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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복 받을 짓(1)/ 마18:1-10/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3
100% 복 받을 짓(1) 마18:1-10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18장입니다 제가 중요한 부분 절을 말할 때 우리 같이 읽습니다. 우리 5절부터 10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아멘 여러분 우리 5월 1일 노동절부터 어린이날까지 황금연휴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도 많이 아이들 데리고 출타를 한 것 같습니다. 출타한 우리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어린이날 황금연휴에도 교회 와서 어린이 주일을 지키는 여러분들에게는 그분들보다 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아멘 한 사람에게는 만만 배의 복이 있을지어다. ㅎ ㅎ ㅎ 자 우리 주일 학생들 목사님 먼저보고 퀴즈 하나 낼 테니까 맞추는 사람에게는 목사님 안에는 언제나 용돈이 있어요. 마치고 줄 거예요.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이 무슨 말씀일까? 모르겠어? 누구야? 서울 시민을 향한 말씀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ㅎ ㅎ ㅎ 내가 너무 수준 높은 개그 했나? 하나 더 마칠 때 가만히 생각했다가 답하는 사람 또 줍니다. 여러분 타이타닉 모르지요? 알아 아우 타이타닉에게 구명보트가 있는데 구명보트에는 몇 명의 사람이 탈수 있을까? 설교 마치고 할 거예요.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작은 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이 주일인데 오늘 제가 설교 제목을“100% 복 받을 짓”해 놨어요. 조금은 거친 표현이지만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먼저 여러분 오늘 읽은 5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면,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대접하고, 예수님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은, 남들이 없인 여기는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이 정말 어린아이들을 잘 대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여러분들의 생애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놀라운 은혜의 복이 임하는 출발이 되는 어린이 주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좋은 말씀만 한 것이 아니고요, 오늘 이 본문하고 마태복음 23장에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고 계세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은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1. 네 손발과 눈이 범죄하면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어린아이와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면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면 화가 있다. 데이빗 콜먼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 대한민국.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 마지막 출산 아이 울음소리. 그리고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되면 빼어 버리라, 두 눈 가지고 사는 것보다 한눈 가지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서도 10절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그것이 신화화 되다 보니까 천사론이 좀 약한데 유대교에는 사람들마다 수호천사 가 있다 이런 신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은 그 어린아이의 수호신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은 하나님 보좌 앞에 가서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 뵈옵고 있기 때문에 그 수호천사가 하나님께 고소하게 되면 화를 당한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서도 여러분 7절에 보면 뭔가 하면 7절에 보면 어린 아이들이 실족 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세상에 화가 있다. 왜 세상에 화가 있는가 하면은 어린아이들이나 사회적인 약자들을 실족하게 하기 때문에 화가 있는데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은 화가 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말씀이 그래 중요하냐 하면은 옥스퍼드대학에 인구 학자로서 아주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분이 데이빗 콜먼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하기를 뭐라 했는가 하면은, 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랬습니다. 지금과 같은 출산율 지금과 같은 상태로 가면은 이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사라지는데 2100년쯤 되면 지금 인구의 절반으로 줄어들고요 2400년이 되면 부산에서는 마지막 아이의 태어나는 울음소리를 듣게 되고, 그 이후가 되면 서울과 수도권 인근에 여러분 굉장히 기뻐하세요, 이제는 2400년만 되면요 동백에 여러분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 하나가 한 사람씩 사는 그런 세상이 온다는 거예요. 여러분 참 우리가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지만은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화를 당한다는 말씀을 제가 마음에 담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에 왜 대한민국이 출산율이 낮고, 대한민국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되는 나라가 되는가 하면은,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날 좀 반성해야 됩니다. 자기 자녀만을 보배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자녀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이기심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한다고 할 때에 자기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자녀를 실족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과 유사한 본문이 누가복음 18장인데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올 때에 머리에 안수해 주기를 바라면서 데려 오는데 제자들이 꾸짖으면서 내쫓은 거예요. 예수님 당시에도 자기 배에서 난 자식들은 예수님에게 안수 받아서 복 받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본능적인 마음이에요. 그런데 제자들은 자기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내쫓았고 꾸짖었다고요. 그럴 때 예수님이 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용납하라 이렇게 말씀한 거예요. 여러분 예수 믿고 거듭나게 되면 제가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떻게 변화되는가 하면은 내 자식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거듭난 자의 마음이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자의 마음입니다. 왜 우리가 요즘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사회적인 비용이 드는가 하면은 자기 자녀만 귀하게 여기다 보니까 지구상에서 우리나라같이 경쟁이 심한 사회가 없는 겁니다. 2.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깨우쳐야 되는데 하나님 잘 믿으면 내 아들만 잘 된다고 하기 때문에 더 실족 하는 일로 화가 미치게 되는 겁니다. 우리 어린이 주일 맞이하면서 정말 우리 교회는 저는 그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100% 복을 받는 모든 부모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은요 사람들이 또 나가면서 잊어버려요, 그래서 제가 우리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우리 교역자들에게 제가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다 달도록 해라. 자기 이름 달고 고 뒤에 부모 이름을 적도록 해라. 왜 그랬는가 하면은요, 저도요 이제 30대 제가 부목사일 때에는 면목동 동부 교회는요 한 천명 모이는데 얘들까지 2천명 되는 이름을요 전부 외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돌아서면 잊어버려. 얼마나 아이들에 미안한지 모르겠어요. 만날 때마다. 그래서 이름표를 붙이면 여러분 이런 것 한번 상상해 보세요. 교회 이렇게 와서 아이들이 복도에서나 아니면 마당에서나 지나갈 때에 목사님이나 교회 어른들이 우리 월삭 예배 때 했는데 한번 따라 합시다. 애들 말고 어른들 ㅎ ㅎ 다 크게 따라 하세요. 와, 네가 함상희 집사 딸이구나. 와,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이구나. 왜 목사님 함상희, 최정화만 이야기 합니까? 함상희, 최정화 집사 아들 보민이, 지환이가 우리 교회에 젓먹이 때 와서 나이가 같아요. 우리 교회가 10살인데 그 아이들이 10살이라고요. 정말 여러분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이들을 그렇게 대할 때에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정말 설교 마치고 부를 건데요.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나와 같은 아이 부르셨어요♬ 하지 않겠습니까? 큰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그나마 우리 교회가 대한민국에서는 그래도 주일학교가 제일 많은 축에 들어가요, 어른 대비. 왜 그런가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목회의 방향이 그래서 그렀습니다. 우리 교회의 초창기에 저 모아미래도 상가에 있을 때 그때에도 저는 어떤 마음으로 목회를 했는가 하면 부잣집 아이들은 외국에 갔다가 어디에 갔다 왔다, 뭐 스키캠프 갔다 왔다, 이런 것 자랑할 때 기죽지 않도록 주일 학생들 어릴 때 다 데리고 대명 콘도 가 가지고 스키캠프 열고요, 오색그린호텔 가서 수련회 한 것은 내 아이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가장 가난한 집의 아이도 고급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함이었어요. 오늘도 여러분 이제는 여러분들이 아이들 볼 때에 이것 돈 드는 것 아니잖아요. 여러분 이것 힘 드는 것 아니잖아요. 선생님들이 명찰 붙여 주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가장 간단한 것은 내가 명찰 달린 아이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용돈을 줄려고 그래 ㅎ ㅎ.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야! 네가 최정화 집사 아들 지환이구나. 옛날에는 요만했는데 이만큼 컸구나.”라고 이야기를 해 줄 때 아이들이 신나잖아요. 또 아이들만이 아니고 따라 합시다. “와,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분인지 아느냐?” 하얀 거짓말.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인정받는 공동체가 마음 든든하거든요. 우리 어린이주일 날 오늘 여기 있는 대로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그랬어요. 지금은 내 아이만 알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극렬한 한국의 엄마들 때문에 화가 있는 겁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 안에서 거듭나서 우리 교회에 모든 아이들이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소중하게 여겨지고,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아이들 만날 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정말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지 아니? 내가 네 이름은 알았는데 네가 동현인 줄 몰랐구나.’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해 줄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생업 위에 또 우리 교회에 또 이 나라에 100% 복을 주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멘 ◈봉헌 기도◈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헌금을 드리기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헌금 내 자녀 학원 하나 보내면 더 훌륭하고 더 성공적인 생애를 살 것 같은 마음을 주님 앞에 묻은 자가 드리는 예물입니다. 내 자녀만 성공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이기주의가 오늘 우리 대한민국을 극도의 경쟁의 사회로 만들어 버렸고,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 당하는 화를 우리가 당해서 세계적인 권위 데이비드 콜먼조차도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이 대한민국을 건질 유일한 방법은 복음밖에 없고 교회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이제는 헌금을 내 아이 학원 하나 보내면 더 잘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그런 나라 내 자녀가 잘 되는 만큼, 남의 자녀도 잘 되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공교육만 해도 얼마든지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오늘도 이 예물을 드릴 때에 우리 안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다음 세대에는 남을 이기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복된 생애를 살아가도록 성령의 역사는 혈연과 연고를 넘어서는 영원한 가족 공동체임을 교회들마다 선포되게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회를 물려주는 지혜로운 어른들이 될 수 있도록 순종의 마음 더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저 어린이주일이라는 명칭 한 번 예배 때 떠들다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후에 정말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마다 네가 어느 집사님 아들이구나, 네가 어느 집사님 딸이구나 하고 아이들 머리 쓰다듬어 주고 기도해 줌으로 이 아이들이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걱정 근심 없어요.’라는 찬양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고, ‘네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 줄 아느냐?’ 우리 어른들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옴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초라한 어머니 때문에 아이들이 기죽지 않는 그런 교회가 되도록 성령님 오늘 말씀이 그저 귓전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심비에 새겨지도록 ‘어린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나를 영접함이다.’라는 말씀에 따라 내 아이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이 여기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이 예물이 정말 주님 몸 된 교회를 세워서 사회에서 걱정하고 근심하는 사람들조차도 교회 때문에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생수가 흘러넘치는 교회의 초석이 되도록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가족 되도록 지금도 성령을 보내어 주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어린 아이를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사 품에 안고 축복하시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우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내 배 아파 난 자식만큼 다른 사람의 자식도 사랑하고 귀하게 여김으로 말미암아 실족하는 사회 속에 화를 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로 그 믿음을 허락하시는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오늘도 내 자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소중히 여겨서 자녀들 때문에 쓸데없는 사회적인 비용이 낭비되지 않으므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항상 함께 계실 지어다. 아멘. 김종웅 목사(쉼과회복이있는교회)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 마17:14-20/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5
가능성이 있는 어린이 마17:14-20 나이지리아의 노예시장에서 한 소년이 담뱃잎 한 부대와 교환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도 모두 노예로 팔려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소년이었습니다. 흉악한 노예 상인들은 그 소년을 불법 노예선에 태워 미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향하던 도중 그 배가 불법노예선임을 알게 된 영국 군함에 의해 나포되었습니다. 그 군함에 소속된 군목이 수백 명의 노예들 속에서 유난히 총명하게 보이는 그 소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을 양자로 삼아 교육과 철저한 신앙훈련을 시켰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난 어느 날 나이지리아에서 나이지리아 교회 최초의 감독 취임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취임하는 감독은 세계적인 성서학자이며 민족의 지도자인 사무엘 크로우더(Samuel Crowther)목사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30여 년 전 노예선에서 군목에게 양자로 선택을 받았던 그 소년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던 한 어린이가 훌륭한 양부모를 만나게 되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 아이의 인생은 어른들이 어떻게 대하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전혀 쓸모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설교가로 유명한 켐벨 몰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 부부는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그 4형제 모두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모두 훌륭한 설교가로 많은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의 생신을 맞이하여 4형제가 모두 모이게 되었습니다. 한 방에 대설교가가 모두 다섯이나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 잔치에 초대된 친척 노인이 거기 모인 다섯 명의 목사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방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가 설교를 제일 잘 하느냐?” 정말 난처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의논할 것도 없이 일제히 “바로 어머니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아버지 캠벨 몰간 목사도 빙그레 웃으며 수긍하였습니다. 아들 넷을 모두 목사가 되게 하여 훌륭한 설교가로 성장시켰으니 그 어머니가 얼마나 그들을 열심히 가르쳤는지를 모두 인정한 것입니다. 최근 들어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일탈현상이 급증하면서 우리 사회의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모든 문제는 가정의 파괴 현상과 함께 더욱 심각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늘 갈팡질팡하는 공교육은 이미 신뢰받지 못하고 있으며 기형화된 사교육으로 우리 아이들의 상처는 깊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일어난 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간질병으로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예수께 간절히 간구하여 병을 고침 받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어린이 주일인 오늘,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어떤 이에게 간질병으로 앓고 있는 어린 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 간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간질병은 오늘날도 난치병 가운데 하나로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는 병입니다. 아마 간질로 고생하고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아버지는 아들의 병 때문에 유명한 의원은 다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들의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약도 의사도 찾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재산은 아들의 병 때문에 모두 탕진해 버렸을 것입니다. 실상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어쩌면 모두 불치의 병을 다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적으로는 우리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나니”(롬3: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마치 맑은 물 속에 떨어진 먹물 한 방울과 같습니다. 맑은 물 컵 속에 먹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먹물이 순식간에 퍼져서 온통 물을 흐리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퍼져 누구나 예외 없이 죄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죄인인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은 욕심과 갖은 억압과 수탈, 거짓과 교만, 가난과 질병, 재난과 죽음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마치 인간은 본문에 나오는 어린아이와 같이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존재와 같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순수해야 할 어린이들이 전 인류가 앓고 있는 이 무서운 질병을 더욱 심하게 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퇴폐적인 미디어매체에 접하면서 세속적인 수렁에 깊이 빠져 버리게 됩니다. 또한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전선에 던져지게 됩니다. 아직까지 엄마 품이 가장 좋은 학교가 될 어린아이에게도 학습지를 봐야하고 학원에 가야한다고 주변에서 떠들어댑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조기교육이 오히려 아기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세워지는 학원과 학습지에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를 맡겨둡니다. 그리고 기필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자신의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경쟁을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아이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김의 대상으로 대할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웃을 모두 이겨야 할 적으로만 알게 됩니다. 이러한 풍토 가운데서 자라나는 아이는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고 이웃의 아픔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실상 하나님도 없고 이웃도 없는 어린아이들은 무서운 질병에 걸려있습니다. 과거에는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의 수가 장년 예배에 참석하는 장년의 수보다도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도시 교회의 주일학교가 텅텅 비어 간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학교나 학원에 나가지 않으면 야단을 치고 호통을 하면서도 교회를 빠진 것 가지고는 그렇게 야단을 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신의 자녀가 영적인 불치의 병을 앓고 있으며 그 증세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데도 가만히 방치해 두는 꼴입니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만 자녀가 신앙에서 멀어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부모로서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맡기신 생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심각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2. 부모들은 아이들을 예수께 데려와야 합니다. 간질병 아들을 둔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께서 오시니까 그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렸습니다.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는 것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를 위대한 선생님 정도로 안 것이 아니라 메시야 곧 영생을 주실 분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꿇어 엎드린다는 말은 희랍어의 프로스쿠네오( )로써 “예배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더군다나 15절에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께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그 아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됩니다. 아이들의 신앙은 결국 그 부모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장하는 동안 부모는 그 자녀에게 목회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의 아버지처럼 자녀를 데리고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만드시고 부모에게 자녀를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부모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을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요그만 박사(Michael Yogman)에 의하면 아이들을 키우기 가장 어려운 시기는 생후 6∼12주와 사춘기라고 했습니다. 이때는 부모들이 ‘아이를 사랑하지만 당장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질 때라고 합니다. 아이가 좋으면서도 싫어지는 모순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갓난아이가 울며 보채기 때문이고 사춘기의 경우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갓난아이가 보채고 사춘기 시절의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에 도전하기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성장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귀찮고 노여워지는 자신의 감정 때문에 아이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격노한 부모의 감정이나 짜증 섞인 언행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좋지 못한 감정이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를 멀게 하고 심지어는 완전히 파괴되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늘 올바른 모습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때로는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때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에 대하여 ‘내가 낳았으니 나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내 자식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는 식으로 자녀를 대하게 되어 치유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자녀를 망쳐놓게 되기도 합니다. 자식 잘되게 하려고 했던 언사와 행동이 결국은 자녀를 망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자녀들이 문제가 있을 때 부모들은 ‘내가 너를 어떻게 가르쳤는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 모양이 되었냐?’ 라고 친구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모르는데서 나오는 결과일 뿐입니다. 자녀를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자녀를 맡겨주셨다는 청지기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얼마 전 타임지에서 “부모의 자녀 교육”에 대해서 여섯 가지 항목을 열거한 바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는 자신의 정서적 불안을 아이에게 발산하지 말라. 둘째,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할 때 잘 경청하라. 셋째, 자녀교육은 부모의 완전한 직업(Full time job)정도의 중량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넷째, 아이가 꿈을 꼭 붙잡도록 하라. 다섯째, 아이들이 자기를 귀중히 여기도록 하라. 여섯째,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문제를 회피하게 말고 돌파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책임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가 자녀들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길은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간질병이 든 아이의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간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녀들이 주님 안에서 클 수 있도록 그를 인도해야 합니다. 3. 현대 교회는 어린아이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질병이 든 아들을 둔 아버지는 먼저 아들을 예수의 제자들에게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아들의 병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아이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예수의 제자들은 겸연쩍은 모습으로 자기들이 왜 그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20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도 이와 비슷한 기사가 나오는데 마가는 “가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간질병이 든 아이를 고치시던 때는 예수께서 세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변화를 체험하고 내려오시는 길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기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시는 곳곳마다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간절한 기도가 없던 제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능력이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간질병이 든 어린아이를 치료할 만한 하늘의 능력을 소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교회의 기도 소리가 멈춘다면 이 시대의 간질병과 한국병으로 무너져 가는 이 나라와 그리고 세속가치에 빠진 어린이들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도하지 않는 제자와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없었던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농락거리가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가 없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는 교회는 능력이 없는 교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으로 빼앗긴 우리 자녀들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교회가 기도하는 교회가 될 때 가능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품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생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던 조지 뮬러는 “기도는 시작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옳게 한 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동안 계속하는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줄 믿고 받기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1844년 11월에 다섯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매일 기도하는 중에 18개월 만에 한 사람, 5년 후에 한 사람, 6년 후에 한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으나 무려 52년 동안 기도하여도 두 사람은 회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뮬러가 죽은 후에 그들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주님의 사랑 안에서 위대한 인생을 살도록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자녀들을 유명 학원에 보낸다고 해서, 또한 자녀들을 외국 유학만 보낸다고 해서 그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자녀들이 주님께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위대한 사람으로 쓰임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녀를 위해 기도를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그들을 신앙으로 인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가꾸면서 그들을 인격적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이때에 우리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훌륭한 인물의 배후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는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고 모세에게는 유모가 되어서라도 끝까지 모세를 양육하고자 했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의 유산을 따라 훌륭한 주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남기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22:5-6/ 어린이주일설교/ 2006-05-05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22:5-6 월간 [아버지와 가정]이 초등학생 이상의 아들을 둔 아버지 88명과 만 13세~18세의 아들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아버지를 닮았으면 좋겠다\\\" - 아버지의 46%, \\\"아들아, 너는 아버지를 닮지 말아라\\\" - 아버지의 28%,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다\\\" - 아들의 33%, \\\"나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 - 아들의 37%, \\\"이 다음에 나도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내 아들이 나를 닮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아버지들도 점점 줄고 있습니다. 자녀가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 자녀가 자신을 닮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결코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아이들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까요? \\\'호프만\\\'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성숙한 도덕성과 가치관을 갖고 있으며 아버지와의 관계가 매우 좋다\\\"라고 했습니다. \\\'헨리 밀러\\\'라는 사람은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많은 청소년들은 친구까지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자살을 하거나 자폐증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아이들을 이기적이고 계산적으로 가르친 부모들의 잘못된 사랑에 기인한 것입니다. 오늘 날 부모들의 자녀사랑은 자신들의 욕심과 기대로 인하여 비뚤어진 사랑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앞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우리의 자녀들은 영원히 불행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왜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까? 첫째는 자녀들은 하나님의 보호대상입니다.. 이솝의 우화입니다. 낚시꾼이 작은 고기를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습니다. 잡힌 고기가 \\\"나는 작은 고기이니 풀어 주시고 이 다음에 가치 있는 큰 고기가 되어 다시 만나요\\\" 하니 낚시꾼이 \\\"안된다. 너를 물 속에 넣으면 다시는 네가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너를 잡은 이상 놓아 줄 수 없다. 바구니 속으로 들어가거라\\\"하며 작은 고기를 자기 바구니에 넣었답니다. 여러분의 자식을 주님의 축복 바구니밖에 내어놓고 후에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일랑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아지가 고삐에 끌려다님이 부자유한 것 같아도 그것이 복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고삐가 풀려져 제멋대로 이 밭 저 밭 마구 뛰어다니다간 매밖에 맞을 것이 없답니다. 