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 예화
  • 자료
  • 성경
85세 하나님의 청년 /수14:6-15/청년주일설교/2009-08-18
85세 하나님의 청년 수14:6-15 장영희 교수님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지난주에 故장영희 서강대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는 중증 장애인이었습니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와 오른팔에 장애를 입었습니다. 그는 또한 7년 동안 유방암과 척추암이라는 병마와 싸웠습니다. 영문학을 가르치던 장 교수님이 번역한 시 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깃발을 꺼내라 그대가 인류를 위해 몸 바치는 것을 모든 이가 다 보도록 깃발을 꺼내라 그리고 흔들어라 지나는 모든 이가 기쁨의 들뜨도록 옆길로 비켜서 선 사람들 이전에 자부심을 잃은 사람들 모두 다 그 깃발을 보고, 그리고 다시 힘주어 정진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소망과 도전의식을 주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인도했던 장 교수님이 번역한 에드거 A. 게스트(Edgar A. Guest)의 ‘깃발을 꺼내라’라는 시의 일부분입니다. 그는 이 시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자기고백을 합니다. 과녁을 향한 날카로운 눈, 고통의 일그러진 얼굴, 혼신을 다해 질주하는 다리의 불끈 솟는 힘줄, 조국의 영광을 위해 사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태하고 풀죽은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젠 그만 걷겠다고 옆길로 비켜선 사람들, 자신만만했던 시절은 옛 말일뿐,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포기해버린 사람들도 자랑스런 그들을 위해서 깃발을 흔듭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남은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나야겠습니다. 일어나서 내 안에 있는 용기와 인내, 열정에 깃발을 다시 흔들어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떠났습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닳을지언정 녹슬지 않는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고통을 이겨내며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셨던 또 다른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방지일 목사님이십니다. 며칠 전 신문에 방 목사님을 소개하는 기사 재고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닳을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이것은 방 목사님의 좌우명입니다. 평소에 방 목사님은 ‘가만히 있으면 녹이 슬지, 멀쩡한 쇠파이프에 녹이 슬면 못쓰지 않겠느냐’ 말씀하시면서 열심히 살자고 후배들을 격려해 주십니다. 방 목사님은 백수가 다 되신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월요일이면 후배 목사님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시며 많은 분들에게 신앙과 인생의 귀감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방 목사님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을 모시고 전도사 시절을 보내신 한국 기독교 역사의 산 증인이십니다. 목사님은 1937년 목사 안수를 받으시자마자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20여 년간 복음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중국의 공산화 된 뒤, 총회에서 귀국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9년간 수 천 명의 난민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다가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서 강제추방 당하여 고국에 돌아오셨고 여전히 그 땅을 위해 선교하고 계십니다. 목사님은 지금도 시간을 철저히 지키며 말씀을 전하실 만큼 총기가 있으시고 설교원고를 준비하셔서 설교하십니다. 지금도 공부하시고 책을 읽으시며 후배들을 가르치십니다. 흐르는 냇물 속에서 매끈한 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그분은 녹슬 틈이 없습니다. 방 목사님의 좌우명처럼, 정녕 그분의 삶이 닳아 없어질 수는 있어도 녹이 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방 목사님은 참으로 멋진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젊음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삶은 녹이 슬고 있지 않습니까? 몸이 늙어가면서 우리의 정신과 영적인 자세도 녹이 슬어가는 것은 아닙니까?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 라는 글 속에 헤밍웨이의 삶을 표현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사람의 삶이 때로는 조각나 부서질 수 있을지라도, 결코 궁극적으로 패배할 수는 없다는 삶에 대한 도전과 용기를 가르쳐주는 말입니다. 젊다는 말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상태를 말할 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그렇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는 뜻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삶, 생기로 가득 찬 삶, 곧 날마다 젊음의 삶을 누리는 권리를 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었다 할지라도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호흡하며 살아가는 축복과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찬 삶이 곧 젊음입니다. 85세 된 갈렙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도 한 노인이 등장합니다. 신앙의 선배 갈렙입니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투지와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여호수아 14:10) 갈렙의 나이는 85세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여전히 젊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이 있었습니다. 85세라는 나이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기대’, ‘소망’이라는 말보다, ‘관조’, ‘회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가능성 보다는, 조용함과 정리가 더 어울리는 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85세 된 갈렙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여전히 약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인생을 녹슬지 않게 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갈렙은 나이가 어릴 때도 용기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정탐할 사람들을 뽑아 가나안으로 보낼 때 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12명이 정탐을 마치고 돌아와서 겁에 질린 보고를 했습니다. 어쩌면 10명의 보고가 사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너무 거대해서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대나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더 초라하게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10명이 보고를 마치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통곡하기 시작합니다.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을 향해서 원망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는가? 우리를 광야에서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가나안에 들어가서 죽느니 여기서 죽는 것이 낫겠다.” 그때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사람들 앞에 섭니다.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그가 오히려 분통을 터뜨리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민수기 14:8-9)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확인하면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을 하더라도 괜찮은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갈렙이 여호수아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갈렙에게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그러나 내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수기 14:24) 갈렙은 시기와 질투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갈렙도 고통이 있었습니다. 본래 모세는 자기의 후계자를 두 명 세웁니다. 하나는 갈렙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수아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모세의 후계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여호수아보다는 더 열정적인 갈렙에게 마음이 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모세는 여호수아를 가나안 정복을 위한 후계자로 삼게 됩니다. 그런 모세의 결정에 갈렙은 마음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인정을 못 받은 실패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경쟁자 여호수아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2인자로 지내는 아픔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40년의 광야 생활이 지났습니다. 가나안에 들어온 지도 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갈렙은 철저하게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노인이 된 갈렙 역시 안주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자기 인생을 끝마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옛날의 동료이자 경쟁자이며 지금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옛날 자기에게 말씀했던 도전과 기대의 산에 다시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산을 취하겠다고 말합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여호수아 14:11-12) 갈렙이라고 해서 어찌 40세와 85세 때의 마음이 같았겠습니까? 분명히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싸움에 도전할 수는 있습니다. 그의 마음의 담력이 85세가 된 지금도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안주하려는 마음을 잊어버렸습니다. 나이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나이로 인해 사명과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연로함이나 연소함이 하나님의 꿈을 무너뜨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새벽마다 성전에 나와서 부르짖는 아흔이 넘으신 권사님의 교회를 위한 기도를 누가 소홀히 여길 수 있겠습니까? 여든이 넘은 장로님이 학교와 병원을 다니며 복음쪽지를 전하는 전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은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섬기기를 지지치 않으시는 ‘젊은’ 신앙인들이 계속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 교회에 축복의 역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여호수아 14:12) 우리 안에 이런 마음이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만 있다면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하셔도 될 것입니다. 갈렙이 품었던 마음은 연소하여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큰 꿈을 망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로하기 때문에 안주하며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리며 순종하고 절제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까지 지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대로 꿈을 받았습니다. 갈렙에게는 이런 젊음과 생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꿈꾸며 이루는 젊은이들이 되십시오. 오늘은 총회가 정한 청년주일입니다. 젊은 청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기대하기 위해 청년주일을 제정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젊은이들이 못마땅해질 때가 없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예의 없음과 이기적이고 다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관점입니다. 그러나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도 청년 시절에는 부모님들로부터 그런 걱정과 꾸중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그 걱정과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왔음을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빙출어수 빙어수(氷出於水 氷於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낫고, 딸이 어머니보다 나은 가정, 후배가 선배보다 낫고,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사회가 축복받은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젊은이의 마음, 꿈을 꾸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사도행전 2:17-18) 하나님께서 영을 불어 주실 때, 우리는 약속의 꿈을 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젊은이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어른들도 청년의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달려갈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도 말씀과 사랑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와 가정, 이 민족과 사회가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 가운데 새로워지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역사가 믿음의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통해서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 마음이 젊어지게 하시고 성령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지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청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가룟유다의 배반/ 마26:14-30/ 대학부, 청년부설교/ 2016-03-06
가룟 유다의 배반 마26:14-30 <대학부, 청년부용> 1. 가룟 유다의 배반 1) 기회주의자, 물질주의자 2) 예언된 사건 3) 사단의 전략 4) 그러나 하나님의 큰 계획 이루심 5) 말세 때의 생겨나는 일 6) 가룟 유다 - 본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아니었음 2. 하나님 없는 자의 모습 1) 돈 받고 그리스도를 고발(마26:14-16) 2) 성찬식에 참석한 유다(마26:18-25) 3. 마지막 모임 1) 성찬예식 2) 살과 피 3) 화체설, 공재설, 기념설 <대학부, 청년부 교사용> 가룟 유다의 배반 마26:14-30 1. 가룟 유다의 배반 1) 기회주의자, 물질주의자: 가룟 유다는 원래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똑똑하고 기회를 잘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물질의 중요성을 더 크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2) 예언된 사건 – 가룟 유다의 배반도 예언된 사건이었습니다. 3) 사단의 전략 4) 그러나 하나님의 큰 계획 이루심 5) 말세 때의 생겨나는 일 - 앞으로 말세 때에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많이 생깁니다. 만약에 요한계시록과 같은 사건에 그대로 나타난다면, 진짜 믿음 가진 자가 몇 명이나 남겠습니까? 그래서 바른 예수운동을 해야 합니다. 6) 가룟 유다 - 본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아니었음 - 그래서 제 갈 길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 없는 자의 모습 1) 돈 받고 그리스도를 고발(마26:14-16) 2) 성찬식에 참석한 유다(마26:18-25) - 그래 놓고도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3. 마지막 모임 1) 성찬예식 -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실제적인 증거입니다. 이 예식은 지금까지 계속되어지는 예식입니다. 초대교회는 원칙적으로 매일 성찬식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성찬식 중심으로 매일 모이면 번잡해지므로, 6개월 만에 한 번씩 하는 것입니다. 원래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 성찬식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세례 받은 자에 한해서 받게 합니다. 왜냐? 거짓말을 잘하니까. 성찬에 대한 귀중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굉장히 귀중한 것입니다. 2) 살과 피 -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살이다!’고 하였고,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피다!’고 하였습니다. 3) 화체설, 공재설, 기념설 천주교 = 화체설(진짜 그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 이것은 우상이 됩니다. 공재설 = 루터교(거기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재하신다) 기념설 = 장로교(피와 살로 구원받은 사건을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아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한 시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하루도 잊어버리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강한 믿음으로 온전히 서라/ 고후13:5-10/ 청년회설교/ 2002-02-05
강한 믿음으로 온전히 서라 고후13:5-10 1999년도 청년부 주제는 \"강한 믿음으로 온전히 서라\"입니다. 청년부가 토요일에 집회를 갖다가 주일예배로 드린지 꼭 1년이 되었습니다. 1년전 98년 1월 4일 첫 예배를 드릴 때 38명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대충 헤아려봐도 70명은 되는 것 같습니다. 1년만에 꼭 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중에 교역자 회의를 하면서 박목사님께 지금 이렇게 부흥하면 올해안에 100명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과 목표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소식지에 쓴대로 그것은 내 소망이자 확신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2시 청년부 예배를 드리며 청년들이 마음속에 청년부 예배가 주일 낮예배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아내었습니다. 청년은 1부, 2부 예배를 드리지 않고 청년부 예배를 드려도 그것이 주일 낮예배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염려하는 것은 청년부 예배 한번 드리고, 나는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고 생각되는 것이 염려스럽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수주일의 완전한 개념은 주일 낮예배 한번드리는 것만으로 주일을 지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주일은 내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날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드리고 나서 오락을 한다거나 술마시거나 쾌락을 찾아서 바쁘게 보냈다면 주일을 지켰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함께 삶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예배를 오전과 저녁에 두 번 드리는 것은 바로 그런 신학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주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전하게 예배드렸다는 것의 외적 싸인이 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물론 그렇게 아침과 저녁에 예배를 드렸어도 중간에 쾌락을 따라 살았다면 온전한 주일을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전과 저녁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루를 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개념하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예배와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청년 예배는 오후에 드리는데 어떻게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충족시켜주겠느냐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 교회 구조의 다양성과 환경의 변화로 사실은 그게 조금씩 바뀌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를 기억하고 하루에 두 번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랬을 때 어떤 사람은 그런 형식이 무슨 온전한 주일을 지키는데 어떤 의미가 되겠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은 사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처럼 2시에 드리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사람은 그 의미가 조금은 퇴색될 수 있지만, 그래도 주일을 온전히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주일 아침에 교사나 1,2부 성가대 봉사를 하고 2시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를 오후예배로 혹은 저녁예배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에 오직 2시 예배만 드리고 마는 사람은 되도록 저녁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새벽예배만 드리고 놀러갑니다. 물론 그날 바빠서 그럴 수 밖에 없어서 새벽예배만이라도 드렸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런 생각이 굳어져서 주일날 아무예배나 한번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에 있어서 낮예배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주일 낮예배는 주일은 주님의 날이고 주를 위해서 산다는 고백을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예배에 대한 위상이 선민교회 내에서 제대로 자리매김 되었고, 그로 인하여 우리 청년부는 자신감을 가지고 부흥할 수 있는 기초가 놓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청년부가 주일 낮예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 이 문제에서 자유함을 얻고 여러분야에서 마음껏 봉사할 수 있도록 99년도를 시작하게 되어서 기쁨니다. 이제 우리 청년부가 99년에 들어와서 해결해야 될 문제는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내부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내적인 문제는 다름이 아니라 이제는 성숙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해야 되겠고, 청년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성숙해야 되겠고,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성숙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청년부 내에서의 어떤 갈등이나 교회 문제로 시험당하거나, 그래서 그 일들때문에 주의 일을 힘있게 하지 못하는 문제에서 벗어나서 강한 믿음과 온전한 신앙으로 바로 세워지는 청년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를 위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했고, 또 당부할 일들이 많이 있을 텐데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강한 믿음으로 온전히 세워질 것을 당부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당부한 것 중에는, 첫째가 믿음안에 있는가? 입니다. 믿음안에 있는가 확인하고 또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사탄의 종으로 태어납니다. 생각과 감정과 성품까지 전부 사탄에게 세뇌된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 문제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성선설과 성악설로 양분되어 있지만 기독교적인 관점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상태로 태어납니다. 물론 아이에게서 순수함과 깨끗함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본성적으로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아이가 본래 선하기 때문에 순수함과 깨끗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본성적으로 악하지만 그 악을 행할 힘이 없기 때문에 깨끗하고 순수하게 보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인정하기 싫고 모순 같지만 타락한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인간학을 연구한 어느 교수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양파와 같다\"고 했습니다. 왜냐 하면 양파의 껍질을 처음부터 벗기고, 벗기고, 또 벗기고, 아무리 벗겨봐야 양파 껍질만 나오지, 알맹이나 핵심이없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 인간을 연구하고 그 속을 들여다 보아도 양파처럼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에게 많은 것을 덧칠하고 옷입혀 놓아도 결국 남는 것은 흙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에게 아무리 의미를 부여하고 귀하다고 해도 인간속에서는 그 어떠한 구원의 조건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양파와 같은 인간에게 선과 의로움과 구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양파가 노력한다고 그 속에 무엇인가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노력보다는 본성을 변화시켜줄 외적인 힘이 작용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변화시켜주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육신으로 태어난 것만으로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완전할 수 없습니다. 본성적으로 타락된 인간이기에 여기에 영적인 태어남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하고,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새롭게 태어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로운 것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너희가 믿음안에 있는가 시험해 보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변화된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성적인 내용이 바뀌어서 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이 나타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본질이 바뀐 우리의 모습은 또 다시 사탄적 본성으로 뒤바뀌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러한 우리를 계속해서 시험하고 넘어지게 만듭니다. 세상의 유혹적인 것을 보면, 어느새 옛 성품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악한 본성이 드러나고, 죄의 성향들이 나도 모르나 드러나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거듭났음에도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매사에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15장 5절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늘 우리 안에 계십니다. 교회 열심히 나오다가 한두달 교회 안나와도 내 안에 계셨던 주님은 늘 내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내 속에서 역사하셔서 나를 감동시키고 주님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은 인간처럼 들어왔다 나갔다 변덕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을 시편62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그러나 내가 주안에 거하는 것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주님은 내 안에 영원히 거하시나 나는 주님안에 영원히 거하질 못합니다. 환경이 바뀌면 그 환경따라 움직였지 주님보고 살지를 못한 것이 인간입니다. 대학에 합격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각종 고시에 붙으면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 같다가도, 떨어지거나 직장을 얻지 못하면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것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너희안에 계시는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그러나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란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버린 적도 없고 우리를 떠나신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떠나고 주님안에 거하기를 거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래서 5절 처음부터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안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안에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과거와 구별된 전혀 새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새술은 새부대에 넣어 두는 것처럼 새 사람은 새로운 질서와 환경의 지배를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은 1999년도 첫주일입니다. 사람은 한해 한해 살아가면서 그 해에 새로운 것으로 새롭게 채워갑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못만난 친구를 몇 년후에 만나면 딴 사람같아 보입니다. 1999년도 틀림없이 여러분들은 무엇인가 여러분의 지식으로 감성으로 여러분의 머리와 가슴에 채울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되고 성장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채우시겠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고난의 잔을 마시고자 했던 제자들의 모습처럼 그리스도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로 채워진 여러분의 가슴과 열정속에 세상을 담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안에,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행하는 일들과 소망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7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1999년도 한해는 정말 육신을 좇다가 실패하고 가슴아파하는 한해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하고 의롭고 바른 삶을 사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생각과 지식과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채워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지 아니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하는 선행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신정에 전직 대통령집에 고아원 아이들이 찾아갔을 때 금일봉을 하고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보면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회단체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간다고 하고, TV가 이 일을 보도할 테니까,그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선과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허락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속에 있는 본질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내 의로움이 나타나지 않고 나의 선행이 기록되기 위한 목적이 전제된 선행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만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한 선행만이 진정한 선이라는 사실입니다. 1999년 한해는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반석같은 믿음으로 세워지는 청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1999년은 세 번째 시작하는 천년왕국을 준비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인간이 알 수 없지만 제 생각은 세 번째 천년기간안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구나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실제로 활동해야할 시기는 2천년대입니다. 우리가 살아갈뿐 아니라 나의 아들과 딸들이 살아갈 2천년대에 주님이 오실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정말 1999년 한해를 잘 보내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바울은 우리가 예수 안에서 「강한 것을 기뻐하고 온전하게 되기를」간절히 원했습니다. 우리의 약할 때, 사도가 사도적 권징과 권능을 사용하지 않을때를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강하여서 온전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기독교인이면서 세속에 물들어서 타락한 모습으로 교회다니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이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세워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교역자들이 다 원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고, 말씀을 통하여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상처받은 마음이 위로받고 치유되어서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모임들을 통하여 더욱 그리스도안에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0절에서도 \"이를 위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바라보는 제자들과 수 많은 교인들에게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과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그들이 바로 세워지기를 구한 것은,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의 신앙이 변질되고 타락됐다면 징계를 하고 사도의 권세로 엄하게 다스릴 것을 염두에 두면서, 지금 떨어져 있어서 내가 약할 때 너희의 강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고 다시 만났을 때 징계와 채찍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칭찬과 바르게 세워주는 것으로 만나기를 원하기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멀리 떨어져 사도적 권세가 약할 때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위해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1999년도에는 우리 청년부가 그리스도안에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안에서 말입니다. 속칭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잘나가는 청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간구한 것처럼, 저도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안에서 강한 믿음으로 온전히 세워지기를 간구합니다. 우리는 지금 1월 첫주일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일부터는 분명히 어떻게 어떻게 살겠다는 각오아래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내가 어디에 서있는가? 내가 그리스에서 벗어나서 세상가운데 있지 안나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1999년 한해 내내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분명히 여러분의 신앙이 그리스도 안에서 강한 믿음으로 온전히 세워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청년부가 2천년을 맞이하는 내년이맘때면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강한 청년부가 될 줄로 믿습니다.
