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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 신앙과 애국 /시127:1- 2010-08-11 17:01:02 read : 5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기억의 산( , 하르 하지카론)' 위에는, 600만 나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그 기념관을 야드 바쉠( , 손과 이름)이라고 부른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이다(사56:5). 홀로코스트는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
6.25 / 신앙과 애국 /시127:1- 2010-08-11 17:01:02 read : 515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한, '기억의 산( , 하르 하지카론)' 위에는, 600만 나치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있다. 이스라엘 사람은 그 기념관을 야드 바쉠( , 손과 이름)이라고 부른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뜻이다(사56:5). 홀로코스트는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 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그러나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야드 바쉠에는 학살당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용서는 했다. 그러나 잊지는 않겠다는 글귀가 있다. 야드바쉠 출구에 '욥' 동상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망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포로가 되게 하고, 기억은 우리를 자유인이 되게 한다." 그런데 요즘 신시대들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6.25가 무엇이며, 누가 일으켰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북침을 했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다. 6.25는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해, 대한민국에서 물러갔다. 열강에 의해 우리는 둘로 나뉘고, 북쪽 김일성은 소련의 사주를 받아 전쟁을 감행했다. 지금부터 정확히 60년 전, 6월 25일 새벽 1시, 북한은 구 소련 최신형 탱크와, 신형무기를 지원 받아, 남침 전쟁을 감행했다. 이 전쟁으로 죄 없는 부모형제들은, 북한군 총칼에 목숨을 잃었고, 서울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가 되었다. 전쟁에는 법이 없다. 총칼을 들고, 무조건 이기는 자가 법이 된다. 독일의 히틀러는 600만의 유대인을 죽였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한국 여인들은 정신대로 끌려갔다. 우리는 6.25 전쟁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미군이 버린 쓰레기를 뒤져 먹고사는, 국가적인 아픔을 겪었다. 따라서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나라와 주권을 지켜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다시 상기하지 않아,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되면, 모두 다 잃어버리게 된다. 6월이 되면, 다시 한번 나라의 소중함을 생각해야 한다. 많은 위험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지내온 날을 돌아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존재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개인과 가정과 나라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신앙고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을 잃어버렸을 때,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포로가 되었어도, 신앙을 되찾았을 때에는, 그들은 망하지 않고 포로에서 돌아왔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신앙만은 잃어서는 안 된다. 신앙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1. 조국 그리스도인은 국경을 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다고 조국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은 없지만, 조국과 나라는 있다.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힘이 없어, 이 나라가 망하게되면, 우리는 비참해진다.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가면, 인상 깊은 곳이 있다. '마사다'( , 히브리어로 마짜다)라고 하는 곳이다. 마짜다는 사해바다에서 약 4km 떨어진 곳에 있는, 거의 마름모꼴로 된, 천연 요새다. 해발434m, 둘레가1,300m 된다. 가파른 경사이기에,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마짜다 사건은 유대인역사가 요세프스가 쓴 '유대인 전쟁이야기' 7권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70년 예루살렘성은, 로마장군 베스페시안의 후계자인, 그의 아들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 해 8월 티투스는 "로마에 굴복하지 않고, 로마에 저항하는 유대인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완전히 멸절시켜, 역사 속에서 뚜렷하게 알려 줄 것이다." 선포한다. 그러나 유대인 967명은 끝까지 로마에 대항하였다. 이들을 지휘하던 장군 엘 아자르는, 마짜다로 무리들을 데리고 피하였다. 티투스는 마짜다 점령을, 로마의 자존심으로 여겼다. 부하 실바 장군을 시켜서, 마짜다를 점령하게 하였다. 실바장군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마짜다 점령을 시도했지만, 동떨어진 흙산이기에, 올라갈 수 없어서,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마짜다를 포위하고, 모든 보급로를 차단하였다. 식량이 떨어지면 항복하리라 생각했으나, 마짜다 정상에는, 이미 많은 식량이 저장되어 있어, 항복하지 않았다. 3년을 기다렸지만 마찬가지였다. 점점 더 거세게 항거했다. 실바장군은, 정상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돌과 흙으로 토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격용 장비도 개발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밑에서 공사하는 로마 군인들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로마 군인들은, 저 위에서 저항하는 유대인 친척 6,000명을 잡아다, 밑에서 공사를 시켰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밑에서 공사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었다. 로마인들은 토성을 꼭대기까지 쌓고, 올라 왔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방법이 없었다. 최후가 다가옴을 서서히 직감하였다. 그때 유대인의 지도자 엘 아자르(El azar)는, 부하들에게 연설을 한다. "나를 따르는 충성스러운 동지들이여! 오래 전부터 우리는 주님 외에는, 로마 사람이나, 다른 어느 누구도 섬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바 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이, 우리가 섬길 하나님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우리의 결심을, 행동으로 증거 해야 할, 결정적 순간이다. 함락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는 스스로를 욕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한 목숨 부지하겠다는 생각에서, 노예가 되는 길을 택해서는 안될 것이다…, 로마 군인들은, 우리를 생포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승리를 그들에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아내들이, 로마 군인들에게 욕보일 수 없다. 우리의 자식들이, 그들의 노예로 끌려가는 것을 보아서도 안 된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숨을, 우리의 손으로 거두어 주자. 그리고 우리도 사랑하는 이들의 뒤를 따라야 한다. 자유라고 하는 이 영광스러운 수의를 입고서, 우리는 고이 잠들자. 그러나 우리는, 사용하던 온갖 물건들을 다 불살라, 우리 대적들에게, 전리품을 남겨 주지 말아야 한다. 이 요새도 그들이 태우기 전에, 우리가 모두 태워 버려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예외다. 저 창고에는 아직도, 가득 남아 있는 식량만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행여나 적이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우리는 노예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제 남은 길이란 명예롭게 죽는 길뿐이다. 지금 우리가, 자신과,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친절이 있다면, 서로 죽여주는 일 뿐이다. 서로 죽여줄 수 있는 이 귀한 기회도, 이제 우리에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 중에 누군가 목숨에 미련이 있어서, 저 원수들에게 굴복한다고 한들, 그들이 곱게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는 끝없는 고문을 끝내 이겨내지 못해, 고통 속에서 죽어 가고, 노인들은 그런 고문에 당장 죽고 말 것이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인들은,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자식들은 '아빠!'를 불러도, 족쇄에 묶인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니, 주저하지 말자. 아직은 칼을 쥘 자유가 있다! 우리의 손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정중한 충성을 바칠 기회를 주자! 우리 적에게, 노예가 되지 않은 이 상태로 다같이 죽자! 아내들과 자식들과 우리 다같이 자유인의 몸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자." 엘 아자르의 연설이 끝나자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서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 다음, 남편들이 제각기, 제 아내와 자식들을 자기 칼로 죽였다. 가족들을 죽인 남편들은 제비를 뽑아서, 열 사람을 선정하여, 나머지 남편들을 죽였다. 열 사람은 자기들의 사명을 완수한 다음, 다시 한 사람을 제비뽑아, 나머지 아홉을 죽였다. 마지막 한 사람은 식량 외의, 모든 물건과 건물을 불태우고 자결하였다. 그래서 정확히 960명이 죽었다고 한다. 2명의 어머니와 5명의 아이를 숨겨두고, 이 일을 역사에 증거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초급장교가 되면, 반드시 마짜다에 올라가, "마짜다! 다시는 함락되지 말라"고 외친다. 이 쓰라린 정신 위에, 이스라엘은 오늘 굳건히 세워졌다. 나라와 자유에 대한 고귀함을 말해 주는 이야기이다. 힘이 없어 나라가 망하면, 가정도 망하고, 자신도 망하게 된다. 다 죽게 된다. 2. 신앙 힘에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왕하6장). 사람은 보이는 힘만 믿으려고 하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힘이 더 크다. 미국은 월남전에서 패했다. 미국이 무기가 부족해서 패했는가? 아니다. 그들은 정신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1억의 아랍을 상대로, 이스라엘은 250만으로 싸워서 이겼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싸웠고, 결국 승리했다. 정신상태에서, 먼저 이겼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신력이 강해질 수 있나? '하나님이 나의 편이 되어야 한다.' 이 사실을 믿고 나갈 때, 강해지고 승리할 수 있다. 67년 6월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은, 전방에 병사들을 내보내 놓고, 자신은 방송국에 앉아서 (시27편)을 낭송하고 있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전쟁터에서 확성기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국방장관의 확신에 찬 시편낭독을 듣던 병사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시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일당 백'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었다. 누가 이 사람들을 이길 수 있겠는가? 이 힘은 무기에서 나오는 힘과 비교가 되지 않는 힘이다. 이러한 확신에 찬 사람들은, 병력수가 많다고 해서 당해낼 수가 없다. 정신력에서 벌써 이기고 들어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디안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그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드온이 일어났을 때, 전쟁에 나가서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모두 32,000명이나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사람이 너무 많으니, 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줄이고 줄인 결과, 300명이 되었다. 그 300명이 메뚜기같이 많은 미디안 군대를 물리쳤다. 이 이야기 속에 담겨진 메시지가 무엇인가? 전쟁은 사람들 수에 있지 않고, 더구나 화력에도 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면 나라의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신이고, 더 나아가서 신앙의 힘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주님이 진노하시면 막을 자가 없다. 그래서 주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시면,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내 편으로 삼을 수 있나? 주님의 자녀가 되라.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천대까지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반하면, 3,4대까지 저주하신다고 하셨다. 북한이 왜 못살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을 반대하고, 김일성을 우상화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섬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우상을 섬긴 대가로 인하여, 나와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어려울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복을 천대나 누리게 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인해, 모든 사람이 복을 얻게 된다고 하셨다. 이것이 믿는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분은, 세상에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있으므로, 나라가 잘 되고, 민족이 잘 되고, 열방이 잘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있고, 또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예배당이 있으면, 나라가 잘 되고, 민족이 잘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3. 애국 그러나 예배당이 많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나라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와 민족을 이끌고 갈 수 있는,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나라와 민족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갈,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 영국은 선진국이지만, 17,18세기만 하더라도,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가난한 나라였다. 감자로 생계를 이어가던 나라였다. 수도 런던은 각지에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던 나라였다. 그런 영국을 19세기에, 세계 최고의 나라로 발전시킨, 한 지도자가 있었다. 바로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다. 이때 영국은, 세계 최고의 부국이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64년 간 왕위에 있었다. 어떤 왕이 영국을 방문해서 "영국이 이렇게 부강한 나라가 된 비결과, 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민주주의가 잘 이루어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물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대답은 "국민들이 성경을 배우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하나님 말씀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고, 교훈하고 권면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월드컵 경기 때,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것이, 나라사랑의 전부가 아니다. 열심히 응원하고, 승리하면 온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하는 것이 나라사랑이 아니다. 왜 축구경기에 쏟는 열정만큼, 공부하지 못하는가? 왜 과학에서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고, 첨단산업에서 늘 일본의 뒤를 따라가는가?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뜨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애국이다. 이단종교들은 나라사랑이 없다. 나라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군대도 가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조국이 없으면, 우리 존재도 부정된다. 나라가 없으면, 우리가 어디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가? 각 분야에서 뛰어나게되어,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이, 진정한 애국이다.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뛰어난 정치가도 나오고, 뛰어난 사업가도 나오시기 바란다. 이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만 하고, 예배만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애국이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올바로 섬길 때, 백성들은 복을 받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올바로 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성전을 올라가면서, 본문의 노래를 불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하면서, 또한 주님이 지켜주셔야만 복이 있다, 본문은 이런 경험이 담긴 고백이요 노래다. 그러므로 가정, 직장, 나라, 우리 공동체를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복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국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 학생들은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해야 한다. 술에 취한 것 같이, 흐트러진 정신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자.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가 흔들린다.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는 기도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포기하면, 이 나라는 소망이 없다. 이 나라의 정치를 보라. 어떻게 하면, 국가경제를 회복하고, 국민들을 잘살 수 있게 할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날마다 싸우면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조국을 사랑하는 가장 큰 방법은, (1) 조국이 잘 되고, 강한 나라가 되도록, 고민하고 기도해야 한다. 이 민족의 죄악을 끓어 안고, '이 민족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김용기 장로님은 늘 새벽에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고, '조국이여 안심하라.' 하셨다. 그래도 이 나라가, 이 만큼 유지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회는 망하지 않는다. (2) 나라와 민족이 가야할 방향을, 우리 성도와 교회는, 제시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라와 민족의 생각을 깨우치고, 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올바른 진리이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님은 "지금 나라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계몽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국민 정신을 깨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국민들이 바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권해야 된다. 이 민족이 무지를 벗어날 때가지 힘을 모으자."고 했다. 말씀으로 자신을, 올바로 세우기 바란다. (3) 사람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한다. 이 시대의 젊은이가 무너지면, 이 나라는 소망이 없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월을 아끼고 공부하여, 실력을 키우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나라 사랑이다. 원자폭탄이 떨어져, 일본이 망했을 때, 우찌무라 간조는 6평 다다미방에서, 도쿄대학과 와세다대학 학생들을 불러모아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패전국 일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릴 사람들을 키웠다. 일본은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믿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지만, 믿는 사람들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본은 패망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 청년들이 세계 열방을 향해 나가서, 많이 배우고 돌아와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6.25 /찾아온 평화 /대하14:1-13 2013-07-23 15:12:36 read : 2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 일 주일 전 우리는 언론사의 보도를 보고 놀란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를 앞두고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학생들에게 6.25는 북침인가 남침인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침이라는 대답이 69.9% 약 70%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그대로 읽으면 남쪽이 북쪽을 쳐들어 올라갔다는 말
6.25 /찾아온 평화 /대하14:1-13 2013-07-23 15:12:36 read : 20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 일 주일 전 우리는 언론사의 보도를 보고 놀란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를 앞두고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학생들에게 6.25는 북침인가 남침인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침이라는 대답이 69.9% 약 70%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그대로 읽으면 남쪽이 북쪽을 쳐들어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습니다. 이 고등학생들이 역사 인식이 잘못된 것 아니냐. 교사들이 잘못 가르쳐서 그런거 아니냐. 뭐 별에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설문에 문제가 있음을 곧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했습니다. 이 북침이라는 용어 자체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이 북한이 먼저 공격을 했다는 이야긴가 아니면 북쪽을 향해서 공격을 했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북한을 공격했다는 것이 북침의 원래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 한 언론사가 다시 조사를 했답니다. 이번에는 어떤 질문지를 돌렸느냐 6.25전쟁은 어느 쪽이 일으켰느냐. 북한이 일으켰느냐 남한이 일으켰느냐. 이렇게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대답이 달랐습니다. 초등학생 80%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 고등학생의 94%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렇게 명확하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프닝으로 끝나고 또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종종 우리 사회는 북침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사실 있습니다. 남쪽이 북한을 먼저 공격했다는거에요. 그것은 일부 편향된 역사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극소수 있습니다. 또 무조건적으로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찬양하는 종북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보다는 북한의 수령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가끔 그런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1950년 6월 25일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로 남한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날은 주일 새벽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북 간에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화해 무드가 있었고 긴장을 다 풀어버렸습니다. 병사들은 자유롭게 외박 외출을 나갔습니다. 부대마다 텅텅 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북한은 도발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 만일에 남한이 북한을 공격했다라면 이것은 정신병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했습니다. 그런 전쟁을 치룰 나라가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3일만에 전쟁에 질줄을 알고 도발한 그런 민족은 있을수가 없죠. 전쟁 발발 40일만에 낙동강 하류까지 부산만 남겨두고 온 남쪽 땅이 다 공산당에 의해서 점령 되었습니다. 당시 남한군의 총 병력은 10만 5천명이었습니다. 북한의 군사의 총수는 20만 4천명이었습니다. 두 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적은 군사를 가지고 누가 도발을 일으킬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남한의 탱크가 몇 대나 있었을 것 같습니까? 한 열대? 남한에는 탱크나 자주포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탱크가 242대 자주포가 176대나 있었어요. 그러니까 남한이 도발했다는 것은 도저히 억측에 불과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한 항공기기는 연락기를 포함해서 22대가 전부였습니다. 북한의 항공기는 연락기를 포함해서 211대 우리보다 꼭 10배를 넘게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렇게 열세의 전력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킬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북침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를 우리는 대번에 알수가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우리는 휴전협정이라고 그러죠. 휴전협정이 이뤄지는 3년동안 이 한반도는 포탄에 의해서 초토화 되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재산을 잃어버리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아군과 적군을 포함해서 수백만 명의 사람의 생명이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6.25 이 전쟁을 통해서 뼈 아픈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정말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평화는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우리는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열세의 전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또 세계경제 12의 나라로 발전해 온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건 한 마디로 기적이고 하나님의 전적이 은혜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여러분 역사 속에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다가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가 된 나라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우리는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았어요. 전쟁이후에 너무 어려워서 매일 외국에서 원조 받던 나라가 이제는 60년만에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가 된거죠. 코이카라고하는 단체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해외에 나가서 그 나라에 학교를 지어주고 병원을 지어주고 교량을 건절하고, 농토를 개발해주는 일을 하고 있죠. 우리교회에 김선호집사님이 바로 그 단체의 지원을 받고 지금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평화가 얼마나 고귀한 것이지 모릅니다. 정말 이 땅에 평화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죠. 미국 워싱턴에 가면 한국전 기념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이름도 모르고 한 번 와보지도 못했던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 와서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에디오피아, 터키, 필리핀을 비롯한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아무 연고 없는 이 땅에 와서 수백명 수천명씩 생명을 잃고 돌아갔어요. 그들의 피의 대가가 오늘 이 땅의 번영이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세워놓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민족의 참으로 구원을 위해서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끊임없이 기도한 기도의 열매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아름다고 고귀한 자유와 평화를 우리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해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우리는 남왕국 유다의 아사라고 하는 왕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아사왕은 남왕국 유다의 3대왕입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솔로몬 이후에 남북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가 생기는데 남왕국 유대의 1대왕이 르호보암, 2대왕이 아비야, 그리고 3대왕이 바로 아비야의 아들 아사왕입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아주 정의로운 정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통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사왕은 매우 훌륭한 왕이고 아사왕의 통치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땅에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성경 14장 1절을 말씀을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년 동안 평안하니라” 아멘. 아사왕 시대의 특징은 평안입니다. 평안이란 말은 평화라는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 보면 많은 말들을 평화라고 바꾸어 놓았습니다. 또한 오늘 5절과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이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이 아사 시대의 특징은 평안입니다. 평화. 여호와께서 그 땅에 평안함을 주셨다. 평안함을 누리니라. 7절에도 보니까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이 평안의 특징이 있습니다. 평화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바로 평화입니다. 여러분 내 마음의 평화나 가정의 평화가 내 뜻대로 되어지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평화를 주셔야 되요. 그래서 우리가 평화 평화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이렇게 찬양하지 않습니까. 이 아사의 시대에 찾아온 평화, 정말 그 원인이 무엇일까. 어찌하면 우리가 가정에, 우리 민족에, 이 지구촌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비결을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 첫째는 선과 정의를 행해야합니다. 오늘 우리 2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2절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아멘. 이 선과 정의는 뭐예요. 선정을 베풀었다는거죠. 그는 착하게 정치를 하고 그리고 정의로운 정치를 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 앞에서 그는 정의로운 통치를 펼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평안이 오게 된 비결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불의 부정이 가득한 사회는 평화가 없습니다. 원망과 복수와 미움과 증오는 있을지언정 평화란 것은 없습니다. 평화란 바로 정의의 기초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평화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평화는 정의 위에 세워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우리 대한 민국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정의의 기초 없이는 평화가 주어 질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는 내 자신이 오늘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정말 한국 민족이 정의로운 길로 가고 있는 가를 돌아봐야 해요. 어떤 책을 읽다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카지노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저도 한 12년 전에 미국 서부 일주 하다가 라스베가스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카지노가 어떤 곳인가 가서 동전을 바꿔서 잠깐 해본 적이 있어요. 저는 잃었는데요. 우리 집 사람은 한 30불 땄어요. 하여튼 그런 경험이 있는데 카지노에 가면 세 가지가 없다고 해요. 첫째는 시계가 없어요. 시간을 몰라요.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잃어 버려요. 두 번째로 뭐가 없느냐? 창문이 없어요. 낮이 되었는지 밤이 되었는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세 번째로 뭐가 없을까요? 거울이 없어요.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해요. 그러니까 전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거기에 빠져 들게 되다가 결국 있는 것을 다 쏟아 붓고 빈 털털이가 되어서 나오는 곳이 카지노예요.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 우리는 얼마나 분별력 있게 인식하고 있느냐? 정말 이 사회가 공의에 서 있는 지 정의에 기초에 서 있는지 그리고 내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해요. 정의의 거울 앞에 우리는 이 민족을 비춰 볼 수 있어야 해요. 정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정의로운가 아니면 거룩한가 아모스 5장 24절에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의를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미가서 6장 8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정의와 인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회는 바로 정의의 기초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 진정한 평화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책을 읽다 보니까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 대한민국은 부패 공화국이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한 때 부정부패가 너무 만연돼서 부패 공화국이라는 그런 오명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것 만이 아니예요. 요즘 우리 대한민국을 향해서 어떤 사람들은 도박 공화국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바다 이야기 피씨방이 다 게임하고 돈 내기 하는 것. 인터넷이 다 돈 내기 하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늘 밑에 동네 어른들만 모이면 화투를 치고 돈 10원짜리 100원짜리를 가지고 심심풀이로 돈 내기 하시구요. 명절 때만 되면 가족들이 모여서 화투판을 벌이고 돈내기를 해요. 우리 사회가 도박 공화국이라는 거예요. 너무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우리 대한민국이 술 공화국이라는 거예요. 세계에서 술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래요. 또 우리나라는 폭력 공화국이예요. 학교 폭력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예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왕따 당하고 얻어맞아요. 또 부끄럽지만 낙태 공화국이예요. 세계에서 낙태를 많이 하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가 하면 고아 수출국 1위가 또 대한민국이에요. 지금도 그런 줄 모르겠어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또 자살공화국입니다. 세계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자살이 가장 많은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런가 하면 고소 고발 공화국입니다. 툭하면 고소하고 고발합니다. 참 무서운 나라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가 두 배는 더 많습니다. 우리가 5천만이라고 한다면 일본은 1억이 넘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고소 고발 건이 1년 동안 몇 만 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발 건은 30만 건이 넘는데요. 기분이 나쁘면 그냥 고발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기분 나쁘다고 목사 고발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면 고소 고발해요. 변호사들은 다 밥 먹고 살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것은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웬만한 것은 그냥 화해하고 웬만한 것은 묻어 두고 넘어가야지 기분 나쁘면 고소하고 고발해 버려요. 일본하고 비교해서 10배 이상 고소 고발이 많은 나라예요. 이 엄청난 국력을 엉뚱한 일에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 위에 세우는데 우리 모두가 앞장서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 째로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상을 척결해야 합니다.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자 오늘 우리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아멘 아사 왕이 첫 번째 한 일이 종교 개혁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외에 다른 모든 제단을 헐어 버렸어요. 이방 제단 산당들 다 없앴어요. 주상이라는 것은 놋으로 만든 우상입니다. 주상들을 다 깨트리고 녹여 버리고 불로 태워 버렸어요. 아세라 상을 찍어 버렸어요. 여러분 5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 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아멘 모든 산당과 태양 상을 없앴더니 그 때에 하나님께서 평안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척결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상은 우리의 평화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또 우리 아사 왕을 보면 종교 개혁자로서도 참 철저한 분입니다. 우리가 읽지 않았습니다만은 15장 16절에 보면 아사왕의 어머니 마아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태후인데 이 여인이 가증한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아사왕이 그 모친 마아가를 폐위 시켜버렸어요. 여기는 모친이라고 해서 어머니라고 나오지만 우리가 원어로 보면 그것은 할머니라는 표현입니다. 자기 할머니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 시켜버렸어요. 다시 말하면 자기 할아버지 르호보암의 아내인 마아가라는 여인을 폐위 시켜 버릴 정도로 자기 가족이더라도 우상 숭배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평안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옆의 분에게 물어봅시다. “당신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예요. 물질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이예요. 어떤 목사님이 개척한지 10년 됐는데 조금 몇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희 개척 교회에서 건물도 없이 월세를 내는 상가에 있는데 늘 예배당이 있는 그런 그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청약 저축을 하나 들었습니다. 아파트라도 하나 분양 받아서 그것을 예배당을 만들 궁리를 한 것입니다. 마침 자기 교회가 있는 옆 도시에 새로 신도시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파트 열풍, 부동산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이 청약 저축을 넣은 지가 몇 년이 되어서 1위가 되었고 당선될 확률이 많았어요.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는데 이 부동산 생각만 나더라는 거예요. 이 청약 저축만 생각 나더라는 거예요. 기도를 해도 말씀을 나누려고 해도 청약 저축 통장만 자꾸 생각나더라는 거예요. 이것만 잘 붙잡고 있으면 된다는 기대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것을 해지해 버리려고 은행에 몇 번 갔다가 다시 돌아서고 다시 돌아서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자기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예배 시간에 공개를 했데요.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야 이놈의 목사야 너는 청약 저축을 의지 하냐? 나 하나님을 더 의지 하냐?’ 그러더라는 거예요. 너무 부끄러웠데요. 생각이 청약 저축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그래가지고 예배 시간에 공개한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부끄럽게도 하나님보다 이 저축 통장을 더 의지했습니다. 부동산을 더 의지했습니다. 내가 내일 은행가서 이것을 해지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은행에 해지하러 갔대요. 해지하러 갔더니 새로 청약 저축 통장을 개설하려고 온 사람들 때문에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데요. 그리고 해지하려고 했더니 은행원이 ‘아니 이 귀한 것을 왜 해지하세요?’라고 묻자 할 말이 없어서 ‘하나님이 더 큰 집을 주셨어요.’라고 말하고 돌아왔답니다. 여러분 하나님보다 당장 도움이 될 것 같은 청약 저축 통장을 더 의지한 부끄러운 목사님의 고백은 그 분만의 고백만이 아니예요. 그의 고백은 저의 고백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에 어느 주일 날 어느 집사님이 몇 천 만원을 십일조를 했다, 감사 헌금을 했다!! 제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제 마음 속에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상황을 아는 재정부의 부원들은 또 얼마나 좋아할까요? ‘목사님! 누가 몇 천 만원을 헌금해서 이번 달은 걱정이 없겠어요.’ 여러분 누가 헌금을 많이 해서 그 물질 때문에 기뻐하고 좋아한다면 물질을 더 의지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것일까요? 솔직히 타락한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물질을 더 의지하는 거예요. 여러분 목회하면 종종 때로는 교인이 적어도 어느 날 헌금을 많이 해서 우리의 목표를 초월하면 솔직히 기뻐하지 않았는가? 저는 그렇게 부인할 자격이 없습니다. 때론 교인이 줄어도 헌금이 늘면 그것을 기뻐할 때가 있었습니다. 차마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느냐? 물질을 더 의지하느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 중에 누가 돈이 있는가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지 이 생각이 먼저 납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먼저 찾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던져 버릴 때 진정 여러분의 심령 속에 평화가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을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아사왕은 평화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왔습니다.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아멘. 아사 왕은 온 백성에게 명령했어요. 너희는 이제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순종해라. 온 백성을 하나님을 찾게 했어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구를 의지합니까? 오늘 아사 왕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화의 시작입니다. 우리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아멘. 우리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말하세요. 하나님을 찾으니까 평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15장 2절에 보면 아사 왕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너희를 만나 주실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찾는 민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모스 5장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소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아모스 5장 5절에 보니까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나님을 찾아야 해요.