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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과 감리교회/ 갈5:1-13/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04-03-01
3.1운동과 감리교회 갈5:1-13 오늘은 3.1운동 84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주후 1919년 3월 1일은 일제 탄압에서 우리 민족은 서울, 평양, 대전, 광주, 대구 등의 도시를 비롯하여 방방곡곡에서 전국적으로 독립만세를 부르며 한국인은 자유인이라는 것을 세계에 호소한 바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말하기를 1919년을 ”아시아의 위대한 자각과 독립의 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3월 1일. 한국 민족의 만세 독립 운동이고, 둘째, 3월 30일. 간디의 영도하에 있었던 영국에 대항하여 인도의 비폭력 무저항운동이며, 셋째, 5월 4일. 중국 북경 대학생들의 항일시위 운동이 그것인데, 이들 세 운동의 특징을 본다면, 하나는 외세의 침략에 대한 민족의 생존권과 자유권을 수호하려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전민족이 참여하는 총체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이때에 우리 민족은 불가항력 속에서도 3.1운동을 일으키게 된 동기는 첫째로, 1910년에 일본에게 강제로 병합된 이후 말할 수 없는 일제탄압으로 고통과 망명의 쓰라림을 당하여 자유와 독립을 달라는 폭발이고 둘째는, 인권의 유린과 굶주림으로 시달리며 말과 성까지도 빼앗기게 되는 과정에서요, 셋째는, 1914년에 시작된 세계대전 이후 1918년 11월 11일. 연합국의 완전 승리로 전쟁이 종국되고 파리강화회의가 열리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세계의 영구평화를 희구하면서 그의 기본적 조건으로 14조의 원칙 중에 세계민족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하라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시함으로 조국광복의 기회를 찾고 있던 우리 민족에게는 큰 희망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이유들이 3.1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맨주먹으로 나아가 만세를 불렀습니다. 모두 2백만 애국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4만 6천 명이 투옥 당했습니다. 1만 5천여 명이 피살되었습니다. 이렇게 돌멩이 한 개도 들지 않고 총칼 앞에 맞서서 비폭력 무저항 투쟁을 벌인 것은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자유 수호 정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처럼 사람은 본래가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창조함을 받을 때에 자유함으로 받았습니다. 평등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엄격하게 말해서 계급과 귀천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에서 벗어나는 인간들의 조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일본의 한 시인은 어린이가 출생하면 첫 음성이 우는 것이라 하지 않고 그것은 자유의 감탄사라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면 누구나가 분가를 원하는 것은 인간 기본의 자유의 갈망에서라는 것입니다. 본문 갈라디아서 5: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고 계속해서 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유를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① 정치적인 자유를 위하여 자신을 불살라버린 애국자, 우국지사가 많이 있습니다. ② 경제적인 자유를 위하여 조국도 버리고 형제도 친구도 버린 이들이 많습니다. ③ 육체적인 향락의 자유를 위하여 신앙도 버리고 가족도 친구도 버리고 후회하는 이가 많습니다. ④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명예도 물질도 초개같이 버리는 이도 많습니다. ⑤ 종교적인 자유를 위하여 그의 인격도 자존심도 버리고 순교적인 길을 택하는 이도 적지 않습니다. 어떠한 자유이든지 그 자유의 보장되는 기초가 있습니다. 3.1운동은 그 당시에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자유의 기초라 할 수 있습니다. 3.1운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운동이기에 지금까지 고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국민은 이 위대한 정신을 간직하고 부패와 타락과 거짓된 양심을 회복하고 3.1운동의 위대한 교훈을 살리는 운동이 벌어져야 이 조국에 새로운 소망이 있습니다. 3.1운동을 종합 분석해 볼 때 1. 우리 감리교회는 중앙에서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박희도 전도사님을 중심해서 서울에서 운동을 벌여 평양, 원산, 수원, 천안, 공주 등지에까지 확산시켜 3.1운동의 핵심 역할을 하였습니다. 2. 우리 감리교회는 중앙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최일선에서도 가장 많이 운동을 하였습니다. 지방운동 대표 6명중 4명으로, 평남의 책임자는 신홍식 목사님, 개성과 황해도는 오화영 목사님, 함남은 정춘수 목사님, 경기과 충청도는 김세환 선생님 등으로 평북과 경상 전라도를 제외한 전역에 걸쳐 3.1운동을 하였습니다. 3. 우리 감리교회는 학생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세 운동을 배재 학교, 이화 학교, 배화 학교, 송도고보 학교 등 많은 감리교 계통 학교들이 주동이 되어서 전 한국에 흩어져 있는 여러 미션 스쿨이 일어나 계속 되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4. 3.1 독립운동에 성도는 참여했어도 교회는 참여하지 아니했다고 하니 우리 감리교회는 교회들이 독립운동에 직접 간접으로 참가하였습니다. 서울의 상동/정동/중앙감리교회를 모체로 해서 많은 교회들이 참가하였습니다. 특별히 평양에서는 다른 교파에서는 학교에서 운동을 하였지만 감리교회는 남산현 교회당에서 봉도식도 하고 3.1운동을 벌렸습니다. 5. 우리 감리교회는 여성들의 활동이 특이하게 나타났습니다. 서울, 평양 등지에서의 독립운동 단체에는 우리 감리교 여선교회 회원들이 대거 참여하여 그 지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타교파나 일반인과 함께 할 때라도 언제나 감리교인은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6. 우리 감리교회는 해외활동에서도 특이하게 참가하였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현 순, 손정도 목사님을 비롯하여 미주에서의 감리교인의 활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감리교회는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대담하게 역사에 참여해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개인의 구원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원을 적극적으로 힘쓰는 역사적인 감리교회 였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한국 감리교회는 민족교회로서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애국적인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당시 조선민족대표 33인 중에 천도교인이 15명, 불교인은 2명 뿐이며,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 중에 10명이 감리교인이며, 7명이 감리교회 목사님이신데, 이필주, 길선주, 김창준, 신흥식, 신석구, 오화영, 정춘수, 최병훈 목사님이십니다. 그때는 어디나 감리교회가 많은 곳은 더욱 피해와 희생자가 많이 나타났으며, 그중에 대표적인 지역이 수원이었으며, 29명을 성전에 몰아 넣고 불질러 죽인 제암리교회도 감리교회입니다. 제암리교회는 1905년 선교사 아펜젤러의 전도를 듣고 기독교에 입교한 안종후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또한 유관순 열사도 1920년 10월 12일, 17살의 나이로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몸이 7토막이 되어 죽어갔는데, 그것은 그녀가 이화학당에 다닐 때 정동감리교회에 출석하면서 손정도 목사님으로부터 애국 신앙의 영향을 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서재필 선생님은 갑신정변으로 미국에 가서 12년만에 돌아올 때 그는 성도가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그런다음 그는 계속 감리교 정동교회의 목사님인 아펜젤러의 집에 있으면서 정동감리교회를 다녔으며, 그런 관계로 독립신문을 만들 때 남감리교인 윤치호 선생님과 만나고 또 감리교 삼문출판사 책임자인 헐버트를 통해 그의 인쇄소에서 신문을 발간하였습니다. 그는 또 아펜젤러의 소개로 배재학당의 선생님이 되었으며 거기서 학생들 중심의 토론단체인 협성회도 조직하였습니다. 그가 설계와 공사감독을 한 독립문 정초식만 해도 마치 기독교의 예배의식과 같았는데 그것도 모두 아펜젤러와 정동교회 그리고 배재학당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의 독립신문, 협성회, 독립협회 운동은 그가 떠났어도 이상재, 정 교, 윤치호, 남궁억, 이승만, 안창호, 신흥우 등에 의해 계속되었고 그 가운데 이상재와 안창호를 빼놓고는 모두 감리교인들이었습니다. 남궁억 선생님은 감리교회 장로님이시고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라는 찬송도 지으시고 무궁화나무 묘목을 길러 전국적으로 무상으로 나누어 주시기도 하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붙들려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진 고문과 취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겁냄이 없이 정정당당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때 취조관이 묻기를 ”조선이 꼭 독립되리라고 확신하는가” 물었습니다. 그때 대답이 ”우리 민족은 자고로 타민족의 침략을 받은적이 없고, 혹 침입을 당했어도 오래 가지를 못했던 것이니 꼭 독립이 되리라고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굽히지 않자 일본인 경찰서장이 직접 나서서 전향을 회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 나이 70으로 이제 다 산 몸이 전향을 한다는 것은 개가 웃을 일이다”라고 하면서 끝내 굴복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애국자 월남 이상재 선생님은 일본총독이 하사금 5만을 줄테니 공연히 고생하지 말고 시골에 내려가서 여생을 평안히 쉬라고 일본경찰이 와서 전할 때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처음부터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고생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마디로 거절하고 구국운동으로 일평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우리의 조국은 지금도 이러한 일꾼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리교회 후예들입니다. 후예들 답게 멋지게 살아요. 아 멘. 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② 나는 내 조국과 내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겠노라(출 32:32). ③ 나는 내 가정과 내 제단을 지키겠노라(딤전 5:8).
3.1운동과 감리교회/ 시126:1-6/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03-03-01
3.1운동과 감리교회 시126:1-6 올해는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민족의 참담함을 참을 수 없는 울분으로 3.1 대한 독립 만세운동을 벌인지 84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역사는 대략 이렇습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끝나고, 개항으로 인해 조선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쇄국에서 개항으로의 정책변화는 봉건체제를 해체시키고 근대 사회로 전환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1876년 2월 (고종13년) 당시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은 우리 나라가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국제 조약이었으나 불평등조약이었습니다. 이 조약으로부터 시작하여 일본은 우리 나라에 대해 끊임없는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면서 급기야는 1910년 8월 22일 일본의 3대 총독인 데라우찌와 매국노 이완용 사이에 한일합방을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대한민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을 협박함으로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일제의 한반도 침략은 완성이 되고 한국은 35년에 걸친 식민지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1910년은 경술년이기에 이때 한일합방의 선언은 국가적인 치욕의 해이기에 한일합방이라는 말보다는 경술국치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우리 민족은 길고 긴 식민지의 생활로 접어들면서 우리 나라 말도 잃어버리고 이름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런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독립을 하자는 운동이 3.1 만세 독립운동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누군가의 아들과 딸로 태어나기 마련이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가 속한 사회의 한 일원이 되는 동시에 한 나라의 국민이 됩니다. 그러기에 인간이란 자기가 속한 국가를 운명적으로 택할 수는 없습니다. 나라의 선택은 운명이요 숙명입니다. 이 땅에 태어나기 싫다고 태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잘사는 집에서, 가문 좋은 집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그대로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문명과 문화와 경제가 발전된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후 직장과 살아 갈 곳과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부모의 선택이나 나라의 선택은 불가능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는 자신의 운명이 동시에 그 국가의 운명이 곧 자기의 운명입니다.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 이것이 나와 국가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외부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이것은 마치 자기 몸의 일부가 해를 입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며, 나라의 경제가 어려우면 모든 국민들이 함께 살기가 어려워지고, 나라에 좋은 일이 생기면 마치 내가 좋은 일을 당한 것처럼 기뻐하는 이유가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땅에 6.25와 같은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라가 살면 내가 살고, 나라가지면 내가 지는 것입니다. 국가는 영토와 국민 그리고 그 국민이 가지는 주권으로 구성됩니다. 아무리 영토가 있다고 할지라도 국민이 없을 때 그 영토는 한 국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또한 아무리 한 민족이 유구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단일 민족으로 존재한다고 하지만 국토가 없을 때 그 민족은 한 국가를 수립할 수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국토 없이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면서 제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독일의 나치에 의해 가스실에서 6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영토 없이 남의 나라에 사는 것의 서러움을 톡톡히 맛본 것입니다. 그러나 영토도 있고 국민도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국가가 설립될 수는 없습니다. 국가에는 국가가 가지는 힘이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주권은 나라의 힘입니다. 주권이 없는 민족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 우리 민족의 일제 35년 간의 식민지 생활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국민이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살아갈 땅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겼습니다. 우리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우리 나라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일본의 이름을 가져야 했습니다. 우리의 재산을 가지고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들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집에 들어와서 주인 노릇을 하면서 전기도 못쓰게 하고, 말도 못하게 하고, 아이들을 욕하고 때리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서 주인행세를 한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로님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세입자가 법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말 죽을 맛일 것입니다. 집의 주인으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세 들어 사는 사람에게 조롱이나 받고 멸시받으면 얼마나 치욕스럽고 괴롭겠습니까? 바로 우리 나라가 일제 식민지하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해 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벌인 운동이 3.1 독립 만세 운동인 것입니다. 이념도 사상도 종교도 지역도 뛰어 넘어 하나가 되어 외쳤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를 말입니다. 민족대표 33인이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면서 대한 독립을 향한 민족의 의지를 전세계에 표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 천도교인들이 15명, 불교인이 2명이 참가하게 됩니다. 그 기독교인 16명 중에 감리교회에서는 이필주 목사, 신흥식 목사, 정춘수 목사, 최성모목사, 오화영 목사, 신석구 목사, 박동완 전도사, 박희도 전도사, 김창준 전도사 9명이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한국 감리교회는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민족과 하나가 된 민족적인 교회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감리교회의 교리장정에도 “한국 감리교회는 한 세기 역사를 통해, ‘한 말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이 처한 사회. 국가적 상황과 현실에 적극 참여하여 민족의 구원을 구현하는 민족주의 신앙 전통’을 계승하여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는 민족과 세계 복음화 민족의 평화 통일 그리고 세계 인류의 평화 공동체 구현을 위한 선교 사명이 있음을 확인한다.”고 정해놓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 때문에 감리교회는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1 운동을 생각하면 우리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류관순 열사입니다. 그는 이화학당의 학생이었으며 매봉 감리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는 고향에 내려가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때 류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일본군의 칼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제암리 교회와 수촌 교회에서도 독립만세를 불렀는데 당시 만세 운동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교회에 가두고 불을 지르고 총을 쏴서 주민들과 교인들을 모두 학살하는 사건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암리교회와 매봉교회는 지금도 감리교회에서는 성지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 둘러보면서 민족과 함께 했던 감리교회의 정신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의 말씀을 보면 시인은 노래하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였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고 노래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우리 민족 보다 더 오래되고 깊은 식민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만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간 이후 그들의 애굽에서의 역사는 기나긴 식민지의 생활이었습니다. 430년의 식민지로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말 할 수 없이 수치를 당하고, 조롱과 고달픈 생활을 살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의 식민지에서 해방시키시는 유월절의 기적을 행사하십니다. 그들이 노예의 생활에서 해방될 때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BC 722년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유대민족 마저도 BC 586 바벨론에 의해 망하게 됩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가서 세계 각 국에 퍼지게 됩니다. 그 백성들이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의 서글픔을 시137편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137편 기자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는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생각하면서 수 천리나 떨어진 이국 땅의 강가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수금이 있었는데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어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을 보고 노래를 청하는데 자기들을 위해 여호와의 노래를 불러보라고 조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시인은 “우리가 이방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하면서 노래부르기를 거절하고 수금을 바벨론 강변 버드나무에 걸어두었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주권을 상실한 민족의 아픔을 절절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참담한 식민지 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혀에는 찬양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꿈꾸는 것 같아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가득 차는 시인의 노래의 성취를 꿈꾸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입니다. 누가 해방시켰는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2 - 3절에서도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해방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독립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독립운동 당시 감리교회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독립시켜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민족의 독립을 맡기면서 함께 민족의 독립을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감리교회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기도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기도하고는 하나님께서 독립 운동 속에 역사하여 주심을 믿고 나섰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만 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성취하기 위해 발로 뛰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다니엘은 기도만 하고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자 굴에서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확신하면서 기도의 응답을 바라보며 사자 굴에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감리교회의 일원이라면 민족을 사랑하는 감리교회의 정신을 이어 받아야만 합니다. 내가 감리교회의 교인이라고 한다면 선배 감리교인들이 보여 주었던 나라 사랑의 실천을 몸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이제 파고다 공원에서 대한독립 만세 운동이 있은지 84년 뒤인 지금으로 돌아와 봅시다. 84년 전에 이 민족은 주권을 잃어버려 되찾기 위해 온 민족이 하나가 되어 대한 독립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84년이 지난 지금 우리 나라는 심각한 이념과 사상의 대립으로 나라는 독립이 되었지만 국론은 분열되고 심각한 사상대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3.1절인 1일은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보수와 진보진영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가 별도로 열렸습니다. 한국자유 총 연맹과 6.25전쟁 납북인가 가족협의회, 61개 교단이 가입한 한국기독교 총 연합회의 보수진영은 ‘주한미군 감축 반대, 북한 핵 개발 저지, 김정일 반대’ 등을 외쳤습니다. 반면 한국 종교인 평화회의와 여중생 범대위 전쟁반대 평화실현 공동실천 등의 단체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민족자주 반전평화 실현 촛불 대 행진을 하였습니다. 누가 옳은지 가치관이 흔들립니다. 보수진영의 사람들의 외침 속에도 귀담아 들을 말들이 있습니다. 진보진영의 사람들의 부르짖음 속에도 귀담아 들을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상대방의 말에는 귀를 막고 너희들은 틀렸다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만이 옳다고 목소리만 높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표출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은 그 도를 분명 넘은 것 같습니다. 진보는 빨갱이, 보수는 수구꼴통 이런 등식으로 상대를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이념의 식민지 시대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식민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즐기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이 땅은 제 2의 독립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라고 노래할 수 있는 시대가 빨리 도래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민족의 하나 됨을 맡기면서 우리들은 기도하고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됨으로 자랑스러운 감리교회를 만들어가며 위대한 감리교인의 삶을 살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1운동과 기독교 정신/ 마6:33/ 2009-03-01
3.1운동과 기독교 정신 마6:33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1960년대에 큰 변화가 있었던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싱가포르, 필리핀, 그리고 한국입니다. 싱가포르는 1965년에 말레시아로부터 독립하여 나라를 새롭게 세우게 되었습니다. 리콴유가 초대 수상이 되어 26년간 장기 집권을 했습다. 싱가포르가 말레시아로부터 독립하던 해인 1965년에 필리핀은 페르난도 마르코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마르코스도 20년간 장기 집권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박정희가 1961년에 5·16 쿠테타로정권을 잡고 1963년에 5대 대통령으로 취임합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18년 동안 장기 집권을 합니다. 당시의 경제 상황을 보면 세 나라 가운데 필리핀이 가장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그다음이 한국이었고, 다음이 싱가포르였습니다. 우리나라가 필리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싱가포르는 자국의 대표단을 우리나라에 보내 경제 발전의 동력을 배워갔습니다. 그런데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졌습니다. 가장 가난했던 싱가포르가 가장 부자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싱가포르에 경제 발전의 모델이 되었던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못 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경제적인 지원을 했었던 필리핀의 국민소득은 1000 달러 정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성경에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 는 말씀이 세 나라에 적용 된 것 같습니다. 자원이나 인구를 보면 아마 필리핀이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자원이나 인구를 보면 싱가포르가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뛰어 넘어 나라의 부강함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자원과 인구가 가지고 있는 힘이 나라의 부강함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면 무엇이 힘이 되었겠습니까? 우리들은 그 부분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라를 다스렸느냐?’의 차이입니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얼마나 정직하냐?’의 문제입니다.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싱가포르는 리콴유가 총리가 되어 청렴결백하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부정과 부패가 자리를 잡을 수 없도록 정직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공무원의 비리는 결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거리에 휴지 하나 발견할 수 없답니다. 도시 환경과 연관시켜 껌까지도 엄격하게 관리하는 나라입니다. 질서있게 잘 세워진 나라입니다. 반면에 1960년대에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부유했던 필리핀은 페르난도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어 다스렸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은 마르코스는 국민들에 의해 해외로 추방되고 맙니다. 나라 곳곳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져 있습니다. 수시로 쿠테타가 일어나 정국이 불안합니다. 사회가 무질서합니다. 결국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경제 발전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과 각 분야의 전문가들, 그리고 국민들은 각자의 주장과 방법을 쏟아냅니다. 경제 회복과 발전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경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경제 회복과 성장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더 시급하게 세워야할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너진 정신의 세계를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정신세계가 성숙하지 못한 개인과 사회는 경제적인 부를 관리하며 누릴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정신의 세계가 튼튼히 세워지지 않는 상태에서 경제적인 부가 주어지면 그 경제적인 부는 어김없이 폭력과 성적 음란으로 빠지게 됩니다. 선진국이란 성숙한 정신 세계 위에 경제적인 부를 세운 나라를 말합니다. 정신의 세계가 부정과 부패로 무너져 있는데 그곳에 경제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선진국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은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성이었습니다. 그들은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향락에 빠져 불야성을 이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은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적인 세계는 피폐해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는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들어갔을 때 그곳의 사람들은 동성 연애를 하기 위해 천사들을 내어 놓으라고 집주인에게 요구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그 성을 심판하실 만큼 소돔과 고모라 성은 타락해 있었습니다. 정신적인 성숙함이 없는 경제적인 부는 결국 타락으로 이어집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망한 것은 경제가 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망한 이유는 의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열 명의 의인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신의 세계가 무너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회가 바뀌려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는 절대 변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가정이 행복하지 못하다거나 부부간에 문제가 있어서 한 지붕 밑에 살아도 밤낮으로 싸우며 괴로워한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를 했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가 주말 저녁에 팔짱을 끼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백화점에서 맘껏 쇼핑을 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남편이 변하든지, 아내가 변하든지 아니면 둘이 다 변하든지 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잠시 동안은 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라가 바로 되려면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그것도 악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변해야 합니다. 사람이 변하면 나라가 변합니다. ‘에콰도르’ 는 중남미의 조그마한 국가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불쌍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사법제도는 형편없어서 누군가가 기소되면 미결수로서 4-5년을 지내야 정식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것도 뇌물을 쥐어 주지 않으면 10년이 걸리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일단 한번 무슨 일로 혐의를 받아 구치소에 들어가면 자기에게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구치소에서 4, 5년을 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뇌물을 주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곳에서 10년 동안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현실의 모순과 고통을 마음 아파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호르에 크레스포 박사라는 분입니다. 그는 그 나라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법을 전공한 법학자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나서 발견한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은 자기가 믿는다고 말하는 대로 사는데 있다.’ 