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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선교여행에서의 귀환/ 행14:19-28/ 2010-02-23
1차 선교여행에서의 귀환 행14:19-28 <서론> 바울과 바나바의 일차 선교 여행의 최종 지점은 더베였습니다. 더베에서는 평온한 분위기 가운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고 귀환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I.루스드라에서 당한 박해(19-22) 1.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 1)전도의 방해자들 루스드라에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도는 열광적인 환대 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실을 밝히기에 진땀을 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사도들의 뒤를 밟 아 그들이 하는 복음 사역을 영원히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단단히 벼르고 찾아 왔던 것입니다. (요일3: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라고 사도 요 한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2)전도자가 받는 박해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땅끝까지 복음 을 전파하여 나의 증인이 되라고 명령하신 그 말씀을 따르는 데는 너무나 많은 어려 움이 뒤따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후3:11)\\\"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 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박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2.돌로 쳐 성밖에 버림받은 바울 루스드라에 와서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를 방해한 유대인들은 무곡상인들 이었는지 도 모릅니다. 이곳에서 안디옥까지는 약 70Km 정도의 거리입니다. 그러므로 밀이 많 이 나는 루스드라 지방에 안지옥과 이고니온 성에 밀을 사러 오는 상인들이 많았습 니다. 이들 중에 유대교에 충실한 유대인 출신 상인들이 주민들을 충동질 시켜 더 이상 전도하지 못하도록 돌로 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돌에 무참히 맞은 바울은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줄 알 고 성 밖으로 끌어내어 버렸습니다. 루스드라는 로마의 식민지였으므로 소동을 일으 킨 책임이 주어지면 질서문란죄로 가혹한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였습니 다. 유대인들의 이같은 반도덕적이고 포악함은 어리석은 외식의 맹신이 낳은 비극이 었습니다. 3.다시 일어나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순교정신 1)다시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 죽은 줄로 알았던 바울이 아직 사명이 남아 있었던 지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 습니다. 사명이 끝나지 않으면 결코 생명이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주 님께 맡기는 순교 정신으로 다시 일어나 계속하여 사명을 밀고 나갔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세력이 어디서 다시 달려들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지 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순교의 정신으로 루스드라를 떠나 새로이 말씀을 전할 곳인 더베로 향해 갔습니다. 더베는 루스드라에서 약 96Km 떨어진 곳입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굴복해 버리는 나약한 믿음으로 오직 명예와 안락만을 추구 하여 평안하고 안락한 사역지로만 찾으려는 오늘날의 사역자들이 있다면 하나님 보 시기에 얼마나 어리석고 딱하겠습니까? 빈들이나 아골 꼴짜기 어느 곳이든지 복음의 나팔을 힘차게 부는 충성된 종들을 오늘도 주님은 찾으십니다. 2)전도하였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바울 더베 동쪽에는 다소 산맥의 고개를 넘어 길리기아로 가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갈라디아 도시들의 새신자들에 대한 관심 때문에 루스드라와 이고 니온과 안디옥을 다시 방문하엿습니다. 복음의 씨가 견고히 자라나도록 물을 주고 김을 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제자들을 방문하여 마음을 굳게 하고 믿음에 서라고 권면 였습니 다. 초신자는 흔들리기 쉽습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도 믿음이 요동합니다. 그래 서 미리 믿음 이후에 생기는 환난과 시험에 대하여 가르치고 미리 대비하여 믿음을 굳게하여 흔들리지 말것을 권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 을 겪어야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22절) 성도는 ( 롬 8: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 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환난을 잘 지나가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예수 안에서 주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의인에게 고난이 많으나, 하 나님께서는 이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시34:19). II.제 1차 선교 여행의 보고(23-28) 1.각 교회에서의 장로의 임직 1)장로들을 세움 사도 바울은 제 1차 전도 여행의 귀로에서 새로이 이루어진 그리스도인 집단마 다 장로들을 뽐아 세웁니다. 교회에 장로를 세운 것은 교회란? 교제를 통하여 연합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막중한 사명자를 세우는데 있 어서 금식기도 하여 교회의 주인되신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2.안디옥으로 귀환하여 선교보고를 함 1)하나님이 함께 행하심에 대하여 증거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과같이 선교에서 큰 결실을 맺은 두 사도의 선교보 고는 이들의 후원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케 해 주었습 니다. 2)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의 문을 여심을 증거 <결론> 복음을 위하여 쓰임받는 바울과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나타 나 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이같이 복음에 쓰 임받기를 원하십니다.
1차 선교여행의 사역과 결과/ 행14:19-28/ 2001-09-18
1차 선교여행의 사역과 결과 행14:19-28 그렇습니다. 믿음은 씨앗입니다. 믿음은 어떤 역경에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 맺히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 속에 믿음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우리 속에 믿음이 있음을 즐거워 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믿음이 있음으로 감사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므로 탄식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상황을 맞이하더라도 믿음을 더욱 불일듯하게 하게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것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이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를 통하여 선교사로 파송받았을 때 그들은 성령의 지시인 줄 알고 순종했습니다. 그들이 이방 지역으로 복음 그것은 아무나 쉽게 또는 간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그러므로 그를 믿어야 한다는 내용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섰습니다. 예상대로 많은 핍박이 다가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고난을 이길 힘도 권력도 돈도 없었습니다. 저들이 때리면 그냥 맞아야 했습니다. 쫓아내면 쫓겨가야 했습니다. 이들이 당한 고난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저들이 갖지 아니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역을 마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는 맡은 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부족하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을 믿었습니다. 1. 본문 19- 20절에서 바울의 사역은 계속되는 고난의 연속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간교하고 끈질긴 면을 보여주는 것은 19절에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라는 구절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버려두고 먼 곳에서 부터 와서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간교합니다. 사탄은 방해의 앞잡이입니다. 결국 바울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울이 돌에 맞을 때 예루살렘에서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을 증거하던 스데반의 그 모습이 생각났을 겁니다. 그는 돌에 맞아 고통의 쓰라림이 다가올 때 무엇이 위대한 것인줄 알았습니다. 스데반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고 그리고 이 복음의 확장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인 줄 알았습니다. 고난 그것은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아무렇게나 파생된 단어는 아니었음이 이해됩니다. 모든 인간이 고난을 당하는 것은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후예는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고난당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 양식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벤츠 650을 구입하지 못하여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포장마차를 시작할 돈이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줄이기 위하여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몸무게를 늘리기 위하여 고민합니다. 어떤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고민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합니다. 지금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우리 중에도 육신의 질고로 고통당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건강한대도 불구하고 염려로 고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인생의 삶은 고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공통적으로 고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일 수 밖에 없는 인생 삶에 있어서 보람있는 고생이 있고 허무한 고생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를 위하여 혹은 무엇을 위하여 일하는가에 따라서 달아집니다. 우리의 고난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하여 일 할 때는 보람이 있습니다. 그 수고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연단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말하기를 모든 훈련이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도리어 쓰라린 것으로 생각되지만 나중에는 이것으로 연단받은 사람들에게 의의 화평한 열매를 맺게하여 준다고 했습니다(히12: 11). 고난으로 연단받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다면 그 고생은 고생이 아닙니다. 야고보 장로도 말하기를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연단이 인내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내력을 온전히 발휘할 때 조금도 결함이 없는 성숙하고 원만한 성도가 된다고 했습니다(약1: 2- 4).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다 알고 계시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그 말씀을 붙잡고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충성하는 자에게는 정녕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계2: 10). 우리가 힘들게 정상을 향하여 오르고 있을 때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 일수록 더욱 조심하여 합니다. 더욱 신실된 자세로 일관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항상 어떤 함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공의 길로 나아갈 때 더욱 심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패와 좌절 고통과 탄식의 때가 더욱 참담할수록 우리가 나아갈 앞 길을 주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오히려 개인 뿐만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게 합니다. 땅의 것 뿐 아니라 하늘의 것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2. 본문 20- 23절에서 고난이 계속되는 사역이었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새로운 각오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더욱 새롭게 조직하였습니다. 온 교회가 금식한 후에 장로들을 세웠습니다. 지도자들을 통하여 교회를 자치하도록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일은 유대권 밖에 있는 교회의 첫 번째 조직이었습니다. 요한 위슬레가 광산촌을 돌아다니며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 마다 설교했습니다. 그 후 어떤 유명한 목회자가 그 지역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깜짝 놀랄 일을 발견하였습니다. 탄광에 사는 그들의 모습이 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집들은 아담하고 깨끗했습니다. 사람들은 말쑥하고 친절과 웃음이 넘쳤습니다. 어떻게 하여 이곳이 이렇게 변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은 \\\"여러 해 전에 요한 웨슬레가 이곳에 와서 설교를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아울러 교회의 조직은 필요합니다. 그 조직을 통하여 성도의 결속을 듣든히 하고 말씀에 굳게 서게 합니다. 바울이 개척한 교회를 돌아보며 장로를 세워야 된다는 생각을 했을 때 바나바가 자신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한 일이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유력한 사람이 교회 성도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새로운 일군이 공동체 안에서 속히 연합할 수 있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신앙의 공동체는 더욱 견고히 서 가는 겁니다. 유력한 지도자를 갖는다는 것은 교회로서도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도자들을 통하여 교회는 여간한 어려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만약 교회에 든든한 지도자가 서 있지 않을 때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그 단체는 와해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핍박의 수난 속에서도 교회의 성장과 장래를 기억하여 지도자를 산택하여 세운 겁니다. 고난 속에서도 장래를 기억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은 보장된 미래가 있습니다. 미국에 1920년대 말 경제적인 한파가 몰아칠 때 많은 사람들은 움추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의 때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하여 커다란 프로젝트를 꿈꾸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꿈은 이렇게 어려울 때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세계최대의 건물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과연 시도했습니다. 미국의 뉴욕 맨허턴에 세워진 102층 381M 에 달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그것입니다. 이 빌딩은 1931년에 완성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한 사람의 각오와 실천은 세계적인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직장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각오와 즉거운 마음으로 교회를 조직하던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이런 원리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대가 넓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둑의 세계 1인자의 자리를 고수하는 이창호 9단은 가로 42. 5, 세로 45. 5Cm 밖에 안되는 좁은 공간에서 돈도 명예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마이다 아키 라는 쇼와여대 재학생은 전공이 교사 지망생으로 공부했습니다. 이 소녀의 꿈은 애완동물을 어떻게 하면 늘 함께 데리고 다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꿈이 디지털 애완동물 다마곳치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아키 양은 고액 납세자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사회 정치적으로 혼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의 때 일수록 우리의 각오는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추스러야 합니다. 3. 본문 24- 25절에서는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역을 계속하는 전도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매맞은 장소 배척받은 받은 장소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 전도자의 숭고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도 어디든지 가야 할 하나님의 전령의 사명을 다시한번 자각하게 됩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철저한 복음의 사람들로 무장하게 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이들은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였을까요? 그것은 구원의 은총이었습니다. 생명을 얻었다는 구원의 감격이 이들을 이렇게 달라지게 합니다. 이들을 달라지게 한 것은 하늘나라의 보상이었습니다. 이들을 이렇게 달라지게 한 것은 이 복음 만이 나누어진 인류, 전쟁으로 죽이고 파괴하는 인류를 구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이들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는 고백이었습니다(고전9: 16). 바울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께서 아직 땅 위의 사명이 있는 바울을 살리셨습니다. 생명이 돌아온 바울은 비틀거리는 몸으로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튼날 더베로 갔습니다. 그 거리는 96Km입니다. 그 먼거리를 피자국이 선명한 몸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바울의 일행을 생각하여 보세요. 어떻게 그런 몸으로 그 먼거리를 걸어갈 수 있을까? 그가 그렇게 초인적인 용기와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는 고백때문이었습니다(갈6: 17).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러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그곳 더베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로 얻었다고 했습니다(행14: 21). 그리고 바울은 더베에서 귀중한 믿음의 동지 가이오를 얻었습니다(행20: 4). 이러한 믿음의 열매가 있기 때문에 루스드라에서 죽을 뻔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다시 찾아가는 것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이고니온으로 다시 찾아갑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다시 찾아갑니다.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길은 해상을 이용하면 훨신 간편하고 수월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한 것 보다는 주님을 어떻게 증거하며, 복음으로 얻은 성도들을 어떻게 지도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만 고난을 당하였던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형제들을 향하여 22절에서 권면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하였습니다. ? 후에 바울은 딤후 3: 11-12에서 말하기를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힌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앞에 닥치는 무섭고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러한 환경에 굴하여 주저 앉아있어서는 안됩니다. 분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엘리야가 죽기를 작정하고 로뎀나무 아래 앉아 있을 때 일어나 먹어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들을 일으켜 세워주시고 다시금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앞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예수 증거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힘있게 증거하여야 합니다. 이보다 자랑스러운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보다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입니다. 4. 본문 26-27절에서는 파송한 교회 앞에 사역을 보고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파송받은 교회에 사역을 보고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불원간에 하나님 앞에 서게되고 우리의 사역을 보고할 때가 있음을 기억하고 맡겨진 일에 신실하게 임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보고하는 중에 27절 말미에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했습니다. 행11: 18에서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고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27절에서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여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이나 바울이 전한 복음의 본질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으로 동일합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우리가 구원얻는 것은 다름아닌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어진 일입니다. 이와같은 아름다운 보고를 드릴 곳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서운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세상적으로 성공한 다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수고에 대하여 누가 인정해 줍니까? 세상적으로 지위가 높아지고 재물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것이 그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어떤 유익도 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수고를 하나님은 인정하십니다. 성도의 눈물까지도 주의 병에 담아두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주를 위하여 당하는 수고를 피하지 마세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것이 내게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남보다 먼저 감당할려는 자세로 임하여야 합니다. 물질의 봉사든지, 몸으로 봉사하든지 항상 앞장서서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5. 본문 28절에서는 즐거운 휴식의 넉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위대한 전도자에게 쉴 때가 왔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충전의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닙니다.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품에서 이루어집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안식의 때를 바라보며 힘을 다하여 충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21세기 보스톤의 선교 비전/ 행2:1-14/ 2001-12-08
21세기 보스톤의 선교 비전 행2:1-14 <바벨탑의 저주가 풀린 오순절> 두 주 전에 연합 예배를 드릴 때에, 바벨탑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교만과 불순종과 불신앙 가운데 일치단결하여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흩으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의 바벨탑 사건은 신약의 오순절과 연결이 됩니다. 오순절에 바벨탑의 저주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안 통하면 대화가 끊어지고,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가 끊어집니다. 말이 통하지 아니하면, 이질감이 생깁니다. 단절과 소외와 불화가 싹트게 됩니다. 바벨탑 이후에 인간들은 흩어졌고, 불신의 벽을 쌓으며, 분쟁과 다툼과 전쟁의 역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에,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던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바벨탑의 저주가 풀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제는 서로 대화로 통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주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언어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이처럼 하나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3절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하나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순절에 교회가 생기다> 오순절은 교회의 출발이었습니다.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르매” 라고 하였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은 오순절에 오셨습니다. 오순절은 유월절과 장막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오순이란 50이란 뜻으로,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일주일이 일곱번 지나야 한다는 뜻으로 칠칠절이라고도 하였고, 처음 수확한 밀을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이므로 맥추절 혹은 초실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바로 이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때에, 이렇게 멋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신 때도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유월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날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속죄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교회가 탄생하는 교회의 생일을 첫 열매를 거두던 오순절로 정하셨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첫 열매로 생겨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때를 정하시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방언> 오늘 본문에 보면,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실 때에 세가지 현상이 일어 났습니다. 첫째는 바람이고, 둘째는 불, 그리고 셋째는 방언이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 모여있던 120 문도는 귀로 바람 소리를 들었고, 눈으로 불을 보았으며, 입으로 방언을 말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두가지 방언이 나오는데, 먼저 고린도전서 14장에 나오는 방언은 하나님과 내가 대화하는 비밀스러운 방언입니다. 이 방언은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고, 통역자를 세워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혹은 방언하는 사람이 통역의 은사를 겸하여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통역의 은사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말씀하기를, 나도 너희들보다 더 많은 방언을 말하지만, 교회에서 다른 사람이 듣는 데에서는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방언에 익숙지 않은 초신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절제하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28절에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그에 비해서 오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방언은 외국어입니다. 열방으로부터 온 각 나라 사람들이 그들의 방언을 알아 들었습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외국어로 방언을 하였습니다.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은 자기가 사는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갈릴리 사람들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로마와 그레데 아라비아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땅끝에서 몰려오는 사람들> 예루살렘에 세계 각국에 살던 유대인들이 모였던 것처럼, 오늘날 세계 각국의 다양한 민족들이 땅끝으로부터 미국으로 오고 있습니다. 저는 단 장로님으로부터 이 교회 건물이 1950년에 세워졌다고 들었습니다. 1950년이면 한국에 육이오 사변이 나던 해입니다. 당시에 이 웨슬리 땅은 물론 보스톤 지역을 통털어서 한국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저희 고모님이 1953년에 보스톤에 유학을 오셨는데, 당시에 이곳의 한국 사람이 손 꼽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Wellesley Baptist Church 의 주일 예배에 한국 목사가 설교를 하고, 그 한국말 설교를 화란 장로님이 영어로 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M.I.T.는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가 아니라, Made In Taiwan을 뜻한다고 합니다. M.I.T.에 중국 학생이 그렇게 많다는 뜻입니다. 세계 모든 족속들이 공부하기 위하여 보스톤으로 옵니다. 미국은 원래 자연의 축복을 받은 나라인데, 이제는 인적 자원의 축복까지 받고 있습니다. 또 보스톤의 집 값이 자꾸 올라가기 때문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물질의 축복까지 받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 보십시오. 땅끝에서 온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 똑똑한 사람들이요, 다시 땅끝으로 돌아가서 각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선교의 비젼> 세계화 시대, 21세기의 보스톤에 사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새로운 선교의 비젼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들이 이슬람권에 들어가서 몇년동안 몰래 몰래 선교해서 개종자를 한 명 얻기도 힘듭니다. 제 친구 선교사는 리비아로 들어가서 6년 동안 1차 사역을 마쳤습니다. 몇 명의 개종자를 얻으신지 아십니까? 한 명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요르단으로 들어 갔습니다. 또 다른 저의 친구 선교사는 터어키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겨우 몇 명의 개종자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전도하는 장면이 텔레비젼에 방송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1년 전에 탈출하였습니다.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땅 끝으로 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땅 끝으로 가서 개종자를 얻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땅 끝에서 온 사람들을 만납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그 중에 한 사람을 전도하면, 선교사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날 역사상 첫 번째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물론 유대인의 말로 설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청중들은 모두 베드로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공영어는 히브리어 혹은 아람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설교는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의 세계 공영어는 헬라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영어는 점점 더 세계의 공영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어를 배우려는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영어권에 자녀들을 보내서 공부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독일어나 불어 학술지들이 영어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계와 대화를 하려면, 영어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보스톤에 오는 유학생들은 다 영어를 할 줄 압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영어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영어로 성경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언어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영어로 설교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전한 말씀은 그 사람들을 통하여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또한 베드로의 설교는 세계 공영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로 태어난 오순절 교회의 선교 비젼입니다. 또한 세계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모이는 보스톤에 위치한 우리 두 교회의 선교 비젼이기도 합니다.
