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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절기/ 출23:14-19/ 맥추감사주일설교/ 2002-07-02
3대 절기 출23:14-19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충만하게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요즘의 세상은 참으로 감사할 줄 모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보다 앞서야하고 남보다 잘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 하며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서라도 자기가 목표한 바를 차지하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화 유람선이 세계의 각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암초에 부딪혀서 배에 큰 구멍이 났답니다. 얼마 지나면 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에 있는 구명보트를 내리고 모두들 보트에 옮겨 탔습니다. 그런데 작은 보트에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뒤집어질 지경입니다. 그 보트는 네 명밖에 탈 수 없는 배인데 7명이나 탔으니 보트가 가라앉으려고 합니다. 적어도 몇은 바다로 뛰어 내려야 하는데 그 중에 누가 바다로 뛰어 내리겠습니까? 서로들 남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 영국 사람이 벌떡 일어서더니 \"대영제국만세!\" 를 외치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모두 \"역시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두 사람이 더 내려야 합니다. 이어서 미국 사람이 일어서더니 \"미국 만세!\"를 부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이제 한사람만 더 내리면 나머지 네명은 무사히 구출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보트에는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홍콩 사람이 타고 있는데 아무도 내리려고 하지를 않고 다들 옆 사람의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거기서 쉽게 뛰어내리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과연!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있는데 이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는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확 떠밀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자기 살기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는 이와 같은 무서운 세대에 무슨 감사라는 것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이 때즘되면 교회에서는「맥추감사절」을 지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이 맥추감사절에 대하여 지켜야 한다는 사람과,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들로 나뉘고 있습니다. 대개 대도시의 교회에서는 이 맥추감사절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맥추감사절을 지키지 않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맥추감사절은 구약시대의 율법인데 오늘날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맥추감사절은 안 지켜도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순전히 이날 연보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교회 재정을 위해서 지킬 뿐이지 않느냐\" 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또 교회의 재정을 위해서 하는 것은 더욱 아님을 분명하게 아셔야합니다. 오늘 우리 신약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율법은 폐하여 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므로 더 온전케 된 것을 믿어야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의 순종입니다. 우리들이 왜 이스라엘 민족의 명절을 지키느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오늘 구원 받은 우리들이 바로 신령한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키는 절기들은 다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고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 같이 의미는 모르고 껍데기 의식만으로 지켜서는 안됩니다. 십일조, 주일성수, 십계명, 등등 계명을 지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구원을 우리들이 믿음으로 받았지만 이제 구원을 얻은 우리들에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유효한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것을 말하면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의 정의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구원을 이룬다는 주장인데 이는 틀린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율법은 이제 필요 없게되었다는 율법폐기론자, 율법무용론자들도 틀린 것입니다. 율법은 근본 선한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얻은 자 되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고, 또 지켜야합니다. 김명재 목사님 필리핀 선교가셔서 주일이 되었습니다. ....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합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습니까? 실로 우리가 받은 복을 헤아려보지 않아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하지만, 너무도 다양한 은혜, 많은 복을 받은 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하는 절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감사는 항상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감사를 잊고 살고/ 또 무엇을 감사해야하는지/ 어떻게 감사해야하는지/ 몰라서 -감사하지 않아서- 더 큰 복을 받지 못할까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고 싶으신데, 감사하지 않는 자에게 주실 수 없기 때문에, 이 감사절기를 정해주셔서 매년 삼차 이 절기를 지켜라고 했습니다. 이는 날마다 기억하고 지켜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 모든 은혜를 종목, 종목 다 열거하면서 감사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 세 가지 절기를 지키도록 하시면서 이 세 가지 은혜를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감사하면 모든 감사종목이 이 안에 다 들었습니다. 이는 바로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의 은혜입니다. 그 첫째가 유월절 은혜인데, 이 은혜는 출 12;1-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학대당하고, 종노릇하는 것을 보시고, 또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이스라엘이 해방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애굽과 바로가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려고 강퍅을 부리고, 교만히 행했던 바로 왕과 애굽이 10가지 재앙을 받고 진멸 당했는데, 놀랍게도 이런 무서운 재앙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도 상하지 않고, 오히려 이 재앙 때문에 종된 데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를 감사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안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 재앙은- 한 밤중에 천사들이 다니면서 애굽 바로의 아들로부터 종들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처음 난 것들은 다 심판의 칼로 전멸시키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법을 말씀했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그 문 안에 거하면 천사들이 장자들을 치실 때, 그 양의 피를 바른 집에는 건너 뛰어 넘어서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장자들을 다 쳤습니다. 유월절은 이 무서운 사망의 재앙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도 있을 것인데, 왜 양을 잡고 그 양의 피를 문에다 바르고 그 문안에 집에 거하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도 애굽과 같이 역시 이 장자 재앙으로 죽어야하는 죄악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길을 말씀하신 것인데,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신 것은 이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은 살아났지만, 자신들의 죄악을 사하기 위해 대신 죽은 유월절 어린 양이 있음을 알리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유월절 어린 양은 유월절 한 가운데 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값없이 죄 용서함 받고 구원을 얻었으나 이 값을 다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것을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도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는 이단이 있습니다. 형곡동 성계주유소 앞의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지금 구약의 이스라엘 같이 안식일, 유월절을 지켜야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저들이 정말 구약같이 유월절을 지킵니까? 그들이 그 교회에서 양을 잡고 피를 바르고 하는 이 의식을 행합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지키지 못하고 지키지 않습니다. 또 구약의 형식적으로 지키던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이 된 것을 알아야합니다. 구약시대의 유월절이 신약시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전해지고 나타났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유월절 제사는 완료된 것입니다. 유월절에 나누던 무교병의 떡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신령한 양식으로 삼아서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기념할 유월절입니다. 주님이 주신 대속의 은혜, 사죄와 칭의와 영생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야합니다. 감사를 드려야합니다. 또 이 은혜를 전해야합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무서운 죄의 종된 데에서, 마귀의 노예된 데에서 건져 주심을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또 우리를 의와 영생과 복락으로 옮겨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는 주신 구속의 은혜를 벗지 말고 유월절을 지키면서 무교병을 먹듯이 죄와는 상관 없는 사람으로, 의로운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오늘에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이고, 영적으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절기인 오순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50일 되던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율법과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애굽사람같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인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지켜야 할 율법과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또 가나안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낮과 밤을 인도했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이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오순절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은 이 오순절을 말하는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50일 되던 때가 보리 추수하던 때가 되어서 그 추수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했는데, 이래서 오순절을 맥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행2;1-4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 방에서 모여 기도하였는데,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이 성령 강림의 역사로 교회가 서게 되고, 복음이 힘있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경 말씀과 성령하나님을 주신 은혜를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바른 인생 길을 갈 것인가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도 알지 못하여 방황했습니다. 어두운 밤 중에 한 개의 등불이 가치를 나타냅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길, 빛의 길을 비추어서 우리 앞 길을 환히 알게한 것이 성경의 말씀을 주신 것이요,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셔서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진리와 영감의 인도의 은혜가 큰 것을 깨닫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주신데 대해 감사하면서 읽고 배워서 우리의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능력을 이 말씀에서 구해야합니다. 이 성경은 우리의 구원의 도리를 계시로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를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 거리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인도의 은혜를 감사 기념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맥추절을 기념하고 지키는 것은 감사헌금도 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해야합니다. 또, 장막절은 어떤 절기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에서 40년동안 살았는데,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쌈도 않고, 농사도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입히시고,먹여 주셨고,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살 때에 주위의 많은 대적이 있었으나 보호해 주셨다. 한서의 차이의 어려움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를 감사하는 장막절이다. 장막절은 눅19:28-40에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호산나 찬송을 부르는 무리들이 따랐는데, 이것은 영원한 천국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오실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장막절에는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좋은 집을 떠나서 광야에나, 성전 안에나 초막을 짓고, 일 주간을 거하면서 옛날 자기 조상들을 광야에서 보호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이 현실은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메마르고 아무도 살 수 없는 것 같은 광야입니다. 짐승의 위험, 추위와 더위의 위험, 이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 우리를 두신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보호와 도움이 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신 것, 모든 위험에서 건지신 것, 또한 우리에게 도사리고 있는 신앙의 위험과 미혹에서 대적들에게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왕으로 임하실 영원한 처소, 천국을 우리에게 예비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이 세상은 장막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의 피로써 재앙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요, 오순절은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요, 장막절은 하나님의 보호하신 은혜를 감사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오히려 원망이나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무턱대고 감사합니다고 말만 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감사일 것입니다. 우리를 큰 기사로 구원하시고,,강한 손과 펴신 팔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 광야 길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인도하셔서 목적하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구원의 은혜, 인도의 은혜, 보호하신 은혜, 이 세 가지 은혜 안에 우리가 받은 은혜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우리같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같이 하나님의 보호하신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과거로 부터 받은 은혜, 현재 받고 있는 은혜, 또 앞으로 우리 앞에 영원히펼쳐질 은혜. 우리들은 전체가 은혜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은혜 받은 우리지만, 감사 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 이 감사 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껏 느끼면서 이 은혜를 중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로 드릴 예물을 준비해야합니다. \"이 몸을 바칩니다\"하는 마음으로 사례할 때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그 사람에게 더 임할 것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좋아서 감사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사를 외칠 것이요,원망, 불평하면 그 입이 튀어나올 것입니다. 세 가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감사하는 절기가 오늘입니다. 희생의 구속으로 구원하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갈길을 인도하신 하나님, 강한 오른 손으로 우리를 지켜 보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면 다 아닙니까? 이미 받은 은혜가 족한 줄 아십니까? 감사합시다.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3대 절기/ 출23:14-19/ 맥추감사주일설교/ 2012-07-03
3대 절기 출23:14-19 오늘 맥추감사절에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은혜와 복을 충만하게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맥추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요즘의 세상은 참으로 감사할 줄 모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보다 앞서야하고 남보다 잘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밟고 올라서야 하며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서라도 자기가 목표한 바를 차지하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화 유람선이 세계의 각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세계를 여행하다가 대서양 한가운데서 암초에 부딪혀서 배에 큰 구멍이 났답니다. 얼마 지나면 배는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에 있는 구명보트를 내리고 모두들 보트에 옮겨 탔습니다. 그런데 작은 보트에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뒤집어질 지경입니다. 그 보트는 네 명밖에 탈 수 없는 배인데 7명이나 탔으니 보트가 가라앉으려고 합니다. 적어도 몇은 바다로 뛰어 내려야 하는데 그 중에 누가 바다로 뛰어 내리겠습니까? 서로들 남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때 영국 사람이 벌떡 일어서더니 ”대영제국만세!” 를 외치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모두 ”역시 신사의 나라 영국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두 사람이 더 내려야 합니다. 이어서 미국 사람이 일어서더니 ”미국 만세!”를 부르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이제 한사람만 더 내리면 나머지 네명은 무사히 구출 될 수가 있습니다. 그 보트에는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홍콩 사람이 타고 있는데 아무도 내리려고 하지를 않고 다들 옆 사람의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거기서 쉽게 뛰어내리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한국 사람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과연!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있는데 이 한국 사람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는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확 떠밀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자기 살기 위해서는 남을 희생시키는 이와 같은 무서운 세대에 무슨 감사라는 것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해마다 이 때쯤 되면 교회에서는「맥추감사절」을 지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이 맥추감사절에 대하여 지켜야 한다는 사람과, 지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들로 나뉘고 있습니다. 대개 대도시의 교회에서는 이 맥추감사절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맥추감사절을 지키지 않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맥추감사절은 구약시대의 율법인데 오늘날에 와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맥추감사절은 안 지켜도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순전히 이날 연보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교회 재정을 위해서 지킬 뿐이지 않느냐” 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오늘 우리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또 교회의 재정을 위해서 하는 것은 더욱 아님을 분명하게 아셔야 니다. 오늘 우리 신약시대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율법은 폐하여 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므로 더 온전케 된 것을 믿어야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이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의 순종입니다. 우리들이 왜 이스라엘 민족의 명절을 지키느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오늘 구원 받은 우리들이 바로 신령한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키는 절기들은 다 신령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고도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것 같이 의미는 모르고 껍데기 의식만으로 지켜서는 안됩니다. 십일조, 주일성수, 십계명, 등등 계명을 지키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구원을 우리들이 믿음으로 받았지만 이제 구원을 얻은 우리들에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유효한 말씀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것을 말하면 율법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의 정의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율법주의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구원을 이룬다는 주장인데 이는 틀린 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율법은 이제 필요 없게되었다는 율법폐기론자, 율법무용론자들도 틀린 것입니다. 율법은 근본 선한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얻은 자 되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고, 또 지켜야합니다. 김명재 목사님 필리핀 선교가셔서 주일이 되었습니다. ....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합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습니까? 실로 우리가 받은 복을 헤아려보지 않아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하지만, 너무도 다양한 은혜, 많은 복을 받은 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하는 절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감사는 항상 해야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감사를 잊고 살고/ 또 무엇을 감사해야하는지/ 어떻게 감사해야하는지/ 몰라서 -감사하지 않아서- 더 큰 복을 받지 못할까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시고 싶으신데, 감사하지 않는 자에게 주실 수 없기 때문에, 이 감사절기를 정해주셔서 매년 삼차 이 절기를 지켜라고 했습니다. 이는 날마다 기억하고 지켜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 모든 은혜를 종목, 종목 다 열거하면서 감사하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 세 가지 절기를 지키도록 하시면서 이 세 가지 은혜를 감사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감사하면 모든 감사종목이 이 안에 다 들었습니다. 이는 바로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의 은혜입니다. 그 첫째가 유월절 은혜인데, 이 은혜는 출 12;1-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학대당하고, 종노릇하는 것을 보시고, 또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이스라엘이 해방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애굽과 바로가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려고 강퍅을 부리고, 교만히 행했던 바로 왕과 애굽이 10가지 재앙을 받고 진멸 당했는데, 놀랍게도 이런 무서운 재앙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도 상하지 않고, 오히려 이 재앙 때문에 종된 데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를 감사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앙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 재앙은- 한 밤중에 천사들이 다니면서 애굽 바로의 아들로부터 종들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처음 난 것들은 다 심판의 칼로 전멸시키는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법을 말씀했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고 그 문 안에 거하면 천사들이 장자들을 치실 때, 그 양의 피를 바른 집에는 건너 뛰어 넘어서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장자들을 다 쳤습니다. 유월절은 이 무서운 사망의 재앙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도 있을 것인데, 왜 양을 잡고 그 양의 피를 문에다 바르고 그 문안에 집에 거하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도 애굽과 같이 역시 이 장자 재앙으로 죽어야하는 죄악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길을 말씀하신 것인데, ’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신 것은 이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은 살아났지만, 자신들의 죄악을 사하기 위해 대신 죽은 유월절 어린 양이 있음을 알리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유월절 어린 양은 유월절 한 가운데 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값없이 죄 용서함 받고 구원을 얻었으나 이 값을 다 담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있음을 믿어야합니다.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 잔은 나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것을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도 ”유월절을 지켜야 된다”는 이단이 있습니다. 형곡동 성계주유소 앞의 ’안상홍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지금 구약의 이스라엘 같이 안식일, 유월절을 지켜야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저들이 정말 구약같이 유월절을 지킵니까? 그들이 그 교회에서 양을 잡고 피를 바르고 하는 이 의식을 행합니까? 아닙니다. 그들도 지키지 못하고 지키지 않습니다. 또 구약의 형식적으로 지키던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완성이 된 것을 알아야합니다. 구약시대의 유월절이 신약시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전해지고 나타났습니다. 유월절의 어린 양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유월절 제사는 완료된 것입니다. 유월절에 나누던 무교병의 떡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신령한 양식으로 삼아서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기념할 유월절입니다. 주님이 주신 대속의 은혜, 사죄와 칭의와 영생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야합니다. 감사를 드려야합니다. 또 이 은혜를 전해야합니다. 이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야합니다. 우리를 영원한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무서운 죄의 종된 데에서, 마귀의 노예된 데에서 건져 주심을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또 우리를 의와 영생과 복락으로 옮겨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는 주신 구속의 은혜를 벗지 말고 유월절을 지키면서 무교병을 먹듯이 죄와는 상관 없는 사람으로, 의로운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옛 사람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오늘에 유월절을 기념하는 것이고, 영적으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절기인 오순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50일 되던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율법과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애굽사람같이 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며,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인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지켜야 할 율법과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또 가나안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낮과 밤을 인도했습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이 구름 기둥, 불기둥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있었습니다. 이 은혜를 기념하는 것이 오순절입니다. 오늘 맥추감사절은 이 오순절을 말하는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50일 되던 때가 보리 추수하던 때가 되어서 그 추수한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했는데, 이래서 오순절을 맥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 행2;1-4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 방에서 모여 기도하였는데, 오순절에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습니다. 이 성령 강림의 역사로 교회가 서게 되고, 복음이 힘있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성경 말씀과 성령하나님을 주신 은혜를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바른 인생 길을 갈 것인가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도 알지 못하여 방황했습니다. 어두운 밤 중에 한 개의 등불이 가치를 나타냅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길, 빛의 길을 비추어서 우리 앞 길을 환히 알게한 것이 성경의 말씀을 주신 것이요, 성령 하나님을 보내 주셔서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진리와 영감의 인도의 은혜가 큰 것을 깨닫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주신데 대해 감사하면서 읽고 배워서 우리의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능력을 이 말씀에서 구해야합니다. 이 성경은 우리의 구원의 도리를 계시로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를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면,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 거리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인도의 은혜를 감사 기념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맥추절을 기념하고 지키는 것은 감사헌금도 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해야합니다. 또, 장막절은 어떤 절기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광야에서 40년동안 살았는데,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쌈도 않고, 농사도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입히시고,먹여 주셨고,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을 치고 살 때에 주위의 많은 대적이 있었으나 보호해 주셨다. 한서의 차이의 어려움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를 감사하는 장막절이다. 장막절은 눅19:28-40에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데 호산나 찬송을 부르는 무리들이 따랐는데, 이것은 영원한 천국을 모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오실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 장막절에는 이스라엘에서는 자기 좋은 집을 떠나서 광야에나, 성전 안에나 초막을 짓고, 일 주간을 거하면서 옛날 자기 조상들을 광야에서 보호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이 현실은 광야와 같은 곳입니다. 메마르고 아무도 살 수 없는 것 같은 광야입니다. 짐승의 위험, 추위와 더위의 위험, 이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 우리를 두신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보호와 도움이 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신 것, 모든 위험에서 건지신 것, 또한 우리에게 도사리고 있는 신앙의 위험과 미혹에서 대적들에게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왕으로 임하실 영원한 처소, 천국을 우리에게 예비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또 이 세상은 장막인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다시 정리하여 말하면,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의 피로써 재앙에서 구원하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요, 오순절은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요, 장막절은 하나님의 보호하신 은혜를 감사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오히려 원망이나 불평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무턱대고 감사합니다고 말만 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감사일 것입니다. 우리를 큰 기사로 구원하시고,,강한 손과 펴신 팔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 광야 길을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인도하셔서 목적하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구원의 은혜, 인도의 은혜, 보호하신 은혜, 이 세 가지 은혜 안에 우리가 받은 은혜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우리같이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같이 하나님의 보호하신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과거로 부터 받은 은혜, 현재 받고 있는 은혜, 또 앞으로 우리 앞에 영원히펼쳐질 은혜. 우리들은 전체가 은혜로 가득하고,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은혜 받은 우리지만, 감사 외에는 드릴 것이 없다. 이 감사 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 껏 느끼면서 이 은혜를 중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로 드릴 예물을 준비해야합니다. ”이 몸을 바칩니다”하는 마음으로 사례할 때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그 사람에게 더 임할 것입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생각하면 좋아서 감사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사를 외칠 것이요,원망, 불평하면 그 입이 튀어나올 것입니다. 세 가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감사하는 절기가 오늘입니다. 희생의 구속으로 구원하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갈길을 인도하신 하나님, 강한 오른 손으로 우리를 지켜 보호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면 다 아닙니까? 이미 받은 은혜가 족한 줄 아십니까? 감사합시다.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시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 드려요/ 시116:17-/ 어린이주일학교설교/ 추수감사주일설교/ 2002-11-23
감사 드려요 시116:17- 옛날 옛날에 예수를 잘 믿는 나라가 있었어요. 모든 나라에서 그 사람들을 부를 때마다 젠틀맨이라고 했어요.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고 나가면 지금도 사람들은 \" 어쮸~ 젠틀맨 \"그래요. 젠틀맨이란 영국의 멋진 신사라는 말 이예요. 그런데 이 나라에 아주 큰 일이 벌어졌어요. 새왕이 등극을 하자마자 온 나라안에 방을 붙였어요. \"이나라에 왕이 명하노라. 오늘부터 하나님은 바로 나 헨리 7세다. 우리나라에 또 다른 하나님은 없다. 나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자는 모두 이나라를 떠나거라 \" 백성들은 눈앞이 깜깜 했어요 지금까지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 받은 나라라고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했는데 갑자기 하나님은 없다 라고 말하는 왕이 등장을 했으니 백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어요 . 왕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고 여전히 성경을 손에 들고 예배당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기 시작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바꿔 버렸어요. 그러나 정말 믿음이 좋은 몇몇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 하는 것 보다 자기 나라를 떠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부랴부랴 배를 준비하고 이삿짐을 쌌어요. 믿음을 굳게 지키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함께 배에 타고 보니 100명 정도가 되었어요.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야할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고 무도건 배를 타고 떠났어요. 하나님이 분명 자기들을 인도 해 주실꺼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였어요. 하루, 이틀, 사흘, 한달이 가고 두달이 지났어요. 가지고 나온 식량은 떨어져 가고 바다는 풍랑이 심하고 밤이 되면 춥고 정말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도 남자 어른들은 참을만 했는데 아이들과 여자들은 시름시름 아프다 죽기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 그런데 65일째 되는 날 어느날, 배가 육지에 도착했어요.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세상에 이럴 수가... 그들이 도착한 땅은 어마어마하게 큰 땅 이였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시커먼 사람들이 나뭇잎으로 만든 팬티를 걸치고 뽀쪽한 창을 들고 끽끽 짐승같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오고 있었어요. \" 아차! 여기서 죽나보다. \" 하고는 바짝 긴장을 했죠. 알고 보니 인디언 추장이 부하들을 떼로 몰고 달려온거였어요. 이렇게 해서 영국의 신사들과 인디언들이 그 땅에서 함께 살게되었어요. 영국 사람들은 그 땅에 도착해서 제일먼저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렸어요. 그리고 열심히 농사를 지었어요. 땅에 곡식을 심으면 금방 자라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한해를 기다려야 하잖아요 ? 그런데 곡식이 익기도 전에 몸이 약한 사람들은 다 죽고 말았어요. 한해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고 나니 너무나 기뻤어요. 몇몇 남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추수한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 예배를 드렸어요. 이것이 미국에서 처음 드린 추수감사절 예배가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해마다 추수 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나라의 가장 큰 명절로 지키고 살아가고 있어요. 이렇게 미국이라는 커다란 나라가 영국에서 건너간 믿음의 사람들이 세운 나라예요. 이제 겨우 200년 정도의 역사을 가진 나라가 이토록 커져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일은 보통일이 아닌거예요. 그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 가운데 늘 감사하는 좋은 신앙생활이 나라 전체에 배여 있기 때문이예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교회예요. 미국에서는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기가힘들 정도니까요. 여러분 ! 이 엄연한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꺼예요. 이땅에는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아직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나라들이 얼마나 많아요. 특히 예수 믿지 않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는 하나도 없어요. 그렇다면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거든요. 하나님 잘 섬기고 늘 감사하는 사람과 그렇치 않은 사람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예요. 일년에 한번 드리는 추수 감사절 예배를 오늘 우리는 드리고 있어요. 온 교인들이 추수감사절을 더 기쁘고 즐겁게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서는 떡도 하고 과일도 준비해서 나눠 먹고 탈란트 시장도 준비해서 여러분들하고 더 즐거운 감사예배를 드리려고 준비했어요. 여러분들은 오늘 아주 즐겁게 예배를 드리고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되요.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스스로 준비 할수 있는 것들이 많치 안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대신 어른들이 더 많이 준비하는 거예요. 이제 여러분이 크면 그때는 어른된 여러분들이 또 다른 어린이들을 위해서 더 좋은 추수감사절 예배를 준비하면 되거든요. 그럼, 우리가 오늘 감사절을 보내면서 어덯게 감사 할까요 ? 한해 동안 부무님들을 축복해 주셔서 먹고 입고 자고 공부하고 편안하게 살수 있도록 도우신 은혜를 감사 할 수는 있을 거예요. 그리고 건강한 몸으로 예배도 드릴 수 있고 즐겁게 놀수도있고 공부도 할 수 있도록 해주신 은혜도 감사 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 이렇게 한해 동안 우리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하나님이 매우 기뻐 하실 거예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예요. 다윗이라는 사람이 기록한 내용인데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 내가 눈물 흘릴 때 씻어 주신 것 감사해요. 하나님! 내가 힘들어서 쓰러졌을 때 일으켜 주신 것 감사해요. 하나님! 내가 죽게 되었을 때 살려주신 것 감사해요. 하나님! 내가 기도할 때마다 들어주신 것 감사해요. 내가 이렇게 많은 은혜를 하나님께 받았는데 나는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 하나님! 내가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즐거워하고 내가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다 실천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이러면서 하나님께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는 내용이거든요. 추수 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우리도 다윗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금과 은을 드리며 뽑내며 예배하는 것보다 더 많이 기뻐하실거예요.
