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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복 받을 짓(1)/ 마18:1-10/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3
100% 복 받을 짓(1) 마18:1-10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18장입니다 제가 중요한 부분 절을 말할 때 우리 같이 읽습니다. 우리 5절부터 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아멘 여러분 우리 5월 1일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황금연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도 많이 아이들 데리고 출타를 한 것 같습니다. 출타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이날 황금연휴에도 교회 와서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여러분들에게는 그분들보다 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아멘 한 사람에게는 만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ㅎ ㅎ ㅎ 자 우리 주일 학생들 목사님 먼저보고 퀴즈 하나 낼 테니까 맞추는 사람에게는 목사님 안에는 언제나 용돈이 있어요. 마치고 줄 거예요.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 모르겠어? 누구야?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ㅎ ㅎ ㅎ 내가 너무 수준 높은 개그 했나? 하나 더 마칠 때 가만히 생각했다가 답하는 사람 또 줍니다. 여러분 타이타닉 모르지요? 알아 아우 타이타닉에게 구명보트가 있는데 구명보트에는 몇 명의 사람이 탈수 있을까? 설교 마치고 할 거예요.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 주일인데 오늘 제가 설교 제목을“100% 복 받을 짓”해 놨어요. 조금은 거친 표현이지만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먼저 여러분 오늘 읽은 5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대접하고, 예수님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은, 남들이 없인 여기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정말 어린아이들을 잘 대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생애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놀라운 은혜의 복이 임하는 출발이 되는 어린이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좋은 말씀만 한 것이 아니고요, 오늘 이 본문하고 마태복음 23장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계세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1. 네 손발과 눈이 범죄하면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어린아이와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면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면 화가 있다. 데이빗 콜먼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 대한민국.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 마지막 출산 아이 울음소리. 그리고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되면 빼어 버리라, 두 눈 가지고 사는 것보다 한눈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서도 10절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그것이 신화화 되다 보니까 천사론이 좀 약한데 유대교에는 사람들마다 수호천사 가 있다 이런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그 어린아이의 수호신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 보좌 앞에 가서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 뵈옵고 있기 때문에 그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게 되면 화를 당한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서도 여러분 7절에 보면 뭔가 하면 7절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실족 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세상에 화가 있다. 왜 세상에 화가 있는가 하면은 어린아이들이나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기 때문에 화가 있는데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은 화가 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이 그래 중요하냐 하면은 옥스퍼드대학에 인구 학자로서 아주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분이 데이빗 콜먼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하기를 뭐라 했는가 하면은, 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랬습니다. 지금과 같은 출산율 지금과 같은 상태로 가면은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사라지는데 2100년쯤 되면 지금 인구의 절반으로 줄어들고요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는 마지막 아이의 태어나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그 이후가 되면 서울과 수도권 인근에 여러분 굉장히 기뻐하세요, 이제는 2400년만 되면요 동백에 여러분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하나가 한 사람씩 사는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참 우리가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은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말씀을 제가 마음에 담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에 왜 대한민국이 출산율이 낮고,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되는 나라가 되는가 하면은,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날 좀 반성해야 됩니다. 자기 자녀만을 보배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자녀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한다고 할 때에 자기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과 유사한 본문이 누가복음 18장인데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올 때에 머리에 안수해 주기를 바라면서 데려 오는데 제자들이 꾸짖으면서 내쫓은 거예요. 예수님 당시에도 자기 배에서 난 자식들은 예수님에게 안수 받아서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본능적인 마음이에요.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내쫓았고 꾸짖었다고요. 그럴 때 예수님이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용납하라 이렇게 말씀한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고 거듭나게 되면 제가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떻게 변화되는가 하면은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거듭난 자의 마음이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의 마음입니다. 왜 우리가 요즘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사회적인 비용이 드는가 하면은 자기 자녀만 귀하게 여기다 보니까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같이 경쟁이 심한 사회가 없는 겁니다. 2.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깨우쳐야 되는데 하나님 잘 믿으면 내 아들만 잘 된다고 하기 때문에 더 실족 하는 일로 화가 미치게 되는 겁니다. 우리 어린이 주일 맞이하면서 정말 우리 교회는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은요 사람들이 또 나가면서 잊어버려요, 그래서 제가 우리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우리 교역자들에게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다 달도록 해라. 자기 이름 달고 고 뒤에 부모 이름을 적도록 해라. 왜 그랬는가 하면은요, 저도요 이제 30대 제가 부목사일 때에는 면목동 동부 교회는요 한 천명 모이는데 얘들까지 2천명 되는 이름을요 전부 외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버려. 얼마나 아이들에 미안한지 모르겠어요. 만날 때마다. 그래서 이름표를 붙이면 여러분 이런 것 한번 상상해 보세요. 교회 이렇게 와서 아이들이 복도에서나 아니면 마당에서나 지나갈 때에 목사님이나 교회 어른들이 우리 월삭 예배 때 했는데 한번 따라 합시다. 애들 말고 어른들 ㅎ ㅎ 다 크게 따라 하세요. 와, 네가 함상희 집사 딸이구나. 와,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이구나. 왜 목사님 함상희, 최정화만 이야기 합니까? 함상희, 최정화 집사 아들 보민이, 지환이가 우리 교회에 젓먹이 때 와서 나이가 같아요. 우리 교회가 10살인데 그 아이들이 10살이라고요. 정말 여러분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들을 그렇게 대할 때에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정말 설교 마치고 부를 건데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하지 않겠습니까? 큰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그나마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주일학교가 제일 많은 축에 들어가요, 어른 대비.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목회의 방향이 그래서 그렀습니다. 우리 교회의 초창기에 저 모아미래도 상가에 있을 때 그때에도 저는 어떤 마음으로 목회를 했는가 하면 부잣집 아이들은 외국에 갔다가 어디에 갔다 왔다, 뭐 스키캠프 갔다 왔다, 이런 것 자랑할 때 기죽지 않도록 주일 학생들 어릴 때 다 데리고 대명 콘도 가 가지고 스키캠프 열고요, 오색그린호텔 가서 수련회 한 것은 내 아이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가장 가난한 집의 아이도 고급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어요. 오늘도 여러분 이제는 여러분들이 아이들 볼 때에 이것 돈 드는 것 아니잖아요. 여러분 이것 힘 드는 것 아니잖아요. 선생님들이 명찰 붙여 주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가장 간단한 것은 내가 명찰 달린 아이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용돈을 줄려고 그래 ㅎ ㅎ.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야!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 지환이구나. 옛날에는 요만했는데 이만큼 컸구나.”라고 이야기를 해 줄 때 아이들이 신나잖아요. 또 아이들만이 아니고 따라 합시다. “와,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아느냐?” 하얀 거짓말.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인정받는 공동체가 마음 든든하거든요. 우리 어린이주일 날 오늘 여기 있는 대로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내 아이만 알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극렬한 한국의 엄마들 때문에 화가 있는 겁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우리 교회에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소중하게 여겨지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아이들 만날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정말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지 아니? 내가 네 이름은 알았는데 네가 동현인 줄 몰랐구나.’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해 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생업 위에 또 우리 교회에 또 이 나라에 100% 복을 주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헌금을 드리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헌금 내 자녀 학원 하나 보내면 더 훌륭하고 더 성공적인 생애를 살 것 같은 마음을 주님 앞에 묻은 자가 드리는 예물입니다. 내 자녀만 성공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이기주의가 오늘 우리 대한민국을 극도의 경쟁의 사회로 만들어 버렸고,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당하는 화를 우리가 당해서 세계적인 권위 데이비드 콜먼조차도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 대한민국을 건질 유일한 방법은 복음밖에 없고 교회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이제는 헌금을 내 아이 학원 하나 보내면 더 잘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그런 나라 내 자녀가 잘 되는 만큼, 남의 자녀도 잘 되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교육만 해도 얼마든지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오늘도 이 예물을 드릴 때에 우리 안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다음 세대에는 남을 이기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복된 생애를 살아가도록 성령의 역사는 혈연과 연고를 넘어서는 영원한 가족 공동체임을 교회들마다 선포되게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회를 물려주는 지혜로운 어른들이 될 수 있도록 순종의 마음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저 어린이주일이라는 명칭 한 번 예배 때 떠들다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후에 정말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네가 어느 집사님 아들이구나, 네가 어느 집사님 딸이구나 하고 아이들 머리 쓰다듬어 주고 기도해 줌으로 이 아이들이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 근심 없어요.’라는 찬양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줄 아느냐?’ 우리 어른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옴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초라한 어머니 때문에 아이들이 기죽지 않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성령님 오늘 말씀이 그저 귓전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심비에 새겨지도록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함이다.’라는 말씀에 따라 내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이 여기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이 예물이 정말 주님 몸 된 교회를 세워서 사회에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때문에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생수가 흘러넘치는 교회의 초석이 되도록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되도록 지금도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어린 아이를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사 품에 안고 축복하시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내 배 아파 난 자식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도 사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사회 속에 화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로 그 믿음을 허락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겨서 자녀들 때문에 쓸데없는 사회적인 비용이 낭비되지 않으므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 김종웅 목사(쉼과회복이있는교회)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 마17:14-20/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5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 마17:14-20 나이지리아의 노예시장에서 한 소년이 담뱃잎 한 부대와 교환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도 모두 노예로 팔려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소년이었습니다. 흉악한 노예 상인들은 그 소년을 불법 노예선에 태워 미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향하던 도중 그 배가 불법노예선임을 알게 된 영국 군함에 의해 나포되었습니다. 그 군함에 소속된 군목이 수백 명의 노예들 속에서 유난히 총명하게 보이는 그 소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을 양자로 삼아 교육과 철저한 신앙훈련을 시켰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나이지리아에서 나이지리아 교회 최초의 감독 취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취임하는 감독은 세계적인 성서학자이며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 크로우더(Samuel Crowther)목사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30여 년 전 노예선에서 군목에게 양자로 선택을 받았던 그 소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한 어린이가 훌륭한 양부모를 만나게 되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 아이의 인생은 어른들이 어떻게 대하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설교가로 유명한 켐벨 몰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 부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그 4형제 모두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모두 훌륭한 설교가로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의 생신을 맞이하여 4형제가 모두 모이게 되었습니다. 한 방에 대설교가가 모두 다섯이나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 잔치에 초대된 친척 노인이 거기 모인 다섯 명의 목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설교를 제일 잘 하느냐?” 정말 난처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의논할 것도 없이 일제히 “바로 어머니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지 캠벨 몰간 목사도 빙그레 웃으며 수긍하였습니다. 아들 넷을 모두 목사가 되게 하여 훌륭한 설교가로 성장시켰으니 그 어머니가 얼마나 그들을 열심히 가르쳤는지를 모두 인정한 것입니다. 최근 들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일탈현상이 급증하면서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모든 문제는 가정의 파괴 현상과 함께 더욱 심각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늘 갈팡질팡하는 공교육은 이미 신뢰받지 못하고 있으며 기형화된 사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의 상처는 깊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일어난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간질병으로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예수께 간절히 간구하여 병을 고침 받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어린이 주일인 오늘,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어떤 이에게 간질병으로 앓고 있는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 간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간질병은 오늘날도 난치병 가운데 하나로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 병입니다. 아마 간질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아들의 병 때문에 유명한 의원은 다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약도 의사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재산은 아들의 병 때문에 모두 탕진해 버렸을 것입니다. 실상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어쩌면 모두 불치의 병을 다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나니”(롬3: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마치 맑은 물 속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과 같습니다. 맑은 물 컵 속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먹물이 순식간에 퍼져서 온통 물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퍼져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욕심과 갖은 억압과 수탈, 거짓과 교만, 가난과 질병, 재난과 죽음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마치 인간은 본문에 나오는 어린아이와 같이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존재와 같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순수해야 할 어린이들이 전 인류가 앓고 있는 이 무서운 질병을 더욱 심하게 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퇴폐적인 미디어매체에 접하면서 세속적인 수렁에 깊이 빠져 버리게 됩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전선에 던져지게 됩니다. 아직까지 엄마 품이 가장 좋은 학교가 될 어린아이에게도 학습지를 봐야하고 학원에 가야한다고 주변에서 떠들어댑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조기교육이 오히려 아기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세워지는 학원과 학습지에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맡겨둡니다. 그리고 기필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자신의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아이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김의 대상으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웃을 모두 이겨야 할 적으로만 알게 됩니다. 이러한 풍토 가운데서 자라나는 아이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이웃의 아픔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실상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는 어린아이들은 무서운 질병에 걸려있습니다. 과거에는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의 수가 장년 예배에 참석하는 장년의 수보다도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도시 교회의 주일학교가 텅텅 비어 간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학교나 학원에 나가지 않으면 야단을 치고 호통을 하면서도 교회를 빠진 것 가지고는 그렇게 야단을 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신의 자녀가 영적인 불치의 병을 앓고 있으며 그 증세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데도 가만히 방치해 두는 꼴입니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자녀가 신앙에서 멀어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부모로서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맡기신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2. 부모들은 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와야 합니다. 간질병 아들을 둔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께서 오시니까 그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렸습니다.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는 것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를 위대한 선생님 정도로 안 것이 아니라 메시야 곧 영생을 주실 분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꿇어 엎드린다는 말은 희랍어의 프로스쿠네오( )로써 “예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더군다나 15절에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께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그 아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이들의 신앙은 결국 그 부모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부모는 그 자녀에게 목회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의 아버지처럼 자녀를 데리고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만드시고 부모에게 자녀를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요그만 박사(Michael Yogman)에 의하면 아이들을 키우기 가장 어려운 시기는 생후 6∼12주와 사춘기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부모들이 ‘아이를 사랑하지만 당장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라고 합니다. 아이가 좋으면서도 싫어지는 모순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갓난아이가 울며 보채기 때문이고 사춘기의 경우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갓난아이가 보채고 사춘기 시절의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성장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귀찮고 노여워지는 자신의 감정 때문에 아이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격노한 부모의 감정이나 짜증 섞인 언행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좋지 못한 감정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멀게 하고 심지어는 완전히 파괴되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늘 올바른 모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때로는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때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에 대하여 ‘내가 낳았으니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내 자식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는 식으로 자녀를 대하게 되어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자녀를 망쳐놓게 되기도 합니다. 자식 잘되게 하려고 했던 언사와 행동이 결국은 자녀를 망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자녀들이 문제가 있을 때 부모들은 ‘내가 너를 어떻게 가르쳤는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 모양이 되었냐?’ 라고 친구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모르는데서 나오는 결과일 뿐입니다. 자녀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맡겨주셨다는 청지기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얼마 전 타임지에서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해서 여섯 가지 항목을 열거한 바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는 자신의 정서적 불안을 아이에게 발산하지 말라. 둘째,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할 때 잘 경청하라. 셋째, 자녀교육은 부모의 완전한 직업(Full time job)정도의 중량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넷째, 아이가 꿈을 꼭 붙잡도록 하라. 다섯째, 아이들이 자기를 귀중히 여기도록 하라. 여섯째,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문제를 회피하게 말고 돌파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은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간질병이 든 아이의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간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녀들이 주님 안에서 클 수 있도록 그를 인도해야 합니다. 3. 현대 교회는 어린아이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질병이 든 아들을 둔 아버지는 먼저 아들을 예수의 제자들에게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아이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예수의 제자들은 겸연쩍은 모습으로 자기들이 왜 그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20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도 이와 비슷한 기사가 나오는데 마가는 “가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간질병이 든 아이를 고치시던 때는 예수께서 세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변화를 체험하고 내려오시는 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가 없던 제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능력이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간질병이 든 어린아이를 치료할 만한 하늘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교회의 기도 소리가 멈춘다면 이 시대의 간질병과 한국병으로 무너져 가는 이 나라와 그리고 세속가치에 빠진 어린이들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도하지 않는 제자와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없었던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농락거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없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는 교회는 능력이 없는 교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으로 빼앗긴 우리 자녀들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될 때 가능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품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생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던 조지 뮬러는 “기도는 시작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옳게 한 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동안 계속하는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줄 믿고 받기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1844년 11월에 다섯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기도하는 중에 18개월 만에 한 사람, 5년 후에 한 사람, 6년 후에 한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으나 무려 52년 동안 기도하여도 두 사람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뮬러가 죽은 후에 그들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주님의 사랑 안에서 위대한 인생을 살도록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자녀들을 유명 학원에 보낸다고 해서, 또한 자녀들을 외국 유학만 보낸다고 해서 그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께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위대한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를 위해 기도를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을 신앙으로 인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가꾸면서 그들을 인격적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이때에 우리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훌륭한 인물의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는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고 모세에게는 유모가 되어서라도 끝까지 모세를 양육하고자 했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의 유산을 따라 훌륭한 주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가르쳐야 할 지혜 /잠1:7-9 2013-05-31 14:47:52 read : 10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본문을 담고 있는 성경을 가리켜서 잠언이라고 부릅니다. 잠언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내용적으로는 지혜를 다룹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간결합니다. 그러니까 잠언은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뜻하신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여기서 지혜라는 단어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말하는 것과 몸으로
가르쳐야 할 지혜 /잠1:7-9 2013-05-31 14:47:52 read : 10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 본문을 담고 있는 성경을 가리켜서 잠언이라고 부릅니다. 잠언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내용적으로는 지혜를 다룹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는 간결합니다. 그러니까 잠언은 함축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하나님이 뜻하신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여기서 지혜라는 단어는 머리로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말하는 것과 몸으로 행동하는 것을 총망라합니다. 그러니까 지혜는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이 바로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과 같이, 부모는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는 그 무엇보다도 자녀에게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며, 또한 그로 인하여 부모 자신에게 큰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지혜의 길잡이입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지혜를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에는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것 열 가지만을 간추려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 잠1:7 말씀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또한 잠9:10 말씀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들은 올바른 지식과 지혜를 얻습니다. 우리말의 경외(敬畏)라 함은 공경할 경(敬)과 두려워할 외(畏)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단어도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거룩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포함한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또한 하나님은 지금도 홀로 온 우주를 주관하시며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울러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무엇인지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은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사실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말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이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 앞에서 자신이 실제로 주일을 성수하며, 하나님께 바르게 헌금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잠3:7 말씀처럼,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그들은 절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하면 잠3:8 말씀처럼, 그들은 건강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잠3:9∼10 말씀처럼, 그들은 물질의 축복도 얻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1:8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부모는 자녀에게 부모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훈계와 법을 듣고서 그대로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시51:5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죄 중에서 출생합니다. 그러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치지 않으면, 자녀가 저절로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거역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부지런히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그러한 자녀는 교만해져서, 그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인 줄 압니다. 또한 그러한 자녀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서, 사회생활에도 적응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잠23:13~14 말씀과 같이, 부모는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부모는 미움과 분노의 마음으로 채찍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으로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랑의 마음으로 부모는 자녀를 징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입니다. 엡6:3 말씀처럼, 순종하는 자녀는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합니다. 삶의 질에서도 또한 삶의 양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릴 것입니다. 셋째로, 마음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잠4:23 말씀과 같이, 부모는 자녀에게 그들의 마음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모든 삶이 그의 마음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15:18에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그들의 마음을 지킬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는 세상의 그릇된 풍조가 자녀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잠2:10 말씀처럼, 부모는 그 자녀의 마음에 지혜가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오늘 본문 잠1:9 말씀처럼,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 되어 그들을 존귀하게 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마음에 들어간 지혜는 그들 목의 금 사슬이 되어 그들을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넷째로, 동무를 가려서 사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다음절인 잠1:10입니다.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따르지 말라.” 악한 자를 동무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고전15:33 말씀처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힙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에게 동무를 선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잠18:24을 보면,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말 성경을 언뜻 읽어보면, 다소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여기에 친구라는 단어가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로는 다른 단어입니다. 앞에 나오는 친구는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일컫는 말입니다. 반면에 뒤에 나오는 친구는 그 가운데서 좋은 친구, 곧 선하고 진실한 동무를 일컫습니다. 나쁜 동무들을 많이 사귀면 해가 될 뿐입니다. 잠2:13~15 말씀과 같이, 그들은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합니다. 그들은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합니다. 또한 그들의 길은 구부러지고 그들의 행위는 패역합니다. 따라서 자녀들이 나쁜 동무들을 많이 사귀는 것보다는 적더라도 좋은 동무들을 사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바르고 정직한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동무를 사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다섯째로, 육체를 다스리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젊을 때는 육신의 정욕이 강하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잘못된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그릇된 일에 자기의 육체를 쉽게 내맡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결과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육체를 다스리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가 정욕을 억제함으로 파멸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주제 가운에 하나가 바로 성적 순결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컨대 잠5:3~5입니다.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로우며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가나니.” 정욕에 몸을 맡기면, 결국은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잠6:26입니다. “음녀로 말미암아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여인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정욕에 몸을 맡기면, 한 조각 떡만 남게 됩니다. 빈곤이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생명을 잃게 됩니다. 잠7:21~22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정욕의 비참한 결말을 비유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잠언은 계속해서 성적 순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육체를 다스리며 정욕을 억제해서, 성적으로 순결하게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풍성히 누릴 것입니다. 여섯째로, 자기의 배필을 즐거워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에게 육체를 다스리며 정욕을 억제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금욕하는 생활을 가르치라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각자의 배필을, 곧 남편은 그의 아내를 또한 아내는 그의 남편을 즐거워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잠5:15~16 말씀입니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이는 자신의 배필을 즐거워하라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고대 사회는 물이 아주 귀했습니다. 따라서 그 귀한 물을 거리에 부어버리는 것과 같이 함부로 낭비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적으로 문란해서 자기의 배필이 아닌 사람을 즐거워하는 것도 지극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계속해서 잠5:18~19입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배필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샘입니다. 따라서 목이 마를 때는 그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셔야 합니다. 이와 같이 부모는 자녀에게 그의 배필을 즐거워하며, 그의 배필을 항상 족하게 여기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 부모가 먼저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말을 조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잠4:24 말씀입니다.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그리고 잠6:12 말씀입니다.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그러니까 구부러진 말이나 비뚤어진 말은 불량하고 악한 자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구부러진 말이나 비뚤어진 말은 모두 바르지 못한 말을 가리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어서라도, 두 번 다시 거짓말을 못하게 해야 합니다. 반면에 자녀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정직하게 말하면, 부모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는 늘 정직하게 살아가며, 또한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항상 진실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번에는 잠10:19 말씀입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말이 많다 보면, 아무래도 말에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말 때문에 허물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늘 말을 조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말은 적게 할수록 좋지만, 말을 하려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잠25:11 말씀과 같이, 그들의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처럼 값진 말이 될 것입니다. 여덟째로, 부지런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6:6 말씀입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부모는 자녀에게 게으름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대신 부모는 말로써, 그리고 본을 보임으로써 근면을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에 개미를 통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잠6:7~8 말씀을 계속해서 읽어봅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여기에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근면함이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개미는 감시하는 자가 없어도 부지런합니다. 또한 개미는 부지런히 앞날을 예비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는 자녀에게 부지런함이 몸에 배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장래를 계획하며, 앞날을 부지런히 예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계속해서 잠6:9~11 말씀입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부모는 자녀가 게으르지 않도록 깨워주어야 합니다. 물론 그 때마다 자녀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좀더 누워 있자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녀를 게으름에 그대로 방치하면, 그 자녀는 앞으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잠10:4 말씀처럼,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되지만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됩니다. 자녀에게 부지런함을 가르칩시다. 그리해서 잠22:29 말씀과 같이, 우리의 자녀들이 자기의 일에 능숙하여 왕 앞에 설만큼 존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홉째로, 재물을 잘 관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지런하면 재물을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재물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재물을 잘 관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잠3:9~10 말씀입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부모는 자녀에게 그가 가진 재물로 먼저 하나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바칠 때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온 정성을 다해서 즐겨 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창고를 가득히 채우시고, 그들의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자녀의 바른 재물 관리를 위하여 부모가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잠6:1~2 말씀입니다.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웃을 위한 담보나 타인을 위한 보증을 금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내가 가진 재물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내가 관리해야 할 재물을 남이 맡아서 관리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이와 같이 부모는 자녀에게 그의 재물을 잘 관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부모는 자녀에게 그의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아울러 부모는 자녀에게 그의 재물을 그 자신이 직접 잘 관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열째로,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이 어려울 때, 돕지도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잠3:27~28 말씀입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어려운 이웃에게는 주저하지 말고 즉시 선을 베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계속해서 잠3:29~31 말씀입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평안히 살거든 그를 해하려고 꾀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 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의 어떤 행위도 따르지 말라.” 부모는 자녀에게 그 이웃과 화목하며 다투지 않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설사 이웃이 잘못을 행하더라도 포학한 자처럼 복수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이웃을 용서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리하면 잠3:32 말씀처럼, 우리의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있습니다. 잠3:33 말씀처럼, 그들의 집에는 복이 있습니다. 잠3:34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울러 잠3:35 말씀처럼,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광을 기업으로 주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열 가지 지혜를 차례대로 살펴보았습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대표적인 열 가지 지혜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멀리 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둘째로,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마귀가 그들에게 부모의 가슴에 못질하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셋째로, 마음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마귀가 그들의 마음속에 온갖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넷째로, 동무를 가려서 사귀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 점에서 실패하면, 마귀가 그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아버릴 것입니다. 다섯째로, 육체를 다스리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마귀가 그들에게 온갖 더러운 육체의 욕심을 이루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여섯째로, 자기의 배필을 즐거워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면, 마귀가 그들의 결혼 생활과 가정을 파탄시킬 것입니다. 일곱째로, 말을 조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그들의 입을 온갖 거짓되고 지저분한 말로 가득 채워 놓을 것입니다. 여덟째로, 부지런함을 가르쳐야 합니다. 만일 이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마귀가 그들의 게으름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도록 만들 것입니다. 아홉째로, 재물을 잘 관리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그들의 재물을 죄 짓는 일에 사용하도록 가르칠 것입니다. 열째로,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아니면 마귀가 그들에게 자기만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서, 그들을 이기적인 사람으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잘 가르치고 바르게 양육합시다. 그리해서 잠23:24 말씀과 같이, 자녀로 인한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우리 모두에게 넘쳐흐르기를 바랍니다.