333운동과 777운동/ 예수 세계화 운동/ 마28:10-20/ 석원태 목사/ 경향교회/ 선교설교/ 2005-02-21
333운동과 777운동/ 예수 세계화 운동 마28:10-20 한 세기의 복음 선교를 빛냈던 리빙스톤(David Levingstone)은 확실히 위대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한평생 아프리카 영혼을 위하여 살다가 거기서 죽었습니다. 숨진 그의 시신은 간신히 아프리카에서 그의 조국인 영국으로 옮겨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때 영국의 수많은 군중들은 그의 빛난 생애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자원해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파를 이루어 무언의 행진을 하였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혼자서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슬피 울고 있는 그 노인은 누구였던가? 그 슬픔의 눈물이 리빙스톤을 향한 애도였던가? 그 노인은 바로 리빙스톤과 영국에서 함께 있을 때 가장 절친한 친 구였습니다. 그는 리빙스톤이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가겠다고 나섰을 때, 화를 내면서 리빙스톤에게 미쳤다고 욕질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그는 영국에 남아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친구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의 구령운동에 결실이 많아 영의 부자가 되었 습니다. 아프리카에 있는 친구 리빙스톤은 모든 영국 사람들에게 큰사랑을 받고 높이, 널리 알려지고 또 그의 활동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부자로 평안하 게 살면서도 아무런 영향력이나 이름도 없이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던 두 사람 중에서 리빙스톤이 먼저 죽은 시체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오던 그날에, 영국의 군중들이 그의 장례행렬 앞으로 운집하는 장면을 보고 그 친구는 크게 슬퍼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그 울음의 내용은 \\\\\\\'나는 정말 소망없는 세상을 살았구나!\\\\\\\' 하는 자폭감과 좌절감과 허탈감 때문이었습니다. 자신과 세상의 안일만을 위해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낭비적 삶이었던가? 내용 없는 삶이었던가? 무의미의 삶이었던가를 자책하는 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경향인은 이와 같은 한 노인의 울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333운동과 777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메시지의 제목 \\\\\\\'333운동과 777운동\\\\\\\'은 경향인이 받 은 예수 세계화 운동의 숫자적 표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21세기를 위대하신 예수 세기로 만들기 위한 우리 경향인의 삶의 모토(motto)입니다. Ⅰ. 333운동은 하나님이 뜻하시는 개인 구령운동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3\\\\\\\'이라고 하는 수 (數)는 \\\\\\\'수\\\\\\\' 그 자체가 지닌 의미보다는 상징적,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컨대 이사야 6장 3절에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하는 경우 \\\\\\\'거룩하다\\\\\\\'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데,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3\\\\\\\'의 수였습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받은 매년 세 번의 절기나, 또 3년 된 희생제물을 말할 때의 수였습니다(출 23:14-17).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제사장들의 반복되는 3중 축복의 수와 관계하고 있음을 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는…」, 「…여호와는 원하노라」고 하는 경우입니다(민 6:23-27). 신약에 나타난 이 \\\\\\\'3\\\\\\\'의 수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 나타난 삼위일체의 계 시적 수와 관계되었습니다(마 3:16-17).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3일만에 다시 사신 승리의 부활과 관계된 수이기도 합니다(고전 15:4). 더욱이 그의 위대한 지상(至上) 선교 명령 중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사실에서 다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계시함에 표현되었습니다(마 28:19). 마침내 이것은 신약교회에 허락된 사도적 축도에서 나타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함에서 삼위의 하나님으로 표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3\\\\\\\'은 사실상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나타내는 수요,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구원운동과 관계된 영적 상징의 수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경향의 시대를 맞 이하면서(1994년) 333운동이라고 하는 숫자적 표기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상 우리 경향교회가 기도하고 바라는 개인구령운동의 한 전략상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3년 안에 새 성전 신축을 완료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새 성정에 입당한지 3년 안에 3만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을 경향에 축복해 주옵소서!\\\\\\\" 하는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이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첫 번째 단계는 태신자 갖기 운동 곧 전도대상자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것, 두 번째 단계는 해산신자 갖기 운동 곧 직접적으로 전도하여 오는 것, 세 번째 단계는 양육신자 갖기 운동 곧 학습인, 세례인을 만드는 것, 네 번째 단계는 제자신자 갖기 운동 곧 그리스도를 따르고 헌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첫 번째 기도는 그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3년 안에 새 성전을 완공하고 입당하였습니다. 이제 입당 원년(1년)을 보내고 2년째를 맞이하였습니다. 그 다음 기도 응답을 체험하는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Ⅱ. 777운동은 7대 과제 성취운동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7\\\\\\\'의 수는 거룩의 수입니다. 특별히 완전(完全), 총체, 충만, 성취 등을 나타내는 경우들에 쓰였습니다. 예컨대 제7일(안식일), 제7년(안식년), 희년(7×7년 다음해), 일곱 가지 촛대, 일곱 번 뿌린 피(레 4:6), 번제 양 일곱(민 28:11), 70번씩 7번(마 18:22), 일곱 교회, 일곱 별(계 1:20) 등입니다. 그리고 애굽에 내려간 야곱의 자손 70인(출 1:5), 예수께서 파송하신 70문도(눅 10:1) 등도 있습니다. 위와 같은 영적 배경에서 우리가 받은 7대 과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개인구령운동입니다. 화급한 전도운동입니다. 둘째는 개척교회 운동입니다. 경향 1대 당회 어간에 500곳의 개척 교회를 세우는 운동입니다. 셋째는 신학교 운동입니다. 개혁주의 세계교회 건설을 위한 고려신학교 운동입니다. 50명 이상의 교수를 섬기는 운동입니다. 넷째는 세계선교운동입니다. 원주민 세계 선교를 위하여 경향 1대 당회 어간에 1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운동입니다. 다섯째는 학원복음화 운동입니다. 우리가 받은 경향학원의 두 학교(경복여고, 경복여정)를 기독교 명문교로 육성하는 운동입니다. 여섯째는 기독교 복지 운동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민종합사회복지관을 통해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운동입니다. 일곱째는 기독교 문화 운동입니다. 예기되는 21세기 문명권내에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문서 등의 문화매체를 선용하여 복음을 전 하는 운동입니다. 이 7대 과제를 실천하기 위하여 우리는 경향인의 9대 생활강령을 세웠습니다. 경향인은 ①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 ② 주일을 거룩히 지킨다. ③ 십일조를 온전히 바친다. ④ 설교말씀을 생활에서 체험한다. ⑤ 기도와 전도에 힘쓴다. ⑥ 고려신학교 후원회 회원이 된다. ⑦ 경향선교회 회원이 된다. ⑧ 찬미와 감사로 기쁘게 생활한다. ⑨ 새성전 헌당을 위 해 생애 최고의 것을 바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4반세기가 훨씬 넘는 여정 속에서 수많은 축복을 실제로 체험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중대한 소원은 21세기에 우리가 받은 이 시대적 교회의 사명이 기어이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77운동의 또 다른 의미는, 우리는 성취되기까지 기도하면 서 나아간다, 성취되기까지 낙심하지 아니한다, 성취되기까지 인내하고 나아간다, 성취되기까지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간다는 우리 신․망․애의 고백적 소원의 표시입니다. 그것이 777운동입니다. 성경 중에 777운동의 실례가 있 습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 앞에 문둥병을 고치러 왔을 때의 일입니다. 선지자 엘리사는 그의 사자를 나아만에게 보내면서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하였습니다(왕하 5:10). 정말 문둥병에서 고침 받는다고 하는 소망의 소식이요, 복음의 소식이요, 축복의 소식이었습니다. 그러 나 나아만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분노하면서 물러가려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생각했던 대로 선지자가 자기에게 나와서 예를 행하고, 그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결국 그는 그 하인의 권유를 받고 요단강에 내려가서 하나 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일곱 번 몸을 물에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왕하 5:14). 일곱 번이었습니다. 점점 나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곱 번만에 나 았습니다. 그것은 요단강물 자체에 문둥병을 고치는 약효가 없었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되어짐을(왕하 5:14)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일곱 번만에 나았습니다. 완전신종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런 경우 일곱 번이란 완전성취의 내용을 알려줍니다. 완전응답을 보여 줍니다. 저 유명한 진리의 투사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이 주도하는 바알과의 싸움에서 통쾌하게 승리하였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송아지의 각을 쪼개어 놓은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써 응답하였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참 신이심이 입증되었습니다. 엘리야 자신이 참 선지자임도 백성들 앞에서 입증되었습니다. 백 성들의 마음이 바알에게서 하나님께로 향하여졌습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는 기손시내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난 전쟁은 아니었 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 승리의 결과 온 천지가 기다리는 비가 와야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이미 엘리야는 큰비의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물론 믿음으로 들은 빗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 얼 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편을 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온 사환은 바다편 공간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것을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하였습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8:41-43). 일곱 번째가 되었을 때 사환은 여태까지 없었던 소식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왕상 18:44). 그 로부터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왕상 18:45-46). 실로 3년 6개월만에 보는 축복의 단비였습니다(왕상 17:1, 눅 4:25). 이런 경우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한 사실은 바로 하나님의 응답이 올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엘리야의 마음(심령)에 들려온 큰비의 소리(왕상 18:41)가 현실로 나타나기까지 의심이나 낙심이나 좌절을 모르고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 운동을 가리킵니다. 될 때까지, 성취를 볼 때까지를 \\\\\\\'일곱 번\\\\\\\'이라는 말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777운동은 우리가 받은 복음운동의 사명이 성취될 때까지 나아가는 신앙운동이요, 기도운동이요, 실천운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재미있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장로님 가정에서 있 었던 일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포만감을 느끼며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본 아들이 \\\\\\\"아버지, 운동 좀 하세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그 아버지는 \\\\\\\"운동? 내 운동 많이 하고 있지. 열심히, 쉬지 않고 하고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 무슨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많이,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아버지의 대답입니다. \\\\\\\"내가 우리 교회에서 333운동을 하고 있잖아. 그리고 7대복음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던 아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십시오. 참으로 장로다운 아버지의 대답이었습니다. 333운동, 777운동이 이미 몸과 마음 아니 삶의 의식 구조에 인처럼 박혀 있는 일종의 생태적 의식의 발로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까? ※ 333운동과 777운동은 예수 세계화 운동입니다. 이것은 21세기를 받은 우리 경향인들의 삶의 모토(motto)입니다. 이것은 우리 경향인의 분명한 자기 존재 의미와 가치와 내용과 목적입니다. 바로 복음 선교의 목적적 삶입니다. 누가 21세기를 바로 아는 자인가? 누가 21세기를 바로 보는 자인가 누가 21세기를 받은 자인가? 그는 결코 역사의 광장에서 방황하는 방랑객은 아닙니다. 택자 구원이라고 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경륜을 받아 일정한 계획과 목표와 시간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룩한 순례자들이 21세기의 주역입니다. ※ 마지막 세기의 순례자! 복음 선교의 순례자! 종말 선교의 순례자! 333운동과 777운동의 깃발을 들고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을 찾는 사명의 순례자! 그들은 분명히 세계를 받은 21세기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21세기를 예수와 함께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 아 멘 -
70인 전도대 선교 보고회/ 눅10:17-20/ 2010-02-21
70인 전도대 선교 보고회 눅10:17-20 성경에 보면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풍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따르려고 했으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는 말씀에 실망하고 가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핑계를, 어떤 사람은 저런 핑계를 대면서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십자가 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갈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항상 우리는 주님의 파송을 받은 군사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일군 은 주님의 파송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준비된 일군을 사용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준비된 일군은 전문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합니다. 1만 시간을 투자하려고 하면 하루에 3시간씩 10년은 걸려야 합니다. 요즘은 주의 일꾼, 주의 종이란 말이 너무나 헤프게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의 종이란 주님이 그 권위를 주신 것인데 주님이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주의 일꾼들은 모두가 섬기는 자이며 모두가 왕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꾼 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왕이 되고 스스로 주인이 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되고 겸손해 지는 일은 잘 못합니다. 주님의 일꾼들은 항상 주님을 높이고 섬기는 자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70인 전도대를 둘씩 둘씩 짝을 지어 파송 하셨습니다. 아무리 한 사람 이 강해도 전도사명을 홀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 동역을 하고 합심을 할 때 더 좋은 효과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서로 협력하고 뜻을 같이하여 한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기도는 복음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우리 인생의 이성과 경험의 세계를 초월한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이므로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전도자는 성품이 첫째는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희생과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셋째는 물질을 초월해야 하고, 넷째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다섯째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안을 빌 것입니다. 여섯째는 어느 집에서 묵게되든지 그 집에서 대접하는 대로 사양하지 말고 도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자의 중요한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하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바로 전해야 하는 이유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롬10:17) 주의 일군들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존귀함을 받습니다. 눅10:16절에 \\\\\\\"너 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복음 전하는 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박대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주님을 박대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70인 전도대가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하는 내용과 우리 성도 가 기뻐해야 할 것이 있다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17-24) 이제 70인 전도대원들이 돌아 와서 전도 보고를 합니다. 아마도 성공적으로 복음전파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복음 전파하러 갔던 칠십 명의 전도대원들은 매우 흥분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매우 우쭐대며 자만에 빠질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만의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복음 전파자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이 무엇이었습니까? 자만의 함정에 빠지기 쉽 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칠십 인의 전도대원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귀신을 굴복시키고 그러한 놀라운 이적을 행했다는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귀신도 굴복시켰으니 인간들을 굴복시키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수님은 이미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 그리고 나서 자만에 빠지기 쉬운 제자들을 경계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러한 능력을 행할 권세를 그들에게 주셨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을 행한 것으로 심히 흥분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님의 일꾼들이 참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원받은 은혜를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물론 하나님의 능력을 갖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기쁜 일입니다. 아무리 사단의 세력이 강하여도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사단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사단의 능력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셔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라고 했고, 약4:7절에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를 이기는 권세를 이미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어떤 집에 어릴 때부터 강아지 한 마리와 고양이 새끼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 런데 개집에다 둘을 같이 집어넣어도 싸우지 않고 오히려 개는 고양이를 자기 새끼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가 방안에 있는데 이상하게 침대 밑에서 쥐들이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에 고양이가 있는데 어떻게 쥐가 있는가 싶어서 침대 밑을 보니 쥐는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왔다갔다하는데 고양이는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쥐를 잡을 권세를 가지고 났기 때문에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텐데 그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왜 모릅니까? 어려서부터 개와 함께 있었음으로 자기에게 쥐를 잡을 수 있는 권세가 있는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권세를 쓰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성도들은 마귀를 이 길 수 있는 권세를 믿을 때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권세를 쓰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으실 때에 제자들만 있는데 귀신들린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그 귀신들린 사람에게 명하시기 귀신을 꾸짖으시면서 \\\\\\\"그 아이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온전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그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귀신을 쫓아내는 비결은 기도밖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막9:14-29) 이렇게 우리 성도들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귀신을 이기는 권세가 있다고 할지라도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귀를 대적하여야 하겠습니다. 20절에 보면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능력을 행하고서도 그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지 아니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마7:22,23절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니\\\\\\\" 이런 사람들은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인간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조건은 믿음을 통한 구원뿐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성령의 은사까지도 하늘나라에 갈 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하늘나라에 있는 생명 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을 때만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기뻐해야 할 것은 내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된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자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귀신을 항복시킨 것은 은사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 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은사 받은 것보다! 귀신을 항복시키는 것보다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된 은혜를 더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은혜가 귀신 쫓는 은사보다 더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사는 신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신자에게도 있습니다. 특별히 살후2:9,10절에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단자들에게도, 적 그리스도들에게도, 그리고 애굽의 마술사들도 모세가 행하는 기적을 같이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단에게서도 이같은 은사와 능력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은사가 아무리 많아도 구원을 얻지는 못합니다. 재주와 은사가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곧 성숙한 인격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은사만 보고, 또는 어떤 능력 행하는 것이나 기적적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종이라든지, 또는 참 종이라든지 진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게 나타나는 어떤 표적을 보고 따라가면 안됩니다. 말씀이 바로 전하여 지고 있는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보고 기뻐하는가에 따라 그 신앙과 인격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물질의 축복이나 소유물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기쁨 중에 하나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는데 구원의 기쁨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많은 인류를 고통에서 해방 받게 한 \\\\\\\"클로르포름\\\\\\\"을 발견한 심프슨 경에게 한 사람이 질문했습니다. \\\\\\\"당신 생애의 최대 발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질문한 사람은 그것은 \\\\\\\"클로르포름\\\\\\\"이라고 할 줄 기대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클로르포름\\\\\\\"이라는 약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이 수술을 받으려면 그대로 생살을 쨌기 때문에 수술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약이 발견된 이후로는 인류의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심프슨은 상상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간증입니까? 아무리 은사가 많아도 그것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우리 어머니 얼마나 좋으실까? 천국의 즐거움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사람하고 이야기 하다가 \\\\\\\"나는 천국에 언제나 가려나? 어서 갔으면 좋겠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도 \\\\\\\"나도 빨리 갔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상 받을 준비는 됐나요?\\\\\\\"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상을 못 받아도 천국은 가고 싶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상까지 받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지요. 그렇습니다. 설사 상은 못 받더라도 천국은 가고 싶은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살면서 이 땅이 좋다고 천국을 사모하지 않고 잃어버리고 살면 안될 것입니다. 구원의 기쁨, 은혜와 믿음으로 들어가는 천국의 즐거움이 가장 큰 기쁨인 줄 믿습니다. 한 걸음 더나가서 신자는 의를 위해 핍박받고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5:10절에 말씀한대로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핍박을 받아 가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가르치기를 쉬지 않은 것은 이런 기쁨 때문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을 그려보세요! 제자들이 들어 와서 보고 할 때에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이 항복하더이다\\\\\\\"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권세를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 보고를 받으시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잘 나타나고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우리 성도들이 귀신을 쫓아 낸 것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처럼 담대하게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렇게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늘 풀이 죽어서 살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그러나 비록 집은 가난해서 용돈은 잘 대 주지 못하지만 긍지를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든든하고 기쁩니까? 꼭 그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 1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이 말씀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시고 담대하게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교는 초상집과 같고 유교는 제사집과 같은데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늘 즐 거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분부하신 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 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하신 대로 살아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 찬양하는 기 쁨, 예배드리는 기쁨, 봉사하는 기쁨, 전도하는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 리는 우리교회를 잔칫집으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모일 때마다 반갑고, 서로 격려 하고, 위로하며, 용서하고, 용납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과 기쁨을 마음껏 누려 야 하겠습니다. 그런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한사람 한사람이 노력하고 수고하 여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만일에 우리 속에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첫째는 믿음이 병들은 증거요, 둘째는 죄가 있다는 증거요, 셋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요, 넷째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증거요, 다섯째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바라기는 우리 모두도 70인 제자들과 같이 주님 주신 능력과 권세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충성 봉사하시고, 우리 이름이 하늘의 생명록에 기록되었다는 이 사 실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교회를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 절히 축원합니다. †
Kenya and Missions(케냐와 선교)/ Acts 1:8(행1:8), Matthew 28:19-20(마28:19-20)/ Rev. Steve Kuria(스티브 쿠리아 케냐 나이로비교회 목사) 설교/ 강영래 목사 통역/ 주님의영광교회/ 2007-06-24