내 자식을 진리 안에 가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구속이 아닙니다. 기독교교육은 자라나는 세대를 그리스도 품에 안기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손이 얹어지게 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축복의 말씀이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도로티 로톨트 여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비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적개심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면 싸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관대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 만약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공평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정의로움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면 남을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풍성한 인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만약 어린아이가 친구들과의 우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세상에서 사랑을 배우게 된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조롱 속에서 살면 열등감을 배우고, 적대관계 속에서 살면 싸움만을 배우며, 격려가운데서 살면 자신감을, 관용 속에서 살면 인내를, 칭찬 속에서 살면 존경하는 것을, 용서가운데서 살면 사랑하는 것을, 정직 속에서 살면 진리가 무엇인가를, 신앙 속에서 살면 천국을 배우며 자라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은 하나님의 크신 손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요, 부드러우신 손으로 사랑 받아야 할 생명들입니다. 믿음의 부모들은 내 자녀들에게 세상살이의 고통과 어려움을 만나도 유혹이 와도, 오직 주님의 사랑과 능력에 인도되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야만 합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 가운데 \\\'빈 컵\\\'이란 시에서 \\\"빈 컵 속에 깨끗한 물을 담아 놓으면 예쁜 꽃을 꽂고 싶어지네...\\\" 우리 자녀들의 어두운 마음을 하나님 말씀의 빛으로 몰아내고 밝은 주님의 뜻을 담게 되면 그들에게서 아름다운 인생의 꽃이 피어 날 것입니다. 둘째로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워야 합니다 옛사람의 글 가운데 \\\"자식을 낳는 것이 어려움이 아니요. 기르는 것이 어렵고, 기르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며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애기로 태어나 유년기와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에 이르게 됩니다. 어린 날의 어제가 오늘의 나를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나란 존재는 유소년기를 거치는 동안에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녀들이 어떠한 형태로 굳어지기 전에 말씀 안에서 가르칠 것을 가르쳐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보다 더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아무런 구속이나 제약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학교 담장을 헐어 버렸다고 합니다. 좀 확 트인 분위기 속에서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실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담장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운동장 전체에 흩어져서 마음껏 뛰어 놀았는데, 담장이 없어지고 난 뒤에는 아이들이 운동장 가에는 가지 않고 운동장 한 가운데 모여서 놀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실험을 한 교육학자 도브슨 박사는 말하기를 \\\"아이들에게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정신적인 울타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향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인간의 삶을 보호해주는 정신적, 영적인 울타리가 되어 집니다. 그런 하나님의 울타리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인격과 삶을 바로 세워 나가게 됩니다. 자녀들에게나 부모들에게 있어서 행복의 가장 확실한 기초는 믿음으로 행할 바를 가르치는 신앙교육입니다. 세계에서 청소년 범죄가 가장 적은 민족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민족은 2천년동안 유랑민족으로 세계를 떠돌아 다녔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대의 전통과 유대의 신앙과 유대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그들의 각 가정에 쉐마(Shema)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가정은 어느 가정을 막론하고 조그마한 가죽 상자 안에 쉐마가 들어 있습니다. 쉐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입니다. 그 상자 속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가슴속에 새겨야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쉐마는 구약성경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이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핵심은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유대민족을 바로 세운 것입니다. 간혹 교인들의 가정에서 어렸을 때에는 교회에 잘 보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쯤 되면 아이들을 교회에 안 보내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할 까 싶어서입니다. 대학 입학시키기 위해서 교회에 그만 나가게 하고 공부를 시킵니다. 그런 분들은 아이가 대학 입학하느냐 못하느냐하는 점은 염려하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대학 졸업장을 받느냐 못받느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올바로 보이는 사람으로 성장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자녀들을 믿음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셋째로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자녀들에 대한 교육적 방법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강경해야 할 때 너그럽지는 아니한가? 엄하게 단속해야 할 것임에도 가볍게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날카롭게 반응해야 할 때임에도 쓸데없는 관대함을 보이지 아니했는가? 돌보아주어야 할 때 바쁘다는 이유로 무관심하지 아니했는가? 지금 꼭 필요한 것을 뒤로 미루어 놓지는 아니했는가? 이제 나의 자녀교육을 하나님께서 검증하시도록 내어놓고 기도하며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텍사스 주 휴스턴 경찰국에서는 자녀들을 타락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10가지 조건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라. 그러면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될 수 있다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2.아이가 나쁜 말을 쓸 때면 그냥 웃어 넘겨라. 그러면 자기가 재치있는 줄 알고 더욱 나쁜 말과 나쁜 생각을 할 것이다. 3.그 어떠한 형태의 교훈적인 훈련과 교육도 시키지 말아라. 커 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믿고 내버려 두라. 4.잘못된 품행은 책망하지 말며 그냥 두어라. 이 다음에 사회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5.아이가 어질러 놓은 침대, 옷, 신발 등을 모두 정돈해 주어라. 자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버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6.텔레비젼이나 비디오를 마음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어라. 머지않아 그 아이의 마음은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아이들 앞에서 부부나 가족들의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어라. 그러면 이 다음에 가정이 깨어져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다. 8.달라고 하는 대로 용돈을 얼마든지 주어라. 타락의 길길을 쉽게 터득할 것이다. 9.먹고 싶다는 것은 다 먹이고, 마시고 싶다는 것도 다 마시게 하고, 좋다는 것은 다 해주어리. 어떠한 거절이라도 한 번만 당하면 곧 낭패에 빠지는 사람이 될 것이다. 10.아이가 이웃과 대랍되는 자세나 마음을 가질 때에 언제나 아이편이 되어주어라. 건전한 사회가 모두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부모들은 내 자녀들이 자신의 의지를 억제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말을 배울 때부터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영어 단어 몇 마디를 외움에 기뻐하지 말고 기도하는 말속에서 크게 기뻐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주기도문을 정확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주기도문을 외우게 했느냐\\\'고 묻자 \\\'아니에요. 우리가 늘 가정예배를 드리며 주기도문을 했더니 저렇게 배웠어요.\\\' 라고 했답니다.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앞서가며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볼 줄 알아야만 합니다. 내 자녀들의 마음의 정원에 세상의 잡목이 심겨져 우거지기전에 성경나무를 심어 우거지게 해야만 합니다. 바르게 가르쳐야할 부모들이 배워야할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가르쳐 주지 못하여 훗날 그들의 자녀들이 잘못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 그 책임을 부모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잘못 관리하여 성경말씀을 배우던 아이가 한 명이라도 탈선한다면 하나님께선 직무유기의 책임추궁을 하실 것입니다. 어느 날, 어느 초등학교 교실, 담임선생님이 화가 나서 벌게진 얼굴로 한 아이를 호되게 꾸중하고 있었습니다. 까닭은 아이가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은 것입니다. 아이는 너무나 어려운 가정형편을 말할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습니다. 교사는 아무 말이 없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라고........ 그로부터 17년 후, 그 아이는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라는 이름으로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 선생님의 한 마디가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김기환의 최후 진술입니다. 김기환에게는 안팎으로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무심코 하는 부모의 말 한 마디가, 어른들의 말이, 교사의 한 마디가 생각 없이 부지중에 던진 말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육은 잘못을 방임해서도 안되고 진정한 사랑과 인격이 결여된 가르침도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책망해야 하며 사랑으로 지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 앞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서있습니까? 행할 바를 행하게 하고 가르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책임적인 위치에 서있음을 자각하는 어른과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장 복 있는 어린이/ 마19:13-15
가장 복 있는 어린이 마19:13-15 어떤 부모든지 자기 자녀가 복받기를 원하며 자손이 번성하기를 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처럼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니 그 이유는 사단 때문이요, 죄 때문인 것입니다. 이 사단과 죄를 없이 하여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단과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복된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 인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사단(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된 어린이입니다. 1)사단의 권세란 무엇입니까? 어두움의 권세, 죄의 권세, 죽음의 권세, 지옥의 권세를 뜻합니다. 2)사단은 인간을 무자비하게 만드는 장본인 입니다. 죄를 범하게 하여 에덴을 잃게 만든 원흉입니다. 가장 무서운 유괴범이 사단입니다. 3)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다 사단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갓난 어린이도 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4)사단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게 못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2.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어린이입니다. 1)예수님은 어린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마19:14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의 해방자이십니다. 2)예수님의 품은 홍수심판 때 구원의 방주와 같은 곳입니다. 시18:2절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3)예수님의 품은 바로 천국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품은 바로 구원의 품입니다. 4)예수님의 품은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재 창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귀한 어린이들을 가장 복된 어린이로 만들어야 합니다. 1)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의 품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녀와 내 이웃의 자녀를 교회로 인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2)세계의 유명한 위인들은 대부분 어릴때부터 예수님 품에서 자란 사람들입니다. 3)어린이 전도는 미래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의 소망, 교회의 소망, 국가와 민족의 소망이 어린이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 품을 떠나면 사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어린이들이 유괴되면 가장 불행한 어린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와 예수님의 품에 안기면 가장 복된 어린이가 되는 것이니 우리 주위의 어린이들을 강권 해서라도 다 인도하여 하나님의 집을 가득채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참 좋으신 하나님! 우리 주위에 있는 어린이들을 가장 복 있는 어린이들이 될 수 있도록 안내를 잘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는 다음에가 없사오니 오늘 만나는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저희들이 되게해 주셔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가장 위대한 유산 (잠언 4:5~9,)
가장 위대한 유산 (잠언 4:5~9,) http://mission.bz/5043어린이주일가장 위대한 유산 (잠언 4:5~9,) 어린이날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무엇인가 조사했더니 아이들이 가장 많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휴대 전화와 애완 동물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컴퓨터, CD 플레이어, MP3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어떨까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무슨 선물을 주고 싶어할까요?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재산과 지식을 물려 주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이 구속 수사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복잡한 속 사정은 잘 모르지만 혐의 중 하나가 아들 정의선 사장에게 불법으로 많은 재산을 넘겨 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벌뿐 아니고 거의 모든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조금이라도 많이 물려 주고 싶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싼 돈을 써서 학원을 보내기도 하고 고액 과외를 시키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해외 연수와 조기 유학이 그 어느 때보다 붐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정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들이...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주는 선물이나 유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저의 경우를 소개하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전쟁 직후에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경제적으로 모두들 아주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 때는 절대 빈곤을 미처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남들보다 더 못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저는 부모님이 영 못마땅했습니다. 우선적으로 가족을 잘 입히고 잘 먹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모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가 최우선이었고 이웃이 그 다음이었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더 화가 났습니다.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낳지를 말지...”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못된 짓만 골라 해서 골탕이나 실컷 먹여야지...” 그래서 부모님 속을 꽤나 많이 썩여 드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주지 않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값진 선물을 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그 때는 잘 몰랐고 또 알았을지라도 별로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하여간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은 바로 주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선물이냐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누구는 믿음이 없느냐고 빈정거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진짜 값진 선물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1985년 선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미묘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신설동에 있는 신학교 땅이 개인 명의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시가로 수십 억하는 것을 저희 형제들이 상속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대박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학교 땅이라고 하지만 자녀들이 받아야 할 몫을 거기 몽땅 쏟아 부었기 때문에 별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망설이다가 그 땅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저희 형제들이 가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 법인에 기증했습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바로 그 기준, 모든 것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믿음 때문에 항상 기쁘고 즐겁게 주님의 일에 헌신할 수 있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물려 주신 믿음이 저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두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둔 한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구했습니다.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 20:21) 세속적인 출세와 영광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 20:22)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세속적인 것을 구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정말 좋은 것을 선물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진짜 값진 것을 유산으로 물려 줄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 무엇보다 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주님을 믿는 믿음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위대한 유산을 물려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봉독한 본문 말씀은 믿음을 물려 줄 수 있는 바로 그 방법을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먼저 부모들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진 것이 있어야 물려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올바른 믿음을 부모들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부자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박사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유명 인사가 못 되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구원의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며 섬기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에게 그 믿음을 물려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들이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함께 예배하고, 함께 말씀을 읽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학원에 보내는 것도 필요하고 해외 연수나 조기 유학을 보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미루다가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정말로 좋은 선물일까요? 무엇 때문에 믿음이 그토록 중요할까요? 우리가 모두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와 명철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혜와 명철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잠언 기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경외하는 것입니다.(잠 9:10 참고) 여기서 지혜와 명철은 단순히 해박한 성경 지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사는 처세술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요 명철입니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공부를 잘 하고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그 하나님의 뜻을 가슴에 품고 나아갈 수 있도록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도와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4월 26일 4년 만에 다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연주회를 가진 스웨덴 출신 가스펠 가수 레나 마리아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까? 그녀는 1968년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도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병원에서는 아기를 시설에 맡기라고 했지만 부모는 잠시 아기를 들여다본 후 말했습니다. “이 아이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에게는 가족이 필요합니다.” 부모는 레나 마리아를 신앙과 사랑으로 양육했습니다. 덕분에 하나뿐인 왼발로 글씨를 쓰고 오르간을 연주하고 젓가락질을 하고 뜨개질을 합니다. 3살부터 수영을 시작해서 국가 대표로 세계 장애자 수영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또 음대에 진학하여 가스펠 가수가 되어 지금은 전 세계를 무대로 찬양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웨덴이라는 복지국가에 태어났다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으로 키워 준 부모님과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이 나를 성공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길로 특별하게 지어졌습니다. 우리 모두 똑같이 귀하고 오직 하나뿐인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면 그분이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한 계획과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게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 조금 영리하다고 해서 자만할 것이 아닙니다. 또 어릴 때 좀 모자란다고 해서 낙심하고 포기할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들이 어떤 모습이든지 하나님의 자녀들로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또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라고 하십니까? 많은 재산입니까? 많은 지식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믿음이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믿음은 힘과 능력입니다. 믿음은 또한 생명입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그 자체가 자녀들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귀한 복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 가족 모두가 그 믿음대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넘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강석공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이 게시물을...
가정 교육/창25:27-34
가정 교육 창25:27-34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난 주에 이어서 가정교육에 대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끔직한 뉴스에 너무나 충격을 받습니다. 용인 부근 골프장에서 일하는 일당들이 택시처럼 꾸며 가지고 밤에 타는 20대 여자 승객 만 골라서 5명을 납치 살인한 사건에 이어서 또 한명을 죽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 등 공범들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 쯤 용인시 기흥읍에서 평소 김씨와 알고 지내던 미용사 이모씨를 전화로 불러내 김씨의 승용차에 태운 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용인휴게소로 가 신용카드 2장과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후 이씨의 카드로 286만원을 인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범들은 오후 11시30분쯤 이씨를 용인시 기흥읍의 한 골프장으로 데려가 차안에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 중턱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돈 몇 푼 때문에 평소에 알던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인간들이 점점 잔인하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이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큰 잘못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뉴스에 들으니까, 공범들의 부모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하나같이 \\\'자기 자식은 절대로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더랍니다. 그 부모들은 너무나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자기 자식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됩니다. 세상이 점점 도덕이 무너지고 있을 때일수록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 그러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1. 가정과 자녀를 하나님이 맡기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입니까? 전쟁이나 기근, 양식이나 에너지, 환경오염이 아니고 가정의 위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미국사람들은 10쌍 중에 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10쌍중 4쌍이, 한국은 10쌍중 3.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급속도로 가정들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은 세 가지로, 가정이요, 교회요, 나라입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세우신 기관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과 교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때로는 성격의 차이, 때로는 자녀의 문제, 때로는 성(性)적인 문제, 때로는 술과 도박의 문제로 가정을 공격합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한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만큼 삶의 훈련이 되어 있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린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노여움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가정이 화목한 것입니다. 화려한 100평 이상의 고급 아파트에라도 부부의 갈등이 깊어 가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심한 불행도 깊어가지만, 가난한 판자촌에 산다 할지라도 엄마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행복이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잘 지키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부부였습니다. 창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믿음이 좋은 종을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보냈고 그 종은 나홀성 우물가에서 구체적인 기도한 결과 응답으로 주신 여인이 바로 리브가였던 것입니다. 또한 창24:63에 보면 종이 자기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떠난 후부터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였습니다. 또한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자, 창25:21에 보면 이삭은 아내를 위하여 간절히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아기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테어난 것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 하나님이 맡기신 남편과 아내,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라는 그러한 믿음으로 식구들을 본다면 다 소중해질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화가 났던 것은, 50년 만에 만나는 너무나 감격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처음부터 북한 가족들에게 울지 못하게 만들고 계속 \\\'김정일 장군의 하해 같은 사랑 안에서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계속 선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북한당국자들은 눈물도 인정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성옥이라는 79세된 어머니는 해방이후에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올 때, 어린 딸아이가 몸살기가 있어 외할머니 댁에 두고 왔다가 헤어진 후에, 이번에 만나고는 얼마나 울면서 사과하는지요. 그리고 이번 이산가족 만남 중의 가장 감격적인 것은 75세 되는 정귀업 할머니였습니다. 19살 때 결혼한 후에 4년 정도 살다 전쟁으로 갈라서게 되었는데 그 4년의 날들도 남편이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랴, 서울에서 한양공대를 다니랴 하다보니 살날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4살 때 병으로 죽었고 사변 후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노라고 혼자 몸으로 50년 동안 수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2년 만에 남편을 만났으니 얼마나 애절한 모습인지요, 시청하는 모든 사람이 같이 울었습니다. 개별상봉에 쓰인 방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침대도 두 개고 방도 혼자 쓰는데 오늘밤 같이 잘 수 없을까? 방이 아깝잖아! 누구한테 떼쓰면 될까? 제일 높은 분이 누구야! 김정일한테 얘기하면 될까\\\'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월 30일 작별할 때, 금강산여관에 들어선 정귀업(75) 할머니는 여관 1층 로비에 서있던 북측 남편 림한언(74)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52년을 혼자 살았는데. 나 집에 안갈꺼야. 어떻게 혼자 가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할 일 투성입니까? 이렇게 자유로운 땅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 집, 먹을 음식, 함께 살 수 있는 식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 줄 아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이 귀한 가정과 자녀들을 잘 지키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해야지, 내 주장, 내 방식, 내 주견대로 교육하고 훈계하면 자녀들의 영은 노여워지고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믿는 부모님은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세상적인 주장을 너무 세웁니다. \\\"야,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이지, 경제과를 택하라\\\" 혹은 \\\"그 처녀는 믿음은 좋으나 그 집안은 너무 볼 것이 없구나. 사돈 간에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충고랍시고 한다는 말이 성경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어머니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면서 화가 났다하면 땅을 치면서 \\\"야, 이놈아, 너를 키우노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엄마를 이처럼 업신여길 수 있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럴수록 자녀들은 하도 야단을 치니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영적으로는 노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어머니의 어떠한 신앙적인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꾸 빠지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서로 싸우는 관계로 나타나고 나중에는 살인적인 미움으로 가득한 사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이 좋다는 이삭의 가정에서 이런 삐뚤어진 자녀들이 나왔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편애,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오냐, 오냐\\\'하면서 키운 탓이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와 성격이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삭은 원래 온유한 사람이요, 소극적인 사람인 반면, 아들 에서는 적극적이고 거친 사람으로 사냥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에 비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리브가는 소극적이고 다소 여성적인 면이 강한 야곱을 사랑했던 것같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애가 문제의 소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자녀를 자기들에게 맡기셨으면, 골고루 사랑하는 것이 도리인데, 자기 취향에 따라 지나치게 한 쪽을 사랑하고 한쪽은 소외시킨 것이 가정의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는 40세였고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은 때는 60세였습니다. 