곧 믿음과 삶이 일치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참된 신앙은 개인적인 문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는 데 있다.’ 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나혼자 구원 받으면 된다. 나혼자 복 받으면 된다. 나혼자 주님과 동행하면 된다.’ 는 데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사회 전반에 드러나도록 쓰임 받는 것이 신앙생활의 진수라고 그는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법제도와 교도소를 개혁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나섰습니다.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두 번이나 투옥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셔서 사법제도를 개선하는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셨습니다. 거기에 미결수는 3년 이내에 반드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들이 의인이 되어서 그 사회의 일원이 되면 그 사회와 나라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도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 것을 ‘거듭난다’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사람이 바뀝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기능을 잃었던 양심이 다시 살아납니다. 한 사람의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곳은 폭력과 음란, 무질서와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아니라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은 지금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수는 증가한 반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고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데 왜 범죄는 더 늘어납니까? 사람들은 왜 더 잔인해지고 난폭해 집니까? 왜 성범죄는 입에 올리기 부끄러울 만큼 문란해집니까? 국회의원 가운데 거의 2/3 정도가 믿는 사람인데 국회가 왜 저 모양으로 돌아갑니까? 믿는 사람이 대통령이고 정치, 경제의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많은 부분이 믿는 사람들인데 나라 모양이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3·1절 기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3·1절 독립 만세 운동에는 기독교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3·1 독립운동은 기독교가 없었으면 불가능 했다고 일반역사 학자들이 평가할 만큼 교회는 대단한 역할을 했습니다. 조선의 인구가 2천만이었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날 때 기독교인의 숫자는 20만 정도였습니다. 전체 인구의 1%였습니다. 1%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민족의 아픔을 끌어 안았습니다. 이 민족이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가장 고통스런 시간을 보낼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교회의 숫자는 적었지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했었습니다. 어두움에 있었던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서 비취는 소망의 빛을 보고 교회로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숫자는 전체 국민수의 25%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무척 많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에 속하는 대형 교회가 우리나라에 몇 개가 있습니다. 경제, 정치적인 힘도 막강합니다. 어느 누구도 교회의 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니 교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를 무엇이고 생각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오늘 본문에서 그 이유를 찾아 보고자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에서 성도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추구해야 할 것은 ‘그 나라와 그 의’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어떤 다른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성도와 교회가 다른 것보다도 이것을 ‘먼저’ 구하는 자리에 서 있으면 숫자가 적더라도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즉 세상에서 편하게 즐기고 누리는 것’을 먼저 구하는 자리에 있으면 세상을 향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3·1절 기념 예배를 드리면서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나라와 민족의 가장 어려운 시기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한 조상들의 믿음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그 정신을 우리의 삶의 자리로 이어가야 합니다.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정신이 살아 있는 곳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며 약속하신 은혜의 영역으로 세우실 것을 믿습니다. 3·1절 기념 예배를 드리며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믿음을 사모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1운동과 기독교/ 출3:7-10/ 2003-03-01
3.1운동과 기독교 출3:7-10 오늘은 3.1절 기념 주일이다. 이 뜻깊은 3.1절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3.1 운동에서 보여준 선열들의 리더십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다시 한번 마음에 되새겨야 할 줄 안다. 그리고 3.1절과 기독교 신앙이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함께 생각해보기를 원한다.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볼 때 3.1 운동은 우리 민족사에 참으로 자랑할 만한 정신적 유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3.1 운동에 대한 연구나 행사가 비교적 등한시 되어온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문학 평론가는 3.1 운동과 프랑스 혁명을 비교해 볼 때, 프랑스인들에게는 프랑스 혁명이 대문자로 부각되어 그들의 문학, 예술, 언론, 종교,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실생활 속에까지 깊숙이 스며들어 그들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결정하고 이끌어 가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우리의 3.1 운동은 허전하고 쓸쓸한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늘은 3.1 운동에서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를 물어보면서 3.1 정신이 보여준 애국애족 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함께 묵상해 보려고 한다. 오늘의 상황에서 3.1 운동이 갖다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3.1 운동은 우리 민족의 출애굽 사건이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고생하고 울부짖으며 신음하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고통을 보시고 응답하시며 모세를 통해 그들을 바로의 억압에서 해방시켜 주었듯이 3.1 운동은 일본의 억압과 착취에서 고통 당하던 우리 민족을 일본의 손에서 해방시키려던 우리 민족의 출애굽 운동이었다. 3.1 운동이 너무 가상적이고 맨주먹 투쟁이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기독교 정신에 의한 비폭력적 무저항주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1) 3.1 운동은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과 말살 당하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되찾으려는 자각운동이었다. 말하자면 민족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회복하려는 운동이었다. 자기 민족 공동체에 대한 자존심과 주체성이 없는 민족은 쇠퇴하고 망하게 된다. 자기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잊어버리고 자기 민족의 역사를 망각한 개인이나 민족은 참 불쌍한 것이다. 그러한 주체성을 잃어버린 개인이나 민족에게 기대될 것이 별로 없다. (2) 3.1 운동에서 우리는 해외동포들의 역할이 컸던 것을 생각하게 된다. 3.1 운동이 민중들의 자각운동에 의해 싹튼 것이 사실이지만 시발점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자결주의와 국제정세를 가장 빠르게, 그러면서도 슬기롭게 포착하여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연결시킨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의 역할이 컸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만일 그러한 해외동포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만한 3.1 운동이 태동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도 분단된 우리 조국의 현실에 우리 해외동포가 기여하고 공헌할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고 찾아보아야 한다. 물론 그 동안 해외동포들이 한국의 민주화나 북한의 굶주린 자들을 위한 돕기 운동이나 이산가족 찾기나 북한 선교 또는 남북의 교류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고 본다. 우리는 계속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앞장서서 일해야 할 것이다. (3) 3.1 운동에서 우리 겨레는 단결과 화합을 보여주었다. 3.1 운동에서 보여준 가장 감동적인 교훈은 직업, 종교, 지식의 유무나 세대차이를 뛰어넘어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단결하여 투쟁하였던 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조국에서나 해외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화해와 단결이다. 하나되는 것이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망한다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도 너희가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한다고 말씀한다(갈 5:13). 반면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33편) 말씀하신다. 3.1 운동에서 우리의 선열들은 대아를 위해 소아를 희생할 줄 아는 참 위대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3.1 운동의 아름다운 유산을 다 잃어버렸다. 그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공동체도 마구 헐고 정치적 신념도 없다. 어제의 적과도 마구 야합한다. (4) 3.1 운동에서 새 시대에 대한 우리 겨레의 열망이 행동화한 것이었다. 우리 선열들은 새롭게 전개되는 새 시대에 대한 비전과 열망이 있었다. 그것은 강국이 약소국가를 짓밟는 그러한 식민시대는 사라지고 어느 민족이나 어느 국가나 자기의 주권이 인정되고 자유와 독립이 인정되어 인류사회에서 공존하고 기여하는 민주사회에 대한 비전과 통찰력이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살펴보면 미래지향적인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 인류역사에 기여하고 공헌하게 된다. 시편 33편 12절에 보면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였다. 1. 화평의 복음을 주셨다고 말씀하였다. 기독교복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화목\\\' 또는 \\\'화평\\\'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간의 갈등과 인종과 인종간의 갈등과 단절도 하나로 연결시키고 묶어 놓았다. 주님은 이러한 단절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십자가상에서 화목제물이 되셨다. 그는 세상에 하나됨과 연합을 위해 오신 다리(bridge)였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 화해(reconciliation)이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것처럼 절실히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없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갈등하고 있는가? 가정들도 얼마나 깨어지고 무너지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고 화해하며 화목하기를 배워야 한다. 특별히 한국사회의 정치적 현실은 더욱 이러한 화해가 요청되는 시점에 서 있다.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한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우리는 이조 500년간 사색당파로 서로 물고 뜯다가 망하였다. 그러한 역사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고 있다. 2. 능력을 행하셨다고 말씀하였다. 하나님이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이 부어 주셔서 선한 일과 귀신에게 눌린 자들을 고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뤄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은 한 마디로 삶의 원동력이요 능력이다.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켜주고 모든 질병에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능력이요 힘이다. 우리에게는 능력(힘)이 필요하다.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왜 권력을 얻으려고 하는가? 힘을 갖기 위해서이다. 요새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에서 후보를 추천하는데 그것 때문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가? 그런데 돈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정말 그가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 참된 힘은 그러한 물력과 권력의 힘이 아니다.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 참된 힘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복음의 힘이요 능력이다. 복음은 인생을 창조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다. 이 복음의 창조적 능력의 밑바닥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깔려 있다. 3. 우리는 그의 십자가와 부활과 그의 심판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에 있다. 십자가는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요 지혜이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라 했다. 진정한 삶의 힘과 능력이 어디에서 오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온다.
3.1운동은 민족 통일 희년운동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시103:1-11, 출3:1-12/ 2008-03-01
3.1운동은 민족 통일 희년운동으로 계승되어야 한다 시103:1-11, 출3:1-12 올해는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75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진정한 자주독립인 통일국가 건설과 민주화 완성이라는 절박한 관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기독교와 신앙인들에게 적극적인 참여와 헌신을 통해 민족의 새 날을 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 3․1운동은 하나님의 해방운동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펴시고 모든 억눌린 권리를 찾아주시는 분입니다. 떨기나무처럼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는 히브리 백성을 찾아 오셔서 그들을 해방으로 부르시는 분입니다. 그들이 지금 종살이라는 뜨거운 불길 속에 타고 있는데 하나님은 바로 그들 가운데 게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절박한 현실 속에서,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입니다. 내일이 없는 절망의 구덩이 가운데 계시는 분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노예화와 종속과 억압당하는 민족이 있는 고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해방자로 계시하시고 행동하신다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보다 더 근본적이고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예수 사건(성육신, 십자가, 부활, 하나님나라의 선포와 교훈)은 모든 인종들과 민족들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 혈연, 지역, 언어와 문화, 사회적 신분과 계급, 사상과 이념, 종교와 신앙, 남자와 여자라는 성의 차이 등에 근거하여 가해지고 있는 모든 차별과 억압과 소외를 불법화하고 무효화합니다. 세상의 죄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킵니다. 3․1운동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행동하심과 예수 사건이 한반도의 역사 현실에 터져나온 사건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3․1만세운동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더불어 오늘 우리 민족사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해방운동입니다. 본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신앙인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또는 명령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서 시대의 명령, 즉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알고 그 명령에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거역할 것인가를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대의 사명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그 명령에 순종하는 이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완성해 나가십니다. 3․1운동은 일제의 폭압적 지배와 사람됨의 파괴에 항거했던 운동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10월 혁명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은 식민지 나라에서의 광범한 민족적인 자각과 민족해방운동이라는 시대적 요구, 사람됨의 요구를 꿰뚫어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기로 결단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3․1민족봉기 때의 그리스도인들의 결단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시대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그 명령에 순종했던 신앙인들의 숭고한 모습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민족과 교회, 신앙과 삶을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의 문제로 받아들였던 신앙정신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지적해야 할 것은 그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는 어디까지나 개인으로서의 결단에 의한 것이지 제도적 교회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제도교회가 민족의 대사건 앞에서 신앙인들을 지도하지 못하고 침묵했던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3․1운동은 민족대단결 운동입니다. 3․1운동은 해외는 물론이고 한반도 방방곡곡으로 확산된 민족적 봉기입니다. 기독교, 천도교, 불교, 유교 등 종교를 초월하였고 지식인, 학생, 농민, 노동자 등 계급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 민족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전 민족이 단결한 운동입니다. 이 운동으로부터 오늘 우리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전민족이 단결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4. 3․1운동은 민족통일희년운동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민족은 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되어 지내온 지 50년을 맞이했습니다. 진정한 자주 독립국가를 소망하면서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 의해 숨져간 수많은 애국 선열들을 생각하면 오늘 50년 분단의 세월을 살아온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신앙선배들의 고귀한 뜻과 신앙전통을 이어받아 민족의 분단, 분열을 치유하고 하나됨을 이루기 위한 희년운동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 확신합니다. □ 예화 1. 「독립선언서」중에서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서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서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로나.\\\"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 장양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 역사에 투사하기 시작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래하야 만물의 희소를 최초하난도다.\\\" 3․1운동에서 부각된 민족의 갈망은 독립이요, 해방이었다. 절망과 억압의 현실에서 터져나온 새 역사에의 갈망은 한국 역사의 새로워짐을 희구하는 것이었다. 새 것과 낡은 것, 미래와 과거, 비전과 전통이 교체되는 역사의식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이다. 곧 역사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의심은 방해물을 보지만, 믿음은 길을 본다. 오늘 우리는 새것, 미래, 비전을 내다보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 예화 2. 3․1운동과 기독교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온 민족운동이었다. 특히 기독교가 민족의 암울한 현실에 침묵하지 아니하고 민족의 새 날을 열고자 한 공헌은 커다란 것이었다. 독립선언에 서명한 33인을 종교별로 보면 기독교 16명, 천도교 15명, 불교 2명, 유교는 한 사람의 대표도 없고 대부분 기독교, 천도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 대표자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이것은 1919년 당시 기독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말해준다. 또한 3․1운동 때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 일본경찰에 구속된 피검자들을 종교별로 보면 다음과 같이 집계된다. 기독교 3,373명, 천도교 2,283명, 시천교 14명, 불교 229명, 유교 346명, 천주교 55명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당시의 기독교는 민족과 민중의 현실에 뿌리를 박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많은 고난을 당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선배들이 신앙전통을 저버리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나아가 오늘 우리 민족의 분단현실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대적 과제, 즉 민족통일희년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땀흘리며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할 것이다. □ 예화 3.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배에 관한 몇개의 신앙조건(본 회퍼의 「십년 후」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서, 더욱이 최악의 것에서도 선한 것이 생겨나도록 하실 수 있고, 그리고 또 그것을 원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인간을 필요로 하신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가 어떠한 곤경에 처할지라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저항력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힘을 미리 주시지 않으신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의지하게 하려 함이다. 그렇게 믿는다면 장래에 대한 모든 불안은 틀림없이 극복될 것이다. 나는 우리들의 과실도 과오도 헛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과실과 과오를, 우리가 선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을 받아들여 주시는 경우보다도, 더 기꺼이 받아들여 주신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결코 무시간적인 운명이 아니라 성실한 기도와 책임있는 행위를 기대하시고 그리고 그것들에 대답하여 주신다고 믿는다. ━━━━━━━━━━ 기 도 ━━━━━━━━━━ 이 나라를 사랑하사 역사의 수렁에서 끌어주시고 고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이땅에서 살아가는 것도 억압의 시대에 조국해방을 위해 힘썼던 신앙 선조들의 기도와 노력이 있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이제는 통일의 과제가 우리 앞에 남아 있사오니 이 굴레 또한 벗고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그 과정을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1절, 지금은/ 레19:13-14/ 2004-03-01
3.1절, 지금은 레19:13-14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앞에 앉히고 얘기했습니다. \"6·25때 얼마 나 배가 고팠는지 아니?, 밥이 없어서 사람들이 굶기를 밥 먹듯 했단다.\"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습니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지 왜 굶었어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시기를 \"밥도 없는데 어떻게 빵이 있었겠니.\". 그러자 아이는 또 \"그러면 라면 먹으면 되잖아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그 시절의 배고픔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며칠 전에 3·1절 85돌 기념일을 보냈습니다. 3·1절은 이제 옛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흐려져 가고 우리네 관심 속에서도 지워져가고 있습니다. 그 역사가 벌서 85년이나 되었습니다. 어떤 아버지들은 3·1절이 무슨 날이냐고 아이들이 물으면 \"일제 때 우리 조상들이 탑골 공원에서 독립 만세 부른 날이다.\"라고 대답 해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특별한 관심도 없고 역사적인 의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근대역사 가운데 두드러진 날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3·1절이고 또 하나는 8·15입니다. 이 두 날은 우리 신앙인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이 민족의 역사 가운데 깊이 섭리하신 날이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관련된 날입니다. 그래서 이 두 날은 우리 민족이 그리고 한국기독교가 꼭 되새기고, 교훈을 받고 넘어가야 할 날입니다. 3·1절이나 8·15는 모두 자유와 평등과 관계가 있는 날입니다. 인간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유 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선물입니다. 약자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본문의 말씀 정신입니다. □ 부약사상(扶弱思想)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말씀들을 기록한 아주 소중한 책입니다. 여기 보면 \"부약사상(扶弱思想)\"이 나타납니다. 약한 자를 도우라는 신앙정신입니다. 성경 속에는 이 사상이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강자에게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약자에게는 \"이렇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친 말씀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오늘 본문말씀입니다.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삯을 떼먹지 말며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이 \"부약사상\"입니다. 이를테면 \"약자 보호사상\" 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한 가지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만일 약자를 압제하고 핍박하면 내가 심판하겠다.\"는 경고입니다. 일본사람들이 36년 동안 우리민족을 아주 가혹하게 압제했고 지배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이름과 성과 이 땅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약한 나라라고 얕잡아보고 통째로 우리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이 부약사상을 깡그리 무시한 것입니다. 그런 일본이 명실상부한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왕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고종을 독살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개를 옆에 두고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개에게 음식을 먹여서 별 이상이 없으면 그제야 안심하고 먹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위협을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일본이 당시에 한일합병을 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민비였습니다. 민비는 아주 똑똑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냥 밀어붙이면 뜻대로 될 줄 알았는데 똑똑한 여인 하나 때문에 가로막혔습니다. 그래서 민비를 죽이려고 모의를 하고 군인들을 그 방에 집어넣었습니다. 군인들은 민비가 자고 있는 침실에 들어가 민비를 시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시체를 녹지원으로 끌고 나와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기름을 붓고 불태웠습니다. 일본이 이렇게 잔학하게 우리를 압제했습니다. 우리 민족을 무시했습니다. 인권이고 주권이고 모든 것을 약탈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그냥 두었겠습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신 이 부약사상을 송두리째 무시해 버린 그들을 하나님이 심판해서 그 나라가 잿더미로 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갚으신 것입니다. 이 같은 압제를 받다가 견디지 못하여 들고 일어난 것이 3·1 운동입니다. 지금 그 1세대들이 모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모두 역사를 통해서 들은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날을 그냥 지나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3·1절이라는 지난날의 역사를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고난은 때로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고난을 거치면 사람이 다듬어지고 성숙해집니다. 성경 전도서 7:14절을 보면 \"너희는 곤고하거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겪은 사람은 생각이 성숙해집니다. 어른스러워집니다. 고난을 겪고 나면 상상도 못했던 생각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고난이 지혜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독립선언문을 보면 참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문학적으로도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런 작품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다듬어서 나올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그 글 속에 절절한 고난이 배어 있습니다.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 나오는 인간의 가장 소중하고 근본적인 외침이 거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지금 2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시인이 다 됐습니다. 어른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집에 있으면 상상도 못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소중함, 집의 소중함, 음식의 소중함,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구구절절 이 철든 편지를 썼습니다. 철없던 아이가 군대에 가서 고생을 조금 맛보더니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삶에서 오는 어려움과 고난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보면 아들에 대한 부성애가 절절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기도문은 어느 날 번뜩 생각나서 쓴 기도문이 아닙니다. 전장(戰場) 터에서 수많은 아픔과 죽음을 보면서 체험한 것을 쓴 것입니다. 보통 때는 그런 기도문이 나오질 않습니다. 전쟁을 거치는 동안 남자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그런 기도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기도문을 보면 절절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헌신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가 참담한 방탕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런 고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문학사에 빛나는 불후의 명작으로 우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존 밀턴의 \"실낙원\"을 말합니다. 이 작품들도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이 암흑과 같은 인생의 고통스런 터널을 지나가면서 쓴 책들입니다. 한 사람은 감옥의 고난을 겪으면서, 또 한 사람은 노년에 시력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그 고난의 산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흑인영가를 들어보면 심금을 울리는 호소력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흑인들에게 탁월한 음악성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노예생활을 하면서 아픔을 당하고 압제를 당하면서 그 영혼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고백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3·절이 일어나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곤혹을 치렀습니까. 이 날은 우리 민족이 아픔을 당하면서 겪은 것의 발로입니다. 유순했던 민족성으로 보아 우리 선조들이 어지간하면 봉기를 일으킬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의 자존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 하나님의 역사 3.1 운동 3·1절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역사하신 날입니다. 