Kenya and Missions(케냐와 선교) Acts 1:8(행1:8), Matthew 28:19-20(마28:19-20) Acts 1:8 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Amen.) 행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멘.) Matthew 28:19-20 19. Therefore go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20. and teaching them to obey everything I have commanded you. And surely I am with you always, to the very end of the age.” (Amen.) 마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 Title: Kenya and Missions (제목: 케냐와 선교) Main Texts: Acts 1:8; Matthew 28:19, 20 (성경 본문: 행1:8; 마28:19,20) Main Idea: We are called to be witnesses (주제: 우리는 증인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Introduction: (slide 1-2) (케냐에 대한 소개: 슬라이드 1-2) My name is Rev. Steve Kuria from Nairobi, Kenya. I am married and together with my wife we have four children. (제 이름은 스티브 쿠리아 목사이고,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왔습니다. 저는 결혼했고, 아내와 저는 4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Before coming to Korea, I served as a senior pastor in a church that I planted in 1993. (한국으로 오기 전에 저는 1993년도에 제가 개척한 교회의 담임 목사로 있었습니다.) I started with five people and after 13 years, the church grew to 350 members. (저는 5명으로 시작해서 13년 뒤에 그 교회는 350명 교인으로 성장했습니다.) Although most of our members were poor, we were able to build a church. (비록 대부분의 교인들이 가난했지만 우리는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We got some assistance from some missionaries from USA. (우리는 미국에서 온 몇 명의 선교사들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I resigned from that church and came to Korea for further studies. (저는 그 교회를 사임하고 신학 공부를 더 하기 위하여 한국에 왔습니다.) My vision is to plant another church in Nairobi after my graduation. (저의 꿈은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졸업 후에 나이로비에서 다른 교회를 새로 개척하는 것입니다.) Together with that, I was also a seminary lecturer for 10 years. (그와 더불어 저는 10년간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Transition: God has called us to be His witnesses. (전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I. God’s power is for witness(Acts1:8). Slide3-5. (I. 하나님의 능력은 증거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행1:8). 슬라이드 3-5.) A. Missionaries who brought Christianity in Kenya and other parts of the world. (A. 케냐와 세계의 다른 나라에 기독교를 전해 준 선교사들.) B. Through their efforts and the help from God, our people changed from animistic life to a better life in Jesus. They used to worship nature (mountains, rivers, snakes and other things). (B. 그들의 노력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도우심으로 케냐 국민들은 정령 숭배 속의 삶으로부터 예수님 안에서의 좋은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C. Now, Christianity is the dominant religion in Kenya. (C. 이제 기독교는 케냐에서 주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D. Kenya is ripe for harvest and like Macedonian call in Acts 16:6-10, God is calling us to be witnesses. (D. 케냐는 추수하기에 합당한 무르익은 밭이고 사도행전 16:6-10의 마게도냐 사람의 부름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증인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E. Through Kenya, our neighboring countries can know Jesus(Somalia and Sudan). (E. 케냐를 선교하면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이웃 나라들(소말리아와 수단)도 예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He is also calling you to be a witness to your neighbors.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증인이 되라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Illustration of a boy who saved some fish from dying. (물고기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해 낸 소년의 이야기 비유) II. God has commanded us to go and make disciples(Mat.28:19,20). Slide 6-11 (II.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28:19,20). 슬라이드 6-11.) A. In Kenya we have 42 different ethnic groups and of these, 22 are not reached with the gospel of Christ. (A. 케냐에는 42개의 다른 부족 그룹이 있는데 이 가운데에서 22개 부족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혀 접하지 못한 미전도 종족들입니다.) B. Many of these people come from very poor areas and nobody wants to go there. (B. 이 부족들은 극빈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곳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C. Security is also not very good. (C. 안전 또한 아주 좋지 못합니다.) D. We also have many refugees from neighboring countries that need Jesus. (케냐에는 또한 이웃 나라에서 도망 온 많은 망명자들이 잇는데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E. It is my prayer that God will use His church to reach them. (E. 그들에게 구원의 손을 뻗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용해 달라고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III. Prayer requests: (III. 기도 요청:) IV. 결론 우리 주님의영광교회 성도님들은 오늘 말씀을 증거하러 오신 스티브 쿠리아 케냐 목사님과 같이 아프리카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복음을 전하여 주님의 제자를 삼을 수 있는 선교 사역에 힘써서 무르익은 영혼들을 추수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
가라 세상을 향해/ 마28:16-20/ 선교주일설교/ 2010-02-17
가라 세상을 향해 마28:16-20 오늘은 우리 고려 교단 총회가 정한 선교주일입니다. 선교주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선교의 사명을 새롭게 다짐하고, 우리 총 회가 파송한 선교사님들과 그 가족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또 선교지 현장에서 주 님께로 돌아오는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정성어린 헌금으로 그들을 돕기 위 하여 총회의 결의로 정한 주일입니다. 우리 고려 교단의 총회 선교부에서는 아시아, 중앙 아시아, 러시아, 북미, 남 미, 대양주, 아프리카, 유럽, 특정지역 등지에 5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 니다. 이들 지역에서 101개 처의 교회와 12,677명의 성도들을 두는 성장을 거듭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지 교회에서 자신의 민족 구원을 위해 많은 사역자 들이 헌신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선교주일을 맞아 우리 성도들 각자는....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지상 최후의 명령으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막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 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천사같이 말못하고 바울같이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는 것을 선교라 합니다. 내 집 근처 다니면서 내 이웃을 구원하는 것을 전도라 합니다. 선교와 전도가 다 른 말이 아닙니다. 구원하려는 대상이 다른 것입니다. 내가 멀리 못 가면 다른 사람을 보내면 됩니다. 보내는 것도 못하면 가 있는 사람을 도우면 됩니다. 이를 위해 선교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여기의 \\\"의심하는[디스타조]\\\"은.... \\\"이중으로 하다, 마음이 흔들리다\\\"는 뜻입니 다. 쉽게 말해서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약1: 8). 곧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 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의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 인물이 도 마라고 하겠습니다(요20:25).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감란산 서편 중턱의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시 면서 제자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 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했습니다(마26:31-32). 부활의 주님이 무 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 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했습니다(마28:10). 그래서, 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고 경배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경배하면서도 \\\"오히 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 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 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분부를 하 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세상을 향해』 주님이 이 땅을 떠나 승천하시며,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것이 「모든 족속으로 제 자를 삼으라」는 선교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 된 우리 성도들 모두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 선교적 사명을 새롭게 다짐하고, 나에게 주어진 이 사 명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선교 주일입니다. 『가라 세상을 향해』 주님의 지상(地上) 최후의 분부인 선교의 명령은 가라고 했습니다. 제자 삼으라 고 했습니다.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지키게 하라고 했 습니다. 이 주님의 명령 속에 지상(地上) 교회가 해야할 일들이 다 들어 있습니 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성도들이 해야할 일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 문 말씀을 중심으로 『가라 세상을 향해』라고 분분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살펴보 고자 합니다. 1.너희는 가라고 했습니다. 본문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여기의 \\\"가서[포류오마이]\\\"는.... \\\"가다, 여행하다, 횡단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족속을 찾아가려니 대륙을 횡단해야 하고,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으로 가야하는 머나먼 여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 라」고 했습니다(행1:8).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너희는 가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다 땅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 이 임하여 권능을 받고, 선교의 사명을 특별히 받은 사람이 아니면 땅끝까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눅14:21).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 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고 했습니다(찬송가263 장).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내 집 근처 다니면서 복음 전하는 것을 전 도라 합니다. 이 전도도 주님이 명하신 선교의 명령 속에 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세상을 향해』 모든 족속에게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땅끝까지 가라고 했습니다. 「온 천하에 다 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막16:15). 다시 말해서 복음 전파 에는 국경도 없고, 인종의 차별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마치 연못 복판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잔물결을 이루어 연못 주위로 더 넓게 퍼 져 나가듯, 복음 전파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 마침내 온 천하에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부를 받았습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돕든지.... 내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 겠습니다. 2.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본문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여기의 \\\"제자를 삼아[마데튜오]\\\"는.... \\\"제자를 만들다, 학자로 등록하다, 가르 치다\\\"는 뜻입니다.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제자를 만들어, 제자로 등록시키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의 명부에 그 이름을 올리라는 것입니 다. 곧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계3:5).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여기의 \\\"족속[에드노스]\\\"은.... \\\"백성, 민족, 지파, 외국인, 이방인, 이교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사람들」을 말합 니다(계5:9). 그러므로 선교의 대상인 모든 족속은 인종(人種)이나 혈족(血族)이 나 백성의 차별이 없습니다. 이방인도, 나아가 이교도들까지 선교의 대상을 삼으 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 사람들」 모두를 대상자로 복음을 전하여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제자를 만들어 자기 족속, 자기 방언, 자 기 나라, 자기 종교에 속해 있는 사람을 천국 백성으로 생명책에 등록시켜.... 그 소속을 바뀌어 놓으라는 명령입니다.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제자 삼는 일에는 유대인이나 헬 라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야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땅위에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소수민족 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은 소수민족의 파악도 다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는 먼저 믿는 우리 성도들이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 그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3.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본문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여기의 \\\"세례를 주고[밥티조]\\\"는.... \\\"씻다, 잠그다, 뿌리다\\\"는 뜻입니다. 침례 교와 같이 침례를 시행하는 교파는 \\\"잠그다\\\"에 중점을, 세례를 시행하는 교파는 \\\"씻다\\\"에 중점을 둔 것입니다. 지상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식은 그림자로 사실은 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잠기고, 씻겨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물 세례가 아닌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막1:8). 물 세례는 자신의 신앙을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사람 앞에 공포하는 공고백 (公告白)입니다. 성령 세례는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입니다(엡1: 13). 인침은 자기의 것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것으로 인치시고, 「보 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다」고 했습니다(고후1: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쳐, 제자로 만들어 등록시키고, 그로 하여금 자신은 이제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공포하게 하라 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신앙을 공고백(公告白)한 사람들이 모인 것이 교회입 니다.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공고백(公告白)한 성도들이 모이면 교회가 됩니다. \\\" 세례를 주라\\\"는 말은 선교적 차원에서 보면 교회를 설립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워 예배하는 삶을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 배하며 영광돌리는,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키라는 선교적 명령입니다. 곧 잃어버 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4.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본문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 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은 주께서 3년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명하신 모 든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3년간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보고, 듣 고, 체험하고 배운 모든 교훈을 말합니다. 장사 지낸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무 덤에서 살아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요11:44).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 었습니다(마3:17).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으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 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 기를 잡는 체험을 했습니다(눅5:4-6).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말씀\\\"을 생생하 게 체험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의 \\\"가르쳐[디다스콘테스]\\\"는.... \\\"현재 명령분사\\\"로,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계속적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등학 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와 같이 졸업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평생 교육입니 다. 이 평생 교육이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6년, 3년, 3년, 4년을 가 르치고 졸업시키는 학교 교육이 아닙니다. 「세상 끝날까지」 가르치고, 가르치 고, 또 가르치는.... 말하자면 평생 교육입니다.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어 하나님의 자녀로 등록시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 르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 교육을 말합니다. 기독교 교육은 신앙인 으로서의 전인(全人) 교육이요, 평생 교육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 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교육」입니다(딤후3:17).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도 온전하고, 사람 앞에서도 온전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것 입니다. 5.내가 너희에게 분분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 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지키게 하라\\\"는 것은 너희가 가르친 대로 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르침의 목 적이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의 결과 지킴으로 나타나게 하라는 말씀입니 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사람 」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주님의 새 계명을 가르친 결과가 서로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 다.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 모든 사람이 그를 예수의 제자인 줄 안다고 했 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얻어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된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의 목적입 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제자 삼아 세례를 주어 하나님의 자녀의 대열에 서게 하고, 가르쳐 「하나 님의 사람으로 온전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도 록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되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신5:3 2), 가감(加減) 없이 지키며(신12:3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 로 사랑」하며 살도록 하라는 분부입니다. 본문 17절/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마26:31-32; 28:10),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위해 제자들이 말씀하시던 산에 왔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뵈었습니 다. 부활의 주님께 경배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러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 믿는 것이 내 마음대로 믿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실상은 믿음을 주셔야 됩니다. 그래서, 믿음도 성령의 은사 중 에 하나라고 했습니다(고전12:9).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의심하는 자들.... 개역성경에는 단수로 나타나지만, 사실은 복수로 한 사람이 아닌 몇 몇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의심하는 자들에게도 주님의 지상(地上) 최후의 분부 곧 선교의 명령이 의심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사명은 믿음 있는 자라야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꼭 믿음 있는 사람이라야 전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처음 나오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도 얼마든지 전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히려 의심하는 자들」에게도 선교의 명령을 똑같이 주셨습니다. 물론 이들이 선교의 현장에 뛰어들고, 열매를 거두는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루 어집니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이 의심하는 자들에게도 선교의 명령은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나는 믿음이 없어 서 전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의심하는 자에게도 복음 전파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자신이 믿은 예수 이름을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천사같이 말못하고 바울같이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세상을 향해』 가서 전합시다. 천사같이 말못하고, 바울같이 못해도 됩니다. 멀리 가지 못해도 내 집 근처에서 전해도 됩니다. 내가 믿는 예수 이름 그대로 전하면 됩니다. 그 것도 힘이 들면 「와 보라」고 하시면 됩니다(요1:46; 4:29). 씨를 뿌릴 때에 나 지 아니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싹이 나고,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시 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고전3:6). 그저 우리는 받은 사명대로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서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차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 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오늘 선교 주일을 맞아.... 의심 많은 도마에게 믿음 주신 주님, 도마처럼 의심 많고 믿음 없는 나에게도 믿 음 주실 줄 믿으며.... 내게 명하신 선교의 사명을 새롭게 다짐하고, 기쁨의 단 을 소망하며 눈물로 씨를 뿌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마28:16-20/ 총회선교주일설교/ 2010-05-23
가서 제자 삼아라 마28:16-20 5월 셋째 주일.... 오늘은 우리 교단 총회가 정한 총회 선교주일이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으로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생겨나고, 그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복음의 메시지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파되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마28:19)\\\"....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행1:8)\\\"....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이 땅에서 남기신 마지막 분부이다.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자들에게 남기신 지상최대(地上最大)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는 선교적 사명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은 자들이다. 복음 전파.... 내 집 가까이, 내 고장, 내 나라 안에서 하는 복음 전파를 전도로.... 내 나라를 떠나 이웃 나라에 건너가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선교로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교회를 통한 직접적인 전도가 아니라 의료, 교육 등.... 간접적인 전도일 경우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선교 주일은.... 교단 총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후원하자는 뜻을 모으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내가 받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직접 선교사로 나가서 복음 전파를 못하기에 파송된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며 후원하자는 것이다. 우리 교단 총회 선교부에서 파송한 선교사는 현재 50여명으로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하여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열매로 오대양 육대주의 선교지에서 87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12,000명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선교의 사역을 위해서.... 우리 성도들 각자가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이 무엇인가를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파송된 선교사와 그 가정, 그리고 현지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요, 격려 편지를 쓰는 일이요, 정성어린 헌금으로 후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서 제자 삼아라!』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에서 열 한 제자들을 만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 남기신 지상최후(地上最後)의 명령이요, 지상최대(地上最大)의 명령입니다. 본문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이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셨다고 했습니다(요17:2). 이 \\\"권세\\\"로 너희를 저 세상에 보내노니 『가서 제자 삼아라!』는 말씀입니다. 저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우리 성도들 모두는.... 이 주님의 마지막 남기신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 덕산교회의 홈페이지의 로고송(logo song)으로 100회를 반복합니다. 이 찬송을 들으며, 선교적 사명을 다짐하자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가서 제자 삼아라!』는 선교적 사명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라 본문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부활의 주님이 40일간 자신의 부활을 증거하신 후 이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시기 전에 남기신 마지막 분부이다. 너희는 \\\"가라\\\"는 분부이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라\\\"는 분부이다. 바로 주님의 지상최대(地上最大)의 명령이다. ①.가라 여기의 \\\"가라\\\"는 말은.... [포류오마이]란 단어로 \\\"횡단하다, 여행하다, 걷다\\\"는 뜻이다. 주님의 지상최대(地上最大)의 명령을 받아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의 제자를 삼고져 하는 자는.... 걸어 여행하며, 대륙을 횡단하여 땅끝까지 \\\"가라\\\"는 말씀이다. \\\"가라 저 세상으로\\\".... 바로 주님이 보내시는 곳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본문18절) \\\"가라\\\"고 명하신 곳이다. 여기가 아닌 저기이다. 이곳이 아닌 저곳이다. 나와 함께 하는 곳이 아닌 내가 떠나고 없는 곳이다. 주인인 나도 영접치 않는 저들인데(요1:11).... 주인의 종들인 너희를 어찌 영접하겠느냐? 저들이 나를 미워했으니 너희들을 더욱 미워하리라(요15:18).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본문20절). \\\"가라 저 세상으로\\\".... 주님은 홀로 저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 아니시다. ②.제자 삼아라. 여기의 \\\"제자 삼아라\\\"는 말은.... [마데튜오]란 단어로 \\\"제자로 만들다, 등록하다, 가르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족속을 가르쳐 예수의 제자로 만들고, 예수의 제자로 등록하라는 것이다. \\\"모든 족속\\\"이다.... 여기의 \\\"모든 족속\\\"은.... 모든 민족, 모든 백성, 모든 이방인, 모든 이교도를 포함하고 있다. 곧 땅끝까지 이르러 만나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그러므로 가서 제자 삼을 대상 중에 처음부터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서 제자 삼아라!』 너희는 \\\"가라\\\"고 명하십니다. 저 세상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주인인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주인을 영접치 아니하는 세상입니다. 오히려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세상에서 미움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겠으나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항상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내가 저 세상에서 너희를 불러내어 따로 모은 것처럼, 너희도 가서 모든 족속을 세상에서 불러내어 따로 모으고 \\\"제자 삼아라\\\"고 명하십니다. 저 세상의 임금이(요14:30) 자기의 백성이 빼앗김으로 더욱 우는 사자와 같이 날뛰며 너희를 삼키려 하나(벧전5:8)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실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열 한 제자들에게 명하신 분부입니다. 그 열 한 제자들이.... 『가서 제자 삼아라!』는 분부대로 가서 제자를 삼았고, 그 제자들이 또 가서 제자를 삼고.... 그래서, 오늘 우리 성도들도 주의 제자가 되었고, 또 우리가 가서 제자 삼아야 할 선교의 사명을 우리 성도들 모두는 가지고 있습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주님이 남기신 이 지상최대(地上最大)의 명령 앞에서.... 