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 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 보이라고 명하셨습니다. 가다 가 열 명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 출신 한사람이 돌아 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고맙다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예를 표시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 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감사하려고 돌아 온 사람이 너 혼자 뿐이냐 ? 물으시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신 장면입니다. 이 사건에서 문둥병에서 고침을 입었는데 아홉 사람의 반응과 한 사람 사라마리아 사람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이 열 명명은 문둥병 의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한사람만 돌아 왔다고 하 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만일 의사가 평생에 소원인 병으로부터 고침 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전부 감사 할 것입니다.세상에도 감사하는 인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진정한 성도의 감사가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예수께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은 똑 같은 환경 과 여건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 자는 출신이 다양하더라고 할지라도 문둥병 자라고 하는 어렵고 힘든 처지 였습니다. 의문이 있습니다. 왜 고침을 받고도 아홉은 감사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의문이 풀어집니다. 그건 성령으로 감사하는 사람과 인간에 감정에 호소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성 경은 성령으로 감사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인간의 감정에서 우러나는 감 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에 요구하는 감사는 늘 인간의 감 정을 만족하게 해주어야 감사합니다. 100원을 감사했습니다. 매일 주게 되면 100원 가지고는 감사를 유발할 수가 없습니다. 1,000원을 주어야 감 사합니다. 1,000원은 나중에 10,000원을 요구하게 되고 이렇게 자꾸 불어 나가다가 보니 몇억을 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하는 사람이 있 습니다. 성령은 풍부와 비철을 감사할 수 있는 범사에 감사할 것을 요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병고침을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한 사 마리아인의 환경과 처지가 사마리아 인이 더 형편이 좋았다는 말해 주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오히려 출신을 놓고 보면 예루살렘, 갈리 리, 사마리아,문둥병 자들이 집단 거주하고 살았다면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병자 였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조건이나 환경을 보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이기고 어떤 처지와 환경 속에서 그 마음속을 성령이 장악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성령이여 내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여 지금 내가 당하는 괴롬과 고통을 감사히 감당 할 수 있도록 하소서 기도하면서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도하시는 영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환경과 조건도 감사가 계속 영위할 수 없습 니다. 100원이라고 하는 물질에 감사하는 사람은 물질에 매여 올바른 감 사의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100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을 돌리며 감사 하십시오 감사의 모습과 감사의 대상이 달라 질 것입니 다. 하나님의 은사를 감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감사하십시오 모세가 이 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후에 노래하기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5:1-3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 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 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 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 시로다\" 낙망하고 실망할 때에 여호와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식구들 되시기를 바 랍니다. 예수로만 나의 감사의 대상 삼는 감사하는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11절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 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 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2.아홉은 예수를 부를 때부터 원망과 불평이 있었습니다. 나는 문둥병 자가 될 만한 요소가 없는데 운이 나쁘게 나에게 문둥병 자 라는 화를 입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받아 드렸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는 결코 감사로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는 불리한 대우를 받았는데 이제 회복되 었기 때문에 나의 치유는 당연한 처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감사와 하나님 께 영광 돌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있는 상태에서는 감사가 생겨나리라는 생각을 아예 버립십시오. 빌립보서 2: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일의 성질을 가리지 말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 없이하라는 이야기입니 다. 우리 속에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일입니다. 성령 충만 할 때에 바로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감 사하지 않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그칩니다. 그런 순수한 감사절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이런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본문 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 라\" 우리의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부귀영화 지헤 총명 다 포 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라든지 부귀영화 언젠가는 시들어지고 폐하게 됩니다. 베드로 전서 1:9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영혼을 구원시킬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감사하는 생활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 속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 다. 그 는 반드시 영원을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 분 감사 영광을 주께 돌립시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을 들으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9대 1/ 눅17:11-19/ 추수감사절설교
9대 1 눅17:11-19 오늘 우리 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날입니다. 성탄절과 같이 세계 온 교회가 다같이 12월 25일을 성탄절을 지키고 지정한 날짜를 택하여 추수감사절을 지키지 않습니다. 서울에 어떤 교회에서는 추석전 주일에 추수 감사절을 지내는 교회도 있고 지난 주에 추수 감사 주일에 지내는 교회도 있고 다음주일 추수 감사 주일을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 나 대체로 이번 주일을 추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추수 감사 주일은 어디에 유래하는가? 대체로 두 가지의 유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절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유래가 있습니다. 일년의 농사를 짓고 이제 초 막을 짓고 초막에서 지내는 초막절.수장 절에 따르는 일년 결실을 감사 하는 절기올시다. 다음에는 1620년대에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지 못 하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 신대륙을 찾아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인디안 들이 건네준 씨앗을 뿌려 가을에 수확을 거두었습니 다.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까지 그 좋은 전통이 전해 오고 있습니 다. 우리 나라에도 옛날에 영고 동맹이라는 10월과 12월에 추수 감사하 는 감사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하여 성도들이 필수적으로 소요해야 할 감사의 모습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기쁨과 찬송과 기도와 감사는 떼놓을 래야 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감사와 예수 가 말하는 감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한번은 사마리아와 갈리리 사잇길로 예 루살렘으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 가셨는데 열 명의 문둥병 자가 멀리 서서 큰 소리로 높여 예수 선생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 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몸을 제사장에 보이라고 명하셨습니다. 가다 가 열 명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중에 사마리아 출신 한사람이 돌아 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고맙다고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예를 표시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 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감사하려고 돌아 온 사람이 너 혼자 뿐이냐 ? 물으시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신 장면입니다. 이 사건에서 문둥병에서 고침을 입었는데 아홉 사람의 반응과 한 사람 사라마리아 사람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이 열 명명은 문둥병 의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않고 한사람만 돌아 왔다고 하 는 것이 이해가 안됩니다. 만일 의사가 평생에 소원인 병으로부터 고침 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전부 감사 할 것입니다.세상에도 감사하는 인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진정한 성도의 감사가 무엇인가? 살펴보겠습니다. 1.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예수께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은 똑 같은 환경 과 여건입니다. 열 명의 문둥병 자는 출신이 다양하더라고 할지라도 문둥병 자라고 하는 어렵고 힘든 처지 였습니다. 의문이 있습니다. 왜 고침을 받고도 아홉은 감사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의문이 풀어집니다. 그건 성령으로 감사하는 사람과 인간에 감정에 호소하는 감사가 있습니다. 성 경은 성령으로 감사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인간의 감정에서 우러나는 감 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에 요구하는 감사는 늘 인간의 감 정을 만족하게 해주어야 감사합니다. 100원을 감사했습니다. 매일 주게 되면 100원 가지고는 감사를 유발할 수가 없습니다. 1,000원을 주어야 감 사합니다. 1,000원은 나중에 10,000원을 요구하게 되고 이렇게 자꾸 불어 나가다가 보니 몇억을 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하고 늘 불평하는 사람이 있 습니다. 성령은 풍부와 비철을 감사할 수 있는 범사에 감사할 것을 요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병고침을 받은 아홉 명의 문둥병 자와 한 사 마리아인의 환경과 처지가 사마리아 인이 더 형편이 좋았다는 말해 주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오히려 출신을 놓고 보면 예루살렘, 갈리 리, 사마리아,문둥병 자들이 집단 거주하고 살았다면 가장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마리아 출신의 문둥병자 였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감사하는 사람은 조건이나 환경을 보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이기고 어떤 처지와 환경 속에서 그 마음속을 성령이 장악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 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성령이여 내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여 지금 내가 당하는 괴롬과 고통을 감사히 감당 할 수 있도록 하소서 기도하면서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도하시는 영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환경과 조건도 감사가 계속 영위할 수 없습 니다. 100원이라고 하는 물질에 감사하는 사람은 물질에 매여 올바른 감 사의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100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을 돌리며 감사 하십시오 감사의 모습과 감사의 대상이 달라 질 것입니 다. 하나님의 은사를 감사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감사하십시오 모세가 이 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후에 노래하기를 이렇게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5:1-3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 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 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2]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 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3]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 시로다\\\" 낙망하고 실망할 때에 여호와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식구들 되시기를 바 랍니다. 예수로만 나의 감사의 대상 삼는 감사하는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11절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 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 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2.아홉은 예수를 부를 때부터 원망과 불평이 있었습니다. 나는 문둥병 자가 될 만한 요소가 없는데 운이 나쁘게 나에게 문둥병 자 라는 화를 입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인은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받아 드렸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는 결코 감사로 연결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나는 불리한 대우를 받았는데 이제 회복되 었기 때문에 나의 치유는 당연한 처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감사와 하나님 께 영광 돌리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있는 상태에서는 감사가 생겨나리라는 생각을 아예 버립십시오. 빌립보서 2:14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 일의 성질을 가리지 말고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 없이하라는 이야기입니 다. 우리 속에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일입니다. 성령 충만 할 때에 바로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감 사하지 않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그칩니다. 그런 순수한 감사절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이런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본문 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 라\\\" 우리의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요? 부귀영화 지헤 총명 다 포 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라든지 부귀영화 언젠가는 시들어지고 폐하게 됩니다. 베드로 전서 1:9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영혼을 구원시킬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감사하는 생활하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합니다.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마음 속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 다. 그 는 반드시 영원을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성도 여러 분 감사 영광을 주께 돌립시다. 그리하여 주님으로부터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을 들으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9대 1의 감사 /눅17:11-19/추수감사절/9008-11-18
9대 1의 감사 눅17:11-19 추수감사절 사람은 누구나 다 시간이 지나면 늙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대략 30조 개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세포들은 계속 분열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기도 하고 늙어서 죽기도 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포의 속도가 세포의 죽는 속도보다 빠르면 사람이 성장하는 겁니다. 반대로 세포의 죽는 속도가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면 노화가 되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사람의노화되는 원인을 찾아 처방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젊고 오래살 수 있도록 무던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육체가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유명한 랍비에게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랍비는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시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마음이 늙어가는 징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의 건강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한 부흥사가 집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그 버스에 아주 뚱뚱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개구쟁이 어린 아이 다섯을 데리고 올라탔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개구쟁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를 부르는 아이, 울며 불며 떼를 쓰는 아이, 버스 이곳 저곳을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아이,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소리 지르며 떠드는 아이들로 인해 버스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뚱뚱한 아주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욕하고 아이들을 험악하게 때리고 하는 가운데 더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부흥사는 피곤해서 좀 쉬기도 하고 집회에서 전할 말씀도 묵상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흥사는 금방이라도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음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부흥사가 순간적으로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열 명의 문둥 병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료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 안에서 치료되는 기적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정작 강조하는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이들은 만나면 서로 미워하며 험악하게 싸웠습니다. 특히 갈릴리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지역 경계선을 중심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들이 허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라고 표현한 지역은 지역과 인종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불만 때문에 지금으로 말하면 테러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일반인들이 거의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그 곳을 은신처로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회와 유대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곳에 와서 생활했습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서로 으르릉 거리며 싸우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에 걸려 자신들의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을 때 그들은 지역과 혈통, 신분을 초월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았습니다. 그 곳에는 문둥병에 걸린 아홉 명의 유대인과 한 명의 사마리아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예수님이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병자들을 낫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은 흥분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문둥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청하면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의 일행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자신들의 앞을 지나갈 때 멀리 서서 ‘예수님, 우리들이 문둥병에 걸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 서서 부르짖는 열 명의 문둥병자를 향해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에서 낫게 되면 그는 먼저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여 문둥병이 깨끗이 나은 것을 확인 받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문둥병에서 낫은 사람들을 위해 속건제를 드린 후에 가정과 사회로 돌려 보내게 했습니다. 이런 율법을 중심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문둥병이 치료되었으니 제사장들에게 가서 확인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둥병자들의 몸에 치료되는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이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에 들어가면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아마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을 겁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우리를 놀리는 것이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으니 그의 말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가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협의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내리고 제사장들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을로 향해 걸어가는 가운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문둥병 상처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짖물렀던 상처들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이 치료 된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깨끗해진 자신들의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고 빨리 가족에게로 돌아가기 위해서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사마리아가 고향인 한 사람은 제사장과 마을로 뛰어가지 않고 예수님에게로 뛰어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일행을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제가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이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문둥병에서 나음을 받은 사람은 열 사람인데 그 중에 유대 사람 아홉은 어디가고, 사마리아 사람인 너 혼자만 내게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향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은 문둥병에서 치료받고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우리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다르게 말하면 문둥병에서 나았음을 감사한 사마리아 사람은 구원을 받았지만, 감사하지 않은 아홉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유대 사람 아홉은 문둥병이라는 질병으로부터는 치료를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은 질병으로부터 나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만나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 질병이 치료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문둥병으로부터 낫게 하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결단을 확인할 수 있는 신앙의 덕목이 바로 감사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풍부와 궁핍의 문제가 아닙니다. 풍부하면 감사하고 궁핍하면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는 풍부와 궁핍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심으로 믿음은 곧 감사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매우 쉬울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홉은 감사하지 않고 한 사람만 감사했습니다. 9:1입니다.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아홉이고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감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에 속한 사람이라면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의 유대 사람일 것 같습니까? 아니면 감사할 줄 아는 사마리아 사람일 것 같습니까? 조금 거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9:1의 비율의 법칙으로 보면 우리들은 감사하지 않은 아홉명의 유대 사람에 더 가까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파트 2층에서 사는 어떤 주부가 어느 날 대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아직 걷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예쁜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이 주부는 대청소를 하는 동안 아이를 바깥 잔디밭에 놀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와 강아지를 잔디밭에서 놀게 했습니다. 그녀는 청소하는 틈틈이 베란다로 가서 밖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 쪼이는 잔디밭에서 아이와 강아지는 잘 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일하다가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느라고 베란다에 나와 차를 마시면서 아이와 강아지가 노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평화스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그녀는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는 쿠키를 실에 매달아 천천히 밑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쿠키가 거의 아이의 손에 미칠 즈음에 강아지가 먼저 냄새를 맡고는 그 쿠키를 덥썩 물고 빼앗길까봐 얼른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사라진 강아지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급히 실을 끌어 올려 쿠키를 또 하나 묶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두리번 거리는 아이의 눈 앞에 쿠키가 달랑 달랑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쿠키를 손으로 잡더니 잠시 그 쿠키를 쳐다 보았습니다. 아이는 쿠키에 묶여 있는 실을 발견하고는 그 실을 따라 고개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실을 따라 올라가던 그 아이의 눈은 결국 베란다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밝은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나서 쿠키를 입에 넣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 줍니다. 강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는 데 빨랐습니다. 누가 준 것인지를 아는 것은 강아지에게는 관심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린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살펴 볼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을 즐기기 전에 먼저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됨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는 실이 묶여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말입니다. 우리들이 조금만 힘주어 잡아채면 금새 떨어지지만 조심해서 잘 살펴 보면 우리가 손에 쥔 모든 것에는 실이 묶여져 있습니다. 그 실을 따라 고개를 올려보면 우리를 향해 웃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쿠키를 즐기는 데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는 데에만 몰두하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잠시만이라도 우리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곳곳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다움입니다. 우리들은 이 인간다움을 너무나 많이 잃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야곱과 다윗입니다. 그들의 마지막 죽음 앞에서의 고백은 ‘감사’였습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가장 귀한 고백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고 불평은 불평을 낳습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는 삶의 자리를 만들면 그 삶의 현장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감사는 내 생활 속에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가 침범하는 것을 막는 백신입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독소들을 해독시켜 주는 해독제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부패하지 않도록 도와 주는 방부제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의 조건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이 예배를 드리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감사의 영성’을 가지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대함으로 감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성도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9대 1의 감사 /눅17:11-19/추수감사주일