평등, 자유는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육당 최남선의 글을 보면 \"평등, 자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육당은 그 말을 기독교에서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육당이 살아가던 그 시대는 평등, 자유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그 개념이 퍼지게 된 것이고 그 사상에 고무된 것입니다. 기독교를 통해서 그 말과 개념을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리입니다. 평등이 없고 자유가 없는 것은 짐승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노예의 세계입니다. 짐승의 세계에는 힘만 있을 뿐 자유가 없습니다. 죄인들의 세계에도 자유가 없습니다. 평등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먼저 자유부터 박탈합니다. 짐승, 노예, 죄인은 이렇게 자유,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인간을 무자비하게 압제하고 자유를 뺏고 억압하면 그 억압자를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런 정권, 왕조를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역사를 보십시오. 독재자는 그 권세가 하나같이 길지 못하고 그 말로는 비참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품꾼의 삯을 떼먹지 말라, 귀먹은 자를 조롱하지 말라. 소경이 가는 길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 모두 부약사상, 즉 약한 자를 억압하거나 어려움을 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은 만일 약자를 압제하거나 억압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힘없는 사람의 돈을 떼먹으면 당장은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일군의 품삯을 떼어먹으면 당장은 돈이 쌓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먼 인생길을 살다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몇 배로 심판하십니다. 힘없는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무시하면 하나님이 대신 그 억울함을 갚으십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훈이고 원리입니다. 일본이 우리 민족을 무자비하게 억압하고 짓밟았습니다. 우리 민족을 아주 우습게 여겼습니다. 밟으면 아무 소리 못하고 밟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용렬하고 무지해도 밟으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잔디는 밟으면 죽지 않고 되살아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정신이고 생명력입니다. 하물며 인간이 그렇게 쉽게 꺾이고 죽겠습니까. 그래서 억압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억압당하는 자에게는 힘을 더해주십니다. 억압자는 심판하고 당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억압당하고 살던 우리 선조들이 들고일어났던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니까, 민족적 분노가 폭발하니까 삽을 들고 곡괭이를 들고 작대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일본이 깜짝 놀랐습니다. 참 무서운 민족입니다. 우습게 여겼는데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아주 무섭게 나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하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3·1운동입니다. 세계 역사에서도 이 3·1절은 유명한 비폭력, 반독재 독립운동입니다. 그래서 지난 역사를 조용히 되돌아보면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주권을 찬탈한 침략자들을 향하여 비폭력 운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3·1운동은 우리 선조들이 일으킨 운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라는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3.1절은 그냥 넘길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한말의 세계정세와 한국 주변국의 구도가 동일하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정신 차리지 못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득세하고 역사 없는 정치인들이 애국지사인양 행세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깨어 기도할 때이고, 주님 앞에서 내 나라와 이민족의 분단현실의 아픔을 품고 신령적 번민을 가질 때 입니다. 사랑하는 의왕중앙의 성도 여러분이여! 지금 우리는 일제가 우리를 압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주권국가요 국민입니다. 모든 것이 1919년 3월보다는 비교가 되지 않도록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 때보다 형편없이 약해지고, 부족한 것이 있으니 민족을 위한 뜨거운 가슴과 주를 향한 사모함입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은 번민할 때 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모세가 외치듯이, 여호수아의 외침처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선언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 나라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 민족을 위하여 울고,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독립선언서를 읽을 때마다 전율을 느낍니다. 태극기를 향하여 설 때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번민을 가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정 우리가 진정 독립국가의 자유민다운 삶과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남의 나라에 이민백성처럼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오늘의 우리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찾고 무릎을 꿇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3.1절과 기독교 신앙/ 느1:1-7/ 2016-02-28
3.1절과 기독교 신앙 느1:1-7 오늘은 우리 선열들이 일제의 억압과 속박에서 해방되고, 잃었던 나라 의 주권과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 혼연히 일어섰던 기미 3 · 1운동 73주년 을 기념하는 뜻깊은 주일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이 날을 맞지만 금년 3 - 1절은 더욱더 뜻깊은 것이라고 사려됩니다. 그 이유는 남북한이 UN에 동시 가입하여 회원국이 된 지 1년이 넘고 우리 나라도 이제 UN과 함께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한 나라가 되었다는 데서 그렇습니다. 일제에 의해 합병된 지 9년째 되는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열들은 민족대표 33인을 선두로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하여 일제히 전국 거국적으로 민족의 자유와 겨레의 독립을 위해서 총귈기한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은 이때 참여한 총인구는 당시 인구의 5분의 1인 200만, 210개 도시에서 1,500회의 대중집회, 사망자가 7,500명, 부상자 16,000명, 투옥된 사람이 47,000여 명에 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3 · 1운동에서 주역들이 모두 우리 기독교인이었던 것을 찾아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시 전인구의 1%밖에 안 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은 민족대표 33인 중에 IS사람이나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은 그것을 잘 보여 줍니다. 47개의 교회가 파손되었고 151명의 성직자들이 투옥된 것입니다.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 교회가 불탄 것도 그 해였습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그들의 야만적인 행위에 의분과 분노를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일제는 이렇게 교회를 탄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운동에 주체적인 관여를 했고 항일투쟁에 선두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교회와 그리스 도인들이 이 운동에 주동적인 역할을 했고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서 투쟁을 해야만 했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기독교 복음의 가르침과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 복음과 애국은 멜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신앙은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조국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오늘의 본문말씀입니다. 느헤미야는 유대인으로 파사에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성공을 해서 수산궁에서 왕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국에서 온 친척으로부터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비참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이 오늘 본문말씀에 잘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4절). 여기서 우리는 그가 취한 애국 애족의 행동을 몇 가지로 찾아보게 됩니다. 1. 조국을 위해 눈물 흘리며 슬퍼했던 것입니다(1 : 4). 그는 일시적으로 또는 감상적으로 눈물을 흘리고 슬퍼한 것이 아니라 수일 동안 눈물을 흘리고 슬퍼했다. \"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관심을 읽게 됩니다. 일찍이 예레미야는 조국 위해 통곡하며 탄식한 일이 있었습니다. \"슬프다.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 하도다.\" 이 조국을 향한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려 줍니다. 공관복음에 의하면 주께서도 무너져 가는 조국 이스라엘과 허물어져 가는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셨습니다. 여러분, 눈물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물론 감상적인 눈물이 있기는 하지. 그래도 눈물에는 진실이 있습니다. 사랑과 동정과 열정의 표현이 눈물입니다. 그러므로 눈물이 있는 곳엔 감동이 있고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약속되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조국을 해저, 민족공동체를 위해서 얼마나 마음 아파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가슴 치면서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2. 조국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 1장에 의하면 기도한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그외에도 \'간구하옵나니\', \'구하옵나니\', \'들어주시옵소서\' 하는 말이 계속 반복되어 있는 것을 읽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는 이루어지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특별히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사에서 하만의 모략으로 멸망 직전의 위기에 있을 때 에스더는 모르드개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을 모으고 나를 위하여 밤낮 금식하여 삼일 동안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왕께 나아가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위기에서 구원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그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느헤미야의 기도를 분석해 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참회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서지 못하고 거짓되게 진실 되지 못하게 살아온 죄를, 하나되지 못한 죄를 통회 자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사랑과 용서와 자비를 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한 국가의 운명과 미래는 우리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워터루에서 영국군과 불란서군이 전쟁을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나폴레옹이 이끄는 불란서군이 승리하리라고 예견했습니다. 그러나 밤사이 에 비가 내려서 예견을 뒤엎고, 영국군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유명한 빅톨 위고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밤사이에 몇 방울의 비를 내려서 인류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127편에서 \"집을 짓는 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지 아니하면 집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 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는 복되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생각하고 느헤미야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삼고 그에게 기도하고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3 · 1운동은 우리 선열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귀한 정신적 유산이었습니다. 그것은 나 한 사람보다 민족공동체를 더 생각하고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족적 단결과 총화였습니다. 3 · 1운동에서 우리 선열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지식의 유무나 직업의 귀천이나 빈부나 종교의 차별도 초월해서 온 겨레가 하나로 뭉치고 단결했던 것입니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어느 특정한 사회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3 · 1 운동에서 우리는 새 시대의 도래와 민족의 부활에 대한 꿈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3 · 1운동의 기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민족의 과업인 통일도 3 · 1정신에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김정일 목사
3.1절과 기독교/ 눅4:16-21/ 2016-02-28
3.1절과 기독교 눅4:16-21 우리는 3.1절 제 81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이 어디 있으며 민족 문제와 정치 문제 등에 관련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문제를 조명 하기 위해 81년 전에 조선 기독교인들이 민족해방 문제에 대하여 어떤 관심을 가졌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시는 물론 한국교회가 초대교회였고 교리나 신학이 초보 단계에 있었고 조선 사회에서 소수자의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3.1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한 민족의 지도자 33인 중에 기독교인 수가 16명 정도였고 이 중에는 유명한 목사님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기독교인이 그리 많지 않은 점에서 보면 상당히 높은 숫자입니다. 우리 한국의 인구는 1천 6백만 명 정도였고, 이 중 기독교인들은 불과 20만 명 정도로 한국인구의 약 1.3 내지 1.5% 정도에 해당하는 숫자였습니다. 그런데 민족지도자들 중에 기독교인이 많이 들어 있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이 사실은 기독교인 선각자들, 지도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이고 외형적인 현상이고 그 이면을 좀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지적할 것은 소위 민족지도자라는 33인들이 대부분이 그러했지만, 이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은 민족독립 만세 운동에 대하여 그리 심각한 관심을 가지지는 않은 듯 합니다. 이들 중 어떤 목사는 집회를 인도하러 지방에 가서 서울에 부재중이었고 서울에 있는 사람들도 다른 지도자와 같이 태화관에 모여서 일본 경찰을 불러 그 운동을 통고하였을 정도이지 실제로 파고다 공원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당시 목회자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목회자들 가운데 외국 선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연히 자국 정부의 정책과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조선보다는 일본 편을 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듯이 1905년에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소위 \'테프트-카츠라 협약\'이란 것이 체결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간단히 한 마디로 말하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각각 식민지로 삼는다는 것을 양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해외에 있는 관리들은 물론 선교사들에게 알리고 이에 순응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당시 조선에 선교사로 나와 일하고 있던 미국 목사들은 자국의 정책과 훈령에 따라서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일본을 지지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이 일선 교회를 목회하던 그들 선교사들은 사실 일본의 조선식민지 정책을 지지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하지 말도록 설교했습니다. 그래서겠지만, 교회 내에 모여든 이들이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서 일하던 피끓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심지어 어떤 목사는 이들 젊은이들이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러한 일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니라고까지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로가 말했던 대로 그러한 민족해방과 독립을 위한 활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전해준 복음과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까지 비난했습니다. 어떤 미국 목사는 그가 목회하는 교회의 전 교인들이 예배 후에 집단적으로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한 일 때문에 일본인 경찰서에 가서 사과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달랐습니다. 우선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 주동세력은 약 30% 이상이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체포. 투옥된 사람들의 성분을 조사한 결과 그렇게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는 더 높을 수 있습니다. 어쨌던 당시 한국 사회에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교회뿐이었다고 할 때 전국적인 만세운동이었던 3.1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에 기독교인들이 전국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지 않았다면 이 운동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기독교인들은 민족독립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분은 당시 3.1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국민들의 태도를 선도와 참여, 지지와 비지지 등 네 가지 계층으로 나누고 이 중에 기독교인들은 주로 선도적인 계층에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독립 운동 같은 정치-민족운동을 금지 내지는 하지 말도록 권유한 그런 상황에서 한국기독교인들이 민족 독립운동에 선도적으로 나섰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이한 일입니다. 또 당시에는 해방신학은 물론 민중신학이란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정치신학이나 혁명의 신학이란 말은 더더욱 들어 본 일도 없었던 때였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이 그 당시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민족적인 기독교, 정치적인 기독교를 믿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고 또 기이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 당시 조선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민족-정치 운동에 참여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히 제기됩니다. 이에 대하여 역사학자 이만열 교수는 \"민족이란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하느님이 인생을 내시면서 같은 언어와 문화, 전통과 혈연 속에서 살도록 한 은총이다. 그러므로 민족을 보존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의 질서에 순응. 동참하는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제대로 된 신학이라는 것이 당시에 있었던가를 생각하면 더욱 이들 조선 기독교인들의 민족해방운동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 한국에 선교사로 온 대부분의 미국 선교사들이 평양신학교의 교수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대부분이 선교에 대한 열성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으나 학문적인 능력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이 신학교 교수가 될 자격들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당시 신학교 교수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신학교육이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도 당시 말은 신학교였지만, 실상은 고등성경학교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정치신학도 없었지만, 신학교에서도 비정치적인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던 때였고 일선 교회의 목사들이 비정치적인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당시 조선 기독교인들의 정치-민족해방운동에의 참여는 정말 불가사이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 관헌에서 불온 문서로 규정, 금서목록에 넣은 것 중에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와 신약성서의 묵시록 책이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조선기독교인들은 목회자들의 가르침과 설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서를 정치적으로 읽어 특히 출애굽서와 묵시록서가 민족해방의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성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당국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책들을 금서목록에 넣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요즘 해방신학, 민중신학, 정치신학, 혁명신학 등이 외쳐지고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또 실제로 오늘의 한국 사회가 기독교인들의 책임 있는 정치참여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와 이기심, 사적이 된 기독교 신앙, 기복신앙, 내세주의, 등 비정치적인 복음이라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매우 대조적인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시 조선 기독교인들이 옳았는가, 오늘날의 한국기독교인들이 옳은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3.1 정신이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 드린 공동기도문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마음이 되었으며, 양반과 평민의 구분 없이 모두 어우러져 만세를 외쳤던 그 훌륭한 삼일정신....\" 우리는 소위 좌우합작이란 말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민족의 해방과 독립이란 공통된 목적을 위해서라면 좌우 이념의 불일치도, 종교와 지역과 노선 등의 차이도 접어두고 하나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과거 삼일독립운동 때 가능했던 것이 지금 민족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엔시시가 중심이 되어 3.1 정신을 오늘에 살려 기리기 위해서 겨레 손잡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대회는 기독교 외에도 6개 종교와 함께 시민단체, 학생 등이 주축이 되어 벌이는 화해와 평화를 향한 온 겨레 손잡기 운동입니다. 100여만 정도의 사람들이 범국민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간, 동서간, 보수-진보간, 세대. 계층간 등의 차이를 뛰어 넘고 대화합을 이루어낸다는 취지로 이런 행사가 계획,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삼일독립운동 정신을 오늘 우리 민족의 상황에 그대로 계승하자는 뜻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기총이란 보수적인 교단의 연합체에서는 3.1절을 맞아 특별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그 메시지는 \"81년 전 망국의 치욕 속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며 외쳤던 만세소리는 방방곡곡에 우리 민족의 존재를 알렸는데 이제는 그때의 자주독립 정신으로 국민화합과 남북통일, 그리고 세계평화를 이루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81년 전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의 훌륭한 모범을 본 받을 때입니다.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분단된 채 반세기가 넘도록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그나마도 분단된 한반도의 남쪽에서 또 지역차이, 인맥차이, 노선차이, 종교차이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한 데서야 어디 말이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총선연대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공천하지 말아달라고 했으나 여당을 포함하여 중요한 정당들이 시민들의 요청을 비웃듯이 대부분을 공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정치불신의 원인이 되는 이러한 불행한 현실을 보면서 민족을 염려하고 신앙을 관심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정신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3.1운동을 선도했던 당시 조선기독교인들의 발자취를 뒤따릅시다. (이 설교문은 홍 목사가 강남향린교회와 함께 남한산성에서 가졌던 3.1절 산상예배에서 행한 설교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
3.1절과 애국자들/ 히11:33-40/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04-02-29
3.1절과 애국자들 히11:33-40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입니다. 첫 절에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면서 역사적인 인물 중에 믿음으로 산 위대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로 옮기였으며 믿음으로 노아는 패역한 세대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방주를 예비하여 가정을 구원하였으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자랐으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해서 애굽의 모든보화보다 더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기드온, 다윗, 사무엘 그 밖의 모든 선지자들이 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다고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에 맞기도하고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였다고 하면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내일은 85주년을 맞이하는 3.1절입니다. 삼일절을맞이할때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옥고를 치루며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였던 선혈들의 눈물겨운 흔적을 생각해 보게됩니다. 세상에 슬픈일이 많이있지만 나라를잃고 망국백성이 되는것처럼 슬프고 비참한일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사실을 일제 식민지 생활에서 뼈저리게 체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언어도 빼앗기고 이름도 빼앗기고 역사도 빼앗겨서 심지어 민족정신 까지도 유린을 당하였던 암울하고 어두운 역사를 오늘 우리는 생각해 볼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범죄하고 타락이 될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못하고 돌이키지 아니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하여 때리셨고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여 황폐해지고 모두가 포로로 끌려가고 많은 지식인들이 노예로 전락이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후회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국을 그리워 합니다. 그래서 시편 137편을 보면 바벨론 그발 강가에 앉아서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다리를 뻣고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나라없는 백성이 얼마나 슬프고 자유를 잃은 민족의 참담함이 얼마나 눈물겨운가를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짓고 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날에 과거를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쓰라린 과거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강해 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민족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상통되는 점을 많이 발견할수 있는데 강대국 틈에 끼여서 평안한 날이없고 남에게 밟히고 빼앗기고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지고 시달리고있는 민족의 역사를 볼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주변 국가에 밟히고 빼앗기는 수난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밟히기만하는 우리나라 민족사에 자주적인 3.1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2시에 태화관에서 모여 한용운선생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후에 모두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든다움 사전에 통고한대로 경찰에 연락을 하였고 이어서 2시반에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이민족 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번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33명의 민족대표중 기독교 지도자가 16명으로 이철주목사 국성문목사 신석구목사 신흥식목사 김창조목사 오화영목사 정춘수목사 박희도 전도사 김동완전도사가 있었고 천도교가 15명 불교가 2명으로 단연 3.1 운동은 기독교가 주도한 운동이였습니다. 그당시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에 1.5%밖에 되지않는 30만의 교인 이였지만 전 기독교인의 89%가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따라서 47개의 교회와 8개의 학교가 문을닫고 폐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일본 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태형에 처해진자가 2162명 체포 구금 수감 사살된 자가 10647명 이였고 3월과 4월중에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1542회 집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총독부 보고에 의하면 가장 골치 아픈존재가 교회이고 가장 다루기 힘들고 용기있는 사람들이 교인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기독교는 민족운동의 근원지이자 3.1운동에 주체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서 어떻게 민족운동에 기독교가 주체가 되었는가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말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년대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첫 번째 생각할 년대는 ”1885년” 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885년도 4월 5일 부활절 날입니다. 이날 미국에서 장로교 선교사와 감리교 선교사가 인천에 상륙함으로서 이 땅에 기독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따지자면 한해 먼저인 1884년 9월 22일 북미 장로교 선교부로부터 파송 받아 잠시 중국에서 활동한 바 있는 Allen이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Allen은 영국과 미국의 공사관 부속의사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도 선교사역에 커다란 기초를 놓을만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이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때 개화파 자객에 의해서 보수파 우두머리였던 민영익이 칼에 맞는 사건입니다. 이때 민영익을 알렌이 치료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Allen 은 왕실의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선교에 커다란 발판이 되어 1885, 4, 5일 한국에 정식으로 선교사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1887, 9월에 새문안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11월에는 정동감리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후 1885년으로부터 1895년까지 10년 동안 이땅에 신자가 서울에 65명, 전국에는 300여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에서 1885년은 귀중한 해입니다. 다음은 두 번째가 ”1895년” 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말할 때 1895년을 또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획을 긋는 중요한 해 입니다. 이 해는 청일전쟁이 끝난 해입니다. 그리고 민비가 살해된 해입니다. 