감사 생활/ 골2:6-7, 신16:9-12/ 맥추감사주일설교/ 2001-07-01
감사 생활 골2:6-7 ,신16:9-12 오늘은 맥추 감사절로 지키는 날입니다. 맥추절이란 유월절이 지난 칠 주 후에 농사를 지어 첫번째 추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을 말합니다. 오순절, 칠칠절도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맥추절의 기원은 신16:9-11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날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대로 힘을 다해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는 날입니다.(10절) 여러분 또한 98년 상반기를 지나기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힘써 수고한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과 지혜와 건강, 재능을 가지고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이제 그 결과를 놓고 우리는 받은 바 은혜를 헤아려 보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그 어떤 수고도 열매 맺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경성 함이 허사입니다. 우리는 삶에 허락하신 개인적이거나 가정적인 모든 은혜로 인한 첫 열매를 주님께 드리는 예배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마음에 감사가 있는 사람은 사는 재미와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받은 바 축복을 헤아려 보며 감사할 뿐 아니라 즐겁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맥추절은 또한 이웃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 함께...”(11절) 받은 바 은혜를 주위의 사람들과 나누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염두에 두는 분이십니다. 맥추절은 신약 성경에서 오순절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행2:1) 첫째로 받은 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시편 50편 23절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에도 보면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으르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넘치는 감사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오늘도 찾으시고 계십니다. 오늘 추수 감사 예배에 나아 와 예배하시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찾으시는 그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 와 같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삶은 넘치는 감사로만 충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삶은 넘치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충만합니다. 생각해 보면 한시도 그 괴로움과 고통과 어려움이 우리의 삶에서 떠나 있는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감사 생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금도 깊이 그리고 정직하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 속에 끊이지 않는 고난과 고통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고난과 고통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 많다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지만 그보다는 즐겁고 기쁜 일이 더 많습니다. 세상에는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그리고 기쁘고 즐거운 일들은 다 당연한 것으로 쉽게 넘겨 버리고, 꼭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만 붙들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처럼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과 괴로운 것만 바라보고 헤아리고 있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축복들을 바라보며 그것을 세어야만 합니다. 찬송가 489장의 가사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힘들고 어려운 일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식어지고 넘치는 감사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어려울 때 여러분 당한 고난을 세지 말고 이미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세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넘치는 감사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줄로 믿습니다. 시험을 볼 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아는 문제부터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에는 나중에 풀기로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감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뒤로 넘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풀기 어려운 문제부터 붙잡고 풀려고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감사를 놓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넘치는 감사를 위하여 첫 번째로 하여야 할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고통만을 세지 말고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먼저 세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난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려운 문제도 열심히 생각하고 풀면 풀리는 수가 있습니다. 이해하기 쉬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먼저 생각하고 감사하였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고난과 고통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아야만 합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고난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과 고통 속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의도가 있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주시는 데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와 연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늘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뉘우치게 하기 위하여 채찍질하시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한 죄와 잘못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주시는데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되 게 하여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연단 하시기 위함입니다. 고후1:8,9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아니하 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 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고난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고 살라고 하나님께서 일부러 주신 고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할 때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그 때문에 믿음이 굳어졌고 그 믿음 때문에 자신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잘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순경을 만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하지만 역경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성도의 도리입니다. 저는 정말 그 동안 하나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특히 그 동안 겪어야만 했던 모든 견디기 어려웠던 모든 아픔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 괴로움과 고통 그리고 그 아픔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렵고 떨리지만 그 일로 인해 나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된 것은 나에겐 가장 소중한 축복이 요, 은혜가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으로 내게 주신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환경이 남달리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이 없이 편안히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한사람도 없습니다. 환경이 좋아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이 없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감사가 넘치지 못하는 것은 남보다 환경과 여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적어서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 제목이 분명해 졌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변화되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문제도 감사하며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살전5장 16절 이하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일을 통하여 굳은 믿음을 얻게 될 것이고, 굳은 믿음을 갖게 되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여 굳은 믿음을 얻게 되면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감사할 수 있고 나중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까지도 그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음으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굳은 믿음으로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넘치는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처럼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며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함으로 항상 기쁘게 사는 사람은 자신만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를 받는 대상을 기쁘게 합니다. 굳은 믿음으로 넘치는 감사를 하나님과 사람에게 드리며 살 수 있다면 우리로 인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감사는 반드시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기도를 통하여 그것을 잘 표현하는 연습을 하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는 일을 쑥스러운 일이며 조금 유치하고 못난 일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년 봄에 벧엘 성경 공부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가 미국인 목사님이셨는데 그 목사님께서 강의 중에 미국 남자들은 최소한 하루에 세 번씩 아내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하여야 한다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웃으시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누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 한국 남자들은 하루에 세 번씩 아내에게 그런 말을 하면 이혼의 사유가 됩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 한국 남자들이 자기 아내에게 하루에 세 번씩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우리 한국의 아내들은 대부분 남편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이 남자가 뭐 딴 짓을 하였는가?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는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미국과 서양의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우리보다 좋고 옳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감사는 마음에 품을 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여야만 합니다. 아내와 남편에게 때때로 사랑한다고 말하여야 하고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을 하여야만 합니다. 처음부터 말로 하는 것이 쑥스러우면 편지나 전화로라도 해야 합니다. 가끔씩 아내와 남편에게 편지를 써서 마음에 있는 사랑과 감사의 말을 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성해지고 아름다워 지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해서도 그렇게 하여야만 합니다. 작은 일 하나라도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연습을 하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감사를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이런 나뿐 습관이 우리의 삶을 무미건조한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를 연습하여 감사와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우리 대선 교회 교우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수준을 높여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수준과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하는 수준이 틀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수준을 높이십니다. 지금은 좀 어려워졌습니다만 그러나 과거에 비하여 상당한 수준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60년대 수준으로 축복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사의 수준과 단위는 종종 90년대에 살고 있으면서 60년대 혹은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복의 수준과 감사의 수준이 맞지 아니합니다. 이런 감사 생활을 우리가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축복해 주시는데도 우리의 삶은 풍족해지지 않는 엉뚱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그와 같은 현상이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옛날에 비하여 소득은 늘었으나 우리의 삶은 점점 더 피곤하여지고 기쁨과 행복은 점점 더 줄어들게 되는 현상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축복의 수준과 감사의 수준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오늘 주신 말씀처럼 넘치는 감사를 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넘치는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고 그 기쁨과 행복은 우리의 감사의 대상인 사람과 하나님에게까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결론적으로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 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하셨습니다. 그리고 시50편 23절에서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 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은 믿음으로 넘치는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더 큰 축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 습관/ 마26:26-29/ 맥추감사주일설교/ 2009-07-03
감사 습관 마26:26-29 여러분,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하십니까?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겁게 살고 싶습니까? 그럼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싶습니까? 그럼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이 잘 성장하여 좋은 열매를 많이 맺고 싶습니까? 그러면 생활습관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생활 습관이 자신의 삶을 망칩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질병에 노출되어 고생을 많이 합니다. 나쁜 습관을 다스리지 못하면 중독의 올무에 갇히게 됩니다. 중독된 습관은 몸과 마음, 삶을 망치게 합니다. 모든 일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성공을 부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떤 사람은 성공하려는 동기를 끝까지 잃지 않고 어떤 사람은 쉽게 포기합니다. 같은 상황인데 어떤 사람은 여유있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로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마음의 습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습관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축복된 삶을 기대한다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미국 조지아주 중서부에서 대부호로 명성을 떨친 레스터가(家)가 있었습니다. 레스터는 이곳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는 주변의 농토들을 모두 사들여 담배농사를 지었습니다. 레스터의 땅을 밟지 않고는 주민들이 마을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길을 토바코 로드로 불렀습니다. 레스터는 후손들에게 엄청난 땅과 돈을 유산으로 남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레스터의 3대 후손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3대손인 지이터가 소작농으로 전락해 유일하게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1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5명은 일찍 사망했고 9명은 가출했습니다. 이 부부는 고향을 지키며 외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지이터 부부가 잡초더미에 불을 놓았는데 그 불이 집에 옮겨 붙어 타죽고 말았습니다. 땅과 돈만 유산으로 물려주고 좋은 습관을 물려주지 않으므로 저주를 부르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돈 대신 좋은 습관을 유산으로 남겨줍니다. 철학이 없는 많은 유산은 자녀를 불행한 늪으로 몰아 갑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 주고 계십니까? 아니면 자식은 고생해선 안된다고 유산을 물려주시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일에 몰두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떤 크나큰 계기나 사건이 나의 인생을 변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요술처럼 멋지게 만들어 주고 성공시켜 주는 것은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작은 일들입니다. 우리를 참으로 복되게 하는 것은 작지만 좋은 습관들입니다. 습관이란 \'무엇이든 여러 번 거듭하는 사이에 몸에 배어 굳어진 성질\'을 말합니다.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성패와 행불행이 결정됩니다. 어거스틴은 \'신앙이란 거룩한 습관을 들여가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다름이 아니라, 거룩한 것이 몸에 배어 습관화 되게 하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훈련과정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역시 좋은 습관을 많이 가지고 사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6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예수님은 습관에 따라서 안식일 날 회당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습관에 따라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읽은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것이 습관화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막 10:1) 여기 \'전례대로\'라는 말을 표준 새번역에는 \'늘 하시던 대로\'로 번역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따라서 가르치셨습니다. 뭘 가르쳤습니까?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입을 여시면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전도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전도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습관화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 하나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눅22:39절) 표준새번역은 이것도 \'늘 하시던 대로\'라고 번역했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기도생활을 통해 경건이 습관이 되었고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를 통해 승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습관이 많았습니다. 좋은 생활을 반복하여 훈련하며 경건하고 의로운 삶이 몸에 배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또 하나의 중요한 습관을 가지고 생활하셨음을 보여 주십니다. 최후의 만찬자리에서도 떡과 잔을 앞에 놓고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것도 이날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늘 하시던 대로 하신 것입니다. 요6:11에 보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는 기적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기적은 마술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나눠주시니까 계속 바구니에서 떡과 생선이 나온 것입니다. 축사가 무엇입니까? 축복과 감사입니다. 표준새번역은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감사기도가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감사하는 습관이 축복을 부릅니다. 요한복음11장은 나사로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하는 친구가 병을 앓다가 갑자기 죽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구의 무덤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픈 것이고 아픈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친구의 무덤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이내 감사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11:41을 읽어 보십시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이 죽음의 마당에서도 기도할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도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셨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도 음식을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감사하는 습관을 형성해 갈 수 있습니까? 1.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감사하십시오.(27) 여러분, 식사 전에 반드시 기도하십니까?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식사 기도를 감사의 기도로 드리십시오. 꼭 매끼 먹을 때마다 기도해야 하느냐?고 감사해야 하느냐? 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의 본문 27절을 보면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하시고 떡과 잔을 나누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것은 최후의 만찬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유명한 5병2어의 기적에 앞서 그분은 먼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고 했습니다.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그분의 거룩한 습관이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면 그 일용할 양식을 받고 공급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여 굶주리고 있는데 먹을 수 있는 은혜가 적은 은혜이겠습니까? 유엔 식량 농업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지상에서는 세계 인구 가운데 8억 4천 이백만이 기아인구라고 합니다. 이것은 적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전 세계 인구 의14%, 그러니까 7-8명중 한 사람은 하루 한끼 양식을 해결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매년 약 2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현실이라면 우리가 매 끼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않습니까? 또한 날마다 식사기도를 드리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축복을 부르는 좋은 습관이 몸에 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축복을 부르는 감사의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좋은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2. 작은 은혜라도 임할때 감사하십시오.(26) 어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식사기도를 하는 기준이 애매하단 말이야. 간식으로 과일 한쪽을 먹을 때에도 매번 기도를 해야 하나?\" 어떤 목사님이 조크로 3천원 이상만 감사기도하면 되지! 우리 말 성경번역에서 예수께서 식사 전에 \'감사하셨다\'를 많은 경우 \'축사하시고\'라고 번역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 거의 신약 성경에서는 \'감사\'와 \'축복\'이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작은 식량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인지하셨고, 그래서 그분의 식전 \'감사의 기도\'는 동시에 그 축복이 다시 나누어 지기를 소원하신 \'축복의 기도\'이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사의 기도는 다시 축복을 나누는 기적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광야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주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실제 2만 명 가까운 군중들이 배불리 먹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감사가 축복을 불러온 것입니다. 한 아이가 가져온 점심은 겨우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하다고 불평하지 않고 그것이라도 감사하였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유명한 스펄전 목사는 \"한 자루의 촛불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별빛을 주시고, 별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인하여 감사하는 자에게는 햇빛도 필요 없는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축복임을 깨달을 때 예수님처럼 즉각적으로 감사하십시오. 감사는 또 다른 축복과 기적을 가져 올 것입니다. 3. 삶의 위기 앞에서 감사하십시오. 예수님은 언제 감사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위기 앞에서 감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에는 예수님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위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예수님은 이 마지막 만찬이 끝나면 당신이 체포당하시고 십자가로 가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떡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부서져야 할 그의 몸이셨습니다. 그것이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나누시고 있는 잔은 잠시 후 십자가에서 흘리셔야 할 그의 피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마태 26:28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이런 당신 자신의 인생의 최대의 위기인 죽음앞에서 예수님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만나면 마음의 여유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감사를 잘 하는 사람도 감사대신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습관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축복을 부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감사하는 성도들에게는 원수 마귀의 간계가 통하지 않습니다. 위기를 맞게 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다가온 사단의 세력이 당연히 불평하고 원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기도하며 감사까지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당황하겠습니까? 여러분 감사를 통하여 마귀를 당황시키며 사시기 바랍니다. 놀라서 단숨에 도망가게 만듭시다. 만일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역경의 상황 배후에 존재하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오늘은 보이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되지만 내일에 보여 지고 이루어질 그 선하신 뜻을 믿을 수만 있다면 바울 사도가 가르친 그대로 우리도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 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 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찬송 음정이 억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감사 없는 인생의 불행/ 민14:20-38/ 맥추감사주일설교/ 2007-07-03