거라사인의 청년/막5:1-20
거라사인의 청년 막5:1-20 오늘 본문 말씀은 귀신들린 한 청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을 먼저 언급하기 전에 이 청년이 살았든 거라사인 지방에 대해서 좀 알아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거라사인 지방은 요단 동편과 갈릴리 사해의 중간에 있는 도시입니다. 군사적, 전략적 요충지이며 그리고 물이 잘 흐르는 계곡이 많이 있어서 농업도 아주 발달한 도시입니다. 특히 옥수수재배는 인근 지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도시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시리아, 알랙산더 왕, 그리고 로마에 이르기까지 항상 강대국들이 호시탐탐 넘보는 도시었습니다. 로마의 품페이는 데카폴리스라고 열 개의 대 도시를 선정했는데 이 거라사인 지방이 들어갈 정도로 큰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주후 1세기 때 로마가 도시계획 속에서 재건축을 할 때 거라사인 지방을 도시 가운데로 포장된 도로를 내고 대장간과 제우스 신전을 두었으며, 대 극장이 두 개, 그리고 도시 외곽에는 성으로 둘러쌓았습니다. 그러니까 거라사인 지방은 인구나 문화시설 산업발달 면에서 거대한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예루살렘과 갈릴리 두 지방을 여행했는데 즉, 요단 서편만 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동편은 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 땅이라고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방 땅은 구원에서 제외되었느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쪽으로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사마리아지방을 피하고 평소에 가지 않으셨든 거라사인 지방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런 갑작스러운 행동은 분명히 귀한 메시지와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귀신들린 청년에게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귀신들린 청년은 증세가 아주 특이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귀신을 많이 소개하는데 귀신이 들리면 눈이 멀고, 말을 못하고, 병을 앓거나 거품을 내고 쓰러지거나 하는 정세를 기록하고 있는데 마가복음 5장에 기록되어있는 이 청년은 좀 다릅니다. 15절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그러니까 정신이 온전해졌다는 것은 재 정신이 들었다는 것인데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 청년은 귀신들린 정도가 정신질환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은 정신질환에 대해서 좀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자가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이 정신질환이란 정신병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정신질환은 정신세계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뇌 기능손상이지요. 정신세계의 기능 손상에 따라 때로는 노이로제, 인격장애, 성기능 장애, 정신병, 약물중독, 이렇게 구분해서 부르는데 이것을 전체적으로 포함해서 정신절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신질환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면 먼저 신경증이 있습니다. 이 신경증에는 우울증, 불안증, 신경쇠약, 공안 장애, 건강염려증들이 있고 정신병에는 정신분열병, 뇌기능 고장의 침해, 등의 뇌 손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격장애는 편집적 인격장애 즉, 히스테리, 도치적 인격장애, 강박증인격장애 등 가지각색의 인격장애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해서 정신질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정신질환의 범주를 알면 누구도 여기서 제외된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할 수 없습니다. 이 부정한 도시, 공해 그리고 스트레스 또한 사람과 사람사이에 상처들 이런 것으로 인해 정신질환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리스도인이라고 제외된다는 말은 없습니다. 문명의 흐름은 도시로부터 나타났기에 사람들은 도시로 모이고 모입니다. 그리고 도시 속에서 깨어지고, 상처받고, 긴장하고, 생존경쟁에 두려움을 느끼고 하는 정신적 문제가 고질화되고 악해 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마가복음에 나타난 이 말씀은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대전도 자꾸 대 도시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큰 매장이 생기고, 한군데로 사람들이 모이고 그 가운데 생존경쟁에 시달리며 깨어지고 상처받고 스트레스와 긴장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허덕이는 사람이 자꾸 늘어가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평화, 영광, 부기, 권력, 질서의 상징 이였습니다. 세계의 중심이요 일종의 유토피아였습니다. 이 청년도 대 도시인 거라사인 지방에서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하고 절망 속에 괴로워하다가 정신질환 환자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 청년이 살고 있는 곳이 무덤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심지에서 안 살고 사람들이 찾지 안는 무덤가로 왔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을 까요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받고 실패를 맛보고 또 사람들 사이에서 이용당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무덤가로 왔다는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사람들 사이에 깨어지고 치이고 하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불끄고 혼자 있고 싶습니다. 저가 일전에 말씀드렸지만 부모를 살해한 이은상군도 혼자 자기 방에서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군에서까지 부하에게 왕따를 당하는 그의 삶은 그를 혼자 두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부모들까지 그를 이해 못하고 계속해서 상처를 주게되어 결국 정신질환을 알고 부모를 살해 했습니다 . 이번에도 아버지와 할머니를 죽여 시체를 불에 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상처받고 외로이 혼자 있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미 방에서 불을 꺼놓고 혼자 있다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쇠사슬을 끊고\'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것은 제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힘입니다. 이 힘은 억압된 에너지가 밖으로 표출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 힘은 다른 사람들이 제어할 수 없는 힘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상시 조용하다가 화가 나면 폭발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 폭발이 겉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억압된 것이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칼로 찔려 죽였습니다. 그 사건만 보면 남편을 죽어 마땅하겠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 내성적이거나 평소에는 말이 없었든 사람들입니다. 억압된 것이 갑자기 폭발할 때는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한 순간이지요. 이것을 영적으로는 한 순간에 어두움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지배할 수 없는 그 무엇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 것, 이런 경우를 우리는 많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소리지른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조용하다가 그리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가끔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를 지르지요.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가끔씩 소리지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차안에서 가끔씩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억압된 것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함을 질려댑니다. 그러니까 이런 억압이 심해지면 정신질환을 앓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이 청년의 증세 중 하나는 자기 몸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학대받은 사람이 학대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이 학대가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에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부인과 대화를 하다가 말이 안 통하면 벽에 머리를 박는답니다. 주먹으로 벽을 친다든지 가슴을 친다든지 그런 식으로 자기를 학대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자기학대가 심한 사람들은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자기 몸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칼이나 담뱃불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흠하게 산 사람들 보면 몸에 상처가 많지요 이런 상처는 대부분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난 상처가 아니라 자기가 낸 상처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신경체계의 끈이 끊어지면 이런 현상이 심하게 두더려지게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술취해 방황하며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상처를 내는 사람, 괜히 때리고 소리지르고 벽을 박고 치고 하는 사람들 참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내 안에 거라사인 사람이 들어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라사인이 나오는 그런 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식하고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우리 주위의 삶이, 도시의 삶이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생각할 때 우리도시가 건강한 도시라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밖에 딸을 마음대로 내어 보낼 수가 없어서 따라 나간다면 이 도시는 건강한 도시가 아닙니다. 택시 타는 것이 두렵다 그러면 이 사회와 도시는 건강한 도시와 사회가 되지 못합니다. 신문을 볼 때마다 화가 나면 이 도시는 건강한 도시가 아닙니다. 카드 빚 700만원 때문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할 때 \'700만원 때문에 사람을 죽여!\'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돈의 액수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벌써 이런 사람은 내면세계에 물질에 대한 박탈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별력 없는 삶도 문제입니다. 향락을 부추기는 삶이 이 사회와 도시에 얼마나 만연되어있습니까? 구미가 당기고 구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충동질하는 광고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내면세계에서는 분별력 없는 삶과 물질에 대한 박탈감이 쌓이면 살인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이것입니다. 이렇게 사회와 도시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병든 사회와 도시에서 우리는 반응하고 성격이 형성됩니다. 이런 병들고 불안한 도시에서 심리적으로 범죄 할 가능성과 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스스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분노가 있습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있습니까? 아니면 남들보다 못사는 자신의 무능함 때문에 자신에 대한 분노가 있습니까? 무능력, 자책감, 미움 이런 것들이 내면세계에 있기에 우리는 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사회가 권력형비리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무슨 게이트니하는 것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들의 심리상태는 상대적인 허탈감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질환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권력형비리가 사람들에게 첫째, 소외감을 주게됩니다. 남들은 억, 억 하는데 나는 10만원도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참여할 수 없는 소외감 이런 것들이 병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두 번째로 박탈감입니다. 저들이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저 돈이 나에게 돌아올 것인데 나에게 올 것이 안 왔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세 번쩨는 환상의 삶을 만들어 냅니다. 억, 억 하니까 억이 별것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현실에는 그렇지 않지요 이런 결과로 이 도시에서 적응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자살도 합니다. 소외와 허탈감과 무능력으로 인해 마음으로 도시와 문을 닫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정신적 질환을 앓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개혁으로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의 분노가 세상을 바꾸어야된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그래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찾게되지요. 찾지 못하면 허탈감과 소외감을 가지고 세상을 비난하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과 방황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다음 법을 믿을 수 없고 정부를 믿을 수 없고 이런 기타의 병든 사회와 도시 때문에 우리는 정신질환에서 해방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사실 알게 모르게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지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그리스도께서 호수동편에서 가르치신 적이 그의 없습니다. 막 4: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여기서 특별히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호수 건너편으로 간 것은 그 사람의 외침 다시 말하면 귀신들린 청년의 외침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4장 끝에 보면 건너 갈 때 폭풍우를 만납니다. 4:37절을 보면 폭풍과 한 영혼의 울부짖음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푹풍 속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 것은 정말 폭풍 속에 있는 한 영혼을 발견한 것의 비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폭풍 넘어의 한 가느다란 외침을 들었습니다. 마가복음의 의도는 아무리 푹풍이 치고 비가와도 아이의 작은 소리도 어머니는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호수를 건너가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귀신에 붙들린 한 영혼에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귀신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래서 귀신 쪽에서 설교를 하지 않고 한 영혼 쪽에 비중을 두고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결국을 전체적인 맥략에서는 귀신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두움의 문제이며,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악한 영의 문제이지만 그러나 이 청년에게 주님은 초점이 가 있습니다. 이 폭풍우를 잠재우고 난 후 제자들의 반응에 대한보고는 없습니다. 무덤 가에 제자들을 동참시키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오직 이 한 영혼에 관심을 직중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귀신 들린 청년은 주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정신질환에서 귀신과 어두움과 악한 세력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어두운 세상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믿을 수 없는 도시에서 현실의 참 지도자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이 땅에서 무너진 도덕적 정신적 질환에서 해방되며 치유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을 알면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그 분을 만나지 못하면, 그 분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교회는 다녀도 정신 질환에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병들어 심음하고 언젠가 폭발하고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는 세상적으로 행복을 누려가기를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세상적으로 행복을 보장하십니다. 문제는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 것입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입니다. 그리하면 이라는 우선순위가 성적적 맥략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 그런데 우선순위가 세상적 행복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지요. 말씀으로 살아가야 할지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야 할지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이런 딜레마에서 빨리 헤어나지 못하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축복도 누리지 못하고 정신적 딜레마에 고통을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적세계속에 이중성이 있습니다. 세상 것도 갖고 싶고 하나님의 나라도 갖고싶습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에서 초월하고도 싶고 소유하고도 싶습니다. 분명히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를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반된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이 또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세상으로 빠져서 하나님말씀과 상반되는 행동을 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잣대로 보면 우리를 다 심판할 것 같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보면 무슨 불의한 일이 있더라도 다 품어 주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이 둘 속에서도 혼란을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신앙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늘 갈등만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잘 들으세요. 하나님은 거룩과공의 그리고 사랑 이 두 가지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과공의 그리고 사랑이 만나는 곳입니다. 우리가 병든 도시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심판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고 바른 사람이, 다시 말하면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라 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의 방법으로 불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그리스도 보혈과 십자가가 없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가 없고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로 심판받아 죽어야 마땅한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그 이유가 \'나\'로 집약되지 않는다면 그 십자가에 내 죄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구원의 원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늘 정신 질환에서 빠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세상과 짝하면 하나님과 원수되고 하나님과 짝하면 세상과 원수가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공의로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짝해보십시오. 이 말씀을 행위로가 아니라 존재로 이해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세상과 짝하면 그렇게 불편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어두움이 지배하게되고 세상의 원리와 방법을 동원해서 살아야하니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은혜를 알아야합니다. 그 분이 왜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여 외롭고 쓸쓸하게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심이라는 그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이 땅의 소망으로가 아니라 저 천국의 소망으로 이 땅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알면 우리가 변화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서 13:10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창조한 형상을 쫓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라\'는 말씀은 인격이 바뀌라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바뀌는 능력이 있습니다. 행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먼저 생각과 감정, 의지, 행동이 바뀌라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인격적인 삶으로 표출됩니다. 새사람의 인격은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바뀌야할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내 인격은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이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은 생각, 가치관, 윤리관, 신앙관, 재물관이 바뀌고 있는가 말입니다. 당연히 주일날 교회가야 하는 문제를 상황에 따라 교회 가는 것은 신앙관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해봅시다. 지금 청년 안에 들어있는 군대귀신을 어디로 보냈습니까? 돼지 때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사람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이 기적에 대한 반응이 \'이 동네를 떠나 주십시오\'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재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내 재산이 물에 빠져 다 잃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거라사인 지방에는 귀신들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대 도시 사람들은 한 영혼을 보지 않고 돈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본 이 청년은 예수님과 함께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19절에 \'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큰일을 행한 것, 불쌍히 여긴 것을 친족에게 고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베풀 때만큼 큰일은 없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이 왜 큰일입니까? 애굽에서 구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회복시키고 구원했습니다. 이 큰일을 가지고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청년의 친척, 가족, 친구와 이웃에 가서 정상적인 삶을 이루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고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를 받아 가정과 이웃으로 가야합니다. 그들의 삶이 정신질환적 삶 속에서 고통 당하고 있는 삶 속에 가서 예수그리스도의 큰일을 보여야합니다. 이 사람은 복음서에서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서가 기록되었을 때는 이 사건이 일어난지 30-40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이 사람의 사건은 아는데 이름을 모를 정도라면 이 사람은 정말로 가족에게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이름이 남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이 불쌍히 여기면 이것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상에는 정신질환자가 많습니다. 특히 도시에는 더 고통 속에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 우리도 제외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고통 중에 한 귀신들린 청년의 울부짖음을 들었습니다. 변화된 우리가 이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변화된 사람이 많다는 것은 도시라 할지라도 점점 정신질환에서 해방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변화된 사람은 누구나 정신질환자를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는, 곁에 있는 사람이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그룹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통받은 사람과 돕는 사람이 한 대 묶여서 교회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돕는 사람은 희생과 헌신이 따르는 것이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은 사랑과 기쁨과 치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를 통해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주위에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시길 원합니다. 변화를 받은 사람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세상과 성도는 병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에서 주는 어두움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천국이 무엇이며 구원이 무엇이며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람사이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그들을 통해 섬기는 것이며 그들의 작은 신음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교회가 감당해야할 사명이며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자세입니다.
경건을 연습하는 청년을 키우자/ 딤전4:5-10/ 2003-11-18
경건을 연습하는 청년을 키우자 딤전4:5-10 어른들은 어린이를 소홀히 여길 때가 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주님에게 나와 복을 받으려고 할 때, 제자들은 시끄럽다고 아이들을 가로막았다가 주님에게 책망을 받았다. 일부 기성세대 중에는 젊은이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무시한다. 젊은이 중에는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젊은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나 어린 소년이 가지고 있던 도시락으로 어른들이 5000명 이상이 잘 먹고도 남았다. 형들에게 미움 받았던 요셉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국정 수행을 잘하였고, 애굽 사람들을 잘 살게했다. 자기를 미워해서 애굽에 종으로 팔았던 형들과 부모님을 애굽으로 초청하여 잘 살게 했다. 청년 죤 칼빈은 28세에 기독교 강요를 써서- 장로교 교리를 완성하였다. 청년의 때는 이와 같이 귀한 것이다. 대만 자매교회인 따안교회 청년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하였다. 청년들이 주안에서 경건 훈련과 신앙훈련, 봉사훈련을 받기 위해 왔다. 그래서 오늘 경건을 연습하는 청년을 키우자는 말씀으로 피차 은혜를 받으려고 한다. 본론 1. 연습이란 무엇인가? exercise <1128> {goom-nad\'-zo} from 1131; AV - exercise 4; 4 1) to exercise naked (in a palaestra or school of athletics) 2) to exercise vigorously, in any way, either the body or the mind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획된 과정을 반복하여 훈련하고 실습과 실험을 하여 익숙하고 숙달되게 하는 것이다. 연습에는 운동연습, 음악연습, 군사훈련, 신앙훈련 등이 있다. 오늘 본문에는 육체의 연습- 운동연습- 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했다. 그 뿐 아니라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육체의 연습도 해야겠지만 경건의 연습을 더 많이 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경건의 연습이 전 생애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경건의 연습을 힘써 해야 한다. 2. 경건이란 무엇인가? 4장 7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exercise <1128> thyself rather unto godliness {yoo-seb\'-i-ah} from {yoo-seb-ace\'} devout, godly, 1) pious, dutiful, godliness, holiness 1) reverence, respect 2) piety towards God, godliness 3. 경건한 연습엔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것이다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청년의 때에는 하나님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매일 식사를 세 번 하는 것처럼 성경을 하루에 3장은 읽고 공부해야 한다. 매일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연습은 참 좋은 것이다. 요즘은 성경을 공부하는 좋은 책이 많이 나와 있어서 개인이나 그룹으로 성경을 공부하면 좋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고 경건해 진다. 그래야 세상 풍조에 흔들리지 않으며 살수 있다. 직장에 나가서 제 정신으로 바르게 일하고 넘어지지 않고 살려면 다른 것 없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배워야 한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여 깨달은 것은 반드시 실천하고 지켜야 한다. 그래야 경건한 청년이 될 수 있다 2) 기도하는 것이다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기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권능을 받는 길이다. 차를 마실 때도 기도하고, 과일을 먹을 때도 기도하고, 밥을 먹을 때도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계속할 때 성도는 경건해 진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사는 것이다. 청년들도 새벽기도, 금요기도, 열열이 기도를 해야한다. [적용] 선한 일꾼이 되자 4장 6절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말씀 생활과 기도생활이 이렇게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성도들을 깨우치면 그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는 것이다. 경건의 연습을 위해 우리들은 수고하고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10) 특별히 청년들은 경건의 연습인 기도를 열심히 하기를 바란다. 3) 봉사하는 것이다. 나의 복지가 중요한 것처럼 이웃의 복지를 챙겨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 봉사하며 산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봉사하며 산다. 행복한 교회는 서로 봉사하며 신앙생활 한다. 행복한 나라는 서로 봉사하며 산다-- 수해를 당한 경기 중 북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달려가서 복구 작업을 해주고, 밥을 해주고, 물을 날라다 주고, 초를 가져다 주고, 버너와 가스를 가져다주고, 상처 입은 사람을 치료해주고, 수해 현장에 못 가는 사람은 전화 ARS나 교회에서 수재 의연금을 내는 것으로 봉사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그 사랑을 받은 사람도 행복하다. 교회는 이익단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봉사자가 필요하다. 주차장에서부터 예배당, 식당, 화장실까지 봉사자가 필요하다. 홍성 선교단에 40여명의 젊은이들이 매주일 예배를 위해 봉사를 한다. 단장, 서기, 회계 와 6개 팀으로 나누어 봉사하는데 기술팀, 영상팀, 음악팀, 디자인팀, 전산팀, 기획팀이 있다. 이들을 교역자가 신앙으로 지도하고 있는데 얼마나 귀한 봉사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저들에게 복 주시기를 바란다. 봉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마음은 날아갈 듯 기쁘고 즐겁다. 보람이 있다. 봉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이 한다. 봉사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 한다. 4장 10절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했다. 봉사를 하면 내 마음이 윤택해 지고, 내 가정이 윤택해 지고 내 교회는 부흥되고, 내 이웃이 잘 살게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청년 때부터 봉사하기를 바란다. 4)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 것도 경건의 연습이다. 헌금의 기본은 십일조이다. 10개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십일조 헌금이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은 귀한 일을 하신다. 우리교회는 교회 예산의 50%를 교회 밖을 위해 사용한다. 선교를 위하여 30%, 장학을 위하여10%, 사회봉사, 구제를 위해 10%를 사용한다. 성도들이 헌금드리는 경건의 연습을 잘 해서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청년들도 이 연습을 해야 한다. 십일조를 제대로 바르게 드리기만 하면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다. 청년 때부터 십일조 드리는 연습을 해야한다. 5)좋은 말을 하는 것이다.(7) 4장 7절 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다. 성도는 좋은 말을 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성도는 망령된 말- 들으면 실족될 말, 욕설, 독설, 거짓말, 남을 헐뜯는 말, 안 해도 될 말,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가벼운 농담 가운데 형제 자매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런 말보다 성도는 형제 자매를 축복하고 칭찬하는 말을 해야 한다. 형제 자매의 얼굴을 빛나게 해주고 신바람 나게 하는 말을 해야 한다. 성도는 불평의 말, 비난의 말, 경박한 말도 삼가해야 한다. 성도는 언제나 축복하고 칭찬하는 말만 하도록 연습해야 한다. 청년 때부터 좋은 말하는 연습을 하기 바란다. 5) 주님께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10) 인생을 살다보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몇 번 찾아온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기회이다. 그런데 게을러서 그 기회를 놓치는 성도들을 보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경건하게 준비를 잘 해야 한다. 젊을 때에는 시간이 귀한 줄 잘 모른다. 젊으니까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건한 청년은 주님께 소망을 두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저는 왜 대학 때 영문학과를 해야 하는 지 잘 몰랐다. 영어 공부가 힘들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금번에 WA \'99 를 위해 2년간 준비했고, 141개국 사람들과 의사소통, 회의, 강의 등을 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영어 공부를 시키셨는지를 금번에 알게 되었다. [김상복 목사님을 한국에 오게 하신 이유] 금번에 강릉에 가서 김상복 목사님과 강릉 목회자들을 위해 세미나를 하고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오면서 김목사님께서 미국에서 한국교회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셨는데 95년에 GECOWE \'95 세계 선교대회를 횃불회관에서 하면서 하나님께서 한국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고 계속 한국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다고 했다. 이번에 할렐루야 교회를 가보니까 한국 최대의 교회당을 건축하고 있었다. 사실 저는 GECOWE \'95를 통해서 세계대회 경험을 했고 금번에 WA\'99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애굽 궁중에서 그 당시 최대의 학문을 닦고 잘 준비된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로 사용하셨고, 그렇게 중요한 하나님 말씀- 모세 5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쓰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최고의 공부를 했고, 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는 청년 바울을 부르셔서 아시아와 유럽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게 하셨고, (13)권의 바울 서신을 쓰도록 하셔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는 대 사도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경건한 훈련이 잘된 청년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젊을 때 경건의 연습을 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되십시다. 청년의 때를 아끼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준비를 잘 하십시다. 그래서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경건한 청년들이 되기를 바란다. 결론 경건한 청년은 헌신된 청년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청년이다. 청년의 때에 경건이 몸에 배도록 연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1.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자. 죤 스타트, 마틴 로이드 존스, JI 팩커 등은 대학생 때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여 금세기 최고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청년들도 말씀을 연구하기를 바란다. 2. 기도하자 청년은 기도함으로 경건한 사람이 된다. 기도함으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사는 청년이 되기를 바란다. 3. 봉사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봉사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교회는 봉사하는 교회이다. 행복한 나라는 봉사하는 백성이 많은 나라이다. 봉사할 때 마음이 윤택해 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4.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직장에 취직을 하여 첫 봉급 전부를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바친 청년 가정을 보았다. 참으로 귀한 믿음을 하나님이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 성도에게 직장 때문에 걱정하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늘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5. 좋은 말을 하는 것이다. 6. 주님께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준비한다. 모세처럼, 바울처럼 준비한다 우리들도 청년 때에 경건의 연습을 하면서 준비하자. 그래서 21세기에 하나님이 귀하게 쓰임 받는 따안교회 와 홍성교회 청년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성도들은 21세기를 책임지는 청년들이 되기를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아멘.
