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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동란의 기독교적 이해/ 렘1:13-16
6.25 동란의 기독교적 이해 렘1:13-16 6.25 동란을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새롭게 이해하면서 조국을 위한 바른 국가관과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적 각오를 다짐해보는 시간을 가 지겠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는 것을 목도한 선지자 중에(에스겔,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예언을 함)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가 멸망할 때에 슬픔으로 예언을 하였기 때문에 \\\\\\\'눈물의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성읍 아나돗 출신인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여호와의 명령에 의해 결혼하지 않고 독신 으로 살았습니다(16:1-2). 그가 두 가지의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는 살구나무 환상으로(11-12), 히 브리어로 살구나무는 \\\\\\\'사케드\\\\\\\'라고 하며, 지키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는, 북에서 기울어진 끓는 가마(13-16)로, 북방(바벨론)에서 재난이 임 할 것을 뜻합니다. 끓는 가마는 고통 받을 유다를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환상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미래를 놓고 우상을 멀리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서서 회개할 것을 촉구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의 북한 핵문제와 6.25를 상기하면서 조국이 처한 정황과 성도의 각 오를 새롭게 정립하고 다짐해봅니다. 1. 6.25동란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6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데 이어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일명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시키자 한국을 공산화하 기 위해 소련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유엔은 즉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공격을 \\\\\\\'평화를 파괴하 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이 불응하자 미·영·호주 등 21개국(의료 지원국 5개국 포함)이 UN군을 창립하여 한 국을 지원하였습니다. 전쟁초기 한국군보다 월등한 화력과 병력( 한국군 의 약 4배)을 보유한 북한군은 한달 여만에 한국의 4분의3을 점령하였으 나 9월15일 한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주를 거듭하여 압 록강까지 후퇴하였습니다. 그러나 10월16일 중국이 갑자기 10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북한군을 지원하자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38도선 상에서 대치상태를 보이다가 1953 7.27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정전되었던 것입니다.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무모한 남침전쟁 도발을 자행하여 660만여명의 사 상자(군인 230만,민간인 430만여명)를 발생시키고 공장(900여개)· 주택 (60만여동)· 산업시설과 전국토의 4분의 3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이 무서운 비극의 원인을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가장 큰 신앙 사상적 원인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제대로 찬미하지 않은 죄때문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불굴의 의지와 믿음의 순종으로 항거하며 싸웠던 소수의 신앙자를 보시고 해방을 주셨지만 이내 기독교 사상은 일제 때부터 변질 된 자유주의와 보수신앙 간에 갈등이 확산되면서 교회는 새로운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본군국주의자들의 압제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진리에 위반하지 않은 본의를 이 해하고 신사 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이어 신사 참배 를 하여 비상시국 하에 총후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기함. 우를 성명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러했습니다. 조선예수교 단체적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와 순교적 신앙인들의 충성을 보시고 1945.8.15에 민족적 출애굽의 영광스런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범죄를 회개치 않은 신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성도들은 제 2의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초에 한상동 목사님 은 \\\\\\\'대한교회에\\\\\\\'라는 제목으로 예언자적인 글을 파숫군지에 실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과일(過日, 지난 일)의 모든 죄를 솔직히 자복하 고 눈물을 흘려 통회하면 긍휼이 풍성하신 호와께서 용서하시려만은 해 방을 주시고 독립을 주신 오늘에도 회개는 고사하고 죄감이 전무하고 회 개를 거부하니 어찌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리요..여호와 반듯이 진노하시 리라\\\\\\\' 고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후대에 사람들은 민족상잔의 시기에 교회가 분열되고 특히 고신파의 분 열은 정당화 될 수 없다(이만열)는 식의 비판으로 진리보다 사회 속의 교회 일치를 앞세우는 사회주의 복음사상은 일제의 잔여 사상으로 그대 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은 남아 있습니다. 교 회의 본질적인 요소가 희석되면서 물질과 문화주의로 빠져버린 한국교회 는 속히 본래 기독교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시류에 따른 가치관에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럽교회의 몰락을 그대로 따르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6.25동란의 근거는 2. 유물론주의 공산사상의 결과입니다 유신론 사상과 무신론 사상의 전투였습니다. 북한은 소련군을 힘입고 남 침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엄청난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1945년 12 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영.중.소 4개국이 5년간 한국 신탁통치 안 을 결정하였으며 그것은 휴전선(1953.7.27)이 생길 조짐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 총선이 열리고 5월 30일 최초 국회가 열리 며, 7월 17일에는 헌법을 공포하여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박사가 민선으 로 당선되었습니다.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세계 선포되었습니 다. 이런 중에 공산주의 사상은 무섭게 민족 정신을 와해하고 혼란 중에 유신사상의 기독교가 특별히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겨레는 공산 사상이 오기 전에 이와 같은 민족상잔이 있을 리가 없 었는데, 무서운 유물론 사상 때문에 6.25는 어쩌면 외세의 사상적 영향 으로 찾아온 재앙이었습니다. 3. 진리 운동의 환난기 환난을 당하자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맥아더 장군을 통해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을 주셨습니다. 그 환난 시절에 피난지인 부산, 삼 일교회에서 초교파적으로 부흥회를 통하여 회개의 역사로 많은 신자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참 신앙의 회복운동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당한 영적 시험은 6 . 25 동란이 끝난 후 외국의 구호물자가 유 입되면서 교회는 내적 문제로 진통을 겪어야 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 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신앙생활이 목적이 아니라 구호물자를 얻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가난한 교인들이 많았고, 둘째, 구호물자의 불공평한 분배는 교회의 내분을 불러왔으며, 셋째, 구호물자가 중단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물질적 욕구 때문에 교회 에 출석하던 신자들은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감으로써 교회의 공동화 현 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의 성장을 \\\\\\\'밀가루 부흥\\\\\\\'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예루살렘 교회가 초창기에 경험하였습니다. (행 6:1-2). 진리 운동은 역시 물질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대교회의 상식은 그 날로 되돌아갑니다. 환경주의로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나 진작 사람의 마음을 잡기에는 결코 신령과 진리 아니고 는 불가능한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에서 끓는 가마처럼 오늘의 말세가 적그리스도의 영이 온 천하 에 뒤엎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으나 조국은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처한 조국을 위해 기도할 때 예레미야처럼 눈물로 조국을 위해, 진리를 사모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963년도 이스라엘의 6일 전쟁에서의 승리는 전쟁 물자도 그 어떤 힘도 아니고 오직 신앙과 조국을 위한 애정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온 지 120년째가 됩니다. 많은 학교와 병원을 지으며 세상 의 빛된 생활을 잘 해오다가 지금은 교회가 물량주의로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하는 조짐을 봅니다. 우리가 북방의 끓는 가마를 볼 수 있어야 하며 마귀의 사상과 환난을 대비하며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굳세게 지난 역사 를 모본으로 삼고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6.25의 전후의 역사는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으로 봅니다. 오늘도 하나님 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진리가 우리의 처세가 되어 평화로 승리하는 우리 국가요 교회가 되고 우리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25 전쟁과 메르스/ 대하28:8-15/ 2015-06-21
우리나라에 6.25 전쟁과 메르스가 발생한 이유 대하28:8-15 이번 주 목요일인 6월 25일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당시에 살아 계시던 분의 증언을 들어보면, 열 살이었던 그는 매일 동네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동네는 워낙 골목이 비좁아서 넓게 퍼져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랫동네와 윗동네가 전쟁놀이를 시작하면 힘 있는 형님들이 앞장서서 싸웠고, 그와 같은 조무래기들은 그저 형님들 뒤를 따라다니며 “와, 와!” 소리나 질러댔습니다.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이나 하듯이 남자 아이들은 날마다 막대기를 들고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은 주일이어서 휴일인 관계로 군인들 대부분이 외출 중이어서 부대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군의 장비는 허술하기 그지없었으나 북한 군대는 소련제 탱크로 중무장하고 물밀듯이 남으로 남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우리 국군은 속수무책이었으며, 북으로부터 밀려 내려오는 피난민의 행렬은 길을 가득 메웠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그의 집도 남들처럼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식구들은 이부자리와 쌀을 나누어서 지고 뒤늦게나마 피난민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도 쌀을 한 말 정도 짊어지고 갔는데, 어찌나 무겁든지, 그의 등짐을 줄이기 위해 식구들이 밥을 해먹을 때마다 제 것부터 먼저 풀어서 밥을 지어먹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그의 가족도 남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려 했으나 이미 한강다리는 폭파되어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소식도 모른 채 몰려드는 피난민들로 인해 한강 백사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얼마간의 돈을 주고라도 쪽배를 얻어 타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다보니 배가 가라앉아 모두 빠져죽는 어이없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밤이 되자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비 오듯 쏟아지는 총알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이 모두 무사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들을 너무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고 합니다.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남북을 합쳐 무려 450만 명의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전쟁고아가 5만 명, 남편을 전쟁에서 잃은 젊은 여인들이 3만 명, 행방불명된 자가 36만 명, 북한으로 납치되어 끌려간 사람이 8만 명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이 일천만 명이나 되었으며, 그 중에 300만 명은 죽었고, 700만 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3천 3백만 명으로 온 국민의 1/3이 이산가족이 된 셈입니다.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왜 일어난 것일까요? 성경을 보면, 전쟁은 죄 값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삼상17:47을 보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 왕 아하스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신우상을 섬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대하28:5-8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육하였으니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중에서 그 아내와 자녀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외적의 침략을 받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동족상쟁은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같은 피를 나눈 형제끼리 죽고 죽이고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옆집에 살던 노인 부부는 대학생인 큰아들은 북한군으로, 고등학생인 작은아들은 남한군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원수가 되었으니 과연 이 노부부는 어느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두문불출하며 하루하루 사는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겠습니까? 성경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6.25 전쟁도 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큼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1907년 1월 16일 이 땅에 최초로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이 바로 평양의 장대현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정했습니다. 총회에 모인 목사, 장로들이 우상숭배를 결의하고 다 함께 신사로 가서 신사참배를 한 것입니다. 교회마다 신사를 만들어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신사참배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종을 떼어 일본의 전쟁무기를 만드는데 쓰도록 헌납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한국교회는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교회는 겸손히 우상숭배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운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기에만 바빴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 여러 개의 교파로 분열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더욱 분노케 하는 행위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충격을 받지 않으십니다. 어차피 이 세상을 떠나면 지옥에 멸망을 당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이들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이 복을 받고 이들과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복을 받게 됩니다. 마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사신우상을 섬기고 타락하게 되면 이들만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비롯하여 이들과 함께 사는 백성들까지도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것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죄 때문입니다. 특별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주의 종들을 파면시키고 핍박한 죄가 큽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주의 종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타락한 유대인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핏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심판하셨습니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심판하실 때 공산주의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양심도 없고 윤리도덕도 없습니다. 모든 종교를 아편이라고 금지시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라면 부모 형제라도 서슴없이 죽였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감히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지 소름이 끼칩니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주거지의 자유가 없습니다. 평양에서 살고 싶다고 평양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동(여행)의 자유가 없습니다. 출판, 통신, 언론의 자유도 없습니다. 평양 이외에는 길거리에 차가 다니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완전히 죽은 도시가 아닙니까? 그저 당에서 시키는 일을 하며 배급을 주는 대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배급이 줄었습니다. 주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식량부족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오늘날 중국 땅을 헤매는 소위 꽃제비로 불리는 북한의 청소년들과 남한으로 오기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탈북자들의 대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북쪽 사람들은 생활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오늘날 남한으로 피난 나온 북쪽 사람들이 근검절약하며 부지런히 일하여 당대에 자수성가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자유만 주어진다면 절대로 굶어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북한 땅에도 하루 속히 자유가 회복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6.25를 일으킨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겨룪 망할 수박에 없습니다. 그러면 공산주의 국가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몰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어느 국가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싸워 이기겠습니까? 2. 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핍박하고 없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교회가 부흥될 때에 국가도 잘되고 국민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쇠퇴하면 국가도 힘을 잃고 국민들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매우 불안정하여 얼마나 이 사회가 위태위태한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가 한국소식을 듣기라도 하면 금방 난리가 날 것 같고 망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망할 것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언제나 위기를 극복하며 점점 더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일천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에스더처럼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부르짖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산국가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3. 소수의 공산당원만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공산당원 외에는 모든 국민들을 노예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노예로 부리면 노예근성이 생깁니다. 노예는 자기 것이 없습니다. 주인이 주는 대로 먹고 주인이 시키는 일을 적당히 하다가 죽으면 끝납니다. 전 국민을 노예로 만든 공산주의는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눈다며 지상천국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공산당원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을 거지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일을 해도 안 해도 똑같은 결과를 나눈다면 누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없는데 무슨 자발적인 봉사를 기대하겠습니까? 그저 눈치나 보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면 그만입니다. 전국의 논과 밭과 과수원과 공장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결국 공산주의 국가는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감시자요 고발자입니다. 부모를 고발한 철없는 아들이 영웅이 되는 사회입니다. 또 너무 못 살다 보니 누구 할 것 없이 남의 것을 무조건 빼앗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회입니다.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남한까지도 공산화하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로 인해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남쪽으로 대거 밀려오게 되었습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하루가 다르게 부흥했고, 성령 충만한 교회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새벽기도와 철야기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보아도 한국교회와 같이 기도 많이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롬8:28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화가 복이 됩니다. 잃어버린 축복이 회복됩니다. 그동안 남한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선전대로 이 땅이 공산화되면 지상낙원이 되는 줄 알고 은근히 공산주의를 사모해왔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인해 공산주의의 악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남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서방국가들이 목숨을 걸고 공산주의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88 서울올림픽 때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이 우리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한이 거지와 판잣집으로 가득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즐비한 빌딩 숲과 시민들의 얼굴에 기쁨이 있고 활기가 넘치며, 길거리는 온통 자동차들로 가득하고, 시장마다 물건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북한을 비롯하여 공산주의국가들은 점점 더 못살고 지옥으로 변해 가는데 비해, 남한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점점 잘 살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을 비롯하여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서서히 자본주의 경제 원리를 접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전 세계의 교회를 지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가장 앞장서서 세계 선교를 이끌어갈 교회는 한국교회뿐라고 전 세계의 교회지도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교회가 깨어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가 잘 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41:10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25를 당한 날을 맞이하여서 우리 민족이 다시 한 번 회개할 것이 없는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아서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으면 속히 회개하고 행동을 고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릴 진노가 우리에게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교만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하나님께 강퍅했기 때문에 10가지 재앙으로 쳤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 서로 싸움을 일으키고 분쟁을 벌여서 세상 법정에 교회 소송 사건이 쌓이고 쌓여 있습니다. 목사가 음란한 짓을 하며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이 성전에서조차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6.25를 맞는 우리에게 메르스라는 재앙을 허락하셔서 우리나라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여, 이제 내 앞에서 악을 그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악을 그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내 말을 들으면 내가 그치겠지만, 이렇게 메르스로 경고하는데도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또 다른 재앙으로 너희를 치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요 나부터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6.25와 메르스 재앙을 맞아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대하7:14에서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그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서 다시는 6.25 전쟁이나 MERS 같은 전염병 재앙이 닥치지 않도록 우리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
6.25 전쟁의 기독교적 조명/ 렘1:13-16/ 6.25기념주일설교/ 1992-06-25
6.25 전쟁의 기독교적 조명 렘1:13-16 6월 25일은 우리 민족의 국치일인 6.25전쟁 4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김일성 북한공산당이 남침을 감행하여 동족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겪은 날이란 말입니다. 그 후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는 3년동안 이 땅은 전쟁으로 초토화 되었던 것입니다. 사망자가 16만 5천명, 부상자가 25만명, 행방불명된 자가 20만명, 북한으로 납치된 자가 12만 3천명, 산업시설의 파괴등 전란의 후유증은 우리 민족사상 최대의 피해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오늘까지 통일은 아직도 요원하고 공산국가의 종주국인 소련을 위시한 동구 공산주의가 막을 내려 동서냉전이 해소된 이 시점에서도 이 민족은 대치된 상태에서 이산가족 상봉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6. 25전쟁이 우리 기독교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는가? 이 시간 두가지만 생각하고저 합니다. 1. 6.25전쟁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국유다가 바벧론 침략을 받아 멸망될 것을 예언하실 때 그 원인을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있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6.25동란의 원인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조명할 때 우상숭배의 죄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36년간의 일제의 압박 속에서 이 민족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일본 천황을 숭배하는 신사참배는 우리 기독교의 수난이요 수치였습니다. 1938년 9월 10일 북한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 27회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모였을 때 일본 앞잡이 목사들이 주동이된 이 총회는 신사참배를 우상숭배가 아니고 종교의식이라고 정식으로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진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이어 신사참배를 솔선 이행하고 따라서 국민 정신 총동원에 적극 참여하여 비상시국하에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다하기로 한다\\\" 위를 성명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렇게 가결한 내용을 원문대로 옮겼습니다. 여기에 보면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며 일본 천황폐하를 섬기는 것은 종교행위가 아니라는 내용 입니다. 이것은 신앙 양심을 팔아먹은 반역의 행위요 하나님을 배신한 불신앙의 소치 였습니다. 그 후 1948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지만 일제 신사참배를 찬성하고 그 신사앞에 경배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또다시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고 앞장 설때 하나님은 김일성을 통하여 징치하시는 역사를 맞게 한 것이 6.25동란이란 말입니다. 2. 6.25전쟁은 하나님 능력보다 세상 힘을 앞세운 불신에 대한 책망입니다. 숫적 우위를 중시한 총회정책, 정부나 권력에 아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6.25를 불러왔습니다. 정치는 숫적 우위에 결정권이 주어지지만 진리는 숫자에 의하여 결정 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한 사람이 주장해도 진리입니다. 나라의 흥망 성쇠가 하나님 수중에 달려 있고, 남북통일도 하나님 결재에 움직여 집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가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삼상 17:47). 성도여러분! 지금 이 민족이 살 길은 회개운동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되는 연합운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앞에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순리와 진리에 순응하는 생활 뿐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이 민족위에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6.25(육이오) 50주년/ 신16:1-8/ 2000-06-25