가르치고 양육하라 /잠22:6, 엡6:4 2018-06-06 04:57:56 read : 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지난 3월 하순에 목단 한 뿌리를 사다가 교회 옥상의 화단에 심었는데 이틀 쯤 후에 날씨가 영하로 다시 내려가는 일기 예보를 들었다. 밤중에 걱정이 되어 신문지와 큰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가서 신문지로 감싸고 비닐봉지를 씌어 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옥상에 올라가서 들여다보고 문안하였다. 잘 자라나서 꽃이 피기를 바랐다.
가르치고 양육하라 /잠22:6, 엡6:4 2018-06-06 04:57:56 read : 5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지난 3월 하순에 목단 한 뿌리를 사다가 교회 옥상의 화단에 심었는데 이틀 쯤 후에 날씨가 영하로 다시 내려가는 일기 예보를 들었다. 밤중에 걱정이 되어 신문지와 큰 쓰레기 봉지를 가지고 가서 신문지로 감싸고 비닐봉지를 씌어 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옥상에 올라가서 들여다보고 문안하였다. 잘 자라나서 꽃이 피기를 바랐다. 어려서 시골 집 사랑채 앞에는 감자를 심고 완두콩을 심고 고구마를 심고 고추를 심고 토마토, 무, 배추를 심던 넉넉한 텃밭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뜰 안에 있던 두 아람 쯤 되고 사람 키 만 한 풍성한 목단의 뿌리를 나누어서 봄마다 텃밭에 옮겨심기 시작하였다. 몇 해가 지나자 온 텃밭이 목단 꽃밭으로 변하였다. 거기에다가 그보다 더 많은 면적의 작약도 재배하였다. 요즘 철이 되면 해마다 목단과 작약 꽃이 연 이어 피어서 장관을 이루고는 하였다. 몇 해 마다 한약방에 뿌리를 캐서 넘기는 이들이 사랑방에 와서 며칠을 묵으며 그 뿌리를 채취해 가고는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어렸을 적 추억을 되살리면서 목단 꽃 한 송이라도 직접 가꾸어 피는 것을 보고 싶었다. 열흘 쯤 전에 구슬만한 꽃망울이 맺히더니 전 주일 날 어느 시간에 꽃이 피었다. 월요일 새벽 기도 후에 옥상에 올라갔던 어느 권사님이 보내 준 사진의 꽃을 보고는 그 밤중에 옥상을 찾아 갔다. 핸드폰으로 불을 밝히며 몇 장 야간 촬영을 시도하였다. 선조들은 자식을 키우는 것을 화초 농사에 비유하였다. “어유 저게 화초 덩어리야”라는 말을 하지 않나. 화초 한 포기도 마음을 두면 정성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 관심을 끊임이 없게 쏟게 된다. 화초 한 포기가 그러하거늘 사람이 어린 아기를 키워 훌륭하게 장성한 어른으로 키워 내는 일이랴. 이번에 목단 묘목 한 뿌리를 심어 놓고 기다라는 동안에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 교회에서 여러 가정의 어린 아이들을 양육하는 교사의 마음과 목회자의 마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포유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어미의 젖도 찾아 먹고 잠시 후에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그러나 아기는 태어나면 젖을 챙겨 먹여야 하고 기고 걷고 뛰고 홀로 생활하기 까지 끝없이 돌보고 챙겨주고 진자리 마른자리를 거두어 주어야 한다. 그야말로 양육해야 한다. 그런 혜택을 입고 자라나는 것은 부모를 일찍이 잃은 고아라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사랑으로 거두로 돌아보지 않고서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경우란 없다. 우리가 어버이 날 노래하는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라는 그대로이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어머니이든 아버지이든 혹은 양부모의 손길이든 아니면 그 누구의 손길이든 이런 끊임 없는 사랑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 사람노릇 하는 경우란 없다. 낳을 때의 고통. 기를 때의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없이 애 쓰는 날들. 한 밤 중에라도 애기가 열이 펄펄 나면 안고 업고 응급실로 달려가던 날들. 요즘이야 집집마다 차도 많고 택시 부르기도 쉽지만 옛날에는 그럴 여건이 못 되었다.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어떻게 키운 딸인데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진다. 그런데 성경은 아들딸을 어떻게 키우라고 말씀하고 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교훈해 주셨다. 어린아이들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도 해 주셨다. 오늘 본문은 무슨 교훈을 말씀하고 있나. 노엽게 하지 말라. 우리가 아는 대로 에녹도 어머니가 낳았고 노아도 어머니가 낳았다. 아브라함도 어머니가 낳았고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드보라도 다윗도 에스더도 느헤미야도 어머니가 낳았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아담 이후의 족보가 나온다. 아담의 아들들 중에서 가인과 아벨 대신에 나중 태어난 셋의 계보로 이어진다. 에녹은 야렛이 낳았고, 무드셀라는 에녹이 낳았다. 성경은 저들의 어머니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부계 중심의 족보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야렛의 부인이 에녹의 어머니이고, 에녹의 부인이 969세를 산 무드셀라의 어머니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부인 사라를 통해서 아들 이삭을 낳기 까지 늘그막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지를 잘 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기 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나. 이스마엘 태어난 후에는 집안이 행복했나. 세월 지나 사라가 임신하고 사라 할머니의 배가 불러 올 때는 가정이 평안했나. 사라가 이삭을 낳아 키우는 동안에 이삭과 이스마엘과의 사이는 좋았나. 사라와 하갈과의 관계는 어땠나. 옛날 라디오 아침 드라마의 제목처럼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어도 우리 집은 언제나 웃으며 산다.” 이게 꿈이고 소망이지 않나.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있나. “천석 꾼 천 가지 걱정 만석 꾼 만 가지 걱정”이란 말처럼 아들 딸 하나 하나 낳아서 장성 시키고 자식답게 키워 내는 일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인가. 이삭이 40살에 리브가에게 장가들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아들 이삭이 장가들기 3년 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사라 할머니는 아들 이삭이 장가들고 손자 태어나길 얼마나 소원하고 소원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브라함은 40살에 장가간 이삭이 아들 낳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래야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이 번성할 테니까. 그러나 아들 이삭의 나이 60살이 되어서야 쌍둥이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다. 저들을 쌍둥이로 낳기까지의 이삭과 리브가의 삶도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쌍둥이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을 부모가 제 각기 편애하였다. 이삭의 집안에는 부부가 서로를 속이는 가정의 기만과 속임수, 형제의 갈등, 형제의 증오, 20여년 세월 동안 살기등등해진 형제의 불화, 피신, 도망, 외유, 사업의 번창, 고향을 향한 귀향길, 형제의 화해 등의 과정이 영화의 장면처럼 펼쳐진다. 사도 바울이 편지한 에베소서 6장 4절에 보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엇일까. 어떻게 키우는 것이 노여워 하지 않도록 키우는 것일까. <공동번역 성경>으로 읽으면 이렇다.“어버이들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십시오.” <현대인의 번역>으로 읽으면 이런 내용이다.“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기르십시오.” 영어 표현에 ‘exasperate’은 ‘악화시키다. 몹시 화나게 하다. 분노하게 하다.’란 뜻이다. 무조건 ‘오냐 오냐’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들딸의 감정을 긁고 몹시 상처받게 해서 억압으로, 혹은 폭력으로 대하면 그 반감이 점점 커지고 오히려 부작용이 더 심각해 질 수도 있다. 사도 바울의 이런 권면은 당시 로마 사회는 부모의 권한으로 자녀를 죽일 수도 있었던 법에 비추어 보면 대단한 권면이 아닐 수 없다. 엄마 아빠가 5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아들딸을 잘못 섣불리 대하면 그 아들딸의 앞날의 운명을 50년 쯤 꼬여들게 만들 수도 있다. 자녀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 대개 “넌 도대체 생각이 있니 없니, 넌 도대체 생각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거니”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린 이걸 알아야 한다. 생각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더 심각한 것이 마음이다. 즉 감정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한다.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아라.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에 대하여 “‘마음 알아주기’, ‘마음 만져 주기’, 부모 자식 간에 부부 간에 가족 간에 ‘감정 읽기’” 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성공을 하고 못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감정과 마음이 병들면 평생 고생이다. 자신도 그러하지만 그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요즘 상담실에 비싼 돈을 주고라도 드나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누가 내 생각을 알아 달라는 게 아니지 않나.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내 마음을 만져 달라는 거다. 내 상한 감정을 보듬어 달라는 거다. 내 답답한 마음, 내 억울한 마음, 내 슬픈 마음, 내 곤고한 마음, 내 허전한 마음, 내 가닥이 잡히지 않는 마음, 내 상처 받고 쓰라리고 괴롭고 답답하고 찢어지고 깨어진 감정을 누군가가 좀 제대로 알아 봐 달라는 거다. 누군가나 내 편이 좀 되어 달라는 거다. 어린이들, 청소년들에게 “엄마 아빠가 너한테 안 해 준 게 뭐 있냐”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사 달라는 거 안 사 준 게 뭐 있냐. 해 달라는 거 안 해 준 게 뭐 있냐” 그렇게 말하면 안 되다. 뭐 해 달라는 게 아니다. 뭐 사달라는 게 아니다. 아들딸들이 자라나다 보면 어느 때가 되면 자기 방문을 꽝하고 닫고 들어가서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생각을 하며 지내기를 원한다. 그게 자라나면서 겪는 과정이다. 양처럼 순하던 아들딸이 어느 날부터 엄마 아빠에게 한숨 덩어리로 변신하고 대들고 큰 소리 치며 덤벼들기도 한다. 그럴 때에 공자님처럼 목소리를 낮추어서 침착하게 아들딸을 대하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2분짜리 단막극 한 장면을 보자. 왜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인가. 왜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인가. 왜 자녀의 감정을 섣불리 건드려서 화가 나게 하지 말라는 것일까.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이는 소극적인 교훈 같지만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인지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몬테소리 교육이 여기저기서 행해진다. 몬테소리는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1870~1952)의 이름에서 성을 따온 교육 원리, 교육 방식이다. 몬테소리 교육은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이자 교육학자인 마리아 몬테소리에 의해 창안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1907년, 37살 때에 그녀는 직접 로마의 슬럼가의 어려운 여건의 어린이들을 자신의 교육 신념에 의해 가르쳐서 좋은 결과를 입증하였다. 그 후 그는 유럽, 인도, 미국을 오가며 40년 동안 강연과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다. 교육용 장난감을 통하여 어린이 자신의 독특한 성장발달 과정을 관찰하여 연구한 방법이다. 또한 어린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흡수하는 마음'이라는 어린이만의 유일한 특성에 바탕을 두고 개발된 몬테소리 교구를 통하여 어린이의 정신적인 싹인 지성을 마음껏 발달시키도록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어린이를 도와주는 훌륭한 교육이다. 어린이의 감춰진 힘을 알아내어 칭찬하고 그 힘의 성장을 돕고 보조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겸손히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의 진정한 품성이 내면의 힘을 가지고 우리 앞에 드러나게 된다. 올바른 교육을 받는 사람은 학교를 떠난 후에도 자신이 자연적 호기심과 지식에 대한 사랑 안에서 일깨워졌기 때문에 배우기를 계속한다. 그리하여 몬테소리 박사는 조기 아동 교육은 미리 짜인 교과 공부에 아이들을 얽매지 말고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개발시켜주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다. 몬테소리 교육의 목적은 세 가지이다. 첫째, 어린이를 성인의 축소형이 아닌 개별적인 생명을 지닌 존재로서 존중하고 어린이의 작업을 소중하게 여긴다. 둘째, 강요나 지시에 의한 교육보다는 스스로 탐색하고 선택하여 자신이 선택한 작업을 통한 기쁨을 맛봄으로 성취감 있는 자율적인 어린이가 되도록 도와준다. 셋째, 준비된 환경을 갖추어주며 어린이의 지적욕구를 만족시키며 집중력, 독립심, 협동능력을 키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어린이가 되도록 돕는다. 생각해 보라. 세상 교육의 틀에 가두어 두었다면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이 탄생했겠는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상상력과 창의력, 스티브 잡스의 연구 실적이 틀에 박힌 학습 환경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지 않나. 한 아기가 태어나 자라나면서 그 한 인격 속에 담겨진 그 만의 것을 계발하고 발전시키고 행복한 한 인격으로 사회 속에 자리매김 하도록 도우면 누구나 다 훌륭한 인품을 가진 역량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더욱 그러하지 않나.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학교로 학원으로만 내어 몰지 말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다. 그 앞에 ‘오직’이란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소극적인 권면이라면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씀은 적극적인 권면이다. 여기 ‘교훈’이란 단어와 ‘훈계’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아야 한다. ‘교훈’(敎訓)이란 ‘파이데이아’는 “어린이를 양육하고 교육하고 훈련하고 징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아이’를 뜻하는 ‘파이스’라는 단어에서 생겨났다. 그렇지 않나.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어리고 독립된 한 인격이다. 부모의 종속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아직 어리지만 한 어린이는 그 어린 인격 속에 평생을 이 험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담겨 있다. 그런 면에서 자녀들에게 교훈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노엽게 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훈련과 징계를 뜻한다. 이는 권위 있는 책벌과 훈련을 말한다. 훈련이 강한 군사를 만들어 내지 않나. 훈련이 유능한 운동선수를 발굴하고 배출해 내지 않나. 과거 우리나라 축구 역사에 히딩크 감독을 말하던 것처럼 요즘 베트남 축구계에 박항서 감독의 열풍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처럼 아들딸을 낳고 기르는 그 배후에 아들딸을 교훈하는 엄마 아빠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잠언 13장 24절 후반 절에 보면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하였다. 그 말씀의 앞부분에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고도 했다.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 자녀를 사랑하는 진심이 통하는 부모의 권위를 갖고 근실하게 징계하란 말씀이다. 잠언 29장 15절,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그 대표적인 가정이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제사장 엘리의 가정이 아닌가. 엘리 제사장은 나이 많아 늙도록 망나니로 자라난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 “너 왜 그렇게 하였느냐”고 따끔하게 책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제사장의 대를 이을 두 아들들이었지만 이 패역한 청년기를 보내던 두 아들의 나중이 얼마나 불행하게 끝나고 말았나. 그러므로 주의 교훈으로 교훈하여야 한다. 훈련하고 경책하고 때로는 징계하여야만 한다. 나의 부모님 특히 나의 아버지는 아들 삼형제에게 ‘어른들께 인사 잘 해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인사 잘 안하는 교인들에게 상처를 쉽게 받는다. 너무 이상하다. 교인이 수천 명, 수 만 명이면 몰라도 서로 인사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의 교회인데도 주일 날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고 여러 시간을 교회 안에 예배당과 친교실과 교육관과 카페 공간 등에서 마주쳐도 못 본 척 하며 지내는 교인들을 대하면 나는 쉽게 상처를 받는다. 너무 사람이 이상하게 보인다. 누가복음 18장 15절 이하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18:15-17) 이게 무슨 내용인가. 제자들은 어린 아기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애들은 저리로 가라”고 거부하였다. 어린 아기의 부모를 제자들을 꾸짖었다. 그런데 예수는 달랐다. 어린 아이들을 불렀다. 가까이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에 심오한 교훈이 담겨 있다. 어른들이 그러면 안 된다. 어린 아이들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 주님의 생각과 상관없이 내 감정, 내 판단, 내 고집, 내 소견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면 필경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주님의 마음에 다시 또 못을 박는 잘못을 범하고 말게 된다. 그 다음에‘훈계’(訓戒)로 ‘양육하라’고 했다. ‘훈계’란 말을 통해서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훈’이 행동으로 보이는 책벌이라면 ‘훈계’는 차근차근 말을 통해서 자녀들을 깨우쳐 주고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은 공부는 많이 못했어도 어린 아들딸에게‘도리 도리’를 가르쳤다. ‘도리’ 가 무엇인가. ‘도리’(道理)는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 이치’이다. 그걸 가르쳐야한다. 세상에는 든 사람, 난 사람 많다. 그러나 갑질하지 않는 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면 인간의 도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것을 성경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였다. 성경의 모든 말씀과 가리지 않는 자세한 사건의 기록들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 훈계를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독교인다운 윤리관을 갖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란 말씀이시다. 성경 안에서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단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십계명(十誡命)을 가르쳐야 한단 말씀이다. 이런 걸 교회에서도 가르쳐야 하지만 부모가 모범을 보이고 부모가 가정에서 가르쳐야 한다. 가르침을 떠나지 아니하게 하라. 자식은 부모 앞에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식이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늙어 가도 부모 보기에 자식은 여전히 자식이다. 그런데 성경은 무어라고 가르치고 있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군목도 지내고 목회도 잘하던 젊은 목사가 있었다. 그런데 술을 늘 가까이 했다. 술을 마시고 심방도 다녔다. 술 말고는 흠 잡을 게 없었다. 교인들도 말했다. 우리 목사님은 술 마시는 것 말고는 흠 잡을 것이 없다. 교인들이 술 마시며 목회하는 목사를 묵인하였다. 그런데 결국은 그 목사가 알콜 중독자가 되어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지금은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어제 전도 하는데 구파발 역 3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바깥에 담배 곽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담배 곽 금연 광고 사진에 보니 후두암으로 목에 시뻘건 구멍이 났다. “그래도 피우시겠습니까” 그래도 피운다. “세살 때 배운 버릇 여든 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어려서는 모른다. 젊어서도 표시가 잘 안 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 들아 갈수록 잘 못 살아 온 표시가 점점 들어나게 되어 있다. 숨길 수가 없다. 늙어서가 문제다. ‘늙어서’가 언제인가. 계절로 하면 늦가을이다. 초겨울이다. 이젠 심고 거름 주고 땀 흘려 가꿀 때가 아니다. 열매로 말할 때이다. 그런데 쭉정이 인생이 되었단 말이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알곡은 창고에 쌓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 버리는 법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높이 올라 간 데서 떨어지면 그 떨어지는 충격이 그만큼 더 크다. 성경의 사울 왕을 보라. 사람이 악해지면 자기 사위인 다윗이라도 창으로 찍어 죽이려고 하지 않나. 아합 왕과 이세벨을 보라. 권력을 옷 입고 악해 지니까 천하에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게 있나. 그 악이 얼마나 심각한 악으로 치닫게 되나. 솔로몬이 은과 금이 없어서 60에 죽었나. 솔로몬이 처첩이 없어서 외롭게 죽었나. 그가 20살 때 젊은 날 지혜의 왕으로 출발한게 무슨 의미가 있나. 솔로몬이 받아 쓴 성경의 잠언과 지혜의 글을 몰라서 타락했나. 나이 들어서가 문제다. 늙어서가 문제다. 어려서는 잘 모른다. 청년의 때에는 별로 표시가 안 난다. 성경 말씀 그대로이다. 왜 주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나. 늙어서 보아야 한다. 나중에 처음보다 천배 만 배 더 중요하다. 왜 예수인가. 왜 사도 바울을 말하고 왜 디모데나 디도나 바나바나 브리스길라, 아굴라를 말하나. 왜 누가 인가. 왜 오네시모인가. 오네시모는 비록 종이었지만 사도 바울을 만난 이후에 그의 나중의 생이 달라졌다. 나중이 중요하다. 늙어서가 중요하다. 왜 유아교육이 중요하고 왜 어린이 교육, 왜 청소년 교육과 청년 교육이 중요한가. 영원한 어린이가 있나. 영원히 시계가 멈추어 버린 십대나 이십대가 있나. 세월은 가고 인생은 늙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잘 가르쳐야 하고 잘 배워야 한다. 주의 교훈과 훈계로 전신갑주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이 점점 중요하다. 늙어서는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생은 그 열매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빌 코스비(Bill Cosby, 1937-)는 미국의 유색 인종의 우상과 같은 인물이었다. 1937년생이니까 81살이다. 빌 코스비의 이름이 사라진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지난달 성폭행 혐의 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은 유명 코미디언 빌 코스비를 영구 제명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성명에서 “지난달 성폭행 사건 재심에서 유죄가 난 이후 빌 코스비에 대해 몇 가지 조처를 취했다. 회원 명부(로스터)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했다. 노스할리우드 캠퍼스에 옮기기로 했던 코스비의 흉상도 없애기로 했다. 아울러 TV 명예의 전당 온라인 사이트에 있던 코스비의 이름도 지웠다”고 발표하였다.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 계시록 22장에 보면 성 안에 들어가서 생명나무에 나아갈 자와 성 밖에 버림 받을 자를 구분하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 잘 믿고 예수 말씀 잘 따르며 평생을 살아서 모두 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상급을 받는 천국 백성을 키워 내는 가정 그런 삶을 살아가는 신앙의 선배가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가르치라 /신6:4-9 2012-08-20 14:29:00 read : 1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조선시대 인물 중에 이재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열 두 살이 되자 시동생에게 데리고 갑니다. 시동생 이만성은 당대의 정치가로 유명했습니다. 아들을 시동생에게 맡기며 친자식처럼 여기고 올바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들을 맡긴지 얼마 안되어 시동생이 형수를 찾아