감사 없는 인생의 불행 민14:20-38 2007년도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정속에 감사가 넘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이 죽은 후 430년간 노역생활과 괴로움을 당하다가 출애굽한 이후의 내용입니다. 430년이 되었을 때 온 백성이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못살겠습니다. 죽겠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이 준비하신 지도자 모세를 애굽에 보내어 모세를 통하여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생활, 종살이 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에서 출애굽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나안 복지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종살이하며 고통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던 그들이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데 여러분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북한에서 탈북한 분들이 “죽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습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감사하기는 커년 원망하고 불평만 했습니다. 430년간 종살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 것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종의 특징이 뭡니까? 원망과 불평아닙니까? 이게 아주 익숙해 버렸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듣는게 원망뿐입니다. 못살겠다. 뭐 어떻다. 매일 듣는게 원망입니다. 430년간 원망과 불평을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원망이 익숙하고, 불평이 평범해졌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땅을 향해서 가면서도 그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원망하고 원망하고,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도 참으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을 포기하는 내용입니다. “너희가 내게 원망하던 그 말대로 해주겠다”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20세 이상으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살고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이 말한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셨고 그대로 되어졌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14:1에 보면 홍해 앞에서 원망합니다. 홍해가 가로막자 그곳에서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또 출애굽이 15:24에는 홍해를 건너고 수르광야에 들어갔는데 목이 마르니까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16:2-3에도 배고프니까 배고프다고 원망합니다. 17:3에는 르비딤에 이르렀는데 목이 마르자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원망에 원망을 계속 해 나갑니다. 조금 전에도 물이 말라 목 마를 때 하나님께서는 물을 내려주셨고, 배고플 때는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또 목이 마르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 광야 여행을 계속 하면서 드디어 가나안 땅 접경 지역, 가장 가까운 지역인 가데스바네아 지역에 들어왔습니다. 그거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이제 쳐들어가서 차지하면 되는데 전쟁을 하기 전에 그곳에 먼저 정탐꾼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40일이 지나 12명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10명의 믿음없는 정탐꾼들이 먼저 보고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보고! 거기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그 땅은 기름지고 좋지만 그곳에는 네피림이 있는데 그들은 거인들이다. 우리는 그들 보기에 메두기 같다. 우리는 그들을 치지 못한다. 우리는 큰 일 났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고 불고 야단을 치며 모세를 향해서 원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어버리면 더 좋지 않겠는냐?” 이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말 어찌 할바를 모르고 원망하는 그들을 향해서 “조용히 하시오. 내 말을 좀 들으시오”라고 안정을 시킨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밥입니다. 이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 합시다.”라고 했지만 말이 먹혀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계속 원망하는 원망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이제는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0세 이상으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너희 입에서 나온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원망하다고 광야에서 비참함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0: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 사건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저희의 당한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고 합니다. 민수기의 말씀은 그 이후를 살아가는 이 땅의 크리스찬이 이 사건을 통하여 원망하면 복을 받지 못하고 망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거울로 삼아서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경계로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거울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원망하면 망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믿음이 부족하여 원망하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그 인생이 끝이나고 만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감사가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나아가서는 감사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오늘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때때로 힘들고 어려워질 때 그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조금만 힘들고 내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현대인의 특징에 대하여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2에 “말세가 되면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장에서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말세가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서로 분쟁하고 불화하고 이런 어려움들이 더 많아 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셨던 장상총장은 오래전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선진 개발된 나라들 가운데서 학생들이 스승에 대해서 제일 감사치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라고 했습니다. 기성세대는 크게 자각해야 합니다. 감사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원망과 불평에 익숙한 사람들이 성장하고 자라서 국가와 기업과 가정에 충실하며 살아가겠습니까? 감사치 아니하고 은혜를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 그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습니다. 넘치는 생산과 넘치는 풍요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만큼 많은 자원들을 낭비하며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너무나 잘 먹고, 잘 입고 살아갑니다. 저희들이 학교 다닐 때 옷이 없어서 군인 잠바, 국방색 잠바를 물을 들여서 입으면 일년 열두달 입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오천원만 줘도 천지배까리입니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며칠전에 목사님들 모임이 있었는데 “세종 대황이 이 핸드폰 가져봤나? 일본을 가봤나? 중국을 가봤나? 동남아시아를 가봤나? 필리핀이 있는지, 유럽이 있는지 알았겠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조시대 왕들보다 수십배 좋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특징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움 속에서 살면서도 그 어느 시대보다 감사가 없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이 있는데 사람이 편해질수록 감사가 줄어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풍요로운 환경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풍요로워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하냐 아니냐는 마음에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궁궐같은 호화로운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어도 그 마음에 감사가 없으면 결단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아내와 살아가는 남편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감사하는 남편과 살아가는 아내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반찬을 해줘도, 2-3가지 제대로 볶아 내지도 못하지만 ‘여보, 수고했다. 감사하다’고 하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부모와 사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녀와 사는 부모가 행복합니니다. 아이가 40명 중에서 38등을 했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뒤집어 집니다. “이놈아 내가 무슨 맛으로 살겠노” 야단 법섞을 떠는데 그런 아이를 두고도 끌어안고 “니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니가 내 자식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고 말하는 부모님과 사는 아이는 정말 행복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가정의 아이는 밖에 나가서 “우리 집은 정말 행복하다. 천국이다. 나는 부러운게 없다”고 할 것입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불평이 있어도 이게 뭐고, 저게 뭐고 야단입니다. 감사가 없이 살면 그곳에 바로 지옥이 되는 겁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감사가 없으면 하루 하루가 지긋지긋하고 몸서리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불평하는 아내가 있으면 집에 들어가기 싫습니다. 불평원망하는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도망가고 싶어요. 그 인간 얼굴을 어떻게 보느냐 이겁니다. 사람이 감사가 없으면 계속 싸웁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을 통해서 싸움을 만들고 매일 매일을 싸우는 겁니다. 매일을 찡그리고 사는 가정을 만드는 겁니다. 또 감사가 없는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아요. 이것은 의학상 통계로 나온 겁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을 비교해 보았더니 감사하는 사람은 좋은 것을 먹지 않아도 건강합니다. 다니엘은 채소만 먹어도 더 건강했습니다. 감사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감사치않는 사람은 너무나 고독하게 살아가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벌은 외로움, 고독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식도 붙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불평하고 원망하면 친구도 떠나가고, 자식도 떠나가고, 다 떠나갑니다. 나중에는 외로워서 하나님도 그를 떠납니다. 감사치 않고 원망하는 자는 ‘나는 너를 내 자식으로 두지 못하겠다“고 하며 하나님도 떠난다고 했습니다. 또 감사치 않는 자의 특징은 성실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없기 때문에 일을 해도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습니다. 창조적으로 살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성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막아 버립니다. 감사치않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고를 가졌습니다. 창조적인 그런 세계를 열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이 성공하려면 계속적인 영감을 통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질 때 성공적인 사람이 되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사를 해도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뭐든지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영감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 사람이 탁월한 사람이 됩니다. 감사치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영감이 없습니다. 감사치 못하는 자는 주위가 막혀있습니다. 어둠의 권세에 눌려서, 마귀에게 눌려서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어리섞게 판단하고 어리섞은 길을 계속 갑니다. 얼마나 불행한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수십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자랍니까? 감사가 없는 사람이 믿음이 자라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초신자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날로 날로 하루가 다르게 그 믿음이 쑥쑥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감사치않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에게는 주신 것도 거두어 가십니다. 그래서 불행한 인생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닦쳐와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우리 집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안 좋은 소리를 할 때 우리 집사람은 멋있게 팅기면서 말을 합니다. 그 말을 하면 저는 기분이 달라집니다. 저도 그럽니다. “이쁘게 생겨가지고 왜 그래?” 그러면 달라집니다. 딴 소리를 못하는 겁니다. 집에 가서 써먹기를 바랍니다. 한번 실험해 보세요. 애가 뭐할 때 “이렇게 멋있는 놈이 왜 그래?” 그러면 애가 싹 달라집니다. 집에서 실험해 보세요. 여러분들, 감사치 않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아버립니다. 원망과 불평할 때 하늘문을 철커덕 닫아버립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화목하게 살아갑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감사하는 가정에 들어가 보세요. 집이 환합니다. 불빛이 없어도 집이 환합니다. 얼마나 얼마나 화창한 봄날 같은 가정인지 모릅니다.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감사하는 가정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가정은 다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외롭지 않고 밝고 활기차게 살아갑니다. 감사하는 가정의 사람들은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누구에게 보답합니까?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감사함을 보답하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얼마나 보람있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이게 감사하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감사가 있으니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남을 돕고 봉사하지 않으면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자꾸 자꾸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이 날로 날로 성장하고 갈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게 되는 겁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복을 받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 되시길 바라지요. 그러면 자녀들이 잘 되길 원한다면 뭘 가르쳐야 된다고요? 감사를 가르쳐야 됩니다. 어떤 유대인 여성이 세자녀를 너무나 잘 키웠습니다. 교육도 많이 받은 분도 아니고 보통 사람인데 셋을 다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의 교육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저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첫째로 너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둘째로 원망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셋째로 감사하는 사람과 늘 사겨라.” 무슨 말인지 알지요. 너 자신이 감사하는 자가 되라. 두 번째는 원망불평쟁이하고는 사귀지 마라. 전염된다. 원망불평은 전염이 잘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과 사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감사를 배우게 된다는 겁니다. 불평이 이만큼 있는 사람도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서 자꾸 감사를 들으면 불평은 쑥 들어가고 집에 가서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감사를 가르쳤더니 내 아이들이 다 잘되었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감사할 때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저는 특별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할렐루야!”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불평하면 완전히 절망이 되지만, 아무리 캄캄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 바울과 실라가 감사하고 찬양했더니 옥문이 열렸습니다. 다니엘이 감사했더니 사자의 입을 틀어막어서 그 속에서 생명의 살림을 받았습니다. 병이 들어도 감사하면 병을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사업이 어려워도, 길이 막혀 있어도 감사하면 사업의 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쏟아지는 겁니다. 어떻게 살겠습니까? 링컨은 조지 워싱턴이 감사절을 정했는데 제퍼슨 대통령때 감사절을 없애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은 감사절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16대 대통령이 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음 제일 먼저 한 것이 감사절을 회복한 것입니다. 11월 셋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정하고 4일동안 국경일로 정했습니다. 이 감사절만은 온 미합중국국민들이 하나님을 감사하고, 감사의 축제로 살아가라고 4일 동안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공휴일을 제정하면서 이 링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이 왜 복을 받는가? 그걸 아셔야지요.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이 어려움 가운데서 쟁취한 감사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잘 전하여 결코 포기함이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감사의 정신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복을 받는다라고 링컨 미국 대통령이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왜 복을 받습니까? 이와같이 감사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감사절기를 정하여 국경일로 지키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나라, 감사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복을 받는 겁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성공을 주시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은혜의 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끊임없이 받아누리시는 우리 대흥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끝으로 우리가 이와같이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면서 남은 인생을 가장 값지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감사가 내 맘속에서 넘치려면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를 바로 깨달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김용식 선생님이 깨달아야 될 것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줄로 믿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같은 죄인이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언제 죽어도 천국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내가 죽음의 자리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병이 들어서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될 것은 나는 지금 죽어도 내가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나라에 나의 들어갈 집을 마련하시고 나를 그 나라로 영접해 주실줄로 내가 믿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겁니다. 오늘 죽어도 감사합니니다. 병이 나도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언젠가는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고 천국갈 수 있는 구원을 주셨다는 이 사실에 감격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지금까지 내게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깨닫고, 앞으로 내게 주실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오늘의 어려움을 통하여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기 때문에 질병가운데서도, 실패가운데서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주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앞으로 내게 주실 환난과 역경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게 축복으로 쏟아 부어주실 그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마음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찬양하라 내영혼아!” 감사가 터질 줄 믿습니다. 복된 사람의 특징이 뭡니까? 은혜를 깨닫는 겁니다. 그리고 주실 은혜를 바라보는 겁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고린도전서15:10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했습니다. 뇌성마비시인 송명희씨를 잘 아실 겁니다. 그녀의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다. “나 남이 가진 것 내게 없지만 나 남이 가지지 못한 내가 가졌네.” 뇌성마비로써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남이 가진 것 바라보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나 남이 가진 것 내가 없으나 나 남이 가지지 못한 내가 가졌네...이것 보면서 아름다운 찬양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겁니다. 없는 걸 보는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질병가운데서도 장애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2000년 11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CBS 10주년 기념 독창회를 했습니다. 10시 30분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청중들이 가지를 않는 겁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아닙니까? 그런데 가지를 않고 전부다 앉아서 박수를 치는 겁니다. 앵콜을 네곡을 했습니다. 보통 두곡을 하는데 네곡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박수를 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조수미가 나왔습니다. 네곡까지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맞춰놓은 곡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맞춘 곡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는 “오늘 내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겁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반주 없이 무반주로 부르는 겁니다. 거기에 앉은 회중들이,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자까지도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 노래가 온 회중을 은혜로 이끌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감격이 우리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목만 들으세요. 첫째는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야 감사하고, 둘째는 지금까지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장차 앞으로 내게 주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으로 전천후로 감사하려면 쉬지않고 기도하여 성령충만 받을 때 끊임없이 감사가 터져나올 줄 믿습니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원수마귀가 불평의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영적으로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자다가 일어나도 원수 마귀가 원망과 불평의 씨앗을 뿌려서 자다가 일어나도 원망과 불평이 터져나옵니다. 그 가정은 깨지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여 성령충만한 우리 대흥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렌즈가 바뀌어집니다. 보는 것 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마귀가 충만하니까 보는 사람마다 심술이 나고 견디지를 못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대흥교회 성도들이여, 오늘 맥추절이 얼마나 좋습니까? 상반기 6개월을 지나고 후반기 6개월을 맞이하면서 정말 감사함으로 축복의 미래를 열어나가고 일생에 잊지 못할 감격적이고 행복하고 승리하는 남은 생애를 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낙보 목사
감사 없는 인생의 불행/ 민14:20-38/ 맥추감사주일설교/ 2016-07-03
감사 없는 인생의 불행 민14:20-38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정속에 감사가 넘치고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이 죽은 후 430년간 노역생활과 괴로움을 당하다가 출애굽한 이후의 내용입니다. 430년이 되었을 때 온 백성이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십시오. 못살겠습니다. 죽겠습니다.” 때가 되매 하나님이 준비하신 지도자 모세를 애굽에 보내어 모세를 통하여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생활, 종살이 생활을 청산하고 애굽에서 출애굽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나안 복지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종살이하며 고통속에서 괴로움을 당하던 그들이 해방되어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데 여러분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북한에서 탈북한 분들이 “죽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습니다”라고 하는 것처럼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감사하기는 커년 원망하고 불평만 했습니다. 430년간 종살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배운 것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종의 특징이 뭡니까? 원망과 불평아닙니까? 이게 아주 익숙해 버렸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듣는게 원망뿐입니다. 못살겠다. 뭐 어떻다. 매일 듣는게 원망입니다. 430년간 원망과 불평을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원망이 익숙하고, 불평이 평범해졌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땅을 향해서 가면서도 그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오늘 말씀은 원망하고 원망하고,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도 참으시던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을 포기하는 내용입니다. “너희가 내게 원망하던 그 말대로 해주겠다”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20세 이상으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외에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살고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너희들이 말한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셨고 그대로 되어졌다는 겁니다. 출애굽기 14:1에 보면 홍해 앞에서 원망합니다. 홍해가 가로막자 그곳에서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또 출애굽이 15:24에는 홍해를 건너고 수르광야에 들어갔는데 목이 마르니까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16:2-3에도 배고프니까 배고프다고 원망합니다. 17:3에는 르비딤에 이르렀는데 목이 마르자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원망에 원망을 계속 해 나갑니다. 조금 전에도 물이 말라 목 마를 때 하나님께서는 물을 내려주셨고, 배고플 때는 메추라기를 내려주시고 만나를 내려주시는데 또 목이 마르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이제 광야 여행을 계속 하면서 드디어 가나안 땅 접경 지역, 가장 가까운 지역인 가데스바네아 지역에 들어왔습니다. 그거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이제 쳐들어가서 차지하면 되는데 전쟁을 하기 전에 그곳에 먼저 정탐꾼을 보내어 40일 동안 정탐하도록 했습니다. 40일이 지나 12명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10명의 믿음없는 정탐꾼들이 먼저 보고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보고! 거기에 현혹되면 안됩니다. 그 땅은 기름지고 좋지만 그곳에는 네피림이 있는데 그들은 거인들이다. 우리는 그들 보기에 메두기 같다. 우리는 그들을 치지 못한다. 우리는 큰 일 났다.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고 불고 야단을 치며 모세를 향해서 원망을 쏟아 부었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 죽어버리면 더 좋지 않겠는냐?” 이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말 어찌 할바를 모르고 원망하는 그들을 향해서 “조용히 하시오. 내 말을 좀 들으시오”라고 안정을 시킨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차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밥입니다. 이제 올라가서 그 땅을 차지 합시다.”라고 했지만 말이 먹혀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계속 원망하는 원망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이제는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0세 이상으로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너희 입에서 나온 그대로 해주겠다고 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리던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원망하다고 광야에서 비참함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10: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 사건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저희의 당한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고 합니다. 민수기의 말씀은 그 이후를 살아가는 이 땅의 크리스찬이 이 사건을 통하여 원망하면 복을 받지 못하고 망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거울로 삼아서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도록 경계로 주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거울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원망하면 망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믿음이 부족하여 원망하고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그 인생이 끝이나고 만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감사가 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나아가서는 감사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오늘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때때로 힘들고 어려워질 때 그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조금만 힘들고 내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우리 현대인의 특징에 대하여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2에 “말세가 되면 감사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말세의 징조에 대해서 디모데후서 3장에서 계속 말씀하시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말세가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감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서로 분쟁하고 불화하고 이런 어려움들이 더 많아 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셨던 장상총장은 오래전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선진 개발된 나라들 가운데서 학생들이 스승에 대해서 제일 감사치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라고 했습니다. 기성세대는 크게 자각해야 합니다. 감사없이 자라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커서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원망과 불평에 익숙한 사람들이 성장하고 자라서 국가와 기업과 가정에 충실하며 살아가겠습니까? 감사치 아니하고 은혜를 모르고 자란 사람들이 그 어떤 세계를 만들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습니다. 넘치는 생산과 넘치는 풍요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만큼 많은 자원들을 낭비하며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과거에 비하면 너무나 잘 먹고, 잘 입고 살아갑니다. 저희들이 학교 다닐 때 옷이 없어서 군인 잠바, 국방색 잠바를 물을 들여서 입으면 일년 열두달 입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오천원만 줘도 천지배까리입니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며칠전에 목사님들 모임이 있었는데 “세종 대황이 이 핸드폰 가져봤나? 일본을 가봤나? 중국을 가봤나? 동남아시아를 가봤나? 필리핀이 있는지, 유럽이 있는지 알았겠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조시대 왕들보다 수십배 좋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특징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움 속에서 살면서도 그 어느 시대보다 감사가 없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이 있는데 사람이 편해질수록 감사가 줄어듭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풍요로운 환경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풍요로워도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하냐 아니냐는 마음에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이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궁궐같은 호화로운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어도 그 마음에 감사가 없으면 결단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아내와 살아가는 남편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감사하는 남편과 살아가는 아내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반찬을 해줘도, 2-3가지 제대로 볶아 내지도 못하지만 ‘여보, 수고했다. 감사하다’고 하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부모와 사는 가정이 행복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녀와 사는 부모가 행복합니니다. 아이가 40명 중에서 38등을 했습니다. 어떤 아버지는 뒤집어 집니다. “이놈아 내가 무슨 맛으로 살겠노” 야단 법섞을 떠는데 그런 아이를 두고도 끌어안고 “니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니가 내 자식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고 말하는 부모님과 사는 아이는 정말 행복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가정의 아이는 밖에 나가서 “우리 집은 정말 행복하다. 천국이다. 나는 부러운게 없다”고 할 것입니다. 얼마나 건강하게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불평이 있어도 이게 뭐고, 저게 뭐고 야단입니다. 감사가 없이 살면 그곳에 바로 지옥이 되는 겁니다.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감사가 없으면 하루 하루가 지긋지긋하고 몸서리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불평하는 아내가 있으면 집에 들어가기 싫습니다. 불평원망하는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도망가고 싶어요. 그 인간 얼굴을 어떻게 보느냐 이겁니다. 사람이 감사가 없으면 계속 싸웁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원망과 불평을 통해서 싸움을 만들고 매일 매일을 싸우는 겁니다. 매일을 찡그리고 사는 가정을 만드는 겁니다. 또 감사가 없는 사람은 건강이 좋지 않아요. 이것은 의학상 통계로 나온 겁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하지 않는 사람을 비교해 보았더니 감사하는 사람은 좋은 것을 먹지 않아도 건강합니다. 다니엘은 채소만 먹어도 더 건강했습니다. 감사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감사치않는 사람은 너무나 고독하게 살아가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벌은 외로움, 고독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식도 붙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불평하고 원망하면 친구도 떠나가고, 자식도 떠나가고, 다 떠나갑니다. 나중에는 외로워서 하나님도 그를 떠납니다. 감사치 않고 원망하는 자는 ‘나는 너를 내 자식으로 두지 못하겠다“고 하며 하나님도 떠난다고 했습니다. 또 감사치 않는 자의 특징은 성실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없기 때문에 일을 해도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습니다. 창조적으로 살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성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막아 버립니다. 감사치않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고를 가졌습니다. 