그 동안 두 부부는 자식이 없는 아픔 외에는 아름다운 부부였고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를 낳은 후부터는 늦자식을 본 탓인지 부부 사이의 관계보다도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더 나가서는 각각 하나씩 편애함으로 형제 사이에 살인적인 싸움이 생기고 결국 야곱은 도망자가 되고 에서는 복수하겠다고 쫓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에서가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창26:34-35에 보니 에서는 40세에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두 부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야곱이 떠난 뒤 20년 동안 야곱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것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후에 에서를 통하여 에돔이라는 나라가 생기고 이스라엘 민족의 큰 적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정 하나의 문제가 이처럼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처럼 아름다운 부부, 아름다운 가정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골고루 사랑하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한쪽으로 사랑의 손길을, 한쪽으로는 훈계의 매로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취향대로 한쪽만 무조건 사랑을 부어주므로 두 형제 사이에 의가 상해지고 깨어지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편애는 독과 같아서 영혼과 인격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중에 가장 사악한 자가 바로 네로입니다. 네로 황제가 그처럼 사악하게된 것은 그의 어머니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독점하도록 교육을 시켰고 출세만을 위하여 살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어머니는 남편까지 죽이고 그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까지 앉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 네로는 자기를 그처럼 편애하는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했습니까? 아닙니다. 네로는 후에 로마시를 불태우면서 시를 읊는 광기를 부리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자가 되었고 부인 옥타비아를 죽이고 그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를 독살하는 간악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너무 가난하여 정규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삶을 살았으나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중에 성자라고 추앙 받을 정도로 위대하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들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친어머니는 9살 때 돌아가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겨 주었으며, 후에는 새엄마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어머니도 링컨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후에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가 쓰기를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하나님은 저에게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신앙의 어머니들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집, 좋은 방, 좋은 학교 등을 주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따라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쳐 주면 하나님이 저들의 장래를 다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대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제자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렛드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감화를 끼치려면 우선 스스로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G. 웨스트는 말하기를 \\\"모범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했습니다. 100마디의 가르침보다도 한번 본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100마디의 말로 가르치다가 한번 잘못된 본을 보이면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그 자녀들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자녀 중 암논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였고, 압살놈이라는 아들은 암논을 죽인 후에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아도니야라는 아들도 그리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처음에는 신앙적인 본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나쁜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부녀를 간음하는 죄와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도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육신의 욕망에 매이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가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를 너무 밝히는 등,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였고, 리브가도 야곱에게 나쁜 본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나름대로 그러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창25:23에 보면 리브가가 두 아이를 잉태했을 때 하나님이 예언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이 예언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귀하게 여기기 시작하다 보니 두 형제 사이에 금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러한 예언을 하셨다 하더라도 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맡긴 자녀인 줄 알고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하였더라면 에서가 그렇게 삐뚤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드린다는 선한 목적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게 헸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거짓으로 변장하게 만들었던 리브가였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실 날이 올 터인데 리브가가 너무 서둘렀던 것이 가장 파탄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범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초를 훔치지 말라\\\'고 한 말씀은 바른 교훈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거짓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리브가의 본을 배운 야곱은 일생동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과 같은 일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앞에 훌륭한 본을 보였으나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들 앞에 나쁜 본을 보임으로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 앞에 훌륭한 본을 보임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도와주었으나 대제사장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임으로 악행자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이면서도 말하기를 \\\"나는 술담배가 인이 박혀서 끊지를 못하나 너희들은 제발 이런 것은 배우지 말라. 건강에 나쁘니라\\\"고 합니다. 어느 엄마는 교회 제직이라고 하면서 심심하면 혼자서 화투로 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오늘 운수점을 본다.\\\'고 말하고, 자녀가 누구를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하면 사주에 보니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극구 반대합니다. 자녀들은 그 순간에 엄청난 영적 노여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신앙적인 교훈은 다시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큼 부모나 교사가 신앙의 본을 잘 보이느냐, 못 보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육은 어릴 때일수록 더 강하고 크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며 앞장서서 신앙의 본을 보일 때 큰 효과를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잠22:6 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12살 난 한 흑인 소년이 죽어 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장애인이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나는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가지 내가 너에게 남겨줄 게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세 가지 보석이 필요하단다. 이 보석만 가지고 있으면 넌 이 다음에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어. 이것만은 놓치지 말고 누구에게도 주지 마라. 이 세 가지 보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어머니마저 떠났습니다.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된 이 12살된 소년은, 가난과 신체적인 장애로 어려움 가운데 지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공부하고, 남보다 잘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바로 1950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1904~1971)박사입니다. 그는 가난했고, 장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것이 세 가 지 보석이란다. 이것만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 때문에, 이 소년은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줄 알고 언제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정과 자녀 교육/엡6:4
가정과 자녀 교육/엡6:4 2007-04-24 14:35:36 read : 150 차용철목사 \"또 아비들아 저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 (엡6:4) <序言> 가정의 행복에 자녀가 차지하는 범위는 지대합니다. 자녀의 바른 성장이 행복을 지속시킵니다. 얼마 전에 일 가족이 학교 앞에서 주차를 한채 차 안에서 분신 자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학생이 학교 기숙사에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교사가 학생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학생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학교문제는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말았습니다. 학생이 계속 문제가 되자 이윽고 학교에서는 학생을 집으로 데려가라는 통보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아들을 학교로 데리러 왔습니다. 아들이 정문을 나와 차에 타자 아버지가 차 안에 신나를 뿌리고 다 함께 죽자고 했습니다. 살고 싶은 사람은 나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 혼자 도망해 나가고 모두 차 안에서 불타 죽었습니다. <本論> 1.자녀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가 잘되길 바랍니다. 자녀가 잘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희생도 할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랄 때 환경 때문에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공부 문제라면 최선을 다해 투자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자녀에게 주고 싶은 것과 우리 자녀들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서로 원하는 간격이 너무 커서 갈등하게 되고 상처를 받고 분노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랄 때 기회를 놓쳐서 공부를 원하는 만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녀에게는 어떻게든지 학생 때에 공부를 시키려 합니다.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학벌이 약해서 인생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녀가 공부를 못해서 우리와 같은 인생을 답습할까 봐 두려워서 자녀에게 강요해서라도 공부를 잘하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를 통해서라도 이루기 위해 자녀에게 인생의 마지막 희망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은 다릅니다. 자기 인생 자기를 위해 살고 싶지 자기 인생을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를 위해 살아 줘야 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능력을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 알고 그 능력에 맞는 정도에서 만족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거기서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욕망은 너무 크고 자녀의 현실은 따라 주지 못합니다. 20등인 아이가 있다면 자신은 최선을 다하면 10등 정도 한다는 것을 압니다. 최선을 다해 10등을 했는데도 부모가 \"잘했지만 좀 더 잘해야 하겠다\"고 한다면 아이는 혼동하게 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공부를 하며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희생하며 원하는 것 다 해주는데 왜 1등을 하지 못하느냐\'고 한다면 자녀는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자녀는 그런 부모의 행동을 보며 자기를 위해 공부하라고 하고 희생하는 것이 모두 부모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큰 상처를 받게 되고 분노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조카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유머로 올린 내용입니다. 말을 배운지 얼마 안됨에도 말을 곧잘 함을 기특하게 여기던 형은 그 날도 조카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xx야~ xx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조카는 대답했습니다.. \"대통령\" 자신의 귀한 아들이 나중에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진 형과 형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xx가 대통령되면 아빠, 엄마 뭐시켜 줄거야~?\" 조카는 계속.생각을 하다가... ..\"짜장면~\"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를 통해 자기 욕망을 이루려는 사람은 짜장면이나 먹을 사람입니다. 본문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 로마에서 절대부권을 가지고 자녀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라는 절대부권이 있었습니다. 부권을 가진 자는 자기 가족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노예로 팔기도 하고 쇠사슬에 묶어 일을 시키기도 하고 심지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녀가 출생하면 아버지 발 밑에 놓게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그 아이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자녀들이 얼마나 분노하겠습니까?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부모라는 권위로 자녀를 억압하고 학대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엄연히 개인적 인권을 가진 자를 자기 자녀라고 해서 자기 소유물처럼 여겨서는 안됩니다. \'헌신적인 사랑\'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자녀를 자기 못다 이룬 꿈을 이루려 하고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장 합법화된 폭력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자녀에게 상처를 보상받으려 말고 지금부터라도 자기 인생을 보람되게 사는 길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자녀도 행복하게 되는 길입니다. 2.자녀의 인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디지털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인성입니다. 몇년 전에 독일의 종합미디어 그룹인 \'베델스만\'의 란슈타인이 내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미디어 형태가 급속도로 발달해 감에 따라 사람들의 심성도 단순화되고 획일적이어지고 개인주의화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사람의 감성은 가치있게 다루어질 것이고 건강한 인성을 가진 자가 각 분야에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의하면 미국의 많은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인성검사 결과를 활용하는 사레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조사에서는 30%에 달하는 회사가 채용에서 인성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채용관련 성격검사 도구를 제공하는 회사가 2500개나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회사는 컴퓨터로 인성 검사를 한 후 일정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면접 기회조차도 주지 않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경우엔 컴퓨터로 50분이나 인성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측은 온라인 인성검사를 채용에 반영한 결과 직원들의 근속 기간이 늘었으며 고객 만족도도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스포츠용품업체 간부인 마이클 마체티는 인성검사에서 \'레드\' 판정을 받은 사람은 채용하지 않는 것이 회사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대 졸업생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퍼센트 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머지 85퍼센트는 좋은 인간관계였다.\" 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갈수록 안정된 인성과 풍부한 감성을 가진 자가 성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성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사회 공동체에서도, 교회 공동체에서도, 가정 공동체에서도 인정 받지 못합니다. 결국 불행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자녀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양육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녀는 어떤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 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혼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은 범위를 차지하는 것이 성격차이인데 그것은 인성 문제입니다. 결국 인성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가정생활도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제 아이의 자율성과 창조성을 개발시켜 주는 것은 좋지만 인내심과 의지력도 길러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합리성과 양보심과 배려심 등 공동체를 리드해 갈 수 있는 인성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요즘 어린 자녀를 기르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인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가족의 놀라운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맞았는지 그 아이가 엄마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그 엄마가 하는 말 \"니도 가서 콱 때려부러!\" 아마 발음을 보니 아마 전라도 사람이었는 모양입니다. 우리 나라처럼 식당에서 아이들 떠드는 것 놔두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선진국에 가보면 뛰어 다니는 아이들 없고 혹 뛰면 부모가 반드시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는 것을 봅니다. 장난감 가지고 놀다가도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 것 빼앗다가 싸우면 자기 아이를 설득시키지 않고 다른 아이를 설득시키려 합니다. 과자를 가지고 싸우면 자기 아이에게 주고 다른 아이는 자기 아이에게 하나씩 얻어서 줍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분별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인성을 갖는 데에 역행하는 행동을 할 때는 근실히 징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잠언13:24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라고 하였고, 잠언 23:13-14에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채찍을 아끼면 자녀를 버린다\"고 했습니다. 와일드는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얼마 후엔 부모를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자녀의 잘못을 보고도 근실히 징계하지 않는 자는 자녀를 인생에서 실패하게 하는 자입니다 (삼상2:12-17,22-26). 3.자녀를 신앙적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몇년 전에 불교 조계종의 기관지인 \'불교신문\'에서 최고위층 인사들의 종교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독교 42명, 천주교 20명, 불교 9명 순이었습니다. 1998년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종교 인구 현황이 불교 23.2%, 기독교 19.7%, 불교 9% 순이었던데 비하면 신앙 교육을 받은 자가 비교할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갈수록 세계는 혼탁해 질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영적 분별력이 있는 자가 훌륭한 리더가 될 것입니다. 미국 마크쥬크스의 논문에 보고된 청교도 신학자 죠나단 에드워드의 7대 후손을 보면 729명 중 복음전도자가 300명, 교수가 65명, 부통령과 국회의원이 16명, 대학학장이 13명이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같은 시대에 같은 지역에 세상적 목적으로 살아가는 한 가정의 7대손은 1200명 중 300명이 일찍 죽었고 대부분 감옥 생활자나 알코올 중독자나 창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죠나단 에드워드 가속은 영국에서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던 청교도들의 후손입니다. 청교도인들은 알파벳 A를 가르치면서 아담을, B를 가르치면서 바벨탑을, C를 가르치면서 가인을, D를 가르치면서 다윗을 가르쳤던 자들입니다. 현재 미국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 이른바 WASP (White, Anglo, Saxon, Protestants) 그룹도 그들의 후예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대부분 와쉽 그룹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높이 들어 쓰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이나 다니엘이나 디모데 같은 사람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9:23에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라고 하였고, 다니엘 1:20에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 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라고 했고, 다윗은 말씀을 준행하여 하나님 마음에 합하니까 가는 곳마다 강성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준비하도록 목을 주셨습니다 (행13:22-23). 디모데는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믿음을 이어받아 목회 사역에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딤후1:5).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명기6:6-7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든지 길에 행할 때든지 누웠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인격이 되게 하고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가 커서도 그 말씀의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의 법이 되어 죄에서 떠날 것이며 좌절할 때에 말씀에서 힘을 얻어 일어날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 말씀이 생각나서 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일을 알게 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욜2:28, 마21:15-16참조).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 쓰임 받게 하려면 성령의 일을 알게 해야 합니다. 성령이 누구인지 성령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성령의 감동을 어떻게 느끼는 것인지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세상사가 사람의 계획과 노력으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9:11). 살아가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어서게 하는 힘은 신앙입니다. 세상 사는 원리를 근본적으로 제시하는 하나님 말씀이 그를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 주의 성령이 그를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고 했습니다. <結言> 자녀가 잘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교육가치관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마땅히 가르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욕망을 따라 교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이겠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훌륭한 자녀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우리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학대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 이제는 하나님의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신 목적에 따라 교육하려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녀로 기르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내가 기르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세상의 풍조가 나로 하여금 육욕을 따라 교육하기를 유혹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게 해 주옵소서.
가정교육/ 창25:27-34/ 어린이주일설교/ 2002-05-05
가정교육 창25:27-34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난 주에 이어서 가정교육에 대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끔직한 뉴스에 너무나 충격을 받습니다. 용인 부근 골프장에서 일하는 일당들이 택시처럼 꾸며 가지고 밤에 타는 20대 여자 승객 만 골라서 5명을 납치 살인한 사건에 이어서 또 한명을 죽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 등 공범들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 쯤 용인시 기흥읍에서 평소 김씨와 알고 지내던 미용사 이모씨를 전화로 불러내 김씨의 승용차에 태운 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용인휴게소로 가 신용카드 2장과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후 이씨의 카드로 286만원을 인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범들은 오후 11시30분쯤 이씨를 용인시 기흥읍의 한 골프장으로 데려가 차안에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 중턱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돈 몇 푼 때문에 평소에 알던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인간들이 점점 잔인하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이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큰 잘못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뉴스에 들으니까, 공범들의 부모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하나같이 '자기 자식은 절대로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더랍니다. 그 부모들은 너무나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자기 자식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됩니다. 세상이 점점 도덕이 무너지고 있을 때일수록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 그러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1. 가정과 자녀를 하나님이 맡기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입니까? 전쟁이나 기근, 양식이나 에너지, 환경오염이 아니고 가정의 위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미국사람들은 10쌍 중에 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10쌍중 4쌍이, 한국은 10쌍중 3.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급속도로 가정들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은 세 가지로, 가정이요, 교회요, 나라입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세우신 기관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과 교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때로는 성격의 차이, 때로는 자녀의 문제, 때로는 성(性)적인 문제, 때로는 술과 도박의 문제로 가정을 공격합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한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만큼 삶의 훈련이 되어 있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린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노여움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가정이 화목한 것입니다. 화려한 100평 이상의 고급 아파트에라도 부부의 갈등이 깊어 가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심한 불행도 깊어가지만, 가난한 판자촌에 산다 할지라도 엄마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행복이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잘 지키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부부였습니다. 창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믿음이 좋은 종을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보냈고 그 종은 나홀성 우물가에서 구체적인 기도한 결과 응답으로 주신 여인이 바로 리브가였던 것입니다. 또한 창24:63에 보면 종이 자기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떠난 후부터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였습니다. 또한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자, 창25:21에 보면 이삭은 아내를 위하여 간절히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아기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테어난 것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 하나님이 맡기신 남편과 아내,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라는 그러한 믿음으로 식구들을 본다면 다 소중해질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화가 났던 것은, 50년 만에 만나는 너무나 감격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처음부터 북한 가족들에게 울지 못하게 만들고 계속 '김정일 장군의 하해 같은 사랑 안에서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계속 선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북한당국자들은 눈물도 인정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성옥이라는 79세된 어머니는 해방이후에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올 때, 어린 딸아이가 몸살기가 있어 외할머니 댁에 두고 왔다가 헤어진 후에, 이번에 만나고는 얼마나 울면서 사과하는지요. 그리고 이번 이산가족 만남 중의 가장 감격적인 것은 75세 되는 정귀업 할머니였습니다. 19살 때 결혼한 후에 4년 정도 살다 전쟁으로 갈라서게 되었는데 그 4년의 날들도 남편이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랴, 서울에서 한양공대를 다니랴 하다보니 살날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4살 때 병으로 죽었고 사변 후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노라고 혼자 몸으로 50년 동안 수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2년 만에 남편을 만났으니 얼마나 애절한 모습인지요, 시청하는 모든 사람이 같이 울었습니다. 개별상봉에 쓰인 방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침대도 두 개고 방도 혼자 쓰는데 오늘밤 같이 잘 수 없을까? 방이 아깝잖아! 누구한테 떼쓰면 될까? 제일 높은 분이 누구야! 김정일한테 얘기하면 될까'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월 30일 작별할 때, 금강산여관에 들어선 정귀업(75) 할머니는 여관 1층 로비에 서있던 북측 남편 림한언(74)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52년을 혼자 살았는데. 나 집에 안갈꺼야. 어떻게 혼자 가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할 일 투성입니까? 이렇게 자유로운 땅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 집, 먹을 음식, 함께 살 수 있는 식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 줄 아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이 귀한 가정과 자녀들을 잘 지키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해야지, 내 주장, 내 방식, 내 주견대로 교육하고 훈계하면 자녀들의 영은 노여워지고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믿는 부모님은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세상적인 주장을 너무 세웁니다. "야,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이지, 경제과를 택하라" 혹은 "그 처녀는 믿음은 좋으나 그 집안은 너무 볼 것이 없구나. 사돈 간에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충고랍시고 한다는 말이 성경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어머니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면서 화가 났다하면 땅을 치면서 "야, 이놈아, 너를 키우노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엄마를 이처럼 업신여길 수 있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럴수록 자녀들은 하도 야단을 치니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영적으로는 노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어머니의 어떠한 신앙적인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꾸 빠지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서로 싸우는 관계로 나타나고 나중에는 살인적인 미움으로 가득한 사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이 좋다는 이삭의 가정에서 이런 삐뚤어진 자녀들이 나왔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편애,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오냐, 오냐'하면서 키운 탓이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와 성격이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삭은 원래 온유한 사람이요, 소극적인 사람인 반면, 아들 에서는 적극적이고 거친 사람으로 사냥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에 비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리브가는 소극적이고 다소 여성적인 면이 강한 야곱을 사랑했던 것같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애가 문제의 소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자녀를 자기들에게 맡기셨으면, 골고루 사랑하는 것이 도리인데, 자기 취향에 따라 지나치게 한 쪽을 사랑하고 한쪽은 소외시킨 것이 가정의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는 40세였고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은 때는 60세였습니다. 