6.25(육이오) 50주년 신16:1-8 오늘은 6·25 사변이 일어난지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느 분은 \\\'아니, 이 날은 무슨 교회 절기도, 국가기념일도 아니요, 전쟁이 일어났던 날에 불과한 데, 특별히 예배를 드릴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또한 저와 같이 50대 이상이 된 분들에게는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의미에서는 지금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는 삼일절이나 광복절보다도 육이오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쟁이 일어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남북이 양단된 채 서로가 무기경쟁을 강화하면서 대치상태로 남아 있음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로 남아 있기 때문이요, 앞으로 한국의 가장 큰 숙제인 통일에 대해서 가장 연관된 것이 육이오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육이오 사변은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남기었습니다. 전쟁 기간 중 한국군과 유엔군이 약 48만 명이 죽었고 공산측은 150-2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민간인의 사망은 400-450만 명이요, 고아만도 10여만 명이 생겼으며 이산 가족만도 무려 1천만 명에 가까울 정도였으니 그 전쟁의 치열함이 얼마나 컸는가를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전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전쟁의 의미가 큰 것입니다. 더욱 육이오 50주년을 맞는 오늘의 의미가 큰 것은 공교롭게도 1950년 6월 25일처럼 오늘도 주일인 것이요, 지난 6월 13일 50년만에 남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화해와 교류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남북관계에 새로운 문이 열리는 시점에서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며, 한국 교회와 한국 교인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할 것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육이오 50주년이 주는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일찍이 함석헌 옹은「사상계」라는 잡지에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을 썼씁니다. 그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면 <6·25 싸움은 왜 있어났나? 나라의 절반을 꺾어 한배 새끼가 서로 목을 찌르고 머리를 까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거기 어울림을 하여 피와 불의 회오리바람을 쳐 하늘에 댔던 그 무서운 난리, 사람이 죽고 상한 것이 얼만가? 물질의 없어진 것이 얼만가? 남편 잃고 반쪽 사람이 된 과부가 얼만가? 어미 애비 잃고 고아가 된 어린이가 얼만가? 거기 써버린 쇠를 쌓으면 산이 될 것이요, 거기 태워버린 기름을 모으면 바다가 될 것인 이 끔찍한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났을까? 바다를 뒤집는 고래 싸움은 하필 이 가엾은 새우등에 터졌을까?>라면서 그 의미를 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이오 사변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이며, 그 전쟁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전쟁이 발발한지 반세기가 흘렀어도 아직도 하나님이 통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이며, 하늘이 이 민족에게 주시는 교훈과 의미는 무엇인가? 저는「한국교회, 이대로는 안된다」는 책에서 쓰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할 때에 애굽이나 불레셋,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를 들어서 강하게 사랑으로 때리셨지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특별히 보호하시면서 강한 나라로 만드셨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바로 서면 하나님이 한국을 강하게 쓰시고 한국교회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책을 받고는 했다고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나라가 잘못되면 어느 대통령이나 정치가, 정당들,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 탓이라고 몰아 세우지만, 기독교 입장에서는 나라의 어려움을 성경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왕이나 가이사를 보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을 알고 있는 백성들의 행함을 보시고 상벌을 정하신다는 점입니다.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 군대가 패배하고 요나 하나의 잘못으로 수많은 승객들이 풍랑을 만났습니다. 반대로 엘리야 하나 때문에 큰 가뭄이 해소되고 바울 하나 때문에 276명의 승객이 죽음의 풍랑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교회의 책임이 너무나 큽니다. 사실, 남북의 분단의 책임도 정치적으로 보면 미국과 소련 탓이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교회 탓입니다. 1938년 9월 10일, 장로회 27회 총회시 총대 193명이 모여서 신사참배를 가결했는데 반대하는 총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평양노회는 극구 반대하는 주기철 목사님을 파면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채정민 목사님은 \\\'평양노회야, 주기철 목사를 파면한 평양노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은 1942년 2월 첫주, 산정현 교회에서 최후의 설교를 할 때 갑자기 설교 도중, 무엇엔가 불들린 사람처럼 외치기를 \\\'평양아, 평양아, 예의동방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 백세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언이 되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교회당의 십자가는 끌어내리고 공산당의 사무실이나 고사포진지가 되었습니다. 북한의 성도들은 모든 것을 다 뺏기고 맨 몸둥아리로 남한으로 피난하는 비참한 날을 만났던 것입니다. 6·25 사변도 그런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 신사참배에 참여한 자와 아닌 자,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신학관계 때문에 계속 싸움질을 하더니 1950년 4월 21일 육이오 사변이 나기 두 달 전 장로교 총회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총회가 난장판이 되도록 싸웠는지 경찰들이 들어와 싸움을 말릴 정도였으니 너무나 치욕적인 총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해방이 주셔도 감사는커녕,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거룩한 교회당에서 이런 추잡한 싸움을 일삼으니 하나님의 진노의 매가 임하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이오 사변입니다. 이런 참혹할 정도의 매를 맞아 부산과 일부지방만이 남아 적화통일이 얼마 남지 않은 위기에서도 한국교회는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싸움질을 함으로 1951년에는 고려파가, 1953년에는 기독교장로회가 분열되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배고픔을 참다 못해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아우성 치는 난국에도 교권(敎權) 싸움을 멈출지 모르므로 결국 1959년에는 통합측과 합동측이 분열되는 비극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으니, 4·19 혁명과 5·16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가장 큰 교단이었던 합동측은 1979년 9월 20일, 총회를 대구 은일교회에서 1,500명의 총대가 모여 개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이기도 전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대판으로 난투극을 벌리므로 크게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이 때도 경찰들이 뜯어말릴 정도로 치열할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역사적 우연인가? 한 달 후인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시해되는 국난(國難)이 발생했고, 같은 군인간에 내전(內戰)이 벌어진 12·12 사태,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국민의 군대가 국민들을 향해 총질함으로 엄청난 백성들이 살해되는 광주사태가 발생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사랑하사, 장로님을 대통령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연설 때 한번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청와대로 온갖 목사님들을 모셔다가 예배를 드릴 뿐, 자기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방자함을 보이고 온갖 기독교 지도자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기는커녕, 부정에 깊이 관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가 만난 풍랑이 IMF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서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강하게 나타나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나타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교훈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바로 서면 한국도 바로 섭니다. 많은 뜻있는 분들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유월절은 8·15와 같고, 홍배 바다 사건은 6·25와 같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나라는 광야를 지나고 있는데 벌서 50년째를 만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바로 우리가 바로 서지 못한 탓이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육이오 사변이 난지 50년이 되는 희년(稀年)에 에서와 야곱이 만난 것처럼 기적가운데 남북의 정상이 만나 화해의 교류를 약속했습니다.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임이 틀림없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고문인 김성오 씨는「월간 조선」지(誌)에서 쓰기를 \\\'북한정권에 있어서 지난 90년대는 천형(天刑)의 계절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벌을 내린 날들이었다는 표현입니다. 1993년에 몰아닥친 극심한 냉해에 이어 1995년과 1996년에 홍수로 수십만 정도의 농토를 잃고, 1997년의 심각한 가뭄과 이상고온 및 해일로 야기된 식량의 고갈은 급기야 나라의 근간인 배급체제를 붕괴시켰습니다. 김정일과 북한 지도급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울며겨자먹기로 남북정상회담에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지난번 노회원수련회 때 몇몇 목사님들과 대화하는 중에 \\\'만약에 김영상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만났더라면 아마 일방적으로만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막으신 것같다. 이번에 통일전문가인 김대중 대통령가 김정일을 만났기에 이 정도라도 협상을 받아낸 것같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남북을 매셨다면 푸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인들 하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우리 교인들의 잘못으로 50년의 연단을 받았음을 고백하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더욱 바르게 서도록 힘씀으로 기적가운데 요단강이 갈라지고 북한의 땅이 열리므로 동방의 예루살렘에 복음의 물결이 흘러 넘치는 역사를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우리는 이 날을 맞으면서 더욱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무엇입니까?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아빕 월, 우리 나라로 말하면 3월을 말하고 유대력으로는 1월을 말합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유대 백성을 애굽 포로에서 기적가운데 구해내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그 유월절 행사를 매년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 행사에 지켜야할 것은 매 가정은 이날 밤, 4일 전에 준비한 흠 없는 어린양의 수컷을 잡아 그 고기를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과 함께 먹되, 이 누룩 없는 무교병을 7일 동안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무교병이란 우리 나라로 말하면 개떡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쓴 나물과 무교병을 먹으라고 명하셨습니까? 그것은 그 환난 날에 급하게 도망치던 때를 반드시 기억하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고난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기억하라는 말은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고난의 떡과 고난의 쓴 나물을 먹으면서, 그 죽음의 날에 기적가운데 구원해 주신 하나님, 광야의 날들 속에서 기적 가운데 살게 하신 하나님, 지금도 이렇게 풍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압니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배가 부르고 등 따습게 살면, 가난하고 배고프고 헐벗게 살던 날들을 잊어 먹습니다. 그래서 개떡과 쓴 나물을 먹으며 그 환난을 당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오늘의 풍족함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두 주 전에 춘천에 다녀오면서, 새로운 길로 왔습니다. 육이오 전쟁 때에 피난 가던 길을 승용차로 와봤습니다. 춘천에서 강촌을 거치어 광판리, 팔봉산, 용문, 양평을 거치어 왔습니다. 10살 때 피난했던 길이라 자세히는 몰라도 팔봉산을 거쳐서 지평과 양동을 거치어 문막까지 내려간 것같습니다. 그 때는 1·4 후퇴 때인데 눈이 많이 내리고 몹씨 추운 때였습니다. 저는 소금 석되를 지고 다녔는데 그 추운 날에 울면서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피난가던 길을 차를 타고 오면서 너무나 감사한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육이오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이나 소금국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소원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하얀 이밥에 고깃국을 원없이 먹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운동화는 부잣집 아이들이라 신었고 대부분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옷도 없어서 전부 광목이나 구제품을 고쳐 입어야 했습니다. 속내의도 없어서 다섯 번 여섯 번 기워 입고 양말도 위만 있고 밑에는 거의 기워 신어야 했습니다. 단칸방에서 이불도 없어서 6-7식구가 한 이불을 덮고 겨울을 나기도 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천국에서 살고 있을 정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너무나 옷이나 음식이 많아서 쓰레기에는 온통 옷이나 음식 찌거기로 가득찹니다. 이제는 어느 잔치집에 가도 고기는 그냥 남아 쓰레기통에 들어갈 정도이고 웬만한 뷔페집에 가서는 맛없으면 손이 전혀 가지 않을 정도로 최고의 입맛들이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텔리비젼, 전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며칠 동안 피난가던 길을 저는 단 2시반 만에 돌아오면서 우리는 너무나 감사할 일 투성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온 국민은 감사로 차고 넘치고 있습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온통 불만이 온 국민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욕심 탓입니다. 내가 지금 하얀 이밥과 고깃국을 먹는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호텔에서 더 비싼 요리를 못 먹는 것이 불만이고, 지금 지쳐 깔린 옷과 신발, 그리고 가전제품을 감사하지 못하고 백화점에서 몇 십 만원 짜리 고급의상을 입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만이고, 더 넓은 주택, 더 좋은 승용차, 더 높은 봉급을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만입니다. 모두가 욕심 탓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잘 살게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부터이니 겨우 10년 정도뿐이 안됩니다. 그런데 벌써 기름기가 너무 돌아서 불만만이 가득하니, 정신을 차리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빼앗기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1년에 한번씩 고난의 떡과 나물을 먹으며 그 환난 당하던 날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성도들로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신 것과 받은바 은혜와 너무나 큰 것을 날마다 감사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육이오 50주년을 맞으면서 이제는 나누어주는 한국교회와 한국이 되어 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보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땅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양식을 허락하여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시고 온갖 적으로부터 특별히 보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사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 뿐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하시고 가지가지 기적을 통해서 연단 시키고 훈련하신 이유는 세계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침략성이 강한 러시아와 중국, 일본이라는 강대국 틈에서 특별히 보호하시고 육이오 전쟁 때는 완전히 적화통일 직전에서 구해 주시고 전쟁의 잿더미에서 완전히 알거지나 다름없던 나라를 지금은 세계 11-12번째로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 나라는 너무나 침략만 받고 고생만 많이 한 나라이니 이제는 한번 행복 되게 사는 나라가 되어 보라\\\'라는 목적으로 주시는 축복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마지막 때 한국을 통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 지방을 선교하시게 하기 위해서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세계의 눈이 며칠동안 한반도에 집중되었습니다. 남북회담 기간동안 롯데 호텔에는 국내 언론 111개사 772명, 외국 언론 173개사 503명 등 모두 1,275명의 언론인들이 취재경쟁을 벌렸다고 합니다. 이는 88 서울올림픽 후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한국을 세계 앞에 자주 나타내게 하심으로 선교 효과를 이루시려는 것같습니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세계 이목은 더욱 한반도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에 전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교를 위한 물질축복을 자연스럽게 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번 회담 때 논의한 것 중의 하나인 남북이 경제교류를 활발히 전개한다면 북한도 살고 남한도 삽니다. 지금 북한은 남한보다도 국가적으로는 25분지 1, 개인당 GNP는 12분지 1 낮을 정도로 못 삽니다. 그러므로 당장 통일되는 것은 큰 문제가 됩니다. 우선 북한 경제를 어느 정도까지 높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활발한 경제교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선 경의선이나 경원선을 연결하면 물류비용이 30%나 절감된다고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철로를 통해서 중국이나 러시아, 유럽으로 가는 우리 나라나 일본의 수송 수입도 북한이 엄청나게 챙길 수 있을 것이요, 남한도 그 열차를 통해서 시베리아 가스전이나 파이프 라인 연결사업, 사할린 원유개발 등 중화학공업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북한은 남한이나 일본에서 밀려드는 금강산 관광객, 수학여행자의 수입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다,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이 결합한다면 남한도 살고 북한도 살게될 것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남한은 신발이나 가구, 의복, 봉제, 식품가공분야, 컬러 TV, 냉장고 등 가전기기 조립분야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높은 인건비 때문에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런 산업시설들을 북한으로 이전하여 북한의 싼 노동력을 활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엄청난 경제력을 높이게될 것입니다. 또한 남한이나 북한의 경제의 큰 올무가 되는 것은 군사비용입니다. 서로가 무기경쟁하다 보니 30%이상의 예산이 군사비용에 들어갑니다. 만약에 서로가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 서로 군비를 감축하고 그 비용으로 다른 경제분야에 투자한다면 남한도 북한도 큰 수익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되 모든 국민들에게 분배하여 경작하도록 한다면 식량문제도 상당히 해결될 것입니다. 베트남도 집단농장으로 운영할 때는 양식이 부족했으나 국민들에게 분배하여 경작하기 시작하자, 새벽부터 전력을 다해 일함으로 쌀생산 3위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 국경에서 북한 마을을 보면 공동농장은 곡식이 형편없는데 집안 텃밭은 곡식이 너무나 잘 되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북한 당국이 전쟁야욕을 중지하고 경제를 일으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북한이 사는 길이 열리는 것은 물론이요, 한국이 선진국 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남북의 교류의 최종 목적인 통일이어서는 안됩니다. 세계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러한 목적으로 남북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사실, 통일은 언제될지 모릅니다. 그만큼 50년의 세월은 같은 민족을 완전히 이질화(異質化) 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통일의 길은 대단히 요원하다 할지라도 북한이 서서히 개방됨에 따라 선교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바로 그것을 시급히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북한복음화와 북한교회 회복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질 때 하나님의 강하신 도움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불가능도 가능해 집니다. 북한을 통해서 경제의 실크로드(silk-road)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실크로드로 열리어 중국과 사할린, 동남아시아와 중동지방까지 힘차게 번져갈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북한의 열림에 따라 구호의 손길도 힘차게 뻗치어야 합니다. 우선 굶주린 백성들을 살리고 봐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열리는 날, 북한 교인들이 \\\'우리가 굶주려 죽어가고 있을 때 남한의 교인들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라고 묻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어느 분은 지난번 남북정상회담 때 방송으로 평양을 보니 그곳도 대단히 살기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평양에 있는 200만 시민들만 상류계급이요, 당원의 가족으로 특별대우를 받을 뿐 지방이나 농촌에 있는 백성들은 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양식을 구하려 천지사방으로 거지 떼처럼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말합니다. 만약에 서로가 평화조약을 맺으므로 휴전선의 방어가 느슨해진다면 엄청난 난민(難民)들이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밀어닥칠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때 제일 먼저 찾을 곳은 교회라고 하면서 남한의 교회들은 그런 난민들을 책임질 준비를 해야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전망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제 전쟁 이후 50년 동안 굳어졌던 철문을 하나님이 조금씩 열어주시는 새로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제 더욱더 활짝 열리어 북한의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하고 찬송을 부를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합시다.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더욱 바로 서십시다. 그리고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지역에 복음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일과 그 일을 위해서 지금부터 선교에 힘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25/ 시127:1/ 6.25설교/ 2004-06-25
6.25 시127:1 1950년 6월 25일, 만물이 평화롭게 잠든 주일 새벽에 북한의 공산당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기 위한 남침을 감행하여, 이 강토를 동족상잔의 처참한 싸움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가옥 수십만 채가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행방불명이 되는 등 남북한 모두에게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이 전쟁을 통하여 2,122군데의 교회를 파괴하고, 535명의 교역자를 학살하였으며,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갔습니다. 남으로의 피난행렬은 길을 메웠고, 남편을 잃은 30만 미망인들의 한숨과 부모잃은 20만 고아들의 울음소리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굶어죽은 자, 병들어 죽은 자, 그리고 폭격으로 말미암아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려졌습니다. 기나긴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 하더라도 이같은 처절한 사연은 다시 없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은 6·25가 일어난 지 48년이 지난 지금에나 그 때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6·25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잊지 말자. 6·25는 처참한 비극의 사건이었습니다. 3년 1개월의 전쟁으로 인해서 남북한 합쳐 약 450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고, 남한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학살과 각종 잔인한 행위는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도 막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고, 교회 지도급 인사들이 납북되어 소식이 끊겨졌습니다. 수많은 교역자와 성도들이 당한 희생, 고난, 굶주림, 형고의 길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만행과 6·25의 비극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6·25는 우리나라가 많은 은혜를 입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운 중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와 용서와 구원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유엔 16개국이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과 48개국에서 의복, 식료품, 의약품, 생필품 등을 모아서우리동포들을 도와주는 등 그리스도의 정신을 구현하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섭리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방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6·25는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교훈으로 교육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에는 유대인들이 건립한 거대한 역사적 교육 전시장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이그대로 폭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조국의 역사를 배우고, 군인들은 국가를위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후세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준비하자. 6·25는 이제 과거지사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막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삼아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마음자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6·25는 우리의 신앙이 타락하고, 국민정서 가 해이해졌을 때 발발한 사건이었습니다. 즉 6·25는 교회의 나태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우리는 감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삶의 긴장감을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매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과 함께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2년 전에 있었던 무장 잠수함침투사건과 얼마전에 있었던 삼척 앞바다의 잠수정 사건이 이를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있습니다. 우리는 우방과도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2,500만 동포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실천운동을 벌여서 성실한 자세로 살아야 하며, 효운오?통하여 이나라의 정신을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또 다른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인 것입니다. 셋째, 희망을 가지자 6·25는 우리에게 고난 뒤에는 항상 새롭고 밝은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는 과거의 고난을 교훈삼아 내일의 밑거름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기대하고,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6·25 이후로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성장해왔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경제 성장, 88올림픽 개최 등 비약적인 성장을 지속해왔고, 교회도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성장에 비해서 정신적인 성장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하여 IMF의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IMF의 위기는 우리에게 또 내일의 희망을 약속합니다. 성경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 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어서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희망찬 내일을 설계해야 합니다.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의 비극을 통해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과거의 역사는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안겨다 줍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교훈을 토대로 하여 현실에 대처할 줄 아는 지혜를 얻고, 내일을 위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셔서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기게 해주실 것입니다.
6.25/ 시127:1/ 6.25설교/ 2004-06-25
6.25 시127:1 1950년 6월 25일, 만물이 평화롭 게 잠든 주일 새벽에 북한의 공산 당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대 한민국을 적 화시키기 위한 남침을 감행하여, 이 강토를 동족상잔의 처참한 싸움터로 만들어 놓았습니 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가옥 수십 만 채가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 이 학살당하고 행방불명이 되는 등 남북한 모두에게 많은 피해가 있었 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이 전쟁을 통하여 2,122군데의 교회를 파괴하고, 535명의 교역자를 학살 하였으며, 수 많은 기독교인들의 생 명을 무참히 앗아갔습니다. 남으로 의 피난행렬은 길을 메웠고, 남편 을 잃은 30만 미망인들 의 한숨과 부모잃은 20만 고아들의 울음소리 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굶어죽은 자, 병들어 죽은 자, 그리고 폭격으 로 말미암아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려졌습 니다. 기나긴 민족의 고난의 역사 를 더듬어 본다 하더라도 이같은 처절한 사연은 다시 없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은 6·25가 일어난 지 48년이 지난 지금에나 그 때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러한 때에 6· 25와 같은 비극이 다 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 까요? 첫째, 잊지 말자. 6·25는 처참한 비극의 사건이었 습니다. 3년 1개월의 전쟁으로 인 해서 남북한 합쳐 약 450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 었고, 남한에서 전국 적으로 벌어진 학살과 각종 잔인한 행위는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도 막심한 피해를 입 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 고, 교회 지도급 인사들이 납북되 어 소식이 끊겨졌습니다. 수많은 교역 자와 성도들이 당한 희생, 고 난, 굶주림, 형고의 길은 이루 헤아 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만 행과 6·25의 비극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6·25는 우리나라가 많은 은혜를 입은 사건이기도 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운 중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와 용 서와 구원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유 엔 16개국이 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과 48개국에서 의복, 식료품, 의 약품, 생필품 등을 모아서 우리 동 포들을 도와주 는 등 그리스도의 정 신을 구현하게 된 것은 모두가 하 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우리는 이러 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방 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6·25는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교 훈으로 교육되어야 합니다. 이스라 엘과 미국에는 유대인들이 건립한 거대한 역사 적 교육 전시장이 있습 니다.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 시 나치의 만행이 그대로 폭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조국의 역사를 배우고, 군인들은 국가를 위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 를 통해 후세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 다. 둘째, 준비하자. 6·25는 이제 과거지사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우 리에게 주는 의미는 막중한 것입니 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삼아 내일 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마음 자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6·25는 우리의 신앙이 타락하고, 국민정서 가 해이해졌 을 때 발발한 사건이었 습니다. 즉 6·25는 교회의 나태함 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우 리는 감지해야 합니 다. 우리는 또한 삶의 긴장감을 가지 고 성실한 자세로 매진해야 합니 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 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 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을 앎이니라](벧전 5:8-9)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과 함께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 야 합니다. 2년 전에 있었던 무장 잠수함 침투사건과 얼마전에 있었 던 삼척 앞바다의 잠수정 사건이 이를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 다. 우리는 우방과도 협력해야 합니 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 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 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 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 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기도해 야 합니다. 북한의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2,500만 동포들에게도 복음 을 전해야 합 니다. 또한 우리는 말 씀실천운동을 벌여서 성실한 자세 로 살아야 하며, 효운동을 통하여 이나라의 정신을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또 다른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 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인 것 입니다. 셋째, 희망을 가지자 6·25는 우리에게 고난 뒤에는 항상 새롭고 밝은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는 과거 의 고난을 교훈 삼아 내일의 밑거름 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기대 하고, 준비하면서 살아가 야 할 것입니다. 6·25 이후로 우리나라는 급속도 로 성장해왔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경제 성장, 88올림픽 개최 등 비약적인 성장을 지속해왔고, 교회도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 은 이 러한 성장에 비해서 정신적인 성장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점입니 다. 이로 인하여 IMF의 위기가 닥 쳐온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IMF의 위기는 우리에게 또 내일의 희망을 약속합니다. 성경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 종하 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 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 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 산을 많게 하시 고 네게 복을 주시 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 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 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어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 하지 말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희망찬 내일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 게 희망 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의 비극을 통해 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과거의 역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안겨다 줍니다. 우 리는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 지만 이 교훈을 토대로 하여 현실 에 대처할 줄 아는 지혜를 얻고, 내일을 위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 다. 우리가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 중심 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 서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셔서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6.25가 주는 교훈/ 6.25를 잊지 말자/ 신8:1-10/ 6.25기념주일설교/ 2004-06-25