지금까지 내가 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세례를 주어 제자 삼아라 본문 19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례를 주고\\\".... \\\"세례 준다\\\"는 말은.... [밥티조]란 단어로 \\\"잠근다, 씻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침례로도, 세례로도 말할 수 있다. 굳이 \\\"침례\\\"를 고집하여 교파를 따로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틀렸다고 할 이유도 없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함을 받은 사실을....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사람들 앞에 \\\"공고백(公告白)\\\"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제자 삼는 일\\\"로.... 예수의 제자로 등록하는 일이다.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다.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다. 집례자는 대행자로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세례\\\" 혹은 \\\"침례\\\"를 받았든지 두 번 다시 받을 필요가 없다. \\\"세례 받은 자\\\".... 이들을 \\\"세례 교인\\\"이라고 한다. 이들이 모여 지상 교회를 이루게 된다. 이 \\\"세례 교인\\\"이 되어야 지상 교회에서는 비로소 정식 교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정회원\\\"이 되는 것이다. 공동의회의 회원이 되고, 직분을 맡을 수 있게 된다. \\\"세례를 주어 제자 삼아라\\\".... 주님의 이 분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라는 말씀이다. 그 구원된 한 사람으로 \\\"교회\\\"를 세우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가는 곳곳마다 교회를 세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서 제자 삼아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제자 삼아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주었다고 모두가 다 주의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의 열 두 제자 중에도 가룟 유다가 있었듯이.... 지상 교회에는 자신이 \\\"공고백(公告白)\\\"한 신앙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세례\\\"가.... 구원의 \\\"표\\\"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방편이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의 보장이 될 수 없습니다. 일찍 세례를 받고, 직분자로 한 평생을 교회에 충성해도 가룟 유다 같은 가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세례를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저 십자가 위의 한 강도처럼 주님과 낙원에 함께 할 제자도 있습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주님이 남기신 마지막 분부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 받고 중생했으면 다 되었다고.... 세례를 시행치 않는 잘못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제자를 삼아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사람들 앞에 등록을 시키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분부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3.가르쳐 지키게 하여 제자 삼아라 본문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내가 너희에게 분분한 모든 것\\\".... 그 모든 것은 바로 주님이 3년간 함께 하시며 일러주신 교훈이요, 제자들이 3년간 함께 하며 듣고 보고 배운 교훈이다. 그 모든 교훈이 어찌 다 생각이 나겠는가.... 그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어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하시리라는 약속이다.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여기의 \\\"가르쳐\\\"란 말은.... [디다스코]란 단어로 가르치다는 뜻인데, 「현재 분사형」으로 사용되어졌다. \\\"계속하여 가르치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기간이 있는 학교 교육이 아니라 \\\"평생 교육\\\"이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여기의 \\\"지키다\\\"라는 말은.... [테레오]란 단어로 \\\"굳게 붙잡다\\\"는 뜻이다. 손해, 도피를 지키는 게 아니다. 요새나 진지를 지키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엄마의 손을 \\\"굳게 붙잡는 것\\\"이다. 엄마의 뒤를 따르며 엄마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굳게 붙잡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서 제자 삼아라!』 가서 제자 삼을 그 모든 사람은.... 모든 백성이요, 이방인이요, 외국인이요, 이교도입니다. 저들이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삶을 버리고, 예수의 가르치신 말씀을 굳게 붙잡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가르치고, 가르치고, 또 가르치라는 분부이십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내 이웃, 내 민족을 가르치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주님은 땅끝까지 \\\"가라\\\"고 하십니다(행1:8). 걸어서 직접 찾아 \\\"가라\\\"고 하십니다. 한 곳에 머물며 정착하지 말고, 여행하여 대륙을 횡단하여 \\\"가라\\\"고 하십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십니다. 천하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제자 삼아라\\\"고 하십니다. 땅끝까지 찾아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서 제자 삼아라!』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이 땅에서 남기신 마지막 분부입니다.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자들에게 남기신 지상최대(地上最大)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는 선교적 사명을 주님의 명령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분부를 잘 준행하고 있는지.... 우리 성도들 모두는 자신을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분부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 남겨두신 제자들에게 주신 유언(遺言)입니다. 우리 모두 저 청개구리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살아 생전에 어미의 말을 한 번도 순종한 일이 없었던 청개구리이었지만.... 어미가 남긴 마지막 유언(遺言)은 순종하여 죽은 어미를 강가에 묻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려고 하면 어미의 무덤이 떠내려가겠다고 슬피 운다는 것이지요. 저 청개구리도 마지막 유언(遺言)은 순종했습니다. 청개구리도 유언은 순종하는데 하물며 우리 성도들이겠습니까.... 주의 발자취를 따르려는 제자들이겠습니까.... 내가 저 청개구리보다 못해서야 말이 됩니까.... 『가서 제자 삼아라!』 주님이 남기신 마지막 분부입니다. 유언입니다. 지상최대(地上最大)의 명령입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선교적 사명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천사같이 말못하고 바울같이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 이 찬송처럼 살고 있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그렇습니다. 현재의 우리 교회의 실정은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해야 합니다. 내 집 근처도 제대로 못한다고 해서.... 땅끝까지 \\\"가라\\\"는 사명을 저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갈릴리 마을 그 숲 속에서 주님 그 열 한 제자 다시 만나시사 마지막 그들에게 부탁하시기를 너희들은 가라 저 세상으로 가서 제자 삼아라 세상 많은 사람들을 세상 모든 영혼이 네게 달렸나니 가서 제자 삼아라 나의 길을 가르치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지금도 우리 주 찾아오사 어두워져 가는 저 세상 바라보며 마지막 우리에게 부탁하시기를 너희들은 가라 저 세상으로 가서 제자 삼아라 세상 많은 사람들을 세상 모든 영혼이 네게 달렸나니 가서 제자 삼아라 나의 길을 가르치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우리 덕산교회의 홈페이지 로고송(logo song)이지요. 100회를 반복합니다. 듣고 또 듣고, 부르고 또 불러.... 선교적 사명을 되새겨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땅끝까지 내가 갈 수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가서 제자 삼아라!』 내가 땅끝까지 갈 수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파송된 선교사와 그 가정, 그리고 현지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이요, 격려 편지를 쓰는 일이요, 정성어린 헌금으로 후원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밖에도 다른 일도 있겠지요. 이런 일들을 잘 감당하여.... 훗날 주님 앞에 설 때에.... 최소한 청개구리보다 못하다는 질책은 듣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자 나름대로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을 잘 감당하여 주님 앞에 칭찬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의 선교현장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벧전1:13-21/2006-10-21
고난의 선교현장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벧전1:13-21 오늘은 사순절 설교 네번째의 설교입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은 베드로전서 1장 13절에서 21절 사이의 말씀입니다. (성경봉독) 이 말씀을 중심해서 "고난의 선교현장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여러분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문의 상황은 고난의 상황이라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 전 지역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일로 인하여 주변의 이교도들로부터 적대와 멸시를 당하는 처지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수신자들은 박해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가 쓰여진 시기가 언제인가하는 논란이 학자들간에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서신의 저작연대를 네로황제 치하에서 자행된 로마에서의 그리스도인 박해(주후 64년) 시대로 보며, 다른 학자들은 도미티안 황제치하에 소아시아에서 자행된 그리스도인 박해가 시작된 시기 (주후 96년)를 이 서신의 저작 연대로 보기도 합니다. 이토록 네로황제의 박해시대이든, 혹은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시대이든 그 어느 시대이든 간에 확실한 것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엄청난 박해를 받으며 고난 가운데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신의 상황은 '고난의 상황'이며 이같은 고난의 상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하는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권면의 말씀을 따라 지금 고난의 선교현장에서 힘겹게 사역하시는 선교동역자 여러분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지금 여러분들의 선교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고난이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했던 어려움과 고난의 양상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여러분들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 고통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의 경험으로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이교문화권에서 많은 저항과 위협 속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의 장벽과 문화 충격으로 힘겨운 선교를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자녀들의 장래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선교사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선교환경과 선교지원이 열악하여 고통을 겪기도 할 것이며, 선교지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아 향수병으로 곤욕을 치루기도할 것이며, 기후와 음식에 잘 적응이 되지 않아 힘겨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어떤 선교사들은 건강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등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이 있는 여러분들의 선교현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여러 가지 모양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 여러분들에게 오늘은 베드로 사도가 소아시아지방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 특히 고난의 상황 속에서 힘겹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권면의 말씀을 따라서 여러분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 권면의 말씀은 본문 13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허리를 동인 사람은 걷는데 방해가 되는 긴 옷을 걷어 올려 끈으로 단단하게 묶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 초등학교의 운동회 날에 어머니들이 달리기 위해서 긴 치마를 걷어 올려 끈으로 허리에 단단하게 메고서 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는 일은 우리들의 생각과 의지를 단단히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의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허리를 동여매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계속해서 '근신하라'고 권면합니다. '근신'이란 말과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방의 이교문화권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들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언행을 삼가고 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근신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은혜는 바로 '궁극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날에 그의 영광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그 당시 고난과 핍박 중에 있었던 그들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만, 아직도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완성될 그 구원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특히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참고 기다리라는 권면의 말씀은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어려운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모든 고난과 절망, 죽음까지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일이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주실 은혜, 즉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지금 우리들의 선교상황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비록 고통스럽고 역경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에게 산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임재)를 기다려야 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순절을 지키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일이며, 고난의 상황을 극복하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두번째 권면의 말씀은 본문 14절에서 16절 사이의 말씀입니다. 14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던 그 때에 행했던 사욕, 즉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이고, 15절과 16절의 말씀은 "너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너희도 모든 행실에 있어서 거룩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들이 부르심을 받기 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 우리들의 옛 사람은 어떠하였습니까?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다."(갈 4:8)고 하며, "그 때에 너희가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며, 전에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엡 2:2-3)고 하며,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며,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으나,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엡 2:12-13)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1절에서 옛사람의 행위는 모든 악의와 모든 기만과 위선과 시기와 온갖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같은 옛사람의 행위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15절에서 너희를 불러주신 거룩한 분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자녀가 되었으니 지금은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하라고 권면을 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우리의 모든 행실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우리의 행실(언행)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나 행위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생각이나 삶의 스타일, 가치관이 세상사람들과는 어딘가 다른 모습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밫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이유는 '우리의 행실'이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사람들과 구별되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하는 못된 일들을 그대로 하며, 그들과 꼭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지금 사순절을 지키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기적인 욕심을 비우는 훈련과 함께 단순하게 사는 훈련을 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세번째 권면의 말씀은 17절의 말씀입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 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베드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에 두려운 마음으로 생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때의 '두려운 마음'은 단순히 무서워하는 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려움'은 창조주이며 주인인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윗사람에게 순종하며 이웃을 동정하고 서로 사랑하며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한 행동을 하는 구체적인 행위, 경건한 삶을 의미합니다.(벧전 2:13, 18. 3:1-9)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즉 '경외심'은 불의한 자들의 위협에 대하여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만들며, 정의를 위해 고난을 받고 선한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벧 3:13-14)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불경(不敬)의 시대입니다. 경건치 못한 시대란 말입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불경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는 이 불경의 시대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며, 사람을 얕잡아 보는 세상으로 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이같은 것이 사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힘있고 강한 사람을 두려워하며 비굴하게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이 역사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경건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대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들에게 크게 세 가지의 권면을 하였습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1)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라는 것이고, (2)옛 사람의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이고 (3)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경건하게 살라는 권면입니다. 이같은 권면의 말씀을 하고 있는 베드로는 오늘 우리의 본문 18절에서 21절 사이의 말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고난의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라며,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며 두려움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구원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노예나 전쟁포로들을 해방시켜 자유의 몸이 되게 할 때는 금이나 은같은 돈으로 사서 해방시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속함을 받은 것, 즉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금이나 은보다 더 값비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산 소망이 되게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선교사 여러분, 이같은 구원에 대한확실한 믿음은 이 세상의 어떠한 위협도, 어떠한 고난이나 박해도 우리를 넘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갖게 된 산 소망은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어떠한 장애물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캄캄한 절망도 극복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으로 이 소망으로 우리의 고난의 상황을 극복하고 힘있게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고린도 선교/ 행18:1-11/ 2001-09-19
고린도 선교 행18:1-11 고린도는? B.C. 46년 로마 황제 시이저(Caesar)는 이 도시를 재건하여 B.C. 44년 로마의 식민지로 삼았고 B.C. 27년에는 로마의 아가야 행정 구역의 수도가 되게 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대개 헬라인, 이탈리아 출신의 자유민, 로마군의 퇴역 장군, 상인, 정부 관리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특히 육상 및 해상 무역로가 집중되어 상업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유해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였으며 이러한 윤택(潤澤)한 생활은 결국 주민들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B.C. 5세기 초 고린도 사람들의 문란한 생활 때문에 \'고린도 사람이 되다\'는 뜻의 헬라어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1.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나님의 마음은 택하기로 작정하신 그 백성들 중에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늘 자녀들에게 있듯이. 그래서 그 백성을 위한 기도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백성을 찾아가는 발길엔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을 위한 물 한 그릇도 하나님은 공수로 보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신앙생활을 해야할 때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음란의 도시, 우상의 도시 고린도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 음란의 도성 고린도를 불로 멸하겠노라!\' 대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를 살리기 원하십니다. 선교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를 선교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고린도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많은 백성을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그들을 주시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을 말씀 안에서 봅니다. 패역한 성, 니느웨를 생각하시며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폭풍을 일으켜서라도 다시스로 가는 요나를 막으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능력있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성중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땅을 향한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성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적용과 도전] 우리가 기울이는 많은 삶의 현장이 다시스로 가는 선상에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일입니다. 원주민 보호구역들을 찾으면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는 것을 깨닫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 많은 사람들이 원주민에게 무관심합니다. 이 성중에 하나님 백성은 없다고 말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이 눈은 열려야 합니다. 저도 그러한 좌절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주민 마을들을 찾기 시작한지 6년,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는 결론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한 결단을 했습니다.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 말씀을 믿고 복음을 전하자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을 받아 들일른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즞 것은 그들의 일입니다. 바울은 요나가 니느웨 성에서 외치듯이 복음을 외치는 것입니다. 2.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부모 마음을 아는 사람은 효자(孝子)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 내에서 가르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 설교의 핵심은 항상 예수의 메시야되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17:31).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할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잘아는 사람입니다. 한번 한 것이 아닙니다. 한 주일 하다만 것이 아닙니다. 한 달간을 악으로 버틴 것이 아닙니다. 일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바울은 하나님의 꿈에 적극 참여합니다. 적극 순종합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덴에서의 혈전을 마친지 며칠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덴의 영적 전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곳처럼 핍박과 고난은 없었지만 열매도 없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편했지만, 영적으로는 씁쓸했습니다. 추수한 곡식이 가장 빈약한 곳이 아덴입니다. 그는 이어 곧장 고린도에 뛰어들어갑니다. 당시 그의 생계는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적극 나섰던 것입니다. 3. 동역자들이 합하여 사명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하여 바울에게 만나게 해주신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들의 목을 내놓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칭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굴라의 출생지인 \'본도\'(Pontus)는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있었습니다. 아굴라는 로마식 이름인데 로마의 기사나 호민관들 중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아굴라는 유대인 노예였다가 후에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브리스가 가문(gens Prisca)과 관계있는 유대인 여자와 결혼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브리스길라는 브리스가의 애칭입니다. 롱게네커(Longenecker)에 따르면, 아굴라에게는 기술이 있었고 브리스길라에게는 돈과 연줄이 있었으며, 이들은 공동으로 천막 제조와 가죽 수공 상사(商社)를 소유했고 또 이 상사의 지점이 로마와 고린도,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가장 헌신적인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3, 18, 19, 26절; 롬 16:3; 고전 16:19; 딤후 4:19). 이들이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온 것은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때문이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있습니다 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자들이 환난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신앙 생활에 열중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힘이 저절로 나는 소식이었습니다. 실라는 빌립보 교회의 소식과 그들이 보낸 연보를 가지고 왔습니다(고후 11:9; 빌 4:]4, 15). 빌립보교회에서 보내준 헌금은 이 때의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시기 적절하고 유용한 것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헌금으로 바울은 더 이상 생계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고 오로지 말씀 전파에만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그들만 보아도, 그들이 곁에만 있어도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힘이 되는 사람들었습니다. 디도 유스도가 있습니다. 디도 유스도는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찾은 곳은 \'디도 유스도\'(Titus justus)의 집입니다. 디도는 로마식 이름으로 이 사람이 로마 시민임을 나타내 줍니다. 회당 옆에 있던 유스도의 집은 고린도 전도 사역의 주사령부가 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의 최초 집회장소가 되었습니다. 회당장 그리스보가 있습니다. - 고전 16:15에 의하면 고린도 최초의 신자는 스데바나와 그의 가족이었습니다.회당장 그리스보(Crispus)가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고린도의 유대인 사회에 파문(波紋)을 일으켰음직합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이 세례를 베푼 사람이 몇 안되는데 그 중 한 명이 그리스보였습니다(고전 1:14). 그리스보의 개심은 고린도 선교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고린도에서의 지속적인 부흥 운동은 실라와 디모데가 바울에게 온 이후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이것은 공동사역(Team Work)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아덴에서 바울이 홀로 선교하던 것과 고린도에서의 공동사역을 비교해 본다면 공동 사역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롬 16:1과 고후 1:1을 살펴보면 고린도와 인접한 아가야와 겐그레아 항구까지 복음이 전과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맺음말 사무엘 스티븐슨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교회가 가득 한 도시 설교자와 유식한 사람도 많고 화려한 음악과 거대한 성가대 이 모든 것을 못하면 어떻게 될까? 진실하고 열정적인 훌륭한 일꾼들 쉬지않고 열심히 수고하는 사람들 그러나 내 형제여, 하나님의 권능은 어디 있는가? 교회와 교육!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을 바라며 계획과 준비는 더없이 완전하고 쉴새없이 뛰면서 일하고 재능많은 사람들이 어디나 있어 최선을 다하면서 애를 쓰는데 그러나 내 형제여, 하나님의 성령은 어디 계신가? 많은 시간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지혜로운 학문으로 설교하되 교육은 하나님의 백성을 오히려 빈곤하게 만들고 있구나 과연 하나님의 성령은 어디 계십니까?