가르치라 /신6:4-9 2012-08-20 14:29:00 read : 10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조선시대 인물 중에 이재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열 두 살이 되자 시동생에게 데리고 갑니다. 시동생 이만성은 당대의 정치가로 유명했습니다. 아들을 시동생에게 맡기며 친자식처럼 여기고 올바로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들을 맡긴지 얼마 안되어 시동생이 형수를 찾아와 “이재가 말도 안 듣고 공부도 안 해서 매를 좀 때렸더니 그만 죽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수는 그 말을 듣고 “잘 가르쳐 잘되게 하려다 그랬으니 할 수 없지요.” 그 말을 들은 시동생은 “형수님, 사실은 이재가 죽은 것이 아닙니다. 형수가 얼마나 나를 믿는지 혹 매를 때려도 속상해 하지 않게 하려고 드린 말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삼촌 이만성은 조카 이재를 대학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은 너는 네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6-7)라고 하십니다.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것은 모든 부모의 소원입니다. “이것을 가르치라” 무엇을 가르칠까?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22:5-6/ 어린이주일설교/ 2006-05-05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22:5-6 월간 [아버지와 가정]이 초등학생 이상의 아들을 둔 아버지 88명과 만 13세~18세의 아들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다\\\" - 아버지의 46%, \\\"아들아, 너는 아버지를 닮지 말아라\\\" - 아버지의 28%,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다\\\" - 아들의 33%,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 - 아들의 37%, \\\"이 다음에 나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내 아들이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버지들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자녀가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 자녀가 자신을 닮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결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까요? \\\'호프만\\\'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성숙한 도덕성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좋다\\\"라고 했습니다. \\\'헨리 밀러\\\'라는 사람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청소년들은 친구까지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자살을 하거나 자폐증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아이들을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가르친 부모들의 잘못된 사랑에 기인한 것입니다. 오늘 날 부모들의 자녀사랑은 자신들의 욕심과 기대로 인하여 비뚤어진 사랑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앞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영원히 불행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왜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까? 첫째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보호대상입니다.. 이솝의 우화입니다. 낚시꾼이 작은 고기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잡힌 고기가 \\\"나는 작은 고기이니 풀어 주시고 이 다음에 가치 있는 큰 고기가 되어 다시 만나요\\\" 하니 낚시꾼이 \\\"안된다. 너를 물 속에 넣으면 다시는 네가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너를 잡은 이상 놓아 줄 수 없다. 바구니 속으로 들어가거라\\\"하며 작은 고기를 자기 바구니에 넣었답니다. 여러분의 자식을 주님의 축복 바구니밖에 내어놓고 후에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일랑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아지가 고삐에 끌려다님이 부자유한 것 같아도 그것이 복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고삐가 풀려져 제멋대로 이 밭 저 밭 마구 뛰어다니다간 매밖에 맞을 것이 없답니다. 내 자식을 진리 안에 가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구속이 아닙니다. 기독교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를 그리스도 품에 안기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손이 얹어지게 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축복의 말씀이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조롱 속에서 살면 열등감을 배우고, 적대관계 속에서 살면 싸움만을 배우며, 격려가운데서 살면 자신감을, 관용 속에서 살면 인내를, 칭찬 속에서 살면 존경하는 것을, 용서가운데서 살면 사랑하는 것을, 정직 속에서 살면 진리가 무엇인가를, 신앙 속에서 살면 천국을 배우며 자라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크신 손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요, 부드러우신 손으로 사랑 받아야 할 생명들입니다. 믿음의 부모들은 내 자녀들에게 세상살이의 고통과 어려움을 만나도 유혹이 와도, 오직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인도되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 가운데 \\\'빈 컵\\\'이란 시에서 \\\"빈 컵 속에 깨끗한 물을 담아 놓으면 예쁜 꽃을 꽂고 싶어지네...\\\" 우리 자녀들의 어두운 마음을 하나님 말씀의 빛으로 몰아내고 밝은 주님의 뜻을 담게 되면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인생의 꽃이 피어 날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옛사람의 글 가운데 \\\"자식을 낳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요. 기르는 것이 어렵고,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며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애기로 태어나 유년기와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게 됩니다. 어린 날의 어제가 오늘의 나를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나란 존재는 유소년기를 거치는 동안에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녀들이 어떠한 형태로 굳어지기 전에 말씀 안에서 가르칠 것을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보다 더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아무런 구속이나 제약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학교 담장을 헐어 버렸다고 합니다. 좀 확 트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담장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운동장 전체에 흩어져서 마음껏 뛰어 놀았는데, 담장이 없어지고 난 뒤에는 아이들이 운동장 가에는 가지 않고 운동장 한 가운데 모여서 놀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실험을 한 교육학자 도브슨 박사는 말하기를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정신적인 울타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인간의 삶을 보호해주는 정신적, 영적인 울타리가 되어 집니다. 그런 하나님의 울타리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인격과 삶을 바로 세워 나가게 됩니다. 자녀들에게나 부모들에게 있어서 행복의 가장 확실한 기초는 믿음으로 행할 바를 가르치는 신앙교육입니다. 세계에서 청소년 범죄가 가장 적은 민족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민족은 2천년동안 유랑민족으로 세계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대의 전통과 유대의 신앙과 유대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그들의 각 가정에 쉐마(Shema)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가정은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조그마한 가죽 상자 안에 쉐마가 들어 있습니다. 쉐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그 상자 속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가슴속에 새겨야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쉐마는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이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핵심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유대민족을 바로 세운 것입니다. 간혹 교인들의 가정에서 어렸을 때에는 교회에 잘 보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쯤 되면 아이들을 교회에 안 보내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 까 싶어서입니다. 대학 입학시키기 위해서 교회에 그만 나가게 하고 공부를 시킵니다. 그런 분들은 아이가 대학 입학하느냐 못하느냐하는 점은 염려하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느냐 못받느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올바로 보이는 사람으로 성장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믿음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셋째로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녀들에 대한 교육적 방법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강경해야 할 때 너그럽지는 아니한가? 엄하게 단속해야 할 것임에도 가볍게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날카롭게 반응해야 할 때임에도 쓸데없는 관대함을 보이지 아니했는가? 돌보아주어야 할 때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하지 아니했는가? 지금 꼭 필요한 것을 뒤로 미루어 놓지는 아니했는가? 이제 나의 자녀교육을 하나님께서 검증하시도록 내어놓고 기도하며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텍사스 주 휴스턴 경찰국에서는 자녀들을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10가지 조건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라. 그러면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2.아이가 나쁜 말을 쓸 때면 그냥 웃어 넘겨라. 그러면 자기가 재치있는 줄 알고 더욱 나쁜 말과 나쁜 생각을 할 것이다. 3.그 어떠한 형태의 교훈적인 훈련과 교육도 시키지 말아라. 커 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믿고 내버려 두라. 4.잘못된 품행은 책망하지 말며 그냥 두어라. 이 다음에 사회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5.아이가 어질러 놓은 침대, 옷, 신발 등을 모두 정돈해 주어라.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6.텔레비젼이나 비디오를 마음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어라. 머지않아 그 아이의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아이들 앞에서 부부나 가족들의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어라. 그러면 이 다음에 가정이 깨어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다. 8.달라고 하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어라. 타락의 길길을 쉽게 터득할 것이다. 9.먹고 싶다는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다는 것도 다 마시게 하고, 좋다는 것은 다 해주어리. 어떠한 거절이라도 한 번만 당하면 곧 낭패에 빠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10.아이가 이웃과 대랍되는 자세나 마음을 가질 때에 언제나 아이편이 되어주어라. 건전한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부모들은 내 자녀들이 자신의 의지를 억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말을 배울 때부터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영어 단어 몇 마디를 외움에 기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말속에서 크게 기뻐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주기도문을 정확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주기도문을 외우게 했느냐\\\'고 묻자 \\\'아니에요. 우리가 늘 가정예배를 드리며 주기도문을 했더니 저렇게 배웠어요.\\\' 라고 했답니다.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앞서가며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볼 줄 알아야만 합니다. 내 자녀들의 마음의 정원에 세상의 잡목이 심겨져 우거지기전에 성경나무를 심어 우거지게 해야만 합니다. 바르게 가르쳐야할 부모들이 배워야할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쳐 주지 못하여 훗날 그들의 자녀들이 잘못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그 책임을 부모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잘못 관리하여 성경말씀을 배우던 아이가 한 명이라도 탈선한다면 하나님께선 직무유기의 책임추궁을 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어느 초등학교 교실, 담임선생님이 화가 나서 벌게진 얼굴로 한 아이를 호되게 꾸중하고 있었습니다. 까닭은 아이가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는 너무나 어려운 가정형편을 말할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습니다. 교사는 아무 말이 없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라고........ 그로부터 17년 후, 그 아이는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라는 이름으로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 선생님의 한 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김기환의 최후 진술입니다. 김기환에게는 안팎으로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무심코 하는 부모의 말 한 마디가, 어른들의 말이, 교사의 한 마디가 생각 없이 부지중에 던진 말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육은 잘못을 방임해서도 안되고 진정한 사랑과 인격이 결여된 가르침도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책망해야 하며 사랑으로 지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 앞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서있습니까? 행할 바를 행하게 하고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책임적인 위치에 서있음을 자각하는 어른과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복 있는 어린이/ 마19:13-15
가장 복 있는 어린이 마19:13-15 어떤 부모든지 자기 자녀가 복받기를 원하며 자손이 번성하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니 그 이유는 사단 때문이요, 죄 때문인 것입니다. 이 사단과 죄를 없이 하여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단과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복된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 인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사단(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된 어린이입니다. 1)사단의 권세란 무엇입니까? 어두움의 권세, 죄의 권세, 죽음의 권세, 지옥의 권세를 뜻합니다. 2)사단은 인간을 무자비하게 만드는 장본인 입니다. 죄를 범하게 하여 에덴을 잃게 만든 원흉입니다. 가장 무서운 유괴범이 사단입니다. 3)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다 사단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갓난 어린이도 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4)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게 못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2.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어린이입니다. 1)예수님은 어린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마19:14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의 해방자이십니다. 2)예수님의 품은 홍수심판 때 구원의 방주와 같은 곳입니다. 시18:2절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3)예수님의 품은 바로 천국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품은 바로 구원의 품입니다. 4)예수님의 품은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재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귀한 어린이들을 가장 복된 어린이로 만들어야 합니다. 1)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품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녀와 내 이웃의 자녀를 교회로 인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2)세계의 유명한 위인들은 대부분 어릴때부터 예수님 품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3)어린이 전도는 미래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의 소망, 교회의 소망, 국가와 민족의 소망이 어린이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품을 떠나면 사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어린이들이 유괴되면 가장 불행한 어린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 예수님의 품에 안기면 가장 복된 어린이가 되는 것이니 우리 주위의 어린이들을 강권 해서라도 다 인도하여 하나님의 집을 가득채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참 좋으신 하나님! 우리 주위에 있는 어린이들을 가장 복 있는 어린이들이 될 수 있도록 안내를 잘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는 다음에가 없사오니 오늘 만나는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저희들이 되게해 주셔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가장 위대한 유산 (잠언 4:5~9,)
가장 위대한 유산 (잠언 4:5~9,) http://mission.bz/5043어린이주일가장 위대한 유산 (잠언 4:5~9,) 어린이날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무엇인가 조사했더니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휴대 전화와 애완 동물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컴퓨터, CD 플레이어, MP3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떨까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싶어할까요?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재산과 지식을 물려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구속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복잡한 속 사정은 잘 모르지만 혐의 중 하나가 아들 정의선 사장에게 불법으로 많은 재산을 넘겨 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벌뿐 아니고 거의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조금이라도 많이 물려 주고 싶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싼 돈을 써서 학원을 보내기도 하고 고액 과외를 시키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해외 연수와 조기 유학이 그 어느 때보다 붐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정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들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주는 선물이나 유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저의 경우를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전쟁 직후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경제적으로 모두들 아주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 때는 절대 빈곤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남들보다 더 못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저는 부모님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우선적으로 가족을 잘 입히고 잘 먹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모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가 최우선이었고 이웃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더 화가 났습니다.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낳지를 말지...”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못된 짓만 골라 해서 골탕이나 실컷 먹여야지...” 그래서 부모님 속을 꽤나 많이 썩여 드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값진 선물을 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그 때는 잘 몰랐고 또 알았을지라도 별로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하여간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은 바로 주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선물이냐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누구는 믿음이 없느냐고 빈정거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진짜 값진 선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1985년 선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신설동에 있는 신학교 땅이 개인 명의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시가로 수십 억하는 것을 저희 형제들이 상속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대박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학교 땅이라고 하지만 자녀들이 받아야 할 몫을 거기 몽땅 쏟아 부었기 때문에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망설이다가 그 땅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저희 형제들이 가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 법인에 기증했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바로 그 기준, 모든 것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믿음 때문에 항상 기쁘고 즐겁게 주님의 일에 헌신할 수 있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물려 주신 믿음이 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둔 한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구했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세속적인 출세와 영광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 20:22)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세속적인 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정말 좋은 것을 선물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진짜 값진 것을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 무엇보다 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을 믿는 믿음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유산을 물려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봉독한 본문 말씀은 믿음을 물려 줄 수 있는 바로 그 방법을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부모들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진 것이 있어야 물려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올바른 믿음을 부모들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박사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유명 인사가 못 되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구원의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며 섬기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을 물려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들이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읽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학원에 보내는 것도 필요하고 해외 연수나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미루다가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정말로 좋은 선물일까요? 무엇 때문에 믿음이 그토록 중요할까요? 우리가 모두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와 명철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혜와 명철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잠언 기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경외하는 것입니다.(잠 9:10 참고) 여기서 지혜와 명철은 단순히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는 처세술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요 명철입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공부를 잘 하고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그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고 나아갈 수 있도록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4월 26일 4년 만에 다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연주회를 가진 스웨덴 출신 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까? 그녀는 1968년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도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병원에서는 아기를 시설에 맡기라고 했지만 부모는 잠시 아기를 들여다본 후 말했습니다. “이 아이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는 가족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레나 마리아를 신앙과 사랑으로 양육했습니다. 덕분에 하나뿐인 왼발로 글씨를 쓰고 오르간을 연주하고 젓가락질을 하고 뜨개질을 합니다. 3살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국가 대표로 세계 장애자 수영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또 음대에 진학하여 가스펠 가수가 되어 지금은 전 세계를 무대로 찬양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웨덴이라는 복지국가에 태어났다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으로 키워 준 부모님과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나를 성공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길로 특별하게 지어졌습니다. 우리 모두 똑같이 귀하고 오직 하나뿐인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면 그분이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한 계획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 조금 영리하다고 해서 자만할 것이 아닙니다. 또 어릴 때 좀 모자란다고 해서 낙심하고 포기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어떤 모습이든지 하나님의 자녀들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또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라고 하십니까? 많은 재산입니까? 많은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믿음이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믿음은 힘과 능력입니다. 믿음은 또한 생명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그 자체가 자녀들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귀한 복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 가족 모두가 그 믿음대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넘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강석공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이 게시물을...