그 동안 두 부부는 자식이 없는 아픔 외에는 아름다운 부부였고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를 낳은 후부터는 늦자식을 본 탓인지 부부 사이의 관계보다도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더 나가서는 각각 하나씩 편애함으로 형제 사이에 살인적인 싸움이 생기고 결국 야곱은 도망자가 되고 에서는 복수하겠다고 쫓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에서가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창26:34-35에 보니 에서는 40세에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두 부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야곱이 떠난 뒤 20년 동안 야곱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것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후에 에서를 통하여 에돔이라는 나라가 생기고 이스라엘 민족의 큰 적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정 하나의 문제가 이처럼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처럼 아름다운 부부, 아름다운 가정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골고루 사랑하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한쪽으로 사랑의 손길을, 한쪽으로는 훈계의 매로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취향대로 한쪽만 무조건 사랑을 부어주므로 두 형제 사이에 의가 상해지고 깨어지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편애는 독과 같아서 영혼과 인격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중에 가장 사악한 자가 바로 네로입니다. 네로 황제가 그처럼 사악하게된 것은 그의 어머니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독점하도록 교육을 시켰고 출세만을 위하여 살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어머니는 남편까지 죽이고 그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까지 앉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 네로는 자기를 그처럼 편애하는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했습니까? 아닙니다. 네로는 후에 로마시를 불태우면서 시를 읊는 광기를 부리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자가 되었고 부인 옥타비아를 죽이고 그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를 독살하는 간악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너무 가난하여 정규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삶을 살았으나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중에 성자라고 추앙 받을 정도로 위대하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들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친어머니는 9살 때 돌아가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겨 주었으며, 후에는 새엄마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어머니도 링컨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후에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가 쓰기를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하나님은 저에게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신앙의 어머니들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집, 좋은 방, 좋은 학교 등을 주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따라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쳐 주면 하나님이 저들의 장래를 다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대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제자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렛드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감화를 끼치려면 우선 스스로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G. 웨스트는 말하기를 "모범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했습니다. 100마디의 가르침보다도 한번 본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100마디의 말로 가르치다가 한번 잘못된 본을 보이면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그 자녀들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자녀 중 암논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였고, 압살놈이라는 아들은 암논을 죽인 후에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아도니야라는 아들도 그리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처음에는 신앙적인 본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나쁜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부녀를 간음하는 죄와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도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육신의 욕망에 매이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가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를 너무 밝히는 등,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였고, 리브가도 야곱에게 나쁜 본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나름대로 그러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창25:23에 보면 리브가가 두 아이를 잉태했을 때 하나님이 예언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이 예언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귀하게 여기기 시작하다 보니 두 형제 사이에 금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러한 예언을 하셨다 하더라도 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맡긴 자녀인 줄 알고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하였더라면 에서가 그렇게 삐뚤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드린다는 선한 목적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게 헸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거짓으로 변장하게 만들었던 리브가였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실 날이 올 터인데 리브가가 너무 서둘렀던 것이 가장 파탄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범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초를 훔치지 말라'고 한 말씀은 바른 교훈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거짓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리브가의 본을 배운 야곱은 일생동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과 같은 일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앞에 훌륭한 본을 보였으나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들 앞에 나쁜 본을 보임으로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 앞에 훌륭한 본을 보임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도와주었으나 대제사장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임으로 악행자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이면서도 말하기를 "나는 술담배가 인이 박혀서 끊지를 못하나 너희들은 제발 이런 것은 배우지 말라. 건강에 나쁘니라"고 합니다. 어느 엄마는 교회 제직이라고 하면서 심심하면 혼자서 화투로 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오늘 운수점을 본다.'고 말하고, 자녀가 누구를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하면 사주에 보니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극구 반대합니다. 자녀들은 그 순간에 엄청난 영적 노여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신앙적인 교훈은 다시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큼 부모나 교사가 신앙의 본을 잘 보이느냐, 못 보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육은 어릴 때일수록 더 강하고 크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며 앞장서서 신앙의 본을 보일 때 큰 효과를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잠22:6 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12살 난 한 흑인 소년이 죽어 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장애인이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나는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가지 내가 너에게 남겨줄 게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세 가지 보석이 필요하단다. 이 보석만 가지고 있으면 넌 이 다음에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어. 이것만은 놓치지 말고 누구에게도 주지 마라. 이 세 가지 보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어머니마저 떠났습니다.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된 이 12살된 소년은, 가난과 신체적인 장애로 어려움 가운데 지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공부하고, 남보다 잘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바로 1950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1904~1971)박사입니다. 그는 가난했고, 장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것이 세 가 지 보석이란다. 이것만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 때문에, 이 소년은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줄 알고 언제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정교육/ 창25:27-34/ 어린이주일설교/ 2015-05-05
가정교육 창25:27-34 오늘은 어린이주일로 지난 주에 이어서 가정교육에 대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끔직한 뉴스에 너무나 충격을 받습니다. 용인 부근 골프장에서 일하는 일당들이 택시처럼 꾸며 가지고 밤에 타는 20대 여자 승객 만 골라서 5명을 납치 살인한 사건에 이어서 또 한명을 죽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허씨 등 공범들은 지난 18일 오후 9시30분 쯤 용인시 기흥읍에서 평소 김씨와 알고 지내던 미용사 이모씨를 전화로 불러내 김씨의 승용차에 태운 뒤 영동고속도로 하행선 용인휴게소로 가 신용카드 2장과 현금 10만원을 빼앗은 후 이씨의 카드로 286만원을 인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범들은 오후 11시30분쯤 이씨를 용인시 기흥읍의 한 골프장으로 데려가 차안에서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 중턱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암매장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돈 몇 푼 때문에 평소에 알던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인간들이 점점 잔인하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이는 가정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가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어릴 때부터 아주 작은 잘못이라도 잘못된 것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으면 큰 잘못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뉴스에 들으니까, 공범들의 부모들은 그 소식을 듣고 하나같이 \'자기 자식은 절대로 그런 잔인한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더랍니다. 그 부모들은 너무나 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자기 자식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요, 그런 부모가 자녀 교육을 제대로 시켰을까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됩니다. 세상이 점점 도덕이 무너지고 있을 때일수록 우리 가정의 자녀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자, 그러면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할까? 1. 가정과 자녀를 하나님이 맡기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위기가 무엇입니까? 전쟁이나 기근, 양식이나 에너지, 환경오염이 아니고 가정의 위기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미국사람들은 10쌍 중에 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10쌍중 4쌍이, 한국은 10쌍중 3.5쌍이 이혼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도 급속도로 가정들이 무너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기관은 세 가지로, 가정이요, 교회요, 나라입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세우신 기관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사회의 가장 기초단위입니다. 그러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면 국가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늘 교회와 가정을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 안에 문제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만큼 사탄의 공격이 가정과 교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지 못하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합니다. 때로는 성격의 차이, 때로는 자녀의 문제, 때로는 성(性)적인 문제, 때로는 술과 도박의 문제로 가정을 공격합니다. 결혼하신 분들은 다 경험한 것이지만, 성장환경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살다 보면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결혼생활을 비유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집안에서 음식을 끓이느라 지글지글하는 소리가 나고, 일년쯤 지나면 아기 오줌 누이느라 쉬하는 소리가 나고, 십년이 지나면 김빠지는 휴하는 소리가 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신혼 때에는 부부가 밤찬으로 피자를 먹으며 즐기지만, 일년쯤 지나면 냉장고에서 아무것이나 꺼내서 먹고, 십년 쯤 지나면 부부싸움 하느라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부부란 10대에는 서로가 꿈속에서 살고, 20대에는 서로가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가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서로가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가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니까 살고, 70대에는 서로가 고마워서 산다.\"고 했습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제일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어린 아이들입니다. 어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닥쳐온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만큼 삶의 훈련이 되어 있지만, 연약하기 짝이 없는 여린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노여움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물은 가정이 화목한 것입니다. 화려한 100평 이상의 고급 아파트에라도 부부의 갈등이 깊어 가는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심한 불행도 깊어가지만, 가난한 판자촌에 산다 할지라도 엄마 아빠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행복이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과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잘 지키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부부였습니다. 창24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믿음이 좋은 종을 고향 메소포타미아로 보냈고 그 종은 나홀성 우물가에서 구체적인 기도한 결과 응답으로 주신 여인이 바로 리브가였던 것입니다. 또한 창24:63에 보면 종이 자기의 아내감을 구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떠난 후부터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삭과 리브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였습니다. 또한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자, 창25:21에 보면 이삭은 아내를 위하여 간절히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아기를 잉태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테어난 것이 바로 에서와 야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가정, 하나님이 맡기신 남편과 아내,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라는 그러한 믿음으로 식구들을 본다면 다 소중해질 것입니다. 지난주간에는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금강산에서 두 차례나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화가 났던 것은, 50년 만에 만나는 너무나 감격적인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처음부터 북한 가족들에게 울지 못하게 만들고 계속 \'김정일 장군의 하해 같은 사랑 안에서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계속 선전장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북한당국자들은 눈물도 인정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성옥이라는 79세된 어머니는 해방이후에 살길을 찾아 남한으로 올 때, 어린 딸아이가 몸살기가 있어 외할머니 댁에 두고 왔다가 헤어진 후에, 이번에 만나고는 얼마나 울면서 사과하는지요. 그리고 이번 이산가족 만남 중의 가장 감격적인 것은 75세 되는 정귀업 할머니였습니다. 19살 때 결혼한 후에 4년 정도 살다 전쟁으로 갈라서게 되었는데 그 4년의 날들도 남편이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랴, 서울에서 한양공대를 다니랴 하다보니 살날은 얼마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 있었는데 4살 때 병으로 죽었고 사변 후에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노라고 혼자 몸으로 50년 동안 수절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52년 만에 남편을 만났으니 얼마나 애절한 모습인지요, 시청하는 모든 사람이 같이 울었습니다. 개별상봉에 쓰인 방에 있는 침대를 가리키며 \'침대도 두 개고 방도 혼자 쓰는데 오늘밤 같이 잘 수 없을까? 방이 아깝잖아! 누구한테 떼쓰면 될까? 제일 높은 분이 누구야! 김정일한테 얘기하면 될까\'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4월 30일 작별할 때, 금강산여관에 들어선 정귀업(75) 할머니는 여관 1층 로비에 서있던 북측 남편 림한언(74)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52년을 혼자 살았는데. 나 집에 안갈꺼야. 어떻게 혼자 가요.\'라고 외치는 장면은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할 일 투성입니까? 이렇게 자유로운 땅에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 집, 먹을 음식, 함께 살 수 있는 식구들과 함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하나님께 감사할 일인 줄 아시고 하나님이 맡기신 이 귀한 가정과 자녀들을 잘 지키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지난주일 말씀드린 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를 주님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해야지, 내 주장, 내 방식, 내 주견대로 교육하고 훈계하면 자녀들의 영은 노여워지고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믿는 부모님은 자녀를 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로 가고 세상적인 주장을 너무 세웁니다. \"야,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이지, 경제과를 택하라\" 혹은 \"그 처녀는 믿음은 좋으나 그 집안은 너무 볼 것이 없구나. 사돈 간에 어느 정도 비슷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 부부관계에도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충고랍시고 한다는 말이 성경적인 면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어느 어머니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면서 화가 났다하면 땅을 치면서 \"야, 이놈아, 너를 키우노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엄마를 이처럼 업신여길 수 있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럴수록 자녀들은 하도 야단을 치니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 하지만 영적으로는 노여운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다음부터는 그 어머니의 어떠한 신앙적인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회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자꾸 빠지면서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서로 싸우는 관계로 나타나고 나중에는 살인적인 미움으로 가득한 사이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믿음이 좋다는 이삭의 가정에서 이런 삐뚤어진 자녀들이 나왔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편애,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칠 정도로 \'오냐, 오냐\'하면서 키운 탓이었습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자기와 성격이 다른 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삭은 원래 온유한 사람이요, 소극적인 사람인 반면, 아들 에서는 적극적이고 거친 사람으로 사냥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좋아했던 것같습니다. 그에 비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리브가는 소극적이고 다소 여성적인 면이 강한 야곱을 사랑했던 것같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가 야곱을 좋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편애가 문제의 소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 자녀를 자기들에게 맡기셨으면, 골고루 사랑하는 것이 도리인데, 자기 취향에 따라 지나치게 한 쪽을 사랑하고 한쪽은 소외시킨 것이 가정의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할 때는 40세였고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를 낳은 때는 60세였습니다. 그 동안 두 부부는 자식이 없는 아픔 외에는 아름다운 부부였고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를 낳은 후부터는 늦자식을 본 탓인지 부부 사이의 관계보다도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몰두하고 더 나가서는 각각 하나씩 편애함으로 형제 사이에 살인적인 싸움이 생기고 결국 야곱은 도망자가 되고 에서는 복수하겠다고 쫓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에서가 얼마나 삐뚤어졌는지 창26:34-35에 보니 에서는 40세에 이방 여자와 결혼하여 두 부부의 근심거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리브가는 야곱이 떠난 뒤 20년 동안 야곱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게 되었던 것이요, 더 안타까운 것은 후에 에서를 통하여 에돔이라는 나라가 생기고 이스라엘 민족의 큰 적이 되었던 것을 볼 때 가정 하나의 문제가 이처럼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처럼 아름다운 부부, 아름다운 가정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삭과 리브가가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들을 골고루 사랑하면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한쪽으로 사랑의 손길을, 한쪽으로는 훈계의 매로 다스리지 못한 탓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고 인간적인 생각이나 취향대로 한쪽만 무조건 사랑을 부어주므로 두 형제 사이에 의가 상해지고 깨어지는 가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편애는 독과 같아서 영혼과 인격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 황제 중에 가장 사악한 자가 바로 네로입니다. 네로 황제가 그처럼 사악하게된 것은 그의 어머니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는 아들에게 어려서부터 무엇이든지 독점하도록 교육을 시켰고 출세만을 위하여 살게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또한 그 어머니는 남편까지 죽이고 그 아들 네로를 황제의 자리까지 앉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면 그 아들 네로는 자기를 그처럼 편애하는 어머니를 위해 효도를 다했습니까? 아닙니다. 네로는 후에 로마시를 불태우면서 시를 읊는 광기를 부리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자가 되었고 부인 옥타비아를 죽이고 그 어머니 아그립파아나를 독살하는 간악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은 너무 가난하여 정규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할 정도의 삶을 살았으나 나중에는 미국 대통령 중에 성자라고 추앙 받을 정도로 위대하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들 탓이라고 합니다. 그의 친어머니는 9살 때 돌아가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유언을 남겨 주었으며, 후에는 새엄마가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어머니도 링컨에게 성경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합니다. 후에 링컨의 전기를 쓴 작가가 쓰기를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 만한 조건은 한 가지도 하나님은 저에게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신앙의 어머니들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자녀들에게 좋은 집, 좋은 방, 좋은 학교 등을 주지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훈계를 따라 옳고 그름을 바르게 가르쳐 주면 하나님이 저들의 장래를 다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부모가 신앙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린 대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나 교사가 자녀나 제자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사렛드는 말하기를 \"인간에게 감화를 끼치려면 우선 스스로가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고, G. 웨스트는 말하기를 \"모범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했습니다. 100마디의 가르침보다도 한번 본을 보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100마디의 말로 가르치다가 한번 잘못된 본을 보이면 엄청난 상처를 안겨준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말로가 비참했던 것은 그 자녀들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자녀 중 암논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였고, 압살놈이라는 아들은 암논을 죽인 후에 아버지에게 반역하고 쿠테타를 일으켰고 아도니야라는 아들도 그리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다윗이 처음에는 신앙적인 본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나쁜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유부녀를 간음하는 죄와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충신을 죽이는 살인죄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도 처음에는 신앙이 좋았으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육신의 욕망에 매이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가 잡아오는 짐승의 고기를 너무 밝히는 등,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보였고, 리브가도 야곱에게 나쁜 본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야곱으로 하여금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도록 뒤에서 조정한 것입니다. 아마, 리브가는 나름대로 그러한 행동을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창25:23에 보면 리브가가 두 아이를 잉태했을 때 하나님이 예언하시기를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리브가는 이 예언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에서보다는 야곱을 더 귀하게 여기기 시작하다 보니 두 형제 사이에 금이 갈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러한 예언을 하셨다 하더라도 에서도 하나님이 내게 맡긴 자녀인 줄 알고 사랑과 믿음으로 양육하였더라면 에서가 그렇게 삐뚤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드린다는 선한 목적으로 야곱으로 하여금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게 헸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기도를 받아내기 위해 거짓으로 변장하게 만들었던 리브가였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실 날이 올 터인데 리브가가 너무 서둘렀던 것이 가장 파탄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범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 초를 훔치지 말라\'고 한 말씀은 바른 교훈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거짓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리브가의 본을 배운 야곱은 일생동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기꾼과 같은 일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앞에 훌륭한 본을 보였으나 이삭과 리브가는 자식들 앞에 나쁜 본을 보임으로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나는 사무엘 앞에 훌륭한 본을 보임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도록 도와주었으나 대제사장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임으로 악행자가 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나쁜 본을 보이면서도 말하기를 \"나는 술담배가 인이 박혀서 끊지를 못하나 너희들은 제발 이런 것은 배우지 말라. 건강에 나쁘니라\"고 합니다. 어느 엄마는 교회 제직이라고 하면서 심심하면 혼자서 화투로 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오늘 운수점을 본다.\'고 말하고, 자녀가 누구를 사랑하여 결혼하겠다고 하면 사주에 보니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극구 반대합니다. 자녀들은 그 순간에 엄청난 영적 노여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신앙적인 교훈은 다시는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만큼 부모나 교사가 신앙의 본을 잘 보이느냐, 못 보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신앙의 교육은 어릴 때일수록 더 강하고 크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줄 알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치며 앞장서서 신앙의 본을 보일 때 큰 효과를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잠22:6 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했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 12살 난 한 흑인 소년이 죽어 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장애인이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집은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야, 나는 네게 남겨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나 딱 한가지 내가 너에게 남겨줄 게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세 가지 보석이 필요하단다. 이 보석만 가지고 있으면 넌 이 다음에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어. 이것만은 놓치지 말고 누구에게도 주지 마라. 이 세 가지 보석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어머니마저 떠났습니다.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된 이 12살된 소년은, 가난과 신체적인 장애로 어려움 가운데 지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공부하고, 남보다 잘 되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이 어린 소년이 바로 1950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랠프 번치(Ralph Johnson Bunche:1904~1971)박사입니다. 그는 가난했고, 장애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마지막 간절한 유언,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것이 세 가 지 보석이란다. 이것만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유언 때문에, 이 소년은 남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님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맡기신 줄 알고 언제나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여러분들이 앞장서서 본을 보이심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에서 신앙의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가정에 계시는 주님/잠22:6, 엡6:4/2004-03-09