교회의 사명, 선교/ 눅24:44-49/ 2002-09-02
교회의 사명, 선교 눅24:44-49 무슬림 지역에서 선교하는 한 선교사의 선교보고입니다. 북부 아프리카 M이란 마을에 압둘이라는 청년이 있는데 그는 과부 어머니와 서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압둘이 방송을 듣다가 복음을 접하고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압둘은 예수 믿는 것이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고 또 동네에 교회가 없기 때문에 도시로 나가면 선교사가 인도하는 비밀히 모이는 성경공부그룹이 있는데 토요일 저녁부터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그 도시로 나가 주일날 하루 종일 예배와 성경공부를 하고 또 주일 저녁에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와 월요일 아침에 가게문을 연다고 합니다. 여기에 비해 우리는 너무 좋은 환경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에 의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선교를 우리가 해야 합니까? 선교는 교회가 해야할 임무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의 부활 후 승천까지의 40일 간의 일로 믿고 있습니다. 이 짧은 기간의 가르침의 사역은 복음이 세계 끝까지 전파될 것에 대해 제자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 사건이라고 합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바로 오늘 우리 교회의 사명인 줄 알고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끔 주의 일을 하면서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되는지 모르고 할 때가 있습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선교를 해야 하고 선교를 해야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아야 선교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다른 교회가 그렇게 하고 다른 교인이 그렇게 하니 우리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선교가 지속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의 선교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44절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 라는 말은 예수님의 부활 후 40일 간을 말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부활 후 바로 승천하시지 아니하시고 <2.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까? 제자들에게 말한 바가 무엇입니까? 넓게 말하면 [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 이 말하고 있는 것 즉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원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교의 근거는 하나님의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면서 하신 말씀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는 선교적 명령 이전에 선교의 근거는 하나님 자신이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2세기 동안은 교회들이 선교의 근거를 마28:20절 [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 ] 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두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현대 선교의 권위자 <허버트 케인>은 선교의 근거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 이전에 하나님께 근거하고 성경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버트 케인>은 그의 저서 세계의 선교 오늘과 내일이란 책에서 여호와 - 선교의 하나님, 성경 - 하나님의 선교의 책 복음 - 선교의 메시지 교회 - 선교의 공동체 그리스도인 - 세계를 품은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를 하면 교회가 선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예수님께서도 지금 제자들에게 선교적 명령을 하시기 전에 바로 선교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선교하는 선교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선교의 명령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선교의 주제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회개를 통한 죄의 용서와 구원, 이것이 선교의 주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선교의 주제는 돈도 아니요 계몽도 아니요 문화적 혜택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선교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3> 각 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베드로의 복음 메시지를 듣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떻할꼬? 할 때 행2:38절에 [ 너희가 회개하고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 고 합니다. 저들에게 먼저 떡을 나눠주거나 계몽을 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고 죄사함 받으라고 외칩니다. 이것이 선교의 주제입니다. 한국 교회가 기독교 선교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성과를 거두게 된 것도 초기 선교사들이 구제나 계몽을 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복음으로 영혼구원에 힘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선교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네비우스 정책입니다. 네비우스 정책은 1890년 북 장로회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30년 넘게 전도사업을 벌여온 노련한 선교사 네비우스를 초청, 그의 경험과 연륜을 한국에 적용시키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합니다.. 네비우스는 약 2주간 서울에 머무르며 나름대로 체득한 중국 선교전략을 토대로 한국선교의 기본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 한사람을 전도하면 끝까지 붙들어 그가 개인전도 일꾼이 될 때까지 인도한다. 둘째 교회의 운영과 기구조직은 그 교회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기획, 실천한다. 셋째 교회에서 전도사업을 감당할만한 인물이 나오거나 재정을 공급할만한 사람이 생기면 그들을 선임하여 지도자로 육성한다. 넷째 교회당 건축은 가급적 교인들 자신의 힘으로 하게 하되 건축구조나 모양은 한국고유의 양식으로 짖도록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 같이 초기 한국선교는 영혼 구원과 지도자 양성 그리고 자립이었습니다. 결과 한국교회는 교회와 교인 수가 급증하게 되었고 초대 한국교회는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교의 주제는 바로 십자가의 예수를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십자가의 복음이 선교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이 있어야 선교하는 것 같지만 결코 지나놓고 보면 돈이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입고 구령의 열정이 있는 사람을 통해 선교가 열매를 맺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보다 물질이나 문화적 혜택이 먼저 들어간 선교지는 시간이 지나가면 언제나 퇴색되고 말았습니다. 아프리카 우간다 농촌에서 선교하던 여선교사 스미스의 이야기입니다.<4> 원주민들에게 온갖 친절과 구제를 베풀었지마는 무엇을 줄 때에만 교회에 오고 물자가 떨어지면 발걸음을 끊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선교후원이 안되고 그기에 다가 심한 병마저 얻었습니다. 그래서 원망 반 간절한 마음 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돈도 떨어지고 몸도 병들고 이제 의지할 것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그랬더니 원주민들이 교회에 와서 선교사를 위로하고 교회에 나옵니다. 얼마 후에 스미스 선교사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선교사님 병은 다 나았습니다. 선교사님의 병은 한 달 정도 굶으면서 체중을 조절하면 낳는 병인데 송금이 늦어 굶다시피 한 것이 선교사님을 살린 것입니다. 그때 스미스 선교사는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에 감사하며 선교는 돈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합니다. 마찬가지로 후원하는 선교사로서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성한 후원이 있어야겠지만 그 이전에 선교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더 우선적이 되어 우리의 선교사들이 복음의 능력을 덧입어 선교할 수 있도록 뜨거운 기도의 후원이 있어야 겠습니다. 그럼 우리의 선교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47절에 [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 먼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먼저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는 교회가 선교한다는 것 성경적이 아닙니다. 전도하지 아니하는 목사가 선교사가 되어 간다고 선교하는 것 아닙니다. 먼저 전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행1:8절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먼저 기도하고 성령의 능력 받아 전도하는 사람되세요 한번 보세요 목요일 오후 우리 교회 전도하는 로이모스 사람들 이 사람들 다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전도대에 몇 번 나왔다가 슬그머니 없어집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다가 은혜 받으면 절로 전도에 눈이 뜨여지고 전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루살렘인 대구를 복음화 하는데 앞장서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대는 대한민국을 말합니다. <5> 우리교회로 말한다면 농어촌 선교를 말합니다. 우리 내일교회가 수요 헌금을 통해 적어도 가까운 달성 고령 성주 지역의 농어촌 미자립 교회를 몽땅 후원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마리아는 우리에게 북한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내일교회도 사마리아 선교에 눈을 떴으면 합니다. 북한의 동포들을 위해 기도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입니다. 저 북방 얼음산과 또 대양 산호섬 저 남방 모든 나라 수많은 백성들이 다 선교의 대상이요 범위인 것입니다.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온 세계 선교의 기지가 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발걸음에 의하여 복음을 받았고 축복을 받은 대한민국입니다. 1884년 언더우드 아펜셀러 선교사 부부가 부활절 아침에 제물포에 발을 디딜 때 저들은 미국에서 한국에 오는데 일 년이 걸렸습니다. 당시로 보아서는 코리아는 땅 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선교에 빚진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땅 끝까지 선교의 빚을 갚을 수 있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마28:19-20절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할렐루야 그럼 선교를 누가 해야 합니까? 많은 교인들이 아직 전도나 선교는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미루고 있습니다. 48절에 [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 여기에 너희를 제자들에게 국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너희는 제자들뿐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다 포함합니다. 요20:21절 [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막16:15절 [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선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이 여건상 선교의 일선에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선교에 빛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내는 선교사로 선교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교학 권위자 <허버트 케인>은 <6> 그의 저서 서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1940년 여름 영국에서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기간 동안에 하원의회에서 윈스턴 쳐칠 경이 이런 연설을 합니다. [ 전쟁시에 아주 많은 사람들은 아주 적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 라는 말로 전장 터의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우리가 하고 내가 해야할 선교를 우리는 특정한 몇 사람에게만 짐 지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빚진 것을 갚기 위하여 보내는 선교사로서 기도하고 후원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월드컵에 출전한 미국 선수들이 전방 D.M.Z를 방문했는데 한 선수가 하는 말이 [ 평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이제는 알겠다 ] 고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는 수만 있어면 선교현장을 둘러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받은 복음이 얼마나 값진 복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우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주의 이름으로 요청을 합니다. 삶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분명한 목적은 마6:31절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평신도 전문 선교사가 되어 선교 현장에 나가는 청년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무슬람 지역에는 목사 선교사 보다 평신도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더 유리합니다. 2년이나 3년이나 릴레이식으로 단기 선교사로 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 아무개 교수님의 간증입니다. 공산권 선교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화학전공자로서 미국서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교로 교수 청빙을 받고 귀국하려던 참에 유학생 수련회 코스타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마16:24절 [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 는 말씀에 굉장히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공산권 국가에 기독교 대학에 자비량 선교사로 자원했습니다. 김 교수님의 간증이 [ 제 직업은 교수 이전에 선교사 이전에 어부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는데 <7> 그 기술을 배워 절대 딴 짓 하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사람 낚는 어부 그래서 여러분을 낚기 위해서 왔습니다. ] 그런데 당국에서 학교에 기독교 신자가 10%만 생기면 학교를 폐쇄시키는데 김 교수님의 반 학생이 30%가 기독교인 되어 당국에 발각되어 한국으로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미국에서 지도하던 교수님이 총장으로 와 있는 전에 보다 더 좋은 대학교에 교수로 발탁되어 지금은 캠퍼스 선교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또 선교사로 나갈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청년들이 있는 이상은 우리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는 줄 믿습니다. 누가 이런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누가 선교의 명령의 주체입니까? 49절 [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보내리니 ] 내가 누구입니까? 마28:18절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 바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선교의 명령의 주체이십니다. 근간에 깃털이니 몸통이니 하는 정치적 속어를 많이 들었지요. 좀 속된 표현인 것 같지마는 우리 선교의 몸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분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바울이 확신합니다. 빌1:6절 [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 ]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나 선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된 교회가 되어야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하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선교하는 교회가 먼저 갖춰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올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행1:5절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8> 구약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머리에 기름을 부었듯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기 위하여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치 국민학교에서 반장이 애들한테 가자 하면 다 따라갑니다. 왜? 선생님이 반 통솔을 반장한테 위임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군에게 위임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영권이 주어지고 선교의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 나가는 것은 재앙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의 일하고도 재앙이 있다면 예배 없이 주의 일하는 것이고, 기름부음 없이 주의 일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사역하는 일군은 되는 것 같으나 다 무너집니다. 가끔 교우들 가운데 준비 없이 교사로 뛰어든 교우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한 번 보세요. 우리 교회로 말한다면 2부 예배가 교사들 중심으로 들여지는데 예배 없이 주일학교 교사하는 사람, 한 두 해 있다 보면 탈락입니다. 특히 기름 부으심 없이 선교한다는 것도 불행입니다. 선교하는 교회일수록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의 중심은 선교헌금이 아니라 철야기도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기도로서 성령의 능력을 사모하고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령의 계절과 같습니다. 봄이 오면 꽃이 핍니다. 겨울이 오면 낙엽이 떨어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흔들립니다. 뛰쳐나갑니다. 외칩니다. 이 바람이 선교지에 까지 부는 교회가 선교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위를 바라보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선교지에까지 성령의 바람이 부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 내일교회는 처음 설립목표가 선교의 기지와 축복의 터전입니다. 선교의 기지가 되는 것이 교회설립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선교의 후원 자세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내 혈육 선교사로 파송한 것처럼, 2) 우리 교회 섬기는 마음으로 꼭 이러한 자세로 선교하고 선교에 동참하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 딤후4:1-2/ 2008-02-23
교회의 선교적 사명 딤후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나타나실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 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처럼 중 요한 것은 없습니다. 인생을 떠나는 구름처럼, 이리갈까 저리갈까 방 황하는 나그네처럼 산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인지 모릅니 다. 다행스럽게도 저에게는 확실한 신념이 있습니다. 저의 시념과 확신은 목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과 신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저는 이 세 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때문 에 저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서도 하나님의 음성 을 들을 수 있으며 지저귀는 새소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임을 믿습니다. 세상에 귀하고 복된 것은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그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저는 하나님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저의 삶에는 부족하지만 하나 님의 정신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리고 또 언제나 저의 생각과 말 그리 고 삶에 하나님의 정신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신이 살아 나타남으로 저의 삶은 참으로 부요하고 형통하 며 또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주 설교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강임을 믿으며 이 말씀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으며 그러 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하는 것이 나의 소명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명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이와같이 내 한목숨 을 십자가에 걸어도 좋을만하 귀한 소명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 사드립니다. 이와같은 소명은 교회의 소명이기도 하며 그러므로 그럿은 곧 우리 동안교회의 소명인 것입니다. 교회의 제일가는 소명은 선교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 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고통의 원인은 캐고 보면 죄입니다. 죄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며 모든 고통의 뿌리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으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세상에서 죄만 없이 할수 있다면 세상은 그대로 전혀 부족함 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망의 원인 이 되는 죄의 원인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불신앙입니 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는 불신앙 때문에 세상에 온갖 죄악이 관영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나함으로 저들은 자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이기적이 욕심을 따라 살게 되는 것이며 결국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죄의 문제를 해 결하여야만 하며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고 하면 먼저 전도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이되게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 을 따라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면 세상의 죄악은 반드시 줄어 들 것이며 우리는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될것이며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 다. 부모들은 후손들에게 보다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하여 먹을 것을 먹지 않기도 하고 입을 것을 입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 들은 무엇이 후손들을 위하여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인지는 잘 모릅 니다. 후손들을 위하여 부모인 우리들이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전도입니다.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많이 생기 게 하는 것이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 여야만 할 것입니다. 저는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동안교회를 선교적인 사명을 잘 감 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목회하려고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일을 힘쓰려 고 합니다. 첫째, 전교인을 선교하는 선교사로 훈련시키려고 합니다. 그러 기 위하여 모든 교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이 성직임을 알 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와같은 직업을 주신것은 단순히 돈을 벌어 밥을 먹고 살라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번째 이유 입니다. 가장 중요한 첫번째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전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업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더 나아가 그 업계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그러한 직업 을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들은 자기의 직장과 일터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기지 아니하고 밝히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물건을 파는 상인이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하여 손님에게 허리를 굽히고 친절하게 하듯 우리도 하나님을 전하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다 친절하고 겸손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정직하고 성실하여 믿 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본이되고 존경을 바다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월급을 받고 사업을 하여 돈을 버는 중요한 목적을 선교에 두어야만 합니다. 예산중에 선교비 항목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동안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선교 는 교회의 행사나 사업을 통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실제적 인 삶을 통하여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봉사와 구제와 같은 세상을 섬기는 일을 통하여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삭줍기 운동을 통하여 우리는 주변 의 많은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 울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구제와 봉사로서만 생각지 아니하고 선교 외 중요한 방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소년 소녀 가장에게 매달 생활 비를 보조 할 때에도 저들을 교회에 불러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 일이 저들의 집을 방문해서 저들의 등을 두드려 주며 격려하면서 주 려고 합니다. 실제로 저들의 가정사를 살피면서 겸손하게 그리고 정성 껏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일도 하 게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물질뿐 아니라 믿음까지 얻을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올해안에 탁아소를 교회안에 세워 보려고 합니 다.어려운 부부가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탁아소를 세워 정 성껏 아이들을 돌보아 주려고 합니다. 유능한 교사들도 모시겠지만 그 보다 교인들이 일주일에 한시간이라도 자원봉사로 나와서 아이들을 업 어 주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며 돌보게 할 것입니다. 좋은 선교의 장 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육관 증축 공사가 진행중인데 이번 부활주일전에 완공이 될 것입니다. 교육관 증축 공사가 완성되면 가장 큰예배실을 동네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 예식장으로 개방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가 나서서 국수라도 삶아서 동네 잔치를 벌려 동네 손님들을 대접하고 믿 는 예식장과 미용실을 도움을 받아 무료로 신부 화장도 해주고 드레 스도 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 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삭줍기 헌금중에서 얼마를 보조하여 가까운 곳에 가서 하루 이틀이라도 신혼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증축되는 교육관은 가장 좋은 선 교외 도구가 될 것입니다. 셋째, 전에도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은 새로 개발되는 신도 시에 종교부지를 불함받아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하는 일을 통하여 선 교하는 교회가 되게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일은 우리 동안교회와 같이 큰 교회가 아니면 쉽게 마음 먹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동아 교회는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주간 몇분의 장로님들과 함께 새로 개발되고 있는 일산 신도시를 다녀왔습니다. 현재 약 30만명이 거주할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었고, 95년까지는 약 90만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도시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개척교회를 하고 있 는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지금 나와 있는 종교부지 현황을 알아보고 왔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은 일산 신도시를 줄을 긋고 그림 는 일을 주도한 사람은 예수를 아주 잘 믿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때문 에 일산은 종교부지가 가장요지에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많은부지가 기존교회들에게 배당되었는데 아지 몇몇 좋은 종교부지가 남아 있었습 니다. 그중에 하나 우리 교회가 욕심 낼만한 땅 하나를 발견하였습니 다. 2백평이 좀 넘는 땅으로 고층 아파트 사이에 있는 아주 좋은 땅이 었습니다. 가격은 3억 5천만원이었습니다. 바로 어제 당회원 성경공부 가 끝난직후 회의를통하여 그 땅을 우리 교회가 매입하여 교회를 세 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제 이달말에 공고가 날 터이데 하나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우리는 그 땅을 매입하여 즉시 교회를 건축할 것입니 다. 우선 조립식 건물로 한다 백여평 건물을 지으면 교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목사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교회는 일 년안에 우리 동안교회 보다 큰 교회가 될런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막 연한 기대와 상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의 틀립없는 예측입니다. 이 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땅만 제비 뽑게 해주신다면 올해안에 당장 이 루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산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 끝나면 그 다음일은 우리 동안교회 를 건축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일산의 교가회를 개척허는 일을 하게 되면 현재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비축한 예산은 다 소비되게 될 것입니다. 그예산을 일산에 교회를 세우지 아니하고 우리 교회를 건 축하는 예산으로 활용한다면 퍽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예산을 다써서 먼저 일산에 교회를 개척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지을 수 있는 힘을 갑절 이나 주셔서 현재의 예산을 교회건축에 쓰는 것보다 더 쉽게 교회를 건축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교회 건축만 끝난다면 우리는 현재의 재정능력 만으로도 2 년마다 일산 규모의 교회를 건축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조금만 더 힘을 주신다고 하면 해마다 그와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같은 일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흥분 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충분 히 있는 꿈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그와같이 교회의 선 교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된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 복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도 보면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하여 가지를 깨끗게 하신 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나 교인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선교 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가지를 깨끗게 하시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 분이 되시기를 바라며 더나아가 우리 동안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김동호 목사(서울 높은뜻숭의교회)
교회의 선교적 사명/ 딤후4:1-2/ 2008-02-23