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소원을 아뢰어야 해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특별히 오늘 14장 9절 이하에 보면 구스 사람 세라가 남왕국 유다를 치려고 10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300대의 병거를 끌고 남왕국 유다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의 병력은 50만이 조금 넘었어요. 그리고 병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2배이상의 차이가 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왕국 유다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는지 아세요?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아멘. 하나님 앞에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서 우리는 주 밖에는 우리를 도울 분이 하나도 없고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 합니다. 하나님 여러와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니. 그렇습니다. 아사 왕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왜 없겠습니까? 여러분의 사업이나 직장에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 문제를 가지시고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막연하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는 구체적인 제목들을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의 책에 보면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링컨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고 우리가 존경하는 대통령입니다. 그는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예들을 많이 사용하는 남쪽 지역과 부쪽 지역이 전쟁을 벌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북군을 이끌고 남군과 전쟁을 치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남군과 북군을 비교해 보면 남군이 월등하게 우세합니다. 그리고 남군에는 리라고 하는 유명한 장군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봐도 북군이 이길 수 가 없어요. 그러나 결과는 북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링컨은 이렇게 자서전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전적으로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리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만 더욱 매어 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을 것dl 없었으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면 기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의지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어요. 그래서 북군이 승리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권력이나 물질을 의지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임하기 위해서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예배가 달라져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예배에 생명을 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매주일 드리는 이 예배가 정말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인가 하는 것입니다. 모택동이 중국을 통치 할 때 모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체포되거나 살해당했습니다. 아주 가혹한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시골에 농장을 운영하는 3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힘을 모아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분들은 여전히 주일이면 예배를 드립니다. 한번은 예배 때 공산당 간부가 와서 총을 빼들고 위협을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예배를 드리면 옙를 드릴 때 마다 한명씩 죽일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일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산당이 총을 빼들고 들어왔습니다. 예배드리자고 선동한 사람 누구냐? 앞으로 나와라. 그랬더니 예배석에 있던 장로님일 자진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장로님은 총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는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일은 그들은 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그 다음 주일 또 예배드렸고 또 한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예배 드릴 때 마다 한 사람씩 죽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예배를 위해서 한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세 달이 자났을 때 공산당도 더 이상 할 수 없으니까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유스럽게 예배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 예배를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때로 반은 졸다가 반은 딴 생각하다가 예배 시간 1시간이 지나가지 않습니까? 정말 그것이 생명을 건 예배인가 우리의 예배를 위해 한 사람이 매주 희생당한 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함부로 아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이 예배가 얼마나 엄숙하고 살아있는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가 아니 한국교회 예배가 이렇게 회복될 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나눔과 섬김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많이 끌어모으기 보다는 남은 섬길 수 있는 일에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앞장 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4 후퇴 때 우리가 압록강까지 올라가니까 중공군들이 밀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후퇴했는데 미치 후퇴하지 못한 분들이 흥만 부두에서 배를 타고 인천이나 부산으로 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큰 배가 정착을 했어요. 거기 타려고 하는데 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타려고 아우성 하니까 미군 헌병들이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난리가 났어요. 배에 가득히 탔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못 탔습니다. 태가 떠났을 때 부두에 남은 사람들은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었다. 그런데 그 배가 떠나는 순간 배에 있던 사람에 의해 배에 찬송가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로 살려고 아귀 다툼하고 그랬는데 배에 탄 사람 중에 크리스천도 많이 있었어요. 그들은 찬송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찬송을 부를 일입니까? 배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다 죽어갈 것이 분명한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손해보 더라도 우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해요. 그리스도인들은 어찌 보면 손해 보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나를 위해서 내 물질과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진정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고 하나님나라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손해 볼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손해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그럴 때 이 땅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우상을 던져버리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함으로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25 나라 사랑의 길 /느1:9-10 2015-10-28 10:06:56 read : 2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느 1: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951년
6.25 나라 사랑의 길 /느1:9-10 2015-10-28 10:06:56 read : 21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느 1: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1951년 1월 3일 이른 새벽 한국전에 참여한 영국 병사 데이비드 스트래쳔(David Strachan)은 경기도 고양시 인근 들판에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합니다. 그는 최전방 참호 속에 있었다 합니다. 갑자기 그의 코앞에 중공군이 불쑥 나타났고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총을 당겼다 합니다. 적병의 몸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참호 속으로 떨어졌다 합니다. 이 영국 병사는 자기보다 더 어려 보이는 중공군 병사가 바로 자기 밑에서 신음하며 4시간에 걸쳐 숨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합니다. 한국전이 끝난 후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 전역을 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런데 전역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영국 자택 침실에서 악몽을 꾸다가 그의 침실로 걸어 들어오는 생생한 어떤 인기척을 느끼고 깨어 일어났는데 60년 전 그가 죽인 중공군이 피 묻은 군복을 입고 그의 발치에 서 있었다 합니다. 그 후 상당히 오랜 시간 자주 스트래쳔은 이 중공군 병사의 방문을 받아야만 했고 이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한국 방문을 권하여 가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한국이었으나 그는 치료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고 그가 기대한 한국과 전혀 달라진 새로운 한국을 발견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는 전쟁과 주검, 배고픔과 전혀 다른 번영한 한국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합니다. 그런데 그의 한국 방문도중 하루는 벨트 버클이 고장나 가죽 수선 집에 들어갔다가 그가 참전 용사임을 알게 된 주인은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수선비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집을 나오면서 자기의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뭉클한 어떤 감동과 함께 자기도 모를 뜨거운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내가 결코 헛된 일을 위해 이 땅에서 피 흘려 싸운 것이 아닌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 중공군의 환영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다시 그를 괴롭히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더 타임즈 기자(앤드류 샐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한국 방문 경험을 회고하다가 문득 기자에게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주는 것(giving)과 사랑하는 것(loving)사이의 차이가 무엇이지 아십니까?" 그리고 이어서 자기의 질문에 스스로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둘 사이엔 차이가 없어요. 50년 전 나는 내 일생의 1년을 한국에서 바쳤어요. 나의 작은 공헌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잘 모르고 살았지요. 다시 찾은 한국을 둘러보며 환대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모든 것이 최신식이고, 멋지고, 기운차고, 세속적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번영하는 국가였습니다. 나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한테 감사하지 마세요. 내 인생을 가치 있는 인생으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이 영국 신사는 한국의 번영으로 그의 참전의 명분을 정당화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영국의 더 타임스지 서울 특파원 앤드류 샐먼(Andrew Salmon)이라는 기자가 쓴 기사라 합니다) 6월 달은 국가 보훈의 달로서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도 안 될 6,25 사변이 일어났던 뜻 깊은 달입니다. 우리 한국의 5천년 역사 가운데서 크고 작은 전쟁을 비롯하여 끔찍한 고난을 수없이 많이 당하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6,25와 같이 우리 민족에게도 처절했던 기억들과 영영 지울 수 없는 쓰라린 상처투성이의 갖가지 사연들을 남긴 사건은 일찌기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6.25에 대해서도 무서운 전쟁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6,25를 역사 속에 뭍혀 있는 비사로 여기며 너무 안일하고 나태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 메르스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문제점에 대하여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잊어버린다고 지적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 국민의 80% 가까이 되는 6,25 전후세대는 6,25 동란을 격지 않았으니 그렇다할 찌라도 더욱 안타까운 실정은 전쟁을 격은 기성세대까지라도 그 비극적인 사건을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고 무관심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의 수도인 수산 궁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유다인이었습니다. 느헤미야 이전에도 상당수의 유다 지식인들이 바벨론과 바사 제국의 관리로 봉직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유다 총독으로 파견된 것은 아닥사스다 1세(Artaxerxes Ⅰ, B.C. 464-424) 때였는데, 1차로 B.C. 445년경에 부임하여 12년 간 행정 업무를 관장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하여 자신에게 명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 심사숙고하여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제 그들이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일에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도우셔서 형통케 하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어떠한가를 교훈 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길입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6절). 사무엘도 민족이 살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길밖에 다른 뽀족한 수가 없기에 기도 하였던 것을 성경은 말씀 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삼상 7:5)고 합니다. 에스더처럼 " 죽으면 죽으리라 "는 자세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에 4:16)고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며 기도 하여야 합니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고 합니다. 공의는 성경에서 번영보다도 우선하는 가치입니다. 다시 6.25같은 비극이 이 땅에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단순히 축복과 번영만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이 땅의 백성들이 좀 더 공의를 갈망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민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6,25전쟁을 둘러싼 교회 동정을 기록한 문서들을 살펴보면 두 장소에서의 의미 있는 기도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전쟁 발발 후 불과 81일 만에 낙동강까지 북의 침략에 밀린 절대 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 300여명의 목사님들이 부산 대신동 초등학교에 모여 일주일 동안 금식하고 회개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장마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어 B29가 낙동강을 3일 동안 폭격하여 낙동강 전선을 적이 넘지 못한 일이 일어났고, 이어서 부산으로 피난 온 교역자 250여명을 수용했던 부산 초량 교회에서 여기에 숙식한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민족을 위한 또 하나의 구국기도회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나라 사랑을 기도로 나타내야 할 줄 믿습니다. 나아가 회개하는 길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었으나 항상 목이 곧아 우상 숭배로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에게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고 하시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받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거역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노라고 서약했습니다(수 24:16-18). 이것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바알과 온갖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한마디로 우상 숭배의 죄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고 하나님을 등 뒤에다 버렸습니다(왕상 14:9). 그 범죄의 대가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솔로몬이 끌어들인 바알 숭배로 인하여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같은 범죄를 하나님 앞에 깊이 자복했습니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느 1:6)였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열국 중에 흩어진 것은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니라 곧 나와 나의 아비 집에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죄를 자신에게 돌리며 회개 합니다. 이것은 겸비와 회개입니다. 에덴에서 최초의 인류는 범죄 후 하나님의 책망에 범죄의 원인을 남에게 전가했습니다.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고 말했고 남자는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 13)고 하였습니다. 그 이후 인류의 범죄 심리는 언제나 '나 때문'이 아닌 '남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내가 못 사는 것은 남이 내 몫을 더 많이 착취해 간 때문이요, 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사회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유다의 모든 죄가 '나와 나의 아비 집'의 범죄임을 자복하였습니다.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느 1:7)라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았음을 자백했습니다. 계명은 히브리어로 '미츠바'인데 이것은 율법(토라) 중에서도 모든 법의 기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계명은 역시 십계명입니다. 계명은 종류가 많고 구체적이며, 상호 동등하고 독립적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정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 속에 다 들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마 22:37-40).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계명은 초기 기독교회가 윤리적 교훈으로 수용하여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율례는 히브리어 '호크'나 '후크'에서 번역된 말로서 규정된 법령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으로서 형법이나 민법 등 송사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에 근거하고 있으며(신 4:5, 14; 5:31),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규례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나 '다드', 또는 '추카'에서 번역된 말로서 의식법이나 위생법, 또는 논쟁법과 같은 일시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법규이며, 이 법규를 변화무쌍한 상황에다 계명(말씀)을 적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규례가 제정되면 어느 일정 기간 동안은 그 규례를 철저하게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시편에서는 규례에 순종하는 것을 외부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것이 곧 특권이라고 가르칩니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시 119:55, 56)라고 합니다. 계명과 율례와 규례는 모두 법도(ordinance)와 같은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동일한 내용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민족과 자기 조상의 집이 포로로 잡혀간 이유를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지 않은 데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회나 국가가 패망하는 원인도 전통과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를 고백하며 기도 하여야 합니다. 민족의 살길은 어느 특정인 어느 한 사람의 회개보다는 거 교회적 거 민족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운동과 회개하며 기도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줄 믿습니다. 여호와만 섬기며 도움을 구하며 동행하는 길입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4)라고 합니다. 기도하며 회개하는 참 모습은 오직 여호와만 우리 주님만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합니다. 바로 이러한 신앙이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6)고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 6:1-3)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이 살길도 전적인 여호와의 도우심과 동행하는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이스라엘과 형편이 비슷한 우리 한국도 여호와께서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 주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도 벌써 옛날에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고통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엔 UN 안전보장 이사회를 통하여 북한의 행위를 침략으로 규정하여 즉각 유엔 UN 16개국을 파병하여 한국을 도와주심은 분명코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속에도 이런 일은 일어납니다. 어니스트 섀클턴은 남극점 정복 대신 남극 대륙 횡단을 계획하고 27명의 대원과 함께 범선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세 번째 남극 탐험 장정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탐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실패', '위대한 항해'라고 부른 다는 것입니다. 그를 위대한 탐험가로 평가를 한다 합니다. 왜 그러는 것일까요? 새클턴 팀은 남극점에서 155km 떨어진 장소에서 식량부족으로 남극점을 향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 누구보다 남극까지 다가갔지만 더 이상 강행을 할 경우 수많은 동료들의 생명을 잃게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섀클턴을 포함한 27명의 대원이 634일간 영하 30℃를 오르내리는 남극의 빙벽에 갇히는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섀클턴을 비롯한 대원들은 이런 일기를 남겼다 합니다. "섀클턴은 은밀히 자신의 아침 식사용 비스킷을 내게 내밀며 먹으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내가 비스킷을 받으면 그는 저녁에도 내게 비스킷을 줄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 세상 어느 누가 이처럼 철저하게 관용과 동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죽어도 섀클턴의 그러한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 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그 한 개의 비스킷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비스킷 하나는 바로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한데 그것을 나눈 것이라는 것입니다. 추위에 떠는 대원에게 자기 몫의 우유를 나누어주었다 합니다. 그러기에 섀클턴의 대원이라는 것이 축복이라고 부하들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자기가 믿어온 대원 하나가 잠들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대원의 식량 주머니에 손을 뻗치더라는 것입니다. 새클턴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가만히 지켜보았다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식량주머니를 열어 자기의 비스켓을 그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자기를 희생하자 대원들도 서로 이렇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살 희망이 없어 보였다 합니다. 그러자 남경 포경기지, 고래를 잡는 선원들이 있다는 곳으로 몇 명의 대원과 함께 6미터가 조금 넘는 소형 선박을 타고 풍랑이 거친 바다를 건넜다 합니다. 해발 3000m에 달하는 얼음산을 맨손으로 넘었다 합니다. 약 1290km에 달하는 죽음의 항해를 16일 만에 넘어 고래잡이 선원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길을 뚫고 예인선을 끌고 와서 남은 대원을 모두 구조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탐험 끝낸 후 아내에서 보내는 편지에 "얼음산을 넘을 때, 우리 일행은 분명 세 명인데 난 네 명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생각돼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여행 내내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셨음을 나는 믿는다.”라고 기록을 했다 합니다. 그런데 새클턴과 그 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진정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한 마디로 이야기 하라면 자기희생이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는데 그때 이상한 힘이 생겼고, 실제로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정 6, 25 사변은 우리 민족에게 수많은 이산가족이 생기게 한 가장 비극적인 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이면에는 반드시 새로운 역사의 교훈과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함게 한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사화복 나라의 흥망성쇠는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나아가 우리 민족의 꿈에도 소원인 평화통일을 위하여 기도하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도우심을 믿고 구하며 동행하며 이 땅위에 다시는 6,25와 같은 전쟁이 재발되지 않도록 힘을 모으는 모두가 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6.25 동란의 기독교적 이해/ 렘1:13-16
6.25 동란의 기독교적 이해 렘1:13-16 6.25 동란을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새롭게 이해하면서 조국을 위한 바른 국가관과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적 각오를 다짐해보는 시간을 가 지겠습니다. 본문은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는 것을 목도한 선지자 중에(에스겔,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서 예언을 함) 예레미야는 유다 땅에 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에 대하여 예언을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가 멸망할 때에 슬픔으로 예언을 하였기 때문에 \\\\\\\'눈물의 선지자\\\\\\\'라고도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km 떨어진 성읍 아나돗 출신인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여호와의 명령에 의해 결혼하지 않고 독신 으로 살았습니다(16:1-2). 그가 두 가지의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는 살구나무 환상으로(11-12), 히 브리어로 살구나무는 \\\\\\\'사케드\\\\\\\'라고 하며, 지키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는, 북에서 기울어진 끓는 가마(13-16)로, 북방(바벨론)에서 재난이 임 할 것을 뜻합니다. 끓는 가마는 고통 받을 유다를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환상을 보면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의 미래를 놓고 우상을 멀리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 서서 회개할 것을 촉구한 선지자였습니다. 우리의 북한 핵문제와 6.25를 상기하면서 조국이 처한 정황과 성도의 각 오를 새롭게 정립하고 다짐해봅니다. 1. 6.25동란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6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데 이어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일명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시키자 한국을 공산화하 기 위해 소련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유엔은 즉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공격을 \\\\\\\'평화를 파괴하 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이 불응하자 미·영·호주 등 21개국(의료 지원국 5개국 포함)이 UN군을 창립하여 한 국을 지원하였습니다. 전쟁초기 한국군보다 월등한 화력과 병력( 한국군 의 약 4배)을 보유한 북한군은 한달 여만에 한국의 4분의3을 점령하였으 나 9월15일 한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주를 거듭하여 압 록강까지 후퇴하였습니다. 그러나 10월16일 중국이 갑자기 10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북한군을 지원하자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38도선 상에서 대치상태를 보이다가 1953 7.27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정전되었던 것입니다.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무모한 남침전쟁 도발을 자행하여 660만여명의 사 상자(군인 230만,민간인 430만여명)를 발생시키고 공장(900여개)· 주택 (60만여동)· 산업시설과 전국토의 4분의 3을 초토화시켰습니다. 이 무서운 비극의 원인을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가장 큰 신앙 사상적 원인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제대로 찬미하지 않은 죄때문이었습니다. 일제의 탄압에 불굴의 의지와 믿음의 순종으로 항거하며 싸웠던 소수의 신앙자를 보시고 해방을 주셨지만 이내 기독교 사상은 일제 때부터 변질 된 자유주의와 보수신앙 간에 갈등이 확산되면서 교회는 새로운 비극을 맞게 되었습니다.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본군국주의자들의 압제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 진리에 위반하지 않은 본의를 이 해하고 신사 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이어 신사 참배 를 하여 비상시국 하에 총후 황국 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기함. 우를 성명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러했습니다. 조선예수교 단체적 범죄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와 순교적 신앙인들의 충성을 보시고 1945.8.15에 민족적 출애굽의 영광스런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범죄를 회개치 않은 신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성도들은 제 2의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초에 한상동 목사님 은 \\\\\\\'대한교회에\\\\\\\'라는 제목으로 예언자적인 글을 파숫군지에 실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과일(過日, 지난 일)의 모든 죄를 솔직히 자복하 고 눈물을 흘려 통회하면 긍휼이 풍성하신 호와께서 용서하시려만은 해 방을 주시고 독립을 주신 오늘에도 회개는 고사하고 죄감이 전무하고 회 개를 거부하니 어찌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리요..여호와 반듯이 진노하시 리라\\\\\\\' 고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후대에 사람들은 민족상잔의 시기에 교회가 분열되고 특히 고신파의 분 열은 정당화 될 수 없다(이만열)는 식의 비판으로 진리보다 사회 속의 교회 일치를 앞세우는 사회주의 복음사상은 일제의 잔여 사상으로 그대 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심판은 남아 있습니다. 교 회의 본질적인 요소가 희석되면서 물질과 문화주의로 빠져버린 한국교회 는 속히 본래 기독교의 모습을 회복해야 할 줄 믿습니다. 시류에 따른 가치관에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유럽교회의 몰락을 그대로 따르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6.25동란의 근거는 2. 유물론주의 공산사상의 결과입니다 유신론 사상과 무신론 사상의 전투였습니다. 북한은 소련군을 힘입고 남 침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엄청난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1945년 12 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영.중.소 4개국이 5년간 한국 신탁통치 안 을 결정하였으며 그것은 휴전선(1953.7.27)이 생길 조짐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 총선이 열리고 5월 30일 최초 국회가 열리 며, 7월 17일에는 헌법을 공포하여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박사가 민선으 로 당선되었습니다.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세계 선포되었습니 다. 이런 중에 공산주의 사상은 무섭게 민족 정신을 와해하고 혼란 중에 유신사상의 기독교가 특별히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겨레는 공산 사상이 오기 전에 이와 같은 민족상잔이 있을 리가 없 었는데, 무서운 유물론 사상 때문에 6.25는 어쩌면 외세의 사상적 영향 으로 찾아온 재앙이었습니다. 3. 진리 운동의 환난기 환난을 당하자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맥아더 장군을 통해 인천상륙 작전의 성공을 주셨습니다. 그 환난 시절에 피난지인 부산, 삼 일교회에서 초교파적으로 부흥회를 통하여 회개의 역사로 많은 신자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하여 참 신앙의 회복운동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당한 영적 시험은 6 . 25 동란이 끝난 후 외국의 구호물자가 유 입되면서 교회는 내적 문제로 진통을 겪어야 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 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신앙생활이 목적이 아니라 구호물자를 얻기 위해 교회에 출석하는 가난한 교인들이 많았고, 둘째, 구호물자의 불공평한 분배는 교회의 내분을 불러왔으며, 셋째, 구호물자가 중단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물질적 욕구 때문에 교회 에 출석하던 신자들은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감으로써 교회의 공동화 현 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의 성장을 \\\\\\\'밀가루 부흥\\\\\\\'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를 예루살렘 교회가 초창기에 경험하였습니다. (행 6:1-2). 진리 운동은 역시 물질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대교회의 상식은 그 날로 되돌아갑니다. 환경주의로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나 진작 사람의 마음을 잡기에는 결코 신령과 진리 아니고 는 불가능한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에서 끓는 가마처럼 오늘의 말세가 적그리스도의 영이 온 천하 에 뒤엎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국경이 없으나 조국은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처한 조국을 위해 기도할 때 예레미야처럼 눈물로 조국을 위해, 진리를 사모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963년도 이스라엘의 6일 전쟁에서의 승리는 전쟁 물자도 그 어떤 힘도 아니고 오직 신앙과 조국을 위한 애정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들어온 지 120년째가 됩니다. 많은 학교와 병원을 지으며 세상 의 빛된 생활을 잘 해오다가 지금은 교회가 물량주의로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하는 조짐을 봅니다. 우리가 북방의 끓는 가마를 볼 수 있어야 하며 마귀의 사상과 환난을 대비하며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굳세게 지난 역사 를 모본으로 삼고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6.25의 전후의 역사는 하나님이 섭리하신 것으로 봅니다. 오늘도 하나님 이 우리의 주인이 되시고 진리가 우리의 처세가 되어 평화로 승리하는 우리 국가요 교회가 되고 우리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25 설교 /잠14:34 2012-09-11 14:18:09 read : 21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 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내일은 6.25동란 발발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만한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가장 큰 첫 번째 이유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적
6.25 설교 /잠14:34 2012-09-11 14:18:09 read : 21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 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내일은 6.25동란 발발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만한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가장 큰 첫 번째 이유는 물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적화통일의 명분을 앞세운 북한 공산정권에 의한 남침 전쟁에서,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분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매년 6월 25일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조국을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순국선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는 날인 것입니다 먼저 6. 25전쟁의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4.3 제주 사건과 10.19 여순반란사건으로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웠으나, 북한은 소련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로 비교적 안정된 가운데 공산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미국은 에치스라인(미국태평양 방위선에서 한반도와 대만을 제외한다)을 설정하여,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미국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북한에 심어 주고, 김일성의 적화야욕에 불을 붙여주게 되었으며, 중국은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나고, 1949년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북한, 소련, 중공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하나가 됩니다. 1949년 이후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남침 계획을 여러 차례 재가 받으려 했다가 번번이 무산되었지만, 그러나 김일성의 강력한 의지를 꺾지 못하고 스탈린은 결국 이를 승인하게 되며, 1950년 5월 모택동은 전쟁발발 시 미국이 참전하면 중국군을 파병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나 남한은 전쟁발발 하루 전 북한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비상경계를 해제하고 전방 사단장까지 참석한 장교 파티를 갖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합니다. 이렇게 하여 결국 6.25 동란이 발발하게 되었는데, 전쟁초기 우리나라는 치욕적인 패배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유엔군의 참전과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을 거두면서, 전세가 역전되어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중공군의 참전으로 안타깝게 다시 후퇴를 하게 되고, 급기야는 휴전에 이르게 됩니다. 6.25 동란으로 인한 피해 상황은 참으로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인하여 발생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지기까지, 수많은 인명피해와 국가적 손실을 남겼습니다. 6.25동란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한국군 군인:전사-149,005명, 부상-710,783명, 실종-132,256명 민간인:사망-373,599명, 부상-229,625명, 행방불명-303,212명, 계:사망-522,604명, 부상-940,408명, 실종-435,468, 총계-1,898,480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은 인민군:전사-294,000명, 부상-226,000명, 실종-120,000명, 민간인:사망-406,000명, 부상-159,400명, 행불-630,000명, 계:사망-700,000명, 부상-385,400명, 실종-750,000명, 총계-1,835,400명, 중공군 피해는 900,000명이라고 합니다. 북한 독재자 김일성은 무모한 남침전쟁 도발로 수십만 명의 고아와 전쟁미망인을 발생시키고, 재산상의 피해는 당시의 돈으로 약 23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 국민의 생활 터전 및 산업시설과 전국토의 4분의 3을 초토화시킨 6.25 동란은, 우리 민족과 이 강산에 전대미문의 참사를 남겼고, 그 상처는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으며, 전쟁의 위험은 지금도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미 양국군이 오래전부터 실시한 ‘워 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면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1993-1994년 이른바 ‘1차 북한 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만든 전쟁 수행 시나리오는, 폭격기를 동원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경우, 북한이 전면전으로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당시 미군은 주한미군 17,000명과 일본 주둔 미 해병대 15,000명을 투입할 계획이었습니다. 이럴 경우 개전 24시간 안에 군인 20만 명을 포함해 수도권 중심으로 민간인까지 약 150만 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한국군이 개전 초기 5일 이내에 예비군 400만 명을 소집해 전선에 투입하고, 미국 본토와 전 세계에 흩어진 미국 육군 등 130만 명을 한반도에 집결시킨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렇게 세계 최고의 화력과 막대한 병력을 집중시키면, 개전 1주일 이내 남북한 군인과 미군을 포함해 군 병력만 최소 100만 명이 사상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민간인 피해는 더 극심했습니다. 개전 24시간 이내에 수도권이 북한 장사정 포탄의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되면, 150여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경제적 손실도 엄청나서, 1994년 당시 화폐가치로 3,000억 달러의 피해가 예상되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의 피해 예측 시뮬레이션이 나오자,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과 미국 대사가 백악관 에 영변 핵시설 폭격을 중지해야 한다는 긴급 건의문을 보냈고,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특사로 급파하면서, 극적으로 전쟁을 모면하고 북·미 협상의 돌파구를 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를 상정한 ‘워 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한 피해 산출은 2004년 우리 군이 다시 실시했습니다. 이때는 10년 전 피해 추정치보다 1.5배 이상 늘어난 전쟁 피해가 예상되었습니다. 