민비의 죽음은 기독교 뿐 아니라 전체 우리민족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민족의 자존심과 체면을 온통 유린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민비를 나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이 그에게 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당시 일본이 한국에 파송한 공사는 미우라였습니다. 당시 임금 고종은 우유부단하고 우둔하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같은 어눌한 임금 옆에서 임금의 자문 역할을 민비가 해냈습니다. 당시 민비는 똑똑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달변가로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 보며 일을 처리해 나가는 야무진 여성이었습니다. 그때 고종은 옆에 앉아서 듣고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민비가 연세대학교의 창시자 언더우드 선교사 부인과 아주 친숙하게 지냈습니다. 부인은 당시 간호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민비가 언더우드 부인에게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부인이 미국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에는 자동차도 많습니다, 쵸코렛도 많습니다 , 그리고 땅도 넓고 한나라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습니다”. 듣고 있던 민비가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 고 했습니다. 그때 부인이 정중하게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 그보다 더 좋은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말을 다 듣고 난 민비는 나도 그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크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0일 후에 죽은 것입니다. 민비는 나라를 망친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일본이 한국과 합병을 하려고 하니까 민비가 나서서 조리 있고 똑똑한 말로 반대하며 나섰기 때문에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본의 공사 미우라가 죽인 것입니다. 민비는 1895, 8, 20, 경복궁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일본의 군인들이 군화를 신은 채 침실로 들어와 찌르고 자르고 찢어 죽인 후에 공원으로 끌고 나와 이불을 덮어 씌우고 기름을 끼얹고 불태움으로서 후에 뼈만 조금 수거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민족은 좌파 우파 싸움을 그치고 온 백성들이 합심으로 뭉쳐져 민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1895, 10월에 일어났던 을미의병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우유부단한 고종왕은 매일같이 떨며 살았고 독살을 당할까하여 밥을 가져오면 개에게 먼저 먹여 보고 먹고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선교사를 부르곤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895년의 일입니다. 이 해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시련의 역사 속에 동참하였던 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한국의 기독교는 나라에 어려운 역사속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민족종교로 발전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기독교는 나라의 어려움을 교회가 앞장서 참여하게 되었고 민비의 시해로 장로교 감리교가 합동으로 추모행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교회는 민족으로부터 호응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민비가 시해되던 1895년부터 1905년까지 10년 동안 530여명이던 신자들이 무려 26,057명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성서공회에서는 144.657권의 성경책을 찍어내게 되었습니다. 이때 특별하게 교세가 발전된 곳은 평양지방으로 그곳에 정주지방은 인구가 2만명 정도였는데 거의다 대부분이 신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곳이 청일전쟁으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으로 전후 유행병과 악질이 번져서 희생자들이 속출할 때 관공소에서도 손을 대기를 꺼리는 일들을 기독교인들이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처리해주므로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현상이 1895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1905년” 입니다. 교회가 자꾸만 단결이 되고 민족화 되면서 민중속에 들어가게 되니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하게되고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현상에 새롭게 대두된 문제가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였습니다. 결국 교회는 수난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이같은 현상 앞에서 기독교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급속히 뭉치지 말고, 정치화하지 말고, 세력화 하지 말라는 것이였습니다. 이 부분이 오늘 선교사들의 역할에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러나 선교사들에게도 더깊은 생각과 우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일본에 대한 강한 증오심과 분노는 뭉쳐진 힘을통하여 반드시 밖으로 폭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으로 하여금 박해의 구실을 주게 되며 기독교가 혹독한 수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충고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설득에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기독교의 비정치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신앙 대부흥운동은 기독교인들의 내적 신앙에 일대 각성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는 시대상황이 우리 민족이 최고로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일제의 압력은 더욱 거세어 가고, 그들을 상대해서 이길 힘은 없고, 내일은 막막한 상황이고, 이완용의 내각은 민족의식에 말살정책을 펴 나가고 있고, 더구나 고종을 폐위시키려는 음모는 노골화되어 가고 있었으며, 밖으로 나가 호소해 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일본의 수탈은 날로 더 심해져 가지만 어떻게 할길이 없는 속수무책인 때였습니다. 아무튼 이 때는 온 민족이 극심한 좌절감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때였습니다 이때에 일어난 운동이 바로 신앙 대부흥 운동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한국 기독교에서 펴 나갔던 운동의 내용이 1) 영적 각성운동이고 2) 성경 읽기 운동을 벌여 이때 성직자 지원자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고 3) 도덕운동으로 술 않먹기운동, 도박 않하기 운동이 일어났고 4) 새벽기도회 운동이 일어나 한국교회의 열심 있는 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5) 사경회를 통하여 신앙에 뜨거운 부흥 운동이 일어남으로서 길선주, 김익두 같은 대 부흥사들이 배출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이 때의 신앙대부흥운동으로 인하여 1905년부터 1907년까지 2년 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엄청난 성장을 하여, 세례교인은 194%, 학습교인은 329%의 증가를 가져와 전체가 무려 267,%의 증가추세를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피박을하고 박해를 받으면 더 왕성해지는 종교인 것입니다. 오히려 조용하면 감소하고 고난 당하면 더욱 급속하게 증가되어 가는 것이 기독교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를 이 땅에서 박멸하려면 무한한 자유를 주어 안주하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의 해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919년 드디어 이 땅에 3.1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속에서 영적인 힘과 도덕적인 힘이 축적되어 가면서 마침내 일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드디어 분개하여 일어난 것이 1919년 3월, 1일의 항거운동인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3.1운동과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리민족 전체에게 굉장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특히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리민족에게 저항의식과 종교적 항거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영향은 또 한편으로 우리나라 지성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백락준 같은 이는 ”오늘 이 시대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때라”고 스스로 기독교인이 될 만큼 당시 기독교의 정신운동은 이 나라 곳곳에 큰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나라를 사랑하고 역사의식이 있는 지식인들 사이에 저항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곳곳에서 저항의식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이때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꽃으로 선정이 되였는데 기독교인들이 영향을 미치게 된것입니다. 발로 밟아도 다시 일어나고 발로 짓늘러도 또 다시 살아나는 꽃, 그래서 저항의식을 상징하는 꽃으로 무궁화를 국화로 선정했던 것입니다. 당시 황성신문은 사설을 통하여 학생들이 수를 놓을 때 무궁화를 수놓으라고 제창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남궁억 같은 이는 언론인이며 교육자로서 당시에 시를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분입니다. 그때 지은 대표적인 시 가운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라는 오늘의 찬송의 가사가 있습니다. 그는 이 가사 가운데서 모두 일어나 일하러 가자고 독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러 가자는 말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무궁화를 심으러 가자는 말이고 항거하는 일에 다같이 함께 나서자는 뜻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연세대학교 교정에 제일먼저 무궁화를 심은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저항의식을 길러 주기 위한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결과 3.1운동 때 전체 학생 120명 가운데 70% 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감옥에 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그 해 졸업식이 연기가 되었고 얼마 후에 치러진 졸업식에서 남궁억선생은 치사를 통하여 다시 이 무궁화 정신을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강원도 사람입니다, 강원도는 눈이 오면 많이 와서 길이 없어집니다, 그때 나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하여 커다란 발자국을 남겨 놓고 걸어갔습니다, 당신들은 부디 뒤를 따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십시요” 이것이 3.1운동을 전후하여 일어났던 기독교의 정신운동 이였습니다. 이 때가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는 가장 눈부시게 발전하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나라의 수난의 역사와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가 어떻게 그시대를 이끌어 왔는지 역사의 눈을 가지고 오늘의 이 어려운 시대를 내다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시대는 혼란했던 이조말과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영적으로도 혼탁하고 경제적으로도 침체되어 실업자는 늘어가고 가족이 헤체되고 신용불량자들이 380만명이 넘어가고있고 게다가 국론이 분열되고 사상적으로도 혼란하여 미국과의 50년 동맹관계가 균열이 생겨지고 젊은이들을 중심한 친북 성향이 강하게 일어나면서 마치 베트남이 공산화 될 때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 서있는 어려운 위기를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에도 정치인들은 4.15 총선을 앞에놓고 진흙탕 싸움만 하고있고 그들의 부정부폐는 한도없고 끝도없이 총체적으로 썩어져 있으니 정말 대한민국에 소망이 앞으로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참담한 현실앞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이민족에 죄악을 걸머지고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이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금식기도를 하여서 이민족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기도운동이 교회마다 일어나야 할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민족앞에서 역사의 고비마다 각성하며 회개하고 기도하여서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잘이겨 나갔드시 이번 3. 1 절을 맞이하여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제단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각성운동이 먼저 일어나서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고 갈림길에선 이 민족을 바르게 지켜나가는 이시대의 파수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이무웅 목사(서울 강북구 우이동 우이제일교회)
3.1절과 애국자들/ 히11:33-40/ 이무웅 목사/ 우이제일교회/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04-02-29
3.1절과 애국자들 히11:33-40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입니다. 첫 절에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면서 역사적인 인물 중에 믿음으로 산 위대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로 옮기였으며 믿음으로 노아는 패역한 세대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방주를 예비하여 가정을 구원하였으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의 궁중에서 자랐으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해서 애굽의 모든보화보다 더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예를 들자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 기드온, 다윗, 사무엘 그 밖의 모든 선지자들이 다 이렇게 믿음으로 살았다고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에 맞기도하고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였다고 하면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내일은 85주년을 맞이하는 3.1절입니다. 삼일절을맞이할때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옥고를 치루며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였던 선혈들의 눈물겨운 흔적을 생각해 보게됩니다. 세상에 슬픈일이 많이있지만 나라를잃고 망국백성이 되는것처럼 슬프고 비참한일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사실을 일제 식민지 생활에서 뼈저리게 체험을 하였던 것입니다. 언어도 빼앗기고 이름도 빼앗기고 역사도 빼앗겨서 심지어 민족정신 까지도 유린을 당하였던 암울하고 어두운 역사를 오늘 우리는 생각해 볼수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범죄하고 타락이 될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못하고 돌이키지 아니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하여 때리셨고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여 황폐해지고 모두가 포로로 끌려가고 많은 지식인들이 노예로 전락이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후회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국을 그리워 합니다. 그래서 시편 137편을 보면 바벨론 그발 강가에 앉아서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고 다리를 뻣고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나라없는 백성이 얼마나 슬프고 자유를 잃은 민족의 참담함이 얼마나 눈물겨운가를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르짓고 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날에 과거를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쓰라린 과거의 역사를 지닌 민족은 강해 질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민족이 우리나라와 비슷하고 상통되는 점을 많이 발견할수 있는데 강대국 틈에 끼여서 평안한 날이없고 남에게 밟히고 빼앗기고 전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지고 시달리고있는 민족의 역사를 볼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주변 국가에 밟히고 빼앗기는 수난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밟히기만하는 우리나라 민족사에 자주적인 3.1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1919년 3월 1일 2시에 태화관에서 모여 한용운선생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후에 모두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축배를 든다움 사전에 통고한대로 경찰에 연락을 하였고 이어서 2시반에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이민족 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번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33명의 민족대표중 기독교 지도자가 16명으로 이철주목사 국성문목사 신석구목사 신흥식목사 김창조목사 오화영목사 정춘수목사 박희도 전도사 김동완전도사가 있었고 천도교가 15명 불교가 2명으로 단연 3.1 운동은 기독교가 주도한 운동이였습니다. 그당시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에 1.5%밖에 되지않는 30만의 교인 이였지만 전 기독교인의 89%가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고 따라서 47개의 교회와 8개의 학교가 문을닫고 폐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일본 총독부 통계에 의하면 태형에 처해진자가 2162명 체포 구금 수감 사살된 자가 10647명 이였고 3월과 4월중에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1542회 집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 총독부 보고에 의하면 가장 골치 아픈존재가 교회이고 가장 다루기 힘들고 용기있는 사람들이 교인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기독교는 민족운동의 근원지이자 3.1운동에 주체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에 대해서 어떻게 민족운동에 기독교가 주체가 되었는가의 역사적 배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말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년대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첫 번째 생각할 년대는 ”1885년” 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885년도 4월 5일 부활절 날입니다. 이날 미국에서 장로교 선교사와 감리교 선교사가 인천에 상륙함으로서 이 땅에 기독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따지자면 한해 먼저인 1884년 9월 22일 북미 장로교 선교부로부터 파송 받아 잠시 중국에서 활동한 바 있는 Allen이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Allen은 영국과 미국의 공사관 부속의사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도 선교사역에 커다란 기초를 놓을만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이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때 개화파 자객에 의해서 보수파 우두머리였던 민영익이 칼에 맞는 사건입니다. 이때 민영익을 알렌이 치료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Allen 은 왕실의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한국선교에 커다란 발판이 되어 1885, 4, 5일 한국에 정식으로 선교사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1887, 9월에 새문안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11월에는 정동감리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후 1885년으로부터 1895년까지 10년 동안 이땅에 신자가 서울에 65명, 전국에는 300여명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에서 1885년은 귀중한 해입니다. 다음은 두 번째가 ”1895년” 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말할 때 1895년을 또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획을 긋는 중요한 해 입니다. 이 해는 청일전쟁이 끝난 해입니다. 그리고 민비가 살해된 해입니다. 민비의 죽음은 기독교 뿐 아니라 전체 우리민족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민족의 자존심과 체면을 온통 유린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민비를 나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이 그에게 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당시 일본이 한국에 파송한 공사는 미우라였습니다. 당시 임금 고종은 우유부단하고 우둔하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같은 어눌한 임금 옆에서 임금의 자문 역할을 민비가 해냈습니다. 당시 민비는 똑똑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달변가로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 보며 일을 처리해 나가는 야무진 여성이었습니다. 그때 고종은 옆에 앉아서 듣고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민비가 연세대학교의 창시자 언더우드 선교사 부인과 아주 친숙하게 지냈습니다. 부인은 당시 간호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민비가 언더우드 부인에게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부인이 미국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에는 자동차도 많습니다, 쵸코렛도 많습니다 , 그리고 땅도 넓고 한나라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습니다”. 듣고 있던 민비가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 고 했습니다. 그때 부인이 정중하게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 그보다 더 좋은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말을 다 듣고 난 민비는 나도 그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고 크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0일 후에 죽은 것입니다. 민비는 나라를 망친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일본이 한국과 합병을 하려고 하니까 민비가 나서서 조리 있고 똑똑한 말로 반대하며 나섰기 때문에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본의 공사 미우라가 죽인 것입니다. 민비는 1895, 8, 20, 경복궁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일본의 군인들이 군화를 신은 채 침실로 들어와 찌르고 자르고 찢어 죽인 후에 공원으로 끌고 나와 이불을 덮어 씌우고 기름을 끼얹고 불태움으로서 후에 뼈만 조금 수거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 민족은 좌파 우파 싸움을 그치고 온 백성들이 합심으로 뭉쳐져 민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1895, 10월에 일어났던 을미의병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우유부단한 고종왕은 매일같이 떨며 살았고 독살을 당할까하여 밥을 가져오면 개에게 먼저 먹여 보고 먹고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선교사를 부르곤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895년의 일입니다. 이 해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시련의 역사 속에 동참하였던 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니까 한국의 기독교는 나라에 어려운 역사속에 동참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민족종교로 발전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기독교는 나라의 어려움을 교회가 앞장서 참여하게 되었고 민비의 시해로 장로교 감리교가 합동으로 추모행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교회는 민족으로부터 호응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민비가 시해되던 1895년부터 1905년까지 10년 동안 530여명이던 신자들이 무려 26,057명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성서공회에서는 144.657권의 성경책을 찍어내게 되었습니다. 이때 특별하게 교세가 발전된 곳은 평양지방으로 그곳에 정주지방은 인구가 2만명 정도였는데 거의다 대부분이 신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곳이 청일전쟁으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으로 전후 유행병과 악질이 번져서 희생자들이 속출할 때 관공소에서도 손을 대기를 꺼리는 일들을 기독교인들이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처리해주므로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현상이 1895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1905년” 입니다. 교회가 자꾸만 단결이 되고 민족화 되면서 민중속에 들어가게 되니까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하게되고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현상에 새롭게 대두된 문제가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였습니다. 결국 교회는 수난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이같은 현상 앞에서 기독교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급속히 뭉치지 말고, 정치화하지 말고, 세력화 하지 말라는 것이였습니다. 이 부분이 오늘 선교사들의 역할에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러나 선교사들에게도 더깊은 생각과 우려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일본에 대한 강한 증오심과 분노는 뭉쳐진 힘을통하여 반드시 밖으로 폭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으로 하여금 박해의 구실을 주게 되며 기독교가 혹독한 수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충고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설득에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기독교의 비정치화 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신앙 대부흥운동은 기독교인들의 내적 신앙에 일대 각성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는 시대상황이 우리 민족이 최고로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일제의 압력은 더욱 거세어 가고, 그들을 상대해서 이길 힘은 없고, 내일은 막막한 상황이고, 이완용의 내각은 민족의식에 말살정책을 펴 나가고 있고, 더구나 고종을 폐위시키려는 음모는 노골화되어 가고 있었으며, 밖으로 나가 호소해 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일본의 수탈은 날로 더 심해져 가지만 어떻게 할길이 없는 속수무책인 때였습니다. 아무튼 이 때는 온 민족이 극심한 좌절감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때였습니다 이때에 일어난 운동이 바로 신앙 대부흥 운동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한국 기독교에서 펴 나갔던 운동의 내용이 1) 영적 각성운동이고 2) 성경 읽기 운동을 벌여 이때 성직자 지원자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고 3) 도덕운동으로 술 않먹기운동, 도박 않하기 운동이 일어났고 4) 새벽기도회 운동이 일어나 한국교회의 열심 있는 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5) 사경회를 통하여 신앙에 뜨거운 부흥 운동이 일어남으로서 길선주, 김익두 같은 대 부흥사들이 배출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이 때의 신앙대부흥운동으로 인하여 1905년부터 1907년까지 2년 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엄청난 성장을 하여, 세례교인은 194%, 학습교인은 329%의 증가를 가져와 전체가 무려 267,%의 증가추세를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피박을하고 박해를 받으면 더 왕성해지는 종교인 것입니다. 오히려 조용하면 감소하고 고난 당하면 더욱 급속하게 증가되어 가는 것이 기독교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를 이 땅에서 박멸하려면 무한한 자유를 주어 안주하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의 해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919년 드디어 이 땅에 3.1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속에서 영적인 힘과 도덕적인 힘이 축적되어 가면서 마침내 일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드디어 분개하여 일어난 것이 1919년 3월, 1일의 항거운동인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3.1운동과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리민족 전체에게 굉장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특히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리민족에게 저항의식과 종교적 항거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영향은 또 한편으로 우리나라 지성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백락준 같은 이는 ”오늘 이 시대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때라”고 스스로 기독교인이 될 만큼 당시 기독교의 정신운동은 이 나라 곳곳에 큰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나라를 사랑하고 역사의식이 있는 지식인들 사이에 저항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곳곳에서 저항의식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이때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꽃으로 선정이 되였는데 기독교인들이 영향을 미치게 된것입니다. 발로 밟아도 다시 일어나고 발로 짓늘러도 또 다시 살아나는 꽃, 그래서 저항의식을 상징하는 꽃으로 무궁화를 국화로 선정했던 것입니다. 당시 황성신문은 사설을 통하여 학생들이 수를 놓을 때 무궁화를 수놓으라고 제창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남궁억 같은 이는 언론인이며 교육자로서 당시에 시를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분입니다. 그때 지은 대표적인 시 가운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라는 오늘의 찬송의 가사가 있습니다. 그는 이 가사 가운데서 모두 일어나 일하러 가자고 독려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러 가자는 말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무궁화를 심으러 가자는 말이고 항거하는 일에 다같이 함께 나서자는 뜻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연세대학교 교정에 제일먼저 무궁화를 심은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저항의식을 길러 주기 위한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결과 3.1운동 때 전체 학생 120명 가운데 70% 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감옥에 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 여파로 그 해 졸업식이 연기가 되었고 얼마 후에 치러진 졸업식에서 남궁억선생은 치사를 통하여 다시 이 무궁화 정신을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강원도 사람입니다, 강원도는 눈이 오면 많이 와서 길이 없어집니다, 그때 나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하여 커다란 발자국을 남겨 놓고 걸어갔습니다, 당신들은 부디 뒤를 따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십시요” 이것이 3.1운동을 전후하여 일어났던 기독교의 정신운동 이였습니다. 이 때가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는 가장 눈부시게 발전하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나라의 수난의 역사와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가 어떻게 그시대를 이끌어 왔는지 역사의 눈을 가지고 오늘의 이 어려운 시대를 내다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시대는 혼란했던 이조말과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영적으로도 혼탁하고 경제적으로도 침체되어 실업자는 늘어가고 가족이 헤체되고 신용불량자들이 380만명이 넘어가고있고 게다가 국론이 분열되고 사상적으로도 혼란하여 미국과의 50년 동맹관계가 균열이 생겨지고 젊은이들을 중심한 친북 성향이 강하게 일어나면서 마치 베트남이 공산화 될 때처럼 지금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 서있는 어려운 위기를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에도 정치인들은 4.15 총선을 앞에놓고 진흙탕 싸움만 하고있고 그들의 부정부폐는 한도없고 끝도없이 총체적으로 썩어져 있으니 정말 대한민국에 소망이 앞으로 어디에 있습니까? 이러한 참담한 현실앞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이민족에 죄악을 걸머지고 미스바에 모였던 이스라엘백성들과 같이 마음을 찢고 회개하며 금식기도를 하여서 이민족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기도운동이 교회마다 일어나야 할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민족앞에서 역사의 고비마다 각성하며 회개하고 기도하여서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잘이겨 나갔드시 이번 3. 1 절을 맞이하여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제단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각성운동이 먼저 일어나서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고 갈림길에선 이 민족을 바르게 지켜나가는 이시대의 파수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1절과 한국교회의 발전/ 행6:7/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04-03-01
