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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 시127:1-5/ 송년주일설교/ 2002-12-27
1년 동안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 시127:1-5 일년을 마무리하는 주일입니다. 오늘도 거룩한 주님의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 다같이 은혜 받을 말씀은 \\\"일년동안 보호하심에 대한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대개 이웃을 돌아보며, 한해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한해동안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풀어준 이웃에게, 교역자에게, 가족들에게 선물도 하고 감사도 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사람들은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불우 이웃을 방문도 합니다. 이렇게 연말이면 사람들은 웬지 감사할 사람들을 찾고, 은혜 베풀어 줄 사람들을 찾습니다. 하지만 참으로 이렇게 넉넉한 연말인데도 유독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인색합니다. 이웃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정작 감사드려야 할 예수님에게 소홀해진 것입니까? 그러나 이 시간에 가장 먼저 감사 드려야 할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이 한해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기에 이리저리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는 조건들이 있는 것입니다. 1. 내 영혼과 육체를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시기 바랍니다.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했습니다. 1)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십니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자녀에 대한 걱정, 사업으로부터 오는 염려, 경쟁 사회를 살면서 오는 시기와 질투, 이웃에 대한 미움과 불화 등 우리 성도들이 신앙을 잃고, 구원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마음 고생들이 여간 많지 않습니다. 이런 심령의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우리가 믿음을 상실하지도, 구원을 잃어버리지도 않고 능히 영혼을 굳건히 보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연약한 처지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시고, 강한 두 팔로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한해동안 우리 영혼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합니다. 2)우리의 육체를 지켜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해동안 육신의 건강함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흔히 자신의 육신이 강건하고, 또 튼튼하여 질병 한번 앓지 않는 것이 모두 자신의 치밀한 건강 관리 덕분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로병사, 길흉 화복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참새 한 마리 죽고 사는 문제까지 하나님의 절대 권한에 달려 있다면 사람의 건강, 질병, 죽음, 출생 이 모든 것들이 어찌 인간의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이루어진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한해동안 병을 앓지 않고 건강하게 지낸 성도는 건강을 주신 데 감사합시다. 그리고 질병을 앓았지만 회복한 성도는 질병 때문에 시험에 들지 말고 그 후에 회복케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합시다. 그리하여 모두가 육신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가정을 지켜주셨습니다. 대하 6:15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되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1)의식주를 책임져 주셨습니다. 성도는 한해동안 가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먼저 성도는 가정의 의식주를 책임져주신 가장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공중의 새 한 마리, 들의 풀 한 포기까지 하나님이 먹이사 입히신다 하셨습니다. 이렇듯 천하의 미물들까지도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신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또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면서까지 구원하신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야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도는 바로 이런 하나님의 먹이고, 입히시는 은혜로 한해를 지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맙시다. 아무리 생활력이 강해도 하나님이 의식주를 책임져주지 않으시면 결코 누구도 이 땅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집을 떠나 거리를 떠도는 이들이 많습니다. 먹고, 입고, 살아야 할 집이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2)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평안을 주십니다. 최초로 가족 제도를 만드시고, 가정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많은 자손들이 번성하고, 또 믿음의 자녀들이 번창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측면에서 말틴 루터(Lutter)의 말대로 성도의 가정은 작은 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성도 개인뿐만 아니라 성도의 가정도 항상 평안하고,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기를 간절히 소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가정은 곧 하나님 나라의 일부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전진 기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가정이 평안하도록 지키고 보호해 주십니다. 일 년을 돌이켜 보면서 한해동안 우리의 가정이 그리스도의 평안 가운데 안식을 얻었다면 이는 필시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요즘처럼 가정의 순결이 위협받고,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는 세상에서 어찌 우리의 가정이 평안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년동안도 가정을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3. 하나님은 우리 검상교회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1)우리 검상교회를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지켜주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하나님은 늘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주십니다. 교회는 성도들 전체를 말합니다. 우리교회 성도들 모두를 하나님은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과 사상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 눈에 보여주지는 교회를 하나님은 책임지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치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터로 삼고 굳게 서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우리 교회에 물질에도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해보다 30%의 재정을 더 결산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다른 교회는 재정이 줄었다고 합니다. 특히 시골지역 교회들은 재정이 적자라고 합니다. 줄어든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30%나 더 많이 나왔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여러분, 내년에는 여러분 가정과 직장과 생업에 놀라운 축복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종이 기도대로 한 달에 100만원 이상 십일조하는 성도들이 많이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선교도 하고 노인대학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4. 우리나라를 지켜주셨습니다. 시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라고 했습니다. 1)우리나라의 국경을 지켜주셨습니다. 국가가 아무리 많은 군대를 보유하고, 첨단 과학 무기를 갖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면 이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고백하기를, 잠언 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가 지난 일년동안 남북한과 또는 다른 나라와 아무런 전쟁이나 국경 분쟁 없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보호하심 덕분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한해를 회고하면서 감사하되 특별히 국가를 지키고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2)우리나라에 평화를 보장하셨습니다. 아무리 대외적으로 국가가 튼튼해도 대내적으로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분쟁과 불법이 난무한다면 그 나라는 내부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회의 공의를 세우시고, 또 사회에 질서를 세워주지 않으시면, 나라에는 반란이 일어나고,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옛날 북 이스라엘 초창기 역사가 이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버리시니, 북 이스라엘에는 내란과 반란이 수없이 발생했고 사회는 잠시도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한해동안 국내적으로 큰 변고없이 지냈다면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일년동안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국가가 평안한 것이 인간의 탁월한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0년의 종말(終末)/ 딤후4:3-8/ 송년주일설교/ 2000-12-31
2000년의 종말(終末) 딤후4:3-8 2000년은 오늘로 영원히 종말을 고하고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새로운 일년이 시작되는데, 우리는 새로운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마지막을 가리켜서 때가 가깝다 혹은 종말이다 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0~11절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 하였습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때가 가깝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때에 관하여 매우 민감한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6, 18절과 로마서 13장 11~12절의 말씀을 통하여 때를 강조하였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6)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1~12) 바울은 2000년을 끝내고 2001년의 역사가 전개되는 시점에 있는 우리를 향하여 마지막 때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세 가지 현상에 관하여 증거 하였습니다. 1) 마지막 때가 되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변질됩니다. 디모데 후서 4장 3절에서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하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크리스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크리스천이 어떻게 변질이 됩니까? 바른 교훈을 받지 않게 됩니다. 반면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기쁘게 들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게 들리며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 들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복이 없기 때문에 바른 교훈을 듣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논산훈련소에 가서 2,235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논산훈련소의 참모장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요즘 군대에 오는 청년들은 옛날의 청년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옛날 청년들은 훈련을 받다가 힘이 들면 탈영을 했는데 지금은 자살을 합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어려움이 있어도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서를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결단과 의지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때가 되면 약해져서 이러한 일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2) 마지막 때가 되면 귀가 가려지게 됩니다. 이것은 들을 수 있는 귀가 막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들리고 싫어하는 것은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회의 목사는 이혼이나 간음에 관한 설교를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목사나 장로나 교인이나 말할 것 없이 전부 이혼을 떡 먹듯이 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목사가 주례를 할 때 “오늘 내가 주례하는 이 부부는 평생동안 이혼하지 말라”하고 말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이혼율이 엄청나게 높기 때문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조그만 것도 서로 참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고 헤어집니다. 왜 부부가 멀쩡한 아이들을 낳고서 헤어져야 합니까? 이것은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자신을 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을 넓게 열어라 내가 채워주겠다”, “마음 문을 열어라 내가 성령을 부어주겠다” 따라서 귀가 열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3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러므로 여러분은 내가 전하는 말씀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3장 16~17절에 의하면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세 가지 징조가 있었습니다. ①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 것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말라기 선지자 이후 하늘 문이 막혀서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 침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보다 육개월 전에 미리 온 세례 요한은 다음과 같이 전파하였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 예수님으로 인해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그 침묵을 깨뜨릴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②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습니다. ③ 하늘에서 소리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TV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을 하고 있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TV수상기와 라디오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끊임없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못 듣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일 복이 있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하나하나 잘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가장 복있는 사람입니까? 3) 마지막 때가 되면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게 됩니다. 나에게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공격하는 사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열린 어느 이사회에서 사회를 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일어나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발언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저런 소리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발전을 합니다.”하고 말하자, 발언을 하던 사람이 이야기를 중단했으며 상을 찌푸렸던 사람들도 좋아했습니다. 그 회의는 보통 5~6시간이 걸리는 회의였는데 그 날은 2시간 10분만에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친 후 사람들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사회를 잘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원래 사회를 못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사회를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셔서 사회를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바른 말을 듣지 않는 까닭은 자기의 욕심에 끌리는 이야기를 하면 ‘아멘!’하고, 자기에게 해로운 이야기를 하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 때가 되면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게 됩니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가지 말고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연습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마지막 때에 우리는 어떤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 모든 일에 근신해야 합니다. 나는 감리교 본부로 7시 30분에 출근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린 후 업무를 시작합니다. 역대 감독들은 한 달에 한 두 번 출근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상근하는 직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리교의 지도자가 뛰어야 따라오는 사람이 걸어오고 지도자가 걸어가면 따라오는 사람은 기어가며 지도자가 기어가면 따라오는 사람은 아예 누워버립니다. 근신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고 부자런해야 합니다. 근신하며 기도하고 말씀 보아야 합니다. 둘째, 전도인의 일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부흥할 수 없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도인이 되어서 주일에 교회에 올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면 교회는 자연히 부흥합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전도인이 됩시다.”하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1월 첫 주일에 올 때 한 사람씩 꼭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만약 데리고 올 수 없으면 여자들은 아기를 낳으세요.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양자라도 기르시기 바랍니다.” 셋째,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합니다. 목사는 목사의 직무가 있고 장로는 장로의 직무가, 권사는 권사의 직무, 집사는 집사의 직무가, 성도는 성도의 직무가 있습니다. 부목사의 보고에 의하면 금년에 우리 교인의 가족이나 친척 중에서 돌아가신 분이 32명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노인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장례를 치른 분은 31세인 분으로서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우리 교회에 올 때에는 어떤 병이 들었든지 간에, 여기서 신앙생활을 잘해서 전부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14~15절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35년 전에 우리 교회에 와서 가난한 집을 심방할 때마다 이와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복을 두었다가 무엇을 합니까? 복을 흔들어서 눌러서 넘치게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현실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광규 장로님이 부장으로 있는 경조부 부원들이 늘 모여서 어려운 일을 당한 이들이나 혹은 결혼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감격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박수를 쳐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가서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세월은 쏘는 화살처럼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딤후 4:6) 바울은 이처럼 사명의 종말을 고하면서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1) 선한 싸움을 다 싸웠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악한 싸움이거나 남을 망신주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선한 것을 만들기 위한 싸움입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내내 일등으로 달렸어도 결승점을 1m 남겨놓고 쓰러지면 우승을 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절대로 도중하차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생활과 아멘의 생활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생활을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을 지켰습니다. 한결같은 믿음을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찬송가 133장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 무궁히/ /한결같은 주 예수께 찬양합시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자는 그 결과로서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이러한 종말의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아멘 -
2008년을 기억하자 /신8:1-10
2008년을 기억하자 /신8:1-10 2008-06-25 14:55:48 read : 298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엊그제 신년을 맞이한 것 같은데 벌써 송년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은 금년 마지막 주일로서 지나간 1년을 돌이켜 보면서 지난 한 해 동안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바 은혜를 다시 한 번 감사하고 되새기고 또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과 신명기 서를 보면 “기억하라” 는 말씀이 10번이나 기록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신명기 중에서 오늘 분문 말씀으로부터 10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 때에 광야 40년 동안의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8:2절의 말씀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겪은 가지가지의 시련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는 것입니다. <예> 우리나라의 천안에 가면 독립기념관이 있듯이 이스라엘 나라에도 독립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는 글귀가 있습니다. 그들은 A.D70년 로마의 티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한 후에 전 세계로 유랑을 하는 민족이 되었고 세계 제2차 대전 때에 독일로부터 참으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아우슈비츠 형무소와 마이다네크, 베르체크 형무소에서는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 명을 가스실에서 질식시켜 학살을 하였고 주사 또는 총살을 하여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1948년 그들이 독립을 한 후 저들은 나치 독일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저들은 굳게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은 오늘날까지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40년의 역사는 문자 그대로 시련의 역사였습니다. 40년은 한 세대에 해당하는 세월입니다. 이와 같이 기나긴 세월을 소비한 이유는 단 한가지뿐입니다. 3절 말씀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단순한 진리 한 가지를 가르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40년의 세월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광야는 사방으로 열려있는 공간입니다. 이 넓은 광야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는 곳입니다. 그런 반면에 광야는 많은 위험이 존재하고 아직 개발되지 않는 미지의 거친 땅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에 저들은 하나님의 약속과 위험을 동시에 체험을 하였습니다. ① 홍해의 막힘이 있는가 하면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있었고, ② 목마른 기갈의 위험이 있는가 하면 반석에서 생수가 터지는 역사도 일어났고, ③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림의 위험이 있는가 하면 만나의 양식을 날마다 새벽마다 공급받는 신비의 체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④ 하나님을 반역하다가 불 뱀에 물려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때도 하나님은 구원의 상징인 구리 뱀을 장대에 세워 바라보기만 하면 구원받는 체험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광야는 위험과 은혜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위험과 약속, 시련과 은혜, 절망과 소망, 흑암과 빛이 교차되는 곳으로써 위기와 긴장의 장소인 광야에서만 진정한 신앙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우리들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상황과 환경과 현실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광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나간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은 결코 무의미하거나 고생만 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이 살아온 것이 아니라 항상 때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보호하심이 함께 하신 것이며 또한 축복의 약속을 받은 아주 소중한 은혜의 체험이기 때문에 그 40년의 세월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모세는 무엇을 기억하라고 하였는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 광야생활에서 겪은 「고난을 기억하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중에 어떤 때가 자신의 인생에 유익을 주느냐 하면 모든 일이 잘 되고 안일 할 때가 아니라 환난과 고난과 역경 중에서 자신들이 더욱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오늘날까지 축복을 받고 살면서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하던 것을 기억하고 지냅니다. 인도의 간디는 말하기를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의 원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란 인간의 살아가는 과정에서 뺄 수 없는 한 과정입니다. 프랑스의 물리학자요 철학자인 파스칼은 말하기를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더욱 깊고 위대하게 만드는 도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도구를 통하여 인간은 연마되고 신앙은 빛을 내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는 자에게는 정금과 같이 빛나지만 고난에 패하는 자는 그 고난이 멸망의 재난으로 바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에 이르기를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 40년의 시련을 이겼기 때문에 그 시련은 금과 같이 옥과 같이 진주와 같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2. 광야생활에서 체험한「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1) 출애굽의 기적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이 주는 교훈은 4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하나님의 강한 팔로 구원하여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내라고 할 때 그의 마음이 강퍅하여 보내지 않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더욱 고역을 시켰습니다. 그와 같은 바로에게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내렸고 마지막 열 번째 장자가 죽는 재앙이 애굽 전역을 휩쓸던 날 밤 애굽 전역에는 곡성이 진동을 하였습니다. 바로의 왕으로부터 천한 종들에게까지 장자가 죽임을 당하였고 심지어는 기르는 육축의 새끼들에게까지 첫 새끼가 모두 죽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마침내 바로는 하나님께 항복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구원의 상징인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재앙을 면하고 이른 새벽 드디어 애굽을 탈출하게 됩니다. 이 놀라운 기사와 이적을 행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온 출애굽의 역사를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애굽이 있습니다. 그 애굽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들의 영과 육을 사로잡아서 종처럼 부리고 억압하고 죄악입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죄의 종이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들의 모든 죄악이 사하여 졌고 그 죄악에게서 탈출하게 된 것입니다. (2) 험한 길을 통과한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걸어온 길은 참으로 험한 길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단 한 명도 그 길을 가본 사람이 없습니다. 낯선 길을 가려면 길을 잘 아는 안내자가 있든지 아니면 지도라도 있어야 찾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네비게이션이라는 길 찾아주는 기계가 생겨서 낯선 길이나 초행길도 잘 찾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안내자도 없고 지도도 없이 기나긴 여정 길을 갔습니다. 