가장 큰 자 /마18:1-10 2012-08-20 15:06:52 read : 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희교회에는 어르신들도 많이 계시지만 참 이쁜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도 2살의 찬희와 수민이는 참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찬희는 남자아이이고 수민이는 여자아이입니다. 두 아이의 공통점은 각기 3남매 중 막내라는 점입니다. 수민이는 약간씩 콧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저를 만나면 기쁘게 제 볼에 뽀뽀를 해줍니다. 참 행복합니다. 어
가장 큰 자 /마18:1-10 2012-08-20 15:06:52 read : 94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저희교회에는 어르신들도 많이 계시지만 참 이쁜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도 2살의 찬희와 수민이는 참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찬희는 남자아이이고 수민이는 여자아이입니다. 두 아이의 공통점은 각기 3남매 중 막내라는 점입니다. 수민이는 약간씩 콧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저를 만나면 기쁘게 제 볼에 뽀뽀를 해줍니다. 참 행복합니다. 어제는 찬희가 엄마와 함께 교회에 와서 안아주었더니 마치 자기 할아버지에게 안긴양 착 안깁니다. 전혀 불안함이 없습니다. 처음 안기지만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얼마나 이쁜지요 거기다 눈망울은 얼마나 초롱초롱 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린이의 특성을 3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겸손함입니다. 아이들은 교만할 줄 모릅니다. 무얼 잘한다고 으시댈 줄도 모릅니다. 둘째는, 단순함입니다. 아이들은 순진무구합니다. 감출 줄도 모르고 안그런 척 할 줄도 모릅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로 표현합니다. 셋째는, 의존성입니다. 부모에게 의존하기 좋아하고 잘 믿습니다. 너무 잘믿어 유괴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은 잘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어린이를 내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1-3절“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 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제자들의 공통된 관심은 누가 크냐입니다. 남자들의 관심은 ‘누가 월급을 더 많이 받느냐?’ ‘누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자들의 관심은 ‘누가 더 예쁜가?’ ‘누가 더 세련되었나?’ ‘누가 더 옷을 잘입나?’입니다. 1절의 “그 때에”라는 것은 예수님이 수난예고를 했을 때입니다(막17:22-23). 예수님의 수난을 앞두고도 오직 제자들의 관심은 ‘천국에서 누가 가장 큰자인가?’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쟁론하였음이라”(막9:33-34) 그러나 실상 천국에는 이땅과 같은 계급의 서열이 없습니다. 이 땅에는 왕, 신하, 관리, 백성, 천민의 계급이나 서열이 있지만 천국에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어린이를 내세워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4절“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의 질서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지난번 성지순례 때 여행사 사장이 직접 가이드로 동행했었는데 그분의 명함에는 영업부장이라는 직함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 저희교회 권사님의 아들이 운영하는 ‘디톡스 코리아’라는 벤쳐기업에 가서 예배드렸는데 명함에는 ‘기획실장’이라고 찍혀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이 회사들이 잘되는 이유를 알 것 만 같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2절). 사실 예수님의 행동은 그 당시의 정서로 볼 때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여자와 아이들은 인격적으로 대우 받지 못했고 그저 재산목록의 하나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로마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물에 던져서 살아나는 아이만 전사로 키웠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를 세워 천국시민의 기준으로, 모델로 삼으신 것은 아이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난 존재요 하나님의 자녀임을 천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20년 이전에는 아이들에 대한 인격적인 호칭조차 없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을 부를 때 ‘이놈’ ‘어린 것’ ‘애 새끼’등의 호칭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던 중 소파 방정환 선생의 제안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하였고 ‘어린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어린신 이’ ‘어리신 분’이라는 존칭에서 왔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이 불러 세우신 어린이가 베드로의 아들이었다는 설도 있고, 초대교회 안디옥 교회의 감독을 지내가 순교한 ‘이그나티우스’ 였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어린이는 존귀한 존재요 나라와 가정의 미래입니다. 교회의 꿈이기도 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0만도 안되는 전세계의 유대인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가 30%나 된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유대인 부모들의 교육방식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1.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들을 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비교란 둘다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교육에서는 몇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위협형은 ‘...대로 안하면 혼난다’ 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비교형은 옆집아이와 우리 아이, 형과 동생을 비교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나열형은 지나간 일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입니다. 조소형은 ‘한 번 잘해봐라’ ‘잘되나 보자’등 냉소적인 유형입니다. 변덕형은 엄마의 기분따라 종잡을 수 없이 아이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무엇이든 다 해주겠다고 하다가 기분이 나쁠 때는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변덕형이 교육상 가장 안좋은 방법입니다. 물리학자요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아이슈타인은 어릴 때 문제아로 통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보낸 성적표에는 ‘이 아이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없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같으면 초상집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담담하게 아들에게 말합니다. “너는 남과 다르기 때문에 기필코 훌륭한 인물이 될거야” 어머니는 친히 아들을 가르쳤고 위대한 인물로 키워냈습니다. 진정한 교육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찾아내어 개발시켜주는 것입니다. 획일적인 평가나 기준으로 비교하면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막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습니다. 2.유대인 부모들은 축복관이 남달랐습니다. 유대인들은 랍비(지금의 목사)들이 마을에 오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축복기도 받기를 즐겨합니다. 왜냐하면 부모가 할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이 곡식을 가꿀 때도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비를 내리고 태양을 비추시고 바람을 불어오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13절에도 부모들이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안수 기도해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는 유대의 부모들이 자녀들이 축복받는 것을 사모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매월 1일에 드리는 월삭예배에도 늘 어린자녀들을 엎고 끌고서 새벽예배에 나오시는 부모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진심을 다하여 자녀들을 위해 안수기도를 합니다. 부모들의 정성과 열심히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목의 이야기입니다. 예배가 끝나갈 즈음 일단의 미군병사들이 예배당에 뛰어들어와 무릅을 꿇었습니다. 얼떨결에 축도를 하고 예배를 마쳤습니다. 미군부대 교회가 있는데 여기에 온 이유를 물었더니 군목이 출타중이어서 예배는 드렸지만 축도를 받지 못해서 축도를 받기위애 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축복관이 남다릅니다. 우리의 부모들도 아이들이 축복받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들이 직접 기도해주시고 안수해주십시오. 그 모든 기도와 축복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3.유대인 부모들은 신앙교육에 열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널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십니다. 요단에서 12개의 돌을 취하여 그들이 머물 길갈에 돌비석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여호수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백성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뜻이니이까 하거든/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수4:21-24) 유대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요단을 마른땅같이 건너게 하신분이 하나님임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강하신 분이요 우리는 그분을 항상 경외해야 한다고 교육합니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을 위하여 이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을 위해서도 기적을 베푸실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어린이와 자신을 동일시 하시고, 이런 작은 자를 실족케 하면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게 낮다고 선언하십니다. 5-6절“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며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작은 자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트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일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셨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어린이와 같은 작은자를 실족케하는 범죄를 피하라고 호소하십니다. 전에 시골에서 섬기던 교회에는 한 여 집사님이 교회학교 교사로 계셨는데 이분은 많은 어린이들에게 상처를 주셨습니다. 주일에 아이들이 슬리퍼 신고 오면 운동화신고 오라고 돌려보냅니다. 반바지 입고 오면 꾸지람을 하고 심지어는 벌을 세웁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데 반바지를 입을수 있느냐고.... 정말 답답한 집사님이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저들을 실족케 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작은 자’는 비단 어린이만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를 포함해서 여러면에서 연약한자 소외된 자를 가리킵니다. 마태복음25:40절에는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자는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 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등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6절에 “나를 믿는 이 작은 자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말씀에 비추어보면 어린이와 교회안에서 소외된자나 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교제권 밖으로 밀려난 분들이나 새가족들이 우리로 인해 실족당하지 않도록 잘 보살펴야 합니다. 그분들을 그리스도의 지체로, 한 가족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각 지체입니다. 누구든지 교회 공동체속에 들어오면 사랑과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앤 설리반이 헬렌켈러를 데리고 난생 처름으로 교회를 갔습니다. 미리 부탁해놓은 탓에 교회학교 아이들은 처음 온 8살의 장애인소녀 ‘헬렌 켈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헬렌 켈러는 처음 방문하고 난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곳이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어린이들이 행복한 교회, 그리고 작은 자, 연약한 자들이 행복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이일을 위해서 노력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 교육/창25:27-34
가정 교육 창25:27-34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난 주에 이어서 가정교육에 대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끔직한 뉴스에 너무나 충격을 받습니다. 용인 부근 골프장에서 일하는 일당들이 택시처럼 꾸며 가지고 밤에 타는 20대 여자 승객 만 골라서 5명을 납치 살인한 사건에 이어서 또 한명을 죽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 등 공범들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 쯤 용인시 기흥읍에서 평소 김씨와 알고 지내던 미용사 이모씨를 전화로 불러내 김씨의 승용차에 태운 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용인휴게소로 가 신용카드 2장과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후 이씨의 카드로 286만원을 인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범들은 오후 11시30분쯤 이씨를 용인시 기흥읍의 한 골프장으로 데려가 차안에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 중턱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돈 몇 푼 때문에 평소에 알던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인간들이 점점 잔인하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이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큰 잘못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뉴스에 들으니까, 공범들의 부모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하나같이 \\\'자기 자식은 절대로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더랍니다. 그 부모들은 너무나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자기 자식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됩니다. 세상이 점점 도덕이 무너지고 있을 때일수록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 그러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1. 가정과 자녀를 하나님이 맡기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입니까? 전쟁이나 기근, 양식이나 에너지, 환경오염이 아니고 가정의 위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미국사람들은 10쌍 중에 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10쌍중 4쌍이, 한국은 10쌍중 3.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급속도로 가정들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은 세 가지로, 가정이요, 교회요, 나라입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세우신 기관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과 교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때로는 성격의 차이, 때로는 자녀의 문제, 때로는 성(性)적인 문제, 때로는 술과 도박의 문제로 가정을 공격합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한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만큼 삶의 훈련이 되어 있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린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노여움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가정이 화목한 것입니다. 화려한 100평 이상의 고급 아파트에라도 부부의 갈등이 깊어 가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심한 불행도 깊어가지만, 가난한 판자촌에 산다 할지라도 엄마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행복이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잘 지키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부부였습니다. 창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믿음이 좋은 종을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보냈고 그 종은 나홀성 우물가에서 구체적인 기도한 결과 응답으로 주신 여인이 바로 리브가였던 것입니다. 또한 창24:63에 보면 종이 자기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떠난 후부터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였습니다. 또한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자, 창25:21에 보면 이삭은 아내를 위하여 간절히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아기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테어난 것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 하나님이 맡기신 남편과 아내,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라는 그러한 믿음으로 식구들을 본다면 다 소중해질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화가 났던 것은, 50년 만에 만나는 너무나 감격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처음부터 북한 가족들에게 울지 못하게 만들고 계속 \\\'김정일 장군의 하해 같은 사랑 안에서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계속 선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북한당국자들은 눈물도 인정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성옥이라는 79세된 어머니는 해방이후에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올 때, 어린 딸아이가 몸살기가 있어 외할머니 댁에 두고 왔다가 헤어진 후에, 이번에 만나고는 얼마나 울면서 사과하는지요. 그리고 이번 이산가족 만남 중의 가장 감격적인 것은 75세 되는 정귀업 할머니였습니다. 19살 때 결혼한 후에 4년 정도 살다 전쟁으로 갈라서게 되었는데 그 4년의 날들도 남편이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랴, 서울에서 한양공대를 다니랴 하다보니 살날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4살 때 병으로 죽었고 사변 후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노라고 혼자 몸으로 50년 동안 수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2년 만에 남편을 만났으니 얼마나 애절한 모습인지요, 시청하는 모든 사람이 같이 울었습니다. 개별상봉에 쓰인 방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침대도 두 개고 방도 혼자 쓰는데 오늘밤 같이 잘 수 없을까? 방이 아깝잖아! 누구한테 떼쓰면 될까? 제일 높은 분이 누구야! 김정일한테 얘기하면 될까\\\'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월 30일 작별할 때, 금강산여관에 들어선 정귀업(75) 할머니는 여관 1층 로비에 서있던 북측 남편 림한언(74)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52년을 혼자 살았는데. 나 집에 안갈꺼야. 어떻게 혼자 가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할 일 투성입니까? 이렇게 자유로운 땅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 집, 먹을 음식, 함께 살 수 있는 식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 줄 아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이 귀한 가정과 자녀들을 잘 지키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해야지, 내 주장, 내 방식, 내 주견대로 교육하고 훈계하면 자녀들의 영은 노여워지고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믿는 부모님은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세상적인 주장을 너무 세웁니다. \\\"야,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이지, 경제과를 택하라\\\" 혹은 \\\"그 처녀는 믿음은 좋으나 그 집안은 너무 볼 것이 없구나. 사돈 간에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충고랍시고 한다는 말이 성경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어머니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면서 화가 났다하면 땅을 치면서 \\\"야, 이놈아, 너를 키우노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엄마를 이처럼 업신여길 수 있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럴수록 자녀들은 하도 야단을 치니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영적으로는 노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어머니의 어떠한 신앙적인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꾸 빠지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서로 싸우는 관계로 나타나고 나중에는 살인적인 미움으로 가득한 사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이 좋다는 이삭의 가정에서 이런 삐뚤어진 자녀들이 나왔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편애,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오냐, 오냐\\\'하면서 키운 탓이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와 성격이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삭은 원래 온유한 사람이요, 소극적인 사람인 반면, 아들 에서는 적극적이고 거친 사람으로 사냥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에 비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리브가는 소극적이고 다소 여성적인 면이 강한 야곱을 사랑했던 것같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애가 문제의 소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자녀를 자기들에게 맡기셨으면, 골고루 사랑하는 것이 도리인데, 자기 취향에 따라 지나치게 한 쪽을 사랑하고 한쪽은 소외시킨 것이 가정의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는 40세였고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은 때는 60세였습니다. 그 동안 두 부부는 자식이 없는 아픔 외에는 아름다운 부부였고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를 낳은 후부터는 늦자식을 본 탓인지 부부 사이의 관계보다도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더 나가서는 각각 하나씩 편애함으로 형제 사이에 살인적인 싸움이 생기고 결국 야곱은 도망자가 되고 에서는 복수하겠다고 쫓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에서가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창26:34-35에 보니 에서는 40세에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두 부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야곱이 떠난 뒤 20년 동안 야곱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것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후에 에서를 통하여 에돔이라는 나라가 생기고 이스라엘 민족의 큰 적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정 하나의 문제가 이처럼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처럼 아름다운 부부, 아름다운 가정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골고루 사랑하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한쪽으로 사랑의 손길을, 한쪽으로는 훈계의 매로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취향대로 한쪽만 무조건 사랑을 부어주므로 두 형제 사이에 의가 상해지고 깨어지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편애는 독과 같아서 영혼과 인격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중에 가장 사악한 자가 바로 네로입니다. 네로 황제가 그처럼 사악하게된 것은 그의 어머니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독점하도록 교육을 시켰고 출세만을 위하여 살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어머니는 남편까지 죽이고 그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까지 앉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 네로는 자기를 그처럼 편애하는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했습니까? 아닙니다. 네로는 후에 로마시를 불태우면서 시를 읊는 광기를 부리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자가 되었고 부인 옥타비아를 죽이고 그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를 독살하는 간악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너무 가난하여 정규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삶을 살았으나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중에 성자라고 추앙 받을 정도로 위대하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들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친어머니는 9살 때 돌아가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겨 주었으며, 후에는 새엄마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어머니도 링컨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후에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가 쓰기를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하나님은 저에게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신앙의 어머니들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집, 좋은 방, 좋은 학교 등을 주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따라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쳐 주면 하나님이 저들의 장래를 다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대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제자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렛드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감화를 끼치려면 우선 스스로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G. 웨스트는 말하기를 \\\"모범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했습니다. 100마디의 가르침보다도 한번 본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100마디의 말로 가르치다가 한번 잘못된 본을 보이면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그 자녀들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자녀 중 암논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였고, 압살놈이라는 아들은 암논을 죽인 후에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아도니야라는 아들도 그리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처음에는 신앙적인 본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나쁜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부녀를 간음하는 죄와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도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육신의 욕망에 매이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가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를 너무 밝히는 등,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였고, 리브가도 야곱에게 나쁜 본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나름대로 그러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창25:23에 보면 리브가가 두 아이를 잉태했을 때 하나님이 예언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이 예언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귀하게 여기기 시작하다 보니 두 형제 사이에 금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러한 예언을 하셨다 하더라도 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맡긴 자녀인 줄 알고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하였더라면 에서가 그렇게 삐뚤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드린다는 선한 목적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게 헸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거짓으로 변장하게 만들었던 리브가였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실 날이 올 터인데 리브가가 너무 서둘렀던 것이 가장 파탄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범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초를 훔치지 말라\\\'고 한 말씀은 바른 교훈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거짓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리브가의 본을 배운 야곱은 일생동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과 같은 일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앞에 훌륭한 본을 보였으나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들 앞에 나쁜 본을 보임으로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 앞에 훌륭한 본을 보임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도와주었으나 대제사장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임으로 악행자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이면서도 말하기를 \\\"나는 술담배가 인이 박혀서 끊지를 못하나 너희들은 제발 이런 것은 배우지 말라. 건강에 나쁘니라\\\"고 합니다. 어느 엄마는 교회 제직이라고 하면서 심심하면 혼자서 화투로 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오늘 운수점을 본다.\\\'고 말하고, 자녀가 누구를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하면 사주에 보니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극구 반대합니다. 자녀들은 그 순간에 엄청난 영적 노여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신앙적인 교훈은 다시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큼 부모나 교사가 신앙의 본을 잘 보이느냐, 못 보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육은 어릴 때일수록 더 강하고 크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며 앞장서서 신앙의 본을 보일 때 큰 효과를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잠22:6 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12살 난 한 흑인 소년이 죽어 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장애인이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나는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가지 내가 너에게 남겨줄 게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세 가지 보석이 필요하단다. 이 보석만 가지고 있으면 넌 이 다음에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어. 이것만은 놓치지 말고 누구에게도 주지 마라. 이 세 가지 보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어머니마저 떠났습니다.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된 이 12살된 소년은, 가난과 신체적인 장애로 어려움 가운데 지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공부하고, 남보다 잘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바로 1950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1904~1971)박사입니다. 그는 가난했고, 장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것이 세 가 지 보석이란다. 이것만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 때문에, 이 소년은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줄 알고 언제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정 행복의 5대 원칙 /시127:1-5 2017-10-07 21:37:11 read : 1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러시아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이것은 훌륭한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것인지를 말해 주는 격언이다. 우리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가정