9대 1의 감사 눅17:11-19 추수감사주일 사람은 누구나 다 시간이 지나면 늙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대략 30조 개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세포들은 계속 분열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기도 하고 늙어서 죽기도 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포의 속도가 세포의 죽는 속도보다 빠르면 사람이 성장하는 겁니다. 반대로 세포의 죽는 속도가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면 노화가 되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사람의노화되는 원인을 찾아 처방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젊고 오래살 수 있도록 무던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육체가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유명한 랍비에게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랍비는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시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마음이 늙어가는 징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의 건강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한 부흥사가 집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그 버스에 아주 뚱뚱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개구쟁이 어린 아이 다섯을 데리고 올라탔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개구쟁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를 부르는 아이, 울며 불며 떼를 쓰는 아이, 버스 이곳 저곳을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아이,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소리 지르며 떠드는 아이들로 인해 버스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뚱뚱한 아주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욕하고 아이들을 험악하게 때리고 하는 가운데 더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부흥사는 피곤해서 좀 쉬기도 하고 집회에서 전할 말씀도 묵상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흥사는 금방이라도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음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부흥사가 순간적으로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열 명의 문둥 병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료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 안에서 치료되는 기적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정작 강조하는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이들은 만나면 서로 미워하며 험악하게 싸웠습니다. 특히 갈릴리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지역 경계선을 중심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들이 허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라고 표현한 지역은 지역과 인종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불만 때문에 지금으로 말하면 테러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일반인들이 거의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그 곳을 은신처로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회와 유대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곳에 와서 생활했습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서로 으르릉 거리며 싸우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에 걸려 자신들의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을 때 그들은 지역과 혈통, 신분을 초월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았습니다. 그 곳에는 문둥병에 걸린 아홉 명의 유대인과 한 명의 사마리아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예수님이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병자들을 낫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은 흥분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문둥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청하면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의 일행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자신들의 앞을 지나갈 때 멀리 서서 ‘예수님, 우리들이 문둥병에 걸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 서서 부르짖는 열 명의 문둥병자를 향해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에서 낫게 되면 그는 먼저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여 문둥병이 깨끗이 나은 것을 확인 받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문둥병에서 낫은 사람들을 위해 속건제를 드린 후에 가정과 사회로 돌려 보내게 했습니다. 이런 율법을 중심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문둥병이 치료되었으니 제사장들에게 가서 확인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둥병자들의 몸에 치료되는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이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에 들어가면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아마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을 겁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우리를 놀리는 것이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으니 그의 말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가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협의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내리고 제사장들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을로 향해 걸어가는 가운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문둥병 상처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짖물렀던 상처들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이 치료 된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깨끗해진 자신들의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고 빨리 가족에게로 돌아가기 위해서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사마리아가 고향인 한 사람은 제사장과 마을로 뛰어가지 않고 예수님에게로 뛰어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일행을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제가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이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문둥병에서 나음을 받은 사람은 열 사람인데 그 중에 유대 사람 아홉은 어디가고, 사마리아 사람인 너 혼자만 내게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향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은 문둥병에서 치료받고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우리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다르게 말하면 문둥병에서 나았음을 감사한 사마리아 사람은 구원을 받았지만, 감사하지 않은 아홉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유대 사람 아홉은 문둥병이라는 질병으로부터는 치료를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은 질병으로부터 나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만나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 질병이 치료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문둥병으로부터 낫게 하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결단을 확인할 수 있는 신앙의 덕목이 바로 감사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풍부와 궁핍의 문제가 아닙니다. 풍부하면 감사하고 궁핍하면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는 풍부와 궁핍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심으로 믿음은 곧 감사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매우 쉬울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홉은 감사하지 않고 한 사람만 감사했습니다. 9:1입니다.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아홉이고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감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에 속한 사람이라면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의 유대 사람일 것 같습니까? 아니면 감사할 줄 아는 사마리아 사람일 것 같습니까? 조금 거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9:1의 비율의 법칙으로 보면 우리들은 감사하지 않은 아홉명의 유대 사람에 더 가까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파트 2층에서 사는 어떤 주부가 어느 날 대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아직 걷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예쁜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이 주부는 대청소를 하는 동안 아이를 바깥 잔디밭에 놀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와 강아지를 잔디밭에서 놀게 했습니다. 그녀는 청소하는 틈틈이 베란다로 가서 밖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 쪼이는 잔디밭에서 아이와 강아지는 잘 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일하다가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느라고 베란다에 나와 차를 마시면서 아이와 강아지가 노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평화스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그녀는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는 쿠키를 실에 매달아 천천히 밑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쿠키가 거의 아이의 손에 미칠 즈음에 강아지가 먼저 냄새를 맡고는 그 쿠키를 덥썩 물고 빼앗길까봐 얼른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사라진 강아지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급히 실을 끌어 올려 쿠키를 또 하나 묶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두리번 거리는 아이의 눈 앞에 쿠키가 달랑 달랑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쿠키를 손으로 잡더니 잠시 그 쿠키를 쳐다 보았습니다. 아이는 쿠키에 묶여 있는 실을 발견하고는 그 실을 따라 고개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실을 따라 올라가던 그 아이의 눈은 결국 베란다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밝은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나서 쿠키를 입에 넣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 줍니다. 강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는 데 빨랐습니다. 누가 준 것인지를 아는 것은 강아지에게는 관심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린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살펴 볼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을 즐기기 전에 먼저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됨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는 실이 묶여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말입니다. 우리들이 조금만 힘주어 잡아채면 금새 떨어지지만 조심해서 잘 살펴 보면 우리가 손에 쥔 모든 것에는 실이 묶여져 있습니다. 그 실을 따라 고개를 올려보면 우리를 향해 웃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쿠키를 즐기는 데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는 데에만 몰두하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잠시만이라도 우리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곳곳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다움입니다. 우리들은 이 인간다움을 너무나 많이 잃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야곱과 다윗입니다. 그들의 마지막 죽음 앞에서의 고백은 ‘감사’였습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가장 귀한 고백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고 불평은 불평을 낳습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는 삶의 자리를 만들면 그 삶의 현장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감사는 내 생활 속에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가 침범하는 것을 막는 백신입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독소들을 해독시켜 주는 해독제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부패하지 않도록 도와 주는 방부제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의 조건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이 예배를 드리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감사의 영성’을 가지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대함으로 감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성도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9대 1의 감사/ 눅17:11-19
9대 1의 감사 눅17:11-19 예수님께서 오늘도 환자를 만나셨다. 이 환자는 다름 아닌 문둥병으로 거의 불치의 병으로 사람들이 절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은 1871년에 \"한 센\"씨가 나병의 균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일명 한센씨 병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이 나병은 주로 동양과 열대지방에서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외피로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세균 작용으로 눈섭,뺨,코,귀등에 결절이 생기는가 하면 손과 발의 관절을 녹여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러한 나병은 동서 고금을 통하여 혐오스럽고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여겼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격리시켰고 성경에는 가끔 이 문둥병을 죄의 결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나환자들은 거의 모두 고침을 받은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예로 모세의 손 (출 4:7 ), 미리암 ( 민 12:10 ),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요단에 가서 7 번 목욕한 후에 깨끝하여졌다. ( 왕하 5: ) 누가복음 17 장에서는 10 명의 문둥이가 깨끝하여졌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나병환자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셨다고 하는 이 기사가 자주 반복되어도 그것을 마치 감기 정도나 고쳐 준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무의식 중에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그들을 볼 수 없다고 하여서 환자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1986 년 9 월 30 일 현재 보건사회부에 등록되어 있는 수효를 보면 전국의 나환자 수는 25,180 명이다. 이들은 주로 소록도와 같은 정착지에 모여 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등록되지 않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나 환자 시인 < 한 하운 > 을 아시지요 ? 그가 쓴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라. 낯선 친구를 만나면 우리들 문등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십리 길 전라도 길 오늘 본문에 나오는 10 문둥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 온다. 민 5:1- 3 을 보면 모든 문둥병 환자나 유출병 환자는 모두 진 밖에 내 보내게 되어 있다. 남녀 불문하고 내 보냈다. 만약 진 안에 들어 오는 자가 있으면 돌로 쳐 죽이라고 엄하게 명 하였다. 제사장들의 검진을 받아서 부정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지체 없이 진 밖으로 추방을 당하였다. 사람들은 세상이 무정하다는 것을 깨닫고 울면서 정든 고향과 처자식을 등지고 마구 쫏김을 당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 정처 없이 가는 길이 어둡기만 하다. 뒤에서 우는 처 자식의 정상을 생각하면 간장이 녹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찌하랴 ? 이리 저리 걸식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서러움에 북 받쳐 흘러 가는 시냇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옛 일을 회상하기도 한다. 한 하운의 또 하나의 시가 애절하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양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 지나 필리리 아마 이렇게 다니다가 여러 곳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끼리 한 곳에 모인 것이 10 명을 이루게 된 모양이다. 이들이 모여 있던 곳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국경 근방으로 보인다. 그들은 거기에서 서로 위로하며 살아 갔을 것이다. 어느 날씨가 좋은 때에는 화창한 바깥 날씨를 바라 보면서 이런 농담도 하였을게다. \" 병 낫게 해 주는 사람이있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 \" 나 말인가 ? 그러면 나와 내 처자가 함께 그 사람의 종노릇하지 !\" \" 나도 그런 심정이야 .\" \" 저 친구는 처가 개가하고 애들만 남았다지 ?\" 사람이 답답한 일을 만나면 무슨 일인들 못하며 무슨 말인들 못하는가 ? 이렇게 몽여 앉아 이야기 하던 어느 날 누군가 한 사람이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가져 왔다.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마 9:12-13 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분명하게 전하여 듣게 된 것이다. 그 분이 지금 이곳 가까운 곳으로 지나 가시게 된다는 소식도 가져왔다. 마침 가까운 촌에 들어 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수님을 만나고저 하였다. 그들은 멀리 서서 외쳤다. \"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말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이다. 예수님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 하셨다. 이 말을 들은 10 문둥이들이 제사장에게 가다가 몸이 깨끝하여 진 것을 발견하였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 꿈인가 생시인가 하여 어리둥절하였을 것이다. 9 사람은 제 갈 길로 뿔뿔히 흩어졌다. 아마 그들은 고향이 그립고 처자가 보고 싶은 김에 어서 어서 속히 제사장에게로 가자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자기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가 고마워 우리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사례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사람을 말 없이 바라보고 계시다가 \" 10 사람이 다 깨끝함 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 하시고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 자가 없느냐 ?\" 하셨다. 아마도 인간의 무정을 생각하시고 무척 서운해 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 찾아 온 사마리아 문둥이의 감사를 생각하여 보자. I. 자기의 깨끝하여진 것이 예수님의 능력인 줄 알았다. 우연히 나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이라 하지 않았다. 다 썩어 뭉그러진 환자를 희고 깨끝하게 하여 주신 것이 주님의 능력이요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여러분 ! 겉 사람이 깨끝하다고 나는 문둥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 겉으로는 깨끝한 체 하면서도 썩어진 곳을 감추는 문둥병 환자처럼 영적으로 썩어져가는 문둥병 환자가 아닌가 ? 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며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 줄 것인가 하 고 고민하며 살지 않았는가 ? <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그 누가 나의 슬픔 알까 > 오늘 우리는 나의 생명 나의 건강 나의 재산 나의 자녀 나의 가정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주님의 축복인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희생의 보혈로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의 동기는 우리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신 사실에 대한 감격에서 우러 나와야 한다. 부요하시던 예수님 날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날 존귀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비천한 몸을 입으시고 말 구유 위에 누우시고, 최후에 그 머리에 가시관을 쓰심은 죄악으로 가득한 머리를 깨끝케 하시며 우리를 고치시려고 손 발과 옆구리에 창과 못에 찔리시어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우리 주님의 이러한 고난으로 우리가 오늘 구원을 입었는데, 그의 구속으로 오늘 내가 존재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는가 ? 눅 7:47 에는 사함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값 비싼 향유를 부으며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던 여인의 헌신적인 모습은 < 사죄 > 가 동기였다. II. 인정과 환경을 초월하는 감사를 드렸다. .+ 고침 받은 문둥이는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처자가 그리웠겠는가 ? 지금까지 오래 격리되었던 생활을 생각하면 속히 고향으로 달려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문둥이는 그것을 억제하고 먼저 예수님께로 달려 왔다. 인간이 자기의 형편에만 치중하면 집으로 달아 난 9 명의 문둥이와 다를 것이 없다. 영국의 청교도 시인 ~U존 밀턴~u은 44 세에 장님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안을 어둡게 하고 주님만을 보도록 신령한 눈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U사르밧 과부~u는 흉년에 자기의 독자와 함께 먹을 최후의 양식을 전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평생 먹을 양식을 갚아 주셨다. ~U가난한 과부~u는 자기가 먹고 살아 갈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부자에게는 엽전 두 렙돈은 매우 작은 것이나 그녀에게는 생활비 전부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인간의 사정과 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다. 지금은 김포 가도에 있는 선명회 고아원 병원은 원래 대구 동산 병원 안에 있었던 것이다. 피얼스 목사가 한국에 있는 고아들을 위하여 방송으로 호소하였을 때 어느 반신 불수 여인이 이혼을 당한 뒤에 자녀도 없이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좋은 라디오 하나가 유일의 소유인데 그것을 머리맡에 놓고 뉴스를 듣다가 한국 고아들을 위한 병원 소식에 견딜 수가 없어 그것을 팔아 병원 사업에 써 달라고 100 $ 을 가져 왔다. 10 사람이 다 깨끝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문둥이 같은 한 사람인가 생각해 보자. III. 행동으로 감사하였다. .+ 달아 난 9 사람들이 생각조차 안 하였겠는가 ? 남은 한 사람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었는데 반하여 9 사람은 행동이 없었다. 구원을 얻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런데 그것을 감사로 나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 여러분들은 그것을 행함으로 보이시기 바란다. 미국에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무수한 고생 끝에 백화점 왕이 되고, 재무부 장관이 되고, 미국위 10 대 재벌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존 와나메이커가 100 만 $ ( 9 억원 ) 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 \"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애들이 줄을 서서 추수감사예물을 제단에 바치는데 나는 너무 가난하여서 빈 손으로 온 것이 너무 괴로워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벽돌을 굽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례 달라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아 갔읍니다. 당시 잠버드 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하여 주셨읍니다. 그로부터 30 년이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단독으로 100 만 달라의 예배당을 짓게 되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하겠읍니까 ?\" 감사는 몸으로, 물질로, 행동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적인 복을 받는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건너 가서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간 것이 아니었다. 잘 믿어 보려고 한 것이었다. 미 대륙에 건너 가서 황무지를 개척하고 첫 농사를 지을 때까지 6 개월 동안 굶주림 속에서 초근 목피하면서 첫 농사를 지어 1/3 을 떼어 바치면서 감사를 드린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 결 론 ****** 1. 사마리아 인은 천대 받는 민족에 속한다. 그 중의 한 문둥병자가 감사를 드렸다. 2. 영적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우리는 그 감격과 감사를 배우자.
9대 1의 감사/ 눅17:11-19
9대 1의 감사 눅17:11-19 예수님께서 오늘도 환자를 만나셨다. 이 환자는 다름 아닌 문둥병으로 거의 불치의 병으로 사람들이 절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은 1871년에 \"한 센\"씨가 나병의 균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일명 한센씨 병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이 나병은 주로 동양과 열대지방에서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외피로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세균 작용으로 눈섭,뺨,코,귀등에 결절이 생기는가 하면 손과 발의 관절을 녹여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러한 나병은 동서 고금을 통하여 혐오스럽고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여겼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격리시켰고 성경에는 가끔 이 문둥병을 죄의 결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나환자들은 거의 모두 고침을 받은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예로 모세의 손 (출 4:7 ), 미리암 ( 민 12:10 ),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요단에 가서 7 번 목욕한 후에 깨끝하여졌다. ( 왕하 5: ) 누가복음 17 장에서는 10 명의 문둥이가 깨끝하여졌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나병환자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셨다고 하는 이 기사가 자주 반복되어도 그것을 마치 감기 정도나 고쳐 준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무의식 중에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그들을 볼 수 없다고 하여서 환자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1986 년 9 월 30 일 현재 보건사회부에 등록되어 있는 수효를 보면 전국의 나환자 수는 25,180 명이다. 이들은 주로 소록도와 같은 정착지에 모여 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등록되지 않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나 환자 시인 < 한 하운 > 을 아시지요 ? 그가 쓴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라. 낯선 친구를 만나면 우리들 문등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십리 길 전라도 길 오늘 본문에 나오는 10 문둥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 온다. 민 5:1- 3 을 보면 모든 문둥병 환자나 유출병 환자는 모두 진 밖에 내 보내게 되어 있다. 남녀 불문하고 내 보냈다. 만약 진 안에 들어 오는 자가 있으면 돌로 쳐 죽이라고 엄하게 명 하였다. 제사장들의 검진을 받아서 부정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지체 없이 진 밖으로 추방을 당하였다. 사람들은 세상이 무정하다는 것을 깨닫고 울면서 정든 고향과 처자식을 등지고 마구 쫏김을 당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 정처 없이 가는 길이 어둡기만 하다. 뒤에서 우는 처 자식의 정상을 생각하면 간장이 녹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찌하랴 ? 이리 저리 걸식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서러움에 북 받쳐 흘러 가는 시냇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옛 일을 회상하기도 한다. 한 하운의 또 하나의 시가 애절하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양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 지나 필리리 아마 이렇게 다니다가 여러 곳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끼리 한 곳에 모인 것이 10 명을 이루게 된 모양이다. 이들이 모여 있던 곳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국경 근방으로 보인다. 그들은 거기에서 서로 위로하며 살아 갔을 것이다. 어느 날씨가 좋은 때에는 화창한 바깥 날씨를 바라 보면서 이런 농담도 하였을게다. \" 병 낫게 해 주는 사람이있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 \" 나 말인가 ? 그러면 나와 내 처자가 함께 그 사람의 종노릇하지 !\" \" 나도 그런 심정이야 .\" \" 저 친구는 처가 개가하고 애들만 남았다지 ?\" 사람이 답답한 일을 만나면 무슨 일인들 못하며 무슨 말인들 못하는가 ? 이렇게 몽여 앉아 이야기 하던 어느 날 누군가 한 사람이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가져 왔다.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마 9:12-13 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분명하게 전하여 듣게 된 것이다. 그 분이 지금 이곳 가까운 곳으로 지나 가시게 된다는 소식도 가져왔다. 마침 가까운 촌에 들어 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수님을 만나고저 하였다. 그들은 멀리 서서 외쳤다. \"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말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이다. 예수님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 하셨다. 이 말을 들은 10 문둥이들이 제사장에게 가다가 몸이 깨끝하여 진 것을 발견하였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 꿈인가 생시인가 하여 어리둥절하였을 것이다. 9 사람은 제 갈 길로 뿔뿔히 흩어졌다. 아마 그들은 고향이 그립고 처자가 보고 싶은 김에 어서 어서 속히 제사장에게로 가자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자기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가 고마워 우리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사례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사람을 말 없이 바라보고 계시다가 \" 10 사람이 다 깨끝함 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 하시고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 자가 없느냐 ?\" 하셨다. 아마도 인간의 무정을 생각하시고 무척 서운해 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 찾아 온 사마리아 문둥이의 감사를 생각하여 보자. I. 자기의 깨끝하여진 것이 예수님의 능력인 줄 알았다. 우연히 나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이라 하지 않았다. 다 썩어 뭉그러진 환자를 희고 깨끝하게 하여 주신 것이 주님의 능력이요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여러분 ! 겉 사람이 깨끝하다고 나는 문둥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 겉으로는 깨끝한 체 하면서도 썩어진 곳을 감추는 문둥병 환자처럼 영적으로 썩어져가는 문둥병 환자가 아닌가 ? 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며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 줄 것인가 하 고 고민하며 살지 않았는가 ? <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그 누가 나의 슬픔 알까 > 오늘 우리는 나의 생명 나의 건강 나의 재산 나의 자녀 나의 가정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주님의 축복인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희생의 보혈로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의 동기는 우리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신 사실에 대한 감격에서 우러 나와야 한다. 부요하시던 예수님 날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날 존귀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비천한 몸을 입으시고 말 구유 위에 누우시고, 최후에 그 머리에 가시관을 쓰심은 죄악으로 가득한 머리를 깨끝케 하시며 우리를 고치시려고 손 발과 옆구리에 창과 못에 찔리시어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우리 주님의 이러한 고난으로 우리가 오늘 구원을 입었는데, 그의 구속으로 오늘 내가 존재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는가 ? 눅 7:47 에는 사함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값 비싼 향유를 부으며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던 여인의 헌신적인 모습은 < 사죄 > 가 동기였다. II. 인정과 환경을 초월하는 감사를 드렸다. .+ 고침 받은 문둥이는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처자가 그리웠겠는가 ? 지금까지 오래 격리되었던 생활을 생각하면 속히 고향으로 달려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문둥이는 그것을 억제하고 먼저 예수님께로 달려 왔다. 인간이 자기의 형편에만 치중하면 집으로 달아 난 9 명의 문둥이와 다를 것이 없다. 영국의 청교도 시인 ~U존 밀턴~u은 44 세에 장님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안을 어둡게 하고 주님만을 보도록 신령한 눈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U사르밧 과부~u는 흉년에 자기의 독자와 함께 먹을 최후의 양식을 전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평생 먹을 양식을 갚아 주셨다. ~U가난한 과부~u는 자기가 먹고 살아 갈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부자에게는 엽전 두 렙돈은 매우 작은 것이나 그녀에게는 생활비 전부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인간의 사정과 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다. 지금은 김포 가도에 있는 선명회 고아원 병원은 원래 대구 동산 병원 안에 있었던 것이다. 피얼스 목사가 한국에 있는 고아들을 위하여 방송으로 호소하였을 때 어느 반신 불수 여인이 이혼을 당한 뒤에 자녀도 없이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좋은 라디오 하나가 유일의 소유인데 그것을 머리맡에 놓고 뉴스를 듣다가 한국 고아들을 위한 병원 소식에 견딜 수가 없어 그것을 팔아 병원 사업에 써 달라고 100 $ 을 가져 왔다. 10 사람이 다 깨끝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문둥이 같은 한 사람인가 생각해 보자. III. 행동으로 감사하였다. .+ 달아 난 9 사람들이 생각조차 안 하였겠는가 ? 남은 한 사람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었는데 반하여 9 사람은 행동이 없었다. 구원을 얻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런데 그것을 감사로 나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 여러분들은 그것을 행함으로 보이시기 바란다. 미국에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무수한 고생 끝에 백화점 왕이 되고, 재무부 장관이 되고, 미국위 10 대 재벌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존 와나메이커가 100 만 $ ( 9 억원 ) 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 \"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애들이 줄을 서서 추수감사예물을 제단에 바치는데 나는 너무 가난하여서 빈 손으로 온 것이 너무 괴로워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벽돌을 굽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례 달라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아 갔읍니다. 당시 잠버드 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하여 주셨읍니다. 그로부터 30 년이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단독으로 100 만 달라의 예배당을 짓게 되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하겠읍니까 ?\" 감사는 몸으로, 물질로, 행동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적인 복을 받는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건너 가서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간 것이 아니었다. 잘 믿어 보려고 한 것이었다. 미 대륙에 건너 가서 황무지를 개척하고 첫 농사를 지을 때까지 6 개월 동안 굶주림 속에서 초근 목피하면서 첫 농사를 지어 1/3 을 떼어 바치면서 감사를 드린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 결 론 ****** 1. 사마리아 인은 천대 받는 민족에 속한다. 그 중의 한 문둥병자가 감사를 드렸다. 2. 영적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우리는 그 감격과 감사를 배우자.