계속적 권면/ 장로와 젊은이/ 벧전5:1-7
계속적 권면/ 장로와 젊은이 벧전5:1-7 이제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5장에서 특별한 권면을 하고 있는데 장로에 대한 권면과 젊은이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으며, 깨어 근신하라는 권면과 인사와 축복으로 5장을 맺고 있습니다.그럼 먼저 1절에 보면 너희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라고 했는데 여기서 나오는 장로나는 말은 ‘연장자’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장로라는 위치는 한 가문의 어른에게도 (창10:21)한 지파의 장에게도(레4:15)적용된 명칭이었습니다. 신약시대 당시에도 각 지방에 있는 연장자들이 회당의 관리와 재판(마 5:21)을 주관했고 예루살렘에서는 전국적인 대표인 71명의 연장자로 (민11:16) 구성된 공회가 있어서 최고의 법적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신약성서의 장로직이 구약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 성격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교회의 장로직이란 교회의 관리나 행정이외에 목회 설교등을 하였습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장로교회에서는 치리 장로와 강도 장로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에 대하여 세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는 함께 장로 된자요’했는데 이는 사도로서의 고자세가 아니라 같은 입장에서의 친철하고 자신과 동등한 위치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둘째로,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자신은 그 누구보다고 예수님의 고난의 동참자가 되기 위해서 끌려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쫓아 갔습니다 비록 그가 세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는 연약함을 보여 주었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었던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그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한 자로소 그 목격한 바를 입증하는 자이기에 자신을 고난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세번째로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라는 확신에 찬 모습입니다. 비록 그가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했지만 영원한 약속에 대한 보장을 받은 자로 자처했고 확신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말씀은 장로님에게 적용된 말씀이라는 오해를 할 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을 가지면서 가정에 있어서 구역에 있어서 교회에 있어서 신앙의 연장자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장로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되지만 목양을 하는 장로에게 해당이 되지만 우리 자신도 신앙의 연장자가 되기 때문에 바로 이와 같은 원리로 살아야 될 것으로 교훈삼으면 됩니다. 2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라고 했는데 사도 베드로는 세번 주님을 부인하고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는 질문뒤에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여기서 강조 된 것은 ‘하나님의 양’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시23편),그리스도(2:25)는 친히 성도의목자시며 또한 그 소유자시다.(요21:15) 장로는 하나님의 양을 맡은 자에 지나지 않는 다는 (3절) 사실을 말씀한다.사도 바울도 행 20:28에서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목회에 관한 세가지 주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억지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부득이 함으로 하는 선는 값어치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자원함으로 하되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즐거운 뜻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즐거움이란 하나님의 소명감을 확신한데서만 있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세째로,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장하는 자세는 전체적으로 주권행사를 하는 것으로 강압적 태도를 취하지 말고 실천 생활에 있어 모본을 보여 그리스도인으로서 교우들로 하여금 마음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도록 하라는 의미입니다. 4절에 보면,‘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권면의 결론적인 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보장되는 상급에 대해 확신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 상급은 시들지 아니하는 상급입니다. 계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10-11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11」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요10:10) 그러므로 예수께서 수고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귀한 상급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귀한 본을 보여 주시고 계심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사님이나 장로님들께서는 성도들의 본이 되는 삶을 사시고 우리들에게 귀한 신앙의 힘과 용기를 부어 주십니다. 신앙의 연장자로서 교회의 장로로서의 손색이 없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면류관을 잊지 않으실줄 믿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있어서 구역에 있어서 신앙의 연장자되신 분들도 귀한 삶을 사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면류관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신앙의 본된 삶을 사실 줄 확신합니다. 다음에 사도 베드로는 젊은 사람들에 대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로 인해서 소망을 품기도 하지만 때로는 골치거리가 되어 걱정하게도 됩니다.그러나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들을 맡겨주시고 믿음으로 잘 양육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젊은이들은 나이드신 분들의 경륜과 경험을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사고가 낡고 구시대적인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오늘 말씀속에서 사도 베드로의 권면을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장로들에게 순복하고’했습니다. 젊은 층에 대한 권면은 ‘순종’입니다.순종은 부모에 대한 자녀(엡6:1)의 순종,상전께 대한 종의 순종(2:18,엡6:5),남편에 대한 아내의 순종(3:1,엡5:22),집권자에 대한 백성의 순종(2:14,롬13:5)등 하나의 미덕으로 권면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의 통일 왕국이 솔로몬 왕의 영화의 시대가 가고 이제 솔로몬의 아들 르로보암의 시대가 되었을때 백성들은 노역을 감해 줄 것을 새왕에게 요청을 했습니다. 그때 나라의 장로들은 노역을 감해주면 백성들이 솔로몬 왕을 받든 것처럼 르호보암 왕도 받들 것이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그때 로호보암은 부왕의 장로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너희를 채찍으로 다스렸으나 나는 전갈로 징치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마음이 왕을 떠나 결굴 베냐민 지파와 유다지파만이 남 유다왕국을 이루고 북쪽 열 지파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이루어 나라가 분열되는 비극이 도래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을 봅니다.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충고나 조언을 받아들여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로,겸손의 허리띠를 동이는 것입니다. 약 4:6에도 인용이 되어 있는데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고 했습니다. 물은 낮은 곳에 고이고 흐릅니다. 교만의 봉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유지를 못합니다.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겸손이 요구된다고 베드로는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높인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젊은이들이 신앙의 연장자의 말을 장 청종하여 잘 배우면 나중에 연장자가 되었을때 젊은이를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는 존경의 높은 자리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불안하여 정신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요즈음의 아이들은 온상에서 자란 아이처럼 연약한 모습으로 성장하여 혼자 씩씩하게 자신의 앞날을 창조해 나가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것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나타나고 그 불안한 모습을 감추려고 무척이나 세상적인 것으로 채워 보려고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 갖는 미래에 대한 불안등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등등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이제 신앙의 연장자로서 세가지 주의 할 것과 젊은이들에 대한 권면을 하였습니다. 젊은이를 옆에 두신 분들은 바로 올바른 인생관을 심어주시 위해서 신앙적 상담을 통하여 젊은이들을 권면하여 그들이 불안하거나 걱정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고 어른들의 큰 책임임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사랑과 믿음으로 소망으로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극복한 겸손의 축복/마21:1-11
고난을 극복한 겸손의 축복 마21:1-11 1. 겸손은 고난을 극복한다. 다음 주일은 부활절이고, 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역사적으 로 가장 큰 고난과 수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승리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인류 역사는 새롭게 변화되었고, 우리도 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 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보면 고난과 어려 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 까?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하면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 다. 유명한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 (Quintus Septimius Florens Tertullianus ; 150/60∼220?)는 다 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난을 두 려워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는, 크리스천들은 고 난에 대해서 아주 익숙해야 하며 고 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 니다. 이미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셨 기 때문에 우리도 겸손하게 고난을 받아들이면 그 고난을 통해서 영광 과 축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보면 열매가 많은 가지가 있고 열매가 없는 가지가 있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은 가지는 자꾸 밑으 로 처집니다. 그런데 열매 없는 가 지는 자꾸 위로 솟아납니다. 마찬가 지로 축복을 받은 사람, 진정한 삶 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밑으로, 밑으로 겸손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진리도 터득하 지 못한 사람은 높아지려고 자꾸 올 라갑니다. 교만한 삶을 삽니다. 겸손한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까? 교만한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까? 이 세상에 살면서 특히 고난을 당하는 사람, 또는 고난이 없다 할지라도 교만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겸손하게 사는 사람에게 성공도, 승리도, 행복 도 있습니다. 만약 생활 속에 교만이 나타나면 그 사람은 외로운 인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이 지식 면에 드러나 면 그 지식은 퇴보하게 되고, 교만 이 물질 속에 나타나면 그 물질은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썩고 그것 때문에 교만해지고 타락하게 됩니다. 교만이 친구 사이에 들어가 면 친구와 헤어지게 되고, 교만이 가족 속에 들어가게 되면 가족과 멀 리하게 되고, 교만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으면 하나님을 멀리 떠나 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에 어긋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겸손하게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그 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가장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 들고 바람을 불어 생기를 넣어서 인 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은 결단코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 다. 인간은 교만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무엇이 교만입니까? 교만의 조건 은self-sufficient, self-centeredness, self-priority, 이 세 가지라고 합니 다. 그래서 나 자신으로 만족한다, 나 혼자면 됐다고 자기 만족에 빠진 사 람, 즉 남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사 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self-sufficient). 또한 모든 것을 자 기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교 만한 사람입니다.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가족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라도 생각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self-centeredness). 마지 막으로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교만한 사람입니다. 돈벌이 하는 것도 내가 제일이고, 정치하는 것도 내가 제일이다, 자기만이 최고 라고 하는 사람도 교만한 사람입니 다(self-priority). 영국의 유명한 신학자, 테일러 (Jeremy Taylor ; 1613∼1667)는 사 람이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해서,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해서 하 나님과 부모와 이웃에게 빚진 자다, 도움을 받고 태어나서 도움을 받고 살면서 지나간 과거에 도움을 받았 던 것을 생각한다면 사람은 결코, 결코 교만해질 수가 없다, 우리는 한평생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 님의 도움을 받았으며, 부모의 도움 을 받았고, 이웃에게, 선생님에게, 많은 사람에게 도움 받은 존재로서 어떻게 스스로 자기 자신만 내세우 고 교만하게 살겠느냐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독교의 중심인 예 수님을 통해서도 겸손을 알 수 있습 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예수께 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 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누가 평안 속에, 행복 속에, 만족 속에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온유 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 니다. 종종 보면 사납게 사는 사람 이 있습니다. 교만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 겸손의 왕, 예수 오늘 봉독한 성경 말씀은 고난 주간에 일어난 사건, 즉 A.D. 30년 경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기 위 해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신 사 건입니다. 예수께서는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일요일에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 습니다. 감람산 동편의 벳바게라는 지역에서 예루살렘 성까지는 약 3km였는데,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 가셨다고 했습니다. 이때 많은 군중 이 예수님 가시는 길 앞에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면서 말했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 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 산나!\\\" 하고 환영을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을 앞두 고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300만 명 의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예루 살렘은 그 군중들로 바글바글 거렸 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 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 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코 나귀를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께 서 나귀를 타지 않고, 아주 크고 건 장한 말을 타고 들어갔다면 사람들 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무슨 폭 도의 두목인 줄 알고 로마 병정이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번쩍 번쩍 거리는 마차, 병거를 타고 들 어갔으면 군대를 일으키려는 것으로 착각을 했을 것입니다. 로마 병정하 고 싸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러 나 예수께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 따그닥, 따그닥\\\" 하고 들어가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 관심 을 갖지 않았습니다. 로마 병정도 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 하나님께서 예 수님을 통해서 이루신 이 사건은, 상상을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그 겸손을 통해서, 십자가의 죽음과 고 난, 더 나아가서 부활의 승리를 통 해서 이룩하시고 완성시키신 온 인 류를 구원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9장 9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 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 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 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 라.\\\" 나귀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평 화’를 상징합니다. ‘겸손’을 상 징합니다. \\\'고난과 수난\\\'을 상징하는 짐승, 짐을 나르는 이 짐승을 타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습 니다. 그래서 예수는 평화의 왕이요, 겸손과 온유의 왕이요, 고난의 왕을 상징합니다. 이것이 예수의 삶이며, 그의 사명입니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 인들의 모함으로 로마 총독 빌라도 에게 사형,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지 만, 겸손히 그 고난을 감당하셨습니 다.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 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3일 만에 부활하게 하시고 영원한 승리 를 선포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사건을 \\\'고난을 극복한 겸손의 축복\\\'이라는 제목으 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이루셨던 이 겸손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섬김’ 이 있었고, 둘째는 ‘복종’이 있었 고, 셋째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B. 예수님의 겸손은? 1. 섬김 -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셨다 :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 섬기는 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된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 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 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 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 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代贖物)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6∼28). 마태복음 20장 26∼28절 말씀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 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예 수님의 열두 제자였던 야고보와 요 한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부탁을 했 습니다. 자기 아들들을 주의 나라에 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최고의 대신으로 삼아주시고 아주 크게 출세시켜 달라는 부탁이었습니 다. 이때 예수께서 답변하신 말씀이 바로 위에서 봉독한 말씀입니다. 세 상적인 명예, 지위와는 다른 하늘 나라의 영적인 비밀과 진리를 가르 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됐을 때 나중에 섬김을 받게 되고, 종의 사명을 감당했을 때 나 중에 주인의 영광과 축복을 받게 되 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기까지 섬김으로, 자기 목숨을 주었기 때문에 그 목숨 을 통해서 영광과 칭찬과 존귀를 받 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21∼22절에 는 \\\"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 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 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라 고 했습니다. 가장 낮고 천하게, 겸 손하게 자기 목숨을 주신 예수께서, 가장 높고 영광스럽게, 다시 하나님 의 특권을 가지고 주인으로서, 왕으 로서 임하시게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 사랑 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라고 했습 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 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만약 여 러분이 남편을 사랑한다면 남편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한 다면 이웃의 종이 되고, 나라를 사 랑한다면 나라의 종이 되어야 합니 다. 종이 되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가질 때 진정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 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대접만 받으 려고 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 생일날 뭐 사줄래\\\', 사랑한다고 하 면서 \\\'뭘 해줄래?\\\' 하고 자꾸 받겠 다고 하면, 그 사람은 사랑의 의미 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 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받기 전에 먼저 주겠다는 결심을 할 때, 사랑 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 니다. 앙케트를 실시한 결과, 이번 16대 총선 출마자가 가장 많이 한 거짓말 은 \\\"국민들을 위해서 이 한 몸 바치 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선거 때마 다 국민들을 위해서 온 몸을 바치겠 다고 말은 잘 하지만 실상 그런 사 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도 보면 당 선된 사람과 안된 사람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대개 낙선한 사람들은 오 만, 방자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 람들은 다 떨어졌습니다. 정치권에 서도 정말 겸손하게 섬기겠다는 자 세를 가지고 나온 사람은 국민들한 테 지지를 받고 당선됐지만, 오만, 방자한 사람은 거의 다 떨어졌습니 다. 갈수록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생 각하는 차원이 점점 높아져서 이제 는 진정으로 섬길 줄 아는 사람에게 표를 던집니다. 여러분,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서 섬기겠다는 사람이 많아져야 되고, 회사가 잘 되려면 회사를 섬기겠다는 사람이 많아져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 회가 부흥하고 발전하려면 교회를 위해서 섬기겠다는 사람이 많아야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어느 성도가 돈을 많이 들여서 식 당을 차렸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2 배로 돈을 들여서 근사한 식당을 차 렸습니다. 인테리어, 실내 디자인도 잘 하고, 요리 강습도 많이 받고 해 서 음식점을 열었는데 손님들이 별 로 없었습니다. 왔다가는 안 오고, 왔다가는 안 오고 텅텅 비었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식당을 차렸는데 사람이 없으니까 큰일났습니다. 울 상이 돼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 니다. 그래서 그 교인이 목사님께 상담 을 했습니다. \\\"목사님, 큰일났습니 다. 절 좀 도와주십시오. 요리 강습 도 많이 받았고, 자격증도 따고, 돈 을 많이 들여서 시설도 잘 해서 식 당을 차렸는데 손님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목사님은 그 얘기를 가만히 듣더 니 \\\"성경을 읽으세요. 성경 말씀을 읽으세요. 성경 말씀 속에 축복이 있습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음식을 연구하라는 얘기는 안하고 성경만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인이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하다가 성경을 통 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식당을 차린 것은 돈벌이를 위해서 가 아니라, 식당에 찾아온 사람들에 게 봉사하기 위해서,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 친절을 베풀기 위해서, 섬기 기 위해서 차린 것이라는 마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한 사람, 한 사람 올 때마다 마치 가족처럼, 친 척처럼, 자기가 잘 아는 사람처럼, 친지처럼 정성스럽게 대접했습니다. 그렇게 부모처럼, 아들처럼, 딸처럼, 가족처럼 대해주고 음식을 잘 대접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식당이 사람 들로 메어 터지기 시작하는데, 한번 왔던 사람들이 오고, 또 오고, 사람 들을 데려오고, 선전하고 해서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식사시 간만 되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사람이 붐비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축복의 비결이 어디에 있 는 지 아십니까? 바로 성경에 있습 니다. 성경을 읽으세요. 사업의 성공 을 위해서,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번창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어디 있습니까? TV 뉴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연속 드라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신문에 있는 것 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 으면, 여러분의 사업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인생도 행복할 수 있습니 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존경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섬 김의 자세를 깨달으면 하나님은 그 섬김을 통해서 크게 번창케 하여 주 시는 것입니다. 강원도 영월 지방에 한 교회가 있 었습니다. 하루는 그 교회에 어떤 청년이 나왔는데 그 청년은 소경이 었습니다. 그 청년은 비록 눈은 멀 었지만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다 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 님의 사랑과 믿음을 갖고 목사님께 \\\"제가 교회를 위해서 뭘 하면 좋겠 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 은 이 소경 청년이 뭘 하면 좋을 지 생각하다가 \\\"자네, 시간 나면 교회 와서 청소나 하게.\\\" 하고 말했습니 다. \\\"어떻게 청소를 합니까? 보이는 게 없는데.\\\" \\\"그럼, 걸레질이나 하게.\\\" \\\"알겠습니다.\\\" 그래서 이 소경 청년은 더듬더듬 하면서 마룻바닥을 걸레로 씻고 닦 고, 씻고 닦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석 달, 다섯 달, 육 개월 째가 되니까 그만 이 청년의 눈이 번쩍 뜨여서 보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소경 청년이 육 개월간 교회에서 청소하다가 보게 됐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막 찾아오는데 그 중에는 앉은뱅이 처녀도 있었습 니다. 이 앉은뱅이 처녀도 목사님한테 와서 \\\"목사님, 제가 뭘 하면 좋겠습 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목사님은 이 앉은뱅이 처녀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청소나 하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앉은뱅이 처녀 가 앉은 채로 돌아다니면서 닦고 쓸 고 하다가 육 개월만에 다리가 훌떡 펴졌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육 개월만에 눈뜬 청년하 고 육 개월만에 일어난 앉은뱅이 처 녀, 그 둘이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 다. 교회에서 축복 받았습니다. 병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결혼도 하 고 축복도 받고 행복도 얻었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뭘 할 것인가 일감 을 찾아야 합니다. 요즘 현대 교인 들은 교회 나와서도 축복을 받지 못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배만 보 고 쌩 하고 가고, 왔다가는 쌩쌩 가 니까 봉사하는 것이 없습니다. 섬기 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에 와서 섬 기고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심어야 거두는데 하는 게 없으니까, 왔다 갔다 하면서 \\\'정말 내가 크리스천 맞아? 정말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 람이야?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셔?\\\' 하고 반신반의하니까 신앙이 깊어지 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몸으 로, 마음으로, 물질로 정성 바쳐서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섬기는 자를 통해서 더 넘치게, 크게, 풍족 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초신자 때는 아무 것도 몰라서 예 배만 보고 살짝 가고, 왔다 갔다 합 니다. 그러나 일단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 혜도 많고 축복도 많고 사랑도 많으 니 내가 뭔가 하나님을 위해 하겠습 니다.\\\' 하고 섬기겠다는 마음의 자 세를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은혜 받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시고, 기적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복종 -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 죽음에서 부활의 승리를 얻으셨다/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本 體)시나 하나님과 동등(同等)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 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形體) 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 의 모양(模樣)으로 나타나셨으매 자 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服從) 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복종\\\'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 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 수께서는 복종도 어느 정도로 복종 하셨습니까? 한두 번 하는 척하고 그만 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복종 했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었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 복종은 죽을 각오를 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 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죽으 셨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 2장 9∼11절보면 그렇게 죽기를 결심하고 복종하니까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 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 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 다고 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 중에서 가장 큰 사 건은 부활 사건입니다. 그런데 부활 도 먼저 죽어야 부활합니다. 산 사 람이 무슨 부활을 하겠습니까? 예수 께서 먼저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부활의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을 통해서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를 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는 뭡 니까?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가 뭡니 까, 기독교와 유교의 차이가 뭡니까, 기독교와 무속종교의 차이가 뭡니 까? 다른 종교에는 부활이 없습니 다. 그 종교들에는 교주의 부활이 없는데 기독교만이 부활 사건이 있 습니다. 석가도 죽고, 공자도 죽고, 맹자도 죽고, 다 죽었지만 부활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부활한 사 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했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타종교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 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모든 종교 중에 우월한 종교이기 때 문에 종교 중의 종교는 바로 기독교 입니다. 이사야 1장 19절에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所産) 을 먹을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즐 겨서 순종하면, 기쁨으로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순종을 해도 억지로, 마지못해서, 원망 불평하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쁘게, 감 사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 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 열매와 축복을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5 절에서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 를 주시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겸손할 때 은혜를 주십니다. \\\'나는 교회 나와서 은혜 못 받았 어요. 기도해서 응답 받지 못했습니 다. 하나님 앞에 축복 받지 못했습 니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모 르게 그 마음속에 교만이 꽉 들어차 서 그렇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은혜 를 못 받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교만 이 꽉 들어차서 그렇습니다. 자기 잘났다고 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은혜를 받 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은혜 받고, 기도할 때 은혜 받고, 말씀을 들으 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겸손한 자에 게 은혜를 더하신다고 했습니다. 15세기 독일의 신비 사상가, 토마 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 1379∼1471)는 \\\"참고 순종하며 십자 가를 져라. 그리하면 마지막에는 그 십자가가 너를 져 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참 고 순종하며 십자가를 지면 나중에, 후에 그 십자가가 여러분을 져줄 것 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 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내가 당했던 그 고통이 나의 축복이 되 고, 내가 당했던 그 어려움이 나의 영광이 됩니다. 여러분, 요셉은 종살이로 팔려갔 던 애굽에서 총리로 축복을 받았습 니다. 고생하면서 잡혀갔던 그 애굽 에서 총리가 되고, 그것 때문에 승 리하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입장에 있다 할지라 도 부정적인 생각 하지 말고,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는 더욱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크 고 풍성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하는 것을 배 워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다 읽으시기 바랍니 다. 창세기, 말라기, 마태복음, 요한 계시록, 구약과 신약을 다 읽으면, 우리는 성경 말씀 속에 하나의 일관 된 명령이 있음을 배웁니다. 그것은 \\\'하라\\\'와 \\\'하지 말라,\\\' 이 두 가지입 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은 하 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 다.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일 지라도 성경 말씀대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으 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얼마든 지 축복 받고 영광을 돌릴 수가 있 습니다. 여러분, 순종은 성경 말씀에 기록 되어 있는 명령일 뿐만 아니라, 우 리 인간 생활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 순 종하기 싫어하는 사람, 아무리 교만 하고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드 시 순종해야 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 다. 바로 교통신호입니다. 빨간 불이 탁 켜지면 멈춰야 하 고, 파란 불이면 가야합니다. 그런데 만약 빨간 불이나 파란 불이나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가고 싶으면 가 고, 있고 싶으면 있고, 내 멋대로 하 겠다고 빨간 불에 간다면 3초 먼저 가려다가 30년 먼저 가게 됩니다. 여러분, 신호는 지켜야 합니다. 공중 도덕도 지켜야 하고, 하나님 말씀도 지켜야 합니다. 순종하고 지켜야지 순종할 줄 모르면 불행한 사람이 되 고 맙니다. 요나는 도피형의 인물입니다. 하 나님께서는 \\\'하라\\\' 고 하셨는데, \\\'내 가 왜 니느웨 성에 갑니까?\\\' 하고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풍랑 만나서 죽기까지 고통 당하고, 혼이 나자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했습니 다. 요나처럼 도피형의 사람들이 있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서 자꾸 도망을 갑니다. 드리라면 안 드리고, 하라면 안 합니다. 십일조 드리라고 해도 안 드리고, 새벽 기도 하라고 해도 안하고, 금식 기도 하라고 해 도 안하고 자꾸 도망만 갑니다. 도 망가는 사람은 마지막에 풍랑을 만 납니다. 그런 사람은 요나같이 도피 형의 사람입니다. ‘요나’를 거꾸 로 하면 ‘나요’가 되는데 요나같 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도피형의 반대는 뭡니 까? 도전형입니다. 그 대표자가 에 스더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고 목숨 걸고 기도하고 금식해서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여러분은 도피형입니까, 도전형입 니까? 도피형은 언젠가 혼납니다. 그러나 세상이 다 없어지고 죽을 지 경에 빠질 지라지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도전형의 사람에게는 하나 님께서 민족을 구원하는 놀라운 역 사를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부유하고 훌륭한 가 정에 태어난 십대 여자아이가, 잘못 해서 그만 홍역에 걸렸습니다. 병원 에 가니까 의사가 진찰을 하고 이 아이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너는 지금 홍역에 걸렸다. 그러니 절대로 찬바람을 서는 안 된다. 밖에 나가 면 안되니 될 수 있으면 움직이지 말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라. 꼭 지켜야 된다.\\\" 이렇게 주의를 주 고, 또 주의를 주었습니다. 홍역은 겉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 문에 그 아이의 부모도 딸을 붙들고 얘기했습니다. \\\"얘야, 절대로 너는 여기 이 자리에서 떠나지 말아라. 이 방에서 떠나지 말고 침대에서 떠 나지 마라. 여기 있어라. 우리가 돌 아올 때까지 꼭 있어야 돼.\\\" 하고 명령을 내리고 부모가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평소에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듣는 얘였습니다. 순 종하고 복종하는 훈련을 못 받은 아 이였습니다. 제멋대로 하는 아이였 습니다. 부모가 나가자마자 이 아이 는 난방도 안 되는 2층 다락에 잠옷 차림으로 올라가서 장난감도 만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습니다. 부모님 말씀도, 명령도 잊어버리 고, 의사의 주의도 잊어버리고 이것 저것 다 하다가 몸에 열이 펄펄 나 서 그만 급성 폐렴에 걸려 죽고 말 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주의도 무 시하고, 부모님의 명령도 믿지 않고 이 여자아이는 그만 안타깝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아과 의사 들이 하는 말입니다. 소아과 전문의 들은 \\\"심한 병에 걸렸을 때 평소에 복종하는 것을 배운 아이들은 의사 의 말이나 부모님 말씀을 잘 지키기 때문에 다 병에서 나을 수 있다. 그 러나 평소에 훈련이 안 된 아이들, 복종의 훈련이 안 된 아이들은 생존 율이 별로 없다.\\\" 라고 말합니다. 그 래서 죽을 확률이 4배나 된다고 합 니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래야 병원에 가서도 의사의 주의를 듣고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서도 선생님 말씀을 잘 듣습니다. 숙제 잘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는 얘들이 공부 를 잘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말씀 안 듣는 얘들 은 부모님 말씀도 안 듣고, 회사 나 가면 직장 상사 말도 안 듣습니다. 또한 교회 나와서 하나님 말씀도 안 듣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제 불능 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에 가 는 장소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감옥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어 려서부터 순종하는 것을 가르쳐 줘 야 합니다. 복종 법을 가르쳐 줘야 행복하게 되고, 성공하게 되고, 승리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나와서도 마찬가집 니다. 