가정 행복의 5대 원칙 /시127:1-5 2017-10-07 21:37:11 read : 1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이다. 러시아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바다에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이것은 훌륭한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것인지를 말해 주는 격언이다. 우리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가정이 불행하여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리고 나아가서 그 민족의 미래는 없는 것이다. 오늘 말씀은 가정이 행복하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그 절대적인 성경의 원칙을 가르쳐 준다. 1.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 (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히브리어에서 ‘집’은 건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 ‘집’은 가정이다. 가정을 아무리 행복하게 세우고 가꾸려고 다들 노력 하지만 하나님이 세워주셔야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수 있다는 말씀이다. 또한 1절에서 “성”은 국가를 의미한다. 아무리 국방을 튼튼히 하고 군인들이 나라를 지킨다고 해도 하나님이 지켜 주셔야 가능하지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흔히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마지노선이란 프랑스가 독일의 침략을 대비해서 만든 어마어마한 방벽을 의미하였다. 1차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랑스는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여 독일 국경 지대에 독일군이 침략 가능한 곳은 철저한 요새를 구축하였는데 당시 프랑스 돈 18조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요새를 구축하였다고...가장 얇은 방벽이 3.5m 콘크리트 벽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프랑스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마지노 방벽을 구축하고서는 그당시 세계 어느 군대도 이 마지노선은 뚫지 못한다고 큰소리 쳤다고....그런데 2차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은 마지노선으로 프랑스 침략 안하고 벨기에 쪽으로 우회하여 침략하니 마지노선은 아무 소용없게 되었다고... 인간의 힘만으로는 절대 나라를 제대로 지킬수 없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가능하다는 역사적인 실 예이다. 그런데 나라도 하나님이 안지켜주면 인간의 백가지 대책도 아무 소용없듯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사람들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하나님이 그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해주셔야 가능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 헛것이 되고 만다는 말씀이다. 시편127편은 솔로몬 왕이 지은 시이다. 솔로몬 왕은 아버지 다윗 왕이 평생 소원하고 계획하였던 성전도 지었고, 그리고 13년동안 궁전도 지었고, 나라 곳곳에 대형 사업을 많이 일으킨 왕이었다. 즉 솔로몬은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성취욕이 대단했던 사람이었다. 사업뿐만 아니라 가정의 욕심도 많았다. 그래서 그는 결혼도 많이 하고 처첩도 많이 두었다. 그러나 그가 깨달은 것은 사람이 아무리 많이 계획하고 일을 도모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다 헛수고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전도서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전2:11)“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실제 솔로몬의 가정만 해도 그렇다. 솔로몬은 부인도 많이 두고 자식도 많이 낳았지만 마음놓고 자기 보좌를 물려줄 자식은 한명도 없었다. 또 실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많은 것을 거의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솔로몬은 많은 아들 중에 자기 마음에 드는 아들이 없음을 깨닫고 이 시를 지은 것 같다. 솔로몬 자신은 많은 것 이루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다 헛수고였다는 것이다. 왜 헛수고였나? 그기에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아니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인간적인 계산으로만 했기 때문에 다 헛수고였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그는 고백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집(가정)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그러므로 내 힘, 내 노력으로 내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다? 교만이다. 여러분이 솔로몬 같은 총명함을 가지고 있다 해도, 솔로몬 같은 권력을 누린다 해도, 솔로몬 같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 중심에 하나님이 없는 가정이라면 다 헛것이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내 가정이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바로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가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내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지 아니한다. 하나님이 내 가정의 주인이 아니라 엉뚱한 것들이 내 가정의 주인 노릇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버지가 교회도 잘 안나가고 신앙이 좀 희미해도 돈만 잘 벌어오면 상관없고, 엄마는 자녀를 위해 기도는 안해도 남편 자식 뒷바라지만 잘하면 되고, 자녀는 교회는 잘 안나가도 상관없이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그것은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은 헛된 가정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기억하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는 가정은 결국 헛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 없이 쌓은 재물 헛되고, 하나님 없이 쌓은 지식 헛되고....하나님 없이 쌓은 명예 헛되고 만다. 이렇게 하나님 없는 모든 것 헛됨을 늦게 깨닫는 자가 되면 안된다. 2.경제력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2)“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경제력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루 종일 땀흘려 일해도 헛수고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나의 노력에 열매를 맺도록 해주셔야만 경제력 있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그 노력이 헛되지 않고 바른 열매가 맺도록 하게 하실까? 그것은 하나님 마음에 맞는 경제관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이 풍성한 재물도 맡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경제관은 어떡해야 할까? 그리스도인의 경제관은? 1) 하나님이 재물의 주권자이시다. 나는 청지기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 내가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해야 한다. 2) 재물에 부해지는 방법? 하나님이 누구에게 많이 맡기겠는가? 부지런한 자에게 많이 맡긴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부지런한 종에게 많이 맡겼지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는 맡기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재물이 더많이 주어진다. 3) 물질이 복이 되려면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재물을 악착같이 모을줄만 알았지 잘 쓸 줄을 몰랐다. 그래서 하나님이 거두어 가셨다. **이런 믿음의 경제관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재물을 붙여주시고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신다. 성경적 재물관을 가지고 경제력이 있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다. 3.안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2하)“....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새번역)“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복을 주신다.” 사실 본문 2절 하반절은 신학자들이 원문을 해석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본문이다.(원문이 회손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데 새번역이 가장 무난한 번역으로 보인다. 영어성경도 이렇게 번역한 것들이 많다. 어쨌든 본문의 핵심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에는 잠(안식)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잠자고 자리 비운 사이 여러 가지 헛된 일들(사고들)이 일어난다. 어린아이가 부모들이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뜨거운 물에 손을 집어넣어 화상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잠을 안잘수 없다. 24시간 일하고 싶지만 휴식을 안할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 사고는 사람이 한눈 판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자녀를 24시간 따라다니면서 지켜주고 보살펴 주고 싶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하는 가정에서는 사람이 쉬는 순간에도 잠자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일일이 지켜주신다. 그래서 헛된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도우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서는 휴식이 참안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가정에서는 휴식하는 시간...부모들이 한눈 파는 사이에 온갖 사고가 다 일어난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가정에서는 휴식이 휴식이 아니라 불안의 시간일 뿐인 것이다. 세상사람들을 보라... 부모들이 한눈 파는 사이에 자녀들이 온갖 게임에 빠진다. 부모들이 일일이 간섭할수 없는 사춘기가 되면 자녀들이 빗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모들이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이 게임 중독이 되어가고, 부모들이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이 담배에 빠지고, 부모들이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이 술독에 빠지고, 온갖 나쁜 친구들 꾐에 빠져서 엉뚱한 짓을 해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간섭해주시고 하나님이 인도해주셔야 가정에 참 안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가정에는 부모들이 한눈파는 사이에도 하나님이 지켜주셔서 참된 안식을 주시는 것이다. 여러분 가정은 여러분이 일일이 자녀를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자녀도 지켜주시고 복을 주시는 가정이 되시길 바란다. 또한 가정은 모든 식구에게 평안한 안식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가정이 평안한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부부끼리는 맨날 부부싸움에 열전과 냉전을 거듭하는 전쟁터가 되어버리고, 부부와 자식간에는 따뜻한 말은 실종되어버리고 그저 만나기만 하면 자녀를 다그치기만 하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가정들이 있다. 부모가 자녀를 어떤 말로 공격하는가? ‘넌 왜 맨날 그 모양이니?’ ‘너 뭐하는 녀석이냐?’ ‘가서 공부나 해’ ‘거울 좀 그만 들여다봐라’ ‘네 엄마는 도대체 집에서 뭐하고 있는 거냐? 애들 하나 제대로 못 키우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그게 뭐니?’...이런 다그치는 잔소리들은 자녀들이 가정에서 참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왜 그렇게 가정이 전쟁터가 되어가는가? 부모들이 그리고 자녀들이 세상 가치관에 휘둘리고 살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하나님 말씀에 귀가 얇아져서 하나님 말씀으로 가정을 이끌어가야 하는데 그저 옆집 아줌마가 하는 소리, 옆집 아저씨가 하는 소리에 귀가 얇아져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 풍조를 따라가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가정이 전쟁터가 아니고 참안식을 누리는 안식처가 되려면? 여러분의 가정이 단잠을 잘수 있는 안식처가 되려면?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있는 가정이 되어야 한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보라. 탕자는 세상에서 방탕하다가 모든 것 다 잃어버리고 맨몸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아들 취급 안받아도 좋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결심하지 않는가? 그것은 자기 집이야 말로 참 안식이 있는 안식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의 아버지가 있는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안식이 있는 가정이라야 자식들이 잠시 삐뚤어져도 다시 회복되는 은혜가 주어지게 된다. 여러분의 가정은 참안식이 있기를 바란다. 4.믿음의 자식이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다. (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행복한 가정의 네 번째 조건은 바로 자식이다. 자식이 잘되어야 행복한 가정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자식농사가 잘되어야 복된 가정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자식이 어떤 존재인가부터 확실히 알아야 한다. 1)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다. 자녀들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기업이라는 말이다. 본래 이스라엘에 기업이란 땅을 의미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서 배당하였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제비 뽑은 땅이 자갈밭이라고 ‘제비 잘못 뽑았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맡기신 기업이기에 어떤 땅을 배정받아도 감사하였고 그 땅을 가꾸기에 힘썼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땅 개념은 우리와는 달랐다. 땅은 내 것이라는 재산 개념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이라는 개념이었다. 즉 하나님이 주인이고 나는 하나님이 맡기신 땅을 관리하는 청지기라는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자식이 기업이라는 말씀은 자식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하나님 소유라는 말이다. 내 자식은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기업이다. 그래서 자녀를 키워도 내 뜻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키우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의 한을 풀어줄 대상이 아니라 자녀는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이 펼쳐나갈 하나님의 일꾼으로 알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여 자녀를 교육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자녀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키워야 한다. 믿음의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믿음의 자녀가 있을 때에 그 가정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이 된다. 그러면 2절 말씀처럼 잠을 자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가정이 되는 것이다. 2) 자녀는 여호와께서 주신 상급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 즉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물질이나 명예가 다 인줄 아나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상급은 물질이나 명예가 아니라 그의 자녀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요 상급이었고, 이삭에게는 야곱이었고, 야곱에게는 12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축복이었고 상급이었다. 그러므로 물질이 좀 적더라도 자식이 믿음으로 잘 자라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상급이요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녀가 믿음으로 잘 자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는 줄로 믿어야 한다. 5. 자녀의 미래를 향해 멀리 날려보내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4-5)“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지금은 최첨단 무기가 미사일이나 핵무기이지만 과거에는 최첨단 무기가 화살이었다. 화살은 얼마나 멀리 날아가서 적을 맞히느냐가 중요하였다. 그런데 힘센 장사가 쏘면, 화살은 멀리 날아간다. 그런데 성경은 자식이 화살과 같다고 하였다. 가정에서 미래를 향한 최고의 무기가 있다면 바로 자녀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화살같은 자녀를 장사가 쏘는 화살과 같이 멀리 날려보내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가 부모가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부모가 해보지 못한 것을 하기를 바란다. 부모보다 발전된 자녀를 원한다. 부모보다 식견도 더 넓고 부모보다 더 능력있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복된 가정이다. 활 쏘는 것...활을 제대로 쏘려면 보기보다는 팔 힘이 강해야 한다. (저는 검도를 했는데...칼을 휘두려려면 팔 힘이 강해야 한다. 그래서 운동할 때 늘 팔굽혀펴기를 하고 평상시에는 늘 쪼막쪼막 하면서 팔 힘을 길렀다....그러니까 팔 힘이 커졌는데 중3때에 팔씨름대회를 했는데 내가 우리 반에서 우승했다...연습하니깐 강해지더라) 즉 활을 쏘려면 팔 힘을 길러서 장사의 손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자식이라는 화살을 멀리 미래로 날려보내려면 부모가 강해야 한다. 즉 부모가 영적 장사여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멀리 날려보낸 영적 장사이셨다. (요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이루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셨고 또 그렇게 제자들을 교육시키셨다. 그래서 주님은 먼 미래를 향한 12제자라는 화살을 위해서 이 땅의 몇 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제자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셨다. 실제로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해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땅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지만, 제자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다. 베드로는 로마에 가서 순교했고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몇백년 후에는 로마라는 거대한 나라가 기독교 국가로 바뀌었다. 이 모든 것은 미래를 향해 제자들을 날려보낸 영적 거장이신 예수님 때문인 것이다. 여러분도 자녀들을 멀리 날려보내는 영적 장사가 되어야 한다. **자녀를 멀리 날려보내려면? 어떤 영적 장사가 되어야 하나? 1)믿음을 가져야 한다....믿음으로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2)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라...기도한 만큼 미래가 열린다. 3)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도우라. 도전의식을 키우라. **한국에 오래 동안 특파원으로 주재했던 외국기자가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 제일 처음 지적한 것은 ‘한국인들은 과거지향적이다’ 라고 말했다. 한국인들과 만나면 ‘과거 얘기를 주로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다’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자녀는 과거지향적 인물로 키우지 말라. 부모는 자녀에게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지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즉 미래의 꿈을 심어주고 그 미래의 꿈을 향해서 도전하여 나가는 진취적인 자녀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4)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라 유대인 교육? 세계 인구의 0.25%밖에 안 되는 유대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800만명의 작은 국가가 노벨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이며 구글·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총수를 포함하여 금융기관과 언론사 상당수가 유대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뛰어난 이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세계 어디든지 가서 살아남을 준비를 한다고 한다.(그것은 자기 본래 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본적으로 2개 외국어는 하고 3개 외국어도 하는 유대인들이 많다고 한다. 즉 유대인은 어릴때부터 세계를 활동 무대로 생각하는 민족이다. 우리나라도 좁은 한국 땅에서 서로 제살 깍아먹기 경쟁하지 말고 세계로 뻗어나갈 인물로 자녀를 교육해야 한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성공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식 농사 잘 된 가정이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는 그런 가정이면 행복한 가정이고 복된 가정이다. 오늘날 노후대책 노후대책....하는데 참된 노후 대책은 무엇인가? 보험에 많이 들고, 연금 많이 들어놓고,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 많이 모아놓는 일인가? 아니다. 그런 것 보다는 자녀들이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가면 그게 진정한 노후대책이고 복된 가정이다. 오늘 시편에 자녀들이 힘차게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가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5)“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믿음의 자녀들이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는 그런 가정은 결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결코 부끄럼 없는 가정이 될 것이다. 진정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이런 복된 가정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가정이 행복하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그 절대적인 성경의 5대 원칙? 1.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 2.경제력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3.안식이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4.믿음의 자식이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다. 5.자녀의 미래를 향해 멀리 날려보내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가정과 자녀 교육/엡6:4
가정과 자녀 교육/엡6:4 2007-04-24 14:35:36 read : 150 차용철목사 \"또 아비들아 저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 (엡6:4) <序言> 가정의 행복에 자녀가 차지하는 범위는 지대합니다. 자녀의 바른 성장이 행복을 지속시킵니다. 얼마 전에 일 가족이 학교 앞에서 주차를 한채 차 안에서 분신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학교 기숙사에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교사가 학생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학생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학교문제는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말았습니다. 학생이 계속 문제가 되자 이윽고 학교에서는 학생을 집으로 데려가라는 통보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아들을 학교로 데리러 왔습니다. 아들이 정문을 나와 차에 타자 아버지가 차 안에 신나를 뿌리고 다 함께 죽자고 했습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나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 혼자 도망해 나가고 모두 차 안에서 불타 죽었습니다. <本論> 1.자녀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가 잘되길 바랍니다. 자녀가 잘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희생도 할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 환경 때문에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공부 문제라면 최선을 다해 투자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녀에게 주고 싶은 것과 우리 자녀들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서로 원하는 간격이 너무 커서 갈등하게 되고 상처를 받고 분노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랄 때 기회를 놓쳐서 공부를 원하는 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에게는 어떻게든지 학생 때에 공부를 시키려 합니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학벌이 약해서 인생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를 못해서 우리와 같은 인생을 답습할까 봐 두려워서 자녀에게 강요해서라도 공부를 잘하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를 통해서라도 이루기 위해 자녀에게 인생의 마지막 희망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은 다릅니다. 자기 인생 자기를 위해 살고 싶지 자기 인생을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를 위해 살아 줘야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 알고 그 능력에 맞는 정도에서 만족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거기서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욕망은 너무 크고 자녀의 현실은 따라 주지 못합니다. 20등인 아이가 있다면 자신은 최선을 다하면 10등 정도 한다는 것을 압니다. 최선을 다해 10등을 했는데도 부모가 \"잘했지만 좀 더 잘해야 하겠다\"고 한다면 아이는 혼동하게 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공부를 하며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원하는 것 다 해주는데 왜 1등을 하지 못하느냐\'고 한다면 자녀는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자녀는 그런 부모의 행동을 보며 자기를 위해 공부하라고 하고 희생하는 것이 모두 부모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큰 상처를 받게 되고 분노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유머로 올린 내용입니다. 말을 배운지 얼마 안됨에도 말을 곧잘 함을 기특하게 여기던 형은 그 날도 조카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xx야~ xx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조카는 대답했습니다.. \"대통령\" 자신의 귀한 아들이 나중에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 형과 형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xx가 대통령되면 아빠, 엄마 뭐시켜 줄거야~?\" 조카는 계속.생각을 하다가... ..\"짜장면~\"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통해 자기 욕망을 이루려는 사람은 짜장면이나 먹을 사람입니다. 본문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로마에서 절대부권을 가지고 자녀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라는 절대부권이 있었습니다. 부권을 가진 자는 자기 가족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노예로 팔기도 하고 쇠사슬에 묶어 일을 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녀가 출생하면 아버지 발 밑에 놓게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그 아이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자녀들이 얼마나 분노하겠습니까?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부모라는 권위로 자녀를 억압하고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엄연히 개인적 인권을 가진 자를 자기 자녀라고 해서 자기 소유물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자녀를 자기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 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장 합법화된 폭력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자녀에게 상처를 보상받으려 말고 지금부터라도 자기 인생을 보람되게 사는 길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자녀도 행복하게 되는 길입니다. 2.자녀의 인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디지털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인성입니다. 몇년 전에 독일의 종합미디어 그룹인 \'베델스만\'의 란슈타인이 내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미디어 형태가 급속도로 발달해 감에 따라 사람들의 심성도 단순화되고 획일적이어지고 개인주의화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사람의 감성은 가치있게 다루어질 것이고 건강한 인성을 가진 자가 각 분야에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의하면 미국의 많은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인성검사 결과를 활용하는 사레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서는 30%에 달하는 회사가 채용에서 인성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채용관련 성격검사 도구를 제공하는 회사가 2500개나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회사는 컴퓨터로 인성 검사를 한 후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면접 기회조차도 주지 않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경우엔 컴퓨터로 50분이나 인성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측은 온라인 인성검사를 채용에 반영한 결과 직원들의 근속 기간이 늘었으며 고객 만족도도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스포츠용품업체 간부인 마이클 마체티는 인성검사에서 \'레드\' 판정을 받은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퍼센트 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좋은 인간관계였다.\" 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갈수록 안정된 인성과 풍부한 감성을 가진 자가 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성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사회 공동체에서도, 교회 공동체에서도, 가정 공동체에서도 인정 받지 못합니다. 결국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양육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녀는 어떤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 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혼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는 것이 성격차이인데 그것은 인성 문제입니다. 결국 인성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가정생활도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제 아이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개발시켜 주는 것은 좋지만 인내심과 의지력도 길러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합리성과 양보심과 배려심 등 공동체를 리드해 갈 수 있는 인성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요즘 어린 자녀를 기르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인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가족의 놀라운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맞았는지 그 아이가 엄마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그 엄마가 하는 말 \"니도 가서 콱 때려부러!\" 아마 발음을 보니 아마 전라도 사람이었는 모양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식당에서 아이들 떠드는 것 놔두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뛰어 다니는 아이들 없고 혹 뛰면 부모가 반드시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도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 것 빼앗다가 싸우면 자기 아이를 설득시키지 않고 다른 아이를 설득시키려 합니다. 과자를 가지고 싸우면 자기 아이에게 주고 다른 아이는 자기 아이에게 하나씩 얻어서 줍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분별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인성을 갖는 데에 역행하는 행동을 할 때는 근실히 징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잠언13:24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라고 하였고, 잠언 23:13-14에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채찍을 아끼면 자녀를 버린다\"고 했습니다. 와일드는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얼마 후엔 부모를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자녀의 잘못을 보고도 근실히 징계하지 않는 자는 자녀를 인생에서 실패하게 하는 자입니다 (삼상2:12-17,22-26). 3.자녀를 신앙적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몇년 전에 불교 조계종의 기관지인 \'불교신문\'에서 최고위층 인사들의 종교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독교 42명, 천주교 20명, 불교 9명 순이었습니다. 1998년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종교 인구 현황이 불교 23.2%, 기독교 19.7%, 불교 9% 순이었던데 비하면 신앙 교육을 받은 자가 비교할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수록 세계는 혼탁해 질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영적 분별력이 있는 자가 훌륭한 리더가 될 것입니다. 미국 마크쥬크스의 논문에 보고된 청교도 신학자 죠나단 에드워드의 7대 후손을 보면 729명 중 복음전도자가 300명, 교수가 65명, 부통령과 국회의원이 16명, 대학학장이 13명이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 세상적 목적으로 살아가는 한 가정의 7대손은 1200명 중 300명이 일찍 죽었고 대부분 감옥 생활자나 알코올 중독자나 창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죠나단 에드워드 가속은 영국에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던 청교도들의 후손입니다. 청교도인들은 알파벳 A를 가르치면서 아담을, B를 가르치면서 바벨탑을, C를 가르치면서 가인을, D를 가르치면서 다윗을 가르쳤던 자들입니다. 현재 미국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 이른바 WASP (White, Anglo, Saxon, Protestants) 그룹도 그들의 후예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대부분 와쉽 그룹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높이 들어 쓰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디모데 같은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9:23에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라고 하였고, 다니엘 1:20에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 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라고 했고, 다윗은 말씀을 준행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하니까 가는 곳마다 강성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준비하도록 목을 주셨습니다 (행13:22-23). 디모데는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을 이어받아 목회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딤후1:5).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명기6:6-7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인격이 되게 하고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커서도 그 말씀의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의 법이 되어 죄에서 떠날 것이며 좌절할 때에 말씀에서 힘을 얻어 일어날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 말씀이 생각나서 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일을 알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욜2:28, 마21:15-16참조).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쓰임 받게 하려면 성령의 일을 알게 해야 합니다. 성령이 누구인지 성령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성령의 감동을 어떻게 느끼는 것인지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세상사가 사람의 계획과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9:11). 살아가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어서게 하는 힘은 신앙입니다. 세상 사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제시하는 하나님 말씀이 그를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 주의 성령이 그를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고 했습니다. <結言> 자녀가 잘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교육가치관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을 따라 교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이겠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훌륭한 자녀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학대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 목적에 따라 교육하려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녀로 기르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내가 기르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세상의 풍조가 나로 하여금 육욕을 따라 교육하기를 유혹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게 해 주옵소서.