9대 1의 감사/ 눅17:11-19
9대 1의 감사 눅17:11-19 재작년 년말에 서울 강남의 어느 교회가 예배당을 짖 고 들어 갔으나 돈 4천만원이 없어 예배당을 빼앗기게 생겼 다고 젊은 목사가 와서 하소연 하고 교인들이 와서 하소연 했지만 우리 교회도 건축중인데다가 또 그런 사정을 말하면 서 도와 달라는 교회가 한달에도 책상위에 수북하게 쌓이도 록 청원서가 오고 사람이 찾아 오기 때문에 일일이 다 도와 줄수도 없다고 거절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 목사가 재정 부장과 중진들까지 데리고 와서 눈물로 호소하기에 제가 노 후대책으로 마련했던 돈 4천만원을 꺼내 주었습니다. 가져간 후로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전화 한 통도 없고 신정 구정 이 지나도 아무런 말한마디도 없이 2년이 되어와도 아무소 식이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한 두건이 아닙니다. 인사를 받 기위해 도와 준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나 사람에게나 감사할 줄 아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 니까? 오늘 본문에도 불치의 병, 문둥병자를 열명이나 고쳐 주었지만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하다고 인사 한 사람은 10명 중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감사 할 줄아는 사람은 9대 1정도밖에 않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것 입니다. 오늘날 문둥병을 고치는 약이 나왔습니다마는 삼,사십 년 전만해도 고칠수 없는 병이 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사 랑하는 식구들과도 같이 못살고 동네에서도 추방당하여 다 리 밑에나 토굴에서 외롭게 살다가 온 몸이 썩어 죽는 병입 니다. 레위기 법전에 보면 문둥병자가 동네를 지나갈때에는 손을 윗입술에다 대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스스로 외 치면서 걸어가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문둥병 시인이 었던 한하운씨는 다음과 같은 가슴 저미는 듯한 시를 썼습니다. \"내 죄명은 문등이, 이것 참 어처구니 없는 죄올시다. 아무법전에도 어느 조항에도 없어 내 죄는 변호할 것이 없 습니다. 옛날 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부터 죄를 받 는 다고 했는데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밖에 세워 놓고 죄명은 문둥이라고? 이것참 어처구니 없는 죄올시다.\" 이 얼마나 기막힌 탄식의 시입니까? 이런 절망적인 문 둥병자 열명이 예수님이 지나 가신단 말을 듣고 가까이 가 지는 못하고 멀리서서 입에다 손을 대고 통성으로 부르짖었 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자 예 수님께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다가가셔서 \"가서 제사 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들이 이 말 씀을 믿고, 가다가 보니까 깨끗이 나아서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10명이 다 그 무서운 병에서 고침받 았는데 겨우 한 명만 가던길을 돌이켜 예수님께로 달려와 감격하여 예수님 발앞에 엎드려 감사 했습니다. 이 때 예수 님은 반갑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 열명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 하였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말씀 하셨 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 라\"고 더 큰 축복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 인도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 었습니다. 1.아홉명의 감사치 않은 죄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열명의 문둥병자들보다 천배, 만 배, 억만배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죄의 문 둥병에 걸려 무서운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 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고귀한 피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이나 어떤 고난 속에서도 늘 감사 감격하는 생활을 해 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10분의 1만큼도 감사한 생 활을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형편입니다. 그 아홉명은 배 은 망덕자들이었던 것 처럼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의 은혜에 배은 망덕의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무디(Moody)선생이 성경을 읽어 가다가 시편 103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속에 있는 것들아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모든 은택 을 잊지 말지니라\" 하는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다 잊지 않고 기억할수는 없어도 그 중에 몇가지 만이라도 잊지말고 기억하자\"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전네 미시건(Michigon) 호수에 배 한척이 침몰 했을 때 North West대학의 학생 한명이 뛰어 들어가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 23명을 구출해 주었습니다. 수 십년 후에 토레 이(Torrey)목사님이 설교 하다가 그 때 그 청년이 백발 노인 이 되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그 사건을 통 해 가장 인사에 남는 것이 무었입니까?\"하고 물으니까 \"단 한 사람도 고맙단 말을 한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라고 하더 랍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사를 잊고 살며 은혜에 배은 망덕하고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배은 망덕한 자들이 저주받은 사실들을 말씀하 고 있습니다. 다윗(David)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도 배은 망덕하여 아버지 왕좌를 찬탈 하고 아버지의 후궁까지 백주에 겁탈하기까지 했습니다. 결 국 전쟁중에 그 잘생긴 머리카락이 말타고 달리다가 상수리 나무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중에 하나인 가룟유다는 스승인 예 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먹은 뒤 그 돈 써보지도 못한 채 목 매달아 자살하여 곤두박질하면서 창자가 다 쏟아져 죽었고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라 하나님께도 인정을 못 받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못 받고 따라서 하나님 의 축복도 못 받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지도 못 합니다. 위 얼스비 박사(Dr. Warren Wiereshe) 는 말하기를 \"감사할 줄 모르는 마음은 온갖 죄악이 자라는 옥토이다.\" 라고 했습니 다. 2. 9대 1의 감사 열명중 한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감사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① 신속히 감사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때나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할 때는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기뻐 하시고 사람도 기뻐 합니다. 김빠진 사이다처럼 상대편의 인 사를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속으로 괘씸히 여긴다음에 인사 한다면 별 칭찬도 못 받습니다. 편지 회답도 편지를 보는 순 간 즉시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시편 119편 60절 에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 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사마리아 사람도 꿈에도 그리던 처자식 한테로 달려 가기전에 먼저 예수님께 로 달려와 엎드려 감사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홉명은 먼저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처자식을 먼저 앞세웠습니다. 어느 교수님의 글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제자 한 사 람이 논문을 쓰는데 필요하다고 설문지를 보내와서 몇 시간 이나 걸려서 정성스럽게 써서 보냈답니다. 그런데 받았다는 전화 한 마디 없고 감사하다는 인사 한 마디 없더랍니다. 괘 씸하게 생각하고 소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접어 두었는데 몇 달 후에 길에서 만났을 때 인사를 하더랍니다. 그 인사를 받 으면서도 괘씸한 마음이 가시지 않더랍니다. 감동이 올 때 즉시 감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 의 명령을 듣고도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좋으냐고 아 내와 의논하지 않고 이럴까 저럴까 고민 하지도 않았습니다. 새벽 동이트자마자 즉시 일어나 갔습니다. 3일길을 가는 동 안 변심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가 독자를 잡아 제사 드리려고 칼을 들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 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이제야 네가 나 를 경외하는 줄알았다. 네 아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 고 하 시면서 하나님이 준비 하셨던 산양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신속한 감사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②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는 감사입니다. 그 아홉명은 꿈에도 그리워하던 처자식한테로 먼저 달 려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것은 뒤로 미루었습 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주께서 말씀 하셨습니 다. 이 예수님의 말씀에 다 위배되었던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만사에 하나님을 앞세웁니다. 이레중 하루 를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수입의 십분의 일, 십일조를 하나 님께 드리고 나서 자기가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기가 쓸 것다 쓰고나서 나중에 드린다면 같은 양을 드린다고 해도 천지차이입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기에 게 하나밖에 없는 것, 가장 귀한아들,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하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주고 너를 저 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리라\"고 엄청난 복을 주셨습니다. ③ 겸손한 감사 였습니다. 겸손한 감사가 참된 감사입니다. 교만한 마음에는 감사 가 있을 수가 없고 억지로 감사한다고 해도 상대방을 불쾌 하게 만듭니다. 이 한 문둥이는 예수님께 달려와 예수님 발앞에 엎드 려 절하면서 감사 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 \"내가 누굽니 까?\" 하면서 다 제가 잘나서 잘 된줄 압니다. 고린도 후서 3 장 5절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것같이 생각 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 님께로서 났느니라\"고 말씀 했습니다. 항상 겸손히 감사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모범적인 감사의 결과 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본문에 보면 그 한 사람은 병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 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리 어 사례했다.\"고 했습니다. 감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도 그 한사람을 보고 \"그 아홉은 어디 있 느냐 이 이방인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자가 없는냐?\" 고 말씀 하셨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입술로나 물질 로나 찬송으로나 기도로나 감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줄 믿습니다. 사람도 감사를 제대로 하는 사람을 기뻐하고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더 주고 싶어 합니 다. 시편 50장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자가 나를 영화 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 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도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 이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까지 값없이 죄인들 을 구원 하시는 목적도 천국에서 영원히 찬송과 영광을 받 으시기위함인 것입니다. ②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명에 대해서는 섭섭한 마음 내지는 괘씸한 마음을 가지셨겠지만 이 한 사람의 감 사를 받으시고는 기쁨을 얻게 되신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 도 기쁘시게 하고 사람도 기쁘게 합니다. ③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는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일 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고 말씀해 주셨 습니다. 이 말씀은 무서운 육신의 질병과 더불어 영혼의 문 둥병, 죄에서도 구원 받아 영생을 주셨다는 말씀인 줄로 압 니다. 천만배, 억만배 더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아마 그 아 홉명은 육신의 병만 고침 받았지 영혼구원 까지는 못받은 줄 압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점점 더 큰 복을 주십니다. 북한은 연부년 계속 흉년이 드는데 남한은 계속 풍년 이 들 뿐 아니라 금년은 사상유례없는 큰 풍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도 특별한 감사를 드려야 내 년에도 후년에도 풍년을 주시고 어려운 경제도 되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을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 고 힘을 다해 지킬 때 여러분 각 가정에도 우리교회에도 더 복을 받게 될것입니다.
9대 1의 감사/ 눅17:11-19
9대 1의 감사 눅17:11-19 예수님께서 오늘도 환자를 만나셨다. 이 환자는 다름 아닌 문둥병으로 거의 불치의 병으로 사람들이 절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병은 1871년에 \\\"한 센\\\"씨가 나병의 균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일명 한센씨 병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이 나병은 주로 동양과 열대지방에서 많이 발병하는 것으로 외피로부터 시작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세균 작용으로 눈섭,뺨,코,귀등에 결절이 생기는가 하면 손과 발의 관절을 녹여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러한 나병은 동서 고금을 통하여 혐오스럽고 고치기 어려운 병으로 여겼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격리시켰고 성경에는 가끔 이 문둥병을 죄의 결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나환자들은 거의 모두 고침을 받은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예로 모세의 손 (출 4:7 ), 미리암 ( 민 12:10 ), 아람의 나아만 장군은 요단에 가서 7 번 목욕한 후에 깨끝하여졌다. ( 왕하 5: ) 누가복음 17 장에서는 10 명의 문둥이가 깨끝하여졌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나병환자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는 모르나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셨다고 하는 이 기사가 자주 반복되어도 그것을 마치 감기 정도나 고쳐 준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무의식 중에 나타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그들을 볼 수 없다고 하여서 환자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1986 년 9 월 30 일 현재 보건사회부에 등록되어 있는 수효를 보면 전국의 나환자 수는 25,180 명이다. 이들은 주로 소록도와 같은 정착지에 모여 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등록되지 않은 환자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나 환자 시인 < 한 하운 > 을 아시지요 ? 그가 쓴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뿐이라. 낯선 친구를 만나면 우리들 문등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 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십리 길 전라도 길 오늘 본문에 나오는 10 문둥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 온다. 민 5:1- 3 을 보면 모든 문둥병 환자나 유출병 환자는 모두 진 밖에 내 보내게 되어 있다. 남녀 불문하고 내 보냈다. 만약 진 안에 들어 오는 자가 있으면 돌로 쳐 죽이라고 엄하게 명 하였다. 제사장들의 검진을 받아서 부정하다는 판정을 받으면 지체 없이 진 밖으로 추방을 당하였다. 사람들은 세상이 무정하다는 것을 깨닫고 울면서 정든 고향과 처자식을 등지고 마구 쫏김을 당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면서 정처 없이 가는 길이 어둡기만 하다. 뒤에서 우는 처 자식의 정상을 생각하면 간장이 녹는 것 같다. 그러나 어찌하랴 ? 이리 저리 걸식하며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서러움에 북 받쳐 흘러 가는 시냇가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옛 일을 회상하기도 한다. 한 하운의 또 하나의 시가 애절하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양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필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 지나 필리리 아마 이렇게 다니다가 여러 곳에서 추방당한 사람들끼리 한 곳에 모인 것이 10 명을 이루게 된 모양이다. 이들이 모여 있던 곳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국경 근방으로 보인다. 그들은 거기에서 서로 위로하며 살아 갔을 것이다. 어느 날씨가 좋은 때에는 화창한 바깥 날씨를 바라 보면서 이런 농담도 하였을게다. \\\" 병 낫게 해 주는 사람이있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 \\\" 나 말인가 ? 그러면 나와 내 처자가 함께 그 사람의 종노릇하지 !\\\" \\\" 나도 그런 심정이야 .\\\" \\\" 저 친구는 처가 개가하고 애들만 남았다지 ?\\\" 사람이 답답한 일을 만나면 무슨 일인들 못하며 무슨 말인들 못하는가 ? 이렇게 몽여 앉아 이야기 하던 어느 날 누군가 한 사람이 예수님에 관한 소식을 가져 왔다.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마 9:12-13 하신 예수님의 말씀까지 분명하게 전하여 듣게 된 것이다. 그 분이 지금 이곳 가까운 곳으로 지나 가시게 된다는 소식도 가져왔다. 마침 가까운 촌에 들어 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수님을 만나고저 하였다. 그들은 멀리 서서 외쳤다. \\\"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 말은 긍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이다. 예수님께서 이 소리를 들으시고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 하셨다. 이 말을 들은 10 문둥이들이 제사장에게 가다가 몸이 깨끝하여 진 것을 발견하였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 꿈인가 생시인가 하여 어리둥절하였을 것이다. 9 사람은 제 갈 길로 뿔뿔히 흩어졌다. 아마 그들은 고향이 그립고 처자가 보고 싶은 김에 어서 어서 속히 제사장에게로 가자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자기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예수님의 은혜가 고마워 우리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사례 하였다.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 사람을 말 없이 바라보고 계시다가 \\\" 10 사람이 다 깨끝함 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 하시고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 자가 없느냐 ?\\\" 하셨다. 아마도 인간의 무정을 생각하시고 무척 서운해 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 찾아 온 사마리아 문둥이의 감사를 생각하여 보자. I. 자기의 깨끝하여진 것이 예수님의 능력인 줄 알았다. 우연히 나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이라 하지 않았다. 다 썩어 뭉그러진 환자를 희고 깨끝하게 하여 주신 것이 주님의 능력이요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여러분 ! 겉 사람이 깨끝하다고 나는 문둥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 겉으로는 깨끝한 체 하면서도 썩어진 곳을 감추는 문둥병 환자처럼 영적으로 썩어져가는 문둥병 환자가 아닌가 ? 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며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내 줄 것인가 하 고 고민하며 살지 않았는가 ? <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그 누가 나의 슬픔 알까 > 오늘 우리는 나의 생명 나의 건강 나의 재산 나의 자녀 나의 가정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주님의 축복인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희생의 보혈로 사망의 몸에서 벗어나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사의 동기는 우리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신 사실에 대한 감격에서 우러 나와야 한다. 부요하시던 예수님 날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날 존귀하게 하시려고 스스로 비천한 몸을 입으시고 말 구유 위에 누우시고, 최후에 그 머리에 가시관을 쓰심은 죄악으로 가득한 머리를 깨끝케 하시며 우리를 고치시려고 손 발과 옆구리에 창과 못에 찔리시어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우리 주님의 이러한 고난으로 우리가 오늘 구원을 입었는데, 그의 구속으로 오늘 내가 존재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는가 ? 눅 7:47 에는 사함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는 말씀이 있다. 예수님의 머리에 값 비싼 향유를 부으며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던 여인의 헌신적인 모습은 < 사죄 > 가 동기였다. II. 인정과 환경을 초월하는 감사를 드렸다. .+ 고침 받은 문둥이는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처자가 그리웠겠는가 ? 지금까지 오래 격리되었던 생활을 생각하면 속히 고향으로 달려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문둥이는 그것을 억제하고 먼저 예수님께로 달려 왔다. 인간이 자기의 형편에만 치중하면 집으로 달아 난 9 명의 문둥이와 다를 것이 없다. 영국의 청교도 시인 ~U존 밀턴~u은 44 세에 장님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육안을 어둡게 하고 주님만을 보도록 신령한 눈을 주신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 ~U사르밧 과부~u는 흉년에 자기의 독자와 함께 먹을 최후의 양식을 전부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평생 먹을 양식을 갚아 주셨다. ~U가난한 과부~u는 자기가 먹고 살아 갈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 부자에게는 엽전 두 렙돈은 매우 작은 것이나 그녀에게는 생활비 전부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인간의 사정과 환경을 고려하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다. 지금은 김포 가도에 있는 선명회 고아원 병원은 원래 대구 동산 병원 안에 있었던 것이다. 피얼스 목사가 한국에 있는 고아들을 위하여 방송으로 호소하였을 때 어느 반신 불수 여인이 이혼을 당한 뒤에 자녀도 없이 자기의 유일한 친구인 좋은 라디오 하나가 유일의 소유인데 그것을 머리맡에 놓고 뉴스를 듣다가 한국 고아들을 위한 병원 소식에 견딜 수가 없어 그것을 팔아 병원 사업에 써 달라고 100 $ 을 가져 왔다. 10 사람이 다 깨끝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 ?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사마리아 문둥이 같은 한 사람인가 생각해 보자. III. 행동으로 감사하였다. .+ 달아 난 9 사람들이 생각조차 안 하였겠는가 ? 남은 한 사람이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었는데 반하여 9 사람은 행동이 없었다. 구원을 얻고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런데 그것을 감사로 나타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 여러분들은 그것을 행함으로 보이시기 바란다. 미국에서 가난한 가정에 태어나 무수한 고생 끝에 백화점 왕이 되고, 재무부 장관이 되고, 미국위 10 대 재벌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존 와나메이커가 100 만 $ ( 9 억원 ) 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 \\\"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애들이 줄을 서서 추수감사예물을 제단에 바치는데 나는 너무 가난하여서 빈 손으로 온 것이 너무 괴로워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벽돌을 굽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례 달라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아 갔읍니다. 당시 잠버드 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하여 주셨읍니다. 그로부터 30 년이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단독으로 100 만 달라의 예배당을 짓게 되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하겠읍니까 ?\\\" 감사는 몸으로, 물질로, 행동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실제적인 복을 받는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건너 가서 한번 잘 살아 보겠다고 간 것이 아니었다. 잘 믿어 보려고 한 것이었다. 미 대륙에 건너 가서 황무지를 개척하고 첫 농사를 지을 때까지 6 개월 동안 굶주림 속에서 초근 목피하면서 첫 농사를 지어 1/3 을 떼어 바치면서 감사를 드린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 결 론 ****** 1. 사마리아 인은 천대 받는 민족에 속한다. 그 중의 한 문둥병자가 감사를 드렸다. 2. 영적 문둥병에서 고침 받은 우리는 그 감격과 감사를 배우자.