다만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바로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하시는 증거이며 저들을 인도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마치 광야의 길을 가는 어려운 생활과 같습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어려운 길을 걸어갈 때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가기만 하면 우리가 가는 영원한 가나안땅, 하나님 나라에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면 갈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불평과 원망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서 저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광야에서「만나로써 먹여주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가장 염려되었던 것이 의, 식, 주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를 하나님이 모두 해결하여 주었습니다. 저들이 애굽에서 출발할 때는 구운 양고기 얼마와 그리고 무교병 조금뿐이었습니다. 많이 있어야 사흘 분의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이 배고플 때 만나를 내려 주셨고, 목마를 때 물을 주셨고, 또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먹은 만나(Manna)는 작고 둥글며 깟씨 같고 진주 모양처럼 생긴 것으로,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거나, 솥에 삶아서 먹을 수 있는 식량이었습니다.(출16:14, 민11:7-8) 그러나 이것은 땅에서 생산된 땅의 소산물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준 하늘 양식이었습니다. 무려 2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물이나 음식이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을 지켜 오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들은 광야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매일 내리시는 하늘 양식인 만나를 먹음으로써 그들의 생명을 지탱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4) 40년 동안「의복이 헤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은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 말씀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와 같은 일은 전무후무한 기적입니다. 어떻게 1년 2년도 아닌 수십 년간 입은 옷들이 떨어지지를 않습니까? 그리고 그 험한 광야 길을 걷는데 어찌 발이 부르트지를 않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분이십니다. (마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3. 하나님은「사랑으로 징계하시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지 2년 동안 천신만고 끝에 가데스바네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12명의 정탐꾼들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였으나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가나안 땅이 좋은 곳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하였고 나머지 열 명은 그곳 가나안 땅을 악평하여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 말에 실망한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 고 하였습니다. 이 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작당을 하여 백성을 충동질을 하였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고라 일당과 그의 가족들을 생매장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살라 죽였습니다. 또 이 반역의 사건으로 인하여 단 며칠이면 가나안 땅에 진입할 수 있던 것을 가지 못하고 무려 40여년을 광야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고통스런 40년의 광야생활은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깊이 내면적으로 생각하여 보면 하나님은 이 고통의 기간 동안, 시련의 순간들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더욱 낮추시고 시험하시며 그들에게 순종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여기서 ‘시험’ 이란 인간을 넘어뜨리려는 사단의 악한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택하신 백성들을 더욱 성숙시키고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연단(test)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고통과 채찍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더욱 온전한 인격과 더욱 굳센 신앙으로 단련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단 과정에 놓인 성도는 불평 대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깊이 이해하며 겸손히 그 상황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히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4.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 갔을 때에「모든 축복을 허락하실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6-10절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어떤 곳입니까? (신8:7-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너의 후손들에게 주리라고 약속한바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이미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일곱 족속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곱 족속들을 모두 멸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가나안 땅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렇게 좋은 땅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보다 더 좋은 땅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땅을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 땅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그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신 가나안은 어디입니까? 바로 천국입니다. 그 천국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희생을 하십니까? 천국은 힘쓰고 애쓰는 자가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믿음 가지고는 천국을 갈 수가 없습니다. 살아서 약동하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 더욱 힘쓰고 애쓰는 믿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하늘나라 가나안을 소망하고 광야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에게 주신 말씀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광야의 여정에서 탈락하지 않고 무사히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험과 연단과 환난의 과정을 잘 통과하여야 합니다. 오늘이 금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병술년이 다가고 정해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2006년의 송년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들도 지난 1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해 주시며 우리와 함께 역사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006년 한 해 동안 날마다 시간마다, 그리고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이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섭리 중에 우리가 살아온 것입니다. 환난이나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시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억하여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이 고난 중에서도 나를 통하여 역사하심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서도 역사 하십니다. (시81:7)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셀라)” (시140:12)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2) 나를 통하여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능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로를 꺾으시고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게 하시고 반석에서 샘물을 주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능력을 어찌 다 열거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살아 계셔서 오늘의 나와 여러분을 통하여서도 능력으로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르신 것처럼 오늘의 여러분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과 섭리를 이루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나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도 기억하여야 합니다. (히12: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난 한 해 동안에 아프고 쓰라린 때가 있었습니까? 슬픈 일을 당하였던 때가 있었습니까?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실패를 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기억하고 깨달아야 할 것은 그와 같은 고통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역사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며 낙심치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은 환난이 변하여 축복과 은총이 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환난 중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 고통 속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 할 때에 우리를 징계하시사 아프게 하시다가도 싸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6년도에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국내외적으로 유난히도 어려움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더욱이 농촌은 참으로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에 영원한 가나안 하나님의 나라 새 예루살렘을 허락하실 것이며 은혜와 평강과 영생과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갈등과 포용/ 마22:15-22/ 송년주일설교/ 2008-12-28
갈등과 포용 마22:15-22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쉽지 않다. 2008년을 마무리 하는 오늘 한해를 돌아볼 때 세상과의 얼마나 긴장 관계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사업하시는 분이면 2중 장부의 문제가 자신의 마음을 두드렸을 것이고, 교육을 하시는 분이면 세상의 가치관으로 가르치느냐? 참된 예수님의 정신으로 교육을 했느냐의 문제가 힘들었들 것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라면 세상의 기준으로 가르치느냐, 말씀의 기준으로 가르치느냐 갈등이 공존했다. 오늘 진급을 하는 학생들 학교에서 기독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싶지 않다. 주일날 학원에 오라고 한다. 혼자 가지 않으면 도퇴되는 느낌을 받는다. 주일날 학교로 오라고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권위를 세우려고 용서를 하지 않는다. 주일날 앞날을 위하여 시험을 치러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 주일날 시험을 치러가면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취급한다. 그런데 주일을 지키다가 회사에 취직을 못한 사람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정답은 나와 있다 그런데 막상 나의 현실이 되면 힘들어 진다. 이것이 요즘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진리가 세상에 들어오니 세상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주님은 21장과 22장에 걸쳐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신다. 그 비유에 반기를 들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따진다. 오늘 본문은 화가 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잡고자, 자신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을 예수님께 보낸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좀 더 첨예하게 대립된다. 1.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공격: 갈등 바리새인들은 최고의 정통주의 자들이다. 이방 왕에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하나님의 신권을 침해한다고 분개했다. 한편 헤롯 당원은 로마의 힘을 빌려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한다. 갈릴리의 왕 한편 헤롯의 일파로서 로마에 적극 협력하는 자들이다. 서로 정치적인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을 어려움에 빠드리려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참으로 우리의 정치판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지만, 이익을 위해서 공조한다.) 이들은 함께 주님을 공격하고 있다. 이들은 사상적 논쟁점은 차이가 있다. 그런데 연합전선을 구축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반대세력과 연합한다. 이러한 의기투합하는 것은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려고 한다. 악을 도모하는 이유는 세상적인 관심이다. 높아지려는 본성이다. 세상적인 가치관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권위, 절대적인 권위의 상승을 싫어한다. 자신들의 세상적인 권위가 위축되니 그들은 반론의 제기할 수 밖에 없다. 기존 질서에 새로운 질서가 들어오니 기존 질서 속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 자들이 긴장한다. 갈등이 야기된다. 놀라운 것은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 악을 모의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 것은 참으로 교묘하다. 원하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빠져나갈 수 없는 말로 선수를 친다. 악의 교묘함이다.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 하심이니이다” 참으로 간사하고 교묘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양자택일을 권한다. 가이사이게 바치면? 신성모독이다.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잃을 것이다. 사람들이 세금을 내는 것을 싫어했고, 특히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싫어했다. 하나님께만 바치면? 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세금을 지불하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한다면 선동자로 잡히게 될 것이다. 진퇴양난에 빠뜨려 예수님을 매장하기 위함이다. 진퇴양난의 질문이다. 추구하는 바가 다른 이들이 모인 이유는 한 사람을 매장하기 위해서이다. 오늘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우리 공동체에 질문을 던져 본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모이고, 우리는 모여서 어떠한 뜻을 추구하고 있는가? 신앙의 성숙인가? 신앙을 갉아먹고, 한 사람을 매장하기 위함인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다.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일 년을 돌아보면서 그러했다면 이 시간 회개할 수 있길 바랍니다. 나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나의 부서가 드러나지 않고, 나와 관계된 공동체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혹 불만을 가지고 책잡기를 원했다면 그것은 주님이 싫어하시는 바리새인들의 가식적인 모습과 동일하다. 그러한 모습이 나에게 있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나에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주님께서 우리를 함께 모이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다. 제자를 부르신 이유는 주의 뜻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모습이라면 그 자리에서 떠나는 용기가 있길 바란다. 내가 남을 비방하기 위하여 모였다면 그 자리가 바로 바리새인의 자리요 헤롯당원의 자리이다. 그 자리는 그리스도인의 자리가 아니라, 음모를 모색하는 권력에 눈이 먼 자리이다. 그렇게 된다고 한다면 교회 속에도 갈등이 생긴다. 그것은 자신의 위치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리만 있을 뿐이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은 자신들의 자리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위기를 느꼈다. 이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의 자리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하여 불안해한다면, 그것은 신앙을 오해하는 것이다. 나의 자리가 사라져도 주님의 권위가 드러나면 감사할 수 있는 자의 모습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다. 주님과의 관계에서 자꾸 세상적인 것을 요구한다면 갈등이 유발될 수 밖에 없고, 음모가 난무한다. 그러한 모습에서 벗어나야 진실된 공동체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되어 간다. 참된 신앙의 성숙이 우리에게 풍성하길 소망합니다. 잘못된 갈등에서 벗어나는 은혜가 이 가운데 임하길 소망합니다. 서로 다른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함께 와서 주님께 자신들의 음모의 전모를 드러낸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2. 예수님의 대응: 포용 이러한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그들의 진의를 보신다. 로마제국에서 요구하는 세금에서는 3종류가 있다. 토지세 곡물의 10분의 1, 자기가 생산한 기름과 포도주의 5분의 1을 내야한다. 소득세이다. 수입에 대한 100분의 1이다. 그 다름이 인두세이다. 14~65세까지의 모든 남자들이 낸다. 12~65세까지의 모든 여자가 지불하는 세금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두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들에게 받고 있는 고통을 대변해준다.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세금 낼 돈을 보이라 하신다.” 로마동전이다. 거기에는 황제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묘사하는 문구가 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금을 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이 동전을 사용하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그러데 동전을 보이라고 하자. 그들은 데나리온을 가지고 왔다. 그들이 동전을 가져왔다는 것은 동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가져올 수 있었다. 그들 스스로가 그들의 신념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알고 계신다. 그러나 주님은 흥분하지 않는다. 외모로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그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한다. 냉철함을 유지하신다. 주님은 냉철하게 그들의 진의를 파악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주님은 둘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양자택일의 입장에서 둘을 선택한다. 둘을 포기하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 땅의 평화도 원하신다. 이웃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동일하게 보여주신다. 그 절정이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다. 그리고 주님은 마태복음 17장 27절에서는 주님은 성전세도 내셨다. 주님은 세상의 것을 포용하신다. 주님께서는 문제를 품으심으로 해결하신다. 어느 하나를 포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으신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계신다. 우리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용감한 자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인은 양쪽을 품는 자이다. 세상 반 이 땅 반 이렇게 물리적으로 반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님께서 이 땅을 사랑하신 사랑으로 품는 것이다. 모든 것에 이러한 품음이 나타나길 원하신다. 갈등의 원인은 품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배척이고, 자신의 잘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칼은 없지만 날카로운 모습으로 주님께 다가왔다. 그런데 주님은 품으셨다. 주님은 우리도 품어주셨다. 우리는 일 년을 보내며, 모여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우리의 욕심을 찾을 때도 많았다. 그러기에 갈등도 있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송년주일을 허락하셔서 삶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주님 앞에서 다짐하게 하신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품어주시고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죄인의 무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사랑으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우리도 품어주셨고 용서해주셨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았지만, 사랑으로 보둠어 주셨다. 품어 주심의 은혜가 이 가운데 있다. 우리의 삶이 품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양자택일에서 품으시는 주님을 보면서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이중적인 시민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시민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간다. 내가 단지 대한민국 국민으로만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면 그는 이 땅의 사람이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자기 국가에 참된 국민이며 또한 하늘나라의 좋은 시민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자이다. 주님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살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셨다. 이러한 모든 품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다. 주님은 이 땅을 사랑의 마음으로 보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주님의 성육신은 곧 이 땅을 품으심이다. 우리는 이제 진급을 한다. 그것은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내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가이사, 하나님의 나라와 대한민국에서 어느 한편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의 역사적 책임을 완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님도 그것을 원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그는 범법자요!? 비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나는 예수를 따라가고 있는가? 가이사를 따라가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권력하에 있지만 당당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지에 답을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세상을 초월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가운데 살아가면서 세상의 변화의 주역이 되길 원하신다. 능력있는 크리스챤은 세상의 법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묵살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법을 준수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과 가이사, 신앙과 권력, 하나님 나라와 세상, 신권과 인권 사이의 갈등이다. 예전에는 신권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의 과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리를 우리가 찾아드려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작은 결단과 노력에서 시작한다. 예수님의 답변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포용한다. 주님의 사랑의 깊이가 우리의 삶이 되실 소망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갈등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사랑이 넘침으로 언제나 주님의 편에서 이 땅을 이끄는 우리의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가이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감사(1)/ 시95:2/ 송년주일설교/ 2010-12-27
감사(1) 시95:2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일년동안 과연 내가 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또는 또 한 살 먹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년동안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인도하여주신 것을 생각하면 지난 일년이 참 감사가 됩니다. 제 경우에는, 국현이가 일년동안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주신 아들로 인해 우리 가정에 행복을 주셨고, 일년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웠는데 수입이 전혀 없던 달도 있었고 살수가 없는 상황인데 매달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어요. 또 참 좋은 교회인 영화교회로 보내주셔서 지금 너무나 행복하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10년 사역하면서 사역을 가장 즐겁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잘 순종해주고 청년회에 헌신해주시는 여러분에게 또한 감사가 됩니다. 또 인격적인 발전, 자기개발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가장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점이 감사가 됩니까? 한명씩 한가지만 이야기해봅시다. 뭐 우리가 연말이나 연시때나 추수, 맥추감사절에만 감사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감사가 늘 생활화 되어야하겠지요.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햇는데 우리가 가끔은 이렇게 감사할 수 잇지요. 또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할 수 있죠. 장미를 들고는 감사할 수 잇지만 장미꽃 가시를 놓고는 감사하기 어렵죠.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는 감사는 내가 병들었을때도 내가 시험에 직장면접에 떨어져도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모가 연인이 하늘나라에 가도 감사하라는 것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있을까요? 하박국 선지자가 무화가 나무 열매가 없고 송아지가 없고 다 망해도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리라고 했는데,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일회용 기쁨이 일회용 감사가 아니죠. 둘째, 천국의 상과 천국의 기쁨을 생각하면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기쁨을 체험할 수 없지만 상상을 해봅시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천국의 기쁨을 지금 안주시는가 많은 이유가 있겟지만 하나님께서 천국의 기쁨을 주시면 우리가 죽어요. 그 기쁨을 우리 육신이 감당하지 못해서 죽어요. 여러분 너무너무 기쁘고 황홀하면 어때요. 힘이 쭉 빠지지요. 천국의 기쁨은 이 세상의 기쁨과는 차원이 다르고 종류가 달라요. 셋째,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비천함에 비해 아무리 비참한 상황도 은혜이기 때문에 어떤 부자가 아들이 멀리 공부하러 갔다가 돌아와요. 아버지가 아들을 마중나갑니다. 아들이 말을 타고 숲을 지나서 아버지도 말을 타고 사막을 지나서 약속한 곳에서 드디어 만났아요. 아들이 “아버지 건강하셨죠..그런데 아버지 이렇게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 참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오면서도 감사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숲을 지나오면서 나뭇가지에 걸려 말이 세 번이나 넘어졌어요.”“그게 어째서 감사할 일이냐”“네 세 번이나 말에서 떨어졌지만 저나 말이나 전혀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아들아 나도 참 감사한 일이 있다. 이렇게 사먹을 건너오는데 말이 한번도 넘어지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하냐?” 병에 걸려도 내 죄악이 또 하나님께서 은혜주시지 않는다면 사단이 네게 문둥병에 걸려야 되는데 죽어야 하는데 겨우 감기에 걸렸으니 하나님의 은혜아니에요. 넷째, 하나님께 감사하면 사람들에게도 감사가 된다 운동권 사람들보면 감사가 없는 것 같아. 원망 그리고 불평 비판이 가득하죠.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 사람들이 순박하긴 한데 그러면이 많다는거에요. 반면 서구 사람들은 감사에 대한 표현을 어려서부터 잘 가르치죠. 원망하면 그 가족에서 그 모임에서 행복할 수 없죠. 제 여동생이 임신중독에 걸려서 아이가 8개월 반만에 났어요 이름이 도현인데..인큐베이터에 들어가고 염증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아서 위험했어요. 그렇게 산모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생을 하면서 아이도 고비를 넘기고 몇개월 정도지나면서 건강해졌는데 또 한달전에 신우염에 걸려서 구멍이 굉장히 크게 났다는거에요. 그게 사돈어른이 아이를 거품목욕을 시켜서 그랬데요. 그리고 4,5살 될 때까지 항생제를 투여를 해야 한다는거에요. 지금은 굉장히 건강해졌는데 나도 앞이 캄캄해요. 동생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서 위로를 하면서 이런이야기를 했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엊그제 책을 보는데 어떤 목사님이 굉장히 온유하셔서 일환형제처럼 도무지 화를 안내시는 분이 있으신데 사모님이 바가지를 긁어도 또 사모님이 외출갔다가 잘 늦으시는데 화를 내는 일이 없다는거에요. 그러던 하루는 사모님이 연락도 없이 아주 많이 늦으셨데요. 그래서 아무리 목사님이 성격이 좋다지만 오늘은 화를 많이 내시겠구나 잘못했다고 삭삭 빌어야겠다하고 들어와서 ‘미안해요 제가 그만..’“아 왔군요 돌아와서 감사해요”그랬다는거에요. 사모님이 목사님이 비꼬는 말인지 알고 적반하장으로 화를 버럭 냈데요. ‘아니 차라리 화를 내요 비꼬지말고’ 목사님이 “당신이 늦어서 무슨일을 당하지 않았나 걱정을 많이 햇는데 이렇게 무사히 잘 돌아왔으니 감사하지 않아요”그랬다는거에요. 이런 친구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잖아요. 이런 전도사님을 준 것이 이런 지체들을 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잖아요. 내가 여러분 같은 지체들을 섬길 자격이 없다고요. 하나님께 감사 여러분께 감사해요. 여러분이 저같은 전도사 성민형제같은 회장 만날 자격이 없다고요. 민정자매같은 그룹장 만날 자격이 없다고요. 감사해야죠. 우리 서로에게 감사의 고백을 해봅시다. 한해동안 기도해주어서 고맙다.