즉 한반도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에, 서울 수도권 시민과 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한 사상자가, 1994년 추정치 150만 명에서 230여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또 잿더미로 변한 나라의 재산 피해도 1조 달러에 이르러 한국은 사실상 재기하기 힘든 후진국으로 전락한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 연구가의 조사 보고에 의하면, 지난 5,500여 년 동안 지구상에는 15,000번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37억에 달하며, 8,000번의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으나 조약내용이 지켜진 것은 평균 2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윌(Will)박사와 아리엘 듀란트(Ariel Durant) 박사에 의하면, 지난 3421년의 문명사 동안 전쟁을 치르지 않은 기간은 불과 286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지구촌 역사에는 92%가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 20세기는 전쟁의 세기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1904년 러일 전쟁 이래,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1950년 한국 전쟁, 그 후 월남 전쟁, 중동 전쟁,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란과 이라크간의 8년 전쟁, 영국과 아르헨티나간의 포클랜드 전쟁, 그리고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치르게 된 걸프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1차 세계 대전으로 사망자 8,543,515 명과, 부상자 21,219,452명의 피해를 보았고, 2차 대전으로 전사자 2,700만 명, 민간인 희생자 2,500만 명이 나왔습니다. 지난 20세기에만도 전쟁과 혁명으로 인해서 약 9억 정도의 인명이 살상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만행은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인이 가장 극악한 죄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전쟁에 아무 책임도 없는 민간인들이, 직접 전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 군인들보다 더 많이 죽고 다치며, 그들의 재산이 파괴되기 때문에, 전쟁은 한 두 사람을 죽이는 살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권을 유린하고 정의를 파괴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 가운데 전쟁만큼 큰 것은 없습니다. 전쟁무기로 죽이고 상처를 주는 것 외에도, 전쟁 중에는 평상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간, 납치, 협박, 모독 등의 인권유린이 이뤄지고 정의, 정직, 예의가 다 무력해져서, 인간이 짐승보다 더 못한 짓을 자행할 수 있으며, 인간의 가장 저급하고 비열한 단면이 거침없이 적나라하게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며, 특히 그리스도인은 모든 힘을 다 기울여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6.25 동란을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해보면서, 조국을 위한 우리의 신앙적 각오를 굳게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1. 6.25동란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6. 25전쟁은 크게 국제적 요인과 국내적 요인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먼저 국제적 요인에는 첫째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들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공산화 팽창정책을 펼쳤고, 이에 자본주의 이념을 가진 미국은 소련을 억제해야만 했습니다. 동쪽에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소련은 한반도를 공산화시키려 한 반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계로 돌입할 것을 예상하고, 절대로 소련에게 전진 항구를 내줄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6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데 이어, 한국과 대만을 극동방어선에서 제외시키자, 한국을 공산화하기 위해 소련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남침을 감행하였습니다. 유엔은 즉시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공격을 ‘평화를 파괴하는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원상복구’를 요구하였으나, 북한이 불응하자 미·영·호주 등 21개국(의료 지원국 5개국 포함)이 UN군을 파견하게 됩니다. 전쟁초기 한국군보다 월등한 화력과 병력(한국군의 약 4배)을 보유한 북한군은 한 달여 만에 남한의 4분의3을 점령하였으나, 9월15일 한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패주를 거듭하여 압록강까지 후퇴하였습니다. 그러나 10월16일 중국이 갑자기 10만여 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북한군을 지원하자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38도선 상에서 대치상태를 보이다가 1953 7.27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정전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무서운 비극의 원인을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일제 치하였던 1938년 9월 10일 제 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는, 군국주의자들의 압제에 못 이겨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의 장자 교단임을 자처해온 장로교는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제27회 총회를 열어 신사참배를 공식 결의했습니다. 이날 총회장 홍택기는 신사참배 반대자들을 감옥에 가두어 총회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또 반대는 묻지도 않고 만장일치로 신사참배를 결의한 후 아래와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했습니다. “우리들은 신사가 기독교신앙에 위반되지 않는 본지(本旨)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대국적으로 보아 국가의 의식인 것을 자각하고 이에 신사참배를 선서함. 신사참배를 솔선하여 이행하며 더 나아가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에 참가하여 시국 하의 총후 황국신민으로서의 적성(赤誠)을 다하기를 기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 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러했습니다. 그 외에도 성결교, 감리교, 천주교 등에서도 신사참배를 모두 결의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신사참배 강요는 일제가 일어 상용, 창씨개명 등에 이어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인데, 일본의 전래 민간신앙인 신도(神道)는 자연이나 조상, 영웅, 역대 천황 등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多神) 종교로, 메이지시대 이후로 천황제와 함께 군국주의 침략정책의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38년 12월 12일 감리교의 양주삼, 김종우, 성결교의 이명식, 장로교의 홍택기, 김길창 등 지도급 교역자 5명으로 구성된 ‘신궁참배단’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세(伊勢)신궁 등을 참배하였으며, 일부 목사들은 부산 송도 앞바다에서 일본 천조대신(天照大神)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 장로교는 이듬해 1939년 제28회 총회에서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 예수교장로회 연맹을 결성하였으며, 일본의 침략전쟁 전승 기도운동과 시국강연회·모금운동을 벌였으며, 헌금을 모아 ‘조선장로호’라는 비행기를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큰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순교적 신앙인들의 충성을 보시고 1945.8.15에 민족적 출애굽의 영광스런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범죄를 회개치 않은 신학자들과 목사들 그리고 성도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기 시작했습니다. 1949년 초에 한상동 목사님은 ‘대한교회에’라는 제목으로 예언자적인 글을 파수군 지에 실었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과일(過日, 지난 일)의 모든 죄를 솔직히 자복하고 눈물을 흘려 통회하면,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께서 용서하시련만, 해방을 주시고 독립을 주신 오늘에도 회개는 고사하고 죄감이 전무하고 회개를 거부하니, 어찌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리요. 여호와께서 반드시 진노하시리라.”고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하였습니다. 2.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공산사상의 결과입니다 6.25 동란은 어떤 면에서 유신론 사상과 무신론 사상의 전투였습니다. 북한은 소련군을 힘입고 남침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당시에 수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미.영.중.소 4개국이 5년간 한국 신탁통치 안을 결정하였으며, 그것은 휴전선이 생길 조짐이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에 남한에서 총선이 열리고 5월 30일 최초 국회가 열리며, 7월 17일에는 헌법을 공포하여 초대 대통령에 이승만 박사가 민선으로 당선되었습니다.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세계에 선포되었습니다. 이런 중에 공산주의 사상은 무섭게 민족정신을 와해하고 혼란 중에, 유신사상의 기독교가 특별히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겨레는 공산주의 사상이 아니었더라면 그처럼 비참한 민족상잔이 있을 리가 없었는데, 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결국 6.25 동란이라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일은 6.25동란 62주년 되는 날입니다. 어떤 점에서 인류사는 전쟁사라고 할 만큼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욥 7:1에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고 하여서, 인생사는 전쟁사임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역사학자는 25년을 주기로 해서 지구의 전쟁은 계속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전쟁은 죽은 자에게만 끝난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야기 한국사’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이조 5백 년 동안의 그 구역질나는 역사, 모략과 음모, 사색당쟁으로 점철된 왕조가 어떻게 5백년씩이나 이어져 왔는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일제에 나라가 망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우리의 범죄 역사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진노가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사 해방을 주시니까, 또 좌우익으로 나누어 싸우고, 거기다 교회도 싸우고 분열하는데 앞장을 서다가 6. 25동란이 일어났습니다. 그 처참한 동족상쟁의 전쟁 중에 울고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시고, 폐허의 잿더미 위에서 오늘날 이만큼 한 경제 성장의 축복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참혹한 전쟁 이후 60년 동안 이 땅에 평화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60년 동안의 전쟁 없는 평화와 물질의 축복을 받은 우리 민족이, 오늘 여호와 하나님의 목전에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정치인들은 당리당략을 위한 싸움에 영일이 없으며, 심지어 지금 국회에는 종북 주사파 정치인들까지 들어와 있는 형편이고, 국민들은 이제 조금 살만 하니까 사치하고 음란하고 방종을 일삼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 왕따 문화, 자살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보험금을 노려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저수지에 빠뜨려 숨지게 한 비정한 아내가 있는가 하면, 경찰관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어머니를 숨지게 하고, 며칠 전에는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와 자신의 친동생 그리고 처남을 연쇄 살해한 인면수심의 흉악범죄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몇 십 년 전부터 미국에서 시작되었던 ‘스와핑 클럽’이라고 하는, 부부를 교환하여 서로 관계를 맺는 천인공노할 일들이 이 땅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라는 말은, 도덕적인 의로움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의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는 말은, 한 개인의 죄가 단순히 그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사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공자는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박윤선 박사는 “역사는 죄 지으면 망한다는 하나님의 힘 있는 설교이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지으면 개인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사업도 망하고, 국가도 망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죄를 멀리하여, 가정도 흥하고, 자식도 흥하고, 사업도 흥하고, 우리나라와 우리민족도 흥하고, 한국 교회도 흥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6.25 애국의 은혜 /시137:1- 2013-07-19 13:26:40 read : 21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발밑의 흙에서 시작된 애국의 숨결에 동네에 UN기념공원이 있어서 현충일뿐 아니라 현장학습부터 학교 사생대회까지, 심지어는 중학교 졸업사진 촬영 장소마저 UN묘지와 그 옆의 평화공원이었을 정도로 굉장히 친숙한 곳이지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UN묘지에 들어가서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생각해
6.25 애국의 은혜 /시137:1- 2013-07-19 13:26:40 read : 21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발밑의 흙에서 시작된 애국의 숨결에 동네에 UN기념공원이 있어서 현충일뿐 아니라 현장학습부터 학교 사생대회까지, 심지어는 중학교 졸업사진 촬영 장소마저 UN묘지와 그 옆의 평화공원이었을 정도로 굉장히 친숙한 곳이지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UN묘지에 들어가서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고 하며 단지 연못 위를 평화롭게 떠다니는 오리를 신기해하며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 다니기만 했을 뿐이었는데 중학생 때 뜨거운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분수에서 더위를 식히기 위해 평화공원을 찾아가 상쾌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물놀이를 하다 보니 얼떨결에 평화공원에서 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까지 뛰어나와 버렸고 물에 젖은 옷을 짜내고 술래잡기 탓에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쫓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 찰나 별안간 아저씨 한 분께서 다가와 "조용히 좀 할 수 없겠니? 지금 너희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딘지는 알만한 나이쯤은 되지 않았어? 라고 말씀하시었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러운 꾸짖음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왼쪽에 커다란 철문이 있는 UN묘지 입구였고 그 입구를 지키시던 경비 아저씨께서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으신 분들이 이 땅 밑에 잠들어계시니 조금만 조용히 하자는 말씀을 덧붙이셨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내리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땅의 진정한 의미가 파도치듯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생각 없이 뛰어놀고, 예쁜 꽃들의 자태에만 감탄하곤 했던 그곳은 1950년부터 시작된 비극에서 희생되었던 수많은 영혼이 흙 밑에서 숨 쉬고 있는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밟고 있는 그 흙은 몇 십 년 전 어느 군인의 군화 속에서 쏟아져 나왔던 흙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목숨의 연명을 위한 땅굴을 파며 퍼 나르던 흙일 수도 있을 것이며, 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이 무덤 속으로 떨어뜨리던 눈물 섞인 한 덩이의 흙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간, 너무나도 부끄러워졌고 학교에서 또 집에서 항상 듣는 순국선열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경비 아저씨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과를 드리는 동시에 잠들어계시는 수많은 분께도 마음속으로 사과드렸다합니다. 밟고 있는 흙 속에서 그분들의 숨결이 새어나오는 것 같아 물에 젖어 모래알이 덕지덕지 붙은 신발을 신고 있는 발이 창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합니다. 평소 주위의 많은 곳에서 민족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는데 학교에서 매년 빠지지 않고 실시하는 호국보훈 교육부터 시작해서, '포화 속으로', '고지전' 등의 영화까지. 또한 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항상 들었고, 영화도 모두 보았지만 돌이켜보면 배운 것들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것입니다. 중학생 때의 그 여름날을 떠올리며, 지금 서 있는 땅 또한 그때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주신 분들 덕분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늘 감사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서도 남주인공의 잘생긴 얼굴이 아닌, 그 얼굴에 묻은 흙을 바라보며 저 흙이 세월을 건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운동화에 묻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학교에서 호국보훈 영상을 보여주면 가족의 시체와 군모 위에 흙을 뿌려야 했던 유가족들의 눈물을 함께 흘리게 되었다합니다. 진정한 애국심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다고 하며 당장 서 있는 흙이 많은 이가 흘렸던 피와 눈물이 섞인, 대한민국의 흙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흙에서 나오는 숨결은 약 60년의 세월 동안 더는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지켜보는 수많은 순국선열의 기쁜 꿈이 담긴 숨결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는다면, 바로 거기에서부터 애국은 시작되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현충일 추념 '제24회 국제백일장' 입상작 중·고등부 산문 장원 백민주) 6월은 현충일과 6.25 사변일이 있어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애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상각하게 됩니다. 애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을 합니다. 또 다시 6.25를 맞으며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적인 애국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애국은 조국을 위해 우는 일임을 교훈 받게 됩니다. 유다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하고, 이 바벨론은 다시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망하는 역사의 격동기에 살았던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옆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부족함 없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을 그 때에 친척 '하나니'를 통해서 조국 유다와 예루살렘의 비참한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느1:4)"했습니다. 자신 때문, 가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과 동족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울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도, 예수님도 조국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사로 잡혀간 자리에서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이스라엘의 처연한 모습을 봅니다.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온 바벨론의 정복자들은 그들을 강변으로 끌고 와 강변에 야영시키면서 가혹한 일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곳은 흑암만이 있으며 오직 군사들의 채찍과 고함 소리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박하게 된 강가가 바로 '그발 강'(겔 1:3)과 '을래 강변'(단 8:2)이었고 포로로 잡혀온 백성들은 고역에 시달리다가 강변에 모여서 과거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그를 맘껏 경배하고 찬양하며 그와 함께 즐거움을 나누던 일이나 철따라 내리는 우로를 따라 풍성하게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며 기쁨의 노래를 부르던 과거를 그리며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특별히 고향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모셔진 성소에서 절기마다 드리는 제사의 기쁨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사모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고향에 돌아가기를 소원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으로 주신 언약의 땅 예루살렘을 향한 그리움의 눈물이었으며 이방 나라의 포로로 잡혀 온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한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한때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열방을 다스리던 영화로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 파셔서 가나안에서 쫓겨나 이방 나라의 노예가 된 상태였던 것입니다. 언약에 따라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땅을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언약을 파기하므로 도로 빼앗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슬픔은 이방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 이스라엘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버린 이스라엘은 깊은 슬픔 속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지난날들을 회상하면 나라를 빼았기고 언어도, 문화도, 양심도 송두리채 짓 밞힘을 당했던 비극의 큼이 가슴을 짓누르기에, 뜻이 있고 생각 있는 백성 이라면 이 민족의 역사 앞에 눈물 지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민족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북녘 땅에는 자유를 모두 빼았기고 많은 생명들이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으니 같은 피를 이어 밭은 동족으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금 할 길이 없어 눈물지우기도 합니다. 이러한 조국을 위하여 눈물 지우는 것이 애국인 줄로 믿습니다, 애국은 단순히 우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나이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하는 일임을 교훈 받게 됩니다. 느헤미야도 조국, 동족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단순히 울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느1:4)"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회개의 기도였고, 민족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우리나라도 6.25 전쟁 때, IMF와 같은 경제적인 위기 때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골방에서 산에서, 토굴에서, 기도원에서 밤을 지새우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무엘처럼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나 중심 기도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시온을 기억하고 울어야 했던 이유는 하님을 반역하고 패역한 죄 값을 받아야 하는 서러움을 자복하며 회개하는 기도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패역한 길로 갈 때마다 하나님의 강한 이방 민족을 막대기로 사용 하시어 저들을 징계 하신 것 입니다. 징계를 받고 있는 백성을 위로 한 음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시온에 거주하는 내 백성들아 앗수르가 애굽이 한 것처럼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오래지 아니하여 네게는 분을 그치고 그들은 내 진노로 멸하리라 하시도다(사 10:24-25) 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자기 백성에게 진노의 막대기를 드시나 저들이 회개하면 그 사용하시던 막대기를 꺽으셨습니다. 지난날에 우리 선배들도 나라를 빼앗기고 이국땅에서 조국을 생각 하며 울며 기도해야 했던 것입니다. 회개의 운동이 진정으로 나라를 구원 하는 운동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원수 때문이 아니요. 그 민족의 죄가 관영 할 때 그 죄 값으로 인해 민족이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언 14:34)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백성은 망합니다. 사울 왕이 회개 못하고 망했습니다. 헤롯왕도 회개 못하고 죽었습니다. 바로 왕도 회개 못하고 망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고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는 회개하여 살아있는 믿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개인이고 국가고 회개하면 살고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회개하는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회개 운동은 이민족을 한 반도의 수난에서 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하되 민족 양심 회복을 위해 기도 해야 합니다. 모세는 민족 양심의 가지고 산 위대한 산 표본입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고 합니다. 모세는 자기 민족이 당하는 학대와 고초를 생각 할 때 바로의 궁궐 속에서 먹는 기름진 음식이 모래알 씹는 것 같았고 자기 백성이 헐벗고 착취당하는 모습을 생각할 때 푹신한 잠자리가 송곳방석 같이 느꼈기에 내일의 영화도 헌신짝처럼 내던질 수 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자기 이로울 때는 애국자처럼 떠들고 막상 자기 일신상에 어려움이 오면 떠나고 맙니다. 인간에겐 다 각각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는 욕망이 있으나 문제는 그 본능과 본심을 숨기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고사가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 날 왕과 왕후 그리고 재상 세 사람이 앉아서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알리지 않은 자기만의 비밀스런 얘기를 툭 터놓고 한 가지씩 얘기하기로 했다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 사람이 각각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병풍 속에 그려져 있는 금계가 소리치고 울 것이라고 했다합니다. 왕이 입을 열었다합니다. "나는 이 나라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고 이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내 아래 있는 것들이지만. 때로 관민들이 나한테 좋은 선물을 가져다주면 내 마음이 심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병풍 속의 금계가 울었다합니다. 재상이 입을 열었다합니다. "나는 이 나라의 통치자로 내 위에 한 사람만 제외하고는 다 내 아래 있지만 매일 저 왕좌를 바라볼 때마다 나도 한 번 저 자리에 앉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이든다"고 말하자 역시 병풍 속의 금계가 울었다합니다. 왕비도 입을 열었다합니다. "나는 한 지아비를 섬기는 사람이지만 어전 회의에서 가끔 문무백관들 틈에 젊고 건장한 신하가 있으면 저 사람과 깊은 교제를 나눠봤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역시 병풍 속의 금계가 울더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제일 거룩하고 청렴결백하고 가장 애국 애족적인 인사인 것으로 자신을 위장하나 밝고 건강한 개인 생활과 사회가 되려면 위선의 탈을 벗고 진실을 찾는 것이라 합니다. 거울을 보아야 얼굴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진실 앞에 서야 자신의 왜곡된 인생과 생활을 교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라야 바른 가치관을 남길 수 있습니다. 양심이 회복되어야 애국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기도 하는 모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성경적인 애국은 나라를 위해 눈물 흘리며 회개하며 기도 하는 일이며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을 위하는 일임을 교훈 받게 됩니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하는 시인의 눈물은 단순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신앙의 눈물입니다. 시인은 어떤 것보다도 자신이 예루살렘을 기뻐하며 사모함을 고백하며 다짐하며 만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혀가 입천장에 붙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을 상징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의 예루살렘에 대한 고백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할 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영광 제일 중심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 하여야 합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님이 독립운동하다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합니다. 그가 검사 앞에 섰을 때 독립 운동은 누가 시겼나?라고 묻자 시키기는 누가 시켜 하나님이 시키셨지 라고 대답하였다합니다
6.25 전쟁과 메르스/ 대하28:8-15/ 2015-06-21
우리나라에 6.25 전쟁과 메르스가 발생한 이유 대하28:8-15 이번 주 목요일인 6월 25일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당시에 살아 계시던 분의 증언을 들어보면, 열 살이었던 그는 매일 동네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동네는 워낙 골목이 비좁아서 넓게 퍼져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랫동네와 윗동네가 전쟁놀이를 시작하면 힘 있는 형님들이 앞장서서 싸웠고, 그와 같은 조무래기들은 그저 형님들 뒤를 따라다니며 “와, 와!” 소리나 질러댔습니다.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이나 하듯이 남자 아이들은 날마다 막대기를 들고 전쟁놀이를 하며 놀았다고 합니다. 1950년 6월 25일은 주일이어서 휴일인 관계로 군인들 대부분이 외출 중이어서 부대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군의 장비는 허술하기 그지없었으나 북한 군대는 소련제 탱크로 중무장하고 물밀듯이 남으로 남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우리 국군은 속수무책이었으며, 북으로부터 밀려 내려오는 피난민의 행렬은 길을 가득 메웠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수는 엄청나게 불어났습니다. 그의 집도 남들처럼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식구들은 이부자리와 쌀을 나누어서 지고 뒤늦게나마 피난민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도 쌀을 한 말 정도 짊어지고 갔는데, 어찌나 무겁든지, 그의 등짐을 줄이기 위해 식구들이 밥을 해먹을 때마다 제 것부터 먼저 풀어서 밥을 지어먹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그의 가족도 남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려 했으나 이미 한강다리는 폭파되어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소식도 모른 채 몰려드는 피난민들로 인해 한강 백사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얼마간의 돈을 주고라도 쪽배를 얻어 타기 위해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다보니 배가 가라앉아 모두 빠져죽는 어이없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밤이 되자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비 오듯 쏟아지는 총알이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이 모두 무사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들을 너무 사랑하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고 합니다. 6.25 전쟁으로 말미암아 남북을 합쳐 무려 450만 명의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전쟁고아가 5만 명, 남편을 전쟁에서 잃은 젊은 여인들이 3만 명, 행방불명된 자가 36만 명, 북한으로 납치되어 끌려간 사람이 8만 명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이 일천만 명이나 되었으며, 그 중에 300만 명은 죽었고, 700만 명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3천 3백만 명으로 온 국민의 1/3이 이산가족이 된 셈입니다.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왜 일어난 것일까요? 성경을 보면, 전쟁은 죄 값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삼상17:47을 보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유다 왕 아하스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신우상을 섬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대하28:5-8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육하였으니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중에서 그 아내와 자녀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라고 했습니다. 사실 외적의 침략을 받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동족상쟁은 더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같은 피를 나눈 형제끼리 죽고 죽이고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옆집에 살던 노인 부부는 대학생인 큰아들은 북한군으로, 고등학생인 작은아들은 남한군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원수가 되었으니 과연 이 노부부는 어느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두문불출하며 하루하루 사는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겠습니까? 성경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6.25 전쟁도 죄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만큼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1907년 1월 16일 이 땅에 최초로 성령강림이 있었던 곳이 바로 평양의 장대현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를 결정했습니다. 총회에 모인 목사, 장로들이 우상숭배를 결의하고 다 함께 신사로 가서 신사참배를 한 것입니다. 교회마다 신사를 만들어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신사참배 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종을 떼어 일본의 전쟁무기를 만드는데 쓰도록 헌납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한국교회는 완전히 타락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교회는 겸손히 우상숭배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운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기에만 바빴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 여러 개의 교파로 분열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더욱 분노케 하는 행위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충격을 받지 않으십니다. 어차피 이 세상을 떠나면 지옥에 멸망을 당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언제나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이들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이 복을 받고 이들과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복을 받게 됩니다. 마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사신우상을 섬기고 타락하게 되면 이들만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비롯하여 이들과 함께 사는 백성들까지도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것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를 한 죄 때문입니다. 특별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절개를 지킨 주의 종들을 파면시키고 핍박한 죄가 큽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주의 종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기독교 역사를 되돌아보면, 타락한 유대인들이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핏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그대로 심판하셨습니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심판하실 때 공산주의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양심도 없고 윤리도덕도 없습니다. 모든 종교를 아편이라고 금지시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라면 부모 형제라도 서슴없이 죽였습니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감히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지 소름이 끼칩니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주거지의 자유가 없습니다. 평양에서 살고 싶다고 평양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동(여행)의 자유가 없습니다. 출판, 통신, 언론의 자유도 없습니다. 평양 이외에는 길거리에 차가 다니는 것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완전히 죽은 도시가 아닙니까? 그저 당에서 시키는 일을 하며 배급을 주는 대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배급이 줄었습니다. 주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식량부족으로 수백만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 보도를 통해 오늘날 중국 땅을 헤매는 소위 꽃제비로 불리는 북한의 청소년들과 남한으로 오기 위해 사선을 넘나드는 탈북자들의 대열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북쪽 사람들은 생활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오늘날 남한으로 피난 나온 북쪽 사람들이 근검절약하며 부지런히 일하여 당대에 자수성가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이라도 이들에게 자유만 주어진다면 절대로 굶어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북한 땅에도 하루 속히 자유가 회복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6.25를 일으킨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겨룪 망할 수박에 없습니다. 그러면 공산주의 국가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몰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계시기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어느 국가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싸워 이기겠습니까? 2. 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핍박하고 없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교회가 부흥될 때에 국가도 잘되고 국민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쇠퇴하면 국가도 힘을 잃고 국민들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가 매우 불안정하여 얼마나 이 사회가 위태위태한지 모릅니다. 외국에 나가 한국소식을 듣기라도 하면 금방 난리가 날 것 같고 망할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망할 것 같은데도 망하지 않고 언제나 위기를 극복하며 점점 더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는 일천만 명 이상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에스더처럼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부르짖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산국가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3. 소수의 공산당원만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공산당원 외에는 모든 국민들을 노예화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노예로 부리면 노예근성이 생깁니다. 노예는 자기 것이 없습니다. 주인이 주는 대로 먹고 주인이 시키는 일을 적당히 하다가 죽으면 끝납니다. 전 국민을 노예로 만든 공산주의는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눈다며 지상천국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공산당원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을 거지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일을 해도 안 해도 똑같은 결과를 나눈다면 누가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가가 없는데 무슨 자발적인 봉사를 기대하겠습니까? 그저 눈치나 보고 적당히 시간을 때우면 그만입니다. 전국의 논과 밭과 과수원과 공장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결국 공산주의 국가는 평생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감시자요 고발자입니다. 부모를 고발한 철없는 아들이 영웅이 되는 사회입니다. 또 너무 못 살다 보니 누구 할 것 없이 남의 것을 무조건 빼앗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믿고 살겠습니까?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회입니다.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남한까지도 공산화하기 위해 6.25 전쟁을 일으켰으나 이로 인해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남쪽으로 대거 밀려오게 되었습니다.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하루가 다르게 부흥했고, 성령 충만한 교회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새벽기도와 철야기도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보아도 한국교회와 같이 기도 많이 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롬8:28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립니다. 화가 복이 됩니다. 잃어버린 축복이 회복됩니다. 그동안 남한 사회에는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선전대로 이 땅이 공산화되면 지상낙원이 되는 줄 알고 은근히 공산주의를 사모해왔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인해 공산주의의 악함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남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서방국가들이 목숨을 걸고 공산주의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88 서울올림픽 때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들이 우리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한이 거지와 판잣집으로 가득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즐비한 빌딩 숲과 시민들의 얼굴에 기쁨이 있고 활기가 넘치며, 길거리는 온통 자동차들로 가득하고, 시장마다 물건들로 넘쳐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북한을 비롯하여 공산주의국가들은 점점 더 못살고 지옥으로 변해 가는데 비해, 남한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점점 잘 살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을 비롯하여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서서히 자본주의 경제 원리를 접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전 세계의 교회를 지도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가장 앞장서서 세계 선교를 이끌어갈 교회는 한국교회뿐라고 전 세계의 교회지도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가 불안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교회가 깨어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가 잘 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들려주시는 주의 음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41:10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25를 당한 날을 맞이하여서 우리 민족이 다시 한 번 회개할 것이 없는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아서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으면 속히 회개하고 행동을 고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릴 진노가 우리에게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너무 교만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하나님께 강퍅했기 때문에 10가지 재앙으로 쳤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끼리 서로 싸움을 일으키고 분쟁을 벌여서 세상 법정에 교회 소송 사건이 쌓이고 쌓여 있습니다. 목사가 음란한 짓을 하며 하나님이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이 성전에서조차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6.25를 맞는 우리에게 메르스라는 재앙을 허락하셔서 우리나라에 보내셔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여, 이제 내 앞에서 악을 그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악을 그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내 말을 들으면 내가 그치겠지만, 이렇게 메르스로 경고하는데도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또 다른 재앙으로 너희를 치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요 나부터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6.25와 메르스 재앙을 맞아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면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대하7:14에서 하나님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그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서 다시는 6.25 전쟁이나 MERS 같은 전염병 재앙이 닥치지 않도록 우리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