가정교육/ 창25:27-34/ 어린이주일설교/ 2002-05-05
가정교육 창25:27-34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난 주에 이어서 가정교육에 대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끔직한 뉴스에 너무나 충격을 받습니다. 용인 부근 골프장에서 일하는 일당들이 택시처럼 꾸며 가지고 밤에 타는 20대 여자 승객 만 골라서 5명을 납치 살인한 사건에 이어서 또 한명을 죽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 등 공범들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 쯤 용인시 기흥읍에서 평소 김씨와 알고 지내던 미용사 이모씨를 전화로 불러내 김씨의 승용차에 태운 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용인휴게소로 가 신용카드 2장과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후 이씨의 카드로 286만원을 인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범들은 오후 11시30분쯤 이씨를 용인시 기흥읍의 한 골프장으로 데려가 차안에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 중턱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돈 몇 푼 때문에 평소에 알던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인간들이 점점 잔인하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이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큰 잘못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뉴스에 들으니까, 공범들의 부모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하나같이 '자기 자식은 절대로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더랍니다. 그 부모들은 너무나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자기 자식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됩니다. 세상이 점점 도덕이 무너지고 있을 때일수록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 그러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1. 가정과 자녀를 하나님이 맡기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입니까? 전쟁이나 기근, 양식이나 에너지, 환경오염이 아니고 가정의 위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미국사람들은 10쌍 중에 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10쌍중 4쌍이, 한국은 10쌍중 3.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급속도로 가정들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은 세 가지로, 가정이요, 교회요, 나라입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세우신 기관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과 교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때로는 성격의 차이, 때로는 자녀의 문제, 때로는 성(性)적인 문제, 때로는 술과 도박의 문제로 가정을 공격합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한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만큼 삶의 훈련이 되어 있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린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노여움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가정이 화목한 것입니다. 화려한 100평 이상의 고급 아파트에라도 부부의 갈등이 깊어 가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심한 불행도 깊어가지만, 가난한 판자촌에 산다 할지라도 엄마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행복이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잘 지키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부부였습니다. 창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믿음이 좋은 종을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보냈고 그 종은 나홀성 우물가에서 구체적인 기도한 결과 응답으로 주신 여인이 바로 리브가였던 것입니다. 또한 창24:63에 보면 종이 자기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떠난 후부터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였습니다. 또한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자, 창25:21에 보면 이삭은 아내를 위하여 간절히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아기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테어난 것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 하나님이 맡기신 남편과 아내,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라는 그러한 믿음으로 식구들을 본다면 다 소중해질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화가 났던 것은, 50년 만에 만나는 너무나 감격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처음부터 북한 가족들에게 울지 못하게 만들고 계속 '김정일 장군의 하해 같은 사랑 안에서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계속 선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북한당국자들은 눈물도 인정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성옥이라는 79세된 어머니는 해방이후에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올 때, 어린 딸아이가 몸살기가 있어 외할머니 댁에 두고 왔다가 헤어진 후에, 이번에 만나고는 얼마나 울면서 사과하는지요. 그리고 이번 이산가족 만남 중의 가장 감격적인 것은 75세 되는 정귀업 할머니였습니다. 19살 때 결혼한 후에 4년 정도 살다 전쟁으로 갈라서게 되었는데 그 4년의 날들도 남편이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랴, 서울에서 한양공대를 다니랴 하다보니 살날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4살 때 병으로 죽었고 사변 후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노라고 혼자 몸으로 50년 동안 수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2년 만에 남편을 만났으니 얼마나 애절한 모습인지요, 시청하는 모든 사람이 같이 울었습니다. 개별상봉에 쓰인 방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침대도 두 개고 방도 혼자 쓰는데 오늘밤 같이 잘 수 없을까? 방이 아깝잖아! 누구한테 떼쓰면 될까? 제일 높은 분이 누구야! 김정일한테 얘기하면 될까'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월 30일 작별할 때, 금강산여관에 들어선 정귀업(75) 할머니는 여관 1층 로비에 서있던 북측 남편 림한언(74)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52년을 혼자 살았는데. 나 집에 안갈꺼야. 어떻게 혼자 가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할 일 투성입니까? 이렇게 자유로운 땅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 집, 먹을 음식, 함께 살 수 있는 식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 줄 아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이 귀한 가정과 자녀들을 잘 지키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해야지, 내 주장, 내 방식, 내 주견대로 교육하고 훈계하면 자녀들의 영은 노여워지고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믿는 부모님은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세상적인 주장을 너무 세웁니다. "야,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이지, 경제과를 택하라" 혹은 "그 처녀는 믿음은 좋으나 그 집안은 너무 볼 것이 없구나. 사돈 간에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충고랍시고 한다는 말이 성경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어머니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면서 화가 났다하면 땅을 치면서 "야, 이놈아, 너를 키우노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엄마를 이처럼 업신여길 수 있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럴수록 자녀들은 하도 야단을 치니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영적으로는 노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어머니의 어떠한 신앙적인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꾸 빠지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서로 싸우는 관계로 나타나고 나중에는 살인적인 미움으로 가득한 사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이 좋다는 이삭의 가정에서 이런 삐뚤어진 자녀들이 나왔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편애,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오냐, 오냐'하면서 키운 탓이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와 성격이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삭은 원래 온유한 사람이요, 소극적인 사람인 반면, 아들 에서는 적극적이고 거친 사람으로 사냥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에 비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리브가는 소극적이고 다소 여성적인 면이 강한 야곱을 사랑했던 것같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애가 문제의 소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자녀를 자기들에게 맡기셨으면, 골고루 사랑하는 것이 도리인데, 자기 취향에 따라 지나치게 한 쪽을 사랑하고 한쪽은 소외시킨 것이 가정의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는 40세였고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은 때는 60세였습니다. 그 동안 두 부부는 자식이 없는 아픔 외에는 아름다운 부부였고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를 낳은 후부터는 늦자식을 본 탓인지 부부 사이의 관계보다도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더 나가서는 각각 하나씩 편애함으로 형제 사이에 살인적인 싸움이 생기고 결국 야곱은 도망자가 되고 에서는 복수하겠다고 쫓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에서가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창26:34-35에 보니 에서는 40세에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두 부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야곱이 떠난 뒤 20년 동안 야곱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것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후에 에서를 통하여 에돔이라는 나라가 생기고 이스라엘 민족의 큰 적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정 하나의 문제가 이처럼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처럼 아름다운 부부, 아름다운 가정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골고루 사랑하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한쪽으로 사랑의 손길을, 한쪽으로는 훈계의 매로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취향대로 한쪽만 무조건 사랑을 부어주므로 두 형제 사이에 의가 상해지고 깨어지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편애는 독과 같아서 영혼과 인격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중에 가장 사악한 자가 바로 네로입니다. 네로 황제가 그처럼 사악하게된 것은 그의 어머니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독점하도록 교육을 시켰고 출세만을 위하여 살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어머니는 남편까지 죽이고 그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까지 앉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 네로는 자기를 그처럼 편애하는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했습니까? 아닙니다. 네로는 후에 로마시를 불태우면서 시를 읊는 광기를 부리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자가 되었고 부인 옥타비아를 죽이고 그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를 독살하는 간악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너무 가난하여 정규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삶을 살았으나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중에 성자라고 추앙 받을 정도로 위대하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들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친어머니는 9살 때 돌아가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겨 주었으며, 후에는 새엄마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어머니도 링컨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후에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가 쓰기를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하나님은 저에게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신앙의 어머니들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집, 좋은 방, 좋은 학교 등을 주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따라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쳐 주면 하나님이 저들의 장래를 다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대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제자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렛드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감화를 끼치려면 우선 스스로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G. 웨스트는 말하기를 "모범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했습니다. 100마디의 가르침보다도 한번 본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100마디의 말로 가르치다가 한번 잘못된 본을 보이면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그 자녀들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자녀 중 암논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였고, 압살놈이라는 아들은 암논을 죽인 후에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아도니야라는 아들도 그리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처음에는 신앙적인 본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나쁜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부녀를 간음하는 죄와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도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육신의 욕망에 매이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가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를 너무 밝히는 등,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였고, 리브가도 야곱에게 나쁜 본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나름대로 그러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창25:23에 보면 리브가가 두 아이를 잉태했을 때 하나님이 예언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이 예언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귀하게 여기기 시작하다 보니 두 형제 사이에 금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러한 예언을 하셨다 하더라도 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맡긴 자녀인 줄 알고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하였더라면 에서가 그렇게 삐뚤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드린다는 선한 목적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게 헸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거짓으로 변장하게 만들었던 리브가였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실 날이 올 터인데 리브가가 너무 서둘렀던 것이 가장 파탄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범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초를 훔치지 말라'고 한 말씀은 바른 교훈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거짓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리브가의 본을 배운 야곱은 일생동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과 같은 일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앞에 훌륭한 본을 보였으나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들 앞에 나쁜 본을 보임으로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 앞에 훌륭한 본을 보임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도와주었으나 대제사장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임으로 악행자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이면서도 말하기를 "나는 술담배가 인이 박혀서 끊지를 못하나 너희들은 제발 이런 것은 배우지 말라. 건강에 나쁘니라"고 합니다. 어느 엄마는 교회 제직이라고 하면서 심심하면 혼자서 화투로 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오늘 운수점을 본다.'고 말하고, 자녀가 누구를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하면 사주에 보니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극구 반대합니다. 자녀들은 그 순간에 엄청난 영적 노여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신앙적인 교훈은 다시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큼 부모나 교사가 신앙의 본을 잘 보이느냐, 못 보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육은 어릴 때일수록 더 강하고 크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며 앞장서서 신앙의 본을 보일 때 큰 효과를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잠22:6 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12살 난 한 흑인 소년이 죽어 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장애인이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나는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가지 내가 너에게 남겨줄 게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세 가지 보석이 필요하단다. 이 보석만 가지고 있으면 넌 이 다음에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어. 이것만은 놓치지 말고 누구에게도 주지 마라. 이 세 가지 보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어머니마저 떠났습니다.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된 이 12살된 소년은, 가난과 신체적인 장애로 어려움 가운데 지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공부하고, 남보다 잘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바로 1950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1904~1971)박사입니다. 그는 가난했고, 장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것이 세 가 지 보석이란다. 이것만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 때문에, 이 소년은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줄 알고 언제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정교육/ 창25:27-34/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5
가정교육 창25:27-34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난 주에 이어서 가정교육에 대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끔직한 뉴스에 너무나 충격을 받습니다. 용인 부근 골프장에서 일하는 일당들이 택시처럼 꾸며 가지고 밤에 타는 20대 여자 승객 만 골라서 5명을 납치 살인한 사건에 이어서 또 한명을 죽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 등 공범들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 쯤 용인시 기흥읍에서 평소 김씨와 알고 지내던 미용사 이모씨를 전화로 불러내 김씨의 승용차에 태운 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용인휴게소로 가 신용카드 2장과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후 이씨의 카드로 286만원을 인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범들은 오후 11시30분쯤 이씨를 용인시 기흥읍의 한 골프장으로 데려가 차안에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 중턱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돈 몇 푼 때문에 평소에 알던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인간들이 점점 잔인하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이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큰 잘못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뉴스에 들으니까, 공범들의 부모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하나같이 \'자기 자식은 절대로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더랍니다. 그 부모들은 너무나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자기 자식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됩니다. 세상이 점점 도덕이 무너지고 있을 때일수록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 그러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1. 가정과 자녀를 하나님이 맡기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입니까? 전쟁이나 기근, 양식이나 에너지, 환경오염이 아니고 가정의 위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미국사람들은 10쌍 중에 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10쌍중 4쌍이, 한국은 10쌍중 3.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급속도로 가정들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은 세 가지로, 가정이요, 교회요, 나라입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세우신 기관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과 교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때로는 성격의 차이, 때로는 자녀의 문제, 때로는 성(性)적인 문제, 때로는 술과 도박의 문제로 가정을 공격합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한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만큼 삶의 훈련이 되어 있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린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노여움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가정이 화목한 것입니다. 화려한 100평 이상의 고급 아파트에라도 부부의 갈등이 깊어 가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심한 불행도 깊어가지만, 가난한 판자촌에 산다 할지라도 엄마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행복이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잘 지키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부부였습니다. 창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믿음이 좋은 종을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보냈고 그 종은 나홀성 우물가에서 구체적인 기도한 결과 응답으로 주신 여인이 바로 리브가였던 것입니다. 또한 창24:63에 보면 종이 자기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떠난 후부터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였습니다. 또한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자, 창25:21에 보면 이삭은 아내를 위하여 간절히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아기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테어난 것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 하나님이 맡기신 남편과 아내,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라는 그러한 믿음으로 식구들을 본다면 다 소중해질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화가 났던 것은, 50년 만에 만나는 너무나 감격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처음부터 북한 가족들에게 울지 못하게 만들고 계속 \'김정일 장군의 하해 같은 사랑 안에서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계속 선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북한당국자들은 눈물도 인정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성옥이라는 79세된 어머니는 해방이후에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올 때, 어린 딸아이가 몸살기가 있어 외할머니 댁에 두고 왔다가 헤어진 후에, 이번에 만나고는 얼마나 울면서 사과하는지요. 그리고 이번 이산가족 만남 중의 가장 감격적인 것은 75세 되는 정귀업 할머니였습니다. 19살 때 결혼한 후에 4년 정도 살다 전쟁으로 갈라서게 되었는데 그 4년의 날들도 남편이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랴, 서울에서 한양공대를 다니랴 하다보니 살날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4살 때 병으로 죽었고 사변 후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노라고 혼자 몸으로 50년 동안 수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2년 만에 남편을 만났으니 얼마나 애절한 모습인지요, 시청하는 모든 사람이 같이 울었습니다. 개별상봉에 쓰인 방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침대도 두 개고 방도 혼자 쓰는데 오늘밤 같이 잘 수 없을까? 방이 아깝잖아! 누구한테 떼쓰면 될까? 제일 높은 분이 누구야! 김정일한테 얘기하면 될까\'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월 30일 작별할 때, 금강산여관에 들어선 정귀업(75) 할머니는 여관 1층 로비에 서있던 북측 남편 림한언(74)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52년을 혼자 살았는데. 나 집에 안갈꺼야. 어떻게 혼자 가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할 일 투성입니까? 이렇게 자유로운 땅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 집, 먹을 음식, 함께 살 수 있는 식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 줄 아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이 귀한 가정과 자녀들을 잘 지키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해야지, 내 주장, 내 방식, 내 주견대로 교육하고 훈계하면 자녀들의 영은 노여워지고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믿는 부모님은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세상적인 주장을 너무 세웁니다. \"야,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이지, 경제과를 택하라\" 혹은 \"그 처녀는 믿음은 좋으나 그 집안은 너무 볼 것이 없구나. 사돈 간에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충고랍시고 한다는 말이 성경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어머니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면서 화가 났다하면 땅을 치면서 \"야, 이놈아, 너를 키우노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엄마를 이처럼 업신여길 수 있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럴수록 자녀들은 하도 야단을 치니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영적으로는 노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어머니의 어떠한 신앙적인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꾸 빠지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서로 싸우는 관계로 나타나고 나중에는 살인적인 미움으로 가득한 사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이 좋다는 이삭의 가정에서 이런 삐뚤어진 자녀들이 나왔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편애,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오냐, 오냐\'하면서 키운 탓이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와 성격이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삭은 원래 온유한 사람이요, 소극적인 사람인 반면, 아들 에서는 적극적이고 거친 사람으로 사냥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에 비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리브가는 소극적이고 다소 여성적인 면이 강한 야곱을 사랑했던 것같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애가 문제의 소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자녀를 자기들에게 맡기셨으면, 골고루 사랑하는 것이 도리인데, 자기 취향에 따라 지나치게 한 쪽을 사랑하고 한쪽은 소외시킨 것이 가정의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는 40세였고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은 때는 60세였습니다. 그 동안 두 부부는 자식이 없는 아픔 외에는 아름다운 부부였고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를 낳은 후부터는 늦자식을 본 탓인지 부부 사이의 관계보다도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더 나가서는 각각 하나씩 편애함으로 형제 사이에 살인적인 싸움이 생기고 결국 야곱은 도망자가 되고 에서는 복수하겠다고 쫓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에서가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창26:34-35에 보니 에서는 40세에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두 부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야곱이 떠난 뒤 20년 동안 야곱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것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후에 에서를 통하여 에돔이라는 나라가 생기고 이스라엘 민족의 큰 적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정 하나의 문제가 이처럼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처럼 아름다운 부부, 아름다운 가정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골고루 사랑하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한쪽으로 사랑의 손길을, 한쪽으로는 훈계의 매로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취향대로 한쪽만 무조건 사랑을 부어주므로 두 형제 사이에 의가 상해지고 깨어지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편애는 독과 같아서 영혼과 인격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중에 가장 사악한 자가 바로 네로입니다. 네로 황제가 그처럼 사악하게된 것은 그의 어머니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독점하도록 교육을 시켰고 출세만을 위하여 살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어머니는 남편까지 죽이고 그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까지 앉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 네로는 자기를 그처럼 편애하는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했습니까? 아닙니다. 네로는 후에 로마시를 불태우면서 시를 읊는 광기를 부리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자가 되었고 부인 옥타비아를 죽이고 그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를 독살하는 간악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너무 가난하여 정규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삶을 살았으나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중에 성자라고 추앙 받을 정도로 위대하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들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친어머니는 9살 때 돌아가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겨 주었으며, 후에는 새엄마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어머니도 링컨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후에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가 쓰기를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하나님은 저에게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신앙의 어머니들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집, 좋은 방, 좋은 학교 등을 주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따라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쳐 주면 하나님이 저들의 장래를 다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대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제자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렛드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감화를 끼치려면 우선 스스로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G. 웨스트는 말하기를 \"모범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했습니다. 100마디의 가르침보다도 한번 본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100마디의 말로 가르치다가 한번 잘못된 본을 보이면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그 자녀들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자녀 중 암논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였고, 압살놈이라는 아들은 암논을 죽인 후에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아도니야라는 아들도 그리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처음에는 신앙적인 본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나쁜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부녀를 간음하는 죄와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도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육신의 욕망에 매이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가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를 너무 밝히는 등,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였고, 리브가도 야곱에게 나쁜 본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나름대로 그러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창25:23에 보면 리브가가 두 아이를 잉태했을 때 하나님이 예언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이 예언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귀하게 여기기 시작하다 보니 두 형제 사이에 금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러한 예언을 하셨다 하더라도 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맡긴 자녀인 줄 알고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하였더라면 에서가 그렇게 삐뚤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드린다는 선한 목적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게 헸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거짓으로 변장하게 만들었던 리브가였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실 날이 올 터인데 리브가가 너무 서둘렀던 것이 가장 파탄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범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초를 훔치지 말라\'고 한 말씀은 바른 교훈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거짓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리브가의 본을 배운 야곱은 일생동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과 같은 일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앞에 훌륭한 본을 보였으나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들 앞에 나쁜 본을 보임으로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 앞에 훌륭한 본을 보임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도와주었으나 대제사장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임으로 악행자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이면서도 말하기를 \"나는 술담배가 인이 박혀서 끊지를 못하나 너희들은 제발 이런 것은 배우지 말라. 건강에 나쁘니라\"고 합니다. 어느 엄마는 교회 제직이라고 하면서 심심하면 혼자서 화투로 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오늘 운수점을 본다.\'고 말하고, 자녀가 누구를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하면 사주에 보니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극구 반대합니다. 자녀들은 그 순간에 엄청난 영적 노여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신앙적인 교훈은 다시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큼 부모나 교사가 신앙의 본을 잘 보이느냐, 못 보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육은 어릴 때일수록 더 강하고 크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며 앞장서서 신앙의 본을 보일 때 큰 효과를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잠22:6 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12살 난 한 흑인 소년이 죽어 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장애인이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나는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가지 내가 너에게 남겨줄 게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세 가지 보석이 필요하단다. 이 보석만 가지고 있으면 넌 이 다음에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어. 이것만은 놓치지 말고 누구에게도 주지 마라. 이 세 가지 보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어머니마저 떠났습니다.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된 이 12살된 소년은, 가난과 신체적인 장애로 어려움 가운데 지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공부하고, 남보다 잘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바로 1950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1904~1971)박사입니다. 그는 가난했고, 장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것이 세 가 지 보석이란다. 이것만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 때문에, 이 소년은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줄 알고 언제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정에 계시는 주님/잠22:6, 엡6:4/2004-03-09