창조적인 그런 세계를 열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이 성공하려면 계속적인 영감을 통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질 때 성공적인 사람이 되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사를 해도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뭐든지 차별화되어야 합니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영감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그 사람이 탁월한 사람이 됩니다. 감사치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영감이 없습니다. 감사치 못하는 자는 주위가 막혀있습니다. 어둠의 권세에 눌려서, 마귀에게 눌려서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어리섞게 판단하고 어리섞은 길을 계속 갑니다. 얼마나 불행한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감사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저는 수십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자랍니까? 감사가 없는 사람이 믿음이 자라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초신자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날로 날로 하루가 다르게 그 믿음이 쑥쑥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감사치않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에게는 주신 것도 거두어 가십니다. 그래서 불행한 인생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닦쳐와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우리 집의 비밀을 하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안 좋은 소리를 할 때 우리 집사람은 멋있게 팅기면서 말을 합니다. 그 말을 하면 저는 기분이 달라집니다. 저도 그럽니다. “이쁘게 생겨가지고 왜 그래?” 그러면 달라집니다. 딴 소리를 못하는 겁니다. 집에 가서 써먹기를 바랍니다. 한번 실험해 보세요. 애가 뭐할 때 “이렇게 멋있는 놈이 왜 그래?” 그러면 애가 싹 달라집니다. 집에서 실험해 보세요. 여러분들, 감사치 않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아버립니다. 원망과 불평할 때 하늘문을 철커덕 닫아버립니다. 반면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화목하게 살아갑니다. 항상 밝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감사하는 가정에 들어가 보세요. 집이 환합니다. 불빛이 없어도 집이 환합니다. 얼마나 얼마나 화창한 봄날 같은 가정인지 모릅니다.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감사하는 가정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가정은 다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외롭지 않고 밝고 활기차게 살아갑니다. 감사하는 가정의 사람들은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누구에게 보답합니까?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감사함을 보답하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얼마나 보람있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이게 감사하는 사람의 축복입니다. 감사가 있으니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남을 돕고 봉사하지 않으면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자꾸 자꾸 좋은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이 날로 날로 성장하고 갈수록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게 되는 겁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사람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복을 받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 되시길 바라지요. 그러면 자녀들이 잘 되길 원한다면 뭘 가르쳐야 된다고요? 감사를 가르쳐야 됩니다. 어떤 유대인 여성이 세자녀를 너무나 잘 키웠습니다. 교육도 많이 받은 분도 아니고 보통 사람인데 셋을 다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이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당신의 교육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저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첫째로 너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둘째로 원망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 셋째로 감사하는 사람과 늘 사겨라.” 무슨 말인지 알지요. 너 자신이 감사하는 자가 되라. 두 번째는 원망불평쟁이하고는 사귀지 마라. 전염된다. 원망불평은 전염이 잘 됩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사람과 사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감사를 배우게 된다는 겁니다. 불평이 이만큼 있는 사람도 감사하는 사람을 만나서 자꾸 감사를 들으면 불평은 쑥 들어가고 집에 가서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감사를 가르쳤더니 내 아이들이 다 잘되었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감사할 때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저는 특별히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할렐루야!” 이게 너무 중요합니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불평하면 완전히 절망이 되지만, 아무리 캄캄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 바울과 실라가 감사하고 찬양했더니 옥문이 열렸습니다. 다니엘이 감사했더니 사자의 입을 틀어막어서 그 속에서 생명의 살림을 받았습니다. 병이 들어도 감사하면 병을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사업이 어려워도, 길이 막혀 있어도 감사하면 사업의 문을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쏟아지는 겁니다. 어떻게 살겠습니까? 링컨은 조지 워싱턴이 감사절을 정했는데 제퍼슨 대통령때 감사절을 없애버렸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은 감사절이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16대 대통령이 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음 제일 먼저 한 것이 감사절을 회복한 것입니다. 11월 셋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정하고 4일동안 국경일로 정했습니다. 이 감사절만은 온 미합중국국민들이 하나님을 감사하고, 감사의 축제로 살아가라고 4일 동안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공휴일을 제정하면서 이 링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이 왜 복을 받는가? 그걸 아셔야지요. “우리 국민들은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이 어려움 가운데서 쟁취한 감사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잘 전하여 결코 포기함이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감사의 정신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반드시 전해야만 한다. 그래야 이 나라가 복을 받는다라고 링컨 미국 대통령이 설명했습니다. 미국이 왜 복을 받습니까? 이와같이 감사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감사절기를 정하여 국경일로 지키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나라, 감사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복을 받는 겁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성공을 주시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은혜의 문을 열어주시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끊임없이 받아누리시는 우리 대흥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끝으로 우리가 이와같이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경험하면서 남은 인생을 가장 값지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감사가 내 맘속에서 넘치려면 세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 보혈의 은혜를 바로 깨달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김용식 선생님이 깨달아야 될 것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줄로 믿습니다. 나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나같은 죄인이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언제 죽어도 천국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 내가 죽음의 자리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병이 들어서 죽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될 것은 나는 지금 죽어도 내가 죽음이 두렵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 나라에 나의 들어갈 집을 마련하시고 나를 그 나라로 영접해 주실줄로 내가 믿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감사한 겁니다. 오늘 죽어도 감사합니니다. 병이 나도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있습니까? 언젠가는 죽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나같은 죄인이 구원받고 천국갈 수 있는 구원을 주셨다는 이 사실에 감격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임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지금까지 내게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깨닫고, 앞으로 내게 주실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오늘의 어려움을 통하여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기 때문에 질병가운데서도, 실패가운데서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주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고, 앞으로 내게 주실 환난과 역경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내게 축복으로 쏟아 부어주실 그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마음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찬양하라 내영혼아!” 감사가 터질 줄 믿습니다. 복된 사람의 특징이 뭡니까? 은혜를 깨닫는 겁니다. 그리고 주실 은혜를 바라보는 겁니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고린도전서15:10에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했습니다. 뇌성마비시인 송명희씨를 잘 아실 겁니다. 그녀의 고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쳤습니다. “나 남이 가진 것 내게 없지만 나 남이 가지지 못한 내가 가졌네.” 뇌성마비로써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남이 가진 것 바라보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나 남이 가진 것 내가 없으나 나 남이 가지지 못한 내가 가졌네...이것 보면서 아름다운 찬양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겁니다. 없는 걸 보는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질병가운데서도 장애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2000년 11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CBS 10주년 기념 독창회를 했습니다. 10시 30분에 끝났습니다. 그런데 청중들이 가지를 않는 겁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아닙니까? 그런데 가지를 않고 전부다 앉아서 박수를 치는 겁니다. 앵콜을 네곡을 했습니다. 보통 두곡을 하는데 네곡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박수를 치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조수미가 나왔습니다. 네곡까지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맞춰놓은 곡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맞춘 곡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는 “오늘 내가 이렇게 여러분 앞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겁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그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반주 없이 무반주로 부르는 겁니다. 거기에 앉은 회중들이,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자까지도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그 노래가 온 회중을 은혜로 이끌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감격이 우리에게 임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목만 들으세요. 첫째는 구속의 은혜를 깨달아야 감사하고, 둘째는 지금까지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장차 앞으로 내게 주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고, 마지막으로 전천후로 감사하려면 쉬지않고 기도하여 성령충만 받을 때 끊임없이 감사가 터져나올 줄 믿습니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원수마귀가 불평의 씨앗을 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영적으로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자다가 일어나도 원수 마귀가 원망과 불평의 씨앗을 뿌려서 자다가 일어나도 원망과 불평이 터져나옵니다. 그 가정은 깨지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하여 성령충만한 우리 대흥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렌즈가 바뀌어집니다. 보는 것 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사람은 마귀가 충만하니까 보는 사람마다 심술이 나고 견디지를 못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대흥교회 성도들이여, 오늘 맥추절이 얼마나 좋습니까? 상반기 6개월을 지나고 후반기 6개월을 맞이하면서 정말 감사함으로 축복의 미래를 열어나가고 일생에 잊지 못할 감격적이고 행복하고 승리하는 남은 생애를 열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낙보 목사
감사, 감사, 감사!/ 출23:16/ 고신일 목사/ 맥추감사주일설교/ 2016-07-03
감사, 감사, 감사! 출23:16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만날 수 있으니, 만났으니 … 감사합니다. 세상에 많은 교회가 있는데 그 많은 교회 중에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리고 기둥교회에서 만났으니 감사합니다. 우리 옆의 분들과 “기둥교회에서 만나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이 감사인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있어서 감사요, 아무 일도 없으면 없어서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평범한 것 중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눈을 뜨고, 날이 흐리고 후덥지근하여 땀을 흘렸기 때문에 겨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 여러분은 은혜 받은 사람이요, 축복받은 사람이요, 살아 있는 생명이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먼저 입을 열어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 찬양 “날 구원 하신 주 감사”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맥추절의 의미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보리와 밀을 추수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기둥교회 창립36주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1971년 7월 1일에 기둥교회가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이 36년 째 되는 날입니다.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3대 절기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초막절(수장절)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곡식을 거두기 시작하여 7주를 계산한 후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그 때문에 맥추절은 여러 별명이 있습니다. 7주씩 일곱 번 지난다고 해서‘칠칠절’이라고 부르고, 또한 칠칠이면 49일이기에, 50일 때 지킨다고 해서 오순절(吳旬節, 五: 다섯 오, 旬: 열 순)이라고도 부릅니다. 특히 이때는 보리나 밀을 추수했기에, 맥추절(麥秋節, 麥: 보리 맥, 秋: 가을, 결실 추)이라고 불렀습니다. 히브리말로‘하그 카치르’로서‘추수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 23:16) 했습니다. 맥추절의 가장 큰 뜻은‘처음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처음 것’이란 모든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소유의 근원이시고,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어떤 것도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 여러분의 것입니까? 언제까지 끼고 있을 것 같습니까? 숨을 거두면 누군가가 빼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목에 걸린 목걸이, 귀걸이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만 여러분의 치아에 있는 금니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제가 군대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교통호 작업을 하다가 묘지가 나오면 졸병은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고참들이 무덤을 팝니다. 그 이유는 유골 중에 금니가 나오면 고참들의 차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처음 것’을 대표로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처음 것’이란 맨 먼저 거둔 것 다시 말해 ‘가장 소중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처음 것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 것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처음 낳은 아들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창 22:16~18) 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첫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 ‘첫 것’이란 말은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맥추절의 다른 의미는 신명기 16장 10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16:10) 맥추절을 칠칠절이라고 하는 것은 수를 세는 것(counting)을 의미합니다. 왕대일, \"21세기 설교가이드 vol.4 - 레위기\" (서울: 성서문화사, 1996). p. 556. 그런데 단순히 수를 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첫 보리와 밀을 베고, 7주간의 수를 세는 것인데 이는 축복의 수를 세는 것입니다. ‘이 만큼 거두게 하셨구나. 이 만큼 축복하셨구나.’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세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수를 세는 데에 약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기억하는 것에도 약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것도 약합니다. 얼마 전 뉴스에 보니 50이 넘은 어떤 사람이 자기 어머니를 밤마다 때려서 늙은 어머니가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밖에 있다가 아들이 들어온 뒤에는 집 앞에서 서성거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지금 늙고 병들고 치매에 걸렸다 해도 예전에 받은 사랑을 기억하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기억하고 살 것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 잊어버리고 지금 힘들고 어려운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이고 정확합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형에게 선물을 주려고 했던 것이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창 32:14~15) 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그냥 ‘양떼와 소떼가 많았더라.’고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열거한 이유는, 그가 받은 축복이 그렇게 많음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하나, 둘, 셋 … 숫자로 꼽을 수는 없으나 우리 마음속에 깊이 담고 기억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혜와 사랑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되새기고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를 잊어버리면 짐승만도 못한 것입니다. 닭이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7초라고 합니다. 7초 전에 있었던 일은 닭이 모른다고 합니다. 예전에 받은 사랑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은 닭과 같은 … 아니 닭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랑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감사할 것이 있어야 감사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십니까? 오늘 살아 있는 것, 오늘 숨 쉬는 것 그것만으로도 일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코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입니다. 저는 남미에서 제일 못사는 나라 볼리비아(Bolivia)에 다녀왔습니다. 정말 못 살더군요. 출발하기 전에 현지에 있는 선교사로부터 메일이 왔습니다. ‘목사님, 아스피린을 준비하셨다가 La Paz 공항에 내리기 전 1시간 전 쯤에 꼭 드십시오. 그리고 공항에 내려서 혹 숨을 쉴 수가 없으시면 스페인어로‘산소, 산소’라고 외치십시오. 산소통을 갖다 주면 산소호흡을 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래서 시계를 보고 공항에 내리기 전 1시간 전 쯤에 준비해 간 아스피린을 먹었습니다. 공항에 내려 입국 심사를 받을 때 까지 숨쉬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짐을 꺼내려고 힘을 쓰는데 숨이 콱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코피가 쏟아지고 …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 두통약, 소화제, 지사제, 고산증에 먹는 약 … 매일 매일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보기는 살면서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숨을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처음으로 회개했습니다. 숨을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처음 깨달았습니다. 볼리비아에 가보니 … 지금 우리들의 삶은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23,000번 정도 숨을 쉬고,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정도 뛰고, 혈액은 하루에 우리의 온 몸 구석 구석을 흐릅니다. 작은 상처가 나도 피가 나오는 것은 혈액이 구석 구석 흐르기 때문입니다. 혈액은 2억 7000만 km를 달린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에 약간만 차질이 생겨도 바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폐가 숨쉬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합니까? … 심장이 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합니까? 피가 돌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냥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순간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데 잊어버립니다. 숨을 잘 못 쉬는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산소호흡기를 사용합니다. 산소호흡기를 사용하는데 하루에 30만원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산소호흡기 없이 건강하게 숨쉬는 우리는 매일 30만원씩 벌면서 사는 것입니다. 숨쉬는 것만으로도 오늘 30만원 벌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값없이 주시는 것을 말하는데 … 생각해보면 우리가 아무런 값도 치루지 않고 우리가 받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모든 일에,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에 전기가 들어옵니까? 저는 6학년 때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오는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호롱불만 켜고 살았습니다. 전기를 처음 본 날 … 참 신기했습니다. 스위치 하나만 올리면 불이 들어오고 내리면 불이 꺼졌습니다. 여러분은 몇 살 때부터 전기의 혜택을 받고 사셨습니까? 여러분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이 세상에 전기 없이 사는 20억 명 보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집에 수돗물이 나옵니까? 이 세상에 수돗물은 고사하고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없어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10억의 인구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하루에 천 원 이상을 쓰며 사십니까? 교통비로, 간식비로 … 하루에 얼마나 쓰십니까? 여러분이 하루에 천 원 이상의 돈을 쓰고 산다면 이 세상에 천원도 없이 살아가는 12억의 인구보다 행복한 것입니다. >하루에 단 한 끼라도 따뜻하게 조리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영양실조로 고통 받으며 사는 세상의 8억 명을 생각하며 감사하며 사십시오. >은행에 돈이 얼마나 있습니까? 단돈 만원이라도 은행에 저금되어 있고, 주머니에 천원이라도 있고, 집에 동전이 굴러다녀 돼지 저금통에 저금을 하며 산다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 8% 안에 드는 부자입니다. 이 세상에는 은행에 단돈 1원도 없고, 주머니에 돈 몇푼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92%나 됩니다. <전 광 지음, 「평생감사」- 생명의 말씀사 발행 - pp.153~155. 참조> 행복, 감사를 따져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인 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계산하고 살아야 합니다. 기억하고 되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받은 은혜, 부모에게 받은 사랑 … 그것까지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받은 은혜와 축복을 셀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신16:10) “자원하여 감사를 표현하며”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가 받은 복을 계산하는 사람입니다. “자원 한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즐거움’으로 기꺼이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최선을 다하여’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과 감사로 예물을 표현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하는 모든 것은 다 “자원함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요받아서, 분위기 때문에, 체면 때문에 …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신명기 16장 1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신 16:10) 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도 감사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혹시 억지로 끌려 오셨습니까.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 교회에 와서 앉아만 있으면 일주일이 편안하기 때문에 오셨습니까? 부모의 강요에 의해서 끌려 오셨습니까? 끝나는 시간만 기다리고 계십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은 노예가 아닙니다. 어떻게 끌려옵니까? 억지로/강요받아 온 것이라고 생각해도 … 억지로/강요받아 온 것이라고 말해도 … 결국 자기 발로 온 것입니다. 마음이 없이 오셨더라도 … 요한 웨슬리목사님이 참석하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참석했던 올더스게잇 집회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역사를 체험했던 것처럼 오늘 예배 가운데 그런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드리는 예물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대로/받은 은혜대로 자원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누가 협박해서 헌금을 들고 왔습니까? 수 천/수억을 벌었어도 그것이 감사하며 넘치는 복이라 여기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복’만큼만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비록 적은 액수의 돈을 가졌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이 큰 것이라고 생각하면 자기 삶의 형편에서 크게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드린 많은 액수보다 과부가 드린 동전 두 개가 더 값있는 것으로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과부의 동전 두 개는 과부의 생활비 전부이기 때문에 … 모든 것을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가 오늘 여러분이 드리는 예물이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미소 지을 만한 것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삼상16:7) 여러분 자신도 다 압니다. 사람들은 몰라도 자기가 자기 자신을 압니다. 오늘 드리는 예배가 어떤 것인지, 오늘 드리는 예물이 어떤 것인지 시침 뚝 떼고 앉아 있어도 자기는 압니다. 즐거움이 넘침으로 맥추절의 마지막 의미는“즐거워 할찌니라.”입니다. 신명기 16장 11절에 보면 맥추절(칠칠절)을 지킬 것을 말씀하시면서,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찌니라”(신16:11)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절기는 그날이나 기억하고 보내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기는 그냥 지키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감사하며 그 감사로 인해 기쁨이 충만할 수 있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이루어 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지나가시다 우리 교회에 오셔서 저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참 신기하네요. 여긴 술집이 될 곳이지 교회가 될 곳이 아닌데’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교회가 서기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희생하며 섬기고, 자신의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이름 없이 빛없이 충성을 다한 성도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교회가 이렇게 서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의 비전과 열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두 사람의 헌신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이름 없이 빛없이 수고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다 기억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매년 맥추절을 지킬 때마다, 창립 기념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면서 … 기쁨으로 감사의 큰 찬송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억하고 그 감사를 헤아려 말로, 찬양으로, 물질로 표현하고 하나님의 미소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숨 쉴 수 있다면 …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없는 것/모자라는 것 … 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것/남은 것… 에 감사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도 감사할 것이 없다면 코를 한 번 막아 보십시오. 호흡 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입니다. 앞으로도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손 들고 찬양합니다.(460장 1절) ♬ 지금까지 지내온 것 ♬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임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나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둥교회가 서기 위하여 오늘까지 이름 없이 빛없이 기도하며 눈물 뿌려 헌신하며 최선을 다한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의 헌신을 기억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들의 가정을 평안케 하시고 일터가 안정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게 하시고 사명을 감당하는 기둥교회와 기둥교회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정성으로 하난ㅁ께 예물 드리려 합니다. 성도들의 손끝을 통해 드려지는 예물을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신일 목사
감사, 할렐루야!/ 시116:12-14/ 맥추감사주일설교/ 2003-07-03