6.25가 주는 교훈/ 6.25를 잊지 말자 신8:1-10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요, 바른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오늘 우리가 참으로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지. 아마 우리 가운데 지난주일 드린 말씀의 제목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분이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인간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그만 지난 일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 술 맡은 관원장...)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아무리 망각의 동물로서, 잘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런 중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지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내 죄가 해결이 되고, 화해와 더불어 화목을 이루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 만날 수가 있어, 대화 할 수가 있어, 교제할 수가 있어, 소망을 얻어, 생명을 얻어, 구원을 얻어, 천국을 얻어, 하나님의 권속이 되고,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된 이 놀라운 사건의 결정체인 십자가를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울러 오늘 이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일들이 참으로 한두 가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또한 오늘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6.25입니다. 그 고통과 처참했던 6.25 참으로 오늘 이 나라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이날을 우리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우리에게 이 날을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당시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김일성을 찬양하고 이북을 미화시키는 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가에서 인공기가 펄럭이고 불순 책자가 나돌고 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걱정이 된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6.25를 기억하면 6.25가 안 오고, 6.25를 잊으면 6.25가 다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러한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힘써야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동안 고난 길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주셨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의 때를 기억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처참했던 6.25를 다시 기억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 6.25는 죄의 값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시내 산에서 율법을 주시어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을 시킨 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가데스바네아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바로 들어가면 되는 데 이들 은 먼저 그 땅을 탐지하자고 하여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면서 불평하므로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아 광야에서 40년의 고난을 겪은 것은 죄로 인함이었습니다. A.D. 70년에 디도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 있던 110만 명이 죽임을 당했고 9만7천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가 다스린 나치시대에는 600만이나 되는 유태인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면 야아드 마심이라고 하여 600만 학살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학살당하던 유대인들의 비참한 모습의 사진과 그들이 입었던 피 묻은 옷 찢어진 신발 등 가슴이 저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무서운 고난의 때에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이 그처럼 엄청난 고난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주소서라고 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처참했던 6.25를 44주년째로 맞이했습니다. 이 6.25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6.25 때 죽은 국군이 141,956명이며 유엔군이 149.587명, 경찰 11,303명, 민간인 244,763명 그리고 점령지에서 죽은 사람이 123,936 합계676,545명이나 됩니다. 또한 전쟁 중에 부상한 사람은 국군이 194,068명 민간인 229,625명으로 합하면 423,693명으로 죽은 자와 부상자를 합하면 1,100,238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납북자 84,532명 행방불명자 363,212 등을 합하면 1,547,982명입니다. 여기에 북괴군 사상자 294,151명 중공군 189,000명에 전쟁고아와 전쟁 시 죽은 사람을 합하면 300만 명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6.25는 사람의 시체가 이 땅을 덮고 피가 강을 이루는 참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6.25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좁게 보면 적화야욕에 불타는 김일성의 욕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300만이나 되는 사람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이 엄청난 재난이 그저 되지는 않은 것입니다. 이 엄청난 재난은 우리 민족의 죄악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38년 9월10일 제27회 장로회 총회 때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일본의 신도에 절을 하고, 국민의례라 하여 연약한 성도들에게 우상숭배를 권장한 죄를 범하여 온 교회가 함께 우상숭배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종을 떼어서 전쟁무기 만드는데 헌납을 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주의 종들을 파면할 뿐 아니라 도리어 감옥에 집어넣어 온갖 고문을 다하여 죽였습니다. 이처럼 무서운 죄를 범하고도 해방이 되자 회개를 하기는커녕 도리어 서로 교권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죄를 징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의 눈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6.25를 기억하며 범죄 할 때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알고 범죄 하면 겸손히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 수 있습니다. 6.25때에 북괴군이 파죽지세로 쳐 내려와 마산 부산 대구를 남겨놓고 다 점령을 당하고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이 급파되고 밀리기만 한 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전열을 재정비하였고 인천 상륙작전을 통하여 전세를 뒤집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이 파송될 때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자 유엔에서는 안전보장 이사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5개국인데 여기서는 한나라라도 거부하면 안 되었습니다. 이 회의에 소련의 대표는 유엔군 파송을 반대하기 위하여 작정한 시간에 차를 타고 유엔본부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갑자기 차의 시동이 꺼져서 운전수가 내려서 보니 별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동을 걸면 걸렸다고 조금 가다가 스르르 꺼지고 하여 결국 시간이 조금 늦었습니다. 소련 대표가 참석했을 때에는 이미 한국에 유엔군을 파송하자는 결의는 통과된 후였습니다. 소련의 대표가 시간 안에 참석했다면 한국에 유엔군의 파병은 부결되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한국은 공산화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잘 가는 차의 시동을 꺼지게 하여 참석을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무서운 징계를 내리는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안 됨을 가르쳐 주신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 주의자들이며, 모든 것을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이나 인격을 조금도 생각지 않으며 짐승이나 같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잔인한 일도 저지를 수 있음을 정당화 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무신론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외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무장을 하고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평안하게 살게 될 때 애굽의 노예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도해 내시고 광야의 그 무서운 고난의 길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힘으로 잘살게 되는 줄 알까봐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해서 그는 외쳤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광야 40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6.25는 이 백성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도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앞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6.25가 주는 교훈/ 벧전5:7-11/ 조용기 목사/ 6.25기념주일설교/ 1989-06-25
6.25가 주는 교훈 벧전5:7-11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6.25가 주는 교훈”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6.25는 우리 민족사에 가장 참담한 전쟁이었었습니다. 우리의 강토가 초토화되고 적어도 남북한 함하여 5백만 명 이상이 죽고 상처를 입었었습니다. 그리고 일천만 이상이 이산가족이 되어서 남북으로 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국민전체가 6.25라는 이 고통을 통하여 공포와 기아와 사망의 계곡에서 허덕였던 비극적인 때였었습니다. 만일 미국을 위시한 유엔 16개국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지도상에 대한민국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삼천리강토 육천만 동포는 김일성, 김정일이 역사가 창조한 가장 흉악한 독재자들의 발굽에 짓밟히고 시달리는 비극적인 운명을 갖고 말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어떤 설익은 학자들이나 환상적인 공산주의자들이 6.25는 남침이 아니었고 북침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가소롭고 천인공노할 일이라서 상대를 해서 말할 가치조차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6.25가 일어난 역사적인 국제정치학적인환경은 대략 이와 같습니다. 1949년 6월말까지 한국에는 미국 고문단 5백 명만 남고 해방당시 진주했던 미국은 모두 다 철수해 버리고 말았었습니다. 그런데 1950년 1월 그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애치슨 씨가 미국 내셔날 프레스 클럽에서 아시아의 위기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에서 그는 말하기를 미국의 방위권은 알류산열도에서 일본 오끼나와를 거쳐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결정하며 그 선 밖에서 일어나는 군사적인 공격에는 미국은 책임이 없다고 선언을 하므로 대한민국은 미국의 보호에서 분리돼 있다고 확실하게 말을 했습니다. 이 선언을 들은 북한 김일성은 자기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무력으로 적화통일을 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남로당 박헌영 파와 충북 공산당 출신인 연안파의 알력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었던 터라 남침을 감행하므로 일석이조로서 북한의 공산당의 헤게모니를 자기가 잡고 그리고 남한을 적화통일 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사회는 좌우익투쟁이 심하고 정치적인 불안정이 위험수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국군은 육해공군 합쳐 십만오천여 명이었으나 그 무장은 형편이 없었습니다. 대전차포 한문, 탱크 한 대, 전투기 한 대도 없이 오직 일본군이 남기고 간 구식 장총을 가지고서 무장을 한 그러한 형편없는 군대였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은 끊임없는 소련의 원조를 받아 약 이십만 대군에 K-30형 탱크 242대, 각종 전투기 및 폭격기 200여대를 가진 강력한 군대였었습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갑자기 삼팔선 전역에 걸쳐 공산군은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오늘과 같은 주일이었습니다. 한국군은 농번기에 많은 사병이 휴가를 가고 또 토요일 날 오후에 외출 중이었었습니다. 저는 그때 동네 중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6월 26일 날 학교에 가니깐 학교분위기가 웅성웅성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서 살펴보니까 요번에도 북괴가 진짜로 남침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늘 삼팔선에서 북한군과의 대결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번은 진짜로 공격을 받았다. 6월25일 새벽 4시에 북괴군공격으로 말미암아 이미 6월26일에는 북괴군이 의정부까지 침략해 들어오고 서울의 함락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라디오 방송과 가도방송에 휴가병들은 본대로 귀대하라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수업은 그로서 끝나고 그날부터 우리 학교는 병영으로 변화 돼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이래서 삼년 동안의 6.25사변의 가장 비참한 전쟁이 출발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린 6.25사변을 통과한 사람들도 있고 요사이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은 6.25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오늘 확실히 하나님 앞에서 알고 싶은 것은 공산당이 무엇인가를 알고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알고 교회가 오늘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가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1. 첫째, 공산당의 흉악성을 우린 오늘 이 시점에 확실히 꿰뚫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1917년 소련의 레닌이 제정 러시아를 넘어뜨리고 마르크스주의를 가지고 급진혁명을 일으키므로 시작한 것입니다. 공산당의 이론을 여러분 간략하게 말하자면 공산당은 완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인 것입니다. 공산당세계속에는 민주주의란 있을 수가 없고 정당이 두 개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공산당 일당 철저한 독재인 것입니다. 공산당은 모든 사유재산제도를 철폐하고 재산은 오직 당과 정부의 소유로 삼습니다. 그리고 모든 생산수단은 그것이 토지든 공장이든 정부의 소유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과 정부가 인민에게 직장을 주고 주택을 주며 먹고 입는 것 등 생활의 보장을 해준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대신 개인의 자유는 당과 정부의 소유가 됩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없습니다. 신문도 공산당이 발행하는 신문밖에는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공산당에 대해서 바른말을 했다가는 그는 처형을 당합니다. 주거의 자유가 없습니다. 집도 정부가 소유하고 정부가 빌려주는 집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집을 팔고 이사를 갈 수 없습니다. 정부의 허락 없이는 한곳에서 평생 동안 살아야 됩니다. 직장의 자유 선택이 없습니다. 직장도 정부가 주는 것이기 때문에 직장을 정부가 배정해주면 좋든 안 좋든 그곳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주의 자유가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사 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여행의 자유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나라 안에서도 여행증이 없으면 여행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학업 및 결혼의 자유도 제한돼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란 당과 정부의 전횡물이지 인민은 노예적인 존재로서 오직 물질생산의 도구에만 불과한 정치가 바로 공산주의 정치인 것입니다. 물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며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착취하는 수단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영혼은 없는 것으로 무지한 미신의 소산이라고 하면서 철저히 종교는 탄압해서 박멸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산주의가 오늘날 72년의 세월동안 이 역사 속에 발전돼 왔는데 과연 그 공산주의의 열매가 무엇이며 소련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지 올해 72년째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공산주의란 역사적 시험에서 완전히 실패한 제도 및 이념으로 만천하에 들어나고 말았었습니다. 소련 및 동구권과 중국과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는 군사력 이외에는 경제적 사회적 생활면에서 가장 가난하고 못사는 낙후한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치고 오늘날 경제적인 파산에 이르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왜냐 공산주의는 그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일당독재국가를 세웠지만은 그들이 알지 못한 무지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자유 없이는 의욕상실증에 걸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를 철저히 박탈하고 완전히 인간을 당과 정부의 노예로 만들어놓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그 대가로서 먹을 것 주고 입힐 것 주고 집을 줍니다. 아무리 먹고 입고 있을 집이 있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자유를 잃어버리면 인간의 삶의 의욕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자유를 볼모로 잡고 박탈한 그 대가로 밥 먹이고 옷 입히고 일자리 줍니다. 이것은 마치 자유를 상실하고 기르는 돼지와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삶의 의욕과 일할 의욕을 상실해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인간은 사유재산의 즐거움이 없이는 일의 의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내 것이 안 됩니다. 모든 재산은 정부의 것이고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정부가 주는 임금으로 삽니다. 자기 개인 것은 아무것도 안됩니다. 이러므로 사람들은 일하지 않습니다. 내가 일 잘해도 그 월급 받고 못해도 그 월급 받고 내가 아무리 공로를 세워도 내게 돌아오는 것 아무것도 없으니 친절하게 살 리도 없고 열심히 일할 리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이란 형편없이 낮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당과 정부의 절대독재 중앙정부의 통제 하에 계획경제는 경제발전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중앙에서 통제해서 이 물건을 얼마 만들어라 저 물건을 얼마 만들어라 그렇게 하기 때문에 여름에 겨울옷이 나오고 겨울에 여름옷이 나오고 겨울에 샌들이 나오는가 하면 여름에 털 구두가 나오고 엉망입니다. 경제란 것은 자유경쟁시장에 맡겨놓아야지 정부가 전부 경제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국가에서는 언제나 상점마다 끝없이 줄을 섭니다. 물건이 나왔다면 물건 살려고 끝없이 줄을 서는 것이 공산주의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가 무시된 사회는 삶의 의미를 빼앗아 버립니다. 교회도 없고 다른 종교도 없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동물적으로 자고 깨고 먹고 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고 말합니다. 그것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을 수없이 숙청하고 살해해도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와 가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 노예제도는 오늘날 무너져 가는 모래성이란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국경에 철조망을 치고 지뢰를 파묻어놓고 사냥개를 두고 기관총을 주고 그리고 공산주의 국가를 유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민을 외부세계와 단절시키지 않고는 자유세계하고 같이 연결시켜 놓으면 공산주의 제도는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자유와 민주에 대한 욕구는 무자비하게 탄압해 버립니다. 요번 중공에 보십시오. 천안문 광장에서 자유를 달라, 민주를 달라고 수백만 군중이 외쳤습니다. 그 결과로 자유와 민주를 주었습니까? 공산당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 버리고 말은 것입니다. 공산당은 일어나서 탱크로 무장하지 않은 일반인민을 무자비하게 깔아 눕혔습니다. 그리고 기관총으로 쏘아댔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점에 와서도 철저히 계엄령 하에서 자유와 민주를 요구하던 인사들을 체포해서 공개적으로 처형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공산주의 입니다. 여러분, 이게 오늘날 환상주의적으로 우리나라에도 공산주의를 하자고 외치는 자의 어리석기 짝이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여러분 인류역사가 생겨난 이후로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처절한 노예제도가 바로 공산주의 제도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이 6.25를 통해서 공산주의가 무엇인가를 알고 우리는 철저히 공산독재에 대해서 항거하는 우리들이 돼야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자유민주주의는 둘째로 무엇일까요?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극한적으로 존중하며 국민이 선택한 대표가 정부와 국회를 결성하여 국가와 국민은 정당한 법에 의하여 다스리는 법치국가가 바로 자유민주주의인 것이요, 여러분과 저가 누리고 있는 이 삶이 자유민주주의 치하에서의 삶인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귀하게 여깁니다. 공산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국가와 당이 완전히 박탈해버린 것처럼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언론출판의 자유가 있어 마음대로 말하고 신문도 잡지도 출판합니다. 결사의 자유가 있어 마음대로 단체를 만들 수도 있고 직업의 자유가 있어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이주 및 여행의 자유가 있으며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에서 우리는 자유가 있습니다. 학업 및 결혼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 제도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철저하게 자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일당독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선거에 의한 정부와 국희의 대의정치 여론정치를 하는 것이지 일당이 독재해서 온전히 권력을 다 집중하여 잡고서 자기마음대로 다스리는 이러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에는 없습니다. 언제나 다당제도로서 국회를 통해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는 자본주의가 그 경제의 원리인 것입니다. 사유재산이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산수당인 토지 및 공장의 개인소유가 인정되어서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경쟁시장체제가 있어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됩니다. 서로 이윤을 얻기 위해서 밥을 세워가며 결사적으로 일을 해서 사람들의 요구에 물자를 만들어서 응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적기에 우리 필요한 물자가 공급이 되고 그 경쟁을 통해서 경제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결점도 많습니다. 자유의 남용으로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병폐가 있습니다. 너무 자유가 많기 때문에 나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면 된다는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이러한 법을 뛰어넘은 이기주의가 팽배해질 위험성이 많습니다. 또한 과도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돈 벌겠다고 너무 경쟁이 심해서 스트레스가 가해지고 사람들이 인정이 메말라서 몰인정하게 되는 그러한 결점이 있습니다. 또한 이익집단의 과격한 자기주장으로 사회소요가 그치지 않습니다. 소위 말하는 요사이 대우조선의 노동자들처럼 나라야 망하든 회사야 망하든 우리만 월급을 많이 받고 우리만 잘살면 된다면 이런 이익집단들의 소요와 고함소리가 자유민주주의에는 시끄럽습니다. 공산주의에는 이런 것 있을 수가 없어요. 이런 것 했다가는 당장에 총살을 당하던지 탄광으로 가든지 숙청 당해버리고 맙니다. 자유민주주의에는 각개단체가 모두 다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고함치고 단체행동을 하니 시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 도덕적인 타락이 자유민주주의에는 심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애써서 번 돈 자기가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고 말하냐 그래서 과소비 현상이 있고 쾌락주의 마약 성적인 방종 이러한 일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독버섯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결점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또 돈벌이 잘해서 부자가 된 사람은 너무 많이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또 너무 많이 가난합니다. 이러한 것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고는 자유민주주의에서 큰 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는 이제 국회의원 선거를 하기 때문에 금권정치가 되어서 돈을 많이 쓰고 돈으로서 권력을 얻는 이와 같은 결점이 자유민주주의 사회 속에는 반드시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많은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역사상 인간이 발견한 제도 중에 가장 좋은 제도가 자유민주주의 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지금 다 같은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남북이 갈려져 있으나 우리는 그 가장 좋은 자유민주주의 제도에서 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자유민주주의 제도에 자유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모여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천국 길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이북 땅에 공산주의 체제에서 어디에 이런 종교적인 자유가 있으며 예배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입니까? 어림도 없는 일인 것입니다. 3. 그러면 셋째로 현실세계에 대한 우리 교회의 사명이 무엇이겠는가?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대치되어 있는 이 세계 속에서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떠한 일을 해야 되겠는가? 이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오늘 교회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자유민주주의 세계 속에서나 생존 의미 상실증에 걸린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물론 삶의 의미와 목적은 상실되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인간은 하나의 물질에 불과하기 때문에 죽고 나면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 공산주의 사회입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고 구원은 없습니다. 또 자유민주주의 세계 속에서는 사람들이 물질추구에 혈안이 되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 자랑에 취해 살다가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인간은 모두다 생존의미상실증에 걸린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분명히 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 죄를 사해주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이 땅에서 천국까지 뻗어 올라가서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사람은 한번 나서 죽는 것은 정한이치요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 하나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자기목숨과 무엇과 바꾸겠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육신의 장막집 속에 살다가 죽어서 한주먹 흙으로 사라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존재가 육신을 입고 살다가 육체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생이냐 영멸이냐 영광이냐 수치냐의 갈림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 양심이 인간은 죽고 난 다음에 둘 중에 한 곳으로 가야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현실세계에 우리 종교는 우리 기독교는 이세계의 종말이후에 영원히 존재하는 천국의 세계에 관해서 분명하게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오늘날 사랑의 실천 없이는 인류는 자멸합니다. 공산주의는 순수한 독재와 공포로서 사람들을 다스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얼마 있지 않다가 자멸합니다. 자유민주주의도 극심한 물질적인 경쟁 속에서 사랑이 식어져버리고 사람들은 소외감 속에서 몸부림칩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의 실천 없이는 인류는 망합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도 망하고 자유민주주의 세계 속에서도 망합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자연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인간이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을 보호해서 살려준 것입니다. 오늘 공기가 사람들을 보호하고 물이 사람을 보호하고 자연이 사람을 보호해 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를 보호해주는 어머니 같은 자연을 훼파합니다. 아마존 강의 열대림을 훼파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세계적인 기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늘 아시아의 열대림들을 무조건하고 남벌하므로 말미암아 지구상의 가후가 달라집니다. 환경이 달라집니다. 비가 오는 데는 너무 많이 오고 비가 안 오는 한발을 또 너무 많이 계속되고 지구에 이상기온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사람들이 자연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생태계의 파괴는 바로 자기 길러준 어머니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 만물을 사랑하고 자연만물을 귀하게 여겨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함께 잘사는 운동을 전개해야 됩니다. 나만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것이 없다 생각하는데 여러분 함께 잘살지 못하면 자기도 파멸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주안에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면서 함께 잘사는 운동을 끊임없이 전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부자는 늘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재산을 사용해야 됩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또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들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도덕성의 상실을 막아야 됩니다. 도덕성의 상실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정부나 다 망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회가 돈 잘 벌고 잘 살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기주의 쾌락주의 탐욕주의가 팽배해지면 스스로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한국사회를 보십시오. 과소비현상과 쾌락주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등교하는 여학생까지도 잡아서 폭행을 하고 인신매매를 합니다. 이런 흉악한 죄악이 우리 한국사회에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파멸의 전주곡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이 사회의 파멸을 막고 빛이 되고 소금이 되지 아니하면 교회가 이사회 가운데 존재하면서 무슨 일을 우리가 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이러므로 교회는 이 사회 가운데서 도덕적인 삶의 기둥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밝은 빛을 비추고 식어가는 곳에 소금으로서 이를 식는 것을 막아주는 이런 역할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강림을 분명히 가르쳐야 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이 발걸음대로 영원히 살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줘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을 가까워왔고 하나님은 이 땅에서 거역하는 인생에 대해서 가차 없이 심판할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말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 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는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반드시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이 땅에 다가옵니다. 우린 얼마 있지 아니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실 주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고함과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주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우리들이 다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교회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나 분명하게 말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 자녀로서 구원을 받아서 이 세상과 역사가 종말 될 때 하나님이 지으신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사실을 추호도 애매함이 없이 우리는 전파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6.25는 삼십구 년 전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비참한 수난이었었습니다. 우린 역사적인 경험을 통하여 공산주의의 흉악함과 비인도성을 뼛속같이 체험하고 알고 있습니다. 우린 이 사실을 오늘날 환상적인 공산주의 이론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깨우쳐 주어서 회개하게 만들어 줘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길은 자유민주주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옳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국민들의 가슴속에 심어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도덕성의 사상적 토대가 없이 자유민주주의는 뜬구름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철저히 수호하면서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이러한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될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6.25를 통해서 공산주의가 얼마나 흉악한 단체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우리 동포들이 비명횡사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우리 동포가 남북으로 갈리어서 지금 고생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흉악한 공산주의 일당독재 김일성 김정일이 해방 후 사십년이 넘도록 혼자서 나라를 다스리고 혼자서 사람들의 고혈을 빨고 혼자서 인민들을 짓밟는 흉악한 악마들입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자유민주주의의 자유가 넘쳐나고 잘 먹고 잘 입고 사니 환상주의적인 공산당 사상을 가진 젊은이들이 이북을 찬양하고 흉악한 압제자 김일성을 찬양하고 이북으로 가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북의 제도를 우리 대한민국에 심으려고 하는 흉악한 짓을 하는 소수의 무리들도 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단연히 일어나서 이 흉악한 무리들과 대결해 싸우게 도와주옵소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상실할 수 없고 이 땅이 하나님을 섬기고 영원한 소망을 가지는 이 신앙을 빼앗아 가고 뭉개버리려는 흉악한 공산주의의 궤계를 우린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린 개인이나 교회 집단으로 국민으로서 공산주의를 대결하고 다시는 6.25와 같은 비극전인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되겠사옵니다. 하나님 우리아버지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젊은 대학생들이나 혹은 빗나간 우리 국민의 집단 중에 공산주의의 해독이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 저들을 주님께서 회개시켜 주시옵시고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창달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민족에 충만하게 하나님이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조용기 목사(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6.25가 주는 교훈/ 삼상17:31-50/ 조용기 목사/ 6.25기념주일설교/ 1995-06-25