가정에 계시는 주님 잠22:6, 엡6:4 작년 2월에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을 위한 KOSTA(Korean Student Abroad) 집회에 참석했다가 영국에 잠시 들러 볼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금요일 오전까지 프랑스 집회를 마치고, 금요일 오후 비행기로 런던에 도착해서 영국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에게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일날 파리에 있는 친구 목사님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일날 새벽 비행기로 다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영국에는, 2박 3일이라고는 하지만 약 40여 시간 정도 밖에는 머물지 못했었고, 그나마 학생들의 집회 때문에 영국을 관광한 것은 겨우 토요일 낮시간 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저에게 참으로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제가 참으로 훌륭하게 본 것은 저들의 질서의식이었습니다. 오래된 도시였기 때문에 대로(大路)도 많이 있었지만, 작은 소로(小路)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차들이 좁은 소로를 다니는데도 교통이 물 흐르듯이 소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갈래길에서 차가 서로 만나게 될 경우, 오른쪽에서 오는 차가 먼저 간다는 원칙이 있는데, 그 작은 원칙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차들이 사고 없이, 그리고 머뭇거림 없이 잘 소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일이었지만 그것이 곧 영국의 문화수준을 나타내 보여 주었고, 그것은 경제수준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 곳에서 목회하시는 목회자들을 통하여 영국은 아직도 신사도가 살아 있는 훌륭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영국은 그러한 나라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국에서 앞날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훌륭한 문화수준과 교육제도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서 희망을 느낄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들의 가정 때문이었습니다. 영국도 다른 유럽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성적인 개방으로 인하여 가정들이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만 해도 양쪽 부모가 다 자기 친 부모인 경우가 오히려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혼과 재혼을 자주 하게 되기 때문에 아빠가 바뀌던지 엄마가 바뀌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까지 바뀐 아이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부모 자신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상처는 어린아이들이 더 많이 받지 않겠습니까? 나라의 희망과 미래는 그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와 미래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깊은 상처를 받고 마음에 병이 들었으니, 그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문제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프랑스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나라가 대부분 성적으로 타락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있었으며, 그 결과 많은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교육받지 못하고 타락하고 방탕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점을 생각해 볼 때 저들이 지금은 세계를 움직이는 강국이요, 또는 부국일런지 모르나 장차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를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강력한 나라입니다. 인구 수를 감안해 볼 때 가장 많은 비율의 노벨상을 탄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저들이 그렇게 세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정을 잘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가정교육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화를 추구하려고 하면, 먼저 가정을 잘 다스려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고, 훌륭한 인물과 인재들이 배출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생각할 때, 자녀교육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자녀교육을 생각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교육을 위하여 가장 좋은 학교는 가정이며, 자녀교육을 위하여 가장 좋은 교사는 부모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자녀교육에 열심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뛰어난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녀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학교는 가정이며, 가장 좋은 교사는 부모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어린이주일에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하는 사랑하는 여러 교우님들 모두가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 여러분의 가정이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학교가 되며, 여러분이 가장 훌륭한 교사가 되시어 여러분의 가정학교에서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훌륭한 인물과 인재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사와 학교라고 할 때, 우리는 또한 자녀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과서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양성한다고 할 때 가장 좋은 교과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히 여기는 말씀 중의 하나인 신명기 6:4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에 기록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바로 가장 중요한 교육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물질과 시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영어와 수학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하여 학원을 보내며, 많은 비용을 감당하면서 과외를 시키기도 합니다. 또 악기나 미술과 같은 재능교육을 위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더 잘 배우게 하기 위하여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켜 보신 분이 계십니까? 저희 교회의 집사님 중에는 전도사님을 가정교사로 모시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공부시키는 분이 계십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을 훌륭한 인물과 인재로 양육하게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이 가장 중요한 학교요,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한 교과서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교회에서만 만나려고 하였고, 아이들의 교육도 학교와 교회의 선생님들을 통해서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정은 학교와 교회가 되지 못하였고, 부모는 아이들의 진정한 스승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교회는 가정 같은 교회이고, 가장 좋은 가정은 교회 같은 가정입니다. 가정에 주님을 모시고 교회 같은 가정을 꾸미실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들이 자녀의 스승이 되셔서 좋은 학교 같은 가정을 꾸미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의 하나님 교육/ 신6:4-9/ 어린이주일설교
가정에서의 하나님 교육 신6:4-9 얄노니 현상으로 예년 보다 일찍 무더워 녹음이 짖은 5월이다 나라에서는 5.5일이 어린이 날이나 교회에서는 5월이 가정의 달로 지키며 첫주는 어린이 주일이 된다. 시127편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아브라함의 축복중 약속의 아들 주신것이요 하나님께 받친 최고의 보화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받침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신앙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의 교육은 학교보다 사회보다 하나님께 받치고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한다. 이 결과 유대인이 노벨상의 25%을 차지 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 2000년간이나 나라 없는 유랑 민족으로 학대와 설음을 당했다. 독일의 히틀러에600만이 학살을 당하는 일들도 있었다.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삶키며 피맺은 각오 속에 민족의 생명을 이어 오게 되었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민족의 교육이라 본다. 신6:4---이스라엘아 들으라, 1. 하나님을 사랑 하는데 있다. 전 교육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 하는데 있다. 모든 교육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과서가 된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민족 정신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이요 그 교육은 성경으로 이루어진다. * 이스라엘이 주후 70년에 로마에 항복 할 때 아키바 라는 랍비는 로마 장군에게 우리가 항복 할태니 하나의 조건을 들어달라 마을 중앙에 집 한채와 이것을 놓게 해달라 그것이 무엇이냐? 책이다 성경과 탈무드이다 그 까지것 좋다 허락한다 그날밤 아끼바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여러 동포여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우리 특히 어머니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탈무드만 새겨있으면 이 민족은 영원이 존속한다. 희망이 있다. 이 민족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지 안으면 성공해도 결국 자신을 불행케된다. 진정한 교육은 사람이 행복케 되는데 있다 부모에게 자녀를 노엽게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 또 마음,뜻,성품,힘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는 유대인의 천재 교육은 관심 많지만 유대인의 하나님의 경외에는 관심이 없다 디모데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철저한 신앙의 교유이다. 딤후3:14--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X.J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루는 지혜가 있게 하는니라 2 교육의 장은 가정이다 이스라엘의 안식일은 가정에서 신앙과 인격 교육의 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에 붙여있다 출입시 입에 맞추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철저히 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교육한다. 나으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함니다. 시18:1
가정을 하나님 학교로/삼상8:1-3
가정을 하나님 학교로/삼상8:1-3 2008-01-24 18:38:29 read : 34 2006년에 우리교회 교회학교 아동부인 초등학교 1학년-6학년 학생들 천명에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설문지를 돌려서 답을 받았습니다. 먼저 ‘엄마, 아빠가 내게 하신 말씀 중 제일 좋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45.3%가 “얘야, 너를 사랑한단다.” 20.5%가 “참 잘했구나.” 14.5%가 “야! 놀러가자.”로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 중 제일 듣기 싫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27.7%가 “넌 그것도 못하냐?” 22.9%가 “공부 좀 해라” 18.2%가 “이 바보야.”라고 답했습니다. 세 번째로 ‘내가 제일하기 싫은 일은?’이라는 질문에는 43.3%가 부모님 잔소리 듣기였습니다. 이것은 사실 수동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가장 하기 싫은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님이 잔소리하는 것 자체가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13.9%가 학원 다니기, 11.8%가 아침에 일어나기, 11.7%가 학교 가기였습니다. 네 번째로 ‘내가 집에서 제일 속상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34.1%가 부모님께 야단맞을 때, 26.3%가 엄마, 아빠가 서로 싸움하셨을 때, 18.8%가 혼자여서 심심할 때라고 답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가?’를 물었더니 27.4%가 부모님과 함께 놀러갔을 때, 22.3%가 친구들과 함께 놀 때, 20.3%가 선물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의 말 한마디와 태도와 행동으로 인해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부모님들에게는 늘 자녀를 향한 두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를 키울 때 아이를 어떻게 하면 바르게 키울지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제일 걱정하고 근심하는 소망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자녀가 나보다 나아야 할 텐데, 나보다 더 좋은 생애, 더 성숙한 생애를 살게 해야 될 텐데......’라는 소원입니다.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로도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소망이 예수님을 믿는 부모님들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영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나보다 더 성숙된 길을 가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대치와 자녀들이 갖고 있는 현재 모습의 격차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될까, 어떻게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까를 잘 모르겠기에 우리들은 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주고, 지성과 이성을 깨우치면 될 것이라고 배우고 들었습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그것을 습득하게 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의 감정적인 일치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들이 알고 자녀의 감정을 부모가 용납할 때 이런 가치관과 지성과 이성을 더 잘 깨우치고 습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성의 리더십’을 쓴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이런 말을 합니다. “가정이란 우리가 맨 처음 감정을 학습하는 배움터이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가정 안에서 배운다. 이런 감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드리고 이에 대응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가족에게서 배운다. 희망사항과 두려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가족 안에서 배운다.” 우리의 가정과 가족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존 가트맨(John Gattman)이라는 사람이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면서 부모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녀의 감정에 동조하고 동감하여 참여하고 자녀의 감정을 공유하여 세상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녀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왜 울며 또 때로는 기뻐하는지를 전혀 관심 갖지 않는 부모가 있다고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녀의 감정을 이끌어줄 감정코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자녀의 감정코치를 못해주는 실패한 부모가 있는데 그것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축소전환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관심한 부모입니다. “저 녀석 그냥 놔두면 될 거야. 울어봤자 소용이 없어. 우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될 거야.” 이렇게 자녀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미 있게 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억압형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들도 감정코치를 하는데 실패합니다. 자녀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 아주 비판적으로 개입합니다. 감정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꾸짖고 벌을 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게 되느냐, 왜 징징 울고 있느냐, 왜 그렇게 마음속에 슬퍼하고 있느냐며 부정적인 감정을 잘못된 감정으로 보면서 자녀들에게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때 자녀들은 “우리 부모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내 감정을 받아드리지 못해.”하고 감정적으로 부모와 깊은 골을 아예 세워서 부모는 자녀의 삶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세 번째 방임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게 합니다. 한계를 알려 주지 못하고 그냥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를 이겨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가 부모를 조종하게 됩니다. 이런 세 가지 유형의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자녀의 감정을 코치할 줄 아는 부모로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한계선을 그어주는 부모입니다. 첫째는 아예 감정을 인식하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부모입니다. 둘째는 아예 자기감정을 표현하도록 경청할 줄 아는 부모입니다. 세 번째는 아이가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오히려 아이와 친밀성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인 것을 알고 교육의 좋은 기회로 삼는 넉넉한 부모입니다. 네 번째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감정과 행동의 한계성을 주는 부모입니다. 사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모가 갖고 있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사랑의 힘이고, 하나는 권위의 힘입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의 권위로 가르쳐야 합니다. 또 때로는 채찍질하고 징계까지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어느 선에서 잘하는가에 따라서 좋은 부모의 모습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 가트맨은 감정코치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보다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가 감정코치 법을 사용할 줄 알면 자녀의 정서 발달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잘 감당하는 성격으로 성숙되는데, 반대로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하면 자녀들의 학교생활이 원만해지지 않고 친구들과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싸우는 위험성으로 몰고 가는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아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십니까? 자녀가 갖고 있는 고통 자녀가 갖고 있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의 말씀에 위대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설적으로 못된 아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사무엘이라는 사사요, 예언자였습니다. 당시에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자였고, 종교적으로는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아가 나오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사무엘상 8:3) 아들들은 뇌물을 좋아했고 자기 이익을 챙겼습니다.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는 잘못된 지도자였습니다. 어찌하여 위대한 아버지 밑에 이렇게 못난 아들이 생길 수가 있었을까요? 저절로 못난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될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아마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다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사실 위대한 아버지를 두는 것은 인생에서 큰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뒤따라 갈 수 있는 모범을 지닐 수 있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노하우를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돈과 재물도 받습니다. 때로는 명예와 권력도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위대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축복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녀에게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괴롭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아버지와 자식을 비교하여 감당할 수가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화가 납니다. 때로는 내가 이런 아버지 밑에 자라는 것이 저주라고 생각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자기 조절 능력을 상실한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은 자녀에게 잘못된 일그러진 자화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의식에 빠져 들어서 교만해 집니다. 남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의 오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재벌 회장이 그 아들이 당한 폭행을 보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탄식하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의하면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나도 저런 막강한 아버지를 가졌으면 금력과 권력이 동반된 아버지가 있으면’하는 부러움과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아버지의 애정 부정에 불과하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자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 날카로운 분석을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뒷감당을 할 수 있는 힘과 돈에 대해서 한국의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분열적인 인격을 지니고 있다.” 본문은 위대한 아버지 사무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지도자, 영적 지도자로서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실패했습니다. 그 보다 앞서 제사장과 사사가 되었던 엘리 제사장도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아들들은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실권자, 영적인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책과 권리를 아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거기에 걸 맞는 사고, 가치관, 책임성을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위대한 아버지들이 종종 실패하는 것이 있다면 자녀들을 너무 높은 고지에서부터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곳을 알지 못하고 고통 받는 현실을 알지 못합니다.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땀 흘리고 수고해야 겨우 하루를 먹고 사는 인생의 치열한 현장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자기 소유인양 행세합니다. 과거에 정치적 세습 또는 종교적 세습을 멈추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이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자녀들이 갖는 문제는 정신적인 빈곤함입니다. 아버지에게 무엇이든지 요구만 하면 아버지가 만족스럽게 모든 것을 줍니다. 어떤 자녀들은 장난감 하나를 얻으려고 하루, 일주일 아니 한달 때로는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데, 어떤 자녀들은 집에 장난감이 쌓여있는 것입니다. 한번 손댔던 장난감 아니 어떤 것은 손을 대지도 않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로는 돈도 받고 힘도 얻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에게는 너무 연약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 자녀들은 정신적인 빈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있으나 사실상 아버지가 부재한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일수록 바쁘고 강력하고 위대합니다. 자녀들에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해주지만 자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는 아버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 옆에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먼 아버지로 설 때 자녀들에게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왕은 위대한 아버지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압살롬이라는 아들을 교육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서 역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중에 가장 치열한 슬픈 전쟁이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전쟁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전쟁입니다. 참혹한 전쟁에서 아들은 서서히 무너져 갔고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 다윗이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아버지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 자녀들에게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들이 특별히 마음속에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받은 축복 때문에 자녀들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의 마음에 함께 동참하여 자녀들의 마음을 읽지 않으면 자녀들은 그것 때문에 외로움 속에 빠져있고 아픔 속에서 자기 삶을 지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자녀들과 교류할 줄 아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가정의 달인 5월에 부모님들은 꼭 자녀들과 데이트하기를 바랍니다. 한 시간도 좋고 하루도 좋고 몇 일도 좋고 시간이 없으면 여름 휴가철을 이용해서라도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 꼭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슬픔, 우리의 외로움, 우리가 갖고 있는 죄악의 고통 속에 친히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동참하셨습니다. 우리 고통에 함께 우셨고, 외로움에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우리를 세워 주셨습니다. 부모로서 그동안 가졌던 마음을 자녀들에게 털어놓는 기회를 가지십시오. 다만 원칙이 있다면 90%를 자녀들의 말을 듣고, 10%만 이야기하십시오. 10%도 훈계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이때만큼은 훈계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십시오. 인생을 살면서 가졌던 기쁨과 외로움을 나누십시오. 위대한 아버지들도 세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세요. 부모인 나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 받을 때가있는 완벽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절대로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가 아니라 때로 고통스러웠으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자녀들과 나누십시오. 그리고 너 같은 자녀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십시오.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함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가족의 아픔들, 자녀들과 만나지 못함으로 생겼던 껄끄러움을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동안 쌓아놓았던 것을 자녀들을 위해서 쓰면서 함께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아버지가 바뀌어 자녀들의 마음을 감쌀 때 우리의 가정이 바뀝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귀한 축복을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나누면서 가정의 달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얼마나 복주시고 사랑하는지를 감사 고백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참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을 주셔서 생명과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 사랑하는 자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녀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읽지도 못한 우리의 모습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가정의 달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만나는 부모가 되도록 성령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품고 이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을 하나님 학교로/삼상8:1-3 2008-01-24 18:38:29 read : 6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6년에 우리교회 교회학교 아동부인 초등학교 1학년-6학년 학생들 천명에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설문지를 돌려서 답을 받았습니다. 먼저 ‘엄마, 아빠가 내게 하신 말씀 중 제일 좋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45.3%가 “얘야, 너를 사랑한단다.” 20.5%가 “참 잘했구나.” 14.5%가 “야! 놀러가자.”