가정에 계시는 주님 잠22:6, 엡6:4 작년 2월에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을 위한 KOSTA(Korean Student Abroad) 집회에 참석했다가 영국에 잠시 들러 볼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금요일 오전까지 프랑스 집회를 마치고, 금요일 오후 비행기로 런던에 도착해서 영국에서 유학중인 학생들에게 금요일 저녁과 토요일 저녁에 설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일날 파리에 있는 친구 목사님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일날 새벽 비행기로 다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결국 영국에는, 2박 3일이라고는 하지만 약 40여 시간 정도 밖에는 머물지 못했었고, 그나마 학생들의 집회 때문에 영국을 관광한 것은 겨우 토요일 낮시간 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저에게 참으로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제가 참으로 훌륭하게 본 것은 저들의 질서의식이었습니다. 오래된 도시였기 때문에 대로(大路)도 많이 있었지만, 작은 소로(小路)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차들이 좁은 소로를 다니는데도 교통이 물 흐르듯이 소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갈래길에서 차가 서로 만나게 될 경우, 오른쪽에서 오는 차가 먼저 간다는 원칙이 있는데, 그 작은 원칙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차들이 사고 없이, 그리고 머뭇거림 없이 잘 소통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은 일이었지만 그것이 곧 영국의 문화수준을 나타내 보여 주었고, 그것은 경제수준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 곳에서 목회하시는 목회자들을 통하여 영국은 아직도 신사도가 살아 있는 훌륭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영국은 그러한 나라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영국에서 앞날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훌륭한 문화수준과 교육제도에도 불구하고 저들에게서 희망을 느낄 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들의 가정 때문이었습니다. 영국도 다른 유럽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성적인 개방으로 인하여 가정들이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만 해도 양쪽 부모가 다 자기 친 부모인 경우가 오히려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혼과 재혼을 자주 하게 되기 때문에 아빠가 바뀌던지 엄마가 바뀌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까지 바뀐 아이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이 부모 자신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상처는 어린아이들이 더 많이 받지 않겠습니까? 나라의 희망과 미래는 그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와 미래의 희망인 청소년들이 어려서부터 깊은 상처를 받고 마음에 병이 들었으니, 그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문제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프랑스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나라가 대부분 성적으로 타락하여 가정이 파괴되고 있었으며, 그 결과 많은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교육받지 못하고 타락하고 방탕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점을 생각해 볼 때 저들이 지금은 세계를 움직이는 강국이요, 또는 부국일런지 모르나 장차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세계를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는 강력한 나라입니다. 인구 수를 감안해 볼 때 가장 많은 비율의 노벨상을 탄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저들이 그렇게 세계를 움직이는 강력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정을 잘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가정교육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화를 추구하려고 하면, 먼저 가정을 잘 다스려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수 있고, 훌륭한 인물과 인재들이 배출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생각할 때, 자녀교육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자녀교육을 생각할 때 반드시 생각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교육을 위하여 가장 좋은 학교는 가정이며, 자녀교육을 위하여 가장 좋은 교사는 부모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세계의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자녀교육에 열심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뛰어난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녀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학교는 가정이며, 가장 좋은 교사는 부모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어린이주일에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하는 사랑하는 여러 교우님들 모두가 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 여러분의 가정이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학교가 되며, 여러분이 가장 훌륭한 교사가 되시어 여러분의 가정학교에서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훌륭한 인물과 인재들이 많이 배출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아이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사와 학교라고 할 때, 우리는 또한 자녀들을 위한 가장 좋은 교과서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양성한다고 할 때 가장 좋은 교과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중히 여기는 말씀 중의 하나인 신명기 6:4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에 기록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바로 가장 중요한 교육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물질과 시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영어와 수학을 더 잘하게 하기 위하여 학원을 보내며, 많은 비용을 감당하면서 과외를 시키기도 합니다. 또 악기나 미술과 같은 재능교육을 위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더 잘 배우게 하기 위하여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켜 보신 분이 계십니까? 저희 교회의 집사님 중에는 전도사님을 가정교사로 모시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공부시키는 분이 계십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그러한 정신을 가지고 자녀들을 교육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을 훌륭한 인물과 인재로 양육하게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이 가장 중요한 학교요,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중요한 교과서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교회에서만 만나려고 하였고, 아이들의 교육도 학교와 교회의 선생님들을 통해서만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정은 학교와 교회가 되지 못하였고, 부모는 아이들의 진정한 스승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교회는 가정 같은 교회이고, 가장 좋은 가정은 교회 같은 가정입니다. 가정에 주님을 모시고 교회 같은 가정을 꾸미실 수 있기를 바라며, 여러분들이 자녀의 스승이 되셔서 좋은 학교 같은 가정을 꾸미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의 하나님 교육/ 신6:4-9/ 어린이주일설교
가정에서의 하나님 교육 신6:4-9 얄노니 현상으로 예년 보다 일찍 무더워 녹음이 짖은 5월이다 나라에서는 5.5일이 어린이 날이나 교회에서는 5월이 가정의 달로 지키며 첫주는 어린이 주일이 된다. 시127편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아브라함의 축복중 약속의 아들 주신것이요 하나님께 받친 최고의 보화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받침이다 이스라엘은 이런 신앙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의 교육은 학교보다 사회보다 하나님께 받치고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한다. 이 결과 유대인이 노벨상의 25%을 차지 하게 된 것이다. 유대인 2000년간이나 나라 없는 유랑 민족으로 학대와 설음을 당했다. 독일의 히틀러에600만이 학살을 당하는 일들도 있었다. 나라 잃은 망국의 한을 삶키며 피맺은 각오 속에 민족의 생명을 이어 오게 되었나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민족의 교육이라 본다. 신6:4---이스라엘아 들으라, 1. 하나님을 사랑 하는데 있다. 전 교육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 하는데 있다. 모든 교육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교과서가 된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민족 정신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 이요 그 교육은 성경으로 이루어진다. * 이스라엘이 주후 70년에 로마에 항복 할 때 아키바 라는 랍비는 로마 장군에게 우리가 항복 할태니 하나의 조건을 들어달라 마을 중앙에 집 한채와 이것을 놓게 해달라 그것이 무엇이냐? 책이다 성경과 탈무드이다 그 까지것 좋다 허락한다 그날밤 아끼바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여러 동포여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우리 특히 어머니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탈무드만 새겨있으면 이 민족은 영원이 존속한다. 희망이 있다. 이 민족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지 안으면 성공해도 결국 자신을 불행케된다. 진정한 교육은 사람이 행복케 되는데 있다 부모에게 자녀를 노엽게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라 또 마음,뜻,성품,힘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우리는 유대인의 천재 교육은 관심 많지만 유대인의 하나님의 경외에는 관심이 없다 디모데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철저한 신앙의 교유이다. 딤후3:14--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X.J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루는 지혜가 있게 하는니라 2 교육의 장은 가정이다 이스라엘의 안식일은 가정에서 신앙과 인격 교육의 장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에 붙여있다 출입시 입에 맞추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 철저히 힘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교육한다. 나으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함니다. 시18:1
가정을 하나님 학교로/삼상8:1-3
가정을 하나님 학교로/삼상8:1-3 2008-01-24 18:38:29 read : 34 2006년에 우리교회 교회학교 아동부인 초등학교 1학년-6학년 학생들 천명에게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설문지를 돌려서 답을 받았습니다. 먼저 ‘엄마, 아빠가 내게 하신 말씀 중 제일 좋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45.3%가 “얘야, 너를 사랑한단다.” 20.5%가 “참 잘했구나.” 14.5%가 “야! 놀러가자.”로 나왔습니다. 두 번째로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하시는 말씀 중 제일 듣기 싫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27.7%가 “넌 그것도 못하냐?” 22.9%가 “공부 좀 해라” 18.2%가 “이 바보야.”라고 답했습니다. 세 번째로 ‘내가 제일하기 싫은 일은?’이라는 질문에는 43.3%가 부모님 잔소리 듣기였습니다. 이것은 사실 수동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가장 하기 싫은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부모님이 잔소리하는 것 자체가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13.9%가 학원 다니기, 11.8%가 아침에 일어나기, 11.7%가 학교 가기였습니다. 네 번째로 ‘내가 집에서 제일 속상할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는 34.1%가 부모님께 야단맞을 때, 26.3%가 엄마, 아빠가 서로 싸움하셨을 때, 18.8%가 혼자여서 심심할 때라고 답했습니다. 다섯 번째로 ‘내가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가?’를 물었더니 27.4%가 부모님과 함께 놀러갔을 때, 22.3%가 친구들과 함께 놀 때, 20.3%가 선물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부모의 말 한마디와 태도와 행동으로 인해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보여 줍니다. 부모님들에게는 늘 자녀를 향한 두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를 키울 때 아이를 어떻게 하면 바르게 키울지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이 아이를 낳고 제일 걱정하고 근심하는 소망이 바로 이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자녀가 나보다 나아야 할 텐데, 나보다 더 좋은 생애, 더 성숙한 생애를 살게 해야 될 텐데......’라는 소원입니다. 자녀들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인 지위로도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소망이 예수님을 믿는 부모님들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영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나보다 더 성숙된 길을 가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대치와 자녀들이 갖고 있는 현재 모습의 격차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어떻게 키워야 될까, 어떻게 아이들이 내 마음을 알까를 잘 모르겠기에 우리들은 늘 하나님께 머리를 숙이며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자녀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주고, 지성과 이성을 깨우치면 될 것이라고 배우고 들었습니다.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그것을 습득하게 하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교육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의 감정적인 일치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들이 알고 자녀의 감정을 부모가 용납할 때 이런 가치관과 지성과 이성을 더 잘 깨우치고 습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성의 리더십’을 쓴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 이런 말을 합니다. “가정이란 우리가 맨 처음 감정을 학습하는 배움터이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가정 안에서 배운다. 이런 감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드리고 이에 대응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가족에게서 배운다. 희망사항과 두려움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가족 안에서 배운다.” 우리의 가정과 가족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존 가트맨(John Gattman)이라는 사람이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을 쓰면서 부모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녀의 감정에 동조하고 동감하여 참여하고 자녀의 감정을 공유하여 세상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녀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왜 울며 또 때로는 기뻐하는지를 전혀 관심 갖지 않는 부모가 있다고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녀의 감정을 이끌어줄 감정코치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자녀의 감정코치를 못해주는 실패한 부모가 있는데 그것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축소전환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관심한 부모입니다. “저 녀석 그냥 놔두면 될 거야. 울어봤자 소용이 없어. 우는 대로 내버려 두면 될 거야.” 이렇게 자녀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그것을 의미 있게 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억압형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들도 감정코치를 하는데 실패합니다. 자녀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때 아주 비판적으로 개입합니다. 감정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꾸짖고 벌을 주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게 되느냐, 왜 징징 울고 있느냐, 왜 그렇게 마음속에 슬퍼하고 있느냐며 부정적인 감정을 잘못된 감정으로 보면서 자녀들에게 억압하는 것입니다. 그때 자녀들은 “우리 부모는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내 감정을 받아드리지 못해.”하고 감정적으로 부모와 깊은 골을 아예 세워서 부모는 자녀의 삶에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세 번째 방임형 부모입니다. 자녀의 감정을 인정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녀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게 합니다. 한계를 알려 주지 못하고 그냥 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를 이겨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가 부모를 조종하게 됩니다. 이런 세 가지 유형의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지 못하는 부모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요? 자녀의 감정을 코치할 줄 아는 부모로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한계선을 그어주는 부모입니다. 첫째는 아예 감정을 인식하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부모입니다. 둘째는 아예 자기감정을 표현하도록 경청할 줄 아는 부모입니다. 세 번째는 아이가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 오히려 아이와 친밀성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인 것을 알고 교육의 좋은 기회로 삼는 넉넉한 부모입니다. 네 번째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감정과 행동의 한계성을 주는 부모입니다. 사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부모가 갖고 있는 두 가지 힘이 있는데 하나는 사랑의 힘이고, 하나는 권위의 힘입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부모의 권위로 가르쳐야 합니다. 또 때로는 채찍질하고 징계까지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어느 선에서 잘하는가에 따라서 좋은 부모의 모습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존 가트맨은 감정코치의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보다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아버지가 감정코치 법을 사용할 줄 알면 자녀의 정서 발달에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학교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잘 감당하는 성격으로 성숙되는데, 반대로 무시하거나 지나치게 엄격하면 자녀들의 학교생활이 원만해지지 않고 친구들과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싸우는 위험성으로 몰고 가는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녀의 아픔을 어느 정도 이해하십니까? 자녀가 갖고 있는 고통 자녀가 갖고 있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본문의 말씀에 위대한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역설적으로 못된 아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사무엘이라는 사사요, 예언자였습니다. 당시에 정치적으로 막강한 권력자였고, 종교적으로는 영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무엘의 아들 요엘과 아비아가 나오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사무엘상 8:3) 아들들은 뇌물을 좋아했고 자기 이익을 챙겼습니다.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는 잘못된 지도자였습니다. 어찌하여 위대한 아버지 밑에 이렇게 못난 아들이 생길 수가 있었을까요? 저절로 못난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될만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아마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다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사실 위대한 아버지를 두는 것은 인생에서 큰 은총이며 축복입니다. 뒤따라 갈 수 있는 모범을 지닐 수 있고, 인생에서 승리하는 노하우를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돈과 재물도 받습니다. 때로는 명예와 권력도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냥 받을 수 있는 것이 위대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축복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자녀에게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괴롭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아버지와 자식을 비교하여 감당할 수가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화가 납니다. 때로는 내가 이런 아버지 밑에 자라는 것이 저주라고 생각하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자기 조절 능력을 상실한 돈과 재물 명예와 권력은 자녀에게 잘못된 일그러진 자화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의식에 빠져 들어서 교만해 집니다. 남을 무시하고 안하무인의 오만한 성품으로 자라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최근 신문과 텔레비전을 통해 재벌 회장이 그 아들이 당한 폭행을 보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주의 깊게 보았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속에 탄식하며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의하면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나도 저런 막강한 아버지를 가졌으면 금력과 권력이 동반된 아버지가 있으면’하는 부러움과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아버지의 애정 부정에 불과하다는 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자는 이런 사실을 보면서 날카로운 분석을 했습니다. “어떤 일을 해도 뒷감당을 할 수 있는 힘과 돈에 대해서 한국의 남성들은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분열적인 인격을 지니고 있다.” 본문은 위대한 아버지 사무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지도자, 영적 지도자로서는 성공했지만 아버지로서는 실패했습니다. 그 보다 앞서 제사장과 사사가 되었던 엘리 제사장도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아들들은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들을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실권자, 영적인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직책과 권리를 아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거기에 걸 맞는 사고, 가치관, 책임성을 가르치지는 못했습니다. 위대한 아버지들이 종종 실패하는 것이 있다면 자녀들을 너무 높은 고지에서부터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낮은 곳을 알지 못하고 고통 받는 현실을 알지 못합니다.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땀 흘리고 수고해야 겨우 하루를 먹고 사는 인생의 치열한 현장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자기 소유인양 행세합니다. 과거에 정치적 세습 또는 종교적 세습을 멈추게 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이란 누구나 똑같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자녀들이 갖는 문제는 정신적인 빈곤함입니다. 아버지에게 무엇이든지 요구만 하면 아버지가 만족스럽게 모든 것을 줍니다. 어떤 자녀들은 장난감 하나를 얻으려고 하루, 일주일 아니 한달 때로는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데, 어떤 자녀들은 집에 장난감이 쌓여있는 것입니다. 한번 손댔던 장난감 아니 어떤 것은 손을 대지도 않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때로는 돈도 받고 힘도 얻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한 아버지가 자기 아들들에게는 너무 연약한 모습으로 다가올 때 자녀들은 정신적인 빈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가 있으나 사실상 아버지가 부재한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일수록 바쁘고 강력하고 위대합니다. 자녀들에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해주지만 자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는 아버지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 옆에 가까이 가기에는 너무나 먼 아버지로 설 때 자녀들에게는 어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왕은 위대한 아버지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압살롬이라는 아들을 교육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압살롬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를 향해서 역모를 하기 시작합니다. 전쟁 중에 가장 치열한 슬픈 전쟁이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전쟁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전쟁입니다. 참혹한 전쟁에서 아들은 서서히 무너져 갔고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 다윗이 경험했던 아픔과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위대한 아버지들입니다.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신앙적으로 자녀들에게 위대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들이 특별히 마음속에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받은 축복 때문에 자녀들이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의 마음에 함께 동참하여 자녀들의 마음을 읽지 않으면 자녀들은 그것 때문에 외로움 속에 빠져있고 아픔 속에서 자기 삶을 지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자녀들과 교류할 줄 아는 아버지가 되십시오. 가정의 달인 5월에 부모님들은 꼭 자녀들과 데이트하기를 바랍니다. 한 시간도 좋고 하루도 좋고 몇 일도 좋고 시간이 없으면 여름 휴가철을 이용해서라도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때 꼭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 우리의 연약함, 우리의 슬픔, 우리의 외로움, 우리가 갖고 있는 죄악의 고통 속에 친히 내려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동참하셨습니다. 우리 고통에 함께 우셨고, 외로움에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우리를 세워 주셨습니다. 부모로서 그동안 가졌던 마음을 자녀들에게 털어놓는 기회를 가지십시오. 다만 원칙이 있다면 90%를 자녀들의 말을 듣고, 10%만 이야기하십시오. 10%도 훈계할 일이 아무리 많아도 이때만큼은 훈계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십시오. 인생을 살면서 가졌던 기쁨과 외로움을 나누십시오. 위대한 아버지들도 세상에서 치열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세요. 부모인 나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고통 받을 때가있는 완벽한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절대로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아버지가 아니라 때로 고통스러웠으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며 자녀들과 나누십시오. 그리고 너 같은 자녀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고, 너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십시오. 너는 내게 소중한 존재라고 이야기함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가족의 아픔들, 자녀들과 만나지 못함으로 생겼던 껄끄러움을 해결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서 그동안 쌓아놓았던 것을 자녀들을 위해서 쓰면서 함께 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아버지가 바뀌어 자녀들의 마음을 감쌀 때 우리의 가정이 바뀝니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우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귀한 축복을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나누면서 가정의 달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얼마나 복주시고 사랑하는지를 감사 고백하는 가정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참으로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님을 주셔서 생명과 사랑을 가르쳐 주시고 우리 사랑하는 자녀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자녀의 마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읽지도 못한 우리의 모습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고 가정의 달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만나는 부모가 되도록 성령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품고 이일을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서정호 목사/ 2006-05-05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뇌성마비 아들의 요청으로 열심히 뒷바라지 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철인 3종 경기만 200번 넘게 완주한 바 있는 대학 컴퓨터연구원인 미국의 릭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예술사가(史家) 부뢰(傅雷)는 아들 부총(傅聰)이 초등학생 때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피아노와 사기(史記)를 가르쳤고”아들아, 힘을 다해 내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바쳐 네 지팡이가 되고 싶구나.”라고 하면서 정성을 다 바친 아버지의 힘으로 아들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코치였고 스승이었다.”고 했습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를 잃고서 홈페이지에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는 아들이 두 살 때부터 골프 스윙을 가르친 극성 아버지였지만 아들이 학교 숙제를 끝낸 뒤라야 골프 연습을 시켰으며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아들이 골프와 인생 모두에서 승자가 되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제도와 기구와 조직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조직체는 교회와 가정 밖에 없습니다. 교회보다도 가정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조직체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만드신 최초의 기관인 가정이라는 커다란 지붕을 바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둘 있는데 하나는 자녀이고 또 하나는 부모입니다. 만약 가정에 부모는 안 계시고 아이들만 있거나 연로한 부모만 계시고 젊은 자녀들이 전혀 없거나 있기는 하지만 따로 살면서 자주 찾아오지 않거나 마음속에 아예 들어와 있지 않다면 모두 건강한 두 기둥이 바치고 있는 가정은 못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있는 집은 고아원이고 노인들만 있는 집은 양노원인 셈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노인들을 위해 쓰기 때문에 영국을 노인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프랑스를 젊은이들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미국을 어린이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교육시설, 교육방법, 또한 그들에 대한 인격적인 예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무게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해서 인격적인 관심을 갖는 근원은 생명의 무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서에서는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다’ 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핵심부분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는 면에서 더더욱 우리 생명이 무게가 있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복음을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여자의 인권이 회복되고 어린 아이의 인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고 “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 생각을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인 벤자민 볼룸이라는 학자가 연구하면서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고 결론을 내렸는데 첫 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칭찬 받는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게 되고 칭찬 받는 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 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 두 번 나무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 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봐.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고생스러운 가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우지 말고 오히려 성공했거나 잘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합니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입니다. 탈무드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말을 많이 하면 아니 준만 못하다” 잔소리 들으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 돈 벌기 힘들다.” 뇌물성 선물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한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 자녀는 인생의 노년에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자녀 보다 더 좋은 인생의 동반자는 없습니다. 효도하는 자녀보다 더 좋은 노후대책은 없습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부모에게 행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 대책이 되지 않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배운 자녀가 있는 사람은 수치를 당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신앙으로 잘 가르치셔서 그 자녀들로 인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자녀로만’이라는 귀한 글을 소개합니다. 나를 고쳐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으로가 아니라’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게 해 주소서. 이처럼 성숙한 어른들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과 자녀를 크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고훈 목사님이 쓴 [어머니]란 제목의 時입니다. 당신은 내가 만난 맨 처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것을 몸으로 가르치신 분도 당신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5월의 웃음 주고도 떨어지지 않는 바다여. 우리는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너무 먼 곳에 계신 뒤에야 사랑은 이토록 강물 되어 흐르고 우리 또한 당신이 되어 이제야 그 사랑을 깨닫습니다. ‘소금의 고마움은 떨어졌을 때 아버지의 고마움은 돌아가신 뒤에 안다’는 인도 속담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처럼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자기보다 아들이 영웅이 되는 것에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1말씀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는데 “주안에서” 이것이 놀라운 성경적 가족구조요 제도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가정이란 주님과 가족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자식에 대하여 무책임한 부모는, 말년에 그 인생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한테서 무시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부모와 가정입니다. 경쟁의 몸부림 속에서 피곤한 육신을 끌고 사람들은 가정을 찾아갑니다. 가정은 휴식처이고 안식처입니다. 또 용기를 주는 곳이고 안식처입니다. 인생의 배신과 패배와 쓰라림을 당했을 때 부모를 찾아갑니다. 부모님은 따뜻한 손길로 아픔을 쓰다듬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는 우리가 낳고 자란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산물이요, 희망의 산물이요, 정성의 산물입니다. 부모의 깊은 사랑 속에서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에게 전 희망을 걸고 훌륭하고 좋은 자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을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해타산을 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태양과 같고 어머니의 사랑은 샘물과도 같습니다. 태양은 사방에서 빛과 열을 발산하며 샘터에서는 샘물이 철철 넘쳐흐릅니다. 우리는 사랑의 태양 아래서 사랑의 맑은 샘물을 마셔가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키웁니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가 쏟아 주는 사랑은 순수한 것입니다. 