9대 1의 감사/ 눅17:11-19/ 2008-11-18
9대 1의 감사 눅17:11-19 사람은 누구나 다 시간이 지나면 늙습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는 대략 30조 개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세포들은 계속 분열해서 새로운 세포를 만들기도 하고 늙어서 죽기도 합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포의 속도가 세포의 죽는 속도보다 빠르면 사람이 성장하는 겁니다. 반대로 세포의 죽는 속도가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면 노화가 되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사람의노화되는 원인을 찾아 처방함으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더 젊고 오래살 수 있도록 무던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육체가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늙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유명한 랍비에게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랍비는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시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마음이 늙어가는 징후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의 건강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한 부흥사가 집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그 버스에 아주 뚱뚱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개구쟁이 어린 아이 다섯을 데리고 올라탔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개구쟁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를 부르는 아이, 울며 불며 떼를 쓰는 아이, 버스 이곳 저곳을 부산하게 돌아다니는 아이,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소리 지르며 떠드는 아이들로 인해 버스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뚱뚱한 아주머니가 자신의 아이들을 향해 큰 소리로 욕하고 아이들을 험악하게 때리고 하는 가운데 더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부흥사는 피곤해서 좀 쉬기도 하고 집회에서 전할 말씀도 묵상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부흥사는 금방이라도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마음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부흥사가 순간적으로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감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열 명의 문둥 병자가 예수님을 통해 치료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이 예수님의 능력 안에서 치료되는 기적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정작 강조하는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이들은 만나면 서로 미워하며 험악하게 싸웠습니다. 특히 갈릴리 사람들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지역 경계선을 중심으로 서로 죽고 죽이는 일들이 허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라고 표현한 지역은 지역과 인종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불만 때문에 지금으로 말하면 테러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일반인들이 거의 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그 곳을 은신처로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회와 유대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곳에 와서 생활했습니다. 몸이 건강할 때는 서로 으르릉 거리며 싸우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문둥병에 걸려 자신들의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을 때 그들은 지역과 혈통, 신분을 초월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았습니다. 그 곳에는 문둥병에 걸린 아홉 명의 유대인과 한 명의 사마리아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예수님이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많은 병자들을 낫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은 흥분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문둥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간청하면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을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의 일행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자신들의 앞을 지나갈 때 멀리 서서 ‘예수님, 우리들이 문둥병에 걸려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 서서 부르짖는 열 명의 문둥병자를 향해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서 너희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율법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둥병에서 낫게 되면 그는 먼저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여 문둥병이 깨끗이 나은 것을 확인 받도록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문둥병에서 낫은 사람들을 위해 속건제를 드린 후에 가정과 사회로 돌려 보내게 했습니다. 이런 율법을 중심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문둥병이 치료되었으니 제사장들에게 가서 확인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둥병자들의 몸에 치료되는 어떤 변화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둥병이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을에 들어가면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아마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을 겁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우리를 놀리는 것이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권위가 있으니 그의 말을 믿고 제사장들에게 가자.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협의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내리고 제사장들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을로 향해 걸어가는 가운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문둥병 상처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짖물렀던 상처들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이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이 치료 된 것을 보고 기뻐서 어쩔줄 몰랐습니다. 그들은 깨끗해진 자신들의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고 빨리 가족에게로 돌아가기 위해서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사마리아가 고향인 한 사람은 제사장과 마을로 뛰어가지 않고 예수님에게로 뛰어 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일행을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제가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이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감사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문둥병에서 나음을 받은 사람은 열 사람인데 그 중에 유대 사람 아홉은 어디가고, 사마리아 사람인 너 혼자만 내게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향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은 문둥병에서 치료받고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우리들은 주목해야 합니다. ‘일어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다르게 말하면 문둥병에서 나았음을 감사한 사마리아 사람은 구원을 받았지만, 감사하지 않은 아홉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유대 사람 아홉은 문둥병이라는 질병으로부터는 치료를 받았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은 질병으로부터 나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만나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 질병이 치료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문둥병으로부터 낫게 하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을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결단을 확인할 수 있는 신앙의 덕목이 바로 감사입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는 풍부와 궁핍의 문제가 아닙니다. 풍부하면 감사하고 궁핍하면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는 풍부와 궁핍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고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심으로 믿음은 곧 감사임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매우 쉬울 것 같습니다. 누구나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홉은 감사하지 않고 한 사람만 감사했습니다. 9:1입니다.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아홉이고 받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감사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명의 문둥병자에 속한 사람이라면 받은 은혜를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의 유대 사람일 것 같습니까? 아니면 감사할 줄 아는 사마리아 사람일 것 같습니까? 조금 거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9:1의 비율의 법칙으로 보면 우리들은 감사하지 않은 아홉명의 유대 사람에 더 가까운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파트 2층에서 사는 어떤 주부가 어느 날 대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아직 걷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예쁜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이 주부는 대청소를 하는 동안 아이를 바깥 잔디밭에 놀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녀는 아이와 강아지를 잔디밭에서 놀게 했습니다. 그녀는 청소하는 틈틈이 베란다로 가서 밖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 쪼이는 잔디밭에서 아이와 강아지는 잘 놀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일하다가 그녀는 잠시 숨을 돌리느라고 베란다에 나와 차를 마시면서 아이와 강아지가 노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평화스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습니다. 그녀는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는 쿠키를 실에 매달아 천천히 밑으로 내려 보냈습니다. 쿠키가 거의 아이의 손에 미칠 즈음에 강아지가 먼저 냄새를 맡고는 그 쿠키를 덥썩 물고 빼앗길까봐 얼른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사라진 강아지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급히 실을 끌어 올려 쿠키를 또 하나 묶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두리번 거리는 아이의 눈 앞에 쿠키가 달랑 달랑 매달려 있었습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쿠키를 손으로 잡더니 잠시 그 쿠키를 쳐다 보았습니다. 아이는 쿠키에 묶여 있는 실을 발견하고는 그 실을 따라 고개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실을 따라 올라가던 그 아이의 눈은 결국 베란다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밝은 얼굴로 웃음을 지으며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나서 쿠키를 입에 넣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잘 말해 줍니다. 강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는 데 빨랐습니다. 누가 준 것인지를 아는 것은 강아지에게는 관심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그 어린 아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살펴 볼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을 즐기기 전에 먼저 감사할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됨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는 실이 묶여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말입니다. 우리들이 조금만 힘주어 잡아채면 금새 떨어지지만 조심해서 잘 살펴 보면 우리가 손에 쥔 모든 것에는 실이 묶여져 있습니다. 그 실을 따라 고개를 올려보면 우리를 향해 웃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쿠키를 즐기는 데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즐기는 데에만 몰두하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생활 속에서 잠시만이라도 우리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곳곳에서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다움입니다. 우리들은 이 인간다움을 너무나 많이 잃어가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야곱과 다윗입니다. 그들의 마지막 죽음 앞에서의 고백은 ‘감사’였습니다. 영국 격언에 ‘지옥이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곳이고 천국이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가장 귀한 고백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고 불평은 불평을 낳습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는 삶의 자리를 만들면 그 삶의 현장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감사는 내 생활 속에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가 침범하는 것을 막는 백신입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독소들을 해독시켜 주는 해독제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마음과 신앙이 부패하지 않도록 도와 주는 방부제입니다. 감사가 없는 삶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신앙의 조건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오늘도 우리들이 이 예배를 드리고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갈 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사람이 보여준 ‘감사의 영성’을 가지고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대함으로 감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성도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합3:16-19/ 추수감사주일설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합3:16-19 2001-11-09 14:34:24 read : 116 오늘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추수감사주일은 미국과 카나다에 속한 교회의 전통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이렇게 설명되어지기 때문이다. 1619년 12월 4일 38명의 영국 이주민들은 지금의 버지니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들 그룹의 선언서는 해마다 그날을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날로 지킬 것을 규정하였다. 첫해의 매사추세스의 무서운 겨울은 그 이주민들의 반절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러나 1621년 여름 새로운 희망이 솟아 올랐다. 정착민들은 콩이나 밀의 변변챦은 수확에도 불구하고 좋은 옥수수 수확을 기대하였다. 이른 가을 주지사 윌리엄 브래드포드는 이주민들이 이룬 진보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자 추수 감사 축제를 준비하였다. 축제는 3일간 계속되었고, 오리와 거위 칠면조들을 잡았고, 약 90명의 인디안들도 그 축제에 같이 참석하였고 그들은 다섯 마리의 사슴을 내어 놓았다. 일견 이 추수감사주일이 미국 교회 역사에 속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그들의 전통을 굳이 지켜야 하는가? 하여 추석 때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그럼에도 이 추수감사주일이 추석 시기에 드려지거나 아니면 11월 3째 주에 드려지거나 우리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를 드렸던 그 당대의 사람들은 미국 사람으로서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감사를 드렸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실 추수가 풍성하였기에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니었다. 사실적으로 감사를 드릴만큼 풍성했기에 감사드린 것 아니었다. 이미 언급한 바대로 그들 수의 반절이 그 해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서 배고픔과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그 이듬해 수확도 옥수수 이외에 그들이 감사할 작물이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옥수수로 연명하게 되었음을 고마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신앙적 자유를 누리며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한 것이었다. 그것은 신앙적 박해를 피해 영국을 떠나 신앙적 자유를 찾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다. 하나님은 왜 이러한 감사를 요청하시는가? 감사가 하나님께 어떤 도움이 되기 때문인가? 감사는 절대적 신뢰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비록 참담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회복하실 것이라는 분명한 기대를 지닌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사는 곧 감사하는 사람에게 지극한 기쁨을 가져온다. 감사를 요청하는 궁극적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감사할 수 있음에서 오는 기쁨을 우리들 자신들이 소유하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에서 오는 기쁨을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기를 원하신다. 이 절대적 신뢰야말로 바로 오늘 하박국 선지자가 노래하는 기쁨의 이유이다. 하박국 선지자의 현실은 참담하였다. 1장 2절에서 부르짖는 그의 외침이 그것을 보여준다. \"오 주여 내가 도움을 위하여 얼마나 오랜 동안 부르짖어야만 합니까? 그리고 당신께서 듣지 않으실 것입니까? 내가 당신에게 \'포악함이여\'라고 부르짖지만 당신은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왜 당신은 나로 하여금 부정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파괴와 포악함이 있고, 싸움과 논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율법은 무시되고 공의는 전혀 세워지지 않고 있으며, 악인들이 의인들을 둘러 싸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이스라엘 내의 악한 상황에 대하여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러한 기도에 대하여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두려운 것이었다. 다름 아니라, 바벨론 나라를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겠다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선지자는 다시 묻는다.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십니까?(1:13) 바벨론 나라는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나라인데 더 악한 나라가 덜 악한 나라를 징계하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의를 회복시키신 후에 악한 나라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을 때에 선지자가 직면한 경험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그와 이스라엘이 죄악 때문에 직면할 임박한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하여 약속되어진 회복의 스케줄에 대한 기대로 또한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3:17-18). 우리의 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이다. 우리의 현재는 궁극적인 구원에로의 \'서정\'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그 구원의 영광에로의 부르심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위한 하나님의 뜻(의지)이기 때문이다(살전5:18).\"라고 말하였는데, 그 감사의 근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좆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게 될 것이다(살전4:16-17).\" 우리가 지닌 기쁨의 근원은 낙엽을 태우듯이 확 일어났다가 이내 시들어 버리는 불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늘 그러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경험한다. 그라니 우리의 기쁨은 완전히 무르익은 불길과 같은 것이다 이 기쁨은 은은하면서도 끈기 있게 열을 내는 잘 펴진 불과 같은 것이다 이제 막 불이 붙은 것과 같은 소리 없어 보여도, 우리 안에 가져다 주는 내적 소망의 기쁨의 발휘되는 힘은 훨씬 강한 것이다.