3.1절과 한국교회의 발전 행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우리는 또 다시 3.1절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역사 가운데서 3.1절과 8.15 해방은 우리 기독교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입니다. 3.1절이나 8.15해방의 역사 속에는 1) 하나님의 섭리도 들어 있고 2) 서양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의 역할도 대단하였습니다. 3) 그리고 기독교의 역할 또한 컸습니다. 그래서 3.1절이나 8.15 해방절이 되면 기독교계에서는 반드시 행사를 가지면서 그 뜻을 되새기거나 그 때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 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오늘도 또 다시 3.1절을 맞이하여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그때 있었던 하나님의 섭리를 되새겨 보고 3.1절이 우리 기독교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말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 할 년대가 있습니다. 그것이 1885년, 1895년, 1905년, 1907년, 1919년 등입니다. 이 해는 기독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역사의 마디입니다. 제일 먼저 생각할 년대는 ”1885년“ 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1885년도 4월 5일 부활절 날로 보고 있습니다. 이날 미국에서 장로교 선교사와 감리교 선교사가 인천에 상륙함으로서 이 땅에 기독교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엄밀하게 따지자면 한해 먼저인 1884년 9월 22일 북미 장로교 선교부로부터 파송 받아 잠시 중국에서 활동한 바 있는 Allen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의사입니다. 이 사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Allen은 영국과 미국의 공사관 부속의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도 선교사역에 커다란 기초를 놓을만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이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때 개화파 자객에 의해서 보수파의 우두머리였던 민영익이 칼에 맞는 사건입니다. 이때 민영익을 알렌이 치료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Allen 은 왕실의 시의관이 됩니다. 이것이 한국선교에 커다란 발판이 되어 1885, 4, 5일 한국에 정식으로 선교사가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1887, 9월에 새문안 교회를 세우고 11월에는 정동감리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발전하여 가게 된 것입니다. 1885년으로부터 1895년까지 10년 동안 이 땅에 신자가 서울에 65명, 전국에는 300여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에서 1885년은 귀중한 해입니다. 다음은 ”1895년“ 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말할 때 1895년을 또 기억해야 합니다. 이 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획을 긋는 중요한 해 입니다. 이 해는 청일전쟁이 끝난 해입니다. 그리고 민비가 살해된 해입니다. 또 한국교회가 정치화되어 갔던 해이기도 합니다. 민비의 죽음은 기독교 뿐 아니라 전체 우리민족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민족의 자존심과 체면을 온통 유린시킨 대 사건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민비를 나쁘게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이 그에게 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당시 일본이 한국에 파송한 공사는 미우라입니다. 당시 임금 고종은 우유부단하고 우둔하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같은 어눌한 임금 옆에서 임금의 자문 역할을 민비가 해냈습니다. 당시 민비는 똑똑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달변가로 상대방의 의중을 꿰뚫어 보며 대화해 나가는 야무진 여성이었습니다. 그때 고종은 옆에 앉아서 듣고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민비가 연세대학교의 창시자 언더우드 선교사 부인과 친숙하게 지냈습니다. 부인은 당시 간호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민비가 언더우드 부인에게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때 부인이 미국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국에는 자동차도 많습니다, 쵸코렛도 많습니다 , 그리고 땅도 넓고 한나라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있습니다”. 듣고 있던 민비가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 고 했습니다. 그때 부인이 정중하게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더 좋은 나라가 있습니다” “ 그래, 그보다 더 좋은 나라가 있다고“, “ 예, 있습니다,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죽음도 없는 그런 나라입니다“. 말을 다 듣고 난 민비는 ”나도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하고 크게 관심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0일 후에 죽은 것입니다. 민비는 나라를 망친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일본이 한국과 합병을 하려고 하니까 민비가 나서서 조리 있고 똑똑한 말로 반대하며 나섰기 때문에 방해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일본의 공사 미우라가 죽인 것입니다. 민비는 1895, 8, 20, 경복궁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일본의 군인들이 군화를 신은 채 침실로 들어와 썰고 자르고 찢어 죽인 후에 녹원으로 끌고 나와 이불을 덮어 씌우고 기름을 끼얹고 불태움으로서 후에 뼈만 조금 수거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때 우리 민족은 좌우파가 싸움을 그치고 온 백성들이 합심으로 뭉쳐서 민란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1895, 10월에 일어났던 을미의병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 우유부단한 임금 고종은 매일같이 떨며 살아갑니다. 독살 당할까 봐서 밥을 가져오면 개에게 먼저 먹여 보고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선교사를 부르곤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1895년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이 해는 잊을 수가 없는 해 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이 해를 잊을 수가 없는 해입니다. 그리고 이 해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시련의 역사 속에 동참하였던 해이기도 합니다. 민비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이 나라의 운명과 기독교의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이렇게 되니까 한국의 기독교는 이 때부터 민족교회로 발전해 갑니다. 그래서 교회가 자꾸만 정치화되어 갑니다. 하나의 백성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단결되어 가는데 교회가 앞장을 서게 됩니다. 민비의 시해로 장로교 감리교가 합동으로 추모행사를 치르고 고종이 환어할 때는 배재학당의 학생들이 도로연변에 모여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교회는 민족으로부터 호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민비가 시해되던 1895년부터 1905년까지 10년 동안 530여명이던 신자들이 무려 26,057명으로 늘어나게 되며 성서공회에서는 144.657권의 성경책을 찍어내게 됩니다. 이때 특별하게 교세가 발전된 곳은 평양지방으로 그곳에서도 정주지방 입니다. 그곳은 인구가 2만명 정도였는데 그곳 인구의 대부분이 신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곳이 청일전쟁으로 피해가 가장 컸던 곳으로 전후 유행병과 악질이 번져서 희생자들이 속출할 때 관공소에서도 손을 대기를 꺼리는 일을 기독교인들이 희생적으로 봉사하고 처리하므로서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현상이 1895년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의 역사에서 1885년과 1895년은 잊을 수가 없는 해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1905년“ 입니다. 이 해는 교회의 비정치화의 해로 기록될 수 있는 해 입니다. 교회가 자꾸만 단결되어 가고 민족화 되어 가고 세력화 내지는 정치화되어 가게 되니까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현상에 새롭게 대두된 문제가 일본의 기독교에 대한 압박입니다. 결국 교회는 수난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이같은 현상 앞에서 기독교인들을 설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너무 급속히 뭉치지 말고, 정치화하지 말고, 세력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오늘 선교사들의 역할에 비판을 받게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판거리가 아닙니다. 선교사들에게도 우려가 있었던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의 힘이 속에서 내연(內燃)하면 반드시 외연(外燃)해서 폭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으로 하여금 박해의 구실을 주게 될 뿐이며 기독교가 혹독한 수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충고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설득에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기독교의 비정치화 운동입니다. 그 운동이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신앙대부흥운동은 기독교인들의 내적 신앙의 일대 각성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 때는 우리 민족이 최고로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였습니다. 일제의 압력은 더욱 거세어 가고, 그들을 상대해서 이길 힘은 없고, 내일은 막막한 상황이고, 이완용의 내각은 민족의식 말살정책을 펴 나가고 있고, 더구나 고종을 폐위시키려는 음모는 노골화되어 가고 있었으며, 밖으로 나가 호소해 보았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수탈은 날로 더해지는 속수무책인 때였습니다. 이 때는 온 민족을 극심한 좌절감으로 몰아 넣고 있을 때입니다 이 때 에 일어난 운동이 바로 신앙대부흥운동입니다. 이때 펴 나갔던 운동의 내용을 보면 1) 영적 각성운동이고 2) 성경 읽기 운동을 벌여 이때 성직자 자원자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고 3) 도덕운동으로 술 않먹기운동, 도박 않하기 운동이 일어났고 4) 새벽기도회 운동을 일으켜 열심 있는 영성운동이 일어났으며 5) 사경회를 통하여 신앙부흥 운동이 일어남으로서 길선주, 김익두 같은 대 부흥사들이 배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의 신앙대부흥운동으로 인하여 1905년부터 1907년까지 2년 동안 교인은 무려 200%의 증가를 보였고, 전도소는 222%, 세례교인은 194%, 학습교인은 329%의 증가를 가져와 전체가 무려 267,84%의 증가추세를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박해를 받으면 더 왕성해지는 종교인 것입니다. 조용하면 감소하고 고난 당하면 더욱 급속하게 증가되어 가는 것이 기독교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를 이 땅에서 박멸하는 방법은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1905년의 교회의 비정치화의 해와 1907년의 신앙대부흥운동의 해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12년 후에 드디어 이 땅에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네 번째는 ”1919년의 3.1운동“ 입니다. 속에서 영적인 힘과 도덕적인 힘이 축적되어 가면서 마침내 일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드디어 분개하여 일어난 것이 1919년 3, 1일의 항거운동 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3.1운동과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리민족 전체에게 굉장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특히 신사참배 거부운동은 우리민족에게 저항의식과 종교적 항거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영향은 또 한편으로 우리나라 지성인들에게도 지대한 영향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백락준 같은 이는 “오늘 이 시대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는 때라”하고 스스로 기독교인이 될 만큼 당시 기독교의 정신운동은 이 나라 곳곳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지식인들 사이에 저항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곳곳에서 저항의식이 솟구쳐 올라왔습니다. 이때 무궁화가 우리나라의 꽃으로 선정되는데 기독교인들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발로 밟아도 다시 살아나고 발로 짓밟아도 또 다시 살아나는 꽃, 그래서 저항의식을 상징하는 꽃으로 무궁화를 국화로 선정했던 것입니다. 당시 황성신문은 사설을 통하여 학생들은 수를 놓을 때 무궁화를 수놓으라고 제창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또 남궁억 같은 이는 언론인이며 교육자로서 당시에 시를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던 분입니다. 그때 지은 대표적인 시 가운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라는 오늘의 찬송의 가사가 있습니다. 그는 이 가사 가운데서 모두 일어나 일하려 가자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일하려 가자는 말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무궁화를 심으러 가자는 말이고 항거하는 일에 나서자는 뜻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연세대학교 교정에 제일먼저 무궁화를 심은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젊은이들에게 저항의식을 길러 주기 위한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결과 3.1운동 때 전체 학생 120명 가운데 70% 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감옥에 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그 여파로 그 해 졸업식이 연기되었고 얼마 후에 치러진 졸업식에서 남궁억은 치사를 통하여 다시 이 무궁화 정신을 들려주게 됩니다. “나는 강원도 사람입니다, 강원도는 눈이 오면 많이 와서 길이 없어집니다, 그때 나는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하여 커다란 발자국을 남겨 놓고 걸어갔습니다, 당신들은 부디 뒤를 따르는 자들이 되지 말고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십시요” 이것이 3.1운동을 전후하여 일어났던 기독교의 감추어졌던 모습들입니다. 이 때가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는 역사상 가장 눈부시게 발전하였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그리고 기독교의 역사 중에서도 몇 개의 마디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기독교가 시작되었던 1885년이고 둘째는 민비 시해로 인하여 시작된 교회의 민족화 그리고 정치화되었던 1895년이고 셋째는 박해의 구실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참고 인내하며 비정치화 했던 1905년, 넷째는 비정치화 속에서도 내적인 신앙성장을 위하여 신앙대부흥운동을 일으켰던 1907년, 다섯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저항운동에 나섰던 1919년의 3.1운동의 해 등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해 볼 때 오늘 읽은 본문말씀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3.1절에서 얻은 교훈/ 레19:13-14/ 2001-03-01
3.1절에서 얻은 교훈 레19:13-14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어린 손자를 놓고 얘기했습니다. \"6·25때 얼마 나 배가 고팠는지 아느냐, 밥이 없 어서 사람들이 굶기를 밥먹듯 했단 다\",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 리며 되물었습니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지 왜 굶었어요\", 그러자 할 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시기를 \"밥도 없는데 어떻게 빵이 있었겠느냐\". 그러자 아이는 또 \"그러면 라면 먹 으면 되지 않아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가 어떻게 그 시절의 배고픔 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며칠 전에 3·1절 81돌 기 념일을 보냈습니다. 3·1절은 이제 옛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흐려져 가고 우리네 관심 속에서도 지워져가고 있습니 다. 그 역사가 벌서 81년이나 되었 습니다. 어떤 아버지들은 3·1절이 무슨 날이냐고 아이들이 물으면 \"일 제 때 우리 조상들이 탑골 공원에서 독립 만세 부른 날이다.\"라고 대답 해 주는 게 전부입니다. 특별한 관 심도 없고 역사적인 의의도 없습니 다. 그런데 이 날은 그렇게 쉽게 잊 을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 근대역사 가운데 두드러 진 날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3·1절이고 또 하나는 8·15 입니 다. 이 두 날은 우리 신앙인들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 날입니다. 하나님 이 이 민족의 역사 가운데 깊이 섭 리하신 날이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관련된 날입니다. 그래서 이 두 날 은 우리 기독교가 꼭 되새기고 교훈 을 받고 넘어가야 할 날입니다. 3·1절이나 8·15는 모두 자유와 평등과 관계가 있는 날입니다. 인간 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유 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은 선물입니다. 약자는 반드시 보 호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성경말 씀의 정신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말씀들 을 기록한 아주 소중한 책입니다. 여기 보면 \"부약사상(扶弱思想)\"이 나오고 있습니다. 약한 자를 도우 라는 정신입니다. 성경 속에는 이 사상이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강 자에게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 없 습니다. 다만 약자에게는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 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말씀입니다.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 탈하지 말며 품삯을 떼먹지 말며 너 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며 네 하나님 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이 \"부약사상\"입니다. 이를테면 \"약자 보호사상\" 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한가지 경고가 들어 있습니 다. 그것은 \"만일 약자를 압제하고 핍박하면 내가 심판하겠다\"는 경고 입니다. 일본사람들이 36년 동안 우리민족 을 아주 가혹하게 압제했고 지배했 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우리의 주권 과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이름과 성 과 이 땅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약한 나라라고 얕잡아보고 통째로 우리 나라를 집어삼키려고 했습니 다. 성경이 말씀하는 이 부약사상을 깡그리 무시한 것입니다. 그런 일본이 명실상부한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 땅에 왕이 있어서 는 안됩니다. 그래서 고종을 독살하 려고 했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개를 옆에 두고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개에게 음식을 먹여서 별 이상이 없 으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먹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위협을 당하면서 살 았습니다. 일본이 당시에 한일합병을 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민비였습니다. 민비 는 아주 똑똑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냥 밀어붙이면 뜻대로 될 줄 알았는 데 똑똑한 여인 하나 때문에 가로막 혔습니다. 그래서 민비를 죽이려고 모의를 하고 군인들을 그 방에 집어 넣었습니다. 군인들은 민비가 자고 있는 침실에 군화발로 들어가 민비 를 칼로 찌르고 썰고 찢었습니다. 그리고는 시체를 녹지원으로 끌고 나와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기름을 붓고 불태웠다고 합니다. 일본이 이렇게 잔학하게 우리를 압 제했습니다. 우리 민족을 무시했습 니다. 인권이고 주권이고 모든 것을 약탈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 을 하나님이 그냥 두었겠습니까. 하 나님이 명령하신 이 부약사상을 송 두리째 무시해 버린 그들을 하나님 이 심판해서 그 나라가 잿더미로 변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신 갚으신 것입니다. 이같은 압제를 받다가 견디지 못하 여 들고 일어난 것이 3·1 운동입니 다. 지금 그 1세대들이 모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모두 역사 를 통해서 들은 얘기입니다. 그렇지 만 우리는 이 날을 그냥 지나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3·1절이라는 지 난날의 역사를 통해서 몇 가지 교훈 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고난은 때로 사람으로 하 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 다.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고난을 거치면 사 람이 다듬어지고 성숙해집니다. 성 경 전도서 7:14절을 보면 \"너희는 곤고하거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을 겪은 사람은 생각이 성숙해집니다. 어른스러워집니다. 고 난을 겪고 나면 상상도 못했던 생각 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고난이 지 혜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독립선언문을 보면 참 문장이 아름 답습니다. 문학적으로도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 런 작품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책 상 앞에 앉아서 학문적으로 연구하 고 다듬어서 나올 수 있는 글이 아 닙니다. 그 글 속에 절절한 고난이 배어 있습니다. 그 고난을 통과한 후에 나오는 인간의 가장 소중하고 근본적인 외침이 거기에 담겨져 있 습니다. 우리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지금 3 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시인이 다 됐습니다. 어른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집에 있으면 상상도 못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소중함, 집의 소중함, 음식의 소중 함,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구구절절 이 철든 편지를 썼습니다. 철없던 아이가 군대에 가서 고생을 조금 맛 보더니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삶에 서 오는 어려움과 고난은 이렇게 사 람을 변화시킵니다.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보면 아들 에 대한 부성애가 절절이 흐르고 있 습니다. 그 기도문은 어느 날 번뜩 생각나서 쓴 기도문이 아닙니다. 전 장(戰場) 터에서 수많은 아픔과 죽 음을 보면서 체험한 것을 쓴 것입니 다. 보통 때는 그런 기도문이 나오 질 않습니다. 전쟁을 거치는 동안 남자로서 할 일이 무엇인가를 절실 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그런 기도문 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기도문을 보면 절절 이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정신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 랑, 헌신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것 도 그가 참담한 방탕생활을 했기 때 문에 그런 고백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계 문학사에 빛나는 불 후의 명작으로 우리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존 밀턴의 \"실낙원\"을 말합니다. 이 작품들도 그냥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이 두 사람이 암 흑과 같은 인생의 고통스런 터널을 지나가면서 쓴 책들입니다. 한 사람 은 감옥의 고난을 겪으면서, 또 한 사람은 노년에 시력을 상실하는 아 픔을 겪으면서 그 고난의 산물로 만 들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흑인영가를 들어보면 심금 을 울리는 호소력이 들어있다는 것 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히 흑 인들에게 탁월한 음악성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노예생활을 하면 서 아픔을 당하고 압제를 당하면서 그 영혼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고백을 노래한 것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것입 니다. 그래서 고난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 각하게 만듭니다. 3·절이 일어나기 까지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곤혹을 치렀습니까. 이 날은 우리 민족이 아픔을 당하면서 겪은 것의 발로입 니다. 유순했던 민족성으로 보아 우 리 선조들이 어지간하면 봉기를 일 으킬 사람들이 아닙니다. 너무 압제 를 당하니까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많은 생각 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3·1운동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 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3·1절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 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조상들 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날입니다. 평등, 자유는 하나님의 생 각입니다.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최 남선의 글을 보면 \"평등, 자유\"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는 그 말 을 기독교에서 배웠다고 고백했습니 다. 최남선이 살아가던 그 시대는 평등, 자유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 입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면서 그 개념이 퍼지게 된 것 입니다. 기독교를 통해서 그 말과 개념을 깨우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권리입니다. 평등이 없고 자유 가 없는 것은 짐승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노예의 세계입니다. 짐승의 세계에는 힘만 있을 뿐 자유가 없습 니다. 죄인들의 세계에도 자유가 없 습니다. 평등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 람이 죄를 지으면 먼저 자유부터 박 탈합니다. 짐승, 노예, 죄인은 이렇 게 자유,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자격 이 없습니다. 인간을 무자비하게 압제하고 자유 를 뺏고 억압하면 그 억압자를 하나 님이 심판하십니다. 역사를 보십시 오. 독재자는 그 권세가 하나같이 길지 못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 님의 심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래서 독재자들의 말로를 보면 하나 같이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심판하 셔서 그렇습니다. 본문을 보면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품군의 삯을 떼먹지 말라, 귀먹은 자를 조롱하지 말라. 소경이 가는 길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 모두 부 약사상, 즉 약한 자를 억압하거나 어려움을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만일 약자를 압제하거나 억압 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는 말씀 입니다. 힘없는 사람의 돈을 떼먹으면 당장 은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 일군의 품삯을 떼어먹으면 당장은 돈이 쌓 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먼 인생 길을 살다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몇 배로 심판하십니다. 힘없는 사람 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무시하면 하 나님이 대신 그 억울함을 갚으십니 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사상입니다. 일본이 우리 민족을 무자비하게 억 압하고 짓밟았습니다. 우리 민족을 아주 우습게 여겼습니다. 밟으면 아 무 소리 못하고 밟힐 줄 알았습니 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용렬하고 무지해도 밟으면 일어나게 되어 있 습니다. 들풀도 밟으면 죽지 않고 되살아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 신 정신이고 생명력입니다. 하물며 인간이 그렇게 쉽게 꺾이고 죽겠습 니까. 그래서 억압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억압당하는 자 에게는 힘을 더해주십니다. 억압자 는 심판하고 당하는 자에게는 하나 님이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억압당하고 살던 우리 선조 들이 들고일어났던 것입니다. 모두 흥분하니까 삽을 들고 곡괭이를 들 고 작대기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일본이 깜짝 놀랐습니 다. 참 무서운 민족입니다. 우습게 여겼는데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아 주 무섭게 나서서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하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어난 것이 3·1운동입니다. 세계 역사에서도 이 3·1절은 알아주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지난 역사를 조용히 되돌아 보면 참 신기할 정도입니다. 생각해 보면 3·1운동은 우리 선조들이 일 으킨 운동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 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서 3.1절은 그냥 넘길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약자가 압제 당하면 대 신 소리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점 입니다. 누가복음 19:40에 \"이 사람들이 소 리지르지 아니하면 돌들이 소리지르 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소리 질 러야 할 사람을 소리지르지 못하게 하면 대신 다른 사람들이 소리지른 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약자를 압 제하고 억압하면 대신 다른 사람들 이 소리질러 돕게 만드십니다. 내가 소리지르지 못할 상황이면 누군가가 대신 소리를 질러 준다는 것입니다. 당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소리질렀습니까. 그러면 일본은 쫓아다니며 소리지르 지 못하게 감시하고 윽박질렀습니 다. 그래서 세상 누구도 우리의 아 픔을 몰랐습니다. 모두 소리지르다 지쳐서 쓰러지고 낙심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던 스코필드 선교사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리 민족의 참상들을 사 진에 담아 외국통신에 전해주었습니 다. 우리에게 언로가 막히고 길이 막히니까 하나님이 사람들을 들어 쓰시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이렇 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이 소리지르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또 우리들이 소리지를 기운도 없을 때 대신 소리질러준 사람이 있습니 다. 그 사람이 미국의 윌슨 대통령 입니다. 그는 세계 만국평화회의에 서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해 주었습니 다. 우리가 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 이 우리를 대신해서 소리를 질러 준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세계 여 러 나라가 비로소 우리 나라에 관심 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용기를 얻어서 3·1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가만히 보면 약자들이 소리 를 질러도 누구 하나 들은 척도 하 지 않습니다. 재벌들이 꿈쩍도 안 합니다. 권력자들이 관심도 갖지 않 습니다. 그러니까 대신 소리질러 주 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시민 단체들입니다. 약자들이 권력자나 재벌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호소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으니까 시민 단체들이 나서서 벌떼같이 소리를 질러줍니다. 그들이 들고일어나니까 재벌들도 권세를 가진 정치가들도 무시 못하고 들어주지 않습니까. 3·1운동은 근대사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시민운동입니다. 몇 사람 안 되는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는데도 세계에 메아리쳐 되돌아온 운동이었 습니다. 그래서 나는 3·1절, 8·15 만 되면 괜히 흥분하게 됩니다. 그 래서 나는 매년 이 두 날이 되면 빼 놓지 않고 설교를 합니다. 그만큼 그 날들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세상을 살면서 늘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살 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떼먹으면 잠시는 이익입니다. 그런 데 하나님은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당장은 수지 맞는 것 같지만 멀리 보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따릅 니다. 더구나 약자, 가난한 자의 돈 을 떼먹으면 그 심판은 더 커집니 다. 그리고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면 그 것도 심판 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 들의 그 아픔과 참상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약자가 보호되고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 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 들에겐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시고 약한 자들에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오늘 성경은 그 점을 말씀하고 있 습니다.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 품군의 삯을 떼먹지 말라, 귀 먹은 자를 무시하지 말라, 소경 앞 에 장애물을 놓지 말라, 나는 여호 와니라\" 이 말은 이렇게 약한 자를 억압하고 무시하면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81년 전에 일어 났던 3·1운동을 통해서 배우는 교 훈입니다.