감사로 매듭 지읍시다 /시116:12-19 2015-04-08 14:59:29 read : 4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마지막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참으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모든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시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를 발명했습니다. 시계입니다. 인간은 시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재고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그 시간의 매듭이 달력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십
감사로 매듭 지읍시다 /시116:12-19 2015-04-08 14:59:29 read : 47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마지막 주일예배로 드립니다. 참으로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모든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시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를 발명했습니다. 시계입니다. 인간은 시계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재고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그 시간의 매듭이 달력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 십 년, 세대, 세기라는 기간의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간의 매듭들 속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 역사입니다. 이런 시간의 매듭을 중심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각종 기념일로 만들어 그 사람의 역사를 만듭니다. 백일잔치, 돌잔치, 회갑, 칠순, 미수 등입니다. 볏짚으로 새끼줄 꼬는 것을 보면 볏짚 몇 가닥을 두 줄로 잡고 손으로 비벼 꼽니다. 볏짚이 끝나갈 때가 되면 다른 볏짚을 이어 가며 새끼줄을 꼽니다. 새끼줄을 다 꼬면 반드시 매듭을 짓습니다. 만일 밤새워 새끼줄을 꼰 후에 매듭을 짓지 않으면 꼬았던 새끼줄이 다 풀어지게 되어 밤새 꼰 수고가 헛수고가 됩니다. 하나의 새끼줄을 완성하면 반드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매듭을 잘 지어야 합니다. 한 해의 매듭을 제대로 지어야 한 해를 보내고 희망 안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2014년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 있는데 무엇으로 매듭을 짓고 싶으십니까? 한 해를 매듭짓는데 사용하고 싶은 것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한 해를 매듭짓는 것으로 감사의 끈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감사로 한 해를 매듭짓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사할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삶인데 무엇을 가지고 감사하라는 말이냐고 한숨을 짓습니다. 성경은 축복이 감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축복을 만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감사를 통해 축복된 삶을 만들어간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넘겼습니다. 그때부터 요셉의 인생은 고난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부유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요셉이 갑작스럽게 이방인의 노예로 팔렸습니다. 그는 애굽의 장군인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요셉의 성실함과 충성스러움을 보고 보디발 장군은 요셉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보디발 장군의 음란한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성실함을 보였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는 바로의 신하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왕의 신하들의 꿈을 해몽해 주었습니다. 그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신하는 감옥에서 나가는 순간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십여 년 동안 꼬일 대로 꼬이는 삶이었습니다. 억울하고, 고통스런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어렵고 억울한 상황에 놓여 있음에도 요셉은 원망과 불평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노예로 팔려 왔을 때에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아픔을 겪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로 매듭을 지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그를 애굽으로 팔았던 형들을 만났을 때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먼저 이곳으로 보내 아버지와 형님들, 그리고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할 때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음을 분명히 믿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원망과 불평 보다는 감사함으로 믿음의 꽃을 피우는 요셉을 들어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의 장을 새롭게 여셨습니다. 구약에서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록하는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입니다. 그 구원의 중심의 사건을 여는 자리에 하나님은 감사의 영성을 가진 요셉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자리에서도 감사의 꽃을 피우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며 그를 높이셨습니다. 감사하는 요셉과는 정반대의 길로 걸어가 멸망을 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참으로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연약한 그를 선택하셔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에게는 믿음과 성실함으로 무장되어 있는 요나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왕을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을 만큼 충성스런 모습을 보이는 청년 다윗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나라들을 사울 왕 앞에 무릎 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매우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감사함이 아닌 불평과 원망, 분노와 미움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은 그의 삶의 자리에 일어나는 사건도, 사람들의 관계도 불평과 원망으로 매듭을 만들어 갔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불평과 불순종으로 매듭을 만들어 갔습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매듭을 만들어 가던 사울왕은 전쟁터에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사건과 사람들의 매듭을 만든 결과입니다. 우리나라 야구 선수 중에 야수를 보는 선수가 미국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투수가 아닌 타자로서 미국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구에서 최고의 타자도 4할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야구 선수 가운데 백인천 선수가 4할을 넘기고 그 외에 아무도 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4할 대의 선수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실적으로 보면 10번 타석에서 6번은 아웃을 당하고 4번 안타를 쳐서 출루한 것입니다. 60%가 실패했고 40% 성공한 것입니다. 대부분 3할 대의 타자가 타격 상을 받습니다. 타석에서 70%를 실패하고 30%만 성공했습니다. 그것은 성공이 실패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10번 중에 3번만 성공해도 그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2할 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10번 중에 2번만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은 성적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한 해 동안 살아오면서 몇 할 대의 삶을 살았습니까? 4할 대 이상의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 계십니까? 아니면 아주 준수한 결과인 3할 대 삶을 살았습니까? 대부분이 2할 대의 삶을 살지 않았겠는가 생각합니다. 어느 분은 슬럼프에 빠져 1할 대의 삶을 사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야구의 안타 확률을 인생에 접목시켜 보면 모든 일에 다 만족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은 마음의 기쁨과 감사를 빼앗아 갑니다. 욕심은 도리어 원망과 불평을 만들어 냅니다. 10가지 결정 가운데 3가지 정도를 잘 결정했다면 대단한 판단력입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요즘 덕담이 ‘토닥토닥 쓰담쓰담’이라고 합니다. 힘든 삶인데 애를많이 썼다고 토닥여주자는 것입니다. 수고 많이 했다고 쓰다듬어 주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토닥토닥 쓰담쓰담’ 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기 보다 나에게 먼저 적용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나를 토닥토닥 해 주며, 쓰다듬어 주며 ‘일 년 동안 어려운 가운데서도 애를 많이 썼어. 수고했어, 잘 했어’ 나의 가족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 그리고 이웃들을 향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며, 쓰다듬어 주며 ‘참으로 수고 했습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당신이 옆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이웃에게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은 몇 할 대의 삶을 살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이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험난한 삶의 과정을 지나오면서 말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12절에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외칩니다. 그는 17절에서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사의 끈으로 매듭을 지으며 하나님 앞에 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4년도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실패한 것을 생각하며 불평과 원망으로 한 해의 시간을 매듭짓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운 것과 작지만 성공한 부분을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로 한 해의 시간을 매듭짓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로 한 해를 매듭짓는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로 맺는 매듭/시116:12-19
감사로 맺는 매듭/시116:12-19 2008-06-24 15:41:58 read : 334 벌써 2006년이 오늘로 끝입니다. 상투적인 말 같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야말로 2006년 신년주일 지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역사의 뒤안길로 배웅해 보내야 하니 말입니다. 현대 지성들이 참여해서 [시간의 박물관]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장을 현대 지성을 대표하는 움베르토 에코라는 분이 썼는데 제목이 “시간의 창조”입니다. 이 분은 이 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시간의 발견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가장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다.” 실제로 인간만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를 발명했습니다. 바로 시계입니다. 나아가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달력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1년 등. 그러면서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1 주년, 한 시대, 세기, 밀레니엄, 회갑, 희년 등. 이 시간 흐름의 매듭의 의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어려서 사랑방에서 볏짚으로 새끼 꼬는 모습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자 집에서 가져온 볏짚으로 새끼를 꼽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끼를 꼽니다. 배고프면 감자 고구마를 삶거나 구어 먹으면서 새끼를 꼽니다. 볏 집을 부드럽게 하려고 계속 손에 침을 뱉으면서 새끼를 꼽니다. 다 꼰 새끼는 깔고 앉기도 하고 등 뒤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새끼를 꼽니다. 새끼를 다 꼬고 나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반드시 매듭을 짓는 일입니다. 만일 매듭을 짓지 않으면 밤새 꼰 새끼가 다 풀어지게 되고 긴 밤 헛수고를 하고 말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듭을 잘 짓고 마무리를 잘 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시간 매듭의 의미가 우리의 소중한 역사로 아름답게 간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 삶의 더욱 풍성해 지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2006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매듭을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2006년 한 해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2006년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한 마디로 “감사”입니다. 감사라는 관점에서 2006년이라는 역사를 매듭지어 우리 인생의 역사 한 페이지로 장식해 보자는 것입니다. 감사로 매듭짓는다는 것은 감사로 매듭짓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한 해를 매듭짓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으로 살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가족들, 이웃들, 교우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의, 식, 주 부족함이 없이 생활하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또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서로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한 해를 매듭짓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 서로 도와야 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주의 종들과 교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신앙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고객과 이웃과 동료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식당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식당 주인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신선하고 제일 좋은 식재료를 준비하느라고 정말 큰 수고를 합니다. 밑반찬을 만드느라 여러 날 고생을 합니다. 당일 주 메뉴를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식당 주인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내가 이렇게 큰 수고로 음식을 만들었으니 당신들이 내게 감사해야 하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큰 수고를 했지만 “그렇게 많고 많은 식당 중에 우리 식당을 찾아주었으니 감사합니다.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찾아온 손님들은 “당신 식당을 찾아주었느니 감사해야 하오, 비싼 돈을 내고 당신 음식 사 먹어주었으니 감사해야 하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식당을 찾아왔고 돈 내고 음식을 사 먹지만 “여기 이런 가게를 열어주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큰 수고로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사란 이렇게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이렇게 상대방의 수고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다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두가 다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인정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다 당신 탓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마누라 탓이고, 남편 탓이고, 부모 탓이고, 자식 탓이고, 네 탓이고 당신들 탓이요”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 덕분입니다.”라고 말하며 한 해를 마감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볼 때 아무리 둘러 봐도 감사할 조건이 찾아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라고 소망하던 것이 하나도 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생각지 않았던 큰 불행이 닥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 한숨과 절망뿐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창 37장에서 50장까지는 요셉이라는 사람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도표로 그려본다면 영어 알파벳 V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인생의 전반기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여러 충격적인 사건으로 졸지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후반기는 또한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상치 못했던 사건으로 졸지에 저 하늘 가까이 올라가는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반기 대표적인 사건 몇 가지만 꼽아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요셉은 야곱이라는 당대 부잣집 아들로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남부러울 것이 없는 상태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됐습니다. 부잣집 아들에서 예고 없이 또 준비 없이 타국에 팔려온 노예 신세가 된 것입니다. 또한 요셉은 가정 총무로 있던 중에 모함에 걸려서 죄인이 되어 감옥에 수감되게 됩니다. 이제 졸지에 죄수가 되어 언제 어떻게 처벌 받게 될지 모를 처지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은 이런 설상가상의 불행이 겹쳐 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 던져진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비록 노예로 끌려왔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죄수로 옥에 갇혀있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결국은 자기의 앞길을 선하게 여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그토록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감사를 지켜줍니다. 믿음이 차원 높은 감사를 이끌어냅니다. 믿음이 선취적 감사를 만들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과 여건이 좋지 않으십니까?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까? 너무 힘이 드십니까? 상황과 여건을 보지 마십시오. 지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앞길을 복되게 펼쳐주실 하나님을 믿음의 눈을 열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앞 당겨서 감사를 드리십시오. 또 하나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볼 때 그 누군가와 맺힌 감정 때문에 감사할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큰 상처 때문에 감사가 자리 잡을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감사가 그 마음에 깃들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한 공동묘지는 특별한 묘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군과 적군이 함께 묻혀 있는 묘지입니다. 독불 전쟁 때 피차간에 많은 희생자가 났는데 전쟁은 계속됐습니다. 할 수 없이 시체들을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묻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위에 십자가를 세워 두었고 그 십자가 위에 전사자들의 군번을 걸어놓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프랑스군의 어머니가 군번을 보고 자기 아들의 묘를 찾았습니다. 가져간 꽃을 꼽고 한 없이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옆에 있는 묘를 보는 순간 독일군 묘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분명히 자기 아들이 이 독일 군 병사와 싸우다 여기 이렇게 무덤에 누어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 분노를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욕을 퍼 붓고 침을 뱉고 무덤을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순간 자기 아들 무덤에 세워진 같은 십자가가 이 독일 군 무덤에도 세워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단 사람들을 용서하시던 주님의 모습을 그 십자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독일군 병사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다시 무덤을 추스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무덤에 꼽았던 꽃을 반 나누어 이 병사의 무덤에 꼽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강물처럼 평안이 밀려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 감사가 그 마음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입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 십자가의 사랑으로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며 용서의 능력을 덧입을 때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입혔던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가 우리의 마음에 가득 넘치게 될 것입니다. 감사로 매듭지으면 우리가 이 한 해를 감사로 매듭지으면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내년 2007년의 삶이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우리 삶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선 주께로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 65:4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다윗은 어떻게 하든지 주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무엇보다 더 큰 복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 17-18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찌라” 시인은 감사하는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킵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을 주님 곁에 가 있게 해 줍니다. 감사는 우리를 주님의 뜰에 거하게 해 줍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감사 고백을 드리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 앞 가까이에 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몇 해 됐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특강을 청해서 정말 시간 내기 힘들었는데 선약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녀오게 됐습니다. 지방이어서 오후에 KTX를 타고 갔다가 강의 후 바로 기차를 타고 올라와야 했습니다. 다음날 스케줄도 꽉차있고 해서 몸도 마음도 무척 무거웠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기차에 올라 피곤에 지쳐 눈을 감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날라왔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오실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와 주신 것 감사하고, 귀한 강의로 먼저 제가 큰 도전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모든 피로다 다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 이름이 제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분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그분과의 관계는 훨씬 좋은 관계로 발전됐음은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작지만 깊은 마음의 감사는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줍니다. 그리고 마음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줍니다. 그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과거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로잡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특히 실패했던 과거는 우리를 덫처럼 옥조이게 만들고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과거의 덫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성 도덕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남자와 살다가 헤어지고 이제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여자는 지탄의 대상이 될 텐데 2000년 전에는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몰래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물을 뜨러 나올 때도 아무도 없는 정오 즈음에 나와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 때문에 죄사함을 받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주님께서 대한 감사가 솟구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과거를 딛고 일어설 힘을 줍니다. 감사가 과거의 덫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2006년을 보내야 할 시점입니다. 감사로 잘 매듭을 지어서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모두가 당신 덕입니다.” 인정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미움과 분노의 대상일지라도 용서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해에 더욱 복된 삶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감사로 맺는 매듭/시116:12-19 2008-06-24 15:41:58 read : 53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벌써 2006년이 오늘로 끝입니다. 상투적인 말 같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야말로 2006년 신년주일 지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역사의 뒤안길로 배웅해 보내야 하니 말입니다. 현대 지성들이 참여해서 [시간의 박물관]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장을 현대 지성을 대표하는 움베르토 에코라는
감사로 맺는 매듭/시116:12-19 2008-06-24 15:41:58 read : 539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벌써 2006년이 오늘로 끝입니다. 상투적인 말 같지만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야말로 2006년 신년주일 지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역사의 뒤안길로 배웅해 보내야 하니 말입니다. 현대 지성들이 참여해서 [시간의 박물관]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그 중 첫 번째 장을 현대 지성을 대표하는 움베르토 에코라는 분이 썼는데 제목이 “시간의 창조”입니다. 이 분은 이 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시간의 발견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가장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다.” 실제로 인간만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를 발명했습니다. 바로 시계입니다. 나아가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을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달력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1년 등. 그러면서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1 주년, 한 시대, 세기, 밀레니엄, 회갑, 희년 등. 이 시간 흐름의 매듭의 의미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어려서 사랑방에서 볏짚으로 새끼 꼬는 모습을 지켜본 일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자 집에서 가져온 볏짚으로 새끼를 꼽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새끼를 꼽니다. 배고프면 감자 고구마를 삶거나 구어 먹으면서 새끼를 꼽니다. 볏 집을 부드럽게 하려고 계속 손에 침을 뱉으면서 새끼를 꼽니다. 다 꼰 새끼는 깔고 앉기도 하고 등 뒤에 차곡차곡 쌓아가며 새끼를 꼽니다. 새끼를 다 꼬고 나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반드시 매듭을 짓는 일입니다. 만일 매듭을 짓지 않으면 밤새 꼰 새끼가 다 풀어지게 되고 긴 밤 헛수고를 하고 말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매듭을 잘 짓고 마무리를 잘 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시간 매듭의 의미가 우리의 소중한 역사로 아름답게 간직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 삶의 더욱 풍성해 지고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2006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매듭을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2006년 한 해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2006년을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중요한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한 마디로 “감사”입니다. 감사라는 관점에서 2006년이라는 역사를 매듭지어 우리 인생의 역사 한 페이지로 장식해 보자는 것입니다. 감사로 매듭짓는다는 것은 감사로 매듭짓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한 해를 매듭짓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으로 살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가족들, 이웃들, 교우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의, 식, 주 부족함이 없이 생활하게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또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서로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한 해를 매듭짓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 서로 도와야 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주의 종들과 교우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신앙 생활할 수가 없습니다. 고객과 이웃과 동료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감사로 매듭을 짓는 것입니다. 식당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식당 주인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신선하고 제일 좋은 식재료를 준비하느라고 정말 큰 수고를 합니다. 밑반찬을 만드느라 여러 날 고생을 합니다. 당일 주 메뉴를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식당 주인은 찾아오는 손님에게 “내가 이렇게 큰 수고로 음식을 만들었으니 당신들이 내게 감사해야 하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큰 수고를 했지만 “그렇게 많고 많은 식당 중에 우리 식당을 찾아주었으니 감사합니다.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그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찾아온 손님들은 “당신 식당을 찾아주었느니 감사해야 하오, 비싼 돈을 내고 당신 음식 사 먹어주었으니 감사해야 하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식당을 찾아왔고 돈 내고 음식을 사 먹지만 “여기 이런 가게를 열어주어 감사합니다. 그렇게 큰 수고로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감사란 이렇게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감사란 이렇게 상대방의 수고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다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두가 다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인정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상대방을 원망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다 당신 탓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마누라 탓이고, 남편 탓이고, 부모 탓이고, 자식 탓이고, 네 탓이고 당신들 탓이요”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 덕분입니다.”라고 말하며 한 해를 마감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볼 때 아무리 둘러 봐도 감사할 조건이 찾아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라고 소망하던 것이 하나도 된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생각지 않았던 큰 불행이 닥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 한숨과 절망뿐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창 37장에서 50장까지는 요셉이라는 사람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도표로 그려본다면 영어 알파벳 V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인생의 전반기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여러 충격적인 사건으로 졸지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후반기는 또한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상치 못했던 사건으로 졸지에 저 하늘 가까이 올라가는 이야기로 되어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반기 대표적인 사건 몇 가지만 꼽아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요셉은 야곱이라는 당대 부잣집 아들로 아버지의 총애를 받으며 남부러울 것이 없는 상태로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됐습니다. 부잣집 아들에서 예고 없이 또 준비 없이 타국에 팔려온 노예 신세가 된 것입니다. 또한 요셉은 가정 총무로 있던 중에 모함에 걸려서 죄인이 되어 감옥에 수감되게 됩니다. 이제 졸지에 죄수가 되어 언제 어떻게 처벌 받게 될지 모를 처지가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셉은 이런 설상가상의 불행이 겹쳐 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 던져진 상황에서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비록 노예로 끌려왔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비록 죄수로 옥에 갇혀있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결국은 자기의 앞길을 선하게 여실 것을 믿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이 그토록 불행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잃지 않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감사를 지켜줍니다. 믿음이 차원 높은 감사를 이끌어냅니다. 믿음이 선취적 감사를 만들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황과 여건이 좋지 않으십니까?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까? 너무 힘이 드십니까? 상황과 여건을 보지 마십시오. 지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의 앞길을 복되게 펼쳐주실 하나님을 믿음의 눈을 열고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앞 당겨서 감사를 드리십시오. 또 하나는 용서하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볼 때 그 누군가와 맺힌 감정 때문에 감사할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마음에 큰 상처 때문에 감사가 자리 잡을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감사가 그 마음에 깃들 수 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한 공동묘지는 특별한 묘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군과 적군이 함께 묻혀 있는 묘지입니다. 독불 전쟁 때 피차간에 많은 희생자가 났는데 전쟁은 계속됐습니다. 할 수 없이 시체들을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묻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위에 십자가를 세워 두었고 그 십자가 위에 전사자들의 군번을 걸어놓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프랑스군의 어머니가 군번을 보고 자기 아들의 묘를 찾았습니다. 가져간 꽃을 꼽고 한 없이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옆에 있는 묘를 보는 순간 독일군 묘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분명히 자기 아들이 이 독일 군 병사와 싸우다 여기 이렇게 무덤에 누어있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 분노를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욕을 퍼 붓고 침을 뱉고 무덤을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순간 자기 아들 무덤에 세워진 같은 십자가가 이 독일 군 무덤에도 세워진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자기를 십자가에 단 사람들을 용서하시던 주님의 모습을 그 십자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독일군 병사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다시 무덤을 추스릅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무덤에 꼽았던 꽃을 반 나누어 이 병사의 무덤에 꼽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강물처럼 평안이 밀려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 감사가 그 마음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입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 십자가의 사랑으로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바라보며 용서의 능력을 덧입을 때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입혔던 사람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사가 우리의 마음에 가득 넘치게 될 것입니다. 감사로 매듭지으면 우리가 이 한 해를 감사로 매듭지으면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내년 2007년의 삶이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우리 삶에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선 주께로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시 65:4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다윗은 어떻게 하든지 주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무엇보다 더 큰 복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 17-18을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을찌라” 시인은 감사하는 이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단축시킵니다. 감사는 우리 마음을 주님 곁에 가 있게 해 줍니다. 감사는 우리를 주님의 뜰에 거하게 해 줍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감사 고백을 드리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이미 하나님 앞 가까이에 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몇 해 됐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특강을 청해서 정말 시간 내기 힘들었는데 선약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녀오게 됐습니다. 지방이어서 오후에 KTX를 타고 갔다가 강의 후 바로 기차를 타고 올라와야 했습니다. 다음날 스케줄도 꽉차있고 해서 몸도 마음도 무척 무거웠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기차에 올라 피곤에 지쳐 눈을 감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날라왔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오실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와 주신 것 감사하고, 귀한 강의로 먼저 제가 큰 도전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모든 피로다 다 사라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 이름이 제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분을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그분과의 관계는 훨씬 좋은 관계로 발전됐음은 물론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작지만 깊은 마음의 감사는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어줍니다. 그리고 마음과 마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줍니다. 그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과거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로잡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특히 실패했던 과거는 우리를 덫처럼 옥조이게 만들고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과거의 덫에 사로잡혀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성 도덕적으로 문란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남자와 살다가 헤어지고 이제 여섯 번째 남자와 동거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이런 여자는 지탄의 대상이 될 텐데 2000년 전에는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몰래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물을 뜨러 나올 때도 아무도 없는 정오 즈음에 나와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 때문에 죄사함을 받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주님께서 대한 감사가 솟구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당하게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인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과거를 딛고 일어설 힘을 줍니다. 감사가 과거의 덫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주고 새해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 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2006년을 보내야 할 시점입니다. 감사로 잘 매듭을 지어서 보내시기 바랍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모두가 당신 덕입니다.” 인정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미움과 분노의 대상일지라도 용서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해에 더욱 복된 삶이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감사와 아쉬움 /잠22:29, 마25:20-21 2013-01-29 14:32:59 read : 30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2012년도를 은혜 중에 살았습니다.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해 동안 교회를 위해 수고하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시간은 엄숙한 법입니다. 마지막 시간이 되면 두 마음이 교차하게 됩니다. 한편 감사의 마음이 들고 또 한편 아쉬움의 마음이 들게 됩