받기 위해 준 것이 아니고 아깝다고 생각하는 후회가 추호도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주는 진짜 사랑입니다. 샘내지도 않고 섭섭함도 없이 그저 기쁘기 때문에 주는 고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몸은 밥을 먹어 자랐지만 우리의 정신과 인격은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진실하고 티가 없으며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숭고하기 때문에 그 자녀가 철이 들기 전에는 도저히 부모님의 높은 사랑과 은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가 철이 들 그때에는 부모님이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효도를 별로 해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어머니는 부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가난한 어머니는 하나도 없고, 보기 흉한 어머니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어머니는 아름답습니다. 그 넓은 사랑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 반딧불만한 희망만 있어도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치 아버지란 아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되고 있다는 가책이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결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터로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아버지는 최후까지 존재하는 아이의 고향이며,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그 깊이에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내 보이는 정도의 사랑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부터 출발된 사랑입니다. 사랑의 깊이란 누구를 위하여 고통을 대신 당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 자녀를 위하여 넉넉한 고통을 지불하며 양육하기에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생각나는 대로 요구합니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혹시나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이리 망설이고 저리 망설이고, 웬만하면 참습니다. 부모가 중심일 때는 자녀가 복종하는 위치이고 부부 중심일 때는 자녀와 부모가 맞먹는 구조인데 자녀 중심일 때는 자녀가 상전이 되어 있고 부모는 저 변두리에서 하녀나 노예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이고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외롭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 인간됨의 근본임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부모를 섬겨야 하는 윤리의 배경적인 힘이 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주권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크고 고상합니다. 어떤 권력이나 위엄도 부모의 위치를 따를 수 없는 것은 부모는 본래적으로 그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입니다. 두 기둥이 견고하고 튼튼할 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진리를 가르치며 구원의 도리를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행복은 창조됩니다. 이 행복을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서정호 목사/ 2006-05-05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18:1-10, 잠4:1-6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뇌성마비 아들의 요청으로 열심히 뒷바라지 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철인 3종 경기만 200번 넘게 완주한 바 있는 대학 컴퓨터연구원인 미국의 릭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예술사가(史家) 부뢰(傅雷)는 아들 부총(傅聰)이 초등학생 때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피아노와 사기(史記)를 가르쳤고”아들아, 힘을 다해 내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바쳐 네 지팡이가 되고 싶구나.”라고 하면서 정성을 다 바친 아버지의 힘으로 아들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코치였고 스승이었다.”고 했습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를 잃고서 홈페이지에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는 아들이 두 살 때부터 골프 스윙을 가르친 극성 아버지였지만 아들이 학교 숙제를 끝낸 뒤라야 골프 연습을 시켰으며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아들이 골프와 인생 모두에서 승자가 되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제도와 기구와 조직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조직체는 교회와 가정 밖에 없습니다. 교회보다도 가정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조직체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만드신 최초의 기관인 가정이라는 커다란 지붕을 바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둘 있는데 하나는 자녀이고 또 하나는 부모입니다. 만약 가정에 부모는 안 계시고 아이들만 있거나 연로한 부모만 계시고 젊은 자녀들이 전혀 없거나 있기는 하지만 따로 살면서 자주 찾아오지 않거나 마음속에 아예 들어와 있지 않다면 모두 건강한 두 기둥이 바치고 있는 가정은 못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있는 집은 고아원이고 노인들만 있는 집은 양노원인 셈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노인들을 위해 쓰기 때문에 영국을 노인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프랑스를 젊은이들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미국을 어린이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교육시설, 교육방법, 또한 그들에 대한 인격적인 예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무게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해서 인격적인 관심을 갖는 근원은 생명의 무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서에서는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다’ 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핵심부분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는 면에서 더더욱 우리 생명이 무게가 있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복음을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여자의 인권이 회복되고 어린 아이의 인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본문에 보면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고 “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 생각을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인 벤자민 볼룸이라는 학자가 연구하면서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고 결론을 내렸는데 첫 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칭찬 받는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게 되고 칭찬 받는 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 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 두 번 나무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 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봐.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고생스러운 가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우지 말고 오히려 성공했거나 잘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합니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입니다. 탈무드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말을 많이 하면 아니 준만 못하다” 잔소리 들으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 돈 벌기 힘들다.” 뇌물성 선물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한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 자녀는 인생의 노년에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자녀 보다 더 좋은 인생의 동반자는 없습니다. 효도하는 자녀보다 더 좋은 노후대책은 없습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부모에게 행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 대책이 되지 않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배운 자녀가 있는 사람은 수치를 당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신앙으로 잘 가르치셔서 그 자녀들로 인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자녀로만’이라는 귀한 글을 소개합니다. 나를 고쳐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라 ‘유능한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으로가 아니라’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게 해 주소서. 이처럼 성숙한 어른들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과 자녀를 크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고훈 목사님이 쓴 [어머니]란 제목의 時입니다. 당신은 내가 만난 맨 처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것을 몸으로 가르치신 분도 당신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5월의 웃음 주고도 떨어지지 않는 바다여. 우리는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너무 먼 곳에 계신 뒤에야 사랑은 이토록 강물 되어 흐르고 우리 또한 당신이 되어 이제야 그 사랑을 깨닫습니다. ‘소금의 고마움은 떨어졌을 때 아버지의 고마움은 돌아가신 뒤에 안다’는 인도 속담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시인의 시 ‘아버지의 마음’처럼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자기보다 아들이 영웅이 되는 것에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1말씀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는데 “주안에서” 이것이 놀라운 성경적 가족구조요 제도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가정이란 주님과 가족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자식에 대하여 무책임한 부모는, 말년에 그 인생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한테서 무시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부모와 가정입니다. 경쟁의 몸부림 속에서 피곤한 육신을 끌고 사람들은 가정을 찾아갑니다. 가정은 휴식처이고 안식처입니다. 또 용기를 주는 곳이고 안식처입니다. 인생의 배신과 패배와 쓰라림을 당했을 때 부모를 찾아갑니다. 부모님은 따뜻한 손길로 아픔을 쓰다듬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는 우리가 낳고 자란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산물이요, 희망의 산물이요, 정성의 산물입니다. 부모의 깊은 사랑 속에서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에게 전 희망을 걸고 훌륭하고 좋은 자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을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해타산을 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태양과 같고 어머니의 사랑은 샘물과도 같습니다. 태양은 사방에서 빛과 열을 발산하며 샘터에서는 샘물이 철철 넘쳐흐릅니다. 우리는 사랑의 태양 아래서 사랑의 맑은 샘물을 마셔가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키웁니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가 쏟아 주는 사랑은 순수한 것입니다. 받기 위해 준 것이 아니고 아깝다고 생각하는 후회가 추호도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주는 진짜 사랑입니다. 샘내지도 않고 섭섭함도 없이 그저 기쁘기 때문에 주는 고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몸은 밥을 먹어 자랐지만 우리의 정신과 인격은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진실하고 티가 없으며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숭고하기 때문에 그 자녀가 철이 들기 전에는 도저히 부모님의 높은 사랑과 은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가 철이 들 그때에는 부모님이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효도를 별로 해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어머니는 부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가난한 어머니는 하나도 없고, 보기 흉한 어머니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어머니는 아름답습니다. 그 넓은 사랑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 반딧불만한 희망만 있어도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치 아버지란 아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되고 있다는 가책이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결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터로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아버지는 최후까지 존재하는 아이의 고향이며,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그 깊이에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내 보이는 정도의 사랑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부터 출발된 사랑입니다. 사랑의 깊이란 누구를 위하여 고통을 대신 당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 자녀를 위하여 넉넉한 고통을 지불하며 양육하기에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생각나는 대로 요구합니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혹시나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이리 망설이고 저리 망설이고, 웬만하면 참습니다. 부모가 중심일 때는 자녀가 복종하는 위치이고 부부 중심일 때는 자녀와 부모가 맞먹는 구조인데 자녀 중심일 때는 자녀가 상전이 되어 있고 부모는 저 변두리에서 하녀나 노예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이고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외롭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 인간됨의 근본임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부모를 섬겨야 하는 윤리의 배경적인 힘이 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주권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크고 고상합니다. 어떤 권력이나 위엄도 부모의 위치를 따를 수 없는 것은 부모는 본래적으로 그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입니다. 두 기둥이 견고하고 튼튼할 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진리를 가르치며 구원의 도리를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행복은 창조됩니다. 이 행복을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의 화목을 이루자/ 엡5:31-6:4/ 어린이주일설교/ 2007-05-05
가정의 화목을 이루자 엡5:31-6:4 5월은 가정의 달이고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줄 가장 좋은 선물은 좋은 가정을 만들어 주는데 있습니다. 가정은 아이들이 먹고 숨쉬고 느끼며 배우게 하는데 가장 영향을 주는 공간입니다. 가정의 분위기에 띠라서 자녀들의 인격과 성격 형성, 신앙의 바른 자세에 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에 좋은 의복과 장난감을 시준다고 할지라도 가정이 불행해지면 아이들의 심성(心性)은 병들고 말 것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불화한 가정과 깨어진 가정에서 깨어진 인격이 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이 해야 될 가장 우선적인 일은, 좋은 가정을 만들어 가는 데 있습니다. 비록 오막살이에 산다 할지라도 웃음과 평화와 믿음이 충만한 가정은, 수십 억짜리 호화 아파트에서 살면서 부부가 싸우고 별거하고 심지어는 이혼하는 그런 가정보다 아이들에게는 몇 배로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제일 먼저 복으로 주신 곳이 가정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정치나 경제입니까? 북한이나 국제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많은 가정들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문이나 TV에 나타나는 뉴스들을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강남구 청담동 어느 아파트에 전세 들어 살던 문 모씨는 이혼 위자료 등의 문제로 싸움을 벌이다 부인과 말리던 대학생 딸을 흉기로 살해하고 자수했다고 합니다. 강원도 고성군 한 콘도에서 서울시 응암동에 사는 32살 김모 씨와 아내 32살 홍모 씨, 5살 난 아들과 4살 난 딸 등,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빚 2천만 원을 갚지 못하여 비관한 나머지 김씨는 가족들을 흉기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 끔찍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약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혼 전 남편과 지금 살고 있는 남편을 포함, 어머니, 오빠 등, 가족들을 실명시키고 집에 불을 지르는 등의 수법으로 6억여 원의 보험금을 타낸 20대 여인이 붙잡혔습니다. 눈을 날카로운 핀으로 찔러 상처를 내 실명하게 하는가 하면, 얼굴에 끓는 기름을 붓고 흉기로 배를 찔렀습니다. 마약에 손을 대면서 그 비용을 마련 위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이처럼 점점 흉포화 되는지 기가 막힙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 일 수록 우리 성도들은 가정을 단단히 화목으로 지켜야 합니다. 가정을 처음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가정에서 성장하셨고 가정의 고귀성을 강조하셨던 것을 우리 성도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가정을 귀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또 하나의 사역지인 것입니다. 웹 박사는 “가정의 행복은, 건물의 크고 작은 것이나, 가구가 많고 적거나, 자동차와 사환들의 수가 많고 적은 것이나, 사용하는 생활비의 액수가 많고 적은 것에 의해 좌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초라할지라도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자가 작아지고 작은 자가 커지는 곳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정을 지키고 성숙시키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할 의무요, 특별히 우리 기독인은 이 가정을 초막이나 궁궐이나 천국의 그림자로 만들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의 화목, 가정의 행복을 어떻게 이룩할 수가 있습니까? 본문을 통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가족끼리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히 여기는 데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도 서로 인격을 존중히 여길 때에 가정에 화목과 행복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공경하라”고 했고, 또 자녀들에 대해서도 4절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히 여길 때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 그러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인격적으로 무시를 당할 때에 노여움이 생기어지고 인격이 깨어지면서 미움과 반항의 싹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이러한 원칙은 반드시 지키어져야 합니다. 사실, 부부는 서로의 좋은 점과 나쁜 점, 서로의 비밀을 가장 잘 아는 사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어도 부부 사이에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서 나를 환히 알고 있는 남편이나 아내에게서 무시를 당할 때에 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어느 부부는 서로 흉허물이 없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을 마구 던집니다. “무슨 화장품을 그렇게 쳐 바르노? 아무리 비싼 화장품을 쳐 발라 봐라. 무쪽같은 얼굴이 어디 가겠나?”라고 빈정거립니다. 여자 분들은 아무리 인물이 신통치 못해도 나름대로 예쁘게 꾸미려고 애쓰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이 그 애씀을 완전히 무시할 때 노여움이 가슴에 고이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시들어 보일지라도 남편은 모처럼 큰마음을 먹고 두둑한 돈을 주면서 “여보, 실망하지 말라고, 머리도 새로 해보고 옷도 새로 맞추어 보구려. 여자는 꾸미기 나름이요.”라고 한다면 얼마나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까? 또한 아내들이 남자들의 기를 꺾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남편들이 아내로부터 듣는 말 중에 가장 치명적인 소리는 ‘무능하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돈도 제대로 못 벌어오는 주제에 무슨 큰 소리에요? 남편이라고 돈이 있나, 무슨 명예가 있나, 그렇다고 다정한 사랑이라도 있나? 다른 남편들은 쩍하면 외식이다, 백화점 양장이다, 잘도 사줍디다.” “그러나 나는 시집을 와서 그 많은 시댁 식구들 뒤치다꺼리 하노라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바싹 늙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무엇을 해주었습니까? 이제는 지긋지긋해요.”라고 퍼 부을 때 남편들의 기가 팍 꺾기지만, 동시에 남편들은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낄 것입니다. 어느 노숙자 남편은 아내로부터 그런 견딜 수 없는 모욕적인 말을 날마다 듣고 사느니, 고생은 되지만,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낫다고 여기고 집을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뉴스에 의하면, 요즈음 아내로부터 정신적, 육체적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남편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여성들이 가정의 경제적 주도권을 쥐면서 가장(家長)들이 기 죽어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권력 변화를 다룬 TV 드라마 ‘불량 주부’가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 같은 세태를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여성부가 지난해 9~12월 혼인 중이거나 이혼 경력이 있는 성인 남녀 6,156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 31.2%는 부인으로부터 비아냥 등 정신적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습니다. 2년 전 명예퇴직한 뒤 생계를 부인에게 맡기고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심모(48)씨, 그는 저녁때면 집을 나가 혼자 밥을 먹습니다. “돈 못 버는 남편 꼴 보기 싫다.”며 부인이 식탁에 함께 앉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인과 자식들이 식사를 마친 뒤 혼자 밥 먹을 바에야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게 속이 편하다고 했습니다. 아니 됩니다. 자기의 수익은 많은 반면, 남편은 아무 벌이를 못하는 무능자라고 박대하면, 자기는 자녀들에게 우대를 받을 것 같습니까? 오히려 어느 날 그 자녀들로부터 그 이상의 박대를 받는 날이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헬렌 보으그 라는 분은 우리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결코, 절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편을 비판하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남편을 무시할 때에 남편도 그 아내를 무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 일생 사랑을 받는 방법은 이런 말을 자주 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보, 당신은 내게 너무 귀한 존재예요. 당신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라고 할 때에 남편은 삶의 큰 보람을 느끼며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일하고 싶은 의욕으로 불붙게 된다고 했습니다. 남편들도 농담이라도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밤낮 아프다는 당신의 소리를 듣고 사는 것도 이제는 지쳤어. 차라리 그럴 바에야 빨리 죽던지, 그러면 나도 한번 새 장가를 가보게.”라고 한다면, 겉으로는 웃지만 속에는 노여움이 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들도 아내들에게 항상 인격적으로 대해주십시오. 비싼 선물은 못 사준다 할지라도 따뜻한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인격을 담은 사랑의 말이 어느 때는 삶의 새로운 활기를 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금년도「월간목회」5월호에 보면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교역자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자기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 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다 그렇게 했는데 한 분만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상도에서 올라온 나이든 목사님이었습니다. “난 못한다. 난 안한다.”라고 계속 주저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다른 목사님이 대신 전화를 걸고 수화기를 주면서 빨리 사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수화기를 받아든 목사님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여보, 내다. 사, 사, 사…찰 집사님은 잘 있나?”라고 하더랍니다. 이런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는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가정은 서로 인격적으로 아끼어 존경해 줄 때 비록 초막에 산다 할지라도 행복의 향기가 넘치고 거기에서 성숙한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 자녀들까지도 진심으로 인격을 존중해 줄 때, 자녀들은 자신의 결함이나 미숙에서 벗어나 귀한 인격자로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일본의 노꾸지 히데요는 어렸을 때에 화로에 넘어져서 그만 왼손가락이 구운 오징어처럼 오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건전하게 자라서 마침내 초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우수한 성적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이 손 병신이라고 자꾸 놀리기 때문에 견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기는 아픔을 느꼈습니다. 보통 엄마 같으면 학교까지 달려가 놀리는 아이들을 야단도 쳤을 것입니다. 아니면 선생님에게 항의도 했거나, 또는 너무나 속상한 나머지, 아이를 야단을 치면서 “왜 놀림을 받는가? 싸워서라도 혼내줘야 하지 않는가?”라고 억지를 부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엄마는 내색하지 않고 아이를 다독거리면서 “애야, 무슨 못난 소리를 하니, 그렇게 좋아하는 공부를 아이들이 놀린다고 그만 두면 되니, 누가 무엇이라고 하든, 내버려 두고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라. 그러면 아이들이 제풀에 놀리는 것을 그만 둘 것이다.”고 격려했습니다. 그 때, 노꾸지 히데요는 큰 용기를 얻고 공부에 전심함으로 후에 세계적인 대 의학자가 되어 황열병, 독사병, 광견병, 소아마비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가정의 행복이 꼭 좋은 집과 좋은 음식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있든지 없든지 초막이나 궁궐이나 가족끼리 서로 존경하고 높이어 줄 때 거기에서 기쁨과 행복이 임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신앙으로 성장하는 가정이 화목의 열매를 맺습니다. 집을 짓듯이 가정도 세워 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믿음으로 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생명이 있는 신앙은 작은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새들이 와서 깃들 정도로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성장한 가정 안에 진정한 하나님이 주시는 화목과 평안, 행복이 깃들이므로 거기에서 많은 사람이 와서 대접도 받고 도움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성장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도 성장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기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가정도 그 가정을 위해 전적으로 기도하는 자가 있을 때 성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가정의 신앙 호주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전적으로 기도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이 신앙의 호주요, 그런 가정은 복된 가정입니다. 많은 남편들 중 어느 분은 자기 아내가 교회에 와서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새벽이나 밤중에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자연히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래서 어느 남편은 그러한 아내에게 윽박질러 말하기를 “교회 나가는 것은 좋으나 제발 미치지는 말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남편 되시는 분들이여, 기도하는 아내나 시부모님이 계시거든 큰 복인 줄 알이야 합니다. 어느 젊은 며느리가 고백하기를 자기 시어머님이 살아생전에 기도 생활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쩍하면 밤이면 보따리를 싸가지고 교회에 가셔서 철야 기도를 하고, 혹은 일년에 한 두 번은 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불평하기를 ‘노인네가 집에서 아이도 보아 주고 살림도 도와주면 좋은데 허구헌날 기도한다고 나돌아 다니니 자기가 꼼짝 못한다.’고 불만이 하고는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의 기도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을 발견했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까 이상하게 집안이 어수선해지고 꿈자리도 뒤숭숭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업도 흔들리는 느낌이 들고 곧잘 자라주던 자녀들도 다소 비뚤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집안이 무엇인가 늘 검은 불안이 깃드는 것 같습니다. 그 때야 지금까지 집안이 평안하게 지냈던 것이 순전히 어머니의 기도 탓임을 깨닫고 자기가 어머니의 기도 자리에 나가서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 가정의 신앙의 호주는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기도의 밑거름이 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과 화목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십자가 중심한 가정이 화목과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장 중요한 구절이 무엇입니까 ? ‘주안에서’입니다. 남편과 아내 관계에서도 주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순복할 것을 강조했고, 부모 공경도 주안에서 공경할 것이며, 자녀 양육도 주안에서 주의 말씀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정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될 때만이 하나님이 그 가정에게 화목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많은 가정들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주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들 중심으로 가정을 꾸려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 중심이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l)주님만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만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아내가 자기만 보아야지 왜 한 눈을 파느냐고 원망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는 왜 자기들을 위해 주지 않느냐? 부모들도 자녀들이 자기들에게 너무나 등한히 한다고 불평이 대단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합니다. 오늘 많은 가정들이 철저히 자기중심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연속극을 보니까 부부의 행복은 서로만 바라보는데 있지 않고 함께 똑같은 곳을 바라보는 데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부부가 서로만 바라보고 산다면 어느 날인가 서로에게서 싫증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목표, 같은 미래를 바라볼 때 하나의 마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 바라 볼 곳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부부가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볼 때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어 주님의 화목이 넘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만 바라보는 시어머님과 며느리는 고부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주님을 통해서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자녀도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2)주님 중심이 된다는 의미는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섬기려 오셨습니다. 다른 이의 허물을 대신 지시려 희생하러 오신 것입니다. 가정도 식구끼리 서로 섬기어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서로의 허물을 십자가 사랑으로 덮어주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대신 지어야 합니다. 왜 가정이 좋은 곳입니까? 어떠한 환자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서로 덮어주고 감싸주며 씻겨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법정처럼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 가정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문제는 주님을 따라 산다고 하면서 섬김만 받으려 하지, 희생으로 섬기지 않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지지 않고 주님의 축복만 받으려는 데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들이 섬기려는 가정이 아니라 섬김만 받으려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 자기들만의 행복, 자기들만의 평안, 자기들만의 부함, 자기들만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위해 살려고 애쓸 때 그 가정은 마침내 고인 물처럼 썩고야 미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이 아브라함이나 이삭의 가정처럼, 고넬료나 루디아의 가정처럼 주님의 통로로써 살 때에 계속적으로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가정, 우리의 식구, 우리의 자녀들을 통해서 흘러넘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여러분들이여, 주님과 이웃을 위해 가정의 목표를 세워 보십시오. 결혼의 목적도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데 두어 보십시오. 사업의 목표도 주님과 이웃을 위하는데 두어 보십시오. 자녀를 키울 때도 이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서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을 시켜서 우리 가정의 이름을 날려 보겠다는 자기중심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욕심으로 자녀들을 키우면 어느 날인가, 자녀들이 신앙을 벗어나 부모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내가 욕심으로 움켜쥐려고 하면 오히려 잃습니다. 자녀나 물질이나, 시간이나 재능이나 가정의 모든 목표를 하나님의 사업, 하나님의 선교에 두어 보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희생해 보십시오. 그러면 놀랍지요. 오히려 하나님이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맺게 하시고 뿌린 사람이나 가정으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의 원리대로 역사 하시는 분이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흑인 감독인 알렉산더 쇼우 감독은 어렸을 때에 아주 형편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미시시피주의 어떤 지주의 종이었기 때문에 초라한 통나무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다가 아이들이 무려 열한명이나 되어서 대단히 가난한 가정 속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그런 말할 수 없이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알렉산더 쇼유가 유명한 감독이요, 설교자가 된 것은 그의 부모 탓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분들이었으나 철저한 신앙가였습니다. 그 식구들은 언제나 모여서 말씀을 배우고 찬송을 부르는 동안 하늘의 큰 기쁨을 맛보았다고 하며, 식구들은 어른으로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서로 인격적으로 존귀하게 여기었다고 합니다. 또한 복음 선교와 남을 대접히는 일에 전념할 때에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가정이 되었고, 그 오막살이집에서 유명한 감독, 유명한 설교가를 일으키셔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케 하셨던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가정의 달을 맞으면서 여러분들의 가정들은 (1)가족끼리 서로 인격적으로 존귀하게 여기는 가정, (2)신앙이 날로 성장하는 가정, (3)주님 중심으로 사는 가정이 되도록 결단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짓없는 믿음/딤후1:3-5