6.25가 주는 교훈 삼상17:31-50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6.25가 주는 교훈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45년 전 그 때는, 제가 중학교 2학년에 막 올라왔을 때입니다. 학교 공부가 그렇게 재미가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침만 되면 속히 동네 중학교로 뛰어 왔습니다. 그래서 즐겁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6월 26일 날 월요일 아침 학교에 오니깐 분위기가 어수선합니다. 그런데 학교 당국의 말을 들어보니 북한 괴뢰 집단이 대거 3.8선을 넘어서 침공해왔는데 이미 그 주력이 의정부에 들어왔고, 서울이 함락될 것이 시간문제라는 그런 말을 들었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학교는 무기방학으로, 학교에서 연락이 있을 때까지 집에 있고 학교오지 말라고 그러고, 순식간에 군인들이 학교에 들어와서 학교를 군용으로 변화 시켰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시작해서 3년 여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처참한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온 나라가 다 잿더미가 되고 수많은 동포들이 희생당하고, 수많은 전쟁 과부, 고아들이 생겨나고, 참담하여 눈뜨고 볼 수 없는 그런 비극을 우리가 체험했습니다. 6.25 사변을 통해서 우리 한국이 입은 피해는 인명피해만 해도 총 645만 명이 사상을 당했습니다. UN군 15만 명, 한국군 100만 명, 북한군 90만 명, 중공군 90만 명이 사상이 되었습니다. 민간인만 하더라도 우리 한국이 140명이 학살되거나 납치되어가고, 북한도 200여만 명이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남북한 합쳐서 이산가족만 해도 일천만 명이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한국의 공장은 다 파괴되고, 중소 생산 장소는 거의 다 초토화되고, 집은 파괴되고, 교통, 도량, 체신시설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이제는 남북 간에 영원히 증오하게 되고, 복수심을 가지고 대결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타협과 대화는 이제 있을 수가 없고 오직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주먹은 주먹으로, 총은 총으로, 칼은 칼로 대결하는 대결만 남아서 오늘 45년의 긴 세월을 지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 6.25사변을 통해서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깊이 생각해야 될 여러 가지 하나님의 교훈이 있습니다. 왜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났을까요? 겨우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되어서 살만할 때 6.25사변이 터진 것입니다. 그걸 우리는 생각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정 30년 동안에 일본 사람이 와서 한국 사람에게 강제로 일본 신을 섬기게 했습니다.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라는 일본 신을 섬기게 했는데, 온 국민 전체가 일본 신을 섬기고, 심지어 교회까지라도 일본의 신당을 십자가 위에 세워 놓고 교회 와서 일본 귀신에게 먼저 섬기는,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일본은 우상 숭배의 결과로 원자탄 세례를 받고 망했지만 우리 한국도 하나님께서 일본 신을 섬긴 것을 하나님께서 증오하셔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벌하지 않고 그대로 넘기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민이지만은 저들이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고 따라갈 때 하나님은 이방 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보내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그들을 포로로 잡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 신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6.25로써 우리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해방 후 정치적인, 사상적인 분열로 가정과 나라가 분열되어서 물고 찢고 싸우므로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채찍으로 때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극적인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교훈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다윗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목자 밑에서 작은 목자로써 아버지의 양떼를 산과 들에 끌고 다니면서 먹이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신앙이 돈독했습니다. 하나님을 늘 찬미하고 아름다운 시를 짓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사람, 야훼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의 양떼를 몰고 산과 들로 다닐 때에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는 인적이 끊어진 곳에서 곰이나 사자가 튀어나와서 양의 새끼를 물고 도망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는 뛰어가서 야훼의 이름으로 그 입에서 새끼를 빼앗아 내었습니다. 어떤 때는 사자나 곰이 들고일어나서 다윗을 공격하려고 달려들 때 그는 야훼의 이름으로 주먹을 들고 그 곰과 사자를 치니, 곰과 사자가 죽어서 뻗었습니다. 조그만 소년의 주먹에 곰이 죽어 넘어지고, 사자가 죽어 뻗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다윗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다윗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고 섬기고 했지만 그가 위기에 처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야훼의 이름을 부르고 의지하며,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올 때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로 나타나서 사자를 넘어뜨리고 곰을 죽이는 역사를 베풀어 준 것입니다. 다윗은 거기에서 큰 체험을 했습니다.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고 나가면, 어떠한 사나운 곰과 사자도 자기를 대적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체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한국은 45년 전에 세계에서 최강의 공산주의자인 소련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이 김일성과 함께 손을 잡고 어린양과 같은 한국을 일시에 삼켜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세계 초강대국인 소련과 저 십억의 인구를 가진 중공이 북한 괴뢰집단의 허수아비인 김일성과 손을 잡고 이 땅을 휘몰아쳐 올 때, 이야말로 양 무리를 습격하는 곰과 사자와 같았습니다. 도저히 한국 사람으로써는 이 무서운 침략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순식간에 압록강에서부터 밀려온 그들이 저 낙동강까지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운명은 풍전등화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UN을 일으킨 것입니다. UN이 1950년 7월 7일 안보이사회에서 한국의 파병을 결정하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나라들이 주축이 되어서 16개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우리 한국전에 투입되어서 이 공산군과 싸워서 이 이리와 사자의 입에 물린 우리들을 건져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6.25전쟁은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방어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풍전등화와 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뼈까지 다 꺾일 수밖에 없는 위기에 쳐했었습니다. 그럴 때 UN이 생기고 난 다음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UN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군대를 파견해서 우리 한국을 소련과 중국과 김일성의 발톱에서 건져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만일 그 때에 하나님께서 UN군을 보내어서 우리 한국을 건져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45년 전에 공산주의자들의 발바닥에 짓밟혔을 것이고, 오늘날도 북한처럼 우린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도 없고 노예가 되어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종노릇하는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고, 교회도 없고 , 예배도 없고 찬송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6.25 45주년을 맞은 이때에 우리는 참으로 소련과 중공과 북한의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UN군을 보내주신 것을 우린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UN은 그 때 이후로는 지역적인 분쟁에 군대를 파견해서 싸운 적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을 위해서 하나님이 UN을 만드시고, 한국을 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군들을 파견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하나님이 우리 한국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여 주셔서, 이 민족을 공산주의의 밥이 되지 않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생각할 때에 우린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고 찬송하며, 이제 우리는 지금과 미래에 꼭 하나님을 의지하고, 야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고 우린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우린 6.25 전쟁에서 다시 살아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45년 동안에 이렇게 경제적으로 성장, 발전하여 잘 믿고, 잘 먹고, 잘 입고, 잘사는 민족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런 정도로 살게 된 것은 우리가 잘나서 된 것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를 잘해서 우리가 잘살게 되었나요? 우리가 남보다 부지런해서 잘사나요? 남보다 머리가 좋아서 잘사나요? 자본이 많아서 잘사나요? 늘 전쟁으로 하루도 편하지 않고, 데모로써 날이 새고, 데모로써 날이 지며, 쿠데타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 발전하고 복을 받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긍휼히 여기사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건져 주시고, 영원히 잘되고 교회를 세워주시고 일 천만 영혼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시고 범사에 잘되고 복을 내려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살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6.25사변 45주년 기념일에는 우리 야훼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될 것입니다. 우린 다윗이 이야기를 들어보십시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블레셋은 국력을 총동원해서 군대를 결성하고 그리고 골리앗 같은 대장군을 앞세워서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었습니다. 사울 왕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갔지만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골리앗이 나와서 쩡쩡대며 고함을 칩니다. 키가 8척이요, 그 창자루 하나가 베틀채만 했습니다. 옛날에는 총으로 쏘지 않고 창으로 던지고 칼로써 죽이고 하기 때문에 그런 거장 앞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골리앗이 산천을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대장부 있으면 내보내라고. “나와 싸워서 내가 그를 죽으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고, 그가 나를 죽으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될 것이다.” 그의 고함 소리에 이스라엘 군인들은 혼비백산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다 숨고 도망을 칩니다. 그 때에 다윗이 형들이 군대에 나와 있기 때문에 위문하러 왔다가 그 장면을 보고 분개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가서 싸우겠다.” 그 말을 듣고 사울 왕이 다윗을 만나보니 조그마한 소년이었습니다. “네가 감히 가서 싸우겠느냐?” “내가 가서 싸우겠습니다.” “너는 싸워 이기지 못할 것이다.” “골리앗은 어릴 때부터 대용사였다. 네가 어떻게 싸워 이기겠느냐?” 그 때 말했습니다. “임금님! 제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아버지의 양을 물고 도망을 치면, 내가 가서 야훼의 이름으로 그 입에서 양의 새끼를 빼앗았고, 사자나 곰이 내게 덤빌 때는 내가 야훼의 이름으로 주먹을 쳐서 사자도 잡고 곰도 죽였습니다. 그런데 저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이 야훼의 군대를 모욕했는데 저걸 보고, 전부 두려워하고 도망을 치고 숨다니, 그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서 싸워서 사자나 곰 같은 짐승처럼 저를 멸하겠다.” 그래서 다윗이 그 담대한 말을 하매, 사울이 자기의 투구를 씌어주고 군복을 입히고 칼을 주니 그가 사울의 투구를 쓰고 군복을 입고 칼을 가지고 끌어보니 도저히 거추장스럽고 무거워 안 되겠습니다. 그걸 다 풀어서 제쳐버리고 그는 목자의 옷 그대로 입고 그리고 지팡이 하나에 목자의 제구에 물맷돌 5개 들고 나갔습니다. 블레셋 군대의 장인 골리앗이 이 다윗을 보고 너무 분개했습니다. 뭐 저런 개 다 나를 잡으러 오느냐. 네가 나를 개인 줄 알고 부지깽이 들고 오느냐. 내가 오늘 너를 쳐서 죽여 공중의 새의 밥과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겠다. 그 때 다윗이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을 의지하고 나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임금이신 만주의 주, 만주의 하나님 야훼의 이름으로 의지하고 나오노라.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서 온 천하로 이스라엘에 속한 것과 전쟁은 야훼께 있는 것을 알게 하리라” 그리고 나가서 그는 물매에 돌을 먹여서 날려버리니, 돌이 가서 골리앗의 이마를 쳐서 이마 속에 파고 들어가니 골리앗이 죽어 뻗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로 뛰어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서 그 목을 배어 피가 쫙쫙 흐르고 눈이 종발 만하게 튀어나온 그 머리채를 휘어들매, 일시에 썩은 담 무너지듯이 저 블레셋 군대는 무너지고 이스라엘은 사기 충전하여, 천지를 진동하는 고함을 치고 습격을 해서 그날에 블레셋 군대를 전멸시키고 이스라엘 백성이 대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승리를 가져오게 된 것은 다윗이 아무도 보지 않은 외로운 곳에서 사자와 곰과 싸워, 그가 야훼의 이름으로 이긴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가 이제는 국가 대 국가의 전쟁에 나가서도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골리앗을 대항해서 나가 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신앙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담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도전에 응전해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매한가지입니다. 6.25사변이라는 그 처참한 전쟁에 저 소련이라는 막강한 군사대국, 10억의 인구를 가진 중공과 그들의 배후를 도움 받아서 온 김일성이 우리를 쳐들어 왔을 때 우리는 양 새끼의 한 무리와 같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뼈까지 으스러지게 잡아먹힐 뻔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게 UN군을 보내 가지고서 우리를 공산주의의 마수에서 건져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꿈꿀 수 없는 도움이 하나님께로 왔습니다. 성경에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주리라” 했는데, 이야말로 크고 비밀한 역사를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는 그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서 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국을 사랑하시고, 선택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택하지 아니하셨으면 우리를 이와 같이 사자와 곰의 이빨과 발톱에서 건져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그런데 월남은 오히려 월맹에게 잡아 먹혔지만 우리는 잡아먹히지 않고 하나님이 건져내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한국을 사랑하시고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을 세워서 하나님은 마지막 때, 온 천하에게 복음을 전할 제사장의 국가로 삼으려고 하셨다는 사실을 6.25의 경험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하나 알 것은 어떠한 원수가 다가와도 6.25때 우리를 건지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윗처럼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고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면 어떠한 일에도 이길 수가 있다는 자신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6.25사변을 겪고 난 뒤에도 오늘날 가장 믿을 수 없고 흉악한 공산집단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것입니다. 6.25를 일으킨 북한 공산집단 들이 아직도 북한에 있어서 그들이 북한 주민 2500만을 포로로 잡고, 언제 또다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큰소리를 하면서, 우리를 호시탐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또 그것 뿐 아니라 오늘날에 와서는 이젠 주의도 이념도 사라지고, 온 세계에는 먹느냐, 먹히느냐의 경제 전쟁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일맥으로 북한 공산주의 집단에서 우리를 지켜야 되고, 경제적인 세계적인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될 일은 무엇인 것입니까? 다윗이 야훼를 의지하고 이긴 체험을 가지고서 골리앗을 이긴 것처럼 6.25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준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가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시므로 북한을 능히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남, 북이 통일되도록 해 주실 것이고, 세계의 이 경제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이겨서 영원히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형통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은총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다 잊어버리고, 인본주의 스스로 서고, 인간의 힘에 의지하고 서면, 우린 파멸되고 말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나갈 때에, 그가 사울의 투구나 갑옷이나 칼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곰이나 사자와 싸울 때 입었던 그 목자의 옷 그대로 입고 나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북한 공산집단과 대결하여 싸울 때, 이 세상의 여러 가지 경제적인 도전에 임했을 때,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은 인본주의 신학이나 , 철학이나 무슨 주의의 옷이나 칼등을 입고 나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에 대한 투철한 믿음으로 무장하고 물맷돌 5개들고 나가야 됩니다. 물맷돌 5개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물맷돌 5개, 5중 복음인 것입니다. 죄 사함의 복음의 물맷돌, 성령 충만의 물맷돌, 치료의 물맷돌, 아브라함의 축복의 물맷돌, 영생 복락을 얻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물맷돌을 들고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5개의 물맷돌을 들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싸우고, 우리의 세계적인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나아갈 때 우리는 모든 골리앗을 쳐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므로 6.25 45주년을 맞이한 우리들은 갈보리 십자가 밑에 나가서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예수께서 우리 위해 몸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를 살아갈 수 있는 무장을 해주신 이 영적인 물맷돌 5개를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으로 무장해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십자가에서 주시는 이 물 맷돌 5개를 얻어야 됩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이 물 맷돌 5개를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얻은 죄 사함의 복음, 성령 충만의 복음, 치료의 복음, 아브라함의 축복의 복음, 재림의 복음이라는 이 5중 복음, 물맷돌 5개로 무장하고 나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나가면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고, 야훼의 이름을 의지하고 물맷돌 5개를 가지고 강하고 담대한 용기로써 우리는 북한에 대처하고 이 경제 전쟁에 대처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므로, 모든 골리앗을 쳐 물리치고 승리의 개가를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6.25 45주년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우리 민족과 같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공산주의의 발톱에서 건져내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지신 이 경험을 가지고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아무리 우리수가 적고, 세계적인 강국인 소련이나, 중공이나 북한이 합쳐서 쳐들어와도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는 넉넉히 이기기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을 역사적인 경험으로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 민족은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됩니다. 우리 대통령도 우리의 모든 다스리는 자들이 하나님을 다 경외하고 부르짖어야 됩니다. 우리 한국의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지자체 선거에도 모두다 장들도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은 하나님을 떠나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떠나면 우리 민족은 저주받고 버림받고 말 것입니다. 6.25 기념일에 우리는 이것을 깊이 깨닫고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우리 온 교회가 회개하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시 한 번 우리는 5중 복음을 우리 마음속에 가지고 무장하고, 기도와 믿음으로써 우리 모든 문제에 대처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우린 복음을 가지고 무장하고, 기도와 믿음으로 나갈 때에 어떠한 전쟁도 이길 수가 있고, 어떠한 도전도 극복할 수 있고, 어떠한 시련도 이길 수 있고, 하나님 같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기적으로 승리의 영광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45년 전에 6.25를 당해서 우리 국가가 풍전등화가 되고, 우리 민족 전체가 공산주의의 밥이 될 수밖에 없을 그 때에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UN군을 보내주어서, 우리를 공산주의의 발톱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이는 지금 돌이켜볼 때,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요. 하나님이 특별히 이 민족을 사랑하지 안하고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특별히 이 민족을 사랑하여 주셔서 구원자를 보내어서 우리를 공산주의의 발톱에서 건져내어 주시고 45년 동안 우리를 축복하여 주시고, 부흥케 해 주시고, 형통케 해 주셔서 이 땅에서 굶주림이 없고 헐벗음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부유하고 풍성하게 잘 살게 하는 나라로 만들어 주시고, 1천 2백만 이상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미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이 일이 사람에게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고 자복하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찾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아버지.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멸하려고 하는 북한의 골리앗을 주님께서 기억하여 주시옵시고, 그 골리앗을 쳐 물리쳐버려 주시옵시고, 남, 북이 통일되고 국가가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 민족을 일으켜서 온 천하에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실력 있는 경제적인 힘이 튼튼한 크리스천 국가가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조용기 목사(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6.25가 주는 교훈/ 신8:1-10/ 6.25기념주일설교/ 2004-06-25
6.25가 주는 교훈 신8:1-10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이요, 바른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오늘 우리가 참으로 얼마나 잘 잊어 버리는지 ... 아마 우리 가운데 지난 주일 드린 말씀의 제목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분이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인간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그만 지난 일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기 마련입니다 .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 술 맡은 관원장...)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아무리 망각의 동물로서, 잘 잊어 버릴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그런 중에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지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내 죄가 해결이 되고, 화해와 더불은 화목이루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 만날 수가 있어, 대화 할 수가 있어, 교제할 수가 있어, 소망을 얻어, 생명을 얻어, 구원을 얻어, 천국을 얻어, 하나님의 권속이 되고, 백성이 되고, 자녀가 된 이 놀라운 사건을 결정채인 십가를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울러 오늘 이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일들이 참으로 한 두가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또한 오늘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6.25입니다. 그 고통과 처참했던 6.25 참으로 오늘 이 나라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이날을 우리가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우리에게 이 날을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당시에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인 김일성을 찬양하고 이북을 미화시키는 이들이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가에서 인공기가 펄럭이고 불순 책자가 나돌고 하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걱정이 된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은혜목회정보- 97.11 ☞설교/박성규목사 이런 말이 있습니다. 6.25를 기억하면 6.25가 안오고, 6.25를 잊으면 6.25가 다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러한 아픔을 당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난안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난 40년 동안 고난길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주셨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의 때를 기억하라고 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처참했던 6.25를 다시 기억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 6.25는 죄의 값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후 시내산 에서 율법을 주시어 하나님을 섬기는 훈련을 시킨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가데스바네아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바로 들어가면 되는 데 이들 은 먼저 그땅을 탐지하자고 하여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리어 들어가면 죽는다고 하면서 불평하므로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40년동안 광야를 헤매게 되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아 광야에서 40년의 고난을 겪은 것은 죄로 인함이었습니다. A.D. 70년에 디도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인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에 있던 110만명이 죽임을 당했고 9만7천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가 다스린 나치시대에는 600만이나 되는 유태인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가면 야아드 마심 이라고 하여 600만 학살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학살당하면 유대인들의 비참한 모습의 사진과 그들이 입었던 피묻은 옷 찢어진 신발 등 가슴이 저미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무서운 고난의 때에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수가 있느냐고 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유대인들이 그처럼 엄청난 고난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 그 죄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려 주소서 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죄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처참했던 6.25를 44주년째로 맞이했습니다. 이 6.25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6.25때 죽은국군이 141,956명이며 유엔군이 149587명경찰 11,303명 민간인 244,763명 그리고 점령지에서 죽은 사람이 123,936 합계676,545명이나 됩니다. 또한 전쟁중에 부상한 사람은 국군이 194,068명 민간인 229,625명으로 합하면 423,693명으로 죽은자와 부상자를 합하면 1,100,238명이나 됩니다. 그리고 납북자 84,532명 행방불명자 363,212 등을 합하면 1,547,982명입니다. 여기에 북괴군 사상자 294,151명 중공군 189,000명에 전쟁고아와 전쟁시 죽은 사람을 합하면 300만명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6.25는 사람의 시체가 이 땅을 덮고 피가 강을 이루는 참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6.25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좁게 보면 적화야욕에 불타는 김일성의 욕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300만이나 되는 사람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 이 엄청난 재난이 그저 되지는 않은 것입니다. 이 엄청난 재난은 우리 민족의 죄악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1938년 9월10일 제27회 장로회 총회때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일본의 신도에 절을하고, 국민의례라 하여 연약한 성도들에게 우상숭배를 권장한 죄를 범하여 온 교회가 함께 우상숭배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종을 떼어서 전쟁무기 만드는데 헌납을 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주의 종들을 파면할 뿐 아니라 도리어 감옥에 집어 넣어 온갖 고문을 다하여 죽였습니다. 이처럼 무서운 죄를 범하고도 해방이 되자 회개를 하기는 커녕 도리어 서로 교권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죄를 징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우리 성도들의 눈에 회개의 눈물을 흘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6.25를 기억하며 범죄할때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알고 범죄하면 겸손히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 수 있습니다. 6.25때에 북괴군이 파죽지세로 쳐 내려와 마산 부산 대구를 남겨놓고 다 점령을 당하고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이 급파되고 밀리기만 한 국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전열을 재 정비하였고 인천 상륙작전을 통하여 전세를 뒤집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합군이 파송될때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자 유엔에서는 안전보장 이사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안전보장 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국 5개국인데 여기서는 한나라라도 거부하면 안 되었습니다. 이 회의에 소련의 대표는 유엔군 파송을 반대하기 위하여 작정한 시간에 차를 타고 유엔본부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갑자기 차의 시동이 꺼져서 운전수가 내려서 보니 별 이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동을 걸면 걸렸다고 조금 가다가 스르르 꺼지고 하여 결국 시간이 조금 늦었습니다. 소련 대표가 참석했을때에는 이미 한국에 유엔군을 파송하자는 결의는 통과된 후였습니다. 소련의 대표가 시간안에 참석했다면 한국에 유엔군의 파병은 부결되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한국은 공산화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잘가는 차의 시동을 꺼지게 하여 참석을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무서운 징계를 내리는 가운데서도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안됨을 가르쳐 주신다. 공산주의는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 주의자들이며, 모든 것을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이나 인격을 조금도 생각지 않으며 짐승이나 같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잔인한 일도 저질를 수 있음을 정당화 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무신론을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외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무장을 하고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평안하게 살게 될때 애굽의 노예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도해 내시고 광야의 그 무서운 고난의 길을 지켜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의 힘으로 잘살게 되는줄 알까봐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해서 그는 외쳤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광야 40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6.25는 이 백성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믿는 자들이 하나님앞에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중에도 하나님이 도와주심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아울러 우리가 앞으로도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6.25가 준 교훈/ 히12:11-13