감사와 아쉬움 /잠22:29, 마25:20-21 2013-01-29 14:32:59 read : 30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우리는 2012년도를 은혜 중에 살았습니다.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 해 동안 교회를 위해 수고하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 시간은 엄숙한 법입니다. 마지막 시간이 되면 두 마음이 교차하게 됩니다. 한편 감사의 마음이 들고 또 한편 아쉬움의 마음이 들게 됩니다. 본문은 그런 마음을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국에 출장가면서 종들에게 각각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장사해서 이익을 많이 남겨 돌아온 다음에 결산하자고 했습니다. 많이 남긴 종은 자신 있게 결산에 임하였습니다. “더 남겼나이다.” 얼마나 자신 있는 모습입니까. 그런데 적게 남긴 종은 망설이게 됩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책임을 물어 해고당하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종말을 예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25장을 보면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열 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 그리고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모두 결산과 심판과 얼마나 수고했느냐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연말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아주 잘 표현된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 심정은 어떠십니까. 물어보지 않아도 두 마음일 것입니다. 감사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모두 똑같습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일한 분도 있습니다. 열심히 일한 분이나 열심히 사는 분은 얼마나 남겼느냐 하는 문제는 그렇게 중요치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온 그 모습 자체가 복이고 은혜입니다. 본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이목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왜 이익을 남기지 못했느냐고 따지지 않습니다. 왜 노력을 하지 않았느냐를 따집니다. 남긴 것이 없어도 열심히 노력한 사람은 칭찬받아야 하고 상 받아야 합니다. 잠언22장 29절을 보면 “자기 일에 건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는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오늘 우리는 너무 이익에 집착합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고 살아온 사람들도 속이 상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고 일하고 노력한 사람은 얼마를 남겼느냐를 떠나 그 모습은 상 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새벽기도회 마치고 교회 앞 주변을 청소한 분들이 있습니다. 매 주일 차량 안내를 위해서 수고한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지하실에서 매연을 맡으며 때로 좋지 못한 소리를 들어가며 추운 날 밖에서 떨어가며 주차 안내한 분들이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또 매주일 1부 예배 찬양을 맡아 수고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매주일 아침 6시에 나와서 찬양 연습을 하고 예배 찬양 사역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중보기도팀도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나와 기도를 하였고 예배시간에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수고한 분들이 어찌 그뿐이겠습니까. 수고한 분들은 오늘 이 시간에 열심히 일했던 분들과 이익을 더 남긴 종들처럼 만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수고하는 분들에게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갚으실 것입니다. 우리교회 2012년도는 참 감사한 한 해였습니다. 금년은 우리교회가 은혜를 많이 입은 한해입니다. 장로직분을 임직하였습니다. 권사 35명이 임직되었습니다. 집사 87명도 임명되었습니다. 90명이 세례를 받았고 세례 받고 우리교회에 오셔서 입회하신 분이 445명입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교회 세례교인이 535명이 증가하였습니다. 장례는 58건이었고 결혼한 가정이 49가정입니다. 57명의 영아들이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신생아가 42명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12년도 한 해 동안 새신자가 742명이 등록되었습니다. 그중 청년이 332명으로 40%가 넘습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2012년도는 참 감사한 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은혜를 많이 주신 해입니다. 교회건축도 마무리 되어 예배환경도 좋아졌고 교육환경도 조성되었습니다. 이제는 추위도 더위도 모른 채 너무 좋은 환경에서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발생한 하자는 곧 보수 계획이고 곧 완전 마무리가 될 것입니다. 모든 건물은 건축 후에 후회가 많기 마련인데 우리교회는 건축 후에 사전에 기대했던 것 보다 오히려 더 후한 만족함이 주어졌습니다. 한국 건축협회에서 우리교회에 건축 대상을 주었습니다. 서울시에서는 무장애 건물로 인증해 주었습니다. 국민일보가 주최한 교회건축 콘테스트에서 우리교회가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제 교회는 주일만 사용하는 건물이 아니고 일주일 내내 사용하는 교회로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교회를 사용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분들이나 기관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는 앞으로 예배드리는데 더 뜨겁게 사용에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새해 4가지 덕목 계획 새해 우리교회에서는 4가지 신앙의 덕목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제자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새해 우리교회 주제를 “오직 예수”라고 정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의 제자가 되자, 예수를 닮자는 뜻에서 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예수를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 나를 닮으라, 나를 배우라, 나를 본받으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주님을 뜨겁게 만나야 합니다. 주님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남들이 만난 예수나 전해 들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만난 예수를 내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구체적인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여야 합니다. 만나야 알게 됩니다. 알아야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알면 힘이 생기고 동기가 생기고 닮게 되고 따르게 되고 전하게 됩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예수를 닮는 삶입니다. 닮으면 제자가 됩니다. 제자가 되려면 먼저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알게 되고 따르게 되고 전하게 됩니다. 만나면 내 삶에 우선순위가 만들어집니다. 주님을 깊이 알게 되면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주님을 앞세우게 됩니다. 새해에는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에 먼저 주님께 두고 살아가십시다. 주님을 만나면 영성도 강화됩니다. 영성이 강화되면 삶의 우선순위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주일날 한꺼번에 여러 일이 주어집니다. 그때 우선순위를 주님께 맞추는 것은 내 신앙의 척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갈림길에서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역시 달라집니다. 주님을 어설프게 알게 되면 주님은 우선순위에서 자꾸만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깊이 알게 되고 제자가 되면 봉사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무슨 봉사든 예수의 이름으로 하여야 합니다. 봉사, 기부, 헌신 모두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아니면 그것은 자선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주신 은혜를 보답하는 것은 섬김이고 봉사이고 헌신의 삶입니다. 1인 1봉사를 권장합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동네에서 어디서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일에 동참합시다. 또 하나는 차세대 육성입니다. 새해에는 우리교회 부서 중 핵심부서가 성장하도록 도왔으면 합니다. 그 하나는 교육부서입니다. 오늘은 어린이, 중고등학생들이 해마다 줄어드는 시대입니다. 우리교회 주변 초중고교의 학생들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위기시대 입니다. 교회 교우들의 자녀 중 초중고생은 모두 1,243명입니다. 그중 교회에 출석하는 자녀는 597명으로 48%에 머물고 있습니다. 646명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52%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지역의 아이들은 자꾸만 줄어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학교가 위기입니다. 아이들을 키워야 미래에 소망이 있습니다. 영어 예배부에는 전담사역자를 충원하여 100여명 가까이 모이고 있습니다. 신촌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 대상으로 전도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청년 육성입니다. 우리교회는 20대가 20%입니다. 30대가 21%입니다. 우리교회는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는 교회입니다. 중고등부가 성장해야 청년층이 강화됩니다. 청년층이 강화되어야 건강한 장년층이 형성됩니다. 우리교회는 이 젊은이들을 더 육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7,8,9교구를 부흥시키는 일입니다. 30-40대 부부들로 구성된 세 교구는 모두 800여 세대에 인원은 1,420명입니다. 우리교회의 보배들입니다. 이들이 품고 있는 자녀들은 전체 자녀 중 4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자산입니다. 이들에게는 고학력과 자녀와 젊음과 맨 파워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지역사회 섬김입니다. 우리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3다의 지역입니다. 맞벌이 부부와 청년과 독거노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우리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역 섬김의 정신입니다. 가난한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아이들을 교회가 맡아주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그래서 금년 말에 영아원을 개원하여 맞벌이 부부들의 아이들을 맡아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성장한 아이들의 방과 후에 교회가 맡아주는 일입니다. 그것이 방과후학교입니다. 또 식당을 통해서 맞벌이 부부들, 지역 젊은 청년 대학생들의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도와주는 일입니다. 지난 성탄 때 이웃을 돕자 하고 헌금을 하였는데 쌀 3천포 분량의 헌금이 모금되었습니다. 어떻게 나누어 줄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움에 기꺼이 참여하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교회는 배려 문화를 발전시키고 확산시켜 나갔으면 합니다. 배려문화는 성경의 정신입니다. 제자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신이고 산상수훈의 정신이고 주님이 강조하신 정신입니다. 먼저 우리 교회 내에서 이 정신이 발휘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교회는 너무 냉랭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서로 인사가 없습니다. 오래 된 분들은 잘 모릅니다. 처음 나온 분들은 금방 알고 느낍니다. 예배 안내자들의 안내를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차량안내자들의 안내도 잘 따르지 않고 때로 무례한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열쇠 잠그고 그냥 가 버리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내위원들이 속상해 합니다. 식당에서 연로하신 분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도 양보도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는 한층도 타고 다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젊은이들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체중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주일날 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위층까지 주일이면 5-6번씩 걸어올라 다닙니다. 노약자나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는데도 그냥 밀고 들어가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 하였습니다. 세심한 배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밖으로도 이 정신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예수 정신도 발휘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가 제자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정신이 발휘되어야 주님의 제자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넷째는 영성 강화입니다. 신앙인은 뭐니 뭐니 해도 영적 실력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안에 영적 자본과 영적 실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서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기고 동기가 만들어지며 헌신이 뿜어 나옵니다. 새해에는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문제를 위한 응답을 기다리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적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하는 기도를 많이 했으면 합니다. 내안에 영적 자본을 충만하게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매사 든든하고 자아상이 분명해지고 동기가 분명해집니다. 에덴의 집을 새로 완성하였습니다. 버스 진입도 가능하도록 마당을 넓혔고 식당도 새로 건축하였습니다. 각 방을 모두 새로 단장하여 숙박시설도 마련하였습니다. 새해부터 각 교구 산상기도회와 남여전도회 모임, 기도회, 각 교육기관 수련회를 그곳에서 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개인도 그룹도 함께 가서 밤새워 기도하고 숙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가서 기도 많이 했으면 합니다. 장로회에서는 매월 3째 금요일 밤 8시부터 심야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당회원들이 모여 기도하는 교회는 우리교회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 중 가장 기도안하는 그룹이 당회원들입니다. 전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스스로 매월 1차례 60여명의 장로님들이 나와 심야에 기도회를 합니다.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지도자들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게 됩니다. 앞으로 중보기도도 강화할 것입니다. 장로 기도회에서 교회 안팎 전체를 보고 중보기도 하려고 하고 중보기도 팀이 매일 기도하고 주일 예배 때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보기도는 참 중요한 기도입니다. 중보기도는 다른 기도보다 힘이 있습니다. 기도 응답률도 가장 높은 기도입니다. 지난 성탄절 날 모 장로님이 갑자기 심혈관이 막혀 병원으로 후송되었습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수술 가능성이 10%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은 위기란 말입니다. 속수무책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예배말미에 중보기도를 했습니다. 그 기도 후 상태가 좋아져 수술해서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기도는 신앙인의 생명줄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통신 핫라인입니다. 새해에는 전교인 산상 기도회도 계획했습니다. 1차 전교인 산상기도회는 1997년 6월 5-6일 양수리 수양관에서 1,300여명이 모여 기도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서울역에 모여 전세 낸 기차를 타고 갔습니다. 2차 기도는 1999년 5월에 3차 기도는 2001년 6월에 가졌습니다. 4차 산상기도회를 새해 5월16-17일 양수리 수양관에서 가지려고 계약을 했습니다. 서울역에서 전세 낸 기차를 타고 갈 것입니다. 이번에는 부흥도 했으니 3천여 명이 가서 기도했으면 합니다. 가서 뜨겁게 기도했으면 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자녀들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했으면 합니다. 그 날 막힌 것을 뚫고 굽은 길을 곧게 하고 낡은 옷은 다 벗어 던지고 모두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예수 제자의 삶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내실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가다가 유사시를 만날지라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빈차가 요란합니다. 빈 수레가 시끄럽습니다. 내용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인에게 있어서 영적인 실력이 없으면 살아가다가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떨림이 큽니다. 흔들림도 큽니다. 겁이 나고 두려움도 크게 일어납니다. 그뿐 아니고 살아가다가 중요한 갈림길에 처하게 되면 우왕좌왕 하게 되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우물쭈물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초라하고 처량한 모습입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적인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기도하는 일은 전부입니다. 제일 중요한 신앙의 덕목입니다. 이제 한해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여기까지 인도받고 살아온 것이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아쉬움투성이 입니다. 우선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이 마음에 걸립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었는데도 그렇지 못했음이 아쉬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간 결산하는 종들처럼 감사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요령과 게으름이 많았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처럼 오늘 우리는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새해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아쉬움과 실패와 마련들을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새해 새 시간을 새롭게 살아가라고 새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에 누시는 선물입니다. 새해는 무한한 발전과 전진과 성숙이 이루어지는 축복의 한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의 회고/ 신8:1-6/ 송년주일설교
감사의 회고 신8:1-6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을 맞아, 한 해동안 우리를 지켜주시며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 하실 때, 쉽고 편한 땅을 택하지 않으시고 광활하고 넓은 황량한 광야를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그 기간도 4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이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하여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킴으로써 결국은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이 복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광야롤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하여 그의 택하신 백성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통과하도록 하신 광야의 의미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광야는 하나님의 훈련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의 과정을 통과하여야만 합니다. 이는 용맹한 군인이 되려면 반드시 혹독한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거쳐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도 피나는 노력과 땀과 절제를 대가로 지불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의 애굽 종살이 동안,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에배도, 말씀도, 자유도, 기적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꿈도 기본적인 권리도 빼앗긴 채, 하루하루를 비참하게 살았습니다. 이런 그들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로 거듭 나기 위해서 훈련은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것입니다. 즉 영국인들에게 있어서 바다를 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있어서 광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장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광야를 예비하셨고 그들은 광야에서 귀한 것들을 얻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의 훈련을 받았고 세례 요한도 예수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시기 앞서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불모의 땅으로만 보이는 광야는 사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훈련 장소였으며 그들은 이 광야 훈련을 통해 귀한 것들을 얻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광야를 지나야 합니다. 인생은 고달프고 목마르고 춥고 배고픔이 있습니다. 질병과 위험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광야를 다 지나고 나면 우리는 젖과 끌이 흐르는 땅, 곧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 온 인생 여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함께 하시며 지금까지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2. 광야는 겸손을 배우는 장소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는 무엇보다도 겸손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겸손한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교만한 자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 세월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동안 원망과 불평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습관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들은 광야 훈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자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홍해 앞에서 원망하고 마라의 쓴 물 앞에서 원망했습니다. 또한 신 광야에서 굶주릴 때, \\\"우리를 주려 죽게 한다\\\"고 원망했습니다. 또한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낸 신\\\"이라며 춤추고 경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2정탐꾼은 가나안 땅을 악평 하여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죽게 하려는가?\\\"하고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통과하면서도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광야생활이 계속되면서 그들은 이러한 원망과 불평을 줄여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험들을 잘 통과해서 원망과 불평의 사람에서 감사와 평화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2) 교만한 자는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즉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 인용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육신의 양식을 빼앗아 가시는 것은 육신의 양식 외에 다른 양식, 곧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종종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었던 만나에 비교됩니다. 만나는 담백하고 가벼운 음식이기 때문에 싫증이 나기 쉽습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도 매우 단조롭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또 만나가 매일매일 공급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매일매일 읽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 온 기적의 양식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한 영의 양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이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로 광야에서 생명을 유지했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광야를 통과해 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3)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힘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떠나 버립니다. 물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광야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인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면 오히려복이 됩니다 .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1:9)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난 온 삶을 돌이켜 볼 때, 감당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수많은 일들을 통과하여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삶도 광야와 같은 인생 여정 중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담대히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3. 광야는 위로가 임하는 장소입니다. 본문은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공급해 주셨음을 나타내 줍니다. 옷은 더위와 추위를 막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옷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은 얼마나 세심하고 자상하게 그들을 돌보아 주셨는지 보여 줍니다. 또한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으로써 광야 생활 속에서도 위로와 만족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끊임없이 범죄하고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때로 사탄의 올무에 빠져서 실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할 때에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성도를 보호하시고 위로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 까지 함께 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도 많은 환난과 위험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환난을 겪을수록 더욱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광야같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나 다 사랑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의 은총과 하나님의 자비, 성령님의 인도와 보호가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4. 광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장소입니다. 또한 본문은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이 부릍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발에 힘을 주심으로써, 40년 동안 행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피곤하고 지칠 때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붙들어 주시고 힘을 주셔서 광야의 고된 행군을 이겨내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시험을 주 실 때는 감당할 만한 것을 주시며, 이를 통해서 그들을 더욱 강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 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를 죽인 후, 이세벨의 추적을 피하여 로뎀 나무에 이른 엘리야는 실망이 극에 달하여 나무 밑에서 잠들었습니다. 그는 너무 낙심하여 죽기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사명이 남아 있었고 하나님의 사자는 그를 위로하고 그가 다시 새 힘을 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인생의 광야 속에서 지치고 낙심하여 엘리야처럼 죽기를 구하기까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할 때, 그 의 자녀들을 그대로 내어 버려 두시지 않고 다시 힘을 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신앙의 행군을 멈추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광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없는 것은, 이 광야 길 내내 우리 하나님께서 동행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위로와 소망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 계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위로의 하나님, 광야 같은 인생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시키시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광야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배우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멘.
감사하며 마무리 /롬8:28-30
감사하며 마무리 /롬8:28-30 2010-02-22 10:43:04 read : 376 정유찬 시인의 '12월의 끝에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한 날이 미워하는 날보다 많았는지 슬프고 힘들었던 날보다 행복했던 날이 많았는지 12월의 끝에서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고 있어 보석 같은 날들을 가슴으로 살았니 머리로 살았니 얼마나 웃고 살았어 아니면 찡그렸어 맑은 하늘아래 투명한 날들을 뿌연 눈으로 보낸건 아닐까 별이 찬란하던 밤 내가 깨어 있었는지 잠들어 있었는지 난 거울을 봐 거울속의 나를 봐 아름다워 진거야 추해진 거야 무엇이 변한 것일까 밤이 깊어만 가네 한해가 또 저무네 12월 마지막 주일을 맞아 어떤 감회가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아쉬움입니까? 만족스러움입니까? 후회입니까? 기쁨입니까? 섭섭함입니까? 감격스러움입니까? 무엇보다도 감사함이 여러분의 마음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감사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송년이 될 줄 믿습니다. 수많은 사고와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무서운 질병이 난무하는 가운데에도 건강하게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수많은 기도가 응답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금년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셨음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풍성한 사랑을 받고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누리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이 더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외에도 아름다운 눈으로 감사의 제목을 하나 하나 헤아리며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중에는 2009년도에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위기에 처한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도 감사해야 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지나온 한 해 동안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았고 환영할 수 없었던 질병과 사고, 실패와 가난을 만나 된통 시달리고 그로인한 상처와 고통이 있었는데도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1.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기 때문입니다.(28)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도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쓰레기 같아서 정말 버리고 싶은 일들도 나중에 보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구원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고난 까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연한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필연이며 그 속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은 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을 꼭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힘든 일이 없어서 잘 사는게 아닙니다. 힘든 일이 있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힘들지 않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기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쉽게 극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요셉이야 말로 얼마나 나쁜 일들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습니까? 형제들의 질투와 핍박, 사막의 웅덩이인 사지에 던져진 죽음과의 대면, 원치않는 노예생활, 억울한 감옥살이, 은혜를 잊어버린 관원 등 불행하게 보이는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요셉의 입술에서 불평이나 원망의 언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그 비밀을 그가 자기를 사지로 내몰고 죽음을 시도한 형제들을 만나서 그가 고백한 간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45:5을 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다시 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어떻게 이 험한 세월을 이기고 요셉이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섭리를 일찍부터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개입하셔서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던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2009년도의 남은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2.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9) 사실 성도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있다고 해서 당장에 악한 일이 선한 일로, 악한 상황이 선한 상황으로, 실패의 환경이 성공의 환경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동안 우리의 상황은 나쁘고 악하고 고단한 상황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얼마동안 우리를 나쁜 상황 한 복판에 그대로 두신채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십니다. 그때 우리를 둘러싼 고난은 우리의 인격을 연단하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다듬어 빚으시는 인격의 모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인 것입니다. 롬8:29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바로 이 목적을 마음에 두시고 때로 사람들과의 갈등을 사용하여 다듬으십니다. 때로 인내의 한계에 이르기가지 시련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환경과 사람을 피해 도망갈 궁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주시고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어도 인내하며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까지 성숙하고 거룩해지는 기회로 삼으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이 도망가면 어떻게 됩니까?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도망간 거기까지 쫓아가셔서 똑같은 환경,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어 고난과 갈등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과하며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성화의 자리에 이르면 어떻게 하십니까? 30절을 보십시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로 정하시고 때가 찬 어느 날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인치셨다가 우리를 인생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연단하사 마침내 영화로운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려고 지금 다듬으십니다. 여러분 영화롭게 변화될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범죄심리학자인 소퍼 박사는 형무소에 있는 죄수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합니다.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도 만일 감사의 기도 대신 요구와 불만의 기도만을 드린다면 형무소의 죄수와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 리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그는 무려 네 번이나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리바인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조끼를 입고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주변의 상인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조끼를 입어야겠는데 어디서 그것을 구할 수 있나?" 리바인은 방탄조끼를 주문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문이 점점 늘어나서 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육점을 정리하고 '방탄조끼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크게 성장해서 세계 40개 도시에 지사를 세우고 일약 국제적인 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리바인은 회장으로 취임하며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강도를 네 번 만난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강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가나안은 사실 아주 황폐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가나안을 옥토로 표현했을까요? 거기에는 무서운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은 어떤 곳이든지 최상의 것으로 여긴다는 고백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이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으니, 토지 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청지기 신앙이 저들을 부요하고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질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듭니다. 남미보다 자연환경이 좋지 않은 미국이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된 것은, 청교도들의 감사신앙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에 불행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감사가 곧 자산입니다.