얼마큼 오래 다녔느냐, 직분이 뭐냐, 집사냐, 권사냐, 장로냐가 중 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보다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자세 가 되어 있느냐, 하나님 말씀에 얼 마큼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올 한해 하나님 말씀을 들 은 대로 순종하여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인내 - 십자가를 참으셨다 :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 연 단 후에 축복을 받는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穩全)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 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介意) 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寶座)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았습니다. 끝까지 참았습니다. 죽기까지 참았 습니다.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고 끝 까지 참았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여 승리하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 으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인내입니까? 인내 란 시련에 과감히 맞서서 정복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싸우는 것이 인내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 라,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 인내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는 \\\"무릇 징 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 달(鍊達)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라고 했습니다. 때 로 연단 받을 때가 있습니다. 훈련 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고난과 고통을 당할 때가 있고, 깊은 골짜 기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그때도 우 리는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마음 을 가져야만 합니다. 전도서 7장 8절 말씀에도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라 고 했습니다. 대개 교만한 사람들은 포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겸손하면 참을 수가 있습니다. 끝까지 참고, 때가 될 때까지 참아야 합니다. 나 무에서 열매가 익을 때까지, 목적을 달성하고 성취할 때까지, 기도하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인내를 해야 합 니다. 로마서 5장 3∼4절 말씀에도 \\\"우 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 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忍耐)는 연 단(鍊鍛)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어려 운 일 당할 때는 꾹 참는 것이 최고 입니다. 어렵다고 팔팔 뛰고 이럴 수가 있냐, 저럴 수가 있냐고 야단 하면 일이 더 복잡해집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도 \\\"인내를 온 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 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또 12절 에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 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참고 견뎌서 그 시험을 극 복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기도하고 응답 받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편 40편 1절에 \\\"내가 여 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 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 도하기로 작정했으면 작정한 그 기 간 동안에 인내하면서 기도해야 합 니다. 21일 작정기도, 40일 작정 기 도, 100일 작정 기도, 365일 작정 기 도, 새벽 기도, 철야 기도, 금식 기 도. 일단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 도하기로 작정했으면 끝가지 참고 인내하면서 마지막까지 해야 하나님 께서 때가 되면 응답하여 주시는 것 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 (Jean-Jacques Rousseau ; 1712∼ 1778)는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고 했습니다. 쓰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달게 됩니다. 미국 의 시인, 롱펠로(Henry W. Longfellow ; 1807∼1882)는 \\\"참고 기다려라. 이 힘든 고난은 땅에서 솟아오른 저주가 아니라, 어둡게 변 장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축 복이다.\\\" 라고 했습니다. 축복 받은 사람, 성공한 사람, 승 리한 사람치고 고난과 고통없이 승 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들도 얼마나 열심히 운동하고 일해서 얻 은 것이지 모릅니다. 남보다 더 땀 을 흘리고, 더 수고하고, 더 애써서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금메달은 아 무에게나, 하루아침에 주어지는 것 이 아닙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 한 사람에게 영광으로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 대로 조급히 여기거나, 화를 내거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봄이 되면 밭에 싹이 나 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식물학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땅에서 새순이 올라올 때, 싹이 땅을 뚫고 올라올 때 3만여개의 상처를 입고 올라온다 고 합니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 딪치고, 부딪치고, 부딪치고 해서 3 만 번의 부딪침이 있은 다음에 싹이 밖으로 나옵니다. 새싹, 자연도 부딪 치고, 부딪치는 연단과 시련, 고통을 통해서 나오는 것을 보면 무엇하나 쉽고 빨리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뿐만 아 니라, 우리 인간의 생활도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신앙 생활도 결코 쉽 지가 않습니다. 사업의 성공도 쉽지 않습니다. 또한 지도자가 되는 것도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어디 가서 뭘 하든지 쉬운 일은 결코 없습니 다. 하나님께서 다 연단과 시련을 통해서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그래 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인 내, 인내입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사 장, 윤경하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그 는 30년 전 교보 빌딩을 설립할 때 그 빌딩 설립에 참여했던 창업 멤버 입니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많은 사람이 퇴출되자 창립자가 윤경하 장로를 불러서 “이제는 좀 쉬시 오.”하고 말했습니다. 30년 동안 몸담고 일했던 회사에 서 명퇴를 당하니까 기가 막혔습니 다. \\\'세상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그래도 나는 창립 멤버인데…. 30년 동안 뼈빠지게 일했는데 나보고 직 장을 떠나라니…. 어떻게 하면 좋을 까?\\\' 그는 이 어려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자기 어머 니가 떠올랐습니다. 늘 새벽 기도를 하시던 어머니 권사님이 탁 떠올랐 습니다. \\\'어머니, 저는 어떻게 하면 좋아 요?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 까?\\\' 그는 어머니가 새벽에 기도하시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자기도 \\\'기도해 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나님,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새벽 기도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마음이 평 안하고 기쁜지 몰랐습니다. 그 동안 \\\'바쁘다. 바빠.\\\' 하면서 성경을 못 읽었는데, 마침 직장에서 퇴출당하 고 시간도 남고 해서 성경을 읽고 쓰니까 그 즐거움이 마음속에 가득 넘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 사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직장 그만두고 성경을 많이 읽게 하시니 감사드립 니다. 30년 동안 열심히 일만하고 쉬지 못했더니 하나님께서 저에게 포상휴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휴 가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나니 자기 를 명퇴 시킨 주인, 창립자도 밉지 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 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명퇴 당한 것 감사합니다. 휴가 받은 것 감사 합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감사해서 퇴직금 에서 감사 헌금도 드렸습니다. 여러 분, 명퇴 당한 사람이 감사 헌금 드 렸다는 이야기 들어 봤습니까? 너무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 감사합니 다.\\\' 하고 감사 헌금을 드렸더니 더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따르릉\\\"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에서 \\\'다시 좀 만나 자.\\\' 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만 나보니까 이제는 더 좋은 직장, 더 큰 직장, 더 높은 자리, 교보문고 사 장을 좀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죠. 하나님, 나에게 승리를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가 자기 어머니의 새벽 기도, 어머니의 신앙을 깨닫고 ‘하나님,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에게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전화위복 될 것을 믿습니다.’하고 기도했던 것이 응 답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보문고 사장으로 들어가서 책을 팔았습니다. 그가 들 어가기 전에는 매출이 주말 평균 3 억이었는데, 이 윤경하 장로가 들어 가서 기도하면서 열심히 일하니까 매상이 주말 평균 5억, 두 배 이상 이 올라서 그는 인정받고 존경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수도 올라갔 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 이제 나는 내 삶을 하나님 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고 고백 하게 되었습니다. C.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 고난을 극 복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 생도 달라집니다. 고난을 당할 때 원망하는 사람, 불평하는 사람, 포기 하는 사람, 좌절하는 사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도 많지만, 고난을 당할 때 겸손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 고 자기의 뒤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 에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과 은 총을 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십자가 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 도가 있었기에 죽음에서 부활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여러분의 삶 속에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느 치과 의사가 간암에 걸렸습 니다. 보통 의사들은 자기가 병에 걸리게 되면 황당해 합니다. 만날 남의 병만 고치다가 자기가 병에 걸 렸습니다. 종합 병원에서 진찰을 받 은 결과, 처음에는 100% 확언할 수 는 없지만 악성 종양 같다고 했습니 다. 간에 생긴 악성 종양 같은데 더 검사를 해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간암이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는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 다. \\\'설마, 오진이겠지.\\\' 하면서 이 병원, 저 병원다 다니면서 검사를 해도 다 간암이었습니다. 마지막으 로 성모 병원에 가서 또 검사를 했 는데 역시 간암이었습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으로도 암은 암 세포를 다 들어내고 수술한다 하더 라도 재발의 가능성이 높고, 더군다 나 간암의 경우에는 다른 부위로 전 이가 많이 돼서 수술을 한다 하더라 고 갑자기 암이 퍼져서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죽 음이 눈앞에 자꾸 어른어른 거립니 다. 자기 몸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얼굴은 점점 시꺼멓고 거무튀튀하게 변해 가고, 힘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는 의사가 아니라, 죽음을 앞에 두고 몸부림치는 하나의 나약 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최종 검사로 그는 병원에서 엔지 오 그래프라는 시술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미세한 혈관에 침투하여 컴 퓨터 촬영을 하는 의료용구로 하는 시술인데, 다른 수술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리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수술입니다. 검사 후 의사는 수술 팀을 구성할 테니 암 조직을 싹 도 려내고 마지막 수술을 하자는 제안 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아니다. 아 니다. 내 병은 수술을 해서 고칠 병 이 아니다. 나는 수술한다고 나을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 낫지, 그렇게 고통스 럽게 고생해서 수술해도 나을 확률 도 없는 그 수술을 내가 왜 받나? 죽어도 편안하게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하 나님 앞에 \\\'하나님, 나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병원에서 나와서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목욕탕에 갔습니다. 사람 도 없는 목욕탕에서 혼자 목욕을 하 고 있다가 웬 사람이 떡 들어오는데 보니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교회 장로님이었습니다. 목욕탕에 둘이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하소 연을 했습니다. \\\"글쎄, 내가 이제 얼 마 있지 않아서 간암으로 죽는데 요.\\\" 그런데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장로님이 \\\"글쎄, 희망이 있 긴 있는데….\\\" 하고 말했습니다. \\\"무슨 희망입니까?\\\" \\\"강원도 깊은 곳, 영월에 기도원 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병자를 많이 고친다는 소문을 들었어.\\\" \\\"그래요? 어디입니까? 거기 좀 알 려주세요.\\\" 그 소문을 듣고 강원도에 가니까 간암 말기 같은 난치병 환자들만 바 글바글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거 기 있다가는 병이 낫는 것이 아니 라, 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 도 그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려고 했 습니다. \\\'나도 죽어 가는 마당에 왜 병자 들을 무시하고 깔보나? 내 주제에 누굴 깔보나 ?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거기서 교만한 마음을 회개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원에서는 원장이 식이요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식 단을 짜주고, 식이요법을 시키고, 매 일 아침마다 안수하며 기도를 해 주 었는데 거기에 간지 한달 만에 몸이 점점 회복되고 얼굴 색도 좋아졌습 니다. 몸이 자유로웠습니다. 몇 달 동안 그곳에 있다가 나와서 다시 검사를 하니까 암 세포가 사라 졌습니다. 건강을 되찾게 된 것입니 다. 너무너무 감사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새 삶을 주셨습니다. 이제부 터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을 사랑하는, 사랑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기적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치료하시고, 건강을 회복시키시고, 기적을 허락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고난과 어려움, 역경 에 처했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포 기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 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 움을 바라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 하는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요9:1-11/청년부수요예배설교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 요9:1-11 1) “하나님은 정말 계시는 것일까?” 이민온지 16년째되는 어느 부인의 부르짖음입니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딸을 데리고 South Central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그들은 16년의 고생 끝에 집도 장만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끼리 팜스프링이나 산페드로 해변에서 함께 휴가를 보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밤 권총강도에게 남편이 살해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도 않는 곳에서 막노동과 청소일로 연명하다가 겨우 살만해졌는데 갑자기 남편과 아빠를 잃었습니다. 세식구가 하늘이 꺼지고 땅이 무너졌습니다. “우리 아빠가 남들보다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남들은 저렇게 웃으며 잘 사는데 우리들은 왜? 왜 우리 집안에서 웃음이 사라져야 하나요? 2) “나는 절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내 아내가 불쌍했습니다. 내 아내에게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한 남자의 처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전혀 미국에 가서 살 마음이 없었던 아내는 남편과 혼인한 후 남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이민 봇짐을 쌌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공부도 제대로 못하면서 유학을 입버릇처럼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이른봄에 물건을 차에 싣고 5번 Free Way를 달리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트럭과 충돌하여 며칠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에 온지 4년만에 시장에서 작은 옷가게를 하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구요?” “나는 그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내 아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데려가셨습니까?” 그가 내뱉는 울부짖음입니다. “왜 내가 미국엘 왔나?” “왜 내가 가게를 바꾸지 않았나?” “왜 내가 그날 물건을 운반하지 아니했는가?” 남편의 후회는 끝이 없습니다. 한순간의 상황판단이 아내를 저승으로 보내고 말았다는 자책감이 날마다 그를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3) 이들의 울부짖음이 내 귀에 들려옵니다. 이 울부짖음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을까요? “정말 하나님은 계시는가?” 저들의 물음은 한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도 아니며 궤변으로 결론을 맺으려는 무신론자들의 물음도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아픔과 슬픔을 견딜수 없어서 부르짖는, 피를 토하는 부르짖음입니다. ①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결단코 인간이 고통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시련과 고통과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욥기의 서두에 있는 것처럼 그것은 사탄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의지 때문에 이 세상을 당신의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다스리시거나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가끔 후회하시고 탄식도 하시며 그의 뜻을 바꾸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셨다면 벌써 이 세상은 끝장이 났을 것입니다. ③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인간이 고통당하게 하시는가? 뚜렷한 결론을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의 이야기가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데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면서 소경된 자를 보고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하면서 원인규명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고 하시면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치료해 주시는 방책을 강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가? “Why me?” 왜? 왜? 하면서 괴로워만 해 보았자 내 인생만 자꾸 침목될 뿐입니다. 하나님께로 가져 오십시오. 하나님은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지 않으시고 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교회의 청년상/마4:18-22
교회의 청년상 마4:18-22 오늘은 청년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우리 새문안 청년들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지금 열심히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독 청년들의 뜨거운 사랑과 복음 증거에의 열정을 확인한 것은 1999년 9월부터 약 1년간 미국 몬타나에 있는 예수전도단 베이스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였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20대 중반이었습니다. 제가 43세였으니까 근 20년 차이가 났습니다. 평신도인 그들은 성경 66권 공부를 마치고 고향 교회에 돌아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거나 혹은 세계 곳곳에서 성경을 가르쳐 주기를 희망하는 나라에 자비로 가서 한 달 혹은 두 달씩 성경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유소 등지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학비를 만들어서 공부하고, 역시 자신이 번 돈을 가지고 아프리카나 동남아 중국 등지에 가서 성경 배우기를 원하는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존경하는 마음도 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겪은 일입니다. 약 4개월 가량 공부를 마치고 겨울 방학이 되었는데 방학 중 기숙사에 남아 있는 것이 비용면이나 생활편의 면에서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을 안 뒤 한국에 잠시 다녀올 수 없을까 생각하면서 비용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지고 있던 500불에 500불이 더 있어야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저렇게 궁리만 하고 있던 중 쉬는 시간에 한 친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내심 최악의 경우 기숙사에 남아 밥을 해먹거나 라면 등을 끓여 먹으면서 지내기로 결심을 하고 그 일은 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제 기숙사 방에 돌아와 보니 제 책상 위에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 모두는 용수를 사랑한다는 쪽지와 함께 600불이 들어있었습니다. 일불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그들이 고작 20여명의 청년들이 그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저는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 젊은이들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그들 가슴 속에 있는 예수로 말미암는 그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 그리고 부르심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절과 22절은 제자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는데 두 구절을 자세히 보시면 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이라는 단어 그리고 ‘버리고’ ‘따르니라’ 라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단어는 청년의 과단성, 즉 결심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이러한 성향때문에 종종 나이 드신 분들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소위 기성세대의 여유와 침착, 모든 것을 따져 보고 살피고 이모저모 점검하고 계획하는 준비성이 결여된 듯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너무 조급한 게 아닌가 저러다 일을 그르치면 어쩌나 염려를 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르실 때에 곧 즉시 예수를 따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생각해 보고 따져보고 계산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고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 결심은 희미해졌을 것이고, 점차 현실에 안주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청년의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데 청년종교입니까? 청년 예수, 33년간 세상에 계셨던 예수,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에 공생애를 마감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래서 영원한 청년으로 이 순간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를 믿고 따르기에 기독교는 청년의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몸 된 교회 역시 언제나 청년성을 지니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기를 계절에 비유한다면 늦봄이나 초여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식물이 꽃피고 열매 맺기 위해 열심히 영양을 섭취하고 섭취한 영양을 각 줄기와 가지에 올려 보내듯이 청년의 시기는 인생의 원숙한 열매를 맺기 위해 왕성하게 움직이는 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왕성한 시기를 사는 수 많은 청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고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던 중 30세에 당시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 허덕이는 애굽과 주변국 백성들을 구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네 청년은 생명을 걸고 왕이 명령한 우상 숭배와 제물을 거절하는 등 믿음의 절개를 지킨 결과 이방인인 바벨론의 왕마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숭배하도록 명령하게 만드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청년 세례 요한은 동생의 부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 살고 있던 헤롯에게 ‘회개하라’ 외침으로써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루터는 33세때, 부패한 카톨릭을 향해 95개조의 항의문을 들고 종교 개혁을 향한 일보를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깔뱅은 기독교계에 전무후무한 대 저서인 기독교강요를 27세에 집필하였습니다. 스펄전은 27세때 런던에서 대 부흥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빌리그레함이 세계적인 대 부흥사로 활약하기 시작한 때는 그의 나이 25세 때였습니다. 리빙스톤은 23세 때에 아프리카에 들어가 30년간을 한결같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생명을 건지는 일에 진력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새문안교회의 시작 역시 한 기독청년의 선교 열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새문안교회 창설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 Horace Grant underwood ) 가 1885. 4. 5 미국 북장로회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6세였습니다. 그는 도착후 2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뒤, 그의 나이 28세 되던 해인 1887. 9. 27 14명의 교인과 함께 정동 한옥에서 새문안교회를 창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보를 통해 여러분께서 보시듯이 5부예배시 새문안 청년리더 양성과정의 수료식을 갖게 됩니다. 3월초에 시작해서 오늘까지 약 3개월 동안 학교 공부와 직장일 등으로 바쁜 중에도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모여 장차 새문안 청년 공동체의 리더로서 필요한 소양교육을 이수하고 오늘 영예스럽게 수료하게 된 것입니다. 혹시 만나시면 축하의 말씀 한 마디라도 건네주시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을 수료하기 위한 몇 가지 수료 조건이 있습니다. 출석도 철저히 해야하고, 책을 읽고 독후감도 써야하고 하는데 그중 훈련 기간 중 5명에게 전도를 해야하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보통 전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터라 과연 그들이 잘 할 수 있을지 내심 염려가 되었는데 한 청년이 노방 전도를 마치고 환한 표정으로 간증하는 모습을 보며 괜한 염려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여학생인데 길에서 노숙하시는 남자분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사실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 청년은 그분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부듯한 마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간증하는 그 얼굴에 핀 생명의 꽃, 그 환한 천국의 미소를 보면서 저는 예수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청년 사역자로서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 언더우드의 선교정신이 청년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면면히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도서는 세상의 온갖 명예와 권세, 부귀영화를 다 누려 보았다고 할 수 있는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남긴 유언과 같은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전도서의 결론 부분인 마지막 12장을 청년들에게 할애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자신의 유언과도 같은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필 청년들을 지목해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마도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볼 때 특히 청년 시절 자신의 삶 가운데 유달리 아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후대의 청년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그러한 글을 남기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12장 1절 말씀을 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오늘, 지금 청년의 시절을 사는 바로 이 때, 하나님을 기억하라. 여호와를 앙망하라. 예수를 믿고 그분의 구원 역사를 생각하며 그분의 높고 깊은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그분의 가신 그 길로 걸어가라.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살아라. 그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공부도 때가 있습니다. 지금 힘과 체력, 갈고 닦은 지식이 있는 바로 지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아껴 써야 합니다. 허튼 데 돈과 시간과 지식과 정력을 낭비해서는 곤란합니다.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나만의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인기는 반짝하지만 진실은 영원합니다. 돈버는 건 한 때지만 신용은 평생 갑니다. 이것저것 다해보고 나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바른 일, 선한 일만 하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적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영원의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야 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 가운데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리라.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계를 보라는 것입니다. (잠 29:18) 에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말씀합니다. 묵시 라는 말의 어원의 뜻은 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비전이 없으면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것 없이 제멋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전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읽고 보는 통찰력 내지는 상상력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바로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며 영원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저 먼 날을 내다보는 사람은 절대로 현재의 안일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미래를 향해서 하루 하루 자기 자신을 가꾸어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전이 없는 사람은 방자해 지고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합니까? 나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 내 가슴에 심겨진 그 진리를 붙들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며 열심히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요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생명 구원입니다. 죄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는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며 지금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먼저 믿은 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가 주기를 우리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단 12:3)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성공적인 인생의 기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목표요 이유입니다. 돈을 벌어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컴퓨터를 익혀서 그림을 그려서 비행기를 만들어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쓰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소망가운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결코 헛된 인생이 아닙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살다가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의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모두 나누어 준 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성인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 무엇인가 소유하고 그래서 힘을 행사하고 다른 사람을 부리고 쾌락을 누리는 삶을 살아 보았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나를 희생하고 이웃의 발을 씻기고 섬길 때 나의 삶에 숭고한 기쁨이 밀어 닥치는 느낌이었다.” 청년의 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 진리를 보며 결단하는 시기입니다.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작고한 소설가 황순원 씨가 생전에 찾아간 제자들에게 남긴 말입니다. 대패질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섣불리 자신의 능력, 지식을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이며, 실력을 갈고 닦아 후일 제대로 된 인생의 역작을 남기기를 바라는 원로의 진심어린 유언이라 여겨집니다. 이 말은 특히 뭔가 빨리 성취하고자 의욕에 불타는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빌 4;13)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신감을 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 바로 앞에 있는 12절 말씀이 13절의 고백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12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백으로 넘칩니다. 그러나 청년이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그렇게 되기까지의 필요한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할 수 있기까지 배워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청년부 집회 등을 통해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옆에 있는 친구가 괴로워할 때 함께 아파하고, 그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언행을 절제하는 훈련과 믿지 않는 친구에게 자신이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순종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미 인생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로부터 생생한 삶의 체험을 들으며 간접 경험을 쌓아가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훈련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준비된 사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덧입혀 주실 때에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교회에 있는 청년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세워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교회는 교회 어르신들의 지원과 배려 속에 약 천명의 청년들이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와 예배드리고 그중 170명 가량은 성가대와 교사로 그리고 300명 가량은 대학부와 한기림 그리고 청년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교회에 있기 때문에 교회에 활기가 넘칩니다. 그들이 교회 이곳 저 곳에서 활동하기에 그들의 힘찬 발걸음과 발랄한 목소리, 장난기 섞인 웃음소리로 교회에 생기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들의 헌신으로 성가대와 교회학교등의 봉사의 손길이 이어집니다. 그들이 봉사하고 있기에 어른들이 일일이 하기 힘든 힘을 쓰는 일을 쉽게 추진해 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우리 교회의 신앙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확인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있는 교회, 청년들이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교회, 그들이 목청 높여 찬양하고,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져 복음 전하는 교회야 말로 살아있는 교회요 내일이 보장된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학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청년들의 불안 요인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터에 최근 한국의 정치 경제의 암울한 현실은 더욱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습니다. 현재 대졸 미취업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28만여명이고 그중 20만명이 1년 이상의 장기 실업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무조건 사회 구조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3D업종을 기피하고 능력 없이 눈만 높은 당사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논하기 이전에 교회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깨진 가정으로 인해 겪는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자신감을 상실해가는 청년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고 다시 삶의 의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을 든든히 받쳐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예수 믿고 나서 찾아 온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저는 신앙을 통해 소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교회에 어려서부터 출석하고 있었음에도 염세주의적 인생관을 갖고 하루 하루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예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난 후 세상은 여전히 살기 힘들고 제 통장에 여전히 돈은 없었지만 세상에서 제가 할 일이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있는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뚜기처럼 세상이 이리 저리 흔들어도 다시 일어서고 또 다시 일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중심에 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문안 교회에 찾아 온 청년들이 바로 저와 같은 체험을 하기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 어르신들께서 그들의 형님,누님, 부모님이 되셔서 그들을 붙들고 기도해 주시고 따뜻하게 품어 주시기 바랍니다. “ 수고 많았지. 공부하기 힘들지. 회사 생활 고되지. 지금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다면서. 나도 기도 하고 있어 너무 염려하지 마” 어른들의 따뜻한 말씀을 듣고 우리 청년들은 주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며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저는 렘 31: 12- 13 말씀을 보면서 이 말씀이 바로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말씀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주의 은혜가 충만한 우리 새문안 교회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그려보았습니다. 제가 봉독해 올리겠습니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 그들의 결단과 열정으로 오늘날 세계 도처에 예수를 따르는 15억의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다면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 새문안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하심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의 무관심과 안일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청년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예수께서 남기신 명령, 복음을 증거하고 생명을 살리라는 그 명령을 지금 곧 수행하시는 진정한 청년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 새 사람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 이라는 시를 읽어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하나니,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는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가나니,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이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이 자리에 계신 분 모두가 생명을 구원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믿음으로 삶의 무기력과 안일함을 깨뜨리시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품고, 예수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삶 속에 뛰어 드셔서 오월의 신록과 같은 푸르고 청청한 삶, 진정한 청년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복된 주일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 나아와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청년의 기백으로 살아있는 교회 언제나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의 명령에 깨어있는 교회, 청년을 품는 교회 청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청년 예수를 따라 언제나 새롭게 부어 주시는 은혜 속에 새롭게 전진하는 우리 새문안 교회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베푸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교회의 청년성/ 마4:18-22/ 청년주일설교