6.25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 /삿3:1-6 2012-09-10 17:06:25 read : 3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6.25 전쟁 62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렸지만 여전이 우리 민족에게는 비극과 아픔의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6.25 전쟁은 한국민족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며, 아직도 그 아픔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전쟁의 위험도 아직 존재하고 있습니다. 6.25기념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을
6.25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 /삿3:1-6 2012-09-10 17:06:25 read : 32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6.25 전쟁 62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많은 시간이 흘렸지만 여전이 우리 민족에게는 비극과 아픔의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6.25 전쟁은 한국민족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며, 아직도 그 아픔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전쟁의 위험도 아직 존재하고 있습니다. 6.25기념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심을 감사드리며, 특별히 나라를 위해 생명 바쳐 싸워주신 국가유공자와 참전용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6.25 전쟁과 같은 역사의 사건은 그 깊은 의미와 고귀한 교훈을 바르게 해석하고 후세에 전함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6.25 기념예배를 통하여 성도들과 전쟁을 모르는 세대들이 더욱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과 유가족들, 그리고 국가유공자들을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먼저 한 가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죽고 죽이는 비극적인 전쟁을 해야만 했습니까? 전쟁의 이유도 모른 채 싸우다가 죽어간 군인들과 학도병들, 수많은 민간인들에게 우리는 전쟁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그리고 아직도 전쟁을 알지 못하는 이 전쟁 후 세대들에게 이 전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먼저 영상을 보시면서 이 질문들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영상보기 이 영화가운데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습니다. 한국병사가 북한 장교에게 “싸우는 이유가 문데”라고 묻자 “오래 되어 잊어버렸다”고 대답합니다. 6.25 전쟁 후 62년이 지나는 동안에 이러한 민족의 비극적 경험이 우리의 역사와 의식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런 6.25 참전 용사들은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그분들과 함께 6.25 전쟁을 겪었던 세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이런 분들의 피로써 지켜졌던 이 대한민국은 이제 6.25 전쟁을 모르는 전후세대가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세대는 아직도 이 전쟁의 이유를 모릅니다. 왜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었는지, 그 고통과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모릅니다. 여러분, 6.25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전쟁이었습니까? 6.25 전쟁으로 국군만 22만 명이 희생되었고, 전쟁에 참여한 UN군, 북한군, 중공군 및 남북 민간인 도합 4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남쪽의 인사들이 85,000명이나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갔고, 30만 명의 전쟁미망인, 10만 명의 전쟁고아, 1천만 명의 이산가족, 535명의 목사들이 학살당했고, 2,122개 교회가 불타버렸습니다. 이처럼 참혹한 전쟁이었지만 그러나 전쟁 이후 세대는 아직도 전쟁의 이유와 아픔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2008년도에 한국정보통계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35.1%가 6.25전쟁을 남한이 북한을 침공한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50.7%는 조선시대에 발발한 전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같은 해에 행정안전부에서 전국 중고등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56.8%가 6.25 전쟁의 발생연도를 모르고 있으며, 38%는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싸우지 않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적극 싸우겠다는 응답은 17.8%에 불과했고, 심지어 15.5%의 학생들은 외국으로 도망하겠다고 답했습니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의 답답한 모습입니다. 이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알게 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고마움을 가르치고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세대 중에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 대해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2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족속을 통하여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입니까? 1.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를 향하여 주적(主敵)의식을 심어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가르쳐 알게 하시려고 블레셋 다섯 방백을 위시하여 가나안 본토와 그 주변 지역의 이방 민족들 중 일부를 일부러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써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로 하여금 계속 전쟁의식을 유지시키려 하셨습니다. 즉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안이하게 살지 말고, 아직도 섬멸해야 할 적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완전히 정복해야 할 땅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일깨움으로써 긴장을 늦추지 말도록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세대는 하나님의 그런 뜻 깊은 연단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남겨 두신 열국을 싸워서 이겨야 할 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평화 공존의 이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즉 그들을 완전히 가나안 땅에서 몰아내는 대신에 여호수아 세대의 조상들이 이미 정복해 놓은 땅에서 안주하는 데에만 급급했고, 그 결과 주변 이방 민족은 물론이고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민족들에 대해서조차 오로지 유화 정책으로만 일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나중에 다윗 왕이 나타나기 전까지 전 사사 시대를 통하여 그 블레셋 민족을 비롯한 주변 이방 민족들에게 줄곧 침략과 착취를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원수에 대하여 주적의식을 가지지 않고 그저 적당히 사이좋게 지내고자 했을 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결코 평화 공존이 아니라 그 원수에게 짓밟히는 처참한 고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6.25전쟁은 아직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중입니다. 북한은 여전히 우리의 주적입니다. 북한도 여전히 우리를 주적으로 여깁니다.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무력 통일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북한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울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북한 동포는 사랑하되 그 지도자들은 우리를 삼키려 하고 있으니 한시라도 그러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적의식이 결여된 자는 이미 적에게 굴복하고 있는 패배자일 뿐이며, 국방의 의무를 신성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애초에 국민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를 향하여 가르쳐 알게 하시려는 것은 전쟁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전쟁을 알지 못한 세대는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행복한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가나안 족속들과의 치열한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태어나서 부모 세대보다가 이루어 놓은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복 받은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잊어버립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귀한 자유인지, 얼마나 엄청난 복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이것을 깨닫게 주시려고 대적들을 남겨두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전투에서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매일 성을 한 바퀴씩 7일 동안 돌고 마지막에는 모든 백성들이 크게 고함을 질렀더니 큰 성 여리고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들은 어떻게 성이 무너졌는지,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전쟁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영광과 감격과 체험을 지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6.25전쟁 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알아야 합니다. 막강한 화력으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에 남한 전 지역이 일주일 만에 함락될 위기 가운데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참전하여 도움을 주었음으로 전세가 역적이 되었습니다. 군군장병들과 학도병까지 참여하여 생명을 걸고 나라를 지켰지만 만일 이 때에 이러한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들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한국전쟁을 통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가르쳐 알게 하시려는 것은 전쟁은 죄악의 결과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전쟁은 죄악이 그 원인이 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수 23:16절에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사시대는 특히 전쟁이 많은 시대였습니다. 왜 사사시대에 이처럼 전쟁이 많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없이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의 바알 우상을 숭배하고 각종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중요한 도구요, 수단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전쟁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우상숭배와 각종 죄악으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 전쟁은 외세의 개입으로 일어난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학자들과 신학자들은 한국 전쟁의 원인을 이 민족의 죄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민족적으로 신사참배를 하며, 우상을 숭배한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악을 깨닫고 회개시키기 위해 우리 민족에게 이 같은 전쟁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일이면 6.25전쟁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점점 더 모르게 되고, 아무도 알려고 하거나 가르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이 6.25 전쟁을 절대로 몰라서 안 되고, 잊어도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전후 세대일수록 최소한 전쟁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전쟁을 겪지 않고 있는 축복을 계속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몽고메리 장군은 ‘전쟁의 역사’라는 그의 책 서문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곧 “전쟁을 모르면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국가유공자 초청예배를 통하여 6.25 전쟁이 생생하게 보여 준 역사의 교훈을 상기하고, 성경이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에게 명백하게 가르쳐 주는 역사의 경고를 깨달음으로써, 조국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진정한 평화통일을 이루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6.25 전쟁의 기독교적 조명/ 렘1:13-16/ 6.25기념주일설교/ 1992-06-25
6.25 전쟁의 기독교적 조명 렘1:13-16 6월 25일은 우리 민족의 국치일인 6.25전쟁 4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에 김일성 북한공산당이 남침을 감행하여 동족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참상을 겪은 날이란 말입니다. 그 후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조인되는 3년동안 이 땅은 전쟁으로 초토화 되었던 것입니다. 사망자가 16만 5천명, 부상자가 25만명, 행방불명된 자가 20만명, 북한으로 납치된 자가 12만 3천명, 산업시설의 파괴등 전란의 후유증은 우리 민족사상 최대의 피해였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42년이 지난 오늘까지 통일은 아직도 요원하고 공산국가의 종주국인 소련을 위시한 동구 공산주의가 막을 내려 동서냉전이 해소된 이 시점에서도 이 민족은 대치된 상태에서 이산가족 상봉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6. 25전쟁이 우리 기독교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는가? 이 시간 두가지만 생각하고저 합니다. 1. 6.25전쟁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조국유다가 바벧론 침략을 받아 멸망될 것을 예언하실 때 그 원인을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있었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6.25동란의 원인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조명할 때 우상숭배의 죄때문이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일제 시대 신사참배를 지적하는 말씀입니다. 36년간의 일제의 압박 속에서 이 민족의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만 일본 천황을 숭배하는 신사참배는 우리 기독교의 수난이요 수치였습니다. 1938년 9월 10일 북한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제 27회 예수교 장로회 총회가 모였을 때 일본 앞잡이 목사들이 주동이된 이 총회는 신사참배를 우상숭배가 아니고 종교의식이라고 정식으로 가결하고 말았습니다.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진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국가의식임을 자각하며 또 이어 신사참배를 솔선 이행하고 따라서 국민 정신 총동원에 적극 참여하여 비상시국하에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다하기로 한다\\\" 위를 성명함. 소화 13년 9월 10일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홍택기 이렇게 가결한 내용을 원문대로 옮겼습니다. 여기에 보면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며 일본 천황폐하를 섬기는 것은 종교행위가 아니라는 내용 입니다. 이것은 신앙 양심을 팔아먹은 반역의 행위요 하나님을 배신한 불신앙의 소치 였습니다. 그 후 1948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지만 일제 신사참배를 찬성하고 그 신사앞에 경배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또다시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고 앞장 설때 하나님은 김일성을 통하여 징치하시는 역사를 맞게 한 것이 6.25동란이란 말입니다. 2. 6.25전쟁은 하나님 능력보다 세상 힘을 앞세운 불신에 대한 책망입니다. 숫적 우위를 중시한 총회정책, 정부나 권력에 아부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6.25를 불러왔습니다. 정치는 숫적 우위에 결정권이 주어지지만 진리는 숫자에 의하여 결정 되지 않습니다. 진리는 한 사람이 주장해도 진리입니다. 나라의 흥망 성쇠가 하나님 수중에 달려 있고, 남북통일도 하나님 결재에 움직여 집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가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삼상 17:47). 성도여러분! 지금 이 민족이 살 길은 회개운동입니다. 사랑으로 하나되는 연합운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앞에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순리와 진리에 순응하는 생활 뿐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이 민족위에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6.25(육이오) 50주년/ 신16:1-8/ 2000-06-25
6.25(육이오) 50주년 신16:1-8 오늘은 6·25 사변이 일어난지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느 분은 \\\'아니, 이 날은 무슨 교회 절기도, 국가기념일도 아니요, 전쟁이 일어났던 날에 불과한 데, 특별히 예배를 드릴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또한 저와 같이 50대 이상이 된 분들에게는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지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의미에서는 지금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는 삼일절이나 광복절보다도 육이오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쟁이 일어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남북이 양단된 채 서로가 무기경쟁을 강화하면서 대치상태로 남아 있음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로 남아 있기 때문이요, 앞으로 한국의 가장 큰 숙제인 통일에 대해서 가장 연관된 것이 육이오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육이오 사변은 우리 민족에게는 엄청난 상처를 남기었습니다. 전쟁 기간 중 한국군과 유엔군이 약 48만 명이 죽었고 공산측은 150-2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민간인의 사망은 400-450만 명이요, 고아만도 10여만 명이 생겼으며 이산 가족만도 무려 1천만 명에 가까울 정도였으니 그 전쟁의 치열함이 얼마나 컸는가를 능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전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 전쟁의 의미가 큰 것입니다. 더욱 육이오 50주년을 맞는 오늘의 의미가 큰 것은 공교롭게도 1950년 6월 25일처럼 오늘도 주일인 것이요, 지난 6월 13일 50년만에 남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화해와 교류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남북관계에 새로운 문이 열리는 시점에서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은 무엇이며, 한국 교회와 한국 교인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할 것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1. 육이오 50주년이 주는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일찍이 함석헌 옹은「사상계」라는 잡지에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을 썼씁니다. 그 글의 일부를 소개한다면 <6·25 싸움은 왜 있어났나? 나라의 절반을 꺾어 한배 새끼가 서로 목을 찌르고 머리를 까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거기 어울림을 하여 피와 불의 회오리바람을 쳐 하늘에 댔던 그 무서운 난리, 사람이 죽고 상한 것이 얼만가? 물질의 없어진 것이 얼만가? 남편 잃고 반쪽 사람이 된 과부가 얼만가? 어미 애비 잃고 고아가 된 어린이가 얼만가? 거기 써버린 쇠를 쌓으면 산이 될 것이요, 거기 태워버린 기름을 모으면 바다가 될 것인 이 끔찍한 전쟁은 도대체 왜 일어났을까? 바다를 뒤집는 고래 싸움은 하필 이 가엾은 새우등에 터졌을까?>라면서 그 의미를 바로 알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이오 사변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이며, 그 전쟁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전쟁이 발발한지 반세기가 흘렀어도 아직도 하나님이 통일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이며, 하늘이 이 민족에게 주시는 교훈과 의미는 무엇인가? 저는「한국교회, 이대로는 안된다」는 책에서 쓰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우상숭배할 때에 애굽이나 불레셋,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를 들어서 강하게 사랑으로 때리셨지만,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특별히 보호하시면서 강한 나라로 만드셨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바로 서면 하나님이 한국을 강하게 쓰시고 한국교회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책을 받고는 했다고 했습니다. 때로 우리는 나라가 잘못되면 어느 대통령이나 정치가, 정당들,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 탓이라고 몰아 세우지만, 기독교 입장에서는 나라의 어려움을 성경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은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왕이나 가이사를 보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을 알고 있는 백성들의 행함을 보시고 상벌을 정하신다는 점입니다.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 군대가 패배하고 요나 하나의 잘못으로 수많은 승객들이 풍랑을 만났습니다. 반대로 엘리야 하나 때문에 큰 가뭄이 해소되고 바울 하나 때문에 276명의 승객이 죽음의 풍랑에서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교회의 책임이 너무나 큽니다. 사실, 남북의 분단의 책임도 정치적으로 보면 미국과 소련 탓이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교회 탓입니다. 1938년 9월 10일, 장로회 27회 총회시 총대 193명이 모여서 신사참배를 가결했는데 반대하는 총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평양노회는 극구 반대하는 주기철 목사님을 파면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채정민 목사님은 \\\'평양노회야, 주기철 목사를 파면한 평양노회는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주기철 목사님은 1942년 2월 첫주, 산정현 교회에서 최후의 설교를 할 때 갑자기 설교 도중, 무엇엔가 불들린 사람처럼 외치기를 \\\'평양아, 평양아, 예의동방 예루살렘아, 영광이 네게서 떠났도다. 모란봉아, 통곡하라, 대동강아, 천 백세 흘러가며 나와 함께 울자\\\'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언이 되었습니다. 해방과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교회당의 십자가는 끌어내리고 공산당의 사무실이나 고사포진지가 되었습니다. 북한의 성도들은 모든 것을 다 뺏기고 맨 몸둥아리로 남한으로 피난하는 비참한 날을 만났던 것입니다. 6·25 사변도 그런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해방이 되고 나서 신사참배에 참여한 자와 아닌 자,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신학관계 때문에 계속 싸움질을 하더니 1950년 4월 21일 육이오 사변이 나기 두 달 전 장로교 총회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총회가 난장판이 되도록 싸웠는지 경찰들이 들어와 싸움을 말릴 정도였으니 너무나 치욕적인 총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해방이 주셔도 감사는커녕,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거룩한 교회당에서 이런 추잡한 싸움을 일삼으니 하나님의 진노의 매가 임하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이오 사변입니다. 이런 참혹할 정도의 매를 맞아 부산과 일부지방만이 남아 적화통일이 얼마 남지 않은 위기에서도 한국교회는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싸움질을 함으로 1951년에는 고려파가, 1953년에는 기독교장로회가 분열되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은 배고픔을 참다 못해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아우성 치는 난국에도 교권(敎權) 싸움을 멈출지 모르므로 결국 1959년에는 통합측과 합동측이 분열되는 비극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으니, 4·19 혁명과 5·16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가장 큰 교단이었던 합동측은 1979년 9월 20일, 총회를 대구 은일교회에서 1,500명의 총대가 모여 개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이기도 전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대판으로 난투극을 벌리므로 크게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이 때도 경찰들이 뜯어말릴 정도로 치열할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역사적 우연인가? 한 달 후인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이 시해되는 국난(國難)이 발생했고, 같은 군인간에 내전(內戰)이 벌어진 12·12 사태,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국민의 군대가 국민들을 향해 총질함으로 엄청난 백성들이 살해되는 광주사태가 발생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사랑하사, 장로님을 대통령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연설 때 한번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고, 청와대로 온갖 목사님들을 모셔다가 예배를 드릴 뿐, 자기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방자함을 보이고 온갖 기독교 지도자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기는커녕, 부정에 깊이 관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가 만난 풍랑이 IMF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서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강하게 나타나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나타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교훈입니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바로 서면 한국도 바로 섭니다. 많은 뜻있는 분들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의 유월절은 8·15와 같고, 홍배 바다 사건은 6·25와 같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나라는 광야를 지나고 있는데 벌서 50년째를 만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바로 우리가 바로 서지 못한 탓이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육이오 사변이 난지 50년이 되는 희년(稀年)에 에서와 야곱이 만난 것처럼 기적가운데 남북의 정상이 만나 화해의 교류를 약속했습니다. 우연이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임이 틀림없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고문인 김성오 씨는「월간 조선」지(誌)에서 쓰기를 \\\'북한정권에 있어서 지난 90년대는 천형(天刑)의 계절이었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벌을 내린 날들이었다는 표현입니다. 1993년에 몰아닥친 극심한 냉해에 이어 1995년과 1996년에 홍수로 수십만 정도의 농토를 잃고, 1997년의 심각한 가뭄과 이상고온 및 해일로 야기된 식량의 고갈은 급기야 나라의 근간인 배급체제를 붕괴시켰습니다. 김정일과 북한 지도급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울며겨자먹기로 남북정상회담에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지난번 노회원수련회 때 몇몇 목사님들과 대화하는 중에 \\\'만약에 김영상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만났더라면 아마 일방적으로만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막으신 것같다. 이번에 통일전문가인 김대중 대통령가 김정일을 만났기에 이 정도라도 협상을 받아낸 것같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남북을 매셨다면 푸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인들 하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우리 교인들의 잘못으로 50년의 연단을 받았음을 고백하면서 철저히 회개하고 더욱 바르게 서도록 힘씀으로 기적가운데 요단강이 갈라지고 북한의 땅이 열리므로 동방의 예루살렘에 복음의 물결이 흘러 넘치는 역사를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우리는 이 날을 맞으면서 더욱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무엇입니까?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아빕 월, 우리 나라로 말하면 3월을 말하고 유대력으로는 1월을 말합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유대 백성을 애굽 포로에서 기적가운데 구해내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그 유월절 행사를 매년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 행사에 지켜야할 것은 매 가정은 이날 밤, 4일 전에 준비한 흠 없는 어린양의 수컷을 잡아 그 고기를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떡과 함께 먹되, 이 누룩 없는 무교병을 7일 동안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무교병이란 우리 나라로 말하면 개떡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쓴 나물과 무교병을 먹으라고 명하셨습니까? 그것은 그 환난 날에 급하게 도망치던 때를 반드시 기억하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고난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강조점은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기억하라는 말은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고난의 떡과 고난의 쓴 나물을 먹으면서, 그 죽음의 날에 기적가운데 구원해 주신 하나님, 광야의 날들 속에서 기적 가운데 살게 하신 하나님, 지금도 이렇게 풍족히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압니다. 사람이란 얼마나 간사한지, 배가 부르고 등 따습게 살면, 가난하고 배고프고 헐벗게 살던 날들을 잊어 먹습니다. 그래서 개떡과 쓴 나물을 먹으며 그 환난을 당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오늘의 풍족함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두 주 전에 춘천에 다녀오면서, 새로운 길로 왔습니다. 육이오 전쟁 때에 피난 가던 길을 승용차로 와봤습니다. 춘천에서 강촌을 거치어 광판리, 팔봉산, 용문, 양평을 거치어 왔습니다. 10살 때 피난했던 길이라 자세히는 몰라도 팔봉산을 거쳐서 지평과 양동을 거치어 문막까지 내려간 것같습니다. 그 때는 1·4 후퇴 때인데 눈이 많이 내리고 몹씨 추운 때였습니다. 저는 소금 석되를 지고 다녔는데 그 추운 날에 울면서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피난가던 길을 차를 타고 오면서 너무나 감사한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육이오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이나 소금국을 먹었습니다. 그것도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에 소원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하얀 이밥에 고깃국을 원없이 먹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운동화는 부잣집 아이들이라 신었고 대부분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옷도 없어서 전부 광목이나 구제품을 고쳐 입어야 했습니다. 속내의도 없어서 다섯 번 여섯 번 기워 입고 양말도 위만 있고 밑에는 거의 기워 신어야 했습니다. 단칸방에서 이불도 없어서 6-7식구가 한 이불을 덮고 겨울을 나기도 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천국에서 살고 있을 정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너무나 옷이나 음식이 많아서 쓰레기에는 온통 옷이나 음식 찌거기로 가득찹니다. 이제는 어느 잔치집에 가도 고기는 그냥 남아 쓰레기통에 들어갈 정도이고 웬만한 뷔페집에 가서는 맛없으면 손이 전혀 가지 않을 정도로 최고의 입맛들이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텔리비젼, 전화,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등등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며칠 동안 피난가던 길을 저는 단 2시반 만에 돌아오면서 우리는 너무나 감사할 일 투성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온 국민은 감사로 차고 넘치고 있습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온통 불만이 온 국민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욕심 탓입니다. 내가 지금 하얀 이밥과 고깃국을 먹는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호텔에서 더 비싼 요리를 못 먹는 것이 불만이고, 지금 지쳐 깔린 옷과 신발, 그리고 가전제품을 감사하지 못하고 백화점에서 몇 십 만원 짜리 고급의상을 입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만이고, 더 넓은 주택, 더 좋은 승용차, 더 높은 봉급을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불만입니다. 모두가 욕심 탓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가 잘 살게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부터이니 겨우 10년 정도뿐이 안됩니다. 그런데 벌써 기름기가 너무 돌아서 불만만이 가득하니, 정신을 차리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빼앗기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1년에 한번씩 고난의 떡과 나물을 먹으며 그 환난 당하던 날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성도들로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신 것과 받은바 은혜와 너무나 큰 것을 날마다 감사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육이오 50주년을 맞으면서 이제는 나누어주는 한국교회와 한국이 되어 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보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음의 땅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때를 따라 만나와 메추라기로 양식을 허락하여 주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시고 온갖 적으로부터 특별히 보호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특별히 사랑하사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것 뿐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하시고 가지가지 기적을 통해서 연단 시키고 훈련하신 이유는 세계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침략성이 강한 러시아와 중국, 일본이라는 강대국 틈에서 특별히 보호하시고 육이오 전쟁 때는 완전히 적화통일 직전에서 구해 주시고 전쟁의 잿더미에서 완전히 알거지나 다름없던 나라를 지금은 세계 11-12번째로 수출하는 나라로 만들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 나라는 너무나 침략만 받고 고생만 많이 한 나라이니 이제는 한번 행복 되게 사는 나라가 되어 보라\\\'라는 목적으로 주시는 축복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마지막 때 한국을 통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 지방을 선교하시게 하기 위해서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 때문에 세계의 눈이 며칠동안 한반도에 집중되었습니다. 남북회담 기간동안 롯데 호텔에는 국내 언론 111개사 772명, 외국 언론 173개사 503명 등 모두 1,275명의 언론인들이 취재경쟁을 벌렸다고 합니다. 이는 88 서울올림픽 후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한국을 세계 앞에 자주 나타내게 하심으로 선교 효과를 이루시려는 것같습니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세계 이목은 더욱 한반도에 집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에 전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선교를 위한 물질축복을 자연스럽게 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번 회담 때 논의한 것 중의 하나인 남북이 경제교류를 활발히 전개한다면 북한도 살고 남한도 삽니다. 지금 북한은 남한보다도 국가적으로는 25분지 1, 개인당 GNP는 12분지 1 낮을 정도로 못 삽니다. 그러므로 당장 통일되는 것은 큰 문제가 됩니다. 우선 북한 경제를 어느 정도까지 높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활발한 경제교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선 경의선이나 경원선을 연결하면 물류비용이 30%나 절감된다고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철로를 통해서 중국이나 러시아, 유럽으로 가는 우리 나라나 일본의 수송 수입도 북한이 엄청나게 챙길 수 있을 것이요, 남한도 그 열차를 통해서 시베리아 가스전이나 파이프 라인 연결사업, 사할린 원유개발 등 중화학공업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북한은 남한이나 일본에서 밀려드는 금강산 관광객, 수학여행자의 수입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에다, 북한의 노동력과 자원이 결합한다면 남한도 살고 북한도 살게될 것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남한은 신발이나 가구, 의복, 봉제, 식품가공분야, 컬러 TV, 냉장고 등 가전기기 조립분야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높은 인건비 때문에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런 산업시설들을 북한으로 이전하여 북한의 싼 노동력을 활용한다면 세계 시장에서도 엄청난 경제력을 높이게될 것입니다. 또한 남한이나 북한의 경제의 큰 올무가 되는 것은 군사비용입니다. 서로가 무기경쟁하다 보니 30%이상의 예산이 군사비용에 들어갑니다. 만약에 서로가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 서로 군비를 감축하고 그 비용으로 다른 경제분야에 투자한다면 남한도 북한도 큰 수익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동시에 북한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되 모든 국민들에게 분배하여 경작하도록 한다면 식량문제도 상당히 해결될 것입니다. 베트남도 집단농장으로 운영할 때는 양식이 부족했으나 국민들에게 분배하여 경작하기 시작하자, 새벽부터 전력을 다해 일함으로 쌀생산 3위국이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 국경에서 북한 마을을 보면 공동농장은 곡식이 형편없는데 집안 텃밭은 곡식이 너무나 잘 되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북한 당국이 전쟁야욕을 중지하고 경제를 일으키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북한이 사는 길이 열리는 것은 물론이요, 한국이 선진국 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남북의 교류의 최종 목적인 통일이어서는 안됩니다. 세계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그러한 목적으로 남북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사실, 통일은 언제될지 모릅니다. 그만큼 50년의 세월은 같은 민족을 완전히 이질화(異質化) 시켜 놓았습니다. 그러나 통일의 길은 대단히 요원하다 할지라도 북한이 서서히 개방됨에 따라 선교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바로 그것을 시급히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북한복음화와 북한교회 회복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질 때 하나님의 강하신 도움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면 불가능도 가능해 집니다. 북한을 통해서 경제의 실크로드(silk-road)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실크로드로 열리어 중국과 사할린, 동남아시아와 중동지방까지 힘차게 번져갈 것입니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북한의 열림에 따라 구호의 손길도 힘차게 뻗치어야 합니다. 우선 굶주린 백성들을 살리고 봐야 합니다. 만약, 북한이 열리는 날, 북한 교인들이 \\\'우리가 굶주려 죽어가고 있을 때 남한의 교인들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라고 묻는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어느 분은 지난번 남북정상회담 때 방송으로 평양을 보니 그곳도 대단히 살기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평양에 있는 200만 시민들만 상류계급이요, 당원의 가족으로 특별대우를 받을 뿐 지방이나 농촌에 있는 백성들은 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양식을 구하려 천지사방으로 거지 떼처럼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말합니다. 만약에 서로가 평화조약을 맺으므로 휴전선의 방어가 느슨해진다면 엄청난 난민(難民)들이 목숨을 걸고 남쪽으로 밀어닥칠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때 제일 먼저 찾을 곳은 교회라고 하면서 남한의 교회들은 그런 난민들을 책임질 준비를 해야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전망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제 전쟁 이후 50년 동안 굳어졌던 철문을 하나님이 조금씩 열어주시는 새로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제 더욱더 활짝 열리어 북한의 무너진 제단을 다시 수축하고 찬송을 부를 날이 속히 올 수 있도록 더욱 기도합시다.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더욱 바로 서십시다. 그리고 이제는 욕심을 버리고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중동지역에 복음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를 기도하는 일과 그 일을 위해서 지금부터 선교에 힘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25/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시3:1-8 2010-08-11 17:37:14 read : 38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제 6·25 전쟁은 잊히는 전쟁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년이 60주년입니다. 그때 태어난 아기가 이제는 환갑입니다. 30대 후반인 중고등부 전도사님께 장년 예배 설교를 한번 하라고 제가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살아오면서 아버지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6·25 전쟁 이야기라고 했습니