3.1절의 현대적 의의/ 요8:31-36/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03-03-01
3.1절의 현대적 의의 요8:31-36 지금부터 84년 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후 삼천리 방방곡곡에서는 독립만세가 메아리쳤다. 우리 조상들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억압과 착취, 학대와 고역으로부터 독립과 자유획득을 위하여 일어나 독립만세를 불러댔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도시와 농촌에서 저들은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외쳐댔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왜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왜경의 칼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때 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었고 특별히 이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통계에 의하면 3.1운동 때 감옥에 투옥된 사람도 기독교인이 가장 많았다. 목사가 54명, 전도사 127명, 장로가 63명이었고 평신도가 3373명이었다. 그리고 사살된 신도 수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천도교인 전체를 합한 수보다 많은 47명이었고, 불타거나 파괴된 교회가 80여 곳이었고 기독교 계통의 학교 8곳이 파괴되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에는 기독교 지도자가 16명이나 되었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은 독립운동의 산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파괴되었고 또한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투옥 내지는 순국의 피를 흘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류관순 열사의 장렬한 순국이었고 또한 화성의 제암리 교회에서는 일본 헌병들이 교회 안에 29명의 신도들과 마을 사람들을 가두고 방화하여 전원 몰사케 한 만행도 있다. 이 때 체포된 많은 애국지사들을 일본 경찰이 문초하여 너는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런 일을 했느냐고 그 배후를 따지면 한결같이 ‘하나님이 시켰다’ 라고 했다고 한다. 하나님이 독립을 위해서 일어나고 자유획득을 위하여 3.1운동을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사실 독립 선언문을 보면 모든 인류가 평등함을 세계에 알리려 하였고 어느 나라든 자기 민족의 문제는 외세의 간섭 없이 스스로가 해결할 민족 자결권을 주장하였고, 또한 우리 겨레가 누릴 자유 그것은 하늘의 명령이며 시대의 대세임을 천명하고 있다. 84년 전에 발표된 독립선언문의 내용과 그 정신 그것은 성서적인 교훈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인류평등 사상을 들어보자. 성경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창 1:26)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하였다.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이 존엄한 존재이듯 그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도 온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법의 날의 슬로건도 알고 보면 성서에서 나온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인간의 자유를 들어보자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유하기를 원하는 존재이다. 어느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존재가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10년 한일합방 이후 나라도 언어도 문화도 그리고 성씨마저 일제에게 송두리째 빼앗긴 채 살아온 지 어언 10여 년, 그래서 저들은 일체의 억압과 학정에서 자유획득을 위해 몸부림치며 부르짖은 운동이 3.1운동이다 . 그러나 이 자유,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한 존재로 창조하시고 또한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거나 억압되어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 분이시다. 그래서 한 때 이스라엘이 애굽의 치하에서 억압과 착취 그리고 온갖 고역에 시달리며 하나님께 해방과 자유를 간구할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보시고 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출 3:7) 마침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해방하여 가나안 복지로 인도해 내시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의 2,000만 겨레가 일제의 억압과 학대 그리고 착취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외치며 하나님께 호소한 지 36년 만에 마침내 우리는 일제의 쇠사슬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획득한지 금년으로 58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일제의 학정과 착취로부터 잃었던 국토도 되찾고 언어도 문화도 되찾아 해방된 민족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를 구속하고 또한 노예화 하는 악의 세력은 일제의 통치자들만이 아님을 성서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3:34에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32절에서는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인간이 진정 자유케 되는 비결 또한 말씀하셨다. 우리는 일제의 물리적인 압박과 굴레에서는 분명 해방과 자유를 쟁취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겨레는 또 다른 죄와 악의 노예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또한 자유 해야 하겠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교훈하신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살 때 진정으로 자유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까? 무엇이 우리 겨레를 지긋지긋하게 구속하고 있을까? 1. 게으름과 나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최고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사회인데 게으른 사람과 나태한 민족은 영원히 지상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게으름과 나태한 생활을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게으른 사람이 게으름으로부터 해방되는 비결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하신 성서의 말씀을 들을 때 비로소 부지런해질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조상님 네는 한 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놀고 사는 생활을 숭상해 왔다. 그래서 노래를 불러도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를 즐겨 불렀다. 그렇다면 젊어서 놀고 늙어서 놀고 언제 일한단 말인가?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단호히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였고 “도둑질 하던 사람은 이제부터 그런 짓을 그만 두고 제 손으로 일하여 떳떳하게 살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엡 4:28)고 하지 않았던가! 잠언서 시자는 계속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하는 일을 보고 그 지혜를 배우라”(6:6) 하였고, “자기 일에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망신 하리라”(18:9)고 경고한 것을 기억하면서 게으름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겠다. 2. 정욕과 향락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성서는 구약의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한 것을 부도덕과 방탕한 성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작금의 우리의 정신계는 어떠한가! 경제 사정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왜 향락산업은 번창일로에 있는가! 저녁이 되면 강남의 룸살롱은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그뿐인가! 작년 1년간의 성매매시장의 매상고는 자그마치 국내 총 생산의 4.1%인 24조원에 달하고 최소 33만 명의 여성들이 매춘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통계이다. 이는 현대자동차의 2001년도의 총 매출액보다도 더 많은 액수라는 통계치 이다. 게중에는 등록금을 위해서 몸을 파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유흥자금을 위해서 몸을 파는 여학생도 있다는 통계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와 같이 음란과 방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이들이 ‘간음치 말라’는 계명과 ‘죄의 값은 사망이니라’는 성서의 말씀을 들을 때 비로소 저들은 방탕함과 향락주의로부터 진정한 해방을 누릴 수 있다. 3. 모든 탐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구제 불능의 사회로 병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소위 황금만능주의라 할 수 있다. “머니 머니 해도 Money가 최고야”하는 유행가가 나올 정도로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그래서 돈을 위해서 남을 속이고 배신하고 몸을 팔고 도둑질하고 살인하지 않는가? 그러나 돈에 눈이 멀어 돈 돈 하다가 돌아버린 사람들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한 성서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한 성경말씀을 들을 때 비로소 탐심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4. 적당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국가 GNP가 80$대의 배고픈 과거가 있다. 그래서 5-6월이 되면 쌀독에 먹을 것이 떨어지고 들로 산으로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를 찾아 허기진 배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1970년에 들어오면서 잘살기 운동, 새마을 운동이 전국으로 전개되었고 이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라디오에서나 마을의 확성기에서는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하는 노래가 울려나왔고, 도시에서도 농촌에서도 잘 살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마침내 우리는 소위 OECD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리고 1988년에는 제24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작년에는 월드컵 또한 성공적으로 치러 세계인의 칭송까지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어찌하여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뿐일까 지금부터 1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사건들이 계속되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성수대교의 붕과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삼풍백화점의 붕괴로 인한 수백 명의 사람이 참사한 사건이었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은 건설된 지 10여년 밖에 안됐는데 어찌 이와 같은 끔찍한 붕괴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참사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사도 적당히, 감리도 적당히, 안전검사도 적당히 해치우는 안전 불감증에서 오는 적당주의가 불러온 재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대형 참사는 천재지변에 의한 부득이한 참사가 아니라 적당주의, 요령주의, 무사안일주의가 빚어 낸 인재란 것이다. 이 자리의 우리를 비롯해서 모든 국민들이 적당주의 내지는 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대구 지하철 화재의 참사와 같은 대형 참사는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로 돌아가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낸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대형 참사란 재앙에서 해방 될 수 있다. 자유로울 수 있다. 골로새서 3:23에서 보니 그대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마시오” 라고 말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가사를 돌보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공무원이든지, 학생이든지, 어른이나 아이나 누구를 불문하고 범사에 있어서 ‘처삼촌 벌초하듯’ 적당 적당히 하지 말고 주님에게 행하듯 성실과 최선을 다해서 행할 때 바로 “안전 불감증” 내지는 “적당주의”에서 오는 재앙을 멀리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일본제국주의의 치하에서는 해방과 자유를 쟁취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나태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겠고, 향락지상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겠다. 황금만능주의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겠고, 적당주의로부터 해방될 때, 무사안일주의로부터 깨어 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심령의 해방과 자유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만이 가져다주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씀하셨고 막 9:7에서는 “너희는 저의 말만을 들으라”하였다. 이와 같이 성서는 항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인의 삶을 살게 되리라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으시기 바란다.
3.1정신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욜2:12/ 2010-03-01
3.1정신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욜2:12 할렐루야!!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한량없 는 은혜와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멘> 다같이 한 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3.1정신과, 그리스도인의 사명\\\" 아멘!! 오늘은 이 민족이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을 가슴에 안고 한맺힌 눈물과 피로 이 땅을 적시며 독립만세의 함성으로 조국강산을 메아리쳤던 3.1절 79돌을 맞 는 말입니다. 우리의 지난날들을 회상하면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일본사람들에게 종살이를 하며 희생당한 우리 순국 선열들과,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를 당한 주의 종들을 생각하면 눈물 없이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우리의 말도 글도, 그리고 우리의 이름과 성도, 문화도 민족 의 양심도, 송두리채 짓밟힘을 당하였던 비극이 얼마나 참혹하였겠습니까? 뜻 이 있고 생각이 있는 백성이라면 이 민족의 역사를 눈물없이는 읽을 수가 없습 니다. 함석헌 선생이 쓴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쓰다가 말고 붓을 놓고 눈물을 닦지 않으면 안되는 이 역사, 눈물을 닦으면 서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이 역사, 세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 역 사는 알아야 한다. 그래 수 천년을 두고 매맞고 짓밟히고 조롱받고 속임 당하 는 이 백성을 생각하면 눈물없이 넘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1905년(광무 9년) 11월 17일 일본의 강제적인 협박에 의하여 을 사보호조약 (또는 을사5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국권을 찬탈당하고 외교권이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 게 된 것입니다. 이때 조선의 8大臣 중에 參政大臣 한규설(韓圭卨)과, 탁지부대 신 민영기(閔泳綺)와, 法部大臣 이하영(李夏榮) 3명이 이를 반대 하였고 나머지 5명은 찬성을 하였으니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과, 軍部大臣 이근택(李根澤), 內部大臣 이지용, 外部大臣 박제순(朴齊純), 農商工部大臣 권중현(權重顯) 바로 이들이 을사조약을 찬성한 을사5적(乙巳五賊)입니다. 이 사실이 11월 20일 황성신문에 보도가 되었고 당시 논설에는 시일야방성대 곡(是日夜放聲大哭) 이란 주제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매일밤 곡성소리가 끊일날 이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모든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1년내 피땀 흘려 농사지으면 공출 이라는 명목으로 모두 빼앗아 가고, 남자들은 전쟁에 총 알받이로 보내고, 또 어른들은 징용으로 끌어다가 북해도를 바롯하여 사할린 등지로 보내어 강제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때 억울하게 죽은 고혼들은 그 수 를 셀수가 없고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 니다. 처녀들을 공장에서 돈 벌게 해 준다는 빌미로 끌어다가 군대의 위안부로 삼았습니다. 이와 같은 악독한 행위를 하면서도 세계 언론에다가는 한국 민족은 미개하 고 열등한 민족이어서 일본이 도와주고 가르쳐 주지 않으면 자립해서 살아갈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명분을 얻기 위하여 조선 황실의 세자인 영친왕을 일본으로 강제로 데려다가 저들의 황족인 나시모또 요 시꼬(이방자)와 강제 결혼을 시켜 신혼여행이라는 명분으로 파리로 끌고가서 세계 열강에게 구경을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거기다가 고종황제를 기미년 1월 22일 독약으로 시해하였습니다. 이것을 알 게 된 우리의 선조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급기야 3.1독립만세운동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겐가 악압을 당하고 자유를 속박당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하 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바로 자유입니다. 18세기 미국의 독립 혁명기의 정치가이자 주지사였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는 말 하기를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 고 하였습 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가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 리나라는 과거 3공화국과 5공화국의 군사독재 시절에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죽음을 무릎쓰고 민주화 운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일본의 만행이 계속되고 또한 1918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14개항의 조약중에 민족자결주의 (民族自決主義)에 의하여 우리나라도 독립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인 16명과, 천도교인 15명, 불교인 2명으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은 독 립선언서를 작성하고 3월1일 정오를 기하여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하기로 결의 하고 드디어 3.1일 서울 탐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의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 작하였습니다. 이 3.1운동으로 인하여 기세는 전국으로 확산이 되어서 전국 211곳에서 1,542 회의 집회가 열렸고 참가인원은 전국적으로 2,023,089명 이나 되었습니다. 그런 데 이로 인하여 7,509명이 사망을 하였고, 15,961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46,948명이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물적 피해도 상당하였습니다. 교회가 47곳이 불탓고 학교 2곳과 민가 715호가 불에 탓습니다.① 그중에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에 있는 제암교회의 참상은 참으로 가공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4.15일 일본군 중위가 인솔한 정규 군대가 마을 사람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출입문과 창문을 봉쇄한후 교회당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창문으로 뛰어나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일제히 사격을 퍼부어 29명이 학 살을 당하였고 마을이 모두 불탄 이 사건은 우리 기독교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 고도 악랄한 사건입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유관순 열사의 죽음은 참으로 기리 기리 우리 민족의 애국의 사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은 결코 이 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100년 도 못된 79년전의 이 일을 우리 민족은 점점 잊어가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 도 경제대국을 자처하면서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의 약소국가들을 침탈하 고 있고 심심하면 우리나라의 영토인 독도를 자기의 땅이라고 말도 안되는 억 지를 부리고 있는가 하면 동해의 공해상에서 우리의 어선을 나포 유린하는 만 행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미소를 앞세운 악랄한 이리와도 같은 나라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절대로 이 3.1운동의 그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 니다. 유대인들은 나치 독일의 학살을 잊지 않으려고 그들의 독립기념관에는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고 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3.1절 기념주일도 되지만 교회의 절기로서 사순절이 시작되는 주일날 이기도 합니다. 사순절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전 40일간으 로써 예수님의 최후의 수난의 절정기를 말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과,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 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거역하여 그 징벌로 인하여 고난당한 것과, 우리나라가 당한 고난의 역사를 되새겨 보면서 오늘의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함께 깨달으면서 은혜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1.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고난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그들은 애굽에서 430년동안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서 애굽에서 총리가 되고 온 지면에 기근이 들었을 때에 극적으로 야곱의 가족들이 요셉을 만나 기근을 피하여 애 급으로 이사를 한 것이 시초가 됩니다. 세월이 지나고 그래서 요셉도 죽고 이 스라엘 민족을 잘 보살펴 주던 왕도 죽은 뒤에 새로 등극한 애급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고역을 시켰습니다. (출2:23) \\\"여러 해 후에 애굽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 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세워서 그들을 애 급에서 이끌어 내셔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 40년의 세월동안 연단과 훈 련을 통하여 드디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출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후 지금까지도 애급에서 당했던 고통과, 하나님이 기적 으로 그들은 인도해주신 것을 잊지 않고 기념하기 위하여 해마다 쓴나물을 먹 고 무교병을 먹으면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2) 바벨론 70년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되기를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선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를 범하여 우상숭배를 하고 또 선지자들을 보내어 깨우쳐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채찍을 들어서 저들을 징계하시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은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마치 메뚜기떼와 같이 몰려오는 바벨 론의 군대를 환상을 통하여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 아올 것을 외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내 회개하지 않아 결국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 여 나라는 망하고, 예루살렘은 돌 하나도 돌위에 첩노이지 않을 만큼 파괴되고, 백성들은 살육을 당하여 인산인해를 당하였으나 누가 장사 지내줄 사람이 없어 서 그 시체는 공중의 까마귀와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그 뼈는 에스겔서 37장의 말씀과 같이 골짜기마다 가득하게 찼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끌려 가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70년을 살게 됩니다.(렘25:11) 시편 137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그발강가에서 노예생활을 하 면서 저들이 당하는 고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137:1-5)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 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 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 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그들은 고통을 당한 다음에야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레미 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70년이 차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를 소망 하고 또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합니다. (렘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 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결국 70년의 고통의 세월이 지나고 바사왕 고레스에 의하여 그들은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 하면서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시126:1-3)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 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 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 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 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2. 우리나라 한민족도 고통중에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들어 응답하셨 습니다. (1) 하나님은 일제 36년의 고통중에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못지 않게 고통의 역사였습니다. 그 중 에서도 우리가 잊지 못할 고통은 바로 일본에게 침략을 당하여 무고히 36년간 의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군국주의 일본은 우리의 주권을 침략하고 전 국토를 강점하고 세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혹하고 야만적인 행동 을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헌병 경찰을 앞장 세운 총독 정치는 우리 민족의 모든 자유와 기본권을 박탈 하고 민족의 지도자와 애국지사들을 감금 학살하는가 하면 평양과 용산에 1개 사단씩의 병력을 주둔시켜 이 민족을 위협하였으며 심지어 국민학교 교사들까 지 금테두른 모자를 쓰고 큰 칼을 허리에 차고 어린 아이들을 위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이에 거부하는 수 많은 주의 종들과 성 도들을 감금하고 고문을하여 수 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마치 이 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그발강가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한 것처럼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응답하셨습니다. 마 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바벨론을 신생국 파사나라에게 망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것처럼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시킴으로 일 본의 히로히또 천황은 드디어 연합군에게 무조건 항복을 하고 우리 나라는 해 방의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 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시44:7)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 (시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 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 6.25 한국전쟁의 고통중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셨 습니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의 기쁨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1950년 6월25일 북한 의 남침으로 인하여 또한번 고통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전선에서는 수많은 우 리의 아들들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고 불구 자가 되었습니다. 그중에 우리교회의 이창헌 장로님도 계십니다. 수 많은 여인들이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졸지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사람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은 또 얼마나 되며 아직도 만나지 못하는 이산가족은 또 얼마나 됩니까?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공산주의가 온 나라를 삼켰습니다. 겨유 낙 동강 전선에서 이 나라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있을 때에 당시 대통령이었 던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에 피난온 목사님들을 불러 모아 이 나라를 위해 기도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을 하였고 그 부탁을 받은 전국에서 모인 목사님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드디어 극동사령관으로 동경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 해병 대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9.28일 서울이 수복이 되었고 북진을 계속하여 단번에 국토를 회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때 들어주신 것처럼 우리 한민족도 어려 움과 고통을 당할 때 기도하면 들어주셨습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 다.<아 멘!> 3. 그러면 오늘의 우리의 사명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나라가 당하고 있는 경제위기에서 해방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 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금융기구인 IMF의 긴급 지원을 받고, 세계개발기구인 IBRD와, 세계은행인 WOLD BANK의 도움을 받아 단기 외채를 중장기로 연기 를 시키고 긴급 자금을 빌려다가 간신히 국가위기를 버텨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돈을 빌려주면 거저 빌려주는 것 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자기들의 속국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즉 국제금융 기구는 경제적으로 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이 주축이 되어서 운영하고 있습니 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자기 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총이나 칼들고 대포쏘면서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서 점령하는 것이 아 닙니다. 그렇게 되면 비인도적인 처사라고하여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고 고립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미국에서 이락크를 공격하겠다고 하는 중에 유엔의 중재로 간신히 중지되었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몇 년전 이라크가 갑자기 하루밤 사이에 쿠웨이트를 점령하여서 세계의 여러나라들이 힘을 합쳐 이라크를 물리치고 쿠웨이트를 다시 해방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걸프전입니다. 그때 전쟁을 일으킨 이라크는 그 벌로서 미국에게 군 사적 무기사찰을 받아야 하는데 요즘에 와서 이라크가 그것을 주권침해라고 해 서 거부한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경제적으로 약한 나라들을 공격합니다. 돈 꾸어주면서 나라의 모든 살림을 간섭을 합니다. 자기나라의 물건도 많이 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말 을 안 들으면 꾸어준 돈 갚으라고 위협을 합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자기들의 속국을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빨리 이 경제 난국을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도 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 야 합니다. (슥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2) 이 나라의 부패와 죄악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중에 국민이 부패하고 타락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였 습니다. ① 노아때에 하나님이 홍수로 인류를 멸하실 때에도 죄악이 관영하고 패역하 여 하나님은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② 소돔과 고모라거 죄악이 관영하고 음란한 도시가 되었을 때에 유황불로 멸망을 당했습니다. ③ 또 애급이 완악하고 패역하였을 때에 하나님은 열가지 재앙을 내려 저들 을 멸하셨고, ④ 앗수르 제국이나, 바벨론 제국도 마찬가지이며, ⑤ 그렇게도 문화와 문명을 자랑하던 헬라도 멸망하였고, ⑥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로마도 망하였습니다. ⑦ 또한 세계제패를 꿈꾸던 일본도 망하였고, 독일도 망했습니다. ⑧ 이 땅에 붉은혁명을 일으켜 세계의 1/3을 점령하였던 공산주의도 망했습 니다. 모두가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노아때보다 거룩합니까? 소돔고모라 보다 의인 이 많아서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습니까? 애급보다 의롭습니까? 아닙니다. 하나 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얻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 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 를 원하시느니라\\\" 니느웨성은 하나님이 심판을 내리시려고 하다가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받고 왕으로부터 온 국민이 금식하며 회개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심판 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욜2: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 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욜2:18)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 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 나라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징계를 돌이 키고 하나니의 뜻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밖에 다른 어떤 방법이 없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지금으로부터 79년전 기미년 3월 1일 정오에 전국에서 밀물처럼 터져나온 독 립만세운동의 그 기상을 본받아서 오늘의 우리 성도들은 지금 경제적으로 억압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는 이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시한번 3.1정신으로 일 어나야 하겠습니다. 3.1운동은 일제의 식민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제에 항거한 우리 민족의 거사입니다. 그 3.1운동은 단지 만세운동으로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민족정신 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기에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이 민족을 살리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 인들이 해야 합니다. 이 경제식민 정책에서 빨리 해방이 되도록 열심히 기도해 야 합니다. 누가 하겠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합니다. 3.1운동도 기독 교인들이 앞장 섯습니다. 그래서 이 경제 위기를, 우리의 믿음과 신앙과 기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돌이 켜, 하나님이 진노의 손을 거두시고, 축복의 손을 펴시사, 이 나라가 다시 한번 복지 한국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3.1정신으로 무장하여 달려가자/ 시40:1-3/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10-03-01