교회의 청년성 마4:18-22 오늘은 청년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우리 새문안 청년들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지금 열심히 사역에 임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독 청년들의 뜨거운 사랑과 복음 증거에의 열정을 확인한 것은 1999년 9월부터 약 1년간 미국 몬타나에 있는 예수전도단 베이스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20대 중반이었습니다. 제가 43세였으니까 근 20년 차이가 났습니다. 평신도인 그들은 성경 66권 공부를 마치고 고향 교회에 돌아가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거나 혹은 세계 곳곳에서 성경을 가르쳐 주기를 희망하는 나라에 자비로 가서 한 달 혹은 두 달씩 성경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주유소 등지에서 땀 흘려 번 돈으로 학비를 만들어서 공부하고, 역시 자신이 번 돈을 가지고 아프리카나 동남아 중국 등지에 가서 성경 배우기를 원하는 목회자들이나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존경하는 마음도 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겪은 일입니다. 약 4개월 가량 공부를 마치고 겨울 방학이 되었는데 방학 중 기숙사에 남아 있는 것이 비용면이나 생활편의 면에서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을 안 뒤 한국에 잠시 다녀올 수 없을까 생각하면서 비용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가지고 있던 500불에 500불이 더 있어야 비행기표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이렇게 저렇게 궁리만 하고 있던 중 쉬는 시간에 한 친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내심 최악의 경우 기숙사에 남아 밥을 해먹거나 라면 등을 끓여 먹으면서 지내기로 결심을 하고 그 일은 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제 기숙사 방에 돌아와 보니 제 책상 위에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우리 모두는 용수를 사랑한다는 쪽지와 함께 600불이 들어있었습니다. 일불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그들이 고작 20여명의 청년들이 그 어마어마한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저는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 젊은이들의 저력을 높이 평가하게 되었고, 그들 가슴 속에 있는 예수로 말미암는 그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 그리고 부르심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0절과 22절은 제자들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는데 두 구절을 자세히 보시면 같은 단어가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곧」이라는 단어 그리고「버리고「따르니라」라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단어는 청년의 과단성, 즉 결심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이러한 성향때문에 종종 나이 드신 분들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소위 기성세대의 여유와 침착, 모든 것을 따져 보고 살피고 이모저모 점검하고 계획하는 준비성이 결여된 듯한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너무 조급한 게 아닌가 저러다 일을 그르치면 어쩌나 염려를 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르실 때에 곧 즉시 예수를 따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생각해 보고 따져보고 계산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고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그 결심은 희미해졌을 것이고, 점차 현실에 안주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청년의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를 믿는데 청년종교입니까? 청년 예수, 33년간 세상에 계셨던 예수,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에 공생애를 마감하시고 승천하신 예수, 그래서 영원한 청년으로 이 순간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를 믿고 따르기에 기독교는 청년의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몸 된 교회 역시 언제나 청년성을 지니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기를 계절에 비유한다면 늦봄이나 초여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식물이 꽃피고 열매 맺기 위해 열심히 영양을 섭취하고 섭취한 영양을 각 줄기와 가지에 올려 보내듯이 청년의 시기는 인생의 원숙한 열매를 맺기 위해 왕성하게 움직이는 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왕성한 시기를 사는 수 많은 청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고 지금도 이루어 가고 계십니다. 요셉은 끝까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던 중 30세에 당시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 허덕이는 애굽과 주변국 백성들을 구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네 청년은 생명을 걸고 왕이 명령한 우상 숭배와 제물을 거절하는 등 믿음의 절개를 지킨 결과 이방인인 바벨론의 왕마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숭배하도록 명령하게 만드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청년 세례 요한은 동생의 부인을 자신의 아내로 맞아 살고 있던 헤롯에게 ‘회개하라’ 외침으로써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루터는 33세때, 부패한 카톨릭을 향해 95개조의 항의문을 들고 종교 개혁을 향한 일보를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깔뱅은 기독교계에 전무후무한 대 저서인 기독교강요를 27세에 집필하였습니다. 스펄전은 27세때 런던에서 대 부흥집회를 인도했습니다. 빌리그레함이 세계적인 대 부흥사로 활약하기 시작한 때는 그의 나이 25세 때였습니다. 리빙스톤은 23세 때에 아프리카에 들어가 30년간을 한결같이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생명을 건지는 일에 진력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새문안교회의 시작 역시 한 기독청년의 선교 열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새문안교회 창설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 Horace Grant underwood ) 가 1885. 4. 5 미국 북장로회의 파송을 받아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6세였습니다. 그는 도착후 2년간 한국어를 공부한 뒤, 그의 나이 28세 되던 해인 1887. 9. 27 14명의 교인과 함께 정동 한옥에서 새문안교회를 창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주보를 통해 여러분께서 보시듯이 5부예배시 새문안 청년리더 양성과정의 수료식을 갖게 됩니다. 3월초에 시작해서 오늘까지 약 3개월 동안 학교 공부와 직장일 등으로 바쁜 중에도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모여 장차 새문안 청년 공동체의 리더로서 필요한 소양교육을 이수하고 오늘 영예스럽게 수료하게 된 것입니다. 혹시 만나시면 축하의 말씀 한 마디라도 건네주시면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을 수료하기 위한 몇 가지 수료 조건이 있습니다. 출석도 철저히 해야하고, 책을 읽고 독후감도 써야하고 하는데 그중 훈련기간 중 5명에게 전도를 해야하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보통 전도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터라 과연 그들이 잘 할 수 있을지 내심 염려가 되었는데 한 청년이 노방 전도를 마치고 환한 표정으로 간증하는 모습을 보며 괜한 염려를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여학생인데 길에서 노숙하시는 남자분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사실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그 청년은 그분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부듯한 마음으로 친구들 앞에서 간증하는 그 얼굴에 핀 생명의 꽃, 그 환한 천국의 미소를 보면서 저는 예수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고 청년 사역자로서의 보람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 언더우드의 선교정신이 청년들의 가슴에서 가슴으로 면면히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도서는 세상의 온갖 명예와 권세, 부귀영화를 다 누려 보았다고 할 수 있는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남긴 유언과 같은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전도서의 결론 부분인 마지막 12장을 청년들에게 할애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자신의 유언과도 같은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필 청년들을 지목해서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마도 자신이 살아온 길을 뒤돌아볼 때 특히 청년 시절 자신의 삶 가운데 유달리 아쉬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후대의 청년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그러한 글을 남기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12장 1절 말씀을 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오늘, 지금 청년의 시절을 사는 바로 이 때, 하나님을 기억하라. 여호와를 앙망하라. 예수를 믿고 그분의 구원 역사를 생각하며 그분의 높고 깊은 뜻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그분의 가신 그 길로 걸어가라.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살아라. 그런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세월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공부도 때가 있습니다. 지금 힘과 체력, 갈고 닦은 지식이 있는 바로 지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아껴 써야 합니다. 허튼 데 돈과 시간과 지식과 정력을 낭비해서는 곤란합니다. 사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나만의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인기는 반짝하지만 진실은 영원합니다. 돈버는 건 한 때지만 신용은 평생 갑니다. 이것저것 다해보고 나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바른 일, 선한 일만 하기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적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에 영원의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야 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 가운데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며 사는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더하리라.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계를 보라는 것입니다. (잠 29:18) 에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말씀합니다. 묵시라는 말의 어원의 뜻은 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비전이 없으면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것 없이 제멋대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전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마음으로 읽고 보는 통찰력 내지는 상상력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바로 더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며 영원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저 먼 날을 내다보는 사람은 절대로 현재의 안일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미래를 향해서 하루 하루 자기 자신을 가꾸어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비전이 없는 사람은 방자해 지고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합니까? 나의 비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 내 가슴에 심겨진 그 진리를 붙들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며 열심히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이야말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요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생명 구원입니다. 죄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는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며 지금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먼저 믿은 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가 주기를 우리 하나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단 12:3) 말씀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성공적인 인생의 기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목표요 이유입니다. 돈을 벌어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컴퓨터를 익혀서 그림을 그려서 비행기를 만들어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구하는데 그 모든 것들이 쓰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소망가운데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결코 헛된 인생이 아닙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살다가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의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모두 나누어 준 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성인입니다. 그의 고백입니다.「무엇인가 소유하고 그래서 힘을 행사하고 다른 사람을 부리고 쾌락을 누리는 삶을 살아 보았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나를 희생하고 이웃의 발을 씻기고 섬길 때 나의 삶에 숭고한 기쁨이 밀어닥치는 느낌이었다.」 청년의 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 진리를 보며 결단하는 시기입니다.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작고한 소설가 황순원 씨가 생전에 찾아간 제자들에게 남긴 말입니다. 대패질하는 시간보다 대팻날을 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섣불리 자신의 능력, 지식을 자랑하려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말이며, 실력을 갈고 닦아 후일 제대로 된 인생의 역작을 남기기를 바라는 원로의 진심어린 유언이라 여겨집니다. 이 말은 특히 뭔가 빨리 성취하고자 의욕에 불타는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빌 4;13)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신감을 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 바로 앞에 있는 12절 말씀이 13절의 고백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12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젊은이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백으로 넘칩니다. 그러나 청년이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그렇게 되기까지의 필요한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할 수 있기까지 배워야 합니다.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청년부 집회 등을 통해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옆에 있는 친구가 괴로워할 때 함께 아파하고, 그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의 언행을 절제하는 훈련과 믿지 않는 친구에게 자신이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순종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이미 인생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로부터 생생한 삶의 체험을 들으며 간접 경험을 쌓아가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훈련 과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준비된 사람,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덧입혀 주실 때에 자신의 생애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교회에 있는 청년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세워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교회는 교회 어르신들의 지원과 배려 속에 약 천명의 청년들이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와 예배드리고 그중 170명 가량은 성가대와 교사로 그리고 300명 가량은 대학부와 한기림 그리고 청년부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교회에 있기 때문에 교회에 활기가 넘칩니다. 그들이 교회 이곳 저 곳에서 활동하기에 그들의 힘찬 발걸음과 발랄한 목소리, 장난기 섞인 웃음소리로 교회에 생기가 넘치는 것입니다. 그들의 헌신으로 성가대와 교회학교등의 봉사의 손길이 이어집니다. 그들이 봉사하고 있기에 어른들이 일일이 하기 힘든 힘을 쓰는 일을 쉽게 추진해 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우리 교회의 신앙이 대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확인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있는 교회, 청년들이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교회, 그들이 목청 높여 찬양하고,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져 복음 전하는 교회야 말로 살아있는 교회요 내일이 보장된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해 불안한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학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청년들의 불안 요인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터에 최근 한국의 정치 경제의 암울한 현실은 더욱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있습니다. 현재 대졸 미취업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28만여명이고 그중 20만명이 1년 이상의 장기 실업 상태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무조건 사회 구조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3D업종을 기피하고 능력 없이 눈만 높은 당사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인을 논하기 이전에 교회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깨진 가정으로 인해 겪는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자신감을 상실해가는 청년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고 다시 삶의 의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그들을 든든히 받쳐주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예수 믿고 나서 찾아 온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저는 신앙을 통해 소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교회에 어려서부터 출석하고 있었음에도 염세주의적 인생관을 갖고 하루 하루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예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난 후 세상은 여전히 살기 힘들고 제 통장에 여전히 돈은 없었지만 세상에서 제가 할 일이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있는 하나님이 주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뚜기처럼 세상이 이리 저리 흔들어도 다시 일어서고 또 다시 일어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중심에 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문안 교회에 찾아 온 청년들이 바로 저와 같은 체험을 하기 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 어르신들께서 그들의 형님,누님, 부모님이 되셔서 그들을 붙들고 기도해 주시고 따뜻하게 품어 주시기 바랍니다. 「수고 많았지. 공부하기 힘들지. 회사 생활 고되지. 지금 취직자리 알아보고 있다면서. 나도 기도하고 있어 너무 염려하지 마」 어른들의 따뜻한 말씀을 듣고 우리 청년들은 주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며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저는 렘 31: 12- 13 말씀을 보면서 이 말씀이 바로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말씀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주의 은혜가 충만한 우리 새문안 교회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그려보았습니다. 제가 봉독해 올리겠습니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 그들의 결단과 열정으로 오늘날 세계 도처에 예수를 따르는 15억의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다면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 새문안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하심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의 무관심과 안일을,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청년 예수를 따르는 제자로서 예수께서 남기신 명령, 복음을 증거하고 생명을 살리라는 그 명령을 지금 곧 수행하시는 진정한 청년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 새 사람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 이라는 시를 읽어 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과,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참신함을 뜻하나니, 생활을 위한 소심성을 초월하는 용기, 안이함에의 집착을 초월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우리는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 가지는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어가나니, 그대가 기개를 잃고,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이네. 그러나 그대의 기개가 낙관주의의 파도를 잡고 있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네 이 자리에 계신 분 모두가 생명을 구원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믿음으로 삶의 무기력과 안일함을 깨뜨리시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품고, 예수 사랑의 열정을 가지고 용기 있게 삶 속에 뛰어 드셔서 오월의 신록과 같은 푸르고 청청한 삶, 진정한 청년의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복된 주일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 나아와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청년의 기백으로 살아있는 교회 언제나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의 명령에 깨어있는 교회, 청년을 품는 교회 청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청년 예수를 따라 언제나 새롭게 부어 주시는 은혜 속에 새롭게 전진하는 우리 새문안 교회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베푸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향기/ 고후2:14-17/ 청년주일설교/ 2002-05-17
그리스도의 향기 고후2:14-17 여러분에게 질문하나 할까요? 향수와 향기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향수는 장식적이지만 향기는 본질적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향기를 좋아합니다. 향기는 사람들의 기분을 정화시켜 주고 부드럽고 기쁘게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향기는 단순히 좋은 냄새가 아니라 심신의 균형이 깨졌을 때 이를 정상으로 되돌려 주는 가장 아름다운 치료 방법으로 개발되었습니다. 이것이 일명 아로마 요법입니다. 지난 5월에 은빛대학에서 산정호수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숙소로 묵고 있던 장소에서 식물에서 추출해낸 향수를 팔고 있었습니다. 다양한 향수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향수에 대한 여러 가지 효능을 진열대 앞에 적어 놓았기에 읽어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건강에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건강에 좋다고 하면 물불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지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향수는 화학 구조를 인위적으로 모방해 만든 인공의 향으로 남에게 좋은 냄새를 풍겨 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로마 요법에서 사용하는 향기는 100% 순수 자연식물에서 추출 정제한 것으로 자기의 코를 통해 들이마심으로써 몸 안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는 놀라운 치료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카고 후각 기능 연구소의 알렌 허쉬 박사의 실험에 의하면 아로마 요법은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고 계산 능력도 높이며 기억력을 증진 시켜주는 효과도 갖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한 결과 아로마 요법의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증, 우울증, 불면증, 두통, 정신신경장애는 물론 근육통, 류머티즘 성 관절염, 통증질환, 소화 장애 또 여인병의 각종 피부질환, 감기, 인후염, 기관지염, 학습장애, 기억력장애 등의 치료에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최근에는 항암치료, 신장병 환자의 투석 치료, 방사선 치료 중 발생하는 부작용을 줄이는 방편으로 아로마 요법을 이용하는 치료법도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은 예수님의 향기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향기는 헬라어로 ‘유오디아’인데 이 말의 뜻은 “냄새가 잘 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몸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고 있을까요? 한 번 옆 사람의 냄새를 맡아보실 까요? 바울 사도는 이 말씀 속에 자신과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향기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향기입니까? 향수입니까? 나쁜 냄새입니까? 교회에 다닌다고 말은 하지만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고 삶으로서도 모범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향기가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막기 위해 뿌리는 향수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오히려 믿지 않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 그들의 삶은 복음을 전하는 삶이 아닙니다. 불신자들보다 더 잘못된 행동을 한다면 향기가 아니라 나쁜 냄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참된 예수님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어느 청소년 학생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가끔 학교 친구들에게 “네가 교회에 다니는 줄 몰랐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인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말한 의미는 “네가 교회에 다닌다면서 우리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라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술자리 모임이 자주 있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실 수도 있을 것이고, 학교 동아리 모임에서 술을 권하기도 할 것입니다. 특히 직장 동료들과 회식자리에 있을 때, 술을 마시는 않으면 난처한 입장도 경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 청년으로서 술 마시는 것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 청년의 바람직한 모습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크리스천일수록 아예 술자리를 피하는 것이 능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함께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에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10)고 했습니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있고 세상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크리스천이라면 술자리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하신 기도가 이런 상황에 있는 크리스천 청년들, 특히 직장인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술자리를 굳이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술자리에서 우리 믿는 청년들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은 직장에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교제를 끊거나 그들을 경멸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바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할 수 있거든’이라는 조건이 의미하듯이 불신자들과의 평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의 쾌락을 위한 술자리라면 굳이 함께 할 필요는 없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석해야 할 자리라면 어울리되 자신이 신앙인 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야 합니다. 계약 체결을 위해 중국 사람과 만나게 된 어느 크리스천 사업가가 신앙을 이유로 술을 정중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일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나 분위기는 곧 반전되었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그가 지녔던 신앙적인 용기가 인정받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인 거래처 직원은 자신도 술을 물리고 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그 때 일을 회상하면서 “예수님이 가나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지만 20세기 말 중국에서는 술을 물로 바꾸셨다”고 말하곤 합니다. 단호한 태도는 때로 무례를 동반하기 쉽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서 분위기를 깨뜨릴 것 같으면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예의 있는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경건을 지키는 일이 모임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대해서 책임을 느낀다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돋우도록 해야 합니다. 남이 잘 모르는 정보나 지식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별한 재주가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건전한 유머를 열심히 준비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것도 신앙인으로서 할 만한 일입니다. 이방인들을 얻기 위해서 이방인처럼 행동했던 바울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술자리를 소극적으로 피할 수도 없고, 술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처신할 용기도 없으면, 술자리를 대신할 만한 다른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진한 술자리를 은근히 요구하는 외국 바이어를 유명한 뮤지컬로 초대해서 예상외의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냥 쉽게 타협하지 않고 지혜를 짜내면 의외로 신앙인으로서 경건을 유지하면서도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으면서 뒷정리를 해주거나 술에 만취한 사람들을 돕는 일, 예를 들어 그들을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는 일까지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대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구체적인 제안들이 실제적으로 잘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술자리가 부도덕해질수록 크리스천은 점점 위축하게 마련입니다. 풀무불 속이나 사자굴 속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기도로 준비하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술자리 문화가 갖는 문제점은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온갖 사회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는 술집 문화가 사라지도록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술자리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신앙적인 자세를 견지하여 어렵고 힘든 술자리에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 주위의 많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더럽고 추잡한 생각과 세상의 더러운 냄새만을 풍기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스케치북 삼아 다양한 컬러의 색조 화장을 합니까? 그리고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향수를 뿌려 자신의 더러운 냄새를 대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예수님의 향기라면 우리는 우리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겨야 합니다. 향기를 풍기는 비결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예수님을 앞세우고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극히 작은 행동 하나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야 합니다.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운 후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하고 고백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나타내 영화롭게 했습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그것만을 내세우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인 가치만을 자랑하지 않았습니까? 주위 사람들을 진정 기쁘게 해야 합니다.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사람들이 스컹크의 냄새는 싫어하면서 꽃 냄새는 왜 좋아합니까? 그것은 그 향기가 사람을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꽃을 보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화를 내던 사람도, 불쾌한 감정에 사로잡혔던 사람도, 무표정한 사람도 꽃향기를 맡으면 밝아집니다. 마음이 온화해집니다. 바로 여러분이 이래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항상 기쁨과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항상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발하는 복음의 향기로 인해 죄의 어둠이 걷히고 구원과 영생의 기쁨이 넘쳐나고 여러분들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로 인해 화해와 기쁨이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혹 오히려 여러분으로 인해 슬퍼하고 실망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제는 항상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유익을 생각해 줌으로써 진정 기쁨을 끼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인데 과연 우리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혹시 외적으로는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었으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향기가 없는 무익한 신앙인은 아닙니까? 혹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그리스도는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재물, 지식, 명예 따위만을 사랑하며 내세우지는 않는지요? 또 남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자기의 유익만을 추구하여 악취를 풍김으로써 남을 불쾌하게 하지는 않는지요?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됩시다. 자기 자신보다는 이웃을 더 생각하고 이웃을 진정 기쁘게 하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예수 향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외국의 어느 동시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한 덩이의 진흙을 얻었습니다. 그 진흙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습니다.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너는 바그다드의 진주냐?” 진흙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그럼 너는 인도의 사향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냐?” “나는 한 덩이의 진흙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향기가 나오느냐?” “그 비결을 말해 드릴까요? 나는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습니다.” 진흙이 지닌 향기의 비밀은 백합화와 함께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향기가 발산되었던 것입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 인생이 주님과 함께 할 때 주님의 향기가 내 속에 생겨나고 이웃에게까지 번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아름다운 것도 없고 향기로운 것도 없으며 자랑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때 진흙과 같은 나에게도 주님의 영광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청년의 삶/ 전도서전11:9-10, 딤후2:20-23
그리스도인 청년의 삶 전11:9-10,딤후2:20-23 필립 매신저는 \\\\\\\"청년기는 마치 고급 양피지와 같아서 그 위에 무엇이든지 새겨 넣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청년기는 기회와 가능성의 시간이다. 청년기의 자세는 기회도 가능성도 다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청년기는 모든 것이 새로운 시기이다. 그러나 혈기가 절제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감성이 이성을 이기지 못하게 하고 육체가 영혼을 이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 청년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결심이 있고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미래의 일꾼들이 배출되기를 기대한다. 청년의 때는 삶은 어떤 삶인가? 1. 청년의 때를 즐겨라. 성경은 청년에게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라고 한다. 청년은 인생의 절정기이다. 인생의 절정기를 놓치지 않게 즐겨야 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즐길 줄 안다는 것이다. 인간은 노동 자체만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고 싶은데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라고 한다. 그러나 무절제한 방탕으로 타락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심판을 전제로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기독교는 지나친 방종주의나 극단적 금욕주의를 다 배격한다. 2. 근심을 떠나게 하라.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라고 성경은 권한다. 청년들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근심이 더 많다. 근심이란 말은 분노, 슬픔을 의미하는데 인생의 낙을 누리는데 방해되는 슬픔의 요소를 제거하라는 뜻이다. 인간을 파괴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상하며 육적인 쾌락으로 몸을 병들게 한다. 근심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유익하고 생산적인 근심이 있다. 생산적인 근심을 할 줄 아는 청년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쓸모 없는 근심에서 떠나면 생산적인 영적인 근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된다. 3. 악을 물러나게 하라. \\\\\\\"악으로 물러나게 하라\\\\\\\"는 말씀은 육신의 고통이 떠나게 하라는 뜻이다. 인간의 악은 육신의 고통이며 육체적으로 따라 사는 삶이 결국 악이고 그 악의 종국은 고통이다. 지나친 방종과 타락에 처하지 않도록 자제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청년 시절에는 이성의 유혹을 조심하고, 장년 시절에는 물질의 욕심을 버리고, 노년 시절에는 명예의 욕심을 버리라는 말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는 본능이지만 본능대로만 살면 동물과 다름이 없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한다. 청년 문화가 영혼을 죽게 하는 것이 많이 있다. 청년들이 미래가 있고 즐길 줄 알며 악을 물리치는 청년이 되자.