6.25/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시3:1-8 2010-08-11 17:37:14 read : 38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이제 6·25 전쟁은 잊히는 전쟁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년이 60주년입니다. 그때 태어난 아기가 이제는 환갑입니다. 30대 후반인 중고등부 전도사님께 장년 예배 설교를 한번 하라고 제가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이 살아오면서 아버지로부터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6·25 전쟁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버지가 군목으로, 평생 군인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중고등학교 학생 시절에 군인으로 평생을 사신 목사인 아버지가 자신을 앉혀놓고 가장 즐겨 하신 말씀이 6·25 전쟁 이야기였는데 자기는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그 소리였다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도 반복하셔서 이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6·25에 고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싫었는데 이제 자기가 전도사가 되어서 유대인들의 출애굽 유월절 행사를 공부하다 보니 유대인들에게 그 이야기가 절대 필요하며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이야기 때문에 살아가는 민족인 것을 깨닫고 나서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해 보이고 그때부터 오늘의 자신의 행복은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버지도 제대하셔서 교회에 같이 나오셨습니다. 사람마다 이야기의 관심거리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여자들에게 제일 관심 없는 이야기는 남자들 군대 이야기입니다. 남자들이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는 화장품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보면 절대적 양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25세대가 생각하는 국가관과 신세대들이 생각하는 국가관은 접근할 수 없는 차이가 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런 문제는 피차 마음 양보를 하기 전에는 이야기가 안 되는 어려움이 우리 문화 가운데 있습니다. 6·25 전쟁을 말할 때 저 같은 목사 입장에서는 두말 할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악령의 역사다. 마귀 역사다.” 저는 그렇게 단정합니다. 왜 그런가? 이 세상의 나쁜 전쟁 역사는 거의 다 주일날 일으켰습니다. 예배드리는 주일날 새벽에 모두 일어났습니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공격을 시도한 시간도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이 새벽 6시, 그것도 주일 새벽 그 사람들이 안심하고 예배 준비하는 그 때를 우리가 때리지 아니하면 우리가 진다고 생각해서 정확하게 주일 새벽에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진주만에 가보면 그 역사가 다 나와 있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 사진 밑에 설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주만 공격은 주일 새벽 6시였고 6·25 전쟁은 주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주일을 선택한 것은 그 시간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은 악령의 역사이다.’ 이렇게 단정을 합니다. 우리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커다란 규모의 전쟁이 20세기에 두 번 지나갔습니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라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을 치렀고 그것으로 인해서 부분적으로 여러 국가들이 수많은 국지전의 전쟁을 20세기에 치러왔는데 왜 그토록 많은 전쟁을 겪게 되었는가? 20세기는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습니다. 한국의 6·25 동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 전쟁이었으므로 그토록 처참한 역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혁명이론을 러시아 현실에다 적용시켜서 극단적 폭력 혁명론으로 발전시킨 사람이 레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회주의 깃발 아래 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 혹은 3분의 1 정도가 인류의 희망은 여기라고 외치면서 그러한 이데올로기 확장이 곧 전쟁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과거 소련에는 사회주의 국가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주도한 레닌 중심의 볼셰비키라는 정당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10월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때부터 세계 최초이자 최강의 공산 사회주의 국가를 형성했고 볼셰비즘이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논리를 세계 혁명 이론으로 보편화시키면서 가능한 주변의 모든 나라들을 그 이데올로기로 점령해 갔는데, 북한이 그 중에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의 결정적 피해자가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모든 국가에 마르크스의 혁명이론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가장 큰 힘이 기독교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 이론이 성공하려면 기독교를 없애버려야 된다고 해서 기독교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 많던 교회가 소련도, 북한도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같은 공산주의 안에서도 레닌주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나 정당은 수정주의자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래서 절대 용납하지 않아서 여러 가지 단어를 만들어서 숙청 작업을 했습니다. 배교자, 반역자, 제국주의 스파이, 자본주의자, 수정주의, 반혁명군자, 반동이라는 단어들이 귀에 익숙합니다. 6·25 세대들은 기억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6·25 당시 공산주의자가 남한에 내려왔을 때 가장 무서웠던 말이 “동무! 반동이요!”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은 끝났습니다. 6·25동란에 미국이 참전하고 16개국이 협조한 뜻은 “바로 그러한 공산주의 볼셰비즘을 대한민국이 막아야 한다.” 그래서 참전해 준 것입니다.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는가? 그렇게 무서운 물리적 힘을 자랑하던 소련의 레닌 동상을 자기들이 무너뜨렸습니다. 길바닥에 레닌의 머리가 뒹굴고 짓궂은 사람들이 그 얼굴에다 소변을 봅니다.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래서 소련은 71년 만에 무너지고 지금은 러시아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주변에 소련이 장악하고 있던 15개국이 다 독립을 해버렸습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이 러시아에 갔을 때 러시아에서 동양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 한 분을 만나서 대화하는 중에 자기는 레닌이 메시야라고 믿었답니다. ‘그가 말하는 논리가 세상의 평화이다. 이 논리대로만 하면 세상이 다 평화롭게 살 수 있다.’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대학 교수로서 그에게 충성을 했고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그의 논리를 열심히 가르쳐 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저한테 전해주었습니다. 6·25 당시 군사적 비교만으로 생각하면 6·25 전쟁은 남한이 참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우선 전투 병사가 북한군이 54,000명이 많았습니다. 전쟁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전차 부대인데 그 당시 북한은 242대의 전차를 가졌었고 남한은 그런 전차가 한 대도 없었습니다. 장갑차는 북한이 208대가 있었는데 남한은 27대였습니다. 대포가 북한이 2,540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한은 840개 있었습니다. 전투 비행 공군기 북한이 230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남한은 10대였습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대구, 부산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전역 점령당했잖아요? 이 전쟁으로 인해 한국군과 유엔군 18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군만도 33,000명이 이 땅에서 죽었습니다. 민간인까지 합쳐서 300만 명 이상이 죽은 지구촌의 대재앙으로 “악령의 역사다”, “마귀의 짓이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유명하고 훌륭한 사람들은 85,000명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갔고, 30만 명의 전쟁미망인, 10만 명의 고아, 1천만 명의 이산가족, 535명의 목사들이 학살당했고, 2,122개 교회가 불타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강대국들의 정치 철학은 분명했습니다.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고 하는 실용주의였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해도 절대 손해를 안보고 전쟁으로 인해서 얻어진 막대한 유익이 있다.” 실용주의, 프래그머티즘에 사로잡혀서 이러한 소련의 프래그머티즘 정치 철학에 북한이 절대적 앞잡이 역할을 한 것이 6·25라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틀 전 한국 신문들이 중국 신문을 인용해서 보도했습니다. 중국 신문이 “스탈린과 김일성이 한국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중국의 관영매체가 분위기상 그런 보도를 절대로 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왜 했는가? 아무래도 중국이 이런 문제에 있어서 진실적으로 가야한다는 지성인들의 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를 인용해서 일제히 보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제 믿음의 고백이 있다면 “6·25때 대한민국이 보존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다.”라고 믿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참전국 16개국, 의료지원국 5개국으로 21개국이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는데 3분의 2 이상이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대한민국마저 공산화 되어 버린다면 아시아 태평양은 위험하다. 필사적으로 막아주어야 한다.” 기독교 국가들이 참전해 준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때 부산 초량교회에 기독교인, 목사들이 다 모였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사회를 보면서 기독교 연합 비상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고 3일 동안 금식 기도한 후에 미국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에게 한반도를 포기하지 말고 유엔을 파송해 달라고 요청서 보낸 것이 큰 효과를 가져온 것을 일반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시 주미대사가 장면이였는데 유엔 파송을 위해서 그가 밤낮을 뛰어다닐 때 미국 정부가 그런 결정을 하는데 절대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언더우드 선교사의 아들 언더우드입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한국은 언더우드 가문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주일 미군 사령관으로 일본에 있었고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니까 그 사명까지 맡게 되었는데 맥아더는 철저한 기독교인이요 반공주의자입니다. 일본에게 마지막 항복을 받으면서 요청을 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일본은 앞으로 2천명의 선교사를 받아들이라.” 그래서 그 이후 일본이 선교사를 내쫒지 못합니다. 지금 월드컵 축구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마음을 여러분이 한번 평가해 보십시오. 북한은 남한이 잘한 것을 한번도 TV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보도 금지입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잘한 것을 다 보여줍니다. 이번에도 “북한이 어떻게 축구의 강국 브라질과 경기를 잘했나? 아주 잘한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 브라질에 진 것을 1대 2 아깝게 졌다고 약간 애석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로 어느 방송이나 그렇게 방송했습니다. 정대세 선수를 모든 신문에서 칭찬했고 동아일보는 “정대세의 눈물이다.”라며 그 선수를 얼마나 선전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 게임에서 북한이 이겼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기자들이 신문에 보도해 버렸습니다. 브라질 팀에 한 골을 성공시킨 지윤남이 좋아서 웃통을 벗어버리니까 한국 방송에서 그의 상반신을 다 보여주면서 “가꾸지 아니한 자연 복근 몸짱이다.”라고 했잖아요? 그러면 북한도 그렇게 해야 상식적인 국제 교류입니다. 날마다 그 아줌마 혼자 나와서 말도 되지 않는 말을 날마다 혼자 지껄이고…. 이번에 천안함 희생 장병을 비롯해서 군대 생활 가운데 희생된 젊은 장병들은 모두다 영웅들입니다. 왜냐하면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라는 인생의 가장 좋은 그 시절을 다른 사람을 위해, 국가를 위해 피 흘려 죽어버렸으니 그보다 더 큰 인생이 뭐가 있겠습니까? 모윤숙이라는 여류 시인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분은 여자이고 시인이면서 군인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전방에 군부대 시찰을 갈 때 늘 따라다녔습니다. 전쟁이 치열하던 어느 날 그가 바로 이곳 광주 오포 고개를 넘어가다가 피 흘리면 쓰러진 국군 병사를 보고 그날 밤 쓴 시가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시입니다. 제가 적어왔습니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너의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한 산맥을 지키다가 여기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내가 어여삐 사랑하던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나는 내 나라의 새 소리와 함께 나도 거기서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그래서 나는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이 나라의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푸른 밤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도록 내 외로움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나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가 사랑했던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전해다오.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이 산맥에서 먼저 가노라.”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겁니다. 6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그들의 피의 대가로 뚜렷한 것이 몇 가지 생겼습니다. 세계 제일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같이 교회 활동 활발한 나라가 세상에 없고 미국과 한국이 아니면 세계 선교를 못하는 그 자리에 한국 교회가 지금 서있습니다. 제가 휴스턴 텍사스에서 만난 유대인 랍비가 해준 말을 영원히 기억합니다. 유월절 행사에 초대해서 “너희 한국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전도가 잘 되었느냐? 우리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렇게 많이 체험했는데도 모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산다. 큰일 났다. 너도 기억할 것이다. 1967년 육일전쟁 때 당시 이스라엘 인구 250만 명이었다. 상대 국가 인구는 1억이 되었다. 250만 명, 1억 전쟁을 어떻게 우리가 이길 수 있었는가? 하나님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사오니 이것 때문에 우리는 그때 이기었다. 6일 동안에 150만 명의 포로를 만들었고 땅은 이스라엘 땅의 두 배가 넘는 땅을 확보했고 적의 비행기는 한 대도 뜨지 못하게 휴지 조각이 되는 인류 역사에 가장 짧은 전쟁인 육일전쟁의 승리를 가져왔다. 그날 이스라엘 국방 장군이 한 일이 뭔가? 전쟁터에 나가서 지휘관 역할을 했는가? 아니다. 방송국에 앉아서 군인들과 이스라엘 전 국민을 향해서 하루 종일 방송했는데 무슨 방송을 했는가?” 시편 4편 오늘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그러나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소서.” 그런데 이 체험을 한 사람들이 25 퍼센트 미만, 아주 인색하게 말하면 10 퍼센트 정도 밖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으니 큰일 났다. 그런데 너희 한국은 어떻게 기독교 인구, 하나님을 믿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느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전쟁을 선포한 첫날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백악관에 초대해서 “목사님, 이 전쟁이 하나님의 뜻이 되게 해달라고 예배드려 주세요.”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백악관에서 그날 밤 예배드리고 그곳에서 잤습니다. 병사들의 피는 대한민국에 자유를 선물해 준 것입니다. 자유는 거저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온 세계가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초점도 누가복음에 “나는 눌린 자에게 자유를,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려고 죄에서의 자유함과 인간 권리에 대한 자유함과 인간답게 사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나는 왔도다.” 우리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외국 군인이 이 땅에서 숨진 사람이 37,623명입니다. 충청남도 논산 병촌교회는 6·25 동란 때 한 교회에서만 공산당에 의해서 66명의 순교자를 낸 교회로 유명합니다. 병촌교회를 가보시면 순교비가 있습니다. 그때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우재학 집사님이라는 분은 자기의 부모, 아내, 자녀 네 명, 동생 내외, 조카 두 명 11명이 교회 다닌 것 때문에 순교 당했고 그분만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온 세상이 이제 공산당이 되는 줄 알았는데 순교자의 피의 대가가 자유라고 하는 고귀한 가치를 우리나라에 선사했다고 했습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강냉이 죽을 배급받으며 서있던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계 경제 10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6·25 전쟁으로 한 달 만에 완전 정복을 장담했던 북한은 지금 남한 경제의 GDP 5.6퍼센트입니다. 56퍼센트라고 해도 문제가 되는데 5.6퍼센트라면 20분의 1입니다. 왜 그런 결과가 왔는가? 천안함을 침몰시키면 결정적 타격을 주는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정치 철학은 계산 못하는 게 아주 특징입니다. 천안함 피해의 100배도 넘는 피해를 입는 것은 계산 못합니다. 이제 보십시오. 벌써 유럽 전체는 이미 결의했습니다. 온 세계 국가 신용도가 테러국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유엔 안보리에서 언제나 골칫거리 국가로 낙인 찍혀 버렸습니다. 이제 세계는 안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받을 고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계산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 6·25기념 주일에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 것인가? “하나님이여! 북한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마귀의 역사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하루속히 젖과 꿀이 흐르는 저 가나안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할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세워주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하나님이여! 북한도 남한같이 되게 해 주소서.” 요덕스토리에서 “예수여! 왜 남한만 심방을 가시나이까? 북한 땅에도 오십시오. 하나님이여! 북한의 주민을 돌보시고 그들도 따뜻한 식사와 배부른 빵을 나누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게 해 주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하나님이여!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 주옵소서.” 하나님의 돌보심이 한반도에 영원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지금도 슬픔의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들의 힘으로, 유엔의 힘으로도 가능치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구원의 역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시편 3편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오니 구원은 여호와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불쌍한 북한 주민들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한반도의 평화가 영원하고 21세기에 가장 크게 세계 선교를 위해서 쓰임 받는 이 한반도 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6.25/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롬11:1-8 2010-08-11 17:02:20 read : 42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는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가운데 미국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해외로 여행을 하다보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고마움입니다. 내 나라가 있어, 내 나라의 신분으로, 내 나라의 여권으로 다닌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내 나라가 아니기에 미국에 들어갈 때는 까다롭고, 힘들고, 왠지 불
6.25/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롬11:1-8 2010-08-11 17:02:20 read : 42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는 여러분의 기도와 사랑가운데 미국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해외로 여행을 하다보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고마움입니다. 내 나라가 있어, 내 나라의 신분으로, 내 나라의 여권으로 다닌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내 나라가 아니기에 미국에 들어갈 때는 까다롭고, 힘들고, 왠지 불안하고, 이상하게도 기가 죽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들어올 때는 얼마나 가볍고, 편하고, 좋고, 신속한지 모릅니다. 이번에 정말 나라가 너무도 중요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여러분, 6월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달입니다. 특히 이번 주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입니다. 전쟁이 오래되어 점점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는 전쟁의 위험 속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고 나라를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도 이렇게 보내는데 우리 믿는 자는 더욱 나라를 생각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 믿음의 삶은 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나라가 있어야 개인의 풍요가 있고, 가정도, 교회도 평안한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우면 어느 것도 누리지 못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나라와 민족을 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고 살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일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이 많았습니다. 현대한국역사는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대를 사는 우리들도 나라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를 진정 사랑해야 합니다.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사명을 새겨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나라를 사랑해야 할까요? 성경은 나라사랑에 대해 무엇이라고 가르칠까요? 나라를 사랑한다면 언제나 가슴 깊이 새기고,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것을 생각하기 원합니다. 첫째는 소속감입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의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로마서는 사도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기록한 어떤 성경보다도 심오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성경중의 성경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모든 서신에는 일정한 형태가 있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는 교리를 말하고, 후반부는 실천을 강조합니다. 로마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로마서의 전반부는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구원받은 성도로서의 감격과 성숙과 거룩한 삶을 개인과 공동체의 현장에서 나타낼 것을 강조합니다. 본문은 전반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교리를 설명하다가 이제 유대인을 향합니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그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많은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 되었지만, 이제 바울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을 바라봅니다. 유대인이 누구입니까?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민족, 동족입니다. 그들을 향한 사랑과 열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전합니다. 그 중에 우선적으로 주목할 말씀은 1절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살면서 유대인의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유대인이 자기를 핍박하고 모함하고 복음의 방해자들이었지만, 자기도 이스라엘사람이고,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지파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지금 바울은 소속감을 말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민족에 속하였는지 분명한 소속을 밝혀줍니다. 이것이 바울의 나라사랑이요, 우리들의 나라사랑이어야 합니다. 나라사랑은 먼저 분명한 소속감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인간 삶의 모든 것에는 개인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무엇보다도 소속감이 중요합니다. 혼자 평생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닐진대 내가 어디에, 무엇에 소속되어 있느냐가 그의 삶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사람이 소속감을 가질 때 비로소 행복하고, 평안하고, 의지하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소속감을 잃어버리는 순간 사람은 불안하고 병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소속감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믿는 자로서 먼저 가져야 할 소속감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2:9) 우리는 택한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나라에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현주소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에게 늘 이것을 확인시키고, 우리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이 말씀은 힘들고 어려운 때에, 소속과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때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때에 더욱 믿는 자의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소속감과 함께 필요한 것이 교회의 소속감입니다. 많은 교회가운데 우리는 대광교회에 속한 성도들입니다. 개봉동에 살게 하신 하나님이 나와 가족과 후대의 신앙을 위해 교회에 몸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살게 하셨습니다. 신앙은 교회를 떠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신앙의 중심입니다. 내가 교회에 속한 교인이고, 직분자요, 성도임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교회의 소속과 교회생활을 통해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소속감이 필요합니다. 또한 내가 한국인이라는 소속감을 가져야 합니다. 나라사랑은 소속감에서 시작됩니다. 미국은 여러 종족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영어도 ‘United State of America, 미합중국’입니다. 여러 개의 나라, 주가 연합했다는 뜻이지만 지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종적인 연합의 의미가 아주 큽니다. 모두 자기 민족을 사랑하겠지만, 한국 사람만큼 사랑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우리는 더욱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도 열기가 대단했겠지만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도착할 즈음에 한인들이 모인 곳은 이미 붉은 색으로 도배를 하였습니다. 캘리포니아지역에서 경기가 새벽4시30분에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모입니다. 그들이 모이는 곳은 대부분 교회입니다. 모두 모여 대한민국을 외쳤고, 골이 들어갈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흥분과 감격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교회가 주도하는 것에 의미가 있었고, 한국인으로서 하나가 되는 것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은 무엇보다도 소속감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신앙과 삶에 소속감의 중요성을 언제나 잊지 마십시오. 먼저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는 소속감을 분명히 하십시오. 흔들림이 없는 신앙을 확신하십시오. 또한 내가 대광교회에 속한 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내가 몸담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소속감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늘 자부심과 긍지로, 감사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책임감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또한 이 일에 부름 받은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여 자기가 쓰임을 받고 있는 것에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동족 유대인을 향한 사명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가운데서도 믿지 않는 자가 있고, 유대인 가운데서도 많은 믿는 자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 하나의 예를 엘리야선지자의 시대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이 모든 선지자들을 죽이고, 오직 자기만 남겨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답변은 자기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두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유대인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들을 남겨두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구원의 복음이 넘어가고 있지만, 남아있는 유대인에 대한 연민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동족사랑이요,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구원은 이방인만이 아니라, 유대인도 받습니다. 나만 받는 것이 아니라 너도, 우리도 받습니다. 결코 믿는 자는 나만 구원받아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것을 말합니다. 남아 있는 모든 유대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바로 그들에 대한 거룩한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라사랑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민족을 향한 거룩한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특히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거룩한 부담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과 방향이 이웃과 주변을 향하고, 민족과 나라와 향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을 향한 책임감으로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항상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라가 구원받고 못 받는 것이 바로 믿는 자에게,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나라가 잘되고 못되는 것도 믿는 자, 바로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신앙의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균형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균형, 안과 밖의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에 속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도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책임을 다한다는 것만큼 소중한 삶이 없고, 귀한 신앙이 없습니다.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는 얌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책임만 다하고 권리는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아야 합니다. 권리와 책임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특히 나라와 민족을 향한 균형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리는 권리가 있어야 하고, 책임도 감당하고,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한한 책임도 느껴야 합니다.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기보다 먼저 나를 돌아보고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통감하는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와 사회에, 교육과 다음세대에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봇물 터지듯 비난의 화살을 쏟는 것은 나라사랑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자라면 잘한 것을 인정하고 격려하고, 잘못한 것을 돌아보는 자여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과 공동체에 넘쳐야 합니다. 그런 사회, 그런 공동체가 살기 좋은 나라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민족을 향한 거룩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자는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받는 자가 날마다 더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회곳곳에 만연한 타락과 부패와 모든 악하고 더러운 것을 씻어달라고 회개하며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구원받는 자가 생기도록 기도하며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모두가 구원받고, 모두가 잘되고, 모두가 잘사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민족을 향한 거룩한 책임감을 갖고 더욱 기도하고, 더욱 전하고, 어디에서든지 본을 보이며 살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기대감입니다. 로마서 11장은 전체가 구원역사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어 구원의 날이 임할 것이라는 예언적인 성격을 띤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확보되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은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이제 곧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미래를 전망하면서 현재 이스라엘이 부분적으로 완악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됨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7-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지금 부분적으로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들이 믿고, 돌아오고, 그들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이 세상의 끝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고백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미래를 전망하고 있습니다. 자기 동족 유대인들도 앞으로 예수를 믿는 기대감에 충만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미래를 바라보면서 지금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핍박과 고통과 아픔이 있어도 때가 되면 회복될 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지금 완악하고 패역해도, 힘들고 어려워도 그는 자기민족을 향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진정한 나라사랑입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이런 기대감을 갖고 미래를 전망해야 합니다. 기대감을 갖는 것보다 희망적인 일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메이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미래를 향합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장래를 소망하고 바라보면서 오늘을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소망이 없다면 개인이나 공동체나 벌써 무너졌을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세계역사에 우뚝 서게 된 것도 모두 소망 때문입니다. 성경은 소망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의 기독교는 처음부터 이런 소망을 전했습니다. 과거에 매여 한걸음도 가지 못하고, 오늘 먹고 사는 일 때문에 내일을 장담하거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민족위에 희망과 소망을 심어주면서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도 소망과 기대감으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어렵다고 끝이 아닙니다. 지금 힘들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희망으로 보는 안목이 필요하고, 기대감으로 대하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나라사랑이어야 합니다. 이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바라고 기다려야 합니다. 신앙은 결국 기대감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기대감을 빼면 남는 게 없습니다. 기대감으로 살고, 기대감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나라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주에 있는 한국축구도 그런 기대감으로 응원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우리 선수들이 선전해서 목표를 이루도록 기대감을 갖고 열심히 응원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한강의 기적이 다시 이 땅에 임하도록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에 한강의 기적이 하나님의 은혜로 임한 것입니다. 그런 기적이 다시 이 땅에 임할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민족위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70년 80년대에 불었던 성령이 바람이 다시 올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은 소속감, 책임감, 그리고 기대감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뜻 깊은 달에 믿는 자로서 더욱 나라를 사랑하고 기도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6.25/ 승리하자 /삼상17:41-52 2012-09-11 14:13:18 read : 12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총회가 제정한 북한선교주일입니다. 우리 총회는 6.25 한국전쟁을 기억하면서 6월 마지막 주일을 북한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해로 6.25 한국전쟁 62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지만 정도를 벗어나서 지나치고 그릇된 사상, 편향된 종북사상을 가진 자들이 국기를 흔들고 민심을