감사, 할렐루야! 시116:12-14 오늘은 우리 교회가 맥추 감사 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맥추란 보리 수확을 뜻하는 것이므로 맥추 감사 주일이란 보리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주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 형편을 보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농촌에 사는 사람들도 보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 그래서 맥추 감사절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정신을 깊이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출 23:14-17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시겠습니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에 세 차례 반드시 감사 절기를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곧 맥추절과 유월절과 수장절입니다. 맥추절이란 밀 보리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라는 절기이고 ,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감사하여 지키라는 절기이며, 수장절이란 가을의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라는 절기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에 삼차 반드시 감사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며, 그 때에는 빈손으로 보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하나님께서 그러한 절기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 정신을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대부분은 보리 농사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들은 보리 농사를 짓지 아니한 것 자체가 벌써 하나님의 큰 축복인줄 알고 감사를 드려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옛날 보리밥을 얼마나 많이 먹었습니까? 제 할머니가 3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때 제 할머니의 소원은 하얀 쌀밥에 김치 가닥을 얹어서 잡수어 보시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아니 김일성이는 몇 해전까지 북한 주민들이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한국 사람들은 보리밥을 별미로 먹는 사람들을 빼놓고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이라도 모두 다 쌀밥을 먹습니다. \\\'桑田碧海\\\'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더니 참으로 세상이 많이 바뀐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삼차씩 꼭 감사 절기를 지켰는데, 우리들은 맥추 감사절과 추수 감사절을 지켜도 감사 절기가 일년에 두 번밖에 되지 않는 셈이니, 성경의 정신대로 맥추 감사절에 대한 시비를 그치고, 반년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절기로 지키면,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1. 우리 가정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만일 우리에게 가정이 없고 저마다 혼자 외돌토리로 산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적막하겠습니까? 가정마다 다소간에 문제들이 있긴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지난 6개월 동안 우리 가정들에 베풀어주신 은혜가 극진한 줄로 믿습니다 . 저희 가정의 경우 안식년을 맞아 부부가 함께 유럽 여행을 한 것이라든지, 딸아이가 잉태한 것이라든지, 큰아들이 무사히 제대를 한 것 등등 감사한 일들이 많습니다. 병마 질고 많고, 사고와 재난이 많은 이 세상에서 지난 6개월 동안 여러분의 가정이 무사했다면 오늘 이 시간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2.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봄에 안과 밖을 새롭게 단장을 했습니다. 제가 금번 유럽 여행을 하면서 찾아 간 성당들이 아마 수십 군데가 될 것 같습니다. 값비싼 대리석과 스탠드 글라스로 꾸며진 으리으리하고 거대한 성당들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성당들이 우중충하고 울긋 불긋하고 또 오래된 성당들인지라 새까맣게 이끼가 끼어서 별로 아름답다고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에 돌아와서 산뜻하고 밝고 깨끗한 예배당을 대하고 보니까, 아 참 우리 교회가 아름답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당 단장을 위하여 헌금해 주신 성도님들께 이 시간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몇 달 동안 부재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교역자님들과 장로님들께서 교회를 잘 돌아보시고, 또 모든 직분자들께서 저마다 제 위치에서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해 주셔서, 교회가 큰 풍파없이 평안한 것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어요. 며칠전 미국에 가 계시는 이영철 장로님 내외분과 전화 통화를 한 바 있습니다. 이 장로님에 이어 김연숙 권사님 하고 통화하는데 \\\'목사님 작은 교회도 문제 없는 교회가 없어요. 그러니 목사님 상심하지 마세요\\\'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은 송정 중앙 교회가 너무도 그리워진다고 했습니다. 김연숙 권사님이 나가시는 교회는 50명 미만의 신자들이 출석하는 교회로 아는데, 그러한 교회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오늘 지상의 교회는 문제없는 교회가 없는데, 우리 교회는 이만하면 평안한 교회라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대한 감사한 일들을 생각하면 이뿐이 아닙니다. 유럽의 여러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그 텅빈 교회당과 메마른 예배 의식을 보고서 제 일기에 \\\'복되도다. 한국 교회여, 복되도다.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이여!\\\' 라고 적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교회와 우리 송정 중앙 교회에는 살아 있는 말씀, 은혜로운 말씀들이 있습니다. 은혜로운 성가대의 찬양이 있어요. 제가 귀국한 다음날 수요 밤예배를 드리러 예배당에 들어오는데, 교사 강습회와 겹쳐서 성도들도 가득 앉아 있는데다가 수요 찬양팀의 뜨겁게 찬송하는 모습을 보고서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는지 아십니까? 그리 길지 않은 시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가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럽 교회에 무슨 수요 예배가 있습니까? 또 이번 금요 심야 기도회는 태풍 경보가 발령중이고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성도들로 벧엘 예배실이 거의 가득찬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었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예전에 제가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들입니다. 늘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하는 여러분들도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잘 모르실거에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송정 중앙 교회에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3. 우리 나라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국민들이 지난 6월 한 달 동안은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면서요? 왜 그렇습니까? 월드컵에서 16강에만 진출해도 대단한 성공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4강에까지 올라서 세계를 놀라게 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그래서 히딩크 감독과 축구 선수들이 모두 다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꼭 히딩크 감독이 명감독이고 우리 선수들의 체력이 강하고, 붉은 악마 응원단의 열렬한 응원 때문에 한국 선수단이 그토록 놀라운 쾌거를 이루었을까요? 저는 예전부터 붉은 악마라는 말이 심히 못마땅했지만, 귀국하여 막상 머리에 뿔달린 모습을 하고서 응원하는 소위 붉은 악마들의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은커녕 저주나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호한 데가 있어야 합니다. 잠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했고, 약 4:7에 \\\'마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붉은 악마를 자처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천벌을 받을 행위임이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나라로 하여금 4강에까지 오르게 하신 것은,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세계 선교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전 세계적으로 1만 명이 넘습니다. 그리하여 미국 다음에 세계 제 2위 선교 대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셀러 두 선교사님이 우리 한국에 들어온지 불과 117년만에, 이제 세계 만방에 1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97년 I M F 때 광주 교계의 어떤 지도자 한 분은 나라의 형편을 생각해서 선교 헌금도 줄이고 선교사도 철수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C B S를 통하여 이렇게 반박을 한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무엇을 보시고 I M F를 벗어나게 해주시겠는가? 정치 지도자들의 꼬락서니를 보시고 그러시겠는가? 혹은 조금 살 만하니까 흥청망청 허랑방탕하는 우리 민족을 보고서 그러시겠는가? 오직 한국 교회가 허리띠를 졸라매 가면서라도 선교에 열심일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I M F를 벗어나게 해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더욱 열심히 선교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한국 교회는 I M F 이전 8천명이던 선교사를 더욱 늘려서 1만 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고, 이를 귀하게 보신 우리 하나님께서 정쟁으로 하루로 편한 날이 없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빨리 I M F를 졸업하게 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봄 팔복 강해 설교를 하면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구절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이 3가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롬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광대무변함, 그것의 질서정연함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볼 수있습니다. 2)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을 하지 않았더면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불수가 있는데, 마치 낫을 놓고도 ㄱ자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처럼, 이 엄청난 우주와 놀라운 질서를 보고서도, 무슨 빅뱅설이니 해서 대폭발에 의해 현재의 우주가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향하여 주신 것이 바로 성경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다 더 분명하게 볼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3)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의 대주재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있다고 했습니다. 유교의 경전에도 \\\'順天者는 興하고 逆天者는 亡한다\\\'는 말이 있는 줄 압니다. 저 유명한 역사 학자 아놀드 토인비 교수도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사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는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사임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금번 유럽 여행을 할 때에 우리 한국 학생들을 만나기만 하면 민박 집에서나 관광지에서나 열차 안에서를 불문하고 이 사실을 열심히 주지시켰습니다. 유럽에 가서 직접 보면 서구 문명이 기독교 문명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독교 초기 교회를 그토록 박해하던 로마가 주후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로마는 1천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 기독교가 프랑스로 독일로 스페인이며 포르투갈로 건너갈 때 모두가 강대국의 지위에 올랐으며, 영국으로 건너갈 때 태양이 지지 않는 대영 제국을 건설하게 되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될 때 오늘날 미국은 초일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물사관과 무신론에 기초한 공산주의 소련은 하나님께서 쳐버리시니까 이제 3류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여행길에 만난 대학생들에게마다 이것을 깨우쳐 주면서, 우리 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게 된 원인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해외에 나가면 우리 나라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진 줄 아십니까? 유럽에서는 한국의 휴대폰이 가장 비싸게 팔린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로마의 바티칸 성당이나 대영 제국의 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면 한국어로 된 안내 책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만큼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증거이지요? 이 사진을 보세요. 스위스 루체른 시 인근에 있는 필라투스 산 정상에 있는 한국어로 된 환영 간판입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을 보세요. 이 사진은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후에 올라가는 등산 열차인데, 이 열차 안에서는 한국어로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세계 200여개국이 넘는 나라 중에서 영어 불어 독일어 일어 그리고 우리 한국어로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것을 듣고 정말 감격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우리 나라로 하여금 이토록 위상이 높아지도록 했습니까? 우리가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잘 만나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12년 독재 끝에 망명길에서 객사했으며, 그 후 장면 정부는 1년만에 무능한 정권으로 몰려 꾸데타에 의해 무너졌고,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개발에 크게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 집권한 전두환씨는 자기가 집권하고 보니까 나라 살림이 빈깡통이었다고 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군인 대통령들이 언제 경제를 공부한 사람들입니까? 김영삼 대통령 때는 결국 I M F 위기를 초래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지금 두 아들을 감옥에 보내 놓고 마음속으로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로부터서도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고 있는 실정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무엇이 이러한 정치 지도자들 밑에서도 우리 나라로 하여금 이만큼 발전하고 부흥케 한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 된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열심히 선교하는 한국 교회를 보시고,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보시고, 오늘 우리 나라를 이만큼 축복하셨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다음은 7월 3일자 국민 일보에 실린 기사입니다. 세계적 권위지인 미국의 \\\'비지니스위크\\\'는 지난 6월 24일자 호에서 21세기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선도하게 될 고부가가치 산업인 I. T(세계 정보 기술) 100대 기업중 1위 기업으로 삼성 전자를 선정했다고 합니다. 아주 충격적인 일이지요? 그밖에 한국 통신이 4위, SK 텔레콤이 9위, LG 텔레콤이 43위, 그리고 미국의 델 컴퓨터는 5위, 세계적인 I B M은 21위로 뒤쳐졌다고 하며, 경제 대국의 원동력 역할을 했던 일본의 캐논은 24위, 전자 분야에서 그토록 유명했던 일본의 소니, 도시바 등은 100권밖으로 밀려났다고 합니다. 한국의 인구 비율에 의한 컴퓨터 보급 대수, 휴대 전화 및 인터넷 사용이 세계 제 1위라는 사실도 모두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7월 4일자 동아 일보에 의하면 우리 나라 외환 보유고가 1124억 달러로 세계 제 4위라고도 합니다. 이번에 한국 축구가 강호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진출하는 광경을 베를린에서 지켜보았는데, 조금 후에 외국의 어린이들이 길거리에서 \\\'대-한민국\\\'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모두가 다 놀라운 일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럴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말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겠습니다. 히딩크가, 축구가 우리 나라를 이토록 자랑스런 나라로 만든 것이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축구가 결코 다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한 번도 아니고 다섯 번씩이나 우승을 한 나라인데, 오늘날 세계 어느 나라가 브라질을 존경합니까? 월드컵에서 다섯 번식이나 우승을 했으니 브라질이 경제 대국이라도 되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월드컵 4강의 환상에 사로잡혀서 대-한민국 만세만 외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신 하나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쳐야 할 것입니다. 감사, 할-렐루야! 감사, 그-리스도! 오늘 맥추 감사 주일로 지키면서 지난 6개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혜, 우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 특별히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 절기들을 지킬 것을 명하시면서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입술로만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여러분 모두 선교 헌금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를 노르웨이의 오슬로 역에서 지켜보았는데, 우리 나라가 이겼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혼자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스페인과의 경기는 딸아이 집에서 보는데 도무지 그냥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텔레비전을 끄며 우리 기도하고 보자 해 놓고서 \\\'하나님 우리 나라는 1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예요. 그러므로 우리 나라가 꼭 이기게 해주셔서 우리 선교사님들이 선교하는데 큰 도움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후 TV을 보았는데, 우리 나라가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기고 승리하였을 때 식구대로 울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대한민국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금번에 월드컵 경기를 관전한 우리 한국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더욱 열심히 성수 주일 하고, 온전한 십일조 생활도 하고, 더욱 열심히 전도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선교하는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최대 최고의 애국 애족이 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와 우리 민족이 계속해서 큰 축복을 받는 첩경임을 명심해서, 아브라함 같이 복의 근원이 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감사/ 시30:/ 맥추감사주일설교
감사 시30: 시편 30편의 설교를 위해 2004년 예배와 설교 핸드북의 맥추감사주일 설교가 본문 설교입니다. 그곳에 나와있는 예화 두가지 올립니다. 패트 쇼프내시 목사님은 작은 교회를 목회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몇 년전 한국에서 열리는 전도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LA공항에 나왔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서 대합실에 있다가 괴한이 설치해 놓은 폭탄에 의해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중상자가 되어 수술실에 들어갔다. 살수 있는 확률은 30%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회복이 빨리되어 치료효과가 나타나 비록 한쪽 다리를 잃게되었지만 생명을 허락 받았다. 어떤 사람이 그분에게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가 하고 물었다. 그는 그대 일허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하나님ㅇ르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폭탄이 있는 것도 아셨고 제가 거기 있다는 것도 아셨습니다. 폭탄이 폭팔하여 나느 한쪽 다리를 잃어버렸지만 선하신 한나은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또 이 이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더욱 영혼을 사랑함으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로 목회에 큰 기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이 일로 생명에 대해 진정으로 증거할 수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승리의 삶을 넉넉히 살 수있습니다. 1618년부터 30년 동안이나 유럽 대륙을 휩쓸면서 초토화 시켰던 30년 전쟁이 있었다. 고통의 시간, 죽어가면서, 혹은 가족 들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햇던 아픔의 시간에 원망과 불평, 자학과 절망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 같은데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은 무서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은혜로운 찬송들이 쏟아져 나왓다. 17세기 말 으악가 환켄 나우어가 30년 동안 경건한 성도들이 입을 통하여 불리어진 찬송가들을 수집해 보았더니 32,712곡이나 되었다. 몇 년후 음악가 웨첼이 다시 수집하고 정리해 본 결과 55.500곡으로 늘어났다. 30년간의 처절한 전쟁가운데서 어떻게 그들이 찬양할 수있었을 까 평화로울 때 부르지 못했던 찬송이 성들의 입을 통하여 샘솓듯이 쏟아져 나왓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그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잠잠할 수없었을 것이다.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까?/ 출23:14-16/ 맥추감사주일설교/ 2009-07-05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까? 출23:14-16 출 23:14)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출 23: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오늘은 이렇게 인사합니다. 감사가 항상 충만하세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왜 절기를 정하셔서 예배하도록 하셨을까요? 우리 인간들은 심각할 정도로 건망증 환자라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건망증이냐구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건망증이지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어려울 때 그렇게 간절하게 찾고 찾았던 하나님, 해결해 주시고 나면 ‘언제 내가 그런 일이 있었느냐?’ 이 정도로 우리는 건망증이 심합니다. 그렇다고 매일 건망증이 심하냐? 그건 또 아니죠? 어려움이 또 다시 찾아오면 그때는 또 하나님의 기억이 정확히 살아납니다. 그래서 눈물 콧물 흘리며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이게 우리 모습이예요.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 그러니까 하나님이 왜 절기를 정하셨을까요? “네 기분에 따라 어려울 땐 찾고 평안할 땐 잊어버리고 네 마음대로 나를 찾았다 잊었다 하지 말고 일 년 내내 너의 아버지며 창조자인 나를 기억하고 감사하라!”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진정한 사랑의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것을 더 확장해서 뭐라고 선포했지요?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할렐루야! 어떤 일이 닥쳐도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어떤 상황 아래서도 감사하며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숙한 성도는 어떤 성도입니까?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그 감사를 신실하게 올려드리는 성도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은 우리를 향해 다시 한 번 “너의 익은 처음 것, 첫 것을 가지고 나를 예배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출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출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신 26: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하나님이 명하시는 감사는 열심히 농사하여 거둬들인 열매 중에 첫 번 것, 첫 열매, 첫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유독 첫 열매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데 왜 이렇게 처음 것이 하나님께는 중요할까요? 처음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첫 열매는 내것이라고 그렇게 구별하셨기 때문에 다른 것 보다도 유독 처음 익은 열매들을 하나님은 관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이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많은 것을 드렸어도 첫 것을 소홀히 했다면 그 드린 것 모두가 다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다보면 이해하기에 난해한 구절들이 참 많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가인과 아벨의 제사’죠. 성경을 자세히 읽어봐도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잘 보세요 창 4:3-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 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잘 보세요 또 읽어보지만 가인은 농사지은 곡식을 가져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동생 아벨은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하나님은 곡식보다도 고기를 좋아하시는 분인 것 같다. 그래서 양을 잡아 제사 드린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고 곡식을 드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 것이다.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아니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이 구절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아벨이 드린 제물은 어떤 거예요? 양인데 어떤 양이었어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할렐루야! 첫 번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첫 것으로 아벨은 하나님께 예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도 보세요 자기가 거둔 곡식의 열매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는데 문제가 뭡니가? 어디를 봐도 곡식의 첫 열매라는 구절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 해석이 가능하지요?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가 열심히 목양한 양 중에서 처음 얻은 첫 새끼를 구별하여 드렸더니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고, 가인은 열심히 농사지은 곡식으로 제물을 드리기는 드렸으나 첫 열매가 아닌 구별되지 않은 곡식을 드렸으므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만큼 하나님은 첫 것의 의미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도 이것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그 소득 중에서 십의 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면서 애쓰고 수고했는데도 우리의 주머니가 아직도 여전히 넉넉지 못하고 항상 부족한 게 더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첫 것을 드리는데 소홀하지는 않았는지요? 이것을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무조건 우리의 모든 소산의 첫 것을 하나님께 구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물질도 처음에 거둔 것, 일터에서 처음 들어온 수입을 한 번 구별해 보세요. 그리고 너무 중요한 것, 우리의 시간도 첫 시간을 꼭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루의 일과 중에 어느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일까요? 예, 하루의 첫 시간, 처음 시간,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는 언제 예배? 새벽 시간의 예배입니다. 할렐루야! 하루의 삶이 시작되는 바로 그 첫 시간에 가장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 우리의 몸을 내어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주시는 말씀을 따라 하루 종일 그 말씀대로 온몸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겠다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새벽의 첫 시간, 이 첫 시간의 예배가 살아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예배가 하나님 앞에는 너무나 소중한 제물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멀어서 예인의 성전까지 새벽에 나오실 수 없는 분들은 가까이에 있는 성전을 찾아가세요. 그래서 꼭 하루의 첫 시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첫 시간을 깨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즘 우리 교회 새벽 시간에 특히 2부 새벽예배 시간에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누가 그랬죠? 새벽에 모이는 일군의 수는 그 교회 교인의 십일조라고... 우리가 이 공식대로 맞춰보면 적어도 우리 예인의 교회 주일낮예배 모이는 인원이 500명은 넘어야 됩니다. 왜요? 새벽에 나오는 인원이 50 명 쯤 되니까 십일조가 50명이니까 주일 낮예배에 몇 명? 500 명이 모여야 맞는 거지요? 신속하게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첫 안식일을 맞은 첫날에 첫 곡식을 가지고 초실절을 지낸 후에 그날로부터 칠일씩 일곱 번이 지난 날, 즉 49일이 지난 바로 그날을 칠칠절, 맥추절, 오순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지내고 초실절의 제사를 드렸던 바로 그 시간에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으로 들어가셨던 예수님이 그 안식일이 지난 첫 새벽에 부활하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 시간이 어떤 시간이냐?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초실절의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과 초실절의 제사는 아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뭐라고 가르쳐주십니까? ‘주님이 우리 부활의 첫 열매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첫 열매시고 부활하신 자의 첫 열매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초실절의 열매 이후에 거둔 곡식들을 49일이 되는 날에 하나님께 나와 드린 것이 맥추절의 예배였다면,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맥추절은 어떤 의미의 예배여야 합니까? 2009년 1월 1일, 한해를 새 꿈을 가지고 다짐하며 출발해서 첫 은혜의 열매를 거둔 것과 지금까지 6개월간 계속해서 부어주신 열매들, 잘 간직해 두었던 그 은혜의 예물들을 구체적으로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와 제사를 드리는 날이 바로 오늘 맥추절 바로 그날이라면,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 맥추절의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감사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1. 나의 삶을 지금 오늘 이 시간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에벤에셀의 감사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백성의 대군이 쳐들어와서 꼼짝할 수 없을 때 온 백성들이 사무엘의 인도 하에 미스바에 나와 하나님을 향해 온 백성이 부르짖고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완전히 쳐서 승리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가 돌을 취하여 세우며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외쳤던 이 고백을 오늘 전반기의 감사를 드리며 예배하는 우리 모든 예인들 모두가 똑같은 고백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축원합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정진홍 씨가 또 의미 있는 글을 썼더군요. 요즘 국회의원들의 잘못으로 인해 비정규직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좌절하는 것에 대한 따끔한 지적의 글입니다. 한 번 들어보세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할 일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그만큼 일은 소중하다. 아니 일은 생명이다. 할 일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죽은 것이다. 일은 생계 수단 그 이상이다. 일이 없으면 삶이 없는 것이다. 결국 일을 빼앗는 것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국회 안에서의 논란과 파행은 점입가경이다. 지금도 정신 못 차린 국회는 너 잘했니, 나 잘했다 하고 갑론을박만 하고 있다. 정작 국회의원 스스로가 진짜 비정규직이 돼 봐야 정신 좀 차리려나. 더 이상 생명 같은 일을 갖고 장난치지는 마라. 언젠가는 국회 그 자체가 비정규직의 설움을 맛보게 될 터이니......” 여러분! 이루어 놓는 것은 어느 것 하나도 변변한 게 없이 그저 문제가 생기면 죽어라 머리 싸매고 싸움만 해대고 있는 저 국회의원들, 능률이 전혀 오르지 않는 싸움만 계속하는 저들에게서 잠시 동안이라도 그 일자리를 뺏어서 한 번이라도 비정규직들이 갖는 서러움이 다급함이 어떤 것인가를 직접 맛보아 철들게 하고 그 자리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비정규직 직원들을 갖다 놓으면 어떨까요?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비정규직만도 못한 사람들, 그러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연봉은 엄청나게 축을내는 사람들, 제대로 할 일 못하는 국회는 해산해 버리고 그 엄청난 연봉으로 일자리 없는 청년들의 일자리나 많이 만들어주면 어떻겠냐? 제안을 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든 국민들이 국회를 바라보며 다같이 느끼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진홍 씨가 지적하고 있는 게 무엇입니까? ‘일자리가 곧 우리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일, 노동은 하나님이 주시는 신성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일 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면 그 소득이 많든지 적든지를 떠나서 지금 같은 어려운 때에 일할 수 있는 일감을 주신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터가 있고 일감이 있다는 것, 이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워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때에 일할 수 있는 나의 일자리가 있다면 이것은 정말 우리의 중심으로부터 감사해야 할 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늘 기억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 없고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줄 믿습니다. 