기도의 생활화/ 요14:13/ 청년부찬양예배설교
기도의 생활화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12절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것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다른 환상을 하나 보여주신다. 주님을 믿으며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마음에 품고 이것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면 놀라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힘은 13절의 기도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즉 예수님의 영에 합당한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지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는 기도의 조건도 있다. 1) 하나님께서는 때론 우리의 보다 큰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가 당장 원하는 바를 들어주시지 않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아이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으니 가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할 때 아버지가 들어주시겠는가? 들어주면 순간은 기뻐하겠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부모를 저주할 것이다. 아이가 지금은 인식치 못한다해도 그의 소원은 교육을 계속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고물장수를 좋아서 한다면? 내 인생은 망치는 것이다. 아버지는 들어주지 않는다. 타고르는 “당신의 냉혹한 거절이 나를 구원하였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2) 우리가 하나님의 다른 자녀에게 “해를 가하는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는다. 비행기표를 구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 매진되었어도 한사람을 내려놓고 나를 태우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급한 다른 사람을 못 타게 하고 나를 태워 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유익을 위해 다른 이에게 해를 주게 해 달라는 기도는 드려서는 안된다. * 그 외에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바울의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이것은 기도를 생활화하라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 때, 식사를 할 때, 수술을 받을 때, 교회 앞을 지나갈 때, 군인들을 보았을 때, 병든 사람을 보았을 때, J. 아더 랭크는 사장으로 직통 엘리베이터까지 있으나 높은 사무실까지 계단으로 출퇴근하였다.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성공적인 사업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기도의 습관을 가져라.
기독청년의 직업/ 롬14:7-8/ 2002-08-13
기독청년의 직업 롬14:7-8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들은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한 첫 관문이 직장을 구하는 것이지요. 요즈음 직장을 구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일을 하고 싶은데 오라는 곳이 없어서 고민하는 청년들을 보면 제 마음도 착잡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지금 뭐 하시나? 저런 청년들에게 좋은 일터 하나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저 혼자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을 구한다면, 혹은 직업을 선택한다면 어떤 원칙을 세우시겠습니까? 돈을 많이 주는 곳에 가시겠습니까? 월급은 많이 주지 않을지라도 여러분의 실력을 충분히 인정해주는 곳에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작업 환경이 좋은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직업을 선택하거나 직장을 구하는데 자신의 신앙이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직장이나 직업을 선택하는데 신앙은 배제되고 여러분의 이성으로만 해결하여 하지는 않습니까? 오 늘 말씀을 통해, 신앙을 가진 기독청년으로서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는 원칙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몇 년만에 그의 절친한 친구인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인생의 고비를 맞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떤 결정을 내려야 좋은지를 상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지금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 기업의 한국 지사에서 제2인자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고액의 봉급을 받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바로 위에 있는 제1인자와 오래 전부터 말할 수 없는 갈등을 겪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같은 업계에서 유럽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회사로부터 한국 법인의 사장직을 제의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또 다른 미국 회사로부터도 한국 현지 법인의 사장직을 제의 받게 되었습니다. 두 곳 다 지금보다 훨씬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였습니다. 만약 그 제의에 응하기만 하면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제1인자와 결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는 이미 국내에 기반이 다 닦여 있지만, 사장직을 제의한 두 회사는 이제 국내에 막 진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도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들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친구의 아내는 조금만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사장이 될 텐데 왜 새삼스럽게 직장을 옮기느냐 하며, 현재의 회사에 그대로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 세 회사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 고민하다가 친구 목사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뒤 그 친구 목사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을 피해서 직장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네. 그러나 사람과의 갈등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지. 윗사람과의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예 제1인자가 되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러나 그렇더라도 사람과의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아랫사람과의 갈등도 있기 마련이야. 윗사람과의 갈등보다 아랫사람과의 갈등이 더 괴롭고 견디기 힘들 때도 허다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은 조건을 따라 움직이지.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곧 후회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 조건은 늘 상대적이야. 언제든지 변하지. 오늘 좋은 조건이라고 해서 내일, 모레 그리고 영원토록 좋으리라는 법은 세상에 없다네.\" 이렇게 말한 후에 친구에게 몇 마디 덧붙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이야. 그래서 무엇을 결정을 하든지 나에게 어떤 유익을 주느냐 하는 차원에서 떠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관계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고 결정하려면 대단히 혼란스럽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해답은 명쾌하게 나올 것이라 생각하네.\" 순간 친구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습니다. 그 자신이 크리스천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선택하는 그 중요한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것이 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7절에서 8절은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크리스천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잘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을 \'직업\'이라는 말에 적용한다면, 크리스천들이란 직업을 가져도 주님을 위하여 가지며, 직장을 선택해도 주님을 위해서 결정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성도들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직업은 다 성직이 됩니다. 성도는 주님을 위해 직업을 갖는 까닭입니다. 성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이기 때문에 그가 가진 직업이 무엇이든 거룩한 직업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성직과 세속직을 구분해서 말을 합니다. 만약 목회자가 이 세상의 모든 직업은 다 세속 직업이고 목회직만이 성직이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성직자의 교만이요 독선입니다. 반대로 목회자가 아닌 사람이 목회직만이 성직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직업을 선택해도 주를 위해서 선택해야 할 크리스천으로서의 직무유기입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은 성도이기에 그가 갖는 직업이 기술직이든, 생산직이든, 연구직이든 그리고 사무직이든 다 거룩한 직업이 됩니다. 이처럼 크리스천은 성도이기에 그들이 갖는 직업은 모두 성직이지만, 그 가운데는 가질 수 있는 직업과 가질 수 없는 직업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나라 대표적인 주조회사의 총수 중 한 분은 카톨릭 신자이고, 다른 한 분은 개신교 신자입니다.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을 제조하여 어떻게 하면 그 술을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온갖 지혜를 짜서 광고를 하는 그런 직업이 과연 크리스천의 바람직한 직업인가는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크리스천이 술집을 경영하고 도박장을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크리스천이 몸을 파는 창녀가 되거나, 아니면 포주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러고서도 나는 성도이므로 나의 직업은 성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는 말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평론가이자 역사학자였던 토마스 칼라일이 한 말이 있습니다. \"만약 나의 직업이 나를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면, 내가 나의 직업을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이 자기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 미련 없이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크리스천으로서 주를 위해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이 있을까요? 앞서 얘기한 친구가 그의 친구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직장도 선택하고 직업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 이해하겠네. 그렇지만 지금 나의 경우에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선택일 수가 있을까?\"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거룩한 직업이요 직장이 됩니다. 나무의 열매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봄부터 1년 내내 온갖 애를 다 씁니다. 그러나 나무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 열매를 맺지 않습니다. 만약 나무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매를 맺고 지키려 한다면 그 열매는 썩어 버릴 것이고, 썩어 버린 열매를 움켜쥐고 있는 나무 자체도 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 썩은 열매를 먹는 사람도 해치게 될 것입니다. 나무가 자기 자신을 위해 열매를 맺으려 한다면 이처럼 모두를 해치고 맙니다. 나무는 자기 유익이 아닌 타인의 유익을 위해 열매를 맺기 때문에, 그 열매는 언제나 생명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기도 살고, 타인도 살리며, 열매의 가치도 극대화시키는 유일한 길입니다. 나는 장래에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길 원합니까? 나는 지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을 해볼까요? 나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나요? 식용으로는 사용해서는 안 될 동물의 뼈를 라면 스프에 넣어 유통시키다가 적발된 사건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직업을 갖든 자기의 유익이나 자기의 주머니만을 위해 일한다면, 그의 일터는 불의의 온상과 부정의 근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직업으로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으면, 자기 직업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직업을 통해 그 자신이 영화로워지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혹시 지금 직업이나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번 돈으로 예금을 얼마나 할 수 있으며, 언제쯤 좋은 집을 살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직업과 직장의 가치를 결정하며 평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 훗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너의 직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느냐? 얼마나 큰집을 샀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너는 너의 직업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를 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한 사람에게라도 더 봉사하기 위하여 직업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943년 세상을 떠날 때, 백인과 흑인을 망라하여 거의 모든 미국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은 최초의 흑인인 조지 워싱턴 카버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농학박사로서, 만약 자기 직업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면 그는 필경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직업을 타인을 위한 봉사의 도구로 삼은 크리스천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남부지방은 면화를 재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면화는 땅 속에 있는 질소를 없애 버리므로 금방 땅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거의 모든 땅이 못쓰게 된 남부 사람들은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황폐화된 땅에 땅콩을 심으면 땅콩 재배에도 좋을 뿐 아니라 질소가 회복되어 땅도 비옥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남부 사람들에게 땅콩을 심도록 장려했고, 그의 말대로 땅은 다시 비옥해졌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농장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땅콩을 처분할 판로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카버 박사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땅콩의 활용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땅콩으로 만든 마가린, 비누, 요리용 기름, 화장품용 기름, 사탕, 버터, 밀가루, 잉크, 물감, 구두약, 연고 그리고 크림 등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는 땅콩으로 무려 300여 가지의 실용품과 식용품을 만들어 내었지만, 단 한 번도 특허를 내거나 로열티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학문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입니다. 아니, 자신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던 미국 남부의 경제가 회생되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성도였고, 그의 직업은 명실공히 성직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요? 전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부정과 불의가 난무하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자기 유익만을 위해서 일하고, 자신의 주머니만을 위해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들이 현재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앞으로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지 간에,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땀 흘려 일하십시오. 그때 이 사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은 자기 유익을 위해 사는 데 있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일하는 삶 속에 있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마21:1-11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 마21:1-11 설교 내용 오늘은 2003년 고난주일입니다. 고난주일에 우리가 생각할 메시지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라는 주제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보고자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앵무새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통일\'입니다. 그들은 통일이 되면 이밥에 소고기국을 먹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합니다. 모든 결론은 통일입니다. 아시안게임에 왔던 북한 응원단들도 말을 하다가 끝맺음은 \"어서 통일이 되어야지요\" \"통일이 되면 다 좋아지겠지요\" 이렇게 통일을 이야기합니다. 통일이라는 말은 가장 정치적인 용어입니다. 이것은 민간인이 할 수 없습니다. 문화운동으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정치적인 말을 가지고 쉽게 문제를 해석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지지하던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면 내 앞길은 열릴 것이다\'라고 말하는 등 우리도 상당히 정치적인 사람이 되어 있고 정치적인 말을 가지고 사사로운 우리 문제를 풀려고 하는 습관이 배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무엇이 잘못되면 \'아, 이것은 로마사람들 때문에 그렇다. 로마가 정복이 되고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우리는 잘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소망입니다. \'메시야가 와서 로마를 정복하고 이 땅에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그날 우리는 영광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유대주의 자들의 환상입니다. 죽음의 길 예루살렘 드디어 예수님이 메시야로 이 땅에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대를 걸고 그를 따라 다닙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 다닙니다. 이때 로마총독부는 주목을 합니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데 로마 총독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민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 많은 사람이 따라 다니니까 민란이 일어날 것을 항상 경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드디어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게 됩니다. 이 길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길입니다. 주님은 내가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면 잡혀 죽을 것이라고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제자들에게도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시게 됩니다.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십니다.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환호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찬송할지로다\" 수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환호했습니다. 이것은 로마 총독부에서 볼 때는 날 죽여달라는 시위와 똑같습니다. 예수께서 살려고 하시면 조용히 입성을 해야 합니다. 조용히 비밀리에 기거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고 민란의 주동자라고 지목을 받고 있는 예수가 드러나게 나귀를 타고 수많은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입성을 하는 것은 로마 사람들 앞에 나를 죽여달라는 선전포고와 같은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주님은 성전에 가셨습니다. 성전 뜰과 문과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채찍을 드시고 분노하시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시고 성전을 청결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선전포고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시는 모든 행동이 죽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백성들에게 환호를 받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도 주님의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고, 유대인의 심지를 건드려서 성전을 청결케 한 일도 죽음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주님은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하나님이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만에 일으키리라. 너희가 나를 죽여도 내가 삼일만에 부활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후에는 알리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잡히시던 전날 밤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발을 씻기십니다. 베드로가 \"주여! 어찌하여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주님이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제자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오시는지, 왜 그가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지, 왜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지, 왜 그가 십자가를 지는지 제자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입니다. 다 알고 주님의 일을 못합니다. 다 알아질 때까지 기다린다면 늦습니다. 한 평생을 연구해도 알 수 없는 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주님의 일은 믿음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야, 내가 너의 발 씻기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그렇습니다. 하고 나면 압니다. 해 보면 압니다. 이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알고 하려면 못합니다. 해 보면 아는 것입니다. 제가 전화를 하나 받았습니다. 성전건축을 앞둔 목사님의 전화입니다. 우리교회가 건축헌금을 작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했습니다. 이 목사님이 자기 교회도 건축헌금을 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물었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한달 동안 집중해서 기도하시고 믿음으로 하십시오\"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알고 못합니다. 모르지만 이후에 알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는 것입니다. 황장엽씨가 우리나라에 와서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부도 안 믿고, 더러 사람들이 그의 말을 잘 안 믿었습니다. 그가 언젠가 이 말을 하고 입을 닫았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한 말이 사실로 드러날 것이다.\" 주님은 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가? 왜 그가 죽음을 향하여 가시는가? 왜 그가 골고다로 가시는가? 제자들은 모릅니다. 백성들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홀로 그 길을 가십니다. 왜 갑니까? 우리에게 구원의 비상구를 열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만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시기 위하여 그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십니다. 자신이 죽지 않고는 이 길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자기만이 구원의 문이기 때문에 주님은 메시야의 사명을 지고 죽음의 길, 예루살렘을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주님은 비상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우선순위는 구원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이것이 인생의 우선순위입니다. 이것을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그는 죽음의 길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구원의 비상구 블란서 작가 로뎅이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이 작품을 손질하며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 대한 설명에 이렇게 나옵니다. \"지옥문 위쪽 가운데서 설치한 작품이다\" 나는 이 그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지옥문 가까이에 가서는 늦습니다. 지옥문 가까이에 가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옥문에 가서 탈출구를 찾아서는 안됩니다. 구원의 탈출구는 지옥에는 없습니다. 이 구원의 문을 우리에게 제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구원의 문은 우리가 가는 문이고, 이 문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르쳐줄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대구지하철 참사에 안타까운 것이 많지만 종합상황실이 너무나 미숙했으며, 1080호의 기관사의 긴급대처 능력이 너무나 미숙했다는 두 가지가 안타까운 것입니다. 이 두 곳에서만 순발력을 발휘했으면 많은 사람이 살았을텐데, 이 두 곳에서 우왕좌왕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탈출구를 잃었습니다. 탈출구만 열려 있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갖가지 상황을 보면 비상구를 찾지 못해서 다 죽었습니다. 대영각화재, 인천 호프집 화재… 비상구만 확실하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상구를 찾지 못해 죽는 것입니다. 인생의 비상구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로마서 10장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너무도 쉬운 길입니다. 너무도 쉬운 비상구를 우리가 쉽게 가르쳐 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옥의 불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비상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의 길에 이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은사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공짜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공짜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값진 공짜입니다. 1518년 마틴 루터가 휴가를 받아 순례를 떠났습니다. 로마교회는 이 순례가 수양의 필수 코스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로마에 있는 성 계단 성당에 갔습니다. 그 계단은 28개입니다. 거기에 유리조각을 펼쳐 놓고 사람들이 무릎으로 기며 올라가면서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무릎이 터져 피가 흐르는 고통을 참으면서 죄를 회개함으로서 죄 사함을 받고 마침내 구원을 이른다는 교리가 거기에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수도사입니다. 그도 계율을 좇아 계단을 오르내립니다. 무릎이 터지고 피가 납니다. 전신의 고통이 옵니다. 그러나 마음에 죄 사함의 기쁨은 오지 않습니다. 마음은 더 무거워져 갑니다. \'이것이 아니구나!\' 그의 머리를 스쳐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 구절 있었습니다. 로마서 1장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다! 믿음으로 산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는 벌떡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517년 로마 교황청을 향하여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다는 종교개혁의 깃발을 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만이 인생의 비상구입니다. 이 비상구를 가르쳐 주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고난주일은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계절이 아니라 우리에게 인생의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 인간에게 영원한 비상구를 제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주일의 사명입니다. 영원한 소망 요즘 서점에 베스트셀러 책이 있습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책입니다. 이것은 온 지구촌을 감동시킨 책입니다. 주인공은 레나 마리아라는 스웨덴 장애자 가수 이야기입니다. 레나 마리아는 태어날 때 두 팔이 없는 장애아로 태어났습니다. 다리는 있는데 한 다리가 아주 결정적으로 짧습니다. 이 아이는 사람이 아니라 태어날 때 괴물로 태어났습니다. 그 흉칙한 모습을 본 부모님들이 제가 볼 때 참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이 아이를 우리가 돌보지 않으면 이 아이는 존재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이 아이를 위해서 우리를 부모로 붙여 주셨다는 사명을 깨닫고 레나를 키웠습니다. 오늘날의 레나 마리아는 어떤 모습인가? 그는 두 발을 가지고 삽니다. 발 가지고 자수를 배웠습니다. 이 자수가 수준급입니다. 그리고 피아노도 수준급입니다.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칩니다. 뿐만 아니라 발로서 운전까지도 합니다. 그것보다 더 훌륭한 것은 수영을 가르쳤는데 88올림픽 때 수영선수로 참가했습니다. 오늘의 레나 마리아는 위대한 노래를 부르면서 온 세계인들에게 소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레나 마리아의 노래는 소망의 노래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장애는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특권입니다.\" 레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유일한 근거는 바로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가 이 마리아 속에 있기 때문에 그의 노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을 전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금년에 큰 세 가지 부활절 문화행사를 합니다. 하나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연합예배 드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금요일 11시에 금식기도회를 하고 빌라도 법정을 개설한 다음, 남산까지 십자가 행진을 합니다. 누구나 십자가를 한번씩 지어볼 수 있도록 기회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2시쯤 남산에서 골고다의 십자가를 못박는 것을 재현하는데 상당히 실감이 있답니다. 그리고 금년 특별행사는 부활절 전도카드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제는 고난주일과 부활절이 예배당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불신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는 부활절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부활절 전도카드를 보급합니다. 여러분, 부활절이 예배당 안에 갇혀진 부활절이 되지 않도록 내 주변에, 가족, 친척, 이웃, 내가 알고 있는 불신자들에게 부활절 전도카드를 보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메모하는 난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살아야 할 불신자 누군가에게 그리스도의 이 비상구를 가르쳐 주시는 전도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비상구, 우리 교회가 세상에 알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나는/ 눅18:1-14/ 청년회설교/ 2002-02-05