3.1정신으로 무장하여 달려가자 시40:1-3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3.1 정신으로 무장하여 달려가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금년이 3.1운동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일합병 된지 9년만에 1919년 3월 한민족이 총동원하여 궐기한 날입니다. 1919년 세계1차대전이 끝 난 후 프랑스에서 회담이 열렸는데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세계평화와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힘입어 뜻있는 외국에 있는 동포들이 독립운동의 관심을 갖고 제일 먼저 일본동경에서 유학중이던 청년들이 일본동 경 YMCA 에 모여 2.8독립선언문을 발포하였습니다. 이 독립문이 비밀리에 한국 독립운동가들에게 전달되므로 민족의 지도자와 종교의 지도자들 33인이 모여 파고다공 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평화적으로 시위한 것이 불꽃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 요원의 불길처럼 3.1운동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3.1 정신은 우리민족이 가장 큰 위대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1 운동 정신은 기독교 정신에서 우러나온 정신입니다. 그러면, 3.1운동 정신은 어떤 정신일까요? 첫째로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라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라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 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을 보시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눈물로 우시면서 기도했습니 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나라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나라의 멸망을 보고 울면서 기도했 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이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엄청난 교회를 지어놓고 70일 작전 대각성 전도대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의뢰하여 기 도하면서 \\\' 여호와여 이 자리를 채워야 할텐데 바로 이 자리에 애국하는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오게 해주시고 나 라 사랑하는 사람으로 꽉 차게 해 주시고 죄인들이 와서 회개하여 변화받는 장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 눈물로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보고 가슴 치면서 울며 기도를 하는데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사랑하셨는데 저는 민족 위해서 무엇하나 똑바 로 한 것이 없습니다\\\' 하면서 울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남한 4천 5백만과 북한 2천만과 해외에 나 가있는 우리 동포들 합쳐서 \\\'주여 이 7천만이 모두 구원받게 해 주시고 어디 가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한민 족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눈물 뿌리면서 전도해야 합니다. \\\'눈물을 뿌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 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시 126:5 ) 두번째로 기도하는 정신이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 서 이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시 40:1-2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렘33:3) 다니엘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날 마다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한사람의 간절한 기도는 만명의 군대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존녹스의 기도 \\\' 주여 나라를 구 원해 주시든지 아니면 제 생명을 거두어주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영국의 피의 여왕이라고 소문난 메리여왕은 \\\'일 만 군대 보다 존녹스의 기도는 더 힘이 있다고 평가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 하겠다고 찾아서 하는 정신입니다. 미국의 캐네디 대통령이 유명한 말을 했어요. \\\'국민은 국가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를 찾기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나라가 무엇을 해줄까 하기전에 내가 이나라을 위해서 무얼할까, 생각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 님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실까 하기전에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생각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하기전에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1정신의 계승자가 됩시다/ 행1:6-11/ 2016-02-28
3.1정신의 계승자가 됩시다 행1:6-11 한국 교회가 특별히 3.1절을 기억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있다.(1)주권을 상실한 이 민족의 눈물을 씻어준 것이 한국교회였다는 점 (2)3.1운동의 진원지가 교회였다는 점 (3)3.1운동으로 인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도 한국교회였다는 점이다. 오늘 우리는3.1운동에 정신을 계승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1. 3.1운동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일어난 민족 운동임을 알아야 한다. 3.1운동은 세계 역사상 독립운동으로는 최소의 비폭력 운동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정신이다. 3.1운동의 핵심인물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만세를 주도하고 운동을 지도하다가 감옥에 잡혀가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 더러는 순교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80년전에 비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를 희생하고 애국하는지 알수가 없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80년전 우리선배 그리스도이의 모습과 비교할 때 영적인 면에서 그리고 정신적인 면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를 새롭게 느껴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고 3.1정신을 계승해서 나라를 사랑하는 뜨거운 심정과 희생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신 것이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였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중에 이루어진 독립,번영, 통일은 오히려 파멸과 광란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1운동의 지도자 중 많은 기독교 인사들이 변절했음은 아직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독립과 번영을 허락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 3.1운동이 일어난 후 26년이 지났을 때 해방이 된 것은 이 때가 하나님의 해방의 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적으로 이 나라의 분단의 문제 해결도 역시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에다가 맡겨야 한다. 3. 우리가 다 함께 힘써야 할 것은 [영적인 힘의 비축]이다.(8절) 성령의 권능을 입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1세기가 다 가기도 전에 전 그레코로만 사회를 변화시키고 휩쓸었다. 3.1운동이 실패한 이유는 [방법과 자세는 좋고 선하여도 ]능력을 비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 하나님의 주권에다가 분단된 이 나라를 맡긴 이후에는 우리가 힘써 길러야 할 것은 [국력]이다. 비록 imf체제가 되었지만 오히려 이 기회를 [국력과 영적인 힘의 비축]으로 삼는다면 좋을 것이다. 여기에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념해야 한다. 4. 더욱 온전한 독립인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서 3.1정신을 잊지 말고 포기 하지 말자! (11절 하반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서 변절치 않았다. 그리고 모두 순교하였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의 그 약속을 확실히 믿고, 어떤 핍박이 와도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며 살아가듯이]이 나라의 [평화 통일 ]을 위해서 80년전 우리 선배들이 뿌린 그 피를 헛되게 하지 않는 3.1정신의 살아 있는 계승자들이 꼭 되어야 하겠다. [맺음말] 오늘 우리 모두는 3.1운동의 수혜자들이다.선배들의 의 와 피와 땀의 토대위에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지금 어떠한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일까? 3.1정신의 계승자로서 나의 삶속의 현장에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린다.[아멘] 조승철 목사
40일이 40년 된 사연/ 민14:26-38/ 3.1절예배
40일이 40년 된 사연 민14:26-38 오늘은 삼일절,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하던 3.1운동이 있은 지 79주년 되는 날입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형태는 다르지만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할 수밖에 없는 오늘입니다. 작년말 불어닥친 외환 위기로 인해 나라 사정이 말이 아닙니다. 2월말 현재 실업자가 이미 100만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금년 말이면 150만 내지는 심하면 200만까지 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신임 대통령의 표현을 빌면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나라 사정이 이쯤 되니 어렵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다들 어렵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이 민족의 어려운 고비마다 함께 해 주시고 도와 주신 하나님께서 이번 어려움에서도 반드시 건져 주시리라 믿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어려움은 \'또 하나의 기회\'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나 개인의 역사를 보면 어려운 위기 상황 속에서 기적과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역사가 토인비의 말처럼 인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어떻게 한자를 알았는지 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답니다. \"위기는 \'危\'와 \'機\'의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危\'는 위험을 의미하고, \'機\'는 기회를 의미한다.\"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진리를 잘 지적해 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기는 위험하지만 하나의 \'기회\'입니다. 성경을 봐도 기적과 축복은 예외없이 위기 상황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이적(요2:1~11)은 포도주가 떨어진 상황에서 생겼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밀가루 통과 기름병에서 계속 가루와 기름이 나온 기적(왕상17:)도 가뭄의 상황 속에서였습니다. 인류의 구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위기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위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위기 관리\'가 문제다!\" 위기를 잘 관리하면 축복이 되고, 위기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정말 위험한 결과가 생기게 됩니다. 예> 운동 시합(위기 상황) -잘 관리해서 이기면 우승의 영광이 주어지고, 잘못 관리해서 지면 패자의 쓴맛을 봐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위기의 연속 과정\'입니다. 그것들을 극복하고 승리하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반면에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하면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왕 당면한 이 위기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맙시다. 잘만 하면 오히려 큰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모두 위기를 축복으로 반전시키는 승리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스라엘이 당면한 위기 상황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 가나안 땅 근처에 당도합니다. 그런데 그들 \'98/03/01 주일낮예배(9810) 2 사이에 가나안 땅이 하나님 약속대로 과연 그렇게 좋은 곳인가? 과연 정복 가 능성은 있는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12지파에서 대표를 한명씩 뽑아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그들의 정탐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12명 공히 가나안의 실제 상황을 정확히 보고합니다. 민13:25~29 ①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② 가나안에는 강력한 원주민(아낙 자손 등)과 요새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기의 양면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위험\'과 \'기회\'입니다. 가나안 땅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동시에 위험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잘 하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잘못하면 가나안 족속에게 죽든가 포로가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 ? [2] 위기 관리에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 정탐꾼들이 보고한 객관적 사실은 12명이 일치했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주관적 판단은 상반된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어떻게? 긍정과 부정, 성공과 실패! ① 여호수아 & 갈렙 : 민13:30 반드시 승리할 것이니 올라 가자! 민14:9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② 나머지 열명 : 민13:31~33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우리는 메뚜기 같다! 이때 백성들의 반응 : 민14:1~4 밤새 통곡, 모세와 아론 원망, 애굽이나 광야에서 차라리 죽었더라면 ... 칼에 맞아 죽겠다 ...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러자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민14:11~12 패역한 백성을 전염병으로 다 쳐서 죽이고 다른 민족을 택하셔서 축복하시겠다고 ... 민14:13~19 모세의 중보 기도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용서하여 주옵소서 ... 민14:22 이하, 26 이하.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노를 돌이켜 축소 해 주십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재앙으로 즉시 죽고, 이스라엘 백성의 1세대(20세 이상)는 광야에서 방황하며 다 죽게 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 제 2세대는 광야에서 고난을 받으나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34절. 정탐 기간 40일을 하루에 1년씩 환산해서 40여년간 광야에서 지낼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구약신학자 레온 우드의 연구에 의하면, 40년간 매일 한 시간마다 7명의 장례를 치뤄야 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제대로 무덤도 갖추지 못하고 그저 모래 밭에 대충 매장하고 눈물을 삼키며 다른 데로 이동하곤 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1세대가 다 죽기까지 비참한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들이 만일 정탐을 안 했더라면 더 좋고, 정탐을 했더라도 가나안 땅에 믿음으로 들어갔었더라면 40여년 방황의 세월도 보내지 않고, 비참하게 광야에서 죽는 일도 없었을 터인데 ...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심지어는 저주의 기회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3] 위기 관리의 실패 원인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왜 이 지경이 되고 말았을까요? 그들이라고 저주받고 싶어한 것은 아닐텐데 ... 그들이라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축복을 받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텐데 ...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히3:17~18 \"또 하 \'98/03/01 주일낮예배(9810) 3 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들은 분명히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차례 하나님의 이적을 목격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온 것, 메추라기가 내려온 것,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온 것, ... 그러므로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게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좋을 뿐 아니라, 자기들에게 분명히 주신 땅이므로 가나안 족속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눈 앞의 어려운 현실만 보면서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불신했습니다. 결국 믿음이 없는고로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40일의 정탐 결과가 40년의 방황과 죽음의 징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불신앙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마음과 말입니다. 그들은 마음과 말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음과 말을 통해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굳게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과 말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위기 관리는 믿음의 관리입니다. 믿음의 관리는 마음 관리, 말 관리입니다.\" [4] 위기 관리의 승리 비결 ① 마음의 관리 : 잠4:23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16:32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 마음이 무너지면 인생 전체가 무너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에는 죄성이 있으므로 항상 부정적인 것들이 솟아납니다. 특히 어려운 위기 상황 가운데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두려움, 낙심, 원망, 반항 의식, 패배 의식, ... 공연히 이런 부정적인 상상이 생겨납니다. 이런 것들은 전염성과 파괴성이 있습니다. 열명의 정탐꾼이 불신앙으로 부정적인 보고를 하자, 어떻게 됩니까? 온 백성이 난리입니다. 울고 불고, 모세와 하나님에게 원망하고, ... 마침내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해졌습니까? 놀랍게도 마음에 있는 대로 현실이 되어집니다. 마음에 믿음을 품으면 믿음 대로 됩니다. 마음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잡으면 부정적인 결과가 생겨버립니다. 잠23:7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 *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믿음으로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교제 & 말씀 묵상) - 말씀 묵상 : 앞서 말씀드린 부정적인 생각들(두려움, 낙심, 원망, 반항, 패배의식 등)을 마음에서 몰아 내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담아두는 \'98/03/01 주일낮예배(9810) 4 겁니다. 마치 컵 속의 공기를 내 보내려면 물로 채우면 되듯이 ... 시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마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좋은 교제: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강력합니다. 열명의 정탐꾼이 남자 장정만 60만인 큰 백성을 불신앙으로 몰아 넣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좋은 교제가 중요합니다. 불신앙의 사람, 부정적인 사람, 한숨이나 쉬는 사람과는 교제를 피하는 게 좋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믿음이 좋은 분, 긍정적인 분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히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② 말의 관리 : 말은 마음 속에 들은 게 나옵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 생각으로 있을 때보다 말로 표현되면 더욱 강력해집니다. 말을 함으로써 마음 속에 더욱 깊이 각인되고, 생활에 반영되니다. 더 나아가서는 인격(캐릭터)까지 형성하게 됩니다. 사람의 축복과 저주를 결정하기까지 합니다. 본문 28절에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 그랬습니다. 차라리 광야에서 죽고 싶다고 하니까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 그대로 입니다. 잠13: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 예> 화술 강사의 말 \"썰렁하다는 말을 그렇게 쓰더니 사회가 썰렁해졌습니다 ... 말은 약과 같아서 잘 써야 됩니다. 밝고 진실한 말이 생활을 바꿉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렙처럼 자꾸 믿음의 말을 해야 됩니다. \"가나안은 축복의 땅이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올라가자!\" 긍정적, 진취적, 희망적인 말, 감사하는 말, 격려하는 말, ...을 하십시오. 정 힘들면 혼자서나 사람 앞에서 부정적인 말을 토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 앞에 토로하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마음과 입술을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욥은 극한 시련의 상황 속에서 마음과 말을 지켰습니다. 욥1:21~22 원망의 마음을 품지 않고 찬송 ... 욥2:9~10 아내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앞에 있는 고난과 역경은 분명히 위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기 나름입니다. 믿음의 여부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혹은 더욱 깊은 고통의 나락에 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이런 사실을 실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위기를 통해 일하십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에게 광야를 주신 것은 그들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위기도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쪽록 어려운 때에 마음과 말을 잘 관리하고, 믿음을 지켜서 영광스런 승리자가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암5:21-24/ 3.1절설교/ 2003-03-01
공의가 강물처럼 암5:21-24 오늘은 여든네 번째 삼일운동 기념일입니다. 어제는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또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삼일절 행사가 있었던 것을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것이 1919년인데,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것을 1910년 한일 합방으로부터라고 보면, 나라 잃은 지 9년 만의 일입니다. 9년 동안의 분노와 좌절, 이게 응축되어서 1919년에 민족의 함성, 자유를 위한 함성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만약에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된 시점이 1905년 을사보호조약부터라고 생각한다면, 14년 동안 뭉친 분노가 삼일운동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나라를 뺏긴 설움, 민족의 정신까지 압살당한 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몸도 마음도 땅도 다 뺏긴 설움입니다. 삼일운동 이후에 일본의 탄압이 더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삼일 운동이 주장하던 해방을 26년이 지난 다음 1945년 8월 15일에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얻은 해방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84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일으켰던 삼일운동의 정신은 삼일운동의 선언서에나 기념하는 노래의 가사에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신은 우연의 일치이긴 하겠습니다만, 오늘 읽은 아모스의 말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공의의 결과는 우리 한반도에는 해방인 것이요, 죄악과 허물에 찌들려 사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 받는 자유의 역사일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출애굽 해방의 역사인 것입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그 말을 삼일 독립선언을 기록한 사람, 삼일절 노래를 작사한 사람이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의 뜻이 강물처럼 흐르게 되는 것을 선언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공의가 그로부터 84년 이후, 오늘 이 나라에, 우리 각자의 가정에, 우리 가슴속에 흐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삼일운동, 그것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 일어나야 할 새로운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우리가 고백하는 이 세계 역사는 항상 잘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제가 웃기는 예화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적대자를 우리가 흔히 사탄이라 이름합니다. 사탄에게도 예언자들이 있었답니다. 사탄이 예언자들을 모아놓고 특별 명령을 하달합니다. “마을과 골목을 돌아다니며 나의 적수인 하나님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설득을 시켜서 모든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불러 모으도록 하라.” 그래서 예언자들이 다 파송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수석 예언자가 제일 먼저 돌아왔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 많은 사람들이 금세 설득당하더냐고 묻자, 수석 예언자가 하는 말이, “골목을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해보고 교회도 찾아보고 그리고 사람이 모인 곳을 가 보았는데, 온통 싸움뿐, 갈등뿐, 저주와 능멸뿐, 사랑이라고는, 공의라고는 한군데에도 없고, 전부 싸움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이미 하나님이 죽었잖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무슨 설득을 더하겠습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고 죽는 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방식대로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죽은 하나님으로 모시느냐, 산 하나님으로 모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범죄를 저질러놓고서는, ‘이런 세상을 보니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없기는 왜 없습니까? 범죄는 인간이, 자기가 저지른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죄의 구덩이에 빠집니까?”가 아니라 “제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잘못의 책임을 하나님에게 전가할 수 없습니다. 왜 땅의 얘기를 하늘에 전가합니까? 왜 하늘을 탓합니까? 진정한 회개는, “제가 하나님 없는 줄 알고, 하나님이 죽은 줄 알고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출발입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수난의 역사,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더라면 이렇지 않았으리라고 가정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항상 계셨고 지금도 계십니다. 기뻐하는 자의 모습으로 슬퍼하는 자의 모습으로 오늘도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8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회개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고, 우리가 복으로 받고 싶은 광명의 천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일본을 향해서 일본이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또 피해자로서 우리가 받아야 할 분깃은 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일본 얘기를 하면서 다른 나라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늘 일본 얘기를 하면 대비되는 나라가 독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연말에 굉장한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독일은 히틀러 시절에 유대인을 6백 만 명이나 학살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스실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게 독일입니다. 1차대전에서는 전범 가운데 하나였고, 2차대전에서는 주범이었습니다. 