또 하나, 맥추절의 예배를 드리는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두 번째 감사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2. 특별히 2009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예인의 가족들을 위해 교회를 새롭게 하신 이 은혜에 우리는 또 가장 큰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련을 겪어온 은현가족들의 아픈 상처들을 치유하시려는 하나님, 그리고 이단의 영으로 혼란해진 교회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예인의 교회를 그 도구로 택하시고 하나가 되게 하셔서 교회를 살려내시고 새롭게 하신 하나님, 두 교회가 합병하여 6개월이 지나는 동안에 지금까지 서로 별탈없이 서로 사랑하며 격려하며 위로를 주고받으며 한 가족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신실한 한 몸의 교회로 세워가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 최고의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에 우리 은현가족들의 많은 상처들, 예배의 말씀과 찬양을 통해서 치유해 주시고 목양을 통해 치유받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모두 다 뜨거운 감사를 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난주에 한 집사님 가정을 심방했는데 그런 고백을 하시더라구요 “예배에 나올 때마다 너무 편안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요 우리 모두의 환경과 사정은 사실 큰 기도가 필요한 환경인데도 그래도 예배에 나올 때마다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새 힘을 부어주셨습니다. 용기도 주셨습니다. 비전도 새롭게 부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치유를 베푸시고 새롭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또 다시 가장 큰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신실한 감사를 큰 박수로 하나님께 열렬히 올려 드립시다! 할렐루야! 이제 마지막으로 맥추절의 예배를 드리는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감사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3.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너무 소중한 감사, 이스라엘 회복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하신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비밀에 대해서 눈이 감겨져 있는데,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눈이 감겨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 소중한 사역에 우리 예인들을 아름다운 초실절 첫 열매로 쓰시기 위해 눈을 뜨게 하시는 새 역사를 행하신 줄 믿습니다. 지난 수난주간 새벽과 부활주일,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3개월 동안 전교인이 깨어서 이스라엘 회복을 갈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심정을 듣게 하셨고 우리 모든 예인들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또 토요일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가?’ 이 세미나를 하면서 청년들과 선교팀장님을 비롯한 교우들이 먼저 리더훈련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정 이스라엘의 회복이 온 이방의 구원의 완성과 맞물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지금도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들을 다시 이스라엘 본토의 땅으로 귀환시키기 위해 이방의 깨어있는 일군들을 지금 이 역사 속에서 부르고 계시며, 그 중에 한 도구로 우리 예인의 교회도 불러 주신 하나님, 이 알리야 사역, 거룩한 이 사역에 우리 예인들이 비록 이제라도 부름 받아 마중물의 열매로 헌신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터치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이 땅에 수많은 대형교회들이 즐비하지만 이 알리야의 중요한 사역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 예인의 교회 위에는 이 은총을 먼저 부어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정말 큰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지금 이 시간에 하나님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시는 일에 우리 눈을 뜨게 하셨고 그 일을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우리 모두의 마음에 기름 부어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박수로 올려드립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감사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우리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항상 넘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입니다. 여러분! 내가 감사가 부족한 자라면 왜 그럴까?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감사가 부족한 것은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향한 근본적인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 우리 모두의 속에서 다시 한 번 새롭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살아 불같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베푸신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도 진정한 감사의 고백이 내 마음에서 내 입술에서 내 몸에서 하나님을 향해 들려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매일 나의 첫 시간, 새벽을 내 창조자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몸을 깨우고 하루의 새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깨워 나아가는 우리 모든 예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러면 우리의 감사가 성숙해질 것이고 그 성숙한 감사를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이제 저는 설교를 마치면서 감사가 아주 무르익은 한 분, 감사가 자라고 자라서 아주 성숙한 감사의 고백을 드리고 있는 한 분의 이야기를 드리면서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 교단 교회 중에 안산에 계신 훌륭한 목사님이신데 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감사를 고백한 시가 있어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나는 좋다 내가 암 병이라면 모든 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좋다. 내가 치료된다면 그들에게 또한 희망이 되어 좋다. 치료되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어 좋다. 내가 암 병이 아니라면 모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근심되지 않아 좋다. 나는 이 일로 내 인생을 돌아보며 단 한 번 위대한 결단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음을 감사할 수 있어 나는 언제나 이래도 저래도 좋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예인의 교우 여러분! 이 맥추감사주일에 여러분에게서 성숙한 감사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쁜 일을 주셔도 반대로 어려움을 주셔도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나와 함께 주님이 거하시는 그 사랑만으로 최고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모든 예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침 안개 눈앞 가리듯’ 찬양과 통성기도> 최성욱 목사(서울 예인교회)
감사가 일으킨 기적/ 행16:16-34
감사가 일으킨 기적 행16:16-34 I. 본문 설명 1. 소아시아 지방에서 전도하던 바울과 실라는 점치는 한 여자 종(처녀 도사)을 만났다. 신통력이 있던 이 여인 덕분에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 바울과 실라를 만난 이 여인은 며칠 동안 쫓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바울과 실라야말로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전하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2.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 여인의 인생이 가련하여, 그 여인에게 있던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게 하였다. 우리 식으로 하면 무병을 앓고 무당 노릇을 하던 여인을 정상적인 건강한 여인으로 고쳐 놓은 것이다. 3. 이것은 모두가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이 여인이 돈을 잘 벌었고, 그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정말 기뻐하고 축하해야 할 관계가 오히려 건강해진 것을 싫어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돈과 같은 이해관계로 이루어질 때, 인간의 따뜻한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인간 관계의 모든 것이 돈으로 맺어지고 표현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체제다. 4. 갑자기 소득 수단을 잃은 이들은 바울과 실라에게 화살을 돌렸다.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관청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엉뚱한 죄목으로 선동했다. 이상한 풍습을 전하여 성을 소란하게 한다는 죄목이다. 5.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많이 때렸다 - 39 대 씩 맞았을 것이다. 가죽 채찍에 쇠·뼛조각 달린 것으로 39대씩 맞으면 거의 기절할 정도로 아프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낭자했을 것이다. 감옥의 저 안쪽에 가두고 발에는 차꼬를 채웠다. 그리고 간수에게 단단히 일렀다 ; \"든든히 지켜라!\" 6. 그런데, 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며 찬송하니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 문이 다 열렸다. 자다가 지진 소리에 놀라 달려온 간수는 옥문들이 다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간 줄로 생각하고는 이유야 어찌되었든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이기에 자살하려고 했다. 그런데, 감옥 저 깊은 곳에서 바울이 소리를 질렀다. ;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는 다 여기 있다.\" 당연히 죄수들이 도망갔을 것이라 여겼던 간수가 바울을 보고서는 너무 감동하여 그 자리에 엎드린다. (전도는 무언가 감동을 시켜야 가능하다) 7. 어떻게 구원을 얻느냐고 묻는 간수에게 바울은 확신에 차 이렇게 말한다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상처를 치료하고 음식을 나눈 다음 온 집안이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었다. 8. 기적이다. 낯선 이방 지역에서 새로운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별로 열매가 없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시련의 과정으로 통해서 확실하게 복음의 씨앗을 심게 하셨다. 만약 이들이 그냥 말로만 듣고 이해하여 예수를 믿었다면? 온 집안이 복음을 영접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조금 믿다가 그만두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으려던 목숨을 구해준 복음이었기에 온 집안이 신앙에 이를 수 있었고, 이 가정은 아마도 소아시아 지방의 선교에 전초 기지가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정말 인간의 계획과 계산을 뛰어넘어 계신다. II. 감사가 일궈낸 기적 1. 이 놀랍고도 역사적인 사건의 전환점 : 어둠과 패배가 환희와 승리로 결말지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엇인가? 그비밀은 바로 저 깊은 감옥 속에서, 감옥보다 더 어두은 절망의 현실에서 바울과 실라가 드린 기도와 찬양 속에 있다. 2. 보통은 이 상황에서 원망과 불평이 일어나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데 왜 하나님 우리에게 시련을 주십니까? 하고 대항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 이유룰 알 수 없다 하며 아픈 상처 쓸어 내리며, 축 쳐져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세상의 상식을 뒤집어엎었다. 일반적인 행태를 전면 부정했다. 실망과 원망에 놓여 있어야 할 바울은 쓰린 상처와 어둠보다 더 깊은 절망 위에서 오히려 감사를 드렸다. 본문에 감사 드렸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기도와 찬미의 내용이 신세타령이나 원망은 아니었을 것이다. 찬양은 곡조를 붙인 감사의 기도다. 바울과 실라는 감사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감사함으로써, 본래 자기들이 목표했던 선교를 수행할 수가 있었다. III. 순서의 문제 1. 보통 사람들은 감사의 조건이 먼저 있고,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 순서라고 한다. 오늘의 사건으로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린 여자를 건강하게 고쳐주면,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고맙다고 하여 복음을 믿어서 소아시아 전체의 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기지가 되었을 때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하는 것이다. 2.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 감사의 찬양이 나오는가? 한숨만 나오지... 그러나, 바울은 기도하며 찬양을 드렸다. 3.기독교의 법칙 : 감사한 일이 생겨서 감사한다는 일반적인 도식을 거꾸로 만든다. 감사함으로써 새로운 여건을 만든다 ; 기적이다. 감사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다. 먼저 감사하라 -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을 주실 것이다. 일반 상식을 뒤집고 순서를 바꾸는 것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감사하는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총을 내리신다. 이것이 기적이다. 그러므로, 감사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다. IV. 1. 언제 지나왔는지 모르게 6개월이 지났다. 이렇게 저렇게 왔던 교인들은 그대로 열매를 다 거두지 못하고 여러 사람들이 정착에 실패했다. 교회 운영의 체계가 덜 잡혀있고, 신앙적인 성숙도 아직 못 미치고 있다. 사회 선교도 아직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우리 각 가정이 아직도 물질, 건강 같은 문제 때문에 어려움 속에 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 앞에서 죄송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2. 그러나, 곰곰이 돌아보면 감사하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는 가능했겠는가? 우리 곁에서 영원히 떠난 사람, 고통과 상처로 괴로워하는 사람, 절망의 어둔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지만,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자. 바울과 실라의 기적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누구나 다시 경험하는 기적이다. 3. 지나온 반년을 돌아보며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후반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감사를 드리자. 감사는 기적을 잉태하고 있는 생명의 자루다.
감사가 있는 맥추절/ 출23:14-17/ 2004-07-03
감사가 있는 맥추절 출23:14-17 미국의 LA는 사막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메마른 광야의 기후를 체험했습니다. 한낮에 내리쏟아지는 태양 빛은 우리나라의 여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건조하고 뜨겁습니다. 그러나 나무그늘 아래나 집안에 들어가면 제법 시원합니다. 반면에 밤에는 두툼한 이불을 덥고 자야할 만큼 기온이 서늘합니다. 이렇게 사막의 하루는 일교차는 대단히 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광야에서 생활을 했지만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몸소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이 일이 반복이 되다보니 언제부터인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나타나도 무감각해졌고 감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똑같은 은혜와 똑같은 축복도 시간이 지나면 당연하게 여겨지고, 나중에는 감사하는 마음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나온 과거와 비교해 볼 때 너무나 잘 먹고 잘살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 6.25시대 때를 기억합니까? 지금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삽니까?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광야에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그들에게 저주가 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면 대단하였습니다. 만나를 주셨고 메추라기를 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주셨고 신발과 의복이 헤어지지 않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오랫동안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지라 전연 이들은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불평 불만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감사해야 할 일을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불평하기 때문에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불평에 익숙해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적어도 1년에 세 번씩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감사의 예물을 드리며 정해진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여! 우리에게도 이 같이 감사에 해이해진 우리에게 감사절기가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를 생각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바울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감사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영적으로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을 때 나오는 생활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하기 전에 두 가지 전제를 두었던 것입니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정신적인 면에서 기뻐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며 정신 관리는 쉬지 않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항상 나의 마음에 기쁨이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기쁨이 없다고 하면 기도함으로 마음에 기쁨을 찾는 성도가 될 때 범사에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은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행위입니다. [본문 말씀]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적인 삶의 현실로 볼 때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절기의 영적인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성민에게 그 자손 대대로 이 절기를 지키라고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읽어 드린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 년에 3차씩 삼대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이 세 절기를 지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에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Ⅰ. 첫 열매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여호수아 5:12) 이 날에 가나안의 첫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것을 가지고 나왔습니다(출애굽기 12:36). 그 모든 것은 성막을 세우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가나안에 입국하기까지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고센에서 발행하여 가나안으로 가는데 유아와 노년이 행군해도 한 달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의 양식을 준비했습니다(출애굽기 16:1-5). 그런데 그들의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한 달이면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 40년이 걸렸으니 그러면 그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무엇을 먹고살았는가?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고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가 언제 그쳤는가?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에서 나는 소산을 먹는 그 다음날에 만나가 그친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 주심에 감사합시다. 가나안은 그들의 힘으로 정복한 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약속하신 언약의 땅입니다. 그 땅이 그렇게 토질이 좋은 옥토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언약의 백성이 언약의 땅에서 언약을 붙들고 살 때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어서 결실케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간 이들에게 만나 주시어 먹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에 들어가 처음으로 농사할 때 이들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어 풍성한 수확으로 양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쁨과 환희와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사람이란 어떤 이을 할 때 그 일이 성취되고 여래를 거두는 일이 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농사하여 처음으로 수확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기쁘고 즐거움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무엇을 발명이나 하는 것처럼 기쁘고 즐거웠을 것입니다. 이 같은 기쁨이 저와 여려 분들에게 재현되는 기쁨을 가지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비록 불경기요 불황이요 어려운 때라도 하나님의 언약하신 언약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아 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의 손으로 수고한대로 얻는 복을 주십니다. 여기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 같은 기쁨이 항상 나의 삶 속에 재현되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실감나는 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Ⅱ. 언약의 말씀 주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애굽기 20:1-2)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탈출하여 3월에 시내 산에 도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월에 고센을 출발해서 홍해를 건너서 3월에 시내 산에 도착했습니다(출애굽기 19:1). 하나님은 그들이 이곳에서 장기간 머물도록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두 돌 판에 새긴 언약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때가 바로 유대인들의 맥추절기입니다. 그들은 이전에 애굽에서 그 땅에 나는 소산을 먹으면서 바로의 명령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광야로 부르신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해서 마시게 하시고 언약의 계시를 주어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서 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받은 두 돌파의 십계명은 언약에 첫 열매입니다. 그 이전에는 하나님이 특별한 섭리로 족장들을 통해서 구전으로 말씀하셨으나 시내 산 언약이후로 문자로 기록된 성문 계시로 자기의 뜻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받은 돌판 언약은 성문계시의 첫 열매입니다. 말씀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게 인생에게 베푸신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비밀한 뜻을 성경을 통하여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를 발견할 수 없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는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의 책이요, 구원의 책입니다. 모세가 받은 언약의 계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오심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이 성경을 통해 예수를 만난 것이 최고의 은총입니다. 이 은혜에 깊이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두 돌 판으로 된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주심을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맥추 감사절기입니다. 성경은 법입니다. 이 세상에 법이 없다면 얼마나 개판인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질서가 없고 무질서 속에 인생들은 방황하며 어디로 갈지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유리하게 될 것은 당연합니다. 말씀은 하나의 이정표요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말씀이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어느 청년의 이야기 어느 청년이 목사님과 함께 차를 타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 청년은 “목사님 저는 십계명을 싫어합니다. 십계명에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많습니까?”하면서 십계명에 대한 저항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대답할까하고 생각하는데 바로 앞에서 이정표가 나타났습니다. “동쪽은 O O 이고, 서쪽은 O O이다”라는 이정표를 보고 목사님은 자기들이 가야 할 목적지와는 반대로 차를 꺾었습니다. 깜짝 놀란 청년은 목사님께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라고 소리쳤습니다. 목사님은 “이 사람아, 내 마 음대로 가면 되지 뭘 그래”하며 암시적인 대답을 주었습니다. 자 빨간 신호, 파란 신호가 귀찮게 느껴집니까? 누구를 위한 신호입니까? 법이 누구를 위해서 있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 때문에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 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완성하셨습니다. Ⅲ. 성령 강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성령강림하고 상당한 관계가 있습니다. 바로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한 것은 맥추절에 임한 것으로서 불리해야 불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맥추절을 기념하는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주님은 유월절에 갈보리에서 구원사역을 완성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사십일 간 친히 나타내 보이시고 승천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승천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도행전 1:4-5)고 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과 그를 따랐던 무리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로 「몇 날이 못 되어」 곧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거기에 모인 모든 무리들이 성령에 충만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날에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무리들은 각기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의 지상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교회의 탄생은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당신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운행하심으로 천지가 창조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당신에게 성령 부어 주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맥추절이 없으면 성령 강림도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도 천지 창조도 또한 인간에게 구원을 적용하는 성령의 역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이 맥추감사 절기를 지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의 작품 중에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거리의 술에 만취한 청년에게 당신은 왜 술에 취해서 이렇게 세월을 허송하는가? 라고 묻자 그가 말하기를 나는 본래 절뚝발이였는데 당신이 고쳐 주셔서 건강하게 되었지만 내 마음에 맞는 일자리가 없어서 방황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지나가다가 폭력을 휘두르는 한 사람을 만나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묻자 나는 본래 소경이었는데 당신이 고쳐 주셔서 눈을 뜨게 되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세상에 아니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눈꼴사나운 것 때려 부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지나가다가 창녀 하나를 만나 물으니 나는 더러운 죄인이었는데 당신이 용서해 주어서 자유 함을 얻었는데 살다가 보니 너무 처량하고 따분해서 다시 이 생활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신앙 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성령 충만하여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감사하면서 삽시다.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 화를 내면 아이가 소화불량을 일으키고 설사를 하게 됩니다.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식물에도 부드럽고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음악을 들리는 쪽으로 가지를 뻗어 자란다고 합니다. 반면에 시끄럽고 짜증스러운 음악을 들려주면 그 반대방향으로 자라다가 시들어 죽게 됩니다. 감사하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감사는 하늘의 보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모든 역사는 감사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맥추절에 구원받은 은총에 감사하고, 약속의 말씀 주심에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 주심에 감사하고, 성령 부어 주심에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아멘. 맺는 말 감사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하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일본의 카와까미 카이찌(川上嘉一)라는 해군 퇴역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타인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으로 그의 가슴에는 언제나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신마비로 인하여 몸이 굳어지는 무서운 병이 걸렸습니다. 그를 치료하는 주치의 「후지따」가 권면하기를 「당신은 매일 “감사합니다.” 란 말을 하루에 만 번씩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억지로라도 감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의 아들이 감 두 개를 가져다주는 것을 받으면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손을 내어 밀었을 때 굳어진 병이 치료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문화인의 공통된 인사가 「감사합니다.」(Thank you)란 말입니다. 감사가 넘칠 때 얼굴에 미소가 충만하고 웃음이 만발합니다. 당신도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면 오늘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1) 맥추절은 가나안에서 첫 농사하여 첫 이삭을 수확하는 날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3) 맥추절에 성령 충만한 놀라운 기적적인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 같은 것들을 감사하는 절기가 바로 맥추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의미 있게 지켜지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행복의 분량입니다/창41:46-52