나는 눅18:1-14 청년, 대학 시절에 가장 관심이 크고, 꼭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성교제에 대한 문제와 비전(진로, 취직)에 관한 문제와, 자아상에 관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대학생들이 모이는 전국 단위의 수련회에서 선택특강을 하는시간에 보면 이 세곳이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립니다.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것입니다. 본 문 오늘 본문과 함께 이 세 가지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2가지의 이야기입니다. 과부의 기도와 세리와 바리새인의 기도가 그것입니다.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갑니다. 성경에서 고아와 마찬가지로 과부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과부는 남편이 없고, 자식을 더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힘을 누리던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가장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재판관에게 그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을 하는데 들어주지 않습니다. 결국 어떻게 해서 그 소원을 들어줬느냐 하면 귀찮아서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 18장 과부의 사건이 \\\'그 봐라 들어주시기까지 귀찮을 정도로 매어 달리면 들어주신다\\\'는 의미로 우리에게 굳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에 굉장한 열심만 있으면, 하나님께 매어달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귀찮아서라도 들어주신다고 하는 엉터리같은 생각이 우리 속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1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지금 무게중심이 \\\'항상 기도하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낙망치 말아야\\\'에 초점이 있습니다. 즉 어떤 일을 들어주는데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들어주시지 않는데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데 사용된 비유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어떻게하면 응답을 받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응답을 받아야함에도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혼동하지 말라고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어떤 도시에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재판관이란 우리나라의 판사가 아니라,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시대에 지방의 수령이었던 사또입니다. 즉 삼권을 다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곳에 한 과부가 와서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는데 갚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갚아 줍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5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번거롭게해서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번거롭게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러번 찾아왔다는 횟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재판관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합니다. 불의하다고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은 재판관입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서 강도짓을 하려고 하는데, 어린아이가 울면서 빕니다. \\\"아저씨 제발, 나쁜짓을 하지 말라\\\"고 울면서 빕니다. 또 아니면 아기를 죽이려고 하는데 \\\'방긋이\\\' 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자수했다면 강도로 치면 마음이 연약한 강도입니다. 그래도 죽여야 강심장의 강도입니다.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찾아오는 횟수에 마음이 찔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가 외치는 그 내용의 \\\'정당함\\\'에 마음이 찔리는 것입니다. 만약 그녀의 요구가 정당하지 않았다면, 그 재판관은 다른 죄목을 덮어 씌워서 감옥에 처넣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이 비유는 어느 만큼 기도하면 응답을 받느냐가 아니라 어느 만큼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을 수 있느냐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이야기는 굉장히 대조적인 내용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공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어디 기댈 데도 없는 과부와 하나님의 자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공통점은 전자에 있어서 \\\"도와주십시오\\\"도 정당한 일이고, 후자에 있어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내 원한을 풀어주십시오\\\"도 정당한 요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원한을 풀어주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원한\\\'은 \\\'원통함\\\'이 훨씬 더 어울립니다.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라\\\"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고,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관심이 없어도 아니니 절대로 절망하지 말아라고 들여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에 우리의 소원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필요로하고, 안타까워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심에도 불구하고 기다리게 하시고 들어주시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게 하셨고, 바울의 육체의 가시를 하나님께서는 빼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모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런 것을 통하여 인격을 성숙시키게 하실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모난 부분을 깍으시려고 하는지 사람들마다 이유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느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가지시는 태도와 안타까움은 약화가 되거나, 무효가 되거나, 외면되거나 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낙망치 말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성교제에 관한 문제 앞에서 말씀드린 3가지 중에서 이성교제에 관한 문제가 단연 최고의 관심사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만 해도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이말삼초(二末三初)에 복사꽃을 잡아라\\\" 이 말은 여학생은 2학년 말이나, 3학년 초가 되면 남자 복학생 4학년과 교제를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십니까? 일초 땡이라고 합니다. 즉 1학년 초에 연애를 못하면, 졸업할 때까지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기다림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학년 말이나 삼학년 초가 되면, 대학이 어떤 곳인지도 알고, 자기가 전공하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사람에 대해서도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진위여부를 어느 정도는 잘 가릴 수 있는 나이. 자신의 앞길에 대해서도 설정할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일초 땡은 눈에 보이는데로 택하는 경박한 사상인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진실한지,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있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택할 때에도 외모만 중요합니다. 재작년에 결혼교실을 할 때에, 오신 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요즈음 남자들은 사람을 택할 때에 3가지를 보는데 얼굴, 외모, 미모를 본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남자만 아니라 이 시대의 흐름이 그렇습니다. 키를 크게해 주는 수술 올해 초에 TV에 키를 크게 해 주는 수술에 이야기가 방송에 보도가 되었습니다. 원래는 러시아의 의사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만들었는데, 이제는 키를 크게 하는 수술로 더 유명하다고 합니다. 발목 위쪽의 뼈를 잘라서 3∼4㎝정도를 띄워서 고정을 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뼈가 커지면 그만큼의 키가 자라는 것입니다. 또 무릎 위의 뼈를 자릅니다. 아래와 같이 또 3∼4㎝정도를 띄워서 고정을 합니다. 그래서 뼈가 자라면 7㎝정도 키가 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버스가 서면, 자꾸 뼈가 부러지지는 것입니다. 한 여대생은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키자 작다는 이유로 취지직이 않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어떤 여성은 뼈가 자라기는 자랐는데 뒤쪽의 아킬레스건은 자라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발 뒷굽이 땅에 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그래도 키가 큰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평생 키가작아서 그것으로 콤플렉스에 쌓여 지내느니, 이래도, 또 늙어서 고생을 하더라도 키가 큰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한참 울었습니다. 외모중심주의, 본질을 중요시 하지 않는데서 오는 속상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어려운 시기가 결정적인 결단을 해야할 때, 외적인 것이 해결함을 주지 못합니다. 내면적인 것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이성친구를 오랫동안 구하고자 하여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옆 친구는 나보다 믿음이 별로인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주시면, 나에게는 더 좋은 사람을 주실 것을 믿고 잘 가꾸고 계십시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은 바리새인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당시에 가장 대조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의 드렸던 기도가 이러합니다. 11∼12절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냥 \\\'기도했다\\\'고 되어 있지만 좀 원문에 맞게 번역을 하면 이렇습니다. prayed about himself, 또는 prayed to himself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고를 하고 있고, 자기 자신을 과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는 자신의 의에 만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강도도 아니오 불의한 사람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 옆에 있는 세리를 염두에 두고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일주일에 2번씩 금식을 한다고 합니다. 유대인인들이 공식적으로 금식한 날은 대속죄일에만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일주일에 2번을 했던 것입니다. 그 금식일이 월요일과 목요일입니다. 그 날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갔던 날이 월요일이고, 내려온 날이 목요일이라고 합니다. 모세를 추종했던 그들은 그 날을 기념하기 위해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을 했던 속셈은 딴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날이 바로 예루살렘에 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 금식을 하는 사람은 하얗게 칠하고, 곡하는 사람들처럼, 옷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바리새인의 순종을 세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소극적인 순종이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목록이었습니다. 우리도 하지 않은 것만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모르는 가난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은 \\\"네가 무엇을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란 사실입니다. ② 율법주의적으로 순종을 했습니다. 그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의무도 목록을 정해놓고 지켰습니다. 1년에 한번할 금식을 일주일에 두 번을 했고, 수입의 십일조만 하면 되었는데, 조미료의 십일조까지 했습니다. 그런 목록이 틀렸다기 보다 그런 목록이 자신의 본질상 죄인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행한 경건으로 다른 죄들을 무마하고 있다면 우리가 바리새인입니다. ③ 남과 비교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 앞에 단독으로 서서 절대적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지 상대적으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달란트를 남긴 사람과 두달란트를 남긴 사람에해 하신 칭찬이 똑같다는 데서 그것이 드러납니다. 신앙은 상대평가가 아닙니다. 진로에 관한 문제 고학년이 되고, 졸업에 임박할수록 진로에 관한 문제는 우리에게 불안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일에 걸맞는 사람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비록 바리새인들이 그 외식함 때문에 예수님께 꾸중을 들었지만 그의 전문성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이 몇 자인 것을 알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했습니다. 그들은 율법 지키는 것을 생명보다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공에 대해서 어떠합니까? 전공이 적성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할 일에 대한 태도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바리새인의 전문가다움을 갖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일들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세리의 기도 또 한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세금 징수원입니다. 로마는 이상한 세금 징수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입찰제도였습니다. 로마는 일정지역에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정해 놓은 다음에 가장 높은 세금을 내겠다는 사람에게 낙찰을 하는 제도였던 것입니다. 세금 징수원은 자기가 바치겠다고 말한 액수만 바치면 나면 나머지는 자기 몫이었습니다. 당시에 신문이나 방송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얼마를 세금을 내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또 세금 징수자가 자기 몫으로 돌아올 양이 얼마인지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본문이 쓰여질 당시에 로마에 사는 사람들은 2가지의 세금을 내어야만 했습니다. 공세와 국세가 그것입니다. 공세는 조세이고, 국세는 관세입니다. 공세에는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① 토지세가 있는데 이것은 농사지은 곡식의 1/10과 포도주나 과일을 농사한 사람은 1/5을 내었습니다. ② 소득세가 있었는데요 이것은 자기 소득의 1/100을 내었습니다. ③ 인두세가 있었는데요 14세에서 65세까지 남자에게서 반세겔씩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관세인 국세는 항구나 시장을 드나드는 상품에 대해서 수입세, 수출세 등의 세금을 매기고, 특정한 도로를 지나가는 마차 등에 대해서는 도로세 등을 내도록 했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어디서나 행인을 멈추게 하고 그의 보따리 안을 뒤적여 그 안에 있는 물건에 대해 세금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말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산 속에는 사나운 맹수가 있고, 거리에는 포악한 세리가 있다.\\\"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에 백성들이 일본 순사보다 더 싫어 했던 사람은 순사 밑에 빌붙어 순사의 발을 빨며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한국인이 세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또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세리는 면허증을 가진 강도다\\\" 세리가 얼마나 세금을 많이 걷어서 백성을 힘들게 했던지 \\\'공식적인 강도\\\'라고 했습니다. 이 세리가 기도드린 내용이 이러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이 세리는 자신의 행위가 주님 앞에서 어떤 상태인지를 알았고, 또 자신의 본질이 형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 두사람에 대한 주님의 평가가 이러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세리가 더 의롭다고 합니다. 여기에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심리학적이거나 정신의학적인 용어가 아니라 법률적인 용어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아는 용어로 말씀을 드리면 \\\'以信稱義\\\'입니다. 신약에 유일하게 나오는 개념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다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바리새인이 행위에 관한 법률적인 문제로 세리를 고소해서 재판을 걸었는데, 바리새인이 패소를 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당시에 자타가 공인하는 의인이요, 세리는 죄인입니다. 바리새인이 더 의롭다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뒤집어 진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얼마나 참담했겠습니까? 그러니 충격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별로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신칭의 은혜를 알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은 다 바리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세리라고 생각을 하고 이 말씀을 듣고, 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바리새인의 고통스러운 관점에 서 읽는다면 예수님의 원 의도에 훨씬 더 가까이 나아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9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이 비유는 \\\'또 자기를 죄인이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게\\\'가 아닙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정문일침을 놓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아상에 관한 문제 세 번째가 자아상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실 앞의 두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을 잘합니다. 취직도하고, 결혼도 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의 문제는 절대로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속사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이 바리새인의 결정적인 잘못은 바로 자신의 겉 사람―자신의 종교적인 행위―이 자신인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자신의 속사람에 대한 것을 정확하게 알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말로 가능하지만, 자기 속에 있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라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치심도 있고, 열등의식도 있고, 피해의식 등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쓴 뿌리가 되어 자기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또 괴로워합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역기능의 가정에서 자라 목사가 되었지만 자기정체성을 갖지 못한 성인아이의 고백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이분은 목사가 되었지만 아내를 구타를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나중에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 문제를 해결을 받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알콜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고백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렸을 때에 아버지가 술 심부름을 자주 시켰습니다. 그런데 가기가 싫습니다. 거기에서 수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술 심부름을 시킬 때, 그래도 큰 것으로 한 병 사 오너라 하면, 기분 좋게 다녀올텐데, 꼭 반병만 사오라고 합니다. 사실 가기가 싫은 이유가 그 가게의 주인집 딸이 자신의 동창입니다. 그러니 갈 때마다 부끄러운 것입니다. 더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 반병의 술을 외상으로 사오라고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분에서 생겼던 부정정인 감정은 이러한 것들이었습니다. 수치심, 열등감, 두려움, 공포심, 죄의식, 자신을 사랑하지 못함. 결단력이 없음. 성적인 탐닉, 흑백논리, 외로움, 은폐하기, 상습적인 거짓말, 우울증 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우리를 싸고 있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수용하고,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도 성인아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과부와 같은 포기하지 않는 삶의 자세와 바리새인과 같이 전문적인 실력을 기르며, 세리와 같은 신앙을 갖게 될 때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기도드리시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감사합니다. 비록 우리의 삶에 풀리지 아니하고, 더디 응답이 오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시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교하기 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주께서 구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 평생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나의 보배/ 고후4:7-10/ 청년회설교/ 2002-08-13
나의 보배 고후4:7-10 저는 지난주간에 비전과 열정의 사람 김춘근 박사의 삶을 그린「Why Me?」라 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과 제가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합니다. 김 박사는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 고, 페퍼다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4년만에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습니 다. 여러분! 김춘근 박사가 미국에서 어떻게 공부했을까요? 78시간 동안 3일 밤낮을 1분도 자지 않고 꼬박 새우면서 연구하고 페이퍼를 썼 습니다. 하루에 20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는 6년 동안 지독히 공부하는 과정에서 매일 평 균 3시간 반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 박사는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는 조금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박사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간경화와 간염으 로 일년 안에 죽을 것이라는 죽음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정치학 박사라는 신분으로 탄탄한 인생을 보장받은 김 박사는 기쁨을 채 누리 기도 전에 인생의 막이 내리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고는 그만 자 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내 뜻대로 살다가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벽에 부딪히면 \\\\\\\\\\\\\\\'아이쿠!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라 고 하지 않습니까? 사형선고를 받은 김 박사는 처절하게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와이 미(Why me?)\\\\\\\\\\\\\\\"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비 참하게 죽 어야 합니까?\\\\\\\\\\\\\\\" 그는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울부짖으며 살기 위해 자연식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에 귀를 기울이 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김 박사의 마음에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만약에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정말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 이시라면 내가 죽으면 이 젊은 나이에 왜 죽어야 하는지, 나의 병을 고쳐서 다 시 살게 하실 수는 없는지 대답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의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은 결심으로 굳어졌습니다. \\\\\\\\\\\\\\\"좋다. 하나님께 매달리자. 어차피 죽을 몸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절대로 산을 내려오지 않겠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얍복강의 야곱과 같은 각오로 자동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L.A. 동쪽에 있는 빅 베어 마운틴(Mt. Big Bear)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 조그마한 케빈(Cabin)을 빌려 거기에 머물면서 기도하기 시작했 습니다. \\\\\\\\\\\\\\\"하나님, 내가 죽으면 내 가족은 어떻게 합니까? 한국에서는 발을 붙이고 살수가 없어서 아내와 함께 돈 200불과 가방 셋을 가 지고 유학 와서 갖은 고생 끝에 박사학위를 받고 심한 경쟁을 물리치고 대학의 교수로 임명받아 이제는 최우수 교수까지 선정되었습니다. 교회의 집사로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면서 이 미국 땅에서 잘 살아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 왜 제가 이렇게 비참한 병으로 죽어야 합니까?\\\\\\\\\\\\\\\" 김 박사는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힘이 없어 목소리는 고작 새소리 정도였습니다. 너무나도 약한 상태였습니다. 몸은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리 몸이 가려운지 여기가 가려워 긁으면 저 곳이 가렵고, 또 저쪽이 가려 워 긁으면 이쪽이 가려웠습니다. 가려운 데를 긁으면 몸에 핏자국이 생기고, 피 가 나고, 배는 만삭된 여인처럼 팽팽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원망으로 울부짖던 김 박사는 갑자기 시편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큰 감동과 충격을 받습니다. 빅 베어 마운틴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보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국에 보내 주셔서 그 모든 역경을 이기고 열심히 노력하 여 학위도 받고 이제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자녀도 선물로 주셔서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교회 집사로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크리스천인 줄 아는데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으 면 지금까지 쌓아온 제 모든 지식과 재능이 헛되이 버려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 께도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마지막 궁지에 몰린 김 박사는 어쩔 수 없이 부르짖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서 나오는 지극히 이기적인 기도였습니다. 김 박사는 영어로 기도했는데 그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강한 말씀이 자신의 입술을 통해 영어로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네가 네 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육체적으로 죽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 정 네가 영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죽어 가는 것을 모르느냐?\\\\\\\\\\\\\\\" 이 한 마디 말에 김 박사는 엄청난 충격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이 입술에서 떨어지자마자 지금까지 그가 지은 모든 죄가 하 나하나 TV 스크린과 같이 그의 눈앞에 환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너무나도 분명하게 자신의 모든 죄가 하나하 나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이 죄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목록을 적었는데 무려 52페이지나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울면서 회개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다시 한 번 생명을 주시면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 는 삶을 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위대한 계획과 꿈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몸이 아 프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도전이 가슴 속 깊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에게는 네 생명이 그렇게도 가치가 있고 소중하기에 너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나의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였는데 너는 지금까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네 생명이 아무리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고 할지라도 누가 너를 위해 죽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너를 다시 나의 아들로 삼기 위하여 내 독생자, 죄도 없고 흠도 없는 나의 가장 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위해 죽게 하였다. 네 과거를 돌아보아라. 너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 너는 1955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오늘까지 무려 22년 동안 네 마음대 로 살아왔지. 나의 기대와 뜻대로 살지 않았다. 너는 나를 위해 22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가슴을 치게 하는 충격적인 도전에 김 박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제 나의 병을 회복시켜서 다시 한 번 생명을 주셔야 합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나의 영혼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고 믿기 때문에 꼭 천국에 들어갈 줄 믿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내 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나의 모든 죄가 정결하게 씻기어 내 마음이 흰눈보다 더 희게 된 것을 지금 하나님이 아십니다. 나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용한 나의 생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갚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살려 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그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복음에 빚진 자로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십시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원하시든 이제 주님께 헌신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를 받아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한 번만 더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는 넘어진 나무 그루터기를 붙잡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사생결단으로 담대하 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살려 주신다는 특별한 사인을 내게 보여주실 때까지 저는 죽어도 이 산에서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김 박사는 쇠약한 몸으로 5∼6시간 이상 몸부림치며 회개했습니다. 사생결단으 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부르짖었습니다. 먼동이 트기 시작할 때쯤이었습니다. 다섯 시 반 정도가 된 듯했습니다. 그때 기도 중에 김 박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얀 옷을 입으신 큰 분의 가슴에 내 얼굴이 깊이 파묻혀 있었고 그 분께서 나를 꼭 껴안으며 아주 잰틀하게 내 등을 세 번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 분은 내 등을 두드릴 때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용서한다\\\\\\\\\\\\\\\'(I forgive you, I forgive you, and I forgive you)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박사는 그 분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그렇게도 평안할 수가 없었 습니다. 김 박사는 마침내 외쳤습니다. \\\\\\\\\\\\\\\"이제 나는 살았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 에 세우셨도다\\\\\\\\\\\\\\\"(시편 118:5). 1977년 6월24일. 이 날은 김 박사의 인생을 B.C.와 A.D.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 었습니다. 치료 확신의 감격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한 날이 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김 박사는 완치되었습니다. 저는 김 박사의 간증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찬송가 469장의 2절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 갈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 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된 평화를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의 보배가 된 자들에게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 다. 여러분! 세상의 유명한 연예인도, 영화배우도, 박사학위를 가진 자도, 명예 있는 자도, 권세를 부리는 사람도, 물질이 많은 빌 게이츠 같은 사람도 건강을 잃어 버리면 다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사람의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분 이신 줄로 믿습니다. 죽음까지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승리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도 정복한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어떠한 문제와 상황이 온 다 하더라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가졌습니다(7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 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 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8∼10절). 사랑하는 목양교회 청년 여러분! 우리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십시다. 오늘이 여러분 인생에 예수님을 다시 만나 믿음의 획을 확실하게 긋는 날이 되 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늘 승리하는 청년 여러분들 되길 주님 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나의 보배/ 고후4:7-10/ 청년회설교/ 2002-08-13