거짓없는 믿음/딤후1:3-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있더니 네속에도 있는줄을 확신하노라(4)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 없는 세상은 그 존립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회와 가정과 세상은 아름답고 복된 모습이 됩니다. 특히 믿음중에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위대한 결과를 창조하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믿는자들에게 죄 사함과 영생과 천국과 하나님의 자녀됨과 하나님의 백성됨,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게 하며,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그리고 공급하심을 받게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셨고, 나를 “믿는 자는 능치못할일이 없느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은 위대한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줄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바로 믿음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의 선물을 자녀에게 줄수 있다면 부모는 자신과 세상이 줄수 없는 영원에 속한 것들을 자녀에게 주는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소개된 디모데는 이러한 믿음의 선물을 자신의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외조모 로이스가 이러한 아름다운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고, 또한 어머니 유니게가 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믿음이 바로 디모데에게 그대로 전수가 된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디모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고,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어지는 위대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특히 디모데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믿음은 보통믿음이 아닌 깨끗한 믿음, 곧 거짓이 없는 순수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많은 공부를 시키고, 많은 재산을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믿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의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귀한 것을 물려주어도 믿음을 주지 못하면 자녀교육은 실패하는 것이고, 자녀사랑은 가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부모역활을 잘 못했어도 믿음을 심어줄수 있는 부모라면 최상의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이번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이요 상급인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것인가? 무엇을 남겨줄것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경건한 자손 (잠1:7-9)
경건한 자손 (잠1:7-9) http://mission.bz/5067어린이주일 경건한 자손 (잠1:7-9)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첫째주일은 어린이 주일이고,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이고, 셋째 주일은 성년주일 입니다. 그래 서 5월은 가정을 생각해 보는 달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귀한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 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입니다. 혈 육이 있고, 부모가 있고, 자녀들이 있는 곳, 그리고 마음껏 편 히 쉬고 생활할 수 있는 곳, 그곳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그곳 을 Sweet Home 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천국이라는 뜻입니 다. 이렇듯 5월은 우리들로 하여금 모처럼 가정을 생각해 보게 하는 달입니다. 부모님을 생각해 보고, 자녀들을 생각해 보 고, 어린이의 귀중함을 생각해 보고, 청년을 생각해 보는 그런 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국교회가 일제히 어린이 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어린아이의 존재를 생각해 보 고, 어린아이의 양육문제를 생각해 보고, 어린 어린아이와 함 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사랑을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주일입니다. 옛날에는 이 날을 꽃 주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어린 아이 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들여다 보십시요. 거기에 티가 있습니까, 거짓이 있습 니까. 꽃도 그런 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분명히 꽃 중의 꽃입니다. 이 꽃을 꽃주일 날에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것을 헌아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헌아식을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 째는 "이 아이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하겠습니다" 하는 다 짐입니다. 그 어린아이에 대한 양육책임이 부모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아이가 하나님을 알 고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겠습니다"하는 약속입니다. 이를테면 이 아이의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을 심어 주는 양육을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아이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 해서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하는 서약입니다. 이것 이 헌 아를 하는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아이가 커서 그같은 부모님의 뜻을 알게 되 었을 때 얼마나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갖겠습니까. "나는 이렇 게 바쳐진 아이로구나" 그 아이가 평생 어떻게 그것을 잊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부 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그런 데 오늘 세상을 보면 부모들이 이렇게 마땅히 할 일에는 무관 심하고 엉뚱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잘 못된 방 향으로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보십시요. 오늘은 자식이 원수인 시대입니다. 어떤 검사는 대학생인 아들이 돈을 받고 대리시험을 치르는 바람에 공직에 서 물러났습니다. 어떤 장관은 자식을 특례입학 시킨 것이 문 제가 되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들여서 부정입학 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구속을 당했습니 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어린아이에게 상속해 주었다고 해서 공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자식이 부모의 몸에 칼을 대기까지 합니다. 부모를 죽입니다. 부모의 돈을 탐해서 부모를 죽이기까지 합니 다. 옛 말에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그 말을 실감할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애착은 어느 부모에게나 다 있습니다. 오늘 부 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대해서 얼마나 애착이 많습니까. 좋은 학 군을 따라 무리를 해 가면서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면 옛날 맹자 의 어머니는 비교도 안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과보호적인 자식에 대한 애착은 그것이 사 랑에서 나온 애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성서적이 아닙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이 졸업장이나 따고, 부동산이나 물려주 는 것만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부정을 져 질러야 하고, 탈세를 하면서 까지 재산을 물 려주려고 혈안이 된다는 것은 더 더욱 성경적일 수가 없습니 다. 그래서 성경은 자녀 양육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잠언서를 보면 이 양육문제에 대해서 집중적 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 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 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읽어 드린 말씀은 그 핵심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경건한 자식으로 기르는 일" 입니다. 잠언 1:7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야 그것이 참 인간이 라" 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식을 키우는데는 이 점을 알 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보십시요. 이 시대의 특징은 두려워 해야할 대상이 없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 다. 선생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른을 두려워하다 않습 니다. 심지어는 하나님도 두려워하다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별일이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세상입 니다. 무서울 것이 없는 세상은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 래서 이 세상이 이렇게 거칠어 졌고, 포악해 졌고, 삭막해진 것입니다. 신앙인의 교육에는 제 1조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데" 제 일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야 그 자식이 세상을 경건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요.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가 서 온갖 유혹을 뿌리칩니다. 나중에는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 며 하는 말이 "내가 어찌 죄를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까" 하고 말합니다. 이같은 집요한 유혹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의지가 주는 힘도 아니고, 양심이 주는 힘도 아닌, 이 "근본을 아는 힘" 때 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지식의 근본" 이라고 했습 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이고 부모의 할 일 입니다. 두 번째는 "경건한 부모가 되는 일"입니다. 8절을 보면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가 경건을 만들어 주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경건해야 가정도 경건하게 되고, 가 족 모두가 경건하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경건이 없는 시대입니다. 가정에도 경건이 없고, 사회에도 경건이 없고, 심지어는 교회에까지도 경건의 모양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요즘 오랜지족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왜 오랜지족이라고 했나 하고 곰곰이 생 각해 보니까 애들이 싹이 노랗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 아 닌가 생각됩니다. 옛 말에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 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싹이 그렇게 좋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오랜지족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돈이 많은 집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하루 에도 용돈을 수 백만원씩을 쓰며 돌아 다닌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돌아 다니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 아이들의 부 모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들입니까. 어떻게 생긴 사람들 이길래 돈을 그렇게 많이 줘서 아이들을 밖으로 내 보내는 것 입니까. 그 부모들의 가슴 속에, 생활 속에, 정신 속에는,과 연 무엇이 들어 있는 것입니까. 경건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이 있겠습니까,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시대에 많 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드는 속되고 타락된 가정 부재의 모습들 입니다. 백만장자의 집안이라도 그곳에 경건이 없으면 경건한 자식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경건한 가정 속에서, 경건한 사회 속에 서, 경건한 교회 속에서, 그리고 경건한 부부 사이에서, 하나 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부모는 무엇보다도 경건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보면 "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듣고,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예례미야서 35장을 보면 하나의 경건한 전통있는 가문이 소 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문은 레갑의 족속인데 이 레갑의 가문 은 자손 대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조가 술을 입에 대지 말라는 강력한 유훈을 자 손들에게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 유훈을 따라서 그 자손들은 대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전통을 세워서 자손들이 이를 즐 겁게 지켜서 경건한 가문을 형성해 갑니다. 그래서 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칭찬까지 받았던 족속입니다. 얼마나 좋은 유산입니까. 그래서 부모는 경건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 번째는 "경건의 본을 보아는 일"입니다. 경건에는 셋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경건입니다. 주일날 만 되면 별 일이 있어도 그날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모 습이 부모에게 있어야 합니다.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일 하고 주일 아침이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깨끗한 옷차림으로, 하나 님을 찾아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엄숙하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 입니다. 자라나는 자손들에게 있어서는 이같은 부모들의 모습을 통해 서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슈바이처는 회고 록에서 말하기를 "나는 어렸을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서 예배 에 참석하는 동안에 그 엄숙한 분위기에서 경건을 배웠다" 고 술회했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경건의 본 입니다. 두 번째는 경건한 삶을 보여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는 아버 지가 어머니를 존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머 니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모습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을 존대하는 모습이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경건 한 삶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경건은 다음 세대로 이 어져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언어가 왜 그렇게 거칠어 졌습니까. 그 책임 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들이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거친 대화의 내용이 어 린아이들의 대화습관에 그대로 적용이 되어 나타나게 된 것입 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경어를 쓸 줄을 모르니까 밖에 나가 서도 경어를 제대로 쓸 줄을 모르고, 제대로 인사할 줄도 모릅 니다. 안에서 경건이 없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경건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는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 한 장에도, 장식해 놓은 장식물 하나에도, 오고가는 대화 한 마디 속에도,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본 입 니다. 네 번째는 "실생활에서도 경건의 본을 보이는 일" 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 입니 까. 그것은 열심히 일을 할 때라고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 그곳에는 부정도 없고, 문제도 없습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럴만한 여유도, 생각도, 유혹도, 찾아오지를 않습니다. 문제는 그곳에 삶에 대한 성실 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청소부에게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청소부인 것이 늘 마음에 떳떳치가 않습니 다. 언제나 창피하고,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나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새벽 일찍이 어김없이 일어나 서 일을 나가십니다. 어느 날인가 그날은 밤새 열이 나서 앓다가 새벽이 되었는데 또 일어나서 일을 나가십니다. 안타까워서 함께 따라 나갔던 아들은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눈여겨보는 동안 그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성실한 모습을 발견했고,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철저하게 일 하시는 그 모습에서 비로소 존경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 고 나서 한 말이 "나는 청소부인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고 고 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됐지 않습니까.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장성한 아들의 마음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존경 스러운 모습으로 비추어졌다면 그만 아닙니까. 창기 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준다고 해서 존경이 주어지 는 것입니까. 아니면 고리대금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다 준 다고 해서 더 나은 존경이 주어질 것입니까. 부모는 자식이 크건 작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스승이고 교사입니다. 그래 서 실생활에서도 경건을 심어 주어야 할 뿐 아니라 경건한 삶 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경건은 위에서 아래 도 내려가고, 대를 이어 경건의 가문이 형성될 뿐만 아니라 대대로 경건한 자손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같은 축복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나타나고, 가정 속에 나타날 수 있기를 기원 합니다. 출처/이정익목사 설교 중에서
경건한 자손 /말2:15
경건한 자손 /말2:15 2008-01-25 06:37:56 read : 31 세계 모든 사람이 애창하고 있는 노래 중의 하나가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입니다.“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속에 가정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가정은 편히 쉴 수 있고, 즐거움을 나누는 곳이며, 서로 사랑하는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상한 것은‘즐거운 나의 집’을 지은 존 하워드 펜이라는 사람은 한 번도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 노랫말을 지은 곳은 프랑스 파리였는데 동전 한 푼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 때 이 노랫말을 지었습니다. 그는 한 평생 결혼도 하지 못했고, 집도 없었고, 아내의 사랑과 자식에 대한 소망도 가져보지 못한 채 일평생을 지구 이 구석 저 구석을 방황했습니다. 그 후 그는 튀지니에서 머무는 집도 없이 길거리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얼마 후 그의 시체가 그의 고향인 워싱턴에 있는 오크 언덕에 이장 되었을 때 무덤이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진 유일한 집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일평생 가정이 어떠한 곳인지 모를 법한 그가 어찌하여 그토록 가정을 예찬하고 있는가 하는 점인 것입니다. 한 평생을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그가 왜 가정을 노래하고 있을까요? 대개 가진 자는 가진 것에 대한 행복을 바로 알기 어려운 법입니다. 가정을 가진 지상의 수많은 사람이 가정의 행복을 가슴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가정을 갖지 못한 사람은 가정을 뼈저리게 그리워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도 가진 것에 대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기 일 수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를 볼 때, 그 들은 조국에서 살 때에는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잃어버리고 포로 생활을 하면서는 날마다 조국 산천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 우리는 내게 있는 것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간 사회의 조직 중에 가정보다 더 아름다운 조직은 없습니다. 공산주의는 가정위에 국가를 군림시켜 인간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사악한 집단이었습니다. 반면 자본주의는 물질로 가정의 행복을 사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이 또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정은 생활의 중심점이요, 역사의 기원점이며, 삶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승점입니다. 인류 역사는 에덴의 한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가정은 우리의 영과 육이 자라는 터전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화목 정신을 실현하는 경건의 교육장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가정을 통해서 신앙 계승이 이루어지며, 인간의 삶을 지키는 최후 보루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교육자였던 페스탈로치는“기독교의 위대함은 국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통해서 나타난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것이 가정입니다. 오늘의 현실을 볼 때, 집(house)은 점점 넓고 편리하게 지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home)은 점점 피폐해져 가고 있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상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했습니다.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구성원은 자녀입니다. 자녀는 가정의 기쁨이요, 소망이며, 부모의 보람이기도 합니다. 5월 첫째 주일인 오늘은 교회에서 지키는 어린이 주일입니다.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을 피우는 아기의 모습은 분명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어린이 주일을 꽃주일이라 고도 합니다. 인류 역사상 첫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인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나중 여자인 하와를 만드시기 전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세기 2:18) 고 하셨습니다. 외롭지 않도록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셔서 가정을 이루도록 하신 것은 부부 두 사람의 행복만이 아닙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말라기 12:15)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드신 것은 대를 이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一. 하나님께서 왜 경건한 자손을 원하실까요? 경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인간의 본분입니다. 인간 창조의 목적입니다. 여기 있는 이 마이크는 소리를 증폭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저기 있는 피아노나 오르간은 아름다운 소리로 찬양을 돕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자녀를 주신 것은 대를 이어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건한 자손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시면서 영광을 받으시며 기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사무엘상 23:30)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존중히 여겨 복을 내리시지만, 경건치 못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경멸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멸시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앞날이 어떻겠습니까? 파멸밖에 없습니다. 유태인들은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기보다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라.”고 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시겠습니까? 재산입니까? 하나님은 그보다 더 소중한 근원적인 복을 유산으로 물려주기를 원하시며 본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건한 신앙입니다. 미국의 명문인 프린스턴대학교 설교학 교수인 블랙우드는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남겨야 할 세 가지 유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기쁜 기억의 유산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정에서 좋은 기억을 가지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기억이 있으면 죄악 가운데서도 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들의 정성을 다해 주일을 성수하는 모습,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모습,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 어른을 존경하며 공경하는 모습, 남을 돕는 모습 등은 아이들에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둘째, 좋은 습관의 유산입니다. 아이들의 생일날 음식점에서 낭비하는 모습보다 아이들과 함께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서 인자를 베푸는 추억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셋째, 높은 생의 목표의 유산입니다. 자녀들에게“우리 아버지는 교회에 나가지만 돈을 위해 산다.”는 등의 기억을 남겨주는 것은 불행이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삶,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이웃에게 봉사하는 높은 이상의 삶을 아이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면서 자라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이러한 고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유산이라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석유 재벌이었으며 자선사업가 이기도한 록펠러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경건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배운 것은 초등학교 교육뿐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록펠러로 하여금 경건한 자녀로 성장시키고자 10가지 교훈을 철저히 가르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② 교회의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③ 주일 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④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⑤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⑥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⑦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⑧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⑨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와라. ⑩ 예배 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교훈은 록펠러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일생을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경건한 록펠러를 남달리 사랑하셔서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 二. 어떻게 하면 경건한 자손으로 키울 수 있겠습니까? 1. 철저한 성경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의 교육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 되게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16-1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간곡히 당부하시기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명기 6:6-7). 하셨습니다. 이 신명기 6장 6절 이하의 말씀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배를 시작할 때마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나이가 4~5세쯤 되면 이 말씀을 암송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암송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옛날 이스라엘 나라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성경을 잘 읽으려고 하지 않자 널빤지 위에 꿀로서 성경을 써두고 그것을 혀로 핥아먹도록 했습니다. 꿀로 된 성경 글씨를 핥아 먹으려면 저절로 그 성경을 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까지 자녀들에게 성경을 읽히고자 노력했습니다. 철없이 꿀을 먹고자 읽은 성경이지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경건하게 자라났습니다. 장성한 후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은 그들은 고백하기를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편 119:103) 라고 했습니다. 요즈음처럼 자녀교육에 깊은 관심을 보인 때도 일찍이 없었습니다. 과다한 사교육비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녀교육을 위해 안정된 직장까지 사표를 내고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녀교육을 위해 기러기 가장이 된 가정도 많습니다. 물론 자녀교육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회교육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경건한 신앙교육입니다. 사회교육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육으로 경건한 자손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부모의 사명입니다. 사무엘상 2:21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의 어릴 때 성장과정을 기록하기를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자랐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성전을 중심해서 자랐다는 것과 성경말씀을 중심해서 배우고 익히며 자라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장한 사무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사무엘상 2:26에 기록하기를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을 받도록 자라는 것이 이상적 인간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은 열심인데 사람들에게 본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웃에게 덕이 되지 못합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대인관계는 원만한 것 같은데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소홀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무엘이었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존경하며 따랐습니다. 이러한 사무엘에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 혼란스러웠던 나라를 바로 세웠습니다. 2. 부모의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3:28에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를 위해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쌓인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을 주지 아니한 화초가 시들듯, 기도해주지 아니한 자녀의 심령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 곁에 가까이 계십니다. 신명기 4:7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가 쌓인 자녀 곁에는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반면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지 아니하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 곁에는 하나님 대신 악한 영, 어두움의 영이 머물러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어두움이 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악한 영이 범접 하지 못하도록 위하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자녀 곁에 항상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훌륭한 인물 들 배후에는 반드시 기도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배후에는 눈물로 기도한 어머니 라헬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한 모세의 배후에는 한을 앉고 기도한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사무엘의 배후에는 술 취한 여자로 오해를 받을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한 어머니 한나가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아들처럼 사랑한 훌륭한 목회자 디모데의 배후에는 기도한 어머니 유니게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역사의 훌륭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뒤에도 반드시 숨은 기도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많은 교육을 시킨 것으로 부모의 사명을 다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 새싹 같은 자녀들이 비뚤어지기 전, 어긋나기 전, 죄악에 사로잡히기 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 방법은 자녀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프리마우스 항에는 l백2명의 청교도들이 타고 왔던 메이플라워호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1620년 그들이 지어놓은 우람한 예배당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찾아서 그곳에 와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예배당부터 지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하나, 둘 죽어감에도 기어코 예배당을 완공했습니다. 