6.25가 준 교훈 히12:11-13 6월이 되면 가장 먼저 우리는 6,25를 생각하게 됩니다. 금년은 더욱 유별나게 이 문제가 생각이 납니다. 첫째는 핵문제의 대두로 금년도의 6,25를 맞이하는 의미가 다른 해와는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6,25는 금년으로 44주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6,25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6,25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동차를 사면 타보고 싶고 달리고 싶습니다. 또 사람이 총이 있으면 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이 칼을 손에 쥐면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아마 북한도 핵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온갖 유혹과 협박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한사코 핵을 가지려고 하겠습니까. 지금도 핵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태인데도 온 세계가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는데 그들에게 핵이 서너개 있어 보십시요. 아마 세계는 속수무책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북한에 한두 개의 핵이 있다고 해서 별일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핵이 수천 개가 있어도 사용하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다릅니다. 그래서 지금 핵의 문제가 복잡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 금년은 러시아로부터 남침문서를 전달받았기 때문에 그 어느해보다도 6,25를 맞는 마음이 새롭습니다. 이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 입니다. 44년 전의 일급비밀 문서가 전달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역사 앞에서 진실하여야 하겠다 하는 마음을 새삼스럽게 갖게 됩니다. 누가 44년 후에 그 극비문서가 세상에 그대로 공개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세상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역사도 없고, 영원한 비밀도 없으며, 영원한 권세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역사 앞에 진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금년은 무엇보다도 안보의식에 대한 어떤 정립이 필요한 해라고 생각하십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안보에 대해서 너무 느슨한 것 같이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전쟁 설이 나돌고, 불바다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젊은이들은 김일성을 흠모한 나머지 인민궁전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김일성 대형 초상화를 걸어 놓고 6,25는 조국해방전쟁이었다고 찬양을 하고 있으니 아무리 민주주의 사회지만 너무 철이 없다 싶습니다. 분명히 안보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이제 공산주의는 죽었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지금 많은 분들이 소련도 붕괴되고 동구도 해체되었으니 \"이제 공산당의 잔당은 가만 둬도 저절로 고사한다\" 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흐름이 \"철없이 놀고 있는 일부 대학생들이 떠드는 것 가지고 너무 신경쓸 것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6,25때 겨우 낳아서 강보에 쌓여 피난을 갔던 전쟁 미체험세대가 커서 학자가 된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6,25라는 것은 경험적인 차원에서 회고될 일도 아니고, 체험의 영역에서 다스려질 것도 아니다, 6,25는 다만 역사일 뿐이다\", 생각과 감각이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젊은이들이 철없이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금년 긴장 속에서 다시 44번째 6,25의 기념일을 맞이했는데 다음의 몇 가지 교훈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상처 있는 역사를 지닌 민족은 그 아픔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는 교훈입니다. 과거에 배고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성공한 후에도, 아무리 먹을 것이 풍부해진 뒤에도 그 때를 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 때를 망각하면 그 사람은 방종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면 또 다시 그 아픔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 우리 조상들은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많이 쌓아 놓았어도 밥을 먹고 난후 밥알을 남기는 것을 죄를 여겼습니다. 젊은 며느리들이 설것이를 하다가 밥알을 하수구에 버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난리가 났습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지혜 있는 삶입니다. 과거에 일시 고난을 당한 것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초년고생은 사서도 한다\" 고 이를 선하게 해석을 했습니다. 고생은 사람들에게 한때 아픔도 주고, 고됨도 주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고생은 일생을 살아가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 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건강했던 사람이 한번 병에 걸리게 되면 속수무책으로 맥없이 주저앉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후 70년에 로마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로마는 그 정복 기념으로 로마 시에 개선문을 세웁니다. 또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로마는 기념주화를 발행합니다. 그때 발행된 기념주화를 보면 그 속에 \"유데아 데비크라\"라는 글을 새겨 넣습니다. 그 말의 뜻은 \"우리가 유대인을 부수었다\" 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글귀 옆에 로마병정을 세워 놓고 그 병정의 발 앞에 유대인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을 그려 놓았습니다. 거기에 서 있는 로마병정의 손에는 승리의 단술 병이 들려 있고, 유대인 여인의 손에는 패배의 쓴잔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때 유대는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 산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로마는 영원히 그 나라를 지배하고 이 세상 위에 군림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복자는 단술 병을 들고 서 있고, 패배자는 실패의 쓴잔을 들도 정복자 발 앞에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후 2천년이 지난 오늘은 그 로마는 이 지구상에서 간 곳이 없고, 그때 패배의 쓴잔을 들고 무릎을 꿇고 있던 유대인들은 오늘 세계에 남아 그 어느 민족보다도 자신만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과거의 승리에 도취해서 살아가면 그 영광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실패한 사람은 어쩌면 그 실패가 내일에 살아남게 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게 해서 더 악착같이 살아남게 하는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승리했다는 사람, 성공했다는 사람, 입지적인 인물들은 모두 그 옛날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들 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민족도 대단한 민족입니다. 6,25이후에 우리민족이 이루어낸 발전은 유대인들을 능가하는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참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 기적의 원천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과거에 당했던 그 아픔의 역사가 기반이 되어준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민족에게 자생력을 길러 주었고, 인내력을 길러 주었고, 개척정신을 길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는 그로 말미암아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아픔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 있는 민족입니다. 두 번째는 \"상처 입은 민족은 하나님의 은총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요즘에 와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 6,25가 일어난 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우리민족이 고생은 많이 했지만 오늘에 와서 생각하면 우리민족은 그때 공산주의에 대해서 그 실체를 아주 뼈저리게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공산주의가 뭔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공산주의만은 안되겠다 해서 반공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공산화를 막아내게 된 것입니다. 그때 공산주의에 대한 실체를 알지 못했더라고 하면 그후 이 나라는 벌써 공산화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공산주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고 있습니까. 오늘 공산주의의 실패를 보고서도 이 공산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6,25가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게 주신 역사라면 우리에게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깊은 뜻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에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8,15 광복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으로 생각되고, 6,25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상처 입은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 입니다. 우리는 오늘 6,25 44주년을 맞이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 사회에 대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전쟁 난다고 하면 사재기하는데 일목하지 말고, 나라의 위기 때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침착해져야 합니다. 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공산주의와의 싸움만은 막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역사가가 지난 6,25의 전쟁을 정의하기를 \"이 전쟁은 공산주의와 기독교와의 싸움이었다\"고 정리를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오늘날에 와서 사람들 모두가 안보의식이 희미해진다 해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6,25 때 가장 수난을 많이 당한 부류의 사람들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일제 압제는 받는 동안에, 그리고 6,25사변 동안에 가장 극심하게 핍박을 받고, 수난을 당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유독 세계적으로 보아도 공산주의는 기독교에 대해서만큼은 무자비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일반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공산화가 된다고 해도 그런 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사회나 민주주의 사회나 어디서나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생리적으로나 이념적으로이나 신앙적으로 공산주의와는 함께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맞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전쟁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전쟁이고 또 하나는 이념 전쟁입니다. 종교전쟁은 거기에 사명성이 있고,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한번 벌어지는 무서운 전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피차 순교는 할지라도 끝은 없습니다. 이념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념전쟁에는 협상이 없습니다. 아주 불리하게 되면 작전상 협상이 있을 뿐이지 회복되면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종교전쟁에는 체면이 우선이고 인도주의라는 것이 있지만, 이념전쟁에는 체면도 인도주의도 없고 잔인성과 포악성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6,25전쟁은 타민족도 아닌 동족끼리 피차 300만 명이 죽는 끔찍한 전쟁으로 발전되었던 것입니다. 6,25때는 교회만 280개가 파괴되었고, 순교하고, 납치된 교역자만도 250명이나 됩니다. 특별히 충남에 가면 병촌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는 6,25가 터지고 나서 7,16일날 66명이 모여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공산군들이 들어 와서 무차별 난사를 하는 바람에 모두 사살 당했습니다. 그 중에는 유년학생이 21명이나 있었고, 유라도 5명이나 들어 있습니다. 그 교회는 시골의 교회였기 때문에 이 66명은 거의가 다 한 동네 사람들이었고, 또 한 집안이었고, 한 가족이 많았습니다. 어떤 집은 한 가정의 11명이 그날 한날에 순교한 집안도 있습니다. 그 66명이 어떻게 죽었느냐 하면 낫과 쇠스랑과 망치로 무자비하게 맞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날 전남 영암교회에서는 83명이 예배를 드리는 도중 모두 사살 당해 죽었습니다. 사고 후 24명의 시신이 교회 앞뜰에 안장되었는데 그 때 당시 부통령이었던 함태영 목사는 그 장례식에 참석하여 다음과 같은 비문을 세웠다고 합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그리고 한쪽에다가 또 기록하기를 \"오호라 겨레의 어둠의 날 6,25, 24성도여 주님 오실 때까지 고이 기다리라\"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없고, 공산주의에는 인도주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까지 잔인할 수가 있습니다. 공산주의에는 목적을 위해서는 인간도, 생명도, 존엄성도 없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의 허실입니다. 그러니 지금 젊은이들이 6,25를 조국해방 전쟁이라고 떠들고 다니니 철이 없어도 보통 철없는 행동입니까. 하여간 6,25는 이미 44년전에 일어난 사변이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전쟁은 또 다시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않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히 또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이것은 일반 사람들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더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들이 기도해야 할 일 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번 가정을 해 보십시요. 가장 먼저 일어날 일이 무엇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북한의 미사일이 서울에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몇백명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북의 미사일이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에 한번 떨어져 보십시요. 그러면 즉시 우리의 미사일이 영변에 있는 핵저장소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줄잡아 1만 3천 평방 KM 지역은 핵 방사능으로 순간적으로 파멸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도 말고 미사일 한대씩만 주고받으면 피차가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해면 전쟁은 없다는 결론을 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 모처럼 대화 분위기가 잡혀가고는 있는데 이것이 어디 한 두 번입니까. 마지막 코너에 몰리면 의례 해 오던 국면전환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 들뜰 것도 없고,흥분할 것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주어져도 의연하게 대처해 가야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국론을 집약하고, 국민은 의연하게 흔들리지 말고 할 일을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6.25는 전설이 아니다/ 렘6:10-15/ 6.25설교
6.25는 전설이 아니다 렘6:10-15 지난 6월 15일 오전, 서해안 연평도 근해에서 일어난 남북한의 함정들의 충돌, 포격 교전은 자칫 잘못했으면 전 쟁으로 비화될뻔 했습니다. 다행히 서로 자제하고 관계를 단절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일단, 대치국면을 면하게는 했으나 세계 여론은 남북 사태 가 지구상에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 교전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내가 동요 없이 냉정하리 만치 조용했던 것을 두고 국민의 높은 수준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마 전쟁이야 일어나랴, 하는 북한 도발에 대한 식상현상으로 보는 눈도 적지 않습니다. 동족 상잔의 6.25남침이 있었던 지도 이제 반세기가 되었습니 다. 49세 이후 세대들은 6.25가 전설처럼 들려지겠지만 50세 이전세대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뼈저린 오늘의 이 야기입니다. 저는 6.25가 되면 생각나는 한 편의 시가 있습니다. 30년 전 시인 이인석씨가 쓴 \\\'남선의 처\\\'라는 시입 니다. \\\'한식날이 되면 무덤 앞에 온종일 울고 있던 남선의 처가 올해에는 비석을 해 세우고 갔다. 일제 때는 반일투 사, 해방 후엔 반공투사, 공산당은 일제보다 더 흉악하다며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던 남선이 LST답승호의 월북을 막 아낸 남선이가 괴뢰군의 총뿌리에 쓰러졌다 처자 일곱씩을 남겨두고 간 것이다. 지금은 아무도 그를 생각하는 사람 이 없다. 그의 피와 충성은 헛된 것이었던가? 붉은 무리와 싸울 때에도 나라는 쌀 한 톨 준일이 없고 죽었어도 그 가족에겐 돈 한 잎 보내오지 않았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남은 사람만 불쌍하지, 울며 헤매던 그의 처는 어린것 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식날이면 바람처럼 나타나 울고 가던 남선의 처가 올해엔 비석을 세우고 갔다. 나라 위해 처자를 버렸건만 울어 주는 것은 버림받은 처자뿐이다. 치한에게 유린되어 미친듯이 울부짖던 소녀가 날 이 가자 언제 그랬더냐는 듯이 웃음을 파는 모습을 본다. 이 겨레의 모습을 본다.\\\' 저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저며 오는 것을 느낍니다. 민족의 처절했던 참상을 잊은 채 웃음을 팔고 있는 나 라의 모습, 교회의 모습, 아니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성역으로 여기는 \\\'야드바센\\\'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세계 2차 대전당시 히틀러에 게 학살당한 650만명의 학살 기록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된 곳입니다. 그 기념관 흰 대리석 탑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 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나라 안팎이 몹시도 어수선한 이 때 이인석씨의 시 와 \\\'야드바센\\\'의 정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 본문인, 예레미아 6:10-15의 말씀은 주전 6세기경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주 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아는 그 백성의 죄악과 불신앙을 경고하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종교는 형식만 남아 있고 양심과 이성은 욕심 에 어두워져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진노를 쏟아부어 아이들과 청 년들은 쓰러져 죽겠고, 부모와 노인들은 사로잡히게 되고 부끄러움 없이 끌어 모은 모든 재산은 하인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듣지 못하는, 할례를 받지 못한 귀는 이 경고의 소리를 오히려 개인적인 감정의 소리 로 듣고 반감만을 더 가지며 제사장과 선지자는 대중에게 아부하기 위해 없는 평화를 평화 평화하고 외치고 있으니 이 민족을 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견착할까\\\" 하고 탄식합니다. 지도자도, 백성들도 모두 영의 귀가 먹어 이 경고의 소리를 한낱 개인 의 위협소리로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 그의 마음이 터질 것 같이 되었을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바벨론의 침략이었습니다. 그 것이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성경은 전쟁을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증언합니다. 이런 견해는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의 공통된 증언입니다. 하나님은 북방의 세력을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로, 하나 님의 진노의 몽둥이로 삼으신다고 이사야 선지자도 외쳤습니다.(사 10:5-6) 예언자들은 전쟁을 사회적 불의, 종교적 무능, 정치적 폭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25는 참으로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 참극이었습니다. 이기백씨의 \\\'한국사\\\' 서론에 보면 6.25는 208억불의 물질적 손실과 163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침략을 당한 난 리와 난리의 연속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우리가 약했기 때문이나 외세의 침략적 근성 때문이라기 보다 우리 자신의 도덕적 불성실에 그 이유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둘째, 성경은 전쟁을 회개를 촉구하는 징계라고 증언합니다. 이 민족은 너무나도 참담한 징계를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이 민족은 세계에서 제일 위험한 지역 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남북이 막강한 화력으로 서로 대치해있고 전후 반세기를 지나오는 동안도 서구의 바람직한 정신 유산을 도입하기보다는 퇴폐문화와 서구의 소비시장 역할을 하면서 민족정신도, 도의 정신도 다 잃어 버렸습니 다. 많이 소유하는 것을 최고의 덕으로 알고 살아오는 동안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조차 모르게 된 것입니 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제자가 스승을 112에 신고를 하고, 지도층 인사들의 자녀가 유흥비를 위해 강도짓을 하 고, 단정해야 할 여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거리를 비틀거리고 다니는 것이 자유로 아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 속에서, IMF 보다 더, 북한의 무력도발 보다 더 무서운 경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1960년 대에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면서 시인 김인서씨는 이런 회개의 글을 썼습니다. \\\'주여! 내가 불탄 성읍을 향해 우는 것이 아니라 이 백성의 죄악을 통곡하옵고, 무너진 예배당을 보고 통곡함이 아니 라 우리의 오만을 통곡하나이다. 죄악의 1950년대를 피로 씻어 보내고 1960년대를 또다시 눈물로 마지 하나이다. 번 화한 거리에서 범한 죄악을 페허 위에 엎드려 회개하옵고 벽돌 예배당에서 지은 죄를 재위에 앉아 회개하나이다\\\' 참 으로 공감이 가는 참회의 글입니다. 그렇다면 2000년대를 바라보는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겠습니까? 도둑질의 죄입니까? 거짓의 죄입니까? 살인의 죄입니까? 방황의 죄입니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죄는 물질을 숭상하는 우상숭 배를 회개해야 하고 더 많이 소유하려는 끝없는 \\\'욕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물질숭배와 탐욕, 이것은 이미 위험수위 를 넘었습니다. 물질숭배의 회개는 땅위에 재물을 쌓던 사람이 하늘에 재물을 쌓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자식들과 이 땅의 젊은이들을 잃을 것이고 애써 모은 재물은 한 순간 타인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경 고입니다. 셋째, 성경은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증언합니다. 우리는 이번 서해안 교전사태를 노후한 60년대 무기와 최신예 첨단 무기와의 대결의 승리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월남이 최신 무기가 없어 월맹에게 패망한 것이 아니며 소련이 최신무기가 없어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우리 가 참담한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리시나 싸매 주시고, 징계하시 나 위로해 주시며 버리시나 다시 새 관계를 약속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25가 터지고 3일만에 수도 서울은 공산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밀리고 밀리던 정부는 남쪽 끝까지 밀려가 모두 바 다 속으로 밀려갈 판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 속에 개입을 하셨습니다. UN군이 한국전쟁에 그 처럼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4가지의 불가사의가 있었다고 사가들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4가지의 불가 사의란 마침 그때 UN총회가 개회 중이었고 소련대표가 교통사고로 거부권 행사를 할 수 없었고 미 해병대 가 일본 근해에 출동하고 있어 출동이 용이했고 작전상 성공률이 20%에 불과한 인천상륙작전이 100%성공했다는 사실입니다. 신약 본문 말씀인 계시록 16:12-16의 말씀은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재앙이 지나고 마지막 일곱 대접의 재앙 중 여 섯째 대접을 땅에 쏟으니 세상 군왕들이 대 접전을 위해 아마겟돈으로 모여오는 환상입니다. 요즈음 남북관계를 주제로 하는 영화나 소설이 관객과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특히 김진명씨의 장편소설 \\\'한반 도\\\'에 나오는 전쟁 필연의 예견이 소설의 무대와 비슷한 서해안에서 터진 것이 적중하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습 니다. 이땅의 군왕들이 모여들 아마겟돈이 한반도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경제력 도 군사력도 아닙니다. 이 민족이 아니 한국교회가 물질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욕심을 버리고 심 령이 가난해 지는 일입니다. 본문에도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였습니다. 본문에 개구리는 더러운 영을 상징합니다. 더러운 영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용은 사탄이요, 짐승은 적 그리스도요, 거짓 선지자는 거짓 종교입니다. 입에서 나온다는 뜻은 그릇된 주의와 사상과 교리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영은 언제나 도덕적 불성실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류는 결국 이 도덕적 불성실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도, 국민도, 교회도, 가정도, 개인도 스스로 깨어 회개할 때 6.25는 전설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회개만이 과거의 전쟁의 희생을 고귀하게 하고 미래는 하나님과 새 관계를 맺는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외쳐야 할 것은 경제재건보다, 군비 확충보다 먼저 도덕적 성실의 회복입니다. 6.25 49주년을 보내면서 이제 물질 우상과 욕심을 버리고 도덕적 성실로 전쟁은 이제 끝내고, 6.25를 전설이 되게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6.25동란 기도와 구국/ 왕하19:14-19,35-37/ 2002-10-07
6.25동란 기도와 구국 왕하19:14-19,35-37 6.25동란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피해와 비극을 가져왔습니다. 3년 1개월간 계속된 전쟁의 피해는 아래와 같습니다. 전사상자 200여만명, 전재민 400여만명, 피난민 380여만명 납북된 자 12,900명, 행방불명자 360,000명, 전쟁고아 60,000명, 교회당파괴 2,000여곳, 순교교역자 408명, 학교파괴 60%, 공장파괴 24%, 남한 8000개의 마을중 1200마을이 피해, 이산가족1000만명--- 이런 엄청난 비극이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당시저는 19세의 홍안 소년으로서 이북함흥시에서 피란을 나와 지금 70세의 노년이 되었습니다 1950년 12월 12일 피난을 떠나는 아침 대문간에 나와 눈물을 짓는 부모님 앞에 ”아버지 어머니 안녕히 계십시요 3개월 후면 돌아오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집을 떠난 것이 엇그제 같은데 벌써 5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 이제 고향에 돌아가도 이 세상에서 부모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하늘나라에서 만날 희망이 있으니 얼마나감사합니까 우리나라가 6.25때 적화의 위기에서 북괴군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보존하고 오늘의 발전을 이룬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의 눈물과 간절한 구국 기도가 계속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지금껏 지켜 주신 줄 믿습니다. 오늘은 기도와 구국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 히스기아왕의 기도와 구국 오늘 본문은 유대나라 히스기야왕 때의 일입니다. 그때 앗수르왕의 군대가 북이스라엘과 주변의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유대나라 예루살렘을 완전포위하고 하나님과 유대왕국을 비방하고 조롱하며 항복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때 히스기야왕은 앗수르왕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들고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펴놓고 앗수르왕의 훼방과 조롱을 하나님께 아뢰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였습니다. 또한 선지자 이사야와 온예루살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 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나타나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쳐죽였습니다. 앗수르왕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군사들이 다 송장이 되었음을 보고 놀라 도망하여 본국에 돌아가 니스록 신당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두아들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이와같은 기도와 구국의 역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고 역사상에도 기도와 구국에 대한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 워싱톤장군의 기도와 구국 미국의 초대대통령 죠지워싱톤은 독립 전쟁시 매일밤 6시를 기도 시간으로 정하고 그때는 일체의 면회를 사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합니다. 워싱톤장군이 거느린 독립군은 수도 부족하고 무기.탄약등 장비도 부족하여 패전을 거듭함으로 독립의 희망이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워싱톤의 군대가 호지골짜기에 진치고 있을 때의 형편은 비참하였습니다. 군사들이 담요가 없어 짚을 깔고 덮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장군은 그때 아이자크뽀르의 집에 유숙하였습니다. 어느 새벽 뽀르는 냇가에 산책을 나갔는데 워싱톤이 강맞은편 숲속눈위에서 무릎꿇고 손으로 눈물 가리우고 하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독립군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뽀르는 독립군이 승리할 것을 믿었는데 과연 워싱톤의 군대는 영국군을 이기고 미국의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 * 제2차 세계대전시 영국의 국가적 기도일과 위기극복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정예부대 30만 명이 프랑스 해안 던커크에서 독일의 기계화 부대에 포위되어 유럽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에 국왕은 1940년 5월 26을 구국기도의 날로 정하고 전국민이 기도했습니다. 처칠수상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하루종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때에 갑자기 장마비가 시작되었습니다. 독일군대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비행기를 띄울 수가 없었고 모든 탱크는 진흙탕 속에 빠지고 독일이 자랑하는 유뽀트도 파도가 높아 기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9일 동안 짙은 안개가 끼어 영불연합군 30만 명은 한사람 남김없이 철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군함과 군대를 재편성하여 아프리카에 투입시킴으로 독일을 멸망시키는 주요인이 되게 했습니다. 1942년 9월 3일 국가기도일 직후에는 독일 롬멜장군의 대공격이 마침내 참패로 돌아가고 1943년 9월 3일 국가 기도일 저녁에는 이태리 정부가 항복문서에 서명했던 것입니다. * 세계 제 1차 대전 때 영국군의 기도와 예루살렘 무혈탈환 세계제1차대전 때의 일입니다. 1,000년동안 터키가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틴을 영국군이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공격태세를 다 갖춘 알렌버 대장이 영국국왕 죠지 5세에게 보고했더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므로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니 그저 기도하라는 왕의 지시였습니다. 온 미영국군이 공격을 이루고 기도를 하였는데 터키군은 공격해 올 줄 안 영국군이 공격을 안하고 조용하니 불길한 생각과 두려운 생각이 들어 다 도망을 쳤습니다. 알렌버 대장은 찬양대를 앞세우고 총들을 거꾸로 메게하고 자신도 말에서 내려 도보로 조용히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1917년 12월 9일의 일이였습니다. 알렌버 대장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신자요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런데 이번처럼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하여 강하게 인식한 때는 없었습니다. * 임지왜란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기도와 노량해전의 승리 임진왜란때에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때에 충무공 이순신장군은 순국하기 몇시간전에 동짓달 바람찬 갑판위에 올라가 손을 씻고 무릎을 꿇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빌면서 ”이 원쑤를 무찌른다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하고 하였습니다 충무공은 노량해선에서 맹열하게 싸우다가 적의 유탄에 가슴을 맞아 죽으면서도 전투가 끝나기 까지 자신의 죽음 을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날의 전투에서 일본군함들은 전멸하고 조명연합군은 최후의 대승을 거두고 임진외란은 끝났던 것입니다 * 6.25전쟁 때의 구국기도와 나라의 회복 6.25 전쟁때 북괴군은 남한 전역을 거의 점령하고 낙동강 전선 최후 방어선이 위기에 있을 때 고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목사님들을 부산 도지사관으로 불러 기도의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은 지금 풍전등화의 운명에 있습니다. 지금은 장마철로 비가 올 때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야 우리 비행기가 떠서 낙동강 유역의 적의 진지를 폭격할 수가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적군이 낙동강을 건너게 될 것입니다. 이 지경에서 우리가 의지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으니 목사님들은 하나님께 기도 드려 주십시요” 그때 모든 목사님들이 부산중앙교회에 모여 일주일 동안 금식철야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 결과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맑은 날씨가 20여일동안 계속되어 B29폭격기가 매일 낙동강가의 적의 진지들을 융단 폭격하였습니다. 적들은 풍지박산, 완전 무력하게 되고 유엔군은 반격을 감행하고 인천상률작전을 전개하여 적들을 다 몰아내고 우리 나라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 나라가 북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전쟁 없이 6.25후 근 50년 동안 발전 부흥하여 오늘 세계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게 되고 북한과는 비교조차 할 수없는 발전된 나라가 된 것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계속적인 구국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 까닭인 줄로 믿습니다. 북한은 지금 화해에 응하는 듯 하면서도 우리나라에 대한 위협을 계속하고 체면 불구하고 쌀.비료 전기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고 경제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1,300만 성도들이 계속적으로 구국기도를 드리면 마침내 북한은 해방되고 무너지고 통일의 날이 올 줄로 믿읍시다. ◎ IMF가 오기전 프랑스의 경제신문지 레제코는 한국은 일본과 유럽등 경쟁국들을 전율케 할 정도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레코지는 ”사슬 풀린 한국용”이라는 제목의 8페이지에 걸친 특집에서 한국의 경제 동향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면서 한국이 미친 듯이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산업생산 능력은 일본에서 유럽에 이르는 경쟁국들을 공포로 떨게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IMF의 위기를 겪어왔고 아직도 어려움이 있지만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으면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을 다시금 부흥케 하시고 통일시켜 주시고 세계 일등선진국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교의 나라와 민족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을 믿읍시다.