6.25/ 승리하자 /삼상17:41-52 2012-09-11 14:13:18 read : 12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총회가 제정한 북한선교주일입니다. 우리 총회는 6.25 한국전쟁을 기억하면서 6월 마지막 주일을 북한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해로 6.25 한국전쟁 62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는 일부의 사람들이지만 정도를 벗어나서 지나치고 그릇된 사상, 편향된 종북사상을 가진 자들이 국기를 흔들고 민심을 어지럽히는 것을 보면서 개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가슴 아프고 걱정스러운 심정을 어찌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국기를 흔드는 무리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머리를 들고 다니고 있습니다. 민노총은 올해 발간한 조합원 대상의 학습 자료에서 김정은 북한 세습정권 체제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후계자로 내세운 것”이라며, “그런 세습의 문제로만 후계를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체제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시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통합진보당의 이석기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애국가는 국가(國歌 a national anthem. )가 아니다”라면서 당의 행사 때에 애국가를 제창하는 것을 검토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발언이 문제가 되자 “애국가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변명하였지만, 그들에게 있어 애국가를 불편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애국가는 엄연한 우리나라 국가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가로 불렸고, 2010년 대통령으로 제정된 ‘국민의례 규정’에서 애국가는 국가라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올해 1월 창당대회를 할 때 애국가 대신에 운동권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항쟁을 기념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 나라를 이끌어 가겠다고 하는 정당의 행사에 애국가를 안 부르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북한을 선교하자고 하면 반대할 일은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하는데, 이슬람국가에도 선교사를 보내는데, 북한을 복음화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북한 선교는 남북통일보다도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자유롭게 선포되고, 무너진 예배당들을 회복하고 재건하면서 언론과 거주와 사상과 종교의 진정한 자유가 주어질 때에 통일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원하는 통일이 어떤 통일이어야 하는지 감상적인 통일이 아니라, 통일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 남북한의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지 말고, 신앙의 자유, 언론과 표현과 거주의 자유가 주어지는 가운데 통일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목사님, 그러면 언제 통일이 됩니까? 통일하고 나서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고, 신앙의 자유, 언론과 표현의 자유, 거주의 자유를 강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통일 자체에 급급하여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고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자유를 유보하는 그런 통일이라면 결코 찬성할 수 없고, 추구할 수 없는 통일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통일을 이룰 때에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명실 공히 세계 모든 나라가 축복하는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플랭크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4대 자유를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안전을 보장 하고자 하는 미래에는 인류의 4가지 자유가 확립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는 세계 어디서나 발표와 표현의 자유입니다. 두 번째는 세계 어디서나 모든 이들이 자기의 방식대로 신을 섬길 수 있는 자유입니다. 세 번째는 세계 어디서나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경제 관점의 결핍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네 번째는 세계 어디서나 이웃나라에 대해 무력 침공을 하지 않는 것처럼 무력감축을 의미하는 전쟁위협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이런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에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남북한의 통일은 평화통일이어야 합니다. 통일이라는 것이 정말 우리의 바라는 소원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평화통일이어야 합니다. 통일한국은 평화공동체를 이루어야만 합니다. 한쪽을 죽이면서 얻어진 통일이라면 그런 통일이 얼마 갈 것입니까?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하여도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 악하면 목적을 이룬 것만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평화를 외치지만 무력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는 자들이 저 너머에 있으니, 무력에 있어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경제력를 키워야 무력에 의한 통일야욕을 포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북녘에서는 핵으로 무장하는데, 우리는 미사일도 내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일본은 핵무장하겠다고 하는데,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데, 일본은 만들지 말라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만 바보가 될 수 있습니다. 첨단 무기로 무장해야 합니다. 전쟁 억제력을 가질 수 있는 충분한 화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감상적인 통일론자가 되지 말고,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3) 남북한의 통일은 기도 속에 준비되어져야 합니다. 예전에는 강단에서 기도할 때마다 남북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저들이 하도 밉게 나오니, 남북통일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각계각층에서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중에 우리 한국교회는 기도로 준비하고,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과 은총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통일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중에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선교는 우리의 소명과 사명입니다. 에스겔 37:15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의 통일에 대한 전망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막대기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유다와 그와 연합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막대기를 가져다가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유셉과 연합한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막대기를 하나가 되게, 그 막대기를 서로 연결시켜라 그것들이 네 손에서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에스겔의 손 안에서 두 막대기가 하나의 막대기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의 막대기는 북왕국 이스라엘이요, 남쪽은 유다의 막대기였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종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남과 북이 하나가 되게 하시고,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두 나라로 갈라지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던 두 나라가 한 나라가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들어갑니다. 옛날 사울왕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으고 이스라엘을 점령하기 위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의 군대는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을 대하여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쪽 산에 섰고, 이스라엘은 저쪽 산에 섰고, 그 사이에는 골짜기가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는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었고, 그는 여섯규빗에 한 뼘을 더하였습니다. 한 규빗이 45.6cm 이며, 한 뼘은 20cm입니다. 293cm 로 거인 중의 거인입니다. 골리앗은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고,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었습니다. 그는 다리에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습니다.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었고, 방패를 든 자로 그의 앞서 나가고 있었습니다. 투구가 로마식 투구였다면 투구가 코까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마가 보이는 투구였습니다.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소리소리 지릅니다.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은 놀라 크게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런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베들레헴의 다윗은 양을 치고 있었는데, 아버지 이새가 다윗에게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형들 중에 큰 형인 엘리압과 아비나답 삼마가 전쟁에 나갔는데, 아버지 이새가 다윗을 불렀습니다. “지금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가지고 진영으로 속히 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부장에게 주고 네 형들의 안부를 살피고 증표를 가져오라”고 일렀습니다. 이 때 사울왕이 이끄는 이스라엘과 블레셋 군대가 엘라 골짜기에서 대치하여 싸우고 있었습니다. 형들을 만나 안부를 확인하고 나니 블레셋의 골리앗이 나와서 소리 소리 지르면서 한 사람이 나와서 자기와 싸우자고 합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골리앗을 두려워하여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인들이 하는 말을 다윗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저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왕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 말을 듣고는 “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큰 형 엘리압이 다윗에게 노를 발하였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라고 책망하고 나서지 못하게 합니다. 다윗을 아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말에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자기가 나가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사울에게 들어갔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불렀습니다. 다윗이 싸우러 가겠다고 자원하면서,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하였습니다. 사울왕이 말합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사울왕이 다윗을 보아도 다윗은 아직 어리기만 하고 골리앗과 싸운다는 역부족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담대하게 말하였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대표 전사로 내보기로 하였습니다.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사울은 자기의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혔습니다.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보니 익숙하지 못하고 시험적으로 걸어보다 군복을 거절하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윗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갔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 한 사람이 나오니 골리앗이 다윗에게로 나아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보니, 아주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골리앗이 소리칩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소리쳤습니다. 다윗이 이에 지지 않고 외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자기에게 다가올 때에 그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고 골리앗이 쓰러졌습니다. 다윗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그의 손에는 칼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달려가서 그를 밟고 그의 칼을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블레셋 군인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혼비백산 도망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블레셋 군인들을 쫓아가 죽이고 노략하고 그 날 대승하였습니다. 골리앗에게도 허점이 있었습니다. 골리앗에게는 치명적인 급소가 있는 이마가 비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강한 군인이라고 하여도 허점이 있고, 맹점이 있습니다. 다윗은 어떤 사람입니까? )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은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동안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살려주신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살려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골리앗은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왔지만,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고 싸우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여호와께서 골리앗의 생명을 자신에게 넘겨주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다윗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2) 다윗은 담력을 가진 용사였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용감하게 나설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닦고 기른 담대함과 함께 물매를 사용할 줄 아는 용사였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면서 물매를 사용하는 것을 잘 알았고, 익숙하였습니다. 그가 물매를 돌리고 돌을 던져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그가 이미 습득한 기술입니다. 아무런 기술도 없는데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가 비교적 작은 짐승을 쫓아내고 물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곰이 양을 물러가려고 할 때에 물리쳤습니다. 그는 자기가 물매를 돌리며 나가기만 하면 사자가 도망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역전의 경험이 그로 하여금 골리앗을 상대하게 한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양을 치면서 40년 간 휘두르고 다니던 지팡이가 그 손에 있었습니다. 사사 삼손에게는 나귀턱뼈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나귀턱뼈를 휘두르며 1천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이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사업을 위하여 우리의 손에 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그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해야 합니다. 3) 다윗은 책임적인 애국자였습니다. 나라의 어려움을 보면서 나 몰라라고 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을 부어주시고 장차 왕으로 성별하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라를 위화여 책임적인 자세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는 원로장로님이 추천한 한 책을 보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꼭 읽어보세요” 라는 글이 표지에 쓰여 있었습니다. “미꾸라지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라는 책이었습니다. 60년 전만해도 외국의 원조를 받아야 겨우 연명하던 나라였는데,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를 원조하는 DAC 국가로 변모한 것입니다. 단순히 물자만 보내주는 원조가 아니라, 한국의 새마을 운동과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배우려고 합니다. 성남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 연수센터에서는 한 해에 4000-5000명의 개발도상국 공무원과 전문가들이 교육을 받고 간다고 합니다. 이제는 당당히 세계 경제 10대 강국의 대열에 들어섰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한국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증거입니다. 선진국을 넘어 초일류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국 의사들이 미국에 가서 간이식 수술 연수를 받아왔는데, 10년이 지난 오늘에는 미국교수들와 의료진들이 오히려 한국에 와서 간 이식 수술 연수를 받고 있습니다. 연수를 받아야 하는 나라에서 이제는 가르쳐주는 나라로 바뀐 것입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여행 중에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백악관에서 공식적으로 지정한 병원이 첫째는 독일의 마이츠에 있는 미공군기지 병원이고, 두 번째가 우리나라의 삼성서울병원이라고 합니다. 일본이나 싱가포르나 홍콩의 병원이 아니라, 서울에 있는 병원입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수준이 세계정상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의료혜택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책의 저자가 기독교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한국 개신교회는 전 세계 167개국에 무려 22,000명의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가 되었다고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받던 나라였는데, 이제는 베풀고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적인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가서 싸워줄 거야, 나 아니라도 얼마든지 사람이 많지 않은가, 이런 마음이 아니라, 나부터, 나 먼저 사랑하고,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워 승리하리라고 다짐해야겠습니다. 다윗은 물맷돌을 잘 던졌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을 가지고 나라를 위하여 헌신 봉사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은 북한선교주일이며, 6.25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만 의지하고 전장에 나가는 다윗과 같이 우리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어떠한 역경도 극복하고 싸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6.25/ 시127:1/ 6.25설교/ 2004-06-25
6.25 시127:1 1950년 6월 25일, 만물이 평화롭게 잠든 주일 새벽에 북한의 공산당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기 위한 남침을 감행하여, 이 강토를 동족상잔의 처참한 싸움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가옥 수십만 채가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행방불명이 되는 등 남북한 모두에게 많은 피해가 있었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이 전쟁을 통하여 2,122군데의 교회를 파괴하고, 535명의 교역자를 학살하였으며,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생명을 무참히 앗아갔습니다. 남으로의 피난행렬은 길을 메웠고, 남편을 잃은 30만 미망인들의 한숨과 부모잃은 20만 고아들의 울음소리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굶어죽은 자, 병들어 죽은 자, 그리고 폭격으로 말미암아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려졌습니다. 기나긴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더듬어 본다 하더라도 이같은 처절한 사연은 다시 없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은 6·25가 일어난 지 48년이 지난 지금에나 그 때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6·25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 잊지 말자. 6·25는 처참한 비극의 사건이었습니다. 3년 1개월의 전쟁으로 인해서 남북한 합쳐 약 450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고, 남한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학살과 각종 잔인한 행위는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도 막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고, 교회 지도급 인사들이 납북되어 소식이 끊겨졌습니다. 수많은 교역자와 성도들이 당한 희생, 고난, 굶주림, 형고의 길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만행과 6·25의 비극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6·25는 우리나라가 많은 은혜를 입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운 중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와 용서와 구원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유엔 16개국이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과 48개국에서 의복, 식료품, 의약품, 생필품 등을 모아서우리동포들을 도와주는 등 그리스도의 정신을 구현하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섭리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방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6·25는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교훈으로 교육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에는 유대인들이 건립한 거대한 역사적 교육 전시장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이그대로 폭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조국의 역사를 배우고, 군인들은 국가를위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를 통해 후세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준비하자. 6·25는 이제 과거지사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막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삼아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마음자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6·25는 우리의 신앙이 타락하고, 국민정서 가 해이해졌을 때 발발한 사건이었습니다. 즉 6·25는 교회의 나태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우리는 감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삶의 긴장감을 가지고 성실한 자세로 매진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과 함께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2년 전에 있었던 무장 잠수함침투사건과 얼마전에 있었던 삼척 앞바다의 잠수정 사건이 이를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있습니다. 우리는 우방과도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2,500만 동포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말씀실천운동을 벌여서 성실한 자세로 살아야 하며, 효운오?통하여 이나라의 정신을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또 다른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인 것입니다. 셋째, 희망을 가지자 6·25는 우리에게 고난 뒤에는 항상 새롭고 밝은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는 과거의 고난을 교훈삼아 내일의 밑거름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기대하고,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6·25 이후로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성장해왔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경제 성장, 88올림픽 개최 등 비약적인 성장을 지속해왔고, 교회도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성장에 비해서 정신적인 성장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하여 IMF의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IMF의 위기는 우리에게 또 내일의 희망을 약속합니다. 성경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 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어서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희망찬 내일을 설계해야 합니다.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의 비극을 통해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과거의 역사는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안겨다 줍니다. 우리는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교훈을 토대로 하여 현실에 대처할 줄 아는 지혜를 얻고, 내일을 위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셔서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기게 해주실 것입니다.
6.25/ 시127:1/ 6.25설교/ 2004-06-25
6.25 시127:1 1950년 6월 25일, 만물이 평화롭 게 잠든 주일 새벽에 북한의 공산 당들은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대 한민국을 적 화시키기 위한 남침을 감행하여, 이 강토를 동족상잔의 처참한 싸움터로 만들어 놓았습니 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가옥 수십 만 채가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들 이 학살당하고 행방불명이 되는 등 남북한 모두에게 많은 피해가 있었 습니다. 특히 공산주의자들은 이 전쟁을 통하여 2,122군데의 교회를 파괴하고, 535명의 교역자를 학살 하였으며, 수 많은 기독교인들의 생 명을 무참히 앗아갔습니다. 남으로 의 피난행렬은 길을 메웠고, 남편 을 잃은 30만 미망인들 의 한숨과 부모잃은 20만 고아들의 울음소리 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굶어죽은 자, 병들어 죽은 자, 그리고 폭격으 로 말미암아 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들과 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려졌습 니다. 기나긴 민족의 고난의 역사 를 더듬어 본다 하더라도 이같은 처절한 사연은 다시 없었습니다. 북한의 공산당은 6·25가 일어난 지 48년이 지난 지금에나 그 때나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러한 때에 6· 25와 같은 비극이 다 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 까요? 첫째, 잊지 말자. 6·25는 처참한 비극의 사건이었 습니다. 3년 1개월의 전쟁으로 인 해서 남북한 합쳐 약 450만 명의 인명피해가 있 었고, 남한에서 전국 적으로 벌어진 학살과 각종 잔인한 행위는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도 막심한 피해를 입 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피를 흘렸 고, 교회 지도급 인사들이 납북되 어 소식이 끊겨졌습니다. 수많은 교역 자와 성도들이 당한 희생, 고 난, 굶주림, 형고의 길은 이루 헤아 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만 행과 6·25의 비극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6·25는 우리나라가 많은 은혜를 입은 사건이기도 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운 중에서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와 용 서와 구원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유 엔 16개국이 한국에 참전하게 된 것과 48개국에서 의복, 식료품, 의 약품, 생필품 등을 모아서 우리 동 포들을 도와주 는 등 그리스도의 정 신을 구현하게 된 것은 모두가 하 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우리는 이러 한 하나님의 은혜와 우방 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6·25는 후손들에게 역사적인 교 훈으로 교육되어야 합니다. 이스라 엘과 미국에는 유대인들이 건립한 거대한 역사 적 교육 전시장이 있습 니다.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 시 나치의 만행이 그대로 폭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조국의 역사를 배우고, 군인들은 국가를 위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 를 통해 후세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 다. 둘째, 준비하자. 6·25는 이제 과거지사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우 리에게 주는 의미는 막중한 것입니 다. 우리는 이것을 교훈삼아 내일 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마음 자세를 준비해야 합니다. 6·25는 우리의 신앙이 타락하고, 국민정서 가 해이해졌 을 때 발발한 사건이었 습니다. 즉 6·25는 교회의 나태함 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음을 우 리는 감지해야 합니 다. 우리는 또한 삶의 긴장감을 가지 고 성실한 자세로 매진해야 합니 다. 성경은 우리에게 [근신하라 깨 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 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 을 앎이니라](벧전 5:8-9)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과 함께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북한은 아직도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 야 합니다. 2년 전에 있었던 무장 잠수함 침투사건과 얼마전에 있었 던 삼척 앞바다의 잠수정 사건이 이를 분명하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 다. 우리는 우방과도 협력해야 합니 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 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 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 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 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나라를 위해 기도해 야 합니다. 북한의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2,500만 동포들에게도 복음 을 전해야 합 니다. 또한 우리는 말 씀실천운동을 벌여서 성실한 자세 로 살아야 하며, 효운동을 통하여 이나라의 정신을 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요, 또 다른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 도록 하기 위한 우리의 준비인 것 입니다. 셋째, 희망을 가지자 6·25는 우리에게 고난 뒤에는 항상 새롭고 밝은 날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는 과거 의 고난을 교훈 삼아 내일의 밑거름 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기대 하고, 준비하면서 살아가 야 할 것입니다. 6·25 이후로 우리나라는 급속도 로 성장해왔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한 경제 성장, 88올림픽 개최 등 비약적인 성장을 지속해왔고, 교회도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 은 이 러한 성장에 비해서 정신적인 성장이 뒤따르지 못했다는 점입니 다. 이로 인하여 IMF의 위기가 닥 쳐온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IMF의 위기는 우리에게 또 내일의 희망을 약속합니다. 성경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 종하 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 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 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 산을 많게 하시 고 네게 복을 주시 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 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 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30:9-10)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어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 하지 말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희망찬 내일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 게 희망 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25의 비극을 통해 서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습니다. 과거의 역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안겨다 줍니다. 우 리는 지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 지만 이 교훈을 토대로 하여 현실 에 대처할 줄 아는 지혜를 얻고, 내일을 위한 희망과 꿈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입니 다. 우리가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 중심 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 서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셔서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6.25/ 예수, 새로운 살 길 /히10:19-20 2019-09-05 08:36:48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학도병의 편지> 1950년 6・25전쟁 당시 포항여자중학교는 중요방어선 중 한 곳으로, 71명의 학도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이우근’ 학도병도 이 전투에 참전하였다.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
6.25/ 예수, 새로운 살 길 /히10:19-20 2019-09-05 08:36:48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학도병의 편지> 1950년 6・25전쟁 당시 포항여자중학교는 중요방어선 중 한 곳으로, 71명의 학도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이우근’ 학도병도 이 전투에 참전하였다.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더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에게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저는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니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편지를 쓴 다음 날, 이우근 학도병은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편지는 그의 품 안에 있던 수첩에서 발견되었다. < 한국전쟁의 상흔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1개월간 지속된 한국전쟁에서 편지 속 학도병처럼 전사한 사람은 한국군 137,899명, 유엔군 40,670명, 북한군 508,797명, 중공군 148,600명으로 총 835,966명이었습니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수류탄과 포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고, 조금 전까지 살아 있던 전우들이 모두 주검이 되는 끔찍한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가 무려 835,966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반인들, 즉 시민들의 사망에서 학살, 부상, 납치, 행방불명된 이들의 수는 990,968명이었습니다. 대략 잡아 희생자 수가 무려 200만 명에 육박합니다. 이 전쟁으로 약 1,000만 명의 이산가족이 생겼고, 30만 명의 전쟁미망인이 생겼으며, 10만 명의 전쟁고아가 생겼습니다. 69년 전 일어난 이 참혹한 전쟁이 바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입니다. 민족과 민족이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의 참화였습니다. 이러한 비극적인 전쟁의 책임은 전쟁을 준비하고 남침을 강행한 북한과 김일성 정권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용인하고 도운 소련과 중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전쟁에 책임을 지거나 사과한 일이 없습니다.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와 끊임없는 적의, 적화의 야욕은 지금까지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입니다. 연평도 포격이나 서해안에서 일어난 천안함 격침 사건이 그러하고, 최근 그들이 개발했다고 자랑하는 핵무기가 그러합니다. 최근 북한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자신들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백번 양보해 그렇다 할지라도 북한이 호전적이지 않다거나 평화를 사랑하는 정부 혹은 국가라는 주장은 증명해 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때문에 ‘참으로 이와 같은 북한을 앞에 두고 어떻게 우리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라고 걱정하며 기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1950년 6월 25일은 주일이었습니다. 오늘처럼 예배드리던 어느 날 북한군이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때문에 언제 어느 때 또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특별히 북한에서 공산주의의 실상을 경험한 기독교인들은 걱정과 염려가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일찍이 북한은 전쟁 전부터 북한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대량 학살을 감행한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인이 죽음과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참다운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전쟁 중에도 북한군은 수없이 기독교인들을 집단적으로 살해했습니다. 원당교회에서 73명, 봉남교회에서 73명, 영암읍교회에서 24명, 야월리교회에서 65명, 덕암교회에서 22명 등 여러 교회당에서 북한군에 의한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과 도움이 없었다면, 이 땅은 아마 오늘날 북한과 같은 땅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인권이 말살되고 신앙의 자유가 없는 얼어붙은 땅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상과 이념이라는 틀 안에 갇혀 버린, 그래서 자아비판과 인민재판, 노동교화를 받으며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민족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죽음의 문화가 이 땅을 장악하려 합니다. > 사실 공산주의는 산업사회로 급속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에 비인간화의 문제를 보완하려는 하나의 대안 철학에서 태동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상황에 적용되었을 때 큰 문제점들이 드러났습니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지주와 소작인, 기업인과 노동자 계급과 계층의 구별은 분열과 반목, 투쟁을 양산했습니다. 인류가 행복해지고 비인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발한 공산주의가 도리어 인간을 피폐하게 했고, 게으르게 만들었으며, 계층 간 갈등과 반목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1인 혹은 1당 독재가 가능한 왜곡된 이념과 정치체계를 형성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이념에는 ‘공평’과 ‘정의’라는 핵심 가치가 있었으나, 정작 ‘박애’와 ‘사랑’이라는 가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바로 이러한 정신과 이념을 우리는 죽음의 문화, 죽이는 태도, 죽이는 정신이라고 명명할 수 있습니다. 1인 독재가 가능한 나라, 그것도 3대에 이르도록 세습이 되지만 도리어 백두혈통이라 칭송받으며 독재가 공고하게 유지되는 나라가 북한입니다. 인간의 인간 됨,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와 권리,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나라, 바로 그 나라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야망을 이 땅에서도 이루려 하는 북한과 우리 대한민국이 휴전 상태로 대치하며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북한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죽음의 문화에서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한 가정 혹은 소수의 지배자들을 위해 모두가 희생되고 있는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 남한의 현실이 만만하거나 녹록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남한은 북한에 비해 매우 훌륭한 정신과 세계관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유주의, 자유경제체제 그리고 자본주의, 민주주의라고 하는 체제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비교해 훨씬 나은 상황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특히 ‘죽음의 문화’와 관련하여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유로운 경쟁을 표방했던 자유경제체제는 무한한 경쟁을 유도하여 낙오자들을 속출하게 했습니다. 무역 전쟁이 일어났고, 새로운 전쟁을 계속해서 양산하게 했습니다. 자유와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로 지금까지 발전해 왔지만,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했으며, 또 다른 전쟁의 자리에 내몰리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경쟁에서 낙오되는 자들이 나오고, 정권을 잃거나 힘을 잃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러나 이긴 자들은 세상의 방식으로 약자를 죽이려 달려드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악 된 세상의 방식이요, 세상의 법칙입니다. 상대적인 박탈감 속에서 증오와 반목, 신경증적 태도와 적개심, 우울증이 만연한 현실입니다. 이처럼 또 다른 심연, 또 다른 죽음의 현실이 이 땅에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한 아내가 남편을 극도의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일가족 4명이 한 장소에서 함께 목숨을 끊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들리기도 했습니다. 자유와 인권, 자율 경쟁이 보장되는 이 땅, 이 나라이지만, 이 땅에서도 결코 행복한 소식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개인의 달란트를 존중하고 의견을 존중하고 소수의 사람을 존중하는 우리 자유민주주의가 도리어 방종과 또 다른 태만을 낳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잃은 어떤 사상이나 체제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우리는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것이 행복하고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체제인가?’ 하는 물음도 던져보게 됩니다. 공산주의는 또 어떻습니까? 사회주의는 어떻습니까? 사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는 것,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재산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 이와 같은 정신이 바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주요한 철칙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실제 상황 가운데서는 이러한 정신과 이념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평등과 정의를 추구했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나 자유경제체제가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습니까?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면서 무한한 발전을 이루어 오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자유와 인권은 매우 소중합니다. 그래서 많은 창의적인 일들이 일어났고, 산업 발전도 이룩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결과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방종과 타락, 그 밖의 수많은 문제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실 민주주의도 예수님의 정신을 반영한 체제이자 이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달란트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소외된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여인들의 인권을 인정하셨고, 어린아이들의 권리도 존중해 주셨습니다. 병자들과 함께하셨고,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신 예수님입니다. 바로 그분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 민주주의요, 자유경제체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실상은 무언가가 빠져있는 듯 보입니다. 이 땅에서도, 또 다른 땅에서도 온전한 체제, 온전한 평화, 온전한 기쁨과 온전한 해방감을 느끼지는 못하니까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빠진 것입니까?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무엇이 빠져 있길래, ‘공평’과 ‘정의’와 ‘평등’이라는 너무도 멋진 구호를 외치고 있음에도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까? 또한 ‘자유’와 ‘인권’을 그토록 강조하는 민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곳에서도 또 다른 죽음의 그림자가 활개치고 있는 것입니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통일. 우리는 통일을 기다리며, 통일된 미래를 생각합니다. 통일된 미래에 우리는 어떤 체제, 어떤 체계로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 아니면 공산주의? 무엇이 우리를 밝고 옳은 길로 인도해 주겠습니까? 물론 언뜻 드는 생각은 공산주의보다는 자유민주주의가 올바른 체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의 정신으로부터 시작된 공산주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체제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용서가 있는 곳에서 참 자유와 정의가 실현됩니다. >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10:19~20)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매우 중요한 모습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 생명을 내어놓으신 ‘희생’입니다. 그런데 그 희생은 공산주의에도 없고 자본주의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공평과 정의, 평등을 내세우는 공산주의 사상에서도 빠져버렸고,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며 보장한다는 민주주의 사상에서도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인권은 귀한 것입니다. 자유도 귀합니다. 평등도, 공평도, 정의도 귀한 것입니다. 더욱이 이 모든 건 예수님의 생각과 정신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방식은 다름 아닌 십자가에서의 ‘희생’이었습니다. 정의의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공평이나 평등이란 단어의 나열도 아니었습니다. 자유의 선언도 아니었습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 자유를 주시기 위해, 죄에서 자유 함을 얻게 하시기 위해, 사탄의 노예 되었던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희생을 몸소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 공의로운 정의, 이 정의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바로 ‘희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도 희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자기희생’.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은 부활 후 강조하신 ‘용서’입니다. 자기희생과 용서.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에도 없고, 민주주의에서도 발견되지 못하는, 그러나 예수님이 지금까지 선포하며 강조하시는, 동시에 이 세상은 이루지 못하고 있는 덕목이자 정신입니다. 우리의 사회도 그렇고 우리의 가정도 비슷합니다. 정의로운 가정,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공평한 가정, 얼마든지 이룰 수 있습니다.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가정, 여건이 신장 되는 가정을 얼마든지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한 매우 중요한 방식은 ‘자기희생’입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희생, 아내는 아내로서의 희생, 그 희생이 있는 곳에서 정의와 공평 그리고 자유가 나타납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서 비로소 정의와 공평, 자유가 실현됩니다. < 자발적 희생과 용서만이 이 나라와 시대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 찬송가 515장은 1952년 6・25 당시 지어진 찬송입니다. 1절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가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비탄한 심정으로 노래합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또다시 죽어 나가는 현장에서 이렇게 탄식하며 노래합니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그러나 이 개탄한 상황이 전쟁뿐이겠습니까? 지금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억압과 압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곳에서 살고 있는 가난하고, 병들고,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을 생각하면서 다시 1절의 가사를 살펴보십시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그러나 어찌 이것이 북한만의 일이겠습니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남한의 현실이 과연 이 노랫말에서 비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남한의 현장을 바라보며 이 노랫말을 살펴봅시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의 탄식 소리 들려온다.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탕자처럼 기진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꼬”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 어느 곳에서든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 상한 영의 탄식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이할꼬, 어이할꼬.” 그러나 다음 2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 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죄를 대속하신 주님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꼬 정의를 외칠 사람을 찾는 게 아닙니다. 자유를 외칠 사람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희생당할 사람,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을 사람, 그 사람입니다. “선한 일꾼 찾으시나 대답할 이 어디 있나 믿는 자여 어이할꼬” 또한 3절과 4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살아 계신 주 하나님 약한 자를 부르시어 하늘 뜻을 전하셨다 생명수는 홀로 예수 처음이요 나중이라 주님 너를 부르신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 눈을 들어 하늘 보라 다시 사신 그리스도 만백성을 사랑하사 오래 참고 기다리네 인애하신 우리 구주 의의 심판하시는 날 곧 가까이 임하는데 믿는 자여 어이할꼬 생명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희생의 자리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우리 주님이 지금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통일선교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6・25전쟁 69주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통일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통일이 된다면 이 세상, 이 땅을 과연 온전하게, 바람직하게, 행복하게 만들어 갈 자신이 있습니까? 민주주의면 됩니까? 자유경제체제면 됩니까? 공산주의면 됩니까? 사회주의면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이 땅에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발적인 희생, 그리고 용서. 이것이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이것만이 세상을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분이 바로 새로운 살 길입니다. 이 예수님을 붙잡고 이 땅을 변화시키기를 다짐하는 주님의 귀한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6.25/ 의인 열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22-32 2009-08-28 14:41:49 read : 3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올해 6월 25일은 북한 공산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침공한 지 59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6.25 전쟁으로 인하여 450만 명의 인명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5만 명이 넘는 고아가 생겼습니다. 젊어서 과부가 된 여인이 39만 명, 행방불명 된 사람이 36만 명, 납북자가