가을, 추억, 감사/ 시84:1-/ 추수감사주일설교/ 2002-10-14
가을, 추억, 감사 시84:1- 오늘은 저희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사의 생활을 말씀하시고 감사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이고 건전한 상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할 줄 안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바르고 믿음의 생활을 잘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 자신과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놀라운 믿음의 행함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삶에 주신 가을, 추억, 감사를 통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가을에 담겨져 있는 말씀의 은혜는 무엇인가요? 성경이 말하는 계절과 가을은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출애굽기를 보면, 가을에 수장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표현대로 하면 감사절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출 34:22) 잠언에 말씀하기를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잠 20: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기후를 감한 하면 가을이 지나 겨울로 들어서면 기온도 적당하고 비도 오고 해서 가을에 밭에 파종하는 농사거리가 있습니다. 가을 밭을 잘 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유다서에 보면 패역한 시대에 사단과 구원받지 못한 멸망의 사람들을 가르켜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유 1:12)라고 하였습니다. 가을에는 가을걷이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가 있고, 가을에는 다음 수확을 위해 게으르지 말고 밭 갈고 씨앗을 심어야 하며, 패망하고 저주받은 인생은 가을이 되었는데도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스가랴에는 봄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실 것을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슥 10:1) 성경에 나타나는 여름은 모두 과일 열매와 관계가 깊습니다.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잠 10:5) 그러나 성경이 그리는 겨울은 신앙의 어려운 고비요 생활의 혹독한 환경을 말합니다. ”(말세가 와서)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외투를 가져오라고 부탁했습니다. (딤후 4:21) 계절마다 그 계절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다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뚜렷한 4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살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봄은 따뜻한 햇빛이 있고 생명과 환희를 노래하는 계절입니다. 다양한 계절 가운데 아주 특별한 계절 가을이 있습니다. 가을은 파란 하늘의 계절이고, 가을은 불타는 듯이 보이는 붉은 홍엽, 점잖은 중년신사와 같은 짙은 톤의 갈색인 갈엽, 그리고 찬란한 황금색의 황엽으로 어우러지는 낙엽의 계절입니다. 가을의 자연은 많은 열매를 우리 앞에 쏟아 내 놓으면서도 겸손하고, 가을의 시간은 여느 계절과 같은 속도로 지나감에도 느리고 여유롭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까치 밥으로 남겨 놓은 몇 개의 감을 외롭게 달고 있는 감나무는 지나가는 가을을 꼭 붙잡고 있는 듯 합니다. 가을에는 조용한 곳에서 독서하고 생각하기에 좋은 마음의 계절이고, 가을에는 뒤 뒤돌아보고 반추하며 기도하기에 좋은 신앙의 계절입니다. 가을은 하나님의 좋은 선물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에도 4계절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노랗고 연녹색의 활기찬 봄의 인생,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며 땀흘리는 진녹색의 여름 인생, 열매맺고 나누고 베푸는 여유롭게 생각하는 황갈색의 가을 인생, 그리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불지만 안으로 따뜻하고 속으로 깊은 하얀색의 겨울인생! 여러분의 인생의 계절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곳에서 어제를 추억하고 내일을 바라보는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 주제는 추억입니다. 여러분들은 추억하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알렉산더 스미스는 ”사람의 진정한 재산은 추억이다. 빈부에 관계없이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솔제니친은 ”당신이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여행 가방 속에 추억을 가지고 다녀라” 라고 말했습니다. 동물들에게는 추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가 없으니 미래도 없는 것입니다. 옛일을 추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창조된 사람만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사람만이 거울을 가지고 자신과 삶을 들여다보고 과거를 회상할 수 있습니다. 추억은 우리에게 그리움을 안겨다 줍니다.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것은 지나간 일들을 추억하면서 자기 자신을 다시금 뒤돌아보는 것에서 옵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추억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잊지 말고 추억하라는 것입니다. ”내 백성아 너는...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추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의 의롭게 행한 것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미가 6:5)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어떻게 보호하시고 위로하셨는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어떻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는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적을 몰아내 주시고 그 땅에서 먹을 것을 주셨는지 결코 잊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여호와의 종들아!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지난 세월 동안 베풀어주신 것을 기억하고 추억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경이 명령하시는 추억과 기억은 감사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만족함과 감사의 노래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만족함에서 나옵니다. 진정한 감사는 복을 가져옵니다. 시인은 복있는 사람에 대하여 3가지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4). 둘째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5). 셋째는 ”주께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12).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베푸심을 담아내는 축복의 그릇이지만,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찬 마음은 하나님 주신 것을 쏟아 버리는 실패의 그릇이 됩니다. 감사는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세심하신 손길이 어떤 것인지 잘 깨닫는데서 나옵니다. 감사는 오늘 비록 어려움과 힘든 일을 만났을지라도 다시금 일어서는 놀라운 힘을 주고, 감사는 오늘 비록 낙심되는 일을 만났을지라도 내일 소망이 있음을 알게 해 줍니다. 감사는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재물과 마음이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 받으시고 더 큰 것을 여러분에게 베풀어주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1)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것 보다 더 큰 것으로 언제나 되갚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큰 것은 보지 못하고 없는 작은 것 때문에 불평하는 삶이 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고 깨닫는 것은 우리신앙을 부요하게 합니다. 열 개가 필요한데 아홉 개는 주시고 한 개는 주시지 않은 것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경배하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맙시다. 오히려 하나가 없는 것을 탓하지 않고 아홉개 주신 것을 만족해하며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총이 날마다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말씀◈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편84편)
가을에 감사/ 출34:22-24/ 2001-11-14
가을에 감사 출34:22-24 (출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출 34: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출 34: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을 주셨습니다. 봄에는 밭에 나가 씨를 뿌리게 하시고 여름에는 그것을 가꾸게 하시고 가을에는 그것을 거두게 하시 고 겨울에는 추수한 것을 먹으며 씨를 뿌리는 봄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사계절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계절은 물론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추수하는 풍성한 가을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 중에서 듣기 좋은 말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사랑한다는 말과 감사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이면에 감사하는 마음이 배어있지 아니하면 그 사랑은 껍질 뿐인 허구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베푸신 절대적인 사랑과 또 하나는 그 같은 은혜가 감사해서 나타 내는 상대적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베 풀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반응하는 상대적인 사랑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감사는 바늘과 실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 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바탕이 되지 아니하는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동정이거나 자기 위안이나 만족을 때문에 하는 이기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과 상대방에 대 한 감사와 고마움을 마음속에 느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도 부모도 남 편도 아내도 자식도 교우간에도 거짓 없는 참 사랑이 가능합니다. (시 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어떤 선한 행위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서 마음 중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 감사가 예배로 기도로 찬양으로 삶으로 하나님께 표현되어질 때 하나님은 그것 을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사처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시 51: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 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 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나서 이처럼 감사를 원하시는 것은 인간들처럼 무슨 생색을 내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함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 다. (렘 30: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 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 겠으며 (렘 30:20) 그 자손은 여전하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하나님을 믿는데도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의 축복 을 더 많이 받고 행복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항상 하나 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정반대로 누구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인색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자비를 베풀 줄 모르는 사람 치고 그 축복을 끝까지 유지 하거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왠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반석의 생수로 먹이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후 그곳에서 일년에 세 차례 하나님께 꼭 지켜야 할 명절을 주셨습니다. 1) 하나는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출 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2) 두 번째는 첫 열매를 거두게 된 것을 감사하는 명절입니다.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3) 세 번째는 가을 추수를 감사하는 명절인 오늘 성경 말씀입니다. (출 34:22)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하나님이 요구하신 제사의 핵심은 이미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주시 지도 아니하고 계약금으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것에 대한 요구이기 때문에 주신 분복을 따라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감사가 주신대로 라면 누구도 물질이 없어서 감사하지 못한다고 핑계해서는 안된 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할 것을 이미 하나님께 주셨는데도 감사하기에 인색한 것은 물질 문제가 아니라 마음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감사는 결코 자릿세가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거두게 하는 축 복의 종자인 감사는 마음이 담겨진 물질입니다. (사 30: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 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는 인색하면서도 기 도할 때 보면 어제보다 더 많고,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복을 구하는 일에만 열심 을 내고 있기 때문에 기도에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에 기쁨과 행복을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어느 부모이든지 자식을 사랑하고 언젠가는 자식들에게 다 나누어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명의 자녀 가운데 부모님께 작은 정성이라도 사랑을 표시하기를 즐기는 자식과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뜯어만 가려는 자식 중에서 누가 더 잘살며 어떤 자식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지를 각자 자신에게 물어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왜 감사를 요구하시는 그 답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 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 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 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더 큰 구원을 받은 오늘 우리가 영적인 축복만이 아니라 물질의 복도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깨닫게 그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 다. 하나는 하나님의 몫인 십일조가 많아지는 것은 나의 몫인 십의 구가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십일조를 아까워하지 말고 정직하게 드려야지 십일조를 인 색하게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십의 구를 깎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십일조는 하나님이 주신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드리는 자나 적 게 드리는 자나 믿음이 동일한 것이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면적인 믿음의 분량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거울이 바로 감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교회는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고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 지 아니하는 교회이며 신사적인 목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목회자 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복받고 살고 싶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모순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것은 더욱 고민입니다. 성도들에게 목회자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소리가 있고 하나님 앞에서 교인들을 위해서 반드시 가르쳐야만 할 소리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교인들 자신을 위해서 철저한 십일조와 감사 하는 성도가 되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의 길을 걸어가서 망하게 된 때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배은 망덕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일년에 세 차례 감사의 제사를 요구하신 것 입니다. (출 34: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 지라 하나님께서는 (출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 키라 는 말씀처럼 추수할 것이 별로 없었던 첫 열매를 거두는 맥추절만이 아니라 풍성한 추수가 있는 가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지나간 여름 전국적으로 태풍과 홍수로 인해 다 익은 벼가 물에 잠기고, 바람에 쓰러지는 피해로 걱정을 많이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진노 중에서도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아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마다 과일들이 넘치고 벼 수확도 예년 수준이라고 하니 추수 감사절을 맞이한 이 가을에 더욱 풍성한 감사를 하나님 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시 136:24)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 함이로다 (시 136:25)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가을에 하나님께 드리는 바람직한 감사의 세 가지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1) 주신 분복을 따라 자원하여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신 16: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 을 드리고 2) 온 성도들이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신 16: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 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3) 기복주의 자들처럼 물질만이 아니라 먼저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라는 것입니 다. (신 16: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아담과 하와에게 그 감사와 찬송이 없었고 반면에 있어서는 안되는 탐욕이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인간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 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불신자가 더 많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마져도 감사에 인색해져 가고 있습니다.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 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만일 IMF 때 잃어버린 것들을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으로 베풀고 선교에 헌신하였었다면 미국 못지 아니한 세계적 으로 모범적인 선교 대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서 성도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감사에 인색하고 교 회는 선교와 구제에 인색하며 배은망덕하였을 때 일평생 모았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버리고 한국 교회는 재정적으로 어렵게 되었다면 이제라도 잘못된 것을 깨 닫고 우리 모두 이 가을에 더 많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금번에 우리는 감사를 잃어버린 민족과 교회에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제 점차 경제가 회복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시점에 다시 부정부패와 사 회악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보다 감사의 지수가 회복될 때 하나님은 무한 경쟁의 세계 열 강들의 훼방 속에서도 우리 민족과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출 34: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역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친 백성이 되게 하 기 위함입니다. 무엇을 감사할까요? 지금 세계 도처에 지진과 갖가지 재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잘살고 못살고 더 많고 작고하는 상대주의와 비교의식에 빠지지 말고 먼저 살아있 음에 대해서 감사하고 무엇보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된 것을 크게 감사하는 성도 들이 됩시다. (사 38: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 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원하십니까? 환경이 아니라 탐욕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좋은 것들이 다 있었던 에덴 동산에서의 비극은 단 한 가지 부족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신 8: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라 갈수록 사람들이 감사에 대해서 인색하고 있는 것은 불행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과거 우리 민족에게는 보리 고개라고 일컫는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쌀은커녕 보리도 없어서 채 익지 아니한 이삭을 잘라서 그것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 지 아니하면 넘어갈 수 없었던 시절에 부쳐진 가슴아픈 추억입니다. 지금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이 가을에 정말 감사할 것이 없을까요?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농사를 짓지 아니한다고 추수감사절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농 사를 짓든지 아니 짓든지 우리 모두는 가을의 결실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며 누군가 내가 먹을 양식을 이 가을에 거둔 것을 생각하면 힘들여 농사 짓지 않고서도 먹을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감사가 다시 살아나야 우리가 다시 살게 됩니 다. 예화: 자, 불길하고 어두운 상황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았던 미국의 개척자 청교도들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때는 1,620년 9월 6일 그들은 처음 한 해 먹을 양식을 싣고 정처 없이 망 망한 바다에 메이플라워호(May-flower)를 띄웠던 것입니다. 배에 오른 사 람 은 남자 78명, 여자 24명이었습니다. 그해 11월 19일 63일간의 죽음의 항해를 마치고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땅이 지금 미국동부의 풀리마우드 (Plymouth)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그들은 일곱 가지를 감사 기도하였습니 다. 첫째 180 톤밖에 안되는 작은 배 이지만 그 배라도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했 다. 둘째 평군 시속 2마일(걷는 속도 보다 느리다)의 항해였으나 117일간 계속 전 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넷째 폭풍으로 중심 되는 큰 돛이 불어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 사했다. 다섯째 여자들 몇이 파도 속에 밀려들어갔으나 모두 구출됨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여섯째 인디안들의 방해로 상륙 지점을 찾지 못해 한 달을 바다에서 방황했으 나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 지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일곱째 고통스러운 삼 개월 반의 항해 중 단 한 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음 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들은 감격하여 한 발은 배에 싣고, 한 발은 육지를 딛고 하나님께 감사 의 기 도를 올렸습니다. 상륙하여 산림을 채벌하여 먼저 토막교회를 짓고, 그 다음 학교를 짓고 마지막 으로 자신들의 집을 세우니 크리스마스였습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지나는 사이에 먹을 것과 입 을 것이 모자라 병이 들어 44명이나 죽어 갔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 원두, 밀, 보리씨... 등을 파종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예상외의 많은 수확 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처음 추수한 오곡백화 곡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추 수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협력해 준 근처의 토인들을 청하여 칠면조를 잡고 옥수수와 밀가루 빵과 원두로 케이크를 만들어 성찬으로 식탁을 나누며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때가 11월이었습니다. 그들은 그후 해마다 점점 풍성해지는 오곡백화를 거둘 때마다 추수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곤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감사는 신앙의 성숙과 더불어 더욱 성숙한 감사를 드려야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좋은 일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고난 중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는 일입니다. (출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태풍과 홍수를 겪었지만 어느 해 못지 않게 넉넉한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이 가을 에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이제 우리도 풍성할 때만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든지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을에는 감사하게 하소서/신16:9-7/2003-01-15
가을에는 감사하게 하소서 신16:9-7 서론- ’감사’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한 주부가 남편을 팔겠다는 이색 신문광로를 낸적이 있습니다. 주말이 되면 남편은 아내보다는 사냥이나 골프를 즐겼기 때문에 불만에 차있던 아내가 이런 엉뚱한 광고를 낸 것입니다. 광고 문안은 ” 남편을 염가로 양도함. 사냥도구와 골프채 및 개 한 마리는 덤으로 드림” 광고를 내니까 흥미를 가진 여성들로부터 60통의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남편을 구입하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 남편이 살아있다는 것을 다행하게 여기라”고 이야기하는 한 과부의 충고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바람 안 피우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는 주부의 조언이 있었고, ” 남편과 헤어진 뒤 아이들의 양육문제로 어려웠었다”는 이혼녀의 충고가 있었고, 더러는 ” 남편 말고 개만 줄 수 없느냐”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짐으로 인해 잃어버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곁에 있던 사람이 보이지 않고, 건강을 잃고 나면 그 때 그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내가 있는 그 자체가 기적이요 감사라는 것을 알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5:18) 이 의미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것 속에서도 감사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형편 속에서도 감사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범하고, 불평스러운 것 속에서 감사제목을 찾아내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으로가 아닌 하나님 그분으로 감사하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Ⅰ. 감사의 결과 - 감사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반대로 먼저 감사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생각해보면 할 수가 있습니다. 1. 원망과 불평은 사탄과 환경의 노예로, 실패한 인생으로 가는 통로가 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으로 감격과 기쁨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하나님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불평하는 시각을 갖도록 ’ 참으로, 꼭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하시더냐? ’라고 질문합니다. 그때 하와가 뭐라고 대답하였습니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하노라’(창3:3)라고 하나님의 주신 모든 자유는 잃어버리고 금지된 부분에 대한 불평의 마음을 가지고 대답하게 됩니다. 결국 사탄에게 넘어지게 되었습니다. 민수기 21:5절에 ”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 곳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막지대에 불뱀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것을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도 모르고 그것 환경만을 바라보고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뱀에 물려 죽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을 벗어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사탄과 환경의 노예가 되게 합니다. 과거에 매이게 합니다. 미래를 열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이 됩니다. 결국 쓰임 받지도 못하게 하고 실패한 인생이 되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2. 문제가 풀어지는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셉을 보면 억울한 환경가운데 그 어느 곳도 원망과 분노와 불평을 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분명히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위대하게 쓰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 10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향하여 큰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 예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돌아와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열사람이 다 깨끗하게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삶이 영육의 구원, 온전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사모님이 위암판정을 받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음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이 지경이 된 것은 개척교회시절의 극심했던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이 싹터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리교신학대학장이신 윤성범학장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그 학장님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노트 한권을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 노트에 감하할 일만 생각나는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힘들지만 사모가 한두 줄씩 감사할 일을 써내려갔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 다니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계속해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점점 통증이 사라지고 다리에는 웬일인지 힘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진 것입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 쓰임받습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릴 때 환난 날에서 구원함을 받게 되어집니다. (시50:14,15, 23) 바울과 실라가 감사의 찬송할 때 옥문이 열리는 것처럼 문제가 풀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므로 나도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쏟아나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느헤미야 8:10) 예화 독일에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릴 때 어떤 돈 많은 부자 노인 부부가 매일 빵을 만들어 와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나씩 집어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서로 크고 좋은 것을 집으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언제나 맨 끝으로 하나 남은 가장 못나고 작은 빵을 집어드는 키가 작은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녀만은 항상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어느 한날도 역시 작고 못생긴 빵이 그 아이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 빵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그 빵 안에 이런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너 같이 감사하는 자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단다’ 그리고 그 속에 금화 한 닢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감사하며 기뻐한다면 문제가 풀어지고, 삶이 열려지는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Ⅱ. 