그리고 I년 동안 농사를 하여 그 추수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추수감사주일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뿌린 감사와 희생의 씨로 말미암아 그들의 후손은 오늘의 최대 강국인 미국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유럽인들 가운데 황금을 찾아 남미로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다지를 찾아 나섰고 마침내 황금 덩어리를 캐냈습니다. 당시 북미로 갔던 청교도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재산을 보유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손은 지금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황금이 제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는 무엇이 자녀들에게 더 큰 유산인지를 깨닫게 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찾은 사람들은 후손 대대 번영과 복을 누리지만 황금을 찾아 나선 사람들은 오히려 가난과 전쟁 속에 시달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남기기를 원하십니까? 큰 아파트를 남기시렵니까? 아니면 부귀와 영화를 남기시렵니까? 무엇을 남기려고 준비하고 있고 또 소망하고 있습니까? 역사의 위대한 인물 뒤에는 반드시 숨은 기도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도 이렇게 자녀들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무엇보다 기도와 눈물을 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귀한 믿음의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야 말로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깊이 되새겨야할 부모의 사명이며 지혜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3. 부모의 모범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4에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하셨습니다. 훈계란 말로 하는 것이며, 교양이란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훈계만 하지 말고 습관화된 교양으로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그 아비의 그 아들, 그 어미의 그 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딸을 보려면 먼저 그 어머니를 보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경건한 자손, 인간다운 인격은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먼저 삶의 본을 보일 때 가능하기 때입니다. 영국 속담에 “아이들은 뒤에서 배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서 가르치는 말은 잘 들리지 않아도 부모가 하는 일은 등 뒤로 보지만 어느새 습관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자손은 부모가 먼저 본을 보이는 경건한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랍비 코츠커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해서 당신은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게 만드셨습니까?" 그러자 랍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형제, 당신이 진실로 그것을 알고 싶어 하신다면 내 알려 드리지요, 먼저 형제가 하나님께 최대한의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형제의 아들들은 자연히 그것을 보고 배울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이런 내용의 찬송이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있지 않고 기억합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그때 일은 지나고 나의 눈에 환하오 어머니의 말씀 기억하면서 나도 시시때때로 성경말씀 읽으며 주의 뜻을 따라 살려 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이 찬송은 1893년 윌리암스 목사가 어린 시절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듣던 성경말씀과 또한 시시때때로 어머님이 읽으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회상하면서, 어머니께 물려받은 낡은 성경을 바라보며 지은 찬송입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고 계시지 않지만 믿음의 본을 보이신 어머니의 신앙과 교훈은 아들의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는, 자녀들이 자란 후 학교에 가서 공부하므로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보통 유아 아동기를 3단계로 분류합니다. 0살~2살, 2살~4살, 4살~6살로 나눕니다. 첫 단계인 0살에서 2살까지는 감정 발달기로 이 시기에는 주로 어머니를 통해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 영향은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최대의 선생님입니다. 2살~4살까지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로서 아버지가 절대적인 선생님입니다. 0살~4살 사이에 인간의 기본 인격의 50%가 이루어지고, 4살~6살 사이에 기본 인격의 30%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만 6살까지 인간의 기본 인격 80%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현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리 우는 페스탈로치도 만 3살~5살까지 기본 인격의 80%가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갓난아기들이 말은 못해도 어머니의 표정을 구별하여 그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릴 때에 부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이유는, 사람의 두뇌가 파이프로 되어 있는데 보통 사람은 그 파이프 수가 40본~60본이며, 천재는 그 수가 200본 가량 된다고 합니다. 보통 두뇌가 형성되는 0살~3살까지가 65%, 3살~10살 사이에 30%, 10살~20살 사이가 5%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0살~10살 이내에 두뇌의 95%의 파이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두뇌에서 제일 먼저 기억되는 것이 지, 정, 의 혹은 희로애락(喜怒哀樂)등의 기본 인격 요소가 이때에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학에 의하면 사람이 먹는 음식과 인격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10살 이전에 우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도덕성과 두뇌 발달에 모유를 먹고 자란 아이에 비해 둔화 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모유를 먹이지 아니한 부녀자들에게는 유방암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히브리어의 어머니란 말의 뜻은 “건축기술”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경건한 신앙인격을 이루는 건축가가 곧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건축은 글로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서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손과 발로서 일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경건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녀는 부모의 모범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편 127:1~5).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아니하시면 경건한 자녀 양육은 허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경건한 모습으로 양육된 자녀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경건한 자녀 위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자녀들을 경건한 자녀로 양육하기 위해 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철저한 교육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②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③ 먼저 본을 보이는 부모님의 경건한 신앙생활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경건한 자손/잠1:7-9/어린이주일/2004-03-14
경건한 자손 잠1:7-9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첫째주일은 어린이 주일이고, 둘째 주일은 어버이 주일이고, 셋째 주일은 성년주일 입니다. 그래서 5월은 가정을 생각해 보는 달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귀한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입니다. 혈육이 있고, 부모가 있고, 자녀들이 있는 곳, 그리고 마음껏 편히 쉬고 생활할 수 있는 곳, 그곳이 가정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Sweet Home 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의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5월은 우리들로 하여금 모처럼 가정을 생각해 보게 하는 달입니다. 부모님을 생각해 보고, 자녀들을 생각해 보고, 어린이의 귀중함을 생각해 보고, 청년을 생각해 보는 그런 계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국교회가 일제히 어린이 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어린아이의 존재를 생각해 보고, 어린아이의 양육문제를 생각해 보고, 어린 어린아이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사랑을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주일입니다. 옛날에는 이 날을 꽃 주일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어린 아이 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이 웃는 모습을 들여다 보십시요. 거기에 티가 있습니까, 거짓이 있습니까. 꽃도 그런 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분명히 꽃 중의 꽃입니다. 이 꽃을 꽃주일 날에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것을 헌아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헌아식을 하는데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아이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육하겠습니다” 하는 다짐입니다. 그 어린아이에 대한 양육책임이 부모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아이가 하나님을 알고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겠습니다”하는 약속입니다. 이를테면 이 아이의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을 심어 주는 양육을 하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아이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아이로 키우겠습니다“ 하는 서약입니다. 이것이 헌 아를 하는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 아이가 커서 그같은 부모님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갖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바쳐진 아이로구나” 그 아이가 평생 어떻게 그것을 잊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을 보면 부모들이 이렇게 마땅히 할 일에는 무관심하고 엉뚱한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잘 못된 방향으로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보십시요. 오늘은 자식이 원수인 시대입니다. 어떤 검사는 대학생인 아들이 돈을 받고 대리시험을 치르는 바람에 공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어떤 장관은 자식을 특례입학 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들여서 부정입학 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구속을 당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어린아이에게 상속해 주었다고 해서 공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자식이 부모의 몸에 칼을 대기까지 합니다. 부모를 죽입니다. 부모의 돈을 탐해서 부모를 죽이기까지 합니다. 옛 말에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그 말을 실감할 것입니다. 자식에 대한 애착은 어느 부모에게나 다 있습니다. 오늘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대해서 얼마나 애착이 많습니까. 좋은 학군을 따라 무리를 해 가면서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면 옛날 맹자의 어머니는 비교도 안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같은 과보호적인 자식에 대한 애착은 그것이 사랑에서 나온 애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성서적이 아닙니다.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이 졸업장이나 따고, 부동산이나 물려주는 것만으로 인식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부정을 져 질러야 하고, 탈세를 하면서 까지 재산을 물려주려고 혈안이 된다는 것은 더 더욱 성경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녀 양육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잠언서를 보면 이 양육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 만큼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 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읽어 드린 말씀은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경건한 자식으로 기르는 일” 입니다. 잠언 1:7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야 그것이 참 인간이라“ 는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식을 키우는데는 이 점을 알게 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를 보십시요. 이 시대의 특징은 두려워 해야할 대상이 없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른을 두려워하다 않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도 두려워하다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별일이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세상입니다. 무서울 것이 없는 세상은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이렇게 거칠어 졌고, 포악해 졌고, 삭막해진 것입니다. 신앙인의 교육에는 제 1조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데“ 제일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야 그 자식이 세상을 경건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요.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 가서 온갖 유혹을 뿌리칩니다. 나중에는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며 하는 말이 ”내가 어찌 죄를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까“ 하고 말합니다. 이같은 집요한 유혹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의지가 주는 힘도 아니고, 양심이 주는 힘도 아닌, 이 ”근본을 아는 힘“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지식의 근본“ 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이고 부모의 할 일 입니다. 두 번째는 “경건한 부모가 되는 일”입니다. 8절을 보면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가 경건을 만들어 주라는 말입니다. 부모가 경건해야 가정도 경건하게 되고, 가족 모두가 경건하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경건이 없는 시대입니다. 가정에도 경건이 없고, 사회에도 경건이 없고, 심지어는 교회에까지도 경건의 모양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요즘 오랜지족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왜 오랜지족이라고 했나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애들이 싹이 노랗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옛 말에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싹이 그렇게 좋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오랜지족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돈이 많은 집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용돈을 수 백만원씩을 쓰며 돌아 다닌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돌아 다니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 아이들의 부모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들입니까.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길래 돈을 그렇게 많이 줘서 아이들을 밖으로 내 보내는 것입니까. 그 부모들의 가슴 속에, 생활 속에, 정신 속에는,과연 무엇이 들어 있는 것입니까. 경건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있겠습니까,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드는 속되고 타락된 가정 부재의 모습들 입니다. 백만장자의 집안이라도 그곳에 경건이 없으면 경건한 자식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경건한 가정 속에서, 경건한 사회 속에서, 경건한 교회 속에서, 그리고 경건한 부부 사이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 태어납니다. 그래서 부모는 무엇보다도 경건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보면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듣고,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예례미야서 35장을 보면 하나의 경건한 전통있는 가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문은 레갑의 족속인데 이 레갑의 가문은 자손 대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조가 술을 입에 대지 말라는 강력한 유훈을 자손들에게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 유훈을 따라서 그 자손들은 대대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전통을 세워서 자손들이 이를 즐겁게 지켜서 경건한 가문을 형성해 갑니다. 그래서 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칭찬까지 받았던 족속입니다. 얼마나 좋은 유산입니까. 그래서 부모는 경건을 가르쳐야 합니다. 세 번째는 “경건의 본을 보아는 일”입니다. 경건에는 셋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의 경건입니다. 주일날만 되면 별 일이 있어도 그날은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의 모습이 부모에게 있어야 합니다.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일 하고 주일 아침이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깨끗한 옷차림으로, 하나님을 찾아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엄숙하게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본 입니다. 자라나는 자손들에게 있어서는 이같은 부모들의 모습을 통해서 알게 모르게 깊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슈바이처는 회고록에서 말하기를 ”나는 어렸을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서 예배에 참석하는 동안에 그 엄숙한 분위기에서 경건을 배웠다“ 고 술회했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경건의 본 입니다. 두 번째는 경건한 삶을 보여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존중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존경하는 모습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을 존대하는 모습이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 경건한 삶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 경건은 다음 세대로 이어져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의 언어가 왜 그렇게 거칠어 졌습니까.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들이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거친 대화의 내용이 어린아이들의 대화습관에 그대로 적용이 되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경어를 쓸 줄을 모르니까 밖에 나가서도 경어를 제대로 쓸 줄을 모르고, 제대로 인사할 줄도 모릅니다. 안에서 경건이 없으니까 밖으로 나가서 경건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 안에는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 한 장에도, 장식해 놓은 장식물 하나에도, 오고가는 대화 한 마디 속에도,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본 입니다. 네 번째는 “실생활에서도 경건의 본을 보이는 일” 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가 언제 입니까. 그것은 열심히 일을 할 때라고 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면 그곳에는 부정도 없고, 문제도 없습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럴만한 여유도, 생각도, 유혹도, 찾아오지를 않습니다. 문제는 그곳에 삶에 대한 성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청소부에게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청소부인 것이 늘 마음에 떳떳치가 않습니다. 언제나 창피하고,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나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새벽 일찍이 어김없이 일어나서 일을 나가십니다. 어느 날인가 그날은 밤새 열이 나서 앓다가 새벽이 되었는데 또 일어나서 일을 나가십니다. 안타까워서 함께 따라 나갔던 아들은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눈여겨보는 동안 그 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성실한 모습을 발견했고,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철저하게 일 하시는 그 모습에서 비로소 존경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한 말이 ”나는 청소부인 아버지가 존경스럽다“ 고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됐지 않습니까. 그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장성한 아들의 마음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비추어졌다면 그만 아닙니까. 창기 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 준다고 해서 존경이 주어지는 것입니까. 아니면 고리대금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어다 준다고 해서 더 나은 존경이 주어질 것입니까. 부모는 자식이 크건 작건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스승이고 교사입니다. 그래서 실생활에서도 경건을 심어 주어야 할 뿐 아니라 경건한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경건은 위에서 아래도 내려가고, 대를 이어 경건의 가문이 형성될 뿐만 아니라 대대로 경건한 자손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같은 축복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나타나고, 가정 속에 나타날 수 있기를 기원 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자/히5:11-14/어린이주일설교/2006-05-05
경험하지 못한 자 히5:11-14 어린이들의 긍정적 특성 가운데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은 부모만 의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감정이 오래 가지 않는 것은 문제만 해결되면 금방 웃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솔직함은 꾸미지 않는 특성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특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에게는 부정적 특성들이 나타납니다. 나누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기것이라 함으로 뺏는 특성이 있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은 모이면 서로 할퀴는 특성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를 바라보지 못하고 남만을 바라보는 특성으로 자기가 잘못하는 것은 모르고 일러 바치기만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또한 사소한 것 가지고도 감정를 극대화 시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는 특성으로 나타납니다. 본서는 익명의 저자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진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가 히브리인들을 바라보면서 한탄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한탄하게 된 동기는 히브리인들이 오랜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어린애와 같이 성숙하지 못하고 원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숙하지 못한 신자를 본문에서는 어린 아이로 비유되어 젖을 먹는자이며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하는 미숙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될텐데..”라고 하면서 누군가로부터 계속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히브리인들이 오랜 신앙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이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였는가를 알아 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이 믿음에 믿음을 더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자 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통해서 어린이들의 부정적 특성을 통하여 우리들이 더욱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검약보다도 더 귀한 것은 나눔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정주영, 86살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밟아온 자취를, 국내에서는 물론 전 세계가 ‘신화’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유품가운데 ‘골드스타’ 상표의 29인치 구형TV, 양복은 춘추복 한 벌로, 구두는 굽에 징을 박고 신고 다녔습니다. LG 그룹 구자경 회장. 생산현장을가장 잘 이해하는 경영자. 스스로 연구하고 현장을 뛰는 경영자. 그는 "작은 것부터 아껴라", "뭉칫돈나가는 건 표가 나서 신중해지지만 작은 돈은 그렇지 않다. 작은 돈을 쓰는데 더 신중해야 한다" 는 특유의 금융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하여 연매출 1600억원을 올리고 있는 아가방. 20년간 유아용품 업계에서 지켜온 부동의 1위. 아가방 대표 김욱사장, 그가 현재까지 오게 된 성공의 밑바탕에는 작은 것부터 아끼는 실천이 있었습니다. 이면지에 결재서류를 올리지 않으면 떨어지던 불호령. 다 쓴 볼펜심을 가져와야지만 심을 바꾸어 주는 검약정신. 바닥에 떨어진 클립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김욱사장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도 있는 큰 부자의 검약정신은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할 사람은 나누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검약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존M. 템플턴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금융인 중 한 사람으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 신탁 자금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혼 초에 아내와 함께 집을 꾸미면서 경매에 나가 10센트에 의자 한 개, 25센트에 테이블 하나, 이런 식으로 25달러를 가지고 그들의 신혼집을 꾸몄습니다. 15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의 1달러당 50센트를 따로 떼어 놓고 그것을 투자했습니다. 그는 <템플턴 상>을 만들어 매년 인류를 위해 종교적으로 큰 업적을 이룬 인물에게 상을 만든 것을 위시하여 남에게 베푸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검약하여 그가 투자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 경험치 못한 미숙한 생활에서 떠나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을 했어도 조금도 신앙의 진보를 엿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해가 거듭해도 조금의 신앙의 변화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분명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려고 하지 않는 자였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의 진리를 새롭게 발견하지 않는 사람, 새로운 기독교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분명코 신앙이 성장될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짓은 농부의 예를 든다고 한다면 농부가 새로운 농법의 기술, 새로운 농기구를 거절하고 옛날의 전례적인 방법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면 지금의 세계적인 추세에서 뒤지고 말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항상 새로운 말씀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가까히 하여야 하고 익히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오늘날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의 행태를 보면 그 동안 우리 부모나 어른들이 어떻게 키웠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다고 볼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어린아이들과 오늘의 청소년들은 이기적이고 나약하며 예의가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쉽게 그들은 분노하고, 쉽게 그들은 포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나다니면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치졸하고 유치한 언어의 사용, 무질서하고 무례한 행동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고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고, 앞으로 변화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까지나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어른들입니다. 실쭉거리거나 곧장 화를 낸다거나 자기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린 아이같으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성인이라면 참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회안에도 어린아이들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앙의 년조를 보아서는 성인이지만 행동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청순하고 깨끗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지 못한 부진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어른답게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지금도 어린이들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들과 같은 어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교회안에도 어린아이와 같이 성숙치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듯,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천상의 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뿐 아니라 구원해 주시고 날마다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 매우 물질적이고 자기 중심적입니다. 성숙한 기도는 자기를 반성하고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를 합니다. 또한 쉽게 상처를 내기도 하고 쉽게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쉽게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면서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말로 인한 상처, 교만으로 인한 상처, 궨한한 상처를 쉽게 주기도하며 쉽게 입게도 합니다. 또한 쉽게 나뿐 습관을 생활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어린아이들은 특별히 어른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변화되기 보다는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배우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에 관한 글을 수집하면서 「어린이들은 그들의 생활을 배워간다」라는 무명의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어린이가 비난 속에서 생활하면 비난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적대의식 속에서 생활하면 싸움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조소속에서 생활하면 수줍음을 배우게 되며, 수치스러움 속에서 생활하면 죄의식을 배우게 되며, 관용속에서 생활하면 인내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격려속에서 생활하면 자신력를 배우게 되고, 칭찬속에서 생활하면 감사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공정함 속에서 생활하면 정의를 배우게 되며, 안정속에서 생활하면 믿음을 배우게 되며, 인정을 받으면서 생활하면 자기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배우게 되며, 관용과 우정속에서 생활하면 이 세상의 사랑을 배우게 된다” 3. 어른들이 반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5월 첫 주일을 꽃주일이라고 하여 어린이주일로 교회마다 지내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 새싹들을 격려하고 축하해주는 날입니다. 이날은 어린이들을 격려하고 특별히 어른들은 어린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각성의 기회로도 삼습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행동은 사실상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많이 있습니다. 서울 장위 초등하교에서 운영하는 걱정상담실에서 상담실 개설 1주년을 맞이하여 걱정의 문제들을 분석한 결과 친구들로 인한 고민과 걱정이 33%이고 어른들과 부모에 대하여 고민과 걱정거리가 40%를 차지하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오래전 농촌교회에서 목회할 때 어버이 주일에 농촌교회 어린이들에게 앙케이트 조사를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싫어질때는 언젠가?”라는 제목을 가지고 조사를 하였는데, 10가지로 다양하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의 표현대로 말씀을 드리면 “①되지게 맞았을 때 ②부모님이 싸울 때 ③일을 시킬 때 ④잠에서 깨울 때 ⑤심부름을 시킬 때(특별히 밤에 과자, 담배, 술, 돈갖다 주라고 할 때 ⑥집을 내 쫒을 때 ⑦아프지도 않은데 병원가자고 할 때 ⑧공부하라고 할 때 ⑨부모님들이 술.담배 하실 때, 10)밤에 아무도 안계실 때”등이었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먼저 교회에서 믿음생활을 먼저 한 사람들로서 초신자들에게 덕을 끼치지 못한 것들을 회개하고 자각하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회개하고 자각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의 뜻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 후회 또는 가책의 감정, 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번 어린이주일을 통하여 믿음이 더욱 성숙해져서 장성한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