교회의 선교적 사명 딤후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나타나실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 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처럼 중 요한 것은 없습니다. 인생을 떠나는 구름처럼, 이리갈까 저리갈까 방 황하는 나그네처럼 산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일인지 모릅니 다. 다행스럽게도 저에게는 확실한 신념이 있습니다. 저의 시념과 확신은 목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과 신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믿습니다. 저는 이 세 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습니다. 때문 에 저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서도 하나님의 음성 을 들을 수 있으며 지저귀는 새소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임을 믿습니다. 세상에 귀하고 복된 것은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그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저는 하나님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저의 삶에는 부족하지만 하나 님의 정신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리고 또 언제나 저의 생각과 말 그리 고 삶에 하나님의 정신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신이 살아 나타남으로 저의 삶은 참으로 부요하고 형통하 며 또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주 설교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강임을 믿으며 이 말씀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세상에 없으며 그러 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하는 것이 나의 소명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명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이와같이 내 한목숨 을 십자가에 걸어도 좋을만하 귀한 소명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 사드립니다. 이와같은 소명은 교회의 소명이기도 하며 그러므로 그럿은 곧 우리 동안교회의 소명인 것입니다. 교회의 제일가는 소명은 선교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지 아니 하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와 고통의 원인은 캐고 보면 죄입니다. 죄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며 모든 고통의 뿌리이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으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세상에서 죄만 없이 할수 있다면 세상은 그대로 전혀 부족함 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망의 원인 이 되는 죄의 원인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불신앙입니 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아니하는 불신앙 때문에 세상에 온갖 죄악이 관영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나함으로 저들은 자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이기적이 욕심을 따라 살게 되는 것이며 결국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죄의 문제를 해 결하여야만 하며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 고 하면 먼저 전도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이되게 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열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 을 따라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면 세상의 죄악은 반드시 줄어 들 것이며 우리는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될것이며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 다. 부모들은 후손들에게 보다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하여 먹을 것을 먹지 않기도 하고 입을 것을 입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 들은 무엇이 후손들을 위하여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인지는 잘 모릅 니다. 후손들을 위하여 부모인 우리들이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전도입니다. 전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많이 생기 게 하는 것이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처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 여야만 할 것입니다. 저는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동안교회를 선교적인 사명을 잘 감 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목회하려고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일을 힘쓰려 고 합니다. 첫째, 전교인을 선교하는 선교사로 훈련시키려고 합니다. 그러 기 위하여 모든 교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이 성직임을 알 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와같은 직업을 주신것은 단순히 돈을 벌어 밥을 먹고 살라고 하신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번째 이유 입니다. 가장 중요한 첫번째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전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업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더 나아가 그 업계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그러한 직업 을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들은 자기의 직장과 일터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숨기지 아니하고 밝히며,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물건을 파는 상인이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하여 손님에게 허리를 굽히고 친절하게 하듯 우리도 하나님을 전하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다 친절하고 겸손하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매사에 정직하고 성실하여 믿 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본이되고 존경을 바다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월급을 받고 사업을 하여 돈을 버는 중요한 목적을 선교에 두어야만 합니다. 예산중에 선교비 항목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동안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될수 있는 것입니다. 선교 는 교회의 행사나 사업을 통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실제적 인 삶을 통하여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봉사와 구제와 같은 세상을 섬기는 일을 통하여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삭줍기 운동을 통하여 우리는 주변 의 많은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 울 때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구제와 봉사로서만 생각지 아니하고 선교 외 중요한 방편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소년 소녀 가장에게 매달 생활 비를 보조 할 때에도 저들을 교회에 불러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 일이 저들의 집을 방문해서 저들의 등을 두드려 주며 격려하면서 주 려고 합니다. 실제로 저들의 가정사를 살피면서 겸손하게 그리고 정성 껏 살펴보려고 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일도 하 게 할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물질뿐 아니라 믿음까지 얻을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올해안에 탁아소를 교회안에 세워 보려고 합니 다.어려운 부부가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탁아소를 세워 정 성껏 아이들을 돌보아 주려고 합니다. 유능한 교사들도 모시겠지만 그 보다 교인들이 일주일에 한시간이라도 자원봉사로 나와서 아이들을 업 어 주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며 돌보게 할 것입니다. 좋은 선교의 장 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육관 증축 공사가 진행중인데 이번 부활주일전에 완공이 될 것입니다. 교육관 증축 공사가 완성되면 가장 큰예배실을 동네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무료 예식장으로 개방해 보려고 합니다. 교회가 나서서 국수라도 삶아서 동네 잔치를 벌려 동네 손님들을 대접하고 믿 는 예식장과 미용실을 도움을 받아 무료로 신부 화장도 해주고 드레 스도 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 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삭줍기 헌금중에서 얼마를 보조하여 가까운 곳에 가서 하루 이틀이라도 신혼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증축되는 교육관은 가장 좋은 선 교외 도구가 될 것입니다. 셋째, 전에도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은 새로 개발되는 신도 시에 종교부지를 불함받아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하는 일을 통하여 선 교하는 교회가 되게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일은 우리 동안교회와 같이 큰 교회가 아니면 쉽게 마음 먹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동아 교회는 이러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주간 몇분의 장로님들과 함께 새로 개발되고 있는 일산 신도시를 다녀왔습니다. 현재 약 30만명이 거주할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었고, 95년까지는 약 90만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도시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개척교회를 하고 있 는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지금 나와 있는 종교부지 현황을 알아보고 왔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은 일산 신도시를 줄을 긋고 그림 는 일을 주도한 사람은 예수를 아주 잘 믿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때문 에 일산은 종교부지가 가장요지에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많은부지가 기존교회들에게 배당되었는데 아지 몇몇 좋은 종교부지가 남아 있었습 니다. 그중에 하나 우리 교회가 욕심 낼만한 땅 하나를 발견하였습니 다. 2백평이 좀 넘는 땅으로 고층 아파트 사이에 있는 아주 좋은 땅이 었습니다. 가격은 3억 5천만원이었습니다. 바로 어제 당회원 성경공부 가 끝난직후 회의를통하여 그 땅을 우리 교회가 매입하여 교회를 세 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제 이달말에 공고가 날 터이데 하나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우리는 그 땅을 매입하여 즉시 교회를 건축할 것입니 다. 우선 조립식 건물로 한다 백여평 건물을 지으면 교회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목사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교회는 일 년안에 우리 동안교회 보다 큰 교회가 될런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막 연한 기대와 상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의 틀립없는 예측입니다. 이 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땅만 제비 뽑게 해주신다면 올해안에 당장 이 루어지는 일입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산에 교회를 세우는 일이 끝나면 그 다음일은 우리 동안교회 를 건축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일산의 교가회를 개척허는 일을 하게 되면 현재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비축한 예산은 다 소비되게 될 것입니다. 그예산을 일산에 교회를 세우지 아니하고 우리 교회를 건 축하는 예산으로 활용한다면 퍽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예산을 다써서 먼저 일산에 교회를 개척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지을 수 있는 힘을 갑절 이나 주셔서 현재의 예산을 교회건축에 쓰는 것보다 더 쉽게 교회를 건축할 수 있게 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교회 건축만 끝난다면 우리는 현재의 재정능력 만으로도 2 년마다 일산 규모의 교회를 건축할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조금만 더 힘을 주신다고 하면 해마다 그와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같은 일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고 흥분 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충분 히 있는 꿈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동안교회가 그와같이 교회의 선 교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된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 복하시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도 보면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하여 가지를 깨끗게 하신 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교회나 교인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선교 적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가지를 깨끗게 하시는 축복을 다 받아 누리시는 저와 여러 분이 되시기를 바라며 더나아가 우리 동안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 니다. 김동호 목사
교회의 선교적 사명/ 마16:13-19/ 2009-05-23
교회의 선교적 사명 마16:13-19 교회(Ecclesia)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불리움 받은 선민들이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있는 구원의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해야할 일은 예배, 교육, 전도, 봉사, 친교 등을 바로 시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선교(Mission)란 성령과 교회에 의해 보냄을 받아, 문화권을 넘어가서 이러한 교회의 사명을 타민족, 타문화권에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선교의 지상명령을 내리셨을 당시의(마 28: 18∼20, 막 16:15-18, 행 1:4-8) 유대나라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고, 유대민족주의는 더욱 팽배했던, 핍박의 시대였습니다. 교회적으로는 개척시기요, 경제적으로는 너무나 힘이 없었고, 교회인물 또한 사도들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변변치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선교의 지상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고 명하셨습니다. 예루살렘(내 이웃, 내 고장)과 온 유대(한국)와 사마리아(북한, 이웃 나라 등)와 땅끝까지의 선교는 그 우선 순위에 있어서 동시적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선교의 사명을 가장 큰 명령으로 주셨습니까? 그것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무엇입니까? 1. 음부의 권세가 있는 이 세상, 땅끝까지는 어디입니까? 마태복음 16:18절에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한적한 산장이 공중에나, 별나라에 보냄을 받지 않고 음부의 권세가 있는 곳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있는 곳은 바로 문제투성이의 세상이요, 죄악의 세상이요, 속임, 질투, 차별대우, 아귀다툼, 슬픔과 아픔과 질병, 죽음이 있는 음부의 권세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교회가 선교사를 보내야 할 음부의 권세가 있는 이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1)방언으로 따져보면 세계 6,400언어가운데 신·구약 전권이 번역된 언어는 4%인 265언어, 신약만 번역된 언어는 10%인 629언어, 신약이 지금 번역중인 언어는 19%인 1,195언어 그리고 성경의 일부분도 번역 안된 언어가 50%가 넘는 3,000언어나 있는 곳입니다. (2)12,000족속의 집단들이 전혀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한-대개가 서부 아프리카로부터 아시아에 걸쳐 북위 10도에서 40도사이에 살고 있는 세계인구의 절반이 되는 모슬렘권(10억), 힌두권(7억), 불교권, 미신 종교권들이 있는 곳입니다. 전세계적으로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 어려온 나라인 터어키,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가봉등(이 지구상의 1/3인구가 되는) 25개국이 있는 곳입니다. (3)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불구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지구상에 눈멀고 귀먹은 사람들을 모아서 나라를 만든다면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된다고 합니다. (4)매일밤 굶주린채로 잠자리에 드는 1/5이상의 인구가 있는 곳입니다. 1989년 한해동안 장님이 된 아이들이 25만명, 영양실조와 간단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죽는 아이들이 1,400만명이 된다는 통계입니다. (5)출산할때 영양실조와 과로로 인해 죽어 가는 임산부가 하루에 1,000명이나 되며 집이 없어 길거리를 헤메는 어린이들이 1억이 되는 이 음부의 권세가 있는 세상에 우리 교회를 보내시고 선교사를 보내십니다. 2. 음부의 권세가 있는 이 세상에 무슨 권세를 받아 보냄을 받았습니까? 본문 19절에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천국 열쇠는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예수님이 가지신 \\\\\\\\\\\\\\\"다윗 집의 열쇠\\\\\\\\\\\\\\\"(사 22:22, 계 3:7), \\\\\\\\\\\\\\\"사망과 음부의 열쇠\\\\\\\\\\\\\\\"(계 1:8)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천국의 열쇠를 우리 교회에 복음 전하는 자들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마 16: 19). 이 천국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권세,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권세, 교회를 성결 시키는 회개의 권세, 복음증거와 기도의 결과로 기적을 일으키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예수 믿어서 구원을 얻게되는 천국열쇠를 사용하는 권세입니다. 구원의 열쇠는 증인-선교사를 통해서 죄악의 쇠사슬에 묶여있는 사람들을 풀어주는 놀라운 권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천국 열쇠는 사용하는 자만이 이 권세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교하는 교회만이 맛볼 수 있는 권세요, 능력입니다. 진실로 복음증거하고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선교사에게 임하는 성령의 능력이요, 복음의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이미 승리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습니다. 3. 우리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선교를 위하여 마음과 뜻을 모아 온 교회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성령 충만 능력을 받아 능력 있는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주님을 섬겨 금식하며 기도할 때 이방선교의 본부가 되었고,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었습니다(행 13:2-3). 각 기관마다 개인마다 선교사와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합시다. 둘째는,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선교세미나에 참석하고 선교대회에 참여하고, 선교현지를 순방하고, 교회에서 매월 1회씩 선교헌신예배를 통하여 선교헌금을 하여 선교지에 선교비를 보냅시다. 세째는, 내교회 자녀들 중에 선교사 후보를 양육하여야 합니다. 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선교사역 중 하나가 자녀들을 선교 헌신케 하여 선교사 후보로 키워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훈련 Program을 만들거나 방학때 선교지에서 훈련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요 20:21), 자녀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기도에 힘쓰고, 선교헌금에 동참하고, 자녀들을 선교사 후보생으로 양육합시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교/ 마28:19-20/ 2013-01-20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교 마28:19-20 유명한 신학자인 에밀 브루너는 “나무에 불이 붙음으로 불이 있듯이 선교에 의해서 교회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가 선교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의 존재 이유인 선교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선교는 일반적으로 종교를 널리 펴는 일, 혹은 포교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어로 선교는 Mission인데, 이 말은 라틴어 mitto(보냄, 파견)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리고 mitto는 신약성경의 아포스텔(사명)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세상으로 그리스도의 사신과 사자로 보냄을 받은 일이라는 성경의 개념에 근거를 둡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1. 선교에 대한 성경적 이해 선교는 먼저 예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명령하심으로 제자들과 모든 성도를 복음 전파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성도들로 교회는 이루어졌으며, 교회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이 복음 전파는 시대와 상황이 변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지녀야 할 선교의 기초요, 근거요, 목적입니다. 즉 복음 전파는 선교의 본질입니다. 1) 복음은 구원의 능력입니다(롬1:16)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는 복음 전파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뜻은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복음이 좋은 소식이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야기이며, 우리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는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 이후 모두 죄인이 되어 구원받을 수 없는 멸망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이 멸망은 곧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소식을 담고 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바로 구원의 능력입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저는 금번 중국 선교 여행을 통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능력이 됨을 증거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구원의 능력이 되는 복음의 내용이신 예수님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며,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먼저 부름 받은 성도로서의 의무입니다. 이 구원의 소식을 힘써 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복음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믿고 복음 안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나로 생명의 떡이요, 나에게 오는 자는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로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리의 절망과 고통을 치유해 주고 배고픔과 목마름을 영원히 채워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며, 삶의 원동력이 되십니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쾌락과 안식은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단지 우리 의 생물학적인 생명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삶을 영원한 생명의 삶으로 인도해 주고 변화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선교를 구원의 능력이며, 생명의 양식인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주님은 교회를 세우셨고, 우리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먼저 불러 구원해 주셨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 전파를 힘써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2. 선교의 이유와 목적 1) 선교의 이유 우리가 복음 전파의 선교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이요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선교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쉴 틈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신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약한 사람을 붙들어 주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오해하고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 지어 보내면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복음은 전파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예수님의 최상의 명령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다시금 이것을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전파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지상 최고의 명령이며, 우리에게 맡겨진 최고의 책임을 알고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는 말씀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복음 전파를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중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신문의 사회면은 하루도 빠짐없이 강도, 강간, 폭력 사건은 우리의 생명을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의 죄악 된 세상에 오셔서 생명을 살리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 주신 구원의 복음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인 선교는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명령이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합니다. 2) 선교의 목적 선교의 목적은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이란 말은 생명이란 말과 같습니다. 선교의 목적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결국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서 행하시던 일을 승천하신 후 교회가 계속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던 목적은 무엇입니까? 눅19:11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 속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의 목적도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귀하에 여기고 복음 전파를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교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많은 생명을 구원하여야 합니다. 많은 생명을 구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여야 하겠습니다. 3) 선교의 방법 선교의 방법을 논하기 전에 우리는 선교의 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선교의 대상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입니다. 가깝게는 가족, 친척, 이웃이 있으며, 멀리는 외국인들까지도 우리 선교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에게 복음은 구원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파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내 눈길이 닿지 않은 곳, 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도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선교할 것입니까? 가까운 이웃, 즉 우리의 눈길과 발길이 닿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직접 복음을 전하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의 선교를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를 하는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모두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로 이런 점에서 금번 선교 여행을 기도로 준비하고 다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교사를 돕고 그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갑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간다고 생각지 말고 내가 간다고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선교이며, 선교는 복음전파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생명 구원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구브로 선교/ 행13:4-12/ 2001-09-18
구브로 선교 행13: 4-12 안디옥에 가면 \'하비브 나자르\'란 산이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은 \'목수를 사랑하는 자의 산\'이란 뜻입니다. 그 산은 서울 남산 만큼이나 큰데, 전체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그리고 산 전체에 몸을 굽혀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나 있습니다. 그 구멍은 굴로 연결 되는데, 길이가 26Km까지 들어간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굴 안에는 돌로 만든 설교단이 있고, 성도들이 세례 받을 때 쓸 수 있는 물도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길 읽으면서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선교사를 두 사람씩이나 파송한 안디옥 교회의 당시 모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수를 사랑한 자들이 모여서 예배드린 교회는 바로 이런 굴이었던 것입니다. 교회 건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교우들의 삶 자체가 정함이 없는 나그네였습니다. 물질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만한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열매를 거두어 들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목수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열려 있는 교회는 비록 현실적으로 힘들더라도 선교 사역에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구브로 지역은 교회가 하나님께 바쳐드린 선교의 성공적인 첫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결실이 있는데는 몇 가지의 조건이 합동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1. 성령께서 시작하셨습니다. 0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하나님께서 구브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구브로에 선교사를 보내십니다. 선교사를 보내신 사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사건입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까 어떤 사람이 미국에서 한국까지 건너가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얼굴에 페인트를 뿌렸습니다. 나라를 사랑한다고들 하는 모양인데 참 유별난 일들입니다. 유별나게들 사랑을 표현해요. 몸에 휘발유를 뿌려대서 자살을 하지 않나! 극단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나! 막가는 행동들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나라 사랑을 그렇게 표현해야만 하는 것인가 의문이 갑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말들이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정말 사랑한다는 것은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방의 조그만 나라를 사랑하셔서 많은 선교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구브로를 사랑하셔서 선교사를 보내주십니다. 구브로가 몇 사람의 선교사로 인하여 얼마나 밝은 땅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악한 사탄의 통치 아래 있던 어두움의 구브로 땅이 몇 사람의 선교사로 인하여 얼마나 밝은 땅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구브로 선교는 구브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성령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안디옥 교회가 두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안디옥 교회가 파송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구브로 선교는 위로부터 온(유래) 것입니다. 구브로 선교는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구브로 선교는 안디옥 교회로서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구브로 지역 사람들로서도 꿈을 꾸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브로 백성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구브로 선교를 계획하셨고,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추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찾아오셨던 것처럼 구브로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구브로를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주 내 맘에 늘 계시고 나 주의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98장) 2. 교회와 선교사는 순종하였습니다. 0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따로 세우라!\" 하셨을 때, 교회는 따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갔습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 서쪽 약 26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외항(外港)입니다. 살라미 - 구브로섬 동쪽에 위치한 해안도시입니다. 복음을 들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는 일은 버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구브로는 마가 요한의 부모의 고향입니다. 구브로는 사울의 가장 절친한 동역자의 고향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구브로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구브로를 사랑했습니다. 주님께서 복음 사역을 고향에서 시작하신 것처럼, 그들은 복음 사역을 고향에서 시작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 이 두 사람은 구브로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중심을 체받아 구브로 선교에 헌신한 선교의 맏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귀하고 순결한 맏물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바나바와 사울, 이 두 사람 안에 거하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나바와 사울, 이 두 사람이 성령에 의하여 움직여졌을 때, 선교의 결실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교회가 성령의 집으로서 성령의 뜻대로 움직여지고, 성도가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움직여질 때, 그것은 성전으로서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3.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0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08 이 박수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엘루마는 구브로 지역의 어두움의 권세를 대변하는 적 그리스도적 인물이었습니다. 엘루마:(모든 궤계(\'미끼로 잡다\'의 \'델로\'(*)에서 유래된 단어로 \'교활\', \'간교\', 또는 \'올무\', \'미끼\' \'거짓 선지자\'\'사기꾼\'등의 뜻)와 악행(부주의하고 반(反)신앙적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실족케하는 것)이 가득한 자 . - 마귀의 지식: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는 총독 관저에서 일하는 유대인으로 그의 신분은 \'거짓 선지자 박수\'였습니다. 박수(*, 마고스)는 당시 마술적 또는 주술적 치료 행위릍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여기에 거짓 선지자라고 덧불여진 점으로 보아 자칭 하늘의 계시자로 행세하면서 동시에 주술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치료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인 그가 그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그곳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이 그의 행동에 미혹되었거나 아니면 총독이 그를 보호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경건한 유대인들이 그를 율법에 따라(레 20:6) 처벌했을 것입니다. 그는 구브로 섬의 총 역량을 동원하여 선교사역을 방해하였습니다. 그가 가진 마술과 그가 가진 기득권과 그가 가진 서기오 바울과의 친분을 사용하여 결사적인 반대작업을 진행시켰습니다. 말씀을 듣고자 하는 서기오 바울에게 믿지 못하게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주님을 믿지 못하는 이 악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엘루마 - 아람어 또는 아랍어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단어는 6절에서 언급된 박수와 동의어다. 본래의 뜻은 요술장이 또는 마법사로 통한다. 선교지에는 이와같은 어려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형태만 다를 뿐, 여러 가지 난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이런 난관이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향한 선교사들의 사랑도 끊어져서는 안됩니다. 4. 성령께서 승리하셨습니다. 0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구브로 선교는 양 세력의 결전에서 성령의 승리로 결판났습니다. (9회말에 이긴 것을 알고 야구를 보니까 홈런을 맞아도 문제가 안돼. 현재는 깜깜하나 어쨌든 우리는 이길 것이다. 490번 용서할 수 있는 경우란, 부모가 자식의 죄를 용서할 때 가능. 양치는 언덕: \'요이찌는 깨끗하다! 왜? 아버지가 용서하기로 작정하고 계시니까! \'나오미 이제 오느냐?\' 아버지는 문이 열릴 때마다. 용서하시는 주의 보혈에는 능력이 있다.) 엘루마는 안개와 어두움에 덮인 소경이 되고 맙니다. 바울의 승리는 바로 성령께서 어두움의 영을 물리침으로 끝을 맺습니다. 빛의 승리는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승리에 두 바울이 쓰임받습니다. 1] 사울이라고 하는 바울은 하나님 말씀 사역으로 승리리할 수 있었습니다. 두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브로에 공급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구브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함으로 나타납니다. 구브로 섬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하십니다. 구브로 선교는 은과 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구브로 백성이 사는 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 - 처음으로 바울(Paul)이라는 이름이 언급되었다. 이후로는 사울이 아니라 바울이라는 이름으로만 언급된다. 사울이라는 이름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이유에 대해서 사울이 회계한 이후부터 새사람된 표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Bengel, Olshausen, Meyer). 오히려 바울이라는 이름을 본래부터 갖고 있었는데 서기오 바울을 만난 이후부터 저자가 사울을 로마식 이름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Zahn, Lightfoot).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식 이름 외에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1:23;12:25;13:1) 특히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람이었으므로(22:28) 로마식 이름을 가졌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가 바울이라는 사울의 로마식 이름을 이제야 언급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제 비로소 사울이 이방선교를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이방 지역에서는 로마식 이름으로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여질 것이고 설교에도 도음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2] 서기오 바울은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께 쓰임을 받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0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서기오 바울은 구브로의 총독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지혜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열려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직위나 물질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열려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엘루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바울 일행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호의적인 입장에서 서 있었습니다., 관심을 두었습니다. 측근의 불경건한 술수를 물리치고 바나바와 사울이 전하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는 구브로 지역에 찾아 온 선교사들의 말씀에 무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헤롯이나 빌라도에게 중요한 사건이었듯이 바울과 바나바의 구브로에서의 선교사역은 그 지역의 총독인 서기오 바울과 깊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등뒤로 하고 살다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헤롯이나 빌라도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살핀 후, 보고 믿었습니다. 구브로 지역 선교의 주목할만한 말씀의 열매가 되었습니다. 맺음말 우리는 이 시대에 여전히 일하시는 성령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 서머나 교회는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교회로서 안디옥 교회처럼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받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 바울과 바나바처럼 쓰임받기 원합니다. 성령님의 전으로 성령에 의하여 움직이는 교회이길 원합니다. 엘로마 같은 난관이 있겠지만, 바울과 바나바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으로 사역하기 원합니다. 서기오 바울 같이 말씀을 적극적으로 받음으로 열매를 맺는 선교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구원과 선교!/ 눅8:35-39/ 2010-03-21