6.25동란의 기독교적 이해/ 렘1:13-16/ 2004-06-25
6.25동란의 기독교적 이해 렘1:13-16 6.25 동란을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새롭게 이해하면서 조국을 위한 바른 국가관과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적 각오를 다짐해보는 시간을 가 지겠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는 것을 목도한 선지자 중에(에스겔,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예언을 함)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가 멸망할 때에 슬픔으로 예언을 하였기 때문에 \\\'눈물의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성읍 아나돗 출신인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여호와의 명령에 의해 결혼하지 않고 독신 으로 살았습니다(16:1-2). 그가 두 가지의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는 살구나무 환상으로(11-12), 히 브리어로 살구나무는 \\\'사케드\\\'라고 하며, 지키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는, 북에서 기울어진 끓는 가마(13-16)로, 북방(바벨론)에서 재난이 임 할 것을 뜻합니다. 끓는 가마는 고통 받을 유다를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환상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미래를 놓고 우상을 멀리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서서 회개할 것을 촉구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의 북한 핵문제와 6.25를 상기하면서 조국이 처한 정황과 성도의 각 오를 새롭게 정립하고 다짐해봅니다. 1. 6.25동란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6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데 이어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일명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시키자 한국을 공산화하 기 위해 소련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유엔은 즉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공격을 \\\'평화를 파괴하 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이 불응하자 미·영·호주 등 21개국(의료 지원국 5개국 포함)이 UN군을 창립하여 한 국을 지원하였습니다. 전쟁초기 한국군보다 월등한 화력과 병력( 한국군 의 약 4배)을 보유한 북한군은 한달 여만에 한국의 4분의3을 점령하였으 나 9월15일 한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주를 거듭하여 압 록강까지 후퇴하였습니다. 그러나 10월16일 중국이 갑자기 10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북한군을 지원하자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38도선 상에서 대치상태를 보이다가 1953 7.27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정전되었던 것입니다.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무모한 남침전쟁 도발을 자행하여 660만여명의 사 상자(군인 230만,민간인 430만여명)를 발생시키고 공장(900여개)· 주택 (60만여동)· 산업시설과 전국토의 4분의 3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이 무서운 비극의 원인을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가장 큰 신앙 사상적 원인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제대로 찬미하지 않은 죄때문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불굴의 의지와 믿음의 순종으로 항거하며 싸웠던 소수의 신앙자를 보시고 해방을 주셨지만 이내 기독교 사상은 일제 때부터 변질 된 자유주의와 보수신앙 간에 갈등이 확산되면서 교회는 새로운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본군국주의자들의 압제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진리에 위반하지 않은 본의를 이 해하고 신사 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이어 신사 참배 를 하여 비상시국 하에 총후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기함. 우를 성명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러했습니다. 조선예수교 단체적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와 순교적 신앙인들의 충성을 보시고 1945.8.15에 민족적 출애굽의 영광스런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범죄를 회개치 않은 신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성도들은 제 2의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초에 한상동 목사님 은 \\\'대한교회에\\\'라는 제목으로 예언자적인 글을 파숫군지에 실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과일(過日, 지난 일)의 모든 죄를 솔직히 자복하 고 눈물을 흘려 통회하면 긍휼이 풍성하신 호와께서 용서하시려만은 해 방을 주시고 독립을 주신 오늘에도 회개는 고사하고 죄감이 전무하고 회 개를 거부하니 어찌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리요..여호와 반듯이 진노하시 리라\\\' 고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후대에 사람들은 민족상잔의 시기에 교회가 분열되고 특히 고신파의 분 열은 정당화 될 수 없다(이만열)는 식의 비판으로 진리보다 사회 속의 교회 일치를 앞세우는 사회주의 복음사상은 일제의 잔여 사상으로 그대 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은 남아 있습니다. 교 회의 본질적인 요소가 희석되면서 물질과 문화주의로 빠져버린 한국교회 는 속히 본래 기독교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시류에 따른 가치관에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럽교회의 몰락을 그대로 따르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6.25동란의 근거는 2. 유물론주의 공산사상의 결과입니다 유신론 사상과 무신론 사상의 전투였습니다. 북한은 소련군을 힘입고 남 침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엄청난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1945년 12 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영.중.소 4개국이 5년간 한국 신탁통치 안 을 결정하였으며 그것은 휴전선(1953.7.27)이 생길 조짐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 총선이 열리고 5월 30일 최초 국회가 열리 며, 7월 17일에는 헌법을 공포하여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박사가 민선으 로 당선되었습니다.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세계 선포되었습니 다. 이런 중에 공산주의 사상은 무섭게 민족 정신을 와해하고 혼란 중에 유신사상의 기독교가 특별히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겨레는 공산 사상이 오기 전에 이와 같은 민족상잔이 있을 리가 없 었는데, 무서운 유물론 사상 때문에 6.25는 어쩌면 외세의 사상적 영향 으로 찾아온 재앙이었습니다. 3. 진리 운동의 환난기 환난을 당하자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맥아더 장군을 통해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을 주셨습니다. 그 환난 시절에 피난지인 부산, 삼 일교회에서 초교파적으로 부흥회를 통하여 회개의 역사로 많은 신자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참 신앙의 회복운동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당한 영적 시험은 6 . 25 동란이 끝난 후 외국의 구호물자가 유 입되면서 교회는 내적 문제로 진통을 겪어야 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 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신앙생활이 목적이 아니라 구호물자를 얻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가난한 교인들이 많았고, 둘째, 구호물자의 불공평한 분배는 교회의 내분을 불러왔으며, 셋째, 구호물자가 중단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물질적 욕구 때문에 교회 에 출석하던 신자들은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감으로써 교회의 공동화 현 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의 성장을 \\\'밀가루 부흥\\\'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예루살렘 교회가 초창기에 경험하였습니다. (행 6:1-2). 진리 운동은 역시 물질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대교회의 상식은 그 날로 되돌아갑니다. 환경주의로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나 진작 사람의 마음을 잡기에는 결코 신령과 진리 아니고 는 불가능한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에서 끓는 가마처럼 오늘의 말세가 적그리스도의 영이 온 천하 에 뒤엎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으나 조국은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처한 조국을 위해 기도할 때 예레미야처럼 눈물로 조국을 위해, 진리를 사모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963년도 이스라엘의 6일 전쟁에서의 승리는 전쟁 물자도 그 어떤 힘도 아니고 오직 신앙과 조국을 위한 애정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온 지 120년째가 됩니다. 많은 학교와 병원을 지으며 세상 의 빛된 생활을 잘 해오다가 지금은 교회가 물량주의로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하는 조짐을 봅니다. 우리가 북방의 끓는 가마를 볼 수 있어야 하며 마귀의 사상과 환난을 대비하며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굳세게 지난 역사 를 모본으로 삼고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6.25의 전후의 역사는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으로 봅니다. 오늘도 하나님 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진리가 우리의 처세가 되어 평화로 승리하는 우리 국가요 교회가 되고 우리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25를 거울삼아 영적으로 재무장하자/ 벧전4:7
6.25를 거울삼아 영적으로 재무장하자 벧전4:7 오늘은 [6.25를 거울삼아 영적으로 재무장하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화해무드와 평화선언이 있는 요즈음 왜 6.25에 관하여 말하냐고 묻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6.25를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는 안되기에 오늘 말씀으로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외국기자가 36세 때 한국에 왔다가 6.25가 발발하자 백두산까지 취재하고 중공군이 밀고 내려오자 끊어진 대동강 다리를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분이 50주년이 된 지금 한국에 와서 한 말은 \\\"6.25를 잊어서는 안된다. 만약 잊으면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서 14시간 동안 이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한국서 발행되는 신문과 잡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 내용에서는 \\\'이북을 알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북의 깊은 속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북은 \\\'감추어져 있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一. 6.25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다. 6.25사변은 인민군 제2군단이 개성에서 포문을 열고 소련제 탱크를 타고 밀어닥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루만에 의정부를 탈환하였는데 결국 3일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끊어진 한강다리를 넘어서 대전과 대구로 임시정부를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1914-18년까지 4년간 있었던 1차세계대전, 1939-45년까지 6년동안 있었던 2차세계대전과 비교해 볼 때 6.25사변은 1950년부터 3년밖에 지속되지 않았음에도 여타 전쟁에 비교해보아 가장 많은 520여만에 가까운 사상자를 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6.25를 통해 남한은 43%의 산업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괌 KAL기 사건, 와우 아파트는 잊어버려도 6.25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원호병원에 50여년 동안 병원에서 지내는 전쟁부상자들은 어떻겠습니까?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二. 6.25의 산증인이 여기에 있다. 저 또한 6.25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인민군으로, 의용군으로 차출될 뻔했고 결국은 3사단에서 대한민국 군인으로 출정하였다가 야포탄을 맞고 긴급하게 야전병원에서 응급수혈을 하고 헬기에 저를 수송하게 결국은 병원으로 실려와서 1년반 후에 명예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6.25의 산증인입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三. 6.25는 준비없이 있다가 비극을 당했다. (이사야 32:9-10절) 6.25당시의 대한민국의 군 장성들은 댄스파티에 갔으며, 사병들은 휴가 나오고 평화로울 때, 이북은 전쟁준비를 하여 전진했으나 우리는 야포 몇 개로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사야서 32장 9-10절에서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이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기한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열 처녀 비유를 보십시요. 기름준비를 하지 못하여 예수님이 오시니까 당황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 번쩍 차리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국 상원국회의장이 미군철수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만약 미군이 철수한다면 정말 큰 문제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지금은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금방 평양에 교회가 설 것처럼 생각합니다만, 정말 그렇게 되겠습니까? 신앙이 있는 사람들이 발각되면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가게 되는 이북의 현실을 생각해보십시오. 四. 온 국민은 정신무장을 하자. (베드로전서 4:7절) 온 국민은 정신무장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7절에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고 계십니다.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십시오. 의약분업을 하자는 의견으로 인해 서로의 이해관계가 엉키게 되어서 결국은 의료대란에 진료거부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의학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살리는 것 아닙니까? 외국은 의약분업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야 절약도 되고 의약남용이 현저히 줄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이익에 연루되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오히려 조장하는 결과로 발전될 위험이 있습니다. 벌써 개인적인 이익을 따지지 국가와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런 정신상태를 갖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북은 지금 먹을 것이 없고 힘들다고 하지만 정신상태는 무섭게 무장되어 있습니다. 북에서 탈출하여 우리 교회 청년선교회 회원이 된 방영철 형제가 쓴 [이제 벤처는 평양이다]라는 책을 살펴보면, 이북의 사람들의 무서운 정신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지하고 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상태를 갖고 이북과 통일된다면 이북에게 먹히게 될 것입니다. 정신 무장해야 합니다. 五. 온 성도는 영적 재무장을 하자. 공산당은 마귀의 역사가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데, 우리는 영력을 얻어야 합니다. 갈멜산의 역사가 있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응답하심을 사건을 기억하십시오. 엘리야와 같은 영력을 얻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 군병되어서 예수를 쫓을 때, 무서워하는 맘으로 주 모른 채 할까 나의 주 그리스도 나를 속량했으니 나 십자가를 벗은 후 저 면류관 쓰리\\\' 할렐루야! 주여! 우리가 엘리야의 하나님께 부르짖는 갈멜산의 역사가 이 민족에게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이 민족되게 하시옵소서. 크신 능력을 부어주시옵소서. 자비하신 아버지, 우리 성도들을 영적으로 무장하게 하시고 마귀와 싸워 이기게 하시고 죄와 싸워 이기게 하옵소서.
6.25를 기억하고 전쟁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왕하19:14-19/ 강영래 목사/ 6.25설교/ 2012-06-24
6.25를 기억하고 전쟁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왕하19:14-19 I. 서론 유다왕 중 히스기야라는 임금이 통치하던 시대에 북쪽의 강대국으로 알려진 앗수르의 군대가 남침을 강행하여 쳐들어 왔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초강대국으로써 주변 국가들과 유럽까지 그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과거 일본이 한국을 위시하여 동남아 일대를 자기 손아귀에 넣으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당시에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이들의 남침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그에 따라 온나라는 전시 태세에 들어가 전쟁을 막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군대와 앗수르 군대와 접전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험에 처한 순간입니다. 우리는 내일 62주년 6월 25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날은 62년 전 이 땅이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공으로 하루 아침에 전쟁에 빠진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쪽의 인민군들의 남침으로 당시에 38도선의 방어선이 맥없이 무너지고, 그후 3일만에 수도 서울이 인민군들에게 함락되었습니다. 계속되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3개월만에 부산지역과 제주도를 제외한 이 땅이 완전히 김일성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다시 이 나라를 찾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엄청난 6.25 전쟁을 통한 하나님의 교훈이 반드시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6.25를 경험한 세대는 자꾸 사라지고, 6.25전쟁을 전혀 모르는 세대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한 의미와 하나님의 교훈만은 다시 기억하며 그 뜻을 깨닫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가 주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어찌해서 히스기야왕 때 앗수르의 침공 속에 유다 민족이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지냈던 사건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전쟁사건을 남기기 위해서 쓰여진 말씀입니까? 단순히 전쟁사건을 남기기 위해서 쓰여진 말씀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뜻과 교훈이 있기에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6.25를 상기하며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인 6.25의 의미와 교훈을 생각하며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본론 1. 첫번째로, 히스기야 왕은 갑자기 침공해 오는 앗수르의 남침 소식을 듣자 본문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 놓고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쟁소식이 들리자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세상의 방법을 먼저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분! 62년 전, 6.25전쟁이 생긴 후에 그때까지 잠자고 있던 한국교회를 기도하는 한국교회로 깨워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던 남한은 공산주의 인민군들이 쳐들어오자 여지없이 38도선이 무너지고, 서울과 대전과 대구, 광주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며칠만 더 지나면 남한은 완전히 공산주의 나라로 바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정부도, 군인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쫓기고 쫓기면서 부산으로 피난 온 목사님들과 성도들은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울부짖으며 기도하였습니다. “환난 날에 내게 부르짖으라”는 말씀이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그 때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얼마나 절박한 기도를 했겠습니까? 한번 상상해 보세요. 1.4후퇴 때는 북한에 있던 500만명의 성도들이 남한으로 이동하면서 남한 땅의 이곳저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때 이북 성도들이 세운 교회 중에 장로교로는 한경직 목사님의 영락교회와 김창인 목사님의 충현교회가 세워졌고, 감리교로는 시온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때부터 한국교회에 새벽기도가 시작되었고 기도가 시작된 후, 한국교회는 기도의 불이 붙어 50년대, 60년대에 부흥의 역사로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풀러신학교의 세계적인 교회성장학 교수인 와그너 박사는 한국교회가 세계 선교 역사상 급성장하고 부흥된 요인은 새벽기도와 철야기도에 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신앙생활하고 있는 성도 여러분도 어느 때 더 열심히 기도하게 됩니까? 내게 환난이 오고, 가정에 풍파가 있고, 시대가 어려울 때 더욱 기도하게 되지 않습니까? 건강할 때보다 내가 병들었을 때 더 기도하게 됩니다.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더 기도하게 됩니다. 평안할 때보다 환난과 시험 당할 때 더 기도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보다 속썩이고 비뚤어졌을 때 더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어려울 때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이 땅에 6.25사변 때문에 한국교회는 영적 잠에서 깨어나 기도하게 되고 기도함으로 한국교회는 부흥하고 성장하였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믿음 좋은 히스기야 임금도 앗수르의 남침 소식이 들리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임금 자신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개인과 가정과 나라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하는 어머니 밑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옵니다. 미국의 직전 대통령이었던 부시 대통령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습니다. 그래도 미국이니까 고어 경쟁자가 깨끗이 승복하였지 우리나라 같으면 지금까지 법정 싸움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렵게 대통령이 된 부시에게 기자가 찾아가 대담을 할 때,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오늘 이런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세 사람의 은혜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가 어머니 바바라 여사인데, 망나니 같은 자기를 바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의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젊어서 타락했을 때 자기를 위대한 설교로 감동을 준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고, 세 번째가 자신이 결혼해서 마약중독이 되었을 때도 인내와 눈물의 기도를 한 교사출신인 아내 로라라고 기자에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부시를 미국의 대통령까지 만든 힘도 그의 어머니와 그의 아내의 기도의 힘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지금 기도의 열정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기도가 약해져서 한국교회가 정체기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 기도하는 한국교회를 이룩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기도가 뜨거운 교회가 되도록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히스기야는 위기 속에서 기도하면서 모든 나라의 운명과 역사를 지배하시는 분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만군의 하나님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라가 위기에 처해서 백성들 중에는 다른 신을 섬기려고 했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18절에서는 인간이 만든 우상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 개개인의 생사화복도 주관하시는 분일뿐만 아니라 그 사회 그 나라의 역사도 주관하셔서 망하게도 하시고 흥하게 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도 말씀했지만 62년 전 6.25전쟁 당시 일주일만 전쟁이 계속되었어도 인민군들이 남한을 완전히 적화통일 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 군인들은 비행기도, 탱크도, 대포 하나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상황으로는 다 진 전쟁이요, 망하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극동 사령부에 맥아더 장군을 움직이셔서 그해 9월 28일에 인천으로 상륙작전에 성공함으로 이 땅은 구사일생으로 6.25가 일어난 지 3개월 만에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를 다시 꽂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하나님이 손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시편 37:24절에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인간들의 생각으로는 나라가 인간들의 권력의 힘으로 좌우된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겉으론 인간들이 주장하는 것 같아도 뒤에서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6.25 이후 이 땅에 수많은 권력자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군사 혁명으로 권력을 잡고 이 땅을 경제 발전케 했습니다. 그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히 이 나라를 자기 권력으로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어찌 되었습니까? 그도 중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수많은 권력자들이 지나가면서 역사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권력은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 이 정부가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곧 망할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을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당시 강대국인 앗수르가 유대 나라에 남침함으로 나라가 곧 망하게 되었을 때 히스기야가 얼마나 기도했으며 방백들과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매달렸겠습니까? 결국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히스기야와 유다는 위기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나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6.25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공산주의의 침공에서 건짐을 받고 구원받아 이 땅에 이 나마의 자유가 있게 되어 대한민국이 존재함으로 못살던 가난뱅이 나라가 선진국을 바라보는 단계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인데도 아직도 이 땅엔 우상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최첨단 기술을 총동원하여 세계적인 국제공항으로 만들어 놓은 인천 공항이 개항되던 날에 TV뉴스에는 돼지 대가리를 올려놓고 복을 비는 고사를 지내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비치고 있습니다. 장동건이나 유명한 탈렌트들이 드라마를 시작하기 전에 돼지 머리에 절하고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이 백성이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 한 적이 있습니다. QTV에서는 원빈을 빈느님(원빈 하느님)이라고 신으로 모시고 있고, 어린 소녀가 원빈 하느님을 향해 3보1배를 하고, 언빈의 소속사 사무실을 빈 하느님이 사는 거룩한 성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재석은 유느님이고 좀 유명한 사람들을 사신우상과 같은 신으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순진한 어린 아이들을 우상숭배로 이끌어 가겠다는 사악한 마귀의 수작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구약 성경의 십계명의 제1계명에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만들어 놓고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이 만큼 살아가고 축복받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금까지 받은 복을 감사하면서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말고 6.25 때를 생각하면서 더욱 진실하고 더욱 검소하게 살아가며 어려운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선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방종하고 향락하고 음란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다시 올 수도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우리가 6.25 전쟁을 통해 크게 깨달을 일은 결코 전쟁을 통해서는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북한에 죽은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나 지금의 김정은도 이 땅을 전쟁을 통해 이 나라를 통일시키려고 하다가 지금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6.25를 통해 깨닫고 전쟁을 포기했어야 하는데 6.25이후에도 계속 군인을 증가시키고 무기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다가 나라경제가 파탄되어 백성들을 굶어 죽게 하고 어린 아이들이 못 먹어서 발육 부진율이 60%가 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칼을 쓰는 자는 그 칼로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얼음을 얼음으로 녹일 수 없습니다. 어둠을 어둠으로 몰아낼 수 없습니다. 미움을 보복이나 복수로 평화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보세요! 현재까지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될 뿐 그 땅에 평화가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평화를 보복이나 칼로 이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미움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용서로만 복수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해로만 오해를 풀 수가 있습니다. 평화로만 전쟁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나선 안 됩니다. 전쟁으로는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지나간 20세기 말에는 온 세계가 독일의 평화통일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이제 21세에는 한국의 평화 통일을 보고 세계 인류가 기뻐할 수 있기 위해 우리의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는 계속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III. 결론 오늘 6.25전쟁을 상기하면서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과 교훈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국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새로운 기도 운동을 시작하십시다. 그리고 개인과 나라의 운명이 세상권력이나 다른 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살아계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더욱더 신앙으로 무장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결코 전쟁으로 평화나 통일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사랑운동, 용서운동, 나눔의 운동을 다시 일으켜 성숙한 한국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
6.25를 기억하라/ 신32:7/ 2014-06-25