감사가 행복의 분량입니다/창41:46-52 오늘은 맥추 감사절(麥秋感謝節)입니다. 맥추절(麥秋節)은 보리맥... 결실 추로써... 보리를 수확하여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 이니라>>(출23:16). 그러면 우리는 보리를 심지 않으니... 안 지켜도 되겠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보리농사를 짓고 살 때 보다... 우리는 더 큰 은혜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묵상해보면... 하나님이 주신 <<감사거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습관적으로 늘어놓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삶은 예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요로워졌습니다. 생활여건도 많이 향상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감사할줄 모르는 <<감사불감증>>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를 주위에 퍼뜨려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살아가므로... 과연 그리스도인의 삶의 질이 <<탁월하고 우수하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합니까? 아멘??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요?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모습 이대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언제나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많은 것을 가졌어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가진 것이 적다할지라도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래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도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감사가 곧 행복입니다. 아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약시대의 인물... 요셉은 <<감사가 곧 행복이다>>는 것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의 젊은 시절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요셉은 증오와 배신과 상처로 뒤범벅이 된 암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요셉은 정신건강이 탁월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어두운 환경에서도 <<균형 잡힌 전인건강을 유지한 사람입니다>> 요셉은 그 참혹한 <<단련의 과정을 잘 견디고 드디어>> 삼 십 세에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결혼을 하여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첫 아들의 이름은 므낫세... 둘째 아들의 이름은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아들들의 이름의 뜻이 참 중요합니다. 요셉의 신앙고백을 잘 표명하고 있습니다. 므낫세의 이름의 뜻은 <<잊어버리게 한다>> 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온갖 고난과 아버지 집 생각을 다 잊어버리게 하셨다>>(51절) 요셉은 인생의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을 다 치유 받습니다. 아마도 요셉은 이제 막 산고의 고통에서 해방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동시에 초롱초롱 빛나는 아들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맞아... 하나님께서 지난날의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신 위로의 선물이야!>> 그래서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 <<잊음>> 이라고 지었습니다. 얼마나 멋진 해석인가요? 기독교 심리학자 칼 메닝거는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영적해석 능력이 필요합니다. 경기도의 어떤 작은 교회에 참 훌륭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예배는 빠지는 법이 없고... 교회를 모범적으로 섬기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날 주일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어떻게 된 것인지... 다른 분에게 물었습니다. 이 분이 토요일에 교회당 청소를 하다가 계단에서 굴러서...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목사님이 알면 <<주일 설교준비>>에 지장을 준다고 알리지도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집사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에 병문안을 가셨습니다. 집사님! 예배당 청소를 하다... 이렇게 다쳐서 어떻게 합니까?? 집사님이 목사님! 제가 교회당 청소를 하다 다쳤으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다른 일하다가도 다칠 수 있는데... 교회당 청소를 하다 다쳤으니... 오히려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감사헌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참!! 대단히 분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교회 청소를 하다 다쳤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꿈보다 해몽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사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한번은 시험에 다 100점을 맞았는데... 한 과목이 80점이라. 아버지가 왜 <<이 과목은 80점 밖에 못 맞았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런데 어떤 집 아이는 시험을 쳤는데... 30점, 40점, 45점... 딱 한 과목만 60점이었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야, 이놈아! 왜 너는 한 과목에만 집중을 해! 골고루 잘해야지!>> 저희 결혼 주례를 했던 목사님! 주례말씀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말씀이 있어요. <<인생의 바다에는 암초가 많다>> 그래서 부부가 힘을 합쳐... 슬기롭게 인생의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바다에는 때때로 고난의 파도가 일어납니다. 아픔의 비바람도 불어오고요. 나를 삼켜 버릴 것 만 같은 고난의 태풍도 불어옵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검은 먹구름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결국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해석대로 됩니다... 매사에 해석을 잘 하세요!! 요셉은 둘째 아들을 낳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두 배로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52절) 요셉은 자신의 <<평상시 신앙적 토대를 액면 그대로>> 표명해주고 있습니다. 지난날의 고통보다 훨씬 더 좋고...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아들 므낫세는 <<고난을 잊게 해주신다는 뜻이요>>... 둘째 아들 에브라임은 <<풍성하게 하다는>> <<감사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큰 아들 므낫세가 <<과거의 치유라면>>... 작은 아들 에브라임은 <<미래의 보상입니다>> 얼마나 멋진 하모니입니까? 이런 멋진 공식이 있습니다. <<가장 쉬운 수학은 내가 받은 상처를 계산하는 것이요>> <<가장 어려운 수학은 내가 받은 은혜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잊음과... 바람의 감사>>...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회복과 희망의 신앙입니다>> 여러분에게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통이 있나요?? 낙담하지 마세요!! 식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고통을 많이 겪은 단풍나무일수록... 그 잎이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낙심의 요소가 아니라... 더 큰 승리와 승화의 기폭제가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지난 십 수 년 동안 절망의 구덩이에 빠지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며... 선을 베푼 사람들한테도 배신을 당하고...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끝없는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난 십 수 년 동안 희비의 쌍곡선이 <<예측할 수 없게 교차되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낙심했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요셉은 단 한번도 좌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매>> 하나님은 요셉을 단련을 완성하시고... 이집트의 지도자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크게 쓰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고난이 끝나고... 눈물이 끝나고... 회복의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시105:20-22).축복의 날이 올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역경은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경을 이긴 사람들은 오래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림의 때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때가 차야 열매가 익고 거둡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그러니 더욱 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세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시118:6).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주에 계시니(시118:7).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 전능의 하나님이 내 편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붙들고... 도와주시니 힘을 내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우리는 지난날의 나쁜 기억들로 인해 패배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참 간단합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오늘의 축복과 은총에 초점을 맞추어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 지난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다 치유 받고...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악몽 같았던 지난날들...모진 고통... 쓰라린 상처는 내 기억에서 다 사라질 찌어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동안 우리가 걸어왔던 고난의 <<무수한 파노라마가>> 다 치유받기를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은 고난의 아픔을 <<다 잊게 해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나쁜 기억들을 더 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네타기를 또 반복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파도타기를 잘해야 합니다. 아멘!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건강합니다. 잊어야 새것을 받아들입니다. <<잊으라면 잊지요! 그까짓 것 못 잊을까봐!>> 불행한 과거 세월의 강물에 다... 다 떠내려... 보내버리세요!! 특히,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남을 위한 옵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필수사항입니다>> 중국속담에 <<복수하기로 마음먹는 자는 무덤을 두개나 파는 격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남을 용서해야 합니다. 행복의 회복은 참 간단합니다. 과거의 상처 치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난날의 아픔을 잊어버리고... 다 용서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다 잊어버리고... 다 용서합니다. 자신을 팔아먹었던 형들을 눈물로 용서하고 가슴으로 용서합니다(창45:5-8). 알란 패턴은 <<한 가지 변함없는 법칙이 있다. 우리가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용서하지 않는 한 치유도 없다>> 우리는 나쁜 기억들로 인해 패배 당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요셉은 미움을 용서로 승화시킨 인생을 살았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감사로 수놓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은 것 때문에 원망하지 말고... 얻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며 살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된 섭리를 믿고 더 큰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 혹독한 겨울 같은 시련을 경험하고 있다면... 반드시 희망찬 봄이 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요셉처럼 긍정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만을 희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두 배로 보상 하신다>>는 풍부한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요셉처럼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복된 섭리를 믿고 사는 건강한 모습니다. 요셉은 갑절로 보상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즐거워했습니다. 요엘서 2장 25절에서는 <<우리가 당한 고통의 햇수만큼 갚아주신다고>> 약속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이 뼈아프게 치른 대가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많이!... 훨씬 더 좋은 것으로 축복하십니다. 우리 모두 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하나님의 복된 섭리에 기대를 걸읍시다. 미국 교회의 지도자 John Maxwell도 이렇게 호소합니다. <<당신의 미래는 바로 지금 당신이 다듬어 가는 인생...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된 섭리를 믿고... <<가꾸어가는 만큼>>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요셉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과거의 아픔은 다 잊어 버리십시오>> 미래에 주실 은총과 복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입니다. 상처와 아픔 속에서도 치유해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잃은 것 때문에 원망하지 말고... 얻은 것으로 인해 더욱 감사하십시다. 앞으로 더 풍성하게 채워주실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아멘!!
감사거리를 찾아봅시다/ 시107:1-9, 골4:2/맥추감사주일설교/ 2003-11-16
감사거리를 찾아봅시다 시107:1-9, 골4:2 미국 사람들은 에디슨이 태어난 날 1분 동안 모든 전기를 다 꺼버린다고 합니다. 그 1분 동안은 미국 전체가 캄캄한 암흑으로 변하고 온 세상에 고요가 깃듭니다.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은 그런 작은 행동을 통해 전기를 인류에게 선사한 위대한 과학자 에디슨의 수고에 대한 감사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에디슨은 학교교육이라고는 고작 3개월 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기차간에서 화학실험을 하다 폭발하는 바람에, 화가 난 차장이 귀를 때려 그 때부터 평생을 귀머거리로 살았습니다. 귀 수술을 받는 날도 깜박 잊어버리고 연구실에 처박혀 오직 실험과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런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에디슨은 1천 개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 오늘 우리 사회에 굉장한 편리함을 주었습니다. 에디슨의 가장 큰 발명품 가운데 하나가 전기입니다. 오늘날에 전기가 없으면 온 세상이 마비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만큼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줄뿐만 아니라,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에디슨이 태어난 날 1분 동안 모든 전기를 끄고서 그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참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모든 한국교회가 지키는 맥추감사절입니다. 감사절이 다른 게 아닙니다. 미국 사람들이 1분 동안의 모든 전기를 끄고서, 그동안 항상 혜택을 누리면서도 감사하지 못했던 에디슨의 수고와 노력에 감사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며 살아왔으면서도 잊어버린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하자는 것이 감사절의 의미입니다. 흔히들 신앙의 척도는 \\\'감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성경이 걱정하며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디모데후서 3:2절에 보면,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면서도 정장 중요한 감사는 잊어버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감사를 잊고 살아갑니까?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받았을 때 보통의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자신이 도움을 받는 것이 고마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나는 도움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 그는 당연히 나를 도와야 해\\\'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어찌 감사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시대는 갈수록 자기중심적인 문화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은 \\\"자기를 사랑하는\\\" 문화가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나 중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최우선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희생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나만 편하고, 나에게 유익이 된다면 다른 사람에 손해가 되고 불편을 가져다 주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은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보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갈 뿐입니다. 자신만을 보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자기중심적인 문화에 적당히 물들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말입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지나온 6개월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어떤 감사를 찾아보셨습니까? 지난 6개월 동안 여러분에게는 감사할 일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라고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지난날을 살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움의 손길에 대해서 너무 무감각하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자기중심적인 문화가 감사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감사의 이유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게 신앙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찾아지지 않는 감사는 여전히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합니다. 또 감사거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감사를 잃어버린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찾으려 해야 찾아지는 게 감사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감사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발견되지 못한 감사거리를 신앙의 눈을 떠서 찾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07편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 땅에 돌아올 때에 지었던 감사찬송시입니다. 그들은 70년 동안이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70년의 기한이 끝나자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기들이 꿈에 그리던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자기들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당신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인자하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 땅에서 건지셔서 고향 예루살렘으로 불러모으신 것을 인해서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70년 동안이나 포로생활을 한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그건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사실로 인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벨론 포로에서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만을 생각하면 감격스럽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코 감격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7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70년 노예생활을 한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건축재료들 뿐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이 성전을 건축하도록 배려해서, 70년 전에 느브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성전 기명들을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에 맡기고, 그것으로 성전을 건축하도록 했습니다. 그것 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고향에 도착한다고 해도 우선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입을 옷이며 살아가야 할 집들도 없습니다. 사실 자기들을 위해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시대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어쩌면 오늘이라는 현실을 돌아보아도 감사거리를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입에서 감사는커녕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사업도 잘 풀려지지 않지요, 고기가 잡히지 않아 우리 후포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렵지요,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지요. 정말 힘든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힘든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통해 감사를 찾아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우리를 묵묵히 지켜보시며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지난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셨던 것처럼, 오늘도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있음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사업이 잘 돼서 많은 재물은 얻지 못했더라도 우리에게 건강 주셨음을 인해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을 잃어간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음을 인하여, 또 오늘도 주님 전을 찾아나올 수 있도록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싸개 아래 보호해주셨음을 인해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겨주셨습니다. 가족도 있고,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맡길 수 있는 믿음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건강도 있고, 생명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내 주위에 남아 있는 이웃과 믿음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단편 소설 가운데 \\\"지옥의 단편\\\"이란 글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보면, 자색의 도시로 들어가시는 주님과 주님을 다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께서 길을 가시던 도중에 한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그 주정꾼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나를 고쳐주어 걷게 만들어 주셨지요. 그러나 걸어 다닌다 한들 무엇을 먹고살란 말이오? 그 동안 여러 직업을 구해 보았으나 동냥만큼 좋은 직업은 하나도 없었소. 그러나 이제는 다리가 성하니 동냥도 할 수 없어 이렇게 술만 마시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더 지나가시다 거리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한 창녀를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이런 생활로 되돌아왔소?\\\"라고 묻자, 그 창녀가 대답합니다. \\\"처음에는 당신이 나를 윤락가에서 구해 준 것이 무척 감격적이었어요. 그러나 거기서 발을 씻은들 무슨 행복이 있단 말입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찾아오는 생활의 권태와 고독으로 나는 다시 창녀생활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주님이 더 길을 가시다 한 깡패가 사람들을 정신 없이 때리고 있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여보시오. 어찌하여 이런 생활을 하고 있소?\\\" 그러자 그 청년이 말합니다. \\\"나는 당신이 눈을 뜨게 해준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을 뜨고 무엇을 보라는 것이지요? 보이는 것은 모두 신경을 자극하고 화만 나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화풀이를 위해 다시금 깡패생활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절름발이를 고쳐준 것이 어찌 감격적인 일이 아닐 수 있습니까? 창녀가 그 일을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까? 그런데도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감격을 감격으로 안고 살지 못하고, 현실적인 욕구와 바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때부터 다시 이전과 같은 비참한 생활로 돌아간 것입니다. 오늘의 삶에서 감사를 찾지 못한 사람은 오늘을 비극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큰 은혜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비극을 살아갈 뿐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우리의 지금 모습이 초라하다 하더라도, 또 내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지금 내게 있는 것 가운데서 감사거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찾아보면 거기에서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엄청난 축복이 감추어져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잊혀진 감사거리가 있지 않나 살펴보고 잊혀진 감사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찬송시에서 시인은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본문 4-7절이 지나간 역사 속에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노래한 부분입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는 회고하면서 감사한 노래입니다. 광야 40년 동안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는 기간일 것입니다. 그만큼 그 40년은 힘든 삶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바로 그 40년 기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가장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시인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셨고, 힘들고 어려워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울부짖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은 도우셨고 구원하셨습니다. 그게 감사거리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했던 때를 추억하며 매년 장막절을 지냅니다. 그런데 그 장막절에 옛 조상들이 고생했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해 주면서 그들은 고생했다는 것이 초점을 맞추지 않고, 고생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인도하셨고, 사랑해 주셨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건 굉장한 차이입니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 어느 쪽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생했다는 점만을 부각시켰다면, 이스라엘 후손들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 자리잡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생했다는 것 자체보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이야기, 구원하신 이야기, 편 팔로 안아주신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감사가 찾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바로 광야 40년의 생활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잊지 못할 때도 역시 그 광야 40년입니다. 추억해 볼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지난 날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가 다 있었을 것입니다. 인생을 오래 사신 분들은 그런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고, 젊은 분들은 좀더 적었을 것입니다. 많은 인생의 고난을 겪으셨던 분들은 굉장히 깊은 아픔을 느껴야 하는 고통의 순간을 겪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난 날 그렇게 고생하며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는 것 때문에 한숨이나 쉬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그런 삶에는 감사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때를 추억하면서,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어떻게 도와주셨는지를 추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간 삶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감사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빨리 잊어버리고 싶던 때일수록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오래 간직하면서, 그 속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늘 되새김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다시 닥칠지 모를 힘든 상황을 극복할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난날 내 인생에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에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되새김질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까? 한번 감사한 것으로 끝나버리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지난날 가운데서 빨리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오래 오래 기억하며 되새김질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빨리 잊어야 할 것은 오래 기억하고,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빨리 잊어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이 때만큼은 확실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고, 하나님의 손길을 분명하게 보았던 사건이었다고 생각되는 그 일은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감격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실 은혜를 기대하며 거기에서 감사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8-9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지난날 광야 같은 세상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의 모든 인생살이에서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시리라는 확신에 찬 노래입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여러분, 우리가 겪었고, 또 겪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면서 미리 감사하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 역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내일을 바라보면서 먼저 감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분명한 고백, 절대적인 신앙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예물을 드리는 것도 아름다운 믿음이지만, 은혜 베풀어주실 줄 믿고 미리 감사하며 드리는 예물은 더욱 아름다운 향기 나는 예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감사에는 현실을 초월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언가 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자꾸만 일이 꼬일 때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집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답답하고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럴수록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정말 신기하게도 길이 열리게 됩니다. 감사는 막혀진 길을 뚫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풀려지지 않는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입니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Mattew Henny, 1662-1714) 목사님은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집니다. 오늘 신약에서 읽은 말씀에 보면,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며 감사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함으로 깨어 있는 신앙인이 아니고는 우리의 삶에서 감사거리를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2003년도 맥추감사절을 맞은 우리 중앙가족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모든 일에서 감사거리를 찾아 늘 감사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 엄청난 감사의 비밀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와 더 나아가 다가올 미래에 우리의 영혼에 충만히 채워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감사의 삶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채워질 것입니다.
감사는 성도의 노래/ 렘33:6-10/ 맥추감사주일설교
감사는 성도의 노래 렘33:6-10 우리 교회의 맥추감사절입니다 뻔할 뻔자이겠지요 감사하자 감사해야 한다 감사로 살자 뭐 이런 식으로 설교하게 되는 거 아니겠어요? 울 같은 실력에 뭐 특별한 거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설교하게 됩니다 한 가지 말할 수 있는게 있다면 거짓이서는 안된다! 적어도 내 설교는 나의 고백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입니다 모든 거이 은혜요 전부가 은혜요 따지면 따질수록 감사뿐인 거 이거이 정녕 울의 고백이요 울의 현재인 겁니다 찬양예배설교 본문: 마태 9장 35- 38절 제목: 만능목회자 목양칼럼을 읽는 거이 찬양예배 설교 절반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금주의 목양칼럼은 -목사님! 영양제 놓을 줄 아세요? - 인데요 생각되는 거이 있어서 두드렸었고요 오늘은 그런 주제가 찬양예배 메시지가 되겠습니다 어제 구미서 보았던 울 노회의 두 가지 기쁜 행사 등대교회의 헌당예배 주평강교회의 개척예배 모두 다 훌륭한 목사님들의 지극히 당연하고 또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면서 촌목사로서 심히 비교가 되었던 자리였습니다 애써 자위하기를 오늘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도 울한테는 벅차다! 는 생각으로 돌아왔는데요 늘 빌빌거리고 늘 비실거림이 더 엎드리고 더 무릎 꿇어야 함을 깨닫는 거.