감사하며 마무리 /롬8:28-30 2010-02-22 10:43:04 read : 7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정유찬 시인의 '12월의 끝에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한 날이 미워하는 날보다 많았는지 슬프고 힘들었던 날보다 행복했던 날이 많았는지 12월의 끝에서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고 있어 보석 같은 날들을 가슴으로 살았니 머리로 살았니 얼마나 웃고 살았어 아니면 찡그렸어 맑은 하늘아래 투명한 날들을 뿌연 눈으로 보낸건 아닐까 별이
감사하며 마무리 /롬8:28-30 2010-02-22 10:43:04 read : 793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정유찬 시인의 '12월의 끝에서'라는 시가 있습니다. 사랑한 날이 미워하는 날보다 많았는지 슬프고 힘들었던 날보다 행복했던 날이 많았는지 12월의 끝에서 지난날들을 떠올려 보고 있어 보석 같은 날들을 가슴으로 살았니 머리로 살았니 얼마나 웃고 살았어 아니면 찡그렸어 맑은 하늘아래 투명한 날들을 뿌연 눈으로 보낸건 아닐까 별이 찬란하던 밤 내가 깨어 있었는지 잠들어 있었는지 난 거울을 봐 거울속의 나를 봐 아름다워 진거야 추해진 거야 무엇이 변한 것일까 밤이 깊어만 가네 한해가 또 저무네 12월 마지막 주일을 맞아 어떤 감회가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아쉬움입니까? 만족스러움입니까? 후회입니까? 기쁨입니까? 섭섭함입니까? 감격스러움입니까? 무엇보다도 감사함이 여러분의 마음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감사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송년이 될 줄 믿습니다. 수많은 사고와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무서운 질병이 난무하는 가운데에도 건강하게 살아온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수많은 기도가 응답된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금년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셨음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풍성한 사랑을 받고 살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누리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이 더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주신 것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외에도 아름다운 눈으로 감사의 제목을 하나 하나 헤아리며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중에는 2009년도에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위기에 처한 사람도 있습니다.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도 감사해야 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지나온 한 해 동안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 않았고 환영할 수 없었던 질병과 사고, 실패와 가난을 만나 된통 시달리고 그로인한 상처와 고통이 있었는데도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1. 합력하여 선을 이루심을 믿기 때문입니다.(28)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에게도 쓰레기통이 없습니다. 버릴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쓰레기 같아서 정말 버리고 싶은 일들도 나중에 보면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오늘의 구원이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고난 까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까닭은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우리에게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연한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필연이며 그 속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그 모든 하나님의 뜻은 다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선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을 꼭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승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힘든 일이 없어서 잘 사는게 아닙니다. 힘든 일이 있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서 못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 사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힘들지 않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기에 힘들고 어려운 일을 쉽게 극복하며 사는 것입니다. 요셉이야 말로 얼마나 나쁜 일들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었습니까? 형제들의 질투와 핍박, 사막의 웅덩이인 사지에 던져진 죽음과의 대면, 원치않는 노예생활, 억울한 감옥살이, 은혜를 잊어버린 관원 등 불행하게 보이는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요셉의 입술에서 불평이나 원망의 언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그 비밀을 그가 자기를 사지로 내몰고 죽음을 시도한 형제들을 만나서 그가 고백한 간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45:5을 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다시 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어떻게 이 험한 세월을 이기고 요셉이 이런 간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요셉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섭리를 일찍부터 믿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개입하셔서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던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며 2009년도의 남은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2.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29) 사실 성도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있다고 해서 당장에 악한 일이 선한 일로, 악한 상황이 선한 상황으로, 실패의 환경이 성공의 환경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오래 동안 우리의 상황은 나쁘고 악하고 고단한 상황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얼마동안 우리를 나쁜 상황 한 복판에 그대로 두신채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십니다. 그때 우리를 둘러싼 고난은 우리의 인격을 연단하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다듬어 빚으시는 인격의 모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인 것입니다. 롬8:29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바로 이 목적을 마음에 두시고 때로 사람들과의 갈등을 사용하여 다듬으십니다. 때로 인내의 한계에 이르기가지 시련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뜻을 우리가 알지 못하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환경과 사람을 피해 도망갈 궁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주시고 당시에는 괴롭고 힘들어도 인내하며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까지 성숙하고 거룩해지는 기회로 삼으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이 도망가면 어떻게 됩니까?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까지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도망간 거기까지 쫓아가셔서 똑같은 환경,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어 고난과 갈등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과하며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성화의 자리에 이르면 어떻게 하십니까? 30절을 보십시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로 정하시고 때가 찬 어느 날 부르시고 부르신 우리를 의롭다하셔서 당신의 자녀로 인치셨다가 우리를 인생의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연단하사 마침내 영화로운 존재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영화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려고 지금 다듬으십니다. 여러분 영화롭게 변화될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범죄심리학자인 소퍼 박사는 형무소에 있는 죄수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의 차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합니다.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도 만일 감사의 기도 대신 요구와 불만의 기도만을 드린다면 형무소의 죄수와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 리바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동안 그는 무려 네 번이나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리바인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조끼를 입고 근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주변의 상인들이 물었습니다. "우리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방탄조끼를 입어야겠는데 어디서 그것을 구할 수 있나?" 리바인은 방탄조끼를 주문받기 시작했습니다. 주문이 점점 늘어나서 손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육점을 정리하고 '방탄조끼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는 크게 성장해서 세계 40개 도시에 지사를 세우고 일약 국제적인 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리바인은 회장으로 취임하며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습니다. "강도를 네 번 만난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강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칼을 들고 고기를 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된 가나안은 사실 아주 황폐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가나안을 옥토로 표현했을까요? 거기에는 무서운 신앙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은 어떤 곳이든지 최상의 것으로 여긴다는 고백입니다. 그 감사의 마음이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으니, 토지 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청지기 신앙이 저들을 부요하고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물질도 감사하는 사람에게 흘러듭니다. 남미보다 자연환경이 좋지 않은 미국이 세계 최강의 나라가 된 것은, 청교도들의 감사신앙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넘치는 가정에 불행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감사가 곧 자산입니다.
건강한 교회 건강한 믿음/ 행2:46-47/ 이정익 목사/ 송년주일설교/ 2012-12-27
건강한 교회 건강한 믿음 행2:46-47 한해 마지막 주일입니다. 1년 52주 가운데 오늘은 마지막 주일 입니다. 처음과 마지막은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쯤 되면 사람들이 모두 지난 시간을 회고해 보고 많은 생각을 할 때입니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온 한해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쁨도 있었고 속상한 일도 교차하면서 살아온 한해였습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일에 바빠서 하나님을 잊으며 살아오기도 했던 한해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간이 되면 후회만 남습니다. 사람들이 그래서 망년회를 합니다.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은 아무리 아름답고 추억이 있어도 다가올 미래보다는 소중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시간을 회고하기 보다는 다가오는 새해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새해 2003년도 우리교회 신앙표어를 “건강한 교회 건강한 믿음”이라고 정했습니다. 사도행전 2:46-47절에 근거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때의 교회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기 보면 초대교회시대의 교회모습이 얼마나 건강한 믿음이었고 얼마나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회로 보면 가장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날마다 모이고 모여 기도하고 교제하고 찬미하고 구제하고 물건을 서로 나누어 사용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백성들로부터 교회가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에 하나님이 날마다 신자들을 보내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원형 모습입니다. 초대교회 때 교회의 모습은 우선 교회가 건강했고 신앙도 건강했고 생활도 건강했고 서로의 관계도 아주 건강했습니다. 이것이 원래 교회의 모습이고 신앙생활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우리교회의 꿈이고 목적이고 이상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들이 시대가 변해 오면서 교회도 신앙도 많이 변했습니다. 교회와 신앙이 제도화되고 안정화되다 보니까 타성에 젖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참신성은 없어지고 습관신앙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모여도 그냥 감정 없이 모이고 찬송을 해도 그냥 의무적으로 합니다. 대중가요를 불러도 흥이 나고 감정이 나타나는데 찬송은 애국가 부르듯 감정 없이 그냥 부릅니다. 그것은 신앙이 자꾸만 퇴색하고 생명력이 약화되고 교회는 자꾸만 제도화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의 목표도 이 제도화되는 것을 가능하면 막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제도화되는 것을 막고 신앙이 다시 뜨겁게 회복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새해 목표를 그렇게 잡았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몇 가지 새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영아세례”입니다. 각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납니다. 얼마나 신선한 축복입니까. 결혼한 부부들이 아기를 얼마나 고대합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대하지 않는 부부에게는 빨리 임신을 하고 고대하고 기다리는 부부에게는 왜 그렇게 임신이 안 되는지 모릅니다. 부부가 결혼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아기가 없습니다. 얼마나 기다리고 간절히 소원하겠습니까. 그렇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아이를 잉태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한달이 지납니다. 그러면 보통 아이를 안고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이 40일 정도 되면 나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아이를 받아들고 축복의 기도를 해 줍니다. 그 기도는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해 주다 보니까 좀 아쉬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만 해 줄 것이 아니고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그 아이에게 주일 예배 때 모든 분들이 축복해 주는 앞에서 영아세례를 주자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교회에 나오는 날 여러분 앞에서 영아세례를 주려고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이가 커서 “나는 언제 세례 받았어요?” 하고 물으면 ”너는 태어나서 처음 교회 가던 날 만인 앞에서 세례를 받았단다. 하고 대답해 준다면 그 아이가 얼마나 선선한 감동을 받겠습니까. 당장 내일 모레 송구영신 예배 때부터 한아기가 세례를 받습니다. 앞으로 아이 낳는 분들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것이 새해에 우선 행할 일입니다. 두 번째는 “심야기도회”입니다. 그동안 한달에 한번씩 심야기도회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달에 한번 하다 보니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전체 모임은 한달에 한번씩 하되 원하는 분들이 모여 매주 기도회를 갖기로 해서 지난해 한 해 동안 매주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소수가 모이고 형식적으로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의 최대 약점은 기도하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교회의 약점입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금요일에 하던 심야기도회를 생략하고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치고 이어서 기도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원래 주일 저녁예배는 찬양예배로 드렸습니다. 주일예배는 너무 엄숙해서 찬양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일 저녁예배는 찬양을 주로 드리는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그리고 수요일 예배는 기도회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예배는 수요기도회였습니다. 이제 원래 의미를 되찾아서 수요예배는 기도회로 가지려고 합니다. 여러분, 내년에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잠시 교회에 들러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돌아갔으면 합니다. 새해에는 기도하는 일에 많은 분들이 참여했으면 합니다. 세 번째는 “주말 프로그램” 을 신설했습니다. 우리교회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지금까지 매년 세례교인 400여 명씩을 증가시켜 왔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신앙이 자라서 세례 받은 분이 매년 약 150여명이고 세례를 받고 우리교회에 오시는 분이 250여명이 되어서 매년 400여 명씩 세례인 을 증가시켜 왔습니다. 그런데 신 자수는 매년 증가하는데 출석률이 지난 2년 동안 멈추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많을 것입니다. 우선 예배장소가 협소합니다. 그리고 주차공간도 협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왔다가 장소가 없으면 그냥 돌아갑니다. 현재 우리교회의 예배공간은 어린이를 포함해서 3천 명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주일이면 5천명 가까이 모이니 문제입니다. 거기다 근래에 형성된 주 5일 근무제의 부작용이 현실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말이면 가족단위로 빠져나갑니다. 주일날 젊은 커플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젊은 커플들이 금요일에 스키장으로 갔다가 월요일 아침 직접 직장으로 출근합니다. 봄가을이면 더 자연스럽게 가족단위로 밖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불가불 이런 모임을 교회가 만들어주기 위해서 주말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새해에는 사회위원회와 주말문화부가 이를 감당할 것입니다. 네 번째는 “미자립교회 교역자 초청 위로회” 를 마련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도시교회 가운데서도 도심교회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지방에서 올라오신 분들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오면 지방교회 특히 농촌교회는 자꾸만 공동화 되어갑니다. 교회에서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면 농촌교회는 인적자원과 재정자립이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존립마저 흔들리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매년 60여교회개의 미자립 농촌교회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도 도왔고 남녀전도회에서 도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도와주다 보니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돕는 일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 돕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그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는 어떤 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 우리교회가 돕는 미자립교회의 교역자들을 직접 초청해서 격려도 하고 함께 예배도 드리며 실정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초청되어 오면 여러 기관에서는 그분들에게 선물도 좀 준비해주고 환영도 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분들을 외국에 가 있는 선교사 돕는 이상으로 환영해 주었으면 합니다. 다섯 번째는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는 일입니다. 우리교회는 수년전부터 몇 개의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우선 서강 어린이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구청 산하 많은 어린이집 가운데 가장 우수한 어린이 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실무자들이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관내에 소년소녀 가장이 발생하면 구청은 먼저 우리교회로 보냅니다. 그러면 그동안 수 제한 없이 우리교회가 받아서 후원하고 돌보아주었습니다. 한때는 23가정까지 돌보아왔는데 지금은 조금씩 줄고 있는 형편입니다. 또 상담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주변이 상업지역입니다. 유흥밀집지역입니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참 많습니다. 우선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 오면 아이들이 집에서 방치됩니다.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잘못하면 이 아이들이 밖으로 나돌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이 아이들을 맡아서 공부시키고 부모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돌보아주는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환경에서 발생되는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탈 선자들이 발생하는데 이들을 위해서 언제나 문을 열어놓고 있는 상담실과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일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수고하고 있습니다. 또 교회 주변학교를 선교대상학교로 지정했습니다. 우리교회 주변에는 연대, 홍대, 서강대, 이대, 명지대 등 5개 대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새해에는 이들 학교를 선교지정학교로 정하고 장학금을 보내고 관심을 가져서 선교대상 학교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특별히 장학금을 대폭 늘렸습니다. 교회내 장학금도 늘리고 주변 학교에 보낼 장학금도 늘렸습니다. 우리교회 새해 예산 중에서 순수 사회봉사와 선교비로 지출되는 예산이 전체예산의 27.6%입니다. 그중에서 장학금만도 2억여 원이 지출되고 있습니다. 전체예산에서 교회가 비좁아서 공간을 늘리려고 저축되는 예산이 새해 13억원입니다. 이 수치는 전체예산의 31%입니다. 그 31%를 뺀 예산에서 사회 봉사비와 선교비를 계산하면 무려 33%입니다. 이 정도의 재정운용이면 아주 건강한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그런대로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헌금하시는 헌금이 이렇게 건강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여섯 번째는 “50주년 준비”입니다. 우리교회는 55.1.2일 창립되었습니다. 그래서 내 후년이면 50주년 희년을 맞이합니다. 이제 2년 남았습니다. 50주년이면 사람나이로 보면 이제 중년입니다. 사람이 중년이면 그 사회에서 뭔가 자리를 확보하고 있어야할 나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나이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해는 “건강한 교회, 건강한 믿음”이라고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희년 준비의 해“로 정했습니다. 이제 50주년이 되는 2005년에는 “미래로 비상하는 교회”라고 정했습니다. 우리교회는 한 가지 아주 특별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교회에 젊은이 신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20대가 25.6%입니다. 그리고 30대가 26.3%입니다. 40대는 17,7%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70%가 2-40대입니다. 이 수치는 우리교회의 재산 중 재산입니다. 전국 교회에서도 아주 특이한 현상입니다. 이제는 인재를 키우고 미래를 위해서 젊은이들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50주년을 전후해서 세 가지 큰 사업을 확대해 나갔으면 합니다. 하나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입니다. 사업 중에서 가장 소망적인 사업은 인재를 키우는 사업입니다. 옛날 시골의 농부들 중에서도 생각이 있는 부모는 땅을 팔아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장학금을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을 해외로 내보내 공부시키고 길러야 합니다. 인재양성이 최고의 사업입니다. 두 번째는 길러진 젊은이들을 선교사로 많이 내보내는 일입니다. 이제는 내 보내야 합니다. 기능을 가진 평신도 사역자들을 많이 내보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교회 개척하는 일입니다. 이제는 교회개척도 건물 세 얻어서 개척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렇게 개척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신 개척지역에 종교부지를 얻어서 정상적인 교회로 개척이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교회는 이 일을 할 것입니다. 그러자니까 오늘 현재 교회의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문제입니다. 공간확보 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우리교회는 현재 공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합니다. 어떻게 할 틈이 없습니다. 예배드리고 나면 어디로 가서 은신할 처소가 없습니다. 교육공간도 좁고 앉아서 대화하고 친교할 공간은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이 공부마치고 갈 곳이 없습니다. 예배 마치고 엄마를 기다려야 하는데 가서 있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주변 오락실로 가서 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미래를 위해서는 아주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서 앞에 있는 500평 대지를 구입하게 된 것입니다. 그 대지는 우리 후손들 몫입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커 가는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그곳에 아담한 교회를 지을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향하는 철학은 호화롭고 편안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절대로 호화로우면 안 됩니다. 앞으로 교회를 지으면 호화롭게 짓는 것이 아니고 아주 실용적으로 간이식으로 지을 것입니다. 교회는 천막교회라도 좋습니다. 임시 건물이라도 좋습니다. 은신처만 되어도 좋습니다. 대신 그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젊은이들은 있어야 하고 자라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미래가 있습니다. 그것이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날마다 모이고 음식을 나누고 찬미하며 구제하고 예배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원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됩니다. 그런 교회를 만들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여러분 새해 한 해 동안 힘써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로 하여금 믿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정익 목사
걸을 때 해가 돋았다 /창32:24-32 2014-01-06 16:42:33 read : 1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 선교사가 1997년 미시간 주 어느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면서 그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약품을 전달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쟝글을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어느 날 쟝글을 가는 데 군인 두 명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군인이 심하게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선
걸을 때 해가 돋았다 /창32:24-32 2014-01-06 16:42:33 read : 16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한 선교사가 1997년 미시간 주 어느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면서 그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약품을 전달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쟝글을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어느 날 쟝글을 가는 데 군인 두 명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군인이 심하게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그 군인을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고 돌아 왔습니다. 며칠 후 그 군인이 선교사를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사실은 우리 두 군인은 당신들이 약품과 돈을 가진 것을 알았기에 쟝글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신을 죽이고 약품과 돈을 빼앗으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을 호위병 26명이 경호하고 있어서 덤비지 못 하였지요.” 선교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경호원이 없는 데요.” “아니요. 우리만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 5명이 다같이 보았습니다. 같이 세어 보았더니 분명히 26명이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그 때가 어느 때쯤 되나요?” 선교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날자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날 그 때 나는 골프를 치러 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이 나를 기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그만 두고 교회로 가서 몇 명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였지요.” 선교사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 때 같이 기도하였던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보세요.” 세어 보니 모두 26명이었습니다. 천사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야곱은 에서와 쌍둥이였습니다.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 았습니다. 배고픈 형을 약점을 이용하여 빼앗은 장자권이었습니다. 그 후 예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멀리 외삼촌 집으로 보냈습니다. 형의 노가 풀어질 때가 가서 살다 돌아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형과 헤어져서 20년을 살았습니다. 20년만에 돌아오는 야곱의 심정은 매우 착찹하였을 것입니다. 갈 때에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갔지만 돌아 올 때에는 아내 4명, 아들 12명, 딸 1명 그리고 재산은 성경 3대 거부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돌아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에서는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이런 소식이 야곱의 귀에 들려 왔습니다. 야곱은 겁이 났습니다. 20년 전에 악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일단 모든 식구들과 모든 재산을 얍복강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홀로 남아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홀로 남았더니” 오늘 본문중에 눈에 띄이는 말씀입니다.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중요한 시간입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단 둘이 홀로 만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세도 홀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윗도 8형제중에 홀로 있다가 왕이 되었습니다. 바울도 여러 명이 같이 다메섹으로 예수님믿는 사람을 잡으러 올라갔습니다.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홀로 아라비아로 들어가서 3년을 지내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복음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에는 늘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는 제자 9명은 산 밑에 두셨습니다. 3명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떨어져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도 마찬가지입니다. 9명의 제자들을 떨어 뜨려 놓으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만 옆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셔서 홀로 기도하시면서 십자가 지실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가장 거룩한 시간입니다. 야곱이 홀로 얍복강가에서 기도할 때 야곱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이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얼마나 세게 쳤던지 환도뼈가 위골되고 말았습니다. 야곱과 그 사람은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그리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후 일생을 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야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일어나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가는 데 해가 돋았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다리를 절면서 걸을 때 아침 해가 브니엘에서 돋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에 첫 해가 비취었습니다. 야곱은 평생 처음으로 다리를 절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햇살을 받으며 에서를 만나러 갔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밤새도록 걱정하였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브니엘의 해가 오늘 새 해에 우리 성도들에게도 떠 오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브니엘의 해가 떠오르고 야곱은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달라졌는가요? 