나의 보배 고후4:7-10 저는 지난주간에 비전과 열정의 사람 김춘근 박사의 삶을 그린「Why Me?」라 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과 제가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합니다. 김 박사는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 고, 페퍼다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4년만에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습니 다. 여러분! 김춘근 박사가 미국에서 어떻게 공부했을까요? 78시간 동안 3일 밤낮을 1분도 자지 않고 꼬박 새우면서 연구하고 페이퍼를 썼 습니다. 하루에 20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은 보통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는 6년 동안 지독히 공부하는 과정에서 매일 평 균 3시간 반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 박사는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었더라면 하는 후회는 조금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박사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간경화와 간염으 로 일년 안에 죽을 것이라는 죽음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정치학 박사라는 신분으로 탄탄한 인생을 보장받은 김 박사는 기쁨을 채 누리 기도 전에 인생의 막이 내리게 될 것이라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고는 그만 자 리에 주저앉고 맙니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지 않습니까? 내 뜻대로 살다가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벽에 부딪히면 \\\\\\\\\\\\\\\'아이쿠!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와주세요\\\\\\\\\\\\\\\' 라 고 하지 않습니까? 사형선고를 받은 김 박사는 처절하게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와이 미(Why me?)\\\\\\\\\\\\\\\"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비 참하게 죽 어야 합니까?\\\\\\\\\\\\\\\" 그는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울부짖으며 살기 위해 자연식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에 귀를 기울이 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김 박사의 마음에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만약에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정말 나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 이시라면 내가 죽으면 이 젊은 나이에 왜 죽어야 하는지, 나의 병을 고쳐서 다 시 살게 하실 수는 없는지 대답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의 마음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은 결심으로 굳어졌습니다. \\\\\\\\\\\\\\\"좋다. 하나님께 매달리자. 어차피 죽을 몸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절대로 산을 내려오지 않겠다.\\\\\\\\\\\\\\\" 그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얍복강의 야곱과 같은 각오로 자동차로 두 시간 반을 달려 L.A. 동쪽에 있는 빅 베어 마운틴(Mt. Big Bear)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그 곳에 조그마한 케빈(Cabin)을 빌려 거기에 머물면서 기도하기 시작했 습니다. \\\\\\\\\\\\\\\"하나님, 내가 죽으면 내 가족은 어떻게 합니까? 한국에서는 발을 붙이고 살수가 없어서 아내와 함께 돈 200불과 가방 셋을 가 지고 유학 와서 갖은 고생 끝에 박사학위를 받고 심한 경쟁을 물리치고 대학의 교수로 임명받아 이제는 최우수 교수까지 선정되었습니다. 교회의 집사로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면서 이 미국 땅에서 잘 살아 보려고 하는데 하나님, 왜 제가 이렇게 비참한 병으로 죽어야 합니까?\\\\\\\\\\\\\\\" 김 박사는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소리를 질러도 힘이 없어 목소리는 고작 새소리 정도였습니다. 너무나도 약한 상태였습니다. 몸은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리 몸이 가려운지 여기가 가려워 긁으면 저 곳이 가렵고, 또 저쪽이 가려 워 긁으면 이쪽이 가려웠습니다. 가려운 데를 긁으면 몸에 핏자국이 생기고, 피 가 나고, 배는 만삭된 여인처럼 팽팽해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원망으로 울부짖던 김 박사는 갑자기 시편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시편을 읽으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큰 감동과 충격을 받습니다. 빅 베어 마운틴에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보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국에 보내 주셔서 그 모든 역경을 이기고 열심히 노력하 여 학위도 받고 이제 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자녀도 선물로 주셔서 아름다운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교회 집사로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크리스천인 줄 아는데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으 면 지금까지 쌓아온 제 모든 지식과 재능이 헛되이 버려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 께도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마지막 궁지에 몰린 김 박사는 어쩔 수 없이 부르짖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서 나오는 지극히 이기적인 기도였습니다. 김 박사는 영어로 기도했는데 그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하나님의 강한 말씀이 자신의 입술을 통해 영어로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네가 네 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육체적으로 죽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 정 네가 영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죽어 가는 것을 모르느냐?\\\\\\\\\\\\\\\" 이 한 마디 말에 김 박사는 엄청난 충격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이 입술에서 떨어지자마자 지금까지 그가 지은 모든 죄가 하 나하나 TV 스크린과 같이 그의 눈앞에 환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너무나도 분명하게 자신의 모든 죄가 하나하 나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나중에 그는 이 죄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처리하기 위하여 목록을 적었는데 무려 52페이지나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후 몇 시간 동안 울면서 회개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다시 한 번 생명을 주시면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 는 삶을 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이 아무리 위대한 계획과 꿈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몸이 아 프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도전이 가슴 속 깊이 터져 나왔습니다. \\\\\\\\\\\\\\\"나에게는 네 생명이 그렇게도 가치가 있고 소중하기에 너를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나의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게 하였는데 너는 지금까지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네 생명이 아무리 가치가 있고 소중하다고 할지라도 누가 너를 위해 죽을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너를 다시 나의 아들로 삼기 위하여 내 독생자, 죄도 없고 흠도 없는 나의 가장 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너를 위해 죽게 하였다. 네 과거를 돌아보아라. 너는 어떤 삶을 살았느냐? 너는 1955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오늘까지 무려 22년 동안 네 마음대 로 살아왔지. 나의 기대와 뜻대로 살지 않았다. 너는 나를 위해 22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 가슴을 치게 하는 충격적인 도전에 김 박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제 나의 병을 회복시켜서 다시 한 번 생명을 주셔야 합니다. 나는 이제 죽어도 나의 영혼이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고 믿기 때문에 꼭 천국에 들어갈 줄 믿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내 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나의 모든 죄가 정결하게 씻기어 내 마음이 흰눈보다 더 희게 된 것을 지금 하나님이 아십니다. 나는 진리 안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용한 나의 생을 회복하고 하나님께 갚을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살려 주셔야 합니다. 어떻게 그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복음에 빚진 자로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십시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원하시든 이제 주님께 헌신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를 받아주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한 번만 더 살게 해 주시옵소서!\\\\\\\\\\\\\\\" 그는 넘어진 나무 그루터기를 붙잡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사생결단으로 담대하 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살려 주신다는 특별한 사인을 내게 보여주실 때까지 저는 죽어도 이 산에서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김 박사는 쇠약한 몸으로 5∼6시간 이상 몸부림치며 회개했습니다. 사생결단으 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부르짖었습니다. 먼동이 트기 시작할 때쯤이었습니다. 다섯 시 반 정도가 된 듯했습니다. 그때 기도 중에 김 박사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얀 옷을 입으신 큰 분의 가슴에 내 얼굴이 깊이 파묻혀 있었고 그 분께서 나를 꼭 껴안으며 아주 잰틀하게 내 등을 세 번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 분은 내 등을 두드릴 때마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내가 너를 용서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용서한다\\\\\\\\\\\\\\\'(I forgive you, I forgive you, and I forgive you)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박사는 그 분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그렇게도 평안할 수가 없었 습니다. 김 박사는 마침내 외쳤습니다. \\\\\\\\\\\\\\\"이제 나는 살았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 에 세우셨도다\\\\\\\\\\\\\\\"(시편 118:5). 1977년 6월24일. 이 날은 김 박사의 인생을 B.C.와 A.D.로 나누는 분수령이 되 었습니다. 치료 확신의 감격과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한 날이 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김 박사는 완치되었습니다. 저는 김 박사의 간증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찬송가 469장의 2절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내 맘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 갈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 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된 평화를 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의 보배가 된 자들에게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 다. 여러분! 세상의 유명한 연예인도, 영화배우도, 박사학위를 가진 자도, 명예 있는 자도, 권세를 부리는 사람도, 물질이 많은 빌 게이츠 같은 사람도 건강을 잃어 버리면 다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사람의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보배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분 이신 줄로 믿습니다. 죽음까지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승리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도 정복한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어떠한 문제와 상황이 온 다 하더라도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가졌습니다(7절).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 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 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8∼10절). 사랑하는 목양교회 청년 여러분! 우리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영접하십시다. 오늘이 여러분 인생에 예수님을 다시 만나 믿음의 획을 확실하게 긋는 날이 되 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늘 승리하는 청년 여러분들 되길 주님 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내 증인이 되라/ 행1:3-11/ 청년회설교/ 전도설교/ 선교설교/ 2014-07-12
내 증인이 되라 행1:3-11 3절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시며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 주셨다. 4절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신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 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6절 사도들은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절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 8절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9절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는데 마침내 구름에 싸여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셨다. 10절-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흰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11절-이렇게 말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서론 존 그리샴 원작 소설 중에 “의뢰인”이라고 있습니다. 영화로도 나왔습니다. 그 책 표지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쉬잇! 입조심 해라, 얘야. 입을 열면 넌 죽어!” 단 돈 1달러짜리 변호, 그러나 거기에 감춰진 엄청난 비밀이 있습니다. 현존하는 지구촌 최고의 베스트셀러 메이커 존 그리샴이 당신의 심장과 머리를 또 다시 빌리러 왔습니다. 그 소설의 내용은 열한 살짜리 아이 ‘마크’가 어떤 범죄조직과 관련된 한 변호사의 자살 현장을 목격하고 나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어린아이지만 그 아이가 사건의 증인이 될 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문을 접근해서 재경청 해 봅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주님은 이 세상에서의 사역을 끝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제자들과 직접적인 만남은 마지막입니다. 모두들 주님과의 마지막 만남을 아쉬워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최후의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명령의 골자는 한 마디로 ‘주님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이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들이 명심하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명령인 것입니다. 이제 주제가 부상합니다. 이 말씀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의 증인이 되라’, 이 말씀은 쉽게 말하면 ‘나에 관하여 증거 하라’는 뜻입니다. 우선 증인은 정직해야 됩니다. 본대로 들은 대로 체험한 대로 증거 하는 것이 증인입니다. 거짓 증인은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가감합니다. 수없이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정직한 증인이 되기 위해 생명을 버렸습니다. 초대교회를 박해하던 박해자들은 교인들에게 이렇게 소곤거렸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고 얘기해라. 그리고 예수를 안 믿겠다고 한 번만 얘기해라. 그리하면 너의 생명을 안전하게 살려 주리라.’고. 그러나 부활의 사실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단 한 번만이라도 예수의 부활과 그 사랑에 대하여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대로 정직하게 시인하고 증거 했습니다. 그 결과로 수를 셀 수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리기도 했고 투옥되고 매를 맞고 외로운 섬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다가 들켜서 두들겨 맞거나, 남을 속이다가 투옥되고 남의 것을 홈치다가 생명을 잃는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진리를 증거 하다가 참 말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다면 이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 결코 부끄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라는 법정 가운데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세상은 그분을 범죄자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이제 우리는 그분을 유죄에서 무죄로 만들어야 할 이 땅의 증인들이다.” 증인이라는 뜻의 헬라어 마르튀스는 신약성경에서 34회 나오며, 일반 헬라어 문헌과 거의 같은 용법으로, “확신할 수 있는 사실들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와 “진리, 즉 확신하여 고백하는 진리에 대한 증인”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3:14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나라의 증인이셨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설명 말한다면 ‘하늘나라’를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그 하늘나라의 징표로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주제의 필요성 [국민일보] 99.03.23.자에는, “교회성장에 필수적인 것 중 하나는 바로 전도다. 특히 생활현장에서의 전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독교인 1천명을 대상으로 지난 1년간 누군가를 전도해 교회를 다니게 한 일이 있는가를 직업별로 물었다. 대개 30% 내외가 ‘전도한 적이 있다’고 대답해 아직도 전도가 활발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1년간 전도한 적 있나? 자영업(조사대상자 187명) 29.4% 블루칼라(155명) 28.4% 화이트칼라(169명) 29.0% 주부(307명) 26.4% 학생(103명) 30.1% 무직, 기타(79명) 31.6%” 주님은 본문에서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누가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증인의 자격입니다. 즉 어떻게 증인이 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증인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의 증인이라면 우리는 먼저 초대교회의 사도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리지널 증인이었습니다. 사건현장에 있었으니까요. 예수님 승천하시고 그들이 외쳤던 메시지는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게 사실이니까 그들은 사실을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아야 권능을 받고 비로소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건의 현장에 있었을지라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자기가 보고들은 것을 바로 말하려면 그것을 말할 어떤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난 옷 로비 청문회에서 모두 성경책에 손을 올려놓고 자기 말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분명히 거짓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이 보고들은 것을 말하려면 어떤 힘이 필요한데 그 힘을 바로 성령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8절을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자격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자격증이건 간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피나는 노력을 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그리고 자격고사에 합격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복음 증인의 자격은 성령 받고 권능을 받은 사람이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2천 년 전 십자가 처형이 일어났던 곳으로 데려갑니다. 2천 년 전의 사건을 오늘 나에게 현재화시킵니다.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지 못 했지만, 거기에 없었지만, 더욱 생생하게 그리고 더욱 절절하게 그 십자가의 사건을 체험하게 합니다. 빌리 그레함 전도단의 일원인 셔우드 워트(Sherwood Wirt) 박사는 우리가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1)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대개의 크리스천들은 “나는 겸손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교만하고 건방지고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할 수 있습니다’ 할 때 그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시고 ‘나는 못 합니다’라고 할 때 가까이 오셔서 ‘내가 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겸손한 자에게 임하십니다. 교만한 자에게 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영일 것입니다. (2) 나는 주와 함께 못 박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교만, 나의 아집, 나의 편견, 나의 죄, 나의 고비, 이런 것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성령은 임재하십니다. 내가 서야 할 자리에 주님이 서시고 내가 앉아야 할 자리에 주님이 앉으시고 내가 누워야 할 자리에 주님이 눕게 하셔야 합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성령은 임하지 않습니다. (3) 성령을 달라고 무릎 꿇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는 데 돌을 줄 부모가 없는 것처럼 너희가 성령을 구하는 데 왜 주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약4:2-3) 야고보 사도는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성령을 받으면 힘이 생깁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왕 앞에서도, 재판장 앞에서도 원수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마음 놓고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증인이 되려면 “성령 받고 권능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권능 받고 나니까 왕도 두렵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그립바 왕 앞에 섰을 때 일개 가난한 전도자가 아그립바 왕을 향하여 ‘당신도 나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원한다’고 소리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증인의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여기서 또 한 가지 기억하고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증인의 자격을 주님이 필요해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자격 조건은 다 갖추지 못했을지라도 이미 우리에게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라! 왜 가만 있느냐? 왜 잠잠하냐? 왜 너만 오느냐? 왜 다른 말은 잘 하면서 예수에 관해선 침묵을 지키느냐?” 만일 네가 잠잠하면 저 남산의 돌들이 소리 지르고 일어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조선일보 1998. 2. 21. 자에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1950년 6.25가 발발 했을 때 김대운 전도사는 평양의 장진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었다. 평양에서는 당국의 지시로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고 기독교인들은 체포되어 끌려가기 시작했다. 김 전도사는 체포당하여 사리원으로 끌려갔다. 악랄한 내무서원들로부터 회유를 받아야 했다. “예수만 믿지 않는다고 하시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예수 때문에 죽어야 되겠는가?” 그러나 김 전도사는 신앙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주님을 배반합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분을 믿어야 삽니다. 이것이 생명의 비밀입니다.” 그때였다. 한 내무서원이 소리쳤다. “저 새끼 혀를 잘라 버려.” 몇 사람의 젊은이들이 김전도사에게 달려들어 혀를 늘여 칼로 잘라 버렸다. 입에서 피를 토해 내는 김 전도사는 말을 할 수 없자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쳐들었다. 피는 그 입에서 폭포처럼 솟구쳤다. 상관인 듯한 자가 또 한 번 명령했다. “저 자식 우리말 듣지 않는 저 귀를 잘라 버려.” 젊은이들은 또 다시 달려들어 귀까지 잘랐다. 김 전도사는 그래도 지지 않고 십자가 성호를 그었다.” 주님은 우리를 한 번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의 삶은 예수께서 자기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사신 주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온전히 우리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서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증인의 일을 감당케 하기 위하여 이곳에 불러 주셨습니다. 이제 청년회가 제2회 필리핀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왜 필리핀까지 갑니까? 주님이 가라고 하셨으니까 가는 겁니다. 해외여행 한 번 하고 싶어서라면 포기하세요! 가지 못하는 분들도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보내는 사람 없이 어찌 갈 수 있겠습니까? 행13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실라를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 선교사였습니다.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만일 내가 꼭 전도해야 할 그 어떤 사람에게 전도하지 않으면 그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만, 나는 그에게 전도하지 않은 죗값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그에게 전도하지 않음으로 그가 멸망을 받게 된다면 나는 그 사람의 피 값을 책임져야 된다는 이 엄숙한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 나라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확장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사탄의 방해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기십시오! 승리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들고 전진하십시오! 주님의 증인이 되십시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패배한 세력입니다. 이상섭 목사(광암교회)
너희 젊은이들이여 환상을 보라/ 행2:1-/ SFC주일설교
너희 젊은이들이여 환상을 보라 행2:1 오늘은 우리 총회적으로 지키는 SFC 주일이다. SFC는 『Student For Christ』의 약자로서 쉽게 말하자면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 조직된 \"학생회\"이다. 각 지교회의 SFC 신앙 운동원이 교회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학교를 복음화시키는 핵심 요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 활동을 제대로 하자는 운동이다.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성경 중심』의 토대 위에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신앙생활도 구축해 가자는 학생 신앙 운동원들의 복음화 운동이다. 무진장의 보고로 가득한 학교를 복음화시킴으로 조국의 복음화의 기초를 놓자는 운동이다. 우리 교회도 남들처럼 큰 조직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곧 Koram Deo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역사로 적어도 15개국 이상의 방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가 확실한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하나님이 친히 증거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내용은 [말세]에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자녀들의 예언], [젊은이들의 환상], [늙은이들의 꿈]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이 중에서도 [젊은이들의 환상] 부분을 살펴 보고져 한다. \"환상\"이라 함은 \"꿈\"과는 다른 것이다. 『너희 젊은이들이여 환상을 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쫓아 가보자. 1.환상(Vision)이란 무엇인가? 본문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환상(Vision)과 꿈(Dream)은 다르다. 환상(Vision)은 정신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보는 것이다. 기도 중에나, 묵상 중에나,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임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변화산 사건(마17:1- ), 엘리사벳의 일(눅1:22), 다메섹 도상의 사울(행9:4), 아나니아의 일(행9:10), 고넬료의 일(행10:3), 베드로의 환상(행10), 아브라함의 경우(창15:1- ), 사도 요한의 경우(계1:10) 등등이다. 꿈(Dream)은 잠든 상태 곧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꿈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야곱의 꿈(창28:12), 요셉의 꿈(창37:5), 바로의 꿈(창41:25), 다니엘의 꿈(단7:1), 느부갓네살의 꿈(단2:1), 요셉의 꿈(마1:20, 2:22), 동방박사들의 꿈(마2:12), 빌라도 총독의 아내의 꿈(마27:19) 등등이다. 2.환상(Vision)을 본 사람들 성경에는 환상을 보고 그 환상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환상은 그들에게 소망이었고, 꿈이었다. 그 꿈(Vision)을 현실로 이룩해 낸 사람들이다. ⑴.사무엘이 있다. 사무엘상 3: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했다. 사무엘의 시대적 상황이 [말세]를 연상케 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상]도-(환상)- 흔치 않았다고 한다. 아모스 8: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다. 말씀의 기갈 시대는 엘리 대제사장으로 끝을 맺고, 사무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짐이 없이 다 이루어졌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존경하고 따랐다. 이처럼 환상(Vision)을 보고, 그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환상이 하나님의 계시이기에, 진실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기에 남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존경과 신임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⑵.아브라함이 있다. 창세기 15:1절에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다. 창세기 12장의 약속의 땅과 축복을 다시금 [이상] 중에 확인시켜 주셨다. 창세기 15: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했다. 밤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그처럼 많은 자손의 환상을 주셨다. 아브라함은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그 환상을 되새기고, 그 환상을 생각하며 또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삶이었다. 그 환상을 잊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그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또 믿음의 조상으로 밤 하늘의 뭇별 같이 셀 수 없는 후손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날마다 환상(Vision)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꿈(Vision)을 이루게 된다. ⑶.다니엘이 있다. 다니엘 10:14절에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대저 이 이상은 오래 후의 일이니라\"고 했다. 다니엘도 요셉처럼 꿈 가지고 끔을 먹고 산 사람이다. 바벨론, 메데, 파사 제국의 총리로서 그 시대의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환상(Vision)을 보고,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의 성공한 모습이다. ⑷.사도 요한이 있다. 요한 계시록 1:10-11절에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라고 했다. 사도 요한의 본 환상(Vision)은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다. 실로 우리의 관심은 \"장차 될 일\"에 맞추어져 있다고 하겠다. 적어도 [성도]라면 사도 요한의 \"환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에, 그것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있고, 그 갈림길을 결정지을 대환란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신앙으로 그 대환란을 통과할 수 있을까....』에 자신이 없기에 관심이 더하다. 우리가 싫든 좋든, 또 불신자가 믿든 말든, 과학자들이 인정하든 인정 않든, 거기에 상관없이 사도 요한의 환상(Vision)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의 환상( Vision)은 사도 요한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장차 될 일\"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주신 환상(Vision)이다. 곧 [말세]를 위해 주신 말씀이요, 계시이다. 3.환상(Vision)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더욱 필요하다. 본문 2: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세상 끝날이 가까워 오면 올수록 마귀 사탄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발버둥치게 된다. 어떻게 하든지 택하신 자라도 빼내어 갈려고 온갖 수단을 다 부린다(마24:24). 요한 계시록 12:12절에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고 했다.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여의치 않아 땅으로 내려온 것이다. 땅에 사는 인간을 동원하기 위함이다. 얼마 남지 않은 자기의 때에 최후의 일전을 펼치려는 마귀인데.... 자기의 졸개로 동원이 안되면 그 얼마나 가혹한 고통을 주겠는가..... 이 대환란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Vision)이 없이는, 저 천국의 소망이 없이는 이겨낼 엄두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말세]에는 이 환상(Vision)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4.환상(Vision)은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심으로 보게 된다 본문 17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다. 진정한 의미의 환상(Vision)은 환상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상이 \"현실\"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속에 \"성취되지\" 않는 환상은 개꿈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림의 떡과 같은 것이다. 환상(Vision)이 환상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 환상(Vision)이 누구에게서 나왔느냐? 곧 [환상의 출처]가 중요하다. 그 환상의 성취 능력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Vision의 제시가 인간에게서 라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자체의 \"믿음성\"도 문제이지만 인간이 가진 능력의 한계도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판의 Vision 제시는 과연 성취 능력이 있는가? 실현 가능성을 먼저 저울질 해 보아야 한다. 머지 않아 대선 정국이 되겠지만 우리 나라 정치판의 Vision 제시는 모두가 헛 구호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 뒤덮여 있다. 국민들이 너무나 많이 속았기 때문에.... 거짓말에 속고, 떠벌림에 속고.... 사탕발림에도 속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이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시다. \"믿음성\"이 없는 분도 아니요, \"능력\"이 없으신 분도 아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이 불러 다 쓰시는 분이시다(롬4:17).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자기 이름을 걸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히6:18).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환상(Vision)은 바로 이런 확실한 약속이 있는 환상이라야 한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어 [환상(Vision)]을 가지게 하신다.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향하여, [말세]가 가까워 올수록 더욱 필요하다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5.환상(Vision)은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 본문 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고 했다. [말세]에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어 [환상(Vision)]을 가지게 하시는 이유가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나사렛 예수를 나의 주요,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예수를 \"주\"로 부를 수 있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으로 다 된 것은 아니다. 진정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 성령을 부어 주시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2:4) 하는 고백이 아닐 때는 \"주\"로 인한 환란이나 시련이 닥쳐올 때에,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마13:21-22) 결국 \"주\"를 버리게 된다. 저 가룟 유다처럼.....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하나님이 그를 \"주\"와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하도록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 환상(Vision)이 아닌, 그 환상이 이루어진 생생한 장면을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노라고 유대인을 향하여 베드로가 외치고 있다. 이 베드로의 외침이 바로 [학원의 복음화]를 위해 외쳐야 할 우리 SFC 학생 신앙 운동원들의 [외침]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가 아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가 되어야 한다. 빌립보 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SFC 학생 신앙 운동원들도 『젊은이들이여 환상(Vision)을 보라』 하시는 말씀을 따라 그 환상(Vision)을 보고, 가지고, 그 환상을 쫓아가며 살아감으로 『우리도 가능했노라!』 고백하는 [주의 젊은이들]이 되자. 주 따르는 길, 주를 위해 사는 길은, 아무런 대가도 필요 없는 길이다. 이미 우리는 그 대가를 받았다. 나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산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 당신의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드린 주님이시다. 영영 죽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당신의 몸 드려 영생의 길 열어 주신 주님이시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이에서 더 무엇 바랄게 있을까.... 이 몸바쳐, 이 생명 다하도록 주를 위해 살리라.....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