6.25/ 의인 열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창18:22-32 2009-08-28 14:41:49 read : 33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올해 6월 25일은 북한 공산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넘어 침공한 지 59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6.25 전쟁으로 인하여 450만 명의 인명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5만 명이 넘는 고아가 생겼습니다. 젊어서 과부가 된 여인이 39만 명, 행방불명 된 사람이 36만 명, 납북자가 8만 명, 이산가족이 된 사람이 천만 명이 넘습니다 . 그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대략 삼천만 명 정도니,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이산가족인 셈입니다. 지금 이들 중에 300여만 명 이상이 죽었고, 600여만 명만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들 중에는 59년째 가족의 생사마저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 지구상에 많은 공산국가가 있지만, 북한처럼 편지도 못 하고, 전화도 못 하고, 왕래도 못하게 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오직 북한뿐입니다. 이 북한은 전 세계 공산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국가입니다. 같은 이념을 가진 러시아나 중국도 북한 공산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북한 공산정권은 수백만 명의 북한 국민을 굶어 죽게 하면서까지 핵무기를 개발했습니다. 그런 뒤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수시로 공갈과 협박을 합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우리는 북한의 협박에 얼마나 많은 위협을 느끼며 살아왔습니까!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세계 십대 경제 대국에 들어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라, 의인이 없어서 망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것은 믿음 앞에서 거룩하게 사는 의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았던 소돔과 고모라는 모든 백성이 악하고 음란하여 많은 죄를 범했습니다. 악한 속성은 사탄 마귀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한 백성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를 구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본문 23~25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라고 아브라함은 부르짖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은 죄 없는 의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 나오는 의인은 죄를 범했으나 회개를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죄가 많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다 용서해 주십니다. 지금까지 범한 죄를 하나도 기억하지 않고, 오히려 죄에서 돌아서서 그 의를 행하는 모습을 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많이 범한 니느웨의 백성이, 40일 안에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요나가 외쳤을 때,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하나님은 니느웨를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악독한 민족이라도 회개하면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망하는 나라는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면 살길이 열립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가 성경에서 일컫는 의인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아브라함은 기도합니다. “의인이 오십 명이 있다면, 멸하시겠습니까?” 이 때 하나님께서는 26절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고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 기도를 이어갑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이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의 심판을 받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지금은 사해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사해바다는 다른 바다의 수면보다도 394m나 낮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수면이기에 모든 바닷물들이 들어가기만 하지 나오지는 않습니다. 사해바다는 물이 너무 짜고, 썩어서 어떤 생물도 살아가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을 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인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의인은 악인과 함께 멸망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 롯과 같은 의인은 악인과 함께 멸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심판은 실수가 전혀 없습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안에 아브라함과 같은 합심 기도하는 사람이 열 명만 있었더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59년 동안 계속해서 위기를 당하고, 위협을 당하는 불안한 사건이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 것은 아브라함과 같은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는 공산화될 위급한 순간까지 갔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전쟁을 치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신형무기 하나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는 소련 탱크를 앞세우고 내려오는 북한군 앞에 방어선은 힘없이 무너졌습니다. 이 북한군은 낙동강 앞까지 밀물처럼 밀고 내려왔습니다. 낙동강을 넘어서 부산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1950년 7월 2일, 6.25전쟁이 일어난 지 칠일 째 되는 주일에 부산으로 피난 온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해 달라고 목사님들께 부탁 했습니다. 초량교회에 많은 목사님과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 되었고,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에 한국에 지원군을 파병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다섯 나라(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 가운데서 한 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 결의안은 무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날, 소련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이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 파병이 결정된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B-29 폭격기가 낙동강변에서 진을 치고 있는 북한군을 폭격할 때,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목사님들께 합심기도 요청을 했습니다. 그 요청을 받았을 때, 초량교회에 모인 성도들은 열흘 동안 금식을 하며,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단 하루도 비가 오지 않게 했습니다. 구름이 낀 날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낙동강 변에 진을 치고 있는 북한군에게 B-29 폭격기들이 융단 폭격을 하여 북한군이 낙동강을 건너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 기도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공산화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적은 수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위기에 처한 나라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미국의 3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집무실에서는 언제나 기도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링컨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어려울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가 알지 못하던 지혜가 떠오릅니다.”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영감을 주셔서 모든 일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었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1863년 4월 30일 목요일은 미국의 운명을 바꾼 날입니다. 아마 이 날이 없었다고 한다면 미국의 역사는 다르게 쓰여 졌을 것입니다. 이 날은 온 국민이 금식기도를 한 날입니다. 기도가 있으면 운명이 바뀝니다. 미국 남북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늘 기도하던 링컨은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자, 혼자서만 기도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온 국민에게 금식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동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 겸손히 자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다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남북 전쟁의 이 비극은 우리의 부끄러운 죄에 대한 형벌이며, 또한 국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신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계속되는 성공에 너무나 도취되어 교만해 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우리 다 함께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이렇게 온 국민이 금식기도를 한 후에 놀랍게도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북군이 승리함으로 남북전쟁이 끝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 총회에서는 22일(월)을 금식기도하는 날로 정해서, 한 끼라도 금식하며 기도하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산에서는 오는 29일을 기도하는 날로 정하고, 초교파적으로 모든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거제교회에 모여서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수영로교회 성도들은 이번 한 주간을 특별히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는 주간으로 결정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 1~2절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죄를 범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언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중보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나를 보시고 용서하옵소서. 내가 이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졌나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꼭 기도해야 할 제목이 있습니다. 1.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이 때, 온 국민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 11절에서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국론이 분열되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일이고, 마귀가 조종하는 일입니다. 국론이 분열되면 참으로 위험합니다. 이것을 해결 하실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나라 백성이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병들어 있는 국민정신을 하나님이 고쳐 주셔서, 건강한 국민정신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건강한 정신을 가져야 건강한 인격,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은 정신이 병들었습니다. 도덕과 윤리가 무너졌습니다. 법을 지키지 않습니다. 알콜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인터넷중독에 걸려 있습니다. 가정파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 범죄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음란하고 타락된 문화가 각 가정마다 침투해서 우리의 정신은 병들었고, 썩어가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백성들과 같이 악하고 음란한 백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기입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이 나라가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성령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면, 이 땅의 국민들이 건강한 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3. 우리나라에 좋은 지도자가 많이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역대 지도자들은 큰 죄를 많이 범했습니다. 수십억이 아니라 수백, 수천억 원 씩 부정한 돈을 축적하고 빼돌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자라는 젊은이들은 점점 꿈을 잃어버립니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는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데, 윗물이 썩으니 아랫물도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회가 썩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온 국민의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역사에 기록되어 대대손손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기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지도자를 세워 주신다면 이 나라는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4. 지금의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예수 믿는 좋은 지도자들이 나와서, 이 나라가 복음으로 통일이 되는 날이 하루속히 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님 방법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 북녘 땅에도 마음껏 예수 믿고, 전도하고, 교회가 세워져 북한이 변화된다면 이 나라는 저절로 통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무엘상 7장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계속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운 사무엘은 온 백성을 미스바에 모이게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온종일 금식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것이 기회인줄 알고, 그들을 포위하여 완전히 전멸을 시키면 승리로 끝난다고 생각하여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 번개와 우레를 치게 하셔서 블레셋 군사들이 혼비백산하여 정신을 못 차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가서 잃어버렸던 땅까지 다 회복을 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큰 손이 역사하면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부족해도 우리가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헤롯왕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데려갔습니다.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성도들은 안타까워 기도합니다. “이제 유월절이 지나면 베드로도 죽을 텐데, 하나님 아버지 베드로를 살려주세요.”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두 군인 틈에 쇠사슬로 묶어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군인들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잠을 자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날 때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베드로를 깨워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신을 신고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이 네 명씩, 네 패로 열여섯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 앞을 통과해도 아무도 알아보는 자가 없었습니다. 큰 길로 가는 쇠문 앞에 가니, 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천사가 떠나고 옥에서 나온 베드로는 기도하고 있는 마가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두드릴 때, 로데라 하는 여자아이가 나왔습니다. 베드로를 본 로데는 문을 열어주는 것도 잊어버리고 ‘베드로 사도가 오셨다.” 소리치며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로데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로데가 계속 “베드로 사도가 오셨다.”고 하자, 성도들은 “그의 천사가 왔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살아서 나오길 기도하면서도,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다시 문을 두드리자, 그 때서야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합심해서 기도하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되고 축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6.25/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은 한국 /대하14:9-13 2018-06-07 06:54:11 read : 14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은 한국 (대하 14:9-13) <본문> 유다왕 아사가 통치할 때에 ‘구스 사람 세라’라고 했는데 ‘구스’는 이집트로 보면 된다. 왕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세라’는 이집트 장군으로 짐작된다. 이집트 세라 장군이 100만 군사를 이끌고 유다나라를 침략하였다. 유다나라는
6.25/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은 한국 /대하14:9-13 2018-06-07 06:54:11 read : 14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남은 한국 (대하 14:9-13) <본문> 유다왕 아사가 통치할 때에 ‘구스 사람 세라’라고 했는데 ‘구스’는 이집트로 보면 된다. 왕이라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세라’는 이집트 장군으로 짐작된다. 이집트 세라 장군이 100만 군사를 이끌고 유다나라를 침략하였다. 유다나라는 이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나라가 망할 큰 위기가 온 것이다. 그래서 아사왕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11)“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이 기도에 하나님이 도우셨다. 그래서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전쟁인데 기적적으로 이기고 나라를 지키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역사에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나라를 지킨 역사가 종종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6.25전쟁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에 북한이 남한을 침공해서 서울이 삼일 만에 함락되고 한 달도 못되어 남한 전체가 짓밟히고 대구와 부산만 남게 되었다. 당시에 북한은 소련의 지원과 모택동의 협력으로 지상군 20만명, 비행기 200여대, 대포 400여문, 탱크 240대로 무장하여 총공격을 감행했던 것이었다. 이에 비해 한국군은 지상군 10만명(군은 6만명 경찰이 4만명이다) 탱크는 한 대도 없었고 탱크를 부술 수 있는 야포나 대포도 없었다. 더구나 6월 25일은 일요일이라 군의 1/3은 휴가 외박으로 나간 상태에서 기습을 당했다. 도저히 이길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나라를 지켜내었다. 1. 6.25전쟁에서 초기에 남한이 참패한 원인 1)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제 36년간의 압제에서 해방 되었지만 정치적으로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을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 북한은 공산당이 독재체제를 이루었지만 남한에는 끊임없이 남로당 세력들이 나라 곳곳에서 게릴라전을 펴고, 반정부세력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일어난 반란이 제주도의 4․3 사건(1948.4.3.) 이었다.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에서 5월10일 총선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직적인 반란사건이었다. 그리고 여수순천 반란사건(1948.10.19.)도 일어났다. 또 영천 보현산, 지리산 등 여러 곳에서 북한에서 훈련받은 공산당 빨치산들이 지역 빨치산과 연합하여 소규모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승만 정부가 1948년에 수립이 되었지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던 형편이었다. 2) 북한의 남침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한반도를 공산화하기 위해서 철저한 준비를 했다. 북한은 전쟁 개시 1년 전부터 사실상 전시체제로 들어갔다. 북한은 중학 이상의 모든 학교에 배속장교를 두어 학생들을 훈련시켰고, 북한 전역에 조국보위후원회를 조직하고, 17세부터 40세까지의 모든 남녀를 동원해 강제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한 후에 6월 25일 날을 잡아서 전면 침략하였던 것이다. 반면에 남한은 북한이 설마 남침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그래서 대비가 전혀 되지 못하였다. 3) 한국군 수뇌부에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첫째는 전방에 있는 정보원들이 북한이 대규모 남침을 할 것이라는 보고를 수 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가 이를 무시했다. 둘째는 각 사단장과 연대장들을 전쟁이 일어나기 2주전에 대규모 인사이동을 시켰다. 전방에 있던 사단장들은 후방으로 보내고, 후방에 있던 사단장들은 전방으로 보내고, 전방부대는 후방으로, 후방부대는 전방으로 배치를 해 놓았다. 이것은 당시 국군 수뇌부에 간첩들이 있어서 북한이 남침하기 유리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놨다고 추정할수 있다. 셋째는 전쟁 전에 북한의 거짓 평화공세가 요란했다. 그래서 1950년 6월 24일에 비상사태를 해제 하고 전방에 있는 국군장병들 절반을 휴가 보내고 6월 24일 저녁에는 군 고위간부들을 서울로 불러서 6월25일 새벽까지 댄스파티를 열었었다. 그리고 그날 새벽에 공산군이 남침을 하였다. 이처럼 6.25전의 한국군 모습을 보면 무언가 수상한 모습들이 많았다. 그래서 북한의 남침에 전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전쟁이 일어난 얼마 후에는, 부산 일원만 겨우 남고, 전국이 북한군의 군화에 짓밟히게 되었던 것이다. 김일성의 승리는 확실하게 보였다. ‘대한민국’은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만약 그 때에 우리나라가 적화통일 되었다면? 지금의 북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자유와 평등도 없고, 종교의 자유도 없고, 인권도 전혀 없는, ‘생지옥’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일어났다. 그래서 전세를 역전시키고 서울을 수복하고 다시 회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의 기적의 역사였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위기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2. 남한이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기적. 1) 미국과 유엔군의 신속한 참전을 결정한 것이 기적이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이 침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한 후에 한국을 도우라고 명령함으로서 그 당시 일본에서 사령관으로 있던 맥아더 장군을 중심으로 한 부대가 일본에서 부산으로 바로 들어왔었다. 자기 나라 일도 아닌데 그렇게 신속하게 미군의 파병 결정을 한 것이 기적이다. 트루먼은 ‘미군의 참전 결정’에 10초도 안결렸다고 그의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트루먼은 이렇게 혼자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에게 맹세코 그 자들이(공산주의자) 대가를 치르도록 해주겠어.” 트루먼의 결정에는 그의 신앙이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결심에 따라서 전쟁이 확대되고 미국 국민이 한국 땅에 가서 죽어야 하는데....트루먼 대통령은 생전 자신이 내린 결정 가운데 한국전쟁 참전이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회고하였다. 과거에 미국이 이런 신속한 파병 결정은 없었다. 만약 미국이 조금만 1주일 정도만 파병을 미루었어도 한국은 적화되고 말았을 것이다. 사실 그당시 트루먼은 한국을 지켜내어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당시 미국은 한국은 미국이 싸워서까지 보호할 만한 전략적 가치가 없는 곳이란 판단을 내려놓고 있었다.(애치슨라인) 그런 점에서 트루먼의 파병 결정은 극히 예외적인 조치였다. 즉 트루먼의 결정은 하나님의 도움이었던 것이다. 또 유엔안보리에서 UN군 파병결정을 하는데...상임이사국 다섯 개 나라가 의견을 모아야 가능한 사항이었다. 만약 다섯 나라중 한 나라라도 반대를 하면 결의가 되지 않는 법이었다. 즉 소련대표가 그때 참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유엔군의 참전은 불가능했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 UN안보리 회의에 소련 대표가 불참하였고 그래서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대만)이 유엔군 파병을 만장일치로 결의함으로 유엔군이 우리나라에 파견이 되어 북한군과 싸우게 되었다. 이것도 기적이었다. 어떻게 소련 대표가 그 중대한 회의에 불참했을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말리크 유엔 대사에게 회의참석 차 가다가 자동차 사고를 빌미로 안보리 이사회에 불참하도록 지시하였다는 사실이다.(그 이유는 나중 말씀 드리겠다) 2) 한반도의 7월은 비가 많은 장마의 계절인데, 그 해의 여름은 대체로 날씨가 계속 좋아서 미군의 항공기가 거의 매일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다. 한반도 7월이면 장마철이다. 장마철에 비가 오면 앞이 보이지 않음으로 유엔 비행기가 뜰 수가 없다. 그래서 폭격할 수도 없는 법이다. 그런데 그해 7월은 장마가 예외적으로 짧았다. 대체로 좋은 날씨가 많았다. 그래서 미군 폭격기가 북한 보급로를 많이 차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북한군은 보급로가 끊겨서 비행기가 뜨는 낮에는 활동 못하고 밤에 주로 지게로 보급을 행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군은 나중 제대로 먹지 못해서 사기가 떨어졌고, 보급이 안되니 제대로 싸우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국군이 밀고 올라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날씨를 주장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움이다. 3)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약 1주일간을 이유 없이 지체했다는 것이 기적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남침을 시작한 북의 인민군은, 28일 새벽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그런데, 물론 한강 다리가 폭파되었다고 해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한강을 넘어 남으로 진격해야 하는데, 그들은 서울 진입 후 우물쭈물 일주일 정도를 지체했었다. 그 1주간의 시간이, 결국 미군 및 유엔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입하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 북한군의 서울에서 일주일을 지체한 것에 대하여 어떤 역사가는 이유를 알수 없는 ‘미스터리’라고 표현하였다. 6.25당시 국군 지휘관이었던 백선엽 장군도 그의 회고록에서 그 이유를 “지금도 자세히 알수 없다.” 고 하였다. 그 알수 없는 지체가 후퇴하는 한국군에게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미군이 도착하여 지원할 수 있는 여유를 주게 되었다. 정말 황금같은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반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이 도운 기적이다. 그런데 역사가들은 북한군이 서울에서 1주일을 지체한 이유를 이렇게 추정하고 있다. ① 남한의 공산 세력이 봉기할 것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남로당 박헌영이 "인민군이 남으로 침공하여 서울을 점령하기만 하면, 남한 내 각처에서, 북에 동조하는 인민들의 대대적 봉기가 일어난다. 그러면, 우리가 싸우지 않아도, 남반부는 스스로 무너진다" 는 말을 믿고, 서울에서 1주간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은 공산당이 서울을 점령하기만 하면 후방에서 남로당 지하 조직원 20만 명이 들고 일어나 이승만정부와 국군은 무너질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국군은 기습을 받았지만 항복을 거부하였고, 남로당의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② ‘춘천전투에서의 패배 ’가 결정적 요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6.25 전날 이상하게도 육군본부는 그 동안 전군에 발령되어 있던 ‘비상경계령’을 해제하였었다. 그러나 춘천지역을 방어 하고 있던 국군 제 6사단은 ‘경계령’을 해제하지 않고, (장병의 휴가나 외출을 금하며) 비상경계태세를 유지하므로 효과적으로 초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래서 본래 북한군 계획은 개성으로 내려오는 북한군과 춘천으로 내려오는 북한군이 서울에서 합류하여 남으로 내려가려고 했었는데...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춘천으로 내려와야 할 북한군이 한국군에 막혀서 며칠동안 못내려오니 전선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예정보다 며칠을 더 기다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③ 소련이 북한의 신속한 남진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련의 공산당이 무너지면서 당시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드러난 진실이다. 스탈린은 중국의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고 그 세력이 크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탈린은 중국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한국에서 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중국이 싸우도록 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일성이 기습 남침의 여세를 몰아 단시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 한반도 적화통일을 조기에 성공시켜버리면 미군의 한국 상륙이 불가능해지고 미국과 중국이 싸우도록 하는 스탈린의 목적은 이뤄질 수 없었다. 미국이 들어오고 이어서 중국군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북한군이 너무 빨리 부산을 점령하면 안되는 것이 스탈린의 전략이었다. 그래서 스탈린은 김일성의 조기 승리를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수를 썼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에서 망명했던 황장엽 선생이 작고 전에 언론인 조갑제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김일성이 서울을 점령한 뒤 근 1주일을 머뭇거리면서 한강을 건너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 원인에 대하여 김일성은 스탈린을 탓하며 스탈린이 도하장비 등 군수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스탈린이 북한군의 남진을 고의로 늦추었다는 생각을 하더란 이야기였다.” 이같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북한군은 서울에서 일주일을 지체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서울에서 약 일주일을 허비한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4) 대한해협해전에서 해군이 북한특수부대 투입을 조기에 저지했던 것이 기적이다. 6.25 전쟁이 발발한 25일 밤 북한은 무장병력 600여명을 태운 1천t급 무장 수송선을 부산으로 상륙시키려 했다. 이 무장 수송선을 발견하고 격침시킨 것이 백두산함이다. 백두산 함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국 해군이 사용한 450t급 초계정이었다. 당시 미군은 한국에 함정을 주면 이승만이 북한으로 쳐들어갈까봐 일부러 함정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해군은 성금을 모아서 미군이 다 사용하고 버린 폐선된 고물 함정을 사서 한국으로 끌고와서 다시 사용하였다. 그게 한국 해군의 유일한 함정인 백두산 함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6월25일 새벽 3시30분경에 이미 동해안 3개소에 기습상륙을 감행했다. 강원도 옥계해안에 약 1,800명, 삼척해안에 약 800명, 경북 죽변과 임원해안에 약 500명이 상륙을 했다. 그래서 한국 해군은 백두산함을 이러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하여 북으로 가다가 저녁 7시 30분경 울산 앞바다에서 부산쪽으로 가는 수상한 배를 발견하고 추적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 수상한 배를 가까이 가서 조사해보니 군인들이 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북한군으로 단정하고 해전을 벌여 격침시킨 것이다. 이것도 하나님 은혜다. 동해 바다가 얼마나 넓은데 수상한 배 하나 발견했다는 것이 기적 아닌가? 이것도 하나님 은혜이다. 그리고 발견한 시간이 저녁 7시 30분이다. 저녁 해질 무렵이다. 1시간만 늦게 출동했어도 어두워서 수상한 배인줄 제대로 파악할수 없었던 시간 아닌가? 만약 이 배를 발견 못했다면? 북한 특공대 600명이 부산항에 상륙하여 부산항을 파괴하고 난동을 부렸다면 UN군이 제대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겠나? 하나님 은혜로 부산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낙동강방어선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5)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천상륙작전이 '기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인천은 갯벌이 넓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 딱 두 시간, 만조에 물이 들 때 상륙해야 하는데 그 사이 적군이 대항하면 우리가 궤멸될 수 있다.” “상륙작전 교범에서 금기사항만 추려내서 정리하면 그게 바로 인천이다”라고까지 말했다. 그래서 참모들은 말렸지만 맥아더 장군은 “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로 기습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최대의 요소이다” 라고 말하며 고집으로 밀어부쳤다. 그리고 당시 미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는 것도 힘겨워하고 있었다. 더구나 상륙작전은 해병대가 전문인데 당시 미해병대는 낙동강 방어선이 약한 부분이 무너지면 가서 막는 특별지원군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래서 낙동강 방어선을 맡았던 워커소장은 “해병대를 빼내면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지켜낼 수가 있을지 의문이다”하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맥아더는 상륙작전을 하지 않고 낙동강전선에서 반격하여 한국을 되찾으려면 10만명의 피해를 감수해야 가능한데 그 10만명의 생명을 구할수 있는 방법이 인천상륙작전이라고 말하며 밀어부쳤던 것이다. 그래서 미군은 첩보부대를 미리 투입하여 인천 월미도 지역의 방어상태를 면밀하게 파악하여 상륙작전을 준비하였다. 이것을 영화화 한 것이 영화 <인천상륙작전>이다. 영화에도 나오는 장면인데...인천항으로 함정이 들어가려면 팔미도 등대의 불을 밝혀야 했다. 그래서 팔미도로 특공대가 투입된다. 특공대는 팔미도를 지키는 인민군 10여명을 총소리가 안나게하여 죽여야 했다. 그래서 특공대는 모두 끈을 준비했다. 습격하여 끈으로 목을 졸라 죽이는 작전이었다. 그렇게 특공대는 인민군을 물리치고 등대를 장악하였다. 그런데 등대를 밝히려면 등대부품을 조립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부품을 조립할 나사를 찾을 수 없었다. 9월15일 0시에 등대를 밝히도록 작전명령이 떨어졌는데 나사 하나를 못찾고 있었다. 모두를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시 특공대원 중에 최규봉 대원이 순간적으로 기도했다고 ‘하나님 나사를 못찾겠습니다. 도와주세요!!’ 그런데 기도하고 어둠 속을 더듬는데 손에 손톱만한 나사가 잡히더라고...그게 바로 애타게 찾던 나사였다. 그래서 그것으로 등대를 밝혔는데 1시 50분이었다고....그래서 그 등대 불을 보고 군함 261척이 인천항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나사를 찾을 수 있었고, 하나님 도움으로 팔미도 등대를 밝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6) 원산철수작전이 이루어진 것이 기적이다. 6.25 전쟁에서 두 번째 큰 위기는 중공군 개입으로 말미암은 1.4후퇴였다. UN군이 속절없이 후퇴할 때 맥아더 장군은 만주 폭격, 중국 해안 봉쇄, 대만의 장개석 군대 투입, 원폭 사용 검토 등을 요구하였다. 트루먼은 그렇게 되면 소련이 개입, 3차대전이 일어나고 유럽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판단하여 맥아더의 건의를 거부하였다. 맥아더는 "그렇다면 한국에서 철수, 일본만 지키자"고 했다. 영국 에틀리 수상도 미국영국 정상회담에서 한국 포기를 건의하였다. 이때 트루먼 대통령이 한 말이 우리의 가슴을 친다. "미국은 친구가 어려울 때 버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한국을 포기하면 우리를 믿고 싸웠던 이들은 죽게 될 것입니다." 트루먼은 맥아더에게 “싸우다가 져서 한국에서 철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미리 포기해선 안된다”고 엄명하였다. 그리하여 미군은 다시 목숨 걸고 중공에 반격하게 되는데 그것이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이었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통과하여 북진하던 UN군을 막은 것은 중공군인데... 그때 중공군은 30-40만명이 투입되었다. 반면 미군은 더 이상 증원될 군인이 없었다.(미국은 당시 2차대전 후 제대했던 군인을 다시 불러서 한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군인들 숫자가 부족했다.) 그래서 숫자상으로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중공군이 계속 밀고 내려오면 부산까지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중공군의 남진을 막은 전투가 바로 장진호 전투였다. 당시 미국 해병대는 북한 원산에 상륙하여 개마고원의 장진호 쪽으로 약15000명이 진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공군은 이 미국 해병대를 전멸시키기 위하여 20만명의 중공군을 장진호 주변 산에 숨겨두고 미군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중공군이 개입했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포위된 후였다. 당시에 중공은 이제는 미해병대를 완전히 포위했으니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큰소리쳤고 그래서 미해병대가 이 포위를 뚫고 원산으로 퇴각하느냐가 전세계의 관심거리였다. 그런데 아무도 미군이 성공적으로 후퇴할 것으로는 예상 못했는데 미해병대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성공적으로 원산까지 철수한다. 철수하면서 약 10일 동안 엄청난 전투가 장진호 주위에서 벌어졌는데 미군은 900명 전사하였고 중공군은 34000명이 전사하였다. 당시에 날씨는 몇십년만의 추위로 개마고원은 영하40도까지 내려갔다. 미군은 동상으로 부상당한 병사가 많아도 얼어죽은 병사는 없었다. 그러나 중공군은 산 위에 있었기 때문에 약 3만명이 얼어죽었다. 그리고 동상에 걸린 중공군은 거의 전투를 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화 되고 말았다. 그래서 미군은 원산 철수 작전으로 안전하게 퇴각해서 다시 전열을 정비할 수 있었는데 비해 중공군은 전투를 못할 정도가 되어버려서 동부전선은 휴전선 이남으로 진격할수 없었다. 그래서 1.4 후퇴는 이 장진호 전투 때문에 38선 근처에서 UN군이 다시 반격할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해 겨울이 왜 그리 추웠을까?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하나님이 그 해 겨울을 춥게 하였기 때문에 중공군은 추위로 거의 망하고 말았지만 미군은 피해를 덜보고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원산철수작전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을 되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6.25의 위기에서 순간순간마다 지켜주셨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비참했다. 6.25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됐고 천만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생겨났으며, 남편 잃은 미망인 30만명, 전쟁고아 10만명, 전사 및 행방불명된 자가 18만명, 부상자가 33만명, 이재민이 360만명, 교회가 2,122개가 불에 탔고, 총살 및 납치된 목사와 장로가 523명이나 되는 비극의 전쟁이었다. 이런 잿더미 속에서 이만큼 발전할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당시에 한국을 도와주었던 나라들의 희생에 감사해야 한다. 말씀을 맺습니다. 대한민국이 6.25전쟁에서 살아남은 기적...무엇인가? 1) 미국과 유엔군의 신속한 참전을 결정한 것이 기적이다. 2) 한반도의 7월은 비가 많은 장마의 계절인데, 그 해의 여름은 대체로 날씨가 계속 좋아서 미군의 항공기가 거의 매일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다. 3)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약 1주일간을 이유 없이 지체했다는 것이 기적이다. 4) 대한해협해전에서 해군이 북한특수부대 투입을 조기에 저지했던 것이 기적이다. 5)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다 6) 원산철수작전이 이루어진 것이 기적이다.