1. 새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까지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데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다는 데에서 야곱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속이는 자’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욕심적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곱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응답받고 사는 삶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에 비추어진 하나님의 해는 이제부터 하나님이 은총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20년 전에 원한을 품고 죽이려고 할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면 초가에 처해 있었습니다. 야곱이 한 것은 오직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해가 떠오르고 나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의 해를 본 후 눈을 들어 보니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7번 몸을 굽히고 절을 하였습니다. 에서가 뜻밖에 달려와서 야곱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악감정이 아니라 감격의 사랑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브니엘의 해가 떠오른 후에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자기가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꾸어 주셨습니다. 100%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해가 떠오르면 하나님이 크게 함께 하여 주십니다. 지구상에 나라 가운데 나라 세운 날을 개천절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둘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와서 나라를 세우며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개천절이란 하늘이 열린 날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5월 31일 첫 국회가 열렸습니다. 그 때 국회 임시 의장으로 선출된 분이 이 승만 박사였습니다. 그가 사회를 보면서 예정에 없는 한 가지를 하였습니다. 당시 감리교 목사로서 종로구에서 당선된 이 윤영 목사에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첫 국회가 열리는 날 첫 번 한 것은 이 윤영 목사님이 단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이 우주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을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정시(正視)하신 것으로 저희는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없을 줄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하옵건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 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렇게 우리 민족으로 특별한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야곱은 브니엘의 해를 맞으며 그 때부터 하나님의 은총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금년 새 해 브니엘의 해가 떠올라서 야곱과 같은 은총의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국가 이름이 될 줄은 야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나라가운데 사람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지은 나라는 이스라엘 하나뿐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온 세계 사람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되었습니다. 새 해에는 브니엘의 해를 맞으면서 우리 모두 이름이 바뀌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믿던 성도들이 환란과 핍박을 견디지 못 하여 안디옥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곳에서 성경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난 글입니다. 삼미 그룹 부회장에서 웨이터로 변신한 서 상록씨가 자서전적인 에세이 집을 발간하였습니다. “내 인생 내가 살지.” 이런 흥미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336 페이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새로 일자리를 구하는 분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 보세요. 남 눈치 보지 않고 내 인생 내가 산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는 사업가로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었습니다. 그는 대 그룹에서 부회장까지 올라 큰 회사를 잘 경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IMF로 직장생활이 어려워지자 그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롯데 프랑스 식당 웨이터로 취직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남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합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객들을 위해 바이올린 연습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웨이터 분야에서 최고 프로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부끄러움이나 과거의 높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를 섬기던 자들을 식당으로 초대하여 대접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뒤집어 놓고 내 인생 내가 산다고 하는 철저한 삶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부회장님이라고 부르던 그의 이름이 웨이터라고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면서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름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나는 새해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비취던 해가 내게도 떠 올라서 교회 담임목사라는 이름이 수도원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를 원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새 흔적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브니엘의 해가 떠올랐을 때 야곱에게는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 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창 32;21-32)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불구가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야곱이 다리를 실제로 절은 것이 아니라 신화일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환상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영적 투쟁 결과로 상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응답을 받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꾸고 다리를 절었습니다. 천사가 환도뼈를 쳐서 다리를 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전승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말하지면 탈무드 전설로 이스라엘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환도뼈란 엉덩이에서 다리로 연결시키는 힘줄이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야곱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을 잡을 때 그 부분은 잘라내어 버립니다. 먹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12 지파의 조상 야곱의 그 부분을 하나님이 취하신 것이니 우리가 건드릴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진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불구가 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이 자기 환도뼈를 만진 흔적으로 절름발이가 되는 흔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흔적 때문에 야곱이 비관한 적은 그 후 한번도 없었습니다. 평생 절면서 평생 자랑스러운 흔적이라고 느끼면서 살았던 것같습니다. 내가 두 번이나 가서 부흥회한 로스엔젤스 그렌데일에서 목회하시던 정 용치 목사님은 눈 한 쪽에 개눈을 박았습니다. 강화도에서 목회할 때에 새벽기도에 일찍 나갔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기도하러 멀리서 온 성도들을 뜨듯하게 하려고 늘 그렇게 하였습니다. 석유난로가 있었지만 너무나 비싸서 그런 난로를 때지 못 할 때였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 짤라서 난로에 넣었습니다. 그 때 6.25때 누가 쏘았는 지 모르는 총알이 나무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총알이 불속에서 터지면서 눈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교인들을 사랑하던 흔적입니다.목회 열심히 하던 흔적입니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한 눈으로 보려니 너무나 눈이 아파서 한 시간이면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아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름다운 흔적을 지니고 평생을 살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과 악수한 손이라고 일주일 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저는 다리는 하나님이 주신 흔적이었습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소나 나귀의 등을 자기 소유 표시를 하기 위하여 지졌습니다. 불로 지져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예에게는 귀에 구멍을 뚫었는 데 이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노예에게는 이마에 노예 표시를 하였는 데 죽어야 없어지는 흔적이었습니다. 나포레옹 군대는 독인 군을 포로로 잡고 나서 마구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으니 팔뚝에 나포레옹을 의미하는 이라는 글자를 불로 지져서 사귀고 나포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 주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독일 군인중에 아주 똑똑한 군인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팔뚝에 그런 흔적을 만들고 충성하면 살려 준다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프랑스군은 강제로 팔뚝을 불로 지져서 를 새겼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그 팔뚝을 잘라 버리면서 외쳤습니다. “나는 죽어도 나치 히틀러 군대다.” 야곱은 평생 하나님이 주신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새 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광의 상처가 있기를 바랍니다. 3. 본질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본질입니다. 본질에 충성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장 본질에 충성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본질에만 충실하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은 오직 하나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라고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그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는 것 그 본질에만 충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본질은 땅의 약속을 받아 가나안 땅을 지키며 그 곳에서 민족을 이루어 예수님을 이 땅에 탄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흉년으로 애급으로 피란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들 이삭도 그렇습니다. 흉년으로 블레셋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본질로 돌아 온 것입니다. 손자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년 하란으로 피해 있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은 땅의 신학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그 땅에서 벗어나 살았습니다. 에서가 그 땅을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의 신학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야곱은 그 땅을 차지하려고 그 땅으로 온 것입니다. 야곱은 몰랐어도 하나님은 그렇게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땅의 신학이 이스라엘 신학의 핵심입니다. 땅의 신학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성경이 룻기서입니다. 엘리멜렉이 나오미와 살면서 기룐과 말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흉년이라도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견디고 있는 데 나오미 가정만 하나님이 주신 땅을 떠나 모압지방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 곳에서 두 아들은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두 아들이 자녀를 하나도 낳지 않았을 때 인 것을 보면 결혼후 조금 후 하나님은 남자만 세 명을 모두 하늘 날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제 여자만 셋 남은 비극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 때 나오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약속의 땅을 버리고 온 것이 원인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큰 자부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고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말합니다.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이같이 땅의 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룻기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야곱은 이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오직 예수를 기다리는 본질에 충실한 삶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브니엘의 해가 떠오를 때 그 햇살을 받으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 새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2. 새 흔적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3. 본질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우 남았도다 /사1:2-9 /송년주일 2011-04-22 16:49:41 read : 6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랜 여행에 몹시 지친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황량한 벌판만 계속될 뿐, 집도 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벌판 한 가운데서 사람이 거주한 흔적을 만났는데 거기서 한 바가지의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물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바로 앞에 널빤지에 쓰인 글귀가 눈
겨우 남았도다 /사1:2-9 /송년주일 2011-04-22 16:49:41 read : 672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랜 여행에 몹시 지친 한 나그네가 있었습니다.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황량한 벌판만 계속될 뿐, 집도 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벌판 한 가운데서 사람이 거주한 흔적을 만났는데 거기서 한 바가지의 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물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바로 앞에 널빤지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목이 마르시지요? 그러나 그 물을 마시지 마십시오. 그 물을 저기 있는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하세요. 그러면 더 많은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이 자리를 떠나기 전에 당신 다음에 올 나그네를 위해서 물 한 바가지를 남겨 두고 떠나십시오” 그 나그네는 그 물을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해서 더 많은 물을 원없이 마셨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가 다 보급되기 전, 시골이나 도시 변두리에서는 펌프를 사용했습니다. 펌프의 물이 일단 내려간 상태에서는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때,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하면 다시 깊은 곳의 물이 빨려 올라옵니다. 그 때 물 한바가지는 땅 속에 있는 많은 물을 뽑아 올릴 수 있는 밑천이 됩니다. 그 한 바가지의 물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바로 ‘마중물’이라 합니다. 그 한 바가지의 물이 땅 속의 많은 물을 마중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한 바가지의 물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희망’입니다. 그 물 한 바가지가 있기에 많은 물을 퍼 올릴 수 있고, 목마른 사람들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물은 이미 물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오늘 우리 곁에 희망을 잃은 채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을 보내고 이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연말연시의 계절입니다. 이럴때면 왠지 흥청거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때로는 우리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한숨쉬는 소리만 들려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못살겠다는 소리만 들립니다. 이러한 절망이 사실은 오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늘 반복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절망적인 상황이 등장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50년전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 유다 왕국은 총체적인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5절 이하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유다 왕국은 주변의 수리아, 앗수르를 비롯한 강대국과 북 왕국 이스라엘과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약소국인 유다는 번번이 패했고, 본문이 말씀하는 바와 같이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다 불타고, 이방인들에게 파괴당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참하다. 다 끝났다! 오늘 본문이 이것만 말하고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 이것이 전부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이제 다 망함으로 인해 ‘희망 없음’이 아니라, 사실, ‘희망 있음’ 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내용입니다. 이것은 성경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은혜입니다. 물론 성경에도 부분적인 절망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 절망, 절대적 절망은 결단코 없습니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독차지 했던 요셉은 형님들에게 미움을 받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애굽의 장군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했고, 급기야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까지 끌려갔습니다.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절망했다는 내용이 성경에 없습니다. 절망같은 상황이 그의 인생 전체를 망가지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요셉은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생각했고, 그 믿음이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자기 민족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로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잠시 동안은 절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자의 밥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담대했습니다. 사자의 밥이 될지라도 그의 신앙생활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가 믿는 하나님의 위대함이 드러났습니다. 이방나라, 다리오 왕까지도 하나님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다리오왕이 사자굴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다니엘을 확인하기 위해 고백한 내용을 보면,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고 사자굴속을 향하여 외친 말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나온 후에 왕은 다시 백성들을 향하여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단6:26-27). 두려워해야 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능력의 손길로 그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절망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죽어라고 교회에 충성해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의 인생 전부가 송두리째 망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궁극적인 희망이신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절망 중에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 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여기에서 “겨우 남았도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씨앗입니다. 다 없어진 게 아닙니다. 아직 남은 게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조금 남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금 남은 게 대수냐? 그까짓 것 왜 남겨 다 없애버리지’ 하고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그러나 조금 남겨두신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남겨두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이고, 그 희망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에게 희망을 씨앗을 남겨 두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훌륭한 사람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충분히 희망의 씨앗을 바꿀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남겨 두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조금 남겨두신 사람들, 그들은 형편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배신을 밥먹듯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여기서 ‘거역하다’는 말은 ‘도망치다, 달아나다’는 뜻입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 등돌리고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3절, 4절을 봐도 그렇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참 가관이지요. 이런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남겨 두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죄인에게도 희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의 것만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희망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들만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10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희망은 죄인들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자격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가치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희망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인인데, 죄인에게 주신 것이 희망이니, 희망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바로 내 것입니다. 우리 대구칠곡교회의 것입니다. 이 희망을 잘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앞뒤 좌우로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이 바로 나의 희망입니다” 이 희망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우리는 잃어버린 것으로 인한 유익을 발견하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잃으면 안타까워합니다. 잃으면 그것 때문에 인생이 끝나는 줄 알고 절망합니다. 랍비 아키바가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밤이 되었을 때, 아키바는 오두막 한 채를 발견하고 거기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램프를 켜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바람이 불어 램프가 꺼지자 할 수 없이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자는 동안에 이리가 와서 밖에 있던 개를 죽였고, 얼마 후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절망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했습니다. 어떤 마을에 이르렀는데, 전날 밤 도적이 나타나서 그 마을을 파괴하고 마을 사람 모두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만약 램프가 꺼지지 않았다면 그도 도적에 발견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개가 살아서 짖었더라도 도적에게 발견되었을 것입니다. 당나귀가 살아 있어도 발각되었을 것입니다. 개와 당나귀를 잃은 대신에 자신의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잃어버린 것 때문에 도리어 자신의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나쁜 일이 가져오는 좋은 일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것만 보는 눈으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 그것으로도 우리에게는 너무 귀중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또 다른 희망의 눈, 희망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금 잃어버린 것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계십니까? 잃어버린 것을 통해 얻을 유익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아직도 남겨두신 것들이 있음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의 남편은 선지자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던 중 빚을 많이 남긴 채 일찍 죽었습니다. 빚 때문에 그녀는 두 아들마저 내 놓아야 하는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때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는데, 엘리사는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느닷없이 묻습니다. 엘리사는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남아 있는 것을 물었습니다. 그 여인이 대답하기를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기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기름 외에는 다른 먹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직도 기름이 남아 있습니다’와 ‘기름밖에 없습니다’라는 표현 중에 어느 것이 좋습니까? 전자가 훨씬 좋은 표현입니다. ‘아직도 기름이 남아 있습니다’ 다시 엘리사 선지자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선지자의 말을 들은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기름이 그릇에 다 찼습니다. 이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아들이 말하기를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아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 어머니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 들은 후에 말씀하기를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고 했습니다. 이럴때일수록 우리는 남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겨두신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0.1G의 희망’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노만 필 박사님의 상담 사무실에 어떤 중년의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박사님! 저는 이제 끝장입니다. 사업이 부도가 나서 하루아침에 다 날아 가버렸습니다. 빚쟁이들이 차도, 집도, 제가 진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늙어서 다시 시작하기도 힘들고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노만 필 박사님은 흰 종이 한 장을 꺼내 놓으며 물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나요?” “예.. 정말 저는 절망적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박사님...” “부인은 아직 살아 계신가요?” “예. 결혼한 지 30년 되었습니다.” “그럼 여기에 부인 이름을 적겠습니다. 아이들은 몇 인가요?” “셋인데, 다 공부를 잘해요.” “그럼 여기에 '아이들'이라고 적겠습니다. 자, 그럼 부인과 아이들을 얼마에 파시겠습니까?” “예? 아내와 아이들을 팔아요? 에이, 그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절대로 팔 수가 없지요.” “그럼, 가장 비싸고 소중한 것은 그대로 가지고 있네요?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 쟎아요! 빨리 가세요. 가장 소중한 것이 있는 곳으로” 아무리 없어도 남겨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주님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변형되었습니다. 세 제자들에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이 고백을 할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다시 제들에게 나아오셔서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실 때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어떤 광체도 아니요 화려한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산의 나무도 벌거벗은 산도 아닌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사실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 개눈에는 똥밖에 안보인다면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의 눈에는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 펌프 물을 퍼 올리려면 마중물 한 바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중물과 같은 분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써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퍼 올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보혈을 하나님의 사랑의 펌프에 부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남겨두신 ‘희망’이십니다. 영원한 소망이십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우리 성도님들,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그 때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나와 함께함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초호화 유람선이 빙산에 부딪혀 대서양 차가운 물속에 잠긴 지도 벌써 93년이 지났습니다. 그 거대한 유람선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직전, 그 아비규환의 지옥 같은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 길을 찾아보지만, 배가 통째로 가라앉는 그 마당에 살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영화를 보면 그 절대 절명의 순간에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옵니다. 악기를 켜는 연주자들이 하나 둘 모여 갑판 위에서 연주를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치는 데, 그들은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접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주고자 연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연주하는 곡을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세 번 연주하는데, 처음 곡은 결혼식 피로연 곡입니다. 죽음의 아비규환 앞에서 결혼식 음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조금은 여유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두 번째 곡은 오르페우스입니다. 아직 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갑판까지 잠길 지경이 되었을 때, 그들이 마지막으로 연주한 것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란 찬송가였습니다. 급하지 않을 때는 결혼식 피로연 곡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돈도 소용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돈 다발을 던지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순간에 아무 것도 소용 없습니다. 마지막엔 오직 주님뿐입니다. ‘내 주를 가까지 하는 것’ 뿐입니다.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의 형편은 어떻습니까? 살기 힘든 이 세상에서 절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를 덮으려 할 때, 희망이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 주님을 바라봄으로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드시길 원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 이하에 보면,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려도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가지고 새해를 맞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비전입니다. 망년회를 하지만 어렵고 힘들고 괴로웠던 모든 것은 잊어버리세요. 앞을 향해 나아가는데 거추장스럽고 걸림돌이 되는 장애될만한 것은 다 내려놓고 새해를 맞도록 합시다. 그러나 내려놓아서는 안되는 것, 반드시 가지고 출발해야 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물러서지 마십시다. 아무리 힘들어도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 아니 우리를 위해 남겨두신 희망을 바라봅시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하나님은 완전히 거두어가시지 않고 반드시 남겨두신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마중물 같은 것을 남겨놓았습니다. 없어진 것, 잃어버린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작지만 남겨놓은 그것을 바라보며 삽시다. 절망 같은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희망을 갖고 출발해야 합니다. 소망을 갖고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은 주님이 이루어주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친히 그 보혈의 핏값으로 세우신 대구칠곡교회를 위해 조금 남겨두신, 그 희망을 선포하며 나아가시게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결국을 아는 지혜/ 벧전1:5-9/ 송년주일설교/ 2011-12-28