구원과 선교! 눅8:35-39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는 방법이고, ②또 하나는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면서 자세히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전체를 바라보면 전체적인 윤곽은 알 수가 있지만 골목을 알 수 없고, 골목만 누비다 보면 전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두 가지는 언제나 병행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서 성경을 바라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구원과 선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포로 시작됩니다(창1:1).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세계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곧바로 인간에게 그 초점을 좁히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4절부터는 인간의 문제를 클로즈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의 이야기는 타락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창세기 3장부터는 인간이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범죄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그 이후로 타락한 인간들이 빚어내는 죄악과, 그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과 죽음을 그냥 묵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원대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모든 사건은 구원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것이 족장의 이야기이건, 이스라엘의 민족사건 간에, 우리는 성서의 모든 내용들을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고, 노아를 부르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선지자들, 사사들을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신약시대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 그리고 교회가 탄생하고,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이르렀습니다. 아담을 부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르셨을까?” 하는 그 부르심의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름을 받은 그 한 사람만 복을 주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즉,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속의 역사는 아브람을 부르신 사건에서부터 활짝 열립니다. 그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성경 전체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도요, 계획이요, 뜻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역시 아브라함만 복을 주시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통하여 “세계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창12:1-3).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다분히 전 세계적인 것입니다. 모세를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선지자들이나 사사들을 통하여 구원하셨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사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 사건들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나서 사도들의 시대를 지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구약시대에 성막에서 축복하시고 인간을 만나시던 하나님은 신약시대에 교회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제,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교회에 위임하셨습니다(마16:18-19).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은 바로 “구원”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 전파에 목적을 두지 않은 교회, 국내와 세계 선교에 초점을 맞추지 아니한 교회는 교회 존립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요, 그런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교회의 선교는 “세계적”인 것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천하 만민을 구원하도록 위임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는 성령을 받아 구원의 주 예수님을 증거하며,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구원의 뜻을 펴야 하는 것입니다(행1:8, 마24:14). 그래서 성경은 두 개의 큰 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이라는 산이고, 또 하나는 전도 즉 “선교”라는 산입니다. 이 두 개의 거대한 산맥으로 성경은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은 이 두 가지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것을 설명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원과 선교” 이 두 가지 성경의 대 주제를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그 구원을 이루고 선교를 이루는 영광의 도구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는 일”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시고 복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께 붙들린바 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전도하는 사람, 선교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고, 그(사람)를 통하여 주(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구원과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주제도 “구원”이요, 전체적인 내용도 “구원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고, 예수님의 이름의 뜻도 바로 “구원”입니다.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성경을 묵상하고, 말씀을 듣고, 이해할 때, “구원과 선교”라는 관점에서 언제나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구원과 선교”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거라사 지방에 귀신이 들려, 무덤 사이에서 살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집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버림을 받았으니 동네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 줄 리가 없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네에서 쫓겨나 오랜 기간 동안 옷도 입지 않은 채, 벌거벗은 몸으로 지내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묘지에 가서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나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가 주님을 찾아 나선 것이 아닙니다. 그냥 무덤에서 살고 있는데, 주님이 그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왜 찾아가셨을까요?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그를 찾아 가셨을까요? 물론 귀신을 쫓아내고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그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찾아가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초보적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이 왜 그를 찾아 가셨습니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바로, “구원과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 속에 거하는 악한 귀신을 향하여, “이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귀신은 예수님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소서!”하고 애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니, 그는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많은 귀신이 이 사람의 몸에 거하면서, 정신을 온전치 못하게 하며, 그의 몸을 제어하고 광야로 나아가 온갖 추한 모습으로 살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놓아도 어찌나 힘이 센지 그것을 끊고 사람들을 해칠 뿐만 아니라, 광야로 나가서 사람이 살 수 없는 무덤에서 거하게 한 것입니다. 귀신에게 이끌려 다니는 이 사람,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간절히 구하기를 “무저갱에 들어가라”고 명하지 말 것을 간청하였는데, 마침 거기에는 많은 돼지 떼들이 있어서 그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 들어가므로, 그 많은 돼지 떼들이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빠져 모두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무서워 도망을 치면서 이 사실을 성내와 촌에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고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고,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이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큰 재산적인 손실을 가져왔기 때문에 사람이 온전해진 것 보다는 돼지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온 천하보다도 인간의 한 생명을 더욱 귀중히 여기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밝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주님을 만나게 되니까,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처럼 문제가 해결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치고 그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모시면 샘솟는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귀신들렸던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났기에 그의 인생에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그의 인생에 새로운 광명이 찾아 온 것입니다. 이제는 옷도 입고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 왔습니다. 그는 주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어가던 인생이었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인생을 고쳐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그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남은 일생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수종을 들어도 못 갚을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그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39절에 보면, 주님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돌보지 않고, 내어 쫓은 그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우리에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내어 쫓은 그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란 말인가? 이제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생애에 열심히 전도하면서 주님만 따라다니려고 하는데, 왜 가기도 싫은 집으로 가라고 하시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주님이 야속합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주님이 다른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에, 집과 고향과 식구와 직장을 버리고서라도,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부친이 죽어 장례식을 마치고 주님을 따라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장례식마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즉시 따라 오라고 까지 하셨습니다(마8:21F). 그러던 분이 이번에는 따라가겠다고 나선 사람에게, 오히려 집으로 돌아가라고 돌려보내시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주님이 이 사람을 집으로 가라고 하셨을까? 우리는 여기서 주님이 왜 그 사람을, 집으로 돌려 보내셨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첫째로, 주님이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신 이유는 그가 체험했던 것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돌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하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사람들에게 고하라는 것입니다. 고쳐주신, 그 일에 대해서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증거 되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구속의 사건에 대하여 자신이 경험한 그대로를 우리가 증거 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이 사람은 집에서 떠나 병자로 지내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귀신을 물리쳐 온전한 사람이 되었으니, 집에 가게 된다면 푹 쉬면서 요양할 만도 합니다. 잠도 실컷 자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도 싶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할 일이 있으니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험을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집으로 가서도 그런 사실을 증거 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보실 때 그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가 집에서 나올 때는 병자의 몸으로 쫓겨났지만, 돌아갈 때에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증인의 역할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교회에 모였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식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가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중요한 목적을 깜빡 잊을 때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예배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밀린 공부를 해야지.”하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생각하기를 “오늘은 식구들과 모처럼 쇼핑을 가든지 야외로 나가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이는 “예배가 끝나면, 얼른 가게 문을 열어야지”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집으로 가는 목적은 먹고살기 위한 의식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주님을 만난 성도는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받은 은혜를 어떻게 증거 할 것인가? 오늘 만난 주님을 내 가족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부모는 그 자녀에게, 자녀는 그 부모에게 전해야 합니다.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증거 해야 할 것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하고 계신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에 “증인”이라는 말씀은 73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증거”라는 말씀은 무려 137번 기록되고 있으며, “전도”라는 말씀은 25번, “전파”라는 말씀은 93번이나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이 될 것에 대해서 성경은 328번이나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막16:15절에도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집으로 가되, 받은바 은혜에 대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가서 일일이 고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주님이 내게 어떻게 하셨는가를 일일이 증거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둘째로, 집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은 복음화의 가장 첫 번째 순서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귀신 들렸던 이 사람의 집에는 자기를 쫓아낸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잘 돌봐 주지도 않고, 학대하고 내어 쫓았는데,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그들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주님이 이러한 사정을 모르시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최소한, 우리 가정은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인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들에게 예수를 소개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대상은 바로, 우리의 가정이며 우리의 가족입니다. 만일, 집에 가서 증거 하지 않으면 집으로 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39절에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똑같은 말씀이, 마가복음 5장에도 나오는데, 막5:19절 에서는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친속이 누구입니까? 우리의 가족, 친지, 가까운 이웃입니다. 바로 그 분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39절에 보면, 귀신 나간 이 사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하셨는지 온 성내에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행1:8절에서 주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요, 현재 내가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온 유대는 - 이스라엘, 즉 우리나라를 말하며, 사마리아는 - 이방나라, 즉 다른 국가, 다른 민족,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개인으로 보면, 예루살렘은 우리의 가정인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복음이 전파되고, 그러고 나서 우리 동네, 우리나라, 그리고 다른 나라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셋째로,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 갈 수 없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눅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사람이 다 같이 죽어,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고, 부자는 음부에 내려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음부에 가서야 부자는 비로소 크게 깨닫고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생각하기를 자기 집에 형제 다섯이 있는데, 그들만은 절대로 음부에 오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잠깐만이라도 자기를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죽음의 세계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후회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ex) 저는 한 가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심방 전도사님이 어느 집을 심방하자는 것입니다. 그 분은 노환으로 이제 얼마 안 가서 돌아가실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해야 될 일이 많아서 “내일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서 막 기도를 하려고 하는데 전도사님이 와서 하는 말이 어제 밤에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아차! 어제 심방을 갔어야 하는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 분의 신앙으로 보아서 구원을 받았는지도 심히 염려가 되는 그런 사람인데, 어제 심방을 가서 “구원의 확신”을 심어 줬어야 하는 건데.... 하고 가슴을 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오늘 헌신을 다짐하시는 여러분! “지금”이라는 시간이야말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요, 기장 좋은 때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의 생각에 떠오르는 가족이나 이웃이 있다면 그분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오늘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 기도 >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원과 선교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바로 나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인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최소한 내 가족은 나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 주변에는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추수할 곡식은 많은데 일꾼은 심히 적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오늘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연희교회가 이렇게 크게 성장해서 교회를 건축하고 새로운 목사님을 모시며 여러 장로님들을 세우심으로 교회가 더욱 활기 있게 성장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더욱 구원과 선교를 이르는 교회가 되어서 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헌신을 다짐하시는 여전도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금메달을 가슴에 차는 신자/ 롬7:1-6/ 중국선교보고설교/ 2008-06-20
금메달을 가슴에 차는 신자 롬7:1-6 김명혁 목사님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학이 동(銅)이라면 설교는 은(銀)이요 삶은 금(金)이다.\" 우리는 이런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 참 행복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리면서 나아갔습니다. 매일 새벽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연길 교회에서 동족을 방문해서도 과기대 예배당에서도 복지병원 사역자들과 함께 북경교회에서 천진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부탁받은 교회에서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전하였습니다. 예배를 마치면서 몇 분은 제 설교에 호의적 평을 해주셨습니다. 그중 한 분이 김동규 목사님이십니다. 김동규 목사님은 삶이 참 귀한 분이십니다. 저는 그분에 관한 존경하는 여러분을 다른 지역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15만불을 들여 동족 가운데 된장 공장을 세우고 그곳에서 생산된 제품을 고국에 팔아서 동족을 돕는 참 지혜로운 사역을 이룬 분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런 신앙의 거장이 호의적으로 격려할 때 참 송구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 전날 밤 김명혁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명언으로 답을 드렸습니다. 김 목사님께서는 금메달 감 삶을 살고 계시는데, 저는 잘해보아야 은메달입니다 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신학이 바른 방향을 보여주고 설교가 진리를 바로 선포할 수 있지만 진리에 순종하는 삶이 뒤따를 때 비로소 그 진리는 열매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로마서 6-8장은 전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삶을 산다!\" 이는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만나고자 하는 주제입니다. \'금메달 받는 신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으시는 가운데 거룩한 삶의 금맥을 찾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사망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을 경계합니다. [5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합니다. 그 결과!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웰빙시대가 되었습니다. 좀더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기울이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먹는 것 때문에 죽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에 있지 않도록 절제하는 삶을 권장했습니다. 그 한 가지 예로 절식과 소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식(小食)과 절식(節食)이 더 신앙적인 이유\" 오늘처럼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한 현실이 아닌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소식(小食) 혹은 절식(節食)이 건강을 이유로도 강조되고 있지만, 교회 전통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즉 교회 전통에서 볼 때 무엇을 먹으며, 얼마나 먹을 것인가 하는 음식물(飮食物)은 영적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폭식(暴食)이나 탐식(貪食)은 향락과 사치의 상징으로 이해됐다면, 소식이나 절식은 경건한 종교적 덕목으로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수도원 전통에서 음식의 문제는 심각하게 취급되었다. 수도원은 세상과 분리된 삶의 방식을 이상으로 여겼는데, 은둔생활과 자기부정적인 금욕적 삶을 통해 거룩함과 경건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수도운동의 시원자로 알려진 이집트의 안토니우스(Anthonius, 250?-356?)는 부자청년에 관한 기록(막10:17-27), 곧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말씀에 감명을 받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처분하고 은둔자의 길을 갔다. 특히 그는 소량의 음식물을 소금과 함께 먹었고, 음료수는 물만 마셨는데, 이런 자기 부정적 음식관행은 수도원 규칙에서 요구되기도 했다. 그는 극도의 자기 부정적인 삶을 살았으나 105세까지 살았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전된 금욕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지만 세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는 독신주의였고, 둘째는 세속적인 행복의 포기였으며, 그리고 셋째가 절제와 절식이었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있는 동안에 악령이 들어올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생존에 필요한 정도의 소식이 권장되었고, 음식 중에서도 육식의 거부가 두드러졌다. 서방에서 수도원제도의 원형이 되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부터 공통적으로 강조됐던 수도원 정신은 순결, 복종과 함께 청빈이었는데, 소식이나 절식은 그것이 얼마나 성실하게 실행되었는가 하는 점과 관계없이 언제나 수도사의 영적 덕목으로 요구되었다. 11세기에 시작된 시토수도회(Cistercians)는 이전의 느슨한 수도생활을 개혁한다는 취지에서 보다 엄격한 금욕을 강조했는데, 연중 일정기간에는 한 끼의 식사만 하게 했고, 그 외의 기간에는 하루 두 끼만 먹었다. 그나마도 일체의 고기, 생선, 달걀, 버터 등은 금했다. 보잘 것 없는 식생활에도 불구하고 혹심한 육체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마가렛 딘슬리, <중세교회사>, 148.). 이런 금욕주의는 특히 13세기에 일어난 탁발 수도회(the Mendicant order)에 의해 더욱 강조되었다. ‘탁발’이라고 하면 불교 승려들과 같은 ‘머리 깎음’을 생각하기 싶지만 여기서 말하는 ‘탁발’(托鉢)이란 구걸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는 뜻인데, 이 말은 형제(broder)란 뜻의 라틴어 쁘라테르(Frater)에서 유래하였다. 이들은 절대적 빈곤을 지키기 위해 음식마저도 구걸의 방법을 취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특히 프란체스코수도회의 창시자인 프란체스코(Francesco)는 “헐벗은 그리스도를 헐벗은 채로 따르기 위하여”(to follow naked the naked christ) 모든 재산을 스스로 포기하고 소위 ‘자의적 빈곤’의 길을 갔다. 그는 소식이나 절식 정도가 아니라 금욕과 금식을 일상화하여 44세의 나이로 죽었다. 중세 천주교 전통에서 강조되어 왔던 소식이나 절식은 천주교의 대죄(大罪)의 개념에도 반영되어 있다. 천주교는 죄를 대죄와 소죄(小罪)로 구분하는데, 대죄(Mortal sin)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의미한다. 이 죄는 하나님의 법에 대한 범죄로 간주되는데, 이것은 영혼을 죽이는데 치명적이며, 영혼으로 하여금 영원한 형벌을 받게 하기 때문에 대죄라고 부르는 것이다. 반면에 소죄란 하나님인 이웃에 대해 행해진 작고 용서받을 수 있는 죄를 의미하는데, 죄책이 가볍고, 기도, 선행, 병자성사, 연옥들에서 속함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대죄란, 교만(pride), 탐욕(covetousness), 호색(lust), 분노(anger), 시기(envy), 나태(sloth), 그리고 탐식(gluttony) 등 7가지를 말하는데, 탐식은 커다란 죄악으로 규정되었다. 이 시기 금욕적 요구에서 소식이나 절식이 강조되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진지하게 실행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심지어는 탁발수도승들 조차도 음란과 폭식과 과식으로 그 시대의 부패를 가중시켰다는 기록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이런 탐식이나 과식은 불경건의 모형이었다. 이 점을 시사해 주는 대표적인 한 사람이 교황 알렉산더 6세(Alexander VI, 1492-1503)였다. 그는 교황이 되기 전에 이미 몇 사람의 정부와 3남 1녀의 자녀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 이후에 7명의 자녀를 더 얻었다. 그의 음란한 생활과 함께 폭식과 폭주로 악명을 더 했다. 그는 일단 연찬(宴饌)을 시작하면 녹초가 되기까지 먹고 마시고 즐겼음으로 역사가들은 그의 ‘살인적 파티’(lethal dinner parties)를 유명한 일화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불경건하고 방종한 교황이었던 셈이다. 소식(小食)을 강조한 것은 천주교적 금욕주의 전통만이 아니다. 12세기 발도파 또한 소식과 절식을 그리스도인의 미덕으로 강조했다. 리용의 상인이었던 발도(Peter Waldo)는 어느 유랑 시인의 노래를 듣고 청빈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거지가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신앙집단이 발도파(the Waldenses)인데, 이들은 나를 따르려거든 “네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그리고 나를 좇으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따랐다. 이들은 구걸하며 사는 소식주의를 경건한 삶의 방식으로 주장했다. 탐식을 멀리하고 소식을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으로 강조한 점에 있어서는 종교개혁 이전의 개혁자로 불리는 존 후스(John Huss)나 위클리프(Wycliffe)도 동일했다. 루터에게도 이런 점이 나타난다. 루터가 중세신학을 거부하고 중세 수도원주의를 비판했다고 해서 소식과 절식 등 거룩한 청빈까지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금욕주의적 관행을 거부한 것이었다. 17세기 청교도들은 영국교회(성공회, Church of England)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천주교적 잔재를 제거하기 위해 싸웠던 이들이지만 소식이 갖는 영적 의미를 강조한 집단이기도 하다. 이들 청교도들은 다는 날보다 특히 주의 날에는 금식이나 소식을 권장했다. 이들이 대식을 피하고 소식을 권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였다. 음식을 많이 먹으면 예배시간에 졸음이 오고 결국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도 청교도들의 신앙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상규 교수 /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신학박사]가 전해준 말처럼, 그 동기야 어떠하든 탐식이나 대식보다는 소식과 절식은 육체의 소욕을 절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덜 이기적이며 더 신앙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사망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을 경계할 일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그러나 한(恨)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이 옳고 좋은 것을 알지만 온전히 지키며 살지 못한 일입니다. 아담 이래 죄아래 있는 인간이 가진 한계입니다. 그 결과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옳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미덕처럼 우러러 보지만,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을 적당히 취하며 자족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물질에 매여 헉헉거리는 사람을 옳다고 박수치지 않습니다. *** 사망을 위하여 열매 맺는 삶을 경계할 일입니다. 2.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6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이 진리를 오늘 말씀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 아주 비인격적이고 못된 남편이 있습니다. 그 남편으로 인하여 아내는 고통을 많이 당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언제까지나 살지는 않습니다. 아내 곁을 떠나는 날이 옵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는 날이 옵니다. 그 때, 아내는 더 이상 남편에 매이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더 이상 남편에게 매이지 않은 것처럼, 육신이 죽으면 율법은 더 이상 역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아직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에 대하여 죽고 영에 대하여 산 존재들입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람은 얽매었던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율법은 소중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을 통해 나의 현재 위치를 알고, 율법을 통해 우리 인생이 나아가야할 목표를 압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은 율법을 존중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능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1/10조도 잘했습니다. 