가정을 하나님 학교로/삼상8:1-3 2008-01-24 18:38:29 read : 6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2006년에 우리교회 교회학교 아동부인 초등학교 1학년-6학년 학생들 천명에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설문지를 돌려서 답을 받았습니다. 먼저 ‘엄마, 아빠가 내게 하신 말씀 중 제일 좋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45.3%가 “얘야, 너를 사랑한단다.” 20.5%가 “참 잘했구나.” 14.5%가 “야! 놀러가자.”로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 중 제일 듣기 싫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27.7%가 “넌 그것도 못하냐?” 22.9%가 “공부 좀 해라” 18.2%가 “이 바보야.”라고 답했습니다. 세 번째로 ‘내가 제일하기 싫은 일은?’이라는 질문에는 43.3%가 부모님 잔소리 듣기였습니다. 이것은 사실 수동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가장 하기 싫은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님이 잔소리하는 것 자체가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13.9%가 학원 다니기, 11.8%가 아침에 일어나기, 11.7%가 학교 가기였습니다. 네 번째로 ‘내가 집에서 제일 속상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34.1%가 부모님께 야단맞을 때, 26.3%가 엄마, 아빠가 서로 싸움하셨을 때, 18.8%가 혼자여서 심심할 때라고 답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가?’를 물었더니 27.4%가 부모님과 함께 놀러갔을 때, 22.3%가 친구들과 함께 놀 때, 20.3%가 선물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의 말 한마디와 태도와 행동으로 인해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부모님들에게는 늘 자녀를 향한 두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를 키울 때 아이를 어떻게 하면 바르게 키울지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제일 걱정하고 근심하는 소망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자녀가 나보다 나아야 할 텐데, 나보다 더 좋은 생애, 더 성숙한 생애를 살게 해야 될 텐데......’라는 소원입니다.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로도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소망이 예수님을 믿는 부모님들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영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나보다 더 성숙된 길을 가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대치와 자녀들이 갖고 있는 현재 모습의 격차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될까, 어떻게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까를 잘 모르겠기에 우리들은 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주고, 지성과 이성을 깨우치면 될 것이라고 배우고 들었습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그것을 습득하게 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의 감정적인 일치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들이 알고 자녀의 감정을 부모가 용납할 때 이런 가치관과 지성과 이성을 더 잘 깨우치고 습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성의 리더십’을 쓴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이런 말을 합니다. “가정이란 우리가 맨 처음 감정을 학습하는 배움터이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가정 안에서 배운다. 이런 감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드리고 이에 대응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가족에게서 배운다. 희망사항과 두려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가족 안에서 배운다.” 우리의 가정과 가족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존 가트맨(John Gattman)이라는 사람이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면서 부모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녀의 감정에 동조하고 동감하여 참여하고 자녀의 감정을 공유하여 세상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녀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왜 울며 또 때로는 기뻐하는지를 전혀 관심 갖지 않는 부모가 있다고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녀의 감정을 이끌어줄 감정코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자녀의 감정코치를 못해주는 실패한 부모가 있는데 그것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축소전환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관심한 부모입니다. “저 녀석 그냥 놔두면 될 거야. 울어봤자 소용이 없어. 우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될 거야.” 이렇게 자녀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미 있게 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억압형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들도 감정코치를 하는데 실패합니다. 자녀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 아주 비판적으로 개입합니다. 감정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꾸짖고 벌을 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게 되느냐, 왜 징징 울고 있느냐, 왜 그렇게 마음속에 슬퍼하고 있느냐며 부정적인 감정을 잘못된 감정으로 보면서 자녀들에게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때 자녀들은 “우리 부모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내 감정을 받아드리지 못해.”하고 감정적으로 부모와 깊은 골을 아예 세워서 부모는 자녀의 삶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세 번째 방임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게 합니다. 한계를 알려 주지 못하고 그냥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를 이겨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가 부모를 조종하게 됩니다. 이런 세 가지 유형의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자녀의 감정을 코치할 줄 아는 부모로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한계선을 그어주는 부모입니다. 첫째는 아예 감정을 인식하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부모입니다. 둘째는 아예 자기감정을 표현하도록 경청할 줄 아는 부모입니다. 세 번째는 아이가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오히려 아이와 친밀성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인 것을 알고 교육의 좋은 기회로 삼는 넉넉한 부모입니다. 네 번째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감정과 행동의 한계성을 주는 부모입니다. 사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모가 갖고 있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사랑의 힘이고, 하나는 권위의 힘입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의 권위로 가르쳐야 합니다. 또 때로는 채찍질하고 징계까지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어느 선에서 잘하는가에 따라서 좋은 부모의 모습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 가트맨은 감정코치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보다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가 감정코치 법을 사용할 줄 알면 자녀의 정서 발달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잘 감당하는 성격으로 성숙되는데, 반대로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하면 자녀들의 학교생활이 원만해지지 않고 친구들과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싸우는 위험성으로 몰고 가는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아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십니까? 자녀가 갖고 있는 고통 자녀가 갖고 있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의 말씀에 위대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설적으로 못된 아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사무엘이라는 사사요, 예언자였습니다. 당시에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자였고, 종교적으로는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아가 나오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사무엘상 8:3) 아들들은 뇌물을 좋아했고 자기 이익을 챙겼습니다.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는 잘못된 지도자였습니다. 어찌하여 위대한 아버지 밑에 이렇게 못난 아들이 생길 수가 있었을까요? 저절로 못난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될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아마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다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사실 위대한 아버지를 두는 것은 인생에서 큰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뒤따라 갈 수 있는 모범을 지닐 수 있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노하우를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돈과 재물도 받습니다. 때로는 명예와 권력도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위대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축복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녀에게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괴롭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아버지와 자식을 비교하여 감당할 수가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화가 납니다. 때로는 내가 이런 아버지 밑에 자라는 것이 저주라고 생각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자기 조절 능력을 상실한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은 자녀에게 잘못된 일그러진 자화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의식에 빠져 들어서 교만해 집니다. 남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의 오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재벌 회장이 그 아들이 당한 폭행을 보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탄식하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의하면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나도 저런 막강한 아버지를 가졌으면 금력과 권력이 동반된 아버지가 있으면’하는 부러움과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아버지의 애정 부정에 불과하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자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 날카로운 분석을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뒷감당을 할 수 있는 힘과 돈에 대해서 한국의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분열적인 인격을 지니고 있다.” 본문은 위대한 아버지 사무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지도자, 영적 지도자로서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실패했습니다. 그 보다 앞서 제사장과 사사가 되었던 엘리 제사장도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아들들은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실권자, 영적인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책과 권리를 아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거기에 걸 맞는 사고, 가치관, 책임성을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위대한 아버지들이 종종 실패하는 것이 있다면 자녀들을 너무 높은 고지에서부터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곳을 알지 못하고 고통 받는 현실을 알지 못합니다.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땀 흘리고 수고해야 겨우 하루를 먹고 사는 인생의 치열한 현장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자기 소유인양 행세합니다. 과거에 정치적 세습 또는 종교적 세습을 멈추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이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자녀들이 갖는 문제는 정신적인 빈곤함입니다. 아버지에게 무엇이든지 요구만 하면 아버지가 만족스럽게 모든 것을 줍니다. 어떤 자녀들은 장난감 하나를 얻으려고 하루, 일주일 아니 한달 때로는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데, 어떤 자녀들은 집에 장난감이 쌓여있는 것입니다. 한번 손댔던 장난감 아니 어떤 것은 손을 대지도 않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로는 돈도 받고 힘도 얻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에게는 너무 연약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 자녀들은 정신적인 빈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있으나 사실상 아버지가 부재한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일수록 바쁘고 강력하고 위대합니다. 자녀들에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해주지만 자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는 아버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 옆에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먼 아버지로 설 때 자녀들에게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왕은 위대한 아버지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압살롬이라는 아들을 교육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서 역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중에 가장 치열한 슬픈 전쟁이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전쟁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전쟁입니다. 참혹한 전쟁에서 아들은 서서히 무너져 갔고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 다윗이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아버지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 자녀들에게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들이 특별히 마음속에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받은 축복 때문에 자녀들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의 마음에 함께 동참하여 자녀들의 마음을 읽지 않으면 자녀들은 그것 때문에 외로움 속에 빠져있고 아픔 속에서 자기 삶을 지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자녀들과 교류할 줄 아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가정의 달인 5월에 부모님들은 꼭 자녀들과 데이트하기를 바랍니다. 한 시간도 좋고 하루도 좋고 몇 일도 좋고 시간이 없으면 여름 휴가철을 이용해서라도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 꼭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슬픔, 우리의 외로움, 우리가 갖고 있는 죄악의 고통 속에 친히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동참하셨습니다. 우리 고통에 함께 우셨고, 외로움에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우리를 세워 주셨습니다. 부모로서 그동안 가졌던 마음을 자녀들에게 털어놓는 기회를 가지십시오. 다만 원칙이 있다면 90%를 자녀들의 말을 듣고, 10%만 이야기하십시오. 10%도 훈계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이때만큼은 훈계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십시오. 인생을 살면서 가졌던 기쁨과 외로움을 나누십시오. 위대한 아버지들도 세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세요. 부모인 나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 받을 때가있는 완벽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절대로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가 아니라 때로 고통스러웠으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자녀들과 나누십시오. 그리고 너 같은 자녀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십시오.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함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가족의 아픔들, 자녀들과 만나지 못함으로 생겼던 껄끄러움을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동안 쌓아놓았던 것을 자녀들을 위해서 쓰면서 함께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아버지가 바뀌어 자녀들의 마음을 감쌀 때 우리의 가정이 바뀝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귀한 축복을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나누면서 가정의 달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얼마나 복주시고 사랑하는지를 감사 고백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참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을 주셔서 생명과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 사랑하는 자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녀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읽지도 못한 우리의 모습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가정의 달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만나는 부모가 되도록 성령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품고 이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서정호 목사/ 2006-05-05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뇌성마비 아들의 요청으로 열심히 뒷바라지 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철인 3종 경기만 200번 넘게 완주한 바 있는 대학 컴퓨터연구원인 미국의 릭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예술사가(史家) 부뢰(傅雷)는 아들 부총(傅聰)이 초등학생 때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피아노와 사기(史記)를 가르쳤고”아들아, 힘을 다해 내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바쳐 네 지팡이가 되고 싶구나.”라고 하면서 정성을 다 바친 아버지의 힘으로 아들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코치였고 스승이었다.”고 했습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를 잃고서 홈페이지에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는 아들이 두 살 때부터 골프 스윙을 가르친 극성 아버지였지만 아들이 학교 숙제를 끝낸 뒤라야 골프 연습을 시켰으며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아들이 골프와 인생 모두에서 승자가 되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제도와 기구와 조직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조직체는 교회와 가정 밖에 없습니다. 교회보다도 가정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조직체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만드신 최초의 기관인 가정이라는 커다란 지붕을 바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둘 있는데 하나는 자녀이고 또 하나는 부모입니다. 만약 가정에 부모는 안 계시고 아이들만 있거나 연로한 부모만 계시고 젊은 자녀들이 전혀 없거나 있기는 하지만 따로 살면서 자주 찾아오지 않거나 마음속에 아예 들어와 있지 않다면 모두 건강한 두 기둥이 바치고 있는 가정은 못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있는 집은 고아원이고 노인들만 있는 집은 양노원인 셈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노인들을 위해 쓰기 때문에 영국을 노인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프랑스를 젊은이들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미국을 어린이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교육시설, 교육방법, 또한 그들에 대한 인격적인 예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무게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해서 인격적인 관심을 갖는 근원은 생명의 무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서에서는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다’ 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핵심부분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는 면에서 더더욱 우리 생명이 무게가 있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복음을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여자의 인권이 회복되고 어린 아이의 인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고 “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 생각을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인 벤자민 볼룸이라는 학자가 연구하면서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고 결론을 내렸는데 첫 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칭찬 받는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게 되고 칭찬 받는 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 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 두 번 나무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 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봐.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고생스러운 가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우지 말고 오히려 성공했거나 잘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합니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입니다. 탈무드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말을 많이 하면 아니 준만 못하다” 잔소리 들으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 돈 벌기 힘들다.” 뇌물성 선물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한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 자녀는 인생의 노년에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자녀 보다 더 좋은 인생의 동반자는 없습니다. 효도하는 자녀보다 더 좋은 노후대책은 없습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부모에게 행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 대책이 되지 않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배운 자녀가 있는 사람은 수치를 당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신앙으로 잘 가르치셔서 그 자녀들로 인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자녀로만’이라는 귀한 글을 소개합니다. 나를 고쳐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으로가 아니라’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게 해 주소서. 이처럼 성숙한 어른들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과 자녀를 크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고훈 목사님이 쓴 [어머니]란 제목의 時입니다. 당신은 내가 만난 맨 처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것을 몸으로 가르치신 분도 당신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5월의 웃음 주고도 떨어지지 않는 바다여. 우리는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너무 먼 곳에 계신 뒤에야 사랑은 이토록 강물 되어 흐르고 우리 또한 당신이 되어 이제야 그 사랑을 깨닫습니다. ‘소금의 고마움은 떨어졌을 때 아버지의 고마움은 돌아가신 뒤에 안다’는 인도 속담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처럼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자기보다 아들이 영웅이 되는 것에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1말씀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는데 “주안에서” 이것이 놀라운 성경적 가족구조요 제도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가정이란 주님과 가족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자식에 대하여 무책임한 부모는, 말년에 그 인생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한테서 무시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부모와 가정입니다. 경쟁의 몸부림 속에서 피곤한 육신을 끌고 사람들은 가정을 찾아갑니다. 가정은 휴식처이고 안식처입니다. 또 용기를 주는 곳이고 안식처입니다. 인생의 배신과 패배와 쓰라림을 당했을 때 부모를 찾아갑니다. 부모님은 따뜻한 손길로 아픔을 쓰다듬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는 우리가 낳고 자란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산물이요, 희망의 산물이요, 정성의 산물입니다. 부모의 깊은 사랑 속에서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에게 전 희망을 걸고 훌륭하고 좋은 자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을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해타산을 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태양과 같고 어머니의 사랑은 샘물과도 같습니다. 태양은 사방에서 빛과 열을 발산하며 샘터에서는 샘물이 철철 넘쳐흐릅니다. 우리는 사랑의 태양 아래서 사랑의 맑은 샘물을 마셔가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키웁니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가 쏟아 주는 사랑은 순수한 것입니다. 받기 위해 준 것이 아니고 아깝다고 생각하는 후회가 추호도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주는 진짜 사랑입니다. 샘내지도 않고 섭섭함도 없이 그저 기쁘기 때문에 주는 고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몸은 밥을 먹어 자랐지만 우리의 정신과 인격은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진실하고 티가 없으며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숭고하기 때문에 그 자녀가 철이 들기 전에는 도저히 부모님의 높은 사랑과 은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가 철이 들 그때에는 부모님이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효도를 별로 해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어머니는 부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가난한 어머니는 하나도 없고, 보기 흉한 어머니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어머니는 아름답습니다. 그 넓은 사랑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 반딧불만한 희망만 있어도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치 아버지란 아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되고 있다는 가책이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결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터로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아버지는 최후까지 존재하는 아이의 고향이며,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그 깊이에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내 보이는 정도의 사랑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부터 출발된 사랑입니다. 사랑의 깊이란 누구를 위하여 고통을 대신 당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 자녀를 위하여 넉넉한 고통을 지불하며 양육하기에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생각나는 대로 요구합니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혹시나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이리 망설이고 저리 망설이고, 웬만하면 참습니다. 부모가 중심일 때는 자녀가 복종하는 위치이고 부부 중심일 때는 자녀와 부모가 맞먹는 구조인데 자녀 중심일 때는 자녀가 상전이 되어 있고 부모는 저 변두리에서 하녀나 노예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이고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외롭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 인간됨의 근본임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부모를 섬겨야 하는 윤리의 배경적인 힘이 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주권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크고 고상합니다. 어떤 권력이나 위엄도 부모의 위치를 따를 수 없는 것은 부모는 본래적으로 그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입니다. 두 기둥이 견고하고 튼튼할 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진리를 가르치며 구원의 도리를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행복은 창조됩니다. 이 행복을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서정호 목사/ 2006-05-05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뇌성마비 아들의 요청으로 열심히 뒷바라지 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철인 3종 경기만 200번 넘게 완주한 바 있는 대학 컴퓨터연구원인 미국의 릭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예술사가(史家) 부뢰(傅雷)는 아들 부총(傅聰)이 초등학생 때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피아노와 사기(史記)를 가르쳤고”아들아, 힘을 다해 내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바쳐 네 지팡이가 되고 싶구나.”라고 하면서 정성을 다 바친 아버지의 힘으로 아들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코치였고 스승이었다.”고 했습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를 잃고서 홈페이지에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는 아들이 두 살 때부터 골프 스윙을 가르친 극성 아버지였지만 아들이 학교 숙제를 끝낸 뒤라야 골프 연습을 시켰으며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아들이 골프와 인생 모두에서 승자가 되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제도와 기구와 조직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조직체는 교회와 가정 밖에 없습니다. 교회보다도 가정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조직체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만드신 최초의 기관인 가정이라는 커다란 지붕을 바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둘 있는데 하나는 자녀이고 또 하나는 부모입니다. 만약 가정에 부모는 안 계시고 아이들만 있거나 연로한 부모만 계시고 젊은 자녀들이 전혀 없거나 있기는 하지만 따로 살면서 자주 찾아오지 않거나 마음속에 아예 들어와 있지 않다면 모두 건강한 두 기둥이 바치고 있는 가정은 못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있는 집은 고아원이고 노인들만 있는 집은 양노원인 셈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노인들을 위해 쓰기 때문에 영국을 노인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프랑스를 젊은이들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미국을 어린이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교육시설, 교육방법, 또한 그들에 대한 인격적인 예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무게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해서 인격적인 관심을 갖는 근원은 생명의 무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서에서는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다’ 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핵심부분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는 면에서 더더욱 우리 생명이 무게가 있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복음을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여자의 인권이 회복되고 어린 아이의 인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고 “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 생각을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인 벤자민 볼룸이라는 학자가 연구하면서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고 결론을 내렸는데 첫 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칭찬 받는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게 되고 칭찬 받는 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 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 두 번 나무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 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봐.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고생스러운 가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우지 말고 오히려 성공했거나 잘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합니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입니다. 탈무드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말을 많이 하면 아니 준만 못하다” 잔소리 들으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 돈 벌기 힘들다.” 뇌물성 선물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한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 자녀는 인생의 노년에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자녀 보다 더 좋은 인생의 동반자는 없습니다. 효도하는 자녀보다 더 좋은 노후대책은 없습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부모에게 행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 대책이 되지 않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배운 자녀가 있는 사람은 수치를 당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신앙으로 잘 가르치셔서 그 자녀들로 인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자녀로만’이라는 귀한 글을 소개합니다. 나를 고쳐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으로가 아니라’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게 해 주소서. 이처럼 성숙한 어른들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과 자녀를 크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고훈 목사님이 쓴 [어머니]란 제목의 時입니다. 당신은 내가 만난 맨 처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것을 몸으로 가르치신 분도 당신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5월의 웃음 주고도 떨어지지 않는 바다여. 우리는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너무 먼 곳에 계신 뒤에야 사랑은 이토록 강물 되어 흐르고 우리 또한 당신이 되어 이제야 그 사랑을 깨닫습니다. ‘소금의 고마움은 떨어졌을 때 아버지의 고마움은 돌아가신 뒤에 안다’는 인도 속담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처럼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자기보다 아들이 영웅이 되는 것에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1말씀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는데 “주안에서” 이것이 놀라운 성경적 가족구조요 제도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가정이란 주님과 가족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자식에 대하여 무책임한 부모는, 말년에 그 인생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한테서 무시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부모와 가정입니다. 경쟁의 몸부림 속에서 피곤한 육신을 끌고 사람들은 가정을 찾아갑니다. 가정은 휴식처이고 안식처입니다. 또 용기를 주는 곳이고 안식처입니다. 인생의 배신과 패배와 쓰라림을 당했을 때 부모를 찾아갑니다. 부모님은 따뜻한 손길로 아픔을 쓰다듬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는 우리가 낳고 자란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산물이요, 희망의 산물이요, 정성의 산물입니다. 부모의 깊은 사랑 속에서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에게 전 희망을 걸고 훌륭하고 좋은 자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을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해타산을 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태양과 같고 어머니의 사랑은 샘물과도 같습니다. 태양은 사방에서 빛과 열을 발산하며 샘터에서는 샘물이 철철 넘쳐흐릅니다. 우리는 사랑의 태양 아래서 사랑의 맑은 샘물을 마셔가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키웁니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가 쏟아 주는 사랑은 순수한 것입니다. 받기 위해 준 것이 아니고 아깝다고 생각하는 후회가 추호도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주는 진짜 사랑입니다. 샘내지도 않고 섭섭함도 없이 그저 기쁘기 때문에 주는 고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몸은 밥을 먹어 자랐지만 우리의 정신과 인격은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진실하고 티가 없으며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숭고하기 때문에 그 자녀가 철이 들기 전에는 도저히 부모님의 높은 사랑과 은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가 철이 들 그때에는 부모님이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효도를 별로 해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어머니는 부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가난한 어머니는 하나도 없고, 보기 흉한 어머니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어머니는 아름답습니다. 그 넓은 사랑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 반딧불만한 희망만 있어도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치 아버지란 아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되고 있다는 가책이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결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터로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아버지는 최후까지 존재하는 아이의 고향이며,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그 깊이에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내 보이는 정도의 사랑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부터 출발된 사랑입니다. 사랑의 깊이란 누구를 위하여 고통을 대신 당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 자녀를 위하여 넉넉한 고통을 지불하며 양육하기에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생각나는 대로 요구합니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혹시나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이리 망설이고 저리 망설이고, 웬만하면 참습니다. 부모가 중심일 때는 자녀가 복종하는 위치이고 부부 중심일 때는 자녀와 부모가 맞먹는 구조인데 자녀 중심일 때는 자녀가 상전이 되어 있고 부모는 저 변두리에서 하녀나 노예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이고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외롭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 인간됨의 근본임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부모를 섬겨야 하는 윤리의 배경적인 힘이 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주권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크고 고상합니다. 어떤 권력이나 위엄도 부모의 위치를 따를 수 없는 것은 부모는 본래적으로 그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입니다. 두 기둥이 견고하고 튼튼할 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진리를 가르치며 구원의 도리를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행복은 창조됩니다. 이 행복을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