감사의 근거 -왜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럴만한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1. 하나님의 일반은총과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이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13절에 ’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라고 하고 있습니다. 보리 추수 및 포도와 과실을 수확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해와 공기, 비와 이슬, 건강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시는 일반 은총입니다. 천상병 시인 있습니다. 그의 삶은 셋집을 전전하고 가난함이 면해지지 않고 주머니 사정이 늘 좋지 않은 시인이었습니다. 결혼을 했으나 자식이 없었고, 서울 변두리 수락산자락 아래 조그만 집에서 작은 것들에 감사하며 살았던 분이십니다. ” 나이 오십 여섯 살이나 된 지금에도 /집이라곤 없다/ 셋방살이다// 세상에는 집도 많건만/어찌하여서 /내겐 집이 없는가// 옛날의 예수님도/ 집이 없었는데/ 나는 셋방이라도 있으니/ 그저 영광이다”라고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 집사님에게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장난끼가 심하여 신발을 사주면 한달이 채 신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어느날 세탁기가 공장이 나서 벼룩시장을 통하여 구하게 되었습니다. 양호한데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세탁기를 가지고 오면서 무심코 ”우리 애들은 어찌나 극성인지 신발이 금방 닳아서 큰일입니다 아무리 주의를 주어도 말을 들지않아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뒤따라오던 그 집 부인이 갑자기 울먹이면서 2층으로 뛰어 올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당황하면서 혹지 제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그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남편은 눈물을 보이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에겐 6살난 아이가 있는데 지금껏 걷지도 못합니다. 이 아이가 걸을 수 있게 되어 신발 한 컬레라도 닳도록 신게 해보는 것이 저희 소원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몇번이고 죄송하다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끓었습니다. ” 하나님 아이들의 신발을 닳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를 불평한 저를 용서하소서” 이 오늘 우리가 건강하게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입니다. 이전에 수련회 때 천성재활원에 학생들을 데리고 봉사하러 적이 있습니다. 많은 장애아이들이 스스로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씹어 삼킬 수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대소변을 가릴 수도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봉사한 후 소감이 ’힘들었지만 지금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내 이로 씹어 먹을 수 있는 것, 움직일 수 있는 것 모든 것이 감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있는 모든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시는 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내와 자녀와 오늘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감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반은총이요 기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 너는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이전에 그들은 바로의 통치하에서 완전한 노예생활을 한 것입니다. 이제 구원 받은 삶, 자유함을 누리는 삶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절기를 ’지켜 행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탄과 세상과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죄 문제가 용서함을 받은 자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약점, 어제의 실수, 과거의 실패 등 쓰라린 고통의 순간들을 잊고 싶어하지만 잊혀지지 않아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로 그 모든 것이 덮어진 것입니다. 새 인생,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은총을 받은 자이기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주실 축복의 약속 때문에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15절을 읽어보십시다. ”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추수하는 것)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니라 ” ”for the Lord your God will bless you in all your harvest and in all the works of your hands, and your joy will be complete”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가나안 사람들과의 전쟁이 있습니다. 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긴장감과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장래를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시 108:1-4)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헤세드)가 이 우주공간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실( 에메트), faithfulness, 신실하심, 약속을 반드시 지키심을 인하여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잠들 수가 없어서 새벽을 깨울 수 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에게 약속을 하면 될 수 있는 데로 그 약속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장래를 책임지시겠다고, 축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믿으십니까? ’ 서든 데스’ ( sudden death )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한 어린 아이가 누나와 아버지와 함께 아이스하키 결승전이 열리는 경기장에 가게 됩니다. 자리를 잡자 아버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라고 당부합니다. 심지어 이 경기장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이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자 딸은 아빠를 찾아본다면서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부통령과 주인공의 딸을 납치하여 감금하고 있는 폭탄테러범들과 대치하던 아버지는 장치해놓은 폭탄을 하나하나 제거해갑니다. 그런 와중에 전광판이 폭파되자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밖으로 대피하는데도 아들은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킵니다. 모두 나가고 없는 텅빈 관중석에 아이만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구출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아들은 아빠에게 달려가 꼭 안깁니다. 그 아들이 ” 난 아빠가 올 줄 믿었어 그래서 무서워도 않고 있었어!” 라고 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두운 날일지라도 아버지에 약속에 대한 이러한 신뢰와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힘든 환경이 있다해도 하나님이 바꿔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감사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평탄케 하여주실 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삶이 잘 풀리지 않고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 믿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날이 불안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고 좋은 일이 있을 것임을 믿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집사님 하나님은 집사님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집사님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라고 서로 축복을 하십시다. Ⅲ. 감사를 누리는 방법- 어떻게 이 감사를 누릴 수가 있습니까? 1. Positive reframe style, 긍정화의 스타일을 가짐으로 감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11절에 ’즐거워 할지니라’( rejoice), 14절 ’연락하되’( be joyful) 15절 ’온전히 즐거워 할찌니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 프랑클 박사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어 의사로서의 그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일반 노동자로 일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아내는 강제 수용소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평생 연구했던 자료는 다 소멸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클 박사는 ”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있지만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자기 자신의 자세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마지막 자유, 이것 하나만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라 할지라도 반응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뻐하는 방향을 선택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는 믿음의 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긍정화’입니다. 감사는 저절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기에 노력하듯,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쓰듯 원망과 불평이라는 심각한 죄와 싸우고, 대적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겨울에 한번씩 시골에 가서 저장된 귤사장에서 귤을 고르는 일을 합니다. 그때 저희 어머니께서는 귤이 썩은 것 하나 하나를 꺼내시면서 불평을 합니다. 어머니 좋은 것 한 개씩 꺼내시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세요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긍정화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다가 있는 것, 장점조차 다 잃어버립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인해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을 만큼 아무 것도 가지고 있는 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긍정화란 모든 환경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롬8:28) 2. 이웃들과 함께 나눔으로 감사를 배가할 수 있습니다. 11절과 14절에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연락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나누라고 하고 있습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한사람의 식사분량인 오병이어를 주님이 축사하시고 나누자 오천명을 먹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를 나누고, 우리의 물질적인 축복을 나누면 더 풍성하여 지는 것입니다. 3. 헌신과 드림으로 믿음을 표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10절에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시는데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6절에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해보면 전혀 차원이 다른 일들이 벌어집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로 감사와 믿음을 드려보라고, 표현해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믿음대로 여러분의 신앙을 표현하며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은 사람이라면,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라면 꼭 드리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수요일에도 잠시 나누었습니다. 김동호 목사의 [깨끗한 부자]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곳에 보면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특전사 등 훈련 받은 전투병이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낙하산을 타고 적진에 들어가려면 평소 고공낙하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높이가 10미터라고 합니다. 사람의 키까지 합치면 11미터가 되는 것입니다. 이 높이가 가장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1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 훈련을 하면 비행기에서도 자신 있게 떨어질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를 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라면 그 어떤 물질적인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헌신과 드림을 해보면 더 큰 일들을 시도할 믿음과 능력을 덧입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드리는 자에게 주님이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여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3:10-12)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는 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설교가 조지 마태 존 목사님은 맹인이셨습니다. 그분의 아내와 자식도 모두 먼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존 목사님은 이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도 감사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문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 나의 하나님, 내가 받은 가시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였음을 용서하소서. 수백번 장미 때문에 감사하였으나 가시의 은혜를 잊었나이다. 십자가의 가시를 거쳐 하늘에 올라가신 주님, 나는 나의 가시를 통하여 하늘에 올라갈 수 있었음을 잊었나이다. 나에게 주신 눈물이 무지개가 됨을 깨달아 감사합니다. 나에게 주신 아픔이 천성길이 됨을 깨달아 감사하옵나이다. 장미밭에서 살지 않고 가시 밭에서 살게 됨을 감사하옵나이다” 가을에는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는 삶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내 곁에 계시네 향기론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가을의 성숙한 감사/ 골3:15-17/ 2003-11-16
가을의 성숙한 감사 골3:15-17 극심한 가뭄과 홍수 피해에도 감사하게 벼농사가 풍년이 들었습니다. 쌀을 다른 나라에서 도 수입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쌀이 남아돈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 팔자니 값이 말이 아 니고 그렇다고 쌓아놓자니 보관문제도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다 가오는 이맘때에 들에 나가보면 아직은 이르지만 벼이삭이 머리를 숙인 곳이 많이 있습니 다. 만져보면 제법 딱딱하게 벼 알이 익은 것도 있고 이제 벼꽃이 피어오르는 논도 있습니 다. 추수하기까지 태풍이 오지 않도록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과수원의 주렁주렁 달린 과일 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여 줍니다. 산에는 산 복숭아 작지만 노랗게 익어가고 있 고 잡초들도 열매를 맺어 마음껏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바라 시는 것이 있다면 열매일 것입니다.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 하셨습 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성령을 받은 성도이니 성령의 열매를 원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 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령의 임재 하심은 그 열매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납 니다. “내가 성령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여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 더 우선 순위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잘 심어야 합니다. 갈6:7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으로 심는 것과 같습니다. 함부로 심으면 안 됩니다.좋은 것을 많이 심으 면 후일에 좋은 것을 많이 거두게 됩니다. 먼저 마음 밭이 좋아야 합니다. 말씀이 자라는 데에 합당하도록 잡초를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 후에 인내하여야 합니다. 농부는 씨앗을 심어 놓고 그냥 내 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정성으로 돌보고 농약을 치고 잡초를 뽑 아줍니다. 우리도 매실을 심고 풀을 뽑아 주고 거름을 주었습니다. 씨앗은 당장에 열매가 되지 않습니다. 땡볕을 통과하여야 열매가 야물어 지는 것입니다. 인생도 어려움이 많습니 다. 가정에도 어려움이 옵니다. 교회에도 어려움이 옵니다. 나라에도 어려움이 옵니다. 그 러나 잘 참으면 도리어 큰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을 잘 통과하여 갑절의 축복을 얻었습니다. 추수는 축복입니다. 농부들이 씨앗을 뿌리면서 기뻐합니다. 거름을 주면서도 기뻐합니다. 추수의 기쁨을 생각하고 어려움도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가을은 우리로 감사할 조건을 많 이 제공해 줍니다. 감사의 분위기를 형성할 때에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믿음대로 되어지는 복을 받습니다. 성경은 신앙의 덕목 중에 감사를 최고로 꼽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예배 중심은 감사입니 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영접한 후에는 자나깨나 감사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사가 형통하여서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니고 아주 어려운 중에서도 감사를 하였습니다. 약한 가운 데서 강하여지는 것을 체험하였기에 감사를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 값을 대신 지불하여 주셔서 영생을 얻었고 경건하고 의로운 생활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가장 좋아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느 정도로 좋 아 하실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 나님이 좋아하는 사업은 축복 받은 사업이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일이 축복 받은 일이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삶이 축복된 생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 하실까요? 성경 가운데 하나님께서 좋아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비밀이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고, 은혜 받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은혜 받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 마음에 가장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 다윗입니다. 왜 다 윗이 하나님께 그렇게 기뻐하심을 입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 다. 우리가 다윗의 생애를 보면 다윗은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물매 다섯 개로 블레셋의 거장 골리앗을 향하여 도전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 민족과 전쟁할 때 할례 받 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도전할 때 다윗은 \"너는 칼 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매 다섯 개를 던져서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해서 그를 넘어뜨립니다. 다윗의 용기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윗 의 천재적인 시는 역사에 아무도 그를 따를 자가 없습니다. 다윗의 영감 있는 시는 인류 역 사 이래 최대의 감동적인 시로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받은 은혜를 고백했기 때문입니 다. 다윗은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를 이루었고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하 나님의 뜻으로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믿음으로 살려고 했던 가장 위대한 왕이요,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 앞에 봉헌하려고 했던 착한 심성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위대한 사람이 된 데는 더 큰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짓고 회개했기 때 문입니다. 보통 사람은 죄를 지으면 망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를 짓고서 회개하고 하나님 의 최대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다윗은 길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아 있으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 일컬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것은 다윗은 넘어져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상처를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처받 은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상처를 받으면 받은 만큼 상처받은 다른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결론으로 맺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아픔을 겪는 분이 있습니까? 이제는 그것이 사명이 되어 배고픈 이웃들을 치유 하고 도와주는 사명임을 느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친구로부터 배신을 경험한 쓰라린 상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을 가슴에 품고 원망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그런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치유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질병 가운데 서 건짐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까 바로 내 주변에서 그런 질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 신 음하는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좋은 치유자가 되라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서 모든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상처를 예수님이 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처를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 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은혜가 부활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상처로 모든 아픔을 겪고 죽음 의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그 상처가 부활로 승리해서 상처입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허 덕이는 모든 인류에게 치유자로서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 환자가 아픈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픈 곳을 감추어서는 안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 에서 선하고 의롭게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역사에 다시없는 죄인이 됩니다. 이 일 로 말미암아 그는 평생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 상처가 바로 간음과 살 인죄였습니다. 그는 그 죄책감으로 마음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고통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6편 6절에서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 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 시나이다.\"라고 했고 시편 32:3-5절에서는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 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를 보내서 다윗을 책망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 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다 주었 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 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 다.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 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7-10) 그때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고백할 때 나단 선지가 \"여호와께서 당 신의 죄를 사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죄의 상처에서 치유를 받고 새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시를 읊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 호와께 자복하려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와 악을 사하였나이다\" 인간의 마음에 멍든 상처 가운데 최고의 상처는 죄가 가져온 상처입니다. 인간을 병들게 하 는 모든 상처의 원인은 결국 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신음하는 상처들 개인이고 가정의 문제는 결국 죄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죄는 드러내야 사함을 받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죄인 됨을 고백하므로 사함을 받 습니다. 이와같이 나를 아프게 하는 과거의 상처들을 내 속에 감추지 말고 드러내서 주님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내놓을 때 주님은 상처를 치유하십니다. 다윗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드러낸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실 때 먼저 원하시는 것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사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용서받은 자의 감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새로운 존재로서 그에게 주어진 자기 자신의 사명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 을 합니다. \"그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 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13-15절) 그는 범죄한 후에 주께로 가까이 나아갑니다. 첫째 \"나와 같이 범죄한 자들에게 주님의 사 유하심의 진리를 가르치겠습니다. 그때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라고 고백하고, 두 번 째로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내 의를 자랑하고 내가 노력해서 의를 이루려고 했지만 이제는 이것은 다 무너져버리고 주님의 의로 내가 의로워지며 주님의 의로 내가 인정을 받고 주님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세 번째로 \"내 입 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전파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범죄한 후에 은혜 받고 이 은혜받은 사실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나게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가운데서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의 사랑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과 사람의 사랑 의 목적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3장9절 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 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사랑 의 목적은 오직 하나 우리 모두가 다 회개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것입 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거의가 다 타산적이고 이기적 이고 변질적 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하다가 상처를 받아 병이 되어 고생을 하는 분 들을 쉽게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 원히 동일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4절-5절에 보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 이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허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 나님의 긍휼이 그렇게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나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위해서, 인간을 보존하기 위해 서 하나님께서 희생적으로 또 헌신적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 희생적인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 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큼 사랑했습니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랑은 얼마나 큰사랑 입니까? 이사야서 53장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 나님의 사랑은 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참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받 은 우리들은 내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 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장24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생명 을 주는 사랑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즐거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2장37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즐거운 사 랑이기 까닭에 우리들은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수혈 받았으면 교 회에 나가는 일도 즐겁습니다. 시편 122편1절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 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 하였도다\" 하나님의 사랑은 즐겁습니다. 교회 가는 일도 즐겁고, 성경 읽는 일도 즐겁고, 기도하는 일도 즐거운 줄 믿습니다. 시편 119편11절에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5 장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를 위해 봉사하는 것도 즐 겁습니다. 3. 어떻게 감사를 할까 운동선수에게는 기본자세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신앙 인에게도 기본적인 자세가 참으로 중 요합니다. 경건한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초식동물로 창조된 소에게 하나님의 원칙을 무시하고 육식이 섞여있는 사료를 먹였기 때문 에 광우병과 구제역이 발생하여 큰 비극을 맞고 있습니다. 원칙을 무시하여 발생하는 비 극과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교회도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원칙을 무시함으로써 영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원 칙들을 무시함으로써 영적으로 약해지고 타락했기 때문에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 다. 다니엘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의 왕궁에서 훈련받는 소년이었으나 뜻을 정하여 왕의 진 미와 포도주를 금하고 채식하는 절제생활을 계속하였다. 나중에 다니엘이 총리가 되었을 때, 다리오왕은 30일간 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명을 내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는 이것이 정적들의 흉계임을 알았지만, 정해진 규례 대로 하루에 3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 렘을 향해 기도하는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의 원칙에 충실하였던 그를 구원하시고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 선지자가 신앙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는 것을 보시고 시대를 앞서 가는 하나님의 큰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 예배, 절제, 봉사, 사랑실천 등을 가볍게 여기거나 뒤로 미루는 경향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 을 하여야 합니다. 친인적의 경조사에 참석하느라 주일성수를 제대로 못하고, 성과가 별로 없다고 하여 무기력하게 침체된 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님께 약속한 경건 규칙이 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적당히 타협하거나 봉사와 구제와 선교 등을 실천해야 함 을 알지만 귀찮거나 손해보기 싫어서 외면하고 있다면 심각한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비록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포도나무 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감사를 하면 축복이 찾아옵니다. 불평을 하면 사단이 찾아옵니다. 입술로 감사를 많 이 하면 육체가 밝고 깨끗합니다. 불평과 불만을 하는 사람에게는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입 니다.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얼굴에 웃음의 꽃이 피고 잘 풀립니다. 영국의 스펄젼 목사 님은 촛불을 보고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고 달빛을 보고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 는 햇빛을 주고 햇빛을 보고 감사를 하는 사람에게는 촛불도 달빛도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 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현대 병이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생긴다는 연구 논문이 발 표되었습니다. 기도 좋은 절기를 주신 하나님께 성도로서 감사를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구원받았음을 감 사하게 하시고 믿음을 통하여 받는 것으로 감사를 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무엇을 하든지 감사로 심고 축복으로 거둘 수 있게 하 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가장 아름다운 말, 감사 /레23:33-43/추수감사