6.25를 기억하라 신32:7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가리발디는 19세기 이탈리아의 개혁과 통일운동에 공헌한 국민적 영웅이라 합니다. 어느 날 가리발디가 청년들을 모아놓고 조국을 위해 싸우자고 역설하자 한 청년이 나와 [ 만일 내가 조국을 위해 싸운다면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가리발디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 칼에 베인 상처, 심한 부상, 끝내 죽음이 대가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대들의 상처와 죽음으로 이탈리아는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요, 우리의 후손은 평화롭게 살 것입니다] 가수 싸이의 병역특례 비리가 여론에 보도였습니다.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가 산업기능요원 복무 기간 제대로 근무하지 않은 정황을 포착,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라는 것입니다. 검찰은 최근 싸이가 2003년 1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근무한 교육용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F사 대표와 매니저 등 관계자들을 소환해 특례자로 채용된 경위와 근무실태를 조사한 데 이어 이날 F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F사가 제출한 출퇴근 대장 등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실 근무한 흔적이 있어 좀 더 자세한 증거를 수집하고자 압수수색하게 됐다”면서 “통신사실 조회, 계좌 추적 등도 병행하고 있는데, 이번 주 내로 (싸이를) 소환할 예정”이라고 하며 1999년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싸이는 복무 기간 대전, 대구 등 지방과 평일에도 이뤄진 대학축제 공연과 콘서트를 100차례 이상 해왔고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하는 등 영리활동을 해 부실 근무 의혹 등이 제기돼 앞으로 싸이는 병역법상 복무가 취소되고 현역병으로 입대하게 된다는 사연입니다. 1958년 ‘왕’은 ‘일등병’이 됐다는 미국과는 대조적입니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미 육군에 입대했던 것입니다. 스타덤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의 군 입대는 자칫하면 아직 확고하지 못했던 그의 인기를 물거품처럼 만들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들였습니다. 육ㆍ해ㆍ공군이 저마다 엘비스를 차지하려고 경쟁했습니다. 해군은 엘비스가 살았던 멤피스 출신 사병들을 모아 ‘엘비스 프레슬리 중대’를 만들어 주겠다는 등 여러 곳에서 ‘엘비스 모셔가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엘비스는 모든 제의를 뿌리쳤습니다. 그리고 ‘특별서비스부대’ 배속도 거절했습니다. 이 홍보부대에서는 노래도 부르고 신문, 방송에도 나갈 수 있었지만 그는 ‘특별대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느 사병과 똑같이 훈련받으며 서독 미군기지에서 복무했습니다. 군 복무 중에는 한 차례의 레코드 취입 외에는 일절 활동을 중지했습니다. 그럼에도 엘비스의 인기는 시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한 몸놀림과 소란스런 음악으로 인해 그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던 보수층에 자신을 새롭게 각인시켰습니다. 엘비스는 ‘애국심이 강하고 건전한 미국 청년’으로 모든 연령층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서독 주둔 제32전차대대에서 엘비스와 같이 근무했던 윌리엄 테일러는 엘비스를 “병사로서, 미국 시민으로서 훌륭한 남자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의 군복무를 놓고 한 여성 팬은 대통령 부인에게까지 편지를 보내 “제발 남편에게 엘비스를 돌려주라고 말해 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군은 엘비스를 다른 사병들과 똑같이 대우했고 엘비스 역시 특별함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엘비스를 우러르는 많은 청소년들이 훗날 군 생활에서도 그의 본을 따를 것”이라는 당시 육군 문서의 기록처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합니다.(21세기예화- 애국청년 엘비스) 미국민의 애국심을 부추기는 말 들은 끊임없이 생산되었고, 알라모 요새의 죽음은 “알라모를 잊지 말라(Remenber the Alamo)”는 텍사스 민병대의 표어로 이어졌다합니다. 나중에 이 표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진주만을 기억하라(Remenber the Pearl Harbour)”로 다시 재생산되었고, 이런 미국식 정의와 애국심은 다민족국가의 민족주의로 그 생명을 지속하고 있다합니다. 19세기 초엽까지, 광활한 오늘의 텍사스 땅은 멕시코의 영토였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이주해 온 미국의 개척민들은 어느 누구의 속박도 받지 않고 자기네 방식대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멕시코 정부로서는 심히 껄끄러운 일이 어서 미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국내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빠지자 미국계 주민들은 자기들 또한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하겠다고 나섰고, 1835년에는 샘 휴스턴(Sam Houston, 1793-1863) 장군을 텍사스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세우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멕시코 정부는 산타 아나(Santa Anna)장군에게 이 사태를 진압하도록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이때 산 안토니오(San Antonio) 지방에 있는 알라모(Alamo) 성당 안에는 미처 200명도 못 되는 독립 의용군들이 모여 있었는데, 산타 아나 장군은 우선 이들부터 괴멸시키겠다는 결심으로 진격해 왔습니다. 병법에는 중과부적이라고 200대 4.000의 싸움은 처음부터 상대가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알라모의 용사들은 20배가 넘는 적을 맞아, 무려 12일 동안이나 버티다가 한 사람 예외 없이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장렬한 전투소식을 들은 휴스턴 장군은 부하장병들을 향하여 “알라모를 기억하라”(Remember the Alamo)는 피맺힌 절규를 발했고, 지면 알라모 전사들같이 전멸한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정신무장을 갖춘, 텍사스 독립군은 마침내 산 저신토(San Jacinto) 전투에서 깨끗이 승리함으로써, 대망의 텍사스 독립을 성취했다합니다. 종종 미국의 거리에선 자동차 뒤 범퍼에, “알라모를 기억하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자동차를 발견할 수 있다합니다. 1945년 12월 7일 일본군의 비행기가 진주만을 기습하여 미국이 패잔한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본군의 기습을 미국은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그리 쉽게 기습 할 줄은 모르고 주말이 되면 모두 술을 마시고 댄스파티를 밤늦게까지 즐기다가 아침잠에 취하여 떨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일본 항공모함으로부터 수많은 비행기가 진주만을 향해서 공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 마침 레이더 조종을 연습하던 어떤 견습병이 레이더를 보니까 태평양쪽에서 많은 비행기가 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상부연락을 취하였지만 응답이 오기를 ‘그것은 아마 아군의 연습기일는지 모르니 관계없다’ 고 묵살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일본군 비행기는 기습하여 진주만을 일시에 폭격을 가하여 미국 군인들은 눈뜰 사이도 없이 가만히 기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정박 중이던 기함 애리조나 호는 십분 만에 침몰되어 타고, 거기에 있던 병사 천 이삼백이 그대로 죽고 그 외 많은 병사들은 불구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6.25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엄청난 피해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1950년 6월25일, 만물이 평화롭게 잠든 주일 새벽에 소련제탱크 500대를 앞세운 인민군은 남한을 향하여 불의의 총 공격을 개시하여 이 강토를 동족상잔의 처참한 싸움터로 몰아넣었습니다. 공보부 발표의 피해상황은 남한에서 96만 명이 사망했고 가옥이 51만 동 파괴되었으며 886억 원의 피해를 내었고 전쟁으로 생겨난 구제 대상자가 392만 명, 고아가 5만 명, 과부가 30만 명, 국군 전사자는 15만 명, 유엔군이 48,201명, 민간인이 37만 명, 전쟁 때 학살당한 사람이 12,000명, 납치된 사람이 15만 명, 행방불명이 30만 명이라 합니다. 북한의 경우 사살이 50만여 명, 귀순 4,700여명, 교회는 360여 곳이 피해를 입었으며, 교역자 60명이 총살되었고 옥중 희생자가 40여 명이나 되었다합니다. 6.25 때 영천 고개를 넘어 이북으로 끌려가던 애국자들의 납북 행렬은 흰옷 입은 민간인들이 4열종대로 쇠사슬에 묶여4,500미터나 되는 긴 행렬이었다고 합니다. 입은 죄수복에서 퀴퀴한 냄새, 걸을 때 마다 쇠사슬 소리는 차락차락 요란스럽고, 모두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걷고, 여자들은 모두 울고, 피와 눈물의 죽음의 행렬이었고 한 구덩이 속에 할머니 어린이까지 100명씩 생매장하던 생지옥이었다고 합니다. 아사자와 병사자 그리고 폭격으로 말미암아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려졌으니 기나긴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하더라도 이같이 처절한 사연은 다시없었던 것입니다. 실로 피와 죽음으로 점철된 6.25동란이야말로 우리 한국 민족 사상 최악의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경제 문화가 발전하고 아무리 번영한대도 그 처참하던 납북 애국자들, 순교자들의 모습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눈물, 그 피, 그 쇠사슬, 그 죽음의 소리는 영원히 우리 민족에게 사라지지 않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라 1950년 6월 25일은 한민족에게 비극의 날이었습니다. 꿈에도 잊지 못할 6.25 민족상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남한의 군인들은 휴일을 맞아 영 밖으로 외출을 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잘 훈련받은 인민군이 하늘에는 비행기, 땅에는 탱크를 앞세우고 순식간에 남한으로 쳐내려왔다. 문자 그대로 물밀듯 쳐내려왔습니다. 남한의 정부와 국민은 졸지에 당한 변고라 속수무책이었고 정부는 수원으로, 수원에서 또 대전으로, 대전에서 대구로, 급기야는 부산으로 국민들을 피난시켜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남한이 공산당의 천하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한국으로부터 구원병을 요청하는 전문이 미국의 투르먼 대통령에게 당도했습니다. 투르먼 대통령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침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어떻게 처리를 해야 되는지 고심을 했다합니다. 그는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합니다.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결정 하나에 따라서 미국의 청년들이 수없이 피를 흘려야 할 것이요, 그에 따라 한반도의 정세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결정을 내렸다합니다. “남한이 공산치하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없다. 한국동란에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다.” 6.25동란 때 미국군대가 손쉽게 참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정치가가 밤새껏 기도하는 가운데 내려진 결정에 따라 참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그 덕을 입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UN군이 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합니다. 6월26일 날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소집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UN군의 한국참전 여부를 결정할 때,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UN이 한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아침 소련대표 아담 마리크는 안전보장이사회에 참석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캐딜락을 타고 뉴욕거리를 오는 데 이상하게도 엔진이 꺼져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만져도 안 되고 결국 고쳐가지고야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안전보장 이사회에서는 한국참전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뒤였다합니다. 용서하되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미쯔오 후찌다 씨는 1941년 12월, 진주만에 공습을 감행했던 공군 비행대의 총 사령관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평상시 잘 알던 한 대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미군 병영에서 전쟁 포로로 지내던 시절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의 친구는 그에게 뜻밖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얘기에 의하면 한 미국 여인이 규칙적으로 그 막사에 찾아와 죄수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해 주고 가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수들 중의 하나가 그녀에게 왜 그리 친절하게 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대답하기를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도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하셨거든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죄수들은 이해할 수 없어 어쩔 줄 모르며 당황하고 있을 때, 대략 20세가량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젊은 아가씨가 다시 설명을 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전쟁이 발발한 무렵, 필리핀에서 선교사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그들은 체포되어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총살당했답니다. 저희 부모님은 당신들의 마지막 30분이라는 시간을 적들을 위해 기도하며 보내셨습니다. 처음에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저도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제 마음속엔 분노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을 심지어는 적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아름다운 얘기였지만 미쯔오는 그러한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지 오래지 않아, 토오쿄오에서 기차역을 떠나려고 할 때에 그는 한 미국인으로부터 소책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책자에는 야곱 디샬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었는데, 그 사람은 1942년 4월 18일에 토오쿄오에다 폭탄을 투하했던 두리틀 비행대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또한 그 소책자 안에는 디샬이 40개월 정도 일본군의 포로로 있으면서 성경을 얻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그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입니다. 소책자를 받고 난지 얼마 안 되어 미쯔오는 도오쿄오 신문에서 성경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로 성경복사본을 사서 그것을 읽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다음의 내용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저들이하는 일을 알지 못하니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그는 미국 여인의 깊은 사랑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날 미쯔오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펜실바니아 주 월킨스버그의 주미들은 1962년에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했습니다. 후세사람들을 위하여 그 마을의 역사를 보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수집해서 철제 용기에 넣은 뒤땅에 파묻었습니다. 1987년에 마을 축제 때에 이것을 파내려고 했지만 아무도 묻은 장소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 78:9)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시 78:10)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시 78:11)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도 역시 기억 상실로 인하여 후세에 나쁜 영향을 미친 분명한 예입니다. 에부라임의 자손들은 기억할 만한 사건들로 가득 찬 철제 용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선을 일들을 잊었습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에서 아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선조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할 뿐 아니라 후세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시고 신실하심을 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후세들에게 그의 진실하심을 계획해서 생명력 있게 나타내시게 합니다. 유명한 유태인의 명언 중에,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2차 대전 당시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만의 유태인이 가스 살해를 당하고 전쟁이 끝난 후 유태인의 랍비가 수용소입구 벽에다 써놓은 말이라 합니다. 강성찬 목사
6.25를 되돌아보며/ 마5:38-48
6.25를 되돌아보며 마5:38-42 51년전 1950년 6월 25일은 우리 민족사에 비극적인 참혹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미명에 소련 공산당의 후원으로 중무장한 북한 김일성이 대군을 앞세워 남침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간 한반도는 밀고 밀리는 접전 속에서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격전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와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가 냉전의 흐름을 깨뜨리고 한반도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한국 전쟁에 참가했고 북한을 통해 중국과 소련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참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의 참화는 도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고 그 전쟁의 상처는 오늘도 이산가족이라는 슬픈 현실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6·25 전쟁의 피해상황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면 인적 피해는 한국군과 유엔군 피해가 합해서 77만6천3백60명이었습니다. 그 많은 인명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중공군과 북한의 피해는 약 2백만이었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남북한 합해서 2백50여 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난민이 320만명, 전쟁 미망인이 30여 만명, 전쟁 고아가 10여 만명, 이산가족이 1천여 만명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 중 주요장비 손실도 막대합니다. 비행기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합쳐서 약 2천대가 파괴되고 북한군은 2천 2백대가 파괴되었으며 전차도 한국군과 유엔군 약 8백대가 파괴되고 북한군은 1천 2백대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통한 재산 및 산업 공공시설 피해가 있습니다. 개인 가옥 60만채가 파괴되고 산업 시설의 80%가 대파되었습니다. 국민 생활의 터전이 완전히 상실되고 사회경제체제가 황폐되고 붕괴된 것입니다. 재산 총 피해는 총 2백30억불에 달했습니다. 우리는 51년전 6·25 전쟁을 생각해 보고 다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민족 자멸적인 동족 상잔의 전쟁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무서운 역사적 참화를 통해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에게 미래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두고 남북한이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 것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1. 분단된 조국의 실상 우리들은 분단된 한반도의 실상을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북한의 실상에 관하여 허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북한은 주체 사상에 입각한 스탈린식 독재 공산주의 국가입니다. 그들은 주체사상을 믿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이란 철저한 인본주의로써 우주 만물의 중심은 인간이고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며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정치적인 체제입니다. 인민의 주체는 당과 국가이고 당과 국가의 주체는 김일성이며 김일성만이 인민에게 빛과 생명을 준다고 말합니다. 김일성은 마치 사람 머리의 뇌와 같고 당은 신경조직과 같아서 김일성 없이는 당도 그리고 손발인 국민들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죽었으나 영원히 인민의 주체로 살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모든 생산 수단을 국가가 소유하며 개인 소유는 허락하지 않는 집단주의 전체주의 국가인 것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시장 경제체제입니다. 이처럼 단순히 체제와 사상을 비교해 볼 때 도저히 동질성이라고는 발견할 수 없는 두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두 체제가 쉽게 화합이나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는 허상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김정일의 적화 통일 전략은 변하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 한국을 기만하기 위한 전술은 변할지라도 적화 통일을 위한 전략은 변하지 않습니다. 같은 민족의 뿌리를 갖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나 실질적으로 사상적 내용과 국가 사회적 체제가 전혀 다른 이질적 문화 속에 사는 두 국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이 아닌 이상 통일은 먼 나라의 꿈이요 우리 세대에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21장 31절에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에스겔 37장 19절에 “너는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도 하나님의 때가 와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는 것이지 우리가 오늘날 통일이 쉽게 될 것이라고 허상을 가지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2.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들은 공멸하는 전쟁만은 피해야 합니다. 1백50마일 휴전선을 경계로 1백만 대군이 대치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화약고, 이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만일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이젠 피난처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다 살상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찌하든지 전쟁만은 피해야 되겠습니다. 상호 교통과 대화와 화해와 협동으로 우발적인 전쟁을 피해야 됩니다. 인류 파멸을 초래하는 3대 재앙이 곧 전쟁과 공해와 마약인데 우리 나라는 지구촌 유일한 동일 민족 분단국가로서 전쟁이 났다하면 초토화되고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햇볕정책과 6·15 공동 선언으로 화해와 협동의 기회를 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햇볕이라고 하는 것은 이솝이야기의 외투 벗기기 이야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루는 해와 바람이 ‘누가 더 강한가’를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외투를 입고 걸어가는데 바람이 말하기를 ‘누가 저 외투를 먼저 벗기는가 시합하자. 먼저 벗기는 자가 이기는 자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자 해가 동의를 했습니다. 먼저 바람이 사람의 외투를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세고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외투를 벗기는커녕 점점 움켜 잡았습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그 사람의 외투는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포기하자 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해가 구름 사이로 따뜻한 햇볕을 비추자 날씨가 따뜻해 졌습니다. 외투 입은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외투를 벗었습니다. 결국 사람의 외투를 벗긴 것은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햇볕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의 얼음장같은 체제에 사랑의 태양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아무리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어도 사랑의 햇볕을 비추면 언젠가는 외투를 벗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햇볕정책의 특징은 분단 상태의 안전적 관리를 급선무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단상태가 되었어도 서로 싸우지 말고 안정적으로 있어서 한국이 점점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되고 대북 3대 원칙을 기초로 제일 먼저 안보를 그리고 화해와 협력을 동시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무력도발은 절대로 허락하지 말고 흡수 통일을 하겠다는 생각에 앞서 화해와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서 결국에는 공존 공영하자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방북과 6·15 공동 선언은 서로 자주적으로 통일하지 외세를 끌어들이지 말고 연방제로 통일을 추구해 나가고, 다음에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사회문화 협력을 활성화하고 당국간 대화를 정례화해서 전쟁만은 피하고 먼 장래의 통일을 꿈꾸자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화해와 협력의 불씨가 마련되어서 우리도 북한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어지고 북한에 대한 나쁜 감정이 사라지고, 북한도 우리와 빈번한 교제를 통해서 한국이 자유로운 나라이며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이 국민들에게 인식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이 서해 북방 한계선에 비무장 상선들을 통과시켜서 우리 국민에게 긴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론을 분열시키고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해 보고 또 북방 한계선을 무의미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방 한계선 없이 가까운 해안을 통과함으로 막대한 기름을 절약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보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북한 비무장 상선이 북방 한계선을 침범해서 우리 해변 가까이 지나갔는데 우리가 군사력과 힘으로 대적했다면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빌미로 햇볕 정책을 무효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억지 주장을 하며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이와같은 북한의 책략에 말려 들어가면 절대로 안됩니다.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시비를 걸어 몰아칠 것입니다. 시비에 걸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미국 교도소 수감자 16만명 중에 92%가 자제력이 부족하여 범죄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조금만 자제했으면 범죄하지 않았을텐데 자제력이 부족해서 교도소에 들어 왔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자제력을 통하여 햇볕정책의 진실성을 잘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북방 한계선을 통해서 우리 연안을 통과해 갔지만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측은 최대한 발포를 자제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잘한 것이며 우리가 진실로 햇볕정책을 추구하겠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준 것입니다. 소인배처럼 흥분하지 않고 대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가 슬기롭게 이런 상황을 다스리는 자신있는 나라라는 것을 북한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로 42절에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와 대결하면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중대한 일이 아닌 이상 오른 뺨 한 대 맞으면 왼 뺨도 돌리십시오. 그리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입은 겉옷하나 벗어 줘도 별 손해가 없는 것입니다. 5리를 가달라고 하는데 한 10리 가주고 화평하는 것이 좋습니다. 북한은 계획적으로 우리를 시비에 끌어들이기 위해 비무장 상선을 내려보낸 것입니다. 이런 시비에 걸려서 분열되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 위기가 다가오고 북한의 햇볕정책 다 짓밟아 버리고 온 세계에서 나팔불고 온갖 억지 다 부리고 하는 깡패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 깡패 작전에 말려 들어가면 안됩니다. 만일 북한의 해군이 쳐들어 왔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군사력으로 대적해서 침몰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비무장 상선을 가지고 우리를 시비 속으로 끌어 들려고 하는 그 작전에 말려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군과 정부가 대항하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대인다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며 우리의 자신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른 뺨 맞더라고 왼 뺨도 돌리며 시비에 안 걸리는 것이 좋습니다.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을 주며,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가더라고 싸우지 않고 평안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섭리요, 오늘 우리 한국이 북한의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않는 정부의 태도나 우리 군의 태도는 적절하고도 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은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초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따라 행하면 시험에 들지 않고 벼랑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3. 함께 잘 살아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북한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상호간 신뢰가 쌓이면 긴장을 풀고 경제 교류와 문화 교류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은 ‘함께 망할 것이냐? 함께 살 것이냐’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싸우면 함께 망하고, 안 싸우고 상부상조하면 잘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대는 6·25 전쟁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하다는 것을 압니다. 힘이 약하면 잡아먹힙니다. 6·25 전쟁 당시 전력을 보면 북한군은 20만명이었는데 국군은 10만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전차 2백42대인데 우리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장갑차나 비행기는 북한의 1/10 정도로 약했습니다. 때문에 우리를 얕보고 북한이 침략을 한 것입니다. 평화 공존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울타리를 잘해 놓고 난 다음 도둑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힘을 합쳐서 북한이 감히 우리를 넘어 볼 수 없을 만큼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 주민에 대해서 무조건 도와야 합니다. 북한의 주민들과 어린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모른다고 하면 서로 화해와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도와야 합니다. 군사력을 강화하게 될 현금은 도와주지 않을 지라도 옷이나 약품이나 쌀로 도와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7절로 21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우리들은 원수라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고 입히고 돌봐야 합니다. 북한은 비록 우리들의 원수라도 우리와 동일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무조건 도와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꾸준히 북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 내에 NGO를 통해서 총 30억원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앞으로도 있는 힘을 다하여 북한을 도울 것입니다. 북한과 경제적인 협동을 강화하여 개방세계로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중소 기업을 옮겨가고 그래서 북한 사람들에게 공동 고용을 창출 시켜서 그들이 돈을 벌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사람들이 배가 부르고 잘 먹게 되면 인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는 인권도 민주주의도 없습니다. 밥만 주면 종살이까지도 합니다. 그런데 돈을 벌 수 있고 밥만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면 그 다음에는 자유와 해방을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북한의 인권을 주장해도 배고픈 사람에게 인권 주장은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배가 불러야 됩니다. 북한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산업 공단을 만들어주고 중소 기업을 옮겨주고 직업을 주고 그리고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과 끝없는 인내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성격이 사나운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던져 버리는 등 성격이 아주 포악하였는데 그 사장님이 비서만은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비서에서 “어떻게 해서 사장님에게 칭찬을 받습니까?”