감사다운 감사/ 시50:12-15/ 맥추감사주일설교/ 2004-02-09
감사다운 감사 시50:12-15 ꡒ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출 34:22)ꡓ 우리나라에서 하곡과 추곡을 거두듯이 이스라엘에서도 하곡과 추곡을 거두는데 하곡을 거두어 들이는 절기를 맥추절, 추곡을 거두어 들이는 절기를 추수절, 곧 수장절이라고 합니다. 우리교회의 3대 목표가운데 하나가 ꡐ교회다운 교회이며,ꡑꡐ다운ꡑ이란 ꡐ같은ꡑ이라는 말입니다. 감사절을 지킴에 있어 중요한 것은절기가 아니라 감사절의 제사가 감사다운 감사로 드려지는 예배이느냐입니다. 시편 50편은 참 제사, 즉 참예배를 권면 하시는 말씀으로서 본문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하나님을 부르라고 하십니다. 첫째: 감사로 예배를…(사랑)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는 것이요, 은혜의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사랑입니다. 생명이 없는 몸은 시체인 것처럼 감사가 빠진 감사절 예배는 죽은 예배입니다. ꡒ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12절).ꡓ 이는 고대인들이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부양물을 공급하는 행위를 큰 의무로 여겼음을 지적,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은 이교도들의 사고방식으로 제사를 드린다면 그 제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피조하신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그 무엇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시기에 자기 백성에게 어떠한 것도 요구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에 있어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는 마음입니다. ꡒ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13절).ꡓ 이는 일부 이스라엘 백성이 이교도들의 잘못된 신관에 물들어 있음을 시사하는 말씀으로서 그릇된 신관으로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책망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 하시는 것은 참된 마음으로 감사절의 생명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절다운 감사예배를 드리시렵니까? 진정 감사한 마음으로 찬송하고, 기도하며, 헌금하십시오. 봉투에 얼마의 돈을 넣어 내 이름 석자 써서 드림으로서는 감사다운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헌금의 무게는 돈의 단위에 의해 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을 담은 분량에 따라 좌우 되는 것입니다. 지금 가진 것으로 족할 줄 아는 사람은 빈곤 가운데서도 즐거워 하나 지금에 족할 줄 모르는 자는 풍부함 속에서도 근심을 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재물의 풍요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족할 줄 아는 감사에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자신에게만 집착했던 마음의 껍질을 벗겨 버리고 나를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이며, 나를 하나님께로 돌림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됨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됨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은 자에게는 감사한 일도 생기지 아니합니다. 해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ꡒ감사는 고결한 영혼의 표지이다.ꡓ 이솝(Aesop)의 말입니다. ꡒ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요11:41).ꡓ 이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기 전 장차 이루어질 것에 대하여 미리 감사를 드리심입니다. 지금 가진 것이 없어도 받게 되고 갖게 될 것을 인하여 앞당겨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리 감사함은 고사하고 살아온 은혜도 감사하지 못한다면 부끄럽고 한심한 신앙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삭개오에 대한 전설입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삭개오는 늘 한 나무 밑에 앉아 그 나무를 존경하듯이 어루만졌답니다. 어느날, 그 곳을 지나던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ꡒ그 고목을 왜 그리 정성스럽게 여기시나요?ꡓ 나는 이 나무위에서 나의 주님을 처음 뵈었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으며, 회개하고 구원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이 나무를 볼 때마다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합니다ꡓ 삭개오는 평생 주님께 감사하며 살았고, 감사하는 삭개오의 마음과 생활에는 사단도 틈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마음이 감사함으로 가득차있는 사람에게는 사단도 넘보지 못합니다. 둘째:서원을 갚으며…(인격)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을 지라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있음입니다. ꡒ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갈6:7).ꡓ ꡐ만홀ꡑ이란 ꡐ소홀히ꡑ라는 말이요, 하나님을 소홀히 여김은 죄입니다. 헌데 여호와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는 자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모순 중에 모순입니다. 서원이란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드린 어떤 맹세, 즉 약속으로 대부분 급하거나 불리한 상황에서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면 ꡐ내가 언제 하나님께 그런 약속했느냐ꡑ는 듯이 망각하고 맙니다. 약속은 인격입니다. 세상에서도 약속을 어기는 자와는 아무것도 믿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스스로 한 약속을 어기는 자와는… 그런데 유일신이신 하나님께 자기가 자발적으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 어휴! 앞날이 불안합니다. 신앙 인격이 바로 되지 아니하고 마음에 감사함을 담고 있다는 것은 진한 거짓말이랍니다. 어떤 소녀가 물에 빠졌습니다. 한 청년이 소녀를 구조하여 최선을 다해 인공호흡을 시키고 있을 때 소녀의 아버지가 허겁지겁 달려 왔습니다. ꡒ이보게 청년, 내 딸을 꼭 살려주게나, 제발 내 딸을 살려 줘! 100만원을 주겠네ꡓ 얼마후 소녀의 의식이 회복되었지요 소녀의 아버지가 딸을 끌어 안으며 한 말입니다. ꡒ그렇지, 내 딸은 그리 쉽게 죽을 애가 아니네, 그러니 10만원만 주겠네.ꡓ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실한 신앙 인격을 요구하시고, 진실한 신앙 인격은 행함을 통해서만이 입증되며, 진실한 신앙 인격자가 감사다운 감사를 드릴수 있습니다. ꡒ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116:12-14).ꡓ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서원이행입니다. 골이 깊으면 언덕도 높습니다. 감사가 깊어야 하나님의 축복도 큰 것입니다. 깊은 감사, 서원이행이 안되십니까? 훈련하십시오. 한번, 두 번, 세 번... 될때까지 또 기도 하시고 또 노력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배가 고파 떡 한 개를 사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아 한 개를 더 사먹었습니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아 하나 더, 하나 더, 다섯 개를 사먹으니 배가 부르더랍니다. 그러자 그사람 왈 ꡒ에이! 돈 아깝다 내가 왜 첫 번째 두 번째 떡을 돈주고 사먹었을까?ꡓ라고 하더랍니다. 혹시 이런 분 계신가요?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경건의훈련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감사의 고백은 하나님과 하나님 것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빛이 작은 구멍을 통해서도 보여 지듯이 사소한 일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설명해 줍니다. 숨어있는 작은 서원까지도 이행하는 자가 신앙인격이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ꡒ인간이 결단한 것을 행동화 할 때 참된 미래를 가질 수 있다ꡓ불트만(R. Bultmann)의 말입니다. 서원을 불이행하는 자는 복된 미래를 소유 할 수 없습니다. 까닭은 하나님께선 불성실한 인간과는 상대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ꡒ성실은 어디에서든지 통하는 화폐다ꡓ 중국 속담이랍니다. 작은 꿈을 이루고자 하면 큰 꿈이 도망쳐 버리나 큰 꿈을 이루고자 하면 작은 꿈은 따라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꿈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함입니다. 셋째 : 환난 날에도…(신뢰) 신뢰 하나님께서는 표면으로 보이는 제물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라고 하시고, 그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에는 이면에 숨어있는 서원을 갚으라 하시더니, 이제는 환난 날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어려운 일만 겹겹이 쌓여있어 감사할 조건을 찾을 수 없을지라도 절망치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달림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해서 환난날에 부르짖는 기도는 나를 구원케하고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립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십니다. 환난 속에서 하나님께 탄원하십시오. 부르짖는 깊은 신앙인이 되십시오. 환난을 면하고 크고 깊은 감사를 드릴날이 올 것입니다. ꡒ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것이니라(잠 8:17)ꡓ B.T.D.에서 제 숙소는 2층이었고 화장실은 1층이었습니다. 저는 자다가 한 번은 일어나 화장실을 가는데 아래층에 갔다오면 잠이 깨어 잠을 잘 수가 없어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릅니다. 화장실이 달린 방에서 살면서 그것이 감사한 것임을 몰랐습니다. 어려움을 당해봐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내 생활에 감사하지 못함은 고난을 당해보지 않은 까닭입니다.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혀로 맛을 구별하고, 코로 냄새를 맡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음은 영적 생활인 기도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능력을 기억지 아니하고 누구에게 찾아갈까? 어디에 탄원을 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해결의 열쇠인 기도를 잃어버림은 믿음의 부족입니다. 제 책상앞 작은 차 탁자 위에 동양란 화분이 하나 놓여 있는데 늘 파란 잎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요며칠 전 청초하고 우아한 꽃을 피웠습니다. 아직 삶의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만을 계속 찾으십시오. 복된 미래가 와질 것입니다. 환란날에 부르짖음은 하나님을 신뢰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뢰하는 자에게 능력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감사=사랑, 서원이행=인격, 환난날에 부르짖음=신뢰, 신뢰=내 구원, 하나님영광~
감사로 드리는 맥추절 / 신16:9-12 / 맥추감사주일
감사로 드리는 맥추절 / 신16:9-12 / 맥추감사주일 2009-06-25 11:47:07 read : 372 예수님을 잘 믿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입술에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아버지 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느 날 감사 할아버지가 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오시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개가 고기를 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개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젊은이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감사하세요? 돌에 걸려 넘어졌고, 비싼 돈 주고 사온 고기도 개에게 빼앗겼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때 감사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 나는 고기는 잃어버렸지만, 내 입맛은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항상 원망과 불평이 습관화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랐습니다.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이 말합니다.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으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사실 그녀는 인간적으로 볼 때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과연 헬렌 켈러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받은 것이라곤 삼중의 고통이었습니다. 볼 수 없는 눈과 들을 수 없는 귀와 말할 수 없는 입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없는 것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것, 자기가 받은 것,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거동 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의 고난을 기억하는 자여, 주 죽으심 언제나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우리의 감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감사절조차도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어버린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가장 불행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맥추감사절의 의미와 어떻게 우리가 감사의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부르신 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3대 명절을 말씀하십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일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감사드리는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리고 유월절과 수장절 사이에 하나님은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출23:16)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간 지난 후에 드린다고 해서 칠칠절 혹은 오십일 째 지킨다고 해서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맥추절은 밀과 보리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미래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파종하여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임을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거칠고 황량한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미래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내 손에 아무 것이 없어도,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복을 미리 바라보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의미를 지닌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맥추절을 지키게 된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부터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의 여정을 마치고,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정착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맥추절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과 광야 40년 동안의 고난의 세월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시고, 힘들고 고통스런 광야생활 동안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가나안의 풍족함에 빠져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풍요로움에 빠져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때로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인 것처럼 교만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런 우리의 모습을 아시고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신명기 8:11-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들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먹거리가 풍성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재물이 풍부하고 넘칠 때 넘어지기 쉽습니다. 교만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신8:17-18에도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을 지킬 때마다 너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맥추절을 지키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교만이요, 불신앙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애굽의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 얼마나 큰 감사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광야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고기국물이라도 먹으며 살게 놔두지 이렇게 광야로 끌고 와서 고생을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입술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6개월 동안을 조용히 돌이켜 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가정과 자녀들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새롭게 희망을 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와 지금 현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현상을 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아픔과 고통만을 안겨주시느냐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비록 우리가 볼 때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그러면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먹으며 살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열매를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씨를 뿌리고 가꾸지만, 농사가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헛수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한 것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예물을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형식적으로 체면 때문에 드리고 있습니까?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으셨다면 지금 이 시간에라도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물질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금화보다 홀로 사는 여인의 동전 몇 닙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부자는 많은 것 중의 일부를 드렸지만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성스러운 강으로 여기는 갠지스강에 자식을 바치는 의식이 있습니다. 하루는 선교사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 강을 향해 가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한쪽에는 아주 총명하고 건강한 아이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장애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병들고 잘 걷지도 못합니다. 순간적으로 선교사는 “저 여인이 자기 신에게 두 아이를 바치려고 하나보다.” 생각을 하고 그 여인을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끝내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강으로 갔습니다. 얼마 후에 그 여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는 안보이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자기 신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아니 이왕 바칠 것이라면 장애가 있고 병든 아이는 살아도 짐이 될 것인데 왜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신에게 바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믿는 신은 가장 똑똑하고 최상의 것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선교사님이 얼마나 부끄러움을 가졌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충성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성과 예물을 드리고 있는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오늘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드리는 참된 예배와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도시화되면서 맥추절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영적의미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겠다는 헌신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맥추절인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시어 신약교회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교회의 지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존 밀턴은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불행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내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이와 같은 감사로 말미암아 그는 실락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범사’는‘모든 일에’라는 의미의 ‘in everything’ 혹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는 의미의 ‘in all circumstance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모든 일 가운데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주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다면 현재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사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인간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자녀교육으로 인해, 부부관계로 인해,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를 작사한 버틀러(C. F. Butler)는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는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삽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떨어졌든지 아예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전에,“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술에서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에서도 감사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를 합니다. 새문안교회를 섬기시다가 소천하신 김동익 목사님의 감동적인 기도문이 있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은 불행의 뿌리이고, 감사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 불평하면 누구의 사람이 될까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불평의 배후에는 사탄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제는 불평과 원망을 끊어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아멘! 항상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감사의 예배와 예물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복된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로 드리는 맥추절 / 신16:9-12 / 맥추감사주일
감사로 드리는 맥추절 / 신16:9-12 / 맥추감사주일 2009-06-25 11:47:07 read : 374 예수님을 잘 믿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입술에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아버지 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느 날 감사 할아버지가 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오시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개가 고기를 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개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젊은이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감사하세요? 돌에 걸려 넘어졌고, 비싼 돈 주고 사온 고기도 개에게 빼앗겼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때 감사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 나는 고기는 잃어버렸지만, 내 입맛은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항상 원망과 불평이 습관화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랐습니다.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이 말합니다.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으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사실 그녀는 인간적으로 볼 때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과연 헬렌 켈러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받은 것이라곤 삼중의 고통이었습니다. 볼 수 없는 눈과 들을 수 없는 귀와 말할 수 없는 입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없는 것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것, 자기가 받은 것,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거동 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의 고난을 기억하는 자여, 주 죽으심 언제나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우리의 감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감사절조차도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어버린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가장 불행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맥추감사절의 의미와 어떻게 우리가 감사의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부르신 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3대 명절을 말씀하십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일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감사드리는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리고 유월절과 수장절 사이에 하나님은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출23:16)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간 지난 후에 드린다고 해서 칠칠절 혹은 오십일 째 지킨다고 해서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맥추절은 밀과 보리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미래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파종하여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임을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거칠고 황량한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미래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내 손에 아무 것이 없어도,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복을 미리 바라보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의미를 지닌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맥추절을 지키게 된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부터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의 여정을 마치고,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정착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맥추절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과 광야 40년 동안의 고난의 세월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시고, 힘들고 고통스런 광야생활 동안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가나안의 풍족함에 빠져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풍요로움에 빠져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때로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인 것처럼 교만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런 우리의 모습을 아시고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신명기 8:11-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들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먹거리가 풍성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재물이 풍부하고 넘칠 때 넘어지기 쉽습니다. 교만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신8:17-18에도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을 지킬 때마다 너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맥추절을 지키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교만이요, 불신앙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애굽의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 얼마나 큰 감사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광야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고기국물이라도 먹으며 살게 놔두지 이렇게 광야로 끌고 와서 고생을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입술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6개월 동안을 조용히 돌이켜 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가정과 자녀들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새롭게 희망을 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와 지금 현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현상을 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아픔과 고통만을 안겨주시느냐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비록 우리가 볼 때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그러면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먹으며 살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열매를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씨를 뿌리고 가꾸지만, 농사가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헛수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한 것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예물을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형식적으로 체면 때문에 드리고 있습니까?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으셨다면 지금 이 시간에라도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물질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금화보다 홀로 사는 여인의 동전 몇 닙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부자는 많은 것 중의 일부를 드렸지만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성스러운 강으로 여기는 갠지스강에 자식을 바치는 의식이 있습니다. 하루는 선교사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 강을 향해 가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한쪽에는 아주 총명하고 건강한 아이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장애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병들고 잘 걷지도 못합니다. 순간적으로 선교사는 “저 여인이 자기 신에게 두 아이를 바치려고 하나보다.” 생각을 하고 그 여인을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끝내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강으로 갔습니다. 얼마 후에 그 여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는 안보이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자기 신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아니 이왕 바칠 것이라면 장애가 있고 병든 아이는 살아도 짐이 될 것인데 왜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신에게 바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믿는 신은 가장 똑똑하고 최상의 것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선교사님이 얼마나 부끄러움을 가졌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충성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성과 예물을 드리고 있는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오늘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드리는 참된 예배와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도시화되면서 맥추절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영적의미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겠다는 헌신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맥추절인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시어 신약교회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교회의 지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존 밀턴은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불행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내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이와 같은 감사로 말미암아 그는 실락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범사’는‘모든 일에’라는 의미의 ‘in everything’ 혹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는 의미의 ‘in all circumstance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모든 일 가운데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주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다면 현재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사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인간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자녀교육으로 인해, 부부관계로 인해,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를 작사한 버틀러(C. F. Butler)는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는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삽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떨어졌든지 아예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전에,“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술에서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에서도 감사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를 합니다. 새문안교회를 섬기시다가 소천하신 김동익 목사님의 감동적인 기도문이 있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은 불행의 뿌리이고, 감사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 불평하면 누구의 사람이 될까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불평의 배후에는 사탄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제는 불평과 원망을 끊어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아멘! 항상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감사의 예배와 예물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복된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감사로 드리는 맥추절 / 신16:9-12 / 맥추감사주일/2009-06-25
감사로 드리는 맥추절 신16:9-12 예수님을 잘 믿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입술에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할아버지 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어느 날 감사 할아버지가 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오시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개가 고기를 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물끄러미 개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젊은이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감사하세요? 돌에 걸려 넘어졌고, 비싼 돈 주고 사온 고기도 개에게 빼앗겼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때 감사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 나는 고기는 잃어버렸지만, 내 입맛은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어떤 상황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항상 원망과 불평이 습관화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온천이 솟고, 그 옆에서는 얼음같이 차가운 냉천이 솟아올랐습니다.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이 말합니다.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 더 많습니다. 더운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이 많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으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사실 그녀는 인간적으로 볼 때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과연 헬렌 켈러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가 받은 것이라곤 삼중의 고통이었습니다. 볼 수 없는 눈과 들을 수 없는 귀와 말할 수 없는 입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없는 것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것, 자기가 받은 것,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에 감사했습니다.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거동 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의 고난을 기억하는 자여, 주 죽으심 언제나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우리의 감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아니 감사절조차도 진정한 감사를 올려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어버린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가장 불행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6개월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맥추감사절의 의미와 어떻게 우리가 감사의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부르신 후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3대 명절을 말씀하십니다.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수장절은 일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모든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감사드리는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리고 유월절과 수장절 사이에 하나님은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하십니다..(출23:16) 맥추절은 유월절이 지난 후 7주간 지난 후에 드린다고 해서 칠칠절 혹은 오십일 째 지킨다고 해서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맥추절은 밀과 보리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미래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파종하여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임을 미리 예언하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거칠고 황량한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미래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내 손에 아무 것이 없어도,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복을 미리 바라보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맥추절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의미를 지닌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맥추절을 지키게 된 것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부터였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의 여정을 마치고,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정착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맥추절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과거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지키는 절기입니다.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과 광야 40년 동안의 고난의 세월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시고, 힘들고 고통스런 광야생활 동안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가나안의 풍족함에 빠져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풍요로움에 빠져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때로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자신의 수고와 노력의 산물인 것처럼 교만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런 우리의 모습을 아시고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신명기 8:11-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들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먹거리가 풍성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재물이 풍부하고 넘칠 때 넘어지기 쉽습니다. 교만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 까 조심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신8:17-18에도 거듭 강조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맥추절을 지킬 때마다 너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이 맥추절을 지키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에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사는 것이 바로 교만이요, 불신앙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애굽의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 얼마나 큰 감사입니까? 그런데 그들은 광야의 길에 들어서자마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고기국물이라도 먹으며 살게 놔두지 이렇게 광야로 끌고 와서 고생을 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습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 입술에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6개월 동안을 조용히 돌이켜 보십시오. 개인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가정과 자녀들 가운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새롭게 희망을 품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와 지금 현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들이 현상을 보면 낙심하기 쉽습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아픔과 고통만을 안겨주시느냐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더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비록 우리가 볼 때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것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그러면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명하십니다. 10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먹으며 살았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열매를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씨를 뿌리고 가꾸지만, 농사가 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은 헛수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한 것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최선의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예물을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받은 은혜대로 힘을 다하여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형식적으로 체면 때문에 드리고 있습니까?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으셨다면 지금 이 시간에라도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물질보다는 그 마음의 중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부자의 금화보다 홀로 사는 여인의 동전 몇 닙을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부자는 많은 것 중의 일부를 드렸지만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은 성스러운 강으로 여기는 갠지스강에 자식을 바치는 의식이 있습니다. 하루는 선교사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 강을 향해 가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한쪽에는 아주 총명하고 건강한 아이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장애인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병들고 잘 걷지도 못합니다. 순간적으로 선교사는 “저 여인이 자기 신에게 두 아이를 바치려고 하나보다.” 생각을 하고 그 여인을 만류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끝내 두 아이를 데리고 갠지스강으로 갔습니다. 얼마 후에 그 여인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는 안보이고, 병들고 장애가 있는 그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자기 신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아니 이왕 바칠 것이라면 장애가 있고 병든 아이는 살아도 짐이 될 것인데 왜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를 신에게 바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믿는 신은 가장 똑똑하고 최상의 것을 자신에게 바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선교사님이 얼마나 부끄러움을 가졌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날마다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충성을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성과 예물을 드리고 있는지요?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감사를 드리고 있는지요? 하나님은 오늘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해 드리는 참된 예배와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도시화되면서 맥추절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변해도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영적의미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요,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겠다는 헌신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맥추절인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 주시어 신약교회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교회의 지체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절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을 깊이 생각해 보는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존 밀턴은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에 실명을 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불행하다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감사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주여! 주께서 내 눈을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국 이와 같은 감사로 말미암아 그는 실락원이란 불후의 명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범사’는‘모든 일에’라는 의미의 ‘in everything’ 혹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는 의미의 ‘in all circumstance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모든 일 가운데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처해진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주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믿는다면 현재의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며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이 자리에 계십니까? 사업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인간관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자녀교육으로 인해, 부부관계로 인해,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그것도 범사입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를 작사한 버틀러(C. F. Butler)는 3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는 높은 산도 문제가 되지 않고, 거친 들도 문제가 되지 않고, 초막에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주님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만 있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환경을 초월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형편과 조건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감사하며 삽니다. 감사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이 떨어졌든지 아예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기 전에,“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감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술에서 불만과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에서도 감사를 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감사를 합니다. 새문안교회를 섬기시다가 소천하신 김동익 목사님의 감동적인 기도문이 있습니다.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이 제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더 깊이 깨달으면서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불평은 불행의 뿌리이고, 감사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 불평하면 누구의 사람이 될까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불평의 배후에는 사탄이 견고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이제는 불평과 원망을 끊어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아멘! 항상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감사의 예배와 예물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복된 성지가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