최고의 악질 민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갑니다. 게르만족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많이 사죄도 하고, 물질적 보상도 하고, 원조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에 돈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유대인 쪽에서는 화해의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독일의 개신교와 천주교가 합동으로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 독일 정부와 유대교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는 국교, 곧 왕이나 정치지도자가 교회 수장이 되는 국교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국민교회라고 부르는 교회가 있습니다. 카톨릭과 개신교가 그런 교회입니다. 국민교회가 뭐냐?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는 인정하지만, 카톨릭과 개신교회 두 교회에만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 등록한 사람은 무조건 종교세라는 이름으로 세무서가 세금의 십분의 일을 떼어서 교회에다 줍니다. 그 세금으로 학교에 가서 종교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 장례식, 결혼식의 혜택을 누립니다. 말하자면 국교만 아닐 뿐 실제적으로 국교와 비슷한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대표를 정부의 내각에, 국회에 파송합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협상하고 이권을 확보합니다. 이것이 국민교회의 특징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스실에서 죽어가야 했던 6백 만 유대인을 대표하는 유대교를, 개신교 천주교 다음에 제3의 국민종교로 인정하고 같은 혜택을 주는 법령에 독일의 정부가 서명한 것입니다. 독일 사회에는 지금도 “네오 나치”라고 하는 극우파가 준동합니다. 나치의 후신이 여전히 위세를 떨칩니다. 그러나 사회 주류는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통일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마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 때문인지 선거 때가 되면 동쪽에 살던 사람들은 여전히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정당에 투표를 합니다. 신판 공산주의가 등장합니다. 극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우의 네오 나치가 등장하여 난리를 치고 극좌가 다시 등장하는 그 가운데에 커다란 메인 스트림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극과 극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을 가려는 흐름입니다. 두 교회가 모여가지고 엄청난 협정에 조인했습니다. 독일의 제안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협력체가 구성되었습니다. 게르만 민족과 유대 민족의 화합, 기독교와 유대교의 화합, 평화를 위한 화합입니다. 어제 우리 사회에서 삼일절 운동을 기념하는 각종 모임이 있었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삼일절 기념식, 보수 성향의 기념식, 중도의 기념식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어제 각종 기념식에 내걸린 피켓과 플래카드를 봤더니, 반핵(反核), 반미(反美), 반반미(反反美), 반전(反戰), 몽땅 반(反)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 민족에는 반대해야 할, 쳐부숴야 할 적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중도에서도, 아까 얘기한 독일의 경우처럼, 삼일정신이 추구하는 광명한 천지를 맛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반대를 좋아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창조는 우리에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21세기가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예수의 말씀도, 사도 바울의 서신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면, 그 강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러 적대관계와 소원한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 가운데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이 평화를 줄 테니 하나님나라를 일구어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반대에만 파묻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제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없습니까? 언제까지 반대만 하고 살아갈 것입니까? 손을 모아서 화합하고 단합하여 새로운 역사는 만들 수 없습니까? 상대를 죽여야 합니까? 살릴 수는 없습니까? 우리도 너희도 살고, 함께 살 수 없습니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용광로가 되어 그 속에 하나님의 참된 공의의 물결을 담을 수는 없습니까? 이따가 우리가 함께 부르겠습니다만, 삼일절 노래 중에 중요한 구절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상징적으로 표현된 그 “한강물”이 남에도, 북에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물결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다시 흐르기를 위해서 한번 기도하십시다. 백두산이 높음의 상징입니다. 백두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의 물결이 발원된다면, 한번도 전체가 다 자유의 물결로 화하지 않겠습니까? 삼일절에 대한 기념은 민족의 기념이고, 역사의 기념이고, 사회의 기념입니다만, 그러나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머리 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념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한테 삼일절은 무엇입니까? 내가 극복해야 할 죄악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악에 관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이 범한 죄악을 내가 함께 걸머지겠다. 함께 걸머지고 골고다로 가자. 가서 함께 얻어맞자. 함께 찔림을 당하자. 그래서 함께 죽자. 고난이 수난으로 화하는 그 골고다 현장에 함께 가자. 가서 죄악에 저항하자.”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만이 아닙니다. 온갖 죄에 대한 저항입니다. 반대운동입니다. 이 반대운동을 가지고 골고다 언덕에 가서 함께 저항하고 함께 죽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일운동의 또 다른 뜻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고난 가운데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는 재능을 주셨고 지식도 주셨습니다. 그것을 살리는 재능, 살리는 지식으로 만들어 보십시다. 돈도 많이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베풂으로써 복된 재물이 되게 하십시다. 우리는 성공했습니다. 많이 성공했습니다. 성공한 자가 봉사함으로써 덕을 세워 보십시다. 그렇게 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삼일절은 이제 옛날의 삼일절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공로 안에서 삼일절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 삼일절의 복이 여러분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임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공의가 강물처럼/ 암5:21-24/ 삼일절기념주일설교/ 2003-03-01
공의가 강물처럼 암5:21-24 오늘은 여든네 번째 삼일운동 기념일입니다. 어제는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또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삼일절 행사가 있었던 것을 보도를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것이 1919년인데, 우리나라가 식민지가 된 것을 1910년 한일 합방으로부터라고 보면, 나라 잃은 지 9년 만의 일입니다. 9년 동안의 분노와 좌절, 이게 응축되어서 1919년에 민족의 함성, 자유를 위한 함성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만약에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된 시점이 1905년 을사보호조약부터라고 생각한다면, 14년 동안 뭉친 분노가 삼일운동으로 폭발한 것입니다. 나라를 뺏긴 설움, 민족의 정신까지 압살당한 설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몸도 마음도 땅도 다 뺏긴 설움입니다. 삼일운동 이후에 일본의 탄압이 더 심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삼일 운동이 주장하던 해방을 26년이 지난 다음 1945년 8월 15일에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얻은 해방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84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일으켰던 삼일운동의 정신은 삼일운동의 선언서에나 기념하는 노래의 가사에 잘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정신은 우연의 일치이긴 하겠습니다만, 오늘 읽은 아모스의 말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강물처럼 흐르는 공의의 결과는 우리 한반도에는 해방인 것이요, 죄악과 허물에 찌들려 사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 받는 자유의 역사일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출애굽 해방의 역사인 것입니다. 공의가 강물처럼, 그 말을 삼일 독립선언을 기록한 사람, 삼일절 노래를 작사한 사람이 알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의 뜻이 강물처럼 흐르게 되는 것을 선언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공의가 그로부터 84년 이후, 오늘 이 나라에, 우리 각자의 가정에, 우리 가슴속에 흐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삼일운동, 그것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 일어나야 할 새로운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신다고 우리가 고백하는 이 세계 역사는 항상 잘되는 것만은 아닌 듯합니다. 제가 웃기는 예화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적대자를 우리가 흔히 사탄이라 이름합니다. 사탄에게도 예언자들이 있었답니다. 사탄이 예언자들을 모아놓고 특별 명령을 하달합니다. “마을과 골목을 돌아다니며 나의 적수인 하나님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설득을 시켜서 모든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불러 모으도록 하라.” 그래서 예언자들이 다 파송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수석 예언자가 제일 먼저 돌아왔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 많은 사람들이 금세 설득당하더냐고 묻자, 수석 예언자가 하는 말이, “골목을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해보고 교회도 찾아보고 그리고 사람이 모인 곳을 가 보았는데, 온통 싸움뿐, 갈등뿐, 저주와 능멸뿐, 사랑이라고는, 공의라고는 한군데에도 없고, 전부 싸움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이미 하나님이 죽었잖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무슨 설득을 더하겠습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살고 죽는 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방식대로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을 죽은 하나님으로 모시느냐, 산 하나님으로 모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범죄를 저질러놓고서는, ‘이런 세상을 보니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없기는 왜 없습니까? 범죄는 인간이, 자기가 저지른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 나는 왜 이렇게 죄의 구덩이에 빠집니까?”가 아니라 “제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잘못의 책임을 하나님에게 전가할 수 없습니다. 왜 땅의 얘기를 하늘에 전가합니까? 왜 하늘을 탓합니까? 진정한 회개는, “제가 하나님 없는 줄 알고, 하나님이 죽은 줄 알고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의 출발입니다. 우리 민족이 걸어온 수난의 역사,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더라면 이렇지 않았으리라고 가정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항상 계셨고 지금도 계십니다. 기뻐하는 자의 모습으로 슬퍼하는 자의 모습으로 오늘도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8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회개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고, 우리가 복으로 받고 싶은 광명의 천지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일본을 향해서 일본이 회개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또 피해자로서 우리가 받아야 할 분깃은 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일본 얘기를 하면서 다른 나라 얘기를 하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늘 일본 얘기를 하면 대비되는 나라가 독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연말에 굉장한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독일은 히틀러 시절에 유대인을 6백 만 명이나 학살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스실에서 죽게 했습니다. 그게 독일입니다. 1차대전에서는 전범 가운데 하나였고, 2차대전에서는 주범이었습니다. 최고의 악질 민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갑니다. 게르만족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많이 사죄도 하고, 물질적 보상도 하고, 원조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에 돈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도 유대인 쪽에서는 화해의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독일의 개신교와 천주교가 합동으로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 독일 정부와 유대교 사이에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에는 국교, 곧 왕이나 정치지도자가 교회 수장이 되는 국교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국민교회라고 부르는 교회가 있습니다. 카톨릭과 개신교가 그런 교회입니다. 국민교회가 뭐냐? 다른 종교를 믿을 자유는 인정하지만, 카톨릭과 개신교회 두 교회에만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에 등록한 사람은 무조건 종교세라는 이름으로 세무서가 세금의 십분의 일을 떼어서 교회에다 줍니다. 그 세금으로 학교에 가서 종교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을 수 있는 혜택, 장례식, 결혼식의 혜택을 누립니다. 말하자면 국교만 아닐 뿐 실제적으로 국교와 비슷한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는 대표를 정부의 내각에, 국회에 파송합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협상하고 이권을 확보합니다. 이것이 국민교회의 특징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스실에서 죽어가야 했던 6백 만 유대인을 대표하는 유대교를, 개신교 천주교 다음에 제3의 국민종교로 인정하고 같은 혜택을 주는 법령에 독일의 정부가 서명한 것입니다. 독일 사회에는 지금도 “네오 나치”라고 하는 극우파가 준동합니다. 나치의 후신이 여전히 위세를 떨칩니다. 그러나 사회 주류는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통일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마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 때문인지 선거 때가 되면 동쪽에 살던 사람들은 여전히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정당에 투표를 합니다. 신판 공산주의가 등장합니다. 극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극우의 네오 나치가 등장하여 난리를 치고 극좌가 다시 등장하는 그 가운데에 커다란 메인 스트림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극과 극의 준동에도 불구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을 가려는 흐름입니다. 두 교회가 모여가지고 엄청난 협정에 조인했습니다. 독일의 제안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협력체가 구성되었습니다. 게르만 민족과 유대 민족의 화합, 기독교와 유대교의 화합, 평화를 위한 화합입니다. 어제 우리 사회에서 삼일절 운동을 기념하는 각종 모임이 있었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삼일절 기념식, 보수 성향의 기념식, 중도의 기념식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어제 각종 기념식에 내걸린 피켓과 플래카드를 봤더니, 반핵(反核), 반미(反美), 반반미(反反美), 반전(反戰), 몽땅 반(反)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 민족에는 반대해야 할, 쳐부숴야 할 적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중도에서도, 아까 얘기한 독일의 경우처럼, 삼일정신이 추구하는 광명한 천지를 맛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반대를 좋아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창조는 우리에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21세기가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예수의 말씀도, 사도 바울의 서신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면, 그 강물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러 적대관계와 소원한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 가운데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이 평화를 줄 테니 하나님나라를 일구어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반대에만 파묻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제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없습니까? 언제까지 반대만 하고 살아갈 것입니까? 손을 모아서 화합하고 단합하여 새로운 역사는 만들 수 없습니까? 상대를 죽여야 합니까? 살릴 수는 없습니까? 우리도 너희도 살고, 함께 살 수 없습니까?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용광로가 되어 그 속에 하나님의 참된 공의의 물결을 담을 수는 없습니까? 이따가 우리가 함께 부르겠습니다만, 삼일절 노래 중에 중요한 구절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상징적으로 표현된 그 “한강물”이 남에도, 북에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물결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다시 흐르기를 위해서 한번 기도하십시다. 백두산이 높음의 상징입니다. 백두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의 물결이 발원된다면, 한번도 전체가 다 자유의 물결로 화하지 않겠습니까? 삼일절에 대한 기념은 민족의 기념이고, 역사의 기념이고, 사회의 기념입니다만, 그러나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머리 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념일 수 있어야 합니다. 나한테 삼일절은 무엇입니까? 내가 극복해야 할 죄악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악에 관해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대들이 범한 죄악을 내가 함께 걸머지겠다. 함께 걸머지고 골고다로 가자. 가서 함께 얻어맞자. 함께 찔림을 당하자. 그래서 함께 죽자. 고난이 수난으로 화하는 그 골고다 현장에 함께 가자. 가서 죄악에 저항하자.” 십자가는 고난의 상징만이 아닙니다. 온갖 죄에 대한 저항입니다. 반대운동입니다. 이 반대운동을 가지고 골고다 언덕에 가서 함께 저항하고 함께 죽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일운동의 또 다른 뜻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고난 가운데에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는 재능을 주셨고 지식도 주셨습니다. 그것을 살리는 재능, 살리는 지식으로 만들어 보십시다. 돈도 많이 주셨습니다.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베풂으로써 복된 재물이 되게 하십시다. 우리는 성공했습니다. 많이 성공했습니다. 성공한 자가 봉사함으로써 덕을 세워 보십시다. 그렇게 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삼일절은 이제 옛날의 삼일절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공로 안에서 삼일절은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 삼일절의 복이 여러분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임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굳세게 서서
굳세게 서서 http://mission.bz/56423.1절 설교 갈 5:1 1. 오늘은 삼일절 삼일절 기념 주일입니다. 1909년 한일합방후 10년이 되던 1919년 3월1일 정오에 기독교계 대표 16명, 천도교 대표 15명, 불교 대표 2명 등 33인의 민족 대표가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 선언문을 낭독함으로 독립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국 211개처에서 1542회의 집회가 이루어졌고 2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참가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7,500여명의 사망자와 16,000여명의 부상자와 47,000여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투옥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1945년 2차대 전을 일으킨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항복함으로 1948년 우리는 대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해방과 함께 38선이 그어지면서 남과 북은 다른 체제로 분단되어 하나의 민족이 근 반세기 동안 총부리를 겨루고 왕래를 끝인 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오늘 우리는 삼일절을 다시 맞게 되었고, 북은 식량난으로 남은 외환 위기로 모두 경제적 멍에를 다시멘 상태에서 남북의 통치자들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된 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본 교단 총회는 총회 장의 명의로 3.1절 목회 서신을 통하여 전국 교회들에게 삼일 정신을 이어 받아 사회 봉사 주일로 지킬 것을 당부해 왔습니다. 2. 그러면 삼일 운동의 정신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운동의 근거가 무엇이었다고 보십니까? 한마디로 삼일 운동은 불의(不義)에 대한 정의(正義)의 항거(抗拒)이었습니다. 그 항거는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닌, 무저항적 평화 운동이었고, 양심에 대한 호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일 운동의 근거는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 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이 말씀에 근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불의를 용납치 않으시고 미워하시고 모든 불 의한 세력들을 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불 의한 국가, 불 의한 권력, 불 의한 재물, 불 의한 성공, 불 의한 향락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기도 합니다. 기미년 삼일 운동의 정신은 바로 그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구체적으로 행동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 의한 세력에게 당하는 피압박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의 간 구를 들으시고 속박의 멍에를 꺾어 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의를 용납하지 못하시기에, 불의를 징벌할 때는 또다른 불 의한 세력을 들어 징치하군 하였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징계이기도 합니다. 그좋은 예들이 앗수르와 바벨론과, 애굽과 불레셋의 세력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나라들이었기에, 서로가 서로를 들어 치게 하였고, 또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불의를 행할 때마다 이들 나라들을 몽둥이로 사용하여 저들의 죄를 회개토록 하였습니다. 3. 오늘 우리에게 주는 삼일 운동의 정신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불의(不義)에 대한 항거(抗拒)입니다. 삼일 운동의 민족 대표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희생하면서 속죄 제물이 되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그 자유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굳세게 서서 종의 멍에를 떨쳐 버려야 하겠다” 는 의식이 남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신에 대한 거듭남의 결단입니다. 죄악의 세력에서 자 유함을 입은 내가 다시 그 죄악의 멍에를 멜 수 없다는 자기 성찰의 결단적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삼일 운동은 철저한 기독교 신앙인 들의 자기 성찰(省察)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 운동이 자발적이었고, 총검 앞에 두려움이 없었고, 고차원적 질서 운동이었습니다. 맨주먹으로 일어선 양심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에 있어서 삼일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역대정권이 바뀌고 국경일을 맞을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삼일 정신을 계승하여...’라는 말들을 자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삼일 정신이 얼마나 계승되어 왔는지 이런 기회에 다시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삼일 정신은 불의에 대한 항거 운동이었다면, 우리 사회의 오늘 불의한것들에 대하여 얼마나 우리가 저항하고 있습니까? 모두 구조적(構造的)으로 타락(墮落)하였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정권교체, 경제 개혁, 제도 개선, 고통 분담, 등등의 말에 이제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사람을 바꾸고, 법을 고치고, 제도를 개선하려 해도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할 때에 심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렵게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더 교만해지고, 안하무인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는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면 허랑 방탕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입니다. 성경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이 세상에서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온갖 불의(不義)를 다 행할 수 있는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는 것이 우선 과제입니다. 땅만 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 것들만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새것을 기대하겠습니까? 그래서 잠언 서에 지혜 자는 벌써 이것을 간파하기를 “해 아래 새것이 없다” 고 하였습니다. 죄로부터 거듭난 새사람이 아니고서는 새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란 말입니다. 있다면 정도의 차이일 뿐, 죄에서 해방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 새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엊그제 우리는 15대 대통령 취임 식전에서 이 나라 최고통수권자들이 한자리에 앉아 있는 면면(面面)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얼굴 얼굴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었습니까? 모두 처음 취임할 때는 모두 애국 애족의 충정을 가지고 하나같이 국헌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국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하여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감당하겠다고 다 서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들이 어떻습니까? 헌법을 준수하겠다던 사람들이 왜 자꾸만 헌법을 뜯어 고쳤으며, 국가를 보위하여 민생을 잘 살게 하겠다던 사람들이 왜 정경 유착이 되어 오늘날 이러한 결과를 낳게 하였는가? 입니다. 그런 면에서 전도서 기자의 말이 새삼 적중하게 느껴집니다. 정말로 해아래서 무슨 새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초대 제헌국회시 그래도 이 나라 헌법을 제정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을 항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시 나라를 되찾아 처음 국회 위원들이 처음 모여서 원구성을 할 때 임시의장이 된 이승만 의장이 순서에도 없이 이윤영위원으로 기도하게 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윤영 위원은 목사님이었고, 이승만 의장은 장로님이었음을 볼 때 다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속에서 우리 대한민국 헌법은 탄생하였습니다. 지금 그 당시 국회회록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승만 위원 의장 석에 등단 일동 박수) 임시의장 이승만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던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위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윤영위원 기도 일동 기립)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문 전문이 지금도 의사록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고 세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보면 어떻습니까? 그 동안 경제 개발에 정신이 팔려, 모두 물신을 섬기는 일로 국민들 전체가 정신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들 잘들 논다. 어디 너희들 힘만으로 되는지 한번 보라’고 이번에 IMF라는 바람에 떨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시금 삼일 정신을 되 찾아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굳게 서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리스도께로부터 자 유함을 얻은 참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임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불의에 대한 항거할 줄 아는 크리스천들이 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발하는 이 시점에서 크리스천의 책임이 더욱 커졌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를 온통 병들게 만들었던 것은 부정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정직이 사회 구석구석 마다,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오늘의 우리를 얽어맨 힘은 이러한 불 의한 세력의 힘입니다. 이러한 불 의한 세력에 저항하는 운동을 누가 앞장서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거짓됨과 불 의한 수단과 방법을 내 몰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멍에는 총칼의 멍에가 아니라, 거짓됨의 멍에들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사회계층에서 모두 불 의한 관행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말들을 듣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에서 그래도 정의의 보류요, 양심의 보류라 고할 수 있는 지도층들이 그러한 관행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킨다면, 어디에서 개혁을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 스스로가 잘못된 관행들은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번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우리 사회의 <총체적 개혁>을 해 나가야 하겠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 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개혁을 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종교인들의 몫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바르게 사는 법>을 보여주어야 하는 불의에 대한 저항 정신입니다. 쓰레기 하나도 재대로 제 위치에 버리도록 모법을 보어야 할 것이고,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애국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손쉬운 것부터 감당하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시민 단체 운동이 바로 크리스천들이 앞장서는 운동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과 정의로움에 일종 저항 단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회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하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때 그것이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이 될 것입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 중에서 이 게시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