결국을 아는 지혜 벧전1:5-9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겔 18:20)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연초에 여러분들은 많은 계획을 세우고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해오셨을 줄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연초에 시작했던 일들이 지금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요? 아마 여러분들이 일년 뒤를 생각하고 바라보며 그 결국을 예상하면서 살았다면 아마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온 한해가 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지 않고 되는대로 사셨다면 지금 올해를 마무리하는 여러분들에게는 많은 후회와 회한이 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지혜있는 사람은 당장 눈 앞에 있는 일만 생가하지 않고, 먼 미래를 내다 볼 줄 아는 사람이요, 그 일의 결국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반대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사건과 행위의 결국을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청지기 직분을 빼앗기게 된 사람이 청지기직을 그만 둔 후에 될 일을 생각하면서, 땅을 파자니 부끄럽고 얻어 먹자니 부끄럽고 해서 자기가 청지기로 있을 때에 인심이나 써 두자고 생각하여 빚진 자들을 모두 불러다가 탕감해 주는 것을 보고, 그 주인이 지혜있다고 칭찬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듯 일의 결국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을 소유한 자는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한 말씀대로 믿음은 바로 말씀을 통해 모든 일의 결국을 미리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말씀에 의지해서 모든 이르이 결국과 삶의 결국을 영감으로 깨닫고 아는 것이 믿음이므로 믿음을 가진 자는 참으로 지혜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거짓된 악한 영이므로 사람을 속여서 일의 결국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특히 죄의 결국을 알지 못하도록 해서 범죄케 하여 멸망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마귀는 하와를 속여서 \'따 먹는 날에는 너도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인류의 조상이 이 사단의 거짓말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보다 더 믿고 범죄하여 세상에 불행과 멸망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요 8:44에 보며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늬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서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의 목적은 전 인류를 속여서 결국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겔 18:4에 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으며, 에스겔 18:20에도 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고 했습니다. 죽이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요, 죽이는 방법은 일의 결국에 대한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사단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은 믿지 않고 이단 사설, 마귀의 거짓말을 더 믿다가 멸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든 일의 결국과 미래를 알기 원하는데, 알아야 될 것은 알려고 하지 않고, 몰라도 될 것을 더 알려고 듭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 주지 않는 것은 기어코 알려고 하다가 그만 잘못되고 마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믿어서 마귀에게 속지 말고 미래를 바로 알고 일의 결국을 바로 알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마귀에게 속아서 파멸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 일의 결국을 알아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술의 결국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술 마시는 데 많은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잠 23:31,32에 보면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 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붉은 빛의 술은 아름답게 보이나 피의 색깔입니다. 죽음으로 끝나게 됨을 경고합니다. 알콜은 독약입니다. 알콜은 중추 신경을 마비시키고, 도덕 의식과 책임감을 죽입니다. 위기 의식도 없어지고 분별력도 없어집니다. 적당히 마신다는 것도 중독되어가다 보면 위험합니다. 롯도 적당히 마시는 자였으나, 재산이 불타 버리고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고, 결혼한 딸들의 남편들이 불타 죽었을 때 만취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말하기도 부끄럽게 친딸들과 동침하여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술주정꾼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술은 사람을 혼미케 하다가 결국 치명적으로 독사같이 물고, 살모사같이 쏩니다. 만약 아직도 술을 입에 대고 있다면 멈추어 그 치명적인 결국을 생각하십시오. 끊고 돌아서십시오. 2. 성적 범죄의 결국 잠 5:3-5에 보면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여자는 더욱 매력과 매혹을 느끼게 합니다. 음란 마귀가 잡힌 여자는 더욱 성적 매력을 풍깁니다. 더 아름다워 보이고, 더 친절해 보이고, 그 입술은 부드럽고 그 몸은 남자의 피를 끓게 합니다. 그러나 그 결국은 파멸입니다. 물론 자연적인 성적 본능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잠 7:25-27에서는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며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 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여자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고, 타락한 여자 때문에 많은 용사들이 살육되었습니다. 그런 여자의 집은 지옥으로가는 길입니다. 잠 9:17에서는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은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했습니다. 음녀의 입술을 맛보기 전에 음녀의 가슴을 안아보기 전에 그 결국이 얼마나 쑥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날 같이 날카로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텍사스 포트워즈에서 자살 직전에 있던 남자가 붙잡혔는데, 이 남자는 악한 여자 때문에 유산을 탕진하고 성병이 심해져서 귀여운 아들과 뽀뽀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를 받고, 마지막으로 자기 신세를 망친 그녀와 동반 자살을 하려고 권총을 준비하고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미국 어느 곳에서 15세 소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기는 엄마의 죄로 코가 비틀리고, 눈이 골았고, 입이 비틀렸습니다. 실로 이러한 성적 범죄는 철저히 회개치 않으면 기회 있을 때마다 또 짓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가정, 그리고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멀리하고 피해야 됩니다. 3. 불의한 재물의 결국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은 돈이 필요합니다. 돈으로 양식을 사고, 의복도 사고, 거처할 곳도 마련합니다. 또 교육도 하고 하나님의 일도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볼 수도 있습니다. 돈은 참으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유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딤전 6:8-10에 보면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한 재물로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탐욕이 무서운 죄를 짓게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탐욕 때문에 가혹한 이자도 받고, 술과 아편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처녀들이 몸을 팔기도 하고, 주일과 십일조도 도둑질합니다. 그러나 렘 17:11에 보면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도리라\"했습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갑니다(Easy Come easy go). 그리하여 그것이 멸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눅 12:16 이하에서 자기만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안심하는 부자에게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습니다. 4. 세상 쾌락의 결국 딤전 5:6에 보면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니 죽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탕자는 세사의 쾌락에 빠져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리고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사람은 일을 하고 수고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휴식과 즐기는 일(enjoy)이 있어야 하지만, 세상 쾌락에 아주 빠져 버리면 반드시 악한 세상 속에서 죄악에 빠지고 타락한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특히 물질의 여유가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존귀하게 되어도 세상 쾌락에 빠지지 않도록 자제해야 됩니다. 이상 특정한 몇 가지 죄의 결국을 살펴 보았습니다. 약 1:15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죄는 사망으로 이릅니다. 로마서 6:23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죄를 짓고 있다면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거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사 55:6,7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죄의 결국이 얼마나 영원하고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아시고, 의로운 지혜의 눈을 떠서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 멘-
결단해야 할 순종/ 빌2:3-11/ 송년주일설교/ 2015-12-27
결단해야 할 순종 빌2:3-11 한 해를 마감하는 주일예배에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결단하기 바랍니다. 타락한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순종을 통해서 주십니다. 여기에 고민이 있습니다. 창조 이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신 것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왔고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순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순종이 모든 것의 핵심입니다. 구원도 순종으로 받습니다.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구원 받습니다. 지옥 간 사람은 불순종해서 지옥에 갑니다. 믿으라는 말을 불순종해서 지옥에 간 것입니다. 그러면 순종이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고 합니다. 즉 말은 주라고 했는데 행동으로 주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이란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모든 행위가 순종입니다. 만약 어떤 행위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순종이 아닙니다. 성경은 ‘아내들아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가령 커피를 끓여달라고 할 때 커피를 끓이는 것이 순종이 아니라. 남편을 남편으로 인정하므로 행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억지로 성질내면서 타박하면서 잔소리 하면서 하는 것은 행위는 커피를 끓이니까 순종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아닙니다. 남편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순종은 밝고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순종을 어둡고 부정적이도록 만듭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밝고 긍정적으로 순종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마귀는 자원해서 할 수 없도록 즐거움으로 할 수 없도록 마음을 조종합니다. 그래서 순종을 하는데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타락입니다. 순종이 아니고 의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기쁨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무엇을 하는 것은 도둑질, 간음과 같이 타락한 것입니다. 헌금을 해도, 봉사를 해도, 자원하는 마음이 없고 억지로 했다면 이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돈이 아니고 시간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의지입니다. 즐거움으로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해라. 그런데 억지로 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순종은 내 실력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내 실력으로는 순종이 즐겁지 않습니다.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예수님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순종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순종을 통해 모든 것을 회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만족이 되셨습니다. 2. 듣되 아래서 듣는 것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순종은 듣는 것입니다. (쉐마) =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인데 단순히 청각적인 것만 아니라 듣는 마음의 자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순종(ύπακοη)은 ‘아래에서 듣다’, ‘밑에서 듣다’입니다. 커피를 끓이는 일을 밑에서 하는지, 옆에서 하는지에 따라 순종인지 불순종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밑에서 들으면, 겸손하게 들으면, 기쁜 마음으로 들으면 순종입니다. 그러나 거북하게 들으면, 억지로 들으면 불순종입니다. 불순종의 모델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자기의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 곧 타락한 천사입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인 하나님 밑에 있지 않고 하나님 옆자리 심지어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했던 존재입니다.(사14:13-14) 그러므로 자기 자리를 높이는 것이 불순종입니다. 자리는 내려가야 합니다. 마음자리가 내려가지 않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불순종입니다. 윗자리는 하나님 자리였습니다. 아담의 타락도 마귀에게 배운 것입니다. 마귀가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라는 말에 유혹을 받고 하나님 옆으로 가려고 했기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기에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동등하시지만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밑으로 내려가 순종하셨습니다.(빌2:6-7) 요즘은 자식을 하나 혹은 둘을 낳아서 자식을 옆에 놓고 키웁니다. 혹은 위에 놓고 키우니까 결국 불효자식 됩니다. 밑에 두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개념을 넣어주어야 합니다. 순종은 대상자를 알아보고 밑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순종의 자리로 내려가야 합니다. 빌2:3절 말씀처럼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는 말씀처럼 서로 밑으로 내려가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 밑으로 내려갑시다. 서로 밑으로 내려갑시다. 먼저 일어납시다, 먼저 인사합시다. 밑으로 내려가는 일을 합시다. 밑에서 하는 마음으로 사역합시다. 한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이하며 순종을 결단합시다. 진정한 순종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류우열 목사(인천 복된교회)
결론은 좋다 /신34:1-12 2014-01-17 15:14:41 read : 22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어느 덧 2012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 한 해가 지나는 감회가 있습니다. 목표하였던 것을 뜻대로 이루지 못 한 허탈감도 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까지 못 갔어도 결론이 좋으면 좋은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에 모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결론은 좋다 /신34:1-12 2014-01-17 15:14:41 read : 220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어느 덧 2012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 한 해가 지나는 감회가 있습니다. 목표하였던 것을 뜻대로 이루지 못 한 허탈감도 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까지 못 갔어도 결론이 좋으면 좋은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에 모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의 식구가 70명 되었었습니다. 양식을 구하러 애급으로 들어갔습니다. 금방 나온다고 하는 것이 400년이었습니다. 그 것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200만으로 민족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애급에서 10가지 재앙으로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식구가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불과 며칠이면 늦어도 몇 주면 원하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한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오는 길고 긴 세월 40년이었습니다. 편안한 곳에서 40년은 별 것 아닐이지 모릅니다. 그러나 텐트를 치고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사막에서 그것도 200만명이 42번 옮겨 살면서 40년을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그토록 사모하던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한 눈에 보는 모세는 감격을 넘어 흥분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청천벽력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모세는 미치도록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정말 가고 싶었습니다. 꿈에도 가고 싶은 곳이 가나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목표가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을 보여만 주시고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미드라쉬는 그 때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고 땅위에 원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것이 내 평생 소원이 아니었습니까? 들어가서 죽게 하옵소서.” 모세는 금 밖으로 나가지 않고 금식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세를 하늘로 데리고 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 기도가 하나님께 들리지 못 하도록 창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56번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할 수 없이 천사들이 하나님께 보고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에게 가서 장례는 내가 직접 하여 줄 터이니 그런 기도하지 말라고 하여라.” 천사가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장례를 치루어 주신다는 말을 듣고 모세는 그런 기도를 포기하였습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장례를 치루어 주셨기에 모세의 시체는 오늘날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생명걸고 가고 싶었던 목표를 이루지 못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를 이루지 못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다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지만 때로는 기도대로 응답되지 못 하여 절말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는 그대로 응답하여 주시는 나의 심부름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보면 더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까지 못 갔어도 결론은 좋았습니다. 사실은 가나안에 들어갈 후보를 뽑는다면 제 일인자가 모세입니다.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갈 가장 적격 후보 자격은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만 못 들어가고 다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목표를 이루지 못 하였지만 더 좋은 결과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못 갔어도 결론이 좋았습니다. 못 이루었어도 결론은 더 좋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무엇이 더 좋아졌나요? 1. 신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신비한 사람이었습니다. (1) 탄생의 신비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자손들이 많아지겠다고 하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현장이었습니다. 애급 왕 바로는 그대로 두면 큰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자들이 임신하면 딸이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그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다른 집에 태어난 아들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하나만 살아났습니다. 그것도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의 딸이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의 궁중에 가서 살았습니다. 신비한 출생이었습니다. (2) 하나님 만남의 신비 모세는 하나님을 가시떨기에서 불이 붙고 타는 모습속에서 만났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모세 한 사람뿐입니다. (3) 생애의 신비 모세는 120년 살았습니다. 그런데 40년은 궁중에서,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도피 생활, 그리고 나머지 40년은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두부를 똑같이 3 토막으로 나눈 것같은 삶이었습니다. 신비한 삶이었습니다. (4) 건강의 신비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당시 모세는 자기가 스스로 쓴 시편에서 사람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말했습니다(시 90;16) 모세 당시 최고 오래 사는 사람이 80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보다 40년을 더 살았습니다. 나는 103살 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최고 나이라면 143살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신비입니다. 그런데 눈도 흐리지 않았고 기력도 좋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5) 시신의 신비 모세가 죽자 그의 시체를 놓고 영적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 9) 모세 시체를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서로 차지 하겠다고 대단한 영적 전쟁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성경에 처음입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이겨서 모세의 시체를 차지 하였습니다. 오늘 날 모세 시체가 어디에 묻혔는 지 모르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만일 마귀가 이겼다면 모세의 시체는 이 땅에 묻혔을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의 무덤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도 관광지이지만 빈 무덤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생명입니다. 모세의 시신도 신비입니다. 나는 미국 문둥병자들을 모아 살게 한 카라우파파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벨기에 신부 다미엔이 그들과 함께 살다가 문둥병에 걸려 죽은 곳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다미엔이 사용하던 괭이 한 부분을 가지고 왔습니다. 1889년 2월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4월 13일부터는 혼수상태였다. 고난주간이 시작된 월요일 4월 15일다미엔은 그토록 사랑하였던 문둥환자들을 남기고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49세였습니다. 다미엔은 그 곳에 안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47년이 지난 1936년이었습니다. 벨기에서는 자기 나라의 성자 다미엔을 자기 나라로 모시고 와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벨기에왕 레오폴드(Leopold) 다미엔의 시신을 가지고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카라우파파 문둥환자들이 그 시신을 주려고 할 리가 없었습니다. 막무가네였습니다. 벨기에 정부는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요청하였습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카라우파파 사람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을 당신들이 그토록 오래 독차지 한 것만도 감사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미엔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시신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듣고 카라우파파 문둥환자들은 자기들만의 욕심을 포기하고 다미엔 시신을 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다미엔 시신이 옮겨지던 날 카라우파파는 통곡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했는 지 언제부터 전해내려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말들이 하와이 전체 섬에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미엔의 시신을 옮기면 누군가는 죽는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미엔의 시신이 벨기에로 옮겨진 던 날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미엔의 시신을 옮기려고 배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장이 없어졌습니다.배가 떠날 시간이 되었는 데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잡듯이 뒤졌습니다. 그러나 선장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론은 없습니다. 아직까지 아무도 그 선장이 어디로 갔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고를 당하였는 지 살해되어 암매장되었는 지 누구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신비입니다. 모세 시신과 같습니다. 모세의 시신은 신비였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기도하고 원하던 가나안에는 못 갔어도 결과는 더 좋았습니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못 갔어도 우리에게 확실한 것을 하나 보여 주었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 주었습니다.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있는 사람의 순서를 정하라고 하면 단연 모세가 1번일 것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모세의 공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모세가 이런 사실을 확실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욥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당시 하나님을 몰랐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아버지는 우상 장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야의 조상으로 욥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왜 그런 지 우리는 모릅니다. 단지 대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니느웨도 소돔과 고모라도 범죄의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는 요나를 보내셔서 모두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는 아무도 안 보내시고 유황불로 멸하셨습니다. 왜 그럴가요? 모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야고보는 감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감옥에 천사를 보내셔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시나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엿장수가 가위을 일분에 몇 번 가위질하나요? 대답은 엿장수 마음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고 계신 분이십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감리교 창설자 웨슬리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어느 가정을 위로 심방가게 되었습니다. 6개월동안 7명 가족 모두를 잃었습니다. 남편 하나 남았는 데 남편이 바다 한 가운데서 배가 뒤집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이제 홀로였습니다. 웨슬리 목사가 집으로 들어 갔을 때 그 여인은 기절하여 있었습니다. 조금 후 그 여인의 정신이 돌아 왔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세요?” 웨슬리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창백한 입술에 미소를 띄우며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내가 쓰러졌을 뿐입니다.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인간이 어찌 불평할 수 있을 가요? 나는 하나님이 제 곁에 늘 함께 계시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우리 식구 모두가 천국에 갔습니다. 나의 마음도 온통 천국에 가있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우리는 순종할 뿐입니다. 모세는 비록 가나안에 들어 가고 싶은 자기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 하였지만 결과는 더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못 갔어도 결과는 더 좋았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사건이 전에도 한번 있었다고 미드라쉬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막의 성물중에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것이 이 등대였습니다. 정금을 망치로 쳐서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성막을 만들면서 등대 때문에 가장 고생을 하였습니다. 다른 성물들은 다 만들었는 데 등대만 만들지 못 하였습니다. 도무지 등대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정금 한 달란트를 망치로 쳐서 등대 모양을 만들려고 하다가 79번이나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거의 포기단계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만들던 등대를 불 속에 넣어라.” 모세는 만들던 등대를 불 속에 넣었다가 꺼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쳤더니 등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등대는 하나님과 모세가 합작하여 만든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고백하였습니다. “성막 완성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못 갔어도 결과는 더 좋았습니다. 결국 이 세상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오페라 가수 배 재철 성도의 성도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2005년도가 그의 인기 절정이었습니다. 그 때 갑상선 암에 걸렸습니다. 36살이었습니다. 소리에 대한 자부심과 세계 무대에 대한 자신감이 절정일 때였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술을 하였습니다. 목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무대를 잃어버렸습니다. 노래를 잃었고, 꿈을 상실하였고 돈이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의 길인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신앙의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폐는 산소가 있어야 움직이지만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움직이는 데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것같았습니다. 건강이 회복되어 가면서 목소리 복원 수술을 받았습니다. 2008년 12월 도꾜에서 열리는 <요꼬하마 러브 쏘나타> 오페라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재기하느냐 마느냐의 첫 무대였습니다. 6000명 관객이 모이는 집회였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만 전념하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부른 곡은 오직 성가였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노래를 부르면서도 자기가 자기가 자기에게 감탄하였습니다. 다시 이런 목소리가 나오게 하셔서 무대에서 노래를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이 꿈만 같았습니다. 목소리도 바뀌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목소리만 바꾸어 주신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바꾸어 주셨습니다. 갑상선 암에 걸리기 전에는 인기가 목표였습니다. 유명하여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노래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명성과 찬사가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사라졌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하였지만 그는 더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3. 후계자를 잘 선정하였습니다. 어차피 큰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지만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합니다. 자기 혼자 일 잘 하는 것도 좋지만 후계자를 잘 선정하여 그 일을 잊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좋은 교회가 후계자를 잘못 두어서 망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 지방에도 2000명 모이던 교회가 지금 250명 모이고 있습니다. 후계자로 잘 인계되지 못 하여 망쳐진 교회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죽기 전에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그에게 안수하였습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신 34;9) 모세에게 임하였던 영이 모두 여호수아에게 임하였습니다. 안수를 통하여 인수 인계가 정확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가고 싶어하였지만 들어가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광야 생활 40년에는 모세같은 온유한 지도자가 필요하였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광야생활은 텐트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물도 없습니다. 양식도 없습니다. 농사도 지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렵기에 짜증나고 불쾌지수가 높은 삶입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짜증이 나고 신경이 날카로운 곳입니다. 이 때 지도자는 모세처럼 온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모두를 품에 안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면 다음 날부터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은 들어가 보니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7 족속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족속, 헤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그리고 여부스 족속이었습니다. 전쟁을 하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모세같이 온유한 지도자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같이 군인 자질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를 바꾸셨습니다. 비록 모세는 자기가 목표하는 것을 이루지 못 하였지만 결론 더 좋게 되었습니다. 못 갔어도 결론은 좋았습니다. 2013년도가 다 지나갑니다. 비록 금년도에 목표한 곳에 가지 못 하였어도 더 좋은 결론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결산 할 때 /마25:14-30