가장 아름다운 말, 감사 /레23:33-43/추수감사 2008-11-19 10:39:52 read : 166 1. 감사?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하는 날이지요. 오늘 여러분은 어떤 감사를 하고 계십니까? 그보다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은 감사를 얼마나 표현하셨으며, 누구에게 그 감사를 표현하셨는지요?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감사보다는 고민이 더 많았습니다. 해마다 감사 절기가 되면 생기는 고민이 올 해도 있었습니다. 그 고민은 “이번 추수감사절의 감사 설교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감사 설교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니까, 감사절이 ‘감사절’이 아니라 ‘고민과 괴로움의 절기’가 될 뻔 했던 지난 주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와, 감사가 드문 사람들에게 다소 도전이 되는 자료를 보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50개를 선별했는데, 그 중에서 ‘땡큐’가 28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즉 “땡큐, 감사합니다”는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로서, 감사가 미국인들의 몸에 배어 있다는 뜻입니다. 저 남미의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도 “오브리가도”, 즉 “감사합니다.” 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어와 피부는 다를지라도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와 민족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말의 순서가 제일 먼저는 “엄마, 아빠”이고요, 그 다음이 “고맙습니다”라는 자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다음과 같은 조사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몇 개이며, 그 가운데서 다른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조사였습니다. 성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평균 2만 6,000개 정도 되는데요. 그 중에서 다른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만드는 말 역시 ‘감사합니다’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자료와 조사 결과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감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며, 또한 다른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만드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드물지만 사람의 법칙이 하나님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감사의 법칙’입니다. 즉 감사가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하듯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감사는 저와 여러분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며, 우리 하나님께서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날인 오늘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대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오늘 본문은 지금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명칭’인 ‘초막절’에 관한 것입니다. 이 초막절이 어떤 절기인지를 알면 추수감사절이 어떤 절기인지, 그리고 추수감사절인 오늘 무엇을 감사할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초막절은 히브리어로 ‘수콧’이라고 합니다. ‘수콧’은 오늘 본문 34절 말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초막절, 수콧”이라는 말은 초막을 의미하는 ‘수카’의 복수형으로서 유월절과 마찬가지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인 동시에 유대교의 가을철 추수감사절입니다. 초막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학교는 문을 닫고, 대부분의 회사들도 근무시간을 단축하거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는 수 만 가구의 가정과 사업장에서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기념하며 나무판자, 야자수 가지, 짚과 나뭇잎으로 만드는 임시 거주 움막인 ‘수콧’을 마당이나 아파트 베란다, 주차장, 지붕, 잔디밭, 공공장소 등에 짓습니다. 하늘이 보일 정도로 엉성하게 엮은 이 초막에서 유대인들은 7일을 지냅니다. 그러다가 초막절의 칠일이 끝난 다음날인 팔 일째 되는 날에는 ‘심하 토라’, 즉 ‘토라의 기쁨’이라는 절기를 지키면서 기쁨의 축제를 벌이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이러한 초막절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통하여 오늘 우리의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인도하심에 감사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애급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고, 광야에서 인도해 주신 것을 상기시키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세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레 23:34, 41~43)."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400년이 넘는 노예 생활을 마치고 애급을 탈출하여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만만한 길이 아니었지요. 광야라는 지리적이고 기후와 환경적인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들이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종족들로 인하여 전쟁의 위협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목마를 때에 물을 주사 마시게 하셨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병들었을 때 고쳐주셨고, 원수의 공격에서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에 무사히 들어가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결코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이스라엘이 그렇게 가나안에 들어감으로서 하나님의 하실 일이 끝났습니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는 광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살 때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와 어려움과 적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복이었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 상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잊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로 걱정 없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조차도 소홀히 여겼을 때, 혼자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는 교만에 빠졌을 때, 그때가 이스라엘로서는 가장 불행한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감사절인 초막절을 영원히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절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잊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감사를 잊는 것은 곧 스스로의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떠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사 이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주시고, 은혜의 자리에 세워주셨을 뿐 아니라, 지난 여러분의 인생 여정과 2008년도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지난 한 해 살아온 것에 감사 초막절의 또 다른 이름이 ‘수장절’이었다는 데에 오늘의 두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보면,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연차 농산물의 최종 수확과 관계된 절기였습니다. ‘수장절’이라고도 불린 이 ‘초막절’은 토지의 소산을 거두어 창고에 넣어둔 후에, 초막에서 그것을 지켜보면서 지내던 절기였습니다. 초막에서 저장해 둔 곡식을 보면서 그들이 했던 고백이 있습니다. "이 결실은 내가 가진 것을 뿌려서 얻은 것이 아니다. 이 곡식을 거두기까지 내가 한 일 역시 전혀 없다. 씨앗을 내신 분도 하나님, 땅을 주사 경작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 그리고 나는 이 곡식을 누릴 자격도 없었던 자였다. 그런데도 저 창고 안에 결실을 거두어 저장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이다." 즉 초막절은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오게 된 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듯이, 내가 거둔 이 풍성한 곡식 역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크고 작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 계시지만, 대부분 농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농사와 관계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 다 농부들이 수고하여 농사지은 것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수에 대한 감사절을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올해도 먹을 것 주심에 대해, 이렇게 풍족하여 남기까지 주심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추수감사절은 구지 농사를 지어 거두어들인 것에 대한 감사만 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지난 한 해 하나님이 건강 주셔서 열심히 일하게 하시고, 직장을 주셔서 거기서 열심히 수고하게 하사 그 수고비를 받아 살아오게 하신 것 역시 일종의 추수, 즉 수확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지난 한 해 건강주시고, 직장 주시고, 일 할 수 있는 은사와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올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것은 내년을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가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올 해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년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적극적으로 감사합시오. 많이 감사하십시오. 넘치도록 감사하십시오. 지나치도록 감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내년도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과 하는 모든 것에 많이, 넘치도록, 지나치도록 더하시고 채우실 것입니다. 3) 천국 소망에 대한 감사 초막절의 또 다른 이름인 ‘장막절’에서 우리는 추수감사절의 세 번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날을 ‘장막절’이라고 부른 데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야 당연히 초막이나 장막을 쳐야하니까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농경사회가 된 후에도, 임시로 마당이나 밭에다 초막을 짓고 장막 생활을 하라고 하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지만, 여기가 최종적인 우리 인생의 종점이 아님을 알라’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서의 생활 역시 임시 거처, 즉 초막이나 장막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장막절, 초막절을 통하여 이 세상의 생활이 ‘초막같이 임시로 기거하는 인생살이’란 의미를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초막과도 같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선지자 요나를 통해서 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임박한 심판을 예언한 후, 니느웨가 어떻게 되나 지켜보았지 않습니까? 니느웨성 동편에 초막을 짓고 그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찌되는지 지켜보는데,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무성하게 자라나게 하셔서 초막을 덮게 하셨습니다. 그 박넝쿨이 자신이 만든 초막을 덮어 시원하게 해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자 요나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에 벌레들이 이 신선한 박넝쿨을 그대로 두지 않고 모두 다 갉아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아 해가 떠오르자 박넝쿨은 그대로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초막입니다. 풀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지은 초막은 해가 뜨고 오후쯤이면 다 시들고 힘이 없어지므로 사람이 기거할 집으로서는 부적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우리가 살아가는 집도, 이 세상이라는 큰 장막도 ‘임시’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장막절을 지키는 시기도 중요합니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그것을 저장한 후에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풍요를 느끼고, 안정감을 찾고, 그 만족과 자신이 거하는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때, 즉 배부를 때, 만족할 때, 형통할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은 장막절을 지키라고 함으로서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여전히 그곳은 임시 거주지일 뿐이고, 영원한 거주지인 천국을 사모하라고 이 절기를 지키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사는 이 세상은 임시적인 처소일 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처소는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오늘, 영원한 처소인 천국 주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지금까지 성도가 감사해야할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심에 감사, 일하고 그 댓가를 누리게 하심에 감사, 천국 주심에 감사!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 감사의 유익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이런 감사의 유익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심층 뉴스 TV 프로그램인 「인사이드 에디션(Inside Edition)」의 진행자로 유명한 ‘데보라 노빌’이 지은 『감사의 힘(THANK YOU POWER)』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감사 캠페인’ 열풍이 불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고객에게 감사하기’ 행사를 벌이고 있고, 한 시(市)에서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한 감사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감사는 새로운 행복의 키워드이자 마음 리셋의 중요한 도구로, 성공을 보장하는 에너지로 그 중요성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감사의 힘의 위대함을 배워오고 느껴왔다. 거의 대부분의 민족과 나라들에서 그 자녀들에게 “엄마, 아빠”라는 말 다음에 “감사합니다”를 가르쳐 온 것이 그 답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계속 말합니다. “대체 ‘고맙습니다’가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우리는 행복을 좇고 있지만 행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할수록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 위대한 성공도 이 사소한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즉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성공하는 삶이기에 인류는 오래 전부터 그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이 인생 전체를 바꿀 만한 강력한 힘이 있으며 각 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비밀 열쇠”라고 주장합니다. 감사하는 말만으로도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활기차고 스트레스 적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면서 사십시오! 감사의 유익은 여러분의 생각 그 이상입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의 감사를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턴의 경우,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처를 입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래서 산소통을 설치해 인공호흡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보험이 그 경비를 처리하지만 그 산소 값은꽤 비싸다. 24시간 동안 일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계속 공급하는데 그 값은 960달러나 된다. 그렇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은 우리들은 매일 960 달러어치의 산소를 무료로 제공받고 있는 셈이다. 즉 우리들은 매일 960불(1백2십사만원)씩을 벌고 있는 셈이다. 우리들이 일생 동안 들이마시는 산소 값은 실로 엄청나다. 어디 그뿐인가? 전기 값을 한 번 따져 본 일이 있는가? 우리 교회의 전기 값은 1년에 약 4만 불 가량 나오는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쓰고 있는 [햇빛] 값을 전기 요금으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하나님께서 [햇빛고지서]를 보내신다면 1년에 얼마나 내야할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은 빛(Light)으로 뿐만 아니라 햇볕으로서 열(온도,Heat)까지 적당히 주고 자외선까지 주어서 인간들과 동, 식물의 성장 및 생존에 얼마나 유익하도록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 제가 이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우리 경상도 사투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빼까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천지빼까리”, 혹 “천지삐까리”라는 말의 뜻을 아십니까? 여기서 ‘천지(天地)’는 ‘대단히 많음’을 표현하는 표준말이고, “빼까리”는 추수하여 높이 쌓아둔 ‘볏가리’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고, “삐까리”는 온 세상에 가득한 태양의 '빛깔'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고, 겨울나기를 위하여 장작이나 나무를 잔득 쌓아둔 것을 뜻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천지빼까리”라는 이 말은 가을과 관련된 말이요, 그 뜻은 사방 천지에, 하늘과 땅 아래 전체에 가득 차 늘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항상 감사가 넘치시고 그것이 늘 입으로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에도 감사, 점심에도 감사, 밤에도 감사! 봄에도 감사, 무더운 여름에 감사, 풍성한 가을에 감사, 추운 겨울에 감사, 일 년 내내 감사! 먹으면서 감사, 먹을 것이 없을 때 금식하라는 줄 알고 감사! 입으면서 감사, 적당히 입을 옷이 없을 때 재활용하라는 줄 알고 감사, 새 옷을 사면 더더욱 감사 ···.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항상 감사의 음식을 먹으며 감사의 물을 마시고, 그리고 항상 감사의 옷을 입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감사의 표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감사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복되게 하시고, 더 많고 큰 감사의 조건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말, 감사 /레23:33-43/추수감사/2008-11-19
가장 아름다운 말, 감사 레23:33-43/추수감사 1. 감사?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감사하는 날이지요. 오늘 여러분은 어떤 감사를 하고 계십니까? 그보다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은 감사를 얼마나 표현하셨으며, 누구에게 그 감사를 표현하셨는지요?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감사보다는 고민이 더 많았습니다. 해마다 감사 절기가 되면 생기는 고민이 올 해도 있었습니다. 그 고민은 “이번 추수감사절의 감사 설교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감사 설교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보니까, 감사절이 ‘감사절’이 아니라 ‘고민과 괴로움의 절기’가 될 뻔 했던 지난 주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와, 감사가 드문 사람들에게 다소 도전이 되는 자료를 보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 50개를 선별했는데, 그 중에서 ‘땡큐’가 28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즉 “땡큐, 감사합니다”는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로서, 감사가 미국인들의 몸에 배어 있다는 뜻입니다. 저 남미의 브라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도 “오브리가도”, 즉 “감사합니다.” 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어와 피부는 다를지라도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와 민족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말의 순서가 제일 먼저는 “엄마, 아빠”이고요, 그 다음이 “고맙습니다”라는 자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다음과 같은 조사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몇 개이며, 그 가운데서 다른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조사였습니다. 성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평균 2만 6,000개 정도 되는데요. 그 중에서 다른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만드는 말 역시 ‘감사합니다’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자료와 조사 결과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감사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며, 또한 다른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만드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드물지만 사람의 법칙이 하나님 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감사의 법칙’입니다. 즉 감사가 사람을 가장 기분 좋게 하듯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50편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감사는 저와 여러분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며, 우리 하나님께서도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날인 오늘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할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대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 오늘 본문은 지금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명칭’인 ‘초막절’에 관한 것입니다. 이 초막절이 어떤 절기인지를 알면 추수감사절이 어떤 절기인지, 그리고 추수감사절인 오늘 무엇을 감사할 것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초막절은 히브리어로 ‘수콧’이라고 합니다. ‘수콧’은 오늘 본문 34절 말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일 동안 지킬 것이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초막절, 수콧”이라는 말은 초막을 의미하는 ‘수카’의 복수형으로서 유월절과 마찬가지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인 동시에 유대교의 가을철 추수감사절입니다. 초막절이 되면 유대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학교는 문을 닫고, 대부분의 회사들도 근무시간을 단축하거나 문을 닫습니다. 그리고는 수 만 가구의 가정과 사업장에서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기념하며 나무판자, 야자수 가지, 짚과 나뭇잎으로 만드는 임시 거주 움막인 ‘수콧’을 마당이나 아파트 베란다, 주차장, 지붕, 잔디밭, 공공장소 등에 짓습니다. 하늘이 보일 정도로 엉성하게 엮은 이 초막에서 유대인들은 7일을 지냅니다. 그러다가 초막절의 칠일이 끝난 다음날인 팔 일째 되는 날에는 ‘심하 토라’, 즉 ‘토라의 기쁨’이라는 절기를 지키면서 기쁨의 축제를 벌이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이러한 초막절은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세 가지 중요한 의미를 통하여 오늘 우리의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인도하심에 감사 초막절은 하나님께서 애급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고, 광야에서 인도해 주신 것을 상기시키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세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레 23:34, 41~43).\"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400년이 넘는 노예 생활을 마치고 애급을 탈출하여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만만한 길이 아니었지요. 광야라는 지리적이고 기후와 환경적인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들이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 종족들로 인하여 전쟁의 위협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목마를 때에 물을 주사 마시게 하셨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병들었을 때 고쳐주셨고, 원수의 공격에서 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토록 그리던 가나안 땅에 무사히 들어가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결코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이스라엘이 그렇게 가나안에 들어감으로서 하나님의 하실 일이 끝났습니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는 광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살 때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와 어려움과 적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복이었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 상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을 잊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하나님의 은혜로 걱정 없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편안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조차도 소홀히 여겼을 때, 혼자도 얼마든지 잘 살수 있다는 교만에 빠졌을 때, 그때가 이스라엘로서는 가장 불행한 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감사절인 초막절을 영원히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절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잊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감사를 잊는 것은 곧 스스로의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떠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사 이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주시고, 은혜의 자리에 세워주셨을 뿐 아니라, 지난 여러분의 인생 여정과 2008년도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지난 한 해 살아온 것에 감사 초막절의 또 다른 이름이 ‘수장절’이었다는 데에 오늘의 두 번째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보면,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연차 농산물의 최종 수확과 관계된 절기였습니다. ‘수장절’이라고도 불린 이 ‘초막절’은 토지의 소산을 거두어 창고에 넣어둔 후에, 초막에서 그것을 지켜보면서 지내던 절기였습니다. 초막에서 저장해 둔 곡식을 보면서 그들이 했던 고백이 있습니다. \"이 결실은 내가 가진 것을 뿌려서 얻은 것이 아니다. 이 곡식을 거두기까지 내가 한 일 역시 전혀 없다. 씨앗을 내신 분도 하나님, 땅을 주사 경작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 그리고 나는 이 곡식을 누릴 자격도 없었던 자였다. 그런데도 저 창고 안에 결실을 거두어 저장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이다.\" 즉 초막절은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오게 된 것이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듯이, 내가 거둔 이 풍성한 곡식 역시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고백을 하는 절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크고 작은 농사를 짓는 분들이 계시지만, 대부분 농사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분들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농사와 관계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 다 농부들이 수고하여 농사지은 것을 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수에 대한 감사절을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올해도 먹을 것 주심에 대해, 이렇게 풍족하여 남기까지 주심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추수감사절은 구지 농사를 지어 거두어들인 것에 대한 감사만 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지난 한 해 하나님이 건강 주셔서 열심히 일하게 하시고, 직장을 주셔서 거기서 열심히 수고하게 하사 그 수고비를 받아 살아오게 하신 것 역시 일종의 추수, 즉 수확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지난 한 해 건강주시고, 직장 주시고, 일 할 수 있는 은사와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올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것은 내년을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가 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올 해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년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적극적으로 감사합시오. 많이 감사하십시오. 넘치도록 감사하십시오. 지나치도록 감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내년도 여러분의 사업과 직장과 하는 모든 것에 많이, 넘치도록, 지나치도록 더하시고 채우실 것입니다. 3) 천국 소망에 대한 감사 초막절의 또 다른 이름인 ‘장막절’에서 우리는 추수감사절의 세 번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날을 ‘장막절’이라고 부른 데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야 당연히 초막이나 장막을 쳐야하니까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농경사회가 된 후에도, 임시로 마당이나 밭에다 초막을 짓고 장막 생활을 하라고 하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지만, 여기가 최종적인 우리 인생의 종점이 아님을 알라’는 뜻이었습니다. 지금 여기서의 생활 역시 임시 거처, 즉 초막이나 장막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장막절, 초막절을 통하여 이 세상의 생활이 ‘초막같이 임시로 기거하는 인생살이’란 의미를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초막과도 같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의 선지자 요나를 통해서 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에서 임박한 심판을 예언한 후, 니느웨가 어떻게 되나 지켜보았지 않습니까? 니느웨성 동편에 초막을 짓고 그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찌되는지 지켜보는데,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무성하게 자라나게 하셔서 초막을 덮게 하셨습니다. 그 박넝쿨이 자신이 만든 초막을 덮어 시원하게 해주고 그늘을 만들어 주자 요나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에 벌레들이 이 신선한 박넝쿨을 그대로 두지 않고 모두 다 갉아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날이 밝아 해가 떠오르자 박넝쿨은 그대로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초막입니다. 풀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으로 지은 초막은 해가 뜨고 오후쯤이면 다 시들고 힘이 없어지므로 사람이 기거할 집으로서는 부적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우리가 살아가는 집도, 이 세상이라는 큰 장막도 ‘임시’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이 장막절을 지키는 시기도 중요합니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그것을 저장한 후에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풍요를 느끼고, 안정감을 찾고, 그 만족과 자신이 거하는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때, 즉 배부를 때, 만족할 때, 형통할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은 장막절을 지키라고 함으로서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여전히 그곳은 임시 거주지일 뿐이고, 영원한 거주지인 천국을 사모하라고 이 절기를 지키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사는 이 세상은 임시적인 처소일 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처소는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오늘, 영원한 처소인 천국 주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지금까지 성도가 감사해야할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심에 감사, 일하고 그 댓가를 누리게 하심에 감사, 천국 주심에 감사!