라고 물으니 그 비서는 “목사님,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사장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나는 우리 사장님을 볼 때 정신병자로 봅니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호사가 정신병자를 대할 때 싸우면 같이 정신병자가 되지 않아요. 우리 사장님이 화를 내면 ‘아, 정신병자가 또 발작을 하는구나. 나는 간호사이니까 참고 잘 돌봐주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을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서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북한 체제도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간호사입니다. 환자하고 같이 대항해서 싸우면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호사이기 때문에 환자가 발작을 하면 ‘또 발작 했구나. 간호를 좀 해 주어야 되겠다’라며 희생적인 사랑과 끝없는 인내로 대화를 해야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그들을 몰아 부친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남북전쟁 때,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항상 시편 37편을 읽고 그 위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날도 그가 읽던 성경 시편 37편에는 그의 눈물 자국이 배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북한을 대할 때 시편 37편을 읽고 북한을 대해야 합니다. 시편 37편 1절로 1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행악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만 우리는 온유한 자로서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을 주고,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야 합니다. 햇볕 정책을 통해서 보면 겉으로는 우리가 손해를 입을 것 같지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심판주로 계셔서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잠시 후에 악한 자가 없어지리니 자세히 살펴도 찾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히틀러 사건이며 이것이 공산주의 스탈린 사건이며 이것이 일본 제국주의 사건이 아닙니까? 그렇게 무성하던 악인들이 자세히 살펴보아도 역사의 그림자 속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별 도리 없이 우리의 일생은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합니다.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이땅에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만일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터지면 우리 민족은 재기불능이 되고 살아남은 후손은 대대의 가난과 수욕을 덮어쓰고 삼류 국가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전쟁만은 피해야 하고 남북한 다 함께 평화적으로 공존공영 하다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끝없는 인내와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께 눈물로 간절히 조국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인 통일을 위하여 계속 기도해야만 되겠습니다. 우리 국민이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어 일치 단결해서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 편에서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과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6.25 전쟁 51년을 맞아 다시한번 우리 자신을 재점검하고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르게 하고 살아야 될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께서 도와 주심으로 6.25의 비극적인 전쟁을 통해서도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고 자유와 평화 중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 살게 되고 5만 교회에 10만 주의 종, 1천 백만 성도가 있게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나 북한은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가 없는 공산주의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와의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 땅은 재기 불능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하든지 우리를 도와 주셔서 북한의 악한 전략과 계획에 말려 들어가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어려울 때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우리 대통령께 지혜와 총명을 주옵소서. 우리 국민들이 믿음으로 뒤를 밀게 도와 주시옵소서. 6·15 선언 이후 햇볕 정책을 통하여 북한의 얼어 붙은 마음을 녹여 주시고 대화와 화해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전쟁만은 피하게 하옵소서. 우리 국민들도 서로 대적하여 분열하고 투쟁을 일삼지 말고 화해와 일치 속에서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게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6.25를 되돌아보며/ 마5:38-48/ 조용기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6.25설교/ 2001-06-24
6.25를 되돌아보며 마5:38-48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6.25를 되돌아 보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내일이면 6.25 발발 51년 기념일이 되는 해입니다. 51년 전 1950년 6월 25일은 천추에 잊지 못할 우리 민족사에 비극적인 참혹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 새벽 미명에 소련 공산당의 후원으로 중무장한 북한 김일성이 대군을 앞세워 남침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3년 간 한반도는 피아간 밀고 밀리면서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의 격전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가 냉전의 흐름을 깨뜨리고 한반도에서 열전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유엔이 결성된 후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이 한국 전쟁에 참가했고 북한은 중국과 소련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참전한 전쟁이었습니다. 그 전쟁의 참화는 도저히 필설로 형용할 수 없고 그 전쟁의 상처는 오늘도 이산가족이라는 슬픈 현실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6.25 전쟁의 피해상황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 인적 피해는 한국군민 유엔군 피해가 합해서 776,360명이었습니다. 그 많은 인명이 손상을 입었습니다. 중공군과 북한의 피해는 약 200만 명이었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남북한 합해서 250여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피난민이 320만 명이 있고 전쟁 미망인이 30여만 명 전쟁 고아가 10여만 명 이산가족이 천여만 명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전쟁 중 상당 주요 장비 손실도 막대합니다. 비행기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합쳐서 약 2천대가 파괴되고 북한군은 2천 2백대가 파괴되었으며 전차로 말하면 한국군과 유엔군 전차 약 800대가 파괴되고 북한군은 1천 2백대가 파괴되었으며 기타 장비는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전쟁을 통한 재산 및 산업 공공시설 피해는 개인 가옥이 60만 채가 파괴되고 산업 시설의 80%가 대파되었습니다. 국민 생활의 터전이 완전히 상실되고 사회경제체제가 황폐화되고 붕괴되고 만 것입니다. 재산 총 피해는 총 230억 불을 달했었습니다. 우리는 51년 전 6.25 전쟁을 생각해 보고 다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민족 자멸적인 동족 상전의 전쟁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이 무서운 역사적 사실을 통해 남북 공히 교훈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미래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6.25라는 역사적 배경을 두고 남북한이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분단 한반도의 실상을 우리가 오늘 가슴에 손을 얻고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북한의 실상에 관하여 허상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북한은 주체 사상에 입각한 스탈린식 독재 공산주의 국가인 것입니다. 그들은 주체 사상을 믿고 있습니다. 주체 사상이란 철저한 인본주의로써 우주 만물의 중심은 인간이고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 하나님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그러한 정치적인 체제입니다. 인민의 주체는 당과 국가이고 당과 국가의 주체는 김일성이며 그만이 인민에게 빛과 생명을 준다고 말합니다. 김일성은 마치 사람의 머리에 뇌와 같고 당은 신경조직과 같아서 김일성 없이는 당도 그리고 수족인 국민들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죽어서나 영원히 인민의 주체로 살아 있다고 그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생산 수단을 국가가 갖고 개인 소유는 허락하지 않는 집단주의 전체주의 국가인 것입니다. 그와 비교해서 우리 개인주의의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시장 경제체제입니다. 이처럼 단순히 체제와 사상을 비교해 볼 때 도저히 동질성이라고는 추호도 발견할 수 없는 극과 극이 다른 두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양체제가 쉽게 화합이나 통일을 가져올 수 있다는 허상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김정일의 적화 통일 전략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 우리 한국을 기만하기 위한 전술은 변할지라도 적화 통일을 하겠다는 전략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같은 민족의 뿌리를 갖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나 실질적으로 사상적 내용과 국가 사회적 체제가 전혀 다른 이질적 문화 속에 사는 두 국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적이 아닌 이상 통일은 먼 나라의 꿈이요 우리 세대의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서 21장 31절에 겱恝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에스겔서 37장 19절에 겞苛 곧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에브라임의 손에 있는 바 요셉과 그짝 이스라엘 지파들의 막대기를 취하여 유다의 막대기에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한즉 내 손에서 하나가 되리라 하셨다궵究缺릿 통일도 하나님의 때가 와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주는 것이지 우리가 오늘날 통일이 쉽게 될 것이라고 허상을 가지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가져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만 할 것입니까? 공멸하는 전쟁만은 피하고 살아야되겠다는 것이 우리의 모든 가슴 속에 있는 소원입니다. 150마일 휴전선을 경계로 쌍방 각각 100만 대군이 대치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화약고, 이것이 한국의 현실입니다. 만일 다시 전쟁이 다시 터진다면 이젠 피난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사일이 동서남북으로 날으는데 일선이나 부산이나 제주도나 할 것 없이 평양이나 함경도나 할 것 없이 피할 곳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모두다 전쟁터가 되며 그 자리에서 살상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찌하든지 전쟁만은 피하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은 상호 교통과 대화와 화해와 협동을 통하여 우발적인 전쟁을 피해야 됩니다. 서로 늘 대화하고 상호 협동을 해야지 안그러고 우연히 잘못된 동기에서 오해가 발생하여 한번 전쟁이 일어나면 겉잡을 수 없이 한국은 잿더미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인류 파멸을 초래하는 3대 재앙이 곧 전쟁과 공해와 마약인데 우리나라는 지구촌 유일한 동일 민족 분단 국가로써 전쟁이 났다하면 초토화되고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 한국에서 햇볕정책과 6.15 공동 선언의 화해와 협동의 길을 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늘 우리가 말하는 햇볕이라고 하는 것은 이솝이야기의 외투 벗기기 이야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하루는 해와 바람이 누가 더 쎄냐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외투를 입고 걸어가는데 바람이 말하기를 누가 저 외투를 먼저 벗기느냐 벗기는 자가 이기는 자라 하자, 그 해가 좋다고 그렇게 하자고 바람보고 너 먼저 하라고... 바람이 굉장히 불고 차디찬 살을 애는 듯한 힘으로 외투 입은 사람을 파고드니깐 외투를 벗기는커녕 점점 움켜잡습니다. 그놈의 날씨 희한한 날씨다 왜이리 갑자가 추워지냐.. 외투를 벗지 않고 점점 움켜잡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나는 외투를 못 벗기겠다. 그럼 당신이 해봐라 해가 싹 구름 사이에 비쳐서 비치고 안개 구름 바람이 거치고 따뜻해지니깐 이 사람이 그 날씨 변덕도 많네 그렇게 춥더니 이제는 왜 이렇게 따뜻한가 햇빛이 비취는 땀을 뻘뻘 흘리더니만 외투도 벗어버리고 웃옷도 벗어버리고 나중에는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에는 사람의 외투를 벗기는데는 바람이 이긴 것이 아니라 햇빛이 이겨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햇볕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아무리 얼음장같은 체제에 살고 있다 하더라고 공산주의라는 외투를 아무리 껴입고 있다 할지라도 자꾸 사랑이 햇빛을 비추면 결국에는 외투도 벗어버리고 웃옷도 벗어버리고 주저 안게 된다는 그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햇빛 정책의 특정은 분단 상태의 안전적 관리를 급선무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단상태가 되었어도 서로 싸우지 말고 안정적으로 있어서 우리 한국이 점점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되고 대북 3대 원칙을 기조로 제일 먼저 안보를 그리고 화해와 협력을 동시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무력도발은 절대로 허락하지 말고 흡수 통일을 하겠다고 협박하지 말고 화해와 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서 결국에는 공존 공헌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과 6.15 공동 선언은 보면은 우리가 서로 자주적으로 통일하지 외세를 끌어드리지 말고 남측의 연합자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일을 추구해 나가고 그 다음에는 비경양장기수 문제와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사회문화 협력을 활성화하고 당국간 대화를 정령화해서 전쟁만은 피하고 먼 장래의 통일을 꿈꾸자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화해와 협력이 불의가 마련되어서 우리도 북한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깊어지고 북한에 대한 나쁜 감정이 사라지고 북한도 우리와 빈번한 교제를 통해서 한국이 자유로운 나라이며 잘 사는 나라라는 것이 국민들에게 상당히 인식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 서해 북방 한계선에 비무장 상선들을 오락가락 통과 시켜서 온 우리 국민에게 굉장한 긴장을 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국론을 분열시키고 우리의 인내력을 시험해 보고 또 북방 한계선을 무의미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한 한계선 없이 가까운 해안을 통과함으로 막대한 기름을 절약해서 경제적인 이익을 보겠다는 것이 그들이 목적인 것입니다. 만일 북한 비무장 상선이 북방 한계선을 침범해서 우리 해변 가까이를 지나갔는데 우리가 군사력과 힘으로 대적했다면 북한 사람들은 그것을 빌미로 해서 햇볕 정책을 무효화하고 군사적 긴장을 고조하고 세계적으로 억지 주장을 하고 댓가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북한의 책략에 말려 들어가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연히 일어 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시비를 걸려고 몰아쳐 돌아오는 것입니다. 시비에 걸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번 우리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 교도소 수감자 16만 명중에 92%가 자제력이 부족하여 범죄하였다고 그들을 자백했습니다. 조금만 자제했으면 범죄하여 교도소에 들어오지 않았을텐데 자제력이 부족해서 그만 폭발해서 범죄하고 교도소에 들어 왔다고 했습니다. 정부의 자제력을 통하여 햇볕정책의 진실성을 요번에 우리가 잘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북방 한계선을 통해서 우리 연해를 통과해 갔지만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제력을 가해서 총격을 가하던지 시비에 걸리지 않고 통과하게 한 것은 참으로 잘한 것이며 우리가 진실로 햇볕정책을 추구하겠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준 것입니다. 소인배처럼 발칵 흥분해서 대결하지 않고 대인 다운모습을 보여주고 우리가 슬기롭게 이런 상황을 다스리는 자신 있는 나라라는 것을 북한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태도를 우리 주님께서 명하신 태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38절에서 42절에 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궛 했습니다. 악한 자 대결하면 상처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중대한 일이 아닌 이상은 오른 뼘 한 대 맞으면 왼 뼘도 한 대 때려주십시오 별 손해나는 것 없습니다. 여러분 속옷 입다가 남은 속옷 달라고 하거든 입은 겉옷하나 벗어 줘도 별 손해 없는 것입니다. 오리를 가달라고 하는데 한 십리 가주고 화평하는 것이 좋습니다. 북한은 계획적으로 우리를 시비에 끌어 드리려고 작정하고 비무장 상선을 내려보낸 것입니다. 시비를 걸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비에 걸려서 분열되고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남북한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 위기가 다가오고 북한의 햇볕정책 다 짓밟아 버리고 온 세계에서 나팔불고 온갖 억지 다 부리고 하는 깡패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 깡패 작전에 말려 들어가면 안됩니다. 북한에 해군이 쳐들어 왔다면 우리는 단호하게 군사력으로 대적해서 침몰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비무장 상선을 가지고 우리를 시비 속으로 끌어 들려고 하는 그 작전에 말려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군과 정부가 대항하는 것은 잘한 것입니다. 대인다운 모습을 보여 준 것이며 우리의 자신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너희 그래도 우리를 까딱없다. 너희들 그래도 너희들의 시비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계책에 말려들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가지고 정치인들이 왈가왈가하고 우리 국민이 왈가왈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대로 조그마한 일에 시비에 걸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계교에 말려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른뼘 맞더라고 왼뼘 돌려되도 시비에 안 걸리는게 좋습니다. 속옷 달라고 하면 겉옷 주고라도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가더라고 싸우지 않고 평안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섭리요, 오늘 우리 한국이 북한의 시비에 말려 들어가지 않는 정부의 태도나 우리 군의 태도는 적절하고도 잘한 것입니다. 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식은 사람의 지혜와 지식을 초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따라 행하면은 시험에 들지 않고 벼랑에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북한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상호간 신뢰가 쌓이면 쌓일수록 긴장을 풀고 경제 교류와 문화 교류, 상부상조를 통하여 함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현실은 함께 망할 것이냐 함께 살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싸우면 함께 망하고 안 싸우고 잘 상부상조하면 잘살고 그런데 우리가 함께 망하는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세대는 그 6.25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6.25를 통과한 사람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하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힘이 약하면 잡아 먹히지요, 6.25당시 전력을 보면 북한군은 20만 명이었는데 국군은 10만 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전차 242대인데 우리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장갑차나 공군기는 무려 북한보다 10분지 1정도로 약세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얍보고 북한이 일격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씨 조선 선조 때도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해서 십만 명을 군대를 양성하여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야한다고 할 때 조정에서 논쟁을 하고 이 이이의 주장을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나라가 평화로울 때 군사를 양성하여 외침에 대비하자고 하였으나 강정으로 이것이 무시되고 결국 무방비 상태에서 임진왜란을 맞이해서 우리 한국 전체가 일본에게 짓밟히는 비극적인 상황을 당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평화 공존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울타리를 잘해 놓고 난 다음에야 도둑놈을 막을 수 있지 우리 울타리가 무너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힘을 합쳐서 북한이 감히 우리를 넘어 볼 수 없을 만한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 주민에 대해서 무조건 도와 주어야 합니다. 거기 주민들과 어린이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모른다고 하고는 서로 화해와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무조건 도와 주어야 합니다. 군사력을 강화하게 될 현물인 돈은 도와 주지 않을 지라도 옷이나 약품이나 쌀은 도와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먹을 것은 주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7절에서 21절에 겲틜タ“鍍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궛 말씀한 것입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이 갚을 테니깐 너희들의 할 일은 원수라도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고 입히고 돌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북한의 국가는 원수라도 민족은 우리와 동질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가는 원수라도 민족은 원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원수지 민족은 원수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하여 무조건 도와 주어야 우리 교회에도 꾸준히 북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교회 내에 NGO를 통해서 총 30억 정도를 지원했습니다. 옥수수 씨앗과 비료지원에 약 17억 2천만원... 탈북 동포 생활 정착을 99년도 부터는 매월 60명하고 있으며 어린이 급식을 지원하고 있고 또 아동복도 지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상세한 내용을 알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우리 교회로도 있는 힘을 다하여 북한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경제적인 협동으로 끌여들려서 개방세계로 이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북한에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중소 기업을 옮겨가고 그래서 북한 사람들에게 공동 고용을 창출 시켜서 그들이 돈을 벌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사람들이 배가 부르고 잘 먹게 되면 인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는 인권이고 민주주의도 없어요. 밥만 주면 종살이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돈을 벌 수 있고 밥만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주면 그 다음에는 자유와 해방을 원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북한에 인권을 주장해도 배고픈 사람이 인권을 주장을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배가 불러야 됩니다. 우리 북한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산업 공단을 만들어주고 중소 기업을 옮겨주고 직업을 주고 그리고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과 끝없는 인내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깡패 집단이니깐 깡패를 다스리는데는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희생적인 사랑과 끝없는 인내로 대화를 해야합니다. 나는 어느 회사의 사장님이 어마어마하게 성격이 사나운 사장을 알고 있는데요 화가 나면 잿더리를 내어 던져 버리고 찻잔도 내어던져버리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비서가 그 사장을 너무나 잘 섬기고 그 사장 자체도 비서 하나만은 칭찬을 하더라구요 그래 내가 하도 신기해서 이 비서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어떻게 해서 저 고약하고 못된 사장을 섬기고 있느냐 했더니 목사님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사장을 섬기지 못합니다. 나는 한참 우리 사장을 볼 때 정신병자로 봅니다. 그럼 나는 간호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간호원이 정신병자를 대할 때 싸우면 같이 정신병자가 되지 않아요 우리 사장님이 발짝을 하면 아, 정신병자 발짝했다 나는 간호원이니깐 잘 참고 돌봐 주어야지 항상 간호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웃을 수가 있고 마음에 평안할 수가 있습니다. 진짜로 올바른 말이다. 여러분 북한 체제는 정신병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간호원이예요 저 정신병자하고 같이 대항해서 싸우면 이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호원이기 때문에 정신병자가 발짝을 하면 또 발짝 했구나 또 간호를 좀 해 주어야 되겠다. 그래서 우리는 희생적인 사랑과 끝없는 인내로 대화를 해야지 이성적으로 대항해서 일대일 정상적인 정부라고 대항하면 우리는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이 남북전쟁 때,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항상 시편 37편을 읽고 그 위에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늘날도 그가 일던 성경 시편 37편에는 그의 눈물 자국이 베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북한을 대할 때에 시편 37편을 읽고 북한을 대해야 합니다. 시편37편 1절에서 12절에 곀宣퓽美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찌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찌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찌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찌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북한이 저렇게 깡패같이 행악을 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만은 우리는 온유한 자로써 오른 뼘을 치면 왼 뼘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을 주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햇볕 정책을 통해서 감사하면 우리가 손해나는 것 같지만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심판자로 계셔서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잠시 후에 악한 자가 없어지리니 자세히 살펴도 찾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히틀러의 사건이며 이것이 공산주의 스탈린의 사건이며 이것이 일본 제국주의 사건이 아닙니까? 그렇게 무성하던 악인들이 자세히 살펴보아도 역사의 그림자 속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별 도리 없이 우리의 일생은 북한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다시 6.25와 같은 전쟁을 가져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됩니다. 만일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터지면 우리 민족은 재기불능이 되고 살아남은 후손은 대대의 가난과 수욕을 덮어쓰고 삼류 국가의 슬픔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전쟁만은 피해야 하고 남북 다 함께 평화적으로 공존 공영 하다가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끝없는 인내와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께 눈물로 간절히 조국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인 통일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해야만 되겠습니다. 우리 국민이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어 일치 단결해서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 편에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꿈과 소원을 이루어 주시게 되실 것입니다. 6.25 51년을 당해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을 재점검하고 북한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르게 하고 살아야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아버지께서 도와 주심으로 6.25의 비극적인 전쟁을 통해서도 우리 대한민국이 망하지 아니하고 그 결과로 우리 한국에는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시장 경제가 활성화되고 자유와 평화 중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잘 살게 되고 5만 교회에 10만 주의 종, 1200만 성도가 있게 되고 하늘나라가 임하여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그러나 북한은 헐벗고 굶주리고 자유가 없으며 김일성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여 그러나 아버지 북한은 중무장하여 언제고 우리와 열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 땅은 이제 제기 불능이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하든지 우리를 도와 주셔서 북한의 깡패 전략과 계획에 말려 들어가지 않게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여 어려울 때에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우리 대통령께 지혜와 총명을 주옵소서 우리 국민들이 믿음으로 뒤를 밀어 드리게 도와 주시옵소서, 그가 6.25 선언 이후 햇볕 정책을 통하여 어찌하든지 북한을 냉장고에서 나오게 하여 주시옵시고 대화와 화해의 길로 들어 서게 만들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전쟁만은 피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우리 국민들도 서로 대적하여 분열하고 투쟁을 일삼지 말고 화해와 일치 속에서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6.25를 생각하는 성도/ 사12:1-2
6.25를 생각하는 성도 사12:1-2 우리에게 다가오는 절망의 순간들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사람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중요한 일을 해 낼수 있습니다. 믿음의 장대만 굳게잡고 역사하면 넘지 못할 장벽이 없습니다. 1. 전능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실패와 절망에 부딪쳐도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2. 인내하는 믿음의 장대를 짚고 절망을 뛰어넘을수 있습니다. 고난과 절망속에서도 인내로 훈련된 민족은 역사속에서 위대한 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는 훈련이 잘된 사람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응답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3. 사력을 다하는 기도의 장대를 잡고 절망을 넘을수 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사는 동안에 절망의 순간을 당하지 않는 분은 없습니다. 절망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인생의 승리자입니다. 1) 지금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절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2)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 말없이 순종하며 인내하는 자를 하나님이 도우셔서 절망을 이겨내게 만드십니다. 3) 사력을 다하는 기도는 위로부터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절망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4) 선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야웨 하나님은 이제 남북의 통일을 주시어서 마지막 때에 선교적 사명을 다하도록 우리 민족을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