결산 할 때 /마25:14-30 2010-07-26 16:20:02 read : 338 -오늘은 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벽에 걸린 마지막장 달력을 내리면서 세월의 아쉬움을 느끼는 주간입니다. -2008년도, 내 생애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시간과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시간이란 그냥 강물 흘러가듯이 흘러만 가버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했고, 천국을 향해 1년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고, 한정된 나의 수명을 수명이 1년이 더 줄어들게 만든 한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70-80번 마지막장 달력을 내리면 우리 인생은 끝을 맺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직전에서 우리는 70-80년 살아온 자기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회한(悔恨)에 젖게 됩니다. /허무한 인생이었구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닷가 어촌에서 홀로 살아가는 산티아고라는 가난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일생을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인생을 살아온 늙은 노인입니다. 어느 날 노인은 낚시를 배에 싫고 매우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노력을 한 후에 드디어 청새치 한 마리가 낚시를 물었다. 자기가 탄 조각배보다 더 등치가 큰 놈이다. 노인은 꼬박 이틀 동안 배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리면서 싸웁니다. 그리고 겨우 힘이 빠진 청새치를 끌로 노를 저어 바닷가로 나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상어 떼를 만나게 됩니다. 또 상어 떼와 사투를 벌립니다. 노인이 간신히 바닷가에 도착을 하여 낚시 줄에 걸린 청새치를 모래사장으로 끌어 올립니다. 그러나 낚시에 걸려 올라온 청새치는 상어 떼에게 다 뜯어 먹인 앙상한 물고기의 뼈만 남았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생의 허무’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난 2008년 한해를 살면서 이 노인과 같이 험난한 인생의 고해(苦海)에서 사투를 벌리며 한 해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2008년도 마지막 시간에 인생의 낚시 줄을 올려보니 앙상한 물고기의 뼈다귀만 남아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천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달란트 비유’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적인 진리는 ‘천국은 결산하는 나라’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산 일생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남겼나?, 어떻게 살았나?, 선악 간에 심판을 받게 되고, 우리의 일생에 대하여 결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달란트를 맡김 -14-15절을 읽읍시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여기서 타국에 간주인은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여기서 종들은 바로 우리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달란트는 우리에게 준 재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각각 귀한 재능-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의 재능... *금 1달란트=34kg, 1돈=3.75g, 약11만원, *금 1달란트=10억원, 2달란트=20억원, 5달란트=50억 -여러분 중에 아무도 나는 이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각자에게 인생을 복되게 살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값지고 놀라운 재능들을 선물로 주어 보내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그 달란트로 여기까지 살아 온 것임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 충성된 종들 -16-17절을 읽읍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여기서 중요한 두 단어가 있습니다. ① ‘바로 가서...’-시간을 아꼈다는 뜻입니다. -벤자민 프랭크린 -Time is money-“시간은 돈이다” 고 하였습니다. -요즘 유명 변호사에게 1시간 법률상담을 받는데 30만원-100만원을 상담비로 내야 합니다. -요즘 경제원리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이 시간과 인재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잘 활용해야 돈을 벌고 성공을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남는 게 시간뿐이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지냐?” 고 물어보면 ‘방콕’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지(四肢) 멀쩡한 사람들이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노느냐고 물어보면...“할일이 없어서 논다..”고 말합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꼭 돈을 버는 일만 중요한 시간이 아닙니다. 돈을 못 벌어도 보람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비유에서 말하는 달란트가 꼭 돈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달란트(Talant)가 재능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돈버는 일자리가 없더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을 사용하는 일에 시간을 소중하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빠른 교통수단, 전화, 인터넷 같은 편리한 정보시대에 살다가 보니까, 우리는 얼마나 시간을 세이브(save)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가서..’ 노력했다는 것은...시간을 소중히 여겼다는 뜻입니다. 낭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입니다. -여러분..! 2008년 한해를 살면서 얼마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살았습니까? -빈둥빈둥 놀면서 밥만 축내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사용한 시간에 대하여 결산하자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난 1년간의 삶을 무엇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며 살았습니까? -또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많이 빼앗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괜한 일로 불러내어 내어 노닥거리고, 쓸데없는 잡담이나, 잡기를 하면서 시간을 빼앗지는 않았는지요? -약속시간을 여러 차례 어기면서 남의 소중한 시간을 망처 놓지는 않았는지요? -전화기를 붙잡고 1시간, 2시간씩 쓰잘데 없는 이야기로 통화하면서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버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② ‘장사하여..’ -부지런히 일했다는 뜻입니다. -장사하는 일은 부지런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 문을 열고 밤 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고 장사를 해야 합니다. -늦게 문 열고, 일찍 문 닫고, 지 바쁘다고 수시로 가게문 닫아걸고 하는 사람은 결코 그 장사 일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장사는 다른 일도 그렇지만 부지런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들은 ‘바로 가서’ ‘장사하여..’ 또 5란트, 2달란트의 이익을 남겼다고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일했다는 것입니다./부지런한 성공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습니다. *L 회장이 사업을 처음 할 때였다. 미국에 있는 한 교포가 사업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서 넥타이를 선물했다. 그런데 넥타이에는 영문 알파벳 ‘Y.C.D.N.O.Y.A’가 적혀 있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이 회장은 그 뜻이 궁금해 물어 보았다. 그 뜻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You can do nothing on your armchair) 라는 의미의 약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회장은 그 말을 듣고 이것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의 옛말에도 “사람은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뒤로 이 회장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30년 세월을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 그분은 저녁 9시 TV 뉴스를 본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일찍 자고 새벽 4시에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구어 놓은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고 칭찬 받은 종들은 모두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 하므로 성공하고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들은 10달란트, 4달란트의 돈을 결산 한 것이 아니라...자신들의 인생의 시간을, 근면한 삶을 하나님께 결산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2008년도 이 마지막 시간에 여러분의 한 해에 대하여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런 것들을 찾아 결산하실 것입니다. ☐ 게으른 자의 벌 -27-30절을 읽읍시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1달란트 받았던 종에 대한 주인의 책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단어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이라는 말입니다. -1달란트 받아서 땅에 파묻은 것은 아무리 변명을 하여도 그것은 악한 행동이고, 게으른 모습입니다. -1달란트가 적어서가 아닙니다. 10억의 자산입니다.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말씀처럼 이자만 계산해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됩니다. -순전히 주인에 대한 불신과 게으름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게으름에 대하여 주시는 교훈이 많습니다. -잠언 26:13...‘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잠언 6:6...‘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언 15: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잠언 26:15...‘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잠언 10:26...‘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잠언 24:33-34...‘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있자 하니, 네 궁핍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 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개미와 베짱이 3탄 <제1탄>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놀다가 겨울이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얻어먹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제2탄> 개미는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에 디스크가 걸려 눕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벌어놓은 재산을 다 탕진하여 거지가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가 너무 노래를 잘 하게 되어 음반을 냈습니다.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혼돈 시대를 말합니다. <제3탄> 개미는 목사님을 모셔다 안수기도를 받고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그 많은 돈으로 술, 마약을 하다가 몸이 망가져 죽었습니다. 다시 정상적인 가치관으로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일과 노동을 천시하고 외면하면 권태, 죄악, 결핍을 물리치기 어렵다"고 했다. *탈무드에도 "자식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도둑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 출생으로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를 지냈던 안셀무스는 "태만은 살아있는 자의 무덤이다." 라고 까지 표현했다. 태만하고 게으른 자는 살아 있어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교훈이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인생이 슬픈 사람이 있습니까? 꿀벌처럼 남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십시오, 그리하면 절대로 슬퍼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시인 괴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활동이다. 내 시간을 지루하도록 길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태다." 옳은 말입니다. *독일의 철혈 수상이라고 말하는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오직 세 가지 말뿐입니다. 일해라. 좀더 일해라. 끝까지 일해라" -작고 소소한 것이라고 우습게보아서는 안 됩니다. 작은 것일수록 더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을 주고 충 성해야 합니다. *1947년에 시카고 근교의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천체물리학자인 첸드리스카 박사입니다. 그가 어느 날에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오셔서 최첨단 고급물리학 Advanced Physic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지요? 과학자가 그러겠다고 승낙을 했어요. 그런데 몇 주 후에 다시 시카고 대학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취소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왜요. 제가 준비 했는데요” “예,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첸드리스카 박사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두 학생, 등록한 학생의 information만 보해 주시지요. 그래서 대학에서 알려줬어요. 첸드리스카 박사는 그 추운 겨울에 강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를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 번도 빠짐이 없이 두 학생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 년이 흘러갔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첸넝 양 박사' 라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충도 리라 박사'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입니다. 그들은 노벨상을 수상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상을 받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비록 두 학생이라고 해도 요령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열매가 맺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금년을 보내는 이 마지막 주간에 우리들의 지난 한 해의 삶에 대하여 결산하자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살아온 시간에 대하여 결산하자고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에 대하여 결산 하자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결산 할 때 /마25:14-30 2010-07-26 16:20:02 read : 6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벽에 걸린 마지막장 달력을 내리면서 세월의 아쉬움을 느끼는 주간입니다. -2008년도, 내 생애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시간과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시간이란 그냥 강물 흘러가듯이 흘러만 가버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했고, 천국을 향해 1년 더 가까이
결산 할 때 /마25:14-30 2010-07-26 16:20:02 read : 621 내용넓게보기. 프린트하기 -오늘은 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벽에 걸린 마지막장 달력을 내리면서 세월의 아쉬움을 느끼는 주간입니다. -2008년도, 내 생애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시간과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 온 것입니다. -시간이란 그냥 강물 흘러가듯이 흘러만 가버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했고, 천국을 향해 1년 더 가까이 다가가게 했고, 한정된 나의 수명을 수명이 1년이 더 줄어들게 만든 한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70-80번 마지막장 달력을 내리면 우리 인생은 끝을 맺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음직전에서 우리는 70-80년 살아온 자기의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회한(悔恨)에 젖게 됩니다. /허무한 인생이었구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닷가 어촌에서 홀로 살아가는 산티아고라는 가난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일생을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면서 인생을 살아온 늙은 노인입니다. 어느 날 노인은 낚시를 배에 싫고 매우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노력을 한 후에 드디어 청새치 한 마리가 낚시를 물었다. 자기가 탄 조각배보다 더 등치가 큰 놈이다. 노인은 꼬박 이틀 동안 배보다 큰 청새치와 사투를 벌리면서 싸웁니다. 그리고 겨우 힘이 빠진 청새치를 끌로 노를 저어 바닷가로 나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상어 떼를 만나게 됩니다. 또 상어 떼와 사투를 벌립니다. 노인이 간신히 바닷가에 도착을 하여 낚시 줄에 걸린 청새치를 모래사장으로 끌어 올립니다. 그러나 낚시에 걸려 올라온 청새치는 상어 떼에게 다 뜯어 먹인 앙상한 물고기의 뼈만 남았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생의 허무’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난 2008년 한해를 살면서 이 노인과 같이 험난한 인생의 고해(苦海)에서 사투를 벌리며 한 해를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2008년도 마지막 시간에 인생의 낚시 줄을 올려보니 앙상한 물고기의 뼈다귀만 남아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천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달란트 비유’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적인 진리는 ‘천국은 결산하는 나라’ 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산 일생에 대하여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결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남겼나?, 어떻게 살았나?, 선악 간에 심판을 받게 되고, 우리의 일생에 대하여 결산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달란트를 맡김 -14-15절을 읽읍시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여기서 타국에 간주인은 예수님 자신을 말합니다. -여기서 종들은 바로 우리들을 말합니다. -여기서 달란트는 우리에게 준 재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각각 귀한 재능-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의 재능... *금 1달란트=34kg, 1돈=3.75g, 약11만원, *금 1달란트=10억원, 2달란트=20억원, 5달란트=50억 -여러분 중에 아무도 나는 이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각자에게 인생을 복되게 살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값지고 놀라운 재능들을 선물로 주어 보내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그 달란트로 여기까지 살아 온 것임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 충성된 종들 -16-17절을 읽읍시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여기서 중요한 두 단어가 있습니다. ① ‘바로 가서...’-시간을 아꼈다는 뜻입니다. -벤자민 프랭크린 -Time is money-“시간은 돈이다” 고 하였습니다. -요즘 유명 변호사에게 1시간 법률상담을 받는데 30만원-100만원을 상담비로 내야 합니다. -요즘 경제원리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이 시간과 인재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잘 활용해야 돈을 벌고 성공을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남는 게 시간뿐이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지냐?” 고 물어보면 ‘방콕’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 가운데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지(四肢) 멀쩡한 사람들이 빈둥빈둥 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노느냐고 물어보면...“할일이 없어서 논다..”고 말합니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해는 합니다. -그러나 꼭 돈을 버는 일만 중요한 시간이 아닙니다. 돈을 못 벌어도 보람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비유에서 말하는 달란트가 꼭 돈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달란트(Talant)가 재능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돈버는 일자리가 없더라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을 사용하는 일에 시간을 소중하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은 빠른 교통수단, 전화, 인터넷 같은 편리한 정보시대에 살다가 보니까, 우리는 얼마나 시간을 세이브(save) 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의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가서..’ 노력했다는 것은...시간을 소중히 여겼다는 뜻입니다. 낭비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입니다. -여러분..! 2008년 한해를 살면서 얼마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살았습니까? -빈둥빈둥 놀면서 밥만 축내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사용한 시간에 대하여 결산하자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지난 1년간의 삶을 무엇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며 살았습니까? -또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많이 빼앗고 살지는 않았습니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괜한 일로 불러내어 내어 노닥거리고, 쓸데없는 잡담이나, 잡기를 하면서 시간을 빼앗지는 않았는지요? -약속시간을 여러 차례 어기면서 남의 소중한 시간을 망처 놓지는 않았는지요? -전화기를 붙잡고 1시간, 2시간씩 쓰잘데 없는 이야기로 통화하면서 다른 사람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 버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② ‘장사하여..’ -부지런히 일했다는 뜻입니다. -장사하는 일은 부지런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 문을 열고 밤 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고 장사를 해야 합니다. -늦게 문 열고, 일찍 문 닫고, 지 바쁘다고 수시로 가게문 닫아걸고 하는 사람은 결코 그 장사 일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장사는 다른 일도 그렇지만 부지런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들은 ‘바로 가서’ ‘장사하여..’ 또 5란트, 2달란트의 이익을 남겼다고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일했다는 것입니다./부지런한 성공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습니다. *L 회장이 사업을 처음 할 때였다. 미국에 있는 한 교포가 사업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서 넥타이를 선물했다. 그런데 넥타이에는 영문 알파벳 ‘Y.C.D.N.O.Y.A’가 적혀 있었다.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이 회장은 그 뜻이 궁금해 물어 보았다. 그 뜻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You can do nothing on your armchair) 라는 의미의 약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회장은 그 말을 듣고 이것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리의 옛말에도 “사람은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뒤로 이 회장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30년 세월을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 그분은 저녁 9시 TV 뉴스를 본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일찍 자고 새벽 4시에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구어 놓은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고 칭찬 받은 종들은 모두 시간을 아끼고 부지런 하므로 성공하고 주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들은 10달란트, 4달란트의 돈을 결산 한 것이 아니라...자신들의 인생의 시간을, 근면한 삶을 하나님께 결산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2008년도 이 마지막 시간에 여러분의 한 해에 대하여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런 것들을 찾아 결산하실 것입니다. ☐ 게으른 자의 벌 -27-30절을 읽읍시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1달란트 받았던 종에 대한 주인의 책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단어가 26절의 ’악하고 게으른..‘ 이라는 말입니다. -1달란트 받아서 땅에 파묻은 것은 아무리 변명을 하여도 그것은 악한 행동이고, 게으른 모습입니다. -1달란트가 적어서가 아닙니다. 10억의 자산입니다.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말씀처럼 이자만 계산해도 큰 이익을 남길 수 있게 됩니다. -순전히 주인에 대한 불신과 게으름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게으름에 대하여 주시는 교훈이 많습니다. -잠언 26:13...‘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잠언 6:6...‘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언 15: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잠언 26:15...‘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잠언 10:26...‘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식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 -잠언 24:33-34...‘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있자 하니, 네 궁핍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 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개미와 베짱이 3탄 <제1탄>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놀다가 겨울이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개미에게 얻어먹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제2탄> 개미는 열심히 일하다가 허리에 디스크가 걸려 눕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벌어놓은 재산을 다 탕진하여 거지가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노래만 하다가 너무 노래를 잘 하게 되어 음반을 냈습니다.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치관의 혼돈 시대를 말합니다. <제3탄> 개미는 목사님을 모셔다 안수기도를 받고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베짱이는 그 많은 돈으로 술, 마약을 하다가 몸이 망가져 죽었습니다. 다시 정상적인 가치관으로 돌아온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일과 노동을 천시하고 외면하면 권태, 죄악, 결핍을 물리치기 어렵다"고 했다. *탈무드에도 "자식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도둑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 출생으로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를 지냈던 안셀무스는 "태만은 살아있는 자의 무덤이다." 라고 까지 표현했다. 태만하고 게으른 자는 살아 있어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교훈이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인생이 슬픈 사람이 있습니까? 꿀벌처럼 남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십시오, 그리하면 절대로 슬퍼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시인 괴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시간을 짧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활동이다. 내 시간을 지루하도록 길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태다." 옳은 말입니다. *독일의 철혈 수상이라고 말하는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오직 세 가지 말뿐입니다. 일해라. 좀더 일해라. 끝까지 일해라" -작고 소소한 것이라고 우습게보아서는 안 됩니다. 작은 것일수록 더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을 주고 충 성해야 합니다. *1947년에 시카고 근교의 천체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천체물리학자인 첸드리스카 박사입니다. 그가 어느 날에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박사님 겨울방학 동안에 저희 대학에 오셔서 최첨단 고급물리학 Advanced Physic에 관한 특별강의를 좀 해주시지요? 과학자가 그러겠다고 승낙을 했어요. 그런데 몇 주 후에 다시 시카고 대학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강의를 취소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왜요. 제가 준비 했는데요” “예, 클래스가 너무 작아서요.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첸드리스카 박사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클래스가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 두 학생, 등록한 학생의 information만 보해 주시지요. 그래서 대학에서 알려줬어요. 첸드리스카 박사는 그 추운 겨울에 강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시카고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를 일주일에 이틀 동안 한 번도 빠짐이 없이 두 학생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십 년이 흘러갔는데, 놀라운 사실은 이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첸넝 양 박사' 라는 분이고, 다른 한 분은 '충도 리라 박사'라는 중국계의 미국 과학자입니다. 그들은 노벨상을 수상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상을 받게 된 데는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비록 두 학생이라고 해도 요령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강의했던 첸드리스카 박사 때문에 이런 아름다운 열매가 맺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금년을 보내는 이 마지막 주간에 우리들의 지난 한 해의 삶에 대하여 결산하자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살아온 시간에 대하여 결산하자고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에 대하여 결산 하자고 하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