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 감사의 유익은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이런 감사의 유익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심층 뉴스 TV 프로그램인 「인사이드 에디션(Inside Edition)」의 진행자로 유명한 ‘데보라 노빌’이 지은 『감사의 힘(THANK YOU POWER)』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감사 캠페인’ 열풍이 불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고객에게 감사하기’ 행사를 벌이고 있고, 한 시(市)에서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한 감사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감사는 새로운 행복의 키워드이자 마음 리셋의 중요한 도구로, 성공을 보장하는 에너지로 그 중요성이 다시금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감사의 힘의 위대함을 배워오고 느껴왔다. 거의 대부분의 민족과 나라들에서 그 자녀들에게 “엄마, 아빠”라는 말 다음에 “감사합니다”를 가르쳐 온 것이 그 답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격언 중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계속 말합니다. “대체 ‘고맙습니다’가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우리는 행복을 좇고 있지만 행복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할수록 행복해진다고 주장한다. 위대한 성공도 이 사소한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즉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성공하는 삶이기에 인류는 오래 전부터 그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이 인생 전체를 바꿀 만한 강력한 힘이 있으며 각 개인이 지닌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비밀 열쇠”라고 주장합니다. 감사하는 말만으로도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고, 활기차고 스트레스 적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면서 사십시오! 감사의 유익은 여러분의 생각 그 이상입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의 감사를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턴의 경우, 교통사고로 심각한 상처를 입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래서 산소통을 설치해 인공호흡을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보험이 그 경비를 처리하지만 그 산소 값은꽤 비싸다. 24시간 동안 일초도 쉬지 않고 산소를 계속 공급하는데 그 값은 960달러나 된다. 그렇다면 사고를 당하지 않은 우리들은 매일 960 달러어치의 산소를 무료로 제공받고 있는 셈이다. 즉 우리들은 매일 960불(1백2십사만원)씩을 벌고 있는 셈이다. 우리들이 일생 동안 들이마시는 산소 값은 실로 엄청나다. 어디 그뿐인가? 전기 값을 한 번 따져 본 일이 있는가? 우리 교회의 전기 값은 1년에 약 4만 불 가량 나오는데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쓰고 있는 [햇빛] 값을 전기 요금으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될까? 하나님께서 [햇빛고지서]를 보내신다면 1년에 얼마나 내야할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은 빛(Light)으로 뿐만 아니라 햇볕으로서 열(온도,Heat)까지 적당히 주고 자외선까지 주어서 인간들과 동, 식물의 성장 및 생존에 얼마나 유익하도록 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여러분, 제가 이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우리 경상도 사투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빼까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천지빼까리”, 혹 “천지삐까리”라는 말의 뜻을 아십니까? 여기서 ‘천지(天地)’는 ‘대단히 많음’을 표현하는 표준말이고, “빼까리”는 추수하여 높이 쌓아둔 ‘볏가리’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고, “삐까리”는 온 세상에 가득한 태양의 \'빛깔\'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고, 겨울나기를 위하여 장작이나 나무를 잔득 쌓아둔 것을 뜻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천지빼까리”라는 이 말은 가을과 관련된 말이요, 그 뜻은 사방 천지에, 하늘과 땅 아래 전체에 가득 차 늘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항상 감사가 넘치시고 그것이 늘 입으로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아침에도 감사, 점심에도 감사, 밤에도 감사! 봄에도 감사, 무더운 여름에 감사, 풍성한 가을에 감사, 추운 겨울에 감사, 일 년 내내 감사! 먹으면서 감사, 먹을 것이 없을 때 금식하라는 줄 알고 감사! 입으면서 감사, 적당히 입을 옷이 없을 때 재활용하라는 줄 알고 감사, 새 옷을 사면 더더욱 감사 ···.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감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항상 감사의 음식을 먹으며 감사의 물을 마시고, 그리고 항상 감사의 옷을 입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감사의 표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로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감사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복되게 하시고, 더 많고 큰 감사의 조건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 살전5:16-18/ 추수감사주일설교/ 2006-11-19
가장 아름다운 사람 살전5:16-18 1. 가장 아름다운 사람 오늘은 추수 감사 주일입니다.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귀 할멈도 자기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요술 거울을 향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이냐? Mirror mirror, Who is the fairest in the world?\\\" 그 때 거울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백설 공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람에 따라서 그 대답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목사의 입장에서 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목사가 볼 때 또는 하나님이 보실 때 누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항상 기뻐하는 사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했습니다. 2. 강변교회의 사람들 우리 교회에 여기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집사님 한 분은 언제나 좋아하고 언제나 기뻐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들어도 좋아하고 봉사를 해도 좋아하고 전도를 해도 좋아하며 기뻐합니다. 성품이 단순하기 때문에 언제나 좋아하고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어떤 집사님 한 분은 언제나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간절한 모습으로 기도를 합니다.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모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어떤 집사님 한 분은 언제나 감격하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셨다고 고백하며 언제나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세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교회 안에 이런 종류의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좋아하며 기뻐하는 단순한 사람들, 언제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모하는 사람들,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는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경의 사람들 성경에도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아주 좋아하시고 아주 기뻐하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항상 기뻐했던 사람들 중에 다윗과 사도 바울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16편에 보면 성도들 때문에 즐거워했고 하나님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대상 15:29에 보면 언약궤가 다윗성으로 들어 올 때 춤을 추면서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대상 29:17에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서 기뻐했습니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다윗은 주님 때문에 기뻐했고 성도들 때문에 즐거워했고 법궤 때문에 기뻐했고 헌물을 드렸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 안에서 기뻐했고 성도들의 사랑 안에서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4:10에서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기를 생각하기 때문에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사도 바울은 또한 다윗처럼 자기의 재물과 몸을 드림으로 기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고후12:15).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니\\\"(빌2:17). 몸과 시간과 물질 드림에 인색한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고 드림이 많은 사람에게는 많은 기쁨이 많습니다. 항상 기도했던 사람들 중에 사무엘과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 보셨는데 그 때 사무엘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이례도 치신이도 어릴 때부터 새벽에 부모와 함께 나와서 기도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1:28). \\\"그 아이는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삼상2:11).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삼상2:18).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삼상3:1).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삼상3:19).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삼상12:23). \\\"그 제사장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요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시99:6).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무엘을 아름답고 귀하게 보시고 그를 축복하시고 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 와서 또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 보시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 보셨는데 그 때 로마 군인 장교 고넬료가 항상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그래서 하나님은 고넬료를 아름답고 귀하게 보시고 그에게 천사를 보내시고 그 다음에는 베드로를 보내어 그를 축복하시고 그의 일가와 친척들을 축복하시고 그 지역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고넬료를 기억하시고 루디아를 기억하시면 핑계를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쌓이고 쌓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8:3,4). 기도는 쌓이고 쌓입니다. 기도가 많이 쌓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아름답고 귀하게 보십니다. 항상 감사했던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사마리아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질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하나님은 기도하고 감사하는 다니엘을 아름답고 귀하게 보시고 그를 축복하시고 그를 높이셨습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촌에 문둥병자 열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을 만나서 모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그 중 한 명 만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기특히 보시고 그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긋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 온 자가 없느냐\\\"(눅17:17,18).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안 장로님입니까? 한 권사님입니까? 이 집사님입니까? 누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마음이 단순해서 항상 좋아하고 기뻐하는 사람, 마음이 간절하고 사모해서 항상 기도하는 사람, 마음이 가난하고 청결해서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모두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명혁 목사
갈렙의 감사/민13:1-3,25-33/2001-09-17
갈렙의 감사 민13:1-3,25-33 어느 분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인생을 표현했습니다. 중국 어느 마을에 노인과 젊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노인과 아들이 곳간에서 일하고 있는데 멋진 야생마가 곳간 안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이것을 본 이웃 사람이 \"큰 행운을 맞으셨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노인은 \"행운인지 아닌지, 시간이 지나가 봐야 알지.\"라고 말합니다. 3일 후 야생마는 울타리를 넘어 달아났습니다. 이웃 사람이 말하길 \"큰 행운을 놓치셨군요.\" 노 인이 말합니다. \"행운을 놓쳤는지 안놓쳤는지 시간이 자나가봐야 알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부자는 집을 수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치는 소리가 들립니 다. 야생마가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이웃사람이 말합니다. \"큰 행운이 찾아왔군요.\" 노인이 말합니다. \"큰 행운인지 아닌지 시간이 지나가 봐야 알지.\" 다음날 아들이 야생마가 데 리고 온 다른 말 하나를 길들이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웃이 말합니다. \"큰 불행이 찾아왔군요.\" 노인이 말합니다. \"불행인지 아닌지 시간이 지나가 봐야 알지.\" 두 주 후 한 군인이 찾아왔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여서 젊은이들을 징집하러 다니는 군인이었습 니다. 아들을 징집하러 왔는데 다리가 부러진 것을 보자 그대로 떠나갔습니다. 그 이상은 여러분 의 상상에 맡깁니다. 우리들의 인생의 한 면을 재미있게 묘사한 이야기입니다. 노인은 인생의 오랜 경험 끝에 삶을 사는 지혜를 터득한 것 같습니다. 가끔 교우님들과 이야기해보면 나이는 많이 들지 않았는데 벌써 이 노인과 같은 인생관을 갖고 계신 분들을 종종 봅니다. 좀 어려울 때에는 그래도 가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다가 뭔가 잘 풀리면 은근히 두려워진다고들 합니다. 아마도 이 노인처럼 잘될 때는 곧 잘 안될 것을 내다보고 또 잘 안될 때는 잘 될 때를 내다보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칼 융(C. Jung)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칼 융은 슬픈 일을 당한 친구들에게 가서는 \"축배를 드세. 곧 좋은 일이 생길 것일세\"라고 말했다고 합니 다. 반면 좋은 일을 맞은 친구들에게는 \"참 안됐네. 그러나 우리가 힘을 합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도 있지\"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곧 이 노인이나 칼 융이나 모두 인생은 끝없이 좋은 일, 나쁜 일이 얽혀져서 진행되는 한 과정 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만났을 때는 나쁜 일을 벌써 예상하고 나쁜 일을 만났을 때는 좋은 일에 소망을 두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패턴인가 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도 이러한 패턴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00년간 애굽의 종살이하 면서 살 때는 늘 야훼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을 바라는 희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드디어 10개 재 앙이 애굽에게 내린 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방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 엘 민족은 홍해를 건넙니다. 반면 이스라엘 민족을 쫓던 애굽 군대는 홍해에 빠져 몰사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모두 체험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선조들에 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큰 구원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 앞에서는 어떠했을 까요?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12 지파에서 한 사람씩을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시킵니다. 가나안 땅 을 정탐하고 온 12명의 정탐군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명의 정탐군은 다음과 같이 보고합 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 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며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10명의 정탐군들의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온 백성은 밤새도록 곡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10가지 재앙도 부족해서 애굽 군대를 홍해에 몰사시키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으로 역사하였습니다. 바로 며칠 전 이와 같은 승리를 맛보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에는 또다시 패배자의 마음이 스며들어왔습니다. 애굽사람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약한 가나안 사람들을 보면서 이번에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 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패배자가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노예 근성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민족의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이 아닐까요?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늘 이스 라엘 민족의 우매하고 패역함을 안타까와합니다. 아니 조롱합니다. 그런데 열이면 열, 사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모습 가운데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애굽을 무찌른 그 큰 승리를 며칠 전 맛보고서도 가나안 땅에 있는 자들 앞에 목을 놓아 슬피 우는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바로 얼마 전 놀라운 축복을 받았는데도 앞에 놓인 작은 장애물 앞에서 이번만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지 못하실 양 슬피 목놓아 우는 것이 우리들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슬피운 결과가 무었이었습니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모두가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죽어갔던 것 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였습니다. 그 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유가 있습니다. 갈렙은 30절에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14장 7절 이하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 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10명의 정탐군과는 달리 이 두 사람은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 을 한 갈렙과 여호수아는 40년간의 광야생활을 이기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영광을 받게 됩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다른 10명의 정탐군과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애굽군대를 무찌른 하나님의 축복이 이젠 다 끝난 것으로 생각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애굽 군대를 무찌른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하실 것을 믿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넘치는 감사가 흘러 내 렸을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얼마 전 애굽군대를 무찔러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넘쳤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엄청난 축복을 허락하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넘쳤을 것입니 다. 그 넘치는 감사와 감격을 안고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두려워말라\"라고 외친 것입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의 이 감사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놀라운 승리를 맛보게 하신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군과 갈렙과 여호수아의 차이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10명의 정탐군은 철학적 사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0명의 정탐군은 인생이 up and down이 반복됨을 잘 아는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애굽 땅에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신 하나님 은 이제는 멀리서 지켜보실 것을 내다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 람들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체념할 때 체념하고 기뻐할 때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자기의 운명을 잘 분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갈렙은 우둔한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을 애굽에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더 새 롭고 놀라운 일을 가나안 땅에서 일으키실 것을 믿는 감사의 미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의 감사로 인하여 자신과 함께 2세 이스라엘 민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철학자이십니까? 아니면 감사하는 사람들 이십니까? 얼마 전 설교준비를 위해 책을 사려고 큰 책방에 들렀습니다. 안내에 가서 미래학자(futurist)들 의 책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책방 점원이 컴퓨터로 \'futurist\'를 두드려보니까 아무 것도 나오지 않 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저에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이곳에 아마 당신이 찾는 책이 있을거예 요\"라고 하며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점성술(Astrology)에 관한 책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곧 동양식으로 하면 사주팔자에 관한 책들인데, futurist들의 책은 하나도 없는 반면에 한 코너 가 득히 점성술책이 가득 놓여진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점성술도 나쁜 것이 아니라 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깊은 철학이 깔려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적 사고는 우리들을 약속의 땅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체념하게 만듭니다. \"우리 의 인생은 이러니 여기에 맞추어가야지\"하며 수동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삶이었습니다. 10명의 정탐군의 삶이었습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삶입니다. 철학적 사고는 미래를 내다보는 것 이 아니라 적극적인 감사가 미래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 때 세상 철학자들이 볼 수 없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 땅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 땅을 허락하십니다. 세상 철학은, 점성술은, 사주팔자는 우리를 수동적으로 살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감사는 적 극적인 삶을 살게 합니다. 축복의 세계를 창조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일본의 히로시마 옆에 산들이 있는데 그 산에는 많은 야생화들이 난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서 집을 지을 때 그 옆에 산에서 진흙을 파와서 집을 짓곤 합니다. 그 흙에는 많은 야생화씨가 숨어 있습니다. 야생화씨가 숨어있는 진흙으로 히로시마의 집들이 지어진 것입니다. 원자폭탄이 히로시 마에 떨어졌을 때 전 도시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죽음과 슬픔, 절망이 전 도시를 덮었습니다. 그러 나 초토화된 도시 곳곳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진흙 속에 숨어 있던 야생화의 씨앗이 드디어 햇빛과 비를 맞으면서 피어난 것입니다. 철학자의 눈에는 히로시마가 슬픔과 절망, 인간의 비극의 현장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 다. 그러나 감사하는 자들의 눈에는 곳곳에 숨어있는 씨앗이 보입니다. 이들의 감사로 인해 새로 운 축복의 싹이 피어납니다. 꽃이 활짝 핍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오늘까지 인생의 길을 걸어오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 히로시 마에 원자탄이 떨어지는 비극적 삶도 얼마나 많이 겪으셨습니까? 그러할 때마다 철학자가 되시지 는 않으셨습니까? 하나님 없이 세상을 보곤 하시진 않으셨습니까? 그러할수록 삶 속에는 더욱 곤 고가 찾아오시진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감사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감사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 그 들의 감사의 향기를 통해서 새로운 축복의 세계를 창조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십니다. 마인스터 엑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선물을 기대하라. 항상 새것을, 항상 새것을 기대하라. 하나님은 당신이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된 것보다 천 배나 더 선물주실 준비 가 되셨다\" 감사하는 자들에게 천 배나 더 되는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천 배나 더 되는 약속의 땅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우리들을 위해서 약속의 땅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감사로 인해 우리는 이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 교우님 가정에 여러분의 감사로 인하여 더욱 넘치는 축복의 삶이 늘 함께 하시 길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주일과 함께 창립 46주년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이 시간 46 성상 우리 교 회를 보살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46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 감사드 릴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은혜 가운데서 주일학교,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들이 잘 성장하고 있고, 각 기관 및 부서가 열심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오늘 46주년을 맞아서 먼저 우리는 지난날의 모든 축복을 생각하면서 감사를 드려야 할 줄 압 니다. 아울러 갈렙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앞날을 내다보며 감사드려야 할 줄 압니다. 오늘까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잘 해 주시겠지하는 막연한 감사가 아니라 더 큰 기 대와 감격을 안고 우리의 장래를 위해 적극적인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할 줄 압니다. 요즘 장년성경공부시간에 사도행전을 공부하는데 제가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저 의 마음에 강하게 도전 받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안디옥 교회인데 안디옥교회는 사도바울을 세계 선교사로 파송한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이 시골교회인 안디옥 교회 가 이처럼 영광스러운 교회가 된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기 전까지 안디옥 교회는 여러면에서 모범적으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평신도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고, 말씀을 사 모했으며 유대인과 이방인이 잘 어울려서 화목한 분위기의 교회였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구제 하기에 힘쓰는 교회였습니다. 이와같이 교회가 잘 성장할 때 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의논하여 결정 한 사항이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많은 교회가 문제가 생기면 금식과 기도 를 시작하는데 안디옥교회는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있을 때 금식과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서 깊은 감사가 하나님께 늘 있었을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당신들 교회를 이처럼 성장케하 신 데는 더 큰 뜻이 있는 줄 믿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더 큰 하나님의 뜻 이 당신 교회에 있는 줄 깊이 깨닫고 감사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안디옥교회에 명령하십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서 세계선교사로 파송하게 합니다. 드디어 자그마한 시골교회였던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 교회가 감히 꿈도 못꾸었던 세계선 교를 시작합니다. 아울러 세계 최고의 선교사이자 신학자인 사도바울을 탄생시킵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변화된 우리 교회의 모습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줄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신 이유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물론 우리교회는 안디옥교회에 비교해 볼 때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감사한 제목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더욱 큰 축복을 예비해 주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교 회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 더욱 귀하게 사용하시지 않으실까요?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 용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지나간 모든 축복으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부족한 자들에게 이 큰 은혜를 내리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보다 더 큰 축 복을 허락하실 하나님께 적극적인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감사가 우리를 사로잡아 금식기도 까지 이르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감사의 기도 없이 우리 교회가 과연 축복된 50주년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46년간 의 우리 교회에 내려준 은혜를 감사할때 우리 눈앞에는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 허락하실 하나 님의 약속의 세계가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들의 이러한 감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우리의 감사는 더욱 귀한 축복의 세계를 도래시킬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는 감사의 표시로 금식 기도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여러분, 가정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주님께 올리십시다. 우리들의 감사는 새 역사를 창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철학자를 찾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미래에 대한 감사가 넘쳐 금식하며 기도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말씀을 거둡니다. 아랍의 말들이 유명한데 그처럼 아랍 말들이 세계적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원전 1635년 아랍의 추장(Farras, the horseman)이 자기 말들과 함께 사막을 달리고 있었습니 다. 멀리서 오아시스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목말랐던 말들은 갑자기 물을 향해 속력을 더 내서 달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파라스(Farras) 추장은 자기 말들을 테스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습니다. 모든 말들이 그 소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아시스로 달 려가는데 다섯 마리의 말은 방향을 바꾸어서 추장에게 돌아왔습니다. 추장은 이 다섯마리 말로 세 계적으로 유명한 아랍 말들을 탄생시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을 뽑아내어서 당신의 축복의 세계에 동참하게 합니 다. 하나님은 12정탐군 중에 갈렙과 여호수아를 택하셨습니다. 그들은 감사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 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감사의 눈으로 보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갈렙의 마 음을 소유한 자들을 찾으십니다. 감사의 마음을 소유한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들의 감사를 통해서 새로운 축복의 세계를 창조하십니다. 우리 모두 가정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한없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감사함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예비된 약속의 땅을 바라보십시다. 우리 교회를 위하여 예비된 약속의 땅을 바라보십시다. 갈렙은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우리가 두루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다. 여호와 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