6.25/ 화목 하라 /마5:22-24 2019-09-05 08:04:09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아주 의좋기로 소문 난 형제가 어느 날 함께 길을 가다가 동생이 금덩어리를 하나 주었습니다. 형제는 무척 기뻤습니다. 형이 그 금덩어리를 이리 저리 만져보면서 “우리 이제고생은 끝이다. 이거면 우리 둘이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형제는 정말 좋아하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금덩어리를 구경했습니
6.25/ 화목 하라 /마5:22-24 2019-09-05 08:04:09 read : 6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아주 의좋기로 소문 난 형제가 어느 날 함께 길을 가다가 동생이 금덩어리를 하나 주었습니다. 형제는 무척 기뻤습니다. 형이 그 금덩어리를 이리 저리 만져보면서 “우리 이제고생은 끝이다. 이거면 우리 둘이 평생 먹고 살만한 재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형제는 정말 좋아하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번갈아 가면서 금덩어리를 구경했습니다. 그러다가 강을 만났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다가 형이 갑자기 그 금덩어리를 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이 펄쩍 뛰면서 “내가 주운 것을 왜 형이 물에다 던지느냐!” 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형이 말했습니다. “그 금덩어리가 내 손에 있을 때에는 욕심이 생기고, 네 손에 있을 때에는 미움이 생기더라. 지금까지 우리는 서로 생각해주고 서로 사랑했는데, 그 금덩어리가 우리 사이를 이렇게 만드는 것 같아서 물에 던져버렸다.” 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화목이 좋은 줄은 압니다. 그러나 화목을 깨뜨리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무엇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싸워야 하는지 그 원인을 안다면 그래서 그 원인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기만 하면 화목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 원인을 분명히 제거해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되었습니다. 69년 전 주일 새벽에 군인들이 외출하는 날을 택해서 기습적으로 북한이 남침을 감행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조국 강산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이 땅에 뿌려지는 비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의도 하고, 다짐도 합니다만 사실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상황일 뿐이라는 여전한 전쟁의 불씨로 인해서 지금은 핵이라는 실로 가공할 만한 것으로 불안해야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분쟁의 불씨,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을 알고 양보하면 해결 될 문제입니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으려고 억지를 부리거나, 빼앗으려고 할 때 문제가 됩니다. 세상에는 화목이 필요합니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진정한 화목이 있어야합니다. 잠 17:1절에 보면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러분, 부자로 사는 것보다 화목하게 사는 것이 먼저입니다. 넉넉한 살림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살지만 마음이 불편하면 그것이 결코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가진 것은 소박하지만 마음이 통하고 서로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행복이란 자신을 내려놓을 때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항 속에 금붕어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한 마리는 크고, 다른 한 마리는 작은 놈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주는 먹이는 항상 똑 같은 양이었습니다. 언제나 큰 붕어에게는 먹이가 부족했습니다. 어느 날 몹시 배가 고팠던 큰 금붕어가 생각을 합니다. ‘저 작은 금붕어 녀석이 없으면 내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텐데 저 놈과 나눠 먹으니 내가 배고파서 못살겠다.’ 그래서 어느 날 큰 금붕어가 작은 금붕어를 물어 죽여서 돌 밑에다 숨겨 두었습니다. 그리고 먹이를 자기 혼자서 다 먹을 것이라고 기뻐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서 죽은 붕어가 썩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냄새가 진동하더니 급기야 물에 독이 퍼졌습니다. 그 물을 먹은 큰 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보통 인간의 단순한 생각은 ‘저가 죽어야 내가 산다.’ 는 생각뿐입니다. ‘그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 는 것을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삽니다. 우리의 착각이 여기에 있습니다. 때로 남을 끌어내리면 내가 높아지는 것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 삽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는 정말 좋은 말이 있습니다. 혼자 빨리가기 위해서 남을 죽이고 나면 나도 빨리 끝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화목하면서 오래도록 함께 행복한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에도 보면 “먼저 화목 하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 쓰인 “먼저” 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프로토스” 라는 말인데 영어의 First라는 말입니다만 여기에서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이것은 시간적인 순서로써 첫 번째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그 속성 적으로, 가치적으로 가장 근본으로 이루라는 말입니다. 핵심은 우리가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문제 즉 문자 그대로 “예배 전에 사과해야 하느냐!” 아니면 “예배 후에 사과해야 하느냐!” 하는 그 시간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즉 하나님과의 문제해결로만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분명히 당사자끼리 화해할 것은 화해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라는 것입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최우선적으로 화목을 이루라는 의미에서의 첫째입니다. 그러니까 바꾸어 말하면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는 그 뒤의 일들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그 화목의 정도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먼저요, 기도하는 것 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화목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화목이 없는 예배, 화목 없는 제사, 화목이 없는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형제지간에, 부모자식 간에, 혹은 이웃 간에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부부간에도 남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특별히 성도들 간에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얽히고설켜서 살다보면 부득이하게 일일이 무슨 이유인지는 다 모르게 일어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특별히 오늘 본문은 교회 안에서의 화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화목을 이루는 문제를 생각해 봅니다. 사실 화목을 생각할 때 그 느낌에 있어서 거창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화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사실은 가장 단순하고, 가장 순수하게 이루어야할 일이 화목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용서하고 화목하기로 작정했다고 해서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했다고 생색낼 것까지 없다는 말입니다. 왜? 화목이란 무슨 대단한 덕목이 아니라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매사가 그렇습니다만 당연한 것을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여기에 우리의 어리석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마치 아무나 못하는 대단한 일을 나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라 그 말입니다. 그 중에 하나인 화목 하는 일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특별히 믿는 이들에게 화목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형제” 라는 대상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형제” 란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의 별명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다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한국교회 안에도 아직 “형제”, “자매” 라는 말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니, 예수쟁이들은 위아래도 없는 것들이다!” 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형제, 자매라고 하니까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 형제, 자매처럼 되었습니다. 이 말은 똑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관계가 형제, 자매간 아닙니까? 아니 그래야 되는 관계 아닙니까? 이 관계가 비틀어지면 정말 피곤합니다. 형제끼리 반목하고, 자매끼리 등지고 살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닙니다. 형제끼리는 그리고 자매끼리는 나아가 남매의 관계는 정말 화목하고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무슨 이권이 있어서도 안 되고, 좋고 나쁜 것을 따져서도 안 됩니다. 기쁨도 하나요, 슬픔도 하나요, 그가 살면 나도 살고, 그가 기쁘면 나도 기쁩니다.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픕니다. 이게 형제, 자매지간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해의 모습이 어디에 나옵니까? 창세기에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20년 동안 헤어져 원수로 지내다가 압복강변에서 기도하고, 압복강변을 건너가서 자기 형님과 20년 만에 만납니다. 이제는 원수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 만납니다. 끌어안고 입을 맞출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하기를 “형님의 얼굴을 보니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화목이란 이런 것입니다. 먼저하고, 적극적으로 할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히12: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소망을 이루려면 화평함을 얻어야합니다. 그런데 그 화평은 기다려서 얻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서 화목해야합니다. “소금을 두고 화목 하라.” 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소금처럼 녹아 부드러워 뻣뻣함이 수그러지는 화목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야하겠습니다.
6.25/ 환란의 축복 /왕상11:9-13 2009-08-26 11:49:20 read : 3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6•25 5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근래 남북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남북이 초긴장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시국선언이 나오고 갈등이 점증되고 모두 긴장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들입니다. 지금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 그리스도인
6.25/ 환란의 축복 /왕상11:9-13 2009-08-26 11:49:20 read : 3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6•25 59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근래 남북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남북이 초긴장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은 비상시국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시국선언이 나오고 갈등이 점증되고 모두 긴장은 애써 외면하는 모습들입니다. 지금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하는 일을 계속 강조하고 계십니다. 우리민족은 남북이 갈라져 지난 60여 년 동안 서로 대치하여 숫한 사건들과 유혈사태와 남침위협에 시달려왔고 그 긴장은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분단은 비극입니다. 혈육과 부모와 자식을 만나지 못하고 나뉘어져 살아가는 것은 불행입니다. 더 불행한 것은 그 당사자들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달 김학수 화백이라는 분이 소천 하셨습니다. 1•4후퇴 때 마지막 대열에 끼어 가족들에게 사흘 뒤에 돌아오겠다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내려왔는데 가지 못하고 6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죄로 그분은 평생 혼자 독신으로 언젠가 가족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아오셨습니다 . 그런데 지금 그 가족들이 탈북 하여 북경의 대사관에 억류되어 있습니다. 그 가족들을 서울로 데려올 수 있도록 힘쓰시다가 끝내 보지 못하고 지난달 소천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분단되고 분열되는 것은 비극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분단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사울, 다윗 때까지 나라가 잘 발전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때에 우상숭배를 지독하게 섬겼습니다. 또 솔로몬은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본문 3절을 보면 후궁이 700명이었고 첩이 30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왕가 공주들을 후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3절 끝을 보면 “그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신선했고 참신했습니다 . 왕이 되자마자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모습에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권세와 부귀영화도 함께 주셨습니다. 그런 복을 받았으면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선용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나 과하면 좋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너무 부귀영화에 취하게 되니까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에게 마음이 뺏겼습니다. 그 여인들은 모두 자기들의 신을 가져와 마침내 솔로몬의 신앙과 영까지 타락시켰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은 그 마음이 완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셨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 나라를 반드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고 했습니다. 또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시대에는 그냥 놔두리라, 그러나 네 아들 대에게 가서 반드시 빼앗으리라(12)”고 했습니다. 여기 빼앗으리라는 말씀은 나라를 둘로 갈라놓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침내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BC975년 나라가 남북으로 두 쪽으로 나뉘었습니다. 그 후 이 두 나라는 서로 대치하고 전쟁하고 피를 흘립니다. 그러는 동안 나라는 약화되어 주변의 강대국들에게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북왕국은 BC 721년에 앗수르에 망하고 남왕국은 BC586년에 바벨론에 망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나라 없이 고난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고난 받는 민족이 되어 그 고난 속에서 이스라엘은 강해지는 비결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끈질긴 민족이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민족도 역사를 보면 700여번 침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민족도 모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후로도 일제로부터 36년 동안 시련을 받았고 6•25를 통해서 또 다른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가난을 겪었습니다. 그 여파가 오늘까지 이산가족들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지천에서 북한과 남한이 서로 대치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민족이 얼마나 강인하고 모진 민족이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은 환경과 역사와 고난을 통해서 연단하시고 훈련도 하십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의 얼굴이 검은 것은 뜨거운 햇빛과 불타는 대지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민족도 이런 고난의 역사들 때문에 우리민족의 체질이 강인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탁월한 재능을 지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 타골은 우리민족을 향하여 동방의 조용한 민족으로 강인한 심성을 지닌 민족이라고 칭송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폴 케네디교수는 우리민족은 장점이 많은 민족으로 21세기 한국민이 세계의 중심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한의 문화 이 같은 역사를 살아오는 동안 우리민족은 한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한을 자주 말하게 됩니다. 노래하면 한 많은 이 세상, 한 많은 미아리 고개를 노래하고 춤 하면 한풀이 춤을 연상하게 됩니다. 연속극 하면 전설 따라 삼천리를 생각하고 궁중역사를 말하면 우선 한이 내포된 궁중의 역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한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단점으로는 이 한을 풀지 못하고 선용하지 못하면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아버지 원수를 대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갚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원수를 갚지 못하면 죽어 조상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이 한을 풀기 위해서 인생을 거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역사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장점도 있습니다. 그 한을 에너지화 할 때 엄청난 폭발력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용수철을 눌렀다가 풀면 엄청난 힘이 발생하듯이 이 억눌린 한을 발전적 에너지로 발전시킬 때 엄청난 에너지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룻밤에 50만 명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동시에 쏟아져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민족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이 한이 오늘 우리나라를 이렇게 발전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한이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이를 악물게 하였고 분발하게 하였고 움직이게 하였고 무서운 정신력을 발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것은 탈출구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공부를 잘 안 해도 잘 살 수 있고 또 길이 여럿 있으니까 죽어라 공부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집 아이들은 어디를 보아도 탈출구는 하나뿐입니다. 그러니까 죽어라 밤새워 공부한 것입니다. 엘리트 의식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가 아무리 크고 거대했어도 유대인들은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의식 때문입니다. 그 의식은 그들로 하여금 언제나 당당하게 하였습니다. 로마에 절대로 위축되지 않습니다. 스스로 우월감을 유지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우월감이 때로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폐쇄적이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최고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 최고는 남이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인데 자신들이 그렇게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볼 때는 상당히 폐쇄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어느 민족보다 자존심이 강합니다. 그것은 양반 의식 때문입니다. 옛날에 이 양반의식이 얼마나 강했습니까. 체면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체면 때문에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복음을 영접하지 않고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생 한학을 한 분들은 기독교를 아낙내들이 믿는 종교라고 치부했습니다. 자손들이 다 예수를 믿어도 끝까지 혼자만은 거부했습니다. 죽을 때에는 믿어야 하는데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고집을 하다가 그냥 죽은 이들도 있습니다. 이 의식이 오늘 노사관계에도 그냥 나타납니다. 노사관계를 보면 노동자와 관리자가 한 장소에서 절대로 식사를 하지 않고 엄격히 구분된 공간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노사관계가 껄끄러운 것입니다. 노는 작업복을 입고 붉은 띠를 띠고 귀족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사는 넥타이를 매고 너희와는 구별되어 있다고 과시하듯 지배자의 형식을 고집합니다. 그러니 원만한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런 의식들이 때로 작은 것에 목을 매게 만들기도 합니다. 거기에도 한이 작용을 합니다. 노는 타도 재벌을 외칩니다. 그 재벌들로부터 월급을 받아 살아가면서 회사 기물을 불 지르기도 하고 부수기도 합니다. 또 사는 그런 행위에 대해서 권위에 손상을 입었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잘라내고 짓누릅니다. 빈대 잡기 위해서 초가삼간 불태우는 격입니다. 정과 감수성 우리민족은 정이 많은 민족입니다. 우리민족은 유독 정에 약합니다. 정 때문에 못 헤어지고 잊지 못하고 버리지 못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우리가 남이가” 이 정이 장점도 되지만 때로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때에는 인기도가 10% 안팎이었는데 그가 자살해서 죽으니까 모두 눈물을 흘리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서구인들은 이 같은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간밤에 동네에 간첩이 잠입해 들어와서 온 동네 사람들이 쫒고 모두 그것이 누구냐 하고 분개하고 그를 잡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간첩이 조용히 내 집으로 숨어들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북에 살고 있는 사촌형님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신고를 못하고 우물쭈물 하다가 숨겨주게 되고 나중에는 된서리를 맞는 것입니다. 이 정은 지연, 학연, 혈연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 정은 마침내 사람으로 하여금 비합리적이 되게 하고 공과 사를 혼돈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지방에서 목회할 때 심방을 마치고 식사를 합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인정 많은 권사님이 자기 밥그릇에서 밥 한 숟갈을 떠서 내 밥그릇에 얹어줍니다. 갈비탕을 먹다가 도중에 내 그릇에 부어줍니다. 주려면 먹기 전에 줄 것이지 반쯤 먹다가 줍니다. 우리문화는 그것을 사양하지 못하고 그냥 먹어야 합니다. 그런 정을 서양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의식이 우리라는 테두리를 만들고 그 테두리 안에서 살기를 고집하게 됩니다. 이조말기에 서구화의 물결이 무섭게 다가올 때도 우리나라에는 그것이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조정에서는 그 외세의 물결을 막기 위해서 쇄국정책을 펼쳤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끼리 먹고 우리끼리 교류하며 살아가자고 고집했습니다. 오늘 북한이 그렇게 우리끼리, 우리식으로를 고집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국제적, 국제화, 지구촌, 세계화라는 말을 애써 외면하고 무시합니다. 그러니까 테두리 안에 모여 우리끼리 살아가는 동안 생각이나 의식이나 판단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이 우리끼리 라는 삶의 태도에도 장점도 있기는 합니다. 작은 아름다움도, 내면의 향기, 아기자기함, 가족끼리라는 분위기가 있기는 합니다. 서구인들이 말 타고 광야를 누비며 총 쏘고 산 계곡에서 스키를 타고 넓은 바다에서 보트를 타고 시원스럽게 달릴 때 우리민족은 앉아서 조용히 바둑을 두고 장기를 두고 붓글씨를 썼습니다. 서구인들이 살을 찌르고 주사를 놓고 살을 째고 수술을 할 때 우리는 가느다란 침으로 침술을 했고 가는 바늘로 수를 놓았습니다. 서구인들이 육중한 기계나 탱크나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띄우고 비행기를 만들어 하늘에 띄울 때 우리는 그 모습을 본떠서 작은 모조품을 만들었고 작은 핸드폰을 만들었고 바느질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유독 작은 것에 강합니다. 서구인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작은 것에 길들여지고 민감하다 보니까 생각도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때로 싸울 때도 작은 이유 때문에 싸웁니다. 남편이 오늘 점심은 국수를 먹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무슨 국수냐 국시지”라고 말합니다. 이 부부가 서로 따지다 큰 싸움되었고 마침내 이혼했다고 합니다. 봉지에 들어있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 국수이고 봉다리에 들어있는 밀가루로 만든 것은 국시입니다. 젓가락으로 먹는 것이 국수이고 저분으로 먹는 것이 국시입니다. 오늘 갈등과 불화의 원인을 보면 이렇게 아주 작은 생각들 때문에 발생합니다. 아주 작은 사연들을 그냥 뛰어 넘지를 못합니다. 여야가 충돌하는 것을 보면 “사과하라, 못한다”에서 대치정국으로 나아갑니다. 남북이 긴장상태에 빠진 것도 체면과 자존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도 근래에 와서 다행스러운 것은 가난했던 우리민족이 넓은 세상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울 안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기회를 만나게 되니까 내재되어 있던 잠재의식도 살아나고 개척정신도 발휘하게 되었고 할 일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무역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민족도 가능성이 있는 민족입니다. 모험정신이 있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니까 유감없이 그 정신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북한도 넓은 세상으로 나오면 얼마 있어 저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북한 젊은이들이 축구하는 것을 보십시오. 미사일을 만들고 핵을 만드는 것을 보십시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울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 좁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든 미사일이나 핵을 잘못 사용할까 걱정입니다. 지난날 우리민족은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것도 오늘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하나의 기회였습니다. 일제 36년 동안 압박받는 동안 울안에 살아가던 우리선조들이 비로서 해외로 눈을 돌려 일본으로, 만주로, 할빈으로, 상하이로 넓은 세계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6•25는 분명 불행한 일이지만 그 일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싸워 주었고 우리국민들이 외국으로 대거 빠져나가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전후 가난하게 되니까 눈을 밖으로 돌리기 시작하여 평상의 생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인데 지구의 반대편인 아르헨티나로 브라질로 이민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서독으로 광부로 간호사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 줄지어 미국으로 이민의 길을 떠났고 중동으로 노동자들이 꿈을 안고 떠났습니다. 그때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나가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오늘 우리민족으로 하여금 잠에서 깨어나고 잠재력을 키우고 개척정신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나라를 이렇게 경쟁력을 갖춘 나라도 만든 것도 되돌아보면 모두 이런 환경을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분단되었고 약소국이었고 억압받고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동안 지혜를 터득하였고 생존법을 터득합니다. 그 결과 2천 년간 나라 없이 살았지만 그 지혜로 그들은 오늘까지 생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비극을 통해서 그리고 가난을 통해서 또 고난을 통해서 길을 여십니다. 그렇다고 고난을 자주 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한번으로 족합니다. 분열, 분단, 나누임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은 가장 어려운 때, 위기의 때를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론을 하나로 만들 때입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입니다. 지혜의 민족은 위기의 때에 강하고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것이 환란이 주는 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