일 주일에 두번씩 금식도 했습니다. 절기를 잘 지켰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 전생애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율법을 넘어갑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육신에 속하여 율법 아래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죄인들이 율법에 대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자유함을 누렸습니다. -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육신에 있는 동안 죄인으로 율법의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옛사람 그대로이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얽매었던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존재가 바뀌었어요. 성도가 받은 가장 귀한 복은 존재의 변화입니다. 2]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삭개오가 육신에 있는 동안 죄인으로 율법의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중국만 다섯 번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가서 귀한 선교사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분들에게 공통점이 있습니다. 1/10조를 하느냐고 묻는 것이 참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10/10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이영애 자매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교회에서 집사도 해보지 못한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 남편과 함께 그곳에 와서 10/10을 드려 헌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편은 미국에서 잘나가던 직업을 뒤로하고 그곳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충성합니다. 이영애 자매님은 동족에게 좋은 것들을 끊임없이 실어나르는 동족을 위한 하나님의 귀한 나귀입니다. 그분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샬롬입니다 ! 이곳에서 사장님을 만나서 귀한 시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사장님의 인자한 웃음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3일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저에게는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들어가서 그쪽 사람들에게 한달에 한번씩 주는 식량을 나누어 주면서도 행복했고 그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비도 눈도 오지 않아서 행복했읍니다 박스들을 옮기면서는 사장님과 장노님 생각을 했읍니다 ㅎㅎㅎ 참으로 저에게는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읍니다 사장님 언제나 저희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없으나 그때까지 건강 하시고 행복하세요 !!!!!! 저는 오늘도 내안에 계신 그분과 함께 행복하게 뛰겠읍니다 ㅎㅎㅎㅎㅎㅎ 그의 가진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고 사는 자매입니다. 선교사라 부를 자격이 없다고, 그러한 명칭이 천부당만부당하다는 이 자매님이 이렇게 헌신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동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에 전부를 주는 것 이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100%를 줄 수 있는 것이 계명의 완성입니다. 1/10을 바치는 것도 귀하지만 그것은 계명의 1/10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랑하기에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안식일에 한 손 마른 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갑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 속할 때, 육체에 속하였던 우리 옛 사람은 죽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산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십니다.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수가성 여인이 육신에 있는 동안 죄인으로 율법의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녀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셨습니다. 지난 여행에서 만난 어떤 부부의 아름다운 사역이 눈에 남습니다. 이 젊은 부부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삶의 목표를 동족 돕는 일에 맞추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들어가서 대학을 마쳤습니다.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어떤 일에 삶을 드렸습니까? 동족을 살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주려 죽어가는 동족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의 나귀가 되어 북한 가장 힘든 마을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의 등에 실어준 곡물들을 풀어줍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동족 가운데서 만나 홍 장로님의 헌신도 마음에 남습니다. 7순이 다된 분이신데, 홀로 그곳에 찾아가셔서 고아원 원아들을 섬기고 계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우리 안에서 과실을 맺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맺는 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목적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이런 주님의 중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요한복음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한복음 15:4 ]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5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8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복음 15:16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옛사람에 속한 헛된 것들을 허물어버리고, 그리스도께 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복된 열매를 맺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쉬운 성경] 1.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지금 율법을 아는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2. 이를테면 결혼한 여자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에 의해 남편에 매여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 그 여자는 남편에게 매여 있던 법에서 해방됩니다. 3. 그래서 여자가 남편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는 간음죄를 짓는 것이 되지만,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여자는 그 법에서 해방되므로 다른 남자와 결혼하더라도 간음죄를 짓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4. 내 형제 자매 여러분, 이와 같이 여러분들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께 열매를 맺기 위해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5. 전에 우리가 죄의 성품에 사로잡혀 살았을 때는, 율법이 우리 몸 속에서 죄를 지으려는 욕망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했었습니다. 6.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가둔 율법에 대해 죽고,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문자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기도와 선교의 필요성/ 단2:19-24/ 2010-02-21
기도와 선교의 필요성 단2:19-24 오늘같이 읽은 본문에서보면 선지자 다니엘은 세번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23절부터 같이 읽겠습니다. (1) 주여 들으소서 (2) 주여 용서하소서 (3) 주여 행하소서라는 뜻이 압축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주여라고 부르짓는 근거를 대라고 합니다. 그것은 주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이 어 려운 곤경에서 구원하시는 일을 지체 마소서!라는 뜻인 것입니다. 1. 기도는 왜 하여야 합니까? 다니엘 선지자는 왜 평생을 애달프게 주님을 불렀습니까? 다니엘에게 는 너무나 긴박한 어려운 시련의 사건들이 계속되었기 때문인 것입니 다. 단2:1 을 보세요 느브갓네살왕이 직위한지 2년에 꿈을 꾸고 그로인하 여 마음이 번민을 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점술가와 무당을 다 모아 놓고 행동하라고 해놓고 제대로 해몽을 못할 경우 다 죽이겠다고 했습 니다. 그때에 다니엘이 기도를 통해서 응답을 받고 제대로 꿈을 해석해서 자기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단3:1-18 까지보면 느브갓네살왕의 승전기념탑을 두리평원에 금신상 을 세워 제막식을 할때 무론대소하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는 자는 다 풀무불에 죽이라는 왕의 명령이 내려졌으나 다니엘의 세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는 왕이 풀무불에 던져놓는다할지라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18절에 그리아니할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 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도 절하지 아니하줄을 아 옵소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의 앞에 끌려가 7배나 뜨거운 풀부불속 에 던져졌으나 일사각오의 백절불굴의 믿음의 용장인 그들을 살르지 못하였던 것과 오히려 너희가 섬기는 야훼의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증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 그때도 다니엘과 그들은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단 6:10-23에도 다니엘 선지자는 왕의 어인이 찍힌줄을 알면서도 정 한 기도시간 하루 세번씩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들을 보내여 사자들의 입을 봉하였음으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다니엘 기도하는 성도들은 어떠한 해도 가까이 하지못한다 고 시91:7에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려지나니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못하리로다\\\"라고 인권 보장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다가 실망하고 낙심하는 제자들에게 눅 18:1-9절 을 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 의 말씀이 있습니다. \\\"과부가 원한 깊은 사정을 들어주지 않는 재판장 에게 끈질지게 찾아가 하소연해서 결국은 원한을 풀었다\\\"는 이야기입 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불의한 영광과 비교가 않될정도로 자비로우시 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기도하며 부르짓는 기도하는 성도들의 간구하는 소원을 들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맞습니다.그래서 눅18:6-7 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장의 말할것을 들어라 하물며 하나 님께서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믿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금식기도로 하만의 민족말살의 계획에서 민족을 구하였던 것이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성도 비록 이방의 민족이였으나 왕으로부터 가축에 이르기까지 왕으로부터 가축에 이르기까지 3일동안 금식기도로 회개하는 운동이 전개될때 도성이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 까? 옛 성도를 먼저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앞서가 믿는자의 기도를 들으 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1993년 사순절을 맞이하여 40일동안 새벽기도 를 작정하고 마지막 예루살렘성을 향하신 40일동안의 예수님이 겪으신 고민과 고통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 는 성도들의 간구를 들으사 자신은 물론 가정식구들과 민족을 구원하 여 새로운 생명의 삶을 주실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선교는 왜 하여야 합니까? 예루살렘교회의 큰 환난을 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때 하루의 3천명씩이나 믿는자가 생긱고 물질적으로도 복을 받아 풍부하였고 갖은 병이 고침 을 받는 영력이 충만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그러한 축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뜻 인 만국만민에게 즉 이방나라 이웃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를 하지 아니하고 매일같이 떡과 포도주를 들며 은혜받은 일에 대하여 간증만 하고 찬양하고 즐겁게 춤을 추는 것에만 몰두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 만이 믿음의 생활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만 알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사랑의 매를 들어서 예루살렘교회를 치셔서 교인 들이 다메섹 소아시아 유럽등지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시는데 그들이 자리를 잡은 곳이 교회가 되어서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에 예루살렘교 회가 자진해서 선교사를 보내고 물질과 기도로 협조를 했다면 큰 시련 을 격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기도를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였더면 만국으로 흩어지는 고난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AD 313년 콘스탄틴대제가 즉위한 후 대로마제국이 일조일석에 기독교 국가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후 교권이 국가를 지배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이전에 교황을 섬기며 면죄부를 팔아먹어가 며 치부에만 혈안이 된 중세 기독교는 타락될 대로 타락되면 암흑세계 를 이루고 하나님 부재 정경인 성경부재의 기독교가 되고 말았습니 다. 그러다보니 복음이 사라지고 선교패턴이 끊어지게 되니 마호메트에 의하여 알라신을 섬기는 회교가 등장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대로마제국 이 붕괴되게 되니 오늘의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 일대가 아랍교에게 침식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가지 놀란것은 전형적인 기독교국가인 대영제국이 붕괴되어 오늘의 영국에서 개신교인 성공회가 1주간 1개의 교회가 문을 닫는데 댄스홀. 맥주홀로 전략이 되는 가하하면 이슬람교회로 침식이 된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교도에 의하여 6천명이 순교를 당한 개신교 도 순교지 묘역앞에 이슬람 사원이 건축되고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고 전 도와 선교에 모두 동참하여 믿음의 선조들이 피어진 순교로 받아들인 이복음을 땅끝까지 주의 증인의 사명을 다하여 축복받는 모두가 되십 시다.
기도하시고 선교하신 예수님/ 막1:35-39/ 2010-03-21
기도하시고 선교하신 예수님 막1:35-39 예수님은 안식일을 맞이하여 먼저 회당에서 설교하시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시고,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을 당하여 회당에서 말씀하시고 귀신을 내쫓으신 사건이 막1:21-28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사건이 1:29-34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그 다음 날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가버나움 동리에서 한적한 곳이라고 하면 갈릴리 바다 동편 바닷가를 말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모릅니다. 다만 한적한 곳, 인적이 드문 곳,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을 의미합니다. 오늘 기도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데, 기도의 중요성이라든가 어떻게 기도하느냐 하는 것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기도는 해야겠는데, 언제 기도하면 좋으냐고 물어오고 있습니다. 기도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기도하기 좋은 시간은 차츰 자기의 체험으로 정립되는 것이고, 우선 어떠한 장소라도 구애받지 아니하고 먼저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나 “무시로 기도하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어느 때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정의하는 말 가운데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며”, “하나님과의 대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교통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교통이라는 말을 영어로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구해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하면 하나님은 응답해주시고 이렇게 오고 가는 것이 교통입니다. 일방통행은 교통이 아닙니다. 교통이라고 하면 서로 막힘이 없고, 오고가는 일을 말합니다. 서로 교제하는 것이며, 서로 왕래하는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교통이 잘 되어야 합니다. 교류가 되어야 합니다. 왕래가 있어야 합니다. 남북이 교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 남북의 물꼬가 트이는 것 같은데, 기도하면서 지켜보아야 합니다. 요리문답 제98문에 “기도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하기를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그리스도의 자비를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뢰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고, 믿음은 자라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을 더욱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말할 때 기도란 하나님과의 계약의 통로가 된다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만나지 않고, 대화가 없으면 완전히 사귐이 끊어지고 아무런 관계도 없어집니다. (사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 즉 다이얼로그(Dialogue)입니다. 대화란 상대가 있어야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절대로 독백이 아닙니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말하는 독백이 아닙니다. 기도는 혼자 말하는 넋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들으십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지로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에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교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기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아예 전화선을 빼놓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기도하는데 전념할 수 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기도를 중단하고, 약속 시간 임박해서 기도한다고 시늉이나 내다 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고, 조용한 새벽 시간에 나와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 정신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 새롭게 만들어 새벽 기도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새벽 기도가 자랑도 아닙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 하는 것이 새벽기도입니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하루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신성한 시간”, “신께 속한 시간”, “역사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새벽이라는 헬라어는 [프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른 아침을 말하며 밤의 4번째 경점을 말합니다. 오전 3시에서 6시까지를 말하는 말이 [프로이]라는 말입니다. 새벽기도란 예수님이 즐겨 하신 것으로 새 날의 시작과 더불어 최초의 생각이 하나님을 향한다는 의미에서 귀한 시간입니다. 새벽기도는 하루에서 첫 번째로 행하는 일인데, 하나님 앞에 우리의 영혼을 의탁하는 시간이기에 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새벽 시간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구약에서 야곱이란 분이 이스라엘로 변하는 시간은 새벽 시간이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멀리 밧단아람으로 떠날 때 하루는 루스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땅위에 서 있는 것이 나타났는데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사닥다리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놀라운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창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야곱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새벽에 부르짖어 기도하여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야곱은 그 아침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확인하면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자기가 베고 자던 돌에 기름을 붓고 성별하였습니다. 새벽기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깨닫고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기도하였습니다. 이 강을 건너가면 가나안 땅으로 형님 에서를 만나야 하는 절대 절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를 건너보냈습니다. 자기만 남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새벽에 이를 때 응답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한 천사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그 천사는 야곱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어찌나 간절하게 사모하고 매달리는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 환도 뼈를 쳤습니다. 그래도 그 천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그렇게 간절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인사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쌀이 익어 밥이 되려면 뜨거운 눈물이 나와야 하는 것처럼 간절해야 합니다. (창32:26-28)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바로 이 말씀을 듣고 야곱이 변화를 받은 시간이 날이 새려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완악한 성품이 변화를 받습니다. 나의 추악한 욕심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는 힘은 새벽기도에 있습니다. 무어라 해도 새벽 시간이 소중한 시간, 특별한 시간, 경건한 시간이 된 것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우리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침, 즉 새벽에 기도할 때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레6:12)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46: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88:13)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시119:147)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우리는 새벽이라는 그 자체가 어떤 효험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그것은 미신입니다. 다른 시간보다 경건하고, 의미가 있고,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으로 좋은 시간입니다. 개인에 따라서는 저녁 기도가 좋은 분도 있습니다. 대로는 자기 집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보면 집은 쉬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곳이지 기도하기 좋은 장소가 아닌 것을 느껴봅니다. 가정의 주기능이 안식과 보호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헌법의 예배 모범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새벽 기도회를 잘 정의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경건 되고 성실하게 모든 생각과 정성을 집중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기도 시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든지 시간이 있는 대로 개인적으로나 공동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하루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새벽부터 교회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국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더 성장케 하고 풍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새벽 기도란 우리의 모든 삶에 있어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탁하는 전적 헌신의 자세이고, 하나님의 자녀 곧 언약의 백성인 표시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시간입니다. 새벽 기도에 힘을 쓴 사람은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엄한 기도 훈련을 받은 분입니다. 수도원에서는 하루에 8차례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Mattins라는 동틀 무렵의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아침 6시에 드리는 프라임(Prime)라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마르틴 루터 역시 기도를 강조하신 분입니다. 아침의 대부분은 기도로 보내신 분입니다. 요한 칼빈도 기도에 힘을 기울인 사람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면서 경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리교회를 시작하신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88세를 사셨는데 일생 4만2천 편의 말씀을 설교하신 사람입니다. 그리고 200권 정도의 책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웨슬리는 일생 60년간 새벽 4시에 기상했습니다. 50년 동안 아침 5시에 새벽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새벽 기도는 어느 누구의 특징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 갱신과 부흥의 외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건 훈련의 가장 좋은 방법이 새벽기도회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새벽기도회를 강조하는 교회입니다. 한국인의 전통의식 속에는 새벽을 신성시하였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누가 시작했고, 누가 체계화하였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1906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와 박치록 장로라는 분이 시작하였는데, 이 새벽기도회는 1907년의 부흥 운동과 연결되어 급속히 퍼진 기도회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늦게 일어나면 자연히 게을러집니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습관이 잘 들어있어야 합니다. 습관, 버릇 이것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행하는 동안 한 가지 유형의 행위나 사고방식이 고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습관은 언제나 같은 형태로 무의식중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낮을 밤으로 보내고, 밤을 낮처럼 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자세는 아닙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마흔 살을 지나면 남자는 자기의 습관과 결혼해버린다.”라고 합니다. “습관은 한 개의 큰 노끈이다. 우리들은 매일 그것을 꼬고 있지만 그것을 풀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은 제2의 천성을 이루고 그것은 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많이 먹는 습관이 붙으면 많이 먹어서 일찍 단명합니다. 사람에게는 기계처럼 제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계에도 수명이 있듯이 사람의 모든 기관도 한계와 수명을 가지는 것입니다. 일찍 다 사용해버리면 나중에 사용하고 싶어도 소진하였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늦게까지 잠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일찍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 나갔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났으면 즉시 활동하는 것입니다. 잠자리에 뒤척거리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좋은 습관은 기도하는 습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고 있을 때에,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와서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라고 알려드렸습니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따라갔다”는 말은 좀 약한 번역입니다. “뒤따라 추격했다”는 말이어야 합니다. 열심히 따라간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열심히 좇아갔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인간들은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을 본 후에 더욱 열심히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막1:27의 말씀에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귄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야말로 새로운 교훈이었습니다. 그들 시대의 유일하신 소망이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먹어야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먹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영적인 본능이 있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비록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동물과 다르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만물의 영장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병든 자들이 많았습니다. 어제 밤에 많은 병자를 고쳐주었지만, 소문에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병자들이 많았습니다. 날이 새자마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코리안 프런티어]라는 잡지사에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현재 당신의 종교는? 농부의 7%정도만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기독교를 바람직한 종교라고 보는 사람은 농부 34%, 사업가 48%, 대학교수 54%로 기독교에 대하여 가장 긍정적인 답을 주었습니다. 지금 안 믿는 이들이 앞으로 종교를 가진다고 하면 기독교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더러운 죄악을 해결할 길이 없어서 오직 용서해주시는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섰던 사람은 모두가 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었습니다. 친구들의 들것에 실려 왔던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사람들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니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함께 죽은 강도가 주님을 찾았습니다. “네가 나와 함께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던 주님에게 찾아 나와 기름 붓던 여인은 “이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해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들으시고 가까운 마을로 전도하러 나서고 있습니다. 38절입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무엇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전도하신 것은 생명을 살리기 위함입니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시기 위함입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무엇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밥이나 축내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잘났다고 자랑하라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자리, 자기의 위치를 정말 잘 알고 최선을 다하신 분이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왜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그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만히 한 곳에 있기만 하여도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지만, 한 영혼 한 영혼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39절입니다. “이에 온 갈릴리에 다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가버나움의 좀 과열된 분위기를 진정시키시면서 여러 마을에 들어가시고 있습니다. “사탄의 한 가지 관심은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를 방해하는데 있습니다. 사단은 기도 없는 성경공부, 기도 없는 봉사, 기도 없는 종교 의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가 기도할 때 무서워서 벌벌 떤다”고 말하신 분이 있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단순히 복 받기 위한 수단도 아니고, 또한 종교적인 어떤 형식이나 의식도 아닙니다. 기도란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지으시며, 만물을 영원토록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약하고 낮고 천한 인간과의 거룩한 만남이며, 대화이며 교제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선교에 임하시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더욱 확신하였고, 끝까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연구해보면 기도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아침과 저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당신을 따르는 무리를 돌려보내시고는 쉬지 않으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하루의 계획은 하나님 앞에서 세워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과 일하는 것을 함께 생각하셨습니다. 보다 더 일을 잘하기 위하여 기도하셨고, 기도하신 힘으로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시고 일하십시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더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하신 연후에 제자들을 선택하시기도 하셨고, 중대한 일을 결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자신이 메시아가 되시는 것을 밝히실 때에 기도하시고 하셨습니다. 변화산에서의 기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도 중요한 일을 하기에 앞서 기도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에 앞서 기도해야 합니다. 새로운 조직, 새로운 사업, 새로운 일꾼을 세워야 합니까? 주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도 그렇게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와 사역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그와 함께 임재 하셔서 언제나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가장 큰 사명인 십자가도 기도로 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후까지 기도하시면서 생을 마친 것입니다